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直說 2024-01/
01.01 尹대통령 “부패한 패거리 카르텔 반드시 타파하겠다”
대통령실에서 신년사 발표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1월 1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은 1일 “자기들만의 이권과 이념에 기반을 둔 패거리 카르텔을 반드시 타파하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발표한 신년사에서 “부패한 패거리 카르텔과 싸우지 않고는 진정 국민을 위한 개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출범 이후 일관되게 이권 카르텔, 정부 보조금 부정 사용, 특정 산업의 독과점 폐해 등 부정과 불법을 혁파해 왔다”며 “올 한해 정부의 개혁 노력을 지켜봐 주시고,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노동, 교육, 연금의 3대 구조개혁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한다”며 작년 신년사에서 강조했던 3대 개혁을 비롯해 각종 국정 과제에 대한 완수 의지도 밝혔다.
윤 대통령은 “글로벌 복합위기 가운데에서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국민과 기업인 여러분의 피땀 어린 노력 덕분이었다”며 “새해에 우리 국민 모두의 삶이 더 나아지고, 대한민국이 다시 도약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 뛸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새해 2024년은 대한민국 재도약의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무엇보다, 글로벌 교역이 회복되면서 우리 경제 전반의 활력이 나아지고 수출 개선이 경기회복과 성장을 주도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물가도 지금보다 더욱 안정될 것”이라며 “경제 회복의 온기가 취약계층과 사회적 약자에게 온전히 전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또 “새해에는 국민들이 새집을 찾아 도시 외곽으로 나가지 않도록 도시 내에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며 “특히, 재개발, 재건축 사업절차를 원점에서 재검토해 사업속도를 높이고, 1~2인 가구에 맞는 소형 주택 공급도 확대하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경제 활력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기업 투자를 가로막는 킬러규제를 지속적으로 혁파하고, 첨단 산업에 대한 촘촘한 지원을 통해 기업이 창의와 혁신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올해 상반기까지 증강된 한미 확장억제 체제를 완성해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을 원천 봉쇄할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우리 군을 인공지능과 유무인 복합전투체계, 첨단 과학 기술에 기반을 둔 과학 기술 강군으로 탈바꿈시킬 것”이라고 했다.
이어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에 대비해 한국형 3축 체계를 강력히 구축하는 데 더욱 속도를 내겠다”며 “대한민국은 상대의 선의에 의존하는 굴종적 평화가 아닌 힘에 의한 진정하고 항구적인 평화를 확고히 구축해 나가고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김동하 기자
01-01 尹 대통령 올해는 신년 기자회견해야
오늘 집권 3년 차를 시작하는 윤석열 대통령은 경제와 안보 등 국정 전반에 대해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대국민 소통에서는 후한 점수를 받기 어렵다는 데는 이론이 크지 않을 것이다. 대표적인 게 실종된 기자회견이다. 취임 100일 회견을 한 2022년 8월 이후 정식 기자회견이 없었다. 그해 11월 도어스테핑 중단 후로는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을 제외하면 공개된 자리에서 취재기자의 질문을 받지 않았다. 정식 회견은 직선제로 선출된 대통령 가운데 빈도가 가장 낮은 쪽이다.
사라진 기자회견은 대통령의 당초 약속과는 거리가 멀다. 윤 대통령은 당선 직후 “참모들 뒤에 숨지 않고 정부 잘못을 고백하고 이해를 구하겠다”고 말했다. 또 100일 회견 때는 “질문받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현실정치 경험 없이 당선된 대통령으로서 새 정치에 대한 다짐과 대국민 설명 책무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 벌어진 상황은 실망스럽다. 대통령은 주로 국회 연설, 현장 간담회, 국무회의 발언을 통해 국정 구상을 밝혔다. 국민들이 듣고 싶고 궁금해하는 걸 대신 묻는 기자들의 질문을 피했다. 쌍방향 소통이 아니었고, 들려주고 싶은 것만 알리는 절반의 소통이었다. 이런 지적이 1년 가까이 반복됐지만 방치됐다.
윤 대통령은 1월 중 신년 기자회견을 열어야 한다. 그동안 북한 도발 등 안보 상황, 한일 한중 관계, 물가 및 부동산 정책에 이르기까지 설명을 못 들은 의제가 산적해 있다. 더 미룰 여유가 없다. 야당이 김건희 특검법을 강행 처리하자 대통령실은 1월 초쯤 거부권 행사를 예고했다. 찬성 여론이 높음에도 대통령이 특검법을 백지화하려는 이유를 국민은 궁금해한다. 대통령은 기자들의 질문, 추가 질문을 받아가며 생각과 심경을 밝힐 기회를 가질 필요가 있다. 국민들은 대통령의 발언과 표정은 물론이고 단호함과 머뭇거림까지 지켜보며 대통령의 진심을 판단할 것이다.
동아일보 사설
01.01 변화와 혁신으로 ‘피크 코리아’ 위기 돌파하자
2024년 새해가 밝았다. 청룡의 해인 갑진년 첫 아침이지만 대한민국의 발걸음은 가볍지 않다. 예고된 여러 위기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소멸의 위기가 그 하나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2 수준까지 떨어졌다. 인구 감소는 ‘지방 소멸’과 ‘국가 소멸’을 우려해야 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취학 아동 급감, 병력 자원 부족, 생산가능인구 축소 등 한국 사회를 완전히 뒤바꿀 인구 재앙이 쓰나미처럼 덮쳐오고 있다.
부채 위기도 간단하지 않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빚이 불어나면서 경제를 걱정케 하고 있다. 지난해 가계·기업·정부 부채를 더한 한국의 총부채는 6000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추산된다. 국내총생산(GDP)의 3배를 향해 가고 있다. 지난 연말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태는 부채 위기의 일면에 불과하다. 올해도 한국 경제는 1~2%대 저성장이 예상된다. 외신에선 한국의 성장은 끝났다는 ‘피크 코리아(Peak Korea)’란 단어도 들린다. 체감경기는 더 어려울 전망이다. 경제 경착륙을 막기 위한 최상목 경제팀의 선제적 관리가 요구된다.
소멸 위기도, 부채 위기도 갑자기 찾아온 병이 아니다. ‘예고된 미래’였다. 그간 정치권은 무기력하고 부도덕했다. 초저출산 해법, 치솟는 가계부채 대책을 놓고 여야가 언제 머리를 한번 맞댄 적이 있는가.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이 노동·연금·교육 3대 개혁을 꺼냈을 때 국민적 기대가 컸다. 개혁을 통해 노동생산성이 높아지고, 노후 안전망이 튼실해지며, 공교육이 정상화한다면 어떤 난국도 돌파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도 갖게 했다. 그러나 지금 3대 개혁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다. 이런 가운데 필수의료 시스템은 무너지고 전세 사기, 불법 사금융, 마약 확산 등 한국 사회 기반을 뒤흔드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자고 나니 도로 후진국’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여권의 무능도, 야권의 무책임도 더는 용납될 수 없다.
4월 10일엔 22대 국회의원 선거다. 민생을 등한시하고 진영 이익과 정쟁에 골몰해 온 정치 세력은 준엄한 심판대에 오를 것이다. 정치권이 스스로 변화를 거부하면 유권자가 투표로 ‘정치 쇄신’과 ‘정치 교체’를 실현하는 게 민주주의다. 유권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절실하다.
바깥 상황도 녹록지 않다. 미국·유럽연합(EU) 등 민주 진영과 중국·러시아 등 비민주 진영의 대결이 격화하고 있다. 한반도는 그 대결의 최전선이다. 북한은 이미 중·러의 비호 아래 핵과 미사일을 한층 고도화하며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철벽같은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북핵 억지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고, 한·미·일 안보협력을 계속 다져나가야 한다. 한편으론 중국과의 거리가 불필요하게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관계 관리의 지혜가 필요하다. 한·중·일 정상회담 조기 개최 등 내실 외교가 긴요하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도 대처해야 한다. 중국에 치우친 전략물자 공급 루트를 다변화하는 노력에 속도를 높여야 한다. 11월엔 국제질서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칠 미국 대선이다. ‘트럼프 리스크’가 현실화할 경우까지 고려해 대미 외교 채널을 총가동해 치밀하게 대비해야 한다.
알려진 위기는 위기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수많은 위기를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극복해 왔다. 해법은 변화와 혁신밖에 없다. 포퓰리즘은 반드시 끊어내야 한다. 4월 총선의 결과가 어떠하든 해묵은 한국병을 수술할 변화와 혁신에 온 나라가 전력하길 기대한다. 그래야 ‘피크 코리아’ 위기를 넘어 청룡처럼 비상할 수 있다.
중앙일보 사설
01.01 ‘퍼스트레이디 스트레스’ 해소하고 가야

덕담 나눠야 할 새해 아침이다. 하지만 에두를 필요도 없이 정국은 혼돈의 블랙홀 속이다. 그 중심은 야권이 단독 통과시킨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다. 대통령실은 “이송 즉시 거부”다. 민주당·정의당이 정권의 아킬레스 건이라 본 김건희 여사를 고리로 치명타를 가하려는 총선용 전략 카드임은 분명하다.
사실 2009~2012년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디테일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별로 알고 싶지도, 중요하지도 않다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국민의 특검 찬성 여론은 매우 높다. 67%(서울경제)~70%(국민일보)가 거부권 반대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여당은 ▶야당만의 특검 추천 ▶수사 브리핑 허용 ▶총선 전후의 조사 시점을 들어 “국민 선택권을 침해하는 악법”으로 규정한다. 검사 출신답게 법규 해석에 초점을 맞춘 접근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국민의 70%는 과연 앞뒤 분간 못하는 바보일까. ‘법 해석’과 ‘국민 정서’의 사이. 상황은 왜 이리 흘러온 걸까.
윤석열 대통령은 “50살이 다 돼서 아내 만나 결혼(2012년)한 것”을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꼽았다. 그러나 대선후보 시절부터 아내의 사건들로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 학력·경력 부풀리기 등으로 대국민 사과에 나선 김 여사는 “깊이 반성하고, 국민 눈높이에 어긋나지 않도록 조심하겠다”며 “남편이 대통령이 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고개를 숙였었다.
그에 앞선 2021년 여름, 검찰총장에서 물러난 야인인 윤 대통령의 여당 입당을 권하려고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자택에 적잖은 정치인이 들렀다. 당시 이들이 고개를 꺄우뚱거리며 전해 준 얘기가 있다. “입당을 권유하자 옆 의자에 앉아 있던 김 여사가 ‘우리가 입당하면 저를 보호해 주실 수 있나요’라 하더라. ‘우리’ 라는 단어가 유독 기억에 남더라.” 다른 인사가 전한 장면. “바로 옆 김 여사가 ‘오빠는 (정치에 대해선) 잘 모르니 (이 분이) 시키는 대로 하세요’라 하더라.” 당시 ‘아크로비스타의 기억’은 여당 관계자들의 이런 해석을 낳았다. “김 여사 스스로는 윤 대통령의 오늘이 있기까지 적잖은 기여의 지분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더라. 정치적 창업 동업자쯤 여길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김 여사는 대선 직전 공개된 한 불법도청 녹음에선 “우리 남편은 완전 바보다. 내가 다 챙겨줘야지 뭐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었다. 하긴 모든 아내에게 남편들은 바보일 수도 있겠으니….
김 여사 특검법, 총선용 공세 맞지만
‘찬성 70%’ 여론의 이유도 성찰해야
사과, 특별감찰관제 등 제도 정비로
국민 납득할 ‘문제해결’노력이 우선
우리의 법엔 ‘대통령 부인’의 권리·책임·의무 규정이 없다. 이리 보면 공인, 저리 보면 사인이니 경계선에서 문제가 생길 수밖엔 없다. 이 정권 들어 “그 문제는 내게 맡겨 달라”는 대통령의 의중 따라 특별감찰관제나 제2부속실 등의 관리 시스템도 없었다. 그러니 사달이 이어진다. 2022년 6월엔 코바나컨텐츠 임직원 3명이 김 여사의 봉하마을 일정에 동행, 참배해 클릭이 몰렸다. 그중 한 명이 “무속인 같다”는 게 출발이다. 사실이 아니었지만 무슨 법사나 무속의 얘기가 끊이지 않던 탓에 대중의 트라우마가 되살아난 사건쯤이다. 그중 한 명은 대선 기간 논란이던 ‘개 사과’ 인스타그램을 올린 이였다.
지금껏 구설은 끊이지 않아 왔다. ‘김건희 라인’이란 인사 논란이 해외 출장의 행사 의전·홍보 등을 담당하는 대통령실 내부에서 불거져 나왔다. 김 여사가 여당 여성 의원들을 초청한 관저에선 한 영남 의원이 “오늘 온 여성 의원들은 다 공천되도록 여사께서 배려해 달라”고 농반진반 얘기를 꺼내, 관계자들이 “쉬쉬”에 애먹기도 했다. 대통령의 나토 순방 기간 중 리투아니아 언론은 김 여사가 경호원·수행원 등 16명과 나서던 중 명품 편집매장에 들른 사실을 보도, 야권의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그 두 달 뒤 재미교포 친북 목사에게 디올 백을 받은 건 아무런 변명의 여지가 없는 과오였다. 물론 불법 녹음의 덫에 경계와 긴장도 풀어졌을 터다. 하지만 유튜브에 뜬 당시 대화는 대통령 부인의 격(格)과 역할의 선(線)은 어디인지 심각한 성찰을 낳게 했다. “제가 이 자리에 있어 보니까 정치는 다 나쁘다고…” “저에 대한 관심이 끊어지면 제가 적극적으로 남북 문제에 나설 생각” “남북통일을 좀 해야 되고, 우리 목사님도 한번 크게 저랑 같이 할 일 하시고….”
내용도 잘 모르는 여사 특검법안의 ‘찬성 70%’는 바로 퍼스트레이디에 대한 국민의 스트레스 지수인 듯싶다. 늘 조마조마한 국민의 우려와 걱정을 해소해 달라는 주문이기도 하다.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할 특별감찰관제를 도입, 아예 야권이 추천하라고 하는 건 어떨까. 국가기밀 접근권을 제한한 제2부속실의 공적 울타리 안에서 여사가 떳떳하게 활동할 순 없는가. 무엇보다 디올 백 수수 만은 정중히 사과해야 옳다. 보수 진영에서조차 요즘 ‘6·29선언급 쇄신’만이 살길이라 한다. 한동훈 위원장 앞의 가장 높은 허들, ‘고양이 목 방울 달기’다.
중앙일보 최훈 주필
01.01 저성장 늪에서 벗어나려면 규제 역설·족쇄 다 풀어야

2023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4%로 추정된다. 새해 경제성장률이 2.2%로 예상되는 만큼 성장률을 올리기 위한 정부의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응용일반균형모형을 통한 기업규제의 경제적 효과 분석』에 따르면 규제 완화 외에 다른 답이 있는 것 같지 않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제조업 규제비용을 10% 줄이면 국내총생산(GDP)이 4.8% 증가하고 실업률이 0.14%포인트 감소한다.
탈규제화에 따른 자유경쟁 촉진이라는 세계적 추세에도 한국은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규제 정도가 가장 심한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신사업출현 속도를 규제 정비가 따라가지 못해 답답하다. 기득권 카르텔, 이해관계 갈등이 새로운 산업 성장을 제약한다. 새해 화두로 글로벌 수준의 규제 혁신을 제시하는 이유다.
비대면 진료, 초진 확대가 바람직
우선 새롭게 대두하는 성장 산업의 발판 마련을 위한 규제 완화가 절실하다. 타다와 같이 택시 서비스를 대체·보완하는 혁신 모빌리티 플랫폼 도입을 금지한 데서 비롯된 기회비용은 막대했다. 택시기사 부족으로 택시 대란이 벌어지자 교통 대란으로 이어졌다. 신산업이 등장하면 기존 기업이나 기득권 집단이 변화에 맞서 갈등을 빚는 것은 어쩔 수 없는데, 우리 사회가 그런 조정에 실패한 탓이다.
이런 맥락에서 진통을 겪고 있는 비대면 진료도 바이오헬스 산업의 선진화로 바라봐야 한다. 현재 비대면 진료는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예외적이면서 한시적으로 시행하도록 하고 있다. 환자를 최소한 1회 이상 대면 진료한 경우에는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도록 하고 상황에 따라 초진까지 확대하는 게 바람직하다. 전 세계 대한민국 공관의 외교관·공관원과 가족을 대상으로 비대면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3년 간 비대면 진료가 시행돼 국민은 비대면 진료의 혜택을 톡톡히 누렸다. 의료계 반발은 외국 사례를 볼 때 맞지 않는다.

▲김경진 기자
다른 나라는 코로나19 이전에는 재진만 주로 허용했으나 초진까지 확대하는 경우도 늘었다. 프랑스처럼 주치의와 비대면 진료를 하거나 주치의 의뢰서가 있을 경우 다른 의사와 비대면 초진 진료가 가능하도록 해 초진 위험성에 대비하는 게 일반적이다. 국가 주도형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영국은 원격의료 진료비가 없다. 중국은 다양한 비대면 진료 앱으로 원격의료를 허용한다. 미국은 1997년 연방정부 메디케어에 처음으로 원격의료에 대한 보험 급여를 실시했다. 일본은 2021년 8월 ‘온라인 진료 특례 조치의 항구화’를 공표하면서 원격의료를 허용했다. 2022년 초진 온라인 진료 허용과 초진 수가 신설을 했다.
바이오 헬스와 의료 서비스 등
신성장 산업에 규제혁신은 필수
달라진 기업 환경 변화 발맞춘
산업생태계 발전 위해서도 필요
기존 규제도 개선하고 정비해서
관련 산업 경쟁력 강화 유도해야
환자 데이터 제3자 전송 허용해야
국회에 계류 중인 ‘디지털 헬스케어 진흥 및 보건의료데이터 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의 핵심은 의료데이터 활용에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글로벌 디지털헬스케어 시장은 연 3.9% 성장세를 보여 왔다. 2027년에는 약 700조~800조원까지 규모가 커질 것으로 예측한다. 산업 육성 차원에서 환자가 동의할 경우에 의료기관이 제3자에게 환자의 의료데이터를 전송하는 것을 허용하도록 해야 한다. 데이터 활용을 통해 보험사가 고도화한 헬스케어서비스를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다. 건강보험공단이 맞춤형 익명 데이터베이스(DB)를 보험사의 자료 활용목적과 신청내용에 맞도록 구축해야 함은 물론이다.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를 골자로 한 보험업법 개정안이 지난해 10월 국회를 통과했다. 규제 혁신의 효과가 제대로 발생하려면 의료계가 올 10월까지 관련 시스템 구축에 협조해야 한다.
대형마트 규제로 시장 왜곡 발생
규제가 오히려 새로운 경쟁자의 독점을 초래하고 기존 산업을 억누르는 경우도 있다. 기존 기업이 환경 변화에도 불구하고 규제로 성장할 수 없다면 규제를 완화해 산업 생태계 혁신을 이뤄야 한다. 국민 생활과 밀접한 온라인 배송 관련 규제 혁신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김경진 기자
현재 새벽 배송업의 절대 강자는 쿠팡이다. 쿠팡은 지난해 2023년 3분기까지 8조 원대 매출을 올리며 분기 최대 매출을 갱신했다. 영업이익도 2022년 3분기부터 5개 분기 연속 흑자를 이어갔다. 국내 대형마트 3사 중 이마트만 온라인 쇼핑 플랫폼 ‘쓱닷컴’으로 수도권 일부 지역에 제한된 새벽 배송 서비스를 시행 중이다. 쓱닷컴은 용인과 김포 소재 물류센터로 서울과 인천, 경기 고양·의왕·성남·남양주·의정부 등 일부 수도권 지역에 새벽 배송을 한다. 수도권에서도 쓱닷컴의 물류센터와 멀리 떨어진 강동구 일부, 경기 하남·과천·시흥 등엔 새벽 배송이 안 된다.
2012년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가 시행된 이후 온라인 쇼핑 시장이 급속도로 팽창해 유통업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대형마트를 주축으로 하는 오프라인 유통업은 상황이 심상치 않다. 그간 유통업계를 이끈 이마트와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3사의 입지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온라인 쇼핑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은 지난해 3분기 온라인쇼핑 거래액이 57조원에 육박하며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1위는 쿠팡(37.7%), 2위는 네이버쇼핑(27.2%)이다. 대형마트 영업규제의 목적이 중소유통업 보호지만 해당 제도가 중소유통업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는 근거는 명확하지 않다. 잘못된 프레임으로 대형마트 규제를 계속하는 것은 하루빨리 풀어야 한다.
규제 정비 부르는 달라진 유통 채널
대형마트의 온라인 배송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소리가 그래서 나온다. 대형마트 영업제한 시간이나 의무 휴업일에도 온라인 배송이 가능하도록 유통산업발전법을 개정해야 한다. 새벽 같은 영업제한 시간대나 의무 휴업일에도 매장에 있는 물건의 온라인 배송이 가능하도록 해야 이들 업체가 쿠팡과 경쟁해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다.

▲김경진 기자
미국·프랑스·독일·일본 등 해외 국가에선 대형마트 규제 정책이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점차 없애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프랑스는 2008년 ‘경제현대화법’을 도입해 기존 출점 규제 대상 규모를 300㎡에서 1000㎡로 바꿨다. 오랫동안 제한해온 야간·일요일 영업도 경제 활성화를 위해 허용했다.
우리도 유통 채널이 혁신적인 변화를 거친 상황을 고려해 규제를 정비해야 한다. 대형마트 같은 오프라인 기업에 부과하는 의무 휴업과 온라인 배송 금지라는 이중 규제는 시장 왜곡과 소비자 후생을 후퇴시킨다. 10여년의 유통 규제가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규제를 설계하면서 소비자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형마트는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의 적이 아니라 함께 상생하고 협력해야 할 존재이다.
내국인의 도심 공유숙박 허용 필요
한편, 기존 규제를 푸는 게 관련 산업 발전을 위해 옳기에 규제 정비를 단행해야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내국인 대상 공유숙박 영업에 제한을 뒀던 국가들도 최근 여행 트렌드를 반영해 그 제한을 푸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집주인이 거주하지 않는 빈집을 숙박용으로 쓸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은 지방 상권을 살리기 위해서도 맞다. 지방소멸을 하소연하는 지역민에게는 생존권 보장과 같은 조치다.
내국인도 외국인처럼 도심에서 공유숙박을 이용하도록 해야 한다. 서울로 한정한 도심 공유숙박 사업 허용 지역을 경기·부산으로 확대해야 한다. 연간 180일로 묶인 영업 일수 제한도 풀어 관광업을 활성화해야 한다. 최근의 여행 트렌드를 고려하면 이 같은 규제 개선이 관광객 유치의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다. 젊은 관광객을 중심으로 호텔 같은 전통 숙박 시설보다는 현지인들과 함께 어울려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숙박 시설을 원하는 수요가 많다. 실제 국내 여행 시 공유숙박 등 민박 시설 이용 증가율은 펜션, 호텔보다 월등히 높다. 국내에서 합법적으로 공유숙박시설을 운영하려면 ‘외국인관광도시민박업’ ‘농어촌민박업’ 또는 ‘한옥체험업’ 허가를 받아야 한다. 주거지 일부를 손님에게 빌려주는 개념이라 호스트가 반드시 실거주해야 한다는 요건도 있다. 이러한 제도는 손질의 대상이다.
물론 규제를 없애는 것만이 규제 혁신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새롭고 좋은 규제를 만드는 것도 규제 혁신일 수는 있다. 다만 다른 나라 사례를 참조해 소비자 편익을 위해 잘못된 규제는 과감하게 고쳐야 산업이 활성화하고 국민 후생이 증진한다. 규제 개선을 위해서는 방향성도 중요하다. 탑다운 방식은 국가 주도로 빠른 상황 대처에 효과적이다. 바텀업 방식은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방안을 도출하는 데 장점이 있다. 두 방식의 상호보완이 필요하다. 그런 소통을 통해 우리 경제가 새해엔 저성장의 늪에서 한 단계 도약하기를 바란다.
중앙일보 조원경 UNIST 교수 글로벌 산학협력센터장
01.02 尹 “3대 개혁, 이제는 행동” 그 힘은 국민 지지에서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신년사에서 “저출산 상황에서 구조 개혁을 통해 사회 전반의 생산성을 높여야만 민생도 살아나고, 경제도 성장할 수 있다”면서 “노동·교육·연금 3대 구조 개혁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1년 전 2023년 신년사에서도 거의 같은 말을 했다. 당시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미래와 미래 세대의 운명이 달린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했다. 지난 1년간 과연 윤 정부는 노동·교육·연금 개혁을 위해 무슨 일을 했나.
노동 분야에선 노조의 불법 파업에 대해 법치주의를 적용해 강경 대응하고, 노조의 회계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몇몇 조치가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2022년 말 전문가 기구가 제시한 주 52시간제 월·연간 단위 유연화, 호봉제의 직무급 전환, 파업 기간 중 대체 근로 허용 등 ‘노동시장 개혁 권고안’은 아무 진전이 없다. 교육 개혁은 또 어떤가. 교육부에서 뒤늦게 내신 5등급제 시행, 수학능력 시험에서 심화수학 제외 등 대입 제도 개선안을 내놨지만, 이것이 사교육을 없애고 창의적 인재를 육성하는 교육 개혁 방안이라고 여길 국민은 아마 없을 것이다. 연금 개혁의 경우 핵심 내용인 보험료율, 수급 개시 연령, 소득대체율 등을 명확히 제시하지 않은 ‘국민연금 개혁안’을 국회로 넘기면서, “국회와 함께 공론화 과정을 거쳐 결정하겠다”고 한 게 다였다.
국회를 장악한 거대 야당이 가장 큰 장애물이었지만, 이를 극복해야 할 국정 지지가 30%대 수준을 맴돈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낮은 지지율은 3대 개혁뿐 아니라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소상공인 대출 부실, 한전 경영난 등 다른 경제 문제 해결도 모조리 총선 이후로 미루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국과 달리 프랑스에선 대통령이 노조 대표들을 직접 만나 8시간 동안 설득하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국민 대토론회를 열어 노동·연금 개혁에서 진전을 이뤄냈다.
개혁의 추동력은 결국 국민 지지로부터 나온다. 3대 개혁의 모멘텀을 살리려면 낮은 자세로 뼈를 깎는 쇄신을 통해 정권 지지율부터 끌어올려야 한다. 3대 개혁을 행동에 옮겨야 할 때라는 대통령의 각오는 어떻게 하면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겠느냐는 성찰로 뒷받침돼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1.02 육영수 여사가 생각나는 새해 아침

