凍土의 消息 2024-2/
07.01 김일성 비석에 먹물 뿌린 北 혁명 조직 ‘새조선’의 실체는?
“새 국호 ‘조선’의 건국을 자신 있게 준비하는 평양의 비밀 자유 민주 정부”
⊙ “북한 내부 반체제 인사, 간부급으로 보여”(정보기관 관계자)
⊙ “아직 북한에서 반체제 조직 출현 쉽지 않아… 모금 목적일 수도”(남성욱 고려대 교수)
⊙ “유의미한 반체제 세력 나올 가능성 충분히 있다”(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 “北 정권, 정치·사상적 반항 가장 무서워해… 새싹 돋아나고 있다”(김동수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 “가장 먼저 줍는 최전방 군인들이 총부리 돌린다면…”(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북한 반체제 조직 ‘새조선’이 2023년 9월 26일 게재한 사진. 사진=새조선 홈페이지 캡처
북한이 지난 5월 28일에 이어 6월 9일 대남(對南) 오물 풍선을 살포했다. 탈북민 단체들이 구호물자를 넣은 대북(對北) 전단을 북한으로 날려 보낸 데 대한 분풀이였다. 정부는 같은 날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이런 와중에 북한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우겠다고 주장하는 혁명 세력 ‘새조선(구 자유조선)’이 점점 더 과감한 행동에 나서고 있어 파장이 일고 있다. 이들은 북한 내부에서 김일성 비석에 먹물을 뿌려 훼손하는 영상까지 공개했다. 《월간조선》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도 이들을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북한이 대북 전단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에 대해 새조선과 같은 내부의 반(反)체제 세력 확장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다만 ‘새조선’의 실체가 아직은 불분명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北 혁명 세력 ‘새조선’
북한 내부에서 반체제 활동을 한다고 공개적으로 나선 단체는 ‘새조선’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이 지구상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호를 영원히 지워버리고, 새 국호 ‘조선’의 건국을 자신 있게 준비하는 평양의 비밀 자유 민주 정부”라고 밝혔다. 또 “조선을 이끌 새 정부의 첫 정당은 자유민주당”이라며 “김정은 정권은 우리 당을 축소 왜곡하고 조작 말살하기 위해 비열한 방법으로 소탕을 운운하지만 이것은 기겁한 자의 허풍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수령 독재에 불법적으로 빼앗긴 나라와 인민을 해방하고자 평양부터 지방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비밀전사들로 조직된 결사 항전의 저항 정부이다.”
‘새조선’ 홈페이지에 등장하는 소개 문구다. 새조선 접속 링크에 “자유조선아시아의 새 이름”이라고 적혀 있는 점, 자유조선 활동 사진을 게재한 점, 스스로 “우리는 2019년 3월 1일 설립된 자유조선의 설립 이념과 사상을 따른다”고 밝힌 점 등을 미루어 볼 때 이들은 ‘자유조선’을 계승한 조직인 것으로 보인다. 자유조선은 ‘천리마민방위’에서 이름을 바꾼 조직이다. 천리마민방위는 2019년 스페인 주재(駐在) 북한 대사관 습격 사건의 배후인 것으로 알려졌다.
새조선은 지난 5월 18일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 ‘평양에서 보내온 영상’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공개했다. 이들은 “묘 비석보다 많아진 김가(金家) 흔적들을 이제부터 우리가 파괴한다”며 남성으로 추정되는 모자이크 처리된 인물이 붉은 글씨가 쓰인 회색 비석에 검은색 액체를 뿌리고 달아나는 모습을 공개했다. 그러면서 “새조선의 대청소는 시작됐다”고 밝혔다. 이들은 평양에서 ‘비밀 자유민주 정부’로 활동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북조선(북한) 독재 정권의 실상과 인권 실태를 대외에 알려 독재체제의 종식과 함께 북조선 땅에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세워지고 인민들이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누리는 것을 목표로 활동한다”고 밝혔다. 이어 “북조선 인민들에게 새 세대를 위한 독재체제 붕괴 및 자유민주주의 국가 설립의 필요성을 알려 제2의 ‘아랍의 봄’이 북조선 땅에서 촉발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새조선의 암호화된 이메일 주소 및 메신저로 연락을 시도했지만 새조선 측은 해당 메시지를 읽고 답변을 하지 않았다.
정부와 관련 부처는 ‘주시’

▲태영호
정부와 관계 부처에서도 ‘새조선’을 주시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5월 31일 “북한 내부에서 민주주의 사상을 추구하는 반체제 세력이 꿈틀거리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얼마 전 북한이 내부의 반체제 조직들을 정리(숙청)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바 있는데,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듯하다”며 “미국 내 반북 성향 단체인 새조선이 북한 내부 혁명 조직과 연계해 평양에 있는 김일성 비석에 먹물을 뿌리는 등 테러를 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북한 고위층 출신 탈북민들은 “북한에서 김씨 일가의 비석은 신격화된 것인데 이에 대한 테러를 가했다는 게 상당히 이례적이고 충격적인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관련 정부 기관 내부에선 “북한 체제 전복에 대한 열망이 점차 싹트고 있다는 신호다” “북한 내 반체제 단체들의 세력 확장 여부에 귀추가 주목된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새조선과 연계된 북한 내부 반체제 인사는 행동대원이나 말단이 아니라, 간부급 이상일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영상 속 비석에 대해선 “북한 내부에서도 충성 경쟁이 심해서 김정일이 지나가다 잠깐 앉았던 자리, 잠깐 멈춰 서서 하늘을 봤던 자리에도 전부 비석을 세운다”며 “크기도, 모양도 다양하다. 영상 속 비석보다 작은 것도 있고, 큰 것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북한에선 김씨 일가 얼굴이 실린 《로동신문》을 깔고 앉아도 수용소에 가는데 비석을 테러한다는 건 정말 목숨 걸고 해야 하는 일이고, 이는 곧 김씨 일가를 테러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국가정보원에 영상 속 비석이 위치한 장소 및 비석의 내용, 그리고 새조선이 북한 내 유의미한 움직임에 나설 세력으로 보이는지 등을 물었다. 국정원은 기자의 문의에 “해당 사이트에 대해 알고 있으나 운영주체 조직 등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된 바 없다”고 답했다.
북한 고위 외교관을 지내다 한국으로 망명한 태영호 전 국민의힘 국회의원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태 전 의원은 “저도 (김일성 비석에 먹물을 뿌리는) 영상을 보았는데 확인하기 힘들다”고 답했다. 2014년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 A씨에게도 해당 영상을 보여줬다. 그는 “비석 속 내용이나 위치 등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동영상이라 신뢰성이 조금 떨어진다”는 반응을 보였다.
“후원 목적일 수 있어”… 회의적인 시각도

▲남성욱
다만 아직은 ‘새조선’의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전략연) 원장을 지낸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5월 31일 통화에서 “(영상의) 신뢰성을 누가 담보할 수 있겠느냐”며 “제3국에서 (영상을) 만들어서 마치 북한에서 한 것처럼 만든 영상도 많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영상이 과연 북한에서 만들어졌다는 증거를 누가 컨펌(사실 확인)해주느냐가 문제죠. 제가 NGO(비정부기구) 단체들과 통화를 해봤는데, 이런 활동들을 통해서 펀드레이징(fundraising·모금)하려는 의도를 가진 곳도 있어서 (진위 파악이) 그리 간단치 않은 문제입니다.”
― 과거에 그랬던 사례가 있나요.
“그럼요. 미국 쪽과 접촉해서 후원을 받는 경우가 있었고요. 그런 걸 뭐라 할 순 없지만 이런 활동을 정말 평양에서 하는 건지 외부에서 하는 건지는 모르죠. 스페인 주재 북한 대사관 습격 사건처럼 북한 외부에서 하는 활동은 의미의 한계가 있죠.”
남 교수가 이어서 말했다.
“전략연 원장으로 있었기 때문에 탈북민 관련 정보를 압니다. (중국) 연변이나 단둥에서 그런 걸(영상 속 행동을) 했으면 이해가 되는데, 이걸 과연 북한에서 한다면 누가 그걸 증명할 수 있을까요. 그게 관건이에요. 저도 (영상을) 돌려보고 그쪽 분야에서 일하는 지인들에게도 한 번 (진위 조사를) 타진해봤는데, 심증은 있을 수 있죠. 그런데 그 영상이 과연 함흥에서 만들어졌거나, 원산에서 만들어졌다면 누가 그걸 증명할 수 있나요.”
― 현재 북한의 반체제 세력이 조직화할 가능성이 있나요.
“그건 쉽지 않아요. 국정원 연구원장을 4년 동안 하면서 그런 정보들을 많이 다뤄봤는데,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었죠.”
“반체제 조직 나올 때 됐다”

▲안찬일
이처럼 영상의 진위 여부를 의심하는 전문가는 또 있었다. 북한군 민병대 부소대장을 지내다 1979년 탈북해 건국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5월 31일 통화에서 “비석의 글자를 확실하게 볼 수 있어야 100% 북한이라고 볼 수 있는데, 영상 속 비석은 글자가 또렷하게 안 나왔다”고 지적했다. 안 소장은 “그냥 불그스레한 (글자가 적힌 비석) 데다가 (먹물을) 뿌리는데, 왜 그 글자를 똑바로 안 찍었는지 의문이 들었다”며 “글자가 또렷하게 나오게 촬영해도 되는데, 그러면 ‘위대한 수령 혁명사’와 같은 게(글귀가 적혀) 있었을 텐데”라고 덧붙였다.
다만 그는 유의미한 반체제 세력이 나타날 가능성에 대해선 “충분히 있다”고 내다봤다. 그의 얘기다.
“지난번 교사가 반체제 조직을 만들었잖아요. 교사를 중심으로 그런 걸 보면 북한도 이제 유사한 조직들이 등장할 때가 됐기 때문에 충분히 있을 수 있어요. 물론 비용적인 면에서 후원을 받는다면 거기(북한 내부)서도 뭐든지 할 수 있지만 이런 영상을 촬영해서 공개하는 건 어떻게 보면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런 면에선 상당히 충격적입니다. 그리고 대외에 알리는 걸 보면 규모나 영향력 면에서 자신감을 가지니까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것이지, 허술하고 작은 조직이었으면 얼굴을 내밀지 못하고 지하에서만 움직였을 겁니다.”
다만 김일성 비석에 먹물을 뿌리는 정도의 일탈이 북한에서 마냥 새로운 건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반체제 활동에 가까운 크고 작은 일들은 예전부터 있었다는 얘기다. 북한 외무성에서 18년간 근무하며 고위 외교관을 지내다 1997년 한국으로 망명한 김동수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옛날에도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이런 사건들이 일어났다”고 했다. 김 전 위원은 “북한 내부에서도 밤에 체제 비판을 하는 낙서를 했다가 보위부가 달라붙고 난리가 난 경우가 몇 번 있었다”며 “비밀리에 반체제 활동을 하는 작은 모임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이 무력 행동에 나설지 여부에 대해선 “제 생각에 그건 아직 멀었다”면서도 “일어나면 수습하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北, 사상 변화 가장 무서워해… 이미 시작됐다”
김동수 전 위원은 “배급을 못 받아서 먹고살기 힘든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들고일어났다가 진압당한 일은 있었는데 이번 사건은 좀 다르다”며 “북한 MZ 세대(1980~2000년대 초반 출생한 세대)들이 사상, 정신적인 표현을 했다는 의미가 있어 북한으로선 심각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김 전 위원은 “북한이 최근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채택하고 이를 어기면 공개 총살을 진행했는데도 정치적인 항거를 했다는 건 무서운 일”이라며 “북한 MZ 세대는 ‘고난의 행군’ 시기에 태어나 지금 20~30대가 되었으니 중대장, 대대장까지도 치고 올라갔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전투원들이라는 거죠.
“지금 전투 단위가 다 젊은 세대들이 하잖아요. 주로 30대라고 하는데. 이게 지금 정치적, 사상적으로 반체제 기운이 올라오고 있는데 이번에 드러난 게 사상적, 정치적 레지스턴스(resistance·저항)니까 북한 보위부나 당 중앙에선 상당히 심각하게 보는 거죠.”
― 스페인 주재 북한 대사관 습격 사건을 일으킨 ‘자유조선’도 그 사례에 포함되나요.
“자유조선 대표와 미국에서 만난 적이 있어요. 그 단체는 청년으로 구성된 ‘자유 우파 단체’입니다. 들리는 말로는 미국 정보당국에서 도와준다고 하는데, 이 사람들은 미국에 있는 청년 단체들이 북한 독재체제에 대한 부당함을 참지 못해서 그런 활동을 하거든요. 그런데 이번 사건은 북한 내부에서 정치적인 저항을 한 거니까 더 중요하죠.”
― 자유조선 대표와 연락이 닿을 수 있을까요.
“몰라요. 그 사람들이 나를 찾아왔어요. 비밀스럽게 활동합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북한 내부에서 반체제 운동이 확대될 수 있을까. 김동수 전 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네. 정치, 사상적 반항. (북한 정권은) 이걸 가장 무서워하거든요. 사상 변화인데, 이게 지금 현실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다만 아직 혁명 조직까지 구축하는 단계까지는 시간이 걸리는데, 그런 새싹들이 여기저기서 돋아나고 있으니 그게 제일 두려울 겁니다.”
“대북 전단 먼저 받는 건 ‘총 든’ 10~20대 군인”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사진=조선DB
한편 대북 전단을 날리는 데 앞장서 온 탈북민 출신 인권 운동가 박상학(56)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6월 8일 통화에서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대북 전단을 받아 본 20대 군인들이 총부리를 돌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북한에서 반체제 세력은 두 종류가 있다”며 “반체제 세력 위에 반체제 ‘전복’ 세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전방에 나와 있는, 손에 직접 총을 들고 있는 젊은 군인들이 돌아서는 게 가장 위협적일 것”이라고 했다.
― 북한에서 반체제 세력은 무슨 활동을 하나요.
“남한에서 (북한으로) 올라오는 유인물이라든가 전단(을 뿌리는 사람), 그리고 휴민트(내부 협조자)로 활동하는 사람은 반체제 세력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건 스파이(간첩)라고 하죠. 북한에서 반체제 세력이라는 건 군부대, 장성급이나 노동당 간부들과 같은 엘리트들을 가리키는 겁니다. 반체제 세력이 있다는 건 (북한) 내부에서 흔들리고 있다는 얘깁니다. 반체제 세력은 옛날 러시아 군사 대학에 유학을 다녀왔거나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한 경우가 많습니다. 북한에선 반체제 세력을 ‘공화국체제를 반대하는 원수들’이라고 합니다. 이들 중 30명 가까이 총살당한 일도 있었고요.”
― 북한이 대북 전단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요.
“김정은 체제가 제일 무서워하는 건, DMZ(비무장지대) 240km에 나와 있는 10~20대 군인들이거든요. 70만 명이 나와 있어요. DMZ로부터 20km 사이에 군인들이 밀집돼 있는데, 그 사람들이 대북 전단을 가장 먼저 받아 봅니다. 그 사람들이 우리 대한민국에 겨누고 있는 총부리를 반대로 북한을 향해 돌린다면 김정은 체제 입장에선 그게 가장 무서운 거죠.”
앞서 박 대표는 5월 29일 통화에서 “5월 10일 보낸 대북 전단이 평양 밑 남포특별시라는 곳 (조선로동당) 시당 청사에 떨어져 북한 내부에서 난리가 났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에서 당은 최고 기관인데 시당 청사 옥상 위에 김정은을 비판하는 전단이 떨어졌으니 난리가 났다”고 설명했다.
김양건의 애원
― 이러한 ‘심리전’이 효과가 있나요.
“북한이 두 손 다 듭니다. 박근혜 대통령 집권 당시 이런 일이 있었어요. 김양건(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살살 빌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어요.”
―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요.
“2015년 남북 고위급 회담이 열렸을 때 김관진 당시 국가안보실장이 회담장을 박차고 나왔대요. 그랬더니 김양건이 화장실까지 따라와서 김관진 실장 팔을 붙들고 ‘이러시면 되느냐, 왜 회담을 끝내느냐’고 조용히 묻더래요. 그러면서 ‘우리가 잘못했다’ ‘내 얼굴도 좀 봐달라’ ‘우리 체제 잘 알지 않느냐, 내 목 날아가는 거 꼭 봐야 되겠느냐’고 얘기했대요. 이건 처음 이야기하는 거예요.”
― 어디서 들은 얘긴가요.
“그것까지 말하긴 좀 그렇고. 고위 정치인이에요.”
― 회담 관계자인가요.
“북한을 너무 잘 알고 북한에 여러 번 다녀온 5선 국회의원…. 아, 여기까지 합시다.”⊙
월간조선 07월 호글 : 김광주 월간조선 기자 kj961009@chosun.com
07.02 北 "어제 4.5t 초대형탄두 장착한 신형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지난 5월 북한 조선중앙TV가 보도한 전술탄도미사일 시험사격 모습. /연합뉴스
북한이 탄두를 장착하는 신형 전술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2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이날 통신에 따르면, 미사일총국은 전날 4.5t급 초대형 탄두를 장착한 ‘화성포-11다-4.5′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통신은 이번 시험발사가 모의탄두를 장착한 미사일로 최대사거리 500㎞와 최소사거리 90㎞에 대해 비행안정성과 명중 정확성을 확증하는 목적으로 진행됐다고 전했다. 북한이 초대형 탄두를 장착한 전술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했다고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날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이 새벽 발사한 탄도미사일 2발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합참은 2발 모두 ‘지대지전술탄도미사일’이라고 부르는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사거리 300∼1000㎞)인 화성-11형(KN-23)일 것으로 추정했다.
합참은 “5시 5분경 발사된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은 600여㎞를 비행했고, 5시 15분경 발사된 탄도미사일은 120여㎞를 비행했다”며 사거리가 120㎞인 미사일은 발사에 실패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조선일보 김가연 기자
07.03 북한판 사극 '여인 천하'와 김주애
권력 암투 휘말린 '김씨 여자들'
'김정은 배지'로 우상화 완성
후계 구도 짜기가 다음 과제
세습 왕조 위기, 후계에서 시작

▲2023년 12월 노동신문 1면에 실린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딸 김주애가 선글라스를 쓴 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이 인정하는 김일성의 부인은 김정숙이 유일하다. 김정일을 낳았고 ‘항일 여성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그런데 북 역사서에 김정숙의 어머니 이름은 ‘오씨 여사’로만 나온다. 김일성이 장모 이름도 모를 만큼 김정숙과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정숙은 1949년 출산하다 32세로 사망한다. 김정일이 일곱 살 때였다. ‘김씨 여자들’ 불행의 시작이었다.
김일성은 6·25전쟁 중인 1951년 비서였던 김성애와 비밀 결혼을 한다. 1958년 가족사진을 공개하는 형식으로 김성애 존재를 알렸다. 김성애는 자신의 아들을 김일성 후계자로 세우려고 김정일과 권력 암투를 벌였다. 김정일이 이런 계모를 그냥 둘 리 없다. 김일성이 죽고 3년 만에 김성애는 모든 공식 석상에서 사라졌고 그녀의 자식들도 평양 밖을 떠돌아야 했다. 두 번째 불행이었다.
김정일의 첫째 부인에 대해선 분석이 엇갈린다. 중국 외교부 직속 기관이 발행하는 잡지는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지낸 홍일천 아니면 김일성 집무실 타자수 출신인 김영숙일 것”이라고 했다. 우리 정부는 김영숙과 결혼한 것으로 판단한다. 홍일천이든, 김영숙이든 딸만 낳았다. 그 무렵 김정일은 영화배우였던 성혜림과 동거하며 장남 김정남을 얻었다. 김일성은 남편이 있던 성혜림을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았고 성혜림은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김정일이 다른 여성들에게 빠지자 성혜림은 모스크바에서 외롭게 살다가 2002년 사망했다. 모두 김정일에게 버림받은 것이다.
김정일은 1970년대 중반부터 재일 교포 출신 무용수 고용희와 살았다. 아들 김정철과 김정은, 딸 김여정을 얻었다. 그런데 고용희는 2000년대 유선암에 걸렸고 불치 상태로 고생하다 2004년 52세로 사망한다. 그러자 김정일은 22세 연하인 김옥과 동거했다. 김옥도 김정은 집권 이후 종적을 감췄다. 김씨 여자들 대부분이 요절하거나, 중병을 앓거나, 버림받거나, 숨어 살아야 했다. 자의든 타의든 후계 권력과 관련이 있다. 왕조 시대 왕비와 후궁들, 그 주변이 후계자를 놓고 암투를 벌였던 것과 다름없다.
지금 북에서 김씨 여자들의 불행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김정은 부인 리설주일 것이다. 성혜림처럼 아들을 낳아도 후계자로 일찍 낙점받지 못하면 버림받을 수 있고, 중병이라도 걸리면 어린 자식들의 장래가 불투명해진다. 은하수관현악단 가수 출신인 리설주는 김정일 여자였던 영화배우 성혜림, 무용수 고용희와 계열이 비슷하다. 김정은이 아버지처럼 여성 편력이 심하다는 소문은 아직 못 들었다. 그러나 북한은 왕조 국가를 넘어 신성(神聖) 국가다. 김정은이 원하는 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후계자도 마찬가지다.
김정은에게 자녀가 몇 명인지, 아들이 있는지 확인은 안 된다. 1남 2녀, 딸만 2명, 혼외로 낳은 아들, 아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얘기 등이 떠돈다. 확실한 건 리설주가 낳은 딸 김주애가 계속 등장하고 있고, 김정은이 주애를 너무 예뻐한다는 사실이다. 탈북자들에게 물어보면 ‘봉건사회인 북에서 딸은 후계자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반면 김정은이 2022년 중앙간부학교에서 후계자를 뜻하는 ‘후사’라는 말을 꺼낸 직후 주애가 등장하고, 당 부장과 대의원에 여성 비율을 높인 것은 주애를 염두에 둔 조치로 보인다.
김주애 후계를 가장 원하는 사람은 리설주일 것이다. 자신과 자식들이 사는 길이다. 그런데 김정은은 아직 40세다. 김정일은 42세에 김정은을 얻었다. 김정은이 ‘김정은 배지’로 우상화를 완성한 만큼 북한의 후계 구도도 본격화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판 사극의 개봉 박두다. 세습 왕조의 위기는 후계에서 온다.
조선일보 안용현 기자
07.11 北중학생 30명 공개 총살 당했다…대북풍선 속 한국드라마 본 죄

