餘談/ 2024
★남녀 간의 크리스마스 덕담(?)
남성이 여성의 환심을 사기 위해 꼬드기는 말을 영어로는 pickup line이라고 한다. 속된 말로 ‘작업 멘트’를 뜻한다.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깨면서 웃음과 감동을 자아내 곧바로 ‘진도’ 나가게 해주는 촌철살인 한마디를 말한다. 그중에도 크리스마스 때 상대를 ‘심쿵’하게 만드는 ‘작업 멘트’들은 따로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성탄절 무렵은 베풀고 나눠주는 시즌이잖아요. 나한테는 당신 전화번호 주면 안 될까요.”
“유감입니다. 당신은 올해 산타클로스의 ‘나쁜 어린이 명단’에 올라 있어 선물을 못 받게 됐습니다. 당신이 내 마음을 훔쳐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산타클로스가 뭐라 하든 나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나의 ‘착한 어린이 명단’ 맨 위에 있으니까요.”
“이번 크리스마스 때 내 마음을 당신에게 선물하면 내다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해줄 수 있나요?”
“당신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요? 산타클로스에게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로 무얼 원하는지 직접 보여드리려고요.”
“산타가 올해는 굉장한 뭔가를 주시겠다고 약속했었는데, 이제 보니 당신을 말씀하셨던 거네요.”
“오늘 밤에 누가 당신을 자루에 집어넣어 메고 가더라도 놀라거나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산타클로스께 선물로 가져가겠다고 미리 말씀드렸어요.”
“당신은 루돌프의 빨간 코인가요? 왜 그렇게 반짝이고 빛이 나요?”
“나는 크리스마스 촛불이네요. 당신을 위해 애태우고 있으니 말이에요.”
“나는 눈송이인가 봐요. 이렇게 당신에게 떨어져 빠져들고 있으니 말이에요.”
“내가 눈사람이라는 사실을 미처 몰랐어요. 당신이 나를 이렇게 녹여버릴 때까지는요.”
“특송 택배 왔습니다. 산타클로스가 당신께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내셨습니다. 바로 나입니다.”
“당신은 북극성인가요? 사랑을 향한 나의 길을 인도하고 밝혀주네요.”
“크리스마스는 예수님 생일 아닌가요? 그런데 당신이라는 선물은 내가 받았네요.”
01.01 시간과 창조
고대사회에서는 경작을 시작하는 봄, 즉 3월이 새해였다. 만물이 소생하는 시기를 새해로 본 것이다. 그러다가 고대 로마의 두 번째 왕인 누마가 기원전 8세기 말에 시작을 상징하는 야누스신의 이름을 본떠 부른 1월로 새해가 변경된다. BC 46년에는 천문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양력 역법인 율리우스력이 처음으로 채택됐고, 365일의 기간(4년마다 한 번씩은 366일) 동안 매년 돌아오는 1월 1일이 새해로 선정됐다.
1582년 교황 그레고리오 13세는 율리우스력을 살짝 개정해 좀 더 정확하게 천체 움직임을 따르는 그레고리력을 만들었다. 이 역법이 오늘날까지 쓰이고 있다.

▲아메리카 편지
회귀년을 이용해 1년 평균 길이가 정수로 떨어지지 않는 점을 보완하는 양력 시스템이 2000년이라는 세월 동안 변치 않고 성공적으로 적용됐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특히 율리우스력 이전의 복잡하고 다양하게 공존하는 달력 시스템들을 돌이켜보면 율리우스력의 성공은 경이롭다. 농경·정치·종교·사회 등 다양한 용도에 따라 다른 음·양력 달력을 채택한 고대 그리스의 경우를 살펴보면, 시간을 체계화하는 과정은 결코 과학적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21세기에 사는 우리는 계몽주의의 후손으로 과학적 시각에서 시간이라는 개념을 가치평가가 없는 물리적인 대상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인류의 정치적 역사는 시간 정복의 역사다. 달력을 개정한 율리우스 카이사르나, 정복된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를 이용해 거대한 해시계를 로마 도시 한복판에 만든 그의 후계자 아우구스투스는 시간 자체를 정치적으로 종속시켜 시민들의 일상생활을 획일적으로 빚어갔다. 『노자도덕경』에도 “돌아오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다”는 말이 있다. 돌아옴은 결코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돌아옴 속에서 새로운 창조를 한다. 시간의 노예가 되지 말고 주체적으로 시간을 창조해 나가는 역사가 새해에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중앙일보 김승중 고고학자 토론토대 교수
01.05 ‘노해(老害)’와 ‘약해(若害)’
한국에 ‘꼰대’라는 말이 있다면 일본에는 ‘노해(老害·로가이)’라는 말이 있다. 노해의 사전적 의미는 ‘연로자가 나이를 앞세워 젊은 사람들의 활약을 방해하는 해악’이다. 실생활에서는 보통 고압적 행동이나 사리 분별력 저하로 주위에 민폐를 끼치는 노인이나, 젊은 시절 경험을 근거로 젊은 층의 생각이나 의견을 무시하고 훈계하려 드는 기성세대를 비하하는 표현으로 쓰인다.
여기까지는 꼰대와 대동소이하나, 노해는 개인 차원의 혐오감을 나타내는 속어를 넘어 사회문제를 지적하는 진지한 개념으로 쓸 때도 있다. 즉 기업이나 정당 등 위계질서가 있는 조직에서 실권을 쥔 구세대가 신진 세대에게 기회를 내주지 않는 현상도 노해에 해당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고인 물’이 득세하며 변화에 더딘 일본 사회에 대한 젊은 층의 좌절감을 반영이라도 하듯 노해라는 말은 갈수록 사용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기성세대 역시 이에 지지 않고 ‘약해(若害·자쿠가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보통은 주위 시선에 아랑곳 않고 공중도덕이나 질서를 무시하는 젊은이들의 안하무인 일탈 행위를 이를 때 쓴다. 일정한 단계를 밟거나 충분한 경험을 쌓지 않은 채 설익은 혈기를 앞세워 급진적 변화나 세대교체를 주장하는 세태를 비판하는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세대교체는 어느 사회에서나 진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한국은 정치권에서 ‘운동권 세대’의 진퇴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86세대라 일컫는 이들은 이미 정치판에서 권력화된 기성세대에 해당하지만, 성장이 멈춘 채 아직도 자기들이 변화와 개혁의 주역을 맡아야 한다는 아집과 착각에 빠져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노해와 약해의 속성을 아우르는 희한한 민폐 당사자로 인식되는 셈이다. 신체의 건강이 원활한 신진대사에 달려 있듯, 건강한 사회에는 정치 주도 세력의 원활한 세대교체가 필수 조건일 것이다.
조선일보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주일대사관1등서기관
01.12 한글 디자인 개척자, 최정호를 아십니까
명조·고딕체 원형 만든 디자이너
최근에야 온라인 박물관서 조명
한글만큼 소중한 한글 디자인
숨은 공로 널리 알리고 기려야

▲원도 설계 중인 최정호 선생./‘마당’ 1981년 10월호 사진
최정호(1916~1988)는 동아출판사가 1957년 선보인 활자의 원도(原圖·본이 되는 글씨)를 그린 인물이다. 동아출판사는 종전의 수작업보다 정교하게 활자를 깎는 자모(字母) 조각기를 당시 민간 최초로 도입했다. 그러나 기계가 아무리 정교한들 설계도 격인 원도가 엉성하면 의미가 없었기에 김상문 창업주는 어려서부터 명필 소리 들었던 최정호를 도안가로 발탁했다. 활자 개량은 민중서관·대한교과서 등으로 확대됐고 “1960년대 초의 왕성한 전집물 제작을 감당할 힘”(대한출판문화협회 30년사)이 됐다.
활자에 이어 보급된 사진식자 인쇄도 글자에 빛을 비춰 감광지에 인화시키는 방식이어서 역시 원도의 완성도가 중요했다. 최정호는 국내에서 널리 쓰인 일본제 모리사와·샤켄 식자기의 한글 원도를 그렸다. 이것이 오늘날 명조체·고딕체 디지털 글꼴의 바탕이 됐다.
최정호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는 소식을 얼마 전 소셜미디어에서 접했다. 최정호의 삶과 원도 작품을 단출하게 소개한 온라인 박물관이었다. 균형미가 뛰어난 최정호의 원도를 보면서 서체 디자인의 거장 아드리안 프루티거가 숟가락에 비유했던 좋은 글꼴의 정의를 떠올렸다. 프루티거는 “수프를 떠먹고 나서 숟가락 모양이 기억난다면 잘못된 것”이라고 했었다. 모양엔 눈길도 가지 않을 만큼 기능에 충실한 숟가락처럼, 최정호의 원도엔 인위적인 기교가 없다. 어떤 글자 크기나 굵기에서도 또렷하고 편안하게 읽히며 정보를 전달한다는 본분에 충실할 뿐이다.
후세 디자이너들의 인터뷰를 담은 영상도 있었다. 한글에도 조예가 깊은 독일 출신 디자이너 요아힘 뮐러-랑세의 발언이 인상적이었다. “전후 서구에서 시도된 다채로운 글꼴 디자인과 달리 최정호는 나라에 보다 유용한 글꼴을 제공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장차 다른 이들이 발전시켜 갈 디딤돌로서 자신의 글꼴이 안정성과 신뢰성을 지니기를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동아출판사 서체가 나온 1957년 스위스에서는 헬베티카(Helvetica)가 탄생했다. BMW·맥도널드·3M 같은 글로벌 기업 로고에도 들어가는 헬베티카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알파벳 글꼴이다. 그 이름은 스위스의 라틴어 명칭인 헬베티아(Helvetia)에서 왔다. 지난해 한국-스위스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서울에서 열린 전시의 주제도 헬베티카였다. 전 세계에서 쓰여도 헬베티카는 스위스의 국가적 문화 자산이다.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한글을 나라의 자랑으로 여기는 우리는 한글 디자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가.
누구나 글을 쓰고 읽는다. 워드프로세서에 기본 탑재되는 글꼴만 수십 종이다. 글자는 공기와 같아서 원래부터 ‘그냥’ 존재해온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인 글꼴들도 누군가 정성들여 디자인한 결과물이며 거슬러 올라가면 그 바탕을 만드는 데 일생을 바친 인물이 있다. 최정호는 잊힌 이름이었다. 글꼴 디자이너들은 지금도 누구나 최정호를 이야기하지만 그 밖의 사람들은 지금껏 누구도 최정호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최정호 박물관 소식은 하나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우리는 한글 디자인의 숨은 개척자를 기리는 ‘진짜’ 박물관도 갖게 될까? K컬처가 세계를 휩쓰는 지금 명조체·고딕체가 대수냐는 비아냥이 벌써부터 들리는 듯해서 ‘한글 디자이너 최정호’(안상수·노은유)의 한 대목을 옮겨 본다. “최정호의 한글꼴은 오늘날 쓰는 본문용 디지털 폰트에 큰 영향을 주었고, 특히 명조체와 고딕체는 그의 땀과 노력을 딛고 지금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글로 읽고 쓰는 대부분의 사람은 책을 읽을 때, 컴퓨터를 할 때, 길거리를 수놓은 글자를 볼 때마다 최정호가 남긴 유산의 덕을 보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 채민기 기자
01-12 몸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
권석만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친구의 백발 머리·눈가 주름서
노인의 모습 보니 가슴이 아파
쉰이 되니 서른과 마흔이 그립고
일흔이 되면 예순이 아름다우리
이제 팔팔한 젊음의 문이 닫히면
여유롭고 편안한 노년의 문 열려
새해가 되어 한 살을 더 먹게 되었다. 1958년생 개띠이니 지난해에 만 65세로 국가가 공인하는 노인이 되었다. 노인은 물론 ‘어르신’이 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건만, 보건소에서 어르신께 독감 예방주사를 무료로 놓아주니 빨리 맞으시라는 문자가 날아왔다. 노인이 되었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지만 나이를 숨길 순 없다. 연말에 만난 친구에게서 내 모습을 봤다. 친구의 머리에 내린 백발과 눈가의 깊은 주름에서 노인의 모습을 봤다. 친구의 늙음이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대중가요의 가사처럼, 벽시계는 가끔 고장이 나서 멈추기도 하건만 무정한 세월은 고장도 없다.
늙음은 소중하게 여기는 삶의 가치들과 이별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선, 육체적 노화가 진행되면서 젊은 육체와 이별하게 한다. 아름답고 싱싱했던 자신의 신체상(body image)과 이별해야 한다. 감각·운동 기능도 떨어져 물건을 잘 떨어뜨리며 넘어지고, 기억력이나 기민성과 같은 심리적 기능도 서서히 감퇴한다. 또, 자녀들이 성장하여 독립하면서 부모 역할과도 이별한다. 자녀를 보살피고 감독하던 매니저의 역할과 이별해야 한다. 특히, 은퇴라는 중요한 사건을 겪으면서 오랜 세월 일해온 직장과 이별해야 할 뿐 아니라 동료들과도 이별해야 한다. 그리고 부모의 죽음을 겪으면서 부모와도 가슴 아픈 이별을 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늙는 것을 두려워한다. 심리학에서는 늙음에 대한 두려움을 노화 불안(aging anxiety)이라고 한다. 사람마다 노화 불안을 경험하는 정도가 다르다. 연구에 따르면, 노화 불안이 심한 사람들은 노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하고 자신의 외모가 늙어가는 것, 노년기에 불행해지는 것, 삶의 중요한 것들을 상실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다고 한다. 이러한 노화 불안의 밑바닥에는 죽음에 대한 불안이 존재한다. 늙음이 두려운 것은, 몸과 마음이 시드는 것일 뿐 아니라 죽음이 가까이 다가옴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노화 불안에 대처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건강과 장수를 위해 운동과 건강식품에 집착하기도 하고 자녀와 심리적으로 유착하면서 자녀에게 의존하기도 한다. ‘피는 물보다 진하고, 돈은 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듯이, 어떤 사람은 자녀도 믿지 못해 돈에 더욱 집착하기도 한다. 때로는 정치적 이념이나 집단 활동에 과도하게 몰두하는 사람도 있다. 노화 불안을 완화하기 위해 어떤 대처 방법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노년기의 삶이 현저히 달라진다.

