危機의 韓半島(外交) 2024-01/
01.01 독립은 내가 하는 것이다
세계 안보 가장 큰 위협 현재는 미국이다… 트럼프의 재선 도전을 보라21세기 최대의 시험은 중국… 대만해협 총성은 제3차 대전 신호탄 될 것
이 와중에 북한은 핵무기 완성… 우리나라는 누가 지키는가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하자, 하나의 사실이 분명해졌다. ‘역사의 휴일’이 끝나고, 신냉전이 시작되었다. 탈냉전 30여 년간 인류는 잠깐 마키아벨리를 망각했다. 더 큰 문제는 이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나라들 역시 위기에 빠져 있는 현실이다. 하스(R. Haas) 전 미국외교협회장은 지난해 7월 세계 안보의 “가장 큰 위협은 미국”이라고 경고했다. 러시아, 중국, 북한보다 더 위험한 게 ‘미국 없는 세계’다. 2차대전 후의 대평화는 세계의 경찰 미국이 만들었다. 그 미국이 지금 ‘내부의 혼란’에 빠졌고, 미국 민주주의는 “국가 안보적 우려 사항이 됐다.”
2021년,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앞에서 선거 사기를 연설하자, 수천 명의 트럼프 지지자들이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의사당에 난입했다. 공화당 지지층 56%는 이를 ‘자유 수호’로 본다. 하지만 선거를 부정하면 민주주의도, 국가도 없다. 자유선거로 선출된 연방정부를 부정한 건 남북전쟁 후 처음이었다. 그런 트럼프가 대선에 재도전한다. 최근의 지지율 조사에서 트럼프는 바이든을 앞섰다. 트럼프는 ‘진정한 미국인’, 미국 태생의 백인 개신교 신자를 대변한다. 하지만 미국은 인종과 종교와 관계없이 인간은 평등하다는 신조 아래 건국되었다. 바이든이 “미국의 영혼을 위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하는 이유다.
트럼프의 재선은 세계에도 ‘공포의 시나리오’(Horror Scenario)다. 하스 전 회장은 미국의 “친구들은 우리한테 의존하기가 매우 어려워졌다”고 우려했다. 고립주의자 트럼프는 나토가 무용하다고 본다. 재선되면 우크라이나 전쟁을 “24시간 내에 끝내겠다”고 한다. 미국은 냉전 이후 처음으로 세계 민주주의의 수호자 역할을 저버릴 위험에 처했다.
세계의 미래에 미국 버금가는 영향력을 지닌 중국 역시 위기다. 지난해 작고한 리커창(李克强) 전 중국 총리는 “장강과 황하는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시진핑의 중국은 마오쩌둥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은 현대 중국의 서로 다른 두 길을 상징한다. 마오쩌둥의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은 중국을 황폐화시켰다. 지난 30여 년간, 중국은 덩샤오핑의 길을 따라 잠자는 사자에서 G2로 굴기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실용주의와 개혁 개방이 퇴조하고 있다.
21세기 인류 최대의 지정학적 시험은 중국이다. 대만해협에 총성이 울리면 제3차 세계대전의 신호탄이 될 것이다. 2022년 미국 ‘국가안보전략보고서’는 중국이 ‘미국의 유일한 경쟁자’이며, “세계를 주도하는 국가가 되려는 야망을 갖고 있다”고 단정했다. 시진핑 또한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은 중국 인민의 가장 위대한 꿈”이며, “중국을 괴롭히는 세력은 강철 만리장성에 머리를 부딪혀 피를 흘리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3차대전을 어떻게 피할 수 있나? 이것이 키신저 생애 최후의 성찰이었다. 지난해 6월 이코노미스트지와의 대담에서는 “지금 1차 세계대전 직전과 유사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걱정했다. 뻔하지만, 해법은 냉정한 이성에 따른 외교뿐이다. 외교란 이상뿐 아니라 그 바닥에 깔린 현실을 보는 능력이다. 누구나 현실을 보는 게 아니다. 적을 100% 파괴할 수 있는 AI의 급속한 발전으로, 남겨진 시간은 5~10년 정도다. 실패할 수도 있다. 그에 대비해 충분한 군사력을 갖춰야 한다.
북한의 핵무장이 완성되면서, 6·25 이후 처음으로 북한의 남벌이 가능해졌다. 재임 시 트럼프는 “한국에 왜 미군이 주둔하느냐”고 세 번이나 물었다. 매티스(J. Mattis) 국방장관이 “제3차 대전을 막기 위해서”라고 답했지만, 트럼프는 주한미군 철수를 원했다. 미국의 핵우산이 없으면, 북한 군사력은 남한보다 15% 강하다(박휘락). 그런데 키신저조차 북한의 비핵화와 미군 철수를 교환하자고 제안했다. 북핵에 맞서 한국과 일본이 핵무기 개발에 나서면, 중국과 충돌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한미 동맹 없이 한국의 자유와 번영을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병기창’ 미국에 문제가 생겼다. 정상적인 미 전략가들조차 한반도의 운명을 협상 가능한 대상으로 본다. 러일전쟁과 애치슨 라인 때도 그랬다. 이승만 대통령의 선물인 70년의 장기 평화에 취해 그 역사를 잊었다. 동맹과 외교는 귀중하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의 창고에서 잠자는 자주국방의 이상이 먼저다. “우리나라는 내 나라요, 남들의 나라가 아니다. 독립은 내가 하는 것이지 따로 어떤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김구)
조선일보 김영수 영남대 교수·정치학
01.01 자유무역 시대와의 기약없는 이별
중국은 국가·당·기업이 한 몸… 리카도 철학과 태생적 모순
과거와 달리 타협 어려워 무역 갈등은 더 거칠어질 듯
1985년 9월 23일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이 경제·산업계 주요 인사들을 백악관에 초대했다.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일본 등 G5(주요 5국) 재무장관들이 달러화 강세를 완화하는 ‘플라자 합의’를 맺은 다음 날이었다. ‘쌍둥이 적자’에 시달렸던 레이건은 이날 자신의 무역 철학을 꽤 소상히 밝혔다. 그는 자유무역에 대한 믿음은 확고하다면서도 “자유무역은 ‘공정한 무역’이어야 한다”고 했다. 다른 나라가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해 그 기업이 해외에 덤핑할 수 있도록 하거나 미국 제품을 위조·복제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자유무역이 아니라고 했다. 그건 “우리 미래를 훔치는 것”이라고도 했다.
미국의 대규모 무역 적자는 산업 경쟁력 약화에도 원인이 있지만 비관세 장벽 등 다른 나라의 불공정 행태가 주범이라고 레이건은 봤다. 해결책을 놓고 협상국 간 갈등도 있었지만 상황은 지금보다 나았다. 고민을 털어놓고 머리를 맞댈 수 있는, 협상 가능하고 생각이 비슷한 ‘친구들’이었기 때문이다. 세계는 자유무역을 향해 더 전진했다.
영국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가 이론 체계를 완성했고, 곡물법 폐지(1846년)로 본격적으로 닻을 올린 자유무역은 21세기 들어 만개했다. 1991년 소련 붕괴에 이은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은 화룡점정이었다. 지구촌은 하나로 묶였고 풍요로워졌다. 리카도 자유무역의 절정이라 할 만했다. 이런 분위기는 20년도 안 돼 급변했다. 2016년 미 대선을 기점으로 인정사정 안 봐주는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이 부상했다. 몇 년이 지났어도 상황은 악화 일로다. 미국과 유럽, 중국 등 세계 3대 경제권은 물론이고, 일본·인도도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전엔 상상도 못 했던 엄청난 정부 지원금이 기업에 쏟아진다. 과거와 다른 건 대화와 타협이 어렵다는 점이다. 달라도 너무 다른 진영이 생존을 놓고 다투고 있기 때문이다.
격변이 트럼프 탓이란 주장도 있지만 근원적 분석은 아니다. 미 대통령이 바뀌어도, 인류에게 공포를 줬던 코로나 팬데믹이 물러가도 보호무역 경향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중국 국가자본주의가 몰고 온 분노와 불안감을 꼽지 않을 수 없다. 국가의 전폭적 지원을 받는 중국 기업이 글로벌 자유무역을 악용, 각국의 산업과 기업, 시장을 장악하고 무너뜨려왔다는 것이다. 트럼프 때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지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는 “자유무역 어젠다가 지배했던 지난 20여 년은 역사적 비정상 상태였다”고 했다. 문제는 앞으로 중국이 달라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중화공상시보에 따르면 지난 2002년 전체 민간 기업 중 공산당 조직이 설립된 곳은 27.4%였는데, 2018년 48.3%까지 늘었다. 중국이 세계 무대에서 존재감을 키우는 동안 공산당의 기업 지배는 더욱 강화됐다. 중국은 한발 더 나아갔다. 2018년 말 ‘중국공산당지부공작조례’를 발표했다. 기업 등 모든 조직에 공산당원이 3명 이상일 경우, 당 지부를 설립하라는 내용이다. 최근 통화한 한 중국 전문가는 “지금은 거의 모든 기업에 당 조직이 들어섰을 것”이라고 했다. 남방도시보는 “2021년 현재 텐센트 직원 6만명 중 1만명 이상이 공산당원”이라며 “회사엔 14개 당 총지부, 275개의 당 지부가 있다”고 했다.
자유무역의 기본 철학은 정부가 기업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다. “국가와 당과 기업이 한 몸”인 중국 체제와는 양립이 어렵다. 시진핑 주석이 ‘중국식 현대화’를 강조한 데서 보듯 공산당 독재의 중국이 기업 지배를 포기하는 건 태생적으로 불가능하다. 뜻 맞는 국가끼리 협력은 가능해도 지구촌 전역에 자유무역이 다시 꽃피는 시대는 기약 없는 먼 미래가 될 수 있다. 중국이 변하지 않는 한 말이다.
조선일보 장일현 기자
01.01 새해 한·중 관계는?
침체의 한·중 관계가 올해는 비상할 수 있을까? 먼저 그 외연부터 보자. 미·중 관계는 지난해 11월 바이든-시진핑 정상회담으로 안정을 찾았다. 미국은 대선에, 중국은 경제에 각각 올인하기로 하면서 11월까진 임시 휴전 상태다. 중·일 관계도 나쁘지 않다. 일본이 지난해 6월부터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공을 들인 게 주효했다는 평가다. 여유가 생긴 시진핑 주석이 지난달 베트남을 찾는 등 이웃 나라 챙기기에 나선 배경이다.
한·중 관계 회복의 상징은 양국 정상의 상호 방문을 통한 정상회담 개최다. 이를 위한 분위기 조성이 필요한데 그 촉매제로 올해 한국에서 열릴 예정인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이 꼽힌다. 3국 정상회담에 중국에선 총리가 참석한다. 이게 얼마나 빨리 열리느냐가 새해 한·중 관계 회복 여부를 결정할 것이란 얘기다. 한국은 3국 정상회담의 이른 개최를 원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2년 11월 한·중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빠르면 2월 늦어도 중국의 연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가 끝난 직후, 즉 3월 안엔 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3국 정상이 손을 맞잡고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이고 싶은 거다. 그래야 미·중 간 전략적 휴지기인 11월 안에 한·중 정상 만남을 추진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시 주석이 한국을 찾는 게 이상적이지만, 우리 국익을 위해선 윤석열 대통령이 먼저 중국을 방문할 수도 있지 않으냐는 말이 나온다.
한데 중국은 2025년 한국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시점에 맞춰 시 주석 방한을 추진한다는 계획으로 알려진다. 따라서 3국 정상회담도 급할 게 없다. 한국이 대만 문제를 언급해 중국의 신경을 건드리는 상황에서 한국의 박자에 맞출 필요가 없다는 계산이다. 문제는 3국 정상회담이 한국 총선 이후로 미뤄지면 한국이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야 할 동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APEC에 맞춘 시 주석 방한도 윤 대통령 집권 후반기에 이뤄지는 것으로 한·중 관계 회복의 특별한 계기로 작용하기에는 미흡하다. 이 경우 한·중 관계는 앞으로도 계속 지지부진 상태를 면치 못하고 그 피해는 양국 모두에 돌아간다. 이는 누구도 바라는 바가 아니다.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이 속히 열리길 기대한다. 3국 지도부의 의지만 있으면 언제든 가능한 일이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는 말이 있다. 외교는 타이밍이다. 푸른 용의 해라는 갑진년(甲辰年) 새해가 한·중 관계 회복의 특별한 한 해가 되길 기원한다.
중앙일보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01.02 트럼프·푸틴·시진핑이 몰고 올 혼돈의 2024년

▲왼쪽부터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AFP·로이터·신화
2024년은 국제사회에서 휘몰아치는 외풍이 대한민국의 저항력을 시험하는 한 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 최대 충격파의 진앙지는 올 11월로 예정된 미 대선일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총 91개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지만, 바이든 현 대통령과의 재격돌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여론조사가 많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그가 재선에 성공하면, 전 세계는 각자도생의 초불확실성 시대로 빨려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규모 지원을 받아 러시아의 공세를 저지해 왔던 우크라이나 상황이 급변할 것으로 전망된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일 신년사에서 “절대 후퇴하지 않을 것”이라며 전의(戰意)를 강조했다. 푸틴은 오는 3월 실시되는 대선에 재출마하는데, 러시아 국민에게 성과물을 내세우기 위해서 공세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여 유럽의 불안한 상황은 올해도 계속될 전망이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황이 어려워질 때마다 ”핵전쟁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는 식으로 전술핵 무기 사용 가능성을 거론하며 위협하고 있다. 러시아는 한국이 폴란드 등을 통해 우크라이나를 우회 지원했다며 우리에게 보복을 시사하고 있기도 하다.
한미동맹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 트럼프가 자신이 속한 공화당의 만류에도 불구, 주한미군의 일부 또는 전면 철수를 관철하려 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그가 주한미군 철수를 지렛대 삼아 더 많은 방위비 분담을 요구, 우리 사회에 분란을 일으킬 수 있다. 트럼프는 2018년부터 북한의 김정은을 세 차례 만나 ‘회담 쇼’를 했을 뿐 북한의 비핵화에는 사실상 큰 관심이 없다.
지난해 중국 건국 후 처음으로 국가주석 3연임에 성공한 시진핑은 대만 흡수 통일을 추진하며 대외 팽창 노선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시 주석은 2024년 신년사에서 오는 13일 총통 선거를 앞두고 있는 대만을 거론하며 “조국 통일은 역사의 필연”이라고 했다. 그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통일을 거론, 올해도 ‘대만 침공’ 가시화 여부가 주목받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면, 김정은을 포함해 전 세계 스트롱맨(철권 통치자)에게 둘러싸인 유일한 국가가 다시 된다. 트럼프·푸틴·시진핑이 몰고 오는 혼돈의 2024년에 과연 우리는 얼마나 대비돼 있나. 위기 상황에서 우리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원칙과 단결된 힘, 그리고 유연한 대응이다.
조선일보 사설
01.03 트럼프 재집권, 尹대통령에겐 기회일 수 있다
정계 아웃사이더 출신 두 대통령 의외로 잘 통하는 관계 될 수도
아베 前총리 ‘브로맨스’ 연구해 트럼프 승리 땐 韓 핵무장 이루라