▲사진 TV조선 캡처
북한이 중학생 30여명에 대한 대규모 공개 처형을 단행했다. 이들이 대북 전단 속 USB에 담긴 한국 드라마를 봤다는 이유에서다.
11일 TV조선 보도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한국 드라마를 본 중학생 30여명을 지난주 공개 처형했다. 앞서 탈북 단체들이 지난달 대북 풍선을 날려 보내며 그 안에 한국 드라마가 저장된 USB 메모리를 넣었는데, 이를 주워 보다 적발된 학생들을 공개 총살한 것이다.
북한은 지난달에도 비슷한 이유로 17세 안팎의 청소년 30여 명에게 무기징역과 사형을 선고한 바 있다. 대북 단체가 바다로 띄워 보낸 ‘쌀 페트병’을 주워 밥을 지어 먹은 일부 주민에게도 노동교화형을 내렸다.
북한이 남한의 문화나 음식을 접했다는 이유로 주민들에게 가혹한 처벌을 내린 사례는 통일부가 발간한 ‘2024 북한 인권 보고서’ 속 탈북민 증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결혼식에서 한복이 아닌 흰색 드레스를 입는 것, 와인잔으로 술을 마시는 것,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것 등을 모두 ‘반동’ 사례로 규정했다. ‘아빠’라는 단어도, 선생님을 부르는 ‘쌤’이라는 표현도 금지했다.
한 탈북 남성은 “2022년 황해남도 광산에서 22세 남성이 공개 처형되는 걸 봤다”며 “괴뢰(남한) 놈들 노래 70곡과 영화 3편을 보다가 체포됐고 심문 과정에서 7명에게 유포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더라”라고 전했다.
2020년 탈북한 또 다른 남성도 “동료가 손 전화기로 남한 드라마를 시청하다 보위부에 적발돼 강제 송환됐는데 나중에 처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귀띔했다.
올해 초엔 한국 드라마를 시청했다는 이유로 16세 소년 2명이 12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받는 공개 재판 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북한 당국이 제작한 내부 주민용 사상 교육 영상이다. 여기에는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옷차림과 머리를 따라 한 죄로 적발된 평양 여성들의 모습도 등장한다.
이러한 북한 당국의 강력한 제재는 2020년 12월 제정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에 의거한 것이다. 이 법은 한국 영상물 유포자를 사형에 처하고 시청자는 최대 징역 15년형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도서·노래·사진도 처벌 대상에 포함되며 ‘남조선 말투나 창법을 쓰면 2년의 노동교화형(징역)에 처한다’는 조항도 있다.
하수영 기자 ha.suyoung@joongang.co.kr
07-17 北 폭염·폭우 속 여군까지 동원 DMZ 지뢰 수만발 매설…온열질환자·지뢰폭발 후송자 속출

▲북한군이 최근 폭염 폭우 기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비무장지대(DMZ) 북측 지역에서 목함지뢰 추정 등짐을 지고 지뢰 매설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합동참모본부 제공
신원식 17일 오전 ‘북 도발 및 재해재난 대비 긴급지휘관회의’ 대비태세 강화
북한군 전선지역, 폭염 속 앰뷸런스 동원 온열 질환자·지뢰폭발 부상자 속출
기중기 동원 경의선 철로 제거…하천 가교 설치 작업도
군당국은 북한군이 폭염과 장마에도 불구, 휴전선 인근 전선 지역에서 지뢰매설, 불모지 조성, 방벽 설치 등 수 개월간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온 장면 사진을 17일 전격 공개했다.
합동참모본부가 공개한 사진에는 북한군이 등에 목함지뢰 추정 물체를 등에 지고 비무장지대(DMZ) 북측 지역에서 지뢰매설 작업을 하는 모습, 지뢰 폭발 사고와 부상자 후송, 폭염속 앰뷸런스를 동원하고 온열 질환자를 트럭 등에 싣고 가는 모습등이 포착됐다. 여군까지 동원해 지뢰매설 작업을 진행 중인 모습도 담겼다.

▲북한군이 비무장지대(DMZ) 인근 전선지역에 동원된 앰뷸런스. 폭염 속 지뢰매설 작업 등으로 온열 환자가 속출하고, 지뢰매설 작업 중 폭발사고로 부상자가 속출하자 앰뷸런스가 동원된 것으로 보인다. 합동참모본부 제공
또 중서부전선 하천에서 가교를 설치하고, 동해선에 이어 이번에는 기중기를 이용해 경의선 철로를 제거하는 모습 등도 사진에 담겼다.
합참 관계자는 이날 "현재 DMZ 약 250km 기준 불모지 작업은 약 10% 진도율을 보이며, 방벽 설치는 약 1% 수준이고, 지뢰매설은 수 만발 이상으로 추정된다"며 "북한군은 임시형 천막 등 열악한 숙소에서 생활하며, 휴일과 병력 교대 없이 일일 평균 12~13시간씩 작업을 지속하고, 철야 작업과 함께 지난 8일 김일성 사망일에도 작업을 실시한 곳이 있었다"고 밝혔다.

▲북한군이 최근 비무장지대(DMZ) 북쪽 지역에서 무리하게 지뢰매설 작업을 하던 중 온열 질환자 등이 발생해 환자를 트럭 등으로 후송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이 관계자는 " 북한군이 전선지역 작업 중 10여 차례의 지뢰폭발 사고와 온열손상 등으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되고 있음에도 불구, 무리하게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여군도 동원된 것이 확인됐다"며 "열악한 작업환경에서의 우발적 귀순 가능성과 함께 작업간 군사분계선(MDL) 침범 가능성도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군이 최근 전선지역에서 기중기를 이용해 경의선 철로를 제거하고 있다. 합동참모본부 제공
국방부는 집중호우로 인해 남북공유하천으로 지뢰 유실 위험이 높다며 17일 대국민 ‘지뢰주의보’를 발령했다.
국방부는 이와함께 "황강댐, 봉래호, 평강댐, 임남댐 등 남북 공유하천에서 집중 호우시 의도적 기습 방류와 지뢰살포 또는 유실 가능성에 대비해 사전대책을 강구하는 등 작전활동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군이 휴전선 인근 전선지역에서 폭염 속에 무리하게 지뢰제거 작업을 진행 중인 가운데 여군들(오른쪽 3·4번째)이 동원된 정황도 포착됐다. 합동참모본부 제공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이날 오전 북한의 지속되는 도발 위협과 기상이변 수준의 폭우 등 현 상황을 복합 위기 상황으로 엄중하게 인식하고, 각 급 부대의 즉각대응태세를 확립하기 위해 ‘북 도발 및 재해재난 대비 긴급지휘관회의’를 주관하며 대책을 논의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올해 4월부터 비무장지대(DMZ) 내 북측지역 일부에서 북한군 지뢰 매설활동을 식별했다"며 "북한군이 지뢰를 매설한 지역 중 일부는 임진강, 역곡천, 화강, 인북천 등과 같은 남북공유하천과 연결돼 있어 집중호우가 발생할 경우 북측 지뢰가 유실돼 우리 지역으로 유입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들께서는 남북공유하천 인근에서 활동시 북한의 유실지뢰에 유의하시고, 해당지역에서 지뢰로 추정되는 미상물체를 발견하면 절대로 접촉하지 말고 가까운 군부대나 경찰서에 신고해 달라"고 당부했다.

▲북한군이 최근 비무장지대(DMZ) 북쪽 지역 지뢰매설 작업을 무리하게 진행하던 중 지뢰 폭발사고가 발생하자 환자를 긴급 후송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국방부는 최근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연속 담화를 통해 우리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대응방식의 변화를 언급하면서 신종 도발 등 위협 수위와 강도를 고조시키고 있다며 주의를 촉구했다. 군 관계자는 "우리 군은 북한군의 대남오물풍선 살포 수단, 방법의 변화와 함께 과거 우리 민간단체 풍선 부양 시 총격 도발 및 확성기 방송 시 총·포격 도발 사례 등을 고려해 다양한 도발 가능성을 열어놓고 대비태세를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화일보 정충신 선임기자
07.29 SUV 타고 홍수 현장 간 김정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무조건 구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8일 평안북도 신의주시와 의주군의 홍수 피해 현장 방문길에 SUV에 탑승한 채 피해 지역을 살펴보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북한 압록강 연안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려 홍수 피해가 발생한 가운데,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수해 현장을 지휘하고 피해 예방에 실패한 간부들을 질책하는 모습을 보도했다.
29일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이 지난 27일 폭우로 압록강 수위가 높아져 평안북도 신의주시와 의주군 주민 5000여명이 고립될 위기에 처하자 군에 구조를 지시한 뒤 28일 피해 현장을 방문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수해 현장으로 보이는 한 마을은 집집마다 지붕까지 물이 차오른 모습이다. 통신은 김정은이 대형 SUV를 타고 피해 현장을 살피는 모습도 사진으로 실었다. 김정은이 탄 차량은 네 바퀴가 모두 물에 잠긴 모습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렉서스로 추정되는 차량을 타고 신의주 수해 현장을 시찰하고 있다. / 뉴스1
김정은은 또 군 지휘관들로부터 주민 상태와 구조 상황을 보고 받은 뒤 주민들을 구조한 헬리콥터가 비행장으로 복귀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통신은 김정은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무조건 구조”하라고 주문했다면서 주민이 모두 대피한 지역에 남은 사람은 없는지 정찰을 다시 하라고 여러 차례 지시했다고 전했다.
김정은은 국가기관과 지방 간부들을 질책하기도 했다. 앞서 폭우와 홍수, 태풍 피해 예방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난 22일 국가비상위기대책위원회를 소집하는 등 여러 번 지시했는데도 예방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인민의 생명안전을 담보하고 철저히 보장해야 할 사회안전기관의 무책임성, 비전투적인 자세”를 “더 이상 봐줄 수 없다”며 “주요 직제 일군들의 건달사상과 요령주의가 정말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8일 평안북도 신의주시와 의주군의 큰물(홍수) 피해 현장을 방문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9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김정은은 “자연재해가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것은 자연의 탓이라고 어쩔 수 없다고만 생각하며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재해방지사업에 확신을 가지고 달라붙지 않고 하늘만 바라보며 요행수를 바라는 데 있다”고 했다.
김정은은 이번에 찾은 평안북도를 포함해 자강도, 양강도의 압록강 인근 지역을 “특급재해비상지역”으로 선포하고 내각과 위원회, 성, 중앙기관, 안전 및 무력기관에 피해방지와 복구사업 총동원령을 내렸다.
앞서 북한에는 장마 전선의 영향으로 평안북도와 자강도에 폭우가 쏟아져 지난 25일 0시부터 28일 오전 5시 까지 원산에 617mm, 천마에 598mm의 많은 비가 내린 것으로 집계됐다.
조선일보 김명진 기자
07.31 주민 가두고 굶기는 北 김씨들 4대 세습 기도, 쉽지 않을 것

▲훈련 지도하는 김정은과 김주애. /조선중앙통신 뉴시스
국가정보원이 북한 김정은 딸 주애가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있다고 국회 정보위에 보고했다. “어린 김주애에 대한 주민 반응을 의식해 선전 수위 및 대외 노출 빈도를 조정하고 있다”고도 했다. 지난 1월 “유력한 후계자로 보인다”고 평가한 데 이어 북한의 4대 세습 시도를 공식화한 것이다.
북한 선전 도구는 지난 3월 김주애에게 ‘향도’라는 표현을 처음 썼는데 이는 수령이나 후계자에게만 붙이는 용어다. 향도는 ‘나아갈 길을 밝힌다’는 뜻이다. 김주애가 ‘샛별 여장군’으로 불리는 것도 주요 근거다. 김정은도 후계자 시절에는 ‘샛별 장군’이었다. 또 김주애의 공개 활동 중 군사 분야가 60%에서 70%로 증가한 것도 후계 수업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2022년 10월 중앙간부학교에서 핵개발을 자랑하며 ‘후사’라는 말을 처음 꺼냈다. 4대 세습 시동을 건 것이다. 한 달 뒤 ICBM 발사장에 김주애를 처음 데리고 나왔다. 작년 초 북한군 창설 열병식에서 신형 미사일을 보며 손뼉 치는 김주애 독사진이 등장하더니 주요 군사 활동 사진에서 김주애는 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최대 유산인 핵무기를 물려줄 후계자가 김주애라는 이미지를 북 주민들에게 심는 것이다. 각본이 있다고 봐야 한다.
북한은 세습 때마다 대형 도발을 해왔다. 김정일은 아웅산 테러를 일으켰고 김정은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을 저질렀다. 무력과 폭력으로 세습 정당성을 얻으려는 것이다. 남녀 차별이 극심한 북한에서 여성이 후계자 지위를 굳히려면 종전보다 더한 도발이 필요할 수도 있다. 김씨 정권이 가진 것은 폭력뿐이다. 김주애 후계 공식화는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김씨 일가가 4대 세습에 성공할지도 의문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철저히 세뇌당하는 북 주민들은 정상적 사고 능력이 떨어져 있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이제는 한류가 북에 스며들고 있다. ‘한국이 잘산다’는 사실을 모르는 북 주민이 없다. 헐벗고 굶주리며 한국을 동경하는 북 주민들은 ‘4대 세습’에 절망할 것이다. 김정은에게 건강 이상이 생기면 ‘김여정 세력 대(對) 김주애 세력’ 등 김씨들 내부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모든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8.01 40세 ‘불혹’ 김정은, 11세 어린 딸을 후계자로 파격 내정?
북한이 ‘사회주의의 시조(始祖)’로 여기는 김일성 주석은 1994년 7월 8일 사망해 올해가 30주기다. 사망 3년 전인 1991년 9월 북·중 접경 지역인 자강도 고위 간부들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김 주석은 “구라파(유럽) 사회주의 나라들이 하루아침에 다 망했지만 우리나라만은 끄떡하지 않고 사회주의를 끝까지 고수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지난 시기 당을 강화했고, 김정일 동지가 당의 조직·사상적 기초를 튼튼히 쌓고 대를 이어 혁명과 건설을 현명하게 영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탈냉전기였던 1980년대 후반 옛 소련을 비롯해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체제 전환을 했지만, 북한은 후계자 문제를 마무리한 덕분에 생존할 수 있었다고 진단한 것이다.
김일성 “후계자 덕에 안 망해”
김일성·김정일 60세에 후계 지명
국정원 “김주애 후계 수업 중”
후계자 요건 아직은 못 갖춘 듯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딸 김주애가 지난 5월 평양 전위거리 준공식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권력의 3대 세습에 성공했다. 이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뒤를 이을 후계자 문제가 다시 떠올랐다. 국가정보원은 지난달 29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김 위원장의 딸 김주애(11)에 대한 후계자 수업을 진행 중이라고 보고했다. 회의 참석자들은 김주애가 후계자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는 게 국정원의 판단이라고 전했다.
국정원의 이런 판단 배경은 크게 두 가지였다고 한다. 김주애가 2022년 11월 북한 매체에 등장한 이후 공개된 활동의 70%가량이 군사 분야에 집중됐고, 그가 제국주의와 싸우는 모습을 연출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또 북한이 수령이나 후계자에게 사용하는 ‘향도’라는 표현을 김주애에게 쓴 것도 후계와 관련 있다고 국정원은 분석했다.
경쟁시켜 결정해 온 북한의 후계
북한은 건국 초기 국내 공산주의 세력 외에 소련파·연안파·빨치산파 등이 얽혀 있는 연합정권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6·25전쟁을 거치며 박헌영 남로당 당수로 대표되는 국내 공산주의자들과 허가이·박창옥 등 소련파가 대거 축출됐다. 이후에도 10여 년에 걸쳐 쿠데타 모의가 발각돼 연안파가 몰락하는 ‘8월 종파 사건’(1956년) 등 각종 정치 투쟁에서 빨치산파가 승리하며 김일성이 권력을 장악했다. 1960년대 중반에 김일성을 신으로 여기는 ‘신정(神政)체제’가 시작됐다.
이후 북한에서 최고지도자를 선출하는 실질적인 선거는 없었다. 누구도 그 자리를 넘보지 못했고, 후계자가 되는 것만이 수령에 오르는 유일한 길이었다. 김일성이 권력 투쟁에서 정권을 확보했다면, 김정일은 후계자 자리를 놓고 계모 김성애의 비호를 받은 이복동생들과 경쟁해야 했다.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이던 삼촌 김영주도 경쟁 대상이었지만, 김정일은 31세에 후계자 자리를 꿰찼다.
김정일의 눈에 김정은 역시 이복형인 김정남, 친형인 김정철과 비교 대상이었다. 2008년 여름 뇌졸중이 발병한 김정일은 후계자 지명을 서둘렀고, 북한은 2010년 9월 당 대표자회를 계기로 김정은을 후계자로 처음 공개했다. 후계자 선택은 수령의 의중이 결정적이다. 북한은 수령의 결정에는 오류가 없다고 주장해 왔는데 그 결정을 반대할 수 있는 체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수령과 역할·지위 같은 후계자
북한은 육체적 생명은 부모에게서 받지만, 정치적 생명은 수령(당)에 있다는 ‘사회 정치적 생명체론’을 주장해왔다. 여기에서 수령을 인체의 뇌(북한은 ‘뇌수’라 표현)에 비유하며 ‘인민 대중의 창조적 활동을 통일적으로 지휘하는 중심’이라거나 ‘체제의 운명을 결정하는 존재’로 정의한다. 북한이 수령을 신적인 존재로 여기고, 최고 존엄이라 부르는 이유다.
김정일이 후계자가 된 이후 체계화한 후계자론에 따르면 후계자는 수령의 지위와 역할이 같다. 후계자에겐 이데올로기를 해석하는 권한도 있다. 후계자는 ‘미래의 수령’을 예약한 인물이지만, 사실상 현실의 통치자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1997년 망명한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생전에 “1974년부터 1994년 김일성 사망 이전까지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가 공동으로 정권을 이끌었으며, 1985년부터는 사실상 김정일이 북한을 통치해 왔다”고 증언했다. 김정은 역시 2010년 후계자로 공표된 뒤부터 각종 지시를 하고 통치해온 사실이 속속 알려졌다.
후계자론이 내세우는 후계자의 최우선 덕목은 수령에 대한 충실성이다. 비범한 예지와 뛰어난 영도력, 고매한 공산주의 덕성도 지녀야 한다. ‘계속혁명’을 위한 혈통 계승론, 수령이 살아 있을 때 후계자를 지명하는 준비론, 다음 세대에서 후계자를 지명한다는 세대교체론은 후계론의 핵심이다. 수령을 가장 잘 이해하고 충실한 인물은 자식이고, 다음 세대에서 후계자를 지명한다는 논리는 자식에게 권력을 넘겨주기 위한 정당성 확보 차원일 수 있다.
봉건적 성격이 강한 북한에서 수령의 자식들은 태어나서 생활하는 그 자체가 제왕학(帝王學)이다. 이를 고려하면 김주애도 후계자 후보 중 한 명이고, 후계자 수업 중이라는 국정원의 판단은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북한 매체들도 김주애에 대한 수식어를 2022년 첫 등장 이후 ‘사랑하는’에서 ‘존귀하신’을 거쳐 지난 3월엔 ‘향도의 위대한 분들’로 격을 줄곧 높여왔다.
김정은의 계산된 혼선 전술일 수도
그러나 북한이 제시한 후계자 요건을 고려하면 이제 갓 열 살을 넘긴 김주애가 수령의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 비범한 예지와 뛰어난 영도력 및 공산주의 덕성을 갖춰야 한다는 요건에 충족하는지는 의문이다. 또 김일성·김정일이 60세를 넘겨 후계자를 지명한 것과 달리 올해 불혹(不惑), 즉 만 40세인 김정은이 이 문제를 서둘러야 할 이유가 있는지도 궁금증을 낳는다.
무엇보다 김주애가 다른 형제들보다 비교 우위에 있다고 판단하기엔 아직 너무 어리다(김정은의 자녀에 대해 김주애가 첫째이고 막내가 아들이란 설이 있다). 그렇다면 최근 북한의 김주애 부각 작업은 김정은의 관심 끌기 차원 또는 계산된 혼선 전술일 수도 있다. 예단하고 휩쓸리기보다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국정원은 김주애가 후계 수업 중이라면서도 다른 형제가 후계자로 나설 가능성을 언급하며 바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고 한다. 누가 김정은의 후계자가 되는지에 따라 남북관계나 북핵 문제, 동북아 지형이 출렁일 수 있다. 한국에 특히 민감한 영향을 줄 사안이다. 현 시점에서 보기에 4대 세습 가능성이 크지만, 북한의 후계 문제는 관객처럼 아니면 말고 식으로 바라볼 사안은 아닐 것이다.
중앙일보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논설위원
08.05 "항문, 발가락 없는 아이들 태어나"…北서 퍼진다는 '유령병' 정체

