橫說竪說(동아일보) 2024-12/
12-02(월) ‘16세 미만 SNS 금지’ 법으로 못 박은 호주

“엄마, 내 이야기를 널리 알려주세요.” 9월 호주 시드니에 거주하던 12세 소녀 샬럿 오브라이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부모는 딸의 방에서 메모를 발견했다. 집단 따돌림으로 힘들어하던 샬럿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간 것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였다. 샬럿의 아버지는 “너무 잔인해서 전할 수 없는 최악의 말들”이 담긴 SNS 메시지를 읽은 날 밤 딸이 세상을 등졌다고 했다. 이 사건은 청소년 SNS 사용에 대한 호주 사회의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호주 상원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부모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16세 미만 청소년의 SNS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내년 말 시행되는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X(옛 트위터), 스냅챗, 틱톡이 규제 대상에 포함될 예정이다. 이들 업체가 청소년의 이용을 막을 장치를 마련하지 못하면 최대 4950만 호주달러(약 450억 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법이 너무 광범위하다”(틱톡) 등 업체들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아직 성숙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SNS는 자칫 독이 될 수도 있다. 매일 3시간 이상 SNS를 사용하는 청소년은 우울증과 불안을 겪을 확률이 2배 높다는 미 보건당국의 보고서도 있다. 이에 법적 장치를 마련하는 국가들이 늘고 있다. 프랑스는 15세 미만은 부모의 동의 없이 SNS에 접속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도입했고, 미국 플로리다주는 내년부터 14세 미만은 SNS 계정을 만들지 못하도록 할 방침이다. 노르웨이, 영국 등도 청소년의 SNS 사용을 일부 제한 중이다.
▷한국에서도 SNS에 빠진 아이들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크다. 최근 4년 새 SNS에 자살 유발 정보가 올라왔다는 신고가 9배 이상 늘었고, 이는 아동·청소년 자살률 증가의 주요인으로 꼽힌다. SNS가 다른 불법 행위로 이어지는 창구가 되기도 한다. 청소년들이 SNS에 올라온 광고에 혹해서 온라인 도박에 빠지거나 마약을 구매하는 식이다. 딥페이크 범죄는 피의자의 70% 이상이 청소년인데, 대부분 SNS로 사진이나 동영상을 퍼뜨리다가 적발됐다. 그럼에도 SNS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할 적극적인 방안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호주가 만든 법의 실효성에 대해선 반론이 만만치 않다. 자녀가 부모 이름으로 SNS에 가입하는 등 편법을 쓸 수 있고, 폐해가 더 심각한 다크웹으로 옮겨가는 청소년이 늘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교육 목적으로 쓰일 수 있다는 이유로 유튜브 등이 규제에서 빠진 것도 한계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이 법이 완벽하다고 주장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이게 옳다는 것은 안다”고 했다. 시행착오를 무릅쓰고서라도 시작하겠다는 얘기다. 우리도 깊이 새겨볼 만한 대목이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12-03 산유국 반대 넘지 못한 ‘죽음의 알갱이’ 협약

플라스틱 시대는 고작 100여 년 남짓이다. 지구의 역사에서 찰나도 되지 않는 순간에 존재하며 이처럼 지구를 위협한 발명품은 없었을 것이다. 1일까지 ‘플라스틱 오염 종식 국제협약’을 위한 정부 간 협상이 진행된 부산 벡스코에선 환경 운동가들이 폐그물에 목이 걸려 죽은 바다거북 사진, 범고래 뱃속에서 나온 플라스틱 병을 들고 “이젠 인간 차례”라고 호소했다. 햇빛과 바람, 물에 깎이고 쪼개진 지름 5mm 이하인 미세 플라스틱은 입자가 작아 어디든 침투할 수 있는 데다 화학물질에 쉽게 달라붙어 ‘죽음의 알갱이’로 불린다. ‘죽음의 알갱이’가 된 플라스틱이 먹이사슬을 타고 인간까지 공격하고 있다.
▷미세 플라스틱이 처음 학계에 보고된 건 2004년이다. 이후 20년간 7000건이 넘는 관련 논문이 발표됐는데 최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이를 종합적으로 리뷰한 논문이 실렸다. 지금까지 물고기, 포유류, 새, 곤충을 포함해 1300종 이상의 동물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나왔다. 바다로 흘러 들어간 미세 플라스틱은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남극과 심해저에서도 발견된다. 공기와 물, 음식이 오염됐는데 인간만 무탈할 리 없다. 폐, 간, 신장, 혈액, 고환뿐만 아니라 미세 플라스틱 침투가 어려운 구조라고 봤던 뇌와 심장에서도 발견됐다.
▷미세 플라스틱은 세포에 염증 반응을 일으키고 흡착된 독성 화학물질을 배달한다. 소화기와 호흡기를 망가뜨리고 호르몬을 교란해 발달 장애, 생식 장애를 일으킨다. 암세포의 성장과 전이를 촉진시킨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미세 플라스틱을 먹인 쥐의 인지기능이 떨어지는 등 치매도 유발한다. 장기적인 유해성은 아직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플라스틱과 당장 헤어질 결심을 하기는 어렵다. 면봉부터 전투기까지 일상에서 쓰이지 않는 곳이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60년이면 플라스틱 생산량이 12억3100만 t으로 2019년의 약 3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친환경 정책으로 석유 수요가 줄어들자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 미국 셸 등은 대규모 석유화학 단지를 짓고 있다. 정유회사들이 플라스틱 생산으로 눈을 돌린 것도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2022년 유엔환경총회에서 처음 플라스틱 국제협약이 제안됐고 그간 네 차례에 걸쳐 각국이 협상을 진행했으나 접점을 찾지 못했다. 부산에서 열린 마지막 5차 협상 역시 빈손으로 종료됐다. 핵심 쟁점은 플라스틱 원료 물질인 폴리머 생산 규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등 산유국이 이를 격렬히 반대한다. 썩지 않는 플라스틱은 한 번 태어나면 영생을 누린다. 생산 규제가 늦어진다면 꼭 플라스틱을 써야 할지 묻고 또 물으면서 덜 사용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야 지구도 살고, 나도 산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12-04 기로에 선 ‘힘센 기관’ 특수활동비

더불어민주당이 내년 예산안 가운데 검찰, 경찰, 감사원, 대통령실의 특수활동비를 전액 삭감하겠다고 나섰다. 국회 예결위에서 표결까지 마친 상태다. 특활비는 영수증 증빙 없이 쓰는 현금성 예산으로, 이들 4곳을 합치면 특활비 삭감액은 200억 원에 가깝다. 또 소액이 아니면 영수증이 필요한 특정업무경비(특경비) 예산도 대폭 삭감됐다. 이걸 포함하면 잘려나간 예산이 1000억 원에 이른다.
▷경찰 수사로 예를 들어보자. 불법 사채조직 정보원에게 ‘현금 수고비’를 줬다면 특활비에서 충당한다. 지방 출장 때 신용카드로 렌터카를 빌렸다면 특경비에 해당한다. 두 항목 모두 큰 틀에서 수사비의 일부인 것이다. 실제로 현금이 종종 쓰인다고 한다. 예컨대, 함정수사 차원에서 마약대금 500만 원을 비트코인으로 지급하거나, 성 착취물 사이트에 가입할 때가 그렇다. 민주당의 삭감 결정은 실제로도 특활비를 설명한 대로만 쓰느냐는 의문에서 출발했다. “검찰, 감사원 등 ‘힘센 조직’일수록 국민 세금을 쌈짓돈처럼 쓸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그 근거로 검찰의 특활비 내역에서 찾아낸 반복적 현상을 거론한다. 매달 같은 액수가 지급되는 경우가 잦아 ‘검사들끼리 나눠 갖기’가 의심되고, 추석이나 설 직전에 사용액이 늘어나니 떡값이 아니냐는 의문인 것이다. 2017년 이영렬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특활비로 돈봉투를 돌린 일이 드러난 뒤 검찰은 관행을 바꾸겠다고 다짐했지만, 확인된 것은 아직 없다.
▷검찰은 올 9월 국정감사 때 특활비 내역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법원 가이드라인을 따랐다지만 내용이 부실했다. 수령인과 금액만 남겼을 뿐 날짜와 용도 등은 지운 채였다. 민주당은 “기관장 금일봉처럼 안 썼다는 걸 입증만 하면 예산을 주겠다”고 했지만, 뾰족한 설명이 없었다. 문제는 국회도 특활비(9억 원)와 특경비(185억 원)를 내년에 책정했는데, 외유성 짙은 의원들의 해외 출장 등에 이 돈을 쓴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자신들이 수혜자인 국회 예산은 물론이고 형사재판으로 얽힌 대법원의 특활비는 손대지 않았다.
▷민주당은 특활비 삭감을 국민 세금의 투명성 확보 노력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자신들이 수사받고 감사받은 기관들을 겨냥한 분풀이라고 맞서고 있다. 그 성격이 무엇이건, 국민 세금을 200억 원 가까이 현금으로 쓰는 관행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검찰과 경찰은 지난 수년간 특활비와 특경비 총액은 비슷하게 유지하면서도, 현금성 특활비는 줄이고 영수증이 필요한 특경비는 늘려 왔다고 설명한다. 이번 ‘삭감 정국’의 결론과 무관하게, 현금 사용은 최대한 줄여나가는 것이 부패를 방지하고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는 길이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12-05 추경호와 ‘당사의 50인’

권한은 많고 책임은 없다’는 말을 듣는 국회의원도 때로는 벌거벗고 광야에 설 때가 있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에겐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직후가 그랬다. 찬반에 대한 본인 생각을 드러내고 평가받아야 할 순간이 왔던 것이다. 국회는 4일 오전 1시쯤 계엄해제 요구 결의안 표결을 진행했다. 투표 참석자 190명 전원이 찬성했는데, 여당 소속은 18명이었다. 시대착오적인 계엄에 반대한다는 숫자가 108명 의원 가운데 5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비슷한 시각 국회 건너편 국민의힘 중앙당사에는 여당 의원이 50명 넘게 모여 있었다. 표결에 불참한 이들로, 당 주류에 가까운 의원들이 상당수였다. 이들은 추경호 원내대표의 오락가락 지시로 혼란을 겪었다고 했다. 원내대표 이름의 공식 집결 지시는 3일 오후 11시 이후 2시간 동안 ‘즉시 국회→중앙당사 3층→국회 예결위 회의장→당사 3층’으로 계속 달라졌다. 그러는 사이에 투표는 끝나버렸다.

