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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主國防 2024-06/ 06.03 [속보] 대통령실 "남북 신뢰 회복 때까지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 - 06-28 대공수사 이관 6개월…무너지는 방첩

상림은내고향 2024. 6. 19. 19:06

自主國防 2024-06/

06.03 [속보] 대통령실 "남북 신뢰 회복 때까지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은 남북 간 상호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 9·19 군사합의 전체의 효력을 정지하는 안건을 4일 국무회의에 상정하기로 결정했다.

 

국가안보실은 3일 오전 김태효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 주재로 NSC 실무조정회의를 개최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러한 조치는 우리 법이 규정하는 절차에 따른 정당하고 합법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동안 9.19 군사합의에 의해 제약받아 온 군사분계선 일대의 군사훈련이 가능해지고, 북한의 도발에 대한 우리의 보다 충분하고 즉각적인 조치를 가능하게 해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정부는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나가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강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회의에는 김태효 NSC 사무처장을 비롯해 김홍균 외교부 1차관, 김선호 국방부 차관, 황원진 국가정보원 2차장, 김병대 통일부 통일정책실장, 인성환 국가안보실 2차장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최근 북한의 도발이 우리 국민에게 실제적인 피해와 위협을 가하는 상황에서, 이미 북한의 사실상 폐기선언에 의해 유명무실화된 9.19 군사합의가 우리 군의 대비 태세에 많은 문제점을 초래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북한이 도발을 지속할 경우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추가적으로 취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전날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북한이 지난달 28일부터 담배꽁초, 폐지, 비닐 등이 담긴 오물 풍선을 남쪽으로 대량 살포한 데 따른 것이다.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위해서는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가 필요하다.

 

정부의 이러한 대응에 북한은 전날 오물 풍선 살포를 잠정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현예슬 기자 hyeon.yeseul@joongang.co.kr

 

06.03 北 도발 전제하고 대북 확성기 검토해야

▲육군 9사단 교하중대 교하 소초 장병들이 2018년 5월 1일 경기도 파주시 민간인 통제구역내 설치되어 있는 고정형 대북 확성기를 철거하고 있다. /뉴시스

 

대통령실이 2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어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논의했다. 북한이 분뇨·꽁초·폐지 등을 넣은 ‘오물 풍선’ 720여 개를 날려 보내고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에서 위성항법장치(GPS) 전파 교란 공격을 닷새째 계속하자 대응에 나선 것이다. 저급한 도발이지만 어떤 식으로든 대응하지 않으면 북은 멈추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확성기 재개 준비는 온전히 북한이 자초한 것이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북한군이 가장 두려워하는 우리의 비대칭 전력으로 꼽힌다. 2017년 탈북한 최전방 북한군은 “확성기 방송에서 탈북자들이 전하는 한국의 발전상을 들었기 때문”이란 취지로 진술했다. 대북 스피커는 낮에는 10㎞, 밤에는 24㎞까지 소리가 들린다. 최신 가요와 한반도 뉴스, 날씨 등을 라디오방송 형식으로 내보낸다. 방송을 재개하면 김정은이 한류(韓流) 확산을 극형으로 막고 있어도 최전방 북한군부터 한류와 외부 정보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북한 체제 특성상 미국 미사일보다 자유세계의 정보가 훨씬 더 위협적일 것이다.

 

북한은 확성기 방송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2004년 6월 남북 군사회담에선 확성기 중단을 위해 서해에서 도발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2015년 8월 목함 지뢰 도발 당시 우리 측이 방송을 재개하자 북은 ‘준전시 태세’를 선포하면서 반발했다. 그러나 며칠 견디지 못하고 고위급 접촉을 먼저 제안해 이례적으로 지뢰 도발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기도 했다. 급소를 찔린 것처럼 반응했다. 확성기 방송은 2016년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재개됐지만 2018년 문재인 정부의 판문점 선언으로 중단됐다. 이후 문 정부는 북이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등 어떤 도발을 해도 확성기를 다시 틀지 않았다.

 

대북 확성기 방송이 재개되면 북은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 2015년엔 ‘확성기를 직접 타격하겠다’고 한 뒤 포격 도발을 감행해 우리 군이 포격으로 맞서기도 했다. 확성기를 빌미로 휴전선이나 NLL 일대에서 강도 높은 군사 도발을 벌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은 남북 충돌로 우리 측 피해가 발생할 경우, 천안함 폭침 때처럼 우리 사회에서 ‘전쟁이냐 평화냐’ 같은 정치 선동이 난무하고 정부 비난 여론이 일기를 바랄 것이다.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한반도 위기를 조성하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정부는 대북 확성기 재개를 논의할 때 북한 도발을 상정한 군사적 대비책까지 마련해야 한다. 안보 문제에선 한 치 빈틈도 있어선 안 된다.

조선일보 사설

 

06.03 [단독] 탈북 외교관 "확성기 영향 대단…北, MZ군인 동요 두려워해"

"확성기 방송을 통해 접경 지역 군인의 마음을 빼앗으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도록 정신 전력을 와해할 수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 5월 경기도 파주시 민간인 통제구역 내 고정형 대북 확성기를 육군 9사단 교하중대 교하소초 장병들이 철거하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는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가듯 확성기로 전파된 정보로 인해 최근 우상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는 김정은의 권위도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며 3일 중앙일보에 이같이 말했다. 영국 주재 북한 공사 출신인 태영호 전 국민의힘 의원도 "북한에서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이 '이등병의 편지'를 흥얼거릴 정도로 확성기로 흘러나오는 한국 노래와 뉴스의 영향은 대단하다"고 전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남측으로 '오물 풍선'을 내려보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정부의 확성기 재개 방침 발표 5시간 만에 사실상 한발 물러선 배경에는 전방을 지키는 젊은 '북한판 MZ세대' 군인들의 사상적 이탈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 반영됐다고 탈북 고위 당국자들은 분석했다.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가 2021년 2월 미국 CNN 방송과 인터뷰하는 모습. CNN 캡처.

젊은 軍 '사상 침투' 두려움

북한은 접경 지역 군부대를 주기적으로 '교방', 즉 주둔지를 교체시킬 정도로 남측과 맞닿은 군인들의 사상 이완을 두려워한다고 한다. 실제 2000년부터 2018년까지 접경지를 통한 북한 군인의 귀순만 14번에 이른다. 류 전 대사대리는 "확성기 데시벨이 워낙 큰데, 전선에 있는 군인들을 향해 '최고 존엄'(김정은)의 권위를 훼손하는 방송으로 도배하니 예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북 확성기가 북한을 압도할 수 있는 우리 군의 대표적인 '비대칭 전력'이라는 점을 북한도 잘 알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류 전 대사대리는 "북한은 대남 확성기가 있다고 해도 장비의 성능이나 전력 수급 현실로 볼 때 사실상 맞대응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대북전단은 오물 풍선으로 맞섰지만, 확성기까지 켜지면 손쓸 방도가 없기 때문에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1963년 박정희 정부 때 시작돼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남북 군사합의를 통해 중단됐다. 그러나 이후 정부는 천안함 폭침(2010), 목함지뢰 사건(2015), 4차 핵실험(2016) 등 북한의 중대 도발 시 대북 확성기를 재설치하거나 방송을 재개했다. 그러다 문재인 정부 당시 2018년 4·27 판문점 선언 이후 확성기는 모두 철거돼 현재까지 방송이 중단됐다.

"전역 후 '이등병의 편지' 부를 정도"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1월 4차 핵실험에 대한 대응으로 확성기가 재개됐을 때는 '뱅뱅뱅', '오늘부터 우리는', '소원을 말해봐' 등 대중가요가 방송 다수 포함됐다. 10대에서 20대가 대부분인 전방의 북한 군인들이 동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태영호 전 의원은 이날 중앙일보에 "접경지역 군인들이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새카만 밤에 굶주린 배를 붙잡고 근무를 서던 중 트로트 등 한국 노래가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면 그렇게 귀에 잘 박힌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오물 풍선 도발 등을 다시 감행하면 반드시 확성기를 다시 켜겠다고 예측 가능한 경고를 해둬야 한다"며 "확성기가 남북 대결을 격화하는 장치가 아니라 북한의 도발을 자제하도록 해 충돌 확산을 막는 역할을 한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군 복무의 낙…후방에도 전파"

대북 확성기 방송이 이전보다 한국 문화를 동경하는 경향이 강해진 MZ 세대 북한 군인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1970년대 북한 측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했던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전방지역 군인들은 확성기 방송을 듣는 게 군 복무의 낙"이라며 "본인만 듣는 게 아니라 후방에 이를 전달하며 이들이 직접 일종의 '안테나', '중계탑'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과거 사상 교육이 투철할 때도 확성기 방송은 잘 먹혔는데, 최근 문화적으로 남측에 훨씬 경도된 '장마당 세대'에 대한 체제 이완 효과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강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을 북한이 얼마나 아파하는지는 앞선 남북 간 고위급 회담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2015년 8월 북한이 남측 확성기에 포탄까지 쏜 뒤 열린 남북 고위급회담에 참여했던 홍용표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의 관심사는 오로지 확성기 방송 중단으로, 다른 문제는 거의 꺼내지도 않은 채 확성기에만 집중했다"고 말했다. 당시 북한은 한국이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는 대가로 목함지뢰 도발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06.03 北 오물 풍선에 또 뒷북… 軍 ‘즉·강·끝 응징’ 믿을 수 있나

북한의 오물 풍선 도발에 대한 정부와 군(軍) 대응은 우물쭈물도 넘어 면피용으로까지 비칠 정도로 느슨하다. 지난달 28∼29일 1차 오물 풍선을 수수방관해 남해안까지 휘젓도록 놔두더니, 지난 1∼2일의 훨씬 많은 오물 풍선도 사실상 멀뚱멀뚱 구경만 했다. 그 결과 인천공항 항공기 이착륙이 3차례 중단되고, 경기도 안산시 주택가 차량 유리창이 깨지는 등 피해가 속출했다. 그래놓고 군 당국은 뒤늦게 지뢰탐지기까지 동원해 떨어진 풍선 내용물과 잔해를 검사하는 등 호들갑을 떨었다. 대남 풍선의 내용물이 뭔지 모른다면, 더욱 더 군사분계선 남하 직후에 격추해야 했던 것 아닌가. 대통령실의 뒤늦은 ‘감내하기 힘든 조치’ 발표 때문에 북한이 풍선 중단을 발표한 것처럼 분석하는 것도 북한군 본질을 모르는 어이없는 일이다.

북한은 초대형 방사포 도발과 위성항법장치(GPS) 교란전도 병행했다. 오물 풍선에 대해 즉각 격추에 나서고 비례성 원칙에 따른 상응 조치에 나섰더라면 북한이 이렇게 대놓고 설치진 못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 도발에 대해 ‘선 조치 후 보고’ 언급을 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도 2023년 10월 취임 직후 ‘즉·강·끝(즉시 강력하게 끝까지)’ 원칙을 제시했다. 신 장관은 취임 한 달 뒤 합동참모본부 의장 이취임식 훈시를 통해 “강한 힘을 바탕으로 한 응징이 억제이고, 억제가 곧 평화”라며 “북한 도발을 막는 것은 군사합의서가 아니라 강한 힘”이라며 합참에 ‘즉·강·끝 원칙에 따른 단호 응징’을 지시했다.

오물 풍선 대응은 이런 지침이 허풍임을 자인하기에 충분하다. 대통령실은 2일 국가안보회의(NSC) 상임위를 열고 “북한이 감내하기 어려운 조치에 착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1차 때엔 회의조차 하지 않았다. 정부는 판문점선언 및 9·19 남북군사합의의 일부 조항 무효화 안건을 의결한다며 대단한 결단인 양 호들갑을 떤다. 남북관계법 제23조에는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 등을 위해 남북합의서 효력을 정지시킬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판문점선언과 9·19 합의도 폐기된 것과 마찬가지인 만큼 구애받을 이유가 없다.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도 당연한 일이다.

문화일보 사설

 

06-04  9·19 군사합의 전체 효력정지안 국무회의 통과…“北도발 즉각 조치”

▲한덕수 국무총리가 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4.6.4/뉴스1

 

정부가 4일 오전 국무회의를 열고 9·19 남북군사합의 전체의 효력을 정지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재가하면 2018년 9월 평양 정상회담에서 남북이 체결한 9·19 합의는 5년 8개월 만에 전면 무효화된다. 9·19 합의의 핵심은 남북이 지상·해상·육상에서 실사격, 야외 기동훈련 등을 금지하는 것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모두 발언에서 “최근 북한의 계속되는 도발이 우리 국민들에게 실제적인 피해와 위협을 가하는 상황에서 이미 북한의 사실상 파기 선언에 의해 유명무실화된 9·19 합의가 우리 군의 대비태세에 많은 문제점을 초래하고 있다고 평가했다”며 “따라서 오늘 국무회의에서는 남북한 상호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 9·19 합의 전부의 효력을 정지하는 방안을 추진코자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우방국과 긴밀히 공조하여 북한의 동향을 면밀히 감시하는 한편,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 나가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며 “북한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모든 도발을 즉각 중단하고, 남북 공동 번영의 길로 나오기를 거듭 촉구한다”고 했다.

앞서 북한은 지난해 11월 “9·19 합의로 중단했던 모든 군사적 조치를 회복한다”며 사실상 합의 전면 파기를 기습적으로 선언했다.

 

우리 정부는 최근 북한의 오물 풍선 테러,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교란 공격 등 도발에 대응하기 위해 9·19 합의 전체의 효력을 정지하기로 결정했다. 대통령실은 3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실무조정회의를 열고 “그동안 9·19 합의에 의해 제약받아 온 군사분계선 일대 군사훈련이 가능해지고, 북한의 도발에 대한 보다 충분하고 즉각적인 조치를 가능하게 해줄 것”이라고 밝혔다.
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bong087@donga.com

 
 

06.04 '풍선 오물' 김정은이 뒤집어쓴 꼴…9∙19합의 족쇄 풀 명분됐다

https://youtu.be/9TfAqC4Fsu0

 

북한의 도발이 우리 군의 손발을 묶는 족쇄처럼 작용해온 9·19 남북 군사합의를 사실상 무효화하는 명분으로 작용했다. 향후 우리 군이 취할 수 있는 실질적 조치가 다시 늘어나게 됐는데, 이처럼 다양해지는 경우의 수에 대해 북한이 더 큰 압박감을 받게 된 ‘오물 풍선’의 아이러니인 셈이다.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이 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NSC 상임위원회에서는 북한의 잇단 대남 오물 풍선 살포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 대통령실

 

정부는 4일 한덕수 국무총리가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9·19 군사합의 전체 효력 정지안을 심의·의결했다. 앞서 전날(3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은 “남북 간 상호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 9·19 군사합의 전체의 효력을 정지하는 안건을 국무회의에 상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 2일 대북 확성기 재개 방침을 정한 지 다섯 시간 만에 북한이 오물 풍선 살포를 조건부로 중단하겠다고 태도를 바꾸자, 이런 상황 변화를 반영해 대응 조치를 논의한 결과다.

 

군 안팎에선 이를 두고 ‘플랜B’(차선책)를 먼저 가동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군 관계자는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가 ‘플랜A’(최선책)였다면, 북한이 오물 풍선 투척을 중단한 현 시점에서 플랜B를 우선 가동한 것”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정부는 플랜A, 즉 확성기 방송 재개를 여전히 가장 강력한 선택지로 놓고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국민 피해 등이 발생한 가운데 북한이 태도를 바꿨다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사태를 되돌리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전날(2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북한이 감내하기 힘든 조치에 착수하기로 했다”고 발표까지 했다.

 

실제 남북이 상호 간에 적대 행위를 하지 않는다고 포괄적으로 규정한 9·19 남북 군사합의의 효력을 정지하는 건 확성기 재개를 위해 필수적인 사전 절차이기도 하다. 대북 확성기 방송을 특정해 금지한 건 2018년 4·27 판문점 선언이지만, 정부는 판문점 선언이 국회의 비준동의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별도의 효력 정지 절차도 필요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확성기 방송을 금지한 남북관계발전법(2021년 시행)은 ‘이 법 시행 전에 국회의 동의를 받아 체결ㆍ비준한 남북합의서’(부칙)만 준수하도록 규정한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결국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를 통해 정부는 플랜A를 여전히 준비하면서, 이를 통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군사적 조치의 선택지를 다양화하는 실리도 챙긴 셈이다.

 

표현은 효력 정지이지만, 이는 사실상 폐기 수순이라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 현 정부는 그간 군사합의를 대북 군사적 조치의 ‘걸림돌’로 여겨왔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대표적 폐지론자다. 신 장관은 장관 후보자 시절인 지난 9월 "군사합의로 군사적 취약성이 매우 많아져 반드시 파기해야 한다"며 “북한이 의도적이고 반복적으로 군사합의를 위반하고 있는 상황으로, 폐기를 통해 북한의 위협 대응을 위한 군사대비태세를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북한 도발 국면에서 군사합의를 비례적 대응책으로 꺼내들었다. 지난해 11월 북한이 정찰위성을 발사했을 때 비행금지 구역 설정 관련 조항(제1조 3항)을 효력 정지했다. 군의 전방 정찰 능력 복원이 북한 정찰위성에 상응하는 조치라는 논리였다.

 

 ▲지난 2일 경기도 시흥시 한 쇼핑몰 주차장에서 관계자가 북한이 살포한 것으로 추정되는 오물 풍선 잔해를 수거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어 군 당국은 지난 1월 북한이 합의 상 적대행위 금지구역에서 잇따라 포병 사격 도발에 나서자 “적대행위 중지구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합의 이전에 실시했던 것처럼 서북도서와 군사분계선 이남 지역 등에서 각종 사격 훈련을 재개한다고도 밝혔다. 비록 군 당국의 당시 발표는 국무회의 의결 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이후 훈련 역시 이뤄지지 않아 선언적 의미로 남았지만, 사실상 합의의 종언으로 풀이됐다.

 

반면 한편에선 군사합의를 대북 대응 카드로 쓰는 게 타당하느냐는 비판 여론도 상당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 위성 발사의 경우 9·19 군사합의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남북 충돌 가능성만 키울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고 봤을 수 있다. 오물 풍선 살포와 위성항법장치(GPS) 교란 등 초유의 ‘복합 도발’ 행태에 남남갈등보다 정부의 적극 대응을 원하는 목소리가 더 크다고 판단한 것 아니냐는 뜻이다. 동시에 정부는 국무회의 의결을 근거로 한 효력 정지를 통해 선언적 효과를 넘어선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군 내부에선 넓어진 선택지에 따라 전략적 모호성이 커지면서 대북 억제력 효과도 커질 것으로 기대한다. 군 당국자는 “군사합의 효력 정지 후 당분간 구체적 군사 행동을 ‘빈칸’으로 남겨놓는다면 북한 당국이 느낄 공포감은 더 커지지 않겠느냐”며 “합의 이전 수준으로 전방 사격 훈련을 실시하는 것만으로도 북한군이 느낄 피로감은 꽤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카드를 아껴두고 단계적으로 서북도서 포사격 훈련 등을 진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근평·이유정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06-04 북 ‘위험물질 공격’ 연습 된 오물풍선

이상환 한국외국어대 교수, 前 한국국제정치학회장


북한이 날린 오물 풍선이 안보 문제에 대한 새로운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지난 수일간 북한발 오물 풍선이 수도권은 물론 영남 지방까지 날아가면서 북한의 어처구니없는 행태가 국민의 분노를 자아낸다. 현재까진 쓰레기만 있을 뿐, 위험 물질은 발견되지 않아 위협을 느끼는 상황은 아니나, 풍선을 통한 위험 물질 공격이 가능함을 일깨워줬다.

지난 2023년 미국 상공에서 중국의 정찰용 무인 풍선(기구)이 발견돼 미군이 격추한 바 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미국 영공을 적성국의 비행체가 허가 없이 침범한 사건이다. 미국은 엄중 경고와 함께 재발 방지를 촉구하고 중국은 정찰 풍선임을 부인하며 양국 간 마찰이 극대화했다. 이번 북한의 오물 풍선은 이와는 달리 저급하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대남 도발이다.

북한은 오물 풍선과 함께 위성항법장치(GPS) 전파 교란으로 우리 사회의 혼란을 초래하려 했다. 이는 4∼5일 한·아프리카 정상회의 참석차 서울에 체류 중인 아프리카 30여 개국 정상들에게 위기감을 자아내려고 한 것인지도 모른다. 일각에서는,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쓰레기에 가축전염병 병원체가 포함됐을 가능성을 우려하기도 한다.

이에 정부는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통해 “북한이 감내하기 어려운 조치에 착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말하며, 당장 실시하진 않지만 이를 위해 필요한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자 북한은 김강일 국방성 부상 담화를 통해 비아냥거리며 오물 풍선 살포를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북한의 이러한 태도 변화가 우리 군이 ‘확성기 방송 재개’를 하겠다고 하니 중단을 하겠다고 한 것인지, 애초에 이쯤 하고 그만두려고 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성기 방송이든 대북 전단 살포든 북한 김정은 체제가 부담스러워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20년 대북전단금지법을 입법해 2021년 3월부터 시행한 바 있다. 하지만 2023년 9월 헌법재판소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로 위헌결정을 내렸다. 윤석열 정부는 취임 이후 “전단 살포를 법으로 금지하는 건 잘못이지만, 전단 살포가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으므로 자제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국무회의는 4일 남북 간 상호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 9·19 군사합의 전체의 효력 정지를 의결했다. 이로써 대북 심리전의 핵심인 대북 확성기 방송과 국군의 최전방 군사훈련을 가로막는 법적 제약이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오물 풍선을 택한 것은, 직접적 무력 도발은 우리의 도발 원점 타격 대응으로 확전 위험성이 커지므로 우리가 대응하기 어려운 풍선 살포나 GPS 교란 등을 통한 저강도 도발로 우리 사회의 혼란을 조성하기 위함이다. 북한은 어리석은 도발·보복 행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북한의 오물 풍선 사건은 최근 우리 사회의 ‘위기’로 부상하는 안보의식 해이의 실상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는 개별적인 ‘안전(safety)’ 수준에 머물던 사안이 국가 차원의 ‘안보(security)’ 문제화하는 신안보 이슈를 제기했다. 이에 대한 야권의 양비론적 입장은 매우 우려스럽다. 안보의 둑은 작은 틈새에서 비롯돼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일보 

 

06-05 이제야 족쇄 풀린 최전방 군사훈련, 강군 재건 계기 돼

실전 같은 훈련이 강군(强軍)의 제1 조건임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훈련 때 땀 흘리면 실전에서 피를 훨씬 적게 흘린다’는 것은 불변의 군 격언이다. 정부가 4일 국무회의 의결과 윤석열 대통령 재가를 통해 9·19 남북군사합의 ‘전부 효력 정지’를 결단한 것은 늦었지만 다행한 일이다. 지난해 11월 북한 군사정찰위성 도발 때 일부 효력 정지를 단행했지만, 오물 풍선 도발 및 위성항법장치(GPS) 교란에 대응해 이런 결정을 했다. 이에 따라 2018년 이후 6년 만에 서북도서 및 군사분계선(MDL) 일대 등 최전방에서 정상적으로 훈련을 실시할 수 있게 됐다.

백령도·연평도 등 최북단 도서에 배치된 해병부대가 이달 중 K-9 자주포 실사격 훈련을 재개하는 등 육·해·공군은 9·19 합의에 의해 금지됐던 훈련을 모두 정상화할 예정이다. 북방한계선(NLL) 일대에서 긴장이 고조될 수 있지만, 주민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북한 도발에 만반의 대비를 하면서 차질 없이 훈련해야 한다. 그동안 9·19 합의는 최전방 지역 훈련과 정찰에 심각한 족쇄로 작용했다. 해병대는 연평도·백령도 일대에서 K-9 자주포 훈련을 하지 못하고 포항 등지로 옮겨 훈련해야 했다. MDL 주변 비행금지구역 설정으로 정찰기 등 대북 감시 자산은 발이 묶였고, 감시초소(GP) 철거로 대북 감시 능력도 떨어졌다. 또,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 때 한미연합훈련 중단까지 발표됐다. 군기 해이 등 보이지 않는 부작용도 심각했다.

그러잖아도 군사적·비군사적 안보 환경이 전방위로 악화하고 있다. 종북·친북 세력이 대거 정치권에 진입하고, 군 복무 기피 풍조와 저출생에 따른 현역 입대자 감소도 심각하다. 그만큼 훈련이 더 중요해졌다.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주문했던 ‘전투형 강군’이 절실하다. 한미연합훈련도 강화·확장해 육·해·공은 물론 사이버·우주 전장(戰場)까지 ‘파이트 투나잇’ 동맹을 더 견고히 해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6-05 호국 영령과 유족 제대로 예우할 때다

유영옥 대신대 석좌교수, 前 한국보훈학회 회장


이 달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올해로 동족상잔의 비극 6·25전쟁이 발발한 지도 어언 74년이다. 전쟁으로 전 국토가 황폐해지고 엄청난 인적·물적 피해에도 불구하고 전후 세대가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지금에는 6·25전쟁이 마치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며 그 전란이 주는 교훈과 아픔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무감각한 것 같다.

다시 6월을 맞아,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처했을 때 조국과 민족을 위해 싸우다 장렬하게 가신 호국 영령의 거룩한 희생정신을 생각하며 나도 모르게 옷깃을 여민다. 이들의 호국을 위한 숭고한 희생과 ‘결사보국’의 정신이 없었다면 과연 우리나라는 어떻게 됐을지를 생각할 때, ‘특별한 희생에는 응당 특별한 관심과 배려가 뒤따라야 한다’는 보훈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들의 숭고하고도 특별한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나라는 6·25전쟁의 상흔을 극복하고 최후진국에서 이제는 미국·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선진국으로 올라설 수 있지 않았는가.

이렇듯 순국선열과 호국 영령의 살신성인 같은 숭고한 희생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원동력이 됐음에도 이들을 기리기 위한 우리의 보훈정책과 보훈행정은 아직도 부끄러운 수준이다.

특히, 지난해까지 수장(首長)이 차관급이던 ‘국가보훈처’를 장관인 ‘국가보훈부’로 격상시키고 관련 예산과 조직을 그에 걸맞게 개편했다지만, 조금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별다른 차이가 없음을 알게 돼 실망스럽다. 물론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을 갖출 수는 없다. 그러나 지난 시기의 잘잘못을 분석하고 평가해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으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는 ‘그 나물에 그 밥’ 식으로, 개혁적인 조직이나 인사 개편이 없이 과거를 거의 그대로 답습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 지난 정권 때 현충일 추모사에서 월북 후 북한에서 고위직을 지낸 김원봉을 ‘국가유공자’로 모셔야 한다고 한 일이나, 육군사관학교 교정에 건립한 홍범도를 비롯한 5인의 흉상 문제, 모 보훈단체장의 상식을 뛰어넘는 행태와 망발, 각급 국가유공자에 대한 예우의 불공평성 등 적잖은 문제가 있음을 보훈부 관계자들이 애써 외면하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감출 수 없다.

내일 69주년 현충일을 앞두고 두어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우선, 민족상잔의 대비극인 6·25전쟁 당시 산화한 호국 영령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그 유족들에 대한 자긍심을 선양하기 위해 더 특별한 배려책을 마련하기를 권고한다. 또한, 6·25전쟁 당시 이름도 모르는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 참전했던 우방에 대한 보훈 외교를 더욱 강화해 그 지평을 확대하고, 이제 남은 삶이 길지 않은 참전유공자에 대한 예우도 대폭 확대할 것을 제안한다. 이는 현역군인의 사기 진작은 물론 국민에게 애국심을 고취함으로써 국민적 연대 의식 제고에 큰 몫을 할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로 순국선열과 호국 영령이 발휘한 국가와 민족을 위한 애국 충정을 선양하고 기리는 데 조금의 주저함이나 망설임도 없어야 한다. 그리고 국가유공자의 ‘특별한 희생에 대한 특별한 배려’를 할 수 있는 여러 조치와 함께 합당한 예우 방안을 마련하기를 당부한다.

문화일보

 

06.05 北배설물과 한국전단이 어떻게 같나…오물풍선 양비론의 허점

▲북한이 지난달 말부터 쓰레기와 인분 등이 담긴 오물 풍선을 난리면서 이를 비판하는 여론도 커지고 있다. 그래픽=정근영 기자

 

“한쪽은 삐라(전단)를 날리고 다른 쪽은 쓰레기 더미를 날리고 서로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합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세계인들이 과연 어떠한 생각을 하게 될까? 생각하면 머리가 쭈뼛거리고 정말로 수치스럽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

 

22대 국회 개원 첫날인 지난달 31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재명 대표가 한 말이다. 지난달 28일 밤부터 북한이 날려 보낸 오물 풍선과 그로 인한 논란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이 대표는 북한에 대해 경고하고 무력 도발 중지와 대화 참여를 촉구했지만, 대북전단과 북한의 오물 풍선을 같은 선상에 놓고 언급한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양비론이다.

김여정 “오물짝 계속 주워 담아야할 것”

표현의 자유는 기본적으로 국민이 국가를 상대로 주장하는 권리다.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인민 표현의 자유’라며, 살포를 제지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비꼬았다. 그러면서 “우리 인민이 살포하는 오물짝을 계속 주워 담아야 할 것”이라 말했다. 백번 양보해 그 주장을 믿어준다 해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풍선에 매달려 철조망을 넘어가는 물건의 성격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5월 29일 북한이 보낸 오물 풍선이 경기 용인시 이동읍 송전리에서 발견됐다. [뉴스1]

 

우리 국민이 보내는 책자와 유인물, DVD나 USB 드라이브 등은 모두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저장 매체다. 반면 북한이 보낸 풍선 속에는 담배꽁초, 폐지, 퇴비, 심지어 인분 등의 오물이 담겨 있었다. 그중에서도 인분을 투척, 투하하는 행위는 표현의 자유와 전혀 무관하다. 직접적이고 오해의 여지가 없는 공격 행위다.

 

동물원을 떠올려 보자. 원숭이는 재주가 많고 귀엽지만 최고 인기 동물은 아니다. 원숭이가 관람객에게 보이는 공격적 행동 때문이다. 기분이 나쁘면 사람을 향해 배설물을 집어 던지곤 한다. 배설물을 투척하거나 함정처럼 심어두는 것은 그런 일이다. 물론 북한 당국은 그들이 어떤 감정을 ‘표현’하고 있으며, 따라서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고 있다고 우기는 중이다.

 

전쟁의 역사를 놓고 보면 그러한 주장은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세균을 통한 질병 감염의 원리를 과학적으로 규명하기 전부터 이미 인류는 배설물을 일종의 생화학 무기로 사용해 왔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기원전 5세기의 유목 민족 스키타이의 궁수들은 화살촉에 인분과 시신의 썩은 물 등을 발라서 쏘았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최초의 생화학전이다.

 

며칠째 휴전선을 넘어 날아오는 오물 풍선을 향한 국민의 감정이 당혹에서 분노로 바뀌는 이유도 거기 있다. 기폭 장치가 가동하지 않아 덩어리째 떨어지는 오물로 인해 자동차나 옥상 물탱크 등의 재산 피해가 발생하는 것도 그렇지만, 그 안에 무엇이 담겨 있을지 우리가 알 수 없다는 게 더 문제다. 오물 풍선을 보내는 북한은 우리가 생화학전의 가능성을 우려할 것이며, 그 결과 국민들 사이에 심리적 동요가 벌어질 것까지 계산에 넣고 있는 것이다.

 

대북전단과 오물 풍선을 등치 시키는 시각에 결코 동의할 수 없는 것은 그래서다. 대북 전단은 어디까지나 북한 주민이 읽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띄우는 것이다. 그 내용이 김정은 독재 체제 유지에 해로울지언정, 적어도 보내는 사람들에게 받는 이의 건강이나 신체를 해칠 의도가 없다.

 

오물 풍선은 정 반대다. 김여정 스스로가 “오물짝”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잘 받아서 읽으라는 뜻으로 보내는 정보 저장 매체가 아니다.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질이 낮은 적대적 공격 행위일 뿐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이를 대북전단과 같은 선상에서 보고 있다. 이재명 대표의 발언도 그렇거니와, 지난달 17일 발간된 문재인 전 대통령의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에 담긴 내용은 더욱 그렇다. 그는 “수준이 저열한 대북전단은 우리 자신을 부끄럽게 한다”며 비판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인권 변호사’ 출신이라는 문 전 대통령과 이 대표는 인권의 토대가 되는 표현의 자유를 왜 이렇게 가볍게 여기는 걸까.

