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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論直說 2024-08/ 08.02 물구나무 서서 세상을 보는 사람들 - 08-30 좌편향 극복한 한국사 교과서, 역사교육 정상화 계기다

상림은내고향 2024. 8. 15. 13:58

 

正論直 2024-08/

08.02 물구나무 서서 세상을 보는 사람들

佛 따돌린 체코 원전 수주… 50년간 32기 연속해 지은 '반복 건설'의 승리
'덤핑' '덤핑' 주장은 봐야 할 부분 안 보고 보고 싶은 것만 보겠다는 것주장은 봐야 할 부분 안 보고
보고 싶은 것만 보겠다는 것

 ▲체코 신규원전 예정부지 두코바니 전경.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한국수력원자력이 프랑스를 따돌리고 체코 원전 프로젝트의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되자 일각에서 “덤핑으로 따냈다”는 말이 나왔다. 한수원은 확실히 프랑스 전력공사(EDF)보다 낮은 건설비를 제시했을 것이다. 세계원자력협회 자료를 보면 한국의 원전 건설 단가(㎾당 3571달러)는 프랑스(7931달러)의 45%밖에 안 됐다. 이런 가격 경쟁력으로 입찰 경쟁에서 이겼을 것이다. 이걸 덤핑이라고 하는 것은 물구나무 선 채로 보면서 세상이 뒤집혀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왜 저가의 출혈 입찰로 국민과 기업에 손해를 끼쳤냐고 비난하고 싶은 것이다.

 

한국은 지난 50여 년간 아랍에미리트 4기를 포함해 원전을 32기 지었고 4기는 짓고 있다. 1년 내지 1년 반에 한 기씩 꾸준히 원전을 건설하면서, 부품·설비를 조달하고 기술 인력을 키워내는 생태계를 유지해 왔다. 원자력 산업은 품질관리가 엄격하다. 특히 원자로 내 ‘1차 구역(nuclear island)’ 부품은 극심한 방사선과 고열·고압의 가혹한 환경을 견딜 수 있다는 보증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밸브 하나라도 1차 구역에 납품하려면 어느 용광로에서 언제 나온 쇳물로 제작한 것인지부터 기록해 관리에 들어간다. 샘플 밸브로 성능 시험을 통과한 경우에만 그 샘플과 같은 쇳물의 밸브들이 납품 자격을 얻는다. 각 부품을 누가 언제 어떻게 설치했는지에 관한 설치 족보도 만들어 추적이 가능케 해야 한다. 외국 자료를 보면 구조강 비용의 41%, 콘크리트 비용의 23%가 이런 품질보증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더구나 원전 부품은 대개 다품종 소량 생산이다. 지속 발주가 이뤄지지 않으면 부품 몇 개 팔려고 극도로 까다로운 품질관리를 견뎌내는 기업이 별로 없을 것이다. 10년, 20년 만에 한 번씩 원전을 건설한다면 부품을 만들어 팔겠다는 업체가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쌓아놓은 경험도 소진되고 말 것이다. 보증된 부품 공급 못지않게 정밀한 공정관리 능력도 중요하다. 공정 간 간섭을 최대한 줄여 여러 작업을 겹쳐 시행해야 건설비를 줄일 수 있다. 이런 노하우도 건설 사이클이 꾸준하게 돌아갈 때 쌓이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은 그런 인적, 시스템적, 제도적 지식의 축적을 쓰레기통에 갖다 버리겠다고 한 것이다.

 

생태계가 취약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원전을 건설하는 것은 기업의 무덤을 파는 일이다. 체코에서 우리와 수주 경쟁을 벌인 프랑스는 최근 20여 년 사이 핀란드에서 1기(올킬루오토 원전)를 건설했고 자국 내 1기(플라망빌)를 짓고 있지만 둘 다 참혹할 정도의 공기 지연과 경비 증가를 겪었다. 한국의 바라카 원전은 기당 평균 8년이 걸렸는데 올킬루오토 원전은 건설에 17년이나 걸렸다. 경험이 부족한 하청 기업들이 콘크리트 배합 등에서 실책을 거듭했다. 37억유로로 목표했던 건설비는 110억유로(약 16조원)로 뛰었다. 건설을 맡은 원전 기업 아레바는 신용 등급 강등을 거쳐 원전 사업 부문을 EDF로 넘겨야 했다. 역시 체코 원전 사업에 응찰했던 미국 웨스팅하우스는 30년간 신규 원전 수주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2009년 원전 네 기 건설을 시도했다가 두 기는 포기했고 두 기를 예정보다 7년 늦은 올해 겨우 완공했다. 두 기의 공사비는 원래 140억달러(약 19조원)로 예정했는데 최종 평가액은 340억달러(약 47조원)였다. 웨스팅하우스는 2017년 파산 신청을 거쳐 2018년 캐나다 자산 운용사로 넘어갔다.

 

프랑스 원전(EPR)은 2중 격납 구조, 미국 원전(AP1000)은 피동 안전 설계를 처음 적용한 이른바 초(初)호기였다. 반면 한국의 APR1400은 국내외에서 8기 건설을 완료했고 4기를 건설 중인 N차 호기이다. 입증된 설계로 여러 호기를 건설하기 때문에 반복 건설을 통해 설계와 공정이 매번 개선되고, 시행착오가 줄고, 부품·설비와 건설 과정의 표준화가 가능하고, 기자재를 싸게 조달하고, 재고 관리가 용이하고, 경험·지식 축적으로 공기가 단축되고, 설계·인허가 비용 부담을 여러 연속 호기가 질 수 있고, 자본 조달 비용은 낮출 수 있다.

 

원전의 안전도 최신 설비를 겹겹이 갖다 붙여 매번 새 노형을 다시 설계하기보다, 표준 노형을 누가 더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효율적으로 건설하고 운전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바로 이런 부분에서 한국 원전을 배워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항공 여행 안전이 개선된 것은 비행기 설계가 개선된 점도 있겠지만 항공사들이 승무원들을 끊임없이 훈련시키고, 안전 문화를 정착시키고, 항공 당국도 항공 통제사들을 철저히 교육한 덕분이 크다고 한다. 물구나무 서서 세상을 보는 사람들에겐 이런 관점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조선일보 한삼희 환경칼럼니스트

 

 

08-02 치수·용수 댐 건설은 미래 위한 투자

권현한 세종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
 

정부가 14년 만에 새로운 댐을 건설하기로 하면서 이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기후변화와 급속한 인구 및 산업구조 변화로 인해 치수와 용수 확보가 중요한 국가적 과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이번 댐 건설의 필요성과 타당성은 분명한 이유가 있다.

댐 건설의 필요성은 물 관리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있다. 강수 패턴의 변화와 극단적인 기상 현상은 빈번해지며, 미래에는 강수 변동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감사원의 ‘기후 위기 적응 및 대응 실태’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인한 미래 물 부족과 홍수 위험도 증가 대비가 미흡하다고 한다. 이는 정부가 미래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함을 시사한다.

한편, 반도체 및 데이터센터 등 물 집약적 산업의 용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이러한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면 국가의 미래 경쟁력에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2023년 남부지방 대가뭄 사례에서 보듯이, 당시 광주·전남지역 물 공급을 담당하는 주암댐은 가뭄 심각 단계에 있었고, 여수산업단지 물 공급에 차질이 발생하여 지역사회에 막대한 사회경제적 피해를 초래했다. 따라서 댐을 통한 안정적인 수자원 공급은 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국가 경쟁력을 더 한층 강화하기 위한 투자다. 그러나 댐 건설에 따른 우려 사항도 적지 않다.

첫째, 지역사회와의 갈등이다. 주민들의 이주·보상 문제 등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지역사회와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그들의 생활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댐 계획과 관련된 의사결정 과정에서 주민들이 배제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환경적 영향이다. 댐 건설은 수생태계, 생물 다양성, 수질 변화 등을 초래할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철저한 환경영향평가와 보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법적 요건을 충족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주민들과의 소통을 통해 현지 생태계와 조화로운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댐의 필요성을 입증하기 위한 투명하고 과학적인 분석과 정보가 제공돼야 한다. 정확한 자료와 평가 모델을 통해 댐 건설의 필요성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하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 물 수급 평가 절차, 물 수요 예측, 생태계 영향평가, 기후변화 시나리오 활용 측면에서 다각적·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댐은 계획에서 실행까지 최소 10여 년이 걸리는 만큼 과학적으로 충분한 근거가 있다면 정부가 국민을 설득하고 시급히 진행해야 한다. 덧붙여, 기후변화에 따른 장기적인 영향을 고려한 유연한 설계와 기술 혁신도 중요하다.

결론적으로, 정부·민간·지역사회가 협력해 예상되는 문제들을 철저히 검토하고, 균형 잡힌 접근 방식을 통해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면, 이번 댐 건설 사업은 미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러한 협력과 철저한 계획을 통해 댐 건설이 가져올 긍정적인 효과를 최대화하고,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 성공적인 댐 건설은 기후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며, 물 관리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지역사회와 국가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문화일보 

 
 

08-05 TSMC 매출 제친 삼성 반도체 앞길

박남규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인공지능(AI) 시장에서 반드시 필요한 최첨단 반도체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삼성전자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미국, 일본, 독일, 네덜란드, 중국 등이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려고 반도체 산업에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런 속에서 최근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가 거의 2년 만에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삼성전자는 이번 2분기 매출 74조7000억 원 중에서 38.5%에 해당하는 28조5000억 원, 영업이익 10조4000억 원 중에서 61.7%에 해당하는 6조4000억 원을 반도체 사업에서 창출했다. 매출액 기준으로는 약 2년 전 대만 파운드리(위탁생산) 기업 TSMC에 빼앗긴 반도체 사업 1위 자리를 되찾았다.

삼성전자가 이런 성과를 창출한 배경엔 매년 수십조 원 이상의 재원을 연구개발에 투자해 독보적인 최첨단 기술력을 선도했고, 국내 시장에도 탄탄한 반도체 생태계가 구축돼 있기 때문이다. 메모리 반도체는 물론이고 파운드리 분야에서도 세계 최초로 개발한 GAA 3나노 기술을 바탕으로 최첨단 선단공정 경쟁에서 TSMC를 따돌리고 있다. 최근에는 대규모 글로벌 고객사들이 GAA 3나노 기술에 대해 경쟁적으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앞날이 밝기만 한 것은 아니다. 최첨단 로직칩과 메모리를 필요로 하는 AI 시장은 천문학적인 투자가 필요한 반면, 미국 엔비디아를 제외하면 아직 대규모 이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불확실한 경제성 때문에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도 앞다퉈 하드웨어 투자를 주도하던 초창기와는 달리, 최근엔 투자 시기를 늦추거나 투자 규모를 축소하려 한다.

둘째, 대표적인 반도체 기업들의 최근 실적들이 예상보다 저조한 편이다. 인텔은 1만5000명을 해고하고 배당 중단 방침을 발표했으며, AMD의 2분기 영업이익은 수천억 원에 불과했고, 기술사용료를 주된 매출로 확보하는 Arm 역시 실망스러운 실적을 발표했으며, 초고가 AI 로직칩을 사실상 독점하는 엔비디아가 대표적인 저가 영역인 PC 시장 진출을 고민한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셋째, 하반기 세계 경제 전망 역시 만만치 않아 보인다. 코로나 팬데믹 사태 이후 세계 경제 성장을 주도하던 미국 경제가 빠르게 식고 있으며,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을 대표하는 나라들의 실업률이 7%를 넘었다. 아시아에서는 중국의 부동산 위기가 자국 내 다른 산업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으며, 최근 금리를 인상한 일본 역시 본원적 소비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 비록 인도와 멕시코 등의 경제 성장이 눈에 띄지만, 세계 경제를 뒷받침하기에는 규모도 작고 성장 속도 역시 충분하지 못하다.

반도체 산업의 미래는 한국 경제의 미래이다. 삼성전자는 최첨단 반도체 분야에서 미래 기술에 대한 선도적 투자와 동시에 세계 최고의 인력을 확보해 주요 경쟁사와 현격한 기술 격차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미국, 일본, 독일 등은 자국의 반도체 기업들에 천문학적 규모의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이제 한국 정부도 반도체 사업을 전 세계 경제라는 큰 관점에서 판단하고,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을 주도하는 데 필요한 대규모 지원을 과감하게 실천해야 한다.

문화일보 

 

08.07 재판 지연은 국민의 헌법상 기본권 침해다

 헌법 제27조 3항에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신속한 재판은 국민의 권리이자 국가의 의무다. 오랫동안 재판에 시달린 사람이라면 소송 비용 증가, 생업 중단, 사업 기회 박탈 등으로 큰 어려움을 호소한다. 정신적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까지 힘들어진다.

 

중소기업 A사는 밀린 대금을 받으려고 거래 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냈는데 재판 지연으로 자금난을 겪었다. 고금리로 빚을 내야 했고, 신용등급 강등과 사업기회 축소로 파산 위기에 처했다. B씨는 세금이 부당해 소송을 냈지만, 재판이 늦춰지는 사이에 사망했다. 피고인 C는 재판 지연 때문에 구속 기간 만료로 석방됐다가 다시 범죄를 저질렀다. 재판 지연을 ‘또 다른 이름의 패소 판결’이라 부르는 이유다.

 

재판 지연에 따른 비용·고통 막대

법관 증원하고, 자존감 키워주고

재판에 ‘리걸 테크’ 적극 활용하길

 

  ‘사법 연감’에 따르면 2022년 민사 본안사건 중 처리 기간 2년을 초과한 1심 합의 사건은 전체 3만7595건 중 5926건이었다. 상고심 사건은 2만3924건 중 4515건이었다. 형사 공판사건 중 처리 기간 2년을 초과한 1심 합의 사건은 1만9800건 중 712건이었고, 상고심 합의 사건은 3531건 중 49건이었다.

 

2022년 대한변호사협회의 설문조사에 응답한 변호사의 약 90%가 최근 5년간 재판 지연을 경험했다. 법원은 누가 무엇을 하는 곳인가. 법관이 재판을 통해 정의를 실현하고 인권을 구제하는 최후의 보루다. 재판이 늦어지면 어떻게 되겠나. 재판 지연은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키울 뿐 아니라 국가의 권위와 위상을 위협한다.

 

법원이 영상재판 활성화, 감정제도 개선, 법원장의 재판 투입, 재판부 교체주기 연장 등 신속한 재판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성과가 크지 않다. 복잡한 사실관계에 쟁점이 많고 어려운 사건이 증가하는 와중에 법관 부족과 고령화, 기일 미지정과 잦은 기일변경 등이 오랜 원인이다. 젊은 법관에겐 ‘워라밸’을 무시하고 헌법적 소명만을 강요할 수 없는 실정이다.

 

그 외에도 법률 정보 대중화와 권리 의식이 높아지면서 당사자가 납득하는 재판 절차 진행이 중요해졌다. 판사들은 놓치는 주장이나 증거가 없는지 절차에 신중을 다해 살핀다. 판결문의 이해가 쉽도록 다듬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러나 어떤 이유도 재판 지연의 변명이 될 수는 없다. 신속한 재판의 부재는 당사자에 대한 직접 피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건을 거리로 끌고 나가 정치적 사건으로 만들기도 한다. 불신에 더해 사회적 갈등과 분쟁을 키우고 진실과 정의를 왜곡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법과 양심에 따르면서 신속하게 재판하려면 법관의 자존감이 높아야 한다. 탁월한 실력에 투철한 사명감을 갖춘 법관이 많아야 한다. 21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된 법관 증원을 위한 입법을 22대 국회가 다시 서둘러야 한다.
 
 

사법 시스템 총량을 확대하는 것만으로 신속한 재판이 당연히 담보되지는 않는다. 사법 시스템 자체를 정비해야 한다. 정당한 이유 없는 재판지연에 대해 경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면 어떨까. 많은 노력에도 재판이 지연되고 당사자에게 피해가 생기면 보상해야 한다.

 

유사 판례 추천 등 사건 검토에 인공지능(AI) 등 ‘리걸 테크(Legal tech)’를 이용하면 좋겠다. 민사재판에는 변론 준비기일 의무화를 도입하는 것도 생각해보자. 서면 제출 일정, 증인과 서증 등 입증 순서와 시간 계획을 미리 정하면서 재판이 시작된다. 영미법의 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해 미리 증거를 서로 공개하고 쟁점을 정리하는 과정을 두는 것도 괜찮겠다.

