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正論直說 2024-02/ 02.01 尹 집무실 팻말 뒤편 - 02.29 “출산율 어디까지 떨어질 수 있나” 세계 실험장 된 한국

상림은내고향 2024. 2. 22. 17:14

正論直 2024-02/

02.01 尹 집무실 팻말 뒤편

내가 누구고 왜 여기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
모든 대통령이 항상 물어야 하는 질문
용기 있게 결정 하고 용기 있는 결정 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내가 다 책임진다(The buck stops here)’라는 트루먼 미 대통령 집무실 팻말 문구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바이든 대통령이 방한할 때 같은 문구의 팻말을 윤 대통령에게 선물했다. 이 팻말은 지금도 윤 대통령 집무실 책상에 놓여 있을 것이다.

 

‘나는 책임을 피하지 않겠다’라는 뜻이기도 한 이 팻말은 사실 트루먼 대통령이 만든 것이 아니다. 트루먼은 루스벨트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부통령 취임 82일 만에 대통령이 됐다. 이때 미주리주 관리이던 트루먼의 친구가 미주리주 소년원 원생들이 만든 비슷한 팻말을 보고 이를 주문해 트루먼에게 선물했다. 문구가 마음에 들었는지 트루먼은 이를 집무실 책상 위에 뒀다.

 

트루먼은 대통령직을 이 문구 그대로 수행했다. 그가 대통령으로 내린 결정은 다른 대통령 열 명이 내린 결정을 합친 것보다 많았다. 트루먼은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라고 명령한 사람이다. 트루먼은 소련 공산주의에 맞서 자유세계를 지키겠다는 트루먼 독트린을 발표했다. 거침없던 공산주의 확산을 막은 첫 인물이 트루먼이다. 6·25 남침을 당한 대한민국을 위해 유럽 우방국들의 우려를 무릅쓰고 미군과 유엔군 파병을 결단해 우리를 구했다. 폐허가 된 유럽을 되살리기 위한 거대 지원 계획 ‘마셜 플랜’을 결정했고 서방 세계의 방패가 된 나토(NATO)도 그가 창설했다. 미국 내에선 백인들과 소속당(민주당) 당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흑백 차별을 없애는 조치를 잇달아 취했다. 모두 큰 용기를 필요로 했고 때로는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결정이었다.

 

트루먼은 원자폭탄의 아버지 중 한 명인 오펜하이머가 자신 앞에서 핵 사용이 가져올 부정적 문제를 얘기하자 “손에 피 몇 방울 묻힌 xxx가 양손이 피투성이인 내 앞에서 징징댄다”고 경멸했다. 트루먼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일화다. 미국 대통령 중에 ‘The buck stops here’라는 문구에 가장 적합한 사람을 꼽으라면 트루먼이 빠질 수 없다.

 

이런 트루먼이 대통령이 될 줄은 그 자신도 몰랐다. 꼬마 시절의 여자 친구와 결혼하면서 “미국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지만 허세였다. 미국 정가에서 그는 대학도 못 나온 미주리 촌뜨기일 뿐이었다. 루스벨트가 트루먼을 부통령으로 지명한 것은 그가 이처럼 존재감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대통령직을 승계한 다음 날 트루먼은 의회에서 기자들에게 둘러싸였다. 기자들은 함께 포커를 치던 트루먼을 “친구 해리”라고 부르곤 했다. 트루먼은 모든 기자와 악수를 나누며 눈에 눈물이 맺혔다. 갑작스레 전쟁 중인 나라의 대통령이 돼 1200만 대군을 지휘하게 된 책임의 무게는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었다. 트루먼은 기자들에게 “여러분,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했다. 이어서 “혹시 여기에 짚 더미에 깔려본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제 대통령이 됐다는 얘기를 듣고 마치 달과 별과, 아무튼 모든 행성이 저를 덮치는 것 같았어요”라고 했다. “대통령님, 행운을 빕니다”라는 기자의 말을 뒤로 하고 백악관으로 떠났다.

 

이제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이 트루먼과 윤 대통령의 ‘The buck stops here’ 팻말 얘기를 안다. 그런데 트루먼의 팻말 뒤편에 다른 문구가 쓰여 있었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팻말 뒤편엔 ‘나는 미주리 출신이다(I’m from MISSOURI)’라고 쓰여 있었다. 이 문구가 원래 있었는지, 트루먼이 따로 주문한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가 애용한 팻말이니 이 뒤편 글귀도 그의 신조였을 것이다.

 

‘나는 미주리 출신이다’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찾아보았으나 알 수 없었다. 미 동부 엘리트들에게 미주리는 변방이다. 하지만 미주리 사람들은 근면 성실 정직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트루먼이 ‘나는 미주리 출신이다’라는 글귀를 8년간 매일 본 것은 자신이 출발했던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뜻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누구고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라는 것은 모든 대통령이 곱씹어야 할 질문이다. 윤 대통령은 트루먼 이상으로 자신이 대통령이 될 줄 몰랐던 사람이다. 하지만 사람에게 충성 않고 나라에 충성하는 공직자로서 법치와 공정이 무너진 나라를 재건하라는 국민의 부름을 받았다. 여기가 윤 대통령의 출발점이자 초심이다.

 

달과 별과, 다른 모든 행성이 한꺼번에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덮쳐오고 때로는 그 압력이 너무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래도 대통령은 결정을 내리는 용기를 가져야 하고, 용기 있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그 결정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과 국가, 법과 원칙 그리고 공정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지금 윤 대통령 앞에 여러 중요한 결정이 놓여 있다. 결정에 앞서 트루먼 팻말의 뒤편을 생각하며 내가 누군지, 어디에서 와서, 왜 여기에 있는지를 생각했으면 한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

 

02.01 예정된 세금 전쟁

윤석열 정부가 반드시 해내야 할 시대적 과업을 세 개 정도 꼽으라면 필자는 주저 없이 세금의 정상화를 포함할 것이다. 한국의 조세 현실은 한마디로 누더기 상태다. 민주공화국에서 세금을 왜 내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합의도 없고, 건드렸다가 손해볼까 봐 지나간 정부들도 모두 눈감아버린 채 땜질 처방만 해온 데다가,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는 시장에 반하는 이념적 정책을 국민에게 강요하는 수단으로 세금을 휘둘렀으니 누더기가 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종부세와 법인세, 금융투자소득세, 주식양도소득세 등 일련의 감세 정책이 추진돼 왔다. 문재인 정부보다는 나은 방향이라고 하겠으나 문제는 원칙이 애매하고 합의가 없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야당은 포퓰리즘이라 공격하고 보수언론에서도 부자 감세라는 문제 제기가 종종 나오는 형국이다.

조세원칙 모호, 사회적 합의 결여
민주공화국 지탱하는 것은 세금
누가 왜 얼마 내야 할지 설명돼야
이 문제 답 없으면 재도약은 요원

3년 남은 다음 대선은 본격적으로 세금을 둘러싼 전쟁터가 될 것이다. 이유는 이런 것들이다. 첫째, 인구위기의 가장 냉정한 결과들은 돈과 힘으로 나타난다. 세금과 안보라는 얘기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으면 군대 갈 사람이 없어지니 병역면제자나 여성도 군대에 가야 할 상황이 될 수 있고, 군복무기간이 길어지거나, 모병제로 전환하거나, 용병을 도입하는 방안도 결국은 검토하게 될 것이다. 좋다고 할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누구도 말하지 못하고 있을 뿐, 피할 방법이 없지 않은가. 세금도 마찬가지로 피할 수 없는 냉정한 현실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란 다른 말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세금 낼 사람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반면에 세금의 혜택을 받아야 할 고령 인구는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늘어나고 있다. 지금의 20~30대가 40~50대가 되었을 때 집중적으로 세금 부담을 떠안게 될 텐데, 과연 그들이 동의할까. 세금 전쟁은 이미 예정돼 있었다.

 

둘째, 대기업·부자 감세라는 편향된 논리에 대응논리가 없다. 가장 최근 자료인 2023년 OECD 세입통계를 보면 전체 세입 중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OECD 평균보다 30% 높고, 재산세는 250%에 달한다. 소득세 최고세율은 49.5%로 미국 37%와는 비교도 안 되고 OECD 최고 수준이다. 한마디로 한국의 대기업과 부자는 적어도 세금이라는 측면에서 OECD 평균을 훌쩍 뛰어넘는 기여를 하고 있다는 말이다. 반면에 근로소득자 가운데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과세미달자는 37%에 달해 OECD 평균의 세 배 가까이 된다. 이런 팩트에도 대기업·부자 감세라는 감정적 공격은 여전히 맹위를 떨친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대기업과 부자가 세금을 제대로 안 내는 것이 문제라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하고 본인의 소득이 적을수록 이런 응답의 비율도 높아진다. 세금 안 내는 사람이 많이 내는 사람을 비난하는 구도인 셈이다. 그런데도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윤석열 대통령이나 ‘동료시민’을 내건 한동훈 비대위원장도 민주공화국에서 세금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속 시원히 설명하지 못한다. 감세는 둘째 문제다. 세금이란 무엇인지, 따라서 누가 왜 얼마만큼 내야 하는지 설명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걸 설명해야 피할 길 없는 보편증세의 길이 열린다.

 

셋째, 야당의 차기 대선후보는 누가 되든 세금 포퓰리즘을 대대적으로 들고나올 것이 분명하다. 야당은 윤석열 정부의 감세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지만, 진짜 세금 포퓰리즘은 대기업과 부자를 적으로 규정하고 그들에게 집중 과세해 서민에게 나눠주겠다는 좌파 포퓰리즘이다. 한마디로 남의 돈으로 내 정치 하겠다는 얘기인데, 기본소득을 내세워 대권 직전까지 갔었던 이재명 대표가 다시 후보로 나설 경우에는 물론이고 설사 다른 후보가 나선다 하더라도 학습효과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감세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한 민주당이 같은 날 발표한 저출생 대책을 보자. 모든 신혼부부 10년 만기 1억원 대출, 첫 아이 낳으면 무이자 전환, 둘째 낳으면 5000만원 원금 탕감, 셋째 낳으면 1억원 전액 탕감이다. 게다가 자녀 1명당 수당과 펀드 등 각 1억원을 지원한다. 거기에 들어가는 세금은 누가 낼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다. 포퓰리즘의 핵심은 돈 뿌리기다. 그렇다면 누구 정책이 진짜 포퓰리즘인가. 민주당은 21대 국회 내내 과반을 차지했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재정지출 증가를 막는 재정준칙은 끝내 통과시키지 않았다. OECD 국가 중에 재정준칙이 없는 나라는 대한민국과 튀르키예뿐이고, 따라서 남의 돈으로 내 정치 하겠다는 세금 포퓰리즘을 막을 방법도 없다.

 

윤석열 정부는 민주공화국에서 세금이란 무엇인지 분명하게 정의하고, 그 정의에 따라 누가 왜 얼마만큼 내야 하는지 설명하고, 그에 따라 정상적인 조세정책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결과가 감세이든 증세이든 상관없다. 이걸 못한다면 몇 년간 반짝 감세해 봐야 결국은 세금전쟁을 피할 길이 없을 것이고, 나라의 재도약은 요원해질 것이다.

중앙일보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02-01 이승만 ‘건국전쟁’ 개봉, 현대사 왜곡 바로잡을 계기다

이승만(1875∼1965)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이 1일 개봉됐다. 이를 계기로 일방 매도됐던 초대 대통령의 업적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도 본격화할 기류다. 앞서 15곳에서 열린 시사회 때마다 관객들이 뜨거운 반응을 보였고, 지난 30일 광주 시사회에서는 “민주당 20년 지지자”라고 밝힌 한 관객이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오해했다는 것을 알게 해줘 고맙다”며 감사 인사를 했다고 한다. 당초 10곳으로 예정됐던 개봉관이 145곳으로 확대된 것도 건국전쟁에 대한 관심을 짐작하게 해준다.

이 대통령의 구십 평생은 ‘독립과 건국을 향한 헌신의 여정’이지만, 좌우 분열과 남북 분단으로 인해 업적은 왜곡되거나 망각됐다. 국내에서는 “4·19혁명을 부른 부정선거 원흉이자 독재자”로 치부됐고, 북한에선 “미 제국주의 앞잡이”로 조롱받았다. 건국전쟁의 사료(史料)는 이승만이 1949년 6월 미군 철수를 “남침 초대장”이라며 결사반대한 데 이어, 전쟁 와중에 반공 포로 석방 카드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끌어낸 치밀한 외교력을 보여준다.

대한민국이 해방 후 자유민주주의 국가 수립에 이어 6·25 남침을 물리친 것은 이 대통령 덕분이다. 그를 ‘미국의 국부 조지 워싱턴’에 비유한 미국 참전용사의 말이 과장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신년 회견에서 “6·25전쟁은 38선의 군사충돌이 누적된 결과”라고 주장했다. 김일성의 남침 책임에 면죄부를 주는 시대착오적 인식이다. 여러 가지 이유와 배경 때문에 지난 수십 년 동안 그런 종북적 현대사관이 판쳤다. 김덕영 감독의 건국전쟁이 그런 현대사 왜곡을 바로잡는 계기도 되기 바란다.

문화일보 사설

 
 

02.02 사법적 정의보다 ‘정권적 정의’를 앞세운 대법원장

美 대법관은 종신직, 오로지 ‘정의’에 따라 판결
대통령 잘못도 견제…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 역할
前 정권 때 우리 대법원, 부끄러운 사건투성이
김명수 새빨간 거짓말·이념 편향 인사… 재판 지연
대통령제 성공 필수 조건은 대법원의 존엄성 인정
사법부 이념화 ‘장난질’… 국가 기강 쓰레기통에

 ▲일러스트=이철원

 

지난해 미국의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리포트’지는 세계의 ‘강력한 나라’ 순위를 발표했다. 이 조사에서 대한민국은 뿌듯하게도 민주국가 중 4위를 차지했다. 1위인 미국과 불과 3계단 차이였다.

 

미국과 한국, 두 나라는 둘 다 대통령중심제 국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크게 다른 점도 있다. 바로 민주화 과정이다. 미국은 200여 년 역사에서 남북전쟁 이외 한 번도 정변 같은 것이 없었다. 그에 비해 대한민국은 4·19, 5·18 등의 숫자가 상징하듯 참 많은 시민의 피와 눈물, 그리고 생명의 희생이 있었다.

 

같은 대통령제 국가인데 왜 그런 차이가 있었을까?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어떻게 하면 정권의 전횡이 없는 ‘진짜’ 민주국가를 만들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함께 고민했다. 토론 끝에 우선 권력을 입법, 사법, 행정 셋으로 쪼개기로 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만약 그 세 기관 간에 이견이 생겼을 때 누가 최종 결정권을 가지느냐 하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이 국민 뜻을 대변하는 국회가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제퍼슨 등 선각자들 생각은 달랐다. 의원들이란 다음 선거 걱정하느라 ‘정의’를 제대로 챙길 여유가 없으리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최종적 권한’을 대법원에 주기로 합의했다. 그러면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도록 대법원 판사들에게는 종신 임기까지 보장해 주었다.

