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主國防 2024-07/
07.01 ‘판문점 USB’ 정보공개소송 판결의 의미
“국가기밀 들어 있다는 사실, 사법부가 공식 선언한 것”
⊙ “한반도 신경제 구상에 관한 대북 관련 정책 또는 남북협력사업 관련 내용 포함”(1심 판결문)
⊙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 현저히 해칠 우려 있어”(법원·통일부)
⊙ 통일부 “한반도 신경제 구상 관련 내용만 담아”
⊙ “3급 비밀, ‘비공개 대상 정보’와 차이 있어… 공개 의무에 해당”(구주와 변호사)
⊙ 文, 회고록서 ‘도보 다리 산책’ 대화 내용 밝히면서도 USB는 언급 안 해

▲문재인 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도보 다리 산책’을 하며 대화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구주와 변호사가 지난해 5월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전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에게 건넨 USB 내용을 공개해달라”며 통일부 장관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청구 행정소송 1심에서 지난 5월 17일 패소했다.
기자가 입수한 이 사건 1심 판결문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최수진 부장판사)는 “이 사건 정보는 2018년 판문점 회담을 앞두고 준비한 한반도 신경제 구상에 관한 대북 관련 정책 또는 남북협력사업과 관련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며 “이는 국가안전보장·국방·통일·외교관계 등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민감하고 예측 불가능한 대북관계에 있어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文 청와대 “원전은 전혀 포함 안 돼”
문 전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USB를 전달한 사실이 알려지자 당시 보수 진영 등 일각에서는 ‘문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대가로 김정은과 모종의 거래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2021년 국민의힘은 ‘북한 원전 극비리 건설 추진’ 의혹을 제기하며 USB 내용 공개를 촉구했다. 같은 해 홍준표 대구시장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대북경제 제재에 막혀 있는 북의 숨통을 틔워주기 위해 ‘막대한 비트코인 지갑을 넘겨주었다’는 말도 나돌았고, 최근 나돌고 있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등이 북과 거래했다’는 암호화폐 소문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이제는 밝혀져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DJ(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북은 남북정상회담 때마다 돈을 요구했고, MB(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에도 돈을 요구해 MB가 남북정상회담을 포기한 일도 있었다”고 썼다.
반면 정의용 당시 국가안보실장은 외교부 장관 후보자 시절인 2021년 2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판문점 USB’에 한반도 신경제 구상이 담겼다고 밝혔다. 정 전 실장은 “동해, 서해, 접경 지역의 3대 경제 벨트를 중심으로 한 남북 간 경제 협력 구상을 주로 담았고, 몇 가지 협력 방안을 제시했는데 그중 하나가 에너지 및 전력 분야였다”며 “재생에너지 협력, 낙후된 북한 수력·화력 발전소의 재보수 사업, 몽골을 포함한 동북아 지역 슈퍼그리드망(국가 간 이어진 대규모 전력망) 확충 등 아주 대략적 내용이 포함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원전은 전혀 포함이 안 돼 있었다”며 “미국에도 북한에 제공한 동일한 내용의 USB를 제공하고 한반도 신경제 구상의 취지가 뭔지 설명했다”고 말했다. 정 전 실장은 “미국이 충분히 수긍했고, 굉장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밝혔다.
문 정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난 2021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전달된 자료는 에너지 협력이 포함돼서 이른바 신경제 구상이라고 하는 자료”라면서 “남북이 경제 협력을 잘해서 한반도의 새 성장동력을 만들자는 그런 내용으로 2018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싱가포르 회담 때 김 위원장에게 전달한 것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말했다.
한반도 신경제 구상 내용을 담은 USB를 제작해 청와대에 전달한 주체가 통일부라는 사실은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으로부터 4년이 넘게 흐른 2022년 10월에야 알려졌다. 당시 통일부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한반도 신경제 구상의 내용을 담은 USB를 제작, 청와대에 전달했다”며 “다만 북한에 전달한 USB가 그것과 같은 내용의 USB인지 여부는 통일부 차원에서는 확인할 수 없다”고 공지했다. 이번 판결에서도 이 USB가 김정은에게 전달된 것과 동일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국가의 중대한 이익 현저히 해칠 우려 있어”
잊힌 줄 알았던 ‘판문점 USB’가 다시 수면으로 떠오른 건 지난해였다. 구 변호사는 지난해 4월 통일부에 USB 내부 문건을 공개해달라며 정보공개청구를 신청했다. 그러나 통일부는 “국가안전보장·국방·통일·외교관계 등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를 이유로 들며 비공개 통지했다. 구 변호사는 통일부의 이 같은 비공개 결정에 불복해 같은 해 5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재판이 시작되자 서울행정법원 1심 재판부는 지난 3월 통일부 남북관계관리단을 찾아 USB 내부 문건을 비공개 열람·심사했다. 우리 사법부가 USB 내부 문건을 최초로 확인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5월 17일 열린 1심 판결 선고에서 원고 측 패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 이유에 대해 “이는 국가안전보장·국방·통일·외교관계 등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민감하고 예측 불가능한 대북관계에 있어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통일부가 밝힌 정보공개청구 비공개 사유와 동일하다.
1심 결과에 대해 구 변호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USB 안에 국가기밀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사법부가 최초로 공식 선언한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내용이 보도되자 일각에선 “국가기밀을 김정은에게는 넘기면서 정작 우리 국민에게는 비공개하느냐”는 비판도 제기됐다.
USB 내부 문건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한반도 신경제 구상이 담겼다는 청와대 관계자들의 말은 이번 판결을 통해 사실로 확인됐다. 재판부는 “이 사건 정보는 2018년 판문점 회담을 앞두고 준비한 한반도 신경제 구상에 관한 대북 관련 정책 또는 남북협력사업과 관련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판결문에 적었다.
그렇다면 한반도 신경제 구상이란 무엇이며, 재판부가 밝힌 “한반도 신경제 구상에 관한 대북 관련 정책 또는 남북협력사업과 관련한 내용”은 무엇일까?
‘한반도 신경제 구상’ 사실로 확인
문재인 전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이던 2015년부터 한반도 신경제 구상을 주장해왔다. 한반도 신경제 구상은 남북 경제를 통일해 경제 활동 영역을 북한과 대륙으로 확장, 한반도의 새로운 경제지도를 그리는 것을 골자로 한다. 2017년 5월 문 정부는 출범과 함께 한반도에 신경제공동체를 구현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2020년 5월 2일 정책주간지 《공감》은 〈한반도 신경제 구상으로 경제 통일 기반 만든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반도 신경제 구상’의 내용을 자세히 소개했다. 기사는 “문재인 정부는 남북 간 경제 협력이 평화를 촉진할 수 있다는 평화경제의 관점에서 한반도 신경제 구상을 추진해왔다”며 “한반도 신경제 구상은 남북 경제 협력을 활성화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남북 경제 통일의 기반을 조성함과 아울러 동북아시아 차원의 상호 협력으로 공동 이익을 창출해 평화와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사가 밝힌 중점 추진 분야로는 ▲철도·도로 연결, 산림 협력 ▲농·수산 협력 ▲보건의료 협력 ▲접경 지역 평화적 이용 ▲산업·에너지 협력 ▲환경 협력 ▲관광 협력 ▲하나의 시장 협력 등이 있다. 이를 위해 “신경제지도 태스크포스(TF)단 설치, 국책연구기관협의체(16개 기관) 및 정부협의체(18개 부처) 등을 통해 한반도 신경제 구상 종합계획(안)을 수립, ‘열린 구상’으로 관리하며 보완·발전시키고 있다”고 기사는 보도했다.
문재인 정부 통일부는 2020년 3월 5000만원의 예산을 들여 ‘신경제 구상 연계 남북중·남북러 협력모델 개발’이란 주제로 정책연구용역을 공모했다. 통일부는 연구 필요성에 대해 “현 제재하 및 부분적 제재 완화 시 즉시 활용 가능한 실행방안을 제시하여 정책 수립에 기여”한다고 설명했다. 연구 보고서는 그해 12월 발간됐다. 보고서는 남북중 협력 방안으로 ▲보건의료 협력 ▲관광 협력 ▲국제열차 시범 운행 검토 ▲환경 분야 협력 ▲학술 분야 협력 ▲산업단지 협력 ▲농업 ▲지식공유사업을 제안했다. 큰 틀에서 《공감》 기사가 설명한 한반도 신경제 구상 중점 추진 분야와 같다. 또 남북러 협력 방안으로 ▲관광 협력 ▲교통 인프라-제조업 협력 ▲국제열차 시범 운행 검토 ▲나선-녹둔도 유적 발굴 협력을 거론했다.
“구체적인 내용 공개 어려워”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의 주장처럼 USB에 한반도 신경제 구상에 관한 “아주 대략적인 내용이 포함”됐다면, 이미 공개된 위 자료 이상의 내용은 아닐 것이라는 게 합리적인 추론이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이를 비공개 대상으로 봤다.
기자는 통일부 측에 ▲남북 경제 협력 사업에 투입될 구체적인 액수 ▲대북 지원 사업에 투입될 지원금 규모 ▲사업 자금 조달 방법 ▲한반도 신경제 구상 관련 내용 외 다른 문건을 USB에 담아 청와대에 전달하진 않았는지 등을 물었으나, 통일부 측은 “당시 청와대에 전달한 USB에는 한반도 신경제 구상 관련 내용만 들어 있다”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놨다. 통일부 측은 1심 판결에 대해 “법원 판결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기자는 통일부 측 답변을 받은 뒤 남북관계관리단 측에도 ▲USB에 언론 보도나 보고서 등에 명시된 한반도 신경제 구상에 관한 내용 외 추가 사항이 전혀 담기지 않았는지 ▲USB에 담긴 문건의 용량은 어느 정도인지 물었으나, 남북관계관리단 측은 “추가로 확인해드리기 어렵다”고 답했다.
재판부는 USB 내부 문건이 ‘남북회담문서’의 일부에 해당한다고 봤다. 규정에 따르면, 30년이 지난 남북회담문서는 남북회담문서공개심의회 심의를 거쳐 30년이 지난 다음 해 일반에 공개할 수 있다. 그러나 심의회가 해당 문서를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 각 호 어느 하나에 해당되는 것으로 결정하는 경우엔 공개할 수 없다. 재판부는 “이 사건 정보의 경우에도 보호기간이 경과하면 원칙적으로 일반 공개의 대상이 된다”고 썼다.
재판부는 또 USB 내부 문건이 국가기밀 중 3급 비밀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 정보 전체는 국가정보원법 4조, 보안업무규정 및 보안업무규정 시행규칙, 통일부 보안업무규정 시행규칙에 따라 국가기밀 중 3급 비밀인 ‘누설될 경우 국가안전보장에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비밀’로 지정·관리되고 있다”고 했다.
관련 법에 따르면, 국가기밀은 중요성과 그 가치 정도에 따라 1~3급 비밀로 분류·지정된다. 비밀 분류의 기준이 되는 세부 지침은 알려지지 않았다. 통일부 남북관계관리단은 이에 대해 “보안 관련 규정과 절차에 따라 비밀 지정을 한 것”이라며 “현재도 관련 규정에 따라 계속 처리하고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文 정부, 군 관련 3급 비밀 해제

▲구주와 변호사
구주와 변호사는 1심 판결에 불복해 지난 5월 20일 법원에 항소했다. 항소 이유로 “3급 비밀은 비공개 대상 정보와 차이가 있다”는 점을 들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정보공개법 제9조 1항 2호는 “국가안전보장·국방·통일·외교관계 등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는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구 변호사는 “이에 해당하더라도 재량으로 공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보안업무규정 제15조는 비밀을 효율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비밀등급 또는 예고문 변경 등의 재분류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문재인 정부는 군과 관련한 3급 비밀을 해제한 바 있다. 2017년 국방부는 5·18 당시 경계태세 2급 발령과 비상소집 등 ‘기지방어 계획’이 수록된 공군사 7집을 비밀 해제했다. 이뿐만 아니라 대외비 등급의 비밀문서도 해제했다. 5·18 현장 진압부대의 움직임을 알 수 있는 육군본부 상황일지, 전교사 작전상황일지, 특전사 전투상보, 특전사 광주 지역 소요사태 진압작전, 전투상보(31사단, 20사단), 20사단 충청작전 상보 등 대외비 문서를 같은 해 비밀 해제했다. 2020년에는 을지태극연습 등 재난·전시 등 국가 위기 상황에 대응하는 민·관·군 합동 연습 체계와 절차를 규정하는 예규도 비밀 해제했다.
구 변호사는 “국가정보원법상 3급 비밀은 ‘누설될 경우 국가안전보장에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비밀’”이라며 “이는 정보공개법상의 ‘현저히’라는 단어 없이 단순히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정보를 의미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보공개법상의 비공개 대상 정보에 해당하는 정보는 국가정보원법상 2급 비밀에 해당하는 내용”이라며 “법문 및 규정상으로 보더라도 3급 비밀은 정보공개법상 비공개 대상 정보가 아니라 공개 의무가 있는 정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 외에도 ▲적국에 넘어간 기밀은 더 이상 기밀이라고 볼 수 없는 점 ▲이 사건 정보를 공개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것이 주변국과의 깨진 신뢰를 회복하는 방법이라는 점 ▲이 사건 정보는 국민의 ‘알권리’에 해당한다는 점 등을 항소 이유로 들었다.
“간첩죄·이적죄 수사 탄력 받을 수 있어”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 5월 17일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를 발간했다. ‘판문점 USB’의 당사자인 만큼 USB 내부 문건 내용이 무엇인지 공개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문 전 대통령은 김정은과 도보 다리 산책 당시 나눈 대화에 대해서는 자세히 소개하면서도 USB에 무엇이 들어 있었는지 등은 언급하지 않았다.
구주와 변호사는 이번 판결로 오히려 “현재 중앙지검에 계류 중인 문재인, 윤건영, 조명균에 대한 간첩죄, 이적죄 수사가 탄력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자유통일당은 USB를 김정은에게 건네준 혐의로 문 전 대통령, 윤건영 의원을 2022년 5월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이 사건은 서울경찰청으로 각하됐고, 이의신청을 거쳐 현재 서울중앙지검에 계류 중이다. 또 통일부가 USB를 제작해 청와대에 전달한 사실이 알려지자 자유통일당은 지난해 5월 조명균 전 통일부 장관, 천해성 전 통일부 차관을 간첩죄·이적죄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이 사건 역시 현재 계류 중이다. 이번 판결로 USB 내부 문건이 국가기밀이란 사실이 확인된 만큼, 구 변호사와 자유통일당은 이런 국가기밀을 북한에 넘겨준 전 정부 실세들의 간첩죄, 이적죄 혐의가 인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구주와 변호사는 “대법원은 ‘국가기밀’의 의미를 넓게 해석하고 있다”며 “간첩죄에 있어 국가기밀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방면에 걸쳐 우리의 국방정책상 북한에 알리지 않거나 확인되지 아니함이 이익이 되는 모든 기밀사항을 포함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3급 비밀에 해당하는 내용을 ‘적국’인 북한에 넘겼다면 이는 명백한 간첩죄, 이적죄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월간조선 07월 호 글 : 김세윤 월간조선 기자 gasout@chosun.com
07-02 북한 ‘괴물탄두 미사일’ 발사에… 군, 6년만에 실사격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10차 전원회의 마지막 날인 1일 회의에서 배석한 당 고위 간부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초대형 탄두’새 위협으로
北 ‘화성 - 11다 - 4.5’ 첫 공개
“대남 전술무기 개발 차원”분석
합참 “내륙으로 발사? 거짓말”

북한이 1일 발사한 미사일 2발이 고위력 초대형 탄두를 장착한 신형 전술탄도미사일 시험발사였다고 밝히면서 북한의 ‘벙커버스터급 탄도미사일’ 전력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리 군의 ‘현무-4·5’ 미사일과 유사한 급으로, 전문가들은 2일 “괴물 미사일”로 평가했다. 다만, 우리 군은 북한의 성공 주장을 “기만”으로 평가하면서 지난달 말 북한이 발사한 ‘화성-16나’(추정)와 마찬가지로 시험에 실패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미사일총국이 전날 4.5t급 초대형 탄두를 장착한 ‘화성-11다-4.5’ 시험발사에 성공했다”면서 고위력 초대형 탄두를 장착한 전술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사실을 처음 공개했다. 북한 주장이 사실이라면 북한은 “한국군 현무-4와 유사한 북한판 초대형 탄두용 괴물미사일”(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개발하고 있는 셈이다. 홍 연구위원에 따르면 ‘KN-23(화성-11가)’은 탄두중량 500㎏·사거리 600∼800㎏, ‘화성-11다’는 2.5t·600㎞이지만 ‘화성-11다-4.5’는 탄두중량과 사거리가 각각 4.5t, 500㎞로 성능이 크게 개량됐다.
장영근 국가전략연구원 미사일센터장도 “2023년 3월 화산-31 전술핵탄두 공개 당시 이를 장착한 2.5t급 ‘화성-11다’형을 다시 4.5t급으로 개량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북한의 강화진지(지휘소·화력기지 등) 파괴, 벙커버스터급 지하관통탄 개발, 대형 핵탄두의 단거리 운용 등 전술무기 개발을 통한 대남용 미사일”이라고 분석했다.
권용수 국방대 명예교수는 “북한이 지난달 말 발사한 다탄두 각개 목표 재돌입체(MIRV) 미사일과 함께 탄두를 다양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북한의 고위력 초대형탄두 개발 주장에 대해 “기만으로 본다”며 “북한이 주장한 사거리 500㎞와 90㎞는 우리 군이 탐지한 발사 방향으로 보면 2발 모두 내륙에 떨어지며, 탄두 중량 4.5t 미사일을 내륙으로 시험발사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거짓말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군의 다른 관계자도 “내륙에 미사일을 시험발사했다는 것은 처음 듣는다”며 의문을 표했다.
한편 군 당국은 지난달 26일 7년 만에 서북도서에서 해상실사격 훈련을 재개한 데 이어 이날 오전 휴전선 인근 육상 사격장에서 K9 등을 동원한 실사격훈련을 6년 만에 재개했다. 군 당국은 9·19 군사합의가 전면 효력 정지됨에 따라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와 미사일 발사 등 복합 도발에 대응, 접경지역 육·해상 지역에서의 훈련을 전면 재개했다.
문화일보 정충신 선임기자, 김규태 기자
07-02 북한군의 ‘단순 침범’이 단순하지 않은 이유

▲지뢰 매설, 불모지 조성 작업 등을 위해 비무장지대(DMZ) 내 휴전선(MDL·군사분계선)과 비교적 가까운 지역에 최근 북한군이 대규모로 투입된 모습. 합동참모본부
“6월 9일 중부전선 비무장지대(DMZ) 내에서 작업하던 북한군 일부가 군사분계선(MDL·휴전선)을 단순 침범해 우리 군의 경고방송 및 경고사격 이후 북상했다.”
지난달 11일 합동참모본부의 발표 내용을 보고 기자는 눈을 의심했다. ‘단순’이란 표현 때문이었다. 중무장한 북한군을 코앞에서 대적하고 있는 분단국가에서 ‘단순 침범’이 성립 가능한 것인지 근원적인 의문부터 들었다. ‘단순 음주 운전’처럼 기묘한 단어 조합으로도 보였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취임 이후 ‘즉강끝’ 대응 원칙을 강조해 왔다. 북한이 도발하면 ‘즉각, 강력히, 끝까지 응징한다’는 의미다. 일반인들도 뇌리에 각인될 정도로 분명한 메시지였던 덕분인지 군사작전 원칙으로는 이례적으로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백과에 신조어로도 등록됐다.
현 군 당국의 기조가 이처럼 ‘즉강끝’으로 상징되기에 ‘단순 침범’이란 표현은 더 낯설었다. ‘단순’이라는 용어로 침범 성격을 규정한 곳이 국군 최고 군령(軍令·작전 지휘권) 기구인 합참이어서 일각에선 군이 상황을 안이하게 본다는 비판도 나왔다. 합참은 지난달 9일 두 차례에 걸친 침범은 물론이고 18, 20일 침범도 공식·비공식 브리핑에서 ‘단순 침범’이라고 했다.
북한군의 휴전선 침범은 일단 발생 빈도만 봐도 단순하지 않다. 2013년 이후 현재까지 북한군이 휴전선을 침범해 우리 군이 경고사격을 한 해는 올해를 제외하면 두 해가 전부다. 2014년엔 6월 한 차례, 10∼11월 세 차례 등 총 네 차례였다. 2015년엔 7월 두 차례였는데, 침범 20여 일 뒤 DMZ 내에서 목함 지뢰 도발이 일어났다.
북한군의 휴전선 침범과 우리의 경고사격은 9년 만에 발생한 것으로 분명 이례적인 일이었다. 게다가 올해는 과거에 비해 최단기간인 12일 이내에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물론 군 당국은 열상감시장비(TOD) 등 북한과 비교가 되지 않는 첨단 장비로 북한군의 일거수일투족을 밀착 감시했다. 그렇기에 경고방송도 사격도 가능했다. 감시 정보를 정밀 분석한 결과 북한군에게 공격 의도가 없었던 것도 명확했다. 한번에 20∼30명씩 무리 지어 내려온 이들은 대부분 올 4월부터 북한이 휴전선 전 전선에 걸쳐 진행 중인 DMZ 내 지뢰 매설, 불모지 조성 작업 등에 긴급 투입된 후방 병력이 대부분으로 알려졌다.
DMZ 내 지형지물과 휴전선 위치를 잘 모르는 탓에 작업 중 곡괭이 등을 들고 우르르 침범했다가 사격에 놀라 돌아간 것이다. 동서로 248km 길이인 휴전선에는 과거 1290개가 넘는 말뚝과 표지판이 100∼200m 간격으로 세워져 있었지만 대부분 낡고 유실되면서 휴전선의 정확한 위치를 북한군이 가늠하기 어렵다. 의도치 않은 침범이 발생하기 쉬운 구조인 건 사실이란 얘기다.
그런 점에서 ‘단순 침범’이란 표현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군 관계자는 “단순 침범이 명확함에도 북한군의 의도에 대해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는 식으로 발표하면 ‘공격 의도가 있을 수도 있는데 왜 경고사격을 뛰어넘는 군사 조치를 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불필요한 논란만 생길 수 있다”고 했다. 또 “우리 내부에서 논란이 이어지고 이로 인해 우리 군이 과도하게 비난받아 사기가 떨어지는 것이야말로 북한이 원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군은 대외적으로는 ‘단순 침범’이라면서도 북한군이 DMZ 내에서 지뢰 매설을 하는 장면 등을 담은 사진 여러 장은 휴전선 침범이 있었던 지난달 18일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이는 북한군의 움직임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하고 있으니 기습 도발할 엄두를 내지 말라는 경고로 풀이됐다. ‘단순 침범’을 반복하는 식으로 DMZ 내에서 우리 군의 경계를 느슨하게 만들 수 있다고 판단하는 건 곧 오판이 될 것이란 메시지였다.
그렇지 않아도 오물 풍선 테러에 미사일 도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등의 연이은 대남 위협 등으로 안보 불안과 국민적 피로감은 최고치에 달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군이 북한군의 침범 의도를 과장해 발표함으로써 불안을 더 부추길 필요가 없다는 전략적 판단도 ‘단순 침범’이라고 발표한 이유가 됐을 것이다.
다만 아쉬운 건 ‘단순 침범’을 ‘단순 침범’이라 하는 대신 ‘작업 중 침범’ 등 다른 명확한 단어를 썼더라면 좋았으리라는 것이다. 우리 군이 먼저 ‘단순 침범’이라고 못 박은 것을 이용해 북한군은 허를 찌르는 기습 도발에 나설지 모른다. ‘단순 침범’을 반복하다가 기습 총격에 나서는 방식으로 우리 군의 대북 정보 분석 능력을 농락하려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오물 풍선 테러를 사흘 연속 감행한 것에 더해 미사일 도발까지 이어가는 북한이 휴전선 일대에선 언제까지고 ‘단순 침범’만 할 거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손효주 정치부 기자 hjson@donga.com
07.02 경찰의 대공수사 전담 6개월… 전·현직 안보경찰 10人의 격정토로
●“멸공은커녕 공멸할 판”
⊙ “빛바랜 사명감… 암울하고 참담한데 희망도 없다”
⊙ 안보경찰 70%가 대공 수사 未경험자… “3개월째 국보법 법령 들여다보는 중”
⊙ 官 내 ‘막대그래프’ 세워 대공 실적 매겨… “내년 1월엔 모두 도망갈 것”
⊙ 일선署 안보과 대부분 폐지… “공공안보 실핏줄 모두 마비됐다는 의미”
⊙ 간첩 수사 안 해본 지휘관… 全 직원 앞에서 수사 내용 발표 지시도
⊙ ‘보여주기식’ 보고에만 몰두, 외부 활동 제약… “사무실서 간첩 잡으란 얘기”
⊙ 예산 부족해 私備 터는 안보경찰들… “50만원으로 어떻게 안 될까요?”

