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종로문화재단대표 조선일보 2024
06.28
[301] 달 뒷면에서 흙 퍼온들

▲일러스트=김성규
“태산은 하찮은 흙이라도 마다하지 않아 그 크기를 이뤘고, 하천과 바다는 가느다란 물줄기라도 물리치지 않아 결국 그 깊이를 만들었다(泰山不讓土壤,故能成其大. 河海不擇細流,故能就其深)”는 유명한 간언이 있다.
진(秦)나라가 전국시대를 마감하고 중국 전역을 통일하기 직전이었다. 나중의 진시황(秦始皇)인 당시 임금 영정(嬴政)은 외국인을 쫓아내려는 축객령(逐客令)을 발동했다. 첩자라고 의심받는 다른 국가 인재들을 추방한다는 내용이었다.
훗날 영정을 도와 최초의 통일을 이루는 인물 이사(李斯)가 글을 썼다. ‘축객의 명령을 간함’이라는 간축객서(諫逐客書)라는 제목의 문장에 위 구절을 실었다. 남의 것을 받아들여야 자신이 클 수 있다는 포용의 정신을 촉구한 글이다.
이로써 탄생하는 유명한 성어가 작은 물줄기라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뜻의 불택세류(不擇細流)다. 아울러 바다는 숱한 물줄기를 다 받아들인다는 새김인 해납백천(海納百川) 등의 성어도 나왔다. 드넓은 포용성을 상찬하는 말들이다.
나와 같지 않은 남, 즉 이기(異己)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의 사유다. 남을 감싸안는 도량(度量)의 크고 넓음을 따지는 일이기도 하다. 진시황은 이사의 이 간언을 받아들여 ‘축객령’을 거둬들임으로써 마침내 통일의 대업을 이룬다.
요즘 중국은 이런 도량에서 옛 중국만 못하다. 국가안전법 등을 내세워 외국인들을 옥죄기에 분주하다. 중국에 투자했던 외국 기업들은 그래서 줄줄이 중국으로부터 탈출 중이다. 부유한 중국인들마저도 그 행렬에 섞여드니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이제는 외국인을 찔러버리라는 명령인 ‘자객령(刺客令)’이라도 발동한 것일까. 중국 여행 중이던 미국인이 칼에 찔려 넘어지고 일본인들도 피해를 입는다. 이런 협량(狹量)이라면 달 뒷면에서 우주선으로 흙을 날라 온다고 한들 그 위상이 태산처럼 크고 의젓해질 리 만무하다.⊙
[302] 올해 중국은 또 물난리

▲일러스트=이진영
물과 불은 삶의 필수 요소이기는 하지만 넘칠 때가 문제다. 한자 세계에서는 지나치게 많은 물과 거센 불길을 곧 재난(災難)의 동의어로 쓸 때가 있다. 우선 ‘재난’의 앞 글자는 물과 불이 겹쳐 있는 모양새다.
시냇물을 일컫는 ‘천(巛)’이라는 글자 요소에 불이라는 ‘화(火)’가 붙어 있다. 물난리, 지독한 가뭄이나 전란(戰亂)의 참화 등을 함께 일컫는 글자다. 깊은 물, 뜨거운 불을 가리키는 수심화열(水深火熱)이나 도탄(塗炭)이 관련 표현이다.
요즘 장마철이다. 그러나 내리는 비가 마구 넘쳐 재앙을 이루는 중국 남부 상황이 심상찮다. 하천 유역이 대부분 재난 현장으로 변했다. 그런 물난리는 보통 홍수(洪水)나 홍류(洪流)로 적는다. 그저 큰물이라는 뜻의 대수(大水)라고도 한다.
중국에선 특히 홍로(洪澇)라는 단어를 잘 쓴다. 다른 곳에서 밀려 들어오는 물이 대지를 덮을 때가 ‘홍’, 현지에 내린 빗물이 땅을 삼킬 때가 ‘로’란다. 대형 수재(水災)가 발생해 불행이 잦았던 곳이라 큰물을 구분하는 개념도 발달한 듯하다.
통계에 따르면 기원전 206년부터 새 중국이 들어선 1949년까지 2155년 동안 발생한 수해(水害)는 모두 1029회로 약 2년에 한 번꼴이다. 최근 들어서도 2021년과 2023년 대형 물난리가 나 막심한 피해를 보았다.
하늘에서 마구 내리는 비는 천재(天災)다. 자연의 기상 조건이 부르는 재난이다. 그러나 댐 수위를 제때 조절하지 못한다거나, 예상한 폭우에 지하도 침수를 방치하는 등의 재난도 따른다. 사람이 부르는 재앙, 곧 인재(人災)다.
중국은 곧잘 그 둘을 동렬에 놓는다. 천재인화(天災人禍)라는 성어 표현이 그렇다. 지난해에는 통치자의 업적을 보호하기 위해 엉뚱한 곳을 물에 잠기게 한 일도 벌어져 화제였다. ‘권력형 홍수’가 올해는 없을지 관심거리다.⊙
[303] 재난으로 나라를 키운다는 사고방식