▲2023년 12월 19일 아이오와주 워털루에서 열린 트럼프 전 대통령 대선 캠페인 연설회장에서 지지자들이 연호하고 있다./AP 연합뉴스
제목만 보고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나는 트럼프 지지자가 아니다. 대다수 독자처럼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한미동맹과 국제사회에 쓰나미를 몰고 온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칼럼을 쓰는 건 지난해 12월 워싱턴 DC 출장 때 ‘충격’ 때문이다. 여러 계층의 미국인을 만나면서 트럼프 재선이 현실화될 수 있음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감지했다.
미국인 기자 A씨는 “트럼프 집회에서 휴직하고 자원 봉사하는 이들을 많이 봤다. 현장에 가 보면 트럼프 열기가 뜨겁다”고 했다. 워싱턴 특파원으로 2008년 미 대선을 취재할 때가 떠올랐다. 당시 휴학하고, 휴가원을 내고 오바마를 지지하는 젊은이들을 적잖게 만났다. 미 각지에서 비슷한 현상을 보면서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이 나올 것 같다”고 생각했다.
미국인들은 한결같이 물가 걱정을 하고 있었다. 매일 북(北)버지니아에서 포토맥 강을 넘어 출근하는 공무원 B씨는 “집 임차료, 기름 값이 오르더니 팁도 올라 식당 가기가 두렵다”고 했다. 미국에 정착한 지 30년이 넘은 재미교포는 “트럼프가 재판 중이고 그의 인격은 좋아하지 않지만, 경제를 생각하면 트럼프를 찍어야 한다”고 했다. 트럼프 집권 가능성에 대비한 플랜B의 필요성을 일깨워 준 출장이었다.
트럼프가 2025년 1월 백악관에 재입성하면 윤석열 대통령은 2년 넘게 그와 호흡을 맞춰야 한다. 다행인 것은 윤 대통령과 트럼프가 의외로 통하는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은 주변의 비판에 구애받지 않고 고집스럽게 자신만의 스타일을 추구해 왔다. 격식을 따지지 않으며 정계의 아웃사이더로 대통령이 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트럼프는 역대 미 대통령 중에서 미국인이라는 자부심이 가장 크다. 애창곡 ‘아메리칸 파이’를 백악관에서 부를 정도로 미국에 호감을 가진 윤 대통령과는 코드가 잘 맞을 수 있다.
트럼프가 재선될 경우, 윤 대통령이 참고할 지도자도 있다. 고(故)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2016년 트럼프가 당선되자마자 금장(金裝) 된 골프 드라이버를 선물하며 ‘브로맨스(남자들 간의 특별한 우정)’를 만들었다.
2019년 국빈으로 일본을 방문한 트럼프는 온종일 아베와 골프장, 스모 경기장, 일식집을 다니며 “보물 같은 미·일 동맹”이라고 극찬했다.
아베는 북한을 잘 모르는 트럼프를 꽉 잡았다. 비핵화 검증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사실상 미·북 관계를 배후 조종하다시피 한 사실이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책 등에 나와 있다. 윤 대통령이 ‘트럼프-아베’에 비견되는 관계를 만들면, 주한미군 철수를 막는 것은 물론 트럼프와 김정은의 위험한 거래를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비확산 원리주의자’들이 대거 포진한 민주당 행정부에는 한국의 핵무장 주장이 1㎝도 먹히지 않는다. 트럼프는 1차 임기 때 한국의 핵무장에 비교적 열린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트럼프 임기 내 우리가 이스라엘처럼 핵실험하지 않고 신속한 핵무장으로 북핵에 맞서게 된다면, 윤 대통령은 내치(內治)에서의 아쉬운 성과를 만회하게 된다. 최소한 일본처럼 언제든지 핵보유국이 될 수 있도록 ‘핵 지위’를 높여야 한다.
워싱턴 DC를 떠나기 전 지인으로부터 “성공한 인생은 폭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빗속에서도 춤을 추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올해 거센 폭풍우가 몰려오지 않기를 바라나, 검은 비바람이 몰려 와도 댐이 튼튼하고 집 안에 먹을 것이 가득하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윤 대통령은 폭풍우 속에서 춤을 추기 위해서 연구하고 대비해야 한다. 2024년 대한민국의 외교·안보 현안 중 이보다 더 중요한 게 또 있겠는가.
조선일보 이하원 기자
01.03 한중 정상외교의 정상화
새해 한국 외교의 급선무는 한중 정상외교의 정상화다. 한국의 일인자와 중국의 이인자가 자꾸 매칭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정상회의를 계기로 리창 중국 총리와 만났다. 정작 11월에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는 함께 참석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이 불발됐다. 미·중, 중·일 정상회담은 열렸는데 한중 회담만 열리지 않았다. 올해 상반기 서울에서 개최될 것으로 예상되는 한·일·중 정상회의에도 관례상 중국 총리가 참석하기 때문에 윤 대통령은 또다시 중국의 이인자와 마주 앉게 된다.
중국이 한중 정상외교에서 이인자를 내세우기로 마음먹었나 싶을 정도다. 실제로 2016년 사드 사태 이후 시진핑 대신 중국 총리가 한국 대통령을 만나는 일이 부쩍 늘었다. 2017년 11월 문재인 전 대통령은 마닐라에서 리커창 당시 총리를 만났고, 이듬해 5월 도쿄에서 열린 한·일·중 정상회의에서 또다시 리커창과 마주 앉았다.
문 전 대통령이 시진핑과 회담한 것은 직접 중국에 찾아갔던 2017년 12월과 2019년 12월, 그리고 2018년 5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파푸아뉴기니)와 2019년 6월 20국(G20) 정상회의(일본)에서였다. 중국 외교부는 문재인과 시진핑의 전화 통화에 대해서도 대부분이 한국 측의 요청이라고 명시했다. 대조적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은 4년 동안 양자·다자회의 계기에 7번 시진핑과 회담했다.
시진핑의 방한은 무기한 미뤄지고 있다. 그가 마지막으로 한국을 방문한 것은 9년 반 전인 2014년 7월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3년 6월 중국을 방문하고 약 1년 만에 성사됐던 방한이다. 그러나 이후 박근혜·문재인이 두 번씩 중국에 갔는데도 시진핑의 답방이 없었다. 우리 정부는 시진핑이 2022년 11월(발리 한중 정상회담)과 작년 9월(항저우 아시안게임 계기 시진핑과 한덕수 국무총리 회담)에 방한 검토 의사를 밝혔다고 했지만, 중국 측 발표문에선 이런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시진핑의 외국 방문이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지난해 중국의 ‘제로 코로나’가 해제됐는데도 시진핑은 러시아(3월), 남아프리카공화국(8월·브릭스 정상회의), 미국(11월·APEC), 베트남(12월) 4곳만 방문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 후보자는 한미 동맹 못지않게 한중 관계도 중요하다고 했다. 불편해진 양국 관계를 염두에 둔 말이다. 이런 관계를 관리하려면 우리 대통령이 중국의 일인자인 시진핑과 직접 마주 앉아 대화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중국 또한 경제 위기와 서방권의 압박이란 내우외환 속에 이웃 나라인 한국과의 관계 회복이 절실하다. 한중의 일인자가 국제 무대에서 부지런히 만나 분위기를 예열한 다음 시진핑이 방한하는 2024년을 기대한다.
조선일보 베이징=이벌찬 특파원
01.03 위기의 자유주의 세계 질서

지구촌에서 자유주의 세계 질서가 위협받고 있다. 권위주의 진영이 득세하고 자유민주주의 진영이 움츠러드는 모양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고 있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대만 통일 의지를 밝히며 철권통치를 강화하고 있다. 오는 11월 치러지는 미국 대선에서는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대결이 유력한 가운데 트럼프가 여론조사에서 앞서고 있다. 유럽에서는 극우 정당들이 반이민 정서를 이용해 세력을 불리고 있다.
러시아군은 지난달 29일 우크라이나 전역에 2021년 2월 전쟁 발발 이후 최대 규모의 공습을 벌였다. 푸틴은 “결코 후퇴하지 않을 것”이라며 공세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푸틴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79.3%의 지지율을 기록해 오는 3월 대선에서 무난한 승리가 예상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미국 유권자들의 피로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친푸틴 성향의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하면 푸틴에게는 유리한 환경이 마련된다. 미국·유럽의 우크라이나 지원이 크게 감소한 상황에서 푸틴의 공세가 심해지며 러시아가 점령지를 인정받고 전쟁을 끝낼 가능성이 크다.
시진핑은 신년사에서 “조국 통일은 역사의 필연”이라며 대만과의 통일 의지를 분명히 했다. 오는 13일 치러지는 대만 총통 선거를 앞두고 대만 유권자에게 보낸 경고라고 파이낸셜타임스는 분석했다. 시진핑은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대만을 통일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친미·독립 성향의 민진당 후보가 당선된다면 중국과 대만의 갈등은 더욱 고조될 전망이다. 그는 또 부패 척결과 군부 숙청 등을 통해 권력을 더욱 집중화하고 있다. 시진핑은 역사 유물주의에 따라 자본주의 미국에 대해 사회주의 중국이 최종 승리할 것이라 믿는다. 시진핑은 지난해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미·중 정상회담에서 “지구는 중국과 미국 두 나라가 살기에 충분히 넓다”고 말했다. 중국식 권위주의가 미국식 자유주의와 함께 지구촌을 양분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권위주의 세력 지구촌에서 득세
한국은 자유주의 체제의 수혜자
미국 등 자유진영 연대 강화해야
유럽은 오는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정당이 세력을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은 내전에 시달리는 시리아·리비아 등에서 이민자가 대거 유입되며 반이민 정서가 팽배해지고 있다. 극우 정당들이 득세할 경우 우크라이나 지원 축소 등 국제 질서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전망이다.
가장 큰 문제는 자유민주주의 보루로 여겨지던 미국이 ‘자국 우선주의’로 기울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근간으로 세계 질서를 유지·확산하는 역할을 해왔다.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은 세계 운송로를 안전하게 만들었고, 세계무역기구(WTO)로 대변되는 자유무역 질서는 전 세계 국가에 번영의 기회를 제공해왔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이 막대한 피해를 보며 미국 내에서 국제 문제에 나서기보다는 미국 이익을 돌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시리아 내전에 개입을 꺼리며 발생한 대규모 이민 사태는 반이민을 내세운 유럽 극우 정당이 약진하는 기폭제가 됐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가 재선한다면 세계는 더욱 권위주의 색채가 짙어질 것이다. 트럼프가 집권할 경우 주한미군 철수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탈퇴 등의 정책이 추진될 수 있고, 모든 수입품에 ‘10% 보편 관세’ 부과로 자유무역이 쇠퇴하고 보호무역이 활개 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일한 알리사 파라 그리핀 전 백악관 공보국장은 최근 ABC 방송에서 “트럼프의 두 번째 임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 민주주의의 종말을 의미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로버트 케이건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밀림의 귀환(The Jungle Grows Back)』에서 2차 대전 이후 자유주의 세계 질서가 유지된 데는 미국의 힘이 뒷받침됐다고 진단한다. 하지만 미국의 상대적 힘이 쇠퇴하고, 미국 보수·진보 진영이 모두 국제 문제 개입을 꺼리며 이 질서가 위협받고 있다. 그는 자유주의 세계질서가 무너지면 국제사회에 약육강식의 정글이 펼쳐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국은 자유주의 세계 질서의 수혜자이다. 한국전쟁 이후 수출 위주의 경제정책이 성공한 데는 미국이 보장하는 자유무역체제가 뒷받침됐다. 세계에서 권위주의가 힘을 얻으면 무역 국가 한국의 입지는 그만큼 줄어든다. 한국의 국력에 걸맞게 미국·일본·유럽 등과 연대해 자유주의 세계 질서를 수호하는 것이 우리의 국익을 보장하는 길이다.
중앙일보 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
01.04 50국의 불확실성이 온다

▲4월10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열린다. 국회 앞에서 투표하는 퍼포먼스 모습./뉴스1
지난해 초 지구촌이 주목한 선거는 5개 정도였다. 장기 집권 중인 튀르키예 대통령에게 또 한번의 대관식이 된 대선이 그중 가장 관심 있는 선거였다. 핀란드 의회 선거 등이 있었지만,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다.
올해는 다르다.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한 해가 될 듯하다. 50국에서 대선 또는 총선을 치른다(뉴욕타임스). 유권자를 다 합치면 40억명에 달한다. 이는 세계 인구와 GDP(국내총생산)의 40%를 차지한다. 2024년엔 ‘수퍼 선거의 해’라는 닉네임이 붙었다.
당장 이번 달부터 국제 정치 지형에 영향을 줄 선거가 한반도 옆에서 열린다. ‘중화민국(대만)’ 총통 선거다. 현 대만 집권당은 반중·독립 성향의 민진당이다. 친중인 제1야당 국민당에 쫓기고 있다. 지지율 차이가 아슬아슬하다.
이런 가운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26일 “조국 통일은 반드시 실현돼야 한다”면서 대만을 통일시키겠다는 의지를 재차 밝혔다. 중국이 대만에 경제적 혜택을 제공하며 마음을 사는 ‘중국판 햇볕 정책’을 펼 것이라는 관측부터 대만해협 봉쇄설, 군사 침공설까지 여러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어떤 시나리오든 한중 관계뿐 아니라 한미 그리고 남북 안보 등 거의 모든 문제에 직결된다.
3월 러시아 대선도 있다. 푸틴의 5선이 당연시되지만 반대 여론도 있기 때문에 선거를 앞두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국민에게 치적으로 내세울 전과를 거두려 총력 공세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있다. 3월 우크라이나 대선도 변수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전쟁에 따른 계엄령으로 당초 예정된 3월 대선을 치르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반대 진영에서는 선거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젤렌스키의 정적인 수도 키이우의 시장은 최근 공개적으로 “전쟁 장기화로 국민이 힘들어하고 있다” “젤렌스키는 실정으로 실각하고 말 것”이라며 정권 교체 여론을 키우고 있다. 알다시피 4월에는 우리 여의도 권력을 재편하는 총선이, 11월에는 미 대선이 있다. 이 둘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두말할 것도 없다.
초당적 단체인 미 외교협회의 리처드 하스 명예회장은 “내년 권위주의 세력들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유 민주주의 국가의 선거에 어떤 형태로든 개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형 테러, 경제적 혼란 등을 비롯해 인터넷 여론 왜곡 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진짜 위협은 우리 안에 있다”고 했다. 내부 분열, 양극화, 민주주의 제도 악용 등이 더 치명적이라는 것이다. 얼마 전 방한한 그는 마스크를 쓴 기자에게 말했다. “민주주의 체제를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외부 바이러스를 막을 ‘마스크’도 필요하지만, 기본은 스스로 몸을 상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해 ‘면역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대만, 한국, 미국 등 올해 많은 선거가 치러지는데 ‘건강’ 관리 잘해야 합니다.”
조선일보 노석조 기자
01.05 ‘글로벌 사우스’를 챙길 때다
인도 등 亞·阿·남미의 130여 국
북반구 선진국 맞서 협력·연대
도덕주의보다 현실주의 입각
美中 택일 없이 선택적 협력
한국이 글로벌 중추 국가 되려면
지역별 맹주와 협력틀 만들어야
성공스토리·상생길 공유할 때
그들도 한국 G7 공감해 줄 것