▲경찰청 본청 전경. 사진=조선DB
커피숍에 들어선 그는 앉기 전 주변부터 훑었다. 오랜 대공(對共) 수사로 몸에 밴 습관 같았다. 혹은 상사(上司)의 눈치를 살피는 버릇일는지도 모른다. 안보 수사 경력 15년 이상인 현직 경찰 A씨의 얼굴에는 수심(愁心)이 가득했다.
“올해 안보수사대에 전입한 팀장급 대다수가 국가보안법 수사를 한 번도 안 해봤다. 국가보안법령은 물론, 사회주의의 태동 배경, NL·PD의 뿌리, 주체사상과 주사파 같은 건 모른다고 봐야 한다. 한데 우리는 계선(系線) 조직이잖나. 반박도 못 하고, 그저 맞춰주며 일할 수밖에 없다. 팀원 중에선 안보가 한직(閑職)이라 ‘쉬었다 간다’는 생각으로 뒷배를 이용해 들어왔다가 후회하는 이도 있다. 기막힌 노릇이다.”
다른 날 만난 현직 경찰 B씨. 약속시각이 훌쩍 지난 시점 잰걸음으로 들어선 그는 사과와 함께 “갑자기 일이 터져 늦었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안보 수사 경력 15년 이상인 B씨는 긴 한숨부터 뱉었다.
“간첩 잡으러 다니느라 바쁜 게 아니다. 내근 업무가 너무 많다. 일보(日報), 주보(週報), 월보(月報) 등 하루에도 수시로 업무파악 요구가 내려온다. 그래서 정작 해야 할 수사 활동을 못 한다. 이러한 업무파악 자료 요구는 날마다 증가하고 있다. 사무실에서 간첩을 잡으란 얘기다.”
홍제동 안보수사과 사정을 잘 아는 그는 “밤낮으로 채증(採證)하러 다녀도 모자랄 판에 홍제동에서는 현장 활동이 없어졌다”면서 “다만 ‘보고를 위한 보고’에 매달릴 뿐”이라고 했다.
“현장을 뛰지 않고 앉아서 수사를 하다 보니, 수사 노하우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남영동·홍제동 대공분실(對共分室)은 사실상 경찰 대공 수사의 뿌리다. 내·외부기관 등의 감사(監事)라는 명목과 알권리 우선으로 작금의 경찰의 안보 수사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쏟아지는 보고서 작성으로 수사 진행 상황 노출 위험성도 커졌다. 심각한 문제다.”
대공수사권 전담 6개월, 경찰 내부 풍경이다.
최일선 감시망 모두 마비

▲경찰 대공 수사의 총본산은 경찰청 본청 산하 국가수사본부에 설치된 안보수사국이다. 사진은 국수본 모습. 사진=조선DB
지난 63년간 간첩은 국가정보원에서 잡았다. 올해부터는 못 잡는다. 2020년 12월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국정원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다. 개정안의 핵심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다. 3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24년 1월 1일부터 시행됐다. 이때부터 경찰이 대공 수사를 전담한다. 최근 한 달 동안 틈틈이 만난 10명의 전·현직 안보경찰들은 “현 상황은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亂局)”이라고 했다. 10명 중 현직은 6명, 전직은 4명이다. 현직은 모두 안보 수사 경력 20년 안팎의 전문 요원들이다. 이들 입에선 이따금씩 “참담하고 암울하다”는 표현이 나왔다.
경찰의 대공 업무 전담 시 우려사항은 여럿이었다. 그중 대표적인 게 해외망(網) 부재(不在)였다. 그런데 멀리 갈 것도 없었다. 지근거리에 더 큰 복병(伏兵)이 있었다. 최근까지 일선서(署) 안보과(課)에서 근무했던 현직 C씨는 “경찰이 대공 수사를 전담하게 되면서 일선서 안보망은 완전히 붕괴됐다”면서 “최일선(最一線) 감시망이 모두 사라진 것”이라고 했다.
국정원법 개정안 통과 후 경찰은 안보 기능 강화 명목으로 경찰청 본청 국가수사본부 산하에 안보수사국을 만들었다. 그리고 각 지방청에는 안보수사대를 두고 있다. C씨는 “본청에서는 안보수사국과 안보수사대에 전문 인력을 확충했다고 홍보했지만, 사실은 일선서 안보과를 폐지하고 그곳 요원을 빼간 것으로, 전체 안보경찰의 증원은 일어나지 않았다”면서 “조직 개편에 앞서 전문가 집단의 타당성 검증 등 중장기 계획 없이 수직으로 내리꽂듯 추진된 일”이라고 했다.
“올해 직제 개편으로 서울 31개 경찰서 중 단 6곳(중부, 종로, 남대문, 용산, 강남, 수서)에만 안보과가 남았다. 나머지는 ‘경비안보과’ ‘정보안보과’ 등으로 타 기능(부서)과 통합된 후 안보계(係)로 격하(格下)됐다. 인원도 반 토막 났다. 한편 업무는 늘었다. 경비나 정보 업무를 같이 봐야 해서다. 작년까지만 해도 일선서에서도 간첩 수사가 가능했다. 성과지표에도 들어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간첩 잡지 말라는 얘기다. 다른 업무가 산적해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지역마다 포진한 종북(從北) 세력들이 활개 칠 일이다.”
조삼모사 격 조직 개편
일선서 안보 수사는 경찰의 강점 중 하나였다. 이자하 전 서울경찰청 보안(현 안보)1과장은 “국정원, 검찰 등 수사조직과 비교했을 때 경찰의 경쟁력은 촘촘한 하부 조직이 있다는 것”이라면서 “지역마다 배치된 경찰서의 안보과 폐지는 공공안보의 실핏줄이 모두 마비됐다는 의미”라고 했다. 그는 “하부 조직에서 수집한 대공 첩보가 상부로 올라오는 구조인데, 그 기능을 없앴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줄어든 일선서의 안보 인원은 안보수사국과 안보수사대의 정원(定員)이 됐다고 한다.
모(某) 지방청 소속 안보경찰 D씨는 “경찰 수뇌부에서는 어떻게든 대공수사력을 강화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늘 해오던 대로 조삼모사(朝三暮四) 격 조직 개편을 단행한 것”이라면서 “이 같은 상부 조직(본청·지방청)의 비대화는 행정 편의주의의 전형”이라고 했다.
일선서 안보 요원들이 모두 안보수사국이나 안보수사대로 간 것도 아니라고 한다. 현직 C씨의 말이다.
“일부 요원들은 타부서로 뿔뿔이 흩어졌다. 안보수사국의 나머지 정원은 보직 공모를 통해 채웠다. 타부서에서 누구나 신청할 수 있도록 문호(門戶)를 열어놔, 일반 수사 경과(警科)자들도 상당수 유입됐다. 이 과정에서 베테랑 안보요원들의 유실(遺失)이 발생했다.”
여기서 ‘일반 수사 경과자’란 일반 수사를 맡았던 경찰을 뜻한다. 간첩 수사는 일반 수사와는 결이 다르다. 안보 수사와 일반 수사 모두 해본 지방청 소속 D씨의 말이다.
“일반 형사범은 물리적 증거를 남기기 마련이다. 한데 사상범(思想犯)인 간첩은 증거가 거의 없다. 북한의 지령에 따른 임무를 실행하기에 정체를 숨기는 위장선전에 뛰어나서다. 더군다나 이들은 대부분 재범(再犯)이고 엘리트라 수사관 머리 위에 있다. 사건 하나에 적게는 5년, 길게는 20년까지 걸리는 이유다.”
B씨 또한 “안보 파트에 일반 수사 경과자가 대거 인입(引入)해 근무 중”이라며 “상부에서는 ‘다 같은 수사 아니냐’며 받아들였다”고 했다.
‘여기는 미래가 없다’

▲2020년 12월 13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가정보원법 전부개정법률안이 재석 187인, 찬성 187인으로 통과됐다. 사진=조선DB
박주현 자유민주연구원 공권력감시센터장(경찰학 박사)은 “일반 수사 경과 출신의 젊은 직원들과 대화를 해보면 마인드가 다르다”고 했다. 30년 경찰 경력 중 안보 수사 이력만 25년인 박 센터장은 일선서 안보과와 안보수사대를 거쳐 경찰수사연수원 안보수사학과장을 끝으로 2023년 퇴직했다.
“우선 안보 수사는 ‘속도가 안 난다’고 한다. 둘째, ‘보상이 없다’고 한다. 셋째, ‘용어를 모르겠다’고 한다. 일반 수사는 몇 개월 안에 몇 명을 검거했는지 성과와 피해금액이 명확히 나오는데, 간첩 수사는 죽어라 매달려도 진척이 없고 피해금액 산정액도 안 나오니, 특진 심사 때도 뒷전이 된다. 그런데다가 국보법 법령은 복잡하기만 하다. 이번에 발령 난 한 후배에게 국보법 1조부터 25조까지 정리해 사례와 함께 건네고, 얼마 후 ‘좀 들여다봤느냐’니까 ‘보고서 치느라 바빠서 볼 시간이 없다’더라. 대외 활동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돼도, 밖에서 누굴 만나야 하는지도 모른다. 인적 네트워크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박 센터장은 “문제는 관(官) 내 이들을 끌어줄 선배들이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현직 C씨는 “지난 정부 때 안보 조직이 축소되면서 베테랑 선배들이 ‘여기는 미래가 없다’며 많이 빠져나갔다”면서 “그래서 안보 수사 경력 20년 이상인 경찰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했다.
경찰청 본청 한 관계자는 “안보경과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 분야를 가리지 않고 장기 근무자는 강제 발령 내는 추세인데, 이를 인적 쇄신(刷新)으로 포장하고 있다”면서 “그러다 보니 전반적으로 전문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간첩 안 잡아본 지휘관들
현재 전국의 안보경찰은 약 2300명이다. 이 중 수사 인력은 30%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행정지원(기획·분석)과 북한이탈주민 신변보호 인력이다. 지방청 중 서울청과 경기남부청을 제외한 대부분 안보수사대의 인력은 20명 이하다. 이 중 이번에 새로 뽑은 인력의 70%가 안보 수사 경험이 없다. 팀장급 80% 또한 한 번도 간첩 수사를 안 해봤다. 박주현 센터장은 “어느 지역 안보수사대에 중간관리자로 간 후배가 있다. 그간 했던 업무와 전혀 다른 부서로 발령 났기에 ‘할 만하냐’고 물었더니 ‘3개월간 용어집만 보고 있다’고 했다”고 했다.
한 지방청 소속 안보경찰 D씨는 “새로 온 부서장이 국보법 조항이나, 과거 전대협, 한총련, 범민련 등의 활동사항을 전혀 모른다”면서 “대공 수사의 특성 또한 파악하지 못하고 어느 날은 수사 진행이 더디다며 ‘하는 게 뭐가 있느냐’는 소리를 했다”고 했다.
A씨 또한 비슷한 경험을 했다.
“지휘관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형사수사팀 한 팀만 투입하면 한 달 내로 해결할 걸, 수사를 너무 질질 끈다’고. 진행 중인 방첩(防諜) 사건을 ‘그냥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 등)로 마무리 지으라’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전(全) 직원 앞에서 수사 내용과 수사 진행 사안을 발표하라는 비상식적인 지시를 한 일도 있다. 육상으로 치면 일반 수사관은 단거리 선수지만, 대공수사관은 마라톤 선수다. 그것도 신분 노출 위험성 등 철저한 보안을 지키며, 살얼음판 위를 걷는 심정으로 뛰어야 하는 선수다. 업무 특성도 모르는 인사가 수사대장, 과장, 국장으로 와서 수사 지휘라는 이름으로 수사를 닦달하는 걸 보면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현직 안보경찰 E씨는 “심지어 모욕감을 느낀 적도 있다”고 했다.
“얼마 전 부서장이 경찰 지인(知人)과 전화 통화를 하며, ‘내가 잡냐? 밑에 애들이 잡지’라고 한 일이 있다. 상대방이 안보 파트 발령 후 고되지 않으냐고 물은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부서원들에게 성과를 닦달하며 ‘기대도 안 했다’는 말을 한 날이었다. 그날은 유독 오랫동안 담배를 태웠다.”
‘진급 위해 거쳐 가는 곳’
B씨는 “안보수사과장(총경)과 안보수사대장(경정)들이 안보경과를 진급을 위해 거쳐 가는 곳으로 여기고, 이들 포함 서울청 안보수사부장(경무관)과 경찰청 안보국장(치안감) 등이 거의 1년 주기로 교체되는 것도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
“그러다 보니 기본적으로 조직에 애정이 없다. 진급을 앞두고 있어 ‘몸 사리기’도 심하다. 뭘 좀 하려고 하면 사고 날까 봐 못 하게 하는데, 가령 차량 이용 미감(미행·감시) 때 교통사고를 걱정하는 식이다. 요즘은 일과시간 외 활동에도 제약이 있다. 하달받은 일에만 전념하라고 해서다. 대부분 현장 경험이 없기 때문에 보고서 작성과 홍보에만 신경 쓴다. 한 번이라도 국가 안보나 안보 수사 발전을 고민해봤는지 의문이다.”
예컨대 경찰청장이 2024년을 “경찰 중심의 안보수사체계 원년(元年)”으로 삼은 만큼, “경찰의 대공 수사 의지는 어느 때보다 강하므로, 공백 없는 수사가 가능하다”는 것 모두 홍보성 발언일 뿐 사실과는 다르다는 얘기다. B씨는 “대공 수사가 의지로 된다는 건 미경험자의 생각”이라고 했다.
이자하 전 서울청 보안1과장은 “경찰의 인사 시스템상 지휘 감독관들은 1년에 한 번씩 순환 보직을 하다 보니 전문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10~20년 맥(脈)이 이어지는 대공 수사의 경우 특수성을 반영해야 하는데 국가 안보보다 정치 논리가 앞서다 보니 이 사달이 난 것”이라고 했다.
D씨와는 다른 지방청 소속 현직 E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퇴직을 결심한다”고 했다. 이 지방청에서는 안보수사대마다 막대그래프를 붙여놨다고 한다. 가령 안보수사대가 1대부터 6대까지 있다고 하면, 어디에 대공 성과가 더 많은지 도표를 만들어 사무실 벽에 걸어놓은 거다.
“대공 수사 전담 후 정부 및 국회 등에서 점검이 이어져 공격 회피용으로 ‘눈 가리고 아웅’식의 인원 늘리기를 해놓고, 그만큼의 성과를 보여줘야 하니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다 보니 단기간 실적을 올릴 수 있는 잔챙이 사건 위주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 특수성이 담보돼야 할 안보 파트에도 경찰의 성과주의 조직 문화가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E씨는 “내년 1월에는 안보 요원들이 모두 도망칠 거라는 얘기도 나온다”면서 “이대로 가다가는 멸공(滅共)은커녕 공멸(共滅)할 판”이라고 했다.
박주현 센터장은 “인사 시즌 때마다 성과를 못 낸 ‘진성 안보맨’들이 퇴출당하고, 그 자리를 일반 수사 경과자들이 채우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면서 “그래서 경찰 안팎에서는 ‘안보는 안 보인다’는 말까지 나왔다”고 했다. A씨는 “본청에서는 경찰 단독이든, 국정원 합동 수사든 간첩을 직접 검거·조사한 이력이 있는 수사관의 현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안보경찰이 민원 처리까지
쏟아지는 민원도 발목을 잡는 요소 중 하나다. 안보 업무와 대민(對民) 업무가 분리되지 않은 셈이다. 한 지방청 소속 F씨의 말이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고소·고발 건 중 국보법과 관련 있으면 각 수사대에 팀별 배당이 된다. 배당량은 날마다 증가한다. 일선 민원 부서도 아닌데, 이와 관련한 보고 등 업무로 인해 정작 해야 할 안보 수사를 제대로 못 하는 형국이다. 수사력 손실이 엄청나다.”
C씨도 민원 얘기를 했다.
“일선서 안보과의 경우, 112 종합상황실에 들어온 신고가 조금이라도 안보와 연관이 있으면 넘겨받아 처리해야 한다. 예컨대 공사 현장에 폭발물 의심 물체가 있다, 거동이 수상한 자가 돌아다닌다, 드론이 떴다, 총기가 발견됐다 등이다. 이럴 땐 공휴일, 명절, 심야시간 할 것 없이 무조건 출동해야 한다. 출동 시 불법주차를 하면 안 되기에 주차 공간 파악까지 겸해 3인 1조는 돼야 한다. 때문에 안보과가 남아 있는 6개 일선서도 사실상 대공 수사 업무는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박주현 센터장은 “고소·고발 등 민원인 접수 사건은 단순 절차대로 처리하는 것이기 때문에 해당 업무에 치중하게 되면 정작 해야 할 인지 수사(탐문 정보를 통해 범죄 단서를 포착해 수사에 나서는 것)에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했다.
사비 털어 정보 구입하는 경찰들
부족한 예산도 걸림돌이다. 지방청 소속 D씨는 “대공수사권 전담이라는 중차대(重且大)한 임무를 맡아도, 권한은 그만큼 받쳐주지 않고 있다”고 했다. 경찰에 따르면 올해 안보수사역량강화 예산은 총 425억7200만원이 배정됐다. 지난해(315억4800만원) 대비 110억원이 늘어난 금액이다. D씨는 “대상자를 인지해 장기간 수사하고, 사업(공작)을 통해 연계망까지 색출하려면 간첩 한 명당 십수억원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고 했다.
박주현 센터장은 “예산 집행이 국정원처럼 유연하지도 않다”면서 “경찰 조직은 직원을 마치 예산을 횡령하는 사람처럼 대한다”고 했다.
“이때 열정적인 직원들은 사비(私備)를 쓰기도 한다. 마이너스 통장을 만드는 경우도 봤다. 통제 안 받고 자유롭게 수사하겠다는 거다. 대공 수사 경험이 없는 수뇌부들은 정보원을 만나면 당장 정보가 나오는 줄 안다. 이를테면 ‘왜 며칠 전 만난 사람과 또 밥을 먹었느냐’는 식이다. 앞으로 경찰이 제3국 정보 협력자까지 구축해야 할 형국인 만큼 유연한 예산 편성이 절실하다.”
박 센터장은 이어 “정보도 곧 비용”이라고 했다.
“한 정보원이 100페이지가 넘는 노동당 규약 개정판을 1000만원에 입수해온 적이 있다. 이걸 경찰에게 제공하려고 한 직원을 만났는데, 그 직원이 사비로 50만원을 건네면서 ‘이걸로 어떻게 안 되겠냐’고 사정했다고 하더라. 이처럼 뭐든 해보려고 애쓰는 안보경찰들도 많은데, 시스템이 따라주지 않는다.”
국정원과의 공조 한계

▲지금은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바뀐 과거 남영동 대공분실. 사진=뉴시스
박주현 센터장은 이어 “경찰이 자체 보유한 대북(對北) 정보가 부실한 것도 문제”라고 했다.
“내가 경찰교육기관에 있던 2016년도에 있었던 일이다. 실무부서에 ‘2012년 김정은의 전시작전 세칙 변경’ 관련 자료를 요청했는데 구할 수 없었다. 4년 만에 직원도 다 바뀌어서 내용을 아는 이가 한 명도 없었다. 결국 다른 정보원을 통해 입수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 경찰 대공 분야 신화로 불렸던 대선배들이 작성해놓은 수기(手記) 정보는 데이터베이스(DB)화도 안 돼 있다. 대부분 한자라 젊은 직원들은 읽지도 못한다. DB화해야 한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아직 진척이 없다.”
국정원과의 정보 공조(共助)는 안 되는 걸까. 국정원법 개정안에 따르면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은 폐지됐지만, 정보 수집이나 조사권한은 보유하고 있다. 그래서 당시 민주당 측은 “경찰과 국정원이 정보 공유만 잘 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현실은 이상과 달랐다. 현직 A씨는 “외형적으로 일부 공조가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처럼 긴밀히 이뤄지고 있지 않다”고 했다. 당초 국정원 측은 ‘국정원·경찰과의 정보 공조 시스템’에 대해 “정보기관의 특성상 정보망의 출처 보호 등으로 인해 협력이 이뤄지기 어렵다”고 했다.
현직 안보경찰들도 대체로 이에 공감했다. B씨는 “경찰 조직 내부에서도 정보 교류가 원활하지 않은데, 외부 기관과의 기밀 공유가 말처럼 쉽겠느냐”라면서 “실제로 법정에서 정보 출처를 밝히고 증언해야 하는 문제로 증거를 철회한 경험이 있다. 국정원 주장은 일리 있는 것”이라고 했다. C씨 또한 “안보 요원으로서 국정원 입장을 십분 이해한다”면서 “수시로 인사이동이 일어나는 경찰 조직을 신뢰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했다.
대북 정보뿐만 아니다. 새로운 간첩 대상자의 정보도 기대하기 어렵다. 이들의 단서를 수집하려면 입건 전 조사(내사)가 필요한데, 조사를 하려면 사법경찰권이 있어야 한다. 국정원의 사법경찰권은 대공수사권 폐지와 함께 박탈됐다. 이자하 전 서울청 보안1과장은 “국정원에서 보유한 첩보 등의 경찰 이첩에는 보안을 비롯한 법적 문제 등 여러 가지 사정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박주현 센터장은 “국정원의 조직 특성상 정보 활용을 철저히 비밀로 관리하는 것은 타당하다”면서도 “그러나 대한민국 안보를 위해 국정원에서 보유한 정보에 대한 경찰의 접근 및 활용 방안을 상호 협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국정원과의 합동 수사

