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自主國防 2024-09/ 09.03 국가 기밀 장기간 대량 유출, 정보사뿐인가 - 09-30 위대한 국군 전통과 21세기 강군의 길

상림은내고향 2024. 9. 15. 13:04

自主國防 2024-09/

09.03 국가 기밀 장기간 대량 유출, 정보사뿐인가

 비밀 요원 명단 유출 등이 발생한 국군정보사령부가 지난 7년간 외부 보안 감사를 한 차례도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애초 군 보안 부대인 국군기무사령부의 감사를 받았지만 문재인 정부가 2018년 기무사를 해체하며 정보사에 대한 외부 감사 권한을 없앴기 때문이다. 기무사의 정보사 감사는 2017년이 마지막이다. 정보사 군무원이 2017년부터 정보를 빼돌리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외부 감시가 사라지니 동료 목숨이 걸린 정보까지 돈 받고 파는 데 거리낌이 없었을 것이다. 국방부는 2일 “정보사 감사 훈령을 개정할 예정”이라고 했다. 또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다.

 

문제는 정보사에서만 대북 기밀이 유출됐느냐는 것이다. 정보사 군무원은 돈을 받고 기밀을 중국에 넘겼다. 세계 정보기관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기밀 유출 대부분에 돈이 연관돼 있다. 그렇다면 중국과 북한 등이 정보사 군무원에게만 돈과 정보 거래를 제안했겠느냐는 것이다. 대북·해외 정보를 총괄하는 기관은 국가정보원이다. 국정원은 정보사 활동을 지휘하는 경우도 있다. 비밀 요원들도 있다. 김대중 정부 출범 직후엔 중국 동북 지방에서 활동하던 국정원 요원 30여 명이 한꺼번에 공안에 체포돼 대북 정보망이 궤멸적 타격을 입기도 했다. 북한과 중국은 정보사보다 국정원 요원 포섭을 첫 번째 목표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정부 시절엔 북한에 대한 경각심이 크게 흐려졌다. 문 전 대통령부터 2018년 김정은을 만나 무슨 정보가 들었는지 알 수 없는 USB를 건넸다. 국정원장도 천안함 폭침 주범 등과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국군은 ‘군사력이 아닌 대화로 나라 지킨다’고 선언했다. 정보 요원이 돈에 포섭되지 않았더라도 ‘대화’를 강조하는 정부 분위기 속에서 기밀 정보 유출을 남북 협조로 인식할 수도 있다. 특히 문 정권에서 국정원은 대북 정보기관이 아니라 남북 대화 기구였다. 2018년 남북 이벤트가 집중될 당시 국정원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다 밝혀지지 않았다. 그 당시에 중국과 북한에서 거액으로 국정원 요원을 유혹했을 경우 정보사 같은 기밀 유출 사고가 없었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나.

 

미 정보기관은 거짓말 탐지기를 동원할 정도로 엄격한 내부 감사를 한다. 17개 정보기관끼리 견제와 감시도 철저하다. 반면 국정원과 정보사의 내부 감사 시스템은 정보 선진국과 비교해 크게 허술하다는 지적을 끊임없이 받아 왔다. 국가 정보 체계를 위협하는 유출 사고가 또 없었는지 전면 조사가 필요하다.

조선일보 사설

 

09-03 이종섭 전 장관 군사보좌관 “박정훈, 마치 유족 지휘 받은 듯이 수사”

▲해병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수사하다가 보직 해임된 박정훈(대령)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3일 오전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항명과 상관 명예훼손 혐의에 대한 7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제공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군사보좌관을 맡았던 박진희 육군 소장이 3일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에 대한 박정훈(대령) 전 해병대 수사단장의 수사를 비판했다.

현재 일선 사단장으로 복무 중인 박 소장은 이날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박 전 수사단장의 항명 및 상관 명예훼손 혐의 7차 공판에 군검찰 측 증인으로 출석했다.

박 소장은 "의혹을 가지고 보자면 의혹 덩어리겠지만 간단하게 보면 (사건의 민간 경찰) 이첩을 보류하라는 지시였다"고 말했다.

그는 "박 대령이 열심히 수사했지만 마치 수사 지휘를 유족한테 받은 것처럼, 유족이 원하는 부분으로 수사했다"며 "명백히 군에서 상명하복이 이뤄져야 하는데 이 사건에선 이뤄지지 않았다. 장관의 정당한 지시를 외압이라고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 소장은 또 지난해 7월 31일 군사보좌관실의 소령급 법무장교에게 이 사건의 이첩을 보류할 수 있는지 문의해 그럴 수 있다는 답을 받았고, 이 전 장관에게 보류가 가능함을 말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3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중앙군사법원에서 열린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항명 혐의 7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전 장관은 이날 오후 속개된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문화일보 정충신 선임기자

 
 

09-03 이종섭 “박정훈 전 수사단장 항명사건, 상관 명예훼손이 재판 실체…외압 없어”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은 3일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외압은 없었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이 전 장관은 이날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박정훈(대령) 전 해병대 수사단장 항명 및 상관 명예훼손 혐의 7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하면서 "국회에서 벌써 수 차례 답변했고 밝혔지만 대통령으로부터 이와 관련해서 어떤 외압이나 이런 것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관의 적법한 이첩 보류 지시를 거부하고 공공연하게 허위 사실을 유포해 상관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한 점이 오늘 이 재판의 실체"라고 덧붙였다.

이 전 장관은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고귀하게 순직한 채 상병에 대해 다시 한 번 명복을 빌고 유가족분들께는 송구한 심정을 전한다"고 말했다.
문화일보 정충신 선임기자

 
 

09-05 세계 국방비 급증 속 폴란드 전시회도 사로잡은 K-방산

글로벌 신냉전 격화 와중에 우크라이나전쟁과 중동 분쟁까지 동시에 진행되면서 세계 각국이 국방비 지출을 대폭 늘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폴란드 국제방위산업전시회(MSPO)에서 한국산 무기들이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고 한다. MSPO는 유럽 3대 방산전시회로도 꼽히는데, 3일 개막식 후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한화오션의 잠수함 등에 관심을 보였다. 폴란드가 FA-50 전투기, K2전차에 이어 잠수함까지 도입하면 유럽연합(EU)에서 한국산 육·해·공 첨단무기를 갖는 첫 국가가 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전 세계 국방비 지출은 매년 신기록을 경신 중이다. 영국 국제전략연구소(IISS)에 따르면 2023년 세계 각국 국방비는 2조2000억 달러(2952조 원)로 전년 대비 9% 늘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32개 회원국 중 19개국이 국방비를 늘렸다. 특히, 폴란드는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 4%대로 올리며 한국산 첨단 무기를 도입하고 있다. 러시아에 인접한 나라로서 그만큼 안보 위협을 크게 느낀다는 방증이다.

이런 기류는 K-방산에 청신호다. 유럽에선 현대로템의 K2전차와 한화 에어로스페이스의 K9자주포 주문이 급증하고, 중동에선 ‘한국판 패트리엇’으로 불리는 LIG넥스원의 천궁Ⅱ 수주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유럽 방산 강국인 프랑스가 ‘유럽 자주국방’ 기치를 들자 EU집행위원회가 EU 역내 무기 구입 비중을 현재 20%에서 2035년 60%로 올리는 등 견제 기류도 강해진다. 방위산업은 국가 비즈니스인 만큼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2027년 세계 4대 방산수출국 목표를 달성하려면 외교 등 전방위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그래야 K-방산이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처럼 미래 먹거리가 될 수 있다.

문화일보 사설 

 
 

09-05 北 내부 변화시킬 창의적 전략 필요하다

박영준 국방대 국가안보문제연구소장

20세기 냉전 종식 요인은 명확
對蘇 봉쇄·억제와 美 체제 매력
안팎 압력 작용해 공산권 붕괴

北은 공세적 핵전략 적극 추구
강력한 3축 체계 구축 급선무
범국민적 안보 공감대도 중요

미국의 대표적인 국제안보 연구가 배리 포즌(Barry Posen)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역사상 국가들이 선택할 수 있는 군사전략을 공격과 방어, 그리고 억제전략의 유형으로 구분한다. 예컨대, 제2차 세계대전 때 전격전 방식으로 유럽을 초토화시켰던 아돌프 히틀러 치하의 독일은 전형적인 공격전략을 추구했고, 그에 반해 마지노선에 집착했던 프랑스는 방어전략의 대표적인 사례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핵무기의 등장 이후 국제안보 연구자들 사이에는 각국이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전략은 공격이나 방어가 아니라, 억제전략이 될 수밖에 없다는 관찰이 공감대를 이루는 것 같다. 버나드 브로디 등에 따르면, 핵시대에 국가들이 공격전략을 취한다면 거대 도시나 국가의 절멸이라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최선의 전략은 상대국의 핵공격을 저지하는 억제전략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상대국의 핵공격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 능력을 충분히 갖춰서, 설령 핵공격을 받더라도 제2차 가격능력을 동원해 상대국을 공격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춘다면, 핵전쟁 억제의 효과를 달성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냉전시대 소련과의 장기간 대결 국면을 맞아 미국이 일관되게 추진한 군사전략은 바로 이러한 제2차 가격능력의 건설을 통한 억제전략이었다. 1950년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대량보복전략에 따라 핵전력 건설에 중점을 뒀고, 존 F 케네디 행정부는 재래식 도발에도 대응해야 한다는 유연반응전략에 따라 특수전 전력을 포함한 재래식 전력 증강에 역점을 두기도 했다.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스타워즈와 같은 첨단무기 체계 건설을 야심적으로 추진하면서 소련 국력의 소진을 유도했다. 행정부에 따라 중점의 차이가 있었지만, 대소(對蘇) 봉쇄 및 억제라는 미국의 기본 전략은 냉전기 내내 일관되게 유지됐다.

냉전이 끝난 후 존 루이스 개디스 예일대 교수나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 등 국제정치학의 대가들은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 등 역대 행정부의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냉전 초기 조지 케넌 등이 제시했던 대소 봉쇄전략, 즉 억제전략의 기본 틀을 40여 년간 계속 유지하면서 그를 구현하기 위한 군사 태세를 갖춘 것이 소련과의 대결에서 궁극적으로 미국이 승리하게 된 요인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아시아와 유럽 지역에서 동맹국들을 확대하고, 유엔 등의 국제기구들을 통해 국제사회의 지지를 폭넓게 확보해 간 것도 미국의 억제전략 차원에서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한편, 블라디슬라프 주보크나 안드레이 란코프 등 러시아 출신 연구자들은 냉전기의 체제 경쟁에서 미국이 승자가 된 요인에 대해 다른 관점을 제시한 바 있다. 미·소 경쟁 와중에도 미국 지도자들이 적대국 소련의 정상들과 핵군축 등의 이슈로 정상회담을 개최하면서 지도자들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문화 교류를 통해 소련 국민에게 미국 체제의 매력을 자연스럽게 공감시킨 점도 냉전체제 와해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각급 회담이 개최되는 과정에서 미국의 대중문화와 세계관이 자연스럽게 소련에 유입돼 공산 체제 내에서의 변화를 갈망하는 여론이 형성된 점이 공산권 붕괴의 무시할 수 없는 또 다른 요인이 됐다는 것이다.

지금 북한은 증대된 핵전력을 바탕으로 공세적 핵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은 킬체인이나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 응징보복 능력과 같은 3축 체계 구축을 진행하고, 한미동맹 간의 확장억제 태세를 강화하면서 북한의 군사 도발 가능성을 억제하려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한미동맹 차원의 억제전략이 핵전력을 앞세운 북한의 공격전략에 대응해 궁극적으로 승리를 거둘 것이고, 한반도 평화라는 결과를 얻어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만, 언제까지 계속될지 가늠할 수 없는 북한과의 신냉전 양상 속에서 궁극적으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냉전기 미국이 소련에 맞서 승리를 거뒀던 요인들을 복기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안보정책에 대한 범국민적인 공감대 형성, 그리고 북한의 내부를 변화시킬 수 있는 과감하고 창의적인 대북 전략을 일관되게 적용하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 아닌가 싶다.

문화일보 

 

09.05  5년의 방첩 공백, 정보사 사건 불렀다

 “분명한 건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대의 정보 실패, 방첩 실패 사건.”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1일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의 정보 유출 사건(정보사 사건)에 대해 이렇게 비판했다. 정보사 사건은 정보사 군무원 A(49)씨가 군사 비밀을 판 사건이다. 윤 의원은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세한 내용은 수사를 통해서 밝혀야 하겠지만”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정보사 사건이 윤석열 정부에서 드러났기 때문에 현 정부에 책임을 물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보사 사건은 문재인 정부 때 일어났고, 문재인 정부는 이 사건을 막거나 적발하는 데 실패했으며,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야 사건을 파악할 수 있었다. 윤 의원이 나중에라도 멋쩍어할까.

 

“건국 이래 최대의 정보전 사고”

야당이 비판하나 문 정부 사건

문 정부서 방첩·보안 역량 약화

군 불순세력 근절엔 투자 필요

 부대서 비밀 서류 촬영해도 ‘무사통과’

 

 정보사 팀장(5급 군무원) A씨는 2017년 4월 현지 공작망을 만나러 중국 옌지(延吉)로 갔다가 공항에서 중국 공안에 갑자기 체포됐다. 조사받던 중 포섭 제의를 받았고, 가족을 해치겠다는 협박 때문에 결국 협조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후 중국 동포 말씨를 쓰는 중년 남자에게 30건의 군사 비밀을 건네 1억6505만원을 차명계좌로 받았다. A씨는 더 많은 정보를 판 대가로 40여 차례 4억원 이상을 요구한 것으로 조사됐지만, 증거가 부족해 공소장에 넣진 못했다.

 

A씨는 자신을 관리한 사람을 ‘중국 동포’로 지목했지만, 방첩사령부(방첩사)는 북한 요원으로 의심하고 있다. 군 검찰도 보강 수사를 통해 A씨에 간첩죄를 적용하려고 노력 중이다.

 

A씨와 같이 해외에서 포섭 공작을 겪었다면, 귀국 후 부대에 이를 신고해야만 한다. A씨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때 군 보안 체계가 느슨해졌기 때문이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강대식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2019년 2월 국방보안업무훈령이 바뀌어 안보지원사(안보사·방첩사의 전신)가 감사하는 기관 중 정보사와 통신정보를 다루는 777사령부가 빠졌다.〈중앙일보 9월 2일자 1, 10면〉 기무사와 국방정보본부가 번갈아 감사하다 훈령 개정 후 국방정보본부만 진행하게 됐다.

 

정보사와 777사령부는 국방정보본부 예하 부대다. 아무래도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다. 그래서 기무사와 국방정보본부가 이중으로 감사하는 체계를 만들었는데, 이게 무너졌다. A씨의 범행은 기무사의 마지막 정보사 감사가 있던 2017년 시작했다.

 

앞서 2018년 9월 문재인 정부는 기무사령부 계엄령 문건 작성 사건을 계기로 기무사를 안보사로 해편했다. 이 과정에서 방첩요원 1200명가량이 안보사를 떠났다. 이 중 방첩·보안 전문 인력은 700명 정도였다. 안보사가 손 놓은 방첩·보안 임무는 47가지에 이르렀다.

 

A씨는 10대가 넘는 휴대전화로 부대 안에서 2~3급 비밀문서를 촬영하거나 메모했다. 휴대전화를 영내로 들고 가려면 촬영·녹음 기능을 제한하는 보안 앱을 의무적으로 실행해야 한다. A씨는 이 같은 부대 출입 절차를 우회했다. 군 내부의 보안 의식이 허술해지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정보사 사건은 윤석열 정부에서 드러났다. 국내 정보기관이 관리하는 해커 집단이 북한이 중국에 둔 서버에 침투해 정보사 블랙(Black) 요원 명단을 발견했다. 블랙 요원은 위장 신분으로 활동하는 정보 요원이다. 반면 화이트(White) 요원은 외교관 등의 합법적 신분으로 정보 활동을 한다.

 

지난 6월 이런 사실을 통보받은 방첩사가 범인을 색출했다. 한때 손이 묶였던 군 보안 당국의 수사 실력이 녹슬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예전의 감사 수준까진 아니지만, 방첩사가 정보사의 보안 관련 규정 준수 여부를 따져보면서 A씨를 찾아낼 수 있었다. A씨의 혐의를 입증할 결정적 증거 중 하나는 A씨와 중국 동포가 게임 앱 채팅으로 주고받은 음성 메시지다. A씨는 음성 메시지를 바로바로 지웠는데, 방첩사가 포렌식으로 되살려 놨다.

 

성급한 공개로 간첩망 잡을 기회 놓쳐

 일각에선 이번 정보사 사건으로 해외에서 은밀하게 만들어놓은 정보망이 붕괴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A씨는 팀장으로 밑에 여러 명의 블랙 요원의 공작관(Case Officer)을 두고 있다. 공작관은 해외에서 여러 명의 공작원(Agent)을 운영한다. 공작원은 북한 주민 또는 외국인이 대부분이다.

 

이번 정보사 사건과 같은 사태에 정보망이 한꺼번에 무너지지 않도록 예방하는 차원에서 공작관~공작원 연계를 점조직 형태로 만들었다. 그래서 A씨가 적발된 뒤 해외에서 급히 귀국한 공작관은 10명이 안 된다고 한다. 이들은 대부분 중국에 주재했다.

