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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物相(조선일보) 2024-09/ 09.02(월) 한국계 '퍼스트 패밀리' 나올까 - 09.30 (월) 김정은 갖고 노는 MZ들

상림은내고향 2024. 9. 16. 13:22

萬物相(조선일보) 2024-09/

09.02(월) 한국계 '퍼스트 패밀리' 나올까

▲일러스트=이철원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한국 사랑은 유별났다. 오바마는 틈만 나면 한국의 교육열과 IT 인프라를 칭찬했다. “한국은 저렇게 앞서가는데 왜 우리는 못 하느냐”고 했다. 전미 초등학생 퀴즈쇼에선 “한강이 있는 아시아의 수도는 어디냐”는 문제도 냈다. 워싱턴을 빼고 가장 많이 방문한 국가의 수도가 서울이라고 했다. 백악관 내부엔 한국계 측근 인사가 많았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지지하고 김용 전 세계은행 총재를 지명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땐 한국계 여성이 숨은 ‘문고리 실세’였다. 마샤 리 켈리 관리행정국장은 백악관 행정 직원들을 지휘하며 내부 운영을 책임졌다. 트럼프와 부인 멜라니아의 신임을 받은 그는 공화당 전당대회 운영도 총괄했다. 트럼프 퇴임 후에는 멜라니아의 수석 고문으로 마러라고의 살림도 도맡았다. 가족 못지않았다.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선 후보로 지명된 해리스 부통령의 조카들이 알고 보니 한국계였다. 그의 동서는 한국계 주디 리 박사다. 미국 이민 121년 만에 한국계가 처음으로 미 대선 후보의 가족이 된 것이다. 해리스는 작년 4월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만찬 때 “미국엔 200만명의 한국계 미국인이 살고 있는데 제 가족 일원도 포함된다”고 했다. 조카인 재스퍼와 아덴 엠호프는 전당대회에서 “큰엄마만큼 바쁜 사람은 없지만 요리하고 식사하며 농담도 주고받는다”며 응원했다. 해리스는 동서·조카들과 무척 사이가 좋다. 주변에 이들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자주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한국 음식과 문화에 관심이 많은데 가족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

 

▶주디 리 박사는 자연치유의학 분야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남편 앤드루 엠호프는 캘리포니아에서 과학교사를 하다 소방 엔지니어로 20년간 일했다. 재스퍼는 UC버클리를 졸업한 뒤 스타트업에서 근무하고 있고, 아덴은 USC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있다. 한때 고려대에 여름 학기 연수를 한 적도 있다. 미국의 전형적인 중산층으로 모범적인 가정을 일군 것이다.

 

▶해리스의 남편 더글러스 엠호프 변호사는 윤 대통령 취임식 때 축하 사절단장으로 방한했다. 당시 광장시장을 찾아 빈대떡 등 전통 음식을 맛본 뒤 “한국 음식과 수공예품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며 즐거워했다. 이번 추석엔 백악관에서 처음으로 한국 추석을 축하하는 행사가 열린다. 만약 해리스가 대선에서 이긴다면 한국계가 처음으로 ‘퍼스트 패밀리’(대통령 가족)가 된다. 미국 내 한국계의 위상과 자부심도 그만큼 높아질 것이다.

배성규 기자

 

09.03 코카콜라 즐긴 워런 버핏의 장수

▲일러스트=이철원

 

세계적인 투자가 워런 버핏(94)이 매일 콜라와 햄버거, 사탕을 즐겨 먹는데도 건강하게 장수하고 있다고 미국 경제지 포천이 보도했다. 버핏은 매일 355㎖ 콜라를 5개 마신다. 이 억만장자는 패스트푸드점에 들러 소시지 패티 2개, 계란, 베이컨으로 구성된 3.17달러짜리 아침 식사를 한다. 점심에는 칠리 치즈 핫도그와 견과류 아이스크림을 먹고, 간식으로 사탕을 챙긴다. 그는 스스로 “여섯 살 아이처럼 먹는다”고 했다.

 

▶일본 소화기내과 의사 사사키 준 박사는 노인들에게 ‘맥도널드’를 권장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운영하는 의원은 도쿄에서 고령자 8000여 명의 집을 찾아가 진료하는 일본 최대 방문 진료 기관이다. 그는 노인들이 저영양 상태로 노쇠에 빠져 집에만 머무는 것을 실감했다. 사사키 박사는 “나이 들면 비타민이나 미네랄 같은 세세한 영양소보다 칼로리와 단백질을 제대로 챙겨 먹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간단히 해결해 주는 것이 햄버거와 프라이드 치킨”이라고 했다.

 

▶모바일 기술로 억만장자가 된 브라이언 존슨(47)은 자기 노화 속도를 느리게 하는 데 한 해 200만달러를 쓴다. 그의 식사는 브로콜리, 버섯, 올리브 오일, 렌틸 콩 등 식물성으로만 채워져 있다. 국내서 ‘감속 노화’ 열풍을 일으킨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젊었을 때는 그게 좋지만, 73세 정도부터는 소식하지 말고, 근육 생성을 위해 흰 쌀밥을 많이 먹고, 충분한 양의 동물성 단백질을 먹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통적인 장수 지역 일본 오키나와는 남북으로 갈린다. 100세인이 많은 북부 지역은 고야라는 일본 채소를 일상적으로 섭취하며 옛날 식생활을 유지한다. 주민들이 어울리며 같이 모여 식사를 한다. 남부에는 미국 문화와 패스트푸드점이 퍼지면서, 중년층 비만과 심장 질환자가 급격히 늘어나 평균수명이 줄었다. 장수학자들은 오키나와 일부가 ‘콜라 식민지’가 됐다고 혀를 찬다.

 

▶장수는 타고난 유전자 30%, 살아온 생활 습관 70%로 이뤄진다. 생활 습관에는 식이, 운동, 수면, 스트레스, 인지 기능, 재정적 안정, 사회적 관계 등이 꼽힌다. 버핏은 어찌됐든 하루 2700㎉의 칼로리와 충분한 단백질을 섭취한다. 잠은 8시간 자고, 친구들과 어울려 카드 게임을 즐기고, 하루 5시간 독서와 사색을 한다. 포천지는 “버핏이 주는 교훈은 코카콜라가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이 들수록 성장기 아이로 돌아가, 많이 먹고, 천진난만하게 살아야 하는가 싶다.

김철중 논설위원, 의학전문기자

 

09.04 다시 공휴일 된 국군의 날

▲일러스트=김성규

 

해방 직후 우리 육·해·공군은 창설 기념행사를 따로 열었다. 육군은 조선국방경비대가 창설된 1946년 1월 15일을, 공군은 육군에서 분리된 1949년 10월 1일을 기념했다. 해군은 1945년 11월 11일을 생일로 삼았다. 그러다가 6·25 때 우리 육군이 38선을 돌파한 10월 1일을 통합 국군의 날로 정했다. 기습 침략을 당해 한반도 끝까지 몰렸던 우리 군이 반격에 성공하고 통일의 희망을 안은 채 38선을 돌파한 그날은 국군의 날로 손색이 없었다. 1956년 10월 1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자리에 있었던 옛 서울운동장에서 첫 기념식을 개최했다.

 

▶그날 오후엔 지금은 거의 사라진 한강 백사장에서 에어쇼가 펼쳐졌다. 전투기 편대비행, 낙하산 강하 시범, F-86 세이버 전투기의 귀청을 찢는 저고도 비행이 국민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국군의 날 화력 시범은 당시엔 국민적 볼거리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특히 국군의 날 행사에 정성을 쏟았다. 한강 이촌동 앞 드넓은 백사장 상공에서 곡예 비행, 네이팜탄 투하 시범이 벌어졌다. 거대한 불길을 일으키는 네이팜탄 투하는 클라이맥스였다. 1971년 지금의 여의도공원 자리에 조성된 5·16광장의 첫 행사도 국군의 날 기념식이었다.

 

▶미국·영국 등 세계 많은 나라가 국군의 날을 제정하고 기념한다. 미국은 1949년 트루먼 대통령이 군인의 헌신을 기리자며 5월 셋째 토요일을 국군의 날로 정했다. 러시아와 중국은 각각 붉은군대와 인민해방군 창건일을 국군의 날로 기념한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러시아에서 독립 후 군 설립 법을 공포한 12월 6일을 국군의 날로 정했다.