사람들은 늙어갈수록 불행할 것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하나의 문이 닫히면 새로운 문이 열리는 법이다. 싱싱하고 팔팔한 젊음의 문이 닫히면, 여유롭고 편안한 노년의 문이 열린다. 여러 나라의 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나이와 행복의 관계는 유(U)자 곡선이다. 치열한 직장생활과 자녀 교육에 매달리는 40∼50대 중년기에 행복도가 바닥을 찍고, 이후부터 노년기에는 행복도가 증가하는 패턴을 보인다.
노년기에 행복도가 증가하는 이유는 무얼까? 미국 심리학자 로라 카스텐슨은 시간 인식이 삶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생의 후반부가 되어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면, 미래의 성취보다 현재의 삶을 향유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노년기에는 매우 제한된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인식하면서 관심의 범위를 좁히고 가족이나 오랜 친구들과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활동을 택하게 된다.
몸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 늙음이 두려운 것은, 젊은 마음이 늙은 몸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늙음은 늦출 수는 있어도 피할 수는 없다. 피할 수 없는 늙음을 어떤 마음 자세로 맞이하느냐에 따라 노년기의 삶이 달라진다. 술과 간장은 오래된 것일수록 좋은 것으로 여겨진다. 오랜 기간 잘 숙성된 술과 간장은 맛이 순하고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향도 깊고 은은하다. 잘 늙기 위해서는 심리적 숙성 과정이 필요하다. 심리적 숙성은 ‘철이 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영원히 살 것처럼 철없이 날뛰던 젊은 시절의 혈기를 순화하면서 인간의 유한성을 마음 깊이 인식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물론 심리적 숙성을 위해서는 깊은 생각과 고뇌 속에서 수많은 불면의 밤을 보내며 뽀글뽀글 솟아오르는 끈질긴 집착을 달래야 한다. 심리적으로 잘 숙성된 사람은 노년기의 변화에 대한 받아들임과 너그러움이 깊어진다.
갓 서른을 넘긴 아들 녀석이 연말에 후배들을 만나고 오더니 자신이 많이 늙었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번데기 앞에 주름 잡는다더니, 가소롭다. 환갑을 맞이한 해에 요양원에 계시는 90대 노모를 찾아 뵙고 “저도 이제 많이 늙었어요” 했더니 가소롭다는 듯이 빙긋이 웃으며 귓속말로 말씀하셨다. “야, 내가 이렇게 쪼글쪼글 늙었어도 마음은 아직 이팔청춘이다. 내가 네 나이라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
모든 인생사가 그러하듯이, 젊음과 늙음도 상대적인 것 같다. 박우현의 시처럼, 이십 대에는 서른이 두렵고 삼십 대에는 마흔이라는 나이가 무섭다. 쉰이 되니 서른과 마흔이 그리 아름다운 나이였다. 예순이 되면 쉰이 그러하고, 일흔이 되면 예순이 그러하리라. 모든 나이는 아름답다. 죽음 앞에서 모든 그때는 절정이다. 다만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를 뿐이다.
문화일보
01.20 님아 그 돈을 넘보지 마오
[기이한 이야기]
이승에서 못 끊은 돈의 맛
저승서 맛보던 남자의 최후

▲일러스트=한상엽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삼도천(三途川)을 건너는 배가 올 것이다.”
저승사자가 떠난 자리에 네 명의 망자(亡者)가 남겨졌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듯하자, 심심해하던 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도 주머니에 노잣돈이 있더랍니까?” 다른 남자가 손바닥을 펼쳐 엽전을 보여줬다. “말도 마십쇼. 나는 주머니가 아니라 입안에 있더군요. 아니 시대가 어떤 시댄데 입안에 돈을 넣어, 퉤퉤.” “아! 노잣돈이 죽으면 자동으로 엽전으로 바뀌는군요?” 사람들이 저마다 손에 든 노잣돈을 꺼내 보였다. 짤랑이는 엽전의 개수가 모두 똑같지는 않았지만, 크게 차이 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살아생전 얼마나 부자였든 죽은 뒤에는 별 차이가 없는 듯했다. 사람들은 노잣돈을 짤랑거리며 어디에 쓸모가 있을지 따위를 얘기했는데, 그때 장발의 한 남자가 말했다.
“우리 심심한데 노름이나 한판 합시다.” “뭐요? 노잣돈으로 노름을?” 모두 어이가 없었지만, 장발은 태연했다. “노잣돈으로 노름하지 말란 법 있습니까? 배가 언제 올지도 모르고, 심심풀이나 하자 이 말이지요.” “그러다 누가 노잣돈을 다 잃으면 그 사람은 삼도천을 어떻게 건넌답니까?” “허허, 사람이 죽어도 양심이 있지! 당연히 뱃삯은 딴 사람이 대신 내줘야지요. 개평 모르십니까?”
그러자 수염 덥수룩한 남자가 시원하게 웃었다. “난 좋습니다. 노잣돈 많으면 나중에 좋을지도 모르고.” 장발과 수염이 나서자 내심 마음이 동해 있던 다른 한 남자도 나섰고, 구경하려던 마지막 남자도 결국 끼어들었다. “종목은 삼치기 어떻습니까? 동전으로 할 수 있는 게 그거니까.” 네 명의 망자는 엽전을 주먹에 쥔 채 삼치기를 시작했다. 장발이 먼저 엽전을 숨긴 주먹을 쥐어 내밀었다.
“자, 맞혀보시죠.” 일단 도박이 시작되자 사람들은 순식간에 몰입했다.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될 만큼 활기가 돌았다. “난 둘에 엽전 하나 걸겠소.” “난 하나에 엽전 하나.” “잠깐! 다시 세 봐요! 정확히 센 거 맞습니까?” “거 맞다니까요 참 나.” “아까 분명 둘에 걸었다고 하지 않았어요? 분명 둘이라고 한 것 같았는데?” “이 양반이 왜 이러시나?” 전형적인 노름판 분위기를 띠더니, 기어이 멱살잡이까지 일어났다. 모든 돈을 따낸 장발을 향해 돈을 잃은 사내가 달려들었다. “이 새끼! 너 솔직히 말해! 속임수 쓰는 거지? 노름하자고 할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흥분한 그들은 누군가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아까부터 보고 있던 저승사자가 그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재밌는 일을 하고 있구나.” 깜짝 놀란 사람들이 헛숨을 삼키며 굳어버리자, 저승사자가 혀를 찼다. “그동안 내가 많은 망자를 인도했지만, 설마 노잣돈으로 노름하는 놈들은 처음이다.” 저승사자는 정확히 장발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도박꾼으로 살다 칼 맞아 죽은 놈이 그 버릇 못 고치고 죽어서도 노름질이냐?” 그 말이 끝나자마자 다른 남자들이 불같이 화를 내며 장발의 멱살을 잡았다. “뭐 도박꾼? 어쩐지!”
그러자 장발 남자는 그들을 강하게 뿌리쳤다. “어허! 정당히 승부해서 딴 돈을 인제 와서 뭘 내놓습니까? 하기 싫으면 하지 말았어야지, 자기들이 해 놓고 말이야.” “뭐야?” “내가 강제로 시켰습니까? 억지로 노름하라고 등 떠밀었습니까?” “뭐 인마?” 장발은 저승사자 곁으로 도망가며 말했다. “안 그렇습니까 선생님? 정당하게 딴 이 노잣돈의 소유권은 제 것이지 않습니까? 저승에도 법이 있지요?”
다들 어이가 없었지만, 저승사자의 눈치를 살폈다. 저승사자는 가만히 장발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저승에도 법도가 있지. 그 노잣돈은 모두 네 것이다.” “그것 보십쇼!” 장발의 의기양양한 태도에 나머지 모든 사람의 얼굴이 구겨졌다. 저승사자는 한심하다는 듯 그 꼴을 보다가 뒤로 손을 뻗었다. “배가 왔으니 이제 건너야겠다. 뱃삯을 준비하거라.” “뱃삯이 얼마지요?” “가진 노잣돈 전부.”
장발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사람들에게 엽전 하나씩은 돌려줬다. “나는 한 번 뱉은 말은 지킵니다. 개평은 줬습니다?” 사람들의 표정은 불편했지만, 엽전을 거부하지는 못했다. 저승사자가 먼저 나룻배에 오르고, 망자들도 뒤따라 올랐다. 갓을 쓴 뱃사공은 살아있는 존재가 아닌 듯 목각 인형처럼 노를 저었고, 배는 빠르게 삼도천을 흘러갔다. 강에 오르기 전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게 삼도천이었는데, 막상 배가 나아가니 의외로 빠르게 건너편 나루터에 도착했다. 상념에 젖을 새도 없던 사람들이 어정쩡하게 일어서자, 저승사자는 배 밖을 가리켰다. 사람들은 내리기 전 뱃사공에게 노잣돈을 내고 내렸는데, 장발의 차례에서 저승사자가 가로막았다.
“너는 남거라.” “예?” “저들은 뱃삯이 한 냥뿐이라 여기서 내려야 하지만, 뱃삯이 많은 너는 멀리까지 갈 수 있겠구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멀리 간다는 게…?” “노잣돈의 의미를 모르느냐? 돈 때문에 악착같이 아등바등 살아봤자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말해주는 게 노잣돈이다. 설마 죽어서도 돈이 쓸모 있을 줄 알았더냐? 돈이 많아 봐야 그저 멀리 갈 수 있을 뿐이다.” “멀리…?”
장발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저승사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너처럼 많은 노잣돈을 가진 인간은 처음이니, 오랜만에 저승 깊숙이 가보겠구나. 나조차도 뭐가 있는지 모르는 곳까지 말이다.” 배가 출발했다. 장발은 노잣돈을 삼도천에 모조리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손에 달라붙은 돈은 악착같이 떨어지지 않았다.
조선일보 김동식 소설가
01.25 제 아내가 죽은 게 맞습니까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팔십대 부부가 운전하던 차가 가드레일을 들이받아 사고가 났다고 했다. 현장에 심정지 환자가 있다는 지령에 응급실 의료진은 중환 구역에 집결했다. 하지만 곧 지령이 정정되었다. 심정지 환자는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동승자가 온다고 했다. 우리는 중증외상 환자를 수용할 채비로 변경했다.
할아버지는 차 안에 있다가 구조되어 도로에 누워 있었다고 했다. 조수석의 할머니는 차 바깥으로 튕겨져 나가 현장에서 심폐소생술을 받았다. 할아버지는 잠시 나란히 누워 있다가 구급차로 실려 왔다. 차에는 에어백이 없었으며 안전벨트도 매지 않았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피골이 상접한 모습이었지만 의식이 있어 작은 소리로 대화할 수 있었다. 가슴과 머리가 아프다고 했고 손과 발이 하나씩 모양이 일그러져 있었다. 이송을 마친 구급대원이 복귀하려고 하자 할아버지가 대원에게 물었다. “내 동승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저는 다른 구급차의 사정은 모릅니다.”
엑스레이에서 오른쪽 폐의 기흉과 혈흉이 나왔다. 갈비뼈 사이에 흉관을 꽂자 피가 빠져나왔다. 혈압이 떨어져 수혈을 진행했지만 출혈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내게 다시 물었다. “제 동승자는 어떻게 되었나요?” 외상으로 인한 심정지에서 살아나기는 매우 어렵다. 팔십대의 노인이라면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는 다른 병원으로 이송된 그의 아내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알고 있었다. “저는 여기에만 있어서 아내분 소식은 모르겠습니다.” 그는 다시 물었다. “제 아내가 죽은 게 맞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를 CT실로 옮겼다. 머리 CT에서 소량의 뇌출혈이 나왔지만 의식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뇌출혈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안부를 계속 물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폐에 약간의 출혈이 있었지만 다행히 다른 장기의 손상은 피했다. 중환 구역으로 돌아온 환자의 팔다리 골절을 맞추자 더 이상 할 처치가 없었다.
일반적으로 사망까지 이르는 외상은 아니었고 응급 수술이 필요한 상황 또한 아니었다. 고령의 마른 몸이 외상을 버텨낼 수 있느냐가 문제였다. 다만 할아버지의 다른 가족을 수배해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경험상 평소 연락하던 자녀가 있다면 어떻게든 연락이 닿는다. 아무래도 노부부는 둘만이 의지하며 살아왔던 것 같았다. 단둘이 직접 운전해 어디론가 가는 일도 그들의 일상이었을 것이다.
보호자가 없는 환자는 온전히 우리에게 맡겨졌다. 그런데 문득 환자의 의식이 흐려졌다. 의식 유지 또한 생체 활동의 결과다. 몸은 감염이나 외상을 겪을 때 일부러 의식의 끈을 놓아버리기도 한다. 심한 통증이나 정신적 충격에도 마찬가지다. 의식이 저하되면서 혈압과 맥박까지 자꾸 가라앉았다. 잠깐씩 의식을 되찾을 때마다 그는 아내가 괜찮은지를 물었다. 사고 현장에서 분명히 쓰러진 아내를 보았을 것이다. 그 결과를 짐작하고 있겠지만 아무도 그에게 확실히 답해주지 않았다. 나는 끝까지 사실을 말하지 않기로 했다. 아내의 죽음을 말해주면 그가 생을 놓을까 겁이 났다. 그런데 환자의 호흡이 약해졌다. 의식을 완전히 잃어버린 그에게 기도 삽관을 시행했다. 이제 중환자실 처치만이 남았다.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만약 기적적으로 회복되면 그는 가장 먼저 아내가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 마지막이 자신이 운전하던 차와 차가운 도로 위였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혼자 집으로 돌아가 다시 걷기 위해 재활 치료를 받으며 아내가 없는 삶을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아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투병하는 편이 나은가? 알 수 없는 채로 투병하는 편이 나은가? 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마치 어떤 힘이 잡아당기는 것처럼 혈압이 오르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내 고민과 관계없이 묻는 것 같았다. 살아 있는 것이 나은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 것이 나은가. 어차피 가야 할 길이라면 지금 가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조선일보 남궁인 이대 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작가
01.27 인생의 구간별 자랑거리
104세 철학자의 희망 편지 이후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장련성 기자
누구는 발설하기만 해도 꿈이 이뤄진다. 철학자 김형석 교수가 ‘아무튼, 주말’에 “올해 104세, 시인이 되고 싶습니다”라는 희망 편지를 띄우자 벌어진 일이다. 등단시켜 드리겠다는 연락이 쇄도했다. “원고 주시면 3월호 권두시로 싣겠습니다”(월간 문학세계) “여자 친구 구인 광고를 내겠다는 교수님을 시인의 전당에 모십니다”(서울문학광장)....
저출생·고령화가 맞물리면서 인구 통계는 점점 드라마틱해진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70대 이상 인구가 631만여 명으로 20대 인구(619만여 명)를 처음 추월했다. 한국은 무서울 만큼 빠르게 늙어가는 중이다. 희망 편지 글감도 1회는 저출생(춘천 칠남매 아빠), 2회는 고령화(104세 철학자 김형석)와 얽혀 있었다.
세 자리 숫자가 입력되지 않는 바람에 102세 노인을 2세 아이로 착각한 항공사 시스템이 고마웠다. 김 교수도 한바탕 웃고 백세 젊어진 기분으로 강연하고 원고를 썼을 것이다. 이 독거노인은 미국에 사는 손녀가 전화로 걱정할 때 “그런 소리 마라. 얼마 전 너희가 와 있던 열흘 동안 여자 친구를 못 만났다”고 농담할 줄 아는 우리 시대의 어른이다.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소설 ‘웃음’에서 인생의 구간별 자랑거리를 꼽은 적이 있다. 2세 때는 똥오줌을 가리는 게 자랑거리다. 3세 때는 치아가 나는 게 자랑거리, 12세 때는 친구들이 있다는 게 자랑거리, 18세 때는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다는 게 자랑거리, 20세 때는 섹스를 할 수 있다는 게 자랑거리, 35세 때는 돈이 많은 게 자랑거리다.
그런데 인생이 반환점을 돌면 자랑거리가 뒤집힌다. 60세 때는 섹스를 할 수 있다는 게 자랑거리, 70세 때는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다는 게 자랑거리, 75세 때는 친구들이 남아 있다는 게 자랑거리, 80세 때는 치아가 남아 있다는 게 자랑거리, 85세 때는 똥오줌을 가릴 수 있다는 게 자랑거리다.
삶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우리는 너나없이 똥오줌 가리는 것부터 배우고 인생의 마디마디를 통과하다가 삶을 마감하기 전에는 다시 똥오줌 가리기가 어렵다. 그러나 비관할 일은 아니다. 김형석 교수는 “인생의 마라톤을 끝까지 완주하는 것이 늙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라고 했다. 그는 이미 시인이다. 백세 너머의 삶에 대해 소슬하고 위트 있는 글을 다른 누가 쓰겠는가.

