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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物相(조선일보) 2025-02/ 02.01(토) 다변 대통령 - 02.28(금) 쌍둥이 시대

상림은내고향 2025. 2. 14. 11:04

萬物相(조선일보) 2025-02/

02.01(토) 다변 대통령

▲일러스트=이철원

 

2009년 9월 23일, 리비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유엔총회에 등장했다. 신종 플루가 군사용으로 개발된 것 같다는 음모론부터 존 F 케네디가 이스라엘 핵무기를 조사하려다 암살됐다는 주장까지 1시간 36분간 장광설을 쏟아냈다. 그런 카다피도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를 이기지는 못했다. 다변(多辯)으로 유명했던 카스트로는 1960년 9월 26일 유엔총회에서 4시간 29분간 연설해 “마라톤 스피커”란 별명을 얻었다. 유엔총회에서 국가 정상이 한 연설로는 최장 기록이다. 1986년 쿠바 공산당 대회에서 그는 무려 7시간 10분 동안 연설했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는 ‘TV형 다변가’였다. 2007년 한 프로그램에서 8시간 생방송을 했다.

 

▶유엔은 총회 참석 정상들에게 15분 정도의 연설을 권하지만, 정치인들이 모이다 보니 5분 정도 초과되는 것은 예사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2016년 38분간 ‘고별 연설’을 해서 눈총을 받았는데, 이 기록은 이듬해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금방 깨졌다. 한번 유세에 나섰다 하면 70~90분씩 연설하는 트럼프는 첫 유엔총회에서도 41분간 발언했다. “로켓맨(북한 김정은)이 자살 임무 중” 등의 말이 세계를 흔들었다.

 

▶한국 대통령 중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다변으로 유명했다. 기자 간담회 발언을 정리하면 200자 원고지로 100~150장쯤 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각 언론사의 청와대 출입 기자 중 막내뻘인 ‘말진 기자’들은 간담회 내용을 받아 적느라 “쉴 새 없이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손가락이 부러지는 줄 알았다”고 호소할 정도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달변가로 꼽히지만, ‘돌발 발언’이 별로 없다는 점이 노 전 대통령과 달랐다. 주제별로 정리된 생각이 있어서, 관련 질문이 나오면 매번 비슷한 답변을 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를 오래 취재한 기자라면 어느 정도 발언을 예상할 수 있어 정리하기 수월했다는 평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다변에 대응하기 위해 백악관이 속기사 증원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트럼프가 취임 첫 주 카메라 앞에서 공개 발언을 한 시간만 7시간 44분으로, 바이든 전 대통령(2시간 36분)보다 훨씬 길었다. 사용한 단어 수로 보면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 ‘햄릿’, ‘리처드 3세’를 합친 것보다 많은 8만1235단어를 썼다는 통계도 있다. 자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세상이 요동치니, 그만큼 말할 맛이 나는지도 모르겠다.

김진명 기자

 

02.03(월) '안티 드라이빙' 세대

▲일러스트=이철원

 

필자가 대학 다니던 1980년대 후반, 대한민국은 ‘3저(低) 호황’으로 활기가 넘쳤다. 사회 분위기는 운전면허 취득 붐으로도 나타났다. 많은 청년이 학력고사 직후 또는 대입 후 방학을 이용해 운전면허를 땄다. 그런데 한 세대 만에 옛얘기가 됐다.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 태어난 필자의 아들딸만 해도 운전에 관심이 없다. 아들은 속칭 장롱 면허이고 대학 졸업반인 딸은 면허가 아예 없다.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경찰청이 엊그제 내놓은 통계도 이런 변화를 뒷받침한다. 전국의 운전면허 학원 수가 2018년 383곳에서 지난해 344곳으로 줄었다고 한다. 2020년 106만여 명이던 연간 면허 발급자 수가 2022년부터 100만명 아래로 떨어졌고 2023년엔 87만여 명까지 줄면서 학원들이 잇달아 문을 닫고 있다.

 

▶면허를 따야 할 청년 인구가 줄어든 탓만은 아니다. 미성년에서 18세 이상 성년이 된 인구는 2020년 55만여 명에서 지난해엔 43만여 명으로 11만명 줄었다. 그런데 같은 기간 신규 면허 취득자는 그 두 배 가까운 19만명 줄었고 그중 80%가 20대였다. 2023년도 신규 면허 취득자는 전년 대비 약 8만9000명 줄었는데 98%가 20대였다는 통계도 있다. 20대의 신차 등록 대수도 2014년 약 11만대에서 지난해 8만대로 주저앉으며 ‘안티 드라이빙’ 세대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많은 젊은이가 “굳이 면허를 딸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이 편리해졌다는 것이다. 인터넷 세대인 이들은 부모 세대보다 외출도 덜 한다. 물건은 홈쇼핑으로 사고 영화는 노트북 등으로 내려받아 집에서 본다. 가성비를 중시하는 실속파여서 세금·보험료·기름값으로 연간 수백만원 쓰는 것도 아까워한다. 전기 자전거나 전동 킥보드처럼 저렴하고 요즘 말로 ‘힙’한 대체재도 있다.

 

▶‘안티 드라이빙’ 세대 등장의 이면엔 짙은 음영도 드리워져 있다. 전체 20대 일자리의 30%가 계약 기간 1년 미만 비정규직이다. 초단기 알바를 합하면 20대의 약 40%가 불안정한 일자리에 내몰려 있다. 이런 팍팍한 현실이 젊은이들에게 신차 소유는 고사하고 면허 따는 것조차 주저하게 한다는 것이다. 한 세대 전 TV 자동차 광고에선 20대 청년이 소형차를 몰고 예비 장인·장모에게 첫인사를 갔다. 요즘엔 그런 광고를 볼 수 없다. 청년들은 “취직도 안 되고 결혼할 돈도 부족한데 차는 언감생심”이라고 하소연한다. 서글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김태훈 논설위원

 

02.04 공산당의 '오픈 소스' 전략?

▲일러스트=이철원

 

인터넷 여명기인 1990년대 초반 넷스케이프가 웹브라우저 시장을 장악했다. 1995년 마이크로소프트(MS)가 도전장을 냈지만 처음엔 상대가 안 됐다. MS는 윈도에 익스플로러를 끼워 파는 마케팅 전략을 동원해 시장을 무섭게 잠식해 갔다. 궁지에 몰린 넷스케이프는 1998년 프로그램 설계도인 소스 코드를 공개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더 많은 개발자가 기능 개선에 참여하는 집단 지성을 기대한 것이다. 넷스케이프는 이를 ‘오픈 소스’ 방식이라고 이름 붙였다.

 

▶오픈 소스는 MS가 대표하는 상업용 폐쇄 체제와 함께 IT(정보 기술) 역사의 양대 축을 차지해 왔다. 컴퓨터 운영체제인 리눅스, 스마트폰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가 대표적 오픈 소스다. 오픈 소스로 공개된 개발 코드는 전 세계 수많은 개발자의 손에서 다양한 응용 프로그램으로 재탄생했다. 구글·페이스북·아마존 같은 빅테크는 다수 제품을 오픈 소스로 개방한다. 소프트웨어를 힘들게 만들었지만 이를 공개해 생태계를 키우고 시장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나만 잘 먹고 잘 살겠다가 아니라, 함께 발전하며 성과를 공유하겠다는 상생 정신이 깔려 있다.

 

▶저비용·초고성능 인공지능(AI) 모델을 개발해 전 세계에 충격을 준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도 오픈 소스 대열에 합류했다. 중국은 통제와 폐쇄 체제의 대명사인데, 그런 나라의 스타트업이 기술을 처음부터 공개한 것이 이례적이다. 딥시크 창업자인 량원펑은 인터뷰에서 “우리의 출발점은 기회를 틈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기술의 최전선에 서서 전체 생태계를 발전시키겠다”는 것이다. 기술 자신감이 읽힌다.

 

▶테크 업계에선 딥시크가 오픈AI·구글 등이 지배하는 AI 독과점 체제에 균열을 내려 오픈 소스 전략을 택했다고 본다. 미국 AI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자체 기술을 발전시켜 중국 중심의 AI 생태계를 확장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낸 것이다. 특히 중국의 원조에 의존하는 아프리카 국가 등 개발도상국들은 중국의 ‘AI 식민지’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딥시크 오픈 소스 전략의 성패는 결국 중국의 국가 이미지가 좌우할 공산이 크다. 오픈 소스의 최대 가치는 개방과 투명성인데, 중국산 제품은 본질적 약점을 안고 있다. 공산당 정부가 자국산 로봇·가전제품 등을 통해 세계인의 개인 정보를 무차별 수집한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딥시크가 내놓는 답변에 중국 공산당 세계관이 담겨 있다”고 일침을 놓았다. 이런 의구심을 떨쳐내지 못하면 딥시크 태풍은 중국이라는 찻잔 속 태풍에 그칠 수 있다.

