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훈의 시론] 문화일보 논설위원 2024

01-12 상식의 정치와 국민 책임
주권자 ‘우리 국민’이 권력주체
정치위기면 국민도 위기 책임
선거로 심판해야 혁신 가능해
국민 역할이 팬덤에 눌린 시국
비상식 정치 청산이 절실한 때
총선 선택 숙고해 증오 끝내야
미국 헌법의 첫 문장은 ‘우리 미국민은…’(We the People of the United States)으로 시작된다. 여권에도 적혀 있다. 어릴 적 외운 첫 문단을 줄줄이 읊는 사람도 많다. 다인종 국가에서 국민의 통합, 권리, 의무, 자세, 헌신을 강조하려 할 때 그들은 ‘우리 국민(We the People)’으로 말문을 연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의 시작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의 영문판도 ‘We, the people of Korea…’이다. 제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라고 주권자를 명시했다. 국가권력의 주체가 ‘우리 국민’이다. 그래서 국가 정치의 위기는 곧 주권자, 우리 국민의 위기이기도 하다. 그 책임이 통치자만이 아니라 주권자에게도 있음이다.
정치 위기가 어찌 국민 탓이겠는가. 대통령부터 행정부와 각 정당·정파의 리더까지 위정자들의 책임이 먼저다. 어제오늘 일도 아니다. ‘대체 대통령이 왜 그러냐’ ‘야당 대표는 자격이 있는 것이냐’ ‘어떻게 저런 사람이 국회의원이냐’라고, 필부들이 모여 앉아도 모두 우국지사가 되는 시국이다. 온갖 욕지거리에 조리돌림을 해도 시원찮을 화증이 쌓이는 게 정치판인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런데 그들 스스로는 결단코 변하지 않는다.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여 혁신’ 운운하는 건 죄다 허언(虛言)이다. 이를 바로잡는 정치 혁신, 그게 선거를 통한 심판이다. 주권자인 국민이 해야 할 일이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지난 6일 오피니언 면에 논설위원실(Editorial Board) 명의로 ‘도널드 트럼프와 2024년에 대한 경고’를 게재했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각 당의 후보경선이 시작되는 시점에 이례적으로 대국민 호소문을 띄웠다. 사실(뉴스)과 의견(사설) 분리의 제작 방침에 따라 대선 때마다 지지 후보를 밝혀온 터라 애초 비판적이었던 도널드 트럼프를 겨냥해 대통령이 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열거한 것은 예상한 것이지만, 그 취지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지금은 가만히 있지 말고 다시 참여해야 할 때다. 미국민은 정치적 차이, 소속 정당을 제쳐 두고 11월 선택에 숙고할 것을 호소한다”고 했다.
우리 국민의 사정이 미국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국민이 군중에 압도되는 시국이다. ‘군중 심리’(1895년)를 쓴 귀스타브 르봉의 분석이 130년 가까이 흐른 지금에 더 명징해지고 있다. “앞으로 무엇이 사회의 근간이 될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확실한 건 마지막까지 통치자로 남을 새로운 세력, 바로 군중이다. 다른 권력을 모조리 흡수해버리고 어떤 위협도 받지 않으며 위세가 커지는 군중의 시대다.” 군중은 충동적이고 변덕스러우며 다양한 자극에 쉽게 휘둘리고 과장된 감정이 극단으로 요동친다. 개인도 군중 안에 들어가면 휩쓸리고 만다. 익명성으로 인격과 책임에서도 자유롭다. 엘리트도 집단에 들어가는 순간 일개 군중이 된다. 그의 지적 능력은 집단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이 군중을 팬덤으로 치환하면 우리 정치 세태가 더 확연하게 읽힌다. 증오·혐오 선동의 정치인과 극단의 군중이 공생하는 구조다.
우리 국민에게 윤리 도덕을 강조하려는 게 아니다. 군중도 우리 국민이다. 다만, 국난 극복의 저력과 지혜를 모을 줄 아는 우리 국민다운 인식과 판단을 바라는 것이다. 오남용이 심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까지 거론할 것도 없다. 그저 상식과 양식의 정치면 된다. 앞에선 국민 봉사 운운하면서 뒤론 제 잇속만 챙기는 위선, 서민 행세하면서 기득권을 챙기는 기만, 제 할 일보다 특권 뒤에 숨는 허위, 남의 눈 티끌은 보여도 내 눈의 들보는 모른 체하는 내로남불, 위법에 대한 반성보다 법탓 판사탓을 하는 몰염치, 경청하기보다 자기만 옳다는 독선, 뭐든 상대의 흠집 만들기에만 바쁜 호도 등이 상식정치에 반하는 사례다. 그런 왜곡과 음모론을 퍼뜨리며 비상식의 정치를 조장하는 선거꾼들을 이번엔 심판해야 한다.
상식의 정치라면 대화와 타협이 가능하다. 여소야대가 되든 여대야소가 되든 다수를 앞세운 폭주도, 소수의 무기력도 줄어들 것이다. 적대적 공생의 정치가 더는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국민은 무조건 옳다’는 건 그런 때다. 총선이 석 달 남았다. 두 눈 부릅떠야 할 책임이 국민에게 있다.⊙
02-05 분열의 흑역사가 묻는 이재명 책임
민주당 70년 전통의 민주세력
진영 분열史 반복 때마다 위기
李체제 당 변질이 원심력 작용
부패정당 불식 책임도 대표 몫
혁신 없이 정권 심판, 과반 요구
‘이재명당’ 목표 땐 더 큰 책임
DJ(김대중)가 1995년 정계 복귀 후 민주당을 탈당해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을 때 가장 아쉬워한 것은 당명이었다. 민주당이란 이름을 쓰지 못하는, 분열의 뼈아픈 대가였다. 1987년 대선에서 YS(김영삼)와 야권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고 평화민주당을 창당한 때부터 이어진 정치사에서 분열의 책임에 짓눌려 왔으니 오죽했겠는가.
그는 1997년 JP(김종필)와 DJP 연합을 이뤄 대권을 잡았다. YS가 야합이란 비판을 감내했던 3당 합당 정도의 파격이 아니면 공고한 지역 구도를 깰 수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분열 책임을 통합으로 갚았다. “1955년 창당된 민주당은 정통 민주세력의 뿌리다. 그 이름을 다시 찾고 싶다”고 했던 DJ는 2000년에야 새천년민주당 창당으로 민주당 명칭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 이름은 민주당(2005년)→민주통합당→열린우리당, 중도통합민주당, 중도개혁통합신당→대통합민주신당→통합민주당→민주통합당→새정치민주연합으로, 15년간 분열과 통합을 반복하다 2015년부터 더불어민주당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기간 민주당 진영은 5번의 대선에서 노무현·문재인 두 명의 대통령을 더 배출했고, 6번(제16∼21대)의 총선 중에 2번(17·21대) 과반의 제1당을 차지했다. 한 번은 노무현 탄핵 ‘역풍’, 다른 한 번은 박근혜 탄핵 ‘순풍’이 이어진 덕이었다. 보수 진영의 자중지란 와중에도 민주당 진영을 흔든 건 분열이었다.
22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다시 분열 진통을 겪고 있다. 물론 탈당한 현역 의원이 4명(김종민 이원욱 조응천 이상민)에 불과하고, 이낙연 전 대표가 짊어진 책임도 가볍지 않다. 이들의 제3지대 행보가 순조롭지 않아 파괴력이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많다. 하지만 한번 흔들린 당력과 지지층 정서의 원심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게 정치 생리다. 정세균 전 총리는 이재명 대표를 만나 “민주당에 분열이 일어나면 그건 당 대표인 당신 책임이다. 그것을 감당하고 치유해야 할 책임도 대표가 지는 것”이라고 고언을 했다. 그걸 외면할 정도로, 이 대표가 지난 1년 반 동안 끌어온 민주당은 ‘70년 전통 민주세력의 정당’과는 딴판의 정당이다.
갈등이 있어도 조정과 타협이 있고, 극단을 통제하며 공생 논리와 정체성을 지킨 정당. 몸싸움과 장외투쟁을 불사해도 마주 앉아 끝장을 보고, 정치 노선이 달라도 대의제의 의회민주주의를 신봉했던 정당이 아니다. 법안의 단독·강행 처리를 마치 공적을 쌓은 듯이 으스대고, 방탄 동원과 팬덤을 앞세워 총재 시절보다 더한 사당(私黨) 식의 운영을 당연한 정치 수단으로 일삼는 정당이 됐다. 그러니 이 대표가 신년 기자회견에서 “어떤 선거보다 갈등, 분열 정도는 크지 않다”고 했을 것이다. 비명(비이재명)을 겨눈 공천학살 논란은 친문(친문재인)도 향하고 있다. 퇴임 후 ‘무탈’만 바라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이 대표가 만났다고, 분열상이 통합으로 포장되진 않는다.
이 대표는 ‘부패 정당’ 오명에 대한 책임도 있다.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으로 송영길 전 대표가 구속돼 있고, 여럿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송 전 대표는 자신이 대선 후보가 되도록 판을 깔아주고 지역구까지 물려준 인사다. 민주화에 헌신했다는 386 대표 주자가 부패의 화신이 됐다. 이 대표도 3개 재판을 받고 있고, 일부 사건에선 최측근이 유죄를 선고받았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격언은 이제 틀린 말이다. 분열과 부패가 폭망의 길인 것은 진영을 가리지 않는 시대다. 민주당 진영도 세 번의 집권기를 거치며 이미 기득권이 됐고, ‘조국 사태’로 그 민낯과 위선이 드러난 지 한참이다.