 

형사재판은 피고인 신병과 피해자 인생이 걸린 만큼 신속한 재판이 매우 중요하다. 파급효과가 크고 관련 당사자가 많은 사건일수록 갈등의 사회화를 막기 위해 재판을 서둘러야 한다. 구속 기간 만료로 석방돼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도록 하면 안 된다.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재판부에 재판 지연을 경고하고 구속 기간 안에 판결을 의무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만성적 재판지연은 민주주의 마지노선인 사법부를 무너뜨리고 국가존립을 위협한다. 신속한 재판만이 국민의 정신적·경제적 피해를 줄이고 자유와 권리를 보장한다.


 중앙일보 이상직 대한변호사협회·IT블록체인위원장

 
 

08.08 TBS "이달 월급 주면 자금 바닥…김어준, 사재 털어서라도 도와야"

▲이성구 TBS 대표대행이 8일 오전 서울 중구 성공회빌딩에서 열린 미디어재단 TBS 기자설명회에서 재단 경영 위기 대응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스1

 

지난 6월부터 서울시 지원이 끊긴 TBS가 결국 폐국 위기에 몰렸다. 이성구 TBS 대표이사 대행은 8일 대한성공회에서 기자설명회를 열고 “서울시 예산 지원 중단과 출연기관 해제 행정절차 진행으로 개국 34년 만에 폐국 위기에 놓였다”며 “시민 방송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지원을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TBS는 지난 6월 1일부터 서울시에서 운영 예산을 받지 못하고 있다. 또 출연기관 해제 행정절차도 진행되고 있다. TBS는 2020년 서울시 산하 사업소에서 출연기관으로 독립하면서 재정 독립을 강조했지만, 한 해 예산의 70%(약 300억원)에 달하는 서울시 출연금에 의존해왔다.

 

자구책으로 지난해 360명이던 직원 수를 250명까지 줄이고, 지난 6월부터는 무급 휴가제 등을 통해 인건비를 25%정도 감축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 직무대행은 “처음에 거대 방송처럼 출발해 임차 사옥도 10개 층 이상을 써서 임대료만 3억원이 넘는 등 굳어진 고비용 구조”라며 “20년 이상 공익방송으로 운영하다 보니 수익창출에 익숙치 않다”고 설명했다.

 “9월부터 폐업 수순 밟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 11월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TBS 앞으로 시민들이 오가고 있다. 뉴스1

 

이 대행은 지난 7일 서울시의회 의장에게 긴급 공문을 보내 “9월부터 대규모 임금 체불 등으로 방송사 유지가 불가, 폐업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연말까지 버틸 수 있는 최소한의 금액인 20억원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대행은 “20억원으로 연말까지 유지할 수 없지만, 우리도 최대한 노력하고 비용을 절감해 연말까지 버텨보겠다는 간곡한 표현을 담았다”며 “상업광고 제한, 지상파방송 재허가 등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TBS 지원을 중단하는 것은 시민의 자산을 훼손하고 의무를 다하지 않는 일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강양구 TBS 경영지원본부장은 “현재 보유한 자금이 10억원가량이고, 8월 월급을 지급하고 나면 더는 지급할 수 있는 인건비가 없다”며 “9월 이후 TBS는 지속 방송하기 어려운 상황이고, 기적 같은 일이 생기지 않으면 폐업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는 것이 객관적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어준, 사재 털어서라도 TBS 도와야”

 방송인 김어준씨에 대한 법적 조치도 거론됐다. “김어준이 만든 불행한 유산”을 청산하는 차원에서다. 이 대행은 “과거 정치적 편향성 논란을 일으킨 분들이 지금 회사를 나갔고, 심지어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는데 남은 직원들은 그 멍에로 인해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은 정말 부조리하다”면서 “저는 그들이 사재를 털어서라도 우리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어준씨가 뉴스공장을 통해 상당한 수익을 올리고 있어 ‘김어준의 뉴스공장’ 상표권 문제가 제일 중요하고, 그밖에 범법 사실이 있다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08.10 한국도 외국대리인 등록법 제정과 간첩죄 개정 시급하다

▲미 중앙정보국(CIA) 분석관 출신의 영향력 있는 대북 전문가인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 미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한국 정부를 대리한 혐의로 미 연방법원 재판에 넘겨졌다. /미 연방검찰

 

존리 초대 우주항공청(KASA) 우주항공임무본부장이 미국 정부에 외국대리인(Foreign Agent)으로 등록했다고 한다. 존리 본부장은 한국계 미국인으로 지난 5월 설립된 우주항공청에서 연구·개발을 총괄한다. 1938년 만들어진 미국의 외국대리인등록법(FARA)은 미국에서 외국 정부를 위해 활동하는 인사들은 법무부에 등록해 활동을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존리 본부장은 앞으로 자신이 한국 정부에서 받는 월급은 물론 언제 어디서 미국 정부의 누구를 만났는지까지 신고해야 한다. 지난달 한국계 수미 테리 미 외교협회 선임 연구원은 외국대리인으로 등록하지 않고 한국 정부를 위해 일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한국판 나사(NASA)’를 표방한 우주항공청이 미국 국적자를 발탁한 것은 30년 NASA에서의 경력과 인맥을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외국대리인등록법의 규제를 받게 되면 한국 정부의 우주개발 상황이 사실상 그대로 미국에 노출될 수도 있다. 미국은 우주개발에 있어 협력 대상이지만 우주항공청 핵심 관계자의 활동이 외국에 노출되는 것은 문제라고 봐야 한다.

 

미국이 동맹과 적국에 상관없이 과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정보 보호를 하는 것과 달리 한국은 국내에서 외국을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을 파악하고 관리하는 제도가 전무한 상황이다. 미국·중국·일본 등 주요 국가들은 한국에서 자신들의 국익을 위해 활동하는 대리인들을 두고 이들을 통해 무제한으로 국내 인사들을 접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안보 정보는 물론 반도체 같은 첨단 산업 정보들까지 유출되고 있지만 우리 대응은 사후 대처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도 외국대리인등록법을 도입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국정원은 최근 이 법 제정 및 국가안보기술연구원법, 간첩죄 적용 대상 확대를 위한 형법 개정 등 정보 역량 강화 방안을 국회에 보고했다. 현행 형법은 간첩죄 적용 대상을 ‘적국’인 북한에 기밀을 넘긴 경우로 한정하고 있는데, 미국을 포함해 모든 외국에 국가 기밀을 넘기면 간첩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여야는 이 법 도입에 큰 이견을 보이지 않고 있다. 간첩죄 적용 확대를 위한 형법 개정도 국익 보호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여야 간 입장 차이를 충분히 좁힐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8-12 광복절 앞두고 독립기념관장 논란, 어쩌다 이 지경 됐나

광복절은 대한민국 최대 경축일이지만 자칫 국민 분열의 씨앗이 될 수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국가보훈부 승격 등 윤석열 정부의 노력도 희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에 반발해 대표적 보훈단체인 광복회 등은 물론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조차 정부 기념식 불참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광복회와 25개 독립운동단체로 구성된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 등은 별도의 광복절 행사를 열겠다고도 한다.

이 문제의 발단은 김 관장이 고신대 석좌교수 등 학자 신분일 때 ‘친일적 주장’을 했다는 것이다. 광복회 등은 1948년 건국 주장으로 1919년 임시정부 정통성을 훼손했다는 식의 주장을 하고, 야당 등은 일본 식민지배가 한국 근대화에 도움이 됐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인사라며, 이른바 역사전쟁으로 확전할 태세다. 김 관장의 논문과 발언 등을 종합하면 이런 비난은 과도한 것으로 보인다. 김 관장 스스로 뉴라이트 인사가 아니라고 밝혔고, 국가보훈부는 절차상 하자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또 다른 원인의 하나는, 독립운동 단체가 추천한 인물이 아니라는 불만이다. 광복회는 김구 선생 장손 등 독립운동가 후손 2명이 지원했음에도 독립운동과 무관한 인물이 임명됐다고 주장한다. 김 관장은 독립운동 전문학자로 보기도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정부 측은 독립운동단체 등의 의견도 수렴했다고 밝혔지만, 광복회 등의 입장은 달라 보인다. 그렇다고 권력 핵심부가 개입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어떤 경우에도 분열된 광복절 기념식은 없어야 한다. 그리고 정부와 당사자도 결자해지 방법을 찾기 바란다.

문화일보 사설

 
 

08.13 "시간에 쫓겨 '전교조 합법화' 판결했다"는 前 대법관의 고백

▲김명수 대법원장이 21일 전원합의체 선고에 참여하고 있다. /대법원

 

안철상 전 대법관이 서울대 법학연구소에 기고한 글에서 2020년 대법원의 ‘전교조 합법화’ 판결이 “선고 기일에 쫓겨 내린 결론”이라고 했다. “본질적 쟁점에 관한 판단을 회피한 것”이라고도 했다.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 합의체에서 내린 이 사건 결론은 대법원에 접수된 지 4년 만에, 소송이 시작된 지 7년 만에 나온 것이다. 이렇게 오래 끈 사건인데도 대법관들이 충분한 검토 없이 시간에 쫓겨 선고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2013년 박근혜 정부가 해직 교사가 가입된 전교조에 대해 ‘법외(法外) 노조’라고 통보하면서 시작됐다. 노동조합법은 해직자 등 근로자가 아닌 사람의 가입을 허용하면 노조로 보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1·2심은 이에 따라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김명수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은 이를 뒤집고 정부 처분이 무효라고 판단했다. 법외 노조 통보 절차가 노동조합법에 근거 조항을 두지 않은 상태에서 시행령을 통해 이뤄졌다는 이유였다. 지엽적 절차를 문제 삼아 전교조에 면죄부를 준 것이다. 안 전 대법관도 무효 쪽에 섰는데 당시 대법원이 어떤 경우에 법외 노조 통보를 할 수 있는지 등 핵심 쟁점을 제대로 따져보지 않았다고 뒤늦게 고백한 것이다.

 

대법원 재판은 전원 합의체 재판, 대법관들이 4명씩 소부 3개를 만들어 재판하는 ‘소부 재판’으로 나뉘는데 거의 모든 사건을 소부에서 심리한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사건이 넘치면서 소부 재판이 파행적으로 운영된다는 지적을 받았다. 대법관 한 명이 한 해에 처리하는 사건이 2년 전에 4000건을 넘어섰으니 재판이 제대로 될 리 없다. 반면 전원 합의체는 소부에서 의견이 일치하지 않거나 중요 판례를 바꿀 때만 열린다. 보통 한 해 20건을 넘지 않는다. 그렇게 공을 들이는 재판인데 이 재판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 심각한 일이다.

 

대법원도 이 문제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역대 대법원장들이 여러 차례 역점 사업으로 상고심 개혁을 추진했지만 다 실패했다. 상고심 사건 중 단순 사건은 상고법원이, 중요 사건은 대법원이 맡는 방안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도 임기 막판에 상고심 개혁 시늉을 냈지만 유야무야됐다. 우리 사회가 빨리 해결해야 할 숙제다.

조선일보 사설

 

08.13 전기차가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안전 우려 불거진 전기차
배터리 원료 채굴·가공에서 심각한 환경 훼손과 착취 논란
공급망은 중국이 완전 장악
세금으로 전기차 늘리는 게 탄소 중립 해법 될까 의문
차라리 경쟁력 위한 R&D 지원을

 ▲지난 5일 오후 인천 서구 청라동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 현장에서 합동 감식을 마친 경찰이 화재가 발생한 전기차를 옮기고 있다./연합뉴스

 

기후 변화 대응의 총아로 여겨왔던 전기차가 기로에 섰다. 엔진 없이 달리는 전기차에 대한 열광이 사라지며 전기차 시장이 캐즘(수요 정체기)에 빠진 가운데 인천 청라 아파트 화재 사건으로 안전성에 대한 우려라는 또다른 암초를 만났다. 멀쩡하게 주차된 전기차에서 연기가 치솟아 오르는 장면도 충격적이지만, 전기차 한 대 화재로 차량 40여 대가 전소되고 600여 대가 그을음·분진 피해를 입은 것에 이어 전기와 식수 공급 중단으로 470여 가구가 졸지에 이재민 신세가 된 것은 전기차 배터리 화재의 파괴력을 실감케 했다. 전기차가 기후 변화의 주범으로 몰린 탄소배출을 줄이기는커녕 자칫 아파트 주거가 많은 공동체의 기반을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다는 현실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전기차가 과연 친환경차의 모범인가’라는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한다. 전기차 운행에서는 탄소배출이 ‘제로(0)’이지만 동력원인 전기 생산과 핵심 부품인 배터리의 원료 채굴·가공, 폐차까지 전기차의 생애 전주기 평가(Life Cycle Assessment)를 해보면 전혀 이야기가 다르다는 것이다. 우선 배터리 생산을 위해서는 리튬·코발트·니켈·흑연 등 다양한 광물과 소재가 필요한데, 전기차 한 대의 배터리(약 450㎏) 생산을 위해서는 무려 100배 이상의 광석을 가공해야 한다.(미국 맨해튼 연구소 분석) 철광석에서는 60~70%의 철을 뽑아내지만, 이 희귀 광물들은 철광석 가공 때보다 3~4배나 많은 에너지를 쓰고도 추출률은 1%도 채 안 된다. 리튬 1kg을 생산하기 위해 무려 2200리터의 소금물을 정제해야 하고, 코발트 1kg을 생산하는 과정에서는 860kg의 폐기물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아프리카·인도네시아·칠레 등 주요 생산국에서는 광범위한 지역에서 회복하기 힘든 환경 훼손이 빚어지고 아이들을 열악한 환경의 채굴 작업에 동원하는 노동력 착취까지 벌어진다.

 

게다가 전기차, 배터리, 원료로 이어지는 전기차 공급망에 대한 중국의 장악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중국은 자국 시장에 진출한 미국·독일 자동차 기업으로부터 제조 기술을 전수받는 처지였지만 지금은 강력한 배터리 공급망을 앞세워 미국·유럽의 자동차 산업을 위협하는 경쟁자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은 현재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이자 생산국이며, 배터리도 60% 이상을 생산한다. 특히 흑연·코발트·니켈·리튬 등 배터리 원료와 양극재·음극재·전해질 같은 핵심 부품의 공급망은 중국이 독점하고 있다. 이 희귀 광물들의 주요 산지는 콩고·짐바브웨·남아공 등 아프리카 국가들이지만 중국은 오래전에 돈 보따리를 풀어 광산 채굴권을 장악해 버렸다. 뉴욕타임스도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중국 중심의 공급망 탈피를 외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중국 기업들과 협력하지 않고는 새로운 공급망을 구축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당장 독재 국가 중국이 아니면 툭하면 내전이 발생하고 게릴라가 설쳐대는 아프리카나 인도네시아의 밀림, 해발 4000m의 남미 소금 호수에서 일할 사람을 찾는 것조차 쉽지 않다.

 

전기차에 대한 환상이 깨지면서 세계 각국이 전기차 보급을 위해 막대한 구매 보조금을 뿌려온 데 대해서도 실효성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서민들이 고금리·고물가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부자(富者)들의 ‘세컨드 카’ 구매에 세금을 지원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한국도 작년 약 3조원의 보조금을 썼는데, 이 금액이면 15년 동안 미뤄져온 위례신사선과 서부선 경전철을 동시에 건설할 수 있다. 또 정부의 탄소중립 계획대로 2030년까지 450만대의 전기차 전환을 달성하려면 앞으로도 수십조원의 보조금을 써야 한다. 그렇게 돈을 쓰고도 올해같이 더운 여름이 계속된다면 암담할 것이다.

 

전문가들은 차제에 탄소중립 대책도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중국 의존도만 심화하는 전기차의 양적 확대보다는 대중교통과 자전거 중심으로 전환하고 정부 보조금 역시 전기차의 안전성과 기술 경쟁력 확보를 위한 R&D(연구개발) 지원을 늘리는 방향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조형래 부국장

 

08-14 억지 친일 잣대로 ‘광복절’ 두 쪽 내는 이종찬 광복회

대한민국 정부가 주최하는 79주년 광복절 공식 경축식과 관련, 광복회와 더불어민주당 등이 ‘보이콧’을 예고하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했다. 광복회는 15일 오전 10시 백범기념관에서 별도의 기념식을 갖기로 했고, 독립기념관은 개관 뒤 처음으로 자체 경축식을 열지 않기로 했다. 실제로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지켜봐야겠지만, 지금까지 상황을 종합하면 광복회 측에 더 심각한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14일에도 “(김구 선생을 테러리스트로 만들려는) 거대한 음모가 진행 중”이라면서,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은 그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급기야 광복회는 김 관장이 일본 식민지배 합법화를 꾀하는 ‘뉴라이트’ 계열 인사라고 주장하면서, 9가지 뉴라이트 감별법도 제시했다. 이 회장은 당초 ‘1948년 8·15 건국절’ 제정 추진 중단을 내걸었지만, 윤석열 정부는 물론 김 관장도 그런 사실이나 계획이 없다고 밝히자 김 관장 퇴진을 콕 집어 요구하고 있다. 국민 중에 일제 식민지배를 옹호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당시 상황에 대한 입장과 분석은 다를 수 있다. 특정인의 친일 행적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일본과 대등한 위상을 확보한 현시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광복회 측 입장은 독선에 가깝다. 김 관장은 스스로 뉴라이트 계열이 아니라고 한다. 백선엽 장군을 친일파라고 주장하는 친일 몰이를 비판한 것도 상식 수준이다. 뉴라이트=친일=매국 세력이라는 식의 매도 역시 문제다. 이영훈 서울대 명예교수가 중심이 된 뉴라이트 학파는 일제 강점은 비판하지만 식민시절 근대화된 부분에 대해선 있는 그대로 평가하자는 것으로, 역사적·학문적 가치가 존재한다. 감별법은 독선의 극치다. 임시정부와 대한민국 정부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대통령을 ‘건국 대통령’으로 호칭하면 친일파인가.