김성민 논설위원·콘텐츠전략팀 차장

 

02.05 USAID

▲일러스트=박상훈

 

2008년 준공한 서울 강남구의 삼성힐스테이트는 43평형이 35억원 이상에 거래되는 고가 아파트다. 그러나 그 역사는 한국이 가난했던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재건축 전 이곳에는 1974년 준공한 ‘영동 AID차관아파트’가 있었다. 그 시절 한국에 1680가구의 대단지 아파트를 건설할 돈을 빌려준 곳이 미국의 저개발 국가 원조를 총괄하는 ‘미국국제개발처(USAID)’였기에 붙은 이름이었다. 서초구에서 내년부터 입주하는 ‘래미안 트리니원’의 역사도 비슷하다. 재건축 전 이곳에는 USAID가 차관 1000만달러를 내줘 건설된 1490가구의 ‘반포 AID차관아파트’가 있었다.

 

▶USAID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국가’에 대한 개발 원조를 도맡아 왔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취임한 1961년 독립기관으로 출범했는데, 그 배경에는 냉전이 있었다. 한국 같은 저개발 국가들이 경제성장으로 빈곤에서 벗어나야 소련의 영향력 확산이 차단돼 미국 안보에 도움이 된다고 본 것이다. 지금은 직원 1만명을 두고 연간 약 400억달러(58조원)의 예산을 쓰는 세계 최대 개발 협력 기구가 됐다.

 

▶USAID는 1983년까지 한국을 지원했다. 지원 목록을 보면 주요 대도시의 상·하수도부터 발전소, 시멘트 공장, 나일론 공장까지 다양한 인프라가 망라돼 있다. 한국의 과학 입국을 이끈 KAIST도 USAID의 차관 600만달러로 설립됐다. USAID가 “저소득 가정이 감당할 수 있는 소형 아파트”를 지으라며 준 차관으로 인천·부산·대구에도 아파트가 들어섰다. 미국에선 저소득층이 주로 사는 아파트를 많이 지어 주거 환경을 개선해 주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AID차관아파트가 들어선 반포·해운대 등은 이후 부촌이 됐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부효율부(DOGE) 수장 일론 머스크가 USAID를 “벌레 덩어리”라고 부르며 하루아침에 본부를 폐쇄해 논란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USAID가 “급진 좌파”로 변모했다며 동조해, 국무부 산하로 통폐합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공화당엔 그간 USAID가 진보적 의제를 추진한다는 불만이 있었는데, ‘미국 우선’의 트럼프와 ‘효율’의 머스크가 만나 폐지 수순을 밟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해외 원조 축소가 “자해”이자 “소프트파워 경쟁 중인 중국에 주는 선물”이라고 평가했다. USAID 운영에 이견이 있다고 한들, 의회가 입법을 거쳐 만든 정부 기관을 무슨 사기업 정리 해고 하듯 폐지할 수 있는지 놀라울 뿐이다.

김진명 기자

 

02.06 한국 국회 황당 증인 역사

▲12·3 비상계엄 기획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계엄 전 여러 번 찾아간 것으로 알려진 무속인 ‘비단 아씨’ 이선진(맨 왼쪽)씨가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조특위 청문회에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남강호 기자

 

디자이너 앙드레김의 인생은 1999년 옷 로비 국회 청문회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그가 참고인 선서 때 “앙드레김입니다”라고 하자, 법사위원장은 “본명을 말하세요”라고 했다. “김봉남입니다.” 프랑스 유학파 앙드레김의 고향(구파발)과 본명(김봉남)이 처음 알려졌다. 좌중에서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그는 의원들에게 “제 패션쇼에 꼭 와달라”는 말로 청문회장을 떠났다. 그러나 집에 와선 가족에게 “우리 이민 갈까”라며 힘들어했다고 한다. 천안에 있는 그의 묘비에는 영어로 쓴 ‘앙드레 김’과 한자로 된 ‘개령김공봉남지묘(開寧金公鳳南之墓)’가 함께 새겨져 있다.

 

 

▲일러스트=이철원

 

▶문재인 정부 초기에는 ‘적폐 청산’이라면 안 되는 일이 없었다. 2018년 10월 10일, 국가대표 야구 감독 선동열이 국정감사에 불려나온 것도 이런 분위기 때문이었다. 선 감독이 병역 면제 특혜를 주려 특정 선수를 대표팀에 선발했는데 그 배후에는 ‘적폐 세력’이 있다는 것이었다. 민주당 의원이 질책하자 선 감독은 “죄송하다”며 머리를 숙여야 했다. 그 후 대표팀 전임 감독제는 폐지됐다. 우연인지 국가대표 야구팀 성적도 급전직하했다. 그날은 야구인 사이에서 ‘치욕의 날’로 불렸다.

 

▶국회의원들은 튀기 위해 무슨 일이든 다 한다. 증인 채택은 좋은 도구다. 2023년 국정감사에서 과일에 설탕물을 바른 중국식 설탕과자 탕후루 대표가 국회에 불려 나왔다. “소아 비만, 소아 당뇨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추궁에 회사 대표는 “개선하겠다”고 했다. 학생들 입맛이 변했는지 탕후루 열풍은 그때를 기점으로 꺾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은닉 재산이 ‘300조원’이라고 주장했던 민주당 의원은 윤지오라는 연예인을 국회 간담회로 불러 윤씨의 대국민 사기극 무대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사람이 아닌 동물도 자주 국회에 불려왔다. 야생동물 불법 포획을 지적한다며 구렁이를, 중금속 오염과 무관하다며 지역구 산낙지를 가져온 의원도 있다. 동물 학대라며 국회에 동물 반입을 금지하는 법안도 발의된 적이 있다.

 

▶비상계엄 국회 청문회에 구속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여러 번 찾아갔다는 무속인 ‘비단 아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야당 의원들은 노씨에게 무슨 점을 봐줬는지, 계엄 이야기가 있었는지를 집중 질문했다. 비상계엄과 무속을 어떻게든 엮어보려 했지만 “점괘에 맞춰 계엄을 선포했다”는 화끈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굳은 표정의 장성들 앞에서 환하게 웃는 무속인을 보니 희극인지 비극인지 모를 지경이다.

정우상 논설위원

 

02.07 AI 시대 희소 자원 '언론 기사'

▲일러스트=이철원

 

국내 한 부동산 전문가가 중국 인공지능(AI) 딥시크에 “ㅇㅇ(자신의 필명)이 누구니?”라고 물었다. 결과가 놀라웠다. 주요 활동, 주장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는 왜 유명한지까지 설명해 주었다. 정보의 품질과 깊이가 오픈AI의 챗GPT를 능가했다. 딥시크는 어떻게 이런 정보까지 알까. 오픈AI는 딥시크가 자사 데이터를 훔쳐 갔다는 의혹을 제기하지만, 그게 다가 아닐 수 있다.

 

▶미국 빅테크가 챗GPT 같은 AI 모델을 만들 때 세상의 온갖 정보를 다 수집했는데, 그 중심엔 언론사들이 100년 이상 축적한 뉴스 기사가 있었다. 빅테크가 AI 개발 과정에서 데이터를 가장 많이 수집한 상위 10개 웹사이트를 조사했더니, 5개가 언론사였다. 상위 100개 사이트 중엔 언론사가 51개를 차지했다. 기자들이 피땀 흘려 만든 기사를 AI가 공짜로 털어간 사실을 안 뉴욕타임스가 오픈AI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거는 등 언론사들이 데이터 공짜 사용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오픈AI는 AP통신, 월스트리트저널 등 일부 언론사와 개별 계약을 맺고 데이터 사용료를 내고 있지만, 전 세계 언론사에 다 사용료를 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주요 웹사이트들도 데이터 수집에 나선 AI 로봇에 ‘출입 금지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일론 머스크가 “AI를 훈련시키는 데 필요한 데이터 풀이 고갈되고 있다”고 할 정도로 새 데이터 수집이 어려워졌다. 반면 중국의 신생 AI는 데이터 수집에 어떤 장애도 제약도 없다. 한국 부동산 전문가에 대한 딥시크와 챗GPT의 AI 정보력 차이는 이런 데서 연유한 것일 수 있다.

 

▶빅테크들은 AI가 인위적으로 만드는 ‘합성 데이터’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한다. 테슬라의 경우, 전 세계 교통사고 정보를 이미 다 끌어다 써, 더 이상 새 데이터가 없는데, ‘깊은 밤 국도를 주행하는 중,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 속에서 야생 멧돼지가 도로에 뛰어드는 상황’을 합성 데이터로 만들어 알고리즘에 집어넣는 식이다. 하지만 합성 데이터가 많이 들어가면 기존 오류와 환각 현상이 누적돼 AI 모델 품질이 떨어진다.

 

▶더 똑똑한 AI를 만들려면 양질의 데이터가 필수다. 소셜미디어(SNS)를 떠도는 가짜 뉴스, 거친 표현보다 사실 확인을 거쳐 정제된 표현을 사용한 언론사 뉴스는 ‘고품질 희소 자원’이다. 빅테크 기업들이 언론사와의 상생 모델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중국은 언론의 자유가 아예 없는 나라다. 자유와 고품질 언론이 없는 나라에서 세계 최고 AI 모델이 나오긴 어려울 것이다.

