危機의 韓半島(外交) 2024-02/
월간조선 02월 호
●미국 내에서 나오는 ‘韓日 우호적 핵무장 허용론’
韓日 등 우호적 동맹의 핵무장을 許하라!
⊙ 북핵으로부터 미국 보호하고 동맹 신뢰 유지에 도움
⊙ 콜비 전 국방부 부차관보, 린드, 프레스 등 전략통들 주장… 트럼프 집권 시 현실화 가능성
⊙ 한국, 잠재적 핵 능력 확보하는 데도 몇 년 걸려
⊙ 냉전 초기 英佛 양국의 핵무장처럼 韓日 핵무장도 中北 견제 지원 효과
⊙ 美 군사력 압도적인 시대 지나가…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 방어에 주력해야
⊙ 중국의 대만 침략과 북한 남침 동시 진행 시, 미국은 대만 방어 우선
金昇泳
1960년생. 서울대 불어교육과 졸업. 美컬럼비아대 석사(국제안보정책), 터프스대 플레처 외교-법률대학원 박사(국제관계) / 《조선일보》 외교·통일 담당 기자·뉴욕특파원, 영국 애버딘대학 정치학과 조교수, 셰필드대 동아시아학과 부교수 역임. 現 일본 간사이외국어대학 국제공생학부 교수(20세기 미국–동아시아 국제정치사)

▲북한이 1월 12일 시험 발사한 신형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 미국에서는 북핵에 대한 대응책으로 한국의 핵무장 논의가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북한의 핵(核)무기 역량이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워싱턴의 전략가들 사이에 한일(韓日) 양국의 핵무장을 우호적으로 허용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는 논의가 일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 능력이 미국 본토의 도시들을 타격할 정도로 고도화될 것이 확실시되는 만큼, 북핵(北核) 위협을 억제하고 뉴욕이나 LA 같은 미국 도시들을 파멸적인 북핵 공격에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일 양국의 핵무장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편이 냉전(冷戰) 시절 영국과 프랑스 양국의 핵무장으로 소련을 견제하는 데 미국이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부족한 국방 예산의 한계 안에서 북한과 중국을 동시에 견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일 핵무장론의 근거
이들 전략가들도 우선은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인 확장 억제를 통해 한국의 안전을 보장하면서 북한의 핵 포기를 유도하기 위한 외교 노력 등을 계속해야 한다고 제의한다. 하지만 북한이 작년 12월 시험 발사에 성공한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 발사 미사일(SLBM) 등을 완성할 경우에 대비, 한일 양국의 핵무장을 허용하는 방안도 현실적 대안 중 한 가지로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근거는 이렇다. 한일 양국 등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들이 자체의 핵무기로 직접 동아시아 지역 안에서 북핵 억지력을 행사하게끔 하는 편이 미국이 제공하는 확장 억제에만 의존하는 방식보다 북핵 도발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핵우산에 의한 미국의 확장 억제 이행이 앞으로 불투명해질 수도 있다는 우려를 반영하고 있다. 또 소련의 핵무기만 대응하면 되던 냉전 시절과 달리, 중국과 러시아라는 거의 대등한 두 핵 강국뿐 아니라 북한과 이란의 핵 미사일로부터도 미국과 동맹국들을 보호해야 하는 새로운 전략 환경의 전개가 관련 논의를 촉발한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북한이나 중국의 핵 공격을 차단하는 미사일 방어체계(MD) 구축도 계속 추진해나가야 할 대책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하지만 여기에는 엄청난 비용 부담이 따를 뿐 아니라 필연적으로 방어망을 빠져나오는 미사일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북한과 중국의 핵 공격으로부터 미국이나 동맹국들을 완벽하게 방어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핵 비확산이라는 원칙론에만 집착할 게 아니라 북한의 핵 위협에 직면한 한국이나 일본에 대해 핵 보유나 준(準)핵 보유 국가로의 이전을 ‘우호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시각이 등장한 것이다.
美 국방 예산 한계가 이유

▲마이클 오핸런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 사진=브루킹스연구소
이 같은 의견을 전직 정책 입안가의 입장에서 가장 명쾌하고 논리적으로 제시한 전략가는 트럼프 정권 당시인 2018년 채택된 미국 〈국방전략문서(NDS)〉 기안을 주도했던 엘브리지 콜비 전 국방부 전략·전력(戰力)기획 담당 부차관보이다. 다트머스대 정치학과의 제니퍼 린드와 대릴 프레스 교수도 2021년 10월부터 같은 주장을 펴왔다.
브루킹스연구소의 마이클 오핸런 선임연구원 역시 작년 12월 미국의소리(VOA) 방송에서 유사한 입장을 시사(示唆)했다. 민주당 계열 싱크탱크에서 대외정책 연구팀장을 맡고 있는 오핸런 박사는 “한국이 핵무기를 개발한다 해서 동아시아 안보가 파탄 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한국이 그런 결정을 한다고 해서 미국이 과거 인도나 이스라엘이 핵무기를 개발한 후 취했던 대응 이상의 제재를 하는 데는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재 국방부의 국방정책위원회 위원이기도 한 오핸런 박사는 “현 단계에서 한국의 핵무기 개발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강조하면서도 “하지만 개인 연구자의 입장에서 한국이 그런 선택을 한다고 해도 이해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세계전략과 전력기획을 전문으로 하는 콜비 전 부차관보와 오핸런 박사 등 전략통들은 미국의 국방예산의 한계를 백악관이나 정치인들보다 훨씬 민감하게 파악하고 있다. 특히 콜비 전 부차관보는 최근까지 바이든 행정부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우선 대응하면서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에서 전개되는 중국의 도전을 대응하는 데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고 지적해왔다.
“대만 유사시 美 승리 보장 어려워”

▲제니퍼 린드 다트머스대 교수. 사진=제니퍼 린드 페이스북
워싱턴에서 1급 전략통들로 꼽히는 콜비와 오핸런 두 인사는 현재 미국의 국방 예산이나 전력 상황은 냉전 이후 미국의 군사력이 정점(頂點)에 달했던 1999년과는 큰 차이가 있다고 지적해왔다. 콜비는 2022년 10월 외교 전문 계간지인 《포린어페어》지 기고를 통해 “중국은 지난 25년간 매년 6~10%씩 국방 예산을 늘려왔는데 최근 경기 둔화에도 군비 증가를 계속해왔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매년 수백 척의 함정을 건조해 배치하는 데 비해 미 해군은 중국의 해양 진출 대응에 필수적인 해군 함정과 장거리 대함(對艦) 미사일 등의 군비를 오히려 줄여왔다. 미 육군과 공군도 대만 방어에 필요한 무기와 부품들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콜비는 중국이 기회가 보이면 대만 침공을 결행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현재 추세가 계속되면 유사시 미국과 동맹국들이 대만의 승리를 보장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비판해왔다. 실제로 중국은 이미 동남 지역의 해안에 밀집 배치한 미사일 전력으로 미국의 항공모함 전단(戰團)의 접근을 차단하는 전략을 완성해가고 있다.
특히 콜비 전 부차관보는 바이든 행정부처럼 민주주의의 확산 등 가치(價値)동맹을 주창하며 미국의 공약과 부담을 확대시키는 욕구를 자제해야 한다고 역설해왔다. 그보다는 대만과 한국, 일본, 호주, 필리핀 등 스스로 국방에 적극적인 기존의 동맹국들, 그리고 인도와 베트남 같은 우호국들과 강력히 연대(連帶)해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침공이나 세력권 확대를 견제하는 데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동시에 한일 양국 등 미국의 동맹국들도 이제 동아시아 지역에서도 언제든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지정학적(地政學的) 경쟁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인식해야 하며, 역외(域外) 균형자(Cornerstone Balancer)로서 결정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미국을 도와 기여하는 방안을 고심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핵 공유

▲대릴 프레스 다트머스대 교수. 사진=다트머스대
구체적으로 한국의 핵무장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다트머스대학의 제니퍼 린드와 대릴 프레스 두 교수가 가장 먼저 공개적으로 제시했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인 이들은 2021년 10월 《워싱턴포스트》와 지난해 4월 《포린어페어》 기고를 통해 자신들의 제안을 강조했다. 북한의 핵무기 능력의 비약적인 증강에 맞서 효과적인 억지력을 확보하고 한미동맹이 상호 신뢰성의 위기에 빠지는 사태를 막으려면 한국의 자체 핵무장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두 교수는 북한 미사일의 사거리(射距離)와 신뢰도, 숫자가 지속적으로 증강되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미국 도시들을 북한의 수소폭탄 공격에 노출시키지 않으려 하다가 미국이 제대로 확장 억제를 제공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점을 솔직하게 예측했다.
당장 한국의 핵무장을 허용하면 외교적으로 큰 파장이 예상되므로 미국의 전술 핵무기를 한국에 재배치, 공동 관리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식 핵 공유(共有) 체제를 만드는 방법도 대안의 하나로 제의했다. 그러나 핵 공유를 해도 결국은 미국이 한국 측에 전술핵 사용결정권을 넘겨주지 않으면 한국이 단독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없다. 당연히 미국의 태도가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는 만큼, 핵 공유 방식으로는 대북(對北) 억지력을 행사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두 교수는 우려했다.
따라서 두 교수는 1960년대 초 영국·프랑스 양국의 핵무장 때처럼 한국의 독자 핵무장을 허용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게 북핵을 억지하고 한미동맹이 상호 신뢰성의 위기에 빠지지 않게 하는 해법이라고 제의했다.
북한은 이미 1992년 남북 비핵화 합의와 1994년 제네바 미북 합의뿐 아니라 수많은 유엔안보리 결의들을 위반해왔다. 때문에 한국은 실존적 위협에 맞설 자위(自衛) 차원에서 핵비확산조약(NPT)을 탈퇴할 권리가 있다고 두 교수는 강조한다. 그들은 국제법을 준수해온 한국의 핵무장 결정에 대해 국제사회가 원전(原電)용 핵연료(저농축우라늄)의 전면 공급 중단과 같은 대대적인 경제제재를 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산–랜드 보고서

▲2023년 7월 18일 한미 핵협의그룹(NCG) 출범 회의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했다. 사진=대통령실
나토식 핵 공유와 유사한 방식은 작년 10월 발표된 아산정책연구소와 미국의 랜드(RAND)연구소 공동보고서에서도 제의됐다. 이 보고서는 단계적으로 먼저 한국 내 전술핵무기 저장시설을 현대화하고, 두 번째 단계로는 태평양에서 작전 중인 전략핵잠수함에 적재된 미국 핵무기의 일부를 북한을 겨냥토록 제의했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해체 대상인 미국의 전술핵무기 B61폭탄 100여 기(基)를 현대화하는 비용을 한국이 부담하는 대신 미국은 이들 전술핵들을 미국 영토 안에 보관하면서 신속히 한국에 배치하는 태세를 유지하는 것이다. 마지막인 네 번째 단계에서는 미국이 제한된 핵무기(약 8~12기)를 한국에 전개해 한국 내 핵무기 저장시설에 배치한다는 건의였다.
아산-랜드 보고서는 이 같은 단계를 밟아가면서 한미 양국은 핵무기 운용 지침을 제정하고, 이를 정기적인 전략기획용 모의 연습(Table-top exercise·TTX)을 통해 점검하며, 한미연합사령부의 분쟁대응기획(conflict planning)의 초점을 기존의 재래식 전력 중심에서 핵전력까지 포함한 통합 운용으로 이전하도록 건의했다. 한마디로 한국이 독자 핵무장을 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한국이 비용을 분담하는 방식으로 미국 전술핵을 단계적으로 일부 재배치해 북핵 억지력을 명확히 확보해나가자는 의견이다.
한미 양국 정부는 작년 4월 워싱턴 한미정상회담에 따라 핵협의그룹(NCG)을 설치해 확장 억제의 강화 방안 등을 협의해오고 있다. 하지만 아산-랜드 보고서 수준까지의 전술핵 재배치나 핵 공유 등의 방안까지 논의하고 있는지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작년 7월과 12월 양국 국가안보실(NSC) 고위 인사들 간의 두 차례 회의와 수차례 실무급 회의를 통해 전략 정보 공유 방법과 위기 시 핵 협의 절차, 핵 및 재래식 전력의 통합 운영하방식 등을 협의해온 정도로 알려져 있다. 앞으로 한미 NCG가 전술핵 재배치와 핵 공유 등의 방안까지 협의해갈 가능성도 있지만 현재까지 바이든 행정부는 이런 문제 등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
공화당계 군사·안보 전략가인 콜비는 누구?