1968년 7월 3일 밤. 서울과 경기도 일대에 물난리가 났다. 잠원동 주민 300여 명이 신동초등학교에 긴급 대피해 있었다. 그때 한 사람이 폭우 속에 황토물 교정을 철벅철벅 걸어오고 있었다. “이 밤중에 누굴까?” 그는 교사 안으로 들어오며 머리를 감쌌던 흠뻑 젖은 수건을 벗었다.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사님 아냐?” 누군가 놀라 소리쳤다. 육영수 여사는 “여러분 얼마나 고생 많으세요”라고 인사한 뒤 가져온 구호 물품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나룻배를 타고, 발목까지 빠지는 흙탕길을 고무신 차림으로 걸어서 그곳까지 온 것이다.
그해 호남은 극심한 가뭄을 겪었다. 현장을 찾은 육 여사는 논두렁길로 걸어갔다. 말라 타버린 논 구석에 양수기가 있었다. 올라서서 양수기를 밟기 시작했다. 흙먼지가 뒤덮인 빈 양수기가 쩍쩍 소리를 냈다. 그를 발견한 동네 사람들이 다가갔다. 육 여사는 울먹이며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이 사람들을 어떡하지….”
육 여사는 소리소문 없이 봉사와 선행에 힘썼다. 보육원, 양로원 등 사회의 그늘진 곳을 보살폈다. 67년 말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정부·여당 송년회에 육 여사가 불참했다. 의아해하는 참석자들에게 박정희 대통령이 “우리 집사람은 보육원에 가느라 못 왔다”고 실토하는 바람에 모두 아무 말을 못 했다. 육 여사가 만든 사회봉사단체 양지회는 전국 87개 나환자촌 지원의 대명사였다. 그는 한센인들을 찾아가 손을 덥석 잡고, 고구마를 나눠 먹으며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다.
육 여사는 검소했다. 이애주 전 의원의 증언. 육 여사가 흉탄에 스러진 74년 8월 15일 서울대병원 간호사였다. “서거하신 후 유품을 정리하는데, 글쎄 한복 속옷을 기워 입으셨더라고요. 알뜰하고 소박한 성품을 생각하며 유품 앞에서 다시 울음바다가 됐습니다.” 남들이 화려한 자리라고 부러워하는 대통령 부인이지만, “청와대는 항상 중류 살림을 하자”며 근검절약을 생활신조로 삼았다. 비싼 옷을 입는 일이 없었다. 청와대에는 그 흔한 꽃꽂이도 못 하게 했다. 박 대통령은 육 여사 서거 후 이렇게 회고했다. “살아생전 자신의 사사로운 욕망을 채우기 위한 말은 한 번도 하지 않았는데….”
당시에는 다들 가난하게 산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도 사람 나름이다. 비슷한 시기, 필리핀 독재자 마르코스 대통령의 부인 이멜다는 사치 행각을 벌였다. 명품 구두만 3000켤레가 넘었다. 육 여사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사치를 부릴 수 있는 절대권력의 부인이었지만.
한복 속옷을 기워 입을 정도로 검소
권력 누린다는 원성 살까 봐 늘 조심
조용히 봉사 선행, 온 국민 존경받아
육 여사 같은 영부인 또 볼 수 있을까
그는 사려 깊고 겸손했다. 가수 이미자씨 레코드판 한 장을 산 것이 알려진 후 가게에 들른 적이 있었다. 한 직원이 “영부인님, 이것도 사주세요”하고 물건을 내놓았다. 육 여사가 “근혜 엄마라고 하면 몰라도 영부인이라고 하니까 깎지도 못하겠네요”라고 말해 주위 사람들을 웃긴 적이 있다. 김두영 전 청와대 2부속실 비서관의 증언. “육 여사는 권력을 즐기는 행세로 국민의 원성을 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늘 조심했다. 오만하게 보일까 봐 행사장에서 의자에 등을 기대지 않을 정도였다.”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알았다. 국가의 대소사와 인사는 대통령의 영역이라 판단해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대신 소소한 민원 처리는 자기 일이라고 여겼다. 매일 50여 통의 민원 편지를 뜯어보고 답장하는 일을 거르지 않았다. “내 앞으로 온 편지는 절대 손대지 마라”고 하고, 민원을 직접 챙겼다. 도봉동 토굴 속에 산다는 어느 소년의 편지를 읽고는 주소도 모르는 그곳 일대를 직접 뒤졌다. 기어이 소년을 만나고는 아이스크림 장사에 필요한 장사 밑천을 대준 일도 있었다.
잡음이 나지 않도록 주변을 늘 단속했다. 청와대 내 야당을 자처해 대통령이 알아야 할 일은 직접 전달했다. 한 번은 박 대통령 친척이 운전하다 사망사고를 냈다. 다들 쉬쉬하고 덮으려고 했는데, 육 여사가 그 소식을 대통령에게 전하는 바람에 그 친척은 구속됐다. 김종필 전 총리는 회고록에 “국민에게 퍼스트레이디란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인지 처음으로 알린 분”이라고 평가했다.
박 대통령에게 저항하던 사람들도 육 여사의 인품에는 고개를 숙였다. 70년대 민주화 운동의 정신적 지주였던 김수환 추기경은 육 여사 영결식에서 이렇게 기도했다. “그분이 우리 마음에 심은 평화와 사랑의 씨가 자라 그 꽃을 피우게 해 달라.” 김 추기경은 훗날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에 “국모(國母)라는 칭호를 받을 만한 분”이라고 썼다. 서슬 퍼런 독재 시절, 박 대통령의 철권(鐵拳) 이미지를 육 여사가 절묘하게 보완한 셈이다. 서거한 74년을 기점으로 박정희 정권이 서서히 무너진 건 우연이 아니다.
그 뒤 대통령 부인이 여럿 나왔다. 이희호 여사처럼 평생 민주화에 헌신한 훌륭한 분도 있었다. 하지만 육 여사만큼 온 국민의 존경을 받으며 품격 있게 대통령 부인 역할을 잘 해낸 인물은 없는 것 같다. 그 어느 때보다 육 여사가 생각나는 2024년 새해 아침이다.
중앙일보 고현곤 편집인
01-03 초유의 무허가 방송 사태 초래한 기형적 방통위 2인 체제

KBS2, SBS, 지역 MBC 등 34개 방송사 141개 방송국이 지난해 말 허가 기간이 만료됐으나 정부의 재허가 결정이 늦어지면서 무허가 방송을 내보내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달 31일 전체회의를 열어 유효기간이 끝나는 방송사들에 대한 재허가를 의결할 예정이었으나 “자료를 검토할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회의를 취소했다.
이번 사태는 이동관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자신에 대한 탄핵안이 발의돼 지난달 1일 사퇴할 때 예견됐던 일이다. 방통위는 대통령이 지명하는 2명과 여야가 추천하는 3명 등 5명의 상임위원으로 구성되는 합의제 기관인데 이 전 위원장의 사퇴 후 부위원장 1명만 남게 돼 한 달 가까이 전체회의를 열지 못했다. 대통령은 업무 공백을 막으려고 김홍일 신임 위원장을 청문회가 끝난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9일 서둘러 임명했지만 방통위는 결국 “신중하게 살펴보겠다”며 재허가 의결을 보류했다. 방송에 문외한인 위원장이 방송사 문을 닫게 할 수도 있는 중요한 결정을 임명된 지 이틀 만에 내리기엔 부담이 컸을 것이다.
설사 법적 기한 내에 의결이 이뤄졌더라도 ‘2인 위원 체제’의 결정에 대해서는 법적 효력에 시비가 생길 수밖에 없다. 정부는 방통위법에 정족수에 대한 규정 없이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만 돼 있어 문제없다고 하지만 서울고법은 지난달 20일 2인 체제의 방통위가 내린 공영방송 이사진 교체 결정에 대해 정부에 패소 판결을 내렸다. 2명 체제의 심의와 결정은 정치적 다양성을 위원 구성에 반영해 방송의 공공성을 실현하도록 규정한 입법 목적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취지였다.
방통위는 지난해 5월 당시 한상혁 위원장이 방송사 재승인 심사 과정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돼 면직된 후 3인 체제, 지난해 8월부터는 대통령이 지명한 초유의 2인 체제로 수개월째 파행 운영을 이어 왔다. 방송 정책 주도권을 둘러싼 정치권의 힘겨루기로 후임 인선이 늦어진 탓이다. 급변하는 세계 미디어 시장에서 성장 전략을 추진하고 허위 정보와 불법 유해 정보로부터 이용자를 보호하는 문제 등 현안이 쌓여 있는데 언제까지 방통위를 식물 위원회로 내버려둘 셈인가.
동아일보 사설
01.03 31년 만의 동해안 지진해일, 우리도 점검 필요하다

▲1983년 5월 26일 일본 아키다 현 서쪽 해역에서 발생한 리히터 규모 7.7의 지진 여파로 강원도 삼척 임원항에서도 쓰나미 피해가 발생해 당시 1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됐으며, 선박 81척이 부서지고 건물 44동이 붕괴됐다./한국해양과학기술원
일본 이시카와현에서 발생한 규모 7.6 강진 여파로 우리나라 동해안에 최고 85㎝ 높이의 지진해일(쓰나미)이 밀려왔다. 1993년 7월 이후 31년 만이다. 별 피해는 없었지만 우리도 지진해일의 안전지대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번 지진은 규모가 컸지만 바다 한가운데가 아니라 해안에서 발생해 바다 출렁거림이 약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지진에서 비교적 안전한 편이다. 그러나 지진해일은 다르다. 일본 서해안에서 대규모 지진이 발생할 경우 1시간여 만에 우리 동해안에 지진해일이 밀려들 수 있다. 일본 쓰시마섬이나 대만에서 지진이 발생할 경우 부산이나 제주도 같은 남해안에도 지진해일이 밀려들 수 있다. 실제로 1983년 5월 일본 혼슈 서쪽 지진으로 우리 동해안에 최고 2m 이상의 지진해일이 밀어닥쳤다.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실종됐다. 1993년 7월에도 일본 홋카이도 오쿠시리섬 북서쪽 해역에서 규모 7.8 지진이 발생하자 동해안으로 최고 2.76m 지진해일이 밀려들었다.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4억원의 재산 피해가 났다.
지진해일은 일본에서 우리 동해안에 도달하는 데 1시간 이상 걸린다. 대비만 잘하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재난 문자, 민방위 경보 방송, 주민과 선박 대피 방안, 원전 등 주요 기반 시설 안전 등 지진해일 대비를 주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훈련도 필요하다. 지진이나 지진해일 같은 재난은 최악의 가정 아래 대비해야 한다. 더구나 기후 변화로 기상이 급변하고 있어 과거의 기준으로 세워놓은 재해 대비책만 믿고 있을 수 없다. 31년 만의 지진해일을 계기로 비상 대응 시스템을 점검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1-03 ‘文정부 통계조작’ 첫 영장 청구…윗선 수사 속도 내야
문재인 정부의 ‘통계 조작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이 수사 착수 3개월여 만인 2일 처음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당시 국토교통부 1차관과 주택토지실장이 한국부동산원에 부당하게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다. 대전지검은 감사원 감사 결과 발표(지난해 9월 15일)와 수사 의뢰에 따라, 청와대가 사령탑이 되고 국토부·통계청·부동산원을 총동원해 주택·소득·분배·고용 등 주요 통계와 관련된 불법 혐의를 추적해왔다. 10월 5일 첫 압수수색을 실시한 사실을 감안하면 수사가 난항을 겪는 것으로 비친다.
감사원 발표에 따르면, 문 정부 임기 내내 청와대 지시에 따라 부동산원의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 통계는 94차례 이상 조작됐고, 통계청의 소득·고용 통계는 통계 산출 방식이 바뀌었다. 감사원은 부동산 가격 폭등과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의 실패를 감추려 통계에 손을 댄 것으로 보고 장하성·김수현·김상조·이호승 등 전 청와대 정책실장 전원과 홍장표 전 경제수석, 황덕순 전 일자리수석,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 강신욱 전 통계청장 등 22명을 직권남용, 통계법 위반 등 혐의로 검찰에 수사 요청했다.
KB국민은행 통계로 집값이 2배 가까이 급증했는데도, 이런 조작된 통계로 문 대통령은 “집값이 안정되고 있다”고 했고, 국토부 장관은 “14% 올랐다”는 등의 주장을 했다. 국가 통계는 정책 수립은 물론 학술 연구와 민간 기업 경영 등의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통계 조작은 국기 문란 범죄다. 국가 신뢰도 망가뜨린다. 영장 발부 여부에 개의치 말고, 검찰은 더욱 엄정하고 철저히 수사해 윗선 혐의까지 신속히 밝혀냄으로써 재발을 막아야 할 책임이 무겁다.
문화일보 사설
01-03 박근혜 ‘옥중 사색’의 반면교사
권력 박탈은 정치적 죽음 의미
朴 전 대통령 3년 9개월 수감
원망 버리고 모든 멍에 짊어져
尹, 진실 자기편 생각은 착각
특검 거부 후엔 명품가방 공격
납득할 해명이 여론 이탈 막아
정치인에게 권력의 박탈은 죽음과 다를 바 없다. 권력의 크기가 클수록 상실의 충격은 더해가고, 몰수의 방식이 파괴적일수록 황폐함은 극대화한다. 국민은 권력을 안겨주기도 하고 한순간에 빼앗아가기도 한다. 군주제나 공화정, 민주주의 국가도 마찬가지다. 진영 간 대립이 빚는 힘의 충돌에서 사실이 무엇인지, 판단이 합리적인지는 결과적으로 보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감옥에서 3년 9개월을 보냈다. 문재인 정부의 ‘최순실 국정농단 및 권력남용 사건’ 특별사면으로 2021년 12월 31일 출소하기까지 1730일을 갇혀 지냈다. 그 긴 시간 동안 하이에나처럼 물어뜯는 세력, 등을 돌린 여당 의원들, 탄핵을 선고한 헌법재판소 재판관들 그리고 국민을 원망했을까. 심경 변화를 일일이 추적할 수 없어도 최종 도착지가 본인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믿었던 주변 인물(최순실)의 일탈로 적폐로 낙인 찍히고…(중략)…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는 마음도 버렸고, 모든 멍에는 제가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옥중편지 모음, ‘그리움은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는다’ 서문 중)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은 위안으로 다가왔다. 1889년 프랑스 남부 생 레미 드 프로방스에서 그린 이 걸작에는 열한 개의 별이 소용돌이치듯 흐른다. 죽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불멸을 상징하는 사이프러스 나무가 검은 불꽃처럼 솟구친다. 고흐는 “밤하늘은 나를 꿈꾸게 해. 증기선, 마차, 철도가 지상의 운송수단인 것처럼 콜레라, 결핵, 암은 하늘로 가는 운송수단일 거야.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것은 별까지 걸어서 간다는 것이겠지”라고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한다. 박 전 대통령 곁을 지켰던 유영하 변호사는 2500여 권의 책을 영치했다고 한다. 그는 고흐의 그림을 곁에 두고 봤다. 직접 돈 한 푼 받지 않았고 그럴 의도도 없었지만, 광장의 분노로 탄생한 새로운 질서는 변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별이 빛나는 밤은 탈출구였다. 그는 사색의 긴 시간을 인내했다. 언젠가 국민이 진실을 알아줄 거라는 소망을 품고서….
윤석열 대통령은 세밑이던 지난달 29일 박 전 대통령을 한남동 관저로 초청해 오찬을 가졌다. 둘의 연(緣)은 복잡하게 얽힌다. 윤 대통령은 국정농단 특검 수사팀장이었고, 그 공로로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총장에 올랐다. 권력에 칼을 들이대면서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됐고 대권을 거머쥐었다. 지금은 4월 총선에서 지면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할 처지다. 더불어민주당은 “보수층 결집으로 ‘쌍특검법(김건희 여사 특검·대장동 50억 클럽 특검)’ 정국을 돌파하려 한다면 국민 분노가 폭발할 것”이라며 “기댈 곳은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태극기 아스팔트 부대뿐이냐”고 비난을 퍼부었다.
정권의 전복, 혁명에는 종종 음모가 깃든다. 프랑스 대혁명에는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를 비방하는 ‘리벨(libelle)’이 난무했다. 정적을 비방하는 소책자인 리벨에는 미확인 소문이 즐비했다. 검소했던 앙투아네트는 사치스러운 왕비로 묘사됐다. 불륜에 희대의 색광, 동성애자라는 중상모략이 이어졌다. 진보가 촛불혁명이라고 부르는 박근혜 탄핵 때도 마찬가지다. ‘청와대 굿판’ ‘세월호 7시간 공백’ 등 온갖 루머가 퍼졌다.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유언비어를 동원하는 것은 고금과 동서가 동일하다. 거짓의 산으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덮는다.
‘김건희 특검’이 총선용 정쟁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문재인 검찰이 19개월을 수사했지만, 기소조차 못 했던 사안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진실은 자기편이라고 여긴다면 착각이다. 청담동 술자리 가짜뉴스를 퍼뜨리고도 박수를 받는 국회의원이 존재하는 곳이 한국 정치다. 과거 김건희 여사가 ‘줄리’로 일했다는 거짓말은 규명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김건희 특검은 독이 든 잔이다. 거부권을 행사해도 ‘명품가방 수수 의혹’ 등 또 다른 공격이 취해질 것이다. 독수독과(毒樹毒果·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에 대한 효력 불인정), 몰래카메라 공작이라지만 받은 것은 사실이다. 납득할 만한 해명이 필요하다. 문제의 원인은 대부분 자신에게 있다. 윤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에게서 반면교사의 교훈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총선에서 보수의 죽음을 막을 수 있다.

문화일보 이제교 정치부장
01-03 尹, 국민·언론과 실질 소통 넓힐 때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국민의 대표로 선출된 대통령은 국민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 여기서 소통이란 단지 얼굴을 맞대고 의견을 나누는 좁은 개념이 아니다. 대통령이 여론 흐름에 주목하고 국민에게 설명하며 때론 설득하는 일도 포함된다. 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공감 형성이다. 재난 현장을 대통령이 서둘러 방문하는 것은 담당 공무원들에게 최선의 조치를 당부하기 위함이 아니라, 피해자들과 고통을 공감하기 위함이다. 피해자들은 대통령과 손을 맞잡으면서 고마움과 심적 위로를 받는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집권 3년 차의 윤석열 정부가 소통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볼 수 없다.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이전하는 명분이 국민과의 원활한 소통이었지만, 체감할 수 있는 성과는 없었기 때문이다. 집권 다음 날부터 도어스태핑 소통 방식을 택했지만, 200일도 되지 않아 61회 만에 중단됐다. 중단 이후에 오히려 대통령의 지지도가 상승했다는 역설적인 사실은 대통령과 비서실의 소통을 위한 준비가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보여준다.
소통은 대통령이 전통시장에 가서 떡볶이 몇 점을 집어먹는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150명이 넘는 시민이 숨진 서울 이태원 핼로윈 참사의 유가족들이 지난 연말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오체투지에 나선 것을 보면서, 대통령이 이들을 직접 만나 고통을 공감해 주지 않는 것에 아쉬움이 크다. 국민의 자존심을 구긴 잼버리 사태를 겪은 지 한참 지났건만 여전히 자리를 지키는 여성가족부 장관을 보면서 대통령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답답하다. 대통령이 국민의 정서를 제대로 읽지 못한다는 것은 소통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새해에도 찬반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중대한 법안이 많다. 정부·여당은 50인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추가로 2년 더 유예하자고 하고, 야당은 반대한다. 유예 찬성과 반대 입장은 나름 설득력이 있다. 이 법이 적용되는 노동자들과 기업의 비중을 고려하면 정당 간 논의에만 맡겨두지 말고, 왜 이 법을 추가 유예해야 하는지 대통령이 직접 국민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정부의 3대 개혁 과제 중 하나인 연금개혁 문제다. 개혁의 핵심은 지금보다 더 내고 덜 받는 방안일 수밖에 없다. 국가의 약속 변경이니 국민의 불만은 필연적이다.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국민적 합의 도출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언급한 만큼 국민의 우려를 덜어낼 수 있도록 국민의 눈높이에서 대통령이 직접 설명하고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소통의 노력이 요구된다.
우리 정치에서 권위적 대통령에 질린 국민은 공감력이 뛰어난 대통령을 기대한다. 윤 대통령의 의중이 국무회의 발언을 통해 간접 전달되는 경우가 많았다. 국민으로서는 대통령이 국민에게 지시를 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새해부터는 대통령이 국정 방향과 중요 정책에 대해 장관들이 아니라 국민에게 직접 설명하고 협조를 구하기 바란다.
가장 최근의 대통령 공개 기자회견은 2022년 8월 취임 100일을 계기로 있었다. 대통령실에서는 이달 중순 이후에 기자회견을 예정하고 있다고 한다. 대통령은 국민을 대표하는 권한을 부여받은 것이므로 국민이 궁금해하는 주요 사안에 대해 늘 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

문화일보
01.05 지방 공직자 15% “지방의회 부패 경험”, 국회도 조사해보길

▲정승윤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 직무대리가 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3년도 지방의회 종합청렴도 평가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뉴스1
국민권익위원회 조사 결과 지방자치단체 공무원과 산하기관 임직원의 15%가 최근 1년 새 지방의회 의원의 부정부패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전체 공공 부문 종사자의 2%만이 업무 관련 부정부패를 경험했다고 답한 것의 7배가 넘는 수치다. 짐작은 했지만 지방의회의 부패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사실이 다시 확인된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 지방 공직자의 16%는 지방 의원이 권한을 넘어서는 부당한 업무 처리를 요구하거나 ‘갑질’을 하는 것을 겪었다고 했다. 또 계약 업체 선정에 부당하게 관여(9%)하거나 특혜를 위해 부당하게 개입(8%)하는 경우를 봤다고 했다. 경기 안성시의회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38%, 전북 군산시의회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37%가 시의원의 부정부패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군(郡)·구(區) 의회는 빠졌다. 이들까지 포함하면 더 심각한 수치가 나올 것이다.
지역 주민을 위해 만든 지방의회가 지역 정치인의 이권을 위한 도구로 전락한 지 오래다. 서울 종로구의회는 작년 7월 출범 직후부터 여야가 의장 자리 다툼을 벌여 1년 4개월여를 휴업 상태로 지냈다. 주민 편의를 위한 사업이 줄줄이 멈춰 섰지만 구의원들은 매달 400만원 가까운 의정비를 타갔다. 성남시의회 전 의장은 대장동 사업 대가로 40억원을 받기로 한 혐의로 구속됐다. 당시 성남시의회는 대장동·백현동 개발 비리 의혹에 대한 행정조사를 무산시켰다. 서울 도봉·금천·양천구 의회는 자기들 마음대로 의정비를 올렸다가 주민 감사 청구로 환수 조치 됐다. 성북구 의원들은 관광성 외유를 갔다가 비용 전액을 물어내라는 명령을 받았다. 전북 김제시 의회에선 불륜 남녀 의원이 본회의장에서 고성을 지르며 싸우다 제명됐다.
권익위는 ‘지방의회 반부패 특별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 정치 구조상 지방 의원의 부패는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과도 연결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 지방 의원들은 국회의원에게 공천을 받는 대가로 지역에서 행동대원이나 선거운동원 역할을 해왔다. 국회의원에게 돈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권익위는 국회의원의 청렴도는 조사할 엄두조차 못 내고 있다. 필요한 예산을 국회에 달라고 하면 주겠느냐는 이유를 댄다. 이번 기회에 국회가 청렴도 조사를 자청하고 권익위에 예산을 준다면 국민이 달리 볼 것이다.
조선알보 사설
01.05 사법부 인사 쇄신으로 재판 지연, 포퓰리즘 해소해야

▲조희대 대법원장이 1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회의실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인사·예산 총괄 법원행정처장에 천대엽 대법관 내정
법원장 후보 추천제 등 ‘김명수 대법’ 적폐 개혁해야
조희대 대법원장이 김상환 법원행정처장을 교체하기로 했다. 후임으로 천대엽 대법관을 내정했다고 한다. 현안이 산적한 사법부 혁신을 위해 필요한 인사다. 행정처장은 전국 법원의 인사와 예산을 총괄한다. 대법관 임명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인사에도 관여한다. 대법원장의 오른팔에 비유할 수 있다. 조 대법원장은 취임 일성으로 재판 지연 해결을 약속했다. 이를 김명수 전 대법원장의 측근인 김 처장의 도움으로 풀어가긴 불가능하다.
조 대법원장 앞에는 전임자가 남긴 숙제가 태산이다. 사법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재판의 평균 처리 기간이 민사 본안은 245일에서 420일로, 형사 공판은 158일에서 223일로 증가했다. 사건의 복잡화도 요인이지만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 폐지와 법원장 후보 추천제 등 경쟁을 없애고 포퓰리즘을 부추긴 정책이 주범으로 꼽힌다.
정치적인 사건은 더 심각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윤미향 의원 재판은 1심 판결까지 각각 3년2개월, 2년5개월이 걸렸다. 쌍방울그룹의 불법 대북 송금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무더기 증인 신청 등으로 지연전술을 쓴다는 비판을 받는다. 간첩 혐의로 구속기소된 피고인들이 재판부 기피신청 등의 전략을 쓰면서 줄줄이 보석으로 풀려났다.
예전엔 판사가 납득하지 못할 이유로 재판을 지연하거나 후임자에게 떠넘기면 박한 평가로 불이익을 받았지만, 경쟁이 사라진 법원에선 예삿일이 됐다.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 판사들을 대거 발탁했던 편향 인사는 유능한 법관에게 중요한 재판을 맡긴다는 원칙을 훼손했다.
이 모든 적폐를 조 대법원장이 풀어야 한다. 조만간 있을 인사에서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시행하지 않기로 한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유능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지방법원장으로 임명하는 길은 막았다. 역량을 인정받아 고법으로 간 판사가 1심 재판에 관여하는 진로를 차단한 ‘법관 인사 이원화’는 많은 문제를 노출하고 있다. 유능한 판사에 대한 역차별이 로펌행을 부추기고 재판 지연을 심화한다. 시급한 법관 증원 문제 역시 검사 증원과 묶어 처리하려는 기류에 발목이 잡혀 있다.
이런 난제를 풀려면 행정처장의 역할이 막중하다. 천 대법관은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제청해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명했다. 그런데도 조국 전 장관 부인 정경심씨의 징역 4년형을 확정하고,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댓글 조작에 유죄 의견을 내는 등 균형을 지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조 대법원장을 도와 치우치지 않게 사법 현안을 풀어갈 것을 기대한다. 특히 조 대법원장은 나이 제한(만 70세)으로 임기가 3년6개월뿐이다. 정상의 궤에서 벗어난 사법부를 바른 길에 올려놓으려면 속도가 관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
01.06 "공수처는 물경력, 취업도 힘들어"…성과 제로, 이 사람이 문제였다 [공수처 1기 3년]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2021년 1월21일 오후 경기 과천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김 처장은 취임 후 3년 내내 공수처 수사력 논란에 휩싸였다. 장진영 기자
김진욱 초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이달 20일 3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다. 2021년 1월 출범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공수처 1기가 막을 내리는 것이다. 공수처 2기의 윤곽도 아직 안갯속이다. 지난해 11월 구성된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는 두달 넘게 최종 후보 2명을 선정하지 못하고 공전 중이다. 후보 추천을 위해선 위원 7명 중 5명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 데 여권이 지지하는 판사 출신 김태규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을 놓고 일부 추천위원들이 완강히 반대하기 때문이다.
공수처 수뇌부뿐 아니라 지난달 허윤 검사가 사표를 내면서 김 처장이 출범 직후 뽑은 1기 검사 13명 가운데 2명만 현직에 남았다. 김 처장은 2021년 4월 검사 임용한 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그림에 나오는 13명의 사람이 세상을 바꿨다”며 “13명이면 충분하다”고 자신감을 내보였지만, 대부분 처장보다 먼저 공수처를 떠난 것이다.
공수처 1기 3년간의 성적표도 참혹하다. 공수처가 직접 기소한 ▶김형준 전 부장검사 뇌물수수 ▶손준성 검사장 고발사주 ▶전 부산지검 검사의 수사기록 위조 의혹 사건 3건 중 아직 1심 재판 중 고발사주 의혹 사건을 제외한 2건 모두 1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지난달 7일 뇌물수수 의혹을 받는 현직 경찰 A 경무관에 대한 2차 구속영장이 서울중앙지법에서 기각된 것을 포함해 공수처 1기가 청구한 5번 구속영장이 모두 기각됐다. 이에 앞서 손준성 검사장(고발사주 의혹) 두 차례, 감사원 간부(뇌물 의혹) 한 차례, A 경무관에 대한 1차 구속영장 청구가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수사력 제로’ ‘성과 제로’ ‘연전 연패’ 공수처란 오명이 1기 3년 내내 따라 붙은 이유다. 이에 “공수처 검사 경력은 ‘물경력’으로 쳐서 퇴직 후 로펌 취업에 불리하다”(전직 공수처 검사)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공수처 위상은 급전직하로 추락했다.
5일 중앙일보가 만난 전‧현직 공수처 검사들은 초대 처장에 헌법재판소 연구관 출신으로 수사 문외한인 김진욱 처장을 발탁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게 공수처 추락의 원인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래도 출범 초기엔 “큰 사건 한 두 개만 잘 처리하면 조직이 자리 잡을 것이란 분위기도 있었다”(전직 공수처 부장검사)고 한다.
그러나 그의 리더십이 문제였다. 김 처장이 수사방향을 놓고 부장검사들과 의견 마찰을 빚었고, 이 과정에서 “(신뢰에) 조금씩 금이 갔다”(전직 공수처 부장검사)고 한다. 한 전직 공수처 검사는 “압수수색을 해야 할 때, 수사를 종결할 때를 정확히 판단해서 결정을 내려줘야 하는데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며 “그러면서 무리하게 성과를 재촉하면서 사건이 망가졌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빠른 수사성과를 내기 위한 조직 운영이 결과적으로 독이 된 일도 있었다. 로펌 시니어 변호사가 특정 사건에서 젊은 변호사들과 한 팀을 이뤄 사건을 처리한 후 팀을 해체하는 것처럼 주요 간부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수사하는 방식을 도입하면서다. 하지만 “공수처 지휘부가 사건에 일일이 관여하면서 중간 간부들의 역할이 모호해졌고, 이에 간부들이 손을 놓아 버리면서 디테일한 수사 실무를 못 챙기면서 각종 잡음이 발생했다”(전직 공수처 부장검사)고 한다.
이에 슬그머니 TF식 수사를 버리고 정규 부서가 수사하는 방식으로 되돌아갔지만, 안팎에서 집중포화 세례를 받은 뒤였다.
수사력 부재와 더불어 사건 선별과 직결된 ‘정치적 중립성’ 논란은 공수처의 존립 근거마저 의심받게 했다. “공수처는 민주당이라는 단골 고객이 없으면 진작 망했을 가게 같다. 민주당과 공수처가 원청과 하청기관 같기도 하다”(국민의힘 조정훈 의원, 지난해 10월 공수처 국정감사)란 비판이 대표적이다.
공수처는 2021년 6월 느닷없이 야권 성향 시민단체 고발을 이유로 검찰총장에서 사퇴한 뒤 3개월 만에 여권 대선주자로 부상한 윤석열 대통령을 무더기 입건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 모해위증교사 수사방해 의혹 ▶고발사주 의혹 ▶옵티머스 펀드사기 부실수사 의혹 등이었다. 공수처는 호기롭게 수사를 개시해놓고 결국 대선을 한 달 앞둔 이듬해 2월 모두 불기소 또는 무혐의 처분으로 종결했다. 대선 이후로도 민주당 의원들의 공수처로 고발 행렬은 계속됐다. 전직 공수처 검사는 “특정 정치세력이 고발하게 되면 멀쩡한 수사도 외압에 따라 움직인다는 이미지를 줘서 흔들리게 된다”며 “민주당 정치인들이 고발장을 들고 찾아 올 때마다 진정 수사 성과를 기대하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특수부 검사 영입해 수사력 개선 시도…평가는 미지수
김진욱 처장은 ‘수사력 부재’ 비판이 커지자 2022년 9월 검찰 특수부 출신 검사를 영입해 뒤늦게 체질 개선을 시도했다. 이때부터 김선규·송창진·박석일 부장검사 등이 차례로 영입돼 공수처 수사 1·2·3부 부장을 맡았다. 특수부 출신의 한 공수처 부장검사는 “외부에서 왔더니 공수처 조직 기강이 느슨하고 검사 개개인에 대한 교육도 잘 안 돼있어 보였다”며 “교육자 입장에서 일선 검사들의 수사를 지휘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검찰 특수부 수사력이 공수처에 전수됐는지 평가는 미지수다. 지난해 11월 감사원 3급 간부의 구속영장 기각과 지난달 A 경무관 구속영장 기각에서 나타났듯 특수부 수사의 본령인 뇌물 수사에서 아무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검찰 조직문화 이식에 비판적인 기류도 존재한다. 한 전직 공수처 검사는 “검찰처럼 수사하면 안 된다는 반성적 차원에서 공수처를 도입했는데 제 2의 검찰이 되면 제도 설립의 근본 취지가 퇴색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중앙일보 박현준 기자
01.08 집 한 채 있다고 은퇴하면 더 늘어나는 건보료, 전면 개편해야
정부가 건강보험 지역 가입자에게 부과되는 건보료 중 보유 자동차에 매기는 보험료를 없애기로 했다. 부동산 등 재산 보유에 따른 부과도 현행 5000만원인 기본 공제를 1억원으로 높여 부담을 낮추기로 했다. 이번 개편으로 300여 만 지역 가입자에게 경감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고 한다. OECD 국가 중 재산에 건보료를 부과하는 나라는 우리와 일본뿐이다. 그중에서도 자동차에 부과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했다. 35년 전, 자동차 소유를 재력 측정의 방편으로 삼은 것이지만 자동차 보급이 늘면서 현실과 맞지 않게 된 불합리한 산정 방법을 고친 것이다.
문제는 건보 재정이다. 이번 개편으로 건보료 수입은 연간 9831억원 줄어들게 된다. 감소분을 어떻게 보전할지에 대한 재정 보완 대책이 필요하다.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 지출을 효율화하면 충분히 보전 가능한 수준”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차제에 불합리한 건보료 부과 전체를 손질해서 합리적 방향의 부과 체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건강보험료는 직장 가입자와 지역 가입자로 나눠 각각 다른 기준으로 부과하는 2중 구조다. 직장 가입자는 소득만을 기준으로 건보료를 물리고 가족에게 광범위하게 피부양자 혜택을 주는 반면, 지역 가입자는 소득은 물론 부동산까지 포함해 건보료를 매겨 왔다. 지역 가입자의 소득 파악이 투명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많이 노출된 재산을 근거로 매겨온 것이다.
이런 이중적 부과 체계 때문에 직장인이 퇴직하면 건보료 폭탄을 두려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직장 그만두고 월 소득은 뚝 끊겼는데 살고 있는 집을 기준으로 건보료를 매기는 바람에 건보료는 훨씬 더 많이 내게 되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불합리한 제도를 선거 앞두고 선심 쓰듯 일부 기준만 바꿀 게 아니라 차제에 다른 선진국처럼 건보료 부과 체계를 소득 중심으로 전면 개편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 보험료율은 어느 정도인지를 전면 검토해서 단계적으로 재산 부과분도 폐지해 나가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1.08 가덕도 신공항 유감
기후 변화·북극 항로
부산항에 큰 기회
말로만 동북아 물류 허브
‘정치 공항’ 급발진하다
바다 위 활주로
1개 황당 국제공항

