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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이야기 2023-11-1/ 11-01 ‘反자유주의’ 내년 총선서 막아야 한다 - 11.15 류호정, 송영길 향해 “꼰대도 저 정도는… 인간이 좀 덜된 것 아닌가”

상림은내고향 2023. 11. 21. 11:28

정치(인) 이야기 2023-11-1/

11-01 ‘反자유주의’ 내년 총선서 막아야 한다

 

이미숙 논설위원

폴란드 총선서 야당 연합 승리
지난해 尹 대선 승리와 닮은꼴
국수주의 대신 자유 연대 선택

권력장악 도구 된 反자유주의
민주당 운동권 출신 행태 닮아
방관 땐 권위주의 독재 여는 셈

대한민국과 중부 유럽에 위치한 폴란드는 유사성이 많은 나라다. 잦은 외세 침략으로 국권을 잃었던 근세사는 물론이고, 탈냉전 시대 자유 진영 연대 전략으로 국력을 키운 궤적도 비슷하다. 지난해 3월 한국 대선이 아시아의 지정학적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선거였다면, 지난 10월 15일 실시된 폴란드 총선은 유럽의 지정학적 측면에서 의미가 남다른 선거다. ‘아시아의 폴란드’ ‘유럽의 한국’으로 불리는 두 나라가 선거를 통해 자유민주주의 가치 중시 국가로 복귀한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자유 진영 대 권위주의 진영의 대결이 본격화한 상황에서 갖는 함의가 상당하다.

폴란드 총선에서 시민연단과 제3의길, 신좌파당 등 야당 연합은 53.7%를 득표, 여당인 법과정의당을 이겼다. 야당 연합 세력은 법치와 공정 등을 앞세워 중도층의 마음을 얻는 선거 전략에 집중했다. 투표율은 공산체제 붕괴 후 치러진 1989년 첫 자유선거 때보다 12%포인트나 높은 74%를 기록했다. 이로써 2015년 정권 장악 후 법관 임명권으로 헌법재판소 등을 장악하고, 판사제재법까지 만들며 사법을 정치화한 후 미디어 국영화로 언론까지 압박한 법과정의당의 독주시대는 막을 내렸다.

지난해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보수·중도 진영의 연대 덕분이다. 문재인 정부는 반대 세력을 적(敵)으로 규정하는 적폐몰이에 골몰했고, 대법원 등에 특정 서클 출신 인사들을 배치하는 식으로 사법의 정치화를 심화시켰다.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문 정권의 학생운동권 출신 인사들을 ‘반(反)자유주의적 리버럴(illiberal liberals)’로 규정한 배경이다. 윤 대통령의 선거 기적은 더불어민주당의 내로남불식 독선에 돌아선 중도층 0.73%의 표심이 결정적이었다.

한국에 이어 폴란드가 선거를 통해 반자유주의적 퇴행 정치에서 벗어나는 선택을 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폴란드 정치인과 결혼 후 유럽을 오가며 활동하는 미국 칼럼니스트 앤 애플바움은 ‘꺼져가는 민주주의, 유혹하는 권위주의’(원제 ‘Twilight of Democracy’)에서 “철학이 아니라 권력 장악을 위해 새롭게 등장한 하나의 메커니즘이 반자유주의(illiberalism)”라고 정의했다. 러시아 혁명가 블라디미르 레닌이 의회민주주의를 노동자계급 억압장치로 희화화하면서 권력 장악을 위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정당화한 것처럼, 법과정의당으로 대표되는 반자유주의 정당들은 권모술수로 권력을 잡은 뒤 사법부와 언론을 틀어쥐고 권위주의적인 통치를 한다는 것이다.

반자유주의 정당의 여론 선동 행태도 유사하다. 민주당의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지지층 결집을 위해 걸핏하면 죽창가식 반일몰이 카드를 꺼내는 것처럼, 법과정의당 대표 야로스와프 카친스키도 독일에 제2차 세계대전 시 점령 배상금을 요구하는 등의 반(反)독일 국수주의 선동에 집착했다. 총선을 앞두곤 우크라이나 곡물 수입 중단 카드까지 내보여 논란이 됐다. 그럼에도 8년에 걸친 법과정의당의 전횡이 끝난 것은 공산체제 때부터 지속된 자유노조운동의 연대 정신과 자유 언론 덕분이다. 특히, 중도층과 젊은 층의 미래지향적 사고가 반자유주의 정당의 유혹을 이겨낸 것이다.

하지만, 한국과 폴란드는 불안정한 상태다. 윤 정부는 출범 1년 반이 지나도록 거대 야당 벽을 넘지 못해 개혁 정책은 입법조차 못 하는 상황이다. 내년 4월 총선 때 다수당이 되지 못하면 아무것도 못 하는 식물 정권으로 전락할 것이다. 이원집정제인 폴란드도 2025년 8월 대선 전까지는 법과정의당 소속 안제이 두다 대통령과 오월동주가 불가피하다. 야당 소속 대통령이 법안 및 인사 거부권을 행사하면 개혁이 불가능하다.

앞으로 5개월은 반자유주의로의 회귀 여부를 가르는 중대한 시기다.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은 혁명보다 개혁이 어렵다면서 지역·계층을 넘어선 외연 확장을 주문했다. 한국이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식 반자유주의,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식 권위주의 독재로 후진하지 않으려면 인 위원장 제언대로 중도층 연대가 필수다. 해법은 분명한데 실행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가 다시 친중·종북·반일의 반자유주의 국수주의 국가로 전락하는 길을 열어주는 것과 같다.

문화일보

 

11-01 [단독]김의겸 “한동훈 의혹 유튜버 협업”에도 “공모증거 없다”는 경찰

■ ‘청담동 술자리 가짜뉴스’ 불송치 이유서 보니…

“金 알고 있었단 증거 없다” 판단
시민단체 “거짓 밝혀진 뒤에도
반복된 의혹제기 재수사 해야”

경찰이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제기한 김의겸(사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 불송치 결정을 내리면서 “제보 내용이 명백히 허위라는 정황을 알고 있었다거나 다른 피의자와 공모한 증거가 없다”고 명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고발인 측은 김 의원이 의혹을 제기하며 유튜브 매체 ‘더탐사’와 협업했다고 직접 밝혀 공모의혹이 있는 만큼 재수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1일 문화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서초경찰서는 고소·고발인 측에 김 의원 불송치 결정을 담은 수사 결정 통지서를 발송했고, A4 용지 반쪽 분량의 불송치 이유서를 첨부했다. 경찰은 불송치 이유서에서 “김 의원과 관련자들 간 통화 녹음 내용, 김 의원이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노력했다는 정황을 종합하면 그가 제보 내용이 명백히 허위란 정황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전혀 없다”고 적시했다. 또 “다른 피의자들과 공모했다는 증거도 전혀 없는 만큼 헌법 제45조가 규정한 국회의원 면책특권의 범주에 포섭된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선 김 의원이 직접 유튜버들과 협업했다고 밝힌 만큼 관련자들과 공모 부분, 해당 의혹이 가짜뉴스로 판명된 이후 방송에서 반복적으로 허위 사실을 유포한 부분 등에 대해서는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김 의원을 고발한 시민단체도 지난달 말 서울중앙지검에 재수사 요청 의견서를 제출했고, 방송에서 한 발언 등에 대해서는 추가 고발도 준비 중이다. 현재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부장 박건욱)는 경찰로부터 관련 서류를 넘겨받아 사건 처리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

김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지난 7월 19일 밤늦게 청담동에 있는 고급 ‘바’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한 장관, 김앤장 변호사 30명가량이 참석한 술자리가 있었다는 제보를 받았다”며 “(의혹을 제기한) 더탐사하고 (내가) 같이 협업을 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술자리에 있었다는 첼리스트 A 씨가 전 남자친구 B 씨에게 이런 내용을 언급한 통화 내용을 공개했다.

하지만 A 씨는 지난해 11월 경찰 조사에서 “전 남자친구를 속이려고 거짓말을 했다”고 진술했다. 김 의원은 지난 8월 한 예능 프로그램에선 “제보자가 분명히 있고 제보자 녹취가 있다”고 주장했다.
문화일보 염유섭·김무연 기자

 

11-03 방향 잘 잡은 인요한 혁신위와 우려되는 與 기득권 반발

여의도 정치의 양극화·저질화에 대한 국민 불신이 극에 달한 상황을 고려하면, 통합과 희생을 화두로 내건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의 초반 행보는 정치개혁 차원에서도 긍정적이다. 국민은 여야 모두에 대개혁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 위원장은 영남 스타 의원 수도권 출마, 이준석 등 징계 취소, 핼러윈 1주기 추모식 참석, 5·18 국립묘지 참배 등의 이슈를 던졌다. 3일 제2차 혁신위에선 3선 이상 동일 지역구 출마 금지, 불체포특권 포기 등도 거론됐다고 한다. 이념적·지역적 극단 정치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어서 다수 국민의 관심을 받는 데 성공했다.

인 위원장은 취임하면서 “생각은 달라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는 통합”을 요구하고, “와이프하고 아이만 빼고 다 바꿔야 한다”며 기득권 세력의 양보와 희생을 촉구했다. 탈당설까지 나온 유승민 전 의원을 만났고, 면담을 거부하는 이준석 전 대표에게도 회동을 요청하고 있다. 김기현 대표와 주호영 전 원내대표 등 중진 실세들은 물론 이른바 ‘윤핵관’의 수도권 출마론에도 불을 지폈다.

문제는 여당 지도부다. 최근 ‘김포시의 서울 편입론’이 탄력을 받는 것을 계기로 당내 기득권 세력의 반발 움직임이 커간다. 인 위원장이 ‘낙동강 하류 세력은 뒷전에 서야 한다’며 영남 의원들의 결단을 촉구하자 김용판 의원 등이 “잡아 놓은 고기 취급” 운운하며 반발한다. 영남에 기대 의원 노릇을 하면서 마치 자신들이 ‘낙동강 전선’을 지킨 양 호도한다.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 참패 책임을 지고 물러난 친윤그룹 핵심 이철규 전 사무총장이 2일 인재영입위원장을 맡은 것도 국민에겐 조령모개로 비친다.

아직 혁신이 본궤도에 오르지도 않았는데 용두사미로 흐를 조짐이 보인다. 지금은 더 과감한 혁신 실천으로 국민에게 진정성을 보여야 할 때다. 김 대표부터 기득권을 내려놓고, 당내 기득권 세력 설득에 나서야 가망이 있다.

문화일보 사설

 

11-03 김기현 ‘김포 출마’ 어떤가

 

이제교 정치부장

인요한 혁신위 절반 성공 거둬
“생각 달라도 사람 미워 말라”
발언에 민심을 붙들 방안 있어

정당혁신 핵심은 공천 룰 조정
대표부터 험지 출마 도전해야
절박함 없으면 총선 승리 못 해

여의도 정치권은 최종 결말에 주목하겠지만,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은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변화라고는 없을 것 같던 불모지 국민의힘에 혁신의 씨앗을 심었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로 드러난 민심을 붙들기 위해 김기현 대표와 국회의원들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이 어떻게 할지 제시했다. “생각은 달라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영남 스타들은 험지에 출마해야” “이준석 전 대표가 마음이 많이 상해 있는 것 같다”는 말이 대표적이다.

싹은 움트고 자라고 있다.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찾은 윤 대통령은 ‘피고인’ 신분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 대화를 나눴다. 이 대표는 유죄 판결 전에는 제1 야당 대표에 걸맞은 예우를 받아야 한다. 그것이 헌법 제27조에 규정된 무죄 추정 원칙에 따른 법치다. 윤 대통령은 민주당 상임위원장들과도 오찬을 가졌다. 윤 대통령은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인과관계는 불분명해도 인요한 혁신위 출범 후 벌어진 일이다. 김 대표는 “(수도권 험지 출마) 제안이 오지 않았다”며 일단 피해 갔다. 전면 부정, 즉각 거부는 없었다. 그것만 해도 상당한 성과다. 답답했던 보수의 가슴에 비로소 희망이 깃들게 됐다.

한국은 인 위원장 가문, 린튼 일가에 큰 빚을 졌다. 1895년 선교사로 호남에 파송된 외증조부 유진 벨은 정명학교, 영흥학교, 숭일학교, 수피아여학교, 목포 프렌치병원, 광주기독병원 등을 건립했다. 수많은 교회도 세웠다. 유진 벨의 딸 샬럿 벨과 결혼한 할아버지 윌리엄 린튼은 생사 고비를 넘나들며 선교 사역을 했다. 아버지 휴 린튼은 전남에서 평생을 살면서 600개가 넘는 교회를 개척했다. 어머니 로이스 린튼도 결핵 퇴치 봉사활동을 했다. 인 위원장은 1984년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었다.

인 위원장의 행보는 파격적이다. 용산의 기피 인사인 유승민 전 의원도 만난 뒤 “애국자더라.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당내 역할에 대해 “굉장히 긍정적 신호를 받았다”고 말했다. 유 전 의원이 윤 대통령에게 퍼부었던 “오만과 독선” “허송세월” 등의 독설도 개의치 않았다. 국민은 헐뜯고 배척하는 정치가 아니라 끌어안고 포용하는 정치를 원한다. 윤 대통령은 이준석 전 대표에게도 어떤 형식으로든 손을 내밀어야 한다. 뿌리치면 책임은 이 전 대표 몫이다. 이 전 대표가 떠나도 2030이 남을 수 있다. 보복과 대립은 미래를 갉아먹는다.

정당 혁신의 핵은 공천 룰이다. 3일 인요한 혁신위는 동일 지역구 3선 초과 연임 금지를 놓고 난상 토론을 벌였다. 스스로 ‘순천 촌놈’이라고 말하는 인 위원장은 좌고우면하지 않고 다선 의원의 희생을 건의할 것이다. 정치인들 대부분이 인요한 혁신위가 실패로 끝날 것으로 보는 이유다. 최고위원회의 안건으로 올라가더라도 받아들여질 것으로 보는 정치인은 드물다. 시늉이야 내겠지만, 전면 수용은 어림없다.

의원들의 최대 관심사는 재선이다. 소속한 당의 승리가 아니다. 정책의 동력을 상실하든, 개혁이 물거품이 되든 상관없다. 윤 대통령이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해도 자신은 살아남아야 한다. 울산 남구을이 지역구인 김 대표는 4선 의원이다. 인요한 혁신위를 예고된 좌초에서 건지려면 결단을 내려야 한다. 공천장 직인을 쥐고 있는 당 대표가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는 지역구를 끼고 앉아 다른 의원들에게 험지 출마를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김포시 서울 편입의 메가시티 정책은 좋은 기회다. 김 대표는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김포 지역구 출마를 선언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힘 다선 의원들도 고양·광명·구리·부천·하남 등 수도권에서 바람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절박함과 간절함이 없다면 민심은 돌아오지 않는다.

인 위원장은 역할이 끝났다고 생각되면 일터인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로, 또 고향 순천으로 돌아갈 것이다. 낙천주의자인 그는 ‘어쨌든 최선을 다했다’고 되뇔 것이다. 총선까지는 5개월여, 시간은 많지 않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그의 저서 ‘내 고향은 전라도, 내 영혼은 한국인’을 펼쳐보기 바란다. 시간이 없다면 마지막 두 페이지 ‘책을 마치며’ 부분만 읽어도 좋다. 제목은 다음과 같다. ‘일상의 안락함에 머물지 않는 삶, 그것이 나의 숙명이자 소망이다’.
문화일보 

 

11.04 與 혁신위 “親尹부터 희생 보여라”, 응답하면 民心 달라질 것

 국민의힘 혁신위원회가 두 번째 혁신안으로 “당 지도부, 중진, 대통령과 가까이 지내는 의원은 불출마하거나 수도권 험지에 출마하라”고 권고했다. 인요한 위원장은 “당과 나라의 위기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희생의 결단이 요구된다”고 했다. 이에 대해 김기현 대표는 “정식 제안이 오면 검토해 보겠다”고 즉답을 피했고, 일부 친윤 핵심은 “자기들이 무슨 권리로 이래라저래라 하느냐”며 반발했다. 국민의힘은 3선 이상 중진만 따져도 31명이고, 지역구마다 사정도 다르다. 이들이 모두 불출마하거나 수도권으로 옮기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선거에 도움이 될지도 불투명하다. 하지만 지도부와 ‘친윤 핵심’이란 사람들이라면 “대통령 최측근부터 기득권을 내려놓고 희생하는 자세를 보이라”는 혁신위 권고의 속뜻을 헤아려 보아야 한다.

 

혁신위가 지목한 의원 상당수는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곳에 지역구를 두고 있다. 이런 곳에 지역구를 둔 사람들은 민심의 흐름보다는 공천 결정권을 쥔 대통령 뜻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마련이다. 대통령이 국민의 뜻과 어긋나는 국정을 펼쳐도 “옳습니다”만 외치며 제왕적 통치의 나락 속에 빠지도록 유도한다. 그래서 친이니 친박이니 하는 논란을 일으키다가 결국 선거를 치르고 나면 국민의 심판을 자초하곤 했던 것이다. 이번 정권 들어서도 친윤 핵심들이 대통령과 국민 사이의 소통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왼쪽)와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9월 31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55회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여당이 완패를 당한 후 대통령은 낮은 자세로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대통령의 이런 결의가 국민에게 진심으로 전달되려면 자신을 둘러싸고 좋은 말만 하던 측근들의 인의 장막에서 벗어나겠다는 자세 변화를 보여줘야 하다. 그러나 국민의힘에선 선거 패배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친윤 핵심들이 내년 총선 관련 요직에 속속 복귀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혁신하겠다는 당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니 많은 사람이 의아해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른바 최측근이라고 하는 사람들부터 대통령이 어려운 결심을 할 수 있도록 희생하는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혁신위는 의원 숫자 10% 감축, 불체포 특권 전면 포기 및 세비 감축 등도 권고했다. 이 문제들은 여야 합의로 법을 고쳐야 한다. 의원 숫자 감축, 불체포특권 포기 등은 김기현 대표도 주장한 바 있다. 민주당은 거꾸로 의원 수를 늘리자고 하고, 불체포특권 포기도 거부했다. 국회의원은 개인의 출세를 위한 자리가 아니라 나라를 바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자리다. 내년 총선은 어느 쪽이 국민에게 그런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느냐의 경쟁이 될 것이다. 집권당이 앞장선다면 국민도 달리 볼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11.04 “돈 풀면 3%성장”, 수술 대신 마약 주사 놓자는 야당 대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현 정부의 건전 재정 정책을 비판하며 확장적 재정 정책을 통해 경기 부양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돈을 풀지 않아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경제 위기가 심화됐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해법으로 ‘청년 3만원 교통 패스’ 등 지출은 늘리고 세수는 줄이는 선심성 정책 도입을 주문했다. 물가 불안, 재원 마련, 국가 부채 등 돈을 풀면 오히려 악화되는 우리 경제의 당면 현안에 대해선 아무 언급이 없다.

 

현재 우리 경제가 겪는 직접적인 어려움은 물가 상승과 이에 따른 고금리 환경 때문이다.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다. 금리를 지속적으로 올렸음에도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3.8% 올라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렇다고 물가를 잡겠다고 금리를 더 올리기도 쉽지 않다. 1800조원을 넘는 가계 부채, 2700조원을 웃도는 기업 부채 때문에 금리를 올리면 이자 부담이 가중된다.

 

재정을 확대하려고 해도 지난 정부 때 400조원 이상 불어난 국가 부채가 발목을 잡고 있다. 정부 수립 이후 70여 년간 쌓인 빚의 3분의 2가 전 정부 때 생겼다. 민주당의 원내대표와 소속 의원들이 한편에선 “제2의 IMF” “총체적인 국가 부도 위기”라고 공격하는데, 이 대표는 정반대 주장을 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재정 건전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며 국가 부채를 통제하려는 현 정부의 정책을 높이 평가했다.

 

우리 경제의 근본 문제는 노동·교육 구조 개혁 지연으로 만성 저성장의 늪에 빠진 것이다. 경제의 잠재력을 보여주는 잠재성장률이 1%대로 떨어지면서 내년에는 미국에도 뒤진다. 이 대표 주장처럼 ‘3% 성장’을 하려면 경제 체질을 바꾸는 근본적인 개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노동시장 유연화로 투자가 넘치고, 규제를 풀어 혁신이 일어나며 필요한 인재를 길러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저성장을 뚫을 수 있다. 경제를 살리려면 고통이 따르지만 반드시 이런 수술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대표는 잠깐 국민 인기를 끌 수 있는 마약 처방을 하자는 것이다. 국가 지도자가 취해선 안 될 무책임한 태도다.

조선일보 사설

 

11.04 구멍 뚫린 선거 관리, 해법은 무엇인가?

세계는 지금 ‘디지털 선거’ 우려
캐나다·호주·미국서도
중국과 러시아 선거 개입 혐의
독일선 지방선거 무효 선언도
한국 선거 전산망 취약성 심각
대만과 독일은 아날로그로 전환
우리도 전면 수개표 방식 고려를

 ▲4·5 재보궐선거를 하루 앞둔지난 4월 4일 전북 전주시 전주화산체육관에 마련된 전주을 국회의원 재선거 개표소에서 전북선관위 관계자들이 투표지 분류기 시연을 하고 있다. /뉴스1

 

민주주의가 과연 권위주의보다 우월한가? 그렇다면 왜 그러한가? 쉬운 질문 같지만, 정치학의 최대 난제다. 경제개발, 국토방위, 치안 유지 등에서 일사불란한 독재 정권이 좌충우돌하는 민주 정권보다 큰 효율성을 발휘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지난 두 세기 인류사에서 민주주의는 지속적 확산세를 보여왔다. 2022년 현재 민주주의 국가는 전 세계에서 50%가 넘는다. 33%는 독재국가라도 선거제를 채택하고 있다. 북한이나 중국 같은 ‘폐쇄적 일인 지배(closed autocracy)’는 16% 정도에 불과하다.

 

80% 이상 국가가 선거제를 채택하는 것은 선거가 권력의 정당성을 보장하는 가장 투명하고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공명선거는 민주주의의 생명선이다. 선거 관리가 조금이라도 부실하면, 선거의 무결성(integrity)이 훼손된다. 유권자는 그런 선거 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 2022년 11월 독일 헌법재판소는 선거 당국의 ‘총체적 부실 운영’을 이유로 베를린 지방선거에 전면 무효를 선고했다. 민주주의 원칙에 따른 합리적 결정이었다.

 

대한민국의 선거 관리는 어떠한가? 지난 10월 10일 선거관리위원회, 국가정보원, 한국인터넷진흥원의 합동 보안 점검 결과에 따르면, 국제 해킹 조직이 통상적 방법만으로 투·개표를 조작할 수 있고, 사전 투표소 통신 장비에 USB만 꽂아도 선관위의 통신망을 교란할 수 있다. “내부 조력자가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선관위 해명은 무책임하고 몰상식하다. 민주주의의 존폐가 달린 중대사인데, 국민에게 선관위 직원들의 양심을 무조건 믿으라 강요하는가?

 

지난 정권은 대선 캠프 특보를 선관위 상임위원으로 앉히고, 다음 대선 직전에 연임시키려 해 선관위의 중립성을 파괴했다. 설상가상 고용 세습 등의 부패 관행이 드러나면서 선관위는 스스로 썩은 조직이란 오명을 썼다. 재검표 현장에서 접힌 자국 없는 빳빳한 투표지가 무더기로 나왔을 때, 선관위는 “형상 복원 투표용지를 썼다”고 해명했다. 세상에 그런 종이도 있는가? 있다 한들 왜 하필 일부 투표지에만 그런 종이를 써서 자연스러운 투표 흔적을 없애려 했는가? 선관위의 공적 신뢰는 벌써 무너졌다. 지난 10월 20일 한국리서치 여론조사에 따르면, 과거 선거에서 외부 세력의 투·개표 조작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응답자가 38.2%에 달한다.

 

지금은 디지털 전체주의가 세계 민주주의를 공격하는 위급한 상황이다. 최근 캐나다 정부는 2019년과 2021년 연방 선거에 중국이 다방면 개입한 혐의를 잡고 조사 중이다. 호주와 미국에서도 중국과 러시아의 선거 개입이 계속 논란이 된다. 자유 진영의 최전선으로 중국과 북한에 인접한 대한민국은 더 큰 위험에 상시 노출되어 있다.

 

선관위 전산망의 취약성이 낱낱이 만천하에 드러났음에도 정부와 국회는 아무 대책이 없다. 다섯 달 앞으로 다가온 내년 총선도 부패한 선관위의 허술한 전산망에 맡기려는가? 최근 디지털 전체주의의 만행이 드러나면서 한때 인류를 열광시킨 디지털 민주주의의 환상은 이미 깨졌다. 디지털 선거 관리에 대한 사회적 불신을 해소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독일이나 대만처럼 선거의 전 과정을 투명하게 아날로그 방식으로 되돌리면 된다.

 

대만에선 투표가 끝난 투표소가 10분 만에 개표소로 변한다. 투표함을 옮길 필요조차 없다. 시민들이 그 자리에서 손으로 한 장씩 접힌 표를 펼쳐 들고, 기표된 후보의 이름을 외치고, 바를 정(正) 자로 칠판에 결과를 적는다. 최첨단 디지털 강국인 대만의 시민들이 왜 직접 손으로 선거를 관리하는가? 인간의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수개표가 선거 관리의 공적 신뢰를 확보하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전체주의의 공격에는 아날로그 민주주의가 최고의 방화벽이다.

 

한국발 선관위 보안 점검 뉴스는 이미 전 세계에 알려졌다. 전산망에 뚫린 구멍이 다 드러난 마당에 이대로 다음 선거를 치른다면 해킹 위험이 커지는 만큼 공적 불신도 가중될 수밖에 없다. 국회는 서둘러 선거법을 개정하여 대만 모델을 따라 전면 수개표로 돌아가야 한다. 개표 결과를 하루나 이틀 빨리 알려고 전산 장비를 써야만 한다고 생각한다면, 디지털 맹신이며 속도광의 미망이다. 독일·대만처럼 한국도 시민들이 직접 손으로 개표할 때, 선거 결과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되살아날 수 있다. 힘겹게 이룩한 민주주의를 지키자는데, 누군들 설마 그 정도 손품을 못 팔겠는가?·

조선일보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역사학

 

 

월간조선 11월 호

외국 ‘의원님’들도 온갖 ‘특권’ 누릴까?

① 대한민국

‘고비용·저효용’ 대한민국 국회… 주요국 의회 중 ‘가성비 최악’

⊙ 국회의원 연봉 1억5426만원… GNI 고려하면 ‘세계 최고’ 수준
⊙ 연봉 외 ‘의정 활동 지원 경비’ 명목으로 1억1279만원 더 받아
⊙ 年 5억3865만원에 달하는 보좌진 급여… 경제 규모 큰 英·佛의 3~4배
⊙ 국회 의원회관 45평 단독 사무실… 인근 동일 면적 年 임차료는 5400만원
⊙ ▲출영·환송 ▲숙소 예약 ▲차량 지원 ▲통역 주선 ▲오·만찬 주최 등 ‘풀코스 서비스’
⊙ 정·준회원 자격으로 전국 34개 군(軍) 골프장 이용 가능… 이용료는 2만~3만원

 

 ▲사진=국회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제11조 1항)”고 명시한다. 이어서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제11조 2항)”고 명시한다. 이 규정은 1948년 ‘제헌 헌법’ 때부터 75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지된 ‘헌법 원칙’이다. 국가 경제·사회 발전 동력을 좀먹고, 국가 구성원 단합을 저해한, 구(舊)시대의 폐습인 ‘신분제’와 ‘특권층’의 부활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기 위한 ‘특별 명령’이지만, 해당 조문이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작동되는지는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법과 현실의 괴리가 크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는 과거 신분제 사회 당시 왕족·귀족과 같은 ‘사회적 특수계급’처럼 행세하며 전 국민에게 ‘상전’ 행세를 해대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대표적인 게 바로 ‘국회의원’이다. 국회의원은 ‘주권자’인 국민의 선택을 받아, 국가 의사 결정을 대신하는 ‘국민의 대리인’이다. 계약 관계로 따지면 국민이 ‘갑(甲)’, 국회의원은 ‘을(乙)’이다. 이처럼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을’인데도, 1948년 제헌국회 개원 이래 국민이 위임한 ‘권한’으로 터무니없는 ‘갑질’을 일삼는다. 국민 세금으로 온갖 특혜를 누린다. 국민이 준 ▲입법권 ▲예산심의권 ▲국정감사·조사권 등을 내세워 정부와 그 산하 공공기관으로부터 ‘의정 활동’과 무관한 명목으로 각종 혜택을 받으면서, 우리 사회 ‘특권층’으로 군림한다.

‘헌법’이 ‘공무원’을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국가나 사회를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 힘을 바쳐 애쓰는 사람)’라고 규정하는데도, ‘정무직 공무원’인 국회의원은 일종의 ‘카르텔’을 형성하며 자신들의 특권과 특혜를 내려놓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국민의 대리인’이라는 국회의원들은 그 본분을 망각하고, ‘정치 엘리트’란 특권 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입으로는 ‘국민의 일꾼’을 외치면서도 ‘국민의 권리와 이익’이 아닌, 자신들의 특권과 특혜를 유지·확대하는 ‘언행 불일치’를 계속하고 있다.

국회의원 특권·특혜 완전 박탈!

평범한 국민은 감히 꿈꿀 수도 없는 각종 ‘특권·특혜’를 국회의원들이 만끽하는 상황에 대한 반감이 팽배한데도, ‘입법권’을 가진 국회는 이를 스스로 개혁하지 않는다. 전국 단위 선거를 앞두거나, 정권 교체 후 ‘정치 개혁’ 요구가 비등할 때마다 ‘국회의원 특권 폐지’는 ‘단골 소재’로 등장했다. 그런데 지금껏 단 한 번도 유의미한 변화는 없었다. 정쟁을 일삼는다는 비판을 받는 원내 정당들은 유독 국회의원들의 ‘기득권 지키기’에는 합심해 ‘그들만의 리그’를 굳건하게 지켰다. 이 같은 행태는 ‘국회 불신’과 ‘정치 불신’을 야기하고, 결국에는 ‘국가 발전’을 저해하는 ‘걸림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이 누리는 특권·특혜 중 행정부를 견제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데 필수적인 업무상 권한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나머지 ‘특권·특혜’에 대해서는 국민이 낸 세금으로 국민 위에 군림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 쇄도한다. 바꿔 말하면, ‘주권자’인 국민 위에 군림하며 ‘특권층’의 ‘품위’를 유지하는 것 말고는 아무런 ‘효용’이 없는 ‘혈세 낭비’의 전형이란 지적을 피하기 쉽지 않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각종 특혜는 정당한 것인가? ▲국민 권익 향상과 유관한 의정 활동을 위한 것인가? ▲오랜 세월 국민이 폐지를 요구했는데, 왜 ‘국회의원 특권·특혜 완전 박탈’은 이뤄지지 않는 것일까? ▲‘민의(民意)’를 대표한다고 자처하는 이들이 국민 세금으로, 주권자 위에 ‘군림’하는 상황을 바꿀 수는 없는 것일까? ▲소위 ‘선진국’에서는 국회의원의 ‘특권’을 ‘몰상식’으로 여기고, 국회의원 스스로 이를 포기하는데, 왜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다른 행태를 보일까? 등의 질문들을 던질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서 《월간조선》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외국 ‘의원님’들도 온갖 ‘특권’ 누릴까?”란 주제로 ‘기획취재’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담은 기사 4건을 연달아 게재한다. 이 글에서는 현재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특권·특혜 실상과 ‘변천사’를 살피고, 그 부당성을 지적한다. 후속 기사에서는 ▲영국 ▲독일 ▲스웨덴 등지에서 진행한 현지 취재를 통해 대의민주제를 우리보다 앞서 도입해 운용하는 ‘선진국’ 의원의 ‘특권·특혜’ 현황을 확인하고, ‘국회의원 특권·특혜 폐지’ ‘국내 정치 개혁’ 관련 시사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국회의원 특권·특혜는 60여 개

그간 다수 언론 매체는 “국회의원이 누리는 특권이 200여 개에 이른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법률 제·개정권(헌법 제52·53조) ▲중요 조약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헌법 제60조) ▲헌법 개정에 관한 권한(헌법 제128·130조) 등 국회의원 고유의 의정 활동을 위한 직무상 권한까지 ‘특권’이라고 규정한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른바 ‘국회의원 특권 200여 개’란 수치는 2004년 민주노동당 주장에서 비롯됐는데, 국회사무처가 2016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회의원의 법적 권한 및 특혜는 60개가량이다. 이 중 국회의원이 제도적으로 부여받은 ‘권한’은 약 32개다.

‘제도적 권한’ 중 ‘불공정’ 논란이 계속되는 대표적인 경우가 소위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이다. “국회의원은 현행범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아니한다”는 ‘헌법’ 제44조 1항에 따라 국회의원은 ‘불체포특권’을 누린다. 불체포특권은 법 집행권을 가진 행정부의 부당한 압력·폭력으로부터 입법부의 ‘독립성’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에서 마련된 ‘특권’이다.

인적·물적 자원이 압도적으로 많은 행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입법부가 ‘불체포특권’을 갖는 것은 타당하다. 하지만 그 취지와 달리 실제로는 비리 인사들에 대한 정당한 사법 절차 진행을 가로막는 ‘수단’으로 악용된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에 줄기차게 반대·폐지 의견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한,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경우다.

‘형사’는 불체포특권 불인정하는 英·美

 ▲대장동 특혜 개발 사건 ▲백현동 특혜 개발 사건 ▲위례신도시 특혜 개발 사건 ▲성남FC 후원금 사건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검사 사칭’ 관련 허위사실공표 재판 당시 위증교사 혐의 등 숱한 혐의를 받는 이재명 대표가 대선 패배 두 달도 안 돼 자신의 거주지, 연고지도 아닌 인천광역시 계양구 을 지역구로 가서 ‘국회의원’ ‘야당 대표’가 된 까닭은 무엇일까.

2021년 2월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 포기’를 공약했고, 올해 6월 19일에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저에 대한 정치수사에 대해 불체포 권리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던 이 대표가 국회의 두 번째 체포동의안 표결 전날인 9월 20일,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명백히 불법 부당한 이번 체포동의안의 가결은 정치검찰의 공작수사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라며 “검찰독재의 폭주기관차를 국회 앞에서 멈춰 세워달라”고 주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이를 통해 ‘불체포특권’이 “국민의 권익 보호·향상을 위한 의정 활동 자유 보장” “국회 고유 기능과 핵심임무 수행 보장”이란 애초 취지와 달리 이용되는 실상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국회입법조사처의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 국내·외 비교와 쟁점(2023년 8월)〉에 따르면 ‘불체포특권’의 발상지 영국에서는 ‘형사 문제’에 관한 불체포특권은 인정하지 않는다. 미국에서도 역시 형사 범죄로 인한 체포·기소는 불체포특권의 보호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를 참고하면, 장기적으로는 ‘헌법 개정’을 할 때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의 범위를 제한하고, ‘국회법’과 ‘형사소송법’에 ‘불체포특권’이 인정되는 구체적인 상황을 최소화해서 명시할 필요가 있다.

 

 ‘중상모욕’은 ‘면책특권’ 없는 美·獨

 ▲미국 하원에서는 ‘형사 사건’에 대해서는 ‘불체포특권’을 불허한다. ‘면책특권’역시 ‘중상 모욕’ 등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는다. 사진=뉴시스

 

같은 이유로 절대권력이나 집권자의 부당한 압력 또는 탄압으로부터 의원을 보호하는 ‘면책특권’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국회 외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는 ‘헌법’ 제45조 1항에 따라 국회의원은 ‘면책특권’을 갖는다. 설령 본회의 또는 위원회에서 행한 발언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다고 해도 민·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 역시 앞서 언급한 ‘불체포특권’과 같은 취지로 국회의원에게 부여된 ‘특권’으로 실제로는 행정부 견제·감독과 무관한 사안에 악용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는 ‘아니면 말고’ 식 가짜 뉴스 살포, 선전·선동을 일삼는 이들이 허다하다. 국회의원 고유의 직무 수행을 위해 ‘헌법’이 부여한 ‘면책특권’이 이들의 방종(放縱)을 ‘보호’하고 있다. 이 특권 덕분에 국회 회의장에서 각종 낭설을 지속적으로 유포한 이들이 아무런 법적 책임을 지지 않고, 의원직을 지키고 있다. 이를 고려하면, 우리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면책특권’은 외국과 비교해 과도하다. 미국, 독일 등 우리보다 대의민주제 역사가 오래된 나라들을 보면 그렇다.

국회입법조사처의 〈국회의원의 면책특권: 국내·외 비교와 쟁점(2023년 9월)〉이란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심의·표결과 직접 관계된 의회 내 행위만 면책된다. ‘입법행위’에 대해서만 면책특권을 인정한다는 얘기다. 독일에서는 ‘중상적 모욕’은 면책되지 않는다. 근거 없는 말로 남을 헐뜯어 명예나 지위를 손상케 해 욕되게 하는 언행에 대해서는 민·형사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다.

‘면책특권’을 제한·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지만, 이는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행정부를 견제·비판·감시하는 입법부가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면책특권이 폐지된다면, 국가 정책에 관한 주요 정보 공개도 위축돼 국민의 ‘알 권리’가 침해당할 가능성이 크다.

‘불체포특권’도 마찬가지다. 악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섣불리 폐지할 경우 입법부 권한이 약화될 수 있다. 이에 따른 행정부 견제 부실은 결과적으로 국민 권익 축소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이런 차원에서 폐지보다는 남용 방지에 중점을 두고 관련 법령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의원은 본회의나 위원회에서 다른 사람을 모욕하거나 다른 사람의 사생활에 대해 발언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국회법’ 제146조가 ‘면책특권’을 믿고 중상모욕성 발언을 하는 의원들을 징계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타인을 욕되게 한 국회의원에게 이를 적용해 ‘직무 정지’ ‘발언권 박탈’ 등의 징계를 적극적으로 내린다면, 입법부 품격을 훼손하는 주장들을 일부 통제할 수 있다. 이어서 차후 개헌 과정에서는 ‘중상모략(中傷謀略)’ 등에 대해서는 ‘면책특권’을 인정하지 않는 조건을 명시하고, 관련 법률로 구체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게 국회입법조사처 측의 제언이다.