▲지난 1월 화상 회의 형식으로 열린 '글로벌 사우스의 목소리' 정상회의에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발언하고 있다. /인도 외교부
대한민국이 2024년 ‘글로벌 중추 국가’ 실현에 다가가려면 인도-태평양 전략의 연장 선상에서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를 챙겨야 한다. 미·중 전략 경쟁 격화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글로벌 사우스가 세계 질서 재편의 주요 변수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의 개도국 130여 개를 가리키는 글로벌 사우스는 미국·중국·러시아 그리고 유럽 및 동북아의 선진국 50여 개를 뜻하는 ‘글로벌 노스(Global North)’의 ‘지배’에 저항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국제 질서의 현상 유지를 원하는 미국과, 이에 대한 변경을 원하는 중·러는 모두 글로벌 사우스의 협력과 지지가 필요한 상황이다.
글로벌 사우스는 인도, 브라질, 사우디, 인도네시아, 남아공 등이 각자 또는 서로 연대하면서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다. 이들이 냉전기 비동맹(non-alignment)과 다른 것은 ‘도덕주의’보다 ‘현실주의’에 입각해 있다는 점이다. 과거 비동맹국가들이 미국과 소련 둘 다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멀리했다면, 최근 글로벌 사우스는 미국과 중국 중 택일하지 않고 국익과 세력 균형에 따라 선택적 협력을 한다. 인도는 중국과 경제 협력을 하면서도 중국을 견제하고 첨단 기술 협력을 위해 미국을 가까이한다. 브라질은 기후변화 문제에 관해 미국과 협력하면서도 중국 및 러시아와 잘 지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 대부분이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제재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중국의 공세적 침투 행태를 경계한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 기술 분야의 필수 광물을 보유한 칠레, 브라질, 아르헨티나, 인도네시아, 콩고 민주공화국 등은 자원을 무기로 자신들의 몸값을 높이고 있다.
이러한 전략적 틈새를 활용해 인도가 글로벌 사우스의 맹주를 자처하고 나섰다. 인도는 2023년 1월 온라인으로 글로벌 사우스 정상회의를 주최한 데 이어, 9월 9~10일 뉴델리 G20 정상회의에서 미국, 중국, 러시아로부터 동시에 러브콜을 받았다. 인도는 채무 위기를 겪고 있는 아프리카 등 50여 국에 대한 채무 탕감을 G20 회원국들에게 요청했다.
이러한 세계 질서의 변곡점에서 글로벌 노스의 일원인 한국은 국력에 걸맞은 역할과 경제안보 제고를 위해 글로벌 사우스를 본격적으로 챙길 시점에 왔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후 지난해까지 1년 7개월 동안 ‘자유와 연대’를 강조하며 국제적 위상을 제고했다. 나토 정상회의에 2년 연속 참석했고, 2023년 G7 정상회의에도 초청받았다. 국익 외교에 가치 외교를 더해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수호하려는 모습을 각인시켰다. 더욱 강력해진 한미 동맹, 한미일 협력, 그리고 우방국과의 관계를 활용하여 이제는 글로벌 사우스를 챙겨야 한다. 한-인도 관계를 인도-태평양 전략의 주요 축으로 발전시키고, 그 연장 선상에서 브라질, 사우디, 인도네시아, 남아공 등 글로벌 사우스의 지역별 맹주들과 협력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
올해 11월 미 대선에서 미국 우선주의와 신고립주의 성향의 후보가 당선될 경우 세계 질서가 요동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노스의 미 동맹국들이 글로벌 사우스 주도국들과 구축한 협력 네트워크가 탄탄해 보이면 미국이 신고립주의로 회귀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글로벌 사우스 내 (지역 맹주들을 제외한) 저개발국과의 협력 역시 한국 혼자보다는 미국, 일본, EU, 캐나다, 호주 등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국들과 함께 추진해 가는 게 좋다. 원조 정책을 재점검하고 개선책을 논의할 고위급 협의를 우리가 제안하는 것도 방법이다. 개발 협력 정책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공유하면서 체계적 역할 분담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2022~2023년 지정학적 갈등 속에 글로벌 사우스의 존재감이 새벽 눈 내리듯 소리 없이 부각되면서 2030 엑스포 유치전은 글로벌 노스의 일원인 한국에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아프리카, 중동, 중남미 등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의 접촉면을 넓힌 것은 향후 ‘글로벌 사우스 외교’의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우리의 성공 스토리를 공유하고 상생의 길을 제시할 때 대한민국이야말로 G20을 넘어 G7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는 공감대가 국제사회에 자연스럽게 정착될 것이다.
조선일보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前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
01-05 우크라와 중동에 북 미사일…무기 밀매 봉쇄 더 급해졌다
블라디미르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이 3년 차로 접어든 가운데, 러시아군이 북한제 탄도미사일과 발사대를 우크라이나 공격에 동원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존 커비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3일 북한제 탄도미사일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야간 공습 등에 사용 중이고 일부 잔해는 자포리자 지역에서 발견됐다고 밝혔다. 북한이 컨테이너 1000개 분량의 무기를 러시아에 보낸 정황이 지난해 9월부터 공개된 바 있지만, 러시아가 북한제 탄도미사일을 실전에 투입 중이라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시험발사 수준인 북한 중·단거리 탄도미사일의 실전 투입으로 데이터가 축적되면 요격률이 높아져 대한민국 안보엔 비수가 된다.
북한이 제작한 탄도미사일 등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뿐 아니라 이스라엘을 테러 공격한 하마스, 나아가 홍해 지역을 무법 지대로 만들고 있는 예멘 후티 반군 등도 사용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10월 예멘 후티 반군이 쏜 순항 미사일에서는 한글 표기가 발견됐다. 이스라엘을 향해 발사된 이 미사일은 요르단 공군에 의해 요격됐는데, 여기에 장착된 엔진은 북한의 기술 지원으로 이란이 개발한 터보 제트 엔진과 동일하다고 한다. 북한과 예멘 후티 반군의 무기 거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예멘제재위원회에서도 지적된 바 있다. 하마스가 이스라엘 공격 때 사용한 인명 살상용 유탄발사기에서도 북한식 표기가 발견됐다. 이스라엘 당국은 하마스가 사용 중인 북한 무기가 1만 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지난해 3월 푸틴에게 전범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그럼에도 김정은이 푸틴과 무기 거래를 한 것은 똑같은 전범임을 자인한 짓이다. 푸틴이 반대급부로 북한에 전투기, 지대공미사일, 장갑차, 첨단 군사기술을 제공할 경우 직접적인 안보 위협이 된다는 점에서 엄중 대응이 필요하다. 아울러, 북한의 탄도미사일 밀매 봉쇄는 우크라이나 전쟁 조기 종식뿐 아니라 중동 분쟁을 더 이상 격화시키지 않기 위해서도 긴요하다. 윤석열 정부는 미국과 일본, 유럽연합(EU) 등과 공조해 대량파괴무기(WMD) 확산방지구상(PSI) 체제 등을 가동, 북한의 무기 수출을 원천 봉쇄하는 조치에 나서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2024년 대한민국 나침반
01.05 샹그릴라 레에서 본 2024년 복합위기 시대의 지구촌과 한국
한국, 트럼프 재등장과 중국 급추락으로 생존 능력 시험받는 해 될 것
⊙ 한국, 핵무장과 한일관계 강화로 생존 위기 극복해야
⊙ 트럼프, 문재인 때문에 한국 불신… 중국, 한반도 놓고 미국과 거래 시도할 것
⊙ 한국, 트럼프와의 외교라인 확보도 어려울 것… 한미동맹 중시하는 지식인·전문가 집단과 소통해야
⊙ 제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 겪으면서 유토피아인 샹그릴라 다룬 《잃어버린 지평선》 베스트셀러 돼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 現 워싱턴 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레는 조용하다. 폴리크라이시스와 무관한, 21세기 유토피아라 불러도 될 신비로운 공간이다. 사진=유민호
2024년 새해다. 한 해의 출발점에 서서 새로운 결의를 하고 아름다운 덕담을 주고받을 때다.
신년을 어디에서 맞이할지는 필자의 ‘연례’ 고민 중 하나다. 30대 이후 세대라면 누구라도 그렇겠지만, 1년이 하루이고 10년이 일주일처럼 흘러간다. 너무 빨라서 어제의 시간을 더듬고 기억하기 어렵다. 그래서일까? 필자는 신년만큼은 기억에 확실히 남기려 노력한다. 어디에서 신년을 맞이할 것인가, 신년 첫나들이는 어디로 갈 것인가에 방점을 두면서 연초를 맞이한다. 40대 이후에는 주로 유럽에서 신년을 맞이했다. 10년 이상 베네치아의 산 조르조 교회(San Giorgio)에서 천년 해양대국의 기상을, 혹은 로마 교황청의 베드로 대성당(St. Peter’s Basilica)에서 신(神)의 그림자를 느끼면서 한 해의 첫출발을 했다.
디야르바키르, 파라다이스 혹은 에덴동산

▲‘에덴동산’으로 추정되는 튀르키예의 디야르바키르. 강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는 로마 시대에 건설한 것이다.
‘파라다이스(Paradise)’는 튀르키예(터키)에 머물면서 알게 된 새로운 신년맞이 공간이다. 팬데믹이 맹위를 떨치던 2021년 새해, 잊을 수 없는 기억 하나를 만들어냈다. ‘에덴동산의 원류’라 불리는 땅과의 만남이다. 시리아 국경에 인접한 곳으로, 튀르키예 이즈미르(Izmir)에서 동쪽으로 1400km 떨어진 ‘디야르바키르(Diyarbakır)’가 그곳이다. 《성경》에 나오는 풍경·지리·지세·지형을 전부 판독한 고고학자들은 이 디야르바키르 주변 어딘가가 에덴동산의 원점이라고 주장한다. 《성경》에서는 에덴동산의 위치를 ‘네 개의 강이 시작되는 원류(源流)’에 있다고 설명한다. 원래 에덴의 기원인 ‘에딘(Edin)’이란 단어는, ‘물이 풍부하고 과일이 많은 곳’을 의미한다. 디야르바키르는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두 개의 강을 끼고 있다. 도시 한가운데 성 위에 올라가 보면, 도심 전체를 휘감은 강 티그리스가 펼쳐진다. 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황량한 사막 땅이지만, 디야르바키르 주변만은 동물·과일·물로 채워진 녹색지대다.
이상향(理想鄕)·낙원(樂園)을 뜻하는 말로 파라다이스도 있다. 이 말은 원래 고대 페르시아어 ‘파라데이소스(Paradeisos)’에서 온 말이다. 이후 기원전 5세기 고대(古代) 그리스가 수입해 이 말을 확산시켰다.
‘파라다이스’는 원래 ‘닫힌 공원(Enclosed Park)’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왜 ‘열린 공원’이 아닐까? 안전과 평화가 그 이유다. 고대의 인간은 겁이 많고 나약한 존재였다. 야생의 자연이 아닌, 인간을 행복하고도 즐겁게 만들어줄 ‘보호막’이 있는 안전한 공간이 필요했다. 동물에게 잡아먹히고 천재지변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땅이 아니라, 신의 품 안에 있는 ‘안전한’ 공원 말이다. 이게 바로 ‘에덴동산=안전 평화=파라다이스’인 이유다.
유네스코는 2015년 디야르바키르 도시 전체와 도심 밖의 자연공간 헤브셀 정원(Hevsel Gardens)을 인류 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아마 파라다이스와 에덴동산을 염두에 두고 내린 결정일 것이다.
샹그릴라,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2024년 신년맞이를 위해 어디로 갈지에 대해 고민했다. 부모님이 묻힌 선산으로 갈 생각도 했지만, 문득 지구에 남은 마지막 ‘유토피아(Utopia)’가 머리에 떠올랐다. 바로 인도 최북부 라다크(Ladakh) 지방이다. 거기서도 티베트 불교 성지(聖地)로 통하는 레(Leh)를 2024년 필자의 신년 출사표를 던질 장소로 선택했다.
서방에서 레는 지구에 남은 최후의 유토피아 공간으로 통한다. 인류 문명사에 관심이 있다면 ‘샹그릴라(Shangri-La)’라는 명칭에 익숙할 것이다. 1933년 영국의 작가 제임스 힐턴(James Hilton)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에 등장하는 유토피아가 바로 샹그릴라다. 히말라야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지상 낙원으로, 모든 사람이 수백 살이 되도록 무병장수(無病長壽)하면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행복의 땅이다.
원래 샹그릴라는 티베트 불교의 유토피아 세계관인 ‘샴발라(Shambhala)’와 관련이 있다. 불교세계가 그리는 이상향으로, 힌두교도 꿈꾸는 천국의 땅이 샴발라다. 제임스 힐턴이 그린 유토피아 샹그릴라는 샴발라의 또 다른 얼굴이라 볼 수 있다.
파라다이스와 유토피아는 비슷하면서 전혀 다른 개념의 세계다. 파라다이스는 정신적·개인적·종교적 차원의 천국이다. 인간과의 상호관계가 아니라, 신을 염두에 두면서 자연 및 동물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공간이다. 유토피아는 사회적·집단적·정치적 관점에서 본 인간세계에서의 낙원이다. 신에서 벗어나, 국가·조직·사회와 같은 인간세계에서 적용되는 평화·평등·자유·안전으로 채워진 세계가 유토피아다. 따라서 홍길동이 꿈꾼, 적서(嫡庶) 차별이 없는 율도국은 파라다이스가 아닌 유토피아에 해당한다.
파라다이스와 유토피아는 반대 개념으로도 구별이 된다. 신의 벌(罰)에 기초한 지옥이나 어두운 지하세계가 파라다이스의 반대 개념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는 유토피아와 정반대인 디스토피아(Dystopia)의 전형적인 본보기다.
레로 가는 길

▲레 공항에 도착한 필자.
유토피아 레로 가는 길, 여행객 입장에서는 비행기나 기차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대략 10시간 걸리는 기차로 이동한 후, 근처 도시에서 다시 승합차를 타고 산속으로 18시간 정도 달리면 히말라야 오지(奧地) 라다크 지방에 도착한다. 오래전부터 기차 여행을 꿈꿨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연말연시 특급기차가 매진이다.
인도는 인구가 14억 명이 넘는 세계 최대의 인구 대국이다. 사람으로 미어터지는 입석(立席)으로 갈 수도 있지만, 체력적으로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키진 않았지만, 고민 끝에 결국 비행기 표를 끊었다.
아침 5시30분, ‘스파이스 제트(Spice Jet)’라는 기묘한 이름의 인도 비행기에 올랐다. 세계 최악의 공해도시 뉴델리에서 실존하는 유토피아 공간에 이르기까지의 소요시간은 1시간30분 정도다. 150달러만 주면, 날아서 히말라야 낙원까지 갈 수 있다.
정확히 아침 7시5분, 비행기가 해발 4000m 위에 들어선 비행장 활주로에 내렸다. 기온은 영하 18도. 구름 한 점 없는 맑고도 푸른 날씨다. 눈이 시리도록 새파란 하늘이란 표현이 떠올랐다. 눈으로 뒤덮인 히말라야 산들이 넓은 비행장을 에워싸고 있었다.
유토피아 통과의례는 따로 없다. 특별한 절차 없이, 활주로 한가운데에서 내려 대합실로 간 뒤 곧바로 공항 밖으로 나갔다. 이른 아침인데도 티베트인 운전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필자 친척의 얼굴을 빼다 박은 듯한 ‘텐진(Tenzin)’이란 이름의 20대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 텐진은 ‘달마 대사의 분신’이란 의미다. 영어가 유창했다. 전부 외국인 관광객에게서 배운 길거리 영어라고 한다. 라다크 지방에 머무는 동안 교통편의 전부를 텐진에게 부탁했다.

