凍土의 消息 2024/ 02
02.06 "배급 받은적 없다" 72%…탈북민 6451명의 참혹 증언
"이제 거의 50%는 다 (휴대전화를)가지고 있어요. 그걸로 장사 연계도 하고 기본 전화들 다 쓰고, 가족들이 보고플 때도 영상통화도 하고 하니까. 사회의 흐름이 그러니까 너도나도 전화를 쓰죠." (2019년 탈북민)
"피아노 배워주고, 영어 과외, 컴퓨터 과외 다 시키고 있고. 돈 많은 집 자식들이 저렇게 사교육에 돈을 투자하는데 안 될 수가 있겠어요. 북한에서 제일 1위인 이과대학 보낸다고 하고." (2019년 탈북민)
"청바지 같은 거 바짝 붙는 거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 다니면 잡혀서 벌금 물고 그래요. 내가 단속되었잖아요. 그래서 막 아니라고 그러면 그 사람 배(부아)를 돋우었기 때문에 (옷을)찢기도 해요." (2018년 탈북민)
통일부가 6일 공개한 '북한 경제·사회 실태 인식보고서'에 등장하는 탈북민들의 인터뷰 중 일부다. 보고서는 2013~2020년 사이 탈북해 국내에 정착한 6451명의 증언을 토대로 작성됐다. 붕괴한 배급제, '백두혈통'에 대한 반감 확산, 양극화 심화 등 북한의 내부의 최근 실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북한 경제·사회 실태 인식보고서, 통일부 제공
김정은 정권서 더 와해한 배급제
정부는 그간 매해 탈북민을 대상으로 실태보고서를 작성해왔지만, 일반에 공개한 건 처음이다. 이전에는 탈북민 개인정보 노출 우려 등을 고려, 보고서를 3급 비밀로 분류했다. 올해 10년간 수집한 자료를 분석해 보고서를 공개한 건 북한 실상을 바로 알리자는 윤석열 정부의 기조가 반영된 것으로, 북한 인권 증진 노력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발간사에서 "북한 실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북한을 올바른 변화로 유도하고 자유롭고 평화로운 통일 한반도를 준비하기 위한 첫 단계"라고 강조했다.

▲식량배급 경험 비율의 연도별 추이. 출처 : 통일부 『북한 경제·사회 실태 인식보고서』
보고서에 따르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집권한 이후 배급제 붕괴 속도는 더 빨라졌다. 2006~2010년 탈북한 응답자 중 "식량 배급을 받아본 적 없다"는 답변은 63.0%였는데, 김정은 집권 이후인 2016~2022년 탈북민 중에서는 72.2%로 10%p 가까이 늘었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으로 불리는 심각한 경제난을 겪은 후 사회주의가 표방하는 계획경제와 배급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데, 갈수록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주민들은 장마당에서의 경제활동을 통해 생활을 꾸려나가는 방식으로 생존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보고서는 "북한 주민들이 겪고 있는 경제난과 민생난의 원인은 다름 아닌 북한 정권의 왜곡된 정책과 경제 지출"이라고 지적했다. 1970년대 이후 핵 개발에만 총 11억~16억 달러(약 1조 4690억~2조 1368억 원)를 투입하는 등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에 재정을 쏟아붓느라 민생고를 외면했다는 것이다.

▲1순위 시장거래 화폐. 출처 : 통일부 『북한 경제·사회 실태 인식보고서』
여기엔 2016년부터 본격화한 국제사회의 고강도 대북 제재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국경 봉쇄로 북한 정권의 수익 자체가 줄어든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2009년 11월에 단행한 화폐개혁 실패 이후 북한 내에서 달러 등 외화 통용이 크게 늘어난 것도 확인됐다. 보고서는 "자국 화폐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한 것"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외화 통용은 접경지역에서 더 활발히 이뤄지고 있으며, 보유 화폐의 종류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도 외화만 보유했다는 응답이 꾸준히 증가했다.
'3대 세습', '백두혈통' 향한 차가운 시선도
권력 세습이나 백두혈통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늘었다. 김정은 권력 승계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집권 직전인 2006~2010년 탈북민 중에는 36.6%였는데, 김정은이 각종 숙청 작업 등을 통해 권력을 공고히 한 2016~2020년 탈북한 이들 중에서는 56.3%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정은 권력승계에 대한 부정적 평가, 출처 : 통일부 『북한 경제·사회 실태 인식보고서』
북한판 '로열 패밀리'인 '백두혈통'에 대한 반감도 커졌다. 김정은의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 시기에 탈북한 이들 중에는 백두혈통 세습에 반대하는 응답자가 30% 내외 수준이었는데, 김정은이 집권한 직후인 2011~2015년 탈북민은 42.6%가 부정적 평가를 내놨다. 2016~2020년 탈북자 중에는 절반이 넘는 54.9%가 백두혈통 세습에 반대했다.
체제에 대한 반감이 높은 탈북민 대상 조사라는 점을 감안해도 이런 상승 추이는 주목할만 하다는 지적이다. 김정은이 딸 주애를 후계자로 시사하는 가운데 백두혈통 4대 세습에 대한 내부 인식은 더 악화할 가능성도 있다.

▲백두혈통 세습에 대한 부정적 평가, 출처 : 통일부 『북한 경제·사회 실태 인식보고서』
여기에는 김정은 집권 이후 주민들의 사상 이완 방지를 위해 사회 전반에 걸쳐 통제와 규율 체계를 강화한 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에 따르면 사회 감시 및 통제의 강화 정도를 묻는 질문에 김정은 집권 이전인 2011년 이전 탈북한 이들은 50.7%가 매우·다소 강하다고 답한 데 비해 김정은 체제가 공식 출범한 2012년 이후 탈북한 경우엔 71.5%가 통제가 더 심해졌다고 답했다.