▲2023년 8월 12일 하늘에서 본 신공항이 들어설 부산 강서구 가덕도와 부산신항(사진 위)의 모습. /김동환 기자
빙하가 녹고 있다. 20일 전 러시아와 중국이 북극 협력을 위해 만났다. 같은 날 미 국무부는 북극 해역의 대륙붕 확장을 선언했다. 러시아는 쇄빙 유조선을 만들고 있다. 세계 2위 해운사인 머스크는 친환경 메탄올 컨테이너선을 진수했다. 기후 변화를 맞아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로 벌어지는 일들이다. 한국도 관여하고 있다.
쇄빙 유조선을 만들었다. 최첨단 메탄올 선박의 절반을 우리가 만든다. 조선업 세계 1등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기까지다. 기후 변화가 지구적 위협일 뿐 아니라 거대한 기회로도 다가오는데 우리는 그걸 전략화하지 못하고 있다. 그 승부처는 부산이다.
세계 물동량의 90%가 바다로 이동한다. 뛰어난 정치 지도자의 통찰력과 치밀한 전략 덕에 바닷길에서 가장 성공한 브랜드가 싱가포르항이다. 세계 2위 컨테이너항, 1위 환적항이다. 부산은 세계 7위 컨테이너항, 2위 환적항이다. 싱가포르는 국토 면적(740㎢)이 부산(771㎢)과 비슷하다. 제조업이 24%에 불과하고 서비스업이 71%를 차지하는 경제 구조도 비슷하다. 좁은 땅에 제조업이 한계에 봉착하자 물류, 금융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으로 비약적 성장을 해 아시아 최고 부자가 됐다. 지난해 싱가포르의 1인당 GDP는 9만달러가 넘는다. 부산의 3배 가까이 된다. 부산항과 싱가포르항의 격차는 양적 차이만은 아니다. 서비스 품질과 항만 연관 산업에서 만들어내는 부가가치도 차이 난다. 최첨단 투아스항도 건설 중이다. 한국 기업이 짓는다. 세계 일류 항만 건설, 세계 일류 선박 건조를 다 한국 기업들이 하는데 정작 바다를 경영하는 항만·해운에서 우리는 1등이 못 된다.
금세기 지구 온난화가 바닷길을 바꾸고 있다. 북극 얼음이 녹아 북극 항로의 미래 가치가 조망받고 있다. 유럽(로테르담항)에서 아시아(부산항)까지 거리가 6000㎞ 이상, 운항 일수는 10일가량 줄어든다. 싱가포르는 못 누릴 기회가 부산항에 다가오는 것이다. 지구온난화는 선박 종류도 바꾸고 있다. IMO(국제해사기구)의 친환경 규제로 선두 해운사들이 친환경 연료 선박을 주문하는 덕에 한국 조선업이 초호황이다. LNG선에 이어 메탄올, 암모니아 순으로 연료 흐름이 변할 것으로 본다. 지금은 메탄올 초기다. 싱가포르항의 1등 전략을 연구해서 전환기를 포착하면 부산항도 최일류 항만으로 올라설 수 있다.
부산항은 포화 상태에서 도심을 벗어나 서(西)부산 부산신항으로 옮겼다. 여전히 국내 최대 항만으로 선방하지만 미래 경쟁력 확충은 더디게 이뤄지고 있다. 완전 자동화는 광양항에서 먼저 시도되고, 차세대 친환경 연료 공급항 이미지는 울산항이 선점했다. 제2신항은 서부산 옆 진해에 건설된다. 오는 2040년까지 14조원이 투입돼 항만을 건설한다니 경남이 들썩인다. 단견(短見)의 지역 정치인들은 이미 세계권에 든 부산항 통합 브랜드를 키워 글로벌 1등 만드는 게 다 같이 살길이라는 생각보다는 “진해 신항 완성되면 절반 이상이 우리 쪽” “부산 독점 끝내고 항만 자치” 운운하면서 도토리 키 재기 경쟁에 들떠 있다.
부산 신항이 걸쳐 있는 가덕도에 공항 짓는 방안을 민주당 정치인들이 추진하면서 가덕도 신공항은 부산 경남 지역의 숙원 사업으로 여야 가리지 않고 약속한 정치 블랙홀이 됐다. 엑스포 유치가 불발됐지만 윤석열 대통령도 2029년 조기 완공을 약속했다. 얼마 전 민주당 김정호 의원이 ‘노무현의 꿈, 지방균형발전전략을 담다’란 부제로 ‘가덕도 신공항’ 책을 냈다. 노 전 대통령이 추진한 동남권 신공항의 꿈을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백지화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TK 정치공학적 입장으로 김해공항 확장을 결정했는데 문재인 정부가 기사회생시켰다는 내용이었다. ‘2030년 엑스포 유치를 위해 2029년 12월 말까지 개항해야 하는데 일반적인 건설 절차를 따르면 15년은 족히 걸리기 때문에 절차를 생략하고 속도를 냈다’고 예타 면제와 특별법을 통과시킨 과정도 설명했다. 중앙 언론의 비판은 수도권 중심주의에 집착하는 딴지걸기로나 여겨졌다. 그 반대를 뚫고 기적처럼 이뤄낸 ‘노무현 공항’ ‘문재인 공항’처럼 자랑했는데 지난 20년간 부산 출신 대통령이 둘이나 나왔는데도 성장 일로를 걸어온 싱가포르와 정반대로 부산이 성장 동력을 잃어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가덕도 신공항은 일반적 공항과 달리 동서 방향으로 바다 위에 활주로 1본만 건설된다고 한다. 정치 공항으로 급발진한 탓이다. 정치 셈법에는 공항 추진이 유리했겠지만 나라의 지속 발전을 위해서는 부산항을 중심에 놓고 원대하면서도 치밀한 해양 전략을 세우는 것이 우선이었다. 배후 산업 육성안도 더 구체화해야 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필요하다면 공항도 짓고 철도도, 도로도 연결해야 제대로 된 발전안이 나온다. 국토부가 기본계획을 고시하고 천문학적 세금을 들여 삽을 뜬다니 지금이라도 2029년 말 조기 개항에 집착하지 말고 환경과 안전을 감안하고 추후 확장 가능성도 고려해서 신중하게 제대로 된 신공항을 짓는게 낫다.
조선일보 강경희 기자
01-08 우여곡절 끝 우주청법 처리, 野의 발목잡기 더는 없어야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8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를 열어 ‘우주항공청 설치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을 처리하고, 9일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기로 합의했다. 우여곡절 끝에 뒤늦게라도 입법되는 것은 다행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에 우주청(청장 차관급)을 신설하는 이 법안은 윤석열 대통령 공약인 데다, 설치 자체에 대해선 여야 이견이 없고, 여러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0%가 찬성한 사안이다.
그러나 우주청을 어디에 둘지를 놓고 경남 사천과 대전의 기싸움이 벌어졌고,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한국천문연구원 이관 과정에서 노조 반발이 일어났다. 특히 국회 과방위 더불어민주당 간사이자 항우연과 천문연이 있는 대전 유성구의 조승래 의원이 반대 총대를 메면서 9개월 넘게 표류해 왔다. 그러는 사이 일본·러시아·인도가 달 착륙 경쟁을 벌이고, 중국은 달의 희토류 개발을 위해 무인탐사선을 발사키로 하는 등 우주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한국도 지난해 독자 기술로 개발한 누리호가 3차 발사에 성공했고, 무인 달 탐사선인 다누리가 달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 하지만 달 착륙 및 탐사 등 글로벌 일류 진입을 위해선 갈 길이 멀다. 7월에 우주청법이 시행된다고 해도,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는 말처럼 각종 시행령과 규칙 등을 둘러싼 이견도 적지 않다. 전남 고흥의 나로우주센터 등과 연계한 남해안 우주산업 벨트는 국가의 또 다른 백년대계다. 야당의 발목 잡기 행태가 더는 없길 바란다.
문화일보 사설
01.09 요건 조금 올렸더니 선거 여론조사 업체 3분의 1 퇴출
4·10 총선이 석 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중앙선관위가 등록된 88개 여론조사 회사 중 34%에 해당하는 30개 업체를 곧 퇴출시키기로 했다. 선관위 산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여심위)는 전문성이 부족한 업체들이 많아 선거 여론조사의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에 따라 이같이 조치했다. 여심위가 등록 여건을 ‘분석전문 인력 3명 이상, 상근 직원 5명 이상, 연간 매출액 1억원 이상’으로 올리자 등록업체 중 3분의 1이 이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이 중 전화자동응답조사(ARS)만 운용하는 업체가 19개, 전화 면접조사만 하거나 병행하는 업체는 11개였다.
등록 요건이 크게 강화된 것이 아닌데도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그동안 전문성과 신뢰도가 떨어지는 업체에서 상당수 선거 여론조사를 해왔다는 뜻이다. 등록이 취소되는 20개 회사는 2021년 이후 선거 여론조사 실적이 전혀 없었다. 지역 여론조사 의뢰가 많은 총선 때만 한몫 노리는 ‘떴다방’식 조사 업체가 많았다는 것이다.
일부 자격 미달 업체들이 벌여온 황당한 행태는 일일이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다. 2022년에는 노무현 청와대 행정관으로 일했던 친민주당 인사가 대표로 있는 여론조사 회사가 취임한 지 반년밖에 안 된 윤석열 대통령 탄핵 관련 조사를 했다면서 ‘윤 대통령 탄핵론 과반, 전 지역·세대서 공감’이란 내용을 발표하자 이 기사가 좌파 매체들을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특정 정파의 스피커 역할을 하는 유튜버가 버젓이 선거 여론조사 회사를 운영하기도 한다. 일부 후보자에게 유리한 질문 문항을 만들어 결과를 유도하거나 표본을 추출하는 등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치와 선거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신뢰한다는 응답은 40%로 다른 분야에 대한 여론조사 신뢰도에 비해 20%포인트 정도 낮았다.
선거 여론조사의 객관성, 신뢰성이 없으면 선거 자체의 신뢰성에 흠집이 생기게 된다. 이번에 퇴출되는 업체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특정인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설문을 구성하고, 민심과는 다른 결과가 나오도록 편향적인 표본을 추출한 사실이 밝혀지면 영구 퇴출시키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여심위의 권한과 역할을 확대해 설문 구성 및 표본 추출이 공정한지 면밀하게 들여다봐야 하고, 조사 방법도 전화 면접을 대폭 늘리도록 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1.09 “한국만 소득 3만5000달러 덫에… 유일한 탈출법은 규제 개혁뿐이다”
김준영 성균관대 명예교수 성장동력 부활의 해법
작년 한국 성장률은 1.4%로 추정된다. 오일쇼크, 외환 위기, 글로벌 금융 위기, 코로나 위기 등 경제 충격을 받은 때를 빼곤 가장 낮다. 올해 성장도 2% 초반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물가 잡느라고 허리띠를 졸라 매서 생긴 일시적인 성장 둔화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경제 기초 체력에 해당하는 잠재성장률은 추세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추정에 따르면, 작년과 올해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1.9%, 1.7%에 머무른다. 한국은행도 2000년대 초반 5%에 가깝던 잠재성장률이 지금은 2%라고 추정하고 있다. 40년 가까이 한국 경제를 연구해 온 원로 거시경제학자 김준영 성균관대 명예교수(전 성균관대 총장)는 아무리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굴레에 묶였다고 해도 적어도 한 해에 2.5% 이상은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 교수를 지난달 29일 만나 성장률 하락의 대책은 무엇인지 들어봤다.

▲지난달 29일 서울 조선일보미술관 인근에서 원로 경제학자 김준영 성균관대 명예교수(전 성균관대 총장)가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김지호 기자
◇10년마다 2%p 낮아진 성장률
- 한국의 저성장 추세를 어떻게 보나.
“김세직 서울대 교수는 ‘5년 1% 성장률 하락의 법칙’을 얘기한다. 그런데 내가 분석해 보니, 1990년 이후 10년마다 2%포인트씩 평균 성장률이 하락했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이렇게 봐야 원인과 연결이 잘된다. 시기별 원인을 보면, 1990년대는 노동 투입이 둔화됐고, 2000년대 들어선 자본 투자의 성장 기여도가 낮아졌다. 민주화 이후 노조의 힘이 강해졌고, 외환 위기 이후 국내외 투자가 부진한 영향이다. 2010년대 이후엔 총요소생산성의 성장 기여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 총요소생산성 하락은 쉽게 말해 기술 혁신의 부진 아닌가.
“일반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는데, 좀 더 넓게 봐야 한다. 물론 기술 혁신이 총요소생산성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정책이 단절되고 경제적 교란이 뒤따르면서 생산성 측면에 영향을 미친 것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사회 갈등과 분열을 조정하는 능력을 보강하는 것도 총요소생산성을 높이는 데 고려할 점이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 선진국이 되면 성장이 더뎌진다고 한다.
“실제 G7(주요 7국)을 대상으로 분석해 보니, 1인당 소득이 증가하면서 성장률이 대체로 하락했던 추세를 발견할 수 있다. 1987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솔로가 얘기했듯이 선진국으로 가면서 임금이 올라가고 혁신이 정체되면서 성장이 떨어지는 게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따져보면 모든 G7이 그런 게 아니었다. G7 국가들의 1인당 소득이 지금 우리와 비슷한 3만5000달러 정도 됐을 때를 보면, 미국·영국·캐나다는 다른 나라들이 1~2%대를 보이며 성장률이 하락했던 추세와 달리 상대적으로 높은 2~3%대 성장률을 보였다. 한국은 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 미국, 영국 등은 뭐가 달랐나.
“미국의 1인당 소득이 약 3만5000달러에 도달한 시기는 로널드 레이건 정부 때인 1980년대 중반이었다. 영국은 토니 블레어 정부 때인 1990년대 말이었다. 두 정부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기조로 과감한 규제 개혁을 하고, 일하는 사람들에게 복지 혜택이 돌아가게 하는 생산적 복지 체계를 다지는 데 앞장섰다.”
- 우리 경제는 어느 정도 성장해야 하나.
“IMF(국제통화기금), 한국은행, KDI(한국개발연구원) 등은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을 2% 내외로 본다. 잠재성장률은 물가를 안정시키면서 달성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성장률이다. 하지만 나는 한국이 이보다 성장률을 높일 수 있다고 본다. 번영을 통해 미래 행복과 계층, 세대 간의 융화, 개인과 공동체를 묶는 공감을 확장하려면 경제 성장의 질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고용 확대와 소득 증대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한국의 성장률은 2.5% 이상으로 유지돼야 할 것으로 본다. 미국, 영국 등 일부 G7도 우리와 비슷한 소득일 때 2~3%대를 유지했다는 걸 기억하자.”
◇새로운 성장 동력 찾기
- 기술 혁신 위주의 슘페터적 성장으로 가야 하나.
“물론 기술 혁신을 바탕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새로운 산업을 촉발시켜야 한다. 그렇지만 분업과 무역을 중시하는 애덤 스미스가 얘기한 방식의 성장도 간과해선 안 된다. 오늘날 스미스적 성장은 국제 분업과 공급망 연결을 통해 수출 시장 확장으로 발전되고 있다. 생산성 혁신과 수출의 성장 기여도를 높이려면 스미스적 성장과 슘페터적 성장 모두 우리에게 유효하다.”
- R&D에 돈 쓴다고 기술 혁신이 되나.
“우리나라의 GDP(국내총생산) 대비 R&D 투자 총액 비율은 OECD 국가 중 2위지만, 연구의 질을 나타내는 지표는 하위권이다. 예컨대 미국 특허 중 국제 공동 특허 비율은 34위, 논문당 피인용 수는 25위다. 투자 대비 성과가 낮다. 지금은 R&D에 대해 사후 평가를 하는데, 사전에 어디에 투자할지를 강도 높게 따져봐야 할 것 같다. R&D 투자를 선정할 때 진짜 그 기술이 얼마나 도전적이고 국가 비전과 관련이 있는지 저울질해야 한다는 것이다.”
- 인적 자본도 중요하지 않은가.
“1995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루커스는 성장에 있어 인적 자본 역할을 중시했다. 특히 루커스는 인적 자본을 기반으로 성장을 이룬 대표적인 국가로 한국을 꼽았다. 앞으로 21세기 한국의 성장 궤도에서 인구 감소로 인해 인적 자본이 양적으로 축소되지만, 교육과 노동 개혁을 통해 인적 자본을 질적으로 고급화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인적 자본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양적으로도 청년, 여성을 넘어 해외 인력까지 활용할 수 있게 과감한 개방 정책을 펴야 한다. 종합적인 인구 정책의 컨트롤 타워로 ‘인구부’를 설치할 필요도 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성장세 유지하는 선진 경제
- 한국이 선진 경제가 되려면 뭐부터 바꿔야 할까.
“두 가지다. 첫째, G7 수준으로 규제를 없애야 한다. 혁신 타깃을 선진 경제인 G7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G7 국가들에 없는데 우리가 하고 있는 규제가 있다면 모두 철폐한다는 각오로 움직여야 한다. 예컨대 G7 국가들은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비즈니스와 서비스 생태계를 자유롭게 확장시키고 있는데, 한국은 공유 숙박, 비대면 진료, 대형 유통업, 플랫폼 기업 등에서 관련 부처 간 이견과 기득권 마찰로 규제를 걷어내지 못하고 있다. 둘째, 양극화 해소를 위해 사회 안전망을 튼튼히 해야 한다. 선진국들의 역사적 경험을 보면, 경제 발전으로 인한 양극화가 심화되면 사회적인 갈등과 분열의 원인이 됐다. 역시 사회적 포용성을 넓히는 사회 안전망도 G7 수준으로 두껍게 다져야 한다.”
- 소프트 파워를 키우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
“2023년 영국 브랜드 파이넌스가 발표한 글로벌 소프트 파워 평가에서 한국은 15위를 기록했다. G7보다 아래고, 경제력이 세계 12~13위권인 것보다 낮다. 다만 최근 K컬처가 해외에서 확산되고 있다. 한국은 디지털 기반의 제조 강국이다. 이를 K컬처와 잘 접목해 소프트파워 강국의 위상을 높여가는 게 바람직하다.”
- 경제에 돈을 공급하는 금융 파워는.
“금융의 힘을 강하게 하려면 우선 글로벌 잣대로 금융 규제를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최근 중국의 규제가 강화되는 홍콩에서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나와 싱가포르로 이동하는 걸 보면 금융에서 자율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둘째, 벤처 금융을 키워야 한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하는 벤처와 스타트업에 힘을 실으려면 벤처 금융을 키워야만 한다.”
- 새 성장 동력을 찾으려면 한국의 성공 공식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한국처럼 21세기에 각광받을 첨단 산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한 나라는 드물다. 한국은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6G(6세대 이동통신) 등 첨단 산업을 모두 갖고 있다. 이 미래 첨단 산업들이 중견, 중소 기업들과 협업해 글로벌 정상급 기업을 만들어 낸다면 이게 가장 큰 성장 동력이 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성장 동력은 AI(인공지능)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AI 기반 경제를 확산해 스마트하게 일하며 생산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 아울러 사회적 소음이나 정치적 혼란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
☞스미스적 성장과 슘페터적 성장