분열·부패 책임론에 붙들리면 정치적 부담과 제약이 커진다. 진영재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책에서 “정당의 정체성 확립 자체가 무리고, 그래서 유권자를 움직이기 손쉬운 기제를 동원한다”고 했다. 이 대표의 주된 메시지는 윤석열 정부 공격이다. 익숙한 정권 심판 프레임이다. 혁신 의제는 구사하기 힘들다. 상대의 흠을 들춰 반사이익을 기대하는 게 전부다. 과반 의석을 달라고 호소하고 있으나, 선거전략과 공천 과정을 놓고 보면 ‘이재명의 당’ 완성이 우선인 듯하다. 그게 전통의 민주당이 이 대표에게 묻는 더 큰 책임이 될 수도 있다.⊙
03-04 ‘가죽 벗겨진’ 당의 위태한 현실
공정성 잃은 ‘공천 숙청’ 단행
北노동당 거론될 만큼 常道 이탈
주류교체 완성해 1인1색 사당화
당 70년 유산 정체성 상실 위기
정당은 사익 추구의 도구 아냐
총선 앞 전통 지지층 심판대에
정당은 정치적 노선을 같이하며 정권을 획득하려는 결사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선 정치 주체로, 공직선거를 통해 그 목표를 실현한다. 후보자 추천과 선거운동이 반(反)헌법적, 반체제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정당 설립과 활동의 자유를 보장한 취지가 그러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4·10 총선의 공천권을 쥐고 있으면서, 지난해 11월 초 외부 수혈을 위한 인재위원회 위원장까지 맡아 셀프 임명했다. 당 시스템 공천을 강조했으나 비명(비이재명) 쳐내기의 사천은 예고된 일이었다.
당시 비명 김종민 의원은 “전 세계 민주 정당 중에 이렇게 하는 정당은 조선노동당과 공산당밖에 없다”고 했다. 이후 공관위원과 선관위원장이 사퇴하는 공정성 논란 속에 원내외 친명(친이재명)을 살리고, 친문(친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탈당도 자유”라며 내치는 ‘비명횡사’가 몰아쳤다. 몇몇 비명 중진 현역과 원외 인사들을 남겨두긴 했지만 정적을 제거하고, 기존 계파를 모두 와해하는 공천작업을 완료했다. 지난 총선 때도 사당화 논란이 있었고, 총재 시절 역시 공천 파동이 다반사였으나 이처럼 “원칙도, 절차도, 명분도, 심지어 총선 승리라는 진영의 과제까지도 내던진”(홍영표 의원) 공천 도륙은 보지 못했다.
이 대표는 성남시장 시절이던 2017년 5월 제19대 대선 민주당 경선에서 처음으로 주류 문재인 후보에 맞설 때만 해도 소수파 중의 소수였다. 2018년 지방선거 경기지사 경선 과정에서 친문과 일전을 벌이며 세를 키웠다. 2021년 7월 제20대 대선 민주당 경선에 나설 때도 소수파였지만 그는 거물이 돼 있었다. 대장동 사건이 불거졌는데도 친문의 분화 속에 후보가 됐고, 2022년 3월 대선의 패배자가 3개월 뒤엔 국회의원, 5개월 뒤엔 당권까지 거머쥐었다. 이제는 대선 패배 책임을 친문에 덮어씌워 친명을 확고한 주류로 재편했다. 당내 정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지 7년, 공천 작업 3개월 만에 70년 전통의 민주당을 1인 1색의 정당으로 완전히 개조했다. 그게 혁신(革新)이라는 미명 아래 ‘가죽이 벗겨진’ 민주당의 현재다. 이번엔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가 “조선노동당처럼 되는 것”이라고 했다.
김일성은 1956년 소련에서 스탈린 격하 운동이 시작되자 전이를 막으려 정적들을 종파주의자로 몰아 숙청을 단행했다. 6·25 실패 책임, 불순 사상 등을 들먹이며 박헌영, 연안파, 소련파, 갑산파 등을 차례로 무자비하게 제거하고 1961년 1인 독재를 완성했다. 자유민주주의 다원적 정당체제와 ‘유사’ 공산주의 일당 체제를 현상적으로 비교하는 게 억지랄 수 있다. 그러나 민주당의 주류 교체는 이념·노선 갈등, 대안 리더십 부상에 따른 주도권 다툼처럼 보편적 요인이 아니다. 오로지 1인 정당 권력을 공고화하려 내외부 세력과 시스템을 도구화했다. 현대 민주국가 정당사에선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상도(常道)를 벗어났다.
정당 시스템 무력화와 인적 청산의 여파가 무서운 건 정신적 유산까지 상실되는 것이다. 공과 논쟁이 거세지만, 주요 정당들이 저마다의 역할로 국가 기반 축적에 일익을 담당해왔음을 인정하는 것은 그 유산 덕분이다. 그 역사가 당 정체성의 근간이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결집하게 한다. 민주당이 ‘우리의 대통령’으로 칭하는 김대중의 의회주의, 노무현의 탈권위주의가 숱한 실정(失政) 공방 와중에도 평가를 받는 이유일 것이다. 지금 민주당에선 강령 전문에서 핵심 가치로 내세운 ‘공정·생명·포용·번영·평화’가 죄다 흔들리고 있다. 공천 과정에서 공정과 포용이, 비례위성정당에서 당 정체성에 반하는 세력들의 원내 진입을 보장하면서 생명·번영·평화가 위협받고 있다.
지난 1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정당 지지도는 33%로, 국민의힘(40%)에 1년여 만에 오차범위를 벗어난 차이로 뒤졌다. “공천 갈등 등이 큰 변동 요인”이란다. 여권의 실책에 기대는 관성적 선거전략에 제동이 걸렸다. 비주류로 겪은 핍박에 대한 복수이건, 당을 방패로 삼으려는 의도이건 그 역시 이 대표의 자유다. 하지만 자신보다 먼저 생겨나 국가적 역경을 헤쳐온 정당은 그런 사익에 쓰일 도구가 아니다. 총선이란 국민적 심판에 앞서, 민주당 지지층의 심판이 더 무서운 것이다.⊙
03-25 길에서 배지 줍는 후보부터 심판하라
프레임 전쟁 속 인물경쟁 실종
유력 정치인 총선 성장판 닫혀
李 강북을 공천 笑劇이 대표적
낙하산·막말·범법 후보 수두룩
화려한 이력보다 기본 인성 갖춘
후보 가리는 것이 유권자 사명
4·10 총선이 25일로 사전투표까지 불과 11일 남았다. 인물·구도라는 선거 요인 가운데 이슈는 ‘거야 심판 vs 정권 심판’이 격돌하고 있다. 선거의 성격을 규정해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프레임 전쟁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 본질, 후보 심판이 묻히고 있다. 이번 선거는 지역구 254석, 비례대표 46석 등 국회의원 300명을 뽑는 총선이다. 개인 자체가 입법권을 가진 헌법기관이고, 차관급의 선출직 공무원이며, 국회를 주도할 중요 정치인을 가려내는 선거다.
1987년 민주화 이후 13대부터 21대까지 9번의 총선을 거쳤는데, 국가 사회에서 정치의 역할은 갈수록 선진보다 후진했다. 경제 수준이 높아지고 사회 분화도 커졌는데 이를 대변하는 대의민주주의는 진전되지 않았다. 되레 진영 양극화와 집단주의의 퇴행적 정치가 심화했다. 세계적 현상이라는 민주주의의 위기 진단과 성토에 묻어갈 수는 없다. 한국만의 원인이 있다. ‘새 인물이 없다’는 것이다. 여의도 정치에서 국회의원이 탄생하고 유력 정치인으로 커가는 성장판이 닫혔다. 자신만의 정치철학으로 의정 경험을 통해 리더십을 키워가는 경로가 실종된다는 의미다. 거칠게 정리하자면, 전직 대통령의 딸과 친구가 대통령이 되더니 지난 대선에선 의원 경력 0선의 두 인물이 맞붙었다. 이번 총선도 대결 구도에선 변한 게 없다. 그 배경은 인물 배출 실패다.
새 인물이란 정치 신인이 아니다. 새롭게 대중의 주목을 받는 정치인을 말한다. 신인이라고 참신한 것도, 다선이라고 퇴출 대상인 것도 아니다. 자질과 소양을 갖췄느냐다. 여야 모두 공천 혁신을 내걸었으나 한쪽은 무사안일, 다른 쪽에선 사당화로 일관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서울 강북을 공천 소극(笑劇)이 대표적이다. 칼만 들지 않은 ‘이재명식 숙청’ 경선을 세 번이나 치렀다. 현역 평가 하위 감점, 경선 차점자 1위 승계 불가, 지역 경선에 전국 권리당원 동원이라는 불공정을 우겼다. 그러고도 성범죄 가해자 전문 변호사를 공천했다가 후보 등록 마감 6시간을 앞두고 바꿨다. 36년간 승리한 곳이니 무슨 수작을 해도 이긴다는 오만과 권력욕이 정치인들을 질식시켰다.
그러는 사이 낙하산, 막말 후보만 득세했다. 같이 근무했다고 공천장을 받고, 배우보다 당 대표가 잘생겼다고 한 인사가 후보가 됐다. 그 대표의 측근을 변호해줬더니 서류심사 4위인데도 경선에 올라 공천장을 거머쥐었다. 전직 대통령을 ‘실패한 불량품’ ‘매국노’라 하고, 반대파를 ‘바퀴벌레’ ‘수박’이라고 조롱해 도덕성 0점을 받은 인사도 후보 자격이 유지됐다. ‘5·18 폄훼’ ‘난교’ 발언 논란 후보들은 공천에서 탈락하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혐오를 정치수단으로 삼은 후보들이 낯 두껍게 출마했다.