김홍수 논설위원

 

02.08(토) "여자 대회엔 여자만 나가라"

▲일러스트=김성규

 

미국 실리콘밸리 IT 회사에 다니는 한 재미교포는 지난 대선 난생처음 공화당에 표를 줬다. 중학생 아들이 “선생님께서 성(性)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라고 했다”며 “저는 여자가 되고 싶으니 앞으로 여자 화장실을 쓰겠다”고 한 게 계기였다. 워크(woke·성소수자 문제 등에 개방적이라는 뜻)에 우호적인 민주당을 지지했었는데 아들의 말에 충격을 받았고 그제야 “미국에는 남자와 여자, 두 개의 성만 있을 것”이라는 트럼프의 대선 공약이 눈에 들어오더라고 했다.

 

▶미국에서 성전환은 사회를 두 쪽 내는 골칫거리가 된 지 오래다. 스포츠 분야가 대표적이다. 몇 해 전 아마추어 대학 수영 대회가 열렸는데 주최 측은 여성호르몬 주사를 맞는 남자 선수의 여자 대회 출전을 허용했다. 이 선수가 월등한 힘을 앞세워 나가는 대회마다 우승하자 여자 선수와 부모들이 들고일어났다. 지난해 한 여자 배구 대회에선 성전환 선수를 거느린 팀과의 대결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몰수패를 당한 여자 팀이 반발해 소송을 냈다.

 

▶성전환 수술을 받았거나 여성호르몬 주사를 맞는다면서 남자가 여자 화장실이나 탈의실에 출입하는 것도 분란을 빚고 있다. 한 남학생은 여자 화장실 출입을 허용하지 않는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승리했다. 그 후 미국 전역에 성 중립 화장실이 줄줄이 들어서고 있다. 캘리포니아는 2026년까지 모든 공립학교에 성 중립 화장실을 설치하는 조례를 제정했다. 딸 가진 부모들은 “성 중립 화장실은 성범죄에 취약하다”며 반발한다. 기업들도 골치를 앓는다. 소송에 휘말리는 일을 피하려 별도의 성소수자용 화장실을 만드느라 쓰지 않아도 될 돈을 지출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 전환한 운동선수의 여자 대회 출전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5일 서명했다. 명령서 제목이 ‘남성의 여성 스포츠 출전 금지’다. ‘성전환으로 여자가 됐다고 주장해도 남자’라는 뜻이다. 많은 미국 국민이 이를 반기고 있다고 한다. 뉴욕타임스가 조사했더니 응답자의 79%가 트랜스젠더 선수의 여자 대회 출전 금지에 찬성했다. ‘여자 대회엔 여자만 나가라’는 명령이 나와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기도 하다.

 

▶초기 미국은 엄격한 금욕주의 사회였다.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이 문 앞에서 아내와 입 맞추는 것조차 풍기 문란죄로 다스렸다. 그러다 현대로 넘어오면서 온갖 성 정체성 문제로 극단까지 갔다. 그랬던 미국이 유턴하고 있다. 한국에도 성 중립 화장실이 이미 들어선 걸 보면 우리도 조만간 겪게 될 문제다.

김태훈 논설위원

 

02.10(월) 아부의 기술


♣일러스트=이철원

 

2023년 별세한 헨리 키신저는 냉전 시대 소련과 중국 간 균열을 이용해 미·중 수교를 이끌어 냈다. 그에게는 ‘아부’도 중요한 외교 수단이었다. 1971년 중국을 비밀 방문해 저우언라이 당시 총리와 만난 키신저는 회담 초반부터 “중국의 문화적 우월성에 비교하면 미국은 개발 중인 신흥 국가였다” “(중국은) 아름답고 신비한 나라”라며 상대를 띄워줬다. 이 회담에서 양측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방중에 합의했다. 미국 작가 월터 아이작슨은 훗날 키신저 전기에 그가 “아부와 아첨으로 적들의 인정을 받은 뒤 그들을 서로 싸우게 만들려고 했다”고 썼다.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은 1937년 자신에 대한 아부가 ‘안이함’을 초래한다며 ‘찬사 금지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의심 많은 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아부와 개인 숭배는 끊이지 않았다. 북한의 김일성도 아부를 잘해 그의 인정을 받았다는 설이 있다. 1950년 7월 김일성이 소련에 보낸 편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스탈린 동지, 저의 가장 깊은 존경과 감사를 표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7일 워싱턴 DC를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첫 회담을 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에 대해 뉴욕타임스가 “아부의 기술(the Art of Flattery)”을 사용했다고 보도했다. 얼마 전 트럼프와 회담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트럼프가 “엄청난 존경”을 받는 “위대한 친구”라고 아부를 했는데, 이시바도 못지않았다는 것이다. 기자회견에서 이시바가 “TV에서나 뵙던 분(트럼프)을 가까이서 뵙는다는 감동이 각별했다”고 말하자, 트럼프의 입이 귀에 걸렸다.

 

▶이시바는 트럼프에게 백금 사무라이 투구도 선물했다. 트럼프 집권 1기 아베 신조 전 총리는 금장(金裝) 골프 드라이버를 선물해 환심을 샀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당시 미국에서 ‘아부로 트럼프를 조종한다’는 말을 들었다. 취임 1년도 안 된 트럼프에게 “대통령께서 만든 위대한 미국에 대해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2018년 미·북 정상회담이 발표되자 “트럼프의 지도력은 남북한 주민, 더 나아가 평화를 바라는 전 세계인의 칭송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자신을 “각하”로 부르며 “위대한 결단과 훌륭한 리더십”을 칭찬한 북한 김정은의 편지도 두고두고 자랑해 왔다. 아부 때문은 아니겠지만, 이번 미·일 회담에서도 트럼프는 “김정은과 관계를 맺을 것”이라고 했다. 외교관이라면 ‘아부의 기술’을 각별히 연마해야 할 시절인 모양이다.

김진명 기자

 

02.11 발레리노

▲일러스트=이철원

 

19세기까지만 해도 발레의 주역은 여성이었다. 발레리나들은 토슈즈를 신고 발끝으로 서는 ‘푸앵트’로 객석을 사로잡았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는 ‘발레 하는 남자’를 보는 세상의 시선을 담은 작품이다. 영국의 가난한 광부가 권투 챔피언이 되라며 아들을 복싱 학원에 보낸다. 그런데 아들이 춤을 추고 싶어 하자 “발레는 남자가 할 게 아니야!”라며 화낸다. 영화는 빌리가 남자 무용수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싸워가며 왕립 발레단원으로 성장하는 내용이다.

 

▶1909년 파리 샤틀레 극장 무대에 선 러시아 무용수 바츨라프 니진스키는 남성 무용의 예술적 아름다움을 처음으로 대중에 각인시킨 발레리노다. 파리의 관객들은 그의 작은 키(163㎝)를 보고 비웃었다. 니진스키는 공연 내내 다른 무용수보다 목 하나 높이 도약해 허공에 오래 머물렀다. 마치 중력의 지배에서 벗어난 듯 힘차고 우아한 동작으로 무대를 지배했다. 그 후 많은 변화가 이어졌다. 남녀 2인무인 파드되에서 여성을 깃털처럼 들어 올리는 발레리노 비중이 전보다 더 높아졌다. ‘지젤’에서 발레리노가 32번 도약하며 앙트르샤(제자리에서 점프해 두 다리를 앞뒤로 교차하는 기술)를 선보일 때면 객석에서 탄성이 터진다.

 

▶발레리노는 극한 직업이다. 베테랑도 앙트르샤를 할 때면 20회쯤부터 숨이 거칠어진다. 멀리뛰기 하듯 낮게 수평으로 날면서 다리를 교차하는 브리제도 발레리노만의 기술이다. 힘든 내색을 보여선 안 되니 등·엉덩이·허벅지를 쉼 없이 단련해야 한다. 등과 발목, 발가락에 통증을 직업병처럼 달고 산다. 발레리노의 역동적이면서도 우아한 동작은 이런 피땀의 결과다.

 

▶니진스키는 아홉 살 때 엄마 손에 이끌려 상트페테르부르크 황실 발레학교에 들어갔다. 이재우·한성우 등 우리나라 스타급 발레리노들도 그렇게 어머니 손을 잡고 발레에 입문했다.

 

▶16세 소년 발레리노 박윤재군이 8일 세계적 권위의 로잔 발레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콩쿠르 강국의 위상을 다시 보여준 쾌거다. 그러나 콩쿠르는 등용문일 뿐이다. 훗날 프로 발레단에 들어가게 되면 ‘코르 드 발레’라는 군무(群舞) 단원부터 시작해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의 김기민, 네덜란드 국립 발레단의 최영규 등 세계적 발레단의 수석 발레리노도 모두 그 과정을 밟았다. ‘마린스키의 왕자’로 불리는 김기민은 지난해 서울을 찾아 파리오페라 발레단 최초의 동양인 에투알(수석 무용수) 박세은과 멋진 파드되 무대를 펼쳤다. 박윤재군이 이런 발레리노의 맥을 잇기를 기대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02.12 '북극성 망치'

▲일러스트=양진경

 

2020년 12월 18일 미 백악관 옆 행정동 강당에 국가안보회의(NSC)와 군 관계자들이 모였다. 미 공군 소속 사령부였다가 2019년 12월 20일 별도의 군종(軍種)으로 독립한 ‘미 우주군(Space Force)’의 창설 1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연단에 오른 마이크 펜스 당시 부통령이 “대통령을 대신해 발표하게 돼 영광”이라며 말했다. “앞으로 미 우주군 병사들은 ‘가디언즈(Guardians·수호자들)’로 불리게 될 것입니다.”