경제 규모 대비 과도한 국회의원 급여

 ▲한국보다 경제 규모가 2.4배 큰 독일의 연방의회 의원 1인당 보좌진 인건비 지원금은 3억9000만원이다. 우리 국회는 의원 1인당 보좌진 급여로 독일 연방의회보다 40% 많은 연간 5억4000만원을 지출한다. 사진=뉴시스

 

지금까지 살핀 ▲불체포특권 ▲면책특권 등 국회의원의 제도적 권한은 관점에 따라 존폐에 대한 입장이 다를 수 있다. ‘헌법 개정’이란 최고난도의 정치적 의사 결정을 거쳐야 변경할 수 있는 현실적 한계도 있다. 국회의원들의 의지만으로는 실행하는 데 한계가 있으며, 예상치 못한 부작용 탓에 결과적으로 국민이 피해를 볼 가능성도 있다. 이와 달리 ‘의정 활동 지원’이란 이름으로 제공되는 금품과 각종 서비스는 법률 개정을 통해 폐지할 수 있다. 여야 국회의원들의 의지만 있다면 단기간에 이룰 수 있지만, 국회 개원 이래 75년 동안 이런 일은 일어난 적이 없다. 왜 그럴까. 국회의원들이 받는 특혜가 상상 이상 수준이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배지에 달린 수많은 특혜는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먼저 국회의원의 연봉이다.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국회의원 연봉은 수당과 경비로 구성된다. 2023년 기준 국회의원 수당은 ▲일반수당: 매월 691만원 ▲관리업무 수당: 매월 62만원 ▲정액급식비: 매월 14만원 ▲정근수당: 345만원씩 연 2회 ▲명절휴가비: 414만원씩 연 2회 등이다. 경비는 ▲입법활동비: 매월 314만원 ▲특별활동비: 매월 78만원 등이다. 이를 고려할 때 국회의원 연봉은 1억5426만원이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의 3.65배다. 세후 연봉으로 따지면, 그 배율이 더 커질 수 있다. 국회의원 소득의 약 30%에 해당하는 ‘입법활동비’ ‘특수활동비’가 ‘비과세’인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4배를 훌쩍 뛰어넘을 수 있다. 이와 달리 미국, 영국, 독일,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등 주요 선진국의 경우 의원 연봉은 각국 1인당 GNI의 1~2배 안팎에 그친다.

국회의원들은 연봉 이외에 ‘의정 활동 지원 경비’를 받는다. 이 경비는 지역구와 국회 사이 거리(공무수행 출장비), 지역구 인구 규모(정책자료 발송료)에 따라 달리 책정·지급된다. ‘입법 및 정책개발비’는 연 2546만원, 정책자료 발간 및 의원 정책 홍보비는 연 1200만원이다. 사무실 운영비 지원 명목으로 ▲비서실 운영비: 월 18만원(정액) ▲업무추진비: 연 348만원 ▲공공요금(전화·우편 등): 월 95만원(의원실 전화요금 공제 후 잔액 지급) ▲사무실 소모품비: 연 519만원 등 2223만원을 수령한다. 공무수행출장비 조로 1인당 연간 1141만원을 받으면서, 또 ▲의원 차량 유류비: 월 110만원(정액) ▲의원 차량 유지비: 월 36만원(상임위원장은 월 100만원) 등 연간 1750만원을 추가로 수령한다. 차량 유류·유지비는 증빙이 불필요해 전용·유용·착복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올해부터는 문자발송비 지원 명목으로 700만원을 더 준다. 이를 모두 합칠 경우 국회의원 1인이 매년 받는 ‘의정 활동 지원 경비’는 1억1279만원이다. ‘의정 활동 지원’이란 핑계로 지원되는 이 세금은 ‘국민 권익 향상’과 관련된 의정 활동이 아니라 ‘재선’을 노리는 현역 의원의 ‘기득권 강화’를 위한 ‘지역구 활동’에 투입된다고 볼 수 있다.

 

 ▲국회가 공개한 ‘국회의원 수당 지급 기준’이다. 이에 따르면 2023년도 국회의원 연봉은 1억5426만원이다. 이는 1인당 국민총소득(GNI)의 3.65배다. 주요 선진국의 경우 해당 배율은 1~2배에 지나지 않는다. 사진=뉴시스

 

‘英·佛·獨·日’보다 많은 ‘보좌진 인건비’

 ▲장기표 신문명연구원 원장(오른쪽 두 번째)이 상임대표를 맡은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가 8월 3일 국회 앞에서 ‘국회의원 특권폐지’ 촉구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여기에 9명에 달하는 보좌진(4급: 2인/5급: 2인/6·7·8·9급: 각 1인/인턴: 1인) 인건비도 지원된다. 보좌진 직급별 연봉은 ▲4급 8759만원 ▲5급(24호봉) 7885만원 ▲6급 5500만원 ▲7급 4758만원 ▲8급 4180만원 ▲9급 3725만원 ▲인턴 2413만원이다. 의원 1인당 보좌진 9명의 인건비는 연간 5억3865만원에 달한다. 세계 주요국 중 미국 하원의원 다음으로 보좌진 인건비 지원액 규모가 크다. 영국과 프랑스의 경우에는 우리보다 국가 경제 규모가 크고, 1인당 소득이 높은데도 국고로 지원되는 보좌진 인건비가 각각 3억원, 1억5000만원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보다 경제 규모가 1.7배 큰 영국의 하원의원이 1년에 청구할 수 있는 보좌진 인건비 최고액은 우리의 56%에 불과한 3억원이다. 역시 경제 규모가 1.6배 큰 프랑스의 하원의원이 국고로 지원받는 보좌진 인건비는 우리 국회의원 보좌진 연 급여액의 28%에 지나지 않는 연간 1억5000만원이다.

국회의원 보좌진에게 막대한 인건비를 지급하고 있지만, 이들 중 일부는 지역구를 관리하는 등 ‘공무’와는 무관한 일을 한다. 또 일부는 운전기사, 개인 수행비서 노릇을 한다. 결국 ‘의정 활동 지원’이란 본래 의미에 맞는 일을 하는 보좌진은 9명 중 정말 많아야 5명이 채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는 보좌진 수를 대폭 줄여도 국회의원의 ‘의정 활동’에는 별다른 타격이 없음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살핀 내용을 요약하면, 올해 기준 국회의원 1명으로 인해 고정적으로 지원되는 비용은 ▲수당과 활동비: 1억5426만원 ▲의정 활동 지원 경비: 1억1279만원 ▲보좌진 급여: 5억3865만원 등 8억4543만원이다.

한편, 국회의원의 해외 시찰 비용 지원도 이들이 누리는 ‘특혜’에 추가해야 한다. 국회의원은 국고로 ▲운임(교통비) ▲체재비(숙박비·일비·식비) ▲준비금 ▲업무추진비(공식 오·만찬 개최비) 등 여비를 지원받는 해외 시찰을 한 해에 2회 나갈 수 있다. 소위 ‘해외 시찰’은 방문외교, 초청외교, 국제회의 등으로 구분된다. 방문외교, 국제회의 때는 6박 8일 안의 범위에서 항공임·체재비 등을 지원한다. 항공임은 비즈니스 클래스를 기준으로 한다. 체재비는 ‘공무원 여비 규정’에 따라 일비·식비·숙박비를 지급한다. 공식 오·만찬 개최, 차량 임차를 위한 업무추진비도 준다. 초청외교의 경우에는 4박 5일 기간 안에서 수행원 포함 최다 6인 범위의 숙박비와 교통비, 업무추진비를 준다. 국회의원 1인당 해외 시찰비(21대 국회 기준)는 연간 2000만원이다.

국고로 ‘풀 코스’ 해외 시찰 年 2회

 국회의원의 해외 시찰에는 여비 국고 지원뿐 아니라 공공기관과 재외공관의 각종 서비스가 이어진다. 김포국제공항 등을 운영하는 한국공항공사와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사규’로 국회의원을 ‘귀빈’으로 규정한다. 이에 따라 전국 공항을 이용할 때 귀빈실을 사용할 수 있다. 귀빈실 사용자가 누리는 특혜는 ▲주차장 무료 이용 ▲출입국 심사 대행 등 의전 서비스 ▲보안검색 및 출입국 심사 면제 또는 간소화 등이다. 참고로 한국공항공사가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2022년 해당 공사 운영 공항의 귀빈실을 이용한 정당 대표와 입법부 구성원은 총 5523명(중복 포함)이다. 이는 그해 공항 귀빈실 전체 이용자의 80%에 달한다.

국회의원이 누리는 ‘특혜’는 외국에서도 계속된다. 외교부는 ‘국회의원 공무 국외 여행 시 재외공관 업무협조 지침’을 두고 재외공관이 국회의원에게 각종 ‘협조’를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해당 지침 6조에 따른 ‘협조’란, 재외공관 예산으로 ▲재외공관장 또는 공관 직원의 출영·환송 ▲공식 일정 주선 ▲숙소 예약 ▲차량 지원 또는 차량 임차 주선 ▲통역 주선 ▲국회의원을 위한 오·만찬 2회 주최 등을 하는 것이다.

 

국회의원은 국회 시설 이용 과정에서도 특혜를 누린다. 먼저 국회의원은 여의도에서 가장 입지가 좋은 국회 경내에 148.76㎡(45평) 규모의 사무실을 배정받는다. 국회보다 입지가 좋지 않은 인근의 오피스텔 월 임차료는 1㎡당 2만5000원~3만원이다. 일반인이 의원회관 사무실과 같은 평수의 오피스텔을 국회 근처에서 구하려면, 월세로 370만~450만원을 내야 한다. 1년으로 치면, 임차료가 4440만~5400만원이다.

한편, 의원회관 1층 주차장은 의원 관용차만 주차할 수 있고, 국회 본청 중앙 현관은 관례상 국회의원만 출입할 수 있다. 국회에는 국회의원만 이용할 수 있는 전용 사우나와 헬스장이 있다. 국회의원에 한해 외국어 학습비 또한 지원(수강료 70% 환급)한다. 국회 밖을 나가서도 국회의원은 특별 대접을 받는다. 일례로, 군(軍) 골프장 이용 특혜를 들 수 있다. 국회의원은 국방부 훈령인 ‘군 체력단련장 운영 통제 훈령’에 의해 전국 소재 34개 군 골프장(국방부·각 군·군인공제회 운영)의 ‘준회원’이다.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은 ‘정회원’이다. 정회원과 준회원의 군 골프장의 이용료는 각각 2만원, 3만원이다. 민간 대중제 골프장 평일 코스 사용료가 20만원 가까이 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역시 상당한 특혜라고 할 수 있다.


비용은 많이 드는데 신뢰도·효율성은 ‘최악’

지금까지 국회의원이 국민 세금으로 누리는 특권·특혜 중 일부를 살폈다. 상기한 것처럼 우리 의원들은 영국, 프랑스, 독일 의원들보다 세금을 많이 쓴다. 서방 선진국의 의원들보다 의원 자신의 연봉, 보좌진 급여의 절대적인 액수가 상당히 높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국민총소득(GNI)과 비교하면, 우리 의원들과 보좌진의 연봉 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 밖에 특혜도 외국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그 종류가 다양하고, 지원 규모도 크다. 절대적인 금액은 서방 선진국보다 적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를 감안하면 이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일 것이라고 쉽게 추정할 수 있다.

이는 우리 국회가 전 세계 국가의 여느 의회보다 ‘고비용 집단’이란 점을 방증한다. 그렇다면 그 비용을 내는 우리 국민이 평가하는 국회의 ‘가성비’는 어떨까. 주요국 의회들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세계 최악’이란 평가를 피하기 쉽지 않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한국행정연구소 부설 정부경쟁력연구센터가 2015년에 ‘국회의원 연봉 대비 효과성으로 본 의회 경쟁력’ 평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7개국 중 26위에 그쳤다. 연봉 대비 행정부 견제 효과에서도 25개국 중 23위를 기록했다. 하는 일은 엉망인데, 돈만 많이 받는다는 평가인 셈이다. 이와 관련, 당시 연구센터는 “입법 효율성이 낮고 지나치게 지역 이익을 대변한다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 국회 효율성도 전 세계에서 ‘최악’이다. 2017년 세계경제포럼(WEF)이 각국의 제도·산업·인적자원 경쟁력을 분석한 〈국제정보통신보고서2016〉 내용에 따르면 그렇다. 당시 세계 경영인 1만4000명을 대상으로 ‘입법과정이 얼마나 효율적인가’를 물어본 결과, 한국은 139개국 중 99위를 기록했다. ‘신뢰도’ 역시 세계에서 하위권이다. 같은 단체의 〈국제경쟁력지수 2017~2018〉 중 ‘정치인 신뢰’ 부문에서, 한국은 137개국 중 90위에 그쳤다. 이런 평가는 최근까지 계속됐다. 영국 싱크탱크 레가툼이 ▲사회적 자본 ▲경제 ▲기업 환경 ▲국가 경영 ▲교육 ▲보건 ▲안전·안보 ▲개인의 자유 ▲자연환경 등 9가지 지표로 매년 각국의 순위를 매긴 ‘2023 번영 지수’에 따르면 ‘정치인 신뢰 지수’는 조사 대상 167개국 중 114위를 기록했다.⊙

글 : 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thegood@chosun.com

글 : 이경훈 월간조선 기자 liberty@chosun.com

 

 

② 영국

2009년 ‘스캔들’ 이후 전 국민이 의원 씀씀이 감시

⊙ 650명인 영국 하원의원… 너무 많아 ‘특별’할 수 없어
⊙ 영국 경제는 한국보다 1.7배 큰데, 의원 연봉은 약 10% 적어
⊙ 의원 상당수가 전용 의원실·보좌진 없이 의정 활동
⊙ “의원 수 줄여 국민 부담 총액 줄이고 나서 ‘의원 보수 인상’ 논의 가능”
⊙ ‘부패의 온상’이란 불명예 안긴 ‘2009년 하원 공금 유용 사태’
⊙ “민주사회의 핵심은 ‘투명성’… 의원 세금 지출 내역 공개로 국민 권익 향상”
⊙ 각종 수당·보조금 부당 청구 의원 심판하는 ‘주민소환제(2015년)’ 도입
⊙ 現 국회사무처로는 국회의원 행태 감시 역부족… IPSA 같은 독립감시기구 운영해야

 

▲웨스트민스터궁. 사진=월간조선

 

영국은 전 세계 의회민주주의의 본산이다. 국민이 자신을 대신할 대표자를 직접 선출하고, 국가 주요 사안을 결정하도록 위임하고, 집행권을 행사하는 행정부를 견제·비판·감시하도록 하는 정치제도를 ‘의회민주주의(대의민주주의)’라고 한다. 영국은 13세기 말 비상설 ‘신분제 의회(모범 의회)’에 이어 14세기에 지금과 같은 상원(귀족원)·하원(평민원) 의회를 구성했다. 영국 의회가 지금과 같은 위상과 권한을 갖게 된 때는 17세기 ‘명예혁명’ 이후 ‘권리장전’을 통해 ‘입헌군주제’를 정착시킨 이후다. 18세기 말 미국 독립과 프랑스 혁명의 여파로 각국이 근대적 입헌주의를 채택하는 과정에서 영국의 ‘의회제’는 전 세계로 퍼졌다.

영국에서 비롯된 ‘의회민주주의’ 또는 ‘대의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도덕적 해이’란 ‘대리인 문제’를 내포한다. ‘도덕적 해이’란, 정보의 비대칭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주인이 대리인의 행동을 완전히 관찰할 수 없을 때, 주인에게 바람직하지 않은데도 대리인이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경향을 말한다. 이런 대리인의 ‘도덕적 해이’는 결국 주인의 ‘경제적 피해’로 귀결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의회민주주의’하에서는 ‘주인’인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대리인(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공무원이 이에 해당)’ 중 하나인 국회의원이 ‘도덕적 해이’에 빠져서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 골몰하는 ‘대리인 문제’가 발생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국회의원 특권·특혜’다.


‘의회민주주의’ 문제점 먼저 겪은 영국

▲국회는 보좌진 수 증가에 따른 사무 공간 축소, 내방객 접객 공간 부족 등을 이유로 ‘제2의원회관’을 개관하고, 기존 의원회관을 개축하면서 의원실 1개실 면적을 기존 25평에서 45평으로 확장했다. 사진=뉴시스

 

2014년 5042억원에서 2023년 7306억원으로 국회 예산이 45% 증가할 때 ‘국민 권익’도 그만큼 확대됐는지 의문이다. 국회의원들이 1인당 국민총소득(4249만원)의 6.3배에 달하는 각종 수당·활동비·지원금을 받고, 스스로 그 금액을 늘린 것도 그렇다. 심지어 북한이 정전 이래 처음으로 우리 민간 시설을 공격해 군인 2명이 전사하고, 민간인 2명이 희생된 ‘연평도 포격 도발’ 직후에도 세비를 5.1% 인상했는데, 과연 이런 행태와 ‘국민 삶의 질’ 향상이 비례하는지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어느새 9명에 달하는 국회의원 보좌 인력과 계속 증가하는 그들 인건비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과 같은 보좌진 구성을 위한 법률 개정안 처리는 2017년에 강행됐다. 보좌 인력 증원 사유, 그 사유의 타당성 검증 같은 건 ‘법률 개정권’을 휘두르는 국회의원들에게 무의미했다. 그렇게 또 늘린 보좌진 인건비는 국민 부담이다. 현재 인턴 포함 국회의원 보좌진 9명의 급여 명목으로 매년 5억4000만원이 국고에서 나간다.

과거부터 이런 식으로 보좌진을 늘려놓고서는, “사무실이 좁다”며 제2 의원회관을 신축하고, 기존 의원회관은 개축했다. 결과적으로 의원실 면적은 기존의 2배(45평)가 됐다. 보좌진이 늘고, 사무실 면적이 확대된 만큼 국민을 위한 정책 개발에 투입하는 시간·노력·정성이 배가됐는지는 불확실하다.

이게 바로 ‘의회민주주의가’ 갖는 전형적인 ‘대리인 문제’다. 특히 민주주의 역사가 짧고, 이를 견제할 언론과 민간단체 활동 기반이 약한 우리나라에서는 국회의원들의 ‘도덕적 해이’는 더욱더 심화하고 있다. 이에 대한 국민적 불만은 오래전에 한계에 다다랐지만, 국회는 ‘요지부동’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의회민주주의의 본산’ 영국을 살필 필요가 있다. 영국은 ‘대리인 문제’를 다른 나라보다 일찍 겪었고, 그에 대한 문제의식도 먼저 느꼈다. 완벽하지 않지만, 대리인들의 ‘도덕적 해이’ ‘집단 이기주의’에 대응하는 방법도 개발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주인’인 국민 위에 군림하며 온갖 특권·특혜를 ‘향유’하는 ‘대리인’ 국회의원들을 견제·감시할 수단을 찾기 위해 영국의 상황을 들여다봐야 한다.

‘의원 갑질’은 상상 불가

우리 국회와 같은 권한을 갖고, 비슷한 역할을 하는 영국의 기관은 ‘하원’이다. 영국 하원은 의원 650명으로 구성된다. 우리 국회의원의 2배가 넘는다. 희소성이 약한 탓에 영국 하원의원은 ‘특별’할 수 없다. 스스로 ‘특권층’이라고 자처할 수 없다. 우리 국회의원들이 주권자인 국민을 향해 스스럼없이 해대는 ‘갑질’은 영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다. 자신을 마중 나온 수행원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캐리어를 밀어 보내고, ‘탑승 지연’에 불만을 표한 대리기사를 향해 “너, 내가 누군 줄 알아!”라고 외치고, 정확한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는 공항 직원에게 “이 새○들이 똑바로 근무 안 서네. 책임자 데려와”라고 소리 지르는 ‘갑질’은 용납될 수 없다.

사회 분위기도 그렇고, 여건상 영국 하원의원은 우리 국회의원과 같은 ‘특권·특혜’를 누릴 수도 없다. 지역구가 상대적으로 작아서 부정적인 평판이 단번에 유권자 표심을 흔들 수 있다. 그 결과는 ‘낙선’이기 때문에 영국 하원의원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특권·특혜’와 거리를 둔다.

 

애초에 누릴 수 있는 권한, 특혜 자체가 없기도 하다. 일례로, 우리 국회의원들은 공무 국외 여행 시 공항 귀빈실을 이용하고, 외국에 가서는 현지 재외공관의 ▲출영·환송 ▲공식 일정 주선 ▲숙소 예약 ▲차량 지원 또는 차량 임차 주선 ▲통역 주선 ▲국회의원을 위한 오·만찬 2회 주최 등 온갖 서비스를 받는다. 영국 하원의원들은 일반 승객과 같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공무 출장을 갈 때도 일반석에 탄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 역시 현직 재임 당시 휴가 때 저가항공을 타고, 1박에 20만원 이하인 숙소에서 머물 정도였다.

우리 국회의원 또는 정치인이 직접 차를 운전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모습은 대부분 ‘연출’이다. 영국 하원의원의 경우엔 거의 ‘일상생활’이다. 자가용을 운행하는 데 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아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자전거를 탄다. 정치적 계산도 깔렸다. 출퇴근하며 유권자들과 인사하고, 그들의 얘기를 듣는 것 자체가 합법적인 ‘사전선거운동’이기 때문이다.

본회의장에 앉을 자리도 부족한 영국 하원

▲영국 하원의회 본회의장은 앉을 자리가 부족해 전원 참석일에는 200명 이상이 서 있어야 한다. 사진=뉴시스

 

영국 하원의원이 수당과 활동비 등으로 받는 세비는 2023년 기준 연간 1억4100만원이다. 2022년 국내총생산(GDP) 기준 영국의 경제 규모는 3억707만 달러다. 우리나라는 영국의 54%에 불과한 1억6733만 달러다. 바꿔 말하면, 우리 경제 규모는 영국의 절반 수준이란 얘기다. 하지만 의원 연봉은 우리나라가 훨씬 많다. 우리 국회의원들은 수당과 활동비로만 연간 1억5426만원을 받는다. 영국 하원의원보다 10% 더 받는다.

영국의 경제 규모는 한국 대비 1.7배 이상 큰데도, 하원의원에게 지원되는 보좌진 인건비 최고액은 우리의 ‘연간 5억3865만원’의 56%인 3억원에 불과하다. 물론 이를 다 쓰는 영국 하원의원은 드물다. 애초에 우리처럼 9명이 의원 1명을 보좌하지도 않는다. 당대표 또는 중진일 경우 1~2명을 쓸 뿐이다. 초·재선은 보좌 인력 자체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들의 정책 입법은 의회 지원 조직이 돕는다. 우리 국회도 영국 하원처럼 지원 조직이 있다. 각각 연간 예산 219억원, 183억원을 쓰는 국회예산정책처와 국회입법조사처를 운영한다. 그런데도 의원별로 또 최다 9명씩 보좌 인력을 두고 있다.

영국 하원은 의회 공간도 협소하다. 우리로 치면 국회 본회의장과 같은 영국 하원 의사당 중앙홀에는 ▲단상을 내려다보는 의원별 지정석 ▲안락한 의자 ▲넓은 책상 ▲회의 도중 다른 짓을 할 수 있는 컴퓨터 ▲의원 명패가 없다. 좌석도 부족하다. 이곳에서 회의가 있을 때면 예배당 의자처럼 생긴 좌석에 의원들이 빽빽하게 껴앉는다. 이마저도 약 430명만 앉을 수 있고, 200여 명 이상은 서 있어야 한다.

 
 

 우리 국회의원실은 45평… 영국은 2평 남짓

의원 전용 공간 여건도 우리 국회의원들보다 열악하다. 앞서 얘기했지만, 우리 국회는 “의원 사무실이 좁다”며 제2 의원회관을 신축했다. 1989년 기존 의원회관 신축 당시 의원별 보좌진 수는 4명이었는데, 9명으로 늘었으니 25평 규모 의원실을 더 넓혀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렇게 해서 신축된 제2 의원회관은 2012년에 개관했다. 의원실 면적은 기존 25평에서 45평으로 늘었다. 의원 전용 방은 기존 10.9평에서 12.3평으로 확장됐다. 보좌진 공간도 기존 10.7평에서 23.1평으로 커졌다. 기존 의원회관은 의원실 2개를 1개로 합쳐 면적을 2배로 넓히는 작업을 주로 하는 개조를 거쳐 제2 의원회관과 연결됐다. 의원회관 신축과 개조 공사에 들어간 비용만 2000억원이 넘는다. 당시는 세계 금융위기 여파로 국내외 경제가 불황일 때였다. 이 와중에 우리 국회의원들은 이런 ‘돈 잔치’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영국 하원의원들도 우리의 의원회관 같은 건물이 있기는 하지만, 공간 자체가 부족하고 협소하다. 현재 가치로 3900억원을 들여 2001년에 ‘포트컬리스 하우스’란 이름의 의원회관을 개관했지만, 수요를 채우는 데는 역부족이다. 해당 건물이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하원의원 213명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다선 중진 의원쯤 돼야 이곳에 단독 사무실을 가질 수 있다. 이 외 의원들은 사무실 한 곳을 칸막이로 나누고, 같이 쓴다. 1인당 점유 면적은 2~3평에 불과하다. 참고로, 국내 ‘지방자치단체 청사 면적 기준’에 따른 공무원 1인당 최소 사무 면적이 2~5평이다. 영국 하원의원이 이용할 수 있는 ‘의원 전용 편의시설’은 없다. ▲의원 전용 도서관 열람실 ▲무료로 이용하는 내과·치과의원과 한의원 ▲의원 전용 체력 단련 시설과 목욕 시설을 갖춘 우리 국회와는 차이가 크다.


“모든 지출 내역은 투명하게 공개돼야”

▲6선 의원’인 에드 데이비 영국 자유민주당 대표는 “납세자가 국회의원에게 제공하는 재정 지원은 항상 공무와 관련이 있어야 하며, 그 지출 내역은 항상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영국 하원의원 처우와 관련해서 당사자는 어떻게 생각할까. 영국 기후·에너지부 장관을 역임한 ‘6선 의원’, 에드 데이비 영국 자유민주당 대표에게 ‘한국 국회의원 특혜 현황’을 먼저 설명하고, 문답을 나눴다.

— 한국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특혜가 행정부 견제·비판·감시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평가합니까.
“우리 속담에 ‘사과와 배를 비교하지 마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계 각국의 의원 처우 수준을 비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각기 다른 정치 체제로 운영되기 때문이죠. 단, 직무와 관련이 없는 소위 특혜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납세자가 국회의원에게 제공하는 재정적 지원은 항상 유권자와 국가를 위한 일과 관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에 따른 모든 지출 내역은 항상 투명하게 공개돼야 합니다.”

— 영국 하원의원 대다수가 의회에 전용 사무실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과거에는 의회에 자기 사무실이 없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새 건물(포트컬리스 하우스)이 들어선 이후 ‘사무 공간’ 측면에서는 적절한 서비스를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영국 하원의원으로서 충분한 보수를 받는다고 생각합니까.
“적정 보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을 수 있지만, 지금보다 더 높은 수준의 보수를 받는 것은 불가하다고 생각합니다. 의원 수가 너무 많습니다. ‘의원 수 감축’을 통해 납세자인 국민이 부담하는 총비용을 줄이고 나서야만 ‘보수 인상’을 논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국 정가 뒤흔든 ‘보조금 유용 백태’

▲영국 의원들에 대한 수당과 활동비, 주택보조금을 비롯한 각종 지원금 지급 기준 등을 담은 소위 ‘그린북’이다. 사진=영국 의회 독립윤리국

 

물론 데이비 의원의 말처럼 한국과 영국은 권력 구조와 정치 환경이 서로 다르다. 이런 까닭에 국내 기준에서 처우가 상대적으로 ‘열악’하다는 이유만으로 영국 하원의원들을 ‘청렴하다’는 식으로 치켜세우거나, 우리 국회의원들을 깎아내릴 수는 없다. 다만, 영국 하원이 2009년 ‘공금 유용 사태’를 겪은 후 ‘특권·특혜 폐지’를 요구하는 국민 시각에 맞춰 자신들의 세금 지출 내역과 증빙서류를 전부 공개하는 감시제도를 도입·운영하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영국 하원의원들은 수당과 활동비 외에 사후청구·보전 방식으로 주택보조금 등 각종 보조금을 받는다. 이 중 대표적인 항목이 주택보조금이다. 지역구가 런던이 아닌 의원들은 지역구 집이나 런던의 임시 주택 가운데 1곳을 정해 연간 4800만원 한도 내에서 관련 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

하원의원 상당수는 집세 또는 주택담보대출 이자, 주택 수선비와 공공요금에 더해 각종 잡비까지 청구해 보조금을 탔다.

그 보조금 지출의 타당성에 대한 국민적 불만과 불신은 팽배했다. 이에 영국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2009년 5월, 정부로부터 관련 내역을 전부 입수해 두 달 이상 관련 보도를 대대적으로 했다. 그 결과, 여야 불문하고 하원의원 수백 명이 허위로 비용을 청구해, 세금을 부당하게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하원의원들이 주택보조금 청구 기준의 모호성을 악용했고, 그들의 비용 청구 내역을 검증하는 하원 보조금 위원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었다. 이후 ‘의회민주주의의 본산’이라고 하는 영국 하원은 ‘부패의 온상’으로 전락했다.

피아노 조율, 전구 교체도 ‘세금’으로

▲2009년 영국 하원을 강타한 ‘하원의원 공금 유용 사태’의 진상 조사 결과를 담은 소위 ‘레그 보고서’다. 출처=영국 하원의회

 

당시 보도에 따르면, 당시 집권당이던 노동당 출신 마틴 마이클 하원의장은 자신의 글래스고 소재 주택 보조 비용으로 6년 동안 1억4000만원을 받았다. 노동당 소속 마거릿 모런 의원은 지역구에서 200km 이상 떨어진 자가(自家)를 ‘제2주택’으로 지정해 보조금을 부당하게 받았다. 배리 가디너 의원은 낡은 주택을 구매한 후 보조금으로 개조한 뒤 팔아 매도차익을 챙겼다. 부부 관계인 앤드루 매케이 보수당 의원과 같은 당 소속 줄리 커브라이드 의원은 각각 런던 주택과 지역구 주택을 ‘제2주택’으로 신고하고 보조금을 따로 챙겼다.

이 밖에 소소한 비용마저도 세금으로 보전받은 이들이 많았다. 마이클 의장은 부인이 장 볼 때 쓴 택시비를 청구했다. 더글러스 호그 보수당 의원은 자기 집 연못 청소비, 피아노 조율비, 쓰레기봉투 값을 청구했다. 같은 당 스튜어트 잭슨은 애완견 사료비를 청구해 받았다. 당시 내무부 장관이던, 재키 스미스 노동당 의원은 대형 TV, 욕조 물마개, 배우자가 시청한 성인영화 비용까지 타냈다. 국무부 장관을 역임한, 존 프레스콧 노동당 의원은 자기 집을 영국 상류층의 튜더식(헨리 7세에서 엘리자베스 1세에 이르는 튜더 왕조 시대 건물 양식) 가옥으로 외관을 변경하기 위한 목재 구입비와 변기 뚜껑 교체비를 세금으로 보전받았다. 크리스토퍼 프레이저 보수당 의원은 정원수 식재비, 같은 당 피터 비거스 의원은 자가 연못 오리 휴식처 조성비, 이안 맥커트니 노동당 의원은 와인잔 등 주방용품 구입비를 청구했다. 이 외 ▲가정부 급여 ▲정원 관리비 ▲전구 교체비 ▲택시비 ▲도넛 등 간식 구입비 등 공무와 무관한 소소한 비용을 청구해 받은 의원도 다수였다.

‘의회윤리법’ 제정과 ‘독립윤리국’ 신설

▲“의원들의 공금 지출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영국 의회 독립윤리국(IPSA)의 홍보 영상이다. 사진=IPSA

 

당시 ‘공금 유용 사태’에 연루된 의원은 당시 하원의원 현원 646명의 절반에 해당하는 325명에 달했다. 여론은 폭발했다. 성인영화 시청료마저 청구해 받는 행태를 보인 스미스 내무부 장관을 비롯해 각료 4명이 사임했다. 마틴 마이클 의장도 중도 사퇴했다. ‘종신직’인 영국 하원의장이 도중에 그만둔 일은 314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원의원 46명도 사퇴했다. 관련자 중 142명은 차기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공분은 가라앉지 않았다. 영국 국민은 근본적인 제도 개혁을 촉구했다. 당시 영국 정부는 “독립적인 기구를 신설해 의원들의 비용 청구 내역을 승인하는 체제를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따라 영국 하원의회는 집세를 제외한 다른 비용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고, 집세 청구 한도도 2800만원으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또 ‘의회 독립윤리국(IPSA)’ 신설을 골자로 한 ‘의회윤리법’을 제정했다. 2015년에는 문제를 일으킨 하원의원을 지역구 유권자들이 직접 심판하는 ‘주민소환제’를 위해 ‘주민소환법’을 제정했다. 해당 법률에 따르면 ▲의원 당선 후 영국 내에서 기소되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된 경우 ▲하원 윤리위원회 권고에 따라 하원 본회의에서 14일 이상 또는 업무일 기준 10일 이상 정직(출석정지) 처분을 내리는 경우 ▲의원 당선 후 의원수당과 보조금 부당청구를 목적으로 허위자료를 제출하는 등 ‘의회윤리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경우 등이 소환 대상에 해당한다.


의원 세금 지출 공개 감시

▲4선’인 앤디 슬로터 노동당 의원은 “하원의원 보수와 보좌 인력 급여, 기타 행정 업무를 위해 제공되는 비용은 IPSA에 의해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다”고 밝혔다.

 

2010년부터 설치·운영된 IPSA는 의원과 보좌진 급여액을 결정하고, 의원 청구 비용의 타당성을 검토한다. 의원들이 사용한 비용 내역을 두 달에 한 번씩 공개한다. IPSA 활동과 관련해서, ‘4선’인 앤디 슬로터 노동당 의원은 “하원의원 보수와 보좌 인력 급여, 기타 행정 업무를 위해 제공되는 비용은 IPSA에 의해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다”고 밝혔다. 슬로터 의원의 설명처럼 IPSA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의원 성명을 검색하면, 각 의원의 구체적인 보조금 사용 실태와 보좌진 출장비 내역까지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슬로터 의원이 올해 3~4월에 사용한 보조금을 확인한 결과, 그는 ▲교통비 4만3000원 ▲사무실 비용 193만원을 썼다. IPSA 공개 내역에 따르면, 슬로터 의원이 언제, 어디서, 어떤 명목으로 얼마를 썼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슬로터 의원은 3월 23일 지역구에서 3회에 걸쳐 주차비 1만4400원을 냈다. 그 이튿날에도 지역구 방문 시 주차비로 1만1550원을 썼다. 4월 4일, 21일, 23일에도 같은 이유로 각각 5800원씩 지출했다. 슬로터 의원이 지출한 사무실 비용의 하위에는 ▲청소비 ▲집기 구입비 ▲통신비 ▲문구 구입·인쇄비 등의 세부 항목이 있다. 이에 따르면 슬로터 의원은 3월 23일 지역구 사무실 청소비로 18만원, 모니터 구입비로 40만원을 썼다.

IPSA는 “IPSA 운영 이후 영국 국민의 ‘권익’이 향상됐다”고 평가한다. 이와 관련해서, 매튜 럼비 IPSA 공보 담당은 다음과 같이 밝혔다.

“민주주의 사회의 핵심은 ‘투명성’입니다. 이를 위해 독립기관인 IPSA는 의원들의 무분별한 보조금 사용을 규제하고, 그 내역을 공개했습니다. 그 결과, 영국 국민의 ‘알 권리’가 향상됐고, 하원의회에 대한 국민 신뢰도가 제고됐습니다. 우리는 이런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국가별 회의를 주최하기도 했습니다. ‘의회민주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의원들의 세금 지출 내역을 공개하지 않는 나라들에 IPSA 시스템을 추천합니다.”

 

▲에드 데이비(왼쪽), 앤디 슬로터 의원의 2023년 3~4월 보조금 지출 내역이다. IPSA는 의원은 물론 보좌진이 사용한 비용 내역을 두 달에 한 번씩 공개한다. 사진=IPSA

 
 

‘개혁 시늉’이라도 해야

이런 영국의 개혁 작업은 국회의원 처우와 관련해서 비판과 의심이 끊이지 않는 우리에게 유용한 참고 사례가 될 수 있다. 국회사무처가 IPSA처럼 국회의원별 ▲업무추진비 ▲특정업무경비 ▲의정 활동 지원금 ▲해외출장비 ▲의원연맹 등 각종 모임 지원금 등의 상세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해 전 국민이 감시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지금의 국회사무처로는 국회의원들의 세금 지출 행태를 제대로 감시하고, 바로잡는 걸 기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국회라는 한 지붕 아래에서 사무처가 의원들의 부정 사용을 적발하고, 고발하기는 쉽지 않다. 공무상 국외 여행을 가면서 국회사무처를 통해 외교부에 협조 공문을 보낸 의원들 명단과 공문 사본마저 공개하길 거부하는 행태를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월간조선》은 지난 9월, ‘국회의원 공무 국외 여행 관련 협조문 발송 내역’을 국회사무처에 요구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비공개’였다. 국회사무처는 ‘비공개 사유’로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 제1항 제2호(국가안전보장·국방·통일·외교관계 등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에 해당하여 비공개함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회신했다.

2003년 1월, 대법원은 “정보에 대한 공개를 요구받은 공공기관은 비공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한 이를 공개해야 하고, 만일 이를 거부하는 경우라 할지라도 어느 부분이 비공개 사유에 해당하는지를 주장 입증해야 하고, 개괄적인 사유만을 들어 공개를 거부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시(2001두8827)했는데도, 국회사무처는 구체적인 입증 노력 없이 법률 조항을 들먹이며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영국의 IPSA와 같은 독립감시기구를 따로 설치·운영할 필요가 있다. 독립감시기구가 ▲국회의원 수당과 활동비 결정 ▲의정 활동 지원금 지출 행태 감시·공개 ▲공무 국외 출장 외유성 검토·부정 사용 지원금 추심 등을 전담해야 한다는 제안은 새로운 요구가 아니다. 앞서 언급한 ‘국회의원 주민소환제’도 도입해야 한다.

물론 우리 정치 환경, 정치인 수준 등을 고려할 때 이런 개혁 작업들이 추진될 가능성은 없다. 해외 선례 소개, 이런저런 제언 모두 ‘소귀에 경 읽기’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사회가 모든 게 다 완벽하고 공정할 순 없지만, 국민이 볼 때 공정한 척이라도 해야 한다”는 혹자의 말처럼, 개혁을 하겠다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그게 바로 선거 때만 되면 머리를 조아리고 다니는 자칭 ‘국민 일꾼’들의 최소한의 ‘의무’ 아닐까.⊙

글 : 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thegood@chosun.com

 
 
 

③ 독일

동료 의원과 숙소 공유 하며 경비 지출 줄여(한국계 이예원 연방의원)

⊙ 독일인에게 연방의원은 특별한 존재 아냐… 獨 정치권 관계자들 “연방의원 혜택, 과하지 않고 적절”
⊙ 연방의회, 의원 체포동의안 공개 기명투표… 1990~2021년까지 127건 중 118건(92.9%) 가결
⊙ 2차 세계대전 이후 연방정치교육원 등 통해 민주주의 교육 강화
⊙ 시민 참여와 언론·민간단체의 감시가 독일 정치 발전 이끌어
⊙ 독일인이 부러워하는 연방의원 특권은 ‘국영 철도 무료 이용권’

 

▲독일 베를린에 있는 독일연방하원의회(Bundestag). 사진=뉴시스/AP

 

미국의 정치가 대통령제·양당제(兩黨制)를 상징한다면 독일은 연정(聯政), 의원내각제, 다당제를 대표한다. 독일은 연방제 국가이자 양원제를 택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회에 해당하는 독일 연방 하원의회(Bundestag·이하 연방의회)는 정치의 중심이다. 대통령은 간선 선출한다. 주의회 출신들로 구성된 연방상원이 연방의회를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

연방의회는 과반을 확보한 정당이 없으면 정당 간 연정으로 과반을 확보해 집권한다. 연방 하원의원(Abgeordnete·이하 연방의원, 임기 4년)을 뽑는 2021년 제20대 총선에는 총 8개 정당이 선출됐다. 중도 좌파 성향인 사회민주당(사민당·SPD)이 최다 의석(전체 736석 중 206석 확보, 전체 28%)을 차지해 좌파 성향 녹색당(118석), 우파 성향 자민당(92석)과 연정을 맺었다.