이러다 보니 이 회장이 밀었던 인사가 탈락한 데 대한 반발이란 주장도 나온다.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죽창가 세력’의 정치적 악용 조짐도 보인다. 광복회가 진정으로 나라를 생각한다면, 솔로몬 재판의 생모 같은 대승적 결단을 해야 한다. 김 관장의 적격 여부는 그 뒤에 따지면 된다.

문화일보 사설

 
 

08-14 광복 79주년, 기적 끝나게 해선 안 된다

최광 대구대 경제금융학부 석좌교수, 前 보건복지부 장관

광복과 건국 이래 대한민국이 성취한 것은 한마디로 기적 중의 기적이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기적은 기본적으로 불굴의 정신을 가진 국민과 국가 지도자들이 합심해 노력한 결과이다.

우리 역사를 뒤돌아보면 매 순간 알 수 없는 기적의 연속이었다. 해방 후 국토분단의 와중에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 건국된 것, 해방 후 좌파 공산주의가 우세하던 이념 공간에서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체제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된 것, 건국 후 채 2년이 안 된 시점에 공산 세력의 전복 적화 야욕을 분쇄해 나라가 보전된 것,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 기적을 이뤄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국가로 우뚝 선 것. 이 모두가 체계적 노력의 결과이기보다는 무언가 신의 섭리가 작용한 기적이다.

그런데 그 축복 받은 기적의 나라가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해 있다. 모두 크게 염려하고 있다. 다들 이건 아니라고 한다. 무언가 체계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더 조직적인 위기 극복을 위한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위기의 내용과 심각성에 대한 체계적인 논의 자체는 찾아보기 힘들다. 모두가 문제를 회피하고 외면한다. 다들 하는 체만 한다.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그 누구도 진정성으로 국민을 감화시키지 않는다. 그러면서 내뱉어서 들리는 것은 요설(妖說)뿐이다.

오늘의 위기는 그 내용이 무엇이든 정치 지도자와 지성인의 책임이다. 어떻게 하면 나라를 지키고 번창시켜 국민이 잘살 수 있을지에 대한 해답이 나와 있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권력 쟁취와 개인 영달에 빠져 바른길을 애써 외면하면서 혹세무민(惑世誣民)하고 있다. 작금의 정치는 민생을 도탄에 빠뜨리고 나라의 멸망을 가져온 조선 시대 사색 당쟁보다 더한 지경이다. 통합에 앞장서야 할 정치가 분열을 선동하고 있다.

위기의 내용과 심각성을 그나마 인식하는 일부 지성인은 자족하며 엄중한 현실을 애써 외면한다. 사람은 사고에 따라 행동하고, 그 결과로 역사가 이뤄지기에 역사를 바꾸려면 구성원의 사고를 바꿔야 한다. 지도자와 국민의 사고를 바꾸는 일은 지성인의 책임이다.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혜안을 갖게 된 지성인 중 나라의 광복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투사들처럼 작금의 국가 위기 극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각오가 된 사람이 있으면 한번 용감히 나서 보라.

정치인과 지성인들에게 다음 두 가지를 당부한다.

첫째, 두 집단이 합심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것을 넘어 적화통일까지 도모하는 종북 주사파 세력의 준동을 차단하고 그 세력을 척결해 달라. 3대에 걸친 진짜 1인 독재국가인 북한에 대해 침묵을 넘어 찬양하는 것이 길거리에서 공공연히 연출되는 오늘의 현실은 이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부끄러운 희극이다. 둘째, 정치인과 지성인이 역사·철학·문학·예술·과학이라는 교양을 몸에 지녀서, 일반 국민과는 비교도 안 되는 압도적인 세계관과 종합적인 판단력으로 평소엔 나라를 반듯하게 이끌고, 나라가 위기에 처하는 순간엔 나라를 위해서 기꺼이 생명을 바칠 수 있는 기개(氣槪)를 보여 달라.

또 한 번의 ‘기적’이 절실한 지금, 79주년 광복절 기념식을 둘러싼 분란이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한다.

문화일보

 
 

08-14 전력 소비 100GW 시대, 더 급해진 추가 원전과 송전망 확충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전력 소비가 역대 최고치를 속속 경신하고 있다. 전력 여유분을 나타내는 예비율도 한 자릿 수로 떨어지는 등 수급이 갈수록 빠듯해지고 있다. 14일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2일 오후 2∼3시 자가 태양광발전까지 총망라한 전력 총수요는 102.3기가와트(GW)를 기록, 지난해 8월 7일의 역대 최대치(100.6GW)를 넘어섰다. 지난 7일(100.2GW)을 시작으로, 하루 최대 전력 소비가 100GW를 넘는 상황이 뉴노멀로 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전력 예비율은 이날 8.8%(8.4GW)로 내려가 연중 최저치로 떨어졌다. 이달 들어 전력거래량을 기준으로 여름철 소비 최대치 경신은 세 차례, 예비율이 10% 미만인 날도 이틀에 달한다. 전력 비상 상황이다.

향후 상황도 여의치 않다. 기업들의 휴가 시즌이 마무리되면서 8월 둘째 주가 소비 피크 시기로 예상됐지만, 폭염이 앞으로 최소 열흘간 이어질 전망이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번 주와 다음 주 전력 소비 최대치 경신이 이어질 것을 우려한다. 발전소·송전선 등에 한 번이라도 차질이 생기면 바로 전력 부족에 직면할 처지다.

게다가 전력 수요는 빠르게 팽창할 수밖에 없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서만 2050년까지 10GW의 추가 전력이 필요하다. 수도권 소비의 4분의 1 규모다. 인공지능(AI) 확산으로 데이터센터도 급증할 게 분명하다. 지난 5월 11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안은 2038년 수요가 2023년보다 30.6GW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전력 공급 확대가 시급하다. 정부는 11차 계획안에 1.4GW급 원전 3기 추가 건설을 담았지만, 더 확대해야 한다. 계획 추진 속도도 높여야 한다. 노후화한 송전선 보완과 확충도 급선무다. 동해안∼신가평 초고압직류송전선, 호남∼수도권 간 서해안 해저사업 등 이미 수년이나 지체된 계획을 서둘러 마무리해야 한다. 양질의 전력 확보는 국가 경쟁력에 직결된다.

문화일보 사설

 
 

08.15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이라고 부르면 친일파라는 황당한 기준

▲사진은 윤동주 시인(왼쪽부터), 이승만, 이회영, 조소앙의 색채사진 복원 전과 후 모습. (국가보훈처 제공)

 

광복회는 “일본 주장대로 식민 지배 합법화를 꾀하는 지식인이나 단체’를 ‘뉴라이트’로 규정하면서 ‘뉴라이트 판별법’ 9가지를 제시했다. ‘뉴라이트’를 ‘친일파’로 몰아가기 위한 것이다. 9가지가 모두 문제가 있어 보이지만 특히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이라고 한다’는 판별 기준은 황당하기까지 한다. 이 주장대로라면 ‘이승만 건국 대통령’을 주장하거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모두 ‘친일파’가 되는 셈이다.

 

광복회와 이종찬 회장은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을 건국 시점으로 보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었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의 초대 대통령이기도 하다. 건국 시점을 1919년으로 보든, 1948년으로 보든 ‘건국 대통령 이승만’이라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으로 보면 친일파라는 딱지를 붙이기 앞서 이승만이 아니면 도대체 누가 ‘건국 대통령’인지 답부터 내놔야 한다.

 

광복회는 임시정부를 폄훼하면 뉴라이트라고 주장하는데, 그 대표적 세력은 다름 아닌 북한이다. 북은 김일성 중심의 독립운동을 주장하기 위해 임정에 대해 ‘사대주의적 매국배족행위’라고 역사책에서 규정했다. 일부에서 제기하는 ‘친일파 이승만’ 주장도 왜곡이다. 이들은 대한민국 초대 내각에 친일파를 대거 등용했다고 주장하지만, 부통령 이시영, 국무총리 이범석, 농림장관 조봉암 등 대부분이 항일·독립운동가였다.

 

이 대통령은 뼛속부터 반일(反日)이었다. 2차 대전의 마무리를 위해 미국 등 연합국과 일본이 체결한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일본이 반환해야 할 땅에 독도가 누락되자 이승만은 1952년 1월 18일, 이승만 라인으로 불리는 ‘평화선’을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그때 ‘평화선’ 선포와 의용수비대 독도 파견이 없었으면 울릉도에서 50해리 정도 떨어진 ‘독도’의 실효적 지배는 불가능했다. 한미 동맹의 기초를 닦은 이 대통령이지만 1954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한일 관계 정상화를 요구하자 회담장에서 퇴장해버렸다.

 

광복회가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을 이유로 정부를 ‘친일’로 몰아가고 여기에 더불어민주당과 야당들이 ‘친일 몰이’에 나서면서 정부의 79주년 광복절 기념식에 광복회와 야당들이 불참하기로 했다. 대한민국을 부정하려는 세력의 ‘이승만=친일파’ 주장에 광복회가 왜 동조하고 나섰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조선일보 사설

 

08.16 제헌국회는 왜 헌법에 臨政을 명기하지 않았나

분수령은 1948년 5·10 총선거
김구가 소련 지지로 돌아서고
대한민국 정통성 부정하면서
임정은 몰락했다
한국 민족주의의 정치적 오류는
독립과 건국 사이의 단절
자유와 민주의 가치로 거듭날 때
대한민국은 문명국가 될 것

 ▲1948년 5월 31일 열린 제헌의회 개원식. /조선일보 DB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심훈) 해방은 도둑같이 찾아왔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념 대립으로 좌우가 갈리고 남북이 찢겼다. 결국 6·25전쟁이 일어나 동족의 피로 대지를 적셨다. 79년이 지난 올 광복절 기념식도 두 쪽이 났다. 신임 독립기념관장 인사를 둘러싼 정부와 광복회의 불화 때문이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이번 인사가 “지하에서 꿈틀거리는 거대한 계획”, 즉 ‘건국절 제정을 위한 사전 작업’의 일환이며, 궁극적으로는 한국의 “반역자들이 일본 우익과 내통하여 오히려 일본과 같이 가고 있다”고 의심한다. 상식 밖이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이 논란이 “먹고살기 힘든 국민들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한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건국의 기원에 관한 문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종찬 회장의 논리를 떠받치는 기둥은 1919년 상해임시정부(임정)에 의해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는 것이다. 그 반면 우파는 1948년 5·10선거로 건국되었다고 본다. 좌우 절충안은 1919년 건국을 시작해 1948년 완성됐다는 견해다. 하지만 이 이슈는 단지 논리적 문제가 아니다. 1945년 해방이 되었을 때, 한국 국내의 정치 세력은 임정의 지위를 놓고 고민했다. 여운형·박헌영 등 좌익은 임정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고, 인민공화국을 수립했다. 미군정은 당연히 임정의 지위를 부정했다. 송진우·김성수를 비롯한 한민당 세력만 임정봉대론을 주장했다.

 

김구는 임정의 유일한 정통성을 초지일관 견지했다. 반탁운동 때 김구는 임정이 미군정의 주권을 회수하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실패했다. 임정의 지위는 시간을 경과하며 변했다. 1948년 5·10 총선거가 결정적 분수령이었다. 김구는 원래 철저한 반공주의자였고, 1947년까지는 5·10 총선거를 지지했다. 하지만 1948년 들어 “미‧소 양군 철퇴와 한인의 자주적·민주적 총선거를 통한 통일정부를 수립하자는 소련의 주장은 원칙적으로 정당하다”고 입장을 바꿨다. 5·10 총선거에 불참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도 부정하면서, 임정은 몰락했다.

 

1948년 헌법 제정 때 제헌국회는 임정과 대한민국의 관계를 심각하게 논의했다. 헌법 전문에 임정의 법통을 명기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최종안은 “대한민국은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이었다.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이 건국됐다고 했지만, 임정은 빠졌다. 정치적 정통성(legitimacy)이 아니라 단지 ‘정신’만 계승한다고 결론지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비로소 헌법 전문에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기했다. 40여 년 뒤 극적으로 부활한 것이다. 독립운동가 이회영의 후손인 이종찬 전 민정당 의원의 공로였다.

 

하지만 제헌헌법에서 임정이 빠지면서 큰 문제가 생겼다. 주권 회복을 위해 싸운 독립운동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세운 건국운동 사이에 역사적 단절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원래 둘은 하나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미‧소가 격돌한 한반도에서 어느 한쪽의 선택이 불가피했을 때, 안타깝게도 김구는 통일을 명분으로 북쪽·소련과의 연대를 택했다. 이승만과 제헌의원들은 단독정부의 현실을 인정하고, 자유민주주의와 미국을 택했다. 남북협상이 실패하고 대한민국이 출범한 뒤에도, 김구는 계속 미군 철수를 주장했다. “양군이 철퇴하면 진공상태에 빠지고, 북조선 인민군이 쳐들어오고, 내란이 일어난다는 것은 모두가 구실이고 모두가 비과학적인 관찰”이라고 외쳤다.

 

한국민족주의는 독립에서 건국으로 전환되는 시기에 중대한 정치적 오류를 범했다. 또한 김구의 암살로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1948년 대한민국과 이승만은 그 분노의 표적이 되었다. 근대의 이념 대립이 있는 곳에서, 민족에 대한 호소는 모든 도전을 제압해 왔다. 하지만 한국은 다소 예외적이다. 인류 보편의 가치를 추구한 1948년 대한민국이 너무 성공적이고, 북한처럼 민족주의의 실패가 명백해졌기 때문이다.

 

급격한 산업화와 민주화로 폭풍 성장기를 막 끝낸 한국 사회가 중2병, 사춘기를 겪고 있다고 한다.(허태균) 과연 80년이 지났지만, 대한민국의 정체성 혼란은 심각하다. 대한민국은 지금 성찰의 시간이다. 나는 누구인지,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지 알려는 열망이 뜨겁다. 민족주의는 자유와 민주의 보편 가치 안에서 순화되어야 한다. 그 고뇌의 연옥을 지나면, 대한민국은 마침내 성숙한 문명국가로 거듭날 것이다.

조선일보 김영수 영남대 교수·정치학

 

08-16 尹 ‘자유 통일’ 독트린과 더 중요해진 국방력·경제력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부속 도서(헌법 제3조)이며, 대한민국은 자유민주 통일을 추진해야 한다(제4조)는 것은 제헌 헌법 이후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불변의 원칙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광복절 경축사는 그런 당위를 재확인한 것이지만, 그 의미가 작지 않다. 역대 정부는 북한 정권을 의식해 ‘흡수 통일’로 해석될 표현을 자제하거나, 북한 정권 비위를 맞추려고도 해왔는데, 이젠 여러 측면에서 그런 단계를 벗어날 때가 됐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15일 “한반도 전체에 자유민주통일 국가가 만들어지는 그날 완전한 광복이 실현되는 것”이라면서, 국내 반통일·반자유 선동 대응과 북한 주민의 통일 열망 촉진, 자유 통일에 대한 국제적 지지 확보 등 3가지 과제도 제시했다. 이런 접근은 첫째, 기존의 전략적 모호성을 버리고 한국식 체제로의 통일을 대통령이 공식 제시했다는 점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다. 둘째, 북한 정권과의 협상에 따른 위로부터의 통일이 아니라 북한 주민들이 선택하는 아래로부터의 통일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기존 통일론과 차이가 있다. 셋째, 자유의 확장 측면에서 국제사회와 공조하겠다는 전략도 국제 정세와 부합한다.

