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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論直說 2024-06/ 06.01 9년 만에 신규 원전, - 06-27 박세리-박수홍 울린 가족간 사기·횡령 처벌 길 열렸다

상림은내고향 2024. 6. 19. 18:57

正論直 2024-06/

06.01 9년 만에 신규 원전, 신재생과 함께 AI 전력 폭증 대비해야

▲전력수급기본계획 총괄위원장인 정동욱 중앙대 교수가 31일 서울 영등포구 FKI타워에서 제11차 전기본 실무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산업부가 올해 전력수급 기본계획 실무안에서 2038년까지 신규 원전 3기, 소형모듈원전(SMR) 1기를 건설하는 ‘11차 전력수급 계획안’을 공개했다. 확정되면 2015년 이후 9년 만에 신규 원전 건설이 이뤄진다.

 

AI(인공지능) 혁명이 예상보다 빨리 도래하면서 안정적인 전력 확보는 시급한 국가 과제가 됐다. 그런데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등 세계 빅테크 기업들은 삼성전자, 하이닉스 등 주요 반도체 납품 기업에 100% 무탄소 전기를 사용하도록 요구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방침이 현실화되면 우리 산업에 큰 충격이 올 수밖에 없다.

 

온실 가스를 배출하지 않고 대량의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수단은 현실적으로 원전뿐이다. 특히 세계 최대 규모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안정적 전력을 공급하려면 원전 추가 건설 외에 다른 답이 없다. 원전 신규 건설은 UAE 원전 수출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인정받는 K원전 산업 생태계를 발전시키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세계 주요국도 원전 적극 수용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미국은 백악관에 ‘원자력 프로젝트 관리 워킹그룹’을 만들어 원전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고, 내년부터 원전 투자에도 태양광·풍력 같은 세액공제 혜택을 주기로 했다.

 

프랑스는 2040년까지 원자로 14기를 추가 건설하는 계획을 발표했고, 영국도 2050년까지 원전 9기를 추가 건설하기로 했다. 2011년 대지진 이후 원자력 발전을 축소해 가던 일본도 2030년까지 원전 비율을 20~22%로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했다. 22대 국회는 여야가 합의했다가 특검법 정쟁 탓에 폐기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특별법’부터 빨리 제정해 K원전 르네상스를 도와야 한다.

 

우리는 태양광·풍력 발전 등 신재생 에너지 여건이 다른 나라보다 열악하다. 그러나 관련 기술이 계속 발전하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 산업도 세계 추세에 뒤처지지 않게 키워 원전과 함께 장기적으로 에너지 두 축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6.03 초혼 4년 만에 최고치 "지자체 지원책 효과 냈다"

▲2012년부터 11년 연속 줄었던 남녀 초혼 건수가 지난해 1% 늘어난 데 이어 올해 들어선 2%대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그래픽=양진경

 

올 1분기 초혼(初婚) 건수가 1년 전보다 남성은 2.0%, 여성은 2.5% 늘었다. 1분기로는 4년 만에 최다를 기록했다. 초혼 건수는 2012년 이후 11년 연속 감소세가 이어지다 코로나로 미뤘던 결혼이 몰린 지난해 1% 반등한 데 이어 올해 들어 증가 폭을 키웠다. 재혼 아닌 초혼이 늘어나는 것은 그만큼 비혼·독신주의자가 줄어든다는 뜻이다. 통계청은 “대구·대전 등 일부 지자체의 결혼 지원책 효과가 나타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신혼부부에게 최대 320만원의 전세 대출 이자 상환액을 지원하는 대구시는 2022년 2분기 이후 8분기 연속 혼인 건수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 대구의 3월 혼인 건수는 전년 같은 달 대비 9% 늘어나 전국 17개 시도 중 1위였다. 주택·전세 대출 이자를 연 450만원까지 지원해 주는 대전시는 5% 증가해 2위를 차지했다. 정부나 지자체가 정책적 지원을 하면 저출생 문제가 개선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지난달 발표된 여성가족부 조사에 따르면 30대 중 ‘자녀를 더 가질 계획이 있다”고 답한 사람이 27.6%로, 3년 전보다 9.4%포인트 늘었다. 지자체의 파격 지원이 출생률 제고로 이어지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충북도는 지난해 전국 17개 시도 중 유일하게 출생 신고 건수가 늘어났는데, 아이를 낳은 가구에 5년간 육아수당 1000만원을 지급한 정책이 효과를 낸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이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저출생국이란 불명예를 안게 된 원인은 모두가 다 안다. 취업과 내 집 마련이 어렵고, 보육과 일 병행이 힘들다 보니 청년들이 결혼을 꺼리고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다. 정부가 16년간 280조원을 쏟아부어도 출산율 하락을 막지 못하자, 최근엔 기업들이 자녀 출산 직원에게 1억원씩 파격적인 장려금을 주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현금성 지원이 만병통치약은 아니겠지만, 결혼과 출산에 대한 청년들의 부정적인 관념을 바꾸는 효과가 있다면 정부도 이런 모델을 분석해 전국적으로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조선일보 사설

 

06.03 尹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막대한 양 석유·가스 매장 가능성"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첫 국정브리핑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은 3일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서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탐사 결과가 나왔다”고 발표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첫 국정브리핑을 열고 “최대 140억배럴에 달하는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결과가 나왔고 유수 연구 기관과 전문가들 검증도 거쳤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는 1990년대 후반에 발견된 동해 가스전의 300배가 넘는 규모이고, 우리나라 전체가 천연가스는 최대 29년, 석유는 최대 4년을 넘게 쓸 수 있는 양으로 판단된다고 윤 대통령은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날 산업통상자원부의 동해 심해 석유가스전에 대한 탐사 시추 계획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금년 말 첫 번째 시추공 작업에 들어가면 내년 상반기까지는 어느 정도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국민 여러분께서는 차분하게 시추 결과를 지켜봐 달라”고 했다.

 

석유 가스전 개발은 물리 탐사, 탐사 시추, 상업 개발 등 세 단계로 진행된다.

 

윤 대통령은 이날 안덕근 산업부 장관과 함께 대통령실 1층 브리핑룸에 내려와 국정브리핑을 했다. 국정브리핑은 주요 현안을 대통령이 직접 설명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한국이 1966년부터 해저 석유·가스전 탐사를 꾸준히 시도해왔고, 그 결과 90년대 후반 4500만배럴 규모의 동해 가스전을 발견해서 2021년까지 상업생산을 마친 바 있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우리 정부 들어 지난해 2월 동해 가스전 주변에 더 많은 석유 가스전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 하에 세계 최고 수준의 심해 기술 평가 전문 기업인 미국의 액트지오사에 물리 탐사 심층 분석을 맡겼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물리 탐사 심층 분석 결과를 언급하며 “지금부터는 실제 석유와 가스가 존재하는지, 실제 매장 규모는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는 탐사 시추 단계로 넘어갈 차례”라고 했다.

 

안덕근 장관은 이 매장 가치가 현시점에서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5배 수준이라고 했다.

 

안 장관은 동해 석유·가스 개발 계획과 관련해 “2027년이나 2028년쯤 공사를 시작해 2035년 정도에 상업적 개발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안 장관은 “지난주 확정된 결과를 대통령실과 긴밀하게 소통하고 어제 직접 대통령께 탐사 결과를 보고드렸다”며 “대통령께서 큰 예산이 드는 사업이긴 하지만 충분한 가치가 있다며 탐사 계획을 승인해 주셨다. 조만간 후속 계획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안 장관은 “상당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세계적 에너지 개발 기업들이 이번 개발에 참여할 의향을 밝힐 정도로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며 “140억배럴 정도의 막대한 양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하고 그중 4분의 3이 가스, 석유가 4분의 1로 추정된다”고 했다.

조선일보 김동하 기자

 

06.04 곳곳서 막히는 송전선, 심각한 국가 현안

▲송전탑과 송전선로/안산시

 

인공지능(AI)은 전력을 엄청나게 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전력을 보내는 송배전망 건설은 심각한 차질을 빚고 있다. 수년씩 지연되기 일쑤다. 이달 준공 예정인 ‘345㎸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의 경우, 당초 2003년에 사업을 시작해 2012년 준공이 목표였는데 지역 주민과 환경 단체의 반대, 지자체 소송 등으로 준공이 11년 5개월이나 늦어졌다. 송도 바이오클러스터에 전력을 공급하는 ‘345kV 신시흥-신송도 송전선로’는 59개월, 남해 해상 풍력발전량을 수송할 ‘345kV 신장성 변전소’는 62개월 지연됐다.

 

2008년 ‘밀양 송전탑 사태’ 이후 환경 단체 및 주민 반대, 지방자치단체의 비협조 등으로 전력망 건설은 난항을 겪고 있다. 실제로 밀양 송전탑이 포함된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가 완공된 2014년까지는 해마다 송전선로가 100km 이상 완공됐는데 이듬해부터 두 자릿수로 뚝 떨어졌다. 지난해 완공된 지상(地上) 송전선로 길이는 단거리 위주로 60km에 불과하다. 그 여파는 이미 현실화됐다. 경기 여주의 1000MW(메가와트)급 여주복합화력발전소는 가동률이 30% 수준에 불과하다.

 

이런 상태라면 첨단 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해놓고도 전력 공급이 안 돼 공장을 못 돌리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622조원을 투자해 경기 평택·화성·용인·이천 등에 세계 최대 규모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할 예정인데 2050년까지 이 클러스터에 추가되는 전력 수요만 해도 현재 수도권 전력 수요의 4분의 1인 10GW에 달한다. 우선 LNG발전소를 지어 초기 전기 수요를 충족하고, 2036년까지 대규모 전기를 공급하는 송배전망을 준공한다는 계획이지만 지금 상황이라면 실현 불가능하다.

 

전력망 건설에 속도를 내는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이 발의됐지만 여야 정쟁에 휩쓸려 폐기됐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 첨단 산업단지가 전력을 제때 공급받지 못하는 재앙을 막으려면 이 법 제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여야 정쟁 사안도 아니다. 22대 국회에서 여야가 최우선적으로 전력망 확충 특별법부터 제정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6-04 불확실성 있어도 국내외 자원 개발에 적극 나서야 한다

동해 영일만 앞바다에 대규모 석유·가스전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예측이 나왔다. 추정 매장량은 최대 140억 배럴로, 가스가 4분의 3이고, 석유가 4분의 1이라고 한다. 2004∼2021년 생산이 이뤄졌던 동해 가스전의 300배가 넘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3일 첫 국정 브리핑에서 물리 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산업통상자원부의 탐사 시추 계획을 승인했다. 최소 5개의 시추공을 뚫을 계획인데, 1개당 1000억 원이 넘게 든다. 올해 말 첫 시추공을 뚫으면 내년 상반기엔 매장 여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한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가 산유국이 될 수 있다는 깜짝 발표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천연가스는 우리나라 전체가 최대 29년, 석유는 최대 4년을 넘게 쓸 수 있는 양이라고 설명했다. 영일만 석유·가스전 예상 위치는 ‘동해 가스전’의 북쪽인 8광구와 6-1광구 일대로, 우리의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이어서 국제 협의도 필요 없다. 그러나 변수가 한둘이 아니다. 시추의 성공 확률이 20%로, 북해유전(3%)보다 높다지만 여전히 실패 확률이 훨씬 높다. 매장을 확인해도 채산성이 있어야 상업 생산이 가능하다. 정부 일정대로 가도 2027∼2028년쯤 공사를 시작해 2035년이나 돼야 상업적 개발을 할 수 있다. 모든 조건이 맞아도 10여 년 뒤다. 이런 사안을 윤 대통령이 직접 발표한 것은 기대감을 잔뜩 부풀릴 소지가 크다. 가치가 삼성전자 시총의 5배라는 안 장관의 언급도 성급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전방위적으로 추진된 자원 개발은 뒷말이 무성했다. 게이트로 비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원 빈국으로서는 피할 수 없는 길이다. 반도체·배터리 등에 필수적인 희귀금속 같은 전략 자원은 더욱 그렇다. 자원 개발은 10%만 성공해도 대성공이다. 민간 기업도 상당한 경험을 갖고 있다. 민·관이 협력해 리스크와 비리는 줄이면서 적극적으로 국내외 자원 개발에 나설 필요가 있다.

문화일보 사설

 

06-04 거짓과 무지 늪에 빠져드는 나라

김영용 전남대 명예교수·경제학, 前 한국경제연구원장

반값 아파트, 25만 원 나눠주기
내는 돈보다 훨씬 더 받는 연금
허무맹랑한 공상 판치는 정치

6·25 폐허에서 부강 일군 장점
권력싸움 매달려 곳곳서 퇴행
새 국회 계기로 국민 각성해야

자기중심적이며 구조적으로 무지한 인간들은 희소한 자원의 세계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다. 인간이 구조적으로 무지하다는 것은, 이성으로 알 수 있는 건 매우 한정돼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보다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훨씬 더 많다. 그래서 인간이 무지하다는 지적은 흉이나 비난이 아니다. 그런데 인간은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가기 위해 부단히 탐구·학습함으로써 무지의 벽을 낮추면서 문명사회를 만들어 간다.

6·25전쟁의 잿더미에서 오늘의 부강한 나라를 건설한 대한민국은 그래서 특히 돋보인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대체로 우수한 두뇌와 근면성, 그리고 끈질긴 성향을 지녔다. 그런데 요즈음 대한민국이 무지와 거짓의 늪에 빠져 돌이키기 어려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국가에도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지만, 대한민국은 너무 일찍 늙고 병들어 가고 있다. 지금까지 무지의 벽을 낮추면서 획득한 지식을 학습하고 성찰하는 지적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권력 싸움에만 매달려 더 나은 상태로의 발전은커녕 퇴행적 행동만 일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 대한민국에는, 20세기의 망령이 빚어낸 사회주의는 왜 결단코 실패할 수밖에 없는 대형 사기극이었는지를 깨닫지 못하는 지식인도 많이 있다. 이들은 ‘사회주의는 합리적 경제의 철폐’라는 사실을 숙고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또, 희소한 자연환경에서 함께 살아가는 자기중심적 인간들이 상호 작용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회현상을 진지하게 탐구해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인간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공상의 세계에 갇혀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

이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고작 대중 선동과 선전술을 연마하고 학습하는 것이다. 인류가 오랫동안 비참하게 겪어 온 가난을 퇴치하고 풍요를 선사한 자본주의를 모든 사회악의 근원으로 덧칠하고 대중을 선동한다. 그것은 물론 자원의 희소성으로 말미암아 자본주의도 해결하기 어려운 인간 세상의 근원적 문제를 자본주의 탓으로 돌리는 거짓이다. 인간 세상에는 성경에 나오는 오병이어(五餠二魚) 같은 기적이 없다. 반값 아파트와 반값 등록금, 내는 돈보다 한결 더 많은 돈을 받는다는 연금, 1인당 25만 원의 돈을 나눠 주어 민생을 돌본다는 것 등은 모두 허무맹랑한 거짓말이다.