▲1997년 11월 20일 안기부(국정원)가 부부간첩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는 모습. 사진=조선DB
이병진 전 경찰청 보안국장은 “현 체제의 공조는 과거 양 기관이 수사권을 보유한 상태에서의 공조와는 천양지차(天壤之差)”라고 했다. 1973년 입직해 경북지방경찰청장, 대구경찰청장, 치안정책연구소장, 중앙경찰학교장을 역임하고 2005년 경찰청 보안국장을 끝으로 퇴직한 그는 1997년 경찰청 보안국 보안심의관 재직 당시 울산부부간첩 검거를 지휘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 홍조근정훈장도 받았다.
이 전 국장은 1997년 10월 울산의 한 호텔에서 대기 중인 보안 수사 요원들에게 사복 정장을 입고 손님으로 위장해 있도록 지시했다. 또한 권총에 실탄(實彈) 장전과 함께, 부부의 울산 외곽으로의 도피를 막기 위해 울산 전체를 봉쇄하도록 주문했다. 그는 “커다란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후 나머지는 현장 판단에 맡겼다”면서 “인력 배치 3분 만에 검거가 완료됐다”고 했다.
대표적인 새세대 간첩인 최정남·강연정 부부는 1997년 경남 거제도 해안으로 침투했다. 이 전 국장은 “침투 전 부부의 활동상 등 전반적인 내막은 국정원에서 알고 있었다”면서 “국정원과의 공조가 없었다면 원활한 검거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이때 최정남은 국정원이, 강연정은 경찰이 잡았다. 이 전 국장은 “이후 강연정이 몸속에 숨겨온 독약 앰풀로 자살해 역용공작(逆用工作·적국의 정보 요원을 포섭해 이중간첩으로 활용하는 공작)에는 실패했지만, 국정원과의 공조가 잘 이뤄졌던 사례 중 하나”라고 했다.
그는 이어 “각종 장비와 공작 기법 등 63년간의 노하우를 지닌 국정원 없이 경찰 단독으로 대공 수사를 하라는 것은 어린아이에게 어른 흉내를 내라는 것과 같다”고 했다.
‘가장 손쉬운 방법’
실제로 A씨는 “해외 정보, 대북 정보, 과학 수사, 정보원, 수사비 구축이 국정원처럼 안 된 상태에서 경찰 단독으로 수사를 진행하기가 너무 힘들다”면서 “특히 해외 정보는 전적으로 국정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자하 전 서울청 보안1과장은 “경찰은 기본적으로 국내 치안 담당 기관으로 해외 정보를 수집할 수가 없다”면서 “경찰이 해외에서 내수사를 할 경우 주권 침해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했다. A씨의 말이다.
“예컨대 법원 영장을 통해 대상자의 국제전화 통화 내역을 파악하더라도 지금은 그 전화번호의 명의자나 실제 사용자를 파악할 수가 없다. 과거에는 국정원의 해외망을 이용해 이러한 정보를 확인했다. 그간 국정원과 합동 수사도 여러 차례 해봤는데, 현시점에서 국정원의 협조 없이는 간첩단 등 큰 사건은 결코 못 할 거라 생각한다.”
B씨는 “지금 경찰의 대공수사권은 반쪽짜리 수사권”이라고 했다. 그는 “인력·예산·해외망 문제를 단기간 내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 “상당량의 시간과 투자가 있어야 하는데, 국정원이 이미 구축해놓은 막대한 자산을 버리고 새롭게 일궈나가야 되는 현실이 암담할 뿐”이라고 했다.
모 지방청에서 대공수사대장을 지낸 한 인사는 “방첩을 위해서는 경찰, 국정원, 방첩사라는 3축 체제가 가장 이상적(理想的)”이라면서 “경찰 조직 문화 개선과 해외망 구축 등 수많은 난관(難關)을 돌파할 가장 손쉬운 방법은 국정원에 다시 수사권을 넘기는 것”이라고 했다. 이병진 전 경찰청 보안국장 또한 “현재 경찰 지휘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당장 산적한 문제를 없애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국정원 대공수사권의 복원”이라고 했다. 그러나 4·10 총선에서 국민의힘의 참패(慘敗)로 복원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한다.
“국정원 무력화 위해 부득불 넘긴 수사권”
국정원법 개정안 통과 당시 국정원 측은 “이는 곧 대공 참사이자 안보 참사”라며 비분강개(悲憤慷慨)했다. 그 무렵 경찰 내부 반응은 ‘기대 반 우려 반, 혹은 무관심’이었다고 한다. A씨는 “당시 내부에선 반기지도, 거부하지도 않는 분위기였다”면서 “일각에서는 대공수사권 전담으로 인력과 예산이 강화될 거라는 기대감도 비쳤다”고 했다. A씨에 따르면 개중에는 수사권이 결국엔 원복(原復)될 거라는 안이한 생각을 가진 이와 세태(世態)에 아예 무관심한 이도 다수였다고 한다.
현직 B씨는 “수사권을 가져온다는 큰 방향에서는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였다”면서 “안보 수사 경험이 없는 간부·지휘관급은 ‘경찰 안보 수사가 한층 발전될 것’이라고 여기는 경우도 많았다”고 했다. 그는 이어 “한편 일반수사권이 아닌 대공수사권이므로 심각한 문제라 여기는 이들도 있었는데, 나도 그중 하나였다”면서 “국가 대공 수사를 약화시키는 패착(敗着)이며, 안보를 위해 국정원에 대공수사권이 있어야 된다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했다.
‘안보 참사’라는 말에 공감한다는 C씨는 “대공수사권 전담으로 경찰은 졸지에 ‘동네 북’이 돼버렸다”고도 했다.
“문재인 정권이 경찰이 예뻐서 대공수사권을 줬겠나. 국정원을 무력화(無力化)하기 위한 방편으로 부득불(不得不) 넘긴 거다. 이게 세간에는 ‘전 정부의 경찰 챙기기’처럼 비쳤는지 소모적인 외부 공세가 너무 많다. 전 정권에선 애초에 불가능했던 단독 수사권을 쥐어주고, 국민의힘 의원들은 경찰 역량이 부족하다고 하고, 이번 정권에선 ‘공룡 경찰’이 될까 봐 견제한다.”
경찰 가족 뒀던 간첩
F씨는 “갈수록 간첩들이 살기 좋은 나라가 되고 있다”고 했다. 현재 국내 고정간첩과 자생적(自生的) 종북 세력을 포함한 이적 세력은 경우에 따라 수십만으로 추산되기도 한다. D씨는 “흔히 ‘요즘 시대에 무슨 간첩이냐’는 건, 우리 사회에 간첩이 없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북한의 전술이자, 좌파 정권의 평화 선전선동, 인지전(認知戰)의 산물”이라면서 “북한은 75년 동안 대남침투 활동을 중단한 적이 없으며, 수사기관에 적발된 세력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했다. 현직 A씨의 말이다.
“수사 대상자 가족 중 경찰이 있었던 적이 있다. 그 직원은 가족이 반미(反美)주의자 내지는 운동권 인사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경찰인 가족까지 속이는 게 간첩인데, 일반인들은 그 존재를 모르는 게 당연하지 않겠나.”
C씨는 “안보관이 투철한 요원들은 과거 음지(陰地)에서 활동했던 간첩들이 이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이르기까지 전 사회와 제도권 내까지 침투해 있는 것을 보며 6·25 전 단계에 와 있지 않나 하는 정도의 위기감을 느끼며 일한다”면서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간첩은 꼭 잡아야 한다”고 했다.
한때 경찰은 발군(拔群)의 대공 수사력을 보유했었다. 직파(直派) 간첩이 많던 때니, 오래된 얘기다. 유신 말기 최대 공안 사건인 1979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남민전)도 경찰이 잡았다. 당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정원)도 몰랐던 사건이다. 그러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이래 경찰 대공 수사는 점차 힘이 빠졌다. 이후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조직은 완전히 축소됐다. 김영삼 정부(1998) 때 4188명이던 안보경찰은 김대중(2904) 때 44%가 줄어 2904명이 됐다. 이후 노무현(2008) 때 1874명으로 한 차례 더 급감한 뒤 회복을 못 하고 있다. 박주현 센터장은 “과거 대공 수사 선배들은 대공 특채로 들어와 한길만 걸은 분들이 많았다”면서 “거물 간첩 한 명으로 특진을 세 번씩 하기도 했다”고 했다.
자연히 한직이라는 오명(汚名)이 따라붙었다. E씨는 “이때 안보 수사 조직은 ‘존재감’을 잃지 않기 위해 일반 수사 영역을 대공 수사 업무로 포장해 처리하기도 했는데, 자괴감이 상당했다”고 했다. C씨는 “특히 지난 정권에서는 안보 분야 장기 근속자를 드러내놓고 적폐(積弊) 취급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시 보안국(현 안보수사국) 모 지휘관은 보안국을 아예 없애자고 주장하기도 했는데, 최근 민주당에서 한자리를 차지했더라”고 했다.
정권 따라 바뀌는 수사 방향
F씨는 “정권마다 급격히 바뀌는 안보 수사 방향도 사기(士氣)를 꺾는 요인 중 하나”라면서 “지난 정부에서 대북전단금지법을 제정했을 때는 과장이나 부장들이 정부 눈치를 보며 직접 나서 수사를 지휘하는 참으로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했다.
이병진 전 경찰청 보안국장은 노무현 정부 당시 있었던 비화(祕話)를 들려줬다.
“맥아더 동상 철거를 주장한 동국대 강모 교수를 내수사하고, 검찰에 구속 방침을 내비친 일이 있다. 법무부에서 영장 발부를 해주지 않자 결국 검찰총장이 사퇴했는데, 이후 청와대에서 본청 보안국과 서울청 보안부 소속 전원의 인사기록카드를 제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옷 벗겠다는 각오로 강경 대응해 인사기록카드 제출은 막았지만, 명단은 넘겨줘야 했다.”
F씨는 “지금도 기억에 남는 선배의 말이 있다. ‘대공수사관은 정권 안보가 아니라 국가 안보를 책임지는 역할’이라는 말”이라면서 “나 또한 후배들에게 ‘정권의 변화에 따른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 말을 명심하고 자부심과 열정으로 버텨내야 한다’고 말하지만 현실과는 괴리감이 있다”고 했다.
박주현 센터장은 “조명을 못 받아서 그렇지 경찰 내부에는 여전히 능력 있는 안보 요원들이 많이 있다”면서 “여러 차례 국보법 4조(목적수행)를 수사했음에도 승진이 안 된 사례가 많은데, 이들의 긍지와 자부심 고취를 위한 포상제도와 특진제도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가능하다면 안보수사국을 국수본에서 독립시켜 ‘국가안보수사본부’ 편제로 운영하는 것이 현시점에서는 최선책”이라면서 “그 아래 별도의 특진제도를 도입해 안보 직렬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 말 경무관 승진 대상자 31명 중에도 안보경찰은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은 안보경찰이 단 2명만 경무관으로 승진했다.
A씨는 “전 수사대 직원을 대상으로 올해 시행 중인 2주간의 교육이나 3일간의 안보의식 고취를 위한 교육 등에 오는 외부 강사들은 국정원 출신이거나 탈북민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면서 “정작 열심히 일한 우리 조직 안보 대선배들에게는 이런 자리도 주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전쟁 시 처단 1순위’
안보경찰들은 농반진반(弄半眞半)으로 이런 말을 한다고 한다.
‘김정은이 우리 명단을 다 갖고 있다. 전쟁 나면 처단 1순위다.’
그런데도 이 직(職)을 놓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라고 했다. 사명감(使命感)이다. 이들 중에는 집회 현장에서 수백 명의 시위대에 포위당해 무차별 폭행을 당한 이도 있다. 그 와중에도 증거가 담긴 휴대폰만큼은 빼앗기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고 한다. 그런데 조직은 포위당했다는 이유로 진상조사부터 했다고 한다. 한총련 수배자 검거 당시, 학내 대자보판에 실명이 공개돼 끈질긴 협박을 당한 이도 있다.
목숨 내놓고 일해도 돌아오는 건 없었다. B씨는 “상급자로부터 온갖 수모와 고과(考課) 저평가를 받으면서도 국가 안보의 선두에 있다는 자부심과 열정으로 버텨왔다”고 했다. 그런데 임계치(臨界値)에 다다른 것 같다고 했다. 국보법 위반 피의자 다수를 수사한 이력이 있는 B씨에게 대공 업무를 하며 보람 있었던 때는 언제냐고 물었다. 그는 잠시 회상에 빠진 듯하다 입을 뗐다.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talktome@chosun.com
●GOP의 눈’ AI 경계작전센터에 가다
“1개 대대가 하는 경계 작전을 1개 중대가 맡게 돼”
⊙ 11m 비디오 월 통해 AI 분석 전방 영상 실시간으로 본다
⊙ AI, 감지된 객체 종류·크기·최적의 타격 수단까지 알려줘
⊙ 5사단, 중서부·동부 전선 환경 모두 갖춰… 시범 사업 최적의 조건
⊙ “AI 경계 체계, 즉각 반응 등 대비 태세 더 잘 갖추어질 것”
⊙ “절약된 시간과 병력, 전투 준비 태세 향상과 실전 교육 훈련에 집중”

▲경기도 연천군 5사단 AI 경계작전센터 내부. 사진=국방부
경기도 연천군 5사단의 한 부대. 이곳엔 AI 경계작전센터가 자리해 있다. AI 경계작전센터는 국방부가 추진하는 ‘국방혁신4.0’ 5개 과제 중 ‘군사전략·작전개념 선도적 발전’의 중추 역할을 맡고 있다. 각종 AI 장비가 들어선 상황실 1동과 행정·편의·교육 시설을 갖춘 건물 2동으로 구성돼 있다. AI 경계작전센터는 오는 7월 1일 시범 운영에 돌입할 예정이다. 이번 시범 사업은 향후 우리 군의 유·무인 복합경계 작전을 성공으로 이끌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각 중대, 40여 대 카메라와 CCTV 실시간 분석

▲AI 유·무인 경계 작전 체계의 한 축을 담당할 레일 로봇. 사진=국방부
지난 5월 31일 막바지 개소 준비가 한창인 AI 경계작전센터를 찾았다. 실내화로 갈아 신고 225㎡(약 68평) 크기의 상황실 안으로 들어가니 11m 폭의 비디오 월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 비디오 월을 통해 감시초소(GP)와 GOP 철책 부근의 실시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음으로 센터 가운데 놓인 책상과 컴퓨터 모니터들이 눈에 들어왔다. 군 관계자에 따르면, 이곳 모니터는 저마다 각기 다른 임무를 맡고 있다. 먼저 GP 중거리 카메라, GOP 중·근거리 카메라, GOP CCTV로 촬영한 영상을 분석하는 모니터를 확인할 수 있었다. A·B·C로 나뉜 세 중대는 각각 40여 대의 카메라와 CCTV 분석을 담당한다. 모니터 앞에 배치된 인력이 각각 약 3km 경계 구간을 책임지는 시스템이다. 군 고위 관계자는 “중대급 인력으로 대대급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대급 100여 명이 대대급 500여 명의 임무를 대체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다음으로 TOD(열 영상 감시 장비)·수풀 투과 레이더, 레일 로봇 등 감시 장비와 연동 예정인 모니터를 볼 수 있었다. 철책 부근에서 작업 중인 장병들이 화면에 비치자 엄지손톱 크기만 한 노란색 박스가 이들 위로 떠올랐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군 관계자는 이에 대해 “데이터 라벨링 작업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데이터 라벨링이란 AI 학습데이터를 만들기 위해 원천 데이터에 값(라벨)을 붙이는 작업을 뜻한다.
AI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데이터를 모아 이를 ‘딥 러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 군 당국은 200만 건 이상의 군 관련 데이터와 20만 건 이상의 지형 데이터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모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AI는 기상 상태를 고려한 외부의 움직임을 익히는 것은 물론, 무장공비 침투, 귀순 시도, 짐승 이동 등 다양한 전방 시나리오를 습득하게 된다. 군 당국은 이를 통해 감시-결심-탐지-타격으로 이어지는 경계 작전의 성공률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기자가 5사단을 방문한 이날은 날이 맑았다. 데이터 라벨링을 하기 위한 최적의 조건이다. 데이터를 충분히 학습한 AI는 악천후 속에서도 이상 징후 식별이 가능하다.
200만 건 이상 군 관련 데이터 확보
군은 AI 경계작전센터가 시범 운영에 돌입하면, 향후 상황 네트워크를 담당할 인력과 장비도 이곳에 배치할 것이라고 한다. 군 관계자는 “현재 AI의 객체 인식률과 정확도는 다소 낮은 정도”라면서도 “시범 운영 기간 인식률을 상당 수준 높여 100%에 가까운 정확도를 갖춘 AI를 경계 체계 표준 모델로 제시할 것”이라고 포부를 내비쳤다. 또 다른 군 관계자는 “새로운 경계 플랫폼을 만드는 길목에 서 있다”며 “전군 확대 적용 시 최적의 AI 경계 체계가 실전에 투입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5사단 관계자는 AI 경계 체계가 성공적으로 기능할 미래 모습도 화면으로 보여줬다. 비디오 월에 설치된 모니터에선 GOP 일대의 모습이 파노라마로 표시됐다. 계절과 기상 조건까지 반영한 모습이었다. 만약 감시 지역에서 이상 징후가 포착됐을 경우, AI는 해당 객체의 종류와 크기, 나아가 이를 처리할 수 있는 최적의 타격 수단까지 화면에 띄워줬다. 마치 첩보 영화 속 주인공이 먼발치에서 움직이는 적군의 정체를 식별하는 모습 같았다.
비디오 월 뒤편에는 5~7평 남짓한 규모의 서버 장비실이 자리해 있다. 장비실로 이동하니 케이블이 연결된 각종 장비가 ‘윙윙’ 소리를 내며 쉴 새 없이 작동하고 있었다. 군은 센터 운영을 위해 GOP 철책부터 이곳을 잇는 광 통신망을 구축해놨다고 한다. 이 장비는 각각 GP 중거리 카메라, GOP 중·근거리 카메라, GOP CCTV와 연결돼 AI 경계작전센터로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AI 장비가 이상 징후를 포착하면 센터 내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까? 군 관계자는 “시각 정보와 청각 정보가 동시에 제공된다”며 “모니터상에선 팝업창이 나타나 상황 발생을 알리고, 이와 동시에 센터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알람이 울린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AI가 식별한 객체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영상분석서버’ ‘영상서버’ 기존 장병 역할 대체
군은 지난 2016년 1700억원을 들여 과학화 경계 시스템을 도입했다. GOP 철책 전 구간에 CCTV와 TOD, 광망(光網)을 설치했다. 그러나 이들 장비는 단순 탐지 및 감시·감지 기능만 제공한다는 한계가 있다. 특정 물체를 구별하고 판단하는 건 여전히 사람 몫이다. 이 때문에 장병들은 유사시 상황을 구분하기 위해 24시간 내내 모니터를 응시해야 한다. 또한 광망이 오·경보를 울리진 않을지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도입 취지와는 다르게 경계 작전 병력을 계속해서 증원하는 이유다. 군 관계자는 “해외 연구에 따르면 모니터를 육안으로 12분 이상 주시할 때 움직이는 물체를 놓칠 확률이 45%”라면서 “22분 이상 주시할 때는 그 확률이 무려 95%까지 올라간다”고 말했다.
그러나 AI 경계 체계가 성공적으로 구축되면 지금처럼 GOP 상황실 내 여러 인원이 앉아 CCTV 화면만 보고 있는 풍경은 사라질 전망이다. ‘AI의 브레인’으로 불리는 ‘영상분석서버’와 ‘영상서버’가 기존 장병의 역할을 대신한다. 전방 GOP 철책 인근 기존 상황실이 다루는 영상 정보를 그대로 받아 AI 기능으로 이상 징후를 스스로 판단하는 장비다. 영상서버는 DMZ 내 GP 중거리 카메라, GOP 중·근거리 카메라, GOP CCTV가 촬영한 영상 정보를 받아 영상분석서버로 넘긴다. 영상분석서버는 이 가운데 이상 징후를 식별해 비디오 월에 구현하는 방식으로 AI가 작동한다.
올 초부터 장병 AI 교육

▲GOP 철책에서 경계 작전 중인 장병. 사진=국방부
이런 장비를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5사단은 올해 초부터 장병들을 교육해왔다. 장병들의 교육 만족도 역시 높다고 한다. 군 관계자는 “시범 운영에 들어가면 센터 내 투입 인원은 어느 정도가 좋을지, 근로와 휴식 시간 배분은 어떻게 나누는 것이 효율적일지 실험해가며 최적의 조건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러 전방 부대 중 5사단이 AI 경계작전센터 시범 부대로 선정된 이유는 뭘까? 군 고위 관계자는 “GOP는 중서부 전선과 동부 전선으로 구분된다. 두 전선은 지형 환경과 기후조건이 확연하게 차이가 있다”면서 “그중 5사단 GOP는 중서부와 동부 전선의 특성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AI 경계작전센터가 들어설 최적의 장소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향후 AI 경계 체계가 전군으로 확대될 예정인데 중서부 전선 따로, 동부 전선 따로 시범운영을 거치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된다”며 “한정된 시간과 비용으로도 그 성능을 확실하게 시험해볼 수 있는 곳이 바로 5사단”이라고 말했다.
최근 북한은 ‘오물 풍선’을 남측에 날려 보내면서 GPS 교란 공격을 감행했다. 우리 군의 작전에 제한이 생기진 않았지만, 인천 해상을 오가는 여객선과 어선의 민간 상용 GPS에서 일부 장애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북한의 EMP(전자기 펄스) 공격 또한 우리 안보를 위협할 요소 중 하나다. 군 고위 관계자는 “이번 시범 운영을 거치며 전·평시 AI 경계 작전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다양한 토의를 거쳐 밀도 있게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AI만 믿고 철책 주변에서 병력을 뺏다가 유사시 대응이 늦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그러나 군 관계자는 “AI 경계 체계가 도입됐다고 해서 GOP 철책을 포기한다는 뜻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오히려 즉각 반응 등 대비 태세가 더 잘 갖추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AI 경계 체계, 선택 아닌 필수
군 당국이 AI 경계 체계에 사활을 건 까닭은 병력 자원 감소와 관계가 깊다. 지금 규모로 군이 유지되기 위해선 한 해 약 26만 명의 병력이 충원돼야 한다. 그러나 2023년 기준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이 0.72명을 기록하면서 병력 감소는 시간문제가 됐다. 5사단의 한 간부는 “한 5년 전부터 병력 감소를 체감하고 있다”며 “해마다 전입하는 부대원의 수가 줄어드는 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선 AI 경계 체계로의 변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게 군 당국의 판단이다.
군은 내년 12월까지 이어질 시범 사업 기간 결과를 꼼꼼히 분석한 뒤 부족한 점을 보완할 방침이다. 2030년대 전군 정식 운용을 목표로 두고 있다. 군 관계자는 “AI 경계 체계를 활용해 병력은 지금의 3분의 1 이하로 줄이면서 영상 감시 자동 식별과 경보 능력은 100%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동시에 병력의 효율적 운용도 가능해질 것으로 본다. AI 경계 체계로 1개 대대가 하는 경계 작전을 1개 중대가 맡게 되면, 나머지 중대는 전·평시를 대비해 전투·교육 훈련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군 고위 관계자는 “절약된 시간과 병력을 전투 준비 태세 향상과 실전 교육 훈련에 투입할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장병의 삶의 질도 보장된다”고 내다봤다. 이어 “AI 기반 유·무인 복합경계 시스템 구축에 활용된 기술은 민간 기술로도 파생돼 국가 과학 기술 발전에도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 : 김세윤 월간조선 기자 gasout@chosun.com
07-06 자체 핵무장, 한국 생존과 번영에 꼭 필요한 무력 수단

▲5월 17일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새로운 자치유도항법체계를 도입한 전술탄도미사일 시험사격에 나섰다. [뉴시스]
북한과 러시아가 유사시 군사 개입 조항이 명시된 사실상의 군사 동맹을 체결하고, 북한이 ‘다탄두 방식 미사일’ 시험발사에 나서는 등 한반도 안보 상황이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최근 러시아에선 “북한이 우크라이나에 공병대 중심의 병력을 파병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한다. 러시아가 북한에 첨단무기를 완제품이나 기술 지원 형태로 제공할 것이라는 우려도 점차 커지고 있다.
한국 외교에 ‘북·러 동맹’으로 답한 러시아
북·러 동맹 체결에 한국 정부는 즉각 반발 메시지를 냈지만 두 나라에 전혀 먹혀들지 않는 분위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한국은 북한을 침공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안다. 그렇다면 한국에 문제될 것이 무엇인가”라며 적반하장 태도를 보였다. 크렘린궁은 물론 러시아 외교부도 다양한 채널을 통해 “한국이 북·러 동맹에 대응 조치를 취할 경우 보복하겠다”며 위협하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후 큰 틀에서 미국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등 서방 입장에 동조해온 한국을 ‘비(非)우호국’으로 지정했다. 다만 다른 서방 국가들에 그랬던 것처럼 높은 수위 위협은 자제했다.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적극 지원한 국가들과 달리 한국은 미국과 나토, 우크라이나의 간곡한 요청에도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동맹과 우방의 요청을 거부하더라도 러시아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한국 외교 기조에 푸틴 대통령은 북·러 동맹으로 응답했다. 한국이 중립적 태도를 취하면 러시아도 그럴 것이라고 낙관한 한국 정부의 외교적 판단이 결과적으로 틀린 셈이다. 한국 정부는 푸틴 대통령이 평양에 도착할 때까지도 북·러 동맹 체결 가능성을 애써 무시했다. 잘못된 정세 분석과 외교정책 실패, 그 결과로 심화된 안보 위기에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인다.
북·러 동맹의 심각성을 인지한 미국의 움직임은 바빠지고 있다. 6월 24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국무부 2인자인 커트 캠벨 부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박장호 외교부 외교정보기획국장과 브렛 홈그렌 미 국무부 정보조사담당 차관보가 ‘한미 외교정보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 MOU는 5월 조직 개편으로 외교부에 신설된 외교전략정보본부 산하 외교정보기획국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으로, 미 국무부 산하 최정예 정보조직인 정보조사국(INR)이 카운터파트다. INR은 다른 정보기관에 비해 직원 수와 예산은 적지만 정보 분석 능력에선 중앙정보국(CIA)이나 국방정보국(DIA)을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계 각국 정보를 수집·분석해 국무부의 정책 수립을 지원하는 게 INR의 주된 임무다. 미국이 INR을 통해 한국 외교부 외교정보기획국에 도움을 주겠다고 나선 데는 한국 외교안보 라인의 정세 판단 능력이 부족하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은 6월 2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애브릴 헤인스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사진)을 접견했다. [뉴시스]
여기서 나아가 미국은 연방정부 최고 정보책임자도 한국에 급파했다. 미국 16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정보공동체(IC) 수장인 애브릴 헤인스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비공개 일정으로 용산을 방문한 것이다. 헤인스 국장은 6월 28일 윤석열 대통령과 면담했는데, 대통령실과 미국 DNI는 이번 면담에서 어떤 주제가 다뤄졌는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그만큼 민감하고 중요한 사안이 논의됐을 개연성이 크다. DNI 국장은 모든 정보기관이 올린 보고서들을 취합해 대통령에게 일일 정보 브리핑을 하는 미 정보 업무 최고책임자다. 미국이 INR을 동원해 한국 외교부의 정보 업무를 돕겠다고 나선 데 이어, DNI 국장을 보내 국가정보원장도 아닌 대통령을 직접 면담한 게 의미심장하다. 현 국제 정세, 특히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의미다.
오늘날 국제사회는 ‘국력집합동맹’ 시대
양국의 비공개 방침에 따라 윤 대통령과 헤인스 국장이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공식적으로 확인하긴 어렵다. 다만 최근 국제 정세를 감안하면 이번 면담에서 다룬 문제가 러시아·북한과 관련 있을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상당수 국내 언론은 미국이 한국 측에 “서방 진영과 협력을 강화하고 ‘성의 표시’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라”고 요구했을 것으로 추측했다.
2010년대 중반부터 국제사회에서 ‘동맹’ 개념이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한미동맹이나 나토는 태생부터 ‘자치안보교환(Security-autonomy trade-off)’ 성격의 동맹이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초강대국 미국이 내정에 어느 정도 간섭하는 대신 동맹국을 보호해주는 개념이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동맹 질서는 ‘국력집합동맹(Capability aggregation)’ 성격으로 달라졌다. 동맹 간 공통 이익과 가치관을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고자 협력하는 방식이다. 자치안보교환동맹에선 구심점인 미국 역할이 핵심적이었다. 그에 비해 국력집합동맹에선 동맹을 구성하는 각 회원국의 역할이 과거보다 중요하다. 미국이 동맹국들에 예전보다 적극적이고 많은 역할을 요구하는 것도, 나토와 일본, 호주 등이 급격히 군비 투자를 확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미국 공군 B-52H 전략폭격기. [미 공군 제공]
한국은 미국과 나토가 중심이 된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일원이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진영의 일원이자 책임 있는 중견 국가로서 역할을 거의 하지 않았다. 세계 각국이 다가올 거대한 전쟁에 대비해 국방비를 증액하고 재무장에 나섰지만, 한국은 여기에도 관심이 거의 없다. 서방 각국이 러시아·중국 등 반대 진영과 디커플링을 강화하는 가운데 한국은 그들 나라와 관계 개선을 추진하며 같은 진영 우방들과 정반대 길을 걷고 있다. 미 국무부가 한국 외교부에 INR을 붙여 도움을 주려는 것이나, DNI 국장이 윤 대통령을 만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고 간 것은 이 같은 한국의 전략적 오판을 바로잡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피아식별 똑바로 하고 적과 싸울 준비를 하라”는 압박을 시작했다는 얘기다.
유럽 각국 정부의 고위 관료와 정보·군 기관은 지난해 말부터 “향후 수년 내로 러시아와 전면전이 발발할 수 있다”는 경고를 쏟아냈다. 미국과 아시아 각국 고위급 인사는 물론, 여러 싱크탱크도 “2027년을 전후해 중국의 대만 침공, 이에 맞춘 북한의 대남 공격이 있을 것”이라며 경고음을 내고 있다. 유럽은 전반적인 국력에서 러시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위에 있다. 미국과 핵무기를 공유하는 나라는 물론, 자체 핵무기를 가진 강대국들도 있다. 대다수 국가가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일원으로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상당한 역할을 하고, 나토 집단방위체제에서 소임을 다할 의지와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즉 러시아와 전면전이 벌어져도 맞서 싸울 힘과 결속력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북·중·러에 맞설 재래식 군사력 부족