▲2018년 5월 5개국 국제기자단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을 방문했을 당시 4번 갱도 폭파 전 모습. /뉴스1
북한 핵실험장 인근에서 ‘유령병’으로 불리는 정체불명의 질병이 퍼지고 있다는 한 탈북자의 주장이 나왔다.
2015년 북한을 탈출한 이영란씨는 영국 매체 더선이 2일(현지시각) 공개한 인터뷰를 통해 방사능 영향으로 북한에서 항문, 발가락, 손이 없는 아이들이 태어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탈북 전 풍계리 핵실험장 인근 길주군에 살았다는 이씨는 “내 아들이 유령병에 걸린 사람들 중 한 명”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지역의 의사들이 정체불명의 질병 앞에 무력감을 느꼈다”며 “길주에서 항문, 발가락, 손이 없는 아이를 낳는 것이 일상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어 2013년 북한의 핵실험 당시를 떠올리며 “3차 핵실험이 있던 날 벽시계가 떨어지고 전구가 흔들렸다. 지진인 줄 알고 밖으로 뛰쳐나갔다”며 “이후 방송을 통해 그날 3차 핵실험이 있었고, 근처 풍계리 군사통제구역이 핵실험장이라는 사실을 알게됐다”고 말했다.
당시 주민들은 핵실험 성공 소식에 거리에서 춤을 추며 축하했지만, 정작 이들이 북한 핵프로그램의 첫 희생자가 됐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이씨의 아들에게 이상 증세가 나타난 건 2014년 10월이다. 당시 27세였던 아들은 미열 증세를 보여 중국에서 밀수된 암시장 약을 먹고 버텼다. 이씨는 “유엔이 지원한 의약품이 있지만 정부 고위 관리들이 사재기하고 있다”며 “북한은 무료 의료 제공을 약속했지만 약국의 선반은 텅 비어 있다”고 덧붙였다.
호전될 기미가 없자 이씨는 아들을 병원으로 데려갔고, 병원에서는 “최근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찾아오는 젊은이들이 많다”며 아들 폐에 두개의 구멍이 나있다고 진단했다.
이씨는 탈북 후 한국에서 방사능 검사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방사능 노출 수준이 매우 높았고 백혈구가 매우 낮았다”면서 “여기저기 아프고 다리가 아파서 잘 걸을 수 없고, 두통 때문에 1년에 여섯 번이나 입원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와 같은 증상을 겪고 있는 길주 출신의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에 남아있던 이씨의 아들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2018년 5월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유령병이라고 불리는 질병의 원인을 방사능 때문으로 보고 있다.
핵 전문가 문주현 단국대 교수는 “핵실험장 근처에 비가 내리면 방사성 물질이 지하수를 통해 퍼질 수 있다”며 “적절한 보호 조치가 없다면 북한 핵실험장 인근 주민들은 다른 지역 사람들보다 암, 백혈병, 염색체 이상 등 질병에 걸릴 확률이 더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김자아 기자
08-05 北 미사일 1000발 ‘소나기 발사’ 우려…방공망 무력화 노리나
북한이 신형 전술탄도미사일 발사대를 최전방에 250대 배치했다고 주장했다. 유사시 동시다발적 미사일 공격을 통해 우리 군의 미사일 방어망을 무력화시키겠다는 위협이다.
다만 북한이 250대의 발사대를 활용할 수 있을 만큼의 미사일을 보유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인 만큼, 북한의 대남 미사일 위협 수준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5일 “신형 전술탄도미사일 무기체계 인계인수기념식이 지난 4일에 진행됐다”라며 “중요군수기업소들에서 생산된 250대의 신형 전술탄도미사일 발사대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경제1선부대들에 인도되는 의식이 수도 평양에서 거행됐다”라고 보도했다.
행사에 참석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는 “무장장비들은 이제 우리 군대에 인도되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경지역에서 중요 군사활동을 담당하게 된다”라며 “물론 이는 우리가 계획한 전선 제1선 부대 미사일 무력건설의 1단계 목표를 점령한 데 불과하다”라고 밝혔다.
북한이 공개한 사진에서 식별되는 이동식 발사대(TEL)는 북한이 2022년 4월부터 시험 발사에 나선 근거리탄도미사일(CRBM) ‘화성-11라형’의 발사대와 유사해 보인다. 사거리가 110㎞ 정도로 추정되는 미사일이다.
해당 발사대는 발사관을 4연장 형태로 얹었다. 250대가 동시에 가동되면 이론적으로 1000발을 날릴 수 있다. 북한은 단거리탄도미사일(SRBM)로 분류되는 초대형 방사포도 전방에 다수 배치했다고 주장하고 있어 남북 전면전이 벌어질 경우 미사일을 대량으로 발사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또한 북한은 개전 초 시간당 1만 6000여발의 장사정포를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 퍼부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 때문에 지난해 10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로켓 수천발로 공격하는 과정에서 요격률 90% 이상으로 알려진 이스라엘의 방공망 ‘아이언돔’이 일부 마비된 상황이 한반도에서 재연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아이언돔은 요격률 95%를 자랑하는 이스라엘의 저고도 방공망이다. 발사체를 감지하고 떨어지는 지점을 예측해 중간에서 막아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지난해 10월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로켓 수천발을 쏘는 한편 낙하산을 이용해 침투하거나, 픽업트럭이나 오토바이로 철조망을 뚫어 진입하는 방식으로 아이언돔을 무력화했다
김대영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은 장사정포보다 더 정확한 타격을 할 수 있는 미사일을 함께 발사하겠다는 의도를 보여줬다”라며 “우리가 막을 수단이 없는 건 아니지만 동시에 많은 양의 미사일을 쏘면 모두 방어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라고 밝혔다.
다만 전문가들은 북한이 250대의 발사대에 들어갈 1000발 이상의 미사일을 갖출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평가했다. 소형의 근거리 미사일이며 러시아의 지원이 있다고 해도 대북제재가 작동 중인 상황에서 부품 수급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김 연구위원은 “미사일 발사대를 만든 것이지 실제 미사일을 갖추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최근 우크라이나에서 발사된 북한 미사일은 성능이 좋지 않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고, 어떤 탈북자 증언으로는 북한이 스커드 미사일 10발을 만들면 제대로 작동하는 건 1~2발에 불과하단 얘기도 있다”라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또한 “북한의 행사에 김 총비서가 참석하면 경호 문제 등으로 실탄을 다 제거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이번 행사에 동원된 250대의 발사대가 모두 빈 껍데기인 셈”이라고 말했다.
우리 군도 북한이 ‘미사일 발사대 250대’라는 규모를 활용해 실제보다 과장된 위협을 주는 효과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성준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한미 정보당국은 북한군의 무기 개발 동향을 지속 추적·감시하고 있다”라며 “북한이 공개 보도한 무기체계에 대해 그 성능과 전력화 여부에 대해서는 추적 확인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 실장은 “(북한이 공개한 무기는) 대남 공격용이나 위협용 등 다양한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한다”라며 “사거리에 따라 미사일을 배치하고 활용하는 것이고, 국경 인근에 배치하는 것은 아무래도 사거리가 긴 것은 아니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우리 군은 지난 5월 장거리지대공유도무기(L-SAM) 개발을 완료하는 등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를 발전시키고 있다. L-SAM은 현재 우리 군에서 운용 중인 천궁-Ⅱ‘(M-SAM 블록-Ⅱ)보다 높은 고도 50~60㎞에서 적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상층 방어체계에 속하는 무기다.
L-SAM이 전력화되면 고도 15~40㎞를 담당하는 지대공미사일 ’패트리엇‘(PAC3)과 ’천궁-Ⅱ‘, 40~150㎞를 담당하는 주한미군 사드와 결합해 KAMD가 사실상 완성된다. 아울러 우리 군은 중거리지대공미사일(M-SAM) 개량형을 개발 중이며, 고도 100~1000㎞에서 요격하는 미국산 SM-3 해상탄도탄요격유도탄을 도입한다는 방침도 밝혔다.
군의 한 소식통은 “북한이 개전 초 미사일과 장사정포를 대량으로 발사할 경우 중요시설 외에 어느 정도의 피해는 발생할 수도 있다”라며 “북한의 움직임이 식별되면 즉각 응징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군은 유사시 한국형전술지대지미사일(KTSSM)과 K9자주포, 정찰·타격 드론 등으로 북한의 진지를 무력화하는 계획을 수립해 놓고 있다. 특히 300㎞ 이상 원거리에서 적의 장사정포는 물론 핵심시설을 정밀 타격할 수 있는 KTSSM-Ⅱ를 2027년 11월까지 개발할 계획이다.
(서울=뉴스1) 동아일보
08.11 여기가 대사관인가...잡초 무성하고 불 꺼진 베를린北대사관
부란덴부르크 개선문 주변 번화가에 황량한 모습
대사 대리가 반바지 차림으로 이삿짐 옮기기도
2020년 호스텔 영업중단 판결이후 운영 어려워져
지난 5일 찾아간 독일 베를린 주재 북한대사관은 황량한 분위기였습니다. 주독 북한대사관은 베를린의 번화가인 부란덴부르크 개선문 주변의 글린카슈트라세(Glinkastraße) 5-7 번지에 위치해 있는데, 유독 이곳만 삭막한 풍경이었습니다.
5층, 6층 규모의 두 개 건물과 소형 운동장, 농구장까지 있는 대형 컴플렉스지만 어느 방도 불이 켜 있지 않았습니다. 정문을 지키는 경비원도 없었고, 현관 앞에는 잡초가 가득했습니다. 대사관 앞 인도에도 잡초가 여기저기 피어있어 베를린시도 이곳을 잘 관리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지난 5일 독일 베를린의 중심지인 부란덴부르크 개선문 주변 글린카슈트라세(Glinkastraße) 5-7 번지 북한대사관 모습. 호스텔로 쓰이던 건물 앞에는 잡초가 피어 있으며 대사관 앞의 인도도 잘 관리되지 않고 있었다.

▲지난 5일 독일 베를린의 중심지인 부란덴부르크 개선문 주변의 북한 대사관 앞을 관광객으로 보이는 이들이 걸어가고 있다.
마침 대형 트럭이 들어와 북한 대사관 직원들이 이삿짐을 옮기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대사 대리인 김철준 참사관을 포함한 남녀 3명이 이삿짐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김 대사 대리는 평일 근무시간인데도 반바지 트레이닝복 차림인 것이 특이했습니다. 이에 대해 베를린의 외교 소식통은 “북한 대사관 직원들이 대부분 귀국했는데, 아마도 남아 있던 짐들을 보내려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유럽의 북한 거점 공관인 주독 북한 대사관에는 현재 최소 인원만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23년 박남영 대사가 귀국 후, 후임이 아직 부임하지 않는 가운데 김철준 대사 대리체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현지 외교 소식통들은 “신임 대사가 정해졌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으나 언제 부임할 지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북한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해 포탄 등의 군수품을 지원하고, 독일은 최근 유엔사에 가입함으로써 양국 관계가 좋지 않아 대사 부임이 더 늦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옵니다.
독일 타블로이드 신문 빌트(Bild)에 따르면 주독 북한대사관은 지난 4월 15일 김일성 전 주석의 생일 축하 리셉션을 개최했습니다. 호스트는 대사 대리인 김철준 참사관이었고, 독일 사회민주당의 볼프강 노박 의원, 독일 공산당 대표인 토르스텐 쇠비츠 의원과 양국간 경제협회 임원 등 소수의 인사가 초청받았다고 합니다.

▲지난 5일 독일 베를린 주재 북한 대사관에 대형 트럭이 들어와 직원들이 이삿짐을 옮기는 모습이 보였다.

▲지난 5일 베를린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직원들이 이삿짐을 옮기고 있다. 맨 오른쪽이 김철준 대사대리.
◇ 유엔 대북 제재로 호스텔 영업 중단
유럽에서 최대 규모의 베를린 주재 북한 대사관이 황량하게 된 것은 20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20년 1월 독일 베를린 행정법원은 북한 대사관 건물을 빌려 영업 중이던 ‘시티 호스텔’에 대해 영업 중단 판결을 내렸습니다. 법원은 호스텔 수익이 북한으로 유입돼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고 판결했습니다. 시티 호스텔 측은 2017년부터 임대료를 지불하지 않아 대북제재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를 기각했습니다.
이 호스텔은 2007년부터 운영됐는데, 2016년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발동된 유엔 안보리 결의 2321호에 의해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대북결의 2321호는 “북한 소유 해외공관이 외교 또는 영사 활동 이외 목적에 사용되는 것을 금지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북한 대사관을 빌려 호스텔영업을 하던 터키 회사 EGI는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으나 결국 영업 중단 판결이 나온 겁니다.
이로 인해 북한의 외화벌이의 중요한 수단 중 하나가 차단됐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북한에 억류됐다가 혼수 상태로 송환된 뒤 사망한 미국인 오토 웜비어의 부모는 “전 세계에 숨겨진 북한 자산을 찾아내 책임을 묻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며 주독 북한 대사관 부지의 호스텔을 지목한 바 있습니다. 북한은 호스텔 영업이 중단되고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확산되자 대사관을 축소 운영했는데 아직 정상화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쇠락하는 베를린 북한 대사관
주독일 북한 대사관은 북한의 대유럽외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곳입니다. 냉전시대인 1954년 설치된 주독일 북한 대사관은 동서독 통일 전에는 동독은 물론 동구권 공산주의 국가를 상대로 한 외교 전초기지로 활용됐습니다.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1984년 5월 특별 열차를 타고 약 50일간 소련, 동독,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8개국을 순방했는데 이때 모스크바 주재 북한 대사관과 함께 핵심적인 역할을 한 곳이 베를린 주재 북한대사관이었습니다.

▲김일성 북한 주석이 1984년 6월 동독을 방문, 에리히 호네커 서기장과 함께 인사하고 있다. /우드로윌슨센터
거점공관으로서의 이같은 역할은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통일독일과 북한이 2001년 공식적으로 외교관계를 수립한 후에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유럽 국가들과 정치적 대화 뿐 아니라 경제, 문화 교류에도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해왔습니다.
북한은 주독일 북한 대사관 일부를 호스텔로 활용, 여기서 벌어들인 돈으로 대사관을 운용할뿐만 아니라 다른 공관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김정은 체제에서 유엔 안보리 결의를 무시하고 핵, 미사일 실험을 계속하다가 호스텔 영업이 중단되고 운영난을 맞으면서 유럽의 거점공관마저 황량한 모습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의 효과가 없다며 ‘제재 무용론’을 펼치는데, 주독일 북한 대사관의 삭막한 모습은 이에 대한 반증이 될 듯합니다.
조선일보 이하원 외교담당 에디터
08.16 ‘극장국가’ 북한의 끝나 가는 낡은 영화 상영
북한 ‘김주애 후계 구도’ 성공 가능성은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북한 연구자이자 역사학자인 일본 도쿄대의 와다 하루키 교수는 북한을 ‘극장국가’로 규정했다. 와다 교수는 세계적 인류학자인 클리퍼드 기어츠가 인도네시아 발리의 정치를 연구한 후 제시한 극장국가 개념을 북한에 접목했다. 정치권력이 힘에 의한 강제적 수단 외에도 상징과 은유를 동원한 의식 통제로 사람들을 설득하고, 정권에 따르게 한다는 게 핵심이다. 쉽게 말해 주민들을 극장 안에 몰아넣고 바깥을 보지 못하게 하면서 잘 꾸며진 한 편의 영화를 반복 상영해 그것만을 믿게 만드는 통치술이다.
와다 하루키 “북한은 극장국가”
백두혈통이 기획·연출·주연
수령 향한 절대성·핵무력 중시
총대철학, 김주애가 대변 못해
기존 방식으론 주민 통제 한계
해법은 핵 포기와 경제 살리기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5일 ‘항일빨치산 참가자들의 회상기’를 언급하며 “누구나 혁명의 새 승리를 위해 우리나라의 이상과 포부가 현실로 꽃펴나는 그날을 앞당기기 위해 신심 드높이 싸워나가자”고 강조했다. [노동신문=뉴스1]
백두혈통으로 불리는 김일성 일가가 연출해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의 주제는 ‘총대철학’으로 상징화된 김일성의 빨치산 이야기이다. 과장된 부분이 있지만, 김일성이 만주에서 일본 제국주의를 상대로 싸운 것은 맞다. 보천보 전투는 과장을 통한 신화 만들기의 대표적인 사례다. 김일성과 박달 등이 이끈 항일 세력이 1937년 6월 4일 함경남도 보천면(현재는 양강도)에 있는 일본 주재소 등 관공서를 공격해 일본 국적의 민간인 2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이들은 조국광복회 10대 강령 등 포고문과 격문을 살포하고 순식간에 철수했다.
두 자루의 권총에서 시작된 총대철학

▲와다 하루키
북한은 보천보 전투를 태평양 전쟁 전황을 바꿀 정도로 일본 제국주의에 결정적 타격을 준 전투라고 선전한다. 북한은 이를 기막힌 총대철학 서사로 만들어 현재도 기념비적 사건으로 삼고 있다. 북한 주장에 따르면 김일성이 14세 때인 1926년 6월 그의 아버지 김형직은 두 자루의 권총과 함께 “민중이 총칼을 들고 일어나 제국주의와 싸워 나라를 찾고 착취와 압박이 없는 새 세상을 세워야 한다”라는 유언을 남겼다. 김일성은 이 유언에 따라 제국주의와의 투쟁을 위한 혁명 각오를 다진 이래 빨치산 투쟁을 통해 일본 제국주의를 물리쳤고, 조국해방전쟁(6·25 전쟁)에서 미 제국주의에 승리를 거뒀다는 게 북한의 논리다. 북한은 지금도 이를 선전한다. 지난해 2월 8일 이른바 ‘건군절’ 75주년 열병식에서 빨치산을 재현한 7연대 상징 종대를 맨 앞에 내세우고, 두 자루의 권총을 형상화한 매스게임도 선보였다.
총대철학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우선, 무력 중시다. 김형직의 또 다른 유언인 “칼 든 놈하고는 칼을 들고 싸워야 이길 수 있다”는 정신이 북한 주민과 사회를 지배한다. 대화와 타협이 아니라 격한 물리적 충돌을 동원해서라도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는 것이 일상이다. 미국과 협상을 하면서 “강경에는 초강경”이라는 주장이 이를 보여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자신의 최대 업적으로 ‘핵 무력 완성’을 내세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버이 수령’을 향한 절대성도 총대정신이 기반이다. 두 자루의 총을 들고 맨 앞에서 싸우는 지도자인 수령은 억압받는 인민을 해방하는 절대자인 동시에 그들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어버이라는 게 북한의 논리다. 특정한 주거지 없이 최소한의 무장으로 정규군과 싸워야 하는 빨치산 투쟁은 최악의 환경이다. 이에 따라 지도자를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는 혁명 가족의 전통과 지도자에 대한 무조건 충성이 강조된다. 북한은 이를 발전시켜 백두혈통 최고 지도자를 정점으로 하는 거대한 가족국가를 출범시켰다. 북한이 수령을 어버이로 칭하거나, 북한 전체를 사회주의 대가정이라 주장하는 배경이다.
지난달 말 발생한 홍수피해 때 보여준 김정은의 행보는 극장국가의 전형이다. 자신이 탄 자동차가 반 이상 물에 잠기고, 구명조끼도 없이 고무보트에 타서 맨 앞에서 달리는 모습은 수령의 안위를 제일 중대시하는 북한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인민이 어려움에 부닥치자 자신의 안전 따위는 상관치 않고 달려가 구해내는 어버이 수령의 모습을 상영함으로써 주민들의 절대적 충성을 유도하려는 연출이다. ‘수령이 우리(주민)를 위해 저런 험난한 상황을 마다치 않는다’는 메시지를 담은 시나리오다.
핵 무력 역시 총대철학을 담은 영화 테제다. 김일성이 두 자루의 권총이라는 빈약한 무기로 도망 다니면서 싸웠지만, 김정은의 핵이라는 ‘절대 보검’으로 완결되었다는 것이다. 북한은 핵 억제력을 “불의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으며 인류의 미래를 구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할아버지의 피곤한 유격대 국가 시절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고 ‘인민의 행복, 웃음, 밝은 미래’를 보장한다는 서사의 완성인 셈이다.
신인 주연배우 김주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3월 15일 딸 주애와 강동종합온실 준공 및 조업식에 참석했다. [조선중앙TV=뉴시스]
그런데 새로운 주연배우가 등장하며 줄거리가 꼬이기 시작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달 “김주애를 현시점에 유력한 후계자로 암시한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정말 4대 세습자로 김주애를 확정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김정은이 김주애를 현재 영화의 주인공으로 캐스팅한 흔적은 여럿이다. 특히 지난 3월 15일 김정은과 함께 온실농장 준공식 현지 지도를 한 후 노동신문이 “향도의 위대한 분들”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의미심장하다. 향도는 “혁명투쟁에서 나아갈 앞길을 밝힌다”라는 표현으로 오직 수령에게만 ‘향도자’라는 호칭을 사용해 왔다. 상징성을 중시하는 극장 국가에서 향도자들이라는 복수를 사용해 김주애를 포함했다는 것은 주목할 부분이다.
그러나 김주애를 신인배우로 내세운 건 김정은의 최대 패착으로 결국 극장의 문을 닫을 수도 있다. 총대철학을 기반으로 한 무력을 김주애가 대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를 차치하더라도 북한은 여성을 혁명의 주체가 아닌 조력자로 삼는다. 북한은 ‘조선의 어머니’로 부르는 김일성의 처 김정숙을 북한 여성의 전범(典範)이자 김일성의 가장 충성스러운 부하, 그리고 수령의 안위와 권위를 지키기 위해 헌신한 대표적인 인물로 꼽는다. 철저한 조연이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여성들의 고위직 진출에는 유리천장이 있다. 김정은이 김주애를 데리고 다니며 4성 장군의 무릎을 꿇리더라도 한계가 있는 셈이다. 또 수령을 인민의 어버이로 여기고, 어버이는 결국 남성이라는 봉건의식이 강한 북한의 사회 구조상 김주애는 부적절한 인물이다.
다른 극장 기웃거리는 MZ세대
이미 북한이라는 극장 밖에서 상영되는 다른 영화를 엿보기 시작한 북한판 MZ세대, ‘장마당 세대’는 북한 체제가 상영하는 영화에 흥미를 잃을 게 분명하다. 수십만의 아사자가 발생했던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 이후에 태어난 북한의 신세대는 두 가지 특성을 보인다. 국가에 대한 충성심 약화와 외부 사조에 대한 호기심이다.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엄마의 장마당 경제 활동을 경험했기에 국가에 대한 기대치가 낮다. 이들은 외부, 주로 한국문화에 관심도 크다. 통일부가 지난 2월 발간한 『북한 경제·사회 실태 인식보고서』에 따르면 김정은 집권 전 외국 영상물에 대한 관심은 48.1%였지만, 2016∼2020년에는 73.1%로 두 배 가까이 상승했다. 특히 20대의 관심이 다른 세대보다 높다.
이들 세대는 세습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측면도 강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김정은 집권 이전 백두혈통 영도체제에 대한 지지도는 50%였지만, 집권 이후 30.9%로 하락했다. 김정은도 이를 의식해 2020년부터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청년교양보장법, 평양문화어보호법 등을 제정해 한국 문물을 접할 경우 강력한 처벌을 가한다. 이러한 법을 제정했다는 자체가 ‘괴뢰 사조’를 막지 못한다는 방증이다.
북한이라는 영화관의 운영과 관련해 선택은 김정은의 몫이다. ‘인민 대중의 사상문화와 생활’을 물리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한 시대다. 인간 존엄의 근본인 ‘자유’를 억압할수록 반발은 커진다. 더욱이 김주애를 내세우는 것은 그나마 명맥을 유지해온 극장의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빨치산이 상징하는 군사투쟁, 가족국가로 대변되는 어버이의 이미지, 유교 국가 특성인 남성중심 사회 등은 김씨 일가의 3대 세습을 뒷받침해 준 골격이다. 북한 주민들은 수령의 결정을 무조건 받아들이도록 주문받아 왔고, 이를 절대 선으로 여긴다. 그러나 김주애가 후계자가 된다면 영화의 주인공과 줄거리가 뒤죽박죽돼 흥행에 실패할 것이다. 당연히 관객은 다른 극장의 영화로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기존 영화 상영을 계속할지, 아니면 스스로 극장 밖으로 나와 핵을 내려놓고 경제를 살릴지 선택할 때가 왔다. 후자가 김정은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은 자명하다. 70년을 상영해온 낡은 영화는 끝나가고 있다.