국가가 개인의 삶을 책임지겠다는 구호를 내건 지난 정권의 뒤끝은 어떠한가? 국가 안보는 실종됐고, 나라 재정은 빚더미 위에 올라앉았고, 돈을 엄청나게 풀어 물가는 다락같이 올랐다. 세금 또한 가정 파괴 수준으로 올려 사람들의 삶을 궁핍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지난 정권에 참여했던 정치인과 지식인들의 반성과 성찰은 없다. 정권을 빼앗겼다는 상실감에 사로잡혀 권토중래를 노리는 권력 싸움에만 집착한다.

좌우를 막론하고 사유재산 제도를 부정하거나 경시하는 지식인은 인간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에 대한 논리 체계를 가질 수 없다. 유형·무형의 사유재산을 중심으로 인간과 인간 사이에 형성되는 공감, 남의 자유를 해치는 행동을 제한하는 도덕과 법 등의 정의로운 행동 규칙, 이를 바탕으로 형성되는 사회제도와 질서 등에 관한 이론을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오물 풍선이나 날려 보내는 북한을 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민주정(民主政) 그 자체는 사회질서를 파국으로 이끄는 특징을 가진 정체(政體)가 아니다. 그러나 인간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에 대한 탐구와 성찰이 없는 사회의 민주정은 항상 그럴 개연성을 내포하고 있다. 남미의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사려 깊지 못한 대중과 이를 선동하는 정치인들이 빚어내는 민주정의 파국이다. 모든 지성과 도덕성이 권력 다툼에 파묻혀 침몰한 결과다. 지금 대한민국이 그런 세상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결국, 나의 삶을 책임진다는 구호 아래 좋은 것을 많이 제공해 주겠다는 정부보다, 사유재산을 침해하고 나의 자유를 억압하는 악(惡)을 없애는 정부가 훨씬 더 낫다. 그런 점에서 민주 정부도 소극적(negative)이어야 한다. 무지와 거짓으로 선동·선전하는 정치집단은 절대로 이런 사회를 구현할 수 없다. 제22대 국회 출범을 계기로 이런 우려가 불식되기를 바란다.

문화일보

 

06.05 나랏빚 폭증시키며 그 실태는 숫자 조작으로 속였다니

▲문재인(왼쪽) 전 대통령과 홍남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18년 12월 17일 열린 확대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조선DB

 

문재인 정부 때 재정 씀씀이 확대를 정당화하기 위해 홍남기 당시 경제부총리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전망치를 절반 수준으로 축소 발표하도록 지시했다는 감사원 감사 결과가 나왔다. 집값과 소득 통계를 왜곡·분식한 데 이어 나랏빚 전망까지 축소해 실정(失政)을 가리려 했다는 것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2020년 장기 재정 전망 발표 때 기획재정부는 시뮬레이션 모델을 통해 국가채무 비율이 2060년엔 153%로 올라갈 것이란 전망치를 산출했다. 이를 보고받은 홍 부총리는 “국민이 불안해한다”면서 두 자릿수로 낮추도록 지시했다. 그는 원래 ‘재량지출 증가율’을 경제성장률에 연동하도록 돼있는 것을 ‘총지출 증가율과 연동’하도록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했다. 이를 통해 기재부는 81%로 낮춘 수치를 만들었고 발표했다는 것이다.

 

기재부는 민간 전문가를 포함한 장기재정전망협의회가 검증하도록 한 절차도 빼버렸다. 기재부 주무 국장인 A 국장이 홍 부총리 지침을 이행하기 위해 협의회의 심의·조정을 거치지 않고 임의로 방법을 바꿨다. 실무자들이 반대했지만 A 국장은 이를 묵살했다고 한다. 당시 기재부 담당 팀장과 실무자들은 ‘홍 부총리 지시가 부당하다’ ‘국민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데 정반대 가정을 한 것에 스트레스가 심하다’ ‘역사에 죄를 짓는 것’ 등의 대화를 주고받은 것으로 감사에서 드러났다.

 

감사원이 조세재정연구원과 함께 제대로 된 전제를 적용해 재정 전망을 했더니 2060년 국가채무비율은 148.2%로 도출됐다. 애초 기재부 전망치와 비슷하다. 그런데도 홍 전 부총리가 왜곡된 수치를 고집한 것은 문 전 대통령 지시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당시 문 대통령이 주재한 청와대 회의에서 “(2060년 국가채무비율 예측치는) 의미는 크지 않으면서 사회적 논란만 야기할 것이다. 불필요한 논란이 커지지 않게 잘 관리하고 신경 써주기 바란다”고 했고, 한 달 뒤 81%라는 왜곡된 수치가 만들어졌다.

 

문 정부는 나랏빚 내서 돈 푸느라 5년간 국가부채를 400조원 가까이 늘렸다. 2016년 말 627조원이었던 국가채무는 2021년 말 971조원으로 늘어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이 불렸다. 빚은 폭증시키면서 그 실태는 숫자 조작으로 눈가림한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6-05 경제관료 얼굴에 먹칠한 홍남기의 나랏빚 추계 조작

홍남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20년 국가 채무비율 추계치를 축소·조작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감사원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정치권이나 학계에서 갑자기 영입된 ‘어공’도 아니고, 경제 관료로 성장한 사람이 그런 짓을 했다는 것을 믿기 어려울 정도다. 대한민국의 경제 관료는 경제 기적을 견인한 최고의 엘리트 인재로서, 세계적으로도 능력을 인정받아왔기 때문이다.

당시 기재부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2060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153%로 올라갈 것이란 전망치를 산출했다. 하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이 주재한 회의에서 “국가 채무비율에 관해 불필요한 논란이 커지지 않게 잘 관리하라”는 이야기가 나온 뒤 홍 전 부총리의 지시로 81%로 낮춰 발표했다는 것이다. 조정도 아니고 절반 수준이다. 이를 위해 ‘재량지출 증가율’을 경제성장률에 연동하게 돼 있던 것을 ‘총지출 증가율과 연동’하도록 구체적 방법까지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적으로 쓰이지 않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담당 국장은 민간 전문가들이 포함된 외부 검증 절차도 건너뛰었다고 한다.

문 정부 시절 집값·소득 통계 조작 혐의로 김수현·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 강신욱 전 통계청장 등 11명이 재판을 받고 있다. 대부분 교수나 정치권 출신이다. 이들과 달리 홍 전 부총리는 예산·재정도 다룬 관료 출신이다. 3년6개월 재임한 최장수 경제부총리 기록도 세웠다. 통계 조작이 국정을 왜곡하는 중범죄라는 사실을 잘 알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홍 전 부총리는 경제 관료 모두의 얼굴에 먹칠을 했다. 오죽하면 실무 공무원들이 ‘역사에 죄를 짓는 것’ ‘내 이름으로 보도자료를 내고 싶지 않다’며 자괴감을 표했을까. 통계 조작에 대한 엄벌은 당연하고, 후배 관료들이 그런 엄두조차 낼 수 없도록 공공 영역에서 완전히 퇴출할 필요가 있다.

문화일보 사설

 
 

06-05 지지율 21% 대통령 앞의 불길한 먹구름

이철호 논설고문

축하주에 집단 침묵 여당 의원들
민심 의식 술 금지한 용산 기자단
尹 대통령 센터 본능 자제할 필요

가계 대출 급증, 전셋값 급등 비상
집값 오르면 지지율 20%도 위험
금융 당국 수수방관도 불길할 뿐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민의힘 연찬회에 참석해 “오늘 제가 욕 좀 먹겠다. 맥주 축하주 한 잔씩 다 드리겠다”고 했는데, 진짜 욕을 제대로 먹은 셈이 되고 말았다. 하필 12사단에서 가혹행위로 숨진 훈련병의 영결식과 겹쳤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조차 “진정한 보수라면 이럴 수 있나”라고 쏘아붙일 정도다. 갤럽 조사에서 국정 지지율은 취임 이후 최저인 21%까지 빠졌다. 부정 평가는 70%로 치솟았다.

대조적인 장면이 지난달 24일 윤 대통령 초청 출입기자단 만찬이었다. 청사 잔디 마당에서 대통령이 앞치마를 두르고 직접 고기를 굽고 계란말이를 만들어 기자 200여 명에게 대접했다. 유난히 대통령실이 “주류는 제공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는데, 여기에는 숨은 사연이 있다. 기자들이야 술을 마시며 대통령의 속마음을 듣고 싶은 게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4월 말 여야 영수회담에서 윤 대통령이 “언론을 장악할 방법은 잘 알고 있으나,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고 한 게 발목을 잡았다. 자칫 술잔이 돌면 ‘소통 강화’보다 ‘언론 관리’의 역풍을 맞을지 모른다는 경계심이 기자단 내부에서 작동했다. 차가운 외부 시선을 의식한 것이다.

이에 비해 연찬회를 마친 여당 중진 의원들이 오후 9∼10시 기자들이 식사하던 인근 식당에 들렀다. 이미 취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맥주 한 잔을 넘어 질펀한 술판이 벌어졌다는 방증이다. 2년 전 권성동 의원처럼 술병 들고 노래하는 대형 사고를 안 친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무엇보다 불길한 대목은 “108석도 굉장히 큰 숫자”라는 의원들의 집단 침묵이다. 누구 하나 “오늘은 반성의 의미로 술을 마시지 말자”고 하지 않았다. 영남권 의원들은 줄서기 달인이라고 쳐도 수도권의 안철수·나경원 같은 중진, 용감해 보이던 김재섭·김용태 같은 초선까지 입을 닫은 건 실망스럽다. “용산에 할 말 하겠다”던 다짐도 우습게 됐다. 정치 감각이 정치부 기자들보다 한참 아래다.

윤 대통령이 3일 직접 “포항 앞바다에 140억 배럴의 막대한 석유·가스가 매장돼 있다는 물리탐사 결과가 나왔다”고 깜짝 발표한 것도 곱씹어 볼 대목이 적지 않다. 배석한 산업부 장관은 “가치로 따지면 삼성전자 시총의 5배”라며 펌프질을 했지만, 온라인 반응은 딴판이었다. “지지율 올리려 별짓 다 한다” “부산엑스포도 이긴다고 해놓고 참패했다” “박정희 정권 말기에도 그랬다”는 부정적 댓글이 넘쳐났다. 천공의 산유국 예고 동영상까지 나돌았다.

오히려 산업부 장관이 발표하고 윤 대통령이 “범정부 차원에서 지원하겠다”고 했으면 더 좋은 그림이 될 뻔했다. 빈 라덴 사살 작전 때 회의실 구석에서 웅크려 있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처럼 말이다. 윤 대통령이 ‘센터 본능’을 억눌러야 가능한 그림이다. 항상 생색낼 때는 대통령을 앞세우고, 정작 책임져야 할 상황에선 발을 빼는 모양새도 민망하다. 총리실이 주도했다가 역풍을 맞은 중국 직구 금지가 상징적 사례다. 대통령실은 “우리는 몰랐다”며 선부터 그었다. 대통령 책임제 정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세심하게 다시 살펴보겠다”는 게 정상 반응이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30%대로 급반등하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친윤·친한(친한동훈)의 감정적 골이 깊어져 보수 진영은 두 쪽 나버렸다. 친윤은 이재명·조국 대표의 유죄 판결을 기다리며 반사이익에 목을 매는 분위기다. 하지만 먹구름부터 밀려오는 조짐이다. 4월 총선 참패의 3종 세트가 이종섭 도피·황상무 회칼·대파 사태였다면, 지금 다가오는 핵폭탄은 부동산이다.

지난해 특례보금자리론 사태에 이어 올 들어 디딤돌(구입)·버팀목(전세) 대출에다 초저금리의 신생아특례대출까지, 또 정책 대출이 급증했다. 5월 주택담보대출만 4조5000억 원 늘어났다. 7월 주택임대차법 시행 4년을 앞두고 전셋값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지난 10여 년간 가계부채와 부동산 급등의 원흉으로 전세자금대출을 지목한 바 있다. 다시 한 번 전셋값이 집값을 밀어 올리면 끝이다. 이런데도 윤 대통령은 특검법 막는 데 신경이 곤두서 있고, 개각을 앞둔 경제·금융 수장들은 제대 말년 병장처럼 손 놓고 있다. 다가오는 여름이 불길하다.

문화일보

 

06.05 1인당 국민총소득 사상 첫 일본 추월… 인구 5000만 이상 국가 중 6위

1인당 GNI, 전년比 2.7% 오른 3만6194달러
유가하락, 반도체 호조, 기준 변경 등 겹친 결과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3만3천745달러에서 3만6천194달러로 7.2% 올라 대만과 일본을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5일 점심시간 서울 명동 거리 모습. /연합뉴스

 

작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6000달러를 기록, 사상 처음으로 일본을 제치면서, 인구 5000만 이상 국가 가운데 6위에 올랐다.

 

GNI는 전체 국민이 일정기간 벌어들인 임금과 이자, 배당 등 모든 소득을 합친 것으로, 실질 구매력을 나타내는 지표다. 이에 비해 GDP는 국가 경제 규모를 보여주는 지표다.

 

5일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실질 GNI는 전기대비 2.4% 증가한 567조5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작년 4분기에는 0.6% 증가했었다. 1분기 상승 폭 기준으로는 2016년 이후 최대였다.