▲엘브리지 콜비 전 미 국방부 전략·전력 담당 부차관보. 사진=퍼블릭 도메인
이처럼 여러 방안이 제의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에 대한 ‘우호적 핵 확산’ 허용을 정책 대안의 한 가지로 고려해야 한다고 가장 논리적으로 주장한 전문가가 콜비 전 부차관보이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 당시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지냈던 윌리엄 콜비의 손자인 그는 하버드대와 예일대 법과대학원을 졸업한 후 20년 이상 국방·정보·외교 분야의 실무 경험을 쌓으면서 미 의회와 싱크탱크 등에서 전략통으로 성장해왔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 당시인 2017년부터 2018년까지 국방부 부차관보로 근무했다. 그때 그는 미국의 세계 전략과 중장기 전력 형성을 담당하면서 4년마다 채택되는 〈국방전략문서(NDS)〉 기안을 주도했다. 중국을 미국에 대한 가장 큰 위협으로 규정한 이 전략 문서의 핵심 내용은 민주당 정부에서 입안된 2022년판 〈NDS〉에서도 그 틀이 유지되고 있다.
공화당계 전략가인 콜비는 민주당 행정부가 등장한 이후 웨스 미첼 전 국무부 유럽 담당 차관보와 함께 ‘마라톤 이니셔티브’라는 네트워크형 연구소를 운영하며 자신의 전략 구상을 열정적으로 설파해왔다. 그는 자기가 국내외 미디어 인터뷰 등 전략 홍보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에 대해 “미국민들뿐 아니라 동맹국의 지도자와 국민들도 극적으로 변화된 국제안보 환경을 이해하고 공유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콜비는 미중(美中)경쟁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 건의에 초점을 맞춘 《거부전략: 대국 간 분쟁 시기를 맞은 미국의 국방전략》이라는 책을 2021년 예일대 출판부를 통해 발간했다. 이 책은 《월스트리트 저널》이 뽑은 2021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저서에 담긴 건의들은 냉전 초기 대(對)소련 봉쇄 전략을 입안했던 조지 케넌이나 폴 니츠의 저술과 건의에 필적할 정도의 통찰력을 담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작년 가을 국내에서도 번역된 이 책은 미국 공화당이 우크라이나 원조에 올인해온 바이든 행정부의 노선에 반대하는 근거로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한국, 입장 분명히 해야”
최근까지 강연이나 인터뷰 등을 통해 밝혀온 콜비의 주장들은 미국의 국방 예산의 한계와 동맹국들의 적극적인 기여 등을 중시한다는 면에서 미국 제일주의를 표방해온 도널드 트럼프식 대외노선과도 보완적인 측면이 강하다. 공화당계 군사·안보전략가인 그는 올해 연말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나 다른 공화당 후보가 당선될 경우 다시 국방부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의 고위급으로 복귀해 핵심적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까지 콜비가 밝혀온 전략의 핵심적인 내용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1. 현재의 미국은 1999년 당시처럼 세계 유일의 초(超)강대국이 아니며, 150년 만에 처음으로 거의 대등한 경제력을 가진 중국이라는 대국의 도전을 받고 있다. 미국 지도자들은 이 같은 현실을 직시하며 최대한 국력의 낭비와 분산을 막고 중국에 대한 견제에 집중해야 한다.
2.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안보와 자유에 대한 가장 크고 위험한 도전은 중국의 패권(覇權) 추구이다. 특히 전 세계에서 가장 경제활동이 활발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패권 추구는 미국과 동맹 및 우방국들의 자유와 안전에 지속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다.
3. 유럽 역시 미국의 안보에 중요하지만, 유럽 지역에는 영국·독일·프랑스 등의 유능한 동맹국들이 있어 반드시 미국이 주도하지 않아도 독자적 노력으로 러시아의 도전에 대응할 수 있다.
4. 중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친미(親美)국가들을 각각 시차를 두면서 외교·경제·군사적으로 각개 공략해 반중연대(反中連帶)를 격파해가는 ‘순차적이며 집중적인 전략(Focused sequential strategy)’을 구사하고 있다. 이에 맞서 미국은 한국·일본·호주·필리핀 등의 동맹국들과 대만, 그리고 인도·베트남 등의 우호국들과 연대해서 중국의 패권 장악을 거부하는 전략으로 대처해나가야 한다.
5. 미국은 군사적으로 결정적인 역외 균형자로서 역할을 수행해갈 수 있음을 인도-태평양 지역의 동맹국과 우방들이 신뢰하게끔 이 지역에서 핵무기 및 재래식 전력에서 대비 태세를 유지해야 한다.
6. 미중경쟁의 구도 아래서 한국은 어느 쪽을 택하고 있는지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애매한 입장을 취하며 동맹과 중립 사이를 오가다가는 우크라이나처럼 군사 침공을 당하게 될 위험이 높아진다.
“한국군, 북한 위협 대응이 우선”
콜비는 “지난 11월 샌프란시스코 미중정상회담에도 불구, 중국의 군사력 증강은 멈추지 않고 있다”면서 “앞으로 중국은 한국에 대해 군사적 강압이나 그 이상을 실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작년 12월 2일 VOA 방송에 출연한 콜비는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이 대규모로 대만으로 투입되지는 않겠지만 “탄약이나 병참 지원이 필요해지면 반드시 한반도에서 이동시킬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한국군은 구조상 대만 방어에 직접 기여하는 것은 어렵다”면서 “한국군은 북한이라는 큰 위협에 대응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콜비는 “만일 중국이 ‘우주적 주사위’를 던져 미국과 전쟁을 시작한다면, 미국의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해 한반도에서 북한이 충돌을 일으키도록 유도할 것”이라면서 “그럴 경우 미국의 우선순위는 중국에 대한 군사 대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따라서 한반도와 그 주변에 배치되는 미군이 주로 중국을 향해야 한다는 것을 한국이 이해해야 한다”며 “주한미군은 유연하게 운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한국 방어에 집중하다가 대만해협에서 패배하는 것을 “미국 국민들은 수용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중국과의 전쟁에서 “미국과 일본, 대만이 패배하게 되면 중국이 지배하는 지역 안으로 미국이 군사력을 투입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한국의 안보도 매우 취약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같은 대담에 출연한 마크 케네디 윌슨센터 연구소장은 “한국도 미국처럼 대중(對中) 경제 의존을 줄이는 방향으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해야 한다”며 “화웨이폰 등 최근 중국 제품이 채택한 첨단 기술이 한국에서 지원한 것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대중 첨단 투자에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제공격·MD 구축 모두 한계

▲한국 핵무장 허용론이 나오는 것은 사드 등 기존의 미사일 방어(MD)체계의 한계 때문이다. 사진=미 국방부
콜비는 이날 대담 도중 “적들이 더욱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기 때문에 세계 곳곳에서 동시 다발적인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며 앞으로 국제 정세는 더욱 악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바이든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막대한 전쟁 자금을 지원했기 때문에 중국의 도전에 대응할 미국의 방위산업 기반은 더욱 나빠졌다”면서 “제가 한국이라면 지금 우크라이나에 무엇을 제공하는 것을 매우 조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시각을 가진 콜비 전 부차관보가 어떤 논리로 한일 양국 등 동맹국들에 대한 핵무장 허용을 정책 옵션 가운데 하나로 고려해야 한다고 했는지 살펴보자.
그는 저서에서 만일 대만 문제를 둘러싼 미중전쟁과 북한의 남침이 동시에 일어날 경우, 미국은 대만 방어를 우선시해야 하지만, 미중전쟁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한국을 지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재래식 군사력으로 북한의 남침에 대응할 능력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이 핵 공갈로 한국이나 일본을 위협해 저항 의지를 꺾으려 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런 상황이 벌어져도 북한이 미국의 도시들을 공격할 능력을 갖춘 경우 미국은 북한의 대미(對美) 공격을 우려해 확장 억지 공약의 즉각 집행을 주저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한 가정도 미국의 신뢰도를 추락시키게 된다. 따라서 미국은 자국의 도시들을 북한 핵미사일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한다는 이기적 고려뿐 아니라, 북한에 대한 억지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도 동맹국인 한일 양국이 핵무기를 보유하게끔 허용하는 것을 앞으로 정책 대안 가운데 하나로 고려해야 한다고 콜비는 지적한다. 콜비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북한의 핵무기 위협에 대한 다른 대책으로는 선제공격으로 북한의 핵 위협을 제거하는 방안과 미사일 방어망(MD)을 구축하는 방식이 있다.
선제공격은 미국 스스로 침략국가로 낙인찍히게 된다는 부담이 높다. 실제로 결행해도 미처 파괴하지 못한 북한 핵무기들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북핵 위협을 완벽하게 제거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MD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미국과 동맹국이 모두 부담해야 하지만, 핵미사일 공격이 있을 경우, 필연적으로 소수(少數)의 미사일은 MD방어체계를 뚫고 들어와 미국이나 동맹국의 도시가 타격되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예산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MD체계를 배치해야 하는데 다른 전력 형성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교적 간여도 강조
2021년 저서를 출간할 당시 콜비는 북핵 대응과 관련, 당분간은 외교와 경제 제재 등 가능한 범위 안에 있는 정책 대안들을 함께 추진해나가야 한다고 제의했다. 구체적으로는 북한 핵무기의 비축 규모와 운반 수단인 장거리 미사일의 완성을 최대한 방해 지연시키는 노력을 기울이면서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를 향상시키는 방안을 제시했다. 동시에 북한의 핵·미사일 기술의 향상이 실현되지 않게끔 미사일 기술과 소재 관련 협력을 중국이 제한하도록 유도하면서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외교적 관여를 통해 북한의 고립감을 해소시켜 평양 당국의 핵무장 동기를 줄여가야 한다고 건의했다.
그러면서 이상의 조치들이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 콜비는 한국이나 일본, 또는 두 동맹국 모두에 핵무기가 우호적으로 확산되는 것을 허용하는 방안을 정책 대안의 한 가지로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국이나 일본이 독자적이거나 준독자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면, 미국 도시들에 대한 핵 공격으로 위협해 동맹국에 대한 미국의 확장 억제를 포기토록 유도하려는 북한의 노림수를 차단할 수 있게 된다. 또 한일 양국은 북한의 핵무기 공격에 보복할 수 있는 자체적 핵 수단을 보유하게 되지만, 경제력이 빈약한 북한은 한일 양국으로부터의 보복 핵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미사일 방어망을 구축하기 어렵다고 그는 분석했다.
콜비 전 부차관보도 물론 이 같은 ‘우호적인 핵 확산’ 허용이 동북아에서 진행되면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굉장한 논란과 반향을 부를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이런 선택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치러야 할 비용을 고려하면 냉철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우리의 방어망은 충분”
콜비가 저서 등을 통해 이 같은 제의를 한 지 2년 반 이상이 지났지만 외교적 노력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북한은 작년 12월 18일 고체연료 ICBM인 화성-18호 발사에 성공하는 등 핵무기 능력을 강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조건 없이 북한과의 대화를 모색하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는 실질적인 대북제재를 주도하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유엔안보리도 우크라이나 전쟁과 하마스-이스라엘 전쟁 등으로 인한 상임이사국들 사이의 대립으로 기능 부전(不全) 상태다. 뿐만 아니라 대중 반도체 공급망 봉쇄로 인한 마찰 등으로 미국이 중국에 대해 영향력을 요청할 수 있는 지렛대도 사라진 상태이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오히려 우크라이나 전쟁에 필요한 포탄 100만 발 이상을 제공하는 대가로 러시아의 로켓 기술을 이전받아 미국 본토까지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 능력을 완성해가고 있다. 김정은은 작년 12월 말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 연설을 통해 “유사시 핵 무력을 포함한 모든 수단과 역량을 동원해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할 준비에 박차를 가하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북한의 화성-18호 ICBM 발사 성공과 김정은의 위협에 대해 로버스 수퍼 전 미 국방부 핵·미사일 방어 담당 부차관보는 “이제 북한은 사실상 핵무장 국가”라고 평가했다. 그는 작년 12월 30일 VOA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ICBM 위협에 대한 대응은 단순한 억지 방식뿐 아니라 실제 적 미사일이 발사되기 전에 찾아내 사전에 파괴하는 선제공격, 미사일이 비행하는 동안의 요격, 미사일 방어체계 등의 방식들을 연동해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기까지 미국은 마냥 기다리지만은 않을 것”이라며 “만약 북한이 발사를 시작하면 미국도 대응 발사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수퍼 전 부차관보는 “미국의 미사일 방어는 공격과 방어, 보복 위협의 조합”이라며 따라서 “우리의 방어망은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대국 간 핵무기 경쟁

▲리처드 롤리스 전 미 국방부 아태안보담당 부차관. 사진=조선DB
이날 같은 대담에 출연한 리처드 롤리스 전 국방부 아태안보담당 부차관은 좀 다른 분석을 내놨다. 롤리스는 “2023년 8월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정상회담 당시의 합의로 한·미·일 3국은 이제 걸음마 단계인 미사일 정보 공유를 시작한 단계”라며 “시급히 미사일 방어망 체계의 통합을 추진해나가야 한다”고 권유했다. 한·미·일 세 나라가 미사일 방어망 통합을 위해 필요한 요격 미사일 발사 플랫폼은 물론, 센서의 업그레이드, 요격미사일의 공동 개선 등을 서둘러 함께 추진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롤리스 전 부차관은 또 북한이 “한국은 전술핵 탄도미사일의 타당한 표적”이라고 밝히고 있는 데 대해 “한정된 주한미군 시설을 방어하기 위한 기존의 미군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뿐 아니라 서울을 방어하기 위한 한국군 자체의 사드체계의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 당시 백악관에서 대량파괴무기 비확산 문제를 맡았던 앤서니 루지에로 전 국장은 작년 12월 16일 VOA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북핵 문제를 이미 닥쳐온 대국 간 핵무기 경쟁의 틀 안에서 보고 있음을 시사했다.
“상황이 더 복잡해지고 있고 미국은 전례 없는 일을 하고 있다. 핵으로 무장한 두 경쟁국을 억지해야 하는 일이다. 중국과 러시아를 동시에 억지해야 할 상황에 처한 적이 없었다. 냉전 때는 러시아만 상대하면 됐다. 지금은 불량 정권인 북한이 핵을 보유했고, 이란도 곧 보유하게 될 것이다. 이 네 나라의 핵 프로그램이 미국과 동맹국, 각 지역에 주둔하는 미군을 겨냥하고 있다. 한국, 일본, 중동에서 미국 핵우산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김정은, 현재 상태에 만족”

▲앤서니 루지에로 전 백악관 국장.
백악관 근무 당시 대북제재도 전담했던 루지에로 전 국장은 북한에 대해 바이든 행정부가 아무런 실질적인 경제제재를 취하지 않고 방임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김정은은 현재 상태에 만족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바이든 행정부는 최근까지 우크라이나 사태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라는 두 전쟁으로 인해 북한과는 조건 없이 대화하겠다는 입장에 방점(傍點)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루지에로 전 국장은 특히 중국의 대만 침공이 2025년에서 2029년 사이에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만일 차기 미국 행정부가 북한의 핵 동결 정도를 수용하며 협상으로 문제를 풀어가려 할 경우를 우려했다. 그러면 한국과 일본, 대만 등 동북아 국가들과 중동 국가들이 “미국이 이런 위기 속에서 우리를 보호할 수 있을까”라고 의구심을 갖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인터뷰 도중 루지에로는 “앞으로 다가오는 20년 동안 미국은 동맹국들이 핵무장의 길을 갈 것인지에 대해 그들과 대화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핵무기 확산의 새 국면을 맞고 있는 미국의 고민을 시사한 발언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의 핵무기 위협에 대한 대응 문제는 콜비 전 부차관보가 한일 양국 등 동맹국들의 핵무장을 허용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며 제시한 근거이기도 하다. 작년 10월 발간된 아산-랜드 연구소의 보고서도 중국의 핵무기가 한국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명기하고 있다.
中 재래식 전력, 주변 국가들 압도
콜비는 저서에서 중국과 미국의 동맹국들 사이에서 전쟁이 벌어질 경우 중국이 재래식 군사력으로 대만·한국·일본·호주 등 주변 국가들을 압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한국·일본·호주 등 동맹국들은 미국이 핵무기로 중국을 공격, 자국 영토가 중국에 정복당하는 사태를 막아달라고 요청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중국은 이미 선제 핵 공격을 받고도 미 본토에 보복 공격을 가할 충분한 핵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미국은 동맹국들의 대중 핵 공격 요청을 수용하지 못하고 주저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처럼 미국의 핵 확장 억제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상황이 예상되거나 실제 벌어지게 될 경우, 중국은 하나씩 하나씩 동아시아 지역 내 미국의 핵심 동맹국들을 반중연대에서 잘라내 이탈시키거나 실제 전쟁을 통해 정복해나갈 수 있다.
콜비는 이 같은 우려가 현실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미국은 한국·일본·호주 등 미국의 동맹국들의 핵무장을 허용하는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들 동맹국이 자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될 경우, 재래식 전력으로 중국의 공격에 맞서지 못하고 국가 존망의 위기를 맞게 되면 한국·일본 등 동맹국들이 중국에 핵 공격을 가하면서 항전(抗戰)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럴 경우 중국도 이들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하게 되는데, 그러면 주한·주일미군 등도 중국의 핵무기 공격에 피해를 입게 된다.
일단 한국이나 일본에 주둔하는 미군이 중국의 핵 공격을 받게 되면 미국 역시 자체 핵무기를 사용해 중국을 공격하는 데 주저하지 않게 된다. 콜비는 이 같은 전쟁 시나리오는 실제 벌어지지 않더라도 미국이 중국에 대해 주저 없이 핵무기 공격을 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감히 중국과 중국의 준(準)동맹국(북한·러시아 등)들이 미국과 동맹국들에 대해 전면전을 시작할 가능성을 낮추는 전쟁 억지 효과를 동반한다고 분석했다. 콜비는 바로 이 같은 이유 때문에 냉전 시절 미국이 우방국인 영국과 프랑스의 핵무장을 반대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대만 포기·한국 중립화 제안도 나와

