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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미숙의 시론] 2024-01-15 북·러 ‘악질 연대’ 끊어야 한국이 산다 - 12-13 한·미·일 협력체제는 지켜야 한다

상림은내고향 2024. 12. 9. 18:21

[이미숙의 시론] 문화일보 논설위원 2024

01-15 북·러 ‘악질 연대’ 끊어야 한국이 산다

2024년은 근심 많은 끔찍한 해
악질 국가 축 형성 러·북·이란
김·푸틴 연대는 한반도에 불길

베트남 패망 때 같은 위기 우려
푸틴 뒷배 삼아 공격 못 하도록
동맹과 힘 합쳐 단호 대응해야

새해 초부터 ‘최악의 상황이 오고 있다’는 경고음이 넘쳐난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전 세계 자유민주주의자들에게 근심 가득한 해가 될 것”이라고 했고, 미국 유라시아그룹은 ‘10대 리스크’ 보고서에서 “끔찍한 해(annus horribilis)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 보고서는 북한·러시아·이란을 ‘악질 국가의 축(Axis of rogue)’으로 규정하면서 “세 나라가 세계를 분쟁으로 몰고 갈 것”이라고 했다. 조지 W 부시의 악의 축(Axis of evil)을 변형한 개념인데, 이라크가 빠지고 러시아가 들어간 게 특징이다.

이언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은 “정치적으로 볼드모트의 해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볼드모트는 영국 작가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잔혹한 마법사다. 악질 국가의 축을 형성한 세 나라 수장이 악당 볼드모트가 될 것이라는 암시다. 롤링의 ‘해리포터와 불의 잔’에는 이런 표현이 나온다. ‘모든 것은 볼드모트로부터 시작됐다. 많은 가족을 파괴해 헤어지게 만든 것도, 이 모든 사람의 삶을 파멸로 몰아넣은 것도 모두 볼드모트가 저지른 일이었다.’

여기서 볼드모트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으로 바꾸면 우크라이나 전쟁 후 국제 정세에 기막히게 들어맞는다. 푸틴은 탈냉전 시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도입하며 탈공산주의 여정에 접어든 러시아를 권위주의 독재국으로 전락시킨 데 이어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을 전쟁 위기로 몰아넣은 전범이다. 북한은 그런 푸틴에게 탄약과 미사일, 이란은 드론을 제공했다. 김정은과 알리 하메네이도 푸틴과 같은 볼드모트, 즉 아류 전범이 된 셈이다.

러시아와 북한의 밀착은 한반도에 불길한 기운을 몰고 온다. 김일성은 1950년 소련 지도자 이오시프 스탈린의 승인과 지원에 힘입어 6·25 남침을 자행했다. 김정은도 푸틴의 뒷배를 믿고 만용을 부릴 수 있다. 더구나, 푸틴은 노회하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집중하는 것을 막기 위해 김정은을 부추겨 대남 도발을 유도할지도 모른다. 지난해 10월 발생한 이슬람 무장 세력 하마스의 이스라엘 잔혹 테러는 중동 분쟁을 유도해 미국의 주의를 분산시키려는 푸틴의 의도와 맞아떨어진다는 분석이 제기된 바 있다.

연초 김정은은 “대한민국은 주적이며 전쟁을 피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남조선 영토 평정을 위한 대사변’이란 말을 꺼내면서 북방한계선(NLL) 최북단 백령도 인근에서 포격 도발까지 벌이고 있다. 그 배경에도 볼드모트 푸틴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11·5 대선을 앞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겐 우크라이나 지원이 큰 부담인데 전선이 중동에 이어 아시아로 확장되면 대응이 어렵고, 한국도 위기를 피하기 힘들다.

지난해 9월 북·러 정상회담 후 전문가들 사이에선 김정은·푸틴의 밀착으로 대한민국이 1970년대 같은 안보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요즘 김정은의 행태는 그런 우려가 괜한 걱정이 아님을 보여준다. 북한은 단 한순간도 남침 야망을 접지 않았다. 빅터 차 교수와 라몬 파르도 교수가 함께 쓴 ‘코리아-새로운 남북한사’에는 미국의 베트남 철수 후 김일성이 중국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에게 남침 지원 요청 편지를 보냈다는 내용이 나온다. 중국 측 비밀해제 자료를 인용한 것으로, 당시 북한이 남침 플랜을 추진했음을 확인해 준다.

핵으로 무장한 김정은은 대러 밀착을 도발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우크라이나가 제2의 아프가니스탄으로 전락할 때 호전적인 푸틴을 등에 업고 ‘영토 완정’ 시도에 나설 경우 한국은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된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엄중한 대응이 필요하다. 첫째, 러시아를 미·중 수준의 4강으로 받드는 사대주의에서 벗어나 미국처럼 북·러 무기 거래에 대한 제재를 해야 한다. 둘째, 우크라이나의 승리가 우리 안보와 직결되는 만큼 무기 지원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이런데도 원전 연료를 30% 넘게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것은 모순이다. 경제안보 관점에서도 원전 연료의 러시아 의존은 위험하다. 미국 하원에선 러시아산 농축우라늄 수입금지법이 통과됐다. 러시아 원유·천연가스에 중독됐던 독일처럼 되기 전에 원전 연료 생산 기반 조성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 2024년을 북·러의 안보 위협 무력화(無力化) 원년으로 만들 수 있다.⊙

 

02-07 미국 내 ‘북핵 용인론’ 확산 심상찮다

제네바합의 후 30년 협상 실패
北 핵 협박에 南은 무방비인데
美선 위기론 펴며 핵군축 제기

미국의 북핵 용인은 동맹 배신
유럽서도 美 핵우산 불신 기류
북핵 대응 자체 핵 역량 가져야

미국에서 북핵 관련 이상기류가 뚜렷해지는 조짐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전쟁 결심으로 한반도가 1950년 같은 위험한 상황”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더니 “북한 비핵화는 먼 미래의 과제로 두고, 당면 위협을 해소하는 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제언까지 나왔다. 대한민국을 걱정하는 듯하지만, 핵심은 “북핵 포기가 어려우니 미북 관계 정상화로 핵 위협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곧, 북한의 핵을 인정하고, 미북 핵 군축협상을 시작하라는 주장이다.

올해는 미북 제네바 핵 합의 30주년이 되는 해다.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시작된 북핵 위기는 1994년 10월 미국과 북한의 제네바 합의로 일단 봉합됐다. 북한의 핵 포기 대가로 경수로를 지원키로 한 합의는 2002년 북한의 우라늄 농축시설 가동이 확인되면서 사실상 파기됐다. 이후 대북 경수로사업이 중단됐고, 다시 몇 년에 걸쳐 6자회담이 진행됐지만, 북한 비핵화에는 다다르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시대 싱가포르·하노이 미북 정상회담도 성과가 없었다. 북한은 플루토늄 핵무기에 이어 고농축우라늄 핵탄두도 만들고 있다.

북핵 협상이 진행될 때 국무부 정보조사국에서 일했던 로버트 칼린은 핵물리학자 시그프리드 헤커와 북한 관련 잡지 ‘38노스’에 쓴 글에서 “6·25전쟁 발발 직전보다 위험한 상황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제네바 합의 미국 수석대표였던 로버트 갈루치는 “동북아 핵전쟁이 날 수 있다”고 외교안보지 ‘내셔널 인터레스트’에 썼다. 근거 제시 없이 신앙고백 식 위기론을 편 칼린·헤커처럼, 갈루치도 “내 생각이 그렇다”고만 밝힌 뒤 “미북 관계 정상화가 우선이고 비핵화는 장기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30년에 걸친 미국의 대북 핵 협상 실패로 우리는 북핵 위협에 무방비 노출 상태인데 미국 측 인사들은 동맹인 한국에 대해선 안중에도 없다는 듯 이제 대북 관계 정상화를 통해 북핵 위협을 줄이라는 주문을 하고 있다. 제네바 합의 후 “경수로 완공 전 북한은 망할 것”이라는 턱없는 낙관론을 늘어놨던 인사들이 갑자기 위기론을 부추기며 북핵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단계라면서 미북 군축협상을 띄우는 것은 동맹 배신이다. 한국에 대한 김정은의 핵 협박엔 눈감으면서 북핵 위협을 줄이기 위한 미북 대화를 재촉하는 것은 이기적 사고다. 그런 말을 하기 전에 최소한 실패한 협상에 대해 사과부터 하고, 북핵으로부터 동맹을 지키기 위한 모든 대책을 세우라고 촉구하는 게 예의다.