 

다만 정보사 사건이 일찍 외부로 알려진 게 흠이었다. 간첩 수사는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이상 진행한다. 간첩 증거를 찾기가 어렵기도 하지만, 용의자를 감시하면서 고구마 줄기 엮듯이 간첩망을 일망타진할 기회를 노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보사 사건은 내사 시작 두 달 만에 정치권과 유튜버에 의해 공개됐다. 이 때문에 A씨의 ‘공작관’인 중국 동포에 대해 알아낸 게 거의 없었고, A씨의 범행을 도왔던 협조자의 내사도 어려워졌다.

 

현재 군 당국과 방첩사는 무너진 보안·방첩 역량을 복원하고 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 때 단 한 건도 검찰로 송치하지 못했던 군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이 윤석열 정부에선 3건이 나왔다. 이들 사건은 군사 비밀을 빼돌리거나 이적 표현물을 영내 유포한 혐의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동료 장병들이 군 국가보안 사범들의 범행을 목격하고도 신고하지 않을 정도로 대적관(對敵觀)과 방첩 의식이 약해졌다는 점이다. 또 병사들이 영내에서 휴대전화를 쓸 수 있게 돼 군사 비밀의 무단 촬영이 손쉬워졌다. 장병들이 군사 비밀을 돈 받고 파는 데 전혀 거리낌도 없어졌다.

 

군에서 몰래 퍼져나가는 ‘불순세력’을 뿌리 뽑으려 군 당국의 방첩·보안 역량을 더 키워야 할 이유다. 5년 동안의 공백을 메우려면 많은 투자가 절실하다.

 


 중앙일보 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국방선임기자

 
 

09.06 북한의 핵위협에 대응하는 현실적인 세 가지 방법

 탐사전문 저널리스트인 애니 제이컵슨(Annie Jacobsen)이 최근 『핵전쟁 시나리오(Nuclear War: A Scenario)』라는 책을 발간했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에 핵탄두를 실어 미국을 공격하는 가상의 내용을 다뤘다. 이 과정에서 미국이 전략핵무기로 북한에 반격을 시작하자 미국의 핵무기가 자국을 향하는 것으로 오인한 러시아는 미국 본토를 향해 모든 전략 핵무기를 발사하고, 미국은 이에 대한 확증 보복 공격에 나서면서 전 지구가 멸망하게 된다는 스토리다.

 

북, 전술핵 개발·배치 주장

미 전략핵으론 대응에 한계

북의 핵·미사일 경각심 갖고

미군 전술핵·AI 적극 활용을

▲한반도평화워치

 

이런 가상의 시나리오가 현실에서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우리가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미국의 확장억제력에 자칫 구멍이 생길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미는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면 미국의 전략핵무기로 북한에 대량보복공격을 가해 북한 정권이 지구상에서 종말을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핵과 관련해 질과 양적으로 절대 우세한 미국의 핵으로 북한의 핵 사용을 억제한다는 전략이다. 그렇지만 미국이 전략 핵무기로 대량 보복 공격을 할 경우 이익보다 손해가 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제이컵슨의 시나리오가 제시하고 있다.

 

북, 여덟 가지 전술핵 투발 수단 과시

 미국은 옛 소련(러시아)과 핵 경쟁 당시 핵무기 공격을 받으면 상대방에게 전략 핵무기를 동원한 더 큰 공격으로 맞선다는 교리를 만들었다. 상호확증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라는 핵 보복 전략이다. 이 교리가 북한의 핵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북한의 전술핵에 미국이 전략핵으로 대응한다면 비례성의 원칙에 맞지 않고, 방사능 낙진 등 직·간접적인 피해를 볼 수 있는 러시아와 중국이 반발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핵무기의 양이나 파괴력을 고려하면 북한의 전략핵은 유사시에 미국의 개입을 억제하려는 엄포용으로 쓰겠다는 의도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미국의 ‘2023년 국가정보판단서’도 북한의 핵전략을 미국에 대한 억제와 한·미 압박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적고 있다.

 

북한이 전술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점도 전략핵 사용의 한계를 의식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북한은 6차례의 핵실험 중 1~5차 때 폭발력이 15㏏ 이하인 전술핵무기급을 실험했다. 또 2016년부터 핵탄두의 소형화·경량화를 달성했다고 강조했고, 2021년 1월 8차 당 대회 결정에 따라 전술핵무기 개발과 배치, 운용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엔 소형화한 전술핵탄두인 ‘화산-31’과 이를 탑재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 5종, 순항미사일 2종, 수중공격무인정 1종 등 8가지의 핵탄두 투발 수단을 개발해 배치했다고 주장했다. 여차하면 전술핵을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의 전술핵이 현실적 위협으로 등장한 만큼 한·미의 대응 방안도 그에 맞게 변해야 한다.

 

우선 지난해 미국 랜드연구소와 아산정책연구원이 작성한 ‘한국에 대한 핵 보장 강화 방안’이란 공동보고서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전술핵무기를 한반도에 재배치하자는 내용이다. 북한은 유사시 미국의 강력한 대응을 막기 위해 전술핵 사용 전략을 공개한 바 있다. 북한은 재래식 무기를 동원한 기습 공격과 전술핵무기를 사용해 전쟁 초반에 승기를 잡고, 추가로 핵무기 사용을 위협하며 미국의 개입을 막겠다는 게 핵심이다. 그러므로 ‘핵에는 핵’이라는 막연한 선언적 전략이나 사용 가능성이 제한적인 전략핵이 아니라 확실하고 구체적인 핵우산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이 전술핵을 개발하거나 전술핵을 주한미군에 재배치할 경우 북한에 대한 비핵화 요구의 명분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고려해야 한다. 북한의 핵은 발등의 불이 됐다. 비핵화를 추진하면서도 북한의 핵무기 사용 문턱을 높이고 확전을 막기 위해 주한미군의 핵무기 재배치와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이 절실하다. 북한의 전술핵 공격 시 미군의 잠수함 등에서 즉각 전술핵무기로 반격할 수 있는 형태 등을 고려해 볼 수 있다.

 

북한 핵 위협 현실 인식이 급선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3월 핵무기 병기화 사업을 점검하며 ‘화산-31’을 살펴보고 있다. 북한은 이를 전술핵탄두라고 주장했다. [뉴스1]

 

또한 국방부가 발간하는 『국방백서』에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의 총체적 실상을 올바로 분석해 경각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 현재의 『국방백서』는 북한의 재래식 무기 위협에 초점을 맞춘 반면 실체적 위협으로 떠오른 핵미사일과 관련해선 추상적으로 다루고 있다.

 

2020년 판 『국방백서』에선 핵 보유 현황을 두고 “북한은 플루토늄 50㎏과 상당량의 우라늄을 보유하고 있다”는 식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펴낸 2022년 판도 별반 다르지 않다. “북한은 플루토늄 70여㎏, 고농축 우라늄 상당량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는 것이다. 2년 동안 늘어난 북한의 핵물질 보유량이 플루토늄 20㎏뿐만이 아닐 것이다. 남북한 군사력 비교표 역시 핵과 화생무기, 미사일은 빠져 있고, 육·해·공군의 병력과 무기 등 재래식 군사력만 다루고 있다. 핵무기 한 방은 재래식 무기와 비교할 수 없는 피해와 충격을 야기하는 것을 감안하면 국방부는 북한의 위협을 실제보다 평가절하하고 있는 셈이다.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지만, 핵과 미사일을 포함한 북한의 위협을 정확히 평가하지 않고서는 실제 전쟁의 결과를 예측할 수 없을뿐더러 전쟁 대비 전략 수립과 전력 확충을 충실히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발사 준비 단계~상승단계에서 대응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기반의 무인무기체계 개발도 서둘러야 한다. 한국군은 북한의 공격 징후를 사전에 감지해 선제 타격하는 ‘킬 체인’ 정책을 발전시키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핵미사일을 발사하기 전에 이를 탐지하고 식별해 선제 타격하는 방안을 실전에서 적용하기란 쉽지 않다. 미국은 AI를 기반으로 한 무기체계의 최고 선진국이다. 북한의 핵미사일을 휴전선 북쪽에서 대응하기 위한 AI 기반의 무기체계를 한·미가 공동으로 연구하고 개발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 동시에 이 분야에 국방비를 대폭 투자해야 한다. 우리가 북한의 위협을 극복하기 위해선 미국의 전술핵을 억제력으로 활용하고, 군비경쟁에서 압도적인 질적 우위를 추구해 가는 것이 현실적이고 효과적이다.

 
 

중앙일보 한용섭 국제안보교류협회 회장·전 국방대 부총장

 
 

09.07 월 패드 해킹해 현관문 따는 데 26초, 카메라 해킹은 10초면 ‘뚝딱’

 월 패드 해킹해 현관문 따는 데 26초, 카메라 해킹은 10초면 ‘뚝딱’

 ⊙ “내부에서 목격한 걸 기억해서 일일이 수기로 작성했을 가능성 있어”(前 사이버작전사령부 고위 관계자)

⊙ “블랙 요원 신상 유출, 인적 보안이 제대로 지켜지지 못한 사례”(김창훈 대구대 교수)
⊙ “물리적 망 분리, 잘 지키면 완벽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 “VPN은 전통적 방식의 보안 체계”(사이버 보안 업체 관계자)

 

▲사진=조선DB

 

“보안의 첫 번째 원칙은 의심이다.”

지난 7월 22일 만난 전직 정보기관 간부는 “방첩 요원이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 ‘원칙’이 무너지고 있다.

2016년 북한이 국방부 컴퓨터에 악성 프로그램을 심어 국방망(網) 내부 군사 자료를 빼내는 일이 있었는가 하면, 2021년엔 북한 해커가 원자력연구원과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업무망에 침투해 대량의 자료를 탈취하는 사건이 있었다. 법원 전산망의 경우, 아예 2021년 이전부터 북한 해킹 조직에 의해 털리고 있었지만 정보 당국은 2023년이 돼서야 이를 탐지했다.

결정적으로, 국군 정보사령부(정보사) ‘블랙 요원(비밀 첩보 요원)’ 명단이 유출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지난 6월 정보 당국이 이러한 기밀 유출 정황을 포착한 이후 사건 경위에 대해선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사이버 보안 조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이 나오고 있다. 기존의 사이버 보안 체계는 ▲망 분리 ▲VPN(가상 사설망)에 기반하고 있는데, 이것만으론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취약점은 국가기관뿐만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을 위협하기도 한다. 사물 인터넷(IOT)이 보급되면서 집 안 곳곳에 있는 냉장고, 월 패드(wall pad·집안 벽면에 붙어 있는 제어 장치), 홈캠(외부에서 집 안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카메라) 등은 모두 해킹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중에서도 월 패드를 해킹할 경우, 집 문을 딸 수도 있고 탑재된 카메라로 집 안의 모습을 유출시킬 수도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세대 간 ‘망 분리’가 의무화됐다. 하지만 여전히 취약점이 드러난 기존 VPN 기반 보안 체계에 의존하고 있어 해킹을 예방하는 데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이버 보안 위협은 민관(民官)을 가리지 않고 당면한 문제라는 얘기다.

가장 먼저,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블랙 요원 신상 유출 사건’을 살펴본다. 기밀 유출 혐의를 받는 군무원 A씨는 자신의 노트북 컴퓨터가 해킹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군 당국은 “해킹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A씨의 노트북에 들어 있던 블랙 요원 관련 정보는 정보사 내부 컴퓨터에 있던 보안 자료였다.


“해킹은 기록 남는다”

지난 8월 8일 국방부 정례 브리핑에 나선 전하규 대변인은 A씨의 대북(對北) 혐의점과 관련해 “군 수사기관에서 그 혐의를 포함해서 검찰로 송치했다”고 밝혔다. A씨는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및 군(軍)형법 제13조 간첩, 동법 제14조 일반이적(利敵) 등의 혐의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형법상 간첩은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해당하는 중죄(重罪)다. 정보사 소속 블랙 요원들은 주로 대북 관련 임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A씨는 노트북이 해킹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기자가 만난 사이버 보안 전문가들은 ‘해킹은 기록이 남는다’고 반박했다. 이들은 “해킹 툴(프로그램)을 통해 정보를 빼낼 텐데, 해킹 툴을 짤 땐 해킹할 디바이스(노트북 등 기기)에 대한 정보까지 다 빼오게끔 만든다”고 했다.

앞서 7월 30일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국민의힘 이성권·더불어민주당 박선원)들은 군 당국의 업무 보고를 받고 이번 사건과 관련해 “해킹은 아니었다”라고 분명히 했다. 다만 자세한 내용에 대해선 사건이 수사 중인 점, 국가 안보와 관련된 점 등을 들어 말을 아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은 개인의 컴퓨터에서 해킹한 자료에 대해 ‘정말 한국의 기밀 자료인지’를 검증한다고 한다. 해킹을 하는 것과 해킹한 정보로 움직이는 것도 투자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 해커들은 반드시 ‘이 정보는 어느 주소에서, 어느 사람의 어느 컴퓨터에서 가져온 게 맞다’라고 하는 정보를 함께 보고한다.

사이버작전사령부 고위 관계자를 지낸 B씨는 7월 3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군 내부망에 악성 코드를 심어놓으면 해킹이 가능한 것 아니냐’는 물음에 “쉽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기밀 유출 혐의를 받는 군무원은 정보사 군 간부 출신이며 전역 후 군무원으로 재취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B씨도 그와 마찬가지로 전역 후 관련 공직을 지낸 바 있다. 그의 얘기다.

“만약에 정보사 내부망에 악성 코드를 심었다면 정보사 시스템에 큰 문제가 있는 거죠. 그런데 그렇게 민감한 정보는 그걸 별도로 관리하고 있는 조직들이 있고, 전용망이 완전히 따로 분리돼 있거든요. 다른 쪽에서는 접근도 못 하는 정보사 내부의 별도 망이 있습니다.”


일일이 옮겨 적었을 가능성

B씨는 또 “군에서 블랙 요원의 기밀 등급은 굉장히 높다”며 “개인 노트북은 (영내로) 갖고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실제로 (군) 내부망 등에는 저장 매체 통제 장치가 다 설치돼 있다”며 국가 기밀 정보는 구조적으로 외부의 노트북 등으로 자료를 이동시킬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DRM(접근 제한 프로그램) 같은 게 있다”고 덧붙였다. B씨에게 물었다.

― 블랙 요원 정보를 취급했던 사람이라면, 어떤 방법으로든 해당 정보를 자기 노트북에 저장할 수도 있지 않나요.
“쉽지 않습니다. 그런 정보의 DRM을 풀려면 보안 담당자 승인이 있어야 하고 기록(로그 기록·누가, 언제, 어떻게 시스템에 접근해서 무엇을 했는지 자동 저장되는 기록)도 남게 됩니다. (이번에 누출된) 그 기록은 삭제할 수 없는 구조거든요. 설령 승인을 받아 DRM을 풀었더라도, 그걸 다른 저장 매체에 저장하려면 그 망 안에서 또다시 승인을 받아야 하거든요.”

― 그럼 어떻게 해야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건가요.
“저도 내용을 보면서 ‘어떻게 이렇게 (정보가) 나왔지’ 했는데, (군) 내부에서 하루에 한 건씩 출력되거나 거기서 본 걸 기억하고 밖에 나가서 입력하고 장기간에 걸쳐서 한다고 하면 시스템상 허점이 없어도 (정보 유출을) 할 수 있겠죠. 출력물, 그리고 화면을 보고 (블랙 요원) 한 사람씩 기억하고 밖에 나가서 자기 거(PC)에 입력하고, 다음에 또 본 걸 밖에서 (개인 컴퓨터에) 쳐 넣고, 이렇게 한다고 하면요. 내가 그 부분(블랙 요원 정보)을 알고 싶다면, 한 사람씩만 보고 (기억해서 개인 컴퓨터에 입력)하면 몇 달만 해도 되고요.”

관련 전문가들에 의하면, B씨가 가정한 사례는 예전부터 꽤 있었다고 한다. 영내에서 본 정보를 외워서 외부로 반출한 경우다. 다시 B씨에게 물었다.

― 그사이에 블랙 요원이 바뀔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그 사람들(블랙 요원)은 한 번 들어가면 몇 년 동안 바뀌지 않고 (활동)하기 때문에 한 번 (블랙 요원으로 해당 국에) 들어가면 10년, 20년 이렇게 있거든요. 그렇게 (자주) 바뀌거나 변경되지 않기 때문에 그 지역 어학 인재나 이런 사람들을 선발해서 (해당 국에) 보내고 하기 때문에 잘 바뀌진 않습니다.”

또 다른 보안 전문가는 “조사 기법을 통해 보면, 일단 그게 해킹으로 넘어갔다면 기기 정보도 같이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며 “메일 주소라든가, 기기 정보라든가. 그러면 나중에 그 자세한 내용이 나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해킹이나 원격 조종 등의 형태로 이게(블랙 요원 정보) 넘어갔다면 관련된 백그라운드 정보가 같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접근 권한 강화해야”

▲7월 31일 서울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김창훈 대구대학교 교수가 해킹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월간조선

 

이처럼 A씨가 블랙 요원의 신상 관련 자료들을 조금씩 기억해서 자신의 컴퓨터에 입력한 것이라면 사이버 보안 조치를 아무리 강화해도 무용지물이다. 해킹 방어 체계를 아무리 촘촘하게 구축해 놓아 봤자 영내(營內) 출력물 등을 눈으로 보게 되는 이상, 머릿속에 넣어 가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온갖 경우를 가정하더라도, 결국 민감 정보에 대한 접근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7월 31일 서울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김창훈 대구대학교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블랙 요원 관련 정보가 C 등급이라고 가정하면, C 등급에 맞게끔 물리적으로 분리해야 하는 건 물론이고 정보에 접근할 때 ‘크로스 도메인(외부 인터넷 주소 호출 차단)’ 조치가 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국가정보원이 운영하고 있는 ‘국가전산망 보안정책 개선 TF(임시 조직)’에 소속돼 있다. 국정원에서 기술 담당 평가위원 및 평가지표 분과장을 지낸 그는 이번 사건에 대해 “인적 보안이 제대로 지켜지지 못한 사례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에게 물었다.