인세로 10억 신고한 좌파 정치인

▲하르트무트 코쉭(Hartmut Koschyk, 기사련) 연방 하원의원.

 

2023년 3월 독일에선 좌파당(Die Linke) 소속으로 반(反)자본주의 성향인 자라 바켄크네히트(Sahra Wagenknecht)가 연방의회에 과도한 추가 수입을 신고해 논란이 됐다. 바켄크네히트는 2021~2022년 의정 활동에 따른 급여 이외에 추가 수입으로 79만2961유로(한화 약 11억1014만원, 환율 1400원 기준)를 신고했다. 독일 연방의원은 월 1000유로, 연 3000유로 이상의 부업(겸업) 수입은 신고해야 한다. 바켄크네히트의 주된 수입원은 출판물(《Die Selbstgerechten·독선》) 인세와 강연 등이었는데 인세가 72만 유로였다. 한화로 10억2600여만원이다.

언론은 바켄크네히트가 연방의회 회의에는 출석하지 않고 방송 출연, 유료 강연 등에 나갔다고 비판했었다. 독일 국민은 물론 당내에서도 바켄크네히트를 문제 삼았다. ‘법을 어기진 않았지만 위선적’이라는 반응이었다. 논란이 되자 바켄크네히트는 다음 총선(2025년)에 불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한국의 국회의원 출판기념회가 떠오른다. 탈법에 가까운 선거자금을 모으는 우회 통로이자 인지도가 낮은 이들이 이름을 알리는 장이다. 6개월 앞으로 다가온 22대 총선을 앞두고 현역 국회의원과 출마를 준비하는 이들이 한창 출판기념회를 열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4년 정치자금법이 개정되면서 정치후원금에 연간 한도(연 1억5000만원, 선거가 열리는 해는 3억원)가 생겼다. 정치자금 지출 내역도 공개해야 한다. 출판기념회는 선거 90일 전까지만 금지할 뿐 모금액 제한이나 수입 공개 의무도 없고 비과세 대상이다.

국회 보좌진들은 “출판기념회를 열면 1억은 기본으로 모인다” “봉투 하나에 10만~20만원씩 들어 있다” “유력 정치인은 3억~5억원, 인지도 낮은 초선 비례의원은 8000만~1억원이 모인다”고 말했다.

연방의회 7선 의원(재임 1990~ 2017년)을 지낸 하르트무트 코쉭(Hartmut Koschyk) 전 연방의원. 기자가 코쉭 전 의원에게 한국의 출판기념회 문화를 소개하며 “합법적으로 책을 팔아 세금을 내고 신고까지 한 자라 바켄크네히트를 비판하는 독일 여론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니 그는 웃으면서 “독일에선 정치자금을 모으거나 출마를 위해 책을 펴내는 문화 자체가 없다”고 답했다.


“급여와 직무경비만으로 충분”

지난 8월 27일부터 9월 6일까지 10박 12일 일정으로 베를린과 뮌헨 등지를 찾아 전·현직 연방의원과 정치권·시민단체 관계자 등을 만났다. 이들은 한결같이 기자에게 “연방의원에게 지급되는 급여와 직무경비만으로 충분히 의정 활동을 할 수 있다. 많은 돈이 들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독일 연방의원에게 제공되는 금전·현물 지원은 크게 ▲의원 보수(급여) ▲의정 활동을 위한 직무경비(수당·현물급부) ▲직원(보좌진) 고용비 ▲교통·출장비 ▲사무기기 구입비 ▲퇴직수당 ▲의원 연금(67세부터 지급) 등이 있다. 이를 모두 합하면 한화 약 6억6396만원이다(퇴직수당, 연금 제외). 공무상 해외출장을 다녀오면 지출 증빙을 해 실비로 환급받는다.

연방의원 급여는 월 1만591.70유로다(한화 약 1482만원, 연 1억7794만원). 독일 기본법(우리의 헌법에 해당)은 연방의원이 독립성을 보장하는 적절한 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명시한다. 연방의원의 급여는 연방대법원 판사와 같다. 보수는 명목 임금지수를 바탕으로 결정되기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021년(1만12.89유로)에는 2020년(1만83.47유로)보다 급여가 70.58유로 줄기도 했다.

매월 지급받는 직무경비(4725유로, 한화 월 약 661만5000원, 연 7938만원)는 의정 활동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보상받기 위한 수당과 현물급부에 해당한다. 수당은 베를린(연방의회) 주거와 지역구(선거구) 사무실 유지비 등으로 쓴다. 독일은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따라 불출석할 경우 하루당 100~200유로를 직무경비에서 공제한다.

 

현물급부에는 연방의회 소재지의 사무실(54㎡) 제공 및 유지, 국유철도·대중교통 무료 이용, 연방의회 업무차량 제공, 통신 시스템(전화, 인터넷, 우편 등) 지원 등이 포함된다.

보좌진(직원) 고용을 위해서는 매달 최고 한도 2만3205유로(한화 월 약 3249만원, 연 3억8984만원)를 지원받는다. 임면권은 의원에게 있지만 급여는 연방의회 사무처가 지급한다. 한도 내에서 자율적으로 고용한다. 규모는 의원실마다 4명부터 10명까지 다양하다.

사무기기 구입비로는 매년 최고 1만2000유로(한화 약 1680만원)가 배정된다. 먼저 구매한 뒤 환급을 신청해야 한다.

퇴직수당은 재직 기간에 따라 지급한다. 1년 재직할 때마다 급여 1개월분이 쌓이는데 최장 18개월분까지 받을 수 있다.

의원연금은 만 67세부터 지급받는다. 연방의원 재직 기간에 비례하며 매년 2.5%p씩 인상된다. 27년간 의원으로 지냈다면 최고 비율인 67.5%를 적용받는다. 연방의원 급여가 월 1만 유로면 연금으로 최고 6750유로를 수령한다. 연방의원을 8년 하면 2000유로를 받는다. 평균 2~3차례 당선돼 활동하므로 최고 비율을 적용받는 이는 많지 않다.


독일보다 세 배 넓은 한국 국회의원 사무실

▲이예원 연방 하원의원. 20대 총선 당시 선거운동을 할 때 모습이다. 이민가정 출신으로 이민 분야에 관심이 많다. 그는 12세이던 1999년, 온 가족이 한국으로 추방당할 위기에 처했었다. 당시 아헨시 지역구 의원이었던 울라 슈미트(Ulla Schmidt, 사민당) 의원에게 편지를 써 도움을 청했고 슈미트 의원의 노력으로 독일에 남을 수 있었다. 사진=이예원 의원

 

한국 국회의원이 국회 사무처에서 연간 지원받는 금액은 ▲급여(수당 1억5426만원, 월 평균 급여 1285만5280원) ▲직무경비(1억1279만원) ▲보좌진 급여(5억3865만원) 등을 모두 합쳐 약 8억570만원(현물급부 제외)이다. 한국 국회의원의 사무실(148.76㎡)이 독일(54㎡)보다 3배나 크다. 한국에는 의원 전용 주차장, 사우나·헬스장·출입문 등도 있다.

독일은 한국보다 약 2.4배 경제 규모가 크고 물가도 비싸다. 2022년 기준 시간당 최저 임금은 한국 9160원, 독일 1만6800원(12유로)이었다. 국민 생활 수준을 나타내는 GNI(국민총소득, 아틀라스 방식 기준)는 한국 3만5990달러(한화 약 4318만원, 환율 1200원 기준), 독일 5만3390달러(한화 약 6407만원)이다. 양국 의원의 급여와 직무경비는 독일이 연 2억5777만원, 한국이 2억6704만원이다. 경제 규모를 놓고 보면 한국 국회의원이 더 많은 급여를 받는 셈이다. 한국 국회의원이 매년 거둬들이는 후원금과 출판기념회 수익은 제외한 수치다.

2021년 20대 연방 총선에서 아시아계 최초로 독일 연방의원에 당선된 사회민주당 이예원(Ye-One Rhie·36) 의원. 독일 태생이지만 한국식 이름을 고집한다. 간호사인 한국인 어머니와 한국어 강사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 의원은 17세에 사민당에 입당해 활동했고 2014년 아헨(Aachen)시 시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후 재선까지 했다.

20대 총선 당시 지역구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아헨 1지역구에서 3등을 해 낙선했지만 비례대표 정당 명부에서 상위 순번을 배정받고는 당선됐다. 독일은 한국과 달리 지역구 출마자가 비례대표에도 출마할 수 있다.

이 의원은 직원 고용 예산으로 보좌진 8명을 두고 있다. 베를린과 아헨(지역구)에서 각각 4명이 근무한다. 20대 총선 출마 당시 사민당에서 약 5만 유로(한화 7000만원)를 지원받았다. 사비는 많이 지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선거운동을 할 때도 지지자나 자원봉사자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식사나 음료를 대접할 뿐 큰돈은 쓰지 않았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급여 이외에 직무경비만으로 의정 활동을 하기에 충분한가요?
“네. 거주지(베를린, 아헨) 숙소·사무실 유지 비용은 물론 그 외의 활동에도 충분합니다.”

 
 

 돈 아끼려 동료 의원과 숙소 공유

— 지역구에는 어떻게 가나요. 비서가 동행하나요?
“혼자 기차를 타고 갑니다.”

베를린에서 아헨까지는 기차로 5시간이 걸린다. 연방의원은 헌법에 따라 국유 철도를 무료로 이용한다. 독일 고속열차 ICE(우리의 KTX에 해당)의 일등석을 주로 탄다. 독일인들은 연방의원이 누리는 최고 특혜로 철도 무상 이용을 꼽기도 한다.

— 베를린에서 동료 의원과 숙소를 공유한다고 들었습니다.
“두 명의 다른 의원과 공동 아파트에서 살고 있어요. 베를린의 임대료가 비싸기 때문이죠. 무엇보다 하루 종일 의정 활동을 한 뒤 집으로 돌아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어 좋습니다. 베를린에서는 대중교통이나 의회 차량을 이용해 출근합니다. 의회까지 걸어서도 20분밖에 걸리지 않죠.”

— 한국은 본회의장에서 다선 의원이 출입구와 가까운 쪽에 앉습니다. 독일은 어떻습니까.
“본회의장에 의원 지정석은 없어요. 다만 주제에 따라 본회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거나 연설을 맡은 사람은 앞자리에 앉죠.”

— 연방의회에서 업무에 따른 차별이 아닌, 연방의원만 누릴 수 있는 신분에 기초한 특별한 시설이나 혜택이 있나요?
“본회의 기간에 보안상, 업무상의 이유로 의원만 출입할 수 있는 곳은 있습니다만 의원에게만 제공되는 (차별화된) 추가 혜택, 시설은 없습니다.”

— 해외 출장은 한 해에 얼마나 갑니까.
“평균 1~2차례입니다. 공식 출장일 경우 비즈니스 항공권을 이용합니다. 출장비는 신청서를 제출하고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의회를 대표하는 출장일 경우 독일 공항에서 간소화된 출입국 절차를 거칩니다.”

— 지난해 기부금을 얼마나 받으셨습니까.
“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겸직도 하지 않아요. 독일에서는 이해충돌을 피하기 위해 다른 직업이 있다면 신고해야 합니다.”

— 연방의회는 의원의 투표 결과를 공개합니다. 면책 특권 해제(체포동의안) 등 민감한 주제에 대한 표결 내용이 알려지면 의원의 자율성이 침해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국민에 의해 선출됐고 국민을 위한 정책을 만듭니다. 국민은 자신이 선출한 의원이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결정에 대해 국민에게 기꺼이 평가받고 싶어 합니다.”


“연방의원 특권 과도? 동의 안 해”

▲독일에선 현수막 대신 입간판에 붙은 연방의원의 포스터를 볼 수 있다. 왼쪽부터 기독교사회연합(CSU), 자유민주당(FDP), 녹색당, 좌파당 소속 정치인의 포스터.

 

— 연방의원이 ‘과도한 특권’을 누린다고 생각하십니까.
“‘과도하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물론 의원에게는 특권이 주어집니다만 이는 연방의원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기 위한 것입니다. 특권에 따른 책임도 있기에 저는 의정 활동을 투명하게 공개하려고 노력합니다. 특권은 제 욕망이나 목표 실현을 위해서가 아닌, 선거구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주어진 것임을 잊지 않으려 하죠.”

— 연방의원에 대한 금전적 지원이나 혜택을 늘려야 한다고 보십니까.
“지금 수준이 적절하다고 봅니다. 현행 예산 사용 지침도 매우 엄격합니다. 연방의원에 대한 지원과 혜택을 늘리거나 줄이는 것은 제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닌데 (만약 줄어든다고 해도) 주어진 예산에 맞춰 의정 활동을 할 자신이 있습니다.”

— 독일에서는 전문성과 열정, 당원의 선택만 있다면 누구나 연방의원이 될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쉬운 길은 아닙니다만 인내심과 열정, 전문성, 절대적인 의지가 있으면 됩니다. 선거를 치를 때는 경제적인 요인이 중요할 수 있는데 저처럼 정당에서 충분한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사련 소속 코쉭 전 연방의원은 독일 남부 지역인 바이에른주 바이로이트(Bayreuth)에서 내리 7선을 했다. 메르켈 집권기에는 재무부 차관을 지냈다. 젊은 정치인에게 기회를 주고자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불출마했다. 기독교민주연합(기민련·CSU)과 자매 관계인 기사당은 바이에른주에서만 활동한다. 기민련은 바이에른주에서 후보를 내지 않는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연방의원이 된다”며 그는 “직업 정치인이 되기 전에는 군 간부로 지냈다”고 밝혔다. 코쉭 전 의원은 “현재 연방의원이 누리는 예산 지원이나 제도적 권한이 연방의원직 수행은 물론 생계를 유지하기에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의정 활동을 하며 무보수 명예직은 겸직했으나 보수를 받는 일은 하지 않았다. 개인기부금(후원금)도 받지 않았으며 연 평균 5만 유로를 정당후원금으로 모금했다고 했다. 사재를 쓰는 경우는 개인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후원할 때였다고 한다.


방탄 의회는 없어… 기명으로 체포동의안 표결

독일에는 이른바 ‘방탄 국회’가 없다. 독일은 기본법 제46조 1항에서 면책특권을, 2~4항에서 불체포특권을 명시했다. 2항에 따라 연방의원은 연방의회의 동의가 있어야만 체포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회기 중에만 불체포특권(헌법 제44조)을 인정하지만 독일은 의회기 전체에 걸쳐 적용한다. 체포동의안 표결도 한국은 무기명 비밀투표로 진행하지만, 독일은 기명투표를 실시하며 거수나 기립으로 의사를 표명한다.

한국은 제헌국회부터 2023년 8월 30일까지 체포동의안 총 70건 중 17건(24%)만 가결됐다. 독일은 제12대 연방의회(1990~1993)부터 제19대 연방의회(2017~2021)까지 총 127건의 면책해제안(체포동의안)이 제출돼 118건(92.9%)이 가결됐다. 20대 연방의회에선 2023년 8월 30일까지 총 6건의 면책해제안이 제출돼 모두 가결됐다.

우리나라는 공직선거법 제264조에 따라 징역 또는 100만원 이상 벌금형의 선고를 받으면 당선무효가 된다. 하지만 독일은 선거법에 당선무효 기준이 별도로 정해져 있지 않다. 대신 형법에 ‘선거범죄로 인한 피선거권 박탈’ 규정이 있다. ▲선거방해 ▲선거조작 ▲선거인에 대한 강요 ▲선거인 매수 죄로 6개월 이상 징역형을 받으면 피선거권·선거권을 박탈당한다.

독일은 기본법(제48조 2항, 제38조 1항)과 연방의원법(제44a조 1항)에 따라 겸직을 할 수 있다. 이에 연방의원법은 겸직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부당한 청탁과 금품수수를 방지하기 위한 규정과 신고 의무를 두고 있다(제44a조 2항 이하). 독일에서는 연방의원의 겸직으로 인한 부수입이 부정부패로 향하는 문이자 의회 독립성을 약화하고 의정 활동의 질을 저하시키는 요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대표적인 사건이 이른바 ‘마스크 스캔들’이다. 기사련 소속 게오르크 뉘슬라인 연방의원이 마스크 정부 조달 로비 혐의로 탈당했다. 기민련 소속 니콜라스 뢰벨 연방의원은 중국산 마스크 구입 중개 혐의로 의원직을 사퇴했다. 겸직 권한을 바탕으로 일종의 로비스트 역할을 한 셈이다.

겸직이 꼭 부패로 이어지진 않아

▲안드레아스 폴크 베를린경제대(HWR Berlin) 교수. 로비와 부패와의 관계를 연구한다.

 

전 세계에서 활동하며 부정부패를 감시하는 NGO인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TI). 1993년 설립돼 베를린에 본부가 있다. 로비·부정부패 분야 전문가이자 TI 자문위원인 안드레아스 폴크(Andreas Polk) 베를린경제대(HWR Berlin) 교수를 만났다. 우리의 공정거래위원회에 해당하는 ‘연방 카르텔 사무소(Bundeskartellamt)’에서도 일했다.

— 연방의원의 로비 활동은 불법 아닙니까.
“아닙니다. 합법입니다. 헌법상 권리이기 때문이죠. 다만 최근에 부패로 의심할 수 있는 몇몇 로비가 관찰됐었으나 불법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 마스크 스캔들 이후 달라진 게 있습니까.
“의정 활동과 관련한 강연으로 사례금을 수령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또 연방의원을 대상으로 한 개인기부금 모금도 금지했습니다.”

— 개인기부금을 금지하는 것에 대한 반대는 없었습니까.
“사민당, 녹색당 등 이른바 좌파 진영에서 반대했습니다. 자신들은 이른바 불법을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 겸직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겸직 금지가 부패 예방에 반드시 도움이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2005년부터 의원들은 겸직 활동과 소득을 신고해왔습니다. 전체 연방의원 중 3분의 1만 유급 겸직을 하고 있고, 전체 의원의 80%는 무보수로 겸직하고 있죠. 다만 겸직할 경우 겸직에 소요되는 시간을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방의원은 이미 의회로부터 급여를 받고 있으니까요.”

— 연방의원에 대한 예산 지원이나 특권이 과다하고 생각하십니까.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급여가 그리 많다고도 생각하지 않죠. 의원들은 대중의 시선 속에 책임감을 갖고 베를린과 지역구를 끊임없이 오가며 일하기 때문입니다.”

“김영란법 상향 이유, 신기해”

▲기사련의 싱크탱크인 한스자이델재단 베를린 사무소 대표를 맡고 있는 알렉산더 울프 박사.

 

폴크 교수는 과거와 현재를 비교할 때 연방의원이 누리는 특권은 큰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연방의원의 의정 활동이 투명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개선돼왔다고 밝혔다. 그는 연방의회 차원에서 벌어진 선제적인 특권 내려놓기보다는 정치적 (부패) 스캔들이 벌어진 후 언론과 시민의 요구로 개혁이 이뤄진다고 밝혔다. 독일에서는 언론과 시민단체가 의회와 의원을 상대로 질의하고 정보공개를 요구하며 감시하고 견제하기 때문이다. 최근 ‘김영란법’ 한도 상향을 두고 우리 정부는 ‘경제 활성화’를 이유로 들었다. 이에 대해 폴크 교수는 “한도를 상향한 이유가 참 신기하다”고 밝혔다.

기사련의 싱크탱크인 한스자이델 재단 베를린 사무소 대표를 맡고 있는 알렉산더 울프 박사. 베를린에서 연방의회와 연방의원을 지켜보는 그는 이렇게 말했다.

“독일 연방의회는 ‘일하는 국회(Arbeitsparlament)’입니다. 연방의원은 개인 여가가 거의 없고, 업무도 까다롭고 시간도 많이 투입해야 하는 직업이죠. 베를린에서 일정을 마치면 지역구로 이동해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데 시간을 보냅니다. 연방의원들이 과도한 특혜와 특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현재 지급되는 급여와 혜택은 적절하다고 생각해요. 재정적으로 독립성이 있어야 부패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예원 의원과 코쉭 전 의원 등 독일 정치권 관계자들은 연방의원에게 제공되는 각종 혜택과 금전 지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유권자의 선택을 받은 대리인이 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시각이었다. 이 때문에 기자의 질문에 담긴 ‘과도한 혜택’ ‘특혜’ ‘특권’이라는 표현을 선뜻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기자는 특권이라는 관점이었지만 이들은 권한일 뿐 특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권한일 뿐 특권은 아니다”

독일 연방의원과 연방의원 출마자를 위한 특권으로 볼 수 있는 내용도 있다. 독일의원법에 따르면, 연방의회 의원 입후보자는 선거일 전 2개월 이내에 선거를 준비할 수 있도록 최장 2개월의 휴가를 보장받는다. 또 입후보 과정에서 직장 내 불이익이 금지된다.

기자는 베를린에서 박성조 베를린자유대 명예교수를 만났다. 박 교수는 “독일 연방의회, 연방의원을 이해하려면 독일 정치 문화를 우선 파악해야 한다”며 “연방의원에게 주어지는 각종 금전적 혜택과 지원제도를 다른 나라와 단순 비교하는 것은 독일 정치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독일에서 정치는 사회적·경제적으로 성공한 이들의 마지막 무대가 아니다. 독일인에게 연방의원은 한국인이 바라보는 국회의원처럼 선망의 대상도 아니다. 바쁘고 일 많고 귀찮은 일(민원)을 해결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연방의원이 누리는 각종 특혜도 직무에 따른 마땅한 보상이라고 여긴다. 독일에서는 판사나 군인, 공무원도 연방의원에 출마할 수 있다. 연방의원 임기를 마치고도 정년에 도달하지 않으면 이전 직업으로 돌아갈 수 있으며 연방의원 재임 기간도 근속 연수로 인정한다. 연방의원도 하나의 직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진입장벽이 낮아 정치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정당에 가입해 정치 활동을 할 수 있기에 정치인이 갖는 희소성이 없다. 오히려 독일에서는 대학교수나 예술가 등 창조적인 직종에 종사하는 이들을 선망한다.

독일인들이 정치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된 계기는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다. 나치의 등장으로 나라가 분단되는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독일은 민주주의·다원주의·관용 등의 가치를 교육해야 전체주의를 막고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봤다. 독일의 정치 문화가 연정, 협치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독일연방정치교육원

연방영역(공공영역)에선 독일연방정치교육원(1952년 설립), 민간영역에선 시민단체, 정치영역에선 정당·정당 싱크탱크 중심으로 정치 교육이 이뤄진다. 이는 자연스레 정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로 발전한다. 연방정치교육원은 설립 목적으로 ▲정치 문제에 대한 이해 증진 ▲민주적 인식 강화 ▲정치 참여 의지 강화 등을 밝히고 있다.

한국 국회의사당 주변에 ‘여의도 2시 청년’이란 신조어가 있다. 오후 2시에 열리는 각 정당 행사에 참석해서 눈도장을 찍는 정치 지망생을 비꼬는 표현이다.

독일도 정치에 관심을 둔 청년이 많단다. 또 고등학생이 되면 정당에 가입할 수 있을 정도로 정당 문호도 넓은 편이다. 사민당은 14세, 기민련·기사련·자민당은 16세면 받아준다. 독일 총리를 지낸 헬무트 콜은 16세(기민련), 게르하르트 슈뢰더는 19세(사민당)에 입당했다고 하니 일찌감치 정치 싹을 틔운 셈이다.

독일 정치에서는 벼락 출세가 어렵다. 입당한 뒤 지역구의 정당 위원회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어 시의회, 주의회를 거쳐 연방의회로 진출한다. 선거 단위가 한 단계 한 단계 높아질 때마다 유권자와 당원에게 검증을 받는다. 실력이 없으면 자연스레 도태된다. 실력과 열정, 당원과 유권자의 선택만 있으면 누구나 연방의원이 될 수 있다. 금전적인 문제는 정당에서 지원받을 수 있다.

20대 연방의원 중 사민당의 초선 의원은 102명, 평균 연령은 41.5세, 40세 이하 비율은 58%, 평균 당적 보유 기간은 16.2년, 선출직 경험은 96%이다.

메르켈 정부에서 재무차관을 지낸 코쉭 전 의원에게 ‘메르켈 전 총리와 친분이 있으면 연방 총선에서 공천받는 데 유리한가’ 물었다. 그러나 그는 이 질문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독일의 출마자 공천은 당원이, 당선은 지역 유권자가 결정하기 때문이다.

독일의 정당 싱크탱크(콘라드 아데나워 재단, 프리드리히 나우만 재단 등)의 역할도 독일 정치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싱크탱크는 정당에 종속되지 않는다. 정당과 연계된 활동을 하지만 독립성이 보장된다. 정당을 위한 선거운동도 금지된다. 정부보조금도 정당이 받는 것보다 4배가량 더 받는다. 독일 정당 싱크탱크의 주 업무는 독일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민주주의 교육이지만 활동 범위가 정치 분야에만 그치지 않는다. 전 세계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소명으로서의 정치

기자는 독일에 머무르며 이 나라의 다당제 문화가 의원 특권 내려놓기, 탈권위에 영향을 주진 않았을까 생각해보았다. 독일 현지 의견은 나뉜다. ‘정치인이 누리는 특권과 정당 체계는 큰 관계가 없다’는 의견, ‘더 많은 경쟁을 해야 하는 다당제가 솔선수범하는 정치인을 만든다’는 의견이다.

독일 철학자 막스 베버는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책임을 강조했다. ‘스스로 정치적 포부나 신념에 입각해서 국민의 지지를 획득하고 그 신념의 구현을 위해 투쟁하며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독일에선 아무나 정치를 할 수 있기에 정치인이 특별할 것도 부러울 것도 없다. 특별한 권리도 없지만 그럼에도 독일인들은 연방의원의 철도 무상 이용을 부러워한다. 달리 생각하면 철도 무상이야말로 바로 독일 연방의회가 자랑하는 ‘책임정치’의 상징이 아닐까.⊙

글 : 이경훈 월간조선 기자 liberty@chosun.com
 
 
 

④ 스웨덴

한국 의원실의 1/10 규모 사무실… “의자·책상·노트북만 있으면 된다"

⊙ ‘교통편은 가장 저렴한 것이어야’ 규정… 택시 탔다가 보도되면 큰 비난 받아
⊙ 당 소속 보좌관 1명이 의원 5~6명 도와
⊙ 휴가·보좌관 없어도 “의원직 수행 자체가 특권”
⊙ 의원들에게 법정 휴가 없어… 1년 365일 24시간 근무가 원칙
⊙ 19~20세기 ‘위로부터의 개혁’… 부패·특권 의식 뿌리 뽑아
⊙ 스웨덴 국민 63.3% ‘의회 신뢰’ … 한국 국회 신뢰도는 24.1%(2022 한국행정연구원)
⊙ 1995년 총리 후보, 공금 30만원 유용 후 납입 사실 드러나 사퇴
⊙ “언론사마다 정치인 업무용 카드 지출내역 분석 전담팀 운영”

 

▲다비드 페레즈 스웨덴 민주당 의원의 사무실. 스웨덴 의원들의 사무실 크기는 15㎡ 수준이다.

 

스웨덴 의원들은 청백리(淸白吏)로 유명하다. 이들이 누리는 특권과 특혜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스웨덴 의원 대다수가 대중교통이나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한다. 의정 활동을 돕는 보좌관, 선거자금 모금을 위한 후원 제도도 없다. 의원 사무실 크기는 약 15㎡로 한국 의원실 크기(약 148㎡)의 10분의 1 수준이다. 스스로 세비(歲費)를 인상하는 한국과 달리 스웨덴 의원의 세비는 전문가로 구성된 의회 산하 독립 기구인 보상위원회(Riksdagens arvodesnamnd)가 결정한다. 세비 인상률은 스웨덴의 임금 상승률에 맞춘다. 연 2~3% 수준으로 올린다. 항공편으로 출장을 갈 때도 일등석이나 비즈니스석 대신 이코노미석을 이용한다.

업무 강도도 높다. 스웨덴 의원들은 1년 365일 24시간 근무를 원칙으로 한다. 휴가 기간(6월 말~8월 말)에 폐회하는 걸 제외하면, 연중 상시 회의를 진행한다. 이마저도 올여름에는 우크라이나 물자 지원 관련 법안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문제 등으로 긴급회의가 자주 열려 휴가를 온전히 보낸 의원은 거의 없다고 한다. 세비도 업무 강도에 비해 낮은 편이다. 1957년 이전까지 의원들은 무급으로 일했다.

이처럼 특권·특혜가 없어서일까? 의회를 향한 스웨덴 국민의 신뢰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22년 세계가치조사(World Values Survey)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의회를 신뢰한다’고 답한 스웨덴 국민은 전체의 63.3%였다. 다국적 사회과학 연구기관인 세계가치조사는 1981년부터 민주주의, 환경, 종교, 안보 등 여러 분야에 대한 의식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 국회의 국민 신뢰도는 24.1%다.(한국행정연구원의 ‘2022 한국의 사회지표’)]


의회가 지급한 교통카드로 대중교통 이용

▲올레 토렐 사회민주당 의원. 토렐 의원은 “한국을 좋아해 기아차를 탄다”고 말했다.

 

스웨덴 의원이 누리는 몇 안 되는 특권·특혜는 ▲출퇴근용 대중교통 카드 지급 ▲개인 차량을 운전해 의회 출근 시 유류비 환급 ▲의회와 지역구의 거리가 50km 이상일 경우 스톡홀름 소재 숙소(15~45㎡) 제공 ▲스웨덴 1인당 국민총소득(5만9000달러)의 1.3배에 해당하는 연봉(7만8000달러)이 전부다.

이처럼 스웨덴 의회에서 특권·특혜를 찾아보기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 스웨덴 현직 의원들과 온건당 청년위원회 관계자, 최연혁 린네대 정치학과 교수와 만나 의원 특권·특혜 현황에 대해 알아봤다.

스웨덴 의원들은 대개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의회는 의원 1명당 연 7만4000크로나(약 900만원)의 교통비를 지급한다. 그렇다고 아무 교통편이나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의원 입법 활동 지원법’에 명시된 4가지 기준을 따라야 한다. 첫째, 교통편은 가장 저렴한 것이어야 한다. 둘째, 친환경적이어야 하며, 셋째 신속한 교통편이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안전한 교통편이어야 한다.

이 기준에 따라 스톡홀름 시내에 사는 의원들은 지하철이나 버스, 트램을 타고 출근한다. 자전거나 도보로 출근하는 의원도 많다. 개인 차량을 운전해 의회로 출근하는 경우, 영수증을 제출, 유류비를 환급받을 수 있다. 의회까지 오는 기차나 버스 노선이 없는 북부에 지역구를 두고 있다면 항공권을 구매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교통카드 외에 업무용 차량이나 차량 유지비는 제공되지 않는다. 한국 의원들이 매달 110만원의 차량 유류비, 35만8000원의 차량 유지비를 받는 것과 대비된다.

위 4가지 기준은 해외 출장 시에도 적용된다. 항공편을 이용한 유럽 내 출장의 경우 이코노미석에 앉는 것이 원칙이다. 비즈니스석은 유럽 외 타 대륙 출장에서 도착과 동시에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경우 제공된다. 주최 측이 표를 제공할 경우에도 비즈니스석 탑승이 가능하다.

올레 토렐 사회민주당 의원은 주로 기차를 타고 의회로 출근한다. 토렐 의원은 한국-스웨덴 의원 친선협회 스웨덴 측 회장을 맡고 있다. 그가 속한 사회민주당은 중도좌파 성향으로 총 349석의 스웨덴 의회에서 107석을 차지한 제1당이다. 다음은 토렐 의원과의 일문일답.

― 주로 기차를 타는 이유가 있습니까.
“기차가 가격이 가장 저렴하고, 의회까지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이기 때문이지요.”

― 개인 차량을 운전해서 출근하기도 합니까.
“종종 그렇게 합니다. 하지만 기차를 타면 오가는 시간에 업무를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제가 사는 베스테로스에서 스톡홀름 중앙역까지 1시간 정도 걸리니 회의 자료를 검토하기 충분한 시간이지요.”

 

― 항공편을 이용한 해외 출장 시에도 이코노미석에 타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네. 특정한 경우를 제외하면 그렇습니다.”

― 불만은 없습니까.
“지금껏 이코노미석을 이용해왔기 때문에 익숙합니다. 더군다나 3~4시간 이동이 전부인 유럽 내 출장의 경우 불편한 점도 없고요.”

― 의원의 교통편의를 많이 봐주는 것 아니냐고 비판하는 목소리는 없습니까.
“교통편의 정도는 국민 대다수가 이해해주고 있습니다. 다만, 택시를 탔다가 언론에 보도되면 큰 비난을 받습니다.”


의원 숙소에서 가족 숙박 시 돈 내야

의회와 지역구의 거리가 50km 이상일 경우 해당 의원들은 스톡홀름 소재 국영 숙소를 지원받는다. 숙소의 크기는 15~45㎡로 1인용 침대와 주방이 딸려 있다. 국가·도시 비교 통계 사이트 넘베오(Numbeo)에 따르면, 2023년 스톡홀름 중심지 원룸 아파트의 평균 월세는 1만4650크로나(약 181만원)다. 숙소를 지원받은 의원들은 매달 약 181만원씩 월세를 아끼는 셈이다.

다만 이 숙소는 의원 본인만 사용할 수 있다. 가족이 언제든지 방문할 수 있지만, 숙박할 경우에는 돈을 내야 한다. 가족이 숙소에 머무는 기간도 의원 임기의 절반을 넘어서는 안 된다. 한편, 2022년 7월 ‘의원 처우법’이 개정돼 질병, 장애, 특수한 가정환경 등 특별 사유가 인정되면 국영 숙소 대신 월 9000크로나(약 111만원)의 숙박비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

오사 에릭손 사회민주당 의원은 “일주일에 2~3일은 스톡홀름 소재 국영 숙소에 머문다”고 말했다. 에릭손 의원은 스톡홀름에서 약 90km 떨어진 베스트만랜드주(州)에 지역구를 두고 있다. 가족들이 자주 찾아오느냐는 질문에 “자주는 아니고, 1달에 1~2번 주말에 남편과 아이들이 찾아와 자고 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족이 숙소에 머물면 숙박비를 당연히 내야 한다”고 밝혔다. 에릭손 의원은 “숙소는 내 가족이 아닌, 국민의 대표인 나를 위해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이라면서 “숙소가 제공되는 것만으로도 큰 혜택”이라고 말했다.

한편, 스웨덴 의원은 의사당 내부에 개인 사무실을 갖고 있다. 이곳에서 업무를 보거나 손님을 맞는다. 일부 의원은 밤늦게까지 업무를 보다 이곳에서 자기도 한다. 사무실 크기는 약 15㎡에 불과하다. 사무실 내부에 의원 집무실과 보좌진 업무공간, 접견실 등을 갖춘 148㎡의 우리나라 국회의원 사무실의 10분의 1 수준이다.

다비드 페레즈 스웨덴 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자를 맞았다. 사무실 안에는 소파와 책상, 책장이 놓여 있어 작은 사무실이 더 작게 느껴졌다. 업무 공간이 작아서 불편하지 않으냐고 묻자 페레즈 의원은 고개를 저었다. 페레즈 의원은 “업무 공간인데 굳이 클 필요가 있느냐”면서 “의자, 책상, 노트북만 있으면 일하는 데 지장이 없다”고 말했다.

“개인 보좌관 없어 업무 꼼꼼히 챙길 수 있어”

▲마티아스 칼손 스웨덴 민주당 의원. 칼손 의원은 지난 2014년부터 2015년까지 당대표를 지냈다.

 

스웨덴 의원들은 개인 보좌관을 둘 수 없다. 스웨덴의 ‘의원 입법 활동 지원법’은 ‘정치 보좌관이란 정당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의원당 정치 보좌관 1명에 해당하는 예산을 지원받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예산을 지원받는다’는 것이 ‘개인 보좌관 1명 채용’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입법 지원이 필요한 경우 의원들은 당에 요청, 당에 속한 정책 보좌관의 도움을 받아 입법 활동을 할 수 있다. 보통 정책 보좌관 1명이 의원 5~6명을 돕는 구조다. 9명의 개인 보좌진을 둘 수 있는 우리 국회와 상당히 대비된다.

엠마 노렌 녹색당 의원은 일정 관리와 전자우편 확인 모두 직접 한다. 노렌 의원과 한 번 연락을 주고받기까지 일주일이 족히 걸렸다. 그때마다 노렌 의원은 “답장이 늦어 미안하다”면서 “개인 보좌관이 없어 전자우편 확인에 시간이 걸렸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럼에도 노렌 의원은 “불편함은 없다”고 말했다. 노렌 의원의 설명이다.

“스웨덴 의원들은 법안 발의나 연설문 작성은 물론, 일정 관리 및 전자우편 확인, 정책 홍보물 제작, 유류비 영수증 제출 등 사소한 업무들까지 직접 하지요. 당 소속 정책 보좌관이 있지만, 그들이 이런 업무까지 대신해주진 않지요. 모든 업무를 스스로 하는 것에 익숙합니다.”

울릭 닐슨 온건당 의원은 “개인 보좌관이 없어 오히려 업무를 꼼꼼히 챙길 수 있다”고 말했다. 닐슨 의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좋은 법을 만들기 위해선 의원 스스로 해당 현안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관련 자료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지요. 만약 개인 보좌관을 통해 보고만 받는 식으로 일한다면 결코 좋은 법을 만들 수 없을 겁니다.”

이뿐만이 아니다. 스웨덴 의원들에게는 법정 휴가도 없다. 이들은 1년 365일 24시간 근무가 원칙이다. 만약 여가를 즐기고 싶다면 의회의 공식 일정이 없는 때를 골라 가야 한다. 주로 정기 의회가 폐회하는 6월 말~8월 말을 선택한다. 다만, 상임위원회 회의는 이 시기에도 계속 열리기 때문에 일정 조정에 신경을 써야 한다.

마티아스 칼손 민주당 의원은 이 기간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 기간을 휴가 기간이라고 생각하는 대신 지역구 현안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부지런히 지역구를 돌며 주민들의 고충을 듣지요. 이를 바탕으로 주민들에게 필요한 정책을 연구하고, 회기가 시작되면 해당 구상들을 구체화해 법안을 만듭니다.”

울릭 닐슨 온건당 의원은 의회가 폐회해도 ‘의원 시계’는 계속해서 돌아간다고 말했다. 닐슨 의원의 설명이다.

“회기 중이 아니더라도 일주일에 3번 의회에 출근해야 합니다(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상임위원회 회의와 법안 투표가 매주 2회 열리고, 이를 준비하기 위한 당내 회의가 열리기 때문입니다. 월요일과 금요일은 지역구에 머물거나 언론 취재에 응합니다. 다른 의원들과 공부 모임을 만들어 공부하는 시간도 갖고 있습니다. 회기가 시작되면 더욱 바빠지지요.”