최종현학술원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북한 비핵화 불가능’ 응답이 91%였다. 지난해에 비해 13.4%포인트 높아진 것으로, 김정은이 핵 선제 사용 법제화 등으로 핵 위협을 고조시킨 결과로 보인다. 자체 핵 개발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72.8%로 나타났다. 지난해 76.6%였던 것에서 조금 낮아졌지만, 워싱턴선언에도 불구하고 이런 수치가 나온 것은 핵우산 강화로는 북한의 핵 위협을 이기기 어렵다는 뜻이다. 또, 뉴욕이 북핵 공격 대상이 될 가능성을 무릅쓰고도 미국이 한국을 방어할 것이란 응답은 39.3%에 불과했다. 미국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만큼 자체 핵에 대한 절박함이 커지는 것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다. 유럽에서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식 핵 공유만으론 부족하다며 유럽 자체 핵무장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더구나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의 백악관 복귀 가능성이 짙어지면서 미국의 나토 탈퇴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프랑스 핵탄두를 독일 등에 배치하자는 논의가 나온다. 대통령실은 자체 핵무장에 선을 긋는다. 강화된 확장억제로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보수·진보·중도는 물론이고 소득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국민의 10명 중 7명은 ‘자체 핵 개발 지지’ 응답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핵우산을 믿어야 한다’고 한다면 국민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것이다. “국민은 늘 옳다”고 했던 윤 대통령 아니던가. 우선, 미국의 북핵 용인론자들이 펴는 ‘과장된 위기론’이 미북 군축협상으로 나가지 않도록 대미 외교를 확실히 해야 한다. 아울러, 핵우산이 펴지지 않을 것에 대비하기 위한 자체 핵 역량 확보 작업도 속도감 있게 해야 한다. 북한과 핵 군축협상을 하더라도 상대는 미국이 아니라 한국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03-06 DJ정신 짓밟는 이재명의 종북 야합

탈독재 한국서 희망 본 나발니
민주주의 신념 지킨 DJ와 닮아
진보당 국회 진출 숙주 노릇 李

민주질서 파괴세력 방조 행위
‘극단정당’해산론 나온 獨처럼
유권자가 종북 세력 저지해야

시베리아 감옥에서 의문사한 러시아 반정부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47)가 생전에 지인들과 나눈 서신에서 보여준 민주주의를 향한 불굴의 신념은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다. 그는 지난해 9월 언론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국과 대만이 독재에서 벗어나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다면 러시아 역시 할 수 있다”고 했다. 또, “희망을 갖자. 나는 그렇게 되는 데 문제가 없다고 본다”는 확신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을 우려하면서 “민주당 인사들이 조 바이든 대통령의 고령에 따른 건강 문제를 무시하면 안 된다”고도 썼다.

절박한 상황에서 나발니가 보여준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은 1980년대 김대중(DJ)을 연상시킨다. DJ는 전두환 정권 때 내란음모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뒤 최후진술에서 “우리 국민은 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했다. 감옥에서도 “내가 죽더라도 반드시 민주주의는 돌아온다”는 신념을 견지하며 책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다큐멘터리 ‘길 위에 김대중’에 나오는 대목이다. 나발니가 러시아의 혹독한 수감 생활을 우주여행에 비유하며 여유를 보인 것이나 로버트 케네디 회고록 등을 읽으며 미래를 준비한 것도 DJ와 닮았다.

총선을 30여 일 앞두고 종북 세력의 국회 진출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종북·반미·괴담 세력에 비례대표 위성정당 앞순위 10자리를 배정키로 한 데 이어 진보당과 전국적으로 선거연합을 진행 중이다. 대법원에서 이적단체 판결을 받은 범민련 인사 등에게 의원 배지를 보장하는 것을 넘어 진보당원들이 출마 포기 대가로 국회 보좌관 등 요직을 차지할 길도 열어준 셈이다. 진보당은 2014년 헌법재판소가 “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려는 정당”이라며 해산 결정을 내린 통합진보당 계열이다. 동일 세력이 당명만 바꾼 격이다.

김정은이 대한민국을 교전 상태의 주적으로 규정한 상황에서도 반제국주의·자주 등의 교묘한 논리로 사실상 북한을 받드는 통진당 출신들의 입법부 진출을 묵인한다면 자유민주주의는 위협을 받게 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국회에 진출 길을 터주는 한총련·통진당 출신들은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을 외쳐온 북한 추종자들이 대부분이다. 문재인 정부 때 전대협 출신 반자유주의자들(illiberal liberal)이 민주주의의 절차적 정당성을 짓밟으며 목적을 관철해온 것보다 훨씬 악성이다.

최근 독일에서는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란 극단주의 정당에 반대하는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일각에선 정당해산론까지 제기된다. AfD 소속 정치인들이 네오나치 활동가들과 손잡고 이민자들을 경제 악화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때문이다. 지지율이 20%가 넘는 정당이라도 자유민주주의의 대의에 반대하며 아돌프 히틀러식 극단주의를 선동한다면 해산 조치를 동원해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공감대가 깔려 있다. 독일에선 나치 후신 정당인 사회주의국가당과 공산당이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해산된 바 있다.

박근혜 정부가 그나마 잘한 일은 통진당 해산 결정이다. 그 당 출신 인사들의 국회 진출은 막아야 한다. 이들이 여의도에 입성하면 1987년 이후 진전돼온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게 될 수밖에 없다. 이 대표가 자신의 안위를 위해 끝내 종북 세력의 숙주 노릇을 고수한다면 DJ 정신에 대한 정면 부정이고 그런 정당은 더 이상 민주 정당도 아니다. 4·10 총선에서 표로 심판할 수밖에 없다. 30년 전 아시아에서 민주주의가 가능할지에 관한 ‘김대중-리콴유(李光耀) 논쟁’이 벌어졌을 때 의회주의자 DJ는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고, 그 헌신 덕분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다.

나발니가 한국과 같은 민주화를 강조한 것은 민주주의가 제한된 경제성장의 길을 간 싱가포르가 아니라 민주주의와 성장이 함께 가는 한국을 모델로 삼겠다는 뜻이다. 지난 1일 나발니 장례식 때 수천 명의 추모객은 “러시아는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나발니 메시지를 외쳤다. 러시아인들은 한국을 바라보며 독재를 넘어서려는 결의를 다지는데, 우리의 땀과 눈물과 희생으로 이뤄진 민주주의를 북한 추종 세력의 먹잇감이 되게 하는 것은 역사에 죄를 짓는 행위다.

 

03-27 한국판 ‘간첩 귄터 기욤’을 우려한다

브란트 사퇴 낳은 동독 스파이
서독 정보부 장기 추적 후 체포
분단시대 서독은 방첩에 단호

국정원은 대공수사권도 박탈
중·러 스파이 저지할 법도 없어
유권자가 종북 세력 감시해야

‘민주주의(Democracy)’란 연극이 있다.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1913∼1992)를 사퇴로 몰아넣은 동독 스파이 귄터 기욤 스캔들을 다룬 것으로, 2003년 런던에서 초연됐고, 우리나라에서도 2013년 첫 공연 후 여러 차례 무대에 올려졌다. 폴란드 바르샤바 유대인 학살위령탑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해 감동을 준 브란트가 간첩인 비서 기욤 때문에 사퇴하는 과정을 그린 연극을 20년 전 뉴욕에서 보면서 자유민주주의가 얼마나 취약한 체제인지, 그런 시련을 견디며 통일을 이뤄낸 독일의 저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감동했던 기억이 새롭다.

동독 국가보안부인 슈타지의 비밀 요원 기욤은 1950년대 동독 탈출 망명자로 가장해 서독에 온 뒤 사회민주당원으로 활동하며 브란트의 신임을 얻어 최측근이 됐다. 그러나 서독 정보부의 오랜 추적 끝에 그가 1974년 간첩 혐의로 체포되자, 브란트는 총리직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냉전 시대 동서 화해를 도모한 동방정책으로 재임 중 노벨평화상까지 받았지만, 스파이 기욤으로 인해 정치생명이 끝난 것이다.

4·10 총선 이후 우리나라는 연극 ‘민주주의’가 보여준 분단시대 서독 정치 상황보다 훨씬 악화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통합진보당 후신 격인 진보당의 국회 진출 숙주 노릇을 자임하면서 2012년 총선 때 통진당이 지역구 7석, 비례대표 6석으로 국회에 진출한 이후 처음으로 종북파 인사들이 합법적으로 금배지를 달게 됐다. 민주당은 진보당과 60여 지역구의 후보 단일화를 진행해 진보당 인사들의 지역·중앙 정치 진출 길도 터줬다.

이렇게 되면 더불어민주연합 비례후보로 당선권에 배치된 정혜경·전종덕·손솔 씨 외에도 수십 명의 진보당원이 보좌관·비서관으로 국회에 들어올 것이다. 국회의원 재선거로 진보당 강성희 의원이 국회에 입성했을 때 정보위·외교통일위·국방위원회 배치는 국가기밀 유출 우려 등을 이유로 배제됐지만, 제22대 국회에서는 그렇게 차단하기 어렵게 된다. 이들은 국회를 종북 투쟁의 장으로 활용하려 들 것이기 때문에 대의제 민주주의의 원칙도 훼손될 것이다.

동서독 분단시대 서독에선 공산당과 나치 후신 정당인 사회주의국가당이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해산됐을 정도로 공산주의 및 극단주의 세력에 단호했다. 서독 정부는 동독 정부와 대화를 진행하며 1972년 동서독기본조약을 체결한 뒤에도 정보부의 방첩·감청 활동 등은 더욱 강화했다. 서독 정보부가 동독의 고정간첩 기욤을 적발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가족 등 주변 인사에 대한 단파 라디오 감청 등을 20여 년에 걸쳐 치밀하게 진행해온 덕분이다.