― 인적 보안이 무엇인가요.
“민감 정보에 대한 접근 권한을 가진 사람이 그 데이터(정보)를 제3자에게 넘기는 걸 막는 거죠. 지금 군에서 일어난 사건을 보면 망 분리를 강화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 어떻게요?
“기존의 분리된 망 영역 안에서 누군가는 또 민감 정보에 접근해야 하는데, 그 접근 권한에 추가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거죠.”

국가정보원은 ‘기존의 망 분리 정책이 허점을 드러낸 사례가 있느냐’는 기자의 서면 질의에 “2016년 북한이 국방부 인터넷 PC를 최초 감염시킨 후, 분리된 국방망까지 침투하여 군사 자료를 대거 절취했다”고 8월 7일 답했다. 그러면서 “당시 해커는 국방망과 인터넷을 혼용(위규사안) 중인 서버를 악용해 침투했다”고 했다. 국가 보안 시설에 들어가면 규정상 외부 인터넷을 쓸 수 없는데, 이를 어기고 내부망과 외부 인터넷을 혼용하다가 해킹을 당한 사례다.


“완전무결한 망 분리, 현실적으로 어려워”

내부와 외부의 인터넷 망이 물리적으로 분리돼 있는 상황에서 해커는 어떻게 침투할 수 있을까. 7월 22일 서울 소재 사이버 보안 업체 C사를 찾아갔다. C사 관계자는 “망 분리를 하면 내부망과 외부 인터넷의 접점이 없어야 한다”면서도 “내부자가 업무를 할 때 불편하니까 외부 인터넷 랜선에 컴퓨터를 연결해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가기관에서 일어나는 해킹 사례도 이러한 경우가 드물지 않다”고 덧붙였다. C사 관계자에게 물었다.

― 외부망에 잠깐만 연결하는 건 괜찮을 것 같은데요.
“밖에서 가져온 USB에 악성 코드가 심어져 있으면 그걸 보안 시설 내부 컴퓨터에 꽂는 순간 컴퓨터는 감염됩니다. 물론 외부망과 연결이 되지 않은 상태에선 이 컴퓨터의 자료가 밖으로 빠져나갈 수 없죠. 그런데 외부망에 연결하는 순간 악성 코드가 작동해 모든 자료를 외부로 전송하게 됩니다. 특히나 요즘은 인터넷의 속도가 워낙 빨라져서 잠깐 외부망에 연결하더라도 몇 초 사이에 방대한 자료가 쑥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아차’ 하고 외부망 연결선을 뽑아도 이미 때는 늦은 거죠.”

― 해커 입장에선, 악성 코드가 담긴 USB를 내부 컴퓨터에 꽂았다고 하더라도 외부망과 접점이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건가요.
“여러 방식이 있지만, 이 경우엔 그렇죠. 시한폭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해킹은 몇 년에 걸친 작업이 될 수 있는 거죠.”

 

― 그렇다면 악성 코드를 꽂은 컴퓨터의 자료만 유출되는 것 아닌가요.
“아니죠. 해당 컴퓨터가 내부망과 연결돼 있으니 한 대에만 악성 코드를 심어놔도 내부에서 오가는 모든 자료를 유출시킬 수 있습니다.”

― 망 분리 수칙을 철저하게 지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 것 아닌가요.
“완전 무결하게 폐쇄망으로 관리하면 그럴 수 있죠. 그런데 사실 일을 하다 보면 외부 인터넷과의 접점이 없을 수가 없어요.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정부기관 내부에서도 외부 인터넷과 연결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도 여러 기관이 다 털리고 있잖아요.”


내부자를 믿지 않는 ‘제로 트러스트’

정보기관도 실무 현장이 이렇게 돌아간다는 점과 이로 인한 취약점을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국정원은 국가 전산망 보안 정책 개선안으로 ‘다층보안체계(MLS·Multi Level Security)’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획일적으로 적용하던 기존의 망 분리 체계를 보안 등급에 따라 차등 적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업무 중요도에 따라 내부망 정보에 ▲기밀 ▲민감 ▲공개 등의 등급을 매겨 접근 권한을 구분하는 게 골자다.

대신, 이러한 전산망 환경에 부합하는 새로운 보안 체계인 ‘제로 트러스트(zero trust)’를 도입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한국형 제로 트러스트 모델’을 마련하고 있다. 외부와 통신은 가능하되, 중요한 정보에 있어 보안 조치를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외부와 통신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되레 보안 우려가 나올 수 있지만, 제로 트러스트의 개념은 ‘신뢰할 수 있는 네트워크’라는 개념 자체를 배제하기 때문에 최근 빈번한 ‘내부자에 의한 해킹 또는 정보 유출 사고’를 막는 데 효과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제로 트러스트는 망 내외부에 언제나 공격자가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가정한 체계로, 명확한 인증을 거치기 전까진 모든 사용자 및 기기와 트래픽을 신뢰하지 않도록 설계돼 있다. 심지어 인증을 거친 후에도 끊임없이 신뢰성 검증이 이뤄진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2022년 바이든 대통령이 ‘60일 이내 각 기관장들은 제로 트러스트 구현 계획을 개발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미 국방부는 제로 트러스트 조직을 설립, 관련 구상을 발표했다.

그런데 여기엔 ‘VPN 없는 구현’이 포함돼 있다. 사기업인 구글(google)도 제로 트러스트를 구축하기 위해 액세스(접근) 제어를 네트워크 경계에서 개별 사용자로 전환해 VPN 없이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VPN 기반 사이버 보안 체계가 한계를 드러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VPN은 고전적 방식”

국가정보원은 VPN 기반의 보안 체제가 허점을 보인 사례가 있느냐는 질의에 “2021년 6월경 북한 해커가 VPN 서버의 취약점을 악용, 원자력연구원과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업무망에 침투하여 대량의 자료를 절취했다”고 답했다.

또 다른 사이버 보안 전문가 D씨는 VPN 기반 보안 체제에 대해 “망 분리가 적용된 회사나 국가기관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재택근무를 하기 위해 대체제로 쓰인 게 VPN이다”라고 설명했다. 그의 설명을 쉽게 풀어 말하면 VPN은 내부망 접근 권한이 있는 사람이 외부에 있을 때, 그를 내부망에 접근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주는 보안 조치다. 일단 내부망의 방화벽을 넘어 들어오게 되면, 믿을 수 있는 접속자로 인증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그 안에선 자유롭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VPN은 SSL VPN과 IPSec VPN으로 나뉜다. IPSec VPN의 경우, 접속자와 관리자 양측에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장치가 있어야 하는 반면 SSL VPN은 접속자가 별도의 장치 없이 VPN 클라이언트 소프트웨어를 기기에 설치하면 된다. 최근 들어서는 이마저도 설치할 필요가 없는 경우가 많다. 망(웹) 브라우저(검색 프로그램)에 전송 계층 보안 기술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VPN으로 막아놓은 인터넷 망은 우회해서 접속하면 그만이다. 실제로 한국에선 접속이 차단된 북한의 인터넷 사이트도 VPN 우회 사이트를 통해 링크만 입력하면 쉽게 들어갈 수 있다. 또 흔히 쓰는 SSL VPN의 경우, 내부망을 보호하는 데 목적을 두기 때문에 접속자의 기기에 대한 방어 조치는 취해지지 않는다.

D씨는 이를 “전통적 방식의 보안 체계”라며 “제로 트러스트는 내부망 안에서도 접속자를 믿지 않고, 민감한 정보에 접근할 때마다 인증을 거쳐 접근 권한을 부여하는 설계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VPN 기반 보안 체제가 일상 속 IOT(사물 인터넷)에도 적용돼 있는데, 이러한 기기들은 더욱 보안에 취약하다”고 설명했다.


집안 곳곳이 해킹 위험에 노출

▲아파트 거실 벽면에 설치된 월 패드. 사진=조선DB

 

D씨는 직접 월 패드를 해킹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실제로 2021년엔 국내 해커가 40만 가구의 월 패드를 해킹해 그것에 달린 카메라로 집 안 내부를 들여다보고 해당 영상물을 팔아넘기려 한 사건이 일어났다.

아파트와 같은 공동 주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월 패드는 다양한 기능을 갖고 있다. 엘리베이터를 호출할 수도 있고, 초인종을 누른 사람의 얼굴을 확인할 수도 있다. 관리사무소와 연락할 수도 있으며 공동현관은 물론, 현관문까지 이 월 패드를 통해 열 수도 있다. D씨에게 물었다.

― 월 패드 가구 간 망 분리를 VPN으로 하면 어떻습니까.
“VPN 기반 보안 체계를 운영하는 아파트는 집중구내통신실과 TPS실을 거쳐 각 가구 월 패드와 공용부 공간(엘리베이터 등)의 기기를 제어합니다. 그런데 이렇게만 운영하면 VPN서버만 해킹돼도 단지 내 모든 가구가 뚫릴 위험에 그대로 노출됩니다. 각 가구가 동일한 VPN 서버를 통해 월 패드 서버와 연결되므로 해킹에 취약한 거죠. 네트워크망을 제대로 분리할 수 없는 구조이므로 추가적인 보완이 필요합니다.”

― 실제로도 쉽게 뚫리나요.
“월 패드와 같은 IOT 기기는 탑재된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할 일이 거의 없습니다. 스마트폰은 주기적으로 OS(운영 체제) 업데이트를 하잖아요. 이때 해킹 취약점에 대한 보완이 이뤄지거든요. 그런데 월 패드와 같은 사물 인터넷은 한 번 소프트웨어를 구축하면 끝입니다. 해킹 기술은 나날이 발달하고 있는데 취약점에 대한 업데이트가 이뤄지질 않으니 기기의 권한을 장악하기가 쉽죠.”

D씨는 자신의 노트북 컴퓨터를 펴고 월 패드와 현관 도어락 앞에 앉았다. 그가 메모장으로 보이는 검은 색 화면을 띄우고 복잡한 명령어를 수십 줄 입력하자마자 ‘띠띠띠’ 하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걸린 시간은 불과 26초. 곧이어 월 패드에 달린 카메라를 해킹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10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월간조선 09월 호 글 : 김광주 월간조선 기자 kj961009@chosun.com

 
 

09.07 경북 경산 박사리, 1949년 11월 비극의 밤

 적대 세력에 의한 희생에 대한 국가 보상 ‘0건’

 ⊙ 남은 가족, 경제적 어려움 속에 궁핍하게 살아… 군경에 의한 희생자는 8000만원 보상
⊙ 빨치산 토벌에 반발, 마을 청년 모아 죽창·총·칼로 살해
⊙ 살아남은 일부 청년, 평생 장애 가진 채 일도 하지 못해
⊙ 과거사정리위원회, 2차례 걸쳐 사상자 47명 진실 규명
⊙ “희생자와 유가족 위로할 수 있는 실질적 조처 해야”

▲지난 2020년 박사리 사건 희생자 유가족들이 위령제를 지내는 모습이다.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위원장 김광동) 2기 활동 기한이 1년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한국전쟁 전후 인민군·빨치산·지방 좌익 등 적대 세력에 의한 희생이 인정되면 유가족이 국가로부터 보상받을 수 있는 입법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진화위 2기 활동 기한은 내년 5월까지다.

진화위가 희생 사실을 진실 규명을 하더라도 적대 세력 희생자 혹은 그 유가족이 국가 보상을 받은 사례는 지금까지 1건도 없다. 반면 군경에 의한 희생이 인정되면 희생 당사자에게는 통상 8000만원, 배우자에게는 통상 4000만원가량의 보상금이 지급된다(경우에 따라 소송을 거치기도 함).

군경에 의한 희생에 비해 적대 세력에 의한 희생이 상대적으로 부각되지 않은 점도 유가족을 힘들게 하는 점이다. 이옥남 진화위 상임위원은 “여러 이유로 적대 세력에 의한 민간인 희생 사건은 세간의 관심을 받지 못해왔다”면서 “가해 주체에 따라 피해 구제 방식 혹은 구제 대상이 달라야 한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북 경산 와촌면 박사리 적대 세력에 의한 희생 사건’이 대표 사례다. 30분 남짓한 짧은 시간에 빨치산이 마을 청년 30여 명을 죽이고 20여 명에게 상해를 입힌 끔찍한 사건이지만,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월간조선》은 진화위 보고서 등을 바탕으로 ‘경북 경산 와촌면 박사리 적대 세력에 의한 희생 사건’에 대해 자세히 살펴봤다.


빨치산 토벌 작전과 보복

▲빨치산 주둔지였던 팔공산 아래 양시골과 박사리는 직선거리로 5km 떨어져 있다. 사진=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1949년 11월, 경북 경산 와촌면 박사리에 핏빛 바람이 불어닥쳤다. 인근 팔공산 등지에서 활동하던 빨치산이 마을을 습격해 청년 30여 명을 죽인 것이다. 이들 대부분은 20~30대 젊은이였고 10대와 60대도 일부 있었다. 또 마을 청년 20여 명이 중상을 입어 평생 후유증을 앓았다.

당시 팔공산에는 상당수의 빨치산이 운집해 있었다. 1946년 대구에서 시작된 대구 10월 사건과 1948년 말부터 3차에 걸쳐 발생한 제6연대 반란 사건 등의 영향으로 좌익 세력과 반란군이 이곳으로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마을로 종종 내려와 주민들의 가축과 음식을 훔쳐가곤 했다.

 

사건 발생 약 한 달 전, 박사리 옆 동네인 동강리에 거주하던 한 사람이 팔공산에서 나무를 하던 중 양시골에 근거지를 둔 빨치산에게 붙잡히는 일이 있었다. 빨치산이 그에게 “어디 사느냐”고 물었다. 그는 “박사리에 산다”고 거짓으로 대답했다. 빨치산으로부터 풀려난 그는 곧장 경찰에 이들의 근거지를 신고했다. 군경은 이 정보를 토대로 빨치산 토벌 작전에 돌입했다. 공비 78명을 사살하고, 7명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다. 빨치산 잔당 일부는 산속으로 도망쳤다. 이들은 인근 산의 빨치산을 규합해 곧장 보복에 나섰다.

사건 당일 이들은 3개 조로 나뉘어 마을을 습격했다. 동네 사랑방과 초당방, 마을회관, 민가를 찾아 “연설을 들어야 한다”며 청년들을 정미소와 논 등으로 끌고 갔다. 이 과정에서 도망가거나 협조하지 않은 청년들은 곧장 죽창·칼·총 등에 희생됐다. 사건 발생 직후 보도된 신문 기사를 종합하면, 당시 습격 인원은 50~60명으로 추정된다.


일렬로 세워 총격

당시 25세였던 경수(가명)는 갓 결혼한 새신랑이었다. 이날은 경수가 결혼식을 올린 뒤 처가에 들렀다가 집으로 막 돌아온 날이었다. 집에선 잔치가 한창이었다. 경수의 형인 성수(가명) 역시 먹고 마시며 장가든 동생을 축하하고 있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쯤, 집 안으로 빨치산이 들이닥쳤다. 이들은 “반상회를 해야 한다”며 형제를 논으로 끌고 갔다. 신부 눈에 비친 신랑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이날 경수는 빨치산의 칼을 맞고 목숨을 잃었다. 성수 역시 빨치산이 내리친 돌에 턱부터 목까지 큰 상처를 입었다. 빨치산은 그런 성수를 마을 청년 몇몇과 함께 세워놓고 총격을 가했다. 성수의 배에선 피가 흘렀다. 하지만 숨은 붙어 있었다. 총알이 배를 스친 것이었다. 성수는 도립병원으로 옮겨져 몇 달간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이날의 후유증으로 성수는 말도 하지 못하고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걷는 것도 힘들어 혼자서는 화장실조차 갈 수 없었다. 결국 10년을 이 상태로 지내다 사망했다.

정수(가명) 역시 억울한 희생자 중 하나였다. 25세였던 정수는 어머니의 생일을 맞아 가족과 함께 집에서 놋그릇을 닦고 있었다. 밤 10시쯤 마을을 습격한 빨치산이 정수의 집으로 들이닥쳤다. 이들은 “연설을 들어야 한다”며 정수를 붙잡아 집 앞 논으로 끌고 갔다. 그곳에는 정수 외에도 마을 청년 여러 명이 모여 있었다. 연설을 들어야 한다던 빨치산의 말과 달리 이들은 청년들을 땅에 엎드리게 한 채 칼과 몽둥이를 휘두르고 있었다. 일부는 이미 피를 흥건히 흘리며 죽어 있었다.

정수는 덜컥 겁이 났지만, 눈을 크게 뜨며 빨치산에게 소리쳤다. “당신들, 사상이 잘못됐어. 돌아가라!”

