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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박사 박상진이 들려주는 청와대의 대통령 나무] [上] - [下] 노태우는 88올림픽, 김대중은 남북정상회담

상림은내고향 2023. 10. 26. 18:35

[나무박사 박상진이 들려주는 청와대의 대통령 나무] [上] 조선일보  2023

10.20 소나무 몇 그루뿐이던 70년 전 청와대… 이승만이 심은 나무는 숲이 됐다

청와대에는 역대 대통령의 사연이 깃든 나무가 있다. 대통령 기념식수에는 국정 철학과 국가적 염원이 담겼다. 청와대 경내의 나무를 조사한 ‘나무 박사’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를 통해 청와대 속 대통령 나무 이야기를 들어본다.

▲이승만 대통령이 1960년 3월 25일 청와대(당시 경무대) 녹지원 서쪽 계곡에 전나무를 심고 있다(왼쪽). 오른쪽 사진은 한 아름 둘레의 거목으로 자란 전나무의 현재 모습. 박상진 교수가 “키가 25m나 된다"고 손을 높이 올려 보였다. /국가기록원·이태경 기자

 

이승만 전 대통령은 1948년부터 1960년까지 12년 동안 청와대(당시 이름 경무대)를 집무실 겸 관저로 사용했다. 그가 처음 입주할 즈음 북악산 자락인 청와대 일대는 소나무 몇 그루만 있는 황폐한 야산이었다고 한다.

 

전국의 산들도 마찬가지여서 이 대통령은 식목일을 제정하고 임기 내내 나무 심기를 강조했다. 조선일보 1959년 4월 6일 자에 대통령이 식목일을 맞아 “경무대 경찰서원과 함께 전나무, 잣나무, 낙엽송 등 6000여 그루를 경무대 일대에 기념식수했다”는 기사가 있다.

 

◇1960년 심은 전나무, 아름드리 거목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1960년 3월 25일 청와대(당시 경무대) 녹지원 서쪽 계곡에 전나무를 심고 있다. /국가기록원

 

1960년 3월 25일, 이 대통령이 직접 나무를 심는 사진이 국가기록원에 남아 있다. 수종은 전나무. 이 나무가 지금 녹지원 서쪽 계곡에서 키 25m, 한 아름 둘레의 거목으로 자라 있다. 나이는 나이는 73살이다. 박 교수는 “남아 있는 사진 덕분에 이 대통령의 기념식수임을 공식 확인한 유일한 나무”라며 “사진 속의 수형(樹形), 가지 뻗음, 잎 모양은 물론이고, 사진 위쪽 왼편 능선으로 옛 본관의 지붕 일부가 보이기 때문에 나무를 심은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이 전나무 부근에는 크기가 비슷한 전나무들이 몇 그루 더 있고, 잣나무와 낙엽송도 함께 자라고 있다. 박 교수는 “크기나 나이로 봐서 이 대통령이 1959년에 심은 나무 일부가 살아남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지난해 ‘대통령, 청와대에 나무를 심다’를 출간한 박 교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협조를 얻어 지난 5월부터 청와대를 매일 출퇴근하며 추가 연구를 계속 하고 있다. 그는 “책을 쓸 때만 해도 몰랐던 부분”이라며 “요즘 조사를 계속하면서 이 일대 나무들이 이 대통령이 심은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모두 빨리 자라고 줄기가 곧으며 무리를 이루어 숲을 만드는 특성이 있는 나무들이다. 박 교수는 “이 대통령은 산을 푸르게 만드는 일도 중요하게 여겼지만 자란 나무의 쓸모를 생각해 곧게 자라는 전나무를 많이 심었다”고 했다.

 

▲그래픽=양인성

 

◇녹지원 서쪽은 ‘이승만 대통령의 숲’으로 불러야

▲박상진 교수가 이승만 대통령이 심은 전나무 앞에서 “키가 25m 되는 거목으로 자랐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태경 기자

 

박 교수는 “이 대통령이 직접 심거나 가꾼 것으로 추정되는 나무 20그루가 녹지원 서쪽 계곡에서 아름드리 거목이 돼 숲을 이루고 있다”면서 “‘이승만 대통령의 숲’으로 이름 지어 특별히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했다.