당시 서독과 비교할 때 대한민국의 방첩 시스템은 엉성하기 짝이 없다. 문재인 정부는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을 없앰으로써 사실상 국가보안법을 무력화했다. 경찰에 업무를 이관하는 형식이었지만 경찰은 간첩 추적 역량이 떨어진다. 더구나 외국의 국가안보 간첩 행위를 처벌할 반(反)간첩법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형법 제98조엔 ‘적국을 위해 간첩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만 기술됐다. 간첩 행위라는 구성 요건이 불확실해 간첩 혐의자들을 제대로 처벌하기 힘들 뿐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 등 외국의 스파이 행위엔 적용도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당 소속 의원·보좌관·비서관들이 여의도를 휘젓고 다니게 됐다. 민주당이 선거연대를 통해 진보당원들에게 국회 진출 레드 카펫을 깔아주면서 종북파 인사들의 투쟁 무대는 시민단체 수준에서 전국 단위 정치권으로 확장됐다. ‘한국판 귄터 기욤’이 집단적으로 합법적인 활동을 하게 된 것이다. 어렵게 쌓아 올린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가 북한을 추종하는 통진당 후예들에 의해 파괴될 수 있다.

서독은 스파이 기욤 스캔들 이후에도 민주주의를 지키며 1990년 독일 통일을 이뤄냈지만, 우리는 훨씬 취약한 구조다. 현실적으로 종북 세력의 진출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유권자들이 냉철하게 판단해 투표해야 한다. 앞으로 4년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법치를 지키기 위해 종북 세력과 어려운 싸움을 해야 하는 시기다. 마음 단단히 먹고 치밀하게 대응해 서독처럼 승리해야 한다.

 

04-19 尹 동맹외교도 뒤흔들 야당 리스크

中 위협에 美 동맹 재편 가속화
美의 아시아 동맹 핵심 된 일본
미·일 정상 ‘동맹 일체화’ 합의

총선 후 국제사회 韓 우려 뚜렷
尹 달라져야 외교 레임덕 탈피
이념 당파 넘어 안보 협력해야

4·10 총선이 있던 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워싱턴에서 미·일 동맹의 격상을 선언했다. 두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일본 보호에 초점이 맞춰졌던 미·일 동맹이 자유롭고 열린 인도 태평양과 세계를 위해 함께 행동하는 동맹이 됐다”고 했다. 미·일이 글로벌 파트너로 변화했음을 내외에 알린 것이다. 기시다 총리는 미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국제질서 유지에 미국 리더십은 필수”라면서 “일본이 함께할 것”이라고도 했다. 일본이 자유주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미국과 늘 동행하겠다는 다짐이자 약속이다.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기시다 총리 방미 전 내놓은 ‘아미티지보고서’를 통해 미·일 동맹 격상에 대한 다양한 방안을 제시했다. ‘통합된 동맹을 향하여’라는 부제가 예시하듯 미·일 동맹 일체화에 초점이 맞춰진 것인데 자위대와 주일 미군의 지휘 통제 체제 강화, 미·일 무기 공동 개발 등을 통한 동맹 업그레이드 방안 등은 그대로 공동성명에 반영됐다.

이번 회담을 계기로 일본은 미국의 글로벌 동맹 체제 핵심축으로 자리 잡는 모양새다. 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2007년 제안한 인태 전략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아시아 정책으로 채택된 데 이어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미국이 일본을 중심에 놓고 아시아 동맹 틀을 재편하도록 한 촉매제 역할을 한 것이다. 회담 전 미·영·호주 국방장관이 일본의 오커스(AUKUS) 필러 2 참여를 발표한 것이나 회담 후 미·일·필리핀 3국 정상회의가 열린 게 대표적이다.

바이든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백그라운드 브리핑에서 “미국이 일본과 한국, 호주, 필리핀 등 가치 공유 국가들과 다층적인 격자형(lattice-like) 전략 구조를 형성하면 중국에 대응하기가 쉬워진다”며 동맹 체제 개편 필요성을 역설했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일 등 아시아국들과 맺은 1 대 1 동맹으로는 중국의 위협에 대처하기 힘든 만큼 미국이 허브가 됐던 기존의 바큇살(hub-spoke) 구조 동맹을 바꾸면서 일본을 중심 파트너로 삼겠다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미·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공식화한 동맹 체제 개편은 이미 지난해 한미일 캠프데이비드 정상회의에서 시작된 움직임이다. 또, 미·일 정상회담의 결과물은 지난해 한미 정상회담과 비교할 때 특기할 만한 것은 아니다. 한미는 워싱턴선언을 통해 핵협의그룹(NCG)을 만들며 ‘한국형 핵 공유’의 길을 열었는데 미·일 정상 공동성명에선 확장억제 의지가 재확인된 정도다. 미국의 아시아 동맹 틀이 촘촘해지는 것은 대한민국에도 큰 힘이 된다.

문제는 총선 후 윤석열 대통령의 정국 장악력이 떨어지는 것에 비례해 외교 레임덕이 가시화할 위험이 커졌다는 데 있다. 더구나 제22대 국회에는 반미·반일·친중·친북 인사가 대거 진출했다. 조국혁신당에는 “한국이 미국에 가스라이팅 됐다”고 주장하는 동맹해체론자와 죽창가를 앞세우는 반일론자들이 포진해 있다. 더불어민주당엔 ‘중국에 셰셰하면 된다’는 대표부터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임을 인정하지 않는 86 운동권 인사가 즐비하다. 통진당 계열 종북 인사 3명도 민주당을 숙주 삼아 국회의원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새로운 외교 이니셔티브를 발휘하기는 어렵다. 국가안보실의 한 인사는 “선거 후엔 매달 외국 순방에 나설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외국의 인식은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힘이 빠진 윤 대통령과 새 합의를 하려는 외국 정상은 없다. 당장 윤 정부를 길들이려는 중국·러시아·북한은 야당을 앞세워 정쟁 분열을 유도할 수도 있다. 4·10 총선 후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한국에 대해 “정권이 바뀌면 동맹 틈이 벌어질 수 있는 나라”로 규정한 것에서도 국제 기류 변화가 느껴진다.

총선 패배로 윤 대통령의 외교 봄날은 갔다. 이제부터는 한미 정상회담 합의와 워싱턴선언, 캠프데이비드 공동성명 이행에 집중하면서 야당의 반미·친중·친북 선동을 잠재우는 데 주력하는 게 현명하다. 그러려면 동맹 및 국제 현안에 대해 야당 세력과 정보를 공유하고 대화하는 협력 전략으로 외교 안보 초당파적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그것이 외교 레임덕을 피하면서 이미 쌓은 외교 레거시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길이다.

 

05-10 윤 대통령은 ‘文 무능’ 답습 말아야 한다

본 정부는 네이버 축출 착수
대통령실은 기업 문제로 치부
文정부 화웨이 방치와 닮은 꼴

CPTPP 가입 의지 밝혀 놓고
총선 패배 후 “매력 없다” 궤변
경제안보用 통상 방치 말아야

출범 2주년을 맞은 윤석열 정부가 문재인 정부의 무능 행태를 점점 닮아가고 있다. 일본의 ‘국민 메신저’ 라인야후 문제가 한일 외교 갈등으로 비화할 조짐이 뚜렷해진 상황에서도 윤 정부는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하다. 일본 총무성이 라인야후의 이용자 정보 유출을 문제 삼아 법적 구속력이 없는 행정지도 형식으로 네이버의 지분 매각을 거듭 압박하자 라인야후 경영진은 8일 정부 지침에 따르겠다며 백기를 들었다.

일본 총무성은 지난해 11월 라인야후의 50만 건 정보 유출 사태 이후 행정지도 명목으로 개입을 해왔는데, 정작 윤 정부는 개별 기업 문제라며 5개월여 방치했다. 총무성의 도 넘은 조치가 몰고 올 파장에 대해 대통령실과 외교부는 손을 놓고 있었고, 주일대사관은 한일 우호 유지에 급급한 행태를 보였다. 윤 정부의 라인야후 사태 대응은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에 대한 문 정부의 수수방관식 태도와 닮은꼴이다.

문 정부는 2018년 가을 5G 이동통신 장비 선정 당시 화웨이의 보안 문제가 지적되자 ‘기업이 알아서 할 일’이라며 방관했다.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화웨이 제재를 발표하고 영국·호주 등이 국가안보 차원에서 화웨이 배제를 선언했을 때에도 청와대는 화웨이 문제를 시장에 맡기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한중 관계를 앞세운 문 정부가 화웨이를 사실상 두둔한 것처럼, 윤 정부도 한일 관계에 집착하면서 일본의 네이버 압박에 눈을 감은 것이다.

윤 정부와 문 정부의 유사성은 라인야후 및 화웨이 문제를 넘어 국가 정책에서도 감지된다. 문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으로 표류했던 연금개혁이나 전기료 인상 등 주요 정책이 윤 정부에서도 그대로 반복될 조짐이다. 대표적인 것이 지정학적 경쟁시대에 국부 확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통상정책인데 문 정부 때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유보 기조는 윤 정부에서도 이어질 듯하다.

