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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上萬事 2024-01/ 01.04 울산시 토목직 6급 최금석씨의 특별 승진 - 01-30 中 외에도 亞 2억명 쇠는 음력설, 시기는 제각각

상림은내고향 2024. 1. 24. 18:37

世上萬事 2024-01/

01.04 울산시 토목직 6급 최금석씨의 특별 승진

현대차 29년만의 국내 신규 공장
인허가 기간 2년 단축시킨 주역
일자리는 기업이 만들지만
공무원이 도우면 큰 힘이 된다

 ▲지난해 7월 12일 오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명촌정문에서 오전조 근로자들이 퇴근을 하고 있다./뉴스1

 

울산시 공무원 최금석(44)씨는 지난 2022년 9월부터 작년 7월까지 울산시청이 아니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본관 3층 총무팀으로 출근했다. 최두표 행정 사무관과 함께 현대자동차 울산 신공장 인허가 업무를 전담했기 때문이다. 토목직 6급인 그는 최소 3년은 걸린다고 했던 각종 인허가를 10개월 만에 끝냈다. 2025년 공장이 완공되면 1996년 아산공장 이후 29년 만에 세워지는 현대자동차 국내 공장이 된다.

 

김두겸 울산시장은 이렇게 지시했고, 그는 그대로 따랐다고 했다. “현대자동차 사람들이 당신 말고는 다른 공무원들 만날 일이 없도록 해줘라. 인허가 관련 공무원들을 당신이 다 만나서 해결해줘라.”

 

현대자동차의 신공장은 기존 주행 시험장, 완성차 야적장 등 밀집된 시설을 철거하고 세우는 연면적 33만㎡의 초대형 전기차 전용 공장이다. 연간 20만대의 전기차를 생산할 2조3000억원짜리 공장과 2000개의 일자리가 울산시에 생긴다. 연 매출 15조원을 예상하는 공장인데 2년 앞당겼으니 30조원 경제적 이익이 발생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는 “두 딸이 아빠가 한 일을 알아주는 것이 가장 큰 격려와 칭찬이었다”고 했다.

 

공장 건설 인허가는 ‘지뢰밭’이라고들 한다. 환경영향평가, 교통영향평가, 재해영향평가, 문화재 조사, 국공유지 사용 허가, 도로 진출입 허가 등을 모두 통과해야 한다. 담당 부서는 다 다르고, 흩어져 있다. 울산시청, 울산 북구청, 낙동강유역환경청 등 곳곳에 관련된 부서가 30곳쯤 된다. 그리고 한 군데만 문제가 생겨도 그대로 멈춰 선다.

 

인허가는 담당자의 업무 미숙, 법령 적용 오류 등으로 하릴없이 지연되기 일쑤다. 그는 “관련 부서에서 자의적 해석, 소극적 해석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 것이 제도적 규제는 아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규제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현대자동차가 국내에 공장을 세운 것이 오래돼서 대규모 인허가를 경험해 본 실무자들이 다 퇴직하고 없더라. 처음에 회의를 했는데 ‘환경영향평가만 1년 반은 잡아먹는다. 난이도가 너무 높다’는 부정적인 분위기였지만 하나씩 바꿔나갔다”고 했다.

 

김두겸 울산시장의 공도 크다. 인허가 리스크에 머뭇거리는 현대자동차에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는 걸 안다. 공무원을 파견해서라도 돕겠다”고 했고 약속을 지켰다. 그렇게 해서 34년 만에 울산에 현대자동차 신규 공장이 만들어지게 됐다.

 

지난 정부는 세금으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했다. 공공기관들이 체험형 청년 인턴을 채용하게 하고, 국립대에서 빈 강의실 전등 끄는 에너지 절약 도우미를 뽑게 했다. 취업률 통계만 부풀린 가짜 일자리였다

 

일자리는 기업이 만든다. 하지만 공무원들이 기업을 도와주면 더 빨리, 더 많이 늘어나게 할 수 있다. 나라에 장관이 많고, 고위 공무원이 숱하지만 울산시 토목직 6급 공무원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기업하기 좋은 나라, 일자리가 늘어나는 나라를 만들려면 공무원들이 움직여야 한다. 정부가 할 일은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그는 작년 7월 현대자동차 신공장 인허가를 끝내고도 울산시청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곧바로 삼성SDI 울산사업장으로 가서 배터리 신규 공장 인허가를 돕고 있다. 2006년 토목직 7급 공채에 합격해 고향인 울산시에서 일하는 그는 작년 말 6급에서 5급으로 특별 승진했다. 기업현장지원단의 팀장이 됐다. “승진했으니 더 잘해야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 이진석 기자

 

01-05 경복궁 낙서테러 복구비 1억, 범인이 물게 해 경종 울려야

스프레이 낙서로 훼손된 경복궁 영추문 담장이 응급 복구를 거쳐 본모습을 거의 되찾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문화재청은 낙서 제거와 보존처리 1단계 작업을 마친 담장을 4일 공개하며 “복구 비용이 최소 1억 원으로 추산된다. 감정평가 전문기관에 의뢰해, 정확한 손해배상 금액을 산출한 뒤 낙서 범인에게 청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레이저세척기·스팀세척기 등 장비 임차료 946만 원, 방진복·장갑 등 소모품비 1207만 원, 복구 작업에 투입된 국립문화재연구원·국립고궁박물관·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직영 보수단 직원 234명 인건비 8000만 원 등을 범인이 물게 하겠다는 것으로, 당연하다. 문화재에 대한 낙서 테러도 심각한 범죄라는 인식을 일깨우고 경종을 울리기 위해, 복구비 전액의 손해배상을 반드시 범인이 하게 해야 한다. 1단계 보존처리 비용뿐만이 아니다. 추후 시행할 2단계 보존처리비도 마찬가지다. 그러는 것은 지정문화유산을 낙서로 훼손한 자에게 원상 복구비를 청구하도록 적시한 문화재보호법을 준수하는 일이기도 하다.

SNS를 통해 알게 된 사람에게서 5만 원씩 받고 지난해 12월 16일 낙서 테러를 실행했다가 3일 후 경찰에 붙잡힌 임모(18) 군과 김모(17) 양은 물론, 이들에게 범행을 사주한 신원미상의 범인도 끝까지 추적·검거해 민·형사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 이들 범행 하루 뒤 모방 범죄를 저질렀다가 경찰에 자수하며 “예술을 한 것일 뿐” 궤변을 늘어놓은 20대 남성의 손해배상 책임도 예외일 수 없다.

문화일보 사설

 
 

01.06 아이 출생에 1000만원 지급한 충북, 작년 출생아 수 증가

▲저출생 영향으로 서울 초등학교 취학 대상자가 매년 줄어들더니 올해는 처음으로 5만명대로 떨어졌다. 올해 서울 지역 초등학교 취학 대상자는 국·공·사립 통틀어 5만9492명으로 전년 대비 10.3% 급감했다. 사진은 3일 오후 2023년 폐교한 광진구 서울화양초등학교 모습. /연합뉴스

 

지난해 출생신고 건수가 전국 17개 시·도 중 충청북도만 7693건으로 전년에 비해 1.5%(117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16개 시도의 출생신고 건수는 모두 전년보다 감소했다. 지난해 출생아 수가 23만명대로 줄어 출산율도 사상 최저인 0.72명대로 떨어졌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충북이 어떤 정책으로 이런 성과를 냈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직 1년 성과여서 지속적인 효과가 있을지 더 지켜볼 필요는 있지만, 충북만 유일하게 출산율을 끌어올린 배경에 ‘아이를 낳으면 현금 1000만원을 주는 정책’이 있다는 분석이 많다. 충북은 작년 1월부터 이 지역에서 태어난 아기에게 5년에 걸쳐 현금 1000만원의 출산육아수당을 주고 있다. 이 정책이 경제적 부담으로 아이 낳기를 주저하는 부부가 출산을 결심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충북도는 주택 문제를 저출생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보고 유휴 부지에 아파트를 짓고 청년 부부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반값 아파트’도 추진할 방침이다.

 

지난해 3분기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사상 유례가 없는 0.70명으로 내려갔다. 저출산 상황이 국가 소멸을 걱정해야 할 수준임을 보여주는 통계들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어린이집이 매년 2000개 이상씩 문을 닫고 있다. 저출산 여파는 도미노처럼 차례로 초등학교, 중·고교, 대학을 거쳐 군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 CNN 방송이 지난 연말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이 한국군의 새로운 적(敵)으로 떠올랐다고 분석하는 보도를 내보낼 정도다.

 

인구 감소에 제동을 걸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하지만 예산이 부족하거나 적절한 정책 부재로 좀처럼 저출생 추세를 반전시킬 계기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물론 다른 시·도는 충북도의 성과를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충북도 성과는 적어도 출산·육아에 드는 경제적 부담은 사회가 일정 부분 부담하는 쪽으로 가야 출산율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젊은이들이 결혼·출산을 하는 데 큰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획기적인 출산·육아 정책을 국가 차원에서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1.06 국민연금 작년 100조 벌었다… 전체 수급자에 3년 줄 돈

사상 최대 12% 수익률 … 순자산 1000조원 돌파할듯

 국민연금공단이 지난해 기금 운용으로 사상 최대인 12% 수익률을 내며 100조원 넘는 수익금을 벌어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100조원은 국민연금 수급자 전체에게 약 3년간 연금을 줄 수 있을 정도의 돈이다.

 

국민연금은 2022년에 연 -8%대로 역대 최악의 수익률을 보였지만 작년 글로벌 증시 훈풍 덕분에 1년 만에 반전 성과를 올렸다. 특히 지난해 해외 주식에서만 50조원 넘게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익률 호조 덕분에 국민연금 순자산도 사상 처음으로 1000조원을 넘길 것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2018년(639조원)과 비교해 5년 만에 순자산이 50% 이상 증가하는 셈이다. 국민연금은 일본 공적연금(GPIF, 약 1900조원)과 노르웨이 국부펀드(GPFG, 약 1800조원)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순자산 1000조원을 넘는 연기금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

 

 

▲그래픽=송윤혜

 

◇”고갈 시기 2년까지도 늦출 수도”

5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 따르면 작년 연간 수익률은 최소 12%대로 관측된다. 정확한 수익률은 오는 3월 최종 집계를 마치고 공개된다. 종전 국민연금 수익률은 2019년(11.31%)이 역대 가장 높았다. 2020년(9.7%)과 2021년(10.77%)에도 양호한 수익률을 유지했지만 2022년(-8.22%)은 글로벌 증시 한파 속에 최악의 마이너스 수익률을 냈다.

 

2022년 국민연금은 일본 공적연금, 노르웨이 국부펀드, 네덜란드 공적연금(ABP), 미국 캘퍼스(캘리포니아공무원 연금),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 등 해외 5대 연기금 평균 수익률(-10.55%)에 비해서는 선방했다. 국민연금은 주식 등 위험자산 비중이 40%대로 낮기 때문에 장기 수익률에서는 주식 비중이 높은 해외 연기금에 밀린다. 하지만 이런 자산 배분 특징이 오히려 증시 한파 속에서는 손실을 줄인 일등공신이 됐다.

 

작년 국민연금이 벌어들인 100조원은 국민연금이 도입된 1988년부터 집계한 누적 수익금(550조원 예상)의 5분의 1에 해당할 정도로 큰 규모다. 이런 대규모 수익이 이어질 경우 2055년으로 예정된 연금 고갈 시기를 늦출 수도 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단순 계산하면 작년 수익금으로 2년 정도는 국민연금 고갈을 늦출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30% 차지하는 해외 주식이 효자

국민연금의 깜짝 수익은 주로 주식 투자에서 발생했다. 100조원 가운데 50조원이 해외 주식, 30조원가량이 국내 주식 투자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10월 기준 국민연금 포트폴리오에서 해외 주식은 30%, 국내 주식은 13%를 차지한다. 특히 미국 뉴욕 증시에서 나스닥 지수가 지난해에만 45% 상승하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주식 투자 성과는 작년 11~12월에 급증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이 최근 공시한 작년 10월 말 기준 수익률은 연 환산 시 6.92%에 그쳤다. 당시 수익금은 62조8000억원, 순자산은 968조원 규모였다. 그런데 작년 10월 말 2277.99에 거래를 마쳤던 코스피는 마지막 거래일인 12월 28일 2655.28로 마감해 두 달 만에 377포인트 급등했다. 같은 기간 미국 증시에서도 나스닥 지수가 17%,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과 다우평균이 각각 14%씩 올랐다.