다비드 페레즈 민주당 의원은 “이 기간 스톡홀름에서 멀리 떨어져 있거나 외국에 있더라도 긴급회의가 열리게 되면 곧장 돌아와야 합니다. 항상 휴대전화 전원을 켜놓는 이유이지요”라고 말했다.

2014년에 ‘의원연금제’ 폐지

그럼에도 금전적인 보상은 많지 않다. 스웨덴 의원들의 연봉은 약 7만8000달러(약 1억500만원)다. 초선이든 재선이든 모두 같다. 언뜻 보면 많아 보이지만, 이는 스웨덴 1인당 국민총소득(5만9000달러)의 1.3배에 불과하다. 한국 국회의원의 연봉은 ▲미국(2억2367만원) ▲일본(2억1500만원) ▲독일(1억7794만원) 등에 이은 1억5426만원으로 세계 9위다. 이는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의 3.65배다. 일본(2.31배), 미국(2.28배), 영국(2.03배)보다 훨씬 높다.

스웨덴 의회는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따른다. 만약 의원이 회기 중 결근하면 결근일만큼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다. 국회가 열리지 않아도, 회의에 전혀 참석하지 않아도, 심지어 구속 중에도 급여가 나오는 한국과 대조적이다.

울릭 닐슨 온건당 의원은 “돈을 벌고자 했으면 다른 직업을 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닐슨 의원은 “입법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권”이라고 밝혔다.

엠마 노렌 녹색당 의원도 연봉이 의정 활동에 부족한 액수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노렌 의원은 “1인당 국민총소득을 고려했을 때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긴 하다”면서도 “일반 국민의 임금 수준에 비춰보면 많은 액수”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2014년까지 스웨덴에는 의원 연금 제도가 있었다. 2014년 전까지는 최소 3년 이상 일한 의원들은 연금을 받을 수 있었다. 나이와 재임 기간을 종합해 의원 시절 받은 월급의 66~80%를 매달 받는 구조였다. 그러나 의원에 대한 과도한 특혜가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며 폐지됐다. 이제는 스웨덴 국민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연금제도를 따른다. 의원직을 상실했을 때 받는 실업급여 역시 일반 국민의 그것과 차이가 없다.

의원이 선거자금을 후원받을 수 있는 제도도 없다. 기자가 “한국 의원은 연간 선거자금으로 1억5000만원, 선거가 있는 해엔 3억원까지 후원받을 수 있다”고 하자 에릭손 의원은 “만약 스웨덴에서 그랬다간 해당 의원은 형사 처벌 받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에릭손 의원은 “스웨덴에도 선거를 앞두고 정당 차원에서 모금 활동을 벌이기도 한다. 의회 또한 정당 규모에 따라 보조금을 차등 지급한다”면서도 “의원 개인을 대상으로 후원금을 준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정보공개청구제도’의 효시

지금껏 살펴본 스웨덴 의원들의 모습은 특권 의식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러나 스웨덴은 19세기 초반까지 여전히 부패가 만연한 국가였다. 1771년 프랑스 외교관은 귀국보고서에 “스웨덴은 정치인과 사회 전체가 부패의 병에 걸린 나라”라고 적었다.

19세기 들어서 ‘위로부터의 개혁’이 시작됐다. 1809년 스웨덴은 헌법을 개정해 입헌군주제 국가가 됐다. 이때 옴부즈맨 제도(의회가 임명한 조사관이 공무원의 권력남용 등을 조사·감시하는 제도)가 도입됐다. 1844년 오스카 1세(1799~1859)가 왕위에 오르자 개혁에 탄력이 붙었다. 그의 아들 칼 15세(1826~1872)와 루이스 데예르(1818~1896) 총리는 오스카 1세의 뜻을 이어받아 기득권을 내려놓는 정치 개혁을 완성해나갔다. 1845년 장원제 폐지, 1862년 지방의회 선거 도입, 1866년 양원제 도입, 1897년 정당제도 구축, 1907년 비례대표제 실시 및 남성 보통선거제 도입, 1918년 완전한 보통선거제 도입 등이 차례로 이어졌다.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9년 스웨덴 의회는 1766년 제정된 ‘출판언론자유법’을 개정해 정부의 모든 정보를 국민에게 공개하도록 했다. 전쟁의 혼란을 틈타 권력유착형 비리가 발생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 법은 오늘날 각국의 정보공개청구제도의 효시(嚆矢)가 됐다.

1960년대 들어 존칭 대명사를 사용하지 말자는 사회적 움직임이 일어났다. 1967년 브로워 렉시드 국립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은 조직 내 모든 직원에게 자신을 ‘당신(Du)’으로 부를 것을 발표했다. 1969년 취임한 올로프 팔메 총리 역시 기자들에게 자신을 ‘총리’가 아닌 이름으로 보도해달라고 주문했다. 이제 스웨덴에서는 상대가 누구든 직함이나 지위 대신 이름이나 ‘당신’으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당신은 특권적 존재가 아니다’라는 스웨덴의 사회의식은 이렇게 발전돼왔다. 지금의 스웨덴 의회 역시 이런 역사적 토양 위에 서 있다.

“의원들의 출신 배경 다양”

기자가 만난 모든 의원도 자신이 ‘특권적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그저 ‘국민을 위한 봉사자일 뿐’이라는 것이다. 엠마 노렌 녹색당 의원의 말이다.

“스웨덴에서 의원은 국민을 대변하는 ‘봉사자’ 정도로 인식됩니다. 의원들의 출신 배경을 보면 전직 교사, 전직 농부, 전직 간호사 등으로 다양합니다. 한국은 법조인 출신 의원이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입법 활동을 해야 하니 법조인 출신도 좋겠지요.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이루어진 곳입니다. 의회 또한 이런 다양성을 반영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티아스 칼손 민주당 의원의 말이다.

“저는 노동자 출신입니다. 가족과 이웃들이 겪는 어려움을 지켜보면서 이를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해왔지요. 그래서 선택한 것이 정치였습니다. 10대 시절 청년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청년 세대를 위한 의제를 발굴하고, 해당 안건에 관해 토론하는 것이 그 시작이었지요.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책을 만들어 사회가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제 역할입니다. 20여 년째 의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이 자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사회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이 저에겐 특권 그 자체입니다.”

칼 구스타프 파이퍼 온건당 청년위원회 국제 비서관은 스웨덴 청소년들이 청년위 활동을 통해 ‘봉사 정신’을 배운다고 강조했다. 파이퍼 비서관은 “청년위 활동은 학업이나 직업 활동과 동시에 이루어집니다. 순전히 자신의 여가를 이용하는 활동이지요. 금전적인 보상도 전혀 없습니다. 의장으로 선출돼도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정치=국민을 위한 봉사’라는 개념을 자연스럽게 확립하게 되지요. 기초의원, 국회의원, 장관, 당대표 등 대부분의 정치인이 이런 과정을 거쳐 성장했습니다.”


스웨덴의 ‘민주주의 건강검진’

의원의 특권을 제한하려는 제도적 노력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최연혁 린네대 정치학 교수의 설명이다.

“스웨덴 의원들은 ‘의원윤리규정’이 정한 기준을 충족해야 합니다. 반면, 특혜는 거의 없습니다. ‘의원 처우법’이나 ‘의원 입법 활동 지원법’에 따라 무료 대중교통이나 의원 숙소 정도를 지원받지요. 의원을 포함한 스웨덴 정치인들에겐 높은 도덕성이 요구됩니다. 예컨대 1995년 ‘토블론 초콜릿 스캔들’이라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부총리이자 총리 후보였던 모나 살린은 업무용 카드로 토블론 초콜릿과 생필품 등 구입에 30여만원을 사용한 뒤 자신의 돈으로 메웠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이 보도되면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지요. 결국 살린은 총리 후보는 물론 부총리직에서마저 사퇴했습니다. 금액이 크진 않았지만, 세금을 사적으로 유용한 사실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2014년 모든 정당의 합의로 만들어진 ‘의원 윤리 규정’은 내부 거래, 재산 거짓신고, 뇌물수수, 선물수수 등 의원들이 해서는 안 되는 것을 정해놨다. 이와 연관된 혐의가 발각될 경우 형사 처벌 대상이 된다. 우리와 달리 면책특권이나 불체포특권은 없다. 2년형 이상의 판결을 받으면 의원직은 자동으로 박탈된다.

또 스웨덴에서는 ‘민주주의 건강검진’이라고 불리는 ‘민주주의조사단(Demokratiutredningen)’이 운영 중이다. 지금까지 3차례(1985년, 1997년, 2014년) 조사가 이뤄졌다. 학계 전문가로 구성된 조사단은 짧게는 2년, 길게는 5년간 의회와 정부 기관을 조사해 민주주의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점검한다. 권력이 어디에 집중돼 있는지, 투표율 하락의 원인은 무엇인지, 청년 정치인의 비율을 늘리기 위해선 어떤 제도가 필요한지 등을 분석해 그 결과를 정부에 보고한다. 정부, 의회, 지방정부 등 모든 공공기관은 이 보고서를 검토한 뒤 입장 발표와 추후 개선안을 내놓아야 한다.

최 교수는 언론의 치밀한 감시 또한 의회가 청렴하게 유지될 수 있는 배경으로 분석했다. 최 교수는 “언론사마다 정치인의 업무용 카드 영수증 내역을 분석하는 전담팀을 두고 있다”면서 “의원들이 대중교통이 아닌 택시를 탄 것이 드러나 망신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마티아스 칼손 스웨덴 민주당 의원은 “모든 언론이 정치인들의 씀씀이나 언행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 “정치인의 지위를 이용해 사적 이익을 챙기기는 불가능한 구조”라고 말했다.


부패지수 세계 4위·민주주의 지수 4위

지금까지 스웨덴 의원이 누리는 특혜·특권을 살펴봤다. 대중교통 카드와 스톡홀름 소재 숙소 제공 등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었다. 사실 기자는 스웨덴 의원의 특혜·특권을 취재한 그간의 보도와 단행본을 보며 과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 스웨덴 의원들을 만나보니 이들은 무언가를 누리는 사람들이 아닌 섬기는 사람들에 가까웠다

물론, 우리나라 국회의원 중 국민을 섬기지 않는다고 말할 의원은 없다. 선거철이 되면 국회의원이 누리는 특혜와 특권을 내려놓겠다는 말이 자주 들린다. 그러나 그때뿐이다. 선거가 끝나면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반면, 스웨덴 의원들은 달랐다. 이들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국제투명성기구가 조사한 부패지수(CPI) 4위,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 4위. 2022년 스웨덴이 받아 든 성적표다. 이는 19세기 정치 개혁에서부터 지금껏 이어진 노력의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글 : 김세윤 월간조선 기자 gasout@chosun.com
 
 
 
 

월간조선 11월 호

■ 정치심리학자 한병진 교수가 보는 ‘가짜 뉴스’와 개딸

“개딸, 이재명 사법처리되면 다른 사람에게 간다”

⊙ “정치적 양극화는 어떤 행위를 하더라도 시민의 절반 정도가 처벌하지 않겠다고 미리 선언한 것… 정치인이 무서워할 게 뭐가 있나?”
⊙ “사이버 공간에서 처음에 달리는 댓글이 기사에 대한 여론 좌지우지”
⊙ “사실이 가짜 뉴스를 이긴다는 게 오히려 이상”
⊙ “후쿠시마 방류수 문제, 소수의 과학자가 용기 내 목소리 내 괴담 막는 방파제 역할 해”
⊙ “민주화 경험을 간직한 시민들, 심판자 역할보다는 선수 역할 선호”

한병진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대학원 졸업, 미국 뉴욕주립대학교(버펄로) 정치학 박사 / 現 계명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저서 《수령, 독재의 정석》 《독재의 법칙》 《광장의 법칙》 《나는 네가 어제 한 행동을 알고 있다》

張源宰
1967년생. 고려대 국문과 학사, 런던대 로열헐러웨이 칼리지 박사(비교연극사) / 前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경기영어마을 사무총장,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 MBC 라디오 앵커, 現 배나TV·(주)戰後70년 ‘생생현대사TV’ 대표 / 저서 《북한요지경;배나TV 장원재입니다》 《끝나지 않는 축구 이야기》 《논어를 축구로 풀다》 《장원재의 배우열전》

 

 

 한국 정치는 이해불가(理解不可)다. 대놓고 거짓말을 해도 살아남고, 가짜 뉴스를 만들어 유포해도 꿈쩍없다. 특정 정치인이 무슨 말을 하건, 어떤 행동을 하건 지지자의 환호성은 오히려 높아진다. 괴담(怪談)이 과학(科學)을 밀어내는 경우도 많다. 같은 행위를 하더라도, 우리 편이 하면 괜찮고 상대편이 하면 ‘죽일 놈’으로 몬다. 이런 ‘내로남불’은 이제 사전에도 올랐을 만큼 일반적인 현상이다. ‘정상(正常)의 비정상화(非正常化)’다.

이런 일련의 행태를 논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학자가 있다. 한병진(韓炳震·52) 계명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다. 그는 이 불가사의(不可思議)를 어떻게 학문적으로 규명하는 걸까?

“댓글, 의견을 한쪽으로 끌고 가는 방향타”

지난 대선 때 ‘뉴스타파가 만든 거짓말 폭탄’을 KBS, MBC, JTBC, YTN,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등이 다 인용 보도했다. 투표 불과 며칠 전이었다. 가짜 뉴스를 이용해 민주당이 선거판을 뒤집으려 했다고밖에는 볼 수 없는 사건이었다. 기자 출신 대장동 사건 주범 김만배,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 위원장 출신 신학림(기자 출신) 등 언론인들이 가짜 뉴스의 생성, 유포에 관여했다는 것도 충격적이지만, 사건의 전모가 밝혀졌는데도 KBS 같은 거대 방송사가 ‘결과적으로 시청자들에게 혼선을 드렸다’ 정도로 넘어가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 공중파 방송과 언론, 전·현직 언론인들이 가담한 대선 전 ‘가짜 뉴스’ 유포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언론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댓글입니다. 댓글이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중요한 통로입니다.”

 

― 댓글이 그 정도로 중요한 겁니까.
“그럼요. 독립적인 사고(思考)나 독립적인 판단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집합적인 의견을 접하게 되면, 사람은 거기에 따라가는 경향이 강합니다. 댓글은 말하자면, 사람들의 의견을 한쪽으로 끌고 가는 방향타입니다.”

― 댓글이 실제로 여론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말씀이네요.
“그렇습니다. 첫 번째 댓글, 두 번째, 세 번째까지 댓글이 굉장히 중요하죠. 그걸 아니까 댓글부대 이야기도 나오고, 어떤 기사가 몇 시 몇 분에 올라가니 기다렸다가 댓글 달라는 식의 공작(工作)도 하는 것 아닙니까. 아마 사이버 공간에서 상상 이상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을 겁니다. 저는 기사에 처음 달리는 댓글이 여론을 좌지우지한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사회적 증거’와 ‘三人成虎’

 ▲한병진 교수의 저서들. 주로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을 담고 있다.

 

독자적 사고를 할 능력이 있는 개인들이 왜 이처럼 쉽고 간단하게 집단의 의견을 따르게 되는 것일까.

“심리학에 ‘사회적 증거’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모두 비슷하게 생각할 때는 아무도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이론이죠. 슬프게도, 인간은 다수(多數)의 의견이나 행동을 따르려는 경향이 무척 강해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가도 다수가 다르게 행동하면 자기의 생각을 바꿉니다. 다수가 믿으니까 실수할 확률이 적다고 생각하는 거죠. 대표적인 예가 한비자(韓非子)의 삼인성호(三人成虎) 이야기입니다.”

― 정말로 셋이 말하면, 사실이 아닌 것이 분명한 호랑이 이야기도 사실이라고 믿는 겁니까.
“한비자 말로는, 비판적으로 의심할 수 있는 숫자가 셋까지라는 거죠. 한두 명이면 몰라도, 세 명까지가 같은 얘기를 하면 네 번째 사람부터는 스스로 자기 의견을 무시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추종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댓글 조작이 지금도 이뤄지고 있다는 것일까?

“증거는 없지만, 정치학자로서, 또 정치심리학자로서 저는 댓글 조작이 있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그걸 왜 안 하겠습니까? 댓글 조작이 그처럼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데요, 지금 우리나라 정치는 ‘몇 가지 룰만큼은 피차간에 확실하게 지키자’라는 암묵적인 신사(紳士)협정이 없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댓글 조작의 영향력을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데,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세력이 있을까요?”

― 그렇다면 이런 폐해(弊害)를 막을 길은 없습니까.
“쉽지는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사이버 공간의 기본적 특징이 익명성(匿名性)이니까요. 익명은 규범을 파괴합니다. 기존에 우리가 갖고 있던 사회적 규칙이나 규범 행위, 원칙이 오프라인 공간에선 같은 기준으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댓글이 과격해지는 이유를 생각해보십시오.”

‘사실이 죽은 사회’

사실의 왜곡, 왜곡된 사실의 전달, 익명성에 기반한 과격함의 결과물은 양극화(兩極化)다. 사람들은 자기가 믿는 진영의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퍼 나른다. 의견이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스며들 여지는 거의 없다.

“이건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입니다. 니체식으로 말하자면, ‘사실(事實)은 죽었다’죠. 소셜미디어(SNS)를 통해서 사람들이 이쪽저쪽으로 쏠리다 보니 헝가리 같은 사례도 나왔어요. 1980년대 말 동구권 민주화 혁명 이후 헝가리는 공산주의가 무너진 나라 중에서 가장 모범적인 민주국가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정치학자들이 지금은 헝가리를 거의 독재국가로 분류합니다.”

그렇다면 ‘사실이 죽은 사회’에선 가짜 뉴스가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일까? 사람들이 가짜 뉴스를 사실이라고 믿는 것일까, 아니면 가짜인 줄 알면서도 퍼 나르는 것일까. 어떤 경우든 ‘사실이 아닌 무언가’가 상당한 영향력을 획득한다는 점에선 다 문제이기는 하다.

“저는 인간의 인식력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비관적인 입장입니다. 셰익스피어도 군중의 인식력에 대해 ‘한심한(pathetic) 인간’이라고 표현했다는데, 저는 사실이 가짜 뉴스를 이긴다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에서는 특히 그렇죠.”

― 아니 그럼 정치에서는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믿게 만드는 기술, 이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인가요?
“정치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죠. 슬프게도, 목적으로 쉽게 수단을 정당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가짜 뉴스 배포에 별로 부담을 안 느끼죠. 유권자 대다수는 진실과 가짜를 구분할 만큼 시간적인 여유가 없고, 주의 집중도 하지 않습니다. 매력적인 가짜 뉴스와 지루한 사실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인기가 많겠습니까? 사실은 대개 지루하거든요.”

― ‘사실’보다 ‘재미’가 중요하다는 말씀인가요?
“선택 요인이라는 기준으로만 따지면, ‘재미’가 ‘사실’을 앞선다고 봅니다. 그렇게 가짜 뉴스를 보고, 그 가짜 뉴스를 일시적으로 다수의 사람이, 예컨대 조직화한 세력이 지지해버리면 가짜가 이기는 건 생각보다 쉽지요.”

후쿠시마 예방주사가 된 ‘광우병 사태’

 ▲한병진 교수는 “우리나라가 광우병 사태를 경험하면서 상당히 성숙해지고 면역력이 생겼다”고 말한다. 사진=조선DB

 

― 한 교수의 저서 《광장의 법칙》에는 가짜 뉴스와 관련, 사람들이 증거를 찾는 과정이 별로 과학적이지 않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정치 영역에서는 과학을 들이대기가 참 어렵습니다. 정치적 사건이나 결과는 너무나 변수(變數)가 많아서 한 사건의 인과관계를 설정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특정 원인이 특정 결과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인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영향을 끼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정치적 사건에 대한 연구는 과학적으로 검증된 판단이 나오는 게 아니라, 수많은 논의가 가능한 공간이거든요. 이 점은 정치학 자체가 가지는 어려움이기도 하죠. 실험도 할 수 없고, 데이터가 많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대부분의 정치적 사건은 다 사례 연구를 하는데, 사례 연구의 문제점이 뭐냐? 수많은 변수가 있고 사례는 하나니까 각자가 원하는 대로 원인을 찾아서 학설을 제기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과학이나 증거가 정치적 논쟁에서 힘을 발휘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 광우병(狂牛病)도 가짜 정보와 비과학적 신념, 그리고 ‘사회적 증거’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겠군요.
“그렇죠. 그런데 저는 우리나라가 광우병 사태를 경험하면서 상당히 성숙해졌다고 봅니다. 후쿠시마 방류수(放流水) 사태를 보면 예전처럼 괴담이 통하지 않았어요. 이건 그만큼 우리가 면역력(免疫力)이 생겼다는 증거입니다. ‘광우병 사태’라는 예방주사의 힘이죠.”

한 교수는 “광우병 당시엔 과학자들이 아무도 의견을 말하지 않았고, 이번 경우엔 과학자들이 발언을 아끼지 않은 점이 중요하다”고 했다. 소수의 전문가들이 여론의 분기점(分岐點)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후쿠시마 방류수 문제를 확대하려고 했지만, 소수의 중요한 사람들이 독립적인 판단을 하고 용기를 내서 진실을 말했습니다. 과학자들이 용기 내 목소리를 내줬기 때문에, 이것이 괴담을 막는 방파제(防波堤) 역할을 한 겁니다. 과학자들이 엄청나게 중요한 일을 한 거죠.”

천안함 사태와 후쿠시마 방류수 사태

 ▲정치권과 좌파 세력은 후쿠시마 방류수 문제를 가지고 국민들을 선동해보려 했지만, 거의 먹혀들지 않았다. 사진=조선DB

 

하지만 전체주의(全體主義)의 망령(亡靈)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댓글 테러가 일어난 것이다. 목소리를 낸 과학자들을 향해 ‘이 사람 꼭 기억해놔야지’ ‘뒷조사해야 한다’라는 식의 공격이 이어졌다.

“공적(公的)인 발언에 대해서는 공적으로 반박해야 하는데, 과학으로는 반박 못 하니까 사적(私的)으로 공격하는 거죠. 공격받은 개인은 움츠러듭니다. 공포(恐怖)에 질려서 아예 말 못 하도록 만드는 작전입니다.”

공산주의는 공사(公私) 구분을 하지 않는다. 가족생활도 파괴한다. 가장 내밀한 사적인 공간에서조차 자기를 파괴해야 공산당에 대한 충성심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지금 댓글 행태가 그렇죠. ‘내가 너의 사적인 부분을 까발려서 너를 공격하겠다’, 이런 위험한 발언들이 꽤 보이더라고요. 그래도 희망을 느낍니다. 상당히 많은 사람이 독립적으로 사고하기 시작했고, 용기를 내서 공개적으로 발언한 전문가도 여럿 계시니까요.”

― 그런데 우리 사회는 그렇게 용기 있는 발언, 방파제 역할을 한 분들에 대한 사회적 존중이랄까요? 그분들을 보호해야 한달까요? 그런 논의가 좀 부족한 것 같습니다.
“부족하죠. 어떤 양심을 가지고 자기가 믿는 선에서 과학적인 이야기를 했을 때 거기에 대해서 제도적인 보호 장치가 있어야 합니다.”

― 천안함 사건 같은 경우에는 전문가의 의견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후쿠시마 방류수 사태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겁니까.
“천안함에 대해서 이상하게 해석하려는 사람들이 쓰는 수법이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믿고 싶은 신념에 따른 확증편향(確證偏向)과 음모론(陰謀論)입니다. 대표적인 게 뭐냐 하면, 9·11 테러 때 미국 시민 중 극히 일부가 ‘조지 부시가 알면서도 내버려 뒀다’ ‘내부에서 폭발이 있었다’라는 말도 안 되는 가설(假說)을 제기한 것과 비슷합니다. 아무리 현대과학이 발전하더라도, 현대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10개 중 한두 개는 나오거든요.”

― 그렇죠. 과학자들은 또 90% 이상 사실일 가능성이 높지만 나머지 10%의 증거가 없는 경우, 조사 결과를 단언(斷言)하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음모론자는 논리를 어떻게 비트느냐. ‘천안함을 북한이 파괴했다, 폭침(爆沈)이다’라는 증거가 8개가 나왔고, 2개 정도는 ‘지금 드러난 물증(物證)만으로는 과학적으로 100% 설명할 수 없다’라고 해보죠. 이렇게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증거라고 내세우면서, ‘전체가 다 틀렸다’라고 주장하는 겁니다. 논리적 오류(誤謬)입니다. 논리학 전공자 등 전문가가 나서서 이 점을 자신 있게 이야기해주면 좋겠는데, 지난 시절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누구도 선뜻 이런 말을 하기 어려웠죠. 말했다면 가만있었겠습니까? 그쪽에서.”

― 천안함 때는 용기를 내서 소신 발언하기에는 화자(話者)가 개인적으로 감당해야 할 위험이 컸다는 말씀이네요. 그러면 이번 후쿠시마 방류수 같은 경우에는 과학자들이 어떻게 용기를 낸 겁니까.
“원자력이라는 이슈가 과학적으로 확신할 만큼 전문적 지식이 쌓여 있다는 점이 크죠. 그래도 그분들이 영웅적 결단을 내렸다고 생각합니다.”

 

 비겁한 우파 정치인들

한 교수는 이 대목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보호해야 할 사람을 보호하지 않고, 무임승차(無賃乘車)하려는 정치인을 향해서다.

“우리나라 우파 정치인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죠. 그런데 천안함 같은 경우는 의외로 강한 목소리를 안 냈습니다.”

― 왜 그렇다고 보십니까? 비겁한 건가요?
“이건 과학적으로도 명확하고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는 일입니다. 그럼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죠. 좌파들은 우파 인사들이 말 한마디 잘못하면 집요하게 공격합니다. 그런데 우파는, 특히 우파 정치인은 남 이야기 하듯 합니다. 천안함에 대해서도 할 얘기는 확실하게, 지속적으로 해야죠.”

―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북한을 옹호하는 이상한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죠. 그런 말을 하면, 그런 말을 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분위기가 아니니까 아직도 천안함을 둘러싼 음모론이 공공연하게 나오는 겁니다. 우파 정치인들이 꼭 해야 하는 일인데 제가 볼 때는 그걸 제대로 안 하고 있어요.”

― 우파 정치인들이 그걸 안 하는 이유는 뭡니까.
“국민의힘이 웰빙 정당이어서 그렇다고 봅니다. 좌파 정당의 경우, 기본적으로 젊은 시절부터 정치적 싸움으로 단련한 사람들이 정치인이 됩니다. 그래서 전투력이 있어요. 싸움을 마다하지 않고, 어느 정도 희생정신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집단 내에서는 당파적인 희생성이 있어요. 반면에 우파 정당은 웰빙 분위기가 주류죠. 걱정입니다.”


“국힘, 왜 천안함 갖고 1년 내내 싸우지 않나?”

 ▲참여연대 등 일부 시민사회단체들은 천안함 진상 조사 결과가 나온 후에도 천안함 폭침 의혹을 계속 제기했다. 사진=조선DB

 

한 교수의 조언은 다음과 같다. 논쟁의 여지가 없는 문제를 먼저 걸고넘어져야 한다. 끝까지 걸고넘어져야 한다. 아직까지 논쟁이 되는 문제, 다시 말해서 국민의 절대다수가 동의하지 않는 문제를 가지고 싸우면 문제를 희석시키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왜 천안함을 가지고 1년 내내 싸우지 않습니까? 저는 이해가 안 됩니다. 천안함 기념식, 세미나, 전시회 등 행사를 1년 내내 하고 그쪽에서 하는 것처럼 서울시청 앞에다가 동상도 세우고, 아니 왜 이렇게 안 하는지 모르겠어요.”

― 왜 안 하는 걸까요?
“팩트도 팩트지만, 이건 팩트 자체가 너무나 명확하고 북한의 소행이 명확한 사건인데 이걸 왜 이슈로 만들지 않는 것인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북한은 우리의 주적(主敵)이며, 대한민국을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습니다. 노동당 규약에 나와 있어요, 한국을 무너뜨리는 것이 자기들의 최종 목표라고. 이런 심각성을 우파 정치인도 느끼고 있는지, 저는 의문입니다.”

― 우리 정치권이 여야를 막론하고 북한의 위협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씀이네요.
“윤석열 정부는 다릅니다. 북한에 대한 태도가 명확하거든요. 건군 75주년 기념식에서 ‘북 도발 시 실전적 전투 역량과 확고한 대비 태세로 즉각 응징’하겠다고 했죠. 뒤편 현수막엔 ‘힘에 의한 평화’라는 글도 새겼습니다. 정치학자로서 제가 윤석열 대통령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입니다. 국내 정치적으로나 국내 경제 정책 쪽에서는 제가 반대하는 부분도 있습니다만, 그건 사소한 부분이죠. 제가 봤을 때 이렇게 북한에 대해서 ‘응징하겠다’는 표현을 쓴 대통령은 처음입니다.”


“북한에 대해 대결적으로 나가야”

― 북한에 대해서 강경하게 나가야 한다고 하면 통일 반대 세력, 잘못된 생각을 하는 사람으로 몰아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주 잘못된 일이죠. 저는 북한에 대해 대결적(對決的)으로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왜 일어났습니까? 우크라이나가 결사항전(決死抗戰) 의지를 전쟁 전부터 확실하게 보였으면 러시아는 쳐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일부 운동권 인사들이 주장하는 ‘이 전쟁은 제국주의의 업보다. 미국이 러시아의 푸틴을 전쟁하도록 유도했다’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마치 6·25 남침 유도설하고 똑같은 얘기죠.”

― 푸틴은 왜 전쟁을 일으킨 겁니까.
“일주일 안에 쉽게 끝낼 줄 알았으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판단을 잘못하게 만든 사람이 누구냐? 만약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처음부터 이렇게 싸울 각오를 밝혔으면 전쟁은 없었을 겁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졌던 소식 기억하십니까? ‘우크라이나 부자들이 전쟁 날까 봐 국외로 도망가고 있다’는 그런 소식이 계속 들려오는데 푸틴이 왜 안 쳐들어갑니까? 쳐들어가죠.”

― 북한의 도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응징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뜻입니까.
“네. 지속적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사람은 잘 까먹거든요.”

― 그런데 그렇게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면 ‘전쟁하자는 거냐?’ ‘전쟁광이냐?’ 이런 식의 공격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기왕 대통령이 판을 깔아줬으니까 한번 붙어보자는 거예요. 그쪽하고 이쪽하고 제대로 논쟁해보자는 겁니다. 저도 뉴욕에서 박사를 받았지만, 미국에서 국제 정치로 박사 받은 사람들이, 그것도 학창 시절에는 전혀 그런 성향을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갑자기 ‘북한하고 우리는 잘 지낼 수 있다, 유엔군사령부는 해체해야 한다’ 이렇게 얘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깜짝 놀랄 만한 일이죠.”

― 일종의 곡학아세(曲學阿世)입니까.
“인간의 정의감은 이해관계가 걸려 있지 않았을 때는 정의롭지만, 출세나 엄청난 자리가 앞에 보이면 다 꺾여버립니다.”


“보상 아니라 보호만 해줘도 된다”

― 그렇다면 용기 내 옳은 말을 하는 사람에 대한 보상이 우파 쪽에서는 주어지지 않았다, 이게 편향의 원인일 수도 있을까요?
“보상까진 바라지도 않고 보호만 해줘도 됩니다. 하고 싶은 말 실컷 하고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제가 그런 사람인데, 저는 말을 실컷 하게만 해줘도 괜찮습니다. 이게 저한테는 보상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북한에 대해 대결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를 이상하게 취급했었죠.”

― 우파를 표방한 정권조차도 북에 대해 대결적 발언을 하는 사람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우파든 좌파든 남북 관계의 이벤트가 만들어졌을 때 오는 정치적인 이득이 너무 크다는 점이 문제죠. 그 유혹을 못 이기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답답했는데, 학자로서, 저는 윤석열 대통령이 아주 잘하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무엇보다도 발언이 명확하고 선명하고, 대통령이 반복해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것도 중요합니다.”

― 윤석열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점이 있다면요?
“저는 윤 대통령이 두 가지만 해주면 된다고 봅니다. 하나는 법치(法治)를 세우는 것. 그다음에 북한에 대해서 명확한 입장을 표명해서, 사회적 분위기를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한병진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강조한 점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했다.

“‘자유가 중요하다’, 그런 이야기를 선명하게 밝혔다는 것이 아주 잘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유’라는 가치를 포기할 수 없다는 이야기죠. 이렇게 구도를 잡으면, 북한의 공작(工作)이 들어설 틈이 없어집니다.”


내로남불과 ‘마음속의 회계장부’

 ▲좌파 성향의 주류 여성단체들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희롱 사건 등에 침묵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사진=조선DB

 

― 무슨 뜻입니까.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민족’을 강조했죠.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을 수 없으며 어떤 이념이나 사상도 민족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건 북이 쳐놓은 프레임 속에 빠진 겁니다. 민족을 최우선으로 내세우면, 자유가 없고 인권이 없는 북한 상황에 대해 비판하기 힘듭니다. 북한에 대해서 굉장히 우호적인 집단들이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그토록 인권 문제를 이야기하다가 북한에 대해서는 인권이나 자유 이야기를 조금도 하지 않죠. ‘민족’이란 프레임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지금 정권은 남북 관계에서 용어를 아주 잘 쓰고 있습니다.”

― 대한민국의 사소한 잘못이나 부조리에는 어마어마한 화력을 동원하고 북한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것은 왜 그런 겁니까.
“바로 ‘사고(思考)의 구획화(區劃化)’ 때문입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개념이죠. 멘털 어카운팅(mental accounting)이라고, ‘마음의 회계장부 혹은 심리 계좌’로 번역이 되는데요, 사람의 마음에는 ‘생각의 방’이 있다는 겁니다.”

―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십시오.
“우리나라 인권 문제에 대해 말하다가 북한에 대해서는 완전히 침묵하는 사람들 마음속에는 ‘민족 통일방’과 ‘한국 인권방’이 나누어져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따로 방이 나뉘어 있으니까 한국 인권 생각할 때는 자기들 기준으로 한국 방에서 생각하고, 그러다가 방을 또 옮겨서 북한방으로 들어가면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거죠. 예를 들어 민족, 자주, 뭐 그런 것들만 딱 생각하니까 아주 편하게 모순적인 사고를 하는 겁니다.”

― 그렇다면 일부 여성 운동하는 분들이 우파 쪽 사람들의 성(性)추문에 관해서는 여성 인권 문제를 들이대고, 자기들이 신봉하는 진영의 사람들의 추문에 대해서는, 예컨대 박원순 시장 사건 일어났을 때 ‘피해 호소인’ 같은 말을 만들어 쓰는 것도 비슷한 맥락인가요?
“마음속에 우리 편 방, 적의 편 방이 따로 있는 거죠. 이중적 잣대가 내로남불의 원인입니다. 그런데 내로남불은 ‘사고의 구획화’ 말고도 다른 요인이 작동한 결과입니다.”

“좌파, 자기가 한 말에 책임 안 지려 해”

― 뭔가요?
“이기고 싶은 욕망이 너무 크다는 겁니다. 인간은 좌파나 우파나 욕망의 결합체죠. 그런데 좌파 세력들이 힘든 건 뭐냐? 이 사람들은 보편적 원칙을 굉장히 사랑한다고 공표하죠. 정의롭다고 스스로를 평가합니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정치적으로 이기적인 욕망이 있고 동시에 정의를 추구하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가능하면 정의롭고 싶은 것이 인간의 속성인데, ‘정의감이라는 것은 이해관계를 만나버리면 그냥 바로 무너진다’라고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1751~1836년)이 이미 이야기했죠. 미국 헌법 만들 때의 일입니다.

저는 이 말이 대단한 혜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좌파들은 워낙에 시끄럽게 보편적 가치를 외치는데 본인들이 이 가치에 맞게 행동할 수 없다는 걸 모르지 않아요. 이걸 일치시킬 수 없는 자신의 무능력(無能力)에 대해서 자각하겠죠, 무의식적으로라도요.”

― 그럼 그 지점에서 내면의 붕괴가 일어나거나 하지는 않을까요?
“스트레스가 있을 겁니다. 저는 이 문제를 누군가 연구해줬으면 좋겠어요. 가치와 행위 사이에 모순이 있을 때 장기적으로 어떤 효과가 일어나는지. 원래는 사람이 자기가 한 말을 책임지려고 한다는 것이 ‘자기정당화 이론’인데 좌파는 그렇지 않거든요.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안 지려고 그러죠.”

― 자기모순적 존재로는 소위 말하는 ‘개딸’도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정작 자기들이 벌이는 행태는 민주적이지 않습니다. 반대파에게 무자비하게 군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습니다. 이들의 행동방식이 바뀔 가능성은 없습니까.
“없다고 봅니다. 개딸들은 이재명 대표와 정치 운명을 같이하겠죠. 이재명 대표가 사법적(司法的)으로 어떤 판단을 받느냐에 따라서 개딸의 미래는 결정되어 있는 겁니다. 그만큼 지속성 있는 모임은 아닙니다. 또 다른 정치인이 나오면 그쪽으로 가겠죠.”


“이재명 사라져도 개딸 행태는 안 바뀐다”

― 이재명 대표가 사법처리되면 ‘재판이 불공정했다’ 이렇게 들고일어날 가능성은요?
“일시적으로 반발이 있겠지만 곧 스러질 것으로 봅니다. 왜냐하면, 사법처리가 되면 제도적으로 개인의 정치적인 미래가 사라지는 것이니까요. 이재명의 정치적 미래가 사라지는 순간 이재명은 쉽게 잊히는 존재가 되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개딸의 행태가 바뀌지는 않을 겁니다. 예를 들어 대깨문은 사라졌지만 개딸이 나왔잖아요? 다른 인물이 나타났을 때 그쪽으로 몰려갈 가능성이 큽니다.”

― 그렇다면 대깨문, 개딸들이 추구하는 건 뭘까요?
“엘리트 이론에서 말하듯이 어떤 조직이든, 그것이 비정부 조직이든 혁명 조직이든 정부 조직이든 간에 최고 위치에 있는 사람들한테는 어떤 식으로든 보상이 주어집니다. 그러니까 정치인 중에서 개딸을 주목하는 인물이 있을 겁니다. 새로운 기회가 오면 길 잃은 사람들을 선점(先占)하려는 거죠. 그 사람들을 조직화하면 자기가 지도자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 거기서 오는 여러 가지 유형무형의 보상이 있을 테니까 개딸 지도부는 와해되지 않고 남아 있을 겁니다.”

 

― 그럼 군중이 얻는 이익은 뭡니까.
“그건 셰익스피어가 잘 이야기를 했는데, 집단행동을 한다고 해서 거기에 참여한 모두가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정치적 이해를 공유하는 건 아니거든요. 하지만 표현의 욕구를 드러낸다는 점에서는 공통이죠. 현대의 시민들은 심판을 넘어서는 역할을 원하는 듯합니다. 다시 말해서, 선거에서 누구를 심판하는 심판자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직접 선수로 뛰고 싶어 하는 거죠.”

― 다수가 그렇게 집단행동을 하면 스스로 선수가 된 것 같은 착각을 할 수도 있다는 얘기네요.
“선수와 심판자의 차이가 있습니다. 심판자는 누가 이기든 상관없지만, 선수가 되면 누가 이기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죠. 자기 팀이 이겨야 하는 것 아닙니까?

