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主國防 2024-03/
월간조선 03월 호
●기독교에 침투한 從北 세력
윤석열 퇴진 운동 하고 김일성 찬가를 부르는 교회들
⊙ 안보당국, 노조·시민 단체뿐 아니라 종교계에 北 공작원 침투 판단
⊙ “철저히 봉쇄된 北에 식량, 성경 보내는 건 불가능”(22국 총무국 소좌 출신 탈북민)
⊙ 北에 수십만 신도·가정교회·지하교회 존재 주장 이유는 ‘돈’ 되기 때문(K 목사)
⊙ 세계 각국 한인 사회 점령한 ‘위장 평화 통일 운동’

▲국내 기독교계의 대표적 친북 인사였던 한상렬 목사가 2010년 6월 불법 방북, 평양 칠골교회에서 열린 일요예배에 참가했다. 사진=연합뉴스
최재영 목사의 ‘함정 몰카’ 사건을 계기로 기독교계 일각에서는 “종북(從北) 세력이 교단에까지 침투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직 정보기관 고위 관계자는 “성경책을 들고 헌금하면 목사와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에 북한 입장에서 교회는 굉장히 침투하기 좋은 집단”이라면서 “이들에게 목사는 교회 장악 후 포교 활동을 빌미로 북한을 오가며 주체사상을 대신 전파해줄 수 있는 인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목사에게 설교를 받는 교인들은 고도의 공작(工作)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미신’ 믿으면 총살
지난 30년간 수천 명의 탈북민을 구출한 김모(某) 목사는 “현재 국내 기독교에는 최재영 목사처럼 북한의 현실을 호도하며 대남(對南) 공작기관과 같은 입장을 보이는 단체가 적지 않다”면서 “북한의 실상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 기독교의 전통적인 가치관인 ‘정직한 기도’ 활동을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게 ‘북한에 종교의 자유가 있다’는 주장이다.
최재영 목사는 지난 2020년 《한겨레》, ‘뉴스앤조이’ 등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에는 신앙의 자유가 있다”고 했다. 국가보위부 22국 총무국 소좌(소령급) 출신으로, 해외본부장직을 끝으로 2006년 탈북한 이모(某)씨는 “북한에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목회하는 것은 선전(宣傳)이자 대한민국을 기만하고 북한을 우상화(偶像化)하는 행위”라면서 “북한이 주체사상에 말려들었듯 지금 한국은 종북 세력에 말린 것 같다”고 했다.
“김일성·김정일이 주체사상이었다면, 김정은은 독재사상이다. 미사일 쏘는 현장에서 노인들이 열 살짜리 김주애에게 무릎 꿇고 인사하는 모습을 보니 소름 끼치더라. 그런 사회에 무슨 종교가 있겠나. 그들은 하나님을 찾으면 김씨 일가의 유일사상이 무너진다고 생각한다. 점(占)만 봐도 숙청당하는 곳이다.”
JM선교회 K 목사는 “북한은 종교를 미신(迷信)이자 아편이자, 악(惡)이고, 미제의 앞잡이라 가르친다. 영화 〈최학신의 일가〉, 연극 〈성황당〉 등과 같은 반(反) 종교 작품을 통해서도 꾸준히 선전 중”이라면서 “평양 반동문화사상법에는 ‘미신을 설교한 자는 총살에 처한다’고 나와 있다. 실제로 2016년 80대 노인이 총살당한 일이 있었다”고 했다.
설교 시작하자 비웃기 시작

▲지난 2010년 촬영된 평양 칠골교회 내부 모습. 사진=연합
북한에도 공식 교회가 있기는 하다. 평양에 있는 봉수교회, 칠골교회가 대표적이다. 한국 기독교계에서 각각 준공과 재건축을 지원했다. 최재영 목사는 이들 교회를 다녀간 뒤 《북녘의 교회를 가다》라는 책을 썼다.
북한 ‘우리민족끼리’는 2014년 7월 칠골교회의 개건(改建) 소식을 전하며 ‘신앙의 자유’를 강조했다. “칠골교회가 개건됨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생활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물질적 기초가 마련되고 교인들의 신앙생활이 더 잘 보장될 수 있게 됐다”라면서다.
이들 교회가 실제 예배를 위한 곳인지는 의견이 나뉘지만, 선전기관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실제 북한에 대한 선교 활동을 하고 있는 한 목사는 “이들 교회는 북한도 ‘종교의 자유가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선전기관이자 공작기관”이라면서 “실제로 신도들은 모두 대남연락소 관계자나 남조선혁명가”라고 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평양 봉수교회에서 설교를 맡았던 임모(某) 목사는 그때를 회상하며 “500여 명이 앉아 있었는데 하나같이 예수 믿는 사람들의 눈빛이 아니었다”고 했다. 당시 북한으로부터 ‘3·1 연합예배’를 같이 하자는 제안을 받았다는 그는 “주님의 인도를 받은 설교가 아니어서 내키지는 않았지만, 우리 지원으로 설립한 교회인 만큼 장로들의 설득에 따라 가게 됐다”면서 “북한 측에서는 내 부친이 6·25 때 양구전투에서 돌아가셨다는 사연도 다 알고 있더라. 전날 호텔에서 설교를 준비하는데, 문득 ‘주님께서 나 죽으라고 보내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설교 당일, 죽을 각오로 교단에 올라 첫 대지를 시작했는데, 좌중에서 비웃기 시작했다. 두 번째 대지로 넘어가자 ‘믿는 척해주자’는 표정으로 바뀌었고, 세 번째 대지에 이르자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설교가 끝나자, 한 신도가 다가와 말했다. ‘예수님은 긍휼을 베풀지 몰라도 우리 공산당은 용서가 없습니다’라고.”
북한이 공동 예배를 제안한 저의(底意)에 대해 임 목사는 “추측건대 3·1절이었던 만큼 대(對) 일본 연대와 한국으로부터 정치자금 확보 등 모종의 협력 구축을 꾀했던 것 아닌가 싶다”면서 “실제로 장로와 함께 있는데 북측 인사 하나가 꾸준히 북한 체제에 동조하라고 설득해왔다. 내 사연을 알면서도, 만경대 김일성 동상에 절하러 가자는 말도 했다. ‘그만하라’고 했더니 소리를 지르더라”고 했다. 임 목사는 그 뒤로 북한을 찾지 않았다고 한다.
中에 지하교회 조작 영상 만드는 업체 있어
22국 총무국 출신 이씨는 “평양에 온 목사들 다수는 ‘북한을 찬양한다, 이제 남한에 가서 교인들에게 북한을 선전하겠다’는 말을 하고 돌아간다”고 했다. 방북 당시 북한의 미인계(美人計) 공작에 걸려든 목사들의 얘기도 들린다. 정보기관 간부 출신 한 인사는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북한의 미인계 공작에 걸려들어 협박을 받던 재미 동포 목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도 있었다”면서 “이 같은 공작으로 북한에 자녀를 두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땐 북한을 찬양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이어 “순수 복음 전파를 위해 북한에 갔다가 억류된 여러 목사와의 차이점이 뭔지 살펴보면 될 것”이라고 했다.
북한의 기독교 박해에도 불구, 어떻게든 살아남은 기독교인도 소수 있다고 한다. 유엔에서는 1만 명으로, 모사드에서는 2000명으로 추정한다. 북한 인구(약 2500만 명) 중 0.008~0.4%에 지나지 않는다. JM선교회 K 목사는 “그럼에도 일부 한국 교회에서는 북한 내 성도가 수십만 명에 이른다고 주장한다”면서 “이들은 수백, 수천 개의 가정교회와 지하교회가 있다고도 말한다”고 했다. 최재영 목사 또한 “북한 내에 가정교회가 500여 개 있다”고 주장했다.
K 목사는 “북한에서는 1인당 5명의 감시자가 따라붙는데, 20명이 몰래 예배를 한다고 하면, 100명의 감시자가 눈을 감아야 하고, 인원이 늘어나면 결국 북한 전체가 눈을 감아줘야 하는 구조로, 이렇게 모여 예배를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봉수교회에서 설교했던 임 목사는 “자식이 부모를 고발하고, 부모가 자식을 고발하는 체제인 북한은 지하교회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지하교회의 존재를 주장하는 단체에서는 실제 예배 사진과 영상을 증거로 제시하기도 한다. 중국에서 여러 탈북민 브로커 조직을 운영 중인 K 목사는 “중국에 이 같은 위조 영상을 전문으로 만드는 조직이 따로 있다. 이를 통해 매년 거액을 벌어들인다”면서 “실제로 영상과 사진을 보면 그게 북한인지 어딘지 알 수도 없다”고 했다. 그는 이어 “올해 2월 초에도 중국 왕칭(汪淸) 백초구(百草溝) 관계자가 지하교회 조작 영상을 2개 만들어 팔아 안전국의 조사를 받았다”면서 “한국 기독교인들의 의뢰를 받아 선전용으로 만든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고 했다.
K 목사는 이어 “종교 지도자 입장에서는 수많은 사람에게 받은 헌금에 대한 ‘열매’가 있어야 한다”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지하교회를 그 열매로 삼은 것 같다”고 했다.
“물론 이들 중 순수하게 ‘진짜 있다’고 믿는 경우도 있겠지만, 수많은 목사와 선교사들은 북한에 지하교회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존재를 주장하는 이유는 ‘의로운 삶을 추구한다’는 영웅심리가 사람들을 모으고, 그게 ‘장사’가 돼서다.”
해킹 수익으로 더 이상 지원 필요 없어

▲2004년 4월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이 북한 용천 사고현장의 이재민들에게 보낼 콩 15톤을 중국 단동 화물보세 구역에서 옮기고 있다. 한국 교회와 교인의 순수한 열정을 북한이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조선DB
K 목사는 “평양과기대 또한 과학기술의 발전, 복음 전파를 위해 한국 교회와 해외 한인교회가 모금에 동참, 건립에 천문학적 비용을 지원했지만 그들은 결국 김일성 영생탑을 세웠다”면서 “북한 체제의 계략에 동조한 셈이 된 것으로, 이게 수십 년째 이어진 북한 선교활동의 쓴 ‘열매’”라고 했다. 한편 한국 기독교에 “교회 재건축을 도와달라”고 요구했던 칠골교회의 한 목사는 정작 예배시간에 ‘6·25는 북침’ ‘하나님이 이 사악한 침략자들을 (남쪽에서) 내쫓을 것’ 등의 발언을 했다는 것이 한 미국인에 의해 전해지기도 했다.
북한에 성경책을 보내는 기독교 단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해지지 않았다는 증언도 나온다. 중국 내 탈북민 브로커를 운용 중인 한 목사는 “성경 운반책으로 활동했던 평양 출신의 브로커는 ‘오늘도 성경책을 북한에다 넘긴다’면서 배낭 멘 모습을 찍어 보고했지만, 추적으로 걸리면 목숨이 위험하기 때문에 매번 강변에 다 버리고 돌아왔다고 실토했다”고 했다. 22국 총무국 출신 이모씨는 “북한에서 성경을 보다 걸리면 본인뿐만 아니라 팔촌까지 그림자도 못 본다”면서 “신의주, 함흥, 양강도에 지하교회가 있고, 장마당에서 성경책을 판다는 얘기는 종북 세력들이 국가의 세금을 뜯어먹고 살겠다는 하나의 술책(術策)”이라고 했다.
이 밖에도 쌀, 빵 등 식량을 보내는 교회도 있다. 이씨는 “북한은 이제 더 이상 한국의 지원이 필요 없다”면서 “김일성, 김정일 시대에는 비료 달라, 쌀 달라, 압박을 했지만 김정은 시대 들어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해킹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막대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보기관 관계자에 따르면 북한이 가상화폐 계정 해킹을 통해 매년 거둬들이는 수익이 3조원(몽골 1조, 중국 1조, 러시아 1조 등)에 육박한다. 이씨는 “쌀 10만 톤을 보낸다 해도 북한에선 반기지 않을뿐더러, 실제로 넘어갔는지 확인도 되지 않는다”면서 “특히 지난해 12월 김정은이 각 도당선전선동부에 내린 지시문을 보면 ‘자본주의 사상과 기독교 사상 잔재가 침입 못 하게끔 국경과 판문점 각 지대를 철저히 관리하라’는 내용이 있다. 보내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구조”라고 했다.
윤석열 퇴진 외치는 교회들
JM선교회 K 목사 또한 “북한은 현재 북한 당국에서 ‘북한 정치 이래 지금처럼 장군님의 완전한 장악이 있었던 때는 없었다’고 말할 정도로 완전히 봉쇄가 돼 있다. 분배의 투명성이 있다면 돕는 건 자유지만, 애초에 북한 지원은 성경에서 말하는 ‘강도 맞은 자가 아닌 강도를 돕는 꼴’”이라면서 “오죽하면 북한 고위층 출신 탈북민들이 ‘북한 무너질 때까지 한국 기독교회는 좀 참아달라’는 호소를 하겠느냐. 수십 명 살리려고 천만 명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는 것”이라고 했다.
22국 총무국 출신 이씨는 “종북 활동 중인 교회와 일반 교회의 구분은 간단하다”면서 “북한에 대한 개도(開導)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북한을 위해 헌금하고 찬양하자면서 현 정부에 집단 대항의 목소리를 내는 곳”이라고 했다. 일부 기독교 단체의 집단행동은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윤석열 정권의 퇴진을 위해 21개 교회와 기독교 단체가 거대 조직을 출범하기도 했다. 이들은 “도를 더해가는 이 정권의 노동 탄압과 공안 탄압 속에서 양회동 열사가 산화하는 것을 목격하고 시국기도회에 나섰다”며 “윤석열 정권이 종교·시민사회계의 거듭된 충고에도 더욱 악한 길로만 다니는 것을 보고 윤석열 정권의 총체적 거짓과 죄악에 맞서기로 했다”고 했다. 이 중에는 국가보안법폐지 국민행동, 진보당 등과 함께 윤석열 정부를 꾸준히 규탄한 이들도 있다. 출범식은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이 ‘김정은 연구모임’의 발표대회를 진행한 한 교회에서 열렸다. 이 교회는 국가보안법 폐지, 6·15 선언 이행을 주장하며 이적 옹호 행위를 해왔다는 지적을 받는 곳이다.
JM선교회 K 목사는 “이 밖에도 예배 전 찬양이 아니라 김일성 찬가를 부르는 교회들이 심심찮게 있다”면서 “모 건설사로부터 계열화돼 교회, 언론사, 선교센터, 청년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조직적으로 종북 활동 중인 곳도 있다”고 했다.
‘위장된 평화통일운동’
‘평화통일운동’을 한다는 특징도 있다. 최재영 목사 또한 본인을 ‘통일운동가’라고 소개했다. JM선교회 K 목사는 “이들은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며, 종전선언을 주장한다. 물론 전면전(全面戰)의 가능성은 낮지만 대비는 해야 한다. 북한은 핵무기를 가졌고, 김일성 때부터 한국을 주적(主敵)으로 여기며 ‘적화통일’을 꾀했다”면서 “평양 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들어서는 법상 ‘통일’이라는 용어도 모두 삭제했다고 한다. 세습체제를 유지하며 공격의 명분을 만들고 있는 것으로 그들 정책 방향과 이론에는 애초에 ‘평화’는 없었다는 걸 인지해야 한다”고 했다. K 목사는 이어 “이들이 말하는 통일은 결국 기복신앙(祈福信仰), 성공주의이자, 고지론(高地論)”이라면서 “평화는 이들이 계획한 일을 추진할 구실에 불과하다”고 했다.
지난 2020년 1월 26일 미국 현지 목사들은 한 교회연합 집회에서 “북한의 주체사상 추종자들에 의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며 “한국 교회와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기도해달라”는 ‘2020 샌프란시스코 미국교회연합 기도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날 케빈 월드롭(Kevin Waldrop) 빌리지침례교회 담임목사는 “북한 주체사상 추종자들이 헌법 개정을 통해 대한민국을 공산화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며 “오랫동안 북한은 전쟁을 체험하지 못한 한국의 젊은 세대와 교회까지 끌어들여 위장된 평화통일을 추진해왔다”고 주장했다. 월드롭 목사는 “한반도에서 전개되고 있는 이른바 ‘평화통일운동’은 공산주의 연방제로 귀결되는 통일정부를 꾸리고, 기독교 박해와 자유의 종결을 가져올 거짓 메시지”라며 “미국 교회가 한국 교회와 연합하고 협력해 기도와 격려로 도울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합법적 외피 숙주 삼아라’
간첩 사건에서도 목사들은 종종 등장한다. 지난 2015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 목사가 대표적이다. 그는 2017년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지난 2023년 알려진 ‘민노총 간첩단’에도 목사가 등장한다. 당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던 민노총 조직국장은 북한 공작금 수수 혐의 등으로 재판받던 B 목사와 수차례 접촉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보당국은 북한 공작원이 제도권 노조와 시민 단체뿐 아니라 종교계 침투도 시도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지난 30년간 방첩(防諜) 업무를 했던 전직 정보기관 간부는 “주사파나 좌파 신념을 가진 사람이 많은 성공회대 등 신학대 출신들이 대중(對中) 무역 사업과 선교 사업에 뛰어들며 중국에 나와 있는 북한 공작원을 접선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최근 북한에서는 정당·민노총·전교조 혹은 농민단체 등 ‘합법적인 외피(外皮)를 숙주(宿主) 삼아 점거하라’라는 지령을 내리는데, 교계 인물들은 주사파 출신의 노동계·농민계 인물들과 친교(親交)하며 관계를 확장하기도 한다”고 했다.
22국 총무국 출신 탈북민 또한 “교회에서 직접 북한의 지령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령을 받고 있는 단체들과 협력하며 움직이는 양상(樣相)을 띤다”면서 “북한을 찬양하는 종북 교회 단체 대부분은 자생적(自生的) 활동인 셈”이라고 했다.
또 다른 전직 정보기관 고위 관계자는 “소련 공산주의 전위기관에서 활약하던 이들이 교회를 통해 민주주의 사회에 침투하기 위해 세운 것이 미국 교회연방협의회(FCC·Federal Council of Churches)”라면서 “FCC의 좌경 활동이 미국 의회 청문회를 통해 공개된 이후 이름을 바꾼 것이 1948년 설립한 세계기독교협회(WCC·World Council of Churches)”라고 했다. 그는 이어 “이렇듯 공산주의 사상이 점령한 교회 집단들이 한국에까지 유입돼 종북 활동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세계 각국 한인 사회 점령
저서 《1만 킬로미터》에서 ‘가짜 선교단체’의 실상을 언급한 이지성 작가는 “박정희 시절 국내에서 활동하던 주사파 세력들이 대거 미국으로 건너가 NGO 등을 설립, ‘통일운동’을 시작했다. 한인 사회가 교회 중심으로 움직이다 보니 그때 기독교가 아닌 ‘통일운동’을 위해 목사 안수를 받은 이들도 많았다”면서 “한국 교회 대형 목사들은 미국 시스템을 배우고 그대로 적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검열 없이 도입했던 이단 ‘신사도 운동’처럼 통일운동도 그렇게 도입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해 4월 이스라엘 히브리대와 하이파대 특강을 위해 예루살렘을 찾았던 일화를 들려줬다.
“예루살렘의 한 한인교회에서 굉장히 유명한 목사를 만났다. 내가 북한 인권 강의를 하러 왔다고 하니 갑자기 화를 내더라. ‘북한에 대해 함부로 얘기하면 안 된다. 우리 교회에 평양과기대에서 7년 동안 교수 하다 온 장로가 있는데 북한은 좋은 나라라고 했다. 작가님 같은 시각 때문에 통일이 안 된다’고. 내가 ‘김정은은 민족의 반역자’라 하자, 바로 쫓겨났다.”
이 작가는 “세계 각국에 통일운동을 빌미로 종북 활동 중인 목사가 한둘이 아니다”라면서 “얼마 전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교단에서도 강연 초청을 받았는데 ‘여기도 최재영 목사 같은 사람이 교회를 점령하고 있다. 소수의 우파 교인들은 목소리를 못 낸다. 와서 교회를 깨워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 한인들은 대부분 교회를 중심으로 결집한다”면서 “교회를 점령했다는 건 곧 한인 사회를 점령했다는 뜻”이라고 했다.⊙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talktome@chosun.com
●김건희 함정 몰카’ 최재영의 ‘위태로운 친북관’
“김일성 부자는 인민 위해 일하다가 과로사”
⊙ 김일성은 “종교는 반동”… 그런데도 北에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 북한 주민 10명 중 1명이 ‘노예’로 사는데 ‘노동 안 할 권리’ 누린다는 궤변
⊙ “北은 유엔 회원국으로서 ‘세계인권선언’ 준수”
⊙ “수구정권 비호 아래 극우집단들이 탈북자 이용해 北 왜곡”
⊙ “남쪽 교회는 화려한 교회당 건축에 몰입… 北은 사회 참여에 적극적”
⊙ “수십 년간 北 지도자 악마화해 낭설 난무”
⊙ “남쪽 대통령들은 존경받을 만한 삶과 죽음 아냐”

▲김건희 여사에게 명품 가방을 건넨 최재영 목사. 사진=뉴스1
윤석열(尹錫悅)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金建希) 여사를 만나면서 무단 촬영을 할 수 있는 손목시계 형태 카메라로 불법 촬영하고, 해외 유명 상표인 ‘크리스찬 디올’ 파우치백을 건네는 장면을 뒤늦게 밝혀 ‘몰카 공작’을 했다는 비판을 받는 최재영씨의 ‘친북(親北)’ 행적들이 속속 제기되고 있다. 그가 그간 수차례 북한을 드나들었고, ‘북한 바로 알리기’란 핑계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이에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최재영 목사가 친북 단체를 만들고, 북한에도 종교의 자유가 있다며 북한을 선전하는 전형적인 친북 행위를 볼 때, 그의 행위의 배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1월 25일)는 입장을 밝혔다. 수도권기독교총연합회(수기총)는 “김건희 여사에 대한 최재영 목사의 몰카 영상은 4·10 총선을 위한 대남공작”(2월 2일)이라고 주장했다.
《북 바로 알기 100문 100답(1)》 공저자