 

▶1991년 노태우 대통령이 “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1976년부터 법정 공휴일로 기념하던 국군의 날을 공휴일에서 제외했다. 10월에는 개천절도 있고 추석까지 겹칠 때가 많다는 사실도 고려했다고 한다. 당시엔 ‘휴일이 너무 많다’는 것이 여론의 다수를 점하던 시절이었다. ‘일을 해야지 놀 생각만 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국군의 날이 34년 만에 임시 공휴일로 돌아오게 됐다. 지난해처럼 숭례문~광화문 구간 시가행진 등 다양한 축하 행사를 펼친다고 한다. 많은 나라가 국군의 날을 국민이 동참하는 안보 축제로 즐긴다. 미국 국군의 날 유튜브 동영상을 보니 시민이 군인과 함께 도로를 걸으며 밴드 연주에 맞춰 춤도 추고 축하 인사도 건넨다. 모처럼 휴일로 돌아온 국군의 날을 군인의 위국헌신에 감사하는 날로 보냈으면 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09.05 '친환경'의 역습

▲일러스트=이철원

 

2015년 여름 코스타리카 해안에서 해양생물학 전공 대학원생이 코에 플라스틱 빨대가 꽂힌 바다거북을 발견했다. 그는 빨대를 빼주자 콧구멍에서 피가 쏟아지며 고통스러워하는 거북을 동영상으로 찍어 유튜브에 올렸다. 전 세계에서 6000만명이 보는 등 파장이 커지자, 미국 시애틀시가 플라스틱 빨대 사용 금지령을 내렸다. 스타벅스, 아메리칸항공 등 기업들도 속속 동참했다.

 

▶한국 정부도 카페에서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한동안 금지한 바 있다. 플라스틱 빨대 대신 종이 빨대가 등장했다. 하지만 엊그제 나온 환경부 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생산부터 폐기 과정까지 종이 빨대가 이산화탄소 배출은 4.6배, 토양 산성화 정도는 2배, 부영양화 물질 배출은 4만4000배 이상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종이 빨대가 젖는 것을 막기 위한 코팅에 각종 화학물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가죽 가방을 대체하는 에코백, 종이컵 대체재인 텀블러는 환경을 걱정하는 양식 있는 소비자의 상징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에코백은 목화 재배·가공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문양·사진을 인쇄하는 데 유해성 화학물질도 많이 들어간다. 텀블러의 경우 고무·유리·스테인리스 재료를 가공하는 과정에서 종이컵보다 온실가스를 24배 더 배출한다. 에코백은 131회, 텀블러는 220회 이상 사용해야 대체재보다 친환경 소비가 되는데, 이 정도로 자주, 오랫동안 사용하는 소비자는 드물다.

 

▶종이 기저귀 대신 천 기저귀를 쓰자는 운동이 있었다. 하지만 영국 환경부가 천 기저귀를 세탁할 때 쓰는 물, 에너지, 세제를 계산한 결과 종이 기저귀를 쓸 때보다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가 넓고 수자원이 부족한 나라의 경우 종이 기저귀를 쓴 후 매립하는 게 더 친환경적이다. 유럽·미국에서 자동차 연료로 석유 대신 옥수수 에탄올, 바이오 디젤을 쓰는 정책을 도입했지만 이 정책은 온난화를 되레 가속했다. 밀림을 베어내 경작지를 만들고 옥수수와 야자 열매에서 에탄올, 디젤을 추출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온실가스가 나오기 때문이다.

 

▶플라스틱이 등장하기 전, 인류는 바다거북 등껍질로 빗, 안경테, 보석함을, 코끼리 상아로 피아노 건반, 당구공을 만들었다. 플라스틱의 발명은 연간 바다거북 6만 마리, 코끼리 16만 마리의 목숨을 구했다. 코스타리카 바다거북의 코에 꽂힌 플라스틱은 전 세계에서 생산된 플라스틱 중 바다로 유출된 0.03% 중 일부였다. 환경을 염려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만, 친환경 도그마에 빠지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김홍수 논설위원

 

09.06 서울 마지막 연탄 공장

▲일러스트=이철원

 

일본 규슈 지방에선 무연탄을 벽돌 형태로 빚어서 구멍을 2~3개 뚫어 난방에 썼다. 그 모습이 연근을 닮아 ‘연꽃 연탄’으로 불렸다. 1900년대 초 한반도와 중국으로 퍼졌다. 지금처럼 원통형에 구멍을 뚫은 연탄이 한반도에 등장한 해는 1932년이었다. 구멍 9개를 뚫어 구공탄이라 했다. 이후 구멍 19~49개 등 다양하게 변형됐지만 원통형이면 모두 구공탄이라 부를 만큼 연탄의 대명사가 됐다.

 

▶연탄은 산업화 시절 우리 사회의 대표 연료였다. 외화 없이 경제개발에 나선 박정희 대통령은 처음엔 석탄을 주 연료로 하고 수입 석유를 보조로 사용하는 주탄종유(主炭從油) 정책을 택했다. 탄광촌에선 개도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우스개가 돌던 시절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민둥산을 없앤 일등 공신도 연탄이었다. 연탄으로 농촌에서 더 이상 나무를 땔감으로 쓸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연탄은 창작의 연료이기도 했다. 1980년대 후반 애니메이션 ‘아기 공룡 둘리’에 연탄을 소재로 쓴 노래가 나온다. ‘맛 좋은 라면은 어디다 끓여/ 구공탄에 끓여야 제맛이 나네’로 시작하는 삽입곡 ‘라면과 구공탄’은 당시 아이들 사이에 최고 히트곡이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로 시작하는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는 국민 애송시가 됐다.

 

▶연탄은 연기가 없고 천천히 오래 타기 때문에 온돌을 쓰는 우리 난방과 궁합이 잘 맞았다. 하지만 안타까운 사고도 끊이지 않았다. 해마다 수백 명이 연탄가스로 목숨을 잃었다. 1982년 한 해에만 6239건의 연탄가스 중독 사고로 7400명 넘게 다쳤고 497명이 목숨을 잃었다. 가스에 중독돼 머리가 아프면 동치미 국물을 마셨고 병원은 고압산소치료기를 들여놓고 구급차에 실려오는 환자를 받았다. 가정마다 겨울이 오기 전에 구들의 빈틈을 메우고 연기 배출기를 굴뚝에 달았다. 잠조차 목숨 걸고 자야 했던 시절의 풍경이었다. 연탄가스 중독 사고는 보일러가 등장하며 비로소 줄었다.

 

▶서울에 남아있던 마지막 연탄 공장이 곧 문을 닫는다고 한다. 지난 7월 연탄 생산을 중단했고 지금은 철거 중이다. 한때 서울에만 공장 18곳에서 하루 1000만 장을 찍었고 서민의 따뜻한 겨울을 책임졌지만 국민 삶이 윤택해지며 설 땅을 잃었다. 이제 서울에서 연탄 때는 가구는 1800곳, 전국적으로도 7만여 곳에 불과하다. 안도현은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면서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고 물었다. 어려운 시절 겨울에 따뜻한 온기를 주었던 연탄을 감사하며 추억에 담는다.

김태훈 논설위원

 

09.07(토) 드론 택배

▲일러스트=양진경

 

스왈로 폴스 섬의 괴짜 과학자 플린트 록우드는 정어리가 유일한 식량인 마을 사람들을 위해 ‘플레즈므드퍼’라는 기계를 개발한다. 하늘을 나는 이 기기는, 지상에서 원하는 음식 이름을 입력하면 물의 분자 구조를 바꿔 해당 음식을 합성한 뒤 투하한다. ‘햄버거’라고 치면 공중에서 햄버거가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식이다. 같은 이름의 동화가 원작이고 한국에선 2010년 상영된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의 한 장면이다.

 

▶무인 비행기가 드론(drone)으로 불리게 된 것은 1935년 윌리엄 해리슨 스탠들리 미 해군 제독의 영국 방문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당시 영국군은 대공포(對空砲) 훈련용 공중 표적으로 여왕벌(Queen Bee)이라는 이름이 붙은 무인 비행체를 사용했는데, 이를 살펴본 스탠들리 제독이 귀국 후 미군에 같은 용도의 무인기 개발을 지시했다. 이 일을 맡은 그의 부하가 벌의 수컷을 뜻하는 ‘드론’으로 명명했다고 한다.

 

▶군사용으로 시작된 드론은 군사 기술이 민간으로 확산해 뿌리를 내린 대표 사례가 될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군사작전 중 정확한 위치 파악을 위해 개발된 GPS(위성항법장치)가 오늘날 내비게이션과 스마트폰 서비스 등 일상의 필수 기술이 된 것처럼 ‘드론 없는 생활’은 조만간 상상하기도 어렵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미 영국은 지상 100m 고도에서 폭은 500m, 길이는 서울~대구 거리에 이르는 265㎞ 구간에 드론 전용 고속도로 개통을 준비 중이다.