과거의 정치학에서는 시민을 심판자로 상정했죠. 그런데 요즘에는 소셜미디어가 발달하고 정치적인 참여의 기회가 넓어졌습니다. 디지털 문화가 새로운 광장 문화를 만든 겁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민주화의 경험을 간직한 시민들이 심판자의 역할보다는 선수로서의 역할을 선호한다고 봅니다. 정치가 자기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 시민들이 심판이 아니라 선수 역할을 했을 때의 문제는 뭡니까.
“정치인들이 어떤 경우에도 겁을 안 내는 겁니다. 지금 겁을 안 내지 않습니까? 정치인들이 잘못하고도, 법을 어기고도 당당하게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왜 그러냐? 정치인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게 정치적 처벌인데, 어떤 경우라도 정치적 처벌을 받을 일이 없어졌으니까요.”

“양극화는 민주주의 후퇴 부른다”

― 《광장의 법칙》을 보니 이런 현상이 시민사회의 후퇴를 부르고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적혀 있더군요.
“그렇습니다. 정치적 양극화는 필연적으로 민주주의의 후퇴를 부릅니다. 저는 계속 일관되게 주장합니다. 정치인은 좌나 우나 믿을 수 없다고요. 비교 정치학자들이 민주주의가 성립하는 요건으로 꼽는 사항이 있습니다. 시민들이 내리는 정치적 처벌이 바로 ‘시민의 힘’이고, 이 힘이 있어야 정치인들의 권력남용과 부패를 막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양극화가 되면 궁극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이건 특정 정치인이 어떤 행위를 하더라도 시민의 절반 정도가 처벌하지 않겠다고 미리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잖아요? 그 자체가 상시적 면죄부(免罪符)인 겁니다. 그럼 정치인이 무서워할 게 뭐가 있습니까?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의 반이 자기를 처벌하지 않겠다는데요? 그럼 정치인이 타락하는 거죠. 그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 그런 식으로 정치인들이 타락하게 되면 한국 사회는 어디로 가게 됩니까.
“잘못하면 민주주의가 후퇴할 수 있는 거죠.”

― 민주주의의 후퇴라면은 중우정치(衆愚政治)를 말하는 겁니까?
“중우정치를 넘어서서, 저는 정치적 반대편에 대한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제한해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고요. 댓글 테러 등을 생각해보십시오.”

―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한국 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그래도 한국 사회는 비교적 잘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서 명확한 입장을 취하고 있고, 그다음에 유력 정치인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처벌했던 경험들이 쌓이면서 법의 지배가 공고해졌습니다. 윤 정부가 이런 면에서 상당히 방향을 잘 잡고 있어요. 예를 들어, 저는 아까 말했던 후쿠시마 방류수 문제가 이렇게 합리적인 결과를 냈다는 점에서 상당히 희망적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의 건강함을 믿습니다. 훌륭한 지식인들이 점점 더 많이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11.06 정당 공식 기구서 제기된 ‘의원 특권 축소’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이 지난 5월 3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국회의원 특권폐지를 촉구하며 인간띠로 국회를 에워싸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뉴스1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가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포기, 의원 숫자 10% 감축, 세비 삭감 등을 당에 요구했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운 국회의원의 과도한 특권을 줄이자는 것이다.

 

불체포특권 등 의원 특권 포기는 여야가 선거 때마다, 그리고 혁신위를 꾸릴 때마다 내건 단골 메뉴였다. 의원 숫자 감축 등은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도 주장한 바 있다. 민주당도 지난 6월 출범시킨 혁신위에서 불체포특권 포기 등 혁신안을 내놓았고 이재명 대표는 불체포특권 포기를 약속했지만 결국 손바닥 뒤집듯 뒤집었다. 세비를 깎겠다는 공약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국의 의원 세비는 연간 1억5426만원으로, OECD 국가 3위 수준이다. 평균 가구 소득(약 6400만원)의 2배가 넘는다. 여야는 그동안 각종 특권과 특혜를 내려놓겠다고 했지만 단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다. 국민을 속여온 것이다. 지난봄 특권 폐지 운동을 펼치는 시민 단체가 국회의원 전원에게 특권 폐지에 대한 의견을 물었지만 찬성 의견을 밝힌 의원은 7명뿐이었다. 아무리 비판받아도 기득권을 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청담동 술자리’ 등 가짜 뉴스를 퍼트려도 처벌받지 않은 김의겸 민주당 의원 사례에서 보듯 국회의원 특권 손질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 여론도 어느 때보다 고조돼 있다. 지난 6월 여론조사에선 65%가 의원 정수 축소를, 지난 3월 조사에선 85%가 세비 감축에 찬성했다. 의원들이 누리는 온갖 혜택은 무려 186가지나 된다고 한다. 이런 특권을 누리고도 하는 일이라곤 정쟁과 방탄, 입법 폭주와 꼼수, 혈세 낭비뿐이니 비판 여론이 높은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국회의원은 특권을 누리고 행세하는 자리가 아니라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자리다. 그런데도 그 숱한 특권은 여야 의원들이 원수처럼 싸우다가도 자기 밥그릇이 걸린 문제면 의기투합해 하나둘씩 만든 것이다. 의원들이 스스로 나서지 않으면 줄이거나 폐지할 방법도 없다. 특권 축소 여론이 어느 때보다 높고 21대 국회도 끝나가는 지금이 과다한 특권을 국민 눈높이에 맞게 정비할 호기일 수 있다. 이 문제에 전향적 움직임을 보이고 성과를 내는 정당이 내년 총선에서도 유리할 것은 자명하다. 인요한 혁신위가 띄운 특권 축소 요구에 국민의힘은 물론 민주당 등 야당도 적극적으로 호응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11.06 “탈당 후 신당” 이준석, 구태 같은 ‘청년 정치’ 결말

▲이준석 전 대표가 지난 4일 부산 토크쇼에 찾아온 인요한 혁신위원장에게 대놓고 면박을 줬다./뉴스1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연일 탈당 및 신당 창당을 거론하고 있다. 그는 국민의힘을 향해 “고쳐 쓸 수 있는 단계가 아닌 거 같다. 이제 엎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한 데 이어 “근본적 변화가 없다면 신당을 창당하겠다”고 했다. 자신을 만나러 찾아온 인요한 혁신위원장에게 시종 영어로 말하면서 “환자는 서울에 있다”고 조롱하듯 윤석열 대통령과 측근을 저격했다. 한국 정치에서 직전 당대표를 지낸 사람이 탈당해 신당을 만든 경우는 드물다. 실제 탈당을 결행한다면 이 전 대표가 낡고 고인 한국 정치에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했던 많은 국민에게 실망과 아쉬움을 남길 것이다.

 

이 전 대표는 친윤 핵심들과 줄곧 갈등을 빚었다. 자신에 대한 징계 문제를 놓고 석 달간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당 대표이면서 당을 피고로 소송까지 냈다. 이 전 대표로선 대통령과 측근들이 자신을 몰아내려고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 상당수는 이 전 대표의 거친 언사와 가벼운 처신에도 공감하지 못했다. 이 전 대표는 당내 문제를 내부 대화로 조정하고 풀기보다 장외에서 비난하고 조롱하는 식으로 대처했다. 지금 국민의힘 지지율이 답보 상태인 것은 윤석열 대통령 책임이 크지만 이 전 대표의 이런 행태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 전 대표가 30대 나이로 당 대표가 됐을 때 낡은 정치가 근본적으로 바뀌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한 사람이 많았다. 그가 내세운 ‘청년 정치’가 고질적인 보수·진보 대립 구도와 586 정치를 깨 주기를 원했다. 한때 ‘이준석 현상’이라고 부를 만한 바람이 불었고 이것이 서울 부산시장 선거 승리와 정권 교체에 도움이 된 것이 사실이다. 그에게 기대를 갖고 지켜보던 사람들은 이 전 대표가 극단적 내분을 상징하는 인물로 변해간 현실에 실망하고 있다. 이 전 대표도 그런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전 대표는 2021년 당 대표 선거 출마 때 “저는 이 당에 무한한 주인 의식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당 대표로 뽑힌 뒤엔 “다른 생각과 공존할 자신이 있고 과거에 얽매이지 않을 용기가 있다”고 했다. 지금 그렇게 하고 있는지 자문해보기 바란다.

조선일보 사설

 

11.06 ‘서울시 김포구’, 김동연의 뼈아픈 자책골

수도권이 인구 절반
2등신의 나라
경기도는 지방이 아니다
인구·기업 몰리는 수도권
경기북도 쪼개면 발전한다는
국토 갈라치기 하다 역풍

▲2022년 6월 24일 경기도청 북부청사에서 열린 경기북부 특별자치도 설치를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축사하는 당시 김동연 경기도지사 당선인./경기도지사직 인수위원회

 

김포시의 서울 편입 추진으로 다른 서울 인근 도시까지 들썩이고 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세계적 조롱거리” “대국민 사기극” 운운하며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나라의 미래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김포 시민을 표로 본 발상” “국토 갈라치기를 표를 얻기 위해서 하는 아주 참 못된 정치”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나라의 미래는 안중에 없는 ‘못된 정치’로 이 사태를 자초한 장본인은 김 지사 자신이다.

 

만약 서울을 확대한다면 서울을 에워싼 구리·하남·과천 등이 1순위로 꼽히는 게 자연스럽다. 엉뚱하게 김포에서 서울 편입론이 불거진 건 김 지사가 공약으로 내세우고 취임 후 강하게 추진해온 경기도 쪼개기 때문이다. 남북으로 나눠 경기북부특별자치도를 신설하겠다고 한다. 김포는 한강 이남인데 경기북도로 갈 처지이고, 만약 김포가 경기도(경기남도) 잔류를 고집하면 나머지 지역들과 뚝 떨어진 ‘한강 오리알’이 된다. 서울로 출퇴근하는 김포 시민들은 불편한 교통 여건에도 경기도의 미흡한 대책에 “도대체 경기도지사는 누구냐” “우리는 경기도민 아닌 그냥 김포시 주민”이라는 불만이 높았다. “경기북도 되느니 차라리 서울시민 되자”는 제안에 솔깃할 수밖에 없고, 이를 국민의힘이 총선판의 되치기 카드로 활용하면서 휘발유에 불 붙인 듯 폭발력을 갖게 된 것이다.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면 위성 도시를 흡수해 서울이 커지느냐, 경기도가 남북으로 쪼개지느냐는 우선순위가 아니다. 훨씬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에 직면했다. 수도권 편중이 심하다 못해 공멸을 부르는 구조다. 서울(940만명)·경기(1362만명)·인천(299만명)의 수도권이 총인구의 절반을 넘어섰다(50.6%). ‘잘사는 수도권과 못사는 지방’의 양극화도 심하다. 스스로를 “머리만 큰 가분수 나라”라고 비판하는 프랑스조차 수도권이 130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20% 정도다. 사람으로 치면 5등신 체형이다. 우리는 2등신의 더 기형적인 구조다. 1980년에 35.5%, 2000년에 46%로 높아진 수도권 집중이 급기야 50%를 넘어섰다. 세종시 이전, 공기업 지방 이전, 혁신도시 등 온갖 지방 분산책도 다 실패했다. 이대로가면 수도권이 전체의 60, 70%를 차지하는 ‘서울 도시국가’가 될 판이다.

 

인구 증가기에는 그럭저럭 지방도 버티지만 인구 감소기인 지금은 수도권과 지방이 인구를 반반씩 차지하고 ‘제로섬’ 게임을 벌이고 있다. 수도권이 계속 청년 인구를 빨아들이면 지방 붕괴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청년 유출로 지방 대학은 무너지고 구인난에 기업들이 지방 이전을 기피하는 이 악순환에서 벗어날 길도 없다. 반대로 수도권은 몰려든 인구로 주택난, 교통난이 가중되면서 소득은 높아도 삶이 고달프다. 결혼 기피, 출산 기피는 더 심해진다. 수도권 팽창을 ‘일단 멈춤’하고 지방의 거점 도시를 중심으로 자생력 있는 광역경제권을 만드는 데 자원과 제도적 지원을 총력 투입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지방 시대’를 선포했지만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지방국립대 전액 무료, 지방 의대는 100% 지방 학생만 선발 등 상상 초월의 조치라도 취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심각하다.

 

김동연 지사는 경기북도를 쪼개는 것이 “지방 분권과 국토 균형 발전 차원”이라고 했는데 틀린 말이다. 경기도는 지방이 아니다. 수도권이다. 서울을 에워싼 덕에 절로 인구가 늘고 기업이 몰리는 유리한 위치다. 1990년 서울 인구 1000만명에, 경기도 인구는 600만명이었다. 30여년간 총 인구가 792만명 증가했는데 경기도만 747만명(94%) 늘어 2배 넘게 커졌다. 인구·지역내총생산이 서울보다 많아진 1위 광역자치단체다. 스웨덴(1060만명), 그리스(1030만명), 헝가리(1010만명)보다 인구가 많다.

 

경기도 지역구 의원 출신이나 기초자치단체장 출신의 좁은 시야라면 경기도가 감당 못하게 커졌다며 분도(分道)를 주장할 수도 있다. 김 지사는 다르다. 경제기획원 관료에서 출발해 경제부총리까지 지냈다. 국가의 그랜드 디자인을 훈련받은 사람이다. 경기남도보다 못사는 경기북도를 별도 행정구역으로 쪼갠들 공무원, 지방의원 수는 늘겠지만 수도권 규제, 군사 규제 등을 대폭 풀 수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 장밋빛 공약을 앞세웠다. 그런 과시형 치적에 매달릴 게 아니라 유연한 태도로 서울시장·인천시장과 협업해 수도권 주민의 불편함을 신속하게 덜어주고 인구 절반의 민생을 책임진다는 각오로 실용 행정에 전력하는 게 우선이었다. 김 지사는 문재인 정부의 첫 경제부총리 시절에 엄청난 충격이 예상되는 최저임금 급등을 직을 걸고라도 막기보다는 세금 풀어 부작용 가리기 급급한 정책을 폈었다. 경제 관료 출신답지 않게 정치적 계산을 앞세우더니 제대로 정치 역풍을 맞았다.

조선일보 강경희 논설위원

 

11-06 인요한에 영어로 모욕한 이준석, 신당으로 심판 받으라

2011년 12월 당시 20대였던 이준석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의 정치권 등장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서울과학고 조기 졸업과 카이스트·하버드대 진학, 배움을 나눌 봉사단체 설립 등 이력과 참신한 발상은 여의도 정치를 뒤바꿀 청년 정치의 희망으로 주목 받았다. 그러나 40대를 바라보는 지금 독선과 저주의 아이콘 같은 행태를 보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국민의힘 대표를 지내고 윤석열 정권 출범에 기여했음에도 ‘축출 당한 억울함’이 없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인성 파탄 행태를 보여선 안 된다.

이 전 대표는 4일 부산까지 찾아온 인요한 혁신위원장에게 영어로 “미스터 린턴, 당신은 이 자리에 올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며 “진짜 환자는 서울에 있다”고 했다. 그래도 인 위원장은 “조금 섭섭했다. 또 만나서 풀어야겠구나 생각했다”며 차분하게 대응했다. 정치의 본질은 갈등 통합이다. 보통 사람도 웃는 얼굴에 침 뱉지 못한다. 영어 응대는 인종 혐오 발언을 연상시키고, 한국에서 태어나 자신보다 훨씬 오래 한국에서 살았던 사람에 대한 예의도 저버렸다. 이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을 겨냥해 ‘양두구육’ ‘환자’ 등으로 비난했다. 언어는 인격을 반영한다.

그는 “근본적 변화가 없으면 신당을 창당하겠다”고 했다. 이전투구와 공멸의 정치보다 신당을 통해 비전을 직접 알리고 심판 받는 게 한국 정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문화일보 사설

 
 

11-06 “배은망덕 이준석”… 징계취소에도 윤 대통령·인요한 조롱

▲국민의힘, 정책 가속페달 김기현(가운데) 국민의힘 대표가 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날 ‘메가시티 서울’ ‘공매도 한시 금지’ 등 정책 드라이브에 본격 시동을 걸며 백드롭(배경 현수막)을 바꿨다. 연합뉴스

 

■ 이준석 “억지봉합 쇼” 연일 막말

“엉뚱한 사람 약 먹이지 말라”
李,통합행보 인요한 또 저격

당내 “李 비호감도 너무 세져
黨 타격 원하지만 여의치 않아”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연일 국민의힘 지도부와 대통령실, 인요한 혁신위원장 등을 공개 저격하자 정치권에서는 이 전 대표가 ‘갈라설 결심’을 굳힌 것 같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전 대표는 지난 4일에는 윤석열 대통령을 ‘진짜 환자(The real patient)’라고 표현하는가 하면, 6일에는 혁신위의 ‘대사면’(징계 취소)과 인 위원장의 부산 토크콘서트 방문 등의 제스처를 ‘억지 봉합 쇼’라고 비판했다. 이 전 대표는 지난 5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12월 말까지 당에 변화가 없으면 다른 길을 모색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독자 행보의 구체적 시기를 다음 달 말로 못 박았다.

당 내부에서는 이 전 대표의 일련의 행보에 대해 “선을 완전히 넘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당에 대한 ‘주인 의식’을 거론했던 이 전 대표가 징계 취소 등의 조치에도 대통령과 지도부를 계속 공격하는 것은 배은망덕한 모습”이라고 비난했다. 이미 귀화해 한국 국적을 얻고, 한국어로 의사소통하는 인 위원장에게 굳이 영어로 응대한 점을 두고도 ‘결례’였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인 위원장도 이날 채널A 인터뷰에서 “그렇게 계속 ‘너는 외국인’이라고 취급하니 힘이 들었고 섭섭했다”고 토로했다.

반면 이 전 대표가 이미 선을 넘었다고 해도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당이 끝까지 끌어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이 전 대표가 총선 전 탈당 후 비례 정당을 창당하거나 수도권 위주로 후보를 내보내면 국민의힘의 총선 전략에 악재가 될 것이란 우려에서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지난 2일 페이스북에 “(이 전 대표는) 하다못해 수도권에서 이정희(전 통합진보당 대표) 역할까지 노리는데, 참 당 지도부 무지하고 태평스럽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2년 18대 대선 당시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낙선 운동을 펼쳤던 것을 언급한 것이다. 반면 다른 국민의힘 의원은 “우리 당에 타격을 주는 신당을 만들고 싶은 것 같은데 비호감도가 너무 세졌고 조직이 없다”고 이 전 대표의 신당 창당 효과를 낮게 평가했다.

한편 이날 인 위원장은 친윤(친윤석열) 핵심 의원들의 불출마 또는 험지 출마를 거듭 촉구했다. 인 위원장은 “한두 명만 결단을 내리면 (다른 사람들도) 따라오게 돼 있다”며 “어제저녁에도 (그들에게) 결단을 내리라고 전화했다”고 밝혔다.
문화일보 이후민·김보름 기자

 
 

11-06 이재명 대표의 얄팍하고 실속 없는 ‘3% 성장론’

 

돈 풀어 경기 띄우자는 이재명
재정 악화, 고물가 위험은 과소평가
진정으로 경제·민생 위한다면
‘노란봉투법’ 폭주부터 멈춰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성장률 3%론’을 들고 나왔다. 2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다. 현재로선, 내년 2% 초반 성장도 낙관하기 어렵지만 정책 우선순위를 조정하고 위기 극복 방안을 총동원해서 3% 성장을 달성하자는 주장이다.


부분적으로 일리 있는 내용도 있다. 연구개발(R&D)이 저성장을 막고 생산성을 높이는 핵심적인 방안이라는 데는 공감이 간다. 전세대출 이자 부담 완화나 월세 공제 대상 확대 등의 제안도 논의해 볼 가치가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얄팍한 내용이 많다. 재원 마련을 위해 진지하게 고민한 흔적부터 보이지 않는다. 이 대표는 자신이 제안한 ‘청년 대중교통 3만 원 패스’의 재원 조달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예산소요액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며 답변을 실무자에게 넘겼고, 실무자는 “특별한 예산 소요를 동반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식으로 답했다. 청년들에게 3만 원짜리 카드를 하나씩 나눠주는데도 들어가는 돈이 없다니, 어디 감춰 놓은 ‘화수분’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1년 한시 ‘임시 소비세액공제’를 도입하자는 제안도 마찬가지다. 예산이 얼마나 필요한지,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이 없다. 재원은 그렇다 치고 주장 자체가 뜬금없다. 그동안 이 대표와 민주당은 정부·여당이 감세정책으로 막대한 세수 결손을 초래했다며 비판의 날을 세워 왔다. 감세가 문제라면서 감세하자는 게 앞뒤가 맞는 말인가.

더구나 지금은 재정이 과거 어느 때보다 불안정한 상황이다. 당장 올해에만 59조 원의 ‘세수(稅收) 펑크’가 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내년 예산만 하더라도 총수입이 총지출보다 45조 원 부족한 적자 살림이다. 경기 악화로 추가 세수 펑크가 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런 현실을 이 대표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이런 지적이 나올 때마다 이 대표가 정해진 메뉴처럼 내놓는 답변이 ‘한국은 선진국에 비해 국가채무 비율이 낮기 때문에 정부가 빚을 더 내도 된다’는 것이다. 이번도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이 대표는 “다른 선진국들의 국가채무 비율이 110∼120% 수준인 데 비해 한국은 꾸준히 50% 아래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이 낮은 것은 외환위기의 집단 트라우마와 관련이 있다. 외환보유액이 바닥나고 민간 부문이 과도한 부채에 짓눌려 나라가 와르르 무너지는 와중에서도 경제가 회복 불능으로 완전히 침몰하는 걸 피할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재정이 건전했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든 나라가 망하는 것을 피하려면 재정만큼은 건전해야 한다는 것이 그때 우리의 DNA에 각인된 ‘집단기억’이다.

그런데 이런 기억들이 흐릿해지면서 2013년 32.6%이던 국가채무비율이 지난해 49.4%까지 급등하는 등 무서운 속도로 높아지는 중이다. 이걸 두고 “국가채무비율이 꾸준히 50% 아래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정치지도자로서 정직한 표현인지 모르겠다.

이 대표가 또 하나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이 있다. 물가다. 지금은 코로나19 팬데믹 때 풀린 과잉유동성과 유럽, 중동에서 진행되는 두 개의 전쟁으로 인플레이션 가능성이 과거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정부 재정을 풀어 3% 성장을 달성한다 해도 물가 상승으로 인해 그 이상의 비용을 치를 가능성이 높다.

한국 경제의 체력을 객관적으로 보려면 한 나라의 경제가 물가 상승을 동반하지 않으면서 성장할 수 있는 최대치를 나타내는 ‘잠재성장률’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올해 1.9%로 2% 선이 처음 무너지고, 내년에는 1.7%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한다. 2030년 이후 전망은 0%대다. 규제혁파와 노동개혁을 통해 기업의 발목을 잡는 규제를 풀고 생산성을 개선해서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지 않으면 ‘물가 상승 없는 성장률 회복’은 앞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그런데도 ‘3% 성장론’을 내건 이 대표의 민주당은 ‘노란봉투법’을 9일 본회의에서 강행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파업으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이 이대로 시행되면 가뜩이나 노(勞) 측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더 기울어져 노동개혁은 완전히 물 건너가고, 한국 경제는 ‘저성장’과 ‘고물가’ 사이를 영원히 오가는 시계추가 될 운명이다. 허울 좋은 ‘3% 성장’은 제쳐 두고 ‘노란봉투법 폭주’부터 멈춰 세우는 게 이 대표가 한국 경제를 위해 할 일이다.
천광암 논설주간 iam@donga.com

 

11.07 취임 석 달도 안 된 사람까지 탄핵한다는 민주당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가 곧 국회 본회의에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탄핵안을 상정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위원장 외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여러 장관의 탄핵 소추안을 동시에 상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현 정부 출범 후 걸핏하면 탄핵을 거론하고 있다. 민주당의 표적이 된 장관급만 최소 6명이고, 대통령과 국무총리도 예외가 아니었다. 국무회의 구성원 21명 중 8명이 탄핵 위협을 받았다.

 

민주당은 국회 168석으로 원하면 누구든 탄핵 소추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지난 2월엔 핼러윈 참사의 책임이라며 이상민 행안부 장관 탄핵 소추안을 강행 처리했다. 헌재가 전원일치 결정으로 기각시켰지만 이 장관의 직무가 167일 정지된 동안 집중호우로 많은 인명 피해가 났다. 막무가내 정쟁용 탄핵이 재난 안전 사령탑의 손발을 묶은 것이다. 많은 비판이 쏟아졌지만 민주당은 지난 9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을 수사한 검사를 탄핵 소추했다. 이재명 대표를 수사하는 검찰에 대한 보복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민주당은 해임 건의안도 남발하고 있다. 박진 외교부 장관, 이상민 장관, 한덕수 총리에 대한 해임 건의안을 강행 처리했다. 1987년 헌법 시행 후 36년간 해임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모두 여섯 차례인데, 그중 절반이 지난 1년 새 민주당에 의해 이뤄졌다. 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갖고 있는 한 앞으로도 이 기록은 계속 경신될 것이다.

 

민주당은 9일 본회의에서 방송법 개정안도 강행 처리할 가능성이 있다. 방송법은 대통령이 공영방송 이사 구성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이다. 민주당은 공영방송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자신들이 정권을 잡고 있던 문재인 정부 시절엔 이 법을 외면했다. 그러다 야당이 되자 법을 밀어붙이고 있다. 민주당의 ‘방송 중립’은 자신들 편 드는 방송 만들기와 같다. 취임한 지 석 달도 안 돼 법을 어길 시간도 없었을 방통위원장의 탄핵을 거론하는 것도 같은 뜻일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11.07 美예일대 교수 “이준석 ‘미스터 린턴’ 발언, 미국이면 그날로 퇴출”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과 이준석 전 대표/연합뉴스·뉴스1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4일 자신을 찾아온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을 ‘미스터 린턴(Mr. Linton)’이라고 부르고 영어로 말을 건 데 대해 현직 미국 예일대 교수가 “미국 유력 정치인이었다면 그날로 퇴출”이라고 했다.

 

나종호 예일대 정신의학과 조교수는 지난 5일 페이스북에 ‘당신은 우리와 다르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며 이 같이 적었다. 나 교수는 서울대 의학대학원, 하버드대 보건대학원, 뉴욕대 정신과 레지던트를 거쳐 현재 미국 예일대 의대 정신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나 교수는 “미국에서 나고 자란 아시아계 미국인에게 가장 쉽게 상처를 주는 말은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이라며 “실제로 아시아계 미국인에게 인종차별로 가장 쉽게 쓰이는 표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전 대표가 인 위원장에게 ‘미스터 린튼(Mr. Linton)’이라고 하며 영어로 응대한 것은 이와 같은 맥락의 명백한 인종차별”이라고 했다.

 

이어 “만약 한국계 미국인 2세에게 한국계라는 이유로 미국의 유력 정치인이 공개석상에서 한국어로 이야기를, 그것도 비아냥대면서 했다면 그 사람은 인종차별로 그날로 퇴출당할 것”이라며 “정치 이야기를 하긴 싫지만, 정치인으로서 자격 미달이고 공개 사과해야할 사건”이라고 했다.

 

나 교수는 또 다른 게시물에서 “4대째 한국에서 살고 있는, 한국 사회를 위해 선교, 의료, 정치적 기여를 한 집안의 60대 명문대 의대 교수인 백인 남성도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현재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젊은 정치인이 그 정도 인식 수준과 행동을 보인 점에서, 또 그 행동이 잠재적인 이민자들에게 주는 메시지에 대해서 심히 우려된다”고 했다.

 

이어 “이 행동이 단순히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일 뿐이라면 문제가 더 심각하다”며 “한 명의 행동이 우리 사회를 대변하지 않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이런 행동은 지속적으로 비판해야 한다”고 했다.

 

 ▲나종호 미국 예일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조선DB

 

앞서 이 전 대표 지난 4일 부산에서 진행된 토크콘서트에 방문한 인 위원장에게 영어로 ‘미스터 린턴(Mr. Linton)’이라고 부르면서 “진짜 환자는 서울에 있다(The real patient is in Seoul)”고 말했다.

 

해당 발언을 두고 당안팎에서 ‘선을 넘었다’는 지적이 나오자, 이 전 대표는 모욕주기 의도는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유튜브 채널 ‘여의도재건축조합’에서 “모욕주기 위해 영어로 한다는 의도가 있었다면 모든 말을 영어로 했을 것”이라며 “(안 위원장의) 언어 능숙치를 생각해서 이야기했는데 그게 인종차별적 편견이라고 얘기하는 건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했다.

 

인 위원장은 6일 YTN ‘뉴스라이브’에서 “영어로 쓴소리 듣고 다 좋은데, 전라도 말로 거시기 한 것은 영어를 구태여 안 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했다. 그는 “할머니가 목포 태생이고 아버지가 1926년 군산에서 태어났다. 나는 전라도에서 제 아들도 여기서 태어났는데, 영어로 그리고 마치 외국인 취급하듯 해서 조금 섭했다”고 말했다.

 

인 위원장은 전남 순천에서 태어나 60년 이상 한국에서 살았다. 그는 대한민국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 한국 국적을 취득한 특별귀화 1호다.

조선일보 최혜승 기자

 

11-07 한동훈·이동관도 탄핵 겁박 野… 헌법 농락하는 건달 정치

입법부가 행정부를 견제하고, 야당이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합리적 근거를 토대로 합당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러지 않고 의석 수에 기대 탄핵소추와 해임건의 등을 남발한다면 동네 건달의 힘자랑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의 행태는 그런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6일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소추안을 이르면 9일 본회의에 상정하는 것은 물론, 한동훈 법무부 장관 등 여러 장관의 탄핵소추안을 동시 상정하는 방안도 검토 중임을 밝혔다. 이 위원장은 지난 8월 28일 취임해 이제 겨우 2개월 남짓 일했다.

탄핵소추는 국회의 헌법상 권리다. 재적 과반(150명 이상) 찬성으로 의결이 가능하기 때문에 168석의 민주당은 단독으로 강행할 힘이 있다. 그러나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해야 하고, 위배 정도는 중대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민주당은 지난 2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해 핼러윈 참사 책임을 이유로 탄핵소추안을 처리했지만, 헌법재판소는 전원일치 결정으로 “헌법상 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기각했다. 지난 9월에는 헌정사상 초유의 검사 탄핵소추도 의결했다.

민주당은 이 위원장에 대해 “언론 장악 등 공직자로서 반헌법적”이라고 주장하나, 헌법이나 법률을 구체적으로 위반한 일이 없다. 한 장관의 경우 시행령을 개정해 ‘검수완박’법을 우회한 것 등을 거론하고 있으나, 이재명 대표 수사에 대한 앙갚음 외에 다른 이유를 찾기 힘들다. 한 장관은 탄핵소추안이 의결되면 직무가 정지되고, 헌재 결정이 공직 사퇴 시한(내년 1월 11일)까지 나오지 않으면 총선 출마도 할 수 없게 된다. 민주당은 이미 박진·이상민 장관, 한덕수 총리 등에 대한 해임건의안도 의결했다. 이런 무분별한 힘 자랑은 헌법 정신을 농락하는 것은 물론 국회와 야당의 권능을 스스로 격하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문화일보 사설

 

11-07 산업 현장 무법천지 만들 노란봉투법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


노동조합법 제2·3조 개정(일명 ‘노란봉투법’)이 결국 현실화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경제계와 여당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오는 9일 국회 본회에서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야당은 이 법안 처리를 강행하는 이유가 ‘헌법상 모든 근로자에게 보장된 노동권을 무력화시키는 손해배상 남용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개정안을 ‘합법 노조활동 보장법’이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손해배상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합법적인 노조 활동이 아닌 사업장 점거와 같은 극단적인 불법 쟁의행위가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해에 발표된 고용노동부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노동조합과 조합원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법원이 손해배상 청구를 인용한 전체 금액의 98.6%가 불법으로 사업장을 점거해 손해를 발생시킨 경우다. 따라서 노동조합과 조합원에 대한 손해배상이 지나치다고 주장한다면 먼저 사업장 점거나 폭력 같은 불법행위 관행부터 개선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노조법 개정안은 불법 쟁의행위로 인한 피해자인 사용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사실상 봉쇄해 노조의 불법행위를 조장하고 있다.

‘공동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전체 손해에 대해 불법행위자가 연대해서 책임을 지는 것이 민법상 대원칙이다. 그러나 개정안은 불법 쟁의행위에 대해서는 가담자별 가담 정도에 따라 손해배상 책임을 나누도록 하고 있다. 복면을 쓰거나 CCTV를 가리고 불법 쟁의행위를 하는 현실에서, 조합원 개개인의 손해에 대한 기여도를 개별적으로 입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금도 강성 노조의 폭력과 파괴, 사업장 점거, 출입 방해 등 불법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상황에서 노조법이 개정되면 산업 현장은 무법천지가 될 게 자명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개정안은 사용자의 범위를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라는 모호하고 추상적인 개념으로 확대하고 있다. 대다수 기업은 수백 개의 하도급업체 노조가 교섭을 요구할 때도 교섭에 응해야 하는지 회사 자체적으로 판단할 수 없어 극도의 혼란 상태가 우려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처럼 무리하게 사용자 범위를 확대하는 것은, 민법상 계약의 실체를 부정하고 계약의 당사자가 아닌 원청기업을 노사관계의 당사자로 끌어들여 단체교섭과 파업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것이다. 국내 제조업이 자동차·조선·건설 등 업종별로 다단계 협업 체계로 구성된 상황에서, 원청기업들을 상대로 쟁의행위가 상시적으로 발생한다면 원청과 하청 간 산업 생태계는 붕괴될 것이다. 이로 인해 원청기업이 국내 협력업체와 거래를 단절하고 해외로 이전한다면, 고용 감소는 물론, 국내 산업의 공동화 현상이 현실화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노조법 개정안은 노조의 극단적인 불법 쟁의행위를 보호하고 원청업체에 대한 쟁의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기업과 경제를 무너뜨리는 악법이다. 가장 큰 피해는 일자리를 위협받는 중소·영세업체 근로자들과 미래세대에 돌아갈 것이다. 지금이라도 국회가 이 법안이 가져올 산업 현장의 혼란과 경제적 파국에 대해 깊이 성찰하기 바란다.
문화일보 

 

11.08 엉터리 선거법, 이번에 안 고치면 나라가 우스워진다

 정파를 초월해 모인 정치인들이 어제 기자회견을 열고 현행 선거법의 조속한 개정을 촉구했다. 총선을 5개월 앞두고 각자 총선기획단을 발족하는 등 본격적인 선거 체제에 들어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에 하는 요구다. 이들의 지적대로 지금 여야는 선거의 룰에 해당하는 선거법 개정 작업을 방치하고 있다. 선거 1년 전 규칙을 정하라는 법정 시한을 이번에도 무시하고 있다.

 

현행 선거법은 민주당이 2019년 12월 21대 총선을 4개월 앞두고 국민의힘을 배제한 채 군소 정당들과 함께 강행 처리한 것이다. 세계 민주국가에서 게임의 룰인 선거법을 한쪽이 일방적으로 바꾼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그런 무리한 일을 벌인 것은 공수처법 통과와 선거법 처리를 군소 정당들과 맞바꾸려 했기 때문이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전경./뉴스1

 

이 선거법의 핵심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의원들도 정확히 이해하기 힘들다는 누더기 내용이다. 가장 문제는 위성 정당이 등장하는 것이었는데 결국 그렇게 되고 말았다. 선거법을 강행한 민주당조차 위성 정당을 만들었다. 심지어 제2의 위성 정당까지 생겼다. 위성 정당 기호를 앞당기기 위한 ‘의원 꿔주기’까지 벌어졌다. 나라와 선거가 희화화됐다.

 

그런데도 이 문제를 논의해야 할 정치개혁특위는 아직도 개점 휴업 상태다. 활동 기한만 계속 연장할 뿐 실질적 논의는 하지 않고 있다. 선거법 개정 방향에 대한 여야의 시각차가 크기 때문이다. 선거법 논의가 표류하는 사이 정의당은 녹색당, 진보당, 민노총과의 선거 연합을 위해 지도부가 사퇴했다. 여야가 밀고 당기다 현행 선거법이 개정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비례 의석을 최대로 확보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이대로 가면 통진당의 후신인 진보당 등이 원내에 다시 진입할지도 모른다.

 

억지 선거법으로 인한 해악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윤미향, 최강욱, 김의겸, 양이원영, 김홍걸 등 각종 논란을 일으킨 의원 상당수가 비례 위성 정당 출신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번에 이 엉터리 선거법도 고치지 못하면 이들보다 더 한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되고 나라까지 우습게 될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11.08 김종인 이해찬 없이 선거 치를 수는 없나

金·李 총선 앞 왕성한 활동
한국 정치 수십 년 좌우한 두 사람
새 시대 변화 이끌 수 있을지 의문
이들 없이도 성공하는 당 나와야

 ▲2020년 6월 3일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예방해 악수를 나누고 있다./남강호 기자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신당을 거론할 때 ‘진짜 탈당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얼마 뒤 그가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났단 얘길 듣고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김 전 위원장은 신당을 조직할 인맥과 경험이 있다. 내년 총선에서도 모종의 역할을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위원장은 선거 판을 읽고 분석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 때문에 여야를 오가며 ‘정당 소생술사’ 역할을 맡았다. 2012년 새누리당 총선과 대선, 2016년 민주당 총선, 2020년 미래통합당 총선과 2021년 국민의힘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등 굵직한 선거마다 그가 끼지 않은 곳이 없다. 내년 총선에선 기존 당을 돕는 게 아니라 이준석·금태섭·양향자 등으로 자신의 세력을 만들어 승부를 보려는 것 같다.

 

그와 견줄 수 있는 사람은 민주당 이해찬 전 대표 정도다. 이 전 대표도 선거 기획에 뛰어나다. 2016년 김 전 위원장에게 공천 컷오프를 당했지만 무소속으로 출마해 7선 의원이 됐다. 이후 당대표까지 맡아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 180석을 만들었다. 정계 은퇴를 선언했지만 당내 영향력은 여전하다. “민주당이 내년 총선에서 과반을 넘어야 한다”며 전국을 돌며 당원 교육 중이다.

 

이대로면 다음 총선에도 김종인, 이해찬 두 사람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것이 과연 나라와 국민을 위해 바람직한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에서가 아니다. 두 사람 건강은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이들이 정치를 보는 관점, 그간의 행태가 다음 총선을 통해 우리가 만들어갈 대한민국에 맞느냐가 문제다.

 

김 전 위원장은 호불호가 강하고 자기중심적이다. 자신이 상황을 통제할 수 없게 되면 “더는 못 하겠다”며 떠난다. 그리고 돕던 당을 비난한다. 정치적 판단도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다.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시절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과거 악연이 있는 안철수 후보에게까지 입당을 권유하더니, 당을 떠나고 나서는 국민의힘을 ‘흙탕물’에 비유하며 윤석열 후보의 입당을 만류했다. 유력 대선 후보를 국민의힘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고 싶어서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2년 전 금태섭 전 의원이 신당을 타진하자 “제3지대는 없다”고 했지만, 요즘은 “신당 만들면 수도권 30석도 가능하다”며 돕고 있다.