▲1920년생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내 정신이 내 신체를 업고 간다”고 말하는 철학자다. /박상훈 기자
조선일보 박돈규 주말뉴스부장
01.27 명예 얻으려면 권력·물욕 내려놓아야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사람이 살면서 끝내 바라고 원하는 것은 또 무엇일까. 그 두 가지는 서로 다르면서도 엉켜 있는 듯 보인다. 사실 사람은 자기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얻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노력하며 애쓴다. 이렇게 자기가 얻고 싶은 것과 그것을 얻기 위한 노력을 우리는 욕망이라 부르기도 한다.
욕망. 자기가 바라는 것. 그것은 결코 나무랄 것이 아니다. 사람은 이러한 욕망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들이다. 어쩌면 욕망을 이루는 과정이 삶 그 자체이며 욕망이야말로 삶의 활력소인지 모른다.
명성이 스치는 바람소리라면
명예는 깊고 은은한 종소리
젊은 날에 유명해지면 명성
늙어 유명하면 명예로 굳어져

▲ON 선데이
전통적으로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요소를 의식주라고 말한다. 옷과 음식과 집이 바로 그것인데 요즘엔 거기에 자동차 하나를 더 보태어 의식주행이라고까지 말한다. 여하튼 좋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요소가 의식주행이라고 그러자. 그래서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학교에 다니며 공부하고 공부를 마친 뒤에는 취직이란 것을 한다. 이 또한 돈을 벌기 위해서 그런 것이다. 돈을 번다는 것 자체가 의식주행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러는 것이다.
가끔 나는 사람이 일생을 사는데 무엇을 위해서 살며 또 무엇이 필요한 것일까를 생각해 본다. 욕망의 대상에 대한 것이다. 아무래도 내 생각에는 물질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물질 없이는 기본적인 삶이 유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현대인들은 오직 이 물질만을 좇아서 사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물질에 열중해 있다.
그 다음으로는 사람과 사랑이다. 사람은 물질만으로는 충분히 잘 살았다 할 수 없다. 그 위에 다른 사람과의 소통과 어울림이 있어야 하고 때로는 따스한 마음의 교류, 사랑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외로워서 못 산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성장하면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며 여러 가지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하면서 살기를 원한다.
보통 사람들은 거기까지가 일생 꿈꾸는 삶이고 완성된 삶이다. 하지만 여기에 더하여 권력에 관심을 가져 권력을 얻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사회로나 집단으로나 지도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 정치가들이다. 그들은 권력을 얻으면 그 아래 단계인 물질이나 사람(또는 사랑)은 저절로 해결된다고 믿는 사람들인 것 같다.
여기에 멈추지 않고 한 단계 더 높은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바로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명예. ‘세상에서 훌륭하다고 인정되는 이름이나 자랑’을 이르는 말이다. 내가 보기에는 명예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높은 단계의 욕망인 것 같다. 그런데 명예를 가진 사람이 잊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일단 명예를 가진 사람은 그 아래 단계의 욕망이나 소유를 적당량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질도 내려놓고 사람이나 사랑도 내려놓고 권력도 내려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명예가 제대로 유지되지 않는다. 내려놓으라는 말이 거북하다면 조금 줄이라는 말로 바꾸어도 좋겠다. 그것이 진정 그러할 때 명예가 정말로 명예다운 명예가 된다.
가끔 명예란 말은 명성이란 말과 혼동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어디까지나 명예와 명성은 서로 다른 면이 있다. 두 가지 말 모두 세상에 널리 알려져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듣고 부러움을 사는 자랑이거나 그 이름이기는 하지만 명성보다는 명예가 더 굳은 것이고 더 좋은 것이다.
명성은 단순히 잘한다고 좋다고 훌륭하다고 소문이 난 상태를 말하지만, 명예는 그것이 단단해져 변함없는 그 어떤 상태가 된 것을 말한다. 비유하자면 명성이 스치는 바람 소리거나 바다 물결 소리와 같다면 명예는 바위나 쇠붙이에 새긴 형상과 같은 것이고 오래된 종에서 울려오는 은은한 종소리 같은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젊어서 유명해지는 것은 명성이고 늙어서 유명해지는 것이 비로소 명예라는 것이다.
나더러 꼰대라 핀잔해도 좋다. 그러나 정말로 그것이 그러한 걸 어쩌랴. 젊은이가 유명해지는 것은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좀 더 두고 보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에서 오늘날 어린 세대들이 오로지 연예인만을 해바라기하고 또 어려서 유명해지기를 바라는 풍조는 그다지 좋은 현상이 아니다. 좀 더 느긋하게 기다릴 필요가 있다. 유명해지더라도 늙어서 나중에 유명해져야만 그것이 진정한 명성, 명예가 되는 것이다.