▲윤석열 대통령은 2023년 7월 19일 부산에 입항한 미국 오하이오급 핵추진 탄도유도탄 잠수함(SSBN) 켄터키함(SSBN-737)을 방문했다. 사진=뉴시스
제니퍼 린드와 대릴 프레스 교수가 권유하는 한국의 자체 핵무장의 필요성도 같은 논리에 기초해 있다. 전차군단 등 옛 소련 및 바르샤바조약기구의 압도적인 재래식 전력에 맞서서 미국이 서유럽을 방어할 때 영국·프랑스 두 우방국의 핵무장이 전쟁억지력을 높이는 효과를 거뒀다는 경험을 미국의 전략가들은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책입안가로 활동했던 콜비는 이 같은 전략을 대단히 조심스럽게 제시한다. 늘 “최대한 다른 노력들을 기울여보고 나서 최후의 수단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전제를 추가하고 있는 것이다.
콜비의 저서에 담긴 건의 등에 대해 한국과 일본, 호주 등 미국의 동맹국들이 반드시 중국과의 전쟁까지 각오하며 미국 편에 남아 있으리란 섣부른 전제를 깔고 있지 않으냐는 등의 지적도 나오고 있다. 또 워싱턴 전략가 특유의 비도덕적인 가상 시나리오라는 비판도 나왔다. 앤드루 크레피너비치 박사나 호주의 휴 화이트 박사 등 일부 전략가들은 미국이 승산이 낮은 대만을 아예 포기하고 한국의 중립화를 지지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는 제의를 내놓기도 했다.
실제로 콜비의 건의들은 아직까지 민주당인 바이든 행정부의 동아시아 정책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국제법과 규범에 기초한 국제질서 유지를 중시하는 바이든 외교팀은 여전히 한국의 핵무장론을 강하게 경계해왔다. 대신 작년 4월 워싱턴 정상회담에 따라 시작된 한미 핵협의그룹(NCG)을 진행하면서 미국 핵잠수함들의 부산 기항(寄港) 등의 방식으로 미국의 확장 억제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정도의 대응으로 북한의 미사일 실험 등에 대응해오고 있다.
일부 전 미 국무부 관계자들이나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 등은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시작할 경우 한미동맹은 위기를 맞게 되고 한국 경제도 즉각적인 경제제재로 파탄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그러나 냉철히 분석해보면 이 같은 한국 핵 반대론자들은 콜비가 제시한 한일 등 동맹국에 대한 ‘우호적 핵 확산론’의 근거나 필요성에 대한 다른 대책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국방 예산상의 한계와 중장기적으로 미국의 확장 억제만으로는 북한과 중국의 핵무기를 미국과 한일 양국이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을 경우 풀어야 할 군사적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콜비가 제시한 ‘우호적 핵 확산 허용’ 외에 다른 대안이 있다면, 북한의 6·25 남침 직후 트루먼 행정부가 긴급 집행했던 〈국가안보정책문서 68호(NSC68)〉처럼 대대적으로 국방예산을 증액해 미국이 핵무기와 재래식 전력을 모두 준전시(準戰時) 수준으로 늘려가는 방안이 있다.
하지만 더 이상 타국의 전쟁에 개입하는 것을 반대하는 미국 내 여론이나 경제 사정, 그리고 고립주의적 색채가 짙은 다수당인 공화당 측의 분위기로는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강화되고 있는 중국-러시아 접근과 북-러 군사 협력이 강화되는 상황이라 1970년대 데탕트 시기처럼 미국이 중-러 분리를 추진하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트럼프의 예측 불허 선택 가능성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만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될 경우, 김정은과의 ‘빅 딜’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 사진=AFP/연합뉴스
이 같은 사정들 때문에 결국에는 ‘콜비 구상’처럼 소수의 신뢰 가능한 우방국에 핵무기 확산을 허용하는 방안이 차기 미국 행정부 등에서 현실적인 대안의 한 가지로 검토될 수 있는 상황이다. 특히 트럼프가 재선될 경우 한미동맹 자체를 폄하하는 트럼프의 인식과 콜비식 현실주의가 결합해 한국에 대한 대대적인 방위비 분담 요구로 다가올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행정부 당시 두 번째 국방장관을 역임했던 마크 에스퍼의 2022년 회고록에는 문재인 정권의 친중(親中)·친북(親北) 노선과 사드 기지 홀대 등을 보고받은 트럼프가 주한 미 지상군을 당장 철수시키자고 나섰지만 겨우 만류했다는 사정들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올 연말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이 승리하면 방위비 분담금 증액과 주한미군 재편 등을 놓고 한미 관계가 다시 마찰 국면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그때쯤이면 중국과 러시아가 강화된 북한의 핵 능력을 미국의 책임으로 돌리면서 북한이 주장하는 북미 간 핵군축 협상을 응원할 가능성도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대북 안보리 제재를 거부하면서 한반도와 주변 해역, 한반도 유사시 지원기지인 일본 내 미군기지 등에 미국의 핵무기 반입을 저지하려는 북한의 외교 공세를 지원하게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김정은과의 ‘빅 딜’을 선호하는 트럼프가 예측불허의 선택을 할 가능성도 우려된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결국 미국이 한국의 핵 공유나 한국의 핵무장을 허용하는 노선을 택하면서 한미동맹을 재조정하려 할 가능성도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 입장에서는 당장은 한미 핵협의 그룹과 한·미·일 공조를 계속해야 하겠지만, 최대한 잠재적인 핵무장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가능한 준비들을 갖춰 나가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잠재적 핵 능력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 사진=조선DB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정책실장과 외교장관을 역임했던 송민순 전 장관은 2023년 1월현재 일본이 확보한 수준으로 몇 달 안에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출 수 있게 준비해야 한다고 제의했다. 과장 시절부터 ‘자주외교관’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던 그는 “한미동맹에만 모든 운명을 맡기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지적했다. 주일대사를 역임했던 신각수 전 외교차관도 작년 초부터 같은 제의를 해왔다. 이명박 정부 당시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을 지낸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대표도 같은 건의를 2022년 자신의 저서인 《대통령의 외교안보 어젠다》와 칼럼 등을 통해 밝혀왔다.
그러나 국내 정계나 여론에서 높아지는 핵무장론에 비해 잠재적인 핵 능력을 갖춰나가기 위한 실질적인 준비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는 않고 있다.
일본의 경우 1967년 12월 이후 비핵 3원칙(핵무기의 제조·보유·반입 금지)을 천명해온 데다 미국 등과의 원자력 외교의 성공으로 핵연료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 등의 권리를 확보했다. 우주로켓과 인공위성 기술의 발전도 거듭해왔다. 일본은 결정만 하면 신속하게 핵무장에 들어갈 수 있지만, 제2차 세계대전 말 원자탄 피폭(被爆) 경험과 후쿠시마 원전 폭발 등의 영향으로 국내 여론이 핵무장에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대만해협의 위기 등으로 인해 2022년 12월부터 5년 내 국방 예산을 두 배로 증액기로 했다. 적국의 미사일 공격이 임박해 보일 경우 적 기지를 선제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의 도입과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잠재적 핵무장 능력 확보, 수년 걸려”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실제 핵무기 보유가 아닌 잠재적인 핵무장 능력을 확보하는 데만도 수년의 시일이 걸린다고 한다. 결정만 하면 금방 핵무장이 가능할 것 같은 국내 일각의 발언과는 사뭇 다르다. 이런 가운데 그동안 좌파 정부는 북한의 눈치를 보느라, 우파 정부는 미국 측 눈치 보느라 핵 잠재력 확보에 나서지 못해왔다. 현직에 있는 고위 공직자들은 곧 다가올 개각(改閣)이나 인사 개편을 우선시하는 분위기라 누구도 불편한 얘기를 먼저 꺼내려 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핵탄두 제조에 필요한 핵물질을 확보하는 첫 번째 방식은 국내 원전에서 나오는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해서 얻는 플루토늄 추출이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 박정희 정권이 시도하다 포기했던 핵 재처리 공장은 바로 건설을 시작하는 순간 핵무기 개발로 의심받게 돼 경제제재를 부르게 되기 때문에 핵비확산기구(NPT) 회원국인 한국 입장에선 불가능한 선택이다. 또 경제적 타당성도 낮고 고위험 시설인 재처리공장 건설을 수용할 지방자치단체를 찾기도 어려울 것이다.
핵물질 확보를 위한 다른 방식은 발전용으로 사용되는 우라늄에 대한 농축이다. 총 25기(基)나 되는 국내 원전들은 저농도 우라늄을 연료로 사용하는데, 천연우라늄을 농축하는 기술은 핵무기용 고농축 우라늄을 만드는 기술로 연계되기 때문에 한국은 저농도 우라늄 전량을 해외에서 수입해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소요 전력의 30%를 원전이 생산하는 현실이라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도 농축 기술 및 관련 시설을 확보해야 하는 명백한 경제적 이유가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도 같은 이유로 작년부터 우라늄 농축을 시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조용히 가능한 범위 안에서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사진=조선DB
한미원자력 협정이 우라늄 농축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도 있으나, 농축에 사용되는 천연우라늄을 미국에서 수입하거나 미국발 원천 기술이 포함된 장비를 사용하지 않으면 저촉되는 일이 없다고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말한다.
일단 농축 기술을 확보하고 나면 핵탄두 제조에 필요한 농도까지 순도를 높이는 데는 문제가 없으므로 핵 잠재력 확보에 기여하게 된다. 천 전 수석은 반드시 평화적 목적의 농축임을 천명한 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으면서 투명하고 적법하게 추진해볼 수 있는 방안이라고 했다.
하지만 일본·북한·이란 등 우라늄 농축을 시도한 나라들이 모두 초기 수년간은 실패를 거듭한 사례를 볼 때 당장 시작해도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에 대비하기엔 시간이 부족한 실정이다. 국내 미사일 기술은 한국형 3축(軸)체계 등을 개발하면서 현무 시리즈 등이 큰 진전을 보였다. 앞으로 미사일에 핵탄두를 부착하는 탄두 소형화 기술 등을 축적하는 등의 잠재적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우라늄 농축 문제 등과 관련해 한 전직 인사는 오히려 미국 측 관계자들도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공식 입장을 애써 문의하지 마라”고 충고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공개적으로 한국 정부나 언론이 문의해오면 핵 확산 방지를 주도해야 하는 미국 입장에서는 당연히 목소리 높여 반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실정임을 헤아리고 한국의 기술 확보가 필요하다고 국가적 판단이 설 경우 조용히 가능한 범위 안에서 관련 기술들을 확보해나가라는 시사인 셈이다.
주변국 자극·포퓰리즘 삼가야

▲2017년 9월 5일 보수단체가 개최한 정부의 핵무장 결단 촉구 집회. 잠재적 핵 역량을 갖추는 과정에서 포퓰리즘은 자제해야 한다. 사진=조선DB
우리 정부가 잠재적인 핵무장 역량을 실질적으로 확보해나가려면 정권 차원의 기획력과 관리 능력, 그리고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1970년대 초 일방적인 주한미군 철군에 대응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의 결단 아래 오원철 당시 제2경제수석비서관을 중심으로 핵무기 및 미사일 개발을 추진했던 예도 참고가 될 수 있다.
20세기 초 미국의 부상(浮上)을 이끌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대외 정책의 성공을 위해서는 “말은 부드럽게 하되 실력으로 뒷받침해야 한다(Speak Softly but Carry A Big Stick)”고 말하곤 했다.
잠재적 핵 역량을 최소한 일본만큼이라도 확보해두려면, 외교·안보 분야뿐 아니라 과학기술 및 관련 산업 정책들을 빠른 시일 안에 체계적으로 입안해 조용히 추진해나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주변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하는 발언이나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적인 대중운동들은 자제해야 한다.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인내심 있게 추진하는 노력을 정부와 여야(與野) 정치권이 함께 기울여야만 가능한 과제일 것이다.⊙
●인터뷰 | 월레스 그렉슨 前 미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차관보
“트럼프 재집권, 동맹 관계 영향 안 줄 것”

▲사진=월간조선
월레스 그렉슨(Wallace Chip Gregson) 전(前) 미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차관보는 고조되는 북·중 위협에 대해 “한·미·일 삼각 공조로 풀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만일 트럼프가 재집권하더라도 삼국 간 관계는 유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차관보(2009~2011)를 맡았던 그는 예비역 해병 중장으로 주일(駐日) 해병대 사령관(2001~2003)과 태평양 미 해병대 중앙사령관(2003~2005)을 역임했다. 주일 미군 해병대 및 미 해병대 중앙사령부가 한반도 작전도 관할하는 만큼 북한 및 한반도 상황에 정통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에서 열린 ‘국제자유네트워크 2024’ 세미나 참석을 위해 방한(訪韓)한 그를 지난 1월 11일 만났다.
― 우선 올해 한반도 정세(情勢)를 전반적으로 어떻게 보고 있나.
“한국은 북한 세력의 움직임에 늘 강도 높은 경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한반도 상황은 사실 지난 몇 년간 변하지 않았다. 늘 위기였다. 최근 김정은과 김여정이 말도 안 되는 도발적인 언행을 하고 있는데, 이게 북한 정책의 변화인지, 여동생을 후계자로 만들기 위한 일종의 그림인 건지 당장 해석하기는 쉽지 않다.”
“김여정, 김정은보다 더 악랄”

