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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論直說 2024-09/ 09-02 국사 교과서 정상화와 홍전(紅專)투쟁 우려 - 09.30 통일 부정한 김정은·임종석의 '역설적 공로'

상림은내고향 2024. 9. 15. 12:58

正論直 2024-09/

09-02 국사 교과서 정상화와 홍전(紅專)투쟁 우려

김기수 변호사, 국민희망교육연대 상임대표

2022년에 개정된 새 교육과정이 적용된 중학교 역사·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검정 결과가 지난달 30일 공개됐다. 교육부는 “2022 교육과정 개정 내용이 적용돼 9개 출판사 모두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을 교과서에 사용했다”고 밝혔다. 역사 교과서의 좌(左)편향을 시정(是正)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은 박근혜 정부 때 국정교과서 추진으로 정점에 이르렀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출범 3일 만에 국정교과서는 폐지되고 검정교과서 체제로 바뀌었다. 문 정부 당시 역사 교과서에 현직 대통령의 사진이 게재되면서 좌편향을 넘어 국정 홍보물이 됐다는 비난이 일기도 했다.

지난 2015년 교육과정은 한·중·일을 중심으로 동북아시아 중심의 정치 위주 편성이었던 데 비해 2022년 교육과정은 근현대 한국사를 세계사 흐름 속에서 파악하도록 변경됐다. 이번에 검정을 통과한 9종의 역사 교과서 모두 ‘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로 바뀌었다고 하니 역사 교과서의 좌편향을 시정하려는 노력은 어느 정도 반영됐다.

그러나 거대 야당은 윤석열 정부가 위안부를 축소하고 친일파를 옹호하는 뉴라이트 사상으로 오염된 역사 교과서를 내놓아 역사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비난하면서 윤 정부의 친일매국을 반드시 심판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일부 언론도 이에 부합해 특정 교과서를 친일 뉴라이트 교과서로 낙인찍고 그 교과서를 출판한 출판사와 집필진에 대한 공격적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대통령령인 교과용도서에관한규정에 따르면 학교에서 사용할 교과용도서는 학교의 장(長)이 소속 교원의 의견을 미리 수렴한 후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선정하게 돼 있다. 거대 야당은 물론 정치적 편향성이 강한 언론일수록 특정 교과서에 대해 편향된 잣대로 마녀사냥에 가까운 몰이를 한다.

그러나 이번에 새로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들은 모두 전문가의 집필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평가를 거친 교과서들이기 때문에 단위 학교의 결정에 따라 어떤 교과서를 선택하더라도 모두 나무랄 데 없는 것들이다. 야당과 일부 언론의 특정 교과서에 대한 폄훼는, 전문가를 신뢰하지 않고 오로지 이념만 중시해서 벌어진 중국 문화대혁명 당시의 ‘홍전(紅專)투쟁’을 연상시킨다.

역사 교과서를 반대하고 끝내 폐지한 논리는 ‘정부가 공인한 하나의 역사 해석을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국정교과서는 역사교육의 본질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면서 역사 교과서 제작의 자율성을 넓게 허용하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새롭게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가 전문가의 집필과 교육부의 검정을 통과한 만큼 제작의 자율성이 보장돼야 할 것이다.

특정 정당의 정부에 대한 정치 공세, 출판사와 집필진에 대한 도(度)를 넘는 일부 언론의 비난성 보도는 특정 이념과 부합하지 않는 다양한 역사 해석을 용납할 수 없다는 횡포와 다름없다. 결국, 그러한 논리는 자신들의 이념과 사상에 부합하는 역사관을 담은 교과서만 유통돼야 한다는 고집에 불과하다. 전문가의 집필과 정부의 교육과정 검정을 통과한 역사 교과서에 대한 정치적 공세는 전문가 영역보다는 이념의 영역을 우선시하려는 한국판 ‘홍전투쟁’일 뿐이다. 1960년대 중국의 문화혁명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인가.

문화일보

 

09.02 [단독] 중학교 역사 교과서도… "연평도 포격 北 소행" 명시

내년부터 사용될 7종 살펴보니… 교육계 "좌편향 개선"

▲그래픽=이진영

 

내년부터 새롭게 사용될 검정(檢定) 중학교 역사 교과서 7종은 모두 ‘연평도 포격 사건’을 서술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대부분 남북 관계 악화 원인을 북한의 무력 도발과 핵실험 때문이라고 명확히 적었다. 문재인 정부를 긍정적으로 서술한 현 교과서와 달리, 새 교과서는 윤석열 정부에 대해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최근 발표된 새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와 마찬가지로 ‘좌편향’ 지적을 받은 현 교과서에 비해 개선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래픽=이진영

 

1일 본지가 최근 정부 검정을 통과한 동아출판·리베르스쿨·미래엔·비상교육·지학사·천재교과서·해냄에듀 등 새 중학교 역사 교과서 전시본 7종을 분석한 결과 모든 교과서가 ‘연평도 포격 사건’에 대해 서술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검정을 통과해 2020년부터 쓰인 현 교과서는 6종 중 2종이 연평도 포격 사건을 아예 누락해 논란이 됐다.

 

동아출판은 ‘북한이 천안함 피격 사건, 연평도 포격전을 일으키고 핵실험을 하면서 남북 관계는 위기를 맞았다’고 썼다. 미래엔은 ‘북한의 핵실험 강행, 연평도 포격 사건 등으로 남북한 대립은 다시 고조되었다’고 서술하며 포격으로 피해를 본 연평도 사진을 실었다.

 

천안함 폭침 사건에 대해서는 새 교과서 7종 중 2종(동아출판·해냄에듀)이 ‘천안함 피격 사건’이라고 언급했다. 현 교과서는 6종 중 1종(미래엔)만 ‘천안함 사건’으로 표현한 것과 대비된다. ‘천안함 사건’이라는 용어는 북한의 소행임을 가리고 ‘아군 기뢰에 의한 침몰’ 등 음모론을 부각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현재 쓰이는 중학교 역사 교과서는 6종 가운데 5종이 검정 통과 당시 집권 중인 문재인 정부를 긍정적으로 서술했다. 일부 교과서는 문 대통령 사진을 실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했다’는 논란도 불거졌다. 이번 새 역사 교과서 7종은 모두 현 정부에 대해서 서술을 아예 하지 않고 사진도 싣지 않았다.

 

현 교과서는 6·25 전쟁 이후 한국사에 대해 ‘민주화 과정’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며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부에 대해 ‘독재’ ‘무력 탄압’ 등을 강조했다. 과거 정부를 지나치게 폄훼하고, ‘경제 발전 성과’는 적게 다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7종 교과서는 미래엔을 제외한 6종이 전후 경제 발전사도 언급하면서 민주화 과정과 함께 비교적 균형 있게 서술한 것으로 나타났다. 3종(동아출판·비상교육·해냄에듀)은 ‘한강의 기적’을 언급했다.

 

교육계에서는 “현 교과서에 비해 개선됐지만, 일부 아쉬운 점이 남아있다” 평가가 나왔다. 새 교과서 중 1948년 국제연합(UN)이 대한민국을 ‘한반도 내 유일 합법 정부’로 승인한 것에 대해 언급한 교과서는 1종(지학사)뿐이다. 나머지는 아예 언급이 없거나 ‘선거가 가능했던 지역에서’라는 표현을 덧붙여 대한민국이 한반도가 아닌 38선 이남에서 수립된 유일 합법 정부인 것처럼 축소 표현했다. 현 교과서와 마찬가지로 새 교과서 7종 모두 북한의 3대 세습과 이로 인한 북한 주민의 인권 침해 상황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한편 내년부터 새로 쓰일 초·중·고 사회 교과서에는 ‘자유경쟁’ 표현이 실린 것으로 나타났다. 문 정부가 꾸린 정책연구진이 만든 ‘2022 개정 교육과정 시안’에는 기존 교육과정에 있던 자유시장경제의 핵심 개념인 ‘자유경쟁’을 삭제하고 경제정의와 소득 분배를 부각했었다. 이를 확인한 윤석열 정부 기획재정부가 2022년 9월 교육부 측에 “균형적인 시각을 기르기 위해서는 ‘자유경쟁’에 대한 내용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의견을 내 다시 포함된 것이다.

조선일보  표태준 기자 윤상진 기자

 

09.04 고물가 잡혔는데 금리 못 내려, 뼈아픈 부동산 오판

▲(서울=뉴스1) 이동해 기자 = 스트레스 DSR 2단계 규제가 시작된 1일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밀집지역 모습.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방안에 따라 이날 계약분부터 은행권 주담대에 2단계 스트레스 DSR이 적용된다. 스트레스 DSR은 변동금리 대출 등을 이용하는 차주가 대출 이용 기간에 금리상승으로 원리금 상환 부담이 증가할 가능성에 대비해, DSR을 산정할 때 일정 수준의 가산금리를 부과해 대출한도를 산출하는 제도로 특히 특히 수도권 은행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크게 축소된다. 연소득이 가구당 평균소득 수준인 대출자의 수도권 주담대 한도는 최대 5500만원 감소한다. 2024.9.1/뉴스1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로 둔화되면서 3년 5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내려갔다. 한국은행은 “물가 둔화 흐름이 주요 선진국에 비해 빠른 편”이라고 했다. 7월 기준 미국의 물가 상승률은 2.9%이고, 유로 지역은 2.2%였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0.5%까지 내렸던 기준금리를 2023년 1월 3.5%로 인상한 뒤 고금리를 유지한 것은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서였다. 그동안 치솟는 물가 때문에 국민 고통이 컸다. 소득은 안 느는데 높은 물가와 금리 부담으로 지출이 늘어나면서 가구 흑자액이 2022년 3분기부터 8분기 연속 감소했다. 고금리·고물가 시대를 온 국민이 허리띠 졸라매고 버틴 결과 드디어 물가가 안정세로 접어들었다. 그런데도 한국은행 금통위는 지난 8월에도 금리를 연 3.5%로 동결했다.

 

물가가 안정세를 보이는데도 한은이 금리를 못 내리는 것은 수도권 집값 상승과 이로 인한 가계부채 급증 때문이다. 정부는 집값 하락기에 부동산 경착륙을 막겠다며 저금리 대출을 풀어 집 구매를 독려해왔다. 서울 전세가는 67주 연속 상승하고,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23주 연속 상승했다. 서울 아파트 상승 폭이 5년 10개월여 만에 최대 폭에 달했다.

 

그런데도 국토부 장관은 “추세적 상승은 없을 것” “지역적,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잔 등락”이라고 오판했다. 정책 대출의 영향으로 집값이 가파르게 오르자 뒤늦게 집값 진화에 나서 8·8 부동산 공급 대책을 발표하고 9월부터 대출 규제에 들어갔지만 타이밍을 놓쳤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 8월 5대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9조6259억원 늘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영끌’ 부동산 광풍이 불던 2020년 11월(9조4195억원)의 기록을 넘어섰다. 이 중 주택담보대출만 한 달 새 8조9115억원 증가해 전체 가계 대출의 93%를 차지했다.

 

길어지는 내수 부진과 고금리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금리 인하가 시급하다. 하지만 집값 상승에 제동이 걸리지 않으면 10월에도 기준금리 인하를 기대하기 힘들어진다. 금리를 낮췄다가 서울 및 수도권 아파트 가격 상승을 더 부채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금리 인하의 적기가 왔는데도 금리를 못 내리게 만든 부동산 시장 오판이 뼈아프다.

조선일보 사설

 

09.04 '태어나 보니 선진국'을 만든 진짜 영웅은 누구인가

반도체 1위, 자동차 3위, 군사력 5위의 명실상부한 선진국
기적 만든 건 민주화 세력이 아닌 자기 일 매진한 보통 사람들
AI 대전환 성공하려면 개도국 시절 같은 정치권력 다툼 중단을

 ▲일러스트=김성규

 

요즘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이 예사롭지 않다. K팝을 중심으로 한류 열풍이 세계를 휩쓸고 있다는 이야기는 식상할 정도다. 거기에 더해 K드라마, K웹툰, K무비 등이 인기를 누리더니 이제는 K푸드까지 팬덤이 폭발 중이다.

 

문화적 팬덤뿐만이 아니다. 세계 각국에서 우리나라 전투기, 탱크, 자주포, 미사일을 사겠다는 나라들이 줄을 선다. 체코는 우리에게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맡겼다. 첨단 무기나 원전은 원래 선진국이 휩쓸던 시장이다. 아무리 가난한 나라라도 자국민을 보호하는 첨단 무기를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에서 사는 나라는 없다. 세금을 내는 국민들이 가만있지 않기 때문이다. 안전이 절대 중요한 원전도 개도국에 맡기는 걸 놔둘 선진국 국민은 없다.

 

노르웨이·핀란드가 우리 K9 자주포를 사고, 폴란드가 우리 탱크와 전투기를 구매한 건 유럽 시민들이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인정한다는 확실한 시그널이다. 이들은 산업혁명 이후 세계를 지배하던 서구 문명의 발상지인 유럽의 일원인 국가들이다. 30년 전만 해도 이들에게 전쟁고아의 나라, 보잘것없는 개도국이었던 코리아가 어느새 이렇게 선진국으로 인식이 바뀐 것이다.

 

그러고 보니 미국 잡지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리포트’에 올라온 대한민국 군사력 순위는 세계 5위, 강대국 순위는 세계 6위다. 1차 세계대전 이후 후진국에서 세계 10대 강대국 순위에 올라온 신흥국은 오직 우리뿐이다. 도대체 누가 이런 믿기 힘든 기적을 이끌어낸 진짜 영웅일까.

 

일단 자기들이 한 일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만든 주역이라며 연금을 받겠다는 사람들이다. 민주화를 달성한 건 칭찬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반도체 산업이나 원전 산업, 방위 산업을 만든 건 아니다. 그렇다면 반도체 세계 1위를 만든 건 누가 했을까? 2년간 반도체 불황으로 세수 줄어든 게 연 60조원이라고 한다. 1년 국가 예산의 10%나 된다. 그동안 경기도 나빠지고 나라 살림도 어려워졌다. 역설적으로 적자가 나니까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자동차 산업도 세계 3위다. 현대·기아차가 토요타, 폴크스바겐에 이어 매출, 영업이익 규모에서 2년 연속 세계 3위를 기록했다. 올해는 영업이익으로 폴크스바겐을 넘어설 기세다. 조선은 중국과 매출 규모에서 엎치락뒤치락한다지만 기술력만큼은 압도적 세계 1위다. 미국 군함 시장까지 넘보는 중이다. 이런 제조업의 탄탄한 기반 위에 전투기 만드는 방위산업까지 꽃피기 시작한 셈이다.

 

우리나라 GDP(국내총생산)의 28%를 차지하고 경제의 반석을 만든 제조업은 도대체 누가 만든 것일까? 그러고 보니 아무도 공치사하는 이가 없다. 제조업 연금 만들어 달라는 요구도, 사람도 없다. 정주영, 이병철, 이건희 같은 기업가들이 깃발을 세운 건 맞지만 누가 뭐래도 이 기적을 현실로 만든 건 지난 30년간 묵묵히 자기 일에 매진해온 대한민국 보통 사람들이다. 대기업 현장에서, 중소기업 현장에서, 열심히 공부하며 일본도 독일도 해볼 만하니 따라잡자고 땀 흘린 사람들이다. 이들이 만든 대한민국은 지난 120년 현대 인류사의 유일한 기적이 되었다. 세계 10대 강대국 중 우리나라를 빼면 모두 1차 세계대전 주요 참전국들이니까.

 

디지털 문명 시대는 광고하지 않는다. 일론 머스크는 TV 광고 하나 없이 테슬라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었는데, 단지 소셜미디어를 통해 기업을 소개하고 신제품을 내놓았을 뿐이다. 그의 말대로 광고는 ‘차를 타본 고객들이 유튜브에 스스로 올리는 것이 진짜’인 시대다.

 

유럽의 시민들이 우리 전투기를 사고, 원전을 사는 것은 우리를 선진국으로 인지한다는 뜻이다. 폴란드, 노르웨이 국민에게 TV로 광고 한번 안 하고 만든 팬덤 덕분이다. 문화의 초일류화에 집착했던 콘텐츠 전문가들과 제조의 초일류화에 집착했던 우리 엔지니어들이 힘을 모아 만든 기적의 성과다. 첨단 산업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냈다. 지난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64국을 평가한 ‘디지털 경쟁력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6위였다.

 

▲그래픽=김성규

 

디지털 문명은 국경 없는 팬덤 경제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우리 문화와 우리 상품을 경험한 세계 시민들이 스스로 K팬덤을 만들어 코리아를 선진국으로 인지하게 된 것이다. 이런 기적을 만든 영웅들이 바로 세대에 상관없이 열심히 살아온 대한민국 보통 사람들이다.

 

디지털 문명은 다시 또 AI 문명으로 거대한 전환의 용틀임을 시작했다. 금융가에서는 2000년 닷컴버블 이후 가장 많은 자본이 하나의 기술 주제로 쏠린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그때 인터넷으로 몰렸던 자본이 지금의 디지털 문명을 만든 주인공이다. 그리고 다시 AI라는 주제로 모인 거대 자본은 이제 AI 문명 시대를 여는 에너지가 될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닷컴 버블 시대를 슬기롭게 넘기며 빠르게 디지털 전환을 이룰 수 있었다. 이번 AI 대전환도 잘해야 한다. 이미 국회에서도 AI 관련 포럼이 4개나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아직 AI가 만들 미래에 대한 어떤 논의도, 정책도 들어보지 못했다. AI 지원은커녕 온통 정치 싸움에다 국민 용돈 지원금 논란으로 시끄럽다. 어느 국회의원도 미래를 위해 AI 산업 지원하자는 특별법 하나 내지 않는다.

 

디지털 문명 세계는 우리를 선진국으로 인지하는데 대한민국 정치권은 개도국 시대 권력 다툼에 목을 매고 있다. 기적을 만든 대한민국 보통 사람들이라도 각성해야 한다. 국민이 곧 권력이고 영웅인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어차피 미래도 그렇게 준비해야 한다.

조선일보 최재붕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

 

09-04 인텔·폭스바겐 쇼크, 초일류 대기업도 ‘졸면 죽는다’

세계 2위 자동차기업인 독일 폭스바겐 그룹이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기업명 자체가 독일어로 ‘국민 차’ 의미인 폭스바겐이 1937년 설립 이후 처음으로 본토인 독일 내 자동차공장과 부품공장을 각각 1개 이상 폐쇄하는 대대적 구조조정에 나선 것은 충격적이다. 세계 최고수준인 내연기관차에 안주하다가, AI 시대에 늦게 대응해 전기차 개발에서 중국에까지 밀린 여파다. 올리버 블루메 최고경영자(CEO)는 2일 “매우 어렵고 심각한 상황”이라며 “포괄적인 구조조정을 거쳐야 하고, 공장 폐쇄도 이제는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1994년부터 유지해왔던 고용안정 협약도 종료키로 해 대규모 인력 감축도 예고했다. 영원한 강자는 없다는 냉엄한 현실을 새삼 일깨운다.

폭스바겐 쇼크는 갈수록 살벌해져 가는 글로벌 생존경쟁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최근 미국 반도체의 자존심으로 한때 ‘반도체의 제국’으로 불렸던 인텔의 추락도 마찬가지다. 대만 TSMC, 삼성전자를 추월하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내걸고 수십조 원의 대규모 자금을 쏟아부었지만 결국 실패해, 승부를 걸었던 핵심 사업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부문 매각, 독일을 비롯한 유럽 투자 계획 중단 등 살아남기 위한 혹독한 비상계획을 짜고 있다. 전체 직원의 15%(1만5000명) 감원도 추진 중이다. 반도체 패권 탈환을 기대하며 반도체지원법에 따라 인텔에 27조 원이나 지원했던 미 정부로서도 참담한 결말이다.

이들 사례는 미래 핵심 산업 선도가 얼마나 어려운지 상기시키는 타산지석이다. 한편으로 삼성전자와 현대차 그룹은 상당한 반사이익도 기대할 수 있다. 현대차 그룹은 세계 2위로 도약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삼성전자 등 삼성 그룹은 4일부터 1만 명 수준으로 예상되는 하반기 신입사원 공채에 들어간다. 대량 감원으로 생존을 모색하는 인텔과 대조된다. 혁신에 성공한 업체는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곳은 도태된다. 삼성전자·현대차와 같이 초격차 경쟁력을 가진 글로벌 기업이 있다는 것 자체가 국가적 축복이다. 동시에 내로라하는 초일류 기업도 ‘졸면 죽는다’는 경각심을 기업은 물론 정부·국회·국민 모두 되새길 때다.

문화일보 사설

 
 

09-04 “尹 대통령 ‘8·15 통일 독트린’, 김정은‘적대적 2개 국가론’에 대한 확실한 대안”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며 ‘8·15 통일 독트린’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영백 민주평통 전문위원, 8·15통일 독트린 의미 평가
자유민주주의 체제 통일이 목표, 통일 주체는 대한민국 국민과 북한 주민

미국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은 누구일까. 저마다 조금씩 생각이 갈리겠지만 많은 사람이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과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링컨이 이토록 존경받는 인물이 된 까닭이 어디에 있을까. 대개는 그의 노예해방을 떠올린다. 틀린 생각이 아니다. 하지만 링컨이 가장 존경받는 것은 노예해방보다 그가 지금의 미국이 있게 했다는 점이다. 연방주의자였던 그는 분리독립주의자들과 강력히 맞서 갈라지는 미국을 하나로 묶었다. 그가 지금의 연방 국가 미국을 지켜냈던 것이다.

이번 8·15 경축사에 나타난 윤석열 대통령의 ‘통일 독트린’을 두고 말들이 많다. 물론 그것의 적실성을 따져보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통일을 하겠다면 분명한 태도와 언명이 있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먼저 말을 하자면 ‘8·15 통일 독트린’은 21세기 대한민국의 통일 비전을 분명히 했을 뿐만 아니라 그 실효성 면에서도 그 어느 정부 때보다 명확하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은 통일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번 독트린은 짧게는 김정은의 ‘2국가론’에 대한 대응이고, 길게는 한반도에서 영구 분단을 막고 궁극적으로는 통일을 하자는 강한 의지를 구체적으로 표방한 것이다. 통일로 가는 여정에서 북한이라는 실체이자 당사자를 피할 수 없는 게 현실이지만, 이제는 그것이 꼭 당국일 필요는 없다는 발상의 전환이다.

‘독트린’이란 한 국가의 중요한 외교정책 원칙을 선포할 때 쓰인다. 이번 3·3·7로 얘기되는 독트린은 몇 가지 점에서 메시지가 선명하다. 첫째, 통일 독트린을 듣는 대상에게 각자가 할 일을 분명히 제시했다. 국내에는 자유 통일 추진을 위한 가치관 확립과 역량 배양을 주문했다. 북한에게는 북한 주민들로 하여금 자유 통일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희망을 이어가라는 것이고, 국제사회에 대해서는 이제 대한민국의 국격에 맞게 자유 통일을 지지해달라는 것이다.

둘째, 궁극적으로 도달할 통일의 모습과 그 주체를 분명히 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 통일이 목표이고, 그런 통일의 주체는 대한민국 국민과 북한 주민이라는 것이다. 그간 통일이라는 말이 주는 당위에 현혹돼 어떤 형식으로든 통일만 되면 된다는 이상향적 통일관이 불투명하게 거론돼 왔다. 하지만 통일은 분명 이 한반도에 살고 있는 모든 주민들이 인간 보편적 가치로서 누려야 하는 자유와 평화는 물론 번영으로 나아가 함께 잘사는 일이어야 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굳이 통일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셋째, 북한의 김정은이 내세운 ‘적대적 2개 국가론’에 대한 확실한 대안이자 반박이다. 김정은은 2개 국가론을 통해 통일과 관련한 일체의 것들을 지우고 한반도에서 영구히 두 개의 국가로 가자고 하지만 그건 북한 주민들을 위한 것도 한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민족의 번영을 위한 것도 아닌 오로지 김씨 왕조 체제 유지와 4대 세습을 통한 정권 유지를 위한 것에 다름 아니다. 윤 대통령은 이 땅의 자유 통일이라고 하는 분명한 비전을 제시하면서, 두 개의 나라로 갈라지는 것을 한사코 막아내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선언한 것이다.

이번 ‘8·15 통일 독트린’은 30년 전 김영삼 정부에서 발표했던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보완하는 성격이 짙다. 그러나 지난 30년 사이에 국제정세나 대한민국의 국력이 크게 변했다. 북한이 ‘적대적 2국가론’을 선언하는 동안 대한민국은 군사력 세계 5위, 경제력 세계 10위권, 거기에 더해서 대한민국의 문화가 세계 곳곳 구석구석을 파고들어 이제 세계 어느 곳을 가도 한류를 만날 수 있는 힘 있는 나라로 성장했다.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체제 경쟁적이거나 북한의 눈치나 보고 끌려다니는 시시콜콜한 통일 방안을 두고 갑론을박할 수준을 넘어섰다는 얘기다.

 

▲기고자인 유영백 민주평통 전문위원. 유영백 위원 제공

 

윤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자유통일이 삶을 개선할 유일한 길임을 더 많은 북한 주민들이 깨닫고 통일 대한민국이 자신들을 포용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하면, 이들이 자유 통일의 강력한 우군이 될 것"이라고 했다. 중요한 워딩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북한 주민이 ‘깨달아야’ 하고, ‘믿어야’ 한다. 북한 주민 스스로의 변화를 통한 통일로 나아감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북한 주민들의 의사가 철저히 반영되는 통일은 결코 힘에 의한 현상 변화를 통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8·15 독트린을 두고 항간에 얘기되는 흡수통일이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다. 북한 주민들이 정보접근권을 통해 자신들이 보고 듣고 말하면서 어떤 통일을 할 것인지를 판단하라는 것이다.

 

북한 김정은이 남북관계를 "적대적이고 교전 중인 두 국가"라면서 "핵무력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 수단과 역량을 동원해 남조선 전 영토 평정"을 공언하는 것이야말로 북한식 흡수통일이다. ‘8·15 통일 독트린’은 이에 대한 적극적 대응이다. 일부 언론들은 북한 당국과의 관계에서 대화를 이끌 방법이 없는 구상이라고 하지만, 이미 북한 당국과는 대화라는 것 자체가 의미 없으며, 그들은 통일에 대한 의지 자체가 없다. 북한 당국을 대화로 유인하겠다는 발상은 이제 필요치 않아 보인다.

국제사회를 향한 끊임없는 통일에 대한 의지 표명과 제의는 북한에 심각한 변화가 일어났을 때 중국을 비롯한 외세의 개입을 차단한다는 차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누가 뭐래도 한반도는 우리 민족의 땅이고, 남북한은 하나의 민족이고 한 나라임을 국제사회에 지속적으로 알리는 것은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8·15 독트린에 대해 북한이 일시적으로 반발할지는 몰라도 북한 내부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않고서는, 그리고 김정은 김씨 왕가의 볼모로 살아가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결단 없이는 통일은 요원하다.
문화일보 정리=정충신 선임기자

 
 

09.05 정부 야당 연금 개혁안 큰 차이 없어, 개혁 골든타임 내 처리를

 정부가 현재 9%인 보험료율(내는 돈)을 13%로 올리고 소득 대체율(받는 돈)을 42%로 하는 내용의 국민연금 개혁안을 내놓았다. 또 연령대가 높을수록 보험료율을 더 빨리 올리는 방식으로 인상 속도에 세대별 차등을 두는 방안, 수명이나 가입자 수와 연계해 연금 수급액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자동 조정 장치’ 도입도 검토하자고 했다. 기초연금은 2026년 저소득층부터 40만원으로 지금보다 10만원 인상하는 내용도 담았다. 정부는 기금 고갈 시점을 이 개혁안대로 하면 16년, 자동 조정 장치까지 도입하면 32년 늦출 수 있다고 했다. 정부가 2003년 이후 21년 만에 국민연금 개혁안을 단일안으로 내놓은 데는 큰 의미가 있다.

 

이제 국민연금 개혁의 공은 민주당으로 넘어갔다. 국민연금 내는 액수는 1998년 이후 26년 동안 9%에 묶여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포퓰리즘에 빠져 제때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22년 기준 OECD 국가들의 평균 연금 보험료율은 소득의 18.4%로 우리의 두 배가 넘는다. 제때 손대지 않아 1년에 약 32조원, 하루 885억원씩 기금 적자가 불어나고 있다. 연금 개혁이 늦어질수록 미래 세대의 부담이 눈덩이처럼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여기에 저출생 고령화가 겹치고 있어 개혁을 하지 않으면 연금 제도가 아예 붕괴할 수밖에 없다.

 

정부안이 나왔으니 국회를 장악한 민주당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 민주당은 불과 넉 달 전인 지난 21대 국회 막판에 ‘내는 돈 13%, 받는 돈 44%’로 조정하는 안을 받아들인 바 있다. 이재명 대표도 이를 확인했다. 이번 정부안과 받는 돈 ‘2% 포인트’ 차이가 난다. 이 정도 차이는 여야 협상 과정에서 얼마든지 타협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은 세대별 인상 속도 차등, 자동 조정 장치 도입 등에도 부정적이라고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내는 돈, 받는 돈’에 대한 개혁이다. 이 개혁이 연금의 골격이다. 다른 세부 사항에서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하면 일단 이번 정기국회까지 ‘내는 돈, 받는 돈’ 개혁안을 처리해야 한다. 내년으로 넘어가면 2026년 지방선거 영향을 받아 정치권이 또 포퓰리즘에 빠질 수 있다. 큰 선거가 없는 올해가 나라의 미래를 위한 연금 개혁 골든타임이다.

조선일보 사설 

 

09-05 여야, 연금개혁 정부안 토대로 정기국회에서 타결하라

윤석열 정부가 4일 국민연금 개혁안을 발표한 것은, 노무현 정부 이후 21년 만에 정부 주도의 연금개혁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핵심 내용은 보험료를 9%에서 13%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42%로 묶기로 한 것인데,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선택이다. 젊은 세대의 보험료를 상대적으로 천천히 올리는 세대별 차등 인상이나, 기대 수명·연금 가입자 변화에 따라 연금 지급액을 조절하는 자동조정장치도 충분히 검토할 가치가 있는 개혁 방안이다. 선진국들도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해 연금의 지속가능성을 크게 높이는 효과를 거뒀다.

정부는 “재정 안정을 통한 지속 가능성을 높였다”고 하지만 여전히 불충분하다. 미흡한 모수개혁 탓에 지속가능성부터 한계가 뚜렷하다. 정부안대로 보험료율을 13%로 올려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18.2%에 크게 못 미치고, 학계가 추산하는 재정수지 균형을 위한 27.1%에는 절반도 안 된다. 운용 수익률을 4%에서 5%로 끌어올리겠다고 한 것 역시 희망 사항일 뿐이다. 의무가입 연령을 64세로 올리려면 정년 연장 등 후속 조치가 따라야 하는데, 사회적 갈등이 불가피하다. 자영업자는 물론 연금액의 절반을 나눠내는 기업 부담도 커진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국민의힘은 “청년·미래 세대를 위한 빅스텝”이라고 환영한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국민 부담은 올리고 연금은 깎는 개악”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거대 야당이 세대별 차등 인상을 “세대 갈라치기”, 자동조정장치엔 “사실상 연금 삭감”이라고 악평한 것은 험난한 협상을 예고한다. 하지만 2026년 지방선거, 2027년 대선을 고려하면 이번 정기국회가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여야는 지난 5월 ‘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44%’에 의견을 모았다. 이를 토대로 모수를 조정하고 자동조정장치·세대별 차등 인상 등에 머리를 맞대면 합의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더 미루는 것은 미래세대를 착취하는 역사적 범죄나 다름없다. 여야는 정부 개혁안을 바탕으로 정기국회 회기 중에 모수개혁 법안이라도 처리하기 바란다. 그러지 않으면 국민연금 파탄의 주범이 될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 

 
 

09.05 미래 세대 위한 연금개혁,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연금개혁 추진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21년 만에 나온 정부 개혁안, ‘재정 안정’에 방점

보험료율 차등 인상, 연금 고갈 시점 16년 늦춰

이제 개혁의 공은 국회로…합의안 도출 서두르길

 

국민연금 개혁을 위한 정부의 구체안이 마침내 나왔다. ‘더 내고 더 받는’ 방향으로 가되 연금 재정의 고갈 시점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한 방안을 담았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어제 국민연금심의위원회를 열어 이 같은 연금개혁 추진 계획을 심의·확정했다고 밝혔다. 정부가 구체안을 제시하고 연금개혁에 앞장서는 건 2003년 노무현 정부 이후 21년 만이다. 윤석열 정부 5년 임기의 절반을 지나가는 시점이어서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라도 구체적인 정부안을 냈다는 점에선 평가할 만하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발표했지만 복잡한 자료만 나열하고 알맹이는 쏙 빠진 ‘맹탕 개혁안’이란 비판을 받았었다.

 

연금개혁은 한시도 늦출 수 없는 최우선 국가 현안이다. 이대로 가면 국민연금 기금은 2056년에는 한 푼도 남지 않고 고갈된다. ‘적게 내고 많이 받게’ 설계한 현행 연금은 심각한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2056년 이후에도 국가가 연금을 지급하려면 세금을 대폭 올리거나 막대한 나랏빚을 낼 수밖에 없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미래 세대에 돌아간다. 마치 ‘폭탄 돌리기’처럼 기성세대가 미래 세대에 막대한 부담을 떠넘기는 무책임은 용납될 수 없다. 연금개혁이 늦어질수록 그만큼 미래 세대의 고통도 커질 뿐이다.

 

엄밀히 말해 이번 정부안은 미래의 연금 고갈 우려를 해소하기에 충분한 수준은 아니다. 정부안에 따르면 현재 소득의 9%인 연금 보험료율은 단계적으로 13%까지 인상한다. 2028년부터 40%를 적용할 예정인 소득대체율은 42%로 올린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은 보험료율 13%와 소득대체율 44%를 협상안으로 제시했었다. 정부안을 야당안과 비교하면 보험료 인상 폭은 동일하고 소득대체율은 2%포인트 낮다. 소득대체율 인상은 노후 소득 보장에는 긍정적이지만 연금 재정의 안정성에는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양면성이 있다. 정부는 연금개혁안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고갈 시점을 2072년까지 16년간 늦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계는 있지만 의미 있는 진전이다. 결국 이번 연금개혁은 끝이 아니다. 머지않은 장래에 다시 연금개혁에 나서야 하는 숙제를 남겼다.

 
 

앞으로 의회의 세부 논의에선 다양한 의견이 나올 것이다. 그럴수록 자기 입장보다는 우리 사회 전체를 생각하는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 예컨대 연금 보험료율을 세대별로 차등 인상하는 방안에 대해선 이해관계가 엇갈릴 수 있다. 그렇다고 보험료율을 똑같이 올리면 청년 세대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커지는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인구 구조의 변화나 가입자 수, 경제 상황 등과 연계해 연금 수급액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장치의 도입 방안도 전향적 논의가 필요하다. 자동조정장치가 있으면 개혁을 자주 하지 않아도 연금 재정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 우리보다 앞서 국민연금을 도입한 선진국의 상당수가 채택한 제도다. 물가 상승을 고려한 실질 연금액이 깎이는 단점은 있지만 세대 간 형평성에 맞도록 기성세대에도 일정한 양보가 필요하다.

 

이제 연금개혁의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그동안 야당은 여당의 연금특위 구성 요구에 대해 “정부안이 먼저”라고 대응했었다. 이제 정부안이 나왔으니 여야는 최대한 신속히 합의 도출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내후년 지방선거를 의식하지 않고 진정성 있게 연금개혁을 추진하려면 시간이 많지 않다. 소모적 정쟁이 아니라 우리 국가와 후대의 미래를 위한 건설적 대안을 마련하려는 정치의 결단이 필요하다.

중앙일보 사설

 
 

09.06 "연금 자동 조정 장치, 고갈 시점 16년 늦춰" 對 "받는 연금 17% 깎자는 거냐"

이슈로 등장한 '자동 조정 장치'

 ▲그래픽=김현국

 

정부가 4일 국민연금 개혁안에서 제시한 ‘자동 조정 장치’가 이슈로 등장했다. 이 장치는 연금 제도가 저출생·고령화 등 인구구조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가입자 수와 수명 변화를 반영해 기존 수급자의 연금액을 조정하는 방안이다.