중앙일보 나태주 시인
01.29 전 재산 잃고 수면제…“엄마 죽지마” 아들 말에 보이스피싱범 쫓았다
보이스피싱범 잡는 영화 ‘시민 덕희’ 실제 주인공 김성자씨

▲23일 서울 강남구의 영화사 페이지원필름에서 영화 ‘시민 덕희’의 모티브가 된 주인공 김성자씨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씨는 “이제 동네에서 보이스피싱 당했다 하면 저부터 먼저 찾는다. 그때마다 대처법을 알려주지만 돈을 되찾긴 쉽지 않다”고 했다. /백수진 기자
“보이스피싱 당한 이후로 한동안 눈만 뜨면 경찰서로 출근했어요. 그 좁은 동네에 피해자가 어찌나 많던지 항상 바글바글하더라고요. 한참 앉아 있으면 경찰이 귀찮아하면서 ‘아줌마, 애들 밥 주러 안 가?’ 그랬어요. 영화가 나와서 통쾌하지만, 아직도 경찰차만 지나가면 화가 치밀어요.”
보이스피싱 범죄 추적극 ‘시민 덕희’가 24일 개봉 후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면서 실화의 주인공 김성자(50)씨도 재조명받고 있다. 경기 화성시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던 김씨는 2016년 보이스피싱으로 전 재산 3200만원을 잃고, 경찰 대신 자신이 직접 나서 총책을 검거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영화는 주인공 덕희(라미란)가 총책을 잡으며 통쾌하게 끝났지만, 실제 김씨의 삶은 온전히 회복되지 못했다.
김씨는 사기를 당한 3200만원은 물론, 최대 1억원이 걸렸던 보이스피싱 범죄 신고 보상금도 받지 못했다. 당시 경찰은 총책 검거를 발표하며 김씨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았고, 언론에서 문제를 제기하자 그제야 100만원의 보상금을 제안했다. 김씨는 이를 거절하고 담당 경찰의 업무 태만 등에 대해 항의하는 진정서를 경찰청에 제출했다. 23일 만난 김씨는 “경찰청, 법무부, 청와대까지 백방 진정서를 내봤지만 ‘예산이 없다’ ’내부 규정이라 어쩔 수 없다’는 말뿐이었다”고 했다. “한참 속앓이를 할 때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제안이 왔어요. ‘계속 싸우면 더 아프지 않나. 영화로 잘 만들어 드리겠다’는 말에 마음이 녹아 허락했어요.”

▲영화 '시민 덕희' 스틸컷. /쇼박스
2016년 김씨는 자신에게 사기를 쳤던 조직원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범죄 조직에서 벗어나고 싶으니 도와달라”는 요청이었다. 조직원은 “김성자씨가 돈도 제일 빨리 보내고, 제일 끈질겨서” 그를 택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조직원과 전화·이메일로 수차례 연락하며 피해자 명단, 총책 신상 정보, 사무소 위치, 총책 귀국 비행편 정보까지 입수해 경찰에 넘겼다. “전화비만 70만원이 나왔어요. 경찰이 하도 내 말을 안 믿어주니까, ‘한국 오면 소주 한잔 사겠다’면서 조직원을 살살 달래 증거될 만한 자료를 싹 다 받아냈죠.”
중국에 거주하던 총책이 명절을 쇠러 한국에 들어온다는 정보를 듣고는 집 앞에 찾아가 이틀간 잠복까지 감행했다. 두렵진 않았느냐고 묻자, 김씨는 “전 재산 잃어 본 적 있느냐”고 되물었다. “세 아이 키우면서 밤낮없이 미싱 일해서 번 돈이었어요. 한 번은 술이랑 수면제를 잔뜩 먹고 기억이 끊어졌는데, 제가 천장에 줄을 매달아 놓았더라고요. 옆에선 아들이 ‘엄마, 죽지 마’ 하면서 울고 있고요.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죠.”
총책을 잡고서도 돈을 되찾기 위해 면회도 여러 번 갔다. “내 돈 내놓으라고 닦달했더니 씩 웃으면서 그러더라고요. ‘당신이 멍청해서 당한 거지. 어차피 경제사범은 몇 년 살지도 않아.’ 그 말 듣고 집에 오는데 계속 눈물이 흐르더라고요.” 이후 김씨가 재판마다 쫓아다니면서 판사에게 엄벌을 요청하는 편지를 쓰자 총책은 그에게 합의금 1000만원을 제안했다. 김씨는 “피해자 중엔 1200만원을 사기당하고 목숨을 끊은 분도 있었다. 내가 그 돈을 받고 합의해주면 형량이 줄어들까 봐 차마 받을 수 없었다”고 했다. 총책은 징역 3년 형을 선고받았지만, 김씨는 피해액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영화 '시민 덕희' 시사회에서 만난 배우 라미란(왼쪽)과 김성자씨. /쇼박스
김씨는 “영화를 처음 봤을 땐, 코미디 영화인데도 계속 눈물이 흐르더라. 두 번째 봤을 땐 라미란 배우가 하도 욕을 시원하게 해서 속이 뻥 뚫렸다”고 했다. 그가 본 영화 속 주인공 덕희와 싱크로율은 99%라고 했다. “영화화가 결정되고부터 주변에서 라미란 배우가 하면 딱 맞겠다고 했거든요. 털털하고 욕 잘하는 것까지 저랑 똑같더라고요. 같이 본 딸도 엄마 보는 줄 알았대요.” 그가 뽑은 명대사는 총책과 맞닥뜨린 덕희가 던진 한마디였다.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하면, 니네 눈엔 피눈물 나는 거야.’ 저도 총책한테 그 말을 똑같이 했거든요. 내가 멍청해서 당한 게 아니라는 걸 보여줘서, 무너졌던 자존심을 조금이나마 일으켜 세워줘서 감사할 뿐이에요.”
조선일보 백수진 기자
02.01 가난한 집 아이들은 일찍 철이 든다
어릴 적부터 가난했다. 부끄러워한 적은 없다. 당당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차라리 드러내는 편이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가난 커밍아웃’으로 도움을 많이 받았다. 중·고등학교 땐 수학여행비를 대신 내주는 선생님이 계셨고, 대학교 교수님은 산업기능요원 업체를 추천해 주셨다. 막노동 다닐 때도 십장이 벌이가 괜찮은 일감을 먼저 찔러주었다. 내 삶이 곧 가난의 역사였던지라 주변에 처지가 비슷한 친구도 많았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가난을 고백하기 두려워했고 숨기려 무던히 애썼다. 가짜 명품을 두르고 다니는 친구, 무리해서 중고 외제차를 끌고 다니는 친구, 휴대폰을 늘 최신형으로 들고 다니는 친구까지, 모두가 가난을 발각당하지 않으려 힘겨운 잔업과 철야를 기꺼이 견뎌냈다. 왜 겉치레에 그렇게까지 집착하느냐 물으면 비슷한 답변이 돌아왔다. 없어 보이면 안 되니까. 이십 대 초반엔 그 말의 정확한 의미를 몰랐다.
시간은 흘러 우리 모두 서른 중반이 되었다. 부족하나마 인생 경험이 쌓였고 자기 생각과 현실이 어긋났던 데이터가 축적됐다. 친구들은 ‘없어 보이지 않으려 했던 노력’이 실제 가난 탈출에 별 도움이 안 되며 행복과 멀어질 뿐임을 깨달았다. 나 또한 ‘없음을 숨기지 않으려 했던 노력’이 무례해 보일 수 있으며, 이 탓에 알게 모르게 기회를 많이 날려버렸음을 알았다. 시행착오의 시간은 무용하지 않아서 각자 좀 더 엄밀한 언어로 대화할 수 있게 됐다. 술자리에서 한 친구에게 좀 더 노골적인 질문을 던졌다. 왜 가난을 숨기려 했냐고.
친구는 가난을 두고 아무렇게나 말하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실제 가난 혐오는 정말 온갖 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일어난다. 가난을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기초생활수급자는 외식하면 안 된다는 사람, 당사자들의 언어가 보편 감수성이 떨어져서 불편하다는 사람, 심지어 가난을 도둑맞았다며 야유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말들이 친구에게 가난이란 온갖 공격의 구실이 될 수 있음을 상기시켰다. ‘없어 보이지 않으려 노력’했던 이유는 마음이 약해서가 아니었다. 가난한 아이들은 보통 일찍 철이 든다고 한다. 실제로 평균보다 빨리 어른스러움의 외피를 두른다. 성숙해진다는 의미가 아니다. 자의식을 짓뭉개 자신을 감추는 법을 습득한다는 뜻이다. 가난이 공격거리가 된다면 재빨리 태도를 바꿀 뿐이다.
자의식을 잘 눌러왔던 탓에 사회생활은 잘했지만 부작용 또한 혹독했다. 친구는 번듯한 직장인으로 살고 있었지만 정작 속은 곯아가고 있었다. 자기를 돌보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요즘 삶이 허무하다는 넋두리에 문득 모두가 가난했던 산업화 세대 어른들이 떠올랐다. 국가 부흥의 깃발 아래 자아를 죽여 가며 뼈가 빠지도록 일한 선배들. 그 결과는 정년 퇴임 후 온갖 직업병에 시달리는 개인과 OECD 노인 빈곤율 1위 국가만 남았다. 누구에게나 박수 받을 만큼 훌륭하게 살았건만 정작 개인은 행복하지 않았다.
술자리 파할 무렵 힘들어하는 친구를 보며, 세상이 가난을 있는 그대로 봐주길 바랐다. 가난은 아주 흔해서 태어나서부터 겪는 이도 있고,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는 이도 많으며,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현상일 뿐이다. 결코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며 꼭꼭 숨겨야 할 이유도 없다. 단지 불운했을 뿐인 이들을 향한 편견이 빈자를 더 불행하게 한다. ‘가난다움’을 강요하지 않는 세상을 소망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툭 던진 말이 쌓여 당사자들한테 상처를 입힌다. 그렇게 쌓이고 쌓인 한을 친구 말로 갈음하겠다. “없이 태어난 것도 서러운데 왜 훈수까지 들어야 하나.”
조선일보 천현우 작가·前용접 근로자
02.01 이젠 등을 밀어줄 사람이 없다

▲일러스트=이철원
아들은 어릴 때부터 설과 추석만 다가오면 심장이 쿵쿵 뛰었다. 아버지가 목욕탕에 데리고 갔기 때문이다. 아들은 목욕탕에 갈 때마다 다짐하는 것이 있었다. 이번에는 꼭 아버지를 이기겠다는 것이었다. 아들은 목욕탕만 가면 늘 아버지에게 졌다. 온탕까지는 그럭저럭 비슷한 시간을 견뎠지만 열탕은 발을 담그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바빴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한 호흡으로 목까지 잠수하는 내공을 뽐냈다. 사우나는 1분이 10분처럼 흐르는 곳이었다. 아들은 늘 1분을 못 견디고 탈출했다. 아버지는 여유롭게 두 눈을 감고 “시원하다” 소리를 판소리처럼 흥얼거렸다.
아들의 패배가 확정되는 순간은 때를 미는 시간이었다. 두 사람은 돌아가면서 등을 밀어주었는데 아들이 아무리 힘을 써도 아버지는 뭔가 아쉬운 표정이었다. “좀 더 박박” 밀어보라고 말했지만, 이를 악물고 밀어도 “좀 더 박박”이 되지 않았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뒤돌아서 이태리타월을 뺏어 들고는 아들의 등을 엄청난 괴력으로 빡빡 밀면서 “이렇게! 이렇게!”를 외쳤다. 아들은 늘 신나는 비명을 질렀다.
때를 다 밀고 나서 샤워하면 온몸이 로션을 바른 것처럼 만질만질했다. 그 상태로 목욕탕 문을 열고 탈의실로 나서면 세상에서 가장 시원한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매점 앞에서 우유를 마실지 두유를 마실지 망설이고 있으면 아버지는 늘 두 병을 함께 사주었다. 뽀송해진 온몸으로 설렁탕 집에 가서 국물을 후루룩 마시면, 몸 바깥에 이어서 몸속까지 목욕하는 기분이 들었다.
중학생이 되면서 아버지랑 이상하게 어색해졌다. 아버지는 중2병 아들이 못마땅했을 것이고, 아들은 사춘기를 몰라주는 아버지가 서운했을 것이다. 대화는 끊긴 지 오래되었다. 목욕탕은 친구들과 가는 곳이 되었다.
아들은 그렇게 고3을 맞았다. 어느 봄날 토요일이었다. 그 당시 고3은 토요일에도 자율 학습을 했다. 날이 너무 좋아서 교실에 앉아 있고 싶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가방을 싸 들고 학교를 나왔다. 아버지는 늘 밤이 늦어서야 집에 돌아왔기에, 아무도 없는 집에서 잠이나 실컷 잘 생각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아버지가 집에 있었다. 아들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상황을 짐작한 아버지가 엄한 목소리로 왜 벌써 집에 왔느냐고 물었다. 아들은 엉겁결에 “배가 아파서”라고 둘러댔다. 아버지는 한참 말이 없다가 “병원에 가자”며 일어섰다. 아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아버지를 따라나섰다. 제발 꾀병이 들통나지 않기를 빌며 병원으로 향했다. 진찰을 받자마자 황당한 일이 생겼다. 아들이 맹장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배도 안 아프고 멀쩡하겠지만, 맹장이 점점 부풀고 있으니 두 시간 정도가 지나면 엄청 아플 것이고 그때 수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의심하는 눈초리를 거두고 미안한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보았다. 아들은 엄청 당황스러웠다. 꾀병을 들키고 싶지 않았지만 맹장 수술까지 바란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아버지와 아들은 병원 로비에 앉아서 두 시간을 기다렸다. 아버지는 어색한 두 시간을 버티느라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었다. 당신이 겪은 수술 경험, 아마도 오랫동안 목욕을 못 할 수도 있다는 짐작, 퇴원하면 목욕탕을 데리고 가겠다는 약속, 그렇게 어색한 두 시간이 채워졌고 아들은 거짓말처럼 배가 아파오면서 맹장 수술을 받았다.
한 달 가까운 시간이 흘렀고, 수술 자국이 아물어서 목욕탕에 갈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정말 오랜만에 목욕탕에 함께 갔다. 서로가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했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아들은 여전히 열탕에 발을 담그자마자 비명을 질렀고 아버지는 한 호흡으로 목까지 잠수했다. 아들은 여전히 1분을 못 채우고 사우나에서 도망쳤고 아버지는 여전히 “시원하다”를 흥얼거렸다. 단 하나 변한 것이 있다면 아버지의 등보다 아들의 등이 커진 점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말없이 서로 등을 밀어주었다. 아마도 아버지는 커진 아들 등이 기특했을 것이고 아들은 작아진 아버지 등에 울컥했을 것이다.
이십여 년 세월이 흘렀고, 아들은 점점 그 당시 아버지 나이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제는 열탕에 허리까지는 담글 수 있게 되었고 사우나에서 10분에 가깝게 견딜 수 있게 되었다. 이제야 “시원하다”가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었다. 아들은 그 모습을 뽐내며 자랑하고 싶지만 이제 아버지는 세상에 없다.
조선일보 오세혁 극작가·연출가
02.11 “요즘 젊은 것들은…” 아직도 이런 말 쓰세요?