▲미국 신형 전술핵폭탄 B61-12 시험 투하 모습. [미 샌디아국립연구소 제공]
하지만 한국이 처한 상황은 많이 다르다. 한국은 북한과 중국, 러시아의 위협에 직면해 있는 데다, 이들 적성국가와 물리적 거리도 매우 가깝다. 전반적인 국력 수준은 준수한 편이지만 군사력은 안보 위협의 심각성에 비해 대단히 취약하다. 무엇보다 핵무기를 쥔 북·중·러와 달리 자체 보유한 핵무기는 물론, 동맹국과 공유하는 핵무기조차 없다. 나토처럼 공동의 적과 싸울 의지를 지닌 이웃 동맹국도 없다. 한국 조야(朝野)부터가 미국이 북·중·러와 충돌할 때 한반도 영토 밖에서 함께 싸울 의지와 능력이 없다. 북·중·러가 한국을 ‘약한 고리’로 인식하고 고압적 태도로 하대(下待)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2021년 6월 11일 북한이 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북·중 동맹을 새롭게 정의했을 때 달라진 안보 환경에 맞춰 대외전략을 완전히 새로 짰어야 한다. 당시 중국과 러시아 폭격기가 ‘합동전략순찰’ 명목으로 한반도를 포위하는 무력시위를 시작했을 때도 한국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그 후 한국은 3년을 허비했고 이제 북·러 동맹이 탄생함으로써 사실상 북·중·러 삼각동맹체제가 완성됐다. 그럼에도 한국 외교안보 라인에선 “북·러 동맹은 당장의 이해관계에 따라 만들어진 일시적 협력체제” “북·러 밀착으로 북·중, 중·러 관계가 악화됐다”는 오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번 북·러 동맹 체결을 계기로 한국 정부는 달라진 안보 정세를 냉정하게 재평가하고 대외전략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한국이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다할 것임을 천명하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과 자체 군비 증강을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미국을 비롯한 유엔군사령부 구성국, 자유민주주의 진영 우방국이 한국을 진정한 동맹으로 인식하고 한반도 유사시에 함께 싸워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자체 핵무장도 이 같은 대외전략 수정의 일환으로 적극 추진돼야 한다. 군사력 건설에는 많은 돈과 시간이 들어간다. 오랫동안 실질적인 군비 증강에 소홀했던 한국이 최근 몇 년 사이 급속도로 성장한 북·중·러의 군사적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군비를 곧장 갖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재래식 군비 증강을 진행하는 동시에 유사시 우리 의지로 사용할 수 있는 핵무기를 최소 규모라도 확보해 전력 공백을 메워야 한다.
필자가 보기에 자체 핵무장을 위해 고려할 만한 단계적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단기적으로 미국과 ‘나토식 핵공유’를 추진해 주한미군 또는 한국군 군사기지에 전술핵무기를 배치하고, 한미원자력협정을 개정해 플루토늄 재처리·우라늄 농축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 학계에선 미국이 한국의 핵무장을 용인할 경우 재처리·농축 시설 건설에 2~3년 안팎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보고 있다. 핵무기 투발 수단의 경우 한국군도 이미 여러 종류를 확보한 상태다. 재처리·농축 시설을 건설하는 동안 기폭장치만 완성하면 3~4년 안에 자체 핵탄두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좌고우면할 시간 없다
물론 이 모든 과정에는 미국과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정부는 핵무기가 한국 생존은 물론, 자유민주주의 진영을 지키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는 인식을 미국에 심어줄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선 한국이 진영 내 첨병이자 핵심 국가로서 역할과 소임을 다할 것이라는 확신을 줘야 한다. ‘역할과 소임’은 다시 말해 미국과 서방세계 입장에서 ‘가장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조치다. 현 시점에선 바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파격적이고 적극적인 무기 지원이다.
북·중·러는 한국을 향해 여러 차례 적의(敵意)를 드러냈다. 그들이 한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협하는 무력 수단을 고도화한 지금, 더는 좌고우면할 시간이 없다. 정부가 자유민주주의 진영 선봉으로서 제 역할을 다할 결단을 내린다면 수년 뒤 대한민국은 손에 핵무기를 쥐고 여전히 번영을 구가할 것이다. 반대로 지금처럼 피아식별도 못 한 채 우왕좌왕한다면 동맹으로부터 버림받고 적성국들의 공격을 받아 만신창이가 돼 있을 것이다.
동아일보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07.08 군복 입은 공무원들
온갖 모욕·조롱 앞에 온순하고
체력단련 훈련 사망 사고 나자
그 훈련 폐지해버린 군 지휘부
국군을 어떤 군대로 만들려 하나
군복을 입고선 온갖 모욕과 조롱을 감내하는 장군을 어떻게 봐야 하나. 국회 법사위에서 진행된 ‘해병대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입법 청문회를 지켜보면서 든 생각이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21일 오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입법청문회에서 위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이종섭 전 국방장관과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에게 도를 넘는 모욕과 조롱을 퍼부은 정청래 위원장과 일부 민주당 의원들의 ‘군인 모독’은 이미 여러 곳에서 비판을 받았다. “어디서 그런 버릇을 배웠느냐” “토 달지 말고 사과하라” “가훈이 정직하지 말자인가” “다양하게 예의 없다” “10분간 퇴장하라”면서 어린아이에게 야단치는 내용이라 해도 모욕적인 언사를 난사했다. 군인은 유사시 생명을 담보로 영토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그 임무의 신성함 때문에 명예롭고,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그런 군인을 TV로 생방송되는 현장에서 인격을 짓밟는 대우를 하는 것은 지켜보는 국민을 모욕하는 짓이다.
그렇다면 그런 모욕과 조롱을 당하면서도 반박 한 번 제대로 못 하고 온순하게 받아들이는 장군은 문제가 없는가. 그런 장군이 간성(干城)으로 믿음직스러울 수는 없다. 군인은 목숨을 탈취하려고 드는 적을 상대하는 일이 숙명인 사람들이다. 엄청난 압박감과 적대적인 환경에서 냉정함을 잃지 않고 상황을 극복해내야 한다. 공격을 받으면 응전(應戰)하는 것이 군인의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면 가져야 할 자세다.
청문회에서 정 위원장과 민주당 의원들이 공격하고 협박하는 무기로 꺼내 든 것은 국회증언감정법상의 국회 모욕죄 조항이었다. ‘증인이 본회의 또는 위원회에서 증언함에 있어 폭행·협박, 그 밖의 모욕적인 언행으로 국회의 권위를 훼손한 때’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하게 돼 있다. 여기서 겁나는 대목이 뭐가 있나. 군인의 명예와 장군의 위엄을 지키기 위해 모욕과 조롱에 맞서 반박한다면 국회의 권위를 훼손하는 것인가. 설사 국회가 고발할지라도 그 혐의는 수사기관이 판단하고 법원이 확정한다. 우리 사법 시스템과 자신들이 지켜주고 있는 국민을 믿으면 될 일을, 장군들은 의원들의 윽박지르는 말 한마디에 주눅 들고 침묵했다. 장군은 수천, 수만의 장병을 지휘한다. 그 권한과 권력은 자리와 계급이 보장해줄지 몰라도, 권위는 스스로 만들 수밖에 없다. 만인 앞에서 조롱당한 장군의 명령을 부하 장병이 마음속으로 따를까.
국방부와 군이 최근 신병교육대 훈련병 사망 사고 재발 방지 대책이라고 내놓은 것을 보면 군 지휘부에 그런 장군들이 한두 명이 아니라는 의심이 든다. 그 훈련병은 군기훈련(얼차려)을 받다가 열사병에 의한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사망했다. 규정을 위반한 훈련이었다. 책을 추가로 채워넣은 비정상적 완전군장으로 연병장을 뛰게 하고 팔굽혀 펴기를 시켰다. 규정을 지키지 않아서 발생한 사고라면 규정을 철저히 지키도록 절차와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그런데 국방부와 각 군의 대표가 회의 끝에 내놓은 대책은 군기훈련에서 체력단련 종목 자체를 폐지해버리는 것이었다. 규정을 어긴 ‘사람’(중대장·부중대장)의 문제를 체력단련 훈련이라는 ‘제도’의 문제로 바꿔버렸다. 육해공군을 막론하고 이제 구보나 완전군장으로 걷기, 팔굽혀 펴기, 앉았다 일어서기 같은 군기훈련은 못 한다. 대신 명상과 청소, 군법교육, 반성문 쓰기와 같은 정신수양만 해야 한다. 훈련병들조차도 헛웃음을 칠 것 같다.
이런 결정을 한 군 지휘부는 도대체 국군을 어떤 군대로 만들려고 하는가. 체력단련 훈련보다는 작전훈련 중 사고 발생률이 훨씬 높을 것이다. 이러다 군사훈련을 하지 말자고 나오지 않을까 걱정된다. 군 내부에 사고 없이 무탈한 것이 최고라고 여기는 군복 입은 공무원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조선일보 조중식 기자
07-09 국정원 조사권 박탈法은 反안보 극치
이상환 한국외국어대 교수, 前 한국국제정치학회장
북한의 대남 도발 위협이 상존하는데도 국가정보원의 대공 수사권이 경찰청에 넘어간 데 이어 안보 범죄 조사권까지 박탈하자는 국가정보원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지난 3일 17명의 더불어민주당 의원 명의로 발의된 이 개정안의 핵심은 국정원의 조사권 폐지와 수집 정보의 신원조회 활용 금지다. 2020년 12월 개정된 국가정보원법이 올해부터 시행된 이후 경찰의 대공 수사 한계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추가적인 개정안 발의는 시대착오적 행태이다.
북한이 대한민국을 적대국으로 규정하고 대남 도발을 고조시키는데도 이런 법안을 발의하는 의원들의 상황 인식이 걱정스럽다. 최근 북한의 오물풍선 도발, 핵미사일 고도화, 주요 기관에 대한 사이버 해킹 등 사회적 불안감을 조성하는 행위는 그냥 지나치더니 이런 법안을 발의했다. 발의한 의원들은 입법 취지를 인권 개선이라고 내세우지만, 이는 과거 군사독재 정권의 악행에 대한 반향일 뿐이다. 대공 업무에 요구되는 국정원의 조사권과 수집 정보의 신원조회 활용이 일반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시대도 아니다.
경찰은 국가정보원법 개정 이후 안보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경찰청 본청 국가수사본부 산하에 안보수사국을, 각 지방청에는 안보수사대를 두고 있다. 이는 일선서 안보과를 폐지하고 그곳 요원을 배치한 것이어서 안보 역량 강화와는 거리감이 있다. 경찰청장이 2024년을 ‘경찰 중심의 안보수사체계 원년’으로 삼을 정도로 경찰의 대공 수사 의지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하지만, 대공 수사는 의지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경찰의 대공 업무 전담에 대한 대표적인 우려 사항은 해외망 부재다. 해외 정보는 전적으로 국정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국정원이 이미 구축해 놓은 막대한 해외 정보자산을 버리고 경찰이 이를 새로 구축한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대공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국정원·경찰·국군방첩사령부 등 3개 기관 협조 체제로 국정원이 수사권을 복원해 주도하는 게 바람직하다.
국정원의 대공 기능이 무력화하면서 반체제적인 이적(利敵) 세력 색출이 어려워졌다. 정치 논리에 휘말려 대내외 안보를 담당하는 기관이 흔들리고 있다. 권력기관을 견제하고 투명성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계속돼야 하나, 특정 정치 세력의 이해관계로 인해 이들 기관의 정상적인 기능이 훼손돼선 안 된다. 국정원의 역할 및 권한 변경을 결정하는 기준은 국가안보 차원의 정보 업무 정당성과 효과성이어야 한다.
야당이 진정으로 인권 개선을 이유로 국정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대공 체계 강화를 위해서도 해야 한다. 이제 정권안보적 사고로 국가안보 시스템을 더는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 신냉전의 국제질서 속에서 살아남는 길은 국가안보 시스템의 역량 강화다. 이번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이는 우리 안보 현실에 반하는 우(愚)를 범하는 것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홈페이지 첫 장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우리는 국가의 첫 번째 방어선이다. 우리는 남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갈 수 없는 곳을 간다.’ 우리 국정원이 정치 논리로부터 자유로이 바로 설 수 있도록 국민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한 때다.

문화일보
07-11 北무인기 ‘레이저 광선포’로 잡는다…軍, 연내 실전배치
방사청-한화에어로스페이스 11일 양산 계약 체결
한차례 발사 비용 2000원, 소음 및 낙탄 위험도 없어
탄도미사일 요격 가능한 수백kW급 레이저 무기도 개발 추진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이 11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북한 무인기 킬러’로 불리는 레이저 대공무기(사진)의 양산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레이저를 무기에 적용하는 ‘한국형 스타워즈’ 프로젝트의 첫 번째 사업이라고 방사청은 설명했다. 레이저 대공무기는 올해 말 전방 진지와 서울 주요 빌딩에 배치돼 북한 무인기의 대응 전력으로 본격 운용될 예정이다.
레이저 대공무기는 지상 고정진지에 배치돼 광섬유에서 생성된 광원 레이저를 근거리 표적(소형무인기, 멀티콥터 등)에 쏴 무력화하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별도의 탄이 필요없이 전기만 공급하면 발사할 수 있다. 기관포나 미사일과 달리 눈에 보이지 않고, 소음이나 낙탄(落彈)의 위험도 없는데다 한 차례 발사 비용도 2000원에 불과하다.
2019년 871억원의 예산을 들여 국방과학연구소(ADD)가 개발을 주관하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시제업체로 참여했다 . 지난해 4월 ADD의 충남 안흥시험장에서 진행된 30여 차례의 실사격 시험 평가에서 약 3km 밖의 무인기를 모두 맞혀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레이저 대공무기의 운용 개념도
이동석 방사청 유도무기사업부장은 “외국에서 레이저 무기 기술을 개발 중인 사례는 많지만, 군에 실전 배치하는 것은 우리나라가 세계 처음”이라고 했다.
다만 한계도 있다. 비와 안개 등의 기상 조건에서는 레이저의 빛이 산란돼 제 성능을 발휘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현재 수십 kW(킬로와트) 수준인 레이저 광원의 출력을 더 높여야 한다. 이에 따라 방사청은 현재보다 출력과 사거리가 더 향상된 레이저 대공무기 블록-2(개량형)도 개발할 방침이다.
아울러 레이저 대공무기의 핵심 구성품인 레이저 발진기의 출력을 수백 kW 수준으로 높이는 핵심 기술 사업도 진행할 계획이다. 수백 kw급 출력의 레이저 대공무기는 탄도미사일과 항공기 요격도 가능한 ‘게임체인저’급 미래무기로 평가된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07.12 [단독] "국군과 싸우다 숨진 빨치산, 민간인 학살 피해자로 둔갑"
진실화해위 결정 8건 오류 드러나
1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2005~2010)가 6·25전쟁 전후 우리 국군과 교전하다 죽은 빨치산(조선인민유격대) 대원 등 적대 세력이 ‘민간인 학살 피해자’라는 결정을 내린 것으로 11일 나타났다. 조선노동당 산하에서 활동한 조선인민유격대는 흔히 빨치산으로 불리는데, 노동당 지시를 받아 소백·태백산맥, 지리산 등지에서 무장 활동을 하며 대한민국 후방 교란, 민간인 학살 등을 자행했다.
1기 진실화해위는 2008~2009년 빨치산 등 적대 세력 소속 인물 최소 8명에 대해 ‘민간인 학살 피해자’라고 판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엔 대한민국 국군과 교전 중 사망한 빨치산 대원 2명도 포함됐다. 진실화해위의 활동 근거인 과거사정리기본법은 6·25 전후 불법적으로 벌어진 민간인 집단 사망·상해·실종 사건을 진실 규명 대상으로 규정한다. 그런데 전투 중 상대방을 죽이는 행위는 적법 행위로 간주, 이때 사망한 전투원은 민간인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빨치산은 북한 소속 군인으로 간주하는데, 이들을 ‘민간인’으로 판단한 것이 적합했느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2009년 12월 발간한 1기 진실화해위 보고서를 보면, 전남 영광 불갑산에서 빨치산 대원으로 활동하며 1949년 2월 국군과 전투 중 사망한 정모(24)씨를 민간인 학살 피해자로 판단했다. “불갑산에서 좌익 활동을 하던 중 밤에 내려왔다가 경찰에 연행돼 총살당했다”는 참고인 진술이 인정됐다. 역시 빨치산 대원으로 활동하면서 1951년 2월 우리 군과 교전하다가 죽은 김모(26)씨 역시 ‘민간인 피해자’로 인정됐다. 빨치산 활동 사실은 보고서에 포함되지 않았고 “피난을 가던 중 토벌 작전 후 국군 총격으로 행방불명됐다”는 진술이 근거가 됐다.
이 밖에 대한민국 정부의 경찰서를 습격하고 빨치산 치하 분주소장(파출소장)을 지낸 정모(24)씨도 우리 군경 민간인 학살의 피해자로 판단됐다. 자살로 사망한 빨치산 대원 정모(27)씨가 경찰에게 총살당했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경찰에 자수하러 갔다가 총격으로 사망했다는 참고인 진술이 근거다.
이들의 빨치산 행적은 ‘전남 로동신문’ 주필을 지낸 고 정관호씨의 ‘전남유격투쟁사’(2008)에 기술돼 있다. 이 책은 6·25 전후 빨치산의 활동 내용, 인명록 등을 망라한 사료(史料)로 꼽힌다. 진보 진영의 저명 학자 한홍구 교수가 “빨치산 투쟁사에 대한 제대로 된 역사서가 아직 없다. 이런 모든 어려움을 뚫고 나온 역사서”라고 평가할 정도다. 하지만 이 책이 출간된 뒤에도 진실화해위는 사료 교차 검증을 하지 않고 유족 등 참고인 진술에만 의존, 빨치산이 ‘민간인 학살 피해자’로 둔갑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진실화해위의 검증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50년 전북 고창 일대에서 11사단이 민간인 273명을 집단 학살했다고 2008년 판단했으나, 가해 주체엔 빨치산도 포함돼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국군에게 총살됐다고 들었다’는 진술이 ‘사실은 빨치산이 총살했다’는 식으로 번복됐다는 것이다. 2009년 국방부는 이 결정에 이의 제기를 했고, 이후 진실화해위는 오류를 인정했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명예교수는 “피아(彼我) 식별이 명확하지 않았던 대혼란기가 조사 대상인 만큼,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 역시 “우리 군경에 의한 억울한 희생을 반드시 가려내야 한다”면서도 “진술뿐 아니라 정확한 기록에 근거해 구체적으로 상황을 검증해야 한다”고 했다. 일각에선 “빨치산 신분이었음에도 국군과 직접 교전 중 사망한 경우가 아니라면 민간인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가 전복을 목표로 한 빨치산 소속 인물을 민간인으로 보기 어렵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빨치산
정식 명칭은 조선인민유격대. 1946~1955년 태백·소백산맥, 지리산 일대에서 국가 전복을 목적으로 게릴라전을 수행한 조선노동당 산하 무장 테러 조직. 빨치산은 러시아어 ‘파르티잔(비정규 저항군)’이 변형된 말이다.
☞과거사정리기본법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존립 근거. 일제강점기부터 권위주의 통치 때까지 대한민국에 적대적인 세력이나 대한민국 정부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희생된 사람들의 진실을 규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군과 북한군의 교전 중 사망한 적군은 ‘민간인’이 아니라고 보므로 진실 규명에 포함하지 않는다.
조선일보 서보범 기자
07.13 빨치산을 양민 희생자로 둔갑 시킨 과거사위
노무현 정부 때 출범한 1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2005~2010년)가 6·25 전후 국군과 싸운 ‘빨치산’(조선인민유격대) 대원 8명을 ‘민간인 학살 피해자’라고 판정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북한의 지시를 받아 지리산 등지에서 무장 활동을 하며 경찰서 습격,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는데 거꾸로 우리 군경에 의해 학살된 민간인 희생자로 둔갑시킨 것이다.
과거사위는 유족 등의 일방적 진술만을 토대로 이런 결정을 내렸다. 당시 이들의 빨치산 활동을 구체적으로 기록한 ‘전남유격투쟁사’ 등 기본적 사료 검증도 하지 않았다. 위원회는 1950년 전북 고창에서 국군이 민간인 273명을 집단 학살했다고 했는데, 이후 조사에서 상당수는 빨치산 소행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위원회는 국군과 미군에 의한 민간인 피해는 집요하게 들춰내면서 피해가 훨씬 컸던 북한군과 좌익의 잔혹 행위는 외면했다. 80% 이상이 군경과 미군을 가해자로 다뤘다. 군경의 민간인 학살이라고 결정된 사건 중 최소 222건이 인민군과 좌익 세력 소행이었다. 위원회 결정에 따른 국가 배상 청구 금액은 1조2500억원에 달했다.
위원회에 들어간 민변 변호사들은 자기들이 조사한 사건에 대한 소송을 독식해 수십억원의 수임료를 챙겼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2020년 위원회를 재출범시켰다. 과거사를 재단하고 운동권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2기 화해위는 피해자 유족에게 ‘가해자를 특정하기 어려우면 국군·경찰로 써 넣어라’는 황당한 안내를 했다. 군경에 의한 피해라고 하면 유족이 1억원 넘는 보상금을 받지만 인민군에 의한 학살이라고 하면 보상을 못 받는 점을 이용해 군경을 가해자로 몰아간 것이다. 당시 위원장은 탈북한 아흔 살 6·25 국군 포로와 만나 “거제도 수용소에 있던 중국군 포로의 피해에 관심이 많다”는 취지로 말했다. 북에서 수십 년간 노예 생활을 했던 분 앞에서 어떻게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나. 이들이 편향된 시각과 엉터리 조사로 왜곡한 과거사 진실을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7-15 한미 ‘핵작전 부대’ 지정할 필요 있다
지난주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된 나토(NATO) 정상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함께 핵협의그룹(NCG)이 작성한 ‘한·미 한반도 핵억제 핵작전 지침’(지침문서)을 승인하는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이 지침문서는 지난해 4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해 창설한 NCG가 20여 차례의 실무회의를 거쳐 완성한 것으로, 북핵 위협이 고도화하는 가운데 미국이 한국에 약속해 온 핵작전과 관련해 한·미 양국의 담당 정책 부서와 군사 당국에 내리는 지침을 포함하고 있다.
이렇게 한국의 요구에 미국 정부가 적극 부응해 합의한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다. 1969년에 취임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면서 안보 불안이 증폭되던 1978년 한미연합사를 창설해 한·미 연합전투력을 더욱 공고히 했던 것과 같은 수준으로, 한국 안보에 크게 기여한 조치임에 틀림없다.
지침문서에는 정보 공유 확대를 위한 보안 절차, 위기 및 유사시 핵 협의 절차, 핵 및 전략기획, 핵과 재래식 전력 통합을 통해 미국 핵작전에 한국의 재래식 전력 지원, 전략적 소통, 연습·모의·훈련·투자 활동, 위험 감소 조치 등에 관한 지침이 포함돼 있다.
미국 대통령의 지침문서 승인은 미 핵전력의 한반도 작전 임무를 부여하는 국가 차원의 공식 명령을 뜻한다. 이는 그간 우리 정부가 노력해 온 ‘한·미 일체형 확장억제’가 구축된 것으로 평가된다. 그간 NCG의 운용이 지침문서에 포함될 각 분야를 식별하고 정책 차원의 합의 사항을 도출하는 데 중점을 뒀다면, 이제는 이를 더 구체화하고 시행하기 위한 군사 차원의 계획을 짜고 훈련하는 일이 남았다. 지침문서는 핵 운용시 미 핵무기와 우리의 재래식 무기가 통합돼야 함을 언급한다. 이는 핵무기 배치만 다를 뿐 운용 단계는 나토의 핵공유 방식과 같다. 미국의 핵무기 운용 때 한국은 투발 수단을 제공하거나 작전 지원 임무를 맡는다는 뜻이다. 작전계획에는 다음 내용이 포함될 것이다.
먼저, 핵공격 시 중국과 러시아 등 인접국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핵공격 금지선을 설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선 남쪽에 있는 북한의 핵시설, 미사일 발사대, 지휘통제 시설 등 주요 군사 표적 위주로 핵공격 표적을 설정한다. 물론 각 표적에 대한 공격 시기와 규모는 핵 위협과 작전에 미치는 영향 정도를 기준으로 실시간대에 결정될 것이다.
또한, 핵전쟁은 재래식 전쟁과 판이하므로 핵작전 임무를 수행할 부대를 사전에 지정해야 한다. 이들 부대는 재래식 전쟁 임무에서 배제되고 핵작전만 담당하는 부대로 관리돼야 한다. 과거 주한미군은 저(低)위력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주기적으로 핵무기 투발 훈련을 했다. 이렇듯 지정된 국군 부대는 상시 핵 투발 또는 경계와 방호 등 작전지원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준비돼 있어야 한다. 곧 국군에도 전략군이 창설돼 지·해·공 전략자산을 통합 운용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춘다니 반갑다.
다음 달에 실시될 한미연합연습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북한의 핵공격을 가정한 핵전 시나리오가 모의 된다고 한다. 이번 연습이야말로 지침문서에 포함된 내용을 세부적으로 발전시키고 전략군 작전계획 수립도 시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문화일보
07-16 예비군 정예화 절박하다
정충신 정치부 선임기자
2022년 전쟁 초기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군사력 우세를 저지하고 전선을 교착시킨 중요 요소 중 하나가 병력의 신속한 동원이었다. 그에 비해 러시아는 부분 동원 등의 지연으로, 진격을 멈춘 공세종말점(攻勢終末點)에 조기 봉착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양측 모두 병력·무기·장비·물자 등이 고갈됨에 따라 예비전력 중요성을 실감하고 있다. 2023년 10월 하마스 테러로 시작된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약 36만 명의 예비군을 동원해 전쟁을 수행 중이다. 현역과 동일한 전투능력을 보유하고 신속한 동원능력을 발휘한 이스라엘 예비군 제도의 우수성이 새삼 부각되고 있다.
인구절벽에 따른 병역 자원 부족으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우리에게 남의 일이 아니다. 안보 측면에서 북한 핵무기보다 더 무서운 내부의 적이 저출생이다. 저출생 후폭풍으로 2045년이 되면 20세 남자 인구는 약 12만7000명으로 2024년(약 24만 명)의 절반으로 급감한다. 2040년대에 상비군 병력 40만 명 유지는 불가능하고 30만 명 유지도 힘들 것이란 게 국책연구기관 분석이다. 국방백서에 북한군 병력은 128만 명으로, 실제 110만 명 선을 유지하고 있다. 국군이 30만 명으로 줄면 북한군과 3∼4배 격차가 벌어진다. ‘병영국가’ 북한의 예비전력은 교도대·노농적위대·붉은 청년근위대를 합쳐 총 728만 명이며, 개전 초기 속전속결로 남한 전역을 점령하기 위해 병력 70만 명을 휴전선 인근에 전진 배치해 놓았다. 세계 최대 규모 북한군 특수부대의 후방 침투를 저지하려면 초기에 이를 막을 예비전력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군사변혁(RMA)을 통해 상비전력과 함께 예비전력을 강화해 세계 최강 군사력을 유지해오고 있다. 미군은 상비군과 예비군(연방예비군+주방위군)으로 총체전력을 구성한다. 예비군 수는 76만여 명으로 전체 204만 명의 37.1% 규모다. 병력수급체계 대수술 등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한국군도 러시아처럼 외국군 용병으로 병력을 채워야 할 처지다. 분단국가에서 병력 수 유지는 국가 사활이 걸린 안보 현안이다. 북한군은 10년 이상 장기복무자로 18개월 복무하는 국군과 전투력·전문성에서 큰 차이가 난다. 매년 천문학적인 혈세를 군에 투입해 첨단 전투기·함정, 무기를 도입한들 이를 제대로 운용할 병력이 부족하면 무용지물이다. 제대로 된 병력 충원 없이 인공지능(AI)이나 용병으로 북한군과 맞서 싸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미국 예비전력 예산은 약 520억 달러로 미 전체 국방비의 9% 수준이다. 우리 예비전력 예산은 전체 국방비(약 60조 원) 중 약 2400억 원(0.4%)에 불과하다. 예비전력에 대한 투자와 예산 책정이 없어 예비군 정예화는 20년째 공염불이다. 줄어드는 상비군 인력 수만큼 상근·비상근 예비군으로 대체해 상비군과 상근·비상근 예비군을 합쳐 40만 명 병력 유지 수립 정책이 시급하다. 연간 2박 3일 예비군 훈련 기간 역시 최소 1주일에서 한 달까지 늘려야 하고, 과학화예비군 훈련장 구축 등 실질적인 동원훈련체계 구축이 시급하다. 예비군 연간 예산을 1조 원대로 늘려 국방예산(약 60조 원)의 1.6% 확보가 예비군 정예화 출발점이 돼야 한다.