◇인구·수명에 따라 자동 조정

현재 국민연금은 수급자의 연금액을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매년 더하고 있다. 정부가 내놓은 자동 조정 장치는 여기에 ‘최근 3년 평균 가입자 수 증감률’과 ‘기대여명(특정 나이 사람이 몇 살까지 더 살 수 있는지 가능한 햇수) 증감률’을 반영해 연금액을 추가로 조정하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존 연금액이 100만원이고 지난해 물가상승률이 5%라면 현행 방식은 기존 연금액에 5% 더한 105만원으로 오른다. 그런데 자동 조정 장치가 작동할 경우 가입자 수가 1.0% 줄고, 기대여명이 0.5% 늘었다면 물가상승률 5%에서 두 수치(1.0%, 0.5%)의 합을 빼고 3.5%만 인상해 103만5000원을 주는 것이다.

 

▲그래픽=김현국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국 중 24국이 연금제도에 이런 장치를 두고 있다. 저출산이나 경기 불황 등이 이어질 경우 연금액을 자동으로 낮춰 급격한 연금 소진을 막기 위한 장치다. 연금 수급액을 정치적 논의나 정부 결정에 따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변수에 따라 조정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투명하고 환경 변화에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각국이 운영하는 방식은 조금씩 다르다. 스웨덴은 연금 부채가 자산보다 커질 경우 연금액을 조정하는 방식이고, 독일은 전체 경제활동인구와 연금 수급자 규모의 변화(제도 부양비)를 바탕으로 급여 수준과 보험료율을 자동 조정하고 있다. 반면 핀란드처럼 기대여명이 증가하면 연금액과 수급 개시 연령을 조절하게 설계한 방식도 있다. 4일 정부가 내놓은 방식은 일본이 가동 중인 일명 ‘거시경제 슬라이드’ 방식과 비슷하다. 일본은 지난 2004년 연금액을 기대수명 연장과 출산율 감소에 연동해 삭감하는 자동 조정 장치를 도입했다.

◇작은 수치라도 쌓이면 위력

물가상승률에서 1~2% 깎는 것이 작아 보이지만 복리처럼 여러 해 쌓이면 상당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복지부는 이번 개혁안에서 보험료율을 13%, 소득대체율을 42%로 올리면 기금 고갈 시점을 2056년에서 2072년으로 16년 연장할 수 있지만, 2036년에 자동 조정 장치까지 도입하면 기금 소진 시점을 2088년으로 32년 늦출 수 있다고 했다. 거칠게 표현하면 내는 돈, 받는 돈 조정으로 16년, 자동 조정 장치로 16년 소진 시점을 연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픽=김현국

 

다른 모의실험 결과도 있다. 국민연금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보험료율을 15%로 올리고 일본식 자동 조정 장치를 적용할 경우, 기금 예상 고갈 시점을 현재 예상 시점인 2055년보다 38년을 늦출 수 있다. 보험료율만 15%까지 인상할 경우 기금 소진 시점은 2071년인데, 이보다 22년 더 연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1인당 급여 변화는 ‘국민연금 가입자의 평균 소득자’를 기준으로 할 때 2030년 신규 수급자가 월 83만8000원에서 82만5000원으로, 2050년 신규 수급자의 경우 167만4000원에서 164만7000원으로 각각 1만3000원, 2만7000원 낮아진다는 것이 국민연금연구원 보고서 내용이다. 1.6% 정도 줄어드는 데 그치는 수준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 보고서를 토대로 “2030년 신규 수급자 기준으로 연금 수급 총액의 17% 가까이 깎인다”며 자동 조정 장치 도입에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자동 조정 장치를 2025년 도입할 경우, 2030년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수급자의 생애 총급여는 제도 적용 전 1억2675만원에서 적용 후 1억541만원으로 16.8%(2134만원) 줄었다. 같은 조건에서 2050년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수급자의 생애 총 급여는 1억2035만원에서 9991만원으로 17%(2044만원) 감소했다. 설계에 따라 자칫 연금액이 대폭 깎이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올만 한 결과다. 다만 전문가들은 자동 조정 장치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설계하고 계수(係數)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스란 복지부 사회복지정책실장은 “가입자가 계속 줄고, 기대여명이 더 늘어도 본인이 낸 것만큼은 돌려준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연금액) 최저한은 있고, 전년도 받은 돈보다 그해 받을 연금액이 적어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물가 상승분을 다 적용하지 않으면 실질 가치만큼은 보전되지 않는 문제는 있다”며 “하지만 자동 조정 장치는 지속 가능성을 위해 부담을 서로 나눠야 한다는 취지를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도입해야 할 제도” 대 “시기상조”

자동 조정 장치 도입에 대해 전문가들은 “언젠가는 도입해야 할 제도로, 방향은 불가피하다”고 했다. 연금 전문가인 윤희숙 전 의원도 “자동 조정 장치가 개념적으로는 우수한 장치”라고 말했다.

 

다만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는 소득대체율이 높지 않은데 자동 조정 장치를 도입하면 노후 소득인 연금액이 지나치게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자동 조정 장치는 보험료율이 거의 20%에 달하는 서구 국가에서 도입한 장치”라며 “우리는 보험료율 등 인상 여지가 아직 넉넉하기 때문에 당장 도입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연구원 성혜영 연구위원은 “보험료율을 다 올리고 자동 조정 장치로 도입한다는 건 잘못 알려진 얘기”이라며 “대부분 국가가 연금 개혁을 할 때 보험료율 인상과 자동 조정 장치를 도입을 동시에 추진했다”고 말했다. 일본의 경우 2004년 연금 보험료율을 13.9%에서 2017년까지 단계적으로 18.3%까지 올리면서 자동 조정 장치를 같이 도입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장치를 도입하면 기금 소진이 늦춰지겠지만, 소득 보장 수준이 달라질 수 있어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장치를 당장 도입하자는 것보다는 도입 논의를 본격적으로 해보자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복지부가 제시하는 발동 시점도 가장 가까운 시점이 2036년(급여 지출이 보험료 수입을 넘어서는 해)이기 때문에 아직 논의할 시간은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부부 기초연금 64만원, 국민연금 평균 수령액과 같아져

정부는 이번에 국민연금 개혁안을 내면서 현재 월 33만원 수준인 기초연금을 40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했다. 2026년 기준 중위 소득 50% 이하를 대상으로 올린 다음 2027년 전체 대상자(소득 하위 70%)로 확대하겠다고 했다.

 

이 발표를 두고 아쉬워하는 전문가가 적지 않다. 이번에 연금 구조 개혁 방안을 내놓겠다고 해서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관계 재설정 방안이나 기초연금 대상자를 점차 줄여나가는 방안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기 때문이다.

 

65세 이상 중에서 소득 하위 70%로 지급 대상을 고정해 놓은 현행 기초연금 제도는 현실적으로 지속하기가 어려운 구조다. 노령화로 전체 노인 인구가 급격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요즘 65세에 진입하는 베이비붐 세대는 소득·자산 수준이 높아져 기초연금을 주어야 하느냐는 논란이 커지고 있다. 소득 하위 70%를 선정하는 기준인 소득 인정액이 15년 전 월 68만원에서 올해 그 3배가량인 213만원으로 올랐다. 이 수치는 여러 가지를 공제한 소득 인정액 기준이기 때문에 실제 기초연금을 받는 사람의 소득·재산 수준은 이보다 훨씬 높을 수밖에 없다. 근로소득만 있을 경우 부부가 706만9000원을 벌어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현행의 ‘65세 이상 70%’인 기준을 ‘일정 소득 이하’로 바꿔 점차 대상을 줄여나가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런데 이번에 그런 개선 방안은 나오지 않은 것이다.

 

기초연금 예산(국비+지방비)은 올해 24조4000억원으로, 10년 전 6조9000억원의 3.5배로 급증했다. 우리나라 복지 사업 중 가장 많은 금액이다. 이 액수가 2026년엔 31조5000억원으로, 2027년 33조8000억원으로 늘어난다.

 

국민연금 관계도 문제다. 기초연금을 40만원으로 올리면 부부는 20% 감액하더라도 64만원을 받는다. 이는 평생 보험료를 낸 국민연금 가입자의 평균 수급액 64만2320원과 차이가 없다. 국민연금 가입 동기가 현저히 약해질 수밖에 없다. 윤희숙 전 의원은 “기초연금은 손봐야 할 부분이 많고 복지부도 많이 준비한 것으로 아는데, 이번 발표에서 기초연금 제도는 건드리지 않은 것은 뼈아픈 부분”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김민철 기자 

 

09-06 야당, 정부안보다 나은 연금案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정부가 4일 국민연금 개혁 방안을 내놨다. 2003년 이후 21년 만의 일이다. 정부 안의 세 가지 원칙 즉 ‘지속가능성, 세대 간 공정성, 노후소득 보장’에 대해 이견을 달기 어렵다. 세대 간의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고 다음 세대의 희생을 강요하는 연금 시스템은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노후소득 보장 역시 국민연금 제도의 본질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낮은 출생률과 빠른 고령화로 인해 다른 어느 나라보다 강도 높은 연금개혁이 필요하다. 부담률을 13%로 높이고 소득대체율을 2%p 높이는 것만으로는 매년 7.8%p 정도의 보험료 부족분만큼 추가 부채를 발생시키게 된다. 재정 안정 달성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정부는 매년 기금운용수익률을 1.0%p 높이고 이에 더해 물가, 기대수명, GDP 성장률, 연금 가입자 변화 등에 따라 연금 지급액을 조정하는 자동 조정 장치도 도입하기로 했다. 이렇게 하면 기금 소진 시점을 최대 32년까지 늦출 수 있다고 한다.

세대별 차등 보험요율 인상분을 적용해 세대 간 형평성을 제고하겠다는 방안도 전향적이다. 정부가 ‘세대별 보험료율 인상 속도 차등화’와 ‘연금 지급 보장 명문화’를 함께 추진하는 것은 국민연금에 대한 청년세대의 높은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개혁 추진 과정에서 부담이 커지는 중장년층의 반발 설득이 과제로 남아 있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압도적 다수인 야당은 세대별 보험료율 차등 인상은 세대 간 갈라치기, 자동 안정 장치의 도입은 사실상 연금 삭감이라며 일단 비판적인 것으로 보인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기 위해서는 야당도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제21대 국회 막판이던 지난 5월 야당에서는 보험료율을 13%로 인상하고 소득대체율을 44%로 하는 방안으로 합의안을 도출하려 한 바 있다는 점에서 정부 안보다 더 지속가능하고 노후소득 보장이 충실하며 세대 간 형평성을 제고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 충실한 토론에 임하기를 촉구한다.

이 밖에도 정부 안에는 기초연금을 오는 2026년부터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현재 30만 원 수준에서 40만 원으로 올려 저소득층의 노후소득 보장을 두껍게 한다는 방안이 들어 있다. 그러나 저소득층이 아니라 70%의 노인 전체 급여를 40만 원으로 인상하면 중하위 소득계층의 국민연금 가입 유인을 현저히 떨어뜨리게 된다. 저소득 노인층의 급여를 올리고, 기초연금이 본연의 목적인 노인 빈곤 해소에 집중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낮은 연금 문제는 이중적이고 경직적인 노동시장에 상당 부분 기인한다. 연금개혁과 노동시장 개혁을 동시에 추진해 정부가 제시하는 의무 납입 연령을 64세로 5세 연장하는 방안을 하루빨리 시행해야 한다. 의무 납입 연령을 5년 연장하는 경우 소득대체율 13% 인상의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연금의 선진국으로 꼽히는 북유럽과 독일 등에서는 기업의 퇴직연금이 국민연금에 더해 노후소득 보장의 중추적인 역할을 함께한다. 정부 안에서도 퇴직연금의 단계적 의무화와 연금으로 수령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이제 구슬을 꿸 때가 됐다. 국민연금 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치는 것은 국민에게 죄를 짓는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문화일보 

 

09.06 신속 재판 모범 보여주는 판사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경영권 승계 관련 2심 재판부가 10월까지 다른 사건을 맡지 않기로 했다. 재판부는 애초 이 사건을 집중 심리 하기 위해 지난 7월부터 두 달간 새 사건을 배당받지 않았는데 이를 두 달 더 연장한 것이다. 재판부는 집중 심리가 필요할 경우 신건 배당 중지를 요청할 수 있는 규정에 따라 이를 요청했고, 서울고법이 받아들인 것이다. 재판부는 이미 “선고를 법관 인사이동(내년 1월 말) 전에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판결을 다음 재판부에 미루지 않고 끝내겠다는 뜻이다. 신건 배당 중지 기간을 연장한 것은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이 사건 1심은 지난 2월 무죄가 선고되기까지 3년 5개월이 걸렸다. 재판만 107차례 열렸다. 그런데 2심 재판부가 내년 1월에 선고하면 검찰이 항소한 지 11개월 만에 재판을 끝내는 게 된다. 통상 2심 재판은 1심보다 시간이 덜 걸리지만 사건 규모 등을 감안할 때 빠른 속도다.

 

사실 이런 재판 속도는 예외적인 것이 아니다. 형사 재판은 집중 심리가 원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김명수 사법부’ 시절 재판 지연이 일상화돼 이런 정상이 주목받게 된 것이다. 김명수 사법부 시절 재판 지연으로 ‘조국 재판’ 1심 유죄 판결은 3년 2개월이 걸렸고,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1심 유죄 판결은 3년 10개월 만에 나왔다.

 

이 비정상은 지금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오는 10월 중 1심 선고가 예상되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위증 교사 사건은 기소 1년 만에, 선거법 위반 사건은 약 2년 만에 선고가 나오는 것이다. 비교적 간단한 사건인데 선거법 위반 사건 1심 재판장은 재판을 1년 4개월 끌다 선고도 하지 않고 돌연 사표를 내기도 했다. 문제는 이런 속도라면 이 대표 관련 사건에 대한 대법원 확정 판결이 대선 전까지 나올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다는 데 있다. 만약 확정 판결 전에 이 대표가 출마하면 사회적 혼란이 시작될 것이다.

 

이제라도 형사 재판은 집중 심리를 통해 최대한 빨리 결론을 내는 정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피고인에게도 불확실성이 줄어든다. 사법부 전체가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9.07 기금 수익률 제고 방안 빠진 연금 개혁은 반쪽

 정부가 국민연금 개혁안을 발표하면서 연 4.5% 수준인 현재의 기금 운용 장기 수익률을 1%포인트 이상 높이겠다고 했다. 수익률을 1%포인트 올리면 보험료율을 2%포인트 올리는 것과 맞먹는 효과가 있다. 기금 소진 시점을 늦추는 개혁엔 기금 운용 수익률 제고 방안도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국민연금은 현재 1100조원을 넘어 일본 공적 연금(약 2188조원), 노르웨이 국부 펀드(약 1993조원)에 이어 세계 3대 연기금이 됐다. 올 들어 6월 말 기준 9.71%의 수익률로 선방했지만 기복이 심한 편이다. 지난 10년 평균은 4.99%였다. 같은 기간 캐나다 연기금은 9.58%에 달한다. 캐나다 연기금은 해외 투자 비율이 80%가 넘고 대체 투자 비율이 전체 자산의 50%가 넘는 등 글로벌 분산 투자를 잘하고 있다. 네덜란드 연기금도 해외와 대체 투자에 각각 95%, 32.5%를 집행한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51.5%, 15.9%에 그치고 있다. 이 비율을 높이려면 다국적 최고 전문가를 영입해 전문성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

 

현재의 기금운용본부 체제로는 이런 전문가 영입과 전문적인 투자가 쉽지 않다. 현재 기금운용본부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 적용을 받는데 이런 처우로는 해외·대체 투자 전문가를 영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설상가상으로 정치 논리에 휩쓸려 1100조원을 굴리는 기금운용본부가 전주로 이전하면서 국내 금융 전문가들을 충원하는 것도 더 어려워졌다. 기금운용본부 정원을 다 채운 적이 없을 정도다. 심지어 자산 배분 등을 결정하는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는 대부분이 금융 비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 기금운용위원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이고, 정부 측 위원이 5명 참여한다. 나머지 14명 중에 사용자 대표 3명, 근로자 3명, 지역가입자 대표 6명 등으로 금융 비전문가들이다.

 

국민연금의 가장 중요한 운용 원칙은 수익성이다. 전문성과 독립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기금운용본부의 지배 구조 자체를 개혁해야 한다. 기금운용본부를 한국투자공사(KIC)처럼 별도 기구화하고 운용 수익률을 높이는 데만 주력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수익률 제고 방안이 빠진 연금 개혁은 반쪽 개혁이다.

조선일보 사설

 

09.07  5·18 진상규명위 조사보고서 분석

 광주에서 헬기 기총소사에 의한 양민 학살은 없었다!

 사격조종사 한 명의 이름도 대지 못한 5·18 진상규명위 조사보고서 분석. 문재인 정권 시절 국방부 특조위의 ‘양민 학살’ 결론은 전두환 회고록 재판과 진상규명위 조사를 거치면서 부인되었다. 이제 국군을 나치 군대처럼 만든 문재인, 송영무, 특조위를 조사하고 보고서를 취소해야 한다.

 

⊙ 5·18 진상규명위도 사람을 겨냥한 기총소사가 아닌 위협사격 수준의 ‘헬기 사격’만 인정, 이마저도 조종사들 전원이 부인
⊙ 국방부 특조위의 구성과 조사 과정에 근원적 의문점 있어
⊙ 무장헬기 출동이 있었고 사격 명령이 있었으니 사격이 있었을 것이란 난폭한 논리
⊙ 사격 명령 받은 조종사들이 인명 피해를 우려, 이를 거부했는데도 ‘사격했다’고 몰아 진짜 ‘광주의 義人들’을 학살범으로 만들었다
⊙ 대통령과 국방장관은 국군 명예회복에 나서고 안보 단체가 앞장서야
⊙ 역사 조작의 가장 큰 피해자는 광주시민들이 될 것

▲5·18 진상규명위 조사보고서. 코브라 헬기 사격 모습.

 

광주(光州) 헬기 기총소사설(機銃掃射說)은 1980년 5월로부터 9년이 흘러 처음으로 제기되었다가 1995년 김영삼 정부 시절 수사에 의하여 사실무근으로 정리되었는데 이로부터 22년이 흘러 2017년에 다시 논란이 되었다. 문재인(文在寅) 정권이 들어서자 기존의 국가 판단을 180도로 뒤집고 국방부가 ‘헬기 사격에 의한 양민 학살’을 인정하고 사과하기에 이르렀다. 같은 시기에 벌어진 전두환(全斗煥) 회고록 재판에선 사람을 향한 헬기 기총소사가 아니라 그냥 ‘헬기 사격’으로 쟁점이 축소되어 인명(人命) 사상 여부와 관계없이 일단 ‘사격 자체는 있었다’로 판단되어 피고인에게 유죄(有罪)가 선고되었다. 최근 5·18 진상규명위원회도 사상자에 대한 증거는 제시하지 않고 ‘헬기 사격은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광주 헬기 사격’은 국가 권력의 변천에 의하여 만들어진 ‘역사 왜곡’인가, 아니면 ‘진실 발굴’인가가 이 기사의 쟁점이다.


문재인과 기총소사설

▲2017년 3월 20일 옛 전남도청 보존을 위해 천막 농성 중인 5·18 관련 단체 회원들과 만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전일빌딩 기총소사에 대한 진상규명을 약속했다. 사진=조선DB

 

2017년 1월 12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37년 만에 공식화했다”고 뉴시스가 보도했다. 광주시에 따르면 국과수는 전일빌딩 안팎에서 발견한 185개 총탄 흔적에 대한 법의학 감정 보고서를 제출했는데 보고서에는 전일빌딩 외벽에서 35개, 10층 옛 전일방송 내부에서 150여 개의 총탄 흔적을 발견했으며 “헬기가 호버링(hovering·정지) 상태에서 고도만 상하로 변화하면서 사격한 상황이 유력하게 추정된다”는 내용이 실렸다고 전했다. 이 감정 결과에 따라 광주시는 전일빌딩이 갖는 역사·상징성을 고려해 전일빌딩 내에 추념 공간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했다. 뉴시스는, 5·18기념재단과 5월 단체도 이번 감정 결과를 토대로 전일빌딩 원형 보존과 5·18 헬기 사격 진실규명에 앞장설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 예비 후보는 2017년 3월 20일 윤장현 광주시장과 함께 전일빌딩 10층을 방문했다. 당시 언론은 문 후보가 ‘헬기 총탄 자국 현장’을 살핀 후 옛 전남도청 보존대책위 농성장을 찾았다고 보도했다. ‘헬기 사격’을 기정사실로 전제한 기사문이었다. 언론은 ‘5월 어머니들’이 “전날 KBS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문 후보가 군 복무 중 전두환 공수여단장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은 사실을 공개한 데 대하여 항의했다”고 전했다. 문 후보는 이들에게 “(대통령이 되면) 5·18 광주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고 5·18을 폄훼하는 발언에 대해서도 엄벌하겠다. 전일빌딩 기총소사 부분도 규명하여 발포 명령자를 밝혀내겠다. 노여움을 풀어달라”고 말했다. 그해 8월 23일 문재인 대통령은 송영무 국방장관에게 ‘공군 전투기 부대의 광주를 향한 출격 대기 명령 관련 언론 보도와 전일빌딩 헬기 기총소사 사건에 대하여 특별조사’를 지시했다.


‘집단 살해 내지 양민 학살’

2017년 9월 출범한 5·18 특조위는 5개월의 활동 기간을 거쳐 2018년 2월 ‘5·18 기간 동안 광주 지역에서 공지협동 작전의 일환으로 헬기 사격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계엄군은 5.21. 헬기를 이용하여 일반 시민에게 위협사격을 하였고, 무장을 하지 아니하고 시위를 하는 시민들에 대하여 직접 사격을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5.21. 헬기 사격은 무차별적이고 비인도적인 것으로서 계엄군 진압 작전의 야만성과 잔학성 그리고 범죄성을 드러내는 증거이다. 또한 시민들과 물리적 충돌을 하고 있는 과정에서 실시되었던 지상군의 사격과 달리 헬기 사격은 사전 계획적·공세적 성격을 띠고 있다. (중략) 대량 살상 능력을 갖춘 무장헬기까지 동원하여 사격을 하고 시민을 살상하는 행위는 집단 살해 내지 양민 학살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 보고서의 신뢰성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언론은 《월간조선》(2018년 10월호, 조갑제·이지영)뿐이다. 특조위 결론은 양민 학살인데 학살범, 즉 조종사들은 한 사람도 특정되지 않았고 학살을 초래한 기총소사가 어디서 언제 있었는지는 언급이 없는 괴이한 보고서였다. 조사에 응한 조종사들은 무장 상태로 비행했고, 사격 명령을 몇 차례 받았지만 인명 피해가 우려된다고 판단, 사격을 거부했다고 증언했다. 특조위는 조종사의 주장을 반박하는 증거는 하나도 제시하지 못하고 무장헬기가 투입되었고 사격 명령도 있었으니 사격은 있었을 것이란 난폭한 논리(억지)를 적용, 국군을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연상시키는 반(反)인류 범죄 집단으로 몰았다. 물론 사격으로 죽거나 다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밝혀내지 못한 환상적(幻想的) 보고서였다. 국방부 장관은 이 보고서에 대한 재조사를 명령하지 않고 그대로 수용, 국민들에게 사과, 국가적 판단으로 공인했다.


재판에서 ‘기총소사’가 ‘헬기 사격’으로 변질

▲2020년 11월 30일 고(故) 조비오 신부 명예훼손 혐의 재판을 받기 위해 광주지방법원에 출두한 전두환 전 대통령. 전 전 대통령은 결국 유죄판결을 받았다. 사진=조선DB

 

광주 헬기 기총소사의 실체적 진실에 대한 제대로 된 공방은 법정에서 이뤄졌다. 지금은 고인(故人)이 된 전두환 전 대통령이 2017년 회고록을 내면서 기총소사를 주장한 조비오 신부를 비방했다고 하여 사자(死者)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재판이었다. 2020년 11월 30일 광주지방법원은 2년 5개월을 끈 재판 끝에 전두환 피고인에게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의 유죄를 선고했다. 이 판결문에서 쟁점은 ‘헬기 기총소사’가 아니라 ‘헬기 사격’으로 축소된다. 사건의 핵심은 통상적으로 광주시민들을 겨냥한 사격, 즉 기총소사로 여겨졌는데 재판부는 인명 살상에 대한 규명 노력을 배제하고 위협사격 성격을 포함한 ‘헬기 사격’ 자체가 있었는가만 따졌다.(물론 전두환 측과 조종사들은 위협사격도 부인했다.)


재판부는 판결문 서두에 사건의 쟁점을 이렇게 정리한다.

〈이 사건 회고록 중 쟁점 부분에서는 피해자(조비오-필자 주)의 주장을 ‘헬기 기총소사’가 있었다는 것으로 기재하였으나, 피해자의 진술은 헬기에 의한 사격에 중점이 있고 피고인(전두환-필자 주)도 헬기에 의한 사격 사실 자체가 없다는 취지로 주장하고 있으며, 이 사건 회고록의 전체 취지도 피고인의 주장과 같으므로, 적시의 대상이 되는 사실은 헬기 기총소사가 아닌 헬기 사격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보아야 한다.〉

사람을 살상하는 헬기 기총소사가 아니라 헬기가 사격을 한 사실만 확인되면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유죄를 선고할 수 있다는 식이다. 앞서 있었던 국방부 특조위의 ‘집단 학살을 야기한 헬기 사격’은 재판에서 사라졌다. 문제가 된 회고록 내용(재판의 쟁점 부분)은 이러했다.

〈천주교의 조○오 신부도 명백히 광주 불로천변을 향해 헬기에서 드르륵 하는 소리를 내며 기총소사하는 장면을 자신의 눈으로 분명히 보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헬리콥터의 기체 성능이나 특성을 잘 몰라서 하는 얘기이거나 아니면 계엄군의 진압 활동을 고의적으로 왜곡하려는 사람들의 악의적인 주장일 뿐이다.… 조○오 신부님은 90. 2. 23. 방영된 MBC의 다큐멘터리 ‘어머니의 노래’에서 인터뷰를 통해 ‘1미터 정도의 불꽃을 내뿜으면서 드르륵 드르륵 드르륵 3번이나 지축을 뒤흔드는 기총소사를 직접 목격하였다’고 말씀하셨는데… 지축이 흔들리는 정도의 사격 소리가 날려면 500엠디의 기관총 소리보다는 코브라의 발칸포여야 하는데 당시에는 코브라가 광주에 없었으며… 한 명의 부상자도 직접 증언이 없었(고)… 헬리콥터의 기총소사에 의한 총격으로 부상한 사람들을 목격했다는 진술도 헬리콥터가 장착한 화기의 성능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터무니없는 주장임이 방○○ 항공단장의 진술로 증명되었다.… 그러나 조○오 신부는 자신의 허위 주장을 번복하지 아니하였다. 조○오 신부는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다.〉


이게 판사가 쓴 글이 맞나?

기소 대상이 된 회고록엔 통상적으로 사람을 향한 사격으로 해석되는 ‘기총소사’란 표현이 있는데 이를 단순히 ‘헬기 사격’으로 축소하면 검찰은 총 맞은 사람들을 찾아낼 의무를 피하게 된다. 유죄 인정이 훨씬 쉽게 되는 것이다.

재판부는 선고문에서 ‘헬기 사격이 있었다면 엄청난 희생이 있었을 것’이라는 전두환 전 대통령 측의 반론에 대하여 “피해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위협사격을 배제한 채 시민들을 향해 조준사격하는 것을 전제로 주장하는 것이어서 그 전제가 잘못되었다”며 배척한다. 1995년 헬기 사격이 없었다는 검찰 수사 결과도 대부분의 근거가 “헬기 사격이 있었다면 실제 대규모의 피해가 발생하였으리라는 전제에 터 잡은 것이므로 위협사격의 가능성을 배제한 것이다”라면서 이 사건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판단한다. 판사가 갑자기 사건의 쟁점을 ‘인명 살상 사격’이 아니라 ‘위협사격’으로 이동시켜 사안의 성격이 작아진 것이다.

이에 따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유죄선고를 받긴 했지만 계엄군이 광주사람들을 헬기 기총소사로 죽인 행위를 했다는 것을 인정한 선고는 아니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측 정주교 변호사는 1심 유죄에 대하여 항소이유서를 쓰면서 “원심(原審) 판결은 ‘이것이 판사가 쓴 판결문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한다” “편파적이고 자의적 판단을 자유심증주의(自由心證主義)로 포장하고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목격자의 거짓과 착오를 철벽 방어했다”고 개탄했다.

정 변호사는 원심 판결이 ‘목격자 진술’만으로 헬기 사격이 증명되었다고 판단했다면서 사격이 있었다는 결론을 내기 위하여 적용한 이상한 억지들을 예시했다.

*전두환 측: 같은 장면을 목격했다는 두 사람의 말이 서로 다르다.
→ (1심 재판부 판단) 오히려 두 사람이 말을 맞추어 허위로 진술하지 않았다고 볼 근거.

*전두환 측: 목격자가 매번 진술을 번복하였다.
→ (1심 재판부 판단) 시간의 경과에 따른 자연스러운 과정이므로 오히려 신뢰할 수 있는 근거.

*전두환 측: 목격자는 502항공대 헬기를 목격했다고 진술했는데 그 헬기는 사격이 불가능한 가스살포기 탑재.
→ (1심 재판부 판단) 목격자가 본 헬기가 502항공대 헬기라고 단정할 수 없다.

*전두환 측: 목격자는 헬기의 왼편에 있었기 때문에 오른편을 볼 수 없었다.
→ (1심 재판부 판단) 반대편이라고 하여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전두환 측: 10만여 명의 시위대가 모여 있던 광주시내 상공에서 헬기 사격이 있었다면 그것을 본 사람이 불과 8명뿐인가.
→ (1심 재판부 판단) 모든 목격자를 전부 조사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두환 측: 군인들이 전부 헬기 사격은 없었다고 진술하였다.
→ (1심 재판부 판단) 군인들이 부인한다고 하여 헬기 사격이 없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전두환 측: 사람들이 밀집한 광주시내 여러 곳에서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하면서 왜 피해자가 한 사람도 없는가.
→ (1심 재판부 판단) 위협사격을 배제한 채 조준사격만을 전제로 한 주장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

*전두환 측: 광주시내 여러 곳에서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하면서 왜 헬기 사격의 흔적이 하나도 없는가.
→ (1심 재판부 판단) 현장이 원상태로 보존되지 않았기 때문.


‘쓰레기 분리 처리 식’으로 증언을 왜곡

▲정주교 변호사. 사진=조선DB

 

재판부는 “목격자가 헬기 사격을 봤다고 진술”했기 때문에 “군인들이 부인한다고 하여 헬기 사격이 없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논리를 세웠는데, 전두환 측 변호인은 그 반대 경우에도 그 논리가 그대로 성립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즉 “원심 판시 논리에 의할 경우 ‘목격자가 사격이 있었다고 진술하더라도 군인들이 사격은 없었다고 진술하고 있기 때문에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명제도 동시에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주교 변호사는, 판사가 군인들의 진술을 “쓰레기 (분리) 재처리하듯 해 유죄의 증거로 사용했다”며 분개했다. 판사는, 군인들 진술이 “헬기 사격이 없었다”는 내용임에도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목격자들의 진술에 부합하는 부분이 있으면 그것만 떼어내어 유죄의 증거로 재활용했다는 것이다(항소 이유서 초안).

〈예를 들어 전교사 부사령관 김기석 장군이 육군참모차장 황영시 장군으로부터 무장헬기를 동원하여 시위를 강경 진압하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자신은 그 지시를 거부하고 대화를 통해 수습하였다고 한 진술은 헬기 사격이 없었다는 진술입니다. 그런데 원심은 김기석의 진술 중 무장헬기를 동원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진술 부분은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증거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원심이 김기석의 진술과 공소사실이 부분적으로 부합한다고 한 판단은 마치 ‘발가락이 닮았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항소 이유서는 “한 사람의 진술은 전체적 맥락에서 진술의 취지를 발견해야 마땅한데 이를 무시한 채 진술에 사용한 일부 용어가 유사하다고 하여 공소사실에 부합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악의적 사실 왜곡”이라면서 “헬기 조종사들이 500MD 헬기의 무장 사실을 자인(自認)한 진술이 헬기 기총소사에 부합한다”고 판단한 1심 판단을 강하게 규탄했다. 헬기 조종사들의 진술은 무장한 사실을 ‘자인’하면서 기총소사는 강경하게 ‘부인’하는 내용이었다. 기총소사에 대한 ‘적극적 항변’을 기총소사를 입증하는 것으로 조작했다는 뜻이다. 1심 재판부가 ‘쓰레기 재처리하듯’ 선별적으로 유죄의 증거로 사용한 헬기 조종사들의 진술은 그 취지가 ‘사격 부인’이었던 것이다.

전두환 측은 “비겁하게도 권세에 눌려 거짓을 추종하는 길을 선택했다. 이로 인하여 원심은 그 지방의 민심에 영합한 판결을 선고함으로써 개인적 화(禍)를 면하게 되었지만, 그로 인하여 이 나라는 역사 왜곡이라는 큰 화를 입게 되었다”고 개탄했다.


진상규명위도 ‘기총소사·양민 학살 증거’ 찾지 못해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에 근거하여 2019년 12월 27일부터 2023년 12월 26일까지 실시된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송선태)의 종합보고서가 지난 6월 24일 대통령과 국회에 제출되었다. 13개 조사 항목 중 ‘5·18 민주화운동 당시 군에 의한 헬기 사격 사건’에 대해서는 보고서 채택 여부를 둘러싸고 위원들의 표결이 있었는데 찬성 6, 반대 3으로 진상규명이 이뤄졌다고 결정했다. 이 보고서의 헬기 사격 부분을 읽어보면 여기서도 전두환 회고록 재판의 맥락을 이어받아 헬기 기총소사가 아닌 헬기 사격을 전제로 조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전두환 재판과 진상규명위 활동이 국방부 특조위의 주장을 강화하기는커녕 사실상 양민 학살의 존재를 부인하는 결과가 되었으니 특조위만 외롭게 되어 국군을 학살 집단으로 몬 ‘역사 조작’의 책임자로 몰리게 된 셈이다.

국방부 특조위가 집단 살해, 양민 학살이었다고 발표한 ‘헬기 기총소사’는 재판 과정에서 그냥 ‘헬기 사격’으로 축소되고 이번 진상규명위 조사 결과는 이렇다 할 새로운 증거의 발견 없이, 즉 사망자·부상자·쏜 조종사를 한 명도 확인하지 못하고 개연성과 가능성 수준에서 몇 군데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식으로 마무리된 것이다. 세 차례 국가적 조사와 재판 결과를 요약한다면 1980년 5월에 광주에서는 시민들을 죽이기 위한 헬기 기총소사는 없었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이것이 2017년 전일빌딩 탄흔 논란으로 시작된 8년에 걸친 세 군데 조사의 유일한 성과일지 모르겠다.


진상규명위의 보고서 중 결론 부분을 요약하면 이렇다.

〈위원회의 조사 과정에서 출동한 모든 기종의 헬기에서 사격 가능성이 발견되었다. 위원회 조사에서 조종사, 무장사, 정비사 중 일부는 최초 본대에서 출동할 당시 무장을 하고 광주로 들어왔다는 진술을 하였다. 위원회는 출동하는 조종사들에게 “코브라는 20mm 발칸을, 500MD는 7.62mm 기관총을 운용하라”는 지침을 주었고, 동시에 광주 상황의 심각성을 주지시킨 것으로 보았을 때 현지의 상황에 따라 사격도 충분히 전제해두었던 것으로 판단하였다.

위원회는 광주로 투입된 이후 비행 임무를 수행할 때 무장 수준 또한 사격 가능한 상태였다는 것을, 조종사, 무장사, 정비사, 그리고 승무원에 대한 대인조사에서 확인한 바 있다. 비행 중인 조종사들에게 전달된 사격 관련 지시 등은 광주에서 작전을 수행 중인 헬기들의 무장 수준이 바로 사격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태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위원회에서는 비행 임무 중인 조종사들에게 사격 지시와 명령이 여러 번 있었다는 사실을 대인조사를 통해서 확인하였다. 헬기 사격이 있었음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로서 조선대학교 절토지였던 장소에서 발견된 20mm 연습탄 탄두를 들 수 있다.

전일빌딩 10층 탄흔은 국가기관의 선행조사에 헬기 사격과 관련된 중요한 증거로 채택되었다. 위원회가 조사하는 과정에서 계엄군이 도청 일대에 본격적인 작전을 개시하기 이전에 육군항공의 헬기들이 임무에 투입된 몇몇 정황들 또한 확인이 된다.