▷당사에 모인 의원들은 “대체 뭔 일이 벌어진 거냐”며 우왕좌왕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이 8월 이후 계엄설을 제기하기 시작했고, 45년 만에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는데도 상당수 집권당 의원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관찰자에 가깝게 행동했다는 뜻이다. 그러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의결정족수를 채웠다고 선포하는 장면이 TV에 나오고 국회 표결 처리가 임박하자 몇몇 의원이 “계엄은 안 될 일” “대통령은 왜 성사도 못 시킬 계엄을 선포했느냐”는 등의 말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추 원내대표는 의원들을 당사로 집결시켜 놓고는 국회 본청 원내대표실에 장시간 머물렀다. 본회의장까지 3, 4분 거리였지만 회의장에 가지 않았다. 계엄 선포를 사전에 알지 못했다는 그는 상황 파악에만 주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표결 불참에 대해선 “내 판단으로 안 했다”고 했다. 친한계인 김종혁 최고위원은 “추 원내대표는 본회의장으로 오라는 한 대표의 말을 거부했다”는 말까지 했다. 추 대표는 4일 새벽 상황에서나, 이날 오전 열린 의총에서도 공식적으로 계엄의 문제점을 거론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에 이어 국민의힘 의원들도 역사와 민심의 평가 무대에 오를 처지에 놓였다. 의원들은 계엄 해제 표결에 왜 참여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질문받게 될 것이다. 표결 불참자 중 일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반대의 뜻을 밝혔지만, 당사에 머물던 범주류 의원 50여 명은 어떤 정치적 의사표시도 내놓지 않았다. 어떤 의원들은 계엄군이 국회에 진입한 상황에서 계엄 해제 표결을 위해 담을 넘어서까지 본회의장을 찾았고, 어떤 의원들은 제3자처럼 TV로 본회의장 표결을 지켜보며 개인적 논평을 했을 뿐이다. 극명하게 엇갈린 장면이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12-06 “누구 조언 듣고 그랬을지가 1만 달러짜리 질문”

해외 언론의 한국 보도는 때때로 바깥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알 수 있는 창을 열어준다.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도 그랬다. 긴급 상황을 사실 위주로 다루던 외신 보도에서 비판적 견해가 늘어났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4일 “윤 대통령은 즉각 사임하라”면서 “윤 대통령은 한국 같은 주요국 대통령직은 물론이고 어떤 자리에도 안 맞다(unfit)는 걸 입증했다”는 주장이 담긴 익명의 칼럼을 실었다. 이코노미스트는 자사의 모든 글에는 회사의 집단지성이 담겼다는 이유로 글쓴이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계엄 선포를 “미국의 (한미일) 태평양 동맹을 위협할 만한 행동”이라고 평가했다. 그런 뒤 “윤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아메리칸 파이’ 노래를 부르던 시절은 갔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자사 칼럼니스트 3인의 대화 형식의 글을 실었다. 거기에는 계엄 선포를 “완전한 오판”으로 평가하고, “대통령은 누구와 상의했고, 누구의 조언을 들었나. 그것이 1만 달러짜리 질문”이라는 대목이 등장한다. 한국의 국격과 민주주의 성숙도에 비춰볼 때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는 뜻이었다.
▷언론사의 공식 견해인 사설도 여럿 등장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첫날 “민주국가에서 있어선 안 될 사태가 한국서 벌어졌다”는 사설을 쓴 데 이어 이튿날에도 “윤 대통령은 북한과 긴장이 지속되는 한반도 정세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어리석은 행동을 했다”고 썼다. 워싱턴포스트는 “뻔뻔하고도, 위헌적으로 보이는 (민주주의) 전복 시도가 한국 민주주의를 진짜 위협했다”고 평가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힘들게 이룬 민주주의의 진전을 위험에 빠뜨린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견을 폈다.
▷언론뿐만 아니라 한반도 정책을 다루는 미국의 싱크탱크도 의견을 표명했다. 워싱턴 소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윤 대통령의 종말(demise)을 부를 수 있다”고 예측했고, 스팀슨센터는 “정치적 자살행위”라고 평가했다. 미 국무부 부장관이 이례적으로 이번 일을 “심각한 오판”이라고 비판한 것과도 맥을 같이하는 견해들이다. 미국은 한국을 일본과 함께 ‘권위주의 중국’의 팽창을 막는 핵심 동맹으로 여긴다는 점에서, 안보 전문가들의 아쉬움이 컸을 것이다.
▷한국은 2차 대전 이후 독립한 신생국 가운데 경제와 민주주의를 동시에 성숙시킨 유일한 국가다. 미 블룸버그통신이 “민주주의의 등대로 여겨졌던 한국에서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고 묘사한 것도 그런 이유다. 대통령 한 사람의 독단이 오랜 시간 쌓아올린 한국의 국격에 손상을 입혔다는 것은 외신의 창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민주적 절차를 통해 해법을 마련하고, 이것이 외신을 통해 보도되는 것을 지켜보는 방법밖에 없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12-07(토) 이재명 한동훈 우원식 조국 김명수… 설마 싶은 ‘체포 리스트’

윤석열 대통령 탄핵 표결 정국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생각을 180도 틀었다. “계엄은 위헌적이나, 탄핵은 불가”였던 그가 6일 갑자기 “대통령 직무 정지가 필요하다”는 쪽으로 돌아섰다. 계엄이 선포된 3일 밤 군이 정치인 체포를 시도했고, 윤 대통령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것이 계기였다고 한다. 이른바 ‘체포 리스트’가 있었다는 주장인데, 사실로 확인된다면 정치권 지축을 뒤흔들 일이다.
▷‘체포 시도설’은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의 입에서 시작됐다. 계엄이 무산된 직후 석연찮은 이유로 사직한 홍 전 차장은 6일 민간인 신분으로 국회 정보위에 출석했다. 그 자리에서 3일 밤 대통령과 충암고 출신인 여인형 방첩사령관과 통화한 내용을 공개했다. 윤 대통령이 “정치인들을 잡아들여 싹 다 정리하라. (민주당이 경찰에 넘긴) 대공수사권을 국정원에 돌려줄 테니 방첩사를 도우라”라는 취지로 지시했다고 했다. 계엄 발표 20분쯤 뒤였다.
▷홍 차장은 곧바로 방첩사령관과 통화했는데, 체포 대상 정치인 이름을 불러줘 받아 적었다고 했다.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 김민석, 박찬대, 정청래, 조국, 김어준, 김명수(전 대법원장), 김민웅(김민석 의원 친형), 권순일(전 대법관)… 순서였다고 했다. 홍 차장은 “여기까지 받아 적다가 미친 ×이구나 생각해 멈췄다”고 국회에서 말했다. 이름이 기억 안 나는 선관위원 1명, 민노총 또는 한노총 위원장 1명이 더 포함됐다고 했다. 계엄법상 현역 의원은 현행범이 아니면 체포할 수 없다는 점에서 불법성을 다시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재명 박찬대 등 야당 지도부 말고도 집권 여당의 한동훈 대표까지 체포 대상에 올랐다면 놀라운 일이다. 한 대표는 5일 대통령 면담 때 “왜 국회에 투입된 군이 나를 체포하려 했느냐”고 따진 적이 있다. 여기에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김명수 전 대법원장은 왜 거론됐는지 의문이다. 권순일 전 대법관은 대장동 사건의 김만배 씨와 깊은 인연이 있는 인물이다. 친야 방송인인 김어준 씨는 여론조사 ‘꽃’을 통해 총선 여론조사 조작 가능성을 따지려 한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홍 전 차장에 따르면 방첩사는 그날 밤 체포조를 투입했는데 정치인 위치를 못 찾아내자, 자신에게 휴대전화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고 한다. 체포한 뒤 경기 과천에 구금하는 계획도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아무런 조치를 않았다”며 무관함을 주장했는데, 수사로 가릴 일이다. 그가 어마어마한 통화 내용을 직속 상관인 조태용 국정원장에게 보고했는지를 두고도 양쪽 진술이 엇갈린다. 역사에 가정은 필요 없다지만, 최초의 체포 계획이 성사됐다면 어떤 일이 이어졌을까. 2차, 3차 체포 리스트가 없으리란 법도 없으니, 얼마나 많은 피해자가 나왔을지 상상만으로도 소름 끼치는 일이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12-09(월) “현장 군경 소극적 행위, 보편적 가치에선 적극적 행위”

한강(54)이 노벨 문학상 시상식을 위해 스웨덴을 찾은 영광의 주간에 작가의 고국에선 부끄러운 비상계엄 사태가 터졌다. 한강의 대표작 중 하나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이다.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 평가받은 작품이다. 45년 전 계엄 사태에 천착해 온 작가에게 외신 기자들은 6일 기자회견에서 2024년 또다시 계엄 사태를 맞은 소감을 물었다.
▷3일 밤 사람들이 계엄의 주동자들과 이를 저지하는 국회의원들의 긴박한 움직임을 쫓는 동안 작가는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화면에서 서로 뒤엉켜버린 군경과 시민들에 주목했다. “맨손으로 무장한 군인들을 껴안으며 제지하려는 모습”에서 “진심과 용기가 느껴졌다”고 했다. 작가의 시선은 명령과 양심 사이에서 “소극적으로 움직이는” 젊은 제복들에게도 닿았다. “명령을 내린 사람 입장에서는 소극적이었겠지만 보편적 가치의 관점에서 본다면 생각하고 판단하고 고통을 느끼면서 해결책을 찾으려는 적극적인 행위였다.”
▷작가는 7일 한림원 강연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들려줬다. ‘소년이 온다’를 쓰려고 1980년 광주를 취재하며 “인간에 대한 근원적 신뢰”를 잃어가던 즈음 ‘소극적으로 보이지만 적극적인 행위자’를 자료 속에서 만났다고 했다. 계엄군이 들이닥칠 줄 알면서도 광주 시민들 곁을 지키다 살해된 젊은 야학 교사도 그중 한 명인데 그는 마지막 밤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한강의 강연 주제는 ‘빛과 실’이다. 여덟 살 때 볼펜 깍지에 몽당연필을 끼워 쓴 시에서 따왔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사랑이란 무얼까?/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인간은 언어라는 실로 연결돼 있고, 그 실에 생명의 빛이 흐른다는 뜻이라고 한다. 영국 시인 존 던의 “인간은 섬이 아니다(No man is an island)”와 나란히 오래도록 기억될 ‘빛과 실’이다. 잔혹해지고 뒷걸음치려는 순간 서로 연결된 실에 각성의 전류를 흘려보내며 인류애를 지켜내자는 선언 같다.
▷한강은 “역사 속에서 일어난 일을 다룬다는 것은 폭력의 반대편에 서겠다는 맹세”라고 한 적이 있다. 한림원 강연에선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한다’고 표현했다. 3일 밤의 ‘적극적 행위자’들도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 우리를 돕고 구할 것이다. ‘광주의 5월’이라는 비극, ‘서울의 밤’이라는 희극으로 되풀이되는 역사가 보여준 퇴행적 정치의 한계, 진창에서도 희망을 건져 올리는 문학의 힘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한강 주간’ ‘계엄령 주간’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12-10 올해의 사자성어 ‘도량발호’