무엇보다, 북한 김정은이 남북관계를 “적대적이고 교전 중인 두 국가”라면서 “핵무력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 수단과 역량을 동원해 남조선 전 영토 평정”을 공언한 데 대한 합당한 응전이기도 하다. 북한식 흡수 통일에 대한 적극적 대응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실무 대화협의체 설치도 제안했다. ‘두 적대국’일지라도 협상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표부를 개설할 수도 있다. 냉전 시대 남측은 국가연합, 북측은 연방제 방안에 관심을 보였지만 실현 가능성은 희박했다. 2000년 발표된 6·15공동선언은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안의 공통점”을 주목했지만 진전된 것은 없었다.

이제 투명하고 현실적인 통일 정책을 추진할 때가 됐다. 남남 갈등을 줄이고, 압도적 국방력으로 북한의 도발 야욕을 저지하며, 독일처럼 통일이 이뤄질 경우에 대비해 탄탄한 경제력을 갖추는 것이 실질적 통일 준비가 될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

 
 

08-16 연금개혁, 세대 형평과 출생 연계 적극 고려할 만하다

국민연금 개혁과 관련, 대통령실에서 흘러나오는 몇 가지 접근 방향은 기존의 논의보다 진전된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반갑다. 특히 세대 형평성을 고려하고, 출생을 연계하는 방안은 일각의 불만과 비판도 예상되지만, 큰 틀에서 합리적으로 보인다. 다만, 모수개혁도 하지 못한 상황에서 구조개혁은 물론 일반 복지 정책과 저출생 문제까지 논의가 확장되는 것을 감당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

연금개혁의 절박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역대 정부마다 인상을 미뤄오다 2055년이면 기금이 소진될 위기에 처했다. 앞서 제21대 국회 막판에 여야는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까지 높이기로 했지만, 소득대체율을 놓고 43%(여당)와 44%(야당)로 갈려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달 말 제시한다는 윤석열 정부 방안은 보험료율과 소득 대체율을 조정하는 모수 개혁과 함께 구조개혁을 추진한다는 점에서 진일보했다. 연금 수령이 얼마 남지 않은 장년층은 보험료율을 빠르게 인상하고 청년층은 천천히 올리는 방향이라고 한다. 4050 장년 세대 설득이 관건이다. 정부가 연금을 대신 내주는 출산 크레디트 확대도 좋은 방안이다. 현행 둘째 자녀 12개월, 셋째 자녀부터 인당 18개월씩 최대 50개월까지 적용되는데, 첫째 자녀부터 12개월씩 인정하고 상한을 없애자는 것이다.

기대수명, 출산율 등에 따라 연금 수급액을 조정하는 자동안정화 장치 도입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기금 고갈 시기가 현재 예상인 2055년보다 30년가량 늦춰진다고 한다. 다만 안정적 노후보장률에 대한 불안이 커질 우려도 있다. 연금개혁은 국민연금법 개정이 필요한 만큼 국회에서 최종 결정된다. 정부는 실현 가능한 개혁안을 제시하고 국회는 초당적으로 매듭지어야 할 책임이 있다.

문화일보 사설  

 
 

08.17 다시 시동 거는 연금 개혁, 대통령의 정치력과 의지에 달렸다

 정부가 세대 간 형평성, 재정 안정화에 방점을 둔 국민연금 개혁안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 출산하는 여성과 군 복무자에 대한 연금 혜택을 늘리고, 세대별 보험료율(내는 돈) 인상을 차등화하고, 자동 재정 안정화 장치를 도입하는 방향이라고 한다. 보험료율 인상 등 모수개혁만으로는 연금 고갈 시점을 6~7년 늦출 따름인데 구조개혁이 포함된 정부 안대로 하면 30년 이상 늦출 수 있다는 것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 전언이다.

 

현행 국민연금 제도를 그대로 두면 2055년 기금이 고갈된다. 지난 21대 국회 막판에 여야는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받는 돈) 44%’로 조정하는 안에 사실상 합의했으나 정부와 여당이 구조개혁까지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해 처리가 무산됐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실이 고갈 시점을 더 늦추는 안을 준비 중이고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국정 브리핑 형식으로 발표할 가능성도 있다고 하니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출산과 군복무 크레딧을 확대하는 방안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극심한 저출생 시대에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연금 제도가 지속할 수 있도록 출산율과 기대수명 등 사회적 변수에 따라 연금 지급액과 보험률을 조정하는 ‘자동 재정 안정화 장치’도 이미 상당수 선진국에서 도입한 제도로 옳은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수치와 방식에 따라 연금 수령액에 적지 않은 변동이 생길 수 있는 제도라는 점을 감안해 제도 설계를 해야 할 것이다.

 

세대별 보험료율 인상 속도에 차등을 두는 방안도 세대 간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충분히 검토해볼 만한 제도다. 이 방안은 예를 들어 보험료율을 13%로 인상할 경우 장년층은 매년 1%포인트씩, 청년층은 매년 0.5%포인트씩 인상해 목표 보험료율에 도달하는 시기를 달리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아직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방식이고 능력만큼 부담하는 사회보험의 원리에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연금 고갈 시점이 30년 정도밖에 남지 않는 상황에서 다양한 고갈 시기 연장 방안을 검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많은 국민이 납득하고 수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수치와 방식 등을 설계해야 할 것이다. 어떤 방식이든 국민이 내는 돈이 늘어나거나 받는 돈이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 과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 결국 세대 형평, 지속 가능한 연금 개혁 방안을 마련해 처리하는 것은 대통령실과 정부·여당의 정치력과 의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조선일보 사설

 

08.17 연금개혁 정부안, 이번엔 꼭 구체안 내놔야

 윤 대통령, 이르면 이달 말 연금 브리핑 예정

기존 정부안에 빠진 연금 보험료 인상 넣고

자동 안정 장치 도입 등 세부 계획 제시하길

 

 윤석열 대통령이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초 국정운영 브리핑에서 국민연금 개혁 방향을 발표할 예정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조율 중이지만 큰 틀에서 저출생 대응과 세대 간 형평성, 재정 안정화 방안에 방점을 둘 것으로 예상한다. 세부 항목으로는 신생아 출산 부부와 군 복무자에게 추가 혜택을 주는 방안이 유력해 보인다. 이와 함께 세대별 보험료율 인상 속도 차등화, 자동 안정화 장치 도입 등이 검토되고 있다. 그동안 연금개혁에 소극적 태도를 보였던 정부가 이제라도 연금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대환영이다.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연금개혁은 지난 2년간 사실상 ‘공회전’을 면치 못했다. 정부가 책임 있는 개혁안을 제시하지 않고 국회로 공을 떠넘긴 탓이 크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5개 분야의 15개 과제를 담은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발표했었다. 여기엔 가장 중요한 연금 보험료율 인상 방안을 담지 않았다. 알맹이가 빠진 ‘맹탕 개혁안’이란 비판을 받았다. 정부안이 없으니 국회 연금개혁 논의도 소모적 논쟁에 빠져버렸다. 결국 지난 21대 국회에서 여야 합의에 실패하고 22대 국회로 공을 넘겼다.

 

그러는 사이 연금 재정 고갈의 우려는 커졌다. 지난 문재인 정부도 사지선다형 개혁안을 무책임하게 던져 놓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대로 가면 국민연금 기금은 2041년에 적자로 돌아서고 2055년에는 완전히 바닥난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정부가 책임을 지고 보험료율 인상을 포함한 개혁안을 내놔야 한다. 만일 이번에도 원론적 방향을 제시하는 수준에 그친다면 다시 한번 큰 실망이 아닐 수 없다.

 

연금개혁에서 정부가 논의를 주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외국 사례를 봐도 알 수 있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해 연금 수급 연령을 기존 62세에서 64세로 늦췄다. 극렬한 시위가 벌어졌지만 마크롱 대통령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호소하며 입법에 성공했다. 일본에선 2004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더 내고 덜 받는’ 연금개혁을 이끌었다. 이때의 연금개혁으로 일본은 적어도 100년간 연금 재정 고갈을 걱정하지 않게 됐다.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출산과 군 복무 크레딧 확대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행동을 하면 연금 가입 기간을 늘려주는 제도다. 지난해 연금 종합계획에도 이미 같은 내용이 들어갔지만, 대통령이 직접 언급하면 힘이 더 실릴 것이다. 세대 간 보험료 차등 인상은 신선한 발상이긴 하지만 외국의 비슷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직장 가입자의 연금 보험료는 고용주와 근로자가 절반씩 나눠내는 만큼 고용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따져봐야 한다.

 
 

정부는 이번 발표에서 연금 고갈 시기를 30년 이상 늦추는 방안을 제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연금 고갈을 겨우 6~7년 늦추는 방안을 논의했던 것에 비하면 중요한 진전이다. 연금 재정의 장기 안정을 위해선 보험료율 인상과 함께 자동 안정화 장치 도입도 필요하다. 지난해 연금 종합계획에서도 언급한 자동 안정화 장치는 경제 여건이나 기대여명 등 미리 설정한 변수에 따라 연금 지급액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제도다. 이미 일본·독일·핀란드 등 주요 선진국은 이 제도를 도입해 연금 재정 안정에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정부가 연금개혁의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으려면 단순히 듣기 좋은 말로 그쳐선 안 된다. 정부가 얼마나 구체적 개혁안을 제시하고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느냐가 연금개혁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중앙일보 사설

 

08.17 文 임명 기관장이 아직 40%, '龍山 인사 적체'에 막힌 건가

 

윤석열 정부 임기가 곧 반환점인데도 공공기관장 314명 중 121명(39%)이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한 인사인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121명 중 55명은 임기가 끝났는데도 후임 인선이 늦어져 계속 자리를 지키는 경우였다. 문 전 대통령 고교 후배인 동서발전 사장과 민주당 3선 출신인 농수산식품유통공사 사장은 지난 3~4월 임기가 만료됐는데도 지금껏 사장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공공기관 감사 자리까지 넓히면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특보를 지낸 남동발전 감사, 노무현재단 출신인 동서발전 감사 등도 임기가 지났지만 교체되지 않았다.

 

‘문 정부 기관장’이 여전히 많은 것은 임기 막판까지 ‘알박기 인사’를 했기 때문이다. 문 정부는 임기 6개월을 남기고 기관장 59명을 무더기로 임명했다. 탈원전에 앞장섰던 김제남 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은 내년까지 임기가 남았다. 윤 정부 출범 7개월이 넘도록 공공기관 간부직의 86%가 문 정부 인사였다. 그러나 임기가 이미 끝났거나 공석인 기관장 자리도 채우지 못하는 것은 윤 정부 인사 시스템의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다. 총선 탈락자 기용설 등이 나왔지만 선거가 끝난 지도 5개월째다. 아무리 신중을 기한다 해도 적임자 선정과 검증에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이유는 없다.

 

임기가 끝난 전 정권 사람들이 몇 달이 넘도록 자리를 유지하게 된 원인은 결국 어디선가 인사가 막혀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체증이 벌어지고 있는 진원지가 용산 대통령실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통령이 국정 철학을 공유하는 인사를 기관장에 앉히려는 것을 문제 삼을 수는 없다. 역대 정권에서도 장관이나 인사추천위원회가 복수로 후보를 추천하면 대통령이 최종 결정권을 행사해 왔다. 그런데 이 정부 들어선 대통령이 추천 후보들에 한번 퇴짜를 놓고 나면 한없이 후속 절차가 미뤄지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대통령 의중을 모르는 정부 부처는 더 이상 추천을 주저하면서 시간만 마냥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공공기관 리더십 공백이 장기화하면 정책 추진도 제동이 걸린다. 300곳이 넘는 공공기관 인사를 대통령이 일일이 챙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한민국 국정 전체가 대통령 한 사람 결정만 기다려도 될 정도로 한가롭고 여유로운가.

조선일보 사설

 

08.17 어떻게 세운 나라인데 광복절에 이 소동을 벌이는가

 '3·1운동 독립 정신 계승'
헌법 前文에
'建國節' 비집고 들어갈 틈 없다
이승만·김구 長點 합하면
독립·발전 動力,
결점 부풀리면
김일성 一族 도울 뿐

▲제헌국회의 국회의장인 이승만 박사가,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우리 역사에서 최초로 헌법에 의한 통치라는 민주공화정의 이념을 기초로 한 제헌 헌법에 서명한 후, 국회에서 기념 연설하는 모습. /조선일보 DB

 

광복절(光復節) 속 ‘광복’은 ‘잃었던 나라를 되찾다’라는 뜻이다. 1945년 8월 15일 우리 민족은 일본 식민 지배의 노예 상태에서 풀려났다. 그 첫 선물은 일본식(日本式) 이름을 버리고 우리 본래의 성(姓)과 이름을 되찾게 된 것이다. 총독 미나미(南次郎)는 1939년 조선인은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도록 했다. 이름을 고치지 않으면 자녀의 학교 진학·취직은 물론 생필품 배급 중단과 우편물까지 배달하지 못하게 하는 강제 수단을 동원했다. 1941년 말 전체 가구(家口)의 81.5%인 322만 가구가 일본 이름으로 바꿔 신고했다. 우리 국민 10명 가운데 8명은 일본 이름을 붙이고 있었다.

 

8월 15일은 해방의 날이자 우리가 근대적 헌법과 국민·영토·주권을 가진 온전한 독립 국가가 됐음을 세계에 선포한 날이기도 하다. 1948년 5월 10일 나라의 기본 틀인 헌법을 만들 대표를 선출하기 위한 제헌(制憲)의원 선거가 실시됐다. 21세 이상 유권자 813만명 중 784만명이 투표소에 나갔다. 198명이 뽑힌 이 선거에서 제주도 3개 선거구 가운데 두 곳은 남로당의 폭력 방해로 투표가 이뤄지지 못했다.

 

5월 31일 개원(開院)한 제헌 국회는 이승만을 국회의장으로 선출했다. 이승만은 개회사에서 “기미년(己未年)에 결사(決死) 혈투(血鬪)한 정신을 본받아 최후 1인 최후 일각까지 분투하자”고 다짐했다. 기미년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해다.

 

제헌 국회는 개원 다음 날 헌법기초위원회를 꾸려 헌법 초안 작성에 매달렸다. 기초위원회는 제헌의원 30명과 유진오(훗날 고려대 총장)를 비롯한 10명의 전문가로 구성됐다. 기초위원회는 이승만 의장의 당부대로 ‘3·1운동 당시의 결사·혈투 정신’으로 전문(前文)과 10장 102개 조항으로 된 헌법 초안을 완성해 6월 22일 제헌 국회 본회의에 넘겼다. 제헌 의원들은 트럭 화물 칸에 판자를 깐 차로 아침 10시 출근해 자정 무렵까지 손바닥만 한 걸상에 5명씩 붙어 앉아 단어 뜻 문장 뜻을 놓고 격론을 벌였다.

 

이러는 사이 동유럽 좌우(左右) 합작 정부는 스탈린 지령에 따른 쿠데타로 낙엽 떨어지듯 무너졌고 중국 대륙에선 쫓기던 모택동(毛澤東)이 거꾸로 장개석(蔣介石) 정부를 벼랑으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나라 안에서 남로당은 도시 폭동·군사 반란·산악 게릴라 활동을 강화해 정부 없는 나라를 뒤흔들었다. 이런 내외(內外) 정세 속에서 ‘헌법 만들기’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제헌 의회의 헌법 심의는 먼저 각 조항을 다루고, 머리말인 헌법 전문(前文)을 맨 나중에 심의하는 역순(逆順)을 밟았다. 나라의 이름 곧 국호(國號)조차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헌 국회 의원 발언을 옮겨 적은 속기록(速記錄)을 토대로 한 ‘헌법의 순간(저자 박혁)’을 잠깐만 훑어도 제헌 의원들의 애국심에 절로 고개를 숙이게 된다. 헌법 속 한 조항 한 단어도 소홀히 넘기지 않고 맹렬한 토론을 벌였다. ‘대한민국’ ‘고려’ ‘조선’ ‘새한’ 등 여러 국호 후보 가운데 대한민국을 선택한 과정도 진통의 연속이었다.

 

엊그제 광복절 경축 행사가 정부 수립 이래 처음으로 정부 주관 행사와 광복회·야당 행사로 두 조각이 난 배경은 헌법 전문과 직접 관련이 있다. 제헌 의회가 헌법 전문을 심의할 때 이승만 의장은 사회를 신익희 부의장에게 맡기고 의석에 앉아 있었다. 이 의장이 손을 들고 신 부의장에게 발언권을 신청하자 의석이 조용해지면서 모두가 그를 지켜봤다. 이승만의 역사적 발언은 이랬다.