 

바로 그것이 한 번도 정변 없이 미국이 평화 속에서 오늘날 민주주의를 거대하게 성공시키는 동시에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한 핵심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모든 국민이 대법관들과 대법원을 믿는다. 그들 마음속에서 작동하는 핵심 동기가 ‘정의’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법원은 마지막 보루가 되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미국과 달리 국민이 왜 그렇게 많은 피와 눈물을 흘리고 생명을 바쳐야 했을까? 이 나라에는 미국과 같은 대법원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대법원 판사, 헌법재판소 판사 임기는 6년에 불과하다. 그들이 미국 대법관들처럼 오로지 정의와 나라의 미래만을 생각하며 재판에 임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 그들이 내리는 판결이 국민에게 미국 같은 수준의 권위를 가질 수도 없다. 자연히 대법원이 국가의 분열, 갈등 등 위기에 해결사 노력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미국 같은 대법원도 없는데 어떻게 이런 민주주의 국가를 만들 수 있었을까? 이 나라 젊은이들이 그 대법원 역할을 대신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숱하게 흘린 피와 땀과 눈물, 그리고 그들이 바쳤던 생명이 ‘정의’를 지켜주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동안 우리나라 최고위 법원들, 즉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자신들의 한계 속에서도 무난하게 소임을 수행해 왔다고 본다. 소속 재판관들이 어떤 불미스러운 에피소드나 풍문 등을 야기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 예외가 발생하였다. 대법원의 뿌듯한 전통에 연이어 흙탕물을 끼얹은 것이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그 주인공이다. 몇 가지만 예를 들어 보자. 그는 국민 앞에서 공식적으로 새빨간 거짓말을 했다가 만천하에 들통나 버렸다. 녹음 파일 덕분이었다. 아마도 그런 사례는 세계 대법원 역사에 처음일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그는 임기 내내 걸핏하면 정권에 아부한다는 인상을 전 국민에게 주었다. 대표적으로 친정권 성향 피의자들에 관한 재판 지연이 있었다. 또 그의 취임 이후 법원 인사가 전체적으로 이념 편향성을 보였다는 강한 의심을 받고 있다. 한마디로, 그의 업무 기준이 ‘사법적 정의’라기보다 ‘정권적 정의’였다는 인상인 것이다. 대법원이 앞장서서 ‘정의 유린’을 자행해 왔다는 것이다.

 

그런 국민의 인상에 결정타를 가한 것이 바로 얼마 전 있었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포함한 다수 판사에게 내린 1심 선고다. 무려 5년이나 걸린 재판 끝에 ‘재판 개입’ ‘판사 블랙리스트’ 등 혐의 47건 전부에 대해 무죄판결이 났다. 사실 큰 충격이었다. 그 판결의 당부당(當不當)을 내가 지금 따질 필요는 없다. 앞으로 논란 대상이 될 것이다.

 

내가 처절하게 지적하고 싶은 것은,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보여준 그 한심한 인식 구조다. 정의, 국가의 기강을 쓰레기통으로 던져 버리는 그들의 인식에 나는 놀랐다. 그것을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일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 수감이었다.

 

사법부 수장이라 해도 잘못을 저질렀으면 단죄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단죄 방법은 사법부의 존엄성에 비례해야 한다. 이 나라는 절도, 횡령 등 중한 범죄에 대해서도 도주, 증거 인멸 가능성 등이 없으면 가능하면 불구속 재판을 하는 것이 원칙이다. 나라의 운명에서 사법부가 가지는 중요성을 생각할 때 판사들에 대한 재판 과정은 절차적으로 특별히 신중하고 정중해야 한다. 그런 원칙을 뻔하게 알아야 하는 법률가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이 나라 법치의 최대 상징이었던 전직 대법원장을 덜컥 구속해 버렸다. 창피해서 외국 사람들에게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이다. 한마디로 이 나라의 ‘비이성적 야만성’을 전 세계에 홍보한 것과 다름없는 부끄러운 사건이었다.

 

나를 포함한 많은 국민이 그 모든 부끄러운 과정에 문 전 대통령과 김 전 대법원장의 음흉한 야심이 깔려 있었고, 작용했다고 의심한다. 바로 법원 전체를 ‘진보 이념화’하려는 황당하고 비뚤어진 야심이다. 그것은 ‘정의’보다 ‘내 편’을 중시하는 비법률적 사고다.

 

나는 문 전 대통령과 김 전 대법원장이 나쁜 사람들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 전 대통령은 무식했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제 국가가 성공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 대법원의 절대적 존엄성임을 그는 몰랐던 것이다. 김 전 대법원장은 무식하면서 동시에 어리석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사건이 앞으로 이 나라 그 누구도 사법부를 가지고 장난치지 않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같은 진보 성향인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면 아마 하늘이 무너져도 그런 ‘장난질’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일보 전성철 IGS글로벌스탠다드연구원 회장

 

02-02 기업 영속성 해치는 상속세

김성훈 산업부 차장

 

지난 1월 28일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에서 이례적인 보고서 한 편이 나왔다. 무역협회는 업종별 수출, 수입 실적을 분석·전망하거나 수출기업들이 살펴야 할 외국 정책동향 등을 풀이해주는 데 장점이 있는 경제단체다. 그런데 이번에 발간한 보고서의 제목은 ‘수출기업의 원활한 가업승계를 위한 제언’이었다. 보고서에는 무역협회가 지난해 12월 협회 회원사 대표 79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무역업계 가업승계 관련 설문조사’ 결과가 담겼는데, 내용이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가업승계 계획에 대한 질문에 ‘있다’는 답변이 45.1%로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없음’이 23.8%였고, ‘아직 결정을 못 함’도 31.2%로 집계됐다. 특히, 가업승계를 고려하지 않는 이유(복수응답)로 ‘상속세, 증여세 등 조세 부담’을 꼽은 응답자가 40.2%로 가장 많았다. 가업승계와 관련한 애로사항(복수응답)으로 응답자의 74.3%가 ‘조세 부담’을 꼽았다. 세금 등의 문제로 가업승계 대신 매각 또는 폐업을 고려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있다’고 한 응답자도 42.2%에 달했다. 무역협회는 상속세율 인하, 최대주주 주식할증 평가제도 개선 등을 통해 100년 이상 존속하는 기업을 배출할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특히, 무역협회 설문에 참여한 799개 기업 중 중소기업이 96.6%였다. 대기업은 0.8%에 불과했다. 또,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30·40대 벤처·스타트업 CEO 140명(응답 기준)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85.0%가 상속세를 폐지(43.6%)하거나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세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약 26%)과 비슷한 25%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41.4%)고 답변했다. 상속세 개편이 일부 대기업 오너 일가를 위한 특혜가 아니라, 중소·벤처기업의 영속을 위한 필수 요소임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사실상 세계에서 가장 높다. 50% 세율에 최대주주 할증이 붙어 60%가 되므로 일본(55%)을 넘어선다. 게다가 일본은 2018년 사업승계 특례조치를 도입해 상속세·증여세 전액을 원하는 시기에 낼 수 있도록 완화해 줬다. 반면, 한국의 상속세 제도는 지난 2000년에 1990년대 말 경제 상황과 자산가치를 반영해 상속·증여세 과표구간을 개정한 이래 그대로다. 또, 우리나라는 기업 규모에 따라 최대주주 주식할증 평가제를 시행하고 있다. 미국에도 비슷한 제도는 있지만 기업 상황에 따라 적용 여부를 정하고, 심지어 미국에선 평가 과정에서 할증이 아니라 할인되는 경우도 있다는 게 경제계의 설명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는 지난해 2월 국민의힘 홍석준 의원(가업상속공제 요건 중 업종변경 제한 폐지)과 6월 김용판 의원(최대주주 할증평가 폐지)이 각각 발의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이 상정돼 있다. 하지만 이들 법안은 기재위 소위에서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 정치권이 손을 놓고 있는 사이 가업승계를 포기하는 중소기업은 계속 늘어갈 것이다. 4년 내내 반기업 입법으로 일관해 온 제21대 국회가 마지막에라도 기업 살리는 제도 구축에 나서기를 바라본다. 실현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

 

문화일보 김성훈 산업부 차장

 
 

02.05 北이 ‘민족’ 부정해도 우리는 ‘통일’ 주도해야

▲2014년 1월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촬영한 한반도의 위성사진.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정부가 기존의 ‘민족공동체통일 방안’을 대체할 새로운 통일 방안을 마련 중이다. 명칭에 ‘자유’를 넣어 올해 광복절 무렵 발표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된다고 한다. 북한이 “북남 관계는 더 이상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라며 ‘통일 불가’ 노선으로 돌아선 것과 무관하게 우리 정부는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통일을 준비하겠다는 것이다.

 

김영삼 정부 시절 수립된 현재의 민족공동체통일 방안은 점진적·단계적 통일을 전제로 한다. 첫째, 화해·협력 단계에서 실질적 교류·협력을 통해 평화 공존을 추구하고, 둘째 단계에서 과도적 통일 체제인 ‘남북연합’을 구성해 법과 제도를 체계화한 뒤 마지막 단계로 통일국가를 완성한다는 접근이다. 이후 숱한 정권 교체에도 우리 정부의 공식 통일 방안으로 계승됐지만 지나치게 이상적이란 지적도 따라다녔다. 인류 역사상 분단국이 이 같은 합의의 방식으로 평화 통일을 완수한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변화한 환경을 반영해 보다 현실적인 통일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북한이 한국을 ‘동족 아닌 교전 중인 적대국’으로 규정하고 교류·통일을 위한 조직과 제도를 모두 폐지했다 해서 여기에 장단을 맞출 순 없다. 북에 상응해 우리도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거나 동족 개념을 폐기하자고 하는 것은 역사 발전을 거스르는 반시대적 주장이다. 헌법상 영토(제3조)·통일(제4조) 조항을 위배하는 위헌일 뿐 아니라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통일의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는 패착이기 때문이다.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순간 급변 사태 때 대한민국이 제3국의 시비를 차단하고 북한 안정화에 나설 수 있는 유일한 근거가 사라질 수 있다.

 

지금 북한 정권의 행동은 독일 단일민족론을 부정하며 분단 고착화를 시도했던 옛 동독을 연상시킨다. 만약 서독이 여기에 편승해 ‘독일 민족은 하나’라는 원칙을 포기했다면 독일 통일도 없었을 것이다. 김정은의 반통일 선언으로 종북·좌파 세력에겐 통일이 금기어가 됐다. 자유민주 진영이 통일 담론을 주도할 기회이자 적기다. 통일은 김정은 정권의 폭정 아래 노예와 가축으로 전락한 2500만 북한 주민을 구출할 유일한 희망이기도 하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일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 사설

 

02-05 저출산 대책과 포퓰리즘

이용권 사회부 차장


인구학계에 따르면 수렵채집사회에 합계출산율은 4.8명대로 추산된다. 농경사회에는 12명까지 치솟았다. 현재 대한민국 합계출산율 0.7명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수치이지만, 불과 50∼60년 전 한국에서도 합계출산율은 6∼7명이었다. 웃프게도, 대한민국 정부는 인구 정책에 매번 실패해 왔다. 1960∼1970년대 정부는 인구 증가를 우려해 산아제한정책을 펼쳤는데 큰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던 1980년대 고도산업사회 진입과 함께 급격하게 인구가 줄어들자 뒤늦게 산아제한정책을 폐지하고 2002년부터 저출산 대책을 펼쳤지만, 20년 이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여야와 정부가 저출산 대책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최대 수십조 원의 예산을 투입해 자녀를 낳으면 각종 현금 및 수당을 지급하는 대책이 핵심이다. 지난 20년 이상 정부가 추진했지만 실패한 저출산 대책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간접지원에서 직접지원으로 바뀌고, 조금 늘어난 게 전부다.

현금 급여를 통한 출산 정책은 100년 전 20세기 초 유럽에서도 많이 시도했지만, 성과를 보지 못했던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도 통하지 않는다. 인구학자 전영수 한양대 교수는 그의 저서 ‘대한민국 인구 트렌드’를 통해 “똑똑한 한국 청년들은 효용을 최대화하기 위해 노동, 육아, 여가 시간을 배분할 때 출산을 후순위로 둘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고학력 청년들은 출산에 대한 기회비용과 매몰비용, 전환비용을 철저하게 계산하는데, 소소한 현금 이익 때문에 출산을 선택할 가능성은 낮다는 의미다.

저출산 대책은 복지 대책과도 구분해야 한다. 의료 복지 혜택을 받기 위해 병의원을 가겠다는 사람이 없고, 장애인 복지 혜택을 받기 위해 장애인이 되겠다는 사람이 없는 이유와 같다. 출산 복지 혜택을 받기 위해 출산하겠다는 청년은 없다. 출산 복지는 필요한 정책이지만, 그것만으론 출산을 늘리지 못한다는 뜻이다.

청년들이 자녀를 출산하기까지는 보통 네 가지 장벽을 넘어야 한다. 첫 번째 단계는 취업, 두 번째 단계는 주거다. 이 두 가지 단계를 넘어서야 그나마 세 번째 결혼이나 네 번째 출산을 검토해볼 여지가 생긴다. 현재 출산 복지 혜택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장벽을 극복하지 못한 청년들에겐 수혜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처음으로 연간 출생아 수가 40만 명대로 떨어진 2002년은 IMF 구제금융(1997년)과 IT버블(2001년)의 여파로 청년취업자(15∼29세) 수가 400만 명대로 내려간 시기와 맞물려 있다. 혼인 건수가 처음 20만 건대로 떨어진 시기도 부동산 가격이 역대급으로 폭등한 2015년의 다음 해다. 그 이듬해엔 출생아 수가 처음 30만 명대로 내려갔다. 최근 한국은행이 집값을 2015년 수준으로 낮추면 출산율이 개선된다는 보고서를 낸 것도 이 때문이다.

저출산 해법은 복지보다는 고용과 주거의 문제, 이른바 경제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똑똑한 청년에게 현금으로 출산을 유도하기보단, 본인이 주체적으로 출산을 선택할 수 있을 정도로 확실한 미래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저출산 대책은 가성비 떨어지는 총선용 포퓰리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문화일보 

 

 

02.06 이재용 전체 무죄, 국가 경제만 피해 끼친 反기업 ‘적폐 몰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스1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부당 합병, 회계 부정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심 재판에서 모든 혐의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회장은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최소 비용으로 경영권을 승계할 목적으로 각종 부정 거래와 시세 조종, 회계 부정 등에 관여한 혐의로 2020년 기소됐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회장의 혐의 19건 모두에 대해 “범죄의 증명이 없다”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 김종중 미래전략실 전략팀장 등 나머지 피고인 13명도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애당초 검찰의 기소부터가 무리였다. 2020년 6월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검찰 수사심의위원회가 이 회장을 불기소하고 수사를 중단하라고 권고했다. 범죄 혐의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검찰이 청구한 이 회장 구속 영장도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그러나 검찰은 이를 무시하고 임직원 110여 명을 430차례 소환 조사하고 50여 차례 압수 수색하는 등 전방위 수사를 벌여 기소를 강행했다. 이 수사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때 시작됐지만 실제 수사를 본격화하고 관련자들을 기소한 것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심복이던 이성윤 서울지검장이 검찰을 장악했을 때였다. 문 정부의 적폐 몰이와 반기업 풍조가 검찰의 무리한 기소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핵심 쟁점인 불법 이익 혐의는 처음부터 논란이었다. 검찰은 이 회장의 지분이 많은 제일모직 가치를 과다하게 산정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기소했지만 재판부는 “합병 비율이 불공정하다고 볼 증거가 없다” “합병이 주주들에게 손해를 줄 의도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제일모직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를 분식했다는 혐의도 “고의가 있다거나 회계 기준을 위반했다고 인정하기 힘들다”고 했다. 검찰의 기소 핵심 내용이 전면 부인당한 것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총수를 3년 5개월 동안 형사 피의자로 옭아맨 사건의 결말이 이토록 허망하다. 이런 일로 한국 최대 기업의 발을 이토록 오래 묶은 것이다.

 

이 회장은 2016년 국정 농단 사건에 연루돼 1년 반 이상 구속 수감됐다가 풀려난 뒤 또 이 사건에 연루돼 무려 9년째 사법적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국정 농단 사건도 대통령에게 ‘묵시적 청탁’을 했다는 황당한 혐의였다.