범죄자들은 더 가관이다. 이번 총선 출마자 중 범죄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이 최소 34명(패스트트랙 기소 포함)이라고 한다. 3개 재판이 진행 중인 이 대표가 포함됐음은 물론이다. 조국혁신당은 당선권이라는 비례대표 10번까지 4명이 수사·재판 중이다. 이들에게 사법 시스템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확정 판결까진 임기가 보장되는 탓이다. 두 달 남짓 임기가 남은 21대 국회의원 중에도 27명(지역구 25명, 비례 2명)의 재판이 진행 중이다. 선거법 위반 사범도 마찬가지다. 공직선거법은 6개월 이내 1심 판결, 2·3심은 하급심 이후 3개월 이내 판결을 규정하고 있지만 강제성이 없다.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1심 재판은 1년째 하고 있다. 지역구 후보자의 34.6%, 3명 중 1명이 전과자라고 해도 놀랍지가 않다.
인물 선택에 국가 정체성, 시대정신, 미래지향 등 거창한 자격을 논하자는 게 아니다. 그런 척하는 화려한 이력의 후보는 십중팔구 위선자다. 여의도 정치는 공익·민생과 괴리가 된 지 오래다. 국익보다 권력의 이익을 우선한다. 그러니 기본적인 인성을 놓고 가려내는 게 최선의 선택법이다. 거짓말이 서툰 솔직 후보, 부끄러워할 줄 아는 염치 후보, 혐오 발언을 하지 못하는 어눌 후보, 아첨엔 미숙한 선비 후보, 뒷돈 챙길 줄 모르는 고지식 후보, 권력에 줄 서지 못하는 바보 후보가 수백 배 낫다. 그래야 여소야대가 되건 여대야소가 되건 상식적 정치가 이뤄진다. 길에서 배지 주우려는 후보부터 심판해야 한다. 유권자의 시대적 사명이다.⊙
04-15(월) 尹 ‘법대로’만으론 위기 못 넘는다
균형추 실종된 巨野구도 연장
인적 쇄신, 대증요법은 불충분
표심 관통하는 흐름 간파해야
자유, 법치와 상충된 통치방식
‘보수 대개조’ 미완 상태 재확인
치열한 성찰, 노선 논쟁 전개를
세상은 균형을 향해 움직인다고, 동서고금 현자들의 가르침을 믿어왔다. 깨져버렸다. 4·10 총선 결과, 108 대 192. 윤석열 정부의 남은 3년은 더 혹독한 소여 대 거야 구도가 됐다. 지역구 득표율에서 불과 5.4%포인트 앞선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힘보다 71석(28%)을 더 가져간 소선거구제 탓만은 아닐 것이다.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를 보수 진영이 승리했으니 이번엔 진보 진영에 몰아줬단 해석도 과다 대표성이 초래한 입법권력의 폐해를 고려하면 납득하기 어렵다. 비이성적인 ‘조국 현상’도 설명되지 않는다. 대체 무엇이 균형추의 오작동을 불러왔는가. 민심이 항상 옳다면, 총리·대통령 비서실장 교체 정도의 대증요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근본적 문제가 있다.
영국 유력지 파이낸셜타임스의 수석 경제평론가 마틴 울프가 최근 발간한 ‘민주주의적 자본주의의 위기’의 중심 논제 역시 균형 실종이다. “우리 사회의 건강은 경제와 정치, 개인과 집단, 국가와 글로벌 간의 미묘한 균형 유지에 달려 있는데 그 균형이 깨져버렸다”고 했다. 번영과 자유, 행복을 창출하는 능력을 보여온 민주주의적 자본주의 체제가 폭넓은 번영과 안전을 제공하지 못해서다. 그 증상을 세 가지로 분석했다. 엘리트에 대한 광범위한 신뢰 상실, 포퓰리즘과 권위주의의 부상, 진실이라는 개념에 대한 신뢰 상실이다. “괴물 같은 독재자들의 시대”는 저물었다 싶었는데 21세기 들어 도널드 트럼프, 보리스 존슨 등 선동독재(demagogic autocracy)가 등장한 배경이다. 그 근원에 경제적 자유주의의 정점이었던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지목했다.
공산주의의 종언을 고했던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자유주의와 그 불만’(2022)에서 대처리즘, 레이거노믹스, 작은 정부론 기조를 겨눠 종언을 선언한 것과 유사한 맥락이다. 그는 “우파 포퓰리스트와 좌파 진보주의자들에게 자유주의가 불편한 이유는 자유주의의 근본적 취약성 때문이 아니다”라고 했다. 자유주의 원칙이 경제적 불평등을 초래한 원인이 아닌데도 “신자유주의가 모든 사회적 연대를 폄훼하고, 정부의 기초적 역할조차 파괴하는 등 극단적으로 몰고 가면서 정치·사회적 양극화를 낳았다”고 했다. 인민에 의한 지배(rule by people)인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rule of law)인 자유주의를 구분하면서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주의의 위기”라고 주장한다.
윤 대통령이 취임사부터 강조해온 자유주의·법치와 실제 보여준 국정 기조·통치 방식은 사뭇 결이 달랐다. 최우선 국정 목표가 무엇인지는 아직도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외교·안보 분야를 제외하면 재정·산업 정책에선 건전재정, 규제개혁 등 전임 보수 정부의 슬로건이 다시 내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동·연금·교육에 이어 의료 개혁을 추진해왔다지만 전제돼야 할 사회적 동력, 공감과 설득이 부족했다. 범죄 집단화 또는 이권 카르텔로 몰아붙이는 게 우선이었다.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도 직역 카르텔로 설명했다. 자유주의 가치 중 가장 근본적인 게 자율성이다. 정치·사회적 권리만이 아니라 재산 소유와 교환의 권리에선 더욱 자율성 보장이 민감한데, 검찰과 경찰을 앞세워 ‘법대로’만 압박했다. 공권력을 통치 수단화한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가 직전 정부와 다를 게 없었다.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야당 대표와의 국정 협의도 수사·재판을 받는다는 이유로 외면해왔다. 50분 대국민 담화는 훈시 같았고, ‘질문을 받지 않은 대통령’이 된 지 오래다. 에드먼드 버크가 시원을 이루는 고전적 보수주의의 숙제, 전통적 가치와 질서 존중이 강압적 권위주의로 비치는 약점을 줄곧 노출한 것이다. 디올백, 입틀막, 대파 소동, 이종섭 파동은 그러한 보수 정부에 대한 회의감이 분노로 바뀐 불쏘시개였을 뿐이다.
4년 전 총선 참패 뒤 여권이 이구동성 외쳤던 ‘보수 대개조’는 미완 상태라는 게 확인됐다. 레임덕은 물론 탄핵, 임기단축론까지 나온다. 정권 재창출을 하지 못한 대통령은 그 어떤 공적을 남기건 실패한 대통령이 된다. 정권심판론이 압도한 성난 민심을 관통하는 거대한 흐름을 간파하지 못하면, 현 정부의 위기를 넘어 국가의 위기다. 치열한 성찰과 노선 논쟁이 전개돼야 한다. 이제 보수 재건을 위한 대통령의 시간이다.⊙
05-08 떳떳한 대통령을 바란다
尹 총선패배 책임론 사면초가
김여사 문제, 채상병 수사 등
거리두기 실패로 객관성 잃어
국정, 균형적 판단이 가장 기본
잘못 인정하고 개선하는 리더를
기자회견서 보여줘야 3년 주도
윤석열 대통령이 그야말로 사면초가(四面楚歌), 항우 신세다. 총선 패배에 여당도 야당도 시중 여론도 죄다 대통령 탓을 하고, 내각은 흔들린다. 저잣거리 술판에서도 무시로 “윤석열이…” 한다. 나랏일을 잘못해서 원성이 높아지는 건, 그럴 수 있다. 국정에 100% 만족이란 없다. 누군가 덕을 보면, 소외된 쪽이 생겨난다. 그런 까닭만이라면 수정해서 맞춰가면 될 일이다. 그 정도가 아닌 게 작금의 정치 형세와 민심이라서 고립무원(孤立無援)을 얘기하는 것이다.
윤석열·이재명 회담의 약발은 ‘이태원특별법’ 수정 처리 하나로 끝난 듯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채상병특검법’을 처리해놓고 윤 대통령을 궁지로 몰고 있다. 제22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주가조작 의혹에다 명품 백 수수 의혹을 추가해 ‘김건희여사특검법’ 처리를 예고하고 있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게 어떤 변수가 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확실한 건, 대통령이 어린이날 행사에 부인도 동행하지 못하는 처지라는 사실이다. 그런 지 4개월이 넘었다. 보란 듯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법인카드 논란의 김혜경 씨와 2년여 만에 공개 나들이를 했다. 이런 굴욕이 없다. 여의도에선 ‘대선 불복’이란 말이 사라졌고, 야권 의원들의 말끝마다 ‘탄핵론’이 따라붙는다.
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 지경인가. 공자에게 제자 자장이 밝음(明)에 대해 물었다. 공자는 “물에 조금씩 젖듯이 하는 헐뜯음(浸潤之참)과, 살갗을 파고드는 허위 비방(膚受之소)이 먹혀들지 않으면 밝다고 할 수 있다”고 답했다. 군자의 길이 이 수준이다. 본(本)이 돼야 하는 지도자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헐뜯는 것마다 억지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명품 백 영상은 불법적 함정 취재였고, 그래서 증거로 쓰일 수 없는 독수독과다. 채 상병의 죽음에 얽힌 외압 의혹도 민주당의 전가보도 공수처가 제대로 밝혀주면 될 일이다. 하지만 민심은 고려해주지 않는다. 찬성 여론이 많은 특검법만이 아니다. 대통령을 향한 ‘헐뜯는 말, 허위 비방’이 괜스레 나오는 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늘어간다. 대통령 비서실의 비선 라인 논란은 불신의 시선을 더욱 짙게 할 뿐이다. 검찰을 앞세워 야권에 겨눴던 법의 잣대가 대통령에게도 적용돼야 한다는 것, 그게 대중이 보는 상식적인 공정이다.