2024년 한 해를 성찰하는 사자성어로 제멋대로 권력을 부리며 함부로 날뛴다는 뜻의 ‘도량발호(跳梁跋扈)’가 선정됐다. 도량은 살쾡이가 껑충거리며 이리저리 날뛰는 모습을 뜻한다. 장자의 ‘소요유’ 편에 나오는 문구라고 한다. 발호는 한자 그대로 풀면 물고기가 통발을 뛰어넘는다는 뜻이다. 중국 한나라 때 권력을 장악했던 외척 양기를 ‘발호장군’이라 일컬은 데서 나온 말이다. 오만방자한 권력을 풍자한 것이다. 도량발호는 두 단어를 합친 ‘신(新)사자성어’인 셈이다.
▷교수신문은 2001년부터 매년 전국 대학교수 대상 설문조사를 통해 올해의 사자성어를 뽑아 왔다. 올해는 한밤 비상계엄이 선포되기 전날인 2일까지 진행됐다. ‘도량발호’를 선택한 이유로 교수들은 그간 국민 위에 군림만 하려는 듯한 윤석열 대통령의 행태를 꼽았다. 부인의 명품백 수수를 “박절하지 못해서”라고 감싼 것을 비롯해 갑작스러운 의대 증원 2000명 발표, ‘런종섭’ 논란 등 일반 상식과는 동떨어진 잇단 독선과 실책으로 총선에 패배하고도 국회를 무시한 채 ‘마이 웨이’를 고수해 온 현 정권을 향해 ‘제멋대로 권력을 부리며 함부로 날뛴다’고 꼬집은 것이다.
▷다수의 교수들이 도량발호로 의견을 모은 다음 날인 3일 윤 대통령은 느닷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도량발호가 교수들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은 것이다. 이번엔 영부인 보호 등을 위한 권력 남용에 그친 것이 아니라 군(軍)을 포함해 아예 국가 시스템을 망가뜨리는 수준까지 치달았다. 국가 안보와 국민 안전을 지켜야 할 군과 경찰이 국회에 침투하고, 정치인을 체포하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점거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 후유증을 어찌 감당할지, 어떻게 국가 시스템을 복원해야 할지 암담하다.
▷교수들이 뽑은 다른 사자성어들도 어지러운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2위인 ‘후안무치(厚顔無恥)’는 낯짝이 두꺼워 부끄러움이 없다는 뜻이다. 여야 정치인들이 잘못에 대해 부끄러움을 모르고, 이에 따라 수치를 모르는 세태가 만연하다는 것이다. 3위를 차지한 ‘석서위려(碩鼠危旅)’는 머리가 크고 유식한 척하는 쥐 한 마리가 국가를 어지럽힌다는 뜻이다. 자신이 똑똑하다고 믿는 지도자들 때문에 우리 사회가 끊임없는 갈등으로 점철된 시간을 보냈다는 안타까움을 담은 표현이라고 한다.
▷역대 사자성어는 무도한 권력에 대한 경고음을 꾸준히 울렸으나 권력에 취한 어느 대통령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2022년에는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뜻의 ‘과이불개(過而不改)’, 이듬해는 이로움을 보자 의로움을 잊는다는 뜻의 ‘견리망의(見利忘義)’가 선택됐다. 이런 민심을 읽고 조금이라도 겸손했다면 어땠을까. 돌이키기엔 너무 늦었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12-11 “무능한 명령… 실제 전투였다면 다 죽었을 것”

테러범이 장악한 버스 앞을 무장차량이 가로막았다. 대원들은 해머로 유리창을 깨고 경사로를 만든 뒤 순식간에 버스 안으로 뛰어들어 테러범을 체포했다. 불과 30초. 대원들의 눈엔 망설임이 없었다. 6월 공개된 대테러 작전 훈련에서 육군특수전사령부 707특수임무단은 ‘특전사 중의 특전사’로 불릴 만큼 믿음직했다. 하지만 3일 밤 TV 속에선 정반대였다. 뭘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9일 김현태 707특임단장은 기자회견을 갖고 “전투에서 이런 무능한 명령을 내렸다면 전원 사망했을 것”이라면서 “부대원들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이용당한 피해자”라며 울먹였다. 김 단장은 비상계엄 선포 직후인 3일 오후 10시 30분경 특전사령관으로부터 국회 본청과 국회의원 회관을 봉쇄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했다. 국회 구조를 몰라 ‘건물 출입문만 잠그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내비게이션 앱인 티맵으로 국회 본청 건물과 헬기가 착륙할 운동장 위치를 확인한 게 작전 준비의 전부였다.
▷오후 11시 50분경 헬기에서 내려다보니 상황은 전혀 달랐다. 국회의사당은 너무 커서 소수 인원으론 통제가 불가능했다. 후문으로 갔더니 자동 유리문이어서 잠금이 어려웠다. 정문으로 가니 이미 기자들과 국회 관계자들이 몰려 있었다. 그제야 창문을 깨고 들어가 안쪽에서 문을 잠그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아무런 준비도 계획도 없던, 무엇을 위해 하는지조차 모르는 작전. 부대원들은 “우리가 여기서 지금 뭐하는 짓이지”라고 웅성거렸다.
▷무능하고 사악한 지휘관은 적보다 무섭다. 건국 이후 평시 작전 중 가장 많은 군인이 희생된 것은 1982년 2월 제주도에서였다. 707특임대대 47명, 그리고 공군 장병 6명을 태운 C-123 수송기가 한라산 계곡에 추락해 전원 사망했다. 현장에선 기상 악화로 이륙하기 어렵다고 보고했지만 위에선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지시만 반복했다. 군은 ‘대침투작전 중 순직’이라고 발표했지만 사실은 달랐다. 제주공항 활주로 준공식을 위해 제주도를 찾을 예정이던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경호가 목적이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은 707특임단이 국회를 봉쇄해 계엄 해제 요구안의 가결을 막고, 방첩사령부와 특수정보부대(HID)가 주요 인사를 체포·구금하는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간단한 작전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의 작전은 게임이 아니었다. ‘제복 입은 시민’인 장병들은 그들의 장기말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무능한 지휘관들의 작전은 실패했지만 최정예부대의 명예와 자존심은 짓밟혔다. 졸지에 계엄군이 됐던 장병들의 상처는 누가 치유해줄 수 있을까.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12-12 윤석열 대통령 ‘가짜 출근 쇼’까지 했나

