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 2023-11/
11-01 현직검사 얼굴에 조직원 음성 입힌 ‘딥페이크 사기’까지 연습

▲그래픽 = 권호영 기자
■ 혀 내두를 보이스피싱
AI 동원 주기적 범행 수법 연구
가짜 검사실 꾸며놓고 영상통화
피해자 대출 유도해 가로채기도
매주 ‘베스트 드레서’ 뽑아 포상
주급 1억 등 피해금으로 돈잔치

경찰이 지난 6월 중국 항저우(杭州)에 근거지를 둔 최대 보이스피싱 조직 한국인 일당을 검거했을 때만 하더라도 범죄 규모는 피해자 133명, 피해금 200억 원대였다. 그러나 최근 미제사건 5439건이 모두 이들의 소행으로 밝혀지면서 피해액은 1491억 원으로 불어났다. 단일 조직으로 피해자 수와 피해 금액이 역대 가장 많다. 이들은 피해자들에게 대출을 유도해 이체시키는 수법을 처음 적용해 대규모 사기를 벌였다. 또 ‘가짜 검사실’을 만들어 ‘사기 무대’로 활용하고, 인공지능(AI) 기반 이미지 합성 기술인 ‘딥페이크’를 활용한 신종 수법을 개발해 예행연습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1일 충남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2017년 4월 항저우에 76명(한국인, 조선족 등) 규모의 보이스피싱 콜센터를 만든 뒤 같은 해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검찰·금융감독원 직원을 사칭해 1891명을 상대로 사기를 저지른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지난 2021년 8월부터 2년여간 이들을 추적한 끝에 한국인 총책 조모 씨 등 44명을 검거해 검찰에 송치했다.
이들은 ‘3단계 현혹법’을 활용했다. 1단계는 검찰 수사관을 사칭한 조직원이 범죄 현장에서 대포 통장이 발견됐고 피해자가 공범으로 연루됐다며 통보하는 것이다. 이어 검사를 사칭한 다른 조직원이 구속 영장 등을 제시하며 “정상 현금인지 일련번호를 확인해야 한다”며 계좌 인출을 유도하면, 마지막으로 검찰과 합동 수사를 진행 중이라는 금융감독원 직원이 나와 돈을 가로채는 방식이다. 이들은 현금뿐만 아니라 피해자를 상대로 “정상 대출이 되는지 확인돼야 한다”며 대출을 받게 해 이 돈도 가로챘다. 피해자들은 초기엔 휴대전화를 통해 112나 검찰청에 사실 확인을 했지만, 조직원들은 미리 설치한 악성 앱을 통해 전화를 가로채 의심을 원천 차단했다. 또 피해자들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법복과 법전, 검사 명패까지 놓인 가짜 검사실에서 영상통화를 하기도 했다.
피해자 상당수는 교수, 의사, 삼성전자 등 대기업 직원, 세종시 소속 고위 공무원 등이었다. 2021년 한 공기업 간부였던 A 씨는 부모님 유산으로 받은 현금 10억 원을 이들 일당에게 빼앗겼다. 여기에 아파트 담보 대출과 신용 대출 등으로 받은 14억 원까지 이들에게 보내면서 피해금이 24억 원에 달했다. 세종시 3급 공무원 B 씨도 5억 원가량을 이 조직에 송금했다. 피해자 5명은 극단 선택까지 했다. 경찰 관계자는 “범죄 조직원 중 전문 해커가 고소득 직군을 노려 각종 연락망을 해킹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대기업처럼 주기적으로 최신 수법을 연구하면서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갔다. 특히 검거 직전에는 방송 등에 출연한 검사의 얼굴에 보이스피싱 조직원 음성을 입힌 딥페이크 피싱 범죄까지 연구해 실전 테스트를 진행 중이었다. 이들은 범죄 수익으로 ‘돈잔치’를 벌였다. 조직원들은 주급 형태로 5000만∼1억 원씩을 받아간 것으로 전해졌다. 현직 대학교수를 초빙해 주기적으로 성 평등 강의를 하고 매주 ‘베스트 드레서(포상 100만 원)’를 선정하기도 했다.
김규태 기자 kgt90@munhwa.com
11-02 [단독] 배우 유아인, 프로포폴 9.6ℓ 등 181회 상습투약

공소장에 증거인멸교사 혐의도
마약류 상습 투약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배우 유아인(본명 엄홍식·37·사진) 씨가 투약한 프로포폴 양만 9.6ℓ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일 유 씨의 공소장에 따르면 유 씨는 마약 상습투약 외에도 증거인멸교사, 사기, 의료법 위반, 대마흡연 교사 혐의 등으로 지난달 19일 불구속 기소됐다. 그는 지난 2020년 9월부터 2년여간 14개 병원에서 미용시술 수면 마취를 빙자해 181차례에 걸쳐 의료용 프로포폴 9.6ℓ등을 투약한 혐의를 받는다. 1.5ℓ 우유로 따져보면 6개 분량이다. 이 외에도 미다졸람 567㎎, 케타민 10.7ml, 레미마졸람 200㎎ 등을 상습 투약했다. 또 44차례 타인 명의로 두 종류의 수면제 1150여 정을 불법 처방받아 사들인 혐의도 받는다.
유 씨는 또 자신의 대마 흡연 사실을 감추기 위해 지인을 마약 투약 범죄에 끌어들이거나 범행 규모를 축소하려 “경찰을 믿지 말라”는 식의 압박 문자를 보낸 혐의도 받고 있다. 유 씨는 올해 1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지인과 함께 대마를 흡연하던 중 동행한 유튜버 A 씨가 자신을 우연히 목격하자, 그를 공범으로 만들어 외부 발설을 막기 위해 “너도 한번 해볼 때가 됐다” “더 깊게 마시라”며 거듭 권한 것으로 조사됐다. 수사를 받고 있던 중인 올해 8월 초에는 함께 경찰 수사를 받았던 또 다른 유튜버 B 씨에게 “네가 무혐의를 받더라도 사건 종료 후 경찰이나 검찰에서 기자에게 너의 진술 내역을 마음대로 공개할지 모른다”며 진술을 번복하라는 취지의 협박성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조사됐다.
강한 기자 strong@munhwa.com
11-02 [속보]경찰, ‘사기 혐의’로 전청조 구속영장 신청
전 펜싱 국가대표 남현희(42) 씨 재혼 상대로 알려진 뒤 사기 의혹이 확산한 전청조(27) 씨에 대해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2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전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전 씨는 자신의 강연 등을 통해 알게 된 이들로부터 투자금 명목으로 돈을 건네받아 가로채거나 이를 위해 대출을 받도록 유도하는 등 혐의를 받는다.
전 씨는 남 씨와 결혼 예정이라고 밝힌 뒤 사기 전과와 재벌 3세 사칭 의혹 등이 불거졌다.
전 씨에 대한 고소·고발을 접수해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지난달 31일 경기도 김포 전 씨의 친척 집에서 전 씨를 체포했다.
문화일보 곽선미 기자
11.03 死刑,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가석방 없는 종신형·제시카법
범죄자 처벌·제재 강화 추세
법조계 “사형 집행도 재개하나”
명령권자 韓법무에 이목 쏠려
최근 법무부는 출소한 약탈적 성범죄자(sexual predator)의 거주지를 제한하는 ‘한국형 제시카법’을 입법 예고했다. 반(反)인륜적 흉악범을 사회와 영구 격리시키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도입하는 형법 개정안도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한동훈 법무장관은 취임 이후 ‘국민 안전’이란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범죄로부터 국민이 안전해야 한다는 의미다. 당연한 말이지만, 범죄 처벌을 강화하기 위해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전제가 깔렸다는 점에서 무게가 다르다. 두 법안도 그 연장선에 있다. 국회를 통과하려면 민주당 동의가 필요하지만 야당으로서도 ‘무조건 반대’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한동훈의 다음 수순은 사형 집행 아니겠느냐”는 말들이 나온다. 지난 26년간 국내에서 사형 집행은 한 건도 없었다. 김영삼 정부 말기인 1997년 12월 30일 23명이 사형된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로 인해 한국은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된다.
그럼에도 사형제는 존치돼 왔다. 헌재는 1996년과 2010년 사형제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지금 헌재에는 세 번째 헌법소원이 올라가 있는데, 헌법재판관 구성의 변화를 감안할 때 이전과 동일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커 보인다.
사형 폐지론의 근거는 생명 존중, 범죄 억제 효과 없음, 오심(誤審) 가능성, 정치적 악용, 교화·갱생의 기회 박탈 등으로 요약된다. 이명박 정부에서 사형 집행을 고려했다가 접은 적이 있었다. 당시 상황을 아는 법조인은 “여러 요인이 작용했었다”면서 “개인적으로는 이 대통령이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는 점이 결정적이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반면, 사형 찬성론은 범죄에 상응하는 처벌이 따라야 한다는 응보론(應報論), 형벌에 대한 공포심을 불러일으켜 범죄를 포기하게 만든다는 위하(威嚇) 효과 등을 기반으로 한다. 생명 존중 때문에 사형제를 없애야 한다면, 그런 나라에서 왜 낙태죄 처벌은 헌법 불합치라는 판단이 나왔느냐는 반박도 있다.
사형은 법무장관의 명령에 의해 집행되지만 그 전에 대통령의 결심이 있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 생각은 잘 모르겠지만, 한 장관은 사형 집행 등 처벌의 강화가 흉악 범죄를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고 한다.
한 장관은 지난 8월부터 전국의 교정시설 4곳의 사형 시설을 점검하라고 한 뒤, 대구교도소에 있던 유영철 등 사형수 2명을 사형 시설 정비가 잘돼 있는 서울구치소로 이감시켰다. 법무부는 집안이 풍비박산 난 피해자 가족들의 최근 상황도 수집했다. 이런 소식이 전해지자 전국의 사형수들이 모범수가 됐다는 말도 들린다.
한 장관은 사형 집행은 “기본적으로 주권적 결정”이라고 했다. 사형 집행을 재개하면 유럽연합(EU)과의 외교·통상 관계가 악화할 것이란 지적에 대한 답이었다. 실제 한국이 EU에 “사형 집행을 안 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없다. 2009년 EU에서 이송된 범죄자에 대해 사형 집행을 안 한다는 합의를 했는데, 그것은 범죄인 인도의 본질상 당연한 내용이다. EU의 주요 교역국은 미국, 일본, 중국 등 사형이 이뤄지는 국가들이다.
현재 전국에는 59명의 사형수가 있다. 법조계에서는 범죄 흉포성이 상상을 초월하고 희생자 가족의 피해가 여전히 심각하며, 범행 자백으로 오심의 가능성이 없는 사형수에 대한 사형 집행 가능성이 거론된다. 한 장관도 이를 놓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을 것이다. 총선을 앞두고 있어서 “선거용”이라는 공격도 있을 테고, 쉽지 않은 문제다. 독자 여러분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하다.
조선일보 최재혁 사회부장
11.04 방심했다간 큰코 다칩니다, ‘팔색조’ 여자 사기꾼의 세계
[아무튼, 주말]
전청조 사건으로 소환한 역대 여성 사기범들

▲펜싱 국가대표 출신 남현희와 재혼 소동을 계기로 사기 혐의가 드러나 체포된 전청조씨. 27세 여성인 전씨는 성별을 넘나들며 남녀 모두를 상대로 혼인빙자 사기와 투자 사기를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42세 남씨에 대해서도 공범 의혹이 제기된다. /여성조선
누구나 범죄자가 될 수 있다. 여성도 절도, 사기, 폭력, 살인을 얼마든 저지른다. 그러나 사람들은 범죄자가 남자가 아닌 여자라고 하면 여전히 놀란다. 여성 주도 범죄에 대해 피해자는 방심하기 쉽고, 사회도 그 피해를 축소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펜싱 국가대표 출신 남현희의 재혼 소동을 계기로 실체가 드러나면서 사기·사기미수 혐의로 체포된 여성 전청조(27)씨도 그런 허를 찔렀다. 전씨는 작은 체구에도 능란한 언변과 친화력, 출신과 재력·인맥 날조에 성별까지 넘나드는 변신술로 여러 혼인 빙자 사기와 투자 사기를 저질렀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사기 같은 지능 범죄 유형이 복잡다단해져 여성 범죄 영역도 팽창하고 있다. 국내외에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여성 사기범들의 수법을 다시 짚어본다. 왜? 유비무환이니까.

▲그래픽=송윤혜
◇장영자부터 이은해까지
한국 여성 사기꾼의 대모는 장영자(79)다. 1980년대 5공 시절 ‘단군 이래 최대 금융 사기’라는 어음 사기를 저지른 ‘큰손’의 대명사. 장씨는 중앙정보부 차장을 지낸 남편 이철희, 전두환 대통령과 얽힌 인척 관계를 내세워 어려운 기업들에 긴급 자금을 빌려주고 그 지원금의 몇 배에 이르는 어음을 받아 사채시장에 유통했다. 이전 이혼 두 번 때 받은 위자료 수억원을 종잣돈 삼아 남의 돈을 남의 돈으로 돌려막는 일종의 폰지(ponzi) 사기였다. 사기 총액은 7000억원대로 당시 국가 예산의 10%나 됐다.

▲1982년 총 7000억원대, 당시 국가 예산 10%에 달하는 천문학적 어음사기를 저지른 '큰손'의 대명사 장영자씨가 39세 나이로 첫 구속되던 모습. /조선일보DB
미모와 화술이 화려했던 장씨는 유력 인사 접대비만 월 3억원 넘게 쓸 정도로 통이 컸다. 1982년 첫 구속 때 포승에 묶여서도 “나는 피해자입니다. 경제는 유통이에요. 난 경제활동을 한 겁니다!”라고 외쳤다. 장씨는 출소 후 어음 사기와 구권 화폐 사기 등을 거듭 저질러 네 차례, 총 29년을 감옥에서 보낸 뒤 지난해 출소했다. 장씨 자신도 ‘사기 중독’ 수준이지만, 그의 정체를 뻔히 알면서도 당한 사람이 그렇게 많았다는 얘기다.
이후 살인을 전제로 한 보험 사기를 저지른 ‘엄 여인’ 엄인숙과 ‘계곡 살인’ 이은해가 연이어 등장했다. 보험 설계사 출신인 엄인숙(46)은 2000년부터 5년간 보험금을 타내려 두 남편을 차례로 사고로 위장해 살해했다. 어머니와 오빠, 남동생까지 바늘로 눈을 찔러 실명케 했다. 엄씨는 탤런트 뺨치는 미인형에 하얀 피부, 얌전하고 나긋한 말투 덕에 장기간 의심받지 않은 채 범행을 이어갈 수 있었다.

▲사망보험금을 노리고 남편을 계곡에 빠뜨려 숨지게 해, 살인과 보험사기로 무기징역이 확정된 이은해의 지난 2016년 결혼식 모습. /온라인 커뮤니티
방송에서 ‘소녀 가장’으로 알려진 이은해(32)는 2019년 보험금 8억원을 노리고 수영 못하는 남편을 깊은 계곡에 빠뜨렸다. 앞서 2010년 전 남편과 2014년 사실혼 관계이던 남자 친구 모두 의문사로 숨졌다. 이씨는 엄씨처럼 사이코패스(반사회성 인격 장애) 측정 평가 점수가 만점에 가까울 정도로 극단적 이기심과 공감 능력 결여, 충동 조절 장애 등이 있음이 드러났지만, 그를 ‘여신’으로 추종하는 팬클럽이 생기는 기현상도 낳았다.
◇”꽃뱀은 꽃뱀 같지 않다”
거의 모든 범죄 피의자는 남성 비율이 훨씬 높다. 사기도 그렇다. 다만 여성은 물리력이 필요 없는 사기에선 일종의 비교 우위를 갖는다. 유엔 통계상 2021년 기준 각국에서 범죄로 유죄가 확정된 비율은 남성이 85%이고 여성이 15%인데, 사기 분야에선 남성이 73%, 여성이 27%였다. 한국에서도 1993~2021년 유죄가 확정된 범죄자 중 여성은 21.2%를 차지했는데, 사기 관련 범죄에선 그 비율이 평균치를 웃돈다. 일반 사기의 22.6%, 횡령의 26.1%, 약취 28.6%, 밀수 30.8%, 위증·증거인멸 36.9%를 여성이 저질렀다.
이에 대해 한 경찰 간부는 “범죄가 발각돼 처분된 수치가 그렇지 실제 여성 사기는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번듯한 지위를 가진 남성이나 유명 인사들이 여자에게 큰 사기를 당하고도 수치심 때문에, 또는 사생활 문제가 드러날까 봐 신고하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는 “여성은 전통적 성 역할과 좁은 행동반경 때문에 범행 기회부터 적고, 여성 범죄가 은폐하기 쉬운 데다 사법기관이 여성에 관대한 경향이 있을 뿐, 실제 범죄성의 성별 차는 크지 않다”고 했다.

▲지난 2008년 여러 국군 장교와 기업인 등을 상대로 기밀을 빼낸 혐의로 구속됐던 탈북자이자 간첩인 원정화. /조선일보 DB
‘여자 사기꾼들(Confident Women)’이란 연대기를 쓴 미국 여성 작가 토리 텔퍼도 “통상 여성은 사기를 칠 만한 권력이나 인맥, 자원을 가졌다고 보지 않기 때문에 위협을 감지하기 어렵다”며 “보호 본능, 공감 능력, 감수성, 친화력 등 남을 조종할 수단은 여성에게 더 많을 수 있다”고 했다.
흔히 여자 사기꾼을 ‘꽃뱀’이라고 부른다. 꽃뱀은 성적 매력으로 이성을 유혹해 금품이나 정보, 조직 내 입지 등을 얻어내기 때문에, 외모가 뛰어나고 드세거나 영리해보일 것이란 선입견이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진짜 꽃뱀은 오히려 외모가 평범하거나 좀 모자라 보일 정도로 유순한 경우가 많다고 입을 모은다. 경계심을 풀게 한 뒤 뒤통수를 친다는 것이다.
2008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된 북한 간첩 원정화(49)는 수년간 여러 국군 장교들과 내연 관계를 맺으며 군사 기밀을 빼돌리고, 중국·일본까지 진출해 남성들을 이용해 사기·첩보 활동을 벌였다. 당시 사람들은 원씨의 범죄 스케일에 놀라고, 사진을 보곤 “저런 평범한 여자에게 다들 홀렸다고?” 하며 또 놀랐다. 호주에선 서맨사 아조파르디(35)란 여성이 2007~2019년 호주와 캐나다, 아일랜드 등에서 ‘말 못하는 10대 고아 소녀’ ‘가족이 몰살당한 러시아 체조 선수’ 등 불쌍한 소녀 캐릭터를 70여 가지나 연기하며 유괴·절도 등 사기 행각을 벌였다.