한국에서 대통령의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 기업인이 누가 있나. 어쩔 수 없이 대통령 요구를 들어주면 ‘묵시적 청탁’이라고 처벌한다. 이 회장은 2022년 광복절 사면으로 복권된 후에도 매주 1~2회씩 경영권 승계 사건 재판에 출석해야 했고, 해외 출장을 가려면 일일이 재판부 허가를 받아야 했다. 지난 2022년 바이든 미 대통령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했을 때도 재판 일정과 겹쳐 참석하지 못할 뻔한 일까지 있었다. 국가를 대표하는 간판 기업을 이렇게 괴롭히고 발목 잡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검찰의 과잉 수사가 삼성에 사법 리스크를 안긴 사이 미국 애플, 대만 TSMC 등 외국 경쟁사들은 공격적 투자로 삼성의 시장을 잠식해 갔다. 스마트폰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떨어지고 차세대 먹거리인 시스템 반도체는 1위와 격차가 더 벌어졌다. 주요 전략적 의사 결정을 해야 할 기업 총수의 발이 묶인 탓에 글로벌 IT 산업이 활발한 합종연횡으로 재편되는 동안에도 삼성은 차세대 성장 동력 확충을 위한 인수 합병을 제대로 성사시키지 못했다. 국가 전체 수출의 20%를 담당하는 대표 기업 총수를 피의자로 붙잡아둔 과잉 수사로 피해를 본 것은 결국 국가 경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 일각의 반기업 풍조, 일부 검사들의 비뚤어진 공명심과 수사 방식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2-06 이재용 전부 무죄… 다시는 이런 反기업 적폐몰이 없어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재판은 지난 몇 년 동안 세계적 관심사였다. 초격차를 다투는 글로벌 경쟁에서 삼성전자의 족쇄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5일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재판에서 ‘전부 무죄’라는 1심 판결이 나온 것은 여러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이 회장은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합병하면서 주가조작, 배임과 회계 부정 등을 저질렀다며 19개 혐의로 2020년 9월 기소됐다. 2018년 증권선물위원회의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고발로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뒤 거의 6년이 지났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5-2부는 이날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에 대해 “이 회장의 승계를 유일한 목적으로 이뤄졌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면서 “삼성물산의 사업적 목적도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또 “삼성물산과 주주들에게 이익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며 검찰의 배임 주장을 배척했고, 제일모직 주가를 인위적으로 부양하기 위해 허위로 호재를 공시했다는 혐의도 무죄라고 판단했다. 2016년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특검 수사로 촉발된 경영권 불법 승계 사건은 수사와 기소 단계에서부터 무리라는 지적이 많았다. 법원은 구속영장을 기각했고 검찰 수사심의위원회는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했었다. 이 사건 전까지 8차례 수심위 권고 내용을 검찰이 100% 수용한 것과 대비되는 것으로, 문재인 정부 검찰의 실상도 보여준다.

이 회장은 107번의 재판 중 96회 출석하고 외국 출장도 제한받았다. 경쟁사들은 이 회장이 재판에 발이 묶인 상황을 최대한 활용했다. 실제로 애플에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을 잠식당하고 대만의 반도체 ‘공룡’ TSMC와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단지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외국에서는 글로벌 대기업이 국빈처럼 대접받는데 국내에서는 반기업 정서에 시달린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반기업 적폐 몰이도, 검찰의 무리한 기소도 다시는 없게 해야 할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

 

02.06 김관진·김기춘·최재원·구본상... 정부, 설 특별사면

 정부는 설 명절을 맞이해 오는 7일자로 서민생계형 형사범, 특별배려 수형자 등 980명에 대해 특별사면을 실시한다고 6일 밝혔다. 이번 사면 대상에는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 등이 포함됐다. 윤석열 정부 들어 네 번째 사면이다.

 

▲2월 6일 설 특별사면에 포함된 김관진(왼쪽) 전 국가안보실장과 김기춘 전 청와대비서실장./뉴스1·남강호 기자

 

또 정부는 여객·화물 운송업, 식품접객업, 생계형 어업, 운전 면허 등 각종 행정 제재를 받은 총 45만5398명에게 감면 조치를 실시한다. 이와 함께 정부는 소액연체 이력자 약 298만명에 대한 신용 회복 지원을 실시하며, 모범수 942명을 지난달 30일 자로 가석방시킴으로써 조기 사회복귀를 도모한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무엇보다 이번 사면은 활력있는 민생경제에 주안점을 뒀다”면서 “명절을 앞두고 실시되는 이번 사면으로 민생경제의 활력이 더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는 작년 광복절 이후 6개월 만이다. 그간 광복절 특사가 두 차례, 신년 특사가 한 차례 있었다.

 

심우정 법무부 장관 직무대행은 이날 오전 11시 20분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2024년 설 명절 특별사면’ 대상을 발표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2일 사면심사위원회를 열고 특별 사면·복권 대상자를 심사한 바 있다.

 

이번 특별사면에 전직 주요 공직자로는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 김기춘 전 비서실장 등 8명이 포함됐다. 김관진 전 실장은 작년 8월 ‘군(軍) 사이버사령부 정치 댓글’ 사건에 대한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대법원에 재상고했지만 지난 1일 재상고를 취하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최근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대법원 재상고 기한인 지난달 31일까지 재상고를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형이 확정되면서 이번 사면 대상에 올랐다.

 

법무부 관계자는 ‘김관진·김기춘 전 실장 측이 사면 대상에 포함된다는 계획을 미리 알고 재상고를 포기한 것 아니냐’는 취재진 질의에 “다수의 외부 위원들로 구성된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가 사면 대상을 상신하면 국무회의를 거쳐 사면이 이뤄진다. 언제든 형이 확정되면 사면 심사 대상에 올라가는 것”이라며 “사면 여부가 사전에 교감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김대열·지영관·소강원 전 국군 기무사 참모장, 서천호 전 부산경찰청장 등도 전직 주요 공직자로 사면 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반면, 김기춘 전 실장과 함께 재판을 받아온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번 사면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법무부 관계자는 “사면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인원에 대해선 그 이유를 설명드릴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 사면 대상에는 주요 정치인 7명이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여권에선 이우현·김승희 전 국회의원과 이재홍 전 파주시장, 황천모 전 상주시장이 포함됐으며, 야권에선 심기준·박기춘 전 국회의원, 전갑길 전 광산구청장이 각각 사면·복권됐다.

 

주요 경제인으로는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 구본상 LIG 회장 등 5명이 복권됐다. 이들은 기업 운영 과정에서 벌어진 일로 형을 선고 받아 이미 실형 복역을 마쳤거나, 집행유예 기간이 도과한 상태다.

 

▲2월 6일 설 특별사면에 포함된 최재원(왼쪽) SK 수석부회장,구본상 LIG 회장./조선일보DB

 

또 김장겸·안광한 전 MBC 사장, 백종문·권재홍 전 MBC 부사장 등 언론인 4명도 이번 사면으로 형 선고실효 조치와 함께 복권됐다.

 

일반 형사범 가운데 살인·강도·성폭력·조폭 등을 제외한 947명도 이번에 사면을 받았다. 그 중에는 중소기업인이나 소규모 자영업자로 경영이 일시적으로 어려워지면서 거래 상대방에게 피해를 입힌 33명, 생계를 위해 운전을 하다 교통사고를 내 처벌받은 운전업 종사자 160명, 34세 이하 청년 129명 등이 포함됐다. 이 외에도 70세 이상 고령 수형자 1명, 생계형 절도 사범 3명 등 특별 배려 수형자 4명도 사면됐다.

 

또 여객·화물 운송업 6명, 식품접객업 1만6446명, 생계형 어업 179명, 운전 면허 36만3681명에게 부과된 행정 제재가 특별 감면됐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전 경미한 잘못으로 견책, 불문경고의 징계를 받은 전현직 공무원 7만5086명의 징계도 사면됐다.

 

심우정 장관 대행은 “이번 사면은 활력있는 민생 경제 발전과 국민 통합의 계기 마련에 중점을 뒀다”며 “이번 사면을 통해 튼튼한 민생 경제를 토대로 국가경제 전반에 활력을 제고하며, 정치 이념 갈등을 일단락하고 국민 통합의 계기가 마련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이세영 기자 유종헌 기자

 
 

02.07 ‘사법 농단’ 의혹 키우더니 나 몰라라 하는 ‘김명수 키즈’들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이탄희, 최기상 의원./연합뉴스· 뉴스1

 

이른바 ‘사법 농단’ 사건과 관련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1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법원행정처 심의관에게 부적절한 문건 작성을 지시한 혐의 등이 유죄로 인정됐다. 하지만 재판 개입과 ‘판사 블랙리스트’ 작성 등 핵심 혐의에 대해선 무죄가 선고됐다. 임 전 차장을 마지막으로 이 사건으로 기소된 전현직 법관 14명에 대한 1심 선고가 끝났는데 이 사건의 두 가지 핵심 혐의는 모두 무죄가 선고된 것이다. 사실상 사건의 실체가 없었다는 것이다. 임 전 차장 1심 재판부도 “사법 농단 의혹 대부분은 실체가 사라진 채 행정처 심의관에게 부적절한 지시를 한 혐의만 남게 됐다”고 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48개 혐의는 통째로 무죄가 선고됐고, 그 밑에서 사법행정 실무를 담당한 임 전 차장의 핵심 혐의도 무죄가 선고됐다. 사법부를 들쑤시고 5년가량 전직 고위 법관들을 형사 피고인으로 옭아맨 결과가 이렇다.

 

그 책임은 사실상 수사 지침을 내린 문재인 전 대통령, 이에 호응한 김명수 전 대법원장, 무리한 수사를 강행한 검찰에 있다. 하지만 최초에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과 ‘재판 거래’ 의혹을 제기해 평지풍파를 시작한 사람들은 인권법·우리법 출신 판사들이었다.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을 주장한 이탄희 판사, 재판 거래 의혹을 제기한 이수진 판사,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재판 거래 의혹은 헌정 유린”이라고 비판한 최기상 판사, 법원게시판에 사법 농단 진상 조사를 청원하는 글을 올린 김형연 판사가 그들이다. 이른바 ‘김명수 키즈’로 불리는 이들이 확실치도 않은 의혹을 확대 재생산하면서 이 지경까지 온 것이다.

 

이탄희·이수진·최기상 판사는 민주당 국회의원이 됐고, 김형연 판사는 문재인 비서에 이어 법제처장까지 지냈다. 겉으론 사법 개혁을 내세우면서 뒤로는 사법부 독립을 짓밟은 것이다. 이들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죄 없이 고통을 당했고, 법원도 망가졌다. 그런데도 이들은 사과 한마디 없다. 너무나 무책임하고, 참으로 파렴치하다.

조선일보 사설

 

02.07 잇따른 ‘전부 무죄’…자성과 자숙의 시간 절실한 검찰

정권 논리 꿰맞춘 무리한 기소에 예고된 참사

기업 발목 잡는 고질적 ‘뒤끝 항소’ 중단돼야

법원이 지난달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이어 지난 5일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에게도 무죄를 선고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 남용 관련 혐의 47개, 이 회장의 불법 승계 의혹 관련 혐의 19개 전부를 무죄라고 판단했다. 두 사건은 모두 처음부터 무리한 기소라는 지적이 많았다. 하지만 검찰은 정치권의 코드에 꿰맞춰 수사와 기소를 강행했다가 대참사의 성적표를 받게 됐다.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주요 재판을 거래하고, 특정 판사들에게 불이익을 줄 블랙리스트를 관리했다는 게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골자다. 대법원은 세 차례나 자체 조사를 벌였지만 불법을 밝혀내지 못했다. 그런데도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법원을 찾아 “의혹을 규명해야 한다”고 말하고,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적극 협조하겠다”면서 본격적 수사 국면으로 넘어갔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등 50여 명의 검사가 8개월 동안 법원을 탈탈 털었다. 제출한 증거 서면이 17만 쪽에 달해 ‘트럭기소’라는 말도 나왔다. 그런데도 4년11개월 재판의 결과는 ‘전부 무죄’였다.

 

삼성 불법 승계 의혹 사건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처음부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오로지 이재용 회장(당시 부회장)의 승계만을 위한 것이라고 미리 결론을 짜놓은 듯했다. 압수수색만 50차례가 넘고 임직원 110여 명을 430차례 불러 조사했다. 그래도 이재용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은 법원에서 기각됐다. 검찰 수사심의위원회도 불기소를 권고했지만 검찰은 기소를 강행했다. 고의적인 합병비율 조작,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증거인멸 등 19개의 혐의를 적용해 3년 넘게 재판해 온 결과가 역시 ‘전부 무죄’였다.

 

수사부터 재판까지 5년6개월 동안 삼성은 중대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경영 공백에 처했다.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었다. 당시 두 사건 수사의 지휘부가 윤석열 대통령(당시 서울중앙지검장)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중앙지검 3차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경제범죄형사부장) 등이다. 전 정부의 대표적 코드인사였던 이성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도 당시 대검 반부패부장과 중앙지검장으로 수사에 깊숙이 관여했었다.

 

검찰은 통렬히 반성하고 자숙해야 한다. 일단 구속시키면 성공이라는 관행에 압수수색부터 시작하는 구태 수사도 혁신해야 한다. 밀행성을 유지하다 명백한 증거가 나왔을 때 속전속결 처리한다는 ‘특수수사의 원칙’을 되살려야 한다. 이 회장 기소를 강행했던 이복현 금감원장은 선고를 앞두고 “이번 절차가 (삼성의) 사법리스크를 일단락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말 사법리스크 해소의 계기가 되려면 고질적인 검찰의 ‘뒤끝 항소’부터 재고해야 마땅하다. 더 이상 ‘정치 검찰’이 기업 경쟁력의 발목을 잡지 않는 시대가 오길 바란다.

중앙일보 사설

 

02.07 그리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서버에 저장된 전자정보를 탐색하면서 ‘유관 증거만 선별해 복제·출력하고, 혐의 사실과 관련 없는 전자정보의 임의적 복제를 막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위법하다.” 검찰의 삼성바이오로직스 수사가 불법적으로 이뤄졌다고 판사가 지적했다. 이어 이렇게 말했다. “따라서 압수수색은 위법하고, 위법한 압수수색으로 취득한 증거들 및 이를 근거로 작성되거나 진술한 증거들도 위법 수집 증거에 터 잡아 획득한 2차 증거여서 모두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

삼성 수사에 법원이 “법 절차 위반”
법 어겼다니 감찰이나 수사를 해야
대통령에게도 마땅히 물어볼 사안

2019년 5월 검찰은 삼성바이오로직스 공장을 압수수색했다. 바닥에서 서버와 노트북 등을 찾아냈다. 그 모든 것이 수사 자료로 쓰였다.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영장에 적시한 범죄 혐의 관련 부분만 복제 또는 출력해 선별적으로 압수해야 했다. 하지만 검찰은 ‘범죄 은닉’의 증거라며 모조리 압수했다. 일반 범죄 피의자로 예를 들면, 집에서 발견된 노트북의 모든 내용을 검찰이 샅샅이 들여다본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선 검찰 수사관이 회사나 집에 들이닥쳐 서류와 컴퓨터를 마구 들고나가지만 그것은 쌍팔년도에나 가능했던(문제가 되지 않았던) 일이다. ‘무차별 압수’로 확보한 자료를 수사에 활용하면 검찰이 재판에서 진다. 법원은 ‘위법 수집 증거’ 문제에 예민하다. 검찰권의 무분별한 사용을 그렇게 통제한다.

 

5일의 삼성 회계 부정 등에 대한 재판에서 법원은 전 삼성 미래전략실 임원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도 위법 수집 증거로 판단했다. “압수 대상이 아닌 정보까지 영장 없이 취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장주의와 적법 절차의 원칙을 중대하게 위반한 것”이라고도 했다. 영장이 허락한 범위를 넘는 압수였다는 뜻이다.