대북전단 금지법은 표현의 자유 억압

사실 ‘표현의 자유도 좋지만 북한을 자극하지 말자’는 주장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 2020년 대북전단 금지법 제정 당시의 여론조사를 보면 약 60%의 국민이 그 법에 찬성했다. 물론 현실적인 우려는 타당하다. 하지만 북한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북한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왔던 군사 독재 시절의 그것과 데칼코마니일 뿐이다. 대북전단에 반대한다면 시민 대 시민으로서 그들을 설득해야 한다. 법을 만들어 원천 봉쇄하는 것은 민주 국가의 운영 방식이 아니다.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가 했다고 잘못 알려진 명언을 곱씹어 보자. “나는 당신의 사상에 반대한다. 그러나 당신이 당신의 사상 때문에 탄압을 받는다면 나는 당신 편에서 싸울 것이다.” 어떤 이가 하는 비판과 풍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주먹을 휘두를 권리를 상대에게 주어서는 안 된다.

 

우리 국민이 날려 보내는 대북전단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김여정이 말하는 소위 ‘북한 인민’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그들이 가진 표현의 자유를 십분 활용해 오물이 아닌 대남 전단을 살포하는 것이다. 북한 주민의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 전단을 본다면 나는 읽을 용의가 있다. 물론 동의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지만 말이다.

중앙일보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06.05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는 실패한 선전전

▲지난 3일 경기 파주시 자유로에서 바라본 북한 초소에서 북한군이 근무를 서고 있다. 정부의 대북 확성기 재개 검토에 대응해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오물풍선 살포를 잠정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뉴시스

 

북한이 한국을 겨냥한 ‘오물 풍선’ 살포를 일단 중단하겠다고 지난 2일 발표했다. 김강일 북한 외무상 부상은 “15t의 오물을 넣은 풍선 3500개를 남쪽으로 날려 보냈다”면서 조건부로 중단하겠다는 것이다. 한국군이 지금까지 오물 풍선 1000개 가량을 수거했으니 2500개 정도는 남쪽으로 날아오지 못하고 북한 지역에 떨어졌거나 북한이 의도적으로 숫자를 부풀렸을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한국의 한 시민단체가 전단과 K-팝 등이 수록된 메모리 칩을 실은 풍선 20개를 북한으로 날려 보낸 데 대한 대응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의 발표가 사실이라면 이는 비례가 아니라 오히려 150배나 많이 보낸 셈이다. 북한은 충분히 대응했으니 대북 풍선이 다시 북으로 날아올 때까지 중단하겠다는 것이다.

시민단체의 대북전단 트집 잡아
불량국가에 오물 살포 국가 오명
풍선 또 살포하면 즉각 대응해야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이 2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날 NSC 상임위원회에서는 북한의 잇단 대남 오물 풍선 살포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 뉴스1

 

그러나 북한이 갑자기 살포 중단을 선언한 배경에는 한국 정부의 분명한 의지 표명이 작용한 것 같다. 엊그제 장호진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열린 NSC 상임위원회 확대회의에서 북한이 ‘감내할 수 없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감내할 수 없는 조치의 핵심은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말한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북한 정권의 아킬레스건이다. 최전선에 있는 북한 장병들이 대북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 국제 뉴스와 한국 소식은 물론 북한 내부 소식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김일성 가계의 진실도 접하게 된다. K-팝이나 트로트 등을 많이 듣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한국 가요를 흥얼거리기도 한다. 북한은 한류를 막기 위해 최근 몇 년 사이에 청년교양보장법, 반동사상문화배격법, 평양문화어보호법 등을 만들어 대대적인 내부 단속에 들어갔다. 이런 판국에 대북 확성기 방송이 재개되면 김정은 체제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 북한으로선 두려운 일이다. 북한이 오물 풍선 살포 행위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결정적인 이유일 것이다.

 

대북 확성기 방송 등을 재개하기 위해 정부는 어제 국무회의에서 9·19 남북 군사 합의 효력을 공식적으로 중지시켰다. 한덕수 총리는 “북한의 연이은 도발은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크게 위협함은 물론 한반도 평화를 심각하게 저해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앞서 지난해 11월 북한이 정찰위성을 발사하자 이에 대한 대응으로 정부는 군사합의서의 일부 조항에 대한 효력을 정지시켰다. 그러자 군사합의를 밥 먹듯 위반해온 북한이 오히려 전면 폐기를 선언하면서 철수했던 전방 감시초소(GP)에 병력 등을 투입했다. 북한이야 최고지도자의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이 결정되고 시행되지만, 법치국가인 한국은 그럴 수 없으니 국무회의 의결을 거친 것이다.

 

판문점 선언이나 남북관계발전법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2018년 4·27 판문점 선언은 국회에서 비준받은 것도 아니고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것도 아니다. 남북관계발전법도 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남북관계발전법 제34조에는 확성기 방송과 시각매개물 게시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동법 제23조 2항에는 ‘남북 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하거나 국가 안전보장, 질서 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기간을 정하여 남북합의서의 효력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정지시킬 수 있다’는 예외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의결한 군사합의서 일부 조항의 효력정지도 이런 예외 조항의 적용 결과였다.

 

 ▲2일 오전 10시 22분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의 한 빌라 주차장에, 북한에서 날아온 것으로 추정되는 오물 풍선이 떨어졌다. 풍선이 떨어진 차량의 앞유리창가 파손됐다. 경기남부경찰청

 

오물 풍선 살포로 북한은 비아냥거림과 배설의 기쁨을 잠시 누렸을지 모르지만, 선전전에서는 철저하게 실패했다. 한국 국민은 북한에 대해 오히려 더 거부감과 적개심을 갖게 됐고, 국제사회에서 북한은 핵미사일을 개발하는 ‘불량 국가’ 이미지에 이어 오물 살포 국가라는 불명예스러운 칭호를 추가했다.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는 무력 행위와 적대 행위를 금지하는 국제법 위반이자 정전협정 위반이다. 북한이 살포한 20㎏ 규모의 오물 풍선은 한국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도발 행위다. 실제로 차량이 파손되는 피해가 발생했다. 따라서 북한이 오물 풍선 살포를 재개할 경우 우리 정부는 즉각적으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해야 한다. 필요하면 정부 차원에서 대북 전단을 살포하는 카드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중앙일보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06.06 [속보] 尹대통령 "北, 비열한 도발...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

현충일 추념사... "영웅에 최고 예우로 보답"

 ▲윤석열 대통령이 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9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현충탑에 분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6일 “북한이 최근 정상적인 나라라면 부끄러워 할 수밖에 없는 비열한 방식의 도발까지 감행했다”며 “정부는 이러한 북한의 위협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9회 현충일 추념식 추념사를 통해 “북한 정권은 역사의 진보를 거부하고 퇴행의 길을 걸으며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최근 북한의 대규모 오물 풍선 살포와 GPS(위성항법장치) 교란 등 잇따른 대남 도발을 규탄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밝은 나라가 됐지만, 휴전선 이북은 세계에서 가장 어두운 암흑의 땅이 됐다”며 “바로 이곳에서 불과 50km 남짓 떨어진 곳에 자유와 인권을 무참히 박탈당하고 굶주림 속에 살아가는 동포들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평화는 굴종이 아니라 힘으로 지키는 것이다. 우리의 힘이 더 강해져야만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철통같은 대비 태세를 유지하며 단호하고 압도적으로 도발에 대응해 나갈 것”이라며 “한층 더 강해진 한미 동맹과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토대로 국민의 자유와 안전을 단단히 지키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 호국 영웅들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유가족에게 위로와 감사를 전했다. 윤 대통령은 영웅들을 최고의 예우로 보답하겠다며 “보훈 의료 혁신을 통해 국가유공자 의료서비스를 개선하겠다”고 했다.

 

이어 “재활 지원을 확대해 임무 중 부상을 당한 분들이 일상을 되찾을 수 있도록 세심하게 돕겠다”고 했다.

올해 추념식에서는 국가유공자 후손과 군인, 경찰, 소방관 등 제복근무자가 직접 주요 식순에 참여했다.

 

3대째 군 복무를 하고 있는 성진제 해군 소위(조부 6·25 참전용사, 부친 공군중위 전역)가 ‘국기에 대한 맹세’를 낭독했고, 애국가 제창에서는 현역 군인으로 복무 중인 국가유공자 후손들과 현직 경찰‧소방관이 선도제창자로 참여했다. ‘전우에게 전하는 편지’ 낭독 순서에서는 백마고지 전투에 참전했던 6·25 참전유공자 이승초씨가 직접 작성한 편지를, 백마고지 전투 참전용사(박명호씨)의 손자 박희준 육군 중사가 낭독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월 경북 문경시 화재로 인해 순직한 고(故) 김수광 소방장과 고 박수훈 소방교의 유족 등 4명에게 국가유공자 증서를 수여했다.

 

올해 추념식은 국가유공자와 유족, 정부 주요 인사, 국회의원, 군 주요 직위자, 중앙보훈단체장, 일반시민 등 5000여 명이 참석했다.

조선일보 김동하 기자

 

06-06 尹 “北, 비열한 도발까지 감행…결코 좌시 않을 것”

▲제69회 현충일인 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추념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2024.6.6.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은 현충일인 6일 “정부는 북한의 위협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9회 현충일 추념식 추념사를 통해 “서해상 포사격과 미사일 발사에 이어 최근에는 정상적인 나라라면 부끄러워할 수밖에 없는 비열한 방식의 도발까지 감행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윤 대통령은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밝은 나라가 됐지만 휴전선 이북은 세계에서 가장 어두운 암흑의 땅이 됐다”며 “바로 이곳에서 불과 50km 남짓 떨어진 곳에 자유와 인권을 무참히 박탈당하고 굶주림 속에서 살아가는 동포들이 있다”고 했다.

이어 “북한 정권은 역사의 진보를 거부하고 퇴행의 길을 걸으며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며 “정부는 철통같은 대비테세를 유지하며 단호하고 압도적으로 도발에 대응해 나갈 것이다. 한층 더 강해진 한미 동맹과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토대로 국민의 자유와 안전을 단단히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평화는 굴종이 아니라 힘으로 지키는 것”이라며 “우리의 힘이 더 강해져야만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다. 북한 동포들의 자유와 인권을 되찾는 일, 더 나아가 자유롭고 부강한 통일 대한민국으로 나아가는 일도 결국 우리가 더 강해져야 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우리의 지난 70년은 그 자체로 기적의 역사다. 그리고 바로 그 토대에는 위대한 영웅들의 헌신이 있었다”며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께서 보여주신 국가와 국민을 위한 숭고한 희생은 세대를 바꿔가며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어 경북 문경 육가공품 공장 화재 현장에 출동했다가 순직한 김수광 소방장과 박수훈 소방교, 해상 훈련 중 순직한 한진호 해군 원사 등을 거명하며 “다시 한번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지금도 굳건하게 대한민국을 지키고 있는 모든 영웅들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와 정부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 영웅들에게 최고의 예우로 보답할 것”이라며 “보훈 의료 혁신을 통해 국가유공자 의료서비스를 개선하고, 재활 지원을 확대해 임무 중에 부상 당한 분들이 일상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돕겠다. 영웅들의 유가족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우리는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온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했다”며 “모든 영웅들께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하며 슬픔을 안고 살아오신 유가족 여러분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덧붙였다.

김혜린 동아닷컴 기자 sinnala8@donga.com

 
 

06.07 대통령은 "강한 나라 만들자"는데 초급 간부 떠나는 軍

▲작년 12월 경기 연천군 육군 제5보병사단을 방문해 장병들을 격려하는 육석열 대통령. /대통령실

 

작년 군을 떠난 경력 5년 이상의 장교와 부사관이 9481명이었다. 전년보다 24%가 늘어난 것으로 역대 최다였다. 이 가운데 5~10년 복무한 대위·중사가 4061명으로 43%를 차지했다. 1년 전보다 35% 늘었다. 군의 허리로 불리는 초급 장교·부사관들의 이탈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전역자들은 병사들 월급 인상과 복무 기간 단축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 경찰·소방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당직 수당 등을 이유로 들며 “대리운전이나 배달 뛰는 게 낫다”고 말한다.

 

이러니 장교·부사관 충원이 나날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초급 장교의 70%를 담당하는 ROTC(학군장교) 지원율은 해마다 급감해 정원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는 대학이 속출하고 있다. 문 닫은 학군단도 여럿이다.

 

ROTC뿐 아니라 사관학교, 대학 군사학과, 육·해·공군 부사관의 인기도 바닥이다. 장교·부사관을 하겠다는 쳥년은 씨가 마르고 복무 중인 간부들은 전역의 기회만 엿보고 있다.

 

이렇게 된 근본 원인은 국방 포퓰리즘에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선거 때마다 복무 기간 단축 경쟁이 벌어져 일반 병은 이제 18개월 복무한다. 기초 전술도 익히기 전에 전역한다. ROTC는 28개월 복무다. ‘병사 월급 200만원’ 대선 공약에 따라 내년부턴 장교와 병사의 월급에 차이가 없다. 실질 소득은 이미 역전됐다. 의식주를 국가가 보장하는 병사와 달리 간부들은 월급을 쪼개 식비와 주거비를 부담하기 때문이다. 누가 장교가 되려 하겠나.

 

초급 간부의 애국심과 자질은 군 전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역사상 모든 전쟁의 결과가 그랬다. 이들의 사기가 엉망이면 아무리 많은 병사도 오합지졸이고 1000억원짜리 스텔스기도, 1조원짜리 이지스함도 무용지물이다. 지금 우리 군의 중추인 초급 간부들은 직업군인의 길을 후회하며 “군 탈출은 지능 순”이라고 자조하고 있다. 북한의 핵공격 위협을 받는 나라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제 윤석열 대통령은 현충일 추념사에서 “북한의 위협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더 강한 대한민국을 건설하겠다”고 했다. 초급 간부들의 이탈을 막을 특단의 대책 없이는 공허한 말이 되고 말 것이다. 여야가 국방 정책만은 정치 포퓰리즘의 예외 지대로 두는 대원칙에 뜻을 같이했으면 한다.

조선일보 사설

 

06.07 정부의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에 거는 기대 

역대 최고의 대북 협상 카드는 팀스피릿 훈련과 대북 확성기
북은 '벼랑 끝 전술'로 임하는데 우리는 늘 강력 카드 스스로 폐기
동독 몰락 후 독일 통일 계기도 서방 방송 유입과 인권 개선 압박
확성기 방송은 강력한 무기… 선순환 환상, 이제는 그만해야

북한의 대남 쓰레기 송출에 분노한 우리 정부가 ‘북한이 감내하기 어려운 조치’에 착수할 것이라 경고하더니, 곧이어 9·19 남북군사합의의 전면적 효력 정지와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준비가 발표되었다. 지난 수년간 북한이 남북 합의와 국제법을 무시하고 시도 때도 없이 한국과 국제사회에 대해 미사일 도발과 무력 위협을 벌여 온 점을 생각하면 시기적으로 꽤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정부의 대북 대응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건 다행이다. 다만, 정부의 향후 조치가 과연 ‘북한이 감내하기 어려운 조치’에 도달할 것인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국가 간 협상에 참여하는 모든 나라는 상대방의 양보를 압박하고 얻어내기 위해 다양한 협상 카드를 동원한다. 일반적으로는 양측 협상 카드를 교환하는 주고받기식 협상을 갖기 마련이지만, 점잖은 외교적 협상보다는 위협 수단을 동원해 일방적 양보를 강요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중국과 북한은 평화적 협상보다는 주로 후자의 위협적 방식에 많이 의존한다. 그들이 그런 방식을 선호하는 것은 공산주의 체제상의 이유도 있지만, 그런 방식으로 협상에 성공한 경험의 축적 때문일 것이다. 한·중 간의 통상 협상, 사드 제재와 탈북자 북송을 둘러싼 협상, 북한과의 군사 협상, 비핵화 협상 등이 대표적 사례다.

 

스탈린 시대의 구소련에 전수받은 북한의 협상술은 ‘벼랑 끝 전술’이라 불리는 험악한 협상 행태로 자신의 보잘것없는 협상 카드를 극대화하면서 새로운 협상 카드를 끝없이 생성해 내는 능력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북한이 협상 상대방을 벼랑 끝까지 몰고 가서 책상을 두드리고 고함을 질러가며 양보를 강요하면, 협상 상대방은 당장 회담이 파탄되고 전쟁이라도 터질 듯한 공포감에 휩싸여 북한의 터무니없는 요구를 대부분 수용하는 불리한 합의문에 동의하곤 한다. 이 때문에, 북한과의 협상에서 채택된 여러 합의문을 읽다 보면 마치 북한 주장을 그대로 받아적어 온 듯한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이러한 북한과는 대조적으로, 한국은 대북 협상을 위한 가장 중요하고도 강력한 협상 카드를 번번이 스스로 폐기하는 실책을 반복해 왔다. 먼저 큰 양보를 하면 북한도 이에 호응하리라는 순진한 ‘선순환의 환상’ 때문이었다. 대표적 사례는 김영삼 정부 당시의 팀스피리트 훈련 폐지였다. 북핵 문제가 막 부상하던 1990년대 초 매년 실시되던 팀스피리트 한미 연합훈련은 한국 정부가 보유한 가장 무서운 대북 협상 카드였다. 그에 대한 대응이 힘겨웠던 북한은 이를 어떻게든 취소시키려 읍소도 양보도 하고 남북회담에 응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대승적 결단이라는 구실로 팀스피리트 훈련의 영구 중단을 결정했고, 그 후 북한은 김영삼 정부와의 회담에 단 한 번도 응하지 않았다.

 

팀스피리트 훈련 폐지 이래 한국이 보유하게 된 가장 강력한 대북 협상 카드는 휴전선에서의 확성기 방송이다. 도달 거리가 10여km에 불과해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대북 유화론자들의 주장에도 불구, 확성기 방송이 휴전선 지역에 밀집된 북한군의 기강과 충성심에 미칠 심대한 잠재적 영향은 김정은 정권에 심각한 우려의 대상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 때 채택된 4·27 남북 판문점 선언이 북핵 문제를 비롯한 다른 사항들은 원론적, 추상적으로 규정하면서 유독 대북 확성기 방송과 전단살포 금지만 구체적으로 규정한 걸 보면, 당시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에 응했던 근본 목적도 그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에게 대북 확성기 방송은 북한의 핵무기에 못지않은 파괴력을 가진 고도의 전략 무기다. 냉전 시대에 소련이 멸망했던 것도, 동독이 몰락하고 독일이 통일된 것도 서방 진영의 방송 유입과 인권 개선 압박에 따른 체제 와해가 최대 요인이었다. 우리가 보유한 가장 강력한 대북한 무기이자 협상카드인 확성기 방송을 현 정부 출범 2년이 넘은 이제야 ‘재개 준비’에 착수했다는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만일 우리가 일찌감치 확성기 방송 재개 태세를 갖추었더라면 북한이 지금처럼 제멋대로 미사일 발사와 대남 위협을 장기간 계속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제라도 북한이 미사일 도발과 대남 위협을 할 때마다 그 강도와 빈도에 맞추어 자동적으로 확성기 방송을 실시하는 응징 체제를 구축한다면, 북한은 도발에 앞서 깊이 숙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조선일보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前 외교부 북핵대사

 

06-07 북 오물풍선 응징과 21세기 강군의 길

신범철 前 국방부 차관


어차피 역사 속에 사라질 운명이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의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한, ‘9·19 군사분야 부속합의서’는 물론이고 그 어떤 합의도 그들의 필요에 따라 내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핵 위협에 더해 치졸한 행태를 보이는 북한의 행보를 고려할 때 비정상적인 상황을 방치할 이유는 없다.

군사적 차원에서 ‘9·19 합의’는 그 의미를 상실한 지 오래다. 북한군은 수없이 위반해 왔고, 지난해 11월에는 준수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전략적 차원에서도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개선되는 대외 환경을 활용하며 차원이 다른 대남정책을 전개한다. 우리에 대해 ‘제1의 적대국’이라거나 ‘불변의 주적’으로 부르는 것을 단순한 외교적 수사로 생각한다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핵을 포함한 새로운 무기체계 개발로 뒷받침되는 김정은 대남 군사전략의 요체인 것이다. 이러한 북한의 행보는 남북관계를 고려해 ‘9·19 합의’의 일부 조항만을 정지시킨 지난해 우리 정부의 결정을 무색하게 했다. 늦은 감도 없지 않지만, 전면적 효력 정지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중요한 것은 미래다. 이제부터라도 남북 관계에서 소 잃고 외양간도 못 고친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군사적 차원에서도 북한이 행동으로 담보하지 않는 이상 강군 육성의 길에 족쇄를 채워서는 안 된다. 중장기적인 동아시아 정세의 흐름이 갈등 심화로 가는 상황에서 강군 건설의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크기 때문이다.

이제 ‘9·19 합의’로 인해 제한됐던 훈련이나 감시 정찰의 족쇄를 벗어낸 만큼 군사 역량 강화에 매진해야 한다. 서해 5도 지역에서 K-9 자주포 실사격 훈련 재개를 비롯해 북한의 다양한 도발에 대응할 각종 훈련을 강화하고 취약점을 개선해야 한다. 북한의 도발에는 늘 이유가 있었음을 고려할 때, 최근 자행한 위성항법장치(GPS) 교란이나 오물 풍선에 대해서도 철저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오물 풍선에 다른 위해 물질이 실릴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지자체 등과 대응 단계별 협업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우리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려는 것이 도발의 주목적일 것이기에, 흔들리지 않는 대응 체계가 북한의 의도를 분쇄할 예방책이 될 것이다.

동시에 진정한 강군으로 거듭나기 위해 함께 풀어갈 과제가 산적함을 인식해야 한다. 급변하는 군사 과학기술을 잘 활용하며 인공지능(AI)과 유무인 복합 체계를 활용하는 과학기술군(軍)으로 변신하는 한편, 많은 문제가 산적한 병영 문화, 사기 및 복지 문제, 각급 간부의 역량 강화가 함께 발전돼야 한다. 현 정부 들어 개선에 주력하고 있지만,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고대 유럽을 제패한 로마의 군대는 강한 훈련으로 유명했다. ‘실제로 피를 흘리는가’의 여부가 전쟁인지 훈련인지를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이 됐을 정도로 실전에 버금가는 훈련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제 족쇄가 풀린 만큼 그간 도상으로 준비해 온 다양한 위기 유형별 훈련을 지리적 제한 없이 충분히 수행해야 한다. 여전히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완화나 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지금 강군 건설에 매진하는 것이 남북 관계 개선의 시기를 앞당기는 첩경이 될 것이다.

문화일보

 

06-07 전역장 받은 팬텀

 

지난 5일 열린 미디어데이에 공개된 F-4E 팬텀 전투기 앞에 명예 전역장이 놓여 있다. 대한민국 영공을 55년간 수호해온 F-4 팬텀 퇴역식은 7일 오전 공군 수원기지에서 신원식 국방부 장관 주관하에 개최됐다.
공군 제공

문화일보

 

월간조선 06월 호

●‘김유신함’은 없고, ‘신채호함’ ‘홍범도함’은 있다!

⊙ 한국 보수는 ‘민족사의 로마’ 신라에서 활로를 찾아야!
⊙ 한국 해군은 삼국 통일을 부정하는 무정부주의자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공산주의자의 정신을 이어받겠다는 건가? 홍범도함이 공산군에 어뢰를 쏠 수 있나?
⊙ 김일성 세력과 신채호가 가장 미워하는 사람이 韓民族을 만든 金庾信!
⊙ 한국인 50% 이상이 신라계 姓氏, 김유신 매도는 조상에 침 뱉기

 ▲2021년 9월 28일 진수식을 가진 해군 SLBM 탑재 가능 3000t급 잠수함 신채호함. 사진=해군

 

지난 4월 5일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3000t급 잠수함 ‘신채호(申采浩)함’ 인도식이 있었다. 신채호는 편협한 민족주의적 관점에 사로잡혀 삼국 통일을 사대주의라고 부정하고 민족통일 국가를 만든 1등 공신 김유신(金庾信)을 감정적으로 비방한 사람이다. 《조선상고사》에서 그는 《삼국사기》 등에 적힌 김유신의 전공(戰功)을 거의 허위로 몰고 ‘음험하고 사나운 정치가로서 이웃 나라를 어지럽힌 인물’이라면서 백제 왕실에 대한 성공적인 분열 공작까지도 순진한 민족감정으로 매도했다. 국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무정부주의자 이름을 국군 함정 이름으로 새겨 기릴 수 있나?

민족(nation)이란 개념은 동양에서는 없었고, 19세기 유럽에서 만들어졌다. 일본을 통해서 수입된 ‘민족’(번역 자체가 틀렸다. 국민으로 번역했어야 한다)을 흉기화하여 자주적 통일의 화신(化身) 같은 존재인 김유신을 매도하는 사람을 숭앙하는 것은 조국뿐 아니라 조상에 대한 자기부정이기도 하다. 오늘날 한국인의 원형(原型)은 신라의 삼국 통일에 의하여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육사에 있는 홍범도 흉상. 사진=조선DB

 

2015년 박근혜(朴槿惠) 정부 시절 해군은 새 잠수함에 공산주의자 ‘홍범도(洪範圖)함’이란 이름을 붙였다. 그가 항일(抗日)운동을 한 것은 소련을 위한 일이었지 대한민국의 독립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었다. 공산주의자들의 항일운동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일제(日帝)보다 못한 스탈린식 전체주의를 세우기 위한 것임으로 독립운동이라고 할 수 없다. 육사(陸士)에 설치된 홍범도 흉상 이전도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공산주의자를 기리는 한국 잠수함

남북 간 대결은 민족사의 정통성과 삶의 양식을 놓고 다투는 타협이 절대로 불가능한 총체적 권력투쟁이다. 남북한 사이 다시 전쟁이 터지면 이는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체제대결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공산주의자를 기리는 한국 잠수함은 공산군을 향해 어뢰를 쏠 수 있나? 공산주의자를 매일 경배해온 한국 육군 장교단은? 이런 본질적인 모순점보다 더 충격적인 건 이런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너무나 약하다는 점이다. 특히 보수 세력 안에서.


종족주의 수준의 역사 인식

신채호함과 홍범도함을 배출한 한국 해군은 ‘김유신’을 함정 이름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2015년 《동아일보》 보도를 참고하면 해군은 김유신이 동족(同族)을 상대로 전쟁한 인물이라고 해서 함정 이름에서 제외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의심은 김유신을 매도한 신채호를 함정 이름으로 결정한 데서 역으로 확인된다. 이런 해군이 김유신을 부리고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뒤 당군을 쳐서 이겨 삼국 통일을 완성한 문무대왕(文武大王)은 함정 이름으로 사용한다. 한국 해군엔 최소한의 합리성도 없다는 이야기이다. 합리성은 감성적 존재인 민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 존재인 국가에서 나온다. 이런 점에서 해군의 정신력 수준은 1300년 전 신라 때의 지도층보다 한참 후진적이다. 고대(古代) 국가 형성 이전의 종족주의(種族主義) 정도라고 할까.

삼국 시대엔 ‘한민족(韓民族)’이 없었고 서로 말도 달랐을 것이다. 3김씨, 즉 김유신·김춘추(金春秋)·김법민(金法敏)이 주도한 삼국 통일에 의하여 공통의 말과 정치제도, 종교, 국토를 갖게 됨으로써 한민족 형성의 위대한 시작이 이뤄진 것이다. 신라는 백제를 치기 위하여 당(唐)과 손잡았고, 백제는 신라를 치기 위하여 왜(倭)를 한반도에 끌어들였지만 이는 민족 반역이 아닌 지극히 정상적인 국가의 행동 윤리였다.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를 치기 위하여 프랑스와 손잡은 것을 두고 영국 지식인들이 스코틀랜드 사람들을 민족 반역자라고 욕하면 정신병자 취급을 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신채호와 한국 해군은 왜 하필 민족사 최고 인물 중 한 사람이자 당대(當代)엔 일본과 당에서도 알아주었던 ‘동양의 명장’ 김유신을 이렇게 보는 것일까? 육군사관학교는 ‘화랑대(花郞臺)’로 불리고 김유신은 대표 화랑(풍월주)이었다. 해군은 왜 ‘민족사의 가장 위대한 군인’을 회피하고 공산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를 숭배하는가? 해군사관학교와 육군사관학교는 민족을 지키는 ‘민족사관학교’가 아니라 국가를 지키는 국군사관학교인데도 말이다.


김일성 세력은 김유신의 위대성을 안다

2011년에 출판되어 지금 북한 각급 학교에서 교재로 사용되는 《조선력사인물》은 세 권이다. 100여 명의 역사적 인물들을 흥미 위주로 그린 대중적 역사물이다. 여기서 딱 한 사람 부정적으로 소개된 사람이 있다. 신라 삼국 통일의 주역 김유신이다. 김유신에 대한 기술(記述)은 트집 잡기이자 거의 욕설, 코미디 수준이다. 북한 정권, 그리고 남한의 종족주의자들이 집중적으로 비방하는 두 인물이 바로 이승만(李承晩)과 김유신인 것이다. 그들의 관점에선 박정희보다 이승만이, 문무왕보다 김유신이 더 두려운 것이다. 이승만과 김유신이 자유와 자주를 중심 가치로 한 민족 주체성을 최고 수준에서 구현한 인물임을 북한 노동당 정권이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북한 정권이 가장 미워하는 사람이 가장 위대한 인물이란 원리를 명심하면서 읽어보자(북한식 맞춤법대로).

〈김유신은 화랑으로서 무술 훈련에 힘씀으로써 신라봉건통치배들 속에서 호전적인 무관으로 자라났다. 그리하여 김유신은 그 시기 싸움판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유능한 군인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뒤늦게야 술에서 깨여난 김유신은 제가 단념했던 그 길로 제 말이 찾아갔다고 하여 말에서 뛰여내려 단칼에 그 목을 동강 냈다. 자기의 결심을 뒤흔들리게 하였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애매한 말만 목 잘리운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때도 김유신의 생각은 기생 천관에게로 가 있었으니 목치는 놀음은 결국 제 뺨을 친 짓이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들의 눈엔 개과천선(改過遷善)도 악이다.

〈김유신은 저들의 령토 확장 야망을 실현하기 위하여 당나라 세력까지 끌어들이는 매국 행위를 감행함으로써 이미 고구려에 의하여 마감 단계에 이르렀던 삼국 통일의 위업을 좌절시키는 죄악을 범하였다.〉
-소련과 중공을 끌어들여 동족을 친 전범(戰犯) 집단이 할 말은 아니다.

〈그러나 당나라의 내속은 신라를 도와주자는 것이 아니였다. 당나라 통치배들은 고구려, 백제를 무너뜨린 다음 신라마저 타고 앉으려는 것이였다. 이렇게 김유신은 외세를 끌어들이는 천추에 용서 못 할 큰 죄를 범하였다.〉


-그런 당을 상대로 9년간 결전을 벌인 끝에 세계 최강의 당군(唐軍)을 추방하고 한반도를 민족의 보금자리로 만든 신라의 위대한 민족독립 투쟁은 빼버렸다.

〈고구려 땅에 발을 들여놓자 신라의 군사들은 동족의 나라를 밟아선 가책으로 몸을 떨었다. 그러나 김유신은 기고만장하여 웨쳐 댔다. “이만한 일이 두려워서야 어찌 신라의 군사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힘을 내라. 나라의 운명이 우리들에게 달려 있지 않느냐!”〉


-김유신이 국가가 민족보다 우월한 존재임을 선언했다는 뜻인데 이야말로 신라 지도부의 합리성이고 근대성이다. 북한식 논리대로라면 국군이 인천상륙작전 성공 후 북진한 것도 동족을 친 배신이 된다.


가짜 同族論에 넘어간 한국군

 ▲김유신

 

〈신라의 문무왕은 어전회의를 열고 열을 올렸다. “오늘 우리가 이긴 것은 오로지 대각간 김유신 장군의 공이요. 이제 나는 그 공을 치하하여 김유신 장군에게 태대각간의 벼슬을 내리려 하오.” 이렇게 김유신은 고구려를 무너뜨린 ‘공로’로 태대각간이라는 가장 높은 등급의 벼슬을 받았으며 죽은 후인 흥덕왕 때(826~836년)에는 ‘흥무대왕’이라는 칭호까지 받았다. 이와 같이 김유신을 비롯한 신라 통치배들의 사대주의적이며 배족적인 외세 의존 정책에 의하여 당나라 침략군은 대동강 이북의 광대한 령토를 일시 차지하게 되였다.〉


-김유신은 한국 역사상 왕이 아닌 사람으로서 살아서도 죽어서도 가장 높은 직위에 올랐다는 이야기이다. 그는 수십 년간 병권(兵權)을 잡고 네 왕을 모셨지만 왕들은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 또한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오직 통일 대업에 몰두, 통일신라-고려-조선-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민족사적 정통성의 주류를 열었다. 신라가 확보한 국토는 그 흐름 속에서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압록강·두만강에 이르게 된 것이다.