문 전 대통령은 죽창가식 반일(反日)정책을 고수하면서 당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주도로 2018년 출범한 CPTPP를 외면했다. 수출 시장의 안정적 확보와 역내 공급망 강화를 위해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메가 자유무역협정(FTA)인 CPTPP에 가입해야 한다는 경제산업계의 주문에도 지지층의 눈치만 봤다. 그러다 퇴임 직전 서면 형식의 대외경제장관회의를 통해 가입 추진을 결정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국회 보고 등의 절차를 밟지 않았고 가입 신청서도 내지 않은 채 정권은 막을 내렸다.

윤 대통령은 취임 초 CPTPP에 의욕을 보였지만, 총선 완패 후 동력을 상실한 기류다. 산업통상자원부의 CPTPP 가입 공식화 방침도 유야무야된 듯하다. 최근 만난 정부 고위 관계자가 “미국이 빠진 CPTPP는 매력이 크지 않다”고 한 데서도 그런 기류가 읽힌다. CPTPP는 단순한 다자 FTA가 아니다. 세계무역기구(WTO)가 힘을 잃은 지정학적 충돌시대에 필요한 경제안보협정이다. 일·호주·영국 등 12개 회원국의 국내총생산(GDP)은 15조 달러이고, 자원 및 핵심광물 강국이 많아 공급망 확보에 유리하다. ‘금사과’ 논란을 불렀던 사과 등이 수입되면 물가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

되돌아보면, 문 전 대통령의 5년은 태평성대였다. 전임 대통령 탄핵 후 들어선 문 정부에 대한 지지는 높았고, 여대야소 국회여서 국가 개혁을 추진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게다가 트럼프 행정부의 갖은 미국 우선주의 행태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은 흔들림이 없었고 국지전도 없던 시대였다. 그런 기회를 문 정권은 김정은의 비핵화 사기극에 취한 채 친중 반일로 낭비했지만, 세계화 흐름에 부응한 기업들 덕분에 대한민국은 국부를 키우며 전진할 수 있었다.

윤 대통령은 충돌의 시대에 취임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국지전은 확산되고 미·중 공급망 분리도 가속화하고 있다. 전방위 위기 시대 경제안보를 위한 CPTPP 필요성은 더 커졌다. 20년 전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 FTA로 선진국 진입의 길을 열었다. 윤 대통령은 문 전 대통령의 무능을 답습하지 말고 CPTPP 가입으로 선진국의 길을 확장해야 한다. 미래를 위해 과감하게 야당을 설득하면서 협력을 이끌어 내야 한다. 그것이 ‘정치하는 대통령’의 길이다.

 

06-03 중국과의 FTA에 진 뺄 때 아니다

한일중 정상 FTA 가속화 합의
中의 美 무역장벽 우회 노림수
한중 FTA타결 후 TPP 외면 朴

文도 日 주도 메가 FTA 거부감
尹은 전임 정부 오판 반복 말고
中과 FTA 대신 CPTPP 힘써야

한일중 정상회의를 계기로 중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이 공론화하는 기류다. 윤석열 대통령과 리창(李强) 중국 총리는 회담 때 한중 FTA 2단계 협상에 합의했고, 한일중 정상회의 후엔 3국 FTA 협상 가속화 방침이 발표됐다. FTA에 적극적인 쪽은 중국이다. 리 총리는 역내 산업망·공급망 협력 강화와 함께 3국 FTA 필요성을 강조했다. ‘경제협력 방안 중의 하나’로 언급한 윤 대통령이나 ‘진솔한 의견 교환’이라고 표현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보다 톤이 강하다.

미국 대선을 5개월여 앞둔 상태에서 중국이 한일과 FTA를 하자고 한 이유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되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백악관에 복귀하든 워싱턴의 대중 무역장벽은 높아질 것인 만큼 한일과의 자유무역 확대로 이를 우회해 돌파하겠다는 뜻이다. 체제가 달라도 물자와 서비스 자유화로 무역장벽을 없애는 FTA는 기본적으로 세계화 시대의 유산이다. 한중 FTA가 타결된 2014년이나 한일중 FTA 협상이 진행됐던 2012∼2019년은 그 논리가 통했던 시대다.

지금은 경제안보 우선 시대다. 미중 공급망 분리도 뚜렷해졌다. 더구나 한일중의 제조업 수준이 비슷해져 FTA를 해도 실익이 없다. 한일중 FTA 협상의 수석대표였던 여한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선임연구원이 CNBC 인터뷰에서 “장기 프로젝트일 뿐”이라고 논평한 이유다. 현실성이 없다는 얘기다. 3국 정상회의 사흘 후 중국 상무부는 항공우주·조선 분야 소재·부품·장비 수출 통제를 발표했다. 3국 FTA에 대한 중국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한중 FTA는 개방 수준이 낮은 협정이다. 중국이 미국 동맹국인 한국을 끌어들이기 위해 맺은 FTA라는 성격이 강하다. 그럼에도 쌀 등 민감 품목을 놓고 막판 신경전이 치열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회고록 ‘어둠을 지나 미래로’에는 2014년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때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와 벌인 쌀 담판 대목이 있다. 리 총리가 농산물 개방을 압박하자 박 전 대통령은 “그러면 타결이 힘들다”고 강수를 뒀다. 협상은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한국 요구를 수용하라”고 지침을 내린 뒤 타결됐다.

한국이 중국과 FTA 협상에 주력할 때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집중했다. 박 정부는 한중 FTA 발효 후 “FTA는 이제 충분하다”고 자만하며 TPP의 지정학적 의미를 간과했다. 이후 트럼프 행정부가 TPP 탈퇴 후 일본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으로 바꿔 추진할 때 반일(反日) 문재인 정부는 외면했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임에도 G1, G2와 각각 FTA를 했다는 자족감에 젖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메가 FTA에 눈을 감았다.

박 전 대통령은 한중 FTA를 국정 성과로 내세우지만, 이어진 사드 보복 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중국은 협정이나 규범보다 공산당의 ‘보이지 않는 손’을 앞세우는 나라다. 한중 FTA 2단계 협상을 한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중국은 FTA 프레임으로 접근할 나라가 아니다. 특히, 미국이 첨단 테크놀로지 대중 수출규제 장벽을 견고하게 쌓는 시점에 중국과 FTA에 주력한다는 건 국정의 우선순위를 일탈시키는 결정이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브리핑에서 “6월부터 한중 FTA 2단계 협상을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윤 정부는 CPTPP부터 가입해야 한다. 유럽연합을 탈퇴한 영국은 신 통상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해 가입했다. 중국도 CPTPP 가입 신청을 한 상태다. 윤 정부가 중국과의 FTA에 골몰해 CPTPP를 외면한다면 박 정부의 오판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나마 박 전 대통령은 미중 협력 시대에 ‘미중 양측에서 러브 콜을 받는다’며 그렇게 했지만, 지금은 미중 패권경쟁 시대다.

중국의 과잉생산 밀어내기 공세로 세계가 ‘차이나 쇼크 2.0’에 빠져 있다. 대중 최전선인 우리나라도 이커머스 등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싸구려 중국산 때문에 제조업이 고사 위기다. 중국과 FTA 2단계 협상을 하기 전에 한한령(限韓令) 완전 해제부터 요구하고, 자유 진영 국가들과 함께 중국의 공급망 교란 대책 마련에 집중해야 한다.

 

06-26 북·중·러 맞선 ‘美 핵증강’ 韓엔 기회다

푸틴 평양行이 부른 안보 위기
北 이어 러시아 핵도 한국 겨눠
북·중·러 핵 증강 불안 느낀 美

비확산 고수 대신 핵 확대 선회
韓도 美제공 핵우산 안주 넘어
농축·재처리 핵 능력 가질 기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계기로 북·러 관계가 냉전 시대 동맹 수준으로 복원됨에 따라 북핵에 러시아의 핵무기까지 걱정해야 하는 전혀 새로운 안보 위기 상황을 맞게 됐다. ‘북·러 신(新)조약’이 유사시 즉각적인 협의와 개입을 명시하면서 푸틴의 손아귀에 있는 핵이 대한민국을 위협하게 됐기 때문이다. 북·러 밀착으로 한반도의 안보 시계(視界)는 극도로 불투명해졌지만, 이 같은 위기를 역으로 활용하면 한국의 핵 역량을 확보하고 키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바꿀 수 있다.

최근 들어 미국의 핵 정책엔 변화 흐름이 뚜렷하게 감지된다. 자체 핵무기 현대화에 나서면서 핵 비확산에 대한 극단적인 집착에서도 탈피하려는 기류가 눈에 띈다. 미 에너지부 산하 국가핵안보국(NNSA)이 지난 5월 네바다주에서 임계 이하 핵실험을 실시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극소량의 플루토늄을 이용한 실험으로, 임계 상태에 이르기 전 폭발은 중지됐다. 핵 연쇄 반응이 일어나지 않은 만큼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위배는 아닌 것으로 정리됐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제한적 핵실험을 한 것은 핵 억제에 초점이 맞춰진 기존 정책으론 우크라이나 전쟁 후 본격화한 북·중·러 핵 밀착에 대응할 수 없다는 판단에 기초한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공 후 핵 사용을 거듭 위협하면서 미·러 신전략무기감축협정(뉴 스타트) 중단을 선언했다. 핵 증강에 나서겠다는 의지다. 지난해 모스크바를 방문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과는 고속증식로 개발 협력에 합의했다. 2030년까지 핵탄두를 1000개로 늘리려는 중국은 플루토늄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푸틴의 도움으로 핵탄두 양산이 가능해졌다.