 

녹지원 서쪽은 북악산에서 발원한 시냇물이 흘러내리는 작은 계곡이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빼곡한 숲을 이루고 있어 그윽하고 운치 있는 곳이라 관람객들이 산책하면서 가장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만난 50대 여성은 “서울 시내에 이렇게 좋은 숲이 있는 줄 모르고 살았다”고 감탄했다. 우리 전통 수종인 전나무, 잣나무, 낙엽송만 있는 게 아니다. 백합나무, 루브라참나무, 상수리나무, 단풍나무, 말채나무 등이 섞여서 자라 절경을 이룬다.

 

▲이승만 대통령이 청와대에 심은 것으로 추정되는 백합나무. 올해 나이 70살 전후다. /박상진 교수

 

▲이승만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 심은 것으로 추정되는 백합나무. /박상진 교수

 

숲을 거닐다 보면 매끈한 줄기가 하늘로 곧장 치솟아 오르며 자란 20m 넘는 백합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백합나무는 꽃이 튤립 모양이라 튤립나무라고도 한다. 모두 9그루이고, 올해 나이 70살 전후에 이른다. 숲의 남쪽에는 루브라참나무도 4그루 보인다. 박 교수는 “백합나무와 루브라참나무는 미국 동남부가 원산지”라며 “나이나 굵기로 봐서 이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심은 나무로 추정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이 미국에서 학위를 받았던 프린스턴대학을 비롯해 석사과정을 거친 하버드대, 학부를 졸업한 조지워싱턴대 등 미국 동부 일대에 널리 자라는 나무들이다. 교정에서도 흔히 만날 수 있어서 그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활동하는 동안 친숙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 심은 것으로 추정되는 루브라참나무. /눌와

 

▲이승만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 심은 것으로 추정되는 낙엽송. 바늘잎나무이지만 노란 단풍이 든다. /눌와

 

이 대통령은 또 가로수로 흔히 심는 플라타너스를 좋아했다. 시인 조지훈이 1956년 ‘신태양’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서울에 오래된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무성하게 된 것은 이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박 교수는 “청와대 경내에도 플라타너스를 심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지금은 남아있지 않고, 경복궁 서쪽 효자로에 이 대통령 지시로 심은 20여 그루가 지금도 자라고 있다”고 했다.

 

 

[下] 노태우는 88올림픽, 김대중은 남북정상회담… 靑 나무엔 현대사가 있다

▲최규하 대통령이 1980년 4월 11일에 기념식수한 독일가문비나무. 헬기장과 녹지원 사이에 있다. /눌와

 

역대 대통령들이 청와대에 심은 나무를 보면 각자의 개성과 취향, 식수를 하던 당시 상황이 드러난다. 청와대 경내의 나무를 조사한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는 “기념식수가 없는 윤보선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 역대 대통령 11명이 심은 나무가 청와대 곳곳에 살고 있다”며 “1980년대 이후 대통령들은 주목, 계수나무 등 보기 좋은 정원수와 아울러 상징성을 가진 나무에도 관심을 가졌다”고 했다.

▲그래픽=김성규

 

▲1983년 전두환 대통령이 기념식수한 상춘재 앞의 백송. 아직 껍질이 검푸른 빛이다. /눌와

 

춘추관 쪽 잔디밭과 녹지원 사이의 작은 숲에는 최규하 전 대통령이 1980년 4월 기념식수한 독일가문비나무가 자라고 있다. 박 교수는 “독일가문비나무는 곧은 줄기가 아름답고 햇빛이 약해도 광합성을 하기 때문에 잘 버티지만, 잔가지가 흔히 아래로 처지는 경향이 있어 최 전 대통령이 5공 세력의 압박에 금방 굴복한 것과 비유하기도 한다”고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3년 식목일 수궁터와 상춘재 앞에 백송을 한 그루씩 심었다. 수궁터 백송은 죽었지만, 상춘재 앞 백송은 지금도 살아있다.

 

▲노태우 대통령이 새 본관 건물이 세워지기 전인 1988년 식목일에 심은 구상나무의 현재 모습. /눌와

 

▲노태우 대통령이1988년 식목일에 구상나무를 기념식수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노태우 전 대통령은 서울 올림픽 성공을 염원하는 뜻으로 1988년 식목일에 구상나무를 심었다. 구상나무는 세계 어디에도 없고 한국에서만 자라는 희귀 수목으로, 학명(Abies koreana)에도 한국을 뜻하는 ‘코레아나(Koreana)’가 들어있다. 박 교수는 “구상나무는 산꼭대기 같은 서늘한 기후를 좋아하는데, 환갑 정도 된 이 나무가 따뜻한 서울에서도 잘 자란 것은 1991년 지어진 본관 건물 옆으로 시원한 바람골이 생겨서일 것”이라고 했다.