▲미 실리콘밸리에서 '여자 스티브 잡스'로 불리며 45억달러 돈방석에 앉았던 엘리자베스 홈즈 전 테라노스 CEO. '피 한방울로 250개 질병을 진단한다'는 키트가 거짓으로 드러나면서 실리콘밸리 최악의 사기꾼으로 전락했다. /포브스
◇고독과 허영을 파고든다
잘난 것 없는 사기꾼이 타인의 마음을 훔치고 가스라이팅(gaslighting·심리를 조작해 지배하는 일)까지 할 수 있는 건, 사기란 속이는 사람보다 속는 사람의 상황에 달린 심리전이기 때문이다. 범죄 심리 전문가인 함혜현 부경대 교수는 “사기꾼들은 외로움과 불안, 멋져 보이고 싶은 허영, 부자나 유력 인사와 어울리고 싶어 하는 선망 심리 등 허약한 마음을 잘 긁어주는 이들”이라고 말했다. 피해자로선 사기꾼 자체가 욕망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그들을 자신의 욕망을 실현해줄 도구로 보고 빠져든다는 얘기다. 함 교수는 “특히 경제가 안 좋을 때, 그리고 소셜미디어 발달로 부와 명예, 명분을 과시하려는 욕구가 커질수록 사기는 기승을 부린다”고 했다.
미 실리콘밸리 최악의 사기범 엘리자베스 홈스(39) 전 테라노스 최고경영자(CEO)는 2014년 “피 한 방울로 질병 250가지를 진단할 수 있는 키트를 만들었다”는 거짓말로 1년 만에 자산 45억달러(약 6조원) 돈방석에 앉았다. 스티브 잡스의 검은 터틀넥과 낮은 목소리를 흉내 낸 홈스가 ‘인류를 구할 기술 개발에 미친 금발 천재 소녀’로 등장하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루퍼트 머독과 마윈 등 각계 거물이 그를 앞다퉈 찾아가고 투자금을 모아 줬다. 여성이 성공하기 힘든 분야에서 젊은 여성을 띄워주는 것이 자신들 이미지에 도움 된다는 것을 간파한 남성 기득권층, 그리고 신기술로 돈을 벌겠다는 눈먼 투자자들이 홈스라는 괴물을 키웠다.

▲미국 뉴욕 사교계에서 독일 재벌 상속녀 행세를 하며 유흥비와 투자비를 뜯어낸 러시아의 안나 소로킨이 지난 2019년 법정에 출두하는 모습. /AP
2017년 뉴욕 사교계를 발칵 뒤집은 안나 소로킨(32)은 러시아 트럭 운전사의 딸이지만 독일 유력 가문 상속녀 행세를 하며 은행과 기업에서 유흥비와 투자금 등 수백만 달러를 뜯어냈다. 그는 자신이 꾸며낸 호화 생활과 인맥을 동경하는 사람들에게 ‘안나와 친해지고 싶다’는 열망을 불러일으키고, 일이 꼬인다 싶으면 “내가 20대 여자라 무시하느냐”며 상대의 도덕성을 들어 꼼짝 못 하게 했다. 소로킨은 자신의 사기 스토리를 넷플릭스(’안나 만들기’ 시리즈)에 35만달러(4억원)를 받고 팔았고, 출소 후 각지에 강연도 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기 수법을 아무리 연구하고 알려도 속을 사람은 또 속는다는 게 함정이다.
조선일보 정시행 기자
11.07 키오스크, 곧 ‘터치’ 아닌 ‘대화’로 주문받게 된다
친절한 목소리의 AI… 이제 곧 노인도 어렵지 않게 주문 가능
인간과 대화로 학습한 AI는 사람의 생각과 행동도 예측
세계는 ‘국제 표준어’ 전쟁중… 품질 나쁜 언어는 소멸할 수도
요즘 식당에 앉으면 제일 먼저 테이블에 놓인 ‘키오스크’로 음식을 주문하고 신용카드로 결제를 한다. 유리판으로 만들어진 키오스크 화면에는 친절한 표정도 없고 따뜻한 대화도 없다. 사용법도 직관적이지 않고 복잡하다. 불편하다. 이렇게 키오스크 터치스크린 때문에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는 고통을 받는다. 하지만 다행히도 가까운 미래에 인공지능 덕분에 키오스크 스트레스에서 해방될 수 있을 듯하다. 생성형 인공지능의 한 종류인 ‘대규모 언어 모델(LLM: Large Language Model)’ 덕분에 복잡한 터치 없이 인공지능과의 편안한 대화(對話)를 통해서 맛있는 음식을 주문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LLM은 머지않아 인간처럼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알아듣기 쉽게 설명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인간의 뇌에서 벌어지는 언어의 추상화 과정조차도 인간처럼 인공지능망 속에서 재현해낼 수 있다. 궁극적으로 인간과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인간의 생각을 파악하고 예측하게 된다. 결국 인간의 속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에는 인간과의 대화를 통해서 인공지능의 생각을 인간에게 주입할 수도 있다.
대규모 언어 모델인 LLM은 학습 과정에서 각 단어 간의 관계도(Attention)를 중점적으로 학습하고 기록한다. 단어와 문장 사이 문맥을 익히는 것이다. 그리고 언어에서는 단어의 위치에 따라서 의미가 바뀌기도 한다. 그래서 단어의 위치 정보(Positional Encoding)도 함께 입력하고 학습한다. 이를 통해서 종합적인 문해력(文解力)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사전 학습(Pre-training)’이라 부른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언어 모델이 바로 ‘기반 모델(Foundation Model)’이 된다. 이때 수만대의 GPU와 메모리 반도체가 필요하다. 학습 시간도 수개월이 걸린다. 그러고 나서 이러한 기반 모델에 전문 분야 학습이 추가된다. 예를 들면 정치, 경제, 공학, 의학, 법률 등 전문 분야 글들을 집중 학습한다. 그러면 전문 언어 모델이 탄생하게 된다. 이 과정을 ‘미세 조정 학습(Fine Tuning)’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탄생한 LLM은 주어진 문맥에 가장 확률적으로 적합한 단어들을 순서대로 생성해 낸다. 그 결과 전문 분야의 글을 쓸 수 있다. 그럴듯한 시도 쓸 수 있다. 글에 목소리를 입히면 사람이 말하듯 대화할 수 있다. 결국 초 단위 짧은 시간에 작문도 하고, 보고서도 쓰고, 주문도 받고, 상담도 하고, 강의도 하면서 지시도 한다. 인간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생산성이 구현된다.

▲그래픽=이철원
인간의 뇌를 물리적으로 들여다보는 방법으로 MRI와 CT가 있다. 또 아예 뇌 속에 반도체를 집어넣어 뇌 속의 전기신호를 포착하려고 시도한다. 이를 목적으로 일론 머스크는 기업 뉴럴링크(Neuralink)를 창업했다. 하지만 이들 기술도 뇌 속에 있는 신경세포 뉴런의 신호를 잡아내지는 못한다. 인간의 뇌 속에서 일어나는 추상화 과정을 알아내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 추상화 작업이 언어의 핵심이다. 이를 통해 개념을 서로 전달하고 기록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고(思考)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미래에는 인공지능도 언어를 통한 추상화 능력을 갖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
언어(言語)는 인간인 호모 사피엔스의 대표적 특성으로 기원전 약 30,000~100,000 년경 지구상에 출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에서도 우리 말은 ‘우랄알타이(Ural-Altai) 어족(語族)’으로 분류된다고 학창 시절에 배웠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알타이 어족 또는 우랄알타이 어족의 존재를 두고도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우리말이 신석기 시대인 약 9000 년 전에 중국 동북부 요하 지역에서 유래했다는 새로운 학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언어학, 고고학, 유전생물학 분석 연구를 통해서 얻은 이 연구에서는 우리말이 농업 기술과 함께 한반도로 유입되어 전파되었다고 주장한다. 마찬가지로 지금 디지털 시대에는 인공지능이 쓰는 언어도 디지털 가상공간에서 전파된다. LLM도 인간의 언어처럼 전파된다. 그리고 우수한 언어 모델이 지배적으로 사용된다.
언어 모델의 우수성은 바로 학습에 사용되는 언어 데이터의 품질에 의해서도 좌우된다. 품질이 좋은 데이터는 문법, 의미, 문맥 등을 잘 반영하고 있는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또한 해당 분야 전문 영역의 언어 데이터가 충분히 포함되어야 한다. 그래서 한국어 데이터로 학습한 인공지능은 한국어를 잘하게 된다.
미래에는 인공지능이 잘 사용하는 언어가 ‘국제 표준어’가 될 수 있다. 나머지 언어는 지구상에서 서서히 사라질 수도 있다. ‘한글’이 특화된 언어 기초 모델의 개발이 중요한 이유다. 각국 기업들이 각자의 언어를 지키기 위해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수 인력 확보, 컴퓨팅 인프라 구축, 그리고 양질의 한글 데이터 확보가 시급하다.
인공지능과 대화를 잘하는 인간 전문가를 ‘Prompt Engineer’라고 부른다. 세월이 한참 지나서 인간 사이의 대화는 단절되고, 인공지능과의 대화만 남을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인공지능이 인간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인공지능 사이의 대화만을 원할 수도 있다. 인간 사이에 속담으로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속담이 있다. 인공지능과의 대화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11.09 “정치 집단이냐” 잇단 탈퇴, 민노총 방향 안 바꾸면 고사시켜야

▲/뉴시스
쿠팡이 직접 고용한 배송 기사들이 속한 민주노총 쿠팡 노조가 총회를 열어 민노총 탈퇴안을 통과시켰다. 민노총이 근로 환경 개선, 처우 개선 같은 개별 노조원 권익보다 정치 집회만을 일삼는 데 반발한 결정이라고 한다. 참석 조합원 95%가 찬성했다니 그동안 쌓인 불만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쿠팡 노조는 입장문에서 “노조는 정치적 활동이 아닌 조합원을 위한 활동에 집중하는 것을 가장 우선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민노총은 쿠팡 노조에 진보당 가입과 정치적 집회 참여, 쿠팡 불매운동 동참, 택배 노조와의 연대 등을 요구했다. 또 쿠팡 노조가 지금까지 단체협약을 무효로 하고 쿠팡에 있는 다른 노조와 공동 교섭단을 꾸려 단체교섭을 다시 하라는 요구도 했다고 한다.
최근 민노총에서 탈퇴한 노조는 쿠팡 노조만이 아니다. 포스코지회는 민노총이 조합비는 받아가면서 노조 활동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얼마 전 민노총 금속노조를 탈퇴했다. 국내 2위 석유화학 기업인 롯데케미칼 대산지회, 전공노 안동시지부도 민노총 산하노조를 나갔다. 민노총이 노동자 권익 같은 노조 본연의 활동보다는 정치 투쟁, 시도 때도 없이 길을 막는 무분별 집회, 회사 여건을 고려하지 않는 과도한 요구로 사회·경제적 손실을 초래해온 것을 감안하면 필연적인 현상이다. 젊은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민노총의 이 같은 행태에 대한 거부감이 매우 커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도 민노총 행태가 변하지 않고 있으니 탈퇴하는 노조가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민노총은 집요하게 개별 노조의 탈퇴를 방해하고 있다. 포스코지회의 경우 노조 집행부를 전원 제명하는 방식으로 탈퇴 절차를 밟지 못하도록 했고, 원주시청 공무원노조가 탈퇴하려하자 노조를 상대로 무효소송이나 고소·고발을 남발하는 식으로 탈퇴를 지연시켰다. 노조 가입의 자유가 있다면 탈퇴의 자유도 존중받는 것이 상식인데 갑질도 이런 갑질이 없다. 마치 조직폭력단을 연상케 한다. 조합원의 총의만 확인하면 탈퇴를 자유롭게 할 수 있게 하고 이를 상위노조가 방해할 경우 엄벌에 처하도록 시급히 노동조합법을 개정해야 한다. 민노총이 근본적으로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조합원들이 탈퇴해 이 조직을 고사시켜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11-10 명분 없는 서울지하철 민노총 파업과 원칙 대응 당위성
서울지하철 1∼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의 1노조인 민노총 소속 서울교통공사노조가 명분도 없는 파업을 또 벌였다. 9일 오전 9시부터 10일 오후 6시까지로 예정한 이들의 이른바 ‘경고 파업’으로, 시민은 큰 불편을 겪는다. 첫날에만 해도 지연 운행으로 지하철역이 북새통을 이루고, 퇴근길의 시민 분노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40분을 기다린 끝에야 겨우 탑승할 수 있기도 했다.
“한 달 전에 요금까지 올렸는데, 파업 이유를 모르겠다”는 어느 시민의 개탄 취지대로 ‘묻지 마’ 식 파업이다. 2030 세대가 주축인 3노조(올바른노조)는 ‘정치 파업’으로 규정하며, 불참을 넘어 규탄 집회까지 열었다. 한노총 소속인 2노조(서울교통공사통합노조)는 “공사 측의 최종 제시안은 수용할 만한 수준”이라며 파업 계획을 접었다. 공사 측은 “(1·2노조) 연합교섭단이 합의서를 작성했으나 1노조가 갑자기 뒤집었다”고 밝혔다. “1노조 간부가 대거 포함된 ‘노조 전임자 근로시간 면제 제도’ 위반의 징계 수위 낮추기용”이라는 말까지 나온다고 한다.
서울시는 입장문을 통해 ‘시민의 불편을 볼모로 삼은 명분 없는 파업에는 절대 타협할 수 없다. 원칙 대응해 오랜 기간 이어져 온 악습을 뿌리 뽑겠다’고 했다. 공언한 그대로 관철해야 한다. 불가피한 인력 감축과 안전업무 외주화 방침 등의 원천 철회를 요구하는 민노총 1노조 겁박에 더는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이들이 예고한 대로 오는 16일 대학수학능력시험 이후 또 파업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문화일보 사설
11.13 일상이 된 주말 도심 시위, 불편은 늘 시민 몫인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1일 오후 서울 서대문역 사거리에서 열린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2023 전국노동자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뉴스1
주말인 11일 서울에선 양대 노총의 대규모 집회 등 여러 집회와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 양대 노총에서만 주최 측 추산 11만명이 집회에 참가했다. 집회 참가자들이 차로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바람에 서울 도심 곳곳이 차와 사람으로 뒤엉켜 교통 지옥으로 변했고, 쩌렁쩌렁 울리는 마이크·노래 소음으로 정상적인 대화도 불가능할 정도였다. 집회 참가자들이 피우는 담배 연기로 시민들은 코를 막고 거리를 지나가야 했고, 인근 상인들은 장사가 안 된다고 하소연했다.
이날 모습이 다른 주말과 크게 다른 것도 아니다. 주말 도심 집회는 사실상 ‘상설화’됐다.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주장하는 ‘촛불행동’은 이날 64번째 집회를 서울 도심에서 열었다. 집회와 시위는 자신들의 의사 표현을 위한 것이다. 60번 넘게 집회를 했다면 그 뜻은 이미 충분히 표현됐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매주 도로를 점거하고 행진도 한다. 시민들의 불편과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시위를 위한 시위를 한다.
세계에서 우리처럼 집단 시위가 일상화된 나라는 거의 없다. 미디어 등을 활용해 얼마든지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시대인데도 주말 도심 시위는 물론 평일 퇴근길 시위도 툭하면 열린다. 집회·시위가 신고제여서 주요 도로 등 일부 지역만 빼고 신고하면 경찰이 제어할 방법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민노총의 술판 노숙 집회 등 불법 집회가 잇따르자 경찰은 한 달 전에 시행령을 개정해 교통 소통을 위해 집회·시위를 금지·제한할 수 있는 주요 도로의 범위를 넓혔다. 하지만 경찰은 이번에 시위대에게 어떤 제한 통고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제한을 해도 시위 주최 측이 가처분 신청을 내면 법원이 다 허가해주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실제 판사들은 노숙 집회까지 허용하고 있다. 법원엔 시민들의 불편보다 집회·시위 자유를 우선하는 분위기가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니 시위대가 서울 도심을 제 안방처럼 여기고 집회와 시위를 반복하는 것이다. 법원의 안이한 판단으로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다. 시민들의 평온한 일상도 집회·시위 자유 못지않게 중요한 권리다.
조선일보 사설
11.13 외국인 비율 내년 5% 돌파…'다인종·다문화 국가' 준비됐나?
이주민 남녀 8명의 눈에 비친 대한민국