문화일보
07.18 "전쟁 승리" 북엔 왜 국립묘지가 없을까
27일은 6·25 정전일
우리 현충원 호국원은
자유인들의 헌신과
자유 국가의 가능성을
상징하는 곳
해와 달이 이 언덕을
영원히 보호하기를

▲북한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2022년 7월 17일 "조국해방전쟁승리(6·25전쟁 휴전) 60돌(2013년)을 맞으며 조국해방전쟁참전열사묘가 훌륭히 일어선 때로부터 지난 9년간 연 190만6000여명의 각 계층 근로자들과 인민군 군인들, 청소년 학생들이 이곳을 찾아 열사들에게 경의를 표시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 뉴스1
7월 27일은 6·25전쟁 정전 71년이다. 북한에선 이날을 ‘전쟁 승리의 날’이라고 한다. 사회 전체가 거짓 위에 서서 거짓으로 돌아가는 곳이니 무슨 이름을 붙인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것은 북한에 우리 서울 동작동 현충원과 같은 국립묘지가 없다는 사실이다. ‘전쟁 승리’라면서 정작 그 ‘영웅’들을 기리는 곳이 없는 것이다. 북에도 혁명렬사릉, 애국렬사릉, 참전렬사묘가 있지만 모두 간부나 특별 훈장을 받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이곳에 묻힌 사람은 1000~2000명 정도다. 우리 2개 현충원과 6개 호국원에 묻힌 군경은 현재 29만7500여 명에 달한다.
6·25전쟁에서 국군은 13만7000여 명이 전사했다. 부상자는 45만명에 달한다. 국군 전사상자와 참전 군경은 원하면 모두 국립묘지에 안장된다. 미처 찾지 못한 유해를 발굴하기 위해 71년이 지난 지금도 6·25 격전지 산속에서 유해 발굴팀이 땀을 흘리고 있다. ‘ 일병의 유해가 확인돼 가족에게 인계’라는 뉴스가 나올 때마다 그 어떤 소식보다 이 나라가 굳건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란 믿음을 갖게 된다. 아버님과 장인이 묻힌 호국원을 찾을 때면 ‘내 세금이 올바로 쓰여지고 있다’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두 분의 유해에 덮였던 태극기도 잊히지 않는다.
6·25 때 북한군 전사자는 52만여 명, 부상자는 17만여 명이다. 유엔군의 압도적 화력에 인명 피해가 극심했고 치료가 안 되니 부상을 당하면 대부분 사망했다. 김일성의 명령으로 이렇게 수많은 목숨이 스러졌는데 정작 북한에는 그들을 위한 묘지조차 없다. 북한에 우리와 같은 현충원이 없는 이유를 여러 탈북민에게 물어보았으나 신통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어느 분은 “물어보시니까 처음 생각해봤다”면서 “북에 있을 때는 그런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다”고 했다. 다른 분은 “여기저기 동네에 중공군 묘지는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북한 인민군 묘지는 본 적이 없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북한은 원래 그렇다”고 했다.
필자가 탈북민들을 만나고 그들이 쓴 책, 동영상을 통해 그 답을 찾으면서 어쩌면 이것이 한국인·한국군과 북한인·북한군을 가르는 근본적인 차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자유인이고 국군은 자유 국민의 군대다. 북한인은 김정은의 노비이고 북한군은 김정은 단 한 명의 군대다. 자유인이 나라를 위해 싸우다 전사하면 동료 자유인들로부터 최고의 예우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 그 상징이 현충원과 호국원이다. 하지만 노비가 죽으면 주인의 자산 명세서에서 삭제되는 것으로 끝이다. 세계 역사 어디서나 그랬다. 그래서 북한에 중공군의 묘지는 있지만 북한군의 묘지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북한 사회에 대해 잘 모른다. 북한은 수십 개의 신분으로 나뉜 완전한 카스트 사회다. 태어나면서 부모의 신분을 세습한다. 직업도 세습한다. 아비가 농부면 자식도 농부, 아비가 광부면 자식도 광부다. 북한군은 이들 노비의 자식으로 구성된다. 평양의 간부집 자식들은 군대에 가지 않는다. 스펙을 쌓기 위해 가더라도 실질적 복무는 하지 않는다. 뇌물만 쓰면 부대를 나와 몇 년씩 집에서 살 수도 있다. 북한 ‘참전렬사묘’는 이들 특권층이 가는 곳이다.
북한군에는 ‘허약이 온다’는 말이 있다. 영양실조다. 군부대에 흔하다. 머리카락이 노래지고 눈이 커지다가 설사를 하고 심하면 죽는다. 푹 꺼진 쇄골에 물건을 넣을 수도 있다고 한다. 유골은 아무 곳이나 묻는데 유족은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부대까지 가려면 열흘 넘게 걸리니 여비가 없어 갈 수가 없다. 이곳에 무슨 국립묘지인가.
북한군 사이의 진짜 대화는 ‘먹는 것’뿐이라고 한다. 북한군 시절 ‘한국군이 대포로 빵이나 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는 탈북민도 있다. 압록강, 두만강가에서 촬영된 북한군 막사는 흙으로 된 움막이다. 북한 여군들이 움막 밖 햇볕에 모여 앉아 서로 이를 잡아주고 있다. 원숭이 떼와 다를 것이 없다. 이들이 국립묘지라는 것이 있는지 알 리도 없다.
북한 주민은 미군보다 인민군을 더 무서워한다. 총 든 노비가 총 없는 노비를 강탈한다. 당 간부, 군 간부들은 북 주민들을 절망에 빠뜨린 화폐 개혁도 먼저 알았다. 기존 화폐를 물건으로 바꿔놓고 화폐 개혁 후에 되팔아 큰돈을 벌었다. 그 와중에 많은 주민은 자살했다. 북한에 북한군을 위한 국립묘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주민이 있겠는가.
세상 일에 ‘100%’는 없으니 남침에 대비해야 한다. 하지만 김정은은 전면전을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군인은 굶주려 있고 군대는 부패했으며, 탱크와 포는 제대로 작동하면 신기한 것이 북한군 실상이다. 그보다 더 결정적 한계는 그들이 자유인이 아닌 노비라는 사실이다. 서울 현충원에는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들,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는 문귀가 새겨져 있다. 그 앞에 서서 이 현충원 호국원의 존재 자체가 우리 자유와 그 무한한 가능성의 증거라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조선일보 양상훈 기자
07-18 망가진 국정원 정보·공작 실상 보여준 수미 테리 파문
미국 중앙정보국(CIA) 출신 한국계 대북 전문가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 국가정보원 요원으로부터 금품 등을 제공받고 한국 정부 대리 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미 연방 검찰에 기소됐다. 미국에서 외국 정부 이익을 대변하는 활동을 하는 경우에는 외국대리인등록법(FARA)에 따라 법무부에 등록해야 하는데 테리 연구원은 이를 지키지 않은 채 2013년부터 미국 주재 한국 공관에 파견된 국정원 요원들과 만나며 한국을 위한 사실상 불법 로비스트로 활동했다는 게 주요 혐의다.
미국에 파견된 국정원 요원들이 미국의 주요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각계 인사 및 한국 관련 싱크탱크 인사들을 접촉하는 것은 정당한 정보 활동이다. 그러나 미 검찰 공소장에 드러난 국정원 요원의 행태는 금지선을 넘어선 것이다. 정보 수집 활동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다. 특히, 테리 연구원과 함께 대낮에 명품 핸드백 매장에서 쇼핑을 하고, 거리를 활보하는 정보 요원의 CCTV 화면까지 공개된 것은 망가진 국정원의 상징과도 같다. 테리 연구원이 명품백과 의류, 현금을 받고 한국 측 인사의 미 인사 회동 등을 주선한 시점은 2019∼2021년으로 문재인 정부의 서훈·박지원 원장 시절이다. 엘리트 정보 요원들을 좌천시키고 정권 입맛에 맞는 부적격 인사들을 중용하거나 주요 해외 거점에 내보낸 것은 아닌지 의구심도 든다.
수미 테리 파문은 21세기 국가정보기관으로의 국정원 환골탈태 필요성을 확인시켜준다. 미연방수사국(FBI)은 10년 넘게 테리 연구원을 추적 조사하면서 거듭 경고를 줬다고 한다. 그런데도 국정원 요원들은 이를 인지조차 못 한 채 어설프게 행동해 웃음거리가 됐다. 더불어민주당은 대공수사권에 이어 조사권까지 폐지하겠다며 국정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정원이 무력화하면 국가 정보망이 무너진다. 방첩·테러 등 안보 정보는 물론 산업스파이 등 경제 정보 중요성도 갈수록 커진다. 형법 제98조 간첩죄 규정은 적국을 위한 행위만 처벌하도록 했다. 간첩죄 대상을 적국에서 외국으로 넓히는 형법 개정과 함께 정보·공작 능력을 높이기 위한 면책 제도 신설 등도 더욱 시급해졌다.
문화일보 사설
07.19 [단독] 北 또 오물풍선 살포… 軍, 대북 확성기 다시 틀었다
폭우 틈타 올 8번째 풍선 도발
軍, 39일 만에 대북 방송 재개

▲전방서 최근 실시된 확성기 훈련 - 북한이 18일 오물 풍선을 살포하자 정부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올해 6월 초 전방에서 대북 확성기를 설치하는 모습. /합동참모본부
북한이 18일 오물 풍선을 다시 내려보내자 우리 군이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로 맞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튼 것은 지난달 9일 이후 39일 만이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은 수도권 폭우가 이어졌던 이날 오후 대남 오물 풍선 살포 도발을 재개했다. 북한은 지난달 26일 이후 22일 만에, 올해 들어 8번째 대남 오물 풍선 도발에 나섰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이날 군은 오물 풍선에 대한 상응 조치로 대북 확성기를 다시 가동했다. 군은 고정식 대북 확성기 24개와, 확성기를 차량에 얹은 형태인 이동식 대북 확성기 16개를 방송에 투입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출력 스피커를 이용한 대북 확성기 방송은 장비와 시간대에 따라 청취 거리가 10∼30㎞ 수준이라고 한다. 다만 18일 확성기 방송은 일부 전선에서만 제한적으로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는 “향후 북한의 대응에 따라 추가 확성기 방송을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대북 확성기는 1963년부터 활용된 대표적인 대북 심리전 수단이다. 군은 북한이 지난 5월 말부터 오물 풍선 도발을 계속하자 6월 9일 대북 확성기 방송을 6년 만에 재개했다. 하지만 당시 2시간가량 시범적으로만 실시한 뒤 확성기 사용을 자제해왔다. 북한은 우리 측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한 직후 등을 포함해 18일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대남 오물 풍선을 내려보냈다. 그럼에도 우리 군은 “북이 도발을 계속하면 확성기 방송을 재개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을 뿐 이날 전까지는 확성기를 사용하지 않다가 이날 재개한 것이다.
그동안 확성기를 자제한 이유에 대해서는 “너무 자주 틀면 오히려 방송 효과를 극대화할 수 없기 때문” 등 여러 해석이 나왔다. 확성기 방송 재개 이후 폴 러캐머라 유엔군사령관(주한미군 사령관)이 신원식 국방 장관을 만나 대북 확성기 방송에 제동을 걸었다는 보도도 나왔었다. 우리 정부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부정했다.
확성기 방송은 인기 K팝 등 한류 관련이나 김정은 체제의 실상을 북한 주민들에게 적나라하게 알리는 내용으로 주로 구성된다. 일각에서는 “고작 확성기 방송 트는 게 무슨 효과가 있냐”는 비판을 하지만, 북한 정권은 주민들의 내부 동요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확성기 방송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북한은 2015년 우리 군의 확성기 방송 중단을 끌어내고자 남북 고위급 회담을 먼저 제의했고, 2018년 4월 ‘판문점 선언’에서도 확성기 방송 중단을 핵심 내용으로 집어넣었다. 탈북 외교관 출신인 태영호 전 의원은 “휴전선 30㎞ 안에 북한군 70만명이 나와 있는데, 이들이 수년간 확성기 방송을 통해 한국의 음악·뉴스 등을 계속 접하다 고향으로 돌아가면 북한 체제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앞서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 16일 대북 전단과 대형 풍선이 국경 지역 등에서 발견됐다면서 “한국 쓰레기들의 치졸하고 더러운 짓이 계속될 경우 우리의 대응 방식의 변화가 불가피하게 제기될 것”이라고 했다. 이를 두고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한 대응이 오물 풍선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으나, 북한은 이날 비가 그치자 기습적으로 다시 오물 풍선 도발에 나섰다. 기존과 달리 북한이 인천공항이나 김포공항에 오물 풍선을 집중적으로 보낼 가능성도 제기된다. 집중호우 때 지뢰를 하천에 흘려보내거나 황강댐 등 남북 공유 하천에 기습 방류를 감행하는 식의 도발을 할 가능성도 있다.
합참은 현재 북한이 살포한 오물 풍선 수를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군은 북의 오물 풍선 살포로 인해 국민에게 피해가 발생하면 무력 도발로 간주하고 원점을 타격해 보복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군은 북한의 오물 풍선 부양 원점으로 추정되는 황해도 지역 십여 곳을 파악해 놓은 상태라고 한다. 합참은 “떨어진 풍선을 발견하면 접촉하지 말고 가까운 군부대나 경찰에 신고해 주기 바란다”고 했다.
조선일보 양지호 기자
07-19 해외 정보활동 총체적 강화 필요하다
염돈재 前 국정원 1차장, 前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
지난 일을 돌아보면 그때 사람들은 왜 그렇게 멍청한 짓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 내막을 알게 되면 나름 그렇게 된 사정을 이해하게 되기도 한다. 최근 며칠 큰 화제가 된 미국 한반도 안보 문제 전문가 수미 테리 사건 보도를 접하면서 48년 전에 있었던 ‘박동선 사건’(코리아게이트 사건)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이 사건은 재미사업가 박동선이 미국 쌀 한국 수출 중개료로 확보한 자금으로 매년 50만∼100만 달러를 미국 의원과 정부 관리 등에게 선물 및 정치자금으로 제공하면서 로비 활동을 하다가 뇌물죄, 외국대리인등록법(FARA) 위반죄로 기소된 사건을 말한다.
1976년 10월 워싱턴포스트 보도로 이 사건이 알려지자 많은 국내 지식인과 언론이 한국 정부와 중앙정보부가 미국의 법 제도도 제대로 모르고 무모한 일을 벌였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당시 우리 정부의 사정은 매우 절박했다.
1969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아시아 개입 축소를 위해 ‘닉슨독트린’을 발표한 후 1971년 주한미군 5만6000명 중 2만 명을 일방적으로 철수했다. 또, 국군 전력 증강을 위해 배정된 팬텀기 2개 대대 중 1개 대대가 로비의 영향으로 대만에 배정되고 1973년 파리평화협정이 2년 후 베트남 공산화로 이어지자 우리 정부도 대미 로비 활동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하지만 합법적 로비 활동은 막대한 자금이 드는 데다 효과도 의심스러워 불가피하게 비합법적 로비 활동을 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대다수 나라가 미국에서 비합법적 로비 활동을 하고 있던 점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나중에 알려진 일이지만,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1974년쯤부터 비밀리에 박동선의 가방과 가택을 수색해 증거를 확보했고, 미 정보기관은 우리의 외교 암호를 해독했다. 미국이 우리가 어떤 암호기를 사용하는지 알고 있어 암호 해독이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국이 특히 우리의 로비 활동을 문제 삼은 것은 박동선의 활발한 활동이 주목 대상이 된 게 주요 이유였지만, 더 중요한 것은 미국이 1979년 중국과의 수교를 앞두고 대만(중화민국)의 로비를 견제하려는 목적이라는 설이 파다했다. 대만의 장기적 로비 활동으로 당시 미국 상·하원 내 친대만 계열 의원이 300여 명이나 된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수미 테리 사건을 보면 박동선 사건과는 큰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의 안보 상황이 그때 같이 절박한 것도 아니고, 이 사건 이후 국가정보원은 비합법적 로비 활동을 금기시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서훈·박지원 두 국정원장과 차장 3명 및 해외담당 국장 3명이 모두 해외공작 경험이 없는 데다, 미·북 관계 개선 욕구가 너무 컸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울러 당시 간부급 미국 파견 요원들이 대개 미국 근무 경험만 있어 비밀공작 활동 기법에 익숙지 않은 데다 보안 의식도 낮았기 때문일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문재인 정부에서 무모한 적폐청산과 불합리한 인사로 국정원의 해외 정보 활동 체제가 완전히 붕괴됐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그런 만큼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이 하루바삐 해외 정보 체제를 총체적으로 재점검하고 획기적인 개혁을 추진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문화일보
07.23 한국 로켓의 미 국방부 시험 첫 통과 쾌거
한국산 적외선 탐색 기반 70㎜ 대함 근거리 유도로켓(미사일) 비궁(匕弓)이 지난 12일 미국 국방부가 주관한 ‘해외 비교 시험(FCT)’의 최종 발사에서 여섯 발 모두를 표적에 명중시켰다. 한국 방산 역사상 FCT 통과는 최초다. 이번 성공으로 비궁은 미국 수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우리 국방부 산하 국방과학연구소(ADD)의 부단한 연구개발(R&D)이 바탕이 되고 참여 기업이 이뤄낸 성과다. 방산은 정부가 주도하고 민간이 협업하며 굴러가는 구조다. 국가를 지키는 방위 시스템인 동시에 경제에도 유익한 첨단산업이다. 마치 인체에 뼈(연구와 기술)와 근육(기술과 생산)이 있기에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이치와 같다.
국산 무기의 미국 수출 발판 마련
자주국방에 따른 기술 축적 결실
무기 교류는 동맹신뢰 확인 기회

▲지난 12일(현지시간) LIG넥스원 관계자들이 미국 하와이 인근 해상에서 항해 중인 천자봉함에 적재된 실사격 표적을 비궁 실사를 위해 바다에 띄우고 있다. 해군
한국은 지난 70여년간 동맹국인 미국이 제공하는 ‘방위 우산’ 아래에서 적대적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해왔다.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을 계기로 출범한 한미동맹 덕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취하고, 마침내 선진국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다.
한미동맹의 핵심인 한미연합사령부는 한반도 전쟁에 대비한 한국 방어 작전계획(OPLAN 5027)을 기본 틀로 해서 움직여 왔다. 주한미군사령관을 겸직하는 한미연합사령관(미군 4성 장군)이 여러 군사계획에 따라 미군 전력을 운용한다. 이 작전계획에 따라 육·해·공 전력자산을 활용해 한국을 방어하게 된다.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미국의 무기체계는 경이로운 수준이다. 현역 시절의 필자를 포함해 한미연합훈련에 참여한 한국 군인들의 눈에 어느 나라도 범접하기 어려운 미군의 최첨단 무기는 선망의 대상이 아닐 수 없었다. 한국의 국방기술은 미군의 최첨단무기를 목표로 설정하고 치열하게 도전하며 발전해왔다.

▲지난 6월 5일 경기도 여주시 남한강 일대에서 한미 연합 도하 훈련이 실시되는 모습. 연합뉴스
이런 노력의 결실이 공군의 첨단 전투기, 해군의 이지스함, 육군의 정밀 유도탄 등이다. 대부분 미국 등 우방의 장비와 완제품·부품을 사들여 단순히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최대한 활용해 자체기술을 차곡차곡 축적해 가능했던 일이다. 그랬던 나라가 비궁의 시험평가를 통해 미국에 수출의 길을 열었으니 감개무량할 따름이다.
무기 판매는 전략·전술·전투교리 등이 패키지로 붙고, 여기에 교육 훈련을 동시에 시행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군사적 관점에서 제품 공급과 훈련이 함께 제공된다는 점에서 안보동맹과 무기는 한 몸체다. 동맹 등 집단안보의 최고 수준 조합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이 자주국방을 주창해온 1970년대 이후 보유하게 된 첨단무기는 대부분 미국 또는 유럽 국가들로부터 완제품을 수입하거나 그들의 기술을 접목해 국내에서 제작됐다. 이전받은 기술을 연구하고 학습해 한국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가 함대함 유도탄이다.
우리 해군은 함대함 하푼(Harpoon) 유도탄 수백 발을 구매해 운영하던 중에 1996년 국방과학연구소를 중심으로 국산화를 진행했고, 2005년 마침내 함대함 유도탄 해성(海星)을 탄생시켰다. 이 기술은 한국 유도탄 개발사에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힌다. 해성은 2010년 첫 수출에 성공했다.

