危機의 韓半島(外交) 2024-03/
03.01 북·러 위험한 거래, 한·미·일과 한·중·일로 막아야
中, 북·러 밀착 바라지 않아
중·러 군사훈련에 北 포함시키자는
러시아 제안에도 묵묵부답
우리의 해법은 두 삼각관계 가동
한·미·일 안보 협력과
한·중·일 삼국 협력
유라시아 영향력 확대하려는
중국의 야심 적극 활용을
북·중·러 관계가 유라시아의 ‘위험 삼각(danger triangle)’으로 등장하고 있다.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로 인한 국제적 고립을 탈피하고자 오랜 기간 북한-중국-러시아 간 삼각 연대를 주장해 왔다. 이에 대해 최근 러시아가 긍정적으로 화답하면서 북·중 친선에 북·러 협력이 더해졌다. 급기야 러시아는 중·러 연합군사훈련에 북한을 포함하자고 제안했다.
이러한 제안의 기저에는 북·러 군사 협력이 자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 성과를 위해 러시아가 군사 지원을 노리고 북한에 접근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문제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북한이 러시아에 대한 ‘불법’ 군사 지원의 대가로 ‘결정적’ 군사기술 지원을 기대한다는 점이다.
러시아는 북한의 ‘전략적 퍼즐’을 완성해 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존재다. 북한은 핵탄두 수를 최대한 늘려가면서 (미국 본토를 때릴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을 완성하게 되면 미국이 결국 대화의 장으로 나올 것으로 본다. 그러면 미·북 대화를 비핵화가 아닌 핵 군축 협상으로 변질시켜 일정한 시점에 북한의 ICBM을 폐기하는 대신 최소량의 핵탄두 보유와 미·북 수교를 받아내게 되면 대성공이다. 핵무기와 미·북 우호를 통해 ‘김씨 왕조’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미국을 향해 쏜 ICBM의 핵탄두가 대기권을 벗어난 후 재진입(re-entry)하여 (마하 20 이상으로 통과하면서 발생하는) 7000~8000도의 마찰열을 견뎌내고 탄도를 유지해 워싱턴이나 뉴욕을 정확히 타격할 수 있는 기술을 러시아로부터 원한다. 미국 서부 해안 쪽으로 잠항해 핵 공격을 가할 원자력 잠수함과 정찰위성의 해상도를 높이는 광학 기술도 기대할 것이다.
2023년 하반기에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북한제 무기가 발견된 데 이어 최근에는 북한의 포탄 지원이 본격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간 2백만 발의 포탄 생산 능력을 가진 러시아에 북한 포탄 수백만 발이 갔다면 대규모 지원이다. 북한산 미사일 잔해도 우크라이나에서 발견되고 있다.
북·러 군사 협력의 향배는 우크라이나 전쟁 양상에 달려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과 우방국들의 지원이 확대되면 북한의 지원이 절실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러시아가 북한에 ‘결정적’ 군사기술을 제공할 가능성이 커진다. 1월 26일 러시아 외무부가 우리에게 우크라이나에 대한 직접 군사 지원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나온 것은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지원하면 러시아가 북한에 결정적 군사기술을 지원하겠다는 협박으로 들린다. 그러나 조속히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고 싶더라도 러시아가 한미 동맹을 향해 경솔한 행동은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후폭풍이 클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북·러 군사 협력에 대한 중국의 태도를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중·러 연합훈련에 북한을 참여시키자는 러시아의 제안에 대해 중국은 묵묵부답이다.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에 대한 무기 지원을 자제하고 있다. 중·러 연대가 그토록 단단하다면 중국이 러시아에 살상 무기를 지원해야 하나 ‘상황 관리’가 우선이다. 중국은 21세기판 실크로드인 ‘일대일로(一帶一路)’를 통해 영향력을 확대해 가고 있는 유라시아의 안보 환경이 러시아로 인해 요동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러시아로 인해 약화하는 것 역시 받아들일 수 없다. 중국은 북·중·러 대 한·미·일 대결 구도는 한중 양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수차례 언급한 바 있다.
따라서 우리는 북·러 관계가 금지선(red line)을 넘지 않도록 두 개의 삼각관계를 가동해야 한다. 하나는 한·미·일 안보 협력이고, 다른 하나는 한·중·일 삼국 협력이다. 한·미·일은 러시아가 북한에 결정적 기술을 제공할 경우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지를 러시아가 예측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한일 양국은 중국과 긴밀히 협의해 한·중·일 정상회담을 조속히 개최해야 한다. 한·중·일 정상회담은 북·러 밀착을 견제해야 하는 중국에도 긴요하다. 북·러 군사 협력이 선을 넘을 경우 한·미·일 안보 협력이 예상 범위를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한·중·일 정상회담을 통해 중국이 북·중·러 삼각관계로부터 빠져나오도록 해야, 북한과 러시아의 위험한 거래를 막을 수 있다.
조선일보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前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
월간조선 03월 호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에게 듣는다
“트럼프 재선해도 한·미·일 관계 급속한 변화 불가능”
⊙ “9·19 군사합의는 이적행위… 북의 하마스식 공격에 국민들 死地 몰릴 뻔”
⊙ “대한민국의 흡수통일 두려워한 김정은, ‘하나의 조선’ 노선 포기”
⊙ “김정은 정권 붕괴 시 북한 수복 위해 ‘남북기본합의서’ 붙들어야”
⊙ “미국의 천연우라늄 도입하지 않고 농축 장비를 개발하거나 제3국에서 도입하면 우라늄 농축 가능”
⊙ “현무4 등 고위력 탄도미사일 개발 성공… 전술핵 대체 효과”
⊙ “캠프 데이비드 협정은 동북아 전략 지형 재편한 한·미·일 3국 정상의 ‘작품’”
⊙ “북한과 무기 기술 거래하는 러시아…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 제공 선언해야”
千英宇
1952년생. 부산대 불문학과, 미국 컬럼비아대 국제대학원 국제학 석사 / 제11회 외무고시 합격, 주(駐) 유엔대표부 차석 대사, 외교통상부 외교정책 실장, 북핵 6자회담 한국 측 수석 대표, 주 영국 대사, 외교통상부 2차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역임. 現 한반도 미래포럼 이사장

▲사진=오동룡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한 달이 멀다 하고 미사일을 쏘아대며 전쟁 분위기를 고조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 “대한민국”이란 호칭을 사용해 우리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다. 김정은은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이명박(李明博) 정부의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천영우(千英宇·72)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북한이 3대에 걸쳐 일관되게 견지해온 ‘하나의 조선’에 입각한 통일을 포기하고 2국 체제를 들고 나온 것은 1974년 동독이 채택했던 노선과 똑같다”며 “서독의 흡수통일을 두려워했던 동독은 2국 체제를 들고 나온 지 15년 만에 흡수통일됐다”고 말했다.
지난 2월 5일 서울 종로에 있는 한반도미래포럼 사무실에서 만난 천영우 이사장은 1977년 외교부에 들어가 2013년 퇴직할 때까지 36년간 총성 없는 전장인 외교 무대에서 활약한 정통 외교관 출신이다. 노무현(盧武鉉) 정부에서 2년 이상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를 맡아 비핵화 협상 전면에 나섰고, 이명박 정부에서는 후반기 2년 반 동안 외교안보수석으로 국방·통일 분야에서 대통령을 보좌했다. 2010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 직후, 천 수석은 북한의 모든 장사정포 진지를 5분 이내에 파괴할 수 있는 전술지대지미사일(KTSSM)을 개발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정도로 무기체계에 대한 이해도 수준급이다.
천영우 이사장은 윤석열(尹錫悅) 정부가 출범하기 직전인 2022년 4월 대한민국 외교·안보 정책의 길라잡이가 될 책 《대통령의 외교·안보 어젠다-한반도의 운명 바꿀 5대 과제》(박영사)를 펴냈다. 기자가 구매한 책을 천 이사장에게 건네자 “외교의 수장과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께 참고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평소 생각을 정리했는데, 기자와 학생들도 많이 본다고 들었다”며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사인을 해주었다.
“연평도 포격 때보다 상황 안정적”

▲지난 1월 15일 김정은은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를 열어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평정·수복하고 공화국 영역에 편입시키는 문제를 헌법에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사진=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 이명박 정부 때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이 있었습니다. 당시와 현재를 비교해 안보 상황을 어떻게 보는지요.
“그때보다는 지금이 훨씬 안정적이죠. 2010년은 김정일이 반신불수 상태로 후계체계가 확립되지 않은 시점이라 사소한 충돌에도 과잉 반응해야 할 국내 정치적 수요가 있을 때였습니다. 남한에 조금이라도 약한 모습을 보이면 짓밟힐 것이란 강박관념이 있었을 때이고, 지금은 경제난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김정은 체제는 안정돼 있습니다. 내적으로 김정은의 권력에 도전이 될 만한 요소는 없다고 봅니다. 따라서 국내 정치적 목적으로 도발하거나, 한미연합훈련에 과잉 대응해 도발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봅니다.”
— 그렇다고 북한의 도발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지요?
“북한의 국지도발 가능성을 과소평가할 순 없죠. 하지만 어설픈 도발로 연평도 포격 때 우리의 K9 자주포에 의해 6·25 전쟁 이후 처음으로 북한 영토를 포격당한 악몽(惡夢)이 재현된다면, 핵을 가진 김정은의 권위는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겁니다.”
김정은은 지난해 12월 말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와 통일 정책의 근본적 전환을 선언했다. 대한민국이란 정식 국호를 사용하면서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인 두 교전국 관계”로 규정한 데 이어, 지난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에서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등 대남기구의 폐지를 결정하고, 북한의 영토 범위를 헌법에 명시하기 위한 개헌 의지도 밝혔다.
북이 ‘대한민국’이란 호칭 사용한 이유
— 북이 ‘대한민국’이란 호칭을 사용해 우리 국민들을 어리둥절케 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남북 체제 경쟁에서 이제는 이길 자신이 없다는 고백이고요, 또 북한이 3대째 고수해온 ‘하나의 조선’ 노선으로 북한 주도하의 적화통일을 하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인식한 것으로 보입니다.”
— 핵무기 고도화와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기술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김정은이 오히려 적화통일에 자신감을 잃고 있다는 게 역설적입니다.
“김정은이 적화통일이든, 평화통일이든 통일은 ‘김정은 체제의 몰락’이란 이치를 깨달은 것 같아요. 남북 간 체제 경쟁에 대한 자신감 상실과 흡수통일에 대한 실존적 공포심을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남북이 서로 주권국으로 인정하면 통일의 명분이 없어지고, 수단과 방법도 대폭 제약되기 때문에 흡수통일을 막을 정치적 방패가 될 수 있다고 본 거죠. 김정은 연설의 행간을 보면 ‘우리는 이제 적화통일이든 평화통일이든 다 포기할 테니, 당신들도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의 통일을 포기하라’는 속내가 읽힙니다.”
— 김정은은 자유분방한 한국의 대중문화도 체제를 위협하는 ‘악성 바이러스’로 인식하고 있는 듯합니다. 최근엔 ‘반동사상문화배격법’까지 제정해 한류의 유입을 중형(重刑)으로 다스리고 있습니다.
“김정은은 어떤 식의 통일이든 ‘한류 바이러스’의 수문이 열리면, 그 걷잡을 수 없는 물줄기가 종국엔 김정은 체제를 삼킬 ‘악마’로 보는 것이지요. 북한 입장에서 적화통일이 아무리 중요해도 정권의 존속보다 우선할 수는 없고, 생존을 희생하면서 추구할 만한 가치는 없다고 보는 겁니다. 북한은 불안할수록 허세를 부리고 언행이 거칠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직은 핵 선제공격으로 장렬한 집단 자살을 시도하기보다 변신을 통한 생존에 희망을 거는 것 같습니다.”
‘남북기본합의서’는 통일에 대비한 조약문서

▲1991년 12월 13일 제5차 남북 고위급 회담 본회의에서 남측 정원식 총리와 북측 연형묵 총리가 남북기본합의서에 서명한 후 교환하고 있다. 사진=조선DB
— 김정은의 남북한 2국 체제 전환 선언은 1991년 체결한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을 전면 부정하고 두 개의 주권국 체제로 전환한다는 뜻 아닌가요.
“대한민국에 흡수통일될 ‘위험성’만 높아진다면 통일을 아예 포기하고 2국 체제로 가는 것이 북한엔 실리적 선택이란 겁니다. 그러나 2국 체제로 가는 것은 북한엔 실리적 선택이지만 통일의 결정적 기회가 오더라도 이를 포기해야 한다는 점에서 한반도의 미래엔 재앙(災殃)입니다. ‘남북기본합의서’에는 남북관계를 국가 관계가 아니라고 못 박고 있고, 남북이 상대방을 무제한의 자치권을 보유한 지방정부로 간주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북한이 자치 능력을 상실할 경우, 대한민국이 중앙정부 자격으로 북한의 자치권을 회수하고 직할 통치를 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합니다.”
— 북한이 지금껏 남북 간 모든 합의를 깨면서도 남북기본합의서만은 깨지 않고 지켜온 게 신기합니다.
“역으로 북한도 남한을 적화통일하는 데 필요한 문서이기 때문입니다.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남북한 총리 회담을 여러 차례 거쳐 만든 조약 형식의 가장 권위 있는 법적 문서죠.”
— 1991년 9월 남북한은 이미 유엔에 동시 가입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별개의 주권국가로 인정받지 않았나요.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면서 국제법적 혼란이 생긴 것을 정리해야 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유엔 가입과 별개로 남북 상호 간에는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로 한 겁니다. 이는 우리가 독자적으로 북한 안정화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할 때, 제3국의 시비를 차단하고 개입을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법적 근거입니다. 북한을 국가로 인정한다면, 국제법상 유엔 안보리의 승인 없이는 자위권의 범위에서 벗어난 군사 개입이 불가능해지고, 대량 학살 중단과 인도적 참사 수습을 위해 우리가 개입하려고 해도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권에 막혀 손발이 묶일 수 있습니다.”
“서독, 동독의 2국 체제 주장 거부”
— 북한이 제멋대로 대한민국을 주권국가로 인정하겠다고 하는데, 이걸 막을 방법은 없을까요.
“북한이 하겠다면 막을 방법은 없지요. 우리가 인정하지 않으면 됩니다. 우리는 북한을 국가로 인정할 수 없고,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 헌법 제3조의 영토 조항을 개정하는 우(愚)를 범해서도 안 됩니다. 통일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식어가고 있다고 해서 통일의 기회가 도둑처럼 찾아올 때, 이를 놓칠 결정을 졸속으로 하면 안 됩니다. 북한 정권의 폭압 아래 신음하는 2500만 명의 동족에게 인간다운 삶을 누릴 희망을 박탈하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실책이 될 겁니다.”
천영우 이사장은 “좌우 양 진영에서 차제에 통일을 포기하고 2국 체제로 가자는 주장이 분출하더라도 정부는 중심을 잡아야 한다”면서 “서독이 동독의 집요한 국가 승인과 2국 체제 전환 요구를 끝까지 거부한 이유 속에 그 해답이 있다”고 했다.
— 동독이 서독에 2국 체제를 요구한 전례가 있군요.
“1974년 동독이 서독의 흡수통일을 막기 위해 통일을 포기하고 두 국가 시스템으로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서독은 통일이 되는 그날까지 받아주지 않았어요. 서독이 하나의 독일 원칙으로 내세운 게 ‘할슈타인 원칙(서독이 동독과 외교관계를 맺는 국가와는 외교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1955년 발표한 외교상 원칙)’이었다면, 동독이 통일을 회피하기 위해 내놓은 방책이 2국 체제였습니다. 김정은의 북한은 1974년 동독이 했던 짓을 똑같이 반복하고 있습니다. 동독은 2국 체제를 주장한 지 15년 만에 서독에 흡수통일됐습니다. 북한이 동독처럼 15년 후 남한에 흡수통일될지는 알 수 없지만, 역사가 가는 방향에서 북한은 지금 동독의 1974년 상황에 처해 있다고 봅니다.”
‘시시포스의 신화’가 된 북핵
— 우리의 대북 정책은 지금껏 계속 실패의 연속입니다. 문제는 무엇일까요.
“대북 정책의 가장 큰 목표는 북한의 비핵화입니다. 결론적으로 북한의 핵무장 의지가 초강대국 미국을 위시한 핵심 이해 당사국들의 집단적 비핵화 의지를 압도했습니다. 국제사회가 힘을 모으지 못한 거지요. 결국 ‘시시포스의 신화’처럼 시간이 갈수록 바위는 더 무거워져, 제자리에 올려놓는 것조차 불가능해졌습니다.”
—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윤석열 정부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대북 제재를 강화하고, 북한의 핵무장에 대한 정치·경제적 비용을 높이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습니다. 북한이 우리 정부에 요구하는 것은 자신들이 핵을 개발하고 미사일 개발하는 데 들어가는 ‘돈줄’ 역할만 해달라는 것이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대화의 물꼬를 튼답시고 남북이 만나 납북자 문제와 국군포로 문제 등 인도적 문제를 꺼내면 북한이 관심을 가질까요?”
— 19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엔 당시 주오스트리아 대사관에서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북핵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특히 1999년 대북경수로사업기획단의 국제부장으로 일하시면서 1995년 3월 발족한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의 실제적인 업무를 담당하셨지요? 북한 비핵화가 얼마나 험난한 길인지 체험했을 것 같습니다.
“1999년부터 2년간 평양, 신포(북청)를 비롯해 경수로가 건설되는 함경남도 금호지구를 들락거렸습니다. 그러다 북한이 파키스탄의 도움으로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몰래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이 발각되면서 부시 행정부 들어서 사업이 중단됐습니다. 북한이 경수로와 핵을 동시에 가지려 욕심을 부리다 2002년 미국이 제네바 합의를 파기(2차 북핵 위기)하면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지요.”
“북, 정권 사활 걸고 핵 개발”

▲2007년 2월 13일 북핵 6자회담이 6개국의 합의로 타결된 가운데, 이날 오후 중국 베이징의 댜오위타이에서 열린 폐막 회의에 앞서 참가국 수석대표들이 손을 맞잡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북한은 핵 개발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경수로를 건설해주는 대가로 비핵화, 사찰을 애초부터 수용할 가능성이 없지 않았을까요?
“그렇지 않아요. 북한의 전력 부족은 경제에 있어 사활이 걸린 문제였어요. 금호지구에 건설하려던 경수로가 200만 킬로와트 용량인데, 당시 북한 전력 총량은 500만 킬로와트가 채 안 됐어요. 24년 전이나 지금이나 북한 에너지 사정은 똑같아요. 그때 경수로 건설을 성공적으로 했더라면 북한은 경수로에서 전력의 40%를 충당할 수 있었을 겁니다. 인민군대 동원해 2012년 4월 완공한 자강도의 희천발전소도 경수로 용량의 10분의 1 수준밖에 안 될 겁니다.”
— 2007년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 시절엔 북한 김계관 수석대표와의 담판으로 2·13 합의(영변의 플루토늄 프로그램을 다시 동결하고 재가동이 어렵게 ‘동결화’)에 성공하셨는데, 결국 북한의 비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사기극’이 드러나면서 2009년 4월 6자회담 체제도 종말을 고하고 말았습니다.
“6자회담에서도 중국이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경제관계를 단절하겠다든지, 미국이 하자는 대로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에 동참했더라면 북한은 경제적으로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겁니다. 중국이 북한의 비핵화엔 원칙적으로 동의하면서도 북한 체제의 안정을 해쳐가면서 할 생각이 없다고 했어요. 북한이 밥을 굶어가면서라도 핵을 만들겠다고 나오니 그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던 거죠.”
— 그런 면에서 중국은 ‘방관자’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엔 중국도 북한이 핵을 갖는 것에 대해 반대했습니다. 러시아도 그렇고요. 핵 보유국들은 아무리 우방국이라도 핵을 갖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우리가 핵을 가진다면 미국이 제재하지는 않겠지만 좋아할 리는 없지요. 그래서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핵을 보유하려고 할 때, 카터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꺼내면서 저지한 것 아닙니까. 우리는 그 정도의 압박에 무너졌지만, 북한은 정권의 사활을 걸고 덤비니 손쓸 도리가 없었던 겁니다.”
사거리와 탄두 중량 늘리는 데 성공
천 이사장은 “납세자의 입장에서 우리 군이 획득하려고 신경 쓰는 무기 시스템 가운데 긴요하지 않은 것은 무엇이냐”고 물었고, 기자는 “무엇보다 병사들 월급을 과다하게 책정해 군사력 건설 비용이 전력운용비로 유출되는 것이 큰 손실”이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해군이 원자력잠수함을 건조하려고 하는 것이 큰 전력(戰力) 낭비라 생각한다”고 했다.
천영우 이사장은 심윤조(沈允肇) 전 의원, 박진(朴振) 전 외교부 장관 등 대부분의 해군 출신 외교관들이 통역 장교의 길을 걸었던 것과 달리, 1970년 해군 수병(水兵)으로 입대해 36개월 동안 당시 최신예 군함인 ‘93함’에서 레이더병으로 복무했다. 2016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따라 중국과의 갈등이 정점에 달했을 때, 레이더 운용에 대한 기본 원리를 꿰뚫고 있었던 천영우 이사장은 중국의 국책 싱크탱크인 중국사회과학원 과학자들을 상대로 레이더파와 지구 곡면 원리를 설명하며 사드 레이더파가 중국을 관측할 수 없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한 적이 있다고 했다.
— 해군 출신 외교안보수석으로 2011년 ‘아덴만 여명 작전’을 건의하고 관철했습니다.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우리 선원들을 구출하기 위해 작전을 대통령께 건의했는데, 작전의 성공으로 이후 해적들이 한국 선박을 납치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주 큰 보람입니다.”
— 2012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재임 중에 톰 도닐론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의 직접 담판을 통해 ‘한미 미사일 지침’ 2차 개정에서 한국 미사일 능력을 획기적으로 증강했지요?
“2003년부터 2년간 유엔 미사일 패널의 위원으로 참가하면서 세계적 미사일 전문가들과 토론하면서 미사일을 집중적으로 공부한 것이 결정적으로 도움이 됐지요. 당시 언론에서는 사거리가 300km에서 800km로 늘어난 것에 초점을 맞췄는데, 사실은 탄두 중량을 늘리려는 게 우리의 목표였죠.”
“전술핵 필요 없어져”