장·단기 체류 외국인이 지난 9월 말 251만4000명으로 전체 인구(5137만 명)의 4.89%를 차지했다. 내년에 ‘다인종·다문화 국가’ 기준 5% 돌파가 예상된다. 극심한 저출산과 고령화로 공동체 소멸을 걱정하는 가운데 외국인이 한국사회 곳곳에서 활동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인력 부족 때문에 계절노동자를 받지 않으면 농어촌과 중소기업은 문을 닫을 형편이고, 대학들은 외국 유학생을 받지 않으면 유지가 어려울 정도다.
로마도 미국도 개방할 때 더 번영
역사적으로 로마제국이든 당나라든 미국이든 문호를 열고 다양성을 존중할 때 번성했다. 지금 대한민국도 갈림길에 서 있다. 대한민국은 번영을 이어갈 것인가, 아니면 정체와 쇠락의 길로 갈 것인가.
▲8개국에서 온 남녀 이주민 8명이 지난 9일 서울 광화문에서 중앙일보 인터뷰에 응했다. 김경록 기자
국내 거주 외국인이 250만 명을 넘자 국민통합위원회(김한길 위원장)는 지난 3일 ‘다문화 가족’ 대신 ‘이주 배경 주민’(약칭 이주민) 사용을 제안했다. 아시아와 유럽의 8개국에서 온 남녀 8명을 만났다. 그들이 한국과 한국인, 한국 정부 등을 어떻게 보고 느끼는지 궁금해서다. 영국 폴 카버(47·프리랜서 번역가), 일본 나가이 코시로(永井宏志郎·33·서울 후쿠시마 현인회장), 중국 장중이(張忠義·55·연세대 연세차하얼연구소장), 네팔 케이피 시토울라(55·네팔관광청 한국사무소장), 튀르키예 코찬 세나누르(25·TRA미디어 근무), 베트남 원옥금(47·이주민센터 '동행' 대표), 러시아 잔나 발로드(50·서경대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 조교수), 핀란드 루스테트 니나(25·성균관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석사 과정)가 함께했다.
체류외국인 251만, 현재 4.9%
저출산·고령화 영향 계속 늘어
출신 국가별로 차별의식 여전
외국인이 한국 돕는 ‘수단’인가
차별 개선해야 인구위기 극복
정책 컨트롤타워 '이민청' 필요
유학·결혼·취업 등으로 한국과 인연
-한국에서 살게 된 동기가 있다면.
▶나가이 코시로=학창 시절 미국·중국·한국에서 각각 유학한 경험이 있는데 많은 친구를 사귀어 추억이 많고 가장 살기 좋은 곳이 한국이었다.
▶케이피 시토울라=대학 시절 네팔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는데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한국의 발전상을 보면서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코찬 세나누르=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을 더 알고 싶어 한국 문학을 전공했고, 한국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숙명여대 미디어학부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뒤 한국에서 취업했다.
▶루스테트 니나=한국어를 배우고 싶어서 고교 시절 교환학생으로 온 것이 인연이 됐고, 심리학·한국학을 복수 전공하고 성균관대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잔나 발로드=1991년 모스크바 언어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했다. 한·러 수교 이후 북한 교수님들이 모두 떠나는 바람에 한국어를 더 잘 배우기 위해 연세대 대학원에 입학해 남편을 만났으니 운명이다.
▶장중이=1992년 신화사 초대 서울 특파원으로 근무하며 한국인 아내를 만났다. 아들은 한국에서 군 복무를 마쳤고 딸과 아들 모두 한국 국적을 선택했다.
▶원옥금=베트남 직장에서 만난 남편을 따라 결혼해 1997년부터 한국에 살고 있다. 베트남 출신 이주민의 고충을 상담해주고 있다.
▲한국에 사는 남녀 이주민들이 지난 9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자리를 함께했다. 김경록 기자
한류의 비약적 발전은 상상 초월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나.
▶장중이=김영삼 정부의 금융실명제 등 부패 척결 노력 덕분에 지난 31년간 한국은 투명하고 청렴한 사회로 바뀌고 있다. 한류 문화의 비약적 발전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케이피 시토울라=한국에 와서 '하면 된다'를 좌우명으로 삼았다. 한국인의 성실함과 책임감을 배울 수 있어서 감사하다.
▶원옥금=이주 초기와 달리 20여 년이 지나서 보니 요즘은 외국인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완화된 듯하다.
▶코찬 세나누르=한국은 편안한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살다 보니 대학과 직장에서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체감했다.
▶잔나 발로드=1997년 이후 한국사회의 변화를 지켜봤는데 요즘엔 길거리에 외국인이 늘어나 익숙해져 그런지 한국인이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무관심이 오히려 마음에 든다.
▲한국에 사는 남녀 이주민들이 지난 9일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자리를 함께했다. 김경록 기자
값싸고 편리한 대중교통 장점
-한국 생활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다면.
▶폴 카버=편리하고 가성비 좋은 대중교통과 자전거 도로망 같은 인프라가 가장 좋다. 근무 시간은 길고 휴일은 짧고, 물가 대비 연봉이 낮은 것은 아쉽다.
▶나가이 코시로=효율적인 디지털 행정, 새로운 도전을 잘 받아들이는 기업 문화가 한국의 큰 장점이다. 매력적인 옛 골목이 재개발로 사라지고 개성 없는 동네가 많아져 안타깝다.
▶장중이=장애인 편의시설은 물론 여름철 건널목 대형 그늘막 등 공공시설이 인상적이다. 택시와 버스의 난폭 운전이나 야간의 택시 승차거부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코찬 세나누르=한국은 굉장히 안전한 나라라고 느낀다. 원하는 시간에 어디든지 이동할 수 있고 식당·카페에서 휴대전화와 가방을 자리에 놔둬도 걱정이 없다. 오토바이를 거칠게 몰고 길바닥에 침을 뱉는 행동은 충격적이었다.
▶루스테트 니나=핀란드도 안전하지만, 서울이 더 안전한 것 같다. 채식주의에 대한 인식이 아직 부족하고, 완전 식물성 음식을 찾기가 힘들다.
▶잔나 발로드=한국사회의 안전함과 자유로움이 특히 마음에 든다. 다만 이중언어 프로그램과 러시아어 교사가 크게 부족해 교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원옥금=한국에서 배울 장점은 민주주의와 시민정신이다. 외국인을 출신 국가에 따라 차별하는 인식은 문제다.
▶케이피 시토울라=빨리빨리 문화가 빠른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성향은 고치면 좋겠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월 1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민통합위원회 만찬에서 김한길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장,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한동훈 법무부 장관 등 참석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외국인에 대한 존중 점차 늘어나
-외국인에 대한 태도는 어떤가.
▶폴 카버=19년 동안 살면서 보니 한국인은 더 개인화되고 있다. 외국인에게도 더 개방적으로 변하고 있다. 반면 출신 국가별로 좀 다르게 대하는 것 같다.
▶나가이 코시로=과거엔 지하철에서 "일본어로 말하지 말라"는 핀잔을 들은 적이 있지만, 최근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다만 외국인 차별과 재외동포를 아래로 보는 듯한 인식이 남아 있다. 이를 개선하지 않으면 인구 감소 시대를 넘기가 어렵다. 한국인도 다문화 공존을 목표하지 않는가.
▶루스테트 니나=사람마다 다른 것 같다. 한국인은 서양사람을 하나로 묶어서 말하는 경향이 있는데, 같은 서양도 나라마다 문화 차이가 있음을 존중해주면 좋겠다.
▶케이피 시토울라=최근 저출산으로 외국인 인력 수요가 커지고 한국 민간단체들의 노력 덕분에 이주민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한국 정부의 외국인 정책은 어떤가.
▶폴 카버=외국인이 급증하는데도 관련 프로그램 예산이 증액되지 않는 것은 개선할 점이다.
▶코찬 세나누르=비자정책이 변경될 때마다 절차가 복잡하다. 출입국사무소 방문 예약, 외국인 등록증 발급에 한두 달이 걸려 불편하다.
▶원옥금=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외국인 쿼터 확대 등 다양한 제도를 운용하면서도 외국인을 수단으로 보는 것 같다. 내년도 외국인 이주노동자센터 지원 예산이 삭감돼 활동이 위축될까 걱정이다.
▶루스테트 니나=유학비자로 대학에 다니다가 잠시 휴학하면 비자가 자동으로 만료된다. 귀국하지 않아도 되도록 비자 정책을 개선하면 좋겠다.
▶잔나 발로드=법무부가 다문화가정 자녀의 복수국적 문제를 오랫동안 방치하고 있다. 출신 국가에 따른 비자 차별을 개선해야 한다.
▶장중이=영주권 취득 후 3년이 지나면 지방선거 투표권을 주고, 의료보험에 가입한 외국인에게도 정기 건강검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좋은 제도다.
▲한국에 사는 남녀 이주민들이 지난 9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자리를 함께했다. 김경록 기자
속지주의로 가야 외국 인재 몰려와
-한국 사회에 건의할 것이 있다면.
▶폴 카버=외국인을 차별하지 못하도록 '평등법'을 제정하길 바란다. 전국 어디서나 일관성 있는 외국인 지원 서비스를 해줄 컨트롤 타워로 '이민청'을 만드는 데 찬성한다.
▶나가이 코시로=일본보다 빠른 한국의 인구 감소 해법은 출산율 높이기, 이민 확대, 1인당 생산성 증대밖에 없어 보인다. 이민정책을 조율할 기관을 만들면 도움이 될 것이다.
▶코찬 세나누르=이민자에게 무조건적 혜택이 아니라 책임과 의무를 부여해야 한국 국민이 공감하는 이민법과 정책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원옥금=이민청은 이주민 체류 통제에 집중하는 법무부 산하에 두는 것보다 독립 부처로 만들거나 행정안전부 소속으로 두면 좋겠다. 다양성을 갖춘 건강한 다문화 사회로 견인하는 역할에 집중하길 바란다.
▶장중이=기숙사를 갖춘 외국인 학교를 많이 신설해야 외국인 인재를 더 잘 유치할 수 있을 것이다.
▶케이피 시토울라=인력 부족이 심각하다면서 외국인 전문인력의 배우자 취업을 제한하는 비자 정책은 이해할 수 없다. 한국 국적법은 혈통을 중시하는 속인(屬人)주의를 근간으로 하고 있지만, 대다수 선진국은 속지(屬地)주의를 따른다. 속지주의를 인정하면 더 많은 글로벌 인재가 몰려와 대한민국이 더 발전하고 번영할 수 있을 것이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11.14 기득권 내려놓고 변화하겠다는 대학들 나오고 있다

▲2023년 글로컬대학 지정 현황
교육부가 앞으로 5년간 1000억원씩을 지원할 ‘글로컬 대학’ 30여 곳 중 우선 10곳을 발표했다. 글로컬대 사업은 역대 최대 규모(3조원)의 지방 대학 지원 사업이다. 변화를 선도해야 할 대학이 우리나라에선 가장 변화를 거부하는 집단이었다. 이 사업이 대학 사회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이번에 선정된 대학들이 내놓은 계획은 신선한 내용이 적지 않다. 강원대와 강릉원주대는 ‘1도 1국립대’를 만들어 춘천·원주·강릉·삼척 등 4개 캠퍼스를 특성화하기로 했고, 울산대는 인근 산업 단지마다 6개 캠퍼스를 조성하는 ‘찾아가는 대학’을 만들기로 했다. 순천대는 스마트팜 등 3대 특성화 분야를 중심으로 학과를 전면 개편하기로 했다. 국립대들이 통합(8개가 4개로)하거나 기존 학과 전면 개편에 협력하는 등 대학·교수의 ‘기득권’을 내려놓은 곳들이 대부분이다. 정부 지원과는 별도로 지자체들도 대학에 250억~1800억원까지 내놓기로 한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국내 대학들은, 특히 지방 대학들은 저출산에 따른 학생수 감소와 취약한 재정 등으로 존폐 위기에 놓여 있다. 글로컬대 선정은 대학 소멸 시대에 살아남을 사실상 마지막 기회일 것이다. 교육 문제는 사람들이 집 값 비싸고 생활비 많이 드는 서울을 선호하는 큰 이유 중의 하나다. 지방에서도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으면 서울 집중 현상 완화는 물론이고 장기적으로 저출생 극복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지방의 자생력을 키우는 데 대학의 존재와 역할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교육부는 이번에 지역 안배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지역 발전을 이끌 수 있는 혁신성을 보고 뽑았다”고 밝혔다. 앞으로도 계속 이 원칙을 지켜야 한다.
이 사업의 성패는 결국 각 학과 교수들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과감한 변화에 동참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미 통합되는 대학 등에서는 반발이 적지 않다고 한다. 변화에 저항하며 기득권을 지키려는 대학은 과감하게 선정을 철회하고 지원금을 회수해야 한다. 이번 지원 사업에서 탈락하는 대학 중 상당수는 독자 생존이 어려울 것이다. 이런 대학의 퇴로 마련을 위한 사립대 구조 개선법도 늦기 전에 처리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11-14 쟁의는 ‘진짜 일하는 노동자’의 권리

송시영 서울교통공사 올바른노동조합 위원장
서울교통공사(지하철 1∼8호선) 안에는 민주노총 산하 교통노조와 한국노총 산하 통합노조, 새로고침 소속 올바른노조 총 3개의 노조가 있다. 지난 9, 10일의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 파업은 이례적으로 연합 교섭단(교통노조, 통합노조) 중에서 한국노총 산하 통합노조는 최종적으로 파업을 반대해 빠지고, 민주노총 산하 교통노조만 파업을 했다. 정권 교체 후 2년 연속 파업이다.
우리 올바른노조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파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아니, 파업을 하지 못했다. 비교섭단체여서 실질적인 파업을 할 수 있는 단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파업의 핵심 쟁점은 인력 감축(구조조정)이다. 이는 멀쩡히 회사에 다니던 사람들을 해고하는 게 아니다. 비핵심 직렬(식당·이발실·구내운전·목욕탕 등)은 자회사에 이관하고, 신규 인력 채용을 축소해 자연 감(減)조정하겠다는 계획이다.
올바른노조의 입장은 언론을 통해 밝혔듯이 명확하다. △비핵심 직렬(전환된 직렬)의 자회사 이관 찬성과 신규 채용 축소 반대 △파업 및 단체행동은 존중하지만, (인력 문제를 일으킨 것도 기존 노조이고, 심지어 무단결근을 일삼아 부족한 현장 인력의 공백을 더욱 키웠기에) 현장에서 직접 일하는 노동자들이 파업을 주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비상식적인 불법적 친인척 전환 비리로 조직을 비효율적으로 만들고 인건비를 증가시킨 것도 기존 노조들이다.
‘시민의 안전’을 생각해서 파업한다지만, 정작 본인들은 무단결근을 일삼으니 시민·국민에게 호소하는 파업에 정당성이 있느냐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오히려 정당한 파업과 쟁의행위, 노조에 대한 인식을 더 안 좋게 만드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또, 지난해는 하루 정도 파업했는데 교섭 결렬 전후 합의서는 거의 달라진 게 없었다. 일반 직원들은 ‘뭐라도 얻어내려고 파업하다가 실패한 건가’ 하고 생각을 할 수 있는데, 올해는 노사협력실장이 노사합의서를 공개하자 직원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파업은 왜 하는 거야?” “비핵심 직렬 383명은 자회사 이관이 당연한 것 아니야?” “임금을 동결했을 때는 합의하더니, (이제) 온전한 임금 인상에는 파업하네” 등 다양한 반응이 사내망을 통해 올라왔다.
결국 파업의 가장 큰 쟁점은 인원 부분인데, 비핵심 직렬은 자회사로 이관하고 부족한 안전 인력은 늘리는 게 해법이다. 온전한 임금 인상, 법정수당 총액의 인건비 제외 등 만족할 만한 합의는 아닐지라도, 파업할 정도의 합의안은 아니었다는 게 중론이다. 상황이 이러니 정치 파업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많다. ‘임금 때문에 한 파업이 아니었다. 시민의 안전 때문에 파업한다고 해놓고 본인들은 회사에 나오지도 않고.’
노조는 임금과 처우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이익단체인데 임금 때문에 파업하는 게 아니라니, 노조 위원장인지 정치인인지 헷갈린다는 동료도 많다. 그만큼 노동단체의 정치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노조의 본질은, 열심히 일해서 회사를 발전시키고, 좋은 임금과 대우 및 근무 환경을 갖도록 조성해 주고 대변하는 것이다. 노동자 단체는 노동자 단체로서 해야 할 말과 행동만 하면 된다. 결국엔 조직의 ‘본질’에 집중하는 단체가 살아남을 것이다.
문화일보
11.14 "태양광, 전기료 압박" 보고에…文청와대 "정무감각 없냐" 질책
가족 명의로 태양광 사업을 하면서 내부 정보를 이용해 유리한 부지를 선점하는가 하면, 태양광 기업의 편의를 봐준 뒤 해당 업체 대표 이사로 재취업하고, 브로커를 동원해 허위로 농업인 자격을 취득한 이가 수백 명이며….
감사원이 14일 발표한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 감사결과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때 의욕적으로 추진한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은 한 마디로 복마전(伏魔殿)이었다. 한전 대리급 사원부터 산업부 간부급 공무원까지 곳곳에서 한탕을 노리며 불법과 탈법을 저질렀다는 것이 감사원의 지적이다.