 

10월 말 연 5%대였던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가 연말 연 3%대 후반으로 떨어지며 해외 채권 가격도 상승했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상승(원화 가치 하락)한 것도 달러로 투자된 해외 자산 가격을 원화로 환산할 때 유리하도록 작용했다.

 

◇국민 노후 자금 풍족해지나

그렇다면 국민들의 연금 곳간은 얼마나 풍족해질까. 2022년 기준 한 해 국민연금이 수급자 약 667만명에게 지급한 연금은 34조8208억원이었다. 단순 계산하면 작년 벌어들인 100조원으로 3년간 곳간을 채울 수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국민연금 ‘대박’에만 노후를 의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김동엽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 상무는 “국민연금 수급액은 가입 기간 등을 따르기 때문에 수익률이 좋다고 개개인의 연금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며 “부부가 국민연금을 기본으로, 퇴직급여와 개인형퇴직연금(IRP) 등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 유소연 기자

 

01-09 내일부터 지하철 4호선 좌석 없는 열차 다닌다

▲객실 의자 없는 열차 모습. 서울교통공사 제공

 

오는 10일부터 서울 지하철 4호선에 좌석 없는 열차가 다닌다.

서울교통공사는 지하철 혼잡도를 완화하기 위해 4호선 열차 1개 칸의 객실 의자를 제거하는 시범사업을 10일 출근길부터 시작한다고 9일 밝혔다. 좌석 제거 객실은 혼잡도가 높고 의자 아래 중요 구성품이 적은 3호차(4번째 칸 또는 7번째 칸)를 선정했다.

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4호선 열차 한 칸의 최고 혼잡도는 193.4%에 달했다. 혼잡도는 열차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탑승했는지를 알려주는 수치로, 실제 승차 인원을 승차 정원으로 나눈 것이다. 공사는 이번 시범사업을 통해 열차 1칸의 최고 혼잡도가 최대 40%까지 개선될 것으로 기대했다.

좌석이 없어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지지대와 손잡이 등이 추가 설치됐다. 또 열차 이용에 불편이 없도록 시범운행 자동 안내방송, 기관사 육성방송, 출입문 안내 스티커 부착 등 사전 대비가 이뤄졌다.

공사는 시범 열차 운행 모니터링과 혼잡도 개선에 대한 효과성 검증을 마친 후 확대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
조혜선 동아닷컴 기자 hs87cho@donga.com

 

 

▲문화일보

 

01.12  70대 이상이 20대 인구 추월, 저출생·고령화 쓰나미 덮쳐왔다

▲2024년 1월 9일 오전 경기도 부천시 부흥초등학교에서 열린 제30회 졸업식에서 졸업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해당 학교는 108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한편 서울 화양초등학교 등이 학생수가 적어 이미 폐교했고, 올해만 33개의 학교가 문을 닫는 등 학령인구가 큰 폭으로 줄어든 상황이다. /박성원 기자

 

지난해 70대 이상 인구가 631만여 명으로 20대 인구(619만여 명)를 처음으로 추월했다. 전년에 비해 70대 이상 인구는 23만여 명(3.9%) 증가한 반면 20대 인구는 21만여 명(3.4%)이나 줄어들었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맞물리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여실히 보여주면서, 그 쓰나미가 이제 우리를 덮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앞으로 고령 인구는 더 늘고 젊은이는 더 줄어드는 것은 ‘정해진 미래’다. 지금 19세 이하(15.6%) 인구가 50대(16.9%)보다 적고 60대(14.9%)와 비슷하다. 우리나라 인구를 연령대별로 그린 인구피라미드는 1960년대 ‘삼각형’에서 현재의 ‘항아리’를 지나 비극적인 ‘역삼각형’ 형태로 가고 있다. 지속 가능하지 않은 국가 소멸 구조라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저출산·고령화는 경제·사회적 역동성과 국가 재정 역량을 쪼그라뜨려 나라 전체를 ‘수축 사회’로 만든다. 생산 인구 감소로 세입은 줄고 노인 복지, 의료비 등 정부 지출은 급격히 늘어나기 때문이다.

 

인구 1억2200만명이고 합계출산율이 1.26명(2022년 기준)으로 우리보다 훨씬 높은 일본도 ‘인구 8000만명 사수’를 목표로 내걸고 필사적으로 국가 전략을 다시 짜고 있다. 그런데 사정이 더 나쁜 우리는 절체절명의 위기인데도 이렇다 할 대책 없이 허송세월하고 있다. 정부와 여야가 하는 것은 사실상 눈앞의 ‘정치’뿐이다. 좀처럼 저출생 추세를 반전시킬 계기를 만들지 못하고 있고, 이제 현실로 닥친 고령사회에 대한 대비책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가면 필연적으로 나라를 지탱할 수 없는 지경에 내몰릴 것이다. 우리도 저출산·고령화 대책을 마련하는 데 범국가적인 총력전을 펴야 한다. 우선 충격을 줄 수 있을 정도의 획기적인 출산·육아 정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출산율 반등에 성공하더라도 상당 기간 인구 감소와 고령화를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아이를 낳을 젊은 세대의 숫자 자체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게 된 고령 사회에 맞는 중장기 적응 대책도 다급해졌다. 사회 각 부문이 5년, 10년 뒤를 내다보면서 인구 급감과 고령화의 충격에 대비한 구조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 부동산과 일자리, 교육, 복지, 이민 등 모든 국가 정책을 저출산·고령화 사회에 맞게 재설계해야 한다. 노인 연령 상한, 정년 연장 등으로 사회보장 비용을 줄이고 여성·노인층의 사회 활동 참여율을 높여야 한다. 노동·연금 개혁을 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가 유지될 수 없는 상황이다.

조선일보 사설

 

01-12  70대 이상 인구 20대 추월, 목표도 대책도 없는 ‘늙은 한국’

▲50년이 흐른 한국사회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14일 통계청이 발표한 '장래인구추계(2022~2072년)에 따르면 대한민국 총인구는 2022년 기준 5167만명에서 2030년에 5131만명, 2072년에는 3622만명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14일 서울 시내 한 구청의 출생신고 창구. 사진=뉴스1

 

 저출산 고령화로 지난해 70대 이상 인구가 20대를 처음 추월한 것으로 집계됐다. 행정안전부가 그제 발표한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70대 이상은 632만 명으로 증가한 반면 20대는 620만 명으로 감소했다. 내년이면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중이 20%가 넘는 초고령사회가 된다. 전국 17개 광역시도 가운데 8곳은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상태다.

2006년부터 300조 원 넘게 저출산 예산을 쏟아붓고도 효과가 없자 엉뚱한 곳에 돈을 썼다거나 대책이 중구난방이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무엇보다 정책 목표가 뚜렷하지 않아 저출산 정책이 표류한 탓이 클 것이다. 이제라도 현실적인 출산율 목표부터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일본 민간 지식인으로 구성된 인구전략회의가 최근 일본 정부에 전달한 ‘인구비전 2100’을 참고할 만하다. 현재 합계출산율 1.26명이 지속되면 2100년 인구가 6300만 명으로 반 토막 날 전망이니 출산율을 2.07명으로 올려 8000만 명을 유지하자는 내용이다. 1억2200만 명의 세계 12위 인구 대국이 목표를 1억 미만으로 낮춰 잡은 것도 놀랍지만 이 목표조차 출산율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려야 달성 가능하다니 무섭기까지 하다.

인구 5133만 명인 한국은 2100년쯤이면 인구가 일제강점기보다 적은 1500만 명대로 대폭 축소된다는 게 정부 추산이다. 이마저도 출산율 0.98명을 유지한다는 가정하에 나온 낙관적 전망이다. 현재 출산율은 0.7명이다. 국가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구 규모와 이를 달성하기 위한 출산율 목표를 세우고 총력전을 펼쳐야 ‘국가소멸’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출산율이 반등해도 인구 감소 추세를 반전시키기는 어렵다. 인구 5000만 명 규모에 맞춘 지방 행정 체계와 국방 교육 복지를 포함한 사회 제도를 전면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일하는 사람은 줄고 부양받는 사람은 늘어나는 인구 구조가 큰 부담이다. 당장 올해부터 생산가능 인구(15∼64세) 비중이 70% 아래로 떨어질 전망이다. 청년들이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입직 연령을 선진국 수준으로 앞당기고, 결혼과 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되는 여성 인력을 최대한 활용하며, 50세도 되지 않아 퇴직하는 정년 문화를 바꿔야 한다. 올해부터 적자로 돌아서는 건강보험과 2055년 고갈되는 국민연금도 이대로 두면 재앙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교육 노동 연금 개혁 없이는 인구 위기도 막을 수 없다.
동아일보 사설

 

01.15  1억 뒷돈 노조위원장 또 출마, 정치권 따라 한다

▲2018년 12월 20일 전국택시노조 등 택시 4개 단체 회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카카오 카풀 반대 3차 집회'를 하고 있다./김지호 기자

 

금품 수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한국노총 소속 전국택시노조연맹 위원장 강모씨가 택시노조 차기 위원장 선거에 단독 출마했다고 한다. 그는 한노총 수석부위원장이던 재작년 건설노조에서 현금 1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지금 재판을 받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이 의혹이 처음 불거졌을 때만 해도 “1원도 안 받았고, 사실이면 노동계를 떠나겠다”고 했다. 그러다 구속영장 실질 심사를 앞두고 혐의를 인정했고 결국 영장이 기각돼 불구속 기소됐다. 그런데 노동계를 떠나기는커녕 택시노조 위원장직을 유지한 상태에서 또 출마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 뻔뻔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가 돈을 받은 경위도 기가 막힌다. 한노총 산하였던 건설노조가 조합비 7억여 원을 횡령한 위원장 비리 사건으로 한노총에서 제명된 뒤 한노총 산하에 다시 들어가려고 건네는 1억원을 받았다. 자신들이 제명해 놓고 다시 가입시켜 주겠다며 뒷돈을 받은 것이다. 강씨는 이미 택시노조 위원장 3선을 했고 이번에 4선에 도전하는 것이다. 그것도 단독 출마이니 당선이 미리 정해진 셈이다. 그런데도 한노총은 제재는커녕 문제 제기조차 하지 않고 있다. 다 한통속 아니냐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이런 비리는 한노총만의 문제도 아닐 것이다. 그간 한노총과 민노총 산하 건설노조들이 벌인 비리와 불법이 현 정권 들어 이뤄진 특별 단속과 수사로 상당 부분 드러났다. 건설 현장에 찾아가 자기네 조합원 채용을 강요하거나 월례비·전임비를 갈취한 것은 기본이었다. 말을 듣지 않으면 동전 떨어뜨려 놓고 줍는 척을 반복하면서 트럭 진입을 방해했다. 두 노총 노조들은 노른자위 일자리를 확보하려는 깡패식 싸움도 벌였다. 일부 노조 간부는 건설사들의 상납금에다 조합원 조합비까지 제 돈처럼 썼다. 조폭 행태와 다를 게 없다.

 

선진국 수준에 이른 나라 중에서 이런 도덕성을 가진 노조 간부들이 활동하는 나라는 우리나라 말고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이제는 법 위반이 사실상 확인돼 기소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으면서 선거에 출마하는 정치권의 못된 행태마저 그대로 따라 하겠다고 한다.

조선일보 사설

 

01.15 월나라 구천이 쓸개 핥으며 고민한 ‘저출생’

‘와신상담’의 구천, 다자녀면 감세 야만족도 받아들여 인구 늘려
인구, 국력 앞서자 오나라에 복수… 지금 우리는 월나라보다 다급

오나라 부차는 월나라 구천이 자기 아버지를 죽인 원한을 잊지 않으려고 장작더미에서 잤다. 기원전 494년 부차는 월나라를 공격해 구천을 사로잡았다. 구천은 오나라에서 부차의 노예 생활을 하다가 겨우 풀려났다. 구천은 쓸개를 핥으며 복수의 칼을 갈았다. 기원전 473년 구천은 부차의 오나라를 멸망시킨다. 와신상담(臥薪嘗膽) 고사다.