▲우리 군이 최근 개발에 성공한 현무4 탄도미사일은 전술핵 수준의 파괴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9월 4일 합참이 북한 6차 핵실험 도발에 대응해 동해에서 현무2 탄도미사일을 실사격하고 있다. 사진=국방부
— 사거리를 줄이는 대신 탄두 중량을 늘려 파괴력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군요.
“사실, 우리의 목표는 미사일 지침 폐지인데, 미국이 미사일 지침 고수를 주장하니까 타협책으로 사거리를 800km로 미국에 맞춰준 대신, 탄두 중량을 500kg으로 했지요. 사거리 증가에 따라 탄두 중량을 줄여야 한다는 트레이드 오프(Trade-off) 방식을 적용했어요. 사실 북한의 모든 미사일 기지는 사거리 500km면 충분합니다. 만약 우리가 사거리를 300km에 맞추면 탄두 중량을 2톤까지 올릴 수 있는 겁니다.”
— 현무4는 북한 김정은의 지하 벙커까지 뚫는 전술핵급 ‘괴물 미사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예전엔 미사일의 정확도가 떨어져 전술핵이 필요했던 겁니다. 예컨대 지하 고강도 목표물을 파괴하는데, 원형 공산 오차(CEP·Circular Error Probability)가 100m라면, 목표점 중심 반경 100m 내에 50발이, 그 외곽 지역에 나머지 50발이 떨어진다는 얘기죠. CEP가 200m였다면 재래식 무기로는 곤란하고 전술핵을 써서 파괴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재래식 미사일의 정확도와 파괴력이 획기적으로 향상되면서 전술핵의 필요가 없어진 겁니다.”
— 미사일 지침에선 순항미사일 때문에 덩달아 탑재 중량이 묶여버린 무인기(UAV)의 탑재 중량도 협상했다면서요?
“미사일 지침 개정 협상 당시 무인기(UAV) 카테고리를 신설해 한국이 탑재 중량 2.5톤 규모의 대형 무인공격기를 개발할 수 있도록 합의했습니다. 미국 정부와 협의해 탑재 중량을 기존 500kg에서 2.5톤으로 늘렸습니다. RQ-4 글로벌 호크와 같은 대형 UAV 도입이나 개발에 걸림돌을 제거한 겁니다. 이때 협상 덕분에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무인기가 맹활약한 것처럼, 한반도 안정화 작전이라든지 여러 가지 군사적으로 중요한 성과를 거뒀습니다.”
— 요즘 북한이 탄도미사일 고도화를 계속해나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북한의 미사일 기술 발전에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것은 액체연료에서 고체연료로 바꿔가는 움직임입니다. 북한 미사일을 탐지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거죠. 지금은 발사장 거리에 따라 20~30분 이내에 쏠 수 있어요. 북한은 ICBM을 발사할 수 있는 TEL(이동식발사대)을 얼마 전까지 사용했습니다만, 우리에게 치명적으로 위협적인 건 화물열차 플랫폼입니다. 북한이 ‘철도 기동 미사일연대’를 만들어 3량짜리 기관차에서 KN-23과 같은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을 보고 TEL보다 훨씬 위협적이라 생각했습니다.”
“원잠은 필요 없어”
— 얼마 전엔 SLBM(수중발사탄도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현재 북한의 SLBM 개발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수중 바지선에서 쏠 것으로 예측됩니다. 북한의 최종 목적은 원자력잠수함 보유가 아니라 한미 양국이 탐지할 수 없는 물속에 감출 수 있는 발사대가 필요할 겁니다. 북한이 원자력잠수함을 만들어 동해상을 지나 하와이 인근 태평양까지 진출해 미국 본토를 공격한다는 가정은 난센스입니다. 무슨 수로 북한의 핵무기를 장착한 잠수함이 동해에 우글거리는 한국과 미국, 그리고 일본의 잠수함을 회피해 작전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건 원자력잠수함을 보유해야 한다는 분들이 사용하는 논리일 뿐입니다.”
— 우리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 건조를 반대하나요.
“재래식 잠수함만으로도 충분해요. 원잠은 멀리, 빨리 가는 데 필요한 무기체계입니다. 우리가 현재의 재래식 잠수함으로 하루면 북한 연근해에 도달해 작전할 수 있는데, 왜 원잠을 보유해야 하나요. 원잠은 건조 비용, 정비, 교육훈련 등에서 막대한 예산이 있어야 하고, 최소 3척을 갖춰야 기본적인 작전이 가능합니다. 미국의 경우, 원해(遠海) 작전을 위해, 그리고 한반도까지 오려면 2~3주일이 걸리기에 25노트 이상으로 달리는 원자력잠수함이 필요한 겁니다.”
— 동북아 지역 유사시 미국이 동남아 해역까지 원해 작전을 우리에게 요청하지 않을까요.
“SLBM을 장착한 북한 잠수함을 잡는 방법은 북한 기지 앞에서부터 밀착 감시하고 추격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소수의 대형 잠수함이나 원잠보다 정숙성과 은밀성이 뛰어난 다수의 209급, 214급 잠수함으로 북한 잠수함 기지를 포위해 매복하는 것이 적은 비용으로 탐지 확률을 높이는 길이죠. 미국이 호주에 원잠 건조를 허용한 것도 미국의 중국 잠수함 감시 임무를 분담하는 조건인 겁니다.”
“우라늄 농축 착수해야”
— 최근엔 미국에서 ‘한일 우호적 핵무장 허용론’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건 학자들이나 정부 밖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입니다. 이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미국이 한일 핵무장을 허용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 성급한 판단입니다. 다만, 과거엔 우리의 핵무장에 대한 담론에 대해 미국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던 것은 사라지고, 우리를 설득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무장이 기정사실로 되어가고 있으니까, 우리의 핵무장을 논리적으로 반박하기는 어려워진 거죠.”
— 독자적 핵무장 잠재력은 갖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죠?
“지금부터라도 우리 과학기술계가 우라늄 농축에 착수해야 합니다. 우리가 한미 원자력 협정에 따라 우라늄 농축을 하지 못한다고 알고 있는데, 그건 오해입니다. 한미 원자력 협정은 미국산 천연우라늄이나 미국 기술과 장비를 사용해 농축할 때는 20% 이하의 농축으로 미국의 사전동의를 얻도록 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미국의 천연우라늄을 도입하지 않고 농축 장비를 개발하거나 제3국에서 도입하면 얼마든지 농축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은 법적 제약 때문이 아니라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기계연구원 등 우리 과학기술계가 관심이 없어서 안 하는 겁니다. 대통령이 결심해 우라늄 농축 연구개발에 돈을 투자하면, 아마 5년 이내에 원심분리기법을 이용한 농축 기술을 확보할 수 있다고 봅니다.”
“9·19 합의, 이적성 농후”

▲2018년 9월 19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이 참석한 가운데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9·19남북군사합의문에 서명했다. 사진=조선DB
— 9·19 남북 군사합의는 북한이 폐기를 선언했습니다. 이 마당에 우리는 북한의 3차 정찰위성 발사 다음날인 지난해 11월 22일 비행금지구역 조항의 효력을 정지했는데요, 군사합의를 전면 폐기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북한이 폐기해준 게 참으로 고마운 일이죠. 일단, 북한이 폐기했다면 9·19 군사합의는 우리가 굳이 폐기하지 않더라도 지킬 필요가 없는 겁니다.”
— 2018년 9·19 군사합의는 어떤 측면에서 문제가 있나요.
“이적성(利敵性)이 너무 농후한 합의죠. 치명적 독소조항은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각각 20~40km 폭의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한 1조 2항입니다. 대북 감시 정찰의 사각지대를 넓혀 우리의 눈과 귀를 다 막아버리고 북한에 기습공격의 자유를 보장해준 합의니까요. 9·19 군사합의와 같은 전 세계 모든 군비통제 합의는 군사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겁니다. 이건 군사적 신뢰 구축(CBM·Confidence Building Measures)이 아니고, 신뢰 파괴(confidence destruction) 조치입니다.”
천영우 이사장은 “9·19 군사합의에 가담한 사람들은 왜 그런 합의를 했는지 밝혀내야 한다”면서 “우리가 하마스식 공격을 당했다면, 수천만 명의 국민들이 일거에 사지(死地)로 내몰렸을 것”이라고 했다.
— 북한과 군사적 신뢰 구축을 위한 합의는 어느 방향으로 해야 할까요.
“북한이 비핵화를 거부하는 현 상황에서 군사적 신뢰 구축과 적대행위 방지에 필요한 군사합의는 비행금지구역 설정이 아니라 1992년 나토와 바르샤바 조약국 간에 체결한 ‘항공 정찰 자유화 조약(The Open Skies Treaty)’을 모델로 한 남북 간 상호 정찰 제도의 도입입니다. 또한 해상 완충 구역과 육상의 군사훈련 금지구역을 철폐하는 대신, 대규모 군사훈련의 사전 통보와 상호 참관을 허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캠프 데이비드 협정, 중국 견제 레버리지 확보”
— 2023년 8월 캠프 데이비드에서의 한·미·일 3국 간의 협정은 동아시아 전략 지형과 역학 관계를 재편한 사건으로 평가받는데요, 이사장님께선 ‘외교적 이변’이라 평가했더군요.
“캠프 데이비드 협정은 동북아시아의 전략적 지형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바꾸는 결정적 포석이고, 3국 정상의 절묘한 의기투합이 만들어낸 ‘작품’입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국내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무모하고 과감한 베팅을 한 것이 캠프 데이비드로 가는 길을 열었다고 봐요. 결국 한일관계 정상화의 바탕 위에서 북한의 핵 위협을 억제하고, 중국의 공세적 팽창 정책을 견제하는 레버리지를 확보했다고 생각합니다.”
— 협정문에 한반도 통일을 명시한 것도 처음 있는 일이라지요?
“지금껏 미국과의 협정에서 한반도 통일을 명시할 때는 ‘통일의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었어요. 그런데 이번엔 ‘통일의 최종 상태’에 대해 미국과 일본이 지지를 표했습니다. 그 최종 상태는 ‘자유롭고 평화롭게 통일된 한반도 지지(We support a unified Korean Peninsula that is free and at peace)’입니다.”
— 문재인(文在寅) 정부 때보다 중국의 패권적(覇權的) 횡포가 덜한 느낌입니다.
“그동안 힘을 과시하는 중국 특유의 ‘전랑(戰狼·늑대 전사) 외교’, 동아시아의 국제 질서를 옛날 조공 질서로 재편하겠다는 ‘중국몽(中國夢)’이란 허황한 꿈이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고 역풍을 맞게 된 겁니다. 게다가 중국 경제도 어려워지고, 인민들의 불만도 폭발하니까 지금은 주춤한 느낌입니다. 어떻게 보면 휴지기(休止期)죠.”
“트럼프, 한·미·일 공조 체제 허물지 않을 것”

▲지난 1월 15일 미국 대통령 선거 후보를 뽑는 공화당의 첫 경선인 아이오와주 코커스(당원 대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아이오와 주도 디모인의 무대에 올라 지지자들을 향해 웃고 있다. 이날 코커스에서 트럼프는 51%를 득표하며 압승했다. 사진=연합뉴스
— 동맹을 ‘기생충’으로 보는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다면 지금의 한·미·일 관계가 지속될 수 있을까요.
“지금 만들어놓은 한·미·일 3국의 협력 체제를 트럼프가 완전히 파괴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현재의 한·미·일 관계는 당파적 이슈라기보다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의 동아시아 전략에서 하나의 숙원이 달성된 것이거든요. 만약 한·미·일이 수십 년간 공들여 쌓아 놓은 한·미·일 전략적 공조 체제를 훼손하면 트럼프는 공화당 내에서도 상당한 반론에 부딪힐 걸로 봅니다. 트럼프도 한·미·일 공조 체제가 중국을 압박하는 지렛대로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면, 절대로 한·미·일 공조 체제를 허물지 않을 것입니다.”
— 지난달 초 반중 후보인 라이칭더(賴淸德)의 당선으로 중-대만 문제, 그리고 대만과 남중국해 주변의 갈등이 고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만약 이곳에서 분쟁이 발생한다면 한반도에 어떤 영향이 미칠까요.
“전임 차이잉원(蔡英文) 총통보다는 반중(反中) 성격이 강한 사람이지만, 기본적으로 현상 변경을 추구해 중국을 자극하지는 않을 겁니다. 미국도 양안 긴장 관계가 무력 충돌로 번지는 것을 관리할 것이고, 우리가 개입을 고려할 만큼 중대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은 적다고 봅니다. 중국도 대만에 상륙하기 위해서는 170km의 해협을 건너야 하는데, 대만의 하푼 미사일을 맞아가며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지는 못할 겁니다.”
김정은의 러시안룰렛
— 우크라이나의 전훈(戰訓)을 한반도에 어떻게 적용하고 대비해야 할까요.
“군사적 측면만 본다면 드론하고 통신을 꼽고 싶어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압도적으로 우세한 것이 일론 머스크의 우주기업 스페이스X가 운영하는 위성 인터넷 서비스 ‘스타링크’의 이용입니다. 우크라이나 장병들은 스타링크로 전장에서 인터넷을 연결해 러시아군을 코앞에서 손바닥 들여다보듯 하면서 전투를 하고 있습니다. 드론으로 러시아군 지휘관을 사살하고, 드론에 포탄을 실어 진지에 숨어 있는 러시아군을 폭격하기도 합니다.”
— 김정은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침략자 러시아를 돕는 ‘러시안룰렛’을 하고 있습니다. 북한과 러시아의 무기 거래에 대해 우리 정부 차원의 공식적 경고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북한이 무기를 러시아에 제공하는 것이 확인되는 순간에 우리도 ‘살상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지 않는다’는 그 지침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는다고 선언할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의 무기가 러시아에 가고, 러시아의 군사기술 협력이 이뤄지는 순간에 선언해야 러시아에 대한 우리의 지렛대를 더 강화할 수 있습니다.”
천영우 이사장은 “규범이나 체제보다는 힘의 역할을 중시하는 현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외교·안보 전략을 고민 중”이라면서 “가장 좋아하는 두 개의 금언(金言)은 ‘강자는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약자는 당해야 할 고통을 당한다’(아테네 역사학자 투키디데스), ‘우리는 영원한 동맹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다. 우리의 국익이 영원할 뿐이고, 그 국익을 따른 것이 우리의 의무다’(영국 총리 파머스턴경)”라고 했다.⊙
글 : 오동룡 조선뉴스프레스 군사전문기자 gomsi@chosun.com
●트럼프의 재등장과 지정학적 리스크
한국, 당장 트럼프와의 거래 강구해야 산다
⊙ 일본에서는 ‘트럼프 당선 이후’를 대비한 ‘모시 도라’ 논의 활발
⊙ 트럼프는 ‘거래의 달인’… 수용할 만한 조건 먼저 제시하면서 타협점 찾아야
⊙ 직접 만나본 트럼프는 섬세하고도 정확하며 따뜻한 매력적인 캐릭터
⊙ 미국·유럽에서 ‘트럼프 정치’와 ‘PC주의 퇴조’는 앞으로 20년간 계속될 것
⊙ 중국의 추락은 미국이 중국을 버렸기 때문… 중국에 대한 미련은 한국의 지정학적 리스크 높이는 최대 요인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 現 워싱턴 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2월 24일 동아시아, 아니 세계의 미래를 가늠할 ‘게임 체인저’ 하나가 등장한다. 일본 구마모토(熊本) TSMC 공장 개소식이다. TSMC가 구마모토에 공장을 짓기로 했다는 뉴스를 접한 게 어제 같은데, 어느새 완공에 들어갔다. 1년 8개월간의 벼락 공정(工程)이었다. 올해 10월부터 반도체 양산(量産)체제에 들어간다고 한다. 2027년으로 예정된 홋카이도(北海道) TSMC 공장도 당초 계획보다 ‘훨씬’ 일찍 문을 열 예정이다.
5G, 6G 시대답게 모든 것이 초(超)스피드다. 테슬라 신화(神話) 중 하나는 ‘1년 내 신모델 출시’다. 기존의 자동차 업계 상식은 ‘최고속 신모델=최소한 2년 소요’였다. 테슬라의 제작 방식은 벨트 라인을 통한 포드 시스템이 아니라, 통으로 된 차체에다 배터리를 끼워 넣는 원스톱 제작 방식이다. 사람이나 라인도 필요 없고, 구상과 함께 곧바로 신모델이 제작되는 시대다.
구마모토 TSMC도 최첨단 반도체 생산만이 아니라, 혁명적인 제조공정의 현장으로 주목받을 것이다. 대만과 일본이 하나로 합쳐진 이상, 가까운 시일 내에 세계 최고 반도체가 구마모토 TSMC에서 탄생할 것이다.
한국은 지난해 반도체특별법을 제정, 제2의 IT 부흥에 나섰다. 그러나 한국 반도체 시장에 대한 세계의 관심은 예전과 다르다. 심하게 말하자면 무관심 상태다. 한때 1년 영업이익 500억 달러로, 한국 국민총소득(GNI)의 3할대까지 갔던 삼성 반도체지만, 최근 상황을 보면 거의 빈사(瀕死) 상태다. 영업이익도 수직 추락이고, 업종별 적자(赤字)에, 재고도 쌓이고 있다.
구마모토 TSMC는 ‘지정학적 리스크’의 산물
일본은 한국과 정반대다. 넓은 바다로의 대항해를 위한, 크고 빠르며 정확한 선박 건조에 총력 매진이다. 정부의 발 빠른 판단과 지원금 보조, 공장 부지와 관련된 지방정부와의 협력, 산학(産學)연계를 통한 전문 인력 확보, 착공 20개월 만의 공장 완공….
한국은 물론 미국이나 전 세계 어떤 나라도 구마모토 TSMC를 따라가기 어렵다. 1나노, 10나노 개발 차원의 얘기가 아니다. 기술적 환경만이 아니라, 문제 인식과 해결 자세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 결과지만, 한국의 삼성조차 무려 1000억원을 투자해 ‘한국이 아닌 일본’에 반도체 연구소를 세우는 실정이다. 추정컨대, 한국 대학생들의 일본 TSMC 취업도 곧 나타날 것이다.
구마모토 TSMC는 경제나 기술만이 아닌, 외교·안보·군사를 아우르는 21세기 글로벌 현실의 총결산물이다. 최근 신문·방송에 거의 매일 등장하는 ‘지정학적 리스크(Geopolitical Risk)’에서 벗어난 최고의 선택이 바로 구마모토 TSMC다.
‘지정학적 리스크’란 말은 뭔가 비밀스럽고 복잡한 용어로 느껴진다. 실제는 너무도 간단하다. ‘경제 폭망과 전쟁 가능성’이란 의미로 해석하면 된다. TSMC의 일본 유치는 미중(美中) 디커플링 시대의 상징이기도 한, 지정학적 리스크의 부산물이다.
최근 미일은 합동군사훈련을 통해 자신들의 가상적(假想敵)이 중국이라는 사실을 전 세계에 분명히 선포했다. 한국이 앞으로 어떤 자세를 취할지는 모르겠지만, 올해 중 유럽과 호주도 남중국해 합동군사훈련에 참가하면 중국은 ‘서방 모두의 가상적’이라는 것이 분명해질 것이다.
중국은 현재 주변국 대부분과 무력(武力) 또는 준(準)무력 충돌 상태에 직면해 있다. 영토·영해·영공 문제와 관련해, 인도·베트남·필리핀·인도네시아·대만·일본과의 충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방공망(防空網) 침범 도발을 통해 이미 시작됐지만,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美, 대만 ‘영토’ 아니라 ‘해협’에 개입
2024년 현재, 아시아 전체를 통틀어 지정학적 리스크가 가장 높은 곳은 대만이다. 가해자는 중국이다. 중국의 경제가 악화될수록 대만의 지정학적 리스크도 한층 높아질 것이다. 시진핑(習近平) 정권이 국민적 불만을 분산시키기 위해 대만 침략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일본은 어떨까? 대만과 역(逆)함수관계에 있다. 대만이 제2의 홍콩으로 나아갈수록, 일본의 평화와 번영은 한층 더 돋보이게 된다. 중국과 충돌 중인 센카쿠(尖閣) 열도 문제를 고려할 때, 일본 역시 지정학적 리스크의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대만과 비교할 경우, 일본은 120% 안전하다.
왜 두 나라는 역함수관계에 있을까. 동맹이 답이다. 일본은 미국의 최대 동맹국이다.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경우, 서로가 자동적으로 개입해서 도와주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집단적 자위권에 따라, 일본 열도나 미국 영토만이 아닌 전 세계 모든 땅, 바다, 하늘, 나아가 우주조차도 미일동맹의 범주다.
대만은 이 같은 동맹이 없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대만 지원을 세 번이나 공언했지만, 대만 영토가 아니라 ‘대만해협’에 대한 미군 개입일 뿐이다. 중국 침공 시, 미군이 대만 영토에 직접 투입될 가능성은 ‘아직’ 없다. ‘민주주의 모델이자 보고(寶庫)’라고 대만을 치켜세우지만, 유사시 대만에 대한 미국의 개입은 제한적일 것이다.
TSMC 일본 공장은 양적·질적으로 한층 더 확장·진화될 것이다. 대만 첨단산업 생태계의 최고봉은 TSMC다. 일단 TSMC가 일본으로 향한 이상, 대만 내 핵심 반도체 업체들도 뒤를 따를 것이다. 대만인은 물론 중국인의 생존 전략이기도 하지만, 국가나 민족에 우선하는 것이 돈이다. 명분으로서의 국가와 민족은 있다. 그러나 해외 거주 화교(華僑)가 그러하듯, 중국인들은 자신의 기업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고향이나 국가도 간단히 잊어버리는 유전자를 갖고 있다. 시진핑의 대만에 대한 협박이 거세질수록, 반도체만이 아니라 대만 주요 산업들의 일본행이 가속화될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행도 있겠지만, 전 세계에서 1년 8개월 만에 초대형 첨단공장을 만들어낼 수 있는 나라, 즉 일본이 우선시될 것이다.
‘소련화’되어가는 중국 경제
지정학적 리스크란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은 일본과 대만의 중간 어디쯤에 서 있는 나라다.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긴 하지만, 미일동맹에 비하면 한참 약하다. 한미동맹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군사관계다. 미일동맹은 전 세계를 염두에 둔 총체적 글로벌 차원의 관계다.
북한의 핵(核) 위협은 한국의 가장 큰 지정학적 리스크다. 그러나 최근 급등하는 지정학적 리스크는 북한보다 중국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이미 부분적으로 중국 경제권에 들어간 한국 경제가 문제다. 북한이 상수(常數)인 데 반해, 중국은 지정학적 리스크의 변수(變數)로서 작용해왔다. 중국 경제가 내리막길로 접어들면서 한국에도 찬 바람이 불고 있다.
경제 현실도 문제지만, 한층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중국에 대한 한국의 인식이다. 2024년 2월 현재 ‘중국은 미국에 필적 가능한 G2’라고 생각하는 한국인들이 아직도(!) 존재한다. 중국 전기자동차(EV)가 세계를 장악하고, 중국산 희소자원(희토류)이 미국 경제를 마비시킬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최근 일본 내에서는 ‘일본화(化)’가 아니라 ‘소비에트화(소련화)’가 시진핑 경제의 현실이자 미래라 본다. ‘일본화’란 지난 30년간 일본 경제가 보여준 부동산 경기 침체, 소비 격감, 디플레이션 심화 현상을 말한다. 한때 중국 경제가 이런 ‘일본화’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예상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중국에서는 경제는 당(黨)과 이념을 위해 봉사하는 도구라는 ‘소비에트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것이 중국의 현실이자 미래라는 생각이 일본에서 퍼져나가고 있다.
경제 소비에트화의 특징은 민간이 아니라 국영기업의 규모와 비율이 확대된다는 것이다. 워싱턴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23년 중국 100대 기업 주식의 시가총액을 살펴본 결과, 국영기업 비율이 50%를 넘어섰다고 한다. 2021년 60%대에 달했던 민간기업 시가총액 규모는 40%대로 내려앉았다. 불과 2년 만에 민간기업 급추락과 국영기업 급상승이 나타났다. 바로 경제 소비에트화의 전형적인 현황이다. 경제 소비에트화는 1991년 구(舊)소련이 그러했듯이, 체제 종언과 국가 해체로 이어진다.
주식 시장이 말해주는 것