▲월레스 그렉슨 전 미 국무부 전 차관보는 김여정을 김정은보다 더 위험한 인물이라 평가했다. 사진=조선DB
― 천안함 폭침을 주도했던 김영철과 목함지뢰 사건을 주도한 이영길·박정천이 지난해 일선에 복귀했다. 어떤 신호로 해석하는지.
“북한은 철저히 김정은 1인 중심 체제다. 미래에 아마도 김여정이 될 수 있겠지만, 지금은 김정은 한 사람이 모든 걸 결정한다. 그 어떤 지휘관이라도 그의 명령에 따라 움직일 뿐, 주도성을 가질 수 없다. 누가 일선에 복귀하든, 김정은만 보면 된다는 뜻이다.”
― 김여정을 차기 지도자라 생각하는 건가.
“북한은 워낙 ‘비밀의 땅’이다. 김여정일지, 김주애일지, 다른 누구일지 아직 판단할 수 없다. 분명한 건 김여정은 오빠보다 더 악랄하다는 거다. 만일 김여정이 된다면 상황은 지금보다 위험해질지도 모른다.”
― 한반도를 비롯한 인도-태평양 지역의 군사 충돌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전망하나. 작년 12월 28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프간과 대만, 한반도를 올해 분쟁 위험 지역으로 꼽았다.
“아프간, 대만, 한반도의 분쟁 위험, 군사 충돌 가능성 또한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전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러시아는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불만이 많다.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미국과 연결고리가 있는 여타 국가와 관련한 러시아 지도부의 도발적 발언은 자주 있는 일이다. 반미(反美) 선동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
“핵 재처리, 신중하게 접근해야”
북핵 위협이 고조됨에 따라 정치권 일각에서는 확장 억제를 넘어 자체 ‘핵 잠재력’을 키워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지난 1월 8일 국회 조태열 외교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박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핵 잠재력 확보를 위해 우라늄 농축과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를 일본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하도록 미국과 적극 교섭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조 장관은 “핵 농축과 재처리는 핵확산방지조약(NPT)과 민감성이 있는 만큼 최적의 현실적 방안이 뭔지 신중히 검토하겠다”며 “협정의 틀 속에서 협의할 수 있을지 보겠다”고 했다.
― 미국이 한국에 최소한 일본 수준의 플루토늄 재처리를 용인할 가능성은.
“‘최소한 일본 수준’이라고 말하는 한국의 입장을 잘 알지만, 플루토늄 재처리는 절차상 매우 까다롭고,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에 상당히 신중히 접근해야 할 문제다. 미국은 이미 대규모 핵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만일 북한이 동맹국 혹은 우호국, 특히 한국을 공격할 경우 그들을 파괴할 수 있는 확장 억제(extended deterrence)를 이미 갖고 있다.”
― 전술핵무기 배치는 어떻게 보나. 브루스 베넷 랜드(RAND)연구소 박사는 “미국의 모호한 핵우산은 북한을 억제하지 못한다”면서 “한반도에 전술핵 배치를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주장을 이해는 한다. 한국이 이를 수십 년간 논의했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전술핵의 한국 땅 배치는 군사적 이점이 없다. 미국의 핵무기는 (미국) 본토에 있으나, 한국에 있으나 북한을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의 차이가 없다. 어디서든 북한에 도달할 수 있고, 언제든 준비돼 있는데 굳이 천문학적 비용을 추가로 들일 필요가 없다. (전술핵 배치가) 북핵 대응에 효과적인 방법인지에도 의문이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한국 정부가 한국에 배치해야만 하는 진정한 ‘정치적 필요성’이 있다면 가능할 여지는 있다. 이때 전술핵무기는 한국산이 아닌 미국의 것이어야 한다. 플루토늄을 보유하더라도, 백지에서부터 무기 생산에 나서는 건 쉽지 않다.”
“김정은 제거 실익 없어”

▲지난해 6월 16일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 미국 해군의 오하이오급 핵추진 순항유도탄 잠수함(SSGN) 미시간함이 입항하는 모습. 사진=조선DB
― 북한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도발과 관련, 중국 정부는 관련된 각 측이 긴장 고조 행위를 하지 말고 ‘대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화로 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나.
“‘북한을 자극하는 것은 결국 남한’이라는 그림을 그리려고 하는 중국의 전략이 담긴 발언이다. 크게 신경 쓸 언사가 아니라 생각한다.”
― 지난 2017년 9월 14일 대니얼 러셀 전 미 국무부 차관보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언젠가 중국의 한 예비역 고위 장성이 내게 ‘왜 미국은 김정은을 제거하지 않느냐’고 묻더라”고 말했다. 이 장성의 말처럼 미국이 김정은을 제거하지 않는 이유는 뭔가.
“우선 제거 후 얻는 실익(實益)이 없어서다. 이후 누가 그 자리를 인계받겠나. 만일 김여정이라면 과연 개선된 결과일까. 또한 북한에 지속적으로 돈을 보내 핵 확산과 무기 밀수에 가담 중인 거대 범죄 조직들이 전 세계에 포진해 있다. 이들은 100달러짜리 위조지폐를 놀랍도록 정교하게 생산해낸다. 김정은을 제거한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란 거다. 미국이 국제적 명성에 타격을 입으면서까지 감행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한국의 평화 유지를 위해 이곳에 주둔하고 있다. 그런데 먼저 북한을 공격한다면, 국경을 접하고 있는 한국이 더 위험해진다. 중국에도 도발의 빌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 일각에서는 우크라이나와 하마스 전쟁으로 인해 바이든 행정부의 북한 문제 관심도가 상대적으로 약해졌다는 얘기도 나온다.
“두 전쟁이 미국의 북한 감시 능력 감소에 끼친 영향은 없다. 한국엔 여전히 미군이 주둔 중이고, 인도태평양사령부와 한미연합사령부는 한반도 문제에 늘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오히려 진일보했다. 지난 정부(문재인) 때 취소됐던 한미연합훈련이 재개됐고, 현 정부 들어 한미 간 핵협의그룹(NCG)을 신설했으며, 전략핵잠수함(SSBN) 등 미국 전략자산의 정례적인 한반도 전개 확대도 진행 중이다. 실제로 지난해 7월 핵무장잠수함이 부산해군기지에 입항(入港)했고, 전략자산에는 못 미치지만 작년과 올해 핵추진잠수함(산타페함, 미주리함)도 잇따라 한국 해군기지에 들어왔다. 그간의 전례를 깨고 우리 원자력 발전 자산 중 하나를 한국 수역에 반입했다는 건, 그 선박을 온전히 한국 안보에 맡기겠다는 의미다. 이는 상호 간 높은 신뢰를 입증함과 동시에 한미동맹의 결속력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중국에 저항해야 할 때”
― 중국은 ‘유사시 미군이 들어오는 길목’인 동중국해 봉쇄를 준비 중이다. 이에 대한 미국의 대응책은.
“중국이 병력(兵力)을 총동원해 작전을 펼치고 있기 때문에 긴장은 감돌지만,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은 아니다. 여기에 한·미·일 삼각 안보 연대가 굳건해지면서 항공과 해상방어 체계도 한층 강화된 상태라 중국의 해양 도발은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 우리는 동중국해를 통제하려는 어떤 시도도 물리치도록 섬들을 따라 방어선을 구축할 것이다. 이제 중국에 저항해야 할 때가 됐다. 서태평양 지역 병력을 증강시켜야 하고, 철수는 없으며, 동맹국 중 누구 하나라도 취약한 위치에 방치해서는 안 된다.”
한·미·일 지도부는 지난 1월 7일(현지시각) 워싱턴 DC에서 북한의 지속적인 불법 핵·탄도미사일 개발 위협과 러시아와의 군사협력 확대를 규탄하고,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국제법을 무시하는 행위에 함께 대응해나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그러면서 대만해협의 평화 안정의 중요성도 재확인했다. 이는 지난해 8월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에서 인도·태평양(인태) 대화 출범을 약속한 후 첫 대화였다.
― 3국 간 협력에서 가장 중요한 측면을 무엇이라 보나.
“한·미·일은 지난해 12월 19일부터 북한 미사일 경보 정보 실시간 공유체계를 가동했고, 아울러 다년간의 3자 훈련 계획도 공동으로 수립했다. 중국은 한일 관계를 갈라놓기 위한 시도와 더불어 미국을 일본과 한국으로부터 떼놓기 위한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 나라가 안보연대를 구축한 건 의미가 크다. 중국에 억지력(抑止力)을 보여줌과 동시에 평화와 안정을 위한 방공(防空) 및 미사일 방어 네트워크 구축이라는 실리적 측면까지 챙길 수 있어서다. 이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데에는 한국이 일본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손을 내민 덕분도 있다. 굉장히 높이 산다. 한·미·일이 새로운 관계로 도약할 수 있게 됐고, 이는 커다란 진전이다.”
“북·중·러 연대, 서로 신뢰 없어”
― 한반도를 가운데 두고, 한·미·일 대(對) 북·중·러 대립이 고착화되고 있는데, 이는 앞으로 한반도 긴장에 어떤 영향을 줄까.
“북·중·러가 앞으로 어떤 길을 갈지 예측하거나 장담하기는 어렵지만, 이 나라들의 협력은 지속적이거나, 깊이 있지 않다. 겉으로는 협력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서로를 신뢰하지 않는다. 분명한 건 미국은 북한에 대한 강력한 억지력과 신속대응 능력을 꾸준히 유지할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처럼 완충지대에 포격을 가하는 것과 같은,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성가신 사건 이상의 일이 발생하 면 안 된다.”
― 한국의 한 국회의원은 최근 “한·미·일 공조 강화가 북·중·러 밀착을 초래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는데.
“인과(因果) 관계를 거꾸로 판단한 것이다. 북한·중국·러시아의 행동이 우리의 결속을 부추겼다고 봐야 한다.”
― 한국은 중국과 갈등 요소가 있는 한편 협력 요소도 많다. 앞으로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미국도 마찬가지로 갈등이 있지만, 협력 및 경쟁의 측면도 있다는 접근법을 갖고 있다. 한국 또한 눈을 크게 뜨고 이런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제언하고 싶다. 중국은 우리의 친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한국에 이익이 되는 거래를 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많은 미국인이 중국인들의 공작에 휘말려 정보 유출을 당했다. 공자학원, 비밀경찰서와 같은 공작기관도 결코 용납해선 안 된다. 그들을 상대할 땐 중국공산당(CCP)의 규칙이 아닌, 우리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해야 한다. 중국공산당이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변질시키도록 둬선 안 된다. 그들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갖는 게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배우게 해야 한다.”
“주한미군 철수 시나리오 없다”

▲지난해 12월 20일 한·미·일이 제주 동방의 한일 간 방공식별구역(ADIZ) 중첩구역에서 공중훈련을 하는 모습. 사진=합참
― 향후 주한미군이 철수하는 시나리오에는 어떤 것이 있을 수 있나.
“없다. 그런 시나리오는 존재하지 않는다.”
― 과거 몇 번의 위기가 있었는데.
“주한미군 철수는 1970년 후반 카터 대통령의 공약이었지만, 군(軍)과 의회의 반발로 무산됐다. 지난 2020년 트럼프 대통령 또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안을 들고 철수를 언급했지만 한국은 매우 영리하게 협상에 임해 위기를 넘겼다.
물론 앞으로 이런 일은 다시 있을 수 있다. 가령 병력 규모 등 사소한 변화가 있을지라도, 결과는 매번 같을 거라 예상한다. 1950년을 되풀이하는 것은 그 누구도 원치 않는다. 강제 주둔 포함, 모든 동맹은 양국의 주권 원칙에 대한 타협이 필요하기 때문에 한국이 이곳에 미군을 주둔시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를 수행하는 것은 한국에 해를 끼치려는 누군가에게 ‘한국이 이만큼 강력하다’는 사실을 알리는 신호가 될 수 있어서다. 한국의 강력한 지지로 미군은 훨씬 더 강해졌다. 그 점이 늘 고맙다.”
―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북한의 7차 핵실험 도발 가능성이 제기되는데, 대응 방안은.
“김씨 일가는 늘 미국의 공휴일이나 선거 등의 시점을 노렸고, 이때 도발을 해왔다. 한동안 핵실험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11월 전 단행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우선 미국의 핵전력은 항상 북한·중국·러시아에 대해 면밀한 감시를 통해 경계태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의 문제는 상당히 난해한 사안이다. 그간 수차례 제재를 해왔지만 북한은 따르지 않았다.”
“트럼프 당선, 韓·美·日 관계 영향 없을 것”
―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바이든 대통령을 앞선다는 보도와 분석이 잇따르면서 트럼프의 재집권이 한국에 ‘안보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트럼프 당선이 지금의 동맹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거라 보는지.
“트럼프일지도, 헤일리일지도, 또 다른 누구일지 아직 모르지만, 만일 트럼프가 되더라도 한·미·일 관계에는 큰 변화가 없을 거라 예상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취임 1년 차에 미군 부대 철수를 언급한 이후 미국 국민들과 정치인들이 주한미군에 대해 오히려 더 잘 인식하게 됐다.
또한 윤석열 대통령은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든 잘 처신할 거라 생각한다. 고(故) 아베 신조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 선출 당시 발 빠르게 뉴욕으로 갔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그런 예방(禮訪)이 필수는 아니지만, 정치 지도자들 간 개인적 유대를 평가절하해선 안 된다. 윤 대통령도 이를 잘 아는 것처럼 보인다. 선거 직후 첫발을 내딛기를 주저하지 않길 바란다.”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talktome@chosun.com
02.08 “탈북자 북송 말라” 첫 한·중 외교 통화, 만시지탄이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지난 6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첫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외교부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의 통화에서 탈북민들이 강제 북송되지 않고 희망하는 곳으로 갈 수 있도록 중국 정부의 각별한 협조를 요청했다고 외교부가 밝혔다. 조 장관의 구체적 발언 내용이 공개되진 않았지만 한국 외교장관이 중국 외교부장을 상대로 탈북자 강제 북송 문제를 정식으로 제기한 것 자체가 그동안 우리 외교에서 보기 어려웠던 장면이다.
탈북자 북송은 귀국이 아니라 지옥행이다. 수많은 탈북자가 생생히 증언했다. 이것을 막으려면 국제사회와 연대해 중국의 야만적 행태를 끊임없이 고발하는 게 최선이다. 중국은 공산독재 정권이지만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고, 세계와 무역해야 하는 나라다. 국제사회의 평판을 무시할 수 없다. 자유민주 진영이 탈북자 북송을 비롯한 중국의 인권 경시 행태를 ‘네이밍 앤드 셰이밍’(이름을 거론해 망신 주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역대 한국 정부는 중국을 자극하면 탈북자의 한국행에 필요한 협조를 받을 수 없다며 이른바 ‘조용한 외교’를 펴왔다. 그 결과가 작년 10월 탈북자 500~600명 단체 북송이었다. ‘조용한 외교’는 비겁함을 그럴듯한 말로 분식한 것에 불과하다. 말이 외교지 실제론 중국 눈치보기였다.
앞서 정부는 지난달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중국을 향해 “탈북민에 대한 적절한 보호를 제공하길 권고한다”고 했다. 이런 일 자체가 처음이었다. 각계에서 분출한 비판을 의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조 장관의 ‘북송 중단’ 언급도 이런 흐름에서 나왔다. 국제사회와 연대해 이 문제를 계속 물고 늘어지면서 중국으로 하여금 탈북자 북송에 대해 부담을 느끼도록 만들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2-14 해군·해병대, ‘동남아 최대’태국 코브라골드 다국적연합훈련 참가