중·러 핵 공조에 위협을 느낀 미 의회와 싱크탱크는 일찌감치 핵 증강론을 펴왔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도 핵탄두 현대화 작업과 함께 잠수함 발사 크루즈 미사일 개발을 진행했지만, 민주당의 군축론자 입김 때문인지 바이든 행정부 들어 중단됐다. 하지만 푸틴의 거듭된 위협에 바이든 행정부도 현실 인정 쪽으로 기울고 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CBS 인터뷰에서 “북·중·러의 핵 증강에 대한 억지력 보장을 동맹 및 파트너 국가와 협의하겠다”고 한 것은 이런 기류를 반영한다.

설리번 발언이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의 핵 개발을 허용하겠다는 시사는 결코 아니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핵 증산 쪽으로 선회했다는 것은 함의가 상당하다. 동맹국인 한국이 파고들 여지가 열리기 때문이다. 11월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미국의 핵 확장 흐름은 더 가속화할 것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든 향후 미국에선 30년간 1조5000억 달러의 핵 프로젝트 시장이 열릴 것”이라면서 핵탄두와 크루즈 미사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증산 및 신형 잠수함, 폭격기 제작이 붐을 이룰 것이라고 관측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북핵이 심각해지면 자체 핵을 보유할 수 있다”고 했지만, 워싱턴선언 이후엔 확장억제 전도사가 된 듯하다. 자체 핵 역량 확보 필요성에 대해 선을 그으면서 북한 비핵화 얘기만 한다. 최근에도 “핵을 포기하고 경제 보상을 받은 카자흐스탄이 북한 비핵화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국면이 바뀌고 있다. 김정은조차 ‘한반도 비핵화는 사멸됐다’며 푸틴과 핵 공조에 나선 상황이다.

이런데도 윤 대통령이 워싱턴선언에 집착하며 핵우산 신뢰를 되뇌는 것은 스스로 발을 묶는 셈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국제안보에 무지하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확장억제에 주력했던 미국이 북·중·러 핵 위협에 현실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핵 증산에 나서는 만큼 우리도 적극 편승해야 한다. 우선, 북·러 밀착으로 상황이 급변한 만큼 워싱턴선언에 기반해 출범한 핵협의그룹(NCG)의 핵우산 협의에 한국의 자체 핵 역량 확보 문제를 추가해 논의해야 한다.

당장 선회가 어렵다면 양국 정부와 싱크탱크가 주도하는 1.5트랙 회의 테이블에 한국의 농축·재처리 등 모든 옵션을 올려 공론화한 뒤 입법화에 나서야 한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 윤 정부가 미 의회와 행정부·싱크탱크를 대상으로 전방위 외교를 펴면서 자체 핵 개발 기회를 잡아야 한다.

 

07-19 트럼프 재부상, 核 확보 길 열린다

트럼프 대세론에 각국 불안감
IRA 등 바이든 정책 폐기 위기
트럼프 2기 대비한 전략 필요

核 비확산 고수 민주당과 달리
트럼프는 ‘사우디 핵협상’ 전례
尹도 ‘핵 확보’ 담판 준비해야

피격 사건 이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대세론을 탄 기류다. 물론 선거일까지 100일 이상 남아 있어 또 어떤 변화가 발생할지 예측하긴 어렵지만,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는 축제의 장이 됐다. 반면, 세계 각국은 불안감에 빠져든다. 유럽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쓸모없다(obsolete)”고 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이 더 강경한 일방주의자 J D 밴스 상원의원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자 패닉 상태다. 이들이 승리하면 미국-나토 연대는 더 느슨해지고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도 기약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2024년은 해리포터의 잔혹한 마법사 볼드모트 같은 해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연초 나온 적이 있는데 그 예측대로 주요국에선 정치적 격변이 이어지고 있다. 영국 보수당은 노동당에 완패했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조기 총선 도박에 실패해 남은 임기가 가시밭길이 됐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극우정당인 독일을위한대안(AfD)이 유럽연합(EU) 의회 선거에서 약진하면서 힘을 잃었다. 7·13 트럼프 피격은 암울한 하반기를 예고하는 신호탄인 셈인데, 미국 대통령까지 교체될 경우 주요 7개국(G7) 위상도 크게 흔들릴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귀환은 유럽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에도 큰 도전이 될 게 분명하다. 인플레감축법(IRA)·칩스법 등으로 대표되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산업정책에 변화가 불가피해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동맹 중시 외교 안보 정책 기조도 동맹 부담을 늘리는 쪽으로 선회할 것이란 예고도 잇달아 방위비 분담을 놓고 동맹 갈등이 불거질 수도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부자 나라를 우리가 왜 지켜주느냐”며 불만을 표하면서도 북한의 김정은에 대해선 “사랑에 빠졌다”며 호감을 표했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트럼프 시즌2가 곧 위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준비되지 않은 채 맞아 혼란이 컸던 8년 전과 달리, 충분히 예견하고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되더라도 실제 힘을 쓸 수 있는 시한은 2026년 중간선거 때까지 2년 남짓이다. 동맹체제 전반을 흔들며 재조정할 여유가 없다. 11월에 임기 반환점을 맞는 윤석열 대통령의 남은 임기와 비슷하다. 한미 정상이 의기투합할 동맹 이슈를 선택해 집중한다면 의외로 큰 성과를 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의 핵 능력 확보 문제다. 원전 연료 30% 러시아 의존을 탈피하기 위해서도 화급하다. 바이든 행정부는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신봉하며, 한국의 플루토늄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을 한사코 반대하지만, 트럼프 측은 유연하다. 바이든 측이 핵확산 방지 원칙을 고수하는 현상유지론자들이라면, 트럼프 측은 필요에 따라 원칙을 바꾸는 현상변경론자들이다. 빅딜로 농축·재처리 길을 열 여지가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때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스라엘과 수교 조건으로 농축·재처리를 요구하자 협상을 시작한 전례도 있다.

윤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 정치적 성향도 비슷하고 기질도 유사하다. 최근 세종연구소 초청으로 방한한 프레드 플라이츠 미국우선주의정책연구소 부소장은 “윤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호흡이 잘 맞을 것”이라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트럼프 진영의 안보 책사가 이런 언급을 한 것을 보면 트럼프 측도 윤 정부와의 협력에 대비해 상당한 준비를 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잘하면 이명박·조지 W 부시 대통령 때처럼 동맹 강화 시너지를 만들 수 있다.

물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상승세를 탄다고 해서 대선 승부가 결정 난 것은 아니다. 11월 대선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을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고령 리스크로 인한 패색에 낙담할 일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에 긴장할 일도 아니다. 어느 쪽이 승리하든 대승적 차원에서 대담하게 주고받는 협상 전략을 플랜 B 차원에서 마련하고 이를 관철하기 위해 미국의 핵심 동맹인 일본과 공조를 다지는 일이 중요하다.

외교도 내치의 연장이다. 누가 미국 대선에서 승리하더라도 30% 안팎의 지지율로는 외교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렵다. 윤 대통령이 외교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우선적으로 국내 지지율부터 끌어올려야 한다.

 

08-12 운동권 특혜법과 방글라 반면교사

방글라데시 정부 붕괴 초래한
독립유공자 자녀 공직 할당제
최빈국 졸업 앞두고 유혈사태

민주당 추진 민주화유공자법
혜택 등 특권영구화 시도하면
한국이 방글라데시 꼴 날 수도

남아시아 인도와 미얀마 사이에 위치한 방글라데시가 정치적 대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독립 영웅의 딸로 1·2차에 걸쳐 20년간 집권한 셰이크 하시나(76) 총리가 유혈시위 사태 속에서 인도로 탈출하면서 정권이 무너졌다. 국가 전체가 흔들리는 위기 속에서 노벨평화상 수상 경제학자인 무함마드 유누스가 과도정부 최고 고문으로서 정국 혼란을 수습하고 총선을 관리할 책임을 맡았지만, 무너진 질서가 정상화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방글라데시 파국의 도화선은 독립전쟁 참가자 자녀 공직 30% 할당제 부활이다. 1971년 파키스탄과 독립전쟁을 치른 뒤 방글라데시는 건국유공자 자녀 공직 진출 쿼터제를 만들었다. 이후 이 제도는 국가 분열을 낳는 뜨거운 감자가 되면서 법적 분쟁이 잇따랐다. 2018년 하시나 총리가 행정명령으로 할당제 폐지를 결정했지만, 지난 6월 고등법원은 행정명령 중지 판결을 내려 쿼터제 부활이 예고됐다. 이후 대학가가 술렁이자 대법원은 유공자 후손 쿼터를 5%로 줄이는 판결을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대학가 시위는 반정부 유혈 사태로 번졌고 사망자도 300명이 넘는다.