이상과 같은 증거들을 토대로 조사 결과들을 종합해서 보면, 5·18 민주화운동 기간 광주에 출동한 모든 기종의 헬기에 사격을 지시하는 명령이 존재했으며, 그 명령은 살상을 포함한 위협사격 수준 이상의 지시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광주에 출동한 3개 기종 모두에서 헬기 사격이 실행되었거나 사격의 개연성이 충분히 있음을 조사 과정에서 확인하였다.〉


부존재의 증명은 불가능하다

“무장한 상태로 헬기가 투입되었다, 사격 명령이 있었다, 그러니 사격이 있었을 개연성이 있다”는 주관적 추리로 끝난다. 사격했다는 조종사는 ‘이 사람’이라고 단 한 명의 이름도 대지 못하고 그런 허점을 덮기 위하여 이미 알려진 지엽적인 사실들을 질서 없이 나열한 보고서가 아닐 수 없다.

이 보고서를 읽어본 전두환 회고록 재판의 변호인 정주교 변호사는 아래의 글을 적어 보냈다. 그는 아마도 이 사안에 대하여 가장 많은 사실을 알고 있는 한국 사람일 것이다. 정 변호사는 먼저 진상규명위의 보고서를 관통하는 논리의 오류를 지적한다.

〈헬기 사격 문제는 5·18 단체가 사실에 대한 ‘존재’를 주장하고 있고, 조종사들이 부존재(不存在)를 주장하는 구도이다. 그런데 부존재에 대한 증명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존재 사실을 주장하는 측이 입증해야 한다. 그렇다면 진상규명위는 5·18 단체가 존재 사실의 논거로 제시한 주장을 쟁점으로 삼아야 타당하다. 그런데 진상규명위는 반대로 조종사들의 부존재 주장에 대한 논거를 쟁점으로 선정함으로써 처음부터 논리적 오류를 범하였다. 즉 조종사들은 헬기 사격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여러 가지 논거를 제시하였는데 진상규명위는 조종사들이 주장한 그와 같은 논거를 쟁점으로 삼고 그것에 대한 반박을 진상규명의 방법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부존재에 대한 논거가 반박되었다고 하여 그것만으로 존재가 입증되었다고 볼 수 없다.

그뿐 아니라 진상규명위는 5·18 단체와 조종사들을 동등한 대립 당사자로 보고 있다. 그러나 조종사들은 각각 다른 시점에, 서로 다른 상황에서 각각의 상황에 따라 그에 부합하는 단편적 반론의 논거를 지시한 것이므로 그와 같은 단편적 주장을 5·18 단체의 주장에 대한 종합적이고 논리적인 반박으로 볼 수 없다. 오히려 진상규명위는 전두환 회고록 사건의 법정에서 다루어진 검사와 변호인 측의 논리를 쟁점으로 삼는 것이 더 공평하다고 할 것이다.〉


새로운 사실 없이 해석만 달리해

정 변호사는 진상규명위가 발굴한 새로운 사실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보고서의 ‘5·18 민주화운동 기간 항공작전 운영과 무장 출동’ 부분 기술은 대부분 1995년 검찰수사 기록에서 밝혀진 사실이고 문재인 정권 당시 이루어진 국방부 특조위 보고서의 기초 사실과도 거의 같다. 이 부분은 형사판결문에 대비해 보면 ‘인정 사실’에 해당하는 부분인데, 그것이 과거 조사 내용과 같다면 결국 이번 진상규명위에서 헬기 사격과 관련하여 새로 밝혀낸 사실은 더 없다는 이야기다. 결국 동일한 사실을 놓고 해석만 다르게 하겠다는 논리 구조를 가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당시 특조위는 조사실무를 담당하는 조사단과 위원들로 구성된 위원회로 구성되어 있었다. 조사단은 대부분 현역 군인, 경찰 등 공무원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위원들은 전원 민간인들이었다. 조사단은 상근하면서 기초 사실을 조사하여 그 결과를 보고하면 비상임 위원들이 한 달에 한두 번 회의에 참석하여 조사 결과를 가지고 재판(?)을 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내가 전두환 회고록 재판을 할 당시 조사단의 간부라고 하는 사람의 전화를 받았다. 그 요지는 조사팀의 조사 결과 ‘헬기 사격이 없었다’는 내부 결론을 내렸는데, 위원회가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의결했다는 것이었다. 이번 5·18 진상규명위 역시 헬기 사격에 관한 객관적 증거는 하나도 발견하지 못한 채 95년 검찰 조사를 근거로 괴이한 논리를 적용하여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결론을 냈다.〉


‘헬기 사격 없었다’는 진술을 짜깁기로 왜곡

정 변호사는 “헬기가 무장했고 사격 명령이 내려갔으니 사격이 있었을 것”이란 위험천만한 공상적 추리는 이번에도 반복되었다고 했다.

〈군인들이 광주에 갈 때 총을 들고 갔으니 사격을 하였을 수도 있다는 지극히 초보적인 논리이다. 이 부분 역시 국방부 특조위 논리와 똑같다. ‘헬기 사격 지시 및 명령’과 관련된 기초 사실은 모두 1995년 검찰 수사에서 밝혀진 사실이다. 그런데 특조위는 추론에 추론을 거듭하여 억지로 헬기 사격과 연결시켰는데 5·18 진상규명위도 이 논리를 그대로 베꼈다. 헬기 사격 명령이 있었다는 말은 과거 청문회와 수사 과정에서 나온 말이었다. 당시 전교사 지휘관이나 광주에 파견된 헬기 조종사들은 헬기 사격은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결백을 강조하기 위하여 상부에서 헬기 사격을 하라고 지시했지만 그 지시를 거부했다고 진술한 것이다. 이 원(原)진술자들이 헬기 사격을 하지 않았다고 진술한 부분은 빼버리고 헬기 사격의 지시를 받았다는 부분만 부각하여 이 점을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증거로 삼고 있는 것이다.

‘7.62mm 및 20mm 탄약 불출 및 소모반납’ 부분은 전두환 회고록 재판 당시 언론에서 매일같이 헬기 사격 관련 추측 보도를 하였다. 당시 공장에서 근로자로 일을 하던 최○○가 직장 동료들과 그 방송을 보던 중에 ‘내가 그 무렵 성남 소재 항공대에서 탄약 담당을 하면서 헬기 무장사들에게 탄약을 지급했는데 나중에 반환을 받아 보니 탄약 몇 개가 비어 있었다’고 말을 하고 동료가 이를 방송사에 제보하여 최○○의 인터뷰가 뉴스에 나왔고, 그러자 광주지검 검사가 최○○를 수사함으로써 그의 진술이 증거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최○○의 진술은 만연한 진술일 뿐만 아니라 그 진술의 신빙성을 뒷받침할 증거가 하나도 없다. 당시 검찰은 전일빌딩 탄흔은 UH-1H에서 M16 소총 사격을 한 탄흔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가 지급하였다는 탄약은 500MD의 7.62mm 탄약이고, 코브라 헬기의 고폭탄은 20mm 탄약이었다. 따라서 최○○의 증언은 전일빌딩 탄흔과 그 종류가 달라 특별히 취급되지 않았다.〉

정 변호사는 특히 2017년 이후의 재조사를 촉발한 전일빌딩 헬기 사격설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전일빌딩에 대한 새벽 헬기 사격은 불가능

▲2017년 9월 13일 국방부 5·18 특별조사위원회는 광주 동구 금남로 전일빌딩에서 총탄 흔적을 둘러보았다. 사진=조선DB

 

〈5·18 단체가 주장하는 헬기 사격에 관한 직접적·객관적 증거란 전일빌딩 탄흔이 유일하다. 헬기 사격 목격자들의 증언은 직접 증거이기는 하나 객관적 증거가 아니고, 군 작전 기록은 객관적 증거라고는 하나 직접적 증거가 아니다. 따라서 전일빌딩 탄흔이 유일한 객관적·직접적 증거다.

조비오 신부의 주장은 5월 21일 금남로 상공의 헬기 사격인 반면 5·18 단체가 주장하는 전일빌딩 탄흔은 5월 27일 재진입 작전 당시 발생한 탄흔이란 것이다.

전일빌딩 헬기 사격설은 2017년 초경에 처음 등장한 주장이었다. 5·18 단체는 처음에는 코브라 헬기의 발칸이라고 주장하다가, 500MD라고 주장하였다가, 전일빌딩 탄흔과 7.62mm 탄흔의 차이가 너무나 확연하자 슬그머니 M16 소총이라고 주장하였고, 소총을 헬기와 연결시켜려다 보니 UH-1H 헬기에 탑승한 승무원이 헬기 출입문을 열고 소총 사격을 하였다고 주장한 것이다. 전두환 회고록 재판 중 변호인 측에서 검사에게 전일빌딩 사격을 구체적으로 특정해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하자 검찰이 뒤늦게 공소장에서 주장하는 전일빌딩 헬기 사격은 소총 사격이라고 밝힌 것이다.

전일빌딩 헬기 사격에 관해서는 특별한 목격자가 없다. 즉 계엄군이 자정 무렵 작전을 시작하여 새벽 4시 무렵 전일빌딩 점령을 완료하였다. 검사는 계엄군이 4시 무렵 전일빌딩으로 진입할 때 사격하였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전일빌딩 헬기 사격에 관해서는 탄흔의 존재만이 유일한 증거라고 볼 수 있다. 전일빌딩 진입을 현장 지휘하였던 당시 중대장이 전두환 회고록 광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였다. 중대장은 전일빌딩에 접근할 당시 전일빌딩 상층부에서 지상을 향한 사격을 받고 상층부를 향하여 응사한 사실이 있다고 했다. 공수부대가 전일빌딩에 진입한 후 10층 내부 수색을 할 당시 10층 방송실 문이 잠겨 있어서 문밖에서 방 안으로 총구를 바닥으로 하여 위협사격을 한 후 진입하였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나는 방송실 바닥에 난 탄흔은 그때 전일빌딩을 수색하던 계엄군이 문밖에서 방으로 위협사격을 하였을 당시 발생한 탄흔이라고 주장하였다.

나는 전일빌딩 헬기 사격의 쟁점은 국과수 감정인의 감정 결과를 검증하는 것이 실질적인 진실규명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UH-1H 실사격 검증을 주장하였고, 당시 재판장이던 장동혁 현 국민의힘 의원도 법정에서 자신도 현장검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재판 도중 장동혁 판사가 사직, 김정훈 판사로 교체되었고, 김 판사는 현장검증 신청을 기각하고 1심 판결을 선고하였다.

전일빌딩 탄흔에 대한 헬기 조종사들의 주장은 ① 비행 중인 헬기 안에서 어떤 사격을 하더라도 전일빌딩 방송실 안에서 발견한 밀집한 형태의 탄착이 형성될 수 없다 ② UH-1H의 프로펠러 때문에 헬기 안에서는 소총 사격을 할 수 없다 ③ 전일빌딩 방송실 바닥에서 발견된 100여 개의 탄흔 중 대부분의 탄흔이 창문에 인접한 곳에서 발견되었고, 심지어 창틀에서 10cm 이내의 탄흔도 여러 개 발견되었는데, 창틀 때문에 80~90도의 탄도가 나와야 하는데 헬기에서는 그와 같은 탄도를 만들어낼 수 없다 ④ 전일빌딩 천장에서 30여 개의 탄흔이 발견되었고, 그것도 모두 창문에서 1m 이내에 밀집된 형태로 발견되었는데, 상향으로 70~80도 탄도가 나와야 탄흔이 형성될 수 있지만 방송실이 10층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탄도 형성은 불가능하다 ⑤ 전일빌딩에 대한 진입은 4시에 이루어졌고, 그 시간은 심야 시간이었기 때문에 아무런 조명이나 불빛도 없이 UH-1H가 도심에서 야간 비행을 할 수 없고(그 당시는 야간 비행 장치가 없었고 오로지 육안으로만 비행하였음), 시야가 확보되지 아니한 상황에서 10층 방송실의 좁은 창문 안으로 150발의 소총 사격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 등이었다.

그 때문에 회고록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조종사들은 헬기를 띄워서 한 번만 사격을 해보면 전일빌딩 탄흔이 얼마나 거짓인지 금방 밝혀질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끝내 헬기 실사격 검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주교 변호사는 이렇게 끝냈다.

〈헬기 사격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구체적 사실을 주장하여야 한다. 몇 월, 며칠, 몇 시에 어느 장소에서 어떤 상황에서 어떤 기종의 헬기에서 어떤 종류의 사격을 하였다고 주장하여야 한다. 그래야 그것에 대하여 헬기 사격이 없었다는 반론이 가능하다. 그와 같은 구체적 사실은 밝히지 아니한 채 여러 가지 의심할 정황을 근거로 막연히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결정한다는 것은 반론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부당한 주장인 것이다. 결국 5·18 진상규명위 역시 헬기 사격에 관한 객관적, 직접적 증거는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고, 1995년 검찰 수사에서 밝혀진 사실 이외에 새로운 사실도 밝혀낸 것이 없다.〉


왜 헬기 사격 주장자들이 특조위 조사관이 되었나?

2020년 9월 21일 전두환 회고록 재판정에서 있었던 최해필씨의 증언은 문서상의 논란과 다른 박진감이 있다. 그가 조종사 출신의 육군 항공작전 사령관 출신이고 국방부 특조위 위원으로서 유일하게 헬기 기총소사가 없었다는 소수의견을 낸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문(변호인) 국방부 특조위 민간인 조사관의 이력이 백서에 나와 있는데 거기를 보면 안길정, 송선태, 정문영, 최용주 이상 4명의 위원은 이 사건 헬기 사격설을 주장하고 있는 5·18기념재단의 전·현직 연구원 또는 상임이사이고, 나머지 김희송 교수와 김정한 교수는 평소 개인적 논문을 통하여 헬기 사격설을 주장하여 오던 사람인데, 증인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나요.
 안종철 박사는 5·18 기록을 유네스코에 등재했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를 들었고, 김희송 교수 등은 광주에서 KTX를 타고 오가고 한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분들이 평소에 헬기 사격설을 주장했다는 사실은 몰랐나요.
 그런 내용의 깊이는 몰랐습니다.

 평소에 헬기 사격설을 주장하는 사람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조사를 하는 것은 기대하기가 어려워 보이는데, 왜 현역 군인과 현역 공무원으로 구성된 실무조사단에 굳이 민간인, 그것도 헬기 사격설을 평소에 주장하는 사람을 6명이나 위촉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저는 그 이유는 잘 모르고 제가 들어갔을 때 공군 준장 출신 한 사람과 저만 공군과 육군 대표로 국방부에서 위촉되었고, 제가 나머지 사람들의 면면을 자세히 알 수 없고 그냥 느낌에 특정 사안을 조사한다면 거기에 관련이 없는 객관적인 사람들로 구성하는 것이 나중에라도 객관성을 입증하는 데 유리하지 않을까, 하는 이런 생각은 했습니다.

 특조위의 궁극적 임무는 지시나 명령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지시나 명령이 시행되어 실제로 헬기 사격이 있었는지 여부를 밝히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지시나 명령은 실제로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하는 것을 의심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는 있지만, 명령 자체가 사격은 아니지요.
 실제로 계엄 지휘부의 황○○, 김○○ 이러한 장군들이 위력시위만 할 것이 아니라, 사격을 해서라도 시위진압을 빨리 하라는 지시를 내렸는데, 그때 출동했던 이 중령, 김 중령, 차 소령은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우리가 구두 명령으로는 움직일 수가 없다, 꼭 그렇다면 서류로 된 명령을 달라고까지 하면서 사격 지시를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거부했다는 진술을 받았고요.

 특조위는 그 지시와 명령에 따라서 실제로 헬기 사격으로 이루어졌는지 여부를 조사하였나요.
 조종사들에게서 진술을 다 받았습니다.

 그러면 그 지시나 명령에 따라서 헬기 사격을 했다고 나왔나요, 안 했다고 나왔나요.
 할 수 없다고, 거부했다고 들었습니다.


사격 명령을 거부한 조종사들

 증인이 (헬기 기총소사설에) 동의하지 못한 이유는, 헬기 사격 명령을 받았다는 사람이 사격을 실시할 수 없다고 진술한 명확한 근거가 있기 때문이지요.

 500MD나 코브라의 사격 결과가 얼마나 끔찍한지에 대해서 조종사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적을 향해서 쏘라는 총을 우리 국민을 향해서 쏘라고 지시한 사람들의 지시를, 속으로 아마 저 사람들이 제정신으로 하는 것인가, 이런 생각으로 못 하겠다고 말은 못 하고 서면으로 된 명령을 달라고 요구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면으로 된 명령을 주면 쏘겠다는 것이 아니라 사격하라는 지시에 따르지 못하겠다는 뜻으로 문서로 달라, 당신이 확실하게 책임질 수 있냐는 뜻으로, 거부하는 뜻으로 문서로 된 명령을 요구한 것이지, 문서로 된 명령을 주면 쏘겠다는 뜻으로 말한 것은 아니라고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특조위는 세 번째 결론으로 “무장헬기가 광주에 출동하였다고 시인한 항공부대 관계자의 진술이 존재한다”라고 판단하였는데, 무장헬기가 출동했다는 것은 1995년 서울지검에서 조사할 당시부터 대부분의 헬기 조종사들이 무장 출동 사실을 다 시인하였지요.
 예, 그렇습니다.

 특조위 조사에서 새롭게 발견된 사실이 아니지요.
 예, 새롭게 발견된 것이 아닙니다.

 

 특조위에서는 무장헬기가 광주에 출동하였다고 항공부대 관계자 5명이 시인했다고 하였는데, 이 항공부대 관계자 5명이 무기로 사격했다는 사실도 진술했나요.
 아닙니다. 사격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무장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별개라고 생각합니다.

 항공부대 관계자 5명이 무장 사실은 인정했지만 헬기 사격을 했다고 진술한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그렇습니다.


“조종사 100명 중에 왜 한 사람도 없나”

 특조위는 마지막 여섯 번째 결론으로 “특별조사위원회는 조사 결과 AH-1J 코브라에 의한 헬기 사격 가능성도 높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라고 밝혔는데, 헬기 사격 조사팀이 서면조사, 면담조사, 현장조사, 국민제보를 받아서 코브라 헬기가 사격했다는 어떤 증거를 발견했나요.
 없습니다.


 증인은 실제로 헬기 사격이 실행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요.
 예.

 증인이 그렇게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무엇인가요.
 제가 헬기 사격이 없었다고 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목격자들이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헬기가 도시 상공으로 낮게 비행을 하면 로터가 다운롯이라고 해서 하강풍과 반사 바람을 맞아서 우리가 호각을 불 때 바람만 불어도 소리가 나는 것처럼 다다다다 하면서 굉장히 시끄러운 소리가 납니다. UH 같은 경우는 거의 총소리처럼 들리고, 충돌방지등인 라이트가 붉은색으로 휙휙 돌아가는데 모터가 원형으로 돌아가서 회전 디스크라고 하고 이것이 두 개가 고속으로 돌아가면 한 개의 원판이 돼서 빛이 반사되어 아주 넓은 지역에 붉은 섬광이 비칩니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지나가면 일반 목격자 입장에서는 헬기가 아주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지나가고 붉은빛이, 섬광이 막 비치면 총을 쏘는 것으로 생각하기 딱 좋습니다.

자신이 목격한 사실에 대해서 오락가락하며 진술을 하고 있는데 그런 목격자의 헬기 사격을 봤다고 하는 진술을 과연 믿을 수가 있는지, 그리고 만약 실제로 사격을 했다면 한 발씩 정확하게 사격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면서 드르륵 하고 쐈을 것인데 그랬다면 사람이 한 발만 맞을 수가 없습니다. 60발 이상 맞을 수밖에 없고, 공중에서 기관총을 쏘면 길바닥에도 탄피가 비처럼 수두룩 떨어집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분명히 탄피를 주웠을 것이고, 한 발 맞아서 병원으로 후송했다는 말은 있을 수 없고 그 정도의 부상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헬기에 의해 여학생이 다쳐서 기독병원으로 후송을 했다는 진술은 적절하지 않고, 그다음에 당시 내려온 헬기만 해도 수십 대인데 그렇다면 조종사만 해도 약 100명 정도가 됩니다. 그리고 무장사, 정비사, 그 많은 사람들 중에, 40년이나 지났는데 그중에 단 1명이라도 무장했다, 사격했다고 진술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은, 그리고 육군항공장교들은 지휘관, 계급에 복종하지 않고 옳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절대 응하지 않습니다.

장군이 뒤에 타고 있다고 하더라도 안전하지 않은 비행은, 장군이 이쪽으로 가라고 말을 했다고 하더라도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도록 훈련되어 있습니다. 헬기에 탄 이상 뒤에 누가 있더라도 본인 자신이 지휘관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우리 시민을 향해서 총을 쏘면 끔찍한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어떻게 총을 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조종사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부분입니다.

특전사 병력이 UH-1H를 타고 화물실 문에 걸터앉아 M16으로 (전일빌딩을) 쐈을 수도 있다고 하는데,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서 수십 발의 탄알이 밀집되도록 사격을 할 수가 없습니다. 건물 안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서 M16으로 연속으로 쏘면 가능할까… 특전사 병력이 헬기에 걸터앉아서 M16으로 쐈기 때문에 탄흔 중 일부는 M16 실탄도 있고 M60 실탄일 가능성도 있다는 국과수 발표가 있어요. 그런데 각도 측면에서 보면 건물 상공에서 그렇게 제자리 비행을 하면서 만약 사격한다면 그 건물 안에도 누군가가 위협 세력이 있다는 것인데, 어느 간 큰 조종사가 공중에서 제자리 비행을 하면서 나를 쏘라고 하면서 쏠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쏜 실탄이 어떻게 그렇게 밀집되어 있을 수 있는지, 바닥에 있을 수 있는지, 그래서 제가 유사한 상황에서 한 번 해보자고 했습니다.


특조위를 조사해야!

▲5·18 국방부 특조위 위원 명단.

 

2017년 이후 광주 헬기 기총소사설은 조사와 재판을 거치면서 ‘양민 학살’로 커졌다가 ‘헬기 사격설’로 격하되고 이마저 사격 조종사가 특정되지 않아 증명되지 않은 상태로 마무리되었다. 2018년 10월호 《월간조선》 기사는 이런 사태를 예측이나 한 듯 이렇게 마무리했다.

〈국방부 5·18 특조위가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결론을 내린 것을 재판에 비유하자면 살인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사형을 선고한 것과 같다. 특조위 발표대로 헬기 사격이 있었다면 조종사들은 ‘양민 학살범’이 된다. 사람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려면 완벽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특조위 조사결과보고서에는 완벽한 증거는커녕 비약과 추리만 있다. 어떻게 이런 조사를 근거로 조종사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릴 수 있었는가? 더 섬뜩한 것은 이런 부실한 조사가 아무런 반론도 없이 국가적 사실로 인정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중대한 사안에 객관적 증거 없이 ‘야만적 사격’이 있었다는 발표를 하는 것을 묵인한다면 이는 국가 기관에 의한 역사 조작을 용인하는 것이 된다. 적어도 국방부 장관은 이 조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음을 선언, 대한민국 국군의 명예를 지키고 현대사의 왜곡을 막았어야 했다.

이 조사 결과가 번복되지 않고 ‘국가가 공인한 사실’로 굳어지면 조종사들은 나치 유대인 학살범처럼 취급될 가능성이 있고, 국군과 국가도 전(全) 세계 앞에서 학살 집단으로 취급될 것이고, 또 한 사람의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갈 수도 있다. 특조위는 이런 끔찍한 연쇄반응을 생각하고 이런 무서운 결론을 내렸는가? 언젠가는 특조위 조사위원들이 조사를 받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국방부 특조위 위원들은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5·18 당시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위원 중 최해필 전 항공작전사령관만이 소수의견을 냈다.


국군통수권자의 책임!

이제 당시 국방부 장관과 특조위를 조사하고 특조위 보고서를 취소해야 할 긴급한 이유가 생겼다. 국제적으로 대한민국 국군이 나치 군대나 일본 제국 군대 같은 취급을 받지 않으려면 국군통수권자인 윤석열 대통령,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그리고 국방부 장관이 회의를 하고 자구책을 내어놓아야 한다. 성우회, 재향군인회, 사관학교 동창회, 호국안보 단체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 광주사태에 북한군 600명이 개입했다는 황당한 자해적 주장을 했던 세력은 빠져야 한다. 누구보다도 헬기 기총소사가 없었음을 잘 알고 있을 광주시민들이 국군의 명예회복에 앞장서야 한다. 그리고 사격 명령을 받고도 거부한 조종사들을 ‘광주의 의인(義人)’으로 기려야 할 것이다.

최근 국제적 호평을 받던 방글라데시의 수상이 반정부 시위대에 관저가 포위될 지경이 되자 탈출, 인도로 갔다. 수상의 아버지는 방글라데시 독립을 이끌었던 건국의 영웅이었다. 수상은 독립투사 가족들에게 공무원 자리를 우선적으로 배정하는 고용특혜를 추진하다가 대학생들의 분노를 자극, 정권을 잃었다.

일부 광주사람들이 피해 보상을 넘어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는 특권까지 주장한다면 국민적 저항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불공정에 참지 못하는 젊은 세대가 커가고 있다. 국방부 특조위의 ‘헬기 기총소사에 의한 양민 학살’ 결론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볼 이들은 광주사람일 것이다.⊙

월간조선 09월 호 글 : 조갑제 조갑제닷컴·TV 대표

 

09.07 ‘정율성 논란’ 1년 후에도 정리 안 된 ‘광주 정율성 공원’

“‘정율성 항일박물관’도 구상 중” (6월 11일, 광주시 문화체육실장)

⊙ 40회에 걸친 ‘정율성 공원 조성 중단·사업 변경 촉구’ 정기 화요집회
⊙ 문제 제기한 보훈부 장관은 매듭 안 짓고 사퇴… 후임 장관은 무관심?
⊙ ‘정율성 문제’에 소극적인 보훈부… 홈페이지상 ‘정율성 자료’는 단 2건
⊙ 평당 2900만원에 달하는 ‘정율성 생가’ 개축비… 그 ‘효용’ 확인은 쉽지 않아
⊙ “처음 계획대로 정율성 역사공원으로 갈 예정”이란 광주시의회 공개석상 발언
⊙ ‘사업 잠정 보류’라던 광주광역시 담당자가 언급한 ‘한중교류공원’의 실체

 

▲사진=뉴시스

 

작년 8월 22일, 박민식 당시 국가보훈부 장관이 “48억원을 누구에게 바친단 말입니까”란 제목의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고 광주광역시의 ‘정율성 추앙’ 행태를 지적했다. 정율성(鄭律成)은 6·25 전쟁 당시 북한군과 소위 ‘중국인민지원군(중공군)’으로 번갈아가면서 참전했고, 중국·북한 군가(軍歌)를 다수 작곡한 ‘광주 출신 중국인’이다.

당시 대한민국의 광역자치단체인 광주시는 대한민국에 항적한 정율성을 기린다는 명목으로 48억원을 들여 동구 불로동 소재 ‘정율성 생가’ 추정지에 ‘기념공원’을 조성하고 있었다. 이 밖에도 ‘정율성 국제음악제’ ‘정율성동요제’ 등 온갖 명목으로 정율성 관련 사업을 진행하면서 세금을 쓰고 있었다. 이는 광주시만의 얘기가 아니었다. 그 산하 자치구인 남구 역시 또 다른 ‘정율성 생가’ 추정지 인근에 정율성로(路)를 만들고, 정율성 흉상을 해당 거리 초입에 설치했다. 광주 남구, 동구와 함께 또 다른 ‘정율성 고향’인 전남 화순군도 12억원을 들여 ‘정율성 고향집’을 만들고, 정율성이 잠시 다녔다는 능주초에 ‘대형 벽화’와 함께 각종 기념 시설을 조성했다. 이 역시 전부 세금으로 만든 것들이었다.

《월간조선》은 이와 같은 광주·전남의 ‘정율성 추앙’ 실상을 2012년에 최초 고발했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문제적 행태를 지적했다. 그럼에도 이들 지자체는 아무런 입장 변화 없이 사업을 추진했고, 오히려 확대해나갔다. 이 와중에 당연하게도 세금은 더 투입됐지만, 박민식 전 보훈부 장관의 페이스북 글 게시 이후에는 상황이 급변했다. 정율성의 ‘반(反)국가적’ 실체, 자해적인 정율성 추앙 행태들이 연일 보도되면서 우리 국민은 각성하게 됐다. 우호적인 여론에 힘입어 국가보훈부는 지난해 10월, 광주시 등 정율성 관련 사업을 진행한 지자체에 ‘사업 중단’ 시정 권고를 했다.


광주에서 살아 있는 정율성

광주시는 반발하면서도 올해 예산에서는 시의회와 논의 끝에 매년 개최해오던 ‘정율성 음악축제’와 ‘정율성 동요제’ 예산을 삭감했다. 광주 남구도 ‘정율성 생가’로 알려진 양림동 소재 주택을 2억5000만원에 사들여 추진하던 ‘정율성 전시관’을 지역 예술인 창작 공간인 ‘양림문학관’으로 변경했다. 전남 화순군에서는 ‘정율성 고향집’ 운영을 중단했고, 능주초 교내 정율성 벽화와 기념 시설들을 철거했다. 이렇게 ‘정율성 논란’은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광주시가 애초 문제의 발단이 된 ‘정율성 역사공원’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광주시 남구 양림동 소재 정율성로 역시 그대로다. 왜 이런 것일까. 광주에서 ‘반국가 행위자’ 정율성의 흔적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조사했다.


‘중·북 남침 나팔수’ 정율성의 실체

정율성은 1914년 당시 전남 광주군에서 태어났다. 1933년 중국으로 건너가 음악을 공부했다. 이후에는 중국공산당에 가담해 소위 ‘혁명음악’을 만들었다. 나중에는 북한으로 넘어가 북한 군가를 짓고, 6·25 때는 북한군으로 참전했다. 이후에도 ‘중국공산당’에 적(籍)을 두고 북한에 남아 이른바 ‘창작 활동’을 했다. 이후 중국으로 돌아가서는 죽을 때까지 음악을 ‘공산혁명’의 수단으로 여기다가 눈을 감았다.

그 일생을 보면, 정율성은 대한민국의 건국을 방해하고, ‘반국가단체’ 북한 편에서 대한민국에 대항한 ‘적(敵)’이다. 그는 대한민국 국민을 살상하고, 재산을 파괴한 ‘북한군’의 일원이었다. 우리의 자유통일을 저지하고, 민족적 비극인 ‘분단’을 고착화한 ‘중공군’ 소속이기도 했다. 이런 자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자랑스레 내세우거나 우호선린의 상징 또는 매개체로 내세울 만한 인사가 전혀 아니다.

 

정율성은 평생을 중국과 북한을 위해 살았다. 그는 중국공산당에 충성하면서 팔로군을 위한 군가를 짓고, 소위 ‘혁명 의식’을 고취하는 음악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1945년 12월, 정율성은 북한으로 건너가 조선공산당에 입당한 뒤 황해도당위원회 선전부장으로 일했다. 1947년에는 평양에서 조선보안대 구락부 부장을 맡았다. 당시 그는 곧바로 협주단을 만들어 2년여에 걸쳐 북한 전역 순회공연에 나섰다. 북한 당국은 그의 노고를 위로하며 ‘모범 근로자’ 칭호를 내렸다. 1949년에는 평양음악대학 작곡부 부장을 맡아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 기간 그는 북한 군가를 만드는 데 매진했다. 6·25 남침 당시 북한군이 불렀던 노래, 월북(越北)시인 박세영(朴世永)의 시에 곡을 붙여 훗날 ‘조선인민해방군가’가 된 ‘조선인민군행진곡’이 바로 정율성의 곡이다.

1950년 9월, 중국으로 돌아간 정율성은 다시 중국공산당 당적(黨籍)을 회복하고,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을 취득했다. 완전한 ‘중국인’이 된 정율성은 그해 12월, 소위 ‘중국 인민지원군’으로 다시 참전했다. 그는 파죽지세로 남하하는 중공군과 함께 서울까지 내려왔다. 중공군으로 참전한 그는 약 4개월 동안, 북한이 주장하는 조국해방전쟁, 중국이 강변하는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을 수행했다. 이 기간, 그는 북한군과 중공군의 사기(士氣)를 고취하기 위해 ‘조선인민유격대 전가’ ‘중국인민지원군 행진곡’ ‘공화국 기치 휘날린다’ 등을 만들었다.

이런데도 광주시와 그 산하 자치구인 남구, 전남 화순군은 ‘반(反)대한민국’적 인물인 ‘정율성’을 세금으로 기렸다. 한반도에서 정통성과 합법성을 가진 유일한 국가인 ‘대한민국’의 영토를 참절하고, 정부를 참칭하고, 동족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켜 적화를 시도한 공산 세력에 부역한 정율성을 추앙했다.


40회에 걸친 ‘정율성 공원 반대’ 집회

▲8월 6일 오전 광주시청 앞에서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와 대한민국전몰군경미망인회 광주시 지부 등 보훈단체와 ‘공산주의자 정율성 공원 조성 철폐 범시민연대’ 회원들이 ‘정율성 공원 조성 중단 촉구’ 집회를 개최했다. 이들은 지금까지 40회에 걸쳐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8월 6일 오전 10시, 광주시 서구 치평동 소재 광주시청 앞에서 집회가 열렸다. 비교적 고령인 해당 집회 참가자들은 젊은 사람도 힘들 수 있는 불볕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주장을 크게 외쳤다. 이들은 “보훈 가족 피눈물 나게 하는 정율성 기념 공원 당장 중단하라!”란 문구의 현수막을 내걸고, 각자 ▲중국선동꾼 북한선전부장 정율성 공원, 6·25 호국영령들을 모독하지 마라! ▲공산당 군가 작곡한 정율성 공원 만드는 게 정상이냐? 중단하라! ▲공산군 응원대장 정율성! 국가 세금 한 푼도 안 된다! 강기정, 개인 돈으로 해라!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한 자! 북한으로 추방하자! 등의 손팻말을 들고 집회를 이어갔다.

당시는 전국적으로 ‘폭염특보’가 발령된 상황이었다. 당일 오전 행정안전부는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발령됐다”며 “야외 활동을 자제하고, 건강관리에 유의하라”는 취지의 안전 안내 문자를 보냈다. 광주시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날 기준 광주시에서는 폭염특보가 18일째 이어졌다. 불과 이틀 전 이곳, 광주시 서구에서는 온열질환으로 2명이 사망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와 대한민국전몰군경미망인회 광주시 지부 등 보훈단체와 광주 지역 시민단체가 결성한 ‘공산주의자 정율성 공원 조성 철폐 범시민연대’는 야외 집회를 개최했다. 2010년 연평도 포격전 당시 전사한 고(故) 서정우 하사의 모친 김오복 전 광주 대성여고 교장이 운영위원장인 해당 단체는 지난해 9월 이후 40회에 걸쳐 정기 화요집회를 개최했다. 광주시가 48억원을 들여 ‘정율성 공원’을 조성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접하고 나서 이후 눈비 맞고, 더위에 지쳐가면서도 ‘반대 집회’를 이어왔다. 이 기간, 이들이 외친 구호는 한결같았다. “광주시민 모욕하는 정율성 공원 조성 사업 중단하라”였다. 하지만 광주시는 이들의 요구에 답하지 않고,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을 계속했다.


문제 제기는 했지만, 소극적인 보훈부

▲작년 8월 22일, 박민식 당시 국가보훈부 장관은 페이스북 글을 통해 광주광역시의 ‘정율성 추앙’ 행태를 지적했다. 사진=뉴시스

 

이사이 ‘정율성 문제’에 대한 여론의 관심은 식었다. 총선에서는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이 참패했다. 윤석열(尹錫悅) 정부의 국정 장악력도 위축됐다. 문제를 제기한 정권의 발언권이 약화됐다는 얘기다. 보훈부도 해당 문제와 관련해서 가시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고 평가받기 쉽지 않다. 애초 해당 문제를 제기한 이(박민식)는 이미 장관직에서 물러난 지 오래고, 후임 장관(강정애)은 ‘정율성 역사공원’에 대해 별다른 의견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 장관 취임 이후 지금까지 그가 공개적으로 ‘정율성’에 대해 가장 적극적으로, 또 길게 언급한 건 바로 아래의 발언이다.