▲잔스카르와 인더스 강이 만나는 합일점. 위쪽이 잔스카르, 아래쪽이 인더스 강이다.
레는 비행장에서 5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인구 3만 명 정도인 해발 3500m의 고원(高原)도시. 인도 문명의 출발점 인더스(Indus)강이 라다크 아래 동남쪽으로, 잔스카르(Zanskar)강이 서남쪽으로 흐른다. 둘 다 히말라야의 눈을 기반으로 한 강이지만, 잔스카르는 청명하고 깊은 코발트빛이다. 반대로 인더스는 진흙이 뒤섞인 탁한 물이다.
유토피아 샹그릴라는 뒤로는 히말라야를, 앞으로는 인더스와 잔스카르를 두고 있다. 배산임수(背山臨水)인 셈이다. 유토피아에는 특별한 약 하나가 필요하다. 고산병(高山病) 예방약이다. 두통과 탈수(脫水)를 막는 효과가 있다. 고혈압이 있는 실버 세대에게는 레 여행이 어려울 듯하다.
레의 황금

▲샹그릴라 레의 불교는 평화와 자연과의 조화가 우선시된다. 수행을 통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는 무병장수 땅이기도 하다.
레는 17세기 건립된 9층 건물의 왕궁이 들어선 고대 티베트 정치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지금도 80대 달라이 라마가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곳이다. 라다크 지방과 레는 정확히 40년간 지속된, 필자의 노스탤지어 공간이기도 하다.
1984년 KBS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실크로드〉를 통해, 고대 불교도시 라다크와 레가 소개됐다. 보는 즉시 빨려 들어갔다. 매년 6월에 벌어지는 티베트 불교의 ‘신두 다르샨(Sindhu Darshan)’ 축제였다고 기억하는데, 깊은 신앙심이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가면, 의상, 춤, 노래, 그리고 특유의 티베트 악기가 가슴에 새겨졌다. 단 한 번의 만남이었지만, 라다크 지방과 레에 관한 필자의 환상은 이후 한 번도 식지 않았다.
겨울의 레는 차갑고 건조하다. 추위와 함께 입술이 트고, 온몸이 가려웠다. 하지만 텐진의 도움으로 레에서 사방 100km 내 티베트 사원과 자연 풍광을 원 없이 구경할 수 있었다.
필자가 항상 강조하는 말이지만, 놀 수 있을 때 놀아야 한다. 높은 곳에 오를 만한 다리와 체력이 있을 때 여행에 나서야 한다. 라다크 지방에 산재한 티베트 사원 대부분은 산 정상에 들어서 있다. 산소도 모자라는 높은 산에 오를 만한 폐활량(肺活量)이 중요하다.
사원 안에는 수백 년, 아니 천 년이 넘은 탱화(幀畵)와 불경(佛經)들이 보관돼 있다. 한국의 큰 불당(佛堂)과 달리, 본당(本堂)이라 해도 10여 명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 협소하다. 그러나 불교 역사와 깊은 신앙심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공간이다.
사원 아래를 내려다봤다. 풍광이 멀리 파노라마처럼 이어져 있다. 끝이 없다. 인더스·잔스카르 강줄기와 이어진 농토, 길쭉한 나무가 파노라마 풍경의 기반이다. 겨울이라 풍경 전체가 황톳빛이다. 신비하게도 3월부터 풀과 나무가 소생하면서 곡식들도 자란다고 한다. 고원지대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나는 농산물들은 해충 한 마리 없는, 물만 주면 자라는 무공해 청정 농산물이다.
대략 3월부터 9월까지가 샹그릴라 방문 최적기다. 흥미롭게도 최근 유토피아 방문객 대부분은 외국인이나 불교 신자가 아닌, 힌두교 신자 인도인이라고 한다. 라다크 지방과 레에서 판매하는 황금이 복을 준다는 얘기가 힌두교도 사이에 퍼져 있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황금은 신앙이자 종교다. 결혼식은 인도인의 인생 최대 하이라이트다. 보통 결혼식 며칠 전부터 밤을 새우며 축하하는데, 신랑이 신부에게 고급 황금 패물(佩物)을 선물하는 장면이 결혼식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힌두교도들은 샹그릴라의 황금이야말로 신부와 신랑 모두에게 복을 준다고 믿고 있다. 이 때문에 매년 엄청난 힌두교도들이 결혼식용 황금 선물을 구하러 레에 들른다.
폴리크라이시스
‘폴리크라이시스(Polycrisis)’라는 말이 있다. 팬데믹을 맞아 등장했는데 ‘복합·동시다발 위기’라 직역할 수 있다. 국가·사회·조직 사이의 생각과 방향이 부딪치면서 드러난 글로벌 위기로, 하나가 아닌 동시 출현이 특징이다. 팬데믹, 지구온난화, 포퓰리즘, 전체주의, 우크라이나 침략, 나아가 최근의 가자 전쟁과 곧 닥칠 대만(臺灣)전쟁 같은 초대형 재난들이 폴리크라이시스의 본보기들이다.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고, 그 어떤 것도 간단히 해결할 수 없는 글로벌 차원 인재(人災)라는 것도 공통분모다. 지구촌에 사는 한, 싫든 좋든 수많은 위기에 뒤얽혀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숙명론’도 폴리크라이시스에 배어 있는 의미 중 하나다.
폴리크라이시스는 글로벌 시대의 종언(終焉)과 함께 나타난 ‘불편한 진실’의 진짜 얼굴에 해당한다. ‘우리 모두 함께’라는 말과 함께, 좋은 게 좋다는 생각이 글로벌 시대의 일상 풍경이자 상식이었다. 서로 돕고, 모두에게 기회를 주자는 고상하고도 품격 높은 생각이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 시대의 기본자세이자 방향이었다.
팬데믹을 전후(前後)로 상황은 급변했다. ‘위 아 더 월드’가 아니라, ‘위 아 더 세퍼레이티드(We are the Separated·우리는 서로 분리된 존재다)’라는 생각이 퍼져 나갔다. 미중(美中) 디커플링(decoupling)이 그 대표적인 예다.
사실 이런 상황은 2016년 6월 23일 영국에서부터 시작됐다. 이날 국민투표에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가 확정됐다. 이른바 브렉시트(Brexit)다.
역사의 메타포(Metaphor)라고나 할까? 영국이 EU 탈퇴를 정식 통보한 것은 2020년 1월 31일이다. 중국 우한발(發) 팬데믹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가던 바로 그 시기에 영국의 나 홀로 독자노선이 시작된 것이다. 우연을 넘어선 필연 같은 타이밍이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대중(對中)무역 보복도 브렉시트 국민투표 직후부터 현실화됐다. 트럼프는 중국뿐 아니라 한국 등 기존의 미국 동맹국이나 우호국에 대한 경제보복도 일상화했다. 전 세계를 향한 미국판 홀로서기가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란 슬로건과 함께 급속히 진행됐다.
앵글로 색슨의 황혼?
폴리크라이시스는 이 같은 상황 속에서 가속화됐다. 그러나 이는 ‘위 아 더 월드’ 시대에 이미 잠재해 있던 인류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고 볼 수 있다. 쇄국주의 영국이나 인종주의자 트럼프 탓이 아니다. 인류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웃고 마시면서 숨기거나 잊었던 ‘불편한 진실’이 수면으로 드러났을 뿐이다.
필자는 인류문명사에 기초해서 생각할 때 영미(英美)를 중심으로 한 ‘앵글로 색슨계(Anglo Saxons)’야말로 근대 이후 역사의 원동력이라 확신한다. 독일은 너무도 이념적이고, 프랑스는 지나치게 이상적이며, 이탈리아는 극단적으로 자율적이다. 일본은 폐쇄적인 집단주의에 빠져 있다. 러시아는 무식꾼 힘자랑 대회에나 어울린다. 중국은 자화자찬과 복수심리로 날밤을 새우는 나라다.
앵글로 색슨계 국가들은 독일·프랑스·이탈리아·일본이 가진 장점과는 거리가 먼 나라들이다. 단점 또한 그들이 가진 단점과 거리가 멀다. 영국은 유럽 대륙에서, 미국은 유럽·아시아·아프리카 모두에서 벗어나 있다. 객관적 눈으로 세상을 보면서, 상대의 장점 흉내보다 단점 제거에 주력한다. 바로 이 같은 자세가 합리적이고 무리하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처리해나가는 앵글로 색슨계 경영방식으로 발전했다. 개인·조직·사회·국가 모두 조직 운영과 경영에 익숙하다.
이 결과 영국은 16세기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한 이래 20세기 초까지, 무려 400여 년간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이룩했다. 미국은 영국의 전통과 정신을 이어받은 앵글로 색슨계 후손이다. 20세기부터 미국은 대제국 영국을 대신한 세계 패권(覇權) 국가가 되었다.
앵글로 색슨계의 반란, 아니 자각(自覺)이라고나 할까? 브렉시트와 아메리카 퍼스트는 앵글로 색슨계의 변화된 세계 경영 방식을 예감케 하는 신호탄이었다. 브렉시트 결정 8년도 안 된 2023년 말, 세계는 이미 요동치고 있다. 폴리크라이시스는 바로 이 같은 상황의 증거다. 앵글로 색슨계가 변화에 눈을 뜨고 새롭게 대응하려는 순간, 전 세계가 흔들리고 있다.
‘위 아 더 월드’ 시대의 습관일 듯하지만, 영미의 변화를 그들의 황혼(黃昏)이라 해석하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철수, 최근 가자지구에서의 비극을 보면서 미국이 행사할 현실적 파워가 없다는 이유로 ‘미국=황혼대국’이라 부르는 사람들도 많다. 영국도 인도계 총리 리시 수낵이 등판할 정도로 통합이 어려운 나라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식으로 반미(反美)·반영(反英)으로 가면 비(非)앵글로 색슨계의 비위를 맞출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시대정신을 못 읽은 속 좁은 편견일 뿐이다.
사람들은 왜 샹그릴라를 찾나?

▲유토피아 소설의 백미인 제임스 힐턴의 《잃어버린 지평선》.
아프가니스탄 철군 이후 가장 큰 문제에 부딪힌 나라는 미국이 아니라, 아프가니스탄 자신이다. 가자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면서 미국을 비난하지만, 실제 최대 피해자는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자신일 뿐이다. 영국이 브렉시트 이후 경제가 하강세라고 하지만, 영국을 잃은 유럽은 더 큰 피해에 직면해 있다. 경제만이 아니라, 이슬람 이민자에 의한 테러나 도시 범죄는 유럽 대륙의 고질병(痼疾病)이 된 지 오래다.
앵글로 색슨계에 대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사실 영미 두 나라는 큰 문제 없이 잘살아가고 있다. 욕과 비난은 넘쳐나지만, 현실에서의 글로벌 앵글로 색슨 1강(強) 체제는 끄떡없다.
필자의 일관된 세계관인데, 미국은 중국 아니 세계가 없어도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은 미국 없이는 살아남기 어렵다. 아무리 값싸고 뛰어난 성능의 중국산 전기자동차(EV)라 해도 미국 수출이 막힐 경우, 골목대장 수준의 동네 자동차로 전락할 뿐이다. 중국 국내 시장이나 아프리카·동남아시아·개발도상국 시장만으로는, 우후죽순(雨後竹筍) 격으로 생겨나는 저가의 중국 전기자동차 산업을 유지·발전시켜나가기 어렵다.
최근 10년 내 나타난 앵글로 색슨계의 변화·변신·자각은 자국만이 아닌, 전 세계를 요동치게 만드는 폴리크라이시스의 근본 원인이자 배경이었다.
진정한 문학은 시대의 산물이자 역사의 거울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샹그릴라를 다룬 힐턴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도 마찬가지다. 이 소설이 1933년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던 것은 제1차 세계대전과 1929년 전 세계를 강타한 대공황 때문이었다. 전쟁·죽음·가난·기아가 판치는 세상에 대한 극단적인 공포와 비관이 사람들로 하여금 히말라야의 유토피아 샹그릴라를 찾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어 제2차 세계대전이 닥치면서 이런 생각은 인류의 종교이자 신앙처럼 되어버렸다.
필자는 가까운 시일 내 전 세계가 공감할 유토피아 소설이 등장할 것이라 확신한다. 폴리크라이시스의 여파로 극단적인 공포와 비관이 만연하고, 곧바로 유토피아에 대한 꿈과 환상이 퍼져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바늘 가는 데 실 가듯, 유토피아가 등장할 때는 지구 종말 ‘노아의 방주(方舟)’ 얘기도 반드시 나타난다. 변형된 모습이지만, 지구온난화 경고는 21세기판 ‘노아의 방주 2.0’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용의 추락