방글라데시가 걸어온 지난 반세기는 대한민국과 닮은 점이 많다. 1947년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때 동파키스탄으로 분리된 후 파키스탄과 독립전쟁을 거쳐 정부를 수립해 현재의 방글라데시가 됐다. 정정 불안 속에서도 여성 노동력에 기반해 자라, H&M 등 외국 의류업체들을 유치해 비약적 경제 성장을 일궈냈다. 2022년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700달러로 파키스탄을 앞섰고, 인도와는 엇비슷하다. 수출의 80%를 차지하는 섬유산업 덕분에 2026년엔 유엔 지정 최빈국(LDC)에서도 벗어난다. 유엔은 2021년 말 ‘방글라데시 LDC 졸업 결의안’을 채택했다.

세계화 흐름에 적극 편승해 자력으로 빈곤에서 벗어나게 된 기적의 국가가 최빈국 탈피를 앞둔 길목에서 집권층의 욕심 때문에 혁명적 파국에 접어든 것은 충격적이다.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시대엔 건국 기여자들에 대한 특권이 당연시됐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젠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며 공정의 가치가 우선시되는 시대다. 경기 침체로 실제 실업률이 40%에 달하는데도 유공자들은 과거를 팔아 후손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주려다 국민적 저항을 맞은 것이다.

방글라데시 사태는 민주화유공자법을 밀어붙이는 더불어민주당에 반면교사가 된다. 민주당은 민주화운동 관련자 특혜 법안을 계속 추진 중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제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민주당이 단독 처리한 민주화유공자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자 전재수 의원은 22대 국회 개원 후 같은 법안을 발의했고, 이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된 상태다. 4·19와 5·18의 경우 관련자들이 국가유공자와 민주유공자 예우를 받는 데 비해 유신반대투쟁과 6월 민주항쟁, 부마민주항쟁 관련자 및 유가족에 대해선 합당한 예우가 이뤄지지 않아 새 법이 필요하다는 게 민주당의 논리다.

그러나 운동권 인사들은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법’ ‘부마항쟁 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법’ 등에 따라 보상을 받았고, 30년 가까이 정치권력의 핵심 역할을 했다. 반대로 장기표 선생처럼 ‘보상’ 자체를 사양한 인사도 많다. 이런 마당에 새 법을 만들어 민주화 관련자와 유가족에게 “영예로운 생활이 유지되도록 실질적 지원”을 하자는 건 이중 특혜, 특혜 대물림 시도와 다름없다. 5·18 유공자의 경우 교육·취업·의료 등의 혜택을 받으면서도 명단 공개는 거부해 논란이 여전하다.

민주당이 2027년 대선에서 승리한 뒤 다수당의 위력을 과시해 운동권 특권 법제화에 나설 수도 있을 것이다. 국가유공자 자녀들이 일반직 공무원에 특별채용되고 공기업 등 입사시험에서도 5∼10% 가산점을 받는 것에 대해 MZ세대 취직준비생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1∼2점으로 당락이 뒤바뀌는 취업시험에서 국가유공자 가산점으로 인해 불공정이 조장된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여기에 민주화유공자법이 제정되어 자녀들에게까지 취직 등의 특혜가 주어진다면 반발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방글라데시 꼴이 날 수 있다. 

 

09-04 ‘중국 핵’으로 안보 시야 넓힐 때다

中 경제 굴기 실패하자 核 굴기
미국도 군축 접고 핵 증강 대응
핵 공유와 전술핵 배치론 고조

북핵보다 위험한 중국 핵 폭주
대만침공 시 대한민국도 위험
핵 지정학 변화 선제 대응해야

시진핑(習近平) 시대 중국의 핵 팽창이 심상치 않다. 시 주석이 집권을 시작한 2012년 200개 수준이던 핵탄두는 올해 500개가 됐고, 2030년에는 1000개가 될 것으로 미국 국방부는 전망한다. 시 주석이 장기 집권 명분으로 내세운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상’은 경제적 측면에서 어려워졌지만, 핵무력 측면에서만큼은 미국을 따라잡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존 애퀼리노 미 인도태평양사령관이 지난 3월 “2차 대전 이후 이런 위협에 직면한 적이 없다”며 중국의 핵 증강에 우려를 표한 이유다.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 8월 27일부터 사흘간 베이징(北京)을 방문, 시 주석 등을 만난 것은 중국의 급격한 핵 팽창에 대해 경고하면서 협상을 끌어내기 위한 목적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설리번의 방중 후 미 정부 당국자가 “재앙과 같은 오판의 가능성과 위험을 줄이기 위해선 대화가 필요하다”고 언급한 것에서 그런 기류가 읽힌다. 미·중 비확산 회의는 지난해 11월 워싱턴에서 개최된 후 중단 상태다.

중국은 8월 초 제네바 핵확산금지조약(NPT)평가회의 준비위원회 회의에 ‘미국이 유럽에 제공하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형 핵 공유나 아시아동맹국에 대한 핵우산은 NPT 위반이며 철폐돼야 한다’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중국은 이 보고서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들의 ‘핵 선제 불사용(No First Use)’ 원칙 천명 주장도 담았다고 한다. 러시아와 밀착해 핵무기 양산에 나선 중국이 미국의 핵 정책까지 비판한 것은 예사롭지 않다. 미국과 맞짱 뜰 정도로 핵 무력에 자신감을 가졌다는 얘기다.

요즘 미 의회와 싱크탱크에서는 중국의 핵 팽창 대응책 마련이 화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상원 외교위원회 소속 제임스 리시 의원과 로저 워커 의원은 “중국과 북한의 핵 위협으로부터 동맹국을 보호하기 위해 전술핵을 재배치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브루킹스연구소 앤드루 여 한국석좌와 에이미 넬슨 연구원은 포린 어페어스 기고문에서 ‘중국의 위험한 핵 야망을 억제하기 위해선 한국·일본과의 핵 공유 카드를 동원해야 한다’고 했다. 중국 거부 시 한일 핵무장까지 검토해야 한다고도 했다.

워싱턴의 대중 강경 기류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새로운 ‘핵 운용 지침’에 서명한 뒤 뚜렷해졌다. 협상을 통한 핵 감축을 추구하던 군축의 시대가 끝난 만큼 이제 북·중·러 권위주의 독재국의 핵 공갈에 맞서기 위해 핵을 증강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세가 된 것이다. 1994년 제네바 핵 합의 이후 30년간 지속된 북한 비핵화 목표가 올해 민주당·공화당 정강에서 빠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북핵도 협상 대신 핵에는 핵으로 대응하는 군비 증강을 통해 풀겠다는 신호다.

그간 우리 안보는 북핵에 과도하게 고정됐다. 북핵이 심각한 위협이긴 하지만, 미국 핵우산을 바탕으로 현무4 등 우리 군이 보유한 초강력 재래식 무기로 맞서면 대응이 가능하다. 강력한 한미동맹이 유지되고, 확장억제가 작동하면 대남 핵 도발을 해도 승산이 없다는 것은 북한 김정은이 잘 알고 있다. 워싱턴선언에 따라 결성된 핵협의그룹(NCG)은 북한의 핵 공격 시 한미의 대응 방안을 담은 공동지침을 만들었고, 한미 연합연습에서도 북핵 반격 훈련이 포함됐다.

중국으로 안보 초점을 넓혀야 한다. 중국의 핵은 북핵보다 위험한 대한민국 안보의 최대 위협이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지난달 27일 문화미래리포트 발표 때 “대만 침공 시 중국은 미군 병력을 분산시키려는 목적으로 한반도 주변 해역 공격에 나설 것”이라면서 “대만 유사시 한국도 전쟁에 말려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북한의 남침 때 핵을 보유한 중국의 개입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중국이 미국 핵우산을 NPT 위반이라 강변하는 것도 확장억제를 문제 삼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는 중국 핵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철 지난 안미경중 주장이나 “셰셰 하고 살면 된다”는 식의 굴종적 대중관으로는 중국의 위협을 해결할 수 없다. 미국의 중국 핵 억제 정책에 협력하면서 핵군축이 핵확장으로 전환되는 글로벌 변화를 담대하게 활용해야 한다. 그래야 안보를 지키며 한국의 핵 역량 확보 기회도 잡을 수 있다.

 

10-02 푸틴 ‘우라늄’ 겁박과 원전 강국의 길

원전 연료 수출 제한 시사 푸틴
美 의회와 정부는 철저히 대비
한국은 베짱이처럼 마냥 방치

자체 연료 생산해야 원전 강국
경제안보시대여서 더욱 절실
尹 우라늄 농축 시설 주도해야

우크라이나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러시아가 농축우라늄 등 전략 원자재 무기화에 나설 조짐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서방 진영의 대러 제재를 비판하면서 “세계 시장에 공급하는 우라늄과 티타늄, 니켈 등의 제한에 대해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자유 진영이 소프트웨어 및 통신 장비, 생화학무기 재료 등 전략물자 대러 수출 금지를 한 데 대한 보복 차원에서 원전 연료 수출 통제에 들어갈 수 있음을 예고한 것이다.