중앙일보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08.28 수해·식량난 허덕이는데… '김정은 애마' 24마리 러시아서 수입
북한이 식량난과 수해 피해에도 ‘김정은 애마’로 알려진 러시아산 고가의 말 24마리를 수입했다.
27일(현지시각) 미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러시아 연해주 농축산감독청은 지난 25일 오를로프 트로터 품종의 말 24마리가 북한으로 운송됐다고 밝혔다. 수말 19마리와 암말 5마리는 블라디미르 지역에서 검역을 거친 후, 특수 장비를 갖춘 두 대의 운반차에 실려 하산 철도 검문소에 도착해 북한으로 운송됐다. 이들 말에는 모두 무선식별장치(마이크로칩)이 이식되어 원산지 확인이 가능하다.
이번 수입은 약 1년 9개월 만에 이루어졌다. 러시아는 지난 2022년 11월에도 북한에 말을 보낸 바 있다.
오를로프 트로터 품종은 외모가 뛰어나고 인내심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9년 말 이 품종의 백마를 타고 백두산을 오르는 모습이 공개돼 ‘김정은 애마’로도 불린다. 지난해 2월 인민군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는 김 위원장의 딸 주애가 탄다는 백마가 등장했다.
이 품종의 말은 나이와 건강, 혈통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며, 온라인에서 최소 1000달러(약 133만원)에서 최대 15만달러(2억원)이상에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이번에 수입한 말을 승마나 기마 부대에 사용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탈북민 출신 이현승 글로벌평화재단 연구원은 “북한에서는 관리기술이나 인력 부족으로 말들이 자주 폐사하기에 이번에 말들을 수입했을 것”이라며 “북한이 주민들에 승마 경험을 쌓게 해준다며 미림승마장 등을 만들었지만 이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안 된다”고 밝혔다. 또 “특히 북한에서 말 수입에 대한 소식을 전혀 알리지 않기에 주민들은 식량난과 수해 등으로 피해를 당한 상황 속에서도 당국이 고가의 말을 구입했다는 사실조차 모를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최근 염소 447마리도 수입하는 등 북한과 러시아간 축산물 거래가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고 매체는 전했다.
조선일보 이혜진 기자
08.28 한·미 연합연습 때…김정은 '서울 불바다' 240㎜ 방사포 참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7일 제2경제위원회 산하 국방공업기업소들이 생산한 240㎜ 방사포무기체계의 검수시험사격을 참관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8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한·미가 연합연습 '을지자유의방패(UFS)'을 진행하는 가운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신형 240㎜ 방사포의 검수 시험 사격을 참관했다고 북한 관영매체들이 28일 보도했다. 수도권을 사거리에 둔 방사포 시험 발사는 직접적인 대남 위협인 동시에 무기 거래를 확대 중인 러시아에 수출하려는 목적도 있어 보인다.
노동신문은 이날 “김정은 동지께서 27일 제2경제위원회 산하 국방공업기업소들에서 생산되고 있는 240㎜ 방사포 무기 체계의 검수 시험 사격을 보셨다”며 관련 사진을 함께 공개했다. 신문은 “기동성과 타격 집중성에서 기술 갱신된 방사포 무기 체계는 이날 검수 사격에서 또다시 새로 도입된 유도 체계와 조종성, 파괴 위력 등 모든 지표들에서 우월성이 입증됐다”고 주장했다. 또 김정은이 이 자리에서 “포 무기 생산과 부대들에 교체 장비시키는 사업에 필요한 중요 방침”을 밝혔다고도 덧붙였다.
북한 관영 매체들은 이동식발사대(TEL)에서 방사포 두 발이 발사되는 장면도 공개했다. 이와 관련,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어제 오전 서해상에서 발사된 북한의 방사포를 감시·추적했다”며 “현재 진행 중인 UFS 연합연습과 야외 기동 훈련은 계획대로 정상 시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두 발만 공개했지만, 군은 실제론 여러 발을 발사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7일 제2경제위원회 산하 국방공업기업소들이 생산한 240㎜ 방사포무기체계의 검수시험사격을 참관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8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이번 사격에는 박정천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조춘룡 당중앙위 비서, 이영길 인민군 총참모총장, 김정식 당중앙위 제1부부장, 김용환 국방과학원장 등도 참석했다.
북한이 ‘기술 갱신’을 강조하고 있는 신형 240㎜ 방사포는 다연장로켓포(MLRS)로 남측 전방 부대와 수도권이 사정권에 들어온다. 북측이 “서울 불바다”를 거론할 때 등장하는 무기여서 대남 위협용으로 분류된다.
북한은 1980년대 전후 생산된 방사포의 사거리를 늘리고 정밀도를 높여 신형으로 교체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북한은 올해 2월 “조종방사포탄과 탄도 조종체계를 새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고 처음 주장했다. 기존 방사포의 사거리는 40㎞ 가량인데, 신형은 조종 날개를 달아 사거리를 70~100㎞까지 늘렸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다만 이번 검수 시험 사격 공개의 배경에 대해선 대남 위협용, 대러 수출용 등 여러 계산이 깔렸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북한은 지난 4월에도 신형 240㎜ 방사포의 검수사격을 김정은이 참관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올해 신형 방사포의 전면적 생산·배치 계획을 마련하고 일련의 최종 점검 일정에 따라 진행됐을 수 있다"며 "대규모 기동훈련을 수반하는 UFS 기간에 공개했다는 점을 볼 때 북한의 (한·미 연합연습에 대한)대응 의지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지적했다. 통상 북한은 한·미 연합연습 기간 중 대응하는 무력 시위를 해왔는데, 이번 사격 공개도 이런 차원일 수 있다는 해석이다.
이에 더해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은 올해부터 탱크, 장갑차, 방사포 등 재래식 무기의 현대화와 무인기 등 재래식 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면서 "이는 핵 억제력을 갖췄다는 판단 하에 재래식 무기 체계의 열세를 만회하려는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전술핵공격잠수함이라고 주장한 김군옥 영웅함.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한편 북한은 최근 김군옥 영웅함과 8.24 영웅함 등 주요 잠수함 13척을 국제해사기구(IMO)에 등재 신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의 소리(VOA)는 28일(현지시간) “IMO 국제통합해운정보시스템(GISIS)에 ‘상어2급’ 1호부터 11호까지, 또 신포급인 ‘8.24 영웅함’과 신포 C급인 ‘김군옥영웅함’ 등의 잠수함이 '조선 정부 해군' 소속 북한 선적으로 등재됐다”고 보도했다. 통상 상선이 아닌 군함을 IMO에 등재할 필요는 없는데, 이례적으로 IMO에 등재를 신청했다는 것이다.
북한이 보유한 잠수함은 70여척으로 추정되는데 이 가운데 일부만 등재한 배경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북한이 중국·러시아와의 연합 훈련을 염두에 두고 있을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VOA에 "북한이 자신들의 잠수함 역량을 실제로 갖췄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일 수 있다"며 "다만 이번에 공개된 잠수함 상당수는 연식이 높아 해외로의 운항이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중국과 러시아 연안에서는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에 이를 위한 준비 과정일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해 압록급 호위함 '661'호 등도 IMO에 등재했다. "최신형"이란 북한의 주장과 달리 IMO 선박 정보를 통해 1992년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이 사용하던 구형 함정이란 이력이 드러나기도 했다.
중앙일보 이유정 기자
08.29 ‘적자생존’에서 ‘찍자생존’으로 바뀐 북한의 신풍속도
#1. 지난달 15일 함경남도 신포 바닷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에어컨이 설치된 흰색 천막 안에서 노동당 고위 간부, 군 지휘관들과 지방경제 발전협의회를 개최했다. 이 지역에 수산사업소와 대형 양식장을 건설해 양식 산업을 일으키겠다는 구상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북한이 방영한 회의 영상에는 야전 지휘소를 연상케 하는 대형 천막 한쪽 벽면에 양식장 조감도와 관련 정보를 적어놓은 패널이 서 있었다. 김 위원장의 지시가 있었는지 그와 얘기를 나누는 2명의 군 지휘관을 제외한 20여명의 간부가 핸드폰을 들고 패널 앞으로 모여들어 연신 핸드폰 카메라로 촬영하느라 분주했다.

▲북한 고위 간부들이 지난달 15일 함경남도 신포 바닷가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해 벽에 설치된 패널을 핸드폰으로 촬영하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디지털 시대에 집권한 김정은
행사 사진 대량 공개하며 통치
간부들 녹음기, 핸드폰으로 대체
다양한 소프트웨어 사용은 제한
#2. 지난 4일 평양에서 진행한 신형 전술탄도미사일 발사대 인수인계 행사장. 공식 행사가 끝난 뒤 참석자 가운데 군복을 입은 4명이 발사대 앞에 서서 기념사진 촬영 포즈를 취했다. 다른 참석자 2명은 각각 핸드폰으로 이들의 사진을 찍었고, 이런 광경이 조선중앙통신에 공개됐다.

▲지난 4일 열린 신형 전술탄도미사일무기체계 인계인수 기념식에서 스마트폰으로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에서 손전화라고 부르는 핸드폰은 외국인, 내국인, 업무용(간부용) 등 용도에 따라 앞번호가 다르다.
1911, 1912, 1913 등이다. 일부 핸드폰을 제외하곤 용도가 다른, 즉 앞자리가 다른 핸드폰끼리 전화가 되지 않는다. 보안을 위해서다. 하지만 핸드폰에 탑재된 카메라는 번호와 상관없이 작동한다. 최근 북한이 공개하는 영상이나 사진 속에는 북한 간부나 주민들이 핸드폰을 들고 사진 촬영을 하는 장면들이 심심찮게 나온다. 북한에 보급된 핸드폰 숫자가 700만 대를 넘어섰고, 핸드폰이 필수품이 되면서 북한 간부들의 풍속도도 달라지고 있다.
요즘은 찍어야만 산다
김 위원장이 집권한 뒤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는 “졸면 죽는다”와 “적자생존”이라는 표현이 유행했다. 김 위원장은 집권 초기 공포정치를 일삼았는데 자신이 주관하는 회의에서 졸았다는 이유로 현영철 총참모장을 총살시켰다는 소문도 돌았다. 김 위원장이 하는 말을 꼼꼼하게 받아 적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적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의미로 ‘적자생존’이라는 말도 생겼다. 김 위원장을 수행하는 자리에서 짝다리로 서 있거나, 먼 산을 바라보곤 했던 그의 고모부 장성택은 2013년 12월 처형됐다. 이후 김 위원장이 자리하는 곳에선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경쟁하듯 받아 적기에 몰두하는 모습이 일상이 됐다.

▲지난달 29일에서 30일까지 진행된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22차 정치국 비상확대회의에서 참석자들이 필기를 하고 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적자생존’의 분위기는 김일성 시대 때부터 내려왔다. 김일성은 수시로 회의를 소집하거나 간부들을 대동하고 현지지도에 나서곤 했는데 그를 수행하는 간부들은 항상 수첩과 필기구를 들고 있다. 눈길을 끄는 건 당시 사진에는 필기구뿐만 아니라 일본제로 추정되는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를 함께 들고 있다는 점이다. 반도체를 이용한 녹음 장치가 없던 시절이었던 만큼 녹음테이프를 장착하고 김일성의 얘기를 녹음하는 것이다. 혹여라도 지도자의 지시를 놓치면 가장 큰 불경죄에 해당하다 보니 녹음기가 필수품이었던 셈이다.

▲김일성 주석이 1985년 8월 자신의 출생지인 평양 만경대 인근을 간부들과 둘러보고 있다. 수행한 간부들이 손에 녹음기를 들고 있다. [중앙포토]
김정일,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도 수첩을 든 간부들의 모습은 그대로다. 차이라면 김정은 시대엔 녹음기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핸드폰의 녹음 기능을 이용하거나 눈에 띄지 않는 별도의 녹음장치를 이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신포 협의회’처럼 간부들이 핸드폰으로 업무 참고자료를 촬영하는 모습은 ‘적자생존’에 ‘찍자생존’이 더해지는 분위기다. 녹음기에서 핸드폰으로 바뀌고, 녹음은 기본에 ‘찍는’ 풍경이 추가된 것이다.
김정은과 사진 찍으면 출셋길
김정은 시대 들어 또 달라진 건 그의 활동을 담은 사진이 대량으로 공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김일성이나 김정일 시대에는 열병식 등 다수의 사진 공개가 필요할 경우 월간지로 발행하는 『화보 조선』이나 별도의 화보집을 활용했다. 일반 현지지도나 공개활동은 노동신문에 사진 1~2장을 공개했던 게 전부다. 사진을 소개할 수단이 종이로 한정돼 있었고, 김정일 시대엔 그나마 부족했다. 1990년대 후반 극도의 경제난을 겪었던 ‘고난의 행군’ 시절 북한은 『화보 조선』도 격월간으로, 종이 크기 역시 B4에서 A4 사이즈로 줄였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 집권한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달 삼지연 방문 때 63장을 비롯해 많을 경우 한 번에 70장이 넘는 사진을 온라인 매체에 싣는다. 사진을 대거 내놓다 보니 군사작전 지도나 각종 통계 수치 등 북한이 비밀로 여기는 내용이 고스란히 외부에 노출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최근 북한은 김 위원장 위주로 촬영하되 배경에 찍혀 있는 민감하다고 판단되는 부분을 흐리게 모자이크 처리한 뒤 내보내고 있다.