 

“헌법 전문에 ‘우리 대한민국은 기미년 3·1혁명에 궐기하여 처음으로 대한민국 정부를 세계에 선포하였으므로 그 위대한 독립 정신을 계승하여 자주독립의 조국을 ‘재건(再建)’하기로 함’을 넣었으면 합니다. 우리 앞길이 무엇인지 그리고 3·1혁명을 역사에 남기기 위해 헌법 맨 꼭대기에 이 문구를 넣어야 합니다.”

 

이 발언 가운데 ‘3·1혁명’이 ‘3·1운동’으로 바뀌어 이승만의 간절한 바람대로 여러 차례 헌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헌법 맨 꼭대기를 지키고 있다. 이승만의 발언 어느 틈새에 왜색풍(倭色風)의 건국절(建國節) 발상이 비집고 들어갈 수 있겠는가. 정말 그런 세력이 있다면 헛꿈을 깨야 하고, 있지도 않은 헛것을 보고 소스라쳤다면 찬물에 얼굴을 담글 일이다.

 

독립운동사에서 이승만과 김구는 서로 상대방에게 없는 것을 갖췄던 거인(巨人)이다. 이승만은 세계 정세를 굽어보는 통찰력으로 독립운동과 독립 후 대한민국을 번영의 길로 선도(先導)했다. 김구는 독립운동 과정에서 궂은일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고 독립 정신의 촛불을 꺼뜨리지 않고 지켜냈다. 양쪽 모두 결점도 있는 인간이었다. 장점을 합하면 나라의 보물이다. 반대로 결점을 부풀리면 북한 동포를 노예로 부리는 김일성 일족(一族)에게 이득이 될 뿐이다.

조선일보 강천석 기자

 

08.17 광복회장과 '건국 부통령' 이시영

▲지난 3월 13일 이종찬 광복회장이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 회장실에서 1983년 작은할아버지인 이시영 초대 부통령 동상 설립 당시의 사진과 건립추진위원회 명단이 적힌 패널 자료를 보여주고 있다. 당시 동상 건립추진위원회 명예위원장은 윤보선 전 대통령이었다. /이태경기자

 

지난 12일 광복회는 뉴라이트를 ‘일본 정부의 주장대로 식민 지배 합법화를 꾀하는 지식인이나 단체’, 사실상 ‘친일(親日)’로 규정하면서 ‘뉴라이트 판별법’ 9가지를 제시했다. 그런데 한 가지 의아한 일이 있었다.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이라고 하는 자나 단체는 뉴라이트”라고 밝힌 것이다.

 

이종찬 광복회장을 지난 3월 인터뷰했다. 이 회장의 할아버지는 국망 직후 만주로 건너가 전 재산을 털어 항일운동을 한 우당 이회영(1867~1932)이다. 인터뷰에서 이 회장이 많은 시간을 할애해 설명한 인물은 이회영의 동생이자 자신의 작은할아버지인 성재 이시영(1869~1953)이었다.

 

▲지난 2008년 4월 17일 성재 이시영 선생의 55주기 추모식에 참석한 인사들이 동상 앞에서 묵념하고 있다. /오종찬 기자

 

이 회장은 “내가 1983년 민정당 원내총무 시절에 남산 백범(김구) 동상 건너편에 작은할아버지 동상 건립을 주도했다”고 회고했다. “동상은 의자에 앉아 한 손을 들고 있는데 ‘백범! 가면 안 되오, 저들에게 속는 거요’라며 남북협상을 말리는 형상이었다”고 했다.

 

이시영은 중국에 세워진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김구와 함께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해방 후 환국한 이시영은 대한민국 정부에 참여해 초대 부통령이 됐다. 1948년 8월 15일 오전 11시 중앙청 광장에서 열린 정부 수립 선포식에서 이승만과 함께 단상에 올라 주권, 영토, 국민을 지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세워졌음을 세계에 알렸다.

 

이시영은 왜 김구 등 여러 임정 인사와는 달리 대한민국 정부에 참여했을까. 1948년 1월 18일 그가 발표한 성명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는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이 총선거를 관리하기 위해 서울에 왔지만, 소련의 거부로 38선을 넘지 못한 것을 애통해하고 있었다. “금번에도 소련이 종시 거부한다면 우리는 다 죽어가는 동포를 그대로 둘 것인가. 유엔단이 이 기회를 잃고 돌아간 뒤에 이런 회합이 다시 있을까.” 5·10 총선으로 우선 한반도 남쪽만이라도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는 방책 말고는 세계에 독립을 호소할 기회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시영이 김구와 등진 것은 아니었다. 이종찬 회장은 인터뷰에서 “작은할아버지께서는 정부 수립 전후로 사이가 틀어진 백범과 우남(이승만) 사이에서 두 분을 화해시키려고 무척 애를 쓰셨다”고 했다.

 

그런데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이라 말하면 친일파가 된다는 것은 무슨 얘긴가. 그 말대로라면 이종찬 광복회장은 작은할아버지에 대해 ‘건국 부통령이 아니다’라고 부인하는 것이 되는 셈이다. 독립운동가 가문이라는 명예를 지니고 살았다는 이 회장이 자신의 집안을 오히려 폄훼하는 것은 아닌가?

 

인터뷰 당시 이 회장은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실제로 만나본 이승만은 대단한 카리스마를 지닌 현명한 인물이었다” “우남과 백범 두 분 모두 우리의 소중한 자산인데 한 분을 낮춰서는 안될 일” “이승만의 공(功)은 8, 과(過)는 2″라고 했다. 5개월 새 무엇이 달라진 걸까.

조선일보 유석재 기자

 

08.17 광복회장의 ‘몽니’에 기가 막힌다

▲8월 15일 오전,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 임명이 ‘친일 뉴라이트 인사’라면서 정부 주최 경축식 불참을 선언한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대표 직무대행과 의원들이 서울 효창공원 내 임정요인·삼의사·백범 김구 선생 묘역을 참배한 뒤 백범김구기념관 앞에서 친일반민족 윤석열 정권 규탄대회를 갖고 있다. 사진=조선DB

 

이종찬 광복회장은 지난해 6 22일 취임사에서부터 대한민국의 원년(元年) 1919이라는 주장을 폈습니다. 이 회장이 어제 광복절 기념식에 불참한 일도 이러한 주장에 근거한 행동이지요. 원년의 사전적 의미는 나라를 세운 해입니다. 이 회장의 말대로 1919년은 31 운동이 일어난 시점이자, 상해(上海) 임시정부가 선포된 해입니다. 그런데 이를 대한민국의 원년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수많은 임시정부, 그리고 국가의 요건

 임시정부 수립 운동이 시작된 시기는 1910년 한일합방 이후입니다. 미국에 대한인국민회가 생겼고, 연해주에 권업회가 결성됐지요. 대한광복군정부, 대동단결선언 등도 존재했습니다. 31 운동을 전후로, 연해주에선 대한국민의회와 한성정부, 신한민국정부, 상해 임시정부 등 많은 임시정부가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1919년 상해 임시정부가 효율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여러 임시정부를 통합했습니다. 일제(日帝)의 주권 강탈에 항거한 임시정부도 여럿이었던 만큼, 각 단체들의 발족 시기와 장소도 제각각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상해 임시정부가 여타 임시정부들을 통합하여 대표성의 외견을 갖추었다고는 하나, 이것이 곧 임시정부의 시작이라고 보는 건 또 다른 문제입니다. 더구나 정부가 있으려면 국가가 있어야겠지요. 실질적으로 국가의 성립 요건을 갖추었을 때 정부 또한 존재하는 것 아닐까요.

 

국가의 성립 요건에 대해 가장 공신력 있다고 평가받는 기준은 1933 12 26일 체결된 몬테비데오 협약 1조입니다. 이에 따르면 국제법의 인격체로서의 국가는 다음의 자격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상주하는 인구 명확한 영토 정부 다른 국가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1919년 수립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이 중 어느 요소도 갖추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저 역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위 요건들을 근접하게나마 갖출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그 어떤 나라들로부터도 국가의 정부로 승인받지 못했고, 임시정부 요인(要人)들은 해방 이후 귀국할 때도 개인 자격으로 입국하였다는 게 비통하지만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정신을 이어받았다고 볼 수는 있지만, 임시정부의 수립을 건국으로 인정하기 곤란하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헌법 전문 속 임시정부의 법통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우리나라의 헌법전문에 기재된 문구입니다. 이에 대한 헌법학 교수들의 해석을 살펴보겠습니다. 김영수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가 2000년 저술한 한국헌법사 237페이지의 내용입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1919 4월에 성립되어 그 오랜 역사 과정 중 비록 수십 년의 투쟁을 하였지만 하나의 합법정부로서 승인을 받은 예는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는 3·1운동의 역사적 산물이었고정신적으로는 이 조직은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을 대표한 유일한 임시정부임이 자명한 사실이다.”

 

작고(作故)하신 헌법학계 권위자, 권영성 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1934~2009) 1996년 저서 <헌법학원론> 125페이지에서 임시정부의 법통에 대해 이렇게 해석하였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이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입헌주의적·자주독립적·민족자결주의적 성격과 이념을 계승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헌법학자인 성낙인  서울대학교 총장도 2019년 판 <헌법학> 123페이지를 통해 대한민국의 정통성 적법성이 구분돼야 함을 설명했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은 어디까지나 정통성의 계승으로 이해되어야지 실정 헌법 질서상의 적법성의 계승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헌법 전문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바로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그러나 이 법통의 계승은 어디까지나 정통성의 계승을 의미하며 실정 헌법 질서에서 적법성의 계승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19년 국회입법조사처와 한국헌법학회는 “3·1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과 헌법의 과제 세미나를 공동 개최하였습니다. 이때 장영수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1919년 건국 주장은 옳지 않다고 본다고 밝혔습니다. 장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최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역사적 의미를 재해석하려는 경향이 강하게 대두되고 있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 다만, 그로 인하여 불필요한 갈등이 확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특히 새로운 시각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역사적 사실(fact)을 외면하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할 경우에는 그 의도 여하를 막론하고 우리가 비판하고 있는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이나 중국의 동북공정 등과 유사한 것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김구 지금은 건국의 시기로 들어가려 하는 과도적 단계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충칭으로 이동해 1940년 광복군을 창설했습니다. 그리고 1941년 임시정부가 향후 독립운동과 건국 과정에서 실천해야 할 정책 대강을 천명하기 위해 건국강령을 발표했습니다. 이때 임시정부의 활동은 건국기(建國期) 이전의 나라를 되찾는 복국기(復國期) 활동이라고 규정했지요. 1945 9 3일 임시정부의 주석 김구 선생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처한 현 단계는 건국강령에 명시한 바와 같이 건국의 시기로 들어가려 하는 과도적 단계이다. 다시 말하면 복국(復國)의 임무를 아직 완전히 끝내지 못하고 건국의 초기가 개시되려는 단계이다.”

 

임시정부의 요인 어느 누구도 임시정부 수립이 건국이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오늘날로 돌아오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제외한 역대 정부와 대통령들은 1948 8 15일을 대한민국 건국일로 보고 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48 8 15일 정부수립 후 10년째인 1958 8 15일을 건국 10주년으로 기념하였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68 8 15일 건국 20주년 행사를 치렀습니다.

 

김대중 정권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8 3·1절 기념식에서 1948 8 15일을 1의 건국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때 대한민국 건국 50주년 기념 각종 행사를 열었고 제2의 건국을 하겠다고도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해방 후 4대 성취 업적에 대해 건국, 6·25전쟁 극복, 고도성장, 평화적 정권교체라고 하였습니다. 1948 8 15일을 건국일로 인정한 셈이지요. 문제는 문재인 정부 때 불거졌습니다. 2015 11 9일 문재인 대통령이 한 말입니다.

 

“1948 8 15일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는 주장은 우리 헌법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헌법적이고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부정하는 반()국가적 주장이며 북한을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이다.”

 

전혀 근거가 없습니다. 소모적인 논쟁의 불씨를 던진 무책임한 언사였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헌법 전문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말은 이념이나 정신을 계승한다는 것입니다.

 

뉴라이트 몰이

 이종찬 광복회장 얘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이 회장은 지난 8일 임명된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에 대해 뉴라이트 인물이고 임명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김 관장의 과거 강연과 인터뷰 발언을 문제 삼아 임명을 철회하지 않으면 광복절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김형석 관장은 독립기념관장 임명 추천위원회에서 진행된 심사에서 후보자 10명 중 서류 전형을 1등으로 통과했습니다. 면접 전형에서도 후보자 5명 가운데 1등이었습니다. 정해진 절차에 의해, 최고 득점 후보자를 뽑아 관장으로 임명한 것입니다.

 

물론 인사(人事)에 대해서야 개개인의 평가가 다를 수 있고, 이에 대한 의견을 내는 것도 좋습니다. 또 임명 절차에 문제가 있다면, 임명된 후보자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 아니라 추천위원회에 대한 법적 책임을 다툴 일입니다. 이것이 광복절 기념식에 불참할 이유가 되진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종찬 회장은 김형석 관장이 1948 8 15일 건국을 주장하는, 소위 뉴라이트 인물이어서 부적합한 인물이라고 했습니다.  뉴라이트라는 개념은 법적 의미도 아니고, 각자의 해석에 따라 범주가 다양합니다. 그런데 이를 일률적으로 해석하여 프레임을 만들고, 특정 인물에게 그 올가미를 씌운다면 부당한 처사일 것입니다. 1948년 건국을 주장했다고 뉴라이트로 몰아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지난번, 이승만 대통령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이 개봉했을 때도 비슷한 뉴라이트 몰이가 벌어지곤 했습니다. 이 영화에 호응하며 이승만기념관 건립에 기부금을 납부한 저명 배우를 뉴라이트로 매도한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무엇보다 뉴라이트 단체에서 김형석 관장을 자기네 사람이 아니라고 밝혔고, 김 관장 스스로도 그들과 결을 같이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했습니다. 또 김 관장은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일제시대 우리나라 국민의 국적은 어디냐는 질문에 일제시대 국적은 일본이지요. 그래서 국권을 되찾기 위해서 우리가 독립운동한 것이 아닙니까라고 답한 적이 있습니다. 김 관장의 이러한 답변에 대해서도 누군가 일본 신민이라고 주장했다고 왜곡해 거짓 사실이 유포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는 아 다르고 어 다르다 정도의 곡해를 넘어 일제의 부당한 국권 침탈에 의해 국적까지도 빼앗겼다는 김 관장의 말뜻을 정반대로 뒤집은, 선동입니다.

 

광복회장님께

 이종찬 회장님, 선생께선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일 뿐 아니라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이었던 이시영 선생의 종손자입니다. 조부의 6형제는 1910 8 29 한일합방이라는 국치를 당하고 나서 같은 해 12, 기약 없는 독립운동을 위해 전 재산을 다 팔고 만주로 망명했습니다. 당시 우당 이회영 선생의 형제들은 조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항복의 10대손으로, 조선 팔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대부호였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제공하는 기득권, 작위(爵位) 등의 회유를 모두 뿌리치고 수천억 재산을 은밀히 처분하셨습니다.

 

그리곤 얼어 죽고 굶어 죽고 맞아 죽는다는 처절한 독립운동을 위해 야밤에 두만강을 건너 만주로 향하셨습니다. 신흥무관학교 설치를 비롯해 독립운동사에 찬연히 빛나는 이 형제분들의 위업은 온 겨레가 존숭(尊崇)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회영 지사는 독립운동 중 대련에서 체포되었습니다. 옥중에서 나흘 만에, 고문 끝에 순국하셨습니다. 나라를 위해 음지에서 일했던 이들의 한 사람으로서, 분노하고 애통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건국일이 1948 8 15일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는 것은, 결코 선열들의 독립운동을 폄하하는 게 아닙니다. 나라를 잃고 만주, 상해, 미국, 유럽 등으로 흩어져 분골쇄신 독립운동을 전개한 결과 전 세계가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독립운동가 함석헌(咸錫憲·1901~1989) 선생의 말처럼, 해방은 도둑같이 찾아왔습니다. 일본이 대동아공영권이라는 헛된 꿈을 품고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지역을 침탈하고 마침내 미국을 공격했다가 원자폭탄을 맞고 패망했습니다. 해방을 맞고 미군정을 거쳐 대한민국이 건국된 밑바탕에는, 독립운동을 통해 보여준 우리 민족의 굳건한 독립 의지가 굳건히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찬란히 빛나는 선열들의 독립운동이 밑거름이 되어 1948 8 15일 대한민국이 건국된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는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에 반발하여 뜻 깊은 광복절 기념행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처사는 참으로 실망스럽습니다. 자랑스러운 애국 선열의 직손이자, 국가 원로로서 재고(再顧)해주시기를 삼가 바라옵습니다.