▲용은 중국에서만 신성시될 뿐, 유럽이나 기독교권에서는 악의 상징으로 통한다. 상상 속 동물 용에게 성과 속의 절대가치를 부여한 유일한 나라가 중국이다.
책임론이라고나 할까? 폴리크라이시스의 최대 책임자는 누구일까? 트럼프부터 떠올리는 사람도 많겠지만, 이는 반미(反美)감정에 충실한 생각일 뿐이다. 지구촌 모두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대륙별로 나눠 폴리크라이시스 현황에 대해 알아보자.
먼저 아시아 대륙에서의 중국부터 보자. 필자 판단으로는 중국은 21세기 폴리크라이시스의 최대 진원지(震源地)이다. 상황이 닥쳐도 문제해결은커녕, 방관하거나 악화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나라다.
공교롭게도 2024년은 용(龍)의 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용은 중국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현실이 아니라, 불을 뿜으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상상 속 동물이 중국의 상징이다. 실체(實體)가 없는 나라, 관념과 상상 속에나 존재하는 땅이 중국일지 모른다. 그런 나라를 기리면서,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하고 자랑한 나라가 조선이다.
사람들은 희망과 기대에 찬 용의 해를 맞겠지만 2024년은 용의 추락이 본격화되는 해가 될 것이다. 중국 경제가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 중국은 글로벌 폴리크라이시스를 조장(助長)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나 글로벌 시대정신과 정반대로 가면서 자기 이익만 챙기려는 나라다. 악(惡)을 행하는 동안 중국 그 자신도 악 그 자체로 변해가고 있다. 환경 문제나 급추락하는 경제 문제에서 보듯, 중국 스스로가 폴리크라이시스 진원지가 되어가고 있다.
2023년 12월 초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부동산과 관련해 중국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숨은 부채(負債)가 7조~11조 달러(약 9100조~1경4400조원)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3조 달러의 외환(外換)을 보유하고 있다. 부동산 부채의 상당 부분은 외국은행과 연결돼 있다. 《WSJ》 기사에 기초한 단순 계산법이지만, 중국은 이미 총 보유 외환조차도 전부 까먹을 수준의 부동산 부채 국가다. 2023년 12월 5일, 신용평가회사 무디스가 중국 신용 수준을 ‘부정적(Negative)’이라고 하향 조정한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중국은 일본의 전철(前轍)을 똑같이 밟으면서 일본처럼 ‘잃어버린 30년’으로 본격 진입하기 시작했다.
중국, 한반도 놓고 트럼프와 거래할 수도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만난 문재인 당시 대통령, 트럼프 미국 대통령, 김정은. 한국 정부에 대한 불신감을 갖고 있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김정은과 거래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중국의 수직 추락은 바로 옆에 붙은 한국의 오늘과 내일을 변화시킬 최대의 변수(變數)이자 상수(常數)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1990년대 이래 용의 비상(飛翔)과 함께 발전한 한국의 성장도 급강하할 수밖에 없다. 2023년은 맛보기일 뿐, 더 큰 경제적 고통이 올해 밀려들 것이다.
19세기 말~20세기 초 구미(歐美)에서 유행했던 고전적 의미의 황화론(黃禍論·Yellow Peril)은 ‘엄청난 인구를 바탕으로 한 세계의 중국화’로 풀이된다. 인해(人海)처럼 중국인이 몰려들면서 현지인들의 존재감이 사라지는 것이다.
21세기 글로벌 시대의 황화론은 어떨까? 돈·기술·정보·상품·군사·외교를 비롯해, 인류가 접하는 모든 물건과 세상이 황화론의 대상이다. 어디 하나 피할 구멍이 없다. 최근 중국산 요소 수출 중단에서 보듯, 한국은 이 같은 21세기판 ‘전방위 황화론’의 직접 피해자가 될 전망이다.
정치적 관점의 황화론은 한층 더 심각하다. 2024년 11월 폴리크라이시스의 결정판이 될지도 모를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다. 2023년 말 기준으로 이변(異變)이 없는 한 트럼프가 당선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한국 정부를 불신한다. 문재인 내로남불 정권이 보여준 ‘뻥튀기 외교’에 질렸기 때문이다. 상대가 윤석열 대통령이라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한국은 트럼프와의 기본적인 외교 라인조차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다.
중국은 이 같은 틈새를 노려 한반도를 두고 미국과 거래(deal)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전부 한순간 쓰러지는 판에 전방위로 트럼프에게 매달려야 하는 나라가 중국이다. 대만도 딜의 대상이지만, 한반도도 트럼프 입맛에 맞는 딜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이제는 핵무장 해야
폴리크라이시스와 관련한 신대륙 아메리카의 실상은 어떨까? 미국은 폴리크라이시스 종합무대이자 해결창구, 나아가 문제 제기에 나선 나라다. 2024년 1월, 트럼프는 이 같은 상황의 중심에 선 인물이다.
트럼프 정치의 출발점은 ‘아메리카 퍼스트’다. 동맹국·우호국이라도 아메리카 퍼스트를 위한 제물(祭物)로 추락할 수 있다. 중국은 이 같은 빈틈을 파고들 것이다.
한반도가 강대국 간 딜의 희생양이 되지 않는 길은 하나뿐이다. 바로 한국의 핵(核)무장이다. 황당무계한 생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트럼프의 등장은 거꾸로 한국 핵무장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트럼프에 대한 구애는 중국만이 아니라 김정은도 시도할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트럼프의 출현은 ‘결코’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입이 거칠고 직설적이란 점에서 트럼프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앞으로 세련되고 기품 있는 언어를 사용하는 트럼프2.0, 트럼프3.0이 나올 것이다. 이게 향후 미국 정치의 대세이자 방향이다. ‘아메리카 퍼스트’는 당분간 강화될 수밖에 없는 시대정신이기도 하다.
이른바 리버럴의 상징이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 시대는 이미 저물고 있다. 입이나 머리가 아니라, 손안에 눈앞에 나타나는 ‘나만의 정치’를 열망하는 시대다. 트럼프의 정치에 찬성하는 미국인이 점점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한일관계 심화는 희망적인 일
그러나 아직 희망은 남아 있다. 미국의 지식인이나 외교·군사 전문가 중에는 트럼프에 대한 반감이 강한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71년째로 접어든 동맹국 한국을 희생양으로 만들 수 없고, 만들어서도 안 된다고 믿는 미국인들도 곳곳에 포진해 있다.
한국 핵무장은 이 같은 지식인과 외교·군사 전문가들의 지지하에 이뤄질 수 있고, 이뤄져야만 한다. 트럼프가 중국·북한과의 딜에 들어간다고 해도, 핵을 갖고 한반도 평화와 번영도 확보해낼 수 있다. 물론 한국의 핵무장이 가시화될 경우, 갖가지 제약과 봉쇄의 쓰나미가 밀려올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정치에 환멸을 느끼는 미국 지식인과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있는 한, 이런 고통도 오래가진 않을 것이다.
이미 늦었지만, 새해 1월부터라도 트럼프 집권에 대비한 친한적(親韓的) 미국 지식인 및 외교·안보 전문가들과의 접촉을 늘려야만 한다. 서방 핵 보유국과의 교류도 필수적이다. 미국 대통령과 행정부를 통해서가 아니라, 반(反)트럼프 미국인 및 반트럼프 서방 핵 보유국과의 협력을 통한 한반도 생존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이지만, 한반도 주변과 내부에서 벌어지는 폴리크라이시스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희망 하나가 아직 남아 있다. 심화되는 한일(韓日)관계다.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는 한국만 아니라 일본 안보에도 직격탄이 될 것이다. 모두 알고 있듯이, 문재인 정권 때의 한일관계는 더 이상 나빠질 수 없을 정도로 참담했다. 그래서 일본은 자국의 안전 확보를 독자적으로 추진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는 트럼프와의 친교(親交)를 통해, 특별하고도 독자적인 일본만의 위상을 구축해냈다. 아베가 세상을 떠난 지금 이 같은 역할을 누가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국과 일본이 뭉쳐 트럼프의 공세에 맞서야 한다. 한일 우호관계는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한일이 따로 노는 순간, 치명적 피해가 한반도로 밀려들 것이다.
생존 시험대에 선 한국
폴리크라이시스 시대를 맞아 2024년 인류가 꿈꾸는 샹그릴라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아니 보다 근본적 차원에서, 과연 어떤 것들이 유토피아 자격 조건이 될 수 있을까? 사실 샹그릴라가 자랑하는 무병장수는 이미 100세 시대 탄생과 함께 어느 정도 해결된 상태다. 하지만 아무리 대단해도 현실은 유토피아가 될 수 없다.
한국은 지구 최악, 인류 최대의 디스토피아 북한과 마주한 나라다. 북한보다 번영해 잘살고 있는 것 하나만으로도 ‘한국=유토피아’라고 자랑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한국 정치 상황을 보면, 언제든지 한순간에 디스토피아로 전락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밖이 아니라, 한반도 내부 전체가 폴리크라이시스 현장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라다크 레의 산 정상 사원에서 접한 세상은 너무도 평안하고 조용하며 포근하다. 전부 폴리크라이시스와 무관하게 살아가는 공간이란 점에서 21세기 유토피아라고 볼 수도 있는 곳이다.
2024년 지구 전체를 뒤흔들 불안과 비극이 한층 더 심화될 것이다. 생존 능력은 척박한 현실을 통해 한층 더 발전·진화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트럼프 재등장, 나아가 중국 급추락은 한국의 생존 능력을 파악하는 절호의 기회일 수도 있다. 20세기 한국과 한국인은 시련과 위기 극복을 통해 성장해왔다. 아직 늦지 않았다. 2024년은 한국의 저력(底力)을 재확인하는 해가 될 것이다.⊙
월간조선 01월 호
01.13 “文은 날 만나지 않았고, 尹은 내게 ‘선생이 돼 달라’ 했다”
2015년에 과거사 사죄했던 하토야마 유키오 前 일본 총리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의 별명은 ‘우주인’ ‘외계인’이다. 현실보다는 이상을 따르는 정치를 한다고 해서 붙었다. 일본의 과거사에 대해 “피해자가 그만하면 됐다고 할 때까지 사과해야 한다”고 한 그는 “2015년 서대문형무소에서 무릎 꿇은 것도 솔직한 마음의 표현이라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진심이었다. 일본 정치인 여럿이 과거에 대해 사과했지만 그가 꿇은 무릎은 또 다른 울림을 줬다. “일본의 전 총리로서, 한 일본인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진심으로 사죄합니다.”
2015년 8월 12일 서울 서대문형무소를 찾은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77) 전 총리는 한 시간 가까이 머물며 신발을 벗고 큰절을 올렸다. 11차례 고개를 숙였다. 그는 지금도 “피해자가 그만하면 됐다고 할 때까지 더 사과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 극단의 세력은 “일본은 사과하지 않았다”며 언제든 반일 감정을 부추길 준비를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최근 비공개 일정으로 우리나라를 찾은 하토야마 전 총리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8년 전으로 돌아가도 똑같이 무릎을 꿇었을 겁니다. 일본에서 비판을 많이 받았지만 그게 제 솔직한 마음이었으니까요. 후회도, 두려움도 없습니다.”
우리나라를 향한 하토야마의 진심은 그의 배경이나 정치 이력을 보면 더 와 닿는다. 유약하다는 평가와 달리 생각한 대로 행동하고 마음먹으면 결단해 왔다. 일본의 케네디가, 최고 명문가로 꼽히는 ‘하토야마 가문’의 장손인 그는 1986년 집안의 정치 성향에 따라 자민당 간판으로 국회에 진출했다. 고조부, 증조부, 조부, 부친까지 보수 지형에서 화려한 정치력을 가졌기에 당연한 길로 여겨졌다. 어머니는 일본 재벌 ‘브리지스톤 타이어’ 창업자의 장녀다. 정계 입문 시기 “피는 못 속인다”는 혹독한 평가가 있었던 이유다.
하토야마는 무난한 길을 포기했다. 뿌리 깊은 기득권에 맞선 정치 개혁을 이루겠다는 꿈을 밝히며 93년 자민당을 탈당한 것. 96년 민주당을 창당한 후엔 엄청난 비난을 듣고 정치적 고난을 겪었다. 하지만 흩어져 있던 야당과 합당하려고 생각이 다른 세력도 껴안는 결단도 보였다. 2009년, 54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뤄냈다. 정책 혼선 등의 책임을 지고 8개월 만에 사퇴해 단명한 정권이라는 오명을 남겼지만. “정치를 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한일 관계 개선, 나아가 세계 평화를 위한 작은 노력 역시 정치를 하지 않았다면 못 했죠.”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는 광복 70주년을 맞은 2015년 8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됐던 서울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해 일본의 식민 지배에 대해 사죄했다. 그가 추모비에 헌화한 뒤 무릎을 꿇은 모습. /오종찬
◇국가를 대신한 사과였다
하토야마는 일본 내 몇 안 되는 지한파 정치인이다. 작년에만 비공개로 우리나라를 세 차례 방문했다. 오래 가깝게 지내온 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 정대철 상임고문 등과 만나 정세를 논의하기도 했고, 이번 방문 때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만나 “우리가 각각 총리와 대통령이던 시절 한일 관계가 최고였다”고 술회했다. 그는 이날도 일본의 사죄와 반성을 요구했다. 유관순 이름을 한국어로 또박또박 말했다. 서대문형무소를 찾은 직후 “나를 맞이하는 데 쓴 화환 비용은 내가 내겠다”며 3만엔(약 30만원)을 건넨 데서도 진정성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럴까. 최근 일본 한 연구소의 2001년 이후 취임한 일본 총리 9명 호감도 조사에서 그는 꼴찌를 기록했다. 애국심 때문에 정치를 시작했다는 그는 꿋꿋하게 갈 길을 가겠다고 했다.
-이번엔 어떤 일로 방한했나요.
“저에 대한 이야기를 엮어 출간하고 싶다는 작가가 있어서 그 취재에 응하려고 왔어요. 감사한 일이죠. 지난 9월에 명예 박사를 준 전주대 쪽에도 협업 제안을 하려고 왔습니다.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일이에요.”
-서대문형무소를 찾은 지 벌써 8년이 지났습니다.
“시간이 참 빠릅니다.”
-그때 어떤 감정이었나요.
“한국 국민에게 식민 지배로 너무 큰 고통을 드린 것, 힘든 경험을 남긴 것을 사과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식민지 해방이라는 일념 하나로 노력한 열사들을 고문하고 목숨까지 앗아가는 일이 있었잖아요. 일본인으로서 사과하고 싶었습니다.”
-무릎까지 꿇었는데요.
“죄송하다는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저도 충분히 배우지 못한 사람입니다. 살면서 혹시나 무의식 중으로 해왔을 잘못, 그에 대해서도 사과하자는 마음이었죠.”
-그 직후 일본에서 비판이 거셌죠. 후회는 없었나요?
“솔직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었기 때문에 후회도 두려움도 없었습니다. 일본에 돌아가니 여러 가지 비판이 휘몰아치기는 했습니다만 누가 맞냐, 틀리냐고 했을 때 저는 자신이 있었어요. 저의 행동을 이해해주는 분도 있었고요.”
-쉽지 않은 결정이었죠?
“(침묵) 저뿐 아니라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총리가 1995년에 사죄를 표명하는 등 여럿 있었죠. 또 고노 담화로 알려져 있는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중의원 의장도 했고요.”
-사과 후 왜 욕을 먹었다고 생각하나요?
“많은 일본 정치인, 특히 보수 계열에선 이미 1965년에 한일 관계는 과거사에 대해 종지부를 찍었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니 과거를 묻지 마라, 이런 입장이죠. 지금 일본 정부 생각도 비슷하고요. 그때 사과를 표명했으니 더 이상은 필요 없다는 거죠. 그건 잘못됐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요?
“기본 조약으로 해결됐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개인 청구권은 현 국제법상 당연히 인정돼야 하는 흐름으로 인식되고 있어요.”
-그래서 계속 사과하는 건가요?
“국가 차원에서 한국이나 중국에 사죄하는 것을 좀 꺼린다면 저라도 해야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22년 서울 종로구 대통령직인수위 집무실에서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일본 정계의 대표적 지한파(知韓派)로 꼽히는 하토야마 전 총리는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남강호 기자
◇尹의 한일 관계 개선 노력에 감사
하토야마는 정치 성향과 지향점에서 우리나라 민주당 인사들과 같은 길을 걷고 있지만, 오히려 윤석열 대통령을 더 격의 없고 가깝게 느껴지는 대통령으로 평가했다. 한일 관계 개선에 강한 의지를 보인 윤 대통령은 2022년 취임식에 하토야마를 초청해 “선생님이 돼 달라”고 했다. 하토야마는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던 문재인 정부 시절, 문 전 대통령과 만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아마도 바쁘셨던 것 같다”는 말로 서운함을 대신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선생님이 돼 달라’고 했는데요.
“2022년 대통령 취임식 전날 만난 자리에서요.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무슨 대통령의 스승이 될 수 있겠느냐고 했습니다(웃음).”
-뭐라고 답했나요?
“한일 간의 역사, 그 자체가 스승이 되어 줄 것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 역사를 양국 간에 배우고, 그 과정에서 깨닫는 게 있다면 그게 바로 큰 스승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요.”
-윤 대통령과 만난 일은 어땠나요.
“격의 없이 허물없이 만난 첫 대통령이었습니다.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한 강한 의욕, 의지 이런 것이 느껴졌죠.”
-언제 술 한잔 하자고 안 하던가요?
“하하. 그런 제안은 받은 적이 없어요. 그런데 이미 한잔 했습니다. 취임식 이후 축하 파티가 있었는데요. 대통령도 얼굴이 붉어지시더라고요. 그때 어깨동무도 하고 사진도 찍었습니다. 굉장히 가까워졌다는 감정을 공유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윤 대통령은 가까워지기 쉬운 자민당 체질 정치인 같습니다.(웃음)”
-과거엔 어땠나요?
“이번에 한국에 와서 이명박 전 대통령과도 만났는데요. 그때가 한일 관계가 가장 좋았던 시절 같아요. 이 전 대통령과도 그런 대화를 나눴어요. 오랜만에 옛날 일을 회상했네요.”
-이념·정책 면에선 민주당과 더 가깝지 않은가요?
“정책적으로 뭐 가깝다 멀다 이런 것을 차치하더라도 일단 문 대통령은 사실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먼저 만나자는 제안이 있었다면 한일 관계에 대한 제 의견을 꼭 전하고 싶었고요.”
-왜 그랬을까요.
“글쎄요. 생각하는 게 비슷했을 텐데 그런 기회가 없었다는 게 좀 아쉬웠죠. 여러 사안으로 많이 바빴던 것 같아요. 정말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윤 대통령과는 대통령 취임 전날 만났다는 게 의미 있고 그래서 좀 더 가깝게 느껴지고요.”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가 서울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해 유관순 열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유관순 열사가 수감됐던 여옥사 내 8호 감방 앞에서 헌화를 하고 있다.
◇한일, 근본 문제 해결이 절실해
하토야마는 악화일로를 걷던 한일 관계가 윤석열 정부 들어 개선된 데 “감사한 마음”이라고 했다. “한일 관계가 좋아지더라도 그것이 미국과 합심해 중국을 적으로 돌리는 관계가 되면 안 돼요. 한일 관계 개선이 미·중 긴장 관계를 해소하는 계기가 되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 방향으로 협력할 수 있다면 세계가 평화로 크게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이전 정부에서 한 번도 못 한 한일 정상회담도 개최했어요.
“그렇죠. 윤 대통령은 어떻게든 양국 관계를 좋게 하려고 노력하거든요. 여러 타협안도 내놓고 그 덕분에 좋아진 겁니다. 윤 대통령이 통 큰 결단을 하는 것에 대해 일본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어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도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습니다.”
-아직 멀었다고 보는군요?
“네. 저는 이 상태로 안 된다고 봅니다. 이런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한가? 저는 쉽지 않다고 봐요.”
-대화와 타협조차 없는 것보단 낫지 않습니까?
“한국 문제가 아니죠. 사실 일본이 답해야 하는 문제들에 대해서 침묵했잖아요. 일본의 책임인 거죠. 대부분 그렇죠. 문 전 대통령도 관계를 개선하고 싶어도 그 부분이 풀리지 않으니 못 했을 테고요.”
-왜죠?
“일본은 바뀌지 않고 있는 것이거든요.”
-가장 큰 걱정이라면.
“만약 정권이 바뀌기라도 한다면 한일 갈등이 재현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어요. 지금 한일 관계가 좋아진 지금이야말로 많은 한국 국민이 이해할 수 있도록 일본과 합의를 이끌어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윤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일이고요.”
-일본이 또 사과해야 한다는 거죠?
“반복해서 말하지만 일본은 무한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죄를 지은 쪽은 피해자 또는 그 국가가 ‘더 이상 사죄할 필요가 없다’고 할 때까지 사죄하는 게 당연해요. 이게 중요한데 일본 정부는 충분한 이해가 없죠.”
-어려운 문제네요.
“일본인은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 위에서 내려다보듯이 우열 의식에 빠져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에는 종속돼 있고 반대로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서는 그렇다는 착각을 하고 있는 거죠. "
-이전 정부 때 특히 MZ세대에서 반일 감정이 컸어요.
“그 시대를 겪은 분들의 분노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런데 젊은 층에서 정치에 의해 그들의 행동, 언동이 크게 좌우되는 건 생각해 봐야 해요. 맹목적 일본 혐오로 가는 것에 대해서.”
-문제가 있다고 보는 건가요?
“일·중 관계에서도 그런 게 생겨요. 일본 내 부모들도 중국으로 관광을 가지 말라고 하는 경향이 있고요.”
-우리나라에선 반중 감정이 커지고 있어요.
“이렇게 정권에 크게 좌우되는 걸 보면 정치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 새삼 실감할 수 있습니다.”
-해결책이 있나요?
“새로운 국가 간 관계 정립이 필요해요. 상호 이해를 하려다 보면 서로 다른 점이나 간극이 보이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 노력을 하다 보면 서로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즐길 수 있지 않을까요?”
-역시나 어렵네요.
“차이, 다름, 간극이 있다면 서로 그것을 메우는 작업을 하겠죠. 나아가 국가가 그걸 도와서 진행해야 합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젊은 사람들의 교류가 한층 더 강화되고 확대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일본 민주당 대표 하토야마 유키오가 선거유세가 끝나고 지지자들과 환호하고 있다.
◇정치인의 삶, 후회 없다면 거짓말
하토야마는 2009년 8월 중의원 선거(총선)에서 공고하던 자민당 체제를 무너뜨리고 민주당 승리를 이끌어 정권 교체를 이룬 엄청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반세기 넘게 집권해온 일당 독주 체제를 깬 것. 현재 우리나라도 민주당이 20, 21대 총선에서 연달아 승리하며 국회 장악을 이어가고 있다. “모든 건 국민이 판단할 겁니다. 문제가 있다면 바로잡겠죠.” 야당의 연합을 강조해온 그였지만 자신과 가까운 이낙연 민주당 전 대표의 탈당에 대해선 침묵했다.
-후회되는 때도 있나요?
“총리로서 사임할 수밖에 없던 상황에 대한 후회가 없다면 거짓말이죠. 저는 원래 정치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다만 정치인이 된 것은 후회하지 않아요.”
-한국에서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을 곧 치릅니다.
“압승 비결이라는 건 없어요. 결국 국민이 판단하는 거예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당시는 자민당이 장기 집권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 불패 정치에 의해 국민의 생활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는 걸 국민 스스로 인식한 것 같아요. 그래서 혼쭐을 내자는 분위기가 형성된 겁니다.”
-국민의 판단이 늘 옳다고 보나요?
“국민이 늘 합리적인 판단만 하는 건 아닙니다. 하하. 지금 일본은 자민당이 장기 집권을 하잖아요. 그 또한 합리적인 판단은 아니죠.”
-그래도 결국 투표가 답인데요.
“국민들이 심판하겠다고 마음먹고 목소리를 내면 정치는 바뀝니다. 투표하러 가지 않으면 견고한 기득권을 이길 수 없죠.”
-일본의 야당 상황은?
“야당이 너무 분산돼 있어요. 그래서 야당에 대한 기대가 자민당에 대한 기대를 뛰어넘기 어려운 겁니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는 애처가로 유명하다. 이번 방한도 미유키 여사와 함께했다. 손가락에 결혼반지를 끼고 있는 그는 “아내와 날마다 하는 산책이 건강 비결”이라고 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아내 손 꼭 잡은 로맨티스트
1박 2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하토야마 전 총리는 서둘러 인터뷰를 끝내고 문 밖에서 기다리는 아내를 만났다. 환한 미소를 띤 얼굴로 아내 손을 자연스럽게 잡았다. 그의 연애사는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하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유학 중 네 살 연상 유부녀였던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2년 뒤 이혼한 그녀와 결혼했다. 집안의 반대와 세간의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손에 낀 반지는 뭔가요?
“결혼반지입니다. 그렇게 안 보이죠?”
-로맨티시스트란 별명도 갖고 있죠?
“이상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세계를 평화롭게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는 한일 관계뿐 아니라 전 세계가 우애의 길을 걸어가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애정을 가지고 돕는 것이 중요하죠. 그런 의미에서는 로맨티시스트죠. 좀처럼 실현이 어렵다는 생각을 하지만요.”
-아뇨. 제가 말한 로맨티시스트는 아내를 향한 마음인데요.
“로맨티시스트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하하.”
-너무 젊어 보입니다.
“비결요? 아내와 매일 산책하는 게 제가 건강을 위해 하고 있는 딱 한 가지입니다.”
-진짜 그것뿐인가요?
“아아, 오늘도 만난 한국 분들이 건강을 위한 영양제 등을 챙겨주셔서 더 젊어질 것 같다고 기대 중이긴 합니다.(웃음)”
하토야마는 앞으로도 세계 평화를 위해 남은 생을 살겠노라고 했다. “큰 세계 평화라고 할까, 주변국과 평화를 이루는 데 더 공헌하고 싶어요. 그것은 총리가 아니라도 할 수 있잖아요. 그 생각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습니다.”
조선일보 김아진 기자
01.13 미국의 오랜 고립주의가 돌아오고 있다