 

이번 GNI 증가는 실질무역손실이 17조원에서 11조3000억원으로 축소된 영향이 컸다. 반도체 수요 증가로 상품 가격이 오르고, 국제유가가 내리면서 무역손실이 축소된 결과로 풀이된다. 우리나라의 무역은 수출 쪽에서는 반도체 가격, 수입 쪽에선 원유가격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민경

 

작년 말 기준 한국의 1인당 GNI는 3만6194달러로, 전년 대비 2.7% 늘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이러한 결과는 수출 증가 영향도 있지만, 기준연도를 2015년에서 2020년으로 개편하는 과정에 소규모 사업자 매출 등 그간 실적에 포함되지 않던 부분이 반영되면서 명목 GNI 규모가 확대된 영향도 있었다. 최 부장은 “기준년 개편 결과로 한국의 1인당 GNI는 이탈리아보다는 적고, 일본보다는 많은 수준이 됐다”며 “일본을 제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이로써 한국은 인구 5000만명 넘는 국가 중에서는 미국과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에 이어 1인당 GNI 6위에 랭크됐다. 일본은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7위로 밀렸다.

 

한은은 이런 추세대로라면 수년 내 국민 1인당 국민소득이 4만달러를 넘을 것으로 전망했다. 최 부장은 “1인당 GNI를 산출할 때는 실질소득 증가율과 환율, 국외순수취 요소소득 등을 봐야 해 언제 달성할 수 있을지 말하기가 어렵다”면서도 “수년 내에 4만달러 달성 가능하리라 본다”고 했다.

 

변수는 있다. 우선 일본처럼 통화가치가 떨어지면 미국 달러화로 환산한 1인당 GNI도 내려앉는다. 민간소비 부진과 건설투자 부진, 설비투자 부진 등도 리스크로 꼽힌다.

조선일보 장상진 기자

 

06.06 집 한 채 중산층도 상속세 걱정, 정상 아니야

▲일러스트=이지원

 

민주당 정책위의장이 중산층의 상속세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을 국민의힘과 논의하겠다고 했다. 국세청 차장 출신 민주당 의원은 28년째 5억원으로 묶여 있는 일괄 공제 금액을 올리는 방안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동안 민주당은 상속세 개편을 ‘부자 감세’라고 반대해 왔는데 전향적인 태도 변화다.

 

우리 상속세 제도는 2000년 최고 세율을 50%(기업 최대 주주는 60%)로 올리고, 최고 세율 과표 구간을 50억원에서 30억원 초과로 낮춘 이후 24년 동안 세율과 과표가 그대로다. 상속세 공제 한도 10억원과 일괄 공제액 5억원은 1997년 이후 28년째 묶여 있다. 그 사이 국민소득은 4배 커졌고, 집값은 10배 이상 불어났다. 1997년엔 서울 강남 압구정동 60평 아파트를 물려받아야 상속세 대상이 됐지만, 지금은 서울의 20~30평대 아파트라도 상속세를 내야 한다. 그 결과 상속세 납부액이 2000년 5137억원에서 2021년 5조1764억원으로 20년 새 10배로 불어났다. 상속세가 ‘중산층 징벌 세금’처럼 된 것이다.

 

기업 관련 상속세는 더 가혹하다. 두세 번 상속세를 내면 경영권이 사라진다고 할 정도로 비상식적 세금이 됐다. 과도한 기업 상속세는 대주주들이 주가 상승을 꺼리게 만들어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부추긴다. OECD 37국 가운데 스웨덴·노르웨이·캐나다 등 15국은 상속세가 아예 없다. 미국에선 물가 상승률을 반영해 상속세 공제 한도를 늘려주고 있다. 지난해 미국의 상속세 공제 한도는 1290만달러(약 176억원)로, 부부 합산으로는 350억원 정도의 재산은 세금 없이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상속세 최대 주주 할증 제도 폐지, 각 자녀가 실제 상속받은 유산에만 세금을 매기는 ‘유산 취득세’ 도입 등 상속세 개편을 추진해 왔지만, 민주당이 ‘부자 감세’ 프레임으로 반대해 진척이 없었다. 삼성 일가의 상속세 12조원, 한미약품 오너 일가의 경영권 분쟁 등을 계기로 낡고 과도한 상속세가 투자·고용에 악영향을 주고, 경제의 선순환을 저해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기업과 함께 일반 중산층에 가해지는 과도한 상속세 부담을 낮춰야 할 때가 지났다. 상속세 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민주당의 태도 변화를 이끌었을 것이다. 22대 국회는 소득·자산 가격 상승 등을 감안해 상속세 공제 한도·과표 구간 상향 조정, 최고 세율 인하 등 대대적인 상속세 개편에 나서기 바란다.

 

 ▲그래픽=박상훈

조선일보 사설

 

06.07 이재명 "영일만 석유, 십중팔구 실패", 그래서 하지 말자는 건가

▲시드릴 석유 시추선 '웨스트 카펠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6일 영일만에 석유·가스 매장 가능성이 있어 시추해보겠다는 정부 발표에 대해 “십중팔구(성공 확률 최대 20%) 실패할 사안이라면서 국민 혈세를 투입하는 것이 걱정”이라고 페이스북에서 밝혔다. 이 대표는 “뜬금없는 산유국론”이라며 “수천 억 쏟아붓고 결국 국민을 절망시킨 부산엑스포가 자꾸 떠오른다”고 했다. 야권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3일 브리핑에 대해 조롱과 저주에 가까운 말들이 나오고 있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국정을 이렇게 운에 맡겨도 되는 것이냐”고 했고, “시대착오적 산유국 코미디”라고 말한 의원도 있다.

 

영일만에서 실제 경제성 있는 원유 생산이 가능할지는 누구도 쉽게 예단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 사실이다. 시추 탐사로 석유·가스의 존재를 확인한 뒤 평가정 시추로 매장량을 확인하고, 투자비와 생산량을 고려한 경제성 평가까지 이뤄져야 한다. 상당한 기간에 걸쳐 필요한 작업을 거쳐야 확인될 사안이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이 직접 브리핑 형식으로 발표한 모양새가 적합했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자원 개발은 극히 희박한 가능성에 희망을 걸고 수많은 실패를 거쳐야 결실을 거둘 수 있다. 정부는 영일만의 ‘성공 가능성 20%’에 대해 “북해 유전은 3%였고, 통상 10%만 돼도 우수하다고 평가한다”고 했다. 전문가들도 시추에 많은 투자가 필요해 재정적 부담은 있지만, 자원 개발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충분히 탐사해볼 가치가 있다고 했다. 이재명 대표처럼 “실패 확률이 십중팔구”라며 비아냥거릴 사안은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 야권은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던 자원 외교를 옥석을 가리지 않고 모두 적폐로 몰면서 사실상 해외 자원개발을 중단시켰다. 당시 정부는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원료인 리튬 확보를 위해 볼리비아에 공을 들였지만, 정권 교체와 적폐 수사가 이어지며 볼리비아 리튬 프로젝트는 무산됐다.

 

민주당은 영일만 가스 시추와 관련해 시추공 1개당 1000억원의 비용이 들기 때문에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가스공사를 상대로 국회에서 현안 질의를 하겠다고 했다. 민주당 원내 대변인은 “의혹 해소 없이 시추를 강행한다면 관련 공직자들은 형사처벌을 면치 못할 것”라며 자원 개발 전선에 설 공무원과 전문가들을 겁부터 주고 있다. 세계 각국은 광물 자원 개발을 경제를 넘어 국가 안보 문제로까지 인식하고 정부가 앞장서고 있는데 우리만 진영 논리로 자해(自害)를 할 셈인가.

조선일보 사설

 

06.07 미래 세대에 연금 적자 덤터기 안 된다

국가의 백년대계가 걸린 사안을 시장에서 콩나물값 흥정하듯이 정할 순 없다. 하마터면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 될 뻔했다. 지난 21대 국회 막판에 결국 여야 합의에 실패한 연금개혁안을 두고 하는 말이다. 여당도, 야당도 잘한 건 하나도 없다. 이게 국회의원 임기 마지막 며칠을 남겨놓고 옥신각신 실랑이를 벌일 일인가. 국회의원들이 임기 4년의 귀중한 시간을 헛되게 낭비했다는 자기 고백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22대 국회 임기가 시작되자마자 거대 야당은 다수의 특검법을 밀어붙이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불과 일주일 전까지 연금개혁은 하루가 급하다고 정부·여당을 재촉하던 것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그토록 연금개혁이 절실한 문제였다면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정해 최우선으로 추진했어야 마땅하지 않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연금개혁을 다시 언급하긴 했지만 특검법 등 정치 현안보다 우선순위에 두는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청년 목소리 외면한 개혁은 ‘개악’
‘더 내고 덜 받기’가 유일한 해법
새 연금특위, 젊은 의원 중심 돼야

마땅한 대안도 내놓지 못하고 야당에 끌려다니는 정부·여당은 더욱 무책임해 보인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최우선으로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 지난해 10월 정부가 알맹이 없는 ‘맹탕’ 개혁안을 던져놓고 국회에 공을 떠넘길 때부터 어느 정도는 예견됐던 상황이다.

 

기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도대체 연금개혁을 왜 하려고 하는가. 미래 세대의 부담을 늘리기 위해서인가, 줄이기 위해서인가. 설마 미래 세대의 ‘등골’을 빼먹기 위해 연금개혁을 해야 한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또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래 세대에 천문학적인 연금 적자의 덤터기를 씌워선 안 된다. ‘미래 세대를 위한 연금개혁’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자 역사적 과제다.

 

현재 국민연금은 치명적 결함을 안고 있다. 바로 적게 내고 많이 받아가는 구조다. “국민연금은 폰지 사기(다단계 금융사기)”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먼저 가입한 사람은 큰 혜택을 보겠지만 나중에 가입한 사람은 시쳇말로 국물도 없을지 모른다. 한국연금학회장을 지낸 이창수 숭실대 교수(정보통계보험수리학과)는 “현 연금 제도가 일종의 폰지 게임 같아서 후세대에 계속 부담을 전가한다”며 “어느 시점에서는 미래 세대의 반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좋든 싫든 연금 문제의 해법은 한 가지 길뿐이다. 더 내고 덜 받기다. 다른 방법은 결과적으로 미래 세대의 부담만 키울 뿐이다. 진정으로 미래 세대를 걱정한다면 소득대체율을 올리자는 말을 함부로 꺼내선 안 된다. 현재도 연금 재정의 부실이 심각한데 미래 세대의 더 큰 희생을 감수하면서 기성세대에 돈을 더 줘야 하나. 미래의 연금 재정을 제대로 계산이나 해보고 이런 주장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당장은 1~2%포인트 차이가 작아 보여도 수십년간 쌓이면 엄청난 부담으로 돌아온다.

 

한쪽에선 우리 사회의 노인 빈곤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문제는 국민연금이 아니라 기초연금을 포함한 전반적인 사회복지 정책으로 풀어야 한다. 2007년 노무현 정부 때 여야 합의 사항이 바로 ‘기초연금 지급과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하’였다. 이제 와서 가뜩이나 취약한 연금 재정을 더욱 부실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가는 건 곤란하다. 정말 가난한 노인들은 젊을 때 힘들게 사느라 연금 보험료를 제대로 내지 못했다. 이런 노인에겐 아무리 연금 소득대체율을 높여도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

 

연금개혁이 사회적 공감을 얻으려면 무엇보다 청년 세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는 어쩔 수 없지만, 현재 20~30대의 목소리는 충분히 들을 수 있지 않나. 이들에게 연금 재정이 얼마나 부실한 상태인지 실상을 정확히 알려주고 의견을 물어야 한다. 막연하게 국가가 책임질 것이란 식으로 넘어가는 건 안 된다. 국가가 책임진다는 것은 다시 말해 막대한 세금 인상이나 천문학적 국가 부채를 뜻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지난 5일 개원한 22대 국회는 조만간 연금특위를 새로 구성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는 최대한 젊은 의원들을 중심으로 특위를 꾸리길 바란다. 지난 국회의 연금특위에선 위원장을 포함한 절반 이상이 60대였다. 특위 위원 13명 중 30대는 단 한 명도 없었고, 40대도 두 명에 그쳤다. 이래선 청년 세대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기 어렵다. 다른 사안은 몰라도 적어도 연금 문제만큼은 청년 세대가 의사 결정의 키를 잡을 수 있어야 한다.

중앙일보 주정완 논설위원

 

06-07 안타까운 ‘영일만 유전 정쟁화’와 野의 도 넘은 저주

영일만 앞바다 석유·가스전 개발 문제가 안타깝게도 정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성공 확률을 20%로 평가한 액트지오의 비토르 아브레우 고문이 7일 기자회견을 갖고 평가 결과 등을 설명했지만, 최소한 내년 상반기 1차 시추 결과가 나올 때까지, 그 후 실제로 채굴이 시작될 때까지 이런저런 논란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극히 초기 단계 분석임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과할 정도로 장밋빛 전망을 내놓는 바람에 촉발된 측면이 있지만, 그렇더라도 이재명 대표 등 더불어민주당의 ‘산유국 코미디’ 식 비판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천연자원 빈국으로서 국내외 자원 개발은 절실한 국가적 과제인데, 이를 조롱하고 저주하는 것으로도 비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자신의 SNS에 ‘뜬금없는 산유국론’이라며 “십중팔구 실패할 사안인데 전액 국민 혈세를 투입하는 것도 걱정이고 주가 폭등에 따른 추후 주식 투자자 대량 손실도 걱정”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을 절망시킨 부산엑스포가 자꾸 떠오른다”고도 했다. 민주당 원내 대변인은 의혹이 해소되기 전에 시추를 강행하면 관련 공직자들은 형사처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겁박했다. 민주당 주장대로 영일만 지역을 석유공사와 함께 15년 동안 탐사했던 호주 개발업체는 작년 1월 철수했다. 그러나 산업통상자원부와 대한석유공사는 희망을 놓지 않고 독자적으로 계속 노력했으며, 그 결과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자원 개발이 매장량 추정과 경제성 평가 등을 거쳐야 하는 장기 위험사업임을 고려하면, 민주당의 ‘재 뿌리기’ 행태는 도를 넘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북한 신의주·남포 앞바다인 서한만 석유 발견 주장 등에 대해 공동 개발에 적극적 태도를 보였던 사실부터 돌아보기 바란다. 문재인 정권의 자원 개발 ‘적폐 몰이’도 많은 문제를 남겼다. 필요하다면 국회 현안 질의 등을 통해 차분하게 짚어보면 된다.