▲애덤 스미스, 조셉 슘페터
스미스적 성장은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왼쪽>가 얘기한 성장 방식으로, 분업과 무역을 통해 경제가 성장하는 것을 가리킨다. 슘페터적 성장은 ‘창조적 파괴’를 주장한 경제학자 조셉 슘페터<오른쪽>가 얘기한 성장 방식으로, 기술 혁신을 통해 성장하는 것을 가리킨다.
☞총요소생산성
성장에 기여하는 요소 중 노동, 자본을 제외한 모든 것을 가리킨다. 통상 기술 혁신에 따른 생산성 증가를 가리키지만, 노동자의 업무 역량부터 기술력, 노사 관계, 경영 체제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반영된다.
☞김준영 교수는
국내 대표적인 거시경제학자로 꼽히는 김준영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성균관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학부 재학 중인 1973년에 행정고시에 합격했고 학부 졸업 후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경제학 석·박사를 마쳤다. 김 명예교수는 성균관대 총장과 이사장,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선진국 경제의 품격’, ‘한국경제, 대전환의 기회’, ‘한국의 물가경제’, ‘여성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 등이 있다.
조선일보 방현철 기자
01-09 李 선거법 재판 16개월 끌다 사표 낸 판사, 이게 사법농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재판장인 강규태 서울중앙지법 형사34부 부장판사가 최근 사표를 제출했다고 한다. 강 판사가 이 대표 재판을 무려 16개월이나 질질 끌다가 사의를 표함으로써 4·10 총선 전 선고는 힘들게 됐다.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여부는 본인의 유무죄는 물론 제1 야당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더욱 신속한 판결이 요구됐다. 그러지 않아도 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해선 ‘1심을 6개월 내에 반드시 하여야 한다’고 선거법 제270조에 규정돼 있는 만큼, 재판부는 재판을 최대한 신속히 진행할 의무가 있다.
사건이 복잡하면 불가피하게 재판 기간이 길어질 수는 있다. 그러나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은 법리와 증거 측면에서 비교적 간단하다. 이 대표가 대장동 개발의 핵심 실무자였던 고(故)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을 알았는지, 백현동 토지 용도 4단계 상향이 국토교통부 협박 때문인지 여부를 가리면 된다. 2022년 9월 기소된 이 사건은 준비 기일만 6개월 걸렸다. 선거법 위반 사건은 1주일에 2번 재판을 여는 게 보통인데, 강 판사는 거꾸로 2주에 1번 심리를 진행했다. 고의 지연 의혹을 받기에 충분하다. 이런 일이야말로 사법의 정치화, 사법 농단 아닌가. 사표를 내는 것은 당연히 자유지만, 전남 해남 출신의 50대 초반 판사로서 한창 일할 시기라는 점에서 사표 배경에 대한 의구심도 커질 수밖에 없다. 대법원장은 강 판사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엄정한 감찰 등을 통해 직무유기나 직권남용 소지가 없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전임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에서 울산시장선거 개입 사건 1심에 3년10개월, 조국 자녀 입시비리 사건 1심 선고에 3년2개월, 최강욱 전 의원의 조국 아들 허위 인턴 확인서 발급 사건 확정에 3년8개월 걸렸다. 정치 성향 판사들의 이런 원님 재판 행태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문화일보 사설
01.10 李 선거법 재판 16개월 끌다 사표, 강규태 판사의 사법 농락 가담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 재판장인 서울중앙지법 형사34부 강규태 부장판사가 다음 달 법관 정기 인사를 앞두고 사표를 냈다고 한다. 이 사건 재판을 16개월을 끌다 선고도 안 한 상태에서 사표를 낸 것이다. 선거법 위반 사건은 신속한 재판을 위해 1심을 6개월 내에 끝내도록 법에 규정돼 있다. 강 부장판사는 이미 10개월 동안 위법을 저질렀다. 판사로서 일말의 책임감이나 양심이 있었다면 늦었더라도 선고는 자신이 해야 한다. 그런데 선고는 고사하고 재판도 마무리하지 않은 채 사표를 내 버렸다. 중요 사건 재판장이 이 정도로 무책임한 행태를 보인 것은 유례가 드물다.
사건이 복잡한 것도 아니다. 이 사건은 지난 대선 때 이 대표가 대장동 핵심 실무자를 몰랐다고 하고, 국토부 협박으로 백현동 개발이 이뤄졌다고 말해 허위 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이 대표가 몰랐다고 한 대장동 실무자와 외국 여행을 가 같이 골프를 한 사실 등이 다 드러나 있다. 오래 걸릴 재판이 아니다. 그런데 강 부장판사는 정식 재판에 앞서 사건 쟁점을 정리하는 공판 준비 절차를 6개월이나 진행했고, 처음부터 ‘2주에 1회’씩 재판 기일을 잡았다. 작년 8월 이후엔 이 대표의 단식 등을 이유로 재판을 두 달 넘게 미뤄주기도 했다. 작년 10월엔 “주 1회 재판을 고려해 달라”는 검찰 요청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선고를 한다면 이 대표에게 유죄를 내리지 않을 수 없으니 애초부터 선고를 안 하려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더 심각한 문제는 강 부장판사와 함께 이 재판부 배석 판사 2명도 다음 달 교체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통상 형사합의부 재판장은 2년, 배석 판사는 해마다 교체하는 법원 내규 때문이다. 중요 사건 재판은 재판 진행 과정에서 있었던 일이나 진술의 뉘앙스 등도 판사의 유무죄 판단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런데 재판부가 통째로 바뀌면 이런 과정이 다 끊기고 재판은 더 늘어지게 된다. 이 자체로 불의이다. 이 사건 재판의 진행 과정을 보면 이것은 불의를 넘어서 사법 농단, 사법 농락에 해당된다.
조선일보 사설
01.10 ‘이재명 선거법’ 판사 사표 파문… 법조계 “정치인 눈치 보기 심각”
선거법 사건 1심, 6개월 기한 넘겨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1심 재판을 16개월간 맡아온 강규태 서울중앙지법 형사34부 부장판사가 사표를 내면서 이 재판이 지연될 것으로 9일 전해졌다. 선거법 재판은 6개월 안에 1심 판결을 선고하게 돼 있는 법 규정을 이미 어긴 상태인데 다음달 정기 인사로 판사가 새로 오면 그동안 진행된 재판 녹음을 법정에서 재생하는 등 사실상 재판을 새로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지난 대선 때 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로 지난 2022년 9월 기소됐다. 혐의는 크게 두 가지다. 대선 당시 방송에 나와 대장동 개발의 핵심 실무자였던 고(故)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을 성남시장 시절에 몰랐다고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가 적용됐다. 또 백현동 아파트 특혜 개발과 관련해 국토부로부터 “부지 용도를 상향 조정하지 않으면 문제 삼겠다”는 압박을 받았다며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도 받았다.
강 부장판사가 맡은 재판은 지금까지 절반쯤만 진행이 됐다. 재판 초기에 쟁점과 증거를 정리하는 공판 준비 기일에만 6개월이 걸렸다. 유무죄를 가리는 정식 재판도 2주에 1회씩만 열었다. “주 1회 재판을 해달라”는 검찰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결과 이 대표가 김문기씨를 몰랐다고 한 혐의를 심리하는 데에만 1년 넘게 걸린 것이다.
법원 내부에서도 “저런 식으로 재판을 지체하다가 나가버리면 동료 판사들에게 엄청난 부담을 주는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에 대해 강 부장판사는 “사건 진행을 느리게 한다고 비난을 하니 참 답답하다. 증인이 50명 이상인 사건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라는 내용의 글을 대학 동기 단체 대화방에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법원은 이 대표의 ‘위증 교사 사건’에 대한 재판을 ‘대장동 사건’ 등 다른 재판과 분리해서 재판하기로 결정하는 데에도 한 달 가까이 시간을 끌었다. 법조계에서는 “정치인 관련 중요 사건에서 법원이 의도적으로 눈치를 보면서 재판을 지연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있었다.
이런 일은 문재인 정부 시절 김명수 당시 대법원장 시절부터 있었다.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 김미리 부장판사는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1심 재판에서 공판 준비 기일로만 15개월을 보냈다. 그러면서 이 사건 1심 판결이 선고되는 데 46개월이 걸렸다.
조선일보 방극렬 기자
01-10 사표 낸 이재명 판사 남긴 말 “사또도 아니고…하여간 난 자유”
강규태 부장판사, 지인들과 단체 대화방서 호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재판을 담당하던 강규태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가 최근 사표를 제출한 가운데, 강 부장판사는 ‘재판 고의 지연’ 등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의혹에 대해 지인들과 단체 대화방에서 답답함과 억울함을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 부장판사는 “내가 사또도 아니고. 이제는 자유를 얻었다”고 밝혔다.
최진녕 변호사는 9일 유튜브 채널 ‘이봉규TV’에서 강 부장판사가 서강대 법학과 동기 단체 대화방에 올린 메시지를 공개했다. 최 변호사와 강 부장판사는 서강대 법학과 90학번 동기다. 1971년생 동갑이기도 하다. 이 단체 대화방에는 40여 명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 변호사에 따르면 강 부장판사는 이날 이 단체 대화방에 “어제 주요 일간지에 난대로 2월 19일 자로 명예퇴직을 한다. 일반적인 판사들의 퇴직 시점을 조금 넘겼지만, 변호사로 사무실을 차려 새로운 삶을 살아보려고 한다”고 전했다.
이 대표 재판을 담당한 자신을 향한 일각의 의혹 제기에 대해 답답함도 호소했다. 강 부장판사는 “상경한 지 30년이 넘었고, 지난 정권에 납부한 종부세가 얼만데, 결론을 단정 짓고, 출생지라는 하나의 단서로 사건 진행을 억지로 느리게 한다고 비난을 하니 참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내가 조선 시대 사또도 아니고 증인이 50명 이상인 사건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참 원. 하여간 이제는 자유를 얻었으니 자주 연락할 기회가 있지 않을까 싶다. 다들, 새해 건강하고 복 많이 받길 바란다”고 인사를 남겼다. 동기들은 강 부장판사에게 ‘고생했다’며 격려하는 메시지를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최 변호사는 “본인의 고향(전남 해남)으로 오해받은 데 대한 서운함, 또 증인이 50명이나 되는 상황에서 ‘원님 재판’을 할 수는 없지 않으냐며 답답함을 토로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강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의 재판장으로 재직했다. 이 재판부는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관련 재판 심리를 맡고 있다. 지난해 초부터 해당 사건을 심리해왔다.
문화일보 임정환 기자
01.10 어느 신참 판사가 겪은 황당 사건
신참 판사가 한 주에 6건 선고하자 동료 판사들 “그러면 안 된다”
‘3건 룰’ 내세워 하향 평준화 요구… 사건 처리 담합하더니 압박까지
대형 로펌 변호사로 있다가 지난해 판사가 된 사람이 얼마 전 겪은 일이다. 수도권 법원 민사합의부에 배치된 그는 일주일에 6건가량을 선고했다고 한다. 대단한 사명감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로펌에서 일하던 정도만 하면 간단한 사건들은 그 정도 선고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한다. 그런데 동료 배석판사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에게 “그러면 안 된다” “당신이 그러면 우린 뭐가 되느냐”고 했다고 한다. 전국 법원 민사합의부에서 불문율로 자리 잡은 ‘일주일에 3건 선고’ 룰을 깼다는 것이다. 당황한 그는 왕따가 될까봐 선고 건수를 절반으로 줄였다. 동료 판사들의 ‘하향 평준화’ 요구에 맞춘 것이다. 무조건 선고를 빨리 한다고 좋은 건 아니지만 충분히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이 ‘3건 룰’은 지난 ‘김명수 사법부’에서 생긴 것이다. 워라밸을 중시하는 배석판사들이 야근을 밥 먹듯 했던 과거 근무 관행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만들었고, 이들을 이끄는 부장판사들은 “어쩔 수 없다”며 묵인했다. 판사들이 사실상 일 적게 하자고 담합한 것이다. 그러더니 이젠 그걸 지키지 않는다고 동료 판사를 압박하는 일까지 생겼다. 판사들이 이래도 되나. 이례적인 경우일 수 있지만 그런 분위기가 있다는 자체가 심각한 문제다.
사실 아주 복잡한 사건은 일주일에 한 건 선고하기도 어렵다. 문제는 정량적으로 3건 룰을 정한 데 있다. 판사들이 그 수치만 맞추려고 쉬운 사건만 먼저 선고하게 돼 자연스럽게 장기 미제 사건이 늘게 된 것이다. 2년 내에 1심 판결이 나오지 않은 장기 미제 민사 사건이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후 5년간 3배로 늘어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같은 기간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부에서 5년 넘게 판결을 내리지 않은 ‘초장기 미제’ 사건도 5배가량 늘었다. 판사는 편해졌지만 사건 당사자들은 재판 지연으로 고통받게 된 것이다. 지금도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판사들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판사들이 는 것 또한 사실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신속·공정한 재판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있지만 이 분위기를 깨지 않으면 재판 지연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다.
과거 법원은 고법 부장판사 승진제로 판사들을 독려했다. 능력 있고 성실한 판사들을 차관급 고법 부장판사로 승진시키는 제도였다. 하지만 사법 관료화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있어 결국 김 전 대법원장 때 폐지됐다. 장단점이 분명한 제도여서 되살리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제대로 판사들을 평정해 연임·보직·전보 등 인사에서 이익과 불이익을 주면 된다.
법원조직법에도 판사 평정을 실시해 그 결과를 인사 관리에 반영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김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장을 판사 투표로 뽑는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실시하면서 평정권자인 법원장들이 판사들 눈치보느라 평정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러니 워라밸에만 관심 두는 판사가 늘어나고, 사명감 갖고 일하는 판사들은 “문제 법관을 걸러내지 못하는 상황에 힘이 빠진다”고 한 것이다. 더구나 우리법·인권법 출신 등 특정 성향 판사들만 중용하는 ‘코드 인사’로 일선 판사들의 박탈감은 더 커졌다. 법원장들이 평정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은 법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법대로 해야 한다.
판사들도 ‘3건 룰’을 폐지해야 한다. 이건 암묵적인 룰일 뿐이어서 판사들이 없애겠다고 하면 그만이다. 신속·공정한 재판은 헌법이 규정한 판사의 책무인데 이런 룰이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판사는 단순한 직업인이 아니다. 국가를 지탱하는 사법의 중추다. 그런 사명감을 판사들이 회복했으면 한다.
조선일보 최원규 논설위원
01-10 폭증하는 초격차 기술 도둑… 높은 ‘法의 담장’ 없인 못 막는다

▲반도체 공장 설계자료 해외유출 수사결과 발표하는 수원지검박진성 수원지검 방위사업·산업기술범죄수사부장이 12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검찰청에서 국가 핵심기술인 반도체 공장 설계자료 해외유출사건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23.06.12. 사진=뉴시스
지난해 한국의 반도체 기술을 해외로 빼돌리다 적발된 건수가 13건으로 역대 최다였다고 한다. 수출의 20%가량을 차지하는 핵심 산업의 첨단기술을 탈취하려는 시도가 그만큼 많아졌다는 뜻이다. 국내 기업에서 일하던 이들이 기술을 빼내 중국 등지로 이직하는 경우가 많다. 매국적 산업스파이에 대한 처벌 강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연간 1건꼴이던 반도체 기술의 해외 유출은 2019∼2021년 연간 3∼6건으로 늘더니 재작년엔 9건, 작년에는 13건까지 증가했다. 작년까지 6년간 적발건수 96건 중 반도체가 38건으로 가장 많았고 디스플레이, 자동차, 2차전지 등 다른 산업의 유출 사례도 늘고 있다. 삼성전자의 전 부장급이 중국기업으로 이직하면서 18나노 D램 공정 정보를 넘긴 것이나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전 직원이 한국형 잠수함 설계도면을 대만에 통째로 넘긴 건 해당 기업에 피해를 줄 뿐 아니라 국가안보까지 심각하게 위협한다.
현행 산업기술보호법은 국외로 기술을 유출한 자는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억 원 이하의 벌금’, 국가 핵심 기술을 빼낼 경우에는 ‘3년 이상의 징역’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대법원의 양형 기준은 최고형보다 현저히 낮은 징역 1∼6년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집행유예로 결론 나는 경우가 많다. 심대한 피해를 유발한 중대범죄의 처벌수위로는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이런 점 때문에 국회는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을 논의 중이다. 산업스파이에게 최대 65억 원의 벌금을 물리고, 배상 한도도 손해액의 3배에서 5배로 높이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산업스파이를 간첩죄에 준하는 범죄로 보고 7년 이상 징역형을 부과하는 방안은 논란 끝에 제외했다. 게다가 제보 없이 적발이 힘든 산업스파이 범죄의 특성을 고려해 제보자를 면책해주기로 한 항목을 놓고 여야가 대립하면서 개정안 통과 여부마저 불투명한 상황이다.
동아일보 사설
01-11 테러 용납할 수 없지만 ‘재판 지연돼 범행’ 새겨들어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흉기 테러는 “주관적인 정치적 신념에 의한 극단적 범행”이었으며, 살해 의도도 있었다고 한다. 부산경찰청 수사본부는 10일 그런 결론을 내리고, 범인 김모 씨를 검찰로 송치했다. 이런 식의 정치 테러는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하는 중대 범죄로서, 어떤 경우에도 용인될 수 없다. 가장 강력한 수위로 처벌해 유사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김 씨의 ‘변명문’에 가당찮은 내용이 많고, 테러범의 허튼 신념은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경찰이 발표한 범행 동기 중 “재판 연기 등으로 이 대표가 제대로 처벌되지 않은 점” 부분은 사법부가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많은 국민과 법관은 김명수 사법부 시절의 ‘재판 지연’과 ‘정치 성향 판사’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 재판장인 강규태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사례는 참담하다. ‘1심 선고는 6개월 이내에 반드시 하여야 한다’는 법규를 저버리고 재판을 16개월 끌다가 사표를 냄으로써 4·10 총선 전 선고를 어렵게 만들었다. 법치 선진국에선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강 판사가 스스로 밝힌 해명을 보면 더 황당하다. 대학 동기 SNS 대화방에 ‘내가 조선시대 사또도 아니고 증인이 50명 이상인 사건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등으로 푸념했다고 한다. 증인이 많으면 더 재판을 서둘렀어야 했다. 하지만 통상적인 선거사범 재판처럼 1주에 2번 재판해달라는 검찰의 요청을 무시하고 거꾸로 2주에 1번 재판을 열었다. 그래놓고 고향(전남 해남) 탓에 오해 받는다는 식의 주장도 폈다. 사법 불신은 정치 테러의 또 다른 숙주다.
문화일보 사설
01.11 장난처럼 되는 재판, 판사들 무책임 정치편향 도 넘고 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뉴스1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 1심 재판을 16개월 끌다 선고를 하지 않고 돌연 사표를 낸 강규태 부장판사가 대학 동기 단체 대화방에 해명 글을 올렸다. “내가 조선 시대 사또도 아니고 증인이 50명 이상인 사건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라고 했다. 재판을 의도적으로 지연한 게 아니라 증인이 많아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다. 증인이 많으면 재판 횟수를 늘리면 된다. 하지만 그는 ‘2주에 1회’씩 재판 기일을 잡았다. 애초부터 자신이 선고할 생각이 없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런 사람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부장판사라는 중요 직책을 맡았다.
강 부장판사만이 아니다. 지금 형사재판 중엔 재판이라고 할 수 없는 사건이 적지 않다.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기소된 이화영 전 경기도 부지사 재판도 1심만 15개월째 진행 중이다. 이화영씨가 낸 법관 기피 신청을 기각하는 데 몇 달이 걸렸는데 재개된 재판은 50분 만에 끝났다. 이씨 측이 증인 반대 신문을 할지 말지 정하지 못했다고 했다는 것이다. 재판이 아니라 장난이다. 그런데도 재판부는 끌려다니기만 한다. 이 사건 재판장도 다음 달 법관 인사 때 교체 대상이다. 이씨는 이를 노리고 재판 지연 전략을 펴는데 재판장은 서두르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현 정권 들어 구속 기소된 간첩단 사건 피고인들도 국민참여재판 신청, 법관 기피 신청 등을 통해 재판을 지연한 뒤 전원 석방됐다. 이 재판들도 1심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판사들의 정치적 편향도 심각하다. 서울중앙지법 박병곤 판사는 작년 8월 노무현 전 대통령 부부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법조계 상식을 넘어서는 극단적 판결이었다. 알고 보니 박 판사는 정치적 편견을 여러 차례 인터넷에 올렸던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법원은 ‘엄중 주의’ 처분만 내리고 박 판사에게 판결을 계속하게 했다. 판결을 정치 무기로 사용하는 사람이 지금도 재판을 하고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신속·공정한 재판을 최우선 과제로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판사들 사이에 만연한 무책임, 정치 편향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그 과제는 이룰 수 없다. 유능하고 성실한 판사들은 발탁하고 그렇지 않은 판사에겐 불이익을 줘야 한다. 법원조직법에 그렇게 하라고 돼 있는데 지난 김명수 사법부 때 판사들 눈치 보느라 이를 지키지 않았다.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법관 재임용 심사도 강화해 문제 법관은 탈락시켜야 한다. 무능 불성실 무책임 정치 편향 판사들의 문제가 도를 넘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
01-12 포스코 ‘7억 원 캐나다 이사회’ 용납 못할 부패 범죄다
포스코그룹의 지주회사인 포스코홀딩스가 지난해 8월 캐나다에서 초호화판 이사회를 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오는 3월 임기가 만료되는 현 최정우 회장(CEO)의 3선 셀프 연임 추진이 예상되던 시점에 캐나다에서 5박7일 이사회를 열며 경비를 6억8000만 원이나 썼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7억 원 가까운 경비 가운데 포스코홀딩스 외의 자회사들이 부당하게 절반을 대신 냈다는 의혹과 관련, 최 회장 등 사내·사외이사 12명과 계열사 간부를 포함한 직원 4명 등 16명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입건했다고 11일 밝혔다. 새 회장 선출과 관련, 현직 대학교수인 일부 사외이사의 청탁금지법 여부도 수사 중이라고 한다.
지출 내역을 보면 기가 찬다. 수백만 원짜리 최고급 프랑스 와인을 포함해 한 끼에 2000만 원이 넘는 만찬에다, 광산 시찰과 콜롬비아 대평원 설상차 투어를 위해 전세 헬기를 타느라 1억6960만 원이나 썼다고 한다. 이사회 경비는 전액 포스코홀딩스가 집행해야 했지만, 3억5000만 원만 내고, 나머지는 계열사 포스칸(3억1000만 원)과 포스코(2000만 원)가 부담했다. 정상적 회계 처리가 어렵자 ‘쪼개기 지출’한 것 아닌가. 포스코그룹 모태인 포항제철은 대일 청구권 자금 등으로 설립된 국민 기업임을 돌아보면, 모럴 해저드를 넘어 국민에 대한 배신도 된다.
주인 없는 소유 분산 대기업의 CEO와 사외이사들의 고질적인 유착을 그대로 보여준다. 5일 숙박하면서 식대로만 1억 원 쓴 것은 접대를 넘어 뇌물 수준이다. 중대한 부패 범죄다. 은밀한 청탁으로 보는 게 합리적 추정이다. 최 회장은 셀프 연임 논란 끝에 결국 차기 회장 후보에서 빠지긴 했지만, 그와 가까운 현직 내부 인사들은 후보군에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의 접대를 받은 사외이사들도 참여한 추천위원회는 후보 명단도 밝히지 않고 있다. 이들이 공정하게 새 회장을 선임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극히 어렵다. 포스코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영진과 결탁하기 쉬운 사외이사 중심의 현행 CEO 선출 방식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 초호화판 캐나다 이사회는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엄정한 수사를 통해 일벌백계의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
문화일보 사설
01.13 ‘한 끼 식사 2500만원’ 주인 없는 기업 ‘회장 연임’ 요지경