 

그제 재판부는 이재용 회장 등 사건 관련 피고인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회계 부정에 대한 판단이 검찰과 달랐다. 그리고 검찰이 위법하게 확보했다고 본 자료들을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회계 기준에 대한 견해차는 있을 수 있다. 전문가들 의견도 갈린다. 검찰 논리에 앞뒤가 안 맞는 면이 있기는 하지만 회계 부정으로 볼 여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이에 비해 수사 절차의 문제는 분명하다. 수색영장을 내준 법원이 해당 영장의 범위를 넘는 압수였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여러 차례 ‘위법’이라고 했다. ‘적법 절차 중대 위반’이라고도 했다. 국법이 무시됐다는 의미다. 위법 행위를 확인하고 처벌하는 게 검찰의 책무다. 자신들 수사 과정에서의 위법은 어떻게 할 것인가? 수사든, 감찰이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이 재판과 관련해 어제 “기소할 때 내가 관여한 사건이 아니다”고 말했다. 군색하다. 그는 문제의 압수수색이 벌어진 시절에 서울중앙지검 3차장으로 지휘 라인에 있었다. 서양에서 ‘검사’라는 직책이 고안될 때 그들의 주요 임무는 법을 무시한 수사와 기소를 막는 것이었다. 그 정신은 지금도 살아 있다.

 

5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1심 선고도 있었다. ‘재판 개입’에 대한 혐의는 모두 무죄 판결이 났다. 일부 유죄는 행정적 권한 남용과 관련된 것이었다. 지난달 26일엔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대법관이 무죄 선고를 받았다. 검찰 수사에서 1심 판결까지 약 6년이 걸렸다. 무리한 수사라는 여론이 법조계에 비등했는데, 결론이 47개 혐의 전부 무죄다. 그래도 검찰 측에선 아무 말이 없다. 그저 재판을 다시 해보자며 항소했을 뿐이다. 또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재판의 시작이다.

 

삼성 수사의 실무 책임자는 주요 국가기관 수장이 됐다. 수사에 참여했던 검사들도 승승장구해 검찰 요직에 있다. 재판 개입 의혹을 수사했던 검사들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대통령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기자회견이 있다면 마땅히 물어볼 일인데, ‘녹화 대담’으로 대체됐다. 오늘 방송되는 그 대담에 법원에서 뒤집힌 ‘적폐 수사’에 대한 질문이 있었을까? 지켜볼 일이다.

중앙일보 이상언 논설위원

 

02-08 허구 확인된 사법농단, 누가 책임지나

김성천 중앙대 교수·법학


문재인 정권이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됐다. 의혹의 핵심은 ‘재판 개입’과 ‘법관 블랙리스트’ 두 가지였다. 첫 번째 의혹은, 대법원이 국가적·사회적 파급력이 큰 민감한 정치적 사건의 재판과 관련해 청와대와 사전 교감하면서 판결의 향방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그 반대급부로 상고법원 설립 추진에 대한 청와대의 협조를 끌어내려 했다는 설명이다. 두 번째 의혹은, 요주의 판사들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이들을 관리했다는 것이다.

반년 정도 지나 기소가 시작됐다. 그중 2018년 11월에 구속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1심 판결이 지난 5일 있었다. 일부 유죄 결론도 있었지만, 재판 개입과 블랙리스트 작성 등 핵심 의혹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됐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에 대한 1심 선고도 무죄로 나왔다. 임성근 전 부장판사 등 6명에 대한 무죄는 이미 확정됐다.

직권남용이란 ‘공무원이 자신의 일반적 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하여 이를 불법하게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검찰의 고위 간부가 사건 담당 검사에게 수사를 중단하도록 부당한 압력을 가하면 직권남용이 된다. 검찰의 경우 상급자가 지휘·감독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사는 ‘헌법과 법률에 의거해서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심판’한다. 법관은 그 누구의 지휘나 감독도 받지 않는다. 따라서 대법관에겐 다른 재판에 개입할 권한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다. 그래서 직권남용이 될 수가 없다. 또, 블랙리스트로 지목된 문서들은 어느 기관에나 있는 통상적 인사자료 수준에 불과한 것들이었다.

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소송 등에 법원행정처가 개입해 판결 선고를 못하게 막았다는 식으로 매도했다. 해당 사건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에는 결론 나지 않다가, 김명수 대법원장 재임 중에 선고가 이뤄졌다. 그냥 재판이 지연됐다고 볼 수도 있고 고의로 지연시켰다고 볼 여지도 있다. 야당 대표의 선거법 위반 재판은 시작된 지 1년이 훨씬 지났지만 아직도 언제 끝날지 모른다. 김명수 대법원이 재판에 개입해 고의로 지연시켰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법농단 의혹이 침소봉대되는 가운데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잘 활용해 정계로 진출한 판사들도 있다. 블랙리스트가 있다고 폭로하거나 자신이 그 피해자라고 양심선언 하는 방식으로 민주당의 눈에 들어 영입됐던 인사들이다. 이제 재판개입이나 블랙리스트의 존재가 허구였음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지만, 판사 3인이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특권을 누린 일은 이미 과거가 되고 있다.

법관은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심판하므로 대법원장이라 해도 구체적인 사건 판결에 개입하긴 어렵다. 하지만 특정 사건을 특정 판사에게 배당함으로써 원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는 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제시하며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하는 판사도 법원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법을 왜곡하는 일은 유독 좌파 진영에서 애호하고, 자신들이 그런 짓을 할 때는 부끄러움도 모르는 듯하다. 자신들이 하는 일은 모두 옳고 수단의 불법성은 다 정당화된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다.

 

문화일보

 

02.08 내용·형식 미흡 尹 대담, ‘앞으로 조심’ 약속이라도 지켜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집무실에서 녹화된 KBS 신년 대담에서 새해 국정운영 방향을 밝히고 있다./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7일 방송된 KBS와 대담을 통해 새해 국정 구상을 밝혔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집무실과 국무회의장 등 대통령실 내부를 소개하고 안보, 경제, 교육, 복지 등 국정 전반에 대해 설명했다. 국민이 가장 궁금해했던 김건희 여사의 명품 백 수수 논란에 대해서는 사과보다는 해명 위주였다. 국민이 듣고 싶은 말보다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을 했다는 인상을 줬다.

 

윤 대통령은 친북 목사 최모씨가 김 여사가 중학교 때 작고한 김 여사 부친과의 인연을 앞세워 집요하게 만남을 시도해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계에다 몰카까지 들고와서 이런 걸 했다”며 “1년이 지나서 선거를 앞둔 시점에 이걸 터뜨리는 자체가 정치 공작”이라고 했다. 대통령 부부 입장에서는 억울한 측면이 있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국민도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북을 찬양하면서 윤석열 정부를 ‘괴뢰 역도’라고 한 사람이 아무런 제재 없이 대통령 부인을 만났다. 윤 대통령은 “서초동 아파트에 살 때인데 주민 불편 때문에 검색기를 설치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검색기가 없어서 그런 인물을 걸러내지 못한 것은 아니다. 또 김 여사는 그런 사람이 주는 선물을 그 자리에서 바로 물리지 않고 받았다. 윤 대통령은 “김 여사가 최씨와의 만남을 매정하게 뿌리치지 못한 점에 대해 아쉽다”는 취지로 말했지만, 선물을 받은 데 대한 명시적 사과는 없었다. 윤 대통령은 다만 “이제 관저에 가서 잘 관리되고 있다”며 “앞으로는 저나 제 아내나 국민들께서 오해하거나 불안해하거나 걱정하는 일이 없도록 분명하게 선을 그어가면서 단호하게 처신을 해야 되겠다”고 했다. 하지만 특별감찰관에 대해서는 “국회에서 선정해 보내는 것”이라고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고, 제2부속실은 검토는 하고 있지만 이런 일을 예방하는 데에는 별 도움이 안된다고 했다.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국민 입장에서는 대통령의 인식에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

 

대담이라는 형식이 적절했는지도 묻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질문자가 단 한 사람이었다. 대통령이 여러 언론사의 기자로부터 다양한 질문을 받고 즉석에서 답하는 기자회견에 비해 내용이 크게 제한될 수밖에 없다. 대담 방송사인 KBS는 사장 인사권자가 대통령이다. 대담이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이뤄졌다고 하기 힘들다. 생방송도 아니고 지난 4일 녹화한 방송이었다. 두 시간 넘는 분량을 100분으로 편집했다고 한다. “사전에 각본을 짜고 사후 편집이 가능한 녹화 대담은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만 하겠다는 것”이라는 야당의 비판이 틀렸다고 할 수 없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국민에 대한 메시지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대담으로 진행했다”고 했지만 그런 이유라면 생방송으로 기자회견을 하는 편이 훨씬 효과가 좋았을 것이다. 세계 민주 국가의 지도자들이 왜 대담 보다 기자회견을 하겠나.

 

대통령은 국민이 궁금해하는 것을 성실하게 답할 책무가 있다. 시중에선 윤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지 않는 것을 두고 김 여사 관련 질문이 나올까 봐 그러는 것 이란 이야기까지 나온다. 최근 대통령 지지율이 29%까지 떨어졌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는 것도 국민과 소통이 단절된 탓이 크다. 윤 대통령은 틈 날 때마다 “국민 뜻을 받들겠다”고 했지만 지금 상황은 그 반대인 것 같다.

조선일보 사설

 

02-08 내용·형식 아쉬웠던 尹 대담… ‘국민 관점 소통’ 강화해야

 신년 기자회견을 대신한 7일 윤석열 대통령의 KBS 신년 대담은 내용과 형식에서 많은 아쉬움만 남겼다. 국민의 관점이 아니라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의 관점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 백’ 논란에 대해 “아쉽다”는 표현으로 넘어갔다. 소통 부족 지적을 받아오던 윤 대통령이 모처럼 마련한 행사여서 기대가 컸던 국민이야말로 ‘아쉽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제대로 된 질문과 진솔한 답변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국민 관점에서의 소통을 강화하기 바란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문제는, 윤 대통령과 국민 사이에 인식 차이라는 벽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다. 윤 대통령은 친북 목사 최모 씨가 김 여사에게 명품 백을 선물하면서 몰래 촬영한 것에 대해 “정치 공작”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매정하게 끊지 못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고, 좀 아쉽지 않나”라고 했다. 김 여사가 “물리치기 어렵지 않았나 생각이 되고, 좀 아쉬운 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불법과 부패에 추상이던 ‘검사 윤석열’‘대통령 윤석열’이 아니라, 아내 편을 들면서 대신 변명하는 남편이 됐다. 대통령 부인이 외부인에게 선물을 받는 장면이 국민 앞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김 여사가 직접 해명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국민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많이 아쉽다.

명품 백의 행방이나 처리 문제에 대한 억측을 잠재울 만한 구체적 언급도 없었다. 윤 대통령은 제2부속실 설치 문제에 “예방하는 데 별 도움이 안 된다”고도 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국민 앞에 어깃장 놓는 것으로 비친다. 지난 4일 녹화한 것을 7일 방영하면서 더 느슨해졌다.

그나마 의미 있는 부분은, 여당 당무 및 공천 불개입 입장을 공식화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 참모 출신들에 대해 “특혜는 기대하지도 말고 공정하게 룰에 따라 뛰라”고 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이날 관훈토론회에서 윤 대통령과 공적·사적 관계가 깊지만, 대통령과 여당 책임자가 된 지금은 그런 관계가 끼어들 틈이 없다고 했다. 더 지켜봐야겠지만, 명품 백에 이어 공천이 두 사람 갈등의 2라운드가 될 것이라던 우려는 불식됐다.

문화일보 사설

 
 

02.08 법정에 두 번이나 울린 문재인 전 사위 이름

“타이이스타젯 직원 서모가 2019년 6월경 사장에게 보낸 이메일을 보면 이스타항공이 타이이스타젯에게서 지급받은 수수료를 반환해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란 취지입니다.”

 

“같은 해 6월7일경 타이이스타젯 서모로부터 형식적 수수료 지급 계약 체결을 검토 중이란 이메일을 받은 것이 확인됩니다.”

 

지난달 24일 전주지방법원 형사합의11부 (부장판사 노종찬) 법정. 문재인 전 대통령의 전 사위 서 모(44)씨의 이름이 두 번이나 울려퍼졌다. 이스타항공의 자금을 빼돌려 태국에 저가 항공사인 타이이스타젯을 설립해 수백억원의 손실을 안긴 혐의(배임)로 기소된 이상직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징역 2년이 선고된 자리였다.

문 전 사위 특채의혹 수사 급물살
판사도 사위 이름 두 번 거론 눈길
문 전 대통령의 투명한 해명 필요

문 전 대통령 딸 다혜씨의 남편이던 서씨는 증권·게임 업계 출신으로 항공 업계 경력이 전무했다. 그런 사람이 2018년 돌연 가족과 태국으로 이주한 뒤 타이이스타젯 전무로 취업해 2년 가까이 일했다. 박석호 타이이스타젯 대표는 “이 전 의원 지시로 매달 월급 800만원과 렌트비 약 350만원씩을 줬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그동안 서씨의 존재는 베일에 가려있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이 서씨 일가의 수상한 태국행을 폭로했지만, 당시 청와대는 ‘대통령 가족의 사생활’이라며 입을 봉했다. 중앙일보 취재 결과, 서씨는 ‘제임스’란 이름으로 전무이사급으로 근무했지만 항공에 대해 잘 몰랐고 영어도 서툴렀다는 증언(구마다 아키라 타이이스타젯 훈련국장)이 확보됐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는 말 외엔 어떤 해명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달 24일 판결에서 서씨가 타이이스타젯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가 판사의 입에서 드러난 것이다. 이에 따르면 서씨는 이 전 의원이 배임죄 여지를 차단하기 위해 타이이스타젯으로부터 일단 지급 보증 수수료를 받았다가, 몰래 수수료를 돌려주기로 한 사실을 타이이스타젯에 알려주는 역할을 맡았다. 타이이스타젯은 이스타항공에서도 극소수만 아는 ‘이상직의 극비 조직’이었는데, 서씨는 그 조직의 고위직으로 벼락 출세하고, 불법성 농후한 ‘수수료 쇼’ 연락책까지 맡은 것이다. 서씨가 무슨 배경으로 이 전 의원과 이렇게 깊숙한 연을 맺고 비밀스런 활동을 했는지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검찰의 칼끝은 문 전 대통령을 향하고있다. 항공 문외한 서씨가 타이이스타젯 고위직에 채용된 대가로 이 전 의원이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에 임명됐을 가능성을 수사 중인데, 임명에 최종적인 권한을 가진 이는 문 전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문재인 청와대가 이 전 의원의 중진공 이사장 임명에 부당 개입했는지를 저인망식으로 훑고 있다. 홍종학 당시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조현옥 당시 청와대 인사수석, 백원우 당시 민정비서관 등이 줄줄이 소환됐다. 서씨도 지난달 16일 자택 압수 수색을 당한 데 이어 29일 전주지검에 소환돼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서씨는 묵비권을 행사했지만, 검찰은 설 이후 그를 재소환할 방침이다.

 

이 전 의원과 민주당 일각은 “총선을 앞둔 기획 수사이자 공소권 남용”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2021년 5월 고발된 이 사건은 검찰이 꾸준히 수사를 이어온 끝에 3년여 만에 윤곽이 드러났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수사 개시부터 문재인 정부 검찰이 했다. 필수 절차인 태국 당국의 자료 협조가 10개월 넘게 걸리며 수사 기간이 길어진 것뿐이다. 법원도 이런 이유로 공소권 남용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전 의원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이 전 의원은 이스타항공 돈 수백억원 횡령·배임과 채용 비리 등 혐의로 징역 9년 반(합계)을 선고받았다. 직원 600명을 해고하며 임금·퇴직금 500억원을 주지 않은 채 빼돌린 돈으로 호화 생활을 했다. 쫓겨난 직원들은 택배나 대리 기사직을 전전해야 했다. 특히 이 전 의원의 죄상을 폭로한 노조원들은 그의 유죄가 확정돼 회사를 떠난 지금도 복직하지 못한 채 고된 삶을 살고 있다.