▲일러스트=이진영
중국 제2, 세계 제5의 강줄기는 황하(黃河)다. 그 중·하류는 물이 모래나 흙을 많이 품고 있어 토양의 퇴적이 쉬워 강바닥인 하상(河床)이 높아지며 잦은 범람을 불렀다. 따라서 문명의 젖줄인 동시에 대규모 재난을 함께 불렀던 곳이다.
물줄기 따라 퇴적된 무른 토양 때문에 농경(農耕)이 상대적으로 쉬웠고, 그에 따른 인구의 밀집(密集)도 빨랐던 지역이다. 그로써 국가에 준(準)하는 정치권력의 출범이 순조로워 중국 초기 문명은 이곳에서 일찌감치 모습을 드러냈다.
‘중원(中原)’으로도 지칭했던 이 황하 중·하류 지역은 대규모 수재(水災)가 빈발해 정치권력은 일찍이 대중을 동원해 치수(治水)를 벌여야 했다. 재난에 대응코자 인력을 조직하고 동원하는 통치(統治)의 기술이 따라서 발달했다.
그런 인문적인 바탕이 키워낸 정치권력의 전형적인 사유가 있다. “재난이 많아야 나라가 흥성할 수 있다”는 사고다. ‘다난흥방(多難興邦)’이라는 성어로 일찍 자리를 잡았다. 춘추시대의 말이니 적어도 2500년 이상 묵은 사고방식이다.
때로는 그 앞에 “깊은 위기의식이 지혜를 낳는다(殷憂啟聖)”는 말을 덧대기도 한다. 위기의식을 부추기는 말이다. 병렬한 두 성어는 위기를 함께 극복해 나라를 키워보자는 장려다. 그러나 모두 다 통치자의 입맛에 맞춘 ‘중앙집권’의 논리다.
실제 ‘다난흥방’이라는 성어는 현대의 중국 통치자인 공산당 권력자들도 즐겨 쓴다. 공산당이 모든 것을 이끌어가는 철저한 중앙집권의 통치 형태에서는 꺼내기 쉬운 말이다. 그러나 통치에 복속하는 다중의 고난에는 둔감하다.
‘다난’과 ‘흥방’ 사이에는 사실 한 단어가 빠졌다. 대중을 괴롭히는 ‘학민(虐民)’이다. 위기의식을 고양해 재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백성은 늘 괴롭다. 올해도 악몽처럼 펼쳐진 ‘다난’에서 공산당은 또 ‘흥방’만을 내세울까.⊙
[304] 시름 가득한 올해 長江

▲일러스트=김성규
“심양강 강가에서 밤에 손님을 보내며(潯陽江頭夜送客)…”라고 시작하는 백거이의 명시가 있다. 벼슬살이서 좌천한 시인의 심경과 시골에 묻혀 살아가는 퇴기(退妓)의 곡절이 어울려 큰 감명을 주는 장시(長詩) ‘비파행(琵琶行)’이다.
명시 ‘비파행’의 정감 세계가 잔잔하게 펼쳐지는 무대 ‘심양강’은 중국 최장의 하천이자, 세계 제3의 강줄기인 장강(長江)의 한 구간이다. 6300여㎞의 길이, 유역 면적 180만㎢에 이르는 거대한 강인지라 구간별 별칭도 많다.
발원지에 해당하는 서쪽 첫 구간의 이름은 금사강(金沙江)이다. 금빛 모래가 많아 얻은 이름이라고 한다. 서쪽 고원에서 발원해 쓰촨(四川)까지 닿는다. 다음 구간은 천강(川江)이다. 쓰촨을 지나 동쪽인 후베이(湖北)에 이른다.
이 중간에는 절경이 펼쳐지는 삼협(三峽)이 있어 그 구간을 별도로 협강(峽江)이라 부르기도 한다. 후베이에서 후난(湖南)으로 이어지는 수역의 별칭은 형강(荊江)이다. ‘삼국지(三國志)’의 핵심 무대인 형주(荊州)로 인해 얻은 이름이다.
그곳을 지나 더 동쪽으로 흘러 장시(江西)에 이르면 위의 심양강 권역이 펼쳐진다. 이곳에서는 수많은 지류(支流)가 장강 간류(幹流)에 흘러들어 구파(九派)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기서 아홉(九)이란 수치는 ‘아주 많은’의 뜻이다.
다시 더 동쪽으로는 안후이(安徽) 지역인데, 춘추전국시대 권역 명칭을 따라 초강(楚江)으로 부른다. 그다음이 유명한 양자강(揚子江)이다. 장쑤(江蘇) 양저우(揚州)의 지명으로 얻은 별칭이다. ‘양자강’은 때로 장강 전체를 일컫는다.
동쪽으로 흐르는 강에 제가 품은 슬픔을 떠내려 보낸다는 부저동류(付諸東流)의 민간 심사가 발달한 중국이다. 중국 장강 전역의 큰 홍수로 올해도 수많은 중국인들의 시름이 떠내려간다. 동류하는 장강의 물엔 빗물 반, 한숨 반이다.⊙
[305] 파국에 접어든 중국

▲일러스트=김성규
당국(當局)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 우리 공무원들은 늘 긴장한다. 행정 당국의 어떤 실수나 권한의 남용을 지적하는 내용이 자주 따르기 때문이다. 이 단어는 권한을 위임받아 뭔가를 직접 집행하는 정부 기관을 곧잘 지칭한다.
그러나 중국 쓰임에 있어서 이 단어는 ‘게임’과 더 관련이 깊다. ‘국(局)’이 바둑이나 장기 등 게임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아서다. 이세돌과 인공지능의 승부가 펼쳐진 바둑 대결을 우리는 세기적인 대국(對局)으로 치부하며 지켜본 적이 있다.
게임의 승패가 펼쳐지는 상황을 국면(局面)이라거나 형국(形局), 국세(局勢)라고 한다. 승부가 갈리지 않고 비슷하게 드러나면 화국(和局)이나 평국(平局)이다. 서로 대치하면 강국(僵局),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면 난국(難局)이다.
파국(破局)이라는 단어의 쓰임에서 중국은 우리와 미묘한 듯 보이지만 제법 큰 차이를 드러낸다. 우리는 이 단어를 ‘어떤 일이나 사태가 결딴남’ 정도의 뜻으로 푼다. 그러나 중국의 ‘파국’은 새로운 시작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인들은 잔뜩 꼬여버린 상황에서 유리한 국면[局]으로의 전환[破]을 시도한다는 의미로 이 단어를 쓰곤 한다. 적극적인 상황 타개, 변수(變數)를 능동적으로 활용하려는 게임 주도자의 노련하며 전략적인 입장이다.
미국과의 관계 악화에 대응하는 중국의 ‘파국’ 움직임이 분주하다. 최근에는 공산당 최고 회의를 열어 ‘생산력의 질적인 향상(新質生産力)’ 등의 방침을 확정했다. 게임의 요소를 읽어 위기에 대비하려는 중국의 속성이 눈에 띈다.
그러나 그 효과가 긍정적이리라고 보는 사람은 적다. ‘1인 권력’의 시스템이 견고해지면서 효율적인 의사 조정이 잘 이뤄지지 않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향후 중국 공산당이 맞이할 결국(結局)이 싸움에서 지는 상황, 즉 패국(敗局)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꽤 많다.⊙
[306] 바람 불면 냉큼 눕는 풀