/일러스트=이철원
요즘 TV에서 ‘미스트롯3′와 ‘현역가왕’을 보다 보면 이런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모든 연령층이 함께 시청하는 게 가능한 프로그램이 트로트 오디션 말고 과연 또 뭐가 있을까? 없을 것 같은데.”
그런데 이것도 사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현역가왕’의 한 장면. 젊은 가수가 ‘그 잡채’라는 가사가 든 노래를 부르자 심사위원 중 연장자인 남진이 알아듣지 못하고, 40대인 이지혜가 ‘요즘엔 자체라는 말을 발음이 비슷한 잡채로 쓰는 경우가 있다’고 ‘통역’해 주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사실 지금 대한민국은 연령대에 따라 쓰는 언어 ‘잡채’가 다른 것 같기도 합니다.
언어가 다른 사람들은 웬만해선 같은 장소에 함께 있지 않게 됩니다. 직업이나 취향과는 무관하게 남녀노소가 한 곳에 모일 수 있는 장소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음식점이든 술집이든 공연장이든 PC방이든 클럽이든 노인정이든, 그곳은 입지조건에 따라 특정 연령층을 중심으로 고작 플러스마이너스 5~10년 정도의 스펙트럼만 허용하는 것 같아요.
사실 요즘 전(全) 연령층에 속한 인물들을 폭넓게 볼 수 있는 곳은 일일연속극이 아니면 대중교통 정도입니다. 그래서 버스와 지하철은 특히 흥미로운 곳이기도 합니다.
연세 드신 분들은 뻔히 교통약자석이나 임산부석이라고 써 놓은 자리에 조금도 망설이거나 심리적 회의(懷疑)을 느끼지 못하는 표정으로 앉아있는 젊은이들을 보고 분노를 느낍니다. 젊은 사람들은, 입시공부와 입사준비와 수많은 면접들을 거쳐 파김치가 된 사람들은 특히, 오직 세상을 좀 더 살았다는 이유로 당당하게(때로는 뻔뻔하게) 앉아있는 자리를 요구하거나 빼앗다시피 가로채거나 50m 이상 전방에서 필사적으로 질주해 둔부(臀部)를 앞세워 슬라이딩 터치를 하거나 “여기 자리 났어~ 일루 앉으셔~”라는 말을 원격조종 리모컨의 용도로 사용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고 절망을 느낍니다.
혹은 연령과는 무관하게, 열차 안이 빨래터나 사랑방의 현대적 변용이라고 판단을 했는지 5인 이상이 목청 높여 담소를 나누거나 보이지 않는 사람들과도 이동통신의 힘을 빌려 눈치보지 않고 자유롭게, 전설에 등장하는 신라 말기의 이발사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했을만한 볼륨 수준의 음성으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을 찾기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지하철의 긴 의자를 유심히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만일 그렇게 오랫동안 지하철을 타 오신 분이시라면(서울의 경우 지하철 1호선 개통은 1974년) 한번쯤 이렇게 생각해 보신 적이 있을 법도 합니다. “긴 의자의 정원(定員)은 몇 명일까?” 정답은 일곱 명, 최근 나온 신형 전동차는 여섯 명입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건 말이죠, 그 의자에 다섯 명, 심한 경우엔 네 명까지도 ‘꽉 찬 채로’ 앉아 갈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그 분들은 전혀 씨름선수급의 사람들이 아니라 보통 체구인데도 말입니다. 다리를 넓게 벌리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앉거나 가방이나 핸드백을 좌우에 밀착시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 와중에서 가끔 비분강개(悲憤慷慨)를 이기지 못해 부르르 떠는 듯한 어르신들의 장엄한 목소리를 듣는 것도 그다지 어려운 경우는 아닙니다. 때로는 불특정 다수에게 던지는 연설문의 형식을 띠기도 하고, 때로는 옆자리 친구분과의 대화 형식으로 진행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기승전결의 논리적 연결고리에서 많거나 적은 알코올 기운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격문(檄文)을 방불케하는 준엄한 꾸짖음의 전문(前文)은 대개 일정한 형식을 갖추고 있게 마련입니다.
“요즘 젊은 것들은 말이야…!”
아! 그래요.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젊은 사람들입니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그런데 저 아이들은 무엇을 알고 있는 것일까. 안되는데, 저러면 안되는데. 어른들의 계도(啓導)가 투명하게 실현되는 사회라면 아무런 걱정도 없을 것인데.
혹 이 부분에서 “수메르 점토판을 보면 까마득한 옛날에도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고…’ 뭐 이런 문장이 있다던데?”라는 생각을 하실 분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답답한 노릇이죠. 그 1차 사료를 우리가 구해 보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 말이 ‘분명히’ 있는 동양고전이 있습니다. 최소한 기원전 235년 이전에 씌어진 책. 바로 ‘한비자(韓非子)’입니다. 이 책 오두(五蠹)편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今有不才之子, 父母怒之弗爲改; 鄕人譙之弗爲動; 師長敎之弗爲變. 夫以 ‘父母之愛’ ‘鄕人之行’ ‘師長之智’ 三美加焉, 而終不動, 其脛毛不改.
(금유부재지자, 부모노지불위개; 향인초지불위동; 사장교지불위변. 부이 ‘부모지애’ ‘향인지행’ ‘사장지지’ 삼미가언, 이종부동, 기경모불개.)
요즘의 덜떨어진 젊은 녀석들은 부모가 화를 내도 고치지 않고, 동네 사람들이 욕해도 움직이지 않고, 스승이 가르쳐도 변할 줄을 모른다. 이처럼 ‘부모의 사랑’ ‘동네 사람들의 행실’ ‘스승의 지혜’라는 세 가지 도움이 더해져도 끝내 미동도 하지 않아, 그 정강이에 난 한 가닥 털조차도 바뀌어지지 않는 것이다.
마치 요즘 ‘교실 붕괴’ 현상에 좌절감을 느낀 교육전문가의 시론 중에서 옮긴 말 같군요. 니콜라스 레이 감독의 1955년작 영화 ‘이유없는 반항(Rebel Without a Cause)’에는 이런 대사가 나오죠. 제임스 딘이 새로 전학간 학교에서 건달들에게 왕따를 당할 위기에 놓이자 반발, 그들과 차를 몰고 절벽으로 돌진해서 늦게 뛰어내리기를 겨루는 ‘겁쟁이 경주’를 하게 됩니다. 경주를 앞두고, 건달 두목은 딘에게 “사실 말인데, 난 널 좋아해”라고 말합니다. 딘이 의아한 목소리로 “그런데 왜 이 짓을 하는 거지?”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그 건달의 대답.
“지금은 뭔가를 하긴 해야 하잖아(You got to do something now, don’t you?).”
그렇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뭔가를 해야 합니다. 그들은 아직 도정(道程)에 있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그 ‘뭔가’를 마음에 들어 하는 어른들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바로 ‘버릇이 없기 때문에’ 유년(幼年)이고 청년(靑年)인 것입니다. 그들은 아직도 어른들이 보기에 무명(無明)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어른들이 못마땅해 하는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젊은 것들은…’이란 관용구로 시작되는 불특정다수에 대한 꾸짖음은 그래서 기성세대의 도덕적 우월성을 상징하는 선제공격과도 같은 역할을 합니다. “너는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다”라는 말도 있죠. 먼 길을 걸어온 사람들은 자신이 거쳐온 곳들에 대해 말하기가 쉽고, 또 말하고 싶게 마련입니다. 그 정도가 심해 아예 예의염치(禮儀廉恥)를 파기해버린 듯한 지금에 있어서 그 분노의 강도는 더욱 클 것입니다. 그러나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 말[言]의 화살이 최종적으로 돌아오는 바로 그곳 말입니다.
영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모범은 훈화(訓話)보다 유효하다(Example is more efficacious than precept).”
그렇다면 그 예전 전국시대, 청년들을 교화시키는 방법에 대한 한비자식의 접근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과연 법가(法家)의 방식에는 물기나 여백이 없었습니다.
州郡之吏, 操官兵推公法, 而求索姦人, 然後恐懼, 變其節易其行矣. 故父母之愛, 不足以敎子, 必待州郡之嚴刑者. 民固驕於愛, 聽於威矣.
(주군지리, 조관병추공법, 이구색간인, 연후공구, 변기절역기행의. 고부모지애, 부족이교자, 필대주군지엄형자. 민고교어애, 청어위의.)
주군(州郡·지방정부)의 관리가 관병(官兵)을 통솔하고 공법을 시행해 범법자를 잡아들인 후에야 겁을 내 그 뜻을 바꾸고 행동을 고치게 된다. 그러므로 부모의 사랑은 아이들을 가르치기에 부족하고, 반드시 주군의 엄한 형벌이 있기를 기다려야 한다. (왜냐하면) 민(民)이란 원래 사랑에는 교만하고 권위에는 말을 듣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슨 말이겠습니까? “사랑의 매가 필요하다!” “군대 가야 사람 된다!” 이런 걸까요? 아닙니다. 훨씬 더 심한 말입니다. 아이들이 말을 듣게 하려면 교육보다 법(法)을 앞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주 오래 전에, 학력고사 시험장에 경찰을 출동시켜 커닝하는 학생들을 잡아내려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개념하고 통하는 말일 것입니다.
자, 지금 일어나는 문제들을 한비자식으로 해결하려면 이렇게 하면 될 것입니다. 경로석에 앉은 젊은이에게는 과태료를 부과하고, 술마시고 소란을 피우는 학생들은 집시법 위반으로 긴급체포하고, 담배를 피우는 중고생들은 구류 조치하고, 급우에게 심한 말을 하는 아이들은 소년원으로 보내는 겁니다.
엄벌혹형(嚴罰酷刑)이란 이런 것입니다. 혹 이렇게 하고 싶어하는 어른들이 정말로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지하철 훈계’에 알콜기가 유난히 많다 싶은 경우엔 아닌게아니라 이와 비슷한 언어들이 잠깐씩 섬뜩한 어기(語氣)에 휩싸였다 사라지곤 합니다. 분홍색 선연한 임산부석과 그 옆자리에 걸쳐서 다리를 꼬고 앉아 그런 말을 하시는 분도 본 적 있습니다.
그런 식의 훈계가 ‘라떼’나 ‘꼰대질’로 여겨지며 공감을 받지 못하는 지금에 비해 몇십 년 전의 세상이 반드시 도덕적으로 우월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연장자라고 해서 초면인 이에게 갑(甲)의 자리에서 훈계하는 일이 정당한지에 대해 의문을 지닌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만약 이런 변화 자체도 ‘요즘 덜떨어진 젊은 것들의 못된 짓’이라고 여긴다면 더 이상 어쩔 수 없겠습니다만 말이죠.
조선일보 유석재 기자
02.12 섬만 4년 다닌 기자가 뽑았다, 최고의 섬산 TOP 3
2020년 봄부터 2023년 겨울까지 매달 전국의 섬을 소개했다. 사실 섬산에 큰 기대가 없었다. 2년간 백두대간 종주 취재를 마친 후였기에 낮은 섬산을 얕봤다. 그러나 육지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풍경을 숱하게 만났고, 점점 섬의 매력에 빠졌다. 간혹 르포 기사를 과하게 포장한 것처럼 여기는 댓글을 보면 안타깝다. 기억의 착오는 있을 수 있으나, 맞닥뜨린 상황은 사실이며 자연을 누비며 느낀 감동의 일부를 글로 표현했다. 4년간 소개한 섬 일부를 부문별 TOP3로 나눠 소개한다.
♥해변 예쁜 섬 TOP 3

▲인천 덕적도
덕적도는 다리가 놓인 부속 섬인 소야도까지 합하면, 모래해변이 20여 개에 이른다. 크고 작은 해변은 서로 다른 분위기의 깨끗한 매력을 품고 있어 섬이 가진 자연미의 진수를 보여 준다. 2020년대에 가장 떠오르는 인기 섬 중 하나이다.