 

문 전 대통령이 답할 차례다. 그는 2019년 야당의 폭로로 논란이 불거진 이래 ‘이스타’의 ‘이’자도 입에 올린 적이 없다. 딸 다혜씨가 지난달 24일 “또다시 표적이 될 아버지”라는 글을 올렸을 뿐이다. 김건희 여사 명품백 논란에 대해 거두절미하고 ‘또다시 표적이 된 영부인’이라고 한다면 펄쩍 뛸 사람들이 문 전 대통령 주변과 민주당 아니겠는가. 명품백 논란이 해명돼야 하는 것처럼, 문 전 대통령 사위 특혜 채용 의혹도 해명돼야 마땅하다. 더욱이 이 사건은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 노동자 수백명과 기업경제에 큰 해악을 끼친 대형 범죄와 연루돼 있지 않은가.

 

중앙일보 강찬호 논설위원

 

02.13 잇따르는 기업들 출산 장려금, 정부가 세금 떼어 갈 일인가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5일 서울 중구 본사에서 연년생 자녀를 출산한 직원 가족에게 출산 장려금 2억원을 지급하고 있다. 부영그룹은 이날 저출생 극복을 위해 2021년 1월 이후 태어난 직원 자녀 70명에게 1인당 1억원씩, 총 70억원의 출산 장려금을 지급했다. /연합뉴스

 

부영그룹에 이어 사모펀드 운용사인 IMM이 직원들에게 자녀 1인당 최대 1억여 원을 출산·육아 지원금으로 지급한다는 지원책을 내놓았다. 지난주 부영은 2021년 이후 출산한 임직원 70여 명에게 1억원씩 총 70억원을 지급했다. 이어 IMM도 올해부터 출산한 직원에게 일시금 1000만원을 주고 자녀가 취학 연령이 될 때까지 매달 50만원을 지급하는 복지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셋째 아이부터는 고교 졸업 때까지 월 50만원을 지급하기로 해 만 18세까지 1억1800만원을 받을 수 있다. 정부가 못 하는 저출생 문제 해결에 민간 기업들이 발 벗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세금 문제가 기업들의 지원 효과를 반감시키고 있다. 세법상 지원금에는 근로소득세나 증여세를 매기기 때문이다. 부영은 세 부담을 줄이려 출산 장려금을 ‘근로소득’ 아닌 ‘증여’ 방식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연봉이 5000만원이라면 추가분 1억원에 대해 근로소득세를 약 3000만원 내야 하지만 증여 방식이라면 1억원 이하 증여세율 10%를 적용받기 때문이다. 다만 증여 방식이라도 회사는 비용으로 인정받지 못해 세금 부담이 커진다. 현행 세법으로는 어떤 방식으로 지급해도 기업이나 직원이 상당액을 세금으로 떼이게 돼 있다.

 

저출생 극복만큼 시급한 국가적 과제가 없음은 언급할 필요도 없다. 정부가 온갖 정책을 발표하고 예산을 쏟아부어도 개선될 조짐조차 보이지 않는다. 기업들이 임직원에게 출산 장려에 돈을 쓰는 것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을 기업이 대신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공익적 일에 정부가 세금을 물려 불이익을 주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정부와 여야 정치권은 기업의 출산 장려금 지급에 비과세나 면세 특례를 적용하는 방안 등 폭넓은 세제 혜택을 검토해야 한다. 출산 장려금에 대한 세제 혜택은 출산 촉진으로 이어져 국가 전체적으로는 세수 감소를 상쇄하고도 남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다른 기업들 동참을 끌어내는 데도 꼭 필요한 일이다.

조선일보 사설

 

02-14 기업 출산장려금과 공익 기부에 파격적 세제 혜택 줘야

부영그룹이 최근 자녀를 출산한 임직원 70여 명에게 1억 원씩 총 70억 원의 출산장려금을 지급한 뒤 ‘하이에나 세금’ 논란이 불붙고 있다. 출산 장려금에 근로소득세와 지방세 42%(4200만 원)가 붙자 부영이 ‘근로소득’ 대신 ‘증여’ 방식으로 지급한 것이다. 증여로 돌려도 10%의 증여세(1000만 원)에다 회사는 비용으로 인정받지 못해 법인세 2600만 원 감면을 포기해야 한다. 부영발(發) 출산 장려금 훈풍이 IMM과 금호석유화학·HD현대 등으로 확산하다가 멈칫거리는 것도 세금 굴레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기업의 자발적인 출산 지원 활성화를 위해 세제 혜택 등 다양한 지원 방안을 즉각 강구하라”고 지시한 것은 만시지탄일 정도로 바람직한 일이다. 돈이 근본 해결책은 아니지만, 돈 없이 저출산 문제를 치유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차제에 공익 기부에 대한 과도한 세금 자체를 손질할 필요가 있다. 생활정보지 ‘수원교차로’ 창업주인 고(故) 황필상 씨가 주식 및 현금 180억 원 상당을 모교인 아주대에 기부했다가 140억 원의 세금폭탄을 맞은 게 대표적이다. 이 때문에 고액 세금 체납자 명단에 오르기도 했다. 주식 기부를 ‘탈세 및 우회 상속 꼼수’로 보던 정부의 색안경이 낳은 흑역사다.

대법원은 이미 “경제력 세습과 무관한 주식 기부에 거액의 증여세를 매기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결한 바 있다. 우리나라 기부금은 국내총생산(GDP)의 0.73%로, 미국(2.08%)의 3분의 1 수준이다. 주식 기부의 면세비율 5%도 미국(20%)·일본(50%)에 비해 턱없이 낮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지난해 ‘선의의 기부자를 세금폭탄으로부터 보호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출산 장려금의 경우, 당장은 근로소득으로 간주하되 특별공제해 주는 게 현실적이다. 세법 개정이 필요한 만큼,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한 야당도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바란다.

문화일보 사설

 
 

02-14 국민 실감할 ‘성장 비전’ 내놓을 때다

신보영 경제부장

尹 민생정책 감세만 7조 육박
잇단 대규모 재정사업 발표에
올해도 역대급 세수결손 예고

감세의 낙수효과 기대하지만
기업 활력 되살리기가 더 중요
상속세 개편 등 비전 보여줘야

56조 원. 지난해 역대 최대를 찍은 ‘세수 펑크’ 규모다. 지난해 예산 400조5000억 원의 14.1%로, 본예산 대비 세수 오차율이 2021년(21.7%)·2022년(15.3%)에 이어 3년 연속 두 자릿수다. 가계로 따지면 수입보다 지출이 더 많은 ‘빚더미’ 상황이다. 중앙정부 채무는 지난해 사상 최초로 1100조 원을 돌파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올해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잇달아 감면 정책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1월 4일 시작해 2월 13일까지 총 11회 진행된 윤석열 대통령 주재 민생토론회에서 발표된 감세 규모만 대략 합쳐도 7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기획재정부·국회예산정책처 등에 따르면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에 연간 1조5000억 원, 증권거래세 인하 유지에 5년간 총 10조 원, 시설투자 임시투자세액공제 1년 연장과 연구개발(R&D) 비용 세액공제율 상향에 1조6000억 원, 건강보험 지역가입자 자동차·재산보험료 완화에 연간 9800억 원, 소상공인 전기료 감면에 2500억 원, 노후차 개별소비세 감면에 1180억 원 등이다.

올해 세수 급감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정부가 재정을 투입하겠다고 약속한 사업은 수십 개에 달하며, 예산 소요 규모도 상당하다. 당장 정부는 지난 8일 제10차 민생토론회에서 소상공인 126만 명에게 최대 전기요금 20만 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는데, 투입 예산이 총 2520억 원이다. 이 정도는 미미한 수준이다. 정부가 1월 25일 제6차 민생토론회에서 발표한 1·2기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연장·신설 예산은 총 134조 원이다. 정부 안대로 이 중 75조 원의 민간 조달이 가능할지도 미지수지만, 구체적 소요 재원 추계도 없는 정부 발표 사업은 더 많다. 지갑은 비어가는데, 비용도 제대로 알 수 없는 어음만 쌓여가는 셈이다.

집권 3년 차에 접어드는 윤석열 정부의 조바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윤 대통령이 지난 7일 KBS 신년대담에서 국정지지율 상승을 위해 “금년에는 더욱더 국민들께서 손에 잡히는, 체감할 수 있는 정책 성과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힌 데에서는 절박감도 느껴진다. 부처별로 진행되던 신년 업무보고 형식을 ‘민생’을 주제로 재편하고, 정부가 아니라 국민을 중심으로 정책을 재구성한 시도 역시 평가할 만하다. 효과도 있다. 윤 대통령 국정 수행 긍정 평가는 지난 5∼8일 리얼미터(95% 신뢰수준에 오차범위 ±2.2%포인트) 여론조사에서 직전 조사보다 1.9%포인트 상승한 39.2%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국민이 진정 바라는 것은 감세에 따른 일시적 ‘낙수 효과’가 아니다. 경제학계에서도 낙수 효과는 검증되지 않은 데다, 야당의 ‘부자 감세’ 프레임에서도 자유롭기 어렵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성장에 따른 과실이 골고루 민생에 돌아가는 ‘선순환’이다. 기업이 살아야 임금이 오르고, 가계의 소비 여력이 생기며, 영세·소상공인에게까지 혜택이 돌아간다는 게 경제 성장의 원리다. 지난해 역대급 세수 펑크가 발생한 것도 비중이 가장 높은 법인세가 결손액(56조 원)의 41%에 달하는 23조2000억 원이나 덜 걷혔기 때문인데, 기업 활동이 활발해져야 재정 역시 숨통이 트인다.

경기침체에 일시적 어려움을 겪는 계층을 위한 민생 대책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보다 근원적인 경제 성장의 청사진 마련에 더 집중해야 한다. 반도체 수출에만 목매는 현 경제구조에서는 재정 투입만으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 이후 펼쳐질 글로벌 안보·경제 지형 급변에 대비해 자금도 든든히 준비해 둬야 한다. 감세 역시 항목별로 찔끔찔끔할 일이 아니다. 국내 기업이 평평한 운동장에서 뛰어놀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6%)보다 월등한 상속세율(최고 60%), 역시 OECD 평균(22%)보다 높은 법인세 최고세율(24%) 개편을 위한 작업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설 연휴가 지나면서 이제부터 본격적인 총선 국면이다. 정책별 득표수를 미세하게 계산하겠지만, 결국 선거는 바람을 탄 자가 이긴다. 경제정책도 마찬가지다. 경제 성장에 대한 큰 그림을 내놓아야 바람을 만들 수 있다. 그래야 윤 정부가 민생을 위해 내놓은 입법 과제도 살 수 있다.

 

문화일보

 
 

02.15 ‘시장 등이 214억 책임지라’ 엉터리 용인경전철 책임 물었다

▲운행 중인 용인경전철 모습. / 뉴스1

 

세금 낭비 논란을 빚었던 용인경전철 사업에 대해 전 용인시장 등의 손해배상 책임이 일부 인정됐다. 서울고법 행정10부가 용인시 주민소송단이 낸 소송의 파기환송심에서 사업을 추진한 전임 용인시장과 수요 예측을 한 한국교통연구원의 중대한 과실을 인정해 용인시가 이들에게 214억원을 청구하라고 했다.

 

용인 경전철 사업은 추진부터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2004년 경전철 사업 실시협약 당시 교통연구원은 하루 평균 승객을 16만명으로 예측했으나 개통한 해 하루 평균 승객은 9000명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용인시는 시행사에 8500억여 원을 물어주고 2016년까지 운영비와 인건비 295억원도 지급해야 했다. 현재도 하루 평균 이용자가 3만5000명가량에 불과해 연간 300억원가량의 운영비와 함께 경전철 건설자금에 대한 원리금 160억원을 부담하고 있다. 이에 용인시민들은 2013년 용인시에 1조원대 손해배상을 요구하라는 주민소송을 냈고 10여 년 만에 일부 승소 판결이 나온 것이다. 단체장의 무분별한 치적 쌓기 행정과 교통연구원 등의 무책임한 수요 예측에 경종을 울리는 판결이다.

 

2012년 개통한 의정부경전철, 2011년 개통한 부산김해경전철도 부풀린 수요 예측으로 한 해 수백억원을 낭비하고 있고, 인천·대구 등 도시철도 적자도 지방재정에 큰 짐이 되고 있다.

 

이런 무리한 사업 추진 사례가 지자체에만 있다고 할 수도 없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쏟아내는 선거용 SOC 사업 중 가덕도 신공항, 대구·경북 신공항, 달빛고속철도 등 상당수는 예비 타당성 조사도 면제하고 추진하겠다고 한다. 여야가 의기투합해 포퓰리즘을 벌이니 아무도 막을 방법이 없다. 이 사업 중 상당수는 훗날 지역민과 국민에게 두고두고 짐이 될 것이다. 그때 그 책임을 지겠다고 나설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용인경전철 판결처럼 앞으로는 엉터리 사업을 추진한 책임자들에게 끝까지 책임을 물어 누구도 함부로 국민 세금으로 포퓰리즘 장난을 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2-15 “용인경전철 배상” 이렇게라도 포퓰리즘 제동 걸어야

대표적 세금 낭비 사례로 꼽혔던 경기 용인시의 경전철 사업과 관련, 입안·추진했던 용인시장과 수요 예측에 실패한 전문기관·연구원에 대해 배상을 요구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정책 결정이 사법적 판단 대상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뿐 아니라, 배상 문제가 최종 매듭되기까지 여러 절차도 남아 있다. 그러나 점차 심각해지는 여야의 포퓰리즘 정책과 국민의 국가 의존증 악순환에 대해 사법부라도 제동을 걸어야겠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서울고등법원 행정10부(재판장 성수제)는 14일 2013년 제기된 주민소송의 파기환송심에서 “이정문 전 시장은 기획예산처가 90% 최소 수입 보장 조건을 축소할 필요가 있다고 했지만 반영하지 않았고, 교통연구원의 과도한 수요 예측에 대해 최소한의 타당성 검토도 하지 않고 사업시행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실시 협약을 맺어 중대한 과실이 인정된다”면서 “현 용인시장이 214억여 원을 청구하라”고 판결했다. 단체장의 투자 사업 실패에 대한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이다. 하루 평균 이용객 14만 명을 예측했으나 9000∼3만 명에 그쳐, 캐나다 시공사에 지난해까지 4293억 원을 지급했고, 2043년까지 1조 원 이상 더 지급해야 할 형편인 점을 생각하면 합리적 판단이다.

지자체장의 ‘묻지 마’ 사업 추진과 발주처의 입맛대로 과도한 수요 예측을 내놓는 연구기관의 짬짜미로 지자체가 천문학적인 빚더미를 짊어진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2012년 개통한 의정부경전철과 2011년 개통한 부산김해경전철에도 수요 예측을 잘못해 매년 수백억 원의 혈세를 낭비하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대규모 개발 공약을 경쟁하듯이 쏟아내고 있는 정치권도 이번 판결에 주목했으면 한다. 예비타당성조사도 없이 최소 6조 원이 투입될 대구∼광주 철도 건설 특별법을 최근 야합해 통과시킨 여야 의원에게도 적절한 책임을 묻는 방안이 강구돼야 할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

 
 

02.16 누가 ‘무전공제’를 두려워하는가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시절
신학기마다 가출 학생 꼭 나와
대학 무전공제 성공하려면
학제·교과과정 혁신이 먼저
대학의 재정 인센티브 수단이거나
교육부의 대학 통제도 옳지 않아
미래의 일자리 누구도 몰라
학부모의 발상 전환 반드시 필요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공공적 고등교육정책을 요구하는 전국교수연대회의 회원들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무전공·무학과 제도 강제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4.1.23/뉴스1

 

“교수님, 저 최근에 가출했었어요.”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시절, 매년 봄 학기 초에 학생들로부터 심심치 않게 듣던 말이었다. 그들은 왜 집을 뛰쳐나와야 했을까?