윤석열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22년 5월 언론은 대통령의 출근 시간을 추적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자택을 나선 시각은 취임 첫 3일 동안 오전 8시 31분, 9시 12분, 9시 55분이었다. “공무원 기준으론 지각”이란 비판이 나왔다. 대통령실은 “대통령은 24시간 근무한다”고 반박했고, 곧 정권 초기의 대형 이슈들에 묻혀 버렸다. 참모의 말엔 귀 닫은 채 회의시간을 독점하고, 잦은 음주 풍문 속에 국정에 몰입하지 못한다는 증언이 이어지는 오늘의 ‘탄핵 전야’에 돌이켜볼 때, 예사롭게 넘길 일이 아니었다.
▷한 언론이 집권 후반기를 맞은 11월 한 달의 출근 시간을 관찰했다. 11일 보도에 따르면 주말과 남미 순방을 뺀 18일 가운데 대통령이 오전 9시 이전에 용산 집무실에 도착한 건 이틀뿐이었다. 이래서야 국정의 컨트롤타워인 대통령실 업무 기강이 제대로 섰을까 싶다. 정작 더 큰 문제는 경호처가 언제부턴가 ‘가짜 출근차’를 동원한 듯한 장면이다.
▷언론의 지난달 25일 취재를 보자. 그날 오전 한남동 관저에서 검은색 고급 승용차 3, 4대와 승합차 3∼5대로 구성된 차량군이 2차례 빠져나왔다. 경찰 오토바이 경호가 뒤따랐다. 각각 오전 8시 52분과 9시 42분이었고, 도착지는 용산 대통령실이었다고 한다. 차량 규모로 볼 때 대통령과 수행원, 경호팀이 출근하는 모습 그대로였다. 이런 일은 29일에도, 12월 3일에도 있었다고 한다. 대통령이 2번 출근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달랐던 것은 경찰의 태도였다. 첫째 행렬을 맞을 때 경찰은 호루라기로 주변 차량을 통제했고, 길목에 선 경찰은 서로 잡담했다는 것이다. 둘째 행렬 땐 사복 경찰이 추가로 배치됐고, ‘표준 교통신호제어기’ 뚜껑을 열어놓고 언제든 신호등 변동을 할 태세였다. 경찰청 폐쇄회로(CC)TV도 첫 번째와 달리 두 번째엔 차량들이 한남동 관저를 나설 때 카메라가 차량에 집중되고 화면은 확대됐다. 이동할 때는 카메라가 차량을 추적했다고 한다. 논란이 커지자 경찰 내부에서는 요인 경호 때 위장용으로 빈 차를 내보내는 ‘공차’ 방식을 늦은 출근에 활용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반헌법적 비상계엄과 정치인 체포령까지 불거진 마당에 이런 일은 사소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취재가 사실이라면 사안의 크기는 달라도 본질은 다르지 않다. 언론의 출근 시간 추적이 부담스럽다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든가 출근 시간을 앞당기면 된다. 쉽고 삿된 길을 택해서 들어간 시간과 인력 낭비는 어쩔 것인가. 첫 번째 빈 차 행렬의 운전자와 탑승자들은 ‘위장용 출근 쇼’에 얼마나 어처구니없어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경호처가 “경호 보안상 이유”라며 입을 닫을 게 아니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12-13 ‘임을 위한 행진곡’ 대신 로제의 ‘아파트’, 촛불 대신 응원봉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요즘 거리 집회에는 특이한 깃발들이 나부낀다. 흔히 보던 ‘○○노총 ○○지부’처럼 조직을 드러내기보단 개인 취향을 반영한 것들이 많다. ‘전국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연합’ ‘강아지발냄새연구회’ ‘OTT 뭐 볼지 못 고르는 사람들 연합회’ 같은 깃발들이다. ‘집에 누워있기 연합’ 깃발도 등장했는데 ‘제발 그냥 누워있게 해달라’는 설명이 달려 있다. 얼핏 장난스러워 보이지만 이런 평범한 시민들까지 거리로 나서야 할 만큼 분노한 민심이 널리 퍼져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집회 참가자 중에는 민주주의를 공기처럼 호흡하며 성장한 MZ세대가 특히 많다. 생애 첫 계엄 사태에 기성세대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고 정치적 의사 표현에도 거침이 없는 세대다. 이들이 주도하는 시위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촛불 대신 발광다이오드(LED) 응원봉이 필수 시위 아이템이 됐다. 엔시티, 세븐틴, 에스파 등 아이돌 팬들이 형형색색의 응원봉을 흔들며 ‘윤석열 탄핵’을 외친다.
▷집회 곡 플레이리스트도 세대교체가 한창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 ‘광야에서’처럼 비장하고 결연한 민중가요 일색이던 과거와 달라졌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지드래곤의 ‘삐딱하게’ 같은 댄스곡을 떼창하고 로제의 ‘아파트’, 에스파의 ‘위플래시’, 부석순의 ‘파이팅해야지’ 같은 K팝 곡을 이번 사태에 맞춰 개사해 부른다. ‘삐딱하게’를 부를 땐 ‘영원한 건 절대 없어. 결국에 넌 변했지. 이유도 없어. 진심이 없어’ 대목에서 윤 대통령의 지금 상황과 맞아떨어져서인지 노랫소리가 더 커진다. 현장을 본 BBC 기자는 “K팝 페스티벌 같았다”고 보도했다.
▷기존 민중가요의 키워드가 저항과 투쟁이라면 최근 탄핵 플레이리스트의 메시지는 희망과 열정이다. 너무 무겁지 않아 공감대가 넓고, 더 많은 시민들을 집회로 불러 모으는 힘이 있다. 직접 거리로 나서진 못하더라도 시위 참가자들이 따뜻한 커피로 몸을 녹일 수 있도록 주변 카페에 선결제를 해놓는 릴레이가 확산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50, 60대 참가자들이 10, 20대들에게 응원봉 사용법을 배우고, 젊은층은 유튜브로 민중가요 영상을 찾아보는 세대 간 화합도 일어나고 있다.
▷MZ들이 만들어 가는 새로운 집회 문화는 과격한 구호나 폭력 없이도 얼마든 의사 표현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다. 탄핵과 무관한 특정 진영의 편향적 발언이 나올 땐 “단상에서 내려오라”는 야유가 빗발친다. 정파를 초월한 이들의 응원봉은 1970, 80년대의 화염병보다 더 강할 수 있다. 아직 1970년대에 머물러 있는 윤 대통령은 반국가세력과 싸운다는 망상으로 무력을 동원했지만 그보다 한참 진화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아온 요즘 청년들은 평화적으로 세상을 바로잡는 법을 알고 있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12-14(토) “尹 현실이 아닌 걸 현실로 믿는 망상적 사고” 진단 논란

8년 전 탄핵 정국에선 박근혜 대통령의 정신건강과 심리 상태를 놓고 전문가들이 여러 분석을 제기한 적이 있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대통령의 언행을 설명해 보려는 시도였다. 이번에도 음모론에 빠져 실패할 게 뻔한 비상계엄 선포로 탄핵 위기를 자초한 윤석열 대통령의 ‘범행 동기’에 대해 전문가들이 갖가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엄정 수사와 함께 정신 감정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나왔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대면 없이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순 없다”는 전제하에 “현실이 아닌 걸 현실로 믿는 망상적 사고를 갖고 있는 것으로 우려된다”고 했다. “권력자 중엔 자기애가 지나쳐 공감력이 떨어지는 이들이 있는데 윤 대통령이 그런 상태일 수 있다” “충동 제어가 안 되는 것 같다”는 진단이 나왔다. 남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이 병리적 문제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자기와 다른 의견이나 질문에 노출되는 데 대해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공포를 느끼는 것 같다”는 것이다.
▷직접 진료하지 않은 공인의 정신건강에 대해 전문적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의료 윤리 위반이 될 수 있다. 한 의대 교수는 “전문가 권위를 남용하고 의료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의사들에겐 개인의 병이 타인에게 심각한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경고의 의무’가 있다는 반론도 있다. 대통령의 정신 상태가 정상이 아니면 국가적 재앙이 되므로 비밀 준수 규정을 지키는 게 오히려 의사 윤리 위반이라는 논리다.
▷경고의 의무는 2017년 미국 정신의학 전문가 27명이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에 대해 “극단적 쾌락주의자이자 병적 나르시시스트, 소시오패스”라고 진단하면서 주목받았다. 트럼프가 나오는 수백 시간 분량의 동영상, 수천 건의 인터뷰, 수만 건의 트윗을 분석한 결과였다. 이들은 백악관 의료진이 대통령의 정신건강도 관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핵무기 담당자는 정신건강을 별도로 관리하면서 핵단추 누르는 최고 결정권자는 왜 관리 않느냐는 지적이었다. 국내에서도 대통령 정신건강을 관리할 주치의를 두고, 최고위급 공직자와 장성급은 매년 정신 검진을 의무화하자는 제안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조증과 울증 상태를 왔다 갔다 하는 양극성 정동장애일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빈손으로 임기를 마치게 될 거라는 비관과 초고속 승진해 용산까지 왔으니 앞으로도 잘될 거라는 낙관 사이에서 ‘정신적인 붕괴 상태’에 이르렀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윤 대통령은 국민 정신건강을 위해 역대 정부 최초로 대통령 직속 정신건강 정책 혁신위원회를 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국민을 위한다면 자신의 정신건강부터 챙겨야 했다. 대통령 마음의 병은 나라의 큰 ‘유고’에 해당함을 절감하는 시국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12-16(월) 12·14 여의도 집회는 일상을 되돌려달라는 외침이었다

12월 14일 오후 5시경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순간. 국회의사당부터 여의도역까지 의사당대로를 꽉 메운 시민들 사이에선 일제히 “와” 하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떼창이 시작됐다. ‘좋지 아니한가’ ‘삐딱하게’ 등 이른바 탄핵 플레이리스트에 맞춰 머리 희끗한 어른도, 반짝이는 응원봉을 든 20대도 함께 춤을 췄다. 그건 45년 전으로의 역사적 퇴행을 막아 냈다는 안도감이었다.
▷1987년 민주화로부터 이제 37년이 지났다. 민주주의 역사가 짧기에 3일 한밤 비상계엄과 같은 반동이 일어났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간 민주주의로 단련된 시민들의 수준은 달랐다. 지하철 여의도역 출구를 나오자 앳된 학생들이 수줍게 “추운데 가져가세요”라며 핫팩을 나눠줬다. 자칫 사고 우려가 있을 만큼 인파로 가득했지만 시민들은 침착했다. 서로 밀칠까 조심하며 걸었고, 너무 밀집돼 위험하다 싶으면 누군가 나서 “2줄로 가요” “유모차 있으니 비켜주세요”라고 교통정리를 했다.
▷커피나 빵이 선결제된 카페에선 시민들이 몸을 녹였다. 인근 빌딩들은 화장실을 개방했다. 2020년 5월 미국에서 경찰 폭력에 목숨을 잃은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촉발된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시위가 한창일 당시 뉴욕 등 주요 도시 상점이 약탈당했던 것과 비교된다. 그래서 상점은 시위가 예정된 날이면 나무판자를 덧대 아예 봉쇄했다. 외신들이 K팝 콘서트 같은 한국의 시위 문화를 주목하는 이유다.
▷이날 탄핵 집회에선 해학이 가득 담긴 깃발이 곳곳에서 나부꼈다. ‘제발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사람들’은 무언가 행동해야 한다는 데 슬퍼하며, ‘고주망태 연합’은 나라 걱정 없이 술 마시고 싶어서 나왔다고 했다. ‘고혈압약 어버이 연합’은 혈압이 올라서, ‘갱년기 연합’은 열불이 나서 집회에 참여했다. ‘통영 아기들 보호단’은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겠다는 엄마들이 뭉쳤다. ‘화병 걸린 TK(대구 경북) 딸내미 연합’과 ‘부모님 몰래 시위 나온 PK(부산 경남) 청년 연합’도 있었다.
▷시민들이 자체 제작한 깃발을 들고나오는 건 어느 단체에 정치적으로 동원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집회에 참여했다는 의사 표시 방법이다. 이들 깃발의 공통된 주장은 단 한 가지, 일상을 되돌려 달란 것이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식 비상계엄으로 불안에 떨지도, 가족과 친구의 안위를 걱정하지도, 존엄할 권리를 위협받지도 않는 ‘보통의 하루’를 되찾고 싶다고 했다. 시민들은 한밤 계엄 선포를 막기 위해 국회로 달려 나오는 용기를 보였고, 질서정연한 평화 시위로 탄핵을 이끌어 냈다. 우리는 2024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수준과 시민의식에 맞는 그런 대통령을 가질 자격이 있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12-17 젊은층 열광하는 ‘역사 굿즈’ 호외