 

▲김영삼 대통령이 1994년 식목일 기념식수한 수궁터 산딸나무. 하얀 꽃이 활짝 핀 모습/ 눌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은 산딸나무를 기념식수했다. 기독교 전설에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쓰인 나무가 ‘도그우드’라 불리는 산딸나무 종류였다고 한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4년 식목일 수궁터에 부인 손명순 여사와 함께 산딸나무 한 그루를 심었는데, 초여름에 층층으로 피는 하얀 꽃이 아름다워 눈에 띈다. 김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1993년 청와대 시화문 건너 옛 중앙정보부 궁정동 안전 가옥 다섯 채를 헐고 무궁화 동산을 만들었다. 개원식에 참석한 그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밀실 정치를 깨끗이 청산한다는 의미 깊은 현장”이라고 소개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기념해 2000년 6월 17일 영빈관 앞에 기념식수한 무궁화. /눌와

 

영빈관 앞에는 무궁화 한 그루와 ‘김대중 대통령·이희호 여사 기념식수’라는 큼지막한 돌 비석이 보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 6월 첫 남북 정상회담을 마치고 이를 기념해 18살 홍단심 무궁화를 심었다. 당시 무궁화 전문가로 잘 알려진 심경구 성균관대 교수에게 몇 번이나 경호처 고위 직원을 보내 가장 좋은 무궁화를 기증받았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심판 기각 직후인 2004년 5월 16일 백악정에 기념식수한 서어나무. /눌와

 

청와대 밖 백악정 앞에는 2004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기념식수한 서어나무가 자라고 있다. 서어나무는 꽃이 아름답지도 않고 목재로도 쓰임새가 거의 없는 평범한 나무라 대통령 기념식수로 거의 쓰이지 않는다. 박 교수는 “대통령 기념식수로는 굉장히 이례적”이라며 “권위주의를 무너뜨리고 서민들과 눈높이를 맞추려던 노 전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연결되는 것 같다”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4월 6일에 청와대 정문 안 삼거리에 기념식수한 소나무. /눌와

 

이명박 전 대통령은 같은 크기, 같은 모양의 소나무를 2년 연속 심었다. 임기 첫해인 2008년 4월 정문에서 본관과 녹지원 방향으로 길이 갈라지는 삼거리 옆에 반송을 닮은 원뿔 모양 소나무 한 그루를 심었고, 다음 해 식목일에도 거의 같은 나이의 닮은 소나무 한 그루를 녹지원 서쪽 입구에 심었다.

 

▲청와대 소정원의 이팝나무.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4월 8일에 기념식수한 나무다. /눌와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정치를 시작한 대구 달성에서 이팝나무를 가져다 2013년 청와대 경내에 심었다. ‘이팝나무’ 이름에는 여러 설이 있다. 배고픔에 시달리던 옛사람들은 꽃이 활짝 피었을 때의 모습에서 수북이 올려 담은 흰쌀밥 한 그릇을 연상했다고 한다. 조선 왕조 임금의 성이 이(李)씨이므로 벼슬을 해야 이씨가 주는 귀한 쌀밥을 먹을 수 있다 해서 쌀밥을 ‘이(李)밥’이라 했고, 꽃이 활짝 피었을 때 모습이 이밥 같다고 ‘이밥나무’라 하다가 이팝나무가 됐다는 설이다. 꽃피는 시기가 대체로 양력 5월 5~6일경인 입하 무렵이라 ‘입하나무’로 부르다가 이팝나무로 변했다는 설도 있다. 박 교수는 “나무에 무슨 귀족 나무가 있고 서민 나무가 있겠냐만, 굳이 따진다면 이팝나무는 배고픔의 고통을 아는 서민 나무의 대표라 할 수 있다”고 했다.

 

▲상춘재 앞의 동백나무.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4월 7일 심은 기념식수이다. /눌와

 

문재인 전 대통령은 식물에 관심이 많았고 해박한 지식도 갖추고 있었다. 모감주나무를 남북 정상회담 기념으로 북한까지 가져가서 심었고 임기 마지막 해에는 청와대 경내에 기념식수하기도 했다. 2019년 4월에는 상춘재 앞에 동백나무를 기념식수했다.

 

조선일보 허윤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