▲해군의 천왕봉급 상륙함(LST-II)의 4번함인 노적봉함이 항해하는 모습. 해군 제공
장병 330명·노적봉함 파견…상륙·수중침투·수중폭파 익힌다
일본·싱가포르 등 7개국 참가…중국·호주·인도는 인도주의적 지원 훈련
태국에서 열리는 동남아시아 최대 다국적 연합훈련 ‘2024 코브라 골드’에 참가하는 한국군 코브라골드 훈련전대가 14일 부산작전기지에서 출항한다고 해군이 밝혔다.
훈련전대는 해군 140여 명, 해병대 180여 명 등 총 장병 330여명과 4900t급 상륙함인 노적봉함(LST-Ⅱ), 상륙돌격장갑차(KAAV) 6대, K-55 자주포 2문, K-77 사격지휘장갑차 1대 등으로 구성됐다.
코브라 골드 연합훈련은 태국 합동참모본부와 미국 인도·태평양사령부가 1982년부터 매년 개최해 올해로 42회를 맞는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다국적 군사훈련 중 하나이자 동남아 최대 규모의 연합훈련으로 꼽힌다.
올해 훈련은 오는 26일부터 다음 달 10일까지 태국 사타힙, 핫야오, 파타야, 롭부리, 찬타부리, 사깨오, 라용 등 11개 지역에서 실시된다.
훈련을 주관하는 태국과 미국 외에 한국, 일본,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7개국이 정식으로 참가한다. 중국, 호주, 인도는 인도주의적 지원 훈련에 동참한다.
우리 훈련전대는 야외기동훈련을 비롯해 지휘소연습, 롭부리 지역에 학교건물을 신축하는 인도적 민사활동, 사이버 방어훈련 등을 함께한다. 야외기동훈련으로는 ‘결정적 행동’을 포함한 연합 상륙훈련을 하며, 연합해상훈련과 전술사격·소부대전술 등 특수전훈련, 정글 생존훈련과 수중 침투훈련 등을 실시한다.
또 수중건설훈련에서는 다국적 수중건설 요원들이 통합잠수훈련장에서 수중 폭파훈련과 수중무인탐사기(ROV)를 활용한 수중 장애물 제거 훈련 등을 한다.
지휘소훈련을 통해서는 연합참모단이 가상국가 간 분쟁 발생 상황을 가정해 군사작전과 구호 활동 계획을 수립하는 절차를 익히게 된다. 특히 이번 사이버 방어훈련에는 국내에서 원격으로 해군 사이버작전센터 인원이 참가해 공간제약 없이 사이버 공격을 추적하고 방어하는 사이버 작전을 펼칠 예정이다.
아울러 훈련전대는 6·25전쟁 참전함인 태국 해군 쁘라세함 기념관을 방문하고 참전비를 찾아 헌화할 예정이다. 이어 우리 노적봉함을 방문하는 외국군을 대상으로 해군·해병대 장비를 소개하며 한국 방위산업의 우수성을 홍보할 계획이다.
김경호(해군 대령) 훈련전대장은 "우리 해군과 해병대는 한 팀을 이뤄 어떠한 작전환경에도 대응 가능한 연합상륙 작전능력을 배양하고 더 나아가 세계 평화유지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전투 수행능력을 지속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문화일보 정충신 선임기자
02.14 트럼프의 ‘자국우선주의’를 극복하려면
美의 예멘 후티반군 공습 때
빠진 아태 동맹국은 한국뿐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 작전’도
10년째 불참 동맹국은 한국뿐
인간사회도 국제사회도
베푼 만큼 받는 법
트럼프 시대에는 더욱 그럴 것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24년 2월 10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콘웨이에서 열린 대선 캠페인에 참석하고 있다.AFP 연합뉴스
한반도 주변에 ‘위대한’ 국가들이 넘쳐나고 있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일찌감치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기치로 패권 도전을 선언했고,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위대한’ 러시아 제국의 부활을 위해 빼앗긴 땅을 수복하겠다며 3년째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어가고 있다. 그 뒤를 이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MAGA(Make America Great Again)’의 횃불을 들고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백악관 재입성을 향해 진군 중이다.
마치 19세기 제국주의 시대가 부활하기라도 한 듯 한반도가 온통 ‘위대한’ 주변국들에 둘러싸이고 그들이 상호 대립하는 신냉전 체제가 깊어지고 있다. 그 사이에 끼여 상충하는 압박과 요구에 직면하고 있는 한국의 입장은 고달프다.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고 경제는 미국의 적국 중국에 의존했던 모순된 정책은 이제 설 땅이 없고, 한국이 원하건 원치 않건 선택이 불가피한 시대가 왔다. 게다가 당선 가능성이 점증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백악관 복귀가 초래할 ‘미국우선주의’로의 정책 전환은 냉전 이래 70년간 한미동맹의 일방적 수혜에 안주해 온 한국 외교에 심각한 도전이 되고 있다.
한국은 오랜 세월 미국, NATO, 호주, 일본 등으로 이루어진 자유민주진영 동맹 체제의 일원이었다. 미국이 주도해 온 이 동맹 체제는 과거 로마 시대의 동맹 체제와 매우 흡사하다. 공화정 시대 전성기의 로마는 이집트 등 6개 동맹국과 18개 속주로 구성된 연합체였다. 로마는 패권국임에도 불구하고 동맹국 내정에 간섭하지 않고 세금도 받지 않았으나, 동맹국이 침공을 당하면 군대를 파견해 지원했다. 당시 로마가 그런 군사적 보호의 대가로 동맹국에 요구한 조건은 지극히 너그러웠다. 로마가 전쟁에 나갈 때 병력을 제공할 의무와 로마의 다른 동맹국을 침공하지 않을 의무가 전부였다. 그런 너그러운 동맹 조건 덕분에 로마의 패권은 다른 어느 패권국보다 오래 지속될 수 있었다.
그러한 로마식의 개방적 동맹 개념을 승계한 미국은 냉전 시대 40년간 자유민주진영 전체에 막대한 군사적, 경제적 보호막을 제공했고 한국은 그 대표적 수혜국이었다. 그러나 탈냉전 후 30년간 지속된 세계화의 시대에 미국의 일부 동맹국들은 미국의 군사적 보호에 의존하면서도 자국의 경제적 이익 극대화를 위해 미국의 잠재적 적국인 중국, 러시아와 손잡고 그들의 전략적 이익에 봉사했다. 그 대표적 사례는 유럽의 독일과 아시아의 한국이었다. 국력이 점차 쇠퇴해 가는 탈냉전 시대의 미국이 직면했던 이런 배신적 상황에 대해 정면으로 분노의 칼을 뽑았던 것이 트럼프 전 대통령이었다.
‘자국우선주의’라 비난받는 트럼프 대외 정책의 핵심은 미국의 이익이 없는 곳에 일방적 안보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미국의 안보지원을 받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기여를 제공하고 자주국방을 강화하라는 것이다. 그에 대한 동맹국들의 볼멘 불평에도 불구, 미국을 대체할 더 좋은 옵션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 대신 중국이나 러시아의 안보지원을 받으려면 아마도 주권이나 영토를 담보로 제공해야 할 것이다. 또한 ‘자국우선주의’는 세계적 공통 현상이며, 한국도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나라다. 미국의 안보지원을 70년간 받고도 자국의 현안에만 매몰돼 남중국해, 대만 등 미국의 핵심 관심사에 무관심하고 방위비 분담금을 한 푼이라도 더 깎는 게 애국이라 칭송받는 한국도 철저한 ‘자국우선주의’ 국가다.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기간 중 중국의 대만 침공이 현실화하고 북한이 그에 편승해 군사행동을 벌일 경우 미국의 군사지원이 가능할지 걱정하는 이가 많다. 국제사회는 인간 사회와 마찬가지로 베푼 만큼 받는 사회고, 트럼프의 시대엔 더욱 그럴 것이다. 한국 외교가 트럼프 시대의 격랑을 헤쳐가는 데 필요한 지혜는 먼 곳에 있지 않다. 한국민의 세계관 깊은 곳에 자리한 ‘자국우선주의’를 극복하고 우리가 미국에 바라는 만큼의 상응하는 기여를 미국과 국제사회에 제공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이달 초 미국의 예멘 후티반군 공습에는 아태 지역의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도 8개 연합국의 일원으로 동참했다. 파병이 금지된 일본을 제외하면 미국의 아태 지역 동맹국 중 빠진 나라는 한국뿐이다. 미국의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 작전’에 10년째 불참하는 동맹국도 한국뿐이다. 트럼프의 ‘자국우선주의’만 비판할 때가 아니다.
02-14 트럼프 리스크 실체와 두 갈래 대비책
이상현 세종연구소장
2024년 국제 정세에서 트럼프 리스크가 점점 가시화한다. 미국 공화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방위비를 충분히 내지 않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에 대해서는 러시아가 침공하도록 독려하겠다는 취지로 발언해 파문이 일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10일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서 열린 유세에서 러시아가 공격해도 나토 동맹들이 자국 안보를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면서, 방위비를 부담하지 않는 동맹국에 대해 미국이 그들을 보호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뿐만 아니라 오히려 러시아가 원하는 것을 내키는 대로 모조리 하라고 격려할 것이라고 말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회원국 중 한 나라라도 공격받으면 나토 회원국 전체가 대응한다는 게 나토 집단안보 체제의 핵심이다. 집권 당시 나토는 물론 한국과 일본 등 핵심 동맹국들의 ‘안보 무임승차’를 강력히 비판했던 트럼프가 재집권하게 되면 방위비를 이유로 동맹에 대한 안보우산을 철회할 가능성까지 시사한 것이다.
만일 트럼프의 발언이 구체화한다면, 이는 2차 대전 이후 미국 중심으로 형성된 규칙 기반 국제질서의 사실상 종언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자유세계는 국제 안보의 가장 강력하고 중요한 보루 하나를 잃게 된다. 나토의 근간인 환대서양 유대도 약해져 미-유럽의 관계가 전례 없이 소원해질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행정부 때 고위 인사들이 트럼프가 재선되면 나토에서 탈퇴할 것이라고 공언하는 건 이런 걱정이 기우가 아닐 가능성이 큼을 시사한다. 미국이 다시 동맹 경시와 안보공약 무시로 돌아서면 당장 한·미, 미·일 상호방위협정도 존립 근거가 약해진다. 우크라이나와 대만 지원도 위기에 처할 것이다. 국제질서의 파편화와 진영화 추세는 더욱 심해져 세계 모든 국가가 각자도생을 걱정해야 하는 각박한 시대가 재림할 것이다.
동맹국으로서 미국에 안보를 크게 의존해 온 한국은 트럼프 재선 가능성이 커지면서 그 리스크 대비책을 마련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국가안보 대비책의 기본은 자강과 연대다. 한국은 그동안 한미동맹을 중심으로 대북 억지와 격퇴를 도모하는 안보 태세를 유지해 왔다. 트럼프가 복귀하면 미국만 바라보던 안보 태세는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다. 캠프데이비드에서 합의한 한미일 안보 협력도 보장하기 어렵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어떻게 자강력을 강화해 안보 위협에 대처할지를 검토해야 한다. 자강의 방편으로 재래식 억지력 강화는 물론 독자 핵 개발 또는 전술핵 재배치도 검토할 필요가 생겼다. 물론 독자적 핵무장으로 가는 게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안보 상황 변화로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못할 것도 없다.
연대의 방편으로는 동맹과 더불어 우호적인 세력군과의 네트워킹 강화를 모색해야 한다. 트럼프가 재선되더라도 한미동맹이 당장 파탄 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터무니없는 방위비 분담 증액을 요구하거나 주한미군 철수를 빌미로 한국을 압박한다면 동맹의 불협화음은 불가피하다. 한국이 생각할 것은 두 가지다. 미국의 방위비 분담 증액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하는 대가로 무엇을 얻을 것인가. 그리고 미국과의 동맹 신뢰도 저하를 유사 입장 국가들과의 연대를 통해 어떻게 메울 것인가.