“미국은 지쳤소. 그러니 이제부터 당신네 지역은 당신들끼리 알아서 잘해보시오.”
어느 날 미국 대통령이 유럽, 아시아, 중동의 동맹국 지도자들에게 그렇게 통보하고 미군도 철수했다고 상상해 보자. 그러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미 제국주의자들의 횡포가 끝났다고 좋아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마저 철저하게 실망할 상황들이 전개될 공산이 크다.
권력은 공백을 싫어한다. 미국이 빠져나간 공백을 미국의 경쟁국들이 파고들 것이다. 유럽에서는 러시아가,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이, 중동에서는 이란이다. 민주주의나 인권의 가치를 무시하는 이들 국가들이 지역 패권이 되면, 그들의 권위주의 정치체제도 주변 국가들로 서서히 확산될 것이다.
트럼프 “당선 시 우크라 지원 중단”
미국 공백, 중·러·이란 메울 것
우크라이나 패전은 한국에도 위기
진영·정파 싸움 벗어나 통합해야

▲선데이 칼럼
그런데 심각한 것은 지금의 국제정치 상황이 그와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올 11월 5일 미국 대선이 결정적인 분기점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 공화당은 바이든 행정부가 책정한 610억 달러 상당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차단했다. 트럼프 후보는 당선되어 취임하면 곧바로 우크라이나에서 빠져나오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는 사이, 전쟁은 러시아에게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러다가 만일 러시아에게 점령지역을 양보한 채 휴전이 된다면, 그것은 실질적인 푸틴의 승리를 의미한다. 그 경우 자유주의 국제질서 유지를 위해 노력해 온 미국의 리더십은 큰 상처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는 아마도 4~5년쯤 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전략적으로 방어하기 힘든 발트국가들을 다음 타깃으로 공격할 것이다. 미국 없이 유럽 나토 국가들이 홀로 대응하기 힘들 것이고, 나토의 와해와 함께 유럽은 서서히 러시아의 영향권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전 승리의 효과는 곧바로 동아시아 대륙으로 파급될 것이다. 중·러 협력은 더욱 힘을 얻고, 미국의 의지 약화를 감지한 중국은 대만 문제에 대해 더욱 과감해질 것이다. 만일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트럼프 치하의 미국은 대만 보호를 위해 중국과 전쟁을 불사할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에게 더 시급한 문제는 북한이다. 그렇지 않아도 작년 10월 이래 러시아와 군사협력을 강화해 온 북한은 더욱 의기양양해질 것이다. 미국의 확장억제 의지가 약화되는 것을 감지하고 오판할 가능성도 훨씬 커질 것이다. 이처럼 미국의 고립주의, 우크라이나 전쟁, 한국의 안보는 서로 직결되어 있다.
미국이 설마 고립주의로 갈까? 그러나 미국의 고립주의는 국제주의 외교보다 역사가 훨씬 길다. 1776년 건국 때부터, 1898년 스페인과의 전쟁, 그리고 1차 세계대전 때 잠시 참전한 것을 빼놓고는,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공격 때까지 고립주의 외교로 일관했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1796년 이임사에서 미국은 외국과 어떤 동맹도 맺지 말고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서양과 태평양이라는 자연 장벽이 미국을 보호해 주기에, 타 대륙의 일에 관여할 필요 없이 홀로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스페인과의 전쟁이나 1차 대전 참전 결정도 대단히 인기가 없었다. 1차 대전 후에는 전쟁 후유증으로 더욱더 고립주의로 갔고 1940년대 초에 정점에 달했다. 지금처럼 그때도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운동이 전국적으로 벌어졌다. 나치가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그리고 프랑스까지 점령하게 되었는데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처칠의 간청을 외면한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진주만 공격을 받고서야 움직였다.
미국 외교사의 수면 아래 잠겨있던 고립주의가 지금 스멀스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미국의 고립주의자들은 고립이 가져올 부메랑 효과를 간과하고 있다. 조지 워싱턴 대통령은 “상업적 연계는 모두와 하고, 정치적 연계는 아무와도 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때는 그래도 되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미국이 타 대륙에서 발을 빼면 권위주의 국가들이 지역 패권을 잡는 과정에서부터 정치적, 경제적 혼란이 커질 것이다.
이는 미국에 대한 경제적 적대로 이어져, 미국에 타격을 줄 것이다. 트럼프 후보가 주장하는 10% 일괄 수입 관세에도 대상 국가들이 분명 보복할 것이다. 국제 리더십 공백 상태에서 기후변화, 팬데믹, 이민 같은 문제들을 놓고 모두 각자도생으로 간다면, 2~3년 전 코로나 팬데믹 때처럼 미국도 심각한 피해를 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노가 시대적 흐름이기에, 트럼프 후보의 지지도가 높다. 좀처럼 흥분하지 않는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최근 트럼프 당선을 어떻게든 막아야 하는 상황에서 인기 없는 81세 후보의 출마를 말리지 못했다며 민주당 간부들을 트럼프 후보에 휘둘린 공화당 간부들이나 마찬가지로 비겁하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난세에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나? 여러 대책들을 모색할 수 있겠지만 최우선 과제는 통합이다. 국민과 정치지도자들이 냉전적 이념이나 진영논리, 정파 싸움에 빠져 분열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분열하면, 국민의 의지와 에너지를 한군데로 모으지 못하고 기민하게 전략적 외교로 대응하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그렇게 난세를 극복하지 못해 망한 것이 조선이었다. 그런 경험은 한 번으로 족하다.
중앙일보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전 외교통상부 장관
01-15 양안 긴장 지속과 ‘원칙 외교’ 중요성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중국학
미국과 중국 간의 대리전으로 간주되면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대만 총통선거와 입법위원 선거가 막을 내렸다. 결국, 대만 독립 성향을 강조하는 집권 민진당의 라이칭더(賴淸德) 후보가 40%의 저조한 득표율로 총통에 당선됐다. 제2, 3당의 후보 단일화 실패가 가장 결정적 이유지만, 민진당은 지난 8년간에 이어 총 12년 천하를 열었다.
대만 유권자들은 미·중 대리전보다는 민생 문제와 8년 주기의 정권교체에 관심이 더 많다. 그러나 야당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고 3자 구도가 고착되면서 지지자 중심의 단순 표 싸움이 됐고, 20∼40대 젊은 층은 중도 노선을 표방한 제2야당 민중당의 커원저(柯文哲) 후보에게 몰표를 던졌다. 많은 부동층이 기권하면서 정권 탈환을 노리던 국민당은 역전에 실패했고, 투표율은 사상 두 번째로 낮은 71%대에 그쳤다.
이번 선거는 총통·부총통과 입법위원 선출 및 비례대표 선발을 위한 정당 투표가 동시에 진행됐다. 결과적으로 대만 유권자들은 민진당 후보를 4년 임기의 총통으로 선출했지만, 의회는 누구에게도 과반을 주지 않으면서 국민당을 제1당으로 만들었고, 민중당에는 캐스팅보트 역할을 주는 절묘한 견제와 균형을 시현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극심한 국론 분열이 고착화했고, 이는 미래 대만 정치에 많은 숙제를 안겨줬다.
라이칭더는 불과 40% 득표로 제2당으로 전락한 민진당을 이끌어야 하는 만큼 여소야대에 따른 마찰이 불가피해졌다. 또, 중국이 급진적 독립주의자로 분류하면서 향후 양안 관계의 파고도 높아질 것이다. 유권자의 60%가 정권교체를 열망했는데도 낙선한 국민당 허우유이(候友宜) 후보는 고집스럽고 노쇠했다는 탄식을 들었다. 현실과 괴리된 정치적 호소만으론 지지를 얻을 수 없음을 웅변한다. 자신이 총통 후보가 돼야 한다며 단일화를 거부한 커원저도 3위에 그쳐 그 명분을 잃고, 비례대표 입법위원 8석으로 3당 체제 정립엔 성공했지만 정치적 신의는 도마에 올랐다.
중국은 라이칭더의 당선이 대만의 민의를 대표하는 건 아니라면서 통일의 당위성을 강조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면서 중국과의 갈등 관리에 나섰다. 중국도 단순히 라이칭더의 당선 사실만으로 당장 압박 정책을 강화하긴 어렵겠지만, 기본적으로 기존의 압박 수위를 낮추기도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양안 간 긴장은 자연스럽게 미·중 갈등을 키우는 핵심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대만과 대만해협의 안전은 대한민국의 안보와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다. 일단 양안 갈등의 확대는 미·중 관계의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으며, 이는 당연히 북핵 위협에 시달리는 한반도 정세에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듯한 상황이 빚어질 수 있고, 한·중 관계 개선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미·중 갈등의 핵심 현장인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은 통상(通商) 국가 대한민국의 물동량 45%를 담당하는 주요 해상교통로(SLOC)이기도 하다.
우리 정부가 ‘어느 일방의 일방적인 현상 변경 시도 반대’라는 국제주의 차원의 원칙을 강조하는 건 당연하다. 국내외에서 분명한 태도와 철저한 자기 정비를 해야 진정한 글로벌 중추국으로 비상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문화일보
01-15 ‘親美 총통, 親中 1당’ 대만… 시험대 오른 韓 외교-안보-공급망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으로 평가되는 13일 대만 총통 선거에서 친미 독립 성향 집권 민진당의 라이칭더 후보가 승리했다.라이칭더 대만 총통 당선인이 13일 타이베이 민진당사 밖에서 열린 선거 승리 집회에 러닝 메이트 샤오메이친이 참석해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2024.01.13. 타이베이=AP/뉴시스
미중 간 대리전으로 세계가 주목했던 대만 총통 선거가 친미·독립 성향인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 라이칭더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3파전으로 치러진 13일 선거에서 라이 당선인은 40.1%를 득표해 친중 성향인 제1야당 국민당의 허우유이 후보(33.5%)와 제2야당 민중당의 커원저 후보(26.4%)를 제쳤다. 중국의 군사 위협에도 8년 주기 정권교체의 전통을 깨고 승리한 라이 당선인은 “세계 대선의 해 첫 번째 선거에서 대만은 세계 민주 진영에 승리를 안겼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친미 집권당에 대한 긍정 평가보다는 야권 후보 단일화 실패가 결정적 영향을 준 것이 사실이다. 라이 당선인이 총통 선거에선 이례적으로 과반 득표에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이날 함께 실시된 입법위원(국회의원) 선거에서 집권 민진당은 국민당에 1석 차이로 제1당 자리를 내줬다.
대만의 집권 여당이 안정적인 다수 의석 확보에 실패하면서 동북아 정세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라이 당선인은 현 총통보다 더 반중(反中) 성향이 강하다. 중국이 유례없이 공개적으로 비난한 총통 후보가 라이 당선인이다. 경기 침체와 내부 동요에 고심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국내 결속을 노리고 군사적 긴장 수위를 높이거나 대만을 향한 무력시위를 더욱 노골화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양안(중국과 대만) 갈등이 고조될 경우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하면서 대만과 비공식 관계를 유지해온 한국으로선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한미동맹 최우선 기조는 유지하면서도 중국이 ‘핵심 국가이익’이라 부르는 대만 문제에서 불필요하게 중국을 자극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유사시 대만에 군사 개입할 것을 밝혀온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달리 그런 언급 공개를 꺼리는 도널드 트럼프가 11월 미국 대선에서 당선될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동아일보 사설
01.15 ‘강 대 강’ 일변도로만 한반도 비핵 평화 가능한가
국정 최고책임자도 차분하게 메시지 관리해 가야
그제 대만 총통 선거에서 민주진보당(민진당)의 라이칭더(賴淸德) 후보가 승리했다. 라이 당선인은 한때 대만 독립을 추구하거나, 영어를 공용어로 추진하는 등 친미 성향의 인물이다. 중국은 그가 민진당 후보로 정해진 뒤 “배신자”로 규정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2월 ‘하나의 중국’ ‘대만과의 통일’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라이칭더의 당선으로 중국과 대만(양안) 관계의 갈등이 격화될 경우 미·중 관계는 물론 동북아의 안보 지형도 긴장 국면으로 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도다.
문제는 이런 어수선한 상황에서 북한이 중국과 밀착하며 안보 상황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다. 당장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동족이 아닌 적대적·전쟁 중인 교전국 관계”라고 선언했다. 그간 북한이 추구했던 1민족, 1국가, 2체제, 2정부 등 연방제 통일 방안은 물론, 남북이 ‘특수한 관계’라고 했던 남북기본합의서(1991년 합의)와도 배치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공통성이 있다”는 6·15 공동선언에 서명했다.
이런 ‘유훈’을 거역하고 김 위원장이 남북을 ‘교전 중인 2국가’로 규정해 영토를 평정하겠다는 건 핵무기로 한국을 공격할 수 있다는 선전포고에 가깝다. 북한 전문가인 미국의 로버트 칼린 연구원과 지그프리드 해커 교수가 “한반도 상황이 1950년 6월 초반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더 위험하다”고 평가할 정도다.
북한이 도발할 경우 ‘즉시, 강력하게, 끝까지’ 보복한다는 신원식 국방부 장관의 단호한 입장은 당연하다. 그러나 정부는 전쟁이 날지도 모른다는 국민의 불안감에 유념한 상황 관리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지금처럼 대통령실을 비롯해 모든 관련 부처가 국방장관처럼 ‘강 대 강’ 목소리만 낸다면 국지 충돌이나 분쟁 가능성 역시 높아져 갈 뿐이다. 더욱이 ‘한반도 평화’를 유지·관리할 외교부와 통일부의 목소리는 요즘 전혀 들리지 않는 상황이다. 국정의 최고책임자 역시 보다 신중하고 안정적인 메시지가 필요하다. 모든 책임이 그 자리에 머무르니 한번 내뱉은 최고책임자의 거친 말은 거둬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극단의 언어’는 가장 비외교적이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대만 선거 직후 중국을 의식해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며 상황 관리에 나서지 않았는가.
보수 일각의 핵 무장론 역시 시기상조다. 우리는 비핵·평화라는 국가적 목표를 포기한 적이 없다. 침묵의 외교부는 비핵·평화를 위한 창의적 정책 유연성을 적극 발휘해야 한다. 북한이 남북을 두 국가라고 한 건 하나의 민족이라는 기존 원칙과 충돌한다는 점에서 통일부의 지혜로운 역할과 해법도 필요한 시점이다. 비핵·평화를 위해선 강력한 한·미·일 군사 공조와 확장 억제 전략의 고도화가 물론 병행돼야 할 것이다.
중앙일보 사설
01.19 자유·민주 지킨 대만 선거, 한국 총선에 주는 의미
중국의 전쟁 위협에 맞서
反中 라이칭더 택한 대만인
트럼프의 경선 압승도
미국인의 반중 정서와 관련 있어
세계 여러 나라 선거 겨냥한
中 선동·공작 갈수록 교묘해져
자유 진영 최전선 한국의 선거
전체주의 위협 극복해야