 

 ▲올해 서울 초등학교 신입생 수가 지난해보다 10% 이상 급감하며 사상 처음으로 5만명대로 떨어진 가운데 3일 오전 서울 시내 한 초등학교 인근에서 한 초등학생이 등교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구천의 복수는 20년간 쓸개를 맛봐서 이뤄낸 것이 아니다. 구사일생 돌아온 구천은 월나라 인구를 적극적으로 늘렸다. 자녀를 많이 낳은 가구에는 세금을 깎아주거나 면제해줬다. 출산 직전 임산부에겐 국가가 의사도 보냈다. 영유아 복지에 투자했다.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있는 젊은 남녀 간 결혼을 적극 지원했다. 중국 남부인 월나라 땅에는 야만족으로 불리는 소수민족이 많았다. 구천은 이들도 월나라 백성으로 받아들였다. 경제활동 인구와 병력 자원이 늘면서 월나라 국력이 오나라를 앞섰다.

 

2000년 전 로마 제국도 출산율 문제로 머리를 싸맸다. 60세까지 모든 남성은 반드시 결혼하게 했고, 노총각에겐 벌금(일종의 독신세)을 물렸다는 기록도 있다. 50세까지 여성은 남편이 사망하면 2년 내 재혼하도록 했다.

 

자녀 셋을 낳은 여성은 세금을 면제해줬고, 관리를 채용할 때도 자녀가 많으면 우대했다. 미혼이거나 자녀가 없으면 재산 상속에서 불이익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도 로마는 인구 부족으로 고민했다. 상류층일수록 결혼과 출산을 기피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제국의 인구는 전성기 7000만명에서 서로마 제국 멸망 때는 5000만명 정도로 줄었다고 한다.

 

인구와 국가 존립의 상관관계는 21세기라고 달라지지 않는다. 현재 우리나라 인구는 5100만명이고 북한 인구는 2500만명 정도다. 유엔경제사회국에 따르면 2022년 북한에서 태어난 신생아 수는 34만명으로 추산된다. 그런데 같은 해 우리나라 신생아는 25만명을 밑돌았다. 인구는 한국이 두 배인데 태어난 아기는 북한보다 26% 적은 것이다. 중국도 저출생으로 고민하고 있지만 한 해 1000만명이 태어난다. 현재 한국군은 50만명, 북한군은 110만명이다. 북한은 핵무기도 있다. 최첨단 AI 무기가 아무리 발달해도 군사력의 기본은 병력이다. 이대로 가면 한국 남성은 군대를 두 번 가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는 이미 바닥부터 무너지고 있다. 예식장이 없어지고, 산부인과가 문을 닫고, 산후조리원이 사라지고 있다. 유치원이 노인 시설로 바뀌고, 서울 초등학교 신입생이 5만명대로 추락했다. 곧이어 중·고교가 급감하고 대학은 줄줄이 문을 닫을 것이다. 세계 어떤 나라도 경험하지 못한 ‘저출생 재앙’이 코앞이다.

 

세계 최악인 저출생 원인은 모두가 안다. 과도한 주거비와 사교육비가 대표적이다. 지금 부산 신공항을 짓는 데 14조원을 쓴다. 대구~광주를 잇는 ‘달빛 철도’ 건설엔 9조원이 든다. 지난해 다 못 쓴 교육재정교부금만 7조5000억원이다. 이것만 더해도 30조원이다. 신생아 1인당 1억원씩 준다고 해도 30조원이면 30만명에게 줄 수 있다. 신혼부부 10만쌍에게 3억원짜리 아파트를 공짜로 나눠줄 수도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아이가 23만5000명이다. 작년 출생신고 건수가 증가한 지역은 전국 17개 시·도 중 충북이 유일했는데, 출생아 1인당 1000만원을 5년간 나눠준다는 ‘현금 정책’이 유효했다는 분석이 많다.

 

2500년 전 월나라 구천은 소멸 위기의 나라를 구하려고 비상한 인구 정책을 썼다. 지금 우리가 처한 저출생 문제는 쓸개를 핥던 구천의 월나라보다 더 심각하지 않은가.

조선일보 안용현 기자

 

01-15 사람 살리는 수사

 

 김병채 사회부 차장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던 배우 이선균이 숨진 채 발견됐다. 그에게 잘못이 있는지 없는지, 잘못이 있다면 얼마나 큰지 알 수는 없으나 본인에게는 물론, 그에게 칼을 들이대던 대부분 사람에게도 원하는 결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과정을 복기해 보면 비극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기본적인 수사 원칙과 상식이 망가졌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떠난 자에게는 명복을 빌면서 남은 자들은 원칙을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한다.

모든 수사의 기본은 ‘신속히 환부만 깨끗이 도려내는 외과수술식 수사’다. 이런 수사가 가능하게 하려면 충분한 내사가 뒷받침돼야 한다. 내사 단계에서는 사건이 절대 공개돼서는 안 된다. 충분히 내사를 진행한 뒤 입증이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압수수색 등 증거 수집에 착수해야 하고, 사건이 공개되면 가능한 한 빨리 수사를 끝내야 한다. 혐의를 못 찾으면 ‘쿨하게’ 그만둬야 한다.

이번 경찰 수사는 내사가 부실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엑스레이, MRI, CT, 조직검사를 안 해보고 환자가 암에 걸렸다는 다른 사람의 말만 듣고 개복수술부터 진행한 격이다. 막상 배를 열어 보니 분명히 있어야 할 암세포가 보이지 않았다. 집도의는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미 세상에 중요한 수술을 한다고 알려놓기도 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끝낼 수는 없었다. 원래 환부라고 생각했던 곳이 아닌 데까지 샅샅이 살펴봤다. 그래도 암세포를 발견하기 힘들었다. 수술은 늘어지고, 그사이 환자는 죽어가고 있었다. 큰 수술은 환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행위가 동반된다.

이 사건 이전에도 경찰과 검찰을 막론하고 잘못된 수사 관행이 자리 잡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건이 외부에 공개될 수밖에 없는 압수수색을 진행하고도 수사가 1∼2년 이상 더 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미 수사 동력이 떨어진 게 분명함에도 무혐의 처리를 미루고, 사건을 부여잡고 있다는 인상을 줄 때도 있었다. 검사 출신 홍준표 대구시장은 “옛날에는 아무리 큰 사건도 두 달 이상을 끌지 않았다”며 최근의 수사 행태를 비판했다. 물론 피의자들의 방어권이 강화됐고, 압수수색 절차의 위법성 등도 법원에서 엄격하게 따진다. 과거보다 수사 환경이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이 원칙을 이겨서는 안 된다.

수사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살리는 것을 목표로 삼는 행위가 돼야 한다. 잘못이 있는 사람에게 잘못을 알려주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게 하고, 벌을 받은 후에는 더 나은 사람이 되게 만드는 게 수사의 목표가 돼야 한다. 수술을 마치면 더 건강해져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수사는 사람을 죽이는 행위로 통용된다. 누군가의 범죄를 제보할 때 “내가 누구를 죽이려고 한다”고 말하고, 수사기관의 에이스들은 “내가 누구를 죽였다”고 자랑해 왔다.

수사기관뿐 아니라, 떠난 자를 극단적 상황으로 내몰았던 모든 사람이 옆과 뒤를 돌아봐야 할 때다. 단, 정치권 인사들은 왈가왈부하며 나서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들이 나서면 ‘내 편, 네 편’이 나오기 시작하고 본질이 흐려진다. 그리고 그들의 대부분은 현재 잘못된 수사 관행에 크고 작은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다.

문화일보

 

01.16 이선균에게 내려진 디지털 사형 선고 

포털서 ‘이선균’ ‘마약’ 검색하면
69일간 기사 1만1000건 쏟아져
마약 검사에서 ‘음성’ 판정받고
기소조차 못 했는데도
디지털에선 이미 유죄
NYT 등 해외 언론에서는
‘한국의 숨 막히는 문화’ 지적

 배우 이선균의 죽음은 또 한번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냈다. 누군가 약점이 잡히면 벼랑 끝까지 내몰아 파국을 봐야 직성이 풀린다. 그때마다 ‘공정’이라는 미명(美名)을 앞세우며 ‘관용’은 ‘불공정’과의 비겁한 타협으로 생각한다. 경찰은 죄를 지었을 것으로 의심되는 ‘혐의’만으로 이선균을 대중의 먹잇감으로 내던졌고, 언론은 검증되지 않은 내용까지 자극적인 헤드라인의 기사로 쏟아냈다. 포털과 유튜브는 이를 무한 반복 재생하며 확산하는 숙주(宿主) 역할을 충실히 했다. 인권을 외치던 야당과 그 많은 시민 단체들도 정작 그가 도움이 필요할 때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이선균의 마약 투약 혐의는 작년 10월 19일 첩보를 수집하는 내사 단계에서 언론에 알려졌다. 경찰 고위 관계자 스스로가 “이 사건은 죽이 될지 밥이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불에 안치기도 전에 알려졌다”고 말했듯이, 내사 단계에서 수사 대상자가 노출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의 신분이 노출되자 온라인과 유튜브에서는 관련 기사들이 폭주했다. 네이버에서 ‘이선균’ ‘마약’을 입력하면, 첫 보도가 나온 10월 19일부터 그가 숨지기 전날인 12월 26일까지 무려 1만1000건에 가까운 기사들이 검색된다. 69일간 하루 평균 160건씩 쏟아져 나온 기사들을 읽다 보면 기자도 숨이 막힐 지경이다. 유튜버들도 ‘충격 행각’ ‘경악’ 등 자극적인 제목 아래 온갖 ‘카더라’ 소식을 중계 방송하듯 보도했다.

 

그는 4차례의 마약 검사에서 3번은 ‘음성,’ 1번은 ‘판독 불가’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간이 검사에서 음성이 나오면 ‘정밀 검사를 해야 한다’고 하고, 정밀 검사에서 음성 판정이 나오면 ‘염색이나 탈색으로 검사 방해 가능성’ ‘신종 약물은 검출이 안 된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이선균이 다니던 룸살롱 술값만 1000만원’ ‘이선균과 유흥업소 실장의 전화 녹취’ 등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내용과 아내나 가족이 아니면 알아야 할 이유가 없는 사생활 보도까지 온라인과 유튜브를 통해 확산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3차례나 공개 소환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공개 소환을 훈령으로 금지하고 있지만 그는 예외였다. 그렇게 아카데미상 작품상에 빛나는 이선균은 ‘디지털 사형 선고’를 받았다. 아무런 직접 증거도 없고 기소조차 되지 않았는데도 그는 이미 유죄였다.

 

이선균의 죽음은 해외에서도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투약 혐의가 입증되기도 전에 그가 출연한 영화 개봉이 줄줄이 연기되고 영화 제작이 중단된 데 대해 “한국이 엄격한 나라임을 감안하더라도 놀라운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모범적인 인간상에서 벗어나는 것을 조금도 용납하지 않는 집단적 엄숙주의가 비극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한국의 ‘마약과의 전쟁’이 미국의 70년대, 80년대 정책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처벌 일변도의 정책은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한 독자는 기사 댓글에서 “한국에서 근무할 때 지하철과 버스에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술에 취한 사람들을 수없이 봤다. 중독성이 더 강한 술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한 것은 위선”이라고 썼다. 영화 전문 매체인 미국 할리우드 리포터는 넷플릭스가 한국에 25억달러를 투자하기로 약속한 것을 상기시키며 “미국 배우들 사이에서는 다반사인 마약 스캔들만으로 영화 제작이 중단되는 사례가 반복되면 할리우드가 같이 일을 하려 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12일 문화 예술인들의 기자회견에서 가수 윤종신은 “악의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소스를 흘리거나 충분한 취재나 확인 절차 없이 이슈화에만 급급한 일부 유튜버와 황색 언론들의 병폐에 대해 언제까지 침묵해야 하는가”라고 했다. 아픈 지적이다. 어설픈 언론 플레이를 한 경찰과 자극적인 보도를 쏟아낸 언론도 자성해야 하고, 가짜 뉴스든 뭐든 조회 수에 따라 돈을 벌 수 있는 수익 구조를 만든 포털과 유튜브도 개선책을 내놔야 한다. 취재 상대방을 따라다니며 조롱과 욕설을 퍼붓는 일부 유튜버들의 행태는 더는 방치하기 힘든 지경이다.