〈김유신은 673년 7월 죄악에 찬 한생을 마치였다. 종래의 봉건 사가들과 사대주의 사가들은 신라에 의하여 삼국이 통일되였다고 보는 데로부터 김유신을 삼국 시기의 ‘큰 인물’로, 삼국 통일에 이바지한 ‘인물’로 내세웠다. 그러나 력사적 사실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김유신을 비롯한 신라 집권자들은 시종일관 령토 확장 야망으로부터 제힘으로는 강대한 고구려를 누를 수 없고 또 백제를 먹을 수 없게 되자 당나라를 끌어들여 동족 간의 정복전쟁을 벌려놓았으며 광대한 조상의 땅을 당나라에 섬겨 바치는 큰 죄를 저질렀다. 하여 공정한 력사는 김유신을 치졸한 사대주의의 시조로, 민족반역자로 락인하고 있다.〉


-신라, 백제, 고구려 사이엔, 특히 집권 세력 사이엔 ‘우리가 남이가’ 식의 민족의식이 없었다. 말도 서로 제대로 통하지 않았을 것이다. 적을 치기 위하여 다른 나라와 동맹하는 것을 동족에 대한 배신이라고 비방하는 건 유아적(幼兒的) 발상이고, 민족사의 가장 위대한 업적을 회칠하려는 자기부정이다.


한때 신라의 삼국 통일을 높게 평가했던 북한이 이렇게 표변한 것은 역사전쟁에서 대한민국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신라의 삼국 통일을 부정하고 고구려-발해 중심으로 정통성을 조작해야 한다는 전략적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민족사의 지류인 발해를 통일신라와 동급으로 왜곡하는 것은, 민족사의 이단인 북한 정권을 대한민국과 동급으로 치켜세우는 것과 똑같은 사실(史實) 부정인데 이런 역사전쟁 프레임의 함정에 한국군이 빠졌음을 보여주는 것이 ‘신채호함’이고 ‘홍범도함’이다.


조지 워싱턴이 친영파인가?

김유신이나 삼국 통일을 부정하는 것은 영국 사람들이 1066년 잉글랜드를 정복, 대영제국의 토대를 만든 노르만공(公) 윌리엄을 매도하는 것이나 미국인이 영국군 장교 출신이라고 워싱턴 장군을 친영파(親英派)라고 욕하는 것과 같다. 물론 이런 사람들은 그 나라엔 없다.

한국인이 신라의 삼국 통일과 김유신을 부정하는 것은 민족사의 가장 영광된 스토리를 말살하여 스스로를 난쟁이, 비겁자로 만드는 반(反)교육적 행태이기도 하다. 역사적 사건과 인물은 영감(靈感), 상상력, 용기, 비전을 후손들에게 선물한다. 역사는 인간과 조직의 수준을 높이는 정신적 자산이 된다. 소년 때 이순신, 나폴레옹 전기(傳記)를 읽고 감동했던 박정희(朴正熙)가 두 위인을 닮은 사람이 되어 인류 공영에 이바지한 사례가 역사의 힘을 보여준다.

작년 봄, 윤석열(尹錫悅) 대통령이 대만 문제를 무력(武力)으로 해결하는 데 반대한다는 뜻을 밝히자 중국 정부는 ‘주둥이 닥쳐’라고 했다. 불용치훼(不容置喙). 이럴 때 김유신을 아는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물을 것이다. 자주(自主)의 화신(化身) 김유신이라면 뭐라고 반박했을까? 아마도 ‘물어!(咬之·교지)’라고 했을 것이다.


‘주인이 개의 다리를 밟으면 물어야’

서기 660년 신라 태종무열왕 시절, 황산벌 싸움에서 백제 결사대를 무찌른 김유신의 신라군은 먼저 온 당군(唐軍)과 합류하기 위하여 당의 진영에 이르렀다. 당장 소정방(唐將 蘇定方)은 신라군이 늦게 왔다고 신라 장수 김문영의 목을 베려 했다. 김유신이 격분, 여러 사람 앞에서 이야기한다. -《삼국사기 신라본기(三國史記 新羅本紀)》

“대장군이 황산의 싸움을 보지 못하고 늦게 왔다고 죄를 주려는 것인데, 나는 결코 죄 없이 욕을 당할 순 없다. 반드시 먼저 당군과 싸워 결판을 지은 다음 백제를 부수겠다.”

《삼국사기》 태종무열왕조(太宗武烈王條)는 당시 김유신을 이렇게 묘사했다.

〈김유신이 군문(軍門)에서 도끼를 잡자 성난 머리털은 꼿꼿이 서고 허리에 찬 보검은 저절로 칼집에서 빠져나왔다.〉

이를 본 소정방의 부장(副將)이 겁을 먹고 발을 구르며 말하기를 ‘신라 군사가 장차 변하려 합니다’고 하니 소정방은 김문영의 죄를 묻어주었다.

《삼국사기》 열전(列傳) 김유신전(傳)에는 그 뒤의 일을 이렇게 적었다.

〈당나라 사람이 백제를 멸한 뒤 사비의 언덕에 군영(軍營)을 만들어 신라 침략을 음모하였다. 무열왕이 알고 여러 신하를 불러 계책을 물었다. 다미공이 나아가 말하기를 “우리 백성을 거짓 백제의 사람으로 만들어 그 의복을 입히고 도둑질을 하려는 것처럼 하면 당의 사람들이 반드시 공격할 것이니 그때 더불어 싸우면 뜻을 얻을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김유신이 말하기를 “그 말도 취할 만하니 따르십시오”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당나라 군사가 우리의 적을 멸해주었는데 도리어 함께 싸운다면 하늘이 우리를 도와주겠나”.

김유신이 말하기를 “개는 그 주인을 두려워하지만 주인이 그 다리를 밟으면 무는 법입니다. 어찌 어려움을 당했는데 자신을 구원하지 않겠습니까. 청컨대 대왕께서는 허락하여 주십시오”라고 했다.

당의 첩자는 신라가 대비하고 있음을 알고 백제 왕, 신료 93명, 군사 2만 명을 사로잡아 돌아갔다. 소정방이 포로를 바치니 당의 고종(高宗)은 위로한 뒤 “어찌 신라마저 치지 않았는가”라고 물었다. 소정방은 이렇게 말했다.

“신라는 그 임금이 어질고 백성을 사랑하며 그 신하가 충성으로 나라를 섬기고, 아랫사람은 윗사람 섬기기를 부형(父兄) 섬기듯 하니 비록 작지만 도모할 수가 없었습니다.”〉

당의 대표 명장이 신라에 바친 최고의 찬사라 할 만하다.


신라 사람들의 합리성과 신채호의 혼돈

“개는 그 주인을 두려워하지만 주인이 그 다리를 밟으면 무는 법입니다. 어찌 어려움을 당했는데 자신을 구원하지 않겠습니까(犬畏其主 而主踏其脚則咬之, 豈可遇難而不自救乎)”는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상대로 하여 자주를 지키는 정신을 실감 나게 표현한 명문(名文)이다. 특히 ‘자구(自救)’라는 단어가 흥미롭다.

‘신하가 충성으로 나라를 섬기고’라는 표현도 남다르다. 신라의 신하가 섬기는 대상은 임금보다 상위 개념인 나라(國)다. 요사이 문법으로 말한다면 정권이 아닌 헌법에 대한 충성이다. 7세기 신라 지도층의 합리적(근대적) 국가관을 엿볼 수 있다. 신채호의 정리되지 않은 민족관은 국가의 존재 이유에 대한 무지(無知)에서 나온 것이고 신라 지도층의 합리성은 전쟁을 통하여 국가의 소중함을 실감한 덕분일 것이다.

‘신라는 그 임금이 어질고 백성을 사랑하며’란 소정방의 표현은 아래와 같이 실증(實證)된다.

문무왕(文武王) 8년(서기 668년) 11월 5일, 왕은 멸망시킨 고구려의 포로 7000명을 이끌고 경주로 돌아왔다. 그는 신하들을 데리고 선조의 묘를 배알, ‘백제와 고구려의 죄를 물어 국운(國運)이 태평하게 되었다’고 신고하였다. 이듬해 왕은 죄인들에게 사면령을 내렸다. 《삼국사기》 문무왕조(條)에 적힌 그 요지는 감동적이다.

〈지금 두 적(敵)이 평정되어 사방이 안정되었다. 적을 무찌를 때 공을 세운 자들에게는 이미 상을 다 주었다. 전사(戰死)한 혼령들에게도 명예를 추증하였다. 그러나 감옥의 죄수들은 아직 은혜를 입지 못하고 고통을 받고 있다. 이를 생각할 때 나는 먹고 잘 수가 없다. 국내의 죄수들에게 특사령을 내리니 오늘 미명(未明) 이전에 오역(五逆·임금, 아버지, 어머니, 조부, 조모를 죽이는 것)과 사죄(死罪)를 범하지 않은 자로서 갇혀 있는 자는 범죄의 대소를 불문 다 놓아줘라. 죄를 범하여 관직을 박탈당한 자는 다 복구시키고, 도적질한 자는 석방하되 도적질한 것을 갚을 능력이 없으면 징수를 면한다. 집안이 가난하여 남의 곡식을 취하여 먹은 자로서 농작이 부실한 곳에 사는 자는 갚지 않아도 된다. 농작이 잘되는 곳에 사는 자는 올해 추수 때 취한 본곡(本穀)만 갚고 이자는 물지 않아도 된다.〉


신채호는 왜 對唐 결전 부분은 쓰지 않았나?

 ▲《조선상고사》를 지은 신채호.

 

신채호가 《조선일보》에 연재한 《조선상고사》는 백제의 처절한 부흥운동을 영웅적으로 소개하는 것으로 끝난다. 왜 여기서 끝냈을까? 신라가 당과 손잡고 백제, 고구려를 멸망시킨 뒤 신라마저 먹으려는 당을 상대로 9년 동안 벌인 처절한 나당(羅唐) 전쟁 이야기를 하면 신라가 사대주의적으로 통일한 것이 아님을 만천하에 알리게 되기 때문에, 즉 자신의 신라 비판 논거가 일거에 날아가니까 상고사의 대단원이 되는 가장 감동적인 이 줄거리를 생략한 것인가?

신라가 최전성기의 세계 최대 강국 힘을 빌려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켰지만 그 뒤 당이 고구려·백제 땅을 차지해버리고 내친김에 신라마저 속국으로 만들려고 하니 668~676년 사이 벌인 대당(對唐) 결전은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영웅적 전쟁이었다. 서기전 480년 스파르타왕 레오니다스가 300명의 용사들을 이끌고 페르시아의 대군을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막아내고 전멸한 사건에 감동하는 한국인들은 더 감동적인 대당 결전의 전개 과정을 잘 모른다. 그러니 신라가 세계 최강 대국에 기적적으로 이겨 한반도를 통일했으며 한반도가 안정되니 약 3세기에 걸쳐 동양에 평화가 도래하여 고대사의 황금기가 열리고 당시의 신라는 세계화된 개방적 국가가 되어 명실공히 세계 일류가 되었음을 알 턱이 없다. 스파르타 용사들의 패전(敗戰)엔 감동하면서 신라의 승전(勝戰)엔 침 뱉는 국민들을 만드는 데 영향을 끼친 사람이 신채호이고, 한국 해군은 그의 김유신 말살 정신을 이어받자고 함정에까지 이름을 붙여준 것이 아닌가? 해명이 필요한 부분이다.


민족의 決定

 ▲신라의 삼국 통일을 ‘민족의 결정’이라고 긍정한 손진태.

 

신라의 삼국 통일을 ‘민족의 결정’이라고 긍정한 학자는 손진태(孫晉泰)이다. 그는 해방 직후 펴낸 《한국민족사개론》에서 신채호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학문적 깊이를 보여준다. 나당 전쟁의 의미를 이렇게 썼다.

〈신라는 당과 연맹, 백제·고구려를 정복했으나 대동강~원산 이남의 반도를 통일한 것은 676년경이었으니 통일 대업 완성을 위하여 16년간 당군(唐軍)과 투쟁하는 고난을 겪었다. 당은 백제·고구려를 전복한 뒤 그 점령지를 모조리 자기의 소유로 하였다. 신라도 당이 속령시(屬領視)하여 경주에 계림도독부라는 것을 두고 문무왕을 그 도독에 임명하였다. 이에 순종하는 것은 신라의 통일 이상(理想)의 유린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신라는 연개소문식 경동(輕動)을 경계하고 은인자중하여 외유내강 당을 대하여 외교적으로는 공순(恭順)을 표하면서도 당·거란·말갈의 연합군과 8년간 50여 차례 싸워 실력으로 반도 내의 당병(唐兵)을 점차적으로 구축(驅逐)하여 676년경 대동강 및 원산 이남의 반도를 완전히 점령하였다. 이 압박에 놀란 당은 안동도호부를 평양에서 요동으로 이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라의 통일에 의하여 조선의 민족은 결정되었던 것이니 고구려 땅 만주의 토지와 주민은 조선 민족 계열로부터 점점 이탈하여 후세의 만주 민족과 조선 민족은 별개가 되었다. 조선 민족은 고려조와 이조 초기 세종조까지 서북과 동북으로 점점 영토와 인민을 획득하여 현재의 국경선을 이루게 되고 약간의 몽고 민족과 여진 민족을 포섭, 동화하여 그들을 조선 민족화하였다. 이리하여 이조 말년까지 약 1000만의 인구를 가졌던 것이다.〉


김유신이나 《삼국사기》를 읽어야 하는 이유

나당 전쟁의 전개 과정은 《삼국사기》 문무왕조에 실려 있는 〈답설인귀서(答薛仁貴書)〉에 한 편의 르포 기사처럼 묘사되어 있다. 요사이 기자가 쓴 것 같은 박진감과 처절함을 주는 이 글을 나는 민족사 최고의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이 편지의 필자가 문무왕이란 점에서 글의 무게가 다르다. 현장감과 함께 김유신, 문무왕의 인격이 생동한다. 한국 해군 지휘부에서는 《난중일기》와 이순신(李舜臣)은 읽겠지만 김유신이나 《삼국사기》를 읽는 이들은 드물 것이다. 한국인으로 태어나, 민족사 2000년 중 1000년 역사를 기록한 정사(正史)를 읽지 않는 것은 구약(舊約)을 읽지 않고 기독교인 행세를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신라인의 혼(魂)과 감성(感性)을 문학적으로 가장 깊게 파고든 두 분은 시인 서정주(徐廷柱)와 시조시인 김상옥(金相沃)일 것이다. 두 사람은 신라(新羅) 정신을 민족혼의 저수지로 보았다. 현실의 밭에서 물이 마르면 이 상상(想像)의 저수지에서 민족혼의 물을 퍼내어 한국인들의 찌든 영혼을 적심으로써 고난을 극복하고 더 높게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한 분들이다.

지금 내가 김유신을 이야기하는 이유도 지난 총선으로 무너진 한국 보수의 정신을 재건하는 한 방도가 신라 정신이 아닐까 해서다. 유럽의 르네상스가, 중세 기독교 문제의 해결책을 그리스-로마 정신에서 찾으려 한 것처럼 노예근성에서 헤어나지 못한 한국 보수의 정신적 쇄신은 ‘한국사의 로마’인 신라의 정신에서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김일성 세력과의 역사전쟁에서도 대한민국 지키기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신라 지키기이다. 최초의 민족통일국가인 신라가 최초의 국민국가인 대한민국과 이어진다는 점을 간파한 김일성 세력은 당초의 신라 예찬론을 버리고 신라 죽이기로 표변하였다. 민족사의 패배 세력인 고구려와 지류인 발해와 이단인 북한 정권을 앞세워 신라와 대한민국을 같이 공격하니 우리는 신라에 도움을 청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서정주의 신라 정신

 ▲신라 정신’을 탐구했던 시인 서정주. 사진=조선DB

 

서정주 선생은 6·25의 참화 속에서 신라 정신을 캐내 자신의 시(詩) 세계로 만들고 그것을 평생 붙들고 간 분이다. 1995년 《월간조선》과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1951년부터 53년까지가 내게 있어 신라 정신의 잉태기였지. 6·25 전쟁 중 극심한 절망감 속에서 나는 ‘국난(國難)이 닥쳤을 때 우리 옛 어른들 가운데 그래도 제정신 차려 살던 이들은 난국을 무슨 슬기와 용기와 실천력으로 헤쳐왔던가?’ 하는 것을 절실히 알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마음속으로 더듬거려 보던 끝에 신라 정신과 구체적으로 만나게 된 것이야.”

그가 말하는 신라 정신의 요체는 ‘멀리 보고 한정 없이 언제까지나 끝없이 가려는 영원성’이다.

“인생행로를 제한받고 또 스스로도 제한하며 얼마만큼만 가고 말려는 한정된 단거리주의가 아니라 한정 없이 언제까지나 끝없이 가고 또 가려는 저 무원부지(無遠不至)주의. 신라인들에게서 우린 그걸 배워야 해. 그러면 불안과 불신과 반감과 충돌 따위를 훨씬 줄일 수 있겠지.”


“민중에 아첨해도 곤란”

 ▲태종무열왕비의 돌거북. 사진=퍼블릭 도메인

 

“이 천지(天地)에 대한 주인의식이 신라인들에게 작용해 통일로 이끌어간 거지. 하늘과 땅을 맡아 생활하는 주인으로서의 강한 책임 의식. 이 점이 조선 시대 유교가 우리 민족에게 약자(弱者)의 팔자와 분수에 다소곳할 걸 가르쳐서 망국(亡國)의 길로 유도한 것과 전혀 다른 점이지. 각 개인의 값이나 민족의 가치는 에누리당하자면 한정이 없고, 에누리만 해나가다가는 민족의 장래가 정말 암담할 수밖에 없는 거야. 나와 내 민족의 존엄성은 스스로 지킬 줄 알아야지. 하늘과 땅과 역사의 주인 된 자로서 말이네.”

“민중을 억압하고 무시해서도 안 되지만 민중에게 아첨하고 추파를 던지는 것도 곤란해. 진심으로 민중과 일치하고 화합하려는 정신, 그게 중요하지. 신라에는 여러 훌륭한 어른이 많지만 본받을 만한 인물을 한 분만 꼽으라면 나로선 김유신 장군을 들겠어. 김유신 장군을 배워라! 고난을 앞장서서 짊어진 모습을…”

신라 정신에 매료되었던 시조시인 김상옥은 《詩와 陶磁》란 산문집에서 이렇게 썼다.

〈서양 사람의 종(鍾)은, 시간을 알리고 집회를 통고하는 하나의 연모에 지나지 않는다. 동양의 그것은 북과 함께 풍류를 주(奏)하는 중요한 악기다. 더구나, 신라의 에밀레종을 보면, 그 명(銘)에 일렀으되 원공신체(圓空神體)라 했다. 즉 ‘둥글고 빈 것은 신의 몸’이라 풀이할지니, 차라리 종을 악기라 하기보다 신으로 보았음이 분명하다. 이렇게 신을 찾고 신을 대하는 마음으로 종을 주조(鑄造)했던지라, 그 보상화문(寶相華文) 속에서 울려 나오는 전설(傳說) 같은 신비한 음색(音色). 에밀레, 에밀레… 어찌 아기의 원혼(怨魂)이 울어 그 어미를 부른다 하리. 오직 예술에 순교(殉敎)하는 신라 정신을 다시 윤색(潤色)하여 불멸의 말씀으로 새겼음이니, 이 아니 묘(妙)한가.〉

조각가 권진규는 ‘신라(조각)는 위대하고 고려는 정지되었으며 조선은 형식화되었다’는 평을 남겼다. 신라 정신을 형상화한 태종무열왕릉의 용맹한 돌거북과 조선조 왕들이 묻힌 동구릉(東九陵)의 움츠러든 돌거북을 비교하면 안다. 신라의 개방적 자주성이 6~8세기에 등장한 수많은 영웅 이야기와 예술품과 건축물을 통하여 장엄한 미학(美學)으로 형상화되어 있는 것은 다행이다. 다만 이를 느낄 수 있는 교양과 감수성이 있는가이다. 특히 국가 지도층이!


한국인의 原型

 ▲이종욱 전 서강대 총장과 그가 지은 《김유신》.

 

이종욱(李鍾旭) 서강대학교 전 총장(사학과 교수)이 2년 전에 쓴 《김유신》(지식산업사)은 평생을 신라사 연구에 바친 원로학자의 노작(勞作)이다. 그는 서문에서 “꿈을 꾸는 사람이 있어야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있다. 신라에는 역사를 만들 거대한 꿈을 꾸고 한평생 목숨 걸고 노력하여 그 꿈을 이룬 사람이 있었다. 이 책에서 다루는 김유신이 바로 그 주인공”이라고 했다.

그의 꿈은 통일 대업인데 그 자신만이 아니라 나아가 신라사 그리고 한국사의 방향을 정하고 현재 한국·한국인을 만들어낸 웅대한 꿈이었다. 한국 역사에서 이 같은 거창한 꿈을 품었던 사람은 김유신이 유일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김유신이 삼국 통일을 통하여 한국인의 원형을 만들었고 우리 한민족은 그 틀 안에서 살고 있으며 따라서 김유신과 삼국 통일을 부정하는 것은 역사와 현실의 부정이요 조상 부정이란 것이다.

그는 “1945년 해방 뒤 제대로 된 한국사 개설서 한 권 없던 상황에서 한국인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불러오고자 한국사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과정에 한국사 연구자들이 신라의 삼한(三韓) 통합에 관한 역사를 왜곡했다”고 비판한다. 그들은 고구려가 민족 통일을 성취하지 못하고 신라가 민족과 영토를 반으로 나누어 통일한 것이 민족의 커다란 불행이라거나, 김춘추가 당나라에 가서 청병(請兵)한 것을 사대사상에 사로잡혀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으면 한국사는 반대 방향으로 갔을지 모른다는 주장도 했다.

〈그들은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으면, 신라인을 시조로 하는 종성(宗姓)과 육부성(六部姓)을 가진 한국인은 그때 사라졌고, 그 나라에는 고구려인을 시조로 하는 성을 가진 씨족이 다수였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신라 오리진의 한국인 스스로 자신의 조상인 신라인을 폄훼하고 사라진 남의 조상을 높이 받드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역사를 만드는 과정에 김춘추와 김유신을 반(反)민족적인 행위를 한 을사오적과 같은 인물이라는 역사를 만들어낸 것이다.〉


신라계 姓氏가 54%

김유신 자신은 신라 최고의 관직을 차지했고, 세상을 떠난 뒤에는 성신(聖臣), 성인(聖人)으로 불렸으며 흥무대왕으로 추봉되는 등, 아름다운 이름을 얻었다. 그가 왕으로 세웠던 태종무열왕과 그 아들 문무왕은 삼한 통합을 이룬 왕이 되는, 엄청난 역사를 만들었다. 김유신의 자손들은 신라 시대에 대를 이어 복을 받고 관직을 차지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고려·조선을 거쳐 지금도 김유신을 중시조로 하는 본관을 가진 씨족이 번성해 있다. 김해 김씨는 1985년 조사에서 한국인 전체 4042만 명 가운데 377만 명으로 9.3%에 해당했다.

1985년 실시한 인구 및 주택 센서스 결과 한국인의 275개 성(姓) 가운데 5대 성인 김(金)씨는 879만 명(이 가운데 김유신을 중시조로 하는 김해 김씨도 있다), 이(李)씨 599만 명, 박(朴)씨 344만 명, 최(崔)씨 191만 명, 정(鄭)씨 178만 명으로 이들을 합하면 2190만 명이다. 이는 당시 한국인의 54%에 달한다. 저자는 “물론 이 통계 수치를 그대로 믿자는 것이 아니지만 현재 신라인을 시조로 한다고 자처하는 한국인들이 다수인 것은 사실이고 이 같은 통계에 역사적 사실이 들어 있다고 본다”고 했다.

〈이는 신라가 삼한 통합을 했기 때문이다. 김유신 스스로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김유신의 꿈이었던 신라의 삼한 통합은 그 뒤 한국사의 주인공을 신라인의 후손으로 만들었다. 만일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지금 그 나라 사람들 가운데 신라인을 시조로 하는 성을 가진 씨족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저자는 냉혹하게 현실론을 전개한다.

〈정복자의 권리 행사에는 피정복자들을 노비로 삼는 일과 피정복자들의 재물 약탈을 생각할 수 있다. 여기서는 다른 문제들을 생각해본다. 정복한 지역에 대한 신라의 지배 정책은 어떤 것이었을까? 신라의 정복자 권리 행사는 피정복 세력인 고구려와 백제 사람들을 신라인으로 만드는 일부터 시작되었음이 틀림없다. 우선 신라는 피정복국·피정복민들에 대한 정체성 말살을 시도했다고 본다. 백제와 고구려의 건국 신화를 인정하지 않고, 두 나라 왕실의 제사를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 그 하나다.〉


김유신 앞에서 머리를 들 수가 없다!

백제나 고구려의 정치조직 자체가 사라졌고, 사회체제도 유지할 수 없었으며 두 나라의 문화도 기본적으로 유지할 수 없었다. 흔히 신라가 백제나 고구려의 문화를 받아들여 민족 문화를 발전시켰다고 하지만 저자는 그렇게 보는 것을 망설여왔다고 했다. 무엇이 주(主)가 되고 무엇이 종(從)이 되었는가를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백제나 고구려의 문화는 신라에서 소멸하는 과정을 겪었기에 대신라(大新羅)의 중심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없었다. 신라인들은 백제나 고구려의 문화를 지켜야 할 의무가 없었던 것이다.

다만 신라가 피정복 세력인 백제계와 고구려계 사람들을 신라인으로 편입하는 일은 다른 종족(種族) 사람들의 경우보다 쉬웠을 것이라고 했다. 저자(著者)는 그들 백제계와 고구려계 사람들이 대신라에서 신라인으로 자리 잡았기에 고려나 조선, 그리고 현재는 그들의 흔적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면서 “신라의 삼한 통합으로 이루어진 ‘통일신라는 민족의 용광로로서의 역사적 과업을 수행하면서 한국사를 한 차원 높여주는 계기였던 것이다’라는 주장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

한국인들이 지금 중국 말을 쓰지 않고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살고 있는 것은 668~676년 사이 문무왕·김유신·김인문 등 신라 지휘부가 당의 지배를 거부하는 결전에서 이긴 덕분이다. 이럼에도 한국 해군은 이 위대한 전쟁의 승장(勝將)으로서 한민족 형성의 기초를 놓은 김유신을 잊고 그를 민족반역자로 모함한 신채호와 스탈린의 소련에 충성한 공산주의자 홍범도 이름을 잠수함에 새겨 길이길이 기억하겠다 하고 있다. 이런 일이 이른바 보수 정권하에서 일어났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보수는 있지만 보수 정권과 보수 세력은 없어졌다고 봐야 한다. 김유신 앞에서 머리를 들 수가 없다.


조선 성리학부터 신라-김유신 푸대접

자주성과 상무정신을 잃지 않았던 고려 시대엔 땔나무 하는 아이들과 소 먹이는 총각도 김유신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삼국사기》). 사대적 명분론이 강한 주자학을 통치 이데올로기로 수용한 조선조에 들어와서 신라와 김유신은 푸대접을 당했다. 조선의 유생(儒生)들은 김유신이 감히 부모 나라인 당에 저항했다고 분개했을 것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주자학의 위선적 명분론을 이어받은 좌익 사조(思潮) 속에서 김유신과 신라는 계속 학대를 당하고 있다. 신라의 부활이라고 볼 수 있는 대한민국의 역사는 70여 년인데 조선조와 좌익을 합치면 약 600년이라 역사전쟁에서 불리하다. 신라 1000년을 대한민국에 더해야 민족사의 정통성을 이어가는 주류(主流)로서 보수 세력은 이단(異端) 세력을 꺾고 역사를 이끌 수 있을 것이다. ‘민족사의 로마’ 신라를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글 : 조갑제 조갑제닷컴·TV 대표

 

06.10 대북 확성기 재개, 어떤 北 도발에도 대비해야

▲정부가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결정한 9일 경기도 파주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북한군 초소에서 북한군 병사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의 오물 풍선 도발에 맞서 대통령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6년 만에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결정했다. 북한이 8일 밤부터 또 오물 풍선 살포에 나서자 사전 경고한 대로 대응에 나선 것이다.

 

북한은 오물 풍선뿐 아니라 군사위성 발사와 GPS 교란, 탄도미사일 무더기 발사 등으로 도발 수위를 높이고 있다. 탈북민 단체의 대북 전단 발송을 문제 삼고 있지만 전단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늘 그랬듯 한반도 긴장을 조성하려는 구실일 것이다. 국민 불안을 고조시키고 그 책임을 현 정부에 돌려 ‘남남 갈등’을 유발하려는 의도다. 벌써 정치권 일각에선 ‘북이 무력 도발하면 정부 책임’이란 식으로 화살을 우리 쪽으로 돌리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풍선 도발은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생화학 무기가 떨어질 수 있다는 최악 상황까지 대비해야 한다.

 

확성기 방송에 북한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2015년 목함 지뢰 도발 당시 우리가 방송을 재개하자 북은 ‘확성기를 타격하겠다’며 포격 도발을 감행해 우리 군이 포격으로 맞서기도 했다. ‘준전시 태세’까지 선포됐다. 당시 북은 며칠 못 버티고 고위급 회담을 먼저 제안해 이례적으로 지뢰 도발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김정은은 작년 말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인 교전국 관계’로 규정했다. 남북 연결 철도·도로에 지뢰까지 매설했다. 최악 경제난으로 김씨 왕조의 체제 결속력도 예전 같지 않다. 어떤 불장난을 할지 모른다.

 

그런 와중에 경기도 최전방의 서울 길목을 지키는 육군 1사단장이 지난 1일 오물 풍선 살포 때 음주 회식을 하느라 작전 지휘 현장을 벗어난 사실이 드러났다. 북 도발이 예고돼 대비 태세 강화 지시가 떨어진 상황에서 지휘소를 떠나 술을 마셨다니 군기가 무너졌다. 확성기 방송을 재개한 만큼 북한 도발은 상수(常數)로 봐야 한다. 휴전선이나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에서 군사 도발을 벌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군은 철저한 군사적 대비책을 마련하고 긴장 관리에 한 치 빈틈도 없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6.10 70만 북한군 상대 '심리전'… 개성 인근 서부전선에 확성기 집중 배치

6년 만에 대북 확성기 재개

 ▲지난주 국군 심리전단 병력이 대북 방송 실시를 대비한 ‘자유의 메아리 훈련’ 도중 기동형 확성기 장비를 점검하는 모습. /합동참모본부

 

9일 최전방 지역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을 튼 것은 2018년 이후 6년 만이다. 북한이 최근 이날 밤까지 총 네 차례에 걸쳐 대남 오물 풍선을 무더기 살포하자 우리 정부가 맞대응으로 강력한 대북 심리전 카드를 다시 꺼낸 것이다.

 

군은 지난주에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위한 ‘자유의 메아리’ 훈련을 진행한 데 이어 이날 오후 공식적으로 방송을 실시했다. 합참은 “방송 추가 실시 여부는 전적으로 오물 풍선 살포 중단 등 북한의 행동에 달려 있다”고 했는데, 방송 직후인 9일 밤 북한이 추가로 오물 풍선을 띄운 만큼 대북 확성기 방송은 당분간 지속할 가능성이 커졌다.

 ▲그래픽=양진경

 

군은 고정식 대북 확성기 24개와, 확성기를 차량에 얹은 형태인 이동식 대북 확성기 16개를 투입할 수 있다. 이날은 고정식 확성기 위주로 일부 전력만 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은 확성기를 주로 서부 전선 일대에 집중 배치했다고 한다. 인구밀도가 낮은 동부 전선보다 개성 등에 직접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서부 전선에서 확성기 방송 효과가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고출력 스피커를 이용한 대북 확성기 방송은 장비와 시간대에 따라 청취 거리가 10∼30㎞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북한의 오물 풍선에 담긴 내용물이 치명적이지는 않더라도 국민에게 미치는 심리적 타격이 있을 수 있어 당연히 강력한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며 “평화는 돈으로 구걸하는 게 아니라 힘을 통해서 쟁취하는 것”이라고 했다.