“정율성이 대한민국의 헌법 가치에 정면으로 반하는 인물임이 밝혀진 이래, 정율성 기념사업의 대다수는 폐지 또는 축소되고 있다. 6월 초 준공 예정인 정율성 역사공원에 대해서도 공원 명칭 및 활용 방안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광주시가 현명한 결정을 내릴 것으로 기대한다.”(5월 20일, ‘뉴스1’과의 인터뷰 중)

 

▲8월 12일 현재, 보훈부 홈페이지에서 살필 수 있는 정율성 관련 자료는 단 2건에 불과하다. 출처=국가보훈부

 

아무리 장관이 바뀌었다고 해도 보훈부가 이처럼 정율성 문제에 대해 소극적인 까닭은 무엇일까. 애초 ‘정율성 문제’를 촉발한 당시 보훈부 장관 또는 보훈부의 ‘진의’가 무엇인지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정황은 또 있다. 보훈부 홈페이지 검색 결과다. 8월 12일 현재, 보훈부 홈페이지에서 살필 수 있는 정율성 관련 자료는 단 3건에 불과하다. 이 중 1건의 경우 생성 시점이 2007년이고, 단순히 ‘정율성’이란 이름만 포함된 문서이므로 관련 자료라고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상당 기간, 보훈부의 ‘중점 현안’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 ‘정율성 문제’와 관련한 보훈부의 자료는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국가의 품격은 누구를 기억하는가에 달려있다”… 정율성 공원 전면 철회 촉구(2023년 8월 28일) ▲보훈부, 광주시 등에 ‘정율성 기념사업’ 중단 및 기존 사업에 대한 시정 권고(2023년 10월 12일) 등 단 2건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을 감안하면, ‘정율성 기념사업·시설 척결’과 ‘국가정체성 확립’에 대한 보훈부의 ‘의지’가 어느 정도인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쉽지 않다.

이와 관련해서 8월 12일, 보훈부에 ▲광주시의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강행에 대한 보훈부의 입장 ▲시정 권고 이후 ‘정율성 사업 중단’을 위한 보훈부의 구체적인 활동 내역 ▲‘정율성 사업 중단’ 권고를 따르지 않는 자치단체에 대한 향후 조치 등에 대해 물었지만, 이틀이 지날 때까지 답을 듣지 못했다.


“정율성은 적군… 기릴 대상 아니다”

▲국가보훈부는 지난해 10월, 광주시 등 정율성 관련 사업을 진행한 지자체에 ‘사업 중단’ 시정 권고를 했다. 출처=국가보훈부

 

상기한 것처럼, 보훈부는 지난해 10월 12일 광주시 등에 ‘정율성 기념사업’ 중단 및 기존 사업에 대한 시정 권고를 했다. 당시 보훈부의 시정 권고 요지는 다음과 같다.

〈‘정율성’은 6·25 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과 중공군의 사기를 북돋운 군가를 작곡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무너뜨리고자 남침에 직접 참여한 적군으로 대한민국이 기릴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광주시, 광주시 남구, 광주시 동구, 전라남도 화순군, 전라남도 교육청, 전라남도 화순교육지원청은 ‘정율성’ 관련 기념사업을 국민의 세금으로 경쟁적으로 추진해왔다. 이러한 사업 추진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인하고,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과 그 유가족의 영예를 훼손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보훈부는 추진 중인 ‘정율성’ 관련 사업 일체를 중단하고, 이미 조성된 시설에 대해서도 시정 조치를 권고한다.〉

애초부터 ‘정율성 수호’ 의지를 밝혀왔던, 광주시는 보훈부의 시정 권고 당일에 이를 거부하는 입장문을 내놨다.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등 기념사업은 지방자치단체 자치 사무이며, 지방자치법 제188조에 따르면 자치 사무는 위법한 경우에만 주무부 장관으로부터 시정 명령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율성 기념사업은 1988년 노태우 정부 때부터 35년간 지속되어온 한중 우호교류 사업으로 위법한 사항이 없습니다. 광주광역시는 정율성 생가 터 복원사업인 역사공원 조성사업 완료 시기에 맞춰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종합적인 운영계획을 수립’하여 지혜롭게 추진해나가겠습니다.〉


건물 개축 등에 13억원 들였다는데…

8월 7일, 광주 구(舊) 도심 충장로, 옛 전남도청(현 아시아문화전당)과 지척에 있는 ‘정율성 역사공원’ 예정지(광주시 동구 불로동 164-1번지 등)를 찾았다. 이곳은 ‘정율성 생가’ 중 한 곳이라고 추정 또는 주장되는 곳이다. 광주시는 2018년부터 해당 부지에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을 기획했다. 광주시의 정식 사업 명칭은 ‘정율성 선생 역사공원 조성’이다. 광주시는 2022년에 기본·실시설계를 마치고, 2023년 1월부터 ‘정율성 생가’ 추정 건물과 ‘주변 환경’ 정비 등의 공사를 개시했다. 광주시는 ‘정율성 생가’ 추정지를 사들이고 정비하는 데 보상비 35억원, 시설비 13억원 등 48억원을 투입했다.

땅값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시설 정비 명목으로 13억원이나 썼는데, 현장에서는 이와 같은 금액의 가치를 확인하기 쉽지 않았다. 후술하겠지만, 광주시 문화조성과 담당자가 ‘시설은 완공했고, 내부 콘텐츠 구성만 남았다’고 한 사실, 해당 시설 건축 면적이 약 45평인 점을 고려하면 그렇다. ‘건축 문외한’이 밖에서 봤을 때 ‘정율성 생가’라 주장한 주택에서는 기와, 문틀, 서까래를 바꾼 것 말고는 별다른 변화를 발견하기 어려웠다. 예술적 가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한옥 형태 가옥 개축비용으로 평당 약 2900만원이 든 이유는 무엇일까. 과연 이는 적정한 ‘가격’이란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해당 주택 내부에서 그 ‘가치’를 확인하려고 했지만, 관리자 측에서 문을 걸어 잠근 까닭에 살필 수 없었다.


거부당한 광주시장과의 면담

▲지난해 8월 30일, 12개 보훈단체 회원 1500여 명이 광주광역시청 앞에서 ‘정율성 공원 반대’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해당 시설에 대해 고 서정우 하사의 모친인 김오복 ‘공산주의자 정율성 공원 조성 철폐 범시민연대’ 운영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불가론’을 강조했다.

“첫 번째, 거기는 정율성 생가가 아닙니다. 두 번째, 정율성은 6·25 때 우리 군인을 죽인 북한과 중공의 앞잡이 역할을 했습니다. 세 번째, ‘자유 대한민국’의 정체성에서 벗어나는 일을 광주가 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민주화의 도시’라고 하지만,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사회민주주의’를 해서야 되겠느냐고 얘기합니다.”

— 해당 시설의 명칭, 사업 내용 변경 등을 요구하고 있죠.
“이미 투입한 사업비는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럼 그 공간에서 정율성의 흔적을 없애고, 광주 근현대역사공원으로 만들어달라고 매주 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광주 출신 독립투사, 호국영웅, 민주열사들을 소개하고 광주의 근현대사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이 좋은 생각이라고 합니다. 시청 담당자 말에 의하면 과장, 국장도 좋다고 했다는데, 강기정 시장은 꿈쩍도 안 하고 있습니다. 지금 광주가 발표한 건 딱 한 가지예요. 정율성 공원이란 말을 안 쓰고, 명칭을 바꾸겠다는 거예요.”

 

▲광주시는 ‘정율성 공원’ 조성과 관련한 전몰군경유족회 광주시 지부장의 시장 면담 요청을 거부했다.

 

그 문제와 관련해서 광주시 관계자와 면담한 일이 있습니까.

“문화체육실장과는 면담했어요. ‘좋은 생각인데, 광주시의 최종결정권자는 시장’이라고 했어요. 저희가 시장 면담을 수십 번 요청했는데, 일정이 안 맞는다고 거부했습니다.”

— 광주시가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거라고 예상합니까.
“총선에서 민주당이 완전히 승리했잖아요. 시청 담당자는 '사견'을 전제로 그래서 더 정부 말을 안 듣는 것 같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정부에서 아무리 뭐라고 해도 그냥… 나쁘게 말하면 버티는 거죠. 결국 이렇게 시간을 끌다가, 완공되면 일방적으로 결정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은 김 위원장 설명 중 ‘광주시가 정율성 역사공원 명칭 변경 의사를 밝혔다’는 부분이다. 명칭을 바꾸는 것은 당연한 절차일 뿐이다. 광주시가 기존과 달리 비판 여론을 감안한 조처가 아니란 얘기다. ‘정율성 역사공원’에서 ‘역사공원’은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제15조 1항 3호 가목 규정에 의한 ‘법적 정의’일 뿐이다. 이런 까닭에 최종 명칭은 ‘정율성 역사공원’에서 ▲정율성공원 ▲정율성음악공원 ▲율성공원 등으로 바뀔 수 있다. 이를 감안하면, 광주시가 명칭 변경 가능성을 얘기한 것은 당연한 절차를 밝힌 것일 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근거로 광주시가 일부나마 전향적 자세를 보였다고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정율성 역사공원으로 갈 예정”

그렇다면 광주시의 계획은 무엇일까. 광주시의 ‘속셈’을 알 수 있는 기록이 있다. 올해 6월 11일, 김요성 당시 광주시 문화체육실장은 광주시의회 교육문화위원회에서 “정율성 역사공원으로 그대로 갈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심지어 ‘정율성 항일박물관’ 추가 신축 등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다음은 이와 관련해서, 당시 김 실장이 서임석 광주시의원과 나눈 문답이다.

서임석: 정율성 선생 역사공원 조성 관련된 사업이에요. (중략) 우리는 그러면 어떻게 할 건지?
김요성: 정율성 선생의 어떤 이데올로기 관계인데요, 지금 이데올로기가 그때 당시하고는 달리 표현할 수 있지만, 역사에 따라 표현의 자유는 자유이기 때문에 저희들은 처음의 방침 계획대로 그대로 갈 예정입니다. 정율성 역사공원으로 그대로 갈 예정입니다.

서임석: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관리실하고 화장실을 폐지했지 않습니까?
김요성: 예.

 

서임석: 화장실 같은 경우는 그럼 어떻게 할 거냐 했더니 인근에 호텔 화장실을 공유해서 쓰겠다라는 표현을 했는데 그 호텔이 평생 간다고 볼 수도 없고 과연 이게 집행부에서 나오는 제대로 된 답변일까?라는 게 제 물음표였어요.

김요성: 당시에 화장실하고 관리동이 줄어든 이유는 내부, 내부 전시에 대해서 저희들이 고민을 했는데 생각보다는 공간이 많이 부족했었거든요. 그래서 이 부분은 앞으로 전시를 대비해서 공간 확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었고요, 저희들이 이제 지금 조금 여기서 논외의 이야기인데 아직은 검토 단계거든요. 그 옆에 부지가 또 공간이 민간 영역, 민간 부지인데 그 부지를 또 활용해서 우리 정율성 선생하고 관련된 항일 어떤 박물관 이런 개념도 한번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1단지, 2단지 이런 식으로 보면 될 것 같아요.

서임석: 그게 지금 구체적으로 논의된 내용인가요?
김요성: 아, 그것은 인자 지금 인제가 시작 단계입니다. 그래서 보훈부하고 한번 이야기를 좀 같이 해보고는, 그냥 넌지시 이야기는 해둔 상태입니다.

서임석: 구두상으로 조율 중인 내용이군요?
김요성: 예. 그래서 좀, 좀 더 확대해서 박물관 내에다가 관리동도 두고 화장실도 두고 이런 부분부터 검토를 하고 있습니다.


‘잠정 보류’의 이면은?

▲광주시가 48억원을 들여 개축하고 정비한 ‘정율성 집’이다. 지난 6월 당시 광주시 문화체육실장은 이곳에 ‘정율성 관련 항일박물관 조성’도 구상 중이란 취지로 언급한 바 있다. 사진=월간조선

 

이에 대해 광주시 문화도시조성과의 ‘정율성 역사공원’ 담당자에게 물었다. 그에 따르면 광주시는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사업을 ‘잠정 보류’한 상태다. 불과 두 달 전, 광주시의 문화사업을 총괄하는 문화체육실장이 시의회에서 거듭 강조한 ‘원안 추진 의지’와 달리 광주시는 왜 돌연 ‘잠정 보류’를 결정했을까. 담당자에 따르면 그사이 강기정 시장의 심경에 변화가 있었다거나, 이전과 다른 지시를 내렸다거나, 사업을 재검토해야 할 중대변수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광주시가 해당 사업에 대해 대외적으로 ‘잠정 보류’라고 주장하는 건 공감을 받기 쉽지 않은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이와 관련한 광주시 문화도시조성과 ‘정율성 역사공원’ 담당자와의 문답이다.

— 6월 11일, 당시 김요성 광주시 문화체육실장이 시의회에서 ‘정율성 역사공원’에 대해 ‘처음 계획 그대로 간다’는 취지로 얘기했는데요, 광주시의 방침이 맞습니까.
“현재는 (사업이) ‘잠정 보류’ 상태입니다. 어떤 식으로 활용할지, 언제 개관할지 아직 다 결정 안 된 상태입니다.”

— 광주시가 보훈부의 시정 권고를 거부한 점, 그 뒤 광주시가 명시적으로 ‘사업 보류’를 얘기한 일이 없는 점, 문화체육실장이 두 달 전에 “처음 계획 그대로 간다”고 한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지금 얘기하는 ‘잠정 보류’ 상황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은데요, 최근 두 달 사이에 ‘잠정 보류’를 할 정도로 특별한 변수가 있었습니까.
“아니, 특별한 사유는 없었던 걸로 아는데요.”

— 이미 세금 48억원이 들어간 시설을 어떻게 운영할지 결정하는 시점조차 ‘미정’이란 게 이해가 안 되네요.
“그 추이를 보고 결정하려고 하거든요.”

— 그 ‘추이’는 뭡니까. 여론의 추이를 말하는 건가요.
“그런 것도 있고.”

— 공사는 완료됐습니까.
“콘텐츠 구성 같은 마무리 공사가 남아 있지만, 어떤 방향으로 해야 할지 결정이 안 돼서 못 하는 상태거든요.”

— 문화체육실장의 시의회 발언이 있고 나서, 지난 두 달 사이에 그 윗선에서 ‘정율성 역사공원’ 관련 지시를 한 일이 있습니까.
“아니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 광주시의 선택지에는 보훈부의 시정 권고처럼 ‘정율성 공원 조성 중단’도 포함돼 있습니까.
“그렇죠. 그게 아니라 한중(韓中)교류공원으로 갈 것인지, 그런 부분들…. 콘텐츠 구성을 어떻게 할지 안 나왔으니까 지금 단계에서는 말씀드릴 수 없어요.”

— 한중교류공원이요?
“예. 그러니까 지금 어떤 식으로 구성할지 계획이 전혀 없고, 그것 때문에 개관도 늦어지는 거고요.”⊙

월간조선 09월 호 글 : 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thegood@chosun.com

 
 

09-09 교육교부금 갈수록 요지경…법 개정 막는 巨野 책임 크다

교육교부금이 현실과 동떨어진 법과 제도 탓에 예산 낭비의 전형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더 심각한 문제는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지는데, 더불어민주당 등의 반대 때문에 관련 법안의 개정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국가재정운용계획은 이런 요지경 양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교육교부금은 올해 68조8732억 원에서 2028년 88조6781억 원으로 늘어난다. 연평균 5조 원, 4년간 19조8000여 억 원 증가하는 것이다. 반면 초·중·고 학령인구는 올해 524만8000명에서 2028년 456만2000명으로 68만6000명이나 줄어든다.

이런 황당한 상황이 빚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현행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따라 내국세의 20.79%를 무조건 교육교부금으로 배정하기 때문이다. 17개 시도교육청이 지난해 못 쓰고 올해로 넘긴 예산이 8조6000억 원에 달한다. 노트북 무상 배포, 교직원 무이자 대출 등 현금·복지성 사업이 방만하게 이뤄지며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 내국세와 자동 연동하는 구조부터 손봐야 한다. 필요한 비용을 계산한 뒤 예산을 배정하거나 학령인구와 연동해 산정하는 방법 등을 검토해야 한다. 이미 많이 늦었다.

교육교부금 용도의 전향적 확대도 절실하다. 정부는 교육교부금을 유치원·보육시설 통합 재원에 투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에 앞서 교육교부금 일부를 대학에 지원하기 위한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법’이 2022년 말 간신히 제정됐지만, 야당의 반발로 대학으로의 교육세 전입금은 정부 안인 3조 원에서 1조5000억 원으로 반 토막 났다. 유보 통합에 교육교부금을 활용하기 위해서도 법 개정이 필요하다. 진보 교육감과 교사들을 의식해 이런 화급한 일들의 발목을 잡는 거대 야당의 책임이 무겁다.

문화일보 사설 

 
 

09.10 돈 쓸 일 계속 발표하며 요금 인상은 안 해, 어쩌자는 건지

▲서울 국민건강보험공단 종로지사 모습. /연합뉴스

 

정부가 내년도 건강보험료율을 올해에 이어 동결했다. 건보료 동결은 올해를 포함해 역대 네 번째로, 2년 연속 동결은 처음 있는 일이다. 복지부는 “고물가·고금리에 따른 국민의 부담 여력과 함께 건강보험 재정이 안정적인 점을 고려했다”고 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7월 말 기준 건강보험 준비금은 27조원이다. 올해 건보 재정도 2조원 넘게 흑자를 기록할 전망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부는 의정 갈등 상황에서 2028년까지 필수 의료 분야에 건보 재정 10조원 이상을 투입하겠다고 했다. 또 수가 정상화 등 의료 개혁을 뒷받침하기 위해 내년부터 5년간 국가 재정 10조원을 더 투입하기로 했다.

굵직한 것만 따져도 20조원 이상을 더 쓰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건보료율을 2년 연속 동결하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건보 재정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복지부도 지난 2월 내년 건보료율 1.49% 인상이 적정하다고 했다. 그래놓고 이번에 동결한 것이다. 막대한 돈을 쓰겠다면서 요금은 안 올리겠다는 것은 포퓰리즘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의료 상황이 정상화되면 건보 수요가 크게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급격한 고령화 추세에 따라 자연히 건보 지출이 증가할 수밖에 없고 인구 감소와 저성장 기조 때문에 보험료 수입은 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정해진 미래’나 마찬가지다. 정부의 건보 재정 전망도 2026년부터 적자로 돌아서 점차 적자 폭이 커지는 것이다. OECD 평균보다 10% 이상 낮은 건보 보장률(65.7%)을 확대하라는 요구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건보 재정에 다소 여유가 있더라도 건보료를 선제적으로 올려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 상당수 전문가의 지적이었다.

 

국민 눈을 가리는 포퓰리즘 때문에 공공요금을 제때 올리지 못한 대가는 가혹하다. 문재인 정부가 전기 요금을 제때 올리지 않자 한전은 투자 여력이 없어져 전기를 보낼 송전 선로조차 제대로 건설하지 못하고 있다. 휘발유·경유의 유류세를 한번 인하하더니 정상화 시점을 찾지 못하고 연장만 거듭하고 있다. 정부 포퓰리즘의 대가는 머지않아 국민이 치르게 된다.

조선일보 사설

 

09.10 [단독] TBS 내일부터 민영화...서울시 지원 없이 독립 경영

서울시 출연기관 해제

▲서울 마포구 매봉산로 서울특별시 미디어재단 TBS의 사옥/뉴스1

 

서울시 산하 출연기관인 TBS(서울교통방송)가 민영화된다.

 

10일 행정안전부와 서울시 등에 따르면 TBS는 11일부터 서울시 출연기관 지위가 해제된다. 앞으로는 ‘민간’법인이 된다. 서울시 산하 기관이 아니라는 뜻이다. 2020년 지정된 이후 4년만이다.

 

출연기관 지위가 해제되면 서울시와 서울시의회는 TBS를 추가 지원할 근거가 사라진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로부터 돈을 받을 수가 없게 돼 독립 경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공식적으로 서울의 손을 떠난 것”이라고 말했다.

 

TBS는 연말 방송통신위원회의 지상파 재허가 심사를 앞두고 있다. 서울시의회 관계자는 “재심의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자금조달 방안이 중요한데 출연기관 지위가 사라져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말했다.

 

TBS관계자는 “앞으로 민간 비영리 재단이 된 만큼 기부나 출연을 할 기관 등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TBS는 1990년 개국해 라디오로 교통방송을 송출해왔다. 박원순 전 시장 시절인 2020년 ‘미디어재단 TBS’가 됐다. 이후 ‘편파방송’ 논란이 일며 서울시의회가 지원 조례를 폐지했다. 지난 6월부터 TBS 전체 예산의 70%를 차지하는 서울시 출연금이 중단됐다.

 

지난달 이성구 대표대행은 기자회견을 열고 “김어준 등 정치적 편향성 문제를 일으킨 분들은 사재를 털어서라도 협력해야한다”고 말했다. 현재 TBS는 김어준에 손해배상 민사 소송과 ‘뉴스공장’ 상표권 권리침해 소송을 진행 중이다.

조선일보 박진성 기자

 

09.11 臨政 애국자들과 공산주의는 왜 실패했는가

구한말 유학은 서양·일본을 순결한 조선 더럽히는 짐승과 도적으로 봐
신탁통치 논란 때 임정도 비슷… 미군정을 침략으로 보고 반대
하지만 그 결과는 공산 세력 득세, 신냉전 몰아치는 지금은 난세
역사에서 얻은 지혜를 자각해야

 1945년 12월 30일 새벽, 서울 원서동에서 총성이 울렸다. 한국민주당 당수 고하 송진우가 암살되었다. 3·1운동의 주역으로, 일제와 줄기차게 싸운 민족 지도자였다. 그런 애국자가 왜 해방 후 첫 암살 대상이 되었을까? 정치 노선이 문제였다. 해방 후 송진우는 세 가지 정치적 입장을 천명했다. 자유민주주의, 임정 봉대, 미군정 인정이다. 새로운 국가를 세울 원칙이었다.

 

해방 후 가장 중요한 과제는 체제 선택이었다. 1946년 8월, 서울 시민 1만명을 대상으로 한 미군정청 여론조사를 보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지지율이 총 77%에 달했다. 다수 지식층도 공산주의를 인류의 희망으로 여겼다. 하지만 송진우는 자유민주주의를 지지했다. 1인이나 한 계급의 독재가 되면, 국민의 “생명, 재산과 자유가 보장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누가 건국의 주체가 될 것인가’ 역시 핵심적 과제였다. 송진우는 인공에 맞서 임정을 지지했다. 하지만 신탁통치를 놓고, 임정과 정면충돌했다. 1945년 12월 말, 신탁통치안이 알려지자 분노의 물결이 한반도를 휩쓸었다. 12월 29일, 좌우를 망라한 정당‧사회단체 대표들이 김구의 숙소 경교장에 모였다. 신탁통치 문제로 밤새 격론이 벌어졌다. 김구는 눈물을 흘리며, “우리 민족은 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신탁통치만은 받을 수 없다”며 격정을 토로했다. 강원룡 목사에 따르면, “모두들 소리소리 지르고 난장판이 벌어지는데, 그저 흥분해가지고 서로 욕설을 하고 이렇게 야단”을 쳤다.

 

그런데 송진우가 일어나 침착하게 “민족의 대계가 아니냐. 그런데 우선 여기서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의문 원문을 읽은 분이 있느냐. 민족의 영도자들이 그 원문 내용을 모르고 있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그 역시 반탁주의자였지만, 만약 5년 내 통일 정부가 가능하다면 신탁통치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역설했다. 미군정에서도 “탁치는 침략이 아니라 독립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의 원조와 후견을 의미하는 것이니, 한민족은 냉정하기 바란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러나 신탁통치와 미군정을 침략으로 본 임정은 미군정에 불복하라는 포고문을 발했다. 송진우는 미군이 최소 2년은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군이 떠나면 조직화된 공산 세력이 권력을 쥘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송진우가 옳았다. 미군이 떠난 뒤 6.25전쟁이 일어났다. 지난해 말, 일론 머스크는 한반도의 야간 위성사진을 엑스에 올렸다. 사진의 제목 ‘낮과 밤의 차이’처럼, 남쪽은 휘황찬란하게 빛나지만, 북쪽은 칠흑 같은 어둠뿐이다. 그 놀라운 차이는 1948년 체제 선택의 결과였다. 대런 모글루의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도 남북한을 대표적 사례로 소개했다.

 

그런데 왜 임정의 애국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은 실패했는가? 역사의 현실을 오독했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이후, 한국인이 직면한 최대의 사상적 문제는 ‘세계(world)의 이해’였다. 한말의 저명한 의병장 면암 최익현은 서양이 “중화를 오랑캐로, 인류를 금수로 만들었다”고 개탄했다. 수운 최제우는 ‘요망한 서양 도둑(西洋賊)’이라고 보았다. 유학과 동학이 본 당시의 ‘세계’는 서양과 일본이 순결한 조선을 더럽히는 짐승과 도적이라는 것이었다. 1876년 신사유람단을 따라 처음 일본을 방문한 유길준은 비로소 세계가 “일찍이 나 혼자 추측하던 바와 같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의 저서 <서유견문>은 ‘세계’의 발견에 대한 한국인의 첫 종합 보고서이자, 미래 한국이 나갈 지도였다.

 

의병장 기삼연의 제자인 송진우도 본래 유학자였다. 하지만 일본 유학을 통해 민주주의와 과학을 수용했다. 1925년 발표한 ‘세계의 대세와 조선의 장래’에서, 그는 “조선이 세계 구성의 일부”이므로, 세계와 조선 관계를 “냉정하고 엄숙하게 관찰”해 한민족의 운명을 개척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긴차절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1876년 개국 이래 이런 ‘세계’ 이해에 도달하기까지 50년이 걸렸다. 해방 후 송진우의 역사적 선택은 그 산물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의 시대착오적 반일 몰이는 계보가 있다. ‘세계의 이해’가 결핍된 유아론적 민족주의가 그 뿌리다. 이상으로서의 민족, 현실로서의 세계가 공존할 길을 찾는 것은 지난 150년간 한국민에게 지난한 정치적‧정신적 화두였다. 그 간극을 깊이 이해했던 송진우는 신중하게 역사의 행로를 판단하고, 진중하게 실천에 옮겼다. 신냉전의 파고가 몰아치는 지금은 난세다. 역사의 가시밭길을 헤치며 깊이를 더해 온 ‘세계의 이해’, 그것이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다.

조선일보 김영수 영남대 교수·정치학

 

09.11 [단독] 감사원, 'MBC 방만 경영 방치' 확인하고도 방문진에 '주의'만

강제 처분·징계 추진했으나 막판 심의서 빠져

 최승호·박성제 사장 시절 MBC가 미국 라스베이거스 부동산 개발 펀드에 투자했다가 투자금 105억원을 모두 날린 것으로 드러났다. MBC 자회사는 전남 여수에 테마파크를 만드는 사업을 파산 직전인 회사에 투자해 70억원 넘게 손실을 봤다. MBC 최대 주주이자 관리·감독 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는 이런 사실을 뒤늦게 보고받고도 책임자에 대해 문책을 요구하지도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방문진이 MBC의 방만 경영을 방치했다고 판단했다. 그런데도 감사원은 방문진에 대해 ‘주의’만 줬는데, 감사원 사무처가 방문진에 대한 강제성 있는 처분을 건의했으나 감사위원회의 심의 과정에서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방문진 “MBC 관리·감독 자료 없다” 제출 거부

감사원이 11일 공개한 방문진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방문진은 국가로부터 MBC 주식 70%를 출연받은 기관으로서 감사원법에 따라 감사원 감사 대상에 해당한다. 반면 MBC는 ‘국가 출연 기관인 방문진이 출자한 기관’에 해당돼 감사원 감사 대상이 아니다. MBC의 궁극적인 대주주는 국가지만, 그 사이에 방문진이 끼어 있어 감사원 감사를 피할 수 있는 구조다.

 

이번 감사는 보수 성향 시민단체 등이 2022년 11월 ‘방문진이 최승호·박성제 사장 시절 MBC의 방만 경영을 보고받고도 별다른 관리·감독 행위를 하지 않았다’며 감사를 청구해 시작됐다. 감사원은 제기된 의혹 9가지 가운데 6가지에 대해 감사를 하기로 결정하고, 의혹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지난해 3월 방문진에 MBC 관리·감독 활동에 관한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감사원이 요구한 것은 방문진이 MBC로부터 보고받은 MBC 내부 감사 자료, MBC 사규 등이었다.

 

그러나 방문진은 ‘MBC로부터 보고받은 자료 대부분은 MBC가 보안 등의 이유로 보고 당일 회수해갔거나, 우리가 직접 폐기해 갖고 있지 않다’며 제출하지 않았다. MBC 사규 등 MBC를 제대로 관리·감독하기 위해 당연히 갖고 있었어야 할 자료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MBC 자료는 MBC에 직접 요구해 받으라’고 했다. 방문진은 자체 회의에서 “MBC가 감사원에 제출할 자료를 MBC를 대신해 감사원에 전달할 권한도 책임도 없다”는 주장이 나왔다는 것을 자료 제출 거부 이유로 들었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감사원은 지난해 5월 방문진으로부터 받지 못한 자료를 달라고 MBC에 요구했다. MBC는 감사의 직접적인 대상이 아니더라도 자료를 내야 했다. 감사원법에는 ‘감사원은 필요한 경우 감사 대상 기관이 아닌 자에 대해서도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고, 요구를 받은 자는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그 요구에 따라야 한다’고 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MBC는 감사원이 별도로 보낸 질문서에 대한 답변서를 내면서, 자기에게 유리한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일부 자료만 제출하고, 감사원이 요구한 나머지 자료는 제출하지 않았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결국 감사원은 MBC의 답변서와 일부 제출 자료, 방문진 이사회 회의록·속기록·회의자료 일부, 고용노동부 등 다른 기관으로부터 수집한 자료 등 제한적인 자료만을 갖고 감사 결과를 낼 수밖에 없었다. 감사원은 방문진과 MBC 임원들에 대해 감사 방해 혐의가 있다고 보고, 지난해 8월 검찰에 수사 참고 자료를 보냈다.

MBC, 이사회 승인 없이 1900억원 부동산 투자했다 손실

감사원이 제한된 자료만으로도 방문진이 MBC 방만 경영을 방치했다는 결론을 내린 것은, MBC가 경영을 잘못하고 있다고 방문진이 판단할 만한 상황이 수차례 발생했는데도 방문진이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MBC는 2018년 서울 여의도 사옥을 매각해 얻은 대금 4849억원 중 1905억원을 국내·외의 부동산 관련 상품에 투자했다. 이 가운데에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리조트 건설 사업 관련 펀드 투자도 있었다. MBC가 체결한 계약에는 리조트 개발 업체가 선순위 채권자인 JP모건에 자산을 양도할 경우 나머지 채무는 갚지 않아도 된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었다. 중순위 채권자였던 MBC에는 투자금 전액을 날릴 수 있는 초고위험 투자 상품이었던 것이다. MBC는 이런 투자를 이사회를 거치지 않고 진행했고, 2020년 리조트 개발 업체가 사업을 포기하고 JP모건이 자산을 넘겨받으면서 투자금을 전액 손실했다.

 

방문진은 이때까지도 MBC로부터 아무 보고를 받지 못했고, 방문진 한 이사가 2021년 3월 “기사에서 봤다”며 MBC에 투자 사실이 있느냐고 질의한 뒤에야 MBC로부터 “부동산 투자가 20여건 있다”는 답을 들었다. 그러나 그 뒤로 방문진은 MBC로부터 추가 손실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를 수차례 받고, 이와 관련한 MBC의 조치 사항이 불충분했는데도 MBC에 투자 관련 제도 개선을 요구하거나 관련자 문책을 요구하지 않았다.

 

MBC 자회사 MBC플러스는 2018년 5월 전남 여수에 실내 스포츠 테마파크를 조성하는 사업에 참여했는데, 공동 사업자가 시설물을 제대로 설치하지 않아 테마파크가 개장되지 못했다. 임대료로 매년 10억원이 나가는 상황에서도 MBC플러스는 공동 사업자를 상대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등의 조치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MBC플러스의 사업 담당자는 서울 강남 유흥주점에서 공동 사업자 측과 여러 차례 술자리를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업은 이후 중단됐고 MBC플러스에 최소 74억원에서 최대 88억원의 손실을 안겼다.

 

감사원이 확인해보니, 이 사업은 방문진과의 사전 협의를 거쳐 추진했어야 하는 사업이었다. 방문진은 MBC 감사로부터 MBC플러스의 사업 실패에 관한 문제점을 뒤늦게 보고받고도, MBC플러스 임원들에게 경고를 줬다는 보고만 받고 이 사안을 넘겼다.

감사원, 방문진에 ‘강제 처분’ 추진했으나 무산

그런데도 감사원은 방문진에 “앞으로 MBC 경영에 대한 관리·감독 업무를 철저히 하라”며 주의만 줬다. 방문진이 감사원의 이런 주의 요구를 받고 실질적으로 해야 하는 조치는 없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방문진을 감사한 감사원 사무처는 지난달 감사위원회의에 ‘방문진에 대해 강제성 있는 처분을 내려야 한다’고 건의했다. 이 가운데에는 이번 감사에서 확인된 MBC의 방만 경영 사례 각각에 대해, 방문진에 MBC를 관리·감독하라고 요구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또 방문진 일부 임직원에 대해 징계 등의 조치를 요구하는 내용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건의대로 처분이 내려졌다면, 감사원은 방문진이 MBC의 방만 경영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하는지를 후속 점검하고, 방문진이 방만 경영을 계속 방치할 경우엔 방문진을 추가로 제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방문진에 대한 강제 처분 방안은 감사위원회의에서 모두 부결됐다고 한다. 감사위원 7인 중 4인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데, 최대 3인의 찬성밖에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재해 감사원장을 제외한 감사위원 6인 가운데 3인은 이전 정부가, 3인은 현 정부가 임명했다. 현 정부가 임명한 위원 중 1인은 이 감사 결과 심의에서 제척돼 심의에 참여하지 못했다.

조선일보 김경필 기자

 

09.12 청소년 SNS 사용 금지법 만드는 호주, 우린 필요 없나

▲비벡 머시 미국 의무총감은 지난 6월 언론 기고문에서 술과 담배에 붙이는 것처럼 소셜미디어에도 '청소년 건강에 유해하다"는 경고문을 붙여야 한다고 제안해 미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머시 총감은 "소셜 미디어로 인해 자신을 남과 비교하고 깎아내리며 불행해지는 악순환도 가속화됐다”고 경고했다. 사진은 작년 미국 뉴욕서 열린 ‘세계 정신건강의 날(10월 10일)’ 행사에 참석한 모습. /게티이미지코리아

 

호주 총리가 16세 미만 청소년의 소셜미디어 이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연내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소셜 미디어가 사회적 해악을 끼친다”고 표현했다. 청소년의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이 중독성 행동을 유발하고 괴롭힘, 도박, 사이버 범죄를 낳는 등 폐단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국가 차원에서 청소년의 SNS 사용 제한을 추진하는 것은 호주가 세계 최초이지만, 각국에서 비슷한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유럽에서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11세 이하의 스마트폰 사용 금지와 15세 이하의 SNS 사용 금지 법안에 지지를 표명했다. 최근 텔레그램 창업자 파벨 두로프가 프랑스 경찰에 체포된 것도 큰 맥락은 같다. 이탈리아에서는 14세 미만의 휴대전화 소유를 금지하고 16세 미만은 소셜미디어 계정 개설을 금지하자는 온라인 청원에 교육부 장관을 비롯해 사회 저명인사들이 앞장서 공감하면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우선시해온 미국도 바뀌고 있다. 엊그제 미국의 42개 주(州) 법무장관들은 담배나 술처럼 소셜 미디어에도 ‘청소년 건강에 유해하다’는 경고문을 달게 하는 법안을 하루빨리 통과시켜야 한다는 서한을 의회에 보냈다. 이는 ‘미국의 주치의’라고 불리는 비벡 머시 공중보건서비스단 단장 겸 의무총감이 지난 6월 제안한 것이다. 머시 단장은 “소셜 미디어가 일상을 왜곡·과장하고 유해 콘텐츠를 끊임없이 권유하면서 청소년 정신 건강이 입는 피해가 감내할 수준을 넘었다”고 경고하면서 이같이 제안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7월 말 미국 연방 상원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소셜미디어 중독으로부터 보호하는 법안 두 건을 압도적 표차로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2021년 메타(페이스북 모기업)의 서비스가 청소년들의 정신 건강을 악화시킨다는 사실을 알고도 돈벌이 때문에 묵인해왔다는 내부 폭로가 나오면서 추진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 아이들이 온라인 무법 천지에 노출돼 있다”는 성명을 냈다.

 

표현의 자유, 소셜 미디어의 효용성 등을 주장하면서 이 같은 규제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여전히 높다. 하지만 최근 들어 세계적 분위기는 급변하고 있다. 미국의학협회 연구에 따르면 하루에 3시간 이상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는 청소년은 우울증에 걸릴 위험이 두 배로 높아진다. 어린 나이에 지나치게 스마트폰에 노출되면 뇌가 강렬한 자극에만 반응하는 ‘팝콘 브레인’이 된다는 연구도 있다.