▲지난 5월 김정은 위원장이 당 중앙간부학교 준공식 참가자들과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평양 노동신문=뉴스1
김 위원장이 유독 단체 사진 촬영을 즐긴다는 점도 특징이다. 노동당 중앙간부학교처럼 북한이 기념비적이라고 내세우는 대형 공사에 참여했던 노동자나 열병식 참가자, 지난달 말 수해지원에 나섰던 헬기부대원들도 김 위원장과 단체 촬영을 했다. 지난 5월엔 김 위원장이 당 중앙간부학교 준공식에 참석하고도 다음 날 별도로 일정을 잡아 한 그룹당 1000명 가까운 사람을 모아 12그룹과 촬영에 나섰다. 수백 명이 군복처럼 같은 옷을 입고 촬영을 하다 보니 얼굴조차 분간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그럼에도 북한은 “대를 두고 길이 전할 영광의 기념사진”이라거나 “참가자들은 감격과 환희에 넘쳐 있었다”고 선전한다. 북한 주민들이 신처럼 여기는 최고지도자와 사진을 찍은 것 자체를 자랑으로 여기게 함으로써 사진 촬영을 일종의 심리적 보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최고지도자와 함께 사진을 찍은 건 향후 당원 가입 때 가장 확실한 신분 보증 수단으로, 그리고 혹여 사건으로 곤경에 처했을 때 참작요소로 활용되기도 한다. 지도부 입장에선 사진 정치지만 주민들에겐 팔자를 펴는 ‘은혜’를 입는 셈이다. 단체 촬영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핸드폰에 이를 저장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과시’하려 할 것이다.
현대인은 디지털 신인류라는 뜻으로 호모디지쿠스로 불린다. 핸드폰이 일상으로 파고 들면서 북한 간부들과 주민들도 이런 거대한 변화의 물줄기에 올라탔다. 그러나 변화의 속도는 더디다. 외부 정보 유입을 우려한 북한 당국이 노래 감상이나 게임, 내비게이션, 컬러링 등 한정된 서비스만 제공하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이 카메라 등의 하드웨어 기능이 아니라 소프트웨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10년, 아니 5년 뒤엔 정보의 바다에서 길을 잃게 될 게 자명하다.
중앙일보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논설위원
08.30 북쪽은 철조망, 남쪽엔 콘크리트 장벽… 북한은 감옥으로 변하고 있다
北, 中 국경에 전기 철조망 추가
중국도 설치… 이제는 3중 철조망
휴전선엔 올 들어 콘크리트 장벽
북 영토, 거대한 감옥으로 변하는 중
마치 냉전 시대 베를린 장벽 같아
체제 경쟁 패배 인정 자술서인가
하지만 북 주민의 생존 의지는
핵무기·장벽으로 막을 수 없다
고대 로마는 유럽과 아프리카, 서아시아의 문명 세계 대부분을 정복하고 세 대륙을 망라하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그러나 호전적 게르만족이 거주하던 유럽 북부 지역은 험한 불모지라 정복할 가치도 여력도 없어 미정복 지역으로 방치한 채, 거대한 방벽을 건설해 문명 세계의 외곽 경계선으로 삼았다. 이를 위해 로마는 서기 1세기경 라인강과 다뉴브강의 자연 경계선을 연결하는 550km 길이의 ‘게르만 방벽’을 건설했고, 로마가 지배하던 브리타니아섬 북부에도 ‘하드리아누스 방벽’이라 불리는 118km의 방어벽을 건설해 북방 스코틀랜드 부족의 침입을 막았다.
중국도 같은 이유로 강성한 북방 유목 민족의 침입을 막으려 기원전 7세기부터 명대에 이르기까지 2,000년간 무려 21,000km에 달하는 거대한 만리장성을 건설했다. 로마와 중국이 건설한 방벽은 당시로서는 호전적 이민족의 침략에서 최소의 희생으로 문명 세계를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이 방벽들은 문명 세계가 비문명 세계의 위협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차단벽이었기에, 오랜 세월 동안 문명 세계와 비문명 세계를 가르는 경계선이 되었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와서 이 고대 방벽들과 정반대 목적을 가진 방벽이 등장했다. 동서 냉전 시대인 1961년 동독은 자국민이 서독 영토인 서베를린으로 탈출하는 것을 막고자 총연장 172km, 높이 3.6미터의 장벽과 감시 타워 300개로 서베를린 전체를 에워싸는 베를린장벽을 건설했고, 센서가 부착된 자동사격 장치까지 설치했다. 불법 월경자를 사살하는 동독 정부의 강경 조치로 약 200명에 달하는 동독인이 베를린장벽 월경 중 사망했다. 그럼에도 불구, 1990년 동·서독 통일 때까지 29년간 5,000명 이상의 동독인이 목숨 걸고 장벽을 넘어 서독으로 탈출했는데, 놀랍게도 그중 1,300명 이상이 베를린장벽의 감시 타워를 지키던 동독 경비병들이었다 한다.
냉전 체제의 상징이던 베를린장벽은 1989년 독일 통일과 더불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신냉전 시대의 도래와 더불어 그와 동일한 목적을 가진 비문명의 장벽이 한반도에 건설되고 있다. 북한은 주민의 탈북을 막고자 2010년대부터 북·중 국경에 철조망을 설치하기 시작하더니, 2020년대에 들어서는 전기 철조망이 추가된 이중 철조망을 국경 전역에 건설 중이다. 이에 더하여 중국이 탈북자의 진입을 막기 위해 별도의 철조망을 국경에 설치함에 따라, 북·중 국경에는 휴전선 못지않은 삼엄한 3중 철조망 장벽이 조성되고 있다. 북한은 이에 그치지 않고 2024년 들어 휴전선 전역에 콘크리트 장벽과 지뢰밭을 설치하고 있어, 북한 영토 전체가 남북으로 철조망과 콘크리트 장벽에 갇힌 거대한 감옥으로 변해가고 있다.
지난해 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북 관계를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선언한 이래 북한은 통일전선부 등 대남 기관 명칭에서 ‘통일’ 단어를 삭제했고, 통일 관련 제도, 기념물, 서적까지 폐기했다. 북한이 휴전선에 건설 중인 콘크리트 장벽과 지뢰밭은 그러한 남북 관계 차단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물리적 장벽을 강화하려는 조치로 보이나, 안보적 차원에서 대남 방어 태세를 강화하기보다는 국내 정치적 차원에서 북한 병사와 주민의 대남 접근을 원천 차단하고 미래의 대량 탈북 사태를 예방하려는 의도가 훨씬 큰 것으로 보인다. 과거 동독 주민의 베를린장벽 월경을 감시하던 동독 감시병이 1,300여 명이나 탈출 대열에 합류했던 사례를 상기해 본다면 이는 북한 당국의 단순한 기우만은 아닐 것이다.
냉전의 상징인 베를린장벽을 연상시키는 제2의 베를린장벽으로 부상하고 있는 김정은 정권의 휴전선 콘크리트 장벽은 체제 경쟁 패배를 인정하는 북한 당국의 자술서와도 같다. 북한이 구축하려는 두 국가 체제와 콘크리트 장벽은 과연 북한 체제의 생존을 보장해 줄 수 있을까. 역사상 아무리 견고한 장벽도 영원할 수는 없었다. 베를린장벽은 동독 주민의 목숨을 건 월경 의지를 막지 못해 무너졌다. 로마는 게르만 장벽을 넘어 침공한 게르만족에게 멸망했고, 중국도 만리장성을 넘어온 몽골족과 여진족에게 멸망했다. 지난 6월 북한의 콘크리트 장벽 너머로 대북 확성기 방송이 재개되자 휴전선 인근 지역 북한 군인과 주민의 귀순이 이어지고 있다. 인간의 생존 의지는 핵무기로도 콘크리트 장벽으로도 막을 수 없다.
09.04 김정은 보트 타고 수해지역 돌더니…"北간부 무더기 처형한 듯"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7월 28일 폭우 피해를 입은 평안북도 신의주시를 돌아보고 있는 모습. 노동신문=뉴스1
국가정보원이 북한에서 지난 7월 말 북부 국경지역 일대에서 발생한 수해의 책임을 물어 다수의 간부를 처형한 동향이 있어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4일 밝혔다. 처형된 간부 중에는 피해가 심한 자강도의 노동당 책임비서인 강봉훈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앞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7월 29~30일 홍수와 폭우로 큰 피해를 본 평안북도 신의주시에서 진행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22차 정치국 비상확대회의에서 우리의 경찰청장에 해당하는 사회안전상과 평안북도·자강도의 당 책임비서를 경질했다. 이는 김정은이 하루 전날인 7월 28일 신의주시와 의주군의 피해현장을 돌아보면서 "재난을 초래한 국가기관과 지방 간부들의 직무 태만"을 엄하게 질책하고 이들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암시한 지 하루 만에 단행한 인사였다.
이에 따라 책임 간부들에 가혹한 처벌이 예상됐으나, 처형까지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국정원은 보고 있는 것이다. 간부를 무더기로 처형한 게 사실이라면 수해로 인한 민심 이반 등을 우려, 김정은이 책임을 묻기 위한 극단적 조치를 취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정보당국은 또 이번 수해로 북한에서 상당한 인명 피해가 발생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관련 동향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 국정원은 지난달 26일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에서 북한 수해와 관련해 "실제적 물적 피해가 많은 곳은 자강도로 분석된다"며 "실질적으로 피해가 많이 발생한 자강도에 대해 일절 언급과 외부 노출이 없다. 상당히 흥미롭고 특이하다"는 평가를 내놨다.
한편 북한이 윤석열 대통령의 '8·15 통일 독트린' 제안에 무반응으로 일관하는 것은 김정은이 내놓은 '적대적 두 국가론'을 뒷받침할 논리가 부실한 탓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태영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사무처장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민주평통 사무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북한 내부에서도 두 개 국가론에 대한 내부 이론이 완성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며 "윤 대통령이 통일 화두를 던진 데 대해 북한이 반박하기 쉽지 않고, 당 내부에서 이론을 체계화하는 준비가 아직 되지 않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 태영호 처장은 북한이 재일 친북 단체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에도 '두 국가론'과 관련해 명확한 지침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전언을 공개했다.
그는 "얼마 전 북한에서 조총련에 내려보낸 (적대적 두 국가론과 관련한) 지침서를 본 조총련 원로들이 조총련 중앙위원회에 '어떻게 이렇게 통일을 내려놓을 수 있느냐'고 질문을 보냈는데, '평양에서 아무런 정책 방향적 설명문이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에 현시점에서는 지침서를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입장을 전달받았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두 개 국가론을 화두로 던졌는데 세부계획도, 내부자료도 없고 해외에 보내는 추가적 해설집도 없는 것을 보면 이론적 정리가 끝나지 않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태영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이 4일 서울 중구 민주평통사무처에서 기자간담회를 진행하는 모습. 민주평통 제공
또 태영호 처장은 북한 엘리트들이 한국과의 체제 경쟁에서 졌다는 패배의식에 빠져있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한 설명도 내놨다. "2009년 당시 북한 내 경제연구소 관계자에게 남북 간 경제 격차를 물었더니 120대 1 수준으로 보고 있었다"며 "노동신문에선 패배주의에 빠지지 말라고 주장하면서도 내부적으로 통일이 되면 북한 주민들이 남한 자본의 노예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러시아와 직접 연결되는 지리적 특성이나 저출생으로 인해 부족한 인력을 북한에서 제공할 때 통일 이후 경제적 편익이 생기고 북한 주민들의 생활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알리면 (북한에서도)통일에 대한 꿈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 출신인 태영호 처장은 지난 7월 평화·통일 달성을 위한 정책을 대통령에게 건의하는 자문기구인 민주평통 사무처장(차관급)에 임명됐다. 탈북민 출신으로 차관급 임명직에 발탁된 것은 그가 처음이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09.06 명령과 통제 때문에 더 악화하는 북한 경제
북한 지도부의 최근 발언에서 경제 상황의 심각성이 여실히 드러나지만, 정권의 대응은 상황을 오히려 악화시키고 있다. 향후 10년 동안 매년 20개의 공업 공장을 세워 지방 경제를 발전시키겠다는 ‘지방 발전 20×10 정책’이 대표적이다. 지난 1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에서 ‘세기적인 낙후성을 털어버리고 중앙과 지방의 차이를 줄일’ 필요성이 있다고 연설했다.
지방 발전 20×10 정책은 세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경제 조건이 아닌 정치적 명령으로 지방에 공장을 건설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일부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방은 농업이면 몰라도 공장이 들어설 여건이 안 된다.
‘지방 발전 20×10 정책’ 역부족
명령으로 공장 건설 제대로 될까
곡물관리소 건립 명령도 무리수
둘째, 공장 여러 개를 동시에 건설할 자재와 설비, 인력이 과연 있는지도 의문이다. 2020년 3월 건설에 착수했지만, 아직 개원하지 못하는 평양종합병원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싶다. 셋째, 공장을 건설해도 효율적으로 공장을 가동할 수 있는 원자재나 에너지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대기근을 초래했던 중국 대약진운동(1958~1962)의 데자뷔가 엿보인다.
정책 발표 8개월이 지난 8월 말에 김정은은 평안남도 성천군과 평안북도 구성시를 시찰하며 큰 만족을 표했다. 그러나 김정은은 연설에서 군이 노동력을 제공하고는 있으나 20×10 사업과 농촌 주택 건설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 일단 공장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방 주민들은 아마도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북한의 주택 부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김정은이 지방 주민의 보금자리 마련 기회를 산산조각낸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김정은은 20×10 정책을 오히려 확대해야 한다며 공장뿐 아니라 현대적 병원에 더해 이번에 새롭게 추가된 과학기술 보급 거점 설립의 중요성을 들고 나왔다.
20×10 정책 외에도 북한 정권은 오랫동안 장마당이 담당했던 주민 식량 공급에 대한 통제권 회복을 위해 노력해왔다. 2021년 4월부터 장마당에서 빵이나 국수 판매가 금지됐고 2023년 1월부터 쌀이나 옥수수 판매도 금지됐다.
김정은은 지난 8월 시찰에서 지역마다 곡물관리소 건립 명령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기존 시설 보수 같은 소극적 태도가 아닌 새로운 시설 건립을 지시했다. 북한 정권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전에 당국이 식량 보급을 주도하며 정치적 힘을 쥐고 있던 시절로 회귀하길 원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런 전략에는 큰 구멍이 있다. 러시아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 그것이다. 집단 농장의 곡물을 러시아에서 구매하고, 주민 배급용 식량을 러시아산으로 저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공급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단 종식되면 곧바로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북한 정권은 집단 농장에 곡물 공급을 유지할 수도 없고, 식량 배급 저장 수준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은 생각보다 빨리 갑자기 찾아올 수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휴전 협정을 맺는다면 말이다. 북한의 ‘돈주(전주)’들이 민첩하다고 해도 하루아침에 공급 라인을 새롭게 만들 수는 없다. 따라서 당국의 곡물 공급 중단과 그 이후 새로운 장마당이 들어서기까지 극심한 식량 부족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북한의 경제 문제는 경제를 자유화하고, 시장의 자율에 맡기고, 외국인 투자를 유치해 공장을 설립하고, 이를 통해 최고의 수익을 추구하는 구조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 전혀 경험 못 한 새로운 길도 아니다. 과거 김정일 체제의 북한에서 중국 기업은 직물 공장 등 대규모 고용 창출 효과가 있는 공장을 설립하고 운영할 수 있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 자유화를 위해서는 정치적 통제를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하는데, 김정은 체제에서는 불가능해 보인다.
북한 정권은 당국의 명령과 식량 공급 통제권 확보를 통한 지방 산업화를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산업화라기보다 통제권 강화 시도라고 봐야 한다. 최근 김정은의 시찰에서 보듯이 창의적 문제 해결보다는 정권의 더 강한 과잉 통제를 통한 문제 해결 시도를 하고 있다. 결과가 좋을 수가 없다. 이로 인한 피해는 결국 고스란히 북한 주민이 입게 될 것이다.

중앙일보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09.07 ‘파이팅’, DMZ 봉쇄 그리고 김주애… 지금 북한엔 무슨 일이?
“김정은의 두 국가론, 북한 주민들 지지 못 받고 있어”
⊙ “김정은의 ‘두 국가론’은 노골적인 무력통일 전략으로 돌아가겠다는 뜻”(김천식 통일연구원장)
⊙ “조선학교에 반쪽 지도 걸라고 하자 조총련 원로들도 ‘이것만은 못 받아들이겠다’ 해”(태영호 민주평통 사무처장)
⊙ “서독이 동독의 ‘두 국가론’에 제대로 대처하고 유일대표성 고수한 결과 독일 통일 앞당겨졌다”(염돈재 전 국정원 제1차장)
⊙ “김주애는 후계자 내정 단계… 김정은은 8세 때 내정”(정성장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
⊙ “핵무장 주장하는 사람들 의도 의심스러워… 핵무장해서 주한미군 철수하면 한미동맹 파괴”(김천식)

▲지난 5월 14일 열린 전위거리 준공식에 참석한 김주애(왼쪽)와 김정은. 사진=로동신문
#1 첫 번째. 2024 파리올림픽 여자 복싱에서 동메달을 딴 임애지(25·화순군청)와 북한 여자 복싱 선수 방철미(29)가 선수촌 내 웨이트장에서 마주쳤다. 방철미는 임애지에게 말했다. ‘파이팅 해라.’
#2 두 번째. 우리 군은 북한군이 수개월에 걸쳐 지속적으로 휴전선 인근 전선 지역에 지뢰를 매설하고 불모지를 조성하고 방벽을 설치해온 사진을 7월 17일 공개했다. 합동참모본부가 공개한 사진에는 북한군이 등에 목함지뢰로 추정되는 물체를 지고 비무장지대(DMZ) 북측 지역에서 지뢰 매설 작업을 하는 모습, 지뢰 폭발 사고와 부상자 후송, 폭염 속 앰뷸런스를 동원해 온열 질환자를 트럭 등에 싣고 가는 모습 등이 담겨 있다.
#3 세 번째, 북한 신문과 방송에 김주애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일정에 함께하는 식이다. 지난 8월 5일 조선중앙TV는 신형 전술탄도미사일무기체계 인계인수 기념식을 보도했는데, 여기에 김여정 선전선동부 부부장이 열한 살 조카인 김주애에게 깍듯이 의전을 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코로나19 기간 굳게 닫혀 있던 빗장을 조금씩 열고 있는 북한, 그 안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김정은 ‘두 국가론’ 발표

▲비무장지대(DMZ)에서 지뢰를 매설 중인 북한군. 지난 7월 17일 합동참모본부가 공개한 사진이다.
‘남북한은 더 이상 동족이 아니다.’ 김정은은 지난해 말 남한과 ‘절교’를 선언했다. 내내 한민족이라 주장했다가 ‘이제는 완전 남’이라 못을 박았다.
2023년 12월 말에 열린 당중앙위원회 제8기 9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은 남북 관계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더 이상 동족 관계, 동질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 현재 조선반도에 가장 적대적인 두 국가가 병존하고 있는 데 대하여서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이제는 현실을 인정하고 남조선 것들과의 관계를 보다 명백히 할 필요가 있다. 우리를 ‘주적’으로 선포하고 외세와 야합하여 ‘정권 붕괴’와 ‘흡수통일’의 기회만을 노리는 족속들을 화해와 통일의 상대로 여기는 것은 더 이상 우리가 범하지 말아야 할 착오다.”
2024년 1월 15일에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10차 회의 시정연설에서도 같은 말을 했다.
“지난 80년간의 남북 관계사에 종지부를 찍고 한반도에 병존하는 두 개 국가를 인정한 기초 위에서 북한의 대남 정책을 새롭게 법화하였다.”
원래 전에도 북한은 한국을 두고 주적(主敵)이라 했다가 아니랬다가 그때그때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 하기는 했다. 그러나 이번엔 상황이 좀 다르다.
김정은은 1월 열린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에 명기한 ‘조국통일 3대 원칙’인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표현을 헌법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직접 지적했다. 남북교류협력의 상징인 경의선의 북측 구간을 ‘회복불가한 수준으로’ 물리적으로 완전히 끊어놓고, 수도 평양의 남쪽 관문에 ‘꼴불견으로 서 있는’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의 철거를 지시했다.
“6·25 일으켰던 그 자세로 돌아간 것”

▲김천식 통일연구원장.
갑자기 ‘두 국가론’을 들고 나온 이유는 뭘까. 두 가지 이유로 볼 수 있다.
첫째, ‘남한을 이길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해서다. 통일부 차관을 지낸 김천식(金千植·67) 통일연구원장은 두 국가론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정확히 봐야 하는 게, 북한은 1948년부터 늘 남북 관계는 적대 관계고 남한은 북한의 주적이라 규정했습니다. 남한을 공산화 통일하겠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한국전쟁을 일으켰다가 실패했지요. 그 실패를 거울삼아 내세운 게 고려연방제입니다. 남조선 혁명과 미군 철수가 선결 요건이죠. 그게 가능하려면 북한이 남한보다 훨씬 더 좋은 체제라는 걸 남한 사람들이 받아들여야 하잖아요. 북한은 그게 불가능하다고 이제 인정한 거죠. 전통적인 방법으로 돌아가겠다는 겁니다. 작년 말부터 북한에서 나온 얘기를 종합해보면, ‘고려연방제 안 하겠다, 남북한은 교전 중인 관계이기 때문에 핵무기로 남한을 파괴해도 합법적’이라 주장하는 겁니다.”
― 김정은은 2월 8일 연설에서는 ‘한국 괴뢰 족속들을 우리의 전정에 가장 위해로운 제1의 적대국가, 불변의 주적으로 규정하고 유사시 그것들의 영토를 점령, 평정하는 것을 국시로 결정’한다고 말했지요.
“노골적인 무력통일 전략입니다. 6·25 전쟁을 일으켰던 그 자세로 돌아간 겁니다. 지금은 남한에 비해 그나마 우위에 있는 게 군사력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어요? 다만 6·25 때와 달리 지금은 주한미군이 있습니다. 주한미군만 철수하면 완벽하게 남한에 대해 우위가 있다고 생각하고 주한미군 철수만을 바랄 겁니다.”
“북한의 전략, 꾸준한 일관성 있어”
― 그래서 북한이 문재인 정권 시기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와 함께 주한미군 철수를 노렸던 거군요.
“북한의 전략에는 꾸준한 일관성이 있는데 우리는 자꾸 그걸 망각합니다.”
올해 들어 미국의 일부 학자들이 ‘동아시아에서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미들베리국제연구소의 로버트 칼린 연구원과 지그프리드 해커 교수는 지난 1월 북한 전문 매체 ‘38노스’에 기고한 글에 이렇게 썼다. “한반도 상황이 1950년 6월 초반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더 위험하다. 지난해 초부터 북한 관영매체에 등장하는 ‘전쟁 준비’ 메시지는 북한이 통상적으로 하는 ‘허세’가 아니다.”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명예교수도 미국의 외교·안보 전문지 《내셔널 인터레스트》에 기고한 글에 “2024년 동북아시아에서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최소한 염두에는 둬야 한다”고 썼다. 이에 대한 김 원장의 생각을 물었다. 그의 답이다.
“저는 그렇게 보지 않아요. 일부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핵전쟁 위협을 강조하면서 북한이 원하는 핵 동결에 동의하자는 겁니다. 그러면서 북한의 공격을 막도록 대화를 한다든가, 제재를 풀어주라든가 하는 얘기들을 하려 드는 게 아닌가 의심됩니다. 전쟁 위기를 과도하게 부풀리는 데는 노림수가 따로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北 정권, 남한 문화와 싸워온 지 오래됐다”

▲태영호 민주평통 사무처장. 사진=조선DB
21대 국회의원을 지낸 태영호(太永浩·62)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은 북한이 남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졌다는 것을, 특히 ‘한류’를 통해 절감할 거라 말했다. 태 처장은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를 지내다 2016년 한국에 들어왔다. 2019년 10월 북한 《로동신문》에는 〈보이지 않는 대결 소리 없는 전쟁〉이란 제목의 사설이 실렸다. 일부 대목이다.
〈제국주의자들이 은폐된 공격 수단으로 다른 나라들의 자주권을 침해하고 정권 전복을 시도하고 있다. 그 수단은 사상문화이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대결이며 소리 없는 전쟁이다.… 제국주의자들이 퍼뜨리는 반동적인 사상문화가 세계를 어지럽히고 있다. 저속하고 불건전한 사상과 문화, 생활방식이 악성비루스(바이러스)처럼 이 나라, 저 나라 국경을 넘어 전파되고 있다. 자라나는 새 세대들에 대한 교양사업에 더 큰 힘을 넣어야 한다. 제국주의자들이 노리는 기본 대상은 다름 아닌 청소년들이다. 제국주의자들은 서방의 사상문화로 청소년들을 부패 타락시켜 그들이 자기의 것을 멀리하고 나라를 반대하여 나서게 하려고 꾀하고 있다.〉
사설에서 북한 정권의 다급함이 느껴진다. 태영호 처장은 “실은 북한 정권이 북한 사회에 흘러들어오는 남한 문화와 싸워온 지 오래됐다”고 말했다.
“2000년대 후반기로 들어서면서 북한이 학교에서 컴퓨터를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컴퓨터 수재를 양성한다면서 컴퓨터 전문학교, 한국으로 말하면 특목고 같은 학교를 전국 곳곳 시군구 단위에 세웠어요. 컴퓨터 교육을 대대적으로 했지요. 그런데 북한이 이후 상황을 예측을 못 한 겁니다. 애들이 컴퓨터를 배우니까 집집마다 컴퓨터를 사려고 하는 거예요.”
“김정일, 자신의 영화창고를 선전선동부에 개방”

▲컴퓨터로 학습 중인 북한 어린이의 모습이다. 사진=연합뉴스
― 컴퓨터가 비싼데 쉽게 살 수 있나요.
“그 틈을 파고든 게 바로 중국입니다. 중국이 저렴한 컴퓨터를 만들고, 북한 회사들이 들여다 판 겁니다. 컴퓨터 부품을 파는 외화 상점들이 생기고, 시장에서도 컴퓨터가 팔리기 시작했어요. 그전까진 집에 돈이 좀 생기면 첫째, 컬러TV, 둘째 냉장고를 사는 식이었어요. 이제는 첫째, 휴대전화, 둘째 컴퓨터라는 식으로 소비 패턴이 바뀌었어요. 그런데 컴퓨터가 보급됐으니 이용할 콘텐츠가 있어야 하잖아요.”
― 그렇죠. 인터넷을 자유롭게 못 쓰는데 컴퓨터가 있어봤자죠.
“북한의 밀수꾼들이 중국에 있는 조선족들과 함께 지하에서 불법 복제를 합니다.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불법 복제해서 담은 USB 플래시 드라이브를 대량으로 생산합니다. 밀수꾼들은 목숨을 걸고 배낭 메고 압록강을 넘나듭니다. 부가가치가 가장 큰 게 한국 영화·드라마가 담긴 USB인데 작고 가볍잖아요. 컴퓨터가 보급되니 USB로 영화와 드라마를 볼 수 있게 된 겁니다. 이전에는 USB가 있어도 컴퓨터가 없어서 쉽게 못 봤거든요.”
― 그렇게 한류(韓流)가 퍼지기 시작했군요.
“이렇다 보니 김정일에게 보고가 들어갔어요. 처음엔 무조건 막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막을 수 없잖아요. 그러자 김정일은 ‘최소한 한국 영화나 드라마는 못 보게 해야 한다’며 자신의 영화 창고를 열고는 선전선동부를 통해 북한 체제에 위협이 되지 않는 재미있는 영화들을 골라 번역해 DVD로 제작하게 합니다. 외국 영화로 한국 영화를 밀어내려 한 거죠.”
― 그걸 주민들에게 판 건가요?
“선전선동부 산하의 목란비데오라는 회사가 DVD를 제작해요. 목란비데오는 평양시를 비롯한 전국 곳곳에 목란비데오 판매점을 두고 있는데 그곳을 통해 팔려 나가는 거죠. 주민들이 그전에는 한국 영화만 보다가 러시아, 중국, 인도, 이집트, 영국 영화까지 접하게 됐는데 〈슈팅 라이크 베컴(Bend It Like Beckham)〉이라는 영화가 인기를 끌었어요. 김정일은 미국 영화라도 재밌으면 보여주라고 했어요. 그래서 만화 〈톰과 제리〉, 북한 제목으로는 〈우둔한 고양이와 꾀 많은 생쥐〉가 북한 텔레비전에서 방영됩니다. 미국 만화가 북한 TV에서 방영된다는 게 이해가 됩니까?”
― 김정일식 실용주의네요.
“북한이 당장 한국 영화에 맞설 수 있는 콘텐츠를 생산할 수 없으니 외국 영화를 이용해 밀어내려 한 겁니다. 그래서 한때는 북한 아이들이 아버지한테 얼음과자(아이스크림) 사 먹는다며 돈을 타서 목란비데오 판매점에서 영화를 사다 봤어요.”
“만화영화라도 재미나게 만들어서…”