 

이 전 대표는 운동권 정치의 ‘대부’다. 사고 방식도 민주화 운동 시절에 머물러 있다. 자신이 정당하다고 믿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지난 총선 때 비례 위성 정당을 창당했다. 같은 운동권 출신 유인태 전 의원조차 “천벌 받을 짓”이라고 했다. 민주당이 ‘한일 갈등이 총선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보고서를 만든 것도 이 전 대표 시절이다. 자기편은 법을 어겨도 괜찮다고 한다. 정의연 공금 횡령 의혹이 터지자 윤미향 의원에게 “굴복하지 마라”고 했고, 서울대가 유죄 판결을 받은 조국 전 장관을 파면하자 “무도하다”고 했다. 공정과 상식은 안중에 없다.

 

3김’ 이후 한국 정치는 김종인·이해찬을 빼고 얘기하기 어렵다. 하지만 두 사람은 나라와 국민의 미래보다 어떻게든 선거에 이겨서 본인과 자기편의 권력을 키우는 데 관심이 더 많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 전 위원장이 필요한 당은 망하기 직전의 당이다. 당을 회생시키고 대가로 정치적 지분을 요구한다. 이 전 대표가 필요한 당은 민주당뿐이다. 그의 구태 정치는 장기적으로 민주당에 해가 될 것이다. 이제 김종인·이해찬 없이도 성공하는 당이 나올 때가 됐다. 대한민국 정치가 발전했다는 증표가 될 것이다.

조선일보 황대진 논설위원

 

11-08 마약 전방위 확산에도 수사 예산 깎으려는 해괴한 행태

국회 예산심의가 본격화하면서 곳곳에서 쟁점이 형성되고 있다. 여야의 입장 차이는 불가피하지만, 그렇더라도 과도한 정치적 계산 때문에 논의가 뒤틀려선 안 된다. 그런 점에서, 마약 수사 예산을 둘러싼 야당 주변의 움직임은 해괴하다고 할 정도로 납득하기 힘들다. 최근 유명 연예인이 수사 받는 등 마약이 전방위로 확산해 ‘마약 청정국’ 지위가 붕괴된 지 오래된 것은 일반 국민도 안다. 그런데 예산심의는 반대 방향으로 갈 조짐이 비친다.

법무부는 올해 대비 3.1% 증가한 4조5474억 원을 요청했는데, 이 중 마약 수사 관련 예산은 83억1200만 원으로 올해보다 71.1% 늘려달라고 했다. 마약범죄특별수사본부 운영 지원, 첨단 마약 수사 장비 도입, 국제 공조 등에 필요한 예산이라고 한다. 그런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수석전문위원실은 검토보고서에서 마약 수사 사업 예산 증액에 부정적 의견을 제시했다고 한다. 특히 마약사범 수사 및 수사 역량 강화와 관련된 예산 증액에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고 한다. 국회는 예산 낭비가 없도록 꼼꼼히 살펴야 하지만, 이런 주장은 납득하기 힘들다.

더 우려되는 것은, 이 보고서의 기조는 더불어민주당과 유사하다는 점이다. 최근 2억7500만 원인 ‘마약 수사 특수활동비’ 전액을 삭감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대부분 마약 특별 수사비라고 한다. 한동훈 장관은 “국민이 그것밖에 안 된다고 해서 놀라고, 전액 깎겠다는 것에도 놀랄 것 같다”고 했을 정도다. 민주당은 이 문제가 증폭 조짐을 보이는 8일에야 “오보”라고 해명했다. 민주당이 마약 확산을 용인할 리 없다. 그래서 법무부 예산에 대한 민주당의 태도는 한 장관과 검찰에 대한 불만 표시로 비친다. 문재인 정부 때 ‘검수완박’으로 검찰의 마약 수사권 제거, 마약 수사 부서의 통폐합과 대검 마약범죄 모니터링 시스템 예산 중단 등 전비(前非)도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문화일보 사설

 

11.09 끝도 없는 안철수·이준석의 소아적 감정 충돌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과 이준석 전 대표가 같은 식당의 다른 방에서 식사를 하다 말소리가 들려 신경전을 벌였다고 한다. 이 전 대표가 인요한 혁신위원장에게 영어를 사용한 것에 대해 안 의원이 비판하자, 옆 방에 있던 이 전 대표가 이를 듣고 “안철수씨 조용히 하세요”라며 큰 소리를 냈다는 것이다. 안 의원은 하던 얘기를 계속했고, 두 사람은 식사를 마치고 얼굴도 마주치지 않고 식당을 나갔다고 한다. 두 사람은 보통 정치인이 아니다. 100석 이상 정당의 대표를 지냈고 대선 주자급으로도 거론된다. 현재 같은 당 소속이기도 하다. 그런데 만나기만 하면 이런 수준의 다툼을 벌인다. 벌써 몇 년째인지 모른다.

 

두 사람은 2016년 서울 노원병 국회의원 선거에서 각각 국민의당과 새누리당 후보로 맞붙은 이후 앙숙이 됐다고 한다. 2018년 함께 바른미래당에 있을 때도 노원병 보궐선거 공천 문제로 갈등을 빚었다. 이 전 대표는 안 의원이 당시 자신의 공천을 방해했다고 주장하고, 안 의원은 그런 적 없다고 한다. 안 의원이 국민의힘에 입당한 뒤로도 반목을 거듭했다. 이 전 대표는 안 의원이 국민의당 몫으로 추천한 최고위원 임명을 거부했다. 강서구청장 선거 때는 안 의원이 선거 유세 때 한 시민의 막말을 되받아쳤는데, 이 전 대표는 이 때문에 선거에 졌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그러자 안 의원은 이미 징계를 받고 있는 이 전 대표에 대해 제명 운동까지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이번 식당 신경전이 벌어진 것이다.

 

 ▲국민의힘 이준석(왼쪽) 대표와 안철수 의원이 6월 25일 오후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열린 6·25전쟁 제72주년 ‘백선엽 장군 서거 2주기 추모 행사’에 참석해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다./뉴스1

 

같은 선거구에서 경쟁했다는 이유로 다 이렇게 되지는 않는다. 그러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다. 둘 사이에 좁힐 수 없는 정치적 이념적 견해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다. 모두 자유시장 경제를 신봉하고 대북관, 안보관도 별 차이가 없다. 공정한 경쟁과 기회를 강조한다는 점에서도 같다. 그런데 만나기만 하면 충돌한다. 그 소재도 나라와 당이 나아갈 방향 같은 의제가 아니라 순전히 개인의 감정이 얽힌 지엽적인 것들이다. 마치 아이들의 싸움을 보는 것 같다.

 

두 사람은 기존 정치권의 구태를 깨는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다. 많은 유권자가 그 점을 인정해 둘을 지금의 위치까지 올려줬다. 그랬던 사람들이 수준 이하의 감정 다툼으로 날을 새우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

 

11.09 실패가 예정된 존경스러운 정치인

사익과 거짓말로 실패한 정치인에겐 두 가지 길이 있다
더 대담한 거짓말과 처절한 반성
그런데 더 대담한 자가 성공하는 현실

그는 29세에 정치의 꿈을 품었다. 첫 선거에서 낙선한 것은 어쩌면 당연했지만 그는 정치에서 나쁜 것부터 배웠다. 다음 선거에서 그가 후원자들에게 모금한 선거 자금을 개인적으로 유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지지율이 폭락하자 놀라운 작전을 세운다.

 

그는 상대 후보가 지역에 폐기물 저장소를 유치하려 한다는 가짜 뉴스로 역공을 폈다. 상대 후보가 적성국과 관련이 있다는 괴담 TV 광고도 했다. 또다시 패한 그는 타락한 저질 정치인일 뿐이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젊음을 순수함이나 패기의 원천이 아니라 천박한 상품으로 팔다가 파산한 가망 없는 청년이었다.

 

사익을 취하고, 거짓말을 하고, 함부로 남을 음해하다 실패한 정치인에겐 두 가지 길이 있다. 대부분은 사익과 거짓, 음해를 더 대담하게 하며 자기를 정당화한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경우도 있다. 이 사람이 바로 그 예외적인 경우였다.

 

정치를 떠났던 그는 언론 기고문을 통해 평생 좌우명이 될 선언을 했다. 그는 ‘정치인은 기본적 품위를 가져야 하며, 선거를 통해 그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 점에서 나는 죄인이기에 공직에 대한 미련을 버린다’며 ‘만약 다시 공직에 도전한다면 네거티브(상대에 대한 마구잡이 공격)를 결코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10년 만에 다시 출마해 큰 표 차 승리를 거뒀다. 언론은 그의 선거운동을 ‘끈질긴’ 반(反)네거티브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다섯 번 연이은 선거에서 이 원칙을 한 번도 버리지 않았고 모두 승리했다. 결국 대통령에 이은 2인자 자리까지 올랐다. 소속 당내에서 그에 대한 반대도 적지 않았다. 평소 “나는 당원이기에 앞서 보수주의자이고, 보수주의자이기에 앞서 기독교인”이라고 말해온 그는 극성 당원들에겐 그리 탐탁지 않은 인물이었다.

 

‘개딸’과 같은 극성 당원들의 그에 대한 ‘우려’가 현실이 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극성 당원들을 배신했을지는 몰라도 나라를 구한 일이었다. 2020년 대통령 선거에서 그의 당은 패했고 그는 직책상 다른 당 대통령 당선자를 의회에서 법적으로 확정하는 절차를 주재해야 했다. 낙선한 대통령은 그에게 이 절차를 진행하지 말라고 압박했다. 사실상 모반을 일으켜 나라를 뒤엎자는 유혹이었다.

 

그가 이를 거부하자 폭도로 변한 극성 당원들이 그를 교수형에 처하겠다며 의회를 점거하고 그를 수색했다. 의원들이 죽음의 공포 속에서 피신했지만 그는 아내, 딸과 함께 있었음에도 경호원들이 거의 강요할 때까지 사무실을 지켰다. “죽여라” 하는 폭도들 외침을 지척에서 들었다. 그래도 폭도들이 진압되자 그는 새 대통령 확정 절차를 끝마쳤다. 그가 없었고, 그가 한 일이 없었다면 이 나라는 그날 무너졌을 수 있었다. ‘위태로운 국가가 옳은 일을 해 줄 단 한 사람을 불안한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는 말이 결코 미사여구가 아니었다. 그는 양다리를 걸치고 눈치를 보는 사람이 아니었다. 상대 당의 급진성에 대해선 누구보다 비판적이었다. 그러나 “대통령과 헌법 중 택일하라면 헌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필자는 그만큼 대통령 자격을 갖춘 사람은 드물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결코 대통령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터넷 대중 정치 시대에서 이 사람의 품위와 초당적 원칙, 애국심 등의 덕목은 더 이상 인기를 끄는 요소가 아니다. 그는 2024년 다음 대통령 선거를 위한 당내 경선에 출마했지만 일찌감치 경선 포기를 선언해야 했다. 대중의 지지는 그가 아니라 도리어 그에게 모반을 압박하고 유혹한 전 대통령에게 쏠리고 있다. 세계 도처에서 대중 민주주의, 인터넷 민주주의가 원하는 것은 품위와 원칙이 아니라 선동과 거짓, 선정적 쇼맨십, 포퓰리즘이다. 이 시대에 대통령직으로 가는 줄이 있다면 그와 같은 사람들의 위치는 맨 끝일 것이다. 그가 경선 포기를 선언했을 때 한 언론인의 말이 떠올랐다. “내가 손가락으로 마법처럼 누군가를 대통령으로 만들 수 있다면 바로 이 사람을 고를 것이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10월 28일 마이크 펜스 전 미국 부통령이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공화당 유대인 연합의 연례 리더십 서밋에 도착하고 있다. 펜스 부통령은 이 행사에서 대통령 선거 캠페인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AFP 연합뉴스

 

그는 미국 제48대 부통령 마이크 펜스(64)다. 젊었을 때의 ‘선동과 거짓’의 과오를 평생 교훈으로 삼아 반성하며 언제나 ‘품위’를 강조하고 실천했다. 대선 경선을 포기하면서도 국민에게 “품위 있는 대통령을 뽑아달라”고 했다. 그러나 가장 품위 없고 극도로 무책임한 거짓말쟁이가 다시 인기 선두에 있는 것이 미국의 현실이다.

 

한국 사정도 똑같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을 것이다. 우리 정치계에 품위 있고 원칙있는 인물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대중의 관심 밖에 머물렀다. 양쪽으로 갈라진 대중은 상대를 죽이고 짓밟아줄 것처럼 보이는 인물을 선호한다. 괜찮은 사람들도 이 정치판에서 대중의 눈에 들기 위해 스스로를 그렇게 망가뜨리곤 했다. 한국의 마이크 펜스들도 그렇게 사라져 갔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

 

11-09 해야 할 입법은 않고 악법 밀어붙이는 ‘청개구리 巨野

더불어민주당이 ‘의회 권력’을 이용해 정책과 인사 등 전방위에 걸쳐 윤석열 정부 흔들기에 나섰다.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해 집권한 ‘행정 권력’의 기조를 사실상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건전한 견제를 토대로 한 삼권분립 시스템을 위협할 지경이다. 정부 발의 입법은 물론 국가적으로 시급한 입법의 발목을 잡고, 대통령의 재의 요구(거부권)가 불가피한 법안과 공직자 탄핵소추 등을 밀어붙임으로써 국가 기능의 심각한 차질도 우려된다.

민주당은 9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 2·3조 개정안)과 방송 관련 3법 처리 등에 나선다고 한다.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범위와 노동쟁의 정의를 확대해 파업 가능 범위를 확대하고, 불법 파업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다. 민법 기본 원칙과 충돌하는 등 위헌 논란은 말할 것도 없고, 경제 6단체가 “불법 파업을 조장하고, 미래 세대 일자리를 위협하는 악법”이라고 주장할 정도로 반시장·반기업 법안이다. 방송법·방송문화진흥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은 친야 성향 단체들이 사장 등을 결정할 수 있게 하는 꼼수 법안으로, 민주당 집권기에는 손 놓고 있었다.

반면, 경제 발전과 서민 지원 법안은 줄줄이 막혀 있다. 공급망 교란에 대비해 경제안보 관점에서 정부 차원의 위기 대응 시스템을 구축하는 내용의 공급망 안정화 지원 기본법은 1년 넘게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우주 강국 도약의 분기점에 서 있는데도 우주항공청설치법은 중요 쟁점 해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중점을 둔 경제·민생 법안들 가운데 국고 보조금 부정 수급을 막는 보조금 관리법 등 17건이 평균 13.7개월째 국회 문턱을 못 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지난 10월로 일몰된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의 재입법이 화급한데 손도 못 대고 있다. 경기 부진 속에 벼랑에 몰린 한계기업들이 회생의 방도 없이 법정관리로 가는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서민의 이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은행법 개정안, 금융사의 추심으로 고통을 받는 서민을 보호하는 개인금융채무자보호법 개정안 등도 마찬가지다. 거대 야당이 이런 ‘청개구리 행태’를 멈추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위대한 성취를 허무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

 

11-09 의회민주주의 파괴하는 다수결 남용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 前 한국선거학회 회장

최근 한국갤럽 조사(10월 24∼26일)에 따르면, 국회는 국민으로부터 철저하게 버림받았다. 제21대 국회가 2020년부터 지금까지 제 역할을 잘했는지 물어본 결과, 80%가 ‘잘못했다’, 13%만이 ‘잘했다’고 평가했다. 100점 만점 기준 42점으로 낙제점이다. 왜 이런 처참한 평가를 받았을까? ‘상호 존중’과 ‘제도적 자제’ 같은 민주주의 규범이 파괴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하지만 거대 의회 권력을 가진 더불어민주당이 보여준 의회민주주의 파괴 행위가 더 큰 요인일 수 있다.

우선, 포퓰리즘 입법의 양산이다. 의회정치 선진국에서 의원들은 법을 만들 때 반드시 3가지 사항을 고려한다. △헌법적 가치 훼손 여부 △소요될 예산 △법의 기대 효과가 그것이다. 이 중 하나라도 문제가 되면 법 제정을 중단한다. 민주당은 압도적 의석을 내세워 민생은 아랑곳없이 위장탈당 꼼수를 동원한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을 강행했고,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간호법 제정안을 통과시켰다. 공영방송의 중립성을 흔드는 ‘방송법’, 노조 파업에 면죄부를 주는 ‘노란봉투법’ 등을 밀어붙이는 입법 폭주를 해왔다.

둘째, 입법을 흥정 대상으로 삼았다. 가령, 우주항공 정책을 총괄할 우주항공청설치법을 방송 관련 법과 ‘딜’ 하고, 국가재정법 개정안도 ‘사회적 경제기본법’ 통과를 선결 조건으로 흥정했다. 셋째, ‘민의의 전당’을 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 해결용 방탄 국회로 전락시켰다. 게다가, 입법권을 국정 발목 잡기 수단으로 악용했다. 윤석열 정부 1년 동안 제출한 법안 144개 중 야당의 문턱을 넘어 처리된 것은 36건뿐이다.

넷째, 헌법 정신을 훼손하면서 국회 권한을 남용한다. 국회가 헌법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으로 법을 만들고, 국민을 대표하고, 정부를 감시·견제하는 역할은 오직 국민과 국가를 위해 써야 하고 합당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러잖고 거대 의석수로 국정의 발목을 잡기 위해 탄핵소추와 해임건의 등을 남발한다면, 정치 건달들의 힘자랑일 뿐이다.

민주당은 한덕수 총리와 박진 외교장관 해임건의에 이어 헌정사상 초유의 검사 탄핵소추안도 의결했다. 지난 2월에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해 핼러윈 참사 책임을 이유로 탄핵소추안을 처리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전원일치 결정으로 ‘헌법상 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기각했다. 탄핵소추는 헌법에서 보장된 국회의 권리이나, 조건이 있다. 직무 집행에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해야 하고, 그 정도는 중대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민주당은 취임 2개월 남짓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 탄핵소추안을 동시에 상정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거대 의석수에 기대어 규정된 절차를 무시한 채 오로지 국정의 발목을 잡기 위해 탄핵소추와 해임건의 등을 남발한다면 이는 헌법 정신을 농락하는 일이고, 국회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행태다. 민주당의 반헌법적·반민주적·반시장적 의정 행태는 분명 심판 대상이다. 내년 총선은 윤 정부 집권 2년 심판과 동시에 야당의 의회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심판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어찌 보면 내년 총선의 최대 관전 포인트는 과연 정권 교체에 이어 ‘국회 권력 교체’가 이뤄지느냐이다.
문화일보

 
 

11-09 힘으로 입법, 툭하면 탄핵… 의회민주주의 삼켜버린 ‘巨野 국회’

▲강행하는 민주당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과 방송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 등 쟁점법안의 국회 본회의 처리가 예정된 9일 오전 더불어민주당 정책조정회의에서 홍익표(가운데) 원내대표가 박주민 원내수석부대표에게 귀엣말을 하고 있다. 곽성호 기자

 

■ 민주, 또 법안 강행 처리

노란봉투법 등 논란 있는데도
타협 없이 의석수 밀어붙이기
국회의장 중재안도 끝내 거부
이동관 등 무리수 탄핵도 거론

프레임 만들고 李방탄용 의도


 

 더불어민주당이 9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과 방송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 강행처리에 나선 것은 사법리스크에 휩싸인 이재명 대표 체제 민주당의 정국 장악을 위한 ‘초강수’ 전략인 것으로 분석된다. 또 민주당은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과 4명의 검사에 대해서도 탄핵 카드를 꺼내놓고 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협치를 외면한 횡포”라는 비판을 쏟아냈고, 민주당 내부 일각에서도 “총선에 도움이 안 되는 힘 자랑”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이 ‘불법 파업 조장법(노란봉투법)’과 방송3법 강행 처리를 추진하는 것을 보면 민생 국회를 위해 노력하는 여당을 극한 정쟁에 끌어당겨 국회를 진흙탕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선명히 읽힌다”며 “민심에 부합하지 않는 의회 폭거이자 정쟁 급발진”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의 입법독주는 내년 총선이 5개월 남은 시점에서 여당에 각종 이슈 경쟁에서 밀리면서 노동자를 중심으로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국면을 ‘검찰 독재·방송 장악’ 프레임으로 만들어 가면서 정국 주도권을 쥐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재의 요구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확실시되는 상황임에도 노동계와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 등 지지층과 연대해 정부·여당과 대립각을 세우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파업 범위를 넓히고 불법 파업을 벌인 노조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방송3법은 공영방송 이사회를 확대 개편하고 정치권 외에 시민사회 등에 추천권을 부여해 여권의 영향력을 축소하는 것이 골자다.

민주당의 이 위원장 탄핵 추진에 대해서도 정치권의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민주당은 윤석열 출범 이후 이 위원장 외에 한덕수 국무총리,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한동훈 법무부 장관, 박진 외교부 장관,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등을 탄핵 리스트에 올리고 여당을 압박해왔다. 이 가운데 한 총리와 박 장관, 이 장관에 대한 해임 건의안은 민주당 단독으로 의결됐으며 이 장관 탄핵소추안의 경우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됐다. 윤영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9일 오후 의원총회에서 결론을 내고 본회의에 이 위원장 탄핵소추안을 보고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 일동은 성명에서 “민주노총이 장악한 공영방송을 영구히 지키고, 뉴스타파처럼 국기 문란 행위를 자행한 친(親) 민주당 세력을 위해 국회 권한을 남용한 반헌법적 탄핵 시도를 멈추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손준성 대구고검 차장검사, 임홍석 창원지검 검사, 이희동 대검찰청 공공수사기획관, 이정섭 수원지검 2차장 검사 등 민주당이 자체 규정한 ‘위법 검사들’에 대한 탄핵도 검토 중이다.

특히 민주당은 쟁점 법안 협상 과정에서 “방송3법의 경우 다음 정부부터 시행하자”는 김진표 국회의장의 중재안도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각각 여당일 때와 야당일 때 방송법 개정에 대해 상반된 입장을 보인 만큼 본회의에서 처리하되 시행을 유예하자는 대안으로 풀이된다. 앞서 민주당은 야당이던 2016년 7월 야당 동의를 얻은 공영방송 사장을 임명하자는 취지의 방송법 개정안을 냈으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입장이 돌변하면서 해당 법안은 여야 공방 속에 20대 국회 만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문화일보 나윤석·김대영 기자

 
 

11.09 노란봉투법·방송법 강행에 나선 거야의 힘자랑 중독증

민주, 쟁점 법안 상정에 이동관 위원장 탄핵도 추진

여당발 정책 드라이브 수세 벗어나려고 무리수 남발

더불어민주당이 오늘 국회 본회의에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과 방송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의 상정을 강행하기로 했다. 어제 의원총회에서 이 같은 방침을 정한 뒤 직후엔 윤석열 정부 언론 장악, 오송 지하차도 참사, 해병대원 순직 사건 국정조사요구서도 동시에 국회에 제출했다. 메가시티 서울, 공매도 금지 등 여당의 정책 드라이브로 수세에 몰린 국면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로 판단된다.

 

그러나 이 같은 쟁점 법안은 힘의 우위를 앞세워 마냥 밀어붙일 사안이 아니다. ‘사용자’의 정의를 확대하고, 불법 파업에 대한 회사 측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의 노란봉투법은 노사관계와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커 심도 있는 재논의가 필수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6단체는 어제 기자회견을 열어 “경영상 판단까지 쟁의행위 대상이 될 수 있고, 수백 개 하청업체 노조가 교섭을 요구할 경우 산업 현장은 극도의 혼란 상태에 빠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방송3법은 민주당이 집권 땐 공영방송 정상화에 손 놓고 있다가 야당으로 상황이 바뀌자 자신들 구미에 맞는 인사로 이사진을 채우려는 꼼수 개정안이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에, 몰염치한 처사다.

 

국민의힘은 야당 단독 상정을 저지하기 위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 나설 계획이다. 강행 처리될 경우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혹여 민주당이 거부권 행사를 유도해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속셈이라면 큰 착각이다. 여야 원내대표가 “볼썽사납고 지나치게 정쟁에 매몰됐다는 국회의 모습을 개선하겠다”며 신사협정에 합의한 지 한 달도 안 됐다.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제1 야당이 또다시 독주로만 치닫는다면 민심의 역풍을 자초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탄핵 카드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어제 의총에서 탄핵소추안 당론 발의 여부를 결론내려다 “좀 더 신중하고 숙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오늘로 미뤘다고 한다. 당론으로 채택되면 곧바로 발의할 태세다. 민주당은 이 위원장이 적법한 절차 없이 공영방송 이사진을 해임하는 등 탄핵 사유가 명백하다고 주장하지만, 헌법·법률 위반의 소지가 분명치 않은 데다 취임 두 달 남짓 된 장관급 인사를 겨냥한 탄핵 추진은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만약 탄핵안이 발의, 의결되면 이 위원장 직무가 정지된 상태에서 총선이 치러질 공산이 크다. 선거기간 중 ‘이동관 무력화’를 노린 총선용 셈법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걸핏하면 ‘탄핵·해임’을 남발하려는 민주당 탓에 지금 추가 거론되는 인사만 윤 대통령을 포함해 국무회의 구성원의 3분의 1에 이른다. “이쯤 되면 습관성·중독”이라는 비판을 민주당은 새겨듣기 바란다.

중앙일보 사설

 

11.10 방탄 국회, 방탄 단식 이어 수사 검사를 ‘방탄 탄핵’ 한다니

▲더불어민주당은 9일 이동관 방통위원장, 손준성·이정섭 차장검사 등 3인에 대한 탄핵소추안 발의를 당론으로 채택했다./뉴스1

 
 

더불어민주당이 어제 취임 석 달에 불과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탄핵 소추안을 당론으로 발의했다. 탄핵을 하려면 헌법·법률상 중대한 위반 행위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 위원장의 법 위반 사실이 무엇인지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언론 자유를 침해했다’는 식의 추상적 이유만 댈 뿐이다. 민주당 중진조차 “이 위원장이 구체적으로 어떤 개별법을 위반했는지는 약간 의문을 달 수 있다”고 했다.

 

민주당이 이러는 이유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민주당은 168석으로 누구든 언제든 탄핵 소추할 수 있다. 이 위원장이 탄핵 소추되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6개월 가까이 직무 정지가 된다. 내년 총선 때까지 방통위원장이 업무를 할 수 없게 되고 위원이 한 사람밖에 남지 않게 되는 방통위는 마비된다. 민주당은 내년 총선 때까지 방통위를 마비시켜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송 환경을 지키려는 계산이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 사건 수사를 맡고 있는 수원지검 이정섭 2차장 검사, ‘고발 사주’ 의혹을 받아 온 손준성 대구고검 차장검사에 대한 탄핵 소추안도 발의했다. 얼마 전 민주당은 이 검사의 위장 전입 등 각종 이유를 들어 고발도 했다. 위장 전입이 탄핵 사유라면 문재인 정부 고위직 상당수가 탄핵돼야 했다. 탄핵의 진짜 이유는 이 검사가 이 대표 사건의 수사 책임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탄핵안이 통과되면 이 검사의 직무도 정지된다. 총선 때까지 대북 송금 사건 수사가 차질을 빚게 된다. 후임 검사가 임명되면 민주당은 같은 방식으로 또 손발을 묶으려 할 것이다. 방탄 국회, 방탄 단식을 넘어 방탄용 탄핵까지 한다.

 

민주당이 현 정부 출범 후 탄핵을 위협한 장관급만 최소 6명이다. 대통령과 국무총리도 예외가 아니었다. 국무회의 구성원 21명 중 8명이 탄핵 위협을 받았다. 이제는 자신을 수사하는 검사를 탄핵하겠다고 한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 9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을 수사한 검사에 대한 탄핵 소추안을 의결했다. 검사들을 겁주기 위해 9년 전 사건까지 들췄다. 탄핵 소추 대상이 된 검사가 벌써 3명째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울산 선거 공작 사건을 수사하던 검사팀을 인사권을 이용해 공중분해 시키더니 이제는 검사 탄핵 남발까지 나아가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

 

11.10 정책 경쟁서 밀린 당이 정책 개발 대신 의석수 힘자랑

▲더불어민주당이 9일 국회 본회의에서 ‘불법 파업 조장법’이란 비판을 받는 이른바 ‘노란봉투법’과 공영 방송 이사진 구성에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방송3법을 단독으로 처리했다. 이날 국민의힘은 해당 법안 상정에 반발하며 전원 퇴장했다./뉴스1

 

더불어민주당이 9일 국회 본회의에서 ‘불법 파업 조장법’이란 비판을 받는 이른바 ‘노란봉투법’과 공영 방송 이사진 구성에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방송법을 단독으로 처리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다수 의석을 앞세워 밀어붙였다. 최근 국민의힘이 김포 서울 편입, 공매도 금지 등 각종 정책을 추진하며 선거 어젠다 경쟁의 기선을 잡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민주당도 정책 경쟁에 나서야 한다. 그런데 의석수를 앞세워 힘자랑만 한다.

 

노란봉투법은 노사 협상의 틀을 송두리째 흔드는 법이다. 하청 업체 직원이 원청인 대기업을 상대로 직접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고 파업도 가능해진다. 채용·정리 해고 등 사용자의 고유 권한에도 노조가 개입할 수 있게 된다. 반면 파업으로 인한 기업의 손해배상 소송은 현실적으로 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 법은 문재인 정부 때부터 국회에 계류돼 있었다. 민주당은 압도적 의석을 갖고도 이 법을 논의하지 않았다. 문제가 많은 법이란 사실을 아는 것이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어 야당이 되자 곧바로 강행 처리 수순을 밟았다. 경제 6단체가 “이러면 기업을 못 한다”고 호소했지만 무시했다.

 

방송법은 공영방송 지배 구조를 변경해 대통령의 영향력은 제한하면서 민주당의 영향력은 키우는 법이다. 민주당은 이 법도 문 정부 시절에는 반대했다. 그러더니 야당이 되니 꼭 해야 한다고 한다. 파렴치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두 법은 기업과 경제에 미칠 악영향이 심각하고 위헌 소지도 크기 때문에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불가피하다. 대통령실도 이미 그런 뜻을 밝혔다. 그런데도 소용이 없었다. 거부권을 행사해도 민주당은 지지층에 생색을 내고 정치적 부담은 대통령에게 지우면 그만이라고 계산하기 때문이다. 법안의 실제 시행 여부엔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정략을 위해 사회 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얼마 전까지 국정을 책임졌던 정당이 할 일이 아니다.

민주당은 이날 ‘오송 지하 차도 참사’ ‘정부의 언론 장악’, ‘해병대원 순직 사건’ 등에 관한 국정조사 요구서도 본회의에 보고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도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한다. 총선을 앞두고 특검과 국정조사를 진행해 유리한 구도를 만들려는 것이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정략이 얼마나 효과가 있겠나. 과거의 민주당이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일이다.

조선일보 사설

 

11.10 부업 정치로 생계형 정치를 감당하겠나

당선 천국, 낙선 지옥… 절박한 野 생계형 정치
져도 돌아갈 자리 있는 취미형 與 부업 정치

 이재명 대표가 민주당 문을 두드린 건 2005년쯤이다. 무명 변호사에서 갑자기 성남시장에 경기지사를 거쳐 대선 후보까지 됐다고 알지만 그렇지 않다. 40세에 정당 생활을 시작해 2007년 대선 경선 때는 정동영 캠프 핵심 공격수로 참여했고 풍비박산 난 대선 캠프 뒷정리도 그의 몫이었다. 이렇게 정치 훈련을 한 그는 2010년 성남시장이 됐고 이후는 모두 아는 대로다. 변호사라는 부업이 있었지만 근 20년간 그는 전업 정치인이었다.

 

민주당은 운동권 정당이면서 전업 정치인, 생계형 정치인들의 정당이다. 학생운동을 거쳐 30대 초반에 정당에 들어온 이들은 보좌관, 당직자로 10년 이상 도제식 훈련을 받는다. 학생회 선거부터 대선까지 머리와 몸으로 선거를 배우며 선거 머신으로 단련된다. 정당 사무실에서 복사하고 청소하고 논평 자료를 정리했던 이 청년들은 몇 년 뒤 국회의원으로 점프했고, 정권을 잡자 교육부, 국토부, 문화부, 중소기업부 장관을 했다. 공부 안 하고 세금 제대로 내본 적 없다고 비난할 수는 있지만, 이들은 바닥부터 국회와 정부를 보고 배운 생계형 정치인이다.

 

생계형 정치인들에게 당선은 천국, 낙선은 지옥이다. 이기면 살고 지면 죽는다. 정권을 잡으면 자리와 금전 보상이 따르고 정권을 빼앗기면 바로 실업자다. 문재인 정권 말기에도 연봉 1억원 이상의 자리가 나면 끝없이 낙하산으로 들어갔고 일부는 아직도 그 자리에 있다. 이처럼 생계 유지는 숭고하면서 구차한 일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대부분 부업형 정치인이다. 정치가 아닌 자신의 분야에서 수십 년 경력을 쌓아, 50대나 늦으면 60대에 정치에 뛰어든다. 윤석열 대통령은 검사였고 김기현 대표는 판사였다. 원내대표와 전·현직 사무총장 모두 경찰이었다. 국무총리와 대통령 비서실장과 안보실장은 상위 0.1% 공무원 출신이다. 긴급 투입된 혁신위원장 인요한은 의사다. ‘당선 천국, 낙선 지옥’의 생계형 정치인들과 달리 부업형 정치는 ‘당선 천국, 낙선 유턴’이다. 돌아갈 곳이 있는 이들은 그리 절박하지 않다.

 

물론 검찰, 법원, 경찰, 병원, 대학에도 정치는 있다. 검찰총장, 법원장, 대학 총장 정도 하면 “나도 정치 좀 안다”고 한다. 그러나 엘리트 집단의 내부 정치와, 유권자가 무학(無學)부터 박사까지 다양한 프로 정치 세계는 장르부터 다르다. 물에 뜬다고 다 수영이 아니다. 정치는 우리 편을 늘리고 적을 줄이고 국민 마음을 사서 정권을 잡고 운용하는 전문 분야다. 3류니 뭐니 욕하면서 계속 보는 게 정치다.

 

그 똑똑한 사람이 정치하더니 바보가 됐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정치적 훈련이 안 된 사람이 정치를 하니 바보가 된다. 그건 정치인에게나 유권자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미국의 오바마와 바이든, 독일의 메르켈, 프랑스 마크롱은 변호사, 과학자, 금융인 같은 부업을 갖고 있었지만 30대부터는 눈만 뜨면 정치를 생각하고 그것으로 먹고살고 인생을 건 프로 정치인이었다.

 

부업형 정치의 국민의힘과 생계형 정당인 민주당이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게 총선이고 대선이다. 인생 2모작이나 노후 대비를 위해 정치를 하는 부업형 정치인들이 정치로 가족을 먹여 살리는 생계형 정치인들을 감당할 수 있겠나. 보수 정당이 선거 때마다 혁신 쇼를 하지 않으려면 장기적 안목을 갖고 프로 정치인을 육성해야 한다. 전문성을 갖추되 정치적 훈련이 된 ‘프로 정치인’은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지지 않는다. 생계형 정당이 정신력이라면 프로페셔널 정당은 실력이다.

조선일보 정우상 정치부장

 

11.10 노조와 야당 빼곤 누구에게도 득 안 되는 ‘노란봉투법’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0회 국회(정기회) 제11차 본회의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 일명 노란봉투법이 재적 298, 재석 174인, 찬성 173인, 반대 0인, 기권 1인으로 가결되고 있다. 2023.11.9. 뉴스1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어제 국회 본회의에서 노란봉투법을 통과시켰다. 법안 처리에 반대해 표결에 불참한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법률안 거부권 행사를 건의할 방침이라고 한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 조항을 고치는 법안이다. 9년 전 쌍용차 파업 손해배상 판결과 관련해 시민단체가 노조원들을 돕겠다며 노란봉투에 성금을 넣어 보낸 데서 이름을 따왔다.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사용자’ 개념을 넓혀 하청업체, 협력사 직원들이 원청업체, 대기업을 상대로 노사교섭을 요구하고, 파업까지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불법쟁의 행위로 손해가 났을 때 노조, 노조원에 연대책임을 물을 수 있던 것을 바꿔 노조원 개개인의 불법성과 책임을 회사 측이 입증하도록 한 부분이다.

노동계는 법안이 통과되면 노사 간 소통이 쉬워지고, 무분별한 손해배상 소송이 줄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경제계는 국내에서 정상적 기업 활동이 어려워질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대기업의 경우 수백, 수천 하청·협력업체의 표적이 돼 쟁의가 일상화된다는 것이다. 불법쟁의 노조원의 책임을 회사가 일일이 구분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만큼 결국 손해배상 청구가 어려워져 산업 현장이 무법천지가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노조 쪽으로 힘의 균형이 심하게 쏠린 한국의 노사관계를 고려할 때 경제계의 걱정이 지나치다고 할 수 없다. 하청·협력업체 쟁의가 많아지면 대기업은 국내 기업 대신 해외 하청을 늘릴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한국에서 손해배상 청구는 불법쟁의에 대항할 사측의 유일한 수단이다. 이 권리가 제약되면 쟁의를 통제할 방법이 없어져 강성노조의 요구에 휘둘리게 된다.

결국 노란봉투법 시행은 일자리 해외 유출, 산업현장 혼란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그로 인한 피해는 사회 진출을 앞둔 청년들이 보게 된다. 야당은 이런 부작용들에는 눈을 감고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노동계 지지를 얻을 수 있다면 산업 생태계가 무너져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무책임한 정치가 아닐 수 없다.

동아일보 사설

 

11-10 직무정지 노린 ‘李 수사 검사 탄핵’ 발의, 헌법 농단이다

국회는 재적 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공직자의 탄핵을 소추할 수 있다(헌법 제65조). 그러나 ‘직무 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경우’로 제한하고 있고, 탄핵은 파면을 의미하므로 위반 정도가 매우 중대하고 구체적이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헌법 총강(제7조)에서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더더욱 탄핵소추가 정파적으로 악용돼선 안 된다.

더불어민주당이 9일 발의해 본회의 보고까지 마친 이정섭 수원지검 2차장검사와 손준성 대구고검 차장검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이런 기본 원칙에서 현저히 일탈했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소추안도 마찬가지다. 이 차장검사는 대북송금 사건과 법인카드 유용 사건 수사를 지휘한다. 탄핵소추안 의결만으로 검사 권한이 정지된다는 점에서 이런 수사를 방해하는 결과도 초래한다. 민주당의 ‘탄핵소추 사유’를 보면, 직무 집행과 관련된 내용은 범죄기록 수사기록 무단 열람 등 추상적인 내용이고, 구체적인 것은 스키장 리조트 이용, 김학의 재판 증인 면담, 자녀 초등학교 입학을 위한 위장 전입 등이다. 중대하고 구체적이라고 보기 힘들다. 탄핵과 민형사상 책임을 분리한 헌법 취지에 비춰보면 더욱 그렇다. 핼러윈 참사와 관련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헌법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기각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손준성 검사의 경우, 이른바 ‘고발 사주’ 사건이 발생한 지 1년 반이 지났고, 이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기소로 재판을 받고 있어 구색 맞추기 의심도 부른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 9월 안동완 부산지검 2차장검사에 대한 탄핵소추안도 발의해 통과시켰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보복 탄핵, 협박 탄핵, 방탄 탄핵”이라고 비판한 이유다. 권위 있는 헌법학자인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직자가 단순히 무리한 행위를 했다고 파면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면서 “그저 직무정지가 목적이라면 탄핵의 본질을 정치공세 수단으로 오남용하는 것”이라고 밝혔는데, 헌법 농단이라는 취지로서 정확한 지적이다.