▲통영 비진도
미인의 흰 목선 같은 해변은 신비로운 섬의 아름다움을 압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유봉 미인도전망대에 가면 남해바다가 낳은 미인을 만나게 된다.

▲완도 생일도
선착장에 대형 생일케이크 조형물이 있는 재미있는 섬. 섬산치곤 높은 산(483m)에서 실컷 조망의 즐거움을 맛보고 내려서면, 아리따운 금곡해변이 넋을 놓게 한다.
♥ 02.12.산행 재미있는 섬 TOP 3

▲통영 사량도
설명이 필요 없는 국가대표급 섬산행지. 바다를 보는 즐거움, 암릉산행의 즐거움을 꼭꼭 눌러 담아 놓은 등산인들을 위한 종합선물세트 같은 섬이다.

▲인천 백아도
선착장부터 능선을 타고 종주하면 섬산 특유의 아기자기한 맛을 모두 누릴 수 있다. 말미에는 하이라이트인 남봉 공룡능선에서 설악산을 축소시켜 놓은 듯한 용 한 마리를 만나게 된다.

▲신안 가거도
제주도와 울릉도, 다리가 놓인 섬을 제외하면, 독실산(572m)이 가장 높다. 육지에서 100km 이상 떨어진 절해고도의 망망대해와 청정공기, 기운 넘치는 산줄기를 누비는 색다른 즐거움이 있다.
♥ 백패킹 명섬 TOP 3

▲진도 관매도
섬 안에 숨겨진 3만 평 유채꽃 밭을 보았다면, 국내에서 가장 비밀스런 섬의 매력을 샅샅이 보았다 할 수 있다. 관매도해수욕장 앞 전설 같은 소나무숲에선 달콤한 풍경을 배경으로 낭만적인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

▲인천 굴업도
독보적인 수크령 초원은 숱한 사람들을 백패킹에 입문시켰다. 그만큼 개머리언덕에 텐트 친 풍경과 시간은 감미롭다. 문화재청은 ‘국내 어디서도 보기 힘든 해안 지형의 백미’라고 한바 있다. 굴업도를 다녀오지 않은 사람과는 섬 여행의 즐거움을 논하기 어렵다.

▲인천 시도
자전거 캠핑지로 추천한다. 신도 선착장에서 자전거로 시도 수기해변으로 오면, 아카시아향처럼 달콤한 해변 앞으로 바다와 강화도 마니산 줄기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아카시아 나무 아래 텐트 치면 향기로운 밤은 덤이다.
♥ 차로 갈 수 있는 명섬 TOP 3

▲군산 선유도
이름처럼 신선의 풍경이 아무렇지 않게 펼쳐진다. 군산에서 새만금방조제를 따라 차를 타고 왔을 뿐인데, 신선이 되는 원리는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신안 자은도
곳곳이 모래해변이고, 곳곳이 바위산이다. 두봉산 산행과 해변 야영까지 더하면 여간한 해외 여행보다 즐거움의 효율이 높다.

▲인천 무의도
수도권 여행의 보물섬이다. 실미도, 하나개해변, 호룡곡산, 소무의도, 세렝게티까지, 산행, 걷기길, 해변, 백패킹 무엇하나 빠지지 않는 자연미로 집약된 수도권 여행 명섬이다.
조선일보 신준범 월간산 기자 사진(제공) : 주민욱
02.20 내게는 현금 쓸 권리가 있다
카드만 받는 일부 커피점, 한국은행법의 ‘현금 무제한 통용’ 규정 위반
서울 버스 25%는 현금 안 받아… 효율성이란 이름으로 소비자 강제
현금 고집할 생각 없지만, 편리란 이유로 현금 쓸 자유 빼앗기는 것

▲일러스트=양진경
서울 신설동에 허름한 순댓국집이 있다. 간판도 없고 점심 장사만 한다. 여든 넘은 주인 할머니의 푸짐한 인심과 손맛 덕에 손님이 많다. 이 집은 카드 결제가 안 되고 현금만 받는데 계좌 이체도 안 된다. 현금 없이 온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다른 손님에게 돈을 꾸고 계좌 이체를 해주기도 한다. 왜 카드 안 받느냐고 따지는 사람은 없다. 할머니 권력에 얌전히 복종한다.
그 흔한 카드 스티커 한 장 없는 것으로 보아 순댓국집은 카드 가맹점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면 카드 결제 거절은 불법이 아니다. 그렇다 해도 연 매출 2400만원이 넘으면 현금 영수증을 끊어줄 의무가 있지만, 혼자 부엌일에 정신없이 바쁜 할머니에게 현금 영수증 달라고 할 용기는 내게 없었다. 만약 현금 영수증 가맹이 안 돼 있다면 매출이 얼마냐고 물어야 하는데, 그다음 대답은 너 뭐 하는 놈이냐가 될 것이 분명하다. 할머니 장사 방식이 못마땅하다면 안 가면 그만이다.
반대로 스타벅스를 비롯한 몇몇 커피 체인은 현금을 받지 않고 오로지 카드만 받는다. 이것 역시 배짱 장사다. 신용카드 한 장 없는 무능력자는 손님으로 받지 않겠다는 뜻인지, 카운터 앞에서 동전 세면서 가게 분위기 깨지 말라는 뜻인지 모른다. 이에 대한 스타벅스의 입장은 “카드 전용 점포임을 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싫으면 딴 데 가라는 소리다. 나는 커피집에서 현금을 쓰고야 말겠다는 사람은 아니지만 순댓국집의 카드 결제 불가와는 다른 불편한 감정이 생긴다. 전등 켤 수 있으니 촛불 켜지 말라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한국은행법 48조는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한국은행권은 언제 어디에서든 통하도록 보장받는 화폐로서 모든 거래에 무제한 통용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은행법에는 처벌 규정이 없다. 게다가 현금 사용률이 크게 낮아지다 보니 별 민원도 발생하지 않는다. 한국은행은 그래서 몇 년 전부터 ‘현금 사용 선택권을 보장해 달라’는 캠페인을 벌이는 데 그치고 있다.
‘현금 결제 불가’가 커피집 아니라 버스라면 문제는 다르다. 현금 안 받는 버스가 크게 늘면서 신용카드 없는 노인이나 어린이, 외국인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고 한다. 서울은 버스 4대 중 1대가 현금을 받지 않고 대전은 전체 버스가 그렇다고 한다. 이 사안을 일부 이용자의 불편 문제로 보는 것은 본질을 흐리는 것이다. 엄연히 조폐공사가 돈을 찍어내고 있으며 화폐는 경제의 기본 도구다. 신용카드나 무슨 페이 같은 디지털 결제 수단은 사기업이 만들어 내 수수료를 챙기는 일종의 부가가치 산업이다.
현금 쓰는 사람이 적다고 해서 버스 같은 공공 서비스 분야의 현금 결제를 완전히 차단하는 것은 효율성이란 이름으로 소비자를 통제하고 조종하는 것이다.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결제를 할 수 있으니 내 알 바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기본권을 침해하는 기업과 방조하는 국가에 순응하는 것이다. 버스가 “싫으면 타지 말라”고 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
당신이 무슨 이유에서든 신용카드를 쓰지 않고 스마트폰도 쓰지 않는다고 치자. 이미 엄청난 불편을 겪고 있을 것이다. 모든 온라인 상거래와 민원 서비스에서 배제되고 돈을 보낼 때마다 은행 창구나 ATM 앞에 가야 한다. 그래도 생활을 영위할 수는 있다. 그런데 이제 버스도 타지 못하게 됐다. 신용카드 소지가 국민의 의무라도 된단 말인가.
기술 발전은 막을 수 없는 것이지만 인간이 기술에 종속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조지 오웰의 ‘1984′에 등장하는 텔레스크린은 벽마다 붙어있는 감시 장치였지만 스마트폰은 24시간 우리를 따라다니는 감시 장치다. 우리는 무슨 앱을 설치할 때마다 연락처와 사진과 카메라에 접근을 허용하면서 감시를 자청한다. 버스 타고 내릴 때마다 기계는 ‘삑’ 소리를 내며 내가 누구인지 언제 어디로 이동했는지 기록한다. 기계는 점점 인간 같아지고 인간은 갈수록 기계를 닮아간다. 이것은 20세기 수많은 작가가 공통적으로 예견한 디스토피아의 모습이다.
에리히 프롬은 ‘1984′ 해설에서 “’수백만 명이 어떻게 틀릴 수 있다는 말인가’라는 구호와 ‘어떻게 소수가 옳을 수 있단 말인가’라는 구호 아래 진리가 성립된다”고 말했다. 우리는 편리하다는 이유로 너무 쉽게 자유를 포기한다. 나는 버스 탈 때 현금을 고집할 생각은 없지만, 현금 쓸 권리를 빼앗기고 싶지는 않다.
조선일보 한현우 문화전문기자
02-23 요즘 아이들은 뭐 하고 놀까
컴퓨터도 책도 없던 시절엔
딱지치기·소꿉놀이 등 즐겨
요즘 아이들은 혼자만의 시간
공동체에 필요한 덕목 못 익혀
인간은 타인과 관계 속에 살아
놀이 통해 규칙.협동 배워야
왜 갑자기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라는 말이 떠올랐을까?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이는 김광규 시인의 시 제목이다.
‘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린 곳에/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애연하면서도 무력감이 느껴지는 시이다. 왜? 이 시였을까? 하고많은 시를 다 놓아두고. 달달한 연애시도 많은데. 아마 그랬을 것이다. 바닥에 누군가 그려놓은 그 도형들을 보는 순간, 군데군데 지워져 선이 단락된 채로 남아 있는 그 흔적들을 보자마자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떠올랐을 것이다. 이를테면 자동 연상인 셈이다. 희미한 그 선들을 보고 그 시가 떠올랐으니 아무 맥락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오징어게임’이 먼저 떠올랐어야 했다. 그 모양이 오징어와 비슷했으므로.
그 도형은 아이들의 ‘사방치기’ 놀이판이었다. 세모와 네모와 동그라미와 반원이 결합된 그 도형이 마치 오징어를 닮았대서 ‘오징어게임’이라고도 한다. 가장 위쪽의 반원을 하늘이라 한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땅에서 하늘까지 오르내리는 것이 게임의 방식인데, 금을 밟아서도 안 되고 칸을 놓쳐서도 안 되고 말을 줍지 못해도 탈락이다. 그 놀이의 다른 이름도 있다. 땅따먹기. 세상에, 땅따먹기라니! 하긴 우리나라는 산업화 이전엔 전형적인 농업국이었으니, 땅은 천하의 근본이자 부(富)의 상징이었다. 산업화 이후에도 치부의 수단이었으니, 땅따먹기는 일종의 욕망 놀이라 해도 좋겠다. 어쨌든 땅따먹기 혹은 사방치기는 놀이판 안에 말로 쓰는 돌을 차례로 던져 넣고 그 도형의 빈칸을 밟고 하늘까지 올라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돌을 집어오는 게임이다. 가만 보면 신체의 근육을 골고루 사용해서 제법 운동도 된다.
작년 초, 엘리베이터에 전통놀이에 참여할 아이들을 기다린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더니 그들이 남긴 흔적인 모양이다. 한동안 초등학교 저학년생으로 보이는 대여섯 명의 아이가 놀이를 지도하는 청년과 함께 그 놀이판에서 뛰는 것을 보았다. 한 발로, 그리고 양발로 뛰었다가 다시 한 발로 말을 주워 제자리로 돌아오는데, 그 모양이 어째 어설프고 마지못해 하는 것 같았다. 어떤 아이는 말이 손에 닿지 않아 출발선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시무룩한 표정으로 그 놀이판을 벗어났다. 아이들에게서 도무지 흥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놀이인데, 하기 싫은 숙제를 하는 듯 보였다. 게다가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놀이에 참여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움직이고 하라는 대로 따라 했다.