▲북한에서 한때 인기를 끌었던 북한 제작 만화영화 〈소년장수〉.
― 한류가 꺾였나요?
“한동안은 그랬습니다. 그러다 다시 한국 드라마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어요. 저도 북한에서 〈불멸의 이순신〉 〈대장금〉을 봤어요. 밀수로 들어온 거죠. 이게 외국 영화보다 더 재밌잖아요. 그렇게 목란비데오 DVD의 인기가 꺾입니다. 이후 김정은 시대가 되고, 김정은은 만화영화에 주목합니다. 조선4.26만화영화촬영소로 현지 지도를 가서 지시합니다. ‘만화영화라도 재미나게 만들어서 북한 젊은이들과 아이들이 한국 영화 보지 않게 해라.’”
― 지시가 먹혔나요?
“〈소년장수〉 같은 만화영화가 한때 인기를 끌었지요. 사람들이 방송 시각을 기다렸다 볼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다 한국 드라마가 또 유행합니다. 상황이 이러자 선전선동부에서 결론을 내립니다. ‘한류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길은 북한이 한국 영화·드라마보다 더 잘 만드는 방법밖에 없다. 못 보게 막는다고 될 게 아니다.’ 이에 김정은이 2018년쯤 특별 조치를 내립니다. 북한의 작가와 배우들을 한군데에 몽땅 모아놓고 보름 동안 아침부터 밤까지 집중적으로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보여준 거예요.”
― 보지 말라고 할 때는 언제고 왜 보여주나요.
“그러고선 매일 소감을 쓰게 했대요. 그러면서 김정은이 이런 말을 했답니다. ‘북한 사람들이 왜 한국 드라마에 미쳐 있느냐, 한국 드라마에는 한국 사회의 안 좋은 모습까지 나온다. 이게 인간 생활이다. 북한의 영화·드라마도 만날 수령에 대한 칭송, 위대성 선전 이런 것만 하지 마라. 북한에도 나쁜 사람들, 부패한 간부들, 뇌물이 있지 않냐. 이걸 체제에 위협이 안 되게 잘 녹여내라.’”
김정은은 2019년 3월 선전일꾼들에게 보내는 서한에 이렇게 썼다. “수령은 인민과 동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다. 만일 위대성을 부각시킨다고 하면서 수령의 혁명 활동과 풍모를 신비화하면 진실을 가리우게 된다. 수령에게 인간적으로, 동지적으로 매혹될 때 절대적인 충실성이 우러나오는 것이다.”
― 그래서 북한 사회의 폐단이 담긴 영화를 제작했나요?
“내부적으로 몇 편 만들긴 했어요. 뇌물 주고, 아이들 학교 부정하게 합격시키고 하다 들켜서 마지막에 당 비서나 검찰이 바로잡는 엔딩인데, 공개는 못 했어요. 막상 공개하자니 망설여지는 거죠.”
“방철미 선수 처벌받을 수도”

▲한국 임애지와 북한 방철미가 2024 파리올림픽 여자 복싱 54kg급 시상대에 서 있다. 사진=조선DB
― 결국 김정은과 선전선동부는 한국 드라마를 이길 수 없다고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됐겠군요.
“북한 정권 입장에서 한국 드라마가 대단히 위험한 게, 북한 사람들 사이에 커먼 놀리지(Common Knowledge), 즉 상식(常識)으로 자리 잡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북한 당국이 ‘오빠야, 자기야’ ‘남친, 여친’ 이런 말을 금지했거든요. 파리올림픽에서도 방철미 선수가 임애지 선수에게 ‘파이팅 해라’고 했다는 거 아닙니까. ‘파이팅’이란 말을 전 한국 와서 배웠거든요. 지금 북한에서 파이팅이라는 표현을 쓴다는 거잖아요.”
북한은 2020년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2021년엔 청년교양보장법을 제정했다. 반동사상문화배격법 7조는 “국가는 반동사상문화를 류입, 시청, 류포하는 행위를 저지른 자에 대하여서는 그가 어떤 계층의 누구이든 리유 여하에 관계없이 엄중성 정도에 따라 극형에 이르기까지의 엄한 법적 제재를 가하도록 한다”고 되어 있다. 열 살짜리 아이가 한국 만화를 보다 적발돼도 사형에 처해질 수 있단 얘기다. 국제 인권 규약이고 뭐고 깡그리 무시한 악법(惡法)이다. 이걸로도 부족했는지 2023년엔 평양문화어보호법을 만들었다. 규정을 살펴보면 ‘괴뢰말투(남한어투)’를 쓰지 말라는 말을 히스테릭하게 반복해놨다. 또한 괴뢰말투를 쓰면 ‘6년 이상의 로동교화형에 처한다. 정상이 무거운 경우에는 무기로동교화형 또는 사형에 처한다’고 돼 있다. 방철미 선수의 경우, 올림픽 동메달까지 따고도 ‘파이팅’ 한마디 때문에 무기징역이나 사형에 처해질 수 있단 얘기다. 태 처장의 말이 이어졌다.
“지난 시기엔 남한 드라마를 보거나, 남한 말투를 써도 계도로 그쳤는데, 그렇게 해도 안 되니 이제는 형사 처벌을 하는 겁니다. 지난 한 해 들어온 탈북민들의 연령대를 보면 20대가 제일 많고 두 번째가 10대, 세 번째가 30대예요. 배고파서 탈북했다는 사람 이제는 거의 없습니다. 한국의 문화 콘텐츠가 탈북 원인인 거예요. 국방부나 통일부가 하지 못한 일을 우리 문화계, 연예계가 하고 있는 겁니다.”
4대 세습 위협하는 한류

▲정성장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 사진=주간조선
정성장(鄭成長)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 역시 북한 사회를 뒤덮은 한류의 영향을 언급했다.
“한류의 영향이 생각보다 아주 큽니다. 전 세계적 현상인데, 북한만 예외로 있을 수 없는 겁니다. 젊은 층이 컴퓨터·스마트폰으로 집에서 몰래 동영상 보는 게 고위 간부층 가정에까지 확산됐어요. 이러다 4대 권력 세습에 장애가 되는 것 아닌가 싶어 북한 정권이 남한과의 단절을 강력히 선언한 겁니다. 젊은 층에 가해지는 남한의 영향을 최대한 차단하기 위해서죠.”
― 그 정도군요.
“탈북 양상이 과거와 많이 달라졌어요. 2010년대 들어서부터는 청년이 먼저 탈북하고 부모가 뒤따라간다든가, 자식의 미래를 걱정해 부모가 자식을 데리고 탈북하는 사례들이 많아졌어요. 외국에 나가 있는 북한 유학생들이 특히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학교에 가면 인터넷을 쓰잖아요. 남한 문화를 접하면서 사상의 변화를 겪는 거죠.”
태 처장은 북한 정권이 체제에 대한 자신감을 잃은 예로 ‘식량 지원 거부’를 들었다.
“김일성 이름이 박혀 있는 시계를 ‘존함시계’라 합니다. 김정일 때는 사람들 굶고 있는데 쌀이라도 빨리 들여오라고 했어요. 저도 덴마크에서 치즈 3200t을 들여와서 김정일에게 존함시계를 표창으로 받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외부에서 쌀 많이 들여오는 사람 표창 주는 일이 없어요.”
― 왜 안 할까요?
“김정은은 외부로부터 뭘 받으면 자기 리더십에 타격이 온다고 생각해요. 김정일 때는 체제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어요. 김정일은 외부에서 식량, 의약품 지원을 받으면 이렇게 선전했어요. ‘이건 김정일 장군님의 선군 정치가 가져온 전리품이다.’ 제가 북한에 있을 때도 미국이 식량을 보내주면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가 이렇게 힘이 커졌기 때문에 미국까지도 쌀을 보내는 것이다.’”
― 그 말을 믿나요?
“그때는 믿었죠. 이제는 북한 사람들이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간다는 걸 알잖아요. 이런 마당에 ‘김정은 장군님이 위대해서 외국에서까지 쌀을 보내왔습니다’라고 하면 주민들이 속으로 생각하지요. ‘놀고 있네!’ 북한 정권도 이제는 선전이 안 먹힌다는 걸 알아요.”
DMZ에 지뢰 집중 매설
북한이 두 국가론을 강고히 선언한 두 번째 이유는 내부 단속 강화를 통한 정권 영속 도모다. 북한은 최근 몇 달간 집중적으로 DMZ에 지뢰를 매설하고 경의선 철도를 훼손하고 있다. 김천식 원장의 말이다.
“자기들 내부를 단속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북한군이 먼저 내려오지 않는 한, 우리가 먼저 치고 올라가는 군사 전략은 없거든요. 북한도 그걸 알 텐데 내부의 움직임을 단속하려는 거죠.”
태 처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북한이 지금 2개 국가론을 주장하고 핵과 미사일을 완성한 다음부터는 군사 전략이 달라졌어요. 지난 시기에는 6·25 전쟁 같은 상황에서 북한이 치고 내려와야 되니까 내부적으로 지뢰를 집중적으로 매설한 지역과 매설 안 한 지역을 구분해놨어요. 지뢰가 없는 지역으로 기계화 군단이 움직일 수 있도록요. 그런데 북한의 재래식 무기들이 연료도 없고 노후화됐어요. 이제는 북한도 6·25 식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걸 압니다. 그래서 안에서는 못 나가고 밖에서도 못 들어오게 지뢰를 잔뜩 매설해놓는 겁니다. 철벽을 만들고 있는 거죠.”
― 더욱 폐쇄 사회로 가고 있네요.
“완전한 폐쇄지요. 코로나19 이후 국가 정책이 180도 바뀐 나라가 북한입니다. 코로나19 기간 3년 동안 국경과 휴전선을 철저히 봉쇄해도 북한이 무너지지 않았잖아요. 그걸 김정은이 안 겁니다. 봉쇄에 대한 자신감이 생겨서 두 국가론을 내놓고 북한을 국제사회에서 완전히 격리시키고 있어요.”
그 기간 새 얼굴이 북한 방송을 통해 보이기 시작했다. 김정은의 딸 김주애다. 북한 언론에 처음으로 공식 등장한 건 지난해 2월 8일. 2월 7일 건군절을 맞이해 김정은이 인민군 장령(장성)들의 숙소를 방문했는데 이때 동행했다. 이후 여러 번 등장했다. 가장 최근 등장은 8월 5일 신형전술탄도미사일무기체계 인계인수 기념식이다. 이때는 김정은의 옆자리가 아닌 뒤편에 앉혔다.
정성장 센터장은 김주애가 ‘후계자로 내정되는’ 단계에 있다고 분석했다. 후계자로 공식화된 것은 아니다. 정 센터장은 김주애의 부상을 국내에서 가장 먼저 예측했다. 정 센터장은 김정은의 이모 고용숙을 여러 번 만났다. 고용숙은 김정은의 스위스 유학 시절 한집에 살면서 돌봐줬다. 그러다 남편, 자식들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했다. 고용숙은 김정은이 이미 8세에 후계자로 내정됐다고 증언했다. 고용숙의 남편 이강이 김정일에게 물었다. ‘너무 어리지 않나?’ 김정일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나를 닮아서.’ 정 센터장의 말이다.
“고용숙의 증언을 듣고 알게 된 거죠. ‘북한의 로열패밀리는 권력 세습을 당연시하는구나.’ 김정은이 만 8세 때에 후계자에 내정됐다면,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보다 일찍 후계자가 결정된 겁니다. 비록 내정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소수 측근에 불과했지만요. 현철해 같은 측근들은 확실하게 인지를 하고, 그들이 기반이 돼서 준비된 거죠. 갑자기 김정일이 쓰러져서 느닷없이 ‘너 후계자 해’ 이런 건 아니었단 얘깁니다. 김주애도 어린 나이부터 훈련시키고 있다고 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 단순한 쇼가 아니라는 거군요.
“10년에서 20년 동안 경험을 쌓는다면, 후에 정식 후계자가 됐을 때 큰 어려움 없이 이인자 역할을 할 수 있잖아요. 김정은은 후계 수업을 충분히 받지 못했어요. 김정일이 여성 관계가 복잡해서 그걸 숨기려, 김정은의 존재와 후계 내정을 소수 측근에게만 밝혔지요. 그러니 김정은이 집권 후 인맥 구축에 어려움을 겪은 겁니다. 김정남도 죽이고, 장성택도 죽이고 숙청이 잦았던 것도 그 때문이고요. 어릴 때부터 ‘후계자는 김주애’라 알려두면 사람들이 일찍부터 줄 설 거 아닙니까.”
‘군주제적 스탈린 체제’
정 센터장은 김정은 체제를 ‘군주제적 스탈린 체제’라 부른다.
“진보나 보수나 북한에 환상을 갖고 있습니다. 진보는 자꾸 북한을 남한 같은 정상 국가로 보려 합니다. 보수는 ‘북한 급변사태’를 자주 얘기합니다. ‘20대 지도자가 얼마나 가겠냐’면서 곧 무너질 것처럼 생각했죠. 예전의 왕조 국가를 보세요. 왕이 15세에 즉위해도 안정적으로 가잖아요. 북한은 왕조 체제와 사회주의가 결합된 형태예요. 보수도 북한을 왕조 국가라 비난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렇게 생각을 안 하는 겁니다.”
태 처장은 김주애의 이름이 주민들에게 공개가 안 된 점에 주목했다. 《로동신문》은 김주애를 ‘사랑하는 자제분’ ‘존경하는 자제분’이라 지칭한다.
“의전을 보면 후계자 대우를 하는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아직 이름을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 사람들도 김주애인지, 김주예인지 헷갈려하고 있어요. 《로동신문》이 우리 공주의 이름은 이거라고 딱 정리를 안 해주고 있잖아요. 마지막에 진짜 후계자로 책봉될지 알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해요. 김정일 때도 같았어요. 김정남이 5세 때 장군복을 입혀놓고 의장단 사열도 시켰어요. 그거 보면서 사람들이 생각했어요. ‘맏아들이 후계자가 되겠구나.’ 결국 마지막 결승선을 통과한 건 김정은이잖아요.”
― 4대 세습을 암시하는 광경을 북한 주민들은 무심하게 볼까요.
“김일성, 김정일 때도 같았어요. 아들, 딸 데리고 다니면 간부들이 깍듯이 대했죠. 그래야 수령의 절대적인 권위가 더 높아지니까요.”
“조선학교에 반쪽 지도 걸려”
― 두 국가론을 북한 주민들이 받아들일까요?
“북한 주민들의 지지를 못 받고 있어요. 70여 년간 북한의 선전·선동 방향은 민족 해방론이었습니다. ‘남조선은 미제(美帝)의 식민지고 남한 주민들은 미제와 독점 자본주의의 노예다. 사회주의 체제인 북한이 그들을 해방시켜야 한다.’ 아이 때부터 그렇게 배웠어요. ‘휴전선은 곧 허물어서 없애야 한다’고도 배웠어요. 김대중 대통령 시기 6·15 공동선언은 낮은 단계로부터 높은 단계의 연방제로 간다고 선언했고, 문재인 정부 때는 종전(終戰)선언을 맺어서 점차 평화적인 단계로 간다고 했지요. 정책의 초점이 통일 지향적이었단 말이에요.”
― 특별히 뭐가 바뀐 것도 아닌데 최고지도자가 이렇게 나오니 일반 주민들은 당황스럽겠네요.
“학교 교실에 걸려 있는 지도도 이제는 북한만 있는 반쪽짜리로 건단 말이에요. 조총련계가 운영하는 조선학교에도 반쪽 지도를 걸라 한대요. 조총련계에서도 연세 있는 분들은 그럽디다. ‘이것만은 못 받아들이겠다.’”
정성장 센터장도 같은 얘기를 했다.
“나이 든 세대 같은 경우 더욱 받아들이기 어려울 겁니다. 통일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길 강요받아왔고, 남북은 한민족이라고 교육받아왔는데 하루아침에 남북은 서로 다른 국가라고 하니까요. 젊은 세대는 좀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도 젊은 세대의 경우 통일에 크게 관심이 없잖아요.”
김천식 원장의 말이다.
“그동안 북한이 남한을 비난하며 ‘민족분열 세력’, 분단을 고착화하려는 세력이라고 했어요. 이제 북한이야말로 민족분열 세력, 분단 고착 세력이라 할 수 있는 거죠.”
유일대표성 포기 안 한 서독

▲염돈재 전 국정원 1차장. 사진=월간조선
그러면 남한은 북한의 두 국가론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염돈재(廉燉載·81) 전 국정원 1차장은 “두 국가론을 절대 용인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염 전 차장은 노태우 정권 시절 청와대 비서관으로 근무하면서 북방 정책을 입안하고, 헝가리, 소련 등 공산권과의 수교 교섭에 참여했다. 독일 통일 직전인 1990년 8월부터 3년간 주독일 대사관 공사로 근무하면서 독일 통일 과정을 현장에서 지켜봤다. 두 국가론을 인정하면 안 되는 첫 번째 이유는 통합의 명분을 지키기 위해서다.
동독은 1971년 기존의 독일 민족 개념을 폐기하고 ‘두 민족론’을 내세운다. 서로 다른 체제 아래서 살아왔기 때문에 서로 다른 민족이 됐다는 어찌 보면 참신한 주장이었다. 독일 민족의 단일성을 부정해 동독 체제의 독자적 주권성을 인정받기 위해 내세웠다. 서독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염 전 차장의 말이다.
“여기에 서독이 제대로 대응했기 때문에 독일 통일이 앞당겨졌습니다. 서독은 기본법 전문에 ‘전 독일 국민은 자유로운 자기 결정에 의해 독일의 통일과 자유를 달성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고 규정했어요. 통일이 헌법적 의무였던 거죠. 서독은 독일 전체를 서독이 대표한다는 ‘유일대표성’을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독이 무너진 후 서독이 동독을 흡수할 수 있었던 겁니다.”
― 그게 무슨 뜻이죠?
“동독이 무너지고 서독과 동독은 ‘화폐, 경제 및 사회통합 조약’에 서명했어요. 그 결과 동독의 물품이 프랑스나 영국에도 수출될 수 있게 된 겁니다. 근데 그때 EC(유럽공동체, EU의 전신)가 존재했거든요. 만약 이전에 서독이 두 국가론을 인정했다면 EC가 양 독일의 조약을 순순히 받아들였을까요?”
탈북 어부들 북으로 보낸 文 정권
우리가 북한의 두 국가 론을 무시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북한 주민들의 존재다. 만약 우리마저 두 국가론을 인정하면 북한 주민들은 통일에 대한 희망을 잃게 된다. 염 전 차장의 말이다.
“동서독 분단 당시 동독 사람들은 서독 정부가 동독 국민들을 같은 국민으로 인정하는지, 어떻게 대해주는지 끝없이 관심을 갖고 있었어요. 이런 게 희망의 싹이 됐거든요. 북한 주민들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한국 정부가 북한 주민들을 한국 국민으로 인정하고 탈북자들을 같은 국민으로 대해주는 걸 보면, 언젠가 그들에게도 좋은 날이 올 수 있다는 희망을 갖지 않겠습니까.”
― 문재인 정부는 힘들게 북한을 탈출해온 어부들을 북으로 즉시 돌려보냈는데요?
“그건 헌법 위반입니다. 우리 영토에 들어온 대한민국 국민을 사지(死地)로 돌려보낼 수 있습니까? 법적인 측면에서도, 인도적인 측면에서도 문제지요. 국가가 뭡니까. 국민을 보호하는 게 국가의 존재 이유 아니에요? 그때 관여한 사람들을 찾아 단죄(斷罪)해야 합니다.”
북한의 두 국가론을 인정할 수 없는 세 번째 이유는 통일 후를 생각해서다. 한국이 두 국가론을 인정해버리면, 향후 남한의 흡수 통일을 두고 국제사회에서 논란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생판 남의 나라를 병합하는 것이니 말이다.
“평화는 힘으로 지켜진다”