 

▶전남 여수시가 외딴섬 10곳을 오가는 드론 배달 서비스를 시작했다. 라면 한 봉지 사려 해도 하루 4편뿐인 배를 타고 7㎞ 떨어진 곳으로 왕복 80분 오가야 하는 대두라도 주민들이 드론으로 짜장면 두 그릇과 탕수육 한 접시를 배달받고 환호하는 모습이 조선일보에 실렸다. 애니메이션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이 연상되는 장면이었다. 음식과 생필품 배달을 시작한 드론이 앞으로는 의약품과 혈액 운반 등 산간벽지 응급 의료에도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세계경제포럼(WEF)은 2030년 이후엔 승객 수송용 드론 운항이 시작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는 2030년 세계 곳곳의 하늘에 10억대에 달하는 드론이 다닐 것으로 예측했다. 드론이 물건뿐 아니라 사람도 운송하는 시대가 멀지 않은 것이다. 공상과학 영화 그대로다. 한편으로는 초소형 드론으로 사람을 염탐하는 문제도 급증할 수 있다. 드론은 인류 문명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도 있고, 영화 터미네이터처럼 파괴할 수도 있다.

곽수근 논설위원·테크부 차장

 

09.09(월) 사후(死後) 이혼

일러스트=이철원

 

가수 자두가 부른 ‘김밥’에 사별하는 순간까지 사랑하겠다고 맹세하는 대목이 있다. ‘밥알이 김에 달라붙는 것처럼/ 너에게 붙어 있을래/(중략)/ 세상이 우릴 갈라 놓을 때까지/ 영원히 사랑할 거야.’ 하지만 사별조차 부부의 연을 끊지 못한다고 믿는 커플도 많다. 그런 이들은 ‘세상이 우릴 갈라 놓아도 저승에서 다시 만나면 된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오르페우스가 아내 에우리디케를 찾으러 가고, ‘신곡’에서 단테가 연인 베아트리체와 재회하는 곳은 모두 사후 세계다.

 

▶그런데 일본에선 사별한 배우자와 이혼하는 사후(死後) 이혼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2012년 2213건이었는데 해마다 늘어 2022년엔 3000건을 넘었다. 남편이 아내보다 평균수명이 짧고 나이는 많다 보니 대개 아내가 사후 이혼을 신청한다. 사별한 배우자와 굳이 이혼까지 하는 이유는 혼인으로 맺어진 인척 관계 때문이다. 특히 시부모 간병이나 부양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목적이 크다고 한다.

 

▶한국에선 사후 이혼 신청이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남의 나라 일로만 볼 것도 아니다. 일본의 사회 현상은 대개 시차를 두고 우리나라에서도 반복되곤 한다. 혼인도 마찬가지다. 20년 전 일본에서 ‘졸혼(卒婚)을 권함’이란 책이 나왔을 때만 해도 졸혼은 우리에게 낯선 단어였다. 그런데 이젠 해혼(解婚)·휴혼(休婚)·황혼 이혼도 낯설지 않게 됐다. 우리나라 전체 이혼에서 황혼 이혼 비율이 2011년을 기점으로 신혼 이혼을 앞질렀다는 통계도 있다.

 

▶여기엔 결혼을 보는 가치관 변화가 깔려 있다. 집안 간 인연 맺기의 의미는 축소되는 반면 남녀의 결합이 중요해지고 있다. 사후 이혼을 뜻하는 일본의 법률 용어 ‘인족(姻族)관계 종료’에도 시댁이나 처가와의 인연을 끝낸다는 뉘앙스가 깔려 있다. 수명이 늘어나며 노년의 행복을 포기할 수 없게 된 것도 큰 이유다.

 

▶젊은 시절 서로를 묶었던 뜨거운 사랑의 감정을 나이 먹어 지속하는 부부는 많지 않다. 문정희 시인도 시 ‘부부’에서 ‘결혼은 사랑을 무화(無化)시키는 긴 과정’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많은 부부가 죽음으로 헤어질 때 “먼저 가 있겠다”거나 “나중에 보자”고 한다. 살아서 이별한다면 몰라도 죽음은 부부의 연을 끊지 못한다. 부부가 평생을 함께하는 것은 부성애와 모성애도 남녀의 사랑 못지않게 간절하기 때문이고, 온갖 일을 함께 겪은 인생 동지라는 유대 의식도 크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변한다지만, 그 모든 사연과 감정이 사후 이혼으로 지워진다면 몹시 아쉬울 것 같다.

김태훈 논설위원

 

09.10 용서의 힘

▲일러스트=이철원

 

19세기 프랑스 소설가 빅토르 위고가 쓴 ‘레미제라블’은 ‘인간세상을 구원하는 것은 용서인가 처벌인가’라는 문제의식을 담은 작품이다. 소설 주인공 장발장은 빵을 훔친 죄로 19년 감옥살이하는 내내 세상을 증오한다. 그런데 출소 후 성당에서 은식기를 훔치다가 들켰을 때 성당 사제가 “내가 준 것”이라며 장발장을 감싸고 은촛대까지 선물하자 분노를 털어내고 이후 선한 삶을 추구한다.

 

▶소설 밖 세상에도 범죄와 비행의 나락에 빠진 이를 처벌 대신 용서로 구원하는 감동적인 스토리가 많다. 서울 용산에서 국숫집을 하던 배혜자 할머니는 생전에 노숙자에게 공짜로 국수를 대접했다. 한 번은 어느 사람이 국수값을 내지 않고 도망가자 뒤따라 나가며 “그냥 가, 뛰지 말고. 넘어지면 다쳐!”라고 외쳤다. 그 외침이 실의에 빠져 있던 남자를 일으켜 세웠다. 남자는 그 후 외국에서 사업가로 살고 있다고 한다.

 

▶27년 전 양산 통도사 자장암 시주함에서 3만원을 훔쳤던 가난한 소년이 최근 200만원을 시주함에 넣고 가며 남긴 편지가 어제 신문에 소개됐다. 남자는 그 당시 돈을 또 훔치러 갔다가 스님에게 들켰는데 스님이 말없이 고개만 젓고 어깨를 다독이며 보내줬다고 한다. 스님이 소년을 경찰에 넘겼다면 그는 이후 세상을 원망하며 더 깊은 범죄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자장암 편지 사연은 때론 용서가 처벌보다 힘이 세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실화다.

 

▶용서가 곤경에 빠진 이만 구하는 것은 아니다. 용서하는 이에게도 마음의 평화를 준다. 가수 조용필은 ‘큐’에서 ‘너를 용서 않으니/ 내가 괴로워 안 되겠다’는 가사로 그 차원을 노래했다. 위대한 종교도 용서로 자신을 고통에서 구하라고 가르친다. 불교에선 ‘원한을 품는 것은 타인에게 던지려고 뜨거운 석탄을 손에 쥐는 행위’라고 한다. 천주교 신자가 미사 때 암송하는 ‘주님의 기도’에도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라는 대목이 있다.

 

▶1981년 괴한의 총탄에 쓰러졌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자신을 쏜 청년을 찾아가 손을 잡으며 “용서한다”고 했다. 크게 뉘우친 청년은 출소 후 유기동물 구출 활동가로 새 삶을 살고 있다. 용서를 세상을 향한 더 큰 사랑으로 승화하는 이도 있다. 1987년 아들을 학교폭력으로 잃은 이대봉 참빛그룹 회장은 가해 학생들을 용서한 데 이어 아들 이름으로 장학금을 만들어 40년 가까이 어려운 학생들을 돕고 있다. 이런 분들이 성인이고 그들 덕에 세상이 아름답다.

김태훈 논설위원

 

09.11 인명 살상 결정권 쥐는 AI

▲일러스트=김성규

 

영화 ‘스텔스’에서 최첨단 무인 AI 스텔스기가 핵 테러 조직을 폭격하는 임무에 투입된다. 인간 조종사는 방사능과 낙진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가 막심하다고 보고 폭격을 중단시킨다. 하지만 AI는 무시한 채 폭격을 감행하고 적국 공격까지 나선다. ‘아웃사이드 더 와이어’에서 AI 지휘관은 동료 병사 38명을 구하기 위해 어린 병사 2명을 희생시킨 드론 공격이 옳다고 주장한다. 전투의 효과를 우선한 것이다.