이 말을 들은 빨치산은 몹시 화를 냈다. 무리 중 한 명이 정수의 얼굴을 돌로 내리쳤다. 정수는 충격에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때 멀리서 총소리가 들렸다. 인근 경찰서에서 박사리로 보초 교대 업무를 하러 온 사람들이 실수로 총기를 격발한 소리였다. 이 소리에 놀란 빨치산들은 정수를 포함한 마을 주민을 황급히 일렬로 세워 일제히 총격을 가했다. 정수는 배에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이어 빨치산은 마을에 불을 지른 뒤 산으로 도망갔다. 이날 박사리에서 새까맣게 타버린 집만 100채가 넘었다.

빨치산이 도망가자 열 살 터울 어린 동생이 논에 쓰러져 있던 정수를 부축해 집으로 데려왔다. 아직 정수의 숨이 붙어 있을 때였다. 동생과 어머니는 온갖 민간요법을 동원해 정수를 치료했다. 그러나 정수는 결국 눈을 뜨지 못했다.


“뭐? 예수를 믿는다고?”

▲박사리 사건의 학살 현장. ①과 ④는 피해자들의 집, ②는 정미소 마당, ③은 홰나무 보, ⑤는 대동초등학교 자리. 작은 점들은 당시 불에 탄 집이다. 사진=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박기옥씨

 

당시 28세였던 민수(가명) 역시 희생자 중 한 명이다. 그날 민수는 친구인 재수(가명)의 집으로 놀러 갔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빨치산이 집 안으로 들이닥쳤다. 빨치산은 이들을 정미소 앞으로 끌고 가 꿇어앉힌 채 “하는 일은 무엇이고 가입한 단체가 있느냐?”고 물었다. 몇 차례 실랑이가 오가고서 민수는 “예수를 믿는다”고 말했다. 그러자 빨치산은 “뭐? 예수를 믿는다고?”라고 따져 물은 뒤 민수를 칼로 찔러 죽였다.

당시 박사리 주민 대다수는 기독교인이었다. 마을엔 박사교회가 있었고 박사교회 목사는 청년들에게 좌익사상과 남조선노동당을 배척해야 한다는 설교를 자주 하곤 했다. 사건 발생 직후 박사교회 관계자들은 끔찍하게 살해된 청년들의 시신 중 일부를 교회에 안치했다. 빨치산이 도망가고 난 뒤 가족들은 교회를 찾아 사망한 이들의 시신을 수습했다.

명철(가명)이 삼촌 방길(가명)의 시신을 발견한 곳도 박사교회였다. 빨치산이 마을을 습격한 날 밤, 방길은 동네 사랑방에서 짚신을 만들고 있었다. 빨치산은 사랑방을 습격해 이곳에 있던 청년들을 논으로 끌고 가 칼을 휘둘렀다. 다음 날에야 명철은 삼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삼촌의 친구가 집에 찾아와 비보를 전한 것이다. 명철의 아버지는 교회로 달려가 방길의 시신을 수습했다.


아버지의 절규

당시 4세였던 명자(가명)는 어머니를 통해 그날의 끔찍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아버지는 그날 할머니 제사를 준비하기 위해 장을 본 다음 마을 초당방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빨치산이 초당방에 들이닥쳐 “연설을 들어야 한다”며 아버지를 정미소 앞으로 끌고 갔다. 그러나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연설이 아닌 빨치산의 서슬 퍼런 칼이었다. 아직 숨이 붙어 있을 때 아버지는 명자의 이름을 크게 외쳤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아버지의 절규를 다 들었을 정도였으니 얼마나 큰 소리였을지 짐작이 간다. 빨치산은 마을에 불을 지르곤 다시 산으로 도망쳤다. 명자네 집도 이날 몽땅 타버렸다. 결국 명자와 어머니는 삼촌 집으로 피신을 가야 했다. 삼촌이 아버지의 시신을 모셔왔는데, 얼굴에 큰 칼자국이 있었다고 한다. 명자는 삼촌 집에서 살다가 할아버지 집으로 옮겼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다시 삼촌 집으로 옮겨 와 살았다.

당시 1세이던 기남(가명)도 이날 아버지를 잃었다.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이야기는 어머니를 통해 들었다. 사건 당일 집에 있던 아버지는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문밖으로 나가봤다. 아버지를 발견한 빨치산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칼을 휘둘렀다. 아버지는 그대로 고꾸라졌다. 어머니에게 전해 듣기로는 아버지의 창자가 몸 밖으로 튀어나왔다고 한다. 어머니는 그 모습을 보고 기절했다.

빨치산은 이에 멈추지 않고 방화까지 저질렀는데, 당시 챙겨줄 이가 없어 갓 태어난 기남의 동생은 연기를 잔뜩 마실 수밖에 없었다. 이 후유증으로 동생은 몇 달 가지 않아 죽고 말았다. 이날의 참극으로 기남은 아버지와 동생, 집까지 모두 잃었다.


손목 잘리고 등 굽어

난리 속에서 운 좋게 목숨을 건진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에게 남은 삶은 죽음과 다를 바 없었다. 목이 꺾이거나 손목이 잘리는 등 평생 장애를 안은 채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38세였던 건암(가명)은 빨치산이 마을에 불을 지르자 집 밖으로 도망갔다. 그러다 집 앞 골목에서 산으로 도망가던 빨치산과 마주쳤다. 그는 건암에게 칼을 휘둘렀다. 건암은 몸을 돌려 피했지만, 불행히도 칼끝이 그의 목을 그었다. 건암은 그대로 쓰러졌다. 그래도 목숨만은 건져 도립병원으로 실려가 몇 달간 입원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이날의 후유증 때문에 1981년 사망할 때까지 목이 한쪽으로 꺾인 채 생활해야 했다.

 

33세 병우(가명)는 이날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친구 집에 있다가 빨치산에게 붙잡힌 병우는 몽둥이로 구타를 당하고 칼에 여러 차례 찔렸다. 병우의 아내는 이 모습을 숨죽인 채 몰래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빨치산이 산으로 도망가자 아내는 병우를 부축해 도립병원으로 갔다. 당시 병우의 모습을 본 이웃들은 “피투성이였다. 그저 죽은 줄로만 알았다”고 입을 모았다. 도립병원 의사는 즉각 병우에게 응급 처치를 했다. 이 덕분이었을까. 병우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죽음보다 더한 삶이 시작됐다. 평생 일 한번 해보지 못했고 약을 달고 살았다. 아내는 병우를 대신해 홀로 소작 일을 해야만 했다. 생계 곤란 탓에 이사도 자주 다녔다.

당시 38세였던 차석(가명)은 빨치산이 휘두른 일본도에 손목이 절단됐다. 빨치산이 마을 청년들을 칼로 찌르던 상황에서 다친 것이다. 그날 밤 차석은 사랑방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있었다. 사랑방에 들이닥친 빨치산은 연설을 구실 삼아 이들을 정미소 앞으로 끌고 갔다. 차석이 정미소에 도착했을 때 그곳엔 이미 시체가 가득했다. 빨치산은 차석에게도 칼을 휘둘렀다. 차석은 손으로 칼을 막았다. 이때 손목이 잘려나갔다. 차석은 차오르는 고통을 참으며 죽은 척을 했다. 다음 날 차석은 도립병원으로 이송돼 수혈을 받는 등 한 달 이상 치료를 받았다. 마을 사람들에게 들어보니 잘린 손은 사건 다음 날 경찰이 정미소 앞 도랑에서 찾았다고 한다. 차석은 원래 마을에서 힘이 좋기로 유명했다. 그러나 그날 이후 차석은 평생 일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치료비 위해 논밭 처분

당시 32세 문근(가명)은 저녁 식사 도중 빨치산에게 붙들린 채 정미소 앞으로 끌려 나왔다. 이들은 불붙은 짚단을 들고 와 마을 여기저기에 불을 질렀다. 문근의 아내는 집에 불이 붙자 밖으로 뛰쳐나갔고, 문근이 빨치산에게 맞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어 이들은 문근을 포함한 청년들을 일렬로 세우고 총을 쐈다. 다행히 총알은 급소를 피해 문근의 오른쪽 팔꿈치를 관통했다. 빨치산의 ‘확인 사살’이 이어졌다. 이때 문근이 움직이자 이들은 칼로 문근의 눈 옆을 내리치고 돌로 그의 얼굴을 찍었다. 이때 문근의 턱뼈가 부서졌다. 아내는 빨치산이 도망가자 온몸이 피범벅인 채 쓰러진 문근을 찾아 끌어안고 도립병원으로 갔다. 문근은 병원에서 4개월 동안 수술과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후유증이 깊게 남았다. 음식을 잘 씹지도 못하고 발음은 다 샜다. 한편 이날 습격으로 문근은 동생까지 잃었다.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을 겪었다. 치료비를 감당하기 위해 문근 가족은 가지고 있던 논밭까지 처분해야 했다.

당시 23세 주환(가명)은 이날 사건으로 장애인이 됐다. 정미소 앞에서 빨치산이 휘두른 칼에 목을 맞은 주환은 목 뒤가 움푹 팰 정도로 크게 다쳤다. 도립병원에서 4~5개월 입원 치료를 받았지만, 목은 오른쪽으로 꺾인 채 굳어버렸다. 이 일로 평생 일도 하지 못하고 지낼 수밖에 없었다.

당시 30세 중석(가명)은 마을 내 반공 청년으로 유명했다. 중석의 집에는 경찰지서와 연락할 수 있는 전화기도 있었다. 사건이 발생한 날 빨치산이 가장 먼저 중석의 집에 들이닥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들은 중석을 몽둥이로 때리고 끌어내면서 “이놈은 죽여야 한다”고 외쳤다. 청년들이 논 앞에 모여 있는 상황에서 중석은 용케 도망쳤다. 곧장 팔공산 반대 방향인 동강리 쪽으로 뛰었다. 중석은 한참을 뛰다 그만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외가 쪽 사람들이 길가에 쓰러진 중석을 발견해 마을로 업고 왔다. 얼굴은 붓고 터져서 알아볼 수 없었고 온몸엔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도립병원에서 장기 입원 치료를 받고 퇴원했지만, 중석은 평생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보상 관련 입법 추진 신속히 이뤄져야”

▲박사리 반공혼비.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진화위는 이들의 희생을 사실이라 판단하고 2022년 10월 열린 제43차 위원회와 지난 4월 열린 제77차 위원회에서 진실 규명 결정을 내렸다. 1기 진화위 기록, 미 군사 고문단 정보 일지, 경산시지, 사건 발생 이후 보도된 신문 기사, 한국전쟁 관련 희생자 명부, MBC 집중 진단-박사동의 비극 그 후 44년 등 기록 조사, 책 《박사리의 핏빛 목소리》 등의 기록과 신청인 및 참고인 진술, 반공혼비와 반공희생자위령비 등 현장 조사를 종합한 결과다.

진화위는 진실 규명 결정을 내리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다음과 같은 사항을 권고했다. ▲북한 정권의 사과 촉구 및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공식 사과 ▲피해 회복을 위한 조치 ▲추모 사업 지원 등 후속 조치 ▲가족관계등록부 등 공적기록 정정 ▲역사기록 반영 ▲평화인권교육 실시 등이다.

이옥남 위원은 “무고한 민간인들이 반국가 세력에 의해 희생당했음에도 국가가 70년 이상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비록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국가가 이 사건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로할 수 있는 실질적인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성해 박사리사건유족회 회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진화위의 진실 규명에 감사드린다”면서도 “보상 체계 마련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유가족 모두 억울한 심정을 토로한다. 보상과 관련한 입법 추진이 신속히 이뤄지고 그 추진 과정과 결과를 유족과 공유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글 : 김세윤 월간조선 기자 gasout@chosun.com
 
 

09-09 KASA 100일과 ‘항공’ 소외

정충신 정치부 선임기자

1957년 10월 4일 소련이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렸다. 소련이 ‘라이카’라는 이름의 유기견을 태우고 그해 11월 3일 1호보다 6배나 무거운 스푸트니크 2호 위성 발사에 성공하자 큰 충격을 받은 미국은 이듬해 1월 31일에야 익스플로러 1호 발사에 성공, 겨우 추격의 고삐를 좼다. 소련의 연이은 발사 성공은 강력한 추진력의 로켓 엔진뿐 아니라 안정적인 자동항법, 정밀유도 시스템 등 난제를 모두 풀었으며 머지않아 미국을 타격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장의 예고편이었다.

미·소 우주 개발은 이처럼 전략병기 확보 경쟁으로 시작됐다. 2045년 세계 5대 항공우주강국 진입의 거창한 목표를 내건 우주항공청이 며칠 전 개청 100일을 맞았지만, 방향을 제대로 세워놓고 있는지 의문이다. 항공우주는 안보와 직결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는지조차 궁금하다. 예산 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하면서 최소한의 투자 효율을 검토했는지도 의문이다. 무엇보다 항공 부문의 소외가 곳곳에서 눈에 들어온다. 지난해 말 집계된 2022년도 항공산업 생산은 6조3410억 원, 우주산업(6274억 원)의 10배 이상이다. 반면, 우주항공청이 최근 발표한 2025년도 예산편성안은 정반대다. 총예산이 9649억 원으로 전년보다 27% 늘어난 가운데 항공 분야에는 전년보다 34% 줄어든 405억 원을 배정했다. 생산은 10배 많지만, 예산은 22배 이상 적게 할당된 셈이다.

항공산업이 체감하는 소외감은 훨씬 크다. 최근 우주항공청 주관 회의에 참석한 항공업체 한 임원은 “우주항공청의 약칭이 ‘우주청’인데 왜 ‘우항청’이라고 말하느냐”는 질책에 할 말을 잃었다고 한다. 민간 출신 일부 우주항공청 공무원의 고압적 태도에 ‘벌써부터 갑질한다’는 반응이 나온다. 미국이 우주 경쟁에 매진하던 시기에 국가 역량이 우주에 집중됐다는 논리도 맞지 않는다. 아직까지 현역을 지키는 B-52 폭격기를 비롯해 오래도록 우리 영공을 지켰던 F-4 팬텀 전투기가 개발되고 음속 2배를 넘는 센트리 시리즈 전투기가 선을 보인 게 바로 그 시기다. 항공에 대한 투자는 미국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었다. 미국이 우주 로켓만으로 초강대국으로 군림한다고 생각하면 바보다. 항공산업은 미국의 안보를 유지하는 바탕이다. 우리는 더하다. 어떤 나라보다 더 절박한 심정으로 항공산업과 그 생태계를 일궈왔다.

대한민국 항공산업은 지난 1975년 제1차 전력증강사업 당시 고 박정희 대통령의 깊은 관심과 지원으로 지금까지 50성상을 가꿔온 산업이다. 시행착오도 겪고 코로나19 사태로 직격탄을 맞으면서도 2026년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국산 KF-21 보라매 양산을 앞둘 만큼 성장한 항공산업이 우주항공청으로 인해 후퇴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우주항공청은 항공업체가 집중된 경남 사천 지역에서 왜 ‘우주항공청은 항공우주연구원의 사천 지소’라는 비아냥이 나오는지, ‘우주항공청 개청 이전이 오히려 나았다. 이럴 바에야 우주청과 항공청은 아예 분리하는 게 낫다’는 반응마저 나오는지 귀 기울여야 한다. 개청 100일을 지나는 지금이 궤도를 수정하기에 가장 좋은 시점이다.

문화일보 

 

09-09 오물풍선 1250개 띄운 北… 다탄두미사일 흉내

▲북한의 대남 쓰레기 풍선이 8일 오후 경기 파주시 광탄면의 한 창고 옥상으로 떨어져 화재가 발생했다. 불은 인명 피해 없이 3시간 만에 진화됐다. 경기북부소방재난본부 제공

 

닷새연속 도발… 재산 피해 1억
군, 대북 확성기방송 순회 가동

북한이 지난 4일부터 8일까지 닷새 연속으로 날려 보낸 대남 쓰레기 풍선이 1250여 개로 이 중 주로 서울·경기 지역에 떨어진 낙하물이 약 400개에 이른 것으로 집계됐다. 북한이 지난 5월 말부터 남측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에 대응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오물·쓰레기 풍선을 부양한 횟수는 모두 17회에 달하며 5일 연속 대남 쓰레기 풍선을 부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합참 관계자는 9일 “오늘 풍향 조건은 북한이 언제든 쓰레기 풍선을 날릴 수 있는 상태”라며 북한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군은 최근 북한이 ‘겹비닐’ 변칙으로 풍선 도발 수위를 높인 점에 주목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9월 들어 풍선에 매달려 날아온 낙하물 봉지에 여러 개의 묶음이 들어 있는 점이 새 특징으로 상공에서 터질 때 여러 개의 작은 봉지로 분리되어 비산돼 마치 다탄두미사일을 흉내 낸 것 같다”며 “군과 시민의 피로도를 높이기 위한 ‘저강도 고효율’ 수단으로 방공망을 교란할 목적”이라고 분석했다. 경찰과 소방 등에 따르면 오물풍선에 따른 차량 파손, 주택가 화재 등 재산 피해액만 1억 원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군 당국은 지난 7월 이후부터 휴전선 일대에 배치된 대북 확성기방송을 서부·중부·동부 지역으로 순회하며 계속 가동하기로 했다. 연말쯤 휴전선 일대에 실전 배치될 대드론용 대공 레이저 무기도 쓰레기 풍선 요격에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충신 선임기자 csjung@munhwa.com

 
 

09-10 北 기폭장치 오물풍선은 신종 도발, 정부 대응법 바꿔야

북한의 대남 오물풍선 때문에 경기 파주와 김포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 현장에서 화약이 들어간 기폭장치 추정 물체가 나온 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지난 8일 파주 창고 화재 및 5일 김포 자동차 부품 공장 화재 현장에서 기폭장치가 발견됐다. 북한이 대북전단에 대한 반발 차원에서 오물풍선을 날리고 서해 5도에서 위성항법장치(GPS) 교란전을 벌이는 게 아니라, 신종 대남 도발 수단을 시험하고 있다는 증거임이 분명하다.