 

▶미 육군 병사는 ‘솔저(Soldier)’, 해군은 ‘세일러(Sailor)’, 공군은 ‘에어맨(Airman)’, 해병대는 ‘마린(Marine)’이라 부른다. 이에 더해 우주군 병사는 ‘가디언’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우주군의 전신으로 1982년 창설된 미 공군 우주사령부의 모토 ‘우주 전선의 수호자들’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일부 미국 언론은 만화 원작의 수퍼히어로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연상시킨다고 평했다. 북극성이 빛나는 미 우주군 로고는 인기 SF ‘스타 트렉’ 속 우주함대 ‘스타 플릿’ 로고와 비슷하다. 우주군의 모토는 ‘항상 위에서’란 뜻의 라틴어 ‘셈퍼 수프라(Semper Supra)’다.

 

▶우주를 군사 작전에 이용하려는 미국의 첫 구상이 레이건 대통령의 ‘스타워즈’다. 소련의 핵 ICBM을 ‘우주 배치 레이저 무기’로 요격한다는 것이었다. 소련이 이에 대응하려다 붕괴에 속도를 더했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미국과 중·러 간에 상대방 인공 위성을 요격하는 우주 전략 경쟁이 불붙었다. 미국 내에서도 “가디언즈라니, 외계인과 싸우나”란 비아냥이 나왔지만 우주군이 창설됐다. 이미 미·중·러는 요격미사일로 서로 상대국 인공위성을 격추할 능력을 갖고 있다.

 

▶중국이 독자 구축한 인공 위성 위치 확인 시스템을 대함 탄도미사일(ASBM) 개발과 연계한 것도 미국에 충격을 줬다. 이동 중인 미국 항모를 미사일로 타격하기는 어렵다고 여겨졌는데, 중국이 위성으로 미 항모 위치를 추적해 정확히 타격할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주한 미 우주군이 최근 한반도 지역 우주 작전을 상정한 ‘폴라리스 해머(북극성 망치)’ 훈련을 실시했다고 한다. 2022년 12월 주한 미 우주군 부대가 생긴 후 첫 대규모 훈련이다. 한반도 전쟁 시 미국 캘리포니아 반덴버그 기지, 주한 미 우주군과 한국군 사령부가 인공위성을 매개로 작전을 수행하는 훈련이라고 한다. 한국군에도 결국 우주군, 사이버군이 생길 것이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세계 정세다.

김진명 기자

 

02.13 골드바

▲일러스트=이철원

 

전남 함평군은 멸종 위기의 천연기념물 황금박쥐가 162마리 발견되자 순금 162㎏에, 은 281㎏으로 2008년 황금박쥐상을 제작했다. 세금 27억원을 들였는데 ‘혈세 낭비’로 지탄받았다. 그런데 요즘은 ‘함평의 테슬라’로 불린다. 금값이 치솟아 가치가 10배로 뛴 270억이 된 덕분이다. 테슬라나 엔비디아 못지않게 높은 수익률의 금(金)테크다.

 

▶금은 얇게 펴지고 늘어나는 성질이 뛰어나 1g 정도의 금을 최대 3㎞ 가까이 늘일 수 있다. 엄지손가락만 한 금을 얇게 펴면 3층 건물을 뒤덮을 정도여서 장신구 등에 많이 쓰였다. 그간 지구에서 채굴된 금은 통틀어 18만7200t이다. 90% 이상이 미국 서부 ‘골드 러시’ 이후 채굴됐다. 잔존 매장량 5만여t이 15년 이내에 고갈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 편에 우리 조상들이 금은을 모자 장식용으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태종 때는 “금이 나지 않는데 해마다 중국에 바치는 것이 700여 냥쭝(26.25㎏)이나 되니 매우 염려된다”며 궐내에 금은 그릇 사용을 금지했다. 지금처럼 아기 돌잔치에 금반지를 선물할 정도로 대중화된 건 1973년 금 수입 자유화 이후다. 2000년에 순금 1돈(3.75g)의 도매가가 약 3만9600원이어서 돌반지 선물도 줄 만했다. 지금은 60만원을 넘어가니 선뜻 돌반지 선물도 어렵게 됐다.

 

▶우리나라 외환 보유액은 세계 9위 수준인데 한국은행 금 보유량(104.4t)은 세계 36위에 불과하다. 미국(8133t), 독일(3352t), 이탈리아(2451t), 프랑스(2436t) 순으로 중앙은행 금 보유량이 많다. 러시아는 2014년부터 금을 대거 사들여 세계 5위가 됐다. 최근엔 중국이 달러 의존도를 낮추려고 금을 집중 매입한다. 보석용 수요 외에, 각국 중앙은행과 투자 수요가 늘어 금값이 치솟고 있다.

 

▶국제 금값이 트로이온스(31.103g)당 2908.17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안전 자산이라고 하나 오랫동안 별로 매력 없는 투자처였다. 1980년 트로이온스당 680달러에서 1985년 300달러 밑으로 반 토막 났다. 27년 만인 2007년에야 1980년 시세를 회복했다. 유럽 재정 위기가 벌어진 2011년에 1900달러까지 올랐다가 또 반 토막 났다. 트럼프발(發) 관세 전쟁이 격화되면서 국제 금값을 밀어 올리고 있다. 한국조폐공사가 금 판매를 일시 중단할 정도로 국내에도 골드바 투자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한다. 불안한 경제를 방증하는 불안한 금값 상승이다.

강경희 기자

 

02.14 미 정부 감사하는 코딩 천재들

▲일러스트=이철원

 

실리콘밸리 특파원 시절,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에 대한 평가를 묻고 다녔다. 그때마다 “엔지니어로서 함께 일하기엔 최고인 상사”라는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과할 정도로 많은 일을 시키지만, 한계와 리스크를 따지지 않고 말단 엔지니어와 치열한 토론을 거쳐 효율적으로 일한다는 것이다. 지금 머스크만큼 호불호가 갈리는 인물도 없다. 젊은 엔지니어 중엔 머스크 밑에서 일하는 것이 소원이라는 사람이 많다. 이들은 ‘머스크 키즈’로 불린다.

 

▶트럼프 정부가 미 국무부의 정보 기술(IT) 담당 선임 고문에 19세 청년을 임명했다. 머스크의 뇌 신경 스타트업인 뉴럴링크에서 인턴으로 근무했고, 존경하는 인물로 머스크를 꼽는 ‘머스크 키즈’다. 머스크는 이런 젊은 코딩 천재 20여 명을 행정부 곳곳에 심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고대 로마 파피루스 속 글자 해독에 성공한 천재며, 트위터와 빅데이터 기업 출신 데이터 과학자도 포함됐다.

 

▶전통적으로 정부 조직 개편은 행정가나 회계 전문가의 몫이었다. 하지만 머스크는 20대 엔지니어들을 연방조달청, 인사관리국, 중소기업청 등에 투입해 모든 정부 계약을 살펴보고 있다. 엔지니어들은 AI 기술로 재무부 데이터, 사회보장, 의료보험, 각종 계약 데이터를 수집하고 중복 지급 여부, 불필요한 항목 등을 평가해 조직·예산 절감 방안을 만드는 역할을 맡았다. 폐쇄된 국제개발처(USAID) 직원들에게 출근하지 말라는 단체 메일을 보낸 사람도 ‘머스크 키즈’였다.

 

▶역사적으로 기존 통념과 관습을 깨부수려는 시도는 10~20대에 의해 일어났다. 백년전쟁에서 프랑스의 승리를 이끈 잔 다르크는 죽을 때 19세였고, 아인슈타인은 26세에 상대성 이론을 발표했다. 미 실리콘밸리에선 더 보편적이다. 구글, 메타가 세워진 것은 창업자가 20대 때였다. 젊은 혈기의 머스크 키즈들은 극한의 효율을 추구하는 머스크와 찰떡궁합이다. 머스크는 스페이스X를 재편하면서 “제거한 부분의 10% 이상을 복원할 필요가 없다면 충분히 제거하지 못한 것”이라고 할 정도다.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민주당 소속 워런 미 상원 의원은 “머스크의 정부효율부(DOGE)에 재무부 시스템 접근권을 제공하는 것이 세계적 금융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20대 머스크 키즈들이 미국인들의 정보를 무단 유출하면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머스크 키즈 중 하나는 회사에서 정보 유출로 해고된 적이 있다. 머스크와 그의 키즈들이 방만한 미 행정부를 다이어트시킬지, 파괴할지 지켜볼 일이다.