▲영농형 태양광. 중앙포토
감사원에 따르면 한국전력의 한 대리급 직원은 아내와 모친, 장모 등의 명의를 빌려 태양광 발전소 6곳을 운영했다. 업무 연관성이 있는 공공기관 종사자가 태양광 사업을 운영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불법인데, 이 직원은 내부 정보를 이용해 사업에 유리한 부지를 선점했다. 그래서 올린 불법 매출액은 8억8000만원 규모. 이런 식으로 한전 임직원의 배우자와 자녀 등이 아무런 신고 없이 태양광 사업을 운영한 경우가 182명이었는데, 그중 47명은 본인이 사업을 직접 운영했다. 한전은 2017년부터 본인은 물론 가족 명의를 차용한 태양광 사업도 금지했지만, 이에 아랑곳없이 태양광 사업이 말 그대로 부업이었던 셈이다. 에너지공단의 전 부이사장도 배우자와 자녀 명의로 태양광 발전소 3곳을 운영해 3억원 규모의 매출을 올렸다.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은 태양광 업체의 편의를 봐준 뒤 해당 업체의 대표이사가 되는 ‘기술’도 선보였다. 민간 최대 태양광 발전 사업인 ‘아마데우스 사업’ 추진 과정에서 업체 A는 충남 태안군에 태양광 발전소를 지으려 했다. 그러나 태안군이 사업용지 용도 변경 인허가를 안 내주자, 평소 친분이 있던 산업부 공무원 B씨와 접촉했다. B씨의 고시 동기인 산업부 담당 과장은 2019년 1월 국장 보고도 생략한 채 초지 용도 변경을 위한 유권해석을 내렸다. 이 과장은 유권해석을 내릴 권한 자체가 없었지만, 산업부 과장이란 자리를 활용해 임의로 공문서를 만든 것이다. 이러는 사이 B씨는 산업부를 퇴직한 뒤 해당 업체의 대표이사로 재취업했다.
2018년 7월부터 5년간 산업부가 시행한 한국형 FIT(Feed in Tariffㆍ발전차액지원제도)에서도 탈법이 적발됐다. 농업인 등 소규모 태양광 발전사업자의 안정적인 수익 창출을 보장하고자 한국수력원자력 등 발전공기업이 재원을 지원하는 이 사업에 참여한 농업인 2만3994명 중 44%는 제도가 도입된 후 농업인 자격을 얻었다.
애초 농업에 종사하던 이들이 아니라, 이 제도의 혜택을 보려 농업인 자격을 급하게 취득했다는 의미다. 이들 중 851명은 브로커를 통해 위조한 등록서류를 제출하거나, 농업인 자격을 잃은 뒤에도 FIT에 그대로 참여했다. 특히,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농산물품질관리원 소속 업무 담당자가 가짜로 영농확인서를 꾸민 뒤 셀프 접수하고 FIT 계약을 체결한 사례도 있었다.

▲감사원 최재혁 산업금융 감사국장이 14알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태양광 백태가 벌어진 큰 배경에는 문재인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신재생에너지 정책이 있었다는 게 감사원의 지적이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7월에 ‘2030년까지 신재생 발전 비중 20%’를 국정과제로 채택했다. 이에 따라 산업부는 그해 12월 신재생 에너지 목표를 기존 11.7%에서 20%로 올리면서 “매우 의욕적인 목표이고, 필수 인프라 확보 없이 사업 목표를 대폭 확대하면 전력 공급 차질로 국가 안위까지 위협할 수 있다”고 적시했다.
한 발 더 나가 문재인 전대통령이 유엔 총회에서 온실가스 40% 줄이겠다고 연설한 뒤 2021년 "NDC를 연내 상향하라"고 지시하자 산업부는 “이행 방안은 나중에 찾자”는 식으로 신재생 비율을 30% 늘리겠다고 보고했다. 그해 9월 2일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2030년 NDC 40%(신재생 30%)로 확정됐다. 이후 문 전 대통령은 그해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정상회의에서 “한국은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이상 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당시 담당자들은 “신재생 30%가 숙제로 할당된 상황이라 실현 가능성을 고려할 수 없었다”, “정무적으로 접근했다”고 진술했다. 산업부는 정권이 바뀌고 난 뒤인 지난해 11월 “2030년 신재생 30% 목표는 탑다운으로 설정된 과다한 수치였다”고 밝힌 뒤, 올 1월 21.6%로 하향 조정했다.
신재생 확대로 한전의 전기구매 비용이 늘어난다는 연구 보고서 내용도 대부분이 삭제돼 2019년 8월 국회에 제출된 것으로 밝혀졌다. 한전이 외부 기관에 의뢰해 작성한 해당 보고서엔 '신재생 에너지 확대에 따른 전력구입비 증가''전기요금 인상 필요성'등이 포함됐으나, 산자부의 요청으로 한전은 해당 내용을 임의로 삭제하고 국회에 제출했다. 삭제된 분량만 보고서의 절반 이상(67%)에 달했다. 산자부 관계자는 "전기료 인상 논란에 시달려 앞만 보는 경주마처럼 시야가 좁아졌다"고 감사원에 진술했다.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다른 전기요금 인상 요인과 관련해 산업부는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높여도 2018년부터 2030년까지 12년 동안 전기요금이 10.9% 오를 것”이라는 비현실적인 전망을 내놨는데, 이 과정에서 청와대의 압박이 있었던 사실도 드러났다.
산업부는 신재생에너지 단가가 높아 전기요금 상승이 수반될 수밖에 없고 2030년 전기요금 인상 전망이 20%를 넘는다는 보고를 했다가 문재인 청와대 관계자로부터 “말이 되나. 정무적인 감각도 없냐”는 질책을 들었다. 이 관계자는 감사원에 “가장 합리적인 데이터로 전망한 수치에 대해 지적받으니 곤란하다는 하소연을 상급자에게 했던 기억이 있다”고 진술했다.
감사원은 이같은 내용의 감사 보고서를 공개하며 부당 업무처리자 7명을 징계·문책 요구하고 공직자 240명에 대한 추가조사 후 징계 필요성을 소속 기관에 통보했다. 또한 범죄혐의가 발견된 49명은 검찰에 고발했다. 앞서 지난 6월 감사 중 수사의뢰한 38명 외의 추가 조치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11.15 공직자들 불법 돈벌이 수단 전락한 태양광 사업
감사원, 한전 직원 등 수백 명 적발…공무원도 유착
문 정부 청와대는 신재생에너지 부작용 축소 시도
감사원이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된 태양광 발전사업 실태를 감사한 결과 태양광으로 불법 돈벌이를 한 공직자와 공공기관 직원 수백 명이 적발됐다. 한국전력 임직원의 배우자나 자녀 등이 신고 없이 사업한 경우가 182명에 달했고, 이 중 47명은 가족 명의를 빌려 직원 본인이 운영한 사례였다. 한 대리급 직원은 가족 명의로 발전소 6곳을 운영하면서 내부 정보로 유리한 부지를 선점하는 등의 방식으로 8억8000만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산업부가 소형 태양광 사업에 참여하는 농업인에게 우대 혜택을 주는 사업에서도 불·탈법 사례가 속출했다. 사업에 참여한 농업인 2만3994명 중 44%는 제도가 시작된 후 급하게 농업인 자격을 갖추었다. 심지어 농업 경영체 등록 업무를 맡은 직원이 본인을 ‘셀프 등록’하고 혜택을 봤다. 군산시에선 시장의 고교 동문이 1270억원 규모의 새만금 태양광 발전사업 추진업체 대표이사로 선발됐는데, 이 사람은 안경점을 운영하며 시장 선거운동을 도왔을 뿐 관련 경력이 전혀 없었다. 군산시는 면접 심사의 추천 배수를 늘리는 무리수를 써가며 해당 자리를 준 사실이 감사 결과 밝혀졌다. 산업부 공무원도 지인의 부탁을 받고 고시 동기인 담당 과장을 통해 지자체의 용도변경을 위한 유권해석 공문을 내주었다. 이 공무원은 이후 해당 업체 대표이사로 재취업하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못 해먹은 사람이 바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가 됐다.
비리의 근본 원인은 문재인 정부의 무리한 정책 추진이다. 감사원은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030년까지 30% 수준으로 늘리겠다는 문 정부의 목표가 과도했다고 지적했다. 목표치만 높였을 뿐 정작 에너지 보급을 위한 인프라 대책은 부실했고, 사업만 막무가내로 벌이다 보니 비리의 온상이 돼버렸다.
특히 감사원에 따르면 문 정부 청와대는 산업부로 하여금 ‘태양광·풍력 등의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높이더라도 2030년까지 전기요금이 10.9%만 오를 것’이라는 잘못된 전망을 발표하게 했다. 탈원전 기조하에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과도하게 늘리면 전기요금이 40% 가까이 오를 수 있음을 산업부가 알았지만, 신재생 발전 단가가 하락하는 것으로 계산을 바꾸도록 했다는 것이다.
한전은 감사 결과에 따라 비리 의혹이 있는 직원들을 조사해 승진 제한 등의 불이익과 해임 등의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관련 공직자들에 대한 징계 등은 물론이고 자료 조작을 지시한 문 정부 인사들에 대해서도 수사 등을 통해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경제 원리를 무시한 채 무리하게 추진한 정책은 결국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이런 요지경이 반복되지 않도록 쐐기를 박아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
11.17 도심을 ‘혐오 캠핑장’ 만든 민노총의 일주일 노숙 집회

▲/장련성 기자
지난 14일부터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서 민노총 노조원들이 밤늦게 광화문 인도에 텐트 20여 개를 설치하고 노숙 집회를 하고 있다. 이 집회가 20일까지 예정돼 있다. 경찰이 노숙 집회 금지 통고를 했지만 이를 허용해달라는 민노총의 신청을 판사가 받아들여 노숙 집회가 가능해진 것이다. 두 달 전 법원이 민노총의 1박 2일 노숙 집회를 허용한 적은 있지만 ‘일주일 노숙 집회’를 통째로 허용한 것은 처음이다. 민노총 건설노조원 5000여 명이 서울 광화문에서 불법 노숙 집회를 하면서 술판을 벌이고 노상 방뇨까지 한 게 6개월 전이다. 그런데도 이번엔 아예 장기 노숙 집회를 허용해 준 것이다.
판사는 “집회를 전면 금지하면 노조가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노숙 집회 참가 인원을 100명으로 제한하고, 음주 금지·소음 기준 준수 등 조건을 달았다. 집회가 불법으로 변질되거나 시민들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이런 조건을 붙였을 것이다. 하지만 마치 캠핌장이 된 것처럼 텐트가 도심 거리를 점거하고 경찰의 집회 관리용 펜스까지 더해지면서 시민들은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다.
집회·시위의 자유도 절대적 기본권은 아니고, 시민들의 평온한 일상을 해치는 수준까지 허용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그동안 판사들은 시민 불편보다 집회 자유를 절대적으로 우선시해왔고, 이제 장기 노숙 집회를 허용하는 상황까지 왔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심야 시간 집회는 집회의 본질과도 맞지 않는 것이다. 집회·시위는 자신들의 의사 표현을 위한 것인데 사람도 별로 없는 심야 시간에 대체 누구를 향해 의사 표현을 한다는 건가. 사람들에게 불편과 고통을 주는 것이 목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각인시키고 원하는 것을 이루려는 것이다. 일종의 폭력이다. 이것은 헌법상 집회 시위의 자유의 본 뜻과는 거리가 있다.
이런 상황까지 온 데는 헌법재판소가 2009년 야간 옥외 집회 금지 조항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린 후 후속 입법을 하지 않은 정치권 책임도 크다. 당시 헌재 결정은 집회를 무제한 허용하라는 게 아니었다. ‘해 진 후, 해 뜨기 전’으로 돼 있는 집회 금지 시간이 과도하니 이를 합리적으로 재조정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치권이 이를 방치해 집회를 24시간 허용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시위에 관대한 판사들, 정치권의 무책임이 ‘일주일 노숙 집회’라는 현상을 만든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11-17 도심 노숙 집회 금지가 헌법에 더 부합

김상겸 동국대 명예교수·헌법학
최근 장기간 집회를 신고하면서 야간 집회가 개최되다 보니 ‘노숙 집회’까지 생겨난다. 그런데 노숙 집회라고 하지만, 야간에 노숙하면서 하는 집회를 ‘집회’라고 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야간에 텐트를 치는 노숙 집회 신고에 경찰은 이를 금지했고, 노조는 행정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했다. 법원은 집회 장소에서 음주 행위 금지, 노숙 농성 참가 인원 및 방식 등 일부 제한 조건을 덧붙였지만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법원은 공공 대로변에서 텐트 치고 노숙하는 것도 집회의 방법이라고 봤는지 모르겠으나, 상식적으로 야간 집회라고 해서 주간 집회와 다를 바가 없다는 점에서 이해하기 어렵다. 법은 상식에 기초해 인간의 이성적 판단으로 만들어진 규범이다. 시대가 변한다고 해도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게 변하는 건 아니다. 공공장소에서 야간에 텐트를 치고 집회를 하는 것은 상식을 넘어서는 일이다.
우리나라는 집회의 자유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규정해 보장하고 있다. 집회는 같은 의사를 가진 사람들이 일정한 장소에 모여서 의견을 표명하는 것이다. 집회의 자유는 사람들이 모여서 같은 의견을 표출한다는 점에서 표현의 자유에 속하지만, 언론의 자유와 달리 ‘사람들이 모인다’는 데 본질이 있다. 그래서 모이는 것 자체를 금지하면 집회의 자유 본질을 침해해 헌법에 위배된다.
집회의 자유에서 집회가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기본권과 충돌할 수 있는 옥외집회다. 옥외집회는 일반적으로 개방된 장소인 광장·공원·건물 앞의 도로 등에서 열린다. 특히 도로와 인접한 장소에서 집회가 개최되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통행 자유와 충돌할 수 있고, 사람들이 생활하는 장소 인근에서 하는 경우 집회에서 발생하는 소음으로 인해 평온한 생활을 하는 주민들의 기본권과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 헌법은 모든 기본권에 대해 △국가안보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 본질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집회의 자유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로 제한한다. 집회의 자유를 제한한다 해도 그 본질인 모임 자체를 금지할 순 없다. 그렇지만 집시법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해산된 정당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집회 또는 집단적 폭행, 방화 등으로 직접적인 위협이 명백한 집회 등은 금지한다.
헌법이 집회에 대해 허가제를 금지하고 있어서, 집시법은 집회를 신고제로 운용한다. 누구든지 집시법이 정한 요건에 따라 신고를 통해 집회를 개최할 수 있다. 그런데 옥외에서 해가 뜨기 전 또는 해가 진 후의 야간 집회를 하는 경우 어두워진 환경 때문에 주간 집회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헌재는 2009년 집시법의 야간 옥외집회 금지 규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다.
헌재의 결정에 따라 국회는 집시법 야간 집회 규정을 개정해야 함에도 방치하고 있다. 그래서 현실에서는 부득이 주간 집회에 관한 규정을 준용해 야간 집회를 운용한다. 프랑스는 야간 집회의 잠재적 위험성 등을 고려해 시간적 제약과 강화된 요건을 규정해 제한한다. 야간 집회도 집회 요건을 충족하면 최대한 보장해야 하지만, 철야 집회를 한다고 해도 사람들이 통행하는 공공장소에서 텐트를 치는 것은 규제해야 마땅하다.
문화일보
11.17 우리에겐 듣지 않을 권리도 있다
크게 튼 스마트폰, 과한 안내방송…
굉음만이 소음인 것은 아니다
정치 비방 현수막 내리듯
‘청각 공해’ 줄일 방법도 찾아야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아파트 사자후’라는 인터넷 밈(meme·우스개)이 있다는 걸 최근에 알았다. “야! 개 짖는 소리 좀 안 나게 하라!” 이 처절한 외침은 아파트 이웃 반려견 소리를 참다 못 해 한 남성이 토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수 뺨치는 성량과 호소력의 ‘원본’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온 2011년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패러디와 2차 창작이 이어지고 있다. 재능 있는 이들이 이것을 멜로디로 변환해 기타와 피아노로 연주했고 전자음악(EDM) 리믹스도 나왔다. 보컬 트레이너가 음역대와 발성을 조목조목 분석하는 영상도 있다.
밈은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생물학적 유전자(gene)에 대응하는 문화 유전자라는 의미로 만든 용어다. 애초에 복제와 전파를 전제하고 있긴 하지만 하나의 밈이 10년 넘게 생명력을 유지하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다. 댓글 창의 분위기에서 비결을 짐작할 수 있었다. “층간 소음 들릴 때 크게 틀면 효과 직빵.” “우리 아파트도 개 짖는 소리 때문에 미치겠어요.” 누구나 불쾌한 소리에 시달려 본 경험이 있다. 괴로웠던 그 기억이 소음에서 비롯된 분노와 공명한 것이다.
못 볼 꼴 앞에선 고개를 돌리기라도 하겠지만 소리는 그럴 수 없다. 청각은 무차별적인 감각이다. “거리가 떠나갈 듯한 볼륨으로 음악을 트는 것은 음악에 대한 사랑이라기보다는 공격적인 행동에 가깝다. 가청 거리에 있는 사람들은 좋건 싫건 들어야 하고 마음의 평화는 깨져버린다.”(다이앤 애커먼 ‘감각의 박물학’)
광화문 거리를 걷다 보면 마음의 평화가 깨지는 경험을 자주 하게 된다. 목청으로 뽑힌 게 아닐까 싶었던 어느 정당의 당직자가 집회 무대에서 스피커가 찢어져라 악을 쓰던 날, 말 그대로 귀를 막고 얼굴을 찌푸리는 사람들을 봤다. 예수 천국 트럭의 확성기에서 나오는 “회개하라” 방송이 세종로 사거리에 울려 퍼질 땐 가만히 듣고 있을 수밖에 없는 무력함에 화가 치밀었다. 가까운 사이여도 정치와 종교 얘기는 조심스럽기 마련인데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거리낌 없이 내지른다. 우리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굉음이 아니라는 이유로 소음 취급도 못 받는 소리들은 아직 그것이 문제라는 의식조차 없는 것 같다. 공원에 가면 스마트폰 소리가 밖으로 들리도록 틀어놓은 사람들을 자주 본다. 내가 듣는 것은 좋은 음악이고 중요한 뉴스라서 괜찮다는 걸까. 출근길 버스에 오를 땐 스피커부터 확인하는 게 습관이 됐다. 아무것도 틀어놓지 않은 날은 운이 좋은 날이다. 내 취향이 아닐지라도 음악만 나오는 날은 그나마 낫지만 정치인들이 라디오에 나와 열을 올리는 날은 아침부터 피곤해진다.
지하철에선 “모두가 힘들지만 나보다 더 힘드신 분들을 위한 배려는 우리 모두를 기분 좋게 한다”며 자리 양보를 권유하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양보할 사람은 방송이 없어도 양보하고 모른 척할 사람은 방송이 나와도 모른 척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신체 접촉을 하지 마라’ ‘CCTV로 찍고 있으니 조심해라’ ‘통화는 조용히 해라’로 역마다 이어지는 방송을 묵묵히 들을 때, 나는 지하철 타면서 왜 착하게 살라는 훈계까지 들어야 하는지 궁금해진다.
며칠 전 퇴근길에 거리 풍경이 왠지 차분해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살펴보니 건널목을 뒤덮었던 정치 비방 현수막이 줄어들어 있었다. 아직 남아 있는 현수막도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한결 새롭게 느껴졌다. 그 장면은 우리가 만들어낸 감각 공해를 우리가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것처럼 보였다. 시각뿐 아니라 청각에 대해서도 고민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겐 자유롭게 말할 권리만큼 소중한, 듣지 않을 권리도 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채민기 기자
11.17 치안감 죽음까지 이어진 경찰 비리 의혹 철저히 규명해야
수사 청탁 브로커 관련해 검찰의 수사 대상 올라
문 정부서 힘세진 경찰, 인사·수사 비리 끊어내야
전남경찰청장을 지낸 전직 치안감 김모씨가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른 뒤 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김 전 치안감은 경찰대학 출신으로 경찰 내 요직을 거쳐 왔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그가 수사 선상에 오른 사건은 보행 데크 설치업자로 알려진 브로커 성모씨의 경찰 수사 및 인사 개입 의혹이다. 전·현직 경찰관과 폭넓게 교류해 온 성씨는 가상화폐 사기 피의자에게 약 17억원을 받은 뒤 경찰 관계자들을 통해 수사 기밀을 빼내고 청탁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대 출신 전직 경무관이 사건 청탁을 받고 금품을 수수한 혐의(변호사법 위반)로 지난 9일 구속됐고, 이에 앞서 전남경찰청에 근무했던 전직 경감도 사법처리됐다. 숨진 김 전 치안감 외에도 경무관급 이상 전·현직 경찰 고위 간부들과 경찰서장급인 현직 총경들이 비리에 연루됐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어 파문이 어디까지 퍼질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광주지검 반부패강력수사부는 광주경찰청 등을 압수수색했고,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에서도 강제 수사를 시작해 전 경찰 조직이 뒤숭숭한 상태다. 특히 검찰이 압수수색 과정에서 ‘3개 연도 전남경찰청 인사고과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파악되면서 성씨의 경찰 인사 개입설도 증폭되고 있다.
경찰의 수사 청탁과 인사 비리는 고질적인 병폐로 지목돼 왔다. 이에 대한 대비책이 미비한 상태에서 문재인 정부는 경찰 권한을 강화하고 검찰 수사권을 축소하는 정책을 밀어붙였다. 2021년 1월 개정 경찰청법에 따라 국가수사본부를 신설하고 자치경찰제를 도입하는 등 경찰 권력이 크게 확대되자 권한 남용을 견제할 장치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국가정보원의 국내 정보 수집 중단으로 정보를 독점하게 된 경찰이 수사종결권까지 갖게 되자 사건을 축소·왜곡할 수 있다는 우려는 더욱 커져 왔다.
이번 사건 브로커의 범죄 의혹은 그 같은 경고음이 기우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경찰의 수사 관련 비리는 수사권 강화 이전에도 빈발했다. 지난 9월 징역 2년형이 확정된 은수미 전 성남시장 관련 사건이 대표적이다. 은 전 시장의 정치자금법 등 위반 사건을 수사하던 성남 중원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이 은 전 시장 측에게 사건 자료를 제공하고 인사 청탁을 하는 등의 혐의가 드러나 법정 구속됐다.
전직 치안감까지 연루된 이번 브로커 사건은 검찰 수사관이 구속되는 등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특히 성씨가 경찰 간부 인사에까지 개입했다는 정황이 나오고 있어 파문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경찰은 지난 정부의 수사권 조정으로 권한이 대폭 강화된 만큼 이제라도 인사·수사 비리의 구태를 끊어낼 강력한 대책을 내놔야 한다. 그것만이 제2의 브로커 사건을 막는 길이다.
중앙일보 사설
11.17 [단독] "1억에 5명 승진" 캘수록 커지는 파문…치안감만 넷 연루
김모 전 치안감의 극단적 선택으로 이목이 집중된 광주지검의 ‘사건 브로커’ 의혹 수사가 경찰을 상대로 한 수사무마 청탁과 승진 청탁 두 갈래로 전개되고 있다. 이미 전직 경무관 1명을 구속한 검찰은 전직 치안감 3명, 현직 치안감 1명과 하위직급 경찰관 다수가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보고 있다.
숨진 치안감, 9000만원 수수 혐의…‘전달자’ 구속
검찰은 숨진 김 전 치안감에 대해 소환 통보 등 연락을 취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근 김 전 치안감을 뇌물 수수 혐의의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해 조사중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김 전 치안감이 전남지방경찰청장 재직 당시인 2021년 1월 경찰 공무원 5명으로부터 승진 청탁금 총 1억500만원을 받기로 약속하고 그 중 9000만원을 실제 수수했다는 혐의에 대해 조사를 벌여왔다. 김 전 치안감에게 9000만원을 건넸다는 ‘중간 전달자’ 역시 전직 경감 이모씨였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광주지검 반부패·강력수사부(부장 김진호)는 지난 10월 이모씨의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한 뒤 11월 초 이씨를 구속해 추가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검찰은 이씨의 진술을 토대로 김 전 치안감을 수사하기 위해 준비중이었다.
당시 이씨를 통해 김 전 치안감에게 돈을 건넨 의혹을 받는 현직 경찰 5명중 일부는 돈이 건너간 지 일주일 만인 2021년 1월 말 인사에서 경감에서 경정으로 진급했다.
승진청탁 의혹은 검찰이 지난 8월22일 구속 기소한 사건 브로커 성모(62)씨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성씨는 2020~2021년 가상자산 사기범 탁모(44)씨 등으로부터 수사무마 청탁의 대가로 공범인 전모씨와 함께 고가의 외제차 등 18억54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는 인물이다. 검찰은 성씨와 전씨를 우선 변호사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긴 후 두 사람이 받은 돈이 실제 경찰 관계자에게 수사무마 대가조로 들어갔는지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다.
코인사기 피의자, 브로커·치안감 사진 주며 “지켜주겠다”