 

앞서 정부는 북한이 군사위성 발사와 오물 풍선 살포, GPS 교란, 탄도미사일 발사 등 복합 도발을 이어가자 “감내하기 어려운 조처를 할 것”이라며 확성기 방송 재개를 예고했고, 지난 4일 9·19 군사 합의 전부 효력 정지를 결정하면서 확성기 방송 재개와 군사분계선 인근 훈련 등을 가능하게 했다. 우리 군의 능력을 제한해 온 족쇄를 푼 것이다.

 

 ▲잠실대교에 北 오물 풍선… 軍, 최전방 대북 방송 가동 - 9일 서울 한강 잠실대교 인근에 대남 오물 풍선이 표류하고 있다(왼쪽). 우리 군은 이날 오후 최전방 지역에서 고정식 확성기를 가동해 대북 방송을 재개했다. 오른쪽 사진은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 설치된 대북 확성기 관련 군사 시설물. /합동참모본부·뉴시스

 

정부는 이날 확성기 방송 재개 방침을 알리며 “앞으로 남북 간 긴장 고조의 책임은 전적으로 북한 측에 달려 있을 것임을 분명히 한다”고 했는데, 북한의 추가 도발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2015년 우리 군이 북한의 목함 지뢰 도발 이후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자 확성기를 향해 고사포와 직사 화기를 동원해 조준 사격 도발을 감행했다. 북한은 이번에도 확성기 방송을 막기 위해 물리적 공격에 나설 수 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이날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를 주관하고 “대북 방송 실시에 만전을 기하고, 이를 빌미로 적이 도발 시 ‘즉강끝(즉시, 강력히, 끝까지)’ 원칙에 따라 단호히 응징하라”고 했다. 군 당국은 이달 중 재개할 방침인 서북 도서와 군사분계선 일대 등 남북 접경 지역 내 훈련 준비도 서두를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6년 만에 다시 꺼낸 대북 확성기는 1963년부터 활용된 대표적인 대북 심리전 수단이다. 방송은 인기 K팝 등 한류 관련이나 김정은 체제의 실상을 북한 주민들에게 적나라하게 알리는 내용으로 주로 구성된다. 일각에서는 “고작 확성기 방송 트는 게 무슨 효과가 있냐”는 비판을 하지만, 북한 정권은 주민들의 내부 동요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확성기 방송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북한은 2015년 우리 군의 확성기 방송 중단을 끌어내고자 남북 고위급 회담을 먼저 제의했고, 2018년 4월 ‘판문점 선언’에서도 확성기 방송 중단을 핵심 내용으로 집어넣었다. 탈북 외교관 출신인 태영호 전 의원은 “휴전선 30㎞ 안에 북한군 70만명이 나와 있는데, 이들이 수년간 확성기 방송을 통해 한국의 음악·뉴스 등을 계속 접하다 고향으로 돌아가면 북한 체제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북한은 우리 정부가 ‘확성기 재개 검토’ 방침을 밝힌 지난 2일 오물 풍선 살포를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지만, 국내 민간단체가 지난 6~7일 대북 전단을 보내자 8일 풍선 살포를 재개했다. 정부는 ‘대북 전단 금지·처벌 조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이후 탈북 민간단체의 전단 살포 활동을 직접적으로 제한하거나 통제하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북한학과)는 “북한 내부에 체제 실상을 알리는 정보를 퍼뜨리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공개적으로 대북 전단을 살포하면서 남북 긴장이 고조되면 비용 대비 효과가 떨어진다”고 했다.

조선일보  양지호 기자  김민서 기자

 

06-10 北 “새로운 대응” 위협… 정부, 새로운 심리전도 추진할 때

지난 수십 년 동안 남북은 상호 전단 살포를 해왔지만,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국가적 차원에서는 일단 중단했다. 그러나 민간단체들은 계속해왔다. 최근 북한은 민간 차원 전단에 대해서 히스테리적 반응을 보이면서, 그것을 빌미로 대남 도발 강도를 높이겠다는 협박까지 한다.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민간단체 활동을 금지할 수 없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된다.

북한 김여정은 9일 밤 담화에서 “한국이 삐라살포 행위와 확성기 방송 도발을 병행해 나선다면 새로운 우리의 대응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오물풍선 도발을 ‘낮은 단계의 반사적인 반응’으로 규정하면서 추가 대북 전단 살포 시 강도 높은 도발을 하겠다는 경고까지 했다. 북한이 대응 강도를 이렇게 높이는 것은, 대북 전단과 확성기 방송을 그만큼 위협적으로 본다는 방증이다. 북한이 문재인 정부 때 ‘대북전단 금지법이라도 만들라’고 압박한 데 이어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해 K-드라마 등의 영향을 틀어막아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남북의 강 대 강 대치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다. 물리적 충돌로 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군 당국은 북한의 육·해·공 도발에 ‘즉·강·끝’ 정신으로 응징한다는 태세를 다져야 한다. 북한의 ‘새로운 대응’에 맞서 정부도 ‘새로운 심리전’을 추진해야 한다. 줄리 터너 미 국무부 북한 인권특사는 “위성 등의 수단을 포함한 혁신적 기술 투자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북한판 ‘스타링크 프로젝트’도 시사했다. 대북 방송 강화 및 북한 주민 휴대전화와 인터넷의 접속 등 21세기적 상상력이 필요한 때다.

문화일보 사설

 
 

06-10 “북한, 확성기 조준사격·생화학 풍선 도발할듯”

 

■ 남북 긴장고조 전문가 전망

“서해함정에 대한 도발도 예상
GP 강화해 DMZ 긴장 고조”
합참, 확성기 방송 신중검토중
“전략적 환경따라 융통성 있게”

북한이 지난 주말 2차례에 걸쳐 남쪽에 살포한 ‘오물 풍선’이 310여 개로 식별된 가운데, 정부는 9일에 이어 10일에도 대북 확성기 방송을 실시할지를 놓고 검토를 거듭하고 있다. 6년 만에 대북 확성기 방송이 재가동되고 북한이 대남 풍선으로 대응하면서 남북 간 심리전도 가열된 상태로, 북한이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밝힌 대로 새로운 도발에 나설지 주목된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북한이 9일 밤부터 10일 아침까지 살포한 4차 대남 오물 풍선은 310여 개”라고 밝혔다. 합참은 “풍선의 내용물은 폐지와 비닐 등 쓰레기로, 현재까지 분석 결과 안전 위해 물질은 없었다”고 전했다. 앞서 북한은 지난달 말과 이달 초 두 차례에 걸쳐 대북전단 살포를 빌미로 오물 풍선을 날렸고, 당시 남측에서 식별된 풍선은 1000여 개였다. 이후 3개 민간 탈북단체가 지난 6∼7일 대형 풍선 및 해상 페트병 등을 통해 대북 전단을 달아 보내자, 북한은 8일 밤부터 9일까지 330여 개의 대남 오물 풍선을 살포했다. 북한이 지난달 28일 이후 최근 네 차례에 걸쳐 살포한 대남 오물 풍선은 총 1600여 개로 추정된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대북 확성기 방송을 확대할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군은 지난 9일 오후 5시부터 2시간 동안 5개 고정식 확성기로 대북 방송을 했는데, 이를 재개할지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 합참 관계자는 “전략적·작전적 환경에 따라 융통성 있게 (확성기 방송) 작전을 시행할 것”이라며 “군은 북한의 어떠한 유형의 도발에도 압도적으로 대응할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은 강력 반발하고 있다. 김 부부장은 전날 밤 “만약 한국이 국경 너머로 삐라(대북전단) 살포 행위와 확성기 방송 도발을 병행한다면 의심할 바 없이 새로운 대응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은 “2015년 북한의 고정식 확성기에 대한 고사포 사격을 비롯해 오물 풍선 내용물에 생화학 물질·폭발물 부착, 서해5도 우리 함정에 대한 무인 수중·수상정 공격 등 다양한 형태의 도발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도 “북한이 9·19 남북군사합의 때 철수했다가 올해 들어 보강한 감시초소(GP)를 더욱 강화해 비무장지대(DMZ) 긴장을 고조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문화일보 정충신 선임기자, 김규태·권승현 기자

 
 

06.10 화순군의 '정율성 지우기'… 능주초 대형 초상화 벽화 철거 착수

 전남 화순에서 정율성(鄭律成·1914~1976)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고 있다. 화순군이 이념 논쟁이 불거진 정율성과 관련한 기념 시설물을 철거하거나 용도 변경 추진에 나섰기 때문이다.

 

능주초는 북한의 조선인민군 행진곡을 작곡한 정율성이 2년간 재학한 학교다. 군은 10일 화순군 능주면 능주초 본관 벽면에 타일 형식으로 설치된 대형 초상화를 철거하는 공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화순군 관계자는 “방학 기간이 아닌 만큼 안전을 위해 수작업으로 타일을 하나씩 떼어내고 페인트칠을 다시 한다”고 말했다.

 

 ▲10일 전남 화순군 능주면 능주초등학교에서 이념 논쟁이 불거진 정율성 벽화 철거 작업을 하고 있다. 앞서 지난 4월 능주초 교정의 정율성 흉상과 기념교실이 철거됐다./뉴스1

 

화순군과 학교 측은 지난 4월 말 정율성이 재학하던 시기의 교실을 재연한 ‘기념 교실’과 교정 한쪽에 서 있던 정율성 흉상을 철거했다. 능주초 총동문회와 운영위원회 등 교육공동체는 지난 3월 철거 여부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90% 이상이 찬성표를 던졌다. 이에 따라 군과 능주초는 관련 기념물 등을 모두 철거하기로 결정하고 손쉽게 제거할 수 있는 흉상과 기념교실을 먼저 없앴다.

 

화순군은 능주초 인근에 조성된 초가 모양의 전시관(정율성 고향집)도 폐쇄했다. 국비와 군비 등 12억원이 투입된 만큼 해당 시설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능주초 대형 벽화 철거 공사가 마무리되면 화순군에 설치된 정율성 기념 시설물은 모두 사라지게 된다. 앞서 화순군은 정율성이 2년간 능주초에 재학한 것을 계기로 2017년 능주초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벽화와 기념 교실 등을 설치했다.

 

정율성은 중국 인민해방군가와 북한의 조선인민군 행진곡을 작곡한 논란의 인물이다. 일제강점기에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 공산당에 가입했다. 1945년 북한으로 넘어가 북한군 장교로 6·25 남침에 가담하고 나서 중국으로 귀화했다. 음악가인 그는 생전에 북한군과 중국군을 찬양하는 노래를 많이 작곡했다. 지난해 8월 당시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정율성의 북한과 중국에서의 행적을 문제 삼으며 철회를 요구, 논쟁 대상으로 부상했다.

 

 ▲10일 오전 전남 화순군 능주면 능주초등학교에서 이념 논쟁이 불거진 정율성 벽화 철거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중국 3대 음악가로 알려진 정율성은 한중 우호교류의 상징으로 각종 기념시설이 마련돼 왔지만 북한과 중국에서의 행적이 논란이 됐다. /연합뉴스

조선일보 화순=조홍복 기자

 

06-11 북한 인권 문제, 안보와 적극 연계할 때

이신화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오는 12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북한 인권 문제를 주제로 브리핑 공식회의를 개최한다. 한국이 의장국으로서 주도하는 이번 회의는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북한은 이번 회의를 ‘자주권 침해’라며 반발하지만, 이는 북한 인권 문제가 김정은 정권의 ‘아킬레스건’이라는 방증이다.

북한의 인권 유린 문제는 식량과 정보 접근 제한, 정치범 수용소, 강제 처형뿐 아니라 탈북자 문제, 해외 노동자 착취, 미송환 국군포로와 납북·억류된 우리 국민과 그 가족들의 고통 등 다양한 사례를 포함한다. 2014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는 북한의 인권 유린을 ‘반인도적 범죄’로 규정하며 북한 지도자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할 것을 권고했으나, 비핵화 협상으로 인권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런데도 북한은 핵 합의를 파기하며 더 호전적이고 억압적인 정권이 됐다.

더욱이, 최근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대북 제재 전문가 패널 활동이 종료되면서, 북한 인권 유린에 대해서도 감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일부 인권 관련 비정부기구(NGO)는 유엔총회 결의를 통해 시리아와 미얀마의 유엔 독립조사 메커니즘(IIIM, IIMM)처럼 개별 전쟁범죄 및 반인도범죄 사건에 대한 증거를 정리한 사건 파일을 준비해 국내외 법원에서 김정은 등 북한 관리들에 대한 사법적 책임을 추궁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유엔의 감시 기능이 회복된다면 북한의 무기 개발, 비확산, 제재와 함께 인권 유린 문제를 ‘북한 문제(North Korean Questions)’로 포괄적으로 다루는 방안도 검토할 가치가 있다.

지난 2년간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로 활동하면서 소명 의식과 보람을 느끼고, 외교부·통일부·시민단체 등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북한 인권의 심각성과 책임 규명 필요성에 비해 국제사회의 관심은 여전히 부족하다. 인권-안보 연계성, 책임 규명, 인도적 상황 등을 아우르는 포괄적 접근을 통해 국제적 공감대 확장이 절실하다.

그리고 북한 핵 문제나 제재는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결정적이지만, 북한 주민들의 인권은 우리 정부가 주도하고 미국 등 다른 국가들이나 국제기구들이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언론과 시민단체들이 미국 고위 관계자들에게만 집중하고, 한국의 노력은 부차적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갓 출범한 제22대 국회에서 거대 야당의 영향으로 북한인권재단 출범이 더 요원해질 우려도 커졌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 정부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압박을 끌어내기 위해 각종 정부 간 회의와 국제 플랫폼을 적극 활용, 북한에서도 보편적 인권이 지켜져야 함을 강조해야 한다. 특히, 오는 11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있을 북한에 대한 보편적 정례인권검토(UPR)를 앞두고 국내외 인권 NGO들의 다양한 권고안을 반영해 우리 정부의 입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여러 부처에 분산된 북한 인권 관련 임무들을 통합하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북한 인권유린은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안보와 번영을 저해하는 요소다. 국제사회의 행동을 끌어내기 위해 우리 정부의 리더십과 국민의 지지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문화일보

 

06-11 [속보] 합참 “9일 북한군 일부 군사분계선 침범…군 경고사격”

▲정부가 지난 4일 국무회의에서 ‘9·19 남북군사합의’ 전체 효력 정지를 의결하면서 대북 확성기 방송이 가능해진 가운데, 경기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북측 초소에서 북한군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합동참모본부는 북한군이 지난 9일 군사분계선(MDL)을 넘어왔다가 우리 군의 경고사격에 퇴각했다고 11일 밝혔다.

합참은 이날 국방부 출입기자단 공지를 통해 "9일 낮 12시 30분 중부전선 비무장지대(DMZ) 내에서 작업하던 북한군 일부가 MDL을 단순 침범해 우리 군의 경고방송 및 경고사격 이후 북상했다"며 "우리 군의 경고사격 후 북한군이 즉각 북상한 것 외에 특이동향은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 군은 북한군의 동향을 면밀하게 감시하면서 작전수행 절차에 의거 필요한 조치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합참 관계자는 "10명 이상의 북한군이 짧은 시간 동안 50m 이내로 군사분계선을 넘어왔고, 경고사격을 하자 바로 군사분계선 북쪽으로 올라갔다"고 설명했다. 북한군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온 9일은 북한의 오물풍선 살포에 대응해 우리 군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실시한 날이다. 이틀이나 지나서 합참이 관련 사항을 공개한 이유에 대해선, 긴장이 추가로 고조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문화일보 노기섭 기자

 
 

06.11 ‘우리끼리 싸움’ 부추기는 北의 대남 심리전

북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명의로 발표되는 대남 담화들을 읽으면서 실소한 게 여러 번이다. 내용은 둘째 치고 막말로 범벅된 표현의 저급함과 정제되지 않은 문장들이 혀를 차게 만들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으로, 대남 정책을 총괄하는 북한의 최고 실세가 썼다는 것을 믿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오물 풍선이 드러낸 北 히스테리

담화에는 “재잘거리는 놈들한테 줴박아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거나 “남조선 괴뢰들이 지껄이는 소리가 지루하고 진저리가 나서 몸이 다 지긋지긋해진다”는 식의 감정적 사족(蛇足)이 곳곳에 들어 있다. 북한의 미사일 기술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 발언을 놓고는 “우리의 대륙간탄도미싸일을 금방 보고도…?”라고 혼잣말하듯 묻기도 한다. 소위 ‘김여정 하명법’이라는, 대북전단금지법을 채근한 2020년 담화에선 한국 정부와 탈북자들을 향해 ‘망나니’, ‘똥개’ ‘인간추물’ 같은 단어를 배설하듯 쏟아냈다.

김여정은 최근 오물 풍선을 살포한 뒤에는 “진정 어린 성의의 선물로 여기고 계속계속 주워 담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 것들의 눈깔’ 같은 표현을 늘어놓고는 대남 위협으로 담화를 마무리했다. 한국의 대북전단과 확성기 방송 같은 심리전에 대한 북한의 히스테리가 느껴진다. 발사 후 2분 만에 폭발해 버린 정찰위성의 실패가 이를 자극했다는 분석도 있다. 수십 t(톤)의 쓰레기를 최소 3500개 풍선에 실어 보내는, 전 세계적으로 전례를 찾기 힘든 희한한 도발 방식부터가 신경증적이다.

 

2016년 북한이 대형 풍선을 대량으로 띄웠을 때는 대남 메시지를 담은 ‘삐라’가 들어 있었다. 발견된 것만 10만 장이 넘는 전단에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정치적 오물’이라고 비하하는 내용이 있긴 했지만, 풍선 안에 실제 오물이 들어 있지는 않았다. 이번엔 전단 한 장 없이 냄새나는 거름과 쓰레기뿐이다. 북한의 실상을 알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전단 같은 방식으로는 심리전 맞대응이 어렵다는 것을 평양도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다.

북한은 결국 확성기 조준 타격을 포함한 재래식 국지 도발을 감행한 뒤 협상 과정에서 방송 중단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도발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북한은 앞서 오물 풍선 살포를 예고한 김강일 국방성 부상의 담화에서 ‘해상 국경선’을 거론하며 “해상에서 무슨 사건이 발생할 경우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대한민국이 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북한의 신경질적 반응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긴장 상황이다.

이런 시점에 벌써 4차례 반복되고 있는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에는 남남갈등을 부추기려는 의도 또한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은 벌써부터 “북한의 오물 풍선 도발은 대북전단 살포가 원인”이라며 이를 막지 못한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정부의 9·19 남북군사합의 전면 중단 결정에 대해서도 “잇따른 안보 참사를 덮기 위한 것”이라는 게 민주당의 주장이다. 거야(巨野)는 윤석열 정부가 당면한 위기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북의 도발을 이용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南南갈등에 대북정책 휘둘려선 안 돼

우리끼리 싸우게 만드는 남남갈등 전술은 북한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심리전이다. 대북 대응의 정책 일관성을 흔들어 효력을 약화시키면 정부의 강경 조치들은 어느새 북한이 ‘감내할 수 있는 조치’로 흐물거리게 될 수밖에 없다. 북한의 도발이 추가될 때마다 책임 소재를 따지며 서로 삿대질을 해대는 상황에서 국방부가 외쳐온 ‘즉·강·끝(즉각, 강력하게, 끝까지)’ 원칙이 지켜질 수 있을까. 북한의 이런 의도에 말려들었다간 북한의 중대 도발은커녕 오물 풍선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끌려다니게 될 것이다.

 

이정은 부국장 lightee@donga.com

 

06-11 美는 33년 만에 핵 증강 선회, 韓도 ‘핵 확보’ 失機 말아야

지난 수십 년 동안 핵무기 확산 저지에 앞장서왔던 미국이 핵 정책의 전면 전환을 예고함에 따라 좋든 싫든 세계 핵 안보 질서는 더욱 요동칠 수밖에 없게 됐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9일 인터뷰에서 북·중·러의 핵 증강에 우려를 표한 뒤 “핵무기 확대 가능성을 테이블에 올리라는 전문가 위원회의 초당적 요구에 귀 기울이겠다”고 했다.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과도 협의해 나가겠다”고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와 미국 공화당은 민주당 행정부보다 더욱 적극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핵 정책 선회는 1991년 7월 미·소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이후 33년 만으로, 러·중·북의 핵탄두 증강이 동북아와 유럽에서 지정학적 위기를 키우는 상황을 좌시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러시아는 지난해 신(新)전략무기감축협정(뉴스타트) 이행 중지 선언 후 핵 증강에 나섰고, 중국은 2030년까지 핵탄두를 1000개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북한도 중국·러시아 비호 하에 핵무기 개발과 증산에 나섰다.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영국·프랑스 수준의 핵 보유를 지향하는 것으로 본다.

윤석열 대통령은 “북핵이 심각해지면 자체 핵을 보유할 수 있다”고 했지만, 워싱턴선언 후 확장억제 강화에 자족하는 듯하다. 그러나 핵우산만으론 부족하다. 대한민국 주권이 행사되는 핵 역량의 확보가 필요하다. 재처리권 및 우라늄 저농축권을 확보해야 장기적으로 핵무기 개발과 보유도 추구할 수 있다. 남북비핵화선언은 전략무기감축협정 분위기에서 그 5개월 뒤에 합의됐다.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 사멸’을 선언한 지 오래다. 한국도 그런 선언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미국 핵 정책 전환이란 역사적 기회를 실기(失機)하지 말고 핵 주권 확보에도 나서야 할 때다.

문화일보 사설

 
 

06.12 美 '핵 확대' 선회하면 韓 '핵 확보' 기회 찾아야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 12일(현지 시각) 백악관 언론 브리핑룸에서 언론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EPA 연합뉴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9일 인터뷰에서 “북·중·러의 핵 증강을 우려하고 있다”며 “최소한 핵무기 확대를 검토 대상에 올리라는 전문가 위원회를 포함한 초당적 요구에 귀를 기울일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핵 확대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앞서 프라나이 바디 백악관 군비통제·군축·비확산 담당 선임보좌관도 “적국이 현재 궤도를 바꾸지 않으면 향후 몇 년 내에 배치된 (핵무기) 숫자의 증가가 필요한 시점에 도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신형 전술핵무기인 B61-13 개발과 오하이오급 핵 추진 잠수함의 수명 연장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미국은 1991년 소련과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을 맺은 이후 핵 확산을 막는 데 주력해왔다. 특히 오바마·바이든의 민주당 정부는 ‘핵 없는 세상’을 강조하며 기존 핵도 줄이려 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핵 군축 조약 불참을 선언하고, 중국이 2030년까지 핵탄두 1000개 보유 계획을 진행하는 등 세계 핵 안보 질서가 요동치자 미국도 ‘핵 증강’으로 선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다. 트럼프의 공화당은 “실전 배치 핵탄두를 늘려라” “핵 군비 경쟁에 나서라”고 할 정도로 더 적극적이다.

 

미국의 핵 정책 변화는 한반도 안보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트럼프 재집권 시 기용이 유력한 콜비 전 국방부 부차관보는 “주한 미군을 중국 견제에 활용하는 대신 한국의 자체 핵무장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미 상원 군사위 공화당 간사인 위커 의원도 북한 핵 위협을 우려하며 “전술핵무기의 한반도 재배치”와 “나토식 핵 공유”를 말했다. 의미가 같지는 않지만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핵 확장 필요성을 거론하는 만큼 11월 대선을 고비로 미국이 새로운 핵 정책을 짤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는 “한·일이 자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에 열린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던 사람이다. ‘핵 군축’을 고집하던 민주당 정부도 종전과 다른 말을 하기 시작했다. 북·중·러의 핵 폭주가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중·러와 머리를 맞댄 우리만 핵이 없다. 일본은 우라늄 농축과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이 있지만 우리에겐 없다. 미국의 핵 정책 선회에서 ‘핵 확보’ 기회를 찾아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6.12 홍용표 前통일 "北, 목함지뢰 회담 때 확성기 끄려 우리 요구 다 수용"

목함 지뢰 도발때 北과 회담

 ▲박근혜 정부 때 통일부 장관을 지낸 홍용표 한양대 교수가 11일 본인 연구실에서 본지와 인터뷰했다. 홍 전 장관은 “대북 확성기 방송은 북한에 분명히 영향을 끼친다”며 “확성기 대응과 관련해 정부 내 기준과 원칙이 분명해야 한다”고 했다. /전기병 기자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8월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목함 지뢰 도발 당시 우리 군 확성기 방송 재개를 계기로 북한과 협상한 홍용표 전 통일부 장관은 11일 본지 인터뷰에서 “당시 북한의 유일한 목적은 확성기 방송을 끄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우리 측이 원하는 요구 사항을 대부분 수용했다”고 했다. 당시 홍용표 통일장관과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판문점에서 북한 군부 서열 1위였던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대남 분야 수장인 김양건 대남 담당 비서와 정회 시간 빼고 43시간 동안 ‘무박 4일’ 마라톤 협상을 벌였다.

 

―당시 회담에서 북한은 확성기에 대해 뭐라고 했나.

“김양건이 회담 전날 평양에서 판문점에 내려와 하룻밤을 잤다. ‘직접 확성기 방송 들어보니 입에 담지 못할 별의별 얘기가 다 나오더라. 확성기 때문에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잤다. 좀 꺼달라’고 하더라. 우리는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회담 내내 확성기 틀어 놓고 했다.”

 

―첫날 접촉이 다음 날 새벽까지 10시간 동안이나 이어졌는데.

“우리 장병이 다리를 잃어서 병원에 있고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기 때문에 첫날부터 강하게 나갔다. ‘뭐 별것도 아닌 좁쌀만 한 일로 그러느냐(확성기를 켜느냐)’는 북측 말에 너무 화가 나서 ‘우리 장병 두 명이 다리를 잃은 게 어떻게 별일이 아니냐’며 소리를 버럭 지르고 우리가 확보한 증거물을 내밀었다. 둘째 날 북한이 먼저 확성기 끄는 요구 사항이 담긴 자기네 입장문을 우리 쪽에 제의했다. 당시 황병서와 김양건 태도를 봤을 때 반드시 우리한테 확성기 방송 중단을 받아내야만 하는 상황으로 느껴졌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인가.

“우리가 확성기를 끄는 대신 북한은 우리 요구 사항인 목함 지뢰 도발에 대한 유감 표명, 준전시 상태 해제, 이산가족 상봉, 다양한 민간 교류에 합의했다. 심지어 합의문에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이라는 전제를 달아 확성기 방송을 중단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는데 이걸 북한이 받을 줄은 몰랐다. 영구적 중단이 아닌 조건부 중단인데도 그대로 받을 만큼 급하고 절박했던 것이다. 그 문구 덕분에 이후 북한의 4차 핵실험 도발 등이 일어났을 때 확성기 방송을 재개할 수 있었다. "

 

―확성기가 무슨 효과가 있느냐는 주장도 있다.

“북한이 반응하는 걸 보면 효과는 분명히 있다. 북한군 장병들의 심리적 동요가 크고 그걸 듣고 넘어온 사례도 더러 있다. 접경 지역 북한 주민들도 영향을 받는다. 단순히 북한 병사 또는 주민 몇 명이 영향을 받은 건지 따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가 북한이 아파하는 곳을 찌르고 북한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카드가 필요한데 이런 면에서 확성기는 굉장히 유효하다.”

 

―확성기 방송을 6년 만에 재개했다가 2시간 만에 중단했다.

“정부가 원칙을 갖고 행동할 때 국민 지지를 받을 수 있고 대북 협상력도 커진다는 점을 목함 지뢰 도발 회담 때 절실히 느꼈다. 북한이 오물 풍선 보낸다고 확성기 잠깐 켰다가 끄고 이걸 또 껐다 켰다 반복하면 심리전 효과는 사라지고 남남 갈등만 생긴다. 이건 정확히 북한이 원하는 상황이다. 확성기 대응과 관련한 정부 기준과 원칙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북한 김여정이 오물 풍선을 날려 보내면서 ‘인민의 표현 자유’라고 했다.

“가당찮은 말이다. 북한에 무슨 표현의 자유가 있나. 2014년 북한과 회담할 때 북한이 자기네가 조선중앙TV 통제하는 것처럼 남한 방송이 김정은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는 요구를 했다. 우린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선 정부가 언론 통제를 할 수 없고 헌법적 가치인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기 때문에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원칙을 일관되게 견지했다.”

 

―문재인 정부 때 김여정 요구에 따라 ‘대북 전단 금지ㆍ처벌’ 조항이 담긴 법까지 만들었는데.

“회담할 때마다 북한은 우리 정부가 민간 단체의 전단 살포를 중단시키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그때마다 북한에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문 정권 때 김여정이 전단 살포를 막는 법이라도 만들라고 요구하는 걸 보고 우리가 북한에 제시한 논리를 그렇게 써먹는구나 싶었다.”

 

―확성기 방송과 대북 전단이 남북 긴장을 고조시킨다는 주장도 있는데.

“피해자 흉내 내는 북한의 일방적 논리일 뿐이다. 북한의 비상식적 수준 이하 행태에 매번 맞대응할 필요는 없지만, 자유민주주의 원칙과 헌법 가치 등 근본적 가치를 건드리는 부분에 대해선 정부가 적극적으로 설명해야 국민들이 남북이 다 문제라는 식의 양비론적 주장에 흔들리지 않는다. 다만 대북 전단은, 내가 장관으로 있을 때 정부가 억지로 막을 수는 없지만 일부 단체에 대해선 자제해 달라는 설득은 했다. 언제 어디서 전단을 날리겠다고 다 예고하고 하니 북한이 알고 고사포 총을 쏘는 것이다.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는 걸 막기 위해선 그런 정도 관리는 필요하다고 본다.”

 

 ▲지난 2015년 8월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 협상 장면.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당시 홍용표 통일부 장관,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황병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김양건 노동당 대남비서. /통일부

☞홍용표는

1964년생으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와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국제관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3년 18대 대통령직인수위 외교국방통일분과 실무위원으로 활동한 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 통일비서관과 통일부 장관(2015~2017)을 지냈다. 현재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북한 DMZ 목함지뢰 도발

2015년 8월 DMZ 인근에서 작전 중이던 우리 장병 2명이 지뢰에 다리를 잃었다. 지뢰 매설이 북한군 소행임을 확인한 정부는 최전방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북한은 한국군을 겨냥한 포격 도발에 나섰고 48시간 내 확성기 철거를 요구한 뒤 ‘준전시 상태’를 선포했다. 이후 북한이 우리 측에 만남을 제의해 남북 2+2 고위 당국자 접촉이 이뤄졌다.

조선일보 김민서 기자

 

월간조선 06월 호

국가인권위원회의 ‘채 상병 사건’ 기각 의견서

 ‘사단장은 빼라’는 외압 의혹 근거 없어

 ⊙ 군 인권센터가 지난해 8월에 인권위에 진정한 박 대령 긴급구제조치 등 모두 기각
⊙ “국방부 장관의 이첩 보류 지시에 따른 해병대 사령관의 이첩 보류·중단 지시는 해외 출장 중인 장관의 귀국 시까지 이첩을 보류하라는 내용”
⊙ “구체적 지휘·감독권이 있는 국방부 장관·해병대 사령관이 사건 이첩 전에 이첩 보류 지시를 하였으면, 부당한 근거가 없는 한 군사경찰은 이에 따라야”
⊙ “소속 기관장의 승인 또는 국방부 장관의 허가를 거치지 않고 언론 인터뷰를 한 것은 법규 위반… 징계는 인권침해로 볼 수 없다”
⊙ “군사경찰은 상관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군사경찰직무법·군사법원법)

 

▲지난 5월 2일 ‘순직 해병 진상 규명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안(채 상병 특검법)’이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가결됐다. 사진=뉴시스

 

시민단체인 군 인권센터가 ‘해병대 채모 상병 사망 사건’과 관련해 “박정훈 전 해병대수사단장(대령)을 징계하거나 상관 명예훼손죄로 입건, 수사하는 것은 직업 수행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침해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진정한 사건에 대해 인권위가 이를 기각한 것으로 밝혀졌다. 《월간조선》은 이 사건을 심의한 군 인권보호위원회 위원들이 이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제출된 군 인권센터의 진정을 기각해야 한다는, 즉 박정훈 대령의 행동은 부적절했다는 ‘기각 의견서’를 단독 입수했다. 이 사건을 조사한 군 인권보호위원회에서 기각 결정을 내린 다수 의견은 “조사 결과 국방부 장관의 외압에 관한 부분은 사실이라고 인정할 만한 객관적인 증거가 없고, 박정훈 대령에 대한 조치는 인권침해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기각한다”고 적시했다. 인권위 진정 기각 건은 박 대령의 인권 침해 여부를 다루고 있지만, 채 상병 사건과 관련한 사실관계와 법적 쟁점도 포함하고 있다. 향후 채 상병 특검의 시사점을 포함하고 있어 《월간조선》은 이를 기사로 다뤘다.