▲지난 1년간 미국, 일본, 한국, 홍콩의 증시 현황. 미국 증시는 2.5할 정도가 올랐고, 일본 증시는 3할이 올랐다. 작년 한 해 동안 중국 증시는 3할 가량이 추락했고, 한국은 제자리걸음만 했다
한국은 1992년 한중(韓中)수교 이래 ‘중국 불패(不敗)’ 신화를 믿고 실천한 최고의 경제 파트너였다. 그러나 미중 디커플링과 함께 중국 추락이 시작되었다. 전제독재국가의 특징은 세우기도 빠르고 무너지는 것도 한순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인은 중국 추락을 일시적 현상으로 받아들였다. 지금도 부분적으로 지속되고 있지만, 미중 디커플링이 시작될 당시 한국 언론 대부분은 ‘중국이 아닌, 미국의 패배’를 전망했다. 독재체제하의 일사불란한 중국 경제가, ‘황혼 대국’ 미국을 압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는 해가 2030년, 2035년이 될 것이라는 구체적인 숫자와 함께 제시됐다.
쇄국(鎖國)은 영토나 정보 차단에 그치지 않는다. 인터넷 시대라고 하지만, 달콤한 얘기만을 받아들일 경우 치유 불가의 쇄국으로 갈 수 있다. 쇄국 정서는 신앙이자 종교에 가깝다. ‘우리끼리’ 심리나, ‘지상낙원’ 북한의 세계관, 나아가 최근의 ‘K-자화자찬’ 분위기가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중국을 대하는 한국의 생각은 경제적 차원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높이는 최대 요인이다. 미국·일본처럼 완전히 발을 빼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한 상태에서 중국에 기대고 있다. 미련이자 환상일 뿐이다. 시대정신을 읽기는커녕, 시대착오나 시대망각에 빠지면서 스스로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높이고 있다.
이로 인한 결과는 한국 경제에 대한 세계의 무관심이다. 2월 6일 기준으로, 한·중·일 주식 시장을 비교해 보자. 1년 전 2023년 2월과 비교해 볼 때 일본은 3할 정도 올랐다. 이에 반해 중국은 3할 추락이다. 한국은 1년 전이나 다를 바 없이 똑같다.
미국 주식이 2.5할 오른 이상, 자유시장체제하의 한국도 어느 정도 상승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급등한 일본·미국과 달리 한국 주식 시장은 1년 전 그대로다. 자유시장권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심리적으로 중국에 연동된 절름발이 경제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결국 한국에 대한 투자도 줄고, 첨단산업의 국내 유치는커녕, 한국이 자랑하던 첨단산업도 위기에 처하게 됐다. 한미동맹이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지정학적 리스크는 대만만이 아니라 한국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
‘모시 도라’
필자는 2월 초 이후 일본에서 머물고 있다. ‘모시 도라(もしとら)’라는 신종 유행어가 곳곳에서 들린다. 올초부터 일본 언론에 등장한 새로운 시사용어다. ‘만약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면(もしトランプが大統領になったら)’이란 말의 압축판이다. ‘모시’는 만약, ‘도라’는 트럼프의 일본어 발음 ‘도란푸(トランプ)’를 의미한다. 일본어 ‘도라’는 ‘호랑이(虎)’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 따라서 ‘모시 도라’는 ‘호랑이 같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모시 도라’는 트럼프가 당선될지 여부에 관한 물음이 아니다. 트럼프 당선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상태에서, 그가 당선되면 나타날 변화가 주된 관심이다.
한국에서도 이미 시작됐지만, 일본 곳곳에서 ‘모시 도라’를 둘러싼 추측이나 전망이 넘쳐나고 있다. 정치·경제·외교·군사, 심지어 문화적 차원의 ‘모시 도라’에 대한 얘기도 나온다.
당연하지만 과거는 물론 현재 트럼프의 일거수일투족이 재조명, 분석되고 있다. 트럼프 선거유세 현장을 관찰한 사람이라면 이해하겠지만, 트럼프는 지금 대통령 당선 시 ‘곧바로’ 시행할 정책의 내용과 방향을 미국민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중단, 중국 제품 관세 60% 이상 부과와 같은 정책들이 좋은 본보기다. 유럽에 대한 정책 변화로는 나토(NATO) 탈퇴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트럼프는 2월 초, 일본제철의 US스틸(US Steel) 인수 문제에 관한 자신의 정책도 제시했다. 현재 미일 최대 경제 현안으로, 무려 141억 달러가 소요되는 초대형 인수 프로젝트다. 그러나 트럼프는 취임 즉시 이를 대통령령(令)으로 중단시키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일본제철이 경영주가 될 경우 대규모 인원 삭감이 이뤄질 전망이기 때문에 해고에 반대하는 노조를 고려한 정책인 셈이다. US스틸의 경영 상태는 자체적인 정상화가 불가능한 지경이다. 일본 경영진을 통해 기업 전체를 업그레이드하려 했지만, 노조가 철밥통을 고수하면서 프로젝트 자체가 중단될 위기에 처해 있다.
트럼프가 당선되면 한국은?
2월 들어 일본 언론 대부분은 경제 영역이 ‘모시 도라’의 최대 격전장이 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트럼프의 일본관이 198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는 한, 디커플링의 영역이 미중에 이어 미일 사이에도 현실화될 수 있다고 진단한다.
‘모시 도라’를 전제로 한 일본의 미래 전망은, 국방비 분담과 미일동맹의 방향, 미중 디커플링 체제의 변화, 대만 유사시의 미국 대응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흥미로운 것은 ‘모시 도라’의 기반이 되는 미국 내 공기에 관한 일본 내 분석이다. 과거 항상 따라다니던, ‘트럼프 지지층=중하층·저학력·시골 출신 백인’으로 규정하던 식의 논조는 사라졌다. 트럼프를 ‘맛이 간 백인지상주의 촌놈’이 아니라 ‘미국 전역에 걸쳐 지지를 받고 있는 대중 정치가’로 보고 있다.
‘모시 도라’를 한국과 연결시킬 경우 어떤 현실이 나타날까? 일본과 거의 비슷하겠지만, 강도나 영향은 한층 강할 전망이다. 주한미군 철수, 북핵 인정, 동맹 분담금, 한국 제품에 대한 관세 인상 문제가 떠오른다. 트럼프가 단행할지도 모를 중국·일본에 대한 급진적 정책을 통한, ‘닉슨 쇼크’ 식의 쓰나미도 밀려들 수 있다.
핵심은 안보다. 한국 일부에서는 트럼프와 김정은 사이의 ‘빅 딜’이 재개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국은 아예 제외된 채, 미국의 이익과 안전에 기초한 일방적 통보만이 내려질 것이란 식의 분석도 많다. 동맹 분담금 증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미군 철수와 같은 보복도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트럼프라는 인물
이 같은 가능성을 점치기 전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트럼프라는 인물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다. 트럼프는 정치인 출신이 아니다. 듣기 좋고 모두를 즐겁게 만들어주는 애매한 정치적 수사(修辭)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직설적이고 원초적이며 공격적이다.
이 같은 캐릭터가 만들어낸 이미지겠지만, 도시를 기반으로 한 미국 미디어는 트럼프를 성(性)범죄자, 인종차별주의자로 몰아가면서 악마시한다. 한국 언론은 이 같은 미국의 분위기를 한층 확대해 전달하면서, 트럼프를 깔보기 일쑤다.
필자는 트럼프를 위대한 지도자로도, 인종차별을 일삼는 악마 같은 정치인으로도 보지 않는다. 언행과 표현 방법이 다를 뿐, 다른 정치인들과 50보 100보 다를 바 없는 인물일 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미국 리버럴 미디어가 말하는 식의 ‘맛이 간 트럼프’로 내려다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필자는 2008년 트럼프와 만난 적이 있다. 뉴욕 한복판 포시즌스호텔 레스토랑에 약속 때문에 들렀다가 식사 중이던 그를 우연히 만난 것이다. 당시 필자의 상사(上司)였던 딕 모리스(빌 클린턴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것으로 유명한 미국의 선거 전략가이자 작가-편집자 주)는 트럼프의 어릴 때 친구였다. 딕 모리스의 소개로 악수를 나누고 선 채로 5분 정도 대화를 나눴다. 짧은 시간이지만, 책 100권, 비디오 10개 보는 것보다 사람과 직접 대면하는 1분이 10배 100배 정확하고 오래간다.
트럼프는 손이 크고 몸집도 엄청난 인물이었지만, 섬세하고도 정확하며 따뜻한 캐릭터라는 느낌이 들었다. 트럼프는 당시 이미 세계적인 셀러브리티(Celebrity)였다. 하지만 그는 동양인인 필자에게 ‘서(Sir)’라는 경칭을 붙이면서 친근감을 표시했다. 필자는 워싱턴에서의 파티에 자주 참석할 기회가 있었는데, 사실 미국 셀러브리티들에게 동양인은 관심 밖이다. 필자가 만나본 트럼프는 인종차별이나 성폭력과는 거리가 먼, 그 누구라도 단 1분 만에 친구로 만들 수 있는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거래의 달인’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2019년 5월 26일 일본을 방문한 트럼트 미 대통령과 골프를 쳤다. 두 사람은 ‘브로맨스’ 소리를 들을 정도로 가까이 지냈다. 사진=AP/뉴시스
이에 대해 “히틀러도 바그너 음악과 고전 미술에 감동한 인물이었다”고 반박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트럼프만이 가진 특징이자 장점이 하나 있다. 바로 딜(deal·거래)이다.
트럼프는 부동산 비즈니스로 성공한 인물이다. 부동산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비즈니스다. ‘트럼프’란 이름 하나로 건설 투자금을 끌어모은 뒤, 건물을 일반인에게 비싸게 판매한다. 나쁘게 얘기하면 봉이 김선달과 비슷하다. 온갖 유형의 크고 작은 딜이 비밀리에 횡행할 수밖에 없다. 운이 좋게 트럼프는 대부분의 딜을 성공시키면서 부동산왕(王)에다 셀러브리티로 떴다. 1987년 그가 쓴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렇게 살아온 트럼프에게는 정치도 딜이며 외국과의 모든 관계도 딜이다. 딜의 기본이지만, 숫자에 근거해 조건이 맞으면 곧바로 거래에 들어간다. 반대로 숫자가 마음에 안 들거나 틀릴 경우 차갑게 돌아선다. 2018년 6월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회담을 전격 취소했다. 미사여구로 채워진 정치가가 아닌, 조건에 기초한 딜의 전문가가 보면 언제나 어디서나 가능한 행동이다.
결론적으로 트럼프에 대한 가장 좋은 대응 방안은 ‘딜의 달인’이 수용할 만한 최고·최적의 조건과 환경을 제시하는 것이다.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직접 보여주면서 서로의 타협점을 찾아내는 식이다.
트럼프가 수용할 만한 딜의 구체적인 내용은 돈이 될 수도 정치적 차원의 말 잔치가 될 수도 있다. 뉴욕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비즈니스맨답게, 엄청난 액수를 제시하면서 조금씩 깎아주는 식의 전술도 펼 것이다. 수동적으로 기다릴 경우 가격만 올라갈 것이다. 한국에서는 딜을 어둡고 부정적인 것으로 취급한다. 그러나 강자가 작정을 하고 달려들 경우 피할 여력도 틈도 없다.
필자가 보기에 세상을 떠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는 이 같은 관점에서 트럼프를 상대한 인물이었다. 트럼프 요구에 정면으로 맞서 반발하는 것이 아니라, 딜의 내용을 미리 살피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꺼내 협상카드로 재활용한 인물이 아베였다.
‘미국 예외론’

▲2023년 7월 23일 로마에서 열린 국제개발이주회의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멜로니 총리는 난민 문제에 강경 대응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현실론적 국제정치의 기본으로, ‘미국 예외론(American exceptio nalism)’이라는 것이 있다. 미국은 특별하기 때문에, 세계 다른 나라들과 달리 특별하고도 예외적으로 다루어져야만 한다는 ‘금수저 논리’다. 아마 한국은 물론 미국 외의 전 세계가 이러한 논리를 부정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미국 예외론은 통한다. 미국은 미국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미국은 중국·유럽·아시아와의 관계를 끊어도 독자적 생존이 가능하다. 인구·국토·자원 그리고 프런티어 정신을 갖춘, 아직 젊은 나라가 미국이다.
특히 에너지에 관한 독자적 수급 능력이 독보적이다. 산업혁명 이후 역사를 보면, ‘에너지=국력’이다. 중국·유럽·일본·한국 등 그 어떤 나라도 에너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트럼프가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며 극단적인 고립주의 노선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미국은 끄떡없이 생존해나갈 수 있다. 물론 미국도 그렇게 되면 불편하고, 가격도 올라가고, 서비스도 나빠질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다른 나라에서 발생하는 전쟁·기아·자멸을 겪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미국 예외론’의 핵심이다.
‘모시 도라’와 ‘미국 예외론’이 점점 확연해지고 있다. 앉아서 기다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대응한다고 할 때, 구체적으로 어떤 식의 준비와 세계관이 필요할까?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자.
첫째, 미국에서는 앞으로 도널드 트럼프에 이어, ‘트럼프 2.0’ ‘트럼프 3.0’이 이어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당연하지만, 트럼프를 만들어낸 주체는 미국 국민이다. 지도자는 국민의 얼굴이다. 지금 당장 트럼프가 사라진다고 해서 ‘트럼프 정치(Trumpism)’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와 달리, 품격 있고, 언어 선택도 세련되며, 부드럽고 향기로운 인성(人性)의 ‘트럼프 2.0’이 새롭게 등장할 것이다. 젊은 여성이나 흑인이 업그레이드된 트럼프 2.0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지난해 말 이탈리아는 18세 이하 미성년 난민의 강제송환을 입법화했다. 그동안 아프리카·중동에서 난민들이 몰려들어도, 미성년자는 강제송환에서 제외됐다. 부모는 송환되어도 미성년 자식들은 이탈리아에 남아 공부도 할 수 있었다. 5세, 10세 어린이도 추방 대상이 되면서 인권단체 주도하의 데모가 곳곳에서 벌어졌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팬데믹 이후 난민에 대한 이탈리아인의 인내심은 완전히 사라졌다. 박애를 내세운 가톨릭 국가지만, 몰려오는 수만, 수십만의 난민을 거부하게 된 것이다. 바티칸의 요청과 기도에도 불구하고, 난민 추방이 대세다. 이 난민 추방을 밀어붙이고 있는 이는 1977년생 여성 총리, 조르자 멜로니다. 난민이나 외국인이 아닌, ‘이탈리아 퍼스트’가 2024년 멜로니 총리의 정책 핵심이다.
이탈리아만 그런 것이 아니다. 스웨덴·덴마크 같은 ‘인권대국’조차 우파 정권 출범과 함께 난민 추방에 적극 나서고 있다. 불과 5년 전 기준으로 본다면, 2024년의 유럽은 모두 극우(極右) 광풍(狂風)에 휩쓸렸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유럽 언론은 ‘극우’라는 표현으로 반(反)난민 정권을 비난하지 않는다. 이탈리아·스웨덴·덴마크에 이어 ‘독일 퍼스트’ ‘프랑스 퍼스트’가 유럽의 대세다.
‘정치적 올바름’의 퇴조
비슷한 상황은 미국 뉴욕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미국 남부로 몰려든 남미 난민들이 뉴욕으로 이동하는 기묘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텍사스주 정부가 남미 출신 난민들을 의도적으로 뉴욕시로 보냈기 때문이다. 텍사스를 반인권·반난민 땅이라 비난한 뉴욕 리버럴 지식인에 맞선 대응책이다.
현재 뉴욕시에는 남미 난민 수만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온기가 느껴지는 지하철 주변은 난민의 영토다. 뉴욕시는 엄청난 예산을 투입해 난민을 돕고 있다. 그러나 공적 자금이 가중되면서 피로감이 나타나고 있다. ‘입으로 외치는 인권’ 속의 난민과, 실제 자신의 집 마당에 밀어닥친 난민은 전혀 다르다. 바로 ‘뉴욕 퍼스트, 뉴요커 퍼스트’에 접어든 것이다. 길어야 2년 내에 뉴욕시도 난민 추방법들을 공포할 것이다.
의사당 난동 사건과 여러 가지 스캔들로 인해 정치적 생명이 끝난 것처럼 보였던 트럼프가 화려하게 재기(再起)한 것이나, 앞으로 ‘트럼프 2.0’ ‘트럼프 3.0’이 등장할 것으로 점쳐지는 것은 이 같은 공기 때문이다.
난민 문제를 예로 들었지만,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주의)’에 기초한 생각과 정책도 전부 뒤집힐 전망이다. 흑인이나 난민이라는 이유로 대학에 들어가기 쉽고, 결손가정 출신이란 배경으로 좋은 곳에 취직할 수 있는 ‘특권(特權) 아닌 특권’이 트럼프 지지자의 타깃이 되고 있다.
최근 하버드대 총장이 물러난 것도 ‘정치적 올바름’의 연장선에서 해석할 수 있다. 여성이자 흑인인 인물이 전 세계 최고 대학 총장에 올랐지만, 하마스의 가자 테러 문제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취하며 이스라엘 비난에 동조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곧바로 ‘아메리카 퍼스트’ 신자들의 공격 대상이 됐다.
앞에서 말한 상황들은 ‘정치적 올바름’을 거부하는 시민들의 반란 또는 성전(聖戰)이라고 볼 수 있다. 유럽은 이미 궤도에 들어선 상태다. 미국은 8년 전 트럼프 당선을 시작으로 시동을 건 상태다. 필자가 보기에 유럽은 앞으로 최소한 15년, 미국은 20년 정도 반란 또는 성전의 시대에 들어설 것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트럼프만 보고 대비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20여 년간 펼쳐질 ‘트럼프 2.0’ ‘트럼프 3.0’, 잠시 뜨고 사라지는 아이돌 같은 ‘시대 현상’이 아니라, 장기간 온 세계에 퍼져나갈 ‘시대정신’으로서의 ‘트럼프 정치’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허니문’은 없다
둘째, ‘모시 도라’가 현실로 나타날 경우, 즉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그는 언론과의 허니문이 없는 대통령이 될 것이다. 탐색전도 없이 언론과 대통령이 곧바로 치고받는 미국 정치사상 초유의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미국 언론은 보통 취임 후 100일 동안은 비판을 삼가면서 대통령 리더십과 정책을 관망하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트럼프가 취임하는 것과 동시에 신문·방송의 트럼프에 대한 비난과 공격이 하늘을 찌를 것이다. 미국 국민 대부분이 트럼프를 선택한다 해도, 미디어의 주된 기반인 도심부 주민들은 반(反)트럼프에 매달릴 것이다. 허니문이 생길 수 없고, 미국 사회의 분열과 갈등이 극에 달할 것이다.
트럼프 본인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당선 당일 곧바로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공언하고 나선 것이다. 끌면 끌수록 자신의 정책을 구체화하기 어렵다. 아무리 트럼프라도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 언론의 공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허니문이 없는 만큼 대통령의 레임덕도 빨라질 것이다.
이에 맞서 트럼프는 자신의 생각을 구체화할 정책 집단을 이미 가동해놓고 있다. 주로 선거캠프에서 이뤄지지만, 트럼프는 자신의 과거 스태프들을 중심으로 취임 즉시 시행할 정책 개발에 나서고 있다. 한반도 정책도 이 중 하나다.
취임 전에 관계 구축해야