▲그래픽=이철원
포스코그룹 지주회사인 포스코홀딩스 사외이사들이 지난해 최정우 그룹 회장과 함께 캐나다 관광지로 초호화 여행을 갔던 사실이 드러났다. 1박 숙박비가 175만원인 최고급 호텔에 투숙하고 전세기와 전세 헬기를 띄우는가 하면 한 끼 식사비로 2500만원을 지출하기도 했다. ‘캐나다 광산 시찰’이라지만 실상은 뇌물성 접대 여행이었다. 포스코홀딩스는 평균 연봉 1억여 원을 받는 사외이사 접대 여행에 5박 7일간 6억8000만원을 썼다. 최 회장이 세 번째 연임을 위해 결정권을 쥔 사외이사들을 호화판으로 접대했다는 의혹을 받기에 충분했다. 최 회장은 ‘셀프 연임’ 논란이 일자 최근 연임을 포기했다.
포스코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주인 없는 민영화 공기업에서 CEO와 사외이사들이 한통속이 돼 셀프 연임을 하고 호의호식하는 것은 도덕적 해이일 뿐 아니라 주주에 대한 배신 행위다. 사외이사는 대주주의 경영 독단을 견제하고 경영 투명성을 높이라고 앉히는 사람인데 한국에선 기존 경영진의 거수기로 전락했다. KT, 4대 금융지주 등 주인 없는 대기업에서 CEO가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을 사외이사로 뽑고, 이들을 ‘거수기’ 삼아 셀프 연임을 시도하는 것이 관행처럼 이루어지고 있다.
경영진 견제·감시라는 본연의 기능은 사라진 지 오래다. 4대 금융지주 사외이사들은 최근 3년간 이사회 의결안 3360건 중 단 13건(0.4%)에 대해서만 ‘반대(보류 포함)’ 의견을 냈다. 그사이 은행의 과도한 이자 장사와 성과급 잔치는 계속됐고, 고위험 투자 상품인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를 수십조 원어치나 팔아 고객에게 막대한 손실을 끼쳤다. 금융지주 사외이사는 평균 8400만원의 연봉에다 회의 때마다 100만원 내외의 별도 수당 등 각종 복지 혜택을 누린다.
미국 기업에선 사외이사의 90%를 기업 경영 경험이 풍부한 전현직 CEO 경영자들로 충원한다. 현재와 같은 사외이사 제도는 경영 낭비 요소이며, 주주 가치를 훼손할 뿐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거수기’로 전락한 사외이사 제도를 근본적으로 수술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1-13 포스코 지주 이사회 호화 출장… 이래서 ‘참호’란 말 나오는 것
최정우 회장을 포함한 포스코홀딩스 이사회가 지난해 8월 초호화 캐나다 출장을 다녀온 것과 관련해 경찰이 참석자들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입건했다. 경찰은 5박 7일간 현지에 머물면서 전세헬기 이용, 최고급 호텔비 등에 6억8000만 원을 쓰고, 비용 절반을 자회사들이 나눠 낸 것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소유분산 기업’ 사외 이사들이 평소 거수기 역할을 하면서 과도한 혜택을 누린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경찰에 따르면 포스코홀딩스 이사회 구성원 12명과 회사 직원 4명 등 16명은 작년 8월 6일부터 12일까지 캐나다 밴쿠버, 캘거리 등지를 방문했다. 현지에서 이사회를 한 차례 열긴 했지만 대부분의 일정은 관광, 골프행사 등으로 채워졌다. 도시 간 이동 때에는 50분에 1억7000만 원이 드는 전세 헬기를 탔고, 숙박비로 1인당 하루 평균 175만 원을 썼다. 수백만 원대 최고급 프랑스 와인을 곁들인 식사 한 끼에 2000만 원 넘는 돈을 지불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특히 그룹 지주사인 포스코홀딩스의 이사회 출장비용 절반 가까이를 자회사인 포스코, 캐나다 현지법인인 포스칸이 낸 것은 배임의 소지가 있다. 포스코홀딩스 측은 “현지 사업장 방문을 통해 이사진의 이해도를 높이려던 것”이라고 하지만, 일정의 많은 부분이 호화 관광 등이었다는 점에서 변명의 여지가 별로 없다.
더욱이 출장에 동행한 현직 교수, 전직 관료 등 사외이사 7명은 포스코그룹의 차기 사령탑을 선출하는 CEO 후보추천위원회 멤버들이다. 추천위가 별다른 설명 없이 최근 3연임을 노리던 최 회장을 내부 후보 리스트에서 제외하긴 했지만, 최고경영진과 사외이사들의 밀착관계가 드러남에 따라 남은 선임 과정에서 내외부 후보 간의 공정한 경쟁이 가능할지 의구심이 커지게 됐다.
차기 회장 최종 결정을 앞두고 이번 사건이 불거지자 모종의 외부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하지만 포스코홀딩스 이사회의 호화 출장은 일반인 눈높이로 납득할 수 있는 수위를 크게 넘어섰다. 주인 없는 회사의 대표가 친분 있는 인사들을 사내외 이사로 포진시켜 ‘참호’를 만들고, 경영권 유지를 꾀하는 행태를 방치할 수 없다는 여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동아일보 사설
01.13 불명확한 사실 단정 보도 MBC, 그 자체가 사과할 일
윤석열 대통령의 2022년 뉴욕 방문 당시 불거진 MBC ‘자막 논란’과 관련, 법원이 MBC에 정정보도를 하라고 판결했다. 당시 MBC는 명확히 판독되지 않은 윤 대통령 발언을 보도하며 ‘(미국) 국회에서 이 ××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는 자막을 달았다. 대통령실은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고, 미 의회가 아닌 우리 국회를 지칭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실제 음성 파일을 들어보면 무엇이 진실인지 도저히 가릴 수 없다. 법원이 선임한 외부 전문가 역시 ‘감정 불가’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도 “보통 사람이 듣기에 명확하지 않다”며 “이를 확정적으로 보도한 MBC 측도 너무 나간 것”이라고 했다.
언론이 취재·보도하는 과정에서 오보가 나올 수 있다. 시간에 쫓기거나 의욕이 앞서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불명확한 문제를 단정적으로 보도한 것이 밝혀지면 그 자체로 일단 사과하는 게 옳다. 그런데 MBC는 “잘못된 1심 판결을 바로잡기 위해 곧바로 항소하겠다”고 했다. 항소는 권리이지만 MBC의 경우엔 그런 원칙론으로만 볼 수가 없다.
지난 총선을 앞두고 종편 기자와 한동훈 검사장이 총선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음모를 꾸몄다는 이른바 ‘검언 유착’ 의혹을 먼저 보도한 곳도 MBC였다. 해당 기자의 무죄 확정 판결로 ‘검언 유착’이 실체가 없었다는 게 밝혀졌는데도 아직 사과가 없다. 김건희 여사 논문 논란을 다룬 방송에선 김 여사와 내부 제보자들이라며 등장시킨 인물이 대역 배우였는데도 이를 알리지 않았다.
MBC는 기자들이 당파로 나뉘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내 정권 교체’가 이뤄져 왔다고 한다. 이번엔 윤석열 정부가 취임한 뒤에도 문재인파 기자들이 여전히 득세하면서 정부 비판이 아닌 정파적 보도를 하고 있다. 슬리퍼 차림으로 팔짱을 낀 MBC 기자가 대통령을 향해 언성을 높인 장면이 지금 MBC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강준만 교수는 “민주당 편을 드는 게 방송 민주화인 것처럼 행동한다” “공정성을 유린하는 MBC의 과도한 당파성을 지켜보는 게 괴롭다”고 했다. 이 말은 조금도 지나치지 않다.
조선일보 사설
01-16 3년간 유죄 0… ‘빈손퇴임’하는 공수처장
■ 김진욱 공수처장 기자간담회
“건수보다 기반마련 중요시해
나중에 역사의 평가 받을 것”
구속영장 청구 5회 전부 기각
법조계 “옥상옥 우려 현실화”
오는 20일 퇴임을 앞둔 김진욱(58·사법연수원 21기) 초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임기 내내 끊이지 않은 수사력 논란에 대해 “나중에 역사의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하거나 구속영장을 발부한 공수처 수사 사건이 없어 김 처장이 빈손으로 퇴임하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처장은 16일 오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공수처 정례브리핑에 직접 참석해 지난 3년간의 소회를 밝혔다. 그는 이 자리에서 “(초대 처장으로) 인적·물적·규범적·시스템적 기반을 마련했다”며 “사건 1~2건 하는 것보다 기반을 마련하는 게 중요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어어 “공수처에 뭐가 중요하냐 말씀 들리면 독립성, 중립성, 수사능력 이런 우선순위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취임 후 3년 동안 ‘수사력 부재’라는 혹평에 시달린 것을 의식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그는 공수처를 향한 비판에 대해 “겸허히 받아들인다”면서도 “사건 한 건 한 건이 민감하고 정치적 함의가 있어 검찰과 대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수사 중압감이 굉장하지만, 수사 여건은 좋지 않다”며 “공수처 검사는 임기가 3년으로 제한된 ‘평생직장’”이라고 언급했다. 공수처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을 다루고, 검사 임기도 짧아 어려움이 많았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김 처장은 임기 동안 원년 멤버 검사 13명 중 2명을 제외한 전원이 퇴직했고, 내부에서 김 처장을 향한 공개적 비판이 나와 조직 관리도 실패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수사와 기소 권한이 달라 혼선이 빚어지고, 타 기관과 협력관계가 논란이 됐던 데 대해서는 “학계에서 입법적 해결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 처장 임기 동안 공수처는 직접 기소한 사건에서 유죄를 받아내지도 못했고, 청구한 구속영장도 모두 기각됐다. 공수처는 2021년 1월 출범 후 △김형준 전 부장검사 뇌물수수 △손준성 검사장 고발 사주 의혹 △전 부산지검 검사 수사기록 위조 의혹 사건 등 3건을 직접 수사하고 기소했다. 고발 사주 사건은 현재 1심 판결이 나오지 않았고, 나머지 2건은 모두 2심까지 무죄가 선고됐다. 총 5차례 청구한 구속영장도 모두 기각됐다. 손 검사장에게 두 차례, 뇌물 혐의 경찰 경무관과 감사원 간부에게 각각 두 차례와 한 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모두 기각했다. 이를 두고 ‘5전 5패’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최근 검찰과 공수처가 수사 자료 수령을 놓고 갈등을 빚기도 했는데 ‘옥상옥’이라는 우려가 현실화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선형 기자 linear@munhwa.com
01-17 유죄 0건, 구속 0건… 공수처 3년 ‘빈손’ 성적표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이 16일 오전 정부과천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제공)
20일 퇴임하는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어제 기자간담회에서 수사력 부재 등 비판에 대해 “겸허히 받아들인다”면서도 “굉장한 중압감이 있고 수사 여건도 별로 좋지 않다. 그런 구조를 주목해 달라”고 말했다. 공수처는 고위공직자의 뇌물 범죄 등 복잡하고 민감한 사건을 담당하는 데다 검사 정원도 25명에 불과한 만큼 수사 성과를 검찰과 직접 비교할 수는 없다는 취지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더라도 공수처 1기의 성적은 초라하다. 수사 성과는 빈손이나 다름없다. 2021년 출범 이후 3년간 공수처가 직접 기소한 3건 가운데 유죄 판결을 받은 사건은 지금까지 없다. 2건은 1심 또는 1·2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왔고 ‘고발 사주’ 의혹으로 기소된 손준성 검사장은 1심이 진행 중이다. 그동안 공수처가 청구한 5건의 구속영장도 모두 기각됐다. 지난해 취임 2주년 간담회에서 김 처장이 “가시적인 성과물을 내놓는 데 역량을 경주하겠다”고 말했던 것이 무색할 지경이다.
모든 문제를 인력 부족과 제도 미비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공수처는 정치인과 언론인의 통신 자료를 마구잡이로 조회했다가 사찰 논란을 빚는가 하면 김웅 의원실을 압수수색할 때 절차를 지키지 않아 법원에서 위법 판정을 받는 등 수사의 기본도 지키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다. 정치적 편향과 인사 전횡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공수처 내부에서 공개적으로 나오고, 출범 첫해에 선발한 검사 13명 중 11명이 떠났을 만큼 분위기도 어수선한 상태다. 수뇌부의 리더십 부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 바로잡을 첫 단추는 능력과 강단을 갖춘 인물을 후임 처장에 앉히는 것이다.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에서 2명을 추천하면 대통령이 1명을 지명하게 되는데, 지난해 11월부터 6차례 회의를 열었지만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여권 성향의 판사 출신 인사를 추천하는 방안을 놓고 추천위 내부에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공정성과 수사 능력이 의심스러운 인물에게 수장 자리를 맡긴다면 공수처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게 된다. 아울러 현 정부가 공수처를 정상화할 의지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커질 것이다.
동아일보 사설
01.17 아직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인가
김정은의 노동당 연설… 통일 민족주의, 棺에 못 박아
남이건 북이건 힘 더 강했을 때 상대에게 ‘통일하자’ 큰소리… 김정은 발언은 결국 두려움일 뿐
지금 한반도에서 시급한 건 통일 아닌 평화적 외교 관계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인가?
북한 지도부의 답변은 결단코 ‘노’이다. 지난 12월 30일 북한 노동당 전원회의 연설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남북 관계가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임을 분명히 했다. 또 조선중앙통신은 ‘민족, 동족이라는 개념’이 북에서 이미 삭제됐다고 천명했다.
놀랍지만 놀랍지 않다. 1990년대 김정일 위원장이 강조한 ‘우리 민족 제일주의’의 민족이 남한을 배제하고 북한만을 가리킨다는 것은 이미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일이다. 민족주의적 미련 때문에 그저 모르는 척했을 뿐이다.
지난 연말 김정은의 공식 연설은 통일 민족주의의 관에 못을 박았다. 현실 정치 관점에서 본다면, 이념과 정치 체제, 사회 구성 원칙과 경제적 삶의 양식이 근본적으로 다른 두 국가를 혈통적 민족의 잣대를 들이대 한데 묶는다는 발상은 황당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통일 민족주의자들이 ‘진보’의 고지를 선점하고 또 보수 언론조차 그들을 ‘진보’라고 규정하는 한국의 정치 담론은 답답하다. 통일 민족주의를 위해 다수의 행복을 희생해야 한다면, 그 진보는 일그러진 권력의 장식에 불과하다.
남·북한 지도부에게 민족은 권력 유지를 위한 정치 공학의 쏠쏠한 도구였다. 대중의 감정에 호소하는 민족주의의 폭발적 힘 때문에 어느 정치 세력도 통일을 대놓고 부정할 수는 없었다.
통일에 대한 남과 북의 입장은 두 국가 사이에서 힘의 균형이 어디로 기우는가에 따라 계속 바뀌었다. 북의 군사력이 남보다 강할 때는 북이 민족 통일을 강조했고, 통일의 명분을 버릴 수 없었던 남은 소극적이었다.
남이 북보다 통일에 적극적으로 된 것은 1990년대 일이었다. 남의 우위가 확실해지자 의사소통이 가능한 북의 값싼 노동력에 대한 기업들의 욕구와, 보수든 진보든 민족주의적 호소력을 간파한 권력의 정치 공학이 통일이라는 정치적 목표를 공유했다.
반면 북은 계속 움츠러들었다. 1991년 남북 문제를 특수한 민족적 문제라고 정의한 남북기본합의서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등장한 북의 ‘우리 민족 제일주의’는 남한을 배제한 북한 민족 제일주의였다.
최근 북이 남의 호칭을 남조선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정식 국호로 바꾼 것도 예사롭지는 않다. 남과 북은 국제 관계로 보아야 할 별개의 나라임을 천명한 것이다. 통일 민족주의의 미망에서 벗어나 보면, 남북 문제는 하나의 민족 문제가 아니라 전혀 다른 체제를 지향하는 국가들 사이의 국제 문제다.
‘흡수통일’을 기조로 하는 한국과는 달리 “그 언제 가도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고 한 데서 통일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두려움은 잘 드러난다. 잇따른 군사적 도발 또한 그런 두려움의 표현일 것이다. 남의 통일 민족주의자들이 갖는 북에 대한 민족적 호의조차 성가실지 모르겠다.
같은 민족이라고 해서 한반도의 평화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통일 민족주의는 민족은 하나라는 허울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 허울 때문에 남북의 민족적 정통성 경쟁을 부추기고 오히려 긴장을 고조시켜 왔다. 한국의 국제 관계에서 다른 이웃 국가보다 가장 근접한 이웃인 남북 관계가 가장 경색된 데는 그것도 한 이유가 됐다.
남북이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로운 이웃으로 살려면 국제 관계 원칙에 따라 국교를 수립하고 평양과 서울에 대사관을 개설하는 것이 옳다. 외교적 프로토콜을 따르면, 일본 총리처럼 ‘각하’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괴뢰’라고 칭하지는 못할 것이다.
2024년의 ‘햇볕 정책’은 민족이라는 공허한 표제어를 버리고 군사적 억지력을 견지하면서 우선 남과 북 두 국가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국제 관계를 도모해야 한다. 외교부가 남북 협상의 주역으로 나서서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의 평화적 국제 관계를 구상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 외 환경부, 산업부 등 소관 부처마다 북한국, 북한과 등을 두어 가장 근접한 이웃 국가인 북과 국제 협력을 도모하면 될 것이다.
지금 한반도에서 시급한 것은 민족 통일이 아니라 가장 근접한 이웃인 남과 북이 평화적 외교 관계를 수립하는 일이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라 평화다.
조선일보 임지현 서강대 교수·역사학
01-17 방만한 준조세 전면 개폐는 만시지탄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
16일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91개나 되는 법정부담금을 전수조사해 재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은 적절해 보인다. ‘준조세’로 불리는 법정부담금 제도는 1961년 도입된 이래 63년 동안 운용되고 있다. 법정부담금이란, 특정 공익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법률에 따라 정부가 국민과 기업 등에 부과하는 금전 지급 의무를 말한다.
현재 법정부담금은 91개로 분류되는데, 올해 징수 예정인 법정부담금은 24조6000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그 실제 사례로 △모든 출국자에게 부담시키는 ‘출국납부금’ △영화표 가격에 3%가 매겨지는 ‘영화상영관 입장권 부과금’ △담배 1갑당 841원이 부과되는 ‘국민건강증진부담금’ △경유를 연료로 사용하는 자동차에 부과되는 ‘환경개선부담금’ 등을 들 수 있다.
법정부담금은 부담자가 공공사업을 유발하는 원인을 제공하거나 특정 사업으로부터 편익을 얻게 되는 경우 등에 부과된다. 즉, 원인자·수익자 부담 원칙을 적용해 공익사업 추진 및 정책 목표 달성 등을 이유로 부과된다. 예를 들어, 환경개선부담금은 경유차가 휘발유차보다 미세먼지를 더 많이 배출하므로 그 피해를 유발한 원인자에게 오염물질 처리 비용을 부담케 하는 목적으로 매겨진다. 경유 값이 휘발유 값보다 쌀 때 경유차를 구매한 소비자에게 환경오염 비용을 분담시키는 취지였다. 그러나 지금은 경유·휘발유 간 가격 차이가 별로 없고, 최근에는 디젤 엔진 기술 발달로 경유차에서 발생하는 오염 물질이 크게 줄었다. 심지어는 경유가 휘발유나 액화석유가스(LPG)보다 더 환경친화적일 수 있다는 실증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이처럼 상황이 많이 바뀌었는데도 환경개선부담금은 변함 없이 유지돼 2022년에도 2400억 원이 징수됐다.
환경개선부담금의 경우 소비자가 경유차를 선택해 낮은 연료비라는 이익을 얻었고, 동시에 환경오염의 원인을 제공했으므로 부담금의 원인자·수익자 부담 원칙이 작동된다고 볼 수 있다. 남산1호터널과 남산3호터널에 진출입하는 자동차에 부과되는 혼잡통행료도 같은 논리로 부과 이유가 이해된다.
그런데 2006년에 도입돼 전기 요금의 3.7%를 매기는 ‘전력산업기반기금 부담금’은 숨겨진 세금과 다름없다. 오늘날 전기 사용은 선택 사항이 아니므로 원인자·수익자 부담 원칙이 적용될 수 없으며, 전기료를 내는 가구가 전력산업기반기금 부담금을 추가로 낸다는 사실을 거의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전력산업기반기금의 용도에는 전력산업 관련 연구개발(R&D)과 원전 감축을 위한 발전(發電) 사업 등이 있는데, R&D의 세부 사업에 원자력 핵심 기술 개발이 포함돼 있어 원전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되지 않는 문제점도 있다.
정부의 전력산업 정책에 필요한 자금을 이런 방식으로 마련하는 게 옳은가. 이런 사업들은 조세를 통한 일반재정으로 수행하는 게 옳다. 환경개선부담금처럼 시대와 환경이 변했는데도 예전 기준대로 적용해 부담금제를 운용해야 하는가. 법정부담금 전면 재검토는 이런 고민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부담금 부과의 합목적성 및 원칙을 따져보고 불필요하거나 과도한 부담금 때문에 국민이 보는 피해를 줄여 보자는 취지로, 오랜만에 듣는 민생을 위한 좋은 정책이다.
문화일보
01-17 영부인은 법적근거 없는 모호한 지위… ‘제2부속실’ 있어도 문제, 없어도 문제

▲사진 왼쪽부터 육영수·이순자·김옥숙·손명순·이희호·권양숙·김윤옥·김정숙 여사.
■ Why - ‘배우자 부속실’부활 딜레마
박정희 전대통령때 처음 설치돼
육영수 소외계층 행보 위세강화
박근혜 정권 ‘무임소 장관’논란
안봉근·최순실 의혹 등에 폐지
文정권때 김정숙여사 활동 활발
재설치 후 직원채용 놓고 ‘시끌’
尹 선거공약따라 배우자팀 운영
김건희 활동 잡음일자 설치 검토

▲김건희 여사.
대통령실이 김건희 여사의 일정과 활동, 메시지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제2부속실의 ‘부활’을 검토하고 있어 구체적인 형식과 내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대선과정에서 ‘작은 대통령실’을 추구하면서 제2부속실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취임 2년이 되기도 전에 이런저런 구설수가 잇따르면서 제2부속실 설치로 돌아서고 있다.
17일 대통령실 관계자는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제2부속실을 설치하는 절차 자체는 간단하다”며 “다만 공약 사항의 변경이라는 점에서 국민 의견과 양해를 먼저 구하는 과정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설치하는 경우 1급 비서관급의 제2부속실장 인선, 5∼10명 규모의 인력 편성 등이 필요하다. 관련 예산이 별도로 공식적으로 편성되고, 김 여사 관련 업무의 체계적 수행도 이뤄지면서 투명성이 강화되는 면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제2부속실 폐지를 약속했던 것은 대선 당시 김 여사를 둘러싼 잡음을 없애겠다는 취지였다. 김 여사가 ‘허위 학·경력’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과 관련한 논란에 대해 “아내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하면서 제2부속실 필요성이 없어진 면도 있었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대통령 배우자는 가족일 뿐 영부인이라는 말도 쓰지 말자”고 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윤 대통령 취임 후 부속실만 두면서 소수로 이뤄진 이른바 ‘배우자팀’에서 김 여사의 일정을 관리해 왔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이 ‘쌍특검법’(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및 대장동 50억 클럽 의혹 관련 특검 수사) 카드를 꺼내 들고 총선 정치 쟁점화를 시도하면서 대통령실 안팎에서는 체계적 관리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윤 대통령 당선인 시절 있었던 김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의혹도 체계적 관리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만들었다.
과거 제2부속실장은 ‘무임소 장관’이라고 불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제2부속실이 업무 영역의 경계 없이 청와대 안팎의 업무에 관여했던 데 대한 일종의 별칭이었다. 안봉근 당시 제2부속실장은 비서관급이었는데도 그 권력이 강했다는 점에서 무임소 장관이라는 말이 나왔다. 제2부속실은 행정안전부, 국방부, 법무부 등 특정 정부 부처의 경계를 넘나들며 정권 전체의 사안을 다루었는데 비판이 거세지자 제2부속실은 2015년 폐지됐다. 이후 ‘국정농단’ 국면에서는 최서원(최순실) 씨가 제2부속실을 수시로 드나들었다는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제2부속실은 김정숙 여사가 2016년 하반기부터 소위 ‘정치 내조’를 한 것을 계기로 되살아났다. 김 여사는 ‘문재인 호남특보’라는 별명이 붙었을 만큼 정치 행보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문 전 대통령은 문화·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김 여사의 활동을 관리하기 위해 제2부속실 재설치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김 여사가 2018년 11월 3박 4일 일정으로 인도를 단독 방문하면서 타지마할 관광에 나서며 논란은 커졌다. 또 김 여사와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디자이너의 딸이 청와대 직원으로 채용되는 등 논란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제2부속실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 처음 만들어졌다. 1972년 육영수 여사의 활동을 뒷받침하는 조직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부속실을 제1부속실과 제2부속실로 나누었다. 제1부속실은 대통령, 제2부속실은 대통령 배우자를 각각 보좌하는 기구였다. 육 여사가 육영재단 등을 통해 소외계층과 사회적 약자를 위하는 행보를 보이면서 제2부속실 위세도 강해졌다. 다만 영부인은 현행법상 ‘대통령 가족’에 불과하고,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에 의해 경호 대상으로 지정돼 있는 것 외에는 법적 근거가 없는 모호한 지위다.
용산 대통령실은 이 같은 점을 고려해 김건희 여사의 활동을 관리할 제2부속실장 인선, 조직 규모 등을 두고 고심하는 모습이다. 설치 시점은 이르면 이달 말에서부터 4월 국회의원 총선거 이후까지 여러 방안이 오르내리고 있다.
여권 일각에서는 총선전에 설치될 경우 민주당이 예산·조직 편성 등을 빌미로 자료요구권 등을 활용해 김 여사를 물고 늘어지면서 정치 공세에 나설 수 있다고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이럴 경우 윤 대통령이 ‘총선 정쟁용’이라며 쌍특검법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던 취지도 퇴색한다는 것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제2부속실 설치로 또 다른 논란을 일으키지 않도록 그 활동 범위와 지위를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며 “설치를 실제로 한다면 해당 조직을 통해 김 여사와 관련한 활동 사항이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고 말했다.
서종민 기자 rashomon@munhwa.com
01.18 끊이지 않는 경기도 지역 화폐와 대북 사업 의혹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2년 11월 17일 국회 당대표실에서 열린 지역화폐 예산확보를 위한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조선DB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지사 시절 경기도 지역 화폐 사업자로 선정한 코나아이가 도민들이 상품권을 사려고 충전한 선수금을 부당하게 빼돌려 써온 사실이 감사원 감사로 드러났다. 선수금은 별도 계좌로 관리해야 하는데, 회사 계좌와 혼용해 쓰면서 2019~2021년에 연평균 2261억원을 채권 등에 투자해 수익을 26억원 올리고, 자회사 유상증자에 100억원을 썼다는 것이다. 도민이 낸 선수금 운용 수익은 경기도 각 시군이 가져가는 게 맞고, 자회사 유상증자에 이 돈을 썼다면 횡령이다. 경기도는 2020년 10월쯤 이런 사실을 알았지만 코나아이에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도의회가 추궁하자 문제가 없다는 보도 자료까지 냈다. 지역 화폐가 이 대표의 역점 사업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2019년 코나아이가 사업자로 선정될 때부터 의혹은 끊이지 않았다. 코나아이 상임이사는 이 대표가 시장일 당시 성남시 용역 수십 건을 수주한 사람으로 2016년 이 대표의 광화문 단식 때도 옆에 있었다. 특혜 의혹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경기도는 수백억원대 낙전(落錢) 수입도 코나아이가 가져가도록 했다. 경찰은 관련 의혹을 수사하다 무혐의 처분했지만 검찰이 재수사를 지시해 현재 다시 수사하고 있다.
감사원은 당시 경기도가 대북 사업을 위해 약 13억원을 지원한 남북경제협력연구소가 보조금 4억2600만원을 횡령해 사무실 월세·관리비 등으로 써온 사실도 밝혀냈다. 이 연구소는 증빙 서류를 제출하라는 경기도 요구에 응하지 않았는데도 경기도는 9차례나 사업 기간을 연장해줬다. 이 연구소 대표도 지난 대선에서 이 대표 지지 선언에 이름을 올렸다. 경기도의 대북 사업과 관련해선 쌍방울의 방북 비용 대납 수사도 진행 중이다. 지역 화폐와 대북 사업은 이 대표가 대선을 염두에 두고 추진했고, 가까운 사람이 관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공정한 수사로 진상을 명백히 밝혀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1.18 3년간 세금 수백억원만 허공에 날린 공수처

▲〈YONHAP PHOTO-2149〉 사과하는 공수처장 (과천=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19일 과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서 김진욱 처장이 출범 2주년 기자간담회 중 최근 시무식 논란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2023.1.19 xyz@yna.co.kr/2023-01-19 11:01:43/ 〈저작권자 ⓒ 1980-2023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김진욱 처장 임기 만료…공직자 유죄·구속 ‘0’
유능한 후임자 찾아 ‘성역 없는 수사’ 이뤄져야
김진욱 초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오는 20일 퇴임한다. 여야 정쟁 속에 출범한 공수처를 맡아 ‘국민의 신뢰를 받는’ 중립적 수사기구로 만들겠다는 그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연간 200억원 정도의 예산을 배정받으면서도 임기 3년 동안 단 한 건의 유죄판결도 끌어내지 못했다. 다섯 번 청구한 구속영장은 법원에서 모두 기각당했다.
김 처장은 지난 16일 기자간담회에서 “언론은 지난 3년간 공수처의 공이 없다고 보는 것 같은데 그럴 리가 있겠느냐”며 “역사의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 부끄러운 실적표를 받고 물러나는 순간까지 자기합리화로 일관하는 모습이 실망스럽다. 공수처 초대 수장으로서 그가 받는 비판은 단순히 실적 부진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검찰의 수사 권력을 분산하고 검경을 포함한 고위 공직자의 비리를 성역 없이 파헤치라는 취지로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배정받은 공수처의 근본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언행을 일삼았다.
취임 직후 문재인 정부의 실세였던 이성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을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사건’과 관련해 면담하면서 관용차를 제공한 사실이 발각됐다. 누차 다짐한 ‘인권 수사’는 공염불이 됐다. 야당 인사와 언론인의 통신 자료를 광범위하게 들여다본 사실이 드러났다. 압수수색하면서 절차를 지키지 않아 법원에서 망신을 당했다.
취임 1주년 간담회에서 김 처장은 일련의 사태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머리를 숙였지만, 명확히 설명하지는 않았다. 유일한 구체적 해명 사례는 지난해 시무식에서 찬송가를 부르며 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진 이후다. 불교계의 반발이 거세지자 “수사기관장으로서 특정 종교 편향적으로 비칠 수 있는 언행을 한 것은 부적절했다”고 사과했다.
최악의 평가 속에 떠나는 초대 처장을 지켜본 여야는 공수처 정상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 역량이 미흡한 인물이 처장에 오른 경위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2020년 12월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은 처장 인선 과정에서 야당의 반대를 무력화하는 공수처법 개정안을 밀어붙였다. 판사 출신인 김 처장을 추천한 인물(당시 대한변호사협회장)은 수사 역량에 의문이 제기되자 “아주 드물게 특별검사팀에 특별수사관으로 파견돼 특수사건을 경험했다”며 감쌌다. 이런 식의 인선이었으니 탈이 안 나겠나.
김 처장의 후임 역할은 막중하다.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가 그동안 여섯 차례 회의를 열었지만, 후보자 2명을 아직 정하지 못했다. 지난 정부처럼 역량이 부족한 인사를 임명한다면 향후 3년간 매년 200억원씩 예산만 낭비할 우려가 크다. 당장은 유능한 처장을 찾는 게 급하지만, 여야는 공수처법을 다시 테이블에 올려 정밀한 보완작업에 나서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
01.19 “오해가 많다”는 퇴임 공수처장
3년 임기를 마치고 오는 19일 퇴임하는 김진욱 공수처장은 억울한 게 많은 듯했다. 김 처장은 지난 16일 마지막 기자 간담회에서 “언론에서는 공수처의 공(功)은 없다고 보는 것 같다”라며 “공에 대해 쓰시는 분은 거의 없는데 그럴 리가 있겠느냐”고 했다. 김 처장은 “비판은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면서도 “오해가 많다. 내부 사정을 잘 모르시지 않느냐”고도 했다. 공수처를 비판하는 언론에 대한 일종의 ‘원망’으로 들렸다.
공수처는 지난 3년간 각종 논란을 자초해 왔다. 지난 대선 국면에서 ‘고발 사주 의혹’으로 윤석열 대통령을 겨냥한 수사를 동시다발적으로 벌이다가 혐의 입증에 실패해 ‘정치 수사 논란’을 일으켰다. 친문(親文) 검사인 이성윤 검사장의 ‘황제 조사’에 이어 공수처에 비판적 보도를 했던 기자 등에 대한 통신 조회를 남발해 ‘편향성’을 드러냈다. 김 처장은 권한에도 없는 후임 공수처장 추천을 여운국 공수처 차장과 상의하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 언론 카메라에 포착됐다.
논란은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지만, 수사 성과랄 건 없다. 공수처가 직접 수사해 기소한 사건이 3건에 불과한데 이 가운데 2건이 1심 또는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됐고, 나머지 1건은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그동안 구속영장을 총 5차례 청구했는데 법원에서 모두 기각당했다.
김 처장은 이런 공수처의 현실을 반성하고 국민에게 사과했어야 한다. 하지만 김 처장은 “사건 한두 건 하는 것보다 기반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인적·물적·규범적·시스템적 기반을 만들었다”고 자평하면서 “구구하게 말하기는 그렇지만 오해가 많았고 나중에 역사의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 김 처장은 연 200억원 세금을 쓰는 수사기관의 수장으로 3년이나 있었다. 김 처장과 함께 공수처 문을 연 1기 검사 13명 가운데 11명이 임기 만료도 전에 사표를 내고 떠날 동안 아무런 쇄신도 하지 않았다.
김 처장의 말을 들으면서 공수처법 처리로 난장판이 된 2019년 국회가 떠올랐다. 당시 문재인 정권은 공수처가 마치 검찰 개혁의 꽃인 듯이 선전하고 공수처만 만들면 공정과 정의가 세워질 것처럼 행세했다. 민주당은 공수처법을 통과시킨다고 소수 정당과 야합하면서 선거법을 누더기로 만들었다. 민주당은 공수처법을 밀어붙이면서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런데 3년이 지난 지금 공수처는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를 만들었나. 국민에게 사과해야 할 사람들이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김 처장은 19일 비공개 퇴임식을 끝으로 공수처를 떠난다. 공수처는 ‘장소가 협소하다’는 이유를 댔지만 언론에 공개하지 못하는 기관장 퇴임식은 본 적이 없다. 김 처장 말대로 공수처의 공이 분명히 있다면 비공개로 퇴임식을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조선일보 이슬비 기자
01-19 空手 3년 공수처, 존속은 공권력 낭비

김상겸 동국대 명예교수·헌법학
고위공직자의 범죄만 수사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설치된 지 벌써 3년이 됐다. 공수처법은 무려 25년 동안 찬반 논의를 거치면서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졌다. 당시 고위공직자 범죄에 대처할 만능 해결책으로 공수처가 홍보됐다. 그런데 공수처법은 제정된 후 시행 전에 개정안이 나올 만큼 논란이 있었고, 이 법에 대해 헌법소송도 청구되는 등 각종 사법 분쟁으로 1년을 보낸 뒤인 2021년 1월에야 공수처가 출범했다.
공수처 설치 논의는 1996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참여연대는 검찰이 범죄와 연루된 내부 사건과 정치적 사건을 담당하는 것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고위공직자 범죄 사건을 전담할 새로운 형사사법기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후 공수처는 고위공직자 부패 등 범죄를 공정하고 엄격하게 수사하기를 원하는 국민의 기대감에 부응하면서 매 국회에서 법안이 제출됐지만 폐기됐다.
그러다가 공수처법은 제21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해 입법됐다. 이때 현 여당인 국민의힘은 반대하면서 표결에 불참했다. 하나의 법안이 여야가 참여한 가운데 표결로 통과되지 못한다는 것은 대의제 민주주의에서는 법안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직자의 부패는 국가 발전을 가로막는 해악이라는 점에서 대다수의 나라에서는 법과 제도를 통해 부패 방지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심지어 독일의 경우에는 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내용만 봐도 부정부패를 하지 못하도록 명확한 표현을 사용한다. 그만큼 공무원의 부패는 국가의 적(敵)이기도 하다. 특히, 고위 공직자의 부패는 나라를 망치는 주범이다. 우리나라 역시 형사법제를 구축하고 공직자윤리법을 시행해 공직자의 범죄 예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공수처 설치 전에는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의 고위 공직자와 국회의원·법조인 등의 부패 범죄는 검찰과 경찰이, 공직윤리와 관련해서는 각 국가기관의 윤리위원회·청렴위원회·감사원 등에서 맡았다. 그런데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 독점을 불신하던 민주당은 이를 분산시키기 위해 고위 공직자 범죄를 전담할 공수처 설치를 계속 주장했다.
공수처는 3년 동안 겨우 3건을 기소했지만 2건은 1심에서 무죄가 나왔고, 5건의 영장 신청이 기각되는 등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보여줬다. 물론 공수처가 처음부터 활동을 통해 존재감을 보일 것으로 예상한 건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의 활동을 보면, 앞으로도 크게 변할 것이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검찰과 경찰 등 형사사법기관을 둔 국가에서 고위 공직자만을 대상으로 범죄수사기관을 설치한 예는 거의 없다. 그래서 공수처는 도입부터 논란이 많았다. 반대론의 핵심은, 공수처의 독립성 확보와 정치적 중립이 보장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공수처장의 임명 절차에 국회가 관여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한 정치적 영향에서 벗어나긴 어렵다. 또, 검찰을 불신해 공수처를 만들었다고 그 불신이 없어질 것으로 보지 않는다.
공수처는 고위공직자 부패 등 범죄를 처벌하고 방지해야 할 의무를 갖고 출범한 독립 형사사법기관이다. 그런데 공수처가 3년 동안 한 결과를 놓고 보면 존재 이유를 찾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공수처를 계속 존속시키는 것은 국가 공권력의 낭비라고 할 수 있다.
문화일보
01-19 ‘金 리스크’ 진솔히 사과하고 책임질 부분은 책임져야
시민의식이 높아지면서 정치인과 기업인의 사과(謝過)는 1970년대에 사과학(theory of apology)이 생길 정도로 중요한 갈등 관리 수단이 됐다.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사과는 ‘패자의 언어가 아닌 리더의 언어, 승자의 언어’라고 지적하고, 첫 번째 원칙으로 ‘숨기면 작은 것도 커지고 밝히면 큰 것도 작아진다’를 꼽는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 백’ 논란 역시 법률 차원의 시비 이전에 윤석열 대통령과 김 여사가 직접 진솔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2022년 9월 자행된 김 여사에 대한 몰래 카메라 촬영은 단순한 함정 취재가 아니라 정치 공작으로 봐야 한다. 있는 사실을 당사자 모르게 취재한 것이 아니라, 없는 사실을 조작해내려 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엄정한 사법 처리가 필요하다. 또 다른 문제는 정치적 여파다. 윤 대통령과 김 여사로서는 피해자인데 무슨 책임을 져야 하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국가지도자는 국민 궁금증에 답할 의무가 있다. 윤 대통령 스스로 지난해 10월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 어떠한 비판에도 변명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지 않았는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특검법은 재의 요구가 당연했지만,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다수가 거부권 행사를 비판한 것도 ‘명품 백’ 때문이었다. 사과학 기본 이론처럼, 제대로 밝히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문제가 커졌다.
총선을 80여 일 앞두고 민심에 큰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대통령실은 공적 절차를 거쳐 문제의 가방을 보관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상외교나 공식 행사에서 공식적으로 주고받은 선물이 아니라는 데 근원적 문제가 있다.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시비까지 나오는 이유다. 공직자의 배우자가 금품을 받아선 안 된다(제8조 4항), 배우자의 금품 수수 사실을 알았을 때 신고(9조 1항), 금품을 반환하거나 거부 의사를 밝히도록 한 의무(9조 2항) 등의 조항만 읽어보더라도 그냥 넘어가기가 쉽지 않다.
친북 행태가 의심되는 인사와 교류하며 취임 만찬까지 초청한 것에 대해선 법률 문제 이전에 보수 성향 국민도 혀를 끌끌 찰 정도다. 김 여사에 대한 측은지심이 들 정도의 파격적 조치를 하면 전화위복도 가능하다. 김영란법 위반 수사를 자청하고, 책임질 부분이 있다면 책임져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특별감찰관 추진 등 백약이 무효다.
문화일보 사설
01-19 “김건희 여사 명품백, 사실관계 확인뒤 사과를” … 전문가·원로의 제언