▲수도권기독교총연합회(수기총)는 “김건희 여사에 대한 최재영 목사의 몰카 영상이 4·10 총선을 위한 대남공작”(2월 2일)이라고 주장했다. 사진=뉴시스
하지만 최씨가 북한에 대해 무슨 주장을 했는지, 북한을 위해 무슨 활동을 했는지는 지금껏 구체적인 내용이 알려지지 않았다. 이에 최씨가 공저자로 참여한 책의 내용을 토대로 그의 ‘대북관’을 살펴보기로 한다.
최재영씨는 2019년 7월에 출간된 《북 바로 알기 100문 100답(1)》이란 책의 공저자 중 한 명이다. 이 책은 ‘4·27시대연구원(문재인-김정은의 1차 회동인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회동을 기념하는 의미)’ 인사들이 공동으로 쓴 책이다. 4·27시대연구원 부원장이자 해당 책 공저자 중 한 명인 이정훈씨는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 6월, 국내에 잠입한 북한 공작원과 만나고 수차례 통신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현재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북 바로 알기 100문 100답(1)》의 공저자들은 그간 우리 사회에서 연구되고 언급된 북한의 모습은 ‘가짜’라고 주장한다. 조작된 북한 정보들을 주입해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보지 못한다는 식으로 강변한다. 이 책 저자들은 자신들이 ‘진짜 북한’을 알리겠다며 각종 주장을 스스럼없이 했다.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대목들이 책 전체에 걸쳐 무수히 많다. 그중 해당 책의 성격을 바로 알게 하는 부분이 바로 해당 책의 첫 장 ‘김정은 국무위원장’이다.
북한 독재 정권은 우리나라 ‘헌법’상 반국가단체다.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명시한다. 북한 독재 정권은 대한민국 영토 북반부를 참절하고, 정부를 참칭하는 ‘반국가단체’에 불과하다. 북한을 ‘국가’ 또는 정통성을 갖춘 체제로 인정하는 듯한 표현을 쓰는 것은 부적절하다.
특히 그들이 정부를 참칭하면서 내세우는 직함들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은 법·논리·상식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런데도 해당 책 저자들은 김정일을 ‘국방(國防)위원장(국토방위를 총괄하는 직)’, 김정은을 ‘국무(國務)위원장(나라의 정무를 이끄는 직)’이란 식으로 꼬박꼬박 ‘위헌적 표현’들을 붙였다.
“김정은, 자격 갖춰 권력 세습”
해당 책에서 소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란 대목을 기술한 전 민주노동당 기관지 편집장 김동원씨는 ‘김정은의 3대 세습’을 옹호했다. ‘100문 100답’ 중 첫 번째 문답에 드러나 있다. 질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어떻게 북의 후계자가 되었는지 궁금하다. 남쪽에서는 ‘3대 세습’이란 주장도 있었다”이다. 이에 대한 답은 다음과 같다.
〈김정은 위원장이 김일성 주석의 손자인 만큼 3대째 북의 최고지도자가 한집안에서 나왔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봉건 왕위 세습과 동일시할 수 있는 걸까요? (중략) 즉 “신망이 높고 뛰어난 인물이라도 선임자와 혈통이 같으면 후계자가 될 수 없다는 법도 성립되지 않고, 똑같은 논리로 제아무리 신망이 없고 무능한 인물이라도 선임자와 혈통이 같다면 무조건 후임자로 될 자격이 있다는 논리도 성립할 수 없다”는 겁니다. 결과적으로 “북한에서 말하는 수령의 후계자 승계 문제는 ‘혈통 승계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다’이다”라고 김 박사는 강조합니다. 후계자 선정 기준은 ‘인물’이지 ‘혈연’이 아니란 거죠.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수령의 후계자가 지녀야 할 자격 요건은 수령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 뛰어난 사상이론적 예지, 탁월한 영도력, 고매한 덕성”이랍니다. 김정은 위원장도 이런 자격 요건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기에 후계자가 됐다는 게 북의 입장인 거겠지요.〉
결국 해당 책의 공저자들은 처음부터 ‘북한의 3대 세습’을 옹호하고, ‘북한 핵 보유’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식의 주장들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이어지는 내용도 북한 김정은 독재 정권의 궤변을 그대로 인용해 각종 주장을 전개한다. 이게 바로 이들이 얘기한 ‘북 바로 알기’의 목적인 셈이다. 424쪽에 달하는 해당 책의 내용은 북한의 이른바 ‘조선중앙방송’ 또는 《로동신문》이 유포하는 ‘북한 미화성’ 억지 주장과 다를 게 없다. 북한 독재 정권을 합리화하는 친북 또는 종북 세력들의 그 ‘내재적 접근법(있는 그대로의 북한, 북한 입장에서 보는 북한)’이 책 전반에 걸쳐 적용되고 있다.
“北은 종교 탄압 안 해”
4·27시대연구원의 해외자문위원인 최재영씨는 책에 ‘북한의 종교’에 대해 기술했다. 그 분량은 42쪽이다. 최씨는 스스로 67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답하는 형식으로 내용을 구성했다. 최씨는 이에 대해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즉문즉답 형식으로 꾸몄다”고 했는데, 이는 ‘자문자답’이라고 해야 옳다.
이 책에서 최씨는 북한에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북에도 종교의 자유가 있나요? 남쪽은 물론 많은 서방국가 사람들은 북이 종교인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거로 아는데 사실인가요?”라고 스스로 물었다. 그러면서 이에 대해 “한마디로 북은 종교를 탄압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헌법은 물론 노동당, 내각 등도 인민들의 종교 생활 자유와 권리를 침해할 수 없고, 또 간섭할 이유나 근거도 없다”며 “국가의 어떤 정보기관이나 권력기관도 인민들이 교회에 가든 절에 가든 일절 관여하지 않으며 인민들끼리 신앙공동체를 형성하든 어떤 종교단체를 세우든 순수한 의도의 종교 활동을 결코 통제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최씨 주장과 달리 북한에는 ‘종교의 자유’가 없다. ‘자유’ 자체가 없는 체제인데, 새삼스레 ‘종교의 자유’가 있을 리 없다. 법적으로는 형식적으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제한하는 데 중점을 둔다. 북한 독재 정권은 김일성 때부터 종교를 배척했다. 김일성은 “종교는 일종의 미신” “예수를 믿든지 불교를 믿든지 그것은 본질상 다 미신을 믿는 것” “종교는 반동적이며 비과학적인 세계관” “종교는 아편과 같은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 같은 김일성의 지침에 따라 북한에서는 반(反)종교 정책을 추진했다.
1955년경부터 모든 종교단체의 활동이 중단됐다. 종교의식도 사라졌다. 김일성 유일사상 체제가 등장한 이후에는 지하 종교 활동조차 1960대 이후로는 거의 자취를 감춘 것으로 추정된다. ‘김일성 유일신교’ 외에 다른 종교가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북한 당국이 철저하게 탄압했기 때문이다. 1970년대 들어서서 이른바 ‘남북대화’가 시작되자, 북한에 마치 ‘종교의 자유’가 있는 것처럼 대외 선전을 하기 위해 ‘조선기독교도연맹’ ‘조선불교도연맹’ ‘조선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회’ 등을 만들어 활동하는 것처럼 꾸몄다. 이들 단체는 모두 북한 노동당의 외곽 단체다.
또한 북한에 ‘종교의 자유’가 없다는 사실은 이미 전 세계가 인정하는 점이다. 1998년 발표된 ‘국제종교자유법’에 따라 매년 관련 보고서를 발간하는 미국 국무부는 2001년부터 22년째 북한을 ‘종교의 자유 특별우려국(종교의 자유를 심각하게 억압)’으로 지정했다.
“北 주민도 ‘근로의 권리’ 누린다”
최재영씨는 책에서 “우리 예상과 달리 북녘 인민들은 노동할 권리도 있고 안 할 권리도 있으며, 종교 생활을 할 권리도 있고 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는 주장도 했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북한에는 ‘직업 선택의 자유’가 없다. 북한에서 중등교육을 마친 이는 군에 입대하거나, 정권 기관이 강제로 배치한 직장에서 일해야 한다. 그에 따른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도 아니다.
북한 정권은 또 강제로 ‘노동 돌격대’를 조직해 필요에 따라 각종 사회기간시설 건설 등에 동원한다. 심지어 학생들마저도 강제 노역을 시킨다. 국제연합(UN)과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북한에서는 구금시설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강제 노동이 이뤄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국제노동기구(ILO) 역시 2019년에 북한을 대표적인 현대판 노예제 사회로 꼽았다.
UN 인권 특별보고관들은 2021년 6월 북한 당국에 보낸 서한에서 “18세 미만 아동들을 대상으로 탄광 같은 유해하고 위험한 환경에서 노동을 시키는 것은 최악의 아동 노동 형태이자 국제법이 금지하는 현대판 노예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호주 인권단체 워크프리재단(WFF)은 지난해 5월 발간한, 〈2023 세계 노예 지수 보고서〉를 통해 “약 269만6000명의 북한 주민들이 ‘현대판 노예’로 살고 있다”고 고발했다. 2021년 상황을 기준으로 평가할 때, 북한의 ‘노예 지수’는 1000명당 104.6명이다. 이는 조사 대상 160개국 중 ‘최악’이다. 이 단체는 2018년에도 같은 통계를 발표하고, 동일한 내용의 지적을 한 바 있다. 북한의 ‘인권 탄압’ ‘노동 착취’ ‘신(新) 노예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셈이다. 그런데도 최재영씨는 북한 주민들이 우리처럼 ‘근로의 권리’를 누린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이다.
“北을 ‘종교 탄압 국가’로 매도”

▲평양 봉수교회 예배 모습이다. 북한 사회주의 헌법 제68조는 ‘공민은 신앙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북한이탈주민은 “성경책을 보면 처벌받는다”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사진=조선DB
최재영씨는 북한 내 종교의 자유와 관련해서 “(북한) 헌법 제68조에는 ‘공민은 신앙의 자유를 가진다. 이 권리는 종교 건물을 짓거나 종교의식 같은 것을 허용하는 것으로 보장된다. 종교를 외세를 끌어들이거나 국가사회질서를 해치는 데 리용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어 이를 토대로 인민들의 종교 활동을 확고히 보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다만, 종교 활동을 구실로 사회를 혼란시키거나 제국주의 외세를 끌어들이는 행위를 자주적인 관점에서 제한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최재영씨는 또 “북은 유엔 회원국으로서 지켜야 할 세계인권선언을 준수하는 것은 물론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도 준수하는데도, 미국 등이 앞장서서 북을 악마화하여 종교 탄압 국가로 매도하고 있는 실정” “남쪽 사회에서도 그동안 수구보수 정권의 비호 아래 극우집단들이 탈북자들을 이용해 북을 심각하게 왜곡해왔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소위 ‘헌법’에서 “종교를 외세를 끌어들이거나 국가사회질서를 해치는 데 리용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사실상 ‘종교의 자유’를 억압한다. 이에 대해 최씨는 “하지만 북의 헌법 68조 끝 부분을 자세히 보면 사실 ‘고무줄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스스로 묻고, 다음과 같이 자답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자주와 주권을 지키기 위한 단서라고 봅니다. ‘외세’ 제국주의로 규정한 미국과 일본, 그리고 보수 기독교가 팽배한 남쪽도 포함됩니다. 종교를 빙자해 불순한 의도로 체제 전복을 시도하거나 최고지도자를 모독하는 행위 등을 할 때 국가 안보에 영향을 주는 적대 행위로 간주해 철저히 단속하고 경계하려는 겁니다. 특히 북과 70년 이상 적대관계에 있는 미국이 그동안 대북첩보와 적대 행위들을 주로 기독교 선교 네트워크를 이용한 휴민트(정보원) 방식으로 시도해왔기 때문에 북이 매우 민감히 여깁니다.”
근거 없는 ‘北 가정교회 500개’ 설
최재영씨는 “북한에 500개 정도의 가정교회가 있다”고 주장했다. 가정교회는 대형 교회당이 아닌 각각의 가정에 모여 신앙생활을 한다는 뜻을 가진 표현이다. 북한 독재 정권은 자신들 체제에도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하면서 외부 인사들에게 평양 내 ‘가정교회’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이는 전형적인 기만술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최씨는 “북의 가정교회에 관심이 많았고, 북 당국이 소개한 가정교회들이 보여주기식 교회인지, 진정한 교회인지 예민하게 관찰해왔다”며 “전국(북한) 각 시도에 약 500개 정도가 실제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최씨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 북한의 선전 내용 그대로다. 북한의 대외선전용 기구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의 초청에 따라 평양 방문을 한 이들은 이와 비슷한 주장을 접했지만, 근거는 전혀 없다. 그들이 평양에서 본 ‘가정교회’가 이밖에 얼마나 더 있는지, 북한 전역에 500개가 있는지, 어느 지역에 있는지를 확인한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세월이 흘러도 그 ‘가정교회’ 수가 계속 500개에 머물고 있는 점도 불신을 자초하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최씨는 “남쪽 교회가 추구하는 외형적인 부흥과 성장은 북녘의 신자들에겐 별 의미가 없다”며 “그들의 기독교 정체성은 주체 문화와 공존하면서 민족 종교화 과정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주장했다.
최재영씨는 또 가상의 북한 기독교 신자를 치켜세우는 한편 남한 교회를 비하하는 주장도 했다. 그는 “이북의 가정교회 교인들은 형식 따위를 싫어한다. 그들은 화려하고 웅장한 교회당 건물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북한에 ‘종교의 자유’가 있다면, 왜 교회 건물이 없느냐는 질문에 대한 선제 대응으로 해석된다. 그러면서 최씨는 “남쪽 교회가 수십억짜리 화려한 교회당을 건축하는 데 몰입하고 있다면, 북의 기독교는 반대로 현실 문제와 사회 참여에 적극적”이라고 주장했다.
또 최씨는 북한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발각되면 즉결 처형을 하거나 정치범 수용소로 보낸다는 탈북자들의 증언에 대해 ‘근거 없는 모략’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그는 “자국민이 순수한 의도로 종교를 믿는다고 하는데 왜 억압을 하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소위 ‘북한 헌법’의 “종교를 외세를 끌어들이거나 국가사회질서를 해치는 데 리용할 수 없다”는 대목을 그대로 읊어댄 셈이다. 그러면서 “탈북자들의 그런 증언들은 악의에 찬 근거 없는 모략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美 사주로 南 정보기관이 날조”
최재영씨는 “북한은 불교 역시 탄압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주장도 했다. 그는 “북에선 불교 신자들에 대해 종교 탄압을 가하진 않나요?”라고 스스로 묻고, 다음과 같이 답했다.
“불교 신자들에 대한 탄압은 전혀 없습니다. 북의 인민들은 지금도 점집이나 무속인의 집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고 언제든 사찰에 가거나 불교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미국의 사주를 받는 남쪽 정보기관과 공안당국이 그동안 정권 차원의 비호 아래 북의 정치범 수용소와 종교에 대해 날조해왔고 그 결과는 지금 통제 불능 상태입니다. 공안기관에 매수된 일부 탈북자들이 조작된 증언을 바탕으로 인권 탄압과 종교 탄압 문제를 제기하고 수십 년간 북의 지도자들을 악마화하니 터무니없는 낭설들이 난무합니다. (중략) 북쪽 지역에는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와 유적지들이 많기 때문에 대중의 종교 선호도와 친밀도에 있어 타 종교에 비해 오히려 유리하다고 볼 수 있으며 불교 탄압이나 통제는 전혀 있을 수 없습니다.”
최씨는 현재 우리가 아는 북한 독재 정권의 종교 박해, 그 밖의 ‘반 인도 범죄’ 행태는 미국의 사주를 받은 ‘남쪽 정보기관’의 조작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이는 “대한민국은 미국의 부당한 지시를 따르는 괴뢰 또는 ‘반(半)식민지’”란 인식을 내포하는 주장이다. 우리의 공안기관을 외세의 사주를 받고 움직이는 ‘폭압 통치기구’란 식으로 헐뜯은 것 역시 같은 취지다. 또한 국제사회가 모두 인정하는 북한 독재 정권의 인권 탄압 행태를 ‘매수된 일부 탈북자’들의 ‘조작된 증언’에 따른 허위사실이란 식으로 강변했는데, 이에 대한 근거는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
김씨 독재 위한 ‘궤변’이 민족 전통?
최재영씨는 또 ‘주체사상’을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적인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남쪽 사회는 주체사상에 대해 많은 오해와 무지를 드러내고 있다”며 “주체사상이라면 무조건 ‘김일성 사상’이라는 선입견을 갖는데 그건 난센스”라고 주장했다. 이어서 “주체사상은 우리나라의 유구한 역사 속에 자주와 주권 의식을 지닌 민중 속에 면면히 이어져 왔으며 특히 해방 직후부터 지금까지 북녘 인민들의 사회 구조 속에 뿌리 깊이 자리 잡아 영성화된 정서이며 사상 문화”라고 했다.
중국과 소련의 하수인으로 일했던 김일성과 소련의 괴뢰 정권으로 시작한 북한 체제는 애초부터 ‘주체’와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북한 독재 정권은 이 같은 태생적 한계, 수령 유일 지배 체제의 공고화, 북한 주민을 상대로 한 지속적인 세뇌 등을 위해 ‘주체’를 강조했다.
지금 북한이 내세우는 이른바 ‘주체사상’은 과거 김일성이 연안파(친중), 소련파(친소) 등 정적을 숙청하고, 북한 통치 체제를 ‘일당 독재’에서 ‘수령 독재’로 바꾸는 과정에서 내놓은 ‘궤변’에서 유래했다. 일제 시대 김일성은 중국공산당의 지시를 받는 빨치산 활동을 하다가 소련으로 도망갔다. 소련에서는 소련공산당 명령을 수행했고, 해방 후 소련 점령군과 함께 평양에 들어왔다. 이후 그들의 낙점을 받고, ‘꼭두각시’ 노릇을 했다. 이런 김일성과 ‘주체’란 표현은 애초부터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김일성은 1958년, 소련과 중국이 서로 ‘교조주의’ ‘수정주의’란 식으로 비난하며 공산 진영의 주도권을 놓고 충돌하는 틈을 타서 ‘수령 독재 체제’를 강화했다. 이오시프 스탈린(1879~1953년) 사후 니키타 흐루쇼프(1894~1971년)가 집권한 후 소련에서는 수령의 독점적 역할을 강조했던 스탈린에 대한 격하 운동이 진행됐다. 이런 기류가 북한에 유입돼 통치 기반이 위태로워질 것을 걱정한 김일성은 “중국과 소련 외세의 영향력을 거부하고 어디까지나 우리의 관점으로 주체적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며 느닷없이 ‘주체’를 내세웠다.
1997년 귀순해 2010년 사망한 황장엽씨는 1960년대에 김일성대 총장 시절 이를 체계화해 ‘주체사상’을 만들었다. 김정일의 ‘주체사상 개인 강사’ 역할도 했다. 북한은 1972년, 이른바 사회주의 헌법에 통치 이념으로 ‘주체사상’을 명기했다. 이후 북한은 신격화된 김일성이 통치하는 사실상의 ‘신정(神政) 체제’가 됐다. 그런데 최씨는 “우리나라의 유구한 역사 속에 자주와 주권 의식을 지닌 민중 속에 면면히 이어져 왔다”고 주장했다.
“北 인민에게 반드시 종교가 필요한가”
최재영씨는 북한의 이른바 ‘주체사상’을 언급하면서 스스로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이는 북한에는 이미 주체사상이 있는데 다른 종교가 굳이 필요한가란 취지다.
“목사님! 철저한 사회주의 국가(우리 헌법상 북한은 국가가 아니라 반국가단체-기자 주)인 이북은 주체사상을 기본 원리로 삼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과 확연히 다른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이북 사회의 특성상 인민들에게 반드시 종교가 필요한가 심각하게 고민해본 적이 있습니다.”
최씨는 이에 대해 또 스스로 “바람직한 고민”이라고 답하면서 독일의 친북(親北) 여류 작가 루이제 린저의 주장을 인용했다. 린저는 독일에서 활동하던 ‘친북 음악가’ 윤이상과 친분이 깊은 인물이다. 윤이상은 독일에 있으면서 북한을 줄기차게 드나들었고, 독일 귀화 이후에는 공공연하게 ‘친북’ 활동을 지속했다. 후일 ‘이적(利敵)단체’로 규정된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의 해외본부 의장으로 활동한 대표적인 ‘친북 인사’다. 린저는 이런 윤이상과 절친했다. 1977년에는 윤이상과의 만남을 다룬 《상처받은 용》이란 책도 썼다. 린저는 윤이상의 영향을 받아 친북 성향을 갖게 됐다. 이후 북한에 들어가서 김일성과 수차례 만나고 와서, 서구 사회에 김일성과 북한 독재 정권을 미화해 소개했다.
최씨는 책에서 그 ‘루이제 린저’를 언급했다. 그는 “생전에 북을 여덟 차례나 방문했던 독일 작가 루이제 린저 여사는 ‘내가 만나본 북조선 인민들은 모두가 ‘익명의 그리스도인’들이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며 “서구 사회처럼 드높은 십자가 종탑이 세워진 교회당들은 눈에 띄지 않지만 북녘 사회에 사는 모든 인민이야말로 또 다른 이름의 그리스도인들이라는 말이지요”라고 주장했다.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란 개념은 예수의 복음을 접하지 않았지만,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비슷한 언행을 하며 사는 사람들은 기독교 신자가 되지 않더라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을 할 때 제시된 것이다.
수령이 뇌수인 ‘사회정치적 생명체론’