▲지난 5월 10일 동해 해상에서 진행된 합동 전투탄 실사격 훈련에서 홍대선함(PKG)이 적 수상함의 해상도발 상황을 가정해 해성-I 함대함유도탄을 발사하고 있다. 해군
이번에 미국 국방부 시험을 통과한 유도로켓 비궁은 머그잔 크기의 통 안에 기술을 축소·응축한 근거리 타격 무기다. 한국군이 서해 최전방에서 북한의 기습 상륙정 타격 수단으로 운영 중인데, 높은 적중률을 보인다. 비궁은 환태평양 훈련구역인 중부 태평양 해역에서 리사 프란케티 미 해군참모총장이 직접 참관하는 가운데 100%의 신뢰도를 입증했다.
최근 미국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처럼 70여년 동맹의 역사는 이제 한 방향에서 양방향 교류로 흐름이 바뀌고 있다. 한미동맹이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는 시점에 한국의 대미 유도무기 수출이 실현되면 산업적 성과를 넘어 한미동맹의 격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상호 신뢰가 더욱 견고해져 명실상부한 최고 수준의 안보협력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비궁의 미국 수출이 시간문제라지만 우리 정부와 한미 군사 당국, 관계기관과 기업은 최종 결실을 볼 수 있도록 최대한 협력하길 바란다. 이를 통해 안보 정책을 넘어 무기 교류로 진화하는 동맹의 정점에 도달하길 기대한다.
중앙일보 유영식 한국해양안보포럼 이사·예비역 해군 제독
07.23 ‘삐익~삐익’ 北 대남 확성기 마찰음 송출…대북 방송 방해 목적인 듯

▲북한이 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하며 닷새 만에 도발을 재개한 1일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 남한군 초소에 대북확성기가 설치돼 있다. 뉴스1
오물·쓰레기 살포에 맞선 우리 군의 대북 확성기 방송에 맞서 북한이 청취 방해 목적으로 추정되는 대남 확성기 마찰음을 내보내며 맞대응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23일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20일부터 대남 확성기로 ‘삑삑’ 거리는 등의 소음을 내보내고 있다. 이런 소음 송출은 지역을 바꿔가면서 매일 지속되고 있다.
특정 메시지나 음악 등은 송출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대북 확성기 방송을 북한 군인·주민들이 듣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인지, 본격적인 대남 방송의 준비 차원인지 추가 분석이 필요하다고 합참은 전했다.
합참 관계자는 북한이 내보내는 소음으로 인해 군사분계선(MDL) 인근 북한 군인·주민들이 “우리 대북 확성기 방송을 인지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우리 군은 서부·중부·동부전선에 배치된 고정식 확성기를 릴레이식으로 돌아가며 제한적으로 방송하며 대응해오다, 21일 오후 1시부턴 전방 지역 모든 확성기를 동시에 가동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우리 군이 현재 보유한 대북 확성기는 고정식 24개와 이동식 16개 등 총 40개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군은 북한이 대남 오물·쓰레기 풍선 살포 준비를 그만둘 때까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지속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이성준 합참 공보실장은 이날 오전 정례브리핑에서 “현재 대북 확성기 방송은 대한민국의 발전상과 행복한 생활 모습, K-POP 등을 방송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 실장은 이어 “대북 확성기 방송 이후 북한군의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설명해 드릴 사안은 없다”라고 덧붙였다.
배재성 기자 hongdoya@joongang.co.kr
07-24 [속보]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 北 오물풍선 낙하…수거 중

▲북한에서 살포한 대남 쓰레기 풍선 내용물이 24일 오전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 인근에 떨어졌다. 현장 관계자들이 내용물을 확인한 후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이 살포한 쓰레기 풍선이 용산 대통령실과 국방부 청사 내에도 떨어졌다.
대통령경호처는 24일 “북한이 부양한 대남 쓰레기 풍선에 대해 합참과의 공조를 통한 모니터링 중 용산 청사 일대에 낙하한 쓰레기를 식별했다”고 밝혔다. 이어 “화생방 대응팀의 조사 결과 물체의 위험성 및 오염성이 없는 것으로 확인돼 수거했으며, 합참과 공조해 지속해서 모니터링 중”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군은 북한의 대남 쓰레기 풍선을 공중에서 격추할 경우 내용물이 공중에서 흩어져 더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음을 고려해, 낙하 후 수거하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문화일보 노기섭 기자
07-25 대통령실 경내까지 ‘北 풍선’ 대응 방식 확 바꿔야 한다
북한의 오물풍선 도발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젠 대북 전단에 대한 반발이 아니라 대남 ‘풍선 공격’을 가상한 전술훈련이 아닌지 의심해야 할 지경이 됐다. 24일엔 서울 용산의 대통령실 경내와 여의도 국회의사당에도 떨어졌다. 경호처는 “용산 청사 일대에 낙하한 쓰레기를 식별했고 조사 결과 물체 위험성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의 풍선 이동 경로를 추적·감시하면서 안전대책을 강구했다”고 밝혔다. 군은 대북 확성기 방송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한다고 한다. 야당 등은 민간단체의 대북 풍선 탓이라며, 이를 강력히 단속하라고 정부에 요구하면서 남남갈등 양상도 커지고 있다.
북한의 풍선 도발은 지난 5월 28일 시작된 이후 두 달 가까이 됐다. 차량이 파손되거나 항공기 이착륙이 차질을 빚는 등 피해도 속출했다. 이런데도 군은 낙하 후 수거 방침을 고수한다. 공중 격추 시 탄피는 물론 오물, 유사시엔 생화학 물질 등이 확산해 피해를 키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대통령실 인근 방공부대에 레이저 대공 무기를 배치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북한 무인기 격추를 위해 개발됐지만, 700도 이상의 고열을 이용하는 만큼 풍선에 구멍을 내 자유낙하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런 수동적 소극적 대응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오물풍선은 유사시 생화학무기나 저강도 핵무기 공격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육안으로도 북한 풍선이 관측되는 만큼 군사분계선을 넘어온 직후 처리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인가가 없어 상대적으로 안전할 것이다. 레이저 무기로 구멍을 내거나 드론으로 유도할 수 있다. 그것도 훈련이다. 도발 억지를 위해 비례성 차원에서 군 당국이 대북 풍선을 직접 날리는 방안도 검토할 때다.
문화일보 사설
07-25 정보요원 카드 결제와 국정원 정상화
이병호 前 국가정보원장
미국외교협회 수석연구원인 수미 테리에 대한 최근 미 검찰의 기소를 계기로 국가정보원에 대한 비판이 봇물 터진 듯하다. 어떻게 국정원 직원이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의 미감(미행 감시) 사진에 그렇게 노골적으로 찍혀 공개될 정도로 미숙하고 어리석은가 하는 비판이 국정원을 질타한다. 한 보수 유튜브 언론인은 이런 국정원은 해체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폈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으로 노출된 국정원 직원의 처신은 분명 미숙했고 정보 프로답지 못했다. 그래서 이 사건에 관한 한 국정원은 유구무언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사건을 균형 있게 이해하려면 사건의 배경을 살펴야 한다. 우선, 테리 연구원은 국정원이 운영하는 스파이가 아니다. 미행을 따돌리는 정교한 정보 운영 기술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는 비밀을 취급하는 미국 정부 요원도 아니고,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민간인 신분의 연구원이었을 뿐이다. 테리 연구원이 접촉한 한국 측 인사는 국회의원과 외교관·학자 등 다양하고 광범위했다. 이런 교류는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공공외교의 일환으로 이뤄졌다. 마찬가지로 국정원 직원들도 안보 전문가인 테리 연구원의 북한 정세를 비롯한 여러 안보 현안에 대한 식견을 듣고 의견을 교환하기 위해 교류를 텄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이 과정에 과도한 선물을 제공하는 등 선을 넘는 민망한 행위가 이뤄졌다는 점이다.
왜 그랬을까? 그 배경에는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이 도사리고 있다. 적폐청산으로 국정원 직원들의 정보 프로 의식은 깊은 상처를 입었다. 형사처벌의 꼬투리를 잡히지 않겠다는 심리가 우선시되는 경향도 생겼다. FBI 미감 사진으로 드러난 국정원 직원의 카드 결제가 이런 경향을 뒷받침한다. 정보 요원은 통상 현금을 쓴다. 활동의 근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카드 결제는 금기시한다. 그것은 정보 운영의 상식이고 불문율이다. 현재 국정원은 감사원의 감사를 받는다. 문 정부가 시작한 일이다. 어떤 선진국 정보기관도 국정원처럼 외부 기관의 감사를 받지 않는다. 감사원 감사는 국정원 예산 사용의 근거를 중시한다. 국정원은 감사원의 감사 방식을 의식해야 하고, 이것이 국정원 직원이 카드 결제를 하게 된 배경이다.
이 사건은 부끄러운 일이긴 하지만, 국정원이 하는 수많은 일 중 극히 일부분에 해당한다. 지나치게 확대해서 국정원 전체 역량을 폄훼하는 빌미가 돼선 안 된다. 또한, 이 사건이 한·미 정보 협력에 지장을 줄 것으로 예단해서도 안 된다. 한·미 정보 협력은 윈윈 협력이다. 따라서 이 사건으로 지장을 받을 정도로 협력의 질과 폭이 얕지 않다.
국정원이 사건 관련 내부 감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감찰을 통해 실패 원인과 배경이 밝혀지겠지만, 무엇보다 이 사건이 적폐청산으로 망가진 정보 운영의 상식을 복원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감사원의 감사도 신중히 재검토됐으면 한다. 최소한 선진국 정보기관 운영을 벤치마킹해서 국정원이 정보기관답게 일할 수 있도록 제로베이스에서 법과 제도를 재정비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국정원을 유능하고 단단한 정보기관으로 발전시키는 데 여야가 따로일 수 없다. 튼튼한 국가안보는 거부할 수 없는 국민의 여망이요 요구이기 때문이다.

문화일보
07-26 北 풍선에 밀려선 안 될 ‘親북한주민’
이상환 한국외국어대 교수, 前 한국국제정치학회장
북한에서 날려 보낸 오물풍선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일대에서 다수 발견됐다. 북한의 10번째 대남 오물풍선 살포인데, 대통령실 경내에서 낙하물이 발견된 것은 처음이다. 낙하물 조사 결과, 위험성 및 오염성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한다. 북한의 오물풍선에 대해 군 당국은 공중에서 격추하는 경우 위험성이 더 크다고 판단, 낙하 후 수거하는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다.
탈북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와 북한의 오물풍선 부양이 반복되면서 국군은 대북 확성기 방송을 6년 만에 재개한 후 모든 전선으로 확대했다. 확성기 방송이 김 씨 일가 3대 세습 비판과 자본주의 체제 선전 등 북한이 민감해 하는 내용으로 전면 시행되면서 접경지역 내 군사적 충돌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젠 북한의 오물풍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 과연 북한의 오물풍선 살포가 탈북단체의 전단 살포 대응인지, 아니면 다른 도발을 준비하려는 시도인지 알 수 없다. 지금까지의 풍선 내용물은 사실상 쓰레기로 판단되지만, 앞으로 무엇이 담길지 알 수 없다. 만약 생화학무기나 폭발물이 담긴다면 참혹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다양한 대비가 필요하다. 비무장지대(DMZ) 일대에서 북한 오물풍선을 격추하자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한 발에 수천만 원이 넘는 유도 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낭비이고, 낙탄 발생 시 정전협정 위반 소지도 있어 현실감이 떨어진다. 오히려 개발 중인 소형 무인기 격추용 레이저 대공 무기를 쏘아 북한 오물풍선을 파괴해 사전 제압하는 방식이 그럴듯하다.
한편에서는 현재의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북전단 풍선이 중단되면 북한의 오물풍선도 날아오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확성기 방송도 필요 없어진다는 논리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대북전단 살포를 적극적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한 여야의 입장도 엇갈린다. 풍선이 휴전선을 넘을 때 왜 격추하지 않았느냐는 반응부터, 강 대 강 대치가 아니라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반응까지 다양하다.
지난해 2월 미국 알래스카 상공에 진입한 중국발 고고도 풍선이 미 동부 해안 상공에 이르렀을 때 미군이 F-22 전투기로 격추한 일이 있다. 이때 중국은 민간 기상관측 풍선이라고 주장한 반면, 미국은 민감한 군사시설 등 군용 정찰 풍선이라고 반박했다. 미국의 풍선 격추가 국제법적으로 정당한 조치인지를 놓고 논란이 있었다. 중국의 풍선이 허가 없이 미 영공에 진입한 것은 그 목적과 무관하게 미국의 주권 및 영공을 침해한 행위로, 그 격추가 정당화될 수 있다. 따라서 국군이 레이저 대공 무기로 북한 오물풍선을 공중 제압하는 행위도 용인될 수 있다. 풍선을 이용한 탈북 단체의 전단 살포는, 그 주체가 민간이고 목적이 인도주의적이라는 점에서 국제법상 인정되리라 본다.
대북전단은 북한 주민들에게 바깥세상을 알리는 유용한 도구이고 이를 차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대북전단 살포와 북한의 오물풍선을 둘러싼 남남갈등이 우려된다. 전단 살포와 같은 친(親)북한주민 정책이 반(反)북한정권의 정책이 될지라도 우리의 대북정책이 통일에 방점을 둔다면 친북한주민 우선 정책을 펴는 건 당연하다.

문화일보
07.27 대북요원들 정보, 북한에 넘어갔다...귀국시키고 활동 금지령
첩보전 일선에 있는 軍 정보사 요원
급거 귀국, 대외활동 금지
"군무원 노트북 통해 넘어간 듯"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해외·대북(對北) 군사 정보 수집과 첩보 업무를 담당하는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의 첩보요원 신상 등 기밀 정보 다수가 북한으로 넘어간 정황이 발견돼 군 당국이 조사에 나섰다. 군 당국은 26일 “국군 방첩사령부에서 관련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보사는 해외에 파견된 현직 요원이 노출됐을 수 있다고 보고 이들을 귀국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핵·미사일 능력이 고도화되고 북·러 군사 밀착이 현실화하는 상황에서 우리 군의 대북 첩보 능력에 심각한 타격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날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정보사는 한 달 전쯤 요원 관련 신상 정보 수백~수천 건이 북한으로 유출된 것을 확인하고 유출 경로 확인에 나섰다고 한다. 정확한 유출 시점은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현직자들 신원 정보가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군 정보 소식통은 “외교관 등 공식 신분을 가진 ‘화이트 요원’은 물론 신분을 감추고 공작에 나서는 ‘블랙 요원’ 등의 신분이 노출됐을 가능성도 있다”며 “이에 정보사가 요원들을 급거 귀국시키고 대외 활동 금지령을 내린 것으로 안다”고 했다.
대북 작전에 있어서는 국가정보원보다도 정보사 요원들이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보사 요원들은 중국 등에 신분을 위장해 머무르며 북한 정보를 수집해왔다. 한번 신원이 노출된 비밀 요원은 다시 현장 작전에 투입하기 어렵다. 지난 문재인 정부 시절 대북 휴민트(HUMINT·인간 정보) 능력이 상당 부분 와해된 데 이어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군 당국은 과거 현역 군인으로 첩보 활동을 하다가 군무원으로 정보사에 재취직한 A씨의 노트북을 통해 관련 정보가 넘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북한 해킹에 당해 벌어진 보안 사고’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군은 A씨가 북한에 포섭돼 관련 정보를 넘겼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그의 출입국 내역 등을 포함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트북에 있어서는 안 될 요원 신상 정보와 같은 기밀 자료가 상당량 담겨 있었던 것부터가 석연치 않다는 것이다. 정보사 내부에서는 ‘군무원 혼자서 확보하기 어려운 정보가 모두 넘어간 것을 봤을 때 다른 조력자가 있었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안보 전문가는 “첩보부대원 인적 사항이 유출됐다면 그 밖에 다른 민감 정보들도 다수 넘어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해킹당했다면 기본의 기본조차 지키지 않았다는 뜻이고, 북한에 포섭된 것이라면 국가보안법 위반 사항”이라고 말했다.
이번 정보사 기밀 유출 조사 사실은 관련 제보를 받은 국회 국방위 여야 의원들이 국방부에 자료 제공 요청을 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해킹이든 팔아넘긴 것이든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상황”이라며 “방첩사 조사 수준이 아닌 민·관·군의 합동 조사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군과 정보 당국은 지난 정부 시절 상당 부분 와해된 것으로 알려진 대북 휴민트의 복구 및 강화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 유출 사건으로 인해 큰 타격을 입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보사의 기밀 유출 사건은 처음이 아니다. 2018년에 팀장급 장교가 각종 군사 기밀을 건당 100만원에 중국·일본에 팔아넘겼는데, 중국 현지에서 활동하는 비밀 요원 신상 기록이 포함돼 있었다. 2017년엔 국방통합데이터센터가 해킹돼 유사시 북한 지도부에 대한 참수 작전과 북 국지 도발 대응 계획, 미국이 제공한 대북 정보 등 1500만장 분량의 기밀이 북으로 넘어간 사실이 확인됐다.
군 관계자는 “적지에서 목숨을 걸고 임무 수행하는 인원들 뒤에 총을 쏜 것이나 마찬가지인 일이 또 벌어졌다”며 “철저한 수사 및 재발 방지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화이트 요원·블랙 요원
화이트 요원은 해외 각국 대사관 등에 외교관 신분으로 파견돼 공식 직함을 갖고 정보 수집을 하는 정보기관 요원을 말한다. 블랙 요원은 자신의 신분과 직업을 위장해 첩보 수집 활동을 하는 비밀 요원이다. 발각돼도 보통 파견국에서 관련성을 부인한다.
조선일보 양지호 기자
07.27 북한의 오판을 우려한다
북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북한이 지난 24일 올해 들어 10번째로 오물 풍선을 날렸다. 오물 풍선에 유해 물질이 담기진 않았지만 이번 풍선은 용산 대통령실과 여의도 국회 인근에도 떨어졌다.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풍선을 이용해 대한민국의 심장부를 화생방으로 공격할 수 있는 풍속과 풍향 데이터를 수집했을 것이다. 여기에 지난 16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새로운 대응을 언급했다. 한국을 향한 대응 수위를 한층 높이겠다는 뜻이어서 우려된다. 풍선 전쟁을 도발과 확전의 계기로 삼을 가능성이 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한국의 대북 풍선 살포 원점을 북한이 총격이나 포격할 수 있다고 예측하기도 했다.
북 오물풍선 한국 심장부 낙하
화생방 공격 정보 획득 가능성
도발 억제 위한 의지와 힘 절실
한미 미래 연합전력 확보 나서길

▲지난 24일 오전 북한이 살포한 오물풍선이 서울 상공에서 포착됐다. 이중 일부는 용산 대통령실 경내에도 낙하했다. 뉴시스
북한의 오물풍선에 한국은 대북 확성기 방송으로 대응하고 있다. 필자가 합동참모본부 의장으로 재임 중이던 2015년 8월 ‘목함 지뢰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한국이 확성기 방송을 하자 북한은 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대북 방송 재개는 그만큼 북한에는 아킬레스건이라는 얘기다. 2022년 9월 “선제 핵 공격”을 헌법에 명문화했고, 지난 1월에는 통일정책 폐지를 선언한 북한이다. 정상 국가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오물 풍선을 이용해 남남갈등을 부추기며 도발의 명분을 쌓겠다는 게 북한의 속내일 수 있다. 북한의 비정상적 행태는 도발이 임박했다는 암시일 수 있다.
내일은 한국전쟁의 포성이 멎은 지 71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 긴 세월을 우리는 북한의 도발에 전전긍긍하며 살아 왔다. 북한과 그 뒷배인 중국, 러시아는 모두 핵보유국인데 한·미·일은 오직 미국에만 의존한다. 불안정한 국내외 정세 속에 북한이 오판할 요소가 다분하다.
불안정한 역내 힘의 균형
재래식 무기만 놓고 보면 힘의 균형은 한·미 연합세력이 우세하다. 그러나 북한이 핵과 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하며 힘의 균형이 깨지고 있다. 한·미가 미국의 핵을 적극 활용하는 확장 억제 정책을 마련한 이유다. 한·미는 지난해부터 핵억제 능력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와 ‘핵협의그룹(NCG)’을 구성했다. 지난 11일에는 최초로 문서화된 ‘핵 공동지침’까지 마련했다. 이를 통해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빈도를 높이고 핵과 재래식 무기를 통합 운용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도 여전히 효용성에 대한 의문은 끊이지 않는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고수해 온 ‘단일 권한’ 원칙 때문이다. 이 원칙에 의하면 미 핵무기 사용 승인 권한은 오직 미 대통령에게 있다. 미 전략자산과 전술핵을 한반도에 배치해도 신속하고, 단호한 응징이 어려울 수 있다는 뜻이다. 북한은 이런 현실을 꿰뚫어 보고 있다.

▲6월 10일 서울에서 3차 한미 핵협의그룹(NCG)을 공동주재한 조창래 대한민국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왼쪽)과 비핀 나랑 미 국방부 우주정책차관보 대행이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크라이나와 중동 전쟁, 홍해 사태로 미국의 군사력은 여력이 없다. 여기에 중국과 대만이 무력충돌하는 사태까지 발생한다면 최악이다. 필자는 지난해 10월 기고에서 대만사태 시 북한의 도발로 역내에 두 개의 전선이 형성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군사력으로 두 개의 전쟁을 치르기엔 벅차다는 사실을 북한이 십분 활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중국이 남중국해와 서해에서 영유권을 주장하며 우리의 해양 활동을 옥죄고 있다. 유사시 우리 해군 작전에 엄청난 장애다. 여기에 북한이 러시아의 도움으로 핵 추진 잠수함(핵잠)을 개발하면 역내 해양 안보 패러다임이 바뀐다. 북한이 한반도 해역에서 벗어나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고, 이미 개발한 핵무기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능력을 이용하면 미 본토에 대한 은밀한 핵 공격도 가능하다. 또 한반도 유사시 전개하는 미 증원 전력을 발진 기지부터 차단할 수 있다. 이런 현실은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기 위한 역내 힘의 균형에서 한·미가 절대 우세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인내 정책만으로는 한계
문제는 물리적인 힘의 균형 파괴뿐 아니라 이를 구사할 의지가 있느냐다. 미국은 정전 이후 ‘한반도의 현상 유지 정책’을 추구했다. 경찰국가인 미국이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편이다. 이 때문에 북한이 자행한 3000번이 넘는 도발에 단 한 번도 단호한 대응이 없었다. 심지어 1·21사태,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전과 같은 전쟁 수준의 도발에도 ‘참고’ 넘어갔다. 이는 북한에 잘못된 인식을 심어 줬고, 동맹의 막강한 힘에도 도발을 서슴지 않는다. 급기야 온갖 제재에도 불구하고 핵무기를 개발했다. 이런 ‘인내’ 정책만으로는 북한의 도발을 막을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군사합의문서명식에서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합의문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2018년 9·19 군사합의는 우리의 대응 의지를 의심하게 만든 요인으로 작용한 측면이 있다. 북한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세계 많은 나라가 부러워하는 명품 한·미연합훈련마저 대폭 축소 또는 중단됐다. 훈련 부족으로 인한 총체적인 방위태세 약화는 물론이고, 정신교육이 중단되며 장병들의 대적관과 정신상태가 흐트러지는 결과를 낳았다. 평화는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안타깝다. 안보 이슈의 정쟁화, 국론 분열 역시 북한이 바랐던 게 아닐지 모르겠다.
북 위협에 실전적 대비 태세 갖춰야
북한의 비정상적인 오판에 따른 전쟁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도발하면 기필코 정권을 말살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는 물론, 그에 걸맞은 힘을 키워야 한다. 당장 장병들의 정신교육을 대폭 강화하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작전계획과 연합훈련에 반영해 실전적인 대비 태세를 갖춰야 한다. 여차하면 핵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도 확보해야 한다. 당장 핵무기 보유가 어렵다면 우라늄 재처리 등 잠재적인 핵보유 역량이라도 보유해야 한다.

▲새뮤얼 파파로 미국 인도태평양 사령관은 11일(현지시간) 한국의 핵(원자력)추진 잠수함이 작전적 가능성을 보인다면 도입을 추진해볼 수 있다고 말하며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가 "모두에게 우려되는 상황"이라 언급한 바 있다. 이유정 기자·공동취재단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우리 국민의 80%, 미 조야의 25% 이상이 이에 동의하고 있다. 아울러 지난 11일 “한국의 핵잠수함 도입을 필요할 경우 추진할 수 있다”는 새뮤얼 파파로 미 인태사령관의 발언을 새겨 들어야 한다. 2030년이 되면 미국의 전투함은 290척인 반면, 중국은 425척의 함정을 보유할 계획이다. 135척의 격차다. 현실적으로 한반도에서 미국 해군의 열세가 불가피하다.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미 해군은 한국의 조선소에서 함정을 건조하거나 정비(MRO: Maintenance, Repair, Overhaul)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지난 2월 카를로스 토로(Carlos D Toro) 미 해군성 장관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이 문제도 협의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미래의 한·미연합전력을 위한 적극적인 협력에 나서길 바란다.