▲지난 13일 대만 타이베이시에서 승리를 축하하고 있는 라이칭더 총통 당선자. /AP 연합뉴스
2024년은 전 세계 50여 나라에서 40억명 이상이 투표하는 선거의 해다. 지난 13일 올해의 세계 첫 선거에서 대만 민진당의 라이칭더(賴淸德) 후보가 총통으로 선출됐다. 60%가 정권 교체를 원했음에도 국민당은 패배했다. 건설적 의제도 없이 군사 위협을 가하는 중국의 눈치나 살피며 “전쟁이냐, 평화냐?” 외쳤던 게 패착이었다. 이와 달리 민진당은 “민주주의냐 권위주의냐?”의 구호로 당당히 중국의 위협에 맞섰다. 젊은 층 다수는 중국에 굴복하는 국민당 대신 제3의 민중당을 지지했다. 그 결과 라이칭더는 40% 이상을 득표해서 국민당 후보를 약 7%포인트 따돌렸다.
중국발 전쟁 위협이 블랙홀처럼 모든 이슈를 삼켰음에도 대만인들은 자유와 민주를 선택했다. 중국의 군사적 도발과 정치적 압박에 맞선 실존적 결단이었다. 그 점에서 대만 선거는 전 세계 선거에 중대한 시사점을 던진다. 사흘 후인 지난 16일 미국의 아이오와주 공화당 당원 대회에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일견 무관한 듯한 이 두 사건은 의미심장한 동시성(synchronicity)을 보인다.
좋든 싫든 트럼프는 대만을 엄호하며 중국과 맞붙었던 저돌적인 반중 투사다. 2016년 차이잉원 정권이 출범하자 중국의 압박과 회유로 7국이나 대만과 외교를 단절했다. 이에 대응해 미국 의회는 2018년 3월 미국과 대만 공직자의 자유로운 상호 방문을 허용하는 “대만 여행법”을, 2020년 3월 대만의 국제적 지위를 높이는 “대만 동맹 국제 보호 강화법”을 초당적으로 통과시켰다. 중국은 극구 반발했지만, 트럼프는 두 법안에 서명했다.
현재 미국을 휩쓰는 트럼프 현상은 반중 감정과 직결돼 있다. 결과가 어떻든 오는 미국 대선의 최대 화두가 중국 문제라는 얘기다. 미국인 다수는 전체주의 중국이 세계 패권을 노리며 음험한 수법으로 미국 사회를 파괴하려 한다고 믿고 있다. 2019년까지 순항하던 미국 경제는 팬데믹이 시작되자 급전직하했다. 2020년에만 960만명이 직장을 잃었다. 미국인은 초유의 록다운(lockdown)을 겪어야 했으며, 많은 군중은 폭력 시위에 뛰어들었다. 오늘날 미국인 다수는 중국 때문에 미국의 제조업이 쇠퇴하고, 전통적 가치가 해체되고, 사회 기강이 무너진다고 느낀다. 미국 군사 전문가들은 코비드-19가 중국 정부의 미필적 고의에 따른 생물학전이었으며, 현재 북미를 휩쓰는 펜타닐 중독은 중국이 가하는 화학전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2023년 퓨(PEW) 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83%가 중국을 부정적으로 인식한다.
중국 안팎의 전략가들은 중국이 벌써 오랜 세월 전 세계 여러 나라를 겨냥해 때론 은밀하게, 때론 노골적으로 다양한 방식의 정치전(政治戰·political warfare)을 벌여왔다고 말한다. 정치전은 싸우지 않고서 적을 무력화하는 소리 없는 전쟁이다. 게릴라 전술로 중화 대륙을 탈취한 중공의 지도부는 정치전의 달인이다. 중국은 세계 제패의 야욕을 품고서 상대국의 재계, 법조계, 학계, 언론계, 사이버 영역의 곳곳을 파고들어 조작, 음해, 선동, 협박, 회유, 보복 등 모든 수단과 방법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 중국식 초한전(超限戰)이다. 재래식 군사 작전의 한계를 뛰어넘는 무제한적 전쟁(unrestricted warfare)이다.
2024년 선거를 치르는 40억 개개인이 초한전의 표적일 수 있다. 표현의 자유와 가치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열린 사회의 선거는 가짜 뉴스, 허위 정보, 거짓 선동, 음해 공작 등 다양한 방식의 전체주의적 공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지정학적으로 한국은 중국과 북한의 공격에 전면 노출되어 있다. 2010년 북한의 어뢰정이 천안함을 폭침했을 때, 군사 테러 앞에서도 국민 여론은 양극단으로 갈라졌다. 야당은 “전쟁하자는 말이냐?”는 한마디로 지방선거에서 승리했고, 북한은 슬그머니 면죄부를 받았다. 군사 작전과 심리전이 뒤섞인 하이브리드 위협의 실례다.
4·10 총선을 앞두고 북한의 도발은 더욱 대담해지고, 중국의 초한전은 한껏 교묘해지는 듯하다. 정보 혁명의 시대 한 나라의 선거는 더 이상 일국의 사건일 수 없다. 한국의 총선은 여야의 권력투쟁일뿐더러 국제 질서의 재편 과정이기도 하다. 지난주 대만인들은 전쟁 위협에 맞서 목숨을 걸고 자유와 민주를 지켰다. 대만처럼 한국도 전체주의의 위협에 시달리는 자유 진영의 최전선이다. 자유민주주의의 국제 연대를 지켜야만 동북아의 진정한 평화가 보장될 수 있다.
조선일보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역사학
01-19 中에 ‘탈북민 북송 금지’ 제기할 때다

신희석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법률분석관
4년 반마다 열리는 유엔 UPR
중국에 시정 요구할 절호 기회
이전까진 국군포로 북송 외면
이번엔 서면질의에서 첫 시도
중국 내 탈북민에 치중한 한계
23일 본회의 때 정면 촉구해야
오는 23일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중국의 제4차 보편적 인권 정례 검토(UPR·Universal Periodic Review)가 열린다. UPR은 193개 유엔 회원국이 4년 반마다 돌아가면서 다른 나라들로부터 자국 인권 상황에 대한 질의와 권고를 받는 제도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과거 3차례의 중국 UPR에서 우리나라는 국군포로와 그 가족을 포함한 탈북민 보호를 언급한 적이 없다. 지난주에 공개된 제4차 중국 UPR 사전 서면질의에서도 탈북민 보호가 처음으로 언급됐지만, 지난해 10월 9일 대규모 강제북송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언급은 빠졌다. 강제북송은 국제법을 위반한 중대 인권침해인 만큼 정부는 23일 UPR 당일 중국에 강제송환 금지 의무 준수를 촉구해야 한다.
중국에서 북한으로 송환되는 탈북민들은 고문과 학대, 성폭력을 겪고 처형되거나 정치범수용소(관리소), 교화소 등으로 보내져 살인적인 강제노역에 처해진다. 임신부에 대해서는 ‘한족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로 강제낙태, 영아살해가 자행된다.
2014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는 이러한 북송 탈북민의 인권유린이 반인도범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으며, 중국 정부에 보낸 서한에서 탈북민 송환과 정보 교환이 북한의 반인도범죄 방조에 해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지정학적 고려에 따라 탈북민을 북송해 왔다. 유엔 난민협약 및 의정서와 고문방지협약의 강제송환 금지 의무, 2013년에 시행된 출경입경관리법 제46조의 난민신청자 임시 신분증 발급 규정 등을 무시하고 ‘순수 혈통 오염’을 이유로 중국인이 아버지인 아이를 죽이는, ‘동맹국’ 북한으로 탈북민 강제송환을 계속해온 것이다.
10·9 북송자 중에는 25년간 중국인 남성과 결혼해 살면서 슬하에 둔 딸이 얼마 전에 손녀를 낳은 김철옥 씨, 국군포로의 가족도 포함돼 있었다. 국군포로와 그 가족의 경우, 중국은 2005년 1월 국군포로 한만택 씨, 2006년 10월 세 국군포로의 가족 9명(4명·3명·2명), 2017년 2월 국군포로 김모 씨를 송환시킨 바 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지난 2013년 제2차 중국 UPR에서 ‘북한’이란 언급도 없이 ‘난민입법 관련 유엔 권고 수락’ ‘인접국 출신 난민의 불송환 원칙 준수’를 권고했으며, 2018년 제3차 중국 UPR에서는 유사한 권고조차도 없었다. 미국과 오스트리아, 독일, 캐나다, 체코, 네덜란드 등이 ‘탈북 난민’을 명시해 중국 UPR에 사전 서면질의나 권고를 해 온 것과 대조적이다. 한편, 러시아 UPR과 라오스 UPR 등에서도 탈북민 강제송환은 언급된 바 없다.
따라서 제4차 중국 UPR 사전 서면질의에서 정부가 탈북민 문제를 처음으로 언급한 것은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보편적 인권을 중시하는 ‘글로벌 중추국가(GPS)’라는 말이 무색하게 지난 2009년 제1차 북한 UPR 외에는 지금까지 UPR 사전 서면질의를 한 적이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함에도 정부의 사전 질의 3가지는 △탈북민의 망명 절차 △인신매매 등에 노출된 탈북 여성의 보호 및 지원 조치 △탈북 여성의 자녀들에 대한 보호 및 지원 조치에 국한돼 있다. 가장 중요한 국군포로와 그 가족을 포함한 탈북민 강제북송 문제가 빠져 중국의 행태를 바꾸도록 공략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지난해 초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한 정례 보고서에서 중국의 강제북송을 언급하면서 ‘중국’ 대신에 ‘인접국(neighbouring state)’이라는 표현을 써서 비난받았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우리나라도 유엔총회에서 중국을 적시하지 않고 탈북민이 ‘제3국(third country)에서 강제 추방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 것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중국의 탈북민 강제북송을 꾸준히 공개적으로 제기하면 단기적으로는 탈북자 구출에 중국 측의 협조를 얻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중국도 국제사회의 비판을 의식해 난민협약 등을 준수하는 방향으로 행태를 바꿀 수 있다. 윤석열 정부가 역대 정부의 ‘중국 눈치 보기’를 그대로 답습한다면 가치외교를 공염불로 만든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문화일보
01.25 유엔서 “中 탈북민 북송 중단” 첫 공론화, 끝까지 가야 한다

▲한 북한인권단체 회원이 주한중국대사관 앞에서 '중국 정부는 탈북자 강제 북송 중단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뉴스1
한국 정부가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중국을 향해 “탈북민을 포함한 해외 출신 이탈자들에 대한 적절한 보호를 제공하길 권고한다”고 했다. 강제 송환 금지 원칙 등 국제 규범을 존중하고 난민법 제정을 검토하라는 권고도 덧붙였다. 외교적 화법으로 표현했지만 탈북자 강제 북송을 중단하라는 의미다. 우리 정부가 중국 대표가 참석한 유엔 회의장에서 탈북자 강제 북송 중단을 요구하기는 처음이다. 우리나라 외에도 영국, 체코, 우루과이, 아프가니스탄 등이 탈북자 북송 문제를 지적했다. 특히 영국은 ‘끝내라’(end), 체코는 ‘자제하라’(refrain)며 당사국인 한국보다도 직설적인 표현을 썼다.
탈북자는 굶주리다 못해 탈출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북송되면 고문, 구금을 당하고 심하면 목숨을 잃는다. 중국서 붙잡혀 강제 북송된 탈북민들 증언을 들으면 몸서리가 쳐진다. 탈북민은 국제법상 명백한 난민이다. 그리고 중국은 난민 규약에 가입한 나라다. 그런데도 난민을 보호하지 않고 도리어 강제 북송한다. 북송된 사람들이 어떤 참혹한 운명에 처하는지 모를 리 없다. 중국 공산당이 본질적으로 인권을 가볍게 여긴다고 해도 자신들이 가입한 국제 규약을 보란 듯이 어기며 탈북 난민들을 죽이고 짓밟는 데 가담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것은 유엔 회원국 자격을 의심케 하는 국가적 야만 행위다.
역대 한국 정부는 중국을 자극하면 탈북자의 한국행에 필요한 협조를 받을 수 없다며 이른바 ‘조용한 외교’를 펴왔다. 말이 외교이지 실제론 중국 눈치 보기였다. 중국이 이런 나라를 의식해 행동을 조심할 리 없다. 그러니 작년 10월 탈북자 500~600명 단체 북송이란 초유의 일을 벌였을 것이다. 정부가 이번에 유엔에서 중국에 ‘북송 중단’을 요구한 것은 시작일 뿐이다. 국제사회와 연대해 끝까지, 반드시, 엄중하게 요청해 탈북민을 단 한 명이라도 더 살려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1.29 美, 15년 만에 英에 핵 재배치, 對韓 核정책도 유연해져야