▲최재영씨는 ‘영생탑’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른바 ‘주체사상’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영생탑 전면부에는 “위대한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문구가 있다. 사진=조선DB
전후 맥락을 고려했을 때 최씨의 이 같은 기술은 북한에는 이미 ‘주체사상’이 있고, 북한 주민들은 그 사상에 따라 이미 여느 종교의 신자 못지않은 생활을 하고 있으니 굳이 ‘종교 활동’이 필요치 않다는 취지로 이해될 가능성이 크다.
최재영씨는 또 북한 곳곳에 설치된 소위 ‘영생탑’을 설명하면서 이른바 ‘주체사상’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참고로 앞서 언급한 영생탑 전면부에는 “위대한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문구가 있다.
그는 이와 관련해서 “사회주의 국가인 이북 사회에서 강조하는 ‘영생’과 기독교에서 말하는 ‘영생’은 분명 차이가 있지만 본질적 측면에선 일치하는 부분도 있다”며 “인간은 다른 생명체들과 달리 ‘육체적 생명’뿐 아니라 ‘사회정치적 생명’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육체적 생명’과 ‘사회정치적 생명’을 풀이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전형적인 북한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이다.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이란, 사회정치적 존재인 개개인이 당의 영도 밑에 수령을 중심으로 하여 조직사상적으로 결속하면 영생하는 생명력을 지닌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를 이룰 수 있다는 궤변이다.
북한은 ‘주체사상’의 근본 원리로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면서도 “인민 대중에 의한 혁명은 그 자체가 고도의 의식적·조직적 운동이며 심각한 계급투쟁을 동반하기 때문에 반드시 최고영도자인 ‘수령’의 지도를 받을 때만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야말로 자가당착인 셈이다.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은 1986년 7월 15일, 북한 김정일이 노동당 중앙위원회 책임 일꾼들 앞에서 내놓은 “주체사상 교양에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라는 담화에서 최초로 제시했다. 당시 김정일은 “인민 대중은 당의 영도 밑에 수령을 중심으로 조직 사상적으로 결속함으로써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를 이룰 때 역사의 자주적인 주체가 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수령’은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최고 뇌수다. ‘당’은 수령을 중심으로 조직사상적으로 공고하게 결합한 인민 대중의 중추다. ‘인민 대중’은 ‘세포’에 불과하다. 즉 입으로는 ‘주체’ 또는 ‘자주’ 운운하고, ‘주체사상’을 들먹이지만 결국 이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의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욱 평등하다”란 식의 기만술에 지나지 않는다. 북한이 이처럼 해괴한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을 강조한 이유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수령 독재’와 북한 주민 착취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다.
역대 대통령은 비하… ‘김父子’는 칭송

▲최재영씨는 김일성, 김정일에 대해 “북쪽의 두 지도자는 인민들을 위해 밤낮없이 열심히 일하다가 집무실 안에서 혹은 달리는 열차 안에서 과로사했다”고 칭송했다. 사진=뉴시스
최재영씨는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은 비하하면서 ‘민족반역자’이자 ‘전쟁범죄자’인 김일성과 ‘북한 주민 300만 명’을 굶겨 죽이고 각종 억압과 착취를 일삼았던 김정일을 가리켜 “인민을 위해 밤낮없이 일하다가 과로사했다”고 주장했다. 최씨는 스스로 “영생탑에서는 ‘위대한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문장이 적혀 있다. 그렇다면 두 지도자도 그런 차원에서 사회적 생명체로 부활해 인민들과 영원히 함께한다는 의미인가”라고 묻고선, 다음과 같이 자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두 지도자를 종교적인 차원으로 우상화하려는 문구가 결코 아닙니다. 그동안 일반 인민들이 존경하고 따르던 영웅 열사들의 죽음처럼 여긴 것입니다. 그동안 남쪽 대통령들의 말로를 보면 비참합니다. 횡령죄나 쿠데타, 반란죄 등으로 감옥을 가든지 혹은 국민들에게 쫓겨나 망명 가서 죽든지, 아니면 부하의 총에 맞아 죽는 등 결코 국민들로부터 존경받을 만한 삶과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고인이 된 북쪽의 두 지도자는 인민들을 위해 밤낮없이 열심히 일하다가 집무실 안에서 혹은 달리는 열차 안에서 과로사로 운명하지 않았습니까?”⊙
글 : 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thegood@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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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산 수출 K-9 자주포, K-2 전차, 천궁-Ⅱ에 집중… 첨단 무기라고 보긴 어려워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국방과학연구소가 개발한 한국형 전투기 KF-21. 사진=조선DB
첨단 과학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전쟁의 승패를 가늠할 바로미터가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우리 군(軍)의 무기 실전 배치 속도가 지금보다 더 빨라져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5월 출범한 국방혁신위원회는 국방혁신 4.0 계획을 수립하면서 평균 14년 이상 걸리는 현행 절차를 7년으로 대폭 단축할 것을 목표로 내세웠다. 우리 군을 신속하게 첨단 무기체계로 무장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지난해 12월 20일 국방혁신회의 3차 회의를 주재하며 “무기체계 평균 획득 기간을 대폭 단축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이어 윤 대통령은 “공정한 접근 기회, 부패 소지 방지 등을 고려한 일반적 절차를 전력(戰力) 획득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철 지난 무기를 배치하는 것과 다름없다”면서 “이는 재정 낭비일 뿐 아니라 안보 무능”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이 광폭 행보를 멈추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 군은 첨단 무기를 활용해 북한의 군사 도발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방침이다.

▲현행 무기체계 획득 절차. 소요 기획 후 사업에 착수하는 과정에만 평균 4년 2개월이 걸리고, 무기를 실전 배치하기까지 14년 이상이 걸린다.
민간 기업, 방산 사업 참여 부담스러워해
무기를 실전 배치하기까지, 이렇게까지 긴 기간이 걸리는 까닭을 먼저 살펴보자. 국방부 관계자는 “무기 하나를 도입하려면 소요 결정부터 소요 검증, 사업 타당성 조사, 시험평가까지 수많은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현행 국방전력발전업무훈령에 따르면, 무기체계 획득 절차는 소요 제기 및 결정-선행(先行)연구-소요 검증-사업추진방법 결정-연구개발-시험평가-최초 양산 및 야전운용시험-후속 양산 및 배치 순서로 이루어진다. 여기에 딸린 세부 검증 과정을 모두 더하면 그 단계는 자그마치 150~200개에 이른다. 연구개발이 아닌 기존 무기체계를 구입하는 방법 역시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무기체계 최종 수요자는 군이지만, 정작 군의 요구 사항 반영이 제한된 점도 문제다. 현행 규정상 군은 무기체계 소요 제기만 할 수 있다. 선행연구는 방위사업청이, 사업 타당성 조사는 기획재정부가 맡는다. 방산(防産) 비리 예방을 목적으로 단계마다 각기 다른 기관을 검증 주체로 둔 것이다. 이전 단계에서 검증한 항목을 각 기관이 다시금 검증하면서 실전 배치가 늦어지는 풍선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비교적 단순한 무기체계를 도입할 때나 이미 전력화된 무기체계의 성능을 개량하는 과정 역시 같은 절차를 따라야 한다.
이 때문에 첨단 무기가 알맞은 때에 보급되기 어렵고, 보급되더라도 이미 ‘철 지난 무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군 관계자는 “과도한 반복 검증 탓에 사소한 불량 문제라도 방산 비리로 낙인찍힐 우려가 크다”며 “첨단 과학기술을 갖춘 민간 기업이 방산 분야 사업 참여를 부담스러워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중복 검증 과정 개선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5월 11일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방혁신위원회 출범식에서 하태정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이에 국방 전문가들은 무기체계 획득 절차를 단축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 ▲기존 획득 절차 효율화 ▲무기체계 특성에 맞는 획득 방법 다변화 ▲민간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제도 마련 ▲방산 비리 프레임 제거 ▲무기체계 획득 거버넌스 개편 등이다.
먼저 군은 기존 무기체계 획득 절차를 효율화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소요 결정 이후 진행되는 선행연구와 소요 검증을 소요 결정 이전에 ‘통합 소요 기획’으로 묶어 추진할 방침이다. 현행 규정은 선행연구와 소요 검증을 군 외부 기관이 맡아 검증하도록 하고 있다. 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앞선 과정에서 이미 검증한 항목을 중복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사업 지연의 주된 원인이 되고 있다. 해군 중장 출신인 김판규 국방혁신위원회 민간위원은 “나날이 발전하는 첨단 과학기술을 무기체계에 신속히 적용하려면 중복 검증 과정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속한 무기체계 도입에 걸림돌이 됐던 사업 타당성 조사 역시 지금보다 유연해진다. 군은 사업 타당성 요구 시기를 연 2회에서 연 4회로 늘리고, 연구개발 사업 타당성 조사를 끝마친 경우 양산 사업 타당성 조사를 생략할 방침이다. 사업 타당성 조사에 쓰이는 사업비 규모가 작다는 것도 문제다. 사업 타당성 조사 기준은 지난 2011년 설정됐지만, 사업비는 지금까지 제자리걸음이다. 그사이 조사 대상 사업 건수는 2배 이상 증가했지만, 제한된 예산 탓에 소요 대비 약 60%만 조사가 이뤄지는 것이 현실이다. 사업 타당성 조사가 지연되면 무기 실전 배치는 자연스레 늦어질 수밖에 없다.
국방혁신위원회 민간위원인 하태정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소요 기획 후 사업에 착수하는 과정에만 평균 4년 2개월이 걸린다”면서 “선행연구와 소요 검증을 통합하고, 사업 타당성 조사 대상 사업 규모를 현행 5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상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작전운용성능 수정에 융통성 부여
무기체계 소요는 결정하기도 까다롭지만, 한 번 결정되면 수정은 불가능에 가깝다. 문제는 연구개발을 거치며 최초 소요 기준을 그대로 따르기 어렵다는 점이다. 군 관계자는 “연구개발 중간에 기준을 변경하게 되면 방산 비리를 저지르는 것은 아닌지 감사를 받기도 한다”며 “이 때문에 단계별 검증 주체들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말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군은 작전운용성능(ROC) 설정과 수정에 융통성을 부여할 방침이다. 기술발전 추세에 빠르게 반응할 수 있도록 기획 단계에서 작전운용성능을 설정하고, 연구개발 단계에서 이를 최종 검토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법제화할 예정이다.
무기의 시험평가 항목 역시 보다 유연해진다. 현행 규정은 ‘합격’ 또는 ‘불합격’만으로 무기 도입을 결정한다. 하지만 군 안팎에선 이런 이분법적 규정이 무기 도입을 지연시킨다고 비판해왔다. KUH-1 수리온 헬기 시험평가 사례가 대표적이다. 2017년 시험평가 당시 수리온 헬기가 영하 40도 이하의 안개 낀 지역에서 장시간 비행하면 기체에 얼음이 생겨 비행 기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모든 필수 성능 평가에는 합격했는데, 이 기능을 충족하지 못해 도입이 늦어졌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극한 환경이 발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평가 자체가 불가능했다. 결국 예산 수백억원을 추가로 들여 미국 오대호(五大湖) 지역으로 헬기를 가져가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군은 ‘조건부 적합’ 항목을 추가해 무기체계의 전력화 지연을 막겠다는 심산이다.
김판규 위원은 “현행 시험평가는 민간 개발 업체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김 위원은 “부수 기능 평가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거나 시험 평가가 지연되면 업체는 막대한 규모의 지체상환금을 내야 한다”면서 “첨단 과학기술 개발을 주도하는 민간 기업이 방산 분야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유무봉 국방혁신위 특별 보좌관은 “이와 같은 사례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무기체계가 핵심 성능을 충족한다면 실제로 사용해가며 성능을 향상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등도 무기 획득 절차 간소화 노력 중

▲한화디펜스가 개발한 ‘미래형 장갑차’ 레드백.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군은 무기체계 획득 절차를 기존 2가지(구매·연구개발)에서 3가지(신속 소요·시범사업 후 획득·소프트웨어 획득)를 더해 5가지로 다변화하겠다고 밝혔다. 먼저 신속 소요 획득 제도를 보자. 이 제도는 2023년 8월 신설됐다. 획득 방법과 획득까지 걸리는 시간에 따라 긴급 소요, 중기 소요, 장기 소요로 나뉜다. 무기 소요 제기부터 실전 배치까지 각각 2년 이내, 3~7년, 8~17년이 걸린다. 신속 소요 획득 제도가 적용된 주요 사업에는 F-22 성능 개량 사업, 사거리연장포(ERCA) 사업, 공중발사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 사업, 통합시각훈련장비 사업 등이 있다.
성능이 입증된 기술을 활용하는 무기체계 역시 기존 일반 획득 절차를 축소 적용할 방침이다. 한화디펜스가 개발한 장갑차 레드백이 대표적이다. 레드백은 월등한 공격 능력과 최첨단 방호설비를 갖추고 있어 ‘미래형 장갑차’로 불린다. 군 당국은 신속 소요 획득 제도를 적용해 3년 이내에 레드백을 전력화할 계획이다. 개발이 완료된 기술을 활용해 무기체계 성능을 개량하는 경우에도 신속 소요 획득 제도가 적용된다.
이와 함께 시범사업 후 획득 제도가 신설됐다. 신속 소요 획득 제도가 적용됐더라도 실제 무기 도입 시 따르는 어려움을 보완하려는 방안이다. 무기 소요 결정 이전에 군이 민간 혁신 무기를 시범 운용해보고, 활용성이 입증되면 5년 내로 이를 획득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정찰, 경계용 다족보행 로봇과 상용 저궤도 위성 기반 통신체계가 대표적이다.
미국 등 국방 강국 역시 무기 획득 절차를 줄이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은 지난 2014년 신속획득법(OTA)을 개정하며 신속 획득 절차 신설을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신속획득법은 2~5년 내에 무기체계 개발이나 개발된 무기의 실전 배치를 가능하게 한다. 2016년에는 사업 착수 이후 5년 이내 전력화가 가능한 기술을 도입하는 내용의 중간 단계 획득(MTA) 제도를 만들어 기존 체계를 보완했다. 군 관계자는 “우리 군 역시 미국의 중간 단계 획득 제도와 유사한 제도를 만들어 긴급 소요와 중기 소요 사이 공백을 메워야 한다”고 말했다.
미 육군은 무기 도입 절차에 참여하는 부서와 기관을 통폐합해 미래사령부(AFC)를 신설했다. 이를 바탕으로 무기 도입 기간을 5년에서 1년으로 줄이는 성과를 거뒀다. 미 국방부는 앞으로 무기 도입 기간을 더 줄여 인공지능(AI)과 군집 드론을 탑재한 차세대 전투기 개발부터 드론 결합 장갑차, 극초음속 유도무기 등 미래전의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를 도입할 계획이다. 영국의 국방혁신센터(IRIS), 프랑스의 국방혁신국(DIA)도 무기 도입 기간을 줄이려는 노력으로 만들어진 조직이다.
한국형 DIU 설립 추진

▲소프트웨어 획득 제도는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정책 연구를 거쳐 2024년 내 관련 법규가 개정될 예정이다. 사진=방위사업청
소프트웨어 획득 절차 역시 개편된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소프트웨어 성능을 개선하려면 일반 획득 절차를 따라야 한다. 하지만 인공지능(AI) 기술이 빠르게 발달하는 상황에서 기존 방식만으로는 외부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군 안팎에서 제기돼왔다. 군은 기존의 요구-설계-개발-시험-배치 단계를 거치는 계단식 절차를 요구부터 배치까지의 과정이 능동적으로 지속되는 구조로 바꿀 계획이다. 군은 소프트웨어 획득 절차를 올해 창설 예정인 국방 AI 센터 운영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국방 AI 센터는 국방 사업 기획, 데이터·플랫폼 구축, 체계 개발 및 신속 적용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국방 AI 관련 총괄 기관이다. 무기체계·전력지원체계·정보화체계 획득 시에도 소프트웨어 획득 절차가 적용된다.
김판규 위원은 “항공기나 함정 같은 무기체계는 한 번 도입하면 이삼십 년은 쓴다”면서 “무기체계 특성에 맞는 획득 방법이 마련됐다면, 무기 수명 주기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시스템 또한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군과 민간 기업이 협업할 수 있는 연구개발 생태계도 조성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간한 2022년도 연구개발활동조사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민간 기업의 R&D 투자금액은 89조4213억원으로 전체의 79.4%에 달했다. 같은 해 공공연구기관은 12조9186억원, 대학은 10조3061억원을 R&D 비용으로 사용했다. 사실상 민간 기업이 국내 R&D 업계를 이끄는 셈이다. 이런 사실에 비춰볼 때 민군(民軍) 공동 연구개발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윤 대통령 역시 지난해 5월 열린 국방혁신위 출범식에 참석해 “민간 과학기술 발전 속도에 맞춰 신기술이 국방 분야에 도입될 수 있도록 관련 법과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에 따라 미국의 DIU(Defense Innovation Unit·국방혁신단)를 벤치마킹한 한국형 DIU가 설립된다. 미국의 DIU는 미 국방부 연구공학차관실 산하 전문기관으로 실리콘밸리 내 첨단 IT 기업과 협업해 군이 필요한 기술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 2016년부터 현재까지 우리 돈 약 1조3000억원이 투입된 대형 프로젝트다.
현재 50개 이상의 민간 기업이 DIU와 협업하며 AI, 자율화, 사이버, 휴먼 시스템, 우주 능력 분야 기술개발에 힘쓰고 있다. 전투원 건강상태 확인용 손목시계, 소형 드론, 무인 잠수정 등이 DIU의 결과물이다.
첨단 기술이 반영된 장비가 시험 평가를 거쳐 납품되기까지 불과 1~2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점도 DIU의 장점이다. 유무봉 특보는 “한국형 DIU는 군이 현장에서 맞닥뜨린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하는 ‘가교’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방산 비리 프레임’ 제거해야”
무기체계 획득 절차 개선은 꾸준히 있었지만, 실제 결과는 정반대였다. 지난 2006년 방사청이 설립됐을 당시 129건이었던 무기체계 획득 관련 규정은 2020년 204건으로 약 58%가량 불어났다. 이에 대해 하태정 위원은 “무기 획득 절차를 투명성에만 초점을 맞춰 진행하다 보니 관련 규정이 계속해서 늘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고착화된 ‘방산 비리 프레임’을 제거해야 무기체계 획득 절차 단축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하 위원은 “방위사업감독관실(감독관실)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감독관실은 정부 합동 부패척결추진단의 ‘방위사업 비리 근절 우선 대책’의 목적으로 지난 2015년 12월 설립됐다. 비리를 근절하겠다는 설립 목표는 달성했지만, 도리어 실무자들이 경직돼 업무 효율성이 저하됐다는 게 하 위원의 생각이다. 하 위원은 “자신이 감찰 대상이 될 수 있는데 누가 책임져야 하는 업무를 맡겠느냐”면서 “가장 신속하고 혁신적으로 움직여야 할 국방 관련 실무자들이 오히려 가장 늦게 움직인다”고 지적했다.
감독관실을 폐지하면 비리가 늘어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하 위원은 “방산 관련 실무자의 윤리 의식은 이제 선진국 수준 이상”이라면서 “마치 비리 집단인 양 군 조직을 색안경 끼고 바라보는 건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지금은 투명성 때문에 군과 일을 못 하겠다는 민간 기업이 많다”며 “무기체계 연구개발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김판규 위원도 “해군 함정을 만들 때에도 첨단 기능 장착을 고민하는 대신 비리가 발생하지 않는 쪽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며 감독관실을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우리 군의 무기체계 획득 기간이 목표대로 단축된다면 경제 효과 역시 클 것이라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하 위원은 “목표를 달성한다면 한 해 평균 약 1조8000억원의 국내 방산 수요 창출과 4조8000억원의 산업생산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2023년도 방위력개선비(무기체계 획득에 필요한 비용)가 약 16조9000억원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매우 의미 있는 규모”라고 설명했다.
방위사업법 개정… 각군 소요 결정 가능
국방혁신위가 지난해 출범한 뒤 의미 있는 변화가 생기고 있다. 지난해 8월 신속 소요 획득 제도가 도입됐고, 지난 2월 6일에는 ‘방위사업법’이 개정 시행됐다. 육·해·공군 등 각군이 일부 무기체계에 대해 소요를 직접 결정해 신속 도입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이 법에 따라 사업 규모가 크지 않고 각군에서 단독으로 필요한 무기체계에 대해선 각군 총장이 소요를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극도의 보안이 요구되는 사업은 국방부가 결정해 기재부 협의를 거쳐 사업 타당성 조사를 면제받는다.
또한 방위사업청은 지난해 7월 ‘방위력개선사업 협상에 의한 계약체결기준’을 개정했다. 개정안에 따라 신산업 분야의 우수 기술력을 갖춘 기업의 방산 사업 참여가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군의 신속 시범 사업에 과제를 제안해 채택되고 해당 과제의 수행기관으로 참여한 방산기업은 제안서 평가 때 가점 1점을 받는다. 또 신속 시범 사업에 제안한 과제 중 군사적 활용성이 인정돼 군이 후속 구매사업을 추진하면, 해당 과제를 수행한 기업이 얻는 기종 결정 종합평가 가점이 현행 1점에서 3점으로 늘어난다.
국방혁신위 측은 이런 변화를 반기면서도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선 무기체계 획득 거버넌스를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방부 주도로 무기체계 획득 절차가 진행된다면 보다 신속하고 효율적인 의사 결정이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하태정 위원은 “이를 위해 수많은 법률이 개정돼야 하고, 여러 이해당사자를 설득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면서도 “미국·영국·프랑스·이스라엘 같은 국방 강국처럼 우리 역시 무기체계 획득체계 거버넌스를 일원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韓 수출 무기, 첨단이라고 보기 어려워”