중앙일보 최윤희 전 합참의장
07.29 블랙 요원 명단까지 털렸다니, 나사 빠진 정보기관
대북 첩보 전쟁 최전선에 있는 국군정보사령부 해외 요원의 신상 등 기밀 정보들이 대거 북한으로 넘어간 정황이 발견돼 군 당국이 수사에 나섰다. 외교관 신분 등으로 공개 활동하는 ‘화이트 요원’뿐 아니라 신분을 숨긴 ‘블랙 요원’ 정보까지 유출됐다고 한다. 블랙 요원의 경우 신분이 발각되면 생명이 위협 받게 된다. 그런데 우리 요원의 신상 정보는 다른 사람도 아닌 정보사 소속 군무원의 노트북을 통해 북한으로 빠져나갔다고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군정보사는 북파 공작원 등 휴민트(인간 정보) 활동에 중점을 둔다. 국정원이 해외·대북 정보를 총괄하고 정보사가 비밀공작의 실무를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블랙 요원은 신분을 위장하고 해외에서 북측 인사와 접촉한다. 현지에 뿌리를 내리기도 어렵지만 휴민트를 구축하는 데 10년 이상 투자하기도 한다. 정보사가 노출된 요원들을 급히 귀국시켰다는 것은 어렵게 만든 해외 정보망이 통째로 무너질 위기라는 뜻이다. 한 번 무너진 정보망은 복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 측에 정보를 제공해준 북측 인사의 목숨까지 위험해졌다.
지난 2018년에도 정보사 공작팀장이 중국에서 활동하는 비밀 요원의 정보 등을 건당 100만원에 중국·일본에 넘긴 사실이 드러났다. 푼돈에 동료의 목숨까지 팔아넘긴 것이다. 한동안 중국에는 요원 파견이 어려웠다고 한다. 2017년엔 우리 군의 심장부인 국방통합데이터센터가 해킹돼 참수작전과 미국이 제공한 대북 정보 등 1500만장 분량의 기밀이 북으로 넘어간 사실이 확인됐는데도 당시 국방장관은 “너무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대화로 나라를 지킨다’는 문재인 정부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런데 현 정부 출범 직후에도 참수부대 소속 대위가 북한 공작원에게 가상 화폐를 받고 부대 작전 계획을 넘긴 사실이 적발됐다. 그 대가는 4800만원이었다. 올해 초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 근무하던 인도네시아 근로자가 KF-21 전투기 개발 정보를 계속 수집했는데도 정부는 뒤늦게 알아챘다. 최근 미 연방 검찰이 미 중앙정보국 출신의 한국계 연구원을 기소하면서 국정원과 접촉한 사진을 공개할 때까지 정부는 미국의 동향을 모르고 있었다. 우리 정보 기관이 총체적으로 나사가 빠졌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7.29 "군무원, 수년간 요원 신상 수집 정황"... 간첩 혐의에 무게
전투기 기밀, 수미 테리 논란 이어 대북요원 신분 유출 등 잇단 사고

해외·대북(對北) 군사 정보 수집과 첩보 업무를 담당하는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의 첩보요원 신상 등 기밀 정보 다수가 북한으로 넘어간 정황에 대해 군 당국은 ‘보안 사고’보다는 ‘간첩 행위’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조사 중인 것으로 28일 알려졌다. 최근 국산 초음속 전투기 기밀 유출 사건, 수미 테리 기소 과정에서 드러난 국가정보원의 아마추어 같은 행태 등이 이어지면서 우리 ‘정보 보안 시스템’의 위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픽=김현국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망이 분리돼 있어 온라인을 통한 외부 해킹이 불가능한 정보사 내부 컴퓨터에서 보안 자료가 군무원 A씨의 개인 노트북 컴퓨터로 빠져나갔고, 이 노트북에 있던 자료들이 다시 외부로 유출된 정황이 발견됐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군무원 A씨가 상당 기간 관련 정보를 수집해온 정황이 있다”며 “현재로서는 간첩 행위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A씨는 노트북이 해킹당해 정보가 빠져나갔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정보 당국 전·현직 관계자들은 “군 인트라넷에서 소수 인원만 확인 가능한 요원 신상 정보가 노트북에 저장됐다는 것부터가 정보 프로토콜상 있을 수 없는 행위”라고 했다. 단순 해킹 등 보안 사고일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방첩 당국은 A씨를 군사기밀보호법·군형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국군방첩사령부가 정보 유출 정황을 먼저 인지하고 정보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A씨가 특정됐고, 지난달 말 A씨를 입건했다고 한다. 정보사가 요원 신상 등 민감 정보 유출 사실을 사전에 인지조차 하지 못했거나, 인지하고도 이를 쉬쉬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군 당국은 28일 A씨가 ‘직무 배제 상태’라고 밝혔다. A씨는 불구속 수사를 받고 있다.
이번에 유출된 정보사 요원의 신상 정보는 수백에서 수천 건에 달한다고 알려졌다. 이 중에는 해외에서 위장 신분으로 정보 수집 활동을 하고 있는 블랙 요원 명단도 포함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정보 유출 사건으로 인해 정보사 일부 요원은 해외 작전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중국·러시아에서 활동을 했던 정보사 인원 일부는 신분 세탁을 위해 개명(改名)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사는 과거 해외 현장에서 뛴 경험이 없는 요원 위주로 해외에 파견하는 것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수사 초점은 정보사 내부망에 있는 요원 신원 정보를 A씨가 어떻게 접근해 개인 노트북에 옮겼는지에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정보사 요원 신상 자료는 정보사 외에는 고위 군 당국자도 접근이 어렵다. A씨는 현역 시절 정보사 현장 요원으로 활동했지만 인사 파트 등에서 일한 적이 없어 명단 입수 과정에서 조력자가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당사자인 A씨가 “노트북이 해킹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보안 사고의 경우 형량이 낮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 정보 당국 관계자는 “노트북에 민감 정보를 저장해두고 해킹해서 가져가도록 하는 ‘짜고 치는 고스톱’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일단 신분이 노출된 요원은 재파견이 사실상 불가능해 정보망 손실이 작지 않을 전망이다. 해외 공작 파트 간부 출신 인사는 “중국 등 민감 지역에서는 요원 두세 명만 신상이 특정돼도 곤란하다”고 했다. 우리 측 요원 정보가 알려질 경우 타국 내 정보원 등 협조자 신상도 줄줄이 노출될 수 있다. 수년간 정보 당국이 공을 들여 만든 정보망이 와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보사는 일단 급한 대로 몇몇 주요 거점에서 활동할 대체 인력 확보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들어 정보 당국 첩보와 방첩은 전방위적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1월 국산 전투기 KF-21 기밀 유출 사건 때 방첩 당국은 인도네시아 외국인 노동자가 USB를 통해 차곡차곡 개발 정보를 빼돌린 것을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보안검색대에서 적발하기 전까지 사전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 지난 6월에는 국산 헬기 수리온 및 전투기 KF-21 관련 기밀 정보를 판매한다는 텔레그램 계정이 나타나 국정원과 방첩사가 공동 조사에 나선 상태다. 외부에 공개된 적 없는 기밀 정보가 해당 텔레그램 계정에 올라와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수미 테리 기소 건과 관련해서 국정원은 아마추어적 행태를 보이며 상대국 정보기관에 신분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2018년에는 정보사 공작팀장이 해외 정보 요원 명단 등 주요 기밀 109건을 누설했고, 이 중 56건이 해외 정보원에게 팔아넘겨진 사건도 있었다. 전직 정보기관 고위 인사는 “정보의 위기라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참담하다”며 “정보사, 국정원뿐만 아니라 관련된 전 조직에 대한 고강도 점검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07-29 軍정보사 요원 명단 北 유출, 정보안보 특단책 화급하다
대북 첩보 및 공작 업무 등을 담당하는 국군정보사령부의 해외 요원 신상 등이 북한으로 넘어간 정황이 포착돼 군 당국이 수사 중이라고 한다. 외교관 등으로 활동하는 화이트 요원과 신분을 위장한 블랙 요원 신상 정보 등 수천 건이 통째로 넘어갔다니 최악의 보안사고가 아닐 수 없다. 대북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요원들의 생명은 물론 정보망 전체가 위협받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정보사가 지난달 정보 유출 사태가 확인된 후 요원들을 귀국시킨 데 이어 주요 거점에서 활동할 대체 인력 확보 조치에 돌입한 것은 이번 사태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국회 국방위원회에 따르면, 용의자는 정보사 현장 요원으로 일하다 전역 후 재취업한 군무원으로, 노트북에 첩보요원 신상 정보 등 1급 기밀 자료를 저장해 외부로 유출했다고 한다. 본인은 해킹을 당했다고 주장한다는데, 베테랑 정보맨이 다량의 기밀을 저장한 노트북을 보안이 유지되지 않는 인터넷망에 연결한 것부터 수상하다. 지난 2018년에도 정보사에선 해외 요원 신상 정보 등을 수년간 외국 정보 요원에게 팔아넘긴 사례가 적발된 바 있다.
대북 첩보는 국가안보와 직결되는데 정보사에서 정보 유출이 재발한 것은 개탄스럽다. 국가정보원도 최근 ‘수미 테리 사건’에서 드러났듯 해외 요원의 엉성한 활동으로 논란을 빚은 바 있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굽실거리면서 국군기무사령부를 안보지원사로 바꾸며 요원 30%를 감축하고, 국정원의 대공수사권까지 박탈해 방첩 역량과 기강을 허문 탓도 크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벌써 2년이 넘었다. 무너진 정보 안보의 기본을 다시 세운다는 각오로 국정원의 대공 역량과 정보사의 대북 첩보·공작 역량 강화를 위한 범정부 차원의 특단책이 화급하다.
문화일보 사설
07.30 정보기관 무력화로 북한 70년 소원 들어준 한국 국회
정보사 요원들의 신상 정보 유출을 두고 방첩 당국은 정보사 군무원을 조사하고 있다. 기밀이 그의 노트북에 저장돼 유출되는 과정에서 북한이 군무원을 포섭했다면 대공 수사 사안이다. 북한이 해당 군무원만 포섭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연계 고리가 있는지도 수사로 밝혀져야 한다.
군 방첩 당국과 국정원의 대공 수사 역량을 총동원해야 할 사안이지만, 현재 우리 국정원은 대공 수사권이 없다. 간첩을 수사할 권한이 없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 12월,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도록 국정원법을 개정했고 올해 1월부터 경찰이 대공 수사를 전담하게 됐다. 그때도 민주당이 국회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였다. 국민의힘은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을 복원하는 법안을 총선 직후에 내겠다고 공언했지만 총선 참패로 공염불이 됐다.
오히려 운동권 출신이 중심이 된 더불어민주당 의원 11명은 안보 범죄에 대한 국정원의 조사권까지 박탈하는 내용의 국정원법 개정안을 최근 제출했다. 구체적으로는 현장 조사·문서 열람·시료 채취·자료 제출 요구·진술 요청 등의 권한을 폐지하는 것이다. 대공 수사권을 상실한 국정원에 조사 권한까지 뺏는 것은 국정원을 유명무실하게 만들겠다는 뜻이다. 우리는 지척에서 폭력 집단의 위협을 받고 있는 특수한 처지에 있다. 그런데 우리 국회가 정보기관의 핵심 기능을 스스로 무력화하고 있다.
민주당 정부 때 이뤄진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 이관으로 국정원과 경찰, 군 방첩사라는 수사의 3축이 무너졌다. 이병호 전 국정원장은 최근 회고록에서 재임 중 검거한 ‘목사 간첩’ 사건에 대해 “신학대학 사무실 컴퓨터로 대북 보고를 하던 현장을 검거했지만, 민변의 종용으로 그는 묵비권을 행사했다”고 했다. 조사가 미진한 상태에서 검찰로 넘겨져 그는 3년형을 받는 데 그쳤다고 한다. 이 전 원장은 “간첩 수사는 국정원의 정보 역량이 융합적으로 총동원돼야 진행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대공 수사권 파괴로 70년의 소원을 이뤘다”고 말했다.
정보와 방첩 역량 축적에는 수십 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건 순간이다. 정보기관의 권한 강화는 중국, 러시아 같은 전체주의 국가뿐 아니라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자유 국가들의 공통적 추세다. 유독 한국만 정보기관의 손발을 묶고 정보기관도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다. 안보는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의 시작이자 끝이다. 이재명 전 대표가 정말 ‘먹사니즘’이라면 그 시작은 대공 수사권의 정상화여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7.30 정보 요원 명단 건당 백만원에 외국에 팔고도 4년 뒤 출소하는 나라
대북 첩보 기관인 국군정보사령부의 비밀 요원 신상 등을 개인 노트북으로 유출한 혐의를 받는 정보사 소속 군무원에 대해 군 검찰이 29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한다. 이 군무원은 해외에서 신분을 위장한 ‘블랙 요원’과 전체 부대원 현황 등이 담긴 기밀 파일을 외부에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블랙 요원은 신분이 드러나면 목숨이 위협받을 수도 있다.
정보 요원 명단은 전 세계 정보기관이 가장 은밀히 다루는 초특급 기밀 사안이다. 이 이상 가는 정보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출됐다가는 정보 체계 전체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요원 가족의 안전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 우리 측에 협조해 준 정보원도 무사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정보기관 내에서도 극소수 인원만, 그것도 자신의 담당 분야에 한해 정보 요원 명단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상식이다. 정보사는 인터넷망이 외부와 분리돼 해킹도 아예 불가능하다. 그런데 정보사 군무원의 노트북에 정보 요원 명단이 들어가 있었다. 세계 정보기관들이 들으면 말문이 막힐 일이다.
지난 2018년 정보사 공작팀장이 군사 기밀 100여 건을 휴대폰으로 찍어 유출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기밀은 중국·일본 정보 요원에게 넘어갔다. 여기엔 중국에서 활동하던 정보사 비밀 요원 5명의 신상 정보도 포함됐고 이들은 급히 귀국해야 했다. 그런데 동료 목숨이 걸린 군사 기밀을 넘기면서 받은 대가는 한 건당 100만원 안팎이라고 한다. 이런 반역 범죄가 5년간 지속됐는데도 정보사는 국정원이 통보할 때까지 모르고 있었다. 당시 기소된 공작팀장은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복역 후 지금은 출소했다 한다. 동료 목숨을 팔아넘기고 국가 정보망을 통째로 흔든 반역범의 형량이 고작 징역 4년이었다.
미국에선 2005년 중앙정보국(CIA) 비밀 요원 한 명의 이름을 노출했다는 이유로 당시 부통령의 비서실장이 중형을 선고받았다. 신분이 드러난 요원은 2007년 하원 청문회에서 “국가를 위해 20년 간 임무에 충실했던 신분을 정부가 보호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누가 CIA에서 일하겠는가”라고 했다. 지금 신분이 드러나 급히 귀국한 정보사 요원들이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7.30 "미국에서 온 6·25 전우의 손녀 마리아입니다"

▲일러스트=최정진
7월 27일 ‘유엔군 참전의 날’을 맞아 2021년 국가보훈처가 제작한 동영상이 새삼 관심을 모았다(attract renewed attention). 동영상은 1950년 7월 5일 유엔군이 한국전쟁에서 치른 첫 전투인 ‘오산 죽미령 전투’의 미군 생존자 존 굿윌(93)씨 독백으로 시작된다(begin with his monologue). 전투 둘째 날이자 생일 하루 전날 북한군에 포로로 잡힌(be held captive) 그는 세 번의 생일을 북한에서 보낸 후인 1953년 8월 풀려나(be released)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어떤 조건(terms and conditions)을 바라고 참전한 것이 아니었어요. 3만7000명 넘는 전우들이 전사했고, 9000명 이상이 아직도 전시 행방불명 상태에 있습니다(be missing in action). 나는 꽁꽁 얼어붙은 겨울(frozen winter), 타는듯이 뜨거웠던 여름(searing hot summer), 치열했던 전투를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vividly remember the fierce battles). 나는 단 하루도 이 땅, 이 위대한 나라를 잊은 적이 없습니다.”
이어 ‘6·25 전쟁 참전 미군 할아버지의 손녀가 부른 한국가요’라는 제목이 뜨고, TV조선 ‘미스트롯2′ 출연을 전후해 트로트 가수로 활동 중인 미국 여성 마리아가 한국과 인연을 소개하며 6·25 관련 가요 세 곡을 잇달아(in a row) 부른다.
“안녕하세요. 미국에서 온 전우의 손녀 마리아입니다. 저의 할아버지랑 큰할아버지(great-uncle)는 6·25 한국 전쟁 때 참전하셨어요. 지금 제 나이 무렵이었다고(be around my age) 하더라고요. 저였다면 알지도 못하는 나라 전쟁터에 나가는 건 상상도 못했을 거에요. 그런데 자그마치 22개 나라에서 195만 명이 넘는 유엔군이 전쟁에 참전하셨다고 해요.
저의 할아버지는 텔레비전에 한국이 나오면 정말 많이 달라졌다고 엄청 놀라셨어요. 그리고 꼭 한 번 가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작년에 돌아가셔서(pass away) 그 꿈을 이루지는(fulfill the dream) 못하셨네요. 할아버지는 아쉽게도 못 오셨지만 할아버지가 지켜주신 그 땅에 손녀인 제가 와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서 너무 감사한데, 한국에는 강 건너에 고향을 두고도 못 가는 이산가족 분들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그분들을 기억하면서 불러드립니다. 대한민국 평화를 위해 헌신하신(dedicate themselves to peace in Korea) 195만 유엔 참전 용사들을 함께 기억해주세요.”
마리아가 애달픈 목소리로 구슬피 부르는(sing mournfully in a heartrending voice) ‘전선야곡’ ‘녹슬은 기찻길’ ‘한 많은 대동강’에선 그동안 허투루 흘려들었던 가사 대목들이 새삼스레 가슴을 후빈다.
“가랑잎이 휘날리는 전선의 달밤(moonlit night at the front line) ... 들려오는 총소리를 자장가(lullaby) 삼아 꿈길 속에 달려간 내 고향 내 집 ... 정화수 떠놓고서 비는 어머니의 흰머리(gray hair)가 눈부셔(be dazzling) 울었소. 쓸어안고 싶었소.” “휴전선 달빛 아래 녹슬은 기찻길(rusted railroad) 어이해서 핏빛인가(be blood red) 말좀 하렴아 ... 대동강 한강 물은 서해에서 만나 남과 북 이야기 주고 받는데...” “편지 한 장 전할 길이 이다지도 없을쏘냐, 아 썼다가 찢어버린(tear up), 한 많은 대동강아.”
조선일보 윤희영 기자
07-30 대북 핵옵션 더 이상 금기 아니다

▲북한이 5월 3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 참관하에 한국 전역에 전술핵을 투발할 수 있는 초대형방사포(KN-25) 18문을 일제히 발사하고 있다. 사진 출처 노동신문
날로 고도화되는 북한의 핵 위협에도 한국에 대북 핵옵션의 핵 자(字)조차 금기시된 데는 두 개의 역사적 변곡점이 자리잡고 있다.
하나는 박정희 정권의 핵개발 시도다. 1970년대 미국과의 동맹에 믿음을 잃어가던 박정희 정권에 지미 카터 미 행정부의 주한미군 철수 추진은 국가 생존이 걸린 비상사태였다. 미국이 한국을 내팽개칠 것이라는 위기감은 비밀 핵개발의 촉매가 됐다. 미국의 만류와 압박, 박 대통령의 서거로 핵개발은 미완으로 일단락됐다.
또 하나는 2000년 한국원자력연구소의 우라늄 농축 실험이다. 당시 미국 등 핵강국만이 가능했던 레이저 농축법으로 천연 우라늄을 77%까지 농축하는 데 성공한 것. 뒤늦게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국제적 파장이 일었고,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6차례나 사찰을 나왔다. 과학적 호기심의 단순 실험이라고 해명하고, 모든 자료를 IAEA에 신고한 점이 참작돼 제재와 처벌은 피했다.
하지만 미국의 의심과 경계의 눈초리는 더 날카로워졌다. 한국이 마음만 먹으면 핵보유국으로 직행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이후로 미국이 대북 ‘핵우산’ 공약을 강화한 데는 한국이 핵개발을 단념토록 하겠다는 역설적 배경이 근간에 자리잡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지금도 미국 내에선 한국이 핵을 갖게 되면 일본과 대만 등으로 ‘핵도미노’가 이어져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가 붕괴될 것이란 우려가 강하다. 어떠한 동맹·우방국도 ‘핵클럽’ 추가 가입을 허용할 수 없는 이유다. 이 같은 기조에선 한국에 어떤 핵옵션도 금기시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북한의 핵이 NPT 체제의 최대 도전으로 부상한 게 작금의 현실이다. 북한의 핵무력은 한국을 초토화하고, 미 본토까지 때릴 수 있을 만큼 고도화됐고, 지금 이 순간도 질적 양적 증강이 진행 중이다. 북-러 군사 밀착을 계기로 러시아의 핵·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까지 북한에 넘어가면 NPT 체제는 와해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는 우려도 고조되고 있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정부 고위 소식통은 “최소한의 잠재적 핵역량이라도 서둘러 갖춰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1992년 미국의 전술핵 철수와 북한의 핵 포기 약속을 맞바꾼 한반도 비핵화선언의 무효 선언부터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선언은 북한의 핵위협이 ‘레드라인(금지선)’에 근접했음에도 한국의 핵옵션에 족쇄를 채운 ‘불평등 선언’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최근 한미 조야에서 한국의 대북 핵옵션이 연이어 공론화되는 것도 북한의 핵폭주를 더는 용인해선 안 된다는 위기감의 발로일 것이다.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부장관은 지난달 미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외교협회(CFR) 행사에서 “러시아와 북한의 행동이 역내 국가들이 자국의 모든 군사 및 기타 조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한국의 핵무장론이 커지고 있다는 전문가 진단에 힘이 실리는 것으로 해석됐다.
한미 정부는 워싱턴선언 이후 핵협의그룹(NCG) 창설과 다음 달 연합연습에서 북한 핵공격을 상정한 첫 핵작전 연습 등을 통해 일체형 확장억제로 대응한다는 기조를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핵주먹’은 가깝고 ,미국의 ‘핵우산’은 멀게 느껴지는 게 현실이다.
북한의 핵위협이 마지노선을 넘는 사태를 상정해 전술핵 재배치를 비롯한 다양한 핵옵션을 강구해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그 일환으로 한미가 북한과 주변국에 비핵화 협상 시한을 통보한 뒤 북한이 끝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한반도와 그 주변에 전술핵을 배치하는 조건부 한시적 재배치 방안 등이 거론된다.
한미 정상이 이달 중순 승인한 ‘한반도 핵억제·핵작전 공동지침’을 바탕으로 미국의 핵전력이 포함된 핵연합작전계획을 마련하고, 북한의 핵공격 시 저위력핵탄두 사용 선언 등과 같은 획기적 결단도 검토 가능한 핵옵션이다.
아울러 미국이 한반도에서 핵 사용에 대비해 핵무기 대응과 봉쇄에 관한 훈련을 한국 부대에 제공함으로써 한국군이 북한의 핵공격에 실시간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이 같은 대북 핵옵션을 통해 미국의 확장억제에도 아랑곳없이 핵무력 증강에 골몰하는 북한에 판이 바뀌었음을 주지시켜야 한다. 중국과 러시아에도 북한의 핵 고도화를 지금처럼 방치하면 결국 두 나라의 평화와 안정이 위협받고, 역내 핵확산이 초래될 수밖에 없다는 엄중한 경고가 될 것이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07-30 71년 만에 간첩죄 적용범위 확대 추진, 더는 미루지 말라
국가정보원이 간첩죄 적용 대상을 적국에서 외국 등으로 확대하기 위한 형법 개정 추진 방침을 밝혔다. 조태용 국정원장은 29일 국회 정보위 수미 테리 사건 관련 비공개 보고 때 한국형 외국인대리인등록법(FARA) 제정 필요성과 함께 간첩죄 적용 대상 확대가 시급하다는 점을 역설하면서 이런 의지를 보였다고 한다. 국군정보사령부의 해외 첩보요원 명단 등을 유출한 혐의로 28일 구속영장이 청구된 정보사 군무원이 중국 국적자에게 넘겼다고 주장할 경우 형법 제98조의 간첩죄 적용이 어렵다는 점 등을 감안해 법 개정 필요성을 재차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
형법 98조는 적국을 위하여 간첩을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를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면서 군사상 기밀을 적국에 누설한 자도 같은 형으로 처벌하도록 돼 있다. 형법은 6·25전쟁 휴전 직후인 1953년 9월 제정됐는데 여기서 적국은 전쟁을 했던 북한을 지칭한다. 이 조항이 71년간 그대로 유지되는 바람에 외국 등을 위한 간첩 행위는 처벌할 수 없었다. 지난 2018년 정보사 공작팀장이 일본과 중국에 군사기밀 100여 건을 팔아넘겼을 때 적국이 아니라는 점에서 간첩죄 적용을 못 하는 바람에 징역을 4년만 선고했던 배경이다.
미국과 영국, 독일 등은 간첩 행위의 대상을 적국으로 한정하지 않는다.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모든 행위자를 간첩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간첩죄를 적국에 한정한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다. 적을 북한으로 한정한 시대착오적 법 조항 때문에 국가안보가 뻥 뚫린 것이다.
형법 98조 간첩죄 조항은 냉전 초기의 산물인 만큼 시대변화에 맞게 바꿔야 한다. 최소한 간첩 행위 상대를 외국 등으로 확대하고 국가안보의 범위도 경제안보 차원에서 산업 기밀 유출 등으로 확장해야 한다. 제21대 국회에서는 적국을 외국 등으로 확대하고 간첩 행위 대상도 넓힌 개정안이 발의돼 법사위 심사까지 진행됐다. 국회 문턱은 못 넘었지만 간첩죄 개정 당위성에 대한 여야 공감대는 확인한 만큼 제22대 국회는 더 미루지 말고 개정해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7.31 그날 문신들은 장군의 뺨을 때리고 수염을 불태웠다
거란과의 전쟁 승리한 고려… 평화 지속하자 장군들 멸시해
제복의 명예와 자부심 빼앗고 나라 지켜달라고 할 수 있나