문화일보
02-14 미 대통령 바뀌어도, 한미 핵운용 일관성 유지된다

▲서명하는 한·미 핵협의그룹 한·미 핵협의그룹(NCG) 공동대표인 조창래(왼쪽) 국방부 국방정책실장과 비핀 나랑(오른쪽) 미 국방부 우주정책 수석부차관보가 1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인근 국방부 청사에서 ‘NCG 프레임워크 문서’에 서명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 NCG 프레임워크 서명
핵전략 기획·운용 지침 마련 뒤
6월 확장억제 체제 구축 완성
NCG 운영주체 국방부로 바꿔
유사시에 긴밀대응 역량 강화
한·미 국방부가 지난 12일(현지시간) 한·미 핵협의그룹(NCG) 프레임워크 문서에 서명한 것은 NCG의 ‘액션 플랜’이 기존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국방부 손으로 넘어간다는 의미를 갖는다. 최근 북한이 평화통일 노선 포기를 공식화하며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교전국’으로 규정하는 등, 북한의 대남 위협이 가중된 데 따른 대응 차원으로 풀이된다.
14일 국방부에 따르면 이번에 서명된 NCG 프레임워크에 따라 오는 6월 서울에서 개최될 제3차 한·미 NCG 회의는 양국 국방부 주도로 운영된다. 양국은 올해 중반까지 핵전략 기획·운용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이어 6월쯤 확장억제 체제 구축을 완성할 예정이다. 지난해 7월 서울에서 열린 NCG 1차 회의는 ‘기획·플래닝’, 같은 해 12월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렸던 2차 회의는 ‘집행’ 단계에 해당한 만큼 3차 회의에서는 제도화된 NCG의 안정적 관리가 추진될 전망이다. 앞서 2차 회의에선 올해 8월 예정된 자유의방패(UFS) 등 한·미연합훈련에 핵작전 시나리오를 반영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특히 NCG 운영 주체가 양국 국방부로 바뀌면서, 북한의 대남노선 전환에 따른 군사 위협에 대해 더욱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말 “유사시 핵무력을 포함한 모든 역량을 동원해 남조선(한국)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히는 등 대남 위협을 노골화하고 있다. 한·미 양국의 NCG 제도화가 진전됨에 따라 11월 미 대선에 따른 불안정성이 감소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북한의 반발은 우려할 대목이다. 북한은 NCG 2차 회의 뒤인 지난해 12월 17일 밤 동해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했고, 직후 국방성 담화를 통해 “노골적인 핵 대결 선언”이라고 맹비난했다.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NCG를 내실화해 제도적 정착을 도모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날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통일정책포럼에서 “북방한계선(NLL)의 ‘불법·무법’ 규정으로 이론상 북한의 전쟁 가능성 및 핵공격 위협이 상시화됐다”며 “확장억제의 신뢰성을 최고 수준으로 고양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성윤 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실장도 “미국 대선 결과의 불확실성을 감안해 NCG의 제도화를 상반기 이내 마무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재연 기자 jaeyeon@munhwa.com
02.15 核 망각한 트럼프의 ‘김정은 사랑’
지난 한 달간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경선 유세장을 빠지지 않고 찾았다. 연설에서 그가 잊지 않고 매번 꺼내 드는 주제 중 하나는 북한 김정은이었다. ‘스트롱맨(철권 독재자)’ 친구들인 푸틴과 시진핑을 호명하지 않는 날에도 “똑똑하고 터프한 친구(김정은)가 나를 좋아해 4년간 북한이 잠잠했다”고 자랑했다. 유세 현장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엔 판문점에서 만난 트럼프와 김정은이 악수하는 모습이 한참 동안 재생됐다.
트럼프 지지 유세에 나선 측근들도 그를 호출했다. 마저리 테일러 그린 하원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비무장지대를 방문했더니 김정은이 미사일 도발을 멈췄다”고 했다. 트럼프 진영이 묘사하는 김정은은 유독 수동적이다. 트럼프의 리더십 덕분에 김정은이 고분고분하게 협상장에 나왔다는 식이었다. 장남 트럼프 주니어는 “아버지만이 김정은을 다룰 수 있다”고 했다.
유세마다 트럼프·김정은의 ‘브로맨스’가 흘러나오는데도, 고조되는 북핵(北核) 위협이 언급되지 않은 건 아이러니였다. 트럼프는 김정은이 최근 ‘전쟁’ 운운하면서 대남 도발 수위를 높이는 데 대해선 한마디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북의 핵 미사일이 이젠 미 본토를 본격적으로 겨누는데도 지지자들은 김정은을 지칭하는 ‘로켓맨’과 같은 단어가 나오자 히히덕거렸다. 한미 조야에서 ‘김정은이 전쟁을 결심했느냐’를 두고 논쟁이 이어지는 상황을 트럼프가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뤄지지도 않은 김정은과의 ‘평화 회담’을 치적으로 내세우면서도, 임기 전후로 북의 핵·미사일이 더욱 고도화된 현실을 외면하려니 스텝이 꼬인다.
트럼프는 얼마 전 자신이 북핵 폐기를 포기하고 ‘핵 동결’을 통해 대북 제재를 완화할 수 있다는 미 언론 보도가 나오자 즉각 ‘가짜 뉴스’라고 했다. 그러나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트럼프를 잘 아는 한 전직 관료는 “그에게 구체적인 대북 정책, 원칙 같은 걸 기대하는 건 비현실적”이라고 했다. 국내외 정치에 이득이 되는 상황이라면 언제든 핵 동결 등 모든 옵션을 포함한 북한과의 ‘위험한 거래’를 재개할 수 있다고 봤다.
트럼프 1기 미·북 회담 때 몸이 달았던 그를 막판에 제지했던 건 ‘북핵 폐기’라는 원칙을 잊지 않았던 관료들이었다. 그러나 그가 재선에 성공할 경우 북한을 잘 아는 노련한 관료들 상당수가 백악관 문턱도 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북한의 ‘비핵화 쇼’를 막기 위해 눈을 부릅떴던 대북 전문가들 상당수가 ‘충성심(loyalty)’이 부족하다는 이유 등으로 차기 내각 리스트에서 제외됐다는 이야기가 워싱턴 정가에서 파다하다. ‘트럼프 2기’가 현실화할 경우 그의 충동적인 결정에 ‘노’라며 제어할 수 있는 참모는 더욱 찾기 힘들어질 거란 얘기다.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화되기를 가장 바라는 사람이 누구일까.
조선일보 워싱턴=이민석 특파원
02.15 미·일 향한 북한의 직거래 시도…한국 소외돼선 안 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6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코니센터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제1세션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기시다 일본 총리 북·일 정상회담 추진 정황
한·미·일 한목소리여야 북한 대응 효과 배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13일(현지시간) 기시다 총리가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풀어 낮은 지지율 반등을 시도하려는 차원에서 북·일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앞서 기시다 총리는 지난 9일 중의원(하원) 예산위원회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구체적으로 여러 활동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작금의 북·일 관계 현상에 비춰 대담하게 현상을 바꿔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낀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초 일본 이시카와현에서 발생한 강진으로 대규모 피해가 발생하자 기시다 총리에게 이례적으로 ‘각하’라는 호칭을 쓰며 위로 서한을 보냈다. 북한이 같은 시기 한국을 비하하며 남북관계를 적대 관계로 규정하고 긴장을 고조시킨 모습과 대비된다. 북·일 정상회담의 성사 여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일종의 통일봉남(通日封南)을 염두에 둔 북한의 전략일 수 있다.
오는 11월로 예정된 미국 대통령선거 경선에서 김 위원장을 친구로 부르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선전 중이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서울을 거쳐 워싱턴으로 향했던 2018년과 달리 미국과 직거래를 시도할 수 있다. 한·미·일 협력 강화에 대응해 북·중·러 밀착으로 뒷배를 챙긴 북한이 미·일과의 직거래를 통해 한·미·일 공조를 와해시키겠다는 구상을 펼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복귀시키기 위해 누군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북·미, 북·일 관계 개선 자체는 바람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 과정에서 한국이 소외되거나 깜깜이 상태가 되지 않도록 상황 관리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일제 강점과 6·25전쟁 등 한국의 의지와 상관없이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북한 비핵화 협상은 미국이 하고, 경제적 보상 등 대가는 한국이 부담하는 제네바 합의(1994년)나 9·19 공동성명(2005)을 되풀이해서도 안 된다.
마침 일본 언론은 어제 기시다 총리가 다음 달 방한해 한·일 정상회담을 추진 중이라고 보도했다. 회담 성사 여부와 상관없이 정부는 다양한 경로를 활용해 북한과 관련한 일본의 움직임을 긴밀히 협의하길 바란다. 또 외교와 정보 채널을 적극 가동해 한·미·일 정보 교환과 협력 강화를 다져야 할 시간이다. 북한은 어제 순항미사일을 또 쐈다. 올해 들어서도 첨단 무기 개발과 재래식 무기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한·미·일 협력은 북한의 이런 잘못된 행동을 제어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응 수단이다. 대화든, 군사적 대응이든 한·미·일이 함께 움직일 때 그 힘은 배가된다.
중앙일보 사설
02-15 北형제국 쿠바와 전격 수교… 野는 여전히 종북 숙주 노릇
대한민국이 북한의 형제국이자 서반구 유일의 공산국인 쿠바와 전격 수교한 것은, 기존 192개 수교국에 1개국을 더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북한도 159개국과 수교하고 있지만, 156개국은 남북 동시 수교국이고, 단독 수교한 유엔 회원국은 쿠바·시리아·팔레스타인 3곳뿐인데, 그 중 한 곳이 이탈했기 때문이다. 1959년 피델 카스트로 집권 이후 북한과 쿠바는 반미·사회주의 연대의 중심축이었다. 북한으로서는 여러 측면에서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외교부는 14일 양국 주유엔 대표부간 외교 공한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했다고 발표하고, 공관 개설 등의 조치가 곧 추진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전쟁 이후 북·중·러 독재 진영 대 자유 진영의 신냉전이 고착화하는 상황에서 쿠바가 한국과 수교한 것은 이념보다 경제 협력 등을 우선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쿠바는 철저한 반미 노선을 추구하고 소련·북한과 밀착하면서 1988년 서울올림픽 참여도 거부했다. 그러나 1990년대 공산권 붕괴 후 한국과 경제 관계를 확대해왔으며, 코트라는 2002년 무역투자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아바나에 무역관을 개설했다. 특히, 현대중공업은 이동식 발전 설비를 수출해 고질적 전력난 해소에 큰 기여를 했다. 2006년 당시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은 이동식 발전 공사 현장을 방문해 “한국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발전소 설비는 쿠바의 10페소짜리 지폐에 그려질 정도로 인기를 끌어 ‘경제 한류’의 촉매가 됐다.
쿠바는 공산당 1당 독재국이지만, 3대 세습을 유지해온 북한과 달리 카스트로를 신격화하지 않았다. 경제도 북한식 폐쇄 체제가 아니라 상당 부분 개혁을 진행해왔다. 그런 쿠바가 김정은이 “교전국” “불변의 주적”이라고 규정한 한국과 수교한 것은, 북한식 노선으로는 더 이상 미래가 없음을 선언한 것과 같다. 이런데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우리 북한”이라고 하고, 한미동맹 해체 등을 내건 진보당 등과의 연합 공천에 합의했다. 4월 총선에서도 종북 세력의 숙주 노릇을 하는 셈이다. 이런 시대착오적 행태에 대한 심판은 최종적으로 유권자의 책임이다.
문화일보 사설
02-16 ‘적대국 한국’ 손잡은 쿠바의 선택과 실용, 북한도 성찰하길

▲2016년 6월 대한민국 외교부 장관으로는 사상 처음 쿠바를 방문한 윤병세 장관이 브루노 로드리게스 쿠바 외교장관과 회담하고 있다. [아바나 외교부 공동취재단]
한국, ‘북한의 형제국’ 쿠바와 전격 수교 선언
시대 흐름 따라 개방한 ‘쿠바의 길’이 사는 길
대한민국과 쿠바공화국이 그제 미국 뉴욕에서 양국 유엔대표부가 외교 문서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쿠바는 1948년 출범한 대한민국을 비교적 이른 시점인 1949년에 승인했으나, 쿠바 공산혁명(1959년)이 터진 이듬해 북한과 수교하면서 한국과의 관계는 단절됐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한류가 쿠바 국민의 호감을 얻었고, 2005년 KOTRA의 아바나 무역관 개설로 경제 교류가 진행되면서 수교에 긍정적 흐름으로 작용했다. 탈냉전 이후 역대 한국 정부의 끈질긴 수교 노력이 이번에 결실을 보게 되면서 앞으로 여러 방면의 활발한 교류협력이 가능해졌으니 진정 환영할 일이다.
한국-쿠바 수교는 외교사의 이정표가 될 사건으로 평가된다. 탈냉전을 맞아 1989년 헝가리와의 수교를 시작으로 당시 노태우 정부는 동유럽 등 사회주의권을 상대로 북방외교를 야심차게 추진했는데, 이번에 쿠바를 마지막으로 모든 사회주의 국가(북한 제외)와의 수교를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었다. ‘북방외교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찍은 셈이다.
쿠바와 수교하면서 이제 한국의 수교 국가는 모두 193개국으로 늘어났다. 북한의 159개국을 크게 앞선다. 국제정치적 의미를 고려하면 쿠바는 단지 수교국 하나가 늘어난 것 이상의 큰 의미가 있다. 쿠바는 냉전시대에 북한의 긴밀한 동맹이자 ‘형제국’이었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방북한 쿠바 지도자를 ‘전우’라 부를 정도로 밀착해 왔다.
이런 특수관계 때문에 북한을 의식한 쿠바 측이 수교 협상 과정에서 극도의 보안을 요구했다는 후문이다. 한국은 쿠바 측을 배려해 지난 13일 국무회의에서 수교 안건을 비공개로 의결했고,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 때 촬영하는 사진도 이번엔 공개하지 않았다.
쿠바가 한국을 선택한 것은 시대 변화를 반영한 용기 있는 결단으로 평가할 대목이다. 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와 라울 카스트로 형제에 이어 집권한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주석은 2019년 헌법 개정에 이어 실용주의 개혁을 추진해 왔다. 2015년에는 미국과도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한국과 쿠바의 전격적인 수교 소식을 접한 북한이 어떤 반응을 보일는지가 주목받게 됐다. 지난 연말과 연초에 북한은 민족과 통일을 부정하면서 ‘두 개의 국가’를 대내외에 천명했다. 하지만 북한이 ‘교전 중인 제1의 적대국’으로 규정한 바로 그 한국을 쿠바가 파트너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핵·미사일로 무장한다고 세습 독재정권의 미래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시대 변화를 과감히 받아들이고 개방·개혁하는 것만이 살길이란 사실을 쿠바가 생생하게 보여줬다. 역사 발전의 거대한 흐름을 이제는 북한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쿠바 지도자의 현명한 선택을 북한도 성찰해 봐야 할 때다.
중앙일보 사설
02-17 NLL 도발 협박하며 ‘기시다 방북’ 거론… 北의 요망한 이간질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조선중앙TV 캡처 뉴스1
북한이 15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동생 김여정을 내세워 “일본이 정치적 결단을 내린다면 두 나라가 얼마든지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열어 나갈 수 있다”며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평양 방문 가능성을 거론했다. 한국과 쿠바가 전격 수교한 다음 날 김여정의 담화를 통해 일본 측에 추파를 던진 것이다. 김정은은 전날 남북 간 실질적 해상 경계선인 북방한계선(NLL)을 “근거도 명분도 없는 유령 선”이라며 NLL 일대에 대한 무력 도발을 노골적으로 위협했다.
북한이 기시다 총리 방북 카드를 띄운 것은 한국-쿠바 수교로 외교적 고립이 두드러지는 작금의 대외 형세를 교란해 보겠다는 얄팍한 수작에 불과하다. ‘형제국’ 쿠바로부터 뒤통수를 맞은 형국에서 답보 상태의 북-일 물밑 교섭을 끄집어내 한미일 3국의 대북 공조를 흔들어 보겠다며 심리전에 나선 것이다. 김여정이 연초 윤석열 대통령을 원색 비난하면서 전임 문재인 대통령의 ‘솜씨’와 비교해 남남 갈등을 부추기려던 수법과도 똑같다.
한일 간 불협화음을 내보려는 이런 얄팍한 이간술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김여정은 기시다 총리의 방북을 위해선 “우리의 정당방위권을 걸고들지 않고 이미 해결된 납치 문제를 장애물로 놓지 않는다면…”이라고 조건을 제시했다. 하지만 일본이 당장 열도로 날아오는 북한 미사일을 묵과할 리도, 기시다 정부가 최우선 과제로 꼽아온 납치 문제 해결을 포기할 리도 없다.
북-일 간 교섭에 대해선 많은 궁금증을 낳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난달 일본에서 지진이 발생하자 김정은이 기시다 총리를 ‘각하’로 호칭하며 위로 전문을 보내는가 하면, 최근 기시다 총리가 북-일 회담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대담하게 현상을 바꿔야 할 필요성도 강하게 느낀다”고 밝힌 점도 심상치 않다. 이런 북-일 간 동향이 근본적 걸림돌의 해소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동아일보 사설
02-21 中 금리 대폭 인하, 글로벌 전방위 저가 공세 대비해야
중국 런민(人民)은행이 20일 5년 만기 대출우대금리(LPR)를 연 4.2%에서 3.95%로 0.25%포인트 인하해 기준금리가 역대 최저인 3%대에 진입했다. 시장 예상을 뛰어넘는 인하 폭이다. 부동산 위기와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반증이다. 지난해 중국은 10년 만에 처음 70개 도시 집값이 모두 하락했고, 생산자물가지수(PPI)도 15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3년간 증시 시가총액은 6조 달러(약 8000조 원) 증발했다.
이번 깜짝 금리 인하는 디플레에 맞서 부동산을 중심으로 전방위 경기 부양에 나서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부동산 침체가 내수를 포함한 경제 전반의 발목을 잡는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다. 지난해 두 차례 단기 금리 인하에도 얼어붙은 소비와 투자 심리가 개선되지 않았고, 최근 3년간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2%포인트 내렸지만, 주택 판매는 위축됐다. 분명한 점은, 중국이 국가부채 폭증으로 재정 확대를 통한 수요 창출이 어렵게 되자 공급에 초점을 맞춘 금리 인하·통화량 확대 쪽으로 거시 정책이 옮겨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저금리로 중국의 과잉생산과 글로벌 저가 공세가 우려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중국 기업들이 수요를 찾아 해외로 눈을 돌리면서 글로벌 저가 경쟁이 과열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재무부도 “중국의 나홀로 금리 인하가 과잉생산을 낳아 전 세계 시장에 충격을 던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은 저가로 LCD·태양광 시장을 싹쓸이한 바 있다. 지금은 전기차 가격 파괴가 진행 중이다.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를 앞세워 글로벌 온라인 장터에도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 중국의 전방위적 초저가 공세가 확대될 것이 분명한 만큼 선제적 대응책 마련을 서둘러야 할 때다.
문화일보 사설
02-21 한·쿠바 협력 가시화 땐 北에 제2 충격
정진영 경희대 국제학과 명예교수
미국 뉴욕에 있는 한국과 쿠바의 주유엔대표부가 양국의 수교 사실을 지난 14일 밤에 공표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신선하고 기분 좋은 소식이었다. 아득히 멀리만 느껴지던 쿠바라는 카리브 해의 섬나라가 갑자기 가까워진 느낌이 들고, 헤밍웨이와 체 게바라의 나라에 여행이라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정부는 쿠바와의 수교에 좀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외교부는 논평에서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한국의 외교 지평을 더욱 확장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 했고, 대통령실은 “대(對)사회주의권 외교의 완결판”이라고 평가했다.
사실 한·쿠바 수교는 1980년대 말 노태우 정부가 추진했던 북방정책과 러시아(당시 소련) 및 동유럽 국가들, 그리고 중국으로 이어졌던 일련의 공산권 국가들과의 수교가 생각나게 한다. 이런 측면에서 한·쿠바 수교가 북한에 ‘상당한 정치적·심리적 타격’을 줬을 것이라는 대통령실의 평가도 수긍할 만하다.
그러면 한·쿠바 수교가 이번엔 어떻게 가능했을까? 한국 입장에서는, 무역이나 투자와 같은 경제적 이득을 위해서도, 북한과의 외교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도 당연히 세계의 모든 나라와 관계 정상화를 추구하기 마련이다. 사실, 코트라(KOTRA)는 2005년부터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 무역관을 설치, 운영해 오고 있다. 쿠바와의 수교를 위한 접촉도 10여 년 전부터 시작됐다.
다만, 우리나라 경우 정부의 이념적 성격에 따라 쿠바와의 수교 협상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추진하느냐에서 차이가 난다. 대북 협력을 중시하는 진보 정부들은 쿠바와의 수교가 북한의 비위에 거스르는 것을 우려하는 반면에, 보수 정부들은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쿠바와의 수교를 추구한다. 지난 2년간 윤석열 정부가 쿠바와의 수교를 적극 추진한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러면 쿠바는 왜 한국과의 수교를 결정했을까, 무엇보다 ‘형제국’ 북한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어려운 결정이었을 텐데. 쿠바는 뉴욕의 한국 협상 파트너들에게 비밀 유지를 간곡히 요청하면서까지 수교 협상을 진행했다. 쿠바의 이러한 태도는 쿠바의 국내 사정으로 잘 이해할 수 있다. 쿠바는 지금 매우 어려운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 물가상승률이 100%를 오르내리고, 식량과 에너지 부족에 시달리며, 계속되는 경기침체에 사회적 불안도 심각하다.
쿠바계 미국인의 송금과 관광이 주된 외화 수입원이었는데 미국의 경제 제재로 이마저 여의치 않다. 정부의 재정적자도 매우 심각하다. 이런 쿠바에 북한과 한국 중에서 어느 쪽이 도움될 수 있겠는가? 더욱이, 카스트로 형제가 퇴진한 이후 쿠바의 지도부가 느끼는 북한과의 형제적 유대감도 많이 식었다.
이렇게 볼 때, 한·쿠바 수교는 양국의 실리에 기초한 당연하고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다. 이제 두 나라는 바로 이러한 양국의 실리를 바탕으로 서로가 이익을 보는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대통령실은 쿠바의 지하자원과 경제적 잠재력을 언급하며 쿠바가 신흥 시장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했다. 쿠바의 경제발전을 도우며 우리도 이익을 챙기는 상호 협력 관계를 만들어가겠다는 비전이다. 이것이 현실로 돼 갈 때 한·쿠바 수교가 북한에 진정한 충격과 교훈이 될 것이다.