▲아소 다로 일본 자민당 부총재.
현재 워싱턴에 있는 각국 대사관의 최우선 과제는 트럼프 정책 집단 구성원들을 파악하는 것이다. 작은 인연이라도 찾아 트럼프 정책의 방향을 찾아보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자국의 생각을 미리 알리면서 트럼프와의 마찰을 최소화하려 하는 것은 물론이다.
허니문 정치가 없고, 트럼프 정책이 취임 즉시 시행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책 집단과의 접촉은 11월 미국 대선 이전에 이뤄져야만 한다. ‘모시 도라’가 현실로 나타난 뒤에 움직이면 이미 늦은 것이다.
한국의 외교 역량으로 볼 때, 취임 이전에 한국 측 입장을 설명하고 미국의 정책 방향을 읽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노력하면 길이 나타난다. 워싱턴 정치는 깊고도 단순하다. 열린 사회이기 때문에, 마음먹고 달려들 경우 핵심을 파악할 수 있다.
앞서 강조했듯이 트럼프는 딜을 즐기는 인물이다. 기다리지 말고 트럼프 입맛에 맞출 딜의 내용과 조건을 미리 제시하면서 풀어나가는 것이 현명하다. 기다리다가 일방적으로 당하면서 불평·불만으로 화풀이하는 것은 후진국 외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허니문이 없는 정치, 레임덕에 파묻힐 정권은 오히려 기회라고 볼 수도 있다. 기반을 잘 닦아둘 경우 4년 내내 그대로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소 다로(麻生太郎) 일본 자유민주당 부총재(전 총리)는 지난 1월 중순 뉴욕을 방문했다. 6년 전 아베 총리 당시의 면식을 활용해 트럼프를 만나러 맨해튼에 들렀지만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다. 그러나 ‘모시 도라’를 준비하는 일본의 적극적인 자세는 엿볼 수 있다. 아소가 트럼프와 만난다는 것은 단순히 두 사람만의 만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수행 참모들 간의 접촉도 이뤄진다는 의미다. 트럼프와 일단 한 번 만날 경우, 이후에는 참모들을 통해 트럼프 브레인들과의 연결이 가능해진다. 당연히 일본은 앞으로도 트럼프와의 접촉을 계속 시도할 것이다. 한 번이라도 성공할 경우, 트럼프의 정책 참모들과의 연결고리를 구축(構築)할 수 있다. 이러한 관계는 취임 이후가 아닌, 그 이전에 맺어지는 관계다.
‘미국이 중국을 버린 결과’
2024년 2월 기준, 전 세계에서 미국 기업의 시가총액이 48%에 달한다고 한다. 40% 이하로 내려간 적도 있지만, 미중 디커플링과 팬데믹을 겪으면서 급상승한 것이다. 반면 중국은 올해 10%로 내려앉았다. 2015년 20%대에 근접한 적도 있었지만, 9년 만에 절반으로 쪼그라들었다. 미중 디커플링이란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2018년이다. 6년이 흐른 지금까지의 결론은 ‘미국 1강(强), 중국 폭망’이다.
20세기 이후 역사를 보면, 미국이 적대시하거나 아예 방치한 나라는 ‘고난의 행군’ 그 자체다. 쿠바·이란·리비아·아프가니스탄·필리핀·베트남·베네수엘라가 대표적인 본보기다. 뒤늦게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총력을 기울여봐야 미국이 마음을 열지 않는 한 글로벌 무대에 낄 수가 없다. 중국 폭망도 미중 디커플링이란 애매한 단어가 아닌, ‘미국이 중국을 버린 결과’라 보면 한층 더 이해하기 쉽다. 1930년대 독일과 일본이 그러했듯이, 미국을 우습게 보면서 대든 결과가 바로 중국 추락이다.
미국은 이상(理想)이자 현실이다. 민주주의 대국인 동시에, 세상의 상식과 모순, 선(善)과 악(惡)이 혼재(混在)하는 ‘판도라의 상자’ 같은 나라가 미국이다. 상식과 선만 보면서 미국을 이상향으로 여기던 시대가 있었다. 반면에 ‘모시 도라’가 현실화되면, 모순과 악만 보면서 트럼프를 비난하면서 반미(反美)를 외치고 싶은 유혹이 한층 커질 것이다.
그러나 이미 추락 중인 중국을 보면 알 수 있듯, 트럼프의 나라 미국과 등을 지고 살아갈 수 있는 나라는 극히 드물다. 미국민이 트럼프를 선택할 경우, 트럼프는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미국 대통령’으로서 무대에 다시 등장하는 것이다. 그의 말 한마디가 지정학적 리스크를 높이며 한반도 전체를 파멸로 몰아갈 수도 있다.
미국은 절대선(絶對善)도 절대악(絶對惡)도 아니다. 그러나 총칼에 의존하는 중국·러시아와 달리, 대화와 딜을 통한 평화적 차원의 외교가 가능한 나라다. 미국은 태평양 전쟁 후 일본에 대한 전쟁배상금을 영원히 포기한 나라이기도 하다.
삼라만상(森羅萬象) 모든 것이 그러하듯, 자기 하기 나름이다. ‘모시 도라’를 전제로 한, 대한민국 지략과 정보를 총동원한 지금 당장의 준비와 대응이 절실하다.⊙
03.04 쿠바에 뒤통수 맞은 북한의 '두 국가 자충수'
한국과 쿠바의 수교 선언은 말 그대로 역사적이다. 한·중 수교보다 더 극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1992년 8월 한·중 수교 당시 김일성이 받은 충격보다 이번에 한-쿠바의 전격 수교 소식을 접한 김정은의 충격이 더 클 것이란 진단도 나온다. 수교 발표 이후 보름 이상이 지나도록 북한이 수교에 대해 아무런 공식 반응을 내지 못하는 것을 보면 내상이 매우 큰 듯하다.

▲2018년 11월 방북한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만난 김정은.[연합뉴스] <br><br>
사실 한국과 쿠바의 교류 역사는 일제 강점기였던 1921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05년 4월 한인 1033명이 구인 광고를 보고 인천을 떠나 태평양을 건너 멕시코 유카탄반도의 에네켄(용설란) 농장으로 갔다. 이들 중에 288명이 "설탕 산업이 호황이라 사탕수수 농장에서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을 믿고 1921년 3월 증기선을 타고 쿠바에 도착했다. 하지만 사탕수수 가격이 폭락하면서 에네켄 농장에서 일하며 겨우 연명했다.
경제난에도 북한 눈치 보던 쿠바
'두 국가' 선언 직후 한국 손 잡아
북한도 쿠바 용기·결단 배워야
한인들은 고난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이역만리 타향에서 차츰 뿌리를 내렸다. 지금은 쿠바에 1000명가량 살고 있다. 임천택(1903~1985) 전 쿠바한인회장은 한인 근로자들의 박봉에서 십시일반 모은 성금을 임시정부에 독립 자금으로 보내기도 했다.
이번 수교 이전에도 한국과 쿠바 정부의 교류는 꽤 오래전에 있었다. 1898년 스페인 지배에서 독립한 쿠바가 1949년 7월 대한민국 정부를 승인했지만, 그동안 공식 수교는 없었다. 6·25전쟁 기간에는 쿠바가 27만 달러를 지원했고, 1957년 당시 풀헨시오 바티스타 쿠바 대통령이 사절단을 한국에 파견해 이승만 대통령에게 훈장을 수여할 정도로 우호적이었다.

▲1986년 4월 평양을 방문한 피델 카스트로 쿠바 최고 지도자와 김일성 북한 주석. [브라질 북한 선전매체 화면 캡쳐]
하지만 1959년 1월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공산 혁명에 성공하면서 교류가 단절됐다. 특히 1960년 8월 쿠바가 북한과 수교하면서 쿠바는 중국·러시아에 이은 북한의 3대 해외 외교 전략 거점 역할을 해왔다. 북한은 '반미 사회주의'라는 공통점을 강조하면 미국에 맞서 싸운 '형제국' 쿠바에 10만정의 AK소총을 무상으로 제공하기도 했다. 카스트로는 "이 총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지키겠다"고 외쳤으나 동유럽 사회주의 붕괴와 소련 해체를 거치면서 국제정치의 격랑에 휩쓸렸다.
2005년 코트라 아바나무역관 개설을 계기로 한-쿠바 관계에 다시 물꼬가 트였다. 한국 제품들이 쿠바로 흘러 들어갔고, K-팝 등 한류가 열정적인 쿠바인들의 호응을 얻었다. 2015년 7월 미국과 쿠바가 수교하고 2016년 3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아바나를 방문하면서 한국에도 수교 기회가 찾아왔다.

▲2016년 6월 당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아바나를 방문해 브루노 로드리게스 쿠바 외교장관과 회담하는 모습. [연합뉴스]
2016년 6월 당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한국 외교부 장관으로는 사상 처음 쿠바 땅을 밟았고, 2018년 5월에는 강경화 당시 외교부 장관이 방문하면서 수교 분위기가 무르익는 듯했다. 하지만 2019년 트럼프 정부의 경제제재와 2021년 1월 테러지원국 재지정으로 관계가 급랭했다.
그래도 한-쿠바 수교의 최대 장애물은 미국보다 북한이었다. 쿠바가 미국과 수교하자 놀란 북한은 고위급 인사를 쿠바에 대거 파견해서 한-쿠바 수교 견제에 나섰다. 특히 윤병세 장관의 방문 이후 북한의 권력 실세 최룡해가 2016년부터 3년간 네 차례나 쿠바를 방문했을 정도로 북한이 위기감을 드러냈다.

▲2018년 8월 김정은의 특사로 아바나를 방문한 최룡해가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을 면담하는 모습. [쿠바 공산당 기관지 그란마]
줄곧 북한 눈치를 보던 쿠바 측이 지난달 7일 갑자기 "수교하자"며 한국 측에 연락했고, 불과 1주일 만에 유엔에서 대사급 국교 수립을 전격 선언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수교 작업에 참여했던 전직 고위급 외교관은 쿠바의 태도 변화에 대해 "미국의 강도 높은 제재에 따른 경제난이 가장 큰 배경"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쿠바는 2021년 화폐 개혁에 실패하면서 물가 폭등으로 "먹고 살게 해달라"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고 경제 상황은 악화일로였다.
또 다른 전직 외교관은 "최근 북한이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면서 쿠바로서는 북한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졌다고 판단해 수교 기회로 활용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민족과 통일을 부정한 김정은의 대남 전략 급변침이 자충수가 됐고, 쿠바가 한국과 손잡게 됐으니 뒤통수를 맞은 격이란 얘기다.