▲일러스트=박상훈
은 바람이 불어오면 금세 눕는다. 바람의 영향이야 그저 풀에만 미치지 않겠지만, 바람을 좇아 가장 먼저 눕는 풀 모습은 사람의 시선을 제법 끈 듯하다. 공자(孔子)의 ‘논어(論語)’에도 이는 일찌감치 등장한다.
군자(君子)의 덕을 바람에, 소인(小人)의 모습을 풀에 비유했다. 초언풍종(草偃風從)이라는 어구다. 바람 따라 풀이 누워버리는 현상을 유가(儒家) 지향의 가치에 견줬다. 그러나 ‘바람과 풀’은 그런 도덕적 취향에 국한되지 않는다.
풍미(風靡)는 우리도 잘 쓰는 단어다. 바람이 향하는 곳으로 풀이 죄다 눕는 현상을 가리킨다. 어떤 것이 큰 세력을 이뤄 휩쓸고 다니는 현상을 그렸다. 세찬 바람처럼 커다란 유행(流行)을 이루는 무언가를 지칭한다.
거세게 부는 바람에도 잘 버티는 풀을 묘사한 성어도 있다. 질풍경초(疾風勁草)다. 제아무리 센 바람이 불어닥쳐도 꿋꿋하게 잘 견디는 풀이다. 고난과 역경을 이기면서 뜻을 이루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나 실제 자연현상과는 거리가 있다.
바람에 얼른 눕는 풀은 중국인들의 오랜 관찰 거리다. 중국인들이 요즘도 즐겨 쓰는 말은 ‘담벼락 위에 자란 풀’이다. 한자로는 장두초(墻頭草)라고 적는다. 담장 위에 자라나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잘 드러눕는 풀이다.
비난과 야유가 깃든 언어다. 바람을 보고 먼저 능동적으로 눕는 사람의 인성(人性)을 지적한다. 주견(主見) 없이 시세(時勢)에만 맞춰 움직이는 이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해타산에 밝은 중국인들의 집단적 심성이 어느덧 ‘장두초 문화’를 이뤘다는 지적도 있다.
요즘 당과 정부의 관료들 머리 위로 시진핑(習近平) 총서기의 바람이 거세다. 그 바람의 향배를 좇아 당과 정부의 ‘풀’들은 납작 엎드리기에만 바쁘다. 무엇을 몰고 올 바람인지, 어디로 향하는 바람인지 상관없이 그저 눕기에만 바쁘다.⊙
[307] 소식불통의 인터넷 통제

▲일러스트=이철원
뉴스(news)라는 서양 단어가 ‘신문(新聞)’이라는 한자 번역어로 자리 잡는 과정이 있었다. 중국에서 비롯했다고 보이지만, 이를 널리 활용해 정착시킨 점에서는 일본이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에서는 으뜸을 차지한다.
그에 앞서 흔하게 쓰인 말은 소식(消息)이다. 앞 글자는 소멸(消滅)이라는 단어가 말해주듯이 ‘없어지다’ ‘사라지다’의 뜻이 강하다. 뒤 글자가 궁금증을 자극한다. 이 ‘식’이라는 글자는 본디 생명체의 호흡과 관련이 있었다.
내쉬는 날숨은 호(呼), 들이마시는 들숨은 흡(吸)이다. 숨을 내고 들이는 행위가 곧 호흡(呼吸)이다. 이 호흡 한 번을 일컫는 말이 곧 ‘식’이다. 달리 기식(氣息)이라고도 한다. 깊은 호흡은 탄식(歎息)이나 태식(太息), 장식(長息)이다.
이 글자는 호흡이라는 바탕에서 ‘나서 자라다’라는 생장(生長)의 뜻까지 얻는다. 그 맥락에서 휴식(休息)과 안식(安息)이라는 단어도 나왔다. 아이 낳아 후대를 잇는다는 자식(子息), 본전에 붙는 이자인 이식(利息)이 같은 흐름이다.
따라서 ‘소식’은 본래 사물이 생겨났다 사라짐의 흥망(興亡)과 관련이 깊었다. 그러다가 사물과 현상에서 생겨나는 ‘변화’라는 뜻이 더 두드러져 중국 위진(魏晉) 시대 무렵에 이르러 지금의 ‘뉴스’라는 뜻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설명이 있다.
중국이 인터넷 통제를 부쩍 강화하고 있다. 인터넷 실명제라는 틀에서 이제는 휴대폰 번호로 등록하는 증명서와 아이디를 요구할 모양이다. 인터넷 글 내용의 감시 차원을 넘어 그 사람까지 직접 통제하겠다는 의도란다.
압제적 왕권에 짓눌려 사람끼리 길에서 마주쳐도 말을 나누지 못하고 눈짓만 주고받았다는 먼 옛날 ‘도로이목(道路以目)’ 사회로 돌아가는 것일까. 사람 사이 소식이 끊기고 의견 교류가 더 막혀가는 분위기다. 중국의 퇴행(退行)이 갈수록 빨라진다.⊙
[308] 화웨이 전기차의 수상한 작명