내 어릴 적은 어땠던가. 지금처럼 컴퓨터도 없고, 책도 많지 않던 시절에 우리가 놀 수 있는 것은 그저 친구들과 함께하는 것이 전부였다. 자치기, 오자미, 고무줄놀이, 땅따먹기, 핀치기, 비석치기, 사방치기, 구슬치기, 공기놀이, 딱지치기, 병정놀이, 소꿉놀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우리 집에 왜 왔니… 처럼 놀이도 많았고 또래도 많았다. 골목마다 아이들의 함성이 폭죽처럼 터졌고, 웃음소리가 넘쳐났다. 골목은 그렇게 매일 아이들의 생의 에너지로 들썩였다.
아이들은 그랬다. 그 놀이를 통해, 규칙과 협동과 단합을 배우고 승패를 인정하며 스스로 답을 찾고 사회적 기술들을 익혀 나갔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런 놀이들은 찾아보려야 볼 수가 없다. 골목에서도 노는 아이들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심지어 아파트 놀이터에는 야구나 축구를 하지 말라는 주의문이 나붙어 있기도 하다. 아이들은 뭐 하고 놀까? 내가 아는 대개의 아이들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제 방에 틀어박혀 컴퓨터 게임만 하고 싶어 한다. 그러니 타인과의 유대나 배려, 규칙, 승패에 승복하는 일 같은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 덕목들을 익힐 기회를 갖지 못한다. 하긴, 아이들에게 놀 시간이 있기는 할까.
유아 때부터 놀이방으로, 유치원으로, 학원으로 시간 맞춰 다녀야 하는 아이들에게 노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 금기의 시간인지도 모른다. 잘 놀아야 창의성도 그만큼 는다는데, 아이들이 노는 방법마저 잊어버린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일찌감치 재능을 찾아 수련하고 오감을 자극하는 놀이방에서 감각들을 훈련하면서 다들 영재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고립적이고 폐쇄적일 것이다. 나중에 성인이 되었을 때 그 아이들이 조직 생활을 유연하게 할 수 있을까. 아니, 삶이 행복할까.
고독한 천재와 유쾌한 범인(凡人). 어느 것이 더 나은 삶인지는 알 수 없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 추구하는 바가 다르므로. 하지만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남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놀이를 통해 협상과 협동 같은 자기 조절 기술들을 배우면 좋겠지만, 시대가 변했으니 여의치 않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최소한이나마 단체 생활과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규율과 배려 같은 기본적 덕목들을 가르쳤으면 좋겠다. 성숙한 시민 의식에서 비롯된 살 만한 나라, 좋지 않은가. 그 나라에서 아이들이 안전하게 삶을 영위하게 만들어주고 싶다면 먼저 아이들이 성숙한 시민 의식을 가진 성인으로 자랄 수 있도록 이끌어줘야 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데, 놀이를 통해 그런 교육이 일찌감치 이뤄졌으면 좋겠다.

문화일보 은미희 작가
03.01 지성, 감성, 의지
고대 그리스 이래 서구 철학은 인간의 정신을 ‘지성(intellect), 감성(feeling), 의지(will)’ 세 갈래로 구분해 파악하려 했다. 이러한 삼분법의 효시는 플라톤이나 성 아우구스티누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칸트가 인간의 정신을 더 이상 다른 것으로 환원할 수 없는 세 가지 능력, 즉 ‘인식, 감정, 욕망’으로 구분한 것도 이러한 사유적 전통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서구 철학의 개념을 일본에 소개한 이는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07년 ‘문예의 철학적 기초’에서 인간의 정신 작용을 지(知), 정(情), 의(意)로 구분하여 설명한 바 있다. 영문학을 전공한 소세키에게 서구의 사상과 감정을 더 생생하게 일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언문(言文) 일치 문체 확립은 생애를 관통하는 과제였다. 그의 작품들은 이질적인 생각과 감정을 자연스럽게 체험하고 체화할 수 있는 언어적 통로를 개척하는 의미가 있다.
그의 1906년 작 ‘풀베개(草枕)’ 첫 구절은 일본인들이 최고로 손꼽는 명문으로 유명하다. “산길을 오르며 이렇게 생각했다. 지를 앞세우면 각이 서고, 정에 빠지면 떠내려가고, 의지를 밀어붙이면 궁지에 몰린다. 이래저래 인간 세상은 살기 힘들다.” 이 짧은 문장에 서구 철학의 ‘지·정·의’가 그만의 문학적 표현력에 의해 일본적인 심성으로 변환되고 수용되는 과정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
소세키의 말처럼 논리만을 따지면 관계가 각박해지고, 느낌에 휘둘리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욕망을 고집하면 설 자리를 잃기 십상인 것이 세상살이다. 문장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살기 힘듦이 더해 가면 편안한 곳으로 옮기고 싶어진다. 어디로 옮긴들 살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으면 그때 시(詩)가 써지고 그림이 그려진다.” 여기저기 논리와 감정과 욕망이 부딪히는 파열음 속에서 마음의 평안을 잃은 현대인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전하는 소세키의 통찰이라 할 것이다.
03.02 독일에서 본 한국의 명암
독일에 처음 도착하고 느낀 것은 달라진 한국의 위상이었다. 10여 년 전 유럽 배낭여행을 왔을 때만 해도 “일본에서 왔느냐? 중국에서 왔느냐?”는 말이 먼저였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남쪽인지 북쪽인지를 묻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지금은 오히려 길거리에서 “한국인이냐?”며 “한국 친구를 사귀고 싶다”고 먼저 물어오는 사람들을 만난다.
친구들끼리 우스갯소리로 “요즘은 함부로 한국어 욕을 하면 안 된다”고 한다. 사람들이 한국 드라마를 많이 봐 나쁜 표현은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카페에서 한국 친구와 얘기하면 종업원이 먼저 “감사합니다”라고 한국어 인사를 하거나, 마트 직원이 한국 사람인 걸 알아보고 “(드라마) 도깨비를 좋아한다”며 한국 배우를 바탕화면으로 한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축구는 잘 안 본다는 프랑스 친구도 “너네 나라에는 ‘손(손흥민)’이 있잖아”라고 하고, 아시아 마트에서 장을 보다 “김치찌개를 하려는데 이 재료가 맞느냐”고 물어오는 학생들도 만났다. BTS, 블랙핑크 등 한국 가수들은 말할 것도 없다. 기자는 미처 몰랐던 보이그룹이나 걸그룹의 이름을 줄줄 대는 외국 친구들도 있다. 나는 한 게 없는 데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호감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얼떨떨하면서도 기분 좋았다.
이와 다르게 독일에서 한국인이기를 포기한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이민을 결심한 이유는 저마다 달랐다. 초등학생 아이 두 명을 둔 40대 부부는 아이들이 입시 경쟁에 찌드는 게 싫어 독일을 택했다. 학교에서 다양한 스포츠와 공연을 즐기는 아이들을 보며 자신과 같은 삶을 물려주지 않아 기쁘다고 했다. 한 30대 회사원은 합리적인 ‘워라밸’을 찾아 독일로 왔다. 그래도 불안한 마음에 일을 더하려 하자 “네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상사에 놀랐다. 연차와 병가를 눈치를 보지 않고 쓸 수 있는 것도 한국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일이라고 했다. 노후 안정이 보장되지 않아, 직장 생활의 감정 노동에 지쳐, 비교하는 문화가 싫어 등 각자 한국을 떠나온 이유를 얘기하다 보면 공감대가 쌓여 금방 성토의 장이 됐다. 타향살이가 쉽지 않지만 이곳에 남기로 결정한 이유들이다.
모두에게 내가 살 나라를 고를 수 있는 권한이 자유롭게 주어진다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이때 한국은 얼마나 경쟁력 있는 나라일까. 어떤 이들에게 한국은 동경의 대상이지만, 선뜻 지금의 한국 사회를 선택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한국을 떠나온 이들이 말하는 이유가 하나하나 공감돼기 때문이다. 합계출산율 ‘0.65명’이라는 통계가 이를 방증한다. 이를 해결할 제도와 정책에 대한 고민이 절실한 지금, 선거를 앞두고 또 다시 권력 싸움에 몰두한 이들을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조선일보 베를린=최아리 특파원
●대한민국의 위상
https://youtu.be/PyIVXbImatY?si=KN-t70LYs44DpdwS -
하버드대 수업중 한국을 폄하하는 일본학생의 발언에, 교수가 정색하며 한국과 일본의 진짜 역사에 대해 참교육 시켜주는데
03.02 효율과 효과
수년째 아침에 커피콩을 갈아 커피를 내린다. 효율을 따지면 원두 스틱 커피를 마시는 게 좋지만 커피를 내리며 향을 느끼는 과정이 소중해서다. 시간 낭비를 싫어하는 후배가 자주 쓰는 단어는 효율인데, 그녀는 달리면서 팟캐스트를 듣고, 일을 하면서 책상에서 샌드위치를 먹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라 믿는다. ‘효과’가 실제 목표에 가까워지도록 일하는 것이라면 ‘효율’은 일을 가장 경제적인 방식으로 하는 법이다. 하지만 ‘효율’적인 게 정말 ‘효과’적인지에 대해선 고민해봐야 한다.
효율과 효과의 차이는 깨어 있는 시간뿐만 아니라 수면 시간에서도 드러난다. ‘하버드 불면증 수업’의 저자 ‘그렉 제이콥스’는 사람들은 불면증의 기준을 수면 시간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더 중요한 건 수면 효율이라고 말한다. 가령 침대에서 8시간을 보내고 실제 잠을 잔 시간이 6시간뿐이라면 수면 효율이 75퍼센트란 얘기다. 4당 5락이 대학 입시의 효율적 전략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건 충분히 잠을 자고 공부 밀도를 높이는 게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효율성을 강조하는 무한 바쁨의 시대에는 멀티태스킹이 대세다. 하지만 인간의 집중력은 매우 제한적이라 작업 전환을 할 때마다 이전 작업 정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려면 15분 정도 소요된다. 우리가 멀티태스킹을 효율적으로 느끼는 건 효과와 상관없는 기분 탓이란 뜻이다. 게다가 나이가 들면 전전두엽 피질의 효용성이 떨어져 멀티태스킹 같은 특정 기능을 수행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한때 30분 단위로 스케줄을 조율할 정도로 무한 바쁨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 시기에 쓴 원고는 필연적으로 무한 퇴고를 불러왔다. 나는 아침의 커피 타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커피 내리기와 뉴스 보기를 동시에 하지 않는다. 커피를 마시고 글쓰기로 바로 진입하는 내 루틴이 깨져서다. 효율이란 이름의 멀티태스킹은 산만함의 다른 이름일지 모른다. 평범한 우리는 저쪽에서 오는 자극을 차단해야 이쪽에서 오는 자극과 정보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조선일보 백영옥 소설가
03.09 결혼·출산은커녕 왜 연애도 안 하는가
돈·집만큼 중요한 저출생 원인
인스타그램엔 온통 선남선녀고 나 빼고는 다들 잘나간다는데…
왜곡된 평균의 압력부터 끊어라
“오마카세 사진 올리는 사람들 친구 끊을까 생각 중.”
소셜미디어에서 이 짧은 고민을 봤다. 초밥과 소고기에 이어 커피와 홍차, 심지어 순대 오마카세까지 등장한 세상이다. 인스타그램을 보면 남들 대부분은 호사를 누리는데, 나는 분식집 필름 순대와 1500원 가성비 아메리카노가 일상이라면…. 그럴 수밖에.
한국의 출생률이 자신이 가진 세계 최저 기록을 경신했다. 정부와 기업의 다양한 대책이 쏟아졌는데도 작년 4분기는 0.65로 더 떨어졌다. 직원이 아이 낳으면 그때마다 1억원을 준다는 회사, 집 없는 부부에게 1% 이자로 5억원을 빌려주겠다는 정부 정책까지 나왔다. 물론 돈과 집은 출산과 육아를 장려하는 경제적 핵심 축. 하지만 백약 무효로 국가 소멸까지 우려하는 한국의 저출생에는, 우리가 체면 때문에 잘 인정하지 않는 문화적·심리적 이유가 있다고 본다. 지금 젊은 세대는 결혼과 출산은커녕, 연애조차 잘 하지 않는다. 이 그늘엔 오프라인의 실제 삶보다 심하게 과대표된 온라인의 미남·미녀, 그리고 이들의 라이프스타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오마카세로 대표 되는 무기력과 허탈감은 스마트폰에서 비롯된다. 연예인 아닌데도 연예인보다 더 예쁘고 매력적인 남녀가 그 안에 있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AI 연인도 있다. 하지만 휴대폰을 내려놓는 순간 ‘현타’가 시작된다. 진실의 시간. 그런 선남선녀는 오프라인 내 주변에 없다. 팔순 넘긴 아버지 세대의 결혼 이야기를 기억한다. 자신이 유년과 청년을 통과한 지방 소도시 마을에는 또래 ‘젊은 처자’가 딱 두 명 있었다는 것. 첫눈에 반한 건 아니었지만 미운 정, 고운 정이 쌓이며 정분이 났고, 결국 60년을 해로했다는 것. 지금 기준으로는 평균에도 미달하는 외모라고 농담을 했지만, 그 당시엔 안 보면 생각나고 생각나면 설렜다고 한다. 그 시절 TV와 스크린의 여배우는 말 그대로 언감생심. 나와는 상관없는 별나라 외계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디 그런가. 배우보다 더 매력적인 남녀가 늘 잡힐 듯 손 안에 있는데.
나는 이 ‘왜곡된 평균’이 한국인을 우울하게 만든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평균 올려치기’ 혹은 ‘평균압’이라는 신조어도 마찬가지다. 실제로는 한참 더 아래인데, 상위 10%의 외모와 라이프스타일이 평균인 것처럼 올려치고 압력을 가하는 분위기. 신혼집으로 신축 아파트 전세 정도는 평균 아니냐, 가전 빼고 결혼식 비용 7000만원이면 중산층 최저 아니냐, 대학 입학한 딸 선물로 명품 백은 기본 아니냐 이 ‘왜곡된 평균’이 세대를 막론하고 모두를 위축시킨다. 물론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다. 한국인의 실제 평균은 당연히 미달한다는 것을. 통계청 최신 자료인 2022년 가구 중위소득은 연 3453만원. 그나마 명목소득이고 실질소득으로 기준을 바꾸면 3206만원으로 떨어진다. 그런데 어떻게 서울 신축 아파트에서 살림을 시작하고 호텔에서 결혼하며 철마다 해외여행을 떠나겠는가. 대신 ‘나는 솔로’를 보며 대리 연애에 만족하고,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며 애 안 낳기 잘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릴 수밖에.
저출생은 OECD 국가 대부분의 고민이지만, 유난히 심한 우리의 세계기록은 이 ‘왜곡된 평균’이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부디 스스로를 불행의 구덩이로 밀어넣는 악순환은 그만두자.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삶의 진실’이라는 짧은 글을 역시 인터넷에서 읽었다. “지잡대 가거나 대학 안 가도 인생 안 망함. 돈 없는데 결혼해도 인생 안 망함. 돈 없는데 애 낳아도 인생 안 망함. 나이 많은데 뭔가 시작해도 인생 안 망함. 대신 인터넷에서 남들 사는 거랑 비교하기 시작하면, 내 정신은 반드시 망함.”
모든 것을 단숨에 해결할 묘책은 없겠지만, 일단 남들과 비교하는 소셜미디어부터 끊어보자.
조선일보 어수웅 기자
03.26 “개같이 벌어 개한테 쓴다”
최근 찾은 애견용품 박람회, 축구장보다 훨씬 큰 전시장에 ‘人山犬海’
犬체공학적 가슴줄, 50만원짜리 개소파… 유모차보다 개모차가 더 팔려
저출생 시대, 개같이 벌어봐야 줄 사람도 없다는 말이 우스개 아니더라