조선일보 조형래 기자

 

01.20 수십만원 식당 1분 안돼 예약 끝... 과시욕이 만든 과소비 사회

‘3억 벤틀리’ 日보다 더 팔리고 명품 소비 지출액 세계서 최다

지난 12일 서울 강남의 한 해산물 뷔페 레스토랑. 오후 6시가 넘어서자 100여 석이 모두 만석이다. ‘몇 달 전 예약해도 자리가 없다’고 알려진 곳이다. 1인당 저녁 식사 가격은 200달러. 환율 변동에 따라 매일 다르게 돈을 받는다. 12일 환율로 계산하면 1인당 26만원 수준, 두 사람이 오면 저녁 한 끼에만 52만원이 넘는데도 빈 좌석이 없는 것이다.

 ▲그래픽=김성규

 

고물가와 경기 불황으로 소비 위축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 대한민국은 ‘과시 소비’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한 대당 평균 가격이 3억원에 달하는 벤틀리의 지난해 국내 판매량은 810대로 일본(727대)을 앞섰다. 명품 중에서도 수억원씩 하는 콘스탄틴·오데마 피게·프레드 같은 초고가 시계·보석 판매 증가세가 가파르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가 국가별 명품 소비 지출액을 조사한 결과, 한국은 1인당 325달러(약 43만원)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았다.

 

정부는 최근 올해 경제성장률(GDP 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2.4%에서 2.2%로 낮추며 민간 소비 위축을 주요 이유로 꼽았다. 하지만 초고가 소비 시장의 모습은 다르다.

 

이런 ‘과시 소비’는 일부 계층에 국한되지 않는다. 평범한 소비자들도 이를 따라 하느라 허리가 휜다. 작년 10월 한 통신사의 아이폰15 사전 예약에선 기본형 대신 1대당 150만원이 훌쩍 넘는 고급 모델 비율이 80%를 기록했다. 이런 ‘과시 소비’ 때문에 일부는 빚을 지고, 이런 소비를 감당하느라 출산을 꺼리는 등 사회적 문제까지 되고 있다. 숙명여대 서용구 교수는 “자신의 소득에 맞게 구매를 하는 ‘평균적 소비 행태’가 사라지고, 극단을 넘는 초극단 소비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김현국

 

가족 모임 등을 할 때 중산층도 종종 찾는 호텔 뷔페 가격도 치솟고 있다. 서울신라호텔과 롯데호텔 등의 뷔페 저녁 가격은 18만~19만원으로 거의 20만원에 육박한다. 딸기로 만든 디저트를 먹는 딸기 뷔페는 1인당 입장료가 11만원을 넘는다.

 

지난 10월 서울 강남 신사동 한 전시회. 전 세계에서 71병만 생산된다는 발베니 위스키 60년 두 병이 공개됐다. 한 병당 가격은 3억3000만원. 1시간도 안 돼 두 병 모두 팔렸다. 이 제품을 보기 위해 몰려든 이들만 300여 명이었다. 전시 관계자는 “이렇게까지 반응이 뜨거울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요즘 일부 유명 ‘스시 오마카세(주방장이 알아서 음식을 내는 방식)’ 식당은 특정 날짜와 시간에 예약을 받지만, 1분도 안 돼 예약이 끝난다. 이런 치열한 예약 전쟁을 대학교 수강 신청에 빗대 ‘스강(스시+수강) 신청’이라고 불린다. 유명 한우고깃집 예약은 ‘우강신청’이라고 불린다. 워낙 예약이 어렵다 보니, 예약권이 5만원 등으로 인터넷에서 거래되고, 이마저도 인터넷에 올라오는 대로 팔린다.

 

고물가·고금리로 소비자들 지갑이 쉽게 열리지 않지만, 극초고가(極超高價) 상품일수록 더 잘 팔리는 역설은 계속되고 있다. 비쌀수록 가기 힘들고, 가기 어려울수록 그 식당은 더 유명해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초고가 식당일수록 빈자리가 없고, 수억원대 수입 자동차의 판매율은 30%가량씩 급증한다.

 

 

▲그래픽=김성규

 

◇과시 소비 공화국

최근 젊은층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뮤지컬 티켓 가격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현재 공연 중인 ‘오페라의 유령’ VIP 좌석 가격은 19만원. 그동안 뮤지컬계의 ‘심리적 마지노선’인 15만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하지만 주말 좌석은 구하기가 힘들 정도로 인기가 높다.

 

식당 고기 가격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수원의 한 유명 고깃집은 1인분 가격이 10만2000원에 이른다. 서울 광화문에 새로 문을 연 한 고깃집은 10만원 미만 메뉴는 아예 찾아볼 수 없다. 이곳 주인 B씨는 “대부분 법인 카드로 결제하기 때문에 가격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비쌀수록 찾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초고가 제품 판매를 마케팅 수단으로 삼기도 한다. 국내 편의점도 100만원이 넘는 위스키, 고가 와인을 판매한다. 국내 매출 1위 편의점인 GS25는 지난해 4400만원짜리 ‘고든앤맥페일 플래티넘 주빌리 글렌그란트1952′와 2000만원이 넘는 ‘롱몬 1996′ 등을 포함해 100만원 이상 고가 위스키를 400여병 팔았다. 신세계백화점에선 2023년 와인 매출이 전년과 비슷했지만, 100만원대 고가 와인만 취급하는 ‘버건디앤’ 매장의 매출은 50% 넘게 증가했다. 명품 중에서도 초고가 제품의 매출 증가율이 더 가파르다. 갤러리아 백화점 관계자는 “최근 국내 명품 시장 가운데 프레드, 까르띠에 같은 초고가 보석·시계는 작년 한 해 5억원 넘는 제품이 수십개 이상 팔려나갔다”고 말했다.

 

◇소셜 미디어가 과시욕 자극

초고가 명품 수요 증가는 세계적 현상이지만, 한국에선 특히 두드러진다. 소셜 미디어의 발달로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선물·접대 때 취향보다 가격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의 조사에 따르면 ‘명품을 과시하는 것에 부정적이다’라고 대답한 한국인은 22%로 일본(45%), 중국(38%)에 비해 16%포인트 이상 낮았다. 전 세계 17국을 대상으로 ‘삶에서 가장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조사해 발표하는 ‘세계 가치관 조사’에서도 ‘물질적 풍요가 가장 중요하다’고 답한 국가는 한국이 유일했다. 한국을 제외한 14국은 삶에서 가장 의미 있는 요소로 ‘가족’을 꼽았고, ‘직업적 성취’가 둘째 요소라고 답했다. 미국 CNBC 방송은 “한국의 명품 소비 증가는 사회적 신분 상승 욕구와 과시욕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다른 국가보다 높은 소셜 미디어 이용률도 ‘과시 소비’의 원인으로 꼽힌다. 타인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자신을 뽐내는 경향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한 그릇에 10만원 넘는 호텔의 ‘빙수’를 시켜놓고 사진을 찍어 올리는 것이 유행처럼 되는 것이다. 시장조사 업체 DMC미디어의 ‘소셜 미디어 시장 및 현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소셜 미디어 이용률은 89.3%로 아랍에미리트(99%)에 이어 전체 2위를 기록했다. 세계 평균(53.6%)의 약 1.7배로 높은 수준이다.

조선일보  송혜진 기자  이미지 기자

 

01.20 국민 70% 걸린 코로나 아직 안 끝나… 매일 수천명 확진

국내 첫 발생 후 4년… 마음 못 놔

 2020년 1월 20일 국내 첫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20일로 4년이 됐다. 그러나 코로나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19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전국 527개 표본 의료기관에서 집계하는 주간 코로나 확진자 수는 3주 연속 5000명대를 기록했다. 12월 3주 차 4649명을 찍고 다시 증가한 것이다. 표본 수치인 만큼 전국적으로는 하루 최소 수천명대 확진자가 나오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달 들어 전국 입원 환자 중에서도 코로나 환자가 독감 환자보다 많았다.

 

지난달 미국과 유럽에 확산했던 코로나 하위 변이 ‘JN.1′의 검출률(24.2%)이 9주 연속 증가했다. JN.1은 중증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강한 전파력이 특징이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코로나 팬데믹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바이러스는 살아남기 위해 꾸준히 변이할 것”이라며 “향후 오미크론 하위 변이 정도가 아니라 더 크고 강력한 변이가 나타나면 얼마든지 다시 2021~2022년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했다.

 

 ▲그래픽=이철원

 

◇4년간 확진자 3500만명, 사망자 3만5000명

방역 당국이 매일 코로나 확진자·사망자 수를 집계한 2020년 1월부터 작년 8월 말까지 국내 확진자는 3450만명, 사망자는 3만5000명이 넘는다. 국민(5175만명) 3명 중 2명은 감염됐다는 얘기다. 코로나에 감염되고도 검사를 받지 않은 ‘숨은 감염자’와 작년 9월 이후 감염 사례를 더하면 숫자는 더 불어난다.

 

방역 당국은 4년간 국내에서 코로나 대유행이 7번 찾아온 것으로 보고 있다. 오미크론 대유행기였던 2022년 3월 17일에는 하루 62만여 명에 달하는 확진자가 쏟아졌다. 같은 달 24일 하루 사망자가 470명까지 치솟기도 했다. 작년에는 비교적 안정세를 보였다. 중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은 변이들이 주로 등장했다. 여기에 백신 접종이 쌓이면서 작년 하반기 코로나 치명률은 0.04% 아래로 떨어졌다. 작년 3~4월 실시한 질병청 조사에선 전 국민의 99.2%가 코로나 항체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5월에는 WHO(세계보건기구)가 코로나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해제했다. 이어 우리 정부도 코로나 위기 경보를 ‘심각’에서 ‘경계’로 내리면서 대부분의 방역 조치를 풀었다. 8월엔 코로나 감염병 등급을 2급에서 4급으로 하향 조정했다. 지난달엔 코로나 최전선에서 ‘첨병’ 역할을 하던 선별진료소 506곳의 문을 닫았다. 방역 당국 관계자는 “최근 손 씻기나 마스크 쓰기 같은 개인 위생 수칙을 덜 지키면서 코로나가 독감 등 다른 호흡기 감염병과 동시에 유행하는 측면도 있다”면서 “특히 고령자와 면역 저하자 등은 중증으로 악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백신 접종이 필수”라고 했다.

 

◇백신 접종률 떨어지고, 부작용 우려도 여전

코로나 중증화율이 낮아지고 국민 다수가 백신 접종에 피로감을 느끼면서 실제 백신 접종률은 떨어지고 있다. 올겨울 65세 이상 백신 접종률은 정부 목표치(60%)에 한참 못 미치는 40% 수준이다. 질병청에 따르면 지난해 폐기된 코로나 백신은 1872만 회분에 달했다. 작년 한 해 도입한 물량(1904만 회분)과 비슷하다. 질병청은 2020~2023년 코로나 백신 도입비로 총 7조5567억원을 집행했다.

 

정부는 코로나 백신 접종을 강조하고 있지만, 백신 부작용을 향한 우려도 여전히 존재한다. 질병청에 따르면, 16일까지 접수된 피해 보상 신청(9만8100건) 중 보상이 이뤄진 사례는 2만4618건(25.8%)에 그친다. 백신 접종 후 사망을 이유로 피해 보상을 신청한 2063건 중 ‘위로금 지급’이 아닌 피해 보상으로 이어진 경우는 23건(1.1%)뿐이다. 일부 유가족과 환자는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조선일보 안준용 기자

 

01.22 제조업 이어 온라인 쇼핑몰, 쓰나미처럼 덮쳐오는 중국산 공습

▲/알리 익스프레스 홈페이지 메인 화면 캡처

 

알리 익스프레스, 테무 같은 중국 인터넷 쇼핑 기업들이 무서운 기세로 국내 소매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중국 인터넷 쇼핑몰 이용자가 급증하면서 해외 직구 용도로 사용되는 관세청의 통관 고유 번호 발급 건수가 작년에만 260여 만명 늘어나 2500만명을 넘어섰다. 제조업에 이어 유통업 분야에도 중국세의 공습이 본격화된 것이다.