▲8월 5일 신형전술탄도미사일무기체계 인계인수 기념식에 참석한 김정은과 김주애(오른쪽 끝). 사진=로동신문
이런 북한을 이웃에 둔 남한의 과제는 무엇일까.
첫째, 힘의 우위를 지키는 것이다. 김천식 원장의 말이다.
“평화는 힘으로 지켜집니다. 문재인 정부가 평화를 통한 비핵화를 추진하다 완전히 실패했어요. 뭘 해도 북핵을 저지하지 못했습니다. 현재는 핵무기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잖아요. 핵무기 사용 억제가 우선이기 때문에 힘에 의한 평화를 얘기하는 겁니다. 문재인 정부는 국제 질서의 변화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정책을 폈습니다. 그때 이미 미·중은 전략적 체제 경쟁에 들어갔어요. 중국과 잘 지내면 우리를 도와줄 거라는 기대는 비현실적이었던 거죠.”
― 문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도 이름만 거창했지, 결과적으로 상황을 더 악화시켰네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라는 게 평화적 환경을 조성해서 비핵화를 추구한다는 건데, 그건 북핵 완성 전에나 쓸 수 있는 정책입니다. 핵이 완성되면 무용(無用)합니다. 유화 정책 펴다 북으로부터 무시나 당했잖아요. 문재인 정부 기간 북핵이 가장 고도화됐습니다.”
― 평화는 힘으로 지켜진다는 걸 외면한 대가군요.
“평화를 지키는 방법이 뭡니까. 첫째, 자주국방을 강화하고, 둘째 북핵 위협하에서는 한미동맹이 핵동맹으로 진화해야 합니다. 셋째, 한·미·일 안보 협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일단 북한의 도발을 막고 그 기반 위에서 비핵화를 유도하는 게 기본입니다.”
― 북핵 폐기가 가능하다고 봅니까.
“그렇습니다. 중국과 미국이 갖고 있는 힘을 제대로 쓰면 김정은은 정권 보호를 위해 핵을 포기할 겁니다. 미·중이 비핵화를 위해 제대로 일하도록 우리가 노력해야 합니다.”
“동방 정책 때문에 통일된 거 아냐”
염 전 차장 역시 ‘평화가 대화로 지켜진다고 내세운 것’을 문재인 정권의 잘못으로 들었다.
“문재인 정부가 뭐라 얘기했습니까. ‘평화는 군사력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서 지켜진다.’ 기본 전제 자체가 잘못된 겁니다. 우리는 독일 통일에 있어 화해 협력의 영향을 과대평가합니다. 빌리 브란트의 동방 정책을 들면서요. 동방 정책은 동독의 공산 정권과 화해 협력을 해서 통일을 이룬다는 정책이거든요. 동독 주민이 변해서 통일이 이뤄질 거라는 정책이 아니었어요. 동방 정책을 추진한 사민당 정부는 동독 주민들은 도외시하고 동독 공산 정권과의 관계 증진에만 노력했어요.”
― 그게 통했나요?
“아니죠. 독일 통일은 동독 정권이 변해서가 아니라 동독 정권이 망해서 이뤄졌어요. 서독이 부강하고 민주적인, 동독 주민들이 동경하는 사회였기 때문에 자석에 쇠붙이가 달라붙듯 동독이 딸려가서 통일이 된 겁니다. 브란트도 인정했습니다. 동방 정책 때문에 통일이 된 게 아니라고요. 대한민국 국민들만 동방 정책이 독일 통일의 원동력이 됐다고 믿고 있어요. 답답하지요.”
― 서독의 교훈이 현재 대한민국에도 적용된다고 보십니까.
“100% 적용되지요. 우리가 민주주의 제도와 경제적 풍요, 국민들이 함께 잘사는 매력 있는 국가로 만들면 북한 주민들이 우리를 동경하겠지요. 언젠가 북한 공산 정권이 무너지고 민주 정부가 들어선다면 그때는 통일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죠.”
독일 통일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동독과 북한의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바로 TV 시청이다. 동독은 TV 방송 때문에 무너졌다는 얘기가 있다. 동독 주민들은 서독의 방송을 자유롭게 시청할 수 있었다. 동독은 왜 TV 시청을 허가했을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어차피 서독의 방송 전파를 통제하기 힘들었다.
동독 영토 가운데 서베를린이 있었다. 서베를린에서 쏘는 방송 전파를 막으려면 주변 동독 주민들이 아예 TV를 시청 못 하게 해야 하는데 그건 무리였다.
둘째, 자신감이 있었다. 염 전 처장의 말이다.
“동독 지도부가 자신감이 있었어요. 동독은 공산 국가 중 최고의 복지 국가였거든요. 서독의 TV 방송을 보면 마약, 범죄, 각종 퇴폐적인 장면이 등장하잖아요. 그걸 보면 동독 사람들이 실망할 거라 생각한 거죠.”
셋째, 종주국인 소련이 굳건할 거라 착각했다.
그러나 동독은 핵을 갖고 있지 않았다. 핵무기에 대한 염 전 차장의 생각을 물었다.
“우리도 핵을 가져야죠. 만약 트럼프 정부가 집권하면 김정은과 비핵화가 아닌 어떤 합의를 한 다음 대북제재를 완화해줄까, 우려하고 있잖아요.”
“트럼프 당선은 핵무장 기회”
정성장 센터장도 한국의 핵무장 필요성을 언급했다.
“북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핵 균형을 이루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트럼프가 당선되면 주한미군을 적어도 부분적으로 감축하고 한미연합훈련도 줄일 수 있습니다. 미군의 전략 자산을 전개할 때마다 청구서를 내밀 거고요. 결국 독자적인 핵우산이 필요합니다. 트럼프는 기본적으로 국제 분쟁에 비개입주의를 고수합니다. 한국, 일본이 핵을 갖는 것에 대해서도 용인할 수 있다는 입장이잖아요. 우리에게 기회의 창이 열릴 수 있어요.”
기자는 7월 23일 마이크 폼페이오 전 미국 국무장관을 만나 한국의 핵무기 개발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폼페이오는 트럼프 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냈다. 그는 “결정은 한국 정부에 달려 있다. 모든 주권 국가에는 자신들만의 길을 모색할 권리가 있다. 한국 정부가 북핵의 위협으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할 권리와 책임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정성장 센터장의 말이 이어졌다.
“우산이라는 게, 다른 사람이 갖고 있으면 내가 원하는 순간에 펼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북한은 ICBM을 갖고 있어요. 북한이 핵공격을 당하면 당연히 워싱턴을 공격할 거 아닙니까. 미국이 동맹을 지켜주기 위해 과연 북한과 핵전쟁을 감수할까라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거죠.”
― 핵개발이 말이 쉽지,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엔 넘어야 할 산이 굉장히 많지 않나요? 우리는 일본과 상황이 다르니까요.
“일본은 핵 잠재력을 갖고 있죠. 마음만 먹으면 3개월이나 6개월 안에 핵무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시설, 우라늄 농축 시설이 없지요. 한데 처음부터 대규모 재처리 시설을 갖출 필요는 없잖아요. 작은 규모로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시설을 만들려면 약 5개월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6개월이면 핵탄두 서너 개를 만드는 데 필요한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어요. 윤석열 대통령이 마음먹으면 1년 내에 핵무장을 할 수 있다고 한 얘기가 그냥 나온 게 아닙니다.”
“핵개발 주장, 원전 산업 발전에 방해”
김천식 원장의 생각은 달랐다.
“핵무장이 우리 국익에 도움이 될지 의문입니다. 핵무기 만들 준비도 안 돼 있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핵무장을 주장하면 원전 산업 발전을 가로막게 됩니다. 일본은 재처리·농축 다 할 수 있는데 우리는 못 하고 있어요. 지난날 우리가 핵무기 개발을 시도했기 때문이에요. 비핵화를 고수하면서 원전 산업 발전을 위해 농축과 재처리를 하겠다 주장해야 얘기가 되지, 여차하면 핵무기 개발하겠다고 하면서 농축, 재처리하겠다고 하면 국제사회에서 누가 찬성하나요.”
― 그 말씀도 맞네요.
“우리는 지금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 핵우산은 검증된 적이 없잖아요. 주한미군이 그 핵우산의 신뢰성을 보증하는 장치입니다. 주한미군이 존재하면 북한이 핵을 쓸 수 없습니다. 재래식 전쟁도 못 합니다. 주한미군의 주둔 여부가 핵우산의 신뢰성을 좌우합니다.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을 유지하며 핵우산을 활용하는 게 국익에 더 도움 되지 않을까요.”
김천식 원장은 핵무기 개발 후 북한의 안보가 더 개선됐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북한이 핵개발 후 안보가 더 개선된 것도 아니잖아요. 핵개발 후 국제제재를 받아 경제는 망가지고 오히려 체제 안전까지 위협받고 있잖아요. 오죽하면 러시아를 끌어들여 군사 동맹을 맺었겠습니까. 핵이 안보 보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겁니다. 주한미국이 존재하고 미국이 확장 억제를 보장하는 상황에서 핵무기 개발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도가 의심됩니다.”
“주한미군은 한미동맹 핵심”
― 왜 의심되나요?
“한국이 핵무기를 개발하면 주한미군은 철수할 겁니다. 프랑스가 핵무기를 개발하면서 나토(NATO)에서 빠져나왔어요. 미국의 안보 우산에서 벗어났지요. 한미동맹의 핵심은 주한미군 주둔입니다.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한미동맹이 파괴되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한미동맹은 군사적 성격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어떤 문명질서, 어떠한 가치와 체제에서 살 것인가의 문제와 직결됩니다.”
― 한·미·일 3국이 민간 원자력발전소에 사용할 농축 우라늄을 생산하고 공급하기 위해 협력하는 방안을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건 어떨까요.
“우리가 농축 우라늄을 생산할 수 있다면 좋지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니까요.”
태 처장은 두 국가론에 맞서 남한 정부가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계속 시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지원을 받든 안 받든 우리는 일관성 있게 인도적 지원 의사를 밝혀야 합니다. ‘필요하면 언제든 손길을 내밀어라, 우리는 준비되어 있다’라는 메시지를 계속 보내야 됩니다. 북한이 거절하더라도 북한 엘리트들은 남측 정부의 태도에 영향을 받습니다.”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들이 잘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태영호 처장은 말했다.
“탈북민들이 잘사는 모습을 끊임없이 북한을 향해 보여서 더 많은 사람이 한국으로 기울어지게 해야 합니다. 한국의 발전 상황, 인간의 보편적 권리 같은 정보를 자꾸 북한에 들여보내야 합니다. 컴퓨터 교육을 받으며 자라고 있는 북한의 MZ 세대, 장마당 세대가 북한의 주류 사회에 진입했을 때 북한이 스스로 한국과의 자유 통일을 선택하도록 말입니다.”
지난 6월 19일 북한과 러시아는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맺었다. 조약에는 ‘한쪽이 무력 침공을 받을 시 지체 없이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바로 다음 날인 6월 20일 대통령실은 북·러 조약에 대응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문제를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보도를 보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지금까지 우리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갖고 있었는데, 이를 재검토하겠다는 것’이라고 친절히 부연 설명까지 했다.
상당히 놀라웠다. 민간 싱크탱크나 시민단체 같은 곳에서 아이디어 차원에서 발표했다면 모를까, 대통령실이 친절히 부연 설명까지 해가며 발표한 사안이라니 말이다. 지극히 비외교적인 태도다. 한국 입장에서 북·러 조약에 실질적으로 대응하는 방법은 러시아와의 관계를 개선하는 게 아닐까. 전쟁을 치르고 있는 나라를 자극하면 그 감정은 전후까지 이어지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우리의 ‘위협’이 러시아에 실질적인 위협으로 느껴지기나 할까. 염돈재 전 차장은 정부가 외교 문제에서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러시아는 북한과의 관계를 신중히 맺어야 한다. 우리는 러시아와 안 좋은 관계를 맺을 생각이 없다. 우리와 관계를 재개선할 수 있도록 우리는 열려 있다’ 이런 자세를 보여야지요. 애들 싸움입니까? 곧장 ‘그러면 우리는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지원하겠다’고 나오는 건 하수 중의 하수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과의 관계가 있고,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국가로서 어느 정도는 참여해야겠지만 불필요하게 러시아를 자극할 필요가 없어요.”
― 한국에서는 러시아를 ‘병든 곰’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만약 러시아가 ‘미국이 북한에 핵을 사용하면 그건 우리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겠다. 그때는 우리도 핵을 사용하겠다’ 이런 식으로 나와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여할 때도, 미리 러시아에 우리 입장을 설명하면 됩니다. 우리 상황을 이해해달라고 사전에 설명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건 천지 차이죠. 외교도 사람이 하는 겁니다.”
“세습 체제 존재하는 한 평화 공존은 어려워”
염돈재 전 차장은 ‘대통령이 나서서 새로운 통일 정책을 제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기존의 통일 방안에 다소 결함이 있지만, 평화 통일을 지향한다는 입장에서 보면 그래도 합리적입니다. 우리가 내놓을 수 있는 다른 방안이 없어요. 독일도 교류 협력, 그리고 3달간이었지만 연방 국가처럼 동서독이 다른 체제로 공존하는 기간을 잠정적으로 거쳤어요. 그런 다음 통일한 겁니다. 우리도 결국 그런 모델을 거쳐 통일될 겁니다. 그러니 기존의 통일 방안을 두되, 북한 세습 정권이 화해 협력의 대상이냐 아니냐를 구별하면 되는 겁니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통일 정책을 멋대로 바꾸는 게 말이 됩니까.”
― 이명박 대통령의 ‘비핵개방 3000’,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은 사실 본질적으로는 국내 정치용 레토릭(rhetoric)인데, 북한은 시빗거리로 삼았지요.
“북한도 레토릭이라는 걸 알면서 시비 거는 겁니다.”
―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2023 통일의식조사’를 보면 20대의 41.5%는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북한 세습 체제가 존재하는 한 평화 공존은 매우 어렵습니다. 끝없이 우리를 괴롭힐 겁니다. 그게 본인들의 존재 이유거든요.”
― 끊임없이 외부의 적을 찾아야 하는 게 군사 국가의 특징이지요.
“한국을 괴롭히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정권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언제 전쟁 날지 모르니 국방비를 많이 지출해야 합니다. 통일 비용을 젊은이들이 걱정하는데, 독일의 경우 통일 비용을 대느라 애쓴 게 15년입니다. 불과 15년 만에 다 극복하고 통일의 효과를 보고 있어요. 한때는 ‘유럽의 병자(病者)’였는데 통일 후 ‘유럽 경제의 엔진’이라 불리잖아요. 통일로 고생하는 건 길어야 20년이지만 혜택은 영원합니다. 아주 남는 장사 아닙니까.”
동독은 1971년 두 민족론을 내세웠다. 그리고 18년 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역사는 속도는 다를지라도 어디선가 반복되기 마련이다. 북한도 동독의 전철을 밟고 있는 건 아닐까. 동독의 약한 고리(weak link)가 텔레비전이었다면, 현시점 북한 체제의 아킬레스건은 몰래 한국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컴퓨터’일 것 같다.⊙
월간조선 09월 호 글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everhope@chosun.com
09.13 [속보] 北, 우라늄 농축시설 첫 공개…김정은 "보기만 해도 힘이 난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3일 김정은 당 총비서가 "핵무기연구소와 무기급 핵물질 생산기지를 현지 지도하며 핵탄 생산 및 현행 핵물질 생산 실태를 료해(점검)하고 무기급 핵물질 생산을 늘리기 위한 전망계획에 대한 중요 과업을 제시했다"라고 보도했다./노동신문 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무기연구소와 무기급 핵물질 생산기지를 찾아 우라늄농축기지를 둘러보고 비약적인 성과를 낼 것을 지시했다고 북한 노동신문이 13일 보도했다.
신문은 김정은이 핵무기연구소와 무기급 핵물질 생산기지를 현지 지도하며 핵탄 생산 및 현행 핵물질 생산 실태를 점검하고 무기급 핵물질 생산을 늘리기 위한 전망계획에 대한 중요 과업을 제시했다고 전했다.
현지에서 우라늄농축기지 조종실을 돌아보고 생산공정의 운영 실태를 점검한 김정은은 원심분리기들과 각종 수감 및 조종장치 등 모든 계통 요소를 자체의 힘과 기술로 연구개발 도입해 핵물질 생산을 줄기차게 벌여나가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커다란 만족을 표시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북한이 김정은이 우라늄 농축시설을 시찰한 내용과 사진을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라늄 농축시설은 원심분리기에 우라늄을 넣고 고속회전해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하는 시설이다. 고농축 우라늄은 핵탄두 제조에 사용된다.
신문에 따르면 김정은은 생산현장을 돌아보며 “보기만 해도 힘이 난다”며 “무기급 핵물질 생산 토대를 더 한층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핵무기 현행 생산을 위해 능력확장을 진행 중인 공사 현장을 돌아보며 설비조립 일정 계획도 파악했다.
이곳에서 김정은은 원자력 부문의 기술력이 “정말 대단하다”고 치하하고, ‘핵무력 건설의 새로운 중대 전략’을 제시했다며 핵 과학자들에게 당 결정 관철을 독려했다고 한다.
김정은은 “최근 미제를 괴수로 하는 추종 세력들이 공화국을 반대한 핵위협 책동들은 더욱 노골화되고 위험한계를 넘어서고 있다”고 지적하며 “미국과 대응하고 견제해야 하는 우리 혁명의 특수성, 전망적인 위협들” 때문에 자신들이 핵무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핵무력의 철저한 대응태세를 항상 견지하고 고도로 제고해나가기 위한 투쟁에서 더욱 가속적이며 확신성있는 전진을 다그쳐나가야 한다”고 했다.
이날 신문은 김정은이 ‘전술핵무기 제작에 필요한 핵물질 생산’에 대한 ‘중대한 과업과 방향’을 제시했다고 보도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날 김정은의 공개 행보에는 북한 핵 개발 총책으로 알려진 홍승무 노동당 군수공업부 제1부부장이 함께했다.
조선일보 김자아 기자
09-18 軍 “北, 단거리 탄도미사일 수 발 발사”…핵시설 공개 닷새만

북한이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18일 탄도미사일 도발을 단행했다. 이번 도발은 북한이 이달 13일 핵탄두 제조에 쓰이는 고농축 우라늄(HEU) 제조 시설을 공개한 지 닷새 만이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국방부 기자단에 보낸 문자메시지를 통해 “오전 6시 50분경 평안남도 개천 일대에서 동북 방향으로 발사된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수 발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이어 “북한의 미사일은 약 400㎞를 비행했다”며 “미·일 측과 관련 정보를 긴밀하게 공유했고, 세부 제원은 종합적으로 분석 중”이라고 밝혔다.
합참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명백한 도발 행위로 강력히 규탄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 군은 굳건한 한미 연합방위태세 하에 북한의 다양한 활동에 대해 예의주시하면서 어떠한 도발에도 압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과 태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본 NHK방송에 따르면 일본 방위성은 북한이 이날 오전 6시 55분과 오전 7시 28분경 탄도미사일로 보이는 물체를 발사했다고 밝혔다. 방위성 관계자는 이 물체가 일본 배타적경제수역(EEZ) 바깥쪽 해상에 떨어진 것으로 추정했다.
앞서 12일에도 북한은 600㎜ 초대형 방사포 여러 발을 발사한 바 있다. 북한은 13일 관영매체를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탄두를 만드는 데 쓰이는 고농축 우라늄(HEU) 제조 시설을 시찰하는 모습을 공개하기도 했다.
김소영 동아닷컴 기자 sykim41@donga.com
09.22 "美北 접촉 시작 땐 한국은 닭 쫓던 개 신세" 前 정찰총국 대좌의 분석은

▲photo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오는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북한이 연일 오물풍선을 남쪽으로 날려보내며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지난해 8월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 선언’을 했던 두 주역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도 각각 퇴진을 예고하면서 한국에 대한 우방국들의 안보공약과 대북(對北) 단일대오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아울러 과거 집권 시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와 싱가포르, 하노이, 판문점에서 3차례에 걸쳐 만난 미국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백악관에 4년 만에 복귀하면 미국이 남한을 배제한 채 북한과 접촉을 시도할 것이란 우려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이와 관련 2021년 영국 BBC방송과 인터뷰에서 청와대 내 간첩암약설을 제기해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킨 김국성(가명) 전 북한 정찰총국 대좌는 “미국과 일본이 북한과 접촉에 나서면 한국만 닭 쫓던 개 신세가 된다”며 “선제적 대북 접촉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아울러 최근 리일규 주(駐)쿠바 북한대사관 참사 등 고위급 외교관의 탈북행렬이 이어지면서 일각에서 제기되는 북한 정권 붕괴론과 관련해서는 “3만4000여명의 탈북자 중 과반수는 국경 지역 지방에 있는 여성과 청소년들로 나를 포함한 엘리트 탈북은 극소수”라며 “한국식 사고로 북한을 진단하면 상황을 오판할 수밖에 없다”고 회의적인 입장을 내놨다.
김씨는 장성택 전 노동당 행정부장 숙청 이듬해인 2014년 남으로 망명을 감행해 서울로 들어왔다. 김정은이 집권 초 고모부 장성택을 숙청하면서 ‘장성택 라인’으로 몰려 숙청대상이 되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탈북을 선택한 것이다. “장성택과 30년간 특별한 관계였다”고 주장하는 그는 북한에서는 장성택의 처이자 김정일의 여동생인 김경희가 하사한 2160번호판으로 시작하는 벤츠를 몰고 다닐 정도로 위세를 떨쳤다고 한다. ‘216’은 김정일의 생일(2월 16일)을 뜻한다.
탈북한 지 10년째인 그는 현재도 신변보호를 받고 있는데, 북한이 ‘공화국 창건일’로 기념하는 지난 9월 9일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주간조선과 인터뷰하는 와중에도 양복을 입은 건장한 경호원이 밖에서 매서운 눈초리로 주위를 경계했다.