도덕군자 대통령을 기대해서가 아니다. 현실 정치에서 윤리 도덕이 얼마나 무용한지는 며칠 뉴스만 봐도 누구나 안다. 위선과 범법의 지도자들이 더 위세를 떨치는 현실 아닌가. 최악을 피하려 차악과 마주하고, 그래서 최선이 아닌 차선을, 여의치 않으면 차차선을 선택하는 게 정치임을 모르지 않는다. 막스 베버가 ‘직업(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인이 갖춰야 할 자질로 꼽은 세 가지(정열·책임감·판단) 가운데 핵심은 균형적 판단능력(또는 目測)이다. 정열은 대의(大義)에 대한 헌신이지만 책임감이 없으면 광란에 지나지 않는다. 결정적인 심리적 자질, 관찰 능력이 있어야 한다.
베버는 이를 “현실이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도록 하는 능력, 사물과 인간에 대해 거리를 두는 것”이라고 했다. 세상 현실, 주변 인물과 “거리 두기에 실패하면 객관성을 잃고”, 결국 현실 오판에 따라 “자아도취에 권력의 허영심이 생긴다.” “그 자체만으로 큰 죄다”. 정당한 권력을 행사했어도 결과가 뜻대로 안 되는 게 다반사다. 그때 “세상이 모르고 어리석은 것이지, 내가 잘못한 게 아니다”(신념윤리)라고 해서 지지를 유도할 수도 있지만 분노를 부를 수도 있다. 반면, “잘못이 있다. 다만 나는 달리할 수가 없었다. 이 점에서는 물러서지 않겠다”(책임윤리)라고 해서 여론을 반전시킬 수도 있다. 그간 김 여사를 둘러싼 문제와 의혹 대응이 거리 두기 실패였다고 하면, 의대 증원에 대한 50분의 대국민 담화가 책임윤리 부족이었다고 하면, 윤 대통령의 잘못이 이런 데 있다고 하면 무리한 평가일까.
대중은 떳떳한 대통령을 바란다. 실수도 잘못도 있지만, 인정하고 개선 비전을 보여서 굽힐 것이 없는 지도자. “몰라서 그렇다”며 법리를 가르치려 들지 않고, “저쪽의 잘못이 더 많다”고 비교하지 않는 지도자.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기대하는, 아니 호소하는 윤 대통령의 모습이다. 남은 3년을 제대로 이끌려면 이 길밖에 없다.⊙
05-31 ‘당론 감옥’ 탈출을 許하라
지도부 당론정치가 국회 좌우
의원은 거수기, 이탈하면 처벌
헌법·국회법 위 당헌 있는 모순
공천 통제·운동권 의식도 한몫
대의정치 무시·증오 정치 낳아
22대 국회, 자유투표 보장해야
지난 28일 제21대 국회의 마지막 본회의는 윤석열 대통령이 환부한 ‘채상병특검법’ 재의결을 놓고 벌어진 ‘수(數) 싸움’이었다. 법리나 타당성 논쟁이 아닌, 오로지 찬반의 머릿수 계산에 정신이 팔렸다. 결과는 이변 없이 가결 정족수에 17표가 모자란 부결, 폐기였다. 국민의힘의 선방이라지만, 더불어민주당이 낭패를 본 것도 아니었다. 몇몇이 이탈한 듯하나 양 진영의 ‘당론’이 그대로 관철된 게 오히려 놀라웠다. 정당 소속 의원 숫자대로 표결되는 본회의, 법안의 문제점보다 당 방침이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상임위원회, 지도부의 의지대로 관철되는 ‘박수 의총’, 그래서 개별 의원의 의견보다 당론을 먼저 묻게 되는 언론.
이게 당론 정치가 만든 국회 풍경이다. 누구라도 탈주하면 처벌(또는 불이익)을 받는 ‘당론 감옥’이다. 헌법이 ‘양심에 따라 직무 수행하는’ 자율성을 보장한 헌법기관, 국회의원은 이 땅에 없다. 그 감옥 탈출을 도모한 적이 있기는 하다. 김대중 정부 시절이던 1999년 야당 한나라당은 당론을 어기고 노사정위원회법 처리에 협조한 이수인 의원, 동티모르 파병안에 찬성표를 던진 이미경 의원을 출당시켰다. 홍역을 앓고 나자 자성론이 일어 2002년 국회법이 개정됐다.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제114조 2항)는 자유투표(cross-voting) 조항이 신설됐다. ‘국회의원은 당의 거수기가 아니다’는 선언이었다.
그때뿐이었다. 2019년 말 민주당이 주도한 공수처 설치법안의 본회의 표결에서 금태섭 의원이 기권표를 던지자 당원들이 달려들었다. 당론에 따르지 않은 해당 행위라며 징계 청원을 했다. 당 윤리심판원은 제20대 국회의원 임기 종료 4일을 남겨놓고 경고 처분을 내렸다. 이미 공천 탈락이라는 불이익을 준 뒤였다. 근거는 당헌이었다. 당원에 대해 “당론과 당명에 따를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국가 통치의 규범인 헌법이나 국회 운영의 근간인 국회법보다 하위 규율인 정당 당헌이 우위에 있음을 확인시켰다.
모순의 근원은 헌법의 권력구조에 있다. 당론 정치는 의원내각제에선 필수적이다. 국회의 다수당이 내각을 구성하는 만큼 당론이 곧 정부 정책이고, 정치적 책임(의회 해산, 총선 실시)을 진다. 당 계파 간 조정에 따라 정해지는 당론의 구속력이 강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대통령제를 기반으로 의원내각제적 요소가 애매하게(절대 절묘하지 않게) 혼합돼 있다. 삼권분립 원칙에 따라 대통령이 행정부 수반을 겸하지만, 국회를 해산할 권한은 없다. 그런데 내각제적 총리를 두고 국회의원의 장관 겸직을 허용해 분립과 견제의 경계가 흐릿하다. 대통령은 여당을 통해 국회를 뜻대로 움직이려 하고, 국회는 대통령 견제를 가장 큰 책무로 인식한다. 여야 공히 공천권으로 의원들을 순치하고, 당론의 이름으로 자율을 제한하는 구도가 형성돼 버렸다. 정국 주도권 경쟁이 격화할수록, 여소야대 국회 구도에서는 더욱 당론 정치가 맹위를 떨친다.
여기에 우리만의 정치문화가 덧칠됐다. 일사불란한 내부 규율을 강조하는 전통적 조직관과 사회운동의 관성이 뭉쳐졌다. “민주화 운동을 규정했던 민주-반민주 구도의 유습은 대화와 타협보다는 대결과 적대의 정치를 지배적으로 만들었다. 무조건 대통령을 지지하는 여당과 대통령을 반대하는 야당이 극한의 적대와 갈등을 빚었다”(‘대통령의 권력과 선택’ 중) 증오의 정치가 기승을 부릴수록 당론 감옥의 경비는 더 삼엄해진다. 탈옥의 기미만 보여도 색출과 보복이 벌어진다.
제22대 국회에선 여야 간 당론 전쟁이 확전할 것이다. 다수 야당의 입법 폭주→소수 여당의 저지 실패→대통령 거부권의 악순환 고리마다 벌어질 일이다. 대통령제의 본산인 미국 의회도 양극화와 대치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여전히 자유투표가 보편적인 것은 우리와 다른 공천 과정, 비(非)통제적 정당문화에서 기인한 것만은 아니다. 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공감대가 무너지지 않아서다. 이념과 노선이 달라도 토론과 숙의를 거쳐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그 결정에 대해선 선거를 통해 책임을 지는 게 의회 정치다. 당론 정치로 22대 국회도 망칠 텐가.⊙
06-24 거부권 대 탄핵, 민심 얻어야 이긴다
野, 尹정부 압살用 특검법 몰이
거부권 행사시 탄핵소추 겁박
노무현 탄핵도 거부권이 뇌관
루스벨트, 거부권 행사 잦아도
국민설득 리더십으로 존경받아
명분 세울 결단해야 국정 동력
윤석열 정부 ‘압살 작전’인 듯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작전사령관이다. 국회는 이미 접수돼 민주당 의원총회로 전락했다. 법제사법위를 비롯해 위원장 자리를 꿰찬 11개 상임위원회는 돌격대의 전장이 됐다. 의회 독재, 입법 폭주란 비판 정도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총선 민심 왜곡이란 면박 역시 들은 척도 안 한다.
최대 타깃은 윤 대통령이 제21대 국회 때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던 채상병특검법과 김건희특검법이다. 채상병 사건은 ‘항명’과 ‘외압’ 사이 명쾌하게 해명되지 않은 대목이 적지 않다. ‘명품백’의 경우 사실관계와 법리보다 국민정서법 문제가 돼버렸다. 민주당이 화력을 집중할 취약 지점들이다. 지난 21일 야당 단독으로 열린 법사위의 채상병특검법 관련 입법청문회가 1차 공세였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과 임성근 전 해병대 제1사단장 등에 ‘벌 세우기 퇴장’ 쇼까지 벌였다. 법사위를 통과했으니 본회의 처리는 시간문제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21일 “순직 1주기(7월 19일) 전에 통과시킬 것”이라고 했다. “거부권 행사를 포기하라”고 으름장을 놨다.