 

중국 업체들은 한국 쇼핑몰보다 많게는 70~90% 싼 초저가 전략을 앞세워 각종 공산품을 ‘해외 직구+무료 택배’ 방식으로 판매하고 있다. 고물가와 맞물리면서 알리 익스프레스의 국내 이용자는 700만명, 테무는 350만명을 넘어섰다. 국내 업체들도 해외 직구 대상 품목을 확대하며 맞대응하고 있지만, 온라인 유통 절대 강자인 쿠팡조차 고전하는 양상이다.

 

값싼 저부가 가치 소비재만이 아니다. 친환경 교통수단으로 시장이 급팽창하는 전기 버스는 중국 제품이 국내 시장의 50%를 차지하고 있다. 전기 화물차도 중국산의 국내 시장 점유율이 20%를 넘어섰다. 먼지 흡입과 물걸레 청소가 한 번에 되는 중국산 로봇 청소기는 삼성·LG를 제치고 고가 프리미엄 시장을 장악했다. 최근엔 중국 공장에서 생산한 테슬라 모델 Y를 앞세워 전기 승용차 시장까지 중국세가 잠식하고 있다.

 

한국이 중간재를 수출하면 중국이 이를 가공해 재수출하는 한·중 분업 구조 덕에 5년 전만 해도 중국은 우리에게 매년 500억달러가 넘는 무역 수지 흑자를 안겨주던 나라였다. 그런데 중국이 중간재를 자급자족하게 되면서 작년엔 한국이 중국에 180억달러 무역 적자를 기록하게 됐다. 중국 온라인 쇼핑몰의 파상공세가 계속되고, 국내 소비재 시장까지 잠식하면 대중 적자는 더욱 커질 것이다.

 

중국 온라인 쇼핑몰엔 국내 중소기업들과 경합하는 제품들이 대거 망라돼 있어 자칫 중소기업 생태계가 무너질 위험도 우려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중국 온라인 쇼핑몰 직구 상품을 무관세 대상에서 배제하는 법안을 검토 중인 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더 근본적인 해법은 국내 온라인 쇼핑몰들이 경쟁력을 더 높이고, 기업들이 혁신을 통해 차별화된 고품질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1-22 ‘무천도사’에 우는 필수의료

 

권도경 사회부 차장


의료계에는 ‘무천(無千)도사’로 불리는 의사들이 있다. 주로 피부 미용을 시술하는데 진료 경력이 없어도 세후 월 1000만 원 이상을 받아 이런 별칭이 붙었다. 이들은 전문의가 아닌 일반의(GP)다. 의대 졸업 후 레지던트 등 전공의 수련을 받지 않아 내과, 안과와 같은 전문과목도 없다. 의사 면허 한 장만 들고 새로운 기술을 배울수록 보수는 치솟지만 당직도, 응급 상황도 없다.

이들이 등장한 배경은 의료상업화다. 국민소득이 높아지자 미용 의료 수요는 폭증했다. 치료 목적이 아니기에 정부 규제는 받지 않는다. 돈을 쉽게 벌려는 세태도 맞물렸다. 제모와 보톡스 등 간단한 시술을 할 수 있는 만큼 진입장벽은 낮다. 하지만 미용시술은 의료법상 의사만 할 수 있다. ‘공장형’ 병원들은 밀려드는 환자들을 시술하는 데 일반의를 앞세우고 있다.

무천도사가 흔한 개원가 풍경은 씁쓸하다. 이들이 도맡는 미용시술은 부르는 게 값이다. 비급여 항목인 탓이다. 무좀, 건선 등 흔한 피부질환을 치료하는 의사는 드물다. 앓아도 갈 수 있는 병원은 찾기 힘들다. 이미 의사들은 돈 되는 환자만 골라 받고 있다. 개원가엔 ‘치료’보다 ‘비즈니스’하는 의사가 넘쳐난다.

병폐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의대생-전공의-전문의로 이어지던 의사양성체계는 무너지고 있다. 과거에 전문의를 취득하지 않는 의대 졸업생 비율은 5%가 채 안 됐다. 최근 일반의는 전체 의대 졸업생의 약 15%로 추산된다. 이는 대학병원에서 4∼5년간 수련하지 않아도 수억 원대 연봉을 버는 일자리가 넘쳐나서다. 쉬운 길이 있다 보니 굳이 어려운 길로 가지 않는다는 얘기다. 보상체계는 망가졌다. 일반의는 고난도와 고위험을 감수하는 필수의료 의사보다 두 배 이상 번다. 고된 수련을 거친 전문의와도 진료비 격차는 없다. 필수의료 의사들이 짙은 열패감을 느끼는 이유다.

가장 중요한 의료 안정성도 깨지고 있다. 일반의는 이론만 배운 채 국가고시를 통과하자마자 의료 현장에 나온다. 이를 두고 의료계에서도 “일반의들이 환자를 상대로 임상 수련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임상 수련을 받다 보면 치료행위에 대한 두려움, 윤리의식 등을 배우게 된다”며 “수련은 의사로서 최소한 양심이자 환자에 대한 기본 예우”라고 말했다. 단지 개인 선택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대목이다.

의대 증원을 앞둔 요즘이다. 정책적 차단벽 없이 의사 수만 늘린다면 미용 의료 쏠림 현상 등 사회적 비용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의사에게 사명감만 강요하기보단 책무를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줘야 한다. 국시만 통과하면 독립적 진료권을 받는 의사면허제도는 일반의를 양산한 맹점을 보였다. 미국과 일본처럼 1∼2년간 임상 수련을 의무화하는 것을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의사가 부족한데도 의사만 미용시술을 할 수 있는 의료법도 낡은 틀이다. 국가가 면허를 부여한 건 국민 건강권을 위한 것이지 의사의 ‘업권’을 보장하기 위한 게 아니다. 필수의료 등 인력 배분 차원에서도 맞지 않는다. 의사가 ‘의사다운’ 진료를 할 수 있는 정책 기제가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의료계 새 판을 짜야 할 때다.

문화일보 

 

01.23 사과해도 괜찮아

커뮤니티 달군 초등학생의 사과
‘진심 어린 사과’ 표본 보여줘
‘사과하면 진다’는 건 옛말
“성숙한 사과가 기회를 만든다”

‘사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무인 카페를 처음 와서 모르고 얼음을 쏟았습니다. 다음부터는 그러지 않고 치우겠습니다. 작은 돈이지만 도움 되길 바랍니다. 장사 오래오래 하시고 행복하게 지내세요.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무인카페에서 얼음을 쏟은 초등학생이 사과 쪽지와 1000원짜리 지폐를 남기고 갔다./네이버 카페 '아프니까 사장이다'

 

얼마 전 자영업자 커뮤니티에 한 초등학생이 무인 카페에서 놀다가 제빙기에 컵을 놓지 않고 레버를 눌러 얼음을 쏟았다며 손글씨로 쓴 사과 편지와 1000원짜리 지폐 하나를 남기고 갔다는 사연이 올라왔다. ‘실수를 인정하다니, 크게 될 아이다’ ‘부모님이 잘 키웠다’ 같은 댓글이 수십 꼭지 달렸다.

 

편지를 읽으며 나 역시 감탄했다. 이 초등학생이 쓴 사과문엔 놀랍게도 외국의 유명 석학이나 위기관리 전문가들이 누누이 강조하는 ‘사과(謝過)의 4원칙’이 완벽하게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①자신이 잘못했음을 깨끗하고 빠르게 인정할 것 ②무엇이 미안한지 구체적으로 표현할 것 ③'이유는 모르겠지만’ ‘기억나지 않지만’ ‘일부러 하진 않았지만’ ‘그러나’ 같은 말을 붙이는 조건부 사과를 하지 말 것 ④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할 것. 국내외 저명한 학자들은 흔히들 사과할 땐 이 4가지 원칙을 반드시 지키라고 조언한다. 그래야만 상대방이 제대로 된 사과라고 느끼고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야당의 한 인사가 쓴 글이 생각난다. 그는 자신의 성추행 발언을 해명하면서 ‘피해자의 마음이 풀릴 때까지 사과하겠다’고 했다. 여기까진 좋았는데 ‘당시 술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그런 말은 못 들었다더라’는 말을 덧붙였다. 사과인지 변명인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잘못한 건 아니지만 일단 미안하다’는 식의 전형적 조건부 사과다. 초등학생 아이도 본능적으로 지키는 사과의 기본 원칙을 일부 공직자, 연예인, 정치인은 이렇게 종종 어기거나 잊거나 외면한다.

 

그들뿐이랴. 우리 중 상당수가 아직도 사과에 서툴다. 사과하면 진다고, 패자(loser)가 된다고 여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영국의 전 총리 벤저민 디즈레일리(1804~1881)도 “사과는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하는 것”이라고 했으니까. 디즈레일리는 그러나 1800년대 사람이다. 시대는 변했고, 이젠 사과를 잘해야 승자(winner), 리더(leader)가 될 수 있다.

 

글로벌 제약 회사 존슨앤드존슨의 리콜 사태는 사과로 위기를 돌파한 모범 사례다. 1982년 미국 시카고에서 타이레놀을 복용한 환자가 숨지자, 당시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시카고 지역 제품을 회수하라고 권고했지만 존슨앤드존슨은 미국 전 지역의 타이레놀 3100만캡슐을 바로 회수했다. 소비자에게 TV 광고로 그 사실을 적극 알려 사과했고, 독극물이 유입될 수 없도록 캡슐 약을 태블릿 형태로 바꿨다. 바닥을 쳤던 타이레놀의 시장점유율은 1년이 걸리지 않아 예년 수준을 회복했다.

 

국내 한 백화점 그룹 사례도 있다. 이 회사 대전점 아웃렛에 불이 난 것은 재작년 9월 22일 오전 7시 40분쯤. 이 회사 회장은 보고를 받자마자 현장에 내려가 오후 4시쯤 “어떠한 책임도 회피하지 않겠다. 피해를 보신 모든 분과 지역 주민 여러분께 거듭 사과한다”면서 허리를 숙였고, 화가 더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사과에 대하여’란 책을 쓴 사회심리학자 아론 라자르는 이렇게 우리를 격려한다. “사과하고 난 뒤의 상황이 두렵겠지만, 그 공포는 과장된 경우가 훨씬 많다. 바뀌는 건 생각보다 별로 없다. 수치심은 도덕적 실패가 아닌 고결함의 증거가 된다. 사과는 상처를 치유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임을 기억하자.”

 

성숙한 사과는 그렇게 우리를 결국 승자로 만들 것이다.

조선일보 송혜진 기자

 

01.23 충남 서천 특화시장 큰 불, 227개 점포 잿더미

▲22일 오후 11시 8분쯤 충남 서천군 서천읍 서천특화시장에서 불이 났다. /연합뉴스

 

충남 서천의 한 전통시장에서 밤사이 큰 불이 났다. 이 불로 시장 3개동 227개 점포가 잿더미로 변했다.

 

23일 충남소방본부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후 11시8분쯤 충남 서천군 서천읍 서천수산물특화시장에서 불이 났다. 불이 나자 소방당국은 대응 2단계(8∼14개 소방서에서 51∼80대의 장비를 동원하는 경보령)를 발령하고 화재 진화 작업에 나섰다.

 

소방 인력 361명과 장비 45대를 투입한 소방 당국은 두시간여 만인 23일 오전 1시 15분쯤 큰 불길을 잡았다. 소방당국은 오전 3시쯤부터 대응 1단계로 낮추고 잔불 정리 작업을 벌이고 있다.

 

상주하는 인원이 없어 인명피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뉴스1

 

시장 내 수산물동 점포에서 시작된 불은 식당동, 일반동 등을 태웠지만 농산물동 쪽으로는 번지지 않았다.

 

불이 나자 서천군은 22일 오후 11시 59분쯤 ‘현재 시장 주변 유독가스가 누출돼 위험하니 주민들은 대피하라’는 내용의 안전 문자를 발송하기도 했다.