▲외부 영상물 시청 여부
실제 북한은 반동사상문화배격법, 평양문화어보호법 등을 통해 외부 정보의 유입을 막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는 그만큼 내외의 정보 유통이 활발해지고 있다는 방증인데, 보고서에 따르면 외부영상물을 시청했다는 응답은 83.3%에 이른다. 최근 북한 내 컴퓨터, 휴대전화 등 정보기기 사용 역시 확산하고 있다.
심각한 평양-지방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에서도 빈부 격차가 심각한 수준이다. 기존 핵심 계층인 당·정·군 간부들의 치부 행위에 더해 사경제 활동을 통해 부(富)를 축적한 돈주 등 일부 상위 계층이 등장하며 양극화가 심해졌다는 분석이다. 2016~2020년 사이 탈북한 이들 중 93.1%가 빈부 격차가 심하다고 응답했다.

▲북한 빈부격차 심화 평가, 출처 : 통일부 『북한 경제·사회 실태 인식보고서』
평양과 지방 간의 생활수준 격차도 이런 양극화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지방은 평양보다 공공 서비스 및 인프라 공급에서 훨씬 더 열악한 상황으로 나타났다. 지방(접경 33.9%, 비접경30.1%)은 식량 배급 경험도 평양(60.9%)에 비해 거의 절반 수준이었다.
난방연료의 경우 평양은 석탄(59.2%)·전기(9.5%) 사용 비율이 높았지만, 접경 지역에서는 나무 연료로 난방하는 비율이 72.7%였다. 최근 김정은이 지방경제 활성화에 사활을 걸며 당·정·군 주요 간부들을 투입하는 것도 이로 인한 민심 이반을 우려한 결과로 읽힌다.
중앙일보 정영교 기자
02.07 평양의 봄
김정은 치적이라는 ‘평양 뉴타운’
실상은 뇌물 판치는 비리 복마전
배급 끊길라 전전긍긍하는 주민들
“봉쇄 끝났는데 核 때문에 이 모양”

▲작년 4월 완공된 평양 화성지구 1단계 아파트 단지.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시한 '평양 5만세대 살림집 건설' 사업에 따라 2021년부터 매년 1만채 규모의 아파트 단지를 평양 외곽에 건설하고 있다. 2022년 송화지구에 1만 가구를 완공했고, 작년에 화성지구에 1만 가구를 완공했다. 오는 4월 입주를 목표로 화성지구에 추가로 1만 가구를 짓고 있다. /노동신문·뉴스1
북한 김정은이 집권 후 처음으로 경제 실패를 인정한 건 코로나가 창궐하던 2020년 8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였다. 경제 목표들이 “심히 미진됐다”고 했다. 전문가들이 귀를 의심했다. 북한에서 수령은 ‘무오류의 화신’이다. 잘못, 실패를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외부 환경과 간부들을 탓하는 유체이탈 화법을 쓴대도 누워서 침 뱉기다. 괜찮은 척하기엔 워낙 상황이 좋지 않았다. ‘승리자의 축전’이어야 할 당대회가 코앞이었다. 밑밥을 깔아야 했다.
전원회의 두 달 전 전조가 있었다. 김정은이 주재한 정치국 회의 안건이 ‘평양시민 생활 보장을 위한 당면 문제’였다. 핵심 계층이 모여 사는 ‘혁명의 수도’에서 심각한 식량·전기·생필품 공급 차질을 빚었단 뜻이다. 이걸 공개했다는 것도 이례적이다. 이듬해 1월 8차 당대회에서 김정은은 “모든 부문에서 엄청나게 미달됐다”는 표현을 썼다. 동요하는 엘리트층과 험악해지는 민심을 다독이려면 어쩔 수 없었다. 부촌이라는 개성에서도 아사자가 쏟아졌다. 회의 때마다 경제난을 자인하며 간부들을 질책하는 게 일상이 됐다.
최근 묘향산에서 정치국 회의를 소집한 김정은이 “지방 인민들에게 초보적 생필품조차 제공 못 하는 건 심각한 정치적 문제”라며 간부들을 향해 “말로 굼땐다(때운다)” “결단과 용기가 없다”고 질타한 것도 그 연장선이다. 1박 2일간 김정은이 가장 많이 한 말은 ‘지방’이었다. 첫날 22차례, 둘째 날 37차례였다. “지방의 세기적 낙후성” 운운하며 도농 격차 해소를 강조했다. ‘지방’으로 점철된 연설문 행간에 ‘이제 평양은 살 만하니 지방만 살아나면 된다’는 내부 선전 의도가 뚜렷했다.
김정은이 믿는 구석은 ‘평양 5만 세대 살림집 건설’ 사업이다. 3년 전 당대회 때 약속했다. 경제가 나락에 빠져 백지화하다시피 한 ‘5개년 계획’에서 거의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청년 돌격대와 군인을 총동원해 2022년 송화지구에 1만 가구, 2023년 화성지구에 1만 가구를 완공했다. 오는 4월 입주를 목표로 화성지구에 추가로 1만 가구를 짓고 있다. 핵무력 고도화에 버금가는 김정은의 치적으로 선전한다. 지방에 가야 할 인력과 자원을 몽땅 끌어다 썼다. 평양 민심을 잡기 위한 몸부림이다.