“긴급구제조치 취해달라” 만장일치 기각

임태훈(오른쪽) 군 인권센터 소장이 지난해 8월 14일 서울 마포구 군 인권센터에서 열린 ‘전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의 인권침해 피해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 긴급구제 신청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군 인권센터는 2023년 8월 14일 인권위에 박정훈 대령에 대한 긴급구제조치를 신청했다. 안건은 인권위 군 인권보호위원회(소위원회)에 배당됐다. 서울·부산·수원지검 검사를 거쳐 한국노총 부산지역본부 고문을 지낸 김용원(金龍元) 상임 인권위원 겸 군 인권보호관, 법무법인(유) 원 변호사 출신으로 민변 여성인권위원장을 지낸 원민경(元玟京) 인권위원, 서울·광주고검 검사와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지낸 한석훈(韓晳薰) 인권위원이 논의했다.

긴급구제조치 신청은 접수된 지 15일 만인 8월 29일에 기각됐다. 이에 관해 김용원 인권위원은 “해병대 전 수사단장에 대한 항명죄 수사 및 징계의 중지, 국방부 검찰단장 직무 배제 등 긴급구제조치를 취해달라는 신청을 기각하기로 의결했다. 군 인권센터가 제출한 진정서가 국가인권위원회법이 정하는 필요성의 요건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에 관해 전체 인권위원들(김용원, 원민경, 한석훈) 사이에 의견이 일치됐다”고 말했다. 다만 긴급구제 건과 별개로 소위원회는 ▲해병대 수사단이 경찰청에 이첩한 사건을 국방부 검찰단이 회수한 경위 ▲그 적절성 여부 ▲박정훈 대령에 대한 항명죄 수사 개시 경위 등 진정 사건에 대한 조사는 계속하기로 했다.


인권위원 셋의 의견 일치하지 않아

그로부터 5개월이 지난 1월 30일, 소위원회는 진정 사건의 조사를 모두 마치고 진정을 기각한 것으로 《월간조선》 취재 결과 확인됐다. 인권위 홍보협력과 관계자는 군 인권센터가 제출한 안건이 기각된 데 대해 “이를 두고 최근까지도 (위원들이) 서로 다른 의견을 내고 있어서 우리(홍보협력과)가 뭐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며 “군 인권보호위원회는 약간의 독립성이 있고, 다른 위원회처럼 (회의 내용이) 우리와 적극적으로 공유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인권위 홍보협력과가 말한 ‘서로 다른 의견’은 이렇다. 김용원 위원과 한석훈 위원은 “국방부 장관과 해병대 사령관의 해병대 수사단에 대한 지휘권은 적합한 것이어서 (박정훈 대령에 대한) 인권침해가 아니다”라고 봤다. 반면 원민경 위원은 “지휘권 행사가 적법하지 않아 인권침해에 해당한다”고 봤다. 김용원 위원과 한석훈 위원은 군 인권센터의 진정에 대해 ‘기각’ 의견, 원민경 위원은 ‘인용’ 의견을 냈다.

 

국가인권위법 제12조 2항에 따르면, 소위원회는 3명 이상 5명 이하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또 같은 법 제13조 2항은 소위원회 회의는 구성위원 3명 이상의 출석과 3명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명시했다. 이 조항에 따라 총 3명으로 구성된 소위원회의 진정 사안이 의결되려면 ‘만장일치’ 의견이 나와야 한다. 지난해 긴급구제의 경우 만장일치 기각 의견이 나왔고, 이번 진정 안건은 기각 의견 2명, 인용 의견 1명으로 의결정족수가 부족해 기각됐다.

인권위가 진정 안건을 기각 결정하는 경우에는 사무처에서 2주일 이내에 기각 통지를 하게 된다. 군 인권센터가 이에 불복(不服)하면 행정심판을 거쳐 행정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행정심판법 제27조 1항에 따르면 ‘행정기관으로부터 행정처분 명령서를 받게 되면 행정심판 청구는 처분이 있음을 알게 된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함’이 원칙이다. 《월간조선》은 지난 5월 10일과 11일, 군 인권센터 측에 진정 안건 기각에 대한 입장과 행정심판이나 행정 소송 제기 여부 등을 묻고자 했으나, 군 인권센터 측은 “조선미디어 그룹과는 별도로 인터뷰하지 않는다”며 취재를 거절했다.


핵심 쟁점 세 가지

《월간조선》은 복수의 국가인권위 관계자의 설명과 이번 취재로 확인한 문건 등을 종합해 진정 안건 기각에 관한 사실관계를 검증했다.

핵심 쟁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국방부 장관과 해병대 사령관의 이첩 보류 지시나 해병대 사령관의 이첩 중단 지시가 위법, 부당한 것인지 여부다. 그 지시가 적법한 지휘권 행사이고 그 내용이 부당하지 않았다면, 상관의 지휘·명령에 불응한 박정훈 대령의 행위는 항명죄 수사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군사경찰이 민간경찰에 사건을 이첩함에 있어서 그 사건인계서의 피혐의자 중 ‘사단장은 빼라’는 취지의 국방부 장관의 부당한 외압이 있었는지 여부다.

셋째, 박정훈 대령에 대한 징계 처분이 부당했는지 여부다.

소위원회는 ‘이첩 보류 및 이첩 중단 지시’의 위법(違法)과 부당성 여부를 조사했다. 이를 위해서 인권위원들은 소속 부대장의 구체적인 지휘·감독이 적법한지 부당한지를 따졌다. ‘기각’ 의견서는 군사경찰직무법에 따라 “소속 부대장은 구체적인 지휘·감독을 할 이유가 있었다”고 봤다.


“군사경찰,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야”

군사경찰직무법(정식 명칭은 군사경찰의 직무 수행에 관한 법률) 제5조 1항 제3호에서 ‘군사경찰은 군사경찰부대가 설치돼 있는 부대의 장의 지휘·감독하에 군사법원법 제44조 제1호에 규정된 범죄(일반군사경찰 관할 범죄)의 정보 수집·예방·제지 및 수사의 직무를 수행한다’, 제2항에서 ‘국방부 장관은 군사경찰 직무의 최고 지휘자·감독자로서 군사경찰에 관한 정책을 총괄하기 위하여 국방부 소속으로 조사본부를 둔다’, 제3항에서 ‘각 군 참모총장은 각 군 군사경찰 직무의 지휘자·감독자로서 각 군 소속 부대의 군사경찰 직무를 총괄하기 위하여 군사경찰실이나 군사경찰단을 둔다’, 제4항에서 ‘군사경찰부대가 설치되어 있는 부대의 장은 소관 군사경찰 직무를 관장하고 소속 군사경찰을 지휘·감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군사법원법 제2조 제4항 본문에서는 ‘국방부 장관은 제2항에 해당하는 죄(군인 사망 사건 등 민간법원이 재판권을 가지는 범죄)의 경우에도 국가안전보장, 군사기밀보호,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사정이 있을 때에는 해당 사건을 군사법원에 기소할 수 있도록 결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기각 의견서는 “이는 개별 사건의 범죄 수사·조사에 관하여 국방부 장관도 구체적 지휘·감독권이 있음을 전제로 한 규정으로 보아야 한다”고 적시했다. 구체적 범죄 사건에 대한 수사·조사내용을 검토함이 없이 그 재판 관할 변경 여부를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군사법원법 제45조는 ‘군사법경찰관은 범죄수사에 관하여 직무상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기각 의견서는 “군사경찰은 범죄의 정보 수집·예방·제지 및 수사·조사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군사경찰 직무의 최고 지휘·감독권자인 국방부 장관, 각 군 군사경찰 직무의 총괄 지휘·감독자인 참모총장, 군사경찰 직무의 직접적 지휘·감독자인 소속 부대의 장의 일반적·구체적 지휘·감독을 받고 있고, 그 지휘·감독권에 기한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적시했다.


박 대령의 오해?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 사진=뉴시스

 

한편, 군사경찰직무법 시행령 제7조에서 ‘군사경찰부대가 설치되어 있는 부대의 장은 수사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군사경찰이 군사경찰직무법 제5조 제1항 제3호에 따른 직무를 수행할 때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기각 의견서는 “박 대령이 국방부 장관 및 소속 부대의 장인 해병대 사령관의 이첩 보류 지시 및 해병대 사령관의 이첩 중단 지시에 따르지 않은 근거가 무엇인지 명확지는 않지만, 아마 이 시행령 규정을 근거로 부대의 장을 비롯하여 그 상관인 국방부 장관이나 참모총장은 군사경찰의 범죄 수사에 관하여 일반적 지휘·감독권만 있고 구체적 사건에 대한 구체적 지휘·감독권은 없는 것으로 오해한 데서 기인한 것일 수 있다”고 적시했다. 박정훈 대령이 이 조항을 근거로 단독 행동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런 해석 역시 네 가지 이유로 부당하다고 기각 의견서는 말하고 있다.

첫째, 군사경찰직무법 시행령은 군사경찰직무법의 시행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 것이고, 하위 시행 법규는 상위법의 취지에 맞게 해석해야 하는데, 군사경찰직무법 시행령을 해석하면서 상위법인 군사경찰직무법에서 규정한 지휘·감독권을 축소 해석할 수는 없다.

둘째, 군사경찰직무법 시행령 제7조의 규정 내용도 ‘수사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직무를 수행할 때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소속 부대의 장 등이 수사에 관한 지휘·감독권을 행사하더라도 직무 수행의 독립성을 침해하여 수사의 공정성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내용일 뿐이다. 즉 지휘·감독권을 공정하게 행사하라는 것일 뿐 소속 부대 장 등의 수사지휘·감독권을 부정한 것은 아니며, 군사경찰에게 소속 부대장 등의 수사지휘에 대한 이의제기권을 인정한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셋째, 법률전문가인 군 검사의 경우에는 국방부 장관은 군 검사에 대하여 일반적 지휘·감독권만 있고, 사건에 대한 구체적 지휘·감독권은 각 군 참모총장과 국방부검찰단장에 대해서만 행사할 수 있도록 법률에 명문 규정(군사법원법 제38조)을 두고 있다. 또 각 군 참모총장은 소속 군 검사에 대하여 일반적 지휘·감독권만 있고, 구체적 지휘·감독권은 소속 검찰단장에 대해서만 행사할 수 있도록 법률에 명문 규정(군사법원법 제38조)을 두고 있다. 이러한 명문 규정도 없이 군사경찰을 법률전문가인 군 검사보다 더욱 강하게 수사의 독립성이 보장되는 것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해병대 채모 상병(추서 계급)이 2023년 7월 19일 경북 예천의 수해 현장에서 실종자 수색을 하던 중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다가 14시간 만에 내성천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을 말한다. 당시 해병대는 경북 예천 내성천 경진교와 삼강교 사이 22.9km 구간에 119명을 투입해 실종자 수색 작전을 하고 있었으며, 채 상병은 7월 18일부터 실종자 수색 현장에 투입됐다.

사건 이후 박정훈 대령이 수사단장을 맡은 해병대 수사단이 조사를 진행했고, 박 대령은 그해 7월 30일 채 상병이 소속된 임성근 해병대 제1사단장 등 관계자 8명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는 내용의 조사 결과를 보고했다.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은 해병대 수사단 보고를 받고 나서 경찰 이첩을 보류하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수사단은 이 지시를 따르지 않고 사건을 경북경찰청으로 이첩했다. 이후 국방부 검찰단은 수사 서류를 경찰로부터 회수했고, 해병대 사령부는 8월 8일 박 대령을 보직 해임했다. 또 박 대령을 항명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이 과정에서 박 대령은 “국방부 수뇌부가 사단장, 여단장 등 지휘부의 혐의를 제외하고자 수사 결과 조정을 압박했다”며 수사 외압 의혹을 제기했다.

국방부는 8월 21일 해병대 1사단장 등을 제외하고 현장 지휘관 2명에게만 범죄 혐의를 적시해 경찰에 이첩했고, 박 대령 측은 8월 23일 국방부 관계자들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했다. 이어 군 검찰은 10월 6일 박 대령을 군형법상 항명 및 상관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에 따라 박 대령은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이첩 보류 지시

 ▲국민의힘 의원들이 5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순직 해병 진상 규명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안(채 상병 특검법)’을 단독 처리한 더불어민주당을 규탄했다. 사진=뉴시스

 

넷째, 군 검사의 경우에는 민간의 검사(검찰청법 제7조)와 마찬가지로 소속 상급자의 지휘·감독에 따라야 하되 구체적 지휘·감독에 대하여 이견이 있을 때에는 이의제기권을 인정하고 있지만(군사법원법 제40조 제1항, 제2항), 군사경찰의 경우에는 이러한 이의제기권조차 인정되지 않는다. 그런데 상급자인 소속 부대장인 해병대 사령관의 구체적 지휘·감독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법률전문가인 군 검사보다 더욱 독립성을 보장하게 되는 결과가 되어 합당한 해석으로 보기 어렵다.

기각 의견서는 “국방부 장관의 이첩 보류 지시에 따른 해병대 사령관의 이첩 보류 지시나 이첩 중단 지시는 군사경찰이 조사하여 인정한 사실관계를 변경하라거나 조사자료를 빼라는 지시가 아니라 해외 출장 중인 장관의 귀국 시까지 이첩을 보류하라는 내용이었다”고 밝혔다.

군사경찰의 조사에 의하면, 이 사건과 관련 지휘관들인 사단장·여단장·대대장·중대장 등에 어떤 주의 의무 위반이 있고, 그 주의 의무 위반과 사망 간에 상당인과 관계가 있는지, 과실(過失)의 공동정범이 성립하는 피혐의자 범위 등에 관한 판단은 법률 판단 문제로서 정확한 법리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사 관할권이 없는 군사경찰로서는 조사한 사실관계만 적시하여 경찰에 사건 이첩을 할 수도 있지만, 이 사건의 경우처럼 피혐의자를 적시하여 사건을 이첩할 경우에는 무고한 피혐의자가 남발되지 않도록 정확한 법리 검토를 하는 일은 피혐의자의 인권 보장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기각 의견서는 특히 ‘군 검사 또는 군사법경찰관은 법원이 재판권을 가지는 범죄에 대한 고소·고발·진정·신고 등을 접수하거나 해당 범죄가 발생했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을 발견하는 등 범죄를 인지한 경우 군사법원법 제228조 제3항에 따라 지체 없이 대검찰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또는 경찰청에 사건을 이첩해야 한다’(대통령령 제7조 제1항)고 규정하고 있다.

기각 의견서는 여기에서의 ‘지체 없이’란 ‘범죄 인지에 관하여 상급자의 지휘·감독 등 내부 절차를 마친 다음 지체 없이’의 의미로 해석함이 타당하다고 돼 있다. 따라서 구체적 지휘·감독권이 있는 국방부 장관이나 해병대 사령관이 사건 이첩 전에 이첩 보류 지시를 했으면, 그것이 부당한 지휘·감독권 행사라는 근거가 없는 한 군사경찰은 이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채 상병 특검법이란?

국회는 2024년 5월 2일 본회의를 열고 ‘순직 해병 진상 규명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안(채 상병 특검법)’을 재석 168인 전원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채 상병 특검법은 2023년 9월 7일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범야권은 10월 본회의에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했고, 그로부터 180일이 지나면서 2024년 4월 3일 본회의에 자동 부의된 바 있다.

채 상병 특검법은 2023년 7월 해병대 채 상병이 실종자 수색 작전 중 사망한 사건에 대한 초동수사·경찰 이첩 과정에서 대통령실·국방부가 개입한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특검을 도입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수사 대상은 대통령실·국방부·해병대 사령부 등이다. ▲지휘부의 안전 무시가 있었는지 ▲대통령실, 국방부가 이 사건 진상을 은폐했는지가 특검의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대통령실은 채 상병 특검법 반대 의견을 지속적으로 밝혀왔다. 하지만 특검 수용에 대한 국민 여론은 높은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10번째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경우 정치적 부담이 크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국방부 장관의 사건 축소는 증거 부족”

이 사건의 진정 내용 중에는 ‘국방부 장관이 국방부 법무관리관 등을 통해 박 대령에게 경찰로의 사건 이첩 시 피혐의자와 범죄 혐의 사실을 제외하고 사실관계만 경찰에 송부하라고 지시하여 외압을 행사했다’는 내용이 있고, 박 대령은 언론 인터뷰에서 사건 인계 과정 중에 ‘사단장은 빼라’는 국방부 장관의 외압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방부 법무관리관은 “범죄 혐의가 불명확한 경우에는 사실관계만 적시하여 수사자료와 함께 이첩하거나 수사자료만 이첩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는 취지의 원론적 설명을 했다고 말하고 있다. 국방부 장관은 “법무관리관으로부터 위 설명을 듣고 박 대령에게 그 내용을 설명해주라고 지시했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해병대 사령관은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해병대 사단장의 거취에 관해서는 ‘수사가 진행되는 것을 보고 절차에 의거 추진하라’고 들었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박 대령과 법무관리관의 통화 내용을 옆에서 들었다는 해병대수사단의 중앙수사대장과 수사지도관의 진술은 이렇다.

“직접적 과실이 있는 사람으로 한정하라는 것은 위험한 발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봐도 외압처럼 보이지 않겠냐?”(당시 박정훈 대령)

“그런 것은 아니다. 사건 서류에서 죄명·혐의자·혐의내용 같은 것 다 빼고 일반 서류처럼 넘기면 되지 않겠냐?”(법무관리관)

 

따라서 박 대령의 주장 내용(‘사단장은 빼라’는 국방부 장관의 사건 축소 외압이 있었다는 주장)과 다르고, 그 답변 내용도 법무관리관 의견의 일환으로 행한 발언으로 볼 수 있어, 그것만으로 부당한 외압의 증거로 보기에 부족하다는 것이 진정 기각 이유다.

《월간조선》이 기각 의견서와 별도로 취재한 바에 따르면, 군검찰은 경북경찰청이 해병대 수사단으로부터 이첩받은 사건 기록을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에 입력하기 전에 회수해갔다. 경북경찰청에 따르면, 사건 기록은 8월 2일 오전 10시30분 경북경찰청에 도착했고, 군검찰은 당일 저녁 7시20분에 경북경찰청으로부터 기록을 회수했다.

경북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이 이첩받은 사건을 KICS에 입력해야 정식으로 사건 접수가 되고 접수 번호가 부여된다. 경북경찰청 관계자는 “군에서 내부적으로 보완해야 할 사안이 있다고 해 (회수 요청에) 협조했다. 이는 상식적으로 봤을 때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령이 허가 없이 인터뷰한 것은 違法”

 ▲《월간조선》이 입수한 채 상병 사건에 대한 인권위의 기각 의견서.

 

진정인은 박정훈 대령에 대한 징계 처분이 부당하다고 주장했으나, 기각 의견을 낸 위원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제16조는 ‘군인이 국방 및 군사에 관한 사항을 군 외부에 발표하거나, 군을 대표하여 또는 군인의 신분으로 대외활동을 하고자 할 때에는 국방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국방홍보훈령 제20조, 제15조 제1항에 의하면 ‘각급 기관의 장은 소속된 자가 평론, 시사해설, 논문, 세미나 및 대담 등을 국방전문미디어가 아닌 외부 매체로 발표하고자 할 경우’에는 자체 보안성 검토 후 소속 기관장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특히 ‘대외적으로 민감한 사안의 경우에는 국방부 관련 부서장의 사전 검토를 받아야 하고’라고 규정하고 있다. 군사경찰범죄수사규칙 제12조는 ‘국방부직할부대, 각 군 참모총장 직속의 직할 부대 또는 기관으로 구성된 군사경찰부대·수사부서의 장은 방송사, 신문 등 언론매체에 수사에 관한 사실을 발표할 때에는 형법 제126조(피의사실공표)에 해당하는지의 여부 등을 신중히 고려하여 공보책임자로 지정된 자가 발표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기각 의견서는 “박 대령이 군인의 신분으로 대외적으로 민감한 군 수사·조사 관련 사안에 대하여 국방부 관련 부서장의 사전검토 및 자체 보안성 검토를 거치지 않음은 물론, 소속 기관장의 승인 또는 국방부 장관의 허가를 거치지 않고 이 사건 언론 인터뷰를 한 것은 위 법규를 위반한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국방부가 위와 같은 박 대령의 위법 행위에 대하여 징계한 것을 인권 침해로 볼 수 없다”고 적시했다.

《월간조선》 취재에 따르면 ‘채 상병 사건’의 핵심은 첫째, ‘군사 경찰은 군인사망사건의 원인이 되는 범죄에 관해서 내사권은 있지만, 수사권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군사경찰이 사망사건을 내사하고 그 사건 결과를 민간경찰에 이첩할 때에 피혐의자 범위를 정하더라도 이는 내사 기관으로서의 의견에 불과하고, 그것이 수사권이 있는 민간경찰을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채 상병 사망 원인의 규명이나 피의자 범위를 정하는 것은 현재 군사경찰로부터 사건기록 전체를 이첩받아 수사 중인 민간경찰과 검찰이 할 일이라는 것이다.

둘째, 이번 사건에서 국방부 장관의 사건 이첩 보류 지시는 내사사건의 구체적 지휘감독권자로서 ‘적법한 권한 범위 안의 지휘’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사건 조사 결과를 보고받은 국방부 장관이 바로 다음 날 법리 검토를 하고자 구체적 지휘감독권자인 해병대 사령관을 통해서 사건 이첩 보류 지시를 한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사건 기록의 회수도 타당한 근거가 있다는 것이다. 사건 이첩이 구체적 지휘감독권 있는 상관의 보류 지시를 위반하여 위법하게 이루어진 것이고, 민간경찰이 이첩한 사건의 접수절차를 완료하기 전에 사건 기록을 회수한 것이기 때문이다.


박 대령, 인권침해 당했나

한편 진정 안건 인용을 주장한 원민경 위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박정훈 대령의 인권침해 여부와 관련해 인권위에 제출된 모든 자료를 수일에 걸쳐서 여러 번 살펴봤다”고 말했다. 이어 “폐쇄적인 군의 특수성을 감안해 사망, 성범죄 등 중대 비위행위에 대한 수사에 있어 은폐 의혹이 발생하지 않도록, 수사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2021년 개정된 군사법원법의 개정 취지와 관련 법령을 검토해 이를 진정 인용 의견서에 상세하게 담았다”고 밝혔다.

원 위원은 또 “채 상병 사망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 앞으로 벌어질 수 있는 또 다른 불행을 막는 것”이라며 “군 인권은 국가 안보와도 직결된다고 할 수 있는데, 군인권보호위 다른 위원들이 인권 관련 사안을 인권적 측면 외에 정치적으로 해석하려고 하는 것 같아 너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김용원 위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 사건은 채 상병의 인권 침해를 다루는 것이 아닌 박 대령에 대한 군과 수사당국의 처분이 인권 침해에 해당하는지 다룬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박 대령에 대한 항명죄 기소, 보직해임, 견책 징계는 관계 당국의 적법한 권한 범위 내에서 이뤄진 일이라 그의 인권을 침해한 가혹행위로 볼 수 없다. 법리적으로 문제될 사항이 전혀 없는 것”이라며 “공무원에 대한 검찰의 공소제기, 행정당국의 보직해임 및 징계 등을 두고 일일이 인권 침해 여부를 논해야 한다고 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김용원 위원은 “박 대령에 대한 당국의 처분을 인권 침해라고 본다면 그건 인권의 범위를 무한으로 확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도 지적했다.

한석훈 위원은 오히려 “인권 침해 여부 판단은 잘못하면 누구에게든 새로운 인권 침해를 야기할 수 있으므로 신중하고 정확해야 한다. 이 사건은 기각 이유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법리 판단 문제가 주된 쟁점이기 때문에, 정확한 법리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 법리가 명백한데 근거 없이 정치적 해석으로 폄하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hychung@chosun.com

글 : 김세윤 월간조선 기자 gasout@chosun.com

 

06.13 창립 10주년 맞은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

 ●“안보경찰, 팀장급 이상의 80%가 한 번도 간첩 수사 안 해본 사람들”

⊙ “경찰, 일선 안보과 폐지하고 안보수사국으로 인원 배치… 최일선 안보, 감시망 사라져”
⊙ “김정은 新 대남 전략, 위장 평화 통일 노선 버린 것… 적화 통일 폐기 아니다”
⊙ “적국뿐만 아니라 외국(우방국 포함)·외국인단체·비국가행위자들의 간첩 활동도 처벌할 수 있게 법 개정해야”
⊙ “보수·안보 세력 재건은 가정교육부터… 모범생일수록 從北 될 가능성 높다”
⊙ “UCLA 한국학 도서관 서적의 약 80%가 북한 찬양 서적… 나머지 20% 한국 서적의 70%는 좌파 서적”

▲사진=월간조선

 

전투는 군인만 하는 게 아니다. 안보 전선(前線)에 뛰어든 민간인도 많다. 삶이 팍팍할지라도, 체제 불안 없이 사는 건 이들의 노고(勞苦) 덕이기도 하다. 유동열(柳東烈) 자유민주연구원장도 그중 하나다. ‘국가정체성 수호와 헌법 체제의 발전’이라는 연구원의 존재 목적 아래 각종 연구와 전파를 통해 대한민국 체제 유지에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당장 인터넷에 이름 석 자를 쳐보면 안다. 크고 작은 안보 사건에는 늘 그가 언급된다. 이렇게 사상전(思想戰)을 벌인 지 벌써 10년이 됐다. 올해 역시 전장(戰場)은 치열해 보인다. 지난 5월 3일 서울 서초 소재 자유민주연구원에서 그를 만났다.

― 요즘 연구원에서 가장 중대하게 보는 사안이 뭡니까.
“국가보안법 수호와 국정원 대공(對共)수사권이죠. 2020년 좌파들이 국보법폐지국민연대를 만들었어요. 103개 단체가 연합했죠. 국보법을 없애면 대한민국은 난리 납니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 연구원에서는 지난 3년간 108개 단체를 연합해 국보법수호자유연대를 결성했습니다. 국보법이 헌법재판소 위헌 소송에 걸렸을 때 민변 측에서는 폐지 정당성 의견서를 냈고, 우리는 합헌 의견서로 이를 방어했습니다. 세미나도 수차례 열었고요. 매일 아침 헌재 앞에서 릴레이 시위도 했죠. 지난해 국보법 합헌 판결에 우리가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자평합니다.”


“대공수사력 총량 유지 안 돼”

▲지난 2021년 11월 22일 헌법재판소 앞 국가보안법 수호 1인 릴레이 시위 현장에서 유동열 원장. 사진=자유민주연구원

 

― 국정원 대공수사권 복원은 물 건너갔다고 봐야겠죠.


원래 국정원이 잡던 간첩을 올해 1월 1일부터 경찰이 전담 수사하게 됐다. 2020년 12월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국정원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다수당이 됐다면 원복(原復) 가능성이 있었지만, 어렵게 됐다.

“2017년부터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 반대 세미나를 열었고, 시위도 해봤지만 결국 폐지됐어요. 총선 참패로 복원도 힘들게 됐고요. 그렇다고 손 놓고 있으면 안 돼요. 지속적으로 부활을 외쳐야죠. 국보법수호연대처럼 대공수사권을 지키기 위한 연구원 주관 비공식 모임이 있습니다. 지난해 국정원 전직들과 변호사 등 11명이 정기적으로 문제를 논의 중입니다.”

유동열 원장은 수사권 폐지를 앞두고 정부가 구성한 합동점검팀에도 있었다. 국정원 인사 2명, 경찰 2명과 민간인 1명으로 이뤄진 조직이었다. 유일한 민간인이 그였다.

 

― 경찰이 간첩 수사를 전담한 지 5개월이 지났는데요, 당초 지적했던 우려사항이 현실화하고 있습니까.
“우선 국정원 수사권 폐지 이후 국가 대공수사력의 총량이 유지가 안 되고 있습니다. 대공수사권이 사라진 국정원 인력만큼 경찰에서 충원을 해야 하는데, 총량을 보면 축소된 상황이에요. 물론 더 뽑긴 했죠. 그런데 밑동 빼서 윗동 채운 격이에요. 6개 지역을 제외한 일선 안보과를 모두 폐지하고 안보수사국으로 배치한 거죠. 그러다 보니 최일선 안보, 소위 감시망이 사라졌어요. 파주, 문산 같은 접경지나 제주 해안가처럼 간첩 침투가 잦은 곳은 안보과가 없으면 안 됩니다.

새로 뽑은 인력 또한 70%가 안보 수사 경험이 없는 인사입니다. 팀장급 이상은 80%가 한 번도 간첩 수사를 안 해본 사람들이에요. 그런 사람들이 간첩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겁니다. 예산과 장비도 총량 면에서 유지가 안 되고 있고요.

경찰 안보 수사 역량이 부족하다는 게 아니에요. 국내 안보사범에 대한 수사력은 상당히 뛰어나죠. 다만 북한과 연관된 간첩단 사건에는 약한 게 사실입니다. 중앙정보부(현 국정원)도 경찰 대공수사 역량을 인정하던 때가 있었어요. 그러다 박종철 사건을 계기로 명맥이 끊어졌죠.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경찰 대공수사력이 완전히 저하됐어요.”


“대통령 직속 안보수사청 만들어야”

― 이 상황에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뭡니까.
“국가수사본부 하부 조직인 안보수사국을 국가안보수사본부로 독립시켜 인력 보강을 제대로 한 뒤, 안보 수사만 전담토록 하거나 대통령 직속 국가안보수사청을 만드는 겁니다. 안보수사청은 경찰, 국정원, 방첩사령부의 대공수사 인력을 배치해 간첩뿐만 아니라 산업스파이, 테러 수사도 함께 하는 미국의 FBI 형태의 조직입니다. 국정원 수사권 폐지를 유지하면서, ‘공룡경찰’에 대한 우려 또한 불식시킬 수 있는 절충안이죠.”

― 국정원법 개정안의 취지가 국정원은 간첩 수사에서 손을 떼라는 건데, 국정원 인사를 배치하는 안보수사청 설립이 가능하겠습니까.
“국가 안보를 위해서는 그렇게라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지금 상태로는 경찰이 해외망(網) 구축을 할 수가 없어요. 다 떠나서 당장 법적으로 불가합니다. 국정원은 정보기관이기 때문에 합법과 비합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수집 활동에 대한 법적 근거가 있지만, 경찰은 행정기관이죠. 물론 특례 조항을 둘 수는 있겠지만, 구축한다고 해도 십수 년이 걸릴 일이에요. 경찰은 지금 국정원이 하던 사건을 넘겨받아 수사 중인데, 올 연말까지 자체 실적은 없을 겁니다. 해외망도 없고, 수사하려면 영장을 쳐야 하는데 그럴 구조가 안 돼요.”

― 간첩들은 좋겠네요.
“북한 김정은에게 좋은 일이죠.”


“간첩 활동 더 강화될 것”

― 김정은은 올 초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등 대남(對南) 선전·선동 기구를 모두 폐지하면서 한국과의 단절을 선언했죠. 이 때문에 간첩이 축소될 거라는 시각도 있더군요.
“완전히 잘못된 시각입니다. 김정은의 대남전략을 ‘폐기’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전면 수정’인 거예요. 북한의 전(全) 조선혁명 수행 과정을 보면, 결국 남북합작을 통해 사회주의로 가는 게 목적입니다.