특검법안은 법리상 하자가 많다. 여권이 다시 거부권을 되뇌는 사정이 이해된다. “미국 대통령제 역사상 총 2595건의 대통령 거부권이 발동됐고,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635건의 거부권을 행사했지만, 탄핵이 거론되진 않았다”(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항변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거부권 행사 시 탄핵’ 깃발을 거두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힘(108석)이 저지선(100석)을 확보하고 있다지만, 8명은 얼마든지 흔들릴 숫자로 본다. 7월 전당대회에서 누가 여당 대표로 등장해도, 용산과는 구심력보다 원심력이 더 강해질 터다. 미래 권력을 둘러싼 경쟁이 가열될수록 현재 권력의 유효기간은 줄기 마련이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탄핵소추안 발의가 연쇄 작동하는 정치 역학은 노무현 전 대통령 때 실증된 것이다. 노무현은 동교동계와 갈등이 누적돼 2003년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하고, 열린우리당(47석)이 창당됐다. 여당이 제3당이 됐다. 노무현은 원내 1당 한나라당(141석)이 제기한 1차 대북송금사건특검법을 거부하지 않고 그대로 공포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가원수의 외교적 행위는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고 성명을 발표할 정도로 반발했으나, “반대할 명분이 없다”고 받아들였다. 갈등 수위가 높아지자 노무현은 그해 7월 2차 대북송금특검법에는 거부권을 행사했다. 재의결에서도 부결돼 폐기됐다. 야당은 11월 최도술 등 노 대통령 측근 비리 특검법을 통과시켰는데, 노무현은 또 거부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간에 ‘보복연대’가 가동됐다. 12월 재의결에서 의결정족수를 31표나 넘기며 가결됐다.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난 2004년 3월 12일 찬성 193명으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꼬투리를 잡은 건 “열린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는 선거 중립 의무 위반이었으나, 연속된 거부권이 뇌관이었다. 노무현은 헌법재판소 기각 결정 때까지 63일간 유폐 생활을 해야 했다.
거부권과 탄핵소추권이 헌법상 원리만 강조돼 충돌하면, 정치는 극한 대립으로 오작동한다. 상호 견제의 삼권분립이 가진 취약점이다. 추 원내대표는 루스벨트가 12년 재임 중 매년 53회꼴로 거부권을 행사했음을 거론했으나, 그가 탄핵 논란 없이 미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 중 한 사람으로 남은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다. 그가 거부권을 행사한 635개 법안 중 9건만이 재의결됐다. 거부한 이유를 직접 공개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한 리더십 덕분이다.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하기도 했다. 30번의 노변정담(Fireside chats)이 상징하듯, 대국민 소통에서 명분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거부권은 대통령 권한’ ‘수사가 우선’이란 입장만 되풀이하면 정국은 악순환의 궤도를 돌 것이다. 상대에 명분을 주지 않으려면 나의 명분이 더 민심에 가까워야 한다. 무도한 ‘이재명 방탄’에 제동을 걸지 못하는 근원적 이유도 거기에 있다. 명분을 빼앗든, 새로 세우든, 결단해야 한다. 한동훈 전 장관이 불을 지폈다. 역학 작동의 추이를 지켜볼 일이다.⊙
07-17 민주당의 ‘헌법 농단’ 신기록 행진
트럼프 헌법 유린 논란 진행형
野도 온갖 계교 동원, 헌법誤用
‘87 헌법’ 설계자 예상 못한 것
이재명체제 대권가도 목표로
위헌적 논리 우기며 탄핵몰이
헌법은 ‘증오정치’ 도구 아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지지세가 지난 13일 피격 사건 이후 급등하는 건 놀랍지 않다. 피 흐르는 얼굴로 군중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연신 “싸우자(Fight)!”를 외친 그는 총격 후 불과 2분 사이 ‘증오 정치의 화신’ ‘민주주의 파괴자’에서 ‘저항의 아이콘’이 됐으니 말이다. 분노의 언어로 가득했던 전당대회 연설문을 찢어버리고 통합의 메시지를 전하겠다는 전략 변경도 예상대로다. 대세를 잡았다는 자신감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그런 기조는 언제 또 뒤집힐지 모른다. 유불리에 따라 말을 바꾸는 ‘거래의 기술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헌법 유린 논란이 현재진행형이다. 연방대법원이 트럼프의 대선 결과 뒤집기 시도에 면책을 결정한 다음 날, 뉴욕타임스는 ‘중범죄자가 대통령 집무실에서 미국의 시스템을 시험할 것이다’라는 분석 기사를 실었다. ‘미국인들이 생각했던 모든 규칙은 트럼프에 의해 다시 쓰이고 있다. 헌법 제정자들이 견제와 균형을 세우기 위해 노력했지만, 미국 시스템은 불안정한 것으로 판명됐다’고 했다. ‘유죄 평결이 내려진 범죄자가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250년 이어진 미국 민주주의를 뒤집고 있다’고 개탄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써가는 헌정사 신기록 행진도 1987년 민주화 헌법 설계자들이 상상조차 못 했던 일들이다. 지난 제21대 국회의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소추, 국무총리 해임건의안, 판사·검사 탄핵소추, 모두 첫 사례였다. 22대 들어 이재명 전 대표 연루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 3명 등 4명의 검사에 대한 탄핵안을 발의했다. 그 사건 변호인들이 국회의원이 되고, 그들로 하여금 수사검사들을 청문회에 불러내 추궁하게 하려는 사례 역시 과거에 없던 일이다. 탄핵안을 72시간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지 않고 법제사법위로 넘겨 청문회를 열겠다는 수작을 부린 것까지 처음이다. ‘대통령 탄핵소추 발의 요청’ 국민청원을 놓고도, 사문화한 청문회를 처음 개최하는 계교를 부렸다. 청원 제외 대상을 폭넓게 규정한 청문법을 배제하고, 재판 중인 사안만 예외로 둔 국회법을 준용하겠다는 꼼수도 처음 등장했다.
심지어 대통령이 채상병특검법에 대해 재의를 요구(헌법)하는 거부권을 행사하자 “대통령 본인이 수사 대상이어서 이해충돌방지법에 따라 거부권이 제한돼야 한다”고 했다. 헌법-특별법(특례법)-일반법 순의 상하위 법체계는 애초 이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억지로라도 다수가 밀면 정답이 된다는 게 민주당에선 상식이다. 입맛대로 해석하고, 편의적으로 활용하며, 대중 선동 도구화하는 것. 오독(誤讀), 오용(誤用), 남용(濫用)이 민주당의 ‘헌법 사용법’이다.
이 전 대표도 지난 1월 테러를 당한 뒤 통합을 얘기했다. 하지만 증오의 정치를 멈추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발의한 탄핵안이 11건, 본회의 보고 전 사퇴 사례까지 합치면 13건. 국회에 탄핵소추권을 부여한 헌법 제65조는 너덜너덜해졌다. 국정 실수가 적지 않고 지지도가 낮다고는 하나, 헌정 질서가 무슨 대수냐는 듯이 반(反)윤석열 전선을 몰아붙인 결과다.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을 독식한 게 일사천리 탄핵 몰이를 위한 것이었음도 명확해졌다.
마지막 기록 도전이 남았다. 헌정사상 첫 확정 판결 전 ‘중범죄 피고인 대통령 후보’다. 4개 재판 중에 어느 것이든 차기 대선(2027년 3월 3일) 전에 최종심이 열려 피선거권이 제한되는 유죄 판결이 나오면 목표 달성은 물 건너간다. 그러니 장애물은 모두 제거해야 한다. 못 할 게 없다. 이재명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재판 지연을 위해 필요하다면 판사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켜 직무를 정지시키면 된다. 판검사가 불리하게 법을 적용할 것에 대비해 ‘법 왜곡죄’도 만들자. 언론은 수백 배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겁박해 입을 막으면 된다. 김건희특검법을 밀어붙여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직행하고, 대통령 임기 단축 개헌 카드를 꺼내 들 수도 있다. 혹여 ‘대통령 불소추 특권’(헌법 제84조) 논란이 벌어져도,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재판정에 세울 수는 없다’는 대중이 막아 줄 것이다. 이보다 완벽한 대권 가도 시나리오는 없다. ‘이재명 유일 체제를 받들어 권력을 쟁취하는 것만이 지상 과제’라는 망령에 사로잡힌, 헌법 농단 풍경이다.⊙
08-09 소수파 한동훈의 거야 대적법
野 단순 다수결 폭주에 與 무력
지지율 2위가 위세, 정치 질식
數 아닌 명분·능력 경쟁이 정치
韓, 논리 더해 해결력 보여야
채상병·金특검 정치력 시험대
국민 설득해야 野 폭주 막아내
의회 정치에서 단순 다수결이 전부란 듯이 달려드는 다수파에 소수파가 맞서는 건, 이만저만 고약한 일이 아니다. 온종일 저주와 증오의 언어를 토해내고 ‘법 조문을 따라 하면 법치’라는 조야(粗野)한 선동가들이 점령한 국회에서 정치는 질식 상태다. 총선 지역구 득표율 50.5%로 63.5%의 의석을 차지하고, 지지율이 27%(한국갤럽)로 2위인 신세인데도 일마다 ‘국민의 뜻’을 참칭하는 골리앗 거야(巨野). 그 위세가 탄핵, 특별법, 청문회 러시로 뻗치고, 소여(小與)는 기지와 용기도 없이 필리버스터가 고작이다. 이를 지켜보는 것도 고역이라 골리앗의 이마를 한방에 명중시켜 쓰러뜨렸다는 다윗의 돌팔매가 떠오를 지경이다.