 

교육부는 내년부터 입학 정원의 20% 이상을 ‘무전공’ 전형(이하, ‘무전공제’)으로 선발하는 대학에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방침을 제시했다. 이에 전국 대학교의 인문대 학장단은 학과 쏠림 및 기초 학문 위기 심화를 이유로 반대 입장을 표명했고, 수도권 대학 총장단은 교육부 이주호 장관에게 속도 조절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 장관의 의지와 교육부의 입장은 단호하다. 무전공제 확대는 학생의 전공 선택권 보장과 융합형 인재 육성을 위해 불가피한 일이라는 것이다.

 

일단, 대학의 고객인 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세상에서 가장 치열한 입시 전쟁을 치른 우리 학생들은 자신이 어떤 공부를 왜 하고 싶은지에 대해 생각해볼 겨를도 없었다. 대부분은 그저 성적순으로 정해진 대학과 학과로 쓸려 온 상태다. 무전공제는 기본적으로 입학생이라면 누구든 자신이 원하는 전공을 원하는 때에 선택할 수 있게 하겠다는 고객 중심적 서비스다. 학생들의 욕망은 명확하다. 어쨌든 대학 문턱은 넘었으니 이제부터는 우열 경쟁이 아닌 개성이나 다름의 기준으로 자신이 원하는 전공을 택하게 해달라는 것.

 

그렇다면 전공 쏠림 현상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인간은 대개 대세를 따른다. 게다가 자기 인생에서 큰 영향을 주는 부모와 주변 친구들의 조언을 한 귀로 흘리기는 쉽지 않다. 누가 뭐래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려면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전공 선택의 다양성을 품은 무전공제를 구현하려면 특별한 ‘교육적 개입’이 있어야 한다. 전공 쏠림은 마치 자유낙하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이어서 그것을 막는다는 것은 다른 방향의 힘이 작용함을 의미한다. 그게 바로 교육적 개입이다.

 

이 대목에서 무전공제의 모범 사례로 꼽히는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36%의 학생들이 지난 15년 동안 경영·경제학을 선택했다”와 같은 비판 기사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왜냐하면 그 내부를 잘 아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에 대한 완전히 다른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 정도로 쏠림을 막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 별 고민 없이 대세를 따르려는 학생들에게 굳이 도전적 질문을 던지며 자신만의 선택을 할 수 있게끔 밀착 지도를 했으니까 그나마 얻을 수 있는 다양성이라 해야 옳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세상에 얼마나 다양하고 흥미로운 지식의 세계가 있는지도 펼쳐 보여야 했다.

 

획일적이고 수동적인 학생들에게 다양성을 가르치고 경험하게 하며 능동적 주체로 성장하게끔 돕는 일은 여간 고단한 게 아니다. 특히 높은 연구 성과를 최우선적으로 요구받는 현 대학 사회에서 이런 교육의 비전과 실천은 인기가 없다. 하지만 이러한 교육적 입력이 없이 학생들에게 전공 선택권만 보장하는 식의 무전공제는 전공 양극화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이것이 지난 15년간 국내의 대다수 자유(율)전공학부와 광역(계열)모집 전형이 겪은 실패의 길이었다. 실제로 학생 전원이 경영학을 선택하는 바람에 결국 자유전공학부 자체를 폐지해버린 대학도 있었고, 광역 모집을 시행했다가 극심한 전공 쏠림을 경험하고는 몇 해 만에 다시 학과별 모집으로 돌아선 대학들도 있다. 따라서 무전공제 확대 비율보다 더 본질적인 물음은 무전공제의 기대 효과를 얻기 위해 대학이 구체적으로 어떤 학제 및 교과 과정을 혁신할까이다. 그리고 결국 그 실행을 담당해야 하는 교직원들을 어떻게 동기부여를 할 것인가이다.

 

무전공제의 성공적 확대를 위해서는 부모의 역할도 작지 않다. 부모는 여전히 자신의 시대에 가장 잘 나가던 전공을 최고로 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하지만 일자리의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의 인기 전공이 불과 10년 만에 시들해질 수 있는 게 세상의 변화 속도이다. 그러니 학생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하자. 그들은 봤지만 부모는 모르는 세계가 있음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잘 준비된 무전공제는 국내 대학 사회를 크게 변화시킬 수 있다. 이것은 어쩌면 요지부동의 대학 서열과 계층화된 학과 서열의 공고한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무전공제가 정착되면 학생들은 적어도 자기 대학에 들어온 친구들은 능력 면에서 자신과 다를 바 없으며 누구든 자신이 원하는 전공을 선택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여기게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이 확장되어 각 대학의 울타리를 넘는다면 더 많은 학생이 서로를 존중하고 교류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 대학은 무전공제를 재정적 인센티브를 위한 수단으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반대로 교육부는 그것을 대학에 대한 통제 전략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대학과 학생의 미래를 위한 좋은 혁신의 씨앗이 되게끔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부모의 생각 전환도 필요하다.

 

전공 선택 때문에 가출한 학생들을 향한 내 첫마디는 늘 이것이었다. “멋지다!”

조선일보 장대익 가천대학교 창업대학 석좌교수 · 진화학

 

02.16 그들이 이승만을 덮쳤을 때

오염된 역사 ‘이승만 악마화’
좌파 혼자 그랬다고?
좌파 프레임에 굴복한 보수

 “불의를 보고 방관하지 않는 100만 학도와 국민들이 있으니,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자신을 하야시킨 시위대를 두고 이렇게 말한 ‘민주주의자’ 이승만은 그간 돌팔매로 만든 무덤에 묻혀 있었다. ‘건국전쟁’은 좌파의 ‘이승만 악마화’를 바로잡는 영화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어떻게 수천만 국민이 50년 넘게 ‘가스라이팅’ 당할까. 그게 좌파 힘만으로 가능한가.

 

 ▲1954년 8월 24일, 최빈국 대한민국의 이승만 대통령이뉴욕 맨해튼 영웅의 거리에서 카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건국전쟁'의 김덕영 감독이 2023년 워싱턴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발굴한 약 45초 분량의 동영상 일부다. /김덕영감독 제공

 

이승만의 양자 이인수 박사가 과거 월간조선에 말했다. “정부가 (국장 대신) 국민장으로 축소해 4·19 학생들 반발을 무마하려 했어요. 건국 대통령으로 대접받지 못하면서 욕먹을 이유가 없다 싶어 가족장을 고집했습니다.” 1965년 7월 27일 이승만 장례식에는 박정희 대통령 대신 정일권 총리가 참석해 노산 이은상이 대신 쓴 대통령 조사를 읽었다.

 

반대로 김종필 회고록에 이런 대목이 있다. “박 의장은 우남 이승만 박사를 건국의 아버지로 생각했다. 적당한 때에 서울로 모실 생각을 하고 있었다. 62년 말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생각은 알 수 없으되, 그 시절 교과서는 물론 대중문화도 모두 이승만을 폄훼했다. 1967년 라디오 정치 드라마 ‘잘돼갑니다’ 이후 ‘광복 20년’ ‘격동 30년’, 전두환 대통령 시절 MBC ‘제1공화국’ 등에서 그려진 이승만은 ‘미국에서 돌아와 세상 물정 몰랐던 늙은 대통령’이다. ‘잘돼갑니다’ 원작자 한운사는 “6개월간 억울한 옥살이를 시킨 이승만을 골탕 먹이기 위해 쓰기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존경하게 됐다”고 했지만, 존경은 속으로만 한 것 같다. 그간 보수 대통령들도 이승만을 외면해야 하는 처지였고, 방송사는 ‘반론권’이 없는 이승만을 짓이겨 댔다.

 

 ▲1968년 제작된 영화 '잘 돼 갑니다'. 교수 시위장면, 군복을 입은 이기붕 아들 이강석이 부모를 총으로 죽이는 장면을 삭제하라는 문공부 지시를 따르지 않아 상영불가 조치를 받았다가 1989년 개봉했다.

 

그런 박정희도 이승만과 함께 수모를 겪었다. ‘친일인명사전’을 만든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하고 배우 권해효가 내레이션을 맡은 다큐멘터리 ‘백년전쟁(감독 정지영)’. 이승만을 ‘하와이 깡패’, 박정희를 ‘스네이크 박’이라며 조롱하고, 왜곡했다.

 

2013년 방통위는 이 다큐를 방송한 ‘시민방송 RTV’에 법정 제재 조치를 내렸다. RTV가 불복했지만 1, 2심 재판에서 방통위가 이겼다. 2019년 대법원이 뒤집었다. “이승만·박정희 업적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이미 주류적 지위이고, 시청자가 제작한 방송에 대해서는 방송 사업자보다 완화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시민단체의 사실 왜곡은 괜찮다? 법복을 입고 궤변을 짜낸 대법관은 김재형·박정화·민유숙·김선수·노정희·김상환, 여기 대법원장 김명수가 한 표를 더해 7대6으로 가짜 뉴스가 이겼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백년전쟁'. 대한민국 백년은 친일파와 민족주의의 전쟁이었다며 이승만, 박정희를 거의 범죄자처럼 다뤘다. 김명수의 대법원은 문제가 없다고 했다.

 

조선일보와 이영훈 같은 학자들이 ‘이승만 재평가’를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그를 돌무덤에서 꺼내지 못했다. 보수 정치인이나 엘리트 중 “이승만을 존경한다”고 공언한 이는 드물다. 겁 많고 게으른데 손해는 보기 싫어, 못 본 척 던져버린다. 보수는 흠결의 ‘흠’자만 나와도 바로 손절한다. ‘반일종족주의’ 저자 이영훈 교수 연구실에 찾아가 “친일파 XX”라며 주먹을 휘두른 세력이 지난해에는 친북 목사 팔뚝에 몰카를 심어 대통령 부인을 도촬했다. 전향한 운동권으로 우리 경제사를 가장 실증적으로 공부한 우파학자 이영훈이 ‘서울의 소리’에 당할 때, 보수는 슬그머니 그를 손절했다.

 

‘건국전쟁’의 흥행에서 좌파 프레임에 굴복했던 우파의 각성을 본다. ‘보수 이론’을 공부해보겠다는 사람도 여럿이다. 독일 마르틴 니묄러 목사의 문장을 패러디해 본다. 이런 두려움일 것이다. “그들이 이승만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좌파가 박정희를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그들이 나를 덮쳤을 때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조선일보 박은주 기자

 

02-20 ‘AI 국가주권’ 전략, 한시가 급하다

김상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챗GPT ‘독도는 한일 분쟁지역’
한국 위인을 서양인으로 둔갑
빅테크 맞설 ‘소버린 AI’ 절실

한국은 AI 주권 보호할 기술력
플랫폼경쟁法 등 역주행 우려
디지털 국가책략 가다듬을 때

최근 챗GPT가 ‘독도는 어느 나라 땅인가’라는 질문에 ‘한국과 일본의 영토 분쟁지역’이라 답했다고 해서 논란이 됐다. 또, 이미지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조선의 역사적 인물 초상화를 그리랬더니 서양인을 그렸다는 말도 들린다. 모두 생성형 AI가 우리나라의 역사적·문화적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영어 텍스트나 서양인 얼굴 데이터를 대량 학습해서 생긴 결과다.

일각에서는 해당 업체에 항의 메일을 보냈다고 하는데, 수용할지도 모르겠지만 수정하기도 쉽지 않다. 관리자가 있는 ‘스몰데이터’ 모델이 아니라, 글로벌 인터넷의 ‘빅데이터’ 환경에서 작동하는 모델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이버 민간 외교관으로 알려진 반크(VANK)처럼 공공외교 차원에서 잘못된 국가 정보를 교정해 달라고 요청하는 수준을 넘어서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이것은 모두 자국의 AI 역량이 부족해서 생기는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부쩍 많이 거론되는 것이 ‘소버린 AI(Sovereign AI)’ 또는 AI 주권 담론이다. ‘소버린 AI’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에 종속되지 않고 자국 언어·문화 기반의 데이터를 학습한 거대언어모델(LLM)을 자체적으로 구축하자는 주장이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 제공하는 생성형 AI의 이용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아무리 해외 기업이 ‘양질의 데이터’를 학습시킨다고 하더라도 자국 언어의 고유성이나 데이터 주권을 훼손할 가능성은 언제나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자국만의 문화적 맥락을 반영한 플랫폼 서비스의 제공도 어렵다는 문제의식의 발로다.

‘소버린 AI’의 핵심은 자국어 기반의 토종 AI를 개발하는 기술 역량에 있다. 표준 확산과 개방적 생태계의 조성을 위해서 소프트웨어를 공유하던 시대는 지났다. 소프트웨어와 AI도 지정학적 기술 경쟁의 대상으로 인식되는 세상이다. 로컬 데이터를 활용하는 자체적인 AI 역량을 갖추고 자국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은 데이터·AI·플랫폼 주권을 지키는 ‘디지털 국가책략(digital statecraft)’의 요체다. 또한, AI 기술 역량을 갖추는 것은 국가안보에도 중요하다. AI를 활용한 첨단 무기체계의 보유 여부는 미래 전쟁의 승패를 가를 변수가 됐고, AI를 활용한 사이버 공격이나 허위조작 정보의 유포도 최근 새로이 제기된 안보 위협이다. AI 윤리 관련 국제규범을 마련하기 위한 움직임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소버린 AI’의 추구는 후발 주자들에 대세가 됐다.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국가뿐만 아니라 인도와 싱가포르, 브라질 등이 ‘소버린 AI’를 개발하기 위해 분주히 나서고 있다. 정작 AI 주권을 지킬 정도로 기술력을 보유한 나라는 몇 안 된다. 그러나 한국은 디지털 주권을 지켜온 경험과 역량이 있다. 우리나라는 MS워드 이외에 자국어 워드프로세서를 보유한 유일한 나라다. 또한, 자체 검색 엔진을 보유한 4개국 가운데 하나다. 다양한 사회관계망(SNS)과 플랫폼 서비스도 자랑거리다. 자국 플랫폼을 바탕으로 자체 데이터센터를 건설했고, 초거대 AI 모델 개발의 기술력도 보유한 나라다. ‘소버린 AI’는 자국어 특화 모델로 시장을 공략하려는 특정 기업의 마케팅 수단이라는 비판도 없지 않다. 그런데도 국가 차원에서 보면 이러한 담론을 적절히 활용해 AI 역량을 키우고 AI 주권을 지켜낼 발판을 마련할 필요는 있다.

우리 정부는 이러한 세계적인 큰 흐름을 제대로 읽고 있는지 묻고 싶다. 각국 정부가 AI 개발을 지원하고 자국 플랫폼의 육성을 적극적으로 도모하는 데 비해, 우리나라 정부는 이른바 ‘플랫폼 경쟁촉진법’ 등을 내세워 국내 플랫폼 기업들을 규제하는 데 주력하는 모양새다. 오락가락하는 정책은 더 문제다. AI 기술 혁신을 지원한다면서도, 플랫폼은 규제하고, 데이터 클라우드는 ‘개방’하는, 일관성 없는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데이터·AI·플랫폼 분야의 역량 강화를 주권 확보의 차원에서 이해하고 종합적으로 추진하는 정책의 정비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고리타분한 과거의 국가주권론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글로벌 트렌드에 역행하는 정책에서 벗어나 디지털 지정학 시대를 헤쳐갈 국가 책략의 방향을 제대로 바로잡아 보자는 것이다.