문화일보 사설

 
 

06.07 "동해 성공률 20%는 높은 수준…세계 최대 가이아나 16%였다"

동해 석유·가스 매장 가능성을 분석한 미국 액트지오의 비토르 아브레우 고문이 입을 열었다. 아브레우 고문은 7일 기자회견에서 “20%의 성공률은 굉장히 양호하고 높은 수준”이라며 ”유망성이 상당히 높아 세계적인 석유 관련 회사들이 주목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영일만 석유’를 둘러싸고 불거진 각종 의혹에 대해 답하면서다.

 

▲경북 포항 영일만 일대에 최대 140억배럴 규모의 석유·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한 미국 액트지오(Act-Geo)의 비토르 아브레우 고문이 7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 기자실에서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아브레우 고문은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 기자실에서 여러 의혹과 관련한 질문에 답을 내놨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최소 35억 배럴에서 최대 140억 배럴의 석유·가스가 동해 심해 지역에 부존돼있을 가능성을 발표한 이후 신뢰도와 가능성을 놓고 ‘물음표’가 더해져 왔다.

 

의혹은 크게 네 가지다. 아브레우 고문에 앞서 동해 심해탐사를 진행한 호주 최대 석유개발회사인 우드사이드에너지는 장래성이 없다고 보고 철수했다. 또 정부는 매장량이 최대 140억 배럴이라고 했지만, 사실상 “액트지오의 탐사 심층 분석 결과”라는 답변만 나왔을 뿐 구체적인 근거는 공개된 바가 없다. 20%의 성공 가능성도 이유가 제시되지 않았다. 액트지오의 사무실이 개인 주택이라는 점을 근거로 믿을 수 있는 회사인지에 대한 의혹도 제기됐다.

①호주 우드사이드에너지 철수

우드사이드에너지는 2007년부터 2022년까지 15년간 한국석유공사와 함께 동해 8광구와 6-1광구에 대한 물리 탐사를 진행했다. 해당 광구는 정부가 대규모 석유·가스 매장 가능성을 높게 보는 위치다. 그러나 2022년 3월 우드사이드에너지는 철수 의향을 표시하고 지난해 1월 철수했다. 당시 이 회사는 반기보고서에서 “더는 장래성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아브레우 고문과 석유공사는 분석의 근거가 된 자료 범위가 다르다는 설명을 내놨다. 우드사이드에너지 철수 이후 석유공사는 자체 대규모 3D 탐사를 진행했다. 이전 탐사 자료에 3D 탐사 자료까지 더해 액트지오가 추가 분석을 진행한 결과인 만큼 차이가 있다는 뜻이다. 심해 지역에 대한 추가 시추 자료까지 더해졌다. 아브레우 고문은 “3개의 심해 시추공을 분석하는 일이 굉장히 중요했다. 각각의 시추공의 실패 원인을 분석하지 못 하면 이 프로젝트의 리스크가 증가한다”고 말했다.

 

곽원준 석유공사 수석위원은 “우드사이드는 대규모 3D 탐사를 해놓고 충분한 평가를 하기 전에 철수 의사를 밝혔다”며 “철수 이후 석유공사는 자체 3D 탐사를 추가로 진행해 분지 전체를 3D로 볼 수 있는 탐사 자료를 마련했고, 2021년 단독으로 시추까지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②20% 성공 가능성의 의미는

실제 석유·가스의 존재를 확인하고, 경제성을 입증하기 위해선 시추가 필수적이다. 1구를 시추하는데 1000억원의 비용이 든다. 대규모 재정이 투입될 수밖에 없는 만큼 정부가 밝힌 20%의 가능성이 사실인지, 또 돈을 쓸 만한 일인지에 대해 일각에선 부정적 반응이 나온다. 20%라는 가능성을 어떻게 추정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 석유가스 매장 예상 지역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산업통상자원부, 한국석유공사]

 

아브레우 고문은 ”성공률은 20%가 맞다. 굉장히 양호하고 높은 수준을 의미한다“며 ”엑손모빌 재직 중 참여했던 가이아나 리자 프로젝트의 성공률이 16%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동해 심해는) 이와 비슷한 유형의 트랩과 제반요인을 갖추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21세기 들어 발견된 최대 심해 유전으로 평가받는 가이아나의 발견자원량이 110억 배럴 규모다.

 

그러면서 ”20%의 성공률은 5개 유망구조를 도출해서 시추한다면 1개의 구조에선 석유를 찾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라며 ”저희는 7개의 유망구조를 도출했고, 앞으로 유망구조를 더 찾을 가능성도 있다“고 강조했다. 유망구조는 석유·가스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층 구조다.

 

조심스러운 반응도 내비쳤다. 아브레우 고문은 1시간 20분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리스크가 존재한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다. 또 ”20%의 성공 가능성은 80%의 실패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라며 ”유망구조의 존재와 가능성이 있는 여러 요소를 판별하긴 했지만 시추를 하지 않는다면 불확실성을 모두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 이제 남은 마지막 방법이 시추“라고 밝혔다.

③탐사자원량 최대 140억 배럴 근거는

정부와 석유공사, 아브레우 고문 등에 따르면 석유와 가스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해저 지형에 모래(저류층)와 석유 위를 덮어 빠져나가지 못 하게 하는 진흙(덮개암)이 가득 차야 한다. 바닥 지형을 받쳐주는 기반암과 돔 형태로 석유 유출을 막는 트랩의 존재도 석유 매장을 암시하는 요소다. 아브레우 고문은 ”이전에 시추한 3개의 유정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4개의 요인(저류층·덮개암·기반암·트랩)이 있음을 확인했고 입증까지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추정 매장량을 판단할 때 암석 품질을 따지는데 이에 대해서도 고려했다. 기반암이 얼마나 튼튼하고 강력한지, 얼마만큼의 탄화수소가 트랩되어 있을 수 있는지 고려해 추정 매장량을 판단한 것“이라며 ”최대 규모 140억 배럴은 암석 내에 추정 가능한 범위에서 가장 많은 공간이 있을 때다. 누적 탄화수소를 찾지 못 했기 때문에 불확실성은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배석한 이현석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박사는 ”이미 기존의 시추공(3구)을 석유 시스템을 구성하는 여러 지질학적 요인들에 대한 불확실성이 상당히 해소된 상황“이라며 ”지난해 11월과 지난 4월에 아브레우 고문과 액트지오의 발표 내용에 대해 검토한 결과 상당히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결과가 도출된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④액트지오의 신뢰도는

아브레우 고문과 그가 설립한 액트지오에 대한 의혹도 있다. 회사 주소가 미국 휴스턴의 가정집으로 돼 있는 데다 임직원 수가 10여명에 불과해 분석 관련 업무가 가능한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아브레우 고문은 액트지오의 주소는 자신의 자택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업무에 필요한 건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카메라밖에 없다. 현재 14명의 직원을 두고 있는데 우리 팀은 뉴질랜드(지구물리학 전문), 브라질(지진파 전문), 멕시코(지구화학 전문) 등 전 세계에 흩어져 있다“며 “소규모 업체가 주요 프로젝트의 분석을 담당하는 건 이 산업의 표준”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가이아나 프로젝트 당시 유망구조 도출을 위해 지구물리학 업무를 수행한 건 단 1명”이라고 덧붙였다.

 

곽원준 수석위원은 “2023년 심해 종합평가를 위해 4개의 업체를 대상으로 경쟁입찰을 진행했고, 기술과 가격평가 결과에 따라 액트지오를 공정하게 선정했다”며 “광구의 유망성 등 이런 기밀을 여러 업체에 알릴 수는 없기 때문에 심해 지역 최고 기술전문 업체 한 곳을 선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06.08 [단독] 아브레우 "유전 가능성은 국가 경사인데, 한국처럼 논쟁 뜨거운 건 처음"

 유전 분석한 아브레우 단독 인터뷰

"외부 전문가도 매장 가능성 인정, 시추 않는 건 말 안돼"

 

 “지난 1년간 세계적인 전문가인 팀원들과 동해 심해에 관한 12테라바이트(TB)에 달하는 자료를 분석했습니다. 포인트마다 ‘피어 리뷰’(Peer review)를 한 뒤에도 불안해서 외부 전문가들에 의뢰해 피곤할 정도로 꼼꼼하게 들여다봤습니다. 그들은 ‘저류암 분석에 동의, 근원암 굉장히 양호, 트랩 양호, 덮개암 양호’라고 합니다. 이런 해석을 듣고도 시추 안 한다면 그건 말이 안 됩니다”.

 

▲7일 오후 미국 액트지오의 비토르 아브레우 고문이 본지 인터뷰를 하는 도중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아브레우 고문은 액트지오와 동해 심해 가스전에 대한 질문에 때때로 "좋은 질문입니다(That's a good question.)"라고 말하며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브레우 고문은 이날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약 2시간 동안 공식 기자회견을 가진 뒤 서울로 올라와 본지와 따로 만났다. /장련성 기자

 

7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콘퍼런스룸에서 본지와 만난 비토르 아브레우 액트지오(ACT-GEO) 고문은 이렇게 말했다. 그가 속한 액트지오가 최근 동해 영일만에 대규모 석유·가스가 매장됐을 가능성을 내놓으면서 아브레우 고문은 며칠 사이 한국에서 가장 ‘핫’한 인물이 됐다. 지난 4일 인천공항 입국할 때, 이날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 50여 명의 취재진이 몰렸다.

 

2시간 가까이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선 그에게 집중된 질문은 상당 부분 ‘의구심’이었다. “소규모 업체가 이런 대규모 프로젝트를 맡는 게 일반적이냐”는 자질 논란이 불거졌고, “제대로 검증했냐”는 유의 질문이 수차례 나왔다. 기자 회견 후 서울로 올라와 본지와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이제는 시추를 해야 할 시간”이라며 “충분히 검증했고, 남은 불확실성을 해결할 방법은 오직 시추뿐”이라고 했다.

 ▲그래픽=김하경

 

아래는 아브레우 고문과의 일문일답.

 

-분석과 검증 과정을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석유공사로부터 지난해 2월 12테라바이트(TB)에 달하는 자료를 받았다. 2~3시간짜리 영화 3000편이 넘는 분량이다. 분석 결과를 금세기 최대 규모 광구라는 남미 가이아나 광구 분석치와 비교해보니, 영일만이 여러 가지 면에서 장점이 있었다. 먼저 탄성파 데이터의 품질이 뛰어났다. 가이아나 광구 데이터가 1950년대 흑백TV라면, 영일만 데이터는 최신 고화질TV 같았다. 그간 데이터 추출 기술도 발달했고, 데이터 양도 많았기 때문이다. 또 기존에 주작, 방어, 홍게 구조에 시추공이 3개가 있었다는 점도 분석 결과의 신뢰성을 높였다. 이 시추공을 통해 석유 매장의 필수 조건을 해저에서 확인했고, 관련 리스크를 줄였다.”

 

-시추 성공률 20%는 어떻게 산출된 것인가.

“저류암, 근원암, 덮개암, 트랩 등 석유·가스 매장 가능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네 가지 조건의 확률을 모두 곱했을 때 나오는 게 시추 성공률이다. 예를 들어 네 가지가 있을 확률이 각 50%일 경우, 자원이 있을 전체 확률은 6%다. 영일만의 20% 확률이 나오기 위해선 네 가지 조건이 있을 확률이 모두 70%수준이란 뜻이다. 아주 높은 수치다.”

 

-‘80%의 실패 확률’이라는 부정적 여론도 많다.

“여전히 80%의 실패 가능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20% 성공 확률이면 시추는 당연히 해봐야 한다. 한국의 경우 심지어 공기업인 석유공사가 석유 사업도 하고 있지 않는가. 새로운 자원 확보를 위해 시추해야 하고, 혹시 실패하더라도 시추 가능한 유망 구조를 찾는 사업도 계속해서 벌여야 한다. 이건 국민한테도 좋은 일이다.”

 

-액트지오는 우루과이, 볼리비아 등에서 비슷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다른 나라에선 어떤 반응이 나오나.

“매장량이나 실패 가능성에 대한 논란은 당연히 있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서 비슷한 프로젝트를 해서 이 정도 성공률이 나오면 대부분 ‘나라에 좋은 일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일단은 ‘긍정적인 일’이라는 기대감을 갖는 분위기다. 한국처럼 이렇게 뜨거운 논쟁이 일어나는 것은 처음 본다.”

 

-시추공 하나를 뚫는데 1000억원이 든다. 세금 낭비라는 지적도 나온다.

“가이아나 광구에서 가장 매장량이 많았던 ‘리자’ 유망 구조에선 첫 시추공에서 자원이 발견됐다. 그리고 첫 시추공에서 자원이 발견되는 것도 드문 일은 아니다. 가이아나 프로젝트 당시 첫 시추탐사를 할 지역을 내가 속한 팀에서 결정했었다. 그러나 단 한 번에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가이아나 광구의 두 번째 시추공은 건공(Dry hole)이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시추공의 순서가 뒤바뀌었을 수도 있다. 첫 시추에서 자원이 나오지 않았더라도 ‘나쁜 소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참고로 이번 영일만의 첫 시추공 위치도 우리가 정할 것이다.”

 

-매장량 추정치가 35억~140억 배럴로 범위가 크다.

“140억 배럴은 암석 내 자원이 가득 찼을 때를, 35억 배럴은 석유가 제대로 가둬지지 않았을 때를 추정한 수치다. 불확실성이 커서 어쩔 수 없다. ‘가이아나 프로젝트’ 때도 매장량을 평가할 때 90% 확률로 분석 시 10억배럴, 10% 확률로 계산하면 40억~50억 배럴로 추산했다. 영일만도 아직 유정(油井) 안에 탄화수소가 누적돼 있는지 파악되지 않았고, 암반 품질에 따라 추정 매장량이 충분히 바뀔 수 있다.”

-앞으로 액트지오는 무슨 일을 하나.

“영일만 인근 심해에서 도출한 7개의 유망 구조 중에서 어디에서 먼저 시추할지 결정할 예정이다. 첫 번째 시추에서 리스크를 줄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해서 석유공사 등과 계속해서 협의하면서 최적의 시추 위치를 찾고 있다.”

 

-호주 업체 ‘우드사이드’는 이 프로젝트에서 철수했다. 성공 가능성이 낮았기 때문은 아닌가.