우크라이나전쟁은 교착 상태지만, 경기 호전 덕분에 버틸 여력이 있다고 판단한 푸틴이 이제 본격적으로 원전 연료 수출 제한 등을 무기로 서방 진영을 압박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푸틴의 전략 광물 수출 제한 시사와 관련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도 “러시아산 원전 연료에 의존하는 서방 국가들의 원전에 영향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 국영 로사톰은 세계 최대 농축우라늄 회사로, 글로벌 원전 연료 수요량의 3분의 1을 제공한다.

푸틴의 원전 연료 무기화 가능성은 예견됐던 일이다. 미국과 EU는 2022년 러시아산 석유 수출 금지와 함께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러시아 은행 축출 조치를 할 때 농축우라늄 수출은 예외로 했다. 갑자기 금지할 경우 각국 원전 가동에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원전 26기를 가동하는 우리나라는 연료 34%를 러시아에서 수입하고, 93기를 가동하는 미국도 연료 20% 이상을 러시아에서 수입한다.

이후 한미 양국 대응은 개미와 베짱이를 연상시킨다. 미국은 ‘로사톰 무기화’에 대비해 개미처럼 부지런히 움직였다. 의회는 지난해 말 러시아산 원전 연료 수입금지법을 통과시켰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으로 지난 5월 발효된 이 법에 따르면 러시아산 농축우라늄 수입 금지는 2028년까지 유예된다. 이 기간에 자체적으로 원전 연료를 생산할 수 있도록 우라늄 농축 공장 재가동용 정부 보조금도 지원한다. 이에 따라 올 상반기 러시아에서 수입한 원전 연료는 지난해 대비 30%가량이 축소됐다.

한국은 무사안일한 베짱이 같다. 국회는 러시아의 원전 연료 수출 통제에 대비하기 위한 입법을 방기했고, 정부는 푸틴 눈치를 보며 원전 연료를 계속 수입했다. 러시아의 수출 통제에 대비해 정부 방침을 마련한 뒤 한미원자력협정에 근거해 미국 측에 우라늄 안정적 확보를 위한 한미원자력고위급위원회 소집을 요구하는 게 정상이지만, 대통령실도 외교부도 나서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카자흐스탄 방문 때 발표된 공동성명에 ‘안정적인 우라늄 공급 합의’가 명시된 게 유일하게 눈에 띌 뿐이다.

윤 대통령은 최근 체코 방문 때 “팀 체코리아(Czech-Korea)가 되어 원전 르네상스를 함께 이뤄 나가자”고 했다. 한·체코 원전동맹은 “원전생태계 전 주기에 걸쳐 이뤄질 것”이라고도 했다. 원전생태계 완성을 위해선 원전 설계에서 원자로 건설, 주기기 공급 및 원전 가동 및 유지 보수는 물론이고, 연료 생산까지 일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 우라늄 채광에서 농축, 원전 가동, 방사성 폐기물 처리 등 전 과정을 연결하는 핵연료주기(NFC)를 구축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우라늄 농축을 못 해 전량 수입해 가공할 뿐이다. 그런 면에서 원전생태계는 불완전하고 NFC도 구멍이 뚫어진 상태다.

원전 강국 러시아와 중국, 프랑스는 자체 우라늄 농축 공장을 갖고 원전 연료를 만든다. 미국도 값싼 러시아산 등에 의지하다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 그간 방치됐던 농축 공장 재가동에 들어갔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최근 원전 연료 공급 계약을 한 센트루스가 바로 그 회사다. 정부와 국회가 손을 놓고 있으니 기업이 자구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원전 강국이 되려면 원전 연료 자체 생산이 필수다. 아랍에미리트(UAE)에 이어 체코, 나아가 유럽·아시아 각국에 원전을 수출하기 위해선 윤 대통령이 임기 내 그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원전 르네상스가 가능하다. 경제안보 시대다.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도 우라늄 농축 시설은 긴요하다. 이것만 잘해도 윤 대통령은 원전 강국의 길을 연 지도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다.⊙

 

10-28 김정은에 부메랑 될 ‘북한군 파병’

푸틴과 운명공동체 된 김정은
전쟁 결과에 체제 존립도 걸려
러시아+북한 국력 갈수록 고갈

자유 진영은 러 승리 저지할 것
한국의 적극적 관여 명분 커져
북한 장병에 실상 깨닫게 해야

11·5 미국 대선을 코앞에 두고 이뤄진 북한의 러시아 파병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인식을 순식간에 전환시켰다. 더는 먼 나라의 비극적 사태가 아니라 한반도 미래와 떼어놓고 볼 수 없는 전쟁이 된 것이다. 북한 김정은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운명공동체를 자임함으로써, 러시아는 순식간에 북한에 이어 대한민국 ‘제2의 주적(主敵)’이 됐다. 러시아 2중대를 자처한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얻은 탄도미사일 등의 실전 데이터와 전투력은 곧바로 한국에 비수가 되기 때문이다.

2022년 2월 러시아 침공 후 우크라이나인들이 항복 대신 항전을 지속하자 미국 스탠퍼드대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후퇴 조짐에 있던 글로벌 민주주의가 새로운 활력을 얻고 있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군, 시민이 똘똘 뭉쳐 푸틴식 전체주의에 저항하는 데서 민주주의의 희망을 본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푸틴의 침공이 역사적 실패로 끝날 것”이라고 했다. 이런 기대감 덕분에 세계 각국에서 우크라이나 모금 운동이 이어졌다.

전쟁을 치르면서 우크라이나는 한국에 주목했다. 지난해 5월 고등학교 지리 교과서에 이어 지난 8월 세계사 교과서엔 6·25전쟁 후 최빈국이던 한국이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한강의 기적’이 소개됐다. 자연 자원도 없고, 토양도 척박한 가난한 나라가 경제 기적과 민주주의를 이룬 것은 교육열과 성실성 덕분이라는 내용도 실렸다. 전쟁 폐허에서 경제를 일군 한국을 롤 모델로 삼아 국가적 시련을 이겨내겠다는 의지다. 반면, 북한에 대해선 ‘악질적이고 반인류적인 정권’이라고 기술했다.

김정은이 대규모 포탄 지원에 이어 병사들까지 러시아에 제공한 것은 반대급부로 핵·미사일 첨단 기술을 확보하려는 욕심 때문이겠지만, 러시아에 맞서면서 제2의 한국을 꿈꾸는 우크라이나도 체제에 위협적이라고 봤을 수 있다. 김여정이 지난 22일 무인기 도발을 한국 탓으로 돌리면서 “핵보유국을 상대로 감행한 도발 사례는 한국과 우크라이나를 제외하고는 없을 것”이라고 비난한 데서 그런 기류가 읽힌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남북한 경제적 격차 연구자들이 받은 데서도 입증됐듯이, 한국은 성공 모델이고 북한은 실패 모델이다. 제임스 로빈슨 미국 시카고대 교수와 다론 아제모을루 MIT 교수는 공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한국은 포용적 제도로 경제를 성장시켰지만, 북한은 착취적 제도로 경제를 정체시켰다’고 했다. 김정은이 핵·미사일에 집착하면서부터 경제는 더욱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4월 미 의회 연설 때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당시 일본 총리는 “오늘의 우크라이나가 동아시아의 내일이 될 수 있다”고 했지만, 우리에게 우크라이나는 이제 발등의 불과 다름없다. 윤석열 정부는 그간 우크라이나에 대한 직접적 무기 지원 대신 미국에 포탄을 수출하는 형식으로 지원해왔다. 전쟁 이후 대러 관계와 푸틴 심기를 고려한 실용적 접근으로 보이지만, 한국 외교의 고질적인 러시아 공포증 표출일 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고, 한·러 관계가 전쟁 전 상태로 정상화하기도 어렵다. ‘마리우폴의 영웅’인 아조우 여단장 보흐단 크로테비치는 최근 엑스(X) 계정에 북한 파병에 대해 ‘소련에 의해 세워진 북한 체제를 종식시키고 남북 분단을 끝낼 기회’라는 글을 올렸다. 파병은 러시아와 북한의 절박성을 보여주는 증거이고, 북한의 우크라이나 전쟁 개입이 한반도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만큼 한국이 역발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대규모 파병으로 북·러가 군사적으로 한 몸이 된 만큼 푸틴의 승리 저지가 곧 김정은을 굴복시키는 길이다. 윤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방어 무기에서 공격 무기로 확대해야 한다. 전후 복구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데 필요할 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힘을 소모시키면서 북한의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도 긴요하다. 러시아 용병으로 전락한 북한군이 우크라이나 전쟁터에서 체제의 한계를 자각, 자유세계를 선택하도록 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파병 군인들이 김정은 체제에 미래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북한 변화도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다.

 

11-20 尹 골프보다 절실한 트럼프 심층 분석

중동 해법 길 닦은 트럼프 1기
아브라함 협정 확대에 나설 것
사우디는 우라늄 농축權 요구

美 요구 대응한 尹 리스트 중요
원자력협정 등 전화위복 가능
빈 살만 외교술 벤치마킹 필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1기 때 첫 해외 방문국으로 사우디아라비아를 택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영국을 첫 방문국으로 선택한 조 바이든 대통령, 캐나다·멕시코를 각각 첫 방문국으로 정한 버락 오바마·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차원이 다른 선택이다. 트럼프는 내년 1월 20일 취임 후에도 사우디를 가장 먼저 방문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각료 인선 와중에 유대계 부동산사업가 스티브 위트코프를 중동 특사로, 목사 출신인 전 아칸소주지사 마이크 허커비를 이스라엘 대사로 내정해 발표한 데에서도 그런 의지가 읽힌다.