김성민 논설위원·콘텐츠전략팀 차장

 

02.15(토) 중국 축구장의 전두환 사진

 ▲일러스트=김성규

 

유튜브에서 우연히 재미있는 장면을 보게 됐다. 미국 대학 농구 경기에서 자유투를 얻은 선수가 슛을 준비하자 상대팀 치어리더들이 골대 밑에 도열해 온갖 선정적 자세로 춤을 췄다. 골대 뒤에 앉아 있던 응원단도 정신 사나운 얼룩말 무늬 대형 천을 마구 흔들었다. 이런 훼방 탓인지 슛은 빗나갔다. 상대팀의 이날 자유투 성공률은 평소의 80%에서 60%로 주저앉았다. 그런데도 심판은 반칙 호루라기를 불지 않았다. 규정도 없겠지만 응원의 일부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하지만 인격 모독, 신체 위협, 인종차별 같은 저질 응원이나 야유는 문제가 된다. 2006년 이탈리아 축구에서는 아프리카 출신 흑인 선수가 공을 잡을 때마다 상대팀 응원석에서 원숭이 소리를 질렀다. 지금 그랬다가는 심각한 징계 대상이다. 국제축구연맹은 2002년부터 인종차별 행위를 징계했고 2019년부턴 2만달러의 벌금과 무관중 경기, 승점 감점, 대회 퇴출 등으로 처벌을 크게 강화했다.

 

▶지난 11일 중국에서 열린 축구대회에서 광주FC와 맞붙은 중국팀의 일부 팬이 전두환 전 대통령 사진을 꺼내 들었다가 제지당했다. 이웃 나라의 비극적 사건을 이용해 상대팀 선수들을 자극하려 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런 비신사적 응원이 처음도 아니다. 재작년 2026 북중미월드컵 아시아 예선 한·중전 때는 일부 중국 관중이 손흥민과 이강인의 얼굴에 레이저 불빛을 쐈다. 레이저 빔은 선수의 시력을 손상시킬 수 있는 위험한 행위다.

 

▶국내 일부 축구 팬 사이에서 “우리도 중국 천안문 사태 당시 탱크 사진으로 응수하자”는 격한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우리도 잘못된 응원전을 펼친 사례가 적지 않으니 우리 응원 문화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자는 얘기도 나온다. 일본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큰 고통을 겪었다. 그런데 그해 가을 국내에서 열린 축구 한일전 때 일부 한국 팬이 ‘일본의 대지진을 환영한다’는 플래카드를 내건 적이 있었다.

 

▶10년 전 스페인에서 뛰던 흑인 축구 선수에게 관중이 바나나를 던지며 조롱한 적이 있다. 선수는 흥분하지 않고 바나나를 집어 들어 먹은 뒤 다시 경기에 임했고 동료들도 소셜미디어에 바나나를 들고 찍은 ‘바나나 인증샷’으로 점잖게 항의했다. 응원은 선수와 관객 모두에게 이롭다. 응원 함성은 선수의 남성 호르몬 수치를 70%까지 끌어올려 경기를 더욱 박진감 있게 만든다고 한다. 저질 응원이 이런 즐거움을 줄 리가 없다. 응원에도 정정당당히 겨루는 페어 플레이 정신이 필요하다.

김태훈 논설위원

 

02.17(월) 전역증

▲일러스트=김성규

 

1988년 입대했던 필자는 군 복무 중이던 1990년 초 어머니로부터 “입영 영장이 또 나왔다”는 전화를 받았다. 복무 확인서를 병무청에 내고 해결했지만 이듬해 제대하며 ‘전역증을 버렸다간 군대 두 번 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군필’임을 증명하는 용도 말고 전역증의 다른 쓸모는 없었던 것 같다.

 

▶로마 제국은 제대군인 예우가 각별했다. 로마 병사는 최대 25년을 복무하고 군문을 나설 때 13년 치 연봉에 해당하는 고액 상여금을 받았다. 상당수는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그 돈으로 부대 인근 땅을 사서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적이 침입하면 다시 무기를 들었다. 그래서 황제들은 재정 부담을 무릅쓰고 전역병 예우에 정성을 쏟았다. 값비싼 청동판에 소속 부대와 계급을 새긴 전역증도 발급했다.

 

▶오늘날 미국이 군인 예우의 모범을 보여준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야구장 관중석엔 ‘돌아오지 못한 장병을 위한 좌석’이 있다. 만원 관중일 때도 그 자리는 비워둔다. ‘누구 덕분에 야구를 즐기는지 잊지 않겠다’는 감사의 뜻이 담긴 빈자리다. 아프가니스탄 전장에서 아군 진지에 날아든 수류탄을 밖으로 던지려다 오른손을 잃은 리로이 페트리 상사가 2011년 백악관에서 군인 최고의 영예인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받자 CNN은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이를 생중계했다.

 

▶올 들어 우리 국군 전역증 재발급이 크게 증가했다고 한다. 지난달 발급 건수가 작년 동기 대비 12배나 폭증해 이미 지난해 재발급 총량에 육박할 정도다. 미국 여행에 나선 예비역들이 현지에서 뜻밖의 전역증 혜택을 본 게 무용지물 전역증을 되돌아보게 된 계기라 한다. 미국 제대군인은 전역증을 박물관·미술관·관광지·쇼핑몰·음식점 등에 제시하고 할인을 받는다. 한국인 방문객에게도 “미국의 혈맹”이라며 같은 혜택을 준다. 그래서인지 소셜미디어엔 전역증을 재발급받았다는 인증샷 릴레이도 이어지고 있다.

 

▶카투사로 복무한 필자는 전역식을 두 번 했다. 미군 전역식에선 부대 사령관이 직접 참석해 “그간의 봉사에 감사한다”는 감사장을 주고 가슴에 훈장까지 달아줬다. 반면 한국군 전역식에선 종이 전역증 한 장 받는 게 전부였다. 이런 전역식을 경험하며 미군은 단지 화력만 막강한 군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리도 늦게나마 전역자 예우에 나섰다. 2021년 종이가 아닌 카드 형태의 플라스틱 전역증으로 개량했고 전역증을 지참하면 할인 혜택을 주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 이런 예우가 더 강화되어야 나라 안보도 튼튼해진다.

김태훈 논설위원

 

02.18 실리콘밸리식 출산 운동

/일러스트=이철원

 

미국 필라델피아 교외에서 네 아이를 기르는 맬컴 콜린스(39)와 아내 시몬(38)은 평범한 백인 부부처럼 보인다. 하지만 미국에서 이들은 ‘출산 장려 운동(Pronatalist Movement)의 얼굴’로 통한다. 남편인 맬컴은 2015년 서울 강남의 벤처캐피털 회사에서 잠시 일했다. 이때 ‘재앙적 인구 붕괴’ 위기에 처한 한국의 현실을 보고, 2021년 모든 기술과 자원을 동원해 아이를 낳자고 운동하는 ‘출산 장려 재단’을 설립했다. 이들의 가장 유명한 지지자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다.

 

▶2022년 11월 미 ‘비즈니스인사이더’는 테크계, 벤처캐피털 업계의 부자들 사이에서 저출산 해법으로 ‘출산 장려주의’가 퍼지고 있다며 콜린스 부부와 머스크를 소개했다. 머스크는 “인류가 장기적으로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은 세계 인구 붕괴”라며 부유한 선진국 국민들이 아이를 더 낳기를 권해 왔다. 2015년 영국 레스터대의 Y 유전자 분석 연구에 따르면, 몽골 칭기즈칸의 유전자를 받은 남성이 인류의 0.5%쯤 되는데, 머스크는 칭기즈칸처럼 ‘세계에 내 자손을 퍼트리고 싶다’고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실리콘밸리식 출산 장려 운동은 과학기술로 인류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체외수정’과 ‘착상 전 유전자 분석’ 같은 기술 이용이 일반적이다. 콜린스 부부는 오픈AI의 최고경영자 샘 올트먼이 투자한 유전체 예측 회사를 통해 아이들을 가졌다. 1회 2만달러(약 2800만원)쯤 내면 체외수정한 여러 수정란의 유전자를 분석해 가장 건강할 확률이 높은 배아를 골라 준다. 세 여성과 사이에서 아이 12명을 낳은 머스크도 자녀 대부분을 체외수정으로 가졌다고 한다.

 

▶미국 싱크탱크 헤리티지 연구소는 지난해 ‘실리콘밸리의 출산 장려주의’란 보고서에서 ‘가장 건강하고, 똑똑한 아이를 낳자’는 ‘선택적 출산 장려’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저출산은 선진국, 고학력일수록 심해서 실리콘밸리식 출산 장려가 특정 인종, 계층, 민족의 아이가 더 필요하다는 우월주의와 연결된다는 지적도 있다. 지능 높은 아이를 선호하는 우생학적 사고라는 비판도 나온다.

 

▶26세 미국 인플루언서(온라인 유명인)가 머스크의 열세 번째 아이를 출산했다고 밝혀 화제다. 머스크는 “아이 만드는 것이 부업이냐”는 농담성 소셜미디어 게시물에 웃는 이모티콘으로 반응했지만, 양육 조건 합의에 응하지 않고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실리콘밸리식 출산 운동을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다.