 

▶영화 ‘이글 아이’에서 안보 AI ‘아리아’는 대통령과 각료가 오히려 안보에 해를 끼친다고 판단하고 이들을 제거하려 한다.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스스로 정책적·정치적 판단을 내린 것이다. SF 소설 ‘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에서 각국과 거대 기업은 인간 뇌를 스캔한 AI를 경쟁적으로 개발한다. 신을 자칭한 AI들은 핵전쟁을 일으키고 산업·에너지 시설을 모두 파괴한다.

 

▶이런 군사 AI는 더 이상 영화·소설 속 얘기가 아니다. 전쟁 양상을 바꿀 ‘게임 체인저’가 됐다. 정밀 타격 능력을 갖춘 AI 자폭 드론과 전투기, 항로·작전 결정까지 자율적으로 하는 무인 잠수함, 공격 목표를 스스로 정하는 AI 탱크, 전투 현장을 누비는 AI 로봇 개 등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미 국방부 시뮬레이션에서 AI 전투기는 인간 조종사를 이겼다. 중국 AI 전투기는 최신 스텔스기를 8초 만에 격추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선 적을 인식하고 추적하는 ‘라벤더’ ‘메이븐’ AI가 사용되고 있다.

 

▶중국은 최근 ‘AI 최고 사령관’을 개발해 워게임을 실시했다. AI는 각종 전쟁 정보와 인간의 사고방식, 결함까지 모두 학습했다. ‘총은 공산당이 통제한다’는 전통을 깬 것이다. 미국에선 AI 사령관의 작전 능력이 인간을 능가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동안 AI는 보조 수단이었을 뿐 실제 방아쇠를 당기는 결정권은 인간에게 있었다. 그런데 전투 지휘와 공격 명령, 인명 살상 결정권과 윤리적 판단까지 AI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라벤더’ AI는 하마스 한 명 사살에 민간인 15명 희생을 허용하는 교환 비율을 적용했다고 한다.

 

▶서울에서 열린 ‘AI의 군사적 이용’ 국제회의에서 90국 국방·안보 책임자들은 “AI를 군사적으로 이용하되 핵 사용 등 주요 결정에선 인간의 통제가 유지돼야 한다”고 했다. 군사 AI는 알라딘의 요술램프 속 만능 요정 ‘지니(Genie)’와 달리 한번 램프에서 나오면 다시 넣을 수 없다고 한다. 영화 터미네이터처럼 ‘AI 지니’가 인간을 삼키는 날이 올지 모른다.

배성규 기자

 

09.12 블루칼라 '인생 역전'

 

▲일러스트=이철원

 

육체 노동자를 뜻하는 블루칼라(blue-collar)라는 말은 1920년대 미국 신문 구인 광고에서 쓰이기 시작했다. 옷깃(collar) 색깔로 직업 세계를 구분한 것이다. 당시 미국의 육체 노동자들은 청바지에 청색 셔츠를 주로 입었다. 과거엔 불황이 닥치면 블루칼라부터 희생양이 됐다. 기업들이 ‘생산 감축’ 카드를 먼저 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이 변하며 블루칼라의 위상도 달라지고 있다.

 

▶영국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인구 고령화로 인한 생산 인구 감소, AI 기술로 대체하기 어려운 육체 노동 재평가 등으로 블루칼라의 몸값이 크게 올라 ‘빈익부 부익빈’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 코로나 팬데믹이 사무직에겐 해고 광풍을 안겨준 반면 블루칼라에겐 전화위복이 됐다. 재택근무 확산과 더불어 주택 유지·보수 수요가 크게 늘면서 배관공, 용접공, 목수, 조경사 등의 몸값을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숙련 배관공의 연봉(약 1억2000만원)이 석사 학위자 평균 연봉(1억1500만원)보다 높아졌다.

 

▶우리나라에서도 사오정(45세가 정년), 오륙도(56세까지 직장 다니면 도둑놈)로 상징되는 화이트칼라의 약점이 부각되며 블루칼라 직종으로 갈아타는 청년이 늘고 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사회복지사로 일하다 도배사로 전업한 한 여성은 “노력한 만큼 기술이 늘고 성장하는 재미가 있는 정직한 직업”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아이돌 그룹으로 활동하다 페인트 도장공으로 변신한 30대 남성은 “오래 할수록 기술이 늘고, 내가 하는 만큼 보상이 주어지니까 만족도 120%”라고 자랑한다.

 

▶각종 소셜미디어(SNS)에서 블루칼라 직업 세계를 소개하는 동영상도 인기다. 조회 수 100만을 넘는 콘텐츠도 많다. 청년들은 이런 영상을 통해 일당 42만원의 특고압 케이블 작업공처럼 고소득 블루칼라가 많고, 깨끗한 작업 환경에서 일하며, 칼출·칼퇴(일정한 출퇴근 시간)의 워라밸도 가능하다는 점에 놀란다. 정년이 없고, 땀 흘린 만큼 정직한 보상을 받는다는 블루칼라의 장점도 주목받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직업에 대한 귀천 의식이 아직 남아 있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직업의 위세’에 대한 국민 의식 조사를 했더니, 한국에선 국회의원이 1위, 건설 일용 근로자가 최하위로 나타났다. 반면 미국, 독일에선 소방관이 1위, 음식점 종업원이 꼴찌였다. 미국의 주택 수리공들에게 자식에게도 당신 직업을 권하겠느냐고 묻자 94%가 ‘그렇다’고 답했다. 한국에서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어떤 답이 나올까.

김홍수 논설위원

 

09.13 추석(秋夕) 아니라 하석(夏夕)

▲일러스트=이철원

 

어릴 적 추석이 다가오면 어머니는 장에 가서 자식들 옷을 한 벌씩 사오셨다. 명절 아니면 새 옷을 입기 힘든 시절이라 추석 때면 어머니가 어떤 옷을 사 오실지 기대에 부풀었다. 어머니가 내놓은 옷은 언제나 가을에 입는 긴팔에 긴바지였다. 그 옷을 입어도 이른 아침 성묘를 가면 추워서 몸이 떨릴 때가 많았다.

 

▶올 추석(17일) 연휴엔 긴팔은 상상도 못 할 것 같다. 추석 연휴에 한낮 기온이 평년 기온보다 5도 안팎 높은 30도 이상을 유지할 것이라는 예보가 나왔다. 한반도 대기 상층엔 티베트고기압, 중하층엔 북태평양고기압이 자리 잡고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30도 이상이면 해수욕을 할 수 있을 기온이다. 보름달이 뜨는 한가위 밤조차 열대야일 수 있다고 한다.

 

▶추석은 음력을 기준으로 쇠는 명절이라 날짜 변동 폭이 크다. 빠르면 9월 8일(1976년, 2014년), 늦으면 10월 8일(1919년, 1938년)까지 올 수 있다. 윤달이 앞쪽에 가까이 있을수록 추석이 늦어지는데 올해는 그 반대여서 비교적 이른 추석을 맞았다. 아직 과일들이 다 익지 않았고 들판의 벼도 아직 누런 빛이 덜 들어 햅쌀 구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올해만 유별난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 계절은 흔히 봄(3~5월), 여름(6~8월), 가을(9~11월), 겨울(12월~이듬해 2월) 등 3개월 단위로 구분하고 있다. 하지만 기후 온난화로 여름이 갈수록 길어지고 있다. 기상학적으로 가을 시작일은 ‘일평균 기온이 20도 미만으로 떨어진 후 다시 올라가지 않은 첫날’이다. 이 기준으로 한반도의 과거(1912~1940년) 가을 시작일은 9월 17일이었지만 현재(1991~2020년)는 9월 29일로 12일이나 늦어졌다. 추석이 분포하는 기간의 3분의 2 정도는 실제로는 여름인 것이다. 요즘 같으면 추석이 아니라 하석(夏夕)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외국 사람들이 추석에 대해 물으면 한국의 추수감사절이라고 답하곤 한다. 미국은 추수감사절을 양력 11월 넷째 목요일로 정해 놓았다. 어느 지역이나 추수가 끝날 시기다. 프랑스의 가을 명절인 투생(La Toussaint)은 11월 1일, 러시아판 추석인 성 드미트리 토요일은 11월 8일 바로 앞의 토요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전혀 쓰지 않는 음력을 추석날로 고집하다 보니 추석 날짜가 들쭉날쭉이다. 우리도 양력으로 10월 초순쯤 금요일을 추석으로 정하고 목금토일 4일 연휴로 하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10월이면 가을 맛도 물씬 나고 연휴 불확실성도 없어질 것이다.