▲신원식(오른쪽 세 번째) 국방부 장관이 2월 5일(현지시각)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세계방산전시회(WDS)에 참여했다. 사진=국방부
국방부와 방산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방위산업 수출 규모는 약 140억 달러(약 18조6000억원)로, 2년 연속 방산 수출국 세계 톱 10에 이름을 올렸다. 당초 목표였던 200억 달러에 미치지 못했고, 전년도 실적인 173억 달러보다 줄어든 규모지만, 질적으로는 성과가 있었다는 평가다. 방산 수출 대상국이 2022년 폴란드 등 4개국에서 지난해 아랍에미리트(UAE), 핀란드, 노르웨이 등 총 12개국으로 늘었고, 수출 무기체계도 6개에서 12개로 다변화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아직 샴페인을 터뜨리긴 이르다”고 입을 모았다. 하태정 위원은 “우리가 수출한 무기체계를 들여다보면 주로 K-9 자주포, K-2 전차, 천궁-Ⅱ에 집중돼 있다”면서 “이들 무기를 첨단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꾸준히 성능 개량이 이뤄지고 있지만, K-9 자주포는 1999년, K-2 전차는 2014년, 천궁-Ⅱ는 2020년 각각 실전 배치됐다. 하 위원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외부 충격으로 생긴 틈새시장에서 ‘가성비’로 승부를 본 것”이라며 “성과를 평가절하해선 안 되겠지만, 우리가 첨단 무기체계 글로벌 경쟁력을 가졌는지는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판규 위원 역시 “한국은 북한이라는 위협 때문에 다른 국가보다 준비된 상태였다”며 “오늘의 성공에 취하지 말고, 우리 군의 첨단 무기체계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글 : 김세윤 월간조선 기자 gasout@chosun.com
●민간 법원에 軍 관련 재판 맡겨도 되나?
“對北 심리전을 왜 한국 인터넷에서 하죠?” 묻는 판사들
⊙ 성범죄 전담 판사가 군사기밀보호법 재판… 공안사건에 사회봉사명령
⊙ 文 정권 시절 민주당·민변 등 요구로 고등군사법원 폐지, 성폭력·사망사건 등 민간 법원 이양
⊙ 군사 업무 특수성 이해도 낮은 판사들… 비합리적 판결 우려
⊙ 이 상태에서 전쟁 난다면… 戰時 사법 체계 붕괴 가능성도 있어

▲지난 2022년 7월 1일 고등군사법원이 폐지됐다. 군대 내 성폭력, 사망사건 등의 사건은 민간 법원에 이양됐다. 사진은 고등군사법원 대법정 내부. 사진=뉴시스
강제추행, 성매매 알선, 성폭력, 공연음란. 지난 1월 17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한 법정 앞 ‘오늘의 공판 안내’에 빼곡히 들어찬 사건명들이다. 대기자 약 50명 중 대부분이 성(性) 관련 피고인이었다. 이 중 어울리지 않는 사건명이 하나 있었다.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 전직 대령 A씨는 지난 2022년부터 성범죄 전담 재판부에서 군사기밀보호법 위반(탐지·수집) 항소심 재판을 받았다. 그리고 이날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160시간의 사회봉사명령을 선고받았다.
이명현 법무법인 와이비엘 변호사는 “공안(公安)사건에서, 그것도 무죄를 다투는 사안에서 사회봉사명령은 어불성설”이라면서 “피고인을 완전히 성범죄자 취급한 것”이라고 했다. 형법 제62조의 2 제1항은 “형의 집행을 유예하는 경우에는 보호관찰을 받을 것을 명하거나 사회봉사 또는 수강을 명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다만 법원 지침에 따르면 공안 범죄자는 사회봉사명령에 ‘부적합한’ 대상이다. 통상 음주운전, 가정폭력, 마약범죄, 성범죄자들에게 내린다.
“태극연습이 뭔가요”
민간 법원의 군(軍) 관련 재판에 대한 ‘부실론’이 속속 제기되고 있다. 군 조직과 시스템에 밝지 않아 비합리적인 판결이 나올 거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군판사 출신인 김기환 충남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미필(未畢)이거나 여성 판사가 군 관련 사건을 맡는 경우도 있는데, 이땐 이해도가 현저히 낮은 게 사실”이라면서 “부족의 정도는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집행유예 시 연금 수령이 불가하다는 점 등 기본적 사항을 모르는 이도 상당수”라고 했다.
군 법무관 출신인 모(某) 변호사는 “한 지방법원에서 전직 군 간부의 재판을 받았는데, 여성 판사가 ‘나는 군대에 다녀오지 않아서 잘 모르니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고 하더라. 이를테면 ‘태극연습 훈련 기간 동안만 비밀인 사항’이라고 변호하면 ‘태극연습’이 뭐냐고 묻는 식”이라면서 “용어가 생소함에도 알려고 하지 않는 판사들도 많은데, 그에 비하면 반가운 수준”이라고 했다.
A 대령의 선고일 당일 방청석에 앉아 다음 순서를 대기하던 성 관련 사건 피고인들은 A 대령의 선고 과정을 모두 지켜봤다. 김 교수는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은 특히 특수한 사건이고, 재판 과정에서의 보안도 중요하다”면서 “전문 재판부에 배당됐어야 할 사안을 성범죄 전담 재판부에서 맡았다는 건 문제가 있다”고 했다.
재판부에 국방보안업무 훈령 제출
검·경·군 병무비리 합동수사본부 팀장, 방위사업청 법무실장을 역임한 이명현 변호사는 25년간 군 법무관으로 복무한 군사법 전문가다. 군내 군사기밀보호법 해설과 보안수칙 등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A 대령의 변호인인 그는 “재판부는 군사기밀에도 완전히 무지(無知)했다”면서 “오죽하면 재판부에 ‘국방보안업무 훈령’을 증거서류로 제출했을 정도”라고 했다. 이 변호사에 따르면 재판부에서 ‘기밀’이라 판단한 자료는 2001~2013년 생성돼 1년 뒤, 그러니까 10~20년 전 이미 기밀 해제가 된 문서다. 이 중에는 A 대령이 현직 시절 직접 작성한 문서도 있다. 이는 애초 ‘수집·탐지’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변호사는 “군사기밀보호법상 군사기밀은 형식적, 실질적으로 모두 군사기밀이어야 한다”면서 “1급, 2급과 같은 급수와 해제 및 보호 기간의 표기 등 형식과 그 내용이 실제로 기밀에 해당해야 하지만, A 대령이 탐지·수집했다는 기밀은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검찰 측에서는 1심 때부터 A 대령이 탐지·수집했다는 기밀 내용을 증거로 제시하지 않다가, 2심 첫 번째 재판인 2023년 5월 31일로부터 약 6개월 후인 같은 해 11월 10일 증거를 출력해 왔다고 한다. 이 변호사는 “제시한 증거가 판시처럼 군사기밀에 해당한다면, 무단으로 이를 출력해 법정에 제시한 검사 측 또한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이 된다”면서 “군사기밀보호법상 군사기밀을 사본(寫本)화할 때 군사기밀 기록부에다 사본 번호와 시기, 폐기 날짜 등을 명기해야 하지만 그런 절차도 없었다”고 했다.
그는 이어 “2023년 11월 10일 처음 증거를 본 후, 본격적으로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려보자 싶어 다음 재판인 같은 해 12월 6일 증인 신청을 했지만, 재판부는 ‘이미 기회를 많이 줬다’며 기각했다”면서 “한 번도 제대로 된 재판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A 대령 측은 최후 변론에서 “재판다운 재판을 받게 해달라”고 짧게 말했다. 판사는 이에 “무엇이 피고인에게 도움이 되는 재판인지 생각해보면 된다”고 했다. 지난 1월 18일 작성된 2심 판결문 중 ‘양형의 이유’에는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있는 점 등은 피고인에게 불리한 정상(情狀)”이라는 구절이 있다. 이 변호사는 “공안사건에 부적합한 사회봉사명령은 결국 괘씸죄의 적용이었던 것”이라고 했다. A 대령 측은 상고(上告)할 예정이다. 이 변호사는 “대법에서는 말이 통하길 바란다”고 했다.
대책 없이 폐지한 고등군사법원

▲고등군사법원이 폐지된 것은 2021년 5월 이예람 공군 중사가 성추행을 당한 후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 사진=연합뉴스
군(軍)에서 발생하는 범죄는 크게 두 가지다. 군내 성범죄 및 사망사건 등의 ‘비순정(非純正)’ 범죄와 군형법 위반, 군사기밀 유출 등의 ‘순정’ 범죄다. 지난 2022년 7월 1일 고등(항소심)군사법원이 폐지된 이후 비순정 범죄의 경우 1심부터 각 지방 민간 법원에서 수사와 재판을 담당한다. 이 밖의 사건은 1심을 각 지방 군사법원에서 재판하되 항소심은 서울고등법원이 처리한다.
고등군사법원의 폐지는 2021년 5월 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의 극단적 선택 사건이 계기가 됐다. 당시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과 민변 등 시민단체에서는 “군 당국의 수사와 재판을 더 이상 믿을 수 없다”며 군사법원의 축소·폐지를 주장했다. 이 결과 같은 해 8월 군사법원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고등군사법원 폐지 및 군대 내 성폭력, 사망사건 등의 민간 법원 이양(移讓)을 골자로 한다. 군대 내에서 사건 수사·기소·재판이 모두 이뤄지던 체제에서는 사건 은폐 등 조직적인 2차 가해를 막기 어렵고, 대다수(2020년 6월 기준, 87.3%) 군 형사사건이 교통사고·폭행 등 군의 특수성과 무관한 범죄라는 점이 군사법원 사건의 민간 법원 이양 근거로 제시됐다.
A 대령의 경우 전역했기 때문에 1심부터 민간 법원에서 받았지만, 민간 법원 내 군 전문 재판부의 부재(不在) 등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고등군사법원이 폐지된 데 따른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이명현 변호사는 “고등법원에서 2심 재판을 받는 현역들 또한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2013년 모든 성폭력 범죄에 대한 친고죄(親告罪) 규정 삭제 후 성범죄 재판율이 크게 증가해 자연히 성범죄 재판부도 늘어났고, 이 가운데 군사사건이 넘어오면 ‘뺑뺑이’ 식으로 배당을 하다 보니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이라고 했다.
이 변호사는 이어 “고등군사법원 폐지 당시 법원 내 군사부(部)를 설치하고, 군 법무관 출신 변호사를 판사로 임관하기로 했지만, 모두 지켜지지 않았다”면서 “고등법원 내 군사전담재판부가 있지만, 기존 성폭력전담재판부였던 형사4부를 군사전담부로 중복 지정한 것으로, 이 또한 제대로 기능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A 대령은 “군사법원의 폐해를 개선하고, 합리성을 더한다는 방책이었지만, 대책 없는 민간 이양으로 순정 범죄 재판자들이 전에 없던 고초를 겪는 등 비합리성도 동반됐다”고 했다.
이 상태서 전쟁 벌어진다면…
군사법원의 축소·폐지는 민주당의 오래된 공약이었다.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는 항소심 군사법원뿐만 아니라 줄곧 평시(平時) 군사법원의 폐지 등도 공약으로 내걸곤 했다. 정의당도 평시 군사법원 폐지 등 군 사법개혁에 있어선 대체로 민주당과 뜻을 함께해 왔다.
김기환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군사법원 폐지 시 가장 큰 문제는 전시(戰時) 때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북한과 대치 상황에서 전쟁은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는데, 이때 군사법원으로의 신속한 전환이 어려울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전시 군사법원의 역할은 상당히 중요하다. 곧장 적군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항명하거나, 근무 이탈을 하면 곧장 형사처벌을 해야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데, 이런 군사체계가 없다면 지휘관 입장에서는 전쟁을 치르기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평시 군사법원 폐지는 전쟁 발발 시 군사법원으로의 전환을 전제로 논의되고 있지만,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북한 특수부대가 성공적으로 작전을 펼치면 교통이 마비돼 군사법원 체제로의 전환이 조속히 이뤄지지 않을 수 있어 여러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평시가 오래 지속돼 전시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다 보니 전시 상황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 이는 전투력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비순정 범죄의 민간 이양에 대해 “전시에 오히려 성범죄나 절도, 사기, 교통사고 범죄가 더 많이 벌어진다. 평시 군사법원을 잘 가꿔놔야 하는 이유”라고 했다.
김 교수는 또 “법원도 문제지만, 군사범죄의 약 40%를 민간에서 수사 중인 현 시스템 또한 전시 군사법원으로의 신속한 전환을 막을 수 있다”면서 “다들 이 점을 너무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고도 했다. 그는 “민주당과 시민단체에서 고등군사법원의 민간 이양을 추진하다, 군 측에서 문제를 제기하자, 법 통과 1~2주 전 ‘일부 범죄는 수사 단계에서부터 민간이 담당토록 한다’는 타협안을 냈고, 충분한 논의 없이 입법 후 통과되다 보니 수사 단계에서도 많은 혼선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서 “해외에서도 민간에서 군 범죄를 수사하는 것에 대한 연구가 충분히 되지 않았다”고 했다.
군 의사 결정을 협의체에서?
군사법원 축소가 이뤄지는 사이 민간 법원에서는 ‘사법 개혁’이 이뤄졌다. 문재인 정권과 김명수 대법원장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당시 법원행정처가 사법 행정권을 남용했다”며 꺼내 든 ‘사법 농단’ 의혹이 계기가 됐다. 이른바 ‘사법 행정권 남용 사건’ 이후 실력 있는 판사들은 주변부로 밀려났고, 그 자리를 소위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나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들이 차지했다고 알려졌다. ‘세월호 사찰’ 등의 혐의를 입은 전직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현 국군방첩사령부) 간부들도 대부분 김명수 대법원장이 임명한 진보 성향 판사에게 재판을 받았다고 한다.
지난 2023년 2월 ‘세월호 사찰’ 혐의로 법정구속됐던 기무사 전직 대령 B씨는 “2022년 11월 항소심 재판 당시 인권법연구회 출신인 여성 재판장이 증인에게 ‘정보융합실의 결정이 기무사령관, 정보융합실장, 각 처장들까지 대여섯 명의 협의체 논의에 따른 것이냐’고 질문했는데, 협의체는 좌파들이 노조 활동할 때 쓰는 용어다. 군에서 의사 결정을 어디 협의체를 열어서 하나? 그 질문을 듣는 순간 남은 판결도 어렵겠구나, 생각했다”고 했다. B 대령은 이어 “재판에서 가장 쟁점인 불법사찰이 있었는가는 따지지도 않았다”면서 “실제 범행 여부에 대한 시비를 가리지 않고 불법사찰한 것으로 전제하고 판결했다”고 했다.
“對北 심리전을 왜 한국 인터넷에서 하죠?”
군사기밀과 사찰·감청 등의 사안은 군사법원에서조차 난해한 사건으로 분류된다. 특히 북한과 대치 상황에서 극비리에 추진하는 군 정보기관 업무 특수성에 무지한 건 민간뿐 아니라 군 수사기관도 피차일반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문재인 정권 당시 공작금 횡령 등의 혐의로 군사법원 재판을 받았던 정보사 간부의 군 검사 출신 변호인 C씨는 “대위였던 기소 담당 군 검사 포함 당시 재판부에서는 공작(工作)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전혀 없었다”면서 “예컨대 둘이서 커피숍을 갔는데 음료 세 잔을 시켰기 때문에 횡령이라는 식이었다. 이런 사소한 사건이 법정에 가면서 보안사항도 여럿 유출됐다”고 했다.
‘6·25는 남침(南侵)’ ‘천안함은 북한 소행’이라는 댓글을 달아 문재인 정권 당시 재판을 받았던 전직 기무사 대령 D씨는 “당시 군사법원 재판장에게 ‘대북(對北) 심리전 차원이었다’고 하자 ‘대북 심리전을 왜 한국 인터넷에서 하느냐’고 묻더라”면서 “인터넷 공간이 한국, 북한이 따로 있는 게 아닌데 참으로 이해도가 낮구나 싶었다”고 했다.
D 대령은 2013년 감청(監聽) 장비 도입과 관련 현재 서울고등법원에서 2심 재판 중이기도 하다. 그는 “감청사건 당시 첫 조사만 군검이 맡았고 그 외 조사는 모두 민간(중앙지검)에서 했는데, 기본적으로 군 통신 분야에 전문성이 없다 보니 해명과 설명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면서 “어려운 용어가 나오면 짜증을 내기도 했다”고 했다.
그는 “검찰은 민간인들을 무작위로 감청할 목적이었다고 했지만, 이는 최초 인터넷에 걸리는 로그(log)까지 모두 감청했다고 봤기 때문”이라면서 “가령 아날로그 라디오로 치면, 특정 채널을 틀기 위해서는 주파수를 돌리며 맞춰야 하는데 이때 걸리는 주파수 모두 감청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했다. D 대령은 이어 “무엇보다 감청 장비 도입은 당시 국방중기계획에 포함된 사항으로, 전임자들이 추진하던 것을 인수인계받은 것”이라면서 “상명하복(上命下服) 조직에서 이를 수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장비 성능에 일부 결함이 있는 등 문제점이 발견돼 2014년 2월 시점, 참모장 주관의 기획관리위원회 회의에 안건으로 상정, 문책을 무릅쓰고 완전히 중단시켰다. 이렇듯 현재 재판받는 인원들은 앞서 장비를 도입·가동시켰던 윗선들이 아닌 사실상 중단시킨 이들”이라고 했다.
군 특수성 위한 사법체계 구축 필요
감청 장비가 가동되던 시점 D 대령은 6개월간 제주도 발령 중이었다고 한다. 그는 이어 “부재중일 때 일어난 일의 책임까지 모두 내게 와 있기에 ‘제주 발령 상태였다’고 하자 검사가 ‘가 있었더라도 이곳 일까지 전담한 것 아니냐’고 했다. 조직 특성을 너무 모른다고 느꼈다”면서 “한편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문 후보 지지선언을 했던 기무사 ‘22인회’ 중에 감청에 관여한 인물이 있지만, 그는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고 했다.
D 대령은 “70년간 전쟁하지 않는 군대로 있다 보니 특수병과[군의, 법무, 군종(軍宗)]가 존재 목적에 부합하도록 운영되지 않고 있다”면서 “민간이든 군사법원이든 군 특수성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법체계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그는 또 “법정에 군내 관련 업무에 정통한 배심원을 두는 방안 등의 보완책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기환 교수는 “전시에는 민간 법원과 사법부도 해야 할 역할이 굉장히 많다. 민간 판사 수가 약 3000명이고, 군사법원 판사들은 약 30~50명으로 100분의 1 수준”이라면서 “말인즉슨 전쟁이 나면 군사재판에 민간 판사들이 참여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해야 전시 군사 시스템이 돌아가는 구조”라고 했다. 그는 이어 “때문에 평시 민간 판사들이 군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체제 마련이 절실하다”면서 “군과 민간 사법부와의 교류 강화 차원에서 민간 판사들과 검사들의 참여도가 낮아 형해화(形骸化)된 정기 충무훈련 등을 좀 더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하며, 실현 가능성은 낮지만 군 부대 재판에 민간 판사들이 참여하는 방식 등 인적 교류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했다.⊙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talktome@chosun.com
월간조선 03월 호
●첨단 기술, 이렇게 유출된다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사건 33건 중 실형은 단 한 건”(2021년 1심)
⊙ “2018~2022년 산업 기술의 해외 유출 93건 적발… 한 달에 1.6개씩 유출된 셈”
⊙ “제품 하나에 들어가는 설명서 70~80페이지, 유출시켰다면 고의일 수밖에”
⊙ “금속 탐지기 옆 소지품 레일에 가져온 USB 끼워 넣어도 모를 것”
⊙ 美 경제스파이법(EEA), 영업 비밀 절도범의 재산이나 이익 몰수 가능

“출근할 때 휴대폰에 (보안) 애플리케이션을 깔거나 스티커를 카메라 렌즈에 부착해요. 이 스티커를 한번 떼면 휴대폰에 자국이 남아요. 이걸 뗀 흔적이 있어도 저절로 떨어졌다고 하면 스티커를 잃어버리지 않는 이상 별다른 의심 없이 보내줘요. 물론 우리도 입사할 때 기술 같은 걸 유출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협력업체나 청소하시는 분들도 서명을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스티커를 두 장 준비하는 식으로 보안을 뚫을 수 있을 거예요.”
국내 2차전지 개발·제조사에서 기술직으로 근무하는 A씨는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한 자사(自社) 보안 절차에 허점이 있냐는 물음에 이같이 대답했다. 보안 수칙을 위반할 경우, 어떤 제재가 가해지냐는 물음엔 “다른 사원의 경우, 별다른 중징계 없이 넘어가는 걸 봤다”고 했다. 이 회사의 전직 임원급 인사는 재작년 재직 당시 회사의 영업비밀을 촬영·유출한 혐의를 받아 현재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정보당국은 이 사건에 대해 ‘기업 측이 직접 고소했다’고 설명했다.
국가정보원이 지난 1월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 사이 반도체, 디스플레이, 2차전지 분야의 기술 유출 사건이 급증했다. 2013~2017년 국정원이 적발한 이 분야 기술 유출 사건 수는 32건으로, 전체 기술 유출 사건 104건 가운데 23%를 차지했다. 그런데 2018~2023년 7월 들어서는 104건 가운데 60건으로 늘어 58%에 달하게 됐다. 그중에서도 반도체 기술 유출 사건은 2013~2017년 7건이었던 게 2018~2023년 7월 사이 30건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 기업들은 기술 유출을 막을 대책에 대해 “개별 기업 차원의 대책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최근 워낙 그런 일(기술 유출 사건)들이 많았다”며 “기술 유출에 대해선 민감해서 일절 얘기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양향자 의원실에서 제공한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반도체 업종 산업 기술 유출 건수가 역대 최다(13건)를 기록했다.
산기보호법 위반 사건, 무죄·집유 87.8%