북한이 지난 5월부터 본격화한 오물풍선에 대해 정부는 “풍선에 유해물질이 없다”는 이유로 단순 쓰레기로 규정해 낙하 후 수거 방침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오물풍선이 기폭장치 폭발로 화재를 유도하는 무기가 되는 만큼 이젠 신종 도발로 규정해야 할 국면이다. 오물풍선이 특정 지역 주요 시설 공격용 데이터 축적용이란 분석도 그간 제기돼 왔다. 수수방관하다간 러시아가 자폭 드론으로 우크라이나의 주요 시설을 공격하듯 도발 수위를 높여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더구나 북한은 포탄 제공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무인기 첨단 기술까지 제공받고 있다.

정부는 오물풍선이 대한민국에 대한 전방위 공격용으로 악성 진화하기 전에 대응법을 전면 전환해야 한다. 기폭장치 오물풍선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안보회의(NSC)를 개최, 북한의 신종 도발 종합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첫째, 대북 확성기 방송 전면화로 북한을 고강도 압박하며 도발 중지를 요구해야 한다. 둘째, 2∼4m 크기인 오물풍선은 바람을 따라 천천히 이동하므로 군 당국은 휴전선 인근으로 넘어올 때 레이저 총 등으로 공중폭파하는 방안 검토에 나서야 한다. 셋째, 유엔군사령부가 북한의 오물풍선 살포를 “심각한 정전협정 위반”으로 규정한 만큼 유엔사와 공조해 대응하는 한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해서도 북한의 위험한 도발 사태에 대해 엄중히 경고해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9-11 북 ‘무기 풍선’ 요격과 맞풍선 급하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북한이 날려보낸 오물풍선의 본색이 드러났다. 지난 5월 28일 240여 개의 오물풍선을 날리며 시작된 이 추잡한 도발은 지난 8일까지 모두 17차례나 계속됐다. 4일부터는 닷새 동안 매일 오물풍선을 날렸는데, 급기야 그중 일부가 경기 김포와 파주의 민가 지역에서 폭발했다. 현장에서 기폭장치로 보이는 장비가 발견됐다. 우려가 현실이 됐다.

북한의 오물풍선 도발은 고도로 계산된 군사작전으로 봐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드론이 트렌드가 된 상황에서 북한은 하나의 공격 옵션을 더 추가하는 무기 전력화를 하고 있는 중이다. 북한은 이 오물풍선을 날려 보내면서 풍향·풍속·온도·기압 등 외부 요소에 따른 사거리와 이동 속도 등 데이터를 축적했을 것이다. 시민단체의 전단지 살포를 빌미로 계속 오물풍선을 날려 보내며, 남남갈등 유발이라는 부수 효과와 함께 ‘풍선 폭탄’이라는 새로운 공격 무기를 확보하는 군사작전을 펴 온 것이다.

오물풍선이 낙하하면 관련 기사가 보도되거나 시민들이 SNS에 올리기도 한다. 이런 보도는 북한 무기 풍선이 얼마나 정교하게 날아갔는지를 평가하는 자료가 된다. 이번 기폭장치 풍선은 큰 화제가 됐기 때문에 정확한 좌표를 특정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초창기에 바다나 산 지역으로 많이 떨어졌던 오물풍선이 시간이 갈수록 정교해지는 것이 무기 개발 과정이라는 방증이다.

많은 전문가가 무기 개발과 화학무기 살포에 대해 우려를 제기하며 군 당국의 강력한 대응을 요구해 왔다. 이번 폭발로 계획된 군사작전임이 명백해진 만큼 군은 더는 요격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그동안 국군은 대공포나 공격 헬기를 통한 격추 작전에 들어갈 경우 민가 지역의 낙탄 피해와 북한 지역으로 총탄이 날아가 확전될 것을 우려해 격추 작전에 나서지 않고 있다. 기껏 나온 안이 총탄 낙탄 피해가 없는 레이저 무기로 요격 가능성 정도다. 그러나 레이저 무기는 기상 상황에 따라 능력이 제한적이라 안정적인 수단이 될 수 없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헬기에 저격수를 태워 경기관총이나 소총으로 요격하는 것이다. 국군은 정찰자산으로 북한이 오물풍선을 부양하는 것을 즉시 파악하고 있다. 풍선 부양과 동시에 대기 중인 헬기들을 즉시 이륙시켜 풍선 남하 경로에서 기다리다가 기관총이나 소총으로 민통선 이북에 격추하면 간단하다. 풍선의 특성상 회피 비행도 하지 못하고, 큰 덩치에 느리게 날아올 것이므로 대부분 민통선 이북에서 격추할 수 있다. 경기관총이나 소총의 사거리가 짧아서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북한 지역으로 낙탄할 가능성도 없다. 야간에 날리는 풍선은 사수가 야시장비를 착용하고 사격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리고 보복해야 한다. 보복하지 않으면 계속 도발을 당해야 하고, 그만큼 북한은 풍선 무기를 정교화할 수 있다. 시끄러운 대응 소음을 내면 효과도 없는 대북 확성기 방송만으론 안 된다. 시민단체 수준을 넘어선 국가 차원의 전단지를 북으로 날려 보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보복이며,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이다. 이렇게 적극 대응하면 우리 국민의 피해도 없어지고, 북한의 풍선 무기 개발도 중단시킬 수 있다. 군은 더는 망설여선 안 된다. 요격과 보복! 우리의 의지와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문화일보 

 

09-11 반도체 기술 中 유출 30여 명 수사… ‘경제 안보’ 둑 무너질 판

 

 한국의 반도체 첨단 기술을 중국에 유출한 혐의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임원을 지낸 최모 씨가 최근 구속된 가운데 경찰이 전직 연구원 등 30여 명으로 수사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중국이 우리 초격차 기술을 빼돌리는 데 제동을 걸지 못하면 중국에 급속히 추월당하고 있는 한국의 정보기술(IT) 산업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주 서울경찰청 산업기술안보수사대는 최 씨와 전직 삼성전자 수석연구원 오모 씨를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최 씨는 2021년 몰래 빼낸 삼성전자 공장 설계도를 이용해 중국 청두시 투자를 받아 현지에 ‘복제 공장’을 세운 혐의를 받고 있다. 삼성전자 등에서 일하던 반도체 인력 수십 명을 중국에 이직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700여 개의 20nm(나노미터)급 반도체 기술이 흘러 나갔다.

첨단 제품 및 기술·장비에 대한 미국 주도의 대중 수출통제가 강화될수록 한국의 기술을 훔치려는 중국의 시도는 집요해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 국가수사본부가 적발한 기술 유출 범죄는 12건으로 작년 동기 대비 50% 급증했다. 해외로 유출된 기술 중 3분의 1은 반도체 관련이었고, 12건 중 10건은 중국 기업과 관련돼 있었다. 국내 배터리 3사의 특허를 해외 기업이 침해한 건수가 1000건이 넘는데, 특허를 베낀 기업들 역시 대부분 중국 기업들이다.

한국 주력 산업에 대한 중국의 기술 탈취 시도는 전방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해양경찰청은 한국 조선업계가 글로벌 수주의 70%를 차지하는 액화천연가스(LNG)선 개발·제작 기술이 중국에 흘러 나간 정황을 발견해 수사 중이다. 한국이 글로벌 1위를 차지했다가 최근 중국에 빠르게 따라잡히고 있는 디스플레이 분야에선 대기업 연구원이 중국 기업에 유출할 목적으로 2018년부터 3년간 3400억 원의 가치가 있는 기술을 빼낸 일도 있었다.

기술이 유출된 분야에선 우리 기업들이 독차지했던 ‘세계 최초’, ‘세계 최고’ 타이틀이 하나둘씩 중국으로 넘어가고 있다. 핵심 산업 분야 기술 유출은 개별 기업의 손실에 그치지 않고 한국 경제의 미래 경쟁력을 뿌리부터 훼손한다. 국가안보 차원에서 해외 기술 유출 범죄를 발생 이전 단계에 예방하고 차단할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동아일보 사설

 

 09-12 제보자가 밝힌 ‘임성근 구명로비 공작’ 범죄 수준이다

이른바 ‘임성근 구명 로비’ 주장의 근거가 된 단체 채팅방(단톡방 ‘멋쟁해병’) 참가자들의 기자회견은, 구명 로비 자체에 대한 판단과는 별개로 더불어민주당의 ‘공작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민주당은 해병대원 순직 사건에 대한 수사 외압 의혹과 함께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의 구명 로비설을 제기하며 김건희 여사가 배후에 있는 것처럼 몰아갔다. 그런데 모두 해병대 출신인 단톡방 멤버 등은 11일 기자회견을 통해 “그것은 공작”이라면서 실상을 낱낱이 폭로했다.

구명 로비설의 단초가 된 해당 단톡방의 멤버 5명 중 민주당 당원인 김규현 변호사를 제외한 3명은 공익제보자 A 씨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A 씨는 “장경태 의원 측이 지난 7월 ‘임 전 사단장과 이종호 씨가 함께 찍은 사진이 있나’고 해서 ‘없다’고 하자 ‘그렇다면 임성근과 송호종 씨, 송 씨와 이종호가 (각각) 찍은 사진을 주면 딱 그림 나오겠는데’라고 말해서 그 사진을 제공했다”고 했다. 그는 이어 “다른 날짜 다른 장소 사진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했는데 (장 의원이) 7월 19일 국회 청문회에서 두 사진을 제시하며 (임성근과 이종호가) 같이 회식한 것처럼 왜곡했다. 그건 공작이다”고 했다. 사실이라면 허위사실공표와 명예훼손 등의 범죄를 구성하기에 충분하다.

뒤이은 주장도 충격적이다. A 씨는 “장 의원 측에 제공한 정보가 조금 잘못됐을 수 있으니 (구명 로비 아닌) 다른 가능성까지도 살펴보라고 했고 7월 17일 장 의원실을 찾아가 실체적 진실을 알 수 있는 녹취 파일을 들려줬는데 ‘이거 들을 필요 있나요? 저희는 답은 정해져 있는데’라고 하더라”고 했다. 이런 주장만으로도 수사 당국이 ‘제보 공작’ 자체에 대한 수사에 나서야 할 당위가 더 커졌다.

문화일보 사설

 

09-12 김정은 ‘2국가’ 자충수와 동독 교훈

고상두 연세대 명예교수

동독 공산당 ‘2민족 2국가’ 주장
인종적 특성 같아도 정체성 차이
브란트가 구현했지만 붕괴 일로

동족관계 아닌 적대적 두 국가
통일 부정이 되레 통일 앞당겨
남남갈등 극복해야 급변 대비

 우리는 통일을 할 자격이 있을까? 우리 민족은 남북으로 갈라졌고, 다시 남남으로 갈라지면서 해방 직후에 벌어졌던 좌우 대립의 악몽이 지금 되살아나고 있다.

 

과거 서독은 정부 수립 후 단독대표권을 주장하며 동독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다. 라인강의 기적으로 강대해진 1955년에는 동독을 인정하는 나라와는 외교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할슈타인원칙을 발표했다. 동독은 1민족 2국가론을 내세우며 독자적인 국가로 인정받기 위해 애썼다.

베를린장벽을 세운 스탈린주의자 발터 울브리히트 서기장은 더 나가 2민족론을 주장했다. 스탈린의 개념에 따르면 민족이란, 핏줄·언어·정치이념·경제체제·역사관을 공유하는데, 동서독 주민은 인종적 특성은 같으나 정체성이 다르다는 것이다. 종족으로는 하나의 민족(folk)이지만, 분단이 계속되면서 서로 다른 국민국가를 건설한 별개 민족(nation)이 됐다는 것이다.

그의 2민족론은 독일 분단을 영구화하려는 소련의 지지를 받았지만 동료 정치국원의 호응을 얻지 못했고, 1971년 그가 권좌에서 축출되면서 그 주장도 함께 퇴조했다.

동독 정권이 갈망하던 2국가론은 서독의 빌리 브란트 정부에 의해 구현됐다. 당시 야당이던 기민당은 동독을 국가로 인정한 신동방정책에 위헌소송을 내며 반대했지만, 동독을 외국이 아닌 특수관계로 상정한 사민당의 정책은 합헌 판결을 받았다.

동서독 2국가론은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주어, 1973년 박정희 정부는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을 제안했다. 북한은 이를 한반도 영구 분단 책동이라며, 고려연방공화국으로 가입해야 한다는 한반도 1국가론을 고집했다. 박정희의 6·23 평화통일선언은 20년이 지나 노태우 정부에서 빛을 보았다. 한강의 기적으로 부상한 한국은 북방정책을 추진했고, 중국과 소련으로부터 남한의 유엔 가입을 반대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자, 남한의 단독 가입을 우려한 북한은 1991년 앞질러 가입 신청을 했다.

그해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고,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개최된 고위급회담 결과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되면서, 2국가의 평화공존을 통해 1민족으로 간다는 한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의 여건이 마련됐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김대중 정부가 햇볕정책을 추진했다. 보수 정부가 화해의 길을 닦고, 진보 정부가 협력을 위해 달린 것이다. 북한의 핵 개발이 없었다면, 우리도 독일처럼 화해-협력-통일이라는 방식으로 남북 분단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최근 김정은이 남북한은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라는 2민족론을 내세우며 통일 지우기에 나섰다. 그의 통일 기피증은 통일을 앞당길 것이다. 2민족론은 북한 정권의 정당성을 침식시키는 자충수이기 때문이다. 북한 체제의 존재 이유는 혁명이다. 주민들은 혁명의 깃발을 바라보며 희생을 감수한다. 많은 북한 남성의 이름에 ‘강’ ‘철’ ‘혁’자가 들어가 있다. 강철 같은 의지로 혁명을 완수하자는 것이다.

사회혁명의 이정표는 자본주의-사회주의-공산주의이다. 그런데 김일성 수령이 약속한 ‘이밥에 고깃국을 먹는다’는 사회주의 목표조차 달성하지 못하고 경제는 수렁에 빠져 있다. 북한이 강조하는 또 다른 과업은 통일혁명이다. 그런데 김정은은 2민족론을 내세우며 남조선 해방을 포기했다.

이제 북한 주민은 무엇을 위해 혁명정권을 지지해야 하는가? 그들은 민족·통일·혁명 등 주요 가치를 걷어차 버리는 김정은 노선에 어리둥절할 것이다.

1민족을 배신한 북한의 가치 없는 정권이 붕괴 일로를 걷고 있는 상황에, 우리 사회는 통일 준비를 외면하고 분열하고 있다. 어떻게 남남갈등을 극복할 것인가?

국민이 원하는 것은 초당적 대북정책이다.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인내심을 가지고 대북 제재를 유지한다. 하지만 북한이 신뢰할 수 있는 비핵화 의지를 보이면 적극 대화에 나서 점진적이든 일괄타결이든 타협 가능한 조치에 합의한다. 그 과정에서 대가 없는 퍼주기는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평화 담론과 통일 담론은 똑같이 중요하다. 우선순위를 둘러싸고 소모적인 논쟁을 하지 말고, 동시 구현이 가능한 평화통일 담론을 개발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문화일보

 

09.14 김정은 믿자던 사람들 우라늄 공장 보곤 또 무슨 궤변 할까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3일 김정은 당 총비서가 "핵무기연구소와 무기급 핵물질 생산기지를 현지 지도하며 핵탄 생산 및 현행 핵물질 생산 실태를 료해(점검)하고 무기급 핵물질 생산을 늘리기 위한 전망계획에 대한 중요 과업을 제시했다"라고 보도했다. /노동신문 뉴스1

 

북한이 플루토늄과 함께 핵무기를 만드는 또 다른 물질인 고농축우라늄(HEU) 제조 시설을 13일 공개했다. HEU는 플루토늄처럼 원자로나 재처리 시설 같은 대규모 시설이 필요 없기 때문에 은밀한 개발이 가능하다. 북한은 그동안 대미(對美) 협상 때 플루토늄은 협상 테이블에 올려놨지만, 우라늄 핵물질에 대해선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랬던 북한이 HEU 핵 시설을 처음 공개한 것은 미국의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전략 때문이다. 자신들은 이미 공개된 플루토늄 핵무기뿐 아니라 HEU를 이용한 핵무기도 다수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미국과는 비핵화 협상이 아니라 핵 보유 국가 간의 군축협상을 하자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비핵화 전략은 실패했고,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면 과거 같은 톱다운 방식의 ‘거래’를 하자는 의미도 있다.

 

북한에 HEU는 숨겨둔 카드 같은 존재였다. 2002년 처음 의혹이 제기된 HEU는 ‘2차 북핵 위기’의 원인이었고, 2019년 하노이 ‘노딜’의 핵심 이유도 HEU였다. 김정은은 영변 핵 시설과 대북 제재 해제를 맞교환하자고 했고 이걸로 타결 직전까지 갔다. 그러나 미국은 영변 이외의 핵 시설까지 폐기를 요구했고 김정은이 이를 거부하며 ‘노딜’로 끝났다. 그 시설이 바로 강선 등에 있는 HEU 시설인데 이번에 북한이 장소는 숨긴 채 내부 시설만 공개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제재 해제 같은) 미국의 상응 조치가 있다면 비핵화하겠다는 김정은의 약속은 진심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문 전 대통령 말대로 김정은 말만 믿고 미·북이 영변 핵 시설과 대북 제재를 맞교환했다면 북한은 숨겨둔 우라늄 시설에서 만든 핵물질로 비밀리에 핵무기를 만들었을 것이다. 비핵화 협상이 아니라 국제적 사기 쇼가 될 뻔했다.