민주당은 탄핵소추안들이 72시간 내에 표결이 이뤄지기 어렵다고 보고 철회한 뒤 재발의할 것이라고 한다. 국회법의 ‘보고 뒤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라는 명문은 보고 자체가 곧 절차의 시작임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일사부재의 원칙’(국회법 제92조)을 위반한 발상이다.

문화일보 

 

11.10 “I am 신뢰에요” “미스터 린튼”…안 한 것만도 못한 ‘구분짓기’ 영어

 
 

최근 두 사람의 영어 표현이 화제다. 하나는 전 펜싱 국가대표 남현희씨의 재혼 상대였던 전청조씨의 “I am 신뢰에요.” 다른 하나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을 향해 한 “미스터 린튼(Mr. Linton)”이다.

 

한쪽은 사기 혐의로 구속된 사람의 엉터리 영어이고 다른 쪽은 아이비리그 출신 정치인의 문법을 갖춘 영어다. 그러나 공통점도 있다.

 

불필요한 영어, 반감만 일으켜

첫째, 쓸 필요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굳이 썼다는 점, 둘째, 그로 인해 비웃음이나 비난 등 역효과를 일으켰다는 점, 셋째, 둘 다 ‘구분짓기’를 위해 사용된 영어라는 점이다.

 

전씨가 문법도 맞지 않게 영어를 섞어 쓴 이유는 “뉴욕으로 유학 가서 승마 선수를 한 재벌가의 숨겨진 3세” 행세를 하기 위해서다. 이게 영화였으면 ‘너무 상투적인데?’라고 했을 것이다. 사기 치는 사람이 ‘유학’과 ‘영어’를 동원하는 건 봉준호 감독의 블랙코미디 ‘기생충’(2019) 등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나온 설정이니 말이다. 하지만 전씨 사건으로 현실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는 게 재확인됐다.

영어를 능력의 상징으로 착각
전청조는 ‘계급적 허세’ 드러내
이준석은 은연중에 인종차별
한국 사회의 배타성 돌아봐야

 ▲지난 4일 부산에서 열린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왼쪽 뒷모습)의 토크에 참석해 경청 중인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오른쪽). [연합뉴스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사회학자 최샛별 이화여대 교수는 논문에서 한국사회가 “영어가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넘어서 그 자체가 ‘능력’이자 (…) 계급적 차이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는 씁쓸한 현실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회학자 부르디외의 이론을 적용해서 보면, 한국에서 영어는 강력한 문화자본이며 엘리트 계층이 다른 계층으로부터 ‘구분짓기(distinction)’하는 수단으로 쓰인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상류층을 가장하기 위해 영어를 쓰는 사례가 계속되는 것이다. 비록 전씨의 경우에는 그 영어가 너무 허술해서 웃음거리 유행어가 되고 말았지만 말이다.

 

한국만 이런 건 아니다. 영어의 종주국인 영국에서는 과거에 교양 있는 사람으로 행세하려면 불어가 필수였다. 19세기 영국 고전문학 『제인 에어』를 보면 거만한 귀족 잉그램 남작부인과 그 딸이 오로지 영국인만 있는 자리에서 모녀끼리 굳이 불어로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의 불어는 완벽했지만 그 쓸데없는 사용은 잘난 척과 속물근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러한 외국어 사용이 계급적 ‘구분짓기’라면, 이준석 전 대표가 지난 4일 그의 부산 토크쇼에 찾아간 인요한 혁신위원장과의 면담을 영어로 거절한 것은 인종적 ‘구분짓기’로 여겨져서 더 큰 논란이 되고 있다. 이 전 대표는 “You became one of us but you don’t look like one of us as of now(당신은 우리의 일원이 됐지만, 아직은 우리 일원 같이 보이지 않습니다)” 등 여러 말을 영어로 했다.

 

 ▲2021년 3월 미국 애틀랜타 아시아계 대상 총격 사건 당시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다룬 CNN 방송과 인터뷰하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 K팝 가수 에릭 남. [유튜브 캡처]

 

연세대 의대 교수인 인 위원장은 서구인 외모지만 한국에서 나고 자란 자칭 ‘순천 촌놈’이다. 독립유공자 조부, 6·25 참전용사 부친 등 대를 이어 한국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특별귀화 1호’에 올랐다. 한마디로 한국인이다. 그런 그에게 굳이 영어를 쓴 것은 “‘너는 우리 국가의 일원으로 인정할 수 없다’라는 ‘헤이트 스피치’(혐오발언)”이며 (금태섭 전 의원 신당의 곽대중 대변인), “노골적으로 상대를 외국인 취급하는 배타적 행위”(정의당 이재랑 대변인)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특히 정치권 바깥에 있는 나종호 예일대 교수의 일침이 반향이 컸다. “평생을 미국에서 자란 한국계 미국인 2세에게 한국계라는 이유로 미국의 유력 정치인이 공개석상에서 한국어로 이야기를, 그것도 비아냥대면서 했다면 그 사람은 인종차별로 퇴출입니다.” 컬럼비아대 경제학 박사 출신 윤희숙 국민의힘 전 의원도 “미국에서라면 진짜 퇴출”이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둔감한 행위라면서 이 전 대표의 사과를 촉구했다.

 

“인종차별은 과도한 프레임”이란 반박도 있다. 그러나 한국계 미국인 인기가수 에릭 남의 경험에 따르면 인종차별은 극단적인 혐오범죄뿐만 아니라 일상적이고 미묘한 형태로도 벌어지며 그 또한 피해자에게 깊은 상처를 준다. 그는 지난 2021년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다룬 미국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애틀랜타가 고향인데 종종 “어디 출신인가” “영어를 어디서 배웠냐” 등의 질문을 받는다며 그럴 경우 “나는 여기에 속하지 못하나? 내 정체성은 뭐지?”라고 느끼게 된다고 했다. 영어 면박을 들었을 때 인 위원장의 심정도 똑같았을 것이다. 실제로 인 위원장은 “엄청 섭섭했다”라고 밝혔다.

 

이 전 대표가 이후 ‘실수했다’고 사과했으면 논란은 가라앉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인종차별 비난에 “어이가 없는 상황”이라며 인 위원장의 “언어 능숙치”를 고려해 “뉘앙스”를 전달하기 위해 영어로 말했으며 “정중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미스터 린튼’이 아니라 ‘닥터 린튼’

그의 영어가 과연 뉘앙스를 전달할 수 있을 정도로 정교했는지에는 대해서는 말을 아끼겠다. 기자도 영어신문 경력 20년에 영국 유학을 다녀오긴 했으나 늘 영어 실력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다만 “뉘앙스”를 전달하는 영어를 “정중하게”하고 싶었다면 시작부터 ‘미스터 린튼’이 아니라 ‘닥터 린튼(Dr. Linton)’이어야 했다는 지적은 하지 않을 수 없다.

 

영미권에서 상대가 의사인 걸 뻔히 알면서 ‘닥터’가 아닌 ‘미스터’라고 몇 번씩 부르는 것은 두 가지 경우뿐이다. 첫째, 기싸움을 하며 상대를 얕잡아볼 경우. 둘째, 영어 “뉘앙스”를 잘 몰라 실수한 경우. 이건 할리우드 영화에도 자주 나오는 장면이라 유학을 가야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번 논란은 생산적인 면도 있었다. 아직도 ‘단일민족’이란 환상이 남아있는 우리에게 한국은 다민족국가이며 우리도 은연중에 인종차별을 저지를 수 있음을 일깨워주었다. 인 위원장처럼 푸른 눈의 한국인뿐만 아니라 어두운 피부의 한국인에게 인종차별적 언행을 한 적이 없는지 스스로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문소영 중앙SUNDAY 문화전문기자

 

11.11 민주당 의원들 ‘개딸’에 “질식할 지경”, 국회가 질식할 지경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강성 지지층이 김진표 국회의장 휴대폰 번호가 명기된 글을 SNS를 통해 살포하며 이정섭 수원지검 2차장 등에 대한 탄핵안의 신속 처리를 압박했다. 9일 본회의 종료로 이 차장 등에 대한 탄핵안이 처리되지 못하자 10일 김 의장이 본회의를 열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들은 “김진표는 대통령에게 넘어간 2중대”라고도 했다. 이 대표를 수사 중인 검사들에 대한 탄핵에 민주당이 나서도록 압력을 가한 것도 ‘개딸’로 불리는 강성 지지층이었다. 민주당 강경파 모임 처럼회가 이들의 요구를 수용해 탄핵안을 밀어붙였다고 한다. 피의자가 수사 검사를 탄핵하는 초유의 반민주적 반헌법적 사태가 이렇게 진행되고 있다.

 

‘개딸’들은 최근 일부 비이재명계 의원들 지역구에 ‘나에게 한 발의 총알이 있다면 매국노를 처단할 것’이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내걸고 있다. 지역구 사무실 진입을 시도하기도 했다. 지난 9월엔 이 대표 지지자로 추정되는 50대 여성이 국회에서 흉기를 휘둘러 경찰관 2명이 피를 흘리는 부상을 입었다.

 

▲김용민 의원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동관 방통위원장 탄핵 등과 관련 본회의 개의 요구를 위해 김진표 국회의장실로 들어서고 있다./뉴시스

 

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이 같은 상황에 대해 9일 “질식할 지경”이라고 했다. “조금이라도 이 대표에게 쓴소리를 하거나 다른 목소리를 내면 그냥 ‘너는 역적’ ‘너는 수박’ 그런 분위기가 꽉 차 있다”고 했다. ‘당내 패권주의, 사당화, 팬덤 정치’ 때문에 “당내 민주주의가 완전히 와해됐다”고도 했다. 김종민 의원은 ‘이 대표 마음대로 공천하려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질문에 “전 세계에서 그렇게 하는 정당은 조선노동당하고 공산당밖에 없다”고 했다. 민주당 의원들이 당내 분위기를 공산당에 비유하고 “질식할 지경”이라고 호소하지만 이 대표는 말리는 시늉만 할 뿐이다.

 

민주당의 이런 상황은 국회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압도적 의석을 갖고 못 할 일이 없는 다수당이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 장관을 마구잡이로 탄핵해 물난리 때 제대로 대처도 못 하게 하더니 이제 취임한 지 석 달도 안 된 방통위원장을 정략적으로 억지 탄핵하려 한다. 자신들이 정권을 잡았을 땐 차마 처리하지 못했던 문제 법안들을 마구 통과시키고 있다. 어차피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정치적 이득만 취하려는 것이다. 피의자가 수사 검사를 탄핵하는 무도한 행태는 ‘개딸’식으로 운영되는 정당엔 큰일도 아닐 것이다. 그야말로 국회가 질식할 지경이다.

조선일보 사설

 

11.11 ‘이스라엘보다 불안하고, 가자지구보다 안전한’ 서울 

우크라이나·중동·대만 해협·한반도 同時 비상 걸리면…
이재명 대표, 대한민국이 어떤 세계 속에 사는지 알아야

 노란봉투법을 통과시키고 방송 3법을 밀어붙이는 이재명 대표는 자못 위풍당당(威風堂堂)했다. 지팡이를 짚고 초췌한 모습으로 법원의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했던 때가 언제냐 싶다. 다음 날은 자신을 수사하던 검사들을 탄핵하는 일을 진두지휘했다. 뻣뻣했던 윤석열 대통령이 허리 굽히며 부탁한다는 쪽으로 변하자 고개를 치켜세운 이 대표가 대통령과 대조돼 더 크게 확대돼 보인다. ‘귀신에 씌었다’는 말이 떠오를 만큼 뭔가 단단히 잘못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국민은 쥐덫에 갇혀 뒷문이 닫히지는 않는지 노심초사(勞心焦思)하던 엊그제 그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 대표는 그런 국민의 기억을 의심하거나 허장성세(虛張聲勢)로 그 기억력을 덮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개구리도 크게 점프하기 전에는 잔뜩 몸을 움츠린다. 며칠 따뜻한 바람이 분다 해서 봄이 온 양 여기고 덤벙대면 눈보라를 만나게 되는 게 세상 이치다.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이 대표가 몸을 더 낮췄더라면 그릇 크기가 달리 보였을지도 모른다. 대통령이 예산 국회 연설하는 본회의장에서 잘 알지도 못하는 야당 의원들에게 손을 내밀며 허리 굽혀 인사를 했다. 여러 민주당 의원이 대통령을 외면하는 장면이 TV 카메라에 잡혔다. 어떤 의원은 대통령에게 ‘이제 물러나시지요’라고 했다는 걸 무용담(武勇談)인 양 자랑하기도 했다.

 

이 대표가 지금 국회에서 벌이는 공세(攻勢)는 정권에 대한 반대 표시가 아니다. 정부를 마비시키겠다는 것이다. 민심(民心)의 아랫도리 온도가 벌써 변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정부가 마비되면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국민은 팍팍한 살림, 쪼개지는 나라의 책임을 대통령과 여당에게 물었다. 그 결과가 강서구청장 선거다.

 

대통령은 선거 결과를 민심의 경고라고 받아들이고 달라지려고 하고 있다. 성과야 어찌 됐건 인요한 혁신위는 이 대표와 민주당보다 몇 배 국민 입에 오르내린다. 민주당의 옛 원로(元老)는 ‘내가 죽었다는 부음(訃音) 말고는 어떤 비판의 소리도 잊혀지는 것보다는 반갑다’고 했다. 그 기준으로 보면 민주당은 낙제점이다.

 

이 대표는 대한민국이 어떤 세계 속에 있는지를 모르고, 민주당은 지금이 어느 시대인지 모르는 것 같다. 우크라이나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이 지척이고,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은 대만해협과 한반도와 연동(連動)돼서 움직인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터지자 미국은 우크라이나로 보내려던 수십억 달러 군사 지원을 이스라엘로 돌렸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전쟁을 ‘계속할’ 무기를 보내고, 이스라엘엔 전쟁에서 ‘승리할’ 무기를 보낸다.

 

미국은 여러 전쟁을 동일한 비중(比重)으로 대처할 수 없다. 국력의 한계 때문이다. 대만해협에서 중국군과 미국·일본·대만군이 부딪치면 미국의 각 전쟁에 대한 우선(優先) 순위가 바뀔 것이다. 이와 동시에 혹 시차(時差)를 두고 한반도에 이상(異狀) 상황이 터지면 또 한 번 우선 순위가 뒤바뀔 것이다. 이 대표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다. 그런 입장에서 이런 세계와 대한민국이 걱정 되지 않는가.

 

얼마 전 이 대표의 ‘더러운 평화가 전쟁보다 낫다’는 말에 어느 지인(知人) 이야기가 떠올랐다.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옆자리 앉은 이스라엘 사람에게 ‘테러 때문에 불안하시겠어요’라고 말을 건네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나라가 있어서 든든해요. 내 부모님 시절엔 나라가 없었어요. 살기 불안하지 않느냐 하지만 서울보다는 안전할 거예요.’ 물론 옆자리 승객이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사람이었다면 다른 대답이 돌아왔을 것이다. “당신네는 나라가 있어 좋겠어요. 우린 나라가 없어요. 살기 불안해요.”

 

이스라엘 사람의 ‘든든함의 뿌리’도 팔레스타인 사람의 ‘불안함의 뿌리’도 나라가 있고 없음의 차이다. 우리도 35년간 나라 없는 민족으로 살았다. 나라를 되찾아 대한민국을 세운 지 75년이 됐다. 대한민국 국민의 80% 이상이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 그들은 할아버지·할머니에겐 나라가 없었다는 사실을 모른다. 나라는 본래부터 있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나라는 애써 지키고 정성 들여 돌보지 않으면 무너지고 사라지는 인공(人工)의 소산(所産)이다. 누가 이 사실을 일깨워야 하는가. 그것은 지도자인 대통령과 야당 대표 몫이다.

 

이스라엘 사람에겐 북한 핵폭탄 아래 사는 한국이 이스라엘보다 불안스럽게 보인다. 팔레스타인 사람에겐 가자지구보다 조금 안전한 곳이 대한민국이다. 이 사실을 잊으면 나라가 위태롭다.

조선일보 강천석 고문

 

11.11 ‘돈봉투 의혹’ 송영길 “한동훈 이 어린놈이…반드시 탄핵해야”

출판기념회서 “한동훈 머리에 물병 던지고 싶다”
검찰엔 “XX놈들 이게 무슨 중대 범죄라고”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열린 ‘송영길의 선전포고’ 출판기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60)가 자신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을 욕설을 섞어가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50)에 대해서는 “건방진 놈” “어린놈”이라고 비하하며 반드시 탄핵시켜야 된다고 주장했다.

 

송영길 전 대표는 9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열린 자신의 책 출판기념회에서 “한동훈을 반드시 탄핵해야 한다. 이런 건방진 놈이 어디 있나. 이 어린놈이 국회에 와서 (국회의원) 300명 자기보다 인생 선배일 뿐만 아니라 한참 검찰 선배를 조롱하고 능멸하고”라며 “이런 놈을 그냥 놔둬야 되겠나. 내가 물병이 있으면 물병을 머리에 던져버리고 싶다”고 했다. 송 전 대표가 해당 발언을 할 때 객석에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송영길 전 대표는 행사에 참석한 민주당 의원들에게도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 전해달라며 “한동훈 반드시 탄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송영길 전 대표는 돈봉투 사건과 관련해서는 “저 때문에 지금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불려가서 조사를 받고 그러니까 사실 너무 괴롭고 힘들고 죄송스럽다”며 “이게 무슨 중대한 범죄라고 6개월 동안 이 XX을 하고 있는데 정말 미쳐버릴 것 같다. XX놈들 아닌가”라고 했다.

 

이어 “(돈봉투 사건과 관련) 정치적 책임은 지겠지만 몰랐던 일을 알았다고 할 수는 없지 않나”라며 “(사건 연루자들에게서) 송영길이 시켰다는 말 안 나오지 않나. 6개월 동안 뭐 했나”라고 했다.

 

송영길 전 대표는 검찰을 향해 영부인 김건희 여사 관련 수사나 하라며 “뭐 하는 짓이야 이 XX놈들이”라고 다시 한번 욕설을 했다.

 

 ▲한동훈 장관이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의 모두발언을 듣고 있다. /뉴스1

 

송영길 전 대표는 “검찰독재 수괴를 반드시 처리하기 위해 선봉에 서겠다”며 “잠을 자다가도 피가 끓어서 몽둥이 들고 서울중앙지검에 쫓아가는 꿈을 많이 꾼다”고도 했다.

 

한편 검찰은 2021년 송영길 당대표 후보 캠프 관계자들이 민주당 의원 등에게 돈봉투를 전달했다는 의혹을 수사 중이다. 앞서 송영길 전 대표의 보좌관 박모씨는 민주당을 탈당한 윤관석 무소속 의원에게 현금 6000만원을 전달한 혐의를 법정에서 인정했다. 지난 8월 구속 기소된 윤관석 의원은 그동안 모든 범행을 부인하다 재판이 시작되자 혐의를 인정했다. 검찰은 지난 2일 돈 봉투를 받은 혐의가 있는 임종성·허종식 민주당 의원에 대한 압수 수색도 벌였다. 그동안 돈 봉투 제공자에게 집중돼 있던 검찰 수사가 수수자로 본격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야당 인사들은 검찰의 야당 탄압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번 수사는 검찰이 시작한 것이 아니라 민주당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의 휴대전화 통화 녹취록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문제가 된 것이다. 녹취록에는 윤 의원 등이 돈을 달라고 요구하고 전달한 정황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조선일보 김명일 기자

 

11.11 뇌물·성추행에도 탄핵 없다… 의원 37명, 3심까지 버티며 특권 누려

검찰총장이 말한 ‘비위 금배지들’

장관과 판사 등 공직자 탄핵 소추를 남발하던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대표 사건 수사 검사의 탄핵소추안까지 발의하자, 법조계에서는 “정작 범죄로 기소된 국회의원들은 3심까지 버티며 임기가 끝날 때까지 특권을 누린다”는 비판이 10일 나왔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탄핵소추안이 발의된 지난 9일 “뇌물을 받은 의원, 불법 정치 자금을 받은 의원, 보좌관을 추행한 의원, 피해자 할머니의 보조금을 빼돌린 의원, 국회에서 폭력을 행사한 의원, 부동산 투기를 한 의원, 가상자산을 국회에서 투기한 의원 등 이들에 대한 탄핵이나 제명은 우리 현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공직자 탄핵은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의 중대한 헌법·법률 위반이 있는 경우에 인정된다. 그렇게 따지면 정말 ‘탄핵’되어야 할 대상은 범죄 혐의가 드러난 국회의원 아니냐는 것이다. 우리 헌법과 법률에 국회의원 탄핵 조항은 없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재판 또는 수사를 받고 있는 21대 현역 의원은 최소 37명이다. 민주당에서 탈당해 무소속이 된 박완주 의원은 보좌관을 추행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그는 지난 2021년 보좌관이었던 A씨를 강제 추행하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게 한 혐의(강제추행치상)를 받는다. 작년 4월 A씨가 민주당에 박 의원을 신고한 직후 A씨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준 혐의도 추가됐다. 지난 7월 불구속 기소돼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뇌물 또는 불법 정치 자금 수수로 기소되거나 수사받는 의원은 10명에 달한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은 2020년 2~12월 한 사업가 측으로부터 용인 물류 단지 개발, 태양광 사업, 발전소 납품 등 청탁과 함께 5차례에 걸쳐 총 6000만원을 받은 혐의(뇌물수수, 알선수재 등)로 지난 3월 불구속 기소돼 서울중앙지법에서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노 의원에 대한 체포 동의안은 민주당 주도로 국회에서 부결됐다.

 

국민의힘 출신 하영제 의원은 지난 5월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하 의원은 2020~2022년 선거 비용 등 명목으로 지역 단체장, 도의원 등에게 1억6750만원의 불법 정치 자금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다. 하 의원에 대한 체포 동의안은 국회를 통과했으나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민주당 임종성·허종식 의원과 무소속 윤관석·이성만 의원도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사건’으로 검찰 수사나 법원 재판을 받고 있다. 윤관석 의원은 이성만 의원 등과 공모해 2021년 4월 말 송영길 전 대표 당선을 목적으로 현역 의원들에게 제공할 현금 6000만원을 달라고 하고, 실제로 두 차례에 걸쳐 이 돈을 받았다는 혐의로 지난 8월 구속 기소됐다. 윤·이 의원은 의혹이 제기되자 민주당을 탈당했다. 검찰이 돈봉투를 받은 정황이 있다고 보는 민주당 현역 의원은 최소 19명이라고 한다.

 

민주당 기동민·이수진(비례대표) 의원도 2016년 ‘라임 펀드 사건’ 핵심 인물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에게서 각각 1억여 원과 5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 2월 불구속 기소됐다.

 

민주당에서 제명된 윤미향 무소속 의원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후원금 횡령 등 혐의로 2020년 9월 기소돼 지난 9월 항소심 재판에서 의원직 상실형에 해당하는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윤 의원 사건은 ‘재판 지체’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제 사건은 대법원으로 올라갔고 윤 의원은 의원 임기를 다 채울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김경협 의원은 토지거래 허가 구역 내 땅을 불법으로 사들인 혐의로 2022년 5월 기소돼 지난 5월 1심에서 의원직 상실형인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김 의원의 항소로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김 의원 역시 의원 임기를 채울 전망이다.

 

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국회의원실에 허위 인턴을 채용해 세금을 빼돌린 혐의(사기)로 2021년 약식기소(벌금형)됐다가 본인 요구로 정식 재판으로 넘어갔는데, 다음 달 20일 1심 결과가 나온다. ‘국회 패스트트랙 폭행 사건’의 경우, 여야 현역 의원 11명이 3년 가까이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무소속 김남국 의원은 최소 60억원어치의 가상화폐 ‘위믹스’ 코인을 보유했던 것과 관련해 정치자금법 위반, 조세 포탈, 범죄 수익 은닉 등으로 고발돼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김 의원은 국회 상임위 도중 코인 거래를 하는 등 이해충돌 논란이 불거지자 민주당에서 탈당했다.

조선일보 이세영 기자

 

11.13 노인 폄하하던 사람들 이번엔 “어린×” 훈계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9일 자신의 책 출판기념회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탄핵을 주장하며 거친 언사를 쏟아내고 있다. 그는 “이런 건방진 놈이 어디 있나. 어린 놈이 국회에 와 가지고 (국회의원) 300명, 자기보다 인생 선배인 사람들을 조롱하고 능멸하고, 이런 놈을 그냥 놔둬야 되겠냐”고 했다. /유튜브 '송영길TV'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탄핵을 주장하며 “이런 건방진 ×이 어디 있나. 어린 ×이 국회에 와 가지고 (국회의원) 300명, 자기보다 인생 선배인 사람들을 조롱하고 능멸하고, 이런 ×을 그냥 놔둬야 되겠냐”고 했다. 이어 “물병이 있으면 머리에 던져버리고 싶다”고도 했다. 사석에서 한 말도 아니고 자신의 책 출판기념회에 찾아온 수많은 내빈 앞에서 한 말이다. 5선 의원이자 여당 대표까지 지낸 사회 지도층 인사의 품격이라곤 전혀 느낄 수 없는 천박한 언사였다.

 

운동권 ‘86 세대’ 맏형 격인 송 전 대표는 올해 60세다. 국회의원 배지를 처음 달았을 때가 37세, 인천시장에 당선됐을 때가 47세였다. 한 장관은 올해 50세다. 웬만한 단체, 조직에서 간부 또는 임원이거나 고참 대접을 받는 나이다. 물론 국회에 올 때마다 사사건건 민주당과 각을 세우는 한 장관의 태도에 화가 나는 심정은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다. 그렇다 해도 30대 때부터 기득권 정치를 해온 송 전 대표가 50세 장관에게 ‘어린 ×’ ‘건방진 ×’ 운운할 입장은 아니다. 송 전 대표는 2021년 당대표 출마 선언문에서 “꼰대 정치를 극복해야 한다”고 했는데 송 전 대표 자신이 꼰대였다.

 

송 전 대표의 거친 언사는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으로 자신을 수사하는 검찰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그는 “이게 무슨 중대한 범죄라고 6개월 동안 이 지×을 하고 있는지 미쳐버릴 것 같다. 미친 ×들 아니냐”고 했다. 돈 봉투 살포는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지는 일인데 자신 주변에 대해서만 수사가 이뤄지는 게 억울하고 못마땅하다는 취지였다. 자신들은 언제나 정의롭다는 86 운동권 특유의 도덕적 우월주의다.

 

그런 사고방식이 나이 관념에도 녹아들었다. 자신들보다 어리면 무시하고, 늙으면 비하했다. 19년 전 이들 입에선 “60대, 70대는 투표 안 하고 집에서 쉬셔도 된다” “50대가 되면 사람이 멍청해진다. 60세가 넘으면 책임 있는 자리에 있지 말자” 같은 말들이 쏟아졌다. 그랬던 사람들이 이제 60대가 되자 50세 장관을 가리켜 ‘어린 ×’ ‘건방진 ×’이라 공격한다. 자신들이 세상의 중심이고 정의의 원천이란 인식이 아니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조선일보 사설

 

11.13 송영길, 50세 장관에 “어린놈”… 커지는 86 운동권세대 청산론

30대 정계입문 운동권 세대들
기득권 내세워 수십년간 권력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열린 ‘송영길의 선전포고’ 출판기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뉴스1

 

송영길(60)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9일 출판기념회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어린 놈” “건방진 놈”이라 한 발언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한 장관은 1973년생으로 올해 50세다. 송 전 대표는 대표적인 86 운동권 정치인으로 학생운동 경력을 토대로 30대부터 국회의원과 지자체장을 지냈다. 수십 년 동안 정치적 기득권을 누린 세대의 기득권 연장 인식이라는 비판이 ‘86 청산론’으로 번지고 있다.

 

연세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송 전 대표는 30대에 국회의원, 40대에 인천광역시장, 50대에는 총선에서 180석을 차지한 제1당 대표를 지냈다. 그는 2021년 당대표 출마 선언문에서 “꼰대 정치를 극복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출판기념회에서 50세 장관 탄핵을 주장하며 “이런 건방진 놈이 어디 있냐, 이 어린 놈이 국회에 와서 인생 선배, 한참 검찰 선배를 조롱하고 능멸하고 이런 놈을 그대로 놔둬야 되겠느냐”고 말했다. “물병을 머리에 던져버리고 싶다”고도 했다.

 

송 전 대표는 당대표 선거 때의 ‘돈 봉투 사건’이 불거져 민주당을 탈당한 상태고, 총선 불출마 의사도 밝혔다. 하지만 당 안팎에선 여건만 조성되면 내년에도 출마를 강행할 것이라 예측한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특유의 86세대 중심적 사고가 여전하다는 것이다.

 

한 장관은 11일 입장문을 내고 “어릴 때 운동권 했다는 것 하나로 사회에 생산적 기여도 별로 없이 자그마치 수십 년간 자기 손으로 돈 벌고 열심히 사는 시민들 위에 도덕적으로 군림했다”며 “고압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생각으로 대한민국 정치를 수십 년간 후지게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86세대의 특권 의식을 ‘운동권 전관예우’라고 했다.

 

송영길 전 대표의 ‘한동훈 어린 놈’ 발언에 대해 대기업 부장인 이모(45)씨는 “요즘 50이면 기업에서 임원 못 달면 눈치 볼 나이”라고 말했다. 김재섭(36) 국민의힘 도봉갑 당협위원장은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몸부림치던 독재 정권과 지금의 86세대가 다른 점이 뭔가”라고 말했다. 야권 3040에서도 “언제까지 할 생각이냐”며 반발이 커지고 있다.

 

송영길 전 대표는 1963년생으로 연세대 경영학과 81학번, 1984년에 연세대 총학생회장이었다. 1987년 출범한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보다 약간 시기가 앞선 86 운동권의 ‘맏형’ 격이다. 민주당에는 86세대를 포함해 운동권 출신 의원만 70여 명에 달한다. 대한민국 최강 카르텔은 ‘운동권 카르텔’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송 전 대표는 1994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2000년 16대 총선 때 인천 계양에서 새천년민주당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37세에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인천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다. ‘40대 광역시장’은 지금도 자랑거리다. 그는 국회의원만 같은 지역구에서 5선을 했고, 2021년 5월엔 전년도 총선에서 180석을 차지한 집권 여당의 당대표가 됐다. 정치인으로 할 수 있는 건 대통령 빼고 다 한 셈이다.

▲그래픽=정인성

 

송 전 대표와 함께 국회로 진입한 운동권 출신이 16대의 임종석(당시 34세) 전 의원, 17대에선 조정식(당시 41세) 현 민주당 사무총장과 우상호(42세), 윤호중(41세), 이인영(40세), 정청래(39세) 의원 등이다. 임종석은 51세에 대통령 비서실장이 됐다.

 

야권에서도 ‘86세대 청산론’ ‘교체론’이 나오지만, 송 전 대표를 비롯한 86세대 정치인 대부분이 내년 총선 출마를 준비 중이다. 민주당에선 86세대 중 우상호 의원을 제외하곤 불출마를 선언한 이가 없다. 정청래, 서영교 최고위원과 조정식 사무총장 등은 당 핵심 요직에 있다.

 

송 전 대표는 출판기념회에서 검찰을 ‘암세포’에 비유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선 “일본 유학 갔다 온 연대 교수 아들로 태어나서 서울 법대 가서 술 먹고 놀면서 고시도 여덟 번 떨어지다가 겨우 합격했다”며 “이 나라를 위해서 뭘 했나,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기를 했나, 평생 갑질만 하고 접대받고”라고 말했다. 여야 인사들은 “송 전 대표의 이 말 속에, 운동권 86세대의 뿌리 깊은 ‘선민 의식’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정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아직도 민주화 그 옛날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文정부 때 한자리 모인 ‘86 핵심’ - 2018년 3월 강원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평창 동계패럴림픽 행사에서 86 운동권 주요 인사들이 당시 문재인 대통령 내외를 수행하며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왼쪽부터 당시 청와대 임종석 비서실장,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의원, 조국 민정수석, 송영길 의원. /연합뉴스

 

86들은 도덕적 문제가 불거질 때도 이런 선민 의식이나 특유의 끼리끼리 문화로 ‘별거 아니다’라는 식으로 덮거나 서로 감싸는 모습을 보여왔다. 송 전 대표는 같은 자리에서 자신의 탈당 계기가 된 돈 봉투 사건에 대해서도 “이게 무슨 중대한 범죄라고 6개월 동안 이 지랄을 하고 있는지. 미친 놈들 아니냐”고 말했다. 선거 캠프 안에서 돈 봉투를 뿌린 정황이 나왔지만 중대 범죄는 아니라는 것이다. 원조 86인 김민석 의원도 “송영길은 물욕이 없는 사람이다. 내가 보증한다”고 하기도 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운동권 86들이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는 것처럼 행세했지만, 실제로 그들과 엮인 돈 문제나 여자 문제 등이 얼마나 많았나”라고 했다.

 

정치권에서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86세대 용퇴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실제 공천이 진행되면 대상자 대부분이 공천을 따낼 거란 예측이 많다.

 

여선웅(40) 전 청와대 청년소통정책관은 “한 86 의원은 이번에 공천을 받으면 일곱 번째다. 30년 동안 누린 혜택을 또 누리겠다는 것”이라며 “70년대생은 86들 수발 들다가 시간 다 보냈고, 이젠 80년대생까지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승환(41) 국민의힘 중랑을 당협위원장은 “386 컴퓨터가 언제 적 얘기인데, 86세대는 운동권으로 별 한번 달았다는 걸로 평생을 누렸다”며 “이젠 깨버려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성수 한양대 교수는 “물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86세대는 이제 한계에 직면했다”며 “내년 총선에서 그 기득권이 많이 무너져 내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박상기 기자  김태준 기자

 
 

11-13 돈봉투 연루 송영길의 “어린놈” 막말, 86정치 본색인가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9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향해 막말을 쏟아낸 것은 품격이나 내용 측면에서 매우 부적절했다. 검찰의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 수사를 비판하는 내용의 저서 출판기념회였다고는 하나 공개석상이다. 5선 의원과 인천시장, 공당 대표까지 지낸 지도층 인사의 발언이 만취한 시정잡배 수준이었다.

송 전 대표는 이날 한 장관을 두고 “이런 건방진 놈이 어디 있나. 어린놈이 국회에 와서 300명 인생 선배, 검찰 선배들을 조롱하고 능멸했다”며 “물병이 있으면 머리에 던져버리고 싶다”고 했다. 검찰의 돈봉투 의혹 수사에 대해선 “무슨 중대한 범죄라고 6개월 동안 이 ××을 하고 있는데 정말 미쳐버릴 것 같다” “뭐하는 짓이야, 이 ×× 놈들”이라고 욕설했다. 그는 2021년 당 대표 경선에서 민주당 의원 20명에게 돈봉투를 돌린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현역 의원을 포함해 주변 인물 10명 가까이 구속됐다. “몽둥이 들고 서울중앙지검에 쫓아가는 꿈을 많이 꾼다”고 분노했는데, 그리 결백하면 증거와 법리로 맞설 일이지 현직 장관에게 저급한 욕설을 퍼부을 일이 아니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인 ‘86세대 정치인’들은 내로남불 행태로 여러 차례 비난을 샀다. 60세의 송 전 대표는 2021년 대표 취임 때 “꼰대 정치 극복” 운운해놓고, 이젠 50세 장관더러 어린놈이라고 비하한다. 운동권 경력을 수 십 년 우려먹는 인사가 수두룩하다. 문제가 불거져도 끼리끼리 덮어주기 일쑤다. 김민석 의원이 “송영길은 내가 보증한다”고 한 것도 그 연장선이다. 시대착오적 행태가 이어질수록 86세대 정치 청산의 당위성은 증폭될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

 
 

11-13 양 노총 겁박해도 노란봉투법 ‘거부권’ 행사해야 한다

양대 노총이 주말인 지난 11일 서울 도심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법(노란봉투법)의 공포·시행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서대문구 서대문역과 종로구 독립문역 사이,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영등포구 여의대로 파크원타워∼서울교 구간에서 차로를 점거하는 바람에 곳곳에서 차량과 사람이 뒤엉키고, 집 안까지 쩌렁쩌렁 울리는 확성기·노래 소음에 시민들과 상인들은 고통스러운 하루를 보내야 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압도적인 의회 의석수를 무기로 지난 9일 노란봉투법을 강행 처리한 것에 맞장구를 친 집회였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을 비판하는 차원을 넘어 심판·퇴진 구호가 난무한 반정부 정치 집회였고, 소음 기준을 넘기기도 했지만, 공권력은 여전히 무기력했다.

이미 알려진 대로 노란봉투법은 위헌적 조항투성이다. 이제까지 불법이었던 파업을 합법화하고, 노조의 손해배상 책임을 면책함으로써 파업을 조장하는 악법이다. 우선, 사용자 범위를 확대해 하청업체 근로자도 원청 업체에 직접 단체교섭을 요구하고, 파업도 할 수 있게 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의 언급대로 일부 기업은 1년 내내 교섭하고, 특히 강성 노조가 장악한 업체는 1년 내내 파업할 우려가 크다. 주장의 불일치로 인한 파업 대상을 ‘근로조건 결정’에서 ‘근로조건’으로 개정함으로써 해고자 복직, 회사 이전 등을 이유로 한 파업도 허용했다. 파업으로 발생한 손해를 입증할 책임을 회사 측에 부여해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자체를 원천 봉쇄했다. 법원이 2009∼2022년 8월까지 확정한 손해배상 청구액 중 99%나 차지하는 민주노총을 위한 특혜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거대 야당이 기어이 경제를 망칠 반(反)시장·반기업·친(親)노조 법을 강행했다. 이 법이 시행되면 기득권을 지키려는 양대 노총의 파업과 반정부 정치 집회는 날개를 달게 된다. 경제 6단체가 13일 대통령의 법률안 재의 요구(거부권)를 호소하고 나선 것은 산업 현장의 고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말해준다. 노조공화국으로 전락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윤 대통령은 기득권 노조가 아무리 힘자랑을 하고 겁박해도 휘둘려선 안 된다. 이런 악법에 대해서는 정부에 이송되는 대로 거부권을 행사하는 게 당연하다.

문화일보 사설

 
 

11-13 검사 탄핵소추 부당성과 진짜 노림수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현 정부 이전에는 노무현·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것 외에 탄핵소추안이 발의된 바 없다. 그런데 최근 임성근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각하결정과 기각결정이 이후에도 더불어민주당의 탄핵소추안 발의가 계속됨에 따라 국회의원의 특권 오남용뿐만 아니라 탄핵소추권 오남용에 대한 비판까지 높아지고 있다.