문화일보 정진영 경희대 국제학과 명예교수
02.22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깨워준 냉혹한 국제정치
오는 24일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만 2년이 되는 날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14년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병합하고 돈바스에서 내전을 조장했다. 8년간 저강도 전쟁을 이어가다 지난 2022년 2월 24일 수도 키이우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전역에 대한 전면 공격을 개시했다.
당초 러시아는 볼로디미르 젤린스키(사진) 대통령이 이끄는 반러 성향의 우크라이나 정부를 손쉽게 무너뜨리고 ‘친러 괴뢰 정권’을 수립할 수 있을 것으로 계산했을 것이다. 하지만 푸틴의 야심은 일치단결한 우크라이나 국민의 강력한 저항에 막혀 수포가 됐다.
러시아의 침략 전쟁 2주년 맞아
애매한 중립으론 안보 못 지켜
동맹 강화하고 자주국방 노력도

▲시론
우크라이나 국민은 핵을 보유한 세계 2위 군사대국인 러시아의 침략을 막아야 하는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에서도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유럽연합(EU)의 군사적 지원과 대러 경제제재 등의 도움으로 버텨왔다. 지난 2년간 우크라이나 전쟁은 가뜩이나 코로나19 등으로 취약성을 노출했던 전 세계 공급망에 큰 타격을 줬다. ‘유럽의 빵 바구니’로 불리는 세계적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 흑토지대가 전쟁 와중에 전장으로 돌변했다. 흑해를 통한 곡물 수출길이 전쟁으로 큰 지장을 받게 되자 많은 개발도상국이 큰 고통을 겪었다. 한국도 밀가루 가격 폭등과 에너지 가격 상승 등으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강 건너 불이 아니었던 셈이다.
기업들의 타격도 컸다. 탈냉전기에 추진한 ‘북방 외교’에 따라 러시아와 수교하면서 한국 기업들은 러시아 시장에 진출해 자동차·가전·휴대전화 업종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미국과 유럽 등 서방 국가 주도의 대러 제재에 동참하고 러시아가 이에 보복하는 과정에서 큰 타격을 봤다. 공들여 구축한 러시아 공장 등을 헐값에 넘기고 철수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전쟁으로 지정학이 요동친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잘 대처해 왔을까. 문재인 정부 말기에 러시아의 눈치를 보는 바람에 미국 주도의 대러 수출 통제에 동참을 늦췄다.
그 때문에 주요 국가 중에서 한국만 미국의 ‘해외직접생산품 규칙(FDPR)’에 따른 30여개 예외국에 포함되지 못해 기업들이 한동안 큰 낭패를 겪었다. 자유 진영과 권위주의 진영의 대립 구도로 급속히 재편되는 냉혹한 국제정치 현실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대표적 사례라 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우크라이나를 직접 방문해 대러 제재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당시 폴란드 등의 동유럽 방산 시장에 한국 기업들이 진출하는 계기도 만들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한반도 안보에도 암운을 드리웠다. 전세가 불리해진 러시아가 북한의 재래식 포탄과 미사일 지원을 요청하자 김정은이 호응했다. 지난해 9월 북·러 정상회담을 전후해 위험한 무기 거래 의혹이 제기됐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땅에 북한산 탄도미사일이 떨어졌다.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무기의 실전 테스트에 이용하고, 러시아가 첨단 군사 기술을 북한에 몰래 이전한다면 대한민국 안보에 큰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정적 나발니 의문사 이후 치러지는 다음 달 러시아 대선에서 푸틴은 무난히 당선될 것이다. 문제는 11월로 다가온 미국 대선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패하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하면 또 한 번 우크라이나 전쟁 판도가 출렁일 가능성이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라시아의 ‘거대한 체스판’에서 벌어진 지정학적 지진이다. 우크라이나는 냉전 종식 과정에서 핵을 포기하는 대신 영토와 주권을 보장받았지만, 러시아의 침략으로 안보 보증서는 휴지가 됐다. 6·25전쟁 경험을 생각하면 뼈저린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대목이다.
한반도 안보에 영향을 주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대결은 지난해 11월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을 계기로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하지만 미·중 갈등은 조만간 또 불거질 공산이 크다. 결국 애매한 중립 노선은 국가 안보와 국민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우크라이나 전쟁이 생생하게 보여줬다.
동맹을 튼튼히 하고, 우방과의 관계를 강화하며, 자주국방 역량을 키우는 길만이 안보를 지키는 지름길이라는 것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가장 큰 교훈이 아닐까.
중앙일보 신동찬 변호사·전 외교부 경제안보외교 자문위원
02.23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수출 자제해야 하나?
극적반전 없다면 이 전쟁은 6·25처럼 휴전으로 끝날 것
러시아 상대로 레버리지 없이 선의에만 호소하면 승산 없어
무기공급 자제방침 철회하면 발표만으로도 러 전전긍긍할 것
NATO 우방국들 빚지게 만들어 우리 國難때도 당당하게 요청을