45년 만의 비상계엄 사태는 오래된 문화를 소환했다. 대학 캠퍼스에는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서툰 손글씨의 종이 대자보가 나붙었다. 디지털 세계에 갇혀 지내던 학생들은 광장에 나와 난생처음 대자보를 쓰고 읽으며 해방감과 유대감을 느꼈다고 한다. 또 하나가 호외(號外) 신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14일 토요일은 신문사들이 쉬는 휴일이었으나 일제히 호외를 발행해 헌정 사상 3번째 대통령 탄핵안 가결 소식을 전했다.
▷호외는 정규 발행일을 기다리기엔 긴급한 뉴스를 전하기 위해 호수 없이 발행하는 신문이다. 동아일보는 3만2120호와 3만2121호 사이 ‘尹대통령 탄핵, 직무정지’라는 큰 제목의 4개면 호외를 발행했다. 호외를 받아 든 중장년층은 “오랜만에 보는 호외”라며 반가워했고, 청년들은 드라마에서 봤던 신문 배달 소년처럼 “호외요 호외”를 외치며 신기해했다. 집회 현장의 시민들은 ‘역사 굿즈(기념품)’ 호외를 들고 인증샷을 찍었고, 소셜미디어에는 “탄핵 호외 구하고 싶다”거나 “호외 2부 있어서 1부 나눔한다”는 게시글도 여럿 올라왔다.
▷한국인이 발행한 최초의 호외는 독립신문 1898년 2월 19일자다. 4일 전 미 해군 함정이 쿠바 아바나만에서 폭침당했다며 미국-스페인 전쟁의 도화선이 될 사건을 전하는 내용이었다. 외신을 호외로 보도할 정도로 안목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920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창간되면서 호외 발행이 잦아졌고,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한 후엔 두 신문이 한 달 동안 약 50회의 호외를 내며 전황 속보를 전했다. TV가 보급되기 전에는 대형 물난리가 나면 ‘화보 호외’를 찍기도 했다.
▷호외는 환희와 성취, 충격과 슬픔이 가득한 현대사의 기록이다. 4·19 혁명, 5·16 쿠데타, 박정희 대통령 피살, 6·29 선언, 월드컵 4강 진출, 남북 판문점 선언 등 제목만 일별해도 격동의 현대사임을 실감할 수 있다. 드물지만 오보를 낼 때도 있었다. 대한매일신보는 1907년 ‘헤이그 밀사 사건’ 호외를 내고 이준 열사의 할복 자결 소식을 전했는데 오보였다. 1986년엔 한 신문사가 ‘김일성 총맞아 피살’이라는 제목의 호외를 발행했으나 바로 다음 날 김일성이 평양 공항에 나타나면서 오보로 판명 났다.
▷호외 전성시대도 저물었다. 이제 속보는 방송과 인터넷, 신문은 심층 보도와 의제 설정을 담당한다. 그래도 호외 문화가 남아 있는 이유는 중대한 사건일수록 공신력 있는 매체에서 정돈된 정보를 확인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온갖 설이 난무하는 디지털 시대에 삼삼오오 모여 호외를 펼쳐 든 건 ‘역사의 초고’를 공유하며 역사의 방관자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일종의 의례였을 것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12-18 ‘레이디 맥베스’에 김 여사 빗댄 더타임스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가 윤석열 대통령을 맥베스로, 김건희 여사를 그의 부인 레이디 맥베스로 빗댄 기사를 썼다. 기사에 맥베스란 표현은 도입부 딱 한 문장에만 등장한다. 우리에게 춘향전이 그렇듯이, 영국 독자들에게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의 하나인 ‘맥베스(Macbeth)’는 설명이 필요 없나 보다. 서사(敍事)나 주인공 설명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편집자는 “한국인은 비상계엄 선포에 그들의 ‘레이디 맥베스’를 문제 삼는다”는 제목을 뽑았다.
▷‘맥베스’의 줄거리를 듣다 보면 한국 정치가 절묘하게 겹쳐진다. 충신 맥베스는 스코틀랜드 왕을 위해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고, 최측근인 부관과 함께 왕의 총애를 받았다. 귀로에 마녀 셋을 만나 들은 ‘왕이 될 운명’이란 말에 흔들렸다. 그가 머뭇거리자 아내 레이디 맥베스는 뭐가 두렵냐며 부추겼고, 그는 주군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다. 하지만 왕국이 혼돈에 빠지는 동안 자신의 최측근 부관까지 제거하게 된다. 맥베스 부부는 비극적 운명을 맞았다. 정치인 문재인, 윤석열, 한동훈이 떠오른다는 이들이 많다. 김건희 여사도 함께.
▷영국 기자에겐 윤 대통령의 정치 입문에 관여한 김건희 여사가 레이디 맥베스로 보인 것 같다. 김 여사는 검찰총장인 남편 업무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후보 시절엔 핵심 참모 이상의 역할을 했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선거는 패밀리 비즈니스”라는 말까지 꺼냈다. 여기에 손바닥의 왕(王)자, 김 여사가 유튜버 방송 기자의 손금을 봐 주며 “내가 잘 보죠”라고 말하는 영상, 하얀 수염의 풍수전문가까지 등장했다. 셰익스피어 작품 속 ‘예언’처럼 무대에 올릴 만한 요소가 갖춰졌다.
▷윤 대통령은 왜 반헌법적인 데다 황당하기까지 한 비상계엄을 실행에 옮겼을까. 총선 전부터 지나가는 말처럼 “야당이 저러면, 계엄으로 정리하면 되지”라고 말하곤 했다는 얘기가 용산 안팎에서 들린다. 윤 대통령은 “민주당의 국정 방해”를 이유로 댔다. 설사 그렇더라도 군을 국회에 투입하는 어처구니없는 행동이 설명되지는 않는다. 그러니 김건희 특검법과 명태균 음성파일에서 아내를 보호하기 위한 것 아닐까 하는 추측이 끊이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맥베스 비유를 먼저 꺼낸 것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다. 2021년, 2024년 2번이나 공개적으로 ‘맥베스 부부의 비극적 최후’를 거론했다. 대문호지만, 셰익스피어가 쓴 작품들은 요즘 기준으로 봐도 ‘이런 막장 드라마가 없다’고 평가받는다. 진짜 기가 막히는 일은 400년이 지난 한국에서 그런 막장이 현실로 살아난 듯하고, 적잖은 영국 독자들이 한국 정치를 흥밋거리처럼 바라보게 됐다는 점이다. 궁지에 몰린 대통령 부부의 처지가 셰익스피어쯤 되어야 할 수 있는 창작처럼 느껴진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12-19 ‘지리산 도사’ 명태균 이어 이번엔 건진법사 체포

어느 정권이든 임기 후반 무렵이면 ‘게이트’가 열리곤 했다. 김현철 게이트, 최규선 게이트, 박연차 게이트, 최순실 게이트 등 게이트의 주인공은 달라도 대통령과의 친분을 악용해 부당한 잇속을 챙기다 정권에 치명타를 안기는 구조는 같았다. 윤석열 정부에선 법사와 도사들이 비리 의혹의 주역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도사와 얘기하기 좋아하는 영적인” 김건희 여사의 비선으로 지목된 이들이다.
▷대통령 부부와 친분을 과시했던 ‘건진법사’ 전성배 씨(64)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2018년 경북 영천시장 선거 출마자에게 당내 경선 승리를 위한 기도비 명목으로 1억 원을 받은 혐의다. 김 여사 전시기획사의 고문 명함을 들고 다녔고, 대통령의 입당 전 외곽 단체를 관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 캠프 산하 조직에서 고문으로 활동하다 무속인 논란이 불거지자 조직이 해산됐으나 막후에선 역할을 했다고 한다. 법사가 이권을 챙긴다는 의혹이 정권 초기부터 나왔으나 경찰은 “풍문만으론 수사할 수 없다”고 했었다.
▷대통령 부부의 공천 개입 의혹 핵심 인물인 명태균 씨(54)도 ‘지리산 도사’로 불린다. 김 여사와는 ‘영적 대화’를 나누며 가까워졌다고 한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대해 김 여사에게 ‘청와대 가면 죽는다’고 조언한 사람이다. 유튜브 방송에 나와선 “김 여사가 처음 만났을 때 ‘우리 오빠 당선되느냐’고 물어봤고, ‘대선이 3월 9일이라 당선된다’고 답했다”고 했다. 이재명 후보는 꽃이 피어야 당선되는데 3월 9일이면 꽃이 피기 전이라는 것이다.
▷건진법사와 명도사는 천공과 함께 대통령 부부의 ‘3대 비선’으로 꼽히는데 이들 간 비선 경쟁도 치열했다. 명도사는 “(김영선 전 의원이) 건진법사가 공천 줬다더라. … 나를 쫓아내려고”라고 말했다. 김 전 의원이 공천받은 게 건진법사 덕분이라고 말하고 다닌다며 화낸 것이다. 또 “천공 같은 사람은 우리가 볼 때는 어린애”라고도 했다. 도사와 법사가 구속되고 체포되자 천공은 18일 윤 대통령에 대해 “지금은 실패한 게 아니다” “희생이 되더라도 국민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라고 두둔했다.
▷검찰은 명 씨의 ‘황금폰’에 이어 전 씨의 ‘법사폰’까지 확보해 분석 중이다. 황금폰은 명 씨가 관여한 것으로 의심되는 각종 선거가 있었던 시기에 사용한 폰이고, 법사폰엔 세무조사 무마 청탁과 이권 개입 의혹을 규명할 단서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통령 부부와의 통화 녹음도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아 게이트가 열리면 계엄 못지않은 ‘험한 것’들이 튀어나올 수 있다. 전문가의 조언과 민심엔 귀 닫은 채 자신의 미래도 내다보지 못한 삿된 도인들에게 휘둘렸으니 전근대적 리더의 행로가 편할 리 없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12-20 “다음 여단장은 너”… 불명예 전역 장성의 계엄 모의 미끼