▲2021년 10월 영국 BBC와 인터뷰한 김국성(가명) 전 북한 정찰총국 대좌. photo BBC
- 오늘 '9·9절'인데 김정은이 금수산 태양궁전 참배도 안 하고, 할아버지 김일성과 거리를 두는 것 같다. "김정은은 김일성 생전에 한 번도 못 나타난 사람이다. 김정일이 김일성 앞에서 김정은을 떳떳한 자식으로 내세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정일이 후계자로 일찍 낙점되면서 당 간부들도 거기에 보조를 맞췄다. 그래서 김정일의 은밀한 사생활이 김일성에게 보고가 안 됐다. 김정은의 모친 고용희는 재일교포다. 재일교포는 북한에서 김일성이 절대 부정했던 일본인으로 취급한다. 북한은 독일의 아리아족처럼 순수 혈통을 중시하고, 재일교포를 불순물로 본다. 1959년 재일교포 북송사업 때부터 재일교포가 10만~12만명 정도 들어왔는데도 당 일꾼을 한 사람이 누구 있나? 한덕수(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초대 의장)의 딸 정도일 것이다."
- 김정은이 최근 '민족'과 '통일' 개념을 폐기했다. "김정은은 집권자이자 정치인으로서 정상적 행보를 취하고 있다고 본다. 젊은 지도자로서 할아버지 김일성, 아버지 김정일의 그늘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범의 가죽을 찢고 단독으로 독립적인 국가의 지도자라는 명분을 살릴 때가 됐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북한이라는 사회를 젊은 사람이 끌고 갈 수가 없다. 지금 북한은 김정은 중심의 당 영도 아래 핵무력을 핵심으로 한 '제2의 조선'을 창건하는 것과 같다."
- 선대 유훈인 '민족'과 '통일' 폐기에 대한 구세대의 반발은 없나. "절대 없다. 이는 할아버지 김일성이 만든 데 더해 아버지 김정일이 만든 정치적 토대에 기인한다. 김정은은 이 같은 진단을 하고 자신이 아무렇게나 해도 흔들림이 없다는 점을 확신한 것이다. 김정은의 생각은 당 중앙위를 비롯해 전체 당원들이 지지한 것이다. 맹목적으로 김일성에 반대한다가 아니다. 선대 수령들의 위업인 핵무력을 핵심으로 한 토대 위에서 변천된 세계 환경의 정치정세 속에서 국가를 이렇게 가지고 간다는 전략적 제시를 당원들이 믿는 것이다. '한 개의 조선, 두 개의 국가론'을 펴려면 우선 민족 폐기론을 펼쳐야 한다. 핵무력을 핵심으로 한 독립된 자주국가로서 남한과 얽혀 돌아가지 말자는 얘기다."
- 리일규 주쿠바 북한대사관 참사 등 고위층 탈북이 이어진다. 북한 붕괴가 임박했나. "북한이 무너진다고 한 것이 1994년 김일성 사망했을 때부터 이미 30년째다. '김정일이 죽으면 무너진다' '김정은은 5년 내에 쓰러진다'고도 하지 않았나. 미국이 북한 비핵화시킨다고 30년간 마주서왔다. 그런데 결과가 뭐냐. 오늘날 북한은 누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핵무력 국가가 됐다. 북한의 핵무력을 미국이 만들어준 꼴이다. 가까운 과거만 봐도 그렇지 않느냐. 북한 무너진다는 것은 가을의 감나무 밑에서 입 벌리고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 지난 7월 말 신의주에서 일어난 압록강 수해로 피해가 심각하다는데. "북한은 사람이 죽었든 살았든 별로 걱정 없는 나라다. 어떤 면에서는 김정은이 오히려 좋아질 수도 있다. 애민(愛民) 지도자로서 위상을 한층 높여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수령주의로 살아온 사람들이라서 지금과 같은 김정은의 행보를 보면 '김정은 원수 만세' 소리가 나온다. 우리는 누가 죽어도 대통령한테 뭐라고 하지만 북한은 다르다. 수해주민들을 평양 '4·25문화회관'으로 옮겼다고 하는데, 수해주민들이 더 좋아할지도 모른다. 수해가 없었다면 판잣집에서 평생 살 사람들 아닌가. 북한에서 평양은 천당이다. 조만간 문화주택도 제공할 것이다."
- 영부인 대상 '몰카' 공작을 한 재미교포 최재영 목사도 북한과 관련 있을까. "재미교포는 대남 적화공작의 주요 원천이다. 최재영이란 사람의 모든 행보, 일거수일투족을 보면 제 머리로 하는 행동이 아닌 것 같다. 북한 공작방안대로 행보를 취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북한에 5~6차례 갔다고 하는데 아무나 갈 수 없다. 북한에서 차단하면 못 가는데, 필요하니까 불러들인 것이다. 미국 시민권을 가진 목사가 미국에서 활동하지 왜 한국에서 활동하나. 아마 '대통령 라인' 구축 같은 공작일 것이다. 우리 검찰은 대공수사 관념이 좀 약하다. 법적인 잣대로만 하려고 하다 보니 북한도 거기에 맞게 활동시킨다."
- 김정은은 오는 11월 미 대선에서 누구를 선호할까. "당연히 트럼프다."
- 민주당 해리스 후보가 당선될 경우, 북한은 어떤 선택을 할까. "사실 북한은 미국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김일성·김정일 때 없었던 국방력, 즉 핵무력을 가진 상태기 때문이다. 핵무력을 만들어준 사람이 바로 김일성이다. 김일성은 '앞으로 지구의 중심은 조선이다'라고 말했다. 자위의 최종목적인 핵무력을 이미 가진 터라 북한은 미국 대선을 관망하고 있다. 북한의 태도는 '우리랑 회담하자'가 아니고 '내 요구 받고 들어오라' 이거다. 북한은 경제적 압력을 가해도, 유엔 제재를 해봐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 무반응이다. 1994년 지미 카터(전 미국 대통령)가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특사로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과 산보하면서 '김주석님, 대북 제재를 풀어주겠다'고 했을 때 김일성 반응이 뭔지 아나. 그때 김일성은 '카터 선생, 제재 하려면 하고, 말라면 말라우'라고 했다."
- 공화당 트럼프 후보가 당선될 경우 미·북 접촉이 재개될까. "북한은 김일성 때부터 최고 목표가 미국 대통령과 만나는 것이었다. 지금도 북한의 최종 목적은 미국과 친해지는 것이다. 핵무력을 가짐으로써 미국 대통령과 만날 수 있게 됐다. 북한이 '거지나라' '망하는 나라'라고 하는데, 미국 대선에서 김정은만 입에 오르내리지 않나. 미국 대통령 되겠다는 사람들이 그 정도로 김정은에 관심을 가진다. 만약 트럼프가 당선되면 김정은이 '평양으로 들어오라'고 할 것이다. 트럼프는 십중팔구 평양으로 갈 것이고, 평양에 도착하면 아마도 환호의 폭포가 쏟아질 것이다."
- 일본도 총리 교체와 함께 북한과 접촉에 나설까. "일본의 기시다 총리도 김정은과 만나려고 하지 않았나. 지금은 과거 김정일과 만났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아들(고이즈미 신지로)이 신임 총리로 유력하다고 한다. 일본 총리가 누가 되든 북·일 정상회담을 하자고 나설 것이다. 김정은은 자신의 모친 고용희가 재일교포 출신인 점을 들어서 아마도 일본과 말을 풀어 나갈 것이다."
- 김정은이 미국·일본과의 접촉에 선뜻 나설까. "김정은은 딱 가운데 앉아서 자기 몸값을 최대한 높이려고 할 것이다. 상봉해서 성과가 있든 없든 그건 두 번째 문제다. 싱가포르와 베트남 하노이 회담처럼 전 세계 이목을 집중시켜 정치적 이미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목적을 두고 받아들일 것이다."
- 미·북, 일·북 접촉이 재개되면 남한만 고립되는 것 아닌가. "김정은이 이미 '두 개 국가론'을 내놓지 않았나. 미국과 만날 때는 이를 기본으로 남한과는 상관없다는 태도로 만날 것이다. 지금도 유엔에 남북한이 동시가입했다고는 하지만 무슨 문제를 논할 때는 자연스럽게 남과 북이 엮인다. 김정은은 이게 싫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이제부터는 한 국가의 통수권자로서 미국과 당당히 대면하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남북, 민족개념을 두고 왕왕대던 우리 한국으로서는 완전히 닭 쫓던 개 신세가 되고 만다. 멍멍이가 되고 만다."
- 우리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 정부가 주도적으로 북한과 접촉해야 한다. 선(先)조치 해야 한다. 지금 북한과 관계가 악화됐을 때가 오히려 기회다. 이런 것을 해내는 것이 정치력 아닌가. 우리 대한민국이 북한보다 앞서 있다고 자고자대하고 만족하면 안 된다. 우리가 잘산 지는 30년밖에 안 된다. 이 30년 동안 남한 사람들은 자만자족하면서 우월주의에 빠졌다.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북한을 '거지나라'로 보는데 그렇게 보면 안 된다. 북한 문제 해결 없이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불투명하다. 북한은 우리 몸에 달린 암덩어리, 시한폭탄과 같다. 북한은 정치·경제·군사·문화·외교의 역대 모든 역량을 남조선 해방에 두어 왔는데, 우리 역시 모든 것을 북한 문제 해결에 두어야 한다."
- 어떻게 대북접촉의 물꼬를 틀 수 있나. "목적이 섰으면 이를 할 수 있는 인재를 발굴해야 한다. 북한에 대해 뿌리 깊이 아는 사람, 수뇌부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 수뇌부와 관통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그 인재 아래 대통령 직속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역대 남북 관계는 국정원이 해왔는데, 북한은 국정원을 안 믿는다. 국정원을 모략의 소굴로 보고 인간 자체를 안 믿는다. 통일부는 아무 힘도 없는 하수인으로 본다. 민주평통(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은 바람몰이 하는 데고. 만약 대통령 직속기관을 만들면 북한은 이를 대통령의 의지로 판단하고 한 번 만나보자고 할 것이다."
- 김정은이 딸을 후계자로 낙점했다고 보나."아닐 것이다. 김정은이 딸을 데리고 다니는 데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앞으로 지도자는 내 자식 중에서 나온다'는 것과 '애민지도자이면서 나도 아버지'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김일성은 김정일이 대략 19살 때 후계자로 낙점했다. 김정일 역시 김정은이 대략 19살 때 후계자로 찍었다. 2008년 김정일이 뇌졸중이 왔을 때 김정은은 이미 지도자가 됐다. 김정은이 아닌 밤중에 갑자기 나온 게 아니다. 김정은은 아직 나이가 젊은데, 10살 남짓 딸을 데리고 벌써 후계 바람을 피울 것 같지는 않다. 아들도 있다는데 아마 알뜰히 관리하고 있을 것이다."
- '주애'로 알려진 김정은 딸의 이름이 '주예'라는 주장이 나왔다. "아마도 주애가 맞을 것이다. '주예'는 북한에서 잘 안 쓰고, '주'자랑 '예'자랑 언어적으로 결합이 잘 안된다. 북한에서는 여자들한테는 '주해' 또는 '주혜'라고 하지 '주예'라는 이름은 잘 쓰지 않는다."
- 4대 세습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불만은 없나. "없다. 북한이라는 체제는 80년을 다져온 체제다. 그래서 김정은이 저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은 이미 일종의 정신적 불구자, 기형아가 됐다. 목숨 바쳐 수령을 위해 충성하고, 수령이 만민의 태양이고 날 살려준다고 믿는다. 정신교육, 사상선동교육을 계속 하면 정신적 측면에서 변화가 온다. 김정은한테 반하는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보안체계가 너무 철저해서 집에서 방귀 뀌는 소리까지 다 들을 수 있다. 조용원(당 조직비서), 최룡해(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박정천(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집에도 다 도청장치가 되어 있다. 알고서도 충성하는 것이다. 북한이 무너지는 것은 김정은 한 명이 사라질 때밖에 없다. 김정은이 살아있기 때문에 정치사상강국이란 체제가 작동하는데, 한 명이 없어지는 순간 개판이 되고 순식간에 무너질 것이다."
- 김정은 유고(有故) 시 여동생 김여정이 권좌를 이어받을 가능성은. "불가능하다. 자기가 살기 위해 혈통론을 중시하지 북한은 당에서 '닭도 꿩이다'고 하면 꿩이 된다. 김정은이 만약 사라지면 그 즉시 김여정도 사라진다. 요만한 단발머리 소녀한테 70~80세 먹은 노인들이 '예예' 하겠느냐. 지금 김정은한테 '예예' 하는 것도 그렇게 하면 나한테 권력이 생기고, 내 집안이 잘 먹고 잘살고, 내 자식이 잘되기 때문이다. 일종의 운명공동체가 된 것이다. 김정은이 무너지는 순간 당 중앙위는 집단지도체제로 갈 것이다. 당 조직지도부는 북한 권력의 심장이고 북한 전체를 통솔한다. 유족들도 당에서 하라는 대로 해야 한다."
주간조선 이동훈 기자
09.26 미국 대선 앞둔 기선 제압? 뒤끝 정치?…김정은의 위험한 행보
#1 북한은 2004년 1월 8일 평양을 방문한 미국의 핵물리학자 지그프리드 해커 박사 일행을 영변 핵 단지로 안내했다. 이들을 맞은 이홍섭 영변 원자력연구소장은 “우리(북한)가 만든 걸 보시겠습니까”라며 직원들에게 플루토늄 보관용기인 글로브박스를 회의실로 가져오게 했다. 신발 상자보다 약간 큰 적갈색 글로브박스에는 미닫이 뚜껑이 달린 흰색 나무 상자가, 그 안에는 스티로폼으로 싸여 있는 두 개의 유리병이 들어 있었다. 핵탄두를 제조하는 플루토늄 200g이었다. 북한이 핵물질을 외부에 공개하는 최초의 순간이었다.
북한, 핵농축 시설 대놓고 공개
미국 대선 겨냥 도발 수위 조절
북미 정상회담 실패 뒤끝 정치

▲지난 1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무기급 핵물질 생산기지를 현지지도하고 있다. [뉴스1]
#2 그로부터 6년 뒤. 북한은 2010년 11월 12일 해커 박사 일행을 다시 영변 핵 단지로 데려갔다. 이번에는 북한이 일주일 전에 완공했다고 해커 박사에게 설명한 우라늄 농축 공장이었다. 북한은 고농축 우라늄(HEU)을 생산하기 위해 네덜란드의 ‘알멜로’와 일본의 ‘롯카쇼무라’의 시설을 참고해 자체 제작한 2000개의 원심분리기를 보여줬다. 북한이 HEU 농축 공장을 외부에 알린 것도 이때가 처음이다.
핵무기는 핵물질과 기(고)폭장치, 미사일과 같은 운반 수단 등 3요소가 갖춰져야 완성된다. 이 가운데 가장 핵심은 핵물질인 플루토늄 또는 HEU 확보다. 북한은 시차를 두긴 했지만 핵물질 두 가지 모두를 해커 박사를 공개 통로로 활용했다. 해커 박사는 방북 경험을 담은 자신의 저서 『핵의 변곡점: HINGE POINT』에서 “원심분리기 기술과 가동은 일반적으로 기업 기밀처럼 여긴다”고 썼다. 북한 기술자들은 ‘상부’의 지시로 어쩔 수 없이 보여줘서는 안 되는 시설을 공개하는 눈치였다고 해커 박사는 기억했다. 당시 핵 협상 컨트롤 타워 역할을 했던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해커 박사 일행을 만나고 이근 미국국 부국장이 이들의 영변 방문에 동행한 것은 핵 시설 공개가 대미 협상용이라는 북한의 의도를 보여준다.
개발 단계 넘어 핵보유국 과시
그런데 북한은 이후 꼭꼭 숨겨왔던 HEU 농축 시설을 지난 13일 전격 공개했다. 북한 매체들은 이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핵무기연구소’와 ‘무기급 핵물질 생산기지’를 현지지도한 사실을 전하며 5장의 사진을 실었다. 이날 공개된 사진엔 공장 내부 시설이 그대로 드러냈다. 원심분리기 등 공장의 핵심 시설을 모자이크 처리하지도 않았다. 북한의 의도적인 공개라는 뜻이다. 특히 이번에는 김 위원장이 연출과 주연을 맡았다는 점이 주목된다. 북한이 오는 11월 예정된 미국 대선을 겨냥했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이 완전한 핵보유국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몸값을 높여 비핵화가 아닌 핵 군축 협상에 나서겠다는 포석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하나 덧붙이자면 김 위원장의 ‘뒤끝 정치’의 일환일 수도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직접 담판에 나섰다. 북한에서 전지전능한 신처럼 추앙받는 그였지만 회담은 깨졌다. 보름여 뒤 최선희 외무성 부상(현 외무상)은 외신들을 대상으로 기자회견을 하고 “미국이 황금 같은 기회를 날렸다”며 미국을 탓했다. 5년이 지났지만 북한은 미국 대선을 앞두고 직접 도발 대신 HEU 공장을 이용해 ‘개발 단계에서 협상이 가능했지만 미국이 걷어차는 바람에 북한의 핵 능력은 오히려 올라갔다’는 식으로 트럼프 후보를 향해 발신한 메시지일 수 있다.
다음은 7차 핵실험?
한국 정부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전후한 북한의 7차 핵실험 가능성을 제기한다. 신원식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23일 “북한이 기술적 문제 해결을 위해 몇 차례 핵실험이 필요하다”며 “미국 대선 기간에 핵 위협을 부각해 관심을 끌려 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현동 주미 대사도 24일(현지시간) “미국 행정부 교체기에 북한의 중대 도발 가능성은 항상 있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북한은 2008년 미 대선 직전 단거리 미사일 2발을, 오바마 행정부 출범 직후인 2009년 4월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전용할 수 있는 광명성 2호를 발사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당선된 2012년 12월 역시 ICBM 카드를 꺼냈다. 또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된 2016년 선거를 앞두고는 5차 핵실험(9월 9일)에 이어 무수단·북극성-2형·화성-12형 등 중장거리 미사일을 연거푸 쏘아대며 긴장을 고조시켰다. 지난 미국 대선 때인 2020년 북한은 코로나19로 국경을 차단한 채 숨을 고르면서도 김정은 시대 들어 개발한 육·해·공군 신형 무기를 담은 『국가방위력의 강화를 위하여』라는 화보집을 발간하는 선에서 그쳤다. 현재 북한의 특이한 북한의 군사적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7차 핵실험을 우려한 정부 당국자들 역시 핵실험이나 군사 행동이 임박한 조짐은 없다고 밝혔다. 북한은 내년 초까지 줄타기하며 도발 카드를 만지작거릴 것으로 보인다.
심상찮은 김정은 행보
눈길을 끄는 건 한국을 염두에 둔 듯한 김 위원장의 최근 행보다. 김 위원장은 지난 8일 오진우포병종합군관학교를, 11일엔 특수작전무력 훈련기지를 찾았다. 특수작전무력 훈련 기지에선 한국군의 미사일사령부를 촬영한 위성 영상을 띄워 놓고 토론하는 강의실도 보여줬다. 또 12일엔 한국 전역을 사정거리로 둔 600㎜ 방사포 시험 발사를 챙기고, 방문 날짜를 감춘 채 HEU 공장을 방문한 사실을 13일 공개했다. 이어 18일엔 4.5t에 이르는 대형 탄두를 장착하고 방향만 바꾸면 평택 미군 기지를 타격할 수 있는 탄도 미사일 발사를 지켜본 뒤, 저격용 소총을 들고 사격하는 시간도 가졌다.
북한은 치밀한 계산 속에 김 위원장의 활동을 공개한다. 이를 고려하면 그의 최근 행보는 포병으로 전방 공격, 방사포로 한국 전역 타격, 특수부대의 수도권 및 미사일사령부 침투, 핵으로 평택 미군 기지 정밀타격, 요인 암살 등 전쟁 시나리오의 축약판이다.
북한은 다음 달 7일 정기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를 열어 헌법을 수정할 예정이다. 지난해 말 김 위원장이 남북관계를 “교전 중인 적대적 관계”라고 규정한 뒤 헌법에 영토 조항을 넣으라고 지시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북한이 헌법에서 남북을 2개의 국가로 규정하고, 서해 경계를 지금보다 훨씬 남쪽이라고 주장할 경우 군사 충돌 가능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와 뒤끝 정치는 여기서 멈춰야 한다.
중앙일보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논설위원
09-27 北, 고농축우라늄 총 3000㎏ 생산 가능성… 2030년엔 핵무기 160발 보유
■ 핵능력 어느 정도인가
美대선 앞두고 농축시설 과시
북한은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우라늄농축 시설 공개에 이어 핵 능력 증강에 주력하고 있다. 10월 7일 최고인민회의에서는 핵보유를 명문화한 지난해 헌법개정을 뒷받침하는 ‘적대적 2국가론’ 등 대내외용 논리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27일 군과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은 최근 핵 농축시설을 확장하면서 플루토늄(Pu)과 고농축우라늄(HEU) 보유량을 증강시켜왔다. 국내 북한핵 최고 전문가인 이춘근 한국과학기술정책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최근 “북한이 2010년 이전부터 HEU를 대량생산해왔고 영변의 농축공장이 2배로 확장됐다는 것을 반영하면 2020년쯤까지 700∼800㎏을 생산했다고 볼 수 있다”며 “평안남도 강선 등의 여타 지역에도 농축공장이 있다고 가정할 때 생산량이 1400∼2400㎏으로 증가하고 중간에 개량형 원심분리기 개발에 성공했다면 3000㎏ 이상으로 추계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국가정보원도 플루토늄 약 70㎏, 고농축우라늄 상당량을 보유하고 있고 이는 최소 두 자릿수 이상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양이라고 밝혔다. 국방부 산하 한국국방연구원(KIDA)은 2023년 1월 북한의 핵능력 평가와 관련해 “현재 핵무기 약 90발, 2030년에는 160여 발을 보유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미국 랜드연구소와 아산정책연구원은 공동연구를 통해 북한이 핵무기를 해마다 12∼18기씩을 추가 확보하며 오는 2027년까지 151∼242기의 핵무기를 보유할 것으로 추산했다.
북한은 지난해 9월 사회주의헌법 제58조를 개정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책임적인 핵보유국으로서 나라의 생존권과 발전권을 담보하고 전쟁을 억제하며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기 위하여 핵무기 발전을 고도화한다”고 규정했다. 핵무기 보유·사용·개발 방침과 명분을 헌법에 명시하는 데 초점을 맞춘 개헌이었다. 북한은 다음 달 7일 최고인민회의를 열어 ‘적대적 2 국가론’을 뒷받침할 헌법 개정에 나설 예정이다.
문화일보 정충신 선임기자·권승현 기자
09.30 굶주린 북한 군인들, 흉기 들고 민가 약탈 "쌀 한 톨까지 쓸어가"

▲지난 23일 오후 인천 강화군 강화평화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도 개풍군 해안 철책 인근에서 북한 군인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연합뉴스
굶주림을 견디다 못한 북한 군인들이 최근 흉기까지 들고 주변 민가를 약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7일 북한전문 매체 데일리NK는 북한 양강도 소식통을 인용해 “최근 혜산시에서 주민 세대들을 대상으로 한 군인들의 도둑 행위가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군인들은 민가를 돌며 쌀 한 톨도 남겨 놓지 않고 식량과 살림살이들을 훔쳐가고 있다.
일례로 지난 20일 혜산시 강안동의 한 마을에서는 하룻밤 사이에 10세대나 도둑을 맞았다고 한다. 도둑들은 밥솥, 신발, 옷 등과 다음 날 끼니를 위해 준비해 놓은 쌀까지 들고 갔다고 한다.
주민들이 목격한 도둑들은 모두 군복을 입고 있었고, 흉기도 들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군인들에 대한 원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소식통은 “군인들이 가축을 훔쳐 가는 일도 자주 발생한다”며 “가축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주민들은 하루아침에 생계 수단을 잃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북한에서는 고난의 행군이라고 불린 과거 대기근 기간에는 군인들이 민가에 침입해 식량을 훔쳐 가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었다. 이후 잦아들었던 군인들의 민가 약탈이 최근 다시 급증하면서 주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고 한다.
다만 일부 주민들은 “얼마나 배가 고프면 도둑질까지 하겠냐”며 군인들을 측은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북한의 군 복무 기간은 평균 10년 미만으로 남한의 18개월의 의무 복무 기간에 비해 6배 이상 길다. 또 남한의 군인들은 월급을 받지만, 북한 군인들은 군 생활을 하면서 오히려 상관에게 뇌물을 내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소식통은 “군 복무를 하는 동안만이라도 그들이 배고픔을 느끼지 않게 식사라도 잘 제공해 주면 군인들도 도둑질을 할 이유가 없을 텐데 그마저도 못하는 나라라는 게 답답하다”고 했다.
조선일보 김명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