“먼저, 우리는 우드사이드보다 더 좋고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또 우드사이드는 공교롭게도 호주 최대 석유개발기업 BHP가 우드사이드를 인수한 지 한 달밖에 안 지난 시점에 철수했다. 우드사이드는 당시 미얀마 등 전 세계의 다른 사업에서도 동시 철수했다. 대개 인수합병, 시추 프로젝트 같은 대형 사업을 앞두면 소규모 사업에서 손을 떼는 ‘선택과 집중’에 나서는 경향이 있다. 미국 석유기업 헤스(Hess)도 가이아나 유전 프로젝트에 집중하기 위해 보유 자산을 상당수를 매각했다. 기업 입장에선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자금 확보를 위해선 어쩔 수 없는 결정이다.”

 

-이런 대형 프로젝트를 맡기에 액트지오가 너무 영세하다는 의문이 계속 나온다.

“석유 탐사에서 광구 매입, 조광권 확보 같은 작업엔 비용이 많이 든다. 탄성파를 검사하는 데에도 1회에 수십만달러가 든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일은 그다음 단계에서 데이터를 해석하는 일이다. 그 뒷일은 시추 업체가 할 것이다. 우리 팀엔 엑손모빌, 임피리얼 오일 같은 글로벌 석유회사에서 20년 이상 근무한 르네 용크 박사를 비롯한 전문가들이 있다. 또 층서학, 탄성파 해석 같은 더 많은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에선 그때그때 단발성으로 전문가들을 투입해 함께 일했다.”

☞남미 가이아나 광구·탄화수소…

남미 가이아나 광구

 ▲그래픽=백형선

 

21세기에 발견된 최대 규모의 심해 유전이다. 미국 석유기업 엑손모빌이 7년의 탐사 끝에 2015년 가이아나에서 석유 시추에 성공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석유 매장량은 총 110억 배럴에 달한다. 가이아나는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원유를 생산·수출하기 시작했고 현재는 하루 40만 배럴가량의 석유를 생산하고 있다. 농업국가로 2010년대까지 남미 최빈국이었던 가이아나는 유전 개발로 단숨에 신흥 산유국이 됐다. 지난 5년간 국내총생산(GDP)이 5배 증가하는 등 경제도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가이아나는 2027년까지 추가 유전 개발을 통해 대표적인 산유국인 카타르에 맞먹는 수준인 하루 120만 배럴을 생산하겠다는 목표도 밝혔다.

탄화수소(hydrocarbon)

탄소(C)와 수소(H)만으로 이뤄진 유기 화합물로 석유와 천연가스, 파라핀 등이 대표적인 탄화수소다. 일반적으로 석유를 시추할 때 탄화수소가 있는 것으로 확인된 층에 시추관을 내려 산출능력을 시험하게 된다. 그 후 시료를 채취해 압력 등을 측정하면 기대되는 매장량을 평가할 수 있게 된다.

탄성파 데이터

본격 시추 탐사를 하기 전 물리 탐사 과정에서 검출해 석유와 가스의 매장량을 추측하는 데이터. 탄성파를 쏴서 파장이 돌아오는 데이터를 수퍼컴퓨터 등으로 분석해 석유·가스가 있는 지질 구조를 분석한다. 2D(2차원)와 3D 탐사로 이 데이터를 얻으면 복잡한 해저 지질구조를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석유 매장 기준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근원암(source rock), 저류암(reservoir), 트랩(trap), 덮개암(cap rock)이 있어야만 유전이 존재할 수 있다. 근원암은 유기 물질을 석유 또는 천연가스로 전환시켜 주는 암석이다. 저류암은 근원암에서 생성된 석유가 스며든 암석을 말한다. 덮개암은 석유가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저류암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암석을 말하고, 이처럼 석유가 저류암 내에 모이게 할 수 있는 조건을 트랩이라고 부른다.

☞아브레우 고문은 누구

비토르 아브레우 고문은 석유 개발·탐사 분야에서 40년 가까이 활동해온 브라질 출신 컨설턴트다. 2016년 미국 휴스턴에 지질 탐사 전문 컨설팅 업체 액트지오(ACT-GEO)를 설립해 22국 31개 현장에서 지질 평가와 시추 사업에 관여했다. 미 아파치(Apache), 중국해양석유(CNOOC) 등 40여 개 업체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015년에는 미 정유사 엑손모빌에서 지질그룹장을 맡아 최대 심해 석유·가스전으로 평가받는 남미 가이아나 광구 탐사에 참여했다. 당시 시추 성공 확률을 16%로 제시하며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미국의 지질 분야 최고 명문인 라이스대에서 지질학·지구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선일보  조재희 기자 강다은 기자 조재현 기자

 

06.08 보수 재건은 ‘대한민국 서사’의 재발견부터

국민학교 시절 《도덕》 교과서에는 6·25 때 바주카포로 북괴군 전차를 여러 대 격파한 후 적의 기관총 사격을 받고 장렬하게 전사(戰死)한 스무 살 미군 병사의 이야기가 실려 있었습니다. 워싱턴DC의 한국전쟁참전기념비에 새겨진 문구처럼 ‘자신들이 알지도 못하는 나라,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던진 미군 병사의 전형이었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병사의 이야기는 수십 년이 지났어도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5년 전 에드워드 L. 로우니 장군의 회고록 《운명의 1도》를 읽다가, 그 미군 병사를 다시 만났습니다. 책 뒤에 ‘한국 전쟁에 참전한 미군 명예훈장(the Medal of Honor) 수훈자’ 명단이 부록으로 실려 있었는데, 거기서 발견한 것입니다. 간략한 그의 공적조서 내용을 보니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던 어린 시절 교과서 속 이야기 그대로였습니다.

제가 어릴 때에는 교과서에 이런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월남 파병을 앞두고 부하 병사가 수류탄 투척 훈련을 하다가 수류탄을 놓치자 자신의 몸을 던진 강재구 소령, 월남전에서 베트콩이 던진 수류탄에 몸을 던져 동료 해병들을 구하고 장렬히 산화(散華)한 이인호 중령,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치고 무장공비에게 학살당한 이승복…. 아,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전투기가 추락하게 되자 민간인 피해를 막기 위해 마지막까지 노력하다가 애기(愛機)와 함께 산화한 공군 조종사의 이야기도 있었던 것 같네요.

시골 마을에 전기가 들어와서 마을 사람 모두가 기뻐했다는 이야기, 외국에 나가서 셔츠를 사 왔는데 귀국 후에 가족들 앞에서 꺼내놓고 보니 국산이어서 온 가족이 박장대소했다는 이야기도 기억납니다.

모두가 피 흘려 대한민국을 지켜낸 분들에 대한 감사, 발전하고 있는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을 가르치는 얘기들이었습니다.

‘역사 흔들기’

 1980년대 초 이후 이런 교육들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전교조를 만들게 되는 한 무리의 ‘진보적’ 교사들이 당시의 교육에 대해 ‘일제 잔재’ ‘군국주의’ ‘국가주의’ ‘냉전교육’이라며 도전하기 시작한 것이죠. 1987년 민주화와 1993년 김영삼 정권 출범 이후 이런 흐름은 대세를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역사 바로 세우기’가 아니라 ‘역사 흔들기’가 사회 전방위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이 되자, 그 이전에 대학가 골방에서 몰래 보던 좌파 운동권 서적의 역사 인식이 행정고시나 사법시험 문제로 버젓이 등장했습니다. 1980년대 후반 이후 고시를 비롯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 적이 있는 이들은 한국사나 문화사(세계사) 공부를 하면서 일제하 노동운동·농민운동, 해방 후의 좌익 폭동, 러시아혁명사, 중국공산당사를 달달 외우다시피 했던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언론개혁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은 “《조선일보》의 이승복 사건 보도는 오보(誤報)”라고 떠들어댔습니다. 저도 이승복 관련 취재를 한 적이 있지만, 당시 이승복 사건을 목격한 이웃 사람들, 공비 토벌에 참가했던 군 장교들이 버젓이 살아 있는데도 그런 소리를 한 겁니다. 대법원이 “이승복 사건 보도는 진실”이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아직도 많은 국민은 ‘이승복 사건은 가짜였다더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 전쟁에서 희생한 미군들의 이야기는 교과서에서 사라지고 그 자리에 ‘노근리 학살 사건’이나 ‘효순이·미선이 사건’이 들어갔습니다. 6·25 때 피 흘려 나라를 지켰던 국군 장병들의 이야기, 전우나 시민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졌던 국군들의 이야기는 사라지고, 국군은 독재 정치를 하고 민주화 운동을 잔인하게 진압했던 ‘악당’처럼 각인되게 되었습니다.

TV에서는 〈113수사본부〉나 〈수사반장〉처럼 대한민국의 안보와 법질서를 지키기 위해 활약하는 이들을 그린 드라마가 사라졌습니다. 대신 〈모래시계〉처럼 공권력은 부패하고 야비한 세력으로, 그에 맞서는(?) 조폭이 오히려 멋있게 그려지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게 되었습니다.

기울어진 운동장

지난 한 세대 동안 이런 교육을 받고 자라난 이들이 이제 우리 사회 곳곳에 포진해 있습니다. 그것도 철없는 신입의 위치가 아니라 기업, 행정부, 언론사, 법원, 검찰, 경찰, 군대의 상층부급으로 말입니다. 정치권이나 시민사회단체는 더 말할 것도 없고요.

이미 우리 사회는 좌파에게 매우 유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입니다. 그렇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기를 벌였으니, 4·10 총선에서 보수 세력이 참패한 것입니다.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총선에서 패배한 것은 보수 세력이 아니라 윤석열-한동훈 같은 가짜 보수”라고 해봐야 ‘아Q식 정신승리’에 불과합니다.

물론 이런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월간조선》은 20년 전부터 좌편향 교과서의 문제점을 지적해왔습니다. 이를 계기로 교과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시민운동이 벌어졌습니다. 박근혜 정권 시절 ‘역사교과서의 국정화(國定化)’ 논의도 그래서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좌편향 역사 인식이 정설(定說) 내지 정설(正說)로 행세하고 있는 상황에서,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오히려 ‘권력에 의한 역사왜곡’으로 몰려버렸습니다.


‘거대 서사의 붕괴’와 포스트 모더니즘

영국 언론인 데이비드 머리의 《군중의 광기》 서문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이런 상황의 기원조차도 거의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반세기 넘는 기간 동안 우리의 모든 거대 서사(敍事)가 붕괴한 가운데 살아왔다는 단순한 사실이 그것이다. 우리가 의지했던 서사들은 하나하나 반박되거나 인기가 없어져서 옹호할 필요가 없거나 지탱할 수가 없었다. 19세기부터 종교가 제공해준 우리 존재에 대한 설명이 먼저 무너져서 줄곧 사라지고 있다. 다음으로 지난 세기 내내 온갖 정치 이데올로기가 약속한 세속적 희망이 종교의 뒤를 따라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20세기 후반에 포스트모던 시대에 접어들었다. 모든 거대 서사에 대한 의심으로 스스로를 정의하고 그렇게 정의되는 시대다.〉

데이비드 머리가 ‘거대 서사의 붕괴’를 말하는 것은 미국과 유럽에서 횡행하고 있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정체성(正體性) 정치의 광기(狂氣)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의 말은 오늘날 대한민국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대한민국의 보수애국 세력이 오늘날 이렇게 궁박한 처지에 몰리게 된 것도 ‘대한민국 서사’의 붕괴 혹은 해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성세대들은 먹고살기에 바빠서, 혹은 참혹했던 전쟁, 궁핍했던 시절에 대해 더 이상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자신들의 서사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후세에 전수하는 일을 게을리했습니다. 좌파는 ‘대한민국 서사’가 붕괴 혹은 해체된 자리를 파고들어 ‘민주화투쟁’ ‘노동해방투쟁’의 서사를 들이밀었습니다. 그리고 저들의 서사가 오늘날 대한민국의 주류 서사가 되어버렸습니다.


‘대
한민국 서사’의 재건

지금 대한민국호라는 배는 곳곳에 크고 작은 구멍들이 숭숭 뚫려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용케 가라앉지 않고 여기까지 왔지만, 이제는 언제 침몰해도 이상할 게 없는 지경입니다. 윤석열 정권은 대한민국호가 다시 대양(大洋)을 항해할 수 있도록 배를 수선해야 했습니다. 그게 윤석열 정권에 주어진 역사적 소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2년을 허송하고, 4·10 총선에서 패배하면서 이제 대한민국호의 본격적인 수선은 기약할 수 없는 훗날로 미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대한민국호의 구멍을 막아야 합니다. 눈에 띄는 구멍, 작은 구멍부터라도 말입니다. ‘대한민국의 서사’를 재발견하고 복원하는 일도 그중 하나입니다. 이는 대한민국 보수 재건의 첫걸음이기도 합니다.

책을 만들다 보니, 이번 6월호에는 ‘내 아버지의 6·25 전쟁’을 비롯해서 역사 이야기들이 조금 많아졌습니다만, 이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라고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월간조선 06월 호 글 : 배진영 월간조선 편집장 ironheel@chosun.com

 
 

06-11 대통령직은 ‘피고인 도피처’ 아니다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헌법학

 

형사피고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집요한 재판 지연 전술로 헌법 문제가 중요한 정치 이슈로 등장했다. 그의 목표는 대선 때까지 확정판결을 피해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상 국가라면 그 꿈은 백일몽에 그칠 것이다.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규정(제84조)은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에게 특권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 규정의 ‘소추(訴追)’에 재판의 포함 여부를 두고 논란이 많다. 소추는 수사부터 기소까지를 뜻한다는 것은 사법절차의 기초적인 상식이다. 대통령의 재직 중 형사상의 불소추권을 규정한 나라는 범죄 피고인이 대통령이 되는 것 자체를 상정하지 않는다. 대다수 법치 선진국에서는 형사피고인은 공직선거에 입후보조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 헌법 제정자들도 지금의 반법치적인 정치 상황이 생길 것은 전혀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범죄 피고인에게 도피처를 마련해 주는 헌법 규정을 만든다는 것은 헌법 원리에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범죄로부터 자유로운 정치지도자가 국민의 위임을 받아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동안 국정의 안정을 위해서 헌법은 형사상 불소추권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내란 또는 외환과 같은 반헌법적인 중범죄를 범한 때에는 헌법을 지키기 위해서 소추를 허용한 것이다.