정작 주민들은 냉소적이다. ‘평양 뉴타운’은 겉모습만 초고층, 초현대식이다. 제한 송전으로 승강기는 장식품이 돼 70~80층을 걸어 다니고 난방·온수 공급도 엉망이라 옷을 몇 겹씩 껴입는다. 주거 환경이 나은 ‘로열동’ ‘로열층’은 정권 실세들에게 뒷돈을 댄 사람들 차지다. ‘제대 군인, 과학자, 교수 등에게 우선 배분한다’는 배정 원칙은 진작에 무너졌다. ‘누구에게 얼마를 쥐여줘야 화성지구 입사증(입주허가권)이 나온다’는 필승 공식이 돌아다닌다. 당 서열 10위권 안팎의 군수·경제 담당 정치국 위원 2~3명이 가장 확실하다고 한다. 리선권, 현송월도 수완이 좋은 편이다. 주민들은 “저렇게 받아먹어도 멀쩡한 걸 보니 과연 실세”라고 수군댄다. 이들 눈에 화성지구는 김정은 치적이 아니라 복마전이다.
300만 평양 주민 대다수는 김정은 정권을 떠받치는 당·정·군 엘리트와 그 가족들이다. 뉴타운에 실망했다고 돌아서진 않는다. 이들을 김씨 왕조와 3대째 운명 공동체로 묶어주는 핵심 고리는 배급이다. 평양에서 배급제가 작동하는 한 김씨 정권은 유지된다. 요즘 평양에선 국영 상점, 시장에 가도 생필품을 구하기 어렵다. 전기는 걸핏하면 끊기고 유류 공급도 빠듯하다. 식량 공급만 간신히 이뤄진다. 이마저도 ‘모든 곡물을 평양에 우선 공급하라’는 김정은의 특별 방침 덕분이다. 코로나 봉쇄 당시보다 나아진 게 없다. 모든 게 김정은의 핵 집착 때문임을 주민들도 안다. 그런 김정은 뒤에서 호가호위하는 측근들은 그들만의 잔치를 벌인다. 평양의 봄은 아직이다.
조선일보 이용수 논설위원
02.07 北 전력공급 하루 4시간… 탈북민 41% “월급의 30% 빼앗겼다”
“북한에 있을 때 어떤 생활 했나” 탈북민 6300명 대상 심층 조사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4일, 백두산을 오르는 답사행군대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게재하고 “불굴의 정신력의 힘으로 원수 일제를 전률케 하던 항일 빨치산의 후손들이라는 크나큰 긍지와 자부심이 이들의 얼굴마다에 비껴있다”고 전했다. 북한은 지난 2019년 12월 김정은 당 총비서가 군마를 타고 백두산에 올랐던 '군마행군'을 계기로 김일성 주석 등 '항일 선열'들의 백두정신을 배우라며 백두산 답사를 다그치고 있다./노동신문 뉴스1
국내 정착 탈북민의 절반 이상은 북한에 있을 때 정치 지도자로서 김정은을 부정적으로 생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최근 탈북한 사람일수록 북한의 이른바 ‘백두 혈통’ 세습에 대한 반감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김정은 정권이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에 재정을 쏟아붓느라 민생을 외면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김정은 체제 출범 후 배급제는 더욱 유명무실해졌고, 가정용 전력 공급 시간은 하루 약 4.3시간으로 2000년대 이전보다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통일부는 6일 탈북민 6351명에 대한 심층 조사 결과가 담긴 ‘북한 경제·사회 실태 인식 보고서’를 공개했다. 2011년 이전 탈북민이 3333명,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한 2012년 이후 코로나로 북한이 국경을 폐쇄하기 전인 2020년까지의 탈북민이 3018명이다. 정부는 그간 매해 탈북민을 대상으로 실태 보고서를 작성해 왔지만, 일반에 공개한 건 처음이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이날 “올해 통일부는 북한 실상 알리기에 조직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김성규
보고서는 탈북 시기를 2000년 이전~2020년까지 5년 단위로 구분해 시기별 차이와 변화상을 반영했다. 전체 응답자 중 55.5%가 북한에 있을 때 정치 지도자로서 김정은을 부정적으로 생각했다고 답했고, 긍정평가한 비율은 20.4%에 그쳤다. 김정은에 대한 부정 평가는 집권 초기가 포함된 2011~2015년 57.2%, 2016~2020년 60.0%로 김정은 통치 경험 기간이 길수록 높았다. 지역별로 보면 특권층이 모여있는 평양 거주 응답자의 부정 평가 비율이 59.2%로 북·중 접경지 주민의 부정 평가 비율(55.4%)보다 높았다. 정부 당국자는 “평양 출신 주민들의 경우 경제적 이유보다는 정치적 이유로 탈북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연령대별로 보면 20대에선 52.2%, 30대 57%, 40대 57.4%, 50대 이상 55.8%로 모든 연령대에서 부정 평가 응답 비율이 절반 이상이었다.
김정은의 권력 세습에 대한 평가도 부정적이었다. 권력 승계에 대한 인식 항목이 2014년 조사에 포함된 이후 5278명을 대상으로 설문이 이뤄졌는데, 김정은 집권 이후 탈북한 응답자의 51.7%는 북한에 있을 때 김정은의 권력 승계를 부정적으로 생각했다고 답했다. 김정은 집권 전 탈북 응답자(35.7%)보다 16%포인트 높은 수치다. 2020년부터 설문 조사 항목에 추가된 백두 혈통 세습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선 응답자(743명)의 44.4%가 부정적이라고 봤다. 김정은 체제 출범 전인 2011년 이전 탈북한 응답자의 백두 혈통 부정 평가 비율은 29.9%,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인 2012년 이후 탈북한 응답자의 부정 평가 비율은 52.6%로 크게 증가했다.
보고서는 “정권에 대한 주민 불만이 누적되면서 북한 주민들의 의식 또한 점차 변화하고 있는 것”이라며 “김정은 세습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김정은 체제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김정은 집권 이후 악화된 민생이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2016~2020년 가정용 하루 전력 공급 시간은 약 4.3시간으로 2000년 이전 5.7시간보다 낮았다. 2012년 이후 탈북한 응답자의 69.7%는 주택 난방 연료로 ‘나무’를 사용한다고 답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 뇌물 공여 경험은 54.4%로 집권 이전(24.2%)보다 2배 가까이로 늘었고, 월수입의 30% 이상을 권력층에 수탈당한다고 답한 탈북민 응답 비율도 2011년 이전 32.8%에서 2012년 이후 41.4%로 증가했다. 2006~2010년 탈북한 응답자 중 “식량 배급을 받아본 적 없다”는 답변은 63.0%였는데, 김정은 집권 이후인 2016~2022년 탈북민 중에서는 72.2%로 10%포인트 가까이 늘었다.