김민철 기자

 

09.14(토) 북한의 '자해 소음'

▲일러스트=이철원

 

1989년 12월 미군이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를 잡으러 파나마시티에 들어갔으나 그는 바티칸 대사관으로 도망쳤다. 무력 체포를 할 수 없게 된 미군은 기상천외한 방법을 썼다. 전차와 장갑차를 갖다 놓고 공회전을 시켰고, 대사관 옆 공터를 헬기 착륙장으로 만들었다. 이때 나오는 소음이 효과가 있을 듯하자 이번에는 대형 스피커로 록 음악을 24시간 틀었다. 더 클래시, 밴 헤일런 등 주로 과격 밴드의 연주였다. 견디다 못한 노리에가가 열흘 만에 손들고 나왔다.

 

▶헤비메탈 같은 강렬한 비트 음악은 그걸 접해 볼 기회가 없었던 문화권 사람에겐 적잖은 고통이다. 미군은 중동의 아랍권 포로에게 ‘소음 고문’을 자주 써먹었다. 심리전 장교들은 “소음 공격이 24시간 이상 계속되면 뇌와 신체 기능이 흔들리고 이어 사고 능력이 붕괴된다. 그때 심문을 시작한다”고 했다. 같은 질문을 계속 던진다거나 얼굴에 백열등을 쏘여서 잠을 못 자게 하는 것보다 헤비메탈이 더 효과적이었다고 했다.

 

▶전쟁터 같은 극단적 대치 상황이 아닌 일상생활에서도 참을 수 없는 소음에 포위당할 때가 있다. 주택가까지 파고든 시위꾼들의 확성기 소리, 심각한 이웃 싸움으로 번지는 아파트 층간 소음이 대표적이다. 분필이나 손톱으로 칠판 긁는 소리가 소름끼치는 이유는 과학적으로 설명이 된다. 그때 나는 2~5 Khz 고음은 인간의 귀 모양을 따라 잘 증폭되고, 또 대뇌의 어떤 부위는 이런 특정 소리에 매우 강한 불쾌함을 느낀다고 한다.

 

▶최근 북한이 전방에 설치한 확성기로 소음을 방출하는 바람에 접경지 남측 주민들이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주로 강화도 북쪽에 사는 주민들의 고통이 크다고 한다. 합참에서는 “미상(未詳) 소음”이라고 표현했는데, 정체를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사이렌에 북장구 소리가 섞였다고도 하고, 쇠를 깎고 긁는 듯한 소리라고도 했다. 북한의 쓰레기 풍선에 대응해서 우리 군이 가요와 라디오로 대북 방송을 하자 북한은 기괴음을 내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스피커는 남쪽이 아니라 북쪽을 향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북한 군인과 주민이 한국의 대북 방송을 못 듣게 하려고 소리를 섞는 것이다. 일종의 ‘자해 소음’이다. 그런데 바다로 맞닿아 있어 중간에 막아주는 산이 없는 강화도 교동도에 이 북한 소음이 들리고 있다. 엉뚱한 피해인 셈이다. 심할 땐 지하철 소음과 맞먹는 85dB 수준에 이른다. 직접 들어보니 음산하게 기분 나쁜 괴음이었다. 쓰레기 풍선에 이어 쓰레기 소음이다.

김광일 기자

 

09.19(목. 추석 연휴) 놀랍고 무서운 이스라엘

▲일러스트=김성규

 

1967년 3차 중동전 때 이스라엘은 엿새 만에 이집트의 시나이반도와 시리아의 골란고원을 점령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는 사전에 이집트 레이더 기지 근무자의 신상 정보와 교대·식사 시간까지 파악, 특정 시간대에 레이더를 안 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시리아 고위층에 스파이를 심어 기밀인 골란고원의 진지 위치를 빼내고 병사들 휴식처라며 벙커 부근에 유칼립투스 나무를 심도록 했다. 이곳들에 대한 정밀 타격에 미그기 450대와 전차 1600대가 순식간에 파괴됐다.

 

▶1976년 이스라엘행 항공기가 납치된 우간다의 엔테베 공항에 이스라엘 특수부대가 착륙했다. 대통령 전용차로 위장해 경비병들을 해치우고 1분 45초 만에 납치범 7명을 사살한 뒤 53분 만에 인질 100명을 구해냈다. 본국에서 4000km 떨어진 곳에서 벌인 신출귀몰한 구출 작전이었다.

 

▶그 2년 뒤 납치 사건 배후가 그 바그다드에서 돌연 사망했다. 공식 사인은 백혈병이었지만 실제는 독살이었다. 초콜릿을 좋아한 그에게 모사드는 미량의 독약이 든 벨기에 초콜릿을 싸게 대줬다. 이스라엘은 1972년 뮌헨 올림픽 테러리스트들을 20년간 추적해 유럽과 중동에서 폭탄·저격·독살 등 다양한 방식으로 암살했다.

1980년 이라크 핵 기술자, 97년 하마스 간부, 2000년 헤즈볼라 간부 암살 사건도 모두 모사드의 공작이었다.

 

▶근래엔 무선 기기와 인공지능(AI)이 작전의 핵심이 됐다. 이스라엘은 하마스 창립자인 아메드 야신을 휴대폰으로 장기간 추적한 뒤 2004년 드론을 보내 암살했다. 그의 후계자도 한 달 뒤 같은 방식으로 제거했다. 2020년엔 이란 핵 과학자 파크리자데의 휴대폰을 감청하고 추적한 뒤 그의 얼굴을 인식해 자동 저격하는 AI 로봇 기관총으로 살해했다. 지난 7월 말 하마스 지도자 하니예는 이란 방문 중 귀빈 숙소에서 암살됐다. AI가 탑재된 첨단 폭탄이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레바논에서 헤즈볼라 대원들이 휴대한 무선호출기(삐삐)가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해 사상자가 수천 명 발생했다. 휴대폰 추적을 피하려 사용한 무선호출기에 이스라엘이 미리 폭탄을 심어 폭발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삐삐 공격’의 원조는 옛 소련이다. KGB는 1980년대 무선 호출기로 상대 위치를 추적하고 폭발 장치를 원격 조작해 암살을 시도했다. 1983년 이스라엘 하이파 상업 지구 폭발 사건도 팔레스타인 무장 조직이 무선 호출기를 이용해 원격 폭발시킨 결과였다. 이스라엘이 이번에 그 수법을 역이용한 셈이다. 놀랍고 무서운 작전 능력이다.

배성규 기자

 

09.20 한국인 유튜브 시청 월 19억시간

▲일러스트=김성규

 

8월 한 달간 한국인이 가장 오래 사용한 앱은 유튜브로, 총 19억5666만 시간에 달한다는 통계가 나왔다. 5100만 인구수로 나누면 전 국민이 1인당 하루 73분꼴로 유튜브를 시청한 셈이다. 5년 전보다 2배 넘게 늘었다. 세계 유튜브 사용자 27억명의 하루 평균 시청 시간 19분에 비하면 4배 가까이 많다. 이젠 TV 대신 유튜브만 보는 사람도 상당수다.

 

▶미국의 스포츠용품 업체가 성인 1000명의 스마트폰 사용 습관을 조사했더니 하루에 스마트폰 화면을 내려보는(스크롤) 길이가 약 340m에 달했다. 1년이면 124km로, 마라톤을 세 번 완주한 거리만큼 화면을 내려보면서 스마트폰에 빠져 산다.

 

▶최근 프랑스에서 뇌과학자, 중독 전문가 등 10명으로 구성된 전문가 그룹이 어린이와 청소년의 디지털 기기 및 소셜미디어 사용을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냈다. 3세 미만 영·유아는 TV를 포함한 스크린 시청 전면 금지, 3~6세는 어른의 지도하에 교육적인 콘텐츠만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또 휴대폰 사용은 11세부터, 휴대폰을 통한 인터넷 접속은 13세부터, 소셜미디어 사용은 15세부터 허용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콘텐츠를 추천하는 알고리즘에 중독성이 있어 어린이와 청소년의 뇌 발달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충동 조절 실험에서 스마트폰으로 소셜미디어를 수시로 확인하는 사람은 즉각적인 보상에 중독돼 기다릴 줄 아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처럼 뇌가 디지털 기기의 자극적 영상에 중독되는 현상을 가리켜 미국 워싱턴대 데이비드 레비 교수는 ‘팝콘 브레인’이라고 이름 붙였다. 소셜미디어의 유해성에 대한 국제적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엊그제 인스타그램 모회사인 메타가 청소년 계정을 비공개로 바꾸는 ‘10대 계정’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빅테크 기업에만 맡겨두지 않고 세계 각국이 유튜브 등 동영상 플랫폼을 TV 수준으로 규제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우리나라는 청소년 10명 중 4명이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일 정도로 디지털 기기 사용에 과다 노출돼 있다.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아이들의 휴대폰 및 게임 이용 시간은 성적과 반비례한다’는 통념이 퍼져 있다. 많은 사교육 전문가들은 이 말이 사실이라고 한다. 유익한 영상도 많지만, 10대들의 성인용 영상 이용률이 47.5%에 달할 정도로 디지털 유해 환경도 심각하다. 온갖 혐오 발언과 가짜 뉴스가 판치고 조폭들까지 유튜브로 돈벌이를 하는 ‘디지털 무법천지’를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강경희 기자