자유민주국가에서 헌법 해석의 일반원칙은 통치권의 기본권 기속성을 지키기 위해 국민의 기본권은 되도록 넓게, 통치기관의 특권과 권한은 가능한 한 좁게 해석하는 것이다. 이런 원리에 비춰서도 대통령의 재직 중 형사상 특권 규정은 확대해석해서는 안 된다. 평등의 원리에 비춰도 축소해석하는 것이 헌법 이념에 부합한다. 헌법이 평등의 원리를 구현하기 위해 특수계급의 창설을 금지한 규정은 대통령의 형사상 불소추권 해석에서도 존중해야 한다.

헌법이 전혀 상상하지 못한, 재판 중인 형사피고인이 대통령이 되는 때에도 재판은 당연히 계속돼야 하고 유죄의 확정판결을 받으면 대통령직을 상실한다. 그래서 헌법도 대통령 당선자가 판결 기타의 사유로 그 자격을 상실한 때에는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뽑도록 정했다. 헌법은 대통령의 보궐선거 규정(제68조 2항)에서 궐위 시에는 ‘대통령’으로, 자격 상실 사유에서는 ‘대통령 당선자’라고 표기해서 명백히 구별한다.

헌법 질서의 확립과 법치주의의 실현을 위한 가장 바람직한 길은, 재판 중인 형사피고인이 대통령에 입후보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그 열쇠는 사법부가 쥐고 있다. 지금의 위법적인 재판 지연을 끝내고, 이미 공판 절차를 거의 마친 공직선거법과 위증교사 관련 사건부터 하루속히 1심 판결을 해야 한다. 항소심과 대법원도 집중심리를 통해 대선 전에 확정판결을 해야 한다.

법관의 편향적 정치 이념이 재판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법관의 독립을 악용하는 일이다. 만일 재판 지연으로 재판 중인 범죄 피고인이 대통령이 되는 상황이 온다면 헌법해석의 차원을 넘어 사법부는 심각한 딜레마에 빠질 것이다. 국민의 신뢰를 상실한 사법부는 존재 이유가 없다.

사법부에 다시 한 번 깊은 성찰과 환골탈태를 촉구하는 이유다.

문화일보

 

06-12 자영업대란 위기, 최저임금 묶고 폐업 퇴로도 터줘야

은행권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이 11년 만에 최고치인 0.54%로 뛰어오르고 올 들어 4월까지 자영업 폐업률이 10%에 육박하고 있다. 자영업대란의 빨간불이 켜졌다. 지난 3월 기준 자영업 대출이 1112조 원으로 4년 전보다 51%나 급증하는 등 심각한 부채의 늪에 빠진 게 치명타였다. 여기에 고금리까지 겹치면서 총체적 난국을 맞고 있다. 그동안 4차례의 대출만기 연장과 원리금 상환 유예로 간신히 버텨왔지만 지난해 9월 원리금 상환 유예가 끝나면서 벼랑 끝에 몰렸다. 여기에 내년 9월 대출 만기 연장까지 종료되면 위기가 가중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코로나 대출금을 10년 이상 장기분활 상환하는 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민생을 걱정하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대증요법 식 포퓰리즘으로 끝날 우려가 작지 않다. 이미 코로나 재난 선(先)지원금(57만 명·8000억 원)을 돌려받지 않았고, 금리 부담을 낮춰 주는 저리 융자금 4조 원을 풀었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에 지나지 않았다. 자영업은 전체 취업자의 20%를 차지하고, 창업 5년 생존율이 23%에 불과할 만큼 경쟁력도 낮다. 선별적인 채무 재조정으로 도덕적 해이를 차단하고, 과포화 상태인 자영업 구조 개편부터 서둘 필요가 있다. 더 미루면 고통과 충격만 커질 뿐이다.

“수출과 내수가 균형 잡힌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정부와 달리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고금리에 따른 소비 여력 부족으로 내수가 회복되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고금리·고물가 장기화에 따른 부실 도미노를 막으려면 고통을 각오하더라도 자영업 옥석 가리기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지난 10년간 76.7%나 오른 최저임금부터 손질하는 게 시급하다. 최근 소상공인연합회 조사에서 응답자의 87.8%가 최저임금의 업종별 유연화를 요구했다. 폐업하면 은행 대출금을 한꺼번에 갚아야 하고 신규 대출도 못 받는 족쇄 때문에 좀비 업체도 쏟아진다. 폐업 지원과 재교육 훈련 등으로 퇴로를 터주는 실효적 대책이 절실하다.

문화일보 사설

 

06.13 저출생 예산 47조 중 절반이 무관, 전면 재조정 검토를

 한국개발연구원(KDI) 분석 결과 지난해 저출생 대응 예산으로 47조원을 썼지만 그중 절반은 저출생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과제에 투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18년간 380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저출생 대응에 쏟아부었다는데 그 실상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저출생 예산으로 잡힌 항목들을 보면 기가 막힐 정도다. 학교 단열 성능 개선, 태양열 설비 설치를 지원하는 그린스마트스쿨, 청소년 스마트폰 중독 예방, 웹툰 창작·교육 공간 조성, 관광 사업체 창업 지원, 청년의 자산 형성을 지원하는 청년내일채움공제 사업 등이 어떻게 저출생 예산이라고 할 수 있나. 상당수는 각 부처에서 예산을 더 따내기 위해 저출생 사업이라는 꼬리표를 붙인 결과일 것이다. 더구나 나머지 저출생 예산의 절반에 육박하는 21조4000억원이 주거 지원 예산이었다. 주거 지원은 저출생과 관련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연결 고리가 약해 국제 비교에서 기준으로 삼는 OECD의 ‘가족 지출’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엉뚱한 항목까지 저출생 예산으로 잡는 보여주기식 예산 편성은 오히려 예산 착시효과를 일으켜 저출생 정책의 효과를 떨어뜨리는 핵심 요인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저출생 예산이 부풀려져 있어서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 지 10년도 넘었는데, 아직도 이런 식이다.

 

저출생과 직결된 예산 중에서도 양육 분야에 87.2%(20조5000억원)가 집중된 반면 정작 효과가 크고 부모들의 요구가 많은 일·가정 양립 분야는 8.5%(2조원)만 지원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12월 각 저출생 대책에 대한 출산율 제고 효과를 구체적인 숫자로 제시하는 보고서를 냈다. 한국의 육아휴직 실제 이용 시간(10주)이 OECD 평균(61주)으로 늘면 출산율이 0.096명 늘 것이라고 한다. 실효성 있는 저출생 대책은 실효성 있는 예산의 편성과 집행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6.17 설립자 박정희 망각하는 서울대 관악캠퍼스 50주년

 1970년대는 조국 근대화 시기
근대국가는 곧 지식국가
서울대 종합캠퍼스 탄생은
경부고속·포항제철 버금
관악캠퍼스 산파는 박 대통령
그를 기념하는 어떤 상징도 없어
야박한 인정·부박한 세태
정치적 호불호 떠나 기념해야

 역사적 기념일을 매년 기리기도 하지만 5년, 10년 단위로 ‘꺾어’ 평소보다 성대하게 치르는 것 또한 나름 관례다. 50년이나 100년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내년인 2025년에 서울대학교는 관악캠퍼스에서 새출발한 지 반백 년을 맞는다. 그런데 어디서도 이를 각별히 여기려는 조짐이 없다. 1946년에 출범한 서울대는 이를 기준으로 해마다 개교기념 행사를 치르며, 매 10년 차마다 규모가 약간 커지는 정도다.

 

서울대 관악캠퍼스의 사실상 산파는 박정희 대통령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대학인 서울대는 경성제대의 후신 경성대학과 10개의 관·공립 전문학교를 합친 것으로, 캠퍼스가 서울 및 경기도 일대에 흩어져 있었다. 여기에 한국전쟁 때 엄청난 물리적 피해까지 입게 되자 1950년대 후반부터 대학 조직 및 공간의 통합 논의가 진행되어왔다. 하지만 학내 의견 충돌과 부지 확보 난항, 예산 부족 탓에 서울대 종합화 계획은 오랫동안 표류했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은 서울대 종합캠퍼스안(案)에 본격 개입하기 시작했고 이는 ‘서울대 종합화 10개년 계획’으로 가시화되었다.

 

박 대통령은 서울대 종합캠퍼스 조성을 국가적 프로젝트로 인식했다. 무엇보다 당시는 ‘조국 근대화’의 시대였다. 두말할 나위 없이 근대국가의 또 다른 이름은 ‘지식 국가’다. 아는 게 힘이고 지식이 국력이라는 의미다. 비록 대학의 최초 출현은 중세까지 소급되나 대학다운 대학의 발전은 근대국가 건설 및 부국강병과 긴밀히 연계되어왔다. 박 대통령이 “서울대를 세계적 수준의 대학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보다 장기적이고 큰 규모의 계획”을 주문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비슷한 시기 한국과학원(KAIS, 카이스트 전신)의 태동도 배경은 유사하다. 이런 점에서 서울대 종합캠퍼스의 탄생은 경부고속도로나 포항제철에 버금가는 역사적 이정표로 평가받을 수 있다.

 

위치를 관악산 기슭으로 최종 낙점한 것도 박 대통령이었다. 당시 최문환 총장에게 보낸 친서에 “야음(夜陰)에도 돌아보고 해를 넘기며 숙고 끝에 결정”했다고 적었다. 서울대의 관악산행(行)은 그 무렵 정부의 강남 개발 정책에 부응하면서 기존 관악컨트리클럽 부지를 최대한 활용하려는 심산이었다. 경성제대 시절 일본식 캠퍼스 모델에서 벗어나 미국식 대학 스케일로 전환하는 데도 광활한 관악산 일대가 제격이었다. 실제로 서울대 이전은 캠퍼스 플랜과 도시계획의 결합이었다. 대학 구성원들의 학업과 일상생활이 함께 가능한 대학도시 개념을 지향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서울대 관악캠퍼스 건설에는 때마침 물이 오르기 시작한 서울시의 도시계획 역량이 십분 동원되었다.

 

박 대통령은 서울대 관악캠퍼스 조성과 관련하여 세심하게 신경 썼다. 자연환경과의 조화를 중시했고 지역주민의 이용을 배려했으며 기본적으로 ‘차 없는 캠퍼스’를 구상했다. 그는 1971년 서울대 관악캠퍼스 기공식에 직접 참석하여 발파 스위치를 눌렀다. 훗날 시인이 된 국문과 학생 정희성은 식장에서 “누가 조국으로 가는 길을 묻거든 눈을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는 축시를 낭독했다. 데모 진압을 위해 학교를 관악산으로 몰아넣는다는 ‘가짜 뉴스’ 속에서도 서울대 관악캠퍼스는 마침내 위용을 드러냈고, 1975년부터는 대부분 그곳에서 신입생을 받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서울대 구성원들로부터 응분의 대접을 받지 못했다. 1963년 서울대 졸업식장에 군복 차림의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자격으로 참석하기 시작한 그는 1974년 동숭동 대학 본부 시절 마지막 졸업식장에서 학생들이 정치적인 반대 표시로 일제히 뒤돌아 앉는 모욕을 당했다. 그럼에도 서울대에 대한 애정은 식지 않았던지, 1976년 개교 30주년에는 ‘민족의 대학’이라는 휘호를 썼고 1978년에는 관악캠퍼스를 조용히 둘러본 적도 있다. 어쨌든 박 대통령 주도로 국내 최대의 종합캠퍼스가 만들어진 이후 서울대는 대한민국 최고의 세계적 명문 대학으로 웅비하게 되었다. 한편, 극심한 난개발 현장이 되어버린 오늘날 관악캠퍼스를 보면 그의 사후 빈자리를 느끼기도 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현재 서울대 관악캠퍼스에 박 대통령의 행적을 상기하는 어떠한 기념 시설도 없다는 점이다. 개발 연대에 서울대에는 그의 특명으로 세워진 학과가 많았다. 대통령 내외로부터 물심양면 지원받은 졸업생도 비일비재고 그중에는 훗날 고관대작이 된 인물도 부지기수다. 그런데도 언제부턴가 서울대에서 박 대통령은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가 되어있다. 야박한 인정과 부박한 세태가 연출하는 의도적 망각의 결과가 아닐까 싶다. 적어도 이 사안만큼은 그에 대한 정치적 호불호와 상관없을 텐데 말이다.

조선일보 사설

 

06-17 신도시 재건축, 헛바람 넣다 탈 난다

문희수 논설위원

2027년 착공 2030년 입주 빠듯
핵심인 가구당 분담금 무대책에
주민 이주단지 계획 철회 비상

3기 신도시와 충돌, 미분양 우려
희망 고문… 사전청약제 재연 꼴
졸속 추진은 자해, 틀 다시 짜야

1기 신도시 재건축은 의문점이 한둘이 아니다. 국토교통부가 최근 제시한 대책들이 너무 부실한 탓이다. 핵심인 사업일정·가구당 분담금·이주대책 등이 모두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통상 10년 넘게 걸리는 재건축을 졸속 추진한다는 비판이 무성하다.

우선, 일정부터 너무 빠듯하다. 5개 신도시별로 선도지구를 정해 순차적으로 재건축하더라도 2027년부터 착공·2030년 첫 입주라는 시간표는 탁상공론에 가깝다. 국토부가 인허가를 2년 이내에 마치도록 지원하더라도 6년 뒤 입주는 희망 고문이다.

특히, 관건인 분담금은 무대책이다. 건설업체들은 가구당 수억 원을 예상해, 주민의 기대치와 격차가 큰 상황이다. 2022년 12월 경기주택도시공사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신도시 주민의 78.6%는 2억 원 이하가 적절하다고 응답했다. 1억 원 초과∼2억 원 이하가 절반 수준(47.8%)이었다. 물가·금리 인상으로 재건축·재개발 공사비가 지난해 3.3㎡(1평)당 687만 원으로, 3년 새 43% 올랐지만, 분담금 상한은 2억∼3억 원 미만으로 봐야 한다. 신도시는 대개 전용 85㎡ 시세가 평균 평당 2000만 원대, 높아도 4000만 원을 넘지 않는 점에서도 그렇다. 주민 입장에선 분담금이 이 수준을 넘으면 재건축보다 주변의 새 아파트를 매입 또는 분양받는 게 유리하다.