▲일러스트=김현국
계면활성(界面活性)이라는 말은 다소 어렵다. 그러나 이 단어가 비누나 합성세제의 성질을 일컫는다고 하면 한결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다른 두 물질이 직접 맞닿는 ‘계면’을 서로 섞어 그 대립적인 성질을 무너뜨리는 작용이다.
‘계(界)’는 본래 공간이나 영역의 의미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세계(世界)’라는 단어에서 ‘세’는 시간, ‘계’는 공간을 가리킨다. 우주(宇宙)라는 말에서 ‘우’는 공간, ‘주’가 시간을 지칭하는 것과 맥락이 비슷하다.
불가에서는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 개념이 ‘세’, 동서남북(東西南北)의 사방(四方)과 그 간방을 합친 팔방(八方)이 ‘계’를 이룬다고 한다. 시공(時空)의 큰 개념이지만, ‘세계’는 이제 지구촌을 일컫는 말로 굳었다.
‘계’의 초기 글자 꼴은 논이나 밭의 가장자리 표시다. 그로써 경계(境界), 변계(邊界), 한계(限界) 등의 조어로 이어진다. 나아가 일정한 영역을 표시하는 학계(學界), 교계(敎界), 욕계(欲界) 등의 숱한 단어로도 쓰인다.
중국 최대 IT 기업으로 당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화웨이(華爲)그룹이 전기자동차를 만들고 있다. 우선 문계(問界·AITO)라는 자동차다. 천하 패권의 상징이었던 세 발 솥[鼎]의 무게를 물었다는 옛 ‘문정(問鼎)’의 고사를 패러디한 명칭이다.
‘문계’는 따라서 세계 패권을 지향한다는 뜻이다. 화웨이는 이를 기점으로 ‘사계(四界)’ 시리즈를 만들고 있다. ‘문계’ ‘지계(智界)’ ‘향계(享界)’ ‘존계(尊界)’다. 세계 챔피언을 노리며 스마트함[智], 편의성[享]을 보태 최고[尊]의 경계에 오르겠다는 포부다.
‘중화의 자부심으로 일을 이루겠다[中華有爲]’는 뜻에서 취한 화웨이그룹 명칭에 어울리는 작명이다. 과도한 국가주의가 눈에 거슬리지만, 미국의 제재에 맞서려는 의지와 조바심은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름들이다.⊙
[309] 축소 지향의 중국

▲일러스트=이진영
‘황하의 죽음’이라고 옮길까. 이런 의미의 ‘하상(河殤)’이라는 제목을 달고 1980년대 중국을 열광케 한 작품이 있다. 오랜 농경(農耕) 문명의 중국을 비판적으로 성찰한 다큐멘터리다. 당시 개혁·개방의 풍조를 잘 반영했다.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쌓은 채 바깥 세계에 눈을 돌리지 못했던 중국의 오랜 문명적 퇴행성을 강하게 비판한 작품이다. 특히 대지(大地)와 대하(大河)에만 탐착하는 관행을 멈추고 해양(海洋) 문명을 배워 체제 혁신을 꾀하자는 제안도 담았다.
2003년에는 한 드라마가 인기를 끌며 새 정치 담론을 형성했다. ‘공화를 향하여(走向共和)’다. 서양이 문호를 두드리던 19세기 무렵 중국의 정치체제 모색을 다뤘다. 그러나 현대판 정치 개혁 메시지는 담아내지 못했다.
위의 둘은 개혁·개방을 이끈 덩샤오핑(鄧小平), 그의 뒤를 이어 문호를 더욱 열어젖힌 장쩌민(江澤民) 등 당대 최고 지도자의 의중을 충분히 담아낸 작품이다. 그 다음에 올라선 지도자들은 전임과는 사뭇 달랐다.
후진타오(胡錦濤)가 집정한 2007년에는 ‘대국굴기(大國崛起)’라는 다큐가 유행했다. 역시 그 시대의 새 담론으로 부상했다. 서양 열강이 세계적인 강국으로 올라서는 과정과 그 몰락을 다뤘다. 중국도 세계 패권으로 올라서겠다는 의도를 담았다.
시진핑(習近平)이 집권한 2020년에는 다큐 ‘중국(中國)’이 풍미했다. 공자(孔子) 등 과거 인물을 중심으로 제 전통의 찬란함을 강조한, 이른바 ‘국뽕’이랄 수 있는 작품이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중화주의(中華主義)의 현대 결정판에 가깝다.
해양과의 대비에서 자신의 문제를 진지하게 성찰했던 ‘하상’의 문명적 시선이 끝내는 과도한 자기중심주의로 회귀하고 말았다. 몸집은 문명을 이루지만, 그 소견은 늘 지역 패권의 음울한 국가주의에 묶인다. 덩치만 컸지 생각은 축소 지향적인 중국이다.⊙
[310] 속이 문드러진 감귤

▲일러스트=김성규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구절이 애국가에 등장한다. 여기 나오는 화려(華麗)라는 단어는 ‘아름다움’이라는 순우리말로 대체 가능하다. 앞의 글자 ‘화’는 본래 꽃을 가리켰다고 한다. 꽃의 본체, 가지 등이 함께 초기 꼴을 이룬다.
식물의 가장 빼어난 부분이 꽃일 테니, 이 글자는 애초부터 ‘아름다움’을 일컫는 의미를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아예 직접 꽃을 이르는 ‘화(花)’의 본 글자 취급을 받기도 한다. 그로부터 파생하는 단어는 퍽 풍부하다.
뛰어남을 일컫는 정화(精華), 번성해서 고운 번화(繁華), 부귀함의 영화(榮華), 고상하며 우아한 화사(華奢) 등이 있다. 또 수도의 번성함을 경화(京華), 남녀의 결혼을 첫날밤의 멋진 촛불이란 뜻의 화촉(華燭)으로 적는다.
중국인이 제 문명적 자존심을 드러내는 글자 또한 이 ‘화’다. 스스로를 중화(中華)라고 부르며, 문화적 자긍심을 섞어 자신을 화인(華人)이라고 적는다. 전설 속 왕조 이름을 덧대 화하(華夏)라는 단어로도 정체성을 표현한다.
그러나 겉과 속의 상관관계를 따져보는 시선도 일찍 등장했다. 겉은 번드르르하지만, 속이 문드러진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로써 등장하는 성어가 화이부실(華而不實)이다. 꽃은 달렸으나 열매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를 일컫는다.
중국이 ‘중화’라는 자부심을 내세울 때마다 언제부턴가 이 ‘화이부실’을 떠올린다. 명대 정치가인 유기(劉基)가 속 문드러진 감귤을 사들고 “황금이나 옥돌과도 같은 겉, 그러나 속은 썩은 솜뭉치(金玉其外, 敗絮其中)”라고 뱉은 푸념의 동의어다.
본래 겉의 치장이 늘 요란했던 중국이다. 경제의 동력이 꺼져가면서 숱한 문제가 드러나는 요즘의 중국도 딱 그 모양이다. ‘꽃’에 걸맞은 ‘열매’가 생겨나지 않으니, 중국은 늘 부실(不實)과 허위(虛僞)로 비칠 때가 많다. 중국의 오랜 문제다.⊙
[311] '개혁가(改革家)' 호칭 논란