 

우라늄 농축에 필요한 원심분리기 제조에는 대북 제재 대상인 특수 알루미늄 등이 필요한데,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의 묵인 또는 협조 속에 이런 품목을 손에 넣고 핵농축 시설을 만들었다. 안보리 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는 이젠 대놓고 대북 제재에 손을 놓고 있다. 김정은은 우라늄 농축 공장에서 “이곳은 보기만 해도 힘이 난다. 전술핵무기에 필요한 핵물질 생산에 총력을 집중하라”고 했다. 전술핵무기는 소형 핵무기로 한국만을 겨냥한 것이다.

 

북이 여기까지 오기까지 한국 정치인들의 도움이 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북이 핵을 개발할 리가 없다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북은 핵 개발할 능력이 없다고 하다가 핵실험을 하자 북핵은 방어용이라고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북핵을 그대로 두고 제재를 해제해주자고 했다. 이들은 북이 우라늄 공장을 공개해도 또 무슨 궤변을 만들어낼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9.14 [단독] "국정원, '3대 간첩단' 연계 100명 포착하고도 수사 못해"

수사 지휘한 前간부
"대공수사권 폐지되며 내사 중단"

 국가정보원이 2022년 11월부터 민노총·창원·제주 간첩단 등 ‘3대 간첩단’ 사건 수사를 본격화하면서 북한 연계 혐의자 100여 명을 포착하고도 수사를 진행하지 못하고 내사 대상자로만 분류돼 있는 것으로 13일 전해졌다. 이는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와 경찰 이관의 영향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를 담은 개정 국정원법은 2020년 12월 13일 통과됐고, 올 1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3대 간첩단 사건에 대한 국정원의 내사는 창원은 2016년, 제주·민노총 사건은 2017년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2020년 국정원 대공수사국 수사단장으로 내사를 지휘했던 전직 국정원 간부 하동환씨는 본지에 “민노총·창원·제주 간첩단 다 합쳐 북한과 연계된 혐의자가 약 100명에 달했다”며 “3개 간첩단과 잦은 통화를 하거나 접촉하는 등 북한에 포섭 대상으로 보고된 인물들인데 대공 수사권 폐지로 이들에 대한 내사는 진행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대공 수사 전문가인 하씨는 2022년 3월 국정원 대구지부장을 끝으로 퇴임했다.

 

하씨에 따르면, 당시 민노총·창원·제주 간첩단 사건으로 국정원 수사국 내사부에 등재된 인원은 각각 15명, 40명, 45명 정도라고 한다. 내사 대상자 약 100명 가운데 국정원이 간첩단의 정식 조직원으로 의심한 인물은 40여 명이라고 한다. 하지만 실제 검찰이 기소했던 인원은 민노총·창원·제주 간첩단에서 각각 4명, 4명, 3명으로 총 11명이었다. 하씨는 “올해부터 대공수사권이 (경찰로) 넘어가니 추가 내사 대상자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지 못한 채 일부에 대해서만 2022년 11월 압수 수색하고 공개 수사로 전환한 것”이라고 했다.

 

하씨는 “세 간첩단 모두 국내에서 5년 이상 암약했다”며 “최소 2~3년의 내사 기간만 줬더라면 국정원은 충분한 증거를 확보해 각 간첩단 조직 실체를 규명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국정원이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이들에 대한 간첩 활동 여부를 규명해야 했지만 당시 명백한 증거가 확보된 자들만 피의자로 특정해 수사에 착수할 수밖에 없었다”며 “국정원 수사권 폐지에 따른 수사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라고 했다.

 

경찰이 대공수사권을 넘겨받으면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안보수사국 산하에는 안보수사단이 설치됐다. 하지만 국정원이 세 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내사 대상자로 분류한 인사들의 명단은 경찰에 제공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안보 전문가들은 “국정원으로서는 지금 경찰의 대공 수사력으로는 간첩단 수사를 감당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보안 유지도 안 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했다.

 

현재 재판을 받는 민노총·창원·제주 간첩단 사건의 피고인들은 베트남, 캄보디아 등 대부분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선했다. 또 ‘사이버 드보크’(이메일 계정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공유해 교신)나 ‘스테가노그라피’(기밀 정보를 이미지 파일이나 MP3 파일 등에 암호화해 숨기는 기술) 등 고도화된 암호 프로그램을 통신 수단으로 활용해 교신했다. 이 때문에 내사와 증거 수집에는 현지어에 능통하거나 IT 전문성이 높은 수사관들이 투입됐다.

 

전문가들은 “간첩 수사를 제대로 하려면 국내 내사와 수사, 해외 내사, 과학 수사, 북한 정보 등이 종합적으로 결합해야 한다”며 “시일이 걸리더라도 경찰이 국정원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의 영향을 경험했던 하동환씨는 “국정원에 63년간 축적된 간첩 수사 역량을 경찰이 단기간에 전수받는 건 불가능할 것”이라며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복원이 어렵다면 미국의 FBI처럼 별도의 간첩 수사 전담 기관을 창설하는 것이 바람직한 대안”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김민서 기자

 

09.19 간첩 혐의자 100명 적발하고도 수사 못했다니

'▲창원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경남진보연합 관계자들이 지난 2023년 1월 3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국가정보원이 2년 전 민노총·창원·제주 간첩단 등 3개 간첩단 사건을 수사하면서 북한과 연계된 혐의자 100여 명을 포착하고도 수사를 진행하지 못했다고 한다.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을 경찰로 넘기는 국정원법이 올 1월부터 시행된다는 것을 감안해 2022년 11월 당시 명백한 증거가 있는 피의자만 수사해 11명을 기소하고, 내사 단계인 100여 명은 수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시 수사를 지휘했던 전직 국정원 간부는 “2~3년의 내사 기간만 더 있었으면 간첩단 조직 실체를 규명했을 것”이라고 했다. 대공 수사권이 이관되는 바람에 간첩단의 뿌리를 뽑지 못했다는 것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국정원이 혐의자 100여 명의 명단을 경찰에도 넘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찰은 안보수사단을 신설해 대공 수사 조직을 만들었지만, 국정원은 경험이 부족한 경찰의 수사력으로는 간첩단 수사를 감당하기 어렵고 보안 유지도 어렵다고 판단해 명단을 넘기지 않았다고 한다. 이 100여 명은 간첩단과 자주 접촉하고 북에 포섭 대상으로 보고된 인물들이다. 그런 간첩 혐의자들이 지금 아무 감시도 받지 않고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기막힌 상황을 만든 것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다. 문 정권은 2020년 12월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을 경찰로 넘기는 국정원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했다. 세계 각국이 정보기관 권한을 강화하는 속에서도 한국만 거꾸로 국정원의 핵심 기능을 무력화했다. 운동권 출신이 중심이 된 민주당 의원 11명은 안보 범죄에 대한 국정원의 조사권까지 박탈하는 법안도 제출했다. 국정원의 대공 기능을 사실상 무장해제시키겠다는 것이다. 반국가 세력으로부터 위협 받고 있는 나라가 이래도 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간첩 사건 수사 노하우와 해외 방첩망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3개 간첩단 사건 피의자들과 북한 공작원의 접선은 주로 해외에서 이뤄졌고, 국정원의 수사는 7~8년 전부터 시작됐다. 이런 수사가 가능했던 것은 국정원 수사관들이 오랜 기간 같은 자리에서 근무하며 쌓아온 전문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경찰은 아무리 수사 의지가 있어도 잦은 인사이동으로 장기간 수사가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국정원법을 다시 개정해 하루라도 시급히 국정원의 수사 기능을 회복시켜야 한다. 민주당 반대로 원상 회복이 어렵다면 국정원과 경찰의 대공 수사 인력을 합쳐 별도의 안보수사청을 만드는 방안이라도 강구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9-19 차원 바뀌는 北核, 더 절박한 초당 대응

남성욱 고려대 교수, 前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필자가 공부했던 미국 중서부 미주리주의 닉네임은 ‘쇼우미 스테이트(Show Me State)’이다. 서부개척 시대에 미시시피강을 건너려는 이들에게 뱃사공이 배를 타기 전에 돈을 먼저 보여 달라고 말해서라는 속설이 있다. 또, 백인들이 인디언들과 거래할 때 자주 물건을 속이자 인디언들이 먼저 물건을 보여 줘야 거래가 가능하다고 주장한 데서 비롯됐다는 설도 있다. 이 닉네임을 거론한 것은 북한 김정은의 전격적인 핵시설 공개가 물건을 보여주고 진짜 거래를 하겠다는 행태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미 대선 후보 TV토론의 시청자 중에는 평양의 김정은 지도부도 있다. 누구보다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당선을 기대하며 토론을 시청했겠지만 실망이 컸을 것이다. 북핵(北核)이 토론의 주제가 되지 못했고, 특히 카멀라 해리스 후보가 자신을 비하하는 상황에서 김정은은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김정은은 13일 평양 의사당 서쪽의 강선 지역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핵무기연구소와 무기급 우라늄 농축기지를 둘러보면서 ‘기하급수적인’ 핵무기 생산을 촉구했다. 잘 정비된 공장에 수천 개의 고농축우라늄(HEU) 생산용 원심분리기가 진열된 모습은 북핵이 인공지능(AI)에 의한 딥페이크가 아니라 실존의 문제임을 생생히 보여준다.

지난 2004년 파키스탄의 핵 과학자 압두르 칸 박사가 우라늄 원심분리기 기술의 설계도와 부품을 전해줬으나, 미 중앙정보국(CIA) 등 서방 정보 당국은 현물 추적에 실패했다. 기존 영변의 핵 시설이 단순 철강 제조시설이라면 강선은 첨단 반도체 공장 수준으로, 규모와 장치가 발전된 모습이었다. 김정은이 “보기만 해도 힘이 난다”고 할 정도이니 대량생산 체계를 갖춘 듯하다. 강선 원심분리기는 2m 크기의 파키스탄 모델보다 다소 작아 개량형으로 추정된다. 연간 10여 개의 핵폭탄 제조가 가능해 소형화·경량화에 성공한 것이다. 기존 50개의 핵무기에다 표준화된 방식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생산할 경우 북한은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등 5개 공식 핵무기 보유국 다음으로 핵무기를 많이 보유한 국가가 될 것이다.

김정은이 특급 비밀인 시설 내부를 전격 공개한 것은, 미 대선을 앞두고 핵무력을 과시해 차후 대미 협상 과정에서 몸값을 올리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 진의가 무엇이든 가상으로만 존재하던 핵무기가 땅으로 내려왔다. 남은 미 대선 기간 7차 핵실험 등 각종 도발 이벤트를 살라미 전술로 구사할 것이다.

핵 빅 이벤트를 전개한 김정은은 13일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전 국방장관)를 접견하고 전략적동반자로 협력을 확대해 나갈 것을 확인했다. 첨단 우주항공 기술을 가진 러시아의 지원으로 북핵 위협은 글로벌 차원으로 확대될 것이다. 내년으로 예상되는 김정은의 러시아 방문은 북핵의 새 전선이 형성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핵 시설을 공개한 지 닷새 만인 18일 평남 개천 일대에서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을 쏘아댄 북한이다. 이제 북한의 핵 능력을 있는 그대로 평가해야 한다. 실물을 봤으니 북핵 위협에 대한 여야 정치권의 초당적이고 객관적인 합의가 중요하다. 그래야 제대로 된 대응책이 마련된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현물을 보고도 믿지 않는다면 답은 없다.

 

문화일보 

 

09-20 北 핵농축시설 공개 저의와 3大 대책

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교수

북한이 지난 13일 조선중앙통신 등 내부 언론을 통해 우라늄 농축시설을 전격적으로 공개했다.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전략적 다음 행보를 위한 포석’ 등 북한의 저의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인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농축시설 공개 시점과 형식 등으로 미뤄 볼 때 북한 주민의 불만 잠재우기가 주목적인 듯하다. 이번 여름 북한은 평안북도와 자강도 등지에서 큰 수해가 났다. 중장비가 부족해서 수해 복구에 어려움이 많다. 수해 복구가 더뎌지면서 이재민과 주민들 사이에서 불만이 커져 김정은 정권이 다급해진 것이다. 우리나라와 미국이 농축시설의 규모 등 민감한 정보를 유추할 수 있는 사진을 북한 스스로 공개한 데서 알 수 있다.

농축시설은 우방에도 잘 보여주지 않는 민감한 시설이다. 그러니 농축시설 사진을 공개하지 않으면 안 될 절박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김정은으로서는 핵무력을 완성하기 위해 엄청난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수해 복구 등 민생에 소홀할 수밖에 없으니 참고 견뎌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다.

이번에 공개된 농축시설 사진으로부터 두 가지 사실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우선, 북한의 핵능력이 크게 고도화됐다는 점이다. 사진은 고농축우라늄(HEU)을 대량생산할 수 있는 최신 원심분리 농축시설을 보여준다. 지난해 3월 28일 북한은 핵탄두 규격화를 주장하며 전술핵탄두 ‘화산-31’ 사진을 공개한 바 있다. 이들 사실로부터, 북한이 규격화된 핵탄두 설계와 HEU를 이용하는 핵무기 대량생산 체제를 갖췄음을 추정할 수 있다.

또 하나, 농축시설이 전력 공급시설 근처에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북한이 공개한 원심분리 농축시설은 전압과 주파수 변동이 거의 없는 고품질 전력의 안정적인 공급이 필수적이다. 또, 농축시설을 운용하기 위해서는 원료 물질인 육불화우라늄(UF6) 공급과 유지·보수용 부품의 적기 조달도 필수다. 평양 인근 강선 지역이 유력한 농축시설 부지로 지목되는 이유들이다.

이처럼 커져가는 북핵(北核) 위협에 대비한 다양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첫째, 대북 전략물자 수출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 농축시설 전력 공급과 운용에 필요한 부품 등 전략물자가 북한에 반입되지 못하도록 관련국과 협력해 국제 수출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 특히, 러시아와 중국 등 제3국을 통한 우회 반입이 되지 않도록 세심한 외교가 필요하다.

둘째, 미국의 전술핵무기 재배치를 추진해야 한다. 북한이 핵무기 대량생산 체제를 갖춤에 따라 선제 핵 사용에 대한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다. 이에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실질적인 대응 수단 마련이 절실하다. 북한의 핵 개발로 ‘한반도 비핵화선언’이 휴지조각 된 지 오래다. 핵무기 운용 비용 전액을 부담하더라도, 미국의 전술핵무기 재배치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

셋째, 우주 전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 우리가 자체 핵무장하기에는 현실적 제약이 여럿이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전제하는 원전 수출과 핵무장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은 형용모순이며, 원전 수출에도 장애가 된다. 따라서 국제규범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우리 안보를 지킬 수 있는 전략무기 개발이 필요하다. 우주에서 북한을 상시 감시하면서 도발 징후에 즉시 대응하는 우주 무기가 그것이다. 우리의 기술 역량은 충분한 만큼 정부는 마음만 먹으면 된다.

 

문화일보

 

09-20 복합전쟁 실상 보여준 삐삐테러 공작

남주홍 前 국정원 1차장, 자유총연맹 고문

최근 이스라엘 군 정보부대 8200과 정보기관 모사드가 주도해 아랍 무장단체 헤즈볼라를 겨냥한 폭탄삐삐와 무전기 폭탄 공격이 레바논에서 광범위하게 발생해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이 공격으로 민간인 등 30여 명이 사망하고 3000여 명이 다쳐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도 공개적으로 힐난하며 유엔안보리를 소집했다.


지난해 10월 7일 무장단체 하마스의 기습공격 이후 예방전 차원의 선제적 타격인지 모르겠지만, 무차별적 동시다발 테러작전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행위다. 이미 가자지구에서 난민 희생자가 2만5000명이 넘은 상태에서 이스라엘이 갈수록 확장적 전략으로 치닫고 있어 국제사회의 불만과 중동대란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그러나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말했듯이 중동전은 인공지능(AI)이 주도하는 원격전을 더해가는, 새로운 형태의 복합전쟁시대(a new era of war)를 예고하고 있다. 뚜렷한 승패 없이 피의 보복 악순환만 유발하는 전선 없는 전쟁이다. 또, 이 싸움에서 국제 여론상 시간이 이스라엘 편이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모사드가 동유럽 공작 거점에 위장 업체를 차려 놓고 오랫동안 비밀작전을 준비해온 것 같으나, 과거와 달리 특정 요인 암살이나 은폐 살상이 아니라 일종의 국가테러를 전면적으로 감행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그래서 지난 7월 말 이란 수도 한복판에서 하마스 최고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를 암살해 이란의 전쟁 불사 보복 위협까지 자초했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전략적 도박이다. 이러한 중동전 상황은 결코 우리 안보와 무관하지 않다. 러시아와 사실상 군사동맹을 맺어 첨단 공격용 무기를 주고받는 북한 지도부의 최근 동향은 이를 잘 말해준다.