02.09 “노동 착취 후 女종업원 고르라고…” 中 체류 북한 노동자의 폭로

▲2019년 12월 5일 북한과 국경을 맞댄 중국 단둥시에서 공장으로 출근하는 북한 노동자들. /공공부문
중국에서 일하고 있는 북한 노동자들이 북한 당국에 의해 노예처럼 착취당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숙소에 감금당한 채 비상식적인 근무 환경에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
영국 BBC 방송은 7일(현지시각) 일부 북한 노동자의 증언을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BBC는 중국 동북지방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는 한 북한 노동자 A씨가 고영환 통일부 장관 특별보좌역과 1년 이상 주고받은 이메일을 확인했다며, 그 안에는 “북한이 정보기술(IT) 노동자들을 노예처럼 착취해 주 6일, 하루 12~14시간씩 일하게 만든다”는 주장이 담겼다고 전했다.
이에 따르면 A씨는 미국과 유럽 고객들을 위해 밤새워 일하는데 이로 인해 만성적인 불면증 등 여러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또 처음 중국에 도착했을 때는 급여의 15~20%를 직접 지급받았으나 2020년 들어 완전 중단됐다고 말했다. 북한 당국으로부터 ‘밤에 노동자들이 탈출하지 못하도록 숙소에 가두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도 했다.
직원들을 상대로 한 폭언과 폭행이 난무한다는 폭로도 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성과가 좋지 않은 직원의 따귀를 때리거나 피가 날 때까지 구타하는 등 공개적으로 모욕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중국에서 일한 적 있다는 또 다른 북한 노동자 B씨는 비교적 재정 사정이 좋은 기업에서 좋은 성과를 냈음에도 비슷한 대우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그는 “직장에서 나온 임금의 15%만 받았을 뿐 나머지는 관리자와 북한 정부가 가져가 좌절했다”고 했다.
이어 “어떤 이들은 혹독한 겨울철에도 숙소 난방이 안 됐고 외부 출입이 금지돼 생필품을 사기 위한 외출조차 막혀있었다”며 “평가가 좋았던 나는 일주일에 한 번 다른 사람을 동행한 외부 출입이 허용됐지만, 팬데믹 기간에는 이마저도 금지돼 1년간 일터 바깥으로 나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은 북한 당국이 식당 여종업원들을 동원해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수단까지 썼다고 주장했다. 관리자들이 성과가 좋은 노동자들을 식당으로 데려가 여종업원을 고르게 하고 밤을 함께 보내게 했는데, 이런 방식으로 노동자들의 경쟁을 부추겨 돈을 벌어오게 했다는 내용이다.
현재 외국에 머무는 북한 노동자는 10만명으로 추정된다. 대다수가 중국 동북지방 공장이나 건설 현장에서 일한다. 이들이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북한에 송금한 돈은 약 7억4000만 달러(약 9864억원)가량인 것으로 추산된다. 거의 모든 수입이 북한 정부에 보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앞서 지난 11일 중국 한 봉제 공장에서 일하던 북한 노동자들이 임금 체불을 문제 삼아 폭동을 일으킨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북한 노동자 약 2500명이 파견된 공장으로, 이곳의 체불 임금 총액은 약 1000만 달러(약 133억3000만원) 규모였다. 해당 사건으로 현지 노동자 관리 책임을 맡은 북한 관리자가 사망하고 지배인 등 3명이 중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조선일보 문지연 기자
02.12 北 “유도 기능 갖춘 240mm 방사포탄 개발 성공”
2010년 연평도 포격때 사용됐던 240mm 방사포...“성능 개선 가능성”
북한이 유도 기능을 갖춘 신형 240㎜ 방사포(다연장로켓포의 북한식 표현 ㆍ최대사거리 65km) 포탄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북한의 240㎜ 방사포탄은 서울·수도권을 겨냥한 주요 무기 중 하나로 유도화에 성공했다면 사거리가 늘어나고 정밀도가 개선됐을 것이란 분석이다.

▲북한 관영매체가 과거 공개했던 240mm 방사포 훈련 모습. /조선일보 DB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국방과학원이 조종(유도) 방사포탄과 탄도 조종 체계를 새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고 12일 전했다. 통신은 “국방과학원이 11일 240㎜ 조종방사포탄 탄도조종 사격시험을 진행해 명중성에 대한 평가를 진행하고 그 우월성을 검증했다”며 “240㎜ 조종방사포탄과 탄도조종체계 개발은 우리 군대 방사포 역량을 질적으로 변화시키게 된다”고 했다. 국방과학원은 “이 같은 기술적 급진에 따라 240㎜ 방사포의 전략적 가치와 효용성이 재평가되게 될 것이며 전투마당에서 240㎜ 방사포의 역할이 증대될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통신은 설명했다.