▲일러스트=이철원
얼마 전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애견용품 박람회에 갔더니 입구에 이렇게 쓰인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개같이 벌어 개한테 쓴다.” 처음에는 우습게만 여겼는데 곱씹을수록 그럴듯한 표현이란 생각이 들었다.
돈 버는 일은 점점 더 힘들고 개 키우는 사람은 줄곧 늘어나고 있다.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안 낳으니 개 먹이고 치장하는 게 낙이다. 나는 설령 개같이 벌더라도 그 돈을 개한테 쏟아부을 생각이 없지만 어쨌든 그 플래카드 밑을 지나 내돈내산, 아니 ‘개벌개쓴’의 세계로 입장했다.
말 그대로 인산견해(人山犬海), 사람 반 개 반이었다. 축구장 한 개 반 크기인 3400여 평 전시장에 개 용품 판매점들이 가득 들어찼고 개를 끌거나 안거나 이른바 개모차에 태운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통로를 따라 움직이려면 퇴근 시간 지하철역 플랫폼에서처럼 어깨가 부딪혔다. 개모차가 없는 나는 우리 개가 사람들 발에 밟힐까봐 걱정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들 남의 개에게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들이었다.
개보험 판매점을 필두로 개옷과 개밥, 개목줄, 개모차, 개집, 개장난감, 개샴푸, 배변패드와 똥봉투까지 개와 관련된 상품들이 무궁무진했다. 한의대에서 녹용과 침향으로 만들었다는 개보약도 있었고 애견신문사도 부스 한 곳을 차지했다. 개 화장실도 따로 마련돼 있었는데 사람 화장실은 전시장 밖에 있었다.
작은 토끼만 한 개부터 망아지만 한 개까지, 돌아다니는 개들도 다종다양했다. 개들은 다른 개들의 냄새를 맡느라 정신이 없었고 모두들 신이 나서 꼬리를 치켜들고 달달 흔들었다. 개 견(犬) 자에 괜히 점이 찍힌 게 아니다.
특히 작은 개들은 다들 메이크업이라도 받고 온 것 같았다. 머리통을 공 모양으로 깎은 놈, 리본을 묶거나 염색을 한 놈, 긴 털을 스트레이트펌이라도 한 듯 곱게 늘어뜨린 놈들이 즐비했다. 개버리를 어디서 얼마에 샀네 하는 소리가 들리기에 힐끗 보니 개가 버버리 무늬 옷을 입고 있었다. 그에 비하면 우리 개는 낼모레 입대하는 놈처럼 털을 바짝 깎고(개털 깎는 비용은 짧을수록 싸다) 헐벗은 몸에 덜렁 가슴줄만 찬 기초생활수급견이었다.
사실 이날 우리 개의 낡은 가슴줄을 바꿔줄 생각이었다. ‘하니스(harness)’라고 부르는 가슴줄은 목 대신 개 몸통에 둘러 개줄을 묶을 수 있는 장비다. 눈에 확 띄는 가슴줄이 있어 가격표를 보니 10만원이 넘었다. 이탈리아산으로 아주 가볍고 ‘견체공학적으로’ 디자인됐다고 했다. 몇 군데 돌아다니다 결국 튼튼하고 채우기 쉬운 국산 가슴줄을 장만했다. 그 역시 5만원에 육박했다. 사실 5만원짜리 가슴줄은 비싼 축에 끼지도 못한다. ‘개모차계의 에르메스’라는 일제 개모차는 20% 할인을 받아도 100만원이 넘었고 개가구 전문점에서는 50만원쯤 하는 개소파를 팔고 있었다.
세계 최악의 저출생 국가인 한국에서 개 키우는 인구는 크게 늘고 있다. 작년 농림축산식품부가 조사해 보니 반려동물 양육 인구는 전체 인구의 28.2%였다. 이 조사를 처음 한 2010년(17.4%)보다 약 62% 증가했다. 반려동물의 75.6%가 개였다. 작년 한 온라인 쇼핑몰에선 개모차가 유모차보다 더 많이 팔렸다고 한다. 3년 전만 해도 개모차 33%, 유모차 67%였는데 작년엔 57% 대 43%로 역전됐다.
출생률이 떨어지면서 반려동물이 느는 건 외국도 마찬가지다. 작년 합계 출생률이 1.0으로 내려간 중국은 2018년 이미 반려동물 수가 2억 마리를 넘어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대만에서는 반려동물 수가 15세 이하 아이들 수보다 더 많다고 한다.
애견용품 박람회에 온 사람들은 압도적으로 여자가 많았다. 여자끼리 또는 여자 혼자가 절반 넘는 것 같았고 부부 또는 커플로 보이는 이들이 그다음으로 많았다. 남자 혼자 온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지난달 영국 BBC는 한국 여성들을 심층 취재해 ‘아이 낳지 않는 이유’에 대한 분석을 시도했다. 경력 단절, 독박 육아, 높은 노동 강도, 비싼 집값과 사교육비 등이 이유로 꼽혔다.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에게 결혼과 출산이 얼마나 축복된 일인지 설파한다. 그걸 포기하는 세태를 못마땅해하고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젊은 세대가 외로움이 좋아서 혼자 살고 아이가 싫어 낳지 않는 게 아니다. 죽어라 일해도 삶이 나아지리란 희망이 없으니 자신이 없고 두려운 것이다. 개같이 벌어봐야 쓸 대상도, 물려줄 사람도 없다. 개같이 벌어 개한테 쓴다는 말이 우스개만은 아니라는 소리다.
조선일보 한현우 문화전문기자
03.29 떠나야 할 때를 아는 것
일본 역사에서 운명이 기구한 여주인공을 들라면 호소카와 가라샤(細川ガラシャ)를 손꼽을 수 있다. 일단 출생부터 기구하다. 그녀의 아버지는 ‘혼노지의 변’으로 주군 오다 노부나가를 죽음에 몰아넣은 배신의 대명사 아케치 미쓰히데이다. 15세에 명문 다이묘인 호소카와 다다오키(細川忠興)와 혼인하여 순탄한 삶을 살던 그녀는 출가 4년 만에 부친의 역모 사태로 집안이 한순간에 멸문지화를 당하는 비극을 겪는다.
애처가였던 남편의 결사 옹호로 간신히 연좌 처벌을 면한 그녀는 유배 중에 가톨릭을 접하고 신앙에 귀의한다. ‘가라샤’는 그녀의 세례명이다. 그녀를 둘러싼 비극은 절대 권력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과 함께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히데요시 사후 벌어진 권력 쟁탈전에서 호소카와 가문이 도쿠가와 세력에 가담하자, 이에야스의 대항마 격인 이시다 미쓰나리가 다다오키의 처자를 인질로 붙잡으려 한 것이다.
남편에게 짐이 되기 싫었던 가라샤는 도주할 길이 막히자 죽음을 택했다. 가톨릭 교리를 어기고 자살할 수 없었기에 가신에게 자기 가슴을 창으로 찌르라고 명하고, 시신도 저택과 함께 불타버렸다는 스토리가 전해진다. 배신자의 딸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탄압을 무릅쓰고 신앙을 이어가다가 결국은 정쟁의 희생양으로 맞이한 비장한 죽음이었다.
그녀는 죽기 전에 남겼다는 시조로도 유명하다. “져야 할 때를 알아야 비로소 세상의 꽃도 꽃이고 사람도 사람인 것을(散りぬべき 時知りてこそ 世の中の 花も花なれ 人も人なれ).” 호소카와 가문의 후계자이자 한국 도자기 애호가로도 알려진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총리는 환갑이 되었을 때 돌연 정계 은퇴를 선언하여 세상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은퇴 회견에서 그는 이 시조를 읊었다. 조상의 비극적 유언이 후손에게는 ‘아름다운 퇴장’을 장식하는 미사(美辭)가 된 셈이니 그 감흥이 더욱 특별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