지난 몇 달 동안 시도 때도 없이 우리 머리 위로 오물풍선을 날리고, 수십 발의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을 발사하면서 이제 핵무력 선제사용으로 남조선을 무자비하게 굴복시키겠다고 호언장담하는 김정은이 작금 우크라이나전과 중동전을 어떻게 평가할지 예측하긴 어렵지 않다. 오물풍선의 기폭장치를 폭탄형 삐삐로 바꾸면서 살상행위를 유발함과 동시에 탐지하기 어려운 극소량의 바이러스형 유해물질이 흘러나오거나, 마구 쏴대는 단거리미사일이 오발로 우리 영역에 탄착된다면 예측 불가의 사태가 얼마든 일어날 수 있다. 더욱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북한 내부의 불안정성은 11·5 미국 대선을 앞두고 고도의 기만전술과 베냐민 네타냐후 식 도박을 김정은에게 충동할지도 모른다.

안보는 이렇듯 최악의 경우를 먼저 상정하는 최선의 위기관리 전략이다. 그래서 앞에서 정보가 이끌고 뒤에서 홍보가 밀어줘야 안보가 중심을 잡고 AI와 딥페이크 가짜뉴스와 반국가세력의 음모 선전선동이 판을 치는 사회관계망(SNS) 시대에 즉시 대응할 수 있다.

지금 진짜 적(敵)은 우리 내부에 있다. 군 정보사령부 요원들이 연이어 비밀 자료를 적에 넘기는 간첩 행위를 해도 제대로 적발하지 못했고, 직전 정권이 국가정보원의 대공 수사권을 폐지함으로써 기존 간첩단을 수사할 능력조차 없는 이 극단적 안보 자해 상황을 도대체 언제까지 방치해야 하는가. 참으로 노심초사하지 않을 수 없다.

 

문화일보

 

09-23 ‘오물풍선’에 공항 이착륙도 중단… 軍, 요격 등 공세대응 경고

▲북한이 부양한 대남 쓰레기 풍선이 23일 오전 서울 중구 시내 상공에서 터지고 있다. 뉴시스

 

■ 北, 22차례 5500개 살포

기폭장치 등 北도발수위 높아져
민간피해 급증해 대응방식 전환

생화학 등 ‘레드라인’ 넘을 우려
레이저발사·원점타격까지 검토

“北, 풍선 살포에 5억원 넘게 써
쌀 970t 주민에게 나눠줄 금액”

 

북한이 지난 5월 이후 살포한 대남 쓰레기 풍선이 5500여 개에 달하고 이로 인한 국민 피해가 커지자 군 내부에서 원점 타격 등 군사 대응 수위를 대폭 끌어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우리 군은 그간 풍선이 낙하하면 수거하는 방식을 택했으나, 최근 도발이 위협적으로 변하면서 풍선 살포 행위를 원천 차단하는 방안까지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쓰레기 풍선에 기폭 장치나 발열 타이머를 부착하는 등 도발 수위를 높이며 ‘남남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23일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이 지난 5월 28일부터 이날까지 남쪽으로 날린 쓰레기 풍선은 5500여 개로 집계됐다. 북측은 전날에도 쓰레기 풍선을 날려 보내 이날 오전까지 총 120여 개가 식별됐다고 군은 밝혔다. 특히 대통령실 인근인 서울 용산구 합참 청사 상공에서도 풍선이 식별됐다. 합참 관계자는 “현재까지 경기 및 서울 지역에서 30여 개의 낙하물이 확인됐다”며 “확인된 내용물은 종이류, 비닐, 플라스틱병 등 생활 쓰레기이며 분석 결과 안전에 위해가 되는 물질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북한은 지난 5월 28일 남측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에 ‘맞대응’ 성격으로 쓰레기 풍선을 날려 보낸 이후 지금까지 22차례 풍선을 부양했다. 특히 이달 들어서만 10여 차례 쓰레기 풍선을 날리며 더 위협적이고 잦아졌다. 주 내용물은 종이, 비닐, 플라스틱병 등 생활 쓰레기가 대부분이고 유해 물질은 없었다. 다만 북한이 기폭장치 혹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비닐을 태워 적재물이 떨어지도록 하는 발열 타이머 장치까지 풍선에 부착하면서 인명 및 재산 피해와 산불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군 당국은 북한 쓰레기 풍선 개당 비용을 약 10만 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올해 북한이 쓰레기 풍선을 살포하는 데만 약 5억5000만 원을 썼다는 계산이 나온다. 군 관계자는 “이 돈이면 쌀 970여t을 사서 북한 주민들에게 나눠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 군은 쓰레기 풍선 위협이 노골화하면서 풍선 부양 지점을 원점 타격하는 방안 등 물리적 대응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군은 지난 7월 남북 접경 지역에서 대북 확성기를 전면 재개한 바 있다. 군 관계자는 “생화학·화생방 물질 등의 장치나 도구를 탑재해 우리 국민의 생명 등 안전과 재산에 심각한 위해가 가해지는 경우 ‘레드 라인’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풍선 부양 지점을 원점 타격하거나 대북 풍선을 날려 보내는 방법도 옵션 중 하나로 고려될 수 있다”고 전했다. 군은 레이저 등 대공 요격무기 배치도 검토 중이다. 합참은 다만 일각의 ‘공중 격추’ 가능성에 대해선 “예상치 못한 위해 물질이 확산될 경우 우리 국민의 안전에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우리 군은 풍선 부양 원점에서부터 실시간 추적·감시하면서 낙하 즉시 수거하고 있다”고 했다.
김규태 기자 kgt90@munhwa.com

 
 

09-23 암구호 담보로 사채 쓴 군 간부들… 기강 얼마나 무너졌으면

 
 

군 간부 여러 명이 민간인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리면서 3급 군사비밀인 암구호(暗口號)를 유출한 정황이 드러나 군경 합동 수사를 받고 있다. 전북경찰청과 국군방첩사령부는 최근 20, 30대 군 간부들이 사채업자에게 암구호를 누설한 사실을 확인하고 군사기밀보호법(군기법) 위반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 올 초 가상화폐 거래를 위해 돈을 빌리면서 암구호를 누설한 한 장교의 군기법 위반 사건 이후 수사가 확대됐다고 한다.

아군과 적군을 식별하기 위해 정해 놓은 문답인 암구호가 사채업자로부터 돈을 빌릴 때 담보로 잡히는 부동산이나 차량 대신 이용됐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암구호는 초병이 문어(問語)를 말하면 상대가 답어(答語)를 외치는 피아 식별 암호로서 북한군이나 간첩에게 넘어갈 경우 군부대 침입에 곧바로 사용될 수 있는 중요 비밀이다. 그간 병사들이 카카오톡 단체방에 암구호를 공유하거나 외부의 장난 전화에 암구호가 유출되는 사건이 일어나 줄줄이 징계 등 처벌을 받은 일도 있었다.

그처럼 보안성이 강조되는 암구호가 일부 군 간부에겐 돈을 빌리기 위해 군인 신분을 확인하고 담보 대신 제공하는 신용정보가 됐다. 최초에 어느 쪽이 먼저 암구호 공유를 제안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지만 군인으로선 자신들의 지위까지 위태로울 수 있는 치명적 정보를 내놓으며 신용을 얻고 사채업자로서도 제때 채무를 상환하지 않으면 협박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에 대한 이해가 맞아떨어진 셈이다. 불법 사채업자들이 채무자로부터 지인 연락처 수백 개를 담보로 잡아 온라인에 연락처를 뿌리겠다고 협박한 사례와도 비슷하다.

 

훈련소 때부터 배우는 군 보안의 기본 중 기본인 암구호가 군인들의 빚 담보로 전락한 현실은 군의 기강이 얼마나 무너졌는지 확인시켜 준다. 국군정보사령부 소속 군무원이 북한 관련 첩보 업무에 종사하는 블랙요원의 신분 등 개인정보를 중국인에게 넘긴 사실이 드러나 우리 군의 대북 첩보망이 궤멸 위기에 처했다는 경고음이 나온 게 불과 얼마 전 일이다. 잇단 비밀유출 보안 사고로 드러난 군의 총체적 기강 해이에 상응하는 지휘부의 고강도 쇄신책 마련이 시급하다.

동아일보 사설  

 
 

09.24 잠수함 전문 부사관 절반이 떠나, 이래서 군이 유지되겠나

▲해군은 지난 2020년 7월 12일 제주 해군기지에서 209급 잠수함의 수중작전과 승조원들의 생활을 언론에 처음 공개했다. 해군 잠수함의 수중작전과 승조원 생활상이 공개된 것은 잠수함 운용 25년 만에 처음이라고 했다. 어뢰 발사와 함내 화재 진압, 전투장면 등이 생동감 있게 재연됐다. 사진은 한 해군이 침대 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 /해군

 

최근 5년간 양성된 잠수함 승조원의 절반 이상이 잠수함을 떠난 것으로 집계됐다. 해군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이후 해군에서 키운 잠수함 승조원 750명 중 421명(56%)이 전역, 보직 변경 등으로 더는 잠수함 근무를 하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힘든 근무 환경에 비해 열악한 처우 때문이다. 잠수함은 20~30평 지하 공간에 40명이 공동 생활하는 것과 같은 환경이다. 침대는 겨우 누울 수 있다. 물이 부족해 샤워는 불가능하고 누수(漏水) 확인이 중요하기 때문에 얼굴만 씻어도 물방울까지 닦아야 한다. 화장실 사용도 물 내리는 소리를 적이 탐지할까 봐 제한된다. 한 번 출항하면 3~4주간 신선한 공기와 햇볕을 쐬기도 어렵다. 그런데 월급은 다른 보직에 비해 70여 만원 더 받는 정도다.

 

잠수함 승조원은 모두 장교, 부사관이고 특히 80% 이상이 부사관이다. 교육과정만 1년이 넘는 전문직이기 때문에 일반병은 잠수함 근무를 할 수가 없다. 어뢰·음파탐지 등 핵심 전투 장비를 전부 부사관이 운용한다. 잠수함뿐 아니다. 1조원짜리 이지스함, 1000억원짜리 스텔스기, 고위력 현무 미사일도 실제 운용과 정비를 담당하는 부사관이 없으면 모두 쇳덩이에 불과하다. 육·해·공군이 첨단으로 무장할수록 부사관 역할은 중요해진다.

천안함 용사 46명 중 30명이 부사관이었다. 앞으로도 실제 전투 상황에서 목숨 걸고 나서는 군인은 부사관일 것이다. 그런 부사관이 낮은 보수와 장래 불안 때문에 군을 빠르게 떠나는 것은 보통 심각한 국가적 문제가 아니다. 중사 이하 전역 희망자가 2019년에 비해 두배 늘었다. 작년부터 선발 정원도 못 채우고 있다.

 

내년 병장 월급이 200만원을 넘으면서 실수령액에서 병장보다 적게 받는 초급 부사관이 나올 것이란 우려도 있다. 국방 개혁은 ‘병사 월급 200만원’ ‘병 복무 단축’ 같은 포퓰리즘이 아니라 군을 실제 움직이는 부사관의 처우를 개선하고 사기를 높이는 것이 핵심이고 우선이다.

조선일보 사설 

 

09-24 북풍·낙엽 계절, 더 커질 北 풍선 위험성

권태오 前 유엔사 군사정전위 수석대표, 예비역 육군 중장

지난 5월 28일부터 시작된 북한의 오물풍선 공격이 23일까지 22차례에 걸쳐 5500개나 된다. 처음에는 우리 탈북자 단체에서 보내는 대북 전단에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그 방법이 너무나 유치하고 치졸해 단기간에 그칠 것으로 생각했으나 오히려 악성 진화하고 있다.

그간 오물 덩어리가 가득 찬 풍선으로 인해 큰 피해도 발생했다. 풍선이 터지면서 낙하하는 충격으로 주차된 차량과 가옥이 파손됐고, 공장 옥상에 떨어진 풍선에서는 타이머 장치가 발화하며 대형 화재를 유발하기도 했다. 서울 곳곳, 심지어 용산의 대통령실 경내에까지 풍선이 떨어질 정도였다. 대형 사고가 발생할 위험천만한 상황도 있었는데 23일 오전에는 인천공항 상공에 날아온 풍선으로 인해 여객기 이착륙이 중지되는 사태까지 있었다. 그러나 이런 피해는 시작일 뿐이다. 더 방치하다간 대규모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첫째, 계절적으로 북풍이 부는 겨울이 다가오고 있어 북한의 풍선 도발이 더욱 기승을 부릴 수 있다. 지금은 우리가 대북 전단을 날리던 강화도나 파주를 표적 지역으로 삼아 풍선을 날림으로써 경기 북부와 서울만 피해를 보지만, 휴전선 전역에서 살포한다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도발이 된다.

둘째, 내용물에 현재와 같은 오물뿐만 아니라 생화학 작용제를 혼입할 경우이다. 아직은 이런 물질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치명적 작용제가 실려 날아온다면 대규모 인명 살상을 유발할 수 있다. 북한은 5000t 이상의 화학무기와 탄저균 등 다양한 생물학 작용제를 보유하고 있다.

셋째, 풍선에 장착된 타이머로 인해 대형 산불이 발생할 수 있다. 이미 여러 차례 화재를 일으킨 적이 있지만, 이 타이머가 낙엽이 쌓인 야산에 떨어져 발화하고 화재로 이어진다면 원인 미상의 대규모 산불이 될 수 있다. 2022년 동해안에서 동시다발로 발생한 산불은 울진·삼척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야 할 정도의 큰 피해를 일으켰다.

정부는 이러한 북한의 풍선 공격에 대응해 지난 6월 4일 자로 ‘9·19 남북 군사합의’의 효력 정지를 선언하고, 휴전선에서의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는 등 강력한 조치를 했다. 그러나 북한은 아랑곳하지 않고 풍선 도발을 계속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우라늄 농축시설을 공개하고 초대형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또 다른 분야에서의 도발도 시도했다. 우리의 조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으로, 북한 정권을 다루면서 채찍 사용을 결정했다면 아주 강력한 채찍이어야 한다는 교훈을 상기시킨다.

정부는 하루 800여 대의 항공기가 이착륙하며 20만 명의 여객이 이용하는 인천국제공항의 안전을 위협하는 북한의 무분별한 행위를 유엔 산하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즉시 통보하고 국제사회에 환기해야 한다. 군에서는 북한의 오물풍선 발진 지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언제든 그 원점을 제거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수집된 오물도 모아서 판문점을 통해 돌려보내야 한다. 만천하에 이들의 유치한 소행을 알리는 조치를 해야 한다.

북한이 대남 풍선 공격을 계속한다면 종국적으로는 커다란 손실을 보게 될 것이며, 국제적으로도 더욱 비난받게 될 것임을 분명하게 일깨워줘야 한다.

문화일보 

 

09-25 ‘통일 포기, 두 국가’는 反헌법 선동

박동순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안보교수, 한성대 국방과학대학원 안보정책학과장

최근 통일과 관련해 한 정치권 인사의 주장이 귀를 의심케 했다. 지난 19일 열린 9·19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통일, 하지 맙시다”라고 외쳤다. 그는 이어서 대한민국 영토 조항인 헌법 제3조를 개정하자고 했다. 또한, 남북한 관계를 ‘별개의 국가관계’로 규정하는 ‘2국가론’을 수용하자고 했다. 이를 요약하면 ‘지금은 통일을 지우고 평화만 추구하자는 것’이며, 이를 위해 헌법 영토 조항의 삭제(또는 수정), 모든 제도와 정책에서 통일 지우기, 국가보안법 폐지, 통일부 정리 등을 하자는 말이다.

이런 측면에서 임 전 실장의 주장은 무책임한 정치 선동이다. 그는 1980년대 말 학생운동 대표(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했고, 직전 문재인 정권의 대통령비서실장으로 2018년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이라는 중책을 수행했던 인물이다. 그래서 그의 이번 발언은 더더욱 신중하지 못하고, 구체적인 대안이 없는 선동에 가깝다는 생각을 금할 길이 없다.

첫째, 그의 주장은 대한민국헌법에 위배된다.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어서 제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그가 이번에 주장한 현재의 영토 조항 삭제 또는 수정 제안은 현행 헌법과 명백히 배치된다.

둘째, 그의 주장은 최근 북한의 주장을 대변한다. 그의 주장은 지난해 말부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공식화한 ‘두 국가론’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지난해 12월 말에 열린 제8기 9차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북남관계는 더 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고 한 데 이어 “대한민국 헌법이라는 데는 ‘대한민국 영토는 조선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버젓이 명기돼 있다”고 우리의 헌법을 문제 삼았다.

셋째, 그의 주장은 6·25전쟁에서 공산주의 세력과 싸우다 희생된 62만여 명의 군인뿐만 아니라, 2만여 명의 경찰과 100여만 명의 민간인 등의 희생을 헛되게 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유엔군으로 참전한 자유 우방 21개국 15만여 명의 희생마저도 그 의미를 퇴색시킨다. 또한, 통일의 포기와 두 국가론의 수용은 한반도에서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방기(放棄)하는 것이다. 6·25전쟁으로 파생된 1000만 이산가족과 3만4000여 명의 북한이탈주민, 그리고 동토(凍土)에서 신음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자유와 인권이 존중되는 체제로 구출해 내어 미래에는 함께 살아가도록 하겠다는 의무와 책임을 내려놓자는 것이다.

대한민국에 통일은 최종 목표(endstate)이고 평화는 과정이자 수단이어야 한다. 그런데 과정을 위해 목표를 포기하겠다는 게 과연 논리에 맞는 말인가? 통일을 포기하고 두 국가로 살아가면 처음에는 북한의 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가다가 종국에는 북한의 핵 위협에 의해 적화통일 될 것을 내다보지 못했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이에 대해 임 전 실장은 통일을 포기하고 두 국가로 살자고 주장한 저의에 대해 소상히 밝히고 국민 앞에 사죄하기를 촉구한다.