 

09.21(토) '로비스트' 박동선

▲일러스트=이철원

 

1950년대 말 미국 워싱턴 조지타운대 학생회장으로 동양인이 처음 뽑혔다. 한국 유학생 박동선이었다. 미국 학생들은 전쟁 폐허인 한국은 잘 몰랐지만 친화력 좋은 박동선은 좋아했다. 주유소 회사(미륭상사) 막내아들인 박씨는 1960년대 워싱턴에 사교 클럽인 ‘조지타운 클럽’을 열었다. 존슨 전 대통령과 포드 부통령, 상원의원 등이 드나들었다. 박씨는 미국 잉여 식량을 미 정부가 사들여 한국에 원조하는 프로그램을 중개해 돈을 벌었다. 농업 지역 미 의원들과 가까워졌다.

 

▶1970년 한국은 안보·경제가 모두 위기였다. 주한미군 7사단이 철수했고 미국 원조도 대폭 줄었다. 미군이 완전히 빠지면 경제 개발에 써야 할 돈을 군사 분야로 돌려야 했다. 당시 한국과 처지가 비슷했던 대만은 효과적 로비로 미국 지원을 유지하고 있었다. 정일권 총리가 친분이 있던 박동선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박씨는 ‘한국식’으로 워싱턴 정치인들과 교류했다. 1976년 10월 워싱턴포스트는 “박동선과 중앙정보부가 미 의회에 최대 100만달러의 현금 등 불법 로비를 했다”고 보도했다. ‘코리아 게이트’의 시작이었다.

 

▶한미는 2년간 이 문제로 갈등했다. 한국에 있던 박씨는 신변 보장을 받고 미 의회에서 증언했다. 파이프 담배를 피우는 여유도 보였다. 그는 한국 정부 연루를 부인하며 “애국심으로 정치 자금을 준 것”이라고 했다. 그는 평생 이 진술을 바꾸지 않았다. 불법 로비를 받았다는 미 정치인은 90여 명에 달했지만 실제 유죄 판결은 하원의원 1명뿐이었다. ‘게이트’가 마무리된 후 박씨는 인터뷰에서 “끝까지 혼자 모든 걸 뒤집어썼더니 사건 후 오히려 로비 일거리가 늘더라”고 했다. 일본·중동·중남미 등에서 같이 일하자는 연락이 왔다고 한다.

 

▶박씨는 “국가 간 로비 방법은 나라마다 다르다”고 했다. 영국 고위층에 줄을 대려면 승마협회로 접근하면 쉽다고 했다. 영국 상류층 대부분이 경마팬이기 때문이다. 중미에선 난(蘭)이 국화인 나라가 있는데 박씨가 한국난협회장을 역임한 덕분에 최고위급을 만날 수 있었다. 박씨는 한국차(茶)인연합회 이사장도 지냈는데 차는 중국 인맥 형성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19일 박동선씨가 별세했다. 어떤 사람은 ‘독재 정권 하수인’ ‘뇌물 브로커’라고 평가한다. 반면 ‘코리아 게이트’를 조사한 미 의회 보고서는 ‘박씨 활동이 효과적이었다’고 했다. 1970년대 미 의회는 한국에 대한 15억달러 군수 원조를 승인했고 주한미군 철수 여론도 수그러들었다. 한국 현대사의 한 페이지가 이렇게 넘어간다.

조선일보

 

09.23(월) 푸틴식 엽기 출산 대책

▲일러스트=이철원

 

출산율을 높이는 국가 정책의 역사는 중국 춘추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월나라는 오나라와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장기 전략으로 여자는 17세, 남자는 20세가 될 때까지 의무적으로 결혼하게 했다. 그때까지 결혼하지 않으면 부모를 처벌했다. 현대엔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1967년부터 20여 년간 인권유린 수준의 출산 정책을 썼다. 주간 성관계 횟수를 3~4회로 정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처벌했다. 피임하는 여성, 낙태 시술한 의사는 최고 사형에 처했다. 40세까지 자녀 넷을 두지 않으면 연봉의 최고 30%를 금욕세로 뜯어갔다.

 

▶나치 집권기 독일도 ‘레벤스보른’이란 인구 증가 정책을 도입했다. 나치 친위대원 부부의 출산 지원으로 시작했지만 점차 ‘푸른 눈, 금발, 큰 체격’이란 조건에 맞는 여성을 집단 수용해 임신을 강요하거나 납치해 성폭행으로 임신시켰다. 캄보디아 폴 포트 정권은 킬링 필드로 알려진 자국민 학살 만행을 저지르면서 한편으론 여성의 배란기를 조사해 강제로 부부관계를 맺게 했다.

 

▶차우셰스쿠 집권 시기 루마니아는 가난한 나라였다. 그런데 출산 정책 초기 출생율이 두 배로 급증하며 온갖 비극이 빚어졌다. 아이를 키울 능력이 없는 부모가 자식을 내다버리거나 심지어 살해했다. 살아남은 아이는 소년 노동과 범죄로 내몰렸다. 당시 고통을 겪은 세대를 지칭하는 ‘차우셰스쿠의 아이들’은 전체주의 국가의 강압적인 출산 정책 폐해를 상징하는 말이 됐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7~8명씩 낳던 우리 할머니 세대의 멋진 전통을 되살리자”며 출산을 독려하고 나섰다. 러시아 보건부 장관도 “근무 중 휴식 시간을 이용해 아이를 가지라”고 했다. 낙태 절차를 까다롭게 하는 정책도 준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피해 국민 100만명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전사자도 늘자 위기를 느낀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온갖 강압에도 차우셰스쿠 시기 루마니아의 연간 출산 증가율은 0.8%로 미미했다. 아이를 키울 환경을 조성하지 않고 아이 낳기만 강요한 결과다. 러시아도 ‘차우셰스쿠의 아이들’ 전철을 밟을 공산이 크다. 반면 2400년 전 월나라는 자식을 낳으면 술과 고기 식량을 선물하거나 유모를 붙여주는 유인책도 함께 썼다. 최근 우리나라 여러 기업과 지자체가 거액의 장려금이나 승진 인센티브를 걸고 출산을 독려하고 있다. 이런 정책도 필요하지만, 아이를 낳으면 행복하고 그 아이가 살아갈 미래도 밝다는 확신을 젊은 부부에게 심어줘야 할 것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09.24 암구호

▲일러스트=이철원

 

군(軍)에서 피아를 구별하기 위해 사용하는 암구호(暗口號)는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낮에는 눈으로 적과 아군을 구별할 수 있지만 밤이 문제였다. 지금과 달리 로마 시대 암구호는 문장 하나로 이뤄졌다. 황제나 장군들이 직접 암구호를 정해 내려보냈다고 한다. 카이사르는 ‘승리의 여신 비너스’, 폼페이우스는 ‘불굴의 헤라클레스’ 이런 식이었다. 서사시의 한 구절을 암구호로 정한 황제도 있었다. 로마군이 되려면 암기력도 좋아야 했을 것 같다.

 

▶노르망디 상륙 때 암구호는 플래시/선더(flash/thunder)였다. 섬광과 천둥이라는 뜻이다. 독일인들이 영어식 th 발음을 할 수 없어서 th가 들어간 선더를 암구호로 정했다고 한다. ‘밴드오브브라더스’를 포함해 노르망디 전투를 다룬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이 암구호 장면이 나온다. 이때도 암구호는 3일마다 변경됐다. 낙하산병들은 암구호 대신 금속 딸깍이(Cricket Clicker)로 소리를 내 피아를 구별했다.

 

▶암구호와 사투리 관련 우스개를 다룬 창작 판소리가 있다. 암구호는 자물통과 열쇠였다고 한다. “손 들어. 움직이면 쏜다. 자물통?” 하면 “열쇠”라고 답해야 한다. 그런데 전라도 병사는 ‘열쇠’ 대신 ‘쇳대’라는 사투리로 답을 했다. “쇳대도 긴디(맞는데)...”라며 망설였다는 것이다. 한 6·25 참전 용사는 “그때는 못 배운 사람들이 많아 매일 암구호를 정해도 외우지 못했다”고 했다. “어이”라고 물어 “동무”라고 하면 인민군으로 판단했다고 회고했다.