▲2016년 11월 28일 김정은이 주북한 쿠바대사관을 방문해 피델 카스트로 사망에 애도를 표하는 모습. 김정은은 방명록에 '위대한 동지 위대한 전우를 잃은 아픔을 안고 김정은'이라 적었다. [연합뉴스]
당분간 북한은 한-쿠바 수교 쇼크의 돌파구 찾기에 골몰할 것이다. 갑자기 일본에 손을 내밀고, 코로나19 이후 독일·영국·스웨덴·스위스 외교관을 잇따라 초청하는 것도 그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런 땜질 처방으로 북한 정권의 실패와 고립을 감추기 어렵다. 민생 경제를 우선하고 역사의 대세를 받아들인 쿠바 지도자의 용기와 결단을 배워야 북한도 살 길이 보일 것이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03.05 트럼프 재등장 신호…동맹 외교의 골든타임을 살려라
불확실성 커지는 국제 정세
미국 대선 투표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지만 차기 미국 행정부에 대한 불확실성은 국제 정세의 새로운 기류를 만들어 내고 있다. 지난달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열린 공화당 후보 경선 유세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거친 언사를 쏟아냈다. 그는 분담금을 다 내지 않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에 대해선 미국이 보호하지 않고 러시아가 마음대로 하도록 격려할 것이라고 했다.
이런 발언은 힘을 과시하면서 현상 유지를 거부한다는 의사를 표명하기 위한 다소 과장된 수사법일 순 있다. 하지만 트럼프가 우방을 경시하는 기조는 벌써 외교가에 파문을 불러오고 있다. ‘트럼프주의’ 외교정책은 유럽과 인도·태평양 지역의 동맹국들이 더는 미국의 이익을 대표하지 않으며 미국이 동맹국들에 이용당한다는 인식을 깔고 있다. 공화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한 미국 하원에선 950억 달러 규모의 대외 안보 지원 패키지가 발이 묶여 있다.
서방 빈틈을 파고드는 중국·러시아…개별 국가 차원 대응 어려워
한국, 안보·경제적 이익 담보하기 위한 국제적 네트워킹 힘써야
올여름 워싱턴 나토 정상회담은 한국 동맹 자산 공고화 분수령
동맹과 비동맹 양자택일 함정 빠지지 말아야…플러스 알파 전략 필요
전쟁 발발 2년, 서방 결속력 시험대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예비 경선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달 10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콘웨이에서 열린 유세 현장에서 오른쪽 주먹을 들어 보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일련의 전투에서 승기를 잡으며 영토 점령을 고착화하고 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기로 한 600억 달러 규모의 지원은 미뤄졌다. 얼마 전 유럽연합(EU)과 이탈리아·캐나다·벨기에 정상들은 전쟁 발발 2년을 맞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공항에 모였다. 이들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변함없는 지원을 약속했지만 어딘지 어두운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장기적 소모전으로 흘러가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서방의 결속력을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올렸다.
에스토니아의 카야 칼라스 총리는 옛 소련 시절에 건설한 기념물 철거를 주장했다가 러시아의 공개 수배 명단에 올랐다. 역사적 기억을 모욕하고 러시아에 적대적으로 행동했다는 이유다. 에스토니아는 발트해 연안에 위치해 우크라이나 다음으로 러시아의 위협을 느끼는 나라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동맹 구조가 균열의 틈을 보이자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북한과 이란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연합의 축이 파고든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미국의 보수 언론인 터커 칼슨과의 인터뷰에서 전쟁 장기화의 책임을 미국으로 돌렸다. 그는 공공연하게 트럼프 진영을 옹호하며 미국의 분열을 유도했다. 불간섭주의와 실리주의를 표방하는 제3세계 국가들은 서방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며 서방의 이중잣대를 비난한다.
떠오르는 트럼프에게 흔들리는 나토
2024년의 국제 정세는 불확실성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지금보다 훨씬 무질서한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지난 10여 년에 걸쳐 서서히 약해졌고 권위주의의 도전은 거세지고 있다. 자유와 인권과 같은 보편적 규범을 지키지 않는 쪽을 제재할 의지와 힘을 잃어버린다면 국제질서는 비대칭적인 다극화로 이행할 수도 있다. 다자간 협력을 위한 국제기구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면 세계 경제가 블록화로 재편되는 걸 막을 수 없다.
동맹 외교는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집단방위 조항을 준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트럼프의 언사에 나토가 흔들린다. 언제든 미군 철수 검토 카드를 받을지 모르는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만약 트럼프주의가 득세하고 미국 주도의 글로벌 동맹이 한계에 부닥친다면 어떻게 될까. 한국은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비롯한 동맹 우선의 기조에서 한발 물러나야 할까.
한국에 이론적 중립 옵션은 없어
한국·미국·일본의 협력 수준을 낮추고 중국·러시아·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면 한반도 안보 상황이 좋아질 것이란 기대는 근시안적 오류에 가깝다. 오히려 동맹에서 후퇴하면 장기적으로 한국 외교의 레버리지를 약화할 위험이 더 크다. 전선 국가인 한국은 실용뿐 아니라 국제적 차원의 원칙이 아직 절실히 필요하다. 핵 억지를 포함한 안보의 핵심 이익이 존재하는 한 이론적인 중립의 옵션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한쪽에선 동맹에 지나치게 몰입한다는 비판도 나올 수 있다. 이는 중국·러시아·북한 및 제3세계와의 대화와 교류를 활성화하는 차원에서 대응할 문제지 동맹의 온도를 낮춰야 하는 문제는 아니다. 양자택일로 진영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동맹 체제를 기반으로 ‘플러스 알파’를 만들어야 한다. 실제로 한국의 동맹외교는 아직 완전한 궤도에 오른 게 아니다.
한·미 동맹의 신뢰도는 핵협의그룹(NCG) 설립을 비롯해 지난 2년간 많이 회복했다. 한·일 관계의 개선과 한·미·일 협력 구도는 한국이 인도·태평양이나 유럽 우방국들과 양자 또는 다자 차원에서 새로운 연계를 용이하게 구축할 플랫폼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한국이 속한 ‘리그’를 확실히 해야
미국이 본격적인 대선 정국에 돌입하기 직전인 올해 상반기가 한국으로선 동맹 자산을 공고히 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 한·미 양자 관계뿐이 아니다. 한·미·일 협력 관계와 함께 나토+아시아·태평양 4개국(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등의 파트너십을 포괄한다.
동맹 체제의 공고화는 차기 미국 행정부의 성격에 상관없이 중요하다. 만약 바이든 행정부 2기가 출범한다면 한국이 보다 능동적으로 국제 질서와 규범 형성의 주체로 나설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다. 만약 트럼프 체제가 들어선다면 이후 발생할 수 있는 국제 질서 변화에서 안전판 역할을 할 것이다. 중장기적으로는 한국이 우방과의 연계를 다시 수립할 수 있는 복원점이 될 것이다. 올여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담은 이런 동맹 체제 논의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동맹 외교의 공고화에서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사안이 있다. 첫째, 한국이 속할 수 있는 ‘리그’를 확실히 해야 한다. 국제 질서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려면 어떤 집단과 함께 하느냐가 중요하다. 한국은 아직 주요 7개국(G7)에 정식으로 가입한 게 아니다. 한국이 속한 주요 20개국(G20) 회의는 내부적으로 합의를 도출하는 데 많은 도전을 받고 있다.
동아시아에선 유럽처럼 지역 차원의 공동체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문화나 언어를 공유하는 권역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 부산 엑스포 유치전을 되돌아보면 한국이 주도할 수 있는 리그가 부족하다는 게 뼈저리게 느껴졌다. 안보와 경제의 차원에서 한국이 적극적으로 팀을 만들어 참여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소다자주의를 포함한 외교적 상상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민간 역할 강화한 병진 노선 필요
둘째, 동맹에 공고히 참여하는 동시에 원조와 지원에 대한 보상 조건을 명확히 해야 한다. 동맹도 거래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혜택을 받는 수직적 동맹 관계만 볼 게 아니다. 수평적 차원의 파트너십 체제를 염두에 두고 일본·호주·영국·독일 등 주요국과의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 한국은 경제적·정치적으로 몸집과 위상이 커졌다. 그만큼 국제 사회의 요구를 더 많이 받을 것이다. 학생에 비유하면 학년이 높아질수록 숙제는 늘어나고 시험은 어려워지는 것과 같다.
한반도를 벗어난 국제 문제에서도 이제는 내향적 거부가 아니라 능동적 참여가 필요하다. 그래야 한국도 필요한 걸 당당히 요구할 수 있다. 대신 한국이 원하는 보상과 거래 조건을 국익 차원에서 명확히 해야 한다. 여기엔 군사·안보뿐 아니라 산업·기술, 탄소 중립을 목표로 한 기후동맹 같은 요소도 세밀하게 포함해야 한다.
셋째,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를 포함한 신흥시장 국가들과 적극적으로 대화해야 한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동맹 체제를 약화하면서 균형을 맞추자는 게 아니다. 범 동맹 체제의 공고화를 기반으로 협상력과 흡입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부산 엑스포 유치전에서 아쉬웠던 결과를 그냥 묻어둘 게 아니라 축적한 네트워킹을 외교적 자산으로 활용해야 한다. 물론 모든 국가와 동시에 관계를 개선하는 건 물리적 한계가 있다. 따라서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전략국가군 선정을 선행해야 한다.
넷째, 한국의 동맹 외교 논의를 기업 등 민간 차원에서 병행해야 한다. 최고 지도자와 정부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있고 그렇지 않은 영역이 있다. 세밀한 부분은 산업의 최전선에 있는 기업과 학계 등 전문가 집단이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정부는 이를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나설 필요가 있다.
공급망 재편과 다각화, 첨단산업 경쟁 심화 등을 고려하면 국익을 정의하는 건 과거보다 훨씬 어려워졌다. 정부가 전면에 나서기 어려운 상대국에는 다양한 형태의 민간 자원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 특히 국제 질서가 재편되는 시기에는 민·관 공조체제를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 복잡하게 엮이는 안보·경제적 이해관계를 추려 내고 새로운 규범 창출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중앙일보 이재승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
03-06 “김정은에 말한다,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확장억제 의지 의심 말라”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가 지난 2월 27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대사관저 하비브 하우스의 응접실에서 문화일보와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응접실 입구 상단에는 김구 선생이 1949년에 쓴 ‘한미친선평등호조’ 휘호의 사본이 걸려 있다. 박윤슬 기자
■ 파워인터뷰 -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
한국 핵보유는 북핵 해결책 아냐
NPT 파기 등 부정적 결과 초래
미군 2만8500명, 가족과 주둔중
전략폭격기·핵잠 정기적 전개도
한국 지키려 파트너들과 협력할것
제재 없었다면 북한 핵능력 더 발전
엄격한 이행 따라야만 효과있어
인터뷰 = 김유진 정치부 기자 klug@munhwa.com
은은한 미소를 띤 채 시종일관 차분한 어조로 인터뷰를 이어가던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한 언급이 나오자 한순간에 눈빛을 바꿨다. 국무부에서 유엔 대북제재 이행담당 조정관을 지내 워낙 북한 문제에 밝은 그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김정은과 그의 가족, 수행원들은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확장 억제 의지를 의심하지 말길 바란다”는 언급에서는 일종의 비장함이 묻어났다. 골드버그 대사는 지난 1년 사이 한미의 워싱턴선언 등을 성과로 꼽으며 두 나라가 앞으로도 많은 작업을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뷰 말미에는 “한미동맹 관계에 기초해 많은 건축물을 지어냈다고 말하고 싶다”며 “앞으로도 우리의 계획대로 많은 건축물을 지어나가야 할 것”이라고 비유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속 중인 러시아에 대해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한국 정부에는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골드버그 대사와의 인터뷰는 지난 2월 27일 오후 서울 중구의 대사관저 하비브 하우스에서 1시간 동안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주한미국대사로 부임한 지 1년 8개월이 지났다. 그사이 가장 기억에 남은 경험은 무엇인가.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서울이 아니라 워싱턴에서 있었던 것 같다. 지난해 4월 워싱턴에서 있었던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이다. 국빈방문은 단순히 며칠짜리 사건이 아니라 상당히 중요했고 상징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백악관 잔디밭에서 개회식 인사를 하고 알링턴 국립묘지에 가서 화환을 놓는 과정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 윤 대통령과 동행했다. 사실 정상들이 방문한 모든 곳을 다 다녔다. 한미는 워싱턴선언을 발표했고, 핵협의그룹(NCG)을 구성해서 양국관계의 완전히 새로운 의제를 설정했다. 동시에 그 의제들을 한층 강화했다. 지난해 8월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도 마찬가지다. 그 또한 한미관계와 한·미·일 관계에서 하나의 중요한 사건이었다.”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가 언급된 김에 한·미·일 3국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특히 올해는 첫 번째 한·미·일 정상회의가 열린 지 30주년 되는 해다. 3국 협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현재의 제도적 장치가 충분하다고 보나. 아니면 더 나은 협력을 위한 공간이 남아있다고 보나.
“캠프 데이비드에서 단독으로 3국 정상회의가 열린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당시에 발표된 성명들은 우리가 앞으로 진행해 나갈 일련의 새로운 구상들을 담고 있다. 군사 및 안보 관계가 새롭게 구성된 계획과 연습들로 강화된 측면도 있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인공지능(AI)이나 사이버 분야와 같은 문제들에 대해 협력하기로 한 것, 가짜뉴스 또는 허위 정보에 대한 관점과 원칙에 대해 3국이 일치하는 입장을 확인하고 공유한 것이다. 세 나라는 과학 및 기술 분야의 선진국들이 민주주의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국제질서에 기반해 세운 규칙을 고수하기로 했다. 이런 진전은 우리가 그동안 한국과 일본 양국관계를 통해서도 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제는 한일관계 개선 동력을 활용해 3국이 협력 가능한 환경을 더 만들어 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한·미·일 협력의 성공 사례를 언급한다면.
“최근에 미국의 시카고대와 일본의 도쿄(東京)대 그리고 한국의 서울대가 양자 물리학에 대한 3자 협력 합의를 맺은 사실을 주요 사례로 거론하고 싶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새롭고 흥미로운 일이다. 또 다른 예는 AI에 관한 것이다. 한·미·일은 AI의 부정적인 측면에 맞서 어떻게 우리 스스로를 보호할 것인지 논의하고 있다. 특히 AI가 선거를 앞두고 정치 캠페인에 악용되거나 타인을 비방하는 데 부정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런 시도를 방지하는 틀을 마련하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 스마트폰에서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모든 기술을 보다 건설적인 방식으로 사용하기 위한 협력도 이뤄지고 있다. 현재 한·미·일은 다양한 협정을 이행하는 과정에 있다.”
―그런데 한·미·일 3국 협력의 지속성 문제를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이 11월에 대통령 선거를 하고 한국도 4월에 국회의원 총선거를 치른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는 국내적으로 지지율이 썩 좋지 않다.
“3국 모두 현재 거론되는 어려움을 감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미·일 3국 협력은 세 나라 국민을 위해서 중요한 일이다. 우선 윤 대통령이 이런 선순환을 시작한 것에 대해 큰 공을 돌리고 싶다. 한일관계를 개선하겠다고 결단한 것은 상당히 어려운 역사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식민시대, 전시시대의 일들은 해결하기가 어려우면서도 부끄러운 일이다. 윤 대통령은 통 큰 결정을 했고 그 결정은 굉장히 용기 있는 것이었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 일본에 대한 이미지가 개선되고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서울에서 도쿄로 가는 비행기들이 승객으로 꽉 찬 것을 볼 수 있다. 심지어 3·1절 같은 국경일에도 그렇다. 아직 한일 간에는 과거사와 관련된 논의가 남아 있지만, 양국관계가 나쁜 것보다는 개선되는 상태에 있어야 그런 문제들을 풀어나가기에 훨씬 더 좋다고 생각한다. 나는 양국이 관계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에 타당한 논리가 있고, 따라서 그런 시도가 계속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본다. 우리가 합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지도자들이 함께 힘을 실어 나갈 수 있다. 기술과 과학을 기반으로 함께 힘을 모으면서, 앞으로는 북한의 위협이나 도발과 관련해 3국의 국민이 좀 더 안전하도록 군사 문제를 놓고도 협력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한·미·일 협력에서 관건은 한일관계다.
“사실 미국의 대사들은 주재국에 부임하기 전에 의회에서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한다. 한국에 오기 전 청문회에서 ‘어떻게 하면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좋게 만들 수 있느냐’는 질문을 여러 번 받았다. 미국인들의 입장에서는 민주적이면서도 충분한 역량을 가진 한국과 일본 같은 나라들이 서로 동맹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지금의 노력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조치다. 세 나라 모두 선거와 같은 상황을 거쳐 무난하게 3국 협력을 이어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미국·일본, 안보 외 AI·양자 물리학도 협력… 관계개선 계속 탄력받을 것”
캠프 데이비드 3국 정상회의서
기술 건설적으로 쓰자는데 공감
AI사용 틀 만들기 위해 협력 중
‘워싱턴 선언’ 가장 기억에 남아
한·미동맹 미국서 초당적인 지지
IRA·반도체법, 분명 한국에 이익
미국 보조금 지원 받는기업 나올것
―올해는 한·미·일 3국 협력과 관련해 어떤 일들이 추진되나.
“우리는 지금도 거의 매주 회의한다. 물론 정상회의와 같은 행사를 생각한다면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상회의 외 다른 방식으로는 거의 모든 급에서 3국 협력 사업이 진행된다. 특히 우리는 AI를 주제로 자주 만나고 있다. 우리 스스로를 보호하면서 AI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보다 발전시키기 위한 틀을 구성하고자 협력 중이다. 최근에 3국 장관들은 브라질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 참석을 계기로 외교장관회의를 가졌다. 이런 일은 항상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3국 협력은 끊임없이 일어남으로써 자신감을 더 쌓을 수 있다. 한국 사람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것은, 경제적으로나 안보 측면에서나 3국 협력은 모두에게 유익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취한 호혜적 조치 중 하나가 한국을 수출통제국 명단에서 제외하거나 한국을 우선 무역상대국 명단에 다시 올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 기업에 도움이 되고 기업 활동을 하는 데 있어 더 큰 자신감을 부여한다. 다시 말하지만, 많이 알려진 것과 같이 한국과 일본 간에 여전히 때때로 제기되는 문제들, 영토 문제나 역사적 문제들은 충분히 관리될 수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한일 양국의 지도자들은 그렇게 해나가기로 결심했다.”
―최근 한국의 독자적인 핵 능력 관련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묻고 싶다. 70% 이상의 응답자들이 한국의 독자적인 핵 능력 보유를 지지한다고 2년 연속 조사에서 응답했다. 주된 이유로 미국의 핵우산에 대한 신뢰 부족이 꼽혔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 그동안 여러 가지의 여론조사를 통해서 한국 국민의 생각이 어떤지 살펴봤는데 어떤 면에서는 응답 양상이 질문에 따라 달라지더라. 만약에 질문에서 ‘북한의 도발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면 한국의 핵 능력 보유 필요성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얻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한국이 자체적으로 핵을 보유하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파기하게 되고 그로써 많은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의 자체 핵 능력 보유는 북한 핵 문제 해결의 출구가 아니다. 이런 모든 것을 염두에 두고 질문을 던지면 핵을 보유하고자 하는 바람은 그 응답률이 50% 미만으로 훨씬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 미국은 한반도에 2만8500명의 병력을 그들의 가족과 함께 주둔시키고 있다. 미군의 B-52 또는 B-1B와 같은 전략폭격기와 핵잠수함의 한반도 전개도 정기적으로 실시한다. 이런 일들이 우리의 전략적인 대북 억제 의지를 보여준다.”
―북한의 최근 연속적인 도발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북한은 아마도 국제사회를 속이는 방식으로, 또 외부 세력으로부터 지원받는 방식으로 각종 무기체계를 개발 중인 것 같다. 그들이 가진 모든 자원을 투입하더라도 성과가 그렇게 크지는 않다는 점 또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북한은 사이버 해킹을 통해서 남의 자산을 훔치고, 해외에 근로자를 파견하는 등 모든 불법 활동을 군사 프로그램 개발에 동원하면서 정작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북한 주민은 보살피지 않는다. 많은 북한 주민들은 영양실조 상태에 빠져 있고 표현의 자유와 권리 없이 살고 있다. 만약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면 죽는 것만큼이나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 북한 정권은 아마도 계속해서 그렇게 할 것이다.”
―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북한이 대화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는 한국의 안보에 대한 굳건한 지지를 보여주기 위해 확장 억제 강화를 약속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특히 북한 주민들, 김 위원장과 그의 가족, 수행원들이 미국의 확장 억제 의지를 의심하지 않길 바란다. 또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북한이 미국의 의지를 믿는다면 남한의 사람들도 믿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한국의 많은 파트너와 협력할 것이다.”
―한미동맹이 그만큼 철통 같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인가.
“물론이다. 우리는 의심할 여지 없이 그렇게 말한다. 수천 명의 군 장병과 그들의 가족은 한국에 그냥 와 있는 것이 아니다. 이곳에는 군인뿐 아니라 온갖 부류의 미국인들도 함께 살고 있다. 우리가 단지 역사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현재에 깊이 헌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유엔 대북제재 이행 조정관으로 일했다. 미국과 한국, 일본과 유럽연합(EU) 같은 국가들이 추진하는 독자 대북제재가 유용하다고 보나.
“우선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제재는 도구이며 최종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나는 우리가 북한을 억제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고 생각한다. 만약 우리가 제재를 부과하지 않았다면 북한의 핵 프로그램은 지금보다 훨씬 더 발전했을 것이다. 다만 제재는 종이 위에 적힌 상태로가 아니라 이행될 때 효과를 가진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러시아와 같은 국가는 과거에 자신들이 스스로 찬성했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결의안을 명백히 위반하고 있다. 완전히 터무니없다. 이는 러시아가 현재 평양과 일종의 군사적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이렇게나 많은 제재를 제대로 준수하지 않는 중국에 대해서도 촉구한다. 중국에도 구멍이 있다. 기존에 합의한 대로 제재를 엄격하게 이행해야 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2년이 지났다. 미국은 한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기 위해 뭔가를 더 하기를 기대하나.
“한국은 인도적 지원에 대한 약속을 했고 이미 많은 것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후 재건 약속과 같은 생각을 가진 민주주의 국가 편에 서서, 우크라이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두겠다. 국제사회 대부분의 국가는 질서에 기반을 둔 특정 종류의 규칙이나 국제법을 이해하고 따르는 국가들이다. 반면 러시아는 이웃 나라에 대해 침략을 자행하고, 반대파 지도자들을 독살하고 감옥에 가뒀다.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다. 이따금 언론의 사설이나 공개 토론을 통해 우리가 러시아와 더 나은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본다. 하지만 오히려 반대로 우리는 왜 러시아와 더 나은 관계를 맺지 못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건 우리 때문이 아니라 러시아 때문이다.”
―만약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면 한국에 군사적 비용 분담 확대를 요구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짙은데.
“오랜 외교관 생활을 하면서 얻은 교훈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국내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다. 두 번째는, 가정적인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한미동맹은 미국에서 초당적으로 엄청난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미 의회 상·하원에서 민주당 의원들만큼이나 공화당 의원들과도 이야기를 나눴는데, 한미동맹은 양쪽으로부터 모두 엄청난 지지를 받고 있다. 그 지지는 선거와 상관없이 전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우리는 한국의 행정부와 협력하면서 방위비용을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의심할 여지가 없다. 더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겠다.”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상 외국우려기업(FEOC) 규정의 현실화 필요성을 지적한다. 미국의 대중국 정책 때문에 동맹인 한국에 부담이 커진다는 소리다.
“지난 1년 반에 걸쳐 미국에서 통과된 IRA와 반도체법(Chips Act)은 분명히 한국 정부와 기업 모두에 이익이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 많은 내용이 제시돼 있다. IRA의 경우를 살펴보면, 한국 배터리 회사들은 IRA를 기반으로 미국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고 한국 기업들이 IRA로부터 받을 수 있는 혜택도 일부 있다. 반도체법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부 투자는 반도체법이 통과되기 전에 이미 계획됐다. 최근에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이 밝히기도 했지만 미국 내 반도체 투자를 장려하기 위해 제공하는 보조금을 받으려고 기업들이 제출한 투자 의향서가 600건이 넘는다. 한국 기업 중 몇 군데도 의향서를 써냈고 그중에 일부는 실제로 보조금 지원을 받을 것이다.”
―그럼에도 현대차 같은 한국 기업들의 우려가 계속되는 것은 사실인데.
“처음에 IRA가 발효됐을 때, 마치 현대차나 기아차가 만든 전기 자동차는 미국 내에 공장이 완공되고 그곳에서 출시될 때까지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것처럼 해석되면서 비판을 받았다. 그 때문에 우리는 한국의 파트너 및 동맹국들과 함께 모여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협상했다. 이후 법을 시행하면서 상업용 또는 임대 차량이 IRA에 따라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논의를 진전시켜 나갔다. 그러고 나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니 지난해 현대차는 미국에서 전기 자동차 판매 2위를 기록했다. 물론 테슬라의 실적이 어떤 기업보다도 훨씬 앞서 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현대차는 제너럴모터스나 포드, 토요타 등 다른 모든 회사보다 더 큰 실적을 기록했다. 그런 점으로 볼 때 만약 한국 기업에 어떤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것이 FEOC가 광물 조달에 관한 문제 등 일부 측면에서 여전히 논의의 여지를 갖고 있다는 점 때문은 아닐 걸로 예상한다. 우리는 산업통상자원부와 대통령실, 외교부 등으로부터 워싱턴을 방문한 많은 이들과 함께 이러한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이런 일은 흔히 동맹국끼리 자주 한다.”
―한국 기업에 충분한 설명이 될까.
“IRA나 FEOC 규정은 한국 기업이나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주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지적하고자 하는 또 다른 오해는 때때로 사람들은 이것이 제로섬게임의 일부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미국이 더 많은 제조업을 도입하면 한국에서는 제조업이 줄어들 것으로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상호보완적이다. 윤 대통령은 최근에 삼성·SK와 함께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평택과 화성 등 경기 남부 지역에 반도체 공정에 대한 투자가 4500억 달러 규모로 이뤄지는 것인데 그에 비하면 미국에 이뤄지는 투자는 상대적으로 매우 적어 보일 정도다.”
―쿠바에서 대리대사로 근무한 경력이 있는데, 이번에 한국과 수교한 쿠바가 북한을 비핵화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는 데 유의미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다만 솔직히 말해 쿠바가 지금까지 그런 역할을 한 적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쿠바는 그 자체로 많은 문제를 갖고 있다. 국가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으며, 여전히 많은 사람이 자신의 목숨을 건 채 국경을 떠나고 있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쿠바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외교적으로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 의미를 두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물론 쿠바가 북한을 상대로 국제사회와의 대화에 나설 것을 설득하고자 한다면 국제사회는 그 노력을 환영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 약간 회의적이다.”
문화일보
03.07 위기감 나토 국가들 ‘참전’ 언급, 유럽에 번지는 불길한 조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월 25일(현지시간) 키이우에서 전쟁 2주년을 맞아 기자회견을 하던 도중 얼굴을 감싸쥐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와 2년간의 전쟁에서 자국 군인 3만1천명이 전사했다고 밝혔다./AFP 연합뉴스
유럽 나토(NATO) 소속 국가들이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 가능성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지원 국제회의 후 “(우크라이나 지상군 파병과) 관련 내용을 자유롭게 논의했다”며 “어떤 방안도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나토의 참전 가능성을 처음으로 공개해 논의를 촉발한 것이다. 나토 소속으로 러시아와 인접한 라트비아의 국방부 대변인은 “나토 동맹국들이 지상군 파병에 동의하면 라트비아도 참여를 고려할 것”이라고 했다. 독일군 고위 간부들이 강력한 타우러스 미사일로 크림 대교를 타격하는 방안을 논의했다는 녹취록이 러시아에 의해 공개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하지 않는다는 독일의 공식 입장과는 달리 군에서는 참전하는 방안을 고려 중인 것이 드러났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은 어떤 논리로도 용납될 수 없는 침략 행위다. 러시아는 이런 침략을 막자고 설립한 유엔의 상임이사국이다. 상임이사국이 노골적인 침략을 벌이는 사태를 맞아 나토 회원국들은 우크라이나에 탄약과 전투 장비 등을 대규모로 지원해왔다. 하지만 지상군 파견 등의 참전 거론은 금기였다. 유럽 전체가 전쟁터가 될 위험성 때문이다.
하지만 전황이 다시 러시아에 유리해지고 미국 대선 당선이 유력하다는 트럼프가 러시아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유럽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는 ‘방위비 부담 않는 나토 회원국에 대해 러시아의 침공을 부추기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미국이 등을 돌리며 우크라이나가 패배할 경우 유럽 전체의 안보가 위협을 받게 된다. 나토 국가들은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핵전쟁까지 위협하면서 반발하고 있다.
나토의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 발언은 당장 벌어질 사태라기보다는 상황의 심각성을 알리고 대책을 모색하기 위한 차원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냉전 이후 러시아와 서방의 진영 간 군사적 충돌 분위기는 이처럼 높았던 적도 없었다. 상상하기도 힘들었던 일을 실제로 걱정해야 하는 사태가 전개되고 있다. 한 세기 만에 불확실성의 영역으로 재진입하는 국제 정세가 심상치 않다.
조선일보 사설
03.07 트럼프 美 공화 후보 확정…안보·경제 自强 더 절실해졌다
예견된 일이지만,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대선을 8개월 앞두고 공화당 후보로 확정됐다.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는 ‘슈퍼 화요일’ 경선에서 완패한 뒤 6일 후보에서 공식 사퇴했다. 트럼프의 극단적 미국 우선주의 영향이 예상보다 더 빨리 더 강하게 세계를 강타하게 됐다. 민주당 후보로 나선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대결 구도가 확정됨에 따라 오는 11월 5일 본선을 앞두고 미국 내 진영 대결도 더욱 장기화·극단화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 최강국이자 한국의 동맹국인 미국 국내 정치의 불안, 나아가 이미 2개의 전쟁이 진행 중인 와중에 국제 정세 불안 확산은 무역 의존도가 압도적인 대한민국에 더 큰 위협과 도전으로 다가온다. 이미 유럽은 이에 대한 구체적 대응에 착수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트럼프의 복귀 가능성에도 대비해 자체 방위력 향상 등에 나섰다. 트럼프가 “충분한 비용을 대지 않으면 러시아의 침공을 독려하겠다”는 발언까지 했다. 독일에서는 자체 핵개발론까지 나온다. 트럼프가 “북한은 심각한 핵보유국이지만 김정은과 매우 잘 지냈다”고 한 것을 볼 때 북핵 용인에 나설 수도 있다. 한미훈련을 중단시킨 적도 있다. 지난해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 조사에서 ‘북한의 침공 시 한국을 방어해야 한다’는 여론은 50%였다. 2016년에 62%를 기록한 것을 볼 때 동맹 피로도가 높아졌다는 의미다.
유엔은 사실상 존재감을 상실했고, 미국마저 세계 경찰 기능을 포기하면 각국은 각자도생에 나설 수밖에 없다. 안보와 경제에 대한 자강(自强)이 그 방향이다. 핵 역량 확보에 나서는 것은 물론, 자유 진영 연대도 더 강화해야 한다. 반도체, AI 등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기술 개발, 규제 완화로 미래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일도 절실하다.
문화일보 사설
03.08 푸틴의 대북 비밀 지원, 무엇이든 한국엔 악재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웹사이트(‘Beyond Parallel’)에 최근 발표된 보고서가 흥미롭다. 보고서는 북한이 지금껏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에 250만여 개 포탄과 함께 탄약을 제공했다고 추산했다. 우크라이나 상황이 교착 상태에 빠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양측의 전세는 매우 팽팽해 포탄 공급이 매우 핵심적 요소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패배한다면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비극이다. 그뿐만 아니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인 발트 3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도 다시 헤게모니를 잡길 바라는 러시아로 인해 위험에 놓일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미국은 유럽에서 러시아 억제를 위해 아시아로의 회귀 정책을 늦출 수밖에 없게 된다. 이는 유럽뿐 아니라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등 미국의 아시아 동맹국들에도 비보(悲報)다.
러, 안보리에서 무제한 북한 두둔
SLBM·위성기술도 포함 가능성
러시아가 레드라인 못 넘게 해야