▲2023년 7월 15일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키이우 성 소피아대성당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손을 잡은 채 대화하고 있다./대통령실 제공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3년째로 접어든다. 우크라이나가 고군분투하고 있으나 실지 회복의 꿈은 멀어지고 있고 미국과 유럽연합의 지원 열기도 식어가고 있다. 전세의 극적 반전이 없다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결국 한국전쟁처럼 휴전으로 결말이 날 것이다. 다만, 러시아의 침공이 핀란드와 스웨덴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촉발하고 서방 진영의 결속을 다졌다는 점에서 전략적으로는 러시아가 잃은 것이 더 많다.
우리 정부는 그간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직접 지원하는 것을 자제해왔지만 지원에 앞장서온 나토 회원국들의 탄약 재고를 보충함으로써 이들의 지원 여력을 유지하는 데 나름 기여해왔다. 재래식 무기는 대량살상무기(WMD)의 확산 방지를 위해 수립된 국제수출통제체제나 대외무역법의 규제를 받는 전략 물자가 아니므로 정부가 결심만 하면 수출하는데 문제가 없다. 그럼에도 그간 살상 무기의 직접 공급을 피해온 것은 러시아와의 관계 악화에 대한 정치적 부담 때문일 것이다.
러시아가 우리에게 힘이 되어줄 일은 별로 없어도 해코지할 능력과 소질은 과잉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러시아와 척질 일은 가급적 조심해야 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보다는 우리에게 더 중요한 나라이고 어차피 우크라이나가 이길 가망도 없다면 우크라이나에 베팅하기보다는 헤징을 통한 리스크 최소화가 실리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러시아-북한 간의 밀착이 가시화되면서 상황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한러 관계에서 지켜야 할 가장 소중한 것은 이미 다 잃어가고 있고 더 이상 러시아의 눈치를 볼 이유가 없어졌다. 따라서 이제 대러시아 정책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공급 자제 방침을 전면 재검토할 때가 되었다. 다양한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결론을 내리되 특별히 유념할 점은 세 가지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2023년 9월 13일 러시아 아무르주에 있는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는 모습./노동신문 뉴스1
첫째, 러시아에 대한 레버리지 강화를 1차적 목표로 삼아야 한다. 러시아는 대북 제재를 와해시키고 군사·기술 협력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키우는 데 앞장서고 있다. 심각한 노동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북한 인력을 대거 수입하고 에너지와 식량까지 지원하면 빈사 상태에 빠진 북한 경제를 살리고 북한이 군비 증강에 더 박차를 가할 수 있다. 이렇듯 러시아가 우리의 핵심 이익을 침해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북한의 공범으로 전락하는 것을 견제할 현실적 방도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게 만드는 것뿐이다. 우리 정부가 무상으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여할 수도 있지만 나토 회원국들이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해 한국 무기를 수입할 경우 최종 사용자 증명을 면제해주는 것도 직접 공급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공급 자제 방침을 철회하겠다는 발표만 해도 러시아는 전전긍긍할 것이므로 한국 무기의 실제 공급 여부와 규모를 러북 협력의 레드라인을 설정하는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 무기 공급에 러시아가 반발하는 강도가 높을수록 러북 협력을 견제할 우리 정부의 레버리지도 강화된다.
둘째, 우크라이나 전쟁이 동아시아의 전략 지형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국력을 허비하는 만큼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해칠 여력이 줄어든다. 우크라이나군이 선전할수록 북한과 중국의 뒷배 역할을 하고 있는 러시아의 힘이 약화되고 전략적 파트너인 중국이 공세적 팽창 정책으로 역내 안정을 교란할 여건이 불리해진다. 그런 점에서 지정학적으로는 한국도 우크라이나 전쟁의 수혜국이라 할 수 있다. 러시아는 2019년 7월 23일 중국과 동해에서 합동 군사훈련을 벌이는 과정에서 일본도 침범한 적이 없는 독도 영공을 고의적으로 침범한 유일한 국가임을 명심해야 한다.
끝으로, 국제적 대의와 핵심 우방과의 의리도 고려해야 한다. 74년 전 북한의 남침으로 망국의 위기에 몰린 대한민국을 구해준 나토 회원국들은 우크라이나의 항전을 지원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기회를 활용하여 유럽 우방국들이 대한민국에 빚을 지게 만들어야 우리가 국난을 당하더라도 떳떳하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구소련 시대에 배치된 모든 핵무기를 포기하는 조건으로 1994년 ‘부다페스트 메모랜덤’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의 불가침을 공약한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완전히 무시하고 침략을 자행한 극악무도한 나라다. 이런 나라를 상대로 레버리지 없이 선의에만 호소하는 외교는 승산이 없다. 이중 플레이에 능한 러시아의 협박과 회유에 휘둘리면 안 된다.
조선일보 천영우 前 청와대 외교안보수석·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02.23 점점 축소되는 북한의 외교 네트워크
대한민국과 쿠바가 지난 15일 수교한 것은 국제무대에서 북한의 위상이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보여준 사례다. 쿠바는 북한의 해외 작전 교두보이자 사상과 정치적 지지 기반이었다. 수도 아바나에 한국 외교 공관이 설치되면 쿠바에서 북한의 활동은 큰 압박을 받게 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쿠바 정부도 북한에 무조건적 지지를 보내면 안 된다는 요구에 직면할 것이다.
하지만 한·쿠바 수교는 점점 축소되는 북한 외교 네트워크의 또 다른 사례일 뿐이고, 북한 스스로 자초한 결과다. 지난해 아프리카 등지에서 9개국 대사관이 폐쇄됐다. 북한의 자금난 때문일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본국으로 돌아간 평양 주재 외국 공관은 후에 외교관을 다시 파견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원래부터 평양 주재 외국 외교관을 반기지 않았기에 아마도 좋아하고 있을 것이다.
한·쿠바 수교, 북 위상 추락 사례
경제난에 아프리카 등 공관 폐쇄
북한의 대외 역량 더 위축될 전망
▲에버라드 칼럼
지난달 25일 김정은의 암울한 경제 관련 연설에 이어 많은 보고서가 심각한 북한 자금난을 보여줬다. 심지어 중국 지린성 조선족자치주 허룽(和龍)시에서 북한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못해 소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북한의 공관 폐쇄는 다른 한편으론 전략적 변화 때문이기도 하다. 북한 외무성은 해외 공관 폐쇄가 “국제 환경과 당국의 대외 정책 변화로 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중국·러시아와 같은 우방에 집중된 대외 정책을 펼치기로 작심한 듯하다. 하지만 북한이 전략적 실수를 범하고 있다는 결론을 피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국가는 미래에 다가올 불확실한 위기를 포착하고 리스크를 줄이는 방식으로 대외 정책을 만든다. 또 핵심 국가들과의 관계가 실패할 경우를 대비한다. 그러나 북한의 최근 행보는 국제 관계의 정상 범주에서 벗어난다. 외교 네트워크를 축소하는 것은 핵심적인 대외 관계를 제외하고는 국제무대에서 북한의 대외적 역량을 크게 위축시킬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북한 전략의 취약점을 그대로 드러낸다. 과도한 중국 원조 의존이 그것이다. 중국이 대북 원조를 완전히 접거나 줄인다면 북한에는 큰 재앙일 것이다. 러시아의 대북 원조도 북한의 탄약 공급이 중단되면 끊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북한도 오랫동안 이어져 온 중국의 대북 원조를 대체할 국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실 다른 국가와의 통상을 통해 이를 대체할 수도 있지만, 개성공단의 한국 자산을 압류하고 한국을 제1 적대국으로 발표한 마당에 한국의 투자를 유치할 가능성은 멀어졌다. 물론 베트남이나 인도, 그리고 일부 걸프 국가들이 대북 투자에 관심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북한은 이런 노력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경제 다각화를 위한 노력이라고는 딱 한 가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북·일 정상회담에 관심이 있다고 했을 때 김여정 부부장이 보여준 대응이었다. 김여정은 일본이 납치 문제를 종결하고 적대관계를 청산하면 관계 개선이 가능하다고 했다.
과거에 북한은 일본과의 교역을 통해 꽤 괜찮은 수입과 품목을 챙겼다. 양국 외교 관계가 정상화되면 통상 관계 복원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는 미국·한국과의 협력에서 일본을 멀어지게 하려는 북한의 수법일 수도 있다. 한·쿠바 수교에 대한 북한의 보복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자충수는 현재의 북한 리더십이 지닌 취약점을 드러낸다. 과거 북한 정권은 상당한 실용주의를 보여준 적이 있지만, 안보와 경제 상황이 심각해지자 오히려 냉전 시대의 확실성으로 복귀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1월 김정은은 최고인민회의에서 경제 문제 해결을 위해 향후 십 년간 20개의 공장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어려운 경제 상황을 타개하기 어렵다. 북한은 글로벌 네트워크가 필요한 시점에 오히려 축소하고, 핵심 대외 관계에서 벗어나 다각화가 필요할 때 모든 자원을 핵심 국가 관계에만 쏟아붓고 있다. 이것은 전략적 무지로 인한 실책이 아닐까.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은 “북한을 있는 그대로 대해야지 우리가 원하는 북한의 모습으로 대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북한도 세계를 있는 그대로 대해야지 원하는 세계의 모습으로 대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지금 그것을 못 하고 있다.
중앙일보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02-26 열린 링컨당, 닫힌 트럼프당
11월 미국 대선에서 재집권에 도전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사우스캐롤라이나 유세에서 재직 당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서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로 증액하지 못하는 동맹국은 보호하지 않을 거다. 러시아에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독려할 거다”고 말한 사실을 밝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나토 등 동맹 체제에 부정적이고 고립주의 외교를 지향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문제는 이후 공화당 반응이었다. 특히, 고 존 매케인 상원의원과 함께 대표 외교통으로 동맹을 중시하고 중국·러시아에 강경한 ‘매파’로 활약해온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의 변심은 미 언론과 동료 의원들도 놀랄 정도였다. 그는 “트럼프의 발언은 옳다. 나는 돈을 내지 않으면 쫓겨나는 체제를 원한다”고 말했다. 누구보다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에 앞장섰던 그는 13일 상원이 초당적으로 가결한 950억 달러(약 127조 원) 규모 우크라이나 지원 안보 패키지 예산안도 반대했다. 8년 전 트럼프 당시 후보의 외교정책을 비판했던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도 “나토에 더 많은 돈을 쓰도록 촉구하기 위해 지렛대로 사용한 것이다. 걱정하지 않는다”고 거들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일찌감치 공화당 대선 후보 자리를 굳히자 당내 충성파뿐 아니라 반대파 의원들까지 앞다퉈 ‘트럼프 표’ 정책 지지에 열 올리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은 외교·안보 등 주요 정책에 반대하는 의원에 대한 찍어내기식 표적 출마를 부추기며 전방위적 ‘트럼프 사당화’에 나서고 있다.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는 안보 패키지 예산안에 찬성한 조니 에른스트 의원에 맞선 경선 도전을 촉구했고 셸리 무어 캐피토 의원을 겨냥해 주지사 후보로 출마한 그의 아들에게 반대표를 던지라고 지지자들을 선동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한술 더 떠 경선 관리를 맡은 로나 맥대니얼 공화당 전국위원회(RNC) 의장을 사퇴 압박하고 “선출되면 9개월 동안 한 푼 남김없이 트럼프 당선을 위해 당 자금을 쓸 것”이라 공언한 며느리(라라 트럼프)를 공동의장으로 밀었다. 신념을 지키고 자리다툼을 원치 않는 의원들은 은퇴를 택하기도 했다. 하원 미·중 전략경쟁특위 위원장으로 올해 39세의 ‘공화당의 떠오르는 스타’였던 마이크 갤러거 의원은 지난 6일 “선거 정치는 결코 직업이 될 수 없다”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공화당은 1854년 창당 당시 노예제 반대를 주장한 진보 자유주의 정당이었다. 1860년 최초 공화당 출신 대통령이 바로 미 역사상 최고 대통령으로 꼽히는 에이브러햄 링컨이다. 시대 변화로 보수정당으로 탈바꿈했지만, 민주주의·시장경제·작은 정부라는 지향점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민주당과 경쟁하면서도 때론 타협·양보하며 미국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양축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현재 공화당은 이민자·소수인종을 배척하고 미국우선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충성 경쟁하는 사당으로 급변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11월 대선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 미국의 미래는 물론 공화당의 미래에도 중요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래저래 많은 것이 걸린 올해 미 대선이다.

문화일보 김남석 워싱턴 특파원
02-27 中 초저가 공습에 인권 제기 美… 한국도 비상대책 세워야
미국 의회가 중국 온라인 쇼핑 플랫폼 ‘테무’에 대해 ‘위구르 강제 노동 방지법(UFLPA)’을 위반했다며 수입 금지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1년간 테무가 파격 할인, 무료 배송, 슈퍼볼 광고 등 공격적 마케팅으로 미국 가입자를 4000여만 명 늘리며 아마존 등 자국 업계를 위협하자 인권 문제까지 동원해 대책을 세우려는 것이다. 미 하원은 지난해 위구르 학살 중간 보고서를 통해 “테무 공급망이 강제 노동으로 오염될 위험”을 경고한 바 있다. 미 행정부도 저가 제품의 과도한 침투에 맞서 무관세 혜택을 폐지할 움직임이다. 경계감이 전방위로 확산되는 중이다.
중국과 인접한 한국의 이커머스 상황은 미국보다 더 심각하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 된 지 오래다. 쿠팡·네이버·신세계의 3강 구조가 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 삼각편대의 초저가 융단 폭격에 무너지고 있다. 이들은 저렴한 인건비·물류비에다 관세(150달러 미만 직구는 무관세)·부가가치세·KC 인증 비용 등에서 자유롭다. 이 때문에 ‘상상하기 어려운 비현실적 가격’으로 생태계를 파괴한다. 짝퉁 문제에 이어 ‘19금’ 논란까지 제기된다. 최음제·섹시돌 등 음란 상품과 석궁·리얼 총기 등 위험 상품을 미성년자에게까지 마구잡이로 판매·광고하기 때문이다. 국내 업체에는 판매가 금지·제한된 상품들이다.
문제는, 제재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정부는 전자상거래법·표시광고법 등에서 벗어나 있고, 경고 조치나 과징금을 부과해도 실효성이 없다며 손을 놓고 있다. 일부 중국 제품은 식품의약품안전처 마크 등 최소한의 안전 의무도 지키지 않는다. 플랫폼에 입점해 사고파는 해외 업체의 불법 행위를 규제할 법적 근거도 없다. 강제노동까지 거론한 미국 상황을 보면서, 한국도 소비자 보호와 국민 안전을 위한 비상 대책을 서두를 때다. 국내·해외 사업자에게 기울어진 운동장부터 평평하게 할 필요가 있다.
문화일보 사설
02.28 러시아가 北에 보낸 9000개 컨테이너에 무엇이 들었나

▲러시아 선박이 북한에서 컨테이너를 싣고 운송하는 모습을 촬영한 인공위성 사진을 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이 공개했다. /그래픽=박상훈
북한이 지난 6개월간 러시아에 컨테이너 6700개 분량의 포탄을 지원했다고 신원식 국방 장관이 밝혔다. 신 장관은 152mm 포탄이면 300만발 이상, 방사포탄이면 50만발 이상이 러시아로 보내진 것으로 추정한다며 “북한에서 러시아에 제공하는 무기·포탄 공장은 풀 가동되고 있다”고 했다. 북한이 경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우크라이나를 침략 중인 러시아의 하청을 받아 포탄 생산 기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더 충격적인 소식은 러시아가 그 대가로 북한에 약 9000개 컨테이너 분량의 물품을 보냈다는 것이다. 그 안에 어떤 내용물이 들어 있었는지는 모른다. 북한의 극심한 식량난을 덜어 주는 데 주안점이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되지만 그것뿐이었겠느냐는 당연한 의심이 든다.
우리 군 당국은 그 컨테이너에 무기 제조용 소재·부품도 포함됐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북한이 이를 완성품으로 만들어 러시아에 돌려보내고 자신들도 확보하는 방식의 군사협력 모델이 작동하기 시작한 것일 수도 있다. 푸틴은 작년 9월 러시아를 방문한 김정은을 극진하게 맞아 우주기지 및 전투기 생산 공장 등 민감한 첨단 무기 시설들을 두루 둘러보게 한 뒤 관련 분야에서의 적극적인 협력을 다짐했다. 이 같은 러·북 군사협력은 우리 안보에 대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
러시아는 북한을 군사적으로 지원하면서 우리가 이에 대응해 우크라이나를 지원할 가능성을 두려워한다. 이를 막기 위해 우리를 적대시하는 방법으로 위협하고 있다. 이달 초에는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이 윤석열 대통령의 북한 비판 발언에 대해 “혐오스럽다”고 하기도 했다. 주한 러시아대사는 인터뷰에서 한국을 ‘비우호국’, 북한은 ‘우호국’으로 불렀다.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대북 유엔 제재를 준수해야 할 기본 의무를 완전히 저버렸다. 자신이 찬성해 채택된 대북 제재다. 이 자체도 심각한 문제이지만 러시아가 북한 포탄에 대한 대가로 우리를 위협할 무기와 기술을 북에 제공한다면 반드시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북한과 거래를 위해 한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나라는 누구든 대가를 치러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2-29 장호진 안보실장·NATO 동맹작전사령관 “북러 군사협력, 심각한 안보리 위반”

▲장호진(오른쪽) 국가안보실장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방한 중인 크리스토퍼 카볼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작전사령관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장호진 안보실장, 카볼리 나토 동맹작전사령관 접견
신원식, 첫 방한 NATO 동맹작전사령관 접견…국방 협력 강화키로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은 2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국을 방문 중인 크리스토퍼 카볼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작전사령관을 접견했다고 대통령실이 밝혔다.
양측은 접견에서 러시아와 북한의 군사 협력이 유엔 안보리 결의의 심각한 위반이라는 우려를 공유하고, 이와 관련해 한-나토 간 정보교환 등 협력 방안을 검토해 나가기로 했다.
장 실장은 지난해 7월 윤석열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 참석이 자유·인권·법치 등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나토와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한-나토 개별 맞춤형 파트너십 프로그램’(ITPP)의 충실한 이행을 통해 협력을 강화하자고 제의했다.
카볼리 사령관은 ITPP 체결의 의의를 높이 평가하는 한편, 사이버 안보와 정보 공유 등 분야에서 협력해 나가자고 화답했다. ITPP는 기후변화·과학기술·군축 등 11대 분야에서 한-나토 간 협력의 틀을 규정하는 문서로, 지난해 윤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체결됐다.

▲신원식(왼쪽) 국방부장관이 29일 국방부에서 크리스토퍼 카볼리 NATO 동맹작전사령관을 접견하고, 한국-NATO 간 국방분야 협력 강화 방안과 한반도 안보정세 등을 논의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한편 신원식 국방부 장관도 이날 국방부에서 크리스토퍼 카볼리 사령관을 접견하고, 양측의 국방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과 한반도 안보정세 등에 대해 논의했다고 국방부가 밝혔다.
NATO 동맹작전사령관이 한국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방부에 따르면 신 장관과 카볼리 사령관은 한국과 NATO가 군사훈련, 사이버안보, 화생방방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해온 점을 높게 평가하고 앞으로도 국방 협력을 강화하기로 뜻을 모았다.
신 장관은 지난해 7월 NATO 정상회의를 계기로 체결된 한국-NATO 간 ITPP를 기반으로 국방 분야 협력 방안을 실질적으로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카볼리 사령관도 양측의 국방 협력 강화 중요성을 강조하고, 한국군 합동참모본부와 NATO 동맹작전사령부 간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화답했다.
신 장관은 미사일 발사 등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로 한반도 안보 상황이 엄중하다면서 북한의 추가 도발 억제를 위한 우리 정부의 노력을 설명하고, NATO의 관심과 지지를 당부했다고 국방부는 덧붙였다.
문화일보 정충신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