▲삼성전자 반도체 기술 유출 흐름도.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에서 근무한 전직 임원이 반도체 공정 배치도 등의 영업비밀을 불법으로 사용했다가 적발됐다. 그래픽=조선DB
― 사건 발생을 계기로 보안 조치가 강화됐습니까.
“반도체가 워낙 보안이 중요한 업종이기 때문에 기술 유출 사건을 계기로 (보안 강화를) 했다기보다는 지속적으로 담당 부서를 두고 기술적, 시스템적으로 (보안 조치를) 발전시켜나가고 있습니다.”
지난해 모(某) 방위 산업 공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에도 휴대전화 카메라 렌즈를 가리는 스티커를 부착해야 했다.
― 휴대폰 카메라 렌즈에 스티커를 부착하는 것 외에 다른 조치도 하고 있습니까.
“스티커는 당연히 하는 거였고요, 사업장 입문(入門) 시, 스마트폰의 카메라 기능이 제한되는 등의 방식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舊 전국경제인연합회) 측에 서면 질의서를 보내 ‘기술 유출 사건이 급증하는 데 대해 기업들은 어떻게 보는지’를 물었다.
한경협 측은 “기술 유출의 수법 등이 점점 고도화되고 있다”며 “첨단 기술이 경제력이라는 기술 패권주의가 확산되면서 해외로의 기술 유출을 막고 첨단 산업을 엄격히 보호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답했다. 국정원도 “경쟁국 기술 탈취가 가장 심각한 분야”라고 설명했다.
“중소기업은 보안 담당자 없는 경우 많아”
― 대비책은 마련했나.
“기업 차원에서 문서 보안, 출입 보안 등 다양한 보안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수사권이 없는 개별 기업 차원의 대책으로는 한계가 있다.”
― 국가는 기술 유출자에 대한 법적 제재를 제대로 하고 있다고 보나.
“2021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처리된 1심 형사 사건은 총 33건이다. 이를 검토한 결과, 무죄(60.6%) 또는 집행유예(27.2%)가 87.8%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재산형(刑)과 유기징역(실형)은 각각 2건으로, 6.1%에 그쳤다.”
― 적발되는 계기는 주로 기업에서 먼저 알아채는 건가.
“자체적으로 보안 규정과 보안 부서를 통해 잡아내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 협력업체 등 중소기업의 경우, 기술 유출 대응이 더욱 어려울 듯하다.
“중소기업은 보안 담당자가 없는 경우가 많아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는 사례도 많다. 중소기업의 기술 유출은 상대적으로 해외 유출보다는 국내 경쟁 기업으로의 유출이 많은 편이다.”
― 최근 한경협에서 가장 주시하는 기술 유출 분야는 무엇인가.
“반도체, 2차전지, 자율주행 자동차 등 주력 산업을 중심으로 기술의 해외 유출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산업 기술의 해외 유출은 93건 적발됐는데, 이는 한 달에 1.6개씩 유출된 셈이다.”
“회사에서 배운 기술이 내 것과 명확히 구분되나”
― 기업들이 가장 주목한 기술 유출 사건은 무엇인가.
“가장 큰 충격을 준 기술 유출 사건은 삼성전자 공장의 설계도면, 공정배치도 등을 빼돌린 사건이다. 삼성전자에서 18년, 하이닉스에서 10년간 임원으로 재직한 반도체 분야 전문가가 중국에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복제판을 지으려다 지난해 검찰에 구속 기소됐다.”
이는 2019년 있었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복제 시도 사건’이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에서 근무한 전직 임원이 대만 전자기기 생산 기업 ‘폭스콘’의 중국 반도체 공장 건설을 대행하면서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정배치도 등의 영업비밀을 불법으로 사용했다는 혐의를 받아 지난해 6월 기소됐다. 현재 1심 공판이 진행 중이다.
― 기술 유출은 주로 어떻게 이뤄지나.
“대기업의 경우, 기술 개발에 참여한 임직원들이 퇴사하면서 중국 등 경쟁국 기업으로 기술을 몰래 빼돌리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런데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 B씨는 “회사에서 배운 기술이 내 것과 명확히 구분되느냐”고 반문하며 “직무상 습득한 노하우로 이직하는 게 그렇게까지 비난받을 일인지, 가장(家長)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이에 대해 A씨는 “기술 유출의 고의는 명확하게 알 수밖에 없다”며 이렇게 반박했다.
“제품 하나에 들어가는 설명이 70~80페이지에 달해요. 거기에 적힌 숫자 하나만 달라도 조성비가 달라지는데요, 용접하고 자르는 것도 다 정해진 조건하에서 공정이 들어가는데, 공정 조건 하나하나를 다 외우는 건 불가능하죠. 이건 저희뿐만 아니라 모든 산업이 다 그래요. 도면을 찍어가거나 유출하지 않는 이상 머리로 외워갈 순 없다는 거예요.”
대부분 초범, 화이트 칼라 범죄
사실 마음만 먹으면 기술 유출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게 재직자들의 평가다. 모(某) 전자제품 제조사의 디스플레이 분야 연구원 C씨는 “회사에 들어갈 때 금속 탐지기를 통과하는데, 휴대폰과 같은 금속 소지품을 잠시 올려놓는 레일에 USB 등 밖에서 가져온 저장 장치를 살짝 끼워 넣고 통과해도 모를 것 같았다”고 했다.
재직자들의 말대로면 기술 유출 사건은 구체적인 고의와 동기를 갖고 자료를 빼돌리려 마음먹고 실행에 옮긴 거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법적 처벌의 강도는 세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2019년 《월간조선》 2월호에 보도된 ‘삼성디스플레이 엣지패널 기술 유출 사건’의 경우도 2021년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가 지난해 7월 상고심에서 징역 3년이 확정됐다. 해당 보도에 따르면 당시 삼성디스플레이의 추산 피해액은 6조6000억원이다. 이 사건은 삼성디스플레이의 협력업체 ‘톱텍’사(社)가 삼성 스마트폰 시리즈에 사용되는 ‘3D 라미네이션(휴대폰 모서리를 곡면 형태로 구현하는 기술)’ 관련 설비 사양서 및 패널 도면 등의 기술 자료를 중국 업체에 유출시킨 사건이다.
2016년엔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조선업체의 협력사에서 근무하던 인도인 직원이 해당 기술을 개인용 PC에 담아 인도로 보내는 일이 있었다. 국가핵심기술은 ‘산업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정된 ‘국민 경제와 국가 안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술’이다. 하지만 재판에선 ‘부정한 이익을 얻을 목적이 없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받았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모든 형사 사건은 유죄 입증 과정에서 아무리 전후 맥락이 이어져도 한 곳의 논리적 고리라도 끊어지면 무죄가 된다”고 했다.
법무연수원이 2018년 발행한 《제33집 국외훈련검사 연구논문집》에 따르면 “영업비밀 침해 행위에 대해 실형이 선고되어 확정된 예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고 한다. 그 이유에 대해 논문은 이렇게 설명한다.
“대부분 영업비밀 침해사범은 초범인 점이 많고, 화이트 칼라 범죄인 점, 게다가 법원 입장에서는 객관적 손해 액수 산정이 어려워 실제 손해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지 못하는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된 것으로 보인다.”
美, 피해액과 처벌 수위 연동
한편 미국의 경우, 1996년 자국 기업의 중요 정보가 외국 정부 등에 제공되는 게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판단해 경제스파이법(Economic Espionage Act·EEA)을 제정했다. 한국은 그로부터 10년 뒤인 2006년 10월 국가 차원의 기술 보호를 위해 ‘산업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을 제정, 이듬해 4월 시행했다.
일리노이주(州) 변호사인 최지연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3월 15일 한국산업보안연구학회에 투고한 논문 〈미국 경제스파이법 처벌 사례 연구〉를 통해 “미국의 처벌 사례는 적극적인 수사와 엄중한 처벌이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제스파이법(EEA)은 기술 유출 양형 기준이 세분화돼 있고 피해액을 처벌 수위와 연동한다. 또 영업 비밀 절도범의 재산이나 이익을 몰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반면 국내법에 따르면 범죄에 사용된 물건만이 몰수의 대상이다.
미국은 2001년 5월 CIA(중앙정보국) 등 정부 부처 합동으로 국가방첩센터(NCIX)를 설립하고 매년 산업스파이 활동 실태를 보고서로 작성, 의회에 제출했다. 국정원은 이를 벤치마킹해 기술 보호를 위한 전담 조직 ‘산업기밀보호센터’를 설치했다. 국내에서도 기술 유출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자는 여론이 실제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위원장 이상원)는 지난해 8월 8일 제126차 전체회의를 통해 ▲국가핵심기술 국외 유출·침해 ▲전략기술 국외·국내 침해 ▲방위산업기술 국외·국내 침해 및 누설·도용 등의 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을 새로 설정하기로 했다. 이 양형 기준안(案)은 올해 3월 제130차 양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최종 의결될 예정이다.⊙
글 : 김광주 월간조선 기자 kj961009@chosun.co
03.05 ‘경제 간첩’ 못 잡는 현행법 시급히 개정해야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4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비상대책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어제 “국가 기밀을 유출하는 간첩죄의 범위가 적국(북한)에 대한 유출로 한정돼 있다”며 형법상 간첩죄 개정 필요성을 언급했다. 현행법상 북한이 아닌 다른 나라와 단체가 우리 국가 기밀을 염탐하고 전달하는 행위를 간첩죄로 처벌할 수 없다.
대다수 국가는 적국, 우방국 가리지 않고 자국의 국가 기밀을 탐지·수집·누설하는 행위를 간첩죄로 엄히 다스린다. 미 해군 정보국에서 근무하던 재미 교포 로버트 김은 주미 한국 대사관에 강릉 잠수함 침투 사건 등에 관한 대북 정보를 알려줬다가 간첩죄로 징역 9년을 선고받았다. 한국계 핵 전문가인 스티븐 김도 2010년 언론에 북한 핵실험 가능성과 관련한 정보를 흘렸다는 이유로 간첩죄를 적용받았다.
검찰은 지난달 중국 비밀 경찰서의 국내 거점 의혹을 받아 온 서울 중식당 운영자를 기소하면서 간첩죄가 아닌 식품위생법 위반,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 혐의만 적용했다. 그 식당이 실제 중국 비밀 경찰서인지 등을 수사하기 위해 적용할 수 있는 법 조항이 없기 때문이었다. 반면 중국은 간첩 행위 범위를 대폭 확대한 반(反)간첩법을 작년 7월부터 시행 중이다. 2015~2022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혐의로 1심 판결을 받은 114명 가운데 12명에게만 징역형이 선고됐다. 반도체 등 주요 국가 기밀을 중국에 넘긴 사람이 많다. 미국이나 대만에선 이런 사람들을 ‘경제 간첩’으로 간주해 중형을 선고한다. 우리도 간첩죄를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법원행정처는 “군사기밀보호법이나 산업기술보호법 등으로 처벌할 수 있는데도 외국인 등에 대한 간첩죄를 신설하는 것은 법 체계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취지로 개정에 부정적이라고 한다. 민주당도 미온적이다. 하지만 수사 당국이 부득이 산업기술보호법 등을 적용하는 것은 간첩죄가 미비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솜방망이 처벌이다. 첨단 산업 기술 유출이 국익에 치명적 위해를 가하는 시대다. 우리도 간첩죄를 다른 나라들처럼 바꿔 적국, 우방국 가리지 않고 기밀 유출을 엄벌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3-05 확대된 FS 훈련과 실전 노하우 쌓기
매년 3월과 8월에 실시되는 한미연합연습은 한미연합사령관이 연습 총감이 돼 유사시 자신에게 작전 통제되는 한·미 전 부대를 대상으로 ‘작전계획5015’를 연습하는 것을 말한다. ‘연습(exercise)’은, 개인이나 소부대의 임무 숙달을 위한 ‘훈련’과 달리 군단급 이상의 고급부대 지휘관과 참모를 대상으로 작전계획상의 임무를 숙지시키고 각종 상황에 따른 인접 부대 및 상하 제대 간의 협조 체제를 숙달시키는 지휘소 훈련에 중점을 둔다. 실전에서 부닥칠 수 있는 거의 모든 상황을 모의하는 워게임 모델을 이용하기 때문에 고급 지휘관과 참모에게 좋은 훈련 기회가 된다.
지난 4일부터 시작해 오는 14일까지 열하루 동안 진행될 이번 ‘자유의 방패(freedom shield)’ 연습은 내용과 규모 면에서 이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첫째, 연습 시나리오상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과 같은 최근 전쟁 상황이 반영돼 예상을 뛰어넘는 북한의 공격이나 국지도발을 조기에 식별하고 선제로 대응하는 태세가 검토될 것이다.
둘째, 연습 범주가 종전 지·해·공 3차원적 연습에서 사이버·심리·우주작전 등 다차원적으로 확대됐다.
셋째, 참가하는 전력 면에서 한미연합 작전계획상 명시된 국군과 미군 전투력뿐만 아니라 호주·캐나다·프랑스·영국 등 12개 유엔군사령부 회원국의 병력도 함께한다. 북핵과 미사일 위협으로 인해 유엔사 중심의 국제 협력 체계가 구축되는 것이다.
넷째, 기간 중 예하 부대에서도 많은 야외 기동훈련이 실시되며 그 횟수도 지난해의 두 배 규모로 확대됐다. 특히, 각 군의 핵심 훈련인 미사일 탐지, 실사격, 공중강습, 상륙, 전투기 출격 등이 실시될 것이다. 다섯째, 미국이 지난해 8월 캠프데이비드 정상회의 이후 확장억제전략 시연 차원에서 간헐적으로 전개했던 전략자산인 항모전단, 핵추진 잠수함과 B-1, B-52 등 전략폭격기가 연습 기간에 전개될 것이다.
무엇보다 한미연합연습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실전 경험이 풍부하고 막강한 전투력을 갖춘 미군에게서 전수(傳受)하는 노하우가 상당하다는 점이다. 최신 전술·전기·교리·무기체계와 같은 군사 분야 외에도 우방들과의 정치·경제 협력, 정보 공유나 일본 내 유엔사 후방 지휘소 운용 문제, 주민 통제, 포로 취급, 전쟁법 등 다양한 분야를 접하는 기회가 된다. 또, 연합연습에 참가하는 주 방위군 등 미국 시민들이 한국 문화의 전도사가 되는 간접 효과도 있다.
정전 이듬해인 1954년부터 시작해 명칭은 달라도 매년 시행해 온 한미연합연습에 대해 북한은 5일에도 국방성 담화를 통해 “세계 최대의 핵보유국과 10여 개의 추종국가들이 결탁하여 전개하는 대규모 전쟁연습은 절대로 ‘방어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예의 ‘전쟁광들의 북침연습’ 주장을 되풀이했다. 인민군 총참모부도 동·서해 함대에 “해상 레이더 감시 임무를 구체적으로 수립하고 협동작전 체계를 구축하라”고 했다니 특히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는 이미 수차례에 걸쳐 한미연합연습은 북한이 공격해 올 경우 방어하기 위한 연습임을 천명해 왔다. 그런데도 이번 ‘자유의 방패’ 연습을 빌미로 북한이 대남 도발을 획책한다면 그야말로 우리 군의 ‘즉·강·끝’(즉각 강력히 끝까지) 맛을 제대로 보게 될 것이다.