▲일러스트=김성규
민간의 자발적 참여 병력이라는 뜻의 의용군(義勇軍)이라고 내세웠지만, 6·25전쟁 때의 중공군은 정규 병력이었다. 그들을 독전하기 위해 중국 공산당이 만든 구호가 ‘미국에 대항해 조선을 돕자’는 뜻의 항미원조(抗美援朝)다.
그러나 뒤에 다른 구호가 하나 더 있다. ‘집을 지키고 나라를 보위하자’는 뜻의 보가위국(保家衛國)이다. 전쟁 당시에는 ‘보가위국’이라는 구호가 참전한 중공군에게는 현실적 호소력이 더 높았을 듯하다.
혈연적인 유대로 강하게 묶이는 사회구조의 중국인에게 ‘집’을 지키는 일이 다른 무엇보다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항미원조’보다는 ‘보가위국’이 일반 중공군의 전의(戰意)를 더 부추기는 구호였을 것이다.
실내 공간을 가리키는 면(宀)이라는 부수에 돼지를 뜻하는 시(豕)가 보태진 글자가 ‘집 가(家)’다. 바람과 비를 가리는 공간에 먹을거리인 돼지가 함께 있는 모습이다. 농경사회의 전통을 이어온 중국에서 이 집은 특별하다.
집에서 국가로 이어지는 ‘가국(家國) 관념’이 일찍 숙성했던 중국이다. 그 ‘가’로써 중국인은 제 사회적 정체성을 내세운다. 집안을 이뤄 생계를 이어간다는 뜻의 성어 성가입업(成家立業)은 중국에서 아예 ‘사람 구실’ 여부를 가리는 말이다.
‘일가(一家)를 이루다’는 말처럼 어느 한 분야에서의 성취나 업적을 말할 때도 이 글자는 잘 쓰인다. 예술가(藝術家), 작가(作家), 화가(畫家), 대가(大家), 전문가(專門家), 자선가(慈善家), 미식가(美食家) 등은 요즘에도 잘 쓰는 말이다.
얼마 전 중국 공산당 시진핑(習近平) 총서기를 ‘탁월한 개혁가(改革家)’로 칭송했던 관영 언론 기사가 게재 뒤 바로 내려졌다. 개혁·개방을 이끌었던 덩샤오핑(鄧小平)과 ‘겸상’하려다 미끄러진 형국이다. 그의 리더십이 이제 적잖은 반발에 직면한 모양이다.⊙
[312] 희망과 원망의 보름달

▲일러스트=김성규
“임술 가을, 칠월 보름 지나(壬戌之秋, 七月旣望)…”로 시작하는 유명한 글이 있다. 북송(北宋) 소식(蘇軾)의 ‘적벽부(赤壁賦)’다. 물처럼 흐르는 인생의 무상함을 우선 읊고, 그 속에서 지녀야 할 마음가짐 등을 함께 살폈다.
위의 ‘기망(旣望)’은 보름에서 하루가 지난 날, 즉 음력 열엿새를 가리킨다. 보름은 망일(望日)로도 적는다. 이런 흐름을 보면 한자 세계에서는 음력 매달 15일이 ‘망(望)’이라는 글자로 일찌감치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다.
초기 꼴은 사람이 우두커니 먼 곳을 바라보는 모습이었다가 곧 달을 가리키는 월(月)이라는 글자 요소가 붙는다. 그로써 이 글자는 어느덧 달이 가득 차는 보름, 더 나아가 고개 들어 무언가를 살펴보는 행위라는 뜻을 얻는다.
홍진(紅塵)이 가득하고, 세파(世波)가 만만찮은 세상살이다. 답답하고 억울한 심정을 하소연할 데가 없을 때 사람들은 하늘을 쳐다보기 마련이다. 하늘에 떠 있는 달은 그런 심사를 지닌 사람들이 눈 돌리기 십상인 대상이다.
가득 찼다가도 곧 이지러지는 달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영허(盈虛), 부침(浮沈), 성쇠(盛衰)의 개념을 추출해 자신의 고달픈 세상살이에 견준다. 그러면서 제 바람을 놓지 않는다. 글자가 소망(所望), 희망(希望), 기망(期望) 등의 단어로 이어진 이유다.
그러나 ‘홍진’의 독소가 아주 강하고, ‘세파’의 크기가 매우 대단해 삶의 의지가 꺾이는 때도 많다. 남을 책망(責望)하고 세상을 원망(怨望)하다가 절망(絶望)에 빠져드는 경우다. 세상은 그렇듯 늘 여의(如意)치 않은 곳이다.
경기의 하강이 가팔라져 고달픈 사람들이 많아지는 중국의 올해 한가위 달맞이 모습은 어떨까. 희망이 넘칠까, 소망이 가득할까. 아니면 원망이 깊어져 절망으로 번질까. 우리 또한 보름달 빛이 시리게 느껴지는 사람들 적잖을 듯하다.⊙
[313] 만연과 창궐의 공포