국토부가 용적률 상향으로 해결된다고 낙관한다면 큰 오산이다. 일반 분양 수익으로 분담금을 낮추는 것은 한계가 분명하다. 30평형대 기준으로, 일반 분양가는 높아도 12억 원 수준을 넘기 어려울 전망이다. 서울이라면 비(非)강남도 15억∼20억 원이 가능하겠지만, 신도시는 극소수 단지가 아니라면 이 정도가 한계다. 이 금액을 넘으면 실수요자는 현재 신도시 주변에서 분양되는 주택을 선택하는 편이 낫다.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는 주택도 분양 대기 중이다. 물론 40∼50층 고층 아파트를 지어 공급물량을 늘릴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비례해 공사비도 늘고, 용적률 확대에 따른 기반시설 등 공공기여와 사업비 부담도 커진다. 여기에 초과이익 환수는 그대로 큰 부담이다.

더욱이 신도시는 은퇴자 비중이 높다. 노후자금도 부족한 판에 2억 원 넘는 분담금을 내기는 불가능하다. 정부의 저리 장기대출 지원도 공허하다. 소득이 없는데 원리금을 어떻게 갚겠는가. 결국 집값이 급등하지 않는 한, 원하는 수준으로 분담금을 맞추기 어렵다. 재건축이 안 되는 것이다. 지자체가 비용을 전액 지원하는 사전 컨설팅조차 필요한 동의율을 못 채우는 단지가 수두룩한 것은 재건축에 대한 의구심이 원인이다.

재건축 공사 기간의 이주 문제도 비상이다. 임대주택 등 이주단지 조성에 현실성이 없다는 비판과 거부감이 거세자, 국토부는 결국 계획을 철회했다. 이달 말 설문조사를 거쳐 8월에 새 대책을 내놓겠다고 한다. 뒤탈 날 소지를 없앤 것은 다행이지만, 부실·졸속 대책이라는 게 드러났다. 그러나 주민들의 대량 이주에 따른 전세난 우려가 다시 부상했다. 자칫 문재인 정부 때 같은 전세 대란이 재연될 수도 있다. 특히, 3기 신도시 일정과의 충돌은 심각한 문제다. 내년부터 시작될 1기 신도시 선도지구들의 일반 분양과 3기 신도시 청약 일정이 겹칠 가능성이 짙어서다. 1기 재건축 물량은 2만6000가구+알파이고, 3기 분양은 17만6000가구나 된다. 일산과 고양 창릉, 중동과 인천 계양·부천은 인접해 서로 미분양을 부추길 소지도 크다. 1기 재건축 입주와 3기 입주가 맞물릴 때의 혼선도 간과해선 안 된다.

국토부는 최근 문 정부 시절인 2021년 도입 때부터 말 많던 사전청약제의 실패를 인정해 폐지를 결정했다. 주택 공급 부족에 쫓겨 통상 착공 때 했던 청약을 억지로 1∼2년 앞당겨 받게 했지만, 공사비 인상 등으로 공사부터 입주까지 일정이 지체되는 곳이 속출하면서 희망 고문을 시키는 현실을 뒤늦게 수용한 것이다. 부동산 시장에선 2∼3년 뒤 공급 부족을 우려한다. 윤석열 정부가 신도시 재건축으로 헛바람을 넣어 이를 가리려 들다가는 실망만 더 키워 큰 탈이 날 것이다. 신도시 재건축에 물꼬를 튼 것은 의미 있는 진전이다. 졸속 추진은 자해(自害)나 마찬가지다. 5개 신도시별로 재건축을 한 곳이라도 제대로 성사시키는 게 필요하다. 전면 재설계해 틀을 다시 짜야 한다.

문화일보

 

06-18 상속세 개편 시급성과 정쟁 극복 방안

현진권 강원연구원장, 前 한국재정학회장

상속세 개편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된 듯하다. 대통령실에서도 16일 상속세 인하 필요성을 제기했다. 경제 성장과 효율성 측면에서 우리나라 상속세 정책은 세계 흐름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다. 국가 간 경제 경쟁은 결국 기업 경쟁이다. 경제 성장이 정책 목표라면, 당연히 기업 경쟁력을 옥죄는 상속세를 혁신적으로 바꿔야 한다. 그러나 개혁의 원칙과 실현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제 원칙보다는 어떻게 실현할지를 고심할 때다.

기업 상속세는 정치인들에게 비용이 큰 정책이다. ‘기업’과 ‘상속’은 대중이 좋아하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중의 정서에서 ‘기업’은 탐욕적으로 이윤만 추구하는 악한 존재이고, ‘상속’은 출발점부터 공평성을 해치는 행위다. 그래서 2개의 부정적인 용어로 조합된 ‘기업상속’을 가혹하게 방지하는 정책을 정치권은 정의라고 생각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내세운 대선 공약 중 하나가 ‘포괄적 상속세’였다. 헌법에 명시된 조세법률주의는 세금이 법률에 구체적으로 명시돼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포괄적 상속세’는 정부가 임의로 세금을 포괄적으로 징수할 수 있는 논리를 제공했다. 조세법률주의를 조세행정주의로 바꾼 변칙이었다. 그러나 기업과 상속에 가혹한 정치 상품이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성공했다. 이렇듯 상속세를 개혁하자는 원칙과 달리, 현실적으로 이를 정책화하기는 절대 쉽지 않다.

이제 정책 실현의 문제를 고심해야 한다. 상속세는 모든 지역에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정책이기에 실현하기 어렵다. 상속세 개혁을 지역별로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형태로 추진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강원도는 지난해 특별자치도가 됐다. 즉, 중앙정부의 정책 권한을 강원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정책 자유를 가지게 됐다. 그러니 우선 강원도에 상속세 정책 권한을 이양하는 정책 분권을 해 보자. 국가적으로 상속세를 개편하면, 찬성과 반대가 심각하게 대립하는 구조가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강원도에서 우선적으로 상속세를 개혁하면 강원 도민은 환영할 것이고, 도민 간 대립이라는 진통도 없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지방시대라는 슬로건과 함께, 지방 발전을 유달리 강조한다. 지금까지 모든 정부가 지역 균형발전에 강한 의지를 보이며 정책 수단을 마련했다. 수도권을 억제하고 지방을 지원하겠다는 방향이다. 지원 정책도 대체로 지방세·소득세·법인세 등의 감면이다. 역대 정부가 이와 같은 유사한 정책을 추진했지만, 균형발전 문제는 여전해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제 상속세를 혁신적 정책 수단으로 활용해 보자. 기업에는 세금 감면 혜택보다 기업을 상속할 수 있는 정책이 훨씬 효과적이다. 상속 행위는 이윤 추구 행위보다 인간의 본능을 더욱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강원연구원의 분석 결과, 강원도에서 기업상속세가 면제되면 강원도 지역 내 총생산액(GRDP)이 8.3% 증가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상속세만큼 강력하고 효과적인 정책 수단은 없다. 상속세 면제로 강원도가 발전하면 다른 지역으로 점차 확대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지역 확대를 통해 모든 지역이 상속세 면제로 갈 수 있다. 단지 시간이 걸릴 뿐 국가적 개혁 과제인 상속세를 성공적으로 실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문화일보 

 

06.19 세계가 AI·반도체 전쟁인데 부족한 우리 인재는 그나마 해외로

/Copilot

 

인공지능(AI) 및 AI 반도체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가뜩이나 부족한 AI·반도체 인재의 해외 유출이 속수무책으로 벌어지고 있다. 미국 시카고대 폴슨연구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친 AI 인재의 40%가 해외로 떠난다. 미국 대학에서 AI 석사 과정을 밟는 한국 유학생 가운데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오겠다는 사람은 찾기도 힘들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AI 인재 대우는 한국의 5배에 달한다니 능력 있는 인재가 한국에 남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마이크로소프트는 AI 인재 한 명을 영입하려고 스타트업을 통째로 인수했을 정도다. 이러니 한국 기업은 거의 매달 AI 인재 모집 공고를 내고 있는데 그 뒤로 거의 매달 사람이 빠져나가고 있다고 한다.

 

AI 고급 인력뿐만이 아니다. 미국, 일본, 유럽 등이 반도체 생산 기지를 늘리고 AI 반도체 개발에도 뛰어드는 바람에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국내 반도체 업계조차 고급 인력 채용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카이스트 반도체 연구실에서는 최근 연구생 10명 중 6명이 해외 취업을 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LG·KT 등 국내 대기업 10곳 중 9곳이 석·박사 이상 ‘고급 인력’을 채용하는 게 “어렵다” 혹은 “매우 어렵다”고 답하고 있다. 스타트업의 구인난은 훨씬 심각하다.

 

AI, 반도체 인재를 늘리지 못하는 것은 수도권 대학 정원 동결의 영향이 크다. 대학 내에서 학과별 정원 조정이라도 가능해야 하는데 교수들의 반대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주요 인재에게 파격적 대우를 해주는 기업 문화도 아니다. AI, 반도체 인재를 제대로 키우지도 못하는데 어렵게 키운 인재는 미국 빅테크 기업에 뺏기는 현실로는 AI 혁신이든, 반도체 경쟁력 강화든 모두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공계 인재 지원을 늘리고 성장을 돕겠다며 지난해 범부처 차원에서 협의체를 출범하고, 올 들어 ‘이공계 활성화 대책’ 태스크포스를 만들었지만 속도가 느리기만 하다. 세계가 AI와 반도체 전쟁이다. 지금은 비상 상황이라고 인식해야 한다. AI와 반도체 인재에 대한 대우는 크게 올려야 한다. 기업과 정부가 함께 나서 동남아 등 해외 우수 인력도 적극 유치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6.20  0~4세 인구가 북한보다 적다니, 국가 비상사태다

정부가 19일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을 발표하고 “2030년까지 출산율을 1명대로 회복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저출산고령사회위 회의에서 ‘인구 국가 비상사태’를 공식 선언하면서 “저출생 문제를 극복하는 그날까지 범국가적 총력 대응 체계를 가동하겠다”고 했다. 고대 스파르타가 인구 감소 때문에 급격히 멸망의 길에 접어든 예도 들었다.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 부위원장은 “해방 이후 최초로 0~4세 인구가 북한보다 적어졌다”고 했다. 2021년 기준 0~4세 인구는 우리나라가 165만명, 북한은 170만명이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 저출생 상황은 ‘국가 비상사태’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한국의 작년 합계 출산율은 0.72명으로 전년의 0.78명보다 더 낮아졌다. 2021년 기준 OECD 38개 회원국 중 합계 출산율이 1.0명에 못 미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이대로 가면 올해는 출생률 0.6명대라는 전무후무한 숫자를 찍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인구 감소를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는 데 반대하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이날 발표엔 정부의 위기감이 묻어 있다. 저출생 문제 전담 부처 명칭을 ‘인구전략기획부’로 정하고 장관이 사회부총리를 맡아 저출생, 고령 사회, 이민 정책까지 포함하는 인구에 관한 중장기 국가 발전 전략을 수립하도록 했다. 또 현재 6.8%인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을 대통령 임기 내에 50% 수준으로 높이고 육아휴직 급여도 월 150만원에서 최대 250만원으로 인상하기로 했다. 주택 정책으로는 신생아 우선 공급 등을 신설해 출산 가구 대상 주택 공급을 7만호에서 12만호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자녀 세액공제도 자녀별로 10만원씩 추가 확대하기로 했다.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저출생 극복 대책은 거의 다 내놓았다고 한다. 하지만 파격적인 내용이 보이지 않아 이 정도 대책으로 젊은 세대 마음을 돌릴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대책에서 비혼 출산에 대한 정책이 빠진 것도 아쉬운 점이다. 우리나라 비혼 출산율은 2.5%에 불과하지만 OECD 평균 비혼 출산율은 42%에 이른다. 이미 저출생 추세가 수십 년 지속돼 저출생 사회에 적응하는 방안 마련도 중요한데 이에 대한 대책도 보이지 않았다. 민주당도 이 문제만큼은 적극 협력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6-21  3년 만에 상속세 과세자 2배, 현실화한 ‘자산 엑소더스’

국세청이 20일 지난해 상속세 과세 대상자가 1만9944명으로 3년 만에 2배나 급증했다고 밝혔다. 결정세액도 12조 원으로, 10년 전(2013년 1조3630억 원)보다 9배 늘었다. 상속재산 10억∼20억 원 구간 신고 인원이 전체의 43%인 7849명으로 가장 많았다. 극소수 부자에 국한됐던 상속세가 중산층에 대한 징벌세로 변질한 것이다. 지난 주말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물꼬를 튼 상속세 개편 논쟁이 본격화할 수밖에 없게 됐다.

국민의힘과 기획재정부 등은 20일 세제개편 토론회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대표적인 사례가 상속세”라며 “세계 최고 수준의 세율, 24년째 변함없는 과세표준 구간, 28년째 10억 원으로 묶여 있는 공제 한도 등이 모두 문제”라고 의견을 모았다. 엄태영 의원은 현행 50%인 최고세율을 30%로 내리는 상속세 개정안을 대표발의 했다. 과세표준 구간도 5단계에서 3단계(1억 원 이하는 10%, 1억∼30억 원은 20%, 30억 원 초과는 30%)로 줄이자는 것이다. 하지만 국회를 장악한 더불어민주당이 “부자 감세에 앞서 역대급 세수 결손 대책부터 내놓으라”고 반대하고 있어 통과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그 후유증으로 한국판 ‘자산 엑소더스(대탈출)’가 나타나고 있다. 영국 투자이민 컨설팅 업체인 헨리앤드파트너스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고액 자산가 순유출은 1200명으로, 중국(1만5200명) 영국(9500명) 인도(4300명)에 이어 4위에 오를 전망이다. 중국은 부자를 탄압하는 게 문제고, 영국은 2020년 유럽연합(EU) 탈퇴 이후 부유층의 엑소더스가 봇물을 이룬다. 한국은 과도한 상속세와 반기업 정서가 배경으로 분석됐다. 미국·캐나다·호주 등 사실상 상속세가 없는 곳으로 옮겨간 점이 방증이다. 자산 엑소더스는 투자·소비·일자리도 함께 증발하는 불길한 징조인 만큼 서둘러 상속세를 개편해 제동을 걸어야 할 때다.

문화일보 사설

 

06.22 '국가 석학'도 중국으로 떠난다… "정년 되니 연구할 곳 없어"

최고과학인상 받은 물리학자 이기명 올해로 정년 맞아
"남아 있고 싶어도 연구할 곳이 없어"
파격 대우 제시한 중국 연구소 가기로

2006년 ‘국가 석학’으로 선정된 고등과학원의 이기명(65) 부원장이 올해 8월 중국의 베이징 수리과학및응용연구소(BIMSA)로 간다. 이 부원장은 우주의 기원을 연구하는 ‘초끈이론’ 전문가로 국내 이론물리학의 대표 학자로 꼽힌다. 해당 분야 난제를 해결해 국내 학계의 글로벌 경쟁력을 향상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2014년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을 받기도 했다.