김진명 기자

 

02.19 학부모罪 '징역 1년 벌금 5000만원'

/일러스트=김성규

 

10년 전엔 서울에서 재수 학원 다니려면 월 150만~200만원씩 들었다. 그 비용도 만만치 않았는데 올해 재수하게 된 조카는 월 300만원 넘게 든다고 한다. 기숙 학원도 생각했지만 수강료가 월 350만원이고 급식비까지 포함하면 400만원이 넘는다는 말에 포기했다. 학원비 대느라 부모는 씀씀이를 줄여야 한다. 재수하는 자식 눈치에 TV도 맘대로 못 본다. 자녀가 재수하면 부모는 ‘징역 1년에 벌금 5000만원’형을 받는 것이란 푸념까지 돈다.

 

▶서울의 유명 재수 학원이 이달 말 경기도에 월 500만원이 드는 기숙 학원을 연다고 한다. 아무리 수강료·교재비·모의고사비 등을 합했다지만, 연 6000만원이 드니 어지간한 공대 4년 치 등록금보다 많다. 해마다 학생은 줄어드는데도 주요 재수 학원은 원생 증가로 매출이 늘고 있다. 재수생이 가장 많이 몰린다는 어느 학원은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이 7100억원을 넘었다. 집계가 나오지 않은 4분기까지 합하면 지난해 처음으로 매출 1조원을 돌파했을 거라고 한다.

 

▶많은 가정이 자녀 학원비를 대느라 등골이 휜다. 하지만 재수를 하면 수능 성적이 오르니 외면하기도 어렵다. 자식을 적게 낳아 아이의 미래에 아낌없이 돈을 쓰는 부모 심리도 작용한다. 실제로 지난해 서울대 정시 입학생 중에 고교 재학생 출신은 열 중 넷에 불과했다. 재수 선택도 증가한다. 2023년 기준, 서울 강남의 고교생 재수 비율은 평균 47%로 전국 평균 20%의 두 배가 넘는다. 재수는 필수, 삼수는 선택이란 말이 나온 지 오래다.

 

▶최근엔 의대 정원 확대 이후 불어닥친 ‘의대 입시 광풍’도 한몫한다. 의대에 가려고 수능을 다시 보는 수험생이 크게 늘어 지난해 주요 대학 공대조차 적게는 20%, 많게는 절반이 반수를 택했다. 그 여파로 많은 대학이 학사 관리에 파행을 겪고 있다. 올해 수능을 두 번 이상 보는 N수생 수가 2001년 이후 최다인 20만명에 이를 거란 전망도 있다. 지난해엔 16만명이었다.

 

▶의대는 어느 나라에서나 선망하는 학과다. 그러나 우리는 도가 너무 지나치다. 요즘 의대 합격생은 80%가 N수생이라고 한다. 전교 1등조차 의대 가려고 재수를 택한다고 한다. “의대만 갈 수 있다면 7수도 하겠다”는 학생도 있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가기만 하면 남는 장사여서”라고 했단다. 한 세대 전 교육열은 나라를 일으켰는데 지금의 N수 열풍은 거꾸로 나라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것 같아 걱정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02.20 포로가 변절이 되는 나라들

/일러스트=이철원

 

히틀러가 1941년 6월 소련을 침공했다. 불가침 조약을 믿었던 소련군은 개전 초에만 300만명이 포로로 잡혔다. 격노한 스탈린이 그해 8월 ‘명령 270호’를 내렸다. “항복한 자는 즉결 처분하고 가족도 체포한다”는 내용이다. 그러자 1942년 독일군에 붙잡힌 소련군 장군이 포로들로 스탈린 타도를 위한 ‘러시아 해방군’을 조직하기도 했다. 이판사판이 된 것이다. 의심이 병적이던 스탈린은 포로가 된 소련군을 반역자, 간첩으로 간주했다. 자기 장남이 포로가 됐는데도 교환 협상을 거부해 죽게 만들었다. 1930년대 독재를 위해 자국민 100만명을 간첩 등으로 몰아 학살했던 사람이다. 2차 대전 후 소련군 포로 중에 소련으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송환 열차에서 자살하거나 뛰어내리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일제 관동군이 1939년 몽골 인근 노몬한에서 소련군과 전면전을 벌였다. 일본군이 거의 전멸했는데 수백 명은 포로가 됐다. 당시 일본 군국주의는 항복과 후퇴를 최대의 수치라고 세뇌하고 있었다. 일본군 사령부는 어렵게 살아 돌아온 포로를 탈영병, 탈주범과 같이 취급했다. 장교에겐 자살을 강요하기도 했다. 생존 포로는 나중에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총알이었다”고 했다.

 

▶6·25 때 중공군 포로는 2만2000여 명이다. 이 중 1400여 명이 대만행을 선택하고 8000여 명이 중국으로 돌아갔다. 중국으로 돌아간 포로들은 “왜 살아서 왔느냐”는 질책과 함께 혹독한 심문을 받았다. 그중 공산당원 2900여 명의 92%는 ‘해당(害黨)' 혐의자로 찍혀 당적을 빼앗겼다. 문화대혁명 시절 ‘배신자’ 간판을 목에 걸고 조리돌림당하다가 목숨을 잃는 경우도 많았다. “포로 때가 더 좋았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들은 개혁·개방 이후 명예 회복에 나섰지만 문혁 때 자료가 없어져 ‘배신자’란 주홍글씨를 끝내 지우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스탈린 독재, 일본 군국주의, 중공 전체주의가 포로를 변절로 보는 것은 사람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보기 때문이다. 소용을 잃은 수단은 폐기된다. 2차 대전 때 미국·영국 등 연합군 포로는 나중에 자국에서 영웅 대접을 받았다.

 

▶우크라이나군에 붙잡힌 북한군 병사는 전투 중 턱과 팔에 큰 부상을 입고 어쩔 수 없이 포로가 됐다. 그는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인민군에서 포로는 변절이나 같다”고 했다. “수류탄이 있었으면 자폭했을지도 모르는데”라고 했다. 사람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수단으로 보는 정도를 따지면 북한 김씨 왕국이 첫째일 것이다.

안용현 논설위원

 

02.21 트럼프가 창조하는 숫자들

/일러스트=이철원

 

2020년 3월 3일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 바이러스 사망률이 3.4%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튿날 폭스뉴스에 출연해 “3.4%는 정말 잘못된 숫자라고 생각한다”며 “이건 그냥 내 예감인데 사망률은 1%보다 훨씬 낮다고 말하겠다”고 했다. 코로나 치명률이 높던 팬데믹 초기였기에 경각심을 떨어뜨리는 발언이란 비판이 나왔다.

 

▶워싱턴포스트는 당시 ‘코로나 사망률 1% 이하’ 발언에 대해 ‘트럼프는 숫자를 이모티콘처럼 사용한다’고 분석했다. 트럼프에게 수치(數値)란 ‘자신의 기분이나, 남들이 이렇게 생각해 줬으면 하는 느낌과 비슷한 것’이란 얘기다. 트럼프는 지난해 9월 “멕시코에서 수입되는 자동차 관세를 100%로 올리겠다”고 했다가, 10월엔 200%로 두 배 올렸다. 한 인터뷰에서 이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트럼프는 “100%, 200%, 500%라고 말하겠다. 난 상관 안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불리한 숫자는 줄이고, 유리한 숫자는 늘려서 말하는 트럼프가 정상이 아니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줄이고 늘리는 폭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미국 정신의학자 200여 명은 트럼프가 ‘반복되는 거짓말’ 같은 나르시시스트적 인격장애 증상을 보이고 있다는 공개 서한을 발표했다. 미국의 한 정신과 의사는 트럼프의 이 행동이 ‘공상허언증’ 진단 기준에 부합한다고 분석했다. 공상허언증 환자는 자신이 바라는 바에 대해 매우 구체적인 거짓말을 한다. 만들어 낸 숫자는 여기에 동원되는 수단이다. 때로 본인도 이 숫자를 진실로 믿는데 트럼프가 그렇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대해 “지지율이 4%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지지율이 전쟁 초기 90%에서 지난해 말 52%로 떨어지긴 했지만, 4%는 터무니없다. 트럼프는 미국이 유럽보다 우크라이나에 2000억달러쯤을 더 썼다고도 주장했다. 실제로는 유럽연합이 1500억달러쯤 미국보다 더 지원했는데, 정반대로 말한 것이다. 트럼프는 자신이 그렇다고 생각하고, 그랬으면 하는 숫자를 만들어내 거리낌 없이 말한다.

 

▶트럼프는 작년 대선 유세 때 “한국에 4만2000명의 미군이 있지만 한국은 돈을 내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엔 2만8500명의 미군이 있고 한국은 매년 10억달러 이상의 방위비 분담금을 미국에 내고 있다. 4년 전에는 “한국에 미군 3만2000명이 있다”고 했는데 그새 1만명이 늘었다. 트럼프에게 숫자와 같은 팩트(사실)는 우스운 것인가 보다.