▲일러스트=김성규
과할 정도로 땅에 집착하는 중국은 점(點)에서 면(面)으로 번지는 무언가를 두려워할 때가 많다. 그래서 일찍이 “벌판 태우는 불길”이라는 말도 나왔다. 조그만 불씨가 번져 들판을 모두 태운다는 뜻의 요원지화(爎原之火)라는 성어다.
현대 중국 집권 공산당이 매우 꺼리는 현상이 있다. 무력 충돌 없이 체질이나 토대가 서서히 변해간다는 ‘화평연변(和平演變)’이다. 서방의 자유주의 사상이 침투해 중국의 제도와 사회구조를 변형시켜 체제를 아예 무너뜨릴지 모른다는 공포다.
여기서 ‘연변’의 앞 글자 연(演)은 우리 쓰임새도 많은 글자다. 본래는 물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 나아가는 모습을 가리켰다. 그로써 조금씩, 또는 꾸준하게 한쪽으로 진행하는 무언가를 그렸다. 제법 많은 단어로 이어지는 글자다.
줄곧 말을 하는 연설(演說), 제 기량을 펼치는 연기(演技)나 연예(演藝), 실을 자아내듯 풀어내는 연역(演繹), 악기를 다뤄 소리를 내는 연주(演奏), 되풀이하면서 익히는 연습(演習), 그럴듯하게 풀어내는 연출(演出) 등이 있다.
‘화평연변’에 겁부터 내고 보는 공산당의 심리는 달리 말해 만연(蔓延)과 창궐(猖獗)에 대한 공포심이다. 넝쿨이 서서히 번져 어느덧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만연, 전염병 등이 마구잡이로 번져 온 세상을 휩쓰는 창궐 말이다.
일자리 잃은 젊은이들이 몸을 눕히고 일어나지 않는 ‘당평(躺平)’이라는 현상이 제법 오래 이어진다. 이러다가 청년들이 봉기해 체제에 저항하는 ‘당평연변’의 변고가 중국 공산당에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에 앞선 공산당의 부패는 늘 번지고 확산해 고질병의 수준이다. 부도덕과 불성실의 대명사이자 짓다 만 건축물의 상징인 ‘난미(爛尾)’ 현상도 그렇다. 내부 문제가 도져 붕괴를 재촉하는 ‘연변’과 ‘만연’ ‘창궐’의 공포가 중국에는 늘 따른다.⊙
[314] 커브 길에 들어선 승부

▲일러스트=이진영
남산(南山)은 남녘의 산을 일컫는다. 한자 세계에서는 흔한 지명이다. 서울 한복판에도 이 남산이 있다. 그런 만큼 중국 시사(詩詞)에서도 늘 마주치는 이름이다. 그런 남산의 지름길을 가리키는 성어가 남산첩경(南山捷徑)이다.
여기에 나오는 ‘남산’은 고대 중국 여러 왕조의 수도 장안(長安) 남쪽에 있던 종남산(終南山)을 말한다. 이 남산에 은거했던 한 사람의 처세와 관련이 있는 성어다. 이 인물은 과거에 급제했으나 벼슬자리를 얻지 못했다.
그는 느닷없이 종남산 한 자락에서 은거를 시작했다. 실력을 감추고 세상에 나서지 않는 ‘은자(隱者)’의 이미지를 이용한 일종의 홍보 전략이었다. 그로써 그는 결국 벼슬을 얻는다. 깊은 산에서 출세의 지름길을 찾아낸 잔꾀였다.
그 ‘첩경’의 앞 글자 첩(捷)은 전투에서 이기는 경우를 일컫기도 하지만, ‘빠르다’ ‘날래다’는 뜻도 있다. 첩보(捷報)는 승리의 소식, 대첩(大捷)은 크게 이김이다. 아울러 민첩(敏捷)이나 쾌첩(快捷)은 재빠르고 영리함이다.
중국에서 ‘첩경’은 작은 길이라는 소도(小道), 굽은 길이라는 만로(彎路), 가까운 길이라는 근도(近道)로도 표기한다. 요즘 중국에서는 커브 길을 가리키는 만도(彎道)라는 단어가 압도적으로 많이 쓰인다. 일종의 유행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커브 길에서 남을 앞지르자는 ‘만도초차(彎道超車)’라는 말이 중국의 국가 전략처럼 쓰이기 때문이다. 대규모 투자로 선진국의 첨단기술 수준을 단번에 추월하자는 취지다. 실제 전기차와 태양광, 인공지능 분야에서 발전은 대단하다.
넓고 곧은길에서의 경쟁보다는 커브 길에서의 ‘지름길 승부’를 퍽 선호하는 중국이다. 1950년대 말 대약진운동(大躍進運動) 등 전례가 많다. 중국이 과연 이번에는 무사히 커브 길을 돌아 추월할지, 아니면 비틀거리다 또 뒤집힐지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
[315] 코카콜라와 유토피아

▲일러스트=박상훈
입에 착 감기는데 즐겁기까지…. 미국의 코카콜라가 이런 의미로 중국인 사회에서도 승승장구했다. 이른바 가구가락(可口可樂)이다. 중국어로는 ‘커커우컬러’로 읽는다. 영어 발음에 맞춰 한자로 옮긴 역어(譯語) 중에는 거의 으뜸이다.
그 경쟁사인 펩시콜라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모든 일이 순조로워 기쁘다. 이런 맥락에서 나온 한자 명칭이 백사가락(百事可樂)이고 발음은 ‘바이스컬러’다. 역시 공전의 히트를 터뜨린 번역어다. 유사한 사례는 몇 개 더 있다.
프랑스 동남부 작은 마을에서 나오는 맑은 물 에비앙(Evian)을 ‘구름 걸린 곳’이라는 뜻의 의운(依雲), 조립식 가구로 유명한 이케아(IKEA)를 ‘화목한 집’이라는 의미의 의가(宜家)로 옮긴 케이스다. 번역 ‘명품’은 그 전에도 있었다.
영국 토머스 모어가 지은 ‘유토피아’의 번역어다. 청나라 말기 지식인이었던 엄복(嚴復)이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 서양 언어를 오탁방(烏托邦)이라는 한자어로 옮겼다. 직역하자면 ‘근거[托] 없는[烏] 나라[邦]’라는 뜻이다.
까마귀를 가리키는 오(烏)는 거짓, 허무 등의 개념으로 종종 쓰인다. 여기서의 용례가 꼭 그렇다. 그리스어 ‘Utopia’라는 말이 본래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뜻이니 이 글자 ‘오’의 인용이 아주 그럴듯하다. 유토피아의 역어는 더 있었다.
장자(莊子)가 언급한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뜻의 무하유향(無何有鄕), 불가의 궁극적인 이상이 펼쳐진다는 화엄계(華嚴界) 등이다. 그러나 의역(意譯)과 음역(音譯)을 겸비한 ‘오탁방’만이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공산당이 내세웠던 중국몽(中國夢)이 시들해졌다. 높은 실업률에 길거리를 헤매는 숱한 중국의 청년에게 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오탁방’에 불과할 것이다. 이 단어가 아마도 차가운 올겨울의 중국 최고 유행어일지 모른다.⊙
[316] 미스터 대충대충