월간조선 08월 호 글=김석규 한반도안보전략연구원 고문·행정학 박사

 

08.17 이종찬 작은할아버지, 이시영은 '임정' '해방'을 '건국'으로 안 봤다!

 '1948년 건국 시각은 친일"이란 식의 '이종찬 감별법' 따르면 그의 숙조부 이시영은?

▲출처=한국학중앙연구원

 

최근 자신이 마치 '역사 해석권'을 갖고 있는 듯, '친일파' 또는 '뉴라이트' 감별사를 자처하는 듯한 이종찬 광복회장은 광복회 주관 광복절 행사에서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하자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일제 강점기를 합법화하게 되고 독립운동의 역사를 송두리째 부정하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서 "(1945년 해방 이후 48년까지) 나라가 없었다고 한다면 일제의 강점을 규탄할 수도 없고 침략을 물리치는 투쟁도 모두 무의미하고 허망한 일이 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종찬 회장 말에 따르면 1948년 8월 15일의 대한민국 수립은 '건국'이 아니란 얘기다. '건국'이라고 할 경우 일제의 식민통치를 인정하는 것이고, 임시정부 등 온갖 독립운동단체들의 활동상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는 게 이 회장 주장의 요지다.

 

그런데 이 같은 이종찬 회장의 주장은 일제 시절 이역만리 중국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키며 독립운동에 헌신했고, 1945년 귀국 뒤에도 노구를 이끌고 '건국'에 '일로매진'했고, 신생 대한민국의 초대 부통령으로 참여했던, 자신의 숙조부(작은할아버지) 성재 이시영 선생의 독립운동 공적, 임시정부 활동상, 그의 건국관을 철저하게 부정하는 것이다.

 

이시영은 1948년 7월 3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건국(建國)에 여생을 바칠 각오"라고 그 의지를 밝혔다. 1919년 상해임시정부 출범 이후 ▲법무부장 ▲재무부장 ▲감찰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독립운동에 헌신한 이시영은 '대한민국 건국 원년'을 '1919년'으로 보지 않았던 셈이다. 또한, 그는 1945년의 해방 역시 '건국'이라고 인식하지 않았다.

 

당시 인터뷰를 한 경향신문 기자는 "이 박사(이승만)가 대통령으로 피선된다면, 옹은 부통령으로 입각하게 되리라는 설이 있는데?"라고 물었다.

 

그러자 이시영은 "나로선 금시초문이다. 나보담 얼마든지 훌륭한 사람이 있는데 나 같은 노후한 인물이 나가서 뭣하겠는가. 그러나 일생을 조국광복에 바쳐 이 몸이 이렇듯 늙어빠진 만큼 앞으로도 건국에 여생을 바칠 각오이다"라고 답했다.

 

이종찬 주장에 따르면 이미 대한민국은 1919년에 '건국'됐는데, 한평생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이종찬 숙조부' 이시영은 1948년 7월까지도 대한민국이 '건국'되지 않았다고 했을까.

 

또한, 1948년 7월 20일, 국회에서 초대 부통령으로 선출된 이시영은 같은 달 24일 내놓은 '부통령 취임사'를 통해 "필사의 노력으로 건국홍업(建國鴻業)에 일로매진하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이시영 초대 부통령의 취임사다.

 

"삼천만 일심으로 모든 사(私)와 이(利)에 초월하여 오직 건국홍업에 일로매진하고 필사노력하여야 될 것이다. (중략) 위로는 이승만 대통령을 보좌하고 아래로는 삼천만 애국동포 여러분의 적극 협력을 얻어 우리의 숙망인 조국광복을 완수하여 빛나는 민족전통을 길이 살리고 찬란한 민족문화를 세계에 앙양하여 만방과 더불어 공존하고 공영케 하기에 얼마 남지 않은 나의 여생을 바칠까 한다."

 

이시영은 1948년 7월 24일까지도 '건국'과 '광복'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그런 까닭에 자신의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조국 광복 완수'에 바치겠다고 밝혔다. 또 삼천만 국민이 필사의 노력으로 '건국홍업'에 매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시영의 '질손(姪孫, 조카의 아들 또는 형제의 손자), 이종찬 광복회장에 따르면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으로 보거나 1919년 임정 출범을 '건국'으로 보지 않는 이들은 일제의 식민통치를 용인하고, 독립운동사를 부정하는 자가 된다.

 

그런데 ▲이종찬이 전두환 정권 당시 집권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의 원내총무로 있으면서 동상을 세웠던 집안의 어른 ▲자신의 조부인 우당 이회영의 아우 임시정부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킨 독립운동가 ▲80 노구에도 여생을 조국광복에 바치겠다고 밝힌 '노지사(老志士)'도 그의 '질손' 이종찬식 규정에 따르면 '일제의 강점을 규탄할 수도 없고 침략을 물리치는 투쟁도 모두 무의미하고 허망한 일'이 되게 하는 말도 안 되는 시각을 갖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종찬의 시각에 따르면 1945년 9월 환국 당시 '9살 꼬마 이종찬' 옆에서 감격에 겨워 눈물을 훔치던 '독립투사' 이시영마저도 매국노에 가까운 '친일파'가 되는 것 아닌가. 90 가까운 나이에도 '친일파 감별사' 식으로 나선 이종찬은 자신의 '작은할아버지' 이시영의 과거 발언, 당대 인식에 대해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까.

글=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08.18 여전히 '탈원전의 늪', 전력 수요 100GW 시대 감당할 수 있나

▲울산광역시 울주군에 위치한 새울 원자력발전소 1·2호기의 모습. photo 조선일보

 

102.237GW(기가와트). 지난 8월 12일 국내 전력 총수요가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서울 최고기온이 34도를 넘어선 이날 오후 2~3시경의 기록이었다. 여름날 가장 무더운 순간, 한국인에게 필요한 전력량은 이제 ‘100GW’를 넘어선 것이다. 전력 총수요가 100GW를 돌파한 건 작년 8월 7일이 처음이었다. 겨울의 난방 수요도 전력량 100GW를 위협한다. 한여름·한겨울마다 찾아오는 ‘전력 피크’가 100GW 시대의 본격화를 알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묵묵히 전력을 생산해 내야 하는 것이 바로 원전이다. 2023년 기준 원전은 전력생산의 30.7%를 담당해 화력발전(약 39.7%) 다음가는 발전원이다. 그러나 8월 15일 현재 우리 원자력발전소 26기 중 7기가 멈춰 선 상태다. 정상 가동 중인 원전은 19기로, 약 26GW의 설비용량 가운데 발전량은 20.8GW에 그쳐 80% 안팎 수준이다. 얼핏 높아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원전은 한 번 출력을 시작하면 설비용량의 100%에 가깝게 발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의 원전 이용률은 92%를 상회한다. 우리도 한때 93% 이상(2008년)의 가동률을 기록했었다. 그러나 탈원전을 기치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 때 66%까지 떨어진 뒤, 완전한 ‘회복’에 이르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고’ ‘예방정비’ 등으로 7기 가동 중단

날씨뿐 아니라 반도체, 전기차, 탄소중립, 데이터센터 등의 요인으로 전기 사용은 나날이 폭증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전력 공급의 핵인 원자력이 아직 ‘탈원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다 재생에너지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전력 운영에 부하를 부추기는 측면도 있고, 전력 공급의 혈맥인 송전망이 턱없이 부족해 발전소가 멈추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자칫 가까운 미래에 ‘전력 대란’이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가시지 않는 까닭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6월 ‘여름철 전력수급 전망 및 대책’에서 원전 21기를 가동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7기가 멈춰 선 현재 가동 원전은 19기에 그친다. 가동이 중단된 원전은 월성 3·4호기와 고리 2호기, 한울 3호기, 한울 5호기, 신월성 1호기, 한빛 6호기 등이다. 이 중 월성 3·4호기는 저장수 누출, 전원장치 화재 등 사고로 운전을 멈췄다. 가동이 중단된 두 원자로의 발전용량을 합치면 1.4GW다. 고리 2호기를 제외한 나머지 가동 중단 원자로 4기는 ‘계획예방정비’에 들어가 있다. 원전은 우라늄을 한 번 충전하고 난 뒤 소진되는 주기가 약 18개월로, 이 기간을 ‘1사이클’로 본다. 이 주기가 도래하기 전에 정기 점검을 실시해야 한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관계자는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18개월 주기 앞뒤로 20일 정도 여유를 두고 점검에 착수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여름철 수요 폭증을 염두에 두고 예방정비 시기를 앞당길 수는 없었을까. 업계 전문가들은 ‘가능한 이야기’라고 본다. 정재학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꼭 예방정비를 18개월에 맞춰 할 필요는 없다”면서 “시기에 맞춰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한수원은 이에 대해서도 “올해도 전력 피크를 고려해서 점검 계획을 수립했다”고 설명했다. 전력 수요를 충족하기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월성 3·4호기가 불시에 중단되는 등 변수를 고려하지 못했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계획예방정비의 기본 공기는 40여일이지만, 점검 때 지적되는 문제에 따라 실제로는 3~4개월 이상 걸리는 경우도 많다. 현재 예방정비에 들어선 4개 원자로는 빨라도 10월에야 재가동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탈원전’이 멈춰 세운 고리 2호기

고리 2호기가 멈춰 있는 것은 문재인 정부 탈원전의 흔적이다. 작년 4월 이후 계속 멈춰 있는데, 설계수명이 만료된 이후 계속운전을 위한 안전성 심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최초 운영허가 기간의 만기가 도래하면, 정부는 안전성 심사를 거쳐 10년간 더 운전할 수 있도록 한다. 이 심사는 3~4년 소요되는데, 원래대로라면 운전을 끊김 없이 할 수 있도록 2019년경에 심사에 착수했어야 한다. 하지만 문 정부는 허가가 만료되는 원전에 대한 계속운전 신청을 계속 불허해 왔다. 그러다 정권이 바뀐 2022년 9월에야 계속운전 신청이 이뤄진 것이다. 현행 규정은 원전을 멈춘 기간까지도 ‘재가동 10년’에 산입한다. 고리 2호기의 재가동 목표는 내년 2월인데, 그렇다면 계속운전이 가능한 기간은 일단 8년 정도인 셈이다.

 

고리 2호기의 설비용량은 650MW다. 2호기가 가동을 멈추기 전까지 생산하던 전기는 현재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이 대체하고 있는데, 생산단가가 원전보다 훨씬 비싸다. 한국전력거래소 자료 기준 2024년 평균 LNG(177.5원/kWh)의 생산단가는 원자력(64.7원/kWh)의 3배에 가깝다. 고리 2호기처럼 안전성 심사의 ‘때를 놓쳐’ 설계수명 만료로 인해 앞으로 일단 가동을 중단해야 할 원자로는 6기에 이른다. 문재인 정부 때 최저 66.5%까지 떨어졌던 원전 가동률은 2023년 기준 82.1%까지 회복됐지만 일시 중단을 앞둔 원전이 적지 않아 다시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내놓은 것이 지난 5월 나온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실무안이다. 전기본은 2002년부터 2년마다 수립되는 15년 단위 중장기 계획이다. 실무안의 골자는 이렇다. 2038년까지 필요한 전력 설비는 157.8GW다. 현행 및 건설이 확정된 설비는 147.2GW인데, 10.6GW가 모자란다. 실무안은 이 가운데 4.9GW를 신규 원전 3기와 소형모듈원전(SMR)으로 채우는 것을 권고했다. 발전량 기준 원전의 비중을 현재 수준에서 35.6%까지 늘리자는 것이다. 이 계획대로 원전을 새로 짓게 된다면, 착공을 기다리고 있는 신한울 3·4호기 건설 이후가 될 전망이다.

 

해당 실무안은 부처 간 협의, 공청회, 국회 상임위 보고 등을 통해 수립이 확정되는데, 아직 산업부와 환경부 사이의 합의에도 이르지 못했다. 내용을 평가하기에 이르다는 시각도 있지만, 내용을 두고 우려도 나온다. 먼저 ‘재생에너지 의존’에 대한 우려다. 실무안에 의하면 신재생에너지의 발전량 비중도 32.9%까지 늘리는 것으로 돼 있다. 특히 2022년 대비 태양광발전 설비 3.5배 증가, 풍력은 21.4배 증가를 제시하고 있어 2038년엔 태양광과 풍력의 설비용량이 도합 115.5GW가 된다. 애초 이번 실무안의 목표는 ‘무탄소 전원’, 즉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전력 생산의 비중을 70% 이상으로 확대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한전이 막대한 적자를 본 이유가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렸기 때문”이라며 “단가가 저렴한 원전은 조금밖에 늘리지 않으면서, 전기요금은 어떻게 할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재생에너지 자체가 안정적 전력 운영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태생적 한계도 지적했다. 발전량이 늘어도, 안정적으로 ‘제때’ 전기를 공급해주는 전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 교수는 “풍력발전의 비중이 높은 제주도가 바로 이런 경우”라며 “냉방 수요가 많은 7~8월에는 오히려 바람이 없어 전력 생산이 안 된다”고 전했다. 실제 제주도는 수요가 떨어지는 11월께 풍력을 이용한 전력 생산이 가장 많다. 실제 수요보다 훨씬 많은 전기가 공급되는데, 이럴 때는 ‘출력제어’를 통해 발전이 중단된다. 지난해 제주도에서 풍력 출력제어 건수는 117회나 됐다.

 

한편 실무안에서 목표로 하는 수요는 129.2GW로, 전력 설비 157.8GW 기준 예비율은 22% 수준이다. 이를 두고도 ‘전기 수요가 폭증하는 와중에 시대에 걸맞지 않은 보수적 수요 및 설비 예측’이란 지적도 나온다. 정 교수는 “과거에는 경제성장률, 인구 증가 등 경제적 요인만 보고 전력수요를 예측했다”며 “지금은 탄소중립이 매우 큰 요소가 되었는데 이 부분의 반영이 미진하다”고 설명했다. 자동차, 공장 등 기존에 화석연료를 쓰던 분야에서도 전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늘었기 때문에, 이 부분을 고려한 수요 예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일단 실무안이 신규 원전 건설의 필요성은 적시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시각도 있다. 정재학 교수는 “원자력이 과거 몇 년간 침체되어 있었다”며 “아주 충분하진 않지만 여러 에너지원 가운데 원자력의 역할을 찾는 시작점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봤다.

 

전문가들은 이제 ‘탈석탄’ 기조는 탈원전과 별개로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는 “지금 원전의 발전 비중이 낮지 않지만, 탈석탄 시대를 대비할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 화력발전소의 비중이 자연히 줄어들 때 원전이 기저전력 역할을 해야 하고, 미래에 재생에너지의 비중이 과다하게 높아지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언급이다.

 

 미국 선례 있는데… 송전망 건설 지지부진

또 하나의 큰 문제는 ‘전력망’이다. 11차 전기본 실무안을 담당한 정동욱 총괄위원장 역시 “전원 계획을 아무리 수립해도 전력망 확충에 성공 여부가 달렸다”고 말한 바 있다. 데이터센터, 반도체 클러스터 등 전력 수요는 수도권에서 계속 늘어난다. 그러나 원전을 포함한 대부분의 전력 생산은 비수도권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다 신재생에너지의 경우 전력생산이 시간과 날씨에 따라 차이가 심하다. 송전망이 포화되었음은 물론 에너지저장시설(ESS) 등의 대안이 충분치 않아 출력제어를 통해 공중으로 사라지는 전력도 적지 않다. 전력 생산만큼이나 전력 계통 운영이 중요해진 것인데, 현재 전력망을 가지고는 효율적 운영이 어려운 것이다.

 

발전소를 지어놓고도 송전을 못해 전력 생산을 못하는 경우도 생겼다. 강릉에코파워·GS동해전력·삼척블루파워 등 동해안권 석탄화력발전소서 운영하는 발전기 8기가 모두 지난 4월부터 가동이 중단됐다. 현재 동해안에서 수도권으로 가는 송전선은 11.4GW까지만 감당할 수 있다. 그러나 원전과 석탄 발전을 합치면 이를 훌쩍 넘는다. 전력시장운영규칙상 원전과 재생에너지에 송전용량이 먼저 할당돼 아예 발전이 불가능할 지경인 것이다. 원래는 2019년 추가 완공이 예정됐던 송전선로를 이용해 송전할 계획이었으나, 이 사업이 7년간 미뤄졌다.