▲대하 사극 '고려거란전쟁'에서 양규 장군이 거란군과 싸우다 전사하는 장면. /빅웨일엔터테인먼트
고려는 거란이 세운 요와 세 번 싸웠다. 그중 수도 개경이 불탔던 2차 여요 전쟁이 가장 큰 위기였다. 절체절명에서 나라를 구한 장수가 양규였다. 수많은 전공을 세운 뒤 나선 마지막 전투에서 쏟아지는 화살을 맞고 선 채로 전사했다. 그의 희생 덕에 고려는 기사회생했다. 여요 전쟁 이후 고려는 200년 넘는 장기 평화를 누렸다. 하지만 평화에는 기강을 허무는 독성이 내재해 있다. 그 독이 가장 먼저 공격한 대상이 아이러니하게도 고려에 평화를 가져다준 군인이었다. 전몰장병과 그 유족을 숭모와 보훈의 예로 대우하던 나라가 군인을 멸시하고 희롱하는 나라로 타락했다. 그러다가 맞은 것이 무신의 난이었다.
무신의 난으로 쫓겨난 의종은 놀기 좋아하는 왕이었다. 개경 주변 30여 곳에 놀이터를 짓고 싸울 일 없어진 장군들을 광대놀음에 동원했다. 나라 지키려고 연마한 무예를 한낱 왕과 문신의 볼거리로 삼았다. 놀이판의 최고 가치는 재미다. 대련을 하던 장군 하나가 밀리는 것을 본 어느 문신이 달려들어 뺨을 때리자 웃음과 박수가 터졌다. 그날 밤 무신의 난이 발발했다. 난리 통에 죽은 문신 중에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도 있었다. 무신의 난 여러 해 전, 정중부 장군의 수염에 재미로 불을 붙였던 자다. 장군들은 평화로운 고려를 만들었다는 자부심을 잃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도 나라 지키는 이들에 대한 존중을 잃었다고밖에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휴전 70년의 평화가 군을 우습게 여기는 풍조를 만들어서인가. 어제 아침 출근하다가 동네 네거리에 채수근 해병 1주기를 맞아 민주당 쪽에서 내건 플래카드를 봤다. ‘끝까지 진상을 규명하여 책임자를 처벌하겠다’고 적혀 있었다. 채 해병의 죽음은 안타까운 비극이다. 사고 책임자를 밝혀 엄중히 문책하는 것에 누가 반대하겠나. 그러나 한편으론 ‘민주당이 언제부터 군인의 죽음에 관심을 가졌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민주당은 북한이 어뢰 공격으로 천안함 46용사의 목숨을 빼앗은 것에 대해 북의 책임을 묻겠다고 하지 않았다. 천안함 폭침 만행을 규탄하는 결의안이 국회에서 의결될 때 일부 의원은 반대하기까지 했다. 전직 대통령은 천안함 용사와 연평해전 전사 장병을 기리는 ‘서해 수호의 날’ 행사에 조화조차 보내지 않았다. 이러니 민주당은 책임을 묻는 것도 선택적으로 하느냐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서해 수호의 날은 제쳐놓고 우리에게 총부리를 겨눴던 인민군과 중공군 전몰자 위령 행사에 간 이도 있다.
6·25 당시 누란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다부동 전투는 우리 국군의 큰 자부심이다. 미군 장성들도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끈 백선엽 장군 생전에 그를 만날 때면 무릎 꿇어 존경을 표했다. 그런데 한국의 어느 국회의원은 그 전투를 패전이라고 깎아내려 군의 명예에 상처를 냈다. 6·25 때 조국 수호 제단에 피를 뿌린 육군사관학교를 향해선 ‘나라 팔아먹어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성장하지 않았나’라고 막말했다. 명예를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는 이들에게 장군의 뺨을 때리고 수염에 불을 지른 것과 다를 바 없는 모욕을 가했다.
‘핵 가진 북한과 잘 지내겠다’는 인사가 미국의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다. 70년 유지된 우리 안보에 중대한 변화가 올지도 모르는데 우리 국회에선 군복 입은 장군들의 명예를 함부로 훼손한다. 일부에선 지난달 채 상병 특검 청문회장에서 치욕을 겪고도 감내한 장군들을 기개 없다고 나무란다. 그러나 군인의 기개와 용기는 적과 싸울 때 발휘하는 것이지 국민을 상대로 하는 게 아니다. 그러기에 국민이 지켜주지 않으면 군은 명예를 지킬 길이 없다. 명예를 잃은 군인에게 누가 목숨 걸고 나라를 지켜달라고 할 수 있는가.
조선일보 김태훈 논설위원
07.31 CIA와 FBI는 우방이라고 해서 봐주지 않는다

▲그래픽=박상훈·Midjourney
남북 당국 간 협상을 위해 평양을 방문했을 때다. 숙소인 고려호텔의 방문을 열었더니 냉기가 가득했다. 나도 모르게 “아! 추워”라는 말이 나왔다. 회의를 마치고 들어오니 객실에 난로가 비치돼 있었다. 독백이었지만 북측은 몰래 듣고 있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시절 중국 정보기관인 안전부 산하 현대국제연구원과의 정례 세미나를 위해 베이징에 도착하면 어김없이 중국 측 인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환영의 인사를 건네며 불편한 일 있으면 연락하라고 안부 인사를 한다. 중국 방문을 사전에 통보하지 않았는데도 귀신같이 알고 전화를 한다. 휴대전화 도·감청이 상시화되고 각종 CCTV로 감시한 결과다.
도·감청과 미행, 감시는 사회주의 국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 역시 사회주의 독재 국가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어느 부분에서는 한층 치밀하다. 누가 더 첨단 장비를 사용하고 세련된 정보 활동을 수행하는가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본래 첩자(諜者)라는 단어에서 첩(諜)은 몰래 엿본다는 의미다. 상대의 동태를 파악하고 대응책을 마련하는 일은 조직이나 국가에 사활의 문제다.
서방 정보기관 중에서는 단연 미국의 중앙정보국(CIA)과 연방수사국(FBI)이 돋보인다. 이민자 사회인 만큼 미국 정부에서 일하는 인사들이 자신들의 모국이나 조상과 연계된 국가를 위해서 정보를 빼돌린다면 혼란은 명약관화하다. 그래서 미국은 오래전에 관련 법을 제정했고, 위반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CIA나 FBI가 철저히 수사해왔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 수미 테리를 기소한 법적 근거인 ‘외국대리인등록법(FARA)’은 1938년 나치의 선전 활동을 차단하기 위해 제정됐다. 미 연방 검찰은 31쪽에 달하는 공소장에서 ‘수미 테리가 한국 정부의 요원(agent)으로 활동했다’는 다양한 물적 증거를 확실하게 적시했다. 요원 여부는 분명치 않으나 면세점 영수증을 포함해 ‘빼박 증거’를 완벽하게 제시한 것은 장기간의 도·감청 산물이다. FBI가 과거 워싱턴 주재 외국 대사관들을 불법 도청하고 무단 침입했던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수만명의 요원과 엄청난 예산을 바탕으로 외국 스파이에 대응하고 각급 정보기관의 방첩 활동을 총괄 조정한다.
수미 테리 사건에 대해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고쳐야 할 당사자는 우리 정보기관과 외교부다. 우선 정보 활동의 기본 원칙이 정보관(handler)들의 노출을 최소화하는 것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국무장관과의 미팅을 마치고 나오는 수미 테리를 대사관 번호판을 단 공용 차량으로 픽업하는 허술한 동선(動線)은 국가정보학 ABC 원칙에 맞지 않는다.
다음으로 우리 공관원들은 미국뿐 아니라 해당 국가의 한국계 인사를 최소한으로 접촉해야 한다. 지한파를 격려해야 하지만 그들을 직접 활용하는 수집 활동은 하지하책(下之下策)이다. 어설픈 정보활동은 그들의 입지를 위태롭게 하고 종국적으로 우리 정보기관 역시 몰락하는 길이다.
정보관의 현지 언어가 유창하지 못해 해외에서 한국어가 가능한 인사만을 대상으로 첩보를 수집하는 구태의연하고 아마추어적 정보활동은 안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파견 요원 선발부터 적격자를 선발하지 않으면 예산 낭비이자 사달의 근원이 된다.
또한 우방이라고 해서 정보 수집 행위를 눈감아줄 것이라고 착각해서도 안 된다. 한미 동맹이 혈맹이고 핵 동맹이지만 국익 수호에 예외는 없다. 지난해 4월 발생한 용산 국가안보실장 도·감청 시도는 빙산의 일각이다. 역대 우리 대통령들이 외국 정보기관들의 청와대에 대한 정보 수집 시도 때문에 고심했던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한미 관계가 좋다고 해서 워싱턴을 서울 시내로 착각해서는 곤란하다.
이번 수미 테리를 둘러싼 정보 파동을 통해 미국은 워싱턴에서 활동하는 다른 국가들의 정보기관에 경고장을 날리는 확실한 시범을 보였다. 지난 정부에서 발생한 일이건 아니건 미국은 구별하지 않는다.
FBI 뉴욕지부는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됐으며 외국 스파이와 협력해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자는 누구든지 끝까지 추적해 체포할 것이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했다. 매우 주관적인 입장이지만 워싱턴 시내 중심지 듀폰 서클(Dupont circle)에서 FARA 위반 여부의 기준은 미국의 국익 침해 여부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법 적용을 자의적으로 한다. 수미 테리는 한국계이지만 미국법의 적용을 받는 미국인이라는 사실도 정보 요원들이 망각해서는 안 된다.
10년간 수미 테리가 제공했던 협력과 정보는 공식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했다. 미국의 한반도 정책 및 미·북 간의 접촉 동향과 세미나 개최, 언론 기고 등은 FARA가 예외로 인정하는 학술 연구로 접근할 수 있다. 구태여 단순 팩트 수집에 한국계 미 전문가를 끌어들여 금품을 전달할 필요가 없다. 투명하고 전문적인 학술 및 공공 외교로 일부는 해결이 가능하다.
인간 정보(humint)를 수집하는 주먹구구식의 고전적인 정보 활동도 변화가 필요하다. 일본이 공공 외교용 정보 활동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방식은 벤치마킹을 해볼 만하다. 위안부 왜곡 논문으로 유명한 하버드대 로스쿨의 존 마크 램지어 교수는 일본 정부의 훈장까지 받으며 미쓰비시 연구 기금을 받아 친일 학술 활동을 합법적으로, 그리고 공개적으로 전개한다.
램지어 교수는 심지어 2차대전 당시 미국의 일본군 학살설까지 주장했다. FARA를 넘어 학문적 접근으로 미국 학계에 파급력이 작지 않은 고차원적 활동이다. 최소 10~20년에 걸쳐 미국 전역에 일본 국익을 옹호하는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전략이 일본의 정보 활동이자 공공 외교의 목표다. 우리에게도 국격에 맞는 품격있는 정보 활동이 필요하다.
조선일보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07.31 블랙요원 기밀 빼간 정보사 군무원, 간첩죄 적용 못해… "法개정 필요"

▲지난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조태용 국가정보원장 등이 출석한 가운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리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의 첩보요원 신상 등을 유출한 혐의를 받는 정보사 군무원 A씨가 30일 구속됐다. A씨는 지난달 초 해외에서 신분을 위장해 활동하는 정보사 ‘블랙 요원’들의 본명과 나이, 활동 국가 등의 신상 정보와 정보사 전체 부대원 현황 등이 담긴 군사 기밀을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블랙 요원’은 신분을 위장해 해외에서 활동하는 비밀 요원이다. 대사관 파견 직원 등으로 근무하며 정보를 수집하는 ‘화이트 요원’과 다르다.
군 검찰과 방첩사령부는 A씨가 기밀 자료를 넘긴 대상을 중국 동포(조선족)로 파악하고 수사 중이다. 군은 군 고위직도 접근이 어려운 정보사 요원 신상 자료를 A씨가 어떻게 입수했는지, 정보사 내부에 조력자가 있는지도 규명하고 있다. 이날 정보사와 방첩사 등으로부터 업무 보고를 받은 국회 정보위 여야 간사(국민의힘 이성권·민주당 박선원 의원)들은 “정보사는 사건 이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해외 파견 인원들의 즉각 복귀 조치, 출장 금지, 시스템 정밀 점검 조치를 했다”고 전했다. 두 의원은 ‘북한 해킹’이라는 A씨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도 했다.
그러나 군 검찰은 A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군형법상 간첩 혐의는 적용하지 못했다. A씨가 기밀을 넘긴 사람이 중국 국적으로 파악됐기 때문이다. 군형법상 간첩죄는 ‘적(북한)’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하거나, 적 간첩을 방조할 때, 적에게 군사상 기밀을 누설한 사람에게 적용된다.
현재까지 군은 A씨와 북한의 연계 정황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A씨에게 ‘간첩’(사형·무기 징역) 대신 형량이 상대적으로 낮은 군사 기밀 누설(10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 혐의가 적용됐다. 군은 해당 조선족이 북한 정찰총국 정보원일 가능성, A씨가 넘긴 정보가 북한에 넘어갔을 가능성에 대해 계속 수사 중이다. 이 부분이 확인되지 않으면 앞으로도 A씨에게 간첩죄를 적용할 순 없다.
A씨 사건을 계기로 형법과 군형법에 규정된 간첩의 범위를 ‘적국(북한)’에서 ‘외국’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다시 나오고 있다. 2018년에도 군사기밀 100여 건을 중국과 일본에 넘긴 정보사 공작팀장에게 간첩죄를 적용하지 못해 징역 4년 선고에 그친 적이 있다. 조태용 국정원장은 지난 29일 국회 정보위에서 “간첩죄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법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간첩’ 조항 개정의 필요성은 야권에서도 제기돼 왔다. 2004년 민주당 최재천 의원을 시작으로 여야 구분없이 꾸준히 발의된 간첩법(형법·군형법 개정안)은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간첩죄 조항’을 바꾸는 형법 개정안이 4건 발의됐는데 이 중 3건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발의자였다. 그러나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 1소위의 민주당 의원들이 “간첩 행위의 범위나 국가 기밀 유출 행위를 어디까지 볼 것인지 등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 처리되지 못했다.
22대 국회 들어서도 여야 의원들이 간첩법을 발의한 상태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 글을 통해 “이번에 꼭 간첩법을 개정해서 우리 국민과 국익을 지키는 최소한의 법적 안전망을 만들자”는 의견을 냈다.
07-31 전면 조사해야 할 정보기관 보안 참사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前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국가정보원에 이어 군 정보의 ‘심장부’격인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의 해외 요원 신상 정보까지 북한에 유출돼 ‘정보안보’에 비상이 걸렸다. 정보사 소속 군무원이 해외에서 신분을 위장해 활동하는 다수의 ‘블랙 요원’과 전체 부대원 현황 등이 담긴 2, 3급 기밀을 중국 동포(조선족)에게 파일 형태로 유출했다. 블랙 요원 리스트가 북한에 유출될 경우 해외 군 정보망은 ‘궤멸’ 수준의 타격이 불가피하다. 비밀주의로 일관한 방첩사의 초동 수사 부실 여부도 도마 위에 올랐다. 정보 유출의 고의성과 접촉 경로 및 내부 공모 여부 등을 철저히 추적해 발본색원해야 한다.
보안 참사(慘事)는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근본적인 보완책을 수립하지 않으니 심각한 사고가 재발한다. 2018년에도 해외 요원 신상 정보 109건을 수년에 걸쳐 외국 정보 요원에게 팔아넘긴 사건이 있었다. 대북 첩보 전문기관인 정보사에서 정보 유출이 재발한 것은 개탄스럽다. 국가정보원도 최근 수미 테리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해외 요원의 엉성한 활동으로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철저한 원인 진단과 대책이 필요하다.
우선, 정치의 정보기관 영역 침해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대북 정보 수집 역량이 훼손됐다. 문재인 정부는 국군기무사령부를 국군안보지원사령부로 바꾸면서 요원 30%를 감축하고, 국정원의 대공수사권까지 박탈해 방첩 역량과 기강을 무너뜨렸다. 10∼20년 이상 헌신해온 공작관들의 자긍심은 추락했다. 정보 문외한이 갑자기 조직에서 승진하고 비전문가가 조직에 감투를 쓰고 낙하산으로 날아온다.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은 국정원장으로 재직하던 2017년 8월 문 전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캠프 인사였던 조모 씨가 채용 기준에 미달하는데도 국정원 관계기관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기획실장으로 특혜 채용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다음은, 요원들의 기강 해이와 안보 의식 저하다. 군 장성들조차 함부로 볼 수 없는 해외 블랙 요원 신상 등을 군무원이 개인 노트북에 저장하고, 해외로 유출될 때까지 군 내부에서 감지하지 못한 것은 철저한 정보 관리 실패다. 내부 요원들의 정보 관리는 정보기관의 생명이다. 내부조차 관리하지 못하는데 외부 정보 수집은 어불성설이다. 과거엔 금기시됐던 정보 요원의 방송 출연 등이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등 조직 내 기강 해이가 가속했다. 실제로 2022년 지상파 예능 방송에 정보사 요원 출신이 직접 출연하고 일부 요원은 유튜브 방송으로 수익을 올린다. 직무상 비밀을 무덤까지 가져간다는 입사 선서와 행동지침은 어디로 갔는지 이해 불가다.
끝으로, 사명감만 가지고 정보 요원들을 퇴직 후에도 현직처럼 관리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퇴직 직원 관리 매뉴얼을 벤치마킹해 무덤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 10년은 퇴사 이후를 관리해야 한다. 무명의 헌신에 대해서는 보상이 필요하다. 다만, 일탈은 사전에 철저하게 차단하는 시스템 구축이 최우선이다. 정보기관에 대한 고강도 점검은 불가피하다.

문화일보
07.31 "어디서 쐈나" 찾는 사이 北드론 격추…'韓스타워즈' 신무기 공개

▲지난 30일 국방과학연구원(ADD)의 충남 안흥 시험장에서 레이저 무기의 빔을 맞은 드론이 추락하고 있다. 사진 방위사업청
“5,4,3,2,1, 발사!”
30일 오후 3시 국방과학연구원(ADD)의 충남 태안 안흥 시험장. 한국이 지난해 체계 개발(무기 개발)을 완료, 연말 전력화 예정인 ‘레이저 무기 블록 1(Block-Ⅰ, 이하 레이저 무기)’의 실물이 처음으로 국내 취재진에 공개됐다.
태안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ADD의 언덕 시험장에서 연구진이 원격 지시를 내렸다. 지시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50~60m 상공에 떠 있던 DJI의 쿼드콥터 팬텀 4 드론에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불이 붙었다. 공중에서 동체에 불이 붙은 드론은 뱅글뱅글 제자리 돌기를 하며 바다로 추락했다.
이를 지켜보던 취재진은 “어디서 쏜 거냐”며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방사청 관계자가 “좌측 약 1㎞ 방향에 무기가 있다”고 안내하고서야 파악할 수 있었다.
‘육안으로는 볼 수 없고,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날 공개된 ‘레이저 무기 블록 1(Block-Ⅰ)’은 영화 '스타워즈'(1977년) 광선 무기의 현실판이었다. 적기(敵機)로선 영문도 모른 채 동체에 구멍이 뚫리고 불이 붙는 셈이다. 정부는 북한의 소형 무인기와 멀티콥터 드론을 격추시킬 대공 무기로 레이저 무기를 개발했다. 이번 시연에 쓰인 DJI의 드론은 실제 북한이 농지 지형 파악, 국방·재난 등에 쓰고 있는 모델이다.
ADD 측은 이날 취재진 앞에서 석 대의 드론을 연달아 격추시켰다. 모두 수 초 내에 이뤄졌다.
이 가운데 한 번은 취재진의 이해를 돕기 위해 띄운 촬영용 드론을 시연 표적으로 잘못 맞추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실제 시험 때라면 벌어지지 않았을 단순 착오였다. 대당 수억~수십 억원에 달해 훈련 때도 한발 한발 아껴 쏘는 대공 요격 미사일이었다면 시연 자체에 차질이 빚어졌을 텐데, 한 발에 수천원 정도가 드는 레이저 무기라 ‘재시연’도 쉽게 가능했다.

▲레이저 대공무기는 광섬유로부터 생성된 광원 레이저를 표적에 직접 조사해 무력화시키는 신개념 미래 무기체계로, 근거리에서 소형무인기와 멀티콥터 등을 정밀 타격할 수 있다. 사진은 레이저 대공무기 시험 발사 모습. 뉴시스
블록 1의 실물이 있는 시험장으로 이동하니, 국방(카키)색의 컨테이너 박스가 눈에 띄었다. 바로 옆에 세워져 있는 표적위치 확인장치가 아니었다면 가건물로 착각할 정도였다. 도심지나 산간 지역에도 위장할 수 있다는 뜻이다. 표적확인 장치는 레이저 무기의 ‘눈’에 해당하는데, 광학·적외선 카메라가 달려 있다. 상단부의 레이저 발사관엔 ‘레이저 창을 맨눈으로 보지 마시오’란 문구가 적혀 있었다.
당국이 개발한 레이저 무기는 표적이 탐지되면 이 장치로 위치를 확인하고, 추적·조준·격추를 거의 동시에 진행한다. 레이더 탐지와 조준, 발사가 순차적으로 이뤄지는 대공 미사일과 달리 “보는 즉시 바로 쏜다”고 강조하는 배경이다.

▲연합뉴스
레이저 무기는 돋보기로 열을 모아 종이를 태우는 간단한 원리에서 출발했다. 고대 그리스 아르키메데스가 청동 거울을 이용해 로마의 함대를 불 태웠다는 설이 전해 내려온다. 대신 자연광이 아닌 적외선 빔을 쏘는 게 다르다. 가시광선(파장 380~780nm)보다 파장이 길기 때문에 육안으론 감지가 안 된다.
이론적으론 한 번 만들어 놓으면 쏠 때마다 1달러(약 1500원)의 전기 값만 들고, 탄약이 필요 없으니 군수 지원을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이와 동시에 수km 떨어져 있는 500원 짜리 동전도 뚫을 수 있는 정확도와 출력을 갖췄다는 게 ADD와 방위사업청의 설명이다.
상대적으로 값싸고 소모품 개념인 무인기가 ‘창’이라면, 탄약이 필요 없어 무한대로 쏠 수있는 레이저는 가성비 ‘방패’인 셈이다. 영·미 등 선진국들이 앞다퉈 레이저 무기를 개발하는 배경이다.
다만 장점이 많아도 레이저 무기를 ‘게임 체인저’로 보기엔 갈 길이 멀다. 구름이 많거나 반대로 햇빛이 너무 강해도 표적을 잘 못 잡는 등 기상 상태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한 번 쏠 때 한 개 표적 밖에 대응을 못 하는 등 보완 요소도 많다. 여기다 아직까지 전술급 유도탄을 격추시킬 정도의 출력은 미국 등 선진국도 확보하지 못 했다. 수백 억원에 이르는 개발비를 고려했을 때 “정말 가성비 무기가 맞느냐”는 지적도 나오는 이유다.

▲지난 2014년 9월 15일 백령도 서쪽 수중에서 발견된 북한 소형 무인기 잔해(왼쪽)과 같은해 원산 송도원국제야영소 개관식 당시 모형항공기 시범에 등장한 북한 무인기 [중앙포토ㆍ조선중앙TV 캡처]
미국은 1983년 소련의 핵·미사일을 억제하기 위한 전략방위구상(SDI)을 수립하면서 위성에서 레이저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을 무력화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스타워즈 계획'이라고도 불렸는데, 당시 기술적 한계로 현실화하지 못 했다. 미국은 2030년까지 메가와트(MW)급 레이저 발진기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의 레이저 무기 개발은 1999년 ADD의 ‘DF 레이저 장치’가 처음이었지만, 이후 정권에 따라 레이저 무기 기술 연구가 중단되는 등 부침을 겪었다. 본격적으로 급물살을 탄 건 2014년 북한의 무인기 침투 사태가 크게 영향을 미쳤다. ADD가 2015년부터 기술 개발을 재개해 2019년 본격적인 체계 개발(무기 개발)에 착수했다. 총 871억원을 투자했다.
ADD와 방사청은 공식 확인하진 않지만, 블록 1의 출력은 20kW(킬로와트) 정도다. 박격포를 뚫으려면 최소 100kW 정도는 돼야 한다고 한다.
당국은 점차 출력은 높이고, 플랫폼은 다양화한 레이저 무기를 개발할 계획이다. 블록 1은 고정형이지만, 블록 2는 이동형으로 개발될 예정이다. 방사청은 연내 블록 1 양산 물량을 군에 인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세계 최초로 전력화하는 사례라고 방사청은 설명하고 있다.
ADD 서용석 수석연구원은 “향후 박격포, 전술 유도탄까지 레이저로 격추시킬 수 있도록 100~300kW급 출력을 낼 수 있는 발진기 기술을 개발하는 게 목표”라며 “중고도 무인 정찰기(MUAV) 등 다양한 플랫폼에 레이저 무기를 탑재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흥=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