탄핵이란 고위공직자의 파면을 위한 특별징계절차다. 일반적인 징계절차로 파면하기 어려운 고위공직자에 대해 국회가 탄핵소추를 하고, 헌법재판소가 탄핵 여부의 결정을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탄핵제도는, 하원에서 소추하고 상원에서 결정하는 미국과 달리 사법적 탄핵이어서 정치적 책임을 따지지 않고 법적 책임만 묻는다는 점과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의 중대한 불법을 요구한다는 점은 헌재의 확립된 판례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에 대한 경우도 그렇지만, 특히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수사를 담당하는 수원지검 이정섭 2차장검사에 대한 탄핵소추 사유는 여러 가지 점에서 이해하기 어렵다.

위장전입 문제는 이미 문재인 정부에서도 여러 차례 인사청문 과정에서 지적됐지만, 임명을 강행했던 사례들이 있다. 이를 탄핵소추 사유로 삼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문 정부에서 임명됐던 고위공직자들도 당연히 탄핵됐어야 한다는 것인가? 처가에서 운영하는 골프장 이용과 관련한 특혜성 예약과 이용 편의가 탄핵 사유로 지목된 것이나, 범죄 기록의 무단 열람 등도 그러하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도 탄핵소추 사유로 선거법 위반이 문제됐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공권력을 동원해서 선거에 개입한 게 아니라, 기자들과의 대화 중에 특정 정당을 옹호·지원하는 발언 정도였기에 헌재는 파면해야 할 정도의 중대한 불법은 아니라고 판단해 기각결정을 내렸다. 이 장관에 대한 기각결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면 민주당은 이 검사에 대한 탄핵소추가 헌재에서 기각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을 모르고 강행한 것일까? 수많은 법률전문가의 조언을 받으며, 의원 중에도 법률전문가가 적지 않은 민주당이 이런 판단을 못 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로 인해 온갖 의혹이 난무한다.

가장 큰 의혹은, 이 검사에 대한 탄핵소추를 통해 이 대표에 대한 수사를 지연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헌재의 결정까지 4∼5개월은 걸리고, 그동안 탄핵소추된 공직자는 직무가 정지된다는 점에서 이런 의혹이 근거 없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후임 검사가 사건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검찰 수사 전반에 대한 압박, 나아가 법원에 대한 압박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민주당에 거슬리는 수사와 재판을 했다가는 어떤 험한 일을 당할지 모르고, 더욱이 이 대표가 차기 대통령이 되면 어떤 보복이 가해질지 모른다는 무형의 압력이 점차 가중된다는 것이다.

비단 이 검사의 경우뿐만 아니라, 현재 민주당이 추진하는 탄핵소추 모두에 대해 무리한 탄핵소추이고,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의혹이 일파만파로 커지는 무리한 탄핵소추는 향후 대한민국의 정치와 법치의 발전에도, 그리고 민주당의 장래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화일보

 
 

11-13 법리 문제 많고 민생 외면한 野 폭주 4법

 
 

이규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9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 법률안(일명 ‘노란봉투법’)과 한국방송(KBS)과 문화방송(MBC), 교육방송(EBS) 등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에 관한 방송 3법(방송법, 방송문화진흥회법, 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 법안들은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이 개정안에 반발해 모두 본회의장을 퇴장한 가운데 강행 처리됐다.

노란봉투법에는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그 범위에 있어서는 사용자로 본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또, ‘노동쟁의’의 대상을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사항에서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으로 확대해 쟁의행위 범위를 넓히고, 불법 파업 등으로 손해배상 판결이 내려질 때 각자의 책임 범위를 산정하지 않고 조합원 모두가 거액의 손해발생액을 부담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의 조문도 신설했다. 아울러 ‘신원보증인은 단체교섭, 쟁의행위, 그 밖의 노동조합의 활동으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는 배상할 책임이 없다’는 내용까지 추가했다.

한국노총은 이날 국회 앞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여야 모두 말로만 민생을 외치지 말고 재벌 개혁과 노동 존중, 그리고 경제민주화를 통한 양극화 해소를 위해 제21대 국회가 끝나기 전에 이것만은 반드시 해결하라고 촉구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개정안이 ‘실질적 지배력’이 미친다는 이유만으로 무분별하게 교섭을 요구하고, 폭력적인 파업이 공공연해질 우려가 있으며 불법행위는 그 책임을 면제받게 될 것이고, 그 결과 산업 현장이 초토화돼 일자리는 사라지게 되며, 국가 경쟁력은 추락하고 말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이 장관은 원청에 단체교섭 의무를 인정하는 것은 대법원 판례와 어긋난다는 점도 비판했다. 이 장관은 노동조합의 불법행위까지 보호하는 것은 평등의 원칙에 어긋나고 죄형법정주의에도 반해 위헌의 소지가 크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 밖에 노란봉투법에 대해서는 한국경영자총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한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 6단체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경기침체에 빠진 우리나라 산업 현장의 불법 쟁의행위를 면책함으로써 국내 기업의 해외 이전을 부추기고 기업 경영을 더 위축시켜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릴 우려가 크다. 그런데도 야권이 여당의 반대에도 아랑곳없이 법안을 강행 처리한 것은 국가 경쟁력이나 민생보다는 총선용 ‘노동자 표(票)’ 지키기에 나선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방송 3법은 현재 9∼11명인 공영방송의 이사 수를 21명으로 크게 늘리는 동시에 정치권의 이사 추천 비율은 크게 줄어들게 하는 대신, 사장 선임 때 100명의 ‘사장후보국민추천위원회’가 후보를 추천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그간 야권 친화적 언론 환경의 지속성을 유지하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경기침체에 따른 민생과 국가경쟁력 강화보다는 총선용 자기 자리 지키기에만 몰두하는 거대 야당의 속내를 보니, 경기침체기를 슬기롭게 대처하고 국가 경쟁력과 민생의 증진을 위해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필요해 보인다.

문화일보 

 

11.14 국민 국회 농락한 ‘위장 탈당’ 의원이 내로남불 정치 훈계

민주당 민형배 의원이 13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향해 “어이없는 XX”라며 “정치를 후지게 한 건 한동훈 같은 XX들”이라고 했다. 한 장관이 전날 자신을 “어린 X” “건방진 X”이라고 한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에 대해 “고압적이고 시대착오적 생각으로 대한민국 정치를 수십 년간 후지게 만들어왔다”고 반발하자, 민 의원이 송 전 대표에게 가세한 것이다. 법무장관이 정치인 발언에 매번 즉각 반응하는 것을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민 의원이 “정치를 후지게”라고 한 것은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민 의원은 한 장관에게 “가장 큰 건 시민 기본권 침해와 민주주의 절차 훼손, 국가권력 사유화 같은 문제”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민 의원은 ‘위장 탈당’이라는 사상 초유 꼼수로 민주주의 절차를 훼손하고 국회를 농락한 장본인이다. 민주당이 문재인 정권과 이재명 대표 비리 수사를 막기 위해 ‘검수완박’법을 만들 때 위장 탈당해 무소속 자격으로 안건조정위에 들어가 안건조정위를 무력화하고 74년 역사의 형사 사법 체계를 뒤집는 법안을 단 14분 만에 통과시켰다. 민 의원은 1년 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민주당에 복당했다. 헌법재판소도 그의 위장 탈당을 위법으로 판단했지만, 민주당과 민 의원은 무시했다. 민 의원은 국민과 국회를 상대로 사기 행위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

 

▲더불어민주당으로 복당한 민형배 의원이 27일 오후 제 405회 국회(임시회) 제5차 본회의에서 이재명 대표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23.4.27/뉴스1

 

민 의원은 국가권력 사유화도 비판했지만, 압도적 의석으로 입법 권력을 사유화해 온 게 민주당이다. 선거법조차 여야 합의 없이 단독 처리하더니, 1년간 방탄 국회를 열었다. 노란봉투법, 방송법 등 자신들 집권 때는 반대하던 법을 정권이 바뀌자 언제 그랬냐는 듯 밀어붙였다. 이 과정에서 단 한 번 그 이유를 제대로 설명한 적도 없다. 국무위원의 3분의 1 가까운 사람들에게 탄핵 위협을 하고 실제 한 사람을 억지 탄핵했다. 물론 그 탄핵은 헌법재판소가 기각했다. 이제는 취임 석 달도 안 된 방통위원장과, 이재명 대표를 수사하는 검사 탄핵안을 발의했다. 우리 헌정사에 이렇게 입법 권력을 사유화해 휘두르고 폭주한 사례는 없다.

 

지금 스스로를 ‘개딸’이라고 부르는 이 대표 강성 지지자들은 국회에서 경찰관에게 흉기를 휘둘러 중상을 입히고, 이 대표에게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같은 당 의원 사무실을 찾아가 난동을 부린다. 당하는 의원들이 “질식할 것 같다” “공산당이냐”고 한다. 이보다 더 정치를 ‘후지게’ 만들 수 있는지, 그런 정치에 가장 앞장서는 의원이 ‘후진 정치’를 말할 수 있는지 묻게 된다.

조선일보 사설

 

11.14 한동훈 장관의 잘못

 자료들을 무작위로 섭렵하다 고(故) 에드워드 와그너(Edward Wagner) 하버드대 한국학 교수가 1985년 10월 28일 밤 KBS TV 단독 대담 프로에 출연한 영상을 보았다. 그의 ‘조선왕조 사회의 성취와 귀속’은 자주 뒤적이곤 하는 역저(力著)인지라 묘한 감상에 젖었다. 와그너는 조선 지배 계층의 실체와 구조 연구에 탁월했다.

교과서는 다음같이 얘기한다. 성종 때 중앙 정계에 등장해 선조 시대에 정권을 장악한 사림(士林)은, 한양 거점 대지주 기득권 부패 훈구(勳舊)와는 달리, 지방 출신의 청렴결백한 주자 성리학적 개혁 세력이라고. 한데 1960년대부터 와그너 교수는 이 선악 대립이 허상임을 밝힌다. 그는 단언한다. “훈구와 사림의 배경에 차이는 없다.” 사림 대부분은 조선 상위 1%, 0.1% 안에 드는 특권층이었다. 가령 조광조는 지조형 낙향 선비 집안이 아니라 한양 토박이며 고조부가 건국 2등 공신이다. 사림들의 재산과 권세, 혈족과 학연 등의 화려함은 예를 들기 숨차고 많은 부분 훈구와 엮이어 있다. 이런 사실들은 ‘일부러’ 무시되다가 2000년대 초를 거치면서 다른 역사학자들에게서도 실증된 지 오래다.

 

그러나 고독한 진실은 대중화된 거짓 앞에 무기력하다. 역사는 한번 잘못 설정돼 상당 기간 지속되면 교정하기가 죽은 자를 되살리기만큼 어렵다.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은 자신을 ‘민주화 투사’라고 내세운다. 그러나 그들은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한 일이 없다. 사회주의 혁명 세력이거나 주사파 김일성주의자였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 직선제’라는 구호를 가면(假面) 삼아 변장했고, 문민 시대에 스며들면서 민주화 운동가로 ‘신분 세탁’을 한 것이다.

 

인민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전체주의다. 진정한 민주제도는 자유민주주의뿐이다. 자유민주화를 원한 대중, 민주화 세대는 있었다. 하지만 자유민주화를 원한 운동권은 없었다. 전두환의 적이었다고 해서, 강도가 예수가 되지는 않는다. 이것은 훈구와 사림처럼 연구가 필요하지도 않고 몇 백 년 전 일도 아니다. 당장 나부터가 그 시대의 증인이다. 현 여당 국회의원들이 천치(天痴)인 것은 저 ‘빤한 거짓말’의 프레임 앞에 당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전대협보다 훨씬 악성인 한총련 출신 파시스트들까지 국회의원이 되려 한다. 살인과 살인 은폐도 한 자들이다. 그들이 전대협 출신들에 이어 정통 민주 야당을 점령하려는 시점이다. 저들에게서 ‘민주화’라는 단어를 몰수(沒收)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 정치에 미래가 있다. 며칠 전, 비리 수사를 받고 있는 한 전직 당대표가 법무부 장관에게 욕설을 하자, 법무부 장관은 젊은 시절 운동권으로 민주화 투쟁 좀 했다고 평생 갑질이냐며 맞받아쳤다. 민주화 운동을 한 적이 없는 자에게 그랬으니, 법무부 장관의 각성을 촉구한다.

조선일보 이응준 시인·소설가

 

11-14 송영길 민형배 막말과 ‘86정치’ 파탄

 
 

이태동 서강대 명예교수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길 잃은 세대’를 주제로 한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의 서두에 다음과 같이 썼다.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오지만, 이 땅은 영원히 그대로다. 떴다 지는 해는 다시 떴던 곳으로 숨 가삐 가고, 남쪽으로 불어 갔다가 북쪽으로 돌아오는 바람은 돌고 돌아 제자리로 온다. 모든 강물이 바다로 흘러드는데 바다는 넘치는 일이 없구나. 강물은 떠났던 곳으로 돌아가서 다시 흘러내리는 것을.’ 구약성서에서 인용한 이 말은 어느 하나의 세대도 멈추지 않고 우주의 법칙에 따라 변함없이 움직인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송영길 전 대표는 지난 9일 자신의 출판기념회에서 “이런 건방진 ×이 어디 있나. 어린 ×이 국회에 와 가지고 (국회의원) 300명, 자기보다 인생 선배인 사람들을 조롱하고 능멸하고…”라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향해 비난을 퍼부었다. 한 장관은 이틀 뒤 입장문을 통해 “어릴 때 운동권 했다는 것 하나로 사회에 생산적 기여도 별로 없이 자그마치 수십 년 간 자기 손으로 돈 벌고 열심히 사는 시민들 위에 도덕적으로 군림했다”며 “고압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생각으로 대한민국 정치를 수십 년 간 후지게 만들었다”고 맞받아쳤다. 그러자 13일에는 민형배 의원이 “정치를 후지게 한 건 한동훈 같은 ××들”이라며 송 전 대표를 거들고 나섰다.

이런 적대적 말싸움은 뿌리 깊은 구조적 압박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가장 크게 문제시되는 것은 세대 간의 갈등이다. 50세인 한 장관에 대한 비난의 수위를 보면, 60세인 송 전 대표는 37세에 금배지를 달았고 47세에 인천시장이 됐던 자신의 과거를 완전히 잊고 세대교체라는 영원한 질서를 부정한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대 간의 갈등은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였다. 유일한 해결책은 세대교체를 우주적인 질서에 따라 받아들이고, 그것에서 비롯되는 문제는 도덕성과 함께하는 정치적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기성세대는 후배 세대를 사랑해야 하고, 후배 세대는 선배 세대를 존경해야 하는 것은 도덕적 상식이다. 그런 것이 바른 정치이고 도덕적 삶일 것이다. 어른도 아이에게서 배울 점이 있고, 젊은이들은 경험 많은 어른들로부터 귀중한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 그래서 프랑스의 과학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는 “새 세대가 옛 세대를 깨운다. 옛 세대가 새 세대 속에 다시 살아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한 장관을 “어린×”이라고 무시한 송 전 대표의 누추한 모욕적 태도는 ‘86운동권 세력의 유아독존적 오만함과 궤를 같이한다’는 지적은 설득력이 없지 않다. 근 20년 전 그들은 “60대, 70대는 투표 안 하고 집에서 쉬셔도 된다” “50대가 되면 멍청해진다. 60세 넘으면 책임 있는 자리에 있지 말자” 등의 말로 많은 사람의 사회적 권리를 박탈하려는 듯 그들 위에 군림하는 자세를 보였다.

송 전 대표가 이렇게 오만함의 극치를 보이고, 한 장관과 세대 간의 갈등을 첨예하게 일으키는 것은 절대 바람직하지 못하다. 금권선거 척결 문제와도 관련된 ‘돈봉투 사건’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인식한 데서 시작해, 정치인으로서 세대 간의 파괴적인 갈등 문제를 조화롭게 극복하지 못하고 법적인 근거가 약한 폭력적인 ‘탄핵’이란 말로 ‘한국 정치를 후지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일보

 

11.15 나라가 먼저라는 인요한은 외롭다

뼈·살·영혼까지 한국에 바친 진심과 성실의 가족 4代
하지만 한국 정치서 혁신위는 조광조·이율곡처럼 실패 운명
선거는 결국 정당보다 대통령… 발본적 혁신없이 승리는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엄수한 박정희 전 대통령 44주기 추도식에서 고인에 대한 묵념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 있다. 왼쪽부터 박근혜 전대통령, 윤 대통령,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윤재옥 원내대표, 인요한 혁신위원. 2023.10.26. /뉴시스

 

1997년 1월, 인요한은 덜컹덜컹 겨울의 황량한 벌판을 가로지르는 기차를 타고 평양을 향했다. 압록강 둑길에 불을 지펴 놓고, 어린아이들이 달리는 기차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새카만 얼굴에 해맑은 웃음. 그 하얀 웃음을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태어나고 자란 전라도 순천의 어린 시절을 보았기 때문이다. 순박한 아이들의 하얀 웃음에 눈물 짓는 토속적 한국인은 이제 드물다. 인요한의 심성에는 된장 냄새가 배었다. 그 맛있는 김치를 먹지 않는 미국인을 이해할 수 없어, 한국에 돌아온 그다.

 

그의 가족은 4대에 걸쳐 한국에 뼈와 살, 영혼까지 바쳤다. 1895년 27세 때 한국에 선교사로 파송된 외할아버지 유진 벨 목사는 1925년 이 땅에 묻혔다. 외할머니 로테 벨은 풍토병에 걸려 1901년 32세에 생을 마감했다. 남편은 선교 여행 중이었고, 로테 벨은 아들과 딸을 품에 안고 숨을 거뒀다. 조지아 공대를 수석 졸업한 할아버지 윌리엄 린턴은 21세 때 선교사로 와 많은 학교를 세웠지만 신사참배를 거부해 추방당했다. 아버지 휴 린턴은 2차 대전 때 해군장교로 일본과 싸웠다. 종전 후 신학대학에 다니다, 6·25전쟁 때 재입대해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했다. 그는 검정고무신을 신고 고구마를 먹으며, 600곳이 넘는 교회를 세웠다. 한국의 어떤 가문이 4대에 걸쳐 대한민국에 영혼까지 바쳤는가.

 

인요한 일가의 삶에는 한국 역사의 애환이 가득 담겼다. 한국을 괴롭혔던 가난과 무지, 질병, 식민통치, 독재, 그리고 공산주의. 한국인보다 더 치열하게 그 숙명적 멍에와 싸웠다. 인요한도 그랬다. 1980년 연세대 의대에 입학한 인요한은 광주 소식을 듣고, 현지에 내려갔다. 널린 시신을 목격하고, 도청에서 시민군의 외신기자 인터뷰를 통역했다. 광주를 빠져나왔으나, 젊은 시절 그 기억으로 괴로워했다. 그는 1980년 광주의 순수성을 믿었고, 일찍이 민주당을 사랑했다. 하지만 북은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직언했다. 얼굴이 벌게진 노 대통령은 담배를 물고 등을 돌렸다. 의료 지원차 29번이나 북한을 다녔지만, 인천이나 김포에 내리면 눈물이 흐르고 땅바닥에 뽀뽀를 하고 싶어진다. 북한 군가를 만든 정율성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인요한이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을 맡았다.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패하고 민심의 이반을 통감한 여당의 간청 때문이다. 인요한은 단순한 이상주의자가 아니다. 최초의 한국형 앰뷸런스가 인요한의 작품이다. 처음에는 15인승 승합차로, 최종적으로 소형 화물차를 개조해 만들었다. 응급구조제도도 처음 만들고 응급구조사도 양성했다. 아버지 휴 린턴 목사가 교통사고로 병원 이송 중 숨진 게 천추의 한이었다. 그는 유진 벨 재단과 함께 북한 결핵 환자 20만 명을 치료하고, 15만 명을 완치시켰다. 일을 하고, 성과를 내는 사내다.

 

인 위원장은 첫 일정으로 5·18묘지를 찾아 무릎을 꿇었다. 이재명 대표에게는 “이제 정쟁 좀 그만합시다. 그만하고 나라를 위해 같이 싸우자”고 촉구했다. 국민의힘 강연에서는 “나라가 먼저다. 정쟁하지 말자”고 호소했다. 나라를 위해 작은 차이를 넘어서자는 것이다. 그는 한국 정치가 싸우기만 하고, “전라도 말로 어문 짓거리만 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국가 수준만큼 정치도 발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치에서 언제 이런 말을 들어보았나. 그의 진심어린 호소가 정쟁에 지친 국민의 가슴을 때렸다.

 

하지만 지금 인요한은 외롭다. 그런 고결한 신념이 정치의 세계에서 순순히 받아들여질 리 없다. 조광조나 이율곡처럼 실패의 숙명을 안고 있다. 민주당은 “윤석열한테나 그렇게 해!” “너희나 멈춰”라고 맞고함을 쳤다. 불출마나 험지 출마를 권유받은 국민의힘 ‘지도부·중진·친윤’은 침묵하거나 반발 일색이다. 자기 정치를 한다거나, 영남 정치세력을 고사시키려는 용산발 음모라는 의심도 받고 있다. 당내 통합을 위해 손 내민 홍준표, 유승민, 이준석도 까칠하다.

 

이대로면 혁신위는 절로 무너질 판이다. 역대 모든 혁신위처럼 인요한호도 또 하나의 소모품인가. 그러고도 내년 총선에서 이길 수 있다면 괜찮다. 하지만 강서구청장 선거는 그럴 수 없다는 명백한 경고다. 지난 대선처럼 내년 총선도 또 하나의 선거가 아니다. 윤석열 정부의 앞날은 물론 체제 선택에 가까운 중대선거(critical election)다. 한국의 선거는 정당보다 대통령 얼굴로 한다. 인 위원장은 “난 온돌방 아랫목에서 큰 사람이다. 월권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대통령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혁신위와 국민의힘의 운명은 결국 대통령이 어떤 자세를 가지는지에 달렸다. 나라가 먼저다. 발본적 혁신 없이는 승리도 없다.

조선일보 김영수 영남대 교수·정치학

 

11-15 선거 개표 때 手검표 도입하고 다른 의혹 여지도 없애야

선거관리위원회가 그동안 과학기술 발전에 따라 전자 투·개표를 확대해왔지만, 내년 총선 때부터는 육안 심사가 다시 강화될 전망이다. AI 시대에 아날로그 시대로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선거 때마다 불거지는 투·개표 부정 시비와 해킹 가능성, 의심할 여지 없는 공정선거의 중요성 등을 고려하면 첨단 기술 도입보다 신뢰 확보가 훨씬 중요하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방향이다.

중앙선관위는 14일 내년 총선 개표 때부터 모든 투표지에 대해 육안 심사 절차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선관위가 국민의힘 선거제도개선 기구에 밝힌 내용을 보면, 현재는 투표지를 분류기(전자개표기)에서 정당·후보자별로 나눈 뒤 심사계수기로 득표 수를 센다. 개표사무원이 계수기를 구동할 때 투표지를 확인하지만, 세세하게 살펴보기는 어렵다. 앞으로는 중간 단계에 사람이 직접 확인하는 절차를 추가하겠다는 것이다. ‘수(手)검표’를 하겠다는 취지인데, 시간은 조금 더 걸리겠지만 감내할 만한 일이다.

선관위는 또 투표지 분류기에 인가된 보안 USB만 인식할 수 있는 제어 프로그램을 적용하겠다고 했다. ‘내부 조력자 도움이 있으면 해킹할 수 있다’는 지적을 보완하기 위해서다. 이와 함께 사전투표용지에는 현재의 QR코드 대신 바코드를 삽입하고, 잔여 투표용지를 CCTV 등이 설치된 곳에 보관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라고 한다.

선관위의 내부 부패와 기강 해이 등이 심각하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지난 10월 국가정보원과 한국인터넷진흥원이 합동 보안 점검을 한 결과, 선거인명부 시스템을 해킹해 사전 투표한 사람을 투표하지 않은 것으로 표시하거나 유령 유권자 등록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사전투표용지의 무단 인쇄도 가능했고, 개표 결과가 저장되는 ‘개표 시스템’을 해킹해 결과 조작까지 할 수 있었다. 차제에 이런 모든 의혹을 없앨 대책도 내놔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11-15 포퓰리즘 정치는 안보도 망친다

 

김석 국제부장

극우 지지로 총리 된 네타냐후
사법 무력화로 국가 분열 초래
하마스 이상 징후 보고도 무시

공격 못 막고 중동 외교도 냉각
미국과 파열음 등 위기 더 키워
文정권의 안보 무력화 데자뷔

이스라엘이 하마스에 대한 보복에 들어간 지 40일 만인 15일 가자지구 북부를 장악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성과와는 별개로 전쟁의 후폭풍 속으로 끝없이 빠져드는 모습이다. 전쟁 초반 하마스의 살인·인질 납치 등과 같은 테러에 경악하며 이스라엘 편에 섰던 세계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에 대한 무차별 공격으로 팔레스타인 주민 사망자가 1만 명을 넘어서자 이스라엘에 등을 돌리고 있다. 인근 아랍 국가와 관계를 정상화했던 아브라함 협정이 삐거덕거리고,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국교 수립도 물 건너가면서 수니파 국가들과 손을 잡고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을 고립시키려던 전략은 물거품이 됐다. 역사적 문제 때문에 지금까지 이스라엘 편에 섰던 유럽에서도 이제는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동맹인 미국과는 일시 교전 중단 및 인질 협상 문제, 전후 가자지구 통치 문제 등을 놓고 파열음을 내는 중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국내외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가장 큰 원인은 극단 정치에 있다. 극우파의 지지를 받아 당선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극우 포퓰리즘에 기댄 정치를 해왔다. 미국 등 서방의 우려에도 요르단강 서안 지구에 유대인 정착촌을 확대했고, 대법원의 권한을 축소하는 사법 개혁안을 추진했다. 각종 비리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권력을 잃은 적이 있는 네타냐후 총리에게 사법 개혁안은 대법원 판결을 의회 투표로 무효화하는 내용을 담은, 사실상 자신을 보호해 줄 법안이었다. 또, 행정부의 비합리적인 정책을 직권으로 폐지할 수 있는 사법부 권한을 삭제하는 내용은 우파 포퓰리스트들이 추진하는 유대인 정착촌 확대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지층인 극우파들에 눈엣가시인 사법부를 손보는 동시에 총리 자신의 방탄까지 노린 법안인 셈이다.

극단적 당파성을 띤 네타냐후 총리의 행보는 국가를 분열시켰다. 네타냐후 총리는 요아브 갈란트 국방부 장관이 사법 개혁안에 반기를 들자 지난 3월 해임했다가 여론 악화에 해임을 취소했다. 이스라엘군 고위 관계자들은 7월 24일 의회(크네세트)에 하마스와 관련한 긴급 보고를 하려 했지만, 이날이 사법 개혁안 처리일이어서 보고가 무산됐다. 사법 개혁안 강행에 이스라엘 최대 노동조합 히스타드루트는 총파업을 벌였고, 예비역 1만여 명이 복무 거부에 서명했으며, 현역 군인들도 시위에 나섰다.

군과 정보 당국은 정치적 혼란이 이란과 하마스, 헤즈볼라 등 적들에게 이스라엘이 약화하고 있다는 신호를 줄 수 있다고 경고했으나 네타냐후 총리 등은 이를 무시했다. 사법 개혁안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네타냐후 총리와 만남을 꺼리다 지난 9월 유엔총회에서야 만났으며, 이 자리에서도 사법 개혁안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다. 이는 미국과 이스라엘 동맹에 균열이 생겼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분위기는 하마스가 도발에 나설 기회라는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네타냐후 총리의 당파적 행보와 극우 포퓰리즘은 정보기관 기능도 마비시켰다. 가자지구 국경에 배치된 정보 군인들의 잇단 이상 징후 감지 보고는 완전히 무시됐고, 하마스 부대원들에 대한 무전기 도청도 중단됐다. 극우파들에게 하마스는 유대인 정착촌 확장 정책 등에도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전열을 가다듬고 가자지구 장악에 성공했으나 전쟁이 끝나도 승리라 말하기 어려운 처지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하마스 격멸을 내세웠지만, 1만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주민이 사망하면서 제2의 하마스가 자라날 씨를 곳곳에 뿌렸다. 중동 국가들과 관계는 냉각될 조짐이고, 유럽과도 서먹한 사이가 돼가고 있다. 가자지구 처리 문제를 놓고 미국과는 견해차가 커지고 있다. 이처럼 극우파에 기대 사법부를 무력화하고 정보기관 기능을 마비시켜 국가를 위기로 몰아넣은 이스라엘 정치권의 모습은 묘한 데자뷔를 느끼게 한다. 좌파 지지층에 취해 검찰을 형해화하고 국가정보원 정보·수사 기능을 제거한 문재인 정권 행보와 닮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보여주듯 극단 정치는 국가를 존망의 위기 속으로 몰아넣고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이스라엘의 오늘이 한국의 내일이 되도록 둘지, 막을지를 결정할 시간이 5개월도 남지 않았다.

문화일보

 
 

11.15 송영길의 ‘놈놈놈’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겨냥한 “건방진 놈” “어린놈” “미친놈” 막말 파문이 확산하고 있다. “이게 무슨 중대한 범죄라고 6개월 동안 이 ××를 하고 있는지. 미친놈들 아니냐”라는 등 취지가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사건’ 피의자로서의 방어권 행사 차원이라면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법무장관은 구체적 사건에 대해선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할 뿐 개별 사건 수사를 지휘하지 않는다. 국회의원 5선 경력의 ‘86운동권 그룹’ 예순 살 맏형이 쉰 살의 차기 여권 주자로도 거론되는 한 장관을 내리 깔보고 한 말도 아닐 것이다.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지난 9일 『송영길의 선전포고』 출판기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송 전 대표의 ‘놈놈놈’ 막말이 진짜 겨냥한 건 오히려 민주당 차원의 ‘검찰과의 전면전’이다. 당이 이재명 대표의 대북송금 의혹 수사검사 탄핵 추진,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연루 의혹 등 수사검사들의 얼굴 공개 등 좌표찍기에 이어 김건희 특검법 정국 만들기로 내년 4·10 총선 판을 짜자 이에 편승하겠다는 것이다. 송 전 대표로선 총선 지휘와 대장동 ‘사법 투쟁’(재판 출석)을 동시에 하는 이 대표와 보조를 맞추는 게 최선의 구명 전략이다.

 

송 전 대표는 지난해 대선 때도 “다시 광야로 나설 때”라며 ‘86그룹 용퇴론’에 앞장서면서 후보이던 이 대표와 정치적 한몸처럼 움직였다. 대선 패배 후엔 당 대표직과 인천 계양을 지역구를 이 대표에게 물려주고, 정계 은퇴 대신 돌연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는 생명력을 보인 바 있다.

 

결국 전·현직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168석 국회 1당의 총선 전략이 ‘검찰과의 전쟁’으로 낙찰된 셈이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불법 자금 수사(혹은 2007년 이명박 대선후보 검증 수사) 이래 검찰 수사가 종종 선거 이슈가 됐지만 최근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된 적은 없었다. 고금리·고물가 고통과 같은 국민 삶과 유리된 선거가 계속되면 ‘민생’엔 무관심한 투사들이 국회를 점령하게 되고 그 피해는 국민이 받는다.

 

민주당 보좌관 출신 1984년생 정치평론가 황두영은 신간 『성공한 민주화, 실패한 민주주의』에서 이런 86정치를 때론 헌법 침해도 정당화하는 ‘반적폐 포퓰리즘’이라고 진단한다. “86들은 후배들이 시대정신을 제시 못 해 아직 물러날 수 없다고 한다. 당장 일자리 양극화나 전세 사기도 해결할 방안이 없으면서 정치를 위해 뭔 시대정신씩이나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투쟁에 갇혀 ‘유능한 민생정당’이란 강령 맨 앞에 적힌 의무조차 포기할 것인가. 아직 총선까진 넉 달 넘게 남았다.

중앙일보 정효식 정치에디터

 

11.15 “이정화, 피해자 눈물 닦아준 진짜 검사... 민주당, 조리돌림 말라”

박준영 변호사, 야당의 ‘김건희 봐주기 수사로 영전’ 주장에 반박

 재심 전문으로 잘 알려진 박준영 변호사는 민주당이 이정화 수원지검 부장검사를 놓고 “김건희 여사 일가를 봐주기 수사한 대가로 영전했다”고 주장한 데 대해 “이 검사는 피해자의 눈물을 닦아준 ‘진짜 검사’”라며 “사람을 함부로 조리돌림하지 말고 비판을 하려면 제대로 하라”고 했다.

 

박 변호사는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이정화 검사는 남의 인생이 걸린 일을 한다는 긴장감으로 밤샘을 자청한 성실한 검사”라며 이 같이 밝혔다. 박 변호사는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 사건, 화성 연쇄 살인 사건 등의 재심을 맡아 ‘재심 전문 변호사’로 이름을 알렸다.

 

 ▲박준영 변호사. /조선일보DB

 

앞서 민주당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회’는 이 부장검사가 경기도 양평 공흥지구 개발 특혜 의혹 수사를 뭉갠 대가로 영전했다고 주장했다. 대책위는 지난 11일 “이 검사는 경찰의 압수영장을 반려했고 지난 9월 여주지청 형사부장검사에서 수원지검 형사 제5부 부장검사로 영전했다”며 이 부장검사 실명과 사진을 공개했다.

 

그러나 민주당 대책위 주장과는 달리 이 부장검사는 김 여사 일가에 대한 경찰의 압수수색 영장 반려 당시 해당 검찰청에서 근무하지 않았고 오히려 부임 이후 경찰의 영장을 보완해 청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송치한 범죄 사실에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까지 추가로 입증해 기소했다고 한다.

 

박 변호사는 이 부장검사가 검찰 과거사위원회에서 근무할 당시 ‘낙동강변 살인사건’ 과거사 조사 과정에서 혼자 기록을 모두 검토하고, 법정에 나와 증언도 했다고 밝혔다. 이어 “(낙동강변 살인사건) 피해자 최인철, 장동익 선생님과 그 가족들은 이정화 검사를 사법 피해자의 눈물을 닦아 준 ‘진짜 검사’로 생각한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또 “이정화 검사는 유우성 사건·강기훈 사건도 조사했다. 그 사건들의 보고서에도 비중 있게 관여한 것으로 안다”고 강조했다.

 

박 변호사는 “의도를 가지고 좌표 찍고 선동하는 ‘일부’ 민주당 분들. 사람을 함부로 조리돌림하지 말고 비판을 하려면 제대로 하라”면서 “이정화 검사는 사회적 약자, 호소할 곳 없는 피해자에게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세력의 힘으로 ‘정당한’ 권위와 사명감을 위협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검찰독재탄압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이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시스

 

‘낙동강변 살인사건’은 1990년 1월 부산 사하구 낙동강변에서 차를 타고 데이트하던 남녀가 괴한에게 납치돼 여성은 성폭행당한 뒤 살해되고, 남성은 상해를 입은 사건이다. 사건 발생 1년 10개월여 뒤인 1991년 11월 부산 사하경찰서는 장씨와 최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장씨와 최씨는 수사부터 재판까지 “경찰에게 고문을 당해 허위 자백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두 사람은 21년간 복역하다가 2013년 모범수로 특별 감형돼 출소했고, 지난 2017년 부산고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박준영 변호사가 변론을 맡았다. 2019년 대검찰청 과거사위원회는 이 사건에 대해 “고문으로 범인이 조작됐다”고 결론 내렸는데 당시 이정화 부장검사가 대검 과거사위에 파견 근무하며 이 사건을 담당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장씨와 최씨는 재심을 통해 무죄가 확정됐다. 지난해 1심 법원은 국가가 두 사람과 그 가족에게 총 72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한편 이 부장검사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 당시 법무부 감찰담당관실에 파견 근무하면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에 참여했고, 이후 감찰이 위법하게 이뤄졌다고 폭로했다. 자신이 ‘판사 사찰 의혹은 죄가 안 된다’는 의견을 보고서에 담았는데, 법무부가 검찰총장을 수사 의뢰하면서 이 부분을 아무 설명 없이 삭제했다는 것이다. 당시 감찰담당관은 ‘추미애 사단’으로 분류되는 박은정 현 광주지검 부장검사였다.

조선일보 유종헌 기자

 

11.15 류호정, 송영길 향해 “꼰대도 저 정도는… 인간이 좀 덜된 것 아닌가”

▲류호정 정의당 의원. /뉴스1

 

청년 정치인인 류호정 정의당 의원(30)은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60)가 한동훈 법무부 장관(50)을 향해 ‘어린놈’이라고 원색 비난한 것과 관련 “인간이 좀 덜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했다.

 

류호정 의원은 15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최근 송 전 대표와 한 장관의 설전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송 전 대표에게) 꼰대라는 말을 붙이는 것도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같이 답했다.

류호정 의원은 “송 전 대표가 2021년 4월 당 대표 출마 선언 때 ‘꼰대 정치’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민주당이 꼰대 정치를 극복하지 못했음을 스스로 증명한 것 같다”며 “꼰대 중에도 저 정도로 욕설하시는 분도 흔치 않다”고 했다.

 

류호정 의원은 “당 대표까지 지내신 분이 저런 말씀을 하시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을 한다”며 “송 전 대표도 노동운동 하면서 인권 변호사로 활동한 사회적 삶이 평가받아서 국회의원이 되고 정치를 하는 건데 좋지 않은 끝을 보는 것 같아 상당히 씁쓸하다. (운동권) 선배들의 끝이 이런 거라면 정말 안타까운 일”이라고 했다.

 

이어 “이제 반독재 민주화 세계관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할 것 같다”며 “반독재 민주화 세계관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독재국가라서 아직도 민주화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전사들이고 때때로 과격해져도 괜찮은 게 된다. 이럴수록 한 장관만 더 시민 지지를 얻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류호정 의원은 “(운동권은) 이제 소임을 다한 것 같다. 다음 페이지로 넘겨야 한다”며 “민주당 안에서는 안 될 거 같다. 제3지대에 힘을 더 많이 실어달라”고 했다.

 

 ▲2023년 11월 9일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책 "송영길의 선전포고" 출판기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유튜브 '송영길 TV'

 

송영길 전 대표는 지난 9일 출판기념회에서 한동훈 장관을 향해 “이 어린놈이 국회에 와서 (국회의원) 300명 자기보다 인생 선배일 뿐만 아니라 한참 검찰 선배를 조롱하고 능멸하고”라며 “내가 물병이 있으면 물병을 머리에 던져버리고 싶다”고 했다.

 

이에 한 장관은 지난 11일 입장문을 내고 “송 전 대표 같은 사람들이 대한민국 정치를 수십년간 후지게 만들어왔다”고 했다.

 

한편 류호정 의원은 지난 2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의 질의응답으로 화제가 됐던 적이 있다.

 

당시 여야 의원들은 대정부질문에서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이나 이재명 민주당 대표 수사 관련 질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며 소모전을 벌였다. 야당 의원들은 답변하는 국무위원들을 향해 비아냥거리거나, 윽박지르고 말꼬리 잡는 모습도 자주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류호정 의원은 한동훈 장관이 답변하기 위해 단상으로 나오자 “저는 김건희 여사나 천공 얘기 같은 건 안 하고 정책 질문만 할 테니까 너무 전투력 발휘 안 하셔도 될 것 같다”며 ‘비동의 강간죄’ 입법 필요성과 관련한 질의만 했고, 이 장면은 ‘국회의 품격’이란 평가를 받았다.

조선일보 김명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