12·3 비상계엄 사태 주요 가담자 중에는 민간인이 한 명 끼어 있다. 6년 전 퇴역한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다. 포고령 초안 작성자로 알려진 그는 군에 선관위 장악을 지시하고 계엄 당일 탱크부대장을 호출하는 등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계엄 이틀 전 정보사령관과 대령 두 명을 롯데리아로 불러 모은 것도 노 전 사령관이다. 그는 이들과 햄버거를 먹은 뒤 “계엄이 있을 테니 준비하라”며 부정선거 증거 수집을 위해 중앙선관위 서버를 확보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민간인인 그가 군 간부들을 움직인 수단은 인사였다. 햄버거 회동 참석자인 정모 대령은 지난달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전역이 몇 년 남았냐. 다음엔 네가 여단장 하면 되겠다. 내가 많이 도와주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 말에 넘어가 부정선거 관련 유튜브 자료를 정리하는 등 요구에 따랐다. 노 전 사령관의 호출을 받고 계엄 당일 정보사로 온 제2기갑여단장(준장)도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노 전 사령관이 전부터 “(김용현) 장관님이 너한테 국방부 TF 임무를 맡기려 한다. 너를 정말 귀하게 여기신다”고 여러 번 말했다고 한다.
▷전직이 던진 ‘진급 미끼’에 현직들이 걸려든 것은 그가 김 전 장관과 절친한 비선 실세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폐쇄적이고 점조직으로 운영되는 정보사는 현직과 ‘올드보이(OB)’들이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는데, 정보사령관과 육군정보학교장 등 고위직을 거친 그는 이런 인맥의 중심에 있었다. 그와 가까운 대령급 간부가 김 전 장관 인사청문회 TF에 참여한 뒤 준장으로 진급하는 등 영향력이 드러난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은 6년 전 성추행으로 불명예 전역했다. 술자리에서 여군 교육생을 강제추행한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당시 법원은 그가 이 사건으로 지위와 명예를 잃게 된 점을 양형에 반영했다고 했지만 그는 전역 후에도 군 정보라인의 막후 실력자로 활동했다. 여인형 방첩사령관마저 김 전 장관에게 “노상원을 멀리하라”고 만류했다고 하는데 김 전 장관으로선 은밀한 계엄 준비를 위해 민간인 신분의 비선 측근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노 전 사령관은 음지에서 움직이며 군인들의 약한 고리인 인사를 공략했다. 대령은 56세까지 준장으로 승진하지 못하면 옷을 벗어야 하고 준장은 6년 내 진급을 못 하면 퇴역이다. 정보사 정 대령은 인맥이 없어 진급을 기대하지 못했는데 노 전 사령관의 제안에 욕심이 생겨 요구에 응했다고 한다. 국방부 장관은 성추행으로 물러난 예비역을 끌어들여 계엄을 기획하게 하고, 그 전직 장성은 후배들의 출세욕을 자극해 반헌법적 행위를 시킨 것이다. 군 인사가 정치에 휘둘리지 않았다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거래가 성사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12-21(토) 계엄 비선 설계자 노상원은 ‘안산 보살’… 또 무속 코드

점집 앞을 지나다 보면 뭐라고 딱히 부르기 힘든 기분이 들어 걸음이 빨라진다. 정신분석학자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이런 느낌을 ‘운하임리히(unheimlich·영어로는 uncanny)’라고 불렀는데 적당한 번역어를 찾기 힘들다. 어떤 이질적인 것을 접했을 때 그것이 호기심을 갖게 하는 이질감이 아니라 으스스한 기분이 들어 피하고 싶은 이질감일 때 그런 말을 사용한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다른 무속인과 함께 점집을 운영해 온 사실이 밝혀졌다. 경기 안산시의 한 반지하주택에 자리 잡은 이 점집의 현관문에는 만(卍)자가 쓰여 있고 북어 등 굿이나 제사에 사용되는 물품도 놓여 있다고 한다. 단순히 무속에 빠진 정도가 아니라 스스로 무속인이 된 예비역 장성이라면 “내가 신(내림)을 받거나 한 건 아닌데 웬만한 사람보다 (점을) 더 잘 본다”고 한 김건희 여사의 눈높이에서도 모자랄 게 없다.
▷김 여사는 “남편도 약간 영적인 끼가 있어서 나랑 연결된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당시 후보 토론회에 손바닥에 ‘왕(王)’자를 쓰고 나와 께름칙한 느낌을 주더니 그가 12·3 비상계엄으로 갑작스러운 파국을 맞는 국면에서 또 다른 무속의 고리가 드러났다. 대통령 부부의 심령 지도자 행세하는 천공, ‘여성적인’ 윤 대통령과 ‘남성적인’ 김 여사를 중매했다는 무정, 대선 캠프와 코바나컨텐츠에서 공히 활동한 건진 등 지금까지 알려진 사람들 외에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따라 들어가 보니 ‘안산 보살 노상원’이 있었던 것이다.
▷계엄에는 윤석열-김용현-여인형의 충암파 네크워크 외에 무속 네트워크도 중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여 방첩사령관은 계엄 직후 김 전 장관으로부터 노 씨에게 연락해 보라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문상호 정보사령관도 김 전 장관으로부터 ‘노상원의 지시가 내 지시’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노 씨가 계엄의 막후 설계자였음을 보여주는 말이다. 충분히 준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실행된 듯한 계엄은 12월 3일이라는 날짜와 오후 10시라는 시간이 급작스럽게 잡힌 인상을 주고 무속이 점지해준 일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조선 고종 때 민비는 임오군란으로 쫓겨났다가 환궁하면서 자신의 환궁 날짜를 맞힌 박창렬이라는 무녀를 데리고 들어와 그를 언니라고 부르며 관우신을 모신 동묘를 지어 머무르게 하고 국(國)무당으로 세워 국사(國事)까지 의논했다. 중요한 역사는 반복된다. 처음에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소극(笑劇)으로. 민비의 무속 집착은 망국으로 이어졌지만 반지하 점집에서 설계되고 패스트푸드 점에서 논의된 계엄은 우스꽝스럽게 끝나고 말았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12-23(월) 12.23(월) 사랑의열매

사건은 1964년 5월 오후 8시경 벌어졌다. 당시 18세이던 최말자 씨는 뒤따라오던 낯선 남자의 공격에 넘어졌다. 남자는 도망치려는 최 씨를 두 번 더 넘어뜨린 끝에 배 위에 올라탔다. 그러곤 최 씨의 목을 졸라 입을 벌리게 한 뒤 강제로 키스했다. 최 씨가 고개를 흔들며 저항하다 남자의 혀를 깨물어 1.5cm가 절단됐다. 경찰은 최 씨의 정당방위를 인정했지만 검찰이 이를 뒤집었다. 최 씨를 중상해 혐의로 구속 기소하고 남성의 강간미수는 무혐의 처분했다.
▷재판에선 공개적으로 2차 가해가 이뤄졌다. 상황을 재연한다며 현장 검증을 나갔는데 주민들이 최 씨에게 몰려와 “처녀 총각이 키스한 게 뭐 대단한 일이냐, 네 입술은 금덩어리냐”라고 했다. 재판부는 최 씨에 대한 순결성 감정에 이어 정신 감정을 의뢰했다. “미움과 사랑의 갈등에서 온 히스테리 반응”이라는 게 감정 결과였다. 재판부는 최 씨에게 남성과 결혼할 생각이 있느냐고도 물었다. 남자를 불구로 만들었으니 평생 책임지는 게 어떠냐는 취지였다. “차라리 벌을 받겠다”는 최 씨에게 법원은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 사건은 1995년 대법원이 발간한 법원 100년사에 ‘저명사건 판결’로 기록됐다. 1980년대 이후 성폭력에 저항하다 가해자 혀를 깨물어 절단시킨 행위를 정당방위로 본 판례가 잇따라 나오던 때였다. 2020년 부산에서 여성이 가해자의 혀 3cm를 절단시킨 사건에서도 남성만 강간치상으로 처벌됐다. 하지만 ‘감옥 살다 온 여자’로 손가락질받던 최 씨는 공장일과 노점상으로 홀로 아이를 키우며 50년 넘게 숨죽이다 2018년에야 재심을 청구했다.
▷“당시 시대 상황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판결이고, 시대가 바뀌었다고 반세기 전 사건을 뒤집을 순 없다.” 1, 2심은 이런 이유로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이에 최 씨는 “지금은 대한민국이고 그때는 대한민국이 아닌 것이냐”며 울분을 토했다. 다행히 대법원은 달랐다. 최 씨의 재심 사유에 신빙성이 있다며 며칠 전 원심을 깨고 돌려보냈다. 사건 당시 18세였던 최 씨는 60년이 흘러 78세가 되어서야 다시 법원 판단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확정된 판결을 새로 재판하는 재심은 요건이 까다롭다. 원심의 증거가 허위로 판명되거나, 새로운 증거가 발견됐을 때, 재판에 참여한 판검사 등이 직무 관련 죄를 지었을 때 가능하다. 최 씨 사건은 재판에서의 2차 가해뿐 아니라 성폭력 저항 행위를 정당방위로 폭넓게 인정하는 판례들이 쌓이며 법원의 흑역사가 된 사건이다. 지금의 상식에 비춰 보면 당시 재판에 참여했던 판사들이 책임을 외면해선 안 될 일이다. 몇 달 뒤 재심이 시작될 텐데 형식적 법리에 매몰되기보단,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든 법원의 과오를 반성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12-24 엔진의 혼다-기술의 닛산 합병…새 도전 만난 현대차-기아