“피하지말고 솔직하게 입장내야
국힘이 대통령실에 촉구할수도
제2부속실 등 검토는 잘한 일”
한동훈·윤재옥 대책 논의
정치권에서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해법으로 먼저 ‘사실관계 확인’과 ‘진솔한 입장 표명이나 사과’를 제시했다.
19일 양승함 연세대 명예교수는 “대통령실에서 잘못했다든가 ‘죄송하다’ ‘음모다’는 등의 말이 나와야 하는데 이상하게 피하고 있다”며 “사실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사과하면 별거 아닐 일”이라고 지적했다. 양 명예교수는 “인정하고 사과하면 넘어갈 일을 더 키우고 있다”며 “대통령이 이런 문제 때문에 기자회견도 안 하면 지지율이 점점 떨어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도 “일반 국민은 공직자 윤리라는 측면에서 잘못된 일이라고 판단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며 “그에 대해 뭔가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석좌교수는 “김 여사 본인이 하든, 본인이 못하면 윤 대통령이 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총선까지 영향이 크게 미칠 거라고 보진 않지만, 계속 꼬리표를 달고 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민의힘이 먼저 대통령실에 문제 해결을 촉구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윤광일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그간 당이 자기 목소리를 못 내고 용산 수직 직할 체제의 모습을 보여 왔기 때문에 (대통령실에) 건의하는 모습을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보수 원로들은 제2부속실이나 특별감찰관 등 법에 정해진 제도를 도입하는 데에 해법의 초점을 맞췄다.
유흥수 국민의힘 상임고문은 “일반 국민은 ‘대통령 부인이 명품 가방을 받았다’는 것만 기억하기 때문에 국민 여론이 나쁜 것도 사실”이라며 “진솔하게 국민께 사과하는 게 옳다고 본다”고 제언했다. 다만 “대통령이 특검법에 대해서는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제2부속실 문제와 특별감찰관제 도입 등을 검토해보겠다고 거론한 건 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준상 국민의힘 상임고문은 “제도적으로 제2부속실이나 특별감찰관 등을 법에 정해진 대로 뒀더라면 거기서 걸러낼 수 있지 않았겠나”라면서도 “외연 확장을 위해서는 나름대로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문제를 명쾌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윤재옥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서울 영등포구 중앙당사에서 비공개 회동을 가졌다. 이를 두고 전날부터 김 여사를 둘러싼 각종 논란에 관한 대응 문제를 두고 원내지도부와 비대위의 온도 차가 존재한다는 지적이 나오자 메시지 조율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문화일보 이후민·최지영·김대영 기자
01.20 AI 시대 전력 소비 급증, 대안은 원전뿐

▲(서울=뉴스1) 김명섭 기자 = 정부는 오는 2047년까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민간 기업이 622조원을 투입하는 경기도 남부 일대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구축에 지원을 강화한다. 세계 최대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건설로 650조원 생산 유발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인프라·투자 환경 조성, 반도체 생태계 강화, 초격차 기술 및 인재 확보 등을 지원한다. 사진은 17일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관람객들이 대한민국의 반도체 기술 발전의 역사를 보고 있는 모습. 2024.1.17/뉴스1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AI(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하면서 전기가 더욱 중요해졌다”면서 원전 확대 필요성을 언급했다. 현재 프랑스는 원전 6기를 짓고 있는데 조만간 8기 추가 건설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지난 2022년 말 생성형 언어모델 챗GPT가 공개된 이후로 최근 삼성전자의 AI폰이 출시되는 등 AI 상용화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예상보다 더 빨리 도래한 AI 혁명 시대에 가장 시급한 과제가 안정적인 전력 확보다.
AI 구동엔 전력이 대량 소모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AI 개발에는 웬만한 도시의 사용량을 넘는 전력이 소비됐다고 한다. AI를 적용한 데이터센터는 기존 데이터센터보다 전력 수요가 3배 이상 높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됐다. 2027년이면 AI 학습과 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전력만 해도 스웨덴·네덜란드 같은 중규모 국가가 한 해 사용하는 전력량이 필요하다.
각국은 전력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기후 변화에 대비하면서 대량의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은 원전뿐이다. 영국은 원자력 비율을 15%에서 25%로 높이기 위해 원전을 최대 8기 더 건설하기로 했고, 미국은 지난해 원자력 연구개발 예산을 10% 증액했다. 생성형 AI를 주도하는 빅테크들의 최우선 관심사도 안정적인 전력 확보다. 신재생에너지만 쓰겠다던 구글도 사용 에너지에 원자력을 추가하기로 했다. 태양광·풍력 등으로는 AI 시대에 폭증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AI뿐 아니다. 경기도 남부 일대에 조성되는 세계 최대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는 총 10GW의 전력이 추가로 필요하다. 원전 7기에 맞먹는 전력이다. 여기에 AI 상용화와 전기차 확산 등을 감안하면 대규모 전력 확보가 눈앞의 문제로 닥쳐왔다. 우리는 원전과 소형모듈원전(SMR)에 앞선 기술력을 가졌지만 탈(脫)원전 소동으로 5년을 허비했다. 신재생에너지도 연구 개발하되 원전 신규 건설을 적극 재개해 AI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1.20 김경율 “인간 윤석열 아니라 비전·가치 지지… 사자 모습 되찾아야”
與 비대위원 21일, 김경율 회계사

▲국민의힘 김경율 비상대책위원이 19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한 카페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태경 기자
국민의힘 김경율(55) 비상대책위원은 19일 “윤석열 대통령께서 최근 내가 하는 말 때문에 많이 불편해하실 거라 생각한다”며 “하지만 나는 ‘인간 윤석열’이 아니라 그의 비전과 가치를 지지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이 정곡을 비켜가지 않는 특유의 사자 같은 옛 모습으로 다시 돌아와 주길 바란다”고 했다.
김 위원은 이날 본지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을 향한 합리적 중도층의 태도가 많이들 바뀌고 있다. 나는 그게 두렵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김 위원은 지난 열흘 동안 김건희 여사의 ‘명품 백 수수’ 의혹을 비판하면서 윤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공인회계사인 김 위원은 경제 민주화와 재벌 개혁 운동을 하다 2019년 ‘조국 사태’를 비판하며 참여연대를 탈퇴했고, 지난 대선 때 윤 대통령을 공개 지지했다. 그는 지난달 29일 ‘한동훈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됐고, 지난 17일에는 민주당 정청래 의원 지역구인 서울 마포을 출마를 선언했다.
-연일 ‘김건희 여사 리스크’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명품 백 수수’ 의혹에 대해 전말을 설명하고, 사과해야 한다. 다만 오늘을 기점으로 이 문제를 당분간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답을 기다리려 한다. 정치 영역에 들어오니 언론에 얘기하는 것 외에도 내 뜻을 전달할 수 있는 다른 공간이 얼마든지 있더라. 김 여사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하고 ‘수도권과 대구·경북 출마자 사이에 인식 차가 있다’고 한 내 발언은 과했다.”
-한 위원장과 조율된 입장인가.
“한 위원장이 나한테 뭘 시킬 사람도 아니고, 내가 한 위원장이 시키는 대로 할 사람도 아니다.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냐는 분도 계시는데 그건 한 위원장과 나 둘 다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하는 말이다.”
-윤 대통령과의 관계는 어떤가.
“비대위원이 된 이후에 만나거나 연락한 적은 없다. 대통령께서 최근 내가 하는 말 때문에 많이 불편해하실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인간 윤석열’이 아니라 그의 비전과 가치를 지지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윤 대통령에게 투표했던 합리적 중도층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본다. ‘명품 백 수수’ 의혹 이후 윤 대통령을 향한 태도가 많이들 바뀌고 있다. 나는 그게 두렵다.”
-윤 대통령이 어떻게 바뀌길 기대하나.
“윤 대통령은 당선 이후 주로 이마를 드러내는 헤어 스타일을 하는데, 요즘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앞머리로 이마를 덮던 검사 시절이 생각난다. 그때는 어떤 사건을 대할 때 정곡을 비켜가지 않는 특유의 사자 같은 모습이 있었다. 그때 그 모습을 잃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고, 다시 보여줄 거라 믿는다.”
-비대위원으로서 지켜본 한동훈 위원장은 어떤 사람인가.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는 사람 같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 피습 직후 한 위원장은 ‘내가 습격당했을 때처럼 생각해 달라’고 했다. 준비한 발언이 아니었는데, 그걸 보면서 괜찮은 정치 지도자감이라고 생각했다.”
-한 위원장은 주로 누구와 상의를 하나.
“연설문을 쓰거나 정치 개혁안을 내놓는 걸 보면 혼자 결정하는 게 많은 것 같더라. 검사 시절에는 사건 관계자들과 만나지 않고, 홀로 법과 원칙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큰 장점이다. 하지만 이젠 정치인이 됐으니 주변과 자주 소통하면 좋겠다.”
-마포을 총선 출마를 선언했는데.
“이곳 현역인 정청래 의원은 나와 같이 공정과 정의를 외친 86세대지만, 그가 정치권에서 보이는 행태는 전혀 민주적이지 않다. 비대위원직을 수락할 때부터 막연하게나마 출마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다. 당내에서 선뜻 정 의원과 맞붙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자청했다.”
-정 의원이 왜 문제인가.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민주화 운동 한 게 잘못한 것도 아니다’라고 했지만, 지금 86 운동권의 행태는 민주적이지 않다.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이 정 의원이다. 86 운동권 세력은 민주적 절차에 따라 선출된 윤 대통령을 취임 직후부터 탄핵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이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 ‘조국 사태’ ‘윤미향 사건’ 등에서 보인 내로남불 행태는 민주주의나 정의와 전혀 상관없다. ‘이재명 대표 피습 사건’ 때도 경찰과 병원 등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사건의 진상을 발표했음에도 마치 은폐와 조작이 있는 것처럼 호도한다. ‘핼러윈 참사’ ‘세월호 참사’ 각종 조사가 다 이뤄졌는데도 ‘밝혀진 게 하나도 없다’고 선동한다.”
-언제 출마를 결심했나.
“지난 15일 국민의힘 고위 관계자와 면담 자리에서 처음 총선 출마와 관련한 이야기를 했다. 마포을에 가고 싶다고 하니 그날 저녁 한동훈 위원장이 내게 전화해 ‘우리가 이길 수 있으니, 잘 고민해 달라’고 했다. 이후 한 위원장과 조율을 거쳐 지난 17일 서울시당 신년인사회에서 출마 의사를 밝히게 됐다.”
-당선 가능성이 좀 더 큰 곳으로 갈 생각은 안 했나.
“그런 지역을 가라고 주변의 권유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곳을 가겠다고 하면, 내가 하는 쓴소리가 마치 텃밭을 가기 위한 지렛대처럼 비칠 것 같아 그러지 않았다.”
조선일보 김승재 기자
01-22 金여사 해법 뻔한데 韓 흔드는 尹대통령, 민심 모르나
윤석열 대통령은 22일 민생 토론회 참석을 돌연 취소하고,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사퇴 요구를 받은 사실을 공개했다. 지난 주말 표면화한 윤·한(尹·韓) 충돌이 감정 대결로 치닫는 양상이다. 양측 갈등은 예견됐지만, 예상보다 빨리 격렬하게 진행되면서 총선 승리라는 공동 목표를 추구하긴커녕 공멸 자초 우려까지 부른다.
4·10 총선이 불과 79일 앞이다. 여당 패색이 짙어지던 와중에 한동훈 비대위가 출범한 지 20일 남짓 지났다. 과거에도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과 여당 사이에 이런저런 갈등은 있었지만, 대통령이 대놓고 비대위원장 사퇴를 요구하는 일은 없었다. 이미 불출마를 선언한 한 위원장은 22일 “제 임기는 총선 이후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안다”면서 “제가 (대통령실의) 사퇴 요구를 거절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말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한 위원장의 평소 어법으로 볼 때 사퇴 요구는 사실로 보인다. 실제로 전날 한 위원장과 이관섭 대통령실 비서실장, 윤재옥 원내대표가 만났고,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 의중이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이라면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공천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었다고 한다. 한 위원장이 지난 17일 서울시당 신년인사회에서 김경율 비대위원의 마포을 출마 입장을 밝힌 것과 관련, 대통령실은 “공정하고 투명한 시스템 공천에 대한 대통령의 강한 의지”라는 식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나 근저에는 김건희 여사의 명품 백 논란이 있다. ‘김 여사는 피해자’라는 윤 대통령 생각과 달리, 한 위원장이 “국민 눈높이” “선민후사”를 강조한 데 대한 배신감이 작동했다는 것이다.
이런 갈등의 핵심 뇌관은 ‘명품 백’ 문제임이 분명해 보인다. 사법적으로는 김 여사가 몰래 카메라를 이용한 정치 공작의 피해자가 맞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명품 백을 받고도 즉각 돌려주지 않은 데 대한 국민의 의구심이 심각하다. 해법도 간단하다. 정치 공작에 대한 사법 절차를 진행하면서, 당시 상황에 대해 김 여사가 직접 설명·사과하고, 앞으로 그런 오해가 없도록 처신하겠다고 고개 숙이면 된다. 대통령실은 야당의 끝없는 공세를 걱정하지만, 국민은 그 정도로 우매하지 않다. 지금 같은 상황이 이어지면, 윤 대통령은 공천 개입과 직권 남용, 김 여사는 청탁금지법 시비에 더욱 휘말리게 될 것이다. 2016년 총선 직전에 벌어졌던 ‘옥새 파동’과는 달리 아직 수습할 시간은 있다.
문화일보 사설
01.23 ‘명품백’ 몰카 함정 취재 걸린 건 맞아… 김영란법 적용은 논란
[팩트 체크]
여권의 내분과 함께 김건희 여사의 명품 백 수수 의혹이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친윤 인사들은 이 사건 본질이 ‘몰카 공작’이기 때문에 대통령 부부가 사과할 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영입한 인사들이 김 여사 사과를 요구하고, 한 위원장도 “국민 눈높이”를 강조하는 등 의견 차를 보이면서 대통령실이 ‘한동훈 사퇴’를 요구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①명품 백 논란의 전말은 무엇인가
김 여사가 재미 교포 목사 최재영씨에게 300만원 상당 디올 파우치 가방을 받은 것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인 2022년 9월 13일이다. 최씨는 문재인 정부 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조사받은 이력이 있었으나, 이를 숨기고 2022년 1월부터 김 여사에게 접근했다. 최 목사는 지난 대선 때 ‘김건희 7시간 녹취록’을 폭로한 유튜브 채널 서울의소리 측 인사와 공모했다. 최 목사는 이 인사가 구입한 디올 가방을 들고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에서 김 여사를 만났다. 최 목사는 손목시계에 달린 몰래카메라로 김 여사에게 가방 건네는 모습을 촬영했고, 이 몰카 영상은 2023년 11월 27일 유튜브 ‘서울의 소리’에 공개됐다.

▲그래픽=이철원
②명품 백 받은 김 여사의 법적 문제는
서울의소리와 시민 단체는 이 사건을 서울중앙지검과 공수처에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현행 청탁금지법에 따르면 공직자의 배우자는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해’ 1회 100만원 또는 연간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 등을 받아서는 안 된다. 김 여사가 디올 가방을 받았더라도, 윤 대통령의 직무와 관련성이 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얘기다. 한 법조인은 “김 여사에게 가방을 준 목사가 ‘(윤 대통령 당선) 축하 의미로 줬고, 공직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말해 직무와 연관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다만, 법원 판례를 볼 때 모든 행정 업무를 총괄하는 대통령의 직무 범위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어, 직무 관련성이 문제 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김 여사가 받은 명품 백에 직무 관련성이 인정돼도 김 여사는 형사 처벌 대상은 아니다. 청탁금지법에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해 금품을 받은 배우자를 처벌하는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뇌물죄 처벌도 쉽지 않다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 형사 전문 변호사는 “공무원이 아닌 김 여사에게 뇌물죄를 적용하려면 윤 대통령과 ‘공모’해서 명품을 받았다는 게 입증돼야 한다”고 했다.
지난달 국민권익위원회에도 김 여사의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 신고가 접수됐다. 권익위는 공직자 본인에 대해서는 직권 조사가 가능하지만, 공직자의 배우자인 김 여사에 대해서는 조사 강행이 어려워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이 김 여사의 금품 수수를 알고도 신고하지 않았다면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3년 이하 징역형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직무 관련성’에 더해 ‘인지 여부’가 쟁점이다. 수사 결과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가 인정돼도 대통령은 헌법상 내란·외환의 죄 이외의 범죄에 대해 형사상 소추(訴追·기소)를 당하지 않는다.
③함정 취재의 법적 문제는 없나
영상을 공개한 서울의소리 측은 함정 취재를 시인하면서도 “함정 취재의 위험성이나 비윤리성보다 국민의 알 권리가 크다면 인정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청탁금지법, 통신비밀보호법 등 각종 현행법 위반은 물론 언론 윤리 위반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김 여사에게 명품 백을 준 최 목사는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을 받을 수 있다. 김 여사가 명품 백을 받는 과정을 ‘몰카’로 찍어 공개한 서울의소리에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등이 적용될 수도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엔 이 사건과 관련해 “불법 촬영은 인권침해에 해당한다”는 결정을 내려달라는 진정이 접수됐다.
④디올 가방은 지금 어디에 있나
디올 가방은 ‘반환 선물’로 분류돼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부속실에 전달돼 용산 대통령실 선물 창고에 보관돼 있다고 한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언제 가방을 창고에 보관했는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대통령기록물법에 규정된 ‘대통령 선물’은 모아 놓았다가 한꺼번에 대통령 기록관에 이관하는데, 대통령실은 이 과정에서 디올 가방을 공개할 계획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⑤명품 백 수수 의혹도 ‘김건희 특검법’ 대상인가
김 여사 명품 백 수수 의혹은 지난달 28일 야당 주도로 통과된 ‘김건희 특검법’과는 무관하다. 그동안 민주당은 김 여사 명품 백 수수 의혹도 특검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취지로 발언해 왔다. 그러나 국회를 통과한 특검법엔 2009년부터 2012년까지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수사 대상으로 명시하고 있다.
01.23 대통령직의 국민과 국정에 대한 책임은 막중한 것이다

▲지난 2022년5월26일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이 정부 세종청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고 기념사진을 찍은 후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2022.5.26/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참석 예정이던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 토론회’에 불참했다. 행사 시작 30분 전에 불참을 공지했다. 민생 토론회는 각 부처의 새해 업무 보고를 밀실에서 받는 대신 국민과 함께 듣겠다며 윤 대통령이 만든 것이다. 대통령의 불참은 보고하는 사람은 있는데 보고받는 사람이 없는 것과 같다. 이번 주제는 ‘생활 규제 개혁’이었다. 대통령실은 “휴대전화 보조금, 대형 마트 이용 제한 등 국민이 가장 불편해하는 생활 속 규제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한 바 있다. 일반 국민 60여 명도 참석 예정이었다. 여기에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은 것은 단순한 ‘일정 변경’이 아니다.
대통령실은 “감기 몸살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그동안 민생 토론회에 쏟은 열정을 생각하면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지난 4차례 토론회에는 모두 참석했다. 갑자기 다른 일정이 생긴 것도 아니다. 그래서 대통령실 주변에선 전날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겪은 충돌 여파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20년 넘게 가깝게 지낸 사이다. 둘 사이의 갈등을 충격으로 느꼈을 수 있다. 이 문제는 빨리 해결될 실마리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앞으로 이 사태가 대통령의 주요 국정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의 갈등은 김건희 여사 명품 백 의혹이 원인이다. 이 사안은 친북 목사와 야당 성향 매체가 짜고 김 여사를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기획한 함정 몰래 카메라라는 것이 분명하다. 민주당이 이를 이용해 음모론에 가까운 공격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윤 대통령과 김 여사로서는 억울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김 여사가 명품 백을 받은 것이 사실인 이상 국민의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애초에 윤 대통령이 사과하고 재발 방지 조치를 했다면 이렇게까지 번질 일이 아니었다. 그 일을 하지 않아 문제를 이렇게 최악 상황으로 키웠다.
윤 대통령 요구대로 한 위원장이 사퇴했다면, 윤 대통령에게 그 후의 대책이 있었는지도 묻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힘 당헌 당규엔 그런 사태에 대비한 규정도 없다고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안보 경제 위기 상황이다. 북한 김정은은 전쟁을 위협하고, 고금리 고물가로 민생이 어렵다. 대통령은 정치인이기도 하지만 국정 최종 책임자다. 대통령을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모든 국민은 기본적으로 대통령의 국정을 믿고 살아간다. 대통령은 물러설 곳이 없는 자리라는 뜻이다. 그런데 지금 대통령은 그 막중한 책임에 걸맞게 신중한 결정을 하고 있는가. 윤 대통령은 첫 번째 민생 토론회에서 “정부와 국민 사이에 핵이 터져도 깨지지 않을 만한 두툼한 콘크리트 벽이 있다. 그것을 깨야 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지금 그 벽을 깨고 있는지 묻게 된다.
조선일보 사설
01.25 은행 돈잔치는 勞使政의 합작품이다
관치금융이 만든 과점체제서 은행 연봉 10년 새 거의 2배
고임금 혜택 누린 금융노조가 고금리 고통 분담 앞장서야
“노동자들 간의 소득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고임금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을 자제해야 한다. 저임금 노동자들은 대체 누가 책임지냐는 이야기다. 노동계는 아무 책임 없이 금융노조처럼 연봉 1억, 2억씩 계속 가도 되는 것인가.”
고액 연봉을 받는 금융노조의 임금 동결을 촉구한 이 발언은 최근 나온 게 아니다. 20년 전인 2004년 일이다. 발언을 한 당사자는 경영진이나 관료가 아니라, 양대 노총 중 하나인 한국노총의 이용득 위원장이었다.
이 위원장은 상업은행(현 우리은행) 노조위원장 출신으로 금융노조 위원장을 거쳐 한국노총 위원장으로 선출된 ‘노동계 거물’이었다. 그는 금융노조 위원장이던 2004년 초 본지 인터뷰에서 “청년 실업 해소와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해 노조가 임금을 양보하는 대신, 사용자 측은 신규 채용을 늘리자”며 노사 간 대타협을 제안했다. 외환 위기 이후 기업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신규·정규직 채용을 기피하면서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증가’가 큰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을 때다.
노조가 자선사업가도 아닌데 선심 쓰듯 임금 동결을 제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경제적 이익을 일부 희생하더라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장기적으로 노조의 위상을 높이려는 전략적 판단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20년 전 얘기를 꺼낸 것은 경기 침체와 고금리로 서민들의 생활이 어려워지는데도, 고액 연봉을 받는 은행원들이 고통 분담에 나서지 않기 때문이다. ‘빅3′인 국민·신한·하나은행의 1인당 평균급여(2022년 기준)는 각각 1억1600만원, 1억1300만원, 1억1700만원으로 비슷하다. 2010년 국민과 신한의 평균 연봉이 5600만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2년 만에 107%, 102% 급증했다. 같은 기간 국내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 연봉 상승률(56%)의 2배에 육박한다.