 

소방당국은 불을 완전히 끄는 대로 자세한 화재 경위와 재산 피해를 조사할 예정이다.

 

2004년 9월 각종 편의시설을 고루 갖춘 현대식 중형 전통시장으로 개장한 서천특화시장은 총 5개동 292개 점포에서 수산물, 농산물, 생활잡화, 특산품 등을 판매하고 있다.

조선일보 김석모 기자

 

01.23 한동훈 90도 인사, 尹은 어깨 툭...충돌 사태 봉합 나서나

정면 충돌 이틀 만에...尹·한동훈, 서천 시장 화재 현장 함께 돌아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화재가 발생한 충남 서천 특화시장을 찾아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함께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지난 22일 밤 11시8분께 충남 서천 서천특화시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점포 227개가 불에 탔으며 소방 당국은 대응 2단계를 발령해 진화작업을 벌여 두시간여 만에 큰 불길을 잡았다. 2024.1.23/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대형 화재가 발생한 충남 서천특화시장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만났다. 한 위원장 거취 문제를 놓고 지난 21일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정면 충돌한 지 이틀 만에 전격적으로 두 사람의 만남이 이뤄진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1시 30분쯤 화재 현장에 도착하자 한 위원장이 윤 대통령을 맞았다. 윤 대통령을 만난 한 위원장은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윤 대통령은 한 위원장과 악수하며 어깨를 한 차례 두드리기도 했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함께 피해 현장을 돌면서 복구와 지원 대책 등을 점검했다. 또 강추위 속 진화 작업을 하는 현장 인원들을 격려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3일 화재가 발생한 충남 서천 특화시장에서 현장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에게 인사하고 있다./뉴스1

 

여권 핵심 관계자는 “자연스럽게 재난 현장에서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것으로 재난 앞에선 정파도, 여야도, 이견도 중요치 않다”며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 모두 현장에서 만나는 데 흔쾌하게 동의했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은 인근 상가 1층 로비에서 상인 대표들을 만나 “명절을 앞두고 얼마나 상심이 크시냐. 여러분들이 바로 영업하실 수 있도록 최대한 신속하게 지원해 드리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동행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행안부와 서천군이 적극 협력해 필요한 것을 즉각 지원하라”고 말했다고 김수경 대변인이 전했다.

 

윤 대통령 현장 방문은 이날 오전 결정됐다. 윤 대통령은 새벽 서천특화시장 화재와 관련해 “가용 인력과 장비를 총동원해 화재 진압에 최선을 다하라”고 한 뒤 현장 방문을 검토하라고 참모들에게 지시했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충남 서천군 서천읍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만나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대통령실

 

한 위원장도 이날 오전 국민의힘 사무처 방문 일정을 연기하고 화재 발생 현장을 찾는 것으로 일정을 변경했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만나면서 최근 불거진 당정 충돌 상황이 봉합 국면으로 접어든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날 현장에는 국민의힘 정진석·홍문표 의원, 김태흠 충남지사 등이 동행했다.

조선일보 김동하 기자

 

01.24 막장 전북교육감 사건… 폭행·위증에 판사 논란까지 ‘반전의 연속’

서거석 교육감 1심 무죄 나왔지만 증인 위증·처남 ‘위증 교사’ 혐의

 서거석 전북교육감의 지방교육자치법 위반 혐의에 대한 재판이 반전(反轉)을 거듭하고 있다. 앞서 서 교육감은 1심에서 무죄를 받았지만 항소심 선고 직전에 사건 관련자들의 위증, 위증 교사 혐의가 불거지면서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또 서 교육감에게 1심 무죄를 선고한 판사가 위증 교사 혐의를 받고 있는 서 교육감 처남의 구속 영장을 기각하면서 논란이 됐다. 법조계에서는 “한 편의 법정 드라마 같다”는 말이 나온다.

 

서 교육감은 지난 2022년 6월 전북교육감 선거에서 진보 단일 후보인 천호성 전주교대 교수를 꺾고 당선됐다. 그런데 취임 4개월 만에 지방교육자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선거 방송 토론에서 허위 사실을 공표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의 발단은 지난 2013년 11월 당시 전북대 총장이던 서 교육감이 같은 학교 이귀재 교수에게 ‘총장 선거에 출마하지 말라’며 뺨을 때렸다는 의혹이다. 지난 2022년 선거에 출마한 천호성 교수가 방송 토론에서 상대 후보인 서 교육감에게 이 의혹에 대해 질문했다. 그러자 서 교육감은 “전혀 사실무근이며 심각한 명예훼손”이라며 천 교수를 고소했다. 이에 천 교수가 서 교육감을 고발하면서 검찰 수사가 시작된 것이다.

 

▲그래픽=양진경

 

검찰은 지난 2022년 11월 서 교육감을 기소했다. 이귀재 교수의 진료 기록 등을 검토한 결과 서 교육감이 이 교수를 폭행한 혐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이 교수가 경찰 조사에서 “(서 교육감에게) 뺨을 맞았다”고 했던 것과 달리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묵직한 것에 부딪혔다”며 말을 바꾼 것이다. 1심 재판을 맡은 전주지법 11형사부(재판장 노종찬)는 작년 8월 서 교육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반전이 또 일어났다. 전주지검 형사3부(부장 이승학)가 서 교육감 1심 재판에서 위증이 있었다는 의혹에 대해 수사를 시작한 것이다. 이귀재 교수가 위증을 했다고 지인과 전화 통화에서 말하는 내용이 담긴 녹음 파일이 나왔다. 이 교수는 지난 5일 위증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전북대 총장에 출마할 경우 서 교육감에게 지원받으려고 위증했다는 혐의가 적용됐다.

 

수사는 서 교육감 쪽으로 확대됐다. 이귀재 교수가 서 교육감의 처남인 유모씨의 부탁을 받고 위증을 했다고 진술한 게 단서가 됐다. 검찰은 지난 14일 유씨에 대해서도 위증 교사 혐의로 구속 영장을 청구했다.

다시 반전이 일어났다. 유씨 구속 영장이 지난 14일 법원에서 기각됐다. 그런데 영장을 기각한 당직 판사가 앞서 서 교육감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한 노종찬 부장판사였다. 영장 기각 사유는 “범죄 성부에 다툼의 여지가 있고 피의자 방어권 보장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법조계에서 여러 말이 나왔다. 우선 노 부장판사가 영장 심사를 맡은 자체가 잘못됐다는 지적이 있다. 서 교육감에게 무죄를 선고했으니 관련자 영장 심사를 피하는 게 옳았다는 것이다. 또 노 부장판사가 영장이 청구된 당일에 실질 심사를 한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14일은 일요일이었고 영장이 청구되면 심사는 하루 이틀 뒤에 하는 게 보통인데 노 부장판사는 그날 바로 심사를 하고 영장을 기각했다. 한 법조인은 “노 부장판사가 자신이 무죄를 선고한 서 교육감 1심 재판 결과와 상충하는 영장이 발부되면 곤란할까 봐 그런 것 아니냐”고 했다. 이에 대해 전주지법 관계자는 “1심 무죄 판결을 했더라도 영장 심사를 맡는 데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한편 서 교육감의 항소심 재판은 광주고법 전주재판부 제1형사부가 맡고 있다. 이 사건에서 위증, 위증 교사 혐의를 적발한 검찰의 요청으로 애초 24일로 예정됐던 항소심 판결 선고가 연기되고 추가 심리가 이뤄지게 됐다. 본지는 서 교육감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했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

조선일보 양은경 기자

 

01-24 전북교육감의 폭행·위증교사 사건과 영장기각 요지경

이재명·김용 관련 사건에서 위증교사 문제가 사법적 관심사로 부상한 와중에, 서거석 전북교육감 관련 사건에서도 흡사한 일이 진행 중이다. 사법 방해 범죄의 만연을 우려해야 할 지경이다. 서 교육감의 허위사실 공표 혐의 재판이 위증교사 사건으로 확대되고, 1심 판결에서 무죄를 선고한 판사가 위증교사한 범인의 영장실질심사를 맡아 구속영장을 기각하는 등 요지경이 심각하다.

서 교육감은 2022년 4월 교육감 선거 방송 토론에 참석했다. 전북대 총장 시절이던 2013년 11월 이귀재 교수에게 ‘총장 선거에 출마하지 말라’며 뺨을 때렸다는 의혹을 상대 후보가 제기하자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서 교육감은 지난해 8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경찰 조사에서 “뺨을 맞았다”고 했던 이 교수가 법정에선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을 바꾼 덕분이었다. 최근 이 교수가 ‘서 교육감 처남 부탁을 받고 위증했다’고 말하는 녹음 파일이 나왔고, 이 교수는 지난 5일 구속 기소됐다.

그런데 위증교사 혐의로 서 교육감 처남에게 청구된 구속영장은 지난 14일 기각됐다. 담당 판사는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한 노종찬 부장판사였다. 노 판사는 서 교육감에게 무죄를 선고했으니 관련자 영장심사를 회피했어야 옳았다. 일요일 청구된 영장을 당일 직접 기각한 것도 자연스럽지 않다. 위증교사 정황이 뚜렷한데도 그렇게까지 한 데 대해 많은 법조인은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24일로 예정됐던 항소심 선고가 연기되고 추가 심리가 이뤄지게 됐다. 김명수 체제에서 망가진 사법 신뢰의 회복을 위해 위증교사에 대한 더 엄정한 법 집행이 필요하다.

문화일보 사설

 

01-24 허수 빼니 양 노총 가입률 11%…‘89% 중심 정책’이 正道

그동안 노동조합에 가입한 근로자 수가 부풀려져 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사업장 폐업·해산 등으로 실체가 이미 없어져 버린 유령 노조도 많았다고 한다. 고용노동부가 23일 발표한 ‘전국 노동조합 조직 현황’에 따르면, 전체 조합원 수는 2022년 기준 272만2000명으로 전년(293만3000명)보다 21만1000명 줄었다. 2009년 이후 13년 만의 감소다. 없어진 노조나 중복된 노조 조합원을 제외한 결과다. 노조 측 신고에만 의존해왔던 기존 통계의 부실을 새삼 보여준다. 이에 따라 노조 조직률도 13.1%로 전년(14.2%)보다 크게 낮아졌다. 조합원 수와 노조 조직률 모두 노동계 친화적이던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이 정점이었다. 건폭 타파와 노조 회계장부 공개 등 윤석열 정부의 노조 개혁 드라이브가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양대 노총 가입 조합원과 노조 모두 줄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112만1819명,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109만9805명으로 각각 11만6000여 명과 11만2000여 명 감소했다. 두 노총의 조합원은 전체 임금근로자의 10.7%로 더욱 쪼그라들었다. 특히 민노총 건설플랜트노조의 조합원 부풀리기는 황당한 수준이다. 지역 간 이동이 잦은 일용직 조합원을 중복 집계하는 방식으로 세를 부풀렸다. 이런 분식을 제외하니 조합원이 10만6000명에서 2만9000명으로 급감했다. 전국 공사 현장에서 횡포를 부려왔던 건설노조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런 현상은 양대 노총의 과잉 대표성 문제가 더 심각해졌음을 말해준다. 양 노총은 국민연금기금운영위원회 등 정부 기구 및 위원회 21곳에 노동계 대표로 참여해 기득권을 지키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렇지만 겨우 11%의 근로자만 대변할 뿐이다. 대표성이 떨어진다. 다른 89% 근로자들은 대기업·공기업 중심인 두 노총 조합원보다 임금·고용 안정성 등에서 취약하다. 이들을 중심으로 한 노동정책이 정도(正道)다. 각종 위원회 참여 대상을 MZ 노조 등으로 넓혀야 한다. 노동개혁의 당위성이 거듭 입증됐다.

문화일보 사설

 

01-25 노조 조직률 감소와 노동개혁 新주체

박영범 한성대 명예교수·경제학

 

2022년 말 기준 우리나라 전체 노조 조합원 수는 272만2000명으로, 2021년의 293만3000명보다 21만1000명이 줄었다. 노조 조직률도 2021년 14.2%에서 13.1%로 낮아졌다.