 

한전은 누적된 적자와 문 정부의 탈원전 및 탈석탄 기조 속에 송전선로 건설 사업에 손을 거의 대지 않았다. 2008년 밀양 송전탑 사태 이후, 송전탑 건설에 대한 주민 반발 등을 정치적으로 해결할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이덕환 교수는 “정부가 사회적 합의를 위해 보상 등 가이드라인을 명확히 정할 필요가 있다”며 “정치적 역할이 중요한데, 지금은 한전에다 떠넘기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반해 미국은 ‘전력망 손보기’를 국가적 프로젝트로 삼았다. 몇 년 전 텍사스 정전사태로 큰 홍역을 치른 다음이었다. 2021년 2월 기록적인 한파와 폭설로 전력 수요가 크게 늘자, 텍사스주 내에서 광범위한 전력공급 부족 사태가 일어났다. 정전 여파로 상하수도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등 수백만 명이 추위와 어둠 속에서 공포에 떨었다. 발전설비 자체의 공급이 부족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텍사스주 내의 전력망 문제가 주요한 원인으로 지적됐다. 독자적인 전력망을 사용해 비상 시 다른 주에서 전기를 융통할 수 없었고, 민영 업체들이 노후화된 설비를 교체하지 않는 등의 문제가 밝혀진 것이다. 실제 텍사스뿐만 아니라 미국은 악천후에 정전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미국 전역에 깔린 전력망 시설들은 대부분 1960~1970년대에 구축된 것이다. 비영리단체 ‘클라이밋 센트럴’에 따르면 2000년부터 작년까지 미국서 있었던 주요한 정전 가운데 80%(1755건)는 날씨가 원인이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올 4월 17만여㎞에 달하는 송전선을 업그레이드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전력망 규칙을 개정해 각 사업자가 전류 전달 효율이 훨씬 좋은 초전도케이블 등의 최신 설비를 설치하도록 유도했다. 텍사스 사태는 기후변화와 맞물려, 재생에너지의 불안정성이 전력공급 변수 중 하나인 우리에게도 시사점이 있다.

 

바이든 정부가 송전선 업그레이드에 과감히 나선 데는 텍사스 사태가 미국 내 산업 전환기와 겹치는 사건이라는 이유도 중요했다. 바이든 정부가 추진하던 전기차 보급, 데이터센터 건설, 칩스법을 위시한 리쇼어링 등이 맞물려 전력 수요가 폭증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한 것이다. 미국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에 따르면 미국 내 전력계통의 연결을 기다리는 발전, 또는 저장 사업이 2022년 기준 2000건이 넘는다. 특히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이후 에너지 기업들이 제시한 프로젝트들이 전력망 문제로 모두 대기 중이라는 것이다.

한국은 어떨까. 한국전력은 ‘제10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을 통해 2024년부터 2036년까지 총 56조5000억원의 설비 투자를 계획했다. 송전선로는 1.6배, 변전용량은 1.5배 늘린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지난해 32조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까닭에 이 계획의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표하는 이들이 많다. 한전은 진행 중인 계획도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 동해안서 수도권으로 가는 송전선로는 2010년 계획 때부터 따지면 벌써 15년이나 된 과제인데도 공정률은 8%에 불과하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추진하는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은 지난 국회에서 폐기됐다. 송전망이 지나는 지역 주민을 지원하고, 각종 인허가 규제는 완화하는 법안이었다. 이번 국회에서 다시 발의됐지만 정쟁 속에 묻혀 있기는 이번에도 매한가지다. 하릴없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발전소는 멈춰 있다. 더운 날 숨 쉴 틈을 주는 에어컨도, 쉴새없이 돌아갈 제조공장 설비도 어쩌면 멈추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주간조선 이용규 기자

 

08.21 대학교 등록금 완전 자율화, 화급하다 

대학 첨단학과 신설·증원
규제 풀었는데도 너무나 미미
문제는 실력파 교수 확보할 자금
등록금 인상률 16년 합쳐 4.2%
계속 동결하고 정부 지원도 없다면
첨단산업 인재 양성 아예 불가능
교육부는 등록금 결정 손떼고
대학별 완전 자율화 하게 해야

 나라 경제의 장래가 반도체, 인공지능, 바이오, 에너지, 신소재 등 첨단 미래 산업의 인재 확보에 달려 있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가장 철벽 규제라는 수도권 규제까지 풀어서 첨단학과의 경우 수도권 대학에 대해서도 학과 신설, 증원을 허용하기에 이르렀겠는가? 학생 정원을 늘릴 때 요구되는 교사, 교지, 교원, 수익용 기본재산 등의 조건도 교원만 남겼고 교원의 1/3을 전임이 아닌 겸임, 초빙교수로 채워도 된다는 파격적인 규제 완화를 했다.

 

그러나 2024년 수도권 첨단기술 학과의 입학 정원 순증은 817명에 그쳤다(비수도권 1,012명을 더하면 1,829명). 각 대학이 얼마나 신청했는지, 왜 다 허용해 주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가 없었다.

 

교원만 확보하면 증원해도 좋다고 했으니 증원을 허용하지 않은 이유는 교원 확보 계획이 신빙성이 없다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이공계 첨단학과의 경우 실험, 실습 시설과 교원 확보에 다른 학과들에 비해 엄청난 비용이 든다. 교수 요원의 경우 다른 나라의 다른 대학들과는 물론 미국, 중국 등의 세계 최대 기업들과도 유치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교육부 입장에서 무슨 돈으로 교수와 시설을 확보하겠다는 것인지 의심스러운 경우가 많았을 수도 있다.

 

요컨대 첨단 분야의 인재 양성은 대입 정원이 아니라 대학 재정력의 문제인데 지금 우리 대학의 재정 형편은 고사 일보 직전에 있다. 2000년대 들어서 6%를 웃도는 수준을 유지했던 사립대 등록금 인상률은 2009년 0.5%로 떨어지고 10, 11년에 1.5, 3.0%로 약간 회복되었지만 2012년 -3.9%로 원점으로 돌아간 후 지금까지 16년간 다 합쳐서 4.2% 오르는 사실상 동결 상태를 유지했다. 소비자물가가 39.3% 올랐으니 실질 등록금 수입은 25% 줄어든 셈이다. 게다가 학생 수 감소로 2011년 13.6조원이었던 등록금 수입이 작년에는11.4조원으로 줄었다. 반값 등록금을 약속하는 정치인들은 대학교육의 질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겠지만, 등록금 동결이 계속되고 이를 벌충할 정부의 지원도 없다면 첨단산업 인재 양성은 불가능하다.

 

법에 의하면 대학 등록금은 직전 3년간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평균의 1.5배까지 올릴 수 있게 되어 있다. 왜 안 올렸냐고 대학에 물어보면 등록금을 올리면 국가장학금 II 타입을 배정받지 못하게 되고 다른 예산 지원 등에서도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있어서라고 한다. 올해 법상 인상 한도인 5.64%만 올렸다면 6,400억원 정도의 재원을 더 마련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주먹구구 계산이지만 소비자물가만큼만 매해 올렸어도 올 한 해에 4조원 이상, 법이 허용하는 1.5배를 계속 올렸다면 6조원 이상의 재원을 더 가지고 첨단 학과의 시설과 교수 확보에 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참고로 올해 타입 II 국가장학금은 3,500억원이다. 지금이라도 대학은 일치단결하여 이 국가장학금 예산을 거부하고 등록금 인상의 자유를 쟁취해야 한다.

 

대단히 비현실적인 얘기라고 할 줄 안다. 그 사이에 학생 대표가 3/10 이상을 차지하는 등록금심의위원회 설치가 의무화되었다. 대부분 대학이 전문가 1명 이외의 위원을 학생과 교직원이 반분하는 구조의 위원회를 설치했고 학생 대표들은 등록금 동결을 소명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학생들의 입장이 다 같은 것은 아닐 것이다. 졸업 후에 전공 분야에서 일할 가능성이 희박한 학생이라면 어떻게든지 등록금을 한 푼이라도 덜 내는 것이 이익일 수 있다. 그러나 전공 분야에서 일자리를 얻어 평생 그 분야에 종사할 생각인 학생은 등록금을 좀 더 내서 더 실력 있는 교수도 모시고 실험 실습 장비도 현대화해서 그 학교 출신이라면 세계 일류 회사에서 앞다투어 모시고 갈 정도로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고 싶어 할 것이다.

 

등록금 결정 단위를 분야별로 세분화하고 해당 학과의 학생과 교수가 주도적으로 용처를 정하게 하는 체제로 바꾸어야 한다. 내가 더 낸 등록금이 내가 원하는 대로, 나를 위해서 쓰인다면 학생들이 등록금 인상을 주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좌우지간 교육부는 등록금 결정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등록금 결정 방법 자체를 자유화해야 한다.

 

어떤 문제든 모으면 큰 문제가 되어 합의가 어렵고 쪼개서 작은 문제로 만들면 합의가 쉬워진다. 사람 수가 많으면 실질적인 협의 자체가 불가능하고 선동이 더 쉬워진다. 온 국민이 다 원하는 하나의 결정을 정부가 해 주어야 한다는 사명감부터 버려야 한다.

조선일보 박병원 한국비영리조직평가원 이사장·한국고간찰연구회 이사장

 

08-21 판사 요건 완화 포함해 법조일원화 재검토 논의할 때다

사법시험 폐지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정착 등에 대비해 변호사 등을 판사로 임용할 수 있게 한 ‘법조 (재조·재야) 일원화’ 제도가 시행 10여 년 만에 근본적 개편을 해야 할 상황에 봉착했다. 여야 정치권은 물론 사법부에서도 그 필요성이 광범위하게 제기됐다. 김용민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 21명은 최근 ‘판사 임용에 필요한 최소 법조 경력’ 기간을 10년에서 5년으로 단축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재명 대표 1심 판결을 앞둔 시점이고, 지난 제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이 발의했음에도 부결된 전례가 있어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시각도 있긴 하다.

그러나 판사 출신인 장동혁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최근 “법조일원화 정책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면서 ‘법조 경력’을 3년으로 낮추는 응급 조치도 시급하다고 밝혔다. 법원행정처가 지난달 실시한 전체 법관 상대 설문조사에서도 현행법의 10년은 문제가 있으며(92%), 적절한 수준으로는 3년(49%)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현재 판사로 임용되려면 쌓아야 하는 검사·변호사·교수 등 ‘최소 경력’이 2013년 3년을 시작으로 2018년 5년으로 확대됐고 내년부터는 7년, 2029년엔 10년으로 늘어날 예정이다. 올해 안에 법원조직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내년부터는 재판 지연 등의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유능한 법관 충원에 도움이 될 것이라던 당초 취지와 달리 부작용도 심각하다. 변호사 10년 경력자면 상당한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돼 독립된 판결에 장애도 된다. 성적만으로 임용된 ‘소년 판사’의 물정 모르는 판결과 법원 엘리트주의, 전관예우 등을 막기 위해 도입된 법조일원화가 이상과 달리 판사의 고령화, 우수 지원자 부족, 유능한 법관 불이익, 이른바 ‘후관 예우’등의 결과를 낳고 있다.

2013년 법조일원화 제도 도입 이후 법관의 평균 연령은 지난해 44.6세로 10년 새 4.7세 높아지는 등 판사의 고령화 문제도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2018년 민사 단독은 1심 선고까지 평균 4.6개월, 민사합의 사건은 9.9개월이 걸렸지만, 2023년에는 각각 7.6개월과 14개월로 늘어났다. 판사 충원 시스템에 대한 근원적 재검토가 시급하다.

문화일보 사설 

 

08.23 저출생 대책 '인구부法', 미적거릴 시간 없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22일 육아휴직과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대상 자녀 연령을 만 12세 이하로 확대하자고 제안했다. 현재 육아휴직,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는 자녀 연령이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 2학년 이하까지만 가능한데, 대상 확대를 위해 법을 고치자는 것이다. 이런 내용의 ‘모성보호 3법’은 정부가 이미 작년에 발의했고 더불어민주당도 찬성하지만, 정작 이 법을 다뤄야 할 상임위에서는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때문에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다. 한 대표는 “인구절벽 극복 법안에는 초당적으로 민주당과 협력하겠다”고 했다.

 

여야 간 극한 정치 대립에도 이견이 없는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저출생과 인구 문제다. 누가 집권하더라도 지금의 저출생 문제를 방치하고 대책을 세우지 못하면 국가적 쇠퇴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탄핵과 특검, 그리고 정쟁 청문회 때문에 여야 이견이 없는 저출생 법안조차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인구전략기획부(인구부) 신설을 위한 정부조직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여당은 지난달 인구 관련 전략을 수립하고 저출생 사업 예산을 배분·조정하는 역할의 인구전략기획부 설치를 위한 법을 발의했다. 인구부장관은 사회부총리를 겸임하게 된다. 기존의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도 신설되는 인구부 설치에 근거해 정책 범위를 저출생·고령화를 넘어 더 포괄적인 내용으로 하는 인구위기대응기본법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그러나 여야의 대립으로 이 같은 인구부와 관련된 법안들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유혜미 대통령실 저출생대응수석은 “인구부가 빨리 출범해야 인구구조 변화 속 미래 경쟁력 제고 전략도 가능하다. 여야가 잘 타협해 일찍 처리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유 수석은 외국인 인력 활용 같은 정책도 인구부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지난 총선 때 인구위기대응부 설치를 공약했고, 백혜련 의원은 인구위기대응부 설치를 위한 정부조직법을 대표 발의했다. 민주당이 정부조직법에서 정무장관 신설 내용을 반대하고 있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충분히 타협이 가능하다.

 

한동훈·이재명 대표의 여야 대표 회담이 열리면 인구부 설치법에도 합의하고 처리에 속도를 내야 한다. 집권을 하겠다는 정당들에 저출생과 인구 문제보다 절박한 과제는 없을 것이다. 대통령이 이 문제를 위해 여야 지도부 회동을 먼저 제안해 물꼬를 틀 수도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8-27 전기차 공포, 한국엔 기회다

문희수 논설위원

말 많던 배터리 제조사 공개 당연
‘배터리의 뇌’ BMS까지 확대를
근거 없는 땜질 대책 불안만 키워

정부 인증제·이력제 실효 의문
안전·품질 우수한 한국엔 호기
소비자 신뢰 높여 캐즘 넘어야

국내에서 판매되는 전기차에 장착된 배터리 제조사가 모두 공개됐다. 현대차·기아를 필두로, 문제의 인천 화재가 발생한 벤츠, 국내 판매 1위 테슬라까지 14개사가 정부 정책에 동참했다. 당연한 결과다. 영업비밀 노출이 우려된다고 해도 소비자의 안전 강화가 먼저다. 사실 일부 외국 업체가 미국·유럽에선 최고 품질의 배터리를 쓰고, 국내에선 저가·저품질 배터리를 쓰며 차별한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는 실정이다. 중국 업체 1·2대 주주인 벤츠가 하필 문제의 전기차에 세계 하위권인 중국산 배터리를 장착한 사실을 두고 뒷말이 없지 않다. 꼼수가 아니라면 공연한 의심은 터는 게 마땅하다.

여기서 그쳐선 안 된다. 정부와 산업계 모두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같이 핵심 기술이 담긴 안전장치까지 공개 대상을 더 확대해 소비자에게 알려야 한다. BMS는 배터리 전류·전압의 변화·온도·순간 미세 합선(단락) 등을 체크하는 첨단 기술로, ‘배터리의 뇌’로 불린다. 그런 만큼 선두권 업체일수록 공개를 꺼리지만, 소비자 요구에 따르는 것은 의무다. 화재의 여파가 심각하기에 더욱 불가피하다. 전기차 포비아(공포) 확산으로 아파트 지하주차장 이용을 놓고 주민 분쟁이 벌어지고, 여객선들까지 선적을 기피하는 정도다. 전기차가 기피 대상이 된 셈이다. 안전 입증이 관건이다.

설상가상으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뜬금없는 규제가 잇따른다. 서울시가 90% 충전 이하만 지하 주차를 허용하고, 충전시설을 지상화한다는 게 대표적이다. 지하주차장 출입금지는 화재 발생 때 열 폭주로 불이 커지는 것을 막는 차원이지, 화재를 막는 근본 대책이 못 된다. 오죽하면 현대차·기아가 ‘100% 완충’도 안전하다는 발표까지 했다. 이미 3중 안전장치가 돼 있다는 것이다. 배터리 제조업체는 제작 단계, 자동차 업체는 차량 탑재 단계에서 각각 충전 여유분(마진)을 두기 때문에 계기판에 충전 100% 표시가 떠도 실제 완충은 없다고 한다. 또 BMS로 배터리 사용 가능 용량을 재산정하고, 화재 위험이 있으면 차량 소유자에게 안내도 한다. 전문가들은 배터리의 양극이 불량 또는 외부 충격으로 내부에서 합선할 때 화재가 발생한다고 말한다. 전기차 화재 위험이 유난히 높은 것도 아니다. 화재 발생률이 0.013%로, 하이브리드차(0.002%) 휘발유차(0.006%)보다 높지만, 경유차(0.015%)보다는 낮다. 과학적 근거가 없는 마녀사냥식 규제는 불안을 조장해 모두에 더 큰 피해를 줄 뿐이다.