김진명 기자

 

02.22(토) 운동, 누구 말을 믿어야 하나

몇 층 높이는 운동 삼아 걸어서 올라가는 사람이 많다. 계단으로 올라갔다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다시 오르기를 반복하는 사람도 있다. 계단 오르기는 좋은 운동이고 계단 내려가기는 무릎 관절에 좋지 않으니 안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런데 일본의 한 스포츠의과학부 교수는 계단 내려가기가 근육 발달에 큰 자극을 주는 좋은 운동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얼마 전 지상파 건강 프로그램에서 크게 소개했다. 더구나 계단 오르기도 무릎이 건강한 사람에게만 좋은 운동이라고 하니 헷갈릴 수밖에 없다.

 

/일러스트=김성규

 

▶전국적으로 맨발 걷기가 열풍 수준이다. 수십억 원 들여 맨발 걷기 길을 조성하는 지자체가 많고 겨울에도 걸을 수 있도록 비닐하우스까지 설치한 곳도 적지 않다. “어싱(Earthing·맨발 걷기)의 부작용은 무병장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이 운동의 효능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고 안전까지 고려하면 맨발 걷기를 권하기 어렵다는 전문가가 적지 않다. 누구 말을 믿어야 하나.

 

▶유튜브엔 수많은 운동 정보가 있고 건강 서적, 여러 매체의 건강 정보도 쏟아지고 있다. 그중엔 맨발 걷기처럼 서로 상반된 주장이 나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과거 대학 입시에 체력 검증이 있었다. 턱걸이와 윗몸일으키기도 포함됐다. 그런데 턱걸이는 근력이 부족한 사람이 무턱대고 하면 부상 위험이 있고 관절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고 한다. 한 정형외과 의사는 유튜브에서 “헬스장에서 기구로 하는 모든 상체 운동은 어깨 고문과 다르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경찰청이 현직 경찰관 체력 검정 종목에서 윗몸일으키기를 빼기로 했다고 한다. 이 동작이 허리와 목에 무리를 준다는 내부 민원이 컸기 때문이다. 전문가들도 국내 척추 질환자가 1100만명이 넘어 팔꿈치를 바닥에 대고 엎드려 버티는 ‘플랭크’ 등으로 대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 정도면 학창 시절 열심히 한 운동들이 오히려 내 몸에 해가 된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까지 든다.

 

▶이렇다 보니 운동을 위해 지식을 검색하다 보면 할 운동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가장 필요한 운동이라는 스쿼트조차 하지 말라는 주장이 적지 않다. 정보가 쏟아지면서 정확한 정보를 알기 어렵게 된 역설이다. 그나마 걷기와 수영이 논쟁이 적은 운동이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운동할 때 바른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무슨 운동이든 운동 때 통증이나 어지럼을 느끼면 즉각 중단하라고 권한다. 결국 자신에게 맞는 운동을 찾아 무리하지 않는 것이 답이 아닐까 한다.

김민철 기자

 

02.24(월) 우크라이나만도 못한 한국인의 수면 질

/일러스트=이철원

 

요즘 거의 모든 대학 병원이 수면센터를 운영한다. 쾌면을 대학 병원까지 와서 구하려는 환자가 늘어난 탓이다. 수면센터도 암센터처럼 정신과·신경과·이비인후과 등 여러 과가 모여 다학제 진료를 한다. 수면 장애 원인과 처치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의료기관을 찾은 수면 장애 환자가 한 해 83만여 명이다(2023년 기준). 10년 전에 비해 두 배로 늘었다.

 

▶한국 수면 비즈니스는 최대 호황이다. 사람들이 꿀잠을 자기 위해 지갑을 여는 규모가 한 해 4조원에 이른다. 잠이 곧 돈이 됐다. 수면 유도 호르몬으로 알려진 멜라토닌은 우리나라에서 그동안 의사 처방이 필요한 전문 의약품으로 묶여 있었는데, 이제는 약국서 사 먹을 수 있는 다양한 제품이 나왔다.

 

▶며칠 전 세계 최대 가구업체 이케아(IKEA)가 57국 5만5221명을 대상으로 수면의 질을 설문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는데, “수면의 질이 좋다”고 응답한 한국인의 비율은 17%로, 세계 꼴찌로 나왔다.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46%)보다 낮다. 전체 평균은 67%였다. 한국인의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은 6시간 27분으로, ‘수면 부족’이 심한 나라로 꼽혔다. 하루 7시간에서 7시간 반은 자야 사망률이 가장 낮고, 수명이 가장 길다.

 

▶한국인의 수면 장애 원인은 나이대별로 갈린다. 10대 청소년기는 학업 스트레스와 연관된 ‘수면 박탈’이 문제다. 20~30대는 밤 시간에 너무 많이 활동하는 생활과 24시간 음식 배달, 스마트폰 과사용 탓이다. 40~50대는 과체중으로 인한 코골이, 수면 무호흡증이 많고, 낮 시간 신체 활동 부족과 늘기 시작한 만성 질환 탓이다. 60~70대는 나이 들면서 수면을 유지하는 호르몬과 뇌 기능이 떨어진 데다, 전립선비대증·우울·불안 등으로 이른 새벽에 깰 일이 많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일본서 수면 건강 지도자 교육을 받았는데, 그때 수면 장애 개선을 위해 가장 강조한 말이 “평일이든 휴일이든 매일 아침 일정한 시각에 일어나라”였다. 인간 뇌에는 생체 시계가 있어서 아침에 햇빛 자극을 받는 시각에 따라 일정 시간 깨어서 활동하다가 15~16시간 후에 자동으로 졸리게 된다는 것이다. 수면은 시간 과학이다. 아침에 일정 시각 기상, 오전에 멜라토닌 원료가 되는 계란·두부 등 트립토판 음식 섭취, 낮에 햇볕 쬐며 걷기, 밤에 활동 줄이고, 빛 노출을 최소화하면, 매일 밤 잠이 기다려지는 삶을 살 수 있다.

김철중 논설위원, 의학전문기자

 

02.25 포트 녹스

 

/일러스트=이철원

 

1950년 6·25전쟁 발발 이틀 뒤 육군 헌병대가 한국은행 금고로 급파됐다. 1차로 금 1070㎏, 은 2500㎏을 경남 진해 해군본부로 실어 날랐다. 하루 뒤 서울이 함락된 탓에 나머지 금 260㎏, 은 1만6000㎏은 북한군 수중에 들어갔다. 이런 경험 탓인지 한국은행은 보유 금 104t 전량을 영국 영란은행 금고에 보관하고 있다.

 

▶세계 최대 금 보유국인 미국의 금 보관소는 켄터키주에 있는 포트 녹스(Fort Knox)이다. 남북전쟁 때 맹활약한 헨리 녹스 장군의 이름을 따서 만든 육군 기지이다. 두께 50㎝ 이상 강철로 만들어진 포트 녹스의 금고에는 미국 독립선언서, 링컨 대통령 게티즈버그 연설문 등 국가적 유물도 함께 보관돼 있다. 난공불락 이미지 때문에 영화 ‘007 시리즈- 골드 핑거’의 배경이 됐다. 영국 금 매매 업자가 금값을 올리려고 포트 녹스 금을 폭파시키려다 제임스 본드에 의해 좌절되는 스토리이다.

 

▶베일에 싸인 곳이라 “미 정부가 금 시세를 조작하다 금괴를 모두 탕진했다”는 음모론이 생겨났다. 트럼프 1기 정부 땐 재무장관이 의회 대표단과 함께 포트 녹스를 방문한 뒤, “금을 확인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일론 머스크가 “포트 녹스의 금이 도난당하지 않았다는 것을 누가 장담하느냐”며 음모론에 다시 불을 지폈다. 트럼프 대통령까지 “금이 거기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맞장구를 치고 있다. 부정선거 등 음모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지만 새삼 포트 녹스를 부각하는 이유가 있을 수 있다.

 

▶1971년 달러와 금을 바꿔주는 ‘금 본위제’를 폐기한 미국은 금이 달러 패권을 위협할 수 있다고 보고, 금 가격을 억눌러 왔다. 금값이 급등하면 정부 소유 금을 대거 풀거나, 금 선물 거래 보증금을 대폭 올려 금 투자자를 혼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 위기, 코로나 팬데믹 대응에 달러를 너무 푸는 바람에 이 방법도 통하지 않게 됐다. 1970년대 가격으로 평가해 놓은 미국 금을 시가로 재평가하면 정부 보유 금 가치가 110억달러에서 7500억달러로 68배 불어난다고 한다. 국가 부채를 줄이거나 비트코인을 매입하는 등 다른 용도로 요긴하게 쓸 수도 있다. 트럼프가 바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추측이 있다.

 

▶지금까지 인류가 채굴한 금은 20만t, 올림픽 수영 경기장 2개를 겨우 채우는 분량이다. 20%는 국가가, 80%는 민간이 갖고 있다. 트럼프가 실제로 금 대신 비트코인으로 갈아타는 선택을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글로벌 시장에 대파란이 일 수도 있다.

김홍수 논설위원

 

02.26 시장 군수의 놀라운 미술 '안목'

경기도 군포는 김연아 선수가 학창 시절을 보낸 곳이다. 2010년 김 선수가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자 군포시는 5억2000만원을 들여 관내 철쭉동산 공원에 8m 높이의 조형물을 만들었다. 조형물 꼭대기에는 피겨스케이팅을 하는 여성상을 올렸다. 그러나 동상이 김 선수와 전혀 닮지 않았고, 김 선수와 전혀 상의하지 않고 동상을 무단 제작한 것이 밝혀졌다. 이 때문에 군포시는 ‘김연아’라는 이름을 동상에 쓰지 못했다. 애물단지로 전락한 것이다.