문화일보 

 

09.26 최덕근 영사 암살범들 모두 확인됐다

1996년 10월1일
국정원 러시아 파견관이
北에 무참히 살해돼
오랜 추적 끝에
北 범행 조직, 책임자
공작원 3명 신원 밝혀내
반드시 대한민국 법으로 심판해야

▲국정원 보국탑 '이름없는 별' 추모석. 최덕근 영사는 새겨진 별 중 유일하게 실명이 공개된 요원으로, 그중에서도 '첫 번째 별'로 알려졌다. /뉴스1

 

벌써 28년이 됐다. 1996년 10월 1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근무하던 최덕근 영사(국정원 파견관)가 퇴근해 귀가하다 집 앞에서 북한 요원 3명에 의해 칼, 도끼와 독침으로 무참히 살해됐다. 아내가 뛰어나왔지만 사망한 뒤였다. 국정원은 북한이 살인용으로 사용하는 독극물 샘플을 러시아 측에 제공했고 러시아는 부검에서 이 독극물을 검출했다고 한다. 하지만 러시아는 부검 결과 발표에서 이 독이 검출된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밝히면 북한 소행이 입증되기 때문이었다. 러시아는 북 요원들 도주로도 차단하지 않았다. 외교적으로 골치 아픈 사건이 빨리 덮이기만을 바랐다. 최 영사 시신이 국내로 온 뒤 다시 실시한 부검에서 예상대로 북한이 쓰는 그 독이 검출됐다.

 

당시 북한은 식량 배급이 끊기는 이른바 ‘고난의 행군’으로 수십, 수백만 명이 굶어 죽고 있었다. 돈이 궁해진 김정일은 전 세계에서 온갖 부정한 방법으로 달러를 벌었다. 대표적인 것이 위조 달러, 마약 판매와 외교관 신분을 이용한 밀수였다. 국정원은 북한의 이런 불법행위를 추적하고 있었다. 최 영사도 이런 추적 활동을 하다 북한에 살해당한 것으로 추측됐다. 필자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이병호 전 국정원장이 쓴 책 ‘좌파 정권은 왜 국정원을 무력화시켰을까’를 읽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전 원장은 북이 한국 공무원을 살해한 이유에 대해 다른 추정을 했다. 최 영사는 부임 3개월째로 업무 인수인계 중이어서 본격적인 대북 추적 활동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북한이 최 영사를 살해한 것은 그의 어떤 활동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한국 정부 요원 살해 그 자체가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살해 수법이 필요 이상으로 잔인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당시 북한 잠수함이 우리 제1함대 사령부를 정찰하기 위해 특수부대원들을 태우고 강릉으로 들어왔다가 고기 그물에 걸리는 사건이 있었다. 북한 무장 대원들은 모두 잠수함에서 내려 북으로 귀환을 시도하다 전원 사살되거나 체포됐다. 우리 군의 이 작전은 47일 동안 계속됐다. 최 영사는 이 작전 기간 중에 피살된 것이다. 북은 연일 백 배, 천 배 보복을 공언하고 있었다. 이 전 원장은 최 영사가 북한 보복의 희생양이 된 것으로 추정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는 북의 보복 목적에 최적의 장소였다. 러시아 당국이 수사를 적극적으로 할 리가 없었고 북으로 도주하기도 좋았다.

 

이 전 원장은 최 영사 사망 두 달 뒤에 차장으로 국정원을 퇴직하면서 후배 요원들에게 “우리가 언젠가는 평양에 들어갈 날이 있을 것이다. 그때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일은 북한의 정보 파일을 뒤져서 누가 최 영사 살해범인가를 밝히는 일이다. 여러분이 이 추적을 계속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로부터 18년 뒤인 2015년 이 전 원장은 국정원장이 돼 국정원으로 돌아왔다. 국정원장으로서 그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전 원장은 책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나의 퇴직 때 당부대로 최 영사 사건 추적이 간단없이 이뤄졌음을 알게 됐다. 국정원 요청으로 러시아의 사건 공소시효도 무기한 연기됐다. 국정원은 이제는 안다. 북한의 어떤 조직이 테러를 주도했고, 누가 지휘했으며 누가 실제로 범행했는지를 안다. 이 정보를 확인하고 또 확인해 나갈 것이다.’

 

최 영사 살해 지시자가 김정일이란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국정원이 범행을 실행한 조직, 책임자는 물론이고 실제 실행자 3명의 이름까지 알고 있다는 것은 놀라웠다. 이들 전원이 대한민국 법의 심판을 받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우리는 ‘기억이 짧은 나라’라고 자조한다. 큰 사건이 나면 그때 지나치게 호들갑을 떨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망각한다는 것이다. 실제 그런 경우가 많았다. 그런 점에서 국정원이 최 영사 살해범들을 오랜 세월 추적해왔다는 사실은 의외였다. 놀랍고 대견했다. 북한의 아웅산 테러와 KAL기 폭파 테러, 소련의 KAL기 격추 등 우리 국민을 떼죽음시킨 만행에 대한 추적과 심판에도 시효가 있어선 안 된다. 이 전 원장 표현대로 우리도 기억이 긴 나라로 바뀌어야 한다.

 

지금 최 영사는 국정원 정문 옆 보국탑에 한 개의 별로 새겨져 있다. 최 영사 피살 석 달 뒤 북한 주체사상 최고 권위 황장엽 국제 담당 비서가 한국으로 망명했다. 황 비서는 김씨 왕조의 실정에 절망하고 있었다. 김씨들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역사의 시계는 멈출 수 없으며 분단이 끝나는 날도 막지 못할 것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기자

 

09-27 출범할 전략사, 북핵 억제 위한 보루 돼야

10월에 창설되는 전략사령부에 대한 군 안팎의 기대가 크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직후 전략사 창설을 국정과제로 삼아 뚝심 있게 추진했다. 그 과정은 난제의 연속이었다. 핵전력이 없는 전략사의 위상과 역할, 한미 연합방위 체제에서 임무와 기능, 복잡한 부대 편성과 지휘 관계, 관련 당사자들의 이해 충돌 우려 등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하지만 지난해 한미 정상 간 워싱턴 선언과 핵협의그룹(NCG) 출범으로 확장억제의 실행력 강화가 급물살을 타면서 이를 군사적으로 뒷받침할 전략사 창설은 중요 과제로 대두됐고, 마침내 그 결실을 보게 됐다.

전략사는 날로 고도화되는 북핵 위협에 맞서 확장억제 강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미국이 비핵 동맹국에 제공하는 확장억제(핵무기, 미사일방어, 첨단 재래식 능력 등)에 우리 전략사의 첨단 재래식 전력까지 통합 운용되면 한층 더 신뢰성 높은 확장억제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략사는 유사시 우리의 전쟁 주도권을 보장하는 수단도 될 수 있다. 그간 연합작전 체계에서는 우리의 주도권 확보가 어렵다는 우려가 상존해 왔다. 한미 연합사가 지휘하는 재래식 전쟁에서도 전략사의 전력은 매우 유용할 뿐만 아니라 효과적으로 통합 운용될 것이다. 이를 통해 더 높은 수준의 연합방위 태세가 확립될 수 있다. 아울러 우주·사이버전 대응 능력도 통일된 방향으로 노력의 낭비 없이 효율성이 높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미국 전략사 수준의 위상과 임무 수행 능력을 갖추려면 갈 길이 먼 것도 사실이다. 최고 인재를 등용하고, 군 안팎의 전문가그룹과 허심탄회한 소통을 통해 전략적 비전을 발전시켜야 한다. 세부적인 기능 배분과 정착, 임무 수행 체계 구축과 프로토콜 등도 조속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전략사의 전략적 능력을 확보한 뒤 연습과 훈련을 통해 작전 수행 태세를 갖추는 것이 급선무다. 설계한 부대 편성과 지휘 체계가 실전에서 잘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야만 한다.

전략사는 미 전략사의 카운터파트로 다양한 협의기구 구축, 연락장교 파견 등 고도의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한편 북핵 위협에 대응하여 공동으로 정보 공유, 기획, 계획, 작전, 연습 등을 내실 있게 추진하여 일체형 확장억제의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미국이 고수하고 있는 핵무기 운용에 대한 배타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큰 난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미의 핵·재래식 통합(CNI)으로 한미가 올해 승인한 핵 억제 및 핵 작전 지침을 구현할 수 있는 토대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가까운 시일 내 한미가 동의하는 적절한 수준의 CNI 계획을 수립하여 문서화하고, 실행력 높은 작전 수행 체계도 구축해야 한다. 한미 간에 보다 긴밀한 협력이 요구된다.

곧 장도를 내딛는 전략사는 전략적 능력과 태세로 북핵 대응 억제력을 높이고, 우주 및 사이버전 위협에 대한 대응 능력도 강화시킬 것이다. 다만, 우리 전략사가 그동안 우려를 불식시키고 임무와 기능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남은 과제들을 빠짐없이 조기에 보완해 줄 것을 간곡히 당부드린다. 앞으로 우리 전략사는 평화를 지키는 든든한 보루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동아일보 이정수 전 육군미사일사령관(예비역 소장)

09.28 병력 절벽 극복 위한 50·60 저강도 군 근무, 시범 실시 해볼 만

▲성일종 국회 국방위원장이 병력 자원 급감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퇴직한 5060세대를 군 경계병 등으로 다시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내겠다고 밝혀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KSPO 돔에서 열린 2024 을지훈련 및 국가 중요 시설 합동 대테러 훈련에서 52사단 군인들이 인질 구조 훈련을 하는 모습. /뉴시스

 

성일종 국회 국방위원장이 심각한 병력 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군 복무 경험이 있는 50·60세대를 일선 군부대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내겠다고 밝혔다. 퇴직한 40대 후반~50·60대 남성들을 계약직이나 군무원으로 고용해 경계병·행정병 등으로 복무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지금 세계 최악의 저출생으로 병력 50만명 선이 무너질 위기다. 작년 출생아는 23만명으로 줄어 20년 뒤엔 군에 갈 남성이 1년에 10만명에 그칠 것이다. 작년 학군장교(ROTC)는 전국 대학 108곳 중 81곳이 정원에 미달이었다. 육군 부사관은 정원의 절반도 못 채웠다. 행정병이 없어 소대장·중대장이 이 업무를 떠안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무리 북한군이 낡고 뒤떨어졌다고 하지만 병력 차이가 너무 심하면 심각한 군사 위협이 된다. 통일의 기회가 찾아와도 북한 지역 관리조차 못할 것이다. 군을 과학화·무인화해도 인간이 할 일을 다 대체할 순 없다. 사람이 없으면 최첨단 스텔스기나 이지스함도 무용지물이다. 육군 참모총장은 “군사작전하듯 군 인력 확보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병역 특례를 줄이고 여성 모병제를 확대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금 50·60대는 과거 30대에 못지않은 젊음과 건강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군 복무 경험으로 기본 군사 상식과 행정·기술 분야 전문성, 국가관·애국심도 갖추고 있다. 전투병은 어려워도 경계·행정·기술 분야 근무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내년 200만원까지 인상되는 병장 월급에 일정 수당만 더 지급하면 지원자가 적지 않을 수 있다. 실제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선 다시 군에 들어가겠다는 5060세대가 상당하다고 한다. 나라에 대한 봉사이자 재취업 효과도 있기 때문이다.

 

이미 미군은 기지 외곽 경비와 MRO(군 유지·보수·운영)를 민간에 넘기고, PMC(민간 군사 기업)도 활성화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40세 예비군 복무 이후에도 행정·보급·지원 분야에서 근무를 허용하고 있다. 사고 발생 가능성, 유사시 전투 투입 여부, 임금·근무 여건과 지휘 계통 문제 등 정리해야 할 문제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병력 자원 급감이란 국가적 위기를 넘기 위해 특정 분야에서 시범 실시해 볼 가치는 있다. 일부에선 한국어 능력이 있고 건강한 외국인에 대해 7~10년간 군 복무하는 것을 조건으로 한국 국적을 부여하는 방안까지 제시하고 있다. 병력 절벽은 눈앞에 닥친 시한폭탄이다. 여러 해법에 대한 논의가 불가피하다.

조선일보 사설 

 

09-30 간첩 혐의 ‘충북동지회’ 활동가 국보법 위반 등 징역 14년

법원 "대한민국 존립 안정 저해"

청주=이성현 기자


북한 지령을 받아 국내에서 간첩 활동을 한 혐의를 받는 ‘자주통일 충북동지회’ 활동가에게 징역 14년의 중형이 선고됐다.

청주지법 형사11부(부장 태지영)는 30일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50대) 씨에게 징역 14년, 자격정지 14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자주통일 충북동지회는 2017년 북한 공작원의 지령을 받아 미화 2만 달러 상당의 공작금을 수수하고, 4년간 충북 지역에서 국가기밀 탐지, 국내정세 수집 등 각종 안보 위해 행위를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 씨를 비롯한 충북동지회 활동가들은 위원장, 고문, 부위원장, 연락 담당으로 역할을 나눠 공작원과 지령문·보고문 수십 건을 암호화 파일 형태로 주고받으면서 충북지역 정치인과 노동·시민단체 인사를 포섭하기 위한 활동을 했다.

태 부장판사는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과 만나 금품을 수수하고 범행을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한 것으로 죄질이 좋지 않다"며 "대한민국의 존립 안정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실질적으로 저해한 점, 법관 기피신청을 내며 재판을 고의로 지연한 점 등을 종합해 형을 정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애초 검찰은 A 씨를 포함해 이 단체 활동가 4명을 재판에 넘겼으나 A 씨가 법관 기피신청을 내 재판이 분리된 상태로 진행됐다. 앞서 재판에서 이 단체 위원장 손 모(50대) 씨 등 3명은 각각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항소한 상태다.

문화일보

 

09-30 위대한 국군 전통과 21세기 강군의 길

임호영 한미동맹재단 회장, 예비역 육군 대장


10월 1일 ‘국군의날’은, 1956년 당시 각기 다른 날을 기념하고 있던 육·해·공군의 기념일을 통합하기 위해 가장 늦게 창설된 공군의날을 기준으로 제정됐다. 이는 3군 체계가 완성됐음을 기념함과 동시에 더욱 강한 국군이 됐음을 선포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10월 1일은 6·25전쟁 때 국군이 독자적으로 38선을 넘어 북진을 시작한 날이라는 의미도 있다. 또, 1953년 현 한미동맹의 근본이 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된 날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10월 1일은 대한민국과 국군이 더욱 강해진 날이며,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역사적인 사건들이 발생한 날이기도 하다. 그래서 10월 1일 국군의 날이 더욱 더 의미 있다고 본다.

국군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창설됐다. 1950년 북한의 불법 무력남침으로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체계적인 군대의 모습도 갖추지 못한 국군은 유엔군과 함께 맨손으로 목숨 바쳐 싸워 조국을 지켜냈다. 전쟁 이후에도 북한은 군사적 도발을 자행했고, 매순간 국군은 이를 막아내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왔다.

비록 국내 정치문제에 군을 이용해 국민의 신뢰를 상실했던 아픈 기억도 있지만, 대다수 군인은 언제나 땅과 하늘과 바다에서 조국을 지켰고 지금도 그리하고 있다. 그 결과 세계 5∼ 6위의 군사력을 갖추게 됐으며, 레바논을 포함한 4개국에 군대를 파병하는 등 세계 평화에 기여하고 국위를 선양하는 중이다. 특히 최근 들어 발전된 무기체계는 세계에서 가장 각광 받고 있으며, 방위산업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출생률이 급격히 감소하는 데 따른 병역자원 감소, 군 간부 처우 문제로 인한 간부 모집·유지의 어려움 등 국군은 또 다른 난관에 직면해 있다. 또한, 군의 고유한 가치는 변함없는데, 군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건이 지나치게 정쟁화되면서 군대가 정치의 소용돌이에 휩싸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도 하며, 원치 않는 상황에 직면하기도 한다. 하지만 군대는 존재의 목적을 상기하며 군의 사명과 이념을 목숨 같이 지켜내야 하는 조직이다. 그 가치와 본질은 언제나 불변함을 기억해야 한다.

국군의날도 시대 상황에 따라 많은 변화가 있었다. 기념식이 축소되거나 생략되기도 했고, 국군의날 행사가 문화 공연으로 진행된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기념식이 정례화하고 시가행진도 부활하는 등 국군의날이 국군의 특성을 반영한 기념식의 모습을 띠고 있다. 특히, 올해는 임시공휴일로 지정돼 국민과 함께 국군의날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고 축하하는 계기가 됐다.

군대는 강해야 한다. 국군은 국민의 군대다. 따라서 강한 군대가 되려면 국민에게 사랑받고 국민이 군대의 존재와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승리한 군대는 국가와 국민의 강력한 상무(尙武) 정신에서 만들어진다. 스파르타 군인이 강했던 것은 도시국가 스파르타의 상무 정신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군대를 존중하고 군인이 되는 것을 최고의 영예로 생각했다. 국군의날을 맞아 우리도 생각해 봐야 한다.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강한 군대는 결국 우리 모두가 만들어 나가야 한다. 국군은 국민을 지키고 국민은 군대를 아끼고 사랑해 주는 것, 그것이 진정한 국군의날 의미일 것이다.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