합작하겠다는 남(南)은 현 정권이 아니에요. 한국에서 미국을 축출하고, 정권 타도를 한 뒤, 인민 정권을 수립한 뒤 합작하겠다는 겁니다. 여기서 합작 방법은 두 가지예요. 평화적 방도(연방제 통일)와 비평화적 방도(전쟁 통일)죠. 지금 김정은은 오직 비평화적 방도로만 가자고 선언한 겁니다. 김일성 구도의 평화적 방도, 그러니까 위장 평화죠. 이를테면 남북 대화, 회담은 이제 소용없다는 거예요.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만나봤자 소용없으니, 위장 평화 통일 방안은 이제 버리겠다는 겁니다. 실제로 북한 범민련이 해체하자, 지령을 받고 남측 본부도 즉각 해체 수순을 밟았습니다. 이들도 대화가 아닌 무력 대응 체제로의 전환에 들어간 거예요.”

― 김정은이 김일성의 평화 노선을 버린 걸 선대(先代) 유훈을 무시한 처사로 보기도 하던데요, 대남 공작 양상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유훈을 거역하는 게 아닙니다. 핵 무력에 기반한 대사변을 통해 선대 수령 유훈인 적화 통일을 조기 달성하겠다는 겁니다. 이제 ‘통일’이라는 단어도 안 쓰죠. ‘혁명’인 거예요. 북한은 전통적으로 ‘하나의 조선’을 외쳐왔는데, 재작년부터 한국을 대한민국이라 칭하며, 한반도를 ‘두 개의 조선’으로 분리했죠. 남한을 적화 통일, 그러니까 전 조선혁명 해야 한다는 명분이 여기서 나오는 겁니다. 궁극적으로 ‘하나의 조선’으로 가기 위한 것으로, 이 노선의 포기가 아닌 거죠. 선대 수령의 조국 통일 유훈(적화 통일)을 폐기하는 것도 아니고요.”

― 무력 적화 통일의 목적 아래 간첩 활동은 더 과격해지겠군요.
“더 강화될 겁니다. 대남대화부서인 통일전선부를 정리하고, 조평통 등 기구 해체 후 대남 공작부서인 정찰총국과 문화교류국으로 조직을 간소화하겠다는 거니까요. 최근 적발된 간첩단들이 모두 문화교류국 연계잖아요.”


“안보재판부 별도로 둬야”

 어느 때보다도 간첩 공작을 막아야 할 시점에 국정원 대공수사권이 폐지된 셈이다. 잡기 어려워졌고, 잡더라도 처벌이 쉽지도 않다. 극심한 사법투쟁 때문이다. 수사권 폐지를 앞두고 적발된 민노총, 창원, 제주, 청주간첩단은 재판관 기피 신청, 국민참여재판 신청 등을 통해 재판을 최대한 지연했다. 유 원장은 “사법시스템을 무력화(無力化)하려는 간첩들의 투쟁에 사법부가 무방비로 끌려다니고 있다”면서 “민사부, 형사재판부처럼 안보재판부를 별도로 둬 간첩 전담 판사가 재판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다섯 차례 재판부 기피 신청으로 2년 4개월 만에 1심 재판을 받은 청주간첩단(자주통일충북동지회) 같은 경우 선고 이틀 전 유엔에 망명 신청을 하기도 했죠. 다행히 청주지법에서는 이들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하고, 도주 우려가 있다며 법정 구속시켰어요. 정말 잘한 일입니다. 다만 이들에게 간첩죄 적용은 안 됐어요. 금품수수와 회합·통신·범죄단체조직죄만 인정됐죠.”

― 연구원에서는 간첩죄 개정 필요성도 꾸준히 제기했죠, 어떻게 추진되고 있습니까.
현행법상 북한을 위한 간첩 행위는 국가보안법상 목적수행죄 등으로 처벌이 가능하지만, 간첩죄 적용은 어렵다. 형법 제98조(간첩)상 명시된 ‘적국(敵國)’이라는 표현 때문이다. 법상 북한은 국가가 아니라 반국가 단체다.

“적국뿐만 아니라 외국(우방국 포함)과 외국인 단체 및 비국가 행위자들의 간첩 활동도 처벌할 수 있도록 ‘적국’을 ‘적국, 외국 및 외국인 또는 외국인 단체와 반국가 단체’로 개정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국가보안법 제4조 1항 2호에 현행 ‘국가 기밀’뿐만 아니라 ‘반국가 단체를 이롭게 하는 각종 정보’를 탐지, 수집, 전달, 중계한 경우에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도 신설해야 합니다. 또한 사이버 간첩 활동과 산업스파이 활동을 규제하는 법제 구축도 시급합니다. 현행 간첩죄 관련 조항은 최대 70년 최소 32년이 경과했습니다. 군 형법 제13조 간첩 조항은 61년, 국가보안법 제4조 목적수행죄는 32년이나 됐어요. 이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제22대 국회 때 발의할 수 있도록 할 겁니다.”

― 통과가 안 될 텐데요.
“그렇다고 시도조차 안 하면 안 되죠. 국회 표결에서 깨지더라도 이런 법이 꼭 필요하다는 걸 국민에게 알리고, 발의를 해서 기록에 남겨야 합니다. 법안이 폐기될 때까지 또는 자동으로 상정이 기각될 때까지 시도는 계속할 겁니다.”


“집토끼가 집을 나간 것”

― 4·10 총선 결과가 향후 안보 상황에 미칠 영향은 뭘까요.
“이번 총선을 보며 국민들의 이념적 지향이 완전히 좌경화(左傾化)됐다고 느꼈습니다. 이유는 간단해요. 집토끼가 집을 나간 거죠. 집권여당이 누누이 말한 ‘국민의 눈높이’가 사실은 종북(從北) 좌파의 눈높이에 맞춘 거였죠. 예컨대 5·18 정신을 헌법에 넣겠다는 발언에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된 겁니다. 공천은 또 어땠습니까. 대한민국을 배반하고 북한에 붙었다가, 다시 북한에 등 돌리고 온 주사파 전향자에겐 공천을 주고, 한눈팔지 않고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해온 선명 우파는 배척했어요. 혁신은 왼쪽을 지향하는 게 아닙니다. 국민의힘은 아무리 광주에 가도 표를 못 받아요. 설령 거기서 주한미군 철수시키고, 국보법 철폐하겠다고 해도요. 보수는 오른쪽을 지향해야죠. 여기서 오른쪽은 헌법적 가치를 말합니다. 우파가 이렇게 분열돼버렸으니, 앞으로도 상황은 똑같을 겁니다.”

유 원장은 “헌법적 가치를 제대로 구현할 정부라면 북한의 대남전략에 대응할 올바른 대북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큰 위기는 북한의 군사 도발 가능성입니다. 신대남전략에 따라 예상되는 도발 유형은 총 4단계로 나눠볼 수 있어요. 1단계가 북방한계선(NLL) 침범 등 해상 도발 같은 겁니다. 지금은 2단계예요. 장거리 미사일 실험, 대남침투 및 간첩 활동 강화, 국가기관망 등 대대적 사이버 테러 등이 여기 속합니다. 김정은은 지금 심기가 거슬릴 거예요. 위협해도 무사태평(無事太平)이거든요. 좋게 말하면 국민들이 성숙한 건데, 나쁘게 말하면 안보불감증이죠. 말로만 해선 안 되겠네, 했다가는 바로 3단계로 가는 겁니다. 연평도 포격 같은 육·해상, 해저 기습 공격이죠. 마지막 4단계는 전면전(全面戰)이고요. 우리는 국가안보시스템에 대한 전면 점검과 정상화를 통해 고강도 압박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비대칭(非對稱)전략을 써야 할 때입니다.”


“모범생들이 운동권이 되는 이유”

 ― 대중은 이런 위기감이 없죠. 보수·안보 세력 재건(再建)을 위해서는 어떡해야 합니까.
“단기적으로 되면 좋겠지만, 장기적인 노력이 있어야 해요. 가장 중요한 게 교육입니다. 교육이라면 학교만 생각하는데, 가정교육도 매우 중요해요.

제 딸이 중학교 2학년 때 일입니다. 밥 먹다가 그러더군요. 미국 사람은 나쁘대요. 학교 선생님이 그랬답니다. 명색이 이념 전문가의 딸이 이런 말을 한 거죠. 오늘은 학원 가지 말고 아빠랑 얘기 좀 하자 해서, 1시간20분간 설명했어요. 듣더니 아빠 말이 맞대요. 전교조 교사가 미국이 나쁘다는 걸 가르치는 데는 5분이 채 안 걸리지만, 이를 바로잡는 데는 1시간이 넘게 걸린 거예요. 선생님 눈만 쳐다보는 모범생들이 나중에 운동권이 되는 이유입니다. 이정희가 대표적이죠. 가정에서부터 좌경화된 판을 바꾸려는 노력을 안 하면, 30년 후에는 20대부터 80대까지 다 왼쪽이 돼 있을 겁니다.”

그동안 약 200회의 내·외부 세미나, 정책토론회, 간담회를 통해 자유민주 사상전을 벌인 것도 ‘교육’의 중요성을 알아서다. 유동열 원장은 이밖에도 200차례 이상의 방송 출연과 1500개 내·외신 언론 보도로 ‘올바른 국가관’을 알려왔다. 그는 내내 ‘헌법적 가치’를 강조하며 “이러한 활동은 보수·우파적 가치 기준이 아닌, 헌법적 가치에 부합하느냐에 따라 이뤄진다”고 했다.

자유민주연구원은 ‘작지만 강한 연구원’을 표방한다. 상근 인원은 세 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네트워크 인원은 100명이 넘는다. 장관 출신부터 각 정보기관 고위급 전직들과 탈북민, 저명 교수와 법조인, 군사전문가 등이 끈끈하게 소통한다. 미국 한미연구소 소속 연구원인 ‘38노스(North)’와 영국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도 상근 인력을 2~3명만 두고 네트워크 체제로 운영한다. 지난해 2월에는 공권력 감시센터도 설립했다. 현재까지 문재인 전 대통령 5건, 이재명, 조희연, 전현희 등에 대해 22건을 고발했다.


“손 놓고 있으면 20년 후 美 교민 사회는 100% 왼쪽 된다”

▲지난 2015년 10월 18일 UC버클리대학 한인 학생들과의 좌담회 모습. 사진=자유민주연구원

 

― 연구원 주요 수입원은 뭡니까.
“정부용역 예산입니다. 때문에 좌파 정권 때는 활동에 제약이 있어요. 아무리 신청을 해도 안 되니까요. 실제로 문재인 정부 5년간은 한 건도 못 했어요.”

― 보통은 5년에 몇 건을 수행합니까.
“평균 6~7건은 됩니다. 건당 용역비는 많게는 3800만원 정도 되고요.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들어오고도 한동안 달라진 게 없었어요. 문재인 정권 말기 정부기관들이 향후 1년 치 발주를 좌파 단체에 줘버렸거든요. 그렇게 2023년은 흘러갔고, 올해도 사실 크게 다르진 않아요. 대통령만 바뀌었지, 나머지는 그대로니까요.”

― 그러면 연구원 운영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그동안 퇴직연금 모아둔 걸 썼고, 중견기업인을 비롯한 뜻있는 분들의 후원을 받아 유지하고 있어요. 고마운 일입니다.”

척박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해외 지부까지 일궜다. LA, 시카고, 워싱턴DC, 뉴욕, 토론토, 유럽까지 6곳이다. 해외 지부는 독립 운영 방식이다. 지부마다 네트워크도 따로 구축돼 있다. 이를 통해 10차례 이상 해외 동포 대상 안보 강연도 개최했다. 지난 2015년 10월에는 미국 서부 명문대학을 돌며 한인 학생 대상 좌담회도 열었다. UC버클리대, 샌디에이고대, 오렌지카운티대, UCLA대 등 5개 대학에서다. 해외 명문대 한인 학생은 미래 한국을 이끌어갈 주역이자, 북한의 주요 포섭 대상이기도 하다. 그는 “북한은 이미 약 40년 전부터 교민 2세대를 대상으로 포섭전략 중 하나인 방북 프로그램 등을 진행했다”면서 “국내보다 중요한 게 해외 교민 교육”이라고 했다.

― 미국 내 한인의 70~80%가 좌파라고 들었습니다.
“UCLA 한국학 도서관에 갔더니 서적의 약 80%가 북한 찬양 서적이더군요. 도서관 관계자에게 왜 이렇게 북한 책이 많냐고 했더니 대부분 기증받은 거랍니다. 나머지 20% 한국 서적의 70%는 좌파 서적이었어요. 《전환시대의 논리》 같은. 모두 전교조 같은 데서 기증한 것들이죠. UCLA에서 한국학 공부를 하면 출발점이 왼쪽이 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방문 후 이 사실을 보고서로 써 청와대, 국정원, 외교부에 배포했어요. 책 보내기 운동을 해서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요. 추진을 안 하더라고요. 우리가 손 놓고 있다가는 20년 후 미국 교민 사회는 100% 왼쪽이 될 겁니다.”

 

― 한인 대학생의 국가관은 어땠습니까.
“‘해방 이후 한국이 고속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를 놓고 토론을 벌였어요. 학생들은 높은 교육열, 국민의 노력 등을 꼽았습니다. 다 맞는 얘기예요. 거기다 첨언했죠. 가장 중요한 요소는 ‘국가체제’라고요. 남과 북을 보면 국가의 흥망성쇠(興亡盛衰)에 국가체제가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 수 있다고요. 강연 후 한 학생이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왔어요. ‘중학교 때 미국 와서 공부밖에 몰랐는데, 선조들이 대한민국을 어떻게 일궜는지 알게 됐고, 향후 대한민국 국민으로 뭘 해야 할지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 학생 대상 강연이 활성화돼야 할 텐데, 막상 안보에 관심 있는 젊은이들은 많이 없죠.
“세미나에 오는 분들은 대부분 60대 이상인데, 이분들은 이미 국가관이 투철합니다. 젊은 세대의 사고를 바로잡아주는 게 중요하죠. 긴 글을 안 보는 요즘 세대를 위해 ‘국보법 바로 알기’ 카드뉴스를 배포하기도 하고, 소셜미디어도 최대한 활용하고 있어요. 어쨌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힘닿는 데까지 계속하려고 합니다.”


아버지도 대공 분야 활동

유동열 원장은 경찰청 출신이다. 1989년 1월 경찰청 공안문제연구소(현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신설 당시 연구원으로 들어가 25년을 근무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NL(National Liberation·민족해방)이 뭔지도 몰랐다. 이 분야에 발을 디딘 건 부친(父親)의 영향이 컸다. 그의 아버지는 유장환 전(前) 경정이다. 경찰 대공 분야 두 산맥 중 한 맥을 쥐었던 인물이다. 초반엔 ‘아버지 백으로 들어왔다’는 말도 들었다. 소문은 3개월 만에 사그라졌다. 그해 3월 문익환 방북(訪北) 사건이 터지면서다.

“안기부에서 문익환 목사의 집과 사무실을 압수수색 한 후 우리 연구소에다 감정 분석을 의뢰했어요. 서류 박스 20개를 연구원 11명에게 배분했습니다. 분석 결과를 안기부에 보냈는데, 수사단장이 ‘유동열 연구원 분석이 가장 잘돼 있다’고 했다더군요.”

이후부터 안기부에서는 간첩 사건이 터지면 유동열 연구원부터 찾았다고 한다. 이 덕에 안기부 자문위원을 맡았고, 대검찰청 민주이념연구소 자문위원도 지냈다. 그렇게 차츰 이름을 알렸다.


“저야 이름 한 줄이라도 나오는데…”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안보대책실 선임연구관을 끝으로 2014년 2월 명예 퇴직했다. 2013년 8월 19일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위원장 박영선) 참고인 출석이 계기가 됐다. 당시 그는 “북한이 허위 사실, 가짜 뉴스를 유포하는데 당연히 대항 심리전(心理戰)을 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 무렵 종편 출연을 했던 그에게 정치권에서는 집중공세를 펼쳤다. “경찰청 공무원이 정치 활동을 한다”면서다. 결국 감찰까지 따라붙었지만, 정당한 절차를 밟은 출연임이 밝혀졌다. 유 원장은 “경찰청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활동해야겠다 싶었다”고 했다. 그렇게 2014년 3월 3일 자유민주연구원을 설립했다.

연구원을 설립하던 달, 통진당 위헌심판 정부 측 참고인으로 출석한 건 손꼽히는 이력 중 하나다. 그때 그는 76페이지에 달하는 위헌성 분석을 제출했다. 이를 통해 북한의 조선노동당 노선과 통진당 노선이 어떻게 비교되는지를 규명했다. 통진당 해산 후 법무부에서는 백서(白書)를 만들었다. 상·하권으로, 각각 두께가 얼추 20cm에 달한다. 과장 보태 페이지마다 참고인 유동열의 진술이 언급된다. 해산 결정에 유 원장의 논리가 상당히 쓰인 셈이다. 그는 “대한민국 헌법적 가치 추구에 기여했다는 자부심이 있다”고 했다.

“위기 속에서도 이러한 활동이 곧 국가 저력이 된다고 믿습니다. 강연장에 가면 늘 서두에 이런 말을 합니다. 국정원과 방첩사의 대공 요원들과 안보 경찰들의 노고에 경의(敬意)를 표한다고요.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각 분야에서 신념을 갖고 일한 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북한과 간첩들이 70년간 대한민국을 전복(顚覆)시키지 못한 이유도 이런 저력이 쌓여서죠. 음지(陰地)에서 일하는 분들에 비하면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야 언론에 이름 한 줄이라도 나오는데, 그분들은 이런 것도 없어요.”⊙

월간조선 06월 호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talktome@chosun.com

 
 

06.14 죽기를 마다하지 않은 미끼 작전, 한국전 판도 바꾸다

지평리 전투의 유엔군 영웅들

인천상륙작전은 낙동강까지 밀린 유엔군이 전세를 뒤집었기에 한국전에서 극적인 역전의 계기다. 그런데 인천상륙작전 성과 못지않은 전투가 있었는데 1951년 2월 경기도 양평서 벌어진 지평리 전투다. 이 전투는 사람들이 거의 알지 못하는데 인천상륙작전만큼이나 한국전의 흐름을 바꿔 놓은 전투다. 그래서 제2의 인천상륙작전 또는 한국전의 게티즈버그 전투라 불린다. 1·4 후퇴로 사실상 괴멸 상태에 빠진 유엔군이 이 전투 승리로 기사회생해서다. 지평리 전투에서 패했다면 유엔군은 한반도 철수를 심각히 고려했어야 했다. 그러면 우리는 제주도나 일본에 망명정부를 세워야 했을지도 모른다.

1·4 후퇴 후 밀리던 전쟁의 기로
유엔군 5600명, 5만 중공군 맞서

미 프리먼, 부상 입고도 후송 거부
몽클라르, 프랑스군 백병전 지휘

리지웨이, 적 약점 간파도 주효
펑더화이, 싸움 패하자 휴전 모색

 

후퇴 거듭 유엔군 공황 상태

 

 ▲지평리 전투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맥기 고지. 지평리 남쪽 방어망을 형성했던 낮은 구릉으로 밀고 들어오는 중공군을 미 23연대 G중대 2소대가 영웅적으로 막았다. 뒤쪽에 보이는 산이 배미산(망미산)이다. [사진 김정탁]

 

지평리 전투에서 유엔군이 승리한 데는 미 8군 사령관에 막 부임한 리지웨이(Matthew B Ridgway)의 역할이 컸다. 50년 12월 말 워커 장군이 갑자기 교통사고로 죽으면서 그의 후임으로 왔는데 당시 한국전 상황은 엉망이었다. 압록강 언저리까지 진출했던 유엔군이 중공군의 기습으로 서울마저 내주고, 평택-안성-원주-삼척 선으로 후퇴하면서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졌다. 그래서 리지웨이 신임 사령관에게 당면했던 일은 청천강에서부터 후퇴만 거듭한 유엔군의 전투 의지를 회복하는 일이었다.

 

리지웨이는 이를 위해 부임한 지 한 달 만인 51년 1월 말에 ‘늑대 사냥개(Wolfhound) 작전’과 ‘벼락(Thunderbolt) 작전’을 전개했다. 리지웨이가 이 작전을 편 건 유엔군이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맞설 수 있음을 하루빨리 입증해 다른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지니게 하기 위해서였다. 리지웨이가 구상한 일련의 반격작전을 통해 유엔군은 1·4 후퇴 때 적에게 내준 서부전선의 한강선까지 진출해 서울 탈환을 목전에 둘 수 있었다.

 

그러자 중공군은 미군과의 전투를 피하고 화력이 약한 국군과 상대하기 위해 주력부대를 서부전선에서 중부전선으로 이동시켰다. 그리고 강원도 횡성의 중부전선에서 국군 8사단을 무너뜨리고 지평리로 향했다. 지평리는 미 9군단과 미 10군단을 연결하는 지점인 데다 서울-양평-홍천-횡성-여주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다. 그래서 지평리를 뺏기면 서부전선의 유엔군 측방이 위협받아 아군이 둘로 쪼개지면서 유엔군은 또다시 낙동강까지 밀릴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중공군은 지평리를 노릴만했다.

 

 ▲지평리전투 기념관에 있는 유엔군 전승충혼 비. [사진 김정탁]

 

미 23연대는 미 9군단의 우측을 엄호하기 위해 지평리에 진주했는데 국군 8사단이 횡성에서 무너지면서 고립되었다. 이에 프리먼(P Freeman) 연대장은 철수를 건의했는데 리지웨이는 “중공군의 이번 공세가 성공하려면 지평리를 반드시 점령해야 하니까 아군은 어떤 일이 있어도 지평리를 확보해야 한다”라며 일축했다. 그래서 23연대는 중공군을 끌어내기 위한 미끼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이는 죽음을 전제로 한 미끼였다.

 

 ▲프랑스군 참전충혼비. [사진 김정탁]

 

리지웨이가 이런 모험을 감행한 건 앞으로 한국전의 운명이 지평리 전투 결과에 달려 있다고 판단해서다. 프리먼 대령은 리지웨이의 이런 의중을 읽자 부하들에게 ‘용감한 자든 비겁한 자든 살기 위해선 무조건 싸워야 한다’는 각오를 다지게 했다. 지평리 주변은 280m 내외의 고지로 병풍처럼 둘러싸여 방어하기에 유리했어도 그 둘레가 18㎞나 달해 1개 연대 병력으론 어림없었다. 프리먼은 고심 끝에 진지의 직경 폭을 1.6㎞로 줄인 뒤 사주방어(四周防禦)를 택했다.

 

중공군은 2월 13일부터 유엔군의 목을 서서히 조여 왔다. 낮에는 지평리로 이어지는 도로를 하나씩 차단하고, 해가 진 뒤에는 횃불을 올리고 특유의 피리 소리를 내면서 유엔군 방어망으로 돌진했다. 유엔군이 맹렬한 포격으로 대응했어도 중공군은 8차례의 진격과 후퇴를 반복하면서 유엔군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이때 프리먼은 지휘소 텐트 옆에 떨어진 중공군의 박격포탄에 부상당했다. 그런데도 후송을 거부한 채 진지를 절뚝거리며 찾아다니면서 병사들을 독려했다. 프리먼의 이런 행동은 전투에 지친 병사들에게 큰 용기를 주었다.

유엔군 전사 52명, 중공군은 4900명

 ▲프랑스군 대대본부로 쓰였던 지평양조장. [사진 김정탁]

 

알몬드 미 10군단장은 프리먼의 부상을 알고 연대장을 즉시 교체했다. 그러나 프리먼은 “내가 부하들을 이끌고 여기에 왔으니 나갈 때도 함께 데리고 나가겠다”며 새 연대장이 부임했어도 자리를 그냥 지켰다. 나흘간 이어진 격전 끝에 그는 지평리 방어에 성공했다. 이 방어전의 성공은 유엔군 5600명과 중공군 5만 명이라는 10대 1의 열세 가운데서 이뤄낸 쾌거다. 또 유엔군 전사자는 52명뿐인데 반해 중공군 전사자는 4900명에 달했다. 게다가 유엔군은 전술적으로뿐 아니라 전략적으로도 승리해 그 후 한국전의 흐름을 크게 바꿔놨다.

 

지평리 전투 승리에 있어 프랑스군의 분전도 무시할 수 없다. 중공군이 피리와 나팔을 불면서 새까맣게 몰려오자 프랑스군도 수동식 사이렌을 요란하게 울리면서 이들의 피리와 나팔 소리를 제압했다. 나중에는 중공군이 프랑스군 진지까지 덮쳐 백병전이 불가피해지자 철모를 벗어 던지고 머리에 빨간 수건을 둘러맨 채 총검과 개머리판으로 중공군과 상대했다. 미군이 프랑스군의 이런 분전에 놀라자 대대장 몽클라르(R Monclar, 1892~1964)는 “총칼은 통조림이나 따려 준 게 아니다”라며 가볍게 응수했다.

 

 ▲프리먼 미 23연대장. [사진 김정탁]

 

몽클라르는 중장으로 전역한 장성인데 프랑스 1개 대대의 한국전 참전이 확정되자 스스로 4계급을 낮춰 대대장으로 참전했다. 주위에서 만류했어도 “중령이라도 좋다. 나는 늘 전쟁터에서 살아왔다. 곧 태어날 자식에게 최초의 유엔군 일원으로 평화를 위해 참전했다는 긍지를 물려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는 드골 대통령과 오랜 친구 사이였다.

 

 ▲리지웨이 미8군 사령관. [사진 김정탁]

 

지평리 전투의 승리에는 리지웨이의 정확한 적정(敵情) 분석도 한몫했다. 그는 중공군이 지닌 장단점을 하나씩 점검하다 보급 문제로 일주일 이상 전투를 지속할 수 없음을 발견했다. 보급상의 이런 애로로 중공군은 전황이 유리해도 일주일이 지나면 전투를 중지해야 했다. 그래서 리지웨이 사령관이 프리먼에게 지평리에서 일주일만 버티라고 지시한 거다. 지평리 전투는 중공군의 이런 약점을 시험할 수 있는 첫 번째 기회였는데 리지웨이의 분석이 맞아떨어졌다.

 

 ▲전투 직후 지평리를 찾은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왼쪽)과 함께 있는 프랑스 군 몽클라르 대대장. [사진 김정탁]

 

지평리 전투에서 중공군이 예상 밖의 큰 패배를 당하고, 많은 사상자까지 발생하자 사기는 바닥에 떨어지고, 총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는 충격에 빠졌다. 중국 전쟁사 전문가인 천젠은 지평리 전투의 패배로 모든 게 달라졌다고 고백했다. “지평리 전투 이전만 해도 모든 상황이 중공군에게 유리하다고 믿고, 유엔군을 물리칠 방법도 터득했다고 자부했다. 그래서 남은 건 최종 승리인데 이 승리도 조만간에 이루어질 거라 믿었다. 그런데 유엔군이 지평리에서 승리하면서 이런 희망이 사라졌다.” 반면 유엔군은 반격의 발판을 마련해 51년 3월 말까지 38선 이남 지역의 대부분을 회복했다.

미 정부 소극적, 더 북진 못해 아쉬워

 ▲지평리전투

 

중공군은 지평리 전투의 패배를 만회하고자 약 한 달 반 후인 4월 말에 제5차 총공세를 감행했지만, 이 총공세마저 실패해 펑더화이는 비로소 한국전에서 승리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다음부터 유엔군과 중공군 사이에는 사실상의 교착상태가 계속되면서 서로 휴전을 모색하게 되었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지평리 전투의 승리로 유엔군은 지금의 휴전선보다 훨씬 더 많이 북진하는 좋은 기회였는데 아이젠하워 미 행정부가 한국전을 빨리 끝내려고 해 이를 이루지 못한 점이다.

 

부상당해도 전투 현장을 끝까지 지키면서 책임을 다했던 프리먼의 활약은 미 육사 교재에도 실렸다. 그는 대장까지 승진해 유럽 주둔 미 육군 사령관을 지냈다. 몽클라르는 전투 때 입은 부상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72세라는 다소 이른 나이에 숨졌다. 리지웨이는 전용기로 최전선을 누비다 중공군 진지에 착륙할뻔 했지만 산속으로 황급히 숨어 들어간 뒤 기적적으로 생환했다. 그 후부터 그의 가슴에 맨 수류탄을 누구도 조롱하지 않았다. 6·25를 맞이하면서 이들의 분전이 기억에 새롭다.

중앙일보 김정탁 노장사상가

 

06.15 "맨날 당하느니…" 北과의 해킹전쟁 최전선에 선 남자

남과 북이 대치한 한국에서 사이버 공간은 소리없는 전쟁터다. 북한은 수시로 우리 인터넷을 들락거리며 여론을 조작하고, 공공기관과 금융기관을 해킹해 정보를 빼내간다. 북한 해커 조직 ‘라자루스’가 2년 넘게 우리 법원 전산망을 해킹해 1TB(테라바이트)가 넘는 자료를 빼간 사실이 최근에야 알려졌고, 국정원이 해외의 유명 해킹 포럼에 우리나라 공무원들의 이메일 계정과 비밀번호 수백개가 게시된 사실을 파악해 각 기관에 통보하는 등 상상도 못한 해킹 피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국정원이 우리나라의 사이버 위기 경보를 ‘관심’에서 ‘주의’ 단계로 상향한 것이 벌써 2년 전. 국내 보안 전문가들은 북한의 공격에 맞서 매일 같이 사이버 공간을 지키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천재 해커'라 불리는 박찬암 스틸리언 대표가 지난달 16일 서울 용산구 스틸리언 본사에서 사이버 보안의 중요성 등과 관련 본지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남강호 기자

 

“북한 해킹 나도 해봤다”

사이버 보안업체인 ‘스틸리안’의 박찬암(35) 대표는 이 남과 북 해킹전쟁의 최전선에 있는 인물이다. 최근 만난 그는 “북한의 해킹 기술은 대단하지만, 우리에겐 최고의 화이트 해커들이 있다”며 “앞으로도 ‘소리없는 전쟁’의 최전선에 서서 활동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는 해킹에 대한 소극적 방어를 넘어 (해킹 등을 포함한) 선제 공격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이른바 ‘디펜드 포워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미 국방부가 처음 사용한 개념으로, 선제 공격을 통해 해킹을 미연에 방지하는 전략이다. 박 대표는 이미 이 개념으로 북한의 공격을 막은 적이 있다. 2013년 3월 20일 북한 정찰총국에서 KBS·MBC·YTN과 농협·신한은행 등 방송·금융 6개사를 해킹해 전산망이 마비됐던 ‘320사이버 테러’사건, 당시 국가 연구개발 분석 업무를 맡아서 하고 있던 박 대표는 “사건 이후 북한 내부망을 살펴보다 2015년에 2차 사이버 테러를 준비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면서 “즉시 관련 기관에 이 사실을 통보하고 선제적 대응에 나서 (사이버 테러를) 막은 적 있다”고 했다. 그는 북한의 사이버 테러 징후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확인했는지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북한의 해킹 트렌드, 바뀌고 있다”

박 대표에 따르면, 최근 북한의 해킹 트랜드는 바뀌고 있다. 예전엔 “정부 웹사이트를 해킹해 기관인 척하며 개인이나 은행에 메일을 보내 전산망을 마비시키는 방법이었다면, 이제는 (직접 해킹이 어려워지니) 소프트웨어 납품 회사를 해킹해 기관을 타고 들어가는 게 유행”이라는 것. 24살에 보안업체를 창업한 그는 “(회사의) 젊고 유망한 동료 해커와 프로그래머 80여 명이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머리 싸매고 고민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의 안전 수준을 높이기 위해 계속 정진하겠다”고 했다.

 

박 대표는 학창시절부터 각종 세계해킹대회에서 상을 휩쓸어 ‘천재 해커’라는 별명이 붙은 화이트 해커(White Hacker)다. 화이트 해커는 악의적인 해킹에 대한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해커를 뜻한다. 그는 2009년 3월 3000여명 규모의 ‘코드게이트 국제해킹방어대회’에서 3인팀으로 1위를 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같은 해 8월 ‘KOREA’라는 팀명으로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세계해킹대회(HITB CTF)’에 나가 대회 시작부터 끝까지 1위를 유지했다. 당시 그의 나이 20세.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대학교 2학년까지 나간 30여개의 해킹대회에서 모두 입상해 ‘천재 해커’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천재는 특정 분야에 뛰어난 업적을 남길 수 있어야 한다”면서 “업적을 쌓으려고 노력을 하고 있을 뿐, ‘천재’라는 칭호는 내게 과분하다”고 했다.