이제까지의 정부 대응도 너무 안이하고 부실했다는 사실 역시 어김없이 드러났다. 전 정부 때부터 보급에만 치중하고 안전엔 소홀했다. 54만 대 이상의 전기차가 보급됐지만, 화재 위험을 줄일 전력선통신(PLC) 모뎀이 장착된 완속 충전기가 나온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뒷북 행정, 늑장 대책이다. 지난 25일 고위당정협의회에서 앞당겨 시행키로 한 배터리 안전 인증제나 이력제 등도 실효성이 여전히 의문이다. 당정이 곧 발표하겠다는 종합대책은 안전장치 강화 등 화재 예방은 물론 화재 소방법까지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침체) 시기다. 전기차·배터리 제조업체부터 양극재 등 소재업체들까지 고전 중이다. K-배터리는 중국의 맹추격을 당해 이미 글로벌 1위를 내줬다. 돌발적인 화재로, 침체가 더 길어질지 모를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한국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전기차는 돌이킬 수 없는 시대적 추세다. 공포를 넘어 옥석 가리기가 활발해질 게 분명하다. 안전하고 품질 좋은 K-전기차·K-배터리의 우수성을 알릴 좋은 기회다. 중국에선 전기차 화재가 하루에 1대꼴이라지만, 현대 전기차는 이제껏 한 건도 없다고 한다. 부실한 중국 통계의 전모가 드러나면 격차는 더 커질 것이다.

희망적인 조짐이 보인다. 올 1∼7월 현대차그룹의 미국 시장 전기차 점유율은 포드·GM을 제치고 테슬라 다음의 2위로 두 단계 올라갔다. 외신들은 가성비·전비(연비)를 높이 평가한다. 여기에 소비자 신뢰를 더 키우면 캐즘을 넘을 돌파구를 만들 수 있다. 이번 사태에서 현대차·기아가 정보 공개에 앞장선 것은 잘한 일이다. 수요 변화에 선도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소비자와 업계가 상생하는 길인 동시에 도약으로 가는 길이다.

문화일보 

 

08.27 '1948년 건국은 친일'이라는 궤변

대한민국은 서자의 나라인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듯, 건국을 건국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구한말인 1910년 조선이 일제에 나라를 빼앗겨, 35년간 식민통치를 당했다가 45년 해방을 맞이한 뒤 3년간의 미군정을 거쳐 48년 대한민국 정부가 건립됐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어떻게 1948년 건국을 얘기하면 뉴라이트, 친일파라고 매도당할 수 있나. 그런 식이면 1998년 “올해로 건국 50주년을 맞았다”는 김대중 대통령도, 2003년 8월 15일 “58년 전 오늘 나라와 자유를 되찾았다. 그로부터 3년 후에는 민주공화국을 세웠다”는 노무현 대통령도, 심지어 해방 공간에서 ‘건국실천원양성소’를 세우고 ‘양심건국(良心建國)’을 주장한 백범 김구도, 조선건국준비위원회(건준)를 결성한 몽양 여운형도 친일파라는 소리인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선포하는 이승만 대통령 따라서 8월 15일은 광복절과 함께 건국절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사단법인 이승만건국대통령 기념사업회]

 

당초 논란이 됐던 건 건국이 아니라 건국절이었다. 2006년 뉴라이트 계열의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가 일간지에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는 칼럼을 기고하면서 촉발됐다. 당시에도 ‘건국이 아니라 정부수립이다’ ‘건국이라고 하면 5000년 역사의 연속성이 단절된다’ ‘광복절이 있는데 굳이 건국절이 필요한가’ 등 반론이 거셌으나 1948년 시점에 대한 이견은 크지 않았다.

 

건국 시기 둘러싼 치열한 논쟁 속

48년 건국 주장을 식민사관 매도

옳고 그름 아닌 팩트로 검증해야

 

갈등을 증폭시킨 건 문재인 정부였다. 2017년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2년 후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라고 규정했다. ‘1948년 건국이냐 아니냐’는 논쟁을 현직 대통령이 나서서 ‘1919년 건국’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때부터 1919년 건국을 반대하는 건 임시정부 부정, 독립운동 폄훼로 치부됐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식’ 정부를 건국으로 인정하지 못하면서, ‘임시’ 정부를 건국이라고 하는 건 앞뒤가 안 맞지 않나. 게다가 임시정부는 사법권도 치안권도 없었고, 한반도 주민을 전혀 관할하지 못했다. 국가의 3요소는 주권·국민·영토라는 상식과도 어긋난다. 아무리 독립운동의 대표성·상징성이 있더라도 ‘임시정부 수립=건국’이라는 주장은 억지다.

 
 

하지만 좌파 진영은 반일 정서를 이용해 ‘1919년 건국설’을 몰아붙였다. 특히 1948년 건국의 부당성을 설파하는 데 집중했다. 그래서 나온 게 ‘기적의 3단 논법’이다. ①1948년 건국이라면 그 이전엔 나라가 없었던 거다→②일제 시대 국적이 일본이라는 뜻으로, 식민 지배를 정당화한다 →③이는 전형적인 식민사관으로 친일파의 논리다. 이에 따라 ‘1948년 건국 주장=친일파’로 귀결됐다. 그렇다면 반대로 묻고 싶다. 일제 시대 우리에게 나라가 있었나. 나라가 있었다면 왜 독립운동을 했나. 왜 해방을 염원했나. 나라를 빼앗겼기에 손기정 선수가 일장기를 달고 올림픽에 출전하는 설움을 겪을 수밖에 없지 않았나.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역사적 팩트다. 일제 시대, 우리에게 나라가 있었다는 주장은 뒤늦은 정신 승리다.

 
 

억지 주장의 압권은 광복회의 뉴라이트 판별법이다.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이라고 하면 뉴라이트·친일파란다. 이승만은 48년 대한민국 정부의 초대 대통령이자, 19년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었다. 19년이든 48년이든 건국 대통령 이승만은 변함없다. 이승만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건국 대통령인가. 유령인가.

 
 

▲이종찬 광복회장이 지난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에서 열린 대일청구권 사회공헌 학술토론회 개회식에 참석해 최근 대한민국 독립과 건국을 둘러싼 갈등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왜 이토록 1948년 건국을 부정하려는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남한 단독 정부수립을, 이승만 정부를 인정할 수 없어서다. 올해 들어 영화 ‘건국전쟁’이 인기를 끌고, 이승만기념관 건립이 탄력을 받는 것도 영향을 끼쳤을 듯싶다. 윤석열 정부는 특정 시기가 아니라 1919년 임시정부부터 48년 정부수립까지 일련의 과정을 건국이라고 하는데, 그렇다한들 그 종착지엔 1948년이 있다. 48년을 빼고 건국을 논할 수는 없다. 친일몰이에 한국 사회가 오염되고 있다. ‘반일 파시즘’에 대한민국 정통성이 흔들려선 안 된다.

중앙일보 최민우 정치부장

 
 

08.28 깃털처럼 가벼워진 대법원장이란 자리

대법 사건 수임한 양승태 전 원장
'사법 흑역사' 만든 김명수 전 원장
대법원장의 명예와 무게 점점 추락
존경받는 대법원장 없는 건 불행

▲한명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정치자금법 위반에 대한 선고 공판이 열린 20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양승태 대법원장 및 대법관들이 입장하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대법관 8(유죄)대 5(일부 무죄) 의견으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 의원에게 징역 2년과 추징금 8억8천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2015.8.20 /조선일보DB

 

2011년 양승태 대법관은 퇴임 당시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고위 법관들이 퇴임 직후 변호사로 개업해 거액의 수임료를 챙겨 비판 여론이 일 때였다. 퇴임한 그는 백담사에 머물며 보름간 설악산을 다녔고 네팔로 가서 트레킹을 했다. 이명박 정부의 대법원장 후보 인사 검증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친구들과 미국에서 존 뮤어 트레일을 걷다가 이 대통령의 설득으로 대법원장이 됐다. 당시 그 초연함이 화제가 됐다.

그는 대법원장이 된 후에도 “전관예우가 법조 병폐로 지적되는 것은 슬픈 현실”이라고 했다. 해결책 중 하나로 평생법관제를 제시했다. 대법관에 못 오른 법원장들이 하급심에 복귀해 재판하면서 65세 정년을 채울 수 있게 한 것이다. 그의 업적 중 하나로 꼽히는 일이다.

 

그랬던 그가 얼마 전 변호사 등록을 하고 대법원에 올라온 기업 형사 사건을 수임한 사실이 알려졌다. 그간 전직 대법원장들은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거나 로펌에 들어가도 사건 수임 대신 자문·고문 역할만 했다. 대법원장이란 자리의 무게, 그리고 사건 수임이 법관들에게 줄 부담 등을 의식했을 것이다. 그런데 전직 대법원장이 하급심 사건도 아니고 대법원 사건을 수임했다. 그 자체로 부적절한 일이다.

 

양 전 대법원장도 이를 모를 리 없다. 어느 법조인은 그가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퇴임 후 7년간 아무런 활동을 못 했다. 이른바 ‘사법 농단 의혹’으로 6년간 검찰 수사와 재판을 받느라 큰 고통을 겪었고, 재판 진행 중에 폐암 수술도 받았다. 올 초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변호사비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결국 ‘생활’을 위해 사건을 수임했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일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일은 그만의 문제도 아니다. 대개 50대 후반에 임명되는 우리 대법관들은 임기가 종신제인 미국과 달리 임기 6년을 마치면 60대 초반 정도 나이여서 변호사 개업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정년이 70세인 대법원장도 다를 게 없다. 10여 년 전 ‘청백리’로 불렸던 어느 대법관은 퇴임 후 아내가 운영하던 편의점에서 일하다 “무항산이면 무항심(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견지하기 어렵다)”이라는 말과 함께 대형 로펌으로 갔다. 그 직후 대법원 사건 수임 상위권을 기록했다고 한다. 퇴임 후 후학 양성에 기여하겠다고 해놓고 로펌으로 직행한 대법관도 있었다.

 

문제는 이런 일들이 전관예우 의혹을 계속 부추긴다는 것이다. 한때 전직 대법관들이 대법원 사건을 독점하면서 ‘도장 값’으로만 수천만 원씩 받아 간다는 말이 돌았다. 실제 어느 변협회장이 재임 시 대법원 사건 수임을 조사해 봤더니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이 변호사가 선임된 대법원 사건의 70~80%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상황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 와중에 전직 대법원장까지 대법원 사건을 수임했으니 그게 국민들 눈에 어떻게 비치겠나. 당장 대법관들도 부담스러울 테고 양 전 대법원장 측에 유리한 결론이라도 나오면 바로 전관예우 의심을 받을 것이다.

 

사법부 수장인 대법원장은 국민의 존경과 신뢰의 대상이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법부 역사에선 초대 김병로 대법원장 외에 그런 대법원장이 없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은 문재인 정권 편에 서서 법원을 정치판처럼 만들고 거짓말까지 했다. 사법의 흑역사다. 그런데 재판·법원 행정에서 출중했다는 평을 들어온 양 전 대법원장까지 대법원 사건 수임으로 대법원장 자리의 명예와 무게를 또 낮췄다. 대법원장 자리가 이렇게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건 나라를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조선일보 최원규 논설위원

 

08.29 조희연 '해직 교사 특채' 대법서 집행유예 확정, 교육감직 상실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2년형 확정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출신 해직 교사를 부당하게 특별 채용한 혐의로 기소된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직위를 잃었다. 조 교육감의 직 상실로 오는 10월 16일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가 치러지게 됐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뉴스1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29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조 교육감에 대해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함께 기소된 전 비서실장 한모씨에 대해서도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이 확정됐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이날 대법원 판결로 조 교육감은 즉시 교육감직을 잃게 됐다. 공직선거법과 지방자치교육법에 따르면 교육감은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는 경우 곧바로 직을 상실하게 된다. 교육감 최초로 3선에 성공한 조 교육감의 임기는 2026년 6월까지인데, 임기를 2년가량 남기고 불명예 퇴진하게 됐다.

 

조 교육감은 재선을 앞둔 2017~2018년 전교조 서울지부로부터 전교조 출신 퇴직 교사 5명에 대한 특별 채용을 요구받고, 부하 직원들의 강한 반대에도 채용을 강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조 교육감은 특별 채용을 담당한 장학관과 심사위원들에게 내정자들에게 고득점을 주라고 지시하는 등 부당한 영향력을 끼친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특별 채용 대상된 교사 중 한 명은 2018년 6월 교육감 선거에 출마했다가 경선에서 조 교육감과 단일화했다. 이 교사를 포함한 전교조 퇴직 교사 5명이 조 교육감의 재선 이후 채용됐다.

조 교육감 측은 특별 채용 논란에 대해 “과거 부당하게 해직된 교사들을 다시 채용한 것일 뿐 위법하지 않다”며 “사회적 화합과 통합을 위한 적극적 행정 차원이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1·2심 법원은 그의 모든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1심은 “조 교육감이 권한을 남용해 교원 임용 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이 훼손됐다”며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심도 마찬가지로 “(전교조에 대한) 사적인 특혜나 보상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원심을 유지했다.

 

이날 대법원은 조 교육감이 신청한 위헌법률심판 제청도 모두 기각·각하했다. 조 교육감은 상고심 과정에서 직권남용죄와 교육공무원법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경우 처벌하는 형법상 직권남용죄가 헌법에 반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대법원은 “제청에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조 교육감의 직 상실로 오는 10월 16일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가 치러질 예정이다. 그 전까지는 설세훈 서울시교육청 부교육감이 권한대행을 맡는다.

조선일보 박혜연 기자

 

08-30 좌편향 극복한 한국사 교과서, 역사교육 정상화 계기다

중등학교 역사교육, 특히 근현대사 교육의 좌편향·친북 경향에 대한 우려는 30년 가까이 계속 제기됐다. 특히,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중에는 대한민국 정통성을 폄훼하고 북한 정권 수립과 주체사상을 미화하거나, 심지어 계급투쟁 사관에 입각한 경우도 있었다. 정부 수립 과정의 반란 사건들에 대해서도 무장 봉기와 저항 운동으로 규정하고, 이승만·박정희 업적을 깎아내렸다. 이를 시정하기 위한 노력이 없진 않았지만, 국내 역사학계의 편향성 등이 작용해 제대로 된 결실을 거두기에 역부족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과정평가원이 30일 관보에 게재한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2024년 교과용 도서 검증 합격 결정’에 따르면, 한국학력평가원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가 포함됨으로써 내년 1학기부터 교과서로 채택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고교 한국사(Ⅰ·Ⅱ) 교과서는 9곳의 출판사 도서가 통과됐는데, 그 중 학력평가원 교과서는 기존의 편향성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뚜렷해 보인다.

3·1운동, 88서울올림픽, 연평도 포격 도발을 연상케 하는 그림을 표지로 삼은 이 교과서는 ‘광복 후 우리 역사에 영향을 끼친 인물 7인’ 특집 자료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사진을 맨 앞에 싣고 ‘광복 후 독립촉성중앙협의회를 결성하고 신탁통치 반대와 남한 단독 임시정부 수립을 주장했다’고 서술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국내외에 선포하였다’며 자유 개념을 복원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검정 통과돼 2020년부터 사용 중인 중학교 역사 교과서 7종,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9종에서는 이 전 대통령의 중요 업적은 없고 독재자로 서술했다. 이 전 대통령의 1946년 6월 ‘정읍 발언’을 1946년 2월 김일성의 북조선인민위원회 수립 사실보다 먼저 서술함으로써 분단 책임을 씌우기도 했다.

여러 이유 때문에 ‘반(反)대한민국’ 역사교육이 횡행했다. 제대로 된 역사교육이 이뤄져야 반듯한 미래세대를 키울 수 있다. 새 교과서는 다음 달 2일부터 일선 학교 검토를 거쳐 내년부터 사용된다. 만시지탄이나 균형 잡힌 교과서가 많이 채택돼 올바른 역사교육이 이뤄지길 바란다.

문화일보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