▲글로벌 포커스
김정은이 푸틴을 지원함에 따라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큰 타격을 준다. 북한의 대규모 포탄 지원을 보면서 도대체 김정은이 얻는 것은 무엇인지 의문이 들 수 있다. 단순히 식량이나 연료 지원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이미 북한이 요구한 대가가 드러나고 있다. 탄약이 러시아로 이동하기도 전에 러시아는 북한의 위성 발사에 대한 유엔 안보리 조치의 거부권을 행사하려 하고 있다. 러시아군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북한의 포탄 지원의 대가로 푸틴은 러시아의 유엔 안보리 거부권의 무제한 사용을 약속한 것 아닐까. 핵실험까지는 아니더라도 위성 발사에 대한 허락은 해주지 않았을까.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프로그램 기술 지원도 있었을지 모른다. 러시아는 여전히 미국 다음가는 세계 2위의 잠수함 기술 보유국이다. 북한의 고도화된 SLBM 기술은 많은 전문가를 놀라게 했다. 아마도 러시아의 기술 지원이 한몫하지 않았을까.
북한의 위성 발사 기술에 대한 러시아의 지원도 포함됐을 수 있다. 북한은 이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을 완성했다. 이제 북한이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은 미사일 탄두가 대기권에 재진입했을 때 파괴되지 않는 기술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기술에 대한 지원은 러시아 역사상 전례 없는 것이며 매우 위험하고 무책임한 것이다. 푸틴이 계속 나토에 대한 핵전쟁을 위협하는 것을 볼 때 푸틴이 기존의 핵무기 규범을 준수할 것이라고 쉽게 단정할 수 없을 것 같다.
위에 언급된 거래는 모두 그럴 듯하다. 그러나 동시에 러시아는 러시아의 안보를 김정은의 손아귀에 놓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또한 이러한 북·러 거래에 대해 중국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물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잃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시 주석은 동시에 북한의 예측 가능성을 낮추거나, 아시아의 미국 동맹국들간 협력은 물론이고 이들 국가와 나토의 협력을 촉진하는 러시아의 행보를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을 한국은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으로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의 무기 확대에 맞설 수 있게 됐고, 민주주의 동맹국이 독재 국가의 공격에 맞서 서로를 함께 지키리라는 것을 북·중·러에 보여줬다.
한국의 또 다른 카드는 이미 한국의 방산 기업과 나토 회원국 사이에 이뤄지고 있는 방산 협력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다. 호주·인도와 방산 협력을 강화하는 기회도 있다. 북한이 ‘전체주의의 보고(寶庫)’라면 한국은 ‘민주주의의 보고’가 되면 된다.
한국은 대잠수함작전 카드도 사용할 수 있다. 북한의 천안함 폭침 도발 이후 한국 해군은 이러한 역량을 개선해왔다. 러시아가 북한의 SLBM 역량을 향상해 준다면 한국은 미국 해군 및 일본 해상자위대와 삼자 협력을 통해 대잠수함작전 역량을 개선할 수밖에 없다.
끝으로 한국은 미국·나토, 그리고 기타 동맹국과 강력한 전략을 세워 러시아가 북한의 핵 역량 증대를 지원하는 ‘레드 라인’을 넘는 행동을 할 경우 반드시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미 동맹 구호인 ‘같이 갑시다’처럼 이제 모든 동맹국은 함께 할 준비를 해야 한다.

중앙일보 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국 CSIS 키신저 석좌
03-08 한미 정상 ‘핵 옵션’ 협의 체계 시급성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를 통해 북한의 핵무기를 억제할 수 있는 몇몇 새로운 조치가 도출됐는데, 가장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가장 주목받지 못했다. 정상회담 당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한반도에서의 모든 핵 사용에 대해 한국과 협의할 것을 약속했다. 다른 어느 동맹국에 대해서도 미국이 명시적으로 공약한 적이 없는 내용이다. 미국은 ‘핵을 포함해 미국이 가진 모든 범주의 능력’을 활용해 한국 안보를 보장한다. 한·미 양국은 북한이 핵 공격을 한다면 곧 체제의 종말로 이어질 것이라고 누누이 강조해 왔다. 그런데 중요한 허점은, 어느 것도 미국이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라는 약속은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은 어떤 방식으로 핵 사용에 관해 결정하게 될까? 위기 시 미 대통령은 민간 및 군 자문관들과의 핵결정회의(nuclear decision conference)를 소집할 수 있다. △핵 사용이 군사적으로 필요한지 △이를 통해 확실히 침략을 중지하거나 공격을 예방할 수 있는지 △국제법에 위배되거나 동맹국의 영토에 오염을 초래하지는 않을지 △더 광범위한 핵전쟁으로 비화할 소지는 없는지 등 다양한 측면을 모두 고려할 것이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새로운 시뮬레이션과 협의 그룹은 양국이 사전에 이 같은 요인들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계획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 간의 새로운 협의 채널도 필요하다. 미국이 한반도 내 또는 그 주변에서 핵무기를 사용할지 여부에 대해 한국 정부는 발언권을 가져야 하며, 한국이 선호하는 대안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냉전 당시 소련의 미사일이 날아다니는 상황에서 신속히 결정하기 위해 마련된 핵결정회의에 새로운 단계를 추가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한·미 양국이 풀어야 할 난제가 더 남아 있다. 미 국방부 관료들은 한국의 국방부 관료들과 협력해 미 대통령이 위기 상황에서 제안받게 될 핵 및 비핵 옵션에 대해 한국 대통령도 똑같이 보고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양국 대통령들은 특정 핵 대응이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또는 더 나은 비핵 옵션을 보유하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해 설명할 수도 있게 된다.
이 체계는,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내년에 다시 백악관에 복귀하는 경우에 특히 유용할 것이다. 체계가 마련돼 있으므로 트럼프는 핵 사용 결정 전에 윤 대통령과 협의하도록 유도 받게 될 것이고, 트럼프나 핵 공격의 적법성을 평가해야 하는 여타 미 관료들을 설득할 기회가 될 수 있다. 절차가 공고해지고 제도화될수록 한국 지도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정보도 많아질 것이다.
한·미 양국은 핵 사용에 대한 대통령 간 협의에 대해 사전 예행연습을 진행하고 이를 홍보해야 한다. 각국의 브리핑 절차를 거쳐 대통령들이 인생에서 가장 참혹한 결정을 내리는 일이 어떤 것인지 국민도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예행연습 사진을 양국이 공동으로 공개함으로써 한국 국민뿐만 아니라 북한 지도층에 대해서도 한미동맹의 진정한 위력을 상기시킬 수 있다. 어느 대통령도 핵 사용을 고려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핵 위기 시 충분히 협의할 준비가 돼 있어야 두 대통령이 함께 가장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문화일보 애덤 마운트 미국과학자연맹(FAS) 비상근 선임연구원
03.11 ‘대만 재앙’의 한반도 충격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어페어스는 지난달 ‘대만 재앙’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대중국 정책을 설계한 매슈 포틴저 전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도 3인의 공동 기고자 중 한 사람이었다.
기고문은 중국이 대만을 합병하고 미국을 아시아에서 몰아낸다면 “미국의 동맹국들은 자체 핵무기 개발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한국과 일본은 이미 역량을 갖춘 것으로 분석했다. 이어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고 경제적으로 활성화된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인도양에 대한 미국의 접근을 어렵게 하는 힘을 갖게 된다”고 했다. 헤지펀드 매니저인 켄 그리핀의 “대만 반도체에 대한 접근권을 잃으면 미국 GDP가 5~10% 감소할 것이며, 이는 ‘즉각적인 대공황’을 의미한다”고 한 발언을 인용했다. 고(故)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포틴저에게 “미국이 ‘세계 해안에서 떨어진 섬’과 유사해지기 시작할 수 있다”고 경고했던 사실도 공개했다.
미 CIA ‘중, 2027 대만 공격’ 공개
왕이 ‘한반도 전쟁 불가’ 말했지만
미국 힘 분산 위해 북 사주 가능성
한·미·일 안보태세, 대화 모두 필요
중국은 대만을 침공할 것인가. 윌리엄 번스 미 CIA 국장은 지난해 10월 “시진핑이 2027년까지 대만을 공격할 준비를 끝내라는 지시를 군에 내렸다”고 했다. 우자오셰 대만 외교부장도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이 더 커졌으며 시기는 2027년이 될 수 있다”고 했다. 2027년은 시진핑 집권 4기가 시작되고 인민해방군 건군 100주년이 되는 해다.
대만에서 전쟁이 터지면 한반도는 바로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중국 왕이 외교부장은 양회(兩會) 기간 중인 지난 7일 “세계는 이미 충분히 혼란스럽다. 한반도까지 전쟁이나 동란을 보태서는 안 된다”고 했다. 진심이기 바란다. 그러나 중국은 대만을 지키려는 미국의 힘을 분산시키기 위해 북한의 도발을 사주할 가능성이 높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9월 CNN 인터뷰에서 “중국이 대만을 공격한다면 북한 역시 도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강력한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폼페이오 전 미국 국무장관은 올해 1월 “미국은 유럽과 중동에서 억지력을 잃었고, 아시아에서도 억지력을 잃기 직전이거나 이미 잃었다”고 했다.
트럼프가 백악관으로 돌아온다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만을 지키겠다”고 했지만 트럼프는 지난해 9월 NBC 인터뷰에서 “대만을 방어하기 위해 미군을 보내겠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말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주한미군 철수도 거론했던 사람이다. 대만과 한국 방위는 장사꾼 출신의 흥정 대상이 될 운명인가. 이 와중에 김정은은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개의 국가”로 규정하고 “대한민국을 주저 없이 초토화하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로버트 칼린과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는 “한반도 정세가 1950년 6월 초 이후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한·미·일 3각 동맹을 강화하고 철저한 안보태세를 갖춰야 한다. 유사시 주한미군의 후방기지 역할을 할 일본과의 관계를 정상화시킨 것은 윤 대통령의 탁월한 업적이다. 동시에 대화도 해야 한다. 평화의 가능성을 높일 것이다. 적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대화는 필수다. 미국 NSC 대변인은 지난주 “한반도에서 우발적인 충돌의 위험을 줄이는 것을 포함한 여러 대화를 모색할 것”이라고 했다. 일본의 기시다 총리도 북·일 정상회담을 추진 중이고, 북한도 호응하고 있다. 정작 당사자인 한국만 다른 분위기다. 통일부 조직에선 ‘교류’가, 외교부에서는 ‘평화’와 ‘교섭’이 사라졌다. 이래도 되는 것일까.
북한이 호전성을 드러내는 것은 경제난으로 인한 내부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강대강으로만 맞서지 말고 지혜롭게 다양한 카드를 준비해야 한다. 안정된 민주주의와 세계 수준의 경제력을 가진 한국은 지킬 것이 너무도 많은 나라다. 북의 온건파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강력한 신호를 보낼 필요가 있다.
한반도는 지구상 최악의 지정학적 화약고다. 소련은 미국과 힘을 합쳐 제2차 세계대전을 끝장냈다. 그러나 불과 5년 만에 김일성에게 설득당한 소련이 중국까지 끌어들여 한·미와 대결한 “3차 세계대전의 대체물”(윌리엄 스툭 조지아대 석좌교수)이 한국전쟁이다. 북한·중국·러시아가 다시 가까워지고 있다. 이럴수록 안보태세를 단단히 하되 대화 노력을 포기해선 안 된다.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도는 대만해협에서도 중국과 대만은 2010년 체결한 양안 경제협력기본협정(EFA)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대만의 대중국 수출액은 1522억 달러였다.
남과 북은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고, 강대국들은 쉴 새 없이 으르렁거린다. 이렇게 험악한 한반도에서 평화가 이뤄질 수 있을까. 우리의 간절함이 출발점이 될 것이다. 만일 한반도에 비핵 평화가 찾아온다면 1795년 칸트가 “전쟁은 악인을 제거하기보다 많이 만드는 점에서 나쁘다”면서 주창한 전 세계의 영구평화가 실현되지 않을까.

중앙일보 이하경 대기자
03-11 중국, 북한 첨단무기 개발 지원했다… 탄도미사일 연구 등 85% 참여

유엔제재 위반 의심 논문 110편
中 자금 투입 공동연구도 수두룩
닛케이 “군사용으로 전용 가능성”
중국이 북한과 학술교류를 명목으로 탄도미사일 등 유엔 등 국제사회가 대북제재로 금지한 무기 관련 연구 협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국 정부가 자금을 투입한 북·중 공동 연구도 상당수여서 사실상 중국이 북한의 첨단 무기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11일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닛케이)신문은 국제 학술 논문 데이터베이스 ‘스코퍼스’에 게재된 9000만 편의 문헌데이터(2016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강화 이후)를 기술 분야 전문가 9명의 협조를 받아 분석한 결과, 북한 연구자와 해외 연구자들의 공동 연구 논문은 657편이었으며 이 중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위반이 의심되는 논문은 최소 110편이라고 보도했다. 110편의 논문 중 85%인 94편에 중국 연구자들이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61%인 67편엔 중국 정부 자금이 투입돼 중국이 북한의 첨단무기 기술 개발을 암묵적으로 지원해오고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또한 110편 중 88편 논문은 인민해방군과 연계된 연구기관 관련 연구자들이 참여해 연구 결과가 군사용으로 전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닛케이는 지적했다.
110편의 논문을 제재 대상 분야별로 보면 항공 우주 관련 기술 관련 논문이 62%, 첨단 구조 기술 관련 논문이 38%를 차지했다. 기술별로는 미사일 부품 개발에 응용할 수 있는 ‘고기능 소재’ 관련 논문이 48%, 미사일 본체 개발에 전용할 수 있는 ‘구조 강화’ 관련 논문이 22%, 그리고 미사일 엔진·부품 개발에 이용할 수 있는 ‘기계’ 관련 논문이 19%였다.
앞서, 유엔은 대북제재 이행 상황을 정리한 2021년 9월 전문가 패널 보고서에서 제재 위반이 의심되는 논문을 4페이지에 걸쳐 게시했는데, 모두 중국 연구기관 소속 연구자들과 관련이 있었다. 닛케이는 제목 등을 토대로 이 논문을 분석한 결과, 연구자는 중국 후난(湖南)성 중난(中南)대 왕칭산(王靑山) 교수와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공정대학의 왕젠칭(王振淸) 교수 등 2명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왕칭산 교수의 논문 주제는 복합재와 진동분석 등 내구성이 높은 소재·부품 개발에 집중됐으며 왕젠칭 교수의 논문 주제는 탄도미사일을 염두에 둔 것이 많았다.
김선영 기자 sun2@munhwa.com
03-13 민주주의 정상회의와 北 억류민 문제
오는 18∼20일 서울에서 열리는 ‘제3차 민주주의 정상회의’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고 있는 제55차 유엔 인권이사회(2월 26일∼4월 3일)는 우리나라에 특별한 기회이다. 글로벌 중추국가(GPS)로서 보편적 인권을 중시하는 ‘가치 외교’를 표방하는 윤석열 정부가 역대 정부들과 차별화된 북한 인권 공론화에 나설 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의 ‘납치문제대책본부’ 같은 범부처 컨트롤타워 부재로 인해, 정부 공약과 실무 부서 간 엇박자로 국군포로와 납북 억류자 송환 촉구라는 국가의 기본적 책무조차 방기되고 있다. 지난 2월 27일 강인선 외교부 제2차관은 기조 발언에서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 10주년을 맞아 북한 인권 상황에 우려를 표하면서도 북한에 억류된 우리 국민에 대해선 언급이 없었다. 일본 대표가 북한인권결의안 등을 통해 납치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영국 대표가 러시아에 정치범 석방을 요구하면서 영국 국적자로 25년형을 선고받은 블라디미르 카라무르자의 무조건 석방을 촉구한 것과 대비된다. 북한은 우리의 기조 발언에 대한 두 차례 반론에서 류경식당 종업원 송환 등을 요구했다.
이는 지난해 한미 및 한미일 정상 공동성명에서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 문제 해결을 위한 협력 강화를 공약한 것과 지난 2월 17일 한미일 3국이 COI 보고서 10주년 기념 공동성명에서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 문제의 즉각 해결을 촉구한 것을 무색하게 한다.
오는 21일 제출 마감인 북한인권결의안의 경우, 정부는 인권 단체들의 요구에도 사상 최초로 유럽연합(EU)과 공동 초안 작성국이 될 의지가 없어 보인다. 임기가 3년이나 남은 정부에서 정권이 바뀌면 공동 초안 작성이 중단될 것을 우려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정부는 적어도 결의안에 지난 10년간 북한에 억류된 김정욱·김국기·최춘길 선교사를 비롯한 우리 국민 6명의 국적과 실명을 명시해 송환을 촉구해야 한다. 유럽연합(EU)이 초안을 작성하는 미얀마인권결의에서도 로이터 기자들과 아웅산 수지 등을 콕 집어 석방을 촉구한 전례가 있다. 국군포로는 제네바협약 제118조의 송환권, 납북자는 유엔 자의적 구금 실무그룹(WGAD)의 결정례를 결의안에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정부는 엘리사베트 살몬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의 상호 대화뿐만 아니라 나질라 가네아 종교의자유 특별보고관과의 상호 대화에서 우리 선교사 등 북한 억류자 문제를, 엘리스 에드워즈 고문 특별보고관과의 상호 대화에서 고문방지협약 제3조를 위반한 국군포로와 그 가족을 포함한 탈북민의 강제북송 문제를 지적해야 한다. 유엔 인권 최고대표의 북한 구두 보고 후 일반 토의에서도 우리 국민의 송환과 강제송환 금지 원칙 준수를 촉구할 수 있다.
이번 제3차 민주주의 정상회의에서도 지난해 11월 30일 열린 ‘제5차 여성과 함께하는 평화 국제회의’처럼 북한 인권 세션을 추가해 우리 국민의 억류 문제를 세계에 알리고, 유엔 안보리에도 피해자 가족을 초대해 증언할 기회를 줘야 한다. 윤 대통령도 지난 3·1절 기념사의 북한 인권 개선 다짐을 확장해 8·15 광복절 경축사, 10월 유엔총회 기조연설, 다른 외교성명에서 북한 억류 국민의 송환을 촉구할 필요가 있다.