“11살 때 독학으로 해킹 입문”

그가 해커로서 첫걸음을 뗀 순간은 11살 때였다. 영화, 드라마에서 종종 나오는 해커의 모습을 보고 첫눈에 반해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2000년 당시 해킹에 대한 책들이 나온게 없어 리눅스(Linux), 마이크로소프트 운영체제(MS-DOS) 등 컴퓨터 운영체제 책들을 사서 읽었다고 한다. 그마저도 해킹에 대한 부분은 책 뒤쪽 10장 남짓, 그것들을 한데 모아 독학했다. 박 대표는 “책이 헤지고 찢어져 노란색 테이프로 감아서 볼 정도로 (해킹 공부에) 미쳐있었다”면서 “그후 아버지가 사준 컴퓨터로 실습을 해보고 1년 뒤 ‘중고생정보보고경진대회’에서 입상했다. 해커로서의 첫 데뷔였다”고 했다.

“범죄 유혹을 물리쳐야 진정한 해커”

은행이나 국가기관을 해킹해서 천문학적인 돈을 가로채는 해커들도 있다고 한다. 박 대표에게도 이러한 범죄 유혹이 있었다. 2004년 한창 해킹 공부를 할 때 여러 단체에서 도박사이트 해킹, 경쟁사 해킹 등 불법 의뢰가 들어왔다고 한다. 당시 MSN 메신저에는 해커들의 단체 채팅방이 있었는데, 주소가 노출돼있어 메일로 이런 의뢰가 들어온 것이다. 주변에서 불법 해킹으로 조사를 받거나 징역살이를 한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봐왔다고 한다. “공격자의 관점에서 취약점을 미리 발견해 방어를 구축하는 것이 화이트 해커인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라며 “범죄 유혹이 있었지만 단 한번도 빠진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 사이버 보안 기술과 인재 유출이 심각한 상태”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는 “특히 미국, 중국, 러시아, 이스라엘 등 사이버 보안 선진국에서 수억에서 수십억 연봉을 제시하며 인력을 채가는 일이 빈번하다”고 했다 이스라엘은 보안기술을 판매할 때 당국의 허락을 받아야하는 등 기술 유출에 대한 경각심을 보이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관련 법률 조차 미비한 실정. 박 대표는 “우리나라에서 핵심 기술들을 연구하던 사람들이 해외의 높은 연봉에 이직하는 경우를 다수 봐서 안타깝다”면서 “투자에 소외되는 유니콘 기업들을 더 발굴해 이러한 인재 유출과 기술 유출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2022년 7월 13일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경기 성남시 판교 제2테크노밸리 기업지원 허브에서 사이버 인력 양성 간담회를 마친 후 박찬암 스틸리언 대표(왼쪽), 이종호 토스 보안기술팀 리더와 기념촬영하고 있다. /대통령실

“80여명 직원 보안업체로 해외 시장도 개척”

박 대표는 정부기관의 자문 역할도 맡고 있다. 2021년부터 사이버작전사령부 자문위원,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적극행정위원회 위원을 하고 있고, 서울동부지검 사이버범죄 중점수사 자문위원으로 올해까지 8년째 활동하고 있다. 북한의 사이버 공격에 대한 분석과 해결책 제시 등 관련 기관의 자문에 응하면서 화이트 해커로서 사회적 기여를 하고 있다.

 

그와 80여명 직원들의 노력으로 지난 2019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현지 법인을 설립하고 금융기업과 보안제품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등 해외 진출에서도 성과를 보이고 있다. 아세안(ASEAN) 국가들을 대상으로 과기부 및 한국인터넷진흥원과 함께 해킹대회, 보안 행사, 교육 등 우리나라의 기술력을 전수하는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조선일보 김광진 기자

 

06.16 세월호와 천안함, 같은 슬픔인데 왜 차별하나

좌파가 앞장서온 유족 지원
왜 천안함에는 적용 안되나

 ▲일러스트=유현호

 

“답답한 일이 있어 오랜만에 글을 올려본다. ‘우리 히어로 트라우마 치유 지원 사업’이 종료됐다.”

최원일 전 천안함장의 말이다. 무슨 뜻일까. 2010년 3월 북한의 천안함 폭침으로 46명이 사망했다. 살아남은 이들 중 상당수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건 당연한 일. 고(故) 나현민 상병의 아버지 나재봉(55)씨의 말이다.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가족들 간에 대화가 없어졌다. 지금은 각자 일상으로는 돌아왔지만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어렵다. 숨어 사는 느낌이다.” 고(故) 박정훈 병장 아버지의 말도 들어보자. “1년 365일 정훈이 생각이 너무 많이 나는데 떠나간 아들은 ‘자신을 잊고 열심히 잘 지내라’는 의미인지 아빠·엄마 꿈에 한 번도 안 나온다.”

 

하지만 국가는 이들에게 무관심했다. 조용근 전 천안함재단 이사장이 “살아남은 58명의 용사들에게도 각별한 애정을 쏟아야 해요. 46명의 순직 용사들 못지않게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킨 영웅들입니다”라며 지원을 호소했지만, 국가의 배려는 없었다. 여기에 천안함에 대한 온갖 가짜 뉴스가 유포됐고, 민주당 대변인이던 권칠승은 생존 장병들이 다 구조될 때까지 천안함을 지킨 최원일 함장에게 “자기 부하들을 다 수장시켰다”며 모욕하기까지 했다.

 

이들에 대한 지원이 시작된 것은 13년이 지난 뒤였다. 2023년 6월, 대한정신건강재단은 우리금융과 손잡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우울증 등 감정적 고통을 겪는 현직 군인과 퇴직 군인을 지원하기로 한다. 대상자가 100명에 불과하고, 심리 검사비를 포함해 1인당 최대 200만원을 지원하는 것이니 엄청난 혜택이라 할 수는 없지만, 국가의 무관심 속에 지내온 병사들에게 이런 배려는 큰 힘이 됐을 것이다. 게다가 해당 재단이 자신들을 ‘우리 히어로’라고 불러주니 막힌 속이 뻥 뚫렸을 것도 같다. 최 함장도 여기에 대해 고마움을 표했다. “트라우마에 노출되고도 이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알고도 해결 방법을 몰라 고통에 시달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부상 장병들에게 (이 사업은) 한 줄기 빛이었다.” 안타깝게도 이 사업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재원 문제 등으로 인해 사업 시작 후 1년이 되는 6월 말이면 종료가 된다니 말이다.

 

 ▲지난 5월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4·16 세월호 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최 함장이 답답했던 것은 단지 사업이 종료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세월호 피해자에 대한 지원과 자신들이 비교돼서였다. 올해 5월 29일, 세월호 참사 피해자의 의료 지원 기한을 5년 연장하는 세월호피해지원법 개정안이 의결됐다. 10년 전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하며 304명이 희생된 세월호는 유가족과 생존자를 비롯해 전 국민에게 큰 슬픔이었다. 그들에 대한 지원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 박근혜 정부는 생활지원금을 지급하고, 단원고 학생들과 희생자의 직계비속과 형제자매 등에게 대입 특별 전형을 시행하는 것과 더불어 의료 지원, 즉 “세월호 참사로 인한 신체적·정신적 질병 및 부상과 그 후유증의 치료, 간병 또는 보조 장구의 사용에 소요되는 비용”을 지급하기로 한다. 원래 의료 지원은 1년, 심리 지원은 5년간 하기로 했지만, 박근혜 정부가 탄핵된 뒤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의료 지원 기한을 ‘사고 후 10년’으로 연장했다.

 

유족들의 아픔을 생각하면 당연한 조치다. 아쉬운 점은 왜 이런 당연함이 천안함에는 적용되지 않느냐다. 천안함 피해자의 멘털이 세월호 피해자보다 더 강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2018년에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고 대형 재난 사고 재발을 막자는 취지의 4·16재단이 만들어져, 5년간 국가로부터 매년 5억 원씩 지원받기 시작했다. 원래는 2023년 기한이 만료될 예정이었지만, 국가 지원을 10년으로 연장하는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기한이 2028년까지로 연장됐다.

 

2024년 4월 15일, 세월호 피해자에 대한 의료 지원이 끝났다. 좌파 언론들은 해당 분야 전문가를 내세워 이 기간을 연장하자고 주장했다. 국가적 재난으로 생긴 트라우마 치료에 기한을 두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것. 안산시 단원구를 지역구로 둔 민주당 고영인 의원은 아예 기한 제한 없이 의료비를 지원하자는 법률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주무 부처인 해양수산부는 연장에 반대했다. 의료지원금의 59%가 원래 목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심리 치료에 쓰이지 않고 치과와 한방 치료에 편중돼 있다는 것. 하지만 당사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참사 후 7~8년 만에 처음으로 트라우마 증상이 나타난 피해자나 유가족도 있다.” “트라우마 치료는 주기가 없어 지속적 의료비 지원이 필요하다.” “미국에선 9·11 테러 피해자들에게 사실상 종신 지원을 법으로 보장한다.” “평생의 아픔을 안고 가는 사람들에게는 길게 지켜봐 주는 시각이 필요하다.”

 

다 맞는 얘기다. 그런데 왜 이런 당연한 얘기가 천안함 피해자에겐 적용되지 않는 것일까? 포털 검색창에 ‘세월호’와 ‘트라우마’를 넣으면 수만 개의 문서가 나오지만, ‘천안함’과 ‘트라우마’를 검색하면 그 1000분의 1도 나오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북한과 휴전 상태에 있는 나라라는 점에서, 장병들에 대한 푸대접은 기이하기까지 하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왼쪽) 대표가 지난해 6월 서울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현충일 추념식에서 최원일 전 천안함 함장에게 항의를 받고 있다. 전날 민주당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최 전 함장을 두고 “부하들 다 죽이고 무슨 낯짝으로…”라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연합뉴스

 

지난 5월 28일, 민주당은 민주유공자법 등 다른 3개 법안과 함께 세월호 피해자의 의료지원을 5년 연장하는 특별법 개정안을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관건은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 대통령은 ‘여야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법안에 대해서는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원칙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다른 3개 법안과 달리 세월호특별법 개정안에는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이런 추세면 5년이 지난 뒤엔 또 다른 대통령이 의료지원을 연장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데, 더 안타까운 점은 다음이다. 세월호를 폄하하면 인간 말종으로 취급받고, 국회의원 공천도 물 건너가지만, 천안함을 폄하하면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는 것. 위에서 언급한 권칠승도 이번에 공천을 받아 무난히 재선됐고, 최원일 함장을 “”미친XX” “병X 같은 새X” “패잔병”이라 부른 유튜버는 “명예훼손 혐의가 없다”며 경찰에 의해 불송치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윤공용 현 천안함재단 이사장의 절규를 소개한다. “천안함 폭침 사건이 발생한 지 1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천안함 사건의 진실에 관한 가짜 뉴스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유포되고 있다.” “최근 수년간 유가족 중 9명이 비교적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 이 또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무관치 않다고 생각한다.”

조선일보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06-17 신원식 국방장관 “北 정찰위성은 러 기술…러 첨단기술 北이전 가능성 작아”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지난 6월 초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21차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연설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블룸버그 인터뷰서 "北 엔진시험 계속…한미일 안보협력 문서에 하반기 내 서명"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더라도 러시아가 북한에 최첨단 군사기술을 모두 넘겨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전망했다.

17일 블룸버그가 보도한 신 장관과의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신 장관은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의 가장 진보된 군사 기술을 (북한에) 이전할지는 불확실하며, 가능성은 매우 작다"고 말했다.

신 장관은 "러시아가 (최첨단 기술을) 이전하기로 결정하면 러시아가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완전히 잃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그래서 그들은 그것을 마지막 수단으로 남겨둘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러시아가 북한과 무기 거래로 일부 군사 기술을 제공하고 있고, 푸틴 대통령이 곧 방북하더라도 러시아가 최첨단 기술은 최후의 지렛대로 남겨두리라는 관측이다.

그는 "북한이 러시아에 마지막 수단을 포기하도록 유혹할 만한 것을 많이 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27일 발사 직후 폭발한 북한 군사정찰위성과 관련해 신 장관은 "러시아가 북한에 새로운 엔진 기술을 제공한 것으로 보이지만, 시스템 통합에 문제가 있어 발사가 실패로 끝났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신 장관은 "그것(북한 군사정찰위성 발사체 엔진)은 정확히 러시아의 최신 엔진 기술"이라며 "북한은 현재 엔진 시험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하반기에 또 다른 발사를 시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한 위성 발사체가 러시아 기술이라는 신 장관의 설명은, 북한 당국이 해당 발사체에 적용했다고 밝힌 ‘액체 산소와 석유 발동기’가 러시아의 엔진 기술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신 장관은 한국·미국·일본의 안보 협력을 제도화하는 문서에 조만간 서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미국·일본의 국방장관과 함께 "올해 하반기 안에 (문서에) 서명할 예정"이라며 "가능한 한 빨리 만날 수 있도록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미·일은 이달 초 싱가포르에서 있었던 제21차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국방장관 회담을 갖고 ‘한미일 안보협력체계’를 연내 작성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신 장관은 인터뷰에서 "우선순위는 북한 핵 및 미사일 위협에 보다 효과적이고 신속하고 일관되게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한·미·일 간에 구축하고 이를 되돌릴 수 없게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화일보 정충신 선임기자

 
 

06-18 ‘채 상병’ 지휘권 본질과 법 적용 의문

이성출 前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예비역 육군 대장


해병대 채모 상병 사망 사고가 여전히 정치적 이슈가 되고 있다. 지난달 28일 자 문화일보에, 이 사건은 군 지휘권과 군사작전의 특성을 고려할 때 군이 자체적으로 사고 원인을 조사해 지휘 책임을 묻고 수습할 수 있음을 밝힌 바 있다.

군대에서 지휘관은 상급부대로부터 작전 임무를 받으면 첫 단계로 그 임무를 분석하고 상황 판단을 한다. 이때 지휘관은 참모로부터 기상·지형·적정(敵情)·가용부대·전투근무지원 요소 등을 보고받고 여기에 자신의 군사 지식과 경험을 더해 계획지침을 내린다. 이어서 지휘관의 계획지침은 작전계획으로 작성돼 예하 부대에 작전명령으로 전달된다. 작전계획은 부대 지휘관계를 예속·배속·직접지원·일반지원·작전통제로 구분해 명시하고 지휘체계와 책임을 규정한다. 이 중 작전통제 시에는 모체 부대(원소속 부대) 지휘관에게 작전지휘를 뺀(缺·결) 지휘권을 준다.

이번 사건은 해병 1사단 포병부대가 강물 속 민간인 시신을 찾기 위해 수색작전을 하던 중 채 상병이 숨진 사고다. 채 상병이 소속된 부대는 해병 1사단 예속부대지만, 육군 50사단에 작전통제 돼 수색작전을 폈다. 여기에서 군사적 관점에서 2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우선, 지휘 관계와 작전지휘권이 불일치한 점이다. 채 상병이 소속된 포병부대는 합참 단편 명령에 따라 육군 50사단에 작전통제 돼 수색작전을 수행했다. 이는 해병 1사단장의 권한과 책임이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해병 1사단장은 채 상병이 소속된 포병부대의 모체 부대 지휘관이지만 수색작전을 지휘할 권한을 갖고 있지 않았으며, 그 권한은 육군 50사단장에게 있었다. 즉, 해병 1사단장은 부대를 50사단에 빌려주고 의식주만 책임지게 돼 있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해병 1사단장이 수색작전 지휘 권한을 갖지 않았음에도 왜 그에게 책임을 물었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다음으로, 이 사건은 작전과 훈련 중 발생한 사고였기에 군사작전 특성상 지휘 책임을 물어 처리할 수 있었는데도 굳이 관련자들에게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했느냐 하는 점이다. 군 사법체제 변화의 목적은 군 내부 부조리로 인해 발생한 사망 사고가 축소되거나 은폐되는 것을 방지하는 데 있지, 작전과 훈련에서 지휘권을 위축시키는 데 있지 않다. 사건을 조사한 해병대 수사단장과 이를 관장한 해병대 사령관은 본인들이 파악한 사실을 토대로 엄정히 조사하고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이 역시 지휘권이므로 마땅히 존중돼야 한다. 다만, 이 사건이 군 부조리로 발생한 사망 사고가 아니고 군사작전 수행 중에 일어난 사망 사고임을 고려해 지휘권을 위축시키는 사례(事例)가 되지 않았어야 했다.

이 사건이 정치권으로 확대된 발단은, 해병 1사단장에게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한 데 있다. 작전지휘권이 없는 해병 1사단장에게 왜 책임을 물었는지, 그가 월권해서 사망 사고가 발생하게 했는지, 이때 작전지휘권을 가진 육군 50사단장은 어떤 조치를 했으며 해병 1사단장과 마찰은 없었는지를 밝혀야 한다. 아울러 군의 부조리로 발생한 사고가 아닌데도 왜 굳이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했는지 그 이유가 밝혀져야 한다. 또, 이를 규명하는 과정에서 수사기관 외 특검을 포함한 정치적 개입은 배제돼야 하고, 해병대 명예가 손상되지 않아야 한다.

문화일보

 

06-18 오물풍선 이길 진짜 심리전

정충신 정치부 선임기자


지난달 28일부터 지난 9일까지 가축 거름, 담배꽁초, 휴지 조각 등 각종 오물 쓰레기를 단 ‘오물풍선’ 1000여 개를 우리 지역에 살포한 북한의 저열한 ‘오물 테러’는 북한이 아니고서는 생각하기 힘든 해외 토픽감이었다. 국제사회에 세계 최악·저질 정권의 실상을 새삼 일깨워준 오물풍선 사태는 갈 데까지 간 북한 세습 정권의 말기적 증상이란 평가마저 나왔다. 풍선 주입 가스, 3∼4m 크기의 대형 풍선, 1·2·3구 풍선 사용과 바람 세기·방향에 따라 주로 접경지역에 낙하하도록 준비하는 등 군사드론 제작을 위한 비행정보 축적용 또는 유사시 생화학무기 및 폭발물을 장착하기 위한 군사실험 목적 등 다양한 분석이 제기됐다.

북한은 해괴망측한 오물풍선 작전을 통해 남측에서 날려 보낸 대북전단은 정치적으로 오염됐지만, 자신들이 보낸 것은 정치 선전 목적의 ‘삐라’가 아닌 ‘순수한 오물’임을 주장했다. 대북전단을 둘러싼 남남갈등 유도를 겨냥한 것이었지만, 국내외 공분만 촉발하고 북한 체제의 저열성만 부각시킨 셈이 됐다. 결국, 오물풍선과 서해 민간 어선·항공기 등에 대한 GPS 전파 공격 등 복합 도발의 결과는 6년 만의 9·19 남북군사합의 전면 효력 정지와 휴전선 대북 확성기 설치 및 방송 재개로 이어졌다. 북한이 기괴한 대남 오물풍선 소동을 벌이면서 주민들에게는 비밀에 부친 것도 흥미롭다. 오물풍선을 보낸 사실이 입소문 날 경우 오히려 대북전단에 대한 호기심 등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휴전선 일대, 군사분계선(MDL)과 북한군 최전방 부대 철책선 사이에 쌓기 시작한 최대 수백m 대전차 방벽 건설 의도에 주목해야 한다. 김정은이 지난해부터 주장해온 ‘남북 적대적 2국가론’의 반(反)통일 정책에 따른 국경선 강화 상징물이다. 대전차 방벽 주변에 대규모 지뢰 매설을 포함해 어떤 무기를 갖다놓을지도 주목된다.

 

조만간 열릴 최고인민회의 헌법 개정을 통해 김정은의 ‘적대적 2국가’ ‘교전국 관계’를 고착화하기 위한 대남 봉쇄전략일 수 있다는 추정도 나온다. DMZ 내 대전차 방벽 건설 및 대규모 지뢰 매설로 정전협정을 무력화함과 동시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방북을 계기로 1961년 구소련과 북한 간에 맺었다가 폐기된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 조약’ 복원을 통해 자동 군사개입 조항을 부활시킬 것으로 보인다. “북한 주민이 한국 TV를 마음껏 볼 수 있다면 북한 체제는 보름도 못 가 무너질 것이다. 북한은 그만큼 허약한 나라다.” 국제정치학자인 이춘근 박사가 최근 유튜브 ‘이춘근TV’에서 한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러시아를 등에 업은 북한의 대남전략 등 큰 변화가 예상되는 시점에서 북한의 오물풍선과 DMZ 대전차 방벽 건설 및 지뢰 매설 등 북한 의도에 말려들지 않고 근본적으로 타개할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대북전단이 남북 평화를 해치는 원인이라는 북한의 대남 심리전에 말려들면 또다시 북한이 판을 짜는 ‘가짜 평화’ 놀음에 굴욕적으로 길들 것이다. 북한 정보 자유화야말로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고,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의 길로 나서게 할 수 있다. 북한 주민들에게 진실을 알려주는 것이 ‘진짜 평화’로 가는 길이다.

문화일보

 

06.18 북한군 수십명 또 군사분계선 침범… 경고사격 받고 퇴각

지난 9일 이후 두번째

북한군 일부 병력이 18일 군사분계선 남측으로 진입했다가 빠져나간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9일 20~30명이 월경했던 이후 9일 만이다.

 

 ▲북한군이 대규모로 최근 비무장지대 일대에서 지뢰매설 작업 등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합동참모본부 제공

 

합참은 18일 “북한군이 18일 오전 8시30분 군사분계선 약 20m 남측까지 진입했다가 북측으로 돌아갔다”고 밝혔다. 합참은 “단순 월경으로 보인다”며 “지난 9일과 유사하다”고 했다. 합참 관계자는 “지뢰를 매설하려면 불모지화가 돼야하는데 이를 위한 전초작업 차원에서 작업을 하러 온 것일 수 있다”고 했다.

 

20~30명 내외 인원이 곡괭이 등 장비를 들고 군사분계선을 넘었다가 우리 군의 경고방송과 경고사격을 받고 북측으로 복귀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합참은 “다양한 우발 상황에 대해 준비하고 있고 군사분계선 침범시 매뉴얼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했다.

 

합참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4월부터 약 10여개소에서 지뢰매설을 위한 불모지화 작업과 지뢰매설에 나서고 있다. 매일 수백명 규모로 작업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합참 관계자는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작업을 하고 있다”며 “작업 과정에서 사상자도 나온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했다.

 

 ▲최근 비무장지대(DMZ)에서 작업 중이던 북한군 다수 인원이 지뢰 폭발로 다치거나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군 당국이 18일 밝혔다. 큰 사진은 전선지역에서 지뢰매설 작업 중인 북한군. 작은 사진은 지뢰폭발 사고 모습. /합동참모본부 제공

 

과거 북한은 긴장 조성과 염탐을 위해 육상과 해상의 접적 지역에서 단순 월선을 가장해 우리 군의 대응태세를 떠본 뒤 기습 도발로 허를 찔러왔다. 2002년 6월 29일에 발생한 제2연평해전 당시 북한 경비정의 연이은 서해 NLL 침범에도 군은 어선 단속 과정의 우발적 월선으로 판단했다가 북한의 선제 포격 기습도발을 당했다. 2015년 8월 목함지뢰 도발 20여 일 전 북한군 10여 명이 강원 철원 인근 MDL을 침범했다가 아군 경고사격을 받고 돌아갔었다.

 

북한은 작년 11월 23일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 선언 후 군사합의에 따라 철수한 최전방 감시초소(GP) 복원을 올해 1월쯤 완료했고, 경의선과 동해선, 화살머리고지 등 남북 연결도로 일대에 지뢰를 매설하고 있다. 최근에는 동해선 가로등과 철도 레일 등을 제거하고 있다.

 

또 올해 4월부터는 북방한계선(북측 DMZ가 시작되는 군사분계선 북쪽 2㎞) 등 전선지역 여러 곳에 다수 병력을 투입해 경계능력 보강을 위한 불모지 조성, 지뢰매설, 전술도로 보강, 대전차 방벽으로 보이는 미상 구조물 설치 등 다양한 형태의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합참 관계자는 전했다.

 

 ▲북한군이 동부전선 지역에서 대전차 방벽으로 보이는 구조물을 설치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합동참모본부 제공

 

군 당국은 북한군이 DMZ 일부 지역에 건설 중인 방벽은 국경선 역할을 하는 장벽이라기보다는 대전차 장애물로 일단 평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합참 관계자는 “군사분계선을 소위 국경선으로 만들려는 활동과의 연계성은 지속적인 분석이 필요하다”며 “국경선화 가능성은 있으나, 현시점에서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북한군의 여러 활동에 대해 “북한군과 북한 주민의 월남 및 귀순 차단 등 내부 통제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도 보인다”며 “과거 귀순자가 발생했던 지역에 지뢰를 매설하고 관측의 용이성 제고를 위해 불모지 조성 등의 작업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선일보 양지호 기자

 

06-18 “사드 전자파 무해하다는데… 반대 계속할 수도 없는 노릇”

▲사라지는 ‘사드반대 성지’  지난 17일 일부 주민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반대 단체가 경북 성주군 주한미군 사드 철거를 주장하며 집회를 개최했던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 앞 집회장을 인부들이 철거한 뒤 각종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

 

■ ‘성주 反사드 집회장’ 자진철거

괴담으로 끝난 사드 인체 유해설
참외농사 주민 소득 오히려 증가
설치한지 7년2개월만 철거작업

4개월간 주민집회 없어 동력상실
군, 불법 컨테이너 등도 없앨 예정

성주 = 글·사진 박천학 기자 kobbla@munhwa.com

“사드 전자파가 사람 몸에 무해하다고 하잖아요. 과학적으로 유해성에 대한 근거가 없어졌는데 반대를 계속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집회 의지가 약해진 것이죠.”

지난 17일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서 인부들이 천막 철거작업을 하고 있었다. 마을회관은 주한미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기지 입구에 있다. 이 천막은 주민들이 설치했던 하우스형 집회장이다. 2017년 4월 사드 임시 배치 이후 일부 주민과 사드 반대 단체가 ‘사드 철거, 주한 미군 철수’ 등을 주장하며 집회하는 중심 장소 역할을 했다. 이들은 이곳에서 집회하며 바로 옆 2차선 도로를 차단하고 사드 기지로 향하는 차량 통행을 격렬히 저지했다. ‘사드 반대 성지’와 다름없는 곳을 주민들이 스스로 철거한 것으로, 7년 2개월여 만이다.

이 마을 인근 주민은 “잦은 집회로 이미지가 나빠지는 등 민원 때문에 철거한 것”이라며 “사드 배치와 이에 따른 전자파 발생 우려로 소성리 주민들의 반대가 극심했지만 과학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결론 나고, 사드가 생활에 지장을 주는 것도 없다 보니 반대만 할 수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국방부는 지난해 6월 환경영향평가 결과 “사드 레이더 전자파는 인체 보호 기준의 0.189% 수준으로 영향이 미미하다”고 발표했다. 일부 주민들이 “생존권·건강권을 침해당했다”며 제기한 헌법소원도 헌법재판소가 지난 3월 각하하면서 사드 반대 명분은 사실상 사라졌다. 사드 기지는 마을회관에서 약 3㎞ 떨어진 산속에 있다.

사드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줄어들면서 주민들은 지난 2월부터 사실상 집회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이날 마을회관에서 만난 10여 명의 할머니는 “사드가 모두 배치된 상황에서 반대한들 무슨 소용이 있냐”며 “외부에서 온 반대 단체에서 집회하든 상관없으며 다만 좀 조용했으면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애초 사드 반대 집회에는 소성리 할머니들이 앞장서다시피 했다. 이곳 주민은 100여 명이며 대부분 고령층이다. 사드 반대 집회는 외지인 주축의 단체에서 여전히 5∼20명이 참여한 가운데 간헐적으로 열리고 있다. 하지만 초창기 수백 명에 비하면 집회 동력은 크게 떨어진 상태다.

주민들이 집회장을 자진 철거한 데 이어 성주군은 사드 반대 단체 등에서 군 소유 토지에 무단으로 설치한 컨테이너 등 시설물을 철거하기로 했다. 남은 시설물은 총 9개다. 마을회관 부근 5개와 이곳에서 사드 기지로 향하는 도로를 따라 약 1㎞ 위쪽 진밭교 일대 4개다. 군은 시설물마다 철거 안내문을 붙였으며 오는 7월 12일까지 원상 복구해 달라는 공문도 사드 반대 단체 등에 발송했다.

한편, 참외 주산지인 성주군은 2016년 사드 배치 지역 발표 당시 확산한 ‘사드 전자파 참외’ 괴담이 무색해질 정도로 주민 소득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군에 따르면 참외 조수입(필요 경비를 빼지 않은 수입)은 2016년 3710억 원, 2019년 5050억 원, 2023년 6014억 원 등으로 급증했다. 군은 올해 초 이상기후 현상이 나타났지만, 지난달부터 출하량이 늘어 올해 조수입은 지난해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다.

문화일보 

 
 

06.19 괴담 8년 만에… '성주 사드 반대 성지' 주민들 자진철거

反사드 집회장 스스로 없애

 ▲천막 걷어낸 소성리 마을회관 앞 집회장 - 18일 오후 사드 반대 단체 등이 7년여 만에 집회를 열던 집회 천막을 철거한 경북 성주군 소성리 마을회관 앞. 이들 단체와 일부 주민은 2017년 4월부터 마을회관 옆 도로를 점거한 채 사드 반입 저지를 시도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사드로 인한 전자파 발생 우려는 과학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결론났다. /이승규 기자

“이제 할 만큼 했다 아인교.”

18일 오후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 건물 옆에 텅 빈 단상이 눈에 들어왔다. 2017년 4월 이곳에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가 배치된 이후 주민들이 세운 ‘사드 반대 집회 천막’이 있던 자리다. 전날 주민들이 자진 철거하고 단상만 남았다. 7년여 만의 일이다.

 

정부가 성주에 사드를 배치하겠다고 결정한 2016년 이후 이곳은 사드 반대 집회의 ‘성지(聖地)’였다. ‘성주 사드 반대 투쟁위원회(성주투쟁위)’ 등 6개 단체가 이곳에 ‘생명 평화 위협하는 사드 배치 절대 반대’ ‘사드 빼야 진짜 평화’ ‘미군 빼야 진짜 자주’ 등 현수막을 내걸고 “사드 가고 평화 오라”는 구호를 외쳤다. 정부가 사드의 일부 장비를 교체할 때는 수백여 명이 모여 경찰과 맞서기도 했다.

▲그래픽=김현국

 

이날 마을은 고요했다. 마을 주민들도 보이지 않았다. 마을회관 뒷편에는 ‘NO THAAD(노 사드)’라고 쓴 피켓이 구겨진 채 버려져 있었다. 1시간을 걷다 마주친 마을 주민 A씨는 “이제 그만할 때도 됐다”며 “지난해 (사드가) 건강에 해롭지 않다는 환경영향평가 결과도 나왔고 헌법재판소에 낸 헌법소원도 각하되지 않았느냐. 이제 명분도 없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은 빈 단상을 공연 무대 등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했다. 주민 B씨는 “단상을 마을 전경 사진으로 꾸미고 마을 축제 무대로 활용할 예정”이라며 “가수를 초청해 공연도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2016년 이곳에 사드를 배치하기로 한 이후 동네는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성주투쟁위, 사드배치반대 김천시민대책위원회, 원불교성주성지수호 비상대책위원회, 사드한국배치저지 전국행동 등 6개 단체가 잇따라 반대 집회를 열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도 찾아와 “사드 전자파에 내 몸이 튀겨질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마을 주민들이 주축이된 성주투쟁위가 먼저 이탈했다. 투쟁위에서 활동했던 80대 이모씨는 “나머지 단체들은 전부 다른 동네 사람들”이라며 “동네 길을 막고 사드 기지로 향하는 차량을 전부 저지하자고 하는 등 마을 사람들과도 의견 충돌이 있었다”고 했다.

 

 ▲지난 2017년 9월 7일 사드 발사대 4기를 추가로 배치하기 위해 이송 차량들이 경북 성주군 소성리 마을회관 앞을 지나는 모습. 당시 성주군 주민 수십 명이 도로에 뛰어들거나 참외와 물병 등을 던지며 사드를 실은 차량을 막아 세우기도 했다. /조선일보 DB

 

최근 몇 년 사이 집회에 모이는 사람 수가 크게 줄었다. 경찰 등에 따르면, 2016년 6000여 명이었던 사드 반대 집회 참가자 수는 2021년 50여 명 수준으로 줄었고, 올해 들어서는 10~30명으로 더 줄었다. 이날 오전에도 이곳에서 사드 반대 집회가 열렸지만 참석자는 10여 명에 그쳤다. 성주경찰서 관계자는 “집회 신고는 7월까지 돼 있지만 작년 11월부터는 집회에 참가하는 마을 주민이 거의 없다”고 했다. 주민 C씨는 “사드가 이미 배치됐고 관심에서 멀어지다 보니 동네 할아버지·할머니들도 힘이 빠졌다”며 “지금도 외지 사람들 중심으로 집회를 하고 있지만 참석하는 주민은 못 봤다”고 했다. 최근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천막을 철거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진 것도 이런 분위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날 만난 마을 주민들 대부분은 “여름 참외철을 앞두고 일하기 바쁜데 무슨 집회냐”고 했다. 2016년 이후 “사드 전자파가 성주 참외를 오염시킨다”는 괴담이 돌았지만 성주 지역 특산품인 참외 매출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역대 최고 매출액을 기록했다.