노동계에서는 노조원 수 감소와 조직률 하락이 윤석열 정부의 노조 탄압정책 기조에 기인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의 노조원 수 감소 및 조직률 하락은 과대 포장됐던 노조 세력의 실상이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

정부는 2021년까지는 노조가 신고한 노조원 수를 단순 집계해 발표했다. 그러나 2022년에는 사업장 폐쇄나 조합원이 없어진 유령 노조 1478개에 속한 8만1000명과 장기간 노조 활동이 없어 해산된 41곳 1800명을 조합원 수 집계에서 제외했다.

자체적으로 조합원 수를 줄여서 신고한 노조도 있다. 민주노총 산하 플랜트 건설노조는 산하 여러 지부에서 중복 계산된 조합원 수를 정리, 2021년에 비해 8만 명 줄어든 2만9000명으로 집계했다. 또, 거액의 횡령 사건으로 지난해 한국노총에서 제명된 건설산업 노조는 1년 사이에 7만4000명이 줄어든 8000명으로 조합원 수를 신고했다.

근로자 300명 이상 사업장의 조직률 36.9%에 비해 100∼299명은 5.7%, 30∼99명 1.3%, 30명 미만 0.1%로 사업장 규모별로 격차가 컸다. 민간 부문의 조직률은 10.1%이지만 공공 부문 70.0%, 공무원 67.4%, 교원 21.1%로 공공·민간 부문 간의 차이도 컸다.

국민연금기금운영위원회 등 정부 기구 및 위원회 21곳에 노동계 대표로 참여하고 있는 한노총과 민노총의 조합원은 전체 임금근로자의 10.7%에 불과했다. 총연합단체별 조합원 수를 보면, 한노총이 112만2000명으로 가장 많고, 민노총이 110만 명, 상급단체 미가맹 노조 소속이 48만3000명이었다.

그러니 양대 노총이 임금근로자 전체를 대변하는 게 맞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전체 근로자의 11%에도 못 미치는 근로자 대변 단체들이 전체 근로자를 대표할 뿐 아니라, 노조를 조직할 여건조차 안 되는 소규모 사업장의 사업자와 근로자는 고려도 않고 근로자 중 기득 계층인 공공 부문과 대기업에 집중된 조합원의 이익만 대변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기업·공공부문 노조의 이기적인 행태는, 문재인 정부에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많은 자영업자가 문을 닫고 취약계층 근로자의 일자리가 없어졌는데도 법으로 할 수 있도록 돼 있는, 업종별로 달리하는 최저임금을 계속 반대하는 데서도 잘 나타난다.

문 정부 때이던 2019년 탄력적 근로시간제 개편안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최종 의결 실패, MZ노조의 윤 정부 근로시간 개편안 반대에서 보듯이 여성과 비정규직 등 취약계층을 대변한다는 사회단체 대표나 MZ노조로 하여금 양대 노총과 함께 전체 근로자를 대표하게 하는 것도 우리나라에선 시기상조다.

노조는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가 노조의 눈치를 보거나 노사정협의 구조에 과도하게 기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노동계를 포함, 노사의 의견을 경청하고 정책에 반영하되 정부가 더욱더 주도적이고 적극적으로 확실한 비전과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고용노동정책을 계획·실행해야 한다. 절실한 노동개혁이 성공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문화일보

 

01-29 [단독]“정시 원서도 안내고 재수학원에”… N수생 2년째 17만명대 예상

[‘N수 공화국’의 그늘]〈상〉 정시 원서도 안내고 재수학원에
“불수능에 수시 최저학력 못채워”
“의대-무전공 늘린다니 수능 재도전”
올 N수생-검정고시 비율 34% 전망

▲1월부터 재수학원은 만석 이달 17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재수학원 자습실에서 수험생들이 내년도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 올해 의대 증원과 무전공 선발 확대 등이 예고되면서 수험생 상당수가 정시모집 원서 접수를 포기한 채 연초부터 재수학원에 몰리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17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재수종합학원.

점심 식사를 마친 학생 10여 명이 학원 내 작은 정원에서 눈을 구경하고 있었다. 오전 7시 50분부터 오후 10시까지 공부하는 학생들이 유일하게 햇볕을 쬘 수 있는 시간이다. 이들은 고등학교 졸업식도 마치지 않은 채 이달 2일 재수종합학원에 입소했다.

학원 한쪽에는 ‘내년에도 또 이러고 있다고 생각해 봐라’ ‘엄마 보고 싶어요’ 등 학생들이 바람과 각오를 적은 종이가 가득 붙어 있었다. 복도에는 ‘복도 내 대화 금지. 적발 시 벌점’ ‘전자기기 사용 위반 경고’ 등의 문구가 보였다. 이 학원 관계자는 “대입 정시모집에서 원서를 아예 쓰지 않고 일찌감치 재수를 결심하고 온 학생들”이라며 “제주, 대전 등에서 올라온 학생도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지원자 중 고3 재학생이 아닌 ‘N수생’(대학 입시에 2회 이상 도전하는 수험생)과 검정고시 출신을 합친 비율은 35.3%(17만7942명)로 28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올해도 연초부터 “내년도 입시에서 N수생 비율이 역대급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연초 추세 등을 감안할 때 올해 수능 지원자 중 N수생과 검정고시 출신을 합친 규모가 17만5000명 이상으로 예상된다”며 “비율로는 34%가량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학령인구가 감소하는데 N수생이 늘어나는 현상이 이어지는 걸 두고 ‘N수 공화국’이란 말도 나온다.

N수생이 늘어난 이유가 지난해는 ‘킬러 문항 없는 물수능’에 대한 기대감이었다면 올해는 반대로 불수능과 ‘의대 정원 확대’ ‘무전공(전공자율선택제) 선발 확대’ 등의 정책 때문이다.

먼저 지난해 수능이 어려워 수시모집에서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충족하지 못했거나 수능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수험생이 대거 ‘N수’에 도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치동의 한 입시학원 관계자는 “이르면 다음 달 의대 증원 규모가 발표되고 4월에 무전공 선발 규모가 나오면 의대 등 인기학과에 진학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로 대학 재학생 상당수도 반수에 뛰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시 발표 안났는데… “인서울 공대 갈 상위권도 반수 생각”

‘정시 지원도 않고 재수’ 고3 늘어
“지방대 권유하면 부모 반응 냉담”
올해 의대 증원-무전공 선발 기대감
학원들은 반수반 3월 조기 개설

 

입시 전문가들은 현재 ‘N수 시장’이 폭풍 전야라고 입을 모은다. 다음 달에 정부가 의대 증원 규모를 발표하고 올 4월 대학들이 무전공 선발 규모를 밝히면 N수생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고교 졸업생 상당수는 이미 “입시 경쟁이 치열할 것”이라며 정시 원서 접수를 포기하고 학원에 들어갔다. 수시에 합격했거나 정시에 지원한 학생 중 상당수도 반수를 염두에 두고 있다.

 

● 대입 원서 안 쓰고 재수학원행

충남의 한 고교 교사는 “지난해 12월 말 3학년 교실에 들어갔더니 한 반(25명가량)에 3명, 5명만 있었다”며 “결석생 중 상당수는 가족 여행을 간다는 등의 이유로 교외체험학습 신청서를 내고 실제로는 서울 재수학원으로 간 것으로 안다”고 했다.

대전의 한 고교에 다니는 정영훈(가명·19) 군도 그런 경우다. 학교에 체험학습 신청서를 내고 새해 첫날 서울 강남구 대치동 재수학원 인근에 짐을 풀었다. 그는 “수시에 올인했는데 불수능이었던 탓에 수능 최저학력기준에 미달돼 실패했다”며 “부모님께서 ‘지원해줄 테니 정시 원서 넣지 말고 다시 도전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정 군이 학원과 학사에 쓰는 돈은 한 달에 450만 원가량이다. 학사는 지방 출신 수험생이 서울 재수학원에서 공부할 때 머무는 고급형 고시원이다. 고시원보다 쾌적하고 청소, 빨래와 아침 식사 및 주말 저녁 식사를 차려주는 대신 월 150만 원이 기본이다. 관리실장이 모닝콜을 해주고, 출입 기록을 학부모에게 알려주며 재수학원까지 셔틀을 운영하는 학사는 200만 원가량이나 한다.

고교 교사들은 올해 정 군처럼 정시 원서를 아예 안 쓰고 대입에 재도전하는 이른바 ‘생재수’가 늘었다고 입을 모았다. 대전의 한 고교 교사는 “원서를 아예 안 쓰고 도전하겠다는 비율이 예년보다 20∼30%가량 늘었다”고 했다. 서울의 한 고교 교사도 “서울 일반고의 경우 반마다 보통 2, 3명이 아예 원서를 안 쓰는 생재수를 택하는데 올해는 4, 5명 정도로 늘었다”고 전했다.

 

● “반수 늘어 3월부터 전용반 운영”

올 2월 고교를 졸업하는 학생은 39만4940명으로 지난해(43만1118명)보다 3만6000여 명이나 적다. 그럼에도 N수생 수가 지난해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는 건 의대 정원 확대, 무전공 신입생 선발 등 N수를 자극할 요인이 많아서다. 저출산으로 아이를 1, 2명만 키우는 부모가 늘며 ‘인 서울’ 대학을 보내기 위해 지출을 아끼지 않는 영향도 있다.

일부 재수학원들은 다음 달 의대 증원 발표 때부터 반수생이 쏟아질 것으로 보고 3월부터 야간반과 주말반을 개설할 방침이다. 한 입시학원 관계자는 “원래 반수반은 대학 1학기가 끝나는 6월부터 운영했다. 하지만 올해는 학기 초부터 의대 준비에 올인하려는 학생이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광주의 한 고교 교사도 “우리 반 1등은 수시로 의대에 합격했고 2∼4등은 정시로 서울 대학 공대에 갈 수 있는 성적이 나왔는데 재수나 반수를 생각한다. 정부의 의대 증원 계획이 학생들에게 영향을 많이 미쳤다”고 했다.

학부모와 수험생 사이에서 수도권 대학을 고집하는 분위기도 N수생 증가 요인이 되고 있다. 경기 지역의 한 고교 교사는 “지방대에 정시 원서를 낸 한 학생은 한 반에 없거나 1, 2명 수준”이라며 “지방 국립대를 권유하면 학부모로부터 냉담한 반응이 돌아온다”고 했다. 광주의 한 고교 교사는 “가정에 아이가 한둘밖에 없다 보니 ‘아이가 재수할 수 있게 선생님이 설득해 달라’고 하는 등 재수에 적극적인 학부모가 늘었다”고 했다.

N수 열풍이 이어지는 것을 두고 전문가 사이에선 우려가 쏟아진다.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반수생 때문에 정말 그 대학에 가길 원했던 학생이 떨어지고 N수를 하기도 한다. N수생이 가져오는 파급효과와 국가적 낭비가 엄청나다”고 했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N수 열풍은 결국 원하는 대학이나 학과에 가지 못하기 때문인 만큼 의대 증원과 무전공 선발 확대가 정착되면 중장기적으로 과당 경쟁 방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또 지방대를 나와도 취업이 잘 되고 일정 수준 이상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와 대학, 기업들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01-30 [단독]정원 못채운 학과 163곳중 162곳 지방대, AI-배터리과도 미달

[‘N수 공화국’의 그늘]〈하〉 N수 직격탄 맞은 지방대
대입 정원 못채운 학과 전국 163곳
이공계 첨단분야 학과들도 미달 사태… 재학생 반수 준비, 졸업하면 서울로
등록금 감소→교육 악화→미달 악순환… “상권도 무너져 양질의 일자리 필요”

▲23일 부산 금정구 부산대 정문 앞 건물 상가 1층에 임대 문의 광고가 붙어 있다.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와중에 N수를 해서라도 수도권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학생이 늘면서 지방대의 생존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부산=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부산 영도구에 있는 4년제 사립대 고신대는 지난해 운영 경비가 바닥나면서 의대 실습이 중단되고 강사 초청이 취소됐다. 건물 청소와 쓰레기 수거마저 중단되자 학생회에서는 “쓰레기는 봉투에 담아 집에 가져가 버려 달라”고 공지하기도 했다. 신입생 감소로 대학 재정이 악화돼 벌어진 일이었다.