▲사건 브로커 성모씨(오른쪽)는 다수의 검경 인맥을 동원해 승진ㆍ수사무마 청탁을 수년간 해온 인물로 알려졌다. 특히 성씨는 가상자산 사기범죄 피의자 탁모씨(44)의 수사를 무마해주는 대가로 18억5400만원 상당을 받은 혐의(변호사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사진은 탁씨가 피해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보여줬던 성씨와 현직 치안감 A씨와 찍은 사진. A씨는 현재 사건 브로커 사건과 관련해 검찰 수사선상에 올라있다. 독자제공.
특히 가상자산 사기 수사무마 청탁에는 검찰이 강제수사 대상에 올린 현직 치안감 1명(A씨)이 연루됐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탁씨는 가상자산 투자자들로부터 가상자산에 대신 투자해준다는 명목으로 돈을 받았는데, 탁씨는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브로커인 성씨와 A치안감이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 다녔다는 것이다.
중앙일보가 확보한 사진에는 경찰 근무복을 착용한 A치안감이 경찰 내 사무실로 보이는 곳에서 성씨와 함께 있는 모습이 담겨있다. 탁씨는 2021년 8월초 한 투자자에게 이 사진을 전송하며 “지켜주겠다”고 말했고, 성씨와 관련해선 “검·경 수사도 이 분(성씨)만 있으면 금방 빼낼 수 있다. 어르신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검찰은 탁씨가 녹음한 성씨와의 통화녹음 파일을 확보하고 이를 토대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다만 A치안감은 성씨와 관련해 “밥 몇 번 먹은 게 전부”라고 해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 사건과 관련해선 A치안감 외에도 수사 주체였던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 B경감의 사무실 등을 지난달 18일 압수수색했다.
또 다른 청탁 사건 있다…檢 광주경찰청 등 압수수색
검찰은 성씨가 이외에도 수년간 경찰 인맥을 토대로 다수의 승진·수사무마 청탁을 해온 것으로 보고 검·경내 실제 청탁을 했거나 들어준 당사자들에 대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지난달 19일엔 전남지역 지방자치단체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수사 상황을 피의자 측에 누설한 혐의로 광주지검 목포지청 검찰 수사관 심모씨를 구속하고, 또다른 검찰 수사관 1명을 입건했다.
지난 9일엔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전직 서울경찰청 수사부장을 지낸 C 전 경무관을 구속하기도 했다. 이어 10일엔 광주경찰청 수사2계와 정보협력계, 광주북부경찰서 형사과, 광주광산경찰서 첨단지구대 등을 압수수색했다.
허정원ㆍ손성배ㆍ이찬규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11.17 [단독]광주 뒤집은 경찰 브로커 의혹…출발은 'FTB 코인' 사기

▲'사건 브로커'에게 경찰 수사 무마를 위해 금품 등을 제공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탁모(오른쪽)씨가 지난 2020년 한 변호사로부터 비트코인 1만개를 공증 받았다. 독자 제공
‘사건 브로커’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서울경찰청을 압수수색한 배경에는 ‘FTB 코인’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광주지방검찰청 반부패·강력수사부(부장 김진호)는 지난달 18일 FTB 코인 사건 수사를 담당한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 팀장인 A 경감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경찰 수사과정에서 수사 무마 청탁이 작용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수사 무마 청탁 의혹’ 탁씨 사기 혐의 일부 불송치
FTB코인은 사건 브로커 성모(62)씨 등에게 수사 무마 대가로 18억5400만원 상당의 금품을 제공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탁모(44)씨가 2020년 발행한 가상화폐다. 경찰에 따르면 탁씨는 해당 코인의 주요 거래소 상장 계획이나 전자지갑 잔액 등 허위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투자자들을 속여 투자금을 편취한 혐의를 받았다.

▲FTB그룹 이사 탁모(44)씨는 2020년 6월 투자자들에게 전자지갑의 비트코인 1만개를 인증했다. 그는 투자자들에게 ‘교주’로 불렸다. 독자 제공
탁씨는 투자자들에게 비트코인 1만개(당시 시세 1300억원)가 들어있는 전자지갑을 보여주며 “FTB 코인의 가치가 떨어지더라도 비트코인 1만개로 원금을 보상해 줄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또 FTB 코인이 국내 4대 거래소 및 세계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인 미국 바이낸스에 상장된다고 주장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탁씨가 비트코인 1만개를 실제로 가지고 있지 않았고 주요 거래소에 상장 되지도 못했기 때문에 사기죄를 적용, 지난해 12월 탁씨를 서울 중앙지검 정보기술범죄수사부에 송치했다. 군소 거래소인 프로비트에 상장된 FTB코인은 락업(Lock-up·동결) 기간 동안 가격이 폭락해, 투자자들의 피해액이 10억여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FTB코인은 백서를 통해 2022년까지 바이낸스 등 해외 메이저 가상화폐 거래소에 상장하겠다고 했으나 지켜지지 못했다. FTB코인 백서 캡처
다만, 경찰은 탁씨의 일부 혐의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탁씨는 투자자들로부터 받은 비트코인으로 대신 거래해 얻은 이익을 일정액 돌려주는 ‘마이닝 트레이딩’과 비트코인을 맡기면 추후 원금에 이자를 더해 돌려주는 ‘비트코인 랜딩’도 진행했다. 그러나 FTB 코인 사기 의혹이 불거진 뒤 투자자들의 항의가 이어졌고, 탁씨는 이들에게 일정 금액을 돌려줬다. 투자자들이 비트코인을 맡길 당시 시세와 맞먹는 액수의 현금을 돌려줬기 때문에, 해당 혐의에 대해서 불송치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반면 투자자들은 투자금을 맡긴 시점과 돌려준 시점 사이에 비트코인 가격이 올랐으므로, “처음 투자금으로 맡긴 금액에 시세가 오른 만큼의 이자까지 더해서 돌려줘야 한다”며 탁씨가 사기를 쳤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피해자들의 변호인은 마이닝 트레이딩과 비트코인 랜딩 사기까지 합치면, 탁씨의 사기로 인한 피해액은 391억원까지 늘어난다고 주장했다. 경찰의 사건 처리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같은 의혹에 대해 A 팀장은 “최선을 다해 수사했고 그 결과 모르던 사실도 밝혀내 검찰에 송치했다. 사건 처리에 문제가 있다는 말은 사실무근이다. 수사기록을 모두 검찰에 넘겼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탁씨, 수차례 사기 전과…피해자 “경찰 수사 의심”

▲'사건 브로커'에게 수사 무마 대가로 금품을 제공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탁씨는 강도상해 혐의로 2015년 상반기 종합 공개수배 대상자에 올랐다. 독자 제공
한편 탁씨는 과거 여러 차례 사기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광주지방법원은 2010년 10월 사기죄로 재판에 넘겨진 탁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고, 유예기간 중이던 2011년 8월 대전지방법원 서산지원도 사기죄로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이후에도 탁씨는 사기 혐의로 기소돼 2014년(광주지법) 다시 징역 10개월을 선고 받았고, 출소한 이후에는 강도상해 혐의로 2015년 상반기 종합 공개수배 대상자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또 광주고등법원은 2017년 사기와 강도상해 혐의로 탁씨에게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FTB 코인 사기 사건 피해자 측에 따르면 탁씨는 과거에도 비트코인 1만개를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유사한 수법으로 서울 가락시장 일대에서 투자금을 편취한 혐의(사기)로 지난 2021년 불구속 기소되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해당 사건 재판은 2년 가까이 공전 중이라고 한다. 첫 공판이 기소된 지 1년 6개월 뒤인, 지난 6월 열렸다는 것이다. FTB 코인 사건의 한 피해자는 “사기 전과도 여러 건 있는데, 탁씨에 대한 경찰 수사가 잘 진행되지 않은 것 같아 원망스러웠다”며 “지금 돌이켜보면 사건 브로커 성씨가 뒤에 있던 것이 원인이 아닌지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이찬규·허정원 기자 lee.chankyu@joongang.co.kr
11.18 ‘디지털 정부’ 주도 기관이 만든 정부 전산망 먹통

▲17일 오전 서울의 한 구청에 전국 지방자치단체 행정전산망이 시스템 오류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이날 지자체 공무원들이 접속하는 행정전산망인 '세올'에서 전산 오류가 생기면서 지자체 업무는 물론 행정복지센터 민원 업무 처리도 지연되고 있다. 2023.11.17/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17일 행정 전산망에 오류가 발생해 시·군·구청과 주민센터는 물론 온라인 민원 사이트 ‘정부 24′의 서류 발급이 온종일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때문에 부동산 거래, 자동차 매매, 금융권 대출 등에 필요한 각종 서류 발급이 중단돼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행정 전산망을 유지하고 민원서류를 발급하는 것은 정부가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일이다. 인터넷 강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주민등록등·초본과 인감증명서조차 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이번 사태는 행안부 산하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이 16일 밤 대전 통합전산센터 서버의 보안 패치를 업데이트한 이후 오류가 발생하면서 빚어졌다고 한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은 자칭 “디지털 정부 플랫폼을 주도한다”는 기관이다. 그런 기관이 정부 전산망 전체를 먹통으로 만들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시스템은 2007년 전국 시·군·구에 보급됐다. IT 업계에서는 15년이 넘은 시스템을 제때 정비하지 않고 미루다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정부는 최근에서야 ‘차세대 지방행정공통시스템’ 구축을 위한 예비타당성조사를 시작했다. 새 시스템을 갖추려면 여러 해를 더 기다려야 한다. 여기 드는 예산은 4300억원 정도라고 한다. 여야의 선심성 퍼주기 예산에 비하면 크다고 할 수 없는 돈이다. 정치권이 표만 생각하고 국가의 근간은 소홀히 한 것이다.
국가기관의 전산망 불통은 지난 3월 법원 전산망, 6월 나이스(NEIS·교육 행정 정보 시스템) 먹통 등 올 들어 세 번째다. 시스템이 먹통이 된 것도 문제지만, 이럴 때를 대비한 비상 매뉴얼 없이 종일 우왕좌왕한 것도 문제다. 행안부는 뒤늦게 ‘비상근무를 하면서 수기로 민원 서류를 발급하라’는 지침을 내렸지만 역부족이었다고 한다.
조선일보 사설
11.19 “걔는 내가 편하게 죽였습니다”… 인육까지 먹은 유영철, 19년째 반성은 없다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
1997년 12월30일. 이날은 9살 여아를 강간하고 살해한 임풍식 등 등 흉악범 23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된 날이다. 그 후 국내에서 더는 사형 집행은 없었다. 2007년 엠네스티는 한국을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했다.
그 사형 제도가, 26년만에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국내에서 잇달아 벌어진 ‘묻지마 살인’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올해 7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국회에서 사형제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그는 “여러가지 고려할 점이 많다”면서도 “영구히 격리해야 할 범죄자가 분명히 있다”고 했다. “대한민국은 사형 제도가 법에 명시돼 있다”고도 했다.
8월이 되자, 한동훈 장관은 사형 시설을 갖춘 교정 기관 4곳에 “집행 시설을 점검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어 전국에 흩어져 수감됐던 사형수들이 ‘사형 집행 가능 시설’인 서울구치소로 이감됐다.
법무부의 공식 입장은 “사형제를 존치하는 것만으로 그 나라가 후진적이거나 야만적이라고 볼 수 없다” “사형은 야만적 복수가 아니라 오히려 정의에 합치된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 사형 확정 판결을 받은 사형수는 59명이다. 이들의 면면을 재조명해본다. /편집자주
“저놈을 교수형에 처할 때 저도 참여하게 해주십시오. 제발 부탁입니다!”
2004년 10월 25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청사 417호 대법정 방청석에서 이런 울부짖음이 울려퍼졌다. 이 법정 피고인에게 살해당한 수많은 사람의 유족 중 한 명이었다.
이 법정 피고인은 노인과 여성 등 20명을 살해하고, 시신을 토막 내고, 일부는 먹은 혐의로 기소됐다. 그런 그는 법정에서 유족들을 향해 심드렁한 표정으로 이런 말을 내뱉곤 했다.
“댁의 딸이 어떤 일을 했는지 아세요?”
“걔는 내가 편하게 죽였습니다.”
그는 모든 혐의를 인정했고, 사형 선고에 항소도 하지 않았다. 결국 유족의 바람대로 이듬해 법원은 최종심에서 피고인에게 사형을 확정했다. 판결문엔 이렇게 적혔다.
‘피고인은 유족들에게 구체적인 살해 방법을 고지하며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줬다.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한 것이 전혀 없다’
그리고 19년이 흘렀다. 그는 아직 살아있다. 법원이 선고하고 유족이 기대한 교수형의 집행은, 없었다.
피고인의 이름은 유영철, 연쇄살인마다.