 

▲일러스트=박상훈

 

이 부원장이 고등과학원을 그만두는 표면적 이유는 정년 때문. 하지만 지난해에도 과학기술 논문 색인(SCI)급을 포함해 5건의 논문을 발표하는 등 연구 활동은 여전히 현역이다. 그가 한국을 떠나 중국으로 가는 데 또다른 이유가 있다. 이 부원장은 본지에 “한국에 남아 후학들과 같이 연구하고 싶어도, 연구할 곳이 마땅찮다”며 “중국이 많은 지원을 약속하니 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고등과학원의 박사후 연구원 한 명도 BIMSA로 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과학계는 이 부원장의 중국행을 단지 과학자 한 명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기초과학에 무심한 한국, 인재를 나이·국적 제한 없이 유치하는 중국의 대비되는 모습을 우려하는 것이다.

 

경쟁국들은 기초과학 인재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정년이 없는 연구·교수직을 운영하며 연구자의 풀(pool)을 두껍게 하고, 학문의 맥이 끊어지지 않게 유지한다. 반면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 최재경 고등과학원 전 원장은 “이 부원장을 석학 교수로 모시고 싶었지만 인건비가 한정되어 있어 불가능했다”며 “중국 기관들은 5배 이상 많은 연구비를 제시하는 등 인재 영입에 적극적”이라고 말했다.

 

이 부원장이 자리를 옮기는 베이징 수리과학및응용연구소(BIMSA)만 봐도 고등과학원과 대비된다. 베이징시와 칭화대의 지원을 받아 수학과 물리에 집중한 연구 기관으로 고등과학원과 설립 취지는 비슷하다. BIMSA의 원장은 올해 75세인 싱퉁야우 미국 하버드대 교수다. 야우 교수는 필즈상 수상자로 미국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등에서 연구 생활을 하며 1990년 미국 국적을 취득했지만 최근 다시 중국행을 택했다. 영국에 난민 자격으로 이주한 필즈상 수상자 코체르 비르카르, 일본에서 20여 년간 교수 생활을 한 대수기하학 분야 석학 아나톨리 키릴로프 등이 BIMSA로 자리를 옮겼다. 배경에는 자유로운 연구 환경과 충분한 지원을 약속하는 중국 정부의 파격적인 제안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픽=김현국

 

한국 정부도 우수 인재 영입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도하고 있지만 과학기술 인재의 유출은 계속되고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에 따르면 한국의 두뇌 유출 지수는 2020년 5.46점에서 2023년 4.66점으로 악화됐다. 순위는 64국 중 36위에 그쳤다. 이 지표는 10점 만점으로 0점에 가까울수록 두뇌 유출이 국가 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기초과학 분야에서 인재 유출은 더욱 심각할 것으로 추정되지만 별도의 통계조차 집계되지 않는 상황이다.

 

과학계에서는 적극적인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지웅 경희대 교수는 “순수 과학 분야에 대한 국내 투자는 오히려 감소하는 추세”라며 “연구비뿐 아니라 정주 여건을 포함한 통합적인 지원, 해외 연구자들과의 교류를 통한 인재 활용 방안 등 다방면에서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 김효인 기자 

 

06.24 국회 정상화 난망, 입법 없이 가능한 개혁 과제 집중을

대한상공회의소가 국회 입법 없이도 가능한 정책 개선 과제 61개를 정부에 제언했다. 인공지능(AI)·클라우드 등의 산업을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해 세제 지원을 확대하고 대규모 기업 투자를 지원할 ‘국가미래투자위원회’를 만든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 과제들은 정부가 시행령이나 시행규칙만 개정해도 추진할 수 있다고 대한상의는 밝혔다. 민주당 등이 입법권을 무기로 국정 발목을 잡는 여소야대 정국에서 정부가 입법에만 매달리지 말고 할 수 있는 일부터 해달라는 주문인 셈이다,

 

61개 개선 과제엔 미래 성장 기반 조성, 기후 위기 대응, 자본시장 활성화, 규제 합리화 등 4대 부문에 걸쳐 다양한 정책이 포함돼 있다. 대한상의는 “첨단 전략 산업이 국가 대항전 성격으로 전개되는 상황에서 정부의 투자 지원 체제부터 보강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대통령 직속 기구로 ‘국가미래투자위’를 설치해 기업 투자와 관련한 규제 개선, 세제 지원, 보조금 지원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자고 제안했다. 새로운 미래 먹거리로 등장한 AI와 클라우드를 반도체·이차전지처럼 국가전략기술 산업으로 지정해 연구·개발 투자는 30~40%, 시설 투자는 15%까지 세액 공제를 해달라는 요청도 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각종 정책들이 국회 장벽에 막혀 줄줄이 좌초됐다. 올해 말 시한이 끝나는 반도체 산업 세액 공제 기한을 2030년까지 연장하는 K칩스법, 인공지능 산업의 가이드라인이 될 AI 기본법, 원전 폐기물 저장 시설 부지 확보를 위한 ‘고준위 방폐물 관리 특별법’, 국가 전력망 건설 사업을 한전에 맡겨두지 않고 정부가 주도해 속도를 내는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 등 시급한 국가 현안 법안들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됐다. 폐기된 법안은 발의 단계부터 다시 진행해야 한다. 언제 통과될지도 미지수다.

 

새로 출범한 22대 국회는 원 구성조차 합의하지 못하고 여야 대치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럴 때라도 정부는 국회만 바라보지 말고 가능한 개혁 과제들부터 추진 속도를 내야 한다. 각 부처가 마음만 먹으면 당장 개선할 수 있는 정책들을 적극 발굴해 경제에 작은 숨통이라도 틔워 줘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6-25 최저임금 업종별 유연화, 이번엔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

최저임금위원회가 25일 제5차 전원회의에 최대 현안인 최저임금 차등화를 안건으로 올려 본격 논의에 들어간다고 한다. 지난달 21일 가동된 최임위는 이제까지는 노동계가 요구하는 택배·배달기사 같은 특수 형태 근로자와 플랫폼 근로자 등 도급제 근로자에 대한 최저임금 확대 적용 문제를 먼저 논의해왔다. 업종별·규모별 등의 최저임금 차등화를 막으려는 노동계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경제계는 2021년부터 차등화를 요구해왔지만, 노동계 반대에 막혀 무산됐다. 근로자 차별임은 물론 최저임금이 높은 업종으로 인력이 몰릴 것이란 주장도 편다. 그러면서 특수근로자 등에게 적용할 최저임금을 따로 정하자고 한다. 개인 사업자에까지 최저임금을 확대하는 것은 원칙에 어긋날 뿐 아니라, 별도 최저임금은 차등화와 다를 게 없다는 점에서 자가당착 측면도 있다. 특수근로자는 되고, 영세 자영업은 안 된다는 것은 이중잣대일 뿐이다. 최저임금법에도 고용 및 근로 형태 등에 따라 최저임금액을 ‘따로’ 정할 수 있게 돼 있는 만큼(제5조 32항) 급변하는 근로 환경을 고려해 ‘최저임금 유연화’에 나서야 할 때다.

그러지 않아도 영세 소상공인은 이미 한계상황에 봉착했다. 음식점, 도·소매업, 숙박업, 미용실 등 생활 밀착 업종 등은 영업을 지속할 수 없는 지경이라고 호소한다. 소상공인연합회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98%가 넘는 소상공인이 내년 최저임금 인하 내지 동결을 요구했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간당 9860원으로, 140원만 더 오르면 1만 원이다. 일률적인 최저임금이 초래하는 일자리 파괴 등 폐해가 심각하다. 그런데도 36년 전인 1988년 최저임금 도입 첫해에만 딱 한 번 차등 적용이 시행됐다. 가계의 노인·육아 등 돌봄 비용 부담 경감도 급하다. 최저임금법의 최임위 심의 시한은 이틀 뒤인 27일이다. 통 큰 결단이 필요하다. 이번엔 반드시 최저임금 유연화가 도입돼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6-27 [속보]박수홍 부친 악용했던 ‘친족상도례’, ‘한법불합치’ 결정

 

가족 문제에 국가간섭 최소화 위해 도입된 법조항
전문가들 “헌재, 사회적 변화 반영해 전향적 결정”
먼 친족 불고소 땐 기소 안하는 328조 2항은 ‘합헌’


친족 사이에 일어난 재산 범죄는 처벌할 수 없도록 하는 형법의 ‘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재 대심판정에서 친족상도례를 규정한 형법 328조 1항에 대한 위헌 확인 소송 4건에서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내년 12월 31일 전 국회에서 법을 개정할 때까지 처벌 조항 적용을 중지하라고 결정했다.

헌재는 “친족상도례 조항은 법관으로 하여금 형 면제 판결을 선고하도록 획일적으로 규정해 대부분의 사안에서 기소가 이뤄지지 않고 있고, 형사 피해자는 재판 절차에 참여할 기회를 상실하고 있다”며 “입법 재량을 명백히 일탈해 현저히 불합리하거나 불공정한 것으로 형사 피해자의 재판 절차 진술권을 침해한다”고 했다.

형법 328조 1항은 직계혈족과 배우자, 동거 친족과 그 배우자 간 발생한 재산 범죄의 형을 면제한다는 내용이다. 친족상도례 조항은 사기·공갈·절도·횡령·배임·장물·권리행사방해 등 범죄에 적용된다.

이 조항은 8촌 이내의 혈족과 4촌 이내의 인척, 배우자 등 가까운 친족 내부의 문제에 국가의 간섭을 최소화한다는 취지로 1953년 형법 제정 시 도입됐다.

그러나 도입 후 71년이 지나면서 가족의 형태가 달라졌고, 친족과 사기 등 재산 분쟁을 겪는 피해자가 늘어나면서 이 조항을 폐지·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나 사회 변화와 함께 친족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친족간 재산범죄가 증가하면서 현실에 맞게 손질하거나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대표적인 경우가 방송인 박수홍 씨를 둘러싼 사건이다. 지난 2022년 박 씨가 수십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친형 부부를 고소하자, 박수홍 아버지가 자금관리는 본인이 했다고 주장했다. 형제 간이라도 동거하지 않으면 친족상도례가 적용되지 않는데 이 때문에 제한없이 친족상도례 규정의 보호를 받는 아버지가 나선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다.

한 법조인은 “헌재가 사회적 변화를 반영해 전향적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헌재는 먼 친족의 재산 범죄의 경우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기소한다는 헌법 328조 2항에 대해서는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합헌 결정을 내렸다.

형법 328조 2항은 함께 살지 않는 먼 친족이 재산 범죄를 저지른 경우 피해자가 고소해야 기소하는 친고죄 조항을 적용한다고 규정한다.

헌재는 관련 조항에 대해 “친족 재산 범죄의 경우 피해자 의사에 따라 국가 형벌권을 행사가 가능하도록 한 데에는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문화일보 박준우 기자

 

06-27 박세리-박수홍 울린 가족간 사기·횡령 처벌 길 열렸다

헌재, 친족상도례 헌법불합치 결정

가족 간 사기나 횡령 등 재산 범죄를 저질러도 가족이라는 이유로 처벌하지 않는 형법상 ‘친족상도례’ 조항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형법 제정 이후 71년 만이다. 다만 먼 친척이 저지른 재산 범죄는 고소가 있어야 기소할 수 있도록 한 친족상도례 조항에 대해선 합헌 결정이 내려졌다.


헌재는 27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친족상도례’를 규정한 형법 328조 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날부터 이 조항은 적용이 중지되며 2025년 12월 31일까지 국회가 법을 개정해야 한다. 앞서 헌재는 2012년 친족상도례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는데 12년 만에 판단을 바꾼 것이다. 다만 직계혈족·배우자·동거친족·동거가족을 제외한 먼 친척이 저지른 재산 범죄는 고소가 있어야 재판에 넘길 수 있도록 한 328조 2항에 대해서는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으로 결정했다.

형법 328조 1항은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 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 간 재산범죄를 처벌하지 않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강도·손괴죄를 제외한 모든 재산범죄가 대상이어서 피해가 아무리 크더라도 부모나 자식이 저질렀다면 처벌할 수 없었다.

 

헌재는 친족 간 재산범죄는 특례가 필요하다는 입법 취지 자체는 인정했다. 다만 획일적으로 형을 면제하는 판결을 선고토록 해 피해자가 재판절차에 참여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을 문제로 봤다. 헌재는 이 조항에 대해 “일률적으로 형을 면제할 경우 가족 구성원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희생시켜 본래 제도적 취지와는 어긋난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며 “입법재량을 명백히 일탈해 현저히 불합리하거나 불공정한 것으로서 형사피해자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친족상도례가 악용돼 재산범죄를 당한 장애인, 미성년자, 노인 등의 피해가 제대로 복구 되지 않는 상황도 이유로 들었다. 헌재는 “피해자가 독립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사무처리능력이 결여된 경우 친족상도례 조항을 적용하면 가족과 친족 사회 내에서 취약한 지위에 있는 구성원에 대한 경제적 착취를 용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염려가 있다”고 판시했다.

1953년 형법 제정 당시 도입된 ‘친족상도례’를 두고 핵가족 등으로 변화한 가족관계와 시대변화에 지나치게 동떨어졌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특히 친족상도례 조항이 있는 해외 국가와 비교해도 적용범위가 지나치게 넓고, 가해자에게 유리하다는 비판도 많았다.

특히 방송인 박수홍 씨와 박세리 박세리희망재단 이사장이 가족의 재산범죄 의혹으로 고통을 겪으면서 국민적 관심이 커졌다. 박 씨의 친형이 박 씨의 출연료와 기획사 자금 등 62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자 박 씨의 아버지는 검찰 조사에서 “(박 씨의 형이 횡령한) 재산을 내가 관리했다”고 주장하면서 친족상도례를 악용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박 이사장도 친족상도례가 적용되지 않는 사문서 위조 혐의로 아버지를 고소했다.

박 씨를 대리하는 노종언 변호사는 이날 “가족의 의미에 대한 국민 상식과 법감정, 시대변화를 반영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장은지 기자 jej@donga.com
최미송 기자 cm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