 

어린이 및 청소년의 스마트폰 및 소셜 미디어 중독은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가장 심각한 수준일 것이다. 과기부에 따르면 청소년(만 10~19세) 10명 중 4명이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이다. 심지어 유·아동(만 3~9세)도 4명 중 1명이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에 속해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스마트폰 사용 및 소셜 미디어 몰입을 막는 법안이 전 세계에서 가장 시급한 나라가 한국일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9.12 저출생 반등 성공한 헝가리 정책 연구할 가치 있다

▲노박 커털린 전 헝가리 대통령이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민의힘 약자동행특별위원회, 2040 순풍포럼, 한·헝가리 친선협회가 주최한 초청 특강에서 '인구감소 및 저출생 문제해결을 위한 정책 경험 공유'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뉴시스

 

출산율 반등에 성공한 헝가리의 노바크 커털린 전 대통령이 11일 국민의힘 초청으로 국회에서 ‘저출생 해법’ 특강을 했다. 한국과 헝가리의 합계 출산율은 2011년만 해도 서로 비슷했다. 그런데 한국은 1.24명에서 2021년 0.81명으로 고꾸라졌지만 헝가리는 1.59명으로 반등했다.

 

헝가리 정부는 부부가 출산 계획만 통보해도 ‘미래 아기 대출’로 4000여 만원을 빌려준다. 5년 안에 자녀를 1명 낳으면 이자 면제, 2명 낳으면 원금 3분의 1 탕감, 3명 낳으면 원금 전액을 탕감해준다. 입양을 해도 혜택이 같다. 여기에 ‘가족 주택 보조금’을 저금리로 이용하면 신혼부부라도 작은 집을 마련할 수 있다. 자녀가 3명 이상이면 가족 소득세가 사실상 없다고 한다. 자동차 구매 보조금과 가스료 할인, 생필품 보조 혜택도 준다. 대학생이 아이를 낳으면 등록금 대출까지 감면해준다.

 

한국 젊은 세대가 결혼·출산을 계획할 때 최대 고민이 주택 마련이다. 올 초 혼인 증가율 2위를 기록한 대구는 결혼 7년 이내 신혼부부에게 연 320만원까지 전세 대출 이자를 지원했다. 직원에게 자녀 1명당 1억원씩 출산 장려금을 지급한 부영그룹은 올해 경력·신입 사원 공채에 예전보다 5배 이상 많은 지원자가 몰렸다. 이런 점에서 ‘헝가리 모델’ 역시 연구해볼 가치가 있다.

 

지금 우리 저출생 상황은 국가 비상 사태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올해 합계 출산율이 0.6대라는 최악 기록을 세울 가능성이 크다. 여성 2명이 평생 아이 한 명을 낳는다는 것이다. OECD 38국 중 출산율 1명 이하는 한국뿐이다. 0~4세 인구가 처음으로 북한보다 적어졌고 초등학교 신입생은 현재 40여 만명에서 9년 뒤 22만명으로 반 토막 난다.

 

커털린 전 대통령은 “한국 사람들이 큰 차를 많이 몰던데 그 안에 아이가 있는 경우는 별로 못 봤다”며 “아이를 기르는 것이 돈을 많이 버는 것 못지않게 행복한 일이라고 믿는 한국인이 얼마나 되느냐”고 했다. 아이 세 명을 키우는 그는 “한국에선 ‘개모차’가 유모차보다 더 팔린다고 들었는데 세상에 아이를 대신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고도 했다. 우리 사회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조선일보 사설

 

09.12 "나라가 국민을 거지로 만들고 있다"

현금 복지에 길들었던 사우디
땀 흘려 일하는 보람 잊었다가
뒤늦게 "사우디病 벗자"는데
우린 왜 실패의 길 가려 하나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4일(현지시각) 사우디 리야드 킹 압둘아지즈 국제 컨퍼런스 센터에서 열린 미래 투자 이니셔티브 포럼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겸 총리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2023.10.25/뉴스1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원유 매장량 1·2위를 다투는 나라 베네수엘라가 알짜배기 석유 회사를 국유화하고 거기서 나오는 돈을 국민 호주머니에 찔러주자 우리 중 일부는 반색했다. 베네수엘라식 현금 복지를 우리가 가야 할 미래라고도 했다. 그토록 입에 침이 마르게 찬미하던 이들이었지만 쓰레기통을 뒤져 연명하는 나라가 된 현실 앞에선 그들도 입을 다물었다. 다만 지금도 ‘25만원 법’ 같은 것에 매달리는 걸 보면 현금 복지의 망령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베네수엘라 사례를 보고도 미련이 남는다면 사우디를 들여다보기 바란다. 사우디는 현금 살포가 통치의 오랜 관행인 나라다. 초대 국왕 압둘아지즈 이븐 사우드는 생전에 행차할 때면 돈이 가득 든 상자를 들고 다녔다. 가난한 백성이 나타나 머리를 조아리면 상자에 손을 넣어 잡히는 대로 돈을 꺼내 줬다. 오늘날 돈 상자는 사라졌지만 현금성 복지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국민 40%에 이르는 사우디 빈민은 정부 지원금 덕에 먹고사는 데는 문제가 없다. 교육과 의료는 비록 질이 낮지만 무료이고 휘발유와 전기 등 에너지 가격은 거저나 마찬가지다. 왕실이 출연한 각종 사회보장 기금도 극빈층을 돌본다.

 

많은 사우디인은 땀 흘려 일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도 수중에 돈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 나라에 진출한 외국 기업은 의무고용 제도에 따라 사우디인을 법이 정한 비율대로 고용해야 한다. 한 달 내내 출근하지 않아도 자를 수 없는데 월급은 꼬박꼬박 줘야 한다. 사우디를 방문하는 외국인은 특이한 경험을 한다. 공항을 나와 택시를 타면 운전은 파키스탄인이 하고, 호텔 리셉션에서 손님을 맞는 이는 레바논인이다. 방을 청소하는 이는 필리핀 출신이다. 그들이 일할 때 많은 사우디인이 집에서 빈둥거린다. 열심히 하는 것도 있기는 하다. 사우디인은 축구 경기에 열광한다. 권선징악청 산하 종교경찰은 사회 기풍을 단속하는 것에 열심이다. 그래봐야 생산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나라가 주는 현금에 길든 국민이 자기 삶을 스스로 개척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우디의 미래를 걱정하는 지식인들은 “나라가 국민을 거지로 만들고 있다”고 개탄한다. 월스트리트저널 편집장을 지낸 캐런 하우스가 쓴 ‘사우디아라비아’에 현금성 복지에 길든 사우디인들이 얼마나 수동적인지 보여주는 우스개가 실려 있다. 어느 날 국왕이 차량 통행량 많은 도로에 검문소를 세우고 자기 백성이 얼마나 고분고분한지 실험했다. 느닷없이 들어선 검문소 때문에 길이 막히는데도 누구 하나 불평하는 이가 없었다. 경찰을 보내 신분을 확인하게 하자 줄이 길어졌지만 이번에도 순순히 따른다. 마지막엔 극단적으로 가봤다. 행인을 줄 세우고 이유 없이 때린 다음 맞은 자에게만 신원 확인 절차를 받고 지나가게 했다. 그로 인해 줄이 더 길어지자 마침내 한 시민이 항의했다. “한 시간이나 기다렸다. 이럴 땐 두 사람이 우리를 때려야 기다리는 줄이 짧아질 것 아닌가?”

 

원유 매장량 1위와 2위 국가가 다 이런 식이라는 사실을 가벼이 보아 넘길 수 없다. 다만 베네수엘라는 차베스에 이어 그의 노선을 따르는 마두로가 집권하며 형편없이 망가졌지만, 사우디는 차기 국왕이 될 무함마드 빈 살만이 ‘석유 이후의 사우디’를 고민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빈 살만은 현금성 복지에 중독된 ‘사우디 병(病)’을 치료하고 싶어 한다. 대처 영국 총리가 과도한 복지와 산업의 비효율로 상징되는 ‘영국병’을 어떻게 고쳤는지에도 관심이 많다. 국가 지도자가 국민에게 돈을 찔러줘서는 미래가 없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은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 일부 정치인은 그 길이 좋다고 한다. 그들이 멈추지 않으면 국민이 못 가게 막아야 한다.

조선일보 김태훈 논설위원

 

09.13 TBS의 몰락과 유튜버 김어준

▲2021년 2월23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신장식 변호사. 둘은 윤석열 대통령이 브로커의 청탁을 받아 수사를 무마해 줬다는 JTBC의 가짜 뉴스를 사실처럼 적시해 가며 방송을 진행했다. /유튜브

 

4394억원.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방송하던 2016~2022년 서울시가 서울교통방송 TBS에 들인 세금이다.

9분. 서울시 감사위원회에 따르면 ‘뉴스공장’의 인기가 절정이던 2019년 TBS가 출퇴근길 교통 정보를 제공한 시간이다.

 

세금은 좌우 없이 걷었지만 방송은 한쪽을 향했다. 저녁 강변북로가 얼마나 막히는지는 들을 기회가 적었다. TBS는 두 숫자의 간극만큼 시민들에게 빚을 진 것일지도 모른다.

 

TBS는 1990년 서울시 교통방송으로 개국했다. 버스·택시 기사의 ‘길잡이’ 역할을 해 왔다. 박원순 전 시장이 취임하며 방송이 달라졌다. ‘정치 방송’ ‘편파 방송’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뉴스공장’ 진행자 김어준은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자기 유튜브에서 “이재명은 혼자서 여기까지 온 사람이다. 이제 당신들이 좀 도와줘야 한다”며 이재명 후보를 공개 지지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이런 편파 발언을 한 진행자를 계속 출연시킨 TBS에 경고 제재를 내렸다. ‘신장식의 신장개업’ 진행자 신장식 변호사는 2022년 대선 전날 ‘윤석열 커피’ 거짓 뉴스를 옹호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 윤 대통령이 2011년 부산저축은행 사건을 수사하면서 대장동 대출 브로커에게 커피를 타 주고 수사를 덮었다는 것이다. 이 뉴스는 나중에 허위로 드러났다. ‘뉴스공장’은 21건 ‘신장개업’은 3건 방심위의 법정 제재를 받았다.

 

서울시의회는 2022년 11월 TBS에 대한 서울시의 예산 지원을 중단하는 내용의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서울시는 지난 6월 행정안전부에 출연 기관 지정 해제를 신청했다. 이달 11일 TBS는 서울시 출연 기관 지위가 해제됐다. 더 이상 서울시 산하기관이 아닌 민간 법인이 된 것이다. 세금을 쓸 근거가 사라졌다. 연 예산 400억원의 70%가량을 서울시에 의존해 온 TBS는 폐업 절차를 밟을 가능성이 커졌다. TBS는 “일본어 방송을 해보겠다” “소상공인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방송을 해보겠다”며 몸부림을 치고 있지만 때는 늦었다. 이번 달 직원 월급 줄 돈도 바닥났다고 한다.

 

김어준과 신장식은 2022년 말 TBS를 떠났지만 여전히 승승장구한다. 김어준은 ‘뉴스공장’ 상표를 개인 유튜브 채널명에 가져가 구독자를 끌어 모으고 있다. 총선에만 4번 도전했다 모두 실패한 신장식은 ‘신장개업’ 이후 조국혁신당 ‘영입 1호 인사’로 국회에 입성했다. 서울 시민의 세금으로 퇴직 선물까지 안겨준 모양새다. 그런데 책임을 물을 길은 없다. 이성구 TBS 대표 대행은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김어준과 신장식을 겨냥해 “사재를 털어서라도 우리를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TBS는 김어준과 이강택 전 대표에게 경영 악화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 1억원을 청구했다고 한다. 물론 유튜버 김어준은 아무 반응이 없다.

조선일보 박진성 기자

 

09-13 현대차-GM 동맹, 글로벌 합종연횡 성공 모델 기대한다

현대자동차와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지난 10일 뉴욕에서 포괄적 협력 협약(MOU)을 체결했다. 주요 완성차 업체 간의 이런 협력은 극히 드문 사례다. 세계 3위 현대차와 5위 GM이 뭉치면 토요타(지난해 판매량 1123만 대)를 뛰어넘는 세계 최대의 자동차 동맹(합산 1349만 대)이 탄생한다. 양사는 수소전기차 등 미래 차부터 공동 개발·생산하고 공급망과 친환경 에너지 분야에도 손을 잡기로 했다. 자동차용 철강·배터리·부품도 공동 구매해 생산 비용도 낮추기로 했다. ‘규모의 경제’ 효과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양사가 내연기관차와 전기차 등에도 포괄적 협력 가능성을 열어놓았다는 점이다. 현대차는 중소형 승용차와 하이브리드카·전기차의 경쟁력이 뛰어나고 GM은 상용차와 픽업 트럭 등이 주력이다. 동맹을 통해 서로 부족한 분야를 보완하면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해외 공장 건립이나 신차 개발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캐나다 GM 공장에서 산타페를 생산할 수도 있게 된다. 양사는 공동으로 개발한 차량을 각자의 브랜드로 판매하는 ‘리배징’을 포함한 다양한 전략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GM이 미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정책이나 관세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강점이다.

글로벌 자동차 업계는 생존 차원의 합종연횡에 들어간 지 오래다. 르노·닛산·미쓰비시는 지분 인수를 통해 동맹(얼라이언스)을 완성했고 피아트·크라이슬러·푸조 등도 스텔란티스그룹으로 한몸이 됐다. 일본 토요타차는 독일 BMW와 수소전기차 동맹을 맺었다. 최근 중국 전기차 공습으로 폭스바겐이 독일 공장 2곳을 폐쇄하는 등 글로벌 자동차 산업에 격렬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현대차가 GM과 뭉쳐 리스크는 줄이고 효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면 토요타와의 양강 구도도 불가능한 꿈이 아니다. 글로벌 협력 체제 구축의 새로운 성공 모델이 되기를 기대한다.

문화일보 사설 

 

09.13 원전 생태계 부활의 신호탄 된 신한울 3·4호기 건설

▲성태윤 정책실장이 1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신한울 3ㆍ4호기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으로 백지화 8년 만에 재개

‘고준위방폐법’ 처리, 인프라 복구로 경쟁력 강화해야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어제 경북 울진 신한울 원자력발전소(원전) 3·4호기 건설을 허가했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2016년 건설 허가를 신청한 지 8년여 만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으로 중단됐던 신한울 3·4호기 건설이 가능해지며, 무너졌던 원전 생태계의 복원과 안정적인 전력 공급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신한울 3·4호기는 정권에 따라 달라지는 원전 정책의 상징이 돼버렸다. 김대중 정부 때인 2002년 건설이 본격 추진된 뒤 2015년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되고, 2017년 2월 발전사업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 건설 사업과 심사가 모두 중단되며, 신한울 3·4호기 건설 계획도 백지화됐다. 탈원전 폐기와 원전 생태계 복원을 내건 윤석열 정부에서 건설 심사를 재개하며 기사회생한 것이다.

 

에너지 안보와 산업 경쟁력을 무시한 탈원전 정책의 피해는 막심했다. 국내 원전 생태계는 고사 위기에 처했다. 대학의 원전 관련 학과는 쪼그라들었고, 관련 업계의 매출과 인력도 급감했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한 원전 건설에 허송세월했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게 됐다. 당초 계획대로 추진됐다면 신한울 3호기는 2022년, 4호기는 2023년에 준공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다음 달 초 착공에 들어가더라도 신한울 3호기는 2032년, 4호기는 2033년에 준공될 전망이다. 완공 시점이 10년씩 미뤄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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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의 ‘탈원전’ 분위기 속에서 원전 복원에 나서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온실가스 배출 없는 에너지원 확보와 함께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 급증으로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원전은 필수 불가결하다. 탄소중립을 위한 재생에너지의 경우 안정적 전력 공급을 담보할 수 없는 만큼 무탄소 에너지원인 원전이 필수라는 주장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대란도 원전을 통한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의 중요성을 각인시켰다.

 

산업 경쟁력 측면에서도 원전의 강화는 중요하다. 한국의 원전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안정성을 인정받은 분야다. 이미 UAE와 체코 등으로의 원전 수출로 경쟁력을 인정받은 만큼, 국내 원전 건설로 수출에는 더욱 힘이 실리게 됐다. 정책 혼선으로 혼란의 시간을 보냈지만, 이제 필요한 것은 무너진 원전 생태계와 인프라를 복구해 K원전의 경쟁력을 강화, ‘원전 르네상스’를 이끄는 것이다. 물론 안전성 확보는 필수다. 지속가능한 원전을 위해 ‘고준위방사성폐기물처리특별법’ 등의 처리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 무엇보다 원전과 관련한 정책의 연속성, 일관성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국익을 고려치 않은 정책에 휘둘리는 건 한 번으로 충분하다.

중앙일보 사설

 

09.13 탄핵이 제일 쉬운 나라

 탄핵은 최후의 보루다. 헌법 조문을 보면 그렇다. 탄핵소추 요건 등을 규정한 헌법 65조 1, 2항은 무난하다. ‘탄핵소추의 의결을 받은 자는 탄핵심판이 있을 때까지 그 권한 행사가 정지된다’는 3항이 무섭다. 최상위법인 헌법에서 공직자 직무 정지를 명기했다. 국회 의결만으로 해당 공무원을 무력화하는 조항이다. 탄핵소추는 극히 예외적인 상황에서 절제된 방식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무게가 실렸다. 2004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첫 의결이었으니 오랜 세월 국회가 품고만 있었던 칼이다.

 

22대 국회에만 탄핵소추안이 7번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했다. 타깃이 된 공직자는 곧바로 직무가 정지됐다. 지난달 29일 헌법재판관 전원 일치로 기각 결정을 받을 때까지 272일간 업무에서 배제된 이정섭 검사가 대표 사례다.

 

탄핵소추의 엄밀성은 역시 헌재 소관인 권한쟁의심판과 비교하면 두드러진다. 2022년 5월 국회는 본회의장 의장석을 점거한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에 대해 ‘30일 출석정지 징계안’을 의결했다. 그러나 징계안은 곧바로 힘을 잃었다. 김 의원이 헌재에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내면서다. 헌재는 헌법재판소법 65조에 따라 신청을 인용했다. 30일 출석정지도 가처분 판단을 받는데, 장기간 직무를 못하는 공직자의 불이익은 구제 여지가 없다. 직무 정지를 헌법에 못 박았기 때문이다. 헌재법을 비롯한 그 어떤 법률로도 헌법을 거스르지 못한다.

 

의회 신뢰 바탕으로 한 탄핵 제도

우리는 공직자 직무정지 수단으로

 

이 검사의 기각 결정문을 보면 말문이 막힌다. 후배 검사에게 지시해 일반인 전과를 알아봤다는 ‘범죄경력조회 무단 열람’은 일시가 전혀 기재돼 있지 않았다. 처가가 운영하는 골프장을 선후배 검사가 이용하게 했다는 의혹은 “편의를 받았다는 검사”가 누군지 안 나왔다고 한다. 재판관 전원 일치 기각이 아니라면 이상했을 정도다. 수원지검 차장검사로 이재명 민주당 대표 사건을 맡았던 이 검사는 혐의를 벗고서도 원래 자리로 돌아가지 못했다.

 

탄핵 제도의 모델인 미국이 의회에 탄핵 전권을 부여한 이유에 대해 박한철 전 헌법재판소장은 “미국 헌법의 기초자들은 의회를 신뢰했다”고 설명한다(『헌법의 자리』). “토론을 통해 결론을 도출하는 방식을 유지하리라고 믿었다”는 대목에서 우리의 탄핵이 정상의 궤를 벗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야당 18건 발의 남용에 희화화

 윤석열 정부 들어서만 18건 발의된 탄핵소추안은 공무원 압박 수단으로 전락했다.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어제 탄핵소추 권한 남용 금지 특별법 제정안을 발의했다. 민주당이 과반 의석인 상황에서 허망한 시도다. 그렇다고 탄핵 남용을 무작정 방치해야 할까.

 

부산지방법원장을 지낸 강민구 변호사는 “공직자에 대한 탄핵심판을 패스트트랙으로 운용 안 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블로그에 적었다. 그러면서 2000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앨 고어와 조지 부시 후보 간의 법적 분쟁을 연방 대법원에서 신속히 종결한 사례를 제시했다. 승부를 가른 플로리다주 투표 결과를 두고 양측이 대립하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헌법재판소’라 불리는 미 연방 대법원은 한 달 만에 논란을 종결시켰다

 
 

헌재법상 탄핵심판은 180일 이내에 종결해야 한다. 그러나 이정섭 검사 사례에서 보듯 심리는 길어진다. 더욱이 다음 달 임기가 끝나는 국회 추천 재판관 3명의 후임 임명 절차를 야당이 지연시키리란 예상이 나온다. 이렇게 되면 6명의 재판관만 남아, 7명 이상이 요건인 심리가 중단된다. 재판관 7명이 안 되는 기간은 180일에서도 제외한다. 직무 정지가 마냥 길어지리란 우려가 나온다.

 

의회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탄생한 탄핵심판 제도가 21·22대 국회를 거치며 급속히 희화화됐다. 헌재가 해결책을 찾아야 할 과제다. 민주당은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을 취임 이틀 만에 탄핵소추할 정도로 진화하는데 답을 줄 헌재는 제자리걸음이다. 한국이 단순한 징계나 사법 절차보다도 ‘탄핵이 제일 쉬운 나라’가 돼가고 있다.

 

중앙일보 강주안 논설위원

 

09.14  8년 만에 새 원전 허가, 송전선 특별법 처리도 서둘러야

▲경상북도 울진군 한국수력원자력 한울원자력본부의 신한울 3·4호기 건설 부지. 현재 터닦기 공사가 마무리된 상태로 한수원은 건설 허가와 동시에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간다. /한국수력원자력

 

경북 울진의 신한울 3·4호기가 신청 8년 만에 원자력안전위 심사를 통과했다. 신규 원전 허가는 8년 3개월 만이다. 신한울 3·4호기는 2017년 2월 발전 사업 허가를 받았지만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을 한다며 중단시켰다. 당시 부지 매입과 설비 제작 등에 모두 7900억원이 투입된 상태였다. 이제야 무너졌던 원전 생태계를 복원하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할 수 있는 출발점에 섰다고 할 수 있다.

 

세계는 현재 원전 르네상스 시대다. 기후변화로 무탄소 에너지원 필요성이 높아진 데다, 인공지능(AI) 산업의 비약적 성장으로 전력 수요가 폭증했기 때문이다. 현재 프랑스 영국 폴란드 체코 네덜란드 등 17국에서 원전 60기가 건설 중이고 미국·일본 등이 정지된 원전 재가동에 나서고 있다. AI만 아니라 반도체·데이터·전기차·자율주행차 등 미래산업은 모두 ‘전기 먹는 하마’여서 저렴한 양질의 전력인 원전의 뒷받침 없이는 존립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원전 허가로 끝이 아니다. 송전선 건설이 적기에 이뤄지지 않아 발전소를 지어도 놀릴 판이다. 원전이 많은 강원도,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발전이 많은 전남에서 전력이 생산돼도 이를 전기 수요가 많은 수도권으로 끌어올 방법이 없다. 한전은 문 정부의 탈원전과 누적 적자 때문에 송전선로 건설사업에 거의 손을 대지 못했다. 뒤늦게 속도를 내려 하지만 곳곳에서 주민 반대, 지자체와 소송전 등으로 건설이 중단되고 있다.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선진국들은 전력망 투자를 국가적 현안으로 인식하고 전력망을 신속 확충하기 위해 과감한 제도 개선에 나서고 있다. 국회에 계류 중인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은 송전망이 지나는 지역 주민을 지원하고 각종 인허가 절차를 대폭 개선하는 법안이다. 여야 간 큰 이견이 없는데도 정쟁에 묻혀 언제 처리될지 기약이 없다.

조선일보 사설  

 

09.19 尹 지지율 20%,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국갤럽이 9월 둘째 주 윤석열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를 조사한 결과 긍정평가가 20%, 부정평가가 70%로 집계됐다. 전주 대비 긍정평가는 3%포인트 하락, 부정평가는 3%포인트 오른 수치다. 갤럽 조사 기준 취임 후 지지율 최저를 기록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치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잇달아 발표되고 있다. 한 조사에선 27%(긍정) 대 68.7%(부정)로 나왔고, 26% 대 68%, 27.7% 대 69.5%란 발표도 있었다. 한국갤럽 조사에선 긍정 평가가 20%에 그쳐 총선 참패 직후(21%)보다 더 떨어졌다. 부정 평가는 70%에 달했다. 하락세는 연령, 지역,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았다. 40대의 지지율은 8%에 불과했다.

 

그 이유는 누구나 안다. 한국갤럽 조사에선 의대 정원 확대가 부정 평가의 첫 번째 이유로 꼽혔다. 한때 긍정 평가의 이유였지만 의료 갈등이 7개월을 넘기면서 윤 정부 관리 능력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건희 여사가 ‘명품 백 사건’ 등 부적절한 처신에 대한 사과도 없이 공개 활동을 재개한 것도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 응답자들은 경제·민생, 소통 미흡, 독단적 리더십을 부정 평가의 이유로 지목했다. 변하지 않은 윤 대통령 모습에 고물가와 의료 사태까지 겹치면서 민심 이반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이대로 가면 지지율은 더 떨어질 수 있다.

 

만약 지지율이 10%대까지 떨어지면 국정 동력엔 급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일선 공무원은 움직이지 않으려 할 것이고, 거대 야당이 국회를 지배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운신은 더 힘들어질 것이다. 윤 대통령이 추진 중인 연금·의료·노동·교육 개혁의 추동력도 국민 지지에서 나오는 것이다. 저조한 지지율로는 국가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개혁도 추진하기 어렵다. 역대 대통령들은 임기 막판에 지지율이 10~20%대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윤 대통령 임기는 아직 반환점도 돌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으며 (지지율 하락을) 엄중하게 보고 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2년 전 취임 석 달 만에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지자 “국민의 뜻을 헤아리겠다”고 했다. 이후에도 기회만 있으면 “국민은 늘 옳다” “국민 뜻을 받들겠다”고 했다. 그런데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민심은 대통령이 여전히 국민 뜻을 모르고 있으며 변한 게 없다고 평가한다. 왜 민심이 떠나고 있는지 통절한 자성이 없다면 위험한 상황이 올 수 있다.

조선일보 사설

 

09.19 법에 과잉 의존하는 민주주의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법이 만들어질까? 국회미래연구원에서 연구지원 업무를 맡았던 이종혁·김자연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21대 우리 국회를 기준으로 같은 기간 미국 의회는 709건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독일은 473건, 일본은 377건, 프랑스는 243건, 영국은 139건의 법안을 법률로 성립시켰다.

 

우리 국회는 어떨까? 9063건이었다. 다섯 나라의 입법 실적을 다 합해도 1941건인데, 이의 4.7배나 된다. 입법 실적으로 보면 우리 국회는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입법부다.

 

▲8월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7회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간호법이 재적 300인, 재석 290인 중 찬성 283인, 반대 2인, 기권 5인으로 통과되고 있다. 뉴스1

너무 많이 법 만드는 우리 국회

모두가 법으로 싸우고 적대해

시민들도 법에 호소하고 의존

자율적 규범과 문화 가꿔 가야

 

나라마다 의원 수가 다르므로 의원 1인당으로 환산하면 우리 국회의원들은 의회중심제 국가인 영국, 일본, 독일 의회보다 각각 152배, 61배, 51배나 더 많은 법안을 법률에 반영시키고 있다. 같은 대통령제 국가인 미국보다 23배, 프랑스보다는 76배나 입법 성과가 좋다. 입법 실적을 백만분율(인구 100만 명당 입법 빈도)로 계산해보면, 한국은 176.0으로 독일의 5.7, 프랑스의 3.7, 일본의 3.1, 미국의 2.1, 영국의 2.0 보다 월등히 높다. 이들 나라 평균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53배나 더 많은 입법을 경험하고 있다는 뜻이다.

 

혹자는 법안의 과잉발의를 부추기는 ‘대안반영폐기’ 제도를 예로 들면서 우리 국회의 입법 성과가 과장되었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대안반영폐기’된 법안이란 “위원회의 법률안 심사결과 그 법률안의 내용을 일부 또는 전부 반영한 ‘위원회 대안’을 제안하는 대신, 본회의에 부의하지 않기로 한 법률안”을 뜻한다.

 

예컨대 같은 이름의 법안이 여러 건 발의된 경우 각각의 법안을 병합 심사해 1건의 ‘위원회 대안’으로 만들어 본회의에 제안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이는 위원회가 심사 기능을 발휘하는 정상적인 과정이자, 입법 효율성을 위해서도 꼭 있어야 할 절차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8월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된 뒤 발언을 하고 있다. 해당 법안은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 9건을 반영한 대안으로, 8월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최종 통과되었다. 뉴시스

 

문제는 그 ‘위원회 대안’이 본회의에서 가결되면 ‘대안반영폐기’된 법안도 ‘법률반영’ 실적으로 기록되는데, 바로 이 지점에서 파생되는 부작용이 있다. 가장 큰 부작용은 ‘대안반영폐기’ 제도를 악용해 같은 이름의 법안을 남발하는 입법 기술자가 양산되는 데 있다.

 

전체 ‘법률반영’에서 ‘대안반영’ 법안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21대 국회에서 법률에 반영된 전체 법안 9063건 가운데 5883건(64.9%)이 ‘대안반영’이었다. ‘대안반영’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낮았던 때는 14대 국회였다. 그때 9.9%였던 것이 21.3%(15대), 40.2%(16대), 49.2%(17대), 61.9%(18대), 62.4%(19대), 63.2%(20대), 64.9%(21대)로 늘었다. ‘원안 가결’과 ‘수정 가결’이 주를 이루던 우리 국회의 입법환경이 급변한 것이다.

 

말 많은 이 ‘대안반영폐기’ 법안을 제외하고 보면 어떨까? 그러면 우리 국회의 본회의 통과 법안 수는 다른 나라와 비슷해질까? 그것도 아니다. 원안 가결과 수정 가결된 법안만 따로 떼서 봐도 우리 국회의 법안 성과는 여전히 놀랍다. 21대 국회를 기준으로 보면 2959건이다. ‘대안반영폐기’가 된 법안을 빼고도 같은 기간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에서 가결된 법안을 합친 것(1941건)보다 많다.

 

어제도 오늘도 우리 국회는 법을 바꾸려는 열정으로 뜨겁다. 22대 국회 100일 만에 이미 3974건의 개정 법안을 발의했을 정도다.

 

법에 호소하는 시민들의 규모도 놀랍다.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으로 법원에 접수된 사건 수는 616만7000여 건에 이른다. 우리보다 인구가 2.4배 많은 일본의 337만5000여 건의 거의 두 배다. ‘대검찰청 형사사건 동향’에 따르면 2023년의 고소·고발 사건 수는 33만1000여 건으로, 인구 대비로 보면 일본의 50배에 달한다.

 

의원들은 법을 열심히 만들고 시민들은 열심히 법에 호소한다. 법률가들도 열심히 일한다. 2023년 법관 1인당 본안사건 처리 건수는 일본의 2배, 독일의 4배로 보고되고 있다. 모두가 법으로 일하고 법에 의존하는 데 우리 서로 간의 갈등과 적대는 줄어들 줄 모른다. 국회도 사법부도 시민도 모두 법으로 싸우고 법으로 맞서는 형국이다.

 

플라톤은 자신의 책 『국가』에서 법을 바꿔 일하는 것은 히드라 머리를 자르는 것처럼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음을 경고한 바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정치학』에서 법을 쉽게 바꾸면 법의 힘은 약해진다고 비판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법을 바꿔 일하고 법으로 싸우게 되었는지, 과연 법은 마땅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지, 이제는 돌아볼 때다.

 

국회는 꼭 필요한 법을 좀 더 신중하게 만들고, 시민은 법이 아니고도 갈등을 풀어갈 수 있는 규범과 문화를 가꿔갈 수 있어야 좋은 사회다. 정치의 갈등 조정 기능은 줄고 법만 양산되는 민주주의, 정치가가 아닌 법률가들이 지배하는 민주주의는 우리가 바라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중앙일보 박상훈 정치학자

 

09.19 정부와 가계의 쌍끌이 부채폭탄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속담을 증명하려는 듯 정부와 가계가 쌍끌이로 빚을 내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가채무와 가계 빚을 합산한 액수가 처음으로 3000조원을 넘었다. 올해 2분기 말 3042조1000억원이었다. 지난해 2401조원을 기록한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127%에 달하는 규모다.

 

빚 무서운 줄 모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국가 차원에서는 만성적 적자에 시달리게 된다. 2010년대 초반 남유럽 국가들이 그랬다. 북유럽만큼 능력도 안 되면서 국민을 위한 복지라는 이름으로 선심성 재정을 펑펑 뿌린 탓에 심각한 재정 위기에 몰렸다. 정치인들은 온갖 명목의 복지제도를 도입했고 나라 곳간이 바닥날 때까지 제동이 걸리지 않았다.

선심성 복지로 나랏빚 급속 증가

개인은 과도한 대출로 부채 많아

국가나 개인이나 빚 두려워 해야

 

그리스에선 재정 파탄으로 경제위기가 몰아닥쳤다. 전 국민의 임금이 하락하고 연금 삭감에 이어 의료보험 중단이 뒤따랐다. 결국 음식물을 찾아 쓰레기통을 뒤지는 처량한 모습이 전 세계로 공개됐다. 그리스 사태는 ‘공짜 점심 없다’는 경제 상식을 확인시켰다. 나랏빚으로 펑펑 퍼주는 경제 체제는 사상누각이 될 수밖에 없다는 불변의 법칙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보면 윤석열 정부가 3년 연속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전임 문재인 정부에서 국가채무를 불과 5년 만에 400조원 넘게 늘려놓는 바람에 긴축재정은 고육지책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스처럼 관광자원이 있는 것도, 베네수엘라처럼 석유가 펑펑 나는 것도 아닌 한국으로선 건전한 재정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물론 지금은 한국 경제가 장기 저성장 국면에 있는 만큼 재정을 풀어 경기를 부양할 때라는 의견도 일리가 있다. 재정이 경제 활성화의 마중물이 되어야 한다는 주문이다. 하지만 전 국민 25만원 지원금 같은 현금 살포성 정책으로는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지 못한다. 굳이 이 정책을 쓴다면 김동연 경기도지사와 김부겸 전 국무총리의 방안대로 선별지원이 합당하다.

 

더 크게 보면 정치인들은 이 같은 대중영합적 정책을 뛰어넘어야 한다. 숨 막히는 규제를 피해 해외로 공장을 옮긴 기업들이 유턴할 수 있도록 투자 환경을 개선하면 25만원을 뿌리지 않아도 일자리가 생기고 경제에 활력이 돌기 마련이다. 하지만 국회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한국 경제의 기둥인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는 법안조차 정쟁에 밀려 진척이 없다.

 

개인 부채 문제도 심각하다. 올 2분기 가계신용(가계 빚)은 1900조원을 바라보는 1896조2000억원에 달한다. 미국에서 금리 인하가 본격화하게 되자 한국에서도 금리 인하가 예상되면서 올 초부터 가계부채가 거듭 불어나기 시작했다. 20대 신혼부부가 지난 6월 서울 양천구 신정동에서 14억5000만원에 아파트를 매수하면서 양가 부모로부터 3억원을 증여받고 그동안 모은 2억여원에 주택담보대출 10억원을 받았다고 한다. 영끌을 넘어 초영끌이다. 올 상반기 대출을 낀 주택 구매자의 6%가 10억원 넘게 빌렸다는 통계도 나왔다.

 

풍요로운 삶과 경제적 이득을 위해 대출로 집을 사는 건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개인의 합리적인 선택이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 일본에서 거품경제가 절정에 달했던 1989년 무렵 집값은 하룻밤 자고 나면 올랐다. 은행에 가면 앞으로 집값 상승분까지 고려해 대출을 해줬다. 그런 묻지마 투자의 광풍 끝에는 ‘잃어버린 30년’이 기다리고 있었다. 끝없는 경기침체가 이어졌고 깡통주택이 속출했다.

 

한국은 어떻게 될까. 정치권이 기업을 살리는 법안을 만드는 것과는 거리가 먼 현실로 볼 때 추세적 저성장에 접어든 한국 경제가 다시 활력을 되찾는 건 어려워 보인다.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저출생·고령화 속도로 봐도 그렇다. 인구가 줄어드는 판에 부동산 투자로 기대 수익을 올릴 수 있을까. 건설업계에선 1인 가구 증가가 정점을 찍고 하락하는 2040년부터는 주택가격 하락세가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부동산 불패의 끝자락이 멀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과잉 대출은 자칫 부채 폭탄을 스스로 떠안는 선택일 수 있다.