▲20명을 살해한 혐의로 2005년 사형이 확정된 유영철. 오른쪽은 2019년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공개한 유영철 사진./ 조선DB·SBS
유영철에게 살해 당한 피해자들은 유영철에게 어떠한 해도 끼친 적이 없는,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연쇄살인범이 되기 전, 그는 절도범이었다. 붙잡힌 뒤 신(神)에게 집행유예형을 기도했으나, 실형 선고를 받고 감옥에 갔다. 그는 이때 ‘교회’에 앙심을 품었다고 한다. 이후 아내에게 이혼 당하고 아들 양육권을 뺏기자 살인을 결심했다고, 그는 주장한다.
살인 도구는 직접 만들었다. 큰 개를 구해와 어떻게 죽이면 가장 효과적인지를 실험했다. 그렇게 손잡이가 짧은 4㎏짜리 쇠망치가 탄생했다.
첫 살인은 2003년 9월 24일이었다. 서울 신사동 소망교회 인근 단독주택에 침입해 1층 안방에 있던 노인 부부를 살해했다. 이유는 없었다.
보름 뒤엔 80대 노모, 60대 며느리, 30대 손자 일가족 3명을 살해했다. 그 해 11월 18일에는 혜화동 주택에서 80대 집 주인과 50대 파출부를 죽였다. 범행 후 강도범 소행인 양 꾸미던 중 손가락을 다쳐 방바닥에 자신의 피가 묻자 집에 불을 질러 증거를 없애기도 했다.
사건 현장에서 발자국이 발견되고 CCTV에 뒷모습이 찍히자 유영철은 범행을 4개월 정도 멈췄다.
살인이 재개된 건 2004년 3월이었다. 피해자는 전화방 업소 여성이었다. 유영철과 만나던 사이였다가 이별을 통보한 게 죽음의 이유였다.
이때부터 유영철은 타깃을 바꿨다. 전화방과 출장마사지 업소 여성이 대상이었다. 불법 업소 여성은 실종돼도 신고할 가능성이 적다는 점을 노렸다.
살인의 방식은 더 잔혹하고 엽기적으로 바뀌었다. 업소 여성들을 자신이 사는 오피스텔로 불러들여 살해했다.
유영철은 범행 장소인 욕실을 ‘죽음의 문턱’이라 불렀다. 해부학 책을 구해다 읽고 시체를 절단해 암매장했다.
피해자의 신원을 확인하지 못하도록 열 손가락 지문을 도려냈다. 시신을 훼손하면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영화 ‘1492, 콜럼버스’의 주제가 ‘낙원의 정복(Conquest Of Paradise)’를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넉달동안 11명이 유영철의 욕실에서 생을 마감했다. 유영철은 여성의 생전에 미리 혈액형을 물어본 뒤 자신과 혈액형이 같은 여성은 살해한 뒤 그 장기(臟器)를 먹었다고 뒷날 수사기관에 진술했다.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거주했던 서울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경찰이 감식을 하고 있다./조선DB
2004년 7월 15일 붙잡혔다. 체포된 뒤에도 반성의 기미는 없었고 도리어 호기를 부렸다.
유영철은 경찰들에게 “여기 있는 형사들 다 특진시켜주겠다”고 과시하며 범행을 자백했다. 계급이 낮은 경찰관을 상대하게 되면 “어느 정도는 돼야 나랑 대화를 한다”고 하기도 했다.
현장검증 때 경찰에게 “에이씨”라며 신경질 내는 장면도 여러 번 포착됐다. 신문 내내 담배를 피우던 검사에겐 “담배 끊으세요. 나보다 검사님이 먼저 죽을 수도 있어요”라고 여유를 부렸다.
법정에서도 그는 달라진 게 없었다.
법관에게 “다음 재판부터는 안나오겠다”고 했다. 법관이 “피고인은 나오도록 돼있으니 돌아가 잘 생각해 보라”고 하자, 유영철은 “생각해 보는 게 아니라 안 나온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곤 자리에서 뛰어올라 법원 직원석에 착지했고, 거기서 다시 재판장 자리로 뛰어가려다 미끄러져 넘어진 일도 있었다.
유족들이 방청석에서 자신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야이 X팔”이라고 소리를지르며 법정 나무 의자 2개를 박살내기도 했다.
교도소에 가서도 그는 무서울 게 없었다.
2004년 서울구치소에서 유영철은 건방지다는 이유로 함께 수감된 조직폭력배들로부터 집단 린치를 당한 일이 있었다. 두들겨맞던 유영철은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밖에서 깡패 새X 하나 못 죽이고 들어온 게 한이다. 씨X!”
당시의 조폭 중 한 명은 올해 9월 언론 인터뷰에서 유영철에 대해 “교도관들도 터치를 안 하고, 아주 안하무인인 데다 남들 머리 위에 있으려고 했다”고 회상했다.
2014년엔 교도관 이름으로 성인물을 불법 반입한 사실이 발각되기도 했다. 이 일로 소지품 검사를 받게 되자 “나는 이미 끝난 사람이다. 건들지 말라”며 소란을 피웠다.

▲2004년 7월 23일 봉원동 야산 현장검증 당시, '범행 장소를 딱 찍어보라'는 경찰에게 "에이씨"라고 신경질 내는 유영철. /YTN
올해는 유영철이 첫 살인을 저지른 지 20년이 된 해다.
그간 유영철이 잘못을 뉘우치고 있단 말은 들리지 않는다.
유영철은 구속 기간 중 월간조선 기자와 나눈 수십통의 편지에 이렇게 썼다. “2003년 출소해서 로또에 당첨이 되었더라도 아마 살인은 멈추지 않았을 거다. 오히려 그 돈으로 완벽하게(?) 아지트라도 만들어 내 목적을 달성했을 것이다.”
지난 9월 25일 대구교도소에 있던 유영철은 서울구치소로 이감됐다. 서울구치소는 현재 실질적으로 사용 가능한 사형 시설을 갖춘 유일한 장소다.
유영철은 이감 사실을 당일에 통보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가 서울구치소에 간 뒤 한 재소자에게 “사형을 기다리고 있다. 이 정부는 독해서 사형을 집행할 것”이란 말을 했다고 한다.
유영철이 19년전 체포된 직후 취재진 앞에서 한 말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이를 계기로 여성들이 함부로 몸을 놀리거나 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고, 부유층들도 각성했으면 합니다.”
조선일보 최혜승 기자
11.20 행정전산망 ‘먹통’ 사태, 사흘 지나도록 원인도 모른다

▲19일 오후 서울 동작구 사당3동 주민센터에서 직원들이 정부 행정전산망 장애 사태 관련 복구 상황 등을 점검하며 비상근무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 지자체 행정 전산망인 ‘새올 지방행정정보시스템’과 온라인 민원 서비스인 ‘정부24′가 장애를 일으켜 전국의 민원 서비스가 전면 중단됐다. 정부가 가장 기본적인 업무인 행정 전산망 유지, 민원 서류 발급도 못 한 것이다. 정부가 주말 사이 두 시스템을 정상화시켰다고 했지만 서류 발급 업무가 몰리는 월요일까지 상황을 더 봐야 한다고 한다. 이러고도 IT 강국, ‘전자 정부 선진국’이라고 자처할 수 있겠나. 사태가 발생했을 때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우리나라 전자 정부의 성과를 홍보하기 위해 해외 출장 중이었다니 이런 아이러니도 없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19일까지 이번 사태의 원인이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고 발생 전날 밤 시행한 보안 패치 업데이트와 사고의 인과관계 등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사흘이 지나도록 정부 주요 전산망의 장애 원인조차 밝혀내지 못하는 수준이라니 믿기 어려울 정도다.
장애가 발생하면 동일한 기능을 가진 대체 서버를 즉시 가동하는 것이 보안 시스템의 기본 중 기본이다. 작년 10월 ‘카카오 먹통’ 사태가 일어나자 정부는 재발을 막겠다며 ‘카카오 먹통 방지법’까지 만들었고 그 핵심은 백업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정부 전산망에 오류가 발생했는데 그런 대체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 정부의 위기 관리 시스템의 허술함도 그대로 드러났다. 재난에 준하는 상황인데도 정부의 대응 매뉴얼도 없었다. ‘디지털 재난’에 가까운 사태였지만 행안부는 이를 알리는 재난 문자 메시지도 전송하지 않았다.
온라인 시스템을 통해 처리해야 하는 정부 민원, 행정 서류 등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이번 사태는 사전에 정부 행정망의 철저한 점검, 셧다운 시 대응 매뉴얼 마련과 상시적인 훈련 등 정부에 많은 과제를 주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기업의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 참여를 제한하는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오픈과 동시에 마비된 2020년 온라인 수업 시스템, 2021년 코로나 백신 접종 예약 시스템에 이어 이번 새올행정시스템도 중소 IT 업체가 구축·운영한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국민이 사용하는 대형 시스템의 경우 중소기업 우선권을 따지기 앞서 능력을 제대로 갖췄느냐를 최우선 순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11-20 행정망 마비, 대기업 배제와 쪼개기 발주가 화근이다
정부 행정전산망인 ‘새올’ 시스템이 마비 사흘째인 20일 오전 일단 정상화됐다. 그러나 근본적 문제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번 경우는 해킹 등 사이버 공격이 아니라 시스템과 관리 부실 등이 원인으로 추정되지만, 전문가들은 중국·북한 등에 의해 언제든 행정망이 교란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번 사태를 뼈아프게 받아들이고 종합 대책을 추진해야 하는 이유다.
행정안전부는 새올 시스템의 접속 인증 시스템, 그중에서 L4 스위치 장애가 원인이었다고 19일 발표했다. 이 시스템은 매출 200억 원의 중소기업이 구축, 운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중소기업들이 구축한 주요 공공 전산망 장애가 꼬리를 물고 있다. 지난 3월엔 법원 전산망이 마비됐고, 6월에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나이스)이 말썽을 일으켰다. 게다가, 공공 전산망은 중앙·지방정부마다 관리 주체가 달라 원인 파악조차 쉽지 않다.
이런 총체적 부실 배경에는 대기업 배제와 헐값 쪼개기 입찰 관행이 똬리를 틀고 있다. 정부는 2013년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를 차단한다며 자산 규모 5조 원 이상의 삼성SDS, LG CNS, SK C&C 등에 대해 공공서비스 참여를 막아버렸다. 중견·중소기업만 입찰에 들어오면서 헐값 쪼개기 발주가 만연해졌다. 정부가 업체에 업그레이드와 사후 관리 비용까지 떠넘기는 ‘과업 변경’ 관행도 문제다. 당초 의도와 달리 대기업과의 기술 격차도 좁혀지지 않았다. 정부도 다급하면 글로벌 경쟁을 통해 기술력을 끌어올린 대기업에 손을 내미는 게 현실이다. 2020년 코로나 온라인 수업 시스템과 2021년 백신 접종 예약 시스템은 중소기업들이 개발했으나 오픈과 동시에 마비됐고, 결국 대기업 기술진이 투입된 후에야 문제가 해결됐다.
지금 공공 전산망은 공무원 신뢰도 못 얻고 있다. 긴급 재난 상황실의 90% 이상을 ‘카톡방’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세계 최고의 전자 정부라면 세계 최고의 품질과 관리가 뒷받침돼야 한다. 공공 전산망 마비가 반복되지 않도록 근본 처방을 고민해야 할 때다. 대기업 배제 원칙부터 당장 철폐하고 관리·용역비도 제값을 지불해야 할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
11-20 행안부 늑장 대응과 카톡 회의, 총체적 기강 해이 아닌가
지난해 10월 카카오톡 먹통 사태 때 대통령실은 “네트워크망 민생에 상당한 피해를 줄 뿐 아니라 유사시 국가 안보에도 치명적 문제를 야기한다”며 철저한 조사와 재발 방지책을 주문했다. 카카오 대표가 사퇴하고 5600억 원 상당의 보상안도 내놨다. 지난 17일 발생한 행정전산망 마비 사태는 훨씬 더 심각하다. 카카오톡은 무료 민간 서비스이고 다른 대체 수단도 있지만, 행정망은 대체 수단이 없고 세금으로 운영된다. 국민의 직접적 피해와 안보 위험 가능성은 말할 것도 없다. 백업(이중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문제가 커졌다는 공통점도 있다.
이런데도 정부 대응은 안이하기 짝이 없었다. 행정안전부는 지방자치단체 행정망인 ‘새올’이 전면 중단된 사태를 17일 오전 8시40분쯤 인지하고도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 오후 1시50분부터 온라인 민원서류 발급 서비스인 ‘정부24’도 중단됐다. 행안부는 오후 3시20분쯤에야 광역단체 관계자들이 참여한 ‘단체 카톡방’에서 대책을 논의했고, 오후 5시쯤 지침을 내려보냈다. 막대한 비용을 들인 정부-지자체 회의 시스템도 무용지물이 됐다.
행안부 공문은 ‘시스템이 정상화되는 즉시 민원인이 신청한 날짜로 소급처리해 달라’는 것으로, 대책이라고 하기도 민망하다. “재난 상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는 변명부터 가관이다. 당연히 안내 문자 발송도 없었다. 카카오톡 불통 때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복구 상황 등을 알리는 ‘재난 문자’를 3차례 발송했었다.
사고 예방 못지않게 올바른 대응이 중요하다. 주무 기관인 국가정보자원관리원과 행안부의 총체적 기강 해이까지 우려된다. 엄정한 조사·감사·수사를 통해 진상과 책임을 밝히고 재발 방지를 위해 모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11-20 원인파악도 대응체계도 ‘먹통’… 20년된 ‘디지털정부’ 업그레이드 시급

▲사흘만에 정상화 행정전산망이 지난 17일 먹통이 된 이후 사흘 만인 20일 정상화됐지만 불안감이 가시지 않은 가운데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행정복지센터에 민원서비스 정상화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뉴시스
■ 정부 전산망 총체적 부실
사흘 지나도 근본원인 몰라
사고후 대국민 소통도 부실
대기업 배제한 전산망 발주
시스템 통합관리 어렵게 해
지난주 행정마비 사태 여파
업무 열자 민원인 몰려 혼란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사용하는 행정전산망인 ‘새올 지방행정정보시스템’이 정상화된 20일 오전 9시쯤 서울 마포구청 민원실엔 업무가 시작되자마자 들어차는 시민들로 북적였다. 10분쯤 지나자 거의 모든 창구가 시민들로 채워졌으며,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기 위해 마련된 공간도 붐볐다. 대기 의자엔 5명의 시민들이 앉아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찍부터 길어진 대기 시간에 무인민원발급기를 찾는 시민들도 있었다. 마포구청 직원은 “행정전산망 장애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원래 월요일 아침엔 항상 사람이 많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행정전산망 오류로 지난주에 필요한 서류를 떼지 못해 아침 일찍부터 민원실을 찾았다는 시민들이 많았다. 주민등록초본을 떼러 오전 9시 정각에 맞춰 구청 민원실로 온 60대 여성 정모 씨는 “부동산 매도 문제로 주민등록초본이 급히 필요해 지난주 금요일 집 주변 주민센터에 갔다 허탕 치고 돌아가야 했다”며 “금요일 내내 발급이 가능한 곳이 없는지 전화를 돌렸는데 된다고 했다가 다시 안 된다고 하는 등 왔다 갔다 해 결국 떼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60대 여성 A 씨는 “가족관계증명서가 필요했는데 행정전산망 오류로 떼지 못하고 있었다”며 “오늘 아침 민원실 문을 열자마자 떼러 온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플랫폼 정부’라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행정전산망 마비 사태에 정부는 속수무책이었다. 새올이 지난 17일 멈춘 후 사흘이 되도록 정부는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주요정보통신기반시설인 행정전산망 체계가 이토록 부실한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기술력 있는 대기업을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정부는 공공이 나서 중견·중소 소프트웨어 업체를 키워야 한다며 지난 2013년 자산 규모가 5조 원이 넘는 대기업의 공공 서비스 참여를 제한하는 규정을 도입했다.
새올은 연 매출 200억 원 규모의 중소 정보기술(IT) 업체가 구축, 운영했다. 지난 3월 사법 서비스가 중단된 법원전산망, 지난 6월 개통 직후 접속 오류가 발생한 4세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역시 중소기업이 개발했다. 한 부처 관계자는 “전체 IT 시장에서 공공이 차지하는 비율이 20∼40% 정도 된다”며 “정부는 IT 시장에 있는 중소기업을 위해 대기업 사업 참여를 제한하고 있는데 안정적이고 최선의 서비스가 우선이냐, 중소기업 등 산업기반 살리기가 우선이냐를 선택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의 쪼개기 발주가 문제라는 시각도 있다. IT 업계 관계자는 “다양한 기업이 참여하다 보니 서로 다른 시스템과 기기 등을 통합관리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빠르게 변화하는 IT 환경을 따라가지 못하는 공공 부문의 느린 의사결정 속도는 물론 민간 전문가를 채용하기 어려운 공무원 임금구조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바꿔야 하는 문제로 지적됐다. 행정안전부의 부실했던 대국민 소통도 혼란을 키웠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17일 오전 8시 46분쯤 새올이 멈췄지만 ‘수기 작성’ 등 대국민 대응책은 같은 날 오후 5시에야 발표됐다. 민원 처리를 못한 국민들은 약 8시간 동안 동 주민센터 등에서 발을 동동 구를 수 밖에 없었다.
문화일보 민정혜·권승현·김군찬·이승주 기자
11.20 장관 ‘디지털 정부’ 홍보 외유 중 행정망 먹통 망신