북한의 240㎜ 방사포탄은 서울·수도권을 겨냥한 주요 무기 중 하나다. 북한 방사포는 122·240·300㎜ 등이 있는데 서울을 겨냥한 장사정포가 240㎜에 해당한다. 2010년 연평도 포격 당시에도 사용된 적이 있다. 우리 군은 전날 북한이 평안남도 남포 인근에서 240㎜ 방사포탄 시험발사가 이뤄진 움직임을 탐지했다고 한다. 남포 인근에서 발사된 방사포탄은 수십㎞를 비행해 서해상에 낙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사포는 북한의 도발에 종종 활용돼 왔는데 지난달 5∼7일에도 북한은 서북 도서 북방 일대에서 해상완충구역 등을 향해 방사포와 야포 등을 300발 넘게 발사했었다. 북한은 지난해 1월 초 새해를 맞아 600㎜급 초대형 방사포 30문을 신규 생산 배치했다고 한 바 있다. 이후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같은 해 8월 직접 두 차례 방사포탄 생산 공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122㎜와 240㎜ 방사포탄의 조종화(유도화)를 실현한 것은 현대전 준비에서 중대한 변화”라고 치켜세웠다.
북한이 240㎜ 조종방사포탄을 시험발사한 사실을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 주장대로 유도화에 성공했다면 240㎜ 방사포탄의 사거리가 늘어나고 정밀도가 개선됐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240mm 방사포의 러시아 지원 가능성도 꾸준히 거론됐다.
조선일보 김민서 기자
02-14 북, 올 5번째 순항미사일 도발… 김정일 생일 광명성절 이틀 앞 발사
■ 동해상으로 수발 발사
군, 추가도발·해킹 등 대비 강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인 광명성절(16일)을 이틀 앞둔 14일, 북한이 순항미사일 여러 발을 발사하며 도발에 나섰다. 군은 4월 총선을 앞두고 미사일 발사, 사이버 공격 등 다양한 형태의 북한 도발이 있을 것으로 보고 대비태세 강화에 나섰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우리 군은 오전 9시쯤 (강원도) 원산 동북방 해상에서 미상 순항미사일 수발을 포착했으며, 한·미 정보당국이 정밀 분석 중에 있다”고 밝혔다. 합참은 감시 및 경계를 강화하고, 미국과 긴밀하게 공조하며 북한의 추가 도발 징후를 면밀히 살피고 있다. 북한이 순항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올해 들어 다섯 번째다.
대통령실과 군은 북한이 우리나라의 중요한 정치 일정이 있을 때마다 도발을 반복하고 있어, 4월 총선 전까지 접경지 도발, 사회 교란·심리전 등 다양한 형태의 도발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실제 북한은 해킹 등 사이버 공격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영국을 국빈방문했던 지난해 11월 수행원으로 출국했던 당시 대통령실 행정관의 이메일이 북한에 의해 해킹됐던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해당 이메일은 대통령실 서버가 아니라 ‘상용메일’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대통령실 조사 결과 이 행정관 외의 추가 사례는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해당 이메일함에 있던 대통령실 및 정부 관계 부처의 다른 문서를 통한 추가 해킹 시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화일보 손기은·서종민 기자, 정충신 선임기자
02.16 6000만달러 수입원이라 북송도 못한다, 지린성 北노동자 폭동 그후
정초부터 북한이 심상찮다. 지난달 5일부터 2박 3일간 서해 NLL(북방한계선) 부근에 약 400발의 포격을 퍼부은 것을 시작으로 극초음속 미사일, 순항 미사일, 지대공 미사일, 대함 미사일을 동원해 15일 현재까지 총 11차례, 주 2회꼴로 무력시위를 했다. 동원한 무기가 전부 대남 공격용이었다. 김정은이 작년 말 “북남 관계는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라며 “유사시 핵무력을 동원한 남조선 전 영토 평정”을 지시한 뒤 벌어지는 일이다. 미국 조야에선 한반도 전쟁 임박설까지 거론하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중국 지린성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 수천명이 지난달 북한 당국의 임금 체불에 항의하며 파업과 폭동을 일으켰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국방성 산하 무역회사가 코로나 기간 밀린 임금을 귀국할 때 한꺼번에 주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그동안 평양에 전액 상납했으며, 최근 이 사실을 알게 된 노동자들이 격분해 공장을 점거하고 북한 간부를 인질로 삼는 등 난동을 일으켰다는 내용이다. 대남 협박을 퍼붓는 북한의 취약한 내부 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 사실로 확인된 이 기사는 북한 외교관 출신인 고영환 통일부장관 특보가 제보한 것이었다. 지난 13일 정부서울청사 사무실에서 고 특보를 만났다.
―폭동은 잠잠해졌나.
“겨우 진정시켰는데 불씨는 남아 있다. 월급이 1000만달러 정도 밀렸는데 한꺼번에 줄 수 없는 상황이다. 조금씩 주면서 달래고 있다. 대외경제성, 인민보안성, 국가보위성 주재관들, 심지어 대사관 직원들한테도 갹출 지시가 내려왔다. 과거에도 임금 체불은 종종 있었는데 이번엔 2500~3000명이 집단행동을 했다. 정말 ‘특대형 사변’이었다. 이 사람들을 다 (북으로) 잡아들이고 싶지만 그러질 못하고 있다. 교대 인원도 다 뽑았는데 중국이 비자를 안 내주고 있다.”
―중국이 왜 그러나.
“북한 소식통한테 들은 얘기다. ‘중국×들이 우리를 길들이려 한다’더라. 작년 9월 김정은이 푸틴을 만나 ‘우리나라의 최우선 순위는 로씨야와의 관계’라고 말한 뒤 중국 기류가 달라졌다. 빈정상한 것이다. 원래 북 식당 종업원에겐 공연 비자, 노동자에겐 학생 비자를 내주는 방식으로 제재 우회를 도왔는데 최근 쿼터를 확 줄여버렸다. 교대 인원이 들어가질 못하니 중국에 나와 있는 사람들도 못 바꾸는 상황이다.”
―일단 잡아들이면 안 되나.
“예전 같으면 그랬을 거다. 이 정도면 거의 정치범이니까. 그런데 지금은 돈이 너무 귀하다. 이 사람들이 10~20년간 재봉질만 한 장인들이다. 일반 노동자들은 800~1000달러를 받지만 이 사람들은 임금이 2000달러다. 중국 업체들의 만족도가 굉장히 높다. 2500명이 매달 2000달러면 1년에 6000만달러다. 북한 형편에 엄청난 돈이다.”