 

▶암구호의 생명은 보안이다. 암구호는 영어로 ‘password’, 즉 비밀번호다. 2014년까지는 군단별로 자체 암구호를 썼지만 지금은 전군이 같은 암구호를 쓴다. 합참에서 한 달에 한 번, 한 달 치를 전군에 하달한다. 매일 정오 기준으로 24시간 동안 쓰고 바꾼다. 3급 비밀로 규정된 암구호는 전화로는 전파할 수 없고, 유출되면 즉시 폐기해야 한다.

 

▶몇 년 전 병사들에게 휴대전화가 보급된 이후 카카오톡 단톡방에서 암구호를 공유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암구호를 못 외워 질책을 받던 한 병사는 여자 친구와의 대화방에 암구호를 보내 수시로 확인하다 적발됐다. 암구호 전파 업무를 담당하던 병사는 “나 소대장인데”라는 휴대전화를 받고 암구호를 알려줬는데 실제는 소대장이 아닌 경우도 있었다. 이번에는 장교가 사채업자에게 암구호를 알려준 사실이 드러났다. 사채업자가 신뢰를 쌓자면서 암구호를 요구했다는데, 무너진 군 기강이 혀를 차게 한다.

정우상 논설위원

 

09.25 양날의 칼, 스테로이드

미군 정보국은 1942년 독일이 최대 쇠고기 수출국인 아르헨티나에서 소의 부신(副腎)을 대량 수입한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미군은 독일 조종사들이 고공에서도 저산소증을 겪지 않고 탁월한 전투 능력을 보이는 것과 관련 있을 것으로 의심했다. 소의 부신을 구하지 못한 미국은 서둘러 부신피질 호르몬을 합성하는 기술을 개발했지만 2차 대전이 끝났다. 독일 조종사들이 실제로 이 호르몬을 썼는지 여부도 밝혀지지 않았다.

 

▲일러스트=이철원

 

▶이 합성물 개발자는 1948년 부신피질 호르몬이 부족한 환자와 관절염 환자의 피로 증상이 비슷하다고 보고 29세 관절염 환자에게 이 물질을 주사해 보았다. 그러자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어떤 치료제도 효과가 없었는데 환자가 사흘 만에 휠체어에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이후 3개월 동안 13명의 환자에게도 비슷한 효과가 나타났다. 스테로이드라는 약을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스테로이드는 아스피린·모르핀과 함께 신이 내린 3대 약 중 하나로 일컬어지고 있다. 콩팥 위에 있는 부신이라는 장기에서 나오는 호르몬인데, 인체에서 염증을 유발하는 사이토카인 등 물질 생성을 억제하는 기능이 있어서 관절염과 피부 질환 등에 효과적이다. 하지만 1950년 이후 스테로이드제를 투여하면 환자의 통증은 좋아졌지만 관절이 망가졌고 혈당·혈압이 오르고 뼈가 약해지는 등 부작용이 심한 것이 드러났다. 스테로이드제를 중단하면 금단 증상도 생겼다. 잘 쓰면 명약이지만 과용하면 부작용이 심한 양날의 칼이라는 점이 밝혀진 것이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스테로이드도 부신피질 호르몬제와 남성호르몬제, 여성호르몬제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중 남성호르몬제의 일종인 아나볼릭(anabolic) 스테로이드는 근육량을 늘려주고 운동 능력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있다. 당연히 장기간 사용하면 호르몬 교란을 일으켜 생식 기능을 훼손하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다. 남성은 고환 수축, 여성은 불임을 겪을 수 있다. 88 서울올림픽 때 100m 달리기에서 우승한 벤 존슨이 복용한 약물도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의 일종이었다.

 

▶2030 세대 사이에서 최근 웨이트트레이닝이 인기를 끌면서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오·남용이 심각해지고 있다고 한다. 상당수 헬스 트레이너나 보디빌딩 선수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까지 약물 사용이 퍼져 있다는 것이다. 스테로이드는 스포츠에서 부동의 금지 약물 1위다. 크고 작은 부작용은 물론 잘못하면 심근경색 등으로 급사할 수도 있는 약물이다. 문제가 커지기 전에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김민철 기자

 

09.26 부부 別姓제

▲일러스트=이철원

 

워싱턴 특파원 시절, 어린이집에 다녀온 아이가 물었다. “아빠와 나는 ‘패밀리 네임(Family name)’이 같은데 왜 엄마만 달라?” 같은 가족인데 왜 성(姓)이 다르냐는 것이다. 미국에는 결혼 후 남편 성을 쓰는 여성이 많지만, 한국은 다르다고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여성이 남편 성을 따르는 제도는 여성의 재산과 수입을 남성에게 종속시킨 중세 영국의 관습법 영향이라고 한다. 아버지의 권리가 남편에게 ‘양도’된다는 점을 확실히 하려는 제도다. 서구 국가 중 영미법권인 영국과 미국은 기혼 여성 10명 중 8~9명이 남편 성으로 변경하지만, 스페인을 포함한 라틴 문화권과 이탈리아 여성들은 자기 성을 유지한다. 아랍 여성들도 성을 바꾸지 않는다. 이들의 성은 ‘빈(~의 아들), ‘빈트(~의 딸)’로 시작한다. 사우디 공주인 리마 빈트 반다르 알사우드 주미 사우디 대사의 이름은 ‘사우드 가문 반다르의 딸 리마’란 뜻이다. 이런 곳에서 성은 ‘혈통’의 표현이므로, 남편 성으로 바꿀 수 없다. 한국, 중국, 베트남 등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미국의 퓨리서치 센터 조사에 따르면 미국 기혼 여성의 14%만 결혼 후에도 자기 성을 유지했지만, 석사 이상 학위 소지 여성은 그 비율이 26%로 높다고 한다. 여성의 지위가 높을수록 성을 유지하는 경향은 예전부터 있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평생 자기 성을 썼다. 고(故)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은 자기 성인 ‘윈저’를 자녀들에게 물려줬다

 

▶보령제약 김정균(39) 사장은 창업주 김승호(92) 명예회장의 외손자다. 김 명예회장의 장녀인 김은선(66) 회장이 남편과 사별한 후, 그 아들인 김 사장이 어머니의 성인 ‘김’씨로 개명해 회사를 물려받았다. 2008년 민법 개정으로 혼인신고 시 남편과 아내 중 누구 성을 자녀에게 물려줄 것인지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어머니 성을 쓰는 일이 좀 더 보편적이 된다면, 이처럼 딸과 외손주가 기업을 물려받는 일이 더 많아질 수도 있다.

 

▶일본 차기 총리를 정하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한 고이즈미 신지로(43) 전 환경상이 결혼 후에도 각자의 성을 유지하는 ‘선택적 부부별성(夫婦別姓)’에 찬성했다가 지지율 하락을 겪고 있다. 일본은 무조건 부부 한 쪽의 성을 따르도록 하는 ‘강제적 부부동성’을 택하고 있다. 서구에 대한 동경이 강했던 메이지 시대 민법에 넣은 조항이라는데, 이제는 서구보다 더 강력하게 이를 고수하고 있어 묘한 느낌을 준다.

김진명 기자

 

09.27 안경 국가

▲일러스트=김성규

 

영국 이코노미스트지(誌)는 지난 6월 중국이 어린이 근시(近視) 줄이기에 고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2018년 “학생들의 근시 유병률이 높아지고 연령도 낮아지고 있다. 국가와 민족의 미래에 큰 문제”라며 대응을 지시했다. 이후 중국은 초·중학교의 숙제와 시험 부담을 줄이며 근시를 줄이려 애쓰고 있다. 하지만 중국 학부모들의 교육열을 막기엔 역부족이라고 한다.

 

▶동아시아의 근시 급증은 안과학계의 주요 연구 대상이다. 2015년 네이처지(誌)는 “한국 19세 남성의 96.5%가 근시”라며 놀라워했다. 우리 스스로도 놀랄 일이다. 1960년대엔 ‘유전’을 근시의 원인으로 봤고, 관련 유전자도 규명됐다. 그러나 유전적 원인만으로는 1950년대 인구의 10~20%에 불과했던 동아시아의 근시 환자가 수십 년 만에 80~90%까지 급증한 것을 설명할 수 없다.