▲행정안전부가 지난 12일 배포한 이상민 장관의 해외 출장 보도자료. 그러나 행정 전산만 장애 사태로 이 장관은 중도 귀국했다.
교육·복지 이어 행정전산망도 장애, 시민 큰 불편
반복된 사태 대비 않다 사태 초반 원인조차 몰라
지난 17일 발생한 행정전산망 장애로 정부의 민원서류 발급이 전면 중단된 사태는 ‘IT 강국’을 자임해 온 우리의 자부심에 큰 손상을 주었다. 지자체 공무원 행정전산망 ‘새올’에 전산 오류가 발생해 주민등록등본을 비롯한 기본적인 민원서류조차 발급이 중단됐다. 행정안전부가 긴급 복구에 나섰지만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전국에서 혼란이 지속됐다.
행안부는 이번 장애의 원인이 새올 인증 시스템에 연결된 네트워크 장비 이상이라고 밝혔다. 해당 장비를 교체하고 서비스를 재개한 이후 시스템이 정상 복구됐다는 설명이다. 정부가 긴급 복구를 마쳤다고 하나 이번 사태는 여러 측면에서 이해하기 어렵다. 최근 정부의 전산 시스템 장애로 국민이 곤욕을 치른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디지털 정부가 긴요해진 코로나19 사태 때부터 정부 시스템 고장은 연례행사가 됐다. 2021년 7월 백신 사전 예약 시스템에 접속이 안 되면서 시민들이 발을 굴렀다. 정부는 “접속자가 몰렸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지만, 복구 이후에도 장애가 반복됐다. 그해 12월엔 식당·카페를 이용할 때 제출하도록 한 방역 패스에 에러가 발생했다. 정부는 이때도 “접속량 폭증” 탓을 했다. 지난해 10월엔 차세대 복지 시스템이 말썽을 부렸고 지난 6월엔 2800억원을 들여 개통한 4세대 교육행정 정보 시스템 ‘나이스(NEIS)’에서 오류가 발생해 학교 행정이 엉망이 됐다.
전산망 장애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는 변명에 급급하더니 급기야 지자체 공무원이 시스템에 접속을 못 하고 온라인 민원 서비스인 ‘정부 24’도 정상 가동이 안 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정부 발표대로 네트워크 장비 이상 때문이라 하더라도 장애 발생 직후 원인조차 신속히 파악하지 못했던 점은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의 안이한 대비를 여실히 드러낸 셈이다.
사고 발생 당시 주무인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디지털 정부’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해외출장 중이었다는 사실은 더욱 민망한 대목이다. 이 장관은 지난 12일 출국하면서 “대한민국은 디지털 정부 선도국가”라며 “지난 9월 발표한 대한민국의 디지털 권리장전이 세계의 디지털 정부 표준규범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사고로 포르투갈 리스본 등에서 일정 도중 급거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정상 복구했다고 발표했지만, 오늘 민원이 몰리면서 과부하가 발생할 경우 과거처럼 장애가 재발할 우려에도 대비해야 한다. 반복된 먹통 사태에도 불구하고 네트워크 에러에 충분히 대비하지 않은 책임 소재도 철저히 가려야 한다. 그래야 “정부의 모든 서비스를 국민이 한곳에서 쉽고, 편안하게 이용하실 수 있도록 디지털 플랫폼 정부를 운영하겠다”는 이 장관의 행안부 홈페이지 약속이 우스워지지 않는다.
중앙일보 사설
11.23 한국 제조업 미래 보여준 싱가포르 현대차 공장, 노조가 봐야

▲21일 싱가포르에 문을 연 현대차 글로벌 혁신센터. 품질 점검 ‘셀’에서 로봇 개와 작업자가 자동차 조립 상태를 확인하고 있는 모습. 로봇 개가 탑재된 카메라로 조립 부분을 촬영하면, 로봇 개와 연결돼 있는 AI(인공지능) 프로그램에서 해당 부분이 제대로 조립됐는지 판별한다. /현대차
현대차그룹이 싱가포르에 연 ‘글로벌 혁신센터’란 이름의 공장은 미래의 자동차 공장 모습이 어떤지 보여준다. 이곳에선 컨베이어 벨트가 사라지고 ‘셀’이라 불리는 조립 룸에서 로봇과 사람이 협업해 다품종 차량을 생산한다. 차체와 부품 이동은 모두 로봇이 하고, 네 발로 걷는 로봇 개가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통해 조립 품질을 확인한다. 차량 생산에 투입된 근로자는 50명에 불과한 반면 로봇은 200대가 넘는다. 27개 셀 중에서 11곳은 사람이 한 명도 없고 로봇만 작업하는 공간이다. 이런 시스템으로 고객 개개인의 기호를 반영한 맞춤형 차량을 연간 최대 3만 대 생산할 수 있다. 현대차는 똑같은 쌍둥이 공장을 인터넷 공간에 지었다. 이 ‘메타버스 공장’을 통해 한국에 앉아 싱가포르 공장 설비를 제어할 수 있다.
현대차 싱가포르의 ‘스마트 팩토리’는 혁신의 한계에 부닥친 한국 제조업이 나아가야 할 길을 보여주고 있다. 경쟁국들도 스마트 팩토리가 향후 제조업 경쟁력을 좌우할 것으로 보고 자원을 대거 투입하고 있다. 독일의 인더스트리 4.0, 일본의 ‘커넥티드 인더스트리’, 중국의 ‘중국 제조 2025′는 스마트 팩토리에 기반을 둔 제조업 경쟁력 강화 정책들이다.
스마트 팩토리의 성패는 현대차 싱가포르 공장에서 보듯 AI, 로봇,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 최첨단 기술 경쟁력이 좌우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교육 품질과 노동 문화로는 스마트 팩토리의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 한국이 보유한 AI 전문 인력은 2500명으로 글로벌 인재 풀의 0.5%에 불과하다. 첨단 기술 인력을 공급해야 할 대학은 철밥통 교수들의 저항에 가로막혀 학과 정원 조정도 못하고 있다. 국민 70%가 대학을 가지만 대졸자들의 컴퓨터 활용 능력, 수리력은 경쟁국들보다 훨씬 뒤처진다.
노동 시장은 경쟁국 중 가장 경직적이고 낙후돼있다. 낡은 호봉제 탓에 생산성이 떨어지는 장년 근로자가 동일 노동 청년 근로자보다 2~3배 많은 연봉을 받는다. 노동법 규제의 보호를 받는 대기업 노조들은 기득권 철밥통을 끌어안고 툭하면 파업하며 정치 투쟁을 벌이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쓰나미가 닥쳤는데 과거에 머물러 있는 교육·노동 시스템으로는 스마트 팩토리 시대의 경쟁을 이겨낼 수 없다. 노조가 저항하고 개혁을 하지 않으면 기업은 스마트 공장을 해외에 지을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11-24 개원의 ‘황금밥통’ 비급여

권도경 사회부 차장
최근 주요 대학병원에서 마취과 교수들이 ‘줄사표’를 던졌다. 국내 최대 A 상급종합병원에서는 올 들어 마취과 교수 7명이 그만뒀다. 최고 대우를 받는 상징적인 곳이라 동료 교수들도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얼마 전 서울 B 대학병원에서도 마취과 교수 2명이 사표를 냈다. 몇 달간 마취과 교수를 못 구한 종합병원도 부지기수다. 수술실을 열지 못했다는 얘기다. 중소 병원은 마취과 의사를 찾느라 비상이 걸렸다. 이들이 향하는 곳은 개원가다. 사직 사유는 격무와 보수다. 수술은 끊임없이 밀려드는데 연구와 논문 작성을 게을리할 순 없다. 응급 상황과 당직 근무도 피할 수 없다. 반면, 마취통증클리닉을 차리면 큰 부담 없이 돈을 2배 이상 벌 수 있다. 흉부외과 등 ‘바이털(필수의료)’ 의사들이 대학병원을 이탈하는 배경과 같다. 여기에는 비급여 진료가 한몫하고 있다.
비급여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정해진 금액이 없다. 의사 재량권이 인정돼 진료비가 비싸게 매겨질 수 있다. 같은 시술을 받아도 병원마다 가격이 제각각인 이유다. 백내장 수술용 다초점렌즈는 33만 원부터 900만 원까지 27배나 가격 차이가 난다. 비급여 시장을 기형적으로 키운 건 실손보험이다. 개원의들은 비급여 진료비를 높게 책정한 후 실손보험을 이용해 환자에게 받아낸다. 매년 새로운 비급여 항목도 쏟아져 나온다. 환자를 상대로 수익을 무제한 뽑아낼 수 있는 셈이다. 이는 과잉진료와 의료비 증가로 이어졌다. 공보험인 건보료율은 7%까지 치솟았는데 사보험으로도 의료비를 치르면서 국민 부담만 가중됐다.
비급여는 보상체계를 왜곡시키고 있다. 비싼 비급여 진료가 늘어나자 개원의들은 고난도·고위험을 감수하는 대학병원 의사들보다 2배 이상 벌고 있다. 바이털과는 급여 항목이 많아 건보가 정한 수가만 받을 수 있다. 아무리 필수의료 수가를 높여도 비급여 진료비와의 격차를 따라잡을 수 없는 구조다. 전문의 자격이 없는 일반의(GP)도 가세했다. 전공의 수련을 받지 않아도 GP들은 주 3∼4일만 일하면 월 1000만 원 이상 번다. 제모 등 간단한 미용시술에 대한 대가다. GP 연봉은 개원의 몸값을 끌어올렸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위험 부담과 노력에 비해 저렇게 쉽게 큰돈을 버는 전문직은 없다”고 꼬집었다. 직업관은 망가지고 있다. 한 바이털 의사는 “요즘 의대는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오는 곳일 뿐 사명감을 가지고 오는 곳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비급여는 바이털 의사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바이털 의사들을 경증환자를 보는 병·의원으로 떠나게 하는 건 큰 손실이다. 최일선 의료 현장에서 진료 경험을 쌓으면서 연구하는 의사가 줄면 중증질환 치료나 연구 역량도 타격받게 된다. 의대 정원을 늘려봤자 비급여를 통제하지 않으면 예비의사들은 필수의료를 택하지 않는다. 상대적 박탈감과 좌절감을 이길 수 없어서다. 정부도 정책 수단을 찾아야 한다. 고된 길일지라도 사람을 살리겠다는 선택을 한 의사들에게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해줘야 한다. 그들 헌신이 당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생명을 맡기는 바이털 의사들을 지키는 건 우리 사회 몫이다.
문화일보
11.26 초등생이 경찰에 내민 쇼핑백… 1년간 용돈 모아 산 간식이었다
“항상 감사합니다” 자필 편지도
▲A군이 경찰관에게 간식이 담긴 쇼핑백을 건네는 모습. /경찰청 유튜브
초등학교 학생이 용돈 모아 산 간식을 들고 경찰서를 찾아 선물한 훈훈한 이야기가 공개됐다.
지난 9월 14일 경기도 용인 소재 한 지구대. 평소처럼 바쁜 지구대를 향해 누군가가 뚜벅뚜벅 걸어왔다. 초등학교 4학년인 A군과 그의 어머니였다. 두 사람의 양손에는 무언가 가득 담긴 쇼핑백이 들려있었고, 입구에서 경찰관을 만나자마자 그 손을 쭉 내밀었다.
경찰청 공식 유튜브 채널에 24일 공개된 당시 영상에는 A군이 지구대를 찾았던 그날의 모습이 잘 담겨있다. 당시 A군과 마주한 경찰관은 받아 든 쇼핑백 안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 과자와 떡 같은 각종 간식과 음료수 그리고 작은 손으로 써 내려간 A군의 편지가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A군이 용돈을 모아 산 간식과 경찰관들에게 보낸 편지. /경찰청 유튜브
편지는 “경찰관님들에게”라는 정중한 인사로 시작했다. 이어 “저는 초등학교 4학년 학생입니다. 제가 1년 동안 용돈을 조금씩 모아 평소 고생하시는 경찰관님들께 작은 선물을 드리게 되었네요. 경찰관님 항상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우리 마을을 잘 지켜주세요”라는 예쁜 마음이 쓰였다.
A군은 선물을 전달하는 걸로 그치지 않았다. 앞에 선 경찰관들에게 허리를 굽혀 90도로 ‘꾸벅’ 인사했다. 감사와 존경의 마음이 담긴 듯했다. 이에 활짝 웃은 경찰관들은 A군과 나란히 지구대 앞에 서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A군이 사온 간식거리를 경찰관에게 전달한 뒤 90도로 꾸벅 인사하고 있는 모습. /경찰청 유튜브
이 모습을 본 네티즌들은 추운 겨울 마음이 따뜻해진다며 덩달아 기분 좋은 댓글을 달았다. 이들은 “아이가 자라 많은 사람을 따뜻하게 해줄 것 같아서 행복해진다” “훌륭한 부모님이 아이를 기특하게 잘 기르신 것 같다” “아이의 순수한 마음에 보기만 해도 뿌듯해진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조선일보 문지연 기자
11-27 행정망 장비·관리 총체적 난맥 속 ‘포상 잔치’ 코미디
정부 행정전산망의 난맥상이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 최근 잇단 먹통 사태를 보면, 시스템은 물론 장비의 노후화가 심각할 뿐 아니라 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디지털정부 업적을 자화자찬하며 포상 잔치도 벌였다. IT 최강국을 부끄럽게 하는 총체적 엉터리 행태로서, 행정안전부를 포함한 전면적 조사와 문책이 불가피하다.
지난 17일 발생한 지방행정 전산망(새올) 먹통 사태 원인이 라우터(네트워크 간 연결 장비)에 통신선을 꽂는 연결 단자의 접속 불량 때문이었다고 정부가 25일 밝혔다. 처음에 트래픽을 분배해주는 ‘L4 스위치’ 장비 불량이라고 했던 행안부가 사태 발생 8일 만에 말을 바꿨다. 더 심각한 문제는, 새올과 ‘정부24’(온라인 민원발급) 먹통 사태 후 주민등록정보시스템(22일), 조달청 입찰 사이트 나라장터(23일), 모바일 신분증 발급(24일)이 중단되는 등 불안이 계속되고, 뒤의 3건은 라우터 장비 불량과 무관하다는 사실이다. 내구연한이 8년인 라우터 장비는 2015년 11월 도입돼 올해 교체했어야 했지만, 2022년 사용기한을 9년으로 늘렸다. 미국 회사가 생산한 이 부품은 2019년 단종돼 편법으로 교체를 미뤄오다 이번에 사고가 터진 것이다. 제대로 된 점검 기록도 없다고 한다.
4번째 먹통 사고가 터진 다음 날인 25일에 대통령 직속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와 행안부가 부산에서 대국민 보고대회를 갖고 디지털정부 추진 성과를 자화자찬하고 유공자 표창도 했다. 행안부 국장은 훈장을 받았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선진국 시장에도 디지털플랫폼정부가 진출하는 기회를 적극 모색하겠다”고 했는데, 듣기 민망하다. 자화자찬과 표창이 아닌 문책과 징계가 필요한 때다.
문화일보 사설
11.27 8일 걸린 행정망 먹통 원인 발표…관리 대수술 시급