 

/일러스트=박상훈

 

▶지자체가 엉터리 행정으로 망신을 당하고 주민 세금을 낭비한 케이스는 이것만이 아니다. 서울시는 2014년 한강변에 영화 ‘괴물’에 등장하는 괴물을 재현한 조형물을 설치했다. 높이 3m, 길이 10m 크기로, 1억8000만원이 들었다. 그러나 이 조형물은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아 결국 2024년 철거 결정이 내려졌다. 경북 고령군은 2015년 대가야의 기상을 기린다며 6억5000만원을 들여 투구를 쓴 말머리 모양 7m 크기의 청동 조형물을 제작했다. 그러나 흉물스럽다는 민원이 이어지자 한적한 농촌문화체험장으로 옮겨놓았다.

 

▶부산 해운대구청은 2017년 해운대 해수욕장에 있던 세계적 설치미술 거장인 데니스 오펜하임의 작품을 일방적으로 철거한 다음 고철·폐기물로 버린 사실이 드러났다. 부산비엔날레 조직위가 국제 공모를 거쳐 국·시비 8억원을 투입해 만든 작품 ‘꽃의 내부’였다. 이 작품이 작가의 유작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해운대구청은 철거 사실을 작가 가족과 미술계 등에 알리지 않았다. 아마 뭔지도 몰랐을 것이다. 해운대구청은 뒤늦게 작가 가족에게 사과하고 작품을 복원해 2020년 장소를 옮겨 재설치했다.

 

▶전남 신안군이 2019년 가짜 예술가 최모씨에게 속아 DJ 고향인 하의도 곳곳에 천사상 318점을 설치한 것으로 밝혀졌다. 신안군은 그를 ‘파리 제7대학 예술학부 명예교수’ ‘리틀 로댕’으로 소개했지만 모든 것이 허위였다. 최씨는 같은 방식으로 경북 청도군에도 접근해 중국의 조각 공장에서 수입한 작품 20점을 2억9700만원에 팔았다. 보통 예술품 사기는 유명 작가의 작품이라고 속이는 것이 일반적인데 자신이 유명 작가라고 사기를 치는 데 속은 드문 케이스다. 예술에 무지한 탓이다.

 

▶우리 사회에선 아직도 과학과 예술에 무지한 것을 수치로 생각하지 않는 풍조가 남아 있다. 지자체 예술품 상당수가 시장·군수 치적용이라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최소한의 검증이 필요할 텐데 그것도 없었다. 신안군과 청도군이 세금으로 사들인 ‘작품’들을 보면 헛웃음이 나온다. 이것을 ‘예술품’으로 본 안목이 놀라울 뿐이다.

김민철 기자

 

02.27 다 파는 트럼프

/일러스트=이철원

 

“다시 합법적(체류자)이 되니까 정말 좋네요!”

 

1976년 7월 27일 영국 록밴드 ‘비틀스’의 존 레넌이 뉴욕 이민국 앞에서 외쳤다. 그의 손엔 녹색 무늬의 미국 영주 번호 등록증, 이른바 ‘그린카드’가 들려 있었다. 1972년 닉슨 행정부는 레넌을 미국에서 추방하려 했다. 레넌의 반전·평화 메시지가 닉슨 대통령의 재선에 악영향을 줄 것을 우려한 결정이었다.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레넌도 이후 4년을 소송한 끝에야 겨우 미국 영주권을 받을 수 있었다. ‘걸출한 예술가’란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과 세계적 조각가 이사무 노구치 등의 서한도 법원에 제출했다.

 

▶트럼프 행정부 ‘정부효율부’ 수장인 일론 머스크에게도 한때 불법 체류를 했다는 의혹이 따라다닌다. 남아공 출신인 머스크는 1995년 스탠퍼드대 대학원을 다니겠다고 비자를 받아 미국에 입국했는데, 학교 등록도 하지 않고 곧바로 창업했다. 분명한 이민법 위반이었지만, 그는 부자가 된 후 이 문제를 해결하고 2002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거액 투자가 필요한 ‘투자이민(EB-5)’으로 영주권부터 받았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1985년 개봉한 한국 영화 ‘깊고 푸른 밤’은 미국 영주권을 얻기 위해 위장 결혼한 부부의 비극을 그렸다. 1990년 미국 영화 ‘그린카드’에도 영주권 때문에 위장 결혼한 부부가 나온다. 100만달러쯤 내면 미국 영주권을 주는 ‘투자이민’ 제도는 미국 영주권의 이런 인기 속에 1990년 만들어졌다. 영국, 캐나다, 호주, 스페인 등도 비슷한 형태의 ‘골든 비자(Golden Visa)’ 제도를 운영했다. 그러나 최근 3년 사이 선진국 대부분이 이 제도를 폐지했다. 중국 부유층이 몰려 실질적 투자는 안 되고 주택 가격만 폭등하는 등의 부작용 때문이었다.

 

▶25일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카드(미국 영주권)는 골드카드”라며 “약 500만달러(약 70억원)의 가격에 판매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이렇게 ‘일시불’을 내고 이주할 수 있는 국가는 지중해의 몰타나 카리브해의 세인트루시아 같은 작은 나라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미국이 이 시장에 뛰어들어 푸틴과 친한 러시아 재벌 마피아들도 받겠다고 한다.

 

▶트럼프는 부동산 업자로 알려졌지만 ‘트럼프’ 이름으로 팔 수 있는 것은 뭐든 팔았다. 트럼프 스테이크, 보드카, 물까지 있었다. 대통령 당선 뒤에도 자신과 따로 만날 수 있는 모임 티켓을 100만달러에 팔았다. 그는 미국의 역사, 정신, 가치, 품위, 체면까지 팔 것 같다.

김진명 기자

 

02.28(금) 쌍둥이 시대

▲LX하우시스에서 근무하는 정재룡(오른쪽)씨와 아내 가미소씨가 지난 9월 태어난 네 쌍둥이와 함께 웃고 있는 모습. /LX홀딩스

 

아침 출근길에 엘리베이터를 타니 쌍둥이 유모차가 있고 그 안에서 2~3세 쌍둥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본다. 얼굴이 좀 다른 이란성 쌍둥이였다. 요즘 귀한 아기를 한꺼번에 둘이나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와 손을 흔들어주었다. 아래층에도 5~6세 정도인 쌍둥이가 있으니 같은 라인에만 두 쌍둥이가 있다.

 

/일러스트=박상훈

 

▶쌍둥이가 늘어난 것은 통계로 확인된다. 1990년대엔 쌍둥이 등 다태아 비율이 1%대에 불과했으나 꾸준히 상승하더니 2021년 5%를 넘었다. 2023년 출생아 23만명 중 다태아가 1만2600명으로 5.5%를 차지했다. 출생아 100명 중 5~6명은 다태아인 셈이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쌍둥이 출산이 낮은 나라였으나 최근에는 세계 평균보다 2배 가까이 높아졌다는 논문이 있다. 쌍둥이 자연 출산율은 흑인, 백인, 동양인 순으로 낮아진다. 나이지리아가 쌍둥이를 가장 많이 낳는 나라로 알려져 있는데, 이제 우리나라가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쌍둥이가 늘어난 것은 난임 시술을 받는 부부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보통 35세 이하는 1년, 35세 이상은 6개월 정상적인 부부 생활을 했는데도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난임으로 진단한다. 정부는 저출생 극복을 위해 난임 시술 지원 대상의 소득 기준 등을 계속 완화해 오다 지난해 아예 이 기준을 폐지했다. 지원 횟수와 산모의 나이 제한도 사실상 없앴다. 그러자 지난해 상반기에만 난임 시술 횟수가 1년 전보다 30% 증가했다.

 

▶난임 시술이 늘면서 이란성 쌍둥이가 늘어났다. 1991년엔 일란성이 이란성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하지만 난임 시술이 증가하면서 이란성 비율이 늘어 2018년엔 일란성보다 3배 이상 많아졌다. 약 30년 만에 이란성 비율이 6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예전엔 체외수정할 때 이식하는 배아 수를 제한하지 않아 세쌍둥이 이상 다둥이도 적지 않게 태어났다. 요즘엔 산모와 아이 건강을 위해 숫자를 제한해 보통 2개만 이식하고 있다. 앞으로는 세쌍둥이, 네쌍둥이는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난임 시술은 큰 병원이 아니라 의원급에서도 할 수 있다. 정부가 난임 지원을 제한 없이 풀자 난임 클리닉이 호황을 누리고 있고 숫자도 늘어나고 있다. 난임 시술을 하는 산부인과 의사가 크게 늘면서 정작 그나마 부족했던 분만을 담당하는 의사 수는 더욱 줄고 있다고 한다. 저출생 극복을 위해 시행하는 정책이 많은 임산부를 불편하게 하는 일부 부작용도 낳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필요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김민철 기자

 

#만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