▲고영환 통일부장관 특보가 지난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 장련성 기자
―어떻게 ‘반동분자들’을 내버려 두나.
“이따금 북한 장마당 소요 사태를 몰래 찍은 영상을 입수한다. 그걸 보면 매대 없이 장사하는 메뚜기 장사꾼들이 단속원들한테 대든다. ‘너희가 우리 먹여줄 거냐’ ‘나 장사 못하면 우리 식구 굶는다’며 삿대질을 하는데 안전원(경찰)들이 쩔쩔매다 자리를 피한다. 예전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번 지린성 폭동 때도 노동자들이 ‘돈 줄 때까지 일 안한다’며 집기를 부수고 간부들을 창고에 가둬놓고 때리는데도 (북한 당국이) 어쩔 줄 몰라 허둥댔다.”
―예전의 북한이 아니란 말인가.
“요즘 북한에선 폭력 사건이 급증하고 있다. 제일 많이 얻어맞는 게 보위원과 안전원이다. 귀가하거나 집에서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골목에서 폭행하고 도망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찍소리도 못하던 옛날과 다르다.”
―그래서 주민 통제가 되겠나.
“낮과 밤이 다르다. 요즘은 보위원이 길 가던 사람 아무나 붙잡고 손전화를 뺏는다. 남조선 노래가 나오면 끌고 간다. 또 청춘남녀가 ‘오빠야’ ‘자기야’ 하면 신분증 보자고 한다. 성씨가 다르면 ‘오빠 아니잖아. 너희 괴뢰 록화물 봤지’ 하면서 잡아간다. 숨도 못 쉴 정도로 통제하니 지금까지 별생각 없이 쓰던 말도 혹시 남조선 말투 아닌지 불안해들 한다. 심지어 ‘처음 뵙겠습니다’도 남조선 말이라고 못 쓴다더라. 살기도 힘든데 이렇게 찍어누르니 야음을 틈타 분풀이를 하는 것이다.”
북한은 2020년 극단적 처벌 조항을 넣은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시작으로 청년교양보장법, 평양문화어보호법 등 이른바 ‘혐한 3법’을 연달아 제정했다. 모두 문재인 정부 시절 벌어진 일이다. 김정은이 금강산 시설물 철거를 지시(2019년 10월)하고,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2020년 6월)한 것으로 모자라 극단적 법제화까지 한 것은 남북교류를 통해 얻는 것보다 한류 침투에 따른 사상·체제 이완 같은 부작용이 훨씬 크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고 특보는 분석했다.
―북한 경제 사정은 어떤가.
“김정은이 얼마 전 ‘지방 인민들에게 생필품 제공도 못 한다’고 한탄했는데 쉽게 말해 요즘 지방에선 간장 된장이 없어 소금을 찍어 먹는 형편이다. 과거엔 밤에 석유나 송진으로 등잔도 켜고 했는데 요즘은 그마저도 어렵다. 저녁 7시만 돼도 다니는 사람이 하나 없고 초저녁부터 취침이다. 좀비 도시, 유령도시가 따로 없다. 유일하게 불 들어오는 데가 김일성·김정일 동상이다.”
―어려워진 게 최근 일은 아닐 텐데.
“내가 북에 있을 때도 평양과 지방은 격차가 컸다. 지방에서 배급은 고난의 행군 때 끊겼고 2010년대 중반 안보리 제재 강화로 더 어려워졌다. 그래도 부족한 물품은 장마당에서 구해다 썼는데 (코로나를 거치며) 장마당 운영 시간이 단축되고 거래 품목에도 제약이 생겼다.”
―평양은 좀 나은가.
“평양도 출퇴근 시간에 2시간씩 하루 4시간 전기가 들어온다. 초고층 아파트가 많은데 퇴근 시간에 엘리베이터 타려고 아파트마다 300~400명씩 줄을 선다. 김정은이 자랑하는 화성지구 아파트는 70~80층이다. 주민들 골치가 얼마나 아프겠나. 난방이 안 되니 주민들이 땔감을 구하러 다닌다. 이걸 못 구해 외곽으로 밀려나는 주민이 상당히 많다.”
―매년 아파트를 1만채씩 짓는데.
“평양 하수도를 중국 인민지원군이 철수하기 전인 1958~59년에 만들었다. 그 위에다 무작정 초고층 아파트를 올리고 있다. 변기 물을 내리면 1층에서 다 막히고 역류하고 난리다. 평양 출신 탈북자가 ‘똥구멍 없는 아파트’라고 하더라. 하수관 정비, 하수처리 시설 확충 없이 속도전으로 아파트만 짓고 있다.”
―인분 처리가 걱정이겠다.
“다행히 겨울철엔 인분을 모아야 한다.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고 퇴비 전투가 벌어진다. 평양도 예외가 아니다. 고위층은 인민반장에게 돈을 주고 해결하지만 대다수 주민은 모아둔 인분을 연탄재와 섞어 퇴비를 만든다. 할당량이 세대당 500㎏이다. 한창 인분을 모으고 있을 때다.”
평양의 열악한 사정은 김정은도 몇 차례 시인했다. 코로나가 창궐하던 2020년 6월 주재한 정치국 회의에서 ‘평양시민 생활 보장을 위한 당면 문제’를 논의하고 이 사실을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작년 12월 전국어머니대회 연설에선 “수도 시민들의 생활용수와 땔감 문제, 대중교통 운수와 승강기, 난방 보장 문제를 먼저 해결하겠다”고 했다. 3년 6개월 동안 아무것도 개선하지 못했단 얘기다.
북한의 협박과 무력시위, 2013년의 데자뷔?