문화일보 신희석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법률분석관
03-14 러, 한국인 첫 간첩죄 구금… 北 합작 ‘더러운 게임’ 아닌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 위치한 레포르토보 구치소 모습. 모스크바=AP 뉴시스
러시아가 우리 국민을 간첩 혐의로 체포해 장기간 구금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선교사 백모 씨는 올해 초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러시아 기밀을 외국 정보기관에 넘겼다는 혐의로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에 체포됐고 지난달 말 모스크바로 이송돼 레포르토보 구치소에 갇혀 있다. 한국인이 러시아에서 간첩 혐의로 체포된 것은 처음이다. 혐의가 인정되면 최대 20년 형을 받을 수 있다. 백 씨는 탈북민이나 북한 벌목공 등을 돕는 활동을 해왔다고 한다.
백 씨 구금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험악해진 한-러 관계와 한층 밀착한 북-러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평가가 많다. 그동안에도 우리 국민이 탈북민 지원활동을 하다가 러시아 당국에 붙잡혀 조사받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나 러시아는 대체로 조사를 마친 뒤 풀어주거나 추방하는 등 조용히 처리했다. 그러던 러시아가 백 씨를 간첩 혐의로 체포하고 뒤늦게 이 사실을 공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북한이 러시아 측에 탈북민 지원활동에 대한 단속 강화와 엄정 대처를 요청했을 것으로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이번 사건에는 러시아가 한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막기 위한 외교적 압박용으로 사용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을 가능성도 작지 않다. 그간 북한은 포탄과 미사일 등 우크라이나 전쟁용 무기를 러시아 측에 보냈고, 한국도 미군의 빈 탄약고를 채워주는 식으로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우회 지원했다. 그런 만큼 러시아가 백 씨를 사실상 인질로 활용하며 한국의 무기 지원을 막기 위한 외교적 지렛대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번 사건을 시작으로 러시아가 간첩죄를 적용해 한국인을 체포하는 일이 계속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러시아가 이처럼 북한과 합작해 정보기관을 동원한 ‘더러운 게임’을 벌인 것이라면 개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우리 정부로선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가뜩이나 한-러 관계가 험악해진 상황에서 우리 교민에게 엉뚱한 불똥이 튀지 않도록 차분하게 외교력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백 씨의 안전과 조기 석방을 위한 외교적 소통에 주력하는 한편으로 러시아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비공식 물밑 채널도 찾아 가동하는 등 총력전을 펴야 한다.
동아일보 사설
03.15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 유혹 앞에 다시 선 미국 정부
수십년 그대로인 북 대표와 달리
미 대표는 정권 때마다 바뀌어
‘단계적 비핵화’ 유혹 크지만
한 번도 성공 못한 허상일 뿐
북의 핵보유와 비핵화 사이
유의미한 중간 단계는 없어
그나마 유엔 제재가 유일한 수단
만약 타협하면 북핵 영구화될 것
지난주 미라 랩-후퍼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대양주 담당 선임보좌관과 정박 국무부 대북 고위 관리가 연이어 언급한 대북 핵 협상에서의 ‘중간 조치’ 문제가 논란의 대상이다. 실현 전망이 요원한 궁극적 비핵화 실현에 앞서 한반도 정세 안정을 위한 ‘중간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다. 이는 미국 정부, 특히 민주당 정부가 1990년대 이래 대북 핵 협상이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종종 제기하곤 했던 ‘단계적 비핵화’ 논리의 부활을 의미할 수도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된다.
핵 협상 대표가 수년 내지 수십 년간 변하지 않는 북한과는 달리, 4년의 짧은 정권 임기와 그보다 더 짧은 자신의 보직 임기 중에 가시적 성과를 내느라 시간에 쫓겨야 하는 미국의 협상자들에게 있어, ‘중간 조치’를 통한 단계 접 접근법은 흔히 빠지기 쉬운 달콤한 유혹이자 함정이었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최근 이에 관한 미국 언론 인터뷰에서 “실패한 과거 정책으로의 회귀이며, 김정은에게 시간만 벌어줄 것”이라 비판했고, 1994년 미·북한 제네바 핵합의 당시 협상 대표였던 개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파괴무기 조정관도 “중간 조치는 미국의 오랜 북핵 협상 정책이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되지 않을 것”이라 단언했다.
세이모어 전 조정관의 말처럼, 미국 정부가 과거 대북 핵 협상에서 실제로 시도했던 ‘중간 조치’들은 모두 실패의 연속이었다. 경제적 보상을 통해 북한의 핵 활동을 일단 동결시키고 최종적 비핵화를 약 10년 후로 미루었던 미·북한 제네바 핵합의는 북한에 비밀 핵 프로그램을 완성할 시간과 자금을 제공하는 결과를 초래했을 뿐이다. 2005년 6자 회담에서 합의된 ‘9·19 핵합의’ 역시 북한의 비핵화와는 거리가 멀었고, 무의미한 일부 북한 핵 시설 불능화의 대가로 미국의 양대 대북 제재 조치인 테러 지원국 제재와 대적성국교역법상의 제재를 해제함으로써 북한 외교에 큰 승리를 안겨 주었다.
그러한 과거의 ‘중간 조치’는 북한의 핵무장을 다소 지연시킨다는 명분이라도 있었지만, 북한이 이미 50~100개의 핵탄두를 보유한 현 상황은 그 당시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현시점에서 미국과 북한이 합의할 만한 ‘중간 조치’는 한 가지뿐이다. 북한의 핵활동 동결 또는 부분적 핵능력 감축에 대한 대가로 유엔 제재 조치의 일부를 해제하는 방안이 그것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이건, 그러한 방식의 협상은 결국 북한의 핵무장을 사실상 용인하는 ‘핵군축 협상’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 이는 북한이 2017년 ‘핵무력 완성’ 선언 이래 줄곧 추구해 온 협상 목표이기도 하다. “북한의 핵을 용인하는 군축 회담”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최근 김영호 통일부장관의 입장은 한국 정부의 그러한 우려를 반영한다.
대북 핵협상의 두 가지 방법론인 ‘일괄적 비핵화’와 ‘단계적 비핵화’가 갖는 장단점은 명확하다. 일괄적 비핵화는 북한의 즉각적 전면 비핵화와 그에 대한 반대급부 제공을 동시에 교환하는 가장 확실한 방식이나, 북한의 완강한 비핵화 거부로 조기 합의 가능성이 희박하다. 반면에 단계적 비핵화는 합의가 비교적 쉬울 수 있으나,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더욱 어렵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부분적 핵감축의 대가로 유엔 제재가 견딜 만한 수준으로 완화되면 즉각 합의 이행을 중단하고 협상장을 영원히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단계적 비핵화 합의를 통해 북한 핵시설과 핵탄두가 절반으로 감축된들, 10분의 1로 감축된들, 북한의 대남 핵위협에는 별 차이가 없다.
북한의 핵보유와 비핵화 사이에 유의미한 중간 단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계적 비핵화를 통해 북한을 점진적으로 비핵화하자는 논리는 북한과 그 동조자들이 만들어 낸 허구이며, 비핵화 없이 제재 해제를 달성하려는 그럴싸한 시나리오일 뿐이다. 북한이 대미 협상에서 추구하는 목표는 단 하나, 유엔 제재의 해제를 통해 영원한 핵보유국이 되는 것이다. 유엔 제재는 북한의 이 같은 전략 목표를 가로막고 있는 유일한 걸림돌이며, 북핵의 영구화를 막기 위한 마지막 희망의 끈이다. 현행 유엔 제재는 일단 해제되면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다시는 복원될 수 없다. 따라서 부분적 제재 해제를 전제로 하는 ‘중간 조치’는 북한의 핵무장을 영구화하는 대단히 위험한 도박이 될 수밖에 없다.
03.16 ‘차르’가 된 푸틴과 잘 지내자는 사람들
권위주의 폭주 ‘푸틴 5기’ 출범
언제까지 대러 관계에 목매나
자유진영 붕괴 꿈꾸는 푸틴
당당하고 적극적으로 맞설 때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점령지인 도네츠크에 설치된 러시아 대통령 선거 투표소에 15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초상화가 크게 걸린 모습. 이날부터 사흘 동안 열리는 러시아 대선에선 푸틴의 당선이 이미 확실시된 상황이다. /AFP 연합뉴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 10만여 명의 시위대가 2011년 집결했다. 이들은 법을 바꿔 대통령에 재출마하겠다는 블라디미르 푸틴(당시 총리)과 앞서 자행된 부정 총선에 항의했다. 크렘린궁 앞에서 “푸틴은 도둑놈이다” 같은 구호를 외쳤다. 지금의 러시아라면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다. 당시 푸틴의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했던 젊은이가 최근 의문사한 알렉세이 나발니다.
푸틴은 반정부 시위를 미국이 부추겼다고 몰아갔고 이듬해 결국 재선됐다. 그 후 러시아의 이야기는 우리가 지금 보는 대로다. 15~17일 치러지는 푸틴의 다섯 번째 대선엔 경쟁자가 없다. 감옥에 갇혔던 나발니는 약 한 달 전 갑자기 죽었다. 얼마 전 열린 그의 장례식 때 모스크바 거리엔 많은 추모객이 나왔다. 하지만 대부분이 조용히 서 있기만 했다. 공포가 저항심을 압도한, 스산한 풍경이었다.
푸틴은 선거도 하기 전인 지난 13일에 국영 매체와 긴 인터뷰를 통해 당선자처럼 다음 임기 계획을 밝혔다. 그러면서 핵 위협을 숨기지 않았다. “우리의 핵무기 시스템은 그 어느 나라보다 현대적이다.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략은 ‘땅따먹기’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공산주의의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는 자유주의라는 개념 자체를 혐오한다. 유럽과 미국을 이기고 옛 영광을 되찾길 꿈꾼다. 푸틴의 정신 세계가 가장 잘 드러난 자료로는 2007년 뮌헨안보회의 연설이 꼽힌다. 그는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군림하는 냉전 후 세계에 치를 떨면서 여러 차례 소리를 친다. “미국은 모든 영역에서 선을 넘고 있습니다. 누가, 도대체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본 북유럽 국가들은 서둘러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라는 ‘방패’ 아래로 들어가고 있다. 푸틴은 아마 나토를 부수고 싶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나토 회원국인 에스토니아·리투아니아 등 국경 너머 소국(小國)에 탱크 몇 대만 밀고 들어가면 된다. 나토의 강력한 힘은 ‘한 회원국에 대한 무력 공격은 전체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조약 5조’에서 나온다. 바다 건너 작은 나라를 위해 미국이 핵전쟁을 불사할까. 요즘 우크라이나에선 “탈린(에스토니아 수도)을 위해 미국이 뉴욕을 핵 위험에 내몰까”란 말이 유행이라 한다. 미국이 주저하는 순간 나토는 무력화될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9월 러시아에서 만나 회담하는 모습. 이후 북한은 러시아에 우크라이나전을 위해 포탄을 지원하고, 러시아는 북한에 무기 기술을 지원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AP 연합뉴스
한국은 어느새 러시아의 손아귀가 가장 가까이 닥친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푸틴은 북한으로부터 우크라이나전에 쓸 포탄을 받고 북한에 무기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북·러가 대놓고 밀착하는데도 한국은 우크라이나에 직접 무기를 보내는 나라의 ‘빈 창고’를 채워주는 우회적 방법으로만 우크라이나를 돕고 있다. 대러 관계와 국익에 대한 고려 때문이라고 한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한국의 방식을 ‘수줍게’라고 표현했다.
무늬뿐인 대선 후 출범할 푸틴 5기는 러시아가 ‘차르의 권위주의’로 폭주하겠다는 선언과 같다. 푸틴은 정권 유지를 위해 국민의 생명을 가볍게 소모하는 권위주의 독재자의 특질을 답습하며 종신 집권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런데도 한국이 러시아와 잘 지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역사학자인 티머시 스나이더 예일대 교수는 러시아의 확장을 경고한 2018년의 책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에서 ‘자본주의는 불변이고 민주주의는 필연이라는 가정’을 경계한다고 썼다. 자유 진영의 승리가 자동으로 보장되지 않으므로 더 강하게 결집해 권위주의에 맞설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한국은 북한을 경제·문화·사회적으로 압도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가 우월함을 증명한 국가다. 사력을 다해 러시아와 맞서는 우크라이나를 더 당당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할 때가 됐다.
조선일보 김신영 국제부장
03.16 심상찮은 북핵 묵인·타협론, 비핵화의 위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23년 9월 13일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마주 앉았다. 회담을 전후해 양측의 비밀 무기 거래 의혹이 제기됐다. [로이터 연합뉴스]
푸틴의 ‘북 자체 핵우산 보유’ 발언 매우 위험
미군사령관 “북의 핵 사용 방지로 초점 이동”
험난해도 비핵화 원칙 유지가 국익에 더 부합
미국과 러시아에서 최근 우려할만한 몇 가지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북핵 묵인 또는 방관으로 비칠 수 있는 언행들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가장 직접적으로 노출된 대한민국의 안보를 생각하면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대목이다.
러시아 지도자의 발언이 특히 위험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지난 13일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은 자체 핵우산을 갖고 있다”고 발언해 충격을 줬다. 그동안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로 반대해온 북한의 핵보유국 주장을 묵인한다는 취지로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폴 러캐머라 주한미군사령관은 최근 ‘한미연합사 전시지휘소(CP TANGO)’에서 진행한 언론 인터뷰에서 ‘대북 억제의 초점이 북한의 핵 능력 발전 저지에서 핵무기 사용 방지로 바뀌고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북한이 선제 핵 공격을 포함하는 핵 무력 정책을 헌법에 명시한 상황에서 한·미 동맹의 철통 같은 방어 의지를 강조한 발언일 수 있겠다. 하지만 한국 입장에서는 북한의 핵 무장 저지가 미군의 일차적 관심사에서 벗어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달 초 서울에서 열린 ‘중앙일보-CSIS 포럼 2024’에서 미라 랩-후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선임보좌관은 북핵 해법에 대해 “전 세계를 더 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면 비핵화를 향한 ‘중간 단계(interim steps)’도 고려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중간 단계란 핵 동결이나 감축에 상응해 대가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미국의 목표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고 전제했지만, 완전한 비핵화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졌으니 차선책을 통한 절충·타협을 고민한다는 취지로 비칠 여지를 남겼다.
북·러 비밀 무기 거래 와중에 러시아는 공공연하게 북핵을 묵인하는 발언을 내놓고, 대선을 앞둔 미국도 비핵화보다 핵 공격 대응 및 차선책에 초점을 옮긴다면 매우 걱정스럽다.
문제는 현상을 타개할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 북·미 대화는 사실상 파탄 났다. 문재인 정부 후반기부터 남북 관계가 냉각됐고, 최근엔 북한이 남북 관계를 ‘교전 중인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면서 위태위태한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초기에 ‘담대한 대북 구상’을 제시했지만, 북한이 호응하지 않으면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최근엔 비핵화 대화보다 위기관리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외교부에서 비핵화 협상을 전담해온 한반도평화교섭본부를 18년 만에 폐지하고, 외교전략정보본부를 신설했다.
북한이 대화를 외면하는 데다,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대립 구도가 굳어지면서 비핵화의 길이 더 험난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한국이 독자적으로 핵무장하는 길은 현실적 제약 때문에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는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일관되게 견지하는 것이 국익에 부합하는 전략임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미·일 등 우방뿐 아니라 중·러와 국제사회를 향해 이런 메시지를 꾸준히 발신하는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북한의 기습 도발이나 무력 충돌에 대비해 한·미 동맹의 확장 억제 역량을 한층 강화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라도 우라늄 농축 기술 확보 노력은 필요하다. 미사일과 잠수함 등 전력 강화로 자주국방 역량도 키워야 한다. 이와 동시에 우발 충돌을 피하기 위해 지난해 4월 이후 끊어진 남북 핫라인을 복원하기 위한 물밑 대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단기간에 남북 직접 대화를 재개하기 어렵다면, 미국·일본·중국 채널을 통한 우회로를 찾아보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중앙일보 사설
03-18 스탈린 넘어서는 푸틴 독재와 더 우려되는 북·러 거래
예상대로 블라디미르 푸틴(71) 러시아 대통령이 15∼17일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압승했다. 출구조사에서 87.8% 득표가 예상됐고, 실제 개표에서도 그런 추세가 확인되고 있다. 2000년 권좌에 오른 푸틴은 다섯 번째 임기를 시작해 2030년까지 재임한다. 임기를 마치면 소련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의 29년 집권도 넘어선다.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의 의문사에 대한 국내외적 반발과 정적 제거 및 부정투표 시비에도 불구하고, 잠정투표율 74.2%에 득표율이 그 정도라는 것은 권력 기반이 아직은 탄탄하다는 의미다. 당분간 쿠데타나 시민혁명 등으로 축출될 가능성은 더 작아졌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알 수 없지만, 푸틴의 장악력 강화에 대비해야 한다. 3년 차로 들어선 우크라이나 전쟁은 장기화하고, 북·러 독재 연대도 견고해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리스크까지 커지면서 한반도 및 대한민국 안보 환경 역시 악화할 게 분명하다.
6·25전쟁은 김일성이 스탈린 묵인 아래 일으켰고, 스탈린이 죽은 뒤 휴전이 이뤄졌다. 북한 김정은은 김일성 흉내를 내고 있다. 푸틴은 지난 13일 “북한이 자체 핵우산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제2의 스탈린인 양 김정은 후견인을 자처하면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공인하려는 의도다. 앞서 미국 국가정보국(DNI)은 연례보고서에서 “김정은이 대러 밀착 관계를 이용해 핵 보유를 인정받으려 할 수 있다”고 했는데 그대로 현실화했다. 북·러 거래가 첨단 무기 등으로 확장될 수 있는 만큼, 자체 핵 역량 보유는 물론 원전 연료 공급망의 러시아 의존 탈피 등이 더 절박해졌다.
문화일보 사설
03-19 개인정보·데이터도 이젠 안보 의제다
데이터와 사이버 위협 대응해
美 ‘좁은 분야 강한 제재’ 실행
서비스 규제와 정보 이전 금지
데이터 유출 자체가 안보 위협
한국도 드론과 C-커머스 심각
동맹과 안보 프레임 관점 필요
미국과 중국 간 전략 경쟁의 서슬이 최근 다소 누그러졌다지만, 이른바 ‘좁은 분야의 강한 제재(small yard, high fence)’ 기조는 계속 유지되고 있다.
그 사례 가운데 하나가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및 사이버 안보 문제이다. 특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내린 2건의 행정명령과 1건의 조사 지시가 눈길을 끈다. 지난 2월 21일 바이든 대통령은 데이터 안보와 사이버 위협을 이유로 중국산 항만 크레인을 규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26일에는 유전자·위치 정보 등 미국인의 민감한 개인정보가 중국 등 적대국으로 이전되는 것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어 29일에는 중국의 ‘커넥티드 카’가 미국에 안보 위협을 초래하는지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앞서, 지난해 12월에는 중국산 자율주행차 센서 장비 라이다(LiDAR)가 데이터 유출 시비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한편, 수년 전부터 개인정보 유출 논란이 있었던, 중국 바이트댄스의 동영상 플랫폼 틱톡의 미국 내 유통금지법(이른바 ‘틱톡금지법’)이 지난 13일 미 하원을 통과했다. 지난해부터 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인 테무와 쉬인도 개인정보 관리와 사이버 안보 문제로 경계 대상이 됐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제일 큰 사건은 중국 화웨이의 5G 이동통신 장비를 둘러싸고 터졌다. 중국산 드론과 감시용 CCTV를 통한 데이터 유출이나 안면 인식 인공위성을 활용한 감시·통제도 쟁점으로 불거졌다. 이 밖에도 네트워크에 연결된 거의 모든 중국산 제품에 ‘백도어’가 있다는 의심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향후 생성형 AI의 ‘딥페이크’도 초유의 데이터 안보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AI의 정보·데이터도 새로운 안보 논란을 일으킬 것으로 예견된다.
빅데이터 세상에서는 국가안보와 무관해 보이는 민간 데이터의 안전·보안 문제가 언제든 지정학적 안보 문제로 ‘창발(emergence)’할 수 있다. 이러한 시각에 근거해 미국은 중국산 제품의 수입 규제에서 서비스의 사용 금지로, 그리고 개인정보·데이터 자체의 이전 금지로 ‘안보화’의 전선을 확대·심화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국가안보라는 시장 외적 잣대를 동원해 중국 기업들의 기술 추격과 미국 시장 진입을 견제한다는 비난도 없지 않다. 그러나 중국으로의 데이터 유출 그 자체가 미국에 큰 자원 손실이자 안보 위협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중국이 국가주권 논리를 내세우며 이미 인터넷상의 장벽을 세운 마당에 미국마저도 국가안보 논리에 기대어 데이터 유통을 통제한다면, 이른바 ‘반쪽 인터넷(Splinternet)’의 세상이 현실화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전략적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우리는 이미 미·중 5G 갈등의 와중에 화웨이 장비 도입 문제로 몸살을 앓았다. 국내에 들여온 중국산 드론의 정보 유출이 우려되면서 그 사용을 배제했고, 중국 서버로 연결된 CCTV의 백도어 위험성도 심각하게 거론됐다. 최근에는 기상청에 납품된 중국산 기상관측 장비에서 악성 코드가 발견되기도 했다. 중국산 크레인도 국내 항만의 절반가량을 장악하고 있다. 국내에서 틱톡은 아직 큰 소란을 일으키진 않았지만,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쉬인 등 중국 전자상거래(C-커머스) 플랫폼의 개인정보 관리 부실은 분란의 소지를 안고 있다. 가성비 좋은 중국산 제품·서비스를 사용할 것인지, 아니면 동맹국인 미국의 안보 우려 기조에 동조할 것인지를 놓고, 기술·경제적 선택이 아닌 안보·외교적 결정을 내려야 할 상황이 언제 닥칠지 모른다.
개인정보·데이터를 안보·외교의 시각에서 보는 인식의 제고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국가가 개인정보 국외 이전의 안전성을 보장하지 않고, 정보 주체의 동의에 의존해서 개인에게 위험과 책임을 부과하는 기조를 취해 왔다. 국가가 나섰더라도 경제적 관점에서 데이터 주권을 거론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이제는 개인정보·데이터의 국외 이전을 새로운 안보의 프레임으로 봐야 하는 세상이 됐다. 게다가 데이터 안보는 미·중 두 강대국 사이에서 우리나라도 고민해야 할 동맹외교의 사안으로 부상했다. 새롭게 전개되는 ‘데이터 지정학’의 지평 속에서 안보·외교의 숨은 코드를 읽어내는 국가적 혜안이 필요한 때이다.
문화일보 김상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03-21 美는 한국 안보 강화 안간힘… 韓 야당은 ‘동맹 해체’ 작당