▲일러스트=박상훈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누굴까? 이 사람을 모르는 이 없으니, 그 성(姓)은 차(差)요 이름은 불다(不多)라….” 이렇게 시작하는 유명한 문장이 있다. 중국 근대기 최고 지성인 후스(胡適)의 ‘차불다(差不多) 선생전(傳)’이다.
중국의 대표적 국민성을 강하게 풍자한 글이다. 중국인들이 버릇처럼 입에 달고 사는 일상용어 ‘차불다’를 인격화해 그 언어 심리에 담긴 폐단을 지적했다. 중국인이 지금도 자주 쓰는 말 ‘차불다’는 본래 “차이가 크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나 실제 쓰임새의 맥락에서는 ‘대충대충’ ‘이것저것 따질 필요 없다’는 뜻이다. 세세한 차이를 따져보지 않고 서둘러서 일을 마무리하는 행위도 가리킨다. 후스의 글은 각종 비효율과 문제를 부르는 이런 중국인의 습속을 비판했다.
비슷한 흐름에서 쓰는 말도 적지 않다. “크게 보자면”이라는 대개(大槪), “아마도…”라는 느낌의 가능(可能), “그럴 수도 있어”라는 뜻의 야허(也許) 등 애매모호한 표현이 중국인 입말에서는 거의 습관처럼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대동소이(大同小異)라는 성어도 그 하나다. “크게는 같고, 작게는 다르다”는 뜻이다. 같음과 다름의 동이(同異)는 중국인의 오랜 사유 대상이기도 하다. 같음을 추구하되, 웬만한 차이는 내버려 두자는 성어 구동존이(求同存異)도 그렇다.
늘 ‘차이’를 끌어들여 큰 통일체를 구성해야 했던 중국 역사의 맥락이 어쩌면 이런 ‘차불다’ 습성으로 이어졌는지 모른다. 그러나 문제 많은 ‘차불다’ 사고와 행위는 현대 중국에서 여전히 말썽을 일으키는 모양이다.
화웨이(華爲)가 최근 선보인 3단 폴더블 폰의 화면이 크게 일그러지는 사고를 불렀다. 진지함의 결여, 디테일은 무시하고 넘어가는 ‘차불다’의 오랜 정신적 면모가 폰의 화면을 뚫고 나온 것 아닌지 주목거리다.⊙
[317] 들여다보기와 엿듣기

말만 그럴듯하고 실제 행동이 없는 사람의 입놀림은 구두선(口頭禪), 전문성이 떨어져 깊이 들어가지 못하는 이는 문외한(門外漢), 겉으로는 살랑거리며 웃지만 마음 바탕이 아주 냉혹한 인물은 소면호(笑面虎)….
입으로만 중얼거리는 데 그치는 참선, 영역 문밖에서 서성이거나 기웃거리는 정도에 불과한 사내, 이빨과 발톱을 갑자기 드러내는 흉포한 호랑이 등의 표현으로 생동감 넘치는 사람의 성정(性情)을 묘사한 중국 3자(字) 속어들이다.
그런 중국어 표현은 풍부하다. 허세 부리기의 주인공은 종이호랑이 지로호(紙老虎), 식견 짧은데도 아는 체만 해대는 우물 안 개구리 정저와(井底蛙), 환경에 따라 안색과 태도를 바꾸는 처세주의자 변색룡(變色龍) 등이다.
그런 속어에 오른 유명한 두 단어가 있다. 본래 옛 주(周)나라에서 활동했다는 고명(高明)과 고각(高覺)이 주역이다. 둘의 이름자를 풀어 각각 천리안(千里眼), 순풍이(順風耳)라는 별칭을 부여했다. 먼 곳을 내다보고, 바람결의 소식을 듣는 능력자다.
고명과 고각은 각각 천리안과 순풍이라는 별칭으로 중국 민담 역사에서 큰 활약을 펼친다. 사대기서(四大奇書)의 하나인 ‘서유기(西遊記)’에서도 천궁(天宮)의 신장(神將)으로 등장했고, 아예 중국 민간 종교인 도교(道敎)의 신선(神仙) 자리도 꿰찼다.
이들의 능력은 곧 ‘감지(感知)’다. 다른 이보다 빨리 정보를 습득하는 기능이다. 세상 모든 구석에 눈과 귀를 들이대고 기민하게 첩보와 정보를 잡아내는 둘의 능력이 급기야 종교적 신앙 대상으로까지 오른 점이 눈에 띈다.
그래서 그럴까. ‘천리안과 순풍이’의 전통이 중국 국내는 물론 해외로 뻗는다. 세계 곳곳이 중국의 스파이 행위 색출에 혈안이다. 방대한 인력으로 벌이는 해킹은 정보 대국인 미국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우리는 중국의 눈과 귀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을까.⊙
[318] 살벌한 가을

▲일러스트=박상훈
만물이 삶의 기지개를 켜는 봄과는 대조적인 계절이 가을이다. 메마른 기운이 대지를 덮어 대부분의 식생이 말라간다. 이 무렵의 대표적인 한자 표현은 ‘숙살(肅殺)’이다. 행위의 엄격함을 가리키는 숙(肅)과 생명을 짓누르는 살(殺)의 합성이다.
움을 틔워 무엇인가 자라나는 봄의 기운과는 아예 반대다. 서북(西北)에서 불어오는 가을의 찬바람을 오행(五行)의 쇠[金]로 인식한 점이 특징이다. 그 깡마른 쇠의 기운이 식생 등을 꺾고 잦아들게 만든다는 뜻의 단어가 곧 숙살이다.
그런 관념 때문인지 중국의 가을은 어딘가 스산하다. 만산홍엽(滿山紅葉)의 경치를 찬탄하는 경우도 적잖지만 기운의 몰락을 말할 때도 많다. 숙살에 이어 가을을 말하는 단어들인 소조(蕭條), 소랭(蕭冷) 등은 쓸쓸함과 스산함을 뜻한다.
아울러 가을은 미뤘던 형벌(刑罰)을 집행하는 계절이다. 그 행위가 곧 추결(秋決)이다. 생명이 움을 틔우는 봄과 곡식 영그는 여름을 피해 사형(死刑)을 벌이는데, 참수(斬首)가 대부분이어서 ‘가을 들어 베다’는 뜻으로 추후문참(秋後問斬)이라 적는다.
일반 중국인들은 추후산장(秋後算帳)이라는 말을 잘 쓴다. “가을걷이[秋收] 뒤에 제대로 따져보자”는 풀이지만, ‘앙갚음’ ‘복수’ 등이 속뜻이다. 따라서 중국인에게 가을은 결코 풍요와 너그러움만으로는 다가오지 않는다.
봄과 여름에 해당했던 개혁·개방의 방향을 틀어 중국이 가을 분위기로 돌아서는 흐름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정도다. 그에 따라 국제적인 고립 추세가 심화하고 경기도 크게 하강하면서 중국의 민생은 또 차갑고 시린 겨울을 맞을 분위기다.
이 계절에 중국의 서민들이 따져보는 ‘가을걷이 성적표’ 소감이 궁금하다. 집권 공산당의 한결같은 위엄에 ‘문참’을 떠올리며 목을 움츠릴까, 아니면 더 이상 감내키 힘들어 앙갚음과 복수의 정서에 빠져들까.⊙
[319] 역사의 도살자를 소환하다