고영환 통일부장관 특보는 북한의 최근 위협과 대남 무력시위가 2013년 상황과 닮았다고 했다. 고 특보는 “2013년 초에도 북한은 연일 ‘핵 불바다’를 위협하고 김정은이 서해 최전방 장재도와 무도에 가 ‘적진을 벌초해버리라’고 하는 등 전쟁 위기감이 극에 달했다”며 “장성택의 영향력이 컸을 때다. 자기 권력이 취약하니까 밖으로 블러핑을 했다”고 말했다. 지금도 내부 문제 때문에 대남 위협의 수위를 높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는 “전쟁을 하겠단 나라가 컨테이너 5000개 분량의 포탄을 팔아넘기겠나. 오히려 그만큼을 들여와야 정상”이라며 “김정은의 최대 관심사는 4대 세습이고 김씨 왕조가 이어지는 것이다. 전쟁을 결심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고영환은 누구?
엘리트 외교관 출신 탈북민이다. 1953년 평양에서 태어나 평양외국어혁명학원, 평양외국어대학을 거쳐 1979년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다. 김일성의 프랑스어 통역을 3년8개월 담당했다. 콩고 주재 북한대사관에 근무하다 1991년 귀순했다. 탈북 외교관 1호다. 국정원의 싱크탱크 격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서 26년 근무했다. 작년 9월 신설된 통일부장관 특별보좌역에 기용됐다. 엘리트 탈북민들이 한국 정착 후 가장 먼저 찾는 인사다.
조선일보 이용수 논설위원
02.17 “北노동자 2000명, 1월 中공장서 파업…관리직 폭행 사망”
북한에서 중국으로 파견된 노동자 약 2000명이 임금 체불에 항의하기 위해 벌인 공장 점거 시위 중 관리직 대표를 폭행해 숨지게 했다고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
17일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지난달 11일 중국 지린성 옌볜 조선족 자치주의 한 의류 제조·수산물 가공 공장에서 임금을 오랫동안 받지 못한 노동자 약 2000명이 공장을 점거하고, 북한에서 파견된 관리직 대표와 감시 요원을 인질로 삼아 임금을 지불할 때까지 파업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이번 파업은 북한의 외국 파견 노동자가 벌인 첫 대규모 시위다.
▲지난해 8월 북한 신의주를 출발한 버스 2대가 압록강 철교를 통해 중국으로 넘어가는 모습.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중국 주재 영사와 비밀경찰·국가보위성 요원을 동원해 수습을 시도했지만, 20대 전직 여군 등이 포함된 노동자들의 저항을 받았고, 폭행을 당한 관리직 대표는 지난달 14일 사망했다.
파업은 지난해 북한으로 돌아간 노동자가 받을 임금을 떼였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통상 옌볜에 노동자를 파견하는 북한 기업은 중국 기업으로부터 1인당 월 2500~2800위안(약 46만~52만원)을 받고, 이 가운데 숙박·식사비 800위안과 회사 몫 1000위안을 빼고 700~1000위안(약 13만~19만원)을 받는다.
그러나 북한 측은 코로나19 영향으로 중국과의 국경이 폐쇄된 2020년 뒤부터 ‘전쟁 준비 자금’이란 명목으로 임금 전액을 가져갔고, 북한 지도부 상납, 회사 간부의 착복도 있었다고 한다.
북한 당국은 체불한 임금을 일단 지급해 노동자를 일단 달래는 한편, 파업을 주도한 약 200명을 색출해 이중 절반을 북한으로 송환했다.
소식통은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져 엄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요미우리에 말했다.
요미우리는 “이 사건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도 보고돼 지도부가 충격을 받았다”며 북한이 외화벌이를 위해 중국과 러시아 등에 파견한 노동자도 마찬가지로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어 사건의 여파가 퍼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북한 외교관을 지내다 귀순한 고영환 통일부 장관 특별보좌역도 지난달 북한 소식통 등의 이야기를 토대로 작성한 북한 노동자 파업·폭동 관련 보고서에서 이와 같은 내용을 주장하며 여러 공장에서 연쇄 파업이 발생했다고 했다.
북한이 외국에 노동자를 파견하는 것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인데, 코로나19로 국경이 봉쇄된 뒤 중국·러시아·중동·아프리카 등지에 9만 명에 이르는 북한 노동자가 남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가정보원도 북한 노동자의 대규모 반발 동향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중국은 사실 여부를 공식 확인하지 않았다.
임성빈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
02-26 김정은의 포탄상자 수탈사건

▲지난달 초 딸 김주애와 함께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8형’ 발사대 차량 공장에 나타난 김정은은 “대한민국을 완전히 초토화해 버릴 것”이라며 협박 수위를 높였다. 사진 출처 조선중앙통신
지난해 10월 중순 북한 각 기관, 기업소의 노동당 책임자와 행정 책임자들이 밤 10시에 시군 당위원회에 긴급 호출됐다.
이들에게 하달된 것은 최고사령관 명의의 긴급 명령이었다. 내용은 학생과 연로보장(은퇴) 노인을 제외한 모든 성인 남성에게 24시간 안에 포탄 상자 2개씩을 만들어 바치라는 것이었다.
당위원회에선 포탄 상자 견본품까지 보여주면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제작해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상자의 규격은 가로 30cm, 세로 120cm, 높이 30cm로, 직경 120mm 이상의 포탄 2발과 장약을 넣을 수 있는 크기다. 또 포탄 상자는 무조건 폭 15cm, 두께 1.5cm의 이깔(잎갈)나무 판자로 제작해야 한다는 조건도 붙었다.
명령이 하달된 순간부터 전국에서 이깔나무 판자가 순식간에 동나기 시작했다. 목재 가공 공장과 가공업자들이 발 빠르게 시장에서 이깔나무 판자와 목재를 사들였다. 그리고 밤새 포탄 상자를 제작했다.