트럼프 1기는 코로나 팬데믹 관리 실패 등으로 대선에 패한 뒤 1·6 의사당 난입사태란 대혼돈 속에서 막을 내렸지만, 아랍·이스라엘의 데탕트를 연 아브라함 협정은 대표적인 외교적 성과다.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은 관계 정상화에 합의한 뒤 2022년 10월 백악관에서 아브라함 협정 서명식을 했다. 이후 모로코와 수단도 이 협정에 가입했다. 아브라함 협정의 핵심은 중동 수니파의 종주국인 사우디의 참여인데 트럼프의 낙선으로 일단 중단됐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의 유산인 아브라함 협정 계승을 재확인한 뒤 사우디·이스라엘 수교 막후 지원에 나섰다. 사우디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MBS)이 우라늄농축시설을 수교 조건으로 내걸자 국무부·에너지부가 실무 작업을 진행해왔다. 지난해 10·7 하마스 테러 이후 사우디·이스라엘 수교 협상은 중단 상태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하마스 및 헤즈볼라와의 전쟁 수습 후 협상을 재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따라 사우디·이스라엘 수교는 트럼프 2기 최우선 과제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빈 살만이 이스라엘과의 수교 조건으로 농축우라늄 시설을 내걸고 관철해낸 것은 윤석열 정부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체 원자력 기술은 물론 원자력발전소조차 없는 사우디가 벼랑 끝 외교 전술로 미국 제공의 농축우라늄 핵시설을 갖게 되는 것은 말과 행동이 다른 미국 외교의 민낯이다. 사우디 에너지부는 핵연료시설이 석유 고갈시대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포장했지만, 이란의 핵 개발에 대비한 잠재 핵 능력 확보용이라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미 대선에 앞서 윤 대통령이 골프 연습을 8년 만에 재개했다. 트럼프와의 골프 케미로 외교 공조를 다졌던 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비법을 활용하겠다는 계산인데 그런 노력보다 더 필요한 게 있다. 사실상 단임인 트럼프 4년 중 윤 대통령이 함께할 임기 2년 반 동안 집중할 사업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이다. 트럼프 측에서는 벌써 방위비 분담금 인상에 선박·군함 건조 협력, 군함 유지·보수·정비(MRO)사업 협력 등 수많은 제안을 내놓고 있다.

트럼프의 요구 리스트에 맞서 우리가 필요한 원전 연료 자체 생산, 자체 핵 개발, 핵잠수함 건조 등 핵심적인 경제안보 우선순위를 정하고 역제안 플랜을 짜야 한다. 화급한 것이 농축우라늄 시설이다. 대한민국은 기반이 전무한 사우디와 달리 원전을 26기 가동하는 원전 강국이다. UAE 바라카 원전 건설·가동에 이어 체코 원전 수주도 성사 직전이다. 현대건설은 불가리아 원전 설계계약도 체결했다. 원전 연료인 우라늄 농축만 못 해 러시아로부터 33%를 수입하며 매년 10억 달러 이상을 지불한다.

2026년부터 적용될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전년보다 8.3% 인상된 1조5192억 원으로 타결, 국회 비준을 앞둔 상태다. 트럼프 취임 후 분담금 대폭 인상을 위한 재협상을 요구하면 일본 수준의 농축·재처리를 할 수 있도록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요구해야 한다. 트럼프 측이 한미동맹을 거래적 관점에서 접근하면서 전략자산 전개 비용, 핵우산 제공 비용을 건건이 요구할 때엔 동맹인 한국의 자체 핵 개발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나아가 중국의 핵 팽창을 견제하는 데 유용하다는 논리로 설득해야 한다.

트럼프의 미국 대개조 플랜이 대성공을 거둘지, 충성파 인사들의 좌충우돌로 대혼돈에 빠져들지 예측불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미국이 거부하지 못할 요구를 제시해 관철한 MBS의 외교술을 윤 대통령이 활용한다면 트럼프 2기는 대한민국 안보를 업그레이드할 역사적인 기회가 될 수 있다.

 

12-13 한·미·일 협력체제는 지켜야 한다

미국 이어 프랑스 독일 혼란 속
러·북 ‘불량국의 축’ 악성 진화
비상계엄 후 멈춰선 대한민국

캠프데이비드 합의 부정하며
북·중·러로 외교 선회 예고 野
尹은 외교 유산 지킬 결단해야

연말의 기류가 우울하고 답답하고 암담하다. ‘2024년은 대한민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 끔찍한 해가 될 것’이라는 여러 기관의 예측대로 미국에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됐고, 유럽연합(EU)의 양대 지주인 프랑스·독일은 내정 혼란에 빠졌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내각 불신임 사태 후 사퇴 압박을 받고,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연정의 사실상 붕괴로 인해 내년 1월 신임 투표를 앞두고 있다.

자유주의 국제질서 복원을 내건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퇴장하는 상황에서 프랑스·독일 정국마저 폭풍전야인 것은 우리나라에도 중대한 도전이다. 유엔을 비롯해 나토(NATO)와 주요 7개국(G7)의 중심축 국가들이 흔들리면 한국의 안보와 경제도 위협받게 된다. 이 와중에 러시아와 북한이 중심인 ‘불량국가의 축(Axis of rogues)’은 우크라이나전쟁을 계기로 군사적으로 악성 진화 중이다. 중국 또한 대만에 대한 무력시위를 늘리며 핵·미사일 전력 확대에 골몰해 동북아 안보는 악화 일로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으로 한국을 단번에 민주주의 모범국에서 쿠데타 우려국으로 강등시켰다. 본인의 ‘정치적 자폭’에 그치지 않고 한국까지 전방위 위기로 몰아넣었다. 미국은 살얼음판 같은 정권교체기인데 귀띔조차 하지 않은 채 군부대 이동 등 돌발 사태를 벌여 동맹 불신까지 자초했다. “TV를 통해 계엄 발표를 알게 됐다”는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말엔 윤 정부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는 분노가 깔려 있다.

계엄 파동으로 인해 윤 대통령의 외교·안보적 성과도 빛을 잃게 될 듯하다. 미·일에서 ‘노벨 평화상감’으로 평가됐던 윤 대통령의 한일관계 정상화는 물론이고, 지난해 8월 한·미·일 정상의 ‘캠프데이비드 합의’도 휴지 조각이 될 위기다. 일본의 지도자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는 지난 10월 1일 총리직에서 사퇴했고, 바이든 대통령은 내년 1월 20일 백악관을 떠난다. 윤 대통령이 유일하게 캠프데이비드 합의를 지속시킬 지도자였지만, 이제 그 가능성도 사라졌다.

2022년 한국 대선은 동북아 지정학에 가장 중요한 선거로 불렸다. 문재인 정부 때의 친중·친북 지속이냐 탈피냐를 결정짓는 전환적 선거였다. 윤 대통령 취임 직후 바이든 대통령이 방한한 배경엔 한국의 자유 진영 복귀 축하 뜻이 담겨 있다. 윤 대통령의 대일(對日) 이니셔티브에 화답해 바이든 대통령이 한일 정상을 캠프데이비드로 초청한 것은 한·미·일 3국 체제를 제도화하겠다는 의지다. 미국·일본·인도·호주의 쿼드(Quad)와 더불어 한·미·일 공조를 아시아 안보 중심축으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캠프데이비드 합의는 한·일이 미국과 함께 과거를 넘어 미래로 간다는 의지를 문서에 담았다는 점에서 ‘동아시아판 아브라함 협정’으로 볼 수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시작된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과의 수교 이니셔티브는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지속됐다. 트럼프 당선인은 바이든 대통령과 정치적 관점은 다르지만, 북·중·러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일과의 공조 강화 조치에 나설 것이다. 캠프데이비드 합의가 바이든 대통령의 유산이라 해도 아브라함 협정처럼 심화시킬 게 분명하다.

야당은 윤 대통령 1차 탄핵소추안에서 북·중·러 적대시와 일본 중심 외교를 소추 사유로 명시했다. 2차 탄핵안에선 빠졌지만, “중국에 셰셰하면 된다”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인식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윤 정부의 외교 업적을 부정하면서 일본의 과거사 반성 부족을 핑계로 북·중·러 편으로 선회하겠다는 꼼수다. 트럼프 2기 시대 한국이 친중·친북·반일로 회귀한다면 한미동맹은 파탄 위기에 내몰릴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제부터 역사를 응시하며 할 일을 해야 한다. 절체절명의 위기 때 부모는 아이를 살리려 사력을 다한다. 윤 대통령도 자신의 분신인 외교 유산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해야 한다. 한국의 북·중·러 선회 차단과 한·미·일 협력체제 수호가 핵심이다. 그래야 훗날 ‘윤 대통령이 야당의 비토크라시와 충돌해 정치적 파산을 했지만, 미래지향적 외교 덕분에 한국이 글로벌 리더십을 확장할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내년은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이다.⊙

[이미숙의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