문화일보 권태오 前 유엔사 군사정전위 수석대표, 예비역 육군 중장
03.08 기술 유출 심각한데 법원은 늑장 판결, 국회는 늑장 입법

▲경기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 모습. 2023.2.1/뉴스1
SK하이닉스에서 고대역폭 메모리(HBM) 설계 담당으로 일하다 미국 마이크론으로 이직한 연구원에 대한 전직 금지 가처분이 뒤늦게 인용됐다. 2022년 7월 SK하이닉스를 퇴사한 A씨는 경쟁사에 2년간 취업·용역·자문·고문 등의 계약을 하지 않는다는 약정서와 비밀 유지 서약서에 서명했다. SK하이닉스는 A씨가 이를 어기고 이직한 사실을 뒤늦게 알고 작년 8월 전직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는데, 약 7개월 만에 재판부가 받아들였다. A씨가 해외 거주 중이어서 서류 송달 등에 시간이 걸렸다고 하나 기술 노하우가 마이크론으로 넘어가기에 충분한 시간을 줬다.
SK하이닉스는 인공지능(AI) 시대의 핵심 반도체로 꼽히는 HBM 시장 1위 업체다. 재판부는 A씨가 습득한 지식이 새나가면 후발 주자인 마이크론이 사업 역량을 갖출 시간을 줄일 수 있는 반면 SK하이닉스는 경쟁력을 상당 부분 잃게 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 판단이 너무 늦었다. 세계 각국의 반도체 패권 전쟁이 격화되고 일본이 24시간 365일 공사로 2년 만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는 엄청난 속도전이 벌어지는데 가처분 인용에만 7개월이 걸리는 이런 늑장 대응으론 우리 기술을 지킬 수 없다.
최근 5년 새 산업 기술 유출이 적발된 건수는 96건으로, 매년 늘고 있다. 그중 반도체가 38건(40%)으로 가장 많다. 특히 지난해 1년간 적발된 산업 기술의 해외 유출 23건 가운데 15건이 반도체 기술로, 조사를 시작한 2016년 이후 가장 많다. 그런데도 이를 막는 법과 대응 체제는 미비하기만 하다. 퇴사 직원이 핵심 기술을 외국으로 유출하는 것을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알아도 법적 절차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기소돼도 형량이 너무 낮다. 2021년 1심 사건 33건 중 무죄(60.6%)와 집행유예(27.2%)가 전체의 87.8%에 달했다. 2022년 선고한 영업 비밀 해외 유출 범죄 형량은 평균 14.9개월에 불과하다.
지난해 정부가 산업기술 보호를 강화하는 법안을 제출했지만 민주당 등의 반대로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첨단 기술이 국가 생존을 좌우하는 시대에 우리 대응은 너무 한가하다.
조선일보 사설
03.08 AI 핵심 소재 유출 의혹…핵심 기술 국가안보 시급하다
법원, 하이닉스 전 연구원 전직 금지 가처분 결정
핵심 기술 넘어간 듯…처벌 강화, 간첩죄 정비해야
법원이 SK하이닉스에서 반도체 설계 업무를 담당했던 전직 연구원이 경쟁 회사인 마이크론으로 이직하는 것을 금지하는 가처분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미 핵심 기술이 마이크론에 넘어간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50부는 SK하이닉스가 사직한 전 연구원을 상대로 낸 전직 금지 가처분 신청을 지난달 말 받아들였다. 금지 기간은 오는 7월 24일까지며, 위반하면 하루 1000만원씩을 물어내야 한다. SK에 따르면 이 직원은 하이닉스에 20년 넘게 근무하며 AI의 핵심 소재인 고대역폭 메모리(HBM)의 설계와 개발에 처음부터 관여했다. 2022년 7월 회사를 그만두며 2년간 전직 금지 서약서를 썼지만, 경쟁사인 마이크론에서 임원급 대우를 받으며 일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업계에선 이미 핵심 기술이 마이크론에 넘어갔을 것으로 의심한다. 하이닉스보다 한 세대 뒤져 있던 마이크론이 지난해 10월 4세대를 건너뛰고 5세대 선점을 선언한 것에는 이런 배경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SK하이닉스는 1년간 핵심 인력의 동향을 눈치채지 못했다. 법원도 보통 1년씩 걸리는 심리를 최대한 단축했다지만 결론이 나기까지 다시 6개월이 걸렸다. 해외에 거주하는 직원에게 송달되는 기간을 고려하면 전직 금지 효력은 고작 1~2개월에 그칠 수밖에 없다.
반도체 업계는 기술과 인력 유출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사실상의 전쟁터다. 지난해에는 반도체 공장 설계도면을 빼내 중국에 공장을 세우려 한 삼성전자 임원이 적발돼 충격을 줬다. 그동안 주로 후발주자인 중국 기업들의 인력·기술 빼가기가 극성이었지만, 이번 사례에서 보듯 이젠 미국 등 선진국도 예외가 아니라는 게 입증됐다. 반면에 사전에 이를 막기도 어렵고, 사후에 적발해도 처벌 수준은 극히 미약하다. 대법원에 따르면 2021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기소된 33건의 사례 중 60%가 무죄, 27%는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유죄가 선고되더라도 평균 형량은 15개월(2022년 선고 사건 기준)을 넘지 못했다. 기업들이 사전에 핵심 인력 관리를 한층 강화해야 하고, 사법당국도 보다 적극적으로 신속히 엄벌에 나서야 한다.
형법상 간첩죄 조항도 서둘러 정비해야 한다. 현행법상 국가기밀을 유출해도 상대가 북한이 아닐 경우 간첩죄를 적용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인도네시아 파견 기술자가 한국형 전투기(KF-21) 기술을 빼돌리다 적발돼도 간첩죄 적용이 어렵다. 국가필수기술은 군사기밀만큼이나 나라와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중대 사안이다. 이를 얻으려는 경쟁은 우방과 적국을 가리지 않고 치열하다. 법 정비 없이는 애써 개발한 핵심 기술이 허무하게 경쟁국과 기업에 넘어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중앙일보 사설
03.11 통진당 세력은 어떻게 부활했나
더불어민주당 공천을 둘러싸고 ‘친명횡재 비명횡사’라는 말이 나왔다. 그런데 진짜 횡재를 한 곳이 있다. 바로 민주당 주도의 비례연합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에 참여하는 진보당이다. 민주당과의 합의에 따라 원내 3석은 기정사실이고 추가 확보 가능성도 있다.
진보당은 경기동부연합 등 옛 통합진보당 잔존 세력과, 전에 갈라섰던 다른 세력이 통합하며 2017년 창당했다. 당시엔 민중당이었고 2020년 진보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범민련 사무처장 출신인 민경우 시민단체 길 대표는 “진보당은 인적으론 통진당과 거의 유사한 정당”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제휴 비례 3석 이상 확보
비정규직 노동운동 통해서 활로
이석기 복권·한미동맹 파기 주장
민주당을 탈당해 개혁신당으로 간 이원욱 의원은 지난달 말 페이스북에 “경기동부연합 등 이념 세력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라는 정치인을 숙주로 성남시·경기도를 지나 이제는 국회까지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라고 썼다. 경기동부연합은 NL(민족해방) 또는 주사파 운동권 조직의 하나로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의 당권을 장악했던 곳이다. 단체는 해산됐지만 하나의 정치·운동 집단을 지칭하는 용어로는 여전히 유효하다.
경기동부는 2012~14년 뉴스의 중심에 있었다. 2012년 5월 통진당 중앙위원회 회의장에서 폭력 사태가 일어났다. 한 당원이 조준호 전 공동대표의 뒷머리를 잡아당기는 장면이 대서특필됐다. 비례대표 부정 경선 문제로 수세에 몰린 경기동부 등 당권파가 회의 진행을 방해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2013년 8~9월 이석기 당시 통진당 의원과 통진당 경기도당 관계자 등이 구속됐다. 그해 5월 130명이 모인 자리에서 유사시 전화국 접수, 유류 저장고 타격, 사제 폭탄 등의 발언이 나온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앞서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하며 정전협정 무효화와 전시 상황 돌입 선언을 한 때였다. 구체적 실행 계획이 없다는 이유로 내란음모는 인정되지 않았지만 내란선동 혐의는 유죄로 나왔다. 2014년엔 헌법재판소가 통진당을 위헌 정당으로 판단하고 해산 결정을 내렸다.
그럼에도 경기동부와 통진당의 후예들은 부활했다. 이런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만 빼고’라는 칼럼을 써 파장을 일으켰던 정치학자 임미리가 2014년 낸 책 『경기동부』엔 조직의 성장 과정이 잘 나와 있다. 그는 서울 철거민이 집단 이주한 성남이란 지역에 주목했다. 연고가 있는 대학생과 외부 운동가가 모였고, 91년 성남연합이 결성됐다. 이후 용인·하남 등지로 세를 키우면서 97년 경기동부연합으로 확대됐다.
응집력과 활동력은 대단했다. 96년 북한에서 수해가 나자 성남연합 회원 50여명이 북한에 쌀 보내기 운동을 시작해 3개월 동안 1만5000가구를 방문해 5500가구에서 220가마의 쌀을 모았다고 한다. 책의 한 대목을 보자.
“서민 생활에 밀착된 운동 방식과 특유의 헌신성으로 지역 기반을 강화하고 세력을 확대했다. 활동 무대를 지역에서 중앙으로 사회운동에서 정당 활동으로 넓혀가기 시작했다.”
저자 임미리는 이들의 자기 보존 의식과 패권주의도 지적했다. 진보정당 안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거짓말과 부정을 서슴지 않았고, 문제가 됐을 때는 자기 식구를 끝까지 옹호했다.
지난해 4월 전주시을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당선된 진보당 강성희 의원은 등원 첫날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석기 전 의원의 명예 회복과 복권이 조속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비정규직 노동운동을 한 강 의원은 이석기와 같은 외대 용인캠퍼스 출신이며 2014년 지방선거에서 통진당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자신이 주사파였다고 말하는 민경우 대표는 지난해 9월 e북으로 출간된 『군자산의 약속』에서 "2013년 이석기가 구속되면서 주사파는 비정규직에서 새로운 활로를 구한다. (...) 주사파 특유의 강인한 활동력이 결합하면서 주사파는 비정규직 노동운동을 거점으로 민주노총과 진보당에서 근거를 마련했다. 주사파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라 할 수 있다"라고 썼다. 민 대표는 최근 통화에서 " 어느 정도 신규 인원을 확보하면서 이들이 조직 재생산을 해냈다"고 말했다.
북한이 통일을 부정하고 대한민국을 적대국으로 선언했는데 진보당 인사들은 한미동맹 파기를 외친다. 이석기는 여전히 명예 회복의 대상이다. 시대착오적 이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반성하지 않는 경기동부의 자기 보존 의식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보당은 곧 원내에서 무시할 수 없는 정당이 된다. 수권 정당이 되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런 의구심에 후련한 답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김원배 논설위원 onebye@joongang.co.kr
03.11 종북 세력 국회 진입으로 더욱 시급해진 대공수사권 복원
민주당의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 후보 명단이 친북·종북 성향 후보들로 속속 채워지고 있다. 반미·친북 인사들이 주로 모인 진보당·새진보연합·연합정치시민회의가 각각 추천한 3·3·4명을 당선 안정권에 배치하기로 한 합의에 따른 것이다. ‘이석기 내란 음모 사건’으로 해산된 통합진보당 후신격인 진보당이 확정한 후보 3명은 모두 종북 성향의 경기동부연합 영향권에 있던 민노당·민중당 등에서 활동한 인물들이다.
시민회의 비례 후보 1차 심사를 통과한 12명 중에는 북한 김씨 일가 세습 찬양 논란이 제기된 ‘통일 교과서’를 발간한 전직 민노총 위원장,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민변 변호사 등이 포함됐다. 일부 지역구에서는 진보당과 민주당 간 단일화 협상이 진행 중이어서 통진당의 핵심 멤버들이 다시 국회의원이 될 수도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4월 총선 승리 후 바로 국가정보원 대공 수사권을 회복하는 법률 개정안을 내고 통과시킬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재명 대표가 자기가 살기 위해서 통합진보당 후신 종북 세력에게 정통 민주당을 숙주로 내주고 있어 그 필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고 했다.
문재인 전 정부가 밀어붙인 대공수사권의 경찰 이관은 이미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경찰이 안보수사단을 신설했지만 인력이 142명에 불과하다. 책임자는 대공 수사를 지휘한 경험이 아예 없다. 각 시·도 경찰청의 대공수사 인력도 증원했지만, 수사 지휘 간부 절반가량은 간첩 수사 경력이 3년도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친북·종북 성향 인사들이 국회에 진출하면 국정원·국방부·검찰·경찰의 민감한 안보 자료들을 열람하거나 요구해 이를 공개 또는 유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석기 전 의원은 구속되기 전에 한미 공동 국지도발 대비계획, 대형 공격 헬기 사업 등의 군사비밀 자료를 요구했었다. 21대 국회에서 야당 의원 보좌관이 ‘김정은 참수부대’ 등 700여 건의 군사기밀 자료를 요구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간첩 수사에서는 아마추어인 경찰이 대공수사권을 갖고 있는 한 정치권 관련 대공 수사를 제대로 할 수 있겠나. 총선이 끝나는 대로 대공수사권을 하루 속히 제자리에 돌려놓는 일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3.11 與 영입 '여군최초 투스타' 강선영 "北 동조자 국회 입성 안돼"

▲강선영 전 육군항공작전사령관. 연합뉴스
국민의힘의 총선 영입 인재 '여군 최초 투스타' 강선영 전 육군항공작전사령관이 야권 비례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에서 시민단체 몫으로 배정된 비례대표 후보들을 비판했다.
강 전 사령관은 11일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아직도 적대적인 관계인 북한과 그들의 주장을 동조하는 이들이 국회에 진짜로 입성해 내부에서 싸우고 힘을 소진하는 상황이 만들어지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여군으로 31년 4개월을 근무했다. 중령에서 대령까지 연합사에서 3년간 한미연합연습 기획 장교로 보냈다"며 "연합연습은 전쟁이 일어날 때 싸우려는 게 아니라 억제를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니 북한이 우리가 연합연습을 하면 난리가 나지 않느냐. (더불어민주연합 후보는) 그렇게 중요한 것을 반대하는 것"이라며 "그들이 만약 국회에 입성해 헌법기관이 되면 우리나라 국가 안보를 위해 정상적인 대화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반미 구호만 외칠 것 같다"고 주장했다.
강 전 사령관의 이런 언급은 더불어민주연합 비례대표 순번 1번을 받은 전지예 금융정의연대 운영위원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전 운영위원은 한미연합훈련 반대 시위 등을 한 '겨레하나' 활동가 출신이다.
강 전 사령관은 더불어민주연합 국민후보 중 임태훈 전 군인권센터 소장 관련해선 "되게 건드리기 어려운 분"이라며 "군 인권은 매우 중요하지만 갈라치기가 돼선 안 된다"고 했다.
그는 "군 내부의 정상적이지 않은 그런 부분, 소수에 의해 인권을 빌미로 서로 반목하는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며 "첨단화·과학화한 군에서 여군의 역할이 많아질 텐데 갈라치기와 이간질하는 사람들이 껴서 여군 지휘관들이 부담을 느끼는 것에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김지혜 기자 kim.jihye6@joongang.co.kr
03-13 비례 윤미향, 국회서 버젓이 “윤정부 전쟁 선동 멈추라” 북한 주장 되풀이

▲좌파단체에 둘러싸여 윤미향(앞줄 오른쪽 두 번째) 무소속 의원이 13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진보·좌파 시민단체들과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윤성호 기자
■ 친북단체와 함께 기자회견
“이대로 가면 전쟁 불가피
한미 연합훈련도 중단해야”
정의연 의혹·조총련 행사 등
논란의 과거 행적도 재조명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출신인 윤미향 무소속 의원이 13일 윤석열 정부의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전쟁 선동’으로 규정하고 중단을 촉구했다. 북한의 한·미 연합군사훈련에 대한 주장을 그대로 가져온 것으로, 윤 의원이 21대 국회에서 숱한 논란을 낳았던 과거 행적도 재조명되고 있다. 여권에서는 ‘비례대표제 폐단’의 상징적 사례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윤석열 정부는 대결과 충돌만 불러오는 대북 전쟁 선동을 멈추고 한·미 양국은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해야 한다”며 “그것이 한반도 전쟁 시계를 멈출 수 있는 가장 시급한 조치”라고 밝혔다. 이어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전쟁 선동’ ‘전쟁 행위’로 언급하며 “이대로 가면 전쟁은 불가피해진다”고 경고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국민주권당, 자주민주평화통일민족위원회, 촛불행동 등 시민단체가 함께했다. 이 중 친북단체 AOK(Action for One Korea·통일을 위한 행동)와 평화어머니회, 한반도평화경제회의는 지난 1월 윤 의원이 주최한 남북관계 관련 국회 토론회에 참석한 단체로 당시 “평화를 위해서라면 북한의 전쟁관도 수용해야 한다”는 발언이 나와 논란이 된 바 있다. 이번 기자회견 역시 북한의 전쟁관에 입각해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전쟁 도발 행위로 일치시키는 주장인 셈이다.
윤 의원은 정의기억연대(정의연) 후원금 횡령 의혹을 안고 21대 국회에 입성해서도 현행법상 반국가단체와 접촉하거나 지난해 유죄판결을 받고도 3년 만에 정의연 활동을 재개하는 등 논란의 행보를 보였다. 2021년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민주당에서 출당된 뒤 지난해 9월 현행법상 반국가단체인 조총련 주최 ‘간토 대지진 추모 행사’에 참석하기도 했다.
한편 북한은 중국 내 친북 성향 동포 단체들을 내세워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연일 비난하고 있다. 이날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차상보 재중조선인총연합회 부의장은 담화에서 “미국과 괴뢰한국것들이 이제는 그 가면을 벗어던지고 공공연히 전쟁연습에 광분하고 있다”고 강변했다. 다른 동포 단체들도 “윤석열괴뢰가 미국을 등에 업고 공화국(북한)에 대한 잘못된 선택을 한다면 이 지구상에서 영영 사라지게 될 것이며 세계평화의 암인 미국도 그 존재를 마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화일보 이은지·조재연 기자
03-13 軍, ‘참수작전’ 훈련 공개…“北 전쟁 일으키면 지도부 신속 제거

▲한미 특수부대원들이 한미 연합연습인 자유의방패(FS) 일환으로 진행된 연합특수타격훈련에서 가상의 적 시설물 내부로 침투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국방부가 유사시 북한 수뇌부를 제거하는 내용의 한미 연합 특수훈련을 13일 공개했다. 이 훈련은 한미 연합연습인 자유의방패(FS) 일환으로 진행됐다. ‘참수작전’으로 불리는 이 훈련은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훈련 중의 하나다.
13일 군에 따르면 육군 특전사령부는 8일부터 해군 특수전단단(UDT/SEAL), 공군 공정통제사(CCT), 미 육군 제1특전단 등과 함께 한미 연합 특수타격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한미의 최정예 특전요원들이 적의 핵심시설 내부를 소탕하고 수뇌부를 암살하는 등 고도의 전투기술을 숙달하는 내용이다.
육군 특전사에서는 참수작전을 전담하는 제13특수임무여단이 참가했다고 한다. 2017년 창설된 제13특임여단은 유사시 북한 지휘부 제거를 주임무로 하는 특수부대 중의 특수부대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이날 육군 특전사를 찾아 훈련 현장을 점검하면서 “만약 김정은이 전쟁을 일으킨다면 대량응징보복(KMPR)의 핵심부대로서 적 지도부를 신속히 제거하는 세계 최강의 특수전부대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신 장관은 지난해 12월 한 방송에 출연해 ‘김정은이 가장 두려워한다는 참수 작전 훈련이나 전략 자산 추가 전개를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참수(작전 훈련)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말씀드리기 어렵다”면서도 “두 가지 다 옵션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군 관계자는 “국방부 장관이 특전사를 찾아 대비태세를 직접 점검한 것은 2016년 이후 8년 만”이라고 말했다. 연초부터 대한민국을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이라고 주장하면서 도발 위협과 긴장을 고조시켜온 북한에 강력한 경고장을 날렸다는 것.
특전사령관 등은 신 장관에게 테러 대비태세 및 한미 연합 특수타격 훈련 내용에 대해 보고했다. 특전사령관은 “국내외 정치 일정을 고려해 북이 테러를 포함한 다양한 도발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며 “테러 발생 시에는 즉각 출동하여, 강력히 진압하고, 끝까지 찾아가 응징하겠다”고 했다. 신 장관은 이날 한미연합사 전시지휘소도 방문해 FS 연습 현장을 점검하고, 한미 장병들을 격려했다고 군은 전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03-15 한미 연합훈련 현장에서 술판…軍 기강 붕괴 이 지경인가
소령을 포함한 육군 간부들이 한미 연합훈련인 자유의 방패(FS) 연습 기간 중 훈련 현장에서 술판을 벌여 합참에서 감찰 조사 중이라고 한다. FS 훈련에 참가하는 전 병력에 금주령을 내렸는데, 병사도 아닌 간부들이 대놓고 위반한 것으로, 군 기강 해이를 넘어 붕괴 지경이라고 할 만큼 참담하다. 지난 13일 0시 직후 육군 장교와 부사관 10여 명이 경기 수원의 공군 제10전투비행단 내 강당에서 술을 마셨고, 욕설과 고성방가는 물론 흡연까지 했다고 한다. 이들은 ‘대항군’ 역할을 맡았던 증원 요원이라는데, 타 간부·병사들이 다 지켜보는 가운데 이런 일을 벌였다니 평소 군 기강이 어떤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합참과 육군은 “법과 규정에 따라 처리할 것”이라고 했는데, 안이하기 짝이 없다. 이런 황당한 일이 당당히 벌어진 것은, 이번 사례가 빙산의 일각일 수 있음을 말해준다. 그 정도면 현장에서 적발해 엄중 조치했어야 당연하다. 그런데 보다 못한 다른 군 간부가 페이스북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에 글과 사진을 올리면서 알려졌다. 상급 지휘라인까지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이유다. 직접 관련자들은 징계는 물론 군법으로 다스려야 한다.
이런 군대를 국민이 믿을 수 있겠는가. 당장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한다. 군 기강을 바로 세울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신 장관이 취임 후 정신전력 강화를 주문하고 북 도발 시 ‘즉·강·끝’ 응징을 지시했지만, 군 기강이 이 지경이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03-19 한국 총선도 흔드는 중국發 가짜뉴스
총선이 22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우려했던 가짜뉴스가 본격적으로 창궐하기 시작했다. 그 시동을 중국계 인터넷 매체들이 걸고 있다는 느낌이다. 중국의 관영 매체 ‘관찰자망’이 ‘윤석열 정부가 파업 전공의를 입대시키거나 징역 선고할 것’이라는 가짜뉴스를 확산시키고, 환추스바오(環球時報)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포퓰리즘 정책이라며 한국 정부를 정면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이를 받아 ‘매국윤첩’ ‘하나의 중국’ 같은 중국계 온라인 계정들이 본격적으로 반정부 여론 조성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물론 정부는 이번 선거 기간에 딥페이크 같은 첨단 기술을 이용한 가짜뉴스에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하지만 이처럼 해외에서 유입되는 가짜뉴스와 외국계 온라인 매체들의 선거 방해 활동에는 소극적이다.
가짜뉴스가 처음 알려진 것은 2016년 미국 대선과 2017년 영국 브렉시트 투표였다. 두 선거에서 일반의 예상을 뒤집은 결과가 나온 원인이 가짜뉴스였고, 그 배경에 친러시아 성향의 온라인 매체들이 활동한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러시아·중국 같은 권위주의 국가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가짜뉴스를 조직적으로 확산시킨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른바 적대국의 정보 시스템을 마비시켜 체제를 붕괴시키는 ‘샤프 파워 전략(sharp power strategy)’의 하나다. 전쟁도 평화도 아닌 상태에서 군사적·비군사적 활동이 복합된 ‘하이브리드 또는 회색지대 전쟁(hybrid or gray zone warfare)’이다. 허위 정보, 정치적 영향력 등을 이용해 큰 저항 없이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이다. 이 하이브리드 전쟁에서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 허위 정보 즉, 가짜뉴스다.
특히,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개방형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어 가짜뉴스에 더 취약하다. 이 때문에 가짜뉴스는 권위주의 국가에 절대 유리한 비대칭 무기가 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볼 수 있듯이, 러시아는 샤프 파워 공세를 위해 다수의 국영 매체들을 직접 운영하고, 민간 트롤(troll) 조직을 활용해 온라인 여론을 조성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총선과 연관된 중국 매체 또는 중국계 유튜버들의 조직적 가짜뉴스 유포와 ‘댓글부대’ 역시 같은 형태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고도화한 온라인 네트워크를 가진 반면, 외부의 샤프 파워 공격에 대응할 수 있는 방어 장치는 크게 취약하다. 최근 유럽연합(EU)은 디지털서비스법(DSA), 디지털시장법(DMA), 인공지능(AI)법 같은 법안을 제정해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전방위 압박을 가하고 있다. 당연히 가짜뉴스 같은 허위 콘텐츠에 대한 규제도 포함돼 있다. 특히 AI법에서는 선거 관련 정보를 의료·교육과 함께 ‘고위험등급’으로 분류, 사람이 직접 감독하는 위험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규정한다.
물론 가짜뉴스 규제가 얼마나 효과 있을지 몰라도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음은 분명하다. 이제 선거 관련 가짜뉴스는 국내 정치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비전시 상황에서 사용되는 새로운 형태의 심리전 도구다. 특히, 우리 사회는 한물간 이념 갈등 혼돈에 빠져 있다. 중국을 비롯한 반민주주의 국가들의 샤프 파워 공세를 국내 정치 관점이 아닌 국가안보 차원에서 대응해야 하는 이유다.