뒤늦게 지시를 받은 사람들이 시장에 나갔을 때에는 이미 해당 규격의 포탄 상자 2개가 중국 돈 500위안(약 70달러)에 팔리고 있었다.
직접 만들기도 어려웠다. 아침에 해당 규격의 판자는 m당 2.8달러에 팔렸고, 이걸 사서 목공에게 부탁해도 자재값만 28달러에 가공비 5달러가 붙어 33달러나 들었다. 시장에서 포탄 상자 2개를 사는 것과 비교하면 차액은 고작 4달러 정도에 불과했다. 명령은 독재적이고, 하달 방식은 사회주의적인데, 집행한 사람들은 완벽하게 시장경제의 논리로 움직였다.
허나 아무리 최고사령관의 명령이라고 해도 없는 이깔나무를 만들어 낼 수는 없는 법이다. 남성들은 명령을 수행한 자와 수행하지 못한 자로 나뉘었다. 당연히 후자는 두고두고 사상 검증을 받아야 한다.
북한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이렇게 모은 포탄 상자가 전국적으로 약 200만 개라고 한다. 명령이 하달된 시점은 북한이 본격적으로 러시아에 포탄 지원을 시작한 때와 일치한다. 70달러면 북한 일반 4인 가정이 최소 두 달은 먹고살 수 있는 돈이다. 북한 인민의 고혈을 짜낸 수제 포탄 상자는 지금쯤 어느 우크라이나 벌판의 진창 속에서 썩어가고 있을 것이다.
포탄 상자 수탈 사건은 북한의 위선과 허세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김정은은 지난달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지방 인민들에게 기초식품과 식료품·소비품을 비롯한 초보적인 생활필수품조차 원만히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오늘날 우리 당과 정부에 있어서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심각한 정치적 문제”라며 반성하는 척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인민들의 생활을 개선하지 못했다며 울먹인 적도 여러 차례다. 민심이 악화되면 인민들에 대한 수탈을 하지 말라며 몇몇 간부를 본보기로 호되게 처벌하는 척하기도 했다. 정작 본인은 인민이 두 달을 먹고살 수 있는 돈을 24시간 만에 꿀꺽하고 입을 싹 씻었다.
포탄 상자도 생산할 능력이 없어 최고사령관 명령으로 전국 남성들이 톱과 망치를 들고 뛰어다녀야 하는 게 현실이지만 김정은은 정찰위성을 쏘고 핵잠수함을 만들겠다고 허세를 부리고 있다. 새해 들어서도 연일 신형 미사일을 만들었다고 자랑하며 시험발사 사진을 공개했고, 군수공장에 찾아가 수많은 미사일과 발사 차량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뿌렸다. 지금 북한의 군수산업은 김정은이 허세를 부릴 수 있는 몇몇 샘플용 무기 제작과 러시아에 보낼 탄약 제작에 모든 걸 쏟고 있다.
최근 김정은이 전쟁을 운운하며 연일 대남 강경 발언을 내뱉고 있지만, 정작 헐벗은 북한 군인들은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민가를 약탈하고 있다. 연료 부족에 기갑부대와 함정들은 대책 없이 녹이 슬고 있고, 공군 비행기는 추락이 무서워 훈련도 못 하고 있다.
일각에선 김정은이 정말 전쟁을 벌이려는 것 아니냐며 걱정하지만, 쓸데없는 기우이다. 제대로 전쟁 준비를 하기도 전에 북한 인민들부터 죽어갈 것이다. 탄약 상자는 물론 비상식량을 만들어 내라, 장갑을 내라, 군화를 내라, 디젤유를 내라 등과 같은 지시가 수십 번 넘게 떨어질 것이다. 심지어 총포를 닦을 천까지 내라고 할 것이다. 이건 개인적 상상이 아니라, 실제 북한에서 이미 다 일어났던 일이다.
이런 군대를 갖고 김정은은 “남조선 영토 평정”을 운운하고 있다. 말라갈수록 허세는 거꾸로 커지기만 하는 게 참 안쓰럽다.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02-29 물 좋은 北 신의주 인근에 생겨나는 ‘불법 술 공장’...“일제강점기 시절 위스키 성지”

▲단둥에서 바라본 압록강철교와 북한연합뉴스
경제난이 심화하는 북한의 신의주 일대에서 불법 술 제조 공장이 다수 존재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29일 데일리NK 재팬에 따르면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북한 신의주의 남동 교외에 있는 지역에 민가를 위장한 불법 술 제조공장이 판을 치고 있다. 북한 당국은 최근 물이 좋은 것으로 알려진 신의주 인근 지역에 대한 감시와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현지 데일리 NK 내부 정보통은 북한 사회안전부(경찰청)가 이달 초 "불법 술 제조 현상과 그와 관련된 행위를 무자비하게 제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전했다.
최근 불법 술 제조 공장이 많은 해당 지역에는 일제강점기 위스키 공장이 있었다고 한다. 해당 지역에서 양질의 물이 솟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북한에서 나도는 불법 제조 술의 80%가 이 지역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술 원료가 되는 알코올은 수도 평양 외곽의 평성에 국가과학원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제조해 개인 소유의 트럭을 이용해 운반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 사회안전부는 알코올 운반을 단속하기 위해 검문소에서 트럭을 닥치는 대로 검문하고 만약 알코올이 발견되면 운행금지, 전량 몰수 조치를 취하도록 지시했다. 또 양조에 사용하는 기계, 가마솥, 누룩, 술통은 물론 원재료를 판매한 상인에게도 상품을 몰수하고 불법 술 판매상에 대한 적발도 이뤄지고 있다. 적발된 사람은 비사회주의 행위를 한 혐의로 처벌 당한다.
문화일보 김선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