여소야대 구도에서 일방처리-거부권 쳇바퀴가 감내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는 하다. 소수파가 의석수를 뒤집을 수 있는 건 인위적 정계개편밖에 없다. 양극화한 정치 지형과 더불어민주당 단독 170석의 구도에서 국민의힘(108석)만으론 3당 합당 격변 도모는 불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돌멩이가 없어도, 대화와 타협 주문이 공허하게 들려도,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란 비스마르크의 경구라도 믿으면서, 민심을 얻어야 하는 게 정치의 본령이다. 소수파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거야 대응법이기도 하다. 이제 그 전장은 명분만으로는 부족하다. 능력이 병행돼야 한다. 다수파가 힘자랑에 나서는 구실을 무력화하는 동시에 해소의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정책 주도권이 긴요하다. 소수파여도 행정력을 동원할 수 있는 여당 프리미엄이 있다. 한동훈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과 자주 회동하고 전화통화를 하란 뜻이 아니다. 당정관계 재정립이다. 한 대표가 말했듯이 “대통령과 집권당 대표는 공적 지위로 만나는 것”이다. 그 관계는 애초 ‘원팀’이 아니다. 여당은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으로 정책 공조를 약속한 정치조직이지만, 민의를 수렴해 국정에 반영되도록 견제하는 국회 교섭단체이기도 하다. ‘우리는 하나다’란 구호가 권력 내부 시스템을 원활하게 하자는 취지의 정치적 수사일 수는 있으나, 내각제가 아닌 대통령제의 삼권분립 원칙과는 충돌 지점이 많다.
그런 연유로 여당과 정부 간에 정책·법안을 조율하는 당정협의회는 법률이 아닌 국무총리 훈령으로 규정돼 있다. 처음 생긴 건 1982년 전두환-민정당 시절이다. 그전까지 여당은 대통령의 ‘지시 각서’를 이행하는 ‘청와대 여의도 분실’ 처지였는데, 그나마 협의 주체로 대접해준 것이다. 여러 번 개정됐지만,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기조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다시 ‘1호 당원’의 뜻만 좇는 건 퇴행인 셈이다. 임기 중반쯤 공적 쌓기가 급해진 대통령과 정권 재창출이 화두인 여당 간의 대립·갈등은 필연적이다. 그 해결의 중심축은 당이 돼야 한다.
한 대표가 민주당을 향해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의제를 던진 건 의미 있는 액션인데, 대중이 원한다는 명분만으로는 부족하다. 주도권은 협상에서 이견을 해소하고 구체적인 성과를 낼 때 가능하다. 그게 정치력이다. 민생지원금지원법에 대해서도 “여당이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대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역시 같은 맥락의 능력을 보여줘야 할 일이다. 필요하면 정부-야당 간 직통 채널도 열어줘야 한다. 거창한 여·야·정 협의체는 실효성이 없다. 행정부와 원내 1당이 정책 방안을 공유하는 것은 입법 프로세스의 여야 협의 과정이다. 야당이 거부해도 명분을 잃지 않고, 설령 명분을 내줘도 정책 실행의 실리를 얻을 수 있다.
난제는 채상병특검법이다. 민주당은 세 번째 특검법안으로 한 대표를 압박하고 있다. 당내에서도 한 대표가 제안한 제3자 추천 방식의 특검법에 대한 견제가 상당하다. “진실규명을 반대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이라는 명분을 고수하려면, 재의 요구의 사유였던 독소 조항을 배제한 대안을 내놓는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탄핵 노림수에 말려든다는 인식을 불식시킬 수 있다. 대통령실과의 조율이 필수적이지만, 당보다 지지율이 낮은 대통령의 등을 떠미는 것도 집권당 대표의 책무다. 민주당이 다음 수로 노리는 김건희특검법도 마찬가지다. 용산과 국민 눈높이 사이 시험대다. 국민을 설득할 수 있어야 거야의 폭주를 막는다.⊙
09-02 李 중도확장론의 허상
중도층 본격 공략 표방하고도
상속세 완화 부자감세론 여전
성장론도 기업 규제틀 못 벗어
팬덤 의존 권력은 실질 힘 아냐
노선 변화는 지지층이 등 돌릴
리스크 감당해야 진정성 얻어
“내 지지층이 등을 돌리게 한 네 번째 선택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6년 초 협상 개시를 선언했던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두고 한 말이다. 대북송금특검법 수용, 이라크 파병, 대연정 제안에 이어 “노무현은 매국노”(양문석)란 비난까지 받았던 일이다. 보수의 어젠다를 쥐는 바람에 지금도 진보 진영에서 비판을 받는 결행이었다. 여론도 최악이었다. 쌀 수입개방을 반대하는 농민대회에서 경찰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농민 두 명이 사망했다. 그래도 “FTA를 회피하기는 어렵다. 낙오를 면하려면 뛰어들어야 한다. 우리 국민의 역량을 믿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다 이루어 낸 우리의 현대사를 볼 때 국민이 FTA에 내포된 위험과 불확실성을 감당해 갈 수 있다고 믿었다”(사후 자서전 ‘운명이다’)고 했다.
그에겐 의지만이 아니라 사실 판단의 문제였다. “개방과 관련된 진보주의자들의 주장은 사실로 증명되지 않은 것이 많았다. 예컨대 1980년대 초반 ‘외채망국론’이 있었다…사실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주장하는 것은 공부하는 사람은 물론 정치하는 사람들의 자세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미FTA가 발효된 2012년 이후 양국 간 경제 관계만 아니라 외교안보까지 동맹 확장의 성과를 놓고 보면, 정치적 리스크를 감당하는 리더의 용기와 결단이 국가 역량에 얼마나 결정적인지를 새삼 깨닫게 한다. 좌건 우건, 정치 노선 전환은 지지층에 의존한 정치공학을 과감히 버릴 때 가능한 일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기 체제에 들어서자 ‘중도확장론’을 펴고 있다. 일극체제를 완성했으니 이제 수권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중도층 유권자를 겨냥한 중원 전쟁에 달려들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주력하는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층)’ 외연 확장과 경쟁에서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 보수의 대표 브랜드인 ‘성장’도 마다 않을 태세다. ‘먹사니즘’에 상속세·종부세 완화 등 세제개편 카드도 꺼내 들었다. 소속 의원들은 민생·경제 관련 연구 모임을 만들어 입법활동으로 연결하고 있다. 겉으로만 보면, 재판 리스크만 빼놓고는 집권 플랜이라도 가동되는 것으로 여겨질 정도다. 1일 한 대표와 양자 회담에서 민생 공통 공약 추진을 위한 협의 기구 구성을 합의한 것도 그런 차원이란 생각이 들게 한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모순과 충돌의 잉태가 보인다. 상속세 완화의 경우 일괄공제·배우자 공제액을 상향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최고세율은 고액 자산가들에게 혜택이 집중돼 부자 감세란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는 이유로 그냥 뒀다. 종부세도 손을 보긴 하겠다는데, 정부·여당의 폐지론과 달리 1주택 소유자에 한하고 있다. 이 역시 같은 이유다. 자산 규모 증가에 따라 중산층까지 세 부담에 대한 불만이 커진다는 판단이라면, 부자 감세 프레임을 버려야 하는데도 여전히 지지층 눈치가 먼저다. 정부의 세제개편안이 나오자, 기획재정위 소속 의원들이 “부자들의 세금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정부의 목표”라며 거부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성장정책이라고 해서 입 밖으로 나온 건 신재생에너지 생산·유통 인프라 확대뿐이다. 기업 정책이라곤, 울며 겨자 먹기 같은 RE100(2050년 재생전력 사용 100%)에 사활이 걸린 것처럼 압박하는 게 전부다.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에 목매달았던 것과 너무 닮았다. 성장의 동력보다 규제의 구실만 찾는다고 해도 과하지 않아 보인다. 이 대표가 곧 경제단체 수장들과 회동한다고 하는데, ‘노란봉투법’ 등에 전향적이지 않으면 요식행위에 그칠 게 뻔하다.
지지층 확장은 강성 팬덤에 의존적인 정치 행태와 결별하는 과정, 치열한 자기 부정을 통해 가능하다. 윤석열 정부의 끝장을 보겠다는 개딸에 의지해 영향력을 유지하고 그 권력에 취해 있는 한, 중도확장이란 기치는 유권자 기만이 될 공산이 크다. 구호만이 아닌 성과를 내야 거대 야당 수장의 실질적인 정치 위상과 힘을 갖는다. 이번 정기국회가 최대 시험대다. ‘노무현의 결단’ 수준은 기대하지도 않는다. ‘거부권 유발당’ ‘탄핵 남발당’으로 고착되지 않을, 누구나 수긍할 입법 실적이 나오기를 바랄 뿐이다. 그게 제 살기에 급급해 정치공학의 주판알만 튕긴 리더로 판명 나지 않는 길일 것이다.⊙
09-30 윤·한 불화 자충수와 ‘김 여사 뇌관’
20년 의리 이젠 정적 혼돈 지경
권력 유지와 차별화 본능 충돌
정권 재창출 경험칙 안 통할 판
尹은 민의와 당 통제 오판 말고
韓은 김 여사 블랙홀 역지사지
자충수 없어야 후반 국정 동력
참 박절(迫切)한 사이가 됐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동일체와 규율이 강조되는 집단에서 20여 년 다져진 의리 관계였다.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으로 출발점에 함께 선 지 2년5개월 지난 지금은 피아 구분이 안 되는 지경이다. 지난 24일 만찬, 독대 불발이 보여준 모습이다.
윤 대통령 대선 출마 선언을 시점으로 정치 경력이 3년2개월 남짓하다. 한 대표는 비상대책위원장 시절부터 따지면 9개월가량이다. 역대 정권 중 가장 짧은 정치 경력의 당·대 관계다. 관록과 정치력이 비례 관계인 것은 아니다. 그렇다 한들 탈(脫)청와대, 탈여의도의 신선한 정치 문법을 보여줬다면 ‘권위적 대통령’ ‘여의도 사투리에 당한 당 대표’에 이르진 않았을 것이다. 상식적인 정서와 표현 대신 거친 말과 감정 표출이 앞섰다. 친윤-친한 진영까지 불신의 신호들이 거침없이 표출된다. “뺨 한 대 때리고 싶은 심정” “참으로 속 좁고 교활”. 언론에 쏴붙인 게 이 정도이니, 사석에선 얼마나 원색적인 비방전이 난무하고 있겠는가.