유럽의 나토 회원국 등 세계 각국이 ‘트럼프 리스크’ 대책에 고심하는 상황에서, 폴 러캐머라 주한미군 사령관이 주한미군의 현 수준 유지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북한·중국·러시아가 연계된 위협에 대한 대응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20일 미 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한국을 방어하기 위해 주한미군 2만8500명에 계속 투자해야 한다”면서 한반도 안팎에서의 양자·3자·다자 훈련 및 차세대 역량 실험 등을 언급했다. 또 러시아가 북한 무기를 시험하도록 하고 있다며, “회색 지대”의 저강도 도발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한미상호방위조약이) 한국을 방어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기술할 뿐 적(敵)을 명시하지는 않는다”고 밝혀 중국·러시아 등의 동향에도 주한미군이 대비해야 함을 강조했다.
러캐머라 사령관의 입장이 더 큰 주목을 받는 것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을 지낸 인사가 최근 인터뷰에서 “한국이 여전히 2만8500명의 주한미군을 필요로 하는지, 아니면 변화가 필요한지 솔직하게 얘기할 때”라고 했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을 김정은과의 협상용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쏟아진다.
이런데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종북 세력의 숙주 노릇을 자처하며 ‘동맹 해체’를 작당한다. 민주당 주도의 위성정당 등을 이용해 최소 3석을 보장받은 진보당은 ‘불평등한 한미관계 해체’를 강령으로 내걸고 있다. 후보 단일화 협상을 통해 국회 보좌관과 자치단체장·지방의원 등으로 진출할 길도 넓어졌다. 이 대표는 최근 “중국에 과도하게 시비를 걸어 관계를 악화시킬 필요가 없다”고도 했다. 미국 정치권은 한국 방어를 강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데, 민주당은 안보를 약화시키려 안달하는 셈이다.
문화일보 사설
03.22 미 대선과 한미 동맹, 다양한 시나리오로 대비해야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달 초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을 향해 러시아가 공격할 경우 보호 제공 여부를 방위비 부담과 연계하겠다는 핵폭탄급 발언을 했다. 이후 나토와 유럽연합(EU)국가들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다. 유럽 지도자들은 미국 대선 결과를 염두에 두면서 “유럽이 결단할 시간이 오고 있다” “최선을 기대하지만 최악을 대비하자” “비상 계획을 만들어야 한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특히 독일은 더 민감해한다. 트럼프 1기 정부는 임기 말인 2020년 주독 미군의 3분의 1가량인 1만2000명을 일방적으로 감축하고 재배치하겠다고 통보한 적 있다. 바이든 당선 후 중단되긴 했지만, 독일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될 경우 이런 상황이 재현될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트럼프 당선 가능성 유럽 긴장
주한 미군 조정 요구할 가능성
미 인태 전략서 한국 역할 중요
후보들에게 동맹 중시 심어야
유럽 국가들은 2016년 트럼프 정부 출범과 미국의 대나토 정책을 예상하지 못해 겪었던 수많은 갈등을 교훈으로 삼아 트럼프 후보가 당선될 경우를 대비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준비 중이다. 외교적으로 트럼프와 연결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채널을 가동하고, 군사적으로는 트럼프의 안보 무임승차 불가론과 만일의 안보 공백에 선제 대응하는 차원의 독자 방위력 강화가 대표적이다.
트럼프 집권 시 동맹 기상도
▲오는 11월로 예정된 미국 대통령선거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일 조지아주 로마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런 움직임은 한·미 동맹에도 상당한 함의가 있다. 한·미 동맹은 미국의 세계·지역 전략의 변화뿐 아니라 양국의 국내 정치 상황에 따라 갈등을 경험했다. 문재인 정부는 방위비 분담 폭을 놓고 임기 내내 트럼프 행정부와 격렬한 마찰을 겪었다. 당시 한·미 관계에 관여했던 미국 고위 관료들은 회고록에서 주한 미군 감축을 검토했던 사실을 털어놓기도 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 참여할 것으로 거론되는 인사들이 최근 국내외에서 열린 각종 회의와 언론 인터뷰에서 한 발언을 고려하면 트럼프가 집권할 경우 예상되는 동맹 기상도를 그려볼 수 있다. 우선, 비용을 중시하는 트럼프의 ‘거래 외교’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동맹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1기 때 ‘비용 분담(cost-sharing)’을 강조했다면 2기에서는 ‘역할 분담(burden-sharing)’까지 분담의 범위를 확대하려는 듯하다.
둘째, 트럼프 2기에서도 한·미·일 안보 협력을 중시하고, 한·미 동맹을 핵심으로 여길 것이다. 미국이 21세기 지정학 갈등의 진원지인 인·태 지역에서 현상 변경 세력을 견제하는 ‘지역적 역할’에 한·일의 적극적인 동참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바이든 2기가 들어서도 지난해 캠프 데이비드 공동성명을 토대로 지역적 역할을 구체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셋째,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국가안보보좌관이 최근 시사한 것처럼 주한 미군의 ‘역할과 구성(configuration)’이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이미 주한 미군의 역할을 한반도에 한정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전 세계에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하는 분쟁에 주한 미군을 차출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폴 러캐머라 한미연합사령관은 이미 3년 전 인준 청문회에서 “주한 미군이 한반도 밖 우발 사태와 역내 위협 대응을 위한 다양한 역량을 인·태 사령부에 제공할 독특한 위치에 있다”고 했다. 주한 미군의 역할 증대는 주한 미군의 감축과 재배치로 연결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오브라이언 안보보좌관은 주한 미군의 규모보다는 역내 위협 억제를 위한 협력 방식을 강조하면서 주한 미군의 분산 또는 규모 조정 가능성을 시사했다.
넷째, 트럼프 측 일부 인사들은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을 축소할 경우 소규모 훈련을 자주, 그리고 부족한 부분은 ‘창의적인’ 도상훈련으로 강화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트럼프 2기 출범 시에는 비용절감 차원에서 연합 훈련의 규모가 축소될 수도 있고, 이는 북·미 정상회담 재개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일 수 있다.
주한 미군 감축 경험에서 대안 모색을
이 가운데 주한 미군 감축과 재조정 시나리오가 야기하는 안보·경제·심리적 함의는 매우 크다. 주한 미군 규모는 2008년 이래 현재의 2만8500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주한 미군 감축 문제는 1970년대 이후 한·미 동맹의 첨예한 갈등 사안이기도 했다. 닉슨 행정부는 아시아에 대한 새로운 안보 정책인 닉슨 독트린에 따라 7사단을 철수시켰다. 카터 행정부 역시 대선 공약의 일환으로 2사단 병력 1만5000명 철수를 시도했지만 3000명 감축에 그쳤다. 한국의 안보를 중시하는 주한 미군 지도부와 미 의회, 미 행정부의 외교 안보 부서, 미국 여론 등이 카터 대통령의 일방적 결정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의 경우, 해외 주둔 미군 재배치계획(GPR)에 따라 1만2500명의 주한 미군을 감축했다. 트럼프 정부는 주한 미군 필요성에 대한 의구심을 표명하며 한술 더 떴다. 다행히 미 의회가 연례 국방 수권법 (NDAA)을 채택해 주한 미군 규모를 2만2000명 이하로 줄이지 못 하게 하면서 감축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하지만 최근 트럼프 측 인사들의 언급은 주한 미군에 대한 트럼프의 의구심을 염두에 둔 것일 수 있다.
우리 입장에선 유럽 국가들이 과거 경험을 토대로 미리 대비하는 움직임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최소한 한국의 안보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사전에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한미 갈등과 주한미군 감축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미리 예단할 필요는 없지만 상정할 수 있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세우고 차분히 대비해야 한다. 주한 미군의 추가 감축·재조정 문제가 대선 과정에서 대두하거나 대선 후 공식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미 의회, 외교 안보 당국, 여론에 선제적 노력을 조용히 펼쳐야 한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과 위협이 실존적 위기로 대두하고 북·중·러 연대가 강화되면서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미국은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인·태 전략에 최우선 순위를 둘 것이다. 한국, 일본, 호주, 나토 등 동맹의 협조 없이 미국의 인·태 전략과 세계 전략은 성공하기 어렵다. 마침, 러캐머라 사령관이 그제 하원 군사위 청문회에서 “동북아 안보를 위해 현 주한 미군 규모인 2만 8500명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따라서 이런 환경을 잘 활용해 미국 대선 과정에서부터 후보들이 동맹에 대한 강력한 지지 의사를 표명하고 양 당이 이를 정강에 반영토록 노력해야 한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더라도 우리가 미리 대비한다면 호흡을 잘 맞출 수 있을 것이다.
중앙일보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서울국제법연구원 이사장
03.27 대만해협과 한반도 안보는 불가분 관계다
美中 경쟁 속 대만 가치 수직 상승… 中은 이미 대만-북한 연계 전략, 北비핵화 협조거부·제재 완화도
대만 비상사태 땐 주한미군 개입… 한반도 힘의 공백, 북 도발 자극… 반대로 북 먼저 나서도 중 자극
한반도-대만 문제 이렇게 긴밀한데 대만해협이 무슨 상관이냐고?
미·중 전략경쟁으로 인해 대만의 전략적 가치가 상승하고 있다. 중국이 대만의 독립 저지를 이유로 침공을 단행할 경우, 미국 주도의 서태평양 해양 질서가 위협받을 수 있기에 대만의 안보는 미국에 매우 중요하다. 아울러 미국은 첨단 반도체 기업 TSMC로 대표되는 대만의 기술력이 중국에 넘어가지 않도록 대만과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반면, 중국은 대만이 독립을 표방하며 미국과의 관계를 군사동맹 수준에 근접시키게 될 경우, 시진핑 주석이 내세우는 조국 통일의 대업은 물거품이 된다. 따라서 중국의 정치·경제적 통제 범위 내에 대만이 머물도록 관리해야 한다.
문제는 대만을 둘러싼 미·중 간 경쟁이 한반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중국에 대해 ‘무역전쟁’을 선포하기 전인 2017년 12월까지 중국은 열한 차례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그러나 이후 미·중 갈등이 고조되고 대만이 핵심 이슈로 떠오르면서 중국의 태도가 바뀌었다. 2021년 11월 중국은 러시아와 함께 유엔 안보리에 대북 제재 완화 결의안을 제출했다. 북한이 2022년 수십 차례 도발로 유엔 안보리 결의를 휴지 조각으로 만들었는데도 중국은 추가 유엔 안보리 결의는커녕 의장성명 채택조차 거부했다. 미국이 대만 문제에 대해 물러서지 않으면 중국도 북한 비핵화에 협조할 수 없다는 ‘대만-북한 연계 전략’을 채택한 것이다.
이러한 중국의 전략을 일찍이 간파한 미국의 전략적 대응도 변화했다. 2021년 5월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폴 러캐머라 주한미군 사령관은 “주한미군은 한반도 이외 지역의 비상사태와 지역 안보 위협 상황에 따른 인도태평양 사령부의 요구에 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대만해협 위기 시 주한미군이 어떤 형태로든 개입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필자가 윤석열 정부 국가안보실장으로 근무할 때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들은 우리와 북한 문제를 논의할 때마다 대만해협 사태 시 한국의 입장과 대응을 물어보곤 했다.
그러나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급속도로 올라간다. 대만해협 사태 시 주일미군에 이어 주한미군까지 군사행동에 나서게 되면 한반도에 ‘힘의 공백’이 불가피하다. “자연(nature)과 마찬가지로 힘(power)은 공백(vacuum)을 싫어한다”는 말이 있다. 주한미군의 ‘이탈’로 생긴 한반도 힘의 공백은 이를 메우려는 북한의 야욕을 자극할 수 있다. 한국은 북한의 도발 시 단호히 대응할 것이나, 주한미군의 공백을 의식해 남북한 모두 무리수를 두게 되면 남북 확전 가능성이 커진다.
물론, 주한미군의 주력은 육군과 공군이므로, 육군이 아닌 해·공군과 해병대가 필요한 대만해협 사태 시 투입될 수 있는 주한미군은 공군력 일부가 될 것이다. 대만보다 북한에 대처하는 게 주한미군의 일차적 임무이기 때문이다. 거꾸로, 북한이 먼저 대규모 대남 도발을 해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이 북한에 집중한 틈을 이용해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수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제1 야당 대표가 “대만해협이 어떻게 되든 우리와 무슨 상관있나”라고 한 것은 위험천만한 발언이다. 미·중 전략경쟁으로 인해 대만과 한반도가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 한미 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은 북한만 대상이고 대만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하는 것은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양안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한) 2023년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 원칙’에도 반한다. 북한은 물론 대만을 포함한 다양한 역내 위협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한반도에서 한미 동맹을 효과적으로 작동시키는 길이다.
우리는 한중 관계를 ‘상호존중’에 기반해 발전시켜 나가고 실질적 한·중·일 협력을 도모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한미 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을 (대북 억제에 더해)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에너지 수송로인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의 안전을 확보하고 북한의 오판도 막을 수 있다. 더 나아가 서태평양 지역에서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합동성이 제고돼 미국 주도의 역내 질서가 확고해져야, 내년 초 미국에 어떤 행정부가 들어서든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규모와 지위를 공고히 할 수 있다.
조선일보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前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
03-29 유엔의 北감시 기구 파괴한 러시아, 안보 자강 강화할 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 임기 연장 결의안이 28일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부결되면서 패널 활동이 다음 달 말로 종료된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평화적으로 저지하는 유일한 방법이 제재인데, 러시아가 이 기구를 파괴함으로써 이제 유엔 차원에서 북한의 불법 행위를 감시하는 것은 어렵게 됐다. 러시아는 한발 더 나아가 ‘제재 일몰 조항’을 제안하며 제재를 통째로 무력화하려는 시도까지 했다. ‘미·북 하노이 회담’ 때 김정은의 요구 조건을 관철하기 위해 선봉에 선 셈이다.
전문가패널은 2009년 북한의 제2차 핵실험 후 통과한 안보리 대북결의 제1874호로 창설된 후 지난 15년간 회원국의 대북제재 결의 위반을 독립적으로 조사해 연 2회 보고서를 발간해왔다. 강제권은 없지만, 회원국들의 제재 위반 상황을 공개함으로써 이행을 권고하는 순기능을 해온 것이다. 그러나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전을 계기로 북한과 불법 무기 거래를 통해 ‘악질 국가의 축’을 구축한 데 이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면죄부까지 주는 행태는 대한민국에 직접적 위협이 된다.
한미동맹 및 자유 진영 연대를 통해 대북제재 무력화 시도를 차단하고 공해상의 석유 환적 등 북한의 각종 불법 행위 감시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안보 자강(自强) 노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동맹을 거래 관계로 보면서 북·러 독재자를 칭송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백악관 복귀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에선 더더욱 그렇다.
문화일보 사설
03-29 시진핑의 비밀 병기, 알리와 테무
中의 과잉생산·실업난·디플레
알·테·쉬 중저가 수출이 탈출구
전 세계 전자 거래 시장 싹쓸이
中企 중저가 생태계 붕괴 심각
美는 인권과 개인정보로 반격
우리도 中 공습 정면 대응할 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올해 신년사에서 “일부 기업은 경영 압박에 직면했고 일부 대중은 취업과 생활의 어려움을 겪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단순히 다져진 길을 따라갈 수 없다”고 했다. 중국은 내부적으로 부동산 위기, 실업난, 디플레이션의 삼각 파도에 휩싸여 있다. 외부에선 미국이 디리스킹(탈위험) 칼날을 벼르고 있다. 한마디로 복합골절 상태다. 해법을 찾기도 쉽지 않다. 예전처럼 재정을 확 풀자니 정부 빚이 너무 많다. 금리를 화끈하게 내리기도 어렵다. 부동산 거품이 두렵고 미·중 금리가 역전돼 외국 자본 대탈출도 걱정스럽다.
유일한 탈출구가 수출이다. 하지만 반도체·정보기술(IT) 같은 첨단 제품은 서방의 규제에 꽁꽁 묶여 있다.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는 칩4 동맹을 앞세워 첨단 산업의 목을 조이고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도 중국산 제품에 ‘60% 관세 부과’를 공언하고 있다. 중국의 ‘니어쇼어링’ 표적이 된 멕시코는 미국의 ‘멕시코=중국산 유입 뒷문’이란 비난을 가라앉히기 위해 진땀을 빼고 있다. 중국산 철강 공(鋼球)과 철강 못 등에 잇달아 최고 31%의 반덤핑 관세를 때렸다.
중국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공간은 중저가 생활필수품 수출이다. 중국 수출은 1∼2월에 전년 동기 대비 5% 증가해 뚜렷하게 회복 중이다. 하지만 수출품 평균 단가는 9% 떨어졌다. 그만큼 중저가 제품을 대거 수출한 것이고 그 3대 혈관이 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이다. 알·테·쉬의 약진은 시 주석에게 일석이조다. 중국의 과잉 생산을 해소하고 해외로 디플레이션 압력을 빼내는 배출구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임금이 싼 신장위구르 등 중서부 지역에서 노동집약적으로 생산해 최근 완비한 철도·고속도로망을 타고 대량 수출해 실업률도 낮춰주고 있다. 놀라운 가격 파괴의 비밀이다.
중국이 미국과 유럽의 눈치를 덜 살피는 것도 장점이다. 인플레이션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선진국들은 물가 안정을 위해 값싼 중국 생필품 수입 급증에 눈감고 있다. 지난해 테무의 쇼핑 앱은 3억3700만 건, 쉬인은 2억6194만 건 다운로드 돼 아마존(1억8812만 건)을 압도했다. 글로벌 전자상거래 시장을 싹쓸이할 판이다. 테무가 처음 등장한 2022년 이후 모기업 판둬둬의 주가는 3배나 치솟아 시가총액이 260조 원이나 된다. 비상장인 쉬인도 기업 가치가 120조 원으로 팽창했다. 중국 증시가 죽을 쑤는데도 시진핑 정권이 의도적으로 밀어준 것이다.
유탄을 맞은 전 세계 이커머스 업계는 쑥대밭이 됐다. 이들이 중국 제품을 수입할 경우 관세와 부가세, 인증 비용 등을 부담하지만, 알·테·쉬는 현지 공장에서 해외 소비자에게 직판하다 보니 가격 경쟁에서 게임이 안 된다. 미국의 천원 숍인 달러 트리가 못 견디고 점포 1000개를 폐쇄할 정도다. 올 들어 2개월간 국내 인터넷 쇼핑업체도 2만4035곳이 폐업했다. 이마트 등 대형마트들도 지난 1월 매출이 9% 넘게 감소해 이마트가 사상 처음 희망퇴직을 실시할 정도다. 더 심각한 문제는 온라인을 넘어 실물 경제로 번져 중저가 제조업 생태계마저 붕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국내 중소 제조업체들의 32.9%가 알·테·쉬의 공격적인 마케팅과 저가 공세에 밀려 매출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이 먼저 반격에 나섰다. 쉬인이 신장위구르에서 불법 강제 노동을 통한 면화로 의류를 생산한다며 몽둥이를 꺼내 들었다. 또, 2016년 전자상거래 활성화를 위해 800달러 이하 국제 우편물에 무관세 혜택을 준 게 알·테·쉬에 빈틈을 열어주었다는 판단 아래 관세 그물망을 다시 촘촘하게 손질할 채비다. 브라질도 룰라 정부가 친중국 성향이지만, 알·테·쉬 공습을 견디다 못해 무더기 반덤핑 관세를 때리고 있다. 미국은 아예 틱톡이 개인정보를 중국으로 유출할 수 있다며 미 국내 사업권을 6개월 내 매각하라는 ‘틱톡 금지법’까지 만들었다.
한국도 더 이상 느긋할 여유가 없다. 알·테·쉬는 중국 내부 문제를 해외로 배출하기 위한 시진핑의 비밀 병기이자 대량파괴무기나 다름없다. 알리익스프레스가 한국에 1조 원을 투자하는 등 알·테·쉬가 대대적인 2차 공습에 나섰다. 국내 중소기업 생태계가 불가역적으로 망가지기 전에 중국발(發) 쓰나미에 정면으로 맞서야 할 때다.
문화일보 이철호 논설고문
03-29 北무기 필요한 러, 유엔감시에 ‘구멍’
北 우크라전 무기 공급 등 조사
추가조처 없으면 4월 30일 중단
러, 핵보유국 용인 등 조력 평가
중국, 기권하며 北 편들기 나서
워싱턴=김남석 특파원 namdol@munhwa.com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이행을 감시·확인하는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패널 임기연장을 위한 결의안 채택이 28일 상임이사국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됐다. 북한과 무기거래에 대한 감시를 피하려는 러시아와 미·중 패권경쟁 속 우군 확보에 나선 중국이 북한 대량파괴무기(WMD) 개발 감시를 무력화해 사실상 핵보유국 등극을 용인하는 조력자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2009년 설립된 전문가패널은 추가조처가 없으면 4월 30일 활동을 중단하게 돼 북한 핵·미사일 개발 등 각종 제재위반에 대한 국제사회 감시에 구멍이 뚫리게 된다.
유엔 안보리는 이날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대북제재위 전문가패널 임기를 내년 4월까지 1년 연장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표결에 부쳤지만 찬성 13표, 반대 1표, 기권 1표로 부결됐다. 안보리 결의안은 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 등 5개 상임이사국 중 어느 한 곳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야 하는데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하고, 중국은 기권했다. 이에 따라 15년간 유엔 회원국들의 대북제재 이행을 감시하고 위반사항을 추적해 온 전문가패널은 다음 달 말 임기종료와 함께 활동을 중단하게 됐다. 한국과 미국·영국·프랑스·일본은 결의안 부결 직후 공동성명을 통해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는 북한과 러시아가 자신들의 끊임없는 안보리 결의 위반에 대한 독립적, 객관적 조사를 침묵시키려는 시도”라고 규탄했다.
러시아가 14년간 만장일치로 채택됐던 전문가패널 임기연장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북·러 무기거래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 지난 20일 공개된 전문가패널 보고서에는 북한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사용할 무기를 공급한 정황이 집중적으로 담겼다. 러시아 정보당국 수장인 세르게이 나리시킨 대외정보국(SVR) 국장이 25∼27일 평양을 전격 방문한 점 역시 연관된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 역시 이번 표결에서 기권을 택해 북한 편들기에 나섰다. 향후 북한 핵·미사일 도발에 다시 ‘쌍중단 쌍궤병행’(雙中斷 雙軌竝行·북한 핵 개발과 한미연합훈련 동시 중단) 등을 꺼내 들며 한국과 미국 책임론을 주장할 가능성이 커진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표결을 통해 중·러가 당분간 북한이 추가제재는 물론 제재위반 적발에 대한 우려 없이 핵·미사일 도발을 할 수 있도록 용인함으로써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비핵화 대신 핵군축 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을 전망이다.
전문가패널은 2009년 북한 2차 핵실험 후 채택된 대북결의 1874호에 따라 설치됐다. 전문가패널은 그동안 풍계리 추가 핵실험 정황을 비롯해 공해상의 선박 간 불법 환적 감시, 가상화폐 탈취 등을 확인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사치품 수입까지 감시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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