▲그래픽=이철원
그동안 은행들이 삼성전자처럼 글로벌 경쟁 기업들을 압도하는 거창한 혁신을 한 것은 아니다. 한 국책은행장은 “국내 은행업의 본질은 부동산”이라고 했다. 주택 담보 대출이 대부분인 가계 대출은 물론, 기업 대출도 토지와 건물 같은 담보가 없으면 대출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내 은행들이 돈 떼일 염려 없이 담보 잡아 대출해주면서 이자 장사로 돈을 버는 ‘땅 짚고 헤엄치기’식 영업을 하고 있다는 소리다.
부동산 가격 상승 덕에 은행 대출은 2007년 989조원에서 2022년 2541조원으로 15년간 157% 급증했다. 반면 순이익은 같은 기간 15조원에서 18조6000억원으로 24% 상승하는 데 그쳤다. 자산이 늘어난 만큼 수익성이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국내 5대 은행의 2022년 총자산이익률(ROA)은 0.52%였다. 은행 자산 1000원을 굴려 5.2원의 이익을 냈다는 뜻이다. 미국 은행은 이 비율이 1.12%로 우리나라의 2배를 넘었다.
낮은 수익성에도 은행원들 연봉이 크게 오른 것은 역설적으로 정부의 규제 때문이다. 금융 당국이 신규 은행 진입을 제한하면서 대형 은행들의 나눠 먹기식 과점 체제가 고착화된 것이다. 미국에는 4100개 이상의 상업은행이 있고, 영국에는 353개, 독일에는 261개가 있다. 20개 남짓인 한국과 큰 차이가 난다.
대주주가 없는 은행에서 노조는 경영진이 눈치 봐야 하는 막강한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장관 출신인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의 첫 공식 일정이 노조 방문이었을 정도다. 이용득 위원장은 임금 동결을 주장하면서 “내 몫을 아끼자고 하면 조합원들이 유쾌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며 “노조 지도부가 지도력을 갖고 조합원들을 설득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관치 금융이 만든 과점 체제에서 혜택을 누린 금융노조가 귀담아들어야 할 얘기다.
조선일보 나지홍 기자
01-25 작년 1.4% 저성장…투자·내수 살릴 국가적 총력전 펼쳐야
한국은행은 25일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1.4%로 발표했다. 간신히 전망치를 달성했지만 2021년(4.1%), 2022년(2.6%)에 이어 3년 연속 성장률이 낮아졌다. 지난 60여 년 간 오일 쇼크·외환 위기·글로벌 금융위기·코로나 사태 때를 제외하면 가장 낮은 성장률이다.
정부는 올해 성장 목표치를 2.2%로 잡았지만 달성하기 쉽지 않다. 설사 목표를 이뤄낸다 해도 지난해 저성장의 기저효과가 큰 만큼 본격적인 회복세로 보기엔 무리다. 한국은행은 “올해는 중국 경제 불안과 글로벌 분절화로 세계교역이 하방 압력을 받을 것”이라 우려했다. 지정학적 위기와 공급망 재편, 보호주의 확산으로 대외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미국의 조기 금리 인하 가능성도 사라졌다.
국내에는 과잉 부채와 고금리로 가계와 기업의 고통이 커지면서 소비와 투자를 짓누르고 있다. 정부·공공 부채도 급증하고 있다. 기술 패권 시대에 반도체·2차 전지 등 한국의 6대 첨단전략산업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2018년 8.4%에서 2022년 6.5%로 내려앉은 것도 문제다. 그나마 한은 조사에서 1월 소비심리지수가 101.6으로 뛰어오른 것은 청신호다. 향후 1년 뒤 물가상승률 전망을 나타내는 기대인플레이션도 22개월 만에 최저인 3.0%로 떨어졌다. 한국 경제를 억누르던 ‘고금리·고물가·고환율’ 3고(高) 악재가 다소 완화될 조짐을 보이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7.4% 감소했던 수출을 8.5% 증가로 돌려놓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꼽고 있다. 하지만 수출 회복 온기가 퍼지기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부동산과 가계 부채로 인해 상반기 중 기준금리 인하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당장은 효율적 재정 집행과 과감한 규제 완화를 통해 기업 투자와 내수 소비를 살리는 게 유일한 선택지다. 정치권은 포퓰리즘에서 벗어나 3대 개혁을 통해 경제를 정상 궤도로 복귀시키는 데 앞장서야 할 때다. 투자를 가로막는 반(反)기업·반시장 법규들을 시정해야 한다. 신산업 규제를 획기적으로 풀어야 한다. 기업의 사법 리스크도 없애줘야 한다. 정부와 기업, 정치권과 국민이 총력전을 펼쳐야 2024년을 저성장 탈피의 해로 만들 수 있다.
01-25 박유하 이어 류석춘 무죄, 학문의 자유 보호한 판결
류석춘 전 연세대 교수가 대학 강의 중 일본군 위안부는 ‘강제 연행이 아니라 매춘과 유사하다’는 설명을 한 것은 명예훼손으로 보기 어렵다는 1심 판결이 24일 나왔다. 지난해 10월 ‘제국의 위안부’ 저자인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에 대한 대법원의 무죄 확정에 이어 헌법이 보장한 학문과 표현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해석한, 시의적절한 판결이다. 일본과 관련한 민감한 역사 문제에서 국민 정서에 편승한 마녀사냥식 공격을 지양하고, 자유롭고 냉철한 학문적 토론과 연구가 정착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서울서부지법 형사4단독 정금영 판사는 “헌법이 학문의 자유와 교수의 자유를 특별히 보호하는 취지에 비춰보면 교수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필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며 “내용과 방법이 기존의 관행과 질서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보이더라도 함부로 위법한 행위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념과 정치 진영을 떠나 경청해야 할 내용이다. 다수의 생각에 어긋나는 주장은 자유로운 토론이나 학계 내부의 평가 등 ‘사상의 자유시장’을 통해 검증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간 일본 정부의 위안부 강제 동원 등 통설과 다른 주장은 진위를 따지기 전에 민족 정서와 여론의 힘으로 진압하고 법으로 단죄해 왔다. ‘지동설’ ‘진화론’도 처음엔 말도 안 된다는 비난과 탄압을 받았지만 살아남아 진리가 됐다. 과학과 역사는 그렇게 발전한다.
문화일보 사설
01.25 고질적 재판 지연에 줄줄이 풀려나는 형사 피고인들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박영수 전 특검도 보석
법원, 보석 노린 재판 지연 시도 적극 대처해야
대북 송금과 횡령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지난 23일 보석으로 석방됐다. 김씨뿐 아니라 김모 전 쌍방울 재경본부장, 안부수 전 아태평화교류협회장 등 이 사건 관련자 대부분이 보석으로 나왔다.
형사소송법상 구속기소된 피고인의 구속 기간은 6개월이며, 예외적으로 재판부가 연장할 수 있다. 김씨는 지난해 필리핀에서 송환돼 2월 3일 구속기소됐다. 1차 구속 만료 시한을 앞두고 지난해 7월 검찰이 배임 혐의로 추가 기소하며 영장이 다시 발부됐다. 하지만 다시 6개월이 넘도록 결론이 나지 않자 결국 법원이 풀어준 것이다.
모두 이 사건 핵심 피고인인 이화영 전 경기도부지사 재판이 늘어진 데 따른 결과다. 이 전 부지사는 변호인 해임과 재선임, 재판부 기피 신청 등을 내며 재판을 지연시켜 왔다. 여기에 현 재판부가 다음 달 인사로 교체될 것으로 보여 재판은 더 늦어질 전망이다.
대장동 의혹 사건에서도 화천대유 대주주인 김만배씨를 비롯해 남욱·정영학·유동규 등 대부분의 피고인이 석방됐다. 대장동과 관련해 50억 클럽 사건으로 구속기소된 박영수 전 특검마저 얼마 전 보석으로 풀려났다.
형사 피고인은 형이 확정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되는 만큼 불구속 재판이 원칙이긴 하다. 하지만 기일 내에 재판을 마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풀어주는 것은 다른 문제다. 보석을 노려 재판을 지연시키고, 보석으로 석방된 뒤 도주하거나 말을 맞추는 등의 부작용이 계속 발생한다. 창원 간첩단 사건 피고인들의 경우 국민참여재판, 관할 이전, 재판부 기피 신청 등을 하며 재판을 끌다 9개월 만인 지난해 12월 보석으로 풀려났다. 그동안 정식 재판은 두 차례밖에 열리지 못했다.
대법원도 재판 지연을 해소하려고 여러 방안을 강구 중이다. 재판장 임기를 1년 늘리고, 시니어 법관제를 도입하며, AI 활용 방안까지 검토한다고 밝혔다. 이는 무엇보다 신속한 재판을 받을 시민의 권리를 충족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계속 재판을 끌어보려는 형사 피고인에 대해서는 다른 방안을 고려할 필요도 있다. 집중심리제를 도입하고, 특정 사건 재판이 길어질 경우 해당 재판부에 다른 사건 배당을 줄여 주는 것도 방법이다.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구속기간 제한에 대해서도 전향적 검토가 필요하다.
아울러 법관들도 민감한 재판의 결론을 미루다 인사 때 떠나버리거나 아예 사표를 내는 일을 지양해야 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을 16개월이나 끌다 사표를 낸 강규태 부장판사가 대표적이다. 이런 사례가 쌓이고 재판이 더 늘어지면 법원의 신뢰도는 추락하고 만다.
중앙일보 사설
01.26 미래 일자리 팔아넘기는 경제간첩
662조원 투자에 일자리 346만 개. 정부가 지난 15일 경기 남부 지역에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 방안을 발표하며 내놓은 청사진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투자하고, 정부가 기반시설 건설을 지원한다.
그런데 같은 날 서울경찰청이 반도체 기술 공정 도면을 무단 유출해 중국 업체에 넘긴 혐의로 전직 삼성전자 연구원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막대한 돈을 투자해 기술을 개발해도, 이를 외국 기업에 빼돌리면 격차를 유지할 수 없다는 점에서 엄중한 사안이다.
하지만 다음날 영장실질심사를 한 법원은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별다른 범죄 전력이 없고 주거가 일정하며 수사에 성실히 임했고, 증거가 상당수 확보된 점을 고려해 기각했다고 한다. 지난해 6월 반도체 공장 전체를 중국으로 빼돌리려 한 혐의로 삼성전자 전직 임원이 구속됐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11월 보석으로 풀려났다.
산업기술 빼돌려도 집행유예
대만, 법 고쳐 간첩행위로 처벌
무관용 원칙으로 엄정 대응해야
국민의힘 김성원 의원실이 사법연감 자료를 취합한 것에 따르면 2015~22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혐의로 1심 판결 등이 난 114명 중 징역형이 선고된 사람은 10% 정도에 불과한 12명이었다. 이에 반해 집행유예는 40명이나 됐고 벌금형은 11명이었다. 무죄는 34명이었다. 유죄라도 실형을 사는 비율이 20%가 되지 않는다. 이러니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김영희 디자이너
물론 원칙적으로 불구속 수사와 재판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외국으로의 기술 유출 사건에선 범죄 전력이 없다는 게 영장 기각의 이유가 되어선 곤란하다. 이런 범죄는 대한민국의 미래와 일자리를 외국에 팔아넘기는 행위다.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해야 한다.
증거가 상당히 확보됐다는 것은 한편으론 범죄 혐의가 소명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추가 범죄 혐의와 공범을 찾아낼 여지가 있다면 구속 수사를 하도록 해야 한다. 지난 18일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산업기술 침해 사범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양형기준안을 의결했다. 산업기술보호법도 여야가 함께 개정안을 마련해 법사위 심사를 받고 있다. 벌금액을 상향하고 손해 배상 상한을 인정 금액의 3배에서 5배로 높이는 내용 등이 담겼다.
하지만 이것 만으론 한계가 있다. 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기술이 유출된 경우 기업이 피해액을 제시하지만, 법원이 이를 엄격하게 보는 편이다. 피해액이 제대로 인정되지 않으면 처벌이나 손해배상 수준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업과 산업 보안전문가가 모인 단체인 한국산업보안한림원의 김동호 회장도 같은 문제를 지적한다.
“해외 기술 유출을 단순한 경제 범죄로 여긴다. 적발돼도 1년 정도 복역하거나 집행유예로 나오면 해외에 마련한 재산으로 편하게 지낸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외국은 적발되면 한 번에 레드카드를 내는데 우리는 옐로카드로 대응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산업기술을 해외에 유출한 사범을 간첩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이를 담은 형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현재 형법은 적국(敵國)을 위한 간첩 행위만 처벌할 수 있다. 미국 등 주요국은 간첩죄의 대상을 적국으로만 한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국회 법사위에서 법원행정처가 반대 의견을 낸 이후 논의가 진전되지 않았다. 분단 체제의 한국에서 간첩은 ‘북한이 보낸 공작원’이란 인식이 강하다. 산업기술 유출에 적용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주장이 나올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특히 산업기술 분야에선 적대국과 우호국 구분이 어렵다. 더구나 첨단 기술을 넘기는 행위는 군사 정보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이런 행위가 경제 안보에 큰 위협이 된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이루고,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
형법상 간첩죄 조항과 산업기술보호법 등을 어떻게 조화롭게 구성하고 손 볼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 아울러 산업스파이 대신 '경제간첩'이라는 용어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기술 유출에 대한 인식이 바뀐다. 반도체 분야에서 한국과 경쟁 관계인 대만은 2022년 법을 개정해 군사·정치 분야가 아닌 경제·산업 분야 기술 유출도 간첩 행위로 처벌하고 있다. 미국엔 경제간첩법(Economic Espionage Act)이 있다.
한국은 앞으로 600조원 이상을 반도체에 투자한다. 기술을 지켜야 초격차를 유지한다. 그런데 외부 침입을 막는 성(城) 높이가 낮고 결함이 있다. 이를 보강하지 않으면 방어를 제대로 할 수 없다. 특히 법원의 인식 변화가 절실하다.

김원배 논설위원 onebye@joongang.co.kr
01.27 문재인 김명수가 쓴 ‘사법 농단’ 소설, 이 엄청난 책임 어떻게 질 건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사법농단 혐의'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장련성 기자
이른바 ‘사법 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47개 모든 혐의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기소된 지 4년11개월 만이다.
47개 혐의 중 핵심은 ‘양승태 사법부’가 숙원 사업인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청와대를 상대로 재판 개입·거래를 하고, 물의를 일으킨 법관 명단을 만들어 인사 불이익을 줬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 혐의를 포함해 47개 혐의 전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 사건이 “한 편의 소설”이라고 했는데 그 말 그대로 됐다.
이 사건은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에서 시작됐다. 아무리 뒤져도 블랙리스트가 나오지 않자 재판 거래 의혹으로 바뀌었다. 3차례 법원의 자체 조사에서 문제 삼기 어렵다고 했다. 대법관들은 물론 법원장과 고법부장들도 “재판 거래는 상상할 수 없다”는 입장을 냈다. 그런데도 2018년 9월 문재인 대통령이 대법원을 찾은 자리에서 “사법 농단 의혹을 규명해야 한다”고 하자 김명수 대법원장이 “적극 협조하겠다”고 호응하면서 수사가 본격화됐다. 이 두 사람이 아니었으면 ‘사법농단’ 몰이는 애초에 시작되지도 않았다.
대통령이 사법부에 지침을 내리고 사법부 수장이 화답하는 일은 군사정권에서도 보기 힘든 일이었다. 이후 김명수 사법부는 법원 내부 자료를 검찰에 통째로 넘겼고, 검찰은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과 한동훈 3차장 지휘 아래 검사 50여 명을 동원해 5개월 동안 이 잡듯 털었다. 그 대소란의 끝이 전체 무죄라는 판단이 이제야 나온 것이다.
이 사건은 애초부터 말이 되지 않았다. 양승태 사법부가 청와대를 설득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문건에 나온 판결의 상당수는 상고법원 추진 방침이 거론되기 전에 이미 판결이 끝난 사안이었다. 확정 판결이 나온 재판에 어떻게 개입하고 거래를 하나. 또 어느 조직이든 다 갖고 있는 인사 자료가 어떻게 블랙리스트가 되나.
그런데도 문재인 정권과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법 개혁을 명분으로 이 의혹을 확대재생산했다. 진짜 목적은 정권의 법원 장악이었다. 실제 엘리트 법관들이 사법농단에 연루됐다고 배제되고 아무도 대법관감으로 여기지 않는 이들이 우리법·인권법 출신이란 이유로 그 자리에 갔다. 그들이 장악한 대법원은 종전 판례를 뒤집고 전교조를 합법화했고, ‘선거 TV 토론 거짓말은 허위 사실 공표가 아니다’라는 황당한 판결로 이재명 지사가 대선에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김 대법원장 측근 판사들은 법복을 벗자마자 문 대통령 비서가 됐고, 사법 농단의 내부 고발자를 자처하던 판사들은 민주당 국회의원이 됐다. 겉으론 사법 개혁을 내세우면서 뒤로는 사법부 독립을 짓밟은 사람들이다. 이들로 인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너무 큰 고통을 당했다. 그 책임자인 문재인 김명수와 같은 사람들은 지금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이번에도 모른 척할 것이다. 거짓 선동으로 법원을 만신창이로 만들고 사람들을 괴롭힌 이 엄청난 책임을 어떻게 질 건가.
조선일보 사설
01.27 법원 장악 위해 사법농단 몰이… 文이 ‘지침’, 김명수 ‘화답’
‘사법 행정권 남용’ 사건은
이른바 ‘사법 행정권 남용’ 사건의 발단은 2017년 2월 이탄희(현 민주당 의원) 판사가 법원행정처 발령 11일 만에 수원지법 안양지원에 복귀한 이례적 인사였다. 당시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이 이 판사에게 그가 속한 국제인권법연구회 학술 대회를 막으라고 지시했는데 이 판사가 이를 거부하고 사표를 내자 보복 인사가 이뤄졌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대법원은 이인복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진상조사위’를 꾸렸다. 2017년 4월 “임 전 차장이 아닌 이규진 양형위 상임위원이 이 판사에게 지시했다. 이 판사가 희망해 복귀했으며 보복적 인사 조치는 없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러나 이 판사가 조사 과정에서 “행정처 컴퓨터에 ‘판사 뒷조사 파일’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면서 ‘블랙리스트’ 의혹이 불거졌다.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조사를 요구했고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후인 2017년 11월 민중기 당시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2차 진상조사위’가 만들어졌다. 조사위는 “특정 판사에게 불이익을 준 것은 없다”면서도 “사법 정책을 비판하거나 반대한 판사들의 성향을 분석한 문서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그래픽=이철원
결국 ‘3차 진상조사위’가 출범했다. 안철상 당시 법원행정처장이 위원장을 맡았다. 조사위는 2018년 5월 25일 조사 보고서에서 “특정 법관들에 대한 성향 등을 파악했다는 점만으로도 재판의 독립을 훼손하려는 것으로 크게 비난받을 행위”라고 밝혔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 행정처가 관여한 사례는 없어 업무 방해나 직권 남용 등의 범죄는 인정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해 형사상 조치는 취하지 않기로 했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사흘 만에 조사위 결론을 뒤집었다. 2018년 5월 28일 취재진이 “관련자들을 고발할 것이냐”고 묻자, 김 전 대법원장은 “그런 부분까지 모두 고려하겠다”고 했다. 같은 해 9월 13일 문재인 대통령이 대법원에서 열린 ‘사법부 70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해 “의혹은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고 하자, 김 전 대법원장은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했다. 당시 행사장에서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도 이를 들었다.
서울중앙지검이 법원행정처를 10시간 압수 수색했고 100명이 넘는 판사들을 소환 조사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시 중앙지검장이었고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중앙지검3차장이었다. 당시 수사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019년 1월 대법원장 출신으로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구속됐고, 같은 해 2월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과 함께 ‘재판 개입’ 등 혐의로 기소됐다. 이 사건으로 양 전 대법원장을 포함한 고위 법관 14명이 재판을 받게 됐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은 수사 과정에서 법원행정처 컴퓨터를 비롯해 법원 내부 인사 자료와 각종 보고서까지 검찰에 내주는 등 적극 협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자신과 면담에서 “사법 행정권 남용 연루 판사들을 단죄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알려진 윤종섭 부장판사에게 재판을 맡겼다. 앞서 다른 재판부는 이 사건 1·2심에서 6차례 모두 무죄를 선고했지만 윤 부장판사는 2021년 3월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조실장과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 상임위원에게 처음으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 김 대법원장은 인사 원칙을 어겨가며 윤 부장판사를 6년 연속 중앙지법에 근무하며 재판하게 했다.
사법 행정권 남용 사건 이후 실력 있는 판사들은 주변부로 밀려나거나 사직했다. 2021년 1월 정기 인사를 앞두고 80명이 넘는 판사들이 사표를 내면서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이 사건으로 수사받은 법원행정처 심의관, 고등법원 부장판사 등 상당수가 법원을 떠났다.

▲그래픽=이철원
그 빈자리를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나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들이 차지했다. 이들은 대법관 구성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2017년 11월 이후 대법관 후보추천위에 일선 법관 총 10명이 참여했는데 이 가운데 7명이 인권법, 1명이 우리법, 1명이 젠더법연구회 소속이었다. 작년 7월 김명수 당시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13명 가운데 7명이 진보 성향이었다.
또 김 대법원장은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제도를 폐지하고 지방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도입했다. 실력 있는 판사들이 열심히 재판하려는 의욕을 잃고 재판이 지체되는 원인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선일보 양은경 기자
01.27 5년 동안 나라 흔든 무리한 양승태 수사
재판 개입 직권남용 47개 혐의 “전부 무죄”
“부끄럽다” 목소리 높였던 김명수 반성해야
재판 지연 등 심각해진 사법부 정상화 시급
‘사법 농단(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으로 4년 11개월간 재판을 받아온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어제 핵심 쟁점인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를 포함한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도 무죄가 선고됐다. 사상 초유의 전직 대법원장 구속 사태를 빚은 이번 수사를 두고 “사법부 적폐 청산”이라는 주장과 “정권 코드에 맞춘 무리한 수사”라는 반론이 맞서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1부(부장 이종민·임정택·민소영)는 과도한 수사였다는 1차 결론을 낸 셈이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에게 무려 47개의 혐의를 적용했다. 어제 재판부가 판결문을 읽던 도중 이례적으로 휴정해야 할 정도였으니 문재인 정부의 검찰이 얼마나 샅샅이 뒤졌는지 알 수 있다.
재판부는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과 관련해 양 전 대법원장이 재판장으로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한 것일 뿐 재판에 개입해 직무 권한을 위법 부당하게 행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비롯해 각종 재판 과정에서 직무 권한을 남용한 혐의도 수긍하지 않았다.
이번 판결은 앞서 진행된 전·현직 판사 10명의 재판을 통해 예견된 결과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법관들이 상고법원을 설치하기 위해 ‘재판 거래’를 했다는 혐의 등을 주장했으나 제대로 입증을 못 했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과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조실장만 일부 유죄가 인정됐을 뿐이다.
47개 혐의가 모두 무죄라는 판결 내용은 수사 과정에서 제기됐던 문제를 돌아보게 한다. 양 전 대법원장 공소장에 공범으로 기재된 권순일 전 대법관은 기소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후 징계 대상에서도 빠졌다. 반면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를 법정구속했던 성창호 부장판사를 재판에 넘겨 보복 기소 논란을 일으켰다. 성 부장판사는 1, 2, 3심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설사 ‘사법 농단’ 수사가 지나쳤다고 해도 사법부의 독립성을 향상하는 계기가 됐다면 나름의 의미 부여가 가능하다. 그러나 후임인 김명수 전 대법원장 재임 중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문재인 정부의 사법부 장악 의도를 의심케 할 뿐이다. 양 전 대법원장이 구속될 당시 “참담하고 부끄럽다”고 했던 김 전 대법원장은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 판사들을 대거 요직에 발탁했다. ‘사법의 정치화’가 극심해졌다. 코드에 맞는 판사는 관례를 깨고 중요 재판부를 4년 간 맡는 일이 벌어졌다. 사법 농단을 맹비난하던 판사들이 지난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됐고 청와대행도 잇따랐다. 김 전 대법원장이 후배 법관의 사표를 반려하면서 국회의 판사 탄핵을 운운한 녹음 파일이 공개돼 충격을 줬다.
양 전 대법원장은 상고심 지연을 개선하려 묘안을 짜냈다가 피고인이 됐다. 김 전 대법원장은 6년 동안 상고심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법원장 후보 추천제 같은 포퓰리즘 정책으로 극심한 재판 지연 사태를 초래했다.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는 오히려 후퇴했다.
이제 사법부는 두 전임자가 남긴 무거운 짐을 떠안게 됐다. 양 전 대법원장은 비록 직권남용 혐의를 벗었지만, 대법원이 정책 목표를 관철하기 위해 무리수를 둘 경우 얼마나 큰 파문을 초래하는지 일깨웠다. 김명수 코트는 법원의 위기를 사법부 장악의 기회로 삼으려는 시도가 국민에겐 고통을 안길 뿐이라는 교훈을 줬다. 법원은 두 전직 대법원장의 실패를 거울삼아 독립성을 확고히 지키면서 국민의 재판 받을 권리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법부로 거듭나기 바란다.
중앙일보 사설
01.27 1810일 걸린 '세기의 재판 지연'…판사도 판결 요지 4시간 읽다 지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재판부의 조건부 보석으로 풀려난지 하루만인 2019년 7월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심에서 전부 무죄를 선고받았다. 강제징용사건 재판거래 의혹을 포함해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의 정점으로 지목된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해 법원이 5년 만에 죄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26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5-1부(부장 이종민·임정택·민소영)는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에게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 2019년 2월 기소 후 박남천 부장판사와 심판·이원식 판사가 심리해 왔으나 2021년 2월 인사이동 후 지금의 부장판사들이 맡았다.
이날 선고에는 이례적으로 긴 시간이 소요됐다. 이종민 부장판사는 판결이유 요지를 읽기에 앞서 “오늘 일과 시간 중 선고가 마쳐질 지 미지수”라고 했다. 상당한 분량의 판결문을 들고 오는 재판부를 보며 방청석에서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숨소리가 새어나오기도 했다.
기소 당시 검찰 공소장은 300페이지가 넘을 만큼 혐의가 방대했으나, 어느 것도 유죄가 인정되지 않았다. 검찰은 양승태 사법부가 청와대의 의도에 따라 강제징용 사건 재판을 지연시켜 상고법원 도입 등 숙원사업을 대가로 얻으려 했다는 재판거래 의혹 등과 관련한 정황이 고스란히 법원 내부 보고서로 남아 있다고 주장해 왔다. 검찰은 이를 47개 혐의로 구체화했다.
‘재판거래’ 의혹 일축…“강제징용 사건 재판개입 의도 없어”

▲김영옥 기자
‘재판거래 의혹’의 핵심은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을 법원행정처가 청와대와 외교부가 원하는 대로 대법원 소부 사건의 결론을 바꾸려하거나 전원합의체 재판을 지연시켰단 의혹이다. 그러나 이날 재판부는 재판 개입 의도부터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법원행정처 판사가 외교부 입장 대로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 관련 내부 보고서를 작성하고 관련 부서에 전달한 것에 대해 “외교부와의 관계 등 사법부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검토하게 한 것이고, 재판 개입 의도였다기보다 이전 판결의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가능성을 검토하던 연구관실에 참고로 준 것”이라 판단했다.
양 전 대법원장이 당시 일본 기업측을 대리했던 김앤장 변호사를 직접 만난 것을 두고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해당 변호사에게 전원합의체에 회부한다는 계획을 알려줬고, 이는 공무상 비밀누설이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에 대해서도 “전원합의체 회부 계획은 양 전 대법원장이 전원합의체 재판장 지위에서 얻은 직무상 비밀이 아니며, 내심에서 자연스레 갖게 된 추상적 의견일 뿐”이라고 했다.
양 전 대법원장이 사건 주심 대법관에게 “이전 판결을 번복하도록 결론을 설정해 줬다”고 검찰이 주장한 부분도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대법원장은 전원합의체 재판장 지위도 가지고 있지만 소부 사건에 관여할 권한은 없다”며 애초에 직권남용죄가 성립할 수 없다고 봤다. 또 “설령 그런 직무권한이 있다 하더라도, 양 전 대법원장이 한 말 정도는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논의한 과정의 일부일 뿐”이라고 했다.
대법 논리대로 “재판개입은 직권남용 아냐” 판단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직권남용죄)란 공무원이 ①직권을 ②남용하여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③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④권리행사를 방해해야 한다. 이런 법리를 토대로 재판부가 ‘재판개입이 맞다’면서도, 양 전 회장에겐 애초에 재판에 개입할 직권이 없었기 때문에 직권남용죄가 성립할 수 없다고 한 혐의도 있다.
일선 법원에서 헌법재판소에 한정위헌 취지로 위헌제청 결정을 하자,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해당 재판부에 이를 취소하고 재결정하라고 한 사건이 이에 해당한다. 검찰은 헌재와의 위상 싸움을 하던 대법원이 일선 판사의 판단을 찍어 누른 건 직권남용이라 봤지만, 재판부는 “양 전 원장에겐 재판에 관여할 일반적 직무권한이 없다”는 논리로 해당 혐의를 무죄로 선고했다.
직권남용죄에 대한 이날 재판부의 판단은 2022년 대법원의 판단과 동일하다. 대법원은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의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 사건에서 “부적절한 재판관여를 했지만, 애초에 재판에 관여할 직무권한이란 건 없고 월권행위에는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무죄를 확정한 바 있다.
재판부는 양 전 원장과 두 대법관에 대해 적용된 다른 혐의에 대해서도 ①애초에 그럴 수 있는 직권이 없었다고 보거나 ②필요한 것을 시켰기 때문에 남용이 아니라거나 ③위법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의무 없는 일이 아니라거나 ④법원행정처의 메시지 전달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권리행사방해가 아니라고 판단해 무죄로 선언했다. 가령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결정 이후 통진당 소속 지방의회 의원들의 의원직 유지여부를 따지는 사건을 맡은 판사에게 행정처가 특정한 입장을 문건이나 말로 전달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판사들이 이를 신경쓰지 않고 각자 판단대로 했기 때문에 재판권 행사를 방해한 건 아니다’는 취지로 무죄로 판단했다.
하급자 직권남용 인정 있었지만…“대법원장 공모 없어”
양 전 대법원장의 하급자에게 직권남용을 인정하면서도, 양 전 대법원장이 여기에 공모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해 무죄로 한 혐의도 있다.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이 직권을 남용해 진보 법관들의 모임을 와해할 방안을 검토하도록 부하 직원인 심의관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했다고 보면서도, 재판부는 이는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에 따른 것은 아니라고 했다. 헌법재판소로 파견 간 법관을 이용해 헌재 내부 정보를 빼낸 것도 이규진 전 상임위원이 벌인 직권남용으로 보면서도 양 전 대법원장이 지시한 적이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사법행정권남용 수사의 단초가 된 ‘연구회 중복가입 해소조치’ 사건도 비슷한 논리로 무죄로 결론났다. 진보 성향인 국제인권법연구회 모임에 사람이 늘어나자 법원행정처는 연구회를 둘 이상 가입하면 안 된다고 공지해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세력 확대를 축소하려한 적이 있었다. 재판부는 이런 부당 조치에 대해서도 양 전 대법원장이 지시가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중복가입 해소조치가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였다면 (이를 실행하려 한) 임 전 차장이 (조치를 주저하고 망설이던) 고영한 전 처장에게 이를 근거로 설득했을텐데 그러지 않았다”는 점을 추론 근거로 제시했다.
이날 선고는 2시에 시작했으나 6시 27분에 끝났다. 중간에 한 차례 휴정해야 할 만큼 읽을 양이 많았다. 이날 선고로 ‘사법농단’으로 기소된 14명의 판사 중 11명이 무죄를 선고받은 셈이다. 임종헌 전 차장에 대한 1심 선고는 다음달 5일 다른 재판부에서 내린다. 검찰은 이날 “1심 판결의 사실인정과 법리판단을 면밀하게 분석하여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만 입장을 밝혔다.