 

빚 무서운 줄 모르는 분위기를 만든 정책당국의 실책은 크다.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5.5%까지 기준금리를 올릴 때 한국은행은 3.5%에서 멈춰섰다. 그 탓에 한은은 지금 금리를 내리기도 애매해졌다. 정부는 대출규제를 너무 풀었다. 다가오는 금리 인하 상황을 고려하지 못했다면 정책 실패가 아닐 수 없다. 뒤늦게 대출을 조이고 있지만 초영끌 바람이 잡힐 수 있을까.

 

중앙일보 김동호 경제에디터

 

09.20 대통령 부인 스토킹하는 유튜버, 다 놓친 경호처

▲서울의 소리가 유튜브에 공개한 김건희 여사의 관저 주변 반려견 산책 장면. 서울의 소리는 이 동영상을 차량 블랙박스로 촬영했다고 주장했다. /유튜브

 

한 유튜브 채널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지난 15일 새벽 1시쯤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주변을 반려견과 산책하는 동영상을 공개했다. 이 유튜버는 지난 대선 전인 2021년 7∼12월 48차례에 걸쳐 약 7시간 50분 동안 김 여사와 통화한 내용을 녹음했고 이를 MBC에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은 김 여사가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유튜버에게 1000만원 배상 판결을 내렸다. 이 유튜버는 그 후에도 최재영씨와 함께 김 여사 명품백 몰래카메라를 합작했다. 이런 사람이 또 새벽에 김 여사의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악의적 스토킹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 유튜버는 김 여사가 방문했던 관저 부근 편의점 직원에게 접근해 김 여사가 이 편의점에 가끔 오고 이날도 음료수와 과자를 구입했다는 발언을 몰래카메라로 녹음해 공개했다. 유튜브 채널은 “추석 민심이 최악인데 새벽에 개를 산책시켰다” “외출을 삼갔던 역대 영부인과는 다른 모습”이라고 했다. 그러나 역대 대통령 부인들도 경호 인력들과 함께 청와대 주변을 산책하곤 했다. 순전히 김 여사를 공격하기 위해 억지 논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런 인물이 심야에 다시 자신의 차량을 몰고 김 여사 주변에 접근해 블랙박스로 김 여사와 대통령실, 경호처 직원들을 몰래 촬영할 수 있었다는 것도 보통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 경호처는 문재인 정부 때 국보법 위반 혐의로 조사까지 받았던 최재영씨가 대통령 부인을 수차례 만나고 명품 가방을 전달하고 이를 몰카로 촬영하는 것도 방치했다. 경호의 기본이 지켜지지 않았다. 관저 주변에서 누군가 김 여사 동향을 묻고 다니는데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경호처 역량 자체가 이 정도 수준밖에 안 되는지, 아니면 다른 공개 못 할 이유가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조선일보 사설

 

09.20 최저임금위, 정작 당사자는 발언권이 없다

근로자·사용자·공익 대표 등 9인으로 구성되지만
편의점주와 알바 등 정작 당사자 대표는 없어
전국 동일 최저임금도 문제
지역에선 적게 받더라도 일자리 원하는 사람 많아
최저임금 결정 구조, 이젠 바꿔야

▲최저임금위원회 류기정 사용자 위원(왼쪽)과 류기섭 근로자 위원이 지난 7월 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9차 전원회의서 서로 다른곳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 /뉴시스

 

내년도 최저임금이 불과 1.7%, 시급 170원 인상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23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3.6%에도 미치지 못하는 인상률을 놓고 논란이 많은 것은 과거에 있었던 일들 때문이다.

 

전 정부는 2018년부터 22년까지 최저임금을 16.4, 10.9, 2.9, 1.5, 5.1%를 인상, 42%를 올렸다. 연평균 7.2%인데 2000~2017년 평균 8.6%보다 낮다. 첫 2년에 과속을 한 것이 자영업자의 소득 감소와 폐업, 고용 감소로 이어져 기대했던 내수 진작, 투자 활성화, 고용 증대로 연결되지 못했고 소득 주도 성장은 실패로 끝났다. 셋째, 넷째 해의 인상률 2.9, 1.5%는 이 실패에 대한 자백이라고 보면 된다.

 

더 큰 문제는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때부터 법제화되어 있었지만 유명무실했던 주휴수당을 시행령 개정으로 19년 1월부터 실제 적용에 나선 것이다. 일주일에 하루 유급 휴일을, 그러니까 닷새마다 하루 치 임금을 더 주라는 것이니 20% 임금 인상 효과가 있다. 최저임금은 19년에 33.1%, 2018~2019년 2년 동안 54.9% 인상된 셈이고 그 결과 2019년에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임금노동자가 339만명에 이르렀다.

 

이 주휴수당은 일주일에 15시간 이상 일을 할 때만 주면 되니까 사용자들이 일주일에 15시간 미만으로 사람을 쓰는 “쪼개기 고용”이 성행하게 되었고 주 15시간 미만 일하는 임금근로자가 2014년 86만에서 2022년 180만명으로 급증하게 되었다. 이제 주휴수당을 강행한 지도 6년이 지났고 지금까지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받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고 현재 받고 있는 임금을 한 푼이라도 줄여서는 안 된다는 조건 하에 주휴수당을 폐지해 버리면 이 가게 저 가게 옮겨 다니느라고 시간을 허비하면서 초과근무수당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최저임금위원회의 구성도 고쳐야 한다. 근로자, 사용자, 공익 대표 9인으로 구성된 이 위원회는 사실은 최저임금을 주고받고 있는 사람들과는 하등 관계가 없다. 근로자 대표는 연봉 1억원 안팎의 고임금을 받는 사람들로 구성된 한노총, 민노총이, 사용자 대표는 경총을 비롯한 경제 단체에서 맡고 있는데 이들이 최저 수준의 임금을 주고받는 사람들의 입장을 절감하기는 어렵다. 특히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있는 300만명의 처지를 대변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문제다. 근로자, 사용자 대표를 최저임금밖에 주지 못하고 있는 사용자들과 최저임금밖에 받지 못하고 있는 노동자들 중에서 뽑자. 위원회 활동을 하는 동안에는 법원의 배심원 정도의 보수를 주면 희망자가 있을 것이고 고용부에서는 오리엔테이션과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남의 임금을 결정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위원 수도 3~5명으로 줄여서 실질적이 토론과 설득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전국에 하나의 최저임금만 있는 것도 고쳐야 한다. 서울과 강원도는 임금도 생계비도 수준도 다르다. 자동차 산업과 섬유산업의 임금 지불 능력이 분명히 다르다. 활력이 떨어지는 65세 이상의 노인이나 경험 없는 10대 젊은이들이 받을 수 있는 임금은 분명히 다르다. 우리 모두가 다 안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 들어오는 외국인 근로자가 기대하는 임금 수준도 분명히 다르다. 그런데 왜 모두에게 획일적인 최저임금을 적용해야 하는가?

 

현행법상으로 업종별 차등화만 가능하게 되어 있는데 지역별 차등화부터 먼저 도입해야 옳다. 연령별, 업종별 차등화도 각 지역의 최저임금위원회에 맡기면 된다. 업종별 차등화는 사용자가 그 이상은 주기 어렵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반해 연령별, 지역별 차등화는 근로자 측의 “그렇게 많이 받지 않아도 좋으니 일자리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배경에 깔고 있다. 실제로 아일랜드는 최저임금을 깎아 가면서 외국인 투자를 유치해 일자리를 늘린 결과 일인당 GDP가 세계 1, 2위를 다투는 나라를 만들었다.

 

지역별로 최저임금을 결정하게 해도 선거로 뽑히는 지자체장이 다른 지역보다 낮은 최저임금을 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므로 전국 단위에서는 정말 최저 수준의 최저임금을 정해서 지자체 장이 우선 좀 적게 올려서 투자 유치를 하는 것이 길게 보면 임금이 더 오르게 하는 길이라는 설득을 할 여지를 열어 주어야 한다.

 

작은 문제라도 모으면 크게 되고 풀기 어렵게 된다. 문제를 쪼개서 다양한 결정이 가능하게 하면 어떤 결정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는지 비교해 볼 수 있게 된다. 전국 단위로 하나의 결정을 하지 않으면 안될 확실한 이유가 없으면 가급적 다양한 결정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조선일보 박병원 한국비영리조직평가원 이사장·한국고간찰연구회 이사장

 

09-20 文 ‘통일담론 재검토’에, 대통령실 “말로만 평화왔다고 전세계에 로비”

▲문재인 전 대통령이 19일 오후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9·19평양공동선언 6주년 광주 평화회의 ‘평화, 가야 할 그날’ 행사에 참여해 인사말하고 있다. 뉴시스

 

임종석 ‘두 국가 현실 수용’에는 “반헌법적 발상”

대통령실은 19일(현지시간) 문재인 전 대통령이 ‘평화 담론과 통일 담론의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한 데 대해 “(문재인 정부가) 말로만 ‘전쟁이 끝났다. 평화가 왔다’라고 미국과 전 세계에 로비한 것 아니냐”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의 체코 공식 방문을 수행한 고위 관계자는 현지 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나 “평화를 어떻게 구축할 것이냐의 문제인 것 같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관계자는 “지난 정부를 돌이켜 보면 종전 선언을 줄기차게 주장했던 것 같다”며 “그러나 실제로 북한의 힘에 대해 어떤 물리적 대응을 마련하느냐의 준비는 허술해 보였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또 “사드(THH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도 제대로 구비하지 않고, 불법적으로 사드 기지 앞을 가로막은 시민단체를 몇 년간 방치했다”며 “또 한미 확장억제에는 대체로 무관심한 5년을 보냈는데 그런 방식으로 북한과 대화만 하며 평화를 지키겠다는 평화론이라면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임종석 전 2018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이 19일 오후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9·19평양공동선언 6주년 광주 평화회의 ‘평화, 가야 할 그날’ 행사에 참여해 기념사하고 있다. 뉴시스

 

이어 이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의 초대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임종석 전 실장이 ‘두 개의 국가’ 현실을 수용하자는 취지의 발언에 대해서도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통일을 추진하는 것은 대한민국 헌법의 명령이자 의무인데 이러한 의지가 없다면 반헌법적 발상이다”라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도 통일을 포기해야 한다’고 하는데 과연 북한이 통일을 포기했느냐”며 “북한이 지금 통일론을 접고 두 개의 국가를 주장하는 이유는 내부적으로 어려움이 크고, 자기가 생각하는 통일에 대해 자신감이 줄어서이지 통일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유리할 때는 통일을 강조하고, 불리할 때는 진지전으로 돌아서며 비교적 조용하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핵미사일을 통해 필요하면 무력을 통해 남한을 접수하겠다고 헌법에 적어 놓은 북한이 흡수통일을 주장하는 것이지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앞서 문 전 대통령과 임 전 실장은 이날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2024 한반도 평화 공동사업 추진위원회’가 연 9·19 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각각 기존 통일론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
문화일보 곽선미 기자

 

09.20 '통일 운동' 한다던 임종석, 北이 통일 거부하자 "통일 반대"

지난 1989년 12월 임종석 당시 전대협의장이 임수경씨를 북에 보낸 혐의로 경희대에서 검거돼 구속 수감되는 모습(사진 왼쪽), 지난 1989년 8월 20일 밀입북 후 돌아와 경찰에 구속돼 연행되고 있는 임수경씨의 모습. /조선일보 DB

 

문재인 청와대의 임종석 전 비서실장이 19일 ‘9·19 평양선언’ 6주년 기념사에서 “통일, 하지 말자”고 했다. 그는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3조의 영토 조항도 “지우든지 개정하자”고 했다. “통일이 무조건 좋다는 보장도 없다”고 했다. “통일 논의를 완전히 봉인하자”고까지 했다.

 

임 전 실장은 1989년 전대협 의장 시절 임수경씨 방북을 주도했다. ‘통일 운동’이라고 했다. 주사파가 장악한 전대협은 ‘자주적 평화 통일’을 목표로 내건 단체다. 2019년 비서실장을 그만둔 뒤엔 “다시 통일 운동에 매진하고 싶다”고 했다. 2020년 북한 TV 저작권료를 남한에서 걷어 북에 송금하는 경문협 이사장을 맡았는데 경문협은 ‘한반도 통일 기여’가 설립 목적이다. 평생 ‘통일’을 주장하던 사람이 갑자기 ‘통일하지 말자’고 입장을 180도 뒤집은 것이다.

 

임 전 실장의 입장 변화는 김정은이 통일 거부 선언을 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작년 말 김정은은 “북남 관계는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라며 통일을 위한 조직과 제도를 모두 없앴다. 평양 입구에 있던 통일탑도 부수고 북한 국가에 있는 통일 표현도 없앴다. 심지어 평양 지하철 ‘통일역’ 이름을 그냥 ‘역’으로 바꿨다.

그러자 한국 내 친북 단체들이 장단을 맞추기 시작했다. 이적 단체인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는 올 초 스스로 해산하며 ‘통일’을 뺀 한국자주화운동연합(가칭)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동안 이 단체는 김일성이 직접 지어줬다며 ‘조국통일’ 명칭을 고수했지만 김정은 한마디에 간판을 내린 것이다. 다른 국내 친북·종북 단체들도 ‘통일 지우기’에 나섰다. 임 전 실장의 급변 이유도 이들과 같은 맥락일 것으로 본다.

 

김정은이 통일 거부 선언을 한 것은 한국과의 국력 차이가 너무나 벌어지고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한국에 대한 동경이 커지자 이를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평양을 제외한 북한의 주민 생활은 100년 전 일제 강점기보다 못하다는 것이 탈북민들의 증언이다. 이 상황은 김정은의 정당성 없는 권력에 위기가 됐다. 김정은은 결국 주민들이 통일에 대한 기대를 갖지 못하도록 원천적으로 싹을 자르는 방법을 택했다. 통일을 지우는 한편으로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식 말투를 썼다고 청소년들에게 수갑을 채워 징역 10년형을 내리는 만행을 병행하고 있다. ‘척추를 꺾어 죽인다’고 위협한다. 모두 김씨 왕조 수호가 근본 목적이다.

 

한국 내 친북 단체들이 김정은의 반통일 선언을 추종하는 것은 결국 김씨 왕조 수호를 돕는 것이고, 북 주민들의 참상을 외면하는 것이다. 이들은 나중에 김정은이 상황이 좋아졌다고 판단하고 ‘통일하자’도 나오면 바로 ‘통일’ 깃발을 들고 나올 것이다. 다선 국회의원에 이어 대통령 비서실장이라는 중책을 지낸 사람까지 자신의 평생 주장을 뒤엎고 김정은의 통일 거부 선언에 동조하는 것을 보면서 혀를 차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일보 사설

 

09-20 김정은 ‘두 국가’ 복창 임종석과 정치권 종북세력 실상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19일 9·19 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객관적 현실을 받아들이고 두 개의 국가를 수용하자”면서 헌법 제3조(영토 조항) 개정과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을 폈다. 그는, 북한 김정은이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라고 선언한 것과 관련해 “기존의 대남 노선에 대한 근본적 변화이고, 연방제 통일론 폐기라고 생각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북한 변화에 맞추자는 논리라는 점에서 김정은 주장 복창과 다름없다.

문재인 정부 당시 청와대의 운동권 출신 비서진의 좌장 격인 임 전 실장이 김정은의 두 국가론을 수용하면서 반(反)통일론자로 돌아선 것은 충격적이다. 통일운동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1980년대 통일선봉대 운동을 폈던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 출신으로서, 2019년 정계 은퇴 이유도 통일운동 매진이었다. 그런 인물이 느닷없이 반통일론자로 돌아선 것은 해방 직후 하루아침에 신탁통치 반대에서 찬탁으로 돌아선 공산당 진영의 소련 추종 행태를 연상시킨다. 김정은이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며 조국통일 원칙을 폐기한 뒤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는 조직 해산 결정 후 통일운동을 접고 국보법 철폐 등을 내세우고 있다. 임 전 실장 연설은 정치권도 이런 흐름에 적극 편승해야 한다는 선언이다.

그러잖아도 올해 초부터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이 폐지되면서 대한민국은 간첩 천국이 됐다는 개탄이 나온다. 문 정부 당시 일심회 사건은 수사 중 중단됐다. 이젠 경찰만이 대공수사권을 갖게 됐는데, 지난해까지 국정원이 간첩단 수사에서 북한연계 혐의자 100여 명을 포착했지만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번 국회에는 더불어민주당을 숙주 삼아, 해산된 통합진보당의 후예 3명이 국회에 진출했다. 이젠 문 정부 핵심 인사가 나서 국보법 폐지론까지 편다. 종북세력에 대한 경각심을 높일 때다.

문화일보 사설

 

09.21 DJ·盧·文정부 대북정책 실세 3인방, 일제히 '北의 2국가론' 동조

통일 외치던 진보 인사들의 '돌변'

▲임종석 전 2018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이 지난 19일 오후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9·19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 전남 평화회의 '평화, 가야 할 그날' 행사에 참여해 기념사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정부의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통일하지 말자. 두 개의 국가를 수용하자”는 주장을 하자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그를 지지하고 나섰다. 노무현 정부의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지난 5월 “통일은 비관적이다. 통일은 후대로 넘기자”고 주장한 것도 재조명되면서 진보 진영 일각에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2국가론’을 수용, 새로운 담론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임 전 실장은 19일 ‘9·19 평양 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통일을 꼭 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내려놓자”며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를 대한민국 영토로 규정한 헌법 3조 개정과 국가보안법 폐지, 통일부 정리 등을 제안해 논란을 일으켰다. 정세현 전 장관은 20일 같은 회의에서 “박정희 정권부터 통일부에서 일했는데 남북 관계 변천사를 회고해 볼 때 지금 시점에서 통일은 불가능하게 됐다”며 “임 전 실장의 얘기가 옳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남북이 1991년 유엔에 가입했으니 사실은 그때부터 두 개의 국가”라며 “임 전 실장 얘기가 시기적으로 빠른 감은 있지만 결국 남북 관계는 그 길(2 국가)로 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그 이유로 “우리 국민의 통일 의지가 약화된 정도가 아니라 사라졌다. 젊은 사람들은 통일에 관심 없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 부원장 출신의 이연희 의원도 20일 TV조선 인터뷰에서 “윤석열 정부에서 남북 관계가 너무 후퇴했고 지정학적 정세가 많이 바뀌었다”며 임 전 실장의 ‘2국가’ 발언을 지지했다.

 

이에 앞서 노무현 정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종석 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지난 5월 한 회의에서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는 잠정적인 특수 관계라고 했지만, (남북한에서) 두 개의 국가를 향한 원심화 경향을 막기 어렵다”며 “현재의 상황은 두 개의 정상적인 국가로 있을 때만 못하다”고 했다. 그는 “지난 남북 관계는 복싱 선수가 클린치 상태에서 뒤통수 쳐서 힘을 약화시키는 것이었기에 이제는 정상적인 두 개의 국가가 됐다가 통일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통일은 후대로 넘기자”며 ‘2국가론’을 지지했다. 그는 “나는 (단기간 내) 통일에 대해서 비관적”이라며 “내가 살아 있는 한 통일이 안 된다고 단정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픽=백형선

 

김정은은 지난해 12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남북 관계를 “더 이상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라고 선언했다. 이후 김일성·김정일 때부터 이어온 ‘조국 통일 원칙’을 전면 폐기하며 호전성을 증대시키는 상황에서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권에서 대북 정책의 사령탑 역할을 했던 이들이 김정은의 2국가론에 동조하고 나선 것이다. 올해 들어 친북 단체인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 본부가 통일을 삭제한 한국자주화운동연합을 만들겠다고 했는데, 역대 진보 정부의 대북 실세들이 2국가론을 공개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에 대해 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은 “역대 진보 정권의 핵심 인사들이 김정은이 제기한 2국가 체제를 받아들이자고 하는 것은 반(反)헌법 행위이자 대한민국을 전복시키려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헌법 제3조(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와 제4조(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 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에 규정된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것이다. 남주홍 자유총연맹 고문은 “김정은이 하루아침에 통일을 삭제해 버리자 역대 진보 정권의 핵심 인사들이 평화를 명분으로 북한의 현상 유지 정책을 지지하는 매국 행위를 하고 있다”며 “시종일관 견지해 온 ‘우리 민족 끼리’ 정신에 따른 동조 현상으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해서는 안 될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김정은의 2국가론에 대한 입장 차이로 진보 진영이 분열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9·19 평양 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정동영 의원(노무현 정부 통일부 장관)은 20일 “임종석 전 실장이 어제 기념사에서 사고를 친 것 같다”며 “(임 전 실장의 발언은) 헌법 3조, 4조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정 의원은 “결정적인 것은 (2개의 국가가 되면) 북한 권력 내부에 이상 징후가 발생했을 때 중·러의 간섭을 어떻게 배제할 수 있겠나”라고 지적했다. 그는 “남북은 두 개의 국가이기 전에 통일을 지향하는 관계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된 특수 관계로 평화 통일을 추진해 왔는데 이것을 변경할 어떤 사유도 없다”고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박지원 의원은 임 전 실장의 주장에 대해 “학자는 주장할 수 있지만 현역 정치인의 발언으로는 성급하다”고 했다. 김대중 정부의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도 지난 5월 한 회의에서 김정은의 2국가론에 대해 “북한이 이랬다저랬다 한다고 우리가 동조해 입장을 바꾸는 건 마땅치 않다. 우리는 우리가 지향하는 국가 목표에 충실해야 한다”며 수용 반대 입장을 밝혔다.

조선일보 이하원 외교담당 에디터 김경화 기자

 

09.21 지역 규제에 발 묶인 국민의 노후자금

본격적인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퀴즈를 하나 풀어보자. 분명히 우리나라 공공기관인데 서울에는 사무소가 없고 뉴욕·런던·싱가포르·샌프란시스코에는 있는 게 있다. 그게 뭘까. 규모가 작거나 중요성이 없어서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곳은 전혀 아니다. 이 기관에서 굴리는 돈은 이미 1100조원이 넘는다. 앞으로 16년 뒤에는 1700조원 이상으로 불어날 전망이다.

 

힌트는 국민의 소중한 노후자금을 모아서 운용하는 공공기관이란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머릿속에 번뜩 떠오르는 게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경제·금융이나 사회복지에 대한 상식이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정답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다. 본부는 전북 전주에 있고 해외 네 곳에 현지 사무소를 뒀지만, 서울에는 별도 사무소가 없다. 일반 행정 사무를 처리하는 연금공단 지사와는 혼동하면 안 된다.

 

▲2020 9월 전북 전주시 만성동 전주·완주혁신도시에 있는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청사. 김준희 기자

 

국민연금 해외 진출은 활발한데

서울사무소 설치는 감감무소식

‘투자의 현지화’로 수익률 높여야

 

기금운용본부의 수익률 성적표는 전 국민의 노후자금에 영향을 준다. 국민연금 기금의 잔액은 지난 6월 말 기준 1147조원이다. 기금 수익률이 1%포인트만 오르거나 내려도 11조원 넘는 돈이 왔다 갔다 한다. 만일 수익률을 꾸준히 높게 유지한다면 연금 고갈의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다. 반면에 수익률이 저조하다면 연금 고갈 시기도 빨라진다. 가만히 앉아서 하늘만 쳐다본다고 좋은 수익률이 나올 리는 없다. 국내외 금융시장의 최신 정보를 최대한 빨리 수집하고 투자 전략에 정교하게 반영하는 게 중요하다. 해외 사무소를 설립한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그런 점에서 여태 서울사무소가 없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지난해 하반기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스마트워크센터(원격근무용 공동 사무실)를 마련하긴 했다. 하지만 출장자 등을 위한 임시 공간인 데다 좌석도 30석밖에 안 된다. 아예 없는 것보단 낫겠지만 한참 부족하다.

 

▲국민연금 기금은 올해 상반기에 수익률은 9.71%로 102조원을 벌었다. 국민연금 운용이 좋은 성과를 거둔 것은 해외 증시 상승세와 동시에 환율 상승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사진은 지난 5일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뉴시스

 

국민연금 기금은 올해 상반기에 102조원을 벌었다. 수익률은 9.71%였다. 가장 성적이 좋았던 투자 자산은 해외 주식이었다. 상반기에만 20.47%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해외 주가가 상승한 요인도 있었지만, 환율 상승(원화가치 하락) 효과도 컸다. 국민연금 수익률은 원화로 계산하기 때문에 환율이 오르면 환차익, 환율이 내리면 환차손이 발생한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6월 달러당 1390원대까지 상승했다가 최근에는 달러당 1320원대로 하락했다. 올해 하반기 국민연금 종합 성적표는 두고 봐야겠지만 적어도 환율은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마음 같아선 최대한 고수익을 내면 좋겠지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변동성이 심한 자산에 투자할수록 고수익을 기대할 수도 있지만 투자 위험도 커진다. 고수익과 고위험은 동전의 양면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고위험이 싫어서 저위험을 선택한다면 저수익을 감수해야 한다. 이렇게 안전 자산과 위험 자산의 배분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 말은 쉽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느냐는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기금운용본부의 전문성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엔 두 가지 필수 조건이 있다.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고, 이들이 금융시장과 활발하게 교류(네트워킹)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지역적으로 한계가 뚜렷하다. 원래 서울에 있던 기금운용본부는 2017년 전주로 이전했다. 이때를 전후로 다수의 인력이 사직서를 냈다. 서울의 금융권에서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데 왜 지방으로 가야 하느냐는 게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지난해 9월 1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 공청회의 모습. 공청회는 기금운용 수익률 제고를 위해 기금운용본부 우수인력 확보와 해외·대체투자 확대를 위한 운용조직 강화방안 등이 필요하며, 서울에는 국내 대체투자 인력 중심의 실질적인 프론티어 조직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연합뉴스

 

“성공적인 자산 운용의 핵심은 결국 사람”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지난해 9월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가 주최한 전문가 공청회에서 나온 말이다. 당시 전문가 보고서에선 “대체투자 부문의 운용인력 유출이 규모나 내용 면에서 심각한 현안”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서울사무소 설치를 제안했다. “본사(기금운용본부)의 서울 이전 차원이 아니라 투자의 현지화라는 관점”이라며 “해외 사무소 확대의 필요성과 같은 논리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지난 4일 보건복지부의 연금개혁안 발표에서 서울사무소 관련 내용은 빠졌다. 기금 수익률이 중요하다면서도 지역 정치권의 이해관계까지는 극복하지 못한 모습이다. 다른 공공기관은 몰라도 글로벌 시장에서 해외 ‘큰손’들과 경쟁하는 기금운용본부까지 꼭 지방으로 옮겼어야 했는지 의문이다. 지역 균형발전도 좋지만, 국가 전체적인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본사 이전도 아니고 서울사무소 설치조차 못하게 막는다는 건 글로벌 경쟁력을 스스로 깎아먹는 일이다.

 

중앙일보 주정완 논설위원

 

09.23 신문은 정권을 편든 적 없다

저널리즘의 원칙은 불편부당… 자유·민주 가치 공유 때 긍정할 뿐
대통령이 국민·언론 야속해하면 그때부터 국정은 답이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체코 공식 방문 일정을 마치고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귀국, 공군 1호기에서 내려 환영 나온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 개혁은 차라리 계엄보다 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혁명은 저항 세력을 힘으로 제압하지만 개혁은 설득해서 안고 가야 한다. 의료 개혁, 연금 개혁 그리고 검찰 개혁, 군(軍) 개혁, 부동산 문제에 이르기까지 본질은 비슷하다. 개혁을 밀어붙이는 추진 주체가 스스로 걸림돌이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어쩌다 보니 이리 됐겠지만 대통령이 전공별 대입 정원까지 챙기는 자리는 아니다. 장관에게 결정을 위임하고 결과에 책임을 묻는 자리다. 대통령은 장관을 가르치는 자리도 아니다. 보고받고 질문하고 설득당하는 자리다. ‘VIP 격노’ 소문이 자주 들리면 ‘용산’이 개혁의 걸림돌이 됐다는 뜻이다.

 

대통령이 국민을 야속하다 여기는 순간 국정은 답이 없는 상태에 빠진다. “나는 정말 열심히 하는데 언론이 몰라준다.” 이렇게 불평하는 병에 걸리면 치유가 힘들다. 이 병을 앓은 대통령이 여럿이다.

 

신문사는 전관예우가 없다. 퇴사하면 끝이다. 선배가 정권에 재취업해도 후배는 정권에 우호적이지 않다. 신문은 숙명처럼 정권에 비판적이다. 독자에게 버림받지 않으려 애쓸 뿐이다. 덕분에 펜에 힘이 붙는다.

 

저널리즘은 얽매인 당파가 없는 불편부당(不偏不黨)을 지향한다. 어떤 대통령이 “조중동을 내 편이라 여겼는데 어느 날 배신당했다”고 생각한다면 참 난감하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상식, 공정, 헌법 정신, 이런 가치를 공유하면 긍정 평가했고, 벗어나면 비판했다. ‘좌냐 우냐’는 전혀 별개 문제다.

 

대통령이 아닌 자들의 강점은 배틀을 선택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대통령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만큼 바빠서 국지전에 치이면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바쁜 대통령’은 급가속 페달을 밟기 마련인데 그때 국민은 비명을 지르며 휘청거린다. 급가속은 필연적으로 급브레이크를 부른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용산 사람들’이 외부인과 밥 먹다가 ‘V 전화’라면서 휴대폰 들고 허둥댈 만큼 대통령이 지시 단계마다 뭔가 확인해야 한다면 시스템이 부실하거나 V가 조급하다는 증거다. 월권의 뒤탈이 생길 수 있고, 특검의 빌미도 싹튼다.

 

대통령은 국회에 책임지는 자리가 아니다. 대정부 질문을 받지 않는다. 대통령은 국민만 바라보면 된다. 국민 앞에 책임을 지려면 직을 걸든지 팔을 자르든지 해야 한다. 국민이 앉힌 자리인데 “못 해 먹겠다”며 내던질 순 없다. 그러나 내치 일부를 총리에게 일임하거나, 야당의 참정 범위를 넓혀주거나, 불소추 특권을 내려놓을 수 있다. 그게 직을 거는 방식이다.

 

팔을 자르는 일은 눈물 없이 할 수 없는 읍참마속의 프로세스를 거친다. 한국 정치에서 대통령의 팔은 가족을 뜻한다. 가족은 “얼굴은 있으나 입은 없는” 퍼스트 레이디가 정점이다. 대통령 부인에겐 ‘조용히 지내는 것’이 본인을 위한 ‘방패’다. 영부인이 스스로를 보호하려면 아무도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하게 해야 한다. 누구랑 문자하는지, 어디를 다니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 이 말은 22년 전 대선 판세를 뒤엎고 노무현 후보의 당선을 견인했다. 그러나 이 말이 나온 상황과 지금은 구별해야 한다. 지금은 사랑이 아닌 공정성 문제다. 개혁의 동력이 걸린 문제다.

 

대통령이 성심을 다하면 뭐든 할 수 있다 싶었겠지만 현실에선 아무것도 못하는 정치적 코마에 빠지곤 한다. 대통령의 가장 큰 할 일은 젊은이가 국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절망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게 공정이다. 나머지는, 적어도 대통령에겐 사소한 일이다. 지금 분란은 대통령에게서 비롯됐다. 모든 분란을 대통령 손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했기 때문이다. 이 역설을 이해 못 하면 답이 없다. 개혁에 가장 큰 걸림돌은 개혁의 주체일 때가 있다.

조선일보 김광일 기자

 

09-23 전기료 정상화, 개혁 차원 결단 급하다

문희수 논설위원

싼 전기료 덕 ‘요금 폭탄’ 피해
원가 이하 전력 공급 지속 못 해
한전 빚더미, 송전망조차 지체

금융시장 한전債 충격 악순환
AI용 대규모 전력 확보 초비상
절전 생활화와 전력망法 절실

유례없는 폭염이었지만, 그래도 ‘전기요금 폭탄’ 같은 소동 없이 지나가고 있다. 지난달 전기 사용량이 9% 증가해 주택용 전기요금은 가구당 평균 6만3610원으로 13%(7520원) 올랐다. 8월은 평균 최대 전력 수요가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던 이례적인 시기였다. 이만한 게 다행이다.

무엇보다 주택용 전기요금이 세계적으로 싼 덕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다섯째로 싸다. 그렇지만 한국전력은 23일 4분기 연료비 단가를 동결했다. 8월 전력 사용량은 일본·프랑스라면 요금이 한국의 2배를 넘고, 미국은 2.5배, 독일은 2.9배 많다는 게 한전의 분석이다.

낮은 전기료는 양면성이 있다. 가계에 도움이 되는 만큼 한전 부채는 눈덩이처럼 커진다. 정부가 2022년 이후 전기료를 여섯 차례 올려 한전은 작년 3분기부터는 연결 기준으로는 흑자다. 원유가 등 원가 인하 효과도 보고 있다. 그러나 누적 부채가 워낙 많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한전은 이를 위해 지난해 kWh당 51.6원의 인상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이제까지 인상액은 21.1원에 그친다. 문재인 전 정부가 원가가 가장 싼 원자력발전을 틀어막으면서 “전기료 인상은 없다”는 이율배반적인 허언을 밀어붙여, 전력을 원가 이하로 공급한 것이 결정적이다. 올 6월 말 기준 한전의 누적 부채는 203조 원에 달해 하루 이자만 123억 원이나 된다. 기획재정부는 부채를 올해 206조 원, 2028년 228조 원으로 전망한다.

빚더미의 여파는 심각하다. 한전은 송·배전망 구축에 올해부터 2028년까지 총 52조6000억 원을 투자해야 하지만, 부채에 발이 묶였다. 전력을 생산해도 수도권 등으로 보내지 못할 형편인 것이다.

금융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한전은 만기가 돌아오는 채권을 상환하기 위해 다시 대량의 채권을 발행해야 하는 악순환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올해 말까지 만기인 채권이 10조3000억 원이나 되니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한전 채권은 2022년 10월 레고랜드 사태와 맞물려 간판 기업의 자금줄까지 막을 정도로 금융 쇼크를 불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전 채권이 당시 총 29조 원에서 지금은 10조 원 수준으로 줄었지만, 연말마다 금융 비상이 걸리는 악순환을 방치해선 안 된다. 특히, 금융통화위원회가 내달 기준금리를 내려도 쏟아지는 한전 채권에 시장 금리가 올라가면 헛일이다.

전력은 인공지능(AI)시대의 핵심이다. 현재 한국의 하루 최대 전력공급 능력은 태양광까지 포함해도 104.3기가와트(GW)다. 지난달 최대 소비는 100GW를 웃도는 날이 빈번했다. 정부에 따르면 2028년 최대 전력 수요는 107GW이다. 불과 4년 뒤 2.7GW가 부족하다. 여기에 AI 확산으로 반도체·데이터센터 등의 전력 수요가 급팽창할 전망이다. 지난 5월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시안은 2038년 수요가 2023년보다 30.6GW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게다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서만 2050년까지 10GW의 신규 전력이 필요하다. 정부 계획대로 1.4GW짜리 원전 3기를 새로 건설해도 턱없이 부족하다. 전력 확보는 전 세계에 공통적인 과제다. 탈원전을 선도했던 이탈리아·오스트리아·스웨덴 등 유럽도 수십 년 만에 원전으로 속속 복귀하는 정도다.

전력 생산 확대뿐만 아니라, 송전·소비까지 전반적인 수급 체계 재정비가 시급하다. 새 시대를 따라가려면 정부·국회·지방자치단체·기업·가정 모두 과제가 수두룩하다. 당장 정부는 이미 수년 지체된 동해안∼신가평 초고압직류송전선, 호남∼수도권 간 서해안 해저사업 등을 서둘러야 한다. 하남시 등 일부 지자체의 변전소 증설 반대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해 차질을 해소해야 한다. 국회는 국가 기간전력망 확충 특별법부터 빨리 처리해야 한다. 기업은 물론 일반 가정도 절전의 생활화가 긴요하다. 이제처럼 펑펑 쓰다간 전력 부족 사태를 맞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일본 등의 반값도 안 되는 가정용 전기요금의 정상화는 필수다. 농업·제조업 등 산업용 전기료도 개혁해야 한다. 올 4분기는 선거와도 무관한 만큼 적기다. 정부가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찔끔 인상으로 미봉해선 안 된다. 개혁 차원의 결단이 필요하다. 진정성을 갖고 국민의 이해와 동의를 구해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

문화일보 

 

09-23 10년 공들인 체코 원전 ‘판 깨자’는 野 의원들 제정신일까

한수원 가격경쟁력-적기시공실적

막판 경쟁상대 프랑스 EDF 압도
野 의원들 밑도 끝도 없이 “韓 덤핑” 자해
마음속에 ‘국적’ ‘국익’ 있나

“체코 정부가 향후 원전 건설을 추진하기로 결정할 경우 우수한 기술력과 운영·관리 경험을 보유한 한국 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달라.”