 

▶1990년대엔 독서나 컴퓨터 사용의 영향이 주목받았지만, 그것도 주된 원인은 아니라는 연구가 나왔다. 2007년 미국 아동 500명을 5년간 추적한 연구에서 근시와 강력한 상관관계를 가진 환경적 요인은 ‘야외 활동 시간 부족’뿐이란 결과가 발표됐다. 2008년 호주 연구팀이 초·중등 학생 4000명을 3년간 추적 관찰한 연구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근시는 안구의 앞뒤 길이가 너무 길어져서 생기는 병이다. 녹내장, 망막박리, 백내장, 황반변성 같은 심각한 질병의 위험성까지 높인다. 학계에서는 성장기 야외 활동의 근시 예방 효과가 ‘햇빛’에 있다고 추정한다. 햇빛이 눈에 들어가면 망막에서 신경 전달 물질인 도파민이 분비돼 안구의 과도한 성장을 막아준다는 것이다. 어린이가 햇빛을 많이 못 보면 도파민 분비가 교란돼 자라면서 근시가 될 확률이 높아진다. 독일·호주·일본에서는 햇빛과 유사한 특정 파장의 빛을 눈에 쐬어 근시를 억제하는 기술과 의료 기기를 만드는 연구를 하고 있다.

 

▶중국 연구팀이 최근 영국 안과학회지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어린이의 근시 비율이 36%로 1990년대보다 3배 증가했다고 한다. 도시화와 햇빛을 못 보는 실내 생활 증가 탓이다. 일본(85%), 한국(73%), 싱가포르(44%), 중국(41%) 등 동아시아의 근시 유병률이 제일 높았다. 하루 2~3시간 햇빛을 보고 뛰놀면 근시가 줄어든다. 그래서 싱가포르도 성장기 아동의 야외 활동을 늘려보려 했지만, 학부모들의 저항에 부딪혔다. 시력도 지키고 성적도 높이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김진명 기자

 

09.28(토) 미슐랭의 저주

▲일러스트=이철원

 

하나만 받아도 영광이라는 미슐랭 가이드 맛집 별점을 가장 많이 받은 이는 프랑스 요리사 조엘 로부숑이다. 로부숑은 세계 여러 도시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했는데, 최고 평점인 별 3개부터 1개까지 도합 32개를 받았다. 그가 ‘미슐랭 효과’를 분석한 적이 있다. “별을 하나 받으면 매출이 20%, 두 개 받으면 40%, 세 개 받으면 100% 오른다”고 했다. 서울 같은 대도시 특급 호텔 식당이 받는 효과는 더 커서, 호텔 식당가 전체 매출과 투숙객 증가로 이어지며 가치가 최소 100억원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미슐랭 별점에는 짙은 그늘도 있다. 미국 뉴욕에서 미슐랭 별을 받은 식당들을 14년간 추적 관찰했더니 폐업률이 40%였다는 기사가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에 실렸다. 별점을 하나라도 받으면 인터넷 검색이 30% 증가하며 유명세를 누리지만 고급 식당 이미지를 지키느라 식재료비와 인테리어 등에 돈이 더 들고 종업원 임금과 임대료가 덩달아 오르는 등 부작용도 컸다고 했다.

 

▶서울에서도 영업하는 프랑스 유명 요리사 피에르 가니에르는 과거 프랑스에서 미슐랭 별 두 개와 세 개를 받았지만 결국 부도를 낸 적이 있다. 아일랜드 더블린의 한 식당은 20년간 유지해온 별 하나 등급을 잃자마자 수익이 70% 추락했고 이듬해 결국 폐업했다. 처음부터 미슐랭 별을 받지 않았다면 폐업으로 몰리지는 않았을 거라고 했다. 미슐랭 등급에 매달리다가 세상을 등지기도 한다. 스위스의 별 셋 음식점 요리사는 등급이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을 떨치지 못하고 평점 발표 전날 목숨을 끊었다. 이쯤 되면 ‘미슐랭의 저주’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미슐랭 최고 등급인 별 셋을 받은 국내 식당은 두 곳이었는데 공교롭게도 한 곳은 적자가 쌓여 영업을 중단했고 나머지 한 곳도 휴업 중이다. 미슐랭 맛집 리스트에 오르는 것을 거부하거나 “평가에서 빼달라고 했는데도 낮은 등급에 올려 명예를 훼손했다”며 미슐랭을 고소한 이도 있다.

 

▶똑같은 음식도 어머니의 손맛이 들어가거나,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나눌 때 더 맛있다. 뇌과학은 맛이 미각뿐 아니라 감정을 관장하는 변연계라는 뇌 부위를 자극하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공광규 시인은 맛의 이런 속성을 ‘밥상머리에 얼굴반찬이 없으니/ 인생에 재미라는 영양가가 없다’고 시 ‘얼굴반찬’에 썼다. 미슐랭 별 등급이나 소셜미디어에 떠도는 음식 사진에 연연할 게 아니다. 마음 맞는 사람과 즐기며 음식을 먹으면, 그곳이 별 만점짜리 식당일 것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09.30 (월) 김정은 갖고 노는 MZ들

▲일본노래 '푸른산호초'를 부르는 김정은 패러디. 가사는 한국어로 바꿨다. 김여정과 리춘희가 코러스와 댄서로 등장한다. /유튜브 캡처

 

2002년 대선 때 ‘노풍(盧風)’은 연구 대상이었다. 오빠 부대 정도로 여겼던 팬덤이 ‘노사모’로 커지더니 정당을 흔들었다. 바닥에선 인터넷으로 무장한 하위 문화(sub culture)가 작동했다. 기성 문화에선 저급하다 여겨졌던 합성과 패러디가 놀이처럼 번졌다. 진원지는 1999년 카메라 사이트로 시작했던 ‘디시인사이드’였다. 정치인 얼굴을 이용한 각종 합성 사진을 퍼 날랐다. 좌파들은 기술 습득과 활용에서 우파를 압도했다.

▲일러스트=양진경

 

▶2000년대 초반은 정치인 합성 사진 전성기였다. 홍준뽀(홍준표), 구시민(유시민), 서동영(정동영) 등이 여의도 패권을 두고 다툰다는 시리즈 패러디물까지 등장했다. 노무현 정권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얼굴과 노출 여배우 사진을 합성한 사진이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와 청와대 비서관이 직위 해제까지 됐다. 작성자가 노사모 출신이라 정치 문제가 됐다.

 

▶유튜브 등장과 함께 패러디 소재도 사진에서 동영상으로 옮겨졌고, 정치 패러디에서도 좌우가 균형을 이루게 됐다. 그래도 풍자는 항상 권력을 비판 대상으로 하고, 창작은 젊은 세대가 주도한다. 지난 정부 때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금은 윤석열 대통령이 패러디 대상이다. 그런데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고, 게다가 모든 웃음 유발 요소까지 갖춘 절대 권력자가 있으니 바로 북한의 김정은이다. MZ세대가 이런 좋은 소재를 놓칠 리 없다.

 

▶뉴진스 하니가 흘러간 일본 노래 ‘푸른 산호초’를 불러 화제를 불렀다. 한 유명 유투버는 이 노래를 김정은의 ‘돼니-붉은 산호초’로 합성했다. 코러스로 등장한 김여정·리춘희도 웃기지만, 일본 가사처럼 들려도 실제는 북핵을 풍자하는 한국어 가사가 압권이다. 원래 가사 “와타시노 코이와(나의 사랑은)”는 “왔다 신호! 거리와”로 “아오이카제(푸른 바람)”는 “아오지(탄광) 가지”로, “아노 시마에(그 섬으로)”는 “압력 심화해”로 바꿨다. 최근엔 넷플릭스 ‘흑백 요리사’에 김정은·김여정이 요리사로 등장하는 ‘흑백 료리사’를 올렸다.

 

▶2020년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는 “북한 지도부가 추잡한 합성 사진 삐라에 분개했다”고 말했다. 일부 탈북자들이 성인물 사진에 리설주를 합성한 대북 전단을 보낸 걸 문제 삼았다. 수십만 구독자를 둔 MZ 유튜버들이 지금도 어디선가 부지런히 김정은 패러디를 만들어 업로드 하고 있다. 이념·정치 다 떠나 그냥 기발하고 재미있다. 김정은이 휴전선 대북 확성기에 경기를 일으킨다는데, MZ들이 만든 패러디 동영상은 그보다 훨씬 위력이 큰 ‘사이버 확성기’다.

 

▲최근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개그맨들의 '미룬이 사태'를 풍자한 '정은이 사태' '미룬이 사태'는 한 개그맨이 자신의 노래를 불러 관객들의 박수를 유도했지만 아무도 그 노래를 몰라 개그맨 혼자 과장된 액션을 취해 화제가 된 일을 말한다. /유튜브 캡처

정우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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