▲행정안전부가 주최하는 '2023 대한민국 정부 박람회'가 23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제2전시장에서 '정부 혁신, 디지털플랫폼정부와 함께'라는 슬로건으로 열려 관람객들이 설명회, 식품의약품안전처, 모바일 운전면허증 발급 부스 등을 살펴보고 있다. 25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박람회는 정부의 혁신성과와 디지털플랫폼정부로 달라질 대한민국 미래상을 제시하는 자리다. 그러나 디지털 정부 성과를 대내외에 홍보하는 행사를 앞두고 디지털 행정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행정전산망이 흔들리는 상황이 반복하면서 행사 취지가 퇴색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람회에서는 100개에 가까운 정부와 민간 기관들이 '편리한 서비스', '똑똑한 정부', '안전한 사회'를 주제로 전시관을 연다. 전시관 주제를 놓고 보면 일련의 전산망 사태가 가져온 답답한 상황과 크게 대조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전산망이 정상화하자마자 다시 국외 출장을 떠난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처신을 두고도 비판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송봉근 기자 20231123
대형사고 몇 번째인데 이제야 “대기업 참여 확대”
부실 눈감고 홍보에만 치중하다 ‘반면교사’ 될라
정부가 치명적인 행정전산망 장애의 원인을 그제 발표했다. 민원 업무 마비 사태가 발생한 지 8일 만이다. 네트워크 장비인 ‘라우터’의 포트 불량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17일 시스템이 먹통 된 이후 벌어진 상황은 우리 정부가 공공 전산망을 얼마나 허술하게 관리해 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장비 하나 고장났을 뿐인데 즉각 복구하지 못해 온종일 민원 처리가 중단됐다.
해외 출장 중이던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급거 귀국해 정상 복구했다고 발표했으나 이후에도 에러가 속출했다. 조달청 시스템이 멈추고 모바일 신분증 발급이 중단됐다. 원인도 다양해 ‘시스템 과부하’ 같은 기본적인 리스크에 번번이 멈춰 섰다.
사전 경고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2021년 백신 예약 시스템 마비 사태부터 지난 6월 교육행정 정보 시스템 오류까지 반복적으로 대형 사고가 터졌다. 그때마다 정부는 철저한 대비를 공언했으나 말뿐이었다.
부실투성이 대국민 서비스를 방치한 채 정부는 홍보에만 열을 올렸다. 사고 당시 이 장관은 디지털 정부를 알린다며 포르투갈과 미국을 순방 중이었다. 전산망 마비 사태로 긴급 귀국한 이 장관은 시스템을 완벽히 복구했다며 다시 디지털 협력차 영국으로 떠났는데 국내에선 조달청 시스템에 탈이 났다.
그제는 부산 벡스코에서 디지털 민관 협력 행사를 열었다. 관계부처 합동으로 ‘일 잘하는 정부와 더 편안한 국민을 위해 민관이 힘을 모은다’는 제하의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여기서도 모바일 신분증 에러로 망신을 당했다. 국내외에서 홍보전을 벌이는 동안 정부 전산망은 여기저기서 비상벨이 울렸으니 속 빈 강정을 선전한 꼴이다. 정부는 잇따른 먹통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2013년부터 엄격히 제한해 온 대기업의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 참여를 넓히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뒷북 행정의 전형이다. 이미 2년 전 백신 시스템 사고가 터졌을 때 대기업 참여 확대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정부 전산망에 장애가 생기면 국민에게 돌아가는 피해가 크기 때문에 우수 인력과 사고 대처 능력을 갖춘 업체가 참여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당시에도 LG CNS 긴급대응팀이 투입돼서야 서비스가 정상화됐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고 나자 또 시간을 허비하다가 대형 사고 재발에 허둥대는 모습이다.
대기업 참여보다 시급한 사안은 정부의 대응 태세 강화다. 사고 직후 발표한 장애 원인부터 조사 결과와 어긋난다. 예방은 고사하고 사후 대응조차 엉성하다. 정부는 일련의 사태를 거울삼아 사고 대응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정비해야 한다. 이번에도 미봉책으로 덮은 뒤 홍보에만 치중한다면 대한민국은 디지털 정부의 반면교사로 전락할지 모른다.
중앙일보 사설
11.28 사형수 옆 교도관 실탄 장전했다…군사작전 뺨친 대구교도소 이사
28일 오전 대구 달성군 화원읍 천내리 대구교도소 앞. 경찰 오토바이를 선두로 재소자들을 태운 버스 6대가 연달아 교도소에서 나왔다. 이어 재소자 짐을 실은 이삿짐 차, 무장한 경찰차 등이 뒤따랐다. 이들은 30분여 간 달려 달성군 하빈면 신축 교도소에 도착했다.
이날은 시설이 노후한 대구교도소가 52년 만에 문을 닫고 신축 교도소로 이전하는 날이다. 경찰과 교정당국에 따르면 재소자 등 2210명을 옮기기 위해 오전·오후 각각 36대의 버스가 동원됐다. 두 교도소 간 직선거리는 12㎞다.
▲28일 오전 대구 달성군 화원읍 대구교도소에서 재소자를 태운 법무부 호송버스가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하빈면 신축 대구교도소로 출발하고 있다. 뉴스1
“탈주 대비” 권총 무장한 교정당국
이날 호송은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 버스 안에는 교도관이 권총과 가스총 등을 휴대하고 재소자와 동행했다. 경찰은 호송 과정에서 발생할지 모를 탈주 등에 대비해 사복을 입고 교도소 이동 경로 곳곳에서 감시했다. 경찰 기동대 3중대, 특공대 2개팀, 형사팀 2개팀, 교통경찰 60명 등 300여 명과 순찰차 12대, 버스 4대 등이 투입됐다. 군 당국도 호송 버스가 이동하는 길목 곳곳에 진을 치고 경계 근무에 나섰다.
▲대구 달성군 화원읍의 대구교도소에서 지난 27일 오후 2시 다음날 대규모 이사를 대비해 비공식 호송이 한차례 진행됐다. 대구=백경서 기자
전날에는 비공식 호송 작전도 한차례 펼쳐졌다. 대규모 호송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27일 오후 2시쯤 대구교도소에서 여성 재소자 10여 명을 태운 버스 4대와 이삿짐 차가 빠져나왔다. 마찬가지로 곳곳에 무장한 경찰이 감시했고, 교도관이 동행했다. 대구교도소 측은 “대규모 호송 작전인 만큼 일부 재소자를 먼저 이동시켜 비공식 리허설 단계를 거쳤다”며 “미리 총기와 탄약 등도 보내 각종 사고에 대비했다”고 설명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신축 대구교도소는 2020년 10월 완공돼 당초 2021년 6월 옮길 예정이었으나 2년 5개월간 배수관로 보수 공사를 하느라 이전이 늦어졌다. 이날 호송된 재소자 중에는 ‘n번방’ 문형욱(28)이 있다. 대법원은 2021년 11월 텔레그램 ‘n번방’을 운영하면서 성 착취물을 제작한 혐의(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로 기소된 문씨에게 징역 34년을 최종 확정했다. 서울 강서구 PC방에서 아르바이트생을 흉기로 80여 차례 찔러 숨지게 한 김성수(34)도 대구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전 여자친구를 성폭행하고 그의 부모까지 살해한 최연소 사형수 장재진(33)도 있다. 장씨는 2015년 8월 27일 살해 혐의 등으로 사형 확정을 받았다.
▲대구 달성군 하빈면의 신축 대구교도소 전경. 대구=백경서 기자
신축 대구교도소, 사형장은 없어
총사업비 1851억원이 투입된 신축 대구교도소는 대지 26만9857㎡에 지하 1층~지상 3층 규모(건축 연면적 6만1123㎡)로 건설됐다. 내부에는 청사·수용동·비상대기소(79가구) 등 총 28개 동이 들어섰다. 교정시설과 함께 건립된 체육관과 테니스장·운동장은 주민에게도 개방된다.
기존 교도소에 있던 사형장은 없다. 이에 따라 사형장이 있는 수감시설은 서울구치소·부산구치소·대전교도소 등 3개로 준다. 현재 사형수(선고 확정 기준)는 59명이다. 군 교도소에 4명이 있고, 서울구치소 18명, 광주교도소 13명, 대구 교도소 10명, 대전교도소 10명, 부산구치소 4명이다.
기존 대구교도소 부지는 사용 종료 절차를 거친 후 국유재산 총괄청에 인계된다. 대구시는 10만5560㎡에 달하는 기존 부지에 문화예술허브를 조성할 계획이다.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구치소. 우상조 기자
최근 교정시설 재소자 집단호송은 두 차례 있었다. 2020년 12월 서울동부구치소 재소자 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400여 명이 재소자 생활치료센터인 경북 청송군 진보면 경북북부제2교도소로 호송됐다. 2015년에는 광주교도소가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까지 호송 버스 21대로 재소자 1900여 명을 직선거리로 3.5㎞ 거리의 신축 교도소로 옮긴 적이 있다.
대구=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11.29 저급 주사파 ‘경기동부’ 출신이 또 민노총 장악

▲28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대통령 거부권 행사 반대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3년 임기 민주노총 위원장에 양경수 현 위원장이 선출됐다. 조합원 수가 100만명이 넘는 조직에서 불법·강경 투쟁을 일삼아온 세력이 연임하게 된 것이다. 양 위원장은 해산된 통합진보당의 주도 세력이자 대표적 종북 단체인 ‘경기동부연합’ 출신이다. ‘경기동부’는 경기도 성남 지역을 중심으로 뒤늦게 등장한 종북 주사파 그룹으로 운동권 내에서도 저급하다고 평가돼온 세력이다.
이들은 통진당 해산 이후 집요하게 노동계에 파고들어 택배노조, 건설노조 등을 장악하는 등 민노총을 정치적 재기의 발판으로 삼았다. 정치권에서도 지난 4월 통진당 후신으로 평가받는 진보당 깃발로 전주을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강성희 의원을 당선시켰다. 민노총을 장악한 다음에도 종북적 성향을 감추지 않았다. 민노총 전 조직국장이 간첩 혐의로 구속 기소됐는데도 ‘탄압’ 운운하며 사과 한 번 하지 않았다. 북한의 지옥 같은 실상이 다 드러난 지금 경기동부 같은 저급하고 퇴행적인 주사파 조직 출신이 아직도 민노총을 장악하고 있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앞으로 상당 기간 과격하고 불법적인 노동운동은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노사관계 법치주의를 더욱 강화해 이들의 불법 시위, 종북 활동에 대해 엄정한 대응을 해야 한다.
이런 민주노총의 시대착오적인 투쟁도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다. 이미 주요 사업장에서는 합리적 요구에 중점을 두는 젊은 조합원들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들이 경기동부 같은 낡은 세력을 대체하고 노동 현장의 주류로 떠오르는 것은 결국 시간 문제일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11-29 공무원·교원노조 ‘혈세 타임오프’ 이제라도 철폐 나서야
공무원과 교직원 노조의 전임자들에게 국민 세금으로 월급을 주는 법이 다음 달 11일부터 시행된다. 이를 앞두고 정부는 28일 국무회의에서 공무원·교원 노조 전임자에게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를 적용하는 공무원노조법과 교원노조법 시행령을 의결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공약하고, 지난해 5월 여야 합의로 관련법을 처리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시행령은 근로시간면제 규모와 대상 인원 등 구체적인 내용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설치되는 ‘공무원·교원 근무시간면제 심의위원회’에서 정하도록 위임했는데, 민간기업 기준을 적용하면 최대 1106명에 연간 비용은 627억 원에 이른다.
그러나 타임오프 제도 자체가 ‘무노동 무임금’이라는 노사관계 기본원칙에 맞지 않고, 외국의 사례를 찾기 힘들 만큼 글로벌 기준에서 일탈했을 뿐만 아니라, 조합비로 전임자를 둘 수 없는 영세기업 노조를 지원한다는 최소한의 명분조차 저버렸다. 민간기업의 경우에도 점차 축소하는 게 옳은 방향이다. 노조가 회사 지원에 기대는 것은 어용노조를 자초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사정만 고려해도 혈세(血稅)로 노조 전임자인 공무원과 교원에게 월급을 주는 것은 ‘납세자 국민’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공무원·교원 노조 타임오프 적용은 시대착오적이다. 전임자를 허용된 것보다 10배나 많이 운영한 서울지하철 노조의 최근 사례에서 보듯 광범위하게 오용되고 있기도 하다. 이제라도 관련법 재개정을 통해 철폐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 정부는 법 개정 이전이라도 경사노위 심의 절차 등을 통해 사실상 폐지 효과를 도출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
11-29 수능 감독까지 위협…학부모의 여전한 교권 침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2030 청년위원회 교사들이 지난 7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교권 보호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서이초 사건 이후도 끊이지 않는 ‘학부모 갑질’
‘내 새끼 지상주의’ 버리고 공동체 의식 높여야
교사의 교육활동에 대한 일부 학부모의 민원 제기와 압박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지난 16일 치러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학생의 부정행위를 적발한 한 교사는 해당 학부모의 과도한 항의에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며 특별 휴가와 심리 상담을 받아야 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선 전교 부회장으로 당선된 자녀가 선거규칙 위반으로 당선 무효 결정을 받자 해당 학부모가 고소·고발과 민원 제기를 남발해 학교 교육활동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한 사례도 나왔다.
서울교육청과 서울교사노동조합에 따르면 수능 부정행위 판정에 항의하는 학부모는 피해 교사의 학교까지 찾아가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였다. 이 피켓에는 피해 교사의 실명과 함께 ‘파면’ ‘인권침해 사례 수집 중’이란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해당 교사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은 물론 수능의 공정성까지 위협하는 사안이다. 더구나 이번 사건의 학부모는 법을 잘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경찰대 출신으로 변호사 자격증까지 소유한 법조인이었다.
수능 감독관을 맡은 교사의 개인정보나 근무지는 철저히 비밀을 보장해야 한다. 감독관이 부당한 압력이나 간섭을 받지 않고 공정하게 시험을 관리하고 부정행위자를 적발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만일 수험생에게 억울한 점이 있다면 이의신청 등 적법한 절차를 따라야지 사적 보복이나 위협으로 대응해선 안 된다. 해당 학부모는 불법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한 건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수능 감독관의 개인정보를 알아내 사적 보복을 시도했던 점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자녀의 전교 임원 당선 무효에 항의하는 학부모는 해당 학교를 상대로 고소·고발 7건, 행정심판 청구 8건, 정보공개 청구 300건을 제기했다고 한다. 관할 교육지원청을 상대로 한 국민신문고 민원 신청도 24건이나 됐다. 서울교육청이 “악의적이고 무분별한 민원”이라고 표현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 정도면 정상적인 학교 업무가 거의 불가능할 지경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다른 학생에게 돌아간다.
지난 7월 서울 서초구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은 교육계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줬다. 이 사건을 계기로 수많은 교사가 거리 집회 등을 통해 교권 침해의 심각성을 알리고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후 일부 진전은 있었지만 교육계에선 이번 사건에서 보듯이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도 개선에 못지않게 중요한 건 학교 구성원들이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태도다. 학부모들은 자기 자식만 귀하다는 ‘내 새끼 지상주의’를 버리고 자녀가 올바른 공동체 의식을 가질 수 있게 도와야 한다. 비뚤어진 가치관을 가진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그 사회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앙일보 사설
11.30 경찰 승진 브로커가 있고 그에게 돈 주면 승진하는 나라
전남경찰청의 간부 5명이 승진을 위해 수천만 원의 뇌물을 상납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는 사건이 확대되고 있다. 이들은 2021년 당시 전남경찰청장 K씨에게 승진 로비를 할 목적으로 브로커에게 각각 수천만 원을 건넸다고 한다. 그것도 대낮에 음식점이나 아파트 주변의 길거리나 주차장에서 금품을 전달했다. 치안감으로 퇴직한 K씨는 지난 15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번 사건으로 입건된 전·현직 경찰관은 10명이 넘는다. 수사를 받고 있는 전남경찰청 간부 5명은 실제 모두 승진했다. 경찰청 안팎에서는 뇌물 승진 경찰관이 더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뇌물을 주고 승진한 경찰관은 부정과 비리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경제 규모 세계 10위권 나라에서 아직도 이런 후진적 매관매직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경찰 인사 제도에 문제가 없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경정 이하의 중간 간부 승진은 크게 시험승진과 심사승진으로 나뉜다. 경찰청은 경찰관이 승진을 위해 시험에 매달리는 것을 막기 위해 현재 50%인 심사승진 비율을 70%까지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현재는 사실상 지방청장이 중간 간부들의 심사승진을 좌우하는데, 누가 봐도 납득할 수 있도록 명확한 평가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승진심사위원회의 투명하고 공정한 운영과 함께 여러 단계에 걸쳐 심층 면접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 시험승진제도는 ‘승진자격시험’으로 바꿔 일정한 업무 지식을 갖춘 이들이 승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제언도 있다.
지금 경찰은 문재인 전 정부의 검찰 수사권 박탈로 몸집과 권한이 급격히 커진 상태다. 그런 조직이 뇌물로 승진하는 풍토에 머물러 있다면 충격적이다. 그 자체로 국민과 국가에 위해가 된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조치가 시급하다.
조선일보 사설
11-30 “경정 3000만원, 경감 2000만원”… 브로커에 놀아난 경찰 인사

브로커를 통해 거액을 주고 승진 청탁을 한 혐의로 경찰 간부들이 대거 직위해제된 상태에서 수사를 받고 있다. 검찰은 전남경찰청 소속 경정, 경감 5명이 2021년 1월 승진 심사 전에 전직 경찰관 이모 씨나 ‘사건 브로커’ 성모 씨 등을 통해 당시 전남경찰청장(치안감) A 씨에게 금품을 제공한 사실을 파악했다. 수사 대상에 오른 A 전 치안감은 15일 극단적 선택을 한 채 발견됐다.
해당 경찰관들은 대낮에 호텔이나 카페, 길거리에서 이 씨나 성 씨에게 돈을 건넸다. 경정 승진 대상자는 3000만 원, 경감은 1500만∼2000만 원씩 총 1억1500만 원을 줬다고 한다. 그 결과 이들 5명은 모두 승진했다. 당시 전남경찰청에서 경정, 경감으로 승진한 39명 가운데 13%에 해당한다. 검찰은 이들 외에도 전남경찰청 소속 경찰관 4명과 광주경찰청 경감 1명이 인사 청탁을 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 중이다. 일부 경찰관의 일탈이 아니라 승진 로비가 만연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는 주관적 평가의 비중이 큰 ‘심사승진’ 제도의 단점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심사승진은 경찰관들이 승진시험에 몰입하느라 본업에 소홀해지는 것을 막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하지만 기관장 추천, 적성 등 주관적 요인이 다수 반영돼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많다. 경찰 내에서는 ‘연줄이 심사승진을 좌우한다’는 말이 나오고, 승진 대상자는 금품 로비까지 불사하는 부작용을 낳은 것이다. 특정 지역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경찰 전체 차원에서 인사 비리를 원천 차단하기 위한 개선안 마련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지역에서 목재 사업 등을 하면서 경찰에 두터운 인맥을 쌓았다는 성 씨는 경찰 인사 개입뿐 아니라 코인 투자 사기 사건 피의자에게서 수사 무마 명목으로 18억여 원을 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전직 경무관이 구속됐고, 경찰에서 두 번째 높은 계급인 치안정감이 연루됐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수사에 부당하게 개입한 경찰관은 지위 고하와 무관하게 엄벌하고, 객관적 지표를 보다 중시하는 방향으로 승진 제도를 고쳐야 한다. 그래야 브로커가 경찰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될 것이다.
동아일보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