 

 

문화일보

 
 

02-21 자본 유턴과 경상 흑자 부른 ‘감세 매직’

문희수 논설위원

이중과세 없자 ‘자본 리쇼어링’
경상수지 흑자 방어에도 기여
민생도 재정보다 감세가 효과

세수 줄어도 세제 시정이 正道
세수 펑크는 예측이 잘못된 탓
지속적 정부 지출 축소가 과제

주요 국가마다 ‘자본 리쇼어링’에 애를 쓴다. 자국 기업들이 해외에서 번 돈을 해외에 그대로 쌓아 두고 있는 유보금을 국내로 유턴시키려고 세금 혜택 등 파격적인 유인책까지 동원한다. 나라 밖의 자금을 불러들여 투자·고용·소비 확대 등의 선순환을 통해 경제를 활성화하려는 의도에서다.

한국의 자본 리쇼어링은 지난해 대성공을 거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2년엔 151억5720만 달러가 해외로 순유출됐던 반면, 지난해엔 반대로 들어온 돈이 빠져나간 돈보다 훨씬 많았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첫 자본 유턴이다. 그것도 88억1290만 달러(약 11조7000억 원)나 되는 대규모다. 해외 자회사가 국내로 보내는 배당금의 95%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도록 법인세를 완화한 덕이다. 해외에서 이미 과세했어도 국내 본사가 배당금을 받으면 이를 기업 소득에 포함해 일부만 공제하고, 또 과세하던 이중과세를 개선한 것이다.

해외 유보금의 국내 유턴은 지난해 내내 위태로웠던 경상수지 흑자 방어에도 크게 기여했다. 지난해 해외 배당금을 포함한 본원소득수지는 316억1000만 달러의 흑자를 기록해 전년보다 112억6000만 달러나 늘었다. 경상 흑자가 354억9000만 달러였으니, 기여도가 무려 89%나 된다.

삼성전자, 현대차 등이 해외 유보금을 대거 불러들였다. 삼성전자 한 곳만 지난해 3분기까지 국내로 보낸 배당금이 29조 원이나 된다. 전년 같은 기간의 177배다. 현대차도 1년간 8조 원 가까이 된다. 더구나 이런 감세 효과는 일회성에 그치지 않는다. 2∼3년 후에 더욱 본격화한다는 게 학술적 분석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22년 해외 자회사 배당금 비과세 영향을 분석한 결과, 2024년부터 2027년까지 연평균 1044억 원의 세수 감소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하지만 뚜껑을 여니 1년에만 해외에서 들어온 돈이 세수 감소보다 무려 110배나 많다. 감세 효과가 놀랍다.

감세하면 세수가 준다. 그렇지만 논란이 됐던 세수 펑크를 감세 탓으로 직결하는 것은 잘못된 비약이다. 세수 펑크는 세수 예측이 잘못된 탓이다. 2023년 예산안 대비 56조 원 넘게 세수 펑크가 난 것은 세수 예측이 틀린 기획재정부의 실책이다. 예측치를 수정해서 끝날 일도 아니다. 세수 펑크는 필연적으로 재정 적자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재정 적자의 원인은 세수 감소 자체가 아니라, 그에 맞춰 재정 지출을 줄이지 못한 데 있다.

지난해 세수는 전년보다 51조8000억 원 줄었다. 법인세·소득세·부가가치세가 모두 감소한 것을 보면 경기 부진의 여파가 커 보인다. 아울러 문재인 정부 때의 과도한 세금을 고려하면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종합부동산세 같은 징벌세를 낮추는 것은 세수가 줄더라도 민생을 위해서는 당연히 해야 할 조치다. 민생 지원은 1회로 끝나는 재정보다 감세로 해야 효과가 더 크고, 효력도 오래 간다. 같은 민생 지원인데 정부 지출 확대는 괜찮고, 감세는 안 된다는 식의 주장은 비판을 위한 비판일 뿐이다. 재정 중독에 빠져 윤석열 정부를 흠집 내려는 의도도 없지 않다. 민생을 위한 준조세 축소·폐지도 옳은 방향이다. 취지와 다르게 환경부가 떼내 쓰는 전력 부담금(올 예상 세수 3조 원), 국제선 비행기를 탈 때 내는 출국납부금 등은 세수가 줄어도 손봐야 한다.

한국의 왜곡된 세제는 고질적인 과제다. 세계적으로 높은 법인세가 대표적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국내총생산 대비 법인세 비율은 5.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위다. OECD 평균치의 1.4배, 주요 7개국(G7)의 1.8배나 된다. 반면, 개인소득세 비율은 면세자 비중이 높은 탓에 OECD 평균치를 밑돈다. 세수가 줄더라도 세제 정상화가 정도(正道)다.

세금을 낮추면 재정 지출도 동반 축소해야 한다. 민간과 시장경제 중심을 표방하는 윤 정부엔 더욱 필수다. 문 정부처럼 재정 적자가 확대된다면 말이 안 된다. 복지 지출 등의 축소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지만, 그래도 불필요한 재정 지출을 막고, 선심성 예산 신설을 억제하는 것은 윤 정부가 남은 임기 내내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민생과 기업의 활력을 높이는 게 최우선 과제다. 이를 위해선 감세 기조를 이어가야 한다.

문화일보

 

02.22 공수처 난파선 만들고 바로 변호사 개업한 前 공수처장과 차장

▲김진욱 공수처장과 여운국 공수처 차장./뉴시스

 

김진욱 전 공수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최근 변호사 개업 신고를 했다고 한다. 퇴임한 지 각각 18일, 4일 만이다. 김 전 처장은 퇴임 전 “당분간 쉬고 싶고 아무 계획도 없다”고 했다. 그런데 바로 변호사 개업부터 한 것이다. 두 사람은 공수처로 가면서 변호사를 휴업한 상태여서 별도 등록 절차 없이 개업 신고만 하면 변호사 영업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수사기관 수장을 지낸 사람이 이렇게 퇴직 후 바로 변호사 영업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같은 수사기관 수장인 검찰총장도 퇴직 후 2년간은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는다. 대한변협이 전관 예우 방지 차원에서 검찰총장과 대법관, 헌법재판관, 법무부 장관을 지내고 퇴임한 사람은 2년간 변호사 등록을 자제해 달라고 권고하기 때문이다. 권고지만 실제 대부분 이를 지켜 지금은 사실상 ‘법’처럼 운용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공수처장이 퇴임하자마자 변호사 영업을 하겠다고 나선 것은 부적절하다. ‘전관 예우’를 누리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공수처법에 퇴직 후 1년간 공수처 사건을 수임할 수 없다는 제한 규정이 있다지만 마음만 먹으면 뒤에서 얼마든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정권 시절 공수처는 문 전 대통령 후배 검사를 ‘황제 조사’로 모셔 혀를 차게 했다. 지난 3년간 600억원이 넘는 예산을 쓰면서 성과도 사실상 전무했다. 직접 기소한 것은 3건에 그쳤고, 그나마 2건은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구속 수사는 한 건도 없었다. 수사 역량을 키우기보다 정치적 논란에 휘말리면서 현직 공수처 부장검사가 언론 기고를 통해 공수처의 정치적 편향을 비판한 일도 있었다. 출범 당시 임용된 검사 13명 중 11명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표를 냈다. 이런 난파선 같은 상황을 만든 데 책임이 큰 김 전 처장과 여 전 차장이 자중하지 않고 퇴직하자마자 변호사 개업부터 하겠다고 한다. 돈벌이가 급한 공수처 책임자 두 사람을 보며 이 기관은 빨리 없어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을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2-22 윤 정부 2년 원전설비 수출, 문 정부 5년의 6배… “원전 재도약 원년으로”

▲계속되는 민생토론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오전 경남 창원시 경남도청에서 열린 14번째 민생토론회를 주재하면서 “원자력발전 산업 지원 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 원전산업 발전 정책 발표

2022년 매출 1년새 4조 증가
투자·고용 등 모든 지표 개선

중기 18%·중견기업 10%까지
11개 기술 투자세액공제 확대
질적 고도화 위한 전방위 지원


 

 탈(脫)원전 정책을 폐기한 윤석열 정부 2년간 원전 설비 수출액이 전임 문재인 정부 5년 수출 총액의 6배를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원전 활성화 정책에 힘입어 수출, 매출, 투자, 고용, 인력 등 주요 생태계 지표가 뚜렷한 개선세를 보이고 있다고 판단하고, 생태계 복원을 넘어 원전산업 질적 고도화를 통한 원전 최강국 도약을 위해 전방위 총력 지원에 나선다.

정부가 22일 오전 경남 창원시 경남도청에서 개최한 14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공개한 ‘민생에 온기를 불어넣는 원전산업’ 안건은 최강국 도약을 위한 원전 정책 방향을 담고 있다.

2022∼2023년 원전 설비 수출은 4조100억 원으로, 2017∼2021년 수출 규모(5900억 원)의 6배를 넘어 선다. 2021년 21조6000억 원까지 쪼그라들었던 매출도 2022년 25조4000억 원으로 4조 원 가까이 늘었고, 전공 입학생도 같은 기간 681명에서 751명으로 증가했다. 정부는 고사 직전까지 갔던 원전 생태계에 온기가 돌고 있다고 보고 △원전 생태계 완전 복원 △소형모듈원전(SMR) 선도국 도약 △창원·경남 글로벌 ‘SMR 클러스터’ 육성을 통해 질적 고도화를 추진한다.

우선, 일감·금융 지원이 투자와 연구·개발(R&D) 등을 통해 중장기 경쟁력 제고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해 원전 생태계 복원을 완료한다는 구상이다.

2022년 2조4000억 원 수준이던 원전 일감은 지난해 3조 원에 이어 올해 3조3000억 원까지 확대하고 계약 즉시 계약금 30% 이내의 선금을 받을 수 있는 ‘선금특례’도 시행한다. 지난해 말부터 이뤄지고 있는 특례 시행으로 신한울 3·4호기의 일감은 올 상반기까지 1조 원 이상 누적될 것으로 예상된다. 원전기업들에 대한 특별금융 프로그램도 지난해 5000억 원에서 올해 1조 원 규모로 늘려 공급한다. 시중은행을 통해 2∼3%대 저금리 융자를 지원하는 1000억 원가량의 ‘원전 생태계 금융지원사업’이 신설됐고, 원전기업 특례보증 규모의 상향도 추진한다.

 

 세제 혜택도 늘린다. 조세특례제한법상 세액공제 대상인 신성장·원천기술에 대형원전 설계뿐 아니라 제조기술, 전자빔용접 등 SMR 혁신제조기술 등 11개 원전기술을 추가한다. 세액공제율이 늘어나면서 대형원전 제작·가공 중심의 원전 기업들이 올해만 1조 원 이상의 설비와 R&D 투자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해체 등 후행주기 중심이던 R&D도 대대적으로 혁신해 SMR과 4세대 원전 등 차세대 유망기술 중심으로 전환한다. 미래 원전 패권을 좌우할 SMR 선도국 도약을 위해 한국형 소형모듈원전인 i-SMR 개발에 전년 대비 9배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다양한 노형의 사업화를 위해 올해 중 민간기업이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사업체계와 전략을 마련한다. 모듈형 제작·설치가 가능한 SMR의 확산에 따라 ‘공장에서 원전을 만들어 수출하는 시대’가 열릴 것에 대비해 SMR 위탁 생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전략도 추진한다.
박수진 기자 sujininvan@munhwa.com

 

02.23 미·일 “24시간 365일 공사” 반도체 재건, 우리는 할 수 있나

​▲일본 구마모토현 기쿠요마치 소재 대만 TSMC 신(新)공장 전경.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 생산(파운드리) 업체인 TSMC와 일본 소니·덴소의 합작 법인 ‘JASM’이 이틀 뒤 개소식을 갖고 이 공장 운영을 시작한다./교도/로이터 연합뉴스

 

대만 반도체 기업 TSMC가 일본 구마모토에 지은 반도체 공장이 오는 24일 준공한다. 당초 5년 걸릴 것으로 예상됐지만 365일 24시간 공사로 2년 만에 완공했다. 2021년 10월 투자 계획을 발표한 시점부터 따져도 2년 4개월밖에 안 걸렸다. 미국 인텔도 올해 말부터 1.8나노미터급 주문형 반도체를 양산하겠다고 발표했다. 2021년 3월 파운드리 시장 진출을 선언한 지 3년도 안 돼 양산 체제를 완성하는 것이다. 과거 반도체 주도국이었던 미국과 일본이 한국은 상상도 못 할 만큼 놀라운 속도전으로 반도체 부활에 나섰다.

 

TSMC의 구마모토 공장은 3년 전만 해도 양배추 밭이었다. 일본 정부는 50년 이상 묶었던 규제를 풀고, 인허가 절차를 대폭 줄였다. 지자체는 용수나 도로 정비에 발 벗고 나섰다. 일본 정부는 투자액의 40%인 4조2000억원을 조건 없이 보조금으로 지급했다. TSMC는 2027년까지 일본에 제2 공장을 건설하겠다고 한다. 3공장 건설 얘기까지 나온다. TSMC 창업자인 모리스 창 전 회장은 “용수와 전력이 풍부하고 일하는 문화도 좋아 일본은 (반도체 생산에) 이상적인 장소”라고 했다.

 

일본은 1980년대에 세계 반도체 생산 점유율이 50%에 달했는데 미국의 견제에 밀리고 속도전을 펼치는 한국과 대만에 경쟁력을 잃었다. 하지만 지난 2년 동안 크고 작은 대만 반도체 회사 최소 9곳이 일본에 공장을 설립하거나 사업을 확장했다. 더 많은 대만 기업이 투자를 검토 중이다. 일본은 반도체 소재와 장비 부문에서 세계적 선도 업체를 갖추고 있다. 반도체 제조 인프라 완성도 시간문제일 것으로 보인다.

 

밤새워 일하며 경쟁자를 속도로 압도하는 일은 과거 한국의 주특기였다. 그러나 구마모토 공장 같은 ‘24시간 365일 공사’는 이제 한국에서 불가능하다. 세계에서 가장 경직적인 주 52시간제에 묶여 있는 데다 자칫 사망 사고라도 나면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경영진이 감옥에 가는 나라가 됐다. SK하이닉스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2019년 2월 터를 잡았지만 아직도 제대로 삽을 뜨지 못했다. 지역 민원, 용수 공급 인허가 등에 발목 잡혀 다섯 차례 이상 착공이 연기됐다. 이런 나라의 미래가 무엇일지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도 거의 모든 개혁이 저항에 묶이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

 

02-23  4대 개혁 운명, 4월 총선에 달렸다

필수·지역 의료 붕괴 개혁 촉발
의사단체는 정부 약속 불신해
정책 당위성 있지만 설득 필요

의대 쏠림 막을 교육개혁 절실
사회적 대화 통한 노동개혁도
미래세대 위해 필히 성공해야

윤석열 정부가 험난한 의료개혁의 첫발을 뗐다. 의대 증원 문제는 수도권 환자 쏠림, 피부과·성형외과 등 인기 과목 편중이라는 의료 자원 배분의 불균형에서 비롯됐다. ‘응급실 뺑뺑이’와 ‘소아과 오픈런’으로 대표되는 필수·지역 의료 붕괴 위기 극복의 대안으로 의대 증원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정부는 고령화에 따른 의료 수요 증가에 대비하고 고사 위기의 지역 의료를 살리려면 2000명 증원도 부족하다고 한다. 간호사, 환자단체, 시민단체, 경영계 및 노동계 등 모든 분야가 찬성한다. 국민 여론도 압도적 지지이고, 여야도 찬성이다.

의사들은 저출생에 따른 의사 1인당 환자 수 감소, 의학 교육 질 저하, 증원된 의사들의 필수·지역 의료 분야 미유입 등을 근거로 반대한다. 의사들 주장의 배면에는 기득권 유지와 엘리트 의식, 직역 이기주의가 숨어 있다. 통계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의사들은 연평균 2억∼3억 원의 수입을 올리는 초고소득층이다. 의대 블랙홀의 배경이다. 김영삼 정부 때 사법개혁으로 변호사들이 2배로 늘어나면서 수입이 사실상 반 토막 난 것을 본 의사들은 의사 공급 확대가 자신들에게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 잘 알고 있다.