물론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권력 지향이 나란히 가는 직선도로가 아니다. 정권 재창출이란 이정표를 찾아가도 방식이 달라 곳곳에 교차로가 놓여 있기 마련이다. 더욱이 여당 대표가 차기 대선 주자라면 더 많은 갈림길과 이면도로를 거쳐야 한다. 대통령은 권력 유지의 선천적 본능, 여당 대표는 차별화의 후천적 본능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노태우-김영삼, 김대중-노무현, 이명박-박근혜의 조합도 그 파란을 겪었다. 정해진 성공의 공식은 없다. 공멸 위기의 앞에 서서야 양보의 대타협이 가능했다는 경험칙뿐이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보여주는 갈등 전개 과정은 그 경험칙조차 무용일 것 같은 수위다. 김건희 여사 문제가 빅뱅의 뇌관이다.
윤 대통령은 오는 11월이면 임기 반환점을 돈다. 지난 4월 총선에서 당선된 국회의원들의 임기는 2028년 5월까지로, 1년 앞서 퇴임하는 윤 대통령은 그들의 공천에 영향력을 미칠 수 없다. 친윤도 오랜 정치 여정 속에 위계가 형성돼 있는 계보와 다르다. 현 정부 출범 후 여당의 수장이 8번이나 바뀌었는데, ‘1호 당원’의 위세와 집권당 통제력은 거기까지다. 레임덕은 잔여 임기와 큰 상관성이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임기를 2년 가까이 남겨둔 2016년 4월 총선 패배 때부터 레임덕이었다는 게 정설이다. 탄핵 수모를 겪은 배경 중 하나다. 윤 대통령은 “인기가 없어도”라며 개혁을 강조하지만, 여당보다 지지율이 낮은 대통령이 여당을 도외시한 채 여론 동력에 기대려는 것은 무모하고, 무책임한 일이다.
한 대표의 경우, 대권 가도에 들어섰다고 치면 중반전인데 그만의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 여당의 어려운 상황에 윤 대통령 탓이 크다고 생각하는 측면을 이해할 수 있다. 그 불화의 시작과 끝이 김 여사라는 것도 모두가 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김 여사와 거리 두기 실패가 고착된 상수 같다면, 뇌관을 해체할 적임자는 그 관계를 가장 잘 아는 20여 년 동반의 한 대표밖에 없다. 김 여사의 공개 사과 요구 등에서 보여온 한 대표의 방식은, 너무나 상투적인 여론 앞세우기였다. 채상병특검법 대응도, 김경수 복권 반대 문제도 그러했다. 가장 잘 알 만한 사람이 가장 남처럼 들이대면, 그보다 화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진정성 없이 다른 속내로만 보일 건 당연하지 않은가. ‘국민 눈높이’도 도그마가 돼선 안 된다. 그 방식으론 김영삼-이회창, 노무현-정동영, 박근혜-김무성이 실패한 길을 다시 밟게 된다.
두 사람의 정치 입문 출사표를 다시 읽었다. “상식을 무기로, 공정의 가치를 다시 세워 정의로움을 일상에서 느낄 수 있게 하겠다. 분노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다.”(2021년 6월 29일 대선 출마 선언) “소수당이지만 대통령을 보유한, 정책의 집행을 맡은 정부·여당이다. 정교하고 박력 있는 리더십이 국민 지지를 만날 때 국민 삶이 좋아진다.”(2023년 12월 비상대책위원장 취임사) 당·대 관계의 기로다. 삐걱만 해도 수렁에 빠질 듯한 긴장이 휘감고 있다. 권력 내부의 분화는 지지층의 분열이다. 서로 역지사지해야 한다. 오판으로, 못난 여권 탓에 잘못한 야당 문책이 묻혀버리는 자충수를 더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10-23 최종현이 예견한 나라의 위기들
한국고등교육재단 50년 역사
선대회장의 人才報國 재조명
“물려줄 재산은 지적 재산”
경제대국 기대는 성취했지만
지적 역량 부족하고 정치 캄캄
21세기형 인재육성 혜안 절실
“내가 물려주고 싶은 재산은 물적 재산이 아니라 지적 재산이다. 지식이 있으면 재물은 따라온다. 지식 없이 재물만 있다면 그 재물은 오히려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 SK 선대회장 최종현(1929∼1998)의 말이다. 장남 최태원 SK 회장은 아버지의 1주기 추모식 때 “선친은 지식의 필요성을 가르쳐주셨다”며 이를 되새겼다. 차남 최재원 SK 수석부회장은 “아버지는 저녁 자리에서 토론하는 것을 무척 좋아하셨다. ‘저 집안이 이상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늦은 밤까지 계속될 때가 많았다”고 어린 시절 얘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수학, 과학부터 사회문제까지 죄다 나왔다. 아파트만 짓는 건 문제 아니냐, 왜 디지털이 더 좋은 것이냐. 당신의 철학,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도 말씀해주셨다.” 최종현이 사업보국(事業報國)과 더불어, 인재보국(人才報國)의 길을 닦았던 이유를 짐작하게 하는 일화들이다.
최종현은 “나무를 키우듯 인재를 키워야 한다”더니 나무부터 시작했다. 1972년 서해개발(현 SK 임업)을 설립했는데, “나는 땅 장사꾼이 아니다”며 수도권에서 먼 황무지들만 사들여 호두·자작나무 등을 심었다. “그 나무들이 자라 30∼40년 후 거목이 되고 하루에 1원씩만 벌어주면 세계적 대학을 세울 수 있겠다”고 했다. 그 숲이 현재 남산의 40배다. 나무가 돈이 될 때까진 기다려야 하니 1974년에 사재를 들여 인재림(人才林),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세웠다. 국비 유학보다 3년이나 앞섰던 장학생 선발의 파격적인 조건이 화제였다. 염재호 태재대 총장(전 고려대 총장)은 “아무런 조건 없이 등록금과 5년 동안 생활비를 보장해줬다. 이상한 종교단체나 중앙정보부에서 지원해 주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까지 했다”고 한다. “장학생 한 명이 박사 학위를 받을 때까지 지원받은 돈이 당시 선경 신입사원 25년 치 봉급이었다.”(김용학 전 연세대 총장) 지금까지 국내외 5000여 명의 장학생을 지원했고, 100명 배출이 목표였던 박사는 1000명을 바라본다. “기업 경영에서 첫째도 인간, 둘째도 인간, 셋째도 인간이다” “능력을 키워주는 방법은 책임을 지우는 길이 제일 빠르다. 책임 없는 간부는 자라지 않는다” 등의 어록과 함께 등장하는 ‘인재경영’ ‘지식경영’은 “내 일생의 80%는 인재를 모으고 기르고 육성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는 한마디로 설명될 듯하다.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지만, 인재 육성은 물적 자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고등교육재단 설립 때의 혜안이 놀랍다. “우리나라가 지금은 변방의 후진국이지만 인재양성 100년 계획에 따라 고도의 지식사업사회를 목표로 일등 국가, 일류 국민으로 발전해 나가면 기필코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원 빈국에 자본주의 경험도 일천한 이 나라는 그때쯤이면 지적 역량이 모자라 발전이 더딜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세계적 학자를 키워야 한다”고 했다. 그의 기대와 우려는 50년이 지났을 뿐인 지금, 현실이 되고 있다. 그새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156배로 늘었고, 34위였던 세계 순위도 11∼14위를 오가는 경제 대국이 됐다. 노벨 문학상까지 받았으니 국가 위상도 상전벽해다. 하지만 의대 열풍 앞에 ‘과학기술입국’은 빛이 바래고, 인재난을 걱정하는 처지다. 초저출생·고령화의 인구 구조 변화로 잠재성장률이 급락해 실제 ‘끓는 냄비 속 개구리’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를 해결해야 할 정치 리더십은 진영 양극화로 국가적 과제에 대한 숙의와 이행에 되레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21세기에는 정치논리를 극소화하고, 경제논리와 조화시켜 나가느냐에 한국 기업의 앞날이 달려 있다”(1999년)는 경고마저 여전히 유효한 현실이다.