2018년 11월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원전 세일즈차’ 체코를 방문해 안드레이 바비시 체코 총리에게 한 말이다. ‘탈원전 선언’으로 국내 원전산업 생태계를 쑥대밭으로 만든 문 대통령의 ‘원전 세일즈’에 얼마나 진심이 담겼겠으며, 또 상대국에 얼마나 설득력이 있겠느냐는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뭐 하나 틀린 지적이 아니었다.

다만 일부에서는 ‘원전 건설이 확정되지도 않은 나라에 가서 무슨 원전 세일즈냐’는 비판도 있었는데, 이것만큼은 ‘원전 수주전(戰)’의 세계를 잘 몰라서 나온 소리다. 국가의 안위와 직결된 에너지 안보의 영역이자 1기당 10조 원이 넘는 건설비용이 드는 원전은 기술과 가격 경쟁력이 있다고 해서 수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공식 계획이 확정되기 전부터 해당국 정부는 물론이고 국회, 산업계와 학계 등을 대상으로 오랫동안 공을 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체코 원전만 하더라도 이미 10년 전 박근혜 정권 때부터 우리 업체들이 입찰 참여 의사를 체코 정부에 공식 표명하고 꾸준한 수주 활동을 해왔다.

 

그런데도 사실 4년쯤 전까진 한국의 체코 원전 수주 가능성은 ‘0’에 가까웠다. 이미 체코가 운영 중인 원전 6기 모두를 건설한 실적이 있고, 압도적 세계 1위 경쟁력을 가진 러시아 국영 원자력기업 로사톰의 수주가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한국에 갑작스러운 ‘천운’이 찾아든 것은 2021년 4월. 과거 체코에서 발생한 탄약고 폭발 사고의 배후에 러시아 정부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양국 관계가 사상 최악의 상태에 빠져들었고, 마침내 체코 정부는 러시아 로사톰을 퇴출시켜 버렸다.

이로써 수주전은 한국수력원자력, 프랑스전력공사(EDF), 미국 웨스팅하우스 간 3파전이 됐다. 하지만 웨스팅하우스는 2017년 파산 이후 지식재산권을 무기로 ‘삥’이나 뜯는 존재로 전락했고, EDF는 방만한 경영 탓에 기술·가격 경쟁력 없이 덩치만 큰 공룡으로 추락한 상태였다. ‘프랑스의 정치력’이란 변수 하나만 빼면 승부가 이때 이미 결정됐다고 할 수 있다.

새삼스럽게 체코 원전 수주전의 경과를 되짚어본 것은, 이 과정을 모르면 최근 더불어민주당 등 일부 야당 의원들의 ‘무리한 체코 원전 수출 전면 재검토’ 주장에 현혹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판을 엎자’고 주장하는 핵심 논거는 ‘덤핑 입찰’과 ‘공사비 증가 가능성’이다.

먼저 이들은 “체코 언론들은 윤석열 정부가 ‘덤핑 가격을 제시했다’고 지적했다”고 주장한다. 국익이 걸린 수주전에서 우리 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주장을 펴려면 어느 언론사의 어떤 기사를 가리키는 것인지, 그 기사를 믿는 근거는 무엇인지 분명히 밝혀야 할 텐데, 밑도 끝도 없는 외마디 주장뿐이다. 행여라도 경제 포털인 ‘에코노미츠키 데니크’의 올해 5월 16일자 58행짜리 장문의 기사에서 딱 두 문장 언급된 “정통한 소식통은 한수원의 가능성을 더 높게 보고 있다. 덤핑에 가까운 가격으로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를 침소봉대한 것은 아니기를 바란다.

또 의원들은 공기가 예정보다 길어지고 공사비가 늘어날 것이라는 주요 근거로 영국 힝클리 원전과 핀란드 올킬루오토 원전의 사례를 들었는데, 황당할 따름이다. 힝클리 원전은 프랑스 EDF의 대표적 실패 사례 중 하나고, 올킬루오토 원전은 EDF에 원자로를 납품하던 회사가 떨어져 나와 공사를 맡았다가 회사를 통째로 말아먹고 다시 EDF에 흡수 통합된 사연이 있는 프로젝트다.

EDF가 탈락한 가장 큰 이유는 형편없는 가격 경쟁력과 함께 이들 프로젝트의 실패로 ‘시공능력’에 의문부호가 찍혔기 때문이다. 반대로 한수원이 선택된 가장 큰 이유가 ‘예정된 공기(工期) 안에 주어진 공사비’로 시공을 해온 그간의 ‘검증된 능력’ 덕분이다. 경쟁력이 한참 떨어지는 EDF의 실패를 한수원이 답습할 것이라고 보는 근거가 대체 뭔가.

한수원은 아직 체코 원전의 ‘우선협상 대상자’다. 내년 3월로 예상되는 최종 계약까지 갈 길이 멀다. 넘어야 할 고비도 많다. 웨스팅하우스는 계속 몽니를 부리고 있고, EDF도 끊임없이 시비를 거는 중이다. 10년 동안 노심초사하며 갖은 공을 들여온 우리 기업들의 인수전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아예 판을 깨자’는 의원들의 마음속에도 국적이나 국익이라는 게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동아일보 천광암 논설주간 iam@donga.com

 

09.24 다음은 한미 '원전 동맹'이다

체코를 넘어 한미 '팀코러스'
미국은 원전 핵심 기술·부품, 우리는 건설·운영 기술 앞서
두 나라 힘 합치면 세계 최강
이스라엘 아이언 돔도 미·이 협력으로 윈윈
군사 동맹·가치 동맹 넘어 에너지 동맹으로 신기원 열자

 ▲윤석열 대통령과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가 지난 20일(현지시각) 프라하 체코 정부청사에서 열린 한·체코 국책금융기관 간 5자 금융협력 MOU 체결식에서 윤희성 수출입은행장(앞줄 왼쪽), 장영진 무역보험공사 사장(왼쪽 두번째)과 체코 국영개발은행, 수출은행, 수출보증보험공사 대표자들이 서명하는 동안 임석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은 ‘팀 체코리아(Team Czech-Korea)’라고 쓰고 ‘팀 코러스(Team KORUS)’로 읽지 않을까. 19~22일 체코를 공식 방문한 윤 대통령은 한국과 체코 간 ‘팀 체코리아’ 원전(原電) 동맹을 선언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엔 원전 지재권(知財權) 문제를 깔끔히 해결하고 한미 ‘팀 코러스’ 원전 동맹을 맺는 구상이 더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거다.

 

필자가 국가안보실 재직 시 목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느껴지던 게 원전 지재권 문제였다. 2022년 5월 취임 직후 윤 대통령이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원전 생태계를 신속히 복원하겠다고 선언한 다음 웨스팅하우스사(社)가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웨스팅하우스는 우리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이 개발한 APR1400 원전이 웨스팅하우스의 초기 모델인 AP1000의 지재권을 침해했으니, 허가 없이 원전을 짓지도 수출하지도 말라고 했다. 한수원은 이러한 ‘억지’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미가 머뭇거리는 사이에 중국과 러시아가 세계 원전 시장을 잠식해 갔다. 그간 한미 양국의 민관이 함께 노력해 지재권 문제 해결에 진전을 이뤘지만, 미해결 상태다. 따라서 한미 정부는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가 지재권 문제를 신속히 해결하도록 원전 동맹의 비전과 로드맵을 도출해야 한다. ‘인공지능(AI) 시대’에 폭발하는 에너지 수요를 해결할 비책이 원전이다. 기술·경제·안보 측면의 기대 이익을 반영한 로드맵을 바탕으로 양국 기업이 이익을 나누도록 해야 한다.

 

기술적 측면에서 미국은 원전 핵심 기술과 부품에서, 한국은 원전 건설 및 운영 기술에서 앞선다. 설계, 기술, 시공, 운영 등 종합 능력에 있어 ‘팀 코러스’를 능가할 나라는 없다.

 

우리가 잘 아는 방공 시스템 아이언 돔(Iron Dome)은 이스라엘 방산 업체인 라파엘(Rafael)사가 2006년 개발했다. 그 진가를 알아본 미국 국방부가 2010년부터 수십억 달러를 들여 아이언 돔의 기술 확충을 지원했다. 이는 이스라엘 라파엘사와 미국 레이시언(Raytheon)사 간 기술 공유와 연구·개발로 이어졌고, 마침내 2021년 미 육군이 직접 아이언 돔을 도입하였다. 아이언 돔은 이스라엘이 개발하였지만, 미국의 재정적 지원과 기술 확충을 통해 윈-윈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기술 공유와 공동 생산에 관한 이견이 있었지만, 양국 정부가 개입해 아이언 돔의 일부 부품을 미국 레이시언이 생산하는 기술 공유 협정을 체결하여 지재권 분쟁 발생 가능성을 차단했다. 한미 정부도 원전을 ‘기술 안보’ 문제로 보고 원전 동맹의 비전과 전략을 구체화하면, APR1400 지재권 문제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거다.

 

경제적 측면에선 한미가 범세계적 ‘원전 르네상스’를 이끌며 수주량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한미 자체의 전력 공급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현재 미국에는 버지니아와 텍사스를 필두로 8주에 1,700개가 넘는 AI 데이터센터가 가동하며 엄청난 전력을 소비한다. 심각성을 인지한 백악관은 데이터센터 개발을 지원하는 ‘범부처 인프라 TF’를 조직해 최근 활동을 시작했다. 대형 데이터센터는 평균 10~50㎿의 전력을 소비하므로, 전기 출력 1,400㎿의 APR1400은 28개에서 140개의 데이터센터를 운영할 수 있다. 여기에다 한미가 50~300㎿ 출력의 차세대 원전인 소형모듈원전(SMR)을 함께 개발하고 생산하면, 한미는 물론 그 이상의 에너지 수요까지 소화할 수 있다.

 

안보적 측면에서 원전은 에너지 안보를 위한 중요한 수단이다. 특히 체코에 원전을 공급하는 것은, 러시아 천연가스만 믿다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난관에 봉착한 유럽의 에너지 안보를 회복시키기 위한 발판이다. 한미 원전 기술의 안정성과 신뢰성을 바탕으로, 환경 안보, 즉 탄소 중립과 기후 대응도 할 수 있다.

 

결국, 한미 원전 동맹은 원전의 설계, 건설, 운영뿐 아니라 고순도저농축우라늄(HALEU) 등 새로운 핵연료를 포함한 안정적 핵연료 공급과 사용후핵연료의 최종 관리까지 아우르는 ‘토털 설루션’ 연대가 되어야 한다. 체코 원전 계약이 내년 3월이므로, 한미 정부는 가급적 미 대선 전에 양국 기업 간 이익 배분이 합의되도록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좋은 결과를 내면, 한미 동맹은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는 군사 동맹, 자유민주적 가치를 공유하는 가치 동맹을 넘어, 원전을 매개로 한 에너지 동맹으로서 동맹의 신기원을 열게 될 것이다.

조선일보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前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

 
 

09.24 中에 이미 추월당한 韓, 격차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

▲일러스트=김성규

 

무역협회 의뢰로 중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기업인 30명을 심층 인터뷰한 보고서 초안에서 “반도체를 빼면 중국이 한국을 다 따라잡았거나 추월했다”는 결론을 냈다고 한다. “한국이 중국보다 경쟁력 있는 산업은 10%뿐”이란 진단도 나왔다. 중국이 미국의 강력한 견제에도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며 이젠 질(質)에서도 한국을 능가했다는 것이다.

 

중국 산업의 성공은 ‘속도’로 요약된다. 과거 한국이 ‘빨리빨리’, 중국이 ‘만만디’라고 했다면 이제는 완전히 정반대가 됐다. 중국 전기차 제조사가 신차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18~20개월이고 중국 브랜드의 평균 출시 기간은 1.6년으로 비(非)중국 브랜드보다 2~3년 빠르다고 한다. 중국 특유의 996 근무제(오전 9시 출근, 밤 9시 퇴근, 주 6일 근무) 덕분이다. 과거 한국이 했던 성공 방정식을 이제는 중국이 실행에 옮기고 있다. 한국 경제 부처 차관 출신은 최근 중국 방문에서 “우리는 회사에서 지시하면 관련 직원 전원이 며칠 밤을 새우는 정도는 기본”이라는 중국 기업 임원 말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주 52시간 근무 규제에 묶여 저녁만 되면 연구개발 부서의 불이 꺼지는 우리 상황과는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중국은 경제성장률이 4~5%대로 둔화됐지만 당장의 내수 진작보다 과학기술 혁신에 더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그 덕에 조선·화학·철강 등 전통 제조업은 물론이고 우주항공, 자율주행, 드론 등에서도 비약적 발전을 이루고 있다. 한국은 기술을 개발하고도 규제에 묶여 상용화를 못 하지만, 중국은 정부가 법과 제도를 만들어 상용화를 적극 지원한다. 대표적 신성장 분야인 자율주행차의 경우 첩첩산중 규제에 묶인 한국의 개발 수준은 1~2단계에 그치고 있지만 중국은 이미 3~4단계까지 올라가 본격 상용화를 앞두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글로벌 시장 전망에 따르면 5~10년 이내에 중국이 세계 최대의 자율주행 모빌리티 시장이 될 것이라고 한다.

 

중국 정부는 드론택시, 드론택배, 도심항공교통(UAM) 등도 전폭 지원하며 세계 최첨단을 달리고 있다. 중국은 전 세계 드론 시장의 매출 70% 이상을 석권하고 있다. 2017년부터 드론 배달 서비스를 해온 온라인 음식배달업체 메이퇀은 중국 대도시에 31개 드론 노선을 구축하고 누적 주문량이 30만건을 초과했다. 우리가 온갖 규제 때문에 ‘만만디’ 나라가 된 사이 거대한 중국이 혁신을 향해 가공할 속도로 달리고 있다. 이런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기라도 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9.24 임종석의 커밍아웃

 임종석(58)씨는 문재인 청와대 초대 비서실장, 재선 국회의원, 전대협 의장, 박원순 서울시 정무부시장 등 화려한 이력을 가졌지만, 가장 애착을 보였던 건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이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경문협 설립을 주도했고, 2005년부터 12년간 이사장을 지냈으며, 2019년 “통일 운동에 매진하겠다”며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이듬해 또 맡은 게 경문협 이사장이었다. 사실상 ‘임종석의 경문협’이었다.

 

비영리 민간단체인 경문협의 핵심 사업은 북한 저작권료 추심이었다. 북한 조선중앙TV의 자료화면 등을 쓴 국내 방송사ㆍ출판사로부터 저작권료를 받아내 북한에 송금하는 일이었다. 저작권 개념이 희박한 그 시절, 행여 북한이 자기 권리를 놓칠까 봐 당시 ‘국회의원 임종석’이 살뜰히 챙겨준 것이다. 물론 북한이 남한에 저작권료를 낼 리 없지만, 그런 얄팍한 ‘기브 앤드 테이크’로 어떻게 남북 화해를 도모할 수 있겠나. 하여튼 경문협이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북한에 송금한 돈은 7억9000만원이었다. 하지만 2008년 박왕자씨 피격 사건으로 경문협의 대북 송금은 중단됐고, 이후 경문협이 거둬들인 저작권료는 법원에 공탁됐는데, 지난해까지 그 액수는 28억5300만원이었다.

'종북 주사파'라는 부담 안고서

두 국가론 주장해 공론화 성공

결국 지향점은 '북한 우선'인가

 

 수면 아래 있던 경문협 공탁금이 부상한 건 4년 전이었다. 2020년 7월 서울중앙지법은 6ㆍ25 때 북에 억류돼 강제 노역에 시달린 2명의 탈북 국군 포로가 김정은 정권을 향해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북한은 4200만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또한 배상금 4200만원에 대해선 “경문협이 제3 채무자로서 대신 지급하라”고 추심 명령을 내렸다. 북측이 받을 저작권료니 북측을 대신해 경문협이 국군 포로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취지였다. 북한이 배상금을 낼 턱이 없으니 국군 포로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한 현실적인 결정이었다.

 

▲북한으로 끌려가 강제노역을 한 뒤 탈북한 국군포로 한모씨와 변호인단이 2020년 7월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북한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승소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문제는 이후 발생했다. 정작 돈줄을 쥔 경문협이 이를 거부해서다. 법정 소송을 제기하며 맞섰다. 논거는 두 가지였다. 저작권의 소유 주체인 조선중앙방송위가 독립 기구이기에 저작권료도 북한 정부 돈이 아니라는 것, 이에 따라 저작권료는 북한 프로그램 제작자 개인 소유라는 것이었다. 이는 김정은 1인 체제인 북한에서 방송의 독립성이 보장되고, 노동당의 선전물이 사유재산이라는 얘기 아닌가. 북한의 현실을 완전히 무시한 억지 논리임에도 ‘임종석의 경문협’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올초 항소심은 경문협의 손을 들어주었다.

 

최근 임 전 실장의 “통일, 하지 말자. 2개의 국가를 수용하자”는 발언으로 정가가 뜨겁다. 35년 전 임수경을 평양 축전에 보내고 2018년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을 지내는 등 줄곧 통일운동을 주창하던 그가 어떻게 180도 돌변해 ‘통일 포기’를 말하느냐가 비판의 요지인 듯 싶다. 하지만 그의 지향점이 통일이 아니라 ‘북한 우선’이라면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경문협 공탁금에서 보듯 수십 년간 강제노역을 당한 국군 포로의 인권보다 김정은 정권의 재산을 더 중시하지 않았나.

 

주지하다시피 ‘2 국가론’을 꺼낸 건 지난해 말 김정은이었다. 이후 북한에선 평양 입구에 있던 통일탑이 철거되고, ‘통일역’ 이름이 삭제되는 등 통일 지우기가 본격화됐다. 국내에서도 이적 단체인 범민련 남측본부가 해산하고 몇몇 학자가 동조했지만 ‘2 국가론’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이 와중에 임 전 실장이 총대를 메고 나선 것이다. 이번 발언이 북의 지령인지, 그의 소신인지, 친북 단체의 압력인지, 대북 비즈니스를 위한 포석인지는 임 전 실장만 알 것이다. 분명한 건 이후 갑론을박을 거치며 ‘2 국가론’은 국내 공론장에 안착했다는 점이다. ‘종북 주사파’란 꼬리표가 있던 임 전 실장이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면서 도발을 한 덕이다. 이 정도면, 민주당의 표현을 빌리자면 임 전 실장이야말로 북한의 ‘밀정’ 아닐까.

 

중앙일보 최민우 정치부장

 

09-25 원전 수출 폄훼는 매국적 발상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직전 정부의 탈원전은 시대착오적 정책이었다. 전문가를 무시하고 이념적 환경운동가를 따른 당연한 결과였다. 한국전력공사는 돌이키기 어려운 내상(內傷)을 입었다. 부채는 200조 원을 넘어섰다. 전기요금을 50% 이상 올리고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당연히 전력망 투자도 하지 못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원전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시켰다. 2018년 인천 송도에서 개최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원전을 500%로 늘리자는 시나리오를 제시했고, 지난해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개최된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는 무탄소 전원인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3배로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많은 동의를 받았다. 탈원전을 선언했던 스위스, 이탈리아, 스웨덴은 복원전(復原電)으로 돌아섰다. 우리는 이 마당에 막차 탈원전을 했던 것이다.

빅테크 기업은 원전의 전기를 직접 계약해서 사용하겠다고 선언한다. 인공지능(AI)과 데이터센터가 엄청난 전기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2022년부터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아마존 등은 원전을 이용해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한다고 밝혔다. 며칠 전에는 1979년 원전 사고가 발생한 미국 스리마일섬(TMI) 2호기 옆의 1호기를 재가동해 MS가 필요로 하는 전력을 공급하기로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삼성전자 신규 공장도 15기가와트(GW)의 전력을 필요로 한다. 우리나라 전체 전력의 20%이다. 물론 아직 전력공급계획은 난망하다. 원전이 아니면 방법이 없을 것이다. 원전이 대세가 됐다.

게다가 한국수력원자력이 체코의 두코바니 5·6호기 건설 사업의 우선협상자가 됐다. 이는 유럽대륙 진출의 교두보가 될 것이고, 다른 나라의 원전 건설 업체 선택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체코는 이미 6기의 원전을 운영하는 국가로서 제조업 강국이기 때문에 영향력이 막강하다. 또한 러시아와 중국을 ‘안보 평가’로 탈락시키고, 미국 웨스팅하우스를 ‘요건 불만족’을 이유로 조기에 탈락시켰으며, EU 의장국인 프랑스 전력공사(EDF)를 탈락시킨 것은 엄청난 외교적 배포를 보인 것이기 때문이다. 체코 원전 수주는 우리가 다른 원전을 수주하는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한 폄훼도 만만치 않다. ‘저가 수출’ ‘덤핑 수출’이라는 혹평도 있다. 또,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제기한 지식재산권 문제도 어둡게만 보려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14년 전에 UAE 바라카 원전을 수출했을 때도 똑같은 폄훼가 있었다. 적자 수출, 덤핑 수출, 지식재산권 문제 등 지금의 폄훼와 정확히 똑같았다. 어쩌면 그들은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난 2017년 신고리원전 5·6호기 공론화 때 시민참여단에 대한 강연에서 ‘2009년 UAE 수출 이후 지금까지 원전 수출 실적이 없다’고 비아냥거리는 환경운동가 교수에게 ‘대한민국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7년 전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나마 신한울 3·4호기는 건설 재개에 들어갔지만, 제11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은 제7차 전력수급계획보다도 원전이 후퇴했고 여전히 재생에너지 일변도이다. 국익은 팽개쳐두고 원전을 둘러싼 당파싸움만 하는 영향 때문일 것이다.

문화일보 

 

09.26 '文 정권 대북 정책 잘못돼 北이 통일 거부' 李도 이렇게 보나

▲더민주혁신회의가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선언과 차기 민주정부의 과제라는 주제로 긴급 토론회를 열고 있다. /이덕훈 기자

 

친명계 최대 조직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혁신회의)’가 25일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선언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발제를 맡은 신준영 혁신회의 대북정책혁신위원장은 최근의 남북 관계의 책임을 문재인 정부 탓으로 돌렸다. 그는 문 정부가 대북 제재를 철저히 지켜 남북 관계가 파탄 났고 북한이 통일 거부와 적대적 두 국가론을 펴는 것이란 취지로 발표했다.

 

신 위원장은 “문 정부의 대북 제재 준수 노력은 눈물겨웠다”고 했다. 북한이 “옥류관 냉면은 맛있게 먹고…”라는 대남 비난 성명을 낸 것에 대해서도 “(대북 제재로) 우릴 빚더미에 앉혀 놓고 너희는 한 일이 뭐냐는 볼멘소리로 보인다”고 했다. 그는 북한이 남북 관계를 파탄 낸 이유에 대해 “문재인 정부에서 한미 군사훈련이 중단 없이 추진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겉으로만 훈련 중단이고 실질적으로는 훈련을 해서 북한이 반발했다는 취지였다.

 

이 발제문은 궤변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대북 제재는 북의 핵개발 때문에 유엔이 하고 있는 것이다. 북이 핵을 포기하면 즉시 없어진다. 핵을 포기하지 않는데 제재만 없애면 북핵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하자는 뜻인가. 문 정권은 사실상 한미 훈련을 중단했으며 그 기간 중에도 북은 계속 미사일을 발사했다

 

발표자는 이재명 대표가 경기도지사 때 경기도 평화협력국장을 지냈고, 지금은 국회 평화외교 자문위원이다. 한 개인의 돌출 발언이라 보기 어렵다. 그는 1992년 빨치산 출신 장기수 이인모의 구술을 정리한 책을 통해 그의 북송을 도왔고, 취재와 각종 교류를 구실로 북한을 100회 이상 방문했다. 그런 인물이 이재명 대표 핵심 조직의 대북 정책을 맡고 있다.

 

혁신회의는 작년 6월 “이재명 대표의 차기 대선을 위한 조직을 만든다”며 강성 친명계가 주도해 만든 단체다. 출범 당시에는 원외 인사로만 구성됐지만, 22대 총선에서 의원 31명을 배출하며 최대 의원 모임이 됐다. 이 단체 간부의 납득할 수 없는 주장들이 이 대표의 생각과 같은 것인지 묻게 된다.

조선일보 사설

 

09.27 정부 지출 못 줄이면 만성 재정 적자국 된다

▲정부가 발표한 2025년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도 예산 총지출 증가율은 3.2%로 편성됐다. 국가 채무는 1277조원으로 올해보다 81조3000억원(0.8%) 늘어난다.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올해보다 13조9000억원 줄어든 77조7000억원으로 예상했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48.3%로 늘어날 전망이다. /뉴시스

 

경기 침체에 따른 법인세·소득세 수입 감소로 올해 정부 세수가 당초 예상보다 30조원 부족한 337조원에 그칠 것이라고 기획재정부가 밝혔다. 이에 따라 연간 재정 적자도 당초 예상(92조원)보다 커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작년에 56조원대 결손에 이어 거액의 세수 부족과 적자가 일상화된 것이다.

 

그 와중에도 정부는 지출을 줄이지 않아 재정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 정부는 2024년 예산안 편성 때 세수가 작년 대비 33조원 감소할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수입보다 지출이 92조원 많은 적자 예산을 짰다. 병사 월급 165만원 인상, 0세 아동 부모 급여 월 100만원 지급, 노인 기초연금 33만4000원으로 인상 등 총선을 앞둔 선심 지원책이 대거 포함됐다. 세수 결손이 불가피한 상황에서도 방만한 씀씀이를 계속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달 초 국정 브리핑에서 “건전 재정 기조를 굳건히 지킨 결과 국가 재정이 더 튼튼해졌다”고 밝혔지만 실상은 다르다. 국회에 제출된 2025년 예산안까지 포함하면 집권 3년간 국가 채무가 210조원 증가해, 문재인 정부 5년간 400조원 불어난 것과 비슷한 추세다. 문 정부는 세수 풍년 속에서도 방만한 씀씀이로 천문학적 적자를 냈고. 윤 정부는 세수 부족에 맞춘 지출 다이어트에 소홀한 결과다. 내년 예산안에도 78조원의 거액 적자가 반영됐다. 문 정부가 ‘1000조원 시대’를 연 국가 채무는 윤 정부 마지막 해엔 1400조원대로 늘어날 전망이다.

 

정치권의 포퓰리즘 선심 경쟁은 여와 야를 가리지 않고 있다. 여기에 정부까지 가세한다면 국가 재정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정치권의 압박에도 정부만큼은 최후의 보루로 건전 재정의 고삐를 늦춰선 안 된다. 과감한 지출 구조 조정으로 씀씀이를 간소화하고, 국세의 40%를 무조건 배정하는 지방교부금 제도도 하루빨리 손봐야 한다. 재정 적자를 GDP의 일정 비율 이상 넘지 못하게 강제하는 ‘재정 준칙’ 법제화가 시급하다.

조선일보 사설 

 

09.27 몰락하는 김정은 정권을 위해 나팔 부는 사람들

좌파 미테랑 정부는
예상과 달리 소련과 대립
북한과도 인권 문제로 수교 거부
좌파의 진짜 가짜 판별법이 있다
민주주의·인권의 엄정한 잣대를
북한에도 적용하느냐 여부
김정은 호응해 '통일 지우기' 나선
국내 좌파들, 부끄럽지 않은가

19세기 유럽에서 형성된 사회주의는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과 1945년 냉전 체제 출범을 거치면서 혁명적 급진 노선을 추구하는 공산주의와 점진적 개혁을 추구하는 사회민주주의라는 양대 산맥으로 분화했다. 냉전 시대 초기 20년간 프랑스 공산당, 이탈리아 공산당 등 서유럽의 거대 공산당들은 소련 후원하에 막강한 세력을 형성했다. 그러나 1974년 독일 사회민주당의 헬무트 슈미트 총리, 1983년 이탈리아 사회당의 베티노 크락시 총리, 1981년 프랑스 사회당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집권에 성공하는 등 개혁적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약진함에 따라 유럽 공산당은 급속히 몰락했다.

 

같은 뿌리를 가진 사회주의 정당임에도 불구, 유럽 각국의 공산주의 정당과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행태는 확연히 달랐다. 공산주의 정당들은 냉전 시대 내내 원칙도 소신도 없이 소련 공산당의 지시에 맹종하면서 소련 대외 정책의 나팔수 노릇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냉전 시대 후반에 공산당의 위세를 꺾고 유럽 좌파 정당의 신주류로 등장한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을 최대의 가치이자 목표로 설정하는 등 공산당과의 차별화를 명확히 했다. 그들은 그러한 정강 정책에 따라 소련 공산당의 일당독재와 인권침해를 신랄하게 비판했고, 소련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정치적 이익을 추구했던 유럽의 우파 정당들보다 강력하게 소련과 대립각을 세웠다.

 

그 시절 프랑스 주재 대사관에서 근무한 필자가 겪은 프랑스 사회주의의 실체는 세간에서 막연히 추측하던 것과 크게 달랐다. 좌파 미테랑 정부가 소련과 밀착하리라는 예측과 달리, 프랑스는 인권과 국제 문제를 둘러싸고 사사건건 소련과 대립했다. 중동 테러 지원국들을 두둔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와 달리, 미테랑 정부의 강경한 반테러 정책에 대한 보복으로 파리 시내에서는 몇 달이 멀다 하고 폭탄 테러가 줄을 이었다. 북한이 강력히 요구한 대북한 수교도 불가피한 기정사실처럼 보였으나, 미테랑 대통령은 재임 기간 14년 내내 인권 문제를 이유로 수교를 거부했다. 영국, 독일을 포함한 서유럽 국가 대부분이 북한과 수교한 지금도 유독 프랑스는 북한의 인권 탄압과 핵무장을 이유로 수교에 불응하고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서유럽 정계에는 크고 작은 수많은 사회주의 정당이 난립하여 이들의 진정한 정체성 파악에 애를 먹었다. 그러다가 3년간의 프랑스 근무가 끝나갈 무렵 진짜 사회주의 정당과 친소련 꼭두각시 정당을 가려내는 아주 쉽고 정확한 방법을 터득했다. 유럽 사회주의의 최우선 가치인 민주주의와 인권의 엄정한 잣대를 프랑스는 물론 미국, 소련, 중국, 북한 등 모든 나라에 동등하게 적용하는 정당은 진짜 사회주의 정당이었고, 무슨 구실로든 같은 잣대를 소련과 공산국가들에 적용하기를 기피하는 정당은 십중팔구 소련에 맹종하는 가짜 사회주의 위성 정당이었다.

 

이 같은 가짜 감별법은 골수 공산주의자, 몽상적 사회주의자, 사회민주주의자, 친북 주사파, 맹목적 종북주의자, 좌파 기회주의자 등 다양한 이질적 구성 요소가 혼재하는 한국 좌파 진영 구성원들의 정체성을 판독하는 데도 매우 유용한 도구다. 한국 좌파 진영의 감별에서 최우선 과제는, 유럽 사회주의 정당처럼 이념적 가치를 위해 헌신하는 ‘진정한 좌파’와 소련의 나팔수였던 유럽 공산당처럼 오로지 북한을 위해 충성의 나팔을 부는 ‘사이비 좌파’를 구별하는 일이다. 가짜 판별의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들이 사회주의 본연의 보편적 핵심 명제인 민주주의와 인권을 진정으로 신봉하고 행동으로 실천하는지 검증하는 것이다. 특히, 그들이 국내 문제에 들이대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엄정한 잣대를 북한의 민주화와 인권, 탈북자 인권, 중국 인권, 신장위구르 인권 등에도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는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 한국 좌파 진영에는 북한발 대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체제 붕괴와 흡수통일의 공포에 질린 김정은이 별안간 선대의 80년 유업인 통일 과업을 폐지하고 통일 운동 흔적을 모조리 지우기 시작하자, 평생 ‘통일’ 구호로 먹고살던 국내 좌파 수뇌부 일각이 덩달아 일제히 통일 지우기에 나서고 있다. 부끄럽지도 않은가. 어떤 합리적 명분도 해명도 없이 돌연 정반대 방향으로 나팔을 불어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소련의 나팔수 노릇 하다 역사의 심판에 몰락한 유럽 공산당이 생각난다.

조선일보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前 외교부 북핵대사

 

09.27  7년째 끝나지 않은 '기무사 잔혹사'… 文때 적폐 몰려 돈·명예 다 날렸다

文정부가 '적폐 청산' 명분 시작
사령부 해체 후에도 수사·기소
의혹과 무관한 부대원들까지
방출, 진급 불이익, 가정 파탄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8년 7월 기무사령부의 ‘계엄 검토 문건’을 친위 쿠데타 음모라며 특별 수사를 지시했다. 내란 음모 혐의와 관련해 조사를 받은 기무사 출신 200여명은 전원 무혐의 종결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기무사는 부대원 열 명 중 세 명(30%)이 방출됐고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해편됐다. 문재인 정권의 무리한 ‘군 적폐 청산’으로 방첩 능력만 약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기무사가 해편되기 전인 2018년 7월 경기 과천 국군기무사령부

 

문재인 정부가 2017년 9월 군(軍) 사이버사령부의 ‘댓글 공작’ 의혹 사건 재수사에 나선 지 7년이 흘렀다. 사이버사 댓글 수사는 문재인 정부 ‘군 적폐 청산’의 신호탄이었다. 이 수사는 2018년 국군 기무사령부에 대한 수사로 이어졌고 결국 기무사는 해체됐다. 군내 방첩, 군사기밀 보안 등을 담당하는 한국군의 ‘방패’가 사실상 와해로 내몰린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군 적폐 청산 드라이브가 정점에 이른 2018년 5월 국방부는 기무사 개혁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기무사 해체 작업에 돌입했다. 그 결과 기무사 부대원 약 1200명이 야전으로 방출됐고, 그해 9월 1일 기무사는 해체돼 군사안보지원사로 재편됐다. 기무사 출신 예비역 장성은 “문재인 정부가 국가정보원은 대공수사권을 폐지하고, 기무사는 산산조각 내면서 국내 방첩 역량을 무너뜨린 셈”이라고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8년 7월 기무사의 ‘계엄 문건’에 대해 특별 수사를 지시한 것은 기무사 해체의 도화선이 됐다. 당시 여권은 이 문건이 박근혜 정권 차원에서 계획한 친위 쿠데타 음모로 몰아갔다. 그러나 군·검 합동 수사단이 그해 11월까지 검사 37명을 투입해 104일간 200여 명을 조사했지만 내란 음모 혐의와 관련해서는 전원 무혐의 종결됐다. 그 밖에 기무사의 ‘세월호 유가족 사찰’ ‘정치 댓글’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가 이어졌고 일부 사건은 지금도 재판이 진행 중이다. 지금도 수사가 적절했는지, 과잉 수사는 아니었는지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기무사 부대원 피해도 컸다. 검찰 수사를 받던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은 2018년 12월 극단적 선택을 했다. 현역 신분으로 기소된 기무 요원 상당수는 월급의 절반만 받으며 생활고에 시달렸다. 기소된 사람들은 수억원대 변호사 비용을 대기 위해 빚을 내 패가망신하다시피 했다. 재판에 넘겨지지 않은 기무 요원들도 야전 부대로 방출돼 적응에 어려움을 겪다가 전역하는 일이 허다했고 일부는 목숨을 끊었다. 전직 기무사 부대원들은 “우리는 이를 ‘기무사화(機務司禍)’라고 부른다”고 했다.

조선일보  김정환 기자

 

09.27 적폐 몰린 기무사 군인들 "변호사비만 수억원...집 팔고 가족은 알바"

문재인 정권 당시 기무사령부 군인들은 이른바 ‘적폐 청산’ 차원에서 가혹한 수사를 받았다. 기무사 출신 A 예비역 대령은 ‘기무사 정치 댓글 사건’으로 기소돼 징역 1년 6개월 형을 살았다. 그는 2019년 9월 만기 출소했지만 바로 검찰에 불려 갔다. 또 다른 기무사 관련 사건 수사를 받게 된 A 대령은 이번엔 징역 8개월이 확정돼 또 감옥 생활을 했다. 두 번의 수사·재판으로 A 대령은 변호사비 등으로 4억원이 나갔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1억원 빚도 져 현역 때 경기도에 마련한 집을 팔았다.