▲김영옥 기자
문현경·윤지원 기자 moon.hk@joongang.co.kr
01.29 공항 망국론을 멈추려면
20년 전 감사원이 ‘정치공항’ 특감
무안공항 짓는 데 3000억원, KTX 연결에 또 2조5000억원
개항 17년에도 요원한 ‘서남권 관문’
공항은 정치적 전리품 아냐… 세계와 경쟁하는 산업

▲지난해 양양국제공항 대합실이 한산한 모습. 2023.5.25/연합뉴스
20년 전인 2004년, 감사원이 김제·무안·울진공항에 대한 특감 결과를 발표했다. 이미 진행 중인 대형 국책 사업을 감사원이 재검토하라고 강도 높게 요구하면서 제동을 건 것 자체가 이례적이었다. 이들 ‘정치공항’은 정치권 요구에 짜맞추기 해서 수요를 부풀린 것으로 드러났다. 세 공항의 현 주소는 이렇다.
김제공항은 김대중 정부 시절 새만금 지역의 항공 수요에 대비한다며 건설을 추진했지만 감사원 지적으로 건설은 무산됐다. 하지만 새만금 공항으로 부활을 노리고 있다. 오는 4월 총선에 출마를 선언한 정동영 민주당 상임고문은 “전북 발전에 디딤돌이 되기에 김제공항을 추진했는데 좌절되면서 우여곡절 끝에 새만금 공항으로 되살린 것”이라면서 불씨를 지피고 있다. ‘김중권 공항’으로 불리는 울진공항은 감사원 지적으로 기본계획을 변경하고 겨우 완공됐으나 취항할 항공사가 없어 2010년 비행훈련원으로 용도를 바꿔 사용 중이다. ‘한화갑 공항’으로 불리는 무안공항은 개항 17년째 반쪽짜리 공항이다. 공항 짓기 전 수요예측치는 연간 992만명이나 됐다. 지난 17년간 이용객 수를 다 합해도 그 절반도 안되는 400만명 미만이다. 광주공항과 통합해 ‘서남권 거점공항’으로 만들겠다는데 무안군이 민·군 공항인 광주공항의 군 공항 이전은 못 받겠다고 반대하면서 통합이 지지부진하다. 공항 건설에 3000여 억원 들었는데 호남고속철 2단계 공사에서 무안공항역을 짓느라 2조5000억원 넘는 건설비를 또 들였다.
가덕도 신공항 등 선거가 불쏘시개가 되어 재점화된 신공항 건설 붐에 공항 망국론의 우려도 쏟아진다.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에는 공항이 98개나 있다. 남북 길이가 3000㎞로 한반도의 3배, 면적이 대한민국 3.8배에 달하는 크기여서 공항 수요가 우리보다 많은 점을 감안하더라도 공항 난립은 심각한 수준이다. 각 지자체마다 1개 이상 공항을 짓는 바람에 대부분 적자다. 아직 일본보다는 상황이 낫다. 우리나라 공항 15개 중 8개는 민·군 공용이다. 필요한 공항은 지어야 한다. 지금 추진 중인 울릉도·백령도·흑산도 같은 섬의 소규모 공항은 전략적으로 짓고 관광 수요도 개발하면서 영토 활용 범위를 넓혀야 한다. 그리스처럼 섬 많은 나라에는 큰 섬마다 비행기가 뜬다.
문제는 양양·무안공항 같은 황당한 ‘정치공항’에 어떻게 제동을 거느냐다. 지금 같은 공항 건설·운영 방식으로는 ‘공항 포퓰리즘’이 근절되지 않는다. 공항이 국가의 전략적 판단, 경제 논리로 건설되려면 두 가지 필요 조건이 있다.
첫째, 국토부가 공항 건설 계획을 철도 건설과 연계해서 짜야 한다. 국가기간교통망의 20년 단위 장기 계획하에 추진된다지만 실제로는 ‘제6차 공항개발종합계획’(2021~2025년)과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 계획’(2021~2030년)이 따로 논다. 지구 온난화 시대에 맞지 않는 구태의연한 개발 계획이다. 유럽에서 기차는 비행기의 대체재가 되고 있다. 프랑스는 철도로 2시간30분 이내에 닿는 구간의 항공 화물 운송을 금지하는 기후대응법안을 통과시켰다. 유럽에는 온실가스를 대거 배출하는 비행기 타고 여행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고속철 또는 노후화된 기존 철도의 현대화에 더 투자해서 육지의 공항 수요를 줄여야 한다.
둘째, 공항 건설 및 운영을 국가가 다 책임지는 구조를 깨야 한다. 정치인들은 ‘입’만 갖고 공항 짓는다. 양양·무안 공항의 실패를 뻔히 보면서도 공항 생기면 지자체 경제가 훨훨 날 것처럼 장밋빛 발언을 쏟아내고 지역 언론도 거든다. 선거 앞두고 대통령까지 달려가 공항 건설을 약속한다. 아무리 비판해 봤자 ‘공항 포퓰리즘’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초지일관 목소리를 높이면 나랏돈으로 공항 지어주고 운영은 공기업인 한국공항공사가 도맡아 적자도 책임져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항은 이익을 내야 하는 ‘산업’이다. 해외에서는 적자 공항은 외국 기업에 팔리기도 한다. 프랑스 뱅씨 그룹 같은 회사는 세계 13국에 70여 개 공항을 운영한다. 싱가포르 창이공항도 해외 공항 운영에 참여한다.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들이 유권자들에게 해외 여행 가기 편하게 해주겠다고 유혹하는 ‘정치적 전리품’으로 변질되고 있다. 지자체별로 공항 수요가 있다면 상당 부분 재원을 부담시키거나 민간 자본을 유치하게 하고, 운영도 책임지게 해야 한다. 민·군 공용으로 쓰이는 작은 국내 공항까지 그럴 필요는 없고, 명색이 국제공항 간판을 단 7개 공항은 인근 지자체들이 똘똘 뭉쳐 관광상품을 공동 개발하고 아시아 각국의 항공편 및 관광객 유치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공항별 국제수지 통계도 따져야 한다. 일본 지방공항의 처절한 실패와 뼈를 깎는 자구책도 연구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애물단지 공항도 살리고 지방 경제도 살아난다.
조선일보 강경희 기자
01-29 학문과 교수의 자유 넓힌 류석춘 무죄
이규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4단독 정금영 판사는 지난 24일 ‘명예훼손’ 혐의를 받는 류석춘 전 연세대 교수에게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 정 판사는 일본군 ‘위안부’가 ‘매춘의 일종’이라고 한 발언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으나, 수업 도중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현 정의기억연대)가 할머니들을 모아” (허위 증언하도록) 교육을 시켰다고 발언한 데 대해서는 허위사실을 적시해 정대협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판단해 벌금형의 유죄를 선고했다. 정대협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교육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허위 진술을 하도록 교육했다고 볼 만한 객관적인 자료가 없다. 그런데도 피고인은 진위를 확인하려는 노력 없이 마치 그것이 진실인 것처럼 단정적이고 확정적인 표현을 사용했다”며 유죄로 판결한 것이다.
하지만 류 전 교수의 조선인 위안부가 ‘매춘의 일종’이라는 발언에 대해선 “해당 발언은 통념에 어긋나는 것이고 그 비유도 부적절하다”면서도 “표현의 맥락을 고려하면 ‘위안부’들이 매춘에 종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됐다는 것보다는 취업 사기와 유사한 형태로 됐다는 취지에 가까워 보인다”고 지적하며 무죄로 판단했다.
특히, 정 판사는 “학문의 자유의 근간을 이루는 교수(가르침)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교수 행위에 사용된 표현의 적절성을 형사 법정에서 가려주기보다는 자유로운 공개 토론 등을 통해 검증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시했다. 류 전 교수의 “매춘의 일부” 발언에 대한 명예훼손죄 기소 사건인 이번 제1심 판결은, 저서 ‘제국의 위안부’에서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들은 물리적 강제연행을 당한 사실이 없었으며 오히려 그들은 일본군 병사들과 동지적 관계였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여 ‘일본군 위안부’ 강제연행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박유하 전 세종대 교수에게 벌금형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 취지로 이 사건을 환송한 2023년 10월 대법원 판결(2017도18697)을 참조한 것이다.
선고 직후 류 전 교수는 “일제강점기와 관련해 그동안 알던 것과 다른 내용을 얘기하면 ‘나쁜 놈’이라고들 하는데 불편하더라도 진실은 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고, 정의기억연대 측은 “반인권적, 반역사적 판결에 강력한 유감을 표명한다”고 반발했다.
학문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필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그러므로 기본적 연구윤리의 위반 행위, 해당 학문 분야에서 통상적으로 용인되는 범위를 심각하게 벗어나 학문적 과정이라고 보기 어려운 행위의 결과인 경우, 논지나 맥락과 무관한 표현으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칙적으로 학문적 연구를 위한 정당한 행위로 보는 게 타당하다.
위안부가 일제강점기에 강제연행됐다는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견해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적 사실과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게 되는 법적 평가의 영역은 별개의 문제다. 이를 기반으로 류 전 교수 사건에서 ‘매춘의 일종’ 발언은 통념에 반하나,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하지는 못했다면서 헌법상 학문의 자유와의 균형점을 찾은 판결은 정치(精緻)한 심판으로 판단된다.

문화일보
01-29 사법농단 몰이로 망가진 법원 ‘인적 쇄신’도 서둘러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사법 행정권 남용 혐의로 기소된 지 4년11개월 만인 지난 26일 무죄가 선고됐지만, 여야는 공식 논평을 내지 않고 쉬쉬하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의 주역은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고, 수사를 책임졌던 사람은 윤석열 대통령(당시 서울중앙지검장)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안의 본질은 분명하다. 문재인·김명수 합작의 사법농단 몰이였고, 그로 인한 사법부 정치화 및 타락이었다.
정치권력과 사법권력이 야합한 ‘사법 적폐청산’ 와중에 유능한 법관 100여 명이 법원을 떠났고, 빈자리를 문 정권 코드의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 등 특정 성향의 판사들이 채웠다. 당시 핵심 역할을 한 이탄희·이수진·최기상 판사는 더불어민주당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됐고, 김형연·김형식 판사는 문재인 청와대의 비서로 자리를 옮겼다. 사법부 역사에 오점을 남긴 일로 기록되기에 충분하다.
문 전 대통령 집권 기간 온갖 국정 파탄이 벌어졌지만, 사법부 인사와 제도 실패 폐해는 극심했다. 실력 있는 정통 법관들은 밀려나고 정치 성향 인사들이 대법관 등 중요 보직을 차지했다. 판사 탄핵과 관련된 ‘김명수 거짓말’은 상징적이다. 하급심 판사에게 비판받는 대법관도 있었다. 그 결과 여권 정치인 관련 재판의 무기한 지연 등 편파 진행 등으로 법원의 독립성·중립성은 망가졌다. 이재명 사건 재판부 등이 대표적이다. 법원장추천제 도입,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 폐지 등 인사 포퓰리즘도 만연했다.
한시바삐 이런 폐해를 청산하고 인사와 제도를 정상화해야 한다. 다행히 지난 12월 취임한 조희대 대법원장은 최근 인사에서 법원장추천제를 시행하지 않았다. 곧 일반 법관 정기 인사가 있을 예정이다. 무능·정치 판사를 도태시키고, 유능한 법관을 중용하는 일이 무엇보다 급하다.
문화일보 사설
01-30 양승태 무죄, 사법 흑역사 지울 계기다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26일 법원은 이른바 사법농단 사태로 기소됐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47개 혐의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사법부 수장이 사상 최초로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고 정치권력과 유착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지 무려 4년11개월 만에 내려진 1심의 결론이다. 함께 기소됐던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에게도 역시 무죄가 선고됐다.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이 사건은, 2011년 9월∼2017년 2월 양 대법원장 등이 사법행정권을 남용해 재판에 개입하고 판사들의 성향을 기재한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며 헌법재판소를 견제하고 정권과 재판 결과를 거래해 왔다는 이유로 수사를 받으면서 시작됐다.
특히, 사법부 수뇌부가 숙원 사업인 상고법원 도입에 박근혜 정권의 협조를 얻기 위해 직권을 남용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 등의 재판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혐의에 대해, 대법관은 다른 재판에 개입할 ‘권한 자체가 없어 권한남용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블랙리스트 작성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가 선고됐는데, 어느 조직에나 있는 인사 자료가 판사들의 성향을 분류하는 블랙리스트로 보고 기소한 것은 무리였다.
이 사건은 사법권의 독립과 아울러 신속한 재판이라는 헌법 원칙을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 헌법상 사법권 독립은 재판(심판)의 독립의 원칙이나 판결의 자유를 목표로 한다. 헌법 제102조 1항 이하에 따르면 재판부는, 입법부나 행정부로부터의 ‘법원의 독립성과 자율성’ 및 재판에 있어 어떠한 내외적 간섭도 받지 않는다는 ‘법관의 직무상 독립’과 ‘신분상 독립’을 통해 실현된다.
재판부의 이번 1심 결과는 양 대법원장 등이 재판에 관여할 권한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사건이 보도된 2018년 5월 3차에 걸친 대법원의 자체 조사위원회 결론도 이와 유사했다. 그런데도 전임 대법원장은 이 결론을 뒤집었고, 법원행정처가 압수 수색받고 100명이 넘는 판사가 소환 조사당하는 결과를 빚으면서 스스로 사법권의 독립을 훼손했다. 특히, 법원은 수사 과정에서 법원행정처 내부 인사자료와 각종 보고서 등 판사들을 압박할 수 있는 자료들을 적극적으로 검찰에 내줬다고 한다.
이 사건 이후 법원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자괴감을 호소하는 판사가 늘어나고 2021년 1월 정기인사를 앞두고 80여 명의 판사가 법복을 벗으면서 역대 최고의 이직률을 기록했다. 이 사건에 연루돼 수사받은 엘리트 법원행정처 심의관, 고등법원 부장판사 등 많은 이가 스스로 사직했다. 특히, 특정 성향의 판사들이 고속 승진하고, 고법 부장판사 승진 제도를 폐지하며, 지방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도입한 것이 실력 있는 판사들의 업무 몰입도를 저해하고, 주요 재판일수록 계속 지연되는 주요인이 된다는 평가도 주의 깊게 경청해야 한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법사에 있어 발생하지 않아야 할 흑역사로 기록될 것 같다. 유한한 정권이 사법의 근간을 흔들고 일부 혐의를 침소봉대해서 법원의 행정 체계를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것은 결코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헌법상 사법권 독립의 진정한 의미다.
비록 만시지탄이지만 부디 향후의 재판 과정에서 정의가 실현되고, 양 대법원장을 비롯해 오래 고초를 겪은 이들이 신원설치(伸冤雪恥)하기를 기원한다.

문화일보
01.30 ‘김명수 코드’ 판사의 유일한 유죄 선고, 납득 어려운 이유

▲2018년 9월 13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명수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 중앙홀에서 열린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함께 박수를 치고 있다./연합뉴스
이른바 ‘사법 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최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이 사건으로 기소된 14명의 고위법관 중 2명은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 사건으로 유일하게 유죄가 선고된 경우인데 3년 전 그 판결을 한 판사가 윤종섭 부장판사다. 윤 판사는 2017년 김명수 당시 대법원장에게 이 사건에 대해 “연루자들을 단죄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던 사람이다. 재판을 하기도 전에 유죄를 선고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사람에겐 그 재판을 맡겨선 안 되지만 김 전 대법원장은 그에게 사건을 맡겨 유죄를 이끌어냈다.
그 과정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당시 윤 판사가 있던 서울중앙지법은 근무 기간이 보통 3년을 넘지 않는다. 특히 형사 재판장은 2년마다 교체하는 법원 내규도 있다. 그런데도 김 전 대법원장은 같은 법원에 윤 판사를 6년째 유임시키면서 유죄 판결을 이끌어냈다. 사건마다 구체적 내용이 다를 수 있고 그에 따라 판단도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오랜 기간 윤 판사를 붙박이로 둔 것은 문재인 정권이 밀어붙인 사법 농단 사건에서 한 건이라도 유죄를 만들기 위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사실상 사건 청부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김 전 대법원장은 문재인 정권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도 우리법연구회 출신 김미리 부장판사에게 맡기면서 그를 서울중앙지법에 4년간 같은 자리에 뒀다. 김 판사는 15개월간 유무죄를 가리는 공판을 단 한 차례도 열지 않았고, 다른 판사들이 공판 날짜를 정하자 돌연 휴직을 신청했다. 이런 최악의 재판 지연으로 이 사건은 기소된 지 3년 10개월 만인 최근에야 1심 유죄 판결이 나왔다. 이게 사법 농단 아닌가.
지금 법원에선 형사 재판장을 2년마다 교체하는 내규 때문에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관련된 사건 등 중요 재판이 줄줄이 지연되고 있다. 이 원칙은 김 전 대법원장 때 고착화된 것이다. 그래 놓고 윤종섭·김미리 판사만 예외로 한 뒤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였다. 그 일의 진상도 언젠가 다 드러날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1-30 은어, 위장회사, 협력업체 우회… 간첩 같은 기술유출범들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 조사관들은 최근 동아일보 취재팀과의 인터뷰에서 첨단 기술을 해외로 빼돌리는 수법이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했다. 기술유출범들이 탈취하는 기술을 암호 수준의 은어로 부르며 수사망을 피해 가는 건 예삿일이다. 반도체 세정 장치를 ‘식기세척기’, 반도체 초임계 세정 장비를 ‘CL(클라우드)’이라고 하며 차세대 반도체 세정 기술을 빼가는 식이다.
국정원이 적발한 사건 중 기업 보안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는 동안 결재 없이 자료를 무단 전송할 수 있다는 허점을 노려 설계도면을 통째로 유출하거나 재택근무 도중 회사 내부망에 올라온 자료를 휴대전화로 촬영한 유출범도 있었다. 대기업들이 퇴직 임원의 경쟁사 취업을 제한하고 있지만 이를 피해 위장회사를 만들어 기술 인력을 빼간 사례도 적지 않았다.
또 과거에는 핵심 인력들을 포섭해 거액을 주고 기술을 빼갔다면 최근엔 인수합병(M&A)이나 기술 이전 같은 정상적인 경제 활동을 가장해 기술을 탈취하는 방식이 늘고 있다고 한다. 국정원을 비롯해 특허청, 경찰청 등 산업기술의 해외 유출을 단속하는 국가기관들이 이에 맞춰 수사 역량을 고도화해야 할 것이다.
기술 탈취가 날로 진화하며 활개 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기술 유출 범죄에 너무 관대했던 탓이 크다. 그동안 기술 유출 범죄로 실형이 선고된 건 10건 중 1건꼴에 불과하고, 그나마 실형을 받아도 징역 5년을 넘기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국정원 조사관들은 “반성문 썼다고, 상용화되지 않은 기술이라고 감형해 준다”고 했다. 대법원은 최근에야 기업의 호소를 반영해 국가 핵심기술을 해외로 빼돌릴 경우 징역 18년까지 선고하도록 양형 기준을 높였는데, 더는 솜방망이 처벌이 없어야 할 것이다.
동아일보 사설
01-30 이번엔 JTBC ‘배추’ 자막 소동, 가짜뉴스 대응 강화할 때
무차별 유포되는 가짜뉴스를 단속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AI를 이용한 딥페이크 조작까지 손쉬워지면서 세계적 걱정거리가 됐다. 그만큼 내부 게이트키핑 시스템이 필수인 공중파나 종합편성 방송의 팩트 전달·체크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그런데 국내에서 황당한 사례가 줄을 잇는다. JTBC는 지난 25일 윤석열 대통령이 경기 의정부 시장에서 한 발언에 엉터리 자막을 단 영상을 공식 유튜브에 올렸고, 야당 인사들이 퍼 나르는 소동이 벌어졌다.
윤 대통령은 상인과 대화하면서 “정부가 매출 오르게 많이 힘껏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JTBC는 유튜브 영상에 ‘배추 오르게’라는 자막을 달았다. 대통령이 ‘배춧값을 오르게 하겠다’고 말할 리 있겠는가. 그렇게 들리더라도 진의를 확인하거나 해명을 듣는 것이 언론의 기본이지만, 그런 최소한의 절차도 없었다고 한다. 이 영상은 급속히 확산됐고, 대통령을 비난하는 댓글이 쇄도했다. 김용민 의원은 “도대체 어느 나라 대통령이냐”고 비난했다. 며칠 뒤 JTBC는 메인 뉴스 시간에 사과했지만, 윤 대통령과 총선을 앞둔 여당은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그러잖아도 MBC 자막 사태가 진행 중이다. 2022년 9월 윤 대통령이 뉴욕 방문 때 ‘국회에서 안 해주면 ○○○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한 것을 ‘(미국) 국회’ ‘바이든’ 자막을 달아 단정적으로 보도해 외교 문제로 비화했다. 최근 법원이 정정보도 판결을 했는데 MBC는 항소했다. 지난 대선 직전 JTBC 등이 보도한 ‘김만배-신학림 허위 인터뷰’로 판세가 출렁댔다. 정치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언론 불신도 키우는 행태에 대해선 엄단이 불가피하다.
문화일보 사설
01.31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신경 끄기의 기술’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국가” 한국 사회 비판 유튜브, 주말 강타
하지만 문제는 단순하지 않아… 자살·저출생은 사회·경제 구조 탓
대기업 정규직에 혜택 집중된 노동시장 이중 구조가 핵심 원인
국가 소멸 피하고 미래 개척 위해 고통스러운 개혁 무릅써야

▲베스트셀러 작가 마크 맨슨이 '한국의 우울증'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유튜브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국가를 여행했다.” ‘신경 끄기의 기술’로 잘 알려진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마크 맨슨이 지난 22일 유튜브에 올린 영상 제목이다. 대한민국은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정작 한국인들은 불안하고, 우울하며, 자살률마저 높다.
맨슨에 따르면 이것은 잘못된 문화의 문제다. 유교적 집단주의의 나쁜 부분인 수치심, 타인에 관한 판단은 극대화된 반면 가족주의와 사회적 친밀도는 희박하다. 이는 자본주의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현란한 물질주의에 휩싸여 있으며 돈벌이에 눈이 멀어 있지만 자기 표현과 개인주의는 억압당한다. 유교와 자본주의의 장점은 없고 단점만 있는 나라인 것이다.
이 냉철한 ‘한 줄 요약’은 업로드 직후 조회 수 수십만을 기록할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불러왔다. 일제의 가혹한 식민 통치 후 한국전쟁과 극도의 빈곤을 거치며 과도한 경쟁으로 최대한 성과를 내야만 하는 사회 분위기가 정착되었고 그것이 한국인을 우울하게 만든다. 이 논리는 지난 주말 ‘조선일보’를 비롯한 여러 언론의 소개로 유튜브 바깥에서도 많은 호응을 얻었다.
흥미진진한 이야기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2021년 현재 한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24.1명으로 OECD 1위다. 10만명당 18.5명인 리투아니아를 큰 격차로 따돌린 압도적 1위다. 이것이 한국 특유의 스트레스와 문화적 압력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1위인 한국, 2위인 리투아니아, 3위인 슬로베니아는 모두 노인 빈곤율이 높고, 그만큼 노인 자살률도 높다. 2019년과 2020년 기준, 노인 자살률 1위가 한국, 2위가 슬로베니아, 3위가 리투아니아다. 통계적 상관관계가 너무도 분명한 현상이다.
OECD 1위인 자살률은 기본적으로 ‘노인 빈곤’ 문제다. 물론 최근 청년층 자살률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으며 정신 건강 악화도 심각하게 볼 일이다. 하지만 ‘한국의 자살 문제’라는 주제를 다룰 때 치열한 입시 경쟁과 아이들을 들볶는 교육 같은 논의에 방점을 찍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정수리가 간지러운데 발바닥을 긁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다.
맨슨의 영상을 소개한 언론 기사들의 댓글과 온라인 커뮤니티 등의 반응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현상이 도드라진다. 젊은이들, 특히 여자들이 유교적으로 다른 사람 눈치를 보고 비교하면서 자본주의적으로 허세를 부리다 보니 출산율이 곤두박질쳤다는 꾸중이 빗발치는 것이다. 그런데 맨슨은 저출생을 딱히 거론하지 않았거니와, 한국의 저출생은 ‘유교와 자본주의의 나쁜 결합’으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OECD 국가 중 출산율이 1.3명 이하인 초저출산 국가는 한국, 이탈리아, 그리스 세 곳이다. 이탈리아와 그리스가 유교 때문에 애를 안 낳는 나라일 리는 없다. 원인은 문화가 아니라 사회와 경제의 구조다. 조귀동 작가가 ‘이탈리아의 길’에서 지적했듯 “한국과 이탈리아가 최하위권인 이유는 두 나라 모두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 대기업 정규직 위주의 복지 혜택, 여성의 낮은 경제활동 참여율과 남성의 양육 불참 등의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맨슨의 논의 그 자체를 비판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이 지닌 회복 탄력성(resilience)을 믿는다’는 덕담으로 영상을 마무리한 그의 선의를 의심하지 않는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가 한국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언급해주는 것은 우리 자신을 돌이켜보게 해준다는 점에서 고마운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가 스스로의 문제를 그런 식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한국의 문제는 유교 때문도 자본주의 탓도 아니다. 단 하나 핵심 원인을 짚자면 ‘정규직 코스’로 정년을 끝내지 않는 한 빈곤 노인으로 추락하기 십상인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와, 그 속에서 지대를 추구하는 기득권 세력이다. 가난한 노인들이 보수 정당을 찍는다고 조롱과 저주를 퍼붓는 고학력 중산층의 똘똘 뭉친 이기심이 문제다.
우리는 문제의 원인을 이미 알고 있다. 다만 그 해결을 위해 감당해야 할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할 뿐이다. 그러다 보니 진짜 개혁은 시작조차 어렵다. 국가 소멸을 피하고 미래를 개척하려면 고통스러운 개혁을 무릅써야 한다. ‘신경 끄기의 기술’에서 한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단언컨대 고통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고통을 견디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조선일보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01-31 20대 평생 소득 40%가 세금, 5월末이 연금개혁 최종 시한
경제학계의 최대 연례행사인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오는 1∼2일)에서 전영준 한양대 교수가 발표할 논문에 따르면, 2000년 이후 태어난 세대는 나랏빚을 갚기 위해 생애 소득의 40%를 세금(순조세=조세+사회보험료-복지급여)으로 내야 한다. 1950∼1960년생의 10∼15%보다 3배나 많다. 급속한 고령화에 따라 국민·공무원 연금, 건강보험, 기초연금, 장기요양급여 부담이 급증하기 때문이다. 국가채무도 2022년 1068조 원에서 2040년 3000조 원, 2070년 7138조 원으로 불어난다.
이런데도 정치권과 정부는 국민연금 개혁마저 ‘핑퐁 게임’만 벌인다. 더 내고, 덜 받고, 늦게 받는 방향 이외엔 대안이 없음에도 문재인 정부 때부터 6년간 공회전 중이다. 윤석열 정부도 지난해 11월 보험료율·소득대체율 조정 등 모수 개혁 방안을 빼고 24가지의 맹탕 시나리오만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 연금개혁특위 민간자문위 역시 ‘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50%’와 ‘보험료율 15%-소득대체율 40%’의 두 가지 모수 개혁 방안만 내놨다. “나의 지지율보다 국가 이익을 택하겠다”며 연금개혁을 밀어붙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대조적이다.
국회 연금개혁특위 산하 공론화위원회가 31일 출범해 공식 활동에 들어간 데 실낱 같은 희망이 있다. 4·10 총선 직후부터 제21대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는 5월 29일까지가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정치적 부담이 적은 이 시기를 놓치면 언제 실현될지 기약하기 힘들다. 공론화위는 약속한 대로 50여 명의 ‘의제 숙의단’ 및 500명의 ‘시민대표단’과 공론을 형성해 꼭 합의안을 도출하기 바란다. 국회는 이를 토대로 초당파적으로 협의하고, 윤 대통령은 필요하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최종 담판도 회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연금개혁에 실패하면, 현 세대는 미래 세대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역사적 패륜을 저지르게 된다.
문화일보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