고등교육재단은 다음 달 26일 창립 50주년 행사를 갖는다. 최태원 회장은 이와 관련한 간담회에서 “현대 사회가 원하는 인재가 바뀌었다고 본다”고 했다. “문제를 발굴하고, 협업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토털 솔루션을 내놓는 사람이 인재다” “변화가 빨라서 어떻게 예상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빠르게 잘 대처하느냐가 중요한 시대” “이 역시 가설이고,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인재보국만이 아니라 사업보국(유산의 그늘까지도)에 대한 고민으로도 읽혔다. 산업계 전반의 고민이자, 우리 사회의 숙제일 것이다.⊙
11-18 ‘이재명 신기루’ 걷히기 시작했다
선거법 1심 판결로 최대 위기
정권교체 구세주 위상 치명타
탄핵 동력 삼은 조기 대선 난망
겁박 정치 강화해도 본질 불변
언제까지 방탄 전횡 봐야 하나
민심 법정이 더 가혹 판결할 것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정치 인생에서 가장 가파른 벼랑에 몰렸다. 지난 15일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1심 선고에서 의원직 상실은 물론 대선 출마까지 봉쇄될 수 있는 유죄 판결을 받았다. 오는 25일 위증교사 사건 판결 역시 유죄 관측이 다수다. 초조할 터인데, 정작 그는 태연하게 일정을 소화하면서 초강경 메시지를 내고 있다. 이번에도 역경 속에서 다져진 생존력을 믿고 있을 것이다. “나는 겁이 없다. 어지간한 일에는 눈도 깜빡하지 않는다”는 자술, “재명이는 기가 잘 죽지 않은 애였어요”라는 형의 증언만으로도 짐작됐던 일이다. 대선 패배자임에도 일극 체제를 만든 정치력을 다시 믿고 있을 것이다. 선고 이튿날 “이재명은 결코 죽지 않는다”고 외친 것도,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呪文)일 것이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에도 흔들릴 가능성은 전혀 없다”(정성호 의원)던 측근 말에 기댈 상황이 아닌 듯하다. 집행유예라면 괜찮고, 벌금형에 그치면 더욱 좋다던 분위기가 아니다. 이 대표의 생존력을 떠받쳤던 근원적 원동력이 흔들려서다. 그 진영의 집권, 정권 교체의 구원자란 위상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여태껏 4개 재판 관문의 서슬이 퍼런데도 믿는 구석이 그거였다. 거기에 기반한 정치공학이 백가쟁명을 이뤘고, 재판들의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목표를 달성하는 최상 계책이 조기 대선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결단을 압박하는 탄핵소추의 단계적 추진과 임기 단축 개헌론이 핵심이다. 탄핵정국 직진은 국민적 상처를 건드려야 하는 부담이 크고, 법 절차와 민심에 변수가 많다. 그러니 탄핵을 고리로 삼되, 최종 탄착점은 대통령의 개헌 수용이어야 한다. 2026년 6월 3일 지방선거 전에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하고,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지방선거 때 함께 실시하자는 주장이 퍼졌다. 헌법 전문 개정과 임기 4년의 중임제 도입은 거기에 끼워 넣은 명분이었다. 이 대표가 서울 한복판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겨냥해 대놓고 “끌어내려야 한다”고 외치면서도 “나는 탄핵이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하는 초현실적 기만은 그런 공학적 계산에서 나온 전술이었다. 야당 의원들의 ‘윤석열 탄핵 국회의원연대’에 선을 긋는 것도, 느닷없이 집권플랜 본부를 출범한 것도 그런 연유였다.
이제는 무망(無望)한 시나리오다. 김민석 최고위원은 1심 판결이 난 뒤에도 “정치검찰과의 싸움은 탄핵이든 개헌이든 하야든 정권 교체라는 큰 흐름 속에 위치한 것”이라고 힘을 줬으나, 민주당만 빨라진 대선 시계가 제대로 돌아가긴 글렀다. 다음 대선(2027년 3월 3일)은 2년 3개월이나 넘게 남았다. 선거법 위반 사건의 2·3심이 법대로 각 ‘3개월 이내’에는 아니더라도, 1년 6개월 뒤인 지방선거까지는 끝날 공산이 매우 크다. 위증교사 사건 재판도 마찬가지다. 혹여 향후 재판에서 대반전이 일어난다고 해도, 또다시 뒤집힐 수도 있다는 지지층의 불안증은 더욱 커질 것이다. 전망의 혼재가 분열을 낳으면서, 새 리더십을 도모하는 파괴적 과정이 뒤따르는 게 정치 생리다. 지금이야 단단하게 눈앞에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서서히 걷히는 ‘이재명 신기루’의 서막일 수 있는 것이다. ‘붉은 신기루(red mirage)’가 사라져 재집권에 성공한 트럼프 모델은 먼 나라 얘기다. ‘대통령 재임 중 행위’에 대해 형사상 면책 특권을 지렛대로 회생한 것도 개인적 사건이 전부인 이 대표에겐 참조할 거리가 못 된다.
예의 물리적·정치적 겁박의 강도를 높인다고 해서 본질적 흐름이 바뀌지 않는다. 그럴수록 권력 유지에 전전긍긍하는 옹색함만 도드라질 것이다. 더구나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바닥 수준이라지만, 이탈한 민심이 이 대표와 민주당으로 흡수되지 않은 비동조화가 더욱 역력해지는 국면이지 않은가. 이 대표가 말하는 ‘현실의 법정’보다 더 먼저 ‘민심의 법정’이 가혹한 판결을 내릴지 모른다. 언제까지 민주당을 방탄 감옥에 가둘 셈인가. 4개 재판 1·2·3심 선고가 이뤄질 때마다 매번 무죄 탄원서를 받고 주말마다 도심에서 규탄집회를 열 참인가. 협박과 보복을 위해 삼권분립이 무시되고 다수 전횡이 능사가 되는 일을 얼마나 더 인내해야 하는가. 좌우를 떠나 이 나라의 상식인들이 이 대표와 민주당에 묻고 있다.⊙
12-11 무너진 보수 품격과 尹의 마지막 책무
위헌·위법적 계엄 사태 후폭풍
보수 가치 붕괴, 진영 위기 불러
법적 책임만큼 큰 정치적 책임
신뢰 붕괴 ‘질서 속 퇴진’ 난항
하야·탄핵 경로 스스로 결단을
여당 내분 막고 책임져야 도리
한국 보수주의의 사상적 빈곤을 모르지 않는다. 공화제로 이행한 경험이 서구와 다른 까닭이 크다. 그럼에도 굴곡진 역사 속에서 구해낸 보수의 유산적 가치들이 있다. 자유, 법치, 시장경제, 점진적 개혁, 도덕과 윤리, 생명과 가족, 애국심, 공동선, 자기 절제와 의무감 등이다. 18세기 영국의 근대 보수주의 시원이라는 에드먼드 버크가 강조했던 정치 주체의 훈육 요건을 현대 보수 정치인의 덕성으로 환치하면 이런 것이다. “대중의 눈으로 감사를 받는 것에 익숙하고, 여론에 주의를 기울이고, 지혜로운 사람들의 경의와 관심을 끌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명예와 의무가 중요할 때 위험은 무시하고, 어떤 잘못도 처벌 없이 넘어가지 않고, 사소한 실수라도 파멸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조심성과 신중함이 있고, 조화로움의 미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년 반 전에 취임식에서 한국 민주주의 위기의 원인으로 반(反)지성주의를 지목하고, “조정과 타협, 과학과 진실이 전제된 정치”를 약속했을 때만 해도 그런 ‘보수의 품격’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가 강조했던 합리와 지성주의는 대통령실·관사 이전부터 흔들렸다. 지혜로운 사람보다 극단의 학자·역술인과 유튜브 방송을 더 경청했고, 정치 브로커에 휘둘렸다. 부인의 ‘사소한 잘못’도 단죄하는 제가(齊家)의 의무감이 없었고, ‘위법한 게 무엇이냐’는 항변에는 진실을 숨겼다.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고 했지만, 지지율이 52%(2022년 5월 1주, 한국갤럽)에서 13%(2024년 12월 1주)로 추락할 때까지 부적절한 처신과 오류를 인정하지 않았다. ‘의대 증원 2000명’엔 과학이 없었고, 참모들이 반대 의견을 낼 때마다 조정이 아닌 ‘버럭’의 독선이 들려왔다.
급기야, 지난 3일 야밤에 비상계엄 선포로 악몽 같은 ‘군홧발과 총부리’를 전 국민이, 전 세계가 생생하게 지켜보게 했다. 국무위원들의 반대에도 파멸적 결과를 경계하는 신중함과 자기 절제가 없었다. “대통령으로서 절박함”이라고 했으나 자유·법치쯤은 국가 원수의 권력으로 누를 수 있다는 오만과 오판에 젖어 있었다. “오죽했으면 그랬겠냐”는 항변도 부정선거의 증거를 찾겠다고 중앙선관위를 급습했던 사실로 설득력을 잃었다. ‘처절한 도박’(가디언), ‘굴욕적인 실패’(포린폴리시)란 비판은 그렇다 쳐도, 일당 지배 중국의 관영 매체가 ‘서울의 겨울, 6시간 계엄령 희극’이라고 해대는 조롱까지 들어야 했는가.
윤 대통령은 “법적·정치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고 했다. 위헌·위법 행위의 법률적 책임은 당국 수사와 탄핵소추 여부로 가닥이 잡힐 문제다. 그보다 더 오래 씻지 못할 오류는 보수의 품격을 무너뜨린 정치적 책임이다. “국민이 국력과 체제에서 긍지를 느낄 수 있을 때, 또 전통적인 유산이 구심점으로 작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보수주의가 힘을 얻는다.”(강정인 서강대 명예교수) 그 토대가 무너지고 있다. 군사정권의 잔영을 씻어내려 숱한 모욕을 견디고 다진 보수 가치가 허물어져 간다. 한국을 이끌었던 두 가지 축, 산업화와 민주화에서 보수가 자부심을 가졌던 공적마저 왈가왈부할 정도로 진영의 위기를 불렀다.
품격을 잃으면 신뢰가 붕괴한다. “당에 일임하겠다”던 ‘질서 있는 퇴진’이 벽에 막힌 건 그 때문이다. 이제 당에 맡길 게 아니다. 자진사퇴를 하든, 아니면 탄핵소추를 자청해 법적 소명에 나서든 윤 대통령이 결단하고, 탈당까지 선언해야 한다. 당이 결정하면 어떤 경로에서도 책임 공방이 거세게 일고, 내분의 2차 후폭풍에 휩싸일 게 분명하다. 하야로 60일 이내 대선을 치르거나, 탄핵안 가결로 90(박근혜 전례)∼180일(헌법재판소법)의 심리 결과에 따른 정국이 전개되거나, 유불리를 저울질하는 정치공학은 이 시점에 보수다운 방식이 아니다. 설령 정권을 내주더라도 그 후과를 윤 대통령이 홀로 짊어지겠단 의지를 보여야 한다. 국민을 존중하지 않은 데 ‘속죄하는 대통령’, 보수의 품격을 무너뜨린 데 ‘참회하는 정치인’으로서의 도리다. 그게 조기 대선으로 5개 재판의 죗값을 일시에 무마할 수 있다고 들떠 있는 ‘이재명의 민주당’을 미몽에서 깨우는 길이다. 그게 보수 공멸을 막는 최소 요건이자 윤 대통령의 마지막 책무다.⊙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