정부는 2028년까지 필수·지역 의료 수가(진료 서비스의 대가)에 10조 원을 투입하고 불가항력적 의료 사고에 대한 의사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특례법 제정을 약속했다. 그런데 개원의 단체인 대한의사협회는 정부가 필수의료 수가를 올려준다고 약속하고도 번번이 어겼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내놓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도 두루뭉술하다며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라고 요구한다. 의료개혁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의사들 설득을 계속할 필요는 있다. 그 과정에서 전공의들이 환자 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명분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지 않으면 2020년 코로나19 국면에서 의대 400명 증원에 반발해 한 달여 파업을 벌이며 정부를 굴복시킨 경험이 있는 의사들이 쉽게 물러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 피해는 아무 죄 없는 환자들이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

서울대교수협의회는 지난 19일 의사들은 의료 현장을 지키고 정부는 인내심을 갖고 대화할 것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내놨다. 의료개혁과 함께 기초학문 위축을 막을 교육개혁이 동반돼야 한다는 의미심장한 내용도 담겼다. 교수협은 “의대 정원 확충의 진정한 목표는 우수한 의사들이 전국 곳곳에서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인 만큼, 정책의 실효성 극대화와 부작용 최소화를 위해 교육 및 입시제도 개혁, 균형 있는 학문 발전과 인재 양성, 지역 발전 정책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교육개혁을 통한 양질의 인재 양성은 노동시장의 구조 개선이라는 개혁 과제와도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마침 지난 6일 윤 정부 들어 처음으로 노사정이 대면 회의를 갖고 노동개혁 의제들을 사회적 대화로 풀어나가기로 했다. 디지털, 인공지능(AI) 시대라는 커다란 산업 전환기에 근로 시간 단축과 유연성 확보,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노동시장 이중구조에 따른 불공정 격차 해소, 정년 연장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과 계속 고용 문제 등을 다룬다. 보수와 진보 의제가 망라된 셈이다.

노사정위원장과 노동부 장관을 지낸 김대환 인하대 명예교수는 지난해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주최 국제 콘퍼런스에서 과거 정부 주도의 노동개혁이 무산된 경험을 바탕으로 “광범한 공론화와 사회적 합의 없이는 개혁이 성공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경영계와 노동계가 끊임없는 협상으로 이견을 좁히고 통 크게 주고받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의미다. 노사정 의제에 포함된 정년 연장과 장년층 계속 고용 문제는 국회에서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연금개혁과도 직결된다. 정년 연장에 합의하면 연금 재정의 지속성을 위한 ‘더 내고 덜 받는’ 방향의 연금개혁 추진 동력이 생길 수 있다.

4·10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총선 결과를 예측하기 쉽지 않지만 어떻게 나오든 진정한 대화와 타협, 협치의 시대가 열려야 한다. 의료·교육·노동·연금 4대 개혁은 결국 법안과 예산으로 완성된다. 여야와 당파, 이념을 넘어 미래 세대를 위해 반드시 개혁 성과를 내야 한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대개혁은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다.

문화일보 김충남 사회부장

 

02.26 15년 만의 최대 원전 수출, K원전 재도약에 총력전 펴야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오전 경남도청에서 '다시 뛰는 원전산업, 활력 넘치는 창원‧경남’을 주제로 열린 14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4.2.22/ 대통령실

 

현대건설이 불가리아 원자력발전소 건설 공사의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다. 한국 건설사가 해외 원전 건설 사업자로 낙점된 것은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이후 15년 만이다. 불가리아에 원전 2기를 짓는 이 공사의 총사업비는 140억달러에 이른다. 한국형 K원전이 암흑기를 벗어나 원전 강국의 국제적 위상을 되찾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고사 위기를 맞았던 원전 생태계는 점차 경쟁력을 복원하고 있다. 2022년 한수원이 이집트 엘다비 원전의 기자재 공급과 구조물 건설 사업을 수주했고, 폴란드와는 한국형 원자로를 건설하는 협력 의향서를 체결했다. 이번 불가리아 원전엔 미 웨스팅하우스의 원자로가 적용되지만, 우리가 원전 수출에서 계속 성과를 내면 전체 설계와 원자로 제작, 핵연료 공급, 운영·보수까지 책임지는 ‘UAE 바라카 모델’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이다. 15년 전 UAE 원전 4기 수출은 승용차 100만대, 유조선 180척 수출에 맞먹는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원전 건설로만 20조원을 벌었고, 앞으로 60년간 부품과 핵연료를 공급하면 10조원을 더 벌게 돼 있다.

 

몇 년 새 급변한 국제 정세는 한국 원자력 산업에 다시 없는 호기를 제공하고 있다. 세계 각국이 에너지 안보와 탄소 중립을 최우선 목표로 삼으면서 유럽·중동 등에서 원전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가장 강력한 경쟁국이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 입찰에서 배제되고 있다. 중국도 미국 등의 견제로 발이 반쯤 묶여 있다. 이 기회를 활용해 민관 총력전으로 ‘K원전 르네상스’를 만들어 내야 한다.

 

탈원전 5년의 공백이 아쉽지만 늦지 않았다. 문 정부 5년간 5900억원 수준으로 추락했던 원전 설비 수출액이 윤 정부 출범 후 2년간 4조원대로 늘어났고, 원자력 전공 대학생·대학원생이 다시 늘어나는 등 원전 생태계가 점차 복원되고 있다. 정부는 미래 원전 모델인 소형모듈원전(SMR)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더 늘리고, 민관학 협업 체제를 구축해 미래 원전 산업도 한국이 이끌 수 있다는 비전을 꿈나무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우려되는 것은 원전 산업계가 아직 ‘정치 리스크’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 점이다. 지난 22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원전 산업 중장기 로드맵을 다룬 민생 토론회에서 한 원자력공학 전공 대학원생은 “정권이 바뀌면 원전 산업이 또 배척받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문 정부처럼 과학적 근거도 없이 원자력 정책을 뒤집는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에너지 중장기 계획을 수립해 놓아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2-26 불가리아 원전 건설과 국내 수요 50기

현대건설이 불가리아 코즐로두이원전 건설 공사의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되면서 전 정부의 탈원전 정책 폐기 효과가 가시화하고 있다. 희소식이다. 이번 사업은 2200메가와트(㎿)급 원전 2기를 추가로 신설하는 공사로, 현대건설의 시공 사업(약 8조∼9조 원) 수주는 오는 4월쯤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탈원전 정책 폐기 이후 원자력을 우리나라 주요 에너지원과 수출 산업으로 지속 발전시키는 원전산업 정상화 조치도 취해졌다. 중지됐던 신한울 3, 4호기 건설이 재개되고, 폐지 위기에 몰렸던 10기의 원전이 계속운전 절차에 들어갔다. 지난 2년간 이집트 엘다바 프로젝트, 루마니아 삼중수소 제거 설비 수출 등 원자력 기술 수출도 4조 원 이상 이뤄졌다. 수출과 신규 원전 건설이 재개되면서 생긴 일감으로 고사 위기에 몰렸던 원전 산업체도 위기는 넘기고 있다.

정부가 지난 22일 원전 생태계 완전 복원을 넘어 원전 최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특히, 국내 원자력 연구·개발(R&D)을 소형모듈원전(SMR)과 4세대 원전 등 차세대 유망 기술을 중심으로 혁신하기 위해 현 정부 5년간 4조 원을 투자한다고 한다. 탈원전 기간 새 원전 개발은 중지되고 해체와 방사성폐기물 관리 중심으로 편중됐던 문제점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바람직한 방향이다. 원전 해체와 방사성폐기물 관리는 필요하다. 그러나 원자력 에너지의 지속적 이용과 함께해야 한다. 4조 원의 투자가 미래를 위한 전략적이고 균형 잡힌 투자가 되게 해야 한다.

앞으로의 R&D 투자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원자력 에너지의 이용 확대 정책이 동반돼야 한다. SMR과 4세대 원전 기술 개발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건설·이용돼야 한다. 도면 상태를 벗어나 건설·검증된 기술은 우리나라 에너지 믹스에 중요하게 사용될 기반이 되며, 해외에 수출하더라도 실제로 국내에 건설한 실적은 그 어떤 홍보보다 강력한 효과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전력수급 계획 및 국가 탄소중립 계획에 SMR을 포함한 신규 원전 건설을 대폭 반영해서 여건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원자력 에너지를 활용하도록 해야 한다.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24시간 전력을 공급할 화석연료의 대체재가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이를 경제성 있게 충족할 방법은 원자력이 유일하다. 따라서 재생에너지 무조건 우선의 전력 수급에서 원자력의 역할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원자력 확대가 먼저이고, R&D가 그 뒤에 따라야 순서가 맞는다. 2050년까지 신규 원전 50기가 더 필요하고 수출도 해야 한다. R&D가 이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R&D가 파급 효과를 가져오려면 시장을 키워야 한다. SMR이나 4세대 원전을 개발하고, 사업을 발굴하고, 건설할 민간 기업을 가능한 한 많이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민간이 발 빠르게 움직이면서 투자한다면 상용화 시기를 대폭 앞당길 수 있고, 수출로 이어질 가능성도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사용후핵연료 관리가 법에 따라 정부 책임 아래 추진돼야 새로운 원자로 기술 개발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이를 위해 현재 폐기 위기에 몰린 고준위폐기물에 관한 특별법이 반드시 입법돼야 한다.

4조 원은 우리가 쓰고 수출도 할 원자로를 개발하고, 우리가 쓴 원자력의 사후 처리를 책임지는 데도 써야 한다.

문화일보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

 

02-27 K-원전 르네상스 오고 있다

민관을 아우르며 원전 산업계 낭보가 잇따르고 있다. 민간에서는 23일(현지시간) 현대건설이 불가리아 코즐로두이 원자력 발전소 건설 공사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이후 15년 만의 해외 대형 원전 수주다. 불가리아 북부 코즐로두이 원전 단지에 1100㎿급 원전 2기를 새로 짓는 사업인데 미국 원전업체인 웨스팅하우스가 원자로를 공급하고 현대건설이 시공을 맡는다. 총 사업비가 18조 원대로 추정되는 가운데 현대건설의 수주액만 최대 8조∼9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관에서는 한국수력원자력의 수주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오는 6월 체코 정부가 발주한 원전 4기 입찰 결과가 나오는데 웨스팅하우스가 탈락하면서 한국과 프랑스 2파전이 예상된다. 한수원은 스포츠팀 후원, 현지 기업과의 협업 등을 통해 오랜 기간 체코 원전 수주에 공을 들여 왔다.


체코 원전 사업은 발주 규모가 1기에서 4기로 늘어나면서 사업비만 최대 30조 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2022년 폴란드 민간발전사인 ZEPAK 및 폴란드국영전력공사(PGE)와 협력의향서(LOI)를 체결하고 2∼4기 원전 수출도 추진 중이다. 유럽, 중동, 아프리카 등지에서도 한국전력공사와 한수원이 수주를 위해 뛰고 있다. 이 밖에도 상당수 국가에서 우리 원전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는 전언이다. 10기 수출을 목표로 하고 있는 K-원전의 순항은 윤석열 정부 들어 추진되고 있는 탈(脫)원전 폐기 및 원전 활성화 정책과 무관치 않다. 이번 불가리아 원전 수주 성공 역시 정부 차원의 생태계 복원과 지원책이 주효한 역할을 했다는 게 업계 평가다. 원전 정책 기조가 바뀐 뒤 원전 수출 실적도 이를 뒷받침한다. 2022∼2023년 원전 설비 수출액은 4조100억 원으로 문재인 정부 때이던 2017∼2021년 수출액(5900억 원)의 6.8배나 된다. 원전 업계 매출도 2021년 21조6000억 원 수준에서 2022년 25조4000억 원으로 4조 원 가까이 증가했다.

정부가 지난 22일 민생토론회를 통해 추가 원전 지원책과 향후 정책 밑그림을 공개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한국 원전은 글로벌 에너지 위기로 인한 각국의 원전 회귀 흐름 속에서 우리 경제의 주요 미래 먹거리다. 올해 3조3000억 원의 일감과 1조 원의 특별금융이 공급되고 소형모듈원자로(SMR)를 포함해 윤석열 정부 5년간 원전 연구·개발(R&D)에 4조 원이 투입된다. 그간 소외돼 있던 대형 원전 제작기술에 대한 세액공제도 늘리고 원전 산업 지원을 위한 특별법과 로드맵도 만든다. 이념화로 고사 위기에 처했다가 겨우 되살아난 국내 원전 생태계가 정부 목표대로 완전히 회복하고 질적으로 고도화하려면 이번 발표가 총선용 구호에 그치지 않고 정교한 정책 집행으로 실현돼야 한다. 전력 수요·공급 예측과 설비 확충 방안 등을 담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도 발표를 서두르기보다는 정치하게 설계해야 한다. 원전 비중 확대가 예상되는 만큼 가동 후 나오는 사용후핵연료를 저장·처분하기 위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도 하루속히 국회를 통과하길 기대한다.

문화일보 박수진 경제부 차장

 

02.29 “출산율 어디까지 떨어질 수 있나” 세계 실험장 된 한국

▲저출생 여파로 올해 신입생이 없어 입학식을 치르지 못하는 초등학교가 전국 157개교로 집계됐다. 다수는 비수도권에 있었지만 수도권에서도 9개교가 신입생을 받지 못했다. 초등학교 신입생 수도 사상 처음 30만명대로 줄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민경

 

 

지난해 합계 출산율이 0.72명을 기록했다. 2022년 출산율 0.78명 때도 해외 언론과 학자들에게 “한국은 망했다” “중세 흑사병보다 더한 인구 격감”이란 평가를 받았는데 상황이 더 악화된 것이다. 전 세계에서 0.7명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 외에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뿐이다. 한국은 2020년 세계 최초로 출산율이 0.8명대에 진입하는 기록을 만들었다. 2년만에 0.78으로 떨어지더니, 올해는 0.68명으로 떨어져 0.7명대마저 깨고 기록을 다시 경신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저출생국이란 불명예를 안은 한국은 어디까지 출산율이 내려갈 수 있는지, 전 세계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2020년부터 가파르게 줄어드는 인구가 2033년엔 5000만명 아래로 내려갈 것으로 예상된다. 생산 가능 인구(15~64세)는 10년 내 332만명이나 줄어든다. 저출생·고령화로 인한 인구 절벽은 세금 수입을 줄이고 노인 복지, 의료비 등 지출은 급격히 늘려 재정 파탄을 촉발하고, 궁극적으론 국가를 소멸 위기로 내몰 것이다. 모든 수단을 강구해 인구 절벽을 막아야 하는 이유다.

 

정부는 2006년부터 5년 단위로 저출산 고령 사회 기본 계획을 발표하고 16년간 280조원을 쏟아부었지만 출산율 하락을 막지 못했다. 최근엔 기업들이 자녀를 낳은 직원들에게 1인당 1억원씩 파격적인 장려금을 주는 사례까지 등장하고 있지만, 장려금만으로만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세계 최악의 저출생 원인은 모두가 다 안다. 청년 취업이 어렵고, 내 집 마련이 어렵고, 아이 낳아도 보육과 일 병행이 힘들고, 자녀 사교육 부담에 허덕이다 보니 청년들 사이에 결혼을 하지 않거나,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 풍조가 생겨난 것이다. 결혼, 출산, 육아에 대한 부정적 관념을 바꾸지 못하는 한 백약이 무효다.

 

일자리, 부동산, 보육, 교육, 복지 등 모든 국가 정책을 출생 친화적 관점에서 재설계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양육비 부담을 낮춰야 한다. 연금·노동·교육 개혁에서라도 성과를 내 청년 세대에게 희망의 단초라도 보여줘야 한다. 이렇게 절박한데도 저출산 대책은 전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 10년만 더 가면 국민 모두가 피부로 체감하며 놀라는 절망 상황을 보게 될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