1973년 아랍석유수출국기구(OAPEC) 회원국의 원유 금수 조치로 시작된 1차 오일쇼크는 세계 경제의 흐름을 바꿨다. 국제유가가 4배로 뛰면서 미국에선 기름 많이 먹는 제너럴모터스(GM), 포드, 크라이슬러의 대형 세단 대신 작고 연비 좋은 일본 차를 찾는 소비자가 폭증했다. 이때 약진한 ‘일본 차 3총사’가 도요타, 혼다, 닛산. ‘내구성의 도요타, 엔진의 혼다, 기술의 닛산’이라 불려 각 회사의 개성도 뚜렷했다.
▷도요타에 이은 일본 내 2·3위, 글로벌 순위 7·8위 혼다와 닛산이 합병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세계 자동차업계를 뒤흔들고 있다. 닛산이 최대 주주로 있는 4위 미쓰비시자동차도 합병 대상이다. 일본 2∼4위 완성차 업체가 한 지붕 안으로 들어가는 대규모 지각변동이다. 세 회사의 작년 세계 판매량은 총 813만 대. 1123만 대인 1위 도요타와 923만 대인 2위 독일 폭스바겐보다 적지만 730만 대인 현대차·기아를 넘는 3위 수준이다.
▷내연차 기술에 집착하다가 전기차 시대에 늦게 대응한 일본 차는 중국 시장 판매량이 급감하고, 한때 완전히 평정했던 동남아 시장에서도 값싼 중국 전기차에 밀리고 있다. 중국 비야디(BYD)의 글로벌 판매 대수는 1년 안에 혼다를 추월할 것으로 보인다. 애플 아이폰을 위탁 생산해 돈을 번 대만 폭스콘이 전기차 진출을 위해 닛산을 인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합병 속도가 빨라졌다. 100년에 한 번 있을 법한 ‘카마겟돈(Car+아마겟돈)’에 직면해 오랜 경쟁 기업이 한 몸이 돼 생존하는 길을 선택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후 저조한 중국 실적, 러시아 시장 철수 등 악재를 이겨내고 글로벌 3위에 오른 현대차·기아에 두 회사의 통합은 달가운 일이 아니다. 폭스바겐이 흔들리면서 머잖아 현대차·기아의 글로벌 2위 자리까지 점쳐지는 상황이었다. 닛산의 악화된 내부 사정 탓에 합병의 시너지가 크지 않을 거란 전망도 있다. 하지만 도요타에 이어 다양한 경쟁 차종을 보유한 ‘일본산 공룡’이 등장하는 건 만만찮은 도전이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는 요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을 등에 업고 “전기차 보조금을 없애자”고 주장하고 있다. 각국의 보조금을 받아 회사를 키워 놓고, 이젠 사다리를 걷어차겠다는 심보다. 중국 BYD는 한국 진출을 예고해 놓은 상태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최근 싱가포르 현대차 혁신센터를 찾아 “우리가 걸어온 여정은 훌륭했지만,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했다. 거센 도전이 더 많이 닥친다는 건 그만큼 정상이 가까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12-25 “계엄 하나로 수사 탄핵까지”… 날벼락 맞은 국민은 무슨 죄?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으로 직무 정지를 당한 후 대통령의 입 역할을 하는 이가 ‘40년 지기’ 석동현 변호사다. 윤 대통령의 법률 대리인도 아니고 ‘윤 대통령의 변호인단 구성을 돕고 있는’ 석 변호사가 대변인 역할을 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그가 전하는 대통령의 입장은 기함할 지경이다. “내란이 아닌 소란” “체포의 ‘체’자도 꺼내지 않았다”더니 23일엔 “비상계엄 하나로 수사하고 탄핵한다”며 “굉장히 답답하다는 토로를 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수사보다 탄핵 심판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25일 공수처의 2차 출석요구에도 불응할 계획이다. 석 변호사는 “폐쇄된 공간에서 수사관과의 문답을 통해 대통령의 입장과 행위의 의미를 설명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했다. 대통령은 권한이 일시 정지됐을 뿐 “엄연히 대통령 신분”이어서 “대통령이 오란다고 가고 그런 것은 아니지 않나”라는 주장이다. 법조계에선 곧 재판에 넘겨지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수사 기록을 보고 변론 전략을 세우려고 시간을 끌고 있다고 본다.
▷탄핵 심판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이 서류 수령을 거부하자 헌법재판소는 23일 송달 효력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 27일 첫 변론 준비 기일을 진행하기로 했지만 석 변호사는 “탄핵소추 된 지 10일도 안 됐다”며 불참을 시사했다. 윤 대통령은 최근 입장문을 통해 계엄 선포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한 바 있다. 송달된 서류는 거부하면서 장외에선 여론전을 펼치니 구차한 지연작전이란 말이 나오는 것이다.
▷“계엄 하나로…” 발언은 그깟 ‘경고성 계엄’으로 무거운 사법적 심판을 받는 건 억울하다는 뜻으로 들린다. 하지만 계엄 당일 오찬에서 김 전 장관이 “탱크로 국회를 밀어버리겠다”고 했다는데 실제로 그날 밤 탱크부대장이 판교 정보사에 대기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겸임하는 현직 대법관에 대한 구두 체포 지시, 야당 대표에게 1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부장판사에 대한 위치 확보 시도도 있었다고 한다. 여기에 설마 했던 ‘북풍 공작’ 의혹을 뒷받침하는 물증까지 나왔다. 윤 대통령이 야당을 두고 언급한 ‘광란의 칼춤’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무능해서 실패했기 망정이지 어쩔 뻔했나.
▷‘6시간 계엄’에 놀란 가슴이 가라앉기도 전에 이처럼 경악할 만한 속보들이 쏟아지고 있다. 5100만 국민이 두고두고 할부로 치러야 할 안보와 경제적 대가가 어느 정도일지 가늠조차 안 된다. 탄핵 심판이든 내란 우두머리 수사든 부르는 대로 나가도 모자랄 판에 “엄연한 대통령”이라며 탄핵과 수사 순서를 정하고 있다. 그러고도 “굉장히 답답하다”고 한다. 사태 파악을 못 할 정도로 아둔한 건가, 비겁하게 모르는 척하는 건가. ‘대통령 복 없는 죄’밖에 없는 국민 속은 뭐라 해야 하나.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12-26 무모한 ‘계엄 망상’ 언제 싹 텄을까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풀리지 않은 의문은 대체 왜 그 무모한 일을 벌였느냐다. 윤석열 대통령은 ‘거대 야당의 의회 독재’를 이유로 들었다. ‘김건희 여사 수호 계엄설’ ‘명태균 황금폰 유출 제지용’이라는 해석도 제기된다. 계엄의 동기를 이해하려면 질문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 언제부터 계엄을 모의한 것인가.
▷가장 눈여겨볼 시점이 계엄을 총지휘한 김용현 국방부 장관 인사다. 대통령은 8월 12일 김 당시 대통령경호처장을 국방부 장관에 지명하기 위해 임명된 지 1년도 되지 않은 외교안보 라인을 돌연 교체했다. 미 대선을 85일 앞둔 시점의 깜짝 인사에 ‘말 못 할 사연이라도 있는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왔다. 당시 대통령실은 ‘여름휴가 중 숙고를 마친 결과’라고 했는데 공교롭게도 대통령이 휴가 때 함께 골프 친 부사관들이 이번 계엄 과정에서 국회에 투입된 707특임단 소속이라는 야당 측 주장이 나왔다. 또 당시 부하 여단장과의 하극상 사태로 경질설이 돌던 문상호 정보사령관이 김 전 장관의 인사로 살아남아 함께 계엄을 준비했다고 한다.
▷민주당이 계엄 의혹을 제기한 때도 이즈음이다. 김민석 최고위원은 8월 17일 “국방부 장관의 갑작스러운 교체와 대통령의 뜬금없는 반국가 세력 발언으로 이어지는 최근 정권 흐름의 핵심은 북풍 조성을 염두에 둔 계엄령 준비 작전”이라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뉴라이트 역사관’ 논란으로 광복회와 야당이 불참한 가운데 열린 광복절 경축식에서 “검은 선동 세력에 맞서 싸워야 한다”, 이후 국무회의에선 “반국가 세력이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다”며 비판 세력에 대한 노골적 적대감을 드러냈다.
▷국방부 장관 교체가 계엄 준비 작전이라면 계엄 구상은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올 3월 윤 대통령과 저녁 자리에서 ‘조만간 계엄을 하겠다’는 말을 들은 신원식 당시 국방부 장관(현 국가안보실장)이 경호처장이던 김 전 장관 등을 불러 이를 막기 위한 대책 회의를 했다고 한다. 여인형 방첩사령관은 “지난해 말 대통령이 비상조치가 필요하다고 얘기했다”고 진술했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전북 군산의 무속인을 찾아 지난해 초부터 ‘앞으로 일을 벌일 것’이라고 하고, 군인 10여 명의 이름을 건네며 “나를 배신할 놈이 있는지” 물었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야당의 계엄 의혹 제기에 대통령실은 “나치 스탈린 전체주의의 선동정치”라며 펄쩍 뛰었다. 또 “민주당 의원들의 머릿속엔 계엄이 있을지 몰라도, 저희의 머릿속에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허황된 음모론이라 무시하고 넘어갔던 계엄이 대통령 머릿속엔 오래전부터 자리하고 있었던 듯하다. 자기만의 성채에 갇혀 널리 듣지도, 질문받지도 않는 지도자란 얼마나 위험한가. 비상식적인 국정 운영과 황당한 발언을 더 의심하고 따져 물었어야 했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12-27 “尹 변호인단 구인난”… 그 많던 부나방들 다 어디가고