 

사드 반대 단체인 ‘사드 철회 소성리 종합상황실’과 일부 주민은 천막만 철거했을 뿐 집회는 계속 한다는 입장이다. 단체 관계자는 “오늘도 603회째 평화 행동이 열렸다”며 “집회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주군은 최근 사드 반대 단체들에 국·공유지에 무단 설치한 컨테이너 5동과 텐트를 철거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조선일보 성주=노인호 기자 권광순 기자 이승규 기자

 

06.19 DMZ 지뢰 묻다가 폭발, 사지 내몰린 北 군인들

합참 "잇단 폭발로 수십명 사상"

 ▲휴전선에 장벽 쌓고 지뢰 추가 매설하는 북한군 - 북한군이 전선 지역에서 작업하고 있는 모습이 우리 군의 감시 자산에 포착됐다. 북한군은 지난 4월부터 대전차 방벽으로 보이는 구조물을 설치(왼쪽)하거나, 지뢰를 매설(오른쪽)하는 등의 작업을 하고 있다. 북한군은 이 과정에서 지난 9일과 18일 등 3차례 군사분계선을 넘어왔다가 경고사격을 받고 돌아갔다. 북한군 수십 명이 작업 중 목숨을 잃은 정황도 포착됐다. /합동참모본부

 

북한군 수십 명이 18일 군사분계선(MDL)을 넘어왔다가 우리 군 경고사격을 받고 북측으로 돌아갔다. 북한군의 군사분계선 침범은 지난 9일부터 열흘 사이 세 번째다. 군은 이들이 김정은 지시에 따라 군사분계선 및 비무장지대 일대 지뢰 매설 작업을 위해 투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북한군은 하루 최대 수천 명을 투입해 지뢰 매설 등 작업에서 ‘속도전’을 벌이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북한군 수십 명이 죽거나 다친 정황도 포착됐다.

 

합참은 이날 “북한군 20~30명이 오전 8시 30분쯤 중부전선 군사분계선 남측 20m 지역까지 넘어왔다가 경고방송·경고사격 이후 퇴각했다”며 “대부분 곡괭이·삽 등 작업 도구를 들고 있었고 경고 이후 바로 돌아간 것으로 봐 ‘단순 침범’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군은 앞서 지난 9일 오후 두 차례에 걸쳐 20~30명이 중부전선 다른 지역에서 군사분계선을 넘어왔다가 우리 군의 경고사격에 퇴각했다. 당시에도 합참은 이를 ‘단순 침범’으로 봤다. 작업 장비를 들고 있는 인원이 대다수였고 경고 뒤 바로 이탈했으며, 군사분계선 일대에 수풀이 우거져 길을 잃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북한은 과거 제2연평해전(2002년)과 목함지뢰 도발(2015년) 당시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군사분계선을 넘었다가 복귀하는 비슷한 형태의 사전 도발을 했다. 북한군이 향후 도발을 앞두고 우리 군 대응 태세를 떠보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이 군사분계선 일대가 아닌 서북 도서에서 성동격서 식으로 도발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합참은 이날 “북한군은 지난 4월부터 전선 지역 여러 곳에서 불모지 조성, 지뢰 매설, 전술 도로 보강, 대전차 방벽으로 보이는 미상 구조물 설치 등 다양한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그래픽=양인성

 

북한은 북방한계선(군사분계선 북쪽 2㎞)을 따라 대전차 방벽을 현재까지 4곳에서 조성하고 있다. 긴 것은 길이가 수백m, 높이도 4~5m에 달한다고 한다. 합참 관계자는 북한이 지상 국경선을 만들고 있다는 관측에 대해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현시점에선 단정하기 어렵고, 우리 정전협정 체제에서 국경선은 불가능한 사안”이라고 했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23일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 선언 후 군사합의에 따라 철수한 최전방 감시초소(GP) 복원을 올해 1월쯤 완료했다. 지난 4월부터는 경의선과 동해선, 화살머리고지 등 남북 연결도로 일대 등 10여 곳에 지뢰를 매설하고 있다. 하루 투입되는 인원은 많게는 수천 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최근 장마를 앞두고 지뢰 매설 ‘속도전’에 나섰고, 대전차 방벽을 세우는 동향이 우리 군 감시 자산에 파악됐다.

◇”수백 명이 해 뜰 때부터 질 때까지 작업”

합참 관계자는 “매일 해 뜨면 작업을 시작해 해가 지면 끝내고 있다”며 “장소별로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수백 명이 투입되고 있다”고 했다. 특히 지뢰 매설 과정에서 지뢰 폭발 사고가 여러 차례 일어났고, 사상자가 수십 명 발생해 후송되는 모습도 우리 군 감시 자산에 포착됐다고 한다.

 

18일 군사분계선 남측으로 넘어온 북한군 인원도 지뢰 매설을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합참 관계자는 “지뢰 매설을 하려면 불모지 작업부터 진행해야 한다”며 “수풀이 우거져서 정찰하면서 (지뢰 매설) 전초 작업의 차원이란 생각이 든다”고 했다.

 

 ▲북한군 100여명, 작업 위해 줄줄이 이동 - 100명이 넘는 북한군이 전선 지역에서 작업을 위해 이동하고 있는 모습이 우리 군의 감시 자산에 포착됐다. 합동참모본부는 18일 “북한군이 지난 4월부터 전선 지역 여러 곳에서 불모지 조성, 지뢰 매설, 전술 도로 보강, 대전차 방벽으로 보이는 미상 구조물 설치 등 다양한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합동참모본부

 

북한의 지뢰 매설은 과거 남측으로 귀순했던 지역과 개활지 일대에서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지뢰는 전반적으로 대인 지뢰 위주고 일부 지역에서 대전차 지뢰도 매설하는 정황이 있었다고 군은 전했다. 군 관계자는 “북한 주민 월남 및 귀순 차단 등 내부 통제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고 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북한이 ‘적대적 두 교전국 관계’를 선언한 이후 남측과 교전할 준비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김정은의 직접 명령인 이른바 ‘1호 지령’이 있었을 것이고, 이에 따라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 일대에서 방벽 건설과 지뢰 매설 등에서 속도전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북한이 사상자가 나오는 가운데서도 지뢰 매설에 속도를 내는 이유는 장마철도 원인으로 분석된다. 장마가 시작되면 지뢰 매설이 어렵고 매설한 지 얼마 안 된 지뢰는 폭우로 유실될 가능성도 있다.

 

이 같은 북한의 지뢰 매설 움직임은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와 연관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확성기 방송으로 북에서 월남하는 군인과 민간인이 나올 수 있으니 탈북 경로를 지뢰로 막겠다는 것이다.

◇길이 수백m·높이 5m 대전차 방벽도

합참은 이날 “대전차 방벽으로 추정되는 구조물이 4곳에서 건설 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긴 방벽은 수백m에 높이도 4~5m 수준”이라고 했다. 대전차 방벽은 남측은 콘크리트 벽을 세우고 뒤쪽으로는 흙을 채운 것으로 알려졌다. 군은 북측이 대전차 방벽을 전차 등 기갑부대가 이동 가능한 도로와 개활지 위주로 건설하고 있다고 전했다.

 

군 관계자는 “대전차 방벽을 건설하면서 남측이 언제든 북측을 공격할 수 있다는 대내용 메시지를 보내는 것일 가능성이 있다”며 “외부의 적(대한민국)을 통해 내부를 결집시키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군사분계선을 소위 국경선으로 만들려는 활동과의 연계성은 지속적인 분석이 필요하다”고 했다.

 

현재 대전차 방벽은 4곳에서 식별되고 있지만 북한이 추가로 작업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합참 관계자는 “북한은 장마 등 기상 상황, 작업 병력과 자재 수급 상황 등을 고려해 작업 지역을 점차 확대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조선일보 양지호 기자

 

06.20 황당 괴담 없어지는 데 8년이나 걸린 나라

▲2017년 9월 7일 사드 발사대 4기를 추가로 배치하기 위해 이송 차량들이 경북 성주군 소성리 마을회관 앞을 지나고 있다. 이를 막으려는 사드 반대 시위대가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조선일보 DB

 

지난 8년간 주한 미군 사드 반대 집회가 벌어진 경북 성주군 소성리 마을회관 앞이 조용해졌다. 2016년 사드 배치 결정이 난 뒤로 바람 잘 날 없던 곳이다. 성주투쟁위, 김천대책위, 원불교비대위, 전국행동 등 여섯 단체가 잇따라 반대 집회를 열었다. 시위대는 각종 장비·물자가 사드 기지로 향할 때마다 경찰과 충돌했고, 도로를 점거한 채 사드 기지를 오가는 모든 차량 출입을 막았다. 한때 6000여 명이 참가하던 집회가 지금은 외지인 10~20명 규모로 간헐적으로 열리고 있다. 며칠 전엔 주민들이 집회용 천막을 자진 철거했다.

 

2016년 정부가 성주에 사드 배치를 결정하자 사드 반대 세력은 “사드 전자파가 성주 참외를 오염시킨다”는 괴담을 퍼뜨렸다. 선동에 넘어간 일부 주민이 참외밭을 갈아엎고 머리띠를 둘렀다. 일부 민주당 의원은 사드 반대 집회에 나가 “내 몸이 전자파에 튀겨질 것 같다”고 노래했다. 문재인 정부는 사드 전자파가 인체에 무해하다는 결과를 수십 차례 확인하고도 숨겼다. 사드를 싫어하는 중국과 북한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사드 기지 내 한미 장병들은 제대로 된 숙소와 화장실 없이 컨테이너 같은 곳에서 열악하게 생활했다. 우리 안보를 지키려 들여온 방어 체계를 우리 스스로 망가뜨렸다. 2021년 현장을 확인한 미 국방 장관이 우리 측에 항의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제야 문 정부가 시위대 통제에 나서면서 물자 반입에 숨통이 트였다.

 

현 정부 출범 이후에야 사드 전자파가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는 환경영향평가 결과가 나왔다. 주민들이 사드 배치로 기본권을 침해당했다며 제기한 헌법소원도 지난 3월 각하됐다. 이게 7년씩 걸릴 결정이었나. 이제 주민들은“시위할 명분도 없다”고 말한다. 결국엔 이성과 진실이 괴담과 선동을 없앴지만 너무 많은 시간과 사회적 비용을 치른 뒤였다. 성주 참외는 몇 년 전부터 최고 매출액을 갈아치우고 있다. 이 황당한 사드 괴담을 만들고 키운 세력은 지금도 사과 한마디 없다.

조선일보 사설

 

06.25 막다른 길에 선 韓 안보, 정부硏서 나온 핵무장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9일 평양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노동신문·뉴스1

 

국가안보전략연구원(전략연)이 지난주 북·러 정상회담 결과와 관련해 자체 핵무장과 잠재적 핵 능력 구비를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잠재적 핵 능력 구비’란 한미 원자력 협정의 제한을 받는 우라늄 농축과 핵연료 재처리 권한의 확보를 뜻한다. 전략연은 사실상 국책 연구소로 간주된다. 지금까지 국책 연구소들이 북한의 핵 위협에 맞서 미국 전술핵 재배치나 나토식 핵 공유를 거론한 적은 있지만 독자 핵무장과 재처리 권한 확보까지 언급한 경우는 드물었다. 그만큼 이번 북·러 정상회담 결과가 우리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한다는 뜻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주 평양에서 북핵에 따른 유엔 대북 제재를 무력화할 뜻을 드러냈다. 전략연은 “북한의 핵무장을 우회적으로 용인한 것”이라고 했다. 북·러가 이번에 체결한 조약은 ‘평화적 원자력 분야 협력’을 명시했는데,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한 국가와의 원자력 협력은 해당 국가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NPT에 비가입한 인도와 2008년 원자력 협정을 맺은 게 대표적이다. 중국은 이미 북핵을 인정하는 추세다.

 

한국은 북·중·러와 직접 국경을 맞대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북·중·러는 모두 핵을 갖고 있고 독재자 한 명이 좌지우지하는 전체주의 국가다. 그런데 한국은 핵 없이 이들과 맞서 있다. 이런 불균형은 지속될 수 없고 언젠가 문제가 터진다. 우리 사회는 불감증에 빠져 있지만 객관적으로 심각한 안보 위기다.

 

미국의 핵우산으로 대응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이 같은 인식은 미국 조야에서 본격 표출되기 시작했다. 의회와 학계에선 한국에 전술핵 재배치나 나토식 핵 공유를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심심찮게 개진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선임보좌관을 지낸 앨리슨 후커는 한국의 자체 핵무장 가능성을 거론하며 “북·러의 관계 심화가 확실히 한국을 그 방향으로 내몰고 있다”고 했다. 아직은 일부이지만 한국의 안보 상황을 우려하는 인사가 점점 늘어날 것이다.

 

이제 한국 정부도 핵무장 논의를 더 이상 금기시하지 않아야 한다. 그럴 수 있는 상황을 넘어섰다. 한국이 미국과의 협의하에 핵을 갖는 것이 미국의 서태평양 전략에 이익이 된다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 트럼프가 재집권할 경우 방위비 분담금의 대폭 인상을 받아들이는 대가로 핵 옵션을 요구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당장은 미국이 수용하기 어렵다고 해도 계속 타진해야 한다.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후세에 죄를 짓게 될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6-25 안보 불감증, 제2의 6·25 위험 키운다

박휘락 국민대 특임교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9일 북한을 방문해 냉전시대 동맹 관계를 전격 복원했다. 우리 정부가 주한 러시아 대사를 초치해 항의하거나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하겠다고 한 엄포는 버스 떠난 뒤 손들기다. 그래도 이왕 공언했으면 북한과 비슷한 수준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나토(NATO) 회원국들과의 연대를 강화함으로써 러시아가 이번 결정을 후회하도록 해야 한다. 북·러 동맹 복원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한 국가정보원과 외교부에 대한 문책·보강도 필요할 것이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북한·러시아·중국’과 ‘한국·미국·일본’이 대결하는 ‘신(新)냉전’ 구도가 재연되고 있다. 그런데 북방 3국의 연대는 냉전 못지않지만, 남방 3국의 결속은 불안하다. 한미동맹은 미 대선 결과에 따라 요동칠 수 있고, 한·일 안보 협력은 당위성 강조에 머물러 있다. 특히 냉전과 다르게 북한은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돼 미 본토 공격 위협으로 미국이 핵우산 제공을 망설이게 한다. 매우 걱정스럽다.

우리 내부의 안보 태세는 더욱 걱정스럽다. 최근 북한이 동일 민족임을 부정하면서 핵공격 가능성으로 위협해도, 북·러 동맹이 복원돼도 걱정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 안보 관련 TV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점점 낮아진다. 정치인들은 각자 진영의 이익 수호에만 이전투구(泥田鬪狗)할 뿐 안보는 뒷전이다. 야당은 평화 타령만 계속하고, 정부의 안보 전략은 여전히 모호하다. 신냉전의 파고는 높아지는데 한국이란 배는 표류하고, G20 수준의 경제력을 갖게 됐지만 안보 태세는 임진왜란, 정묘·병자호란, 구한말, 6·25전쟁 직전과 다르지 않다.

74년 전 6월 25일, 소련과 중국의 사주를 받은 북한은 새벽 4시에 탱크를 앞세우고 남한을 기습 공격했다. 대리전쟁(proxy war) 차원에서 러시아와 중국이 북한을 사주해 핵무기를 앞세워 남한을 공격하게 한다면? 이미 북한은 지난해 12월 말 노동당 전원회의와 지난 1월 중순 최고인민회의에서 핵무기를 사용해서라도 남한을 공격 및 합병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대해 국내 식자들은 북한의 공격적 언동은 허풍이거나 내부 결속용이고, 이번 북·러 조약을 동맹 복원으로 보긴 어렵다고 말한다. 오죽하면 미국 학자들이 나서서 북한의 공격 가능성과 북·러 동맹 복원의 심각성을 경고하고, 한국의 핵무장이나 미 핵무기의 재배치 필요성을 강조하겠는가. 사실, 선조들도 임진왜란 때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관상이 보잘것없다는 이유로, 정묘·병자호란 때는 명나라를 섬기느라, 6·25전쟁 때는 국내 정치에 함몰돼 대비에 소홀했다. 결국은 엄청난 살육과 참화를 경험했다.

다행히 경북 성주 주민들이 사드(THAAD) 반대 현수막과 시설물을 7년 만여에 치웠다. 유해 전자파 방출 등의 모든 주장이 허위로 판명됐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무기가 자체 방어용이라거나 협상 조건만 맞으면 포기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 대다수는 사드 배치에 반대했다. 사드에 관한 오해는 국가의 부분적 손해에 그쳤지만, 북핵에 관한 안일한 판단은 국가 존립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은 안일로는 6·25전쟁보다 더 참혹한 민족의 비극을 예방하기 어렵다. 북핵과 ‘신냉전’에 철저하게 대비하자. 제발 유비무환의 자세를 갖자.

문화일보 

 

06-25 “퇴행” “비열” “동토”… 윤 대통령, 강력한 언어로 ‘북-러 밀착’ 비판

▲참전용사 손잡으며…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오전 대구 북구 엑스코에서 열린 ‘6·25전쟁 제74주년 행사’에서 참전용사 및 국가유공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6·25 기념식서 첫 언급

“평화는 말이 아닌 힘으로 수호
김정은, 주민 참혹한 삶 외면”

74주년 기념식에 이례적 참석
한미동맹·국제연대 강화 의지
북 민감반응 인권문제 거론도

 

 

윤석열 대통령은 25일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 북·러 군사협력 조약 체결 등에 대해 “역사의 진보에 역행하는 시대착오적 행동”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강력한 힘과 철통 같은 안보태세가 진정한 평화를 이룩하는 길”이라며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해 엄정 대처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북·러의 군사 밀월 등 ‘힘에 의한 현상 변경 시도’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확고한 군사 대비 태세 유지, 한·미 동맹 강화 등 국제사회 연대를 통해 북한의 위협에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6·25전쟁 제74주년 행사’에서 북한의 일련의 도발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오물 풍선 살포에 대해 “비열하고 비이성적 도발”이라고 했다. 지난 19일 북·러의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 체결에 대해서는 “역사의 진보에 역행하는 시대착오적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사실상 직접 겨냥해 “주민들의 참혹한 삶은 외면하고 동포들의 인권을 잔인하게 탄압하면서 정권의 안위에만 골몰하고 있다”고 했다. 북한이 가장 민감해 하는 인권 문제를 거론하며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 ‘정권 안위용’이라고 정면 비판한 것이다. 그간 북·러 조약 체결 등에 대한 입장은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이 주로 밝혀왔는데, 엄중한 안보 상황 등을 감안해 윤 대통령이 6·25 행사에 이례적으로 참석해 비이성적 위협을 지속하는 북한을 강하게 비판한 것으로 분석된다.

윤 대통령은 또 북한은 ‘퇴행의 길’로, 우리나라는 ‘자유와 번영의 길’로 가고 있다며 우리나라와 북한의 현실을 대비해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전쟁 후 67달러에 불과했던 (우리의) 국민소득은 이제 4만 달러 시대를 앞두고 있고, 지난해 처음으로 일본을 추월해 모범적인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했다”고 했다. 반면 북한에 대해서는 “퇴행의 길을 고집하며 지구상의 마지막 동토로 남아 있다”고 꼬집었다.

윤 대통령은 “평화는 말이 아닌, 강력한 힘으로 지키는 것”이라며 핵·미사일 위협을 지속하는 북한에 대해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우리 군은 어떠한 경우라도 북한이 대한민국을 감히 넘보지 못하도록 확고한 대비태세를 유지하고, 북한의 도발에 압도적으로,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한·미 동맹 강화 등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연대를 통한 대응 방침도 밝혔다. 윤 대통령은 “우리가 더 강해지고 하나로 똘똘 뭉치면, 자유와 번영의 통일 대한민국도, 결코 먼 미래만은 아닐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윤 대통령은 한·미 핵공유 강화 및 전술핵 재배치 핵무장론 등에 대해서는 직접 언급은 하지는 않았다. 현재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인 나경원 의원, 대선 후보로 분류되는 오세훈 서울시장 등이 ‘자체 핵무장론’을 주장하는 등 핵무장이 정치권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손기은 기자 son@munhwa.com

 

06-26 北, 새벽 탄도미사일 도발… 합참, 조만간 백령·연평도서 해상사격훈련

 

▲연평·백령도서 잡힌 ‘北 미사일 추정’ 항적운 북한이 26일 오전 5시 30분쯤 평양 인근에서 발사한 탄도미사일의 항적운으로 추정되는 흰 연기가 인천 옹진군 연평도에서 촬영된 사진에서 포착됐다. 군 관계자는 “사진이 찍힌 시간대와 방향이 맞는다면 북한이 발사한 탄도미사일의 항적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아래 사진은 백령도의 한 주민이 촬영한 북한 미사일 추정 항적운. 뉴시스 연합뉴스

평양 일대서 발사… 공중 폭발
오물풍선 600개 무더기 살포

북한이 26일 새벽 극초음속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6나형’으로 추정되는 미사일을 동해상으로 발사했으나 약 250㎞를 비행한 뒤 공중 폭발했다. 북한은 24∼25일 밤에는 600여 개의 오물풍선을 무더기 살포했다.

북한은 지난 19일 북·러 정상회담을 통해 군사동맹을 복원한 직후 사흘 연속 대남 군사 위협을 이어가며 도발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오전 “북한이 오전 5시 30분쯤 평양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했으나 실패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한·미 정보당국에서 추가 분석 중”이라고 밝혔다. 우리 군은 북한이 고체연료 추진체계를 적용한 기존 ‘원뿔형’(탄두 모양 원추형)과는 다른 ‘슬라이드형’ 탄두 극초음속 미사일을 발사한 것으로 보고 구체적 제원을 분석 중이다. 군은 북한이 지난 1월과 4월에 이어 3번째 시험 발사를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북한은 전날(25일) 밤 오물풍선 250여 개도 추가 살포했다. 올 들어 6번째 풍선 살포로, 지난 24일 밤에도 오물풍선 350여 개를 날려 보냈다. 대부분 종이류 등 쓰레기였고 위험 물질은 없었던 것으로 분석됐다. 우리 군은 대응 성격으로 대북 확성기를 통한 심리전 재개를 검토 중이다.

또 우리 군은 조만간 연평도, 백령도에서 6년 만에 해병대 해상 사격 훈련을 전격 재개한다. 지난달부터 이어진 오물풍선 살포, 미사일 발사 등 연쇄 도발에 따라 4일 9·19 남북군사합의 전체 효력을 정지하기로 결정한 데 따른 후속조치다. 미 해군의 핵 추진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호’ 등 미 제9항모강습단이 참가하는 한·미·일 다영역 군사 훈련 ‘프리덤 에지’도 이번 주 첫 실시된다. 한·미·일 3각 협력체제를 크게 강화하며 북한을 압박하기 위한 조치로 분석된다. 대통령실은 북한의 추가 도발 가능성에 대비해 인성환 국가안보실 2차장 주재로 이날 오전 안보 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대응 태세 강화에 나섰다.
문화일보 김규태·정충신 선임기자

 

06.28 핵 없는 전쟁은 이길 수 있나

싸움 없이 승리해야 최고라는데
그러려면 첩보·외교 먼저 이겨야
對共수사권 경찰 넘기고
북한 간다며 800만불 보내
고위관장교·부사관 옷 벗는 나라
청년층 민심 이반 심각한데
핵 있느냐 없느냐는 둘째 문제고
이 상태로 北 이길 수 있나

“6·25입니다. 이제는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합니다.” 국민의힘 7·23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나경원 의원이 지난 25일 페이스북을 통해 주장했다. 대한민국 자체 핵무장론이 다시 한번 정치권에서 공론화되고 있는 중이다.

 

그 필요성이나 현실성에 대해서는 지금껏 많은 논의가 오간 바 있다. 그러므로 오늘은 좀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보도록 하자. 자체 핵무장론은 북한의 핵이 현재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가장 큰 요소라고 상정하고 있다. 북한에 핵이 없다면 우리를 위협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은연중에 간주한다.

 

과연 그럴까? 우리는 핵 없는 북한은 이길 수 있나? 핵무기라는 요소를 제외하고 나면 우리가 이기고 있는 것이 맞긴 한 걸까? 지난 15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페이스북을 통해 내놓은 발언을 접한 후로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질문이다.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싸워서 이기는 것은 하책입니다. 싸울 필요가 없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어렵지만 가장 튼튼하고 또 유능한 안보입니다.” 아마도 ‘손자병법’, 그중에서도 ‘모공’편을 참고한 듯하다. 이 대표뿐 아니라 다수의 민주당 지지자, 햇볕정책 옹호자들의 생각이기도 하다.

 

이것은 잘못된 인용이다. 실수가 아니라면 왜곡 수준이다. ‘손자병법’은 ‘싸우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말을 하고 있지 않다. 춘추시대 사람인 손자에게 전쟁은 불가피한 현실이었다. 다만 그 방식에 있어서 직접적인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이 최선이라 강조했을 뿐이다. “백전백승(百戰百勝)은 선 중의 선이 아니다.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야말로 선 중의 선이다.”

 

이 대표의 주장과 달리 ‘손자병법’은 전쟁을 피하고 싸우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이 아니다. 포를 쏘기 전에 적의 외교 관계를 교란하고, 병력을 출동시키기 전에 간첩을 투입하여, 최대한 피 흘리지 않고 승리를 얻어야 한다는 당연한 진리를 역설하고 있을 따름이다.

 

“상병벌모 기차벌교 기차벌병 기하공성(上兵伐謀 其次伐交 其次伐兵 其下攻城)”, 즉 “최고의 용병은 적의 계획을 치는 것이며, 그다음은 외교관계를 치는 것이고, 그다음이 군대를 치는 것이며, 최하의 방법은 성을 공격하는 것”이라는 말은 그런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이 대표가 ‘손자병법’을 거론하는 모습을 보며 어안이 벙벙한 건 그래서다. 무력 충돌 없이 승리하려면 첩보전, 외교전에 더 치열한 힘을 쏟아야 한다. 손자는 간첩의 유형을 다섯 가지로 분류하며, 특히 반간(反間), 즉 이중간첩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적의 간첩은 우리 첩보기관이 잡아야 한다. 그래야 아군의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다.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을 억지로 빼앗아 경찰에 넘긴 더불어민주당은 ‘손자병법’을 언급할 자격이 없다.

 

외교전으로 오더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벌교’란 적에게 돈을 주고 가짜 평화를 사라는 말이 아니다. 적이 의존하는 외부 지원을 차단하여 굴복시키라는 뜻이다. 우리의 맥락에서 보자면 대북 제재가 바로 ‘벌교’다. 그런데 지난 7일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1심에서 징역 9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의 방북 대가로 쌍방울이 북한에 800만달러를 보내는 데 공모한 혐의였다.

 

우리는 이런 나라에 살고 있다. ‘검수완박’이라는 미명하에 사법 체계를 뒤죽박죽으로 만들면서 자국의 첩보전 역량을 심각하게 망가뜨린 정당이, 심지어 또다시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그 정당의 대표는 국제사회의 제재를 뚫고 제3자를 통해 북한에 돈을 주려던 혐의로 법의 심판을 받을 처지다. 그러자 온당한 수사와 기소를 한 검사를 탄핵하고 판사를 내쫓아야 한다며 강성 지지자들의 눈치를 보는 정치인들이 함성을 지른다. ‘벌모’의 싸움에서, ‘벌교’의 싸움에서, 과연 누가 이기고 있는 걸까.

 

민주당만 탓할 수도 없다. 실전에서 병사들을 지휘해야 할 위관급 장교와 하급 부사관들이 줄줄이 군복을 벗고 있다. 대대적인 군 개혁을 감행해도 모자랄 판에,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채 상병 특검에 발목이 잡혀 쩔쩔매는 중이다. 이 사안으로 인한 청년층의 민심 이반이 얼마나 심각한지 전혀 실감하지 못하는 중년 이상의 의사결정권자들이 대한민국의 자체 핵무장을 운운하고 있다. 핵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어찌 됐건 이런 식으로는 북한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6-28 대공수사 이관 6개월…무너지는 방첩

채성준 서경대 군사학과 교수, 前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북한의 대남 공작은 분단 이래 계속돼 왔고 시대 상황에 따라 변했다. 1960년대에는 대남사업총국을 앞세워 1·21사태 및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와 같은 무력 도발을 자행했다. 결과적으로 두 사건 모두 실패하면서 이후에는 대규모에서 소규모 침투로 바뀌고 그 횟수와 남파 간첩 수는 전체적으로 늘었다.


경찰이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을 이관받은 지 6개월이 다 됐다. 그러나 성적표는 참담하다. 국가수사본부 산하에 안보수사국을 설치하고 전문 인력을 충원했다. 하지만 충원한 전국의 안보경찰은 약 2300명인데 그 중 수사 인력은 30%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기획·분석 같은 행정 지원과 북한 이탈주민 신변 보호에 종사한다. 지방청 중 서울청과 경기남부청을 제외한 대다수 안보수사대의 인력은 20명 이하다. 그나마 신규 인력의 70%가 대공 수사 무경험자다. 팀장급 80%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국가보안법이 왜 제정됐는지, 주체사상의 태동 배경이나 NL(민족해방)·PD(민중민주)의 뿌리가 뭔지 알 리가 없고 저마다 벗어날 궁리만 한다고 한다.

가장 큰 문제는 국정원처럼 해외정보, 대북정보, 휴민트(인간정보), 공작 기법, 수사 장비 및 수사비 구축이 되지 못한 상태에서 제대로 된 대공 수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경찰과 국정원이 정보 공유만 잘하면 문제가 없다지만, 정보기관의 특성상 정보망의 출처 보호 등으로 인해 협력에 한계가 있다. 두 기관이 수사권을 보유한 상태에서의 공조와는 천양지차다.

문재인 정부가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시킨 건 국정원 무력화의 방편에 불과했다. 당시 경찰로서는 권한과 조직이 늘어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 속에 내심 환영하는 분위기마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부담만 가중된 상황에서 ‘전 정부의 경찰 챙기기’처럼 비치면서 ‘공룡 경찰’이 될까 봐 견제하는 외부 공세가 많아졌다고 하소연한다.

간첩의 접선 및 활동 무대가 한반도를 넘어섬에 따라 이를 수사하려면 글로벌 협력 기반이 필수다. 세계 정보기관은 그들만의 정보 협력 체계를 가동하고 있다. 경찰은 기본적으로 국내 치안 담당 기관이어서 해외정보를 수집할 수가 없다. 경찰이 해외에서 수사할 경우 주권 침해 문제가 발생한다. 재외공관에 근무하는 경찰 영사들은 교민과 해외여행객 보호 업무로도 일이 벅차다.

대공 수사는 일반 범죄 수사에 비해 전문성과 특수성이 요구된다. 오랜 경험과 수사 보안이 절실한 분야다. 관련 범죄 혐의에 대한 증거 수집부터 혐의자에 대한 내사·수사까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1년마다 보직이 바뀌는 경찰의 인사 관행으로는, 최소한 5년 이상 걸리는 대공 수사를 지속할 수 있는 근무 체제를 기대하기 힘들다. 국정원 대공 수사의 역량은 분단과 함께 시작된 북한의 대남 공작 기법을 간파하고 대응한 63년간의 노하우에서 비롯됐다.

북한의 대남 공작은 통상적인 국가 정보 활동과는 다르다. 궁극적으로 3대 혁명노선을 바탕으로 하는 한반도 적화전략에서 출발한다. 간첩을 잡기 위해서는 국정원·경찰·(軍)방첩사의 3축 수사 체제가 가장 이상적이다. 경찰 조직 문화 개선과 해외망 및 전문성 확보 등 난관을 돌파할 가장 쉬운 방법은 지금이라도 국정원에 대공수사권을 넘기는 것이다.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