문화일보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03.20 목숨 바쳐 나라 지킨 청년 군인의 명예 존중을
오는 22일은 제9회 ‘서해수호의 날’이다. 정부는 제2연평해전, 천안함 피격사건, 연평도 포격전에서 전사한 55 용사를 국민과 함께 추모하고 안보의식을 북돋우며 국토 수호의 결의를 다지려는 취지에서 2016년부터 매년 3월 넷째 금요일을 정부기념일인 ‘서해수호의 날’로 제정해 기념식을 해오고 있다.
나는 이맘때가 되면 국가를 위해 소중한 목숨을 희생한 서해 수호 전사자 55명 중 한 명의 엄마로서 가슴이 저린다. 모두가 기억하듯이 북한의 도발은 6·25전쟁 이후에도 끊임없이 계속됐다. 한·일 월드컵 축구의 열기가 뜨거운 2002년 6월에는 북한의 북방한계선(NLL) 침범으로 발생한 서해 전투, 즉 제2연평해전에서 6명이 전사했다.
55용사 추모하는 서해수호의 날
보훈 문화 역행하는 행위 잇따라
유족 상처 덧나지 않게 해줘야

▲시론
2010년 3월 26일 북한이 해상 경계 중인 천안함을 폭침시켜 무려 46명의 우리 군인들이 전사했다. 같은 해 11월 23일 북한이 연평도에 가한 무차별 포격으로 군인 2명이 전사하고 일반인 2명이 사망한, 전쟁과 다를 바 없었던 연평도 포격 도발도 있었다.
그뿐인가. 2015년 8월 4일에는 북한이 비무장지대(DMZ) 인근에 매설한 목함지뢰가 폭발해 하재헌·김정원 하사가 다리를 절단해야 했던 끔찍한 사건도 발생했다. 지난해 6월 윤석열 정부는 1961년 군사원호청 창설 이래 실로 62년 만에 국가보훈처를 국가보훈부로 승격했다.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한 영웅들을 기억하고 예우하는 보훈 문화 확산을 위해서다.
나는 소중한 아들(고 서정우 하사)이 2010년 연평도 포격전 와중에 전사한 이후 지난 14년 동안 북한의 도발을 원망하며 아들 없는 아들 생일을 보내야 했다. 명절에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잠들어 있는 아들의 묘역을 찾아 아들을 그리워하며 아픔 속에 살아왔다. 국가보훈부로 승격되면서 이제는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 바친 영웅들을 위해 진영을 떠나 진정한 보훈 문화가 퍼지고 희생된 영웅의 명예가 온전히 지켜지길 기대했다.
하지만 희생된 젊은 군인들의 명예를 지켜주기는커녕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보훈 문화에 역행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8월 광주광역시가 북한과 중국 군가를 작곡한 6·25 전쟁 전범인 공산주의자 정율성 기념 공원을 조성 중이란 소식을 듣고 나는 지금까지 공원 반대 운동에 앞장서서 동참하고 있다.
연초에 북한의 도발과 협박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야당 정치인은 적대행위 중단을 요청한다면서 “선대들, 우리 북한의 김정일, 또 김일성 주석의 노력이 폄훼되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고 발언해 충격을 줬다. 6·25전쟁을 일으킨 김일성과 핵 개발을 주도한 김정일을 마치 평화 애호자인 것처럼 미화하는 바람에 북한의 도발로 전사한 서해 수호 55용사의 유족과 생존 장병들이 울분을 느끼게 했다.
얼마 전에는 국회의원 출마 후보자가 “DMZ에 들어가서 발목 지뢰 밟는 사람들한테 목발 하나씩 경품을 주자”면서 비웃던 2016년 유튜브 발언과 영상이 재소환됐다. 젊음을 바쳐 나라를 지키다 두 발을 잃은 장병을 조롱하고 모독한 발언이 또다시 분노를 자아냈다. 보훈 행사에서 하재헌 중사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는 목함지뢰 사건 당시 두 다리를 잃고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힘들게 고통을 극복하며 살고 있다고 했다.
트라우마를 어렵게 극복하며 살아가고 있는 청년을 위로하기는커녕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사람들, 북한 공산 세력에 의해 자식을 잃고 곪아 터진 상처를 싸매가며 살아가는 전사자들의 부모 가슴에 다시 피눈물 나게 하는 정치인들, 아직도 천안함 피격 사건의 희생자를 헐뜯는 사람들, 6·25 전쟁 전사자 자녀의 아픔을 외면하는 정율성 공원 조성 움직임. 목숨 바쳐 나라를 지킨 젊은 청년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유족의 상처를 덧나게 하는 고약한 행태다.
보훈이 국격이라는데 이처럼 비뚤어진 언행이 과연 대한민국의 국격에 맞는지 되돌아보는 서해수호의 날이 됐으면 한다. 안보와 보훈은 동전의 양면이다. 안보가 소중하듯 국가를 지키려다 산화한 영웅의 명예를 지켜주는 것이 안보의 초석이요, 진정한 보훈 아닐까. 북한의 도발로 아들을 잃고 가슴 아프게 살아가는 한 엄마의 생각이다.

중앙일보 김오복 국가보훈부 정책자문위원(연평도 포격전 고 서정우 하사 어머니)
03.21 연평도의 포문은 늘 북쪽으로 향하고 있다
지난 14일 가봤던 대연평도 서남쪽의 평화공원은 절경으로 유명하다. 평화공원 언덕에서 높이 40m의 병풍바위가 보였다. 병풍바위는 영화 ‘빠삐용’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탈출한 절벽과 비슷하다고 해서 ‘빠삐용 바위’란 별명이 붙었다. 병풍바위 아랫단부터 알록달록한 자갈과 굵은 모래의 가래칠기 해변이 펼쳐졌다. 무엇보다 평화공원에서 즐기는 낙조(落照)는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고 한다.
평화공원의 조기역사박물관에 입장하면 한때 조기잡이로 서울의 명동 못잖게 번성했던 연평도의 과거를 살펴볼 수 있다. 조금만 걸으면 등대가 나온다. 북한 간첩선의 길라잡이로 활용될까 우려해 가동을 중단했던 1974년까지 불을 밝혔던 등대다. 문재인 정부 때 9·19 군사합의를 계기로 남북 공동어로구역을 추진하고 서해 야간조업이 활발해졌다는 이유로 2019년 5월 17일 재점등했다. 현재 북측 창을 가려놔 북한에선 등대 불빛을 볼 수 없다.
서해수호의 날 맞는 대연평도
연평도 포격전 흔적 곳곳 생생
북 협박에도 날 선 해병의 눈빛
5분내 초탄 반격의 결의 넘쳐

▲해병 연평부대의 K9 자주포. 북한의 도발에 5분 내 반격하도록 포신의 방향은 늘 북쪽으로 둔다. [사진 박영준]
이 같은 관광명소가 평화공원으로 불린 까닭이 있다. 이곳이 전쟁터였기 때문이다. 평화공원 앞바다는 1999년 제1연평해전과 2002년 제2연평해전의 격전지였다. 대연평도는 2010년 11월 북한으로부터 기습적 포격을 받았다. 그래서 평화공원엔 제2연평해전 때 숨진 해군 6명과 연평도 포격전에서 전사한 해병대원 2명을 추모하는 시설이 들어섰다.
이날 잔뜩 낀 바다 안개는 대연평도 북쪽의 망향 전망대에서 북한 석도와 갈도의 자취를 숨겼다. 석도는 4㎞, 갈도는 4.5㎞가량 각각 대연평도에서 떨어졌다. 북한은 2010년대 무인도였던 갈도에 병력과 방사포를 배치했고, 장재도(7㎞)·대수압도(15㎞) 등 연평도 주변의 다른 무인도들도 군사기지로 만들었다. 100년 넘은 아름드리 소나무가 우거진 대연평도의 숲은 가끔 듬성듬성했다. 연평도 포격전에 불탄 소나무를 베고 새로 심으며 생겼던 ‘흉터’였다.
“중국 어선 많아도, 적어도 걱정”
22일은 제9회 서해수호의 날이다. 서해를 지키다 산화한 호국영령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는 기념일이다. 1999년부터 북한이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서해5도를 대상으로 벌인 무력 도발로 군인 54명이 전사하고, 1명이 순직했으며, 민간인 2명이 사망했다. 평화공원에서 내려다본 서해에 무심한 너울만 일었다. 수많은 생명을 걸고 지킨 서해는 어떤 전략적 가치가 있을까.
해군작전사령관을 지낸 박기경 예비역 해군 중장은 “서해 NLL과 서해5도가 없다면 북한은 해상에서 수도권을 바로 노릴 수 있다. 유사시 북한판 ‘인천상륙 작전’이 가능하다”며 “그래서 서해 NLL은 수도권의 방화선, 서해5도는 수도권의 방파제”라고 설명했다. 박기경 전 사령관은 “경기도 넓이만 한 황금어장을 확보할 수 있는 건 덤”이라고 덧붙였다. 서북도서(서해5도) 방위를 책임졌던 김태성 전 해병대 사령관은 “북한 입장에선 서해5도는 자신들 목에 들이댄 비수(匕首)”라고 말했다. 김 전 사령관에 따르면 서해5도는 황해도와 멀지 않기 때문에 각종 정보자산으로 북한 내륙의 동향을 속속 들여다보며, 유사시 북한 후방으로 반격할 수 있는 거점이다.
특히 백령도는 150㎞ 안팎 거리의 평양에 한 방 먹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통일 이후 중국의 북해함대와 항공모함 기지가 있는 산둥(山東)반도를 견제할 요충지이기도 하다. 중국은 한국을 동쪽(한반도 방향)으로 밀어붙여 서해를 중국의 내해(內海)로 만들려는 ‘서해공정’을 진행하고 있다.
안칠성씨는 연평도 포격전 피해 지역에 세워진 연평도 안보교육장에서 해설사로 일하고 있다. 안 씨는 “포격전 당시 북한은 먼저 해병대 기지가 몰려 있는 섬 북쪽을 공격했고, 1시간 후 민가가 밀집한 남쪽을 때렸다”며 “많은 사람들이 배를 기다렸던 여객터미널로 방사포탄이 날아와 다들 황급히 엎드렸는데, 다행히 살짝 빗나가 바다로 떨어졌다”고 기억했다. 그는 “어업으로 주로 먹고사는 연평도에선 중국의 불법 조업이 가장 큰 골칫거리다. 그런데 중국 어선단이 많이 몰려도 걱정, 요즘처럼 드물어도 걱정”이라며 “북한이 또 뭔가 일을 꾸미려고 최근 중국에 조업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는가 싶다”고 우려했다.
꽃게 조업기를 노려 도발한 북한
안씨의 기우(杞憂)로만 여겨선 안 되는 게, 북한의 발언이 심상찮아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1월과 지난달 두 번이나 ‘북방한계선’은 북한의 해상주권을 침해하는 불법적 경계선이며, 한국이 북한의 영해를 0.001㎜라도 침범한다면 전쟁 도발로 간주하고 무력을 행사하겠다고 협박했다. 북한은 먼저 엄포를 놓고 나중에 도발하는 패턴을 그동안 보여왔다.
제1연평해전부터 연평도 포격전까지 서해 일대에서의 북한 무력 도발은 5번 있었는데, 그중 4번이 꽃게 조업기와 겹친다. 서해에서 꽃게는 매년 4~6월과 9~11월에 많이 잡힌다. 천안함 피격만 3월에 일어났고, 나머지는 모두 6월과 11월에 발생했다. 올해도 다음 달 꽃게잡이가 시작한다. 이 때문에 군 당국은 김정은의 발언을 가볍게 보지 않고 서해에서의 경계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연초부터 비상과 훈련이 이어졌지만, 해병 연평부대 포7중대의 장병은 날이 바짝 섰다. 연평도 포격전 당시 포화를 뚫고 북한에 되받아쳤던 부대다. 부대 구호는 ‘우리는 승리했다’. 14일에도 주특기 훈련으로 부대 전체가 분주한 분위기였다. 포7중대의 K9 자주포 포문은 늘 북쪽으로 향하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5분 안에 북한의 목표 지점으로 초탄을 날리기 위해서다. 명령만 떨어지면 자주포로 달려가 사격준비를 마치는 훈련을 불시에 연다. 자다가도, 샤워 중이라도 이 훈련의 예외는 아니라고 한다. 서글서글한 인상의 이성한 해병 대위(포7중대장)는 “저놈들이 한 번 더 (연평도로) 쏘기만 한다면 가만두지 않겠다. 자신 있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갑자기 눈빛이 이글거렸다. 마음이 절로 든든해졌다.

중앙일보 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국방선임기자
03.21 ‘두 국가론’이 대남 적화 노선 폐기는 아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교전 중인 적대적 두 국가(Two Koreas)론’으로 남북관계의 근본적 전환을 선언했다. 하지만, 이는 대남노선 자체의 변화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북한의 대남노선은 한반도의 공산화이고, 이를 위한 두 정책적 수단은 북한식 평화통일과 무력통일이다.
북한식 평화통일방안은 고려연방제와 통일전선전략이다. 고려연방제는 ‘1민족·1국가·2체제’를 의미한다. 통일전선전략은 한국사회에 친북세력을 확산시켜 연방제 상황에서 북한으로 흡수 통일한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북한, 남북 관계 전환 선언했으나
무력통일 노선의 변화는 아닌듯
언제든지 군사 도발할 우려 커져
김 위원장은 대한민국의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 북한과 극명하게 상반된다며 “언제 가도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고 단정했다. 통일전선부 등 대남사업부문의 기구들을 정리·개편하고, 투쟁 원칙과 방향의 전환을 주문했다. 고려연방제와 통일전선전략의 폐기를 지시한 셈이다. 하지만 지난 18일 서울을 겨냥한 초대형 방사포 발사 훈련에서 보듯 여전히 무력통일방안은 변함이 없어 보인다. 김 위원장은 유사시 핵 무력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 수단과 역량을 동원해 남조선 전역을 평정할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다.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도 “남반부의 전 영토를 평정한다”고 표현했다.
남조선과 남반부는 한반도를 하나로 인식하는 개념이다. 평정은 반란이나 소요를 진압한다는 의미로 완전한 타국 관계에 적용하기 어렵다. 김 위원장은 지난 2월 건군절 연설에서 전쟁 시 대한민국을 ‘점령·평정·수복하고 공화국 영역에 편입하는 문제’를 언급했는데, 완전한 타국을 편입하는 것은 국제법적으로 불법이다.
북한이 2022년 9월 제정한 ‘핵 무력 정책법’은 핵 무력의 사명 중 하나로 ‘영토 완정’을 규정했다. 완정(完整)의 사전적 의미는 ‘나라를 완전히 정리해 통일함’이다. 1949년 당시 김일성 주석도 정권 수립 이후 첫 신년사에서 대한민국을 반동세력으로 규정하고 “멀지 않은 장래에 국토의 완정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1년 반 뒤 북한은 남침을 단행했다. 따라서 두 국가 선언은 대남적화라는 기본노선의 변화는 아니다. 실현 불가능한 북한식 평화통일방안인 고려연방제와 통일전선전략의 폐기를 의미한다. 국제사회는 인정하지 않지만, 북한이 사실상 핵무기를 보유했다는 점에서 무력통일방안에 대해서는 과거보다 오히려 자신감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김 위원장의 두 국가론이 지니는 위험성이다. 김 위원장의 주장은 평화공존론이 아닌 교전 중인 두 국가론이기 때문이다. 남북이 교전국 관계로 전환될 경우 전시체제에 상응하는 고비용 구조가 형성되고,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커진다. 분단체제가 장기간 지속했다는 점에서 한국사회에 고정간첩과 북한 동조세력이 잔존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의 교전국 관계 선언으로 이들은 자동적으로 ‘전시 요원’으로 전환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들에 의한 주체와 원점이 불분명한 회색지대 도발이나 ‘외로운 늑대’를 가장한 테러와 교란 행위가 있을 수 있다.
김 위원장은 북한의 남쪽 국경선이 군사분계선(MDL)이라며, 북방한계선(NLL)을 ‘불법무법’으로 규정했다. “대한민국이 북한의 영토·영공·영해를 0.001㎜라도 침범하면 전쟁 도발로 간주하겠다”고 위협했다. 대한민국은 NLL이 확고한 해상 경계선이며, 절대 수호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서로 배치된다.
물론 북한의 심각한 경제난과 러시아에 대한 대량의 탄약공급 등을 고려할 때 전면적인 무력도발 가능성은 크지 않으며, 4대 세습 의지를 보이는 김 위원장이 전면도발의 위험성을 감수할지도 미지수다. 그러나 남북을 교전국 관계로 전환한 북한의 전략에 따라 무력충돌 가능성이 현저하게 커졌다고 봐야 한다. 특히 북한이 ‘핵 지렛대 전략’을 구사할 우려도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지구 전쟁은 평화가 일순간에 깨질 수 있으며, 자주국방과 안보적 대비 태세를 확고히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교훈을 남겼다. 일본은 북한과 물밑 접촉을 하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동맹을 경시하는 ‘트럼피즘’이 위세를 떨치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 위협 앞에 대한민국이 외롭게 서 있다. 냉혹한 외교·안보 현실을 직시하고 모든 가능성에 대비할 때다.

중앙일보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03-21 KDDX 선정 기준은 기술력
이지스구축함 보유국은 미국, 일본, 한국 등 6개국에 불과하다. 현재 이지스 전투체계까지 자체 제작하는 이지스함 개발국은 미국, 중국뿐이다. HD현대중공업이 3년간 천신만고 끝에 ‘한국형 이지스구축함(KDDX)’ 기본설계에 성공했다. 우리가 이지스함 3번째 개발국 도전 출발선에 선 것이다. 세계 최초로 25㎿급 대용량·고출력 추진전동기를 탑재한 ‘전기식 통합추진체계’가 적용된 KDDX 전력화에 성공하면 중국 이지스함 성능을 능가해 해군력 급성장은 물론 K-방산 수출 4강 엔진이 될 것이다. HD현대중의 정조대왕함은 기술 원조국인 미국 이지스함에 필적한다. 세계 최고 수준 ‘이지스함’ 건조역량, 가성비까지 갖춘 6000t급 미니 이지스함으로 이제 역수출 기회까지 넘보는 단계다.
2030년까지 선도함을 전력화하고 2030년대 중반까지 5척을 양산하는 7조8000억 원대 KDDX 사업이 K-함정 대표주자인 HD현대중과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DSME) 간 ‘너 죽고 나 살기식 무한 수주쟁탈전’에 빠져든 현실은 안타깝다. 소요기획 단계에서 해군이 DSME 기술 지원을 받아 수행한 KDDX 개념설계 열람 과정에서 불법 촬영이 적발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HD현대중은 2025년 11월까지 군함 입찰 시 보안감점 1.8점 3년 포함, 모두 4년간 페널티를 적용받고 있다. 한화오션은 HD현대중의 KDDX 입찰 참가 자격까지 제한할 수 없다는 방위사업청 결정에 반발, 지난 4일 HD현대중을 고발하는 초유의 사태로 비화했다. 한화오션도 2016년 기무사로부터 군사기밀 관련 보안사고 조사를 받고 NAS 서버에 불법 비밀을 다량 보유한 사실이 적발돼 10여 명이 중징계 처분 요구를 받고, 1년간 보안감점 1.5점 처분을 받은 적이 있다. 함정 건조업체들은 지나친 출혈경쟁과 저가경쟁 입찰에 무방비 노출돼 만성 적자에 허덕여 왔다. 연구소와 군은 업체에 적극적으로 개념설계 연구 정보를 제공하기는커녕 기밀 외부 유출 방지를 이유로 소극적 열람만 허용했다. 그 결과 기술력보다 보안감점이 수주 성패를 좌우해 함정 생태계는 황폐해졌다. 허술한 보안으로 한화오션은 2016∼2021년 3차례 해킹과 대만 잠수함 관련 설계도면 유출 의혹까지 겹치면서 국익에 악영향을 끼쳤다. 누구의 책임인가?
방사청 개청 후 18번의 함정 연구·개발에서 ‘기본설계업체가 상세설계 및 선도함을 건조한다’는 원칙이 불문율로 자리 잡게 됐다. 기본설계 및 상세설계업체가 서로 달라 건조 공기 추가 소요로 적기 전력화에 차질이 초래된 전례 때문이었다. 상세설계업체가 기본설계 내용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어려워 소요군 및 조선소에 불이익이 발생할뿐더러, 성능 및 품질 저하 가능성도 커지고, 양산 후 큰 문제가 발생할 경우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지고 해결 방안 도출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KDDX 전력화가 늦춰지면 추가 비용 발생과 해군력·수출경쟁력 약화로 K-방산 수출 4강 꿈은 멀어질 게 뻔하다. 한반도 안보 상황과 최근 미국 함정산업 퇴조 등을 고려해 복수의 함정기업이 ‘상생’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미국, 일본처럼 전문화·계열화 논의도 필요한 시점이다.