 

A 대령은 대법 확정 판결이 나기까지 현역 신분을 유지했다. A 대령은 “현역 군인으로 기소되면 월급이 절반(기본급의 절반)으로 깎인다”며 “당시 월 170만원으로 가족을 부양해야 했다”고 했다. 그는 “감옥에서 가족들이 생활고에 시달린다는 소식을 듣고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A 대령은 군인 연금도 자기가 납부한 금액(절반)만 받고 있다. 형사사건 유죄가 확정되면 연금이 반액으로 깎이기 때문이다.

 

A 대령처럼 군 적폐 청산 수사에 휘말린 군인들은 패가망신을 각오해야 했다. 변호사비 부담은 가족의 경제적 고통으로 전가된다. 전직 기무사 고위 장교 가족은 경기도 외곽의 10여 평짜리 아파트에서 월세방살이를 하고, 변호사비는 지인들에게 빌려 충당했다. 기무사 출신 B 예비역 대령은 “일단 기소되면 수년째 재판을 받아야 한다”며 “가족들이 아르바이트하며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래픽=양진경

 

장준규(예비역 육군대장) 전 육군 참모총장은 이른바 ‘계엄 문건’ 사건에서 해당 문건에 계엄사령관으로 이름이 올라갔다. 그 때문에 검찰 수사 대상이 된 그는 ‘내란 음모’ 혐의로 자택 압수 수색과 피의자 조사를 받았다.

 

당시 문재인 정권 인사들은 박근혜 정부 말에 계엄 문건 작성을 지시한 조현천 기무사령관이 같은 육사 출신인 장 전 총장을 계엄사령관에 앉혀 친위 쿠데타를 획책했을 것이라고 의심했다. 장 전 총장은 “당시 검찰에 탈탈 털렸다”며 “두려웠지만 자식들에게 ‘아비 믿지? 나 그렇게 안 살았다’고 얘기하며 버텼다”고 했다. 검사 37명이 투입돼 200여 명 조사했던 그 사건으로 ‘내란 음모’로 기소된 사람은 없었다.

▲그래픽=양진경

 

장 전 총장은 수사받는 내내 가슴을 졸였다고 한다. ‘별건 수사’ 때문이었다. 그는 “내란 음모 혐의와 관련해 뭐가 안 나오자 검찰에서 육군 총장 시절 인사·출장 비리, 횡령 여부 등을 샅샅이 뒤지더라”면서 “나는 결백을 자신했지만 부하들 차원에서 내가 모르는 무슨 일이 있었을지 몰라 걱정스럽고 불안했다”고 했다.

 

‘세월호 유가족 사찰 사건’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은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은 2018년 12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는데도 그는 견디지 못했다. 이 전 사령관은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가는 길에 수갑이 채워져 포토라인에 서는 등 모욕을 당했다.

 

김재용 예비역 원사는 세월호 참사 당시 기무사 전남 진도 지역 담당관이었다. 김 원사는 “사고 직후 사명감, 책임감 하나로 길거리에서 자면서 10여 일을 세월호 현장에서 근무했다”며 “유족들이 무엇이 필요한지, 요구가 뭔지를 파악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원사는 “그런데도 기무 요원들은 모두 사찰 의혹을 받았고 아무리 해명해도 수사기관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했다. 이 사건에 대한 첫 검찰 수사에서 지역 부대장이 기소됐다. “윗선을 밝히라”는 유가족 단체 요구에 대대적 재수사가 이뤄졌지만 추가로 기소된 사람은 없었다.

 

김 원사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기무사 해체로 야전으로 방출됐다가 새 부대에서 적응이 어려워 결국 전역을 택했다. 기무사 수사로 구속됐던 한 인사는 “간첩단 사건으로 구속된 이들은 영치금이 쏟아지고 변호사 접견도 잦았다”며 “평생 방첩 업무를 하다 버림받은 나로선 회한이 들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조선일보 김정환 기자  양지호 기자

 

09.28 나라 장래에 대한 국민 自信感 무너진다

화약고 끼고 사는 나라 최대 현안이 대통령 부인 문제, 이게 말이 되나
'세계는 어떻게 바뀌고,우 리를 어떻게 바꿔야 하나' 질문 놓치면 뼈저린 代價 치를 것

지하철 5호선 세종문화회관역 6번 출입구 에스컬레이터는 오늘도 ‘수리 중(修理中)’이다. 벌써 3일째다. 공사를 하는 젊은 엔지니어에게 물으니 ‘베어링이 비에 젖어 녹슬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22계단밖에 안 되는 짧은 에스컬레이터라서 큰 불편은 없다. 일 년에 예닐곱 번 고장이 난다. 한번 고장 나면 한 달가량 방치하다 수리팀이 나와 하루나 이틀 걸려 고쳐 놓으면 한 닷새 돌아가다 다시 멈춰 선다. 10년째 이런 상태다. 한국이 어쩌다 이런 나라가 됐을까.

 

과거엔 무심코 지나쳤던 사소한 일이 언제부턴가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무슨 ‘징조’나 ‘조짐’이 아닐까 하는 겁부터 난다. ‘징조’나 ‘조짐’은 객관적 근거 없이 괜히 잘될 것 같은, 혹은 안될 것 같은 느낌을 말한다. 여기선 물론 후자(後者)다. 버티고 견디면 결국 잘 풀리더라는 나라의 장래에 대한 체험적 낙관론이 흔들린 것이다. ‘자신감’이 들어섰던 자리를 ‘불안감’이 차지했다.

 

‘쇠퇴(衰退) 강박증’은 서울에 사는 기자만 앓는 ‘외로운 병’이 아니었다. 미국 수도 워싱턴 근교에서도 ‘쇠퇴 강박증’은 흔한 병이었다. 뉴욕타임스 어느 기자는 워싱턴 밖 베데스다(Bethesda)역에서 전철로 워싱턴으로 출퇴근했다. 그 역에는 21계단의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와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돼 있었다. 하나가 고장 나면 옆 에스컬레이터도 세워 오르고 내리는 계단으로 이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는 고장 난 에스컬레이터를 걸어서 올라 중국 톈진으로 출장을 갔다. 거기서 두 번 놀랐다. 회의장인 컨벤션센터의 규모에 먼저 질렸다. 건평이 23만㎡(6만9000평)였다. 다음에는 ‘2009년 9월 15일 착공 2010년 5월 완공’이란 표지판을 보고 또 놀랐다. 출장에서 돌아와 보니 21계단짜리 에스컬레이터는 아직도 ‘수리 중’이었다. 중국에선 7만 평 컨벤션센터를 32주 만에 완공하는데 미국에선 21계단 에스컬레이터를 수리하는 데 24주가 걸리다니…. 이런 탄식을 녹여 정치학 교수 친구와 함께 ‘한때는 미국이 그랬는데…(That used to be us)’라는 책을 썼다.

 

‘속도’만큼 중요한 것이 ‘방향’이다. 며칠 전 일본 신문에 실린 ‘사양(斜陽)길 경제 대국’이란 기사는 일본의 반성문이었다. 1992년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방문에 앞서 일본 정부는 여러 부처가 나서서 미국을 달랠 선물 꾸러미를 준비했다. 그 핵심이 ‘일본 기업의 미국 기업 기술 지원’이었다. 당시는 ‘해가 지지 않는 반도체 왕국’ 일본에 대한 찬사가 요란했던 시절이다. 그 박수는 일본이 ‘과거’에 흘린 땀과 노력에 대한 박수였다. 그걸 일본은 ‘현재’에 대한 평가로 오해했다는 것이다. 그때 이미 세계 반도체 산업은 크게 방향을 틀었고 제때 그 흐름에 올라타지 못한 일본 반도체 왕국은 무너졌다.

 

두 나라 반성은 속도의 나라 중국을 본받자는 것이 아니다. 한때 자기 나라를 세계 ‘No. 1′ ‘No. 2′로 올려놓았던 ‘성공 방정식’을 되살려야 한다는 뜻이다. 미래를 위한 투자를 늘리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받는 연금은 줄이고 돈은 더 내자는 대목에 이르면 고개를 돌리는 건 어느 국민이나 똑같다. 그런 노령(老齡) 유권자 숫자는 해가 갈수록 증가한다. 그래서 한번 무너진 성공 방정식은 다시 세우기 힘들다.

 

일본 GDP는 1990년부터 2023년 사이에 30% 증가했다. 그 사이 복지 지출은 300% 증가했다. 노령화의 속도가 예상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노령화 속도는 일본보다 훨씬 가파르다. 일본의 현재 모습에 더 어둡게 덧칠을 하면 10년, 20년 후 한국 모습이 된다.

 

‘세계는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 ‘바뀐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우리를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잊는 나라는 반드시 뼈저린 대가(代價)를 치른다. 우리는 두 질문을 잊고 산 지 오래다. 서울 복판에서 10년째 ‘고장’과 ‘수리’를 반복하는 에스컬레이터가 무슨 징조나 조짐처럼 보여 섬뜩할 정도다.

 

전쟁의 화약고(火藥庫)를 끼고 사는 대한민국 최대 현안이 대통령 부인 문제라는 게 말이 되는가. 이제 막 걸음마를 떼는 정치 초보 여당 대표를 나무랄 일이 아니다. 사법 처리를 피하기 위해 오로지 대통령 탄핵에 골몰하는 야당 대표를 쳐다볼 것도 없다. ‘모든 책임은 여기에 있다’는 대통령 책상 위 명패를 따라야 한다. 그 말의 주인공 트루먼 대통령 전기는 ‘트루먼은 일생 동안 아랫사람에게 격노(激怒)한 적이 없다’고 했다. 부인 문제를 푸는 첫걸음도 거기서부터다.

조선일보 강천석 기자

 

09.28 김정은도 '손절'한 임종석의 미래

"북한은 옳다"는 주사파
'김정은 변덕'에도 장단
그들 결국 '일용직'이었다
'北 내정 간섭 말자' 할 것

1980년대 김일성은 자신의 절대권력을 합리화할 이론이 필요했다. 인민이 혁명 주체라는 게 ‘주체 사상’인데, 김일성이 신성군주와 같은 권력을 가지려면 특별한 논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개발된 것이 ‘혁명적 수령관’이다. ‘인민이 변혁 주체가 맞지만, 수령의 지도가 없으면 혁명이 완결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수령의 명령에는 오류가 없고, 오류를 찾으려는 시도도 해서는 안 된다는 이른바 ‘수령 무오류론’도 그 중 하나다.

 

대학에 다니던 80년대 운동권 선배들로부터 주체사상과 수령무오류론을 주입받았다. 선배가 생각을 묻기에 “박정희 독재가 문제라며, 김일성을 의심도 말라는 게 말이 되냐”고 되물었다. 선배가 화를 내며 “쁘띠부르조아적 사고(思考)”라고 했다. 쓰잘 데 없는 생각이란 뜻이다.

 

거의 40년이 흐른 지금, 세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첫째, 그때 운동권 떠나기 잘했다. 둘째, ‘쿠팡’도 없던 시절 ‘혁명적 수령관’은 어떻게 그리 빨리 대학에 ‘총알 배송’ 됐을까. 셋째, 김일성은 갔어도 ‘수령이 옳다’는 생각은 죽지 않았다, 특히 이 대한민국 땅에서.

 

▲문재인 정부시절,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왼쪽)과 문 대통령. /임종석페이스북

 

당연히 임종석 전 의원 때문에 든 생각이다. ‘민족통일’을 평생 브랜드로 살아온 사람이 갑자기 “통일을 포기하고 두 나라로 살자”고 했다. 북한은 지난해 말 노동당 전원회의를 시작으로 우리를 ‘남조선’ 대신 ‘한국’이라 칭하며 ‘북남통일론’을 폐기하고 적대적 2국가론을 들고나왔다. 남조선 내 종북 활동이 성에 안차니, 북한 주민을 더욱 고립시켜 ‘독재 철옹성’을 쌓겠다는 속셈으로 분석된다. 임종석의 돌발 발언은 김정은 생각을 좀 순화한 말로 들린다.

 

1989년 방북 사건의 주인공이 임수경이었다면, 전대협 의장 임종석은 PD였고, 문규현 신부는 총괄PD쯤 됐다. ‘총제작자’는 아직도 모른다. 2020년 문재인 정부가 대외비 외교 문서를 공개하면서 관련 문서만 빼놨기 때문이다. 진보 인사들의 민감한 정보가 있어 그런 건가 추측을 낳았다.

 

1996년 국회의원이 된 후 임종석이 주력한 건 ‘국보법 철폐’였다. “이 땅에는 오직 국가 보안이라는 허울을 쓴 정권유지법, 인권탄압법, 민족분열법이 있었을 뿐” “불법성과 야만성으로 가득한 반민주 악법”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이 되어서는 ‘평화 쇼’ 주역이 됐고, 평생 사업으로는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이 있다. 우리 방송사에서 ‘북한 영상 저작권료’를 거둬 북한에 보냈고, 김일성 전자도서관, 한국 지자체와 북한 도시를 결연하는 사업을 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 ‘통일바라기’의 통일론이 뭔지 모르겠다. 어떤 통일인지, 핵 보유국과의 통일은 어떤 건지 뚜렷한 ‘통일 철학’이 없다. 2008년 ‘현장기록 통일정책론:장산곶매 평화로 날다’라는 책을 출간하며 그가 이렇게 썼다. “남북 관계 발전에 기여하고 싶은 꿈을 잠재울 길이 없었고….” 그러니까 그 ‘꿈’이 정확히 뭐냔 말이다.

 

기자는 임종석을 ‘통일 일용직’으로 부르겠다. 머리 쓰는 분, 몸 쓰는 사람 따로 있다면 그가 후자에 속한다는 뜻이다. 그에게 필요한 건, 과거 암송한 ‘김일성 무오류론’ 정도일 것이다. 스스로도 민망했을 텐데, ‘평생 과업’을 단박에 뒤집은 결정적 동기는 대체 뭘까. ‘최종 업무 지시’라도 받았나.

 

여파는 크다. ‘보수는 반통일 세력’이라던 진보가 당황해 버렸다. 민주당은 ‘헌법 정신’을 거론하며 임종석을 바로 ‘손절(損切)’했다. 북한 정권의 심기를 경호하며 예산을 축내온 시민단체들은 이제 무슨 구호를 내놓을 건가. 김정은도 손절한 국내 ‘종북 세력’의 다음 호구책은 뭘까. ‘북한 내정 간섭 금지’ 운운일 것이다.

조선일보 박은주 기자

 

09.28 북한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요즈음 북한 문제가 다시 논란의 주제로 부상했다. 어느 정치인이 통일을 포기해야 남북 간에 평화 공존이 가능하다고 주장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과연 우리는 2024년 현시점에서 북한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세 가지를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첫째, 북한, 남북 관계, 통일과 같은 문제를 논할 때 ‘소망(所望)’만을 말하고 ‘힘(권력)’의 문제를 배제하면 비현실적인 논의에 그치기 쉽다. 유사 이래, 국가 간의 관계에서 열심히 ‘소망’했더니 평화가 이루어졌다는 사례는 없다. 그런 식이었다면 조선의 모든 백성이 열심히 독립을 소망했기에 일제에 나라를 잃는 일도 없어야 했을 것이다. 외침을 막을 ‘힘’을 길렀을 때 평화가 왔다. 정치를 이야기하면서 ‘힘(권력)’의 문제를 논하지 않으면 이상주의에 빠져 잘못된 처방을 내놓게 된다.

 

통일 논의 포기해도 평화 보장 안 돼

‘힘’ 없이 ‘소망’만으론 해결 어려워

남북, 한·미, 북·미 관계 밀접 연결

통일 논란 대신 역량 강화에 집중

 

개인들 간의 관계에서는 내가 선의로 대하면 상대도 선의로 나를 대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 간의 관계는 개인 관계와 질적으로 다르다. 오래전 미국의 정치신학자, 라인홀드 니버는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1932)라는 저서에서 그 점을 갈파했다. 국가들 관계에서는 오히려 이쪽의 선의를 저쪽이 악용해서 해를 끼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예를 들어 1938년 9월 뮌헨회담의 경우가 그랬다. 영국의 네빌 체임벌린 수상은 히틀러의 체코슬로바키아 영토 주데텐란트의 할양 요구를 들어주면, 히틀러도 더 이상 욕심부리지 않을 것이고 평화가 달성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히틀러는 체임벌린의 그러한 선의를 배신했고, 1년 후 폴란드를 침공해 2차대전이 터졌다. 결국, 힘으로만 불의를 막아낼 수 있다고 믿었던 처칠 같은 지도자가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렇기에 북한의 도발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억제력을 강화하는 것은 평화를 해치는 일이 아니라, 평화를 보장하는 필요조건이 된다.

 

둘째, 우리가 통일 논의를 포기하면 북한도 안심할 것이고, 그래서 평화가 올 것이라는 주장은 문제의 근본 원인을 잘못 짚은 것이다. 왜냐면 한반도 위기의 본질은 남측의 통일 논의가 아니라 북한의 통치 방식과 체제가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지금처럼 독재 체제를 유지하고 시장 논리를 무시한 채 자력갱생을 고집하는 한, 북한 주민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지고 불만은 고조될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30~40배나 더 잘 사는 민주주의 국가, 한국이 휴전선 바로 남쪽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북한의 권력자들에게는 위협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러한 위협감은 우리가 아무리 통일에 관심 없다고, 그러니 2국가 체제로 평화 공존하자고 외쳐도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평화 달성의 방법은 억제력을 유지하면서, 비정상적인 북한 쪽에 맞추어 우리를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북한을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굴종은 진정한 평화의 길이 아니다. 민주주의와 자유, 인간의 존엄성을 국가 정체성으로 삼고 있는 세계 12위 경제 대국인 우리가, 우리의 가치와 원칙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북한도 점진적으로 그 방향으로 나아가게 설득하는 것이 정도다. 그것이 ‘원칙 있는 포용’의 길이다. 물론 이는 절대 쉽지 않다. 그러나 어렵다고 해서 ‘원칙’을 포기해버리면 우리의 정체성과 함께 대북정책에 대한 국제적 정당성과 지지기반을 잃게 된다. 반대로 ‘포용’의 노력을 포기해버리면 남북 간 단절과 적대의 길로 가게 되고, 통합과 평화를 위한 구심력은 확보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유념할 일은 북한 문제의 가장 일차적인 당사국은 한국이지만, 북한 문제는 이미 국제적인 문제가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핵탄두를 장착해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기 시작한 순간, 북한은 미국의 심각한 안보 문제가 되어버렸다. 그러한 북한 문제의 국제적 차원은 무시한 채, 남북끼리만 잘하면 평화가 온다는 것은 큰 오산이다.

 

결국 우리가 아무리 열망해도 남북 관계 개선은 북·미 관계 개선 없이는 힘든 게 현실이다. 그리고 북·미 관계의 개선은 한·미 관계가 얼마나 긴밀해지느냐에 따라 좌우될 수 있다. 남북관계가 가장 좋았던 1998~2000년 3년간은 한국의 김대중 정부와 미국의 클린턴 정부 간의 관계가 아주 좋았을 때였다. 이처럼 남북, 한·미, 북·미 세 가지 양자 관계는 서로 깊이 연계되어 있다. 그렇기에 미국이 그처럼 중국에 각을 세우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균형 외교를 외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에 북·미 관계를 개선하고 한반도 상황을 안정시키라고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편의주의적 발상이다. 외교란 결국 주고받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시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우리의 가치와 원칙을 의연하게 지켜가면서, 북의 도발을 막아낼 억제력을 튼튼히 유지하는 것, 서로가 원치 않는 최악의 우발상황을 막기 위한 대화 채널 가동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통일을 입으로 외치며 실속 없는 논쟁에 몰두하기보다, 멀리 보면서 통일을 감당해 낼 수 있는 역량을 조용히, 그리고 꾸준히 키워가는 것이다. 통일이 주어져도, 그것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중앙일보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전 외교통상부 장관

 

09-30 ‘조선인민군행진곡’ 정율성은 영웅대접,‘압록강 행진곡 한유한은 잊히고

▲정율성 기념사업 찬반 논란이 이어진 2023년 8월 28일 오후 광주 남구 정율성로 인근에서 보수단체인 자유통일당 관계자들이 기념사업에 반대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압록강 행진곡’광복군 한유한, 기념비도 없고 현충원에 안장 못해
군가기념사업회 ‘대한민국 군가의 태동과 발전’ 주제 제2회 군가 세미나
광복군 ‘한유한’과 북한군 ‘정율성’ 비교 등 주제발표와 토론 병행
"군가기념관 건립하고 한유한 ‘압록강 행진곡’ 등 기념비 세워야"

‘나가! 나가! 압록강 넘어, 백두산 넘어가자’ 대표적인 광복군가 ‘압록강 행진곡’의 노랫말이다.


지난 24일 오후 ‘전쟁기념관 이병형홀’에서는 광복군가와 초창기 우리 군가를 조명해 보는 뜻깊은 세미나가 열렸다. 군가는 군대 문화의 기본일 뿐만 아니라 한 나라의 안보 역사와 함께하는 국민의 노래인 만큼 미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 일본 등 군대를 보유한 여러 나라에서는 큰 의미를 두고 기억하거나 국민들에 애창돼 왔다. 반면 우리나라에선 유독 군가가 방치되다시피 해왔다.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 속에서 많은 군가들이 사랑받았는데도 전쟁기념관이나 다른 군사박물관에도 군사는 전시돼 있지 않다.

 

▲조선인민군 소령 복장의 정율성이 1947년 평양에서 부인 딩쉐쑹과 함께 찍은 사진. 민속원 제공

 

‘대한민국 군가기념사업회’(이사장 정덕기 전 백석대 음악대학장)와 ‘서울안보포럼’(이사장 김민석 전 국방부 대변인)이 공동 주관한 이날 세미나에서 민경찬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는 ‘군가 작곡가 한유한(본명 한형석)과 정율성(본명 정부은)’ 주제발표를 통해 "대부분 외국곡 선율에 가사를 붙였던 독립군가와 달리 한유한 선생은 광복군에 투신한 유일한 작곡가로 ‘압록강 행진곡’, ‘조국 행진곡’ 등을 창작한 군가 개척자였던 반면, 비슷한 연령대의 정율성은 중국 공산당원으로 활동하면서 중국군가 작곡가로, 또 광복 후에는 북한군 창건과 6·25전쟁 시기 ‘조선인민군행진곡’, ‘조선인민유격대전가’ 등 다수의 북한 군가를 짓고 활동하면서 북한군의 사기를 앙양시켰다"며 동시대 대표적 군가 작곡가의 대조적인 행적을 비교했다.

민 교수는 "한유한과 정율성은 같은 점도 다른 점도 많다. 1910년대 한국에서 출생했으며, 항일 군가 작곡가, 광복 후 대한민국에서 잊혀졌다가 뒤늦게 알려진 작곡가라는 점, 현재 기념사업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점이 닮았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다른 점은 한유한은 일제강점기 중국 국민당과 민족진영인 광복군에서 활동하다가 광복 후 대한민국으로 귀국했으며, 광복 후에는 음악 활동보다는 주로 아동연극 활동과 중국어 교수로 활동했고 국적은 대한민국"이라며 "그에 비해 정율성은 중국 공산당원 일원으로 마오쩌둥 부대에서 활동하다가 광복 후 북한으로 귀국했으며 북한에서 북한 군가를 개척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다가 중국으로 다시 간 중국 국적의 조선족 작곡가"라고 소개했다. 의병가 독립군가는 대부분 기존의 노래에 새 가사를 붙여 만든 노래인 데 비해 광복군가는 우리나라 사람이 작곡한 노래라는 특징이 있다. 1942년 한유한은 ‘국기가’(작사 이범석)라는 광복군가를 발표했다.

 

▲말년의 광복군 출신 천재 작곡가 한유한(본명 한형석). 한유한형석기념사업회 제공

 

민 교수는 "한유한이 작곡한 광복군가의 역사적 의미는 첫째 모두 광복군이 만든 가사를 노랫말로 작곡했으며, 둘째 우리나라 창작 군가의 시원이며, 셋째 광복군가라는 새 장르의 음악을 개척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한유한의 광복군가는 일종의 군가이지만, 군가 차원에 머물러 있지 않고 서정적인 노래, 예술성이 높은 가곡풍의 노래, 우리 음악의 미개척 분야인 서사적 가곡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며 "한유한의 광복군가는 대한민국 창작 군가의 시원이었다"고 분석했다.

한유한은 1996년 86세에 별세해 경남 양산의 솔밭산 공원묘지에 안장됐다. 본인 유언에 따라 현충원에 안장되지 않았다. 1963년 대통령 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가로 서훈됐다. 한유한은 2011년 국가유산청(전 문화재청)에 의해 한유한이 편찬을 주도한 ‘광복군가집 제1집’이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반면 정율성은 광복과 함께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결정에 따라 가족과 함께 북한으로 건너가 북조선로동당에 가입했고, 1946년 1월부터 황해도 도당위원회 선전부장을 맡음과 동시에 황해도 해주음악전문학교 설립을 주도했고 이후 김일성도 만났다. 1949년 ‘해방행진곡’‘조선인민군행진곡’ 등 군가를 작곡하기 시작, 6·25전쟁이 발발하자 ‘조선인민유격대전가’ 등 여러 편의 인민군 군가를 발표했다. 중국 하얼빈에 정율성 기념관이 있으며 북한에서는 1991년 ‘음악가 정율성’이란 영화를 제작해 상영하기도 했다.

1996년 10월 국립국악원이 정율성동요발표회를 개최한 것을 시작으로 2004년 광주시 양림동에서 정율성 생가 표지석 제막식, 2005년부터 광주에서 정율성 국제음악제, 2008년 생가 근처에 정율성 거리전시관이 설치됐다. 2009년 생가 부근에 정율성로라는 도로명이 생겼다.

 

▲지난 24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이병형홀에서 열린 ‘대한민국 군가의 태동과 발전’ 군가 세미나에서 김민석(왼쪽 7번째)과 민경찬(왼쪽 5번째)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등 관계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대한민국군가기념사업회 제공

 

특히 광주시는 대한민국에 항적한 정율성을 기린다는 명목으로 48억 원을 들여 동구 불로동 소재 ‘정율성 생가’ 추정지에 ‘기념공원’을 조성했다. 이 밖에도 ‘정율성 국제음악제’ ‘정율성동요제’ 등 온갖 명목으로 정율성 관련 사업을 진행하면서 세금을 쓰고 있었다. 이는 광주시만의 얘기가 아니었다. 그 산하 자치구인 남구 역시 또 다른 ‘정율성 생가’ 추정지 인근에 정율성로(路)를 만들고, 정율성 흉상을 해당 거리 초입에 설치했다. 광주 남구, 동구와 함께 또 다른 ‘정율성 고향’인 전남 화순군도 12억 원을 들여 ‘정율성 고향집’을 만들고, 정율성이 잠시 다녔다는 능주초에 ‘대형 벽화’와 함께 각종 기념 시설을 조성했다. 이 역시 전부 세금으로 만든 것들이었다. 광주시는 애초 문제의 발단이 된 ‘정율성 역사공원’을 포기하지 않았다. 광주시 남구 양림동 소재 정율성로 역시 그대로다.

토론에 나선 최영훈 전 공군정훈공보실장은 "적군의 군가를 지어 침략전쟁을 일으킨 북한군 정율성에 대해서는 기념관, 역사공원 등 여러 가지 기념사업을 벌이는 반면, 침략자들을 물리치며 불렀던 우리 군가는 방치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한마디로 두 사람은 거의 같은 연배의 남한 출신 천재 음악가라는 공통점을 가졌지만, 정율성은 골수 사회주의자로서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과 중국을 위해 살았던 사람이었고 한유한 선생은 광복군 출신 항일 독립운동가로서 우리나라의 독립과 발전을 위해 일생을 바친 사람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역사적 사실에 입각하여 드러난 정율성의 발자취는 기록상으로 명백하다. 골수 사회주의자이자 중국과 북한의 고위공산당원 겸 고위급 장교로 주요 사건의 시공간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으며, 6·25전쟁에 직접 참전했고, 북한인민군과 중국인민해방군의 사기와 전투의지를 고양하는 대표적 군가를 다수 작곡해 북한과 중국으로부터 사후까지도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 전 실장은 "대한민국을 결단내려는 공산적국의 군대와 군인들을 위해 작곡활동을 하며 살아온 사람을 단지 예술적 뛰어남과 명확하지 않은 항일운동 흔적, 남한 태생이라는 이유(중국, 러시아에서 활동하던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해방 후 자기 고향으로 간 점에서 고향인 광주를 버리고 북으로 간 것은 그가 진짜 공산주의자 였음을 간접 입증)만으로 전혀 다른 사람처럼 역사적 재평가를 한다는 것은 수용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현재 한국 내에서 정율성 기념 사업은 이미 특정 지자체와 단체에 의해 활발히 추진되거나 진행되고 있다"며 "음악제, 기념비, 도로명, 동상 건립, 출판, 전시관, 생가보존, 역사공원 설치 등 매우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우리는 주시해야 한다. 적어도 우리 군과 관련 기관 단체에서는 이에 대한 정확한 사실 인식과 확고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율성과 비교해 한유한 선생과 같이 대한민국 군대의 정통성과 부합하는 천재 군가 작곡가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국민은 많지 않다. 이것이 오늘의 서글픈 현실"이라며 "더욱이 한유한 선생은 김동진(육군가, 용진가, 6.25의 노래, 행군의 아침 등 다수 군가 작곡), 김성태(공군가 작곡)등 여전히 친일 논란의 족쇄에 갇혀있는 유명 작곡가들에 비해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모든 면에서 떳떳하고 고결한 인물이다. 듣기만 해도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웅혼한 감동을 주는 ‘압록강 행진곡’을 비롯해 여러 곡의 광복군가를 작곡한 그는 중국국민혁명군과 한국광복군의 최일선에 복무하며 얻은 체험과 영감으로 ‘압록강행진곡’을 작곡했기 때문에 더욱 우리들 가슴에 큰 감동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최 전 실장은 "한유한 선생과 같이 우리 대한민국과 국군을 위해 헌신한 분을 기념은커녕, 기억조차 못하고 있음을 우리는 반성해야 한다"며 "적어도 우리 군에서는 위대한 독립투사이자 애국자, 문화예술사업가, 천재 작곡가인 한유한을 기리고 추모하는 동상 건립, 전시회, 공연이나 학술행사 등 기념사업들을 꾸준하게 추진해야 한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군가의 역사와 작사자, 작곡자를 제대로 모르면 우리의 역사는 특정 세력에 서서히 점령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비극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세미나를 기획한 군가 전문가 정성엽 박사는 "선진 여러 나라와 달리 400곡에 이르는 우리 군가에 대해 어떤 정부 기관과 군사박물관도 기념하는 곳이 없는 것은 모순된 현실"이라며 "우리 군가의 가치 선양과 리뉴얼 작업을 통해 K팝 못지않은 K-밀리터리 송(Military Song)의 우수성을 발굴, 발전시켜 나가자"고 요청했다.
문화일보 정충신 선임기

 

09.30 통일 부정한 김정은·임종석의 '역설적 공로'

임종석 전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19일 '9·19 평양 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통일하지 말자"면서 북한이 주장하는 "두 개의 국가를 수용하자"고 발언해 역풍을 맞고 있다. 탈북민 출신 박충권 국민의힘 의원은 탈북민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3만4000명의 탈북민과 1000만 이산가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며 대국민 사과를 요구했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소개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반갑게 악수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오세훈 서울시장은 SNS에 '종북(從北)인 줄 알았더니 충북(忠北)인가'라는 글을 올려 임 전 실장의 주장이 북한에 충성하는 것 아니냐고 직격했다. 평소 언행이 신중한 오 시장이 이념적 선명성을 부각해 정통 보수층에 호감을 얻으려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요즘 여의도에서 '이재명 친위대'로 불리는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도 비판 대열에 불쑥 가세했다. "(통일을 강조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라면 김정은 위원장을 설득할지언정 동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느닷없이 '계엄 준비설'과 '이재명 테러설'을 제기해 럭비공 언행으로 구설에 오른 그가 모처럼 상식적 발언으로 눈길을 끌었다.

 

북 ‘두 국가론’에 반통일 맞장구

헌법에 반하고 반민족적이지만

영구분단 위기의식은 일깨워줘

 

 '갑자기 툭 던진 설익은 발상'이라는 김 최고위원의 지적처럼 임 전 실장의 통일 부정은 그냥 즉흥적인 실언일까. 1989년 전대협 3기 의장으로 임수경 비밀 방북을 주도했고, 민주화와 통일을 외쳤던 '386세대'의 상징성이 강한 임 전 실장이 역대 최악의 여름 폭염에 더위를 먹어 통일을 부정하고 "통일부도 없애자"고 소리쳤을까. 논란이 커지는 와중에 지난 26일 “(남북은) 누가 시비 걸 수 없는 두 국가”라고 쐐기를 박았으니 일시적 잠꼬대는 아닌 것이 분명해졌다.

 

▲1989년 7월 27일 판문점을 통해 귀환을 시도하던 당시의 임수경 씨와 문규현 신부.[중앙포토]

 
 

▲한양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1989년 전대협 3기 의장 시절에 임종석(任鍾晳,1966년생)은 한국외대 불어과 4학년이던 임수경(林琇卿,1968년생)의 비밀 방북을 주도했다. 두 사람을 오누이 관계로 오해하지만, 성씨가 다르고 통일 철학도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수경은 '두 국가론'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연합뉴스]

 

 지난해 12월 3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남북 관계를 '교전 중인 적대적 두 국가'로 새롭게 규정한 것이 임 전 실장의 이번 발언을 촉발한 것 같다. 북한 선전 매체가 김 위원장의 주문을 친절하게 안방까지 전달하는 요즘 시대에 옛날 고정간첩처럼 단파방송을 몰래 청취해 비밀 지령을 받을 필요도 없다. 문재인 정권 시절 민주당이 국가정보원의 대공 수사 기능과 역량을 축소시켰고 우리 사회의 안보 의식마저 약화됐다. 급기야 헌법 4조의 통일 조항을 부정하는 공공연한 발언이 나오는 지경이 됐다.

 

 그런데 김정은과 임종석의 '반통일론'은 같은 듯 다른 점이 엿보인다. 김 위원장의 통일 지우기는 세습 독재 정권의 생존이라는 절박한 상황에서 나온 '벼랑 끝 포석'으로 해석할 수 있다. 비록 핵무기를 손에 넣어도 남북한의 체제 경쟁에서 패한 상황에서 남북 교류와 통일 논의는 흡수 통일로 갈 수 있음을 김 위원장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배급을 못 주는 노동당보다 밥을 먹게 해준 장마당을 더 신뢰하는 '장마당 세대'가 북한군의 주축이 된 상황에서 '남조선의 자본주의 날라리풍 문화'의 침투는 체제에 큰 위협이다. 이렇다 보니 조부 김일성과 선친 김정일의 통일 흔적까지 거침없이 지우며 쇄국 통치로 퇴행하고 있다. 통일만 되면 배부르게 먹고 잘 살 수 있다며 북한 주민을 세뇌해오다 갑자기 정책을 180도 바꿔 통일을 부정했으니 겉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내부적으로 민심 이반이 상당할 것이다. 김 위원장의 통일 지우기는 정치적 도박인 셈이다.

 
 

▲2018년 4월 27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환담하고 있다. 문 대통령 옆에 임종석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앉아 있다. [연합뉴스]

 
 

▲2018년 4월 26일 당시 임종석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문재인 대통령의 초대 비서실장)의 언론 상대 브리핑 장면.[청와대사진기자단]

 

 반면 임 전 실장의 통일 부정은 소속 정당의 동료 정치인들의 공감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 반공이 국시(國是)로 인식되던 1986년 10월 전두환 정권을 향해 "이 나라의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어야 한다"고 당당히 외쳤다는 이유로 구속됐던 유성환 신한민주당 의원의 용기에 빗대기도 민망하다.

 

 그의 통일 부정 발언은 정치적 언행의 일관성 측면에서도 의심받을 만하다. 지난 2018년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을 맡았고. 2019년 정계 은퇴를 선언하면서 "민간 부문에서 통일 운동을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그 이후 뭐가 크게 달라졌나. 김정은의 통일 부정 선언이 나오자 불과 9개월의 시차를 두고 앵무새처럼 통일을 부정하며 맞장구친 것 아닌가.

 

 당장 실현하지 못하더라도 통일이란 전략적 목표는 절대 포기할 수 없다. 물론 통일을 외쳤던 86세대가 속속 은퇴하는 마당에 MZ세대를 위시한 요즘 젊은이들은 통일에 극도로 무관심한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의 통일 지우기에 맞장구친 임종석의 통일 부정론은 '역설적 공로'가 없지 않을 수도 있다. 통일을 부정한다고 해서 평화가 오기는커녕 영구 분단을 고착시키고, 북한 급변사태가 발생하면 중·러 개입의 여지만 키울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일깨워 준다면 말이다.

 

중앙일보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