첫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어서 그런지 윤석열 정부 안팎에는 유난히 법조인이 많았다. 검사 옷을 벗고 대통령실과 정부 부처로 옮긴 사례가 많아 검사 정권이란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취임 초에는 윤 대통령과 술자리를 했다며 사적 인연을 은근히 과시하는 법조인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형사사건 의뢰인들이 검찰의 선처를 기대하며 ‘친윤’으로 알려진 전관 변호사들에게 몰리기도 했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저조하던 4월 총선 때도 여당 후보로 나선 30여 명의 검사 출신들 중에 대통령과의 친분을 내세운 이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탄핵심판과 내란죄 수사로 벼랑 끝에 선 요즘, 그를 돕겠다는 법률가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김건희 여사 사건 때마다 ‘윤 대통령 변호인단’이란 비아냥거림을 들었던 검찰마저 태세를 확 바꿔 대통령을 정조준하고 있다. 윤 대통령으로선 하루빨리 변호인단을 꾸려야 할 처지인데 구인난이 심각하다고 한다. 그가 탄핵과 수사에 불응하는 속사정이 변호인들을 아직 못 구하고 있기 때문이란 주장이 나올 정도다.
▷윤 대통령의 ‘40년 지기’ 석동현 변호사가 대변인 격으로 활동하고 있고, 김홍일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이 나선다고 하지만 정식 선임계는 아직 제출되지 않은 상태다. 무엇보다 방대한 기록 정리와 서면 작성 등 실무를 맡을 변호사들이 필요한데 다들 손사래를 친다고 한다. 일부 대형 로펌은 이번 계엄 사태 관련 피의자들에 대해선 일절 변호하지 않기로 방침을 세웠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특검 수사와 탄핵심판이 진행되던 2016년 말 변호인단 구성에 애를 먹었다. 유영하 변호사가 사실상 유일했다. 그래도 얼마 되지 않아 이동흡 전 헌법재판관과 정기승 전 대법관 등 보수 성향의 전관 법조인들이 줄줄이 합류했다. 윤 대통령은 30년 가까이 법조인으로 일했고, 대통령이 돼선 수많은 법률가들을 거느렸지만 가장 절실히 우군이 필요한 지금 짐을 나눠 지겠다는 사람이 거의 없는 처지다. 세력이 강할 땐 아첨하며 따르고, 힘이 빠지면 외면하는 세상 인심을 뜻하는 염량세태(炎涼世態)를 떠올리게 한다.
▷씁쓸하긴 하지만 모두 윤 대통령이 자초한 일이다. 국가가 대혼란에 빠지고 헌정 질서가 유린된 사건이라 대통령 편에 서는 순간 ‘국민의 적’이자 ‘역사의 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구도를 그가 만들었다. 법률가라면 이번 계엄의 불법성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기에 나서기가 더 망설여질 것이다. 윤 대통령이 지향한다는 자유민주주의의 가치와 철학마저 계엄 선포로 스스로 부정해 버렸으니 도와줄 명분도 마땅치 않다. 그래도 마음 한편에선 그 많던 부나방들은 다 어디로 갔나 하는 생각도 든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12-28(토) 비상계엄이 소환한 야간 통행금지의 기억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비상계엄 포고령 초안을 자신이 작성했다고 26일 변호인단을 통해 주장했다. 그러면서 당초 포고령 초안엔 국민 통행금지 조항이 있었는데 윤석열 대통령이 이를 삭제했다고 했다. 국민 생활의 불편과 경제 활동 등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국회에 경종을 울린다’는 목적의 ‘경고성 계엄’임을 강조해 윤 대통령을 비호하려는 의도겠지만, 위헌·위법적인 포고령을 대통령이 직접 검토, 수정했다는 사실만 확인됐을 뿐이다.
▷비상계엄 선포 당시 뉴스 화면 아래 ‘오후 11시 이후 통행 시 불심검문·체포’라는 자막을 합성한 사진이 온라인에서 확산했다. 계엄을 경험한 장년층들은 웃어넘길 수 없었다. 야간 통금 강화는 시위 금지, 대학 휴교 등과 함께 과거 계엄 포고령의 단골 조항이었기 때문이다. 예전 문건을 베껴 쓴 티가 나는 이번 포고령에도 통금이 포함될 가능성은 높아 보였다. 윤 대통령이 통금 조항을 뺐다면 국민을 배려한 게 아니라 국민의 분노를 두려워했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 말에 폐지됐다가 일제강점기에 부활한 야간 통행 금지는 광복 이후엔 1945년 9월 미 군정 포고령 1호로 시작돼 6·25전쟁과 군사정권 등을 거치면서 계속됐다. 적용 시간과 지역에 변화는 있었지만 대체로 자정에서 오전 4시였다. 오후 10시가 되면 라디오에선 귀가 종용 방송이 나왔고, 자정이면 사이렌 소리와 방범대원들의 호각소리가 거리에 요란했다. 야간 통금은 1982년 1월 5일 36년 4개월 만에야 해제됐는데, 서울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국가 이미지를 의식한 조치였다.
▷통금 시간이 다가오면 막차 버스를 타기 위해 마음이 급해졌다. 택시를 잡는 사람들은 ‘따블’과 ‘따따블’도 불사했다. 통금에 걸리면 파출소로 끌려가는 곤욕을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즉결심판을 받고 벌금을 낸 후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집에 가지 못해 숙직실에서 잠을 청한 직장인, 단속을 피해 손을 잡고 달린 연인, 술집 문을 걸어 잠그고 밤새 술잔을 기울인 술꾼 등 장년층 이상에겐 그 시절 추억 하나쯤은 있으리라. 크리스마스 이브 등에 잠깐 통금이 해제되면 거리마다 젊은이들이 쏟아져 나와 밤을 즐기기도 했다.
▷야간 통금 해제가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은 컸다. 온전히 ‘24시간 시대’가 열리면서 편의점 등 24시간 문을 여는 가게도 생겼다. 서비스 부문의 고용이 늘어나고 소비심리가 살아나는 등 경제효과도 적잖았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온전한 이동의 자유를 되찾은 것이 가장 큰 효과였다. 40여 년 만에 국민의 밤 시간과 자유를 다시 빼앗겠다는 발상을 했던 계엄 세력은 얼마나 후진적인가. 해외의 시선을 의식해 통금을 해제한 군사정권보다도 퇴행적으로 보인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12-30(월) 머스크 “미국엔 과학기술 인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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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문화는 너무 오래 탁월함보다 평범함을 중시해 왔다. …수학 올림피아드 챔피언보다 졸업 파티 여왕을, 졸업생 대표보다 운동 선수를 더 대단하게 보는 문화에선 최고의 엔지니어가 탄생하지 못한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함께 미국 정부효율부 수장에 지명된 기업가 출신의 비벡 라마스와미가 27일 미국의 인재 육성 문화를 비판했다. 그는 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대부분의 미국 부모는 (수학 과학 공부를 많이 시키는) 이민자 부모를 부정적으로 보고, 평범한 미국 아이들은 그런 아이들을 비웃는다”며 “(이런 식이면) 우리는 중국에 엉덩이를 걷어차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일론 머스크 역시 미국 기업이 외국인 엔지니어를 고용할 수밖에 없다면서 “미국에는 재능이 매우 뛰어나면서 동시에 의욕이 넘치는 엔지니어가 너무 적다”고 X에 썼다. “그들(미국 기업)이 필요로 하는 전문 지식(을 갖춘 사람)이 미국에 충분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이 이 정도라니, 최근 글로벌 기술 패권 다툼 속 인재 확보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새삼 느껴진다.
▷두 사람은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 인공지능(AI) 수석정책고문으로 지명된 인도계 IT 전문가 스리람 크리슈난을 지원 사격하는 차원에서 해당 글을 썼다. 크리슈난은 앞서 해외 고급 두뇌들에겐 제한 없이 미국 영주권을 발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를 두고 극우 활동가 로라 루머가 “미국 학생들에게 돌아가야 할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고급 인력 도입 문제를 놓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기존 지지층과 머스크 등 빅테크 인사가 충돌한 모양새다.
▷미국은 경제에 이민자와 외국인의 기여가 어마어마하다. 1990∼2010년 미국 총생산성 향상의 30∼50%는 외국에서 온 과학, 기술, 공학, 수학(STEM) 근로자의 덕으로 설명된다는 분석이 있다. 미국정책재단(NFAP)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상위 AI 기업 43곳 가운데 28곳이 이민자가 공동 설립한 회사이고, AI 관련 대학원생의 70%가 유학생이다. 프로그래머 등 전문직 취업 비자(H1B)로 외국인을 가장 많이 채용하는 회사는 아마존이고, 구글 메타 애플 IBM 등이 모두 상위 10위 안에 든다.
▷트럼프 진영 내 알력보단 우리 실정이 걱정이다. 수학 올림피아드 챔피언보다 ‘의대 합격’을 대단하게 생각하는 판국이니 부족한 STEM 인재를 해외에서라도 모셔와야 한다. 그러나 외국인 취업자가 100만 명이 넘어도 고급 인력의 비중은 미미한 게 사실이다. 한국을 글로벌 인재들이 일하고 싶은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으로 미국 시민권을 얻기 전 H1B 비자로 지내다가 세계 1위 기업을 만든 머스크 같은 사례가 우리에겐 불가능하다고 미리 한계를 지을 이유가 없다.
조종엽 논설위원 jjj@donga.com
12-31(화) 100세로 눈감은 카터, 퇴임 후 더 빛났던 40년

잘 가요, 내 사랑. 내일 만나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말 77년을 함께한 부인 로절린 여사를 먼저 보내며 이런 작별 인사를 했다. 당시 99세의 카터는 오랜 암 투병 끝에 1년 가까이 호스피스 치료를 받던 중이었다. ‘내일 만나자’는 말처럼 카터 역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얘기가 많았다. 하지만 그는 1년을 더 살았다. 100번째 생일까지 보내고 29일 부인의 뒤를 따랐다. 미 역사상 최장수 대통령이다.
▷카터가 대통령에 오른 1976년은 워터게이트 사건과 베트남전 장기화로 정부 불신이 극에 달하던 때였다. 조지아주 주지사(민주당)로 중앙 정치에선 무명에 가까웠던 그는 ‘절대 거짓말하지 않겠다’는 공약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워싱턴 정치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중동 불안을 관리하지 못해 오일 쇼크가 생기며 심각한 인플레이션으로 번졌다. 취임 전 6%대이던 물가 상승률이 13%까지 올랐다. 이란의 이슬람 혁명세력이 미 대사관을 점령해 미국인 52명을 400일 넘게 억류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겹쳤다. 결국 로널드 레이건에게 밀려 재선에 실패했다.
▷무능한 대통령이란 평가를 받았던 카터지만 퇴임 후엔 가장 위대한 전직 대통령으로 불렸다. 프리랜서 외교관으로 쿠바, 보스니아 등 세계를 누비며 평화 중재자로 활약했다. 북핵 위기로 한반도에 전쟁 위험이 고조되던 1994년 북한을 방문해 북핵 동결을 이끌어내는 등 분쟁 해결에 힘쓴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서민에게 집을 지어주는 ‘해비탯 운동’에도 몸소 참여해 90대가 돼서도 공구를 들고 현장을 오갔다. 정치엔 실패했을지 몰라도 지도자로선 성공한 삶이었다.
▷미국인들은 카터에 대해 아무리 불리한 상황도 정직하게 해결하려 한 대통령으로 기억한다. 지지율이 저조하던 집권 3년 차,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 각 분야 전문가 150명을 초대해 10일 동안 조언을 듣는 ‘국내 정상회담’을 한 것도 그런 예다. 끝내 정국을 돌파하진 못했지만 최대한 귀를 열고 답을 찾으려 했던 노력만큼은 인정하는 것이다. 그의 퇴임 후 활동에 국민들이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존경받는 전직 대통령을 거의 본 적이 없는 우리로선 부러운 일이다.
▷현직은 짧고 여생은 길다. 카터의 대통령직은 4년 만에 끝났지만 이후 40년간 그는 보통 사람들의 롤 모델이었다. 록 음악을 사랑한 그는 밥 딜런 같은 록 스타 ‘절친’들과 자주 만났고, 종종 야구장을 찾아 고향 팀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경기를 즐겼다고 한다. ‘내가 이룬 모든 것에서 동등한 파트너였다’는 부인과는 70년 넘게 해로했다. 재선한 대통령들 중에도 존경받지 못하는 노후를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카터의 인생 2막은 삶의 진정한 승자가 누구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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