▲미군 소속 F-35 전투기가 전술핵폭탄인 B61-12 투하 연습을 하고 있는 모습 / 미 국방부
미국이 15년 만에 영국에 핵무기를 재배치한다. 영국 언론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장기화의 영향 등으로 미국이 런던 북쪽의 레이큰히스 기지에 최신형 전술핵무기 ‘B61-12′를 배치한다고 전했다. B61-12는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리틀 보이’보다 3배 이상의 위력을 갖고 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이곳에 최대 110기의 전술핵을 배치해 오다가 2000년대 후반 철수시킨 바 있다. 이 기지엔 이미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미군의 F-35 스텔스 전투기가 활동하고 있다. 미국은 독일, 벨기에를 비롯한 NATO 동맹국에 핵무기를 배치해 놓고 있다. 그럼에도 영국에 전술핵을 재배치하려는 것은 러시아의 서진(西進) 전략 등으로 국제 정세가 심상찮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이 우려할 대상은 러시아뿐만이 아니다. 북한은 신형 전략순항미사일에도 전술핵 탑재 가능을 시사하며 어제도 수 발을 발사하는 등 위협 지수를 끌어올리고 있다. 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는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를 45기로 추산한다. 북한의 김정은은 최근 남북 관계를 ‘전쟁 중 교전국 관계’로 규정했는데, 미 뉴욕타임스는 김정은이 앞으로 몇 달 내 치명적인 군사행동을 취할 수 있다고 전했다.
중국은 현재 약 500개의 핵탄두를 보유 중인데 2030년까지 핵탄두가 1000개가 넘을 것으로 미 국방부는 전망한다. 약 5900기의 핵탄두를 보유하며 북한과의 관계를 강화 중인 러시아의 우리에 대한 위협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핵협의그룹(NCG) 가동,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통해서 미국 핵우산이 증강됐지만 완벽하다고 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한국 내에 아무런 핵무기가 없는 상황에서 억지력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것은 군사적 상식이다.
한국의 자체 핵무장이 어려운 상황에서 미국의 전술핵무기 재배치는 차선책으로 고려해볼 만한 옵션이다. 1990년대 초 북한의 기만전술에 속아 미국이 전술핵 철수 선언을 하고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하기 전까지 한국에서 수백기의 전술핵을 운용해본 경험도 있다. 지난해 아산정책연구원과 미 랜드연구소는 미 핵우산의 ‘전략적 모호성’이 한국에 대한 안전 보장 차원에선 더 이상 적절하지 않다며 미국의 전술핵 100기를 한국 안보 지원용으로 지정하고 전술핵 8~12개를 한국에 배치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동북아시아에서 한국이 처한 복합적 안보 위기는 미국의 한국에 대한 핵정책도 보다 유연해져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
01-29 북 이번엔 SLCM 도발…영국보다 시급한 ‘한국 전술핵’
북한이 28일 동해에서 순항미사일 도발을 한 뒤 “잠수함 발사 전략순항미사일(SLCM) 불화살 3-31형 시험 발사”라고 주장했다. 나흘 전 서해 도발 땐 “개발 중에 있는 신형 순항미사일”이라고 했는데, 이런 주장이 사실이라면 SLCM의 전력화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이 “해군의 핵무장화”를 역설한 것은 여기에 전술핵을 장착하겠다는 뜻이다. SLCM은 사거리가 1500∼2000㎞로, 한반도 전역과 주일 미군기지가 사정권에 든다. 지상 발사 탄도미사일보다 추적과 요격도 훨씬 힘들다.
김정은은 핵 잠수함 건조 시설도 둘러봤다고 한다. 대러 무기 공급 대가로 핵 잠수함 기술까지 이전받게 되면 잠항 능력이 획기적으로 늘어나 태평양 건너 미국도 공격할 수 있게 된다. 말 그대로 게임체인저가 된다. 북한의 SLCM은 한국을 넘어 일본, 미국까지 위협하는 만큼 본격 대응이 화급하다. 4월 총선을 전후해 천안함 폭침이나 연평도 포격 도발 식의 치명적 군사 도발 관측도 제기된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 영국에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유럽 안보가 심각해진 데 따른 조치라고 한다. 한국의 안보 상황은 영국보다 훨씬 심각하다. 더구나 영국은 225기의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다. 그런데도 미국은 핵에 무방비인 한국엔 전술핵 배치에 회의적이다. 윤석열 정부는 핵협의그룹(NCG) 등 확장억제 강화 입장을 견지하면서 전술핵엔 선을 긋고 있다. 공동 작전 개념을 만들어도 체감할 만한 효과를 내긴 힘들다. 미국 핵 잠수함 상시 배치 등 실질적으로 전술핵 배치 효과를 낼 방안을 마련해야 할 때다.
문화일보 사설
01.29 30년 전으로 쪼그라든 중국 시장 속 ‘메이드 인 코리아’

▲부산항 신선대부두와 감만부두 야적장에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 있다.2023.9.8/뉴스1
지난해 중국이 수입한 물품 가운데 한국산 비율이 6.3%(1625억달러·약 217조원)를 차지했다. 한중 수교 이듬해인 1993년(5.2%) 이후 30년 만에 가장 낮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중국 수입 시장에서 10% 안팎을 차지하며 2013년부터 2019년까지 7년 연속 중국의 1위 수입국이었다. 하지만 비율이 뚝뚝 떨어지면서 지난해에는 대만(7.8%), 미국(6.5%)에 이어 3위 수입국으로 밀려났다.
이런 부진은 중국의 사드 보복 등 정치적 이유도 작용했지만, 근본적으로는 2010년대 중반부터 중국의 산업 경쟁력이 획기적으로 개선돼 자동차,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석유화학 등 경쟁 분야에서 우리 경쟁력이 약화됐기 때문이다. 최근 현대차가 중국 내 공장을 매각하고 생산 능력을 줄여나가는 것도 중국 시장에서 밀려나는 한국산 브랜드의 처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때 현대차는 중국 시장에서 100만대 넘게 팔렸다. 시장점유율이 7%까지 갔다가 현재는 1%대로 떨어졌다. 중국에서 점유율 20%로 1위를 차지했던 삼성 스마트폰도 중국산 스마트폰에 밀려 점유율이 0%대로 떨어졌다. K뷰티로 각광받던 한국산 화장품도 중국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경쟁 우위를 유지하던 이차전지도 우리나라가 중국에서 수입한 금액(83억달러)이 대중 수출(5억달러)의 16배를 웃돌았다. 지난해 대중(對中) 교역 적자는 180억달러(약 24조원)를 넘는다.
이처럼 구조적 요인이 심화하는 가운데 대중 수출의 버팀목이었던 반도체 경기마저 부진해 중국 시장 점유율이 6%대로 내려앉은 것이다. 지난해 한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은 361억달러로 전년보다 30.6% 감소했다.
미·중 갈등이 격화되고 중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이 바뀌고 있다지만 여전히 중국은 세계 제조업의 중심이고 우리나라 수출의 22% 이상을 차지하는 주요 교역국이다. 5% 안팎 성장하는 거대한 중국 시장은 외면해서도 안 된다. 경쟁력 우위의 첨단 제품을 집중 발굴하고 중국 내수 시장을 더 전략적으로 분석해서 접근하는 노력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
조선일보 사설
01-31 김정은 3重 노림수와 전술핵 재배치
김태우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 前 통일연구원장
북한의 미사일 광란이 끊임없다. 한국을 ‘교전 중인 적대국’으로 선언하더니 ‘괴뢰, 충견’ 등 막말을 쏟아낸다. 지난 한 해 60여 기의 발사체를 쐈고, 올 들어 쏜 극초음속 기동성재진입체(MaRV), 핵어뢰, 잠수함발사순항미사일(SLCM) 등도 방어가 쉽지 않은 무기들이다.
북한이 대한민국을 주적으로 천명하고 협박 강도를 높이는 데는 3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첫째, 북한의 내부 사정이 심상치 않다. 막대한 국력을 무기 개발에 소진하니 주민의 삶이 피폐한 것은 당연하다. 평양 이외 지역의 궁핍은 한계를 넘은 것으로 보인다. 둘째, 주민들에게 ‘남조선은 통일 대상인 동족’이라고 가르치면서 남쪽을 향해 핵 공격을 거론하는 모순을 정리해야 했을 것이다. 그래야 실제로 핵을 사용하더라도 정당한 행동이라 우길 수 있고, 한국에 더 큰 공포도 줄 수 있다. 셋째, 4·10 총선을 앞둔 우리 사회를 흔들어 분열시키고 싶을 것이다. 이 중 우리가 가볍게 여겨도 될 것은 하나도 없다.
예나 지금이나 내부 불만을 잠재우는 데는 외부 긴장이 특효약이다. 인류 역사에는 그런 전쟁이 수두룩했다. 북한은 핵 게임을 통해 한미동맹을 떨쳐내고 주체통일을 달성하겠다는 불변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필요하면 실제로 대남 핵 사용을 불사한다는 계산을 할 것이다. 그래서 ‘억제’에서 ‘사용’으로, 그리고 ‘대남 선제 핵 사용 불사’로 핵 독트린을 강화해 왔다. 한국이 지역적·이념적 분열상을 지속하는 한 북한의 분열 책동도 이어질 것이다. 요컨대, 북한이 전쟁 도발이나 대형 국지 도발을 자행할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크며, 핵 사용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쟁 발발 시 핵무기와 발사 시설이 한·미 군의 최우선 정밀타격 목표가 될 것이므로 초기에 사용하지 않으면 영영 사용하지 못하는(use-it-or-lose-it) 딜레마도 북한의 핵 사용 가능성을 키우는 요인이다. 게다가 지금은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원하는 불량국가들이 패거리를 지어 서로 도우면서 지구촌 곳곳에서 분란을 일으키는 ‘뜨거운 신냉전’이 한창이고, 이를 저지하는 미국과 서방은 피로감을 토로한다. 이 모습이 중국이나 북한에 오판의 빌미를 주면 대만해협과 한반도는 순식간에 전화(戰禍)에 휩싸일 수 있다. 그래서 올해는 6·25전쟁 이래 가장 위험한 시기다.
우리는 지난해에 4·26 워싱턴선언을 통해 확장억제 강화라는 큰 성과를 얻어냈다. 하지만 북핵 위협은 이것으로 따라잡기 힘든 속도로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15년 만에 영국에 핵을 재배치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최신형 전술핵 B61-12를 보낸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서진(西進)을 시도하는 러시아를 견제하고 나토(NATO)를 안정시키려는 의도를 모르지 않지만, 위협의 강도로 따진다면 현재도 핵보유국인 영국은 직접적·노골적·실질적 핵 위협에 시달리는 비핵 대한민국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참으로, 미 전술핵 재배치를 위한 한·미 협의가 필요한 때다. 하지만 미국만 탓하는 자세로는 안 된다. 정치가 좌우로 요동치는 중에 정치인들이 종전선언과 유엔사 해체를 요구하고, 많은 젊은이가 반미·반일을 겉멋으로 여기는 나라에 자신들의 최상위 전략자산을 상주시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문화일보
01.31 다보스포럼에서 읽은 지정학 풍향계
다보스포럼은 세계 최고 수준의 연설과 토론이 무엇인지 생생히 보여주었다. 올해는 380명의 국가 정상과 고위급 정책결정자, 200명의 학자와 전문가, 또 기업가와 언론인 등 2800여 명이 다보스포럼의 초청을 받아 참여했다. 필자는 주로 국가 정상이나 고위인사의 연설과 대담, 그리고 지정학과 경제 관련 세션에 참석해 동향을 이해하고 해법을 탐구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러·우) 전쟁은 올해를 넘어 장기로 갈 것 같았다. 유럽은 러시아에 대해 매우 단호했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연설 후에 이어진 대담에서 “러시아가 이 전쟁에 결코 승리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며 힘주어 말했다. “우리 용맹한 군사들이 유럽을 지킬 수 있도록 무기를 쥐어 달라”는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 연설은 많은 참석자의 공감을 얻었다. 러시아가 ‘유럽의 공적(公敵)’이 된 분위기는 세션을 지배했다. 영국 전직 외교관이 “서방이 러시아 관여 정책을 펴지 않은 결과가 전쟁으로 귀결된 것 아니냐?”며 질문하자 동유럽국가의 장관은 순진하다며 받아쳤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를 막지 못하면 다음은 우리가 직접 전쟁을 치를 수 있다는 위기감이 유럽 정책결정자 가운데 널리 퍼져 있었다.
유럽은 대러 불신과 위기감 강해
러·우 전쟁은 장기전으로 갈 전망
미·중 관계, 올해는 현상유지 기조
석기시대 정치, 폭풍 견딜 수 있나
러·우 전쟁 추이는 미국 대선 결과나 러시아 내부 변화에 달려있을 듯하다. 만약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될 경우, 그는 전쟁을 조기에 종결하려고 나설 수 있다. 이는 미국과 유럽 관계를 심각하게 악화시킬 것이며 그 여파가 나토 약화에까지 미칠 수 있다. 미국의 일부 현실주의 정치학자도 중국 대응이 미국의 최우선과제라며 유럽과 중동에서 미국 국력을 소모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러시아 내부도 중요한 변수다. 전쟁이 길어짐에 따라 인명 손실이 커지고, 16%에 이르는 고금리와 외국 투자자본의 이탈로 러시아인의 삶은 한층 어려워질 전망이다. 러시아 내 독립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점령한 영토를 확보한 차원에서 전쟁을 종결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 응답자가 2022년 여름의 11% 수준에서 2023년 9월에는 28%로 급증했다.
2024년 미·중 관계는 악화나 개선보다 현상을 유지할 것으로 보였다. 전문가 대부분은 올해는 미·중 모두 양국 관계를 악화시킬 여유가 없다는 인식을 피력했다. 중국은 경제에 발목이 잡혀 있고, 미국은 연말 대선을 의식하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1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당분간은 충돌 버튼을 누르지 않기로 합의했다는 분석이다. 다보스포럼에서 중국의 리창 총리도 ‘거시경제정책 조율, 공급망, 과학기술, 녹색성장, 포용적 성장’이란 다섯 영역에서 서방과의 협력을 원한다고 밝혔다. 이어 작년 중국경제는 정부의 확장적 경제정책 없이도 5.2% 성장했다면서, 앞으로도 중국은 성장을 지속할 것이며 해외투자에 열려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연설은 조심스러우면서 시끄러웠고, 팩트보다 ‘정답’을 되뇌었다. 연설 후에 중국인 참석자는 필자에게 리창의 말을 믿지 않는다고 솔직히 말했다.
중국경제를 재점화할 해법은 보이지 않았다. 호주의 전 총리이자 중국 전문가인 케빈 러드는 중국경제가 정점을 지났다는 ‘피크 차이나’론은 오류라고 주장했다. 내수로 충분히 고성장을 지속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다른 참여자는 중국인이 정부 정책을 신뢰하지 않고 미래를 불확실하게 보고 있는데 어떻게 소비가 늘어나겠냐며 반박했다. 필자가 “중국경제의 장기 성장을 위해서는 국영기업과 은행의 민영화가 필수적인데 이런 구조개혁이 가능하겠는가”라고 물었을 때는 의식적으로 대답을 회피하는 분위기였다. 중국의 경제학자는 녹색성장이 구조개혁이라고 에둘러 답했다. 그러나 녹색 전환으로 후생은 증가하겠지만 성장률에 미치는 효과는 크지 않다. 이제 중국의 고성장 시대는 끝났다는 진단을 내려야 할 것 같았다.
지정학 변화는 북한 문제에 어떤 바람을 일으킬까. 러·우 전쟁의 장기화는 북한 등을 밀어줄 순풍이다. 하지만 역풍도 있다. 중국은 미·중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서도 북한 핵실험이나 거센 도발을 막으려 할 것이다. 필자는 지난 칼럼에서 북한 내부와 지정학적 여건을 고려할 때 김정은이 큰 사건을 올해 일으킬 확률은 낮다고 평가했다. 우리에게 가장 큰 도전은 중·러·북이라는 세 축이 동시에 움직일 때 생긴다. 비틀거리는 세 세력과 패권 경쟁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남아있는 한 지정학 폭풍은 몰려온다.
폭풍은 다가오는데 우리를 안전한 항구로 데려다줄 인도자는 보이지 않는다. 다보스포럼은 과학기술, 경제학, 민간 부문에 기대를 걸었다. 이 삼두마차가 과연 폭풍을 뚫을 수 있을까. 누가 마차를 몰고 있나. 각국의 국민은 마부인 지도자에게 희망을 걸지만 요즘은 그들이 광풍을 자초하기도 한다. 우리는 지정학 폭풍에 얼마나 준비돼 있나. 정치는 무엇을 가지고 싸우고 있나. 아직도 석기시대 부싯돌 다툼인가.
중앙일보 김병연 서울대 석좌교수·경제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