▲일러스트=김성규
“살생의 칼을 내려놓으면, 곧 부처가 된다(放下屠刀, 立地成佛)”는 말이 있다. 불가(佛家)에서 오래 전해지는 가르침이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라는 권유지만, 모든 망상과 번뇌를 털어버리고 깨우침을 얻으라는 속뜻이 담겼다.
남의 목숨 끊는 칼을 도도(屠刀)라고 적었는데, 앞 글자 ‘도’는 원래 가축 등을 죽여 삶는 동작까지 일컬었다. 그러나 요즘은 생명을 해치는 일, 더 나아가 무자비하고 잔인하게 벌이는 살인 행위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부터 생겨나는 단어 조합들도 제법 많다. 남을 죽이는 도살(屠殺), 가축을 잡는 도축(屠畜), 무참하게 없애는 도륙(屠戮), 베어 죽이는 도할(屠割), 짐승 고기를 잡아 파는 도수(屠手), 점령한 성을 마구 짓밟는 도성(屠城) 등이다.
우리의 용례는 드물지만 중국에서는 도촉(屠蜀)이라는 말이 쓰인다. 뒤의 ‘촉’은 지금의 쓰촨(四川)을 지칭하는 글자다. 말 그대로 옮기면 “쓰촨을 도륙하다”는 뜻이다. 명(明)나라가 쓰러지며 만주족의 청(淸)이 중국을 석권하던 시절 이야기다.
‘도촉’은 군벌 장헌충(張獻忠)이 현지 주민들을 대거 학살했던 데서 나온 전고(典故)다. 대략 680만 명이 죽어 쓰촨의 인구가 50만명 정도까지 줄었다는 추계가 있다. 장헌충의 ‘도륙’이 큰 원인이었고, 다른 전란의 여파도 있었다.
장헌충은 이런 곡절 때문에 ‘도살자’라는 역사적 오명을 얻었다. 그런 장헌충의 이름을 요즘의 중국이 다시 소환했다. 길거리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행인들에게 난도질을 하는 ‘묻지 마’식 살인이 크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장헌충 신드롬’이다. 궁지로 내쳐진 밑바닥 계층의 삶들이 이런 범죄의 큰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숨 막힐 듯한 통제 사회의 다른 한 병증일 수도 있다. 갈수록 어긋나고 비틀어지는 중국 사회의 스산한 풍경이다.⊙
2024.11.08
[320] 분홍 빛깔 홍위병

▲일러스트=이철원
색깔 빨강에도 엷고 짙음에 따라 여러 나뉨이 있다. 우리는 빨강을 지칭하는 한자로 홍(紅)을 곧잘 쓴다. 그러나 비교적 엷은 빨강이다. 고대에는 적(赤)이라는 글자가 먼저 쓰였으나 지금은 엄격하게 나누지 않는다.
그럼에도 엷고 짙음에 따른 순서가 있었다. 가장 짙은 빨강은 강(絳)이다. 알기 쉽게 적자면 진홍색이다. 그다음은 주(朱)다. 이 글자 새김은 ‘붉음’이다. 그보다 조금 엷은 빨강이 ‘적’이다. 타오르는 불길이 뿜어내는 색이다.
단(丹)이라는 빨강도 있다. ‘적’보다는 엷고, ‘홍’보다는 짙다. 조금은 흰색을 띠는 빨강이 곧 ‘홍’이다. 그러나 옛적의 이런 분류는 중국 중세를 넘어서면서 섞인다. 즉 ‘적’이나 ‘단’ ‘홍’이 서로 함께 쓰이는 경우가 많아졌다.
빨강은 맑고 밝은 ‘양(陽)’의 기운이 가득한 상황을 지칭한다. 강한 생명력을 상징하면서 기쁨이나 따뜻함을 함께 가리킨다. 아울러 진정성을 말하는 색깔이다. 그래서 참마음이 곧 적심(赤心)이요, 지극한 정성이 바로 적성(赤誠)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빨강을 향한 중국인의 집착은 별나다. 1949년 새로 건국한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기, 집권 공산당의 깃발이나 헌장이 다 빨강이다. 경사(慶事)를 맞은 민간이 문에 홍등(紅燈)을 거는 습속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요즘은 ‘분홍(粉紅)’이 대세다. 그러나 단순한 색깔이 아니다. ‘붉은 이념(紅)의 팬들(fans·粉絲)’이라는 뜻의 조어다. 1900년 극단의 배외(排外)를 선보였던 의화단(義和團), 광란의 붉은 이념 추종자 홍위병(紅衛兵)의 후예들이다.
그 ‘분홍’들이 이제 중국을 더 지독한 국수주의(國粹主義)로 기울게 만든다. 개혁·개방 뒤 공산주의 이념이 취약해지자 집권 당국이 펼쳤던 애국(愛國)·애당(愛黨) 교육으로 생긴 깊은 병증이다. 다음 세대의 중국이 이래서 꽤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