문화일보 정충신 정치부 선임기자
03.22 북한 자유화, 국방비 1%만 투자를
통일 담론 새 화두는 북한 자유화… 출발은 北 엘리트·민초의 의식 변화
北이 핵 증강에 재원 낭비한다면 우리는 공세적 정보·문화 세례를 국방비 59.4조, 그 1%면 충분히 가능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9일 평안남도 성천군에서 지방공업공장 건설 착공식이 28일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북한 성천군 지방공업공장 건설자들./노동신문 뉴스1
북한 자유화가 통일 담론의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다·. 작년 8월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담 공동성명이 “자유롭고 평화로운 통일 한반도”에 대한 지지를 천명한 것은 ‘자유’를 통일의 궁극적 가치로 규정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1절 기념사에서 “모두가 자유와 풍요를 누리는 통일”을 언급한 데 이어 지난 7일 외교부 업무보고에서는 “우리가 지향하는 통일은 북한 주민 한 명 한 명의 자유를 확대하는 통일”이라고 했다.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는 지당한 말이지만 김정은이 통일을 거부하고 2국 체제를 통한 한반도의 영구분단을 생존 전략으로 선택한 데 대한 정부의 대답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사실 2500만 북한 주민에게는 최악의 압제와 빈곤에서 해방되어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것보다 더 절실한 것은 없다. 북한 주민들이 자유를 찾으면 정치적 통일을 할 것인지는 그들의 자결권(自決權)에 속하는 문제다. 같은 민족이라도 독일과 오스트리아처럼 두 개의 자유민주국가로 공존하면서 자유롭게 왕래하고 상대국에서 취업·거주하는 데 제약이 없다면 정치적 통일에 굳이 연연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북한 자유화는 통일에 우선하는 가치이고 통일의 목적 자체이기도 하다. 다만, 통일이 북한 주민을 자유롭고 풍요롭게 할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에 이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북한 자유화는 북한 엘리트와 민초들의 의식 변화에서 출발한다. 외부 세계에 대한 이들의 정보와 지식이 늘어날수록 북한이 처한 현실과 세상을 보는 눈과 생각도 바뀔 것이다. 대한민국이 세계적 경제대국으로 올라서고 중국이나 베트남 같은 사회주의 국가들조차 개혁·개방을 통해 도약을 이루는 데 반해 북한만 빈곤과 고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근본 원인이 ‘백두혈통’의 세습독재와 이를 지키기 위한 핵무장에 있다는 진실을 북한 주민들이 알게 되면 앙시앙 레짐에 대한 반감이 높아지고 이를 타파하려는 기운이 일어날 것이다. 북한이 2020년 12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하여 외부 정보와 한국대중문화에 대한 주민들의 접근을 차단하는 데 광적으로 매달리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북한 주민의 의식 변화를 촉진하려면 북한 정권의 정보 독점 체제를 허물고 외부 정보에 대한 주민들의 접근을 확대해야 한다. 외부 정보를 공급하는 데 현재로서는 방송만큼 효과적인 수단이 없다. 중국산 저가 라디오를 구할 수 있고, TV도 대부분의 가구에 보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 주민들이 어디서든 한국의 라디오방송을 들을 수 있고 TV를 시청할 수 있도록 대북 방송의 인프라를 대폭 확충하는 것이 급선무다. 라디오방송은 단파, 중파 모두 필요하지만 음질이 더 좋은 기존 대북 중파(AM)방송의 출력을 대폭 높이고, 주파수를 늘리고, 방송을 송출할 플랫폼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 국내 방송국에서 이미 용도가 없어진 AM주파수를 대북 방송으로 전환하고 KBS한민족방송의 프로그램을 대북방송 중심으로 개편하는 것은 정부가 결심하면 당장 가능한 일이다.
대북 TV방송 채널도 대폭 늘려야 한다. 송출 플랫폼으로는 지금까지 육상의 고정된 송신탑에 주로 의존해 왔으나 위성, 무인항공기, 선박 등에도 기지국을 설치하여 북한 당국의 방해 전파를 제압하고 주민들이 어디서나 대북 방송을 듣거나 시청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방송의 내용도 수요자인 북한 주민의 입장에서 내실화하고, 취향에 따라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다양화해야 한다. 북한 내 휴대전화가 대중화되고 공공기관과 기업을 중심으로 인터넷 사용이 확대되는 추세에 맞추어 최신 위성통신 기술을 활용하여 외부 세계에서 북한 주민과 직접 교신하고 내부적으로 정보를 확산할 방도를 개발할 필요도 있다.
북한 주민들의 알 권리를 떳떳하게 옹호하려면 차제에 북한의 관제 언론과 출판물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접근도 자유화해야 한다. 북한의 선전선동과 출판물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는 것은 북한에 대한 신비주의와 낭만주의적 시각을 조장하는 구시대의 유물일 뿐이다.
북한이 핵무력 증강에 재원을 허비하는 동안 우리는 공세적 정보·문화전쟁으로 북한 엘리트와 민초들의 정신세계를 ‘반동문화사상’으로 물들이는 데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 매년 국방비(59.4조원)의 1%만 투자할 결심을 하면 북한 자유화는 현실이 될 날이 올 것이다.
조선일보 천영우 前 청와대 외교안보수석·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03.22 날 선 연평도… “北 도발땐 선조치, 정치적 고려는 우리 몫 아니다”
오늘 ‘서해 수호의 날’ 해병 연평부대 가보니

▲해병대 연평부대 예하 포병6중대에서 K-9자주포 사격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 한 병사가 훈련상황에서 대응 사격 지시를 받고 장약(교보재)을 옮기고 있다. 연평도에는 K-9자주포 18문이 있지만 실사격 훈련을 해본 포는 6문에 불과하다./해병대 제공
인천 연안부두에서 뱃길로 120㎞가량 떨어져 있는 연평도는 북한을 향한 비수 같은 위치에 있는 최전선이다. 연평도 북쪽 긴작시해안에 도착하니 약 12㎞밖에 있는 북한 개머리해안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왔다. 서정우 하사 등 해병대원 2명과 민간인 2명이 목숨을 잃은 2010년 연평도 포격전 당시 북한 해안포가 불을 뿜은 곳이다. 북한이 9·19 군사 합의를 일방 파기한 이후 해안포 포문을 열어두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서해 수호의 날(22일)을 앞두고 최근 찾은 해병대 연평부대는 지난 1월 북한의 NLL 일대 해안포 사격, 지난 2월 김정은의 ‘백령도·연평도 해상 국경선’ 발언 등으로 바짝 날이 서있는 상태였다. 4월 총선을 앞두고 북한이 대규모 도발을 할 가능성도 대비해야 한다. 70㎞ 밖까지의 적 포격을 탐지할 수 있는 대포병탐지레이더는 북을 향해 24시간 가동 중이었다. 이 레이더는 지난 1월 5일 북의 해안포 200발 사격 도발 당시 NLL 일대에 떨어진 약 30개 포탄 궤적을 정확히 포착했다. 해병대 관계자는 “서해 수호의 날을 맞아 장병 특별 정신교육 등을 실시하며 적의 무력 도발에 ‘단호하고 엄정하게’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고 했다. 이인영 해병대 연평부대장(대령)은 “적이 우리 영토 내에 도발 시 K-9 자주포로 5분 안에 원점 타격을 할 수 있도록 ‘선조치 후보고’를 강조하고 있다”며 “’창끝’에서 빠른 결심을 해야 한다. 정무적이나 정치적인 부분은 우리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래픽=양인성
동이 트기 전인 이른 아침 연평도 경계 작전을 담당하고 있는 90대대의 김종필 작전과장(소령)과 함께 긴작시 일대 해안 철책을 둘러봤다. 초소에는 적 병력을 제압하기 위한 K-6 중기관총이 배치돼 있었고, 해안을 따라서는 적 상륙정 진입을 막는 용치(龍齒)가 빼곡하게 배치돼 있었다. 초소에서 경계 근무를 서는 인원들과 별개로 일출 시각에 맞춰 해병대원은 철책을 따라 순찰에 나섰다. 평평하다는 뜻에서 ‘연이어 뻗친(延) 땅(坪)’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멀리 배에서 보면 기차같이 평평하다며 ‘기차섬’이라고 하지만 해안 절벽을 따라가는 철책로는 설악산 공룡능선처럼 가팔랐다. 김 소령은 “이 길이 가장 고저 차가 작은 길”이라고 했다. 강한 바닷바람에 철책이 흔들리며 고양이 울음 같은 소리가 이어졌다.

▲약국 하나 없는 연평도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김종필 소령(연평부대 예하부대 대대 작전과장) 가족 모습. /해병대 제공
연평부대에는 K-9 자주포 18문이 배치돼 있다. 지난 1월 북한이 해안포 도발을 감행했을 당시 포7중대는 대응 사격 훈련에 나서 K-9 30발 실사격 훈련을 했다. 2017년 8월 이후 연평도에서 K-9 실사격이 중단된 이후 6년 5개월 만의 일이었다. 김희수 포9대대장은 “진지에서 실사격을 해보면 눈빛부터 달라진다”며 “마음 같아서는 한 달에 한 번은 포 실사격 훈련을 했으면 좋겠다”며 포진지에 있는 실탄을 가리켰다. 눈대중으로도 수백 발에 달하는 실탄이 쌓여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비(非)사격 훈련을 하고 있지만 포성도 포 반동도 없는 훈련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월 대응 사격 훈련 당시 일부 K-9 자주포에서는 우발 상황이 발생했다고 한다. 소총에 기능 고장이 생기면 응급 조치를 한 뒤 발사하는 것처럼 실사격 훈련을 해야 비상 상황 대응 능력이 올라간다. 현재 연평도의 K-9 운용 포병중대 3개 중 포7중대를 제외한 병력들은 연평도에서 실사격을 해본 경험이 없다.
지난 1월 포7중대 전포대장으로 대응 사격에 참여했던 이제민 중위는 직후 장기 신청을 했다. 이 중위는 “중학생 때부터 해병을 꿈꿔 ROTC로 임관했는데 정작 연평도에 오니 장기 지원할 생각이 사라졌었다”고 했다. 사회에서 단절된 열악한 근무 환경 등으로 인한 부대 적응 문제가 컸다고 한다. 하지만 북한 도발과 이로 인한 대응 사격을 한 후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 그는 “적 도발 덕분에 나의 존재 이유를 알았다”며 “K-9 자주포가 전포대장인 내 지시에 맞춰 사격하는 모습을 보며 그동안 수없이 시행해 온 훈련의 효용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대연평도까지는 쾌속선으로 2시간 30분가량 걸린다. 민간 병원과 의사가 없어 섬 안에는 약국이 한 곳도 없다. 바닷물을 정수해서 쓰는데 염분과 노후화된 수도로 수질은 극히 나쁘다. 연평부대 예하 부대의 샤워장에는 필터가 2개씩 달려있었다. 그래도 부식이 심해 샤워장은 수용소를 연상케 했다. 그런 물도 때때로 끊겨 식사를 준비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연평부대를 찾은 날도 그랬다. 흔한 커피·치킨 프랜차이즈 단 한 곳이 없다. 전기 공급도 불안정해 군 관사의 경우 절전으로 냉장고에 보관해 둔 음식이 모두 썩어버리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동 트는 새벽 연평도 해안 순찰을 하고 있는 해병대 연평부대 90대대 병력들. /해병대
하지만 이런 환경에서도 기혼 간부 180여 명 중 55명은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아내와 6세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김종필 소령은 “한반도에서 위기감이 가장 높은 지역에서 근무하면서 말 그대로 ‘내 가족을 지킨다’고 생각한다”며 “아들도 아빠가 멋있다고 할 때 힘이 난다”고 했다.
조선일보 연평도=양지호 기자
03.25 북한 도발보다 더 불안한 것은…
지난 22일은 제9회 '서해수호의 날'이었다.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 도발, 같은 해 11월 23일 연평도 포격전에서 청년 군인 '55 용사'가 산화했다. 국민과 함께 영웅을 추모하고 안보의식을 북돋우며 국토 수호 결의를 다지기 위해 2016년부터 매년 3월 넷째 금요일을 정부기념일로 지정해 기리고 있다.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 열린 올해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이 무모한 도발을 감행한다면 반드시 더 큰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군통수권자의 엄중한 경고를 북한은 흘려들을 공산이 커 보인다. 한·미 동맹과 유엔군사령부 회원국들이 참여해 4~14일 실시한 '자유의 방패(Freedom shield)' 훈련 기간에 북한은 맞대응 훈련을 해왔다.
대남 국지도발 우려 상존하는데
안보에 역행하는 언행 정상인가
'반 헌법 세력'은 투표로 여과를

▲김정은이 6일 군부대에서 소총 사격 자세를 취하고 있다. 도발 위협을 계속하고 있다.[노동신문 뉴스1]
특히 지난 18일에는 전술핵탄두 ‘화산-31’을 장착할 수 있는 초대형 방사포(KN-25 단거리 탄도미사일)를 여섯 발 쏜 현장에서 김정은은 "파괴적인 공격 수단들이 상시 적의 수도와 군사력 구조를 붕괴시킬 수 있는 완비된 태세"를 주문했다. 연초에 남북 관계를 '교전 중인 적대적 두 국가'라고 선언하더니 대남 도발 협박과 무력 적화 야욕을 감추지 않고 있다.
하지만 한·미 동맹의 막강한 군사력, 북한보다 60배나 강한 대한민국의 경제력 등을 고려하면 북한의 전면전 도발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군사 전문가들의 대체적 분석이다. 북한의 과거 행태를 돌아보면 국지 도발 가능성은 상존해도, 봉건 세습 독재 정권의 종말을 재촉할 전면 남침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2013년 9월 당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소리치고 있다. [중앙포토]
그런데 온갖 기이한 수사법을 동원한 북한의 대남 선전·선동 협박보다 한국 사회를 더 불안하게 하는 것이 있다. 우리 내부 질서를 교란하고 헌법 가치를 훼손하는 행태들이다. 과거에는 극소수였지만, 지금은 사회 전반에 편향된 이념의 진지를 구축하고 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진출한 이석기 의원은 이듬해 터진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사건'으로 구속되고, 2014년에는 헌법재판소의 정당 해산 심판으로 통합진보당이 해체됐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주도의 비례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 비례대표 후보 상위 순번에 ‘통진당 후신’이란 의혹을 받는 진보당 추천 후보가 3명이나 포함돼 찬반 논란이 뜨겁다.

▲2020년 5월 29일 당시 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인이 국회에서 위안부 할머니 후원금 횡령 등 제기된 여러 비리 의혹에 대해 기자회견을 마친 뒤 퇴장하고 있다. 2심에서도 유죄를 선고 받았다.[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의 비례위성 정당인 더불어시민당 공천으로 21대 국회의원이 된 윤미향 의원이 지난 4년간 보여준 언행도 대한민국 국회의원인지 의구심이 든다. 지난 1월엔 의원회관에서 친북 성향 인사들을 모아 놓고 남북 관계 토론회를 열었는데, 그 자리에서 한 참석자가 "북한이 전쟁으로라도 통일을 결심한 이상 우리도 그 방향에 맞춰야 한다"고 발언해 충격을 줬다. 지난 13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윤 의원은 "전쟁 연습은 평화를 가져오지 않는다. 군사적 충돌을 부를 수 있는 적대행위를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도발에 대비해 방어 차원에서 진행한 한·미 연례 군사 훈련을 비난해온 북한의 대남 공격 메시지를 국회의원이 앵무새처럼 떠든다면 정상적 언행인가.
2019년 9월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사회주의자'라고 자처한 조국 씨는 비례위성정당이 가능해진 선거법의 틈새를 활용해 정당을 만들고 비례대표로 출마했다. 사문서위조, 허위작성 공문서 행사, 업무방해, 청탁금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2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도 피해자인 것처럼 큰소리치고 있다. 출마는 자유라지만, 후안무치에 눈 감으면 우리 사회의 법과 도덕은 또 흔들린다.
2015년 8월 4일 북한이 비무장지대(DMZ) 인근에 매설한 목함 지뢰가 폭발해 하재헌·김정원 하사가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청년 군인의 고통을 위로해줘야 할 정당은 '목발 경품' 망언으로 물의를 빚은 정봉주 전 의원에게 공천장을 줬다가 뒤늦게 취소했다. 운동권 세력이 북한에 맞서 나라를 지키는 호국 정신을 얼마나 가볍게 보는지 짐작 가능한 장면이다.
지난 22일 후보등록이 마감되면서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시작됐다. 단순히 의원 300명을 새로 뽑는 이벤트로 끝내서는 안 된다. 유권자로서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반드시 투표해야 한다. 대한민국을 안에서 흔들고 헌법 가치를 망가뜨리는 세력은 걸러내야 한다. 그래야 자유민주주의가 위험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의무다. 마침 오는 26일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태어난 날이다. 그가 이 땅에 전수하고 뿌리내린 자유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새삼 되새긴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03-26 천안함 유족 대표 “‘망언 5적’ 민주 후보들 사죄하라”

이성우 회장, 14주기 맞아 규탄
조한기·박선원 등 일일이 거론
북한군의 소행으로 판명된 천안함 피격 사건이 14주기를 맞은 26일, 과거 폭침 부정 발언 등으로 물의를 빚은 국회의원 총선거 출마 후보들을 향해 유족 측이 사과를 요구했다.
관계단체에 따르면 이성우 천안함46용사 유족회장(고 이상희 하사 부친)은 이날 오전 경기 평택 2함대사령부 안보공원에서 열린 추모행사에 이어 ‘천안함 망언 5적’에 대한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이 회장은 “천안함 폭침은 명백히 북한 도발로 발생한 사건으로, 14년 전 북한의 폭침 도발에 의해 저희 아들을 포함해 46명의 해군 장병이 희생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북한에 의한 천안함 폭침을 부정하는 정치인들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구체적으로 5명의 정치인을 거명해 “천안함 유가족과 국민 앞에 사죄하라”고 요구했다. 이날 오후에는 서울 광화문에서 ‘망언 정치세력’을 규탄하는 집회도 열린다.
유족 측이 거론한 후보들은 모두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이번 총선에서 지역구 출마했다. 충남 서산·태안에 출마한 조한기 후보는 SNS에서 “1번 어뢰에 대해 아무런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언론의 집단적 담합은 무엇인가”라고 말했다. 인천 부평갑 노종면 후보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천안함 폭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모든 언론은 가짜”란 주장을 내놨다. 인천 부평을의 박선원 후보는 선체결함설을 강변하는가 하면 천안함 사건을 “안보 실패의 가장 처참한 사례”로 일컬었다. 경기 화성병 권칠승 후보는 최원일 전 천안함장을 향해 “무슨 낯짝으로 그런 얘기를 하나. 부하들 다 죽이고 어이가 없다”고 비난했고, 서울 동대문을 장경태 후보는 “군인이라면 경계에 실패하거나 여러 가지 침략을 당한 부분에 대한 책임감도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인요한 전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은 이날 오후 백령도에 위치한 천안함 46용사 위령탑을 참배한다. 국민의미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은 이후 첫 외부 일정으로, 1박 2일 백령도 방문 일정에는 국민의미래 비례순번 12번인 유용원 후보와 김병욱 선대위 종합상황실장 등이 동행한다.
문화일보 조재연·강한 기자
03.27 ‘천안함’ 망언 5명 대부분 당선권, 유족들의 절규

▲26일 오전 경기 평택시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 열린 '제14주기 천안함 46용사 추모식'에서 유가족들이 천안함 46용사 부조물을 어루만지고 있다. /뉴스1
북한의 천안함 공격으로 전사한 46용사의 유족들이 폭침 14주기였던 어제 경기도 평택 2함대사령부에서 추모 행사를 갖고 ‘천안함 망언 5적’의 사과를 요구했다. ‘망언 5적’이란 폭침 부정 등의 발언으로 물의를 빚고도 이번 총선에서 공천을 받은 민주당 후보 5명을 가리킨다. 유족들은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유족들의 아픈 가슴에 다시 한번 비수를 꽂고 생존 장병의 명예를 훼손한다”며 “더 이상 천안함 피격 사건이 정치권의 정쟁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이들은 22대 국회가 ‘천안함 괴담 방지 특별법’을 만들어 달라고도 했다.
천안함 폭침 이후 친북·좌파 진영을 중심으로 좌초설, 피로파괴설, 미군 오폭설 같은 황당무계한 음모론이 판을 쳤고 민주당도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정부 조사에 대한 불신을 퍼뜨렸다. 당시 국회의 북한 규탄 결의안 표결에서 민주당 의원 70명 가운데 69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민주당 대표가 북한 소행임을 공식 인정한 것은 사건 발생 5년이 지난 뒤였다. 그마저도 진심이라 보기 어려웠다. 문재인 정부 대통령 직속 위원회는 천안함 폭침을 재조사하려 했다. 당시 국방 장관은 천안함 폭침을 “우발적 사고”라 했다. 천안함 폭침 주범인 김영철은 국빈 대접을 받았다.
이런 사람들이 보기에 천안함 폭침에 대한 괴담을 퍼뜨리고 생존 장병을 모욕한 것은 국회의원 결격 사유가 아닌 모양이다. 민주당이 인천 부평갑에 공천한 YTN 노조위원장 출신 노종면 후보는 “천안함이 폭침이라고 쓰는 모든 언론은 다 가짜”라고 했다. 경기 화성병 권칠승 후보는 전 천안함장을 향해 “무슨 낯짝으로 얘기하느냐. 부하 다 죽이고 어이가 없다”고 했다. 이들을 비롯해 유족들이 ‘망언’으로 지목한 민주당 후보들이 대부분 당선이 유력하다고 한다. 이들이 사과 한마디 없이 국회의원이 되는 것 자체가 천안함 희생 장병과 유가족, 생존 장병들을 공격하는 것이다. 북한 살인범들을 돕는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3.29 헌재 “사드 배치 기본권 침해 안 돼” 이 결정에 7년 걸린 나라

▲2017년 9월 7일 오전 경북 성주군 사드 기지에 반입된 사드 발사대가 하늘을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법재판소가 어제 주한미군 사드 배치로 기본권을 침해당했다며 경북 성주와 김천 주민, 원불교도들이 낸 헌법소원을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각하했다. 헌법소원 대상 자체가 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서 국민을 지키기 위해 방어 장비를 배치한 것이 기본권 신장이지 어떻게 침해가 되나. 이 당연한 결론을 내리는 데 7년이 걸렸다.
2016년 정부가 국내 최대 참외 산지인 성주에 사드 배치를 결정하자 사드 반대 단체 등은 “사드 전자파가 참외를 오염시킨다”는 괴담을 퍼뜨렸다. 괴담에 넘어간 일부 주민이 참외밭을 갈아엎고 사드 장비와 물품 반입을 막았다. 몇몇 민주당 의원은 사드 반대 집회에 나가 “내 몸이 튀겨질 것 같다”는 노래를 불렀다. 당시 측정해 보니 사드 전자파는 기준치의 수천 분의 1 수준이었다. 성주 참외는 몇 년 전부터 최고 매출액을 매년 갈아치우고 있다. 이성과 상식을 가진 소비자와 국민이 괴담을 몰아낸 것이다. 헌재는 “사드 전자파의 위험성은 규제 기준에 현저히 미달하는 미미한 수준”이라고 했는데 이걸 아는 데 7년이 걸렸나.
문재인 정부는 국민을 지키기 위한 사드 배치를 미적거리며 사실상 방해했다. 사드 전자파가 인체에 무해하다는 결과를 수십 차례 확인하고도 공개하지 않았다. 중국과 북한이 싫어한다면 국민을 지키는 일이라도 하지 않은 것이다. 이 때문에 기지 내 한미 장병들은 제대로 된 숙소와 화장실 없이 컨테이너 같은 임시 시설에서 열악하게 생활했다. 발사대는 시멘트 타설을 하지 못해 땅 위에 금속 패드를 깔고 임시로 전개했다. 우리 목숨을 지키기 위해 배치된 방어 체계를 우리 스스로 망가뜨렸다. 그나마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돼 사드를 제대로 배치할 수 있었다. 헌재는 이번 결정까지 7년이나 걸린 이유에 대해 “관련 재판 결과를 반영할 필요가 있었다”고 한다. 사법부 전체가 사실상 사드 괴담을 도왔다는 고백처럼 들린다.
조선일보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