이 학교는 2024학년도 정시모집 일반전형에서 예체능을 제외한 18개 학과 중 13개에서 지원자가 정원보다 적은 미달 사태가 빚어졌다. 23일 고신대 영도캠퍼스에서 만난 간호학과 22학번 김지원(가명) 씨는 “대학병원까지 있는 학교라 믿고 입학했는데 제대로 교육을 받고 졸업할 수 있을지 불안감이 크다”고 했다.

29일 동아일보와 종로학원이 2024학년도 대입 정시 일반전형 원서접수 경쟁률을 공개한 190개 대학 4889개 학과를 분석한 결과 지원자가 정원보다 적은 미달 학과가 모두 163개로 집계됐다. 지역별로는 비수도권 162곳, 수도권 1곳으로 비수도권이 99.4%를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학령 인구 감소와 함께 N수를 해서라도 수도권 대학에 가려는 학생이 늘어난 것이 지방대의 생존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 수도권 접근성 떨어질수록 미달 많아

미달 학교는 서울에서 접근성이 떨어질수록 많았다. 호남의 경우 광주, 전북, 전남 12개 대학에서 90개 학과가 미달이었다. 전남 무안군에 있는 4년제 사립대 초당대 글로벌혁신대학의 경우 127명 모집에 단 1명이 지원했다. 이 대학 치위생학과는 24명을 모집했는데 지원자가 한 명도 없었다. 한 사립대 관계자는 “지원자가 워낙 없으니 어떤 학과가 왜 미달이 됐는지 이유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손을 놓다시피 한 상태”라고 말했다.

지방대의 위기는 국립대와 사립대를 가리지 않는다. 한때 경북대와 더불어 ‘지거국(지방 거점 국립대) 투톱’으로 불렸던 부산대는 2024학년도 정시 경쟁률이 3.93 대 1이었다. 입시계에선 정시 지원 가능 횟수가 1인당 3회라는 점을 감안할 때 경쟁률 3 대 1 이하는 ‘사실상 미달’로 본다. 부산대는 이를 간신히 넘긴 수준이다.

23일 부산 금정구 부산대 인근에서 만난 부동산 중개업자는 “이 동네 원룸이 월 50만 원가량이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기인 3년 전부터 45만 원가량으로 내렸음에도 여전히 빈방이 많다”고 했다. 또 “1년 단위 계약이 보통인데 최근에는 반수를 염두에 두고 6개월 계약을 문의하는 학생이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대학의 위기는 지역 상권의 위기로도 번진다. 부산대 인근 상가에는 ‘공실’ ‘임대 구함’ 등이 적힌 종이가 여럿 붙어 있었다. 건물 하나가 통째로 비어 있기도 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2분기(4∼6월) 부산대 앞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24.5%에 달했다. 부산대 앞 서점 주인은 “2학년 교재 판매량이 1학년 교재 판매량보다 10% 정도 적다. 신입생들이 중도에 반수니 재수니 해서 서울로 떠나버리니 교재 판매량도 줄어드는 것”이라고 했다.

부산대 컴퓨터공학과 4학년 김석민(가명) 씨는 “부산에서 취업하면 첫 월급이 280만∼300만 원인데 서울은 400만∼500만 원”이라며 “재학생 중 상당수는 반수를 준비하고, 반수를 못 한 졸업생들은 졸업 후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간다”고 했다.

 

● “이공계도 취업률도 소용없다”

취업에 유리한 것으로 알려진 이공계 학과들도 지방에선 맥을 못 췄다. 광주 호남대 인공지능(AI)융합대학은 114명 모집에 70명만 지원했다. 전남 나주시에 있는 동신대 배터리공학과는 27명 모집에 2명, 컴퓨터학과는 27명 모집에 13명만 지원했다. 경북 구미시의 경운대 소프트웨어융합계열도 51명 모집에 지원자는 8명에 그쳤다.

경남대 관계자는 “신소재학과, 환경에너지공학과 등 공대 학과 정원을 줄이고 있다”며 “우리 학교 공대는 창원산업단지 인력을 배출하며 지방 경제를 이끌어 왔었는데, 이제는 지원자가 없어 정원을 채울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대학에서 학생 수는 곧 등록금 규모다. 지원자가 적어 정원을 못 채우면 등록금 수입이 줄고 교육의 질이 저하되면서 다시 재학생 이탈로 이어진다. 대학의 위기는 지역 인재 유출과 지역 상권 위기로도 이어지며 지역 소멸을 가속화한다.

이 때문에 정부는 지방대를 살리기 위해 지방대 한 곳당 5년간 1000억 원을 지원하는 ‘글로컬 대학’ 10곳을 지난해 11월 선정했다. 그런데 10곳 중 5곳은 2024학년도 정시 경쟁률이 지난해보다 오히려 더 떨어졌다. 글로컬 대학에 선정되고 막대한 지원금을 받게 됐음에도 신입생이 외면한 것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정부 재정 지원을 늘리는 방식만으로 지방대 위기를 해소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신대 관계자는 “지방대 위기의 근본 이유는 지방대를 졸업한 학생들이 취업할 수 있는 고소득, 고연봉 일자리가 지방에 드물기 때문”이라며 “결국 지방에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야 지방대도 살아날 수 있다”고 했다.

 

부산=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01-30 中 외에도 亞 2억명 쇠는 음력설, 시기는 제각각

세계 각국의 ‘음력설’
이슬람은 양력 8~9월, 힌두교는 10말11초
한국, 1989년 ‘설’ 이름 되찾고 사흘연휴
세배 덕담, 원래는 ‘…했다지’ 완료형으로

 

 

 

▲중국의 ‘춘제’ 전통 차례상과 베트남 설 ‘뗏’을 기념한 사자춤 공연, 그리고 ‘빛의 축제’라 불리는 인도의 설 ‘디왈리’에 한 소녀가 등불을 켜고 있는 모습(위쪽부터). 많은 나라들이 태음력을 기준으로 설을 쇠는데, 그 시기와 문화는 다르다. 중국의 춘제와 베트남의 뗏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양력 1∼2월 사이인 데 반해 힌두교의 설 디왈리는 10∼11월 사이다. 정연학 연구관 제공·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유엔이 지난해 12월 78차 유엔 총회에서 음력설을 ‘선택 휴일(floating holiday)’로 지정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영문 표기도 ‘Chinese New Year’가 아닌 ‘Luna New Year’라 했다. 중국뿐 아니라 음력설을 쇠는 2억 명의 아시아 인구를 고려한 결정이다.

음력설이 중국에서 시작된 것은 맞지만, 현재 중국과 한국의 설 풍속은 다르다. 오히려 중국 설은 1949년 신중국 성립 이후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약화된 반면에 한국 설은 을미개혁(1896년)으로 양력 설을 받아들인 이후에도 계속 그 전통이 이어졌다.

음력설을 중국에서는 ‘춘제’, 베트남에선 ‘뗏’이라 부르고, 한국에서는 양·음력설 모두 설이라고 한다. 이슬람도 태음력(太陰曆) 설을 쇤다. 하지만 날짜는 다르다. ‘라스 앗사나 알히즈리야(Ras as-Sanah al-Hijriyah)’는 양력 8월에서 9월 사이다. 태음력에 뿌리를 둔 히브리력의 유대인 설 ‘로슈하샤나’는 9월 말 내지 10월 초, 힌두교 인도 설 디왈리는 10월 말에서 11월 초이다. 불교 국가인 태국과 미얀마에서는 물 축제인 ‘송끄란’과 ‘틴잔’을 즐기는 4월 중순이 음력설이다. 이처럼 태음력을 기반으로 한 음력설인데도 세계의 설은 각국의 환경, 문화, 종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중국은 설 전 집 안 대청소를 하고, 폭죽을 터뜨리고, 새해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면 물만두(餃子·교자)를 먹는다. 물만두는 묵은해에서 새해로 바뀌는 교차점을 뜻하는 ‘자오쯔(交子)’와 발음이 같아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의미다. 또 그 모양이 고대 중국 화폐인 원보(元寶)를 닮아 재물이 늘어나기를 바라는 소망도 담고 있다. 폭죽(爆竹)은 ‘녠(年·사람을 공격하는 괴물)’을 몰아내고, 복을 알린다는 ‘바오주(報祝)’와 발음이 같아 재물신을 환영한다는 의미도 지닌다.

베트남 뗏은 음력 1월 1일부터 7일까지다. 에너지와 번영을 상징하는 복숭아꽃, 매화, 금귤나무로 집을 장식하고, 찹쌀떡(Banh Tet), 돼지고기와 녹두로 속을 채운 찹쌀밥을 바나나나 코코넛 잎으로 싸서 찐 ‘바인쯩’을 먹으며 한 해의 안녕과 복을 기원한다.

인도 새해인 디왈리는 ‘빛의 축제’로 5일 동안 이어진다. 악마들을 무찌르고 아유타 왕국으로 돌아온 라마 왕을 환영하기 위해 백성들이 환하게 밝힌 등불을 들고 맞이했던 것에서 기원한다.

 

이슬람과 불교 새해는 종교적 성격이 강하다. 새해에 특별한 음식이나 풍속은 없고, 전날 사원에서 무하람(Muharram) 예배를 드리고, 당일에도 꾸란을 독송하거나 기도를 올리는 정도다. 무하람은 ‘성스럽다’는 의미이며, 이슬람력의 첫 번째 달로 이슬람권에는 한 달 동안 싸움이나 전쟁을 금한다. 불교 국가인 태국과 미얀마에서 새해 가장 중요한 일은 정성스럽게 음식과 꽃을 준비해 사찰을 방문하는 것이다. 불상을 깨끗한 물로 씻는 관욕 의식을 하고 스님들에게 보시를 한다. 그다음에는 죄업을 씻고 깨끗한 삶을 다짐한다는 의미로 서로 물을 뿌리며 새해를 맞이한다.

한국은 1896년(고종 32년) 양력을 선택하면서부터 ‘신정’과 ‘구정’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신정을 개나 쇠는 설이라는 뜻으로 ‘개설’, ‘왜설’이라고 낮추어 불렀고, 일제의 탄압에도 공공연하게 몰래 음력설을 쇘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에도 정부는 양력설 체계를 고집했는데, 민간의 음력설 전통이 이어지자 1985년 음력설을 공휴일로 제정했다. 이때 음력설에 ‘민속의 날’이라는 지극히 어색하고 궁색한 이름을 부여하였는데 4년 뒤인 1989년에야 설이란 이름을 되찾았다. 연휴 기간도 사흘로 늘었다.

설과 관련해 잘못 전해진 전통이 있다. 먼저 세배할 때 어린 사람이 어른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것이다. 본래 세배 후엔 어른이 어린 사람에게 덕담을 해야 한다. 덕담도 완료형으로 해야 한다. 가령, 시험을 치를 사람에게는 “올해 꼭 합격했다지”, 사업을 하는 사람에게는 “올해는 더 많이 벌었다지” 하는 식이다. 최남선(崔南善) ‘조선상식’에 새해 덕담은 “그렇게 되라”고 축원하는 것이 아니라 “벌써 그렇게 되었으니 고맙다”고 경하하는 것이라고 적혀 있다.

갈수록 설의 전통적, 가족적인 분위기가 퇴색하고 있다. 요즘은 휴일의 의미가 더 강하다. 고향에 가는 대신 여행을 선택하는 경우가 크게 늘고 있다. 가장 주된 원인은 전체 가구의 26%를 차지하는 1인 가구의 증가일 것이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12월 ‘설과 대보름’ ‘한식’ ‘단오’ ‘추석’ ‘동지’ 등 한국의 5개 대표 명절을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했다. 시대가 바뀌면 문화나 풍속도 바뀔 수밖에 없지만 명절이 갖는 의미를 지키고 그와 관련한 풍속, 놀이, 음식 등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지정이 필요했다고 본 것이다. 사회는 변한다. 하지만 그래도 새해 첫날이 지닌 가치와 의미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 전통 설 문화를 박물관에서나 확인하는 날이 오지 않도록, 설을 맞아 그 가치를 되새기기를 기원해 본다.

 

동아일보 정연학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