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반도 2023-08/
08.02 亞太 5자 안보협력체 창설, 한국이 선도적 검토를
NATO의 한·일·호주·뉴질랜드 초대
아시아·태평양 외연 확대 의지
독일도 18년 친중 정책 결별 선언
“중국에 항거하는 태평양과 협력”
중·러의 진영 결집 맞서
유럽·아태의 美 동맹 연결 움직임
한국 정부, 적극 검토할 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월 12일(현지시간) 리투아니아 빌뉴스 한 호텔에서 열린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4개국(AP4) 정상회동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 크리스 힙킨스 뉴질랜드 총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앨버니지 호주 총리, 윤 대통령, 기시다 일본 총리, 힙킨스 뉴질랜드 총리. /뉴시스
냉전 시대에 소련의 서유럽 침공을 막고자 결성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최근 보여주는 변화의 행보가 인상적이다. 이는 다분히 나토가 러시아의 도전에 응전하는 과정에서 유발된 피동적 행보다. 러시아는 나토의 팽창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우크라이나 침공을 단행했으나, 오히려 나토의 급속한 재무장을 초래했고, 70년 중립국이던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합류를 촉발했으며, 친러시아와 반러시아로 분열됐던 유럽을 반러시아 전선에 결집시켰다. 나토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러시아와 인도양을 건너뛰어 멀리 아·태 지역까지 동진하는 광폭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과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합병은 다분히 유럽의 문제였고, 동아시아의 미·중 패권 경쟁은 주로 인도·태평양에 국한된 문제였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자유 민주 진영과 중국·러시아 진영의 결집이 세계 각지에서 이루어짐에 따라, 유럽과 인도·태평양 사이의 지리적 경계는 허물어지고 진영 대립 체제가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다. 이로 인해 그간 유럽 대륙에 안주해 온 나토도 지리적 경계를 뛰어넘어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관심과 협력의 외연을 넓혀가고 있다.
지난해 나토 정상 회의가 채택한 ‘전략 개념’ 문서는 중국을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명기함으로써 동아시아의 문제에 직접 개입하기 시작했고, 유럽의 가장 대표적 친중 국가였던 독일은 지난달 발표한 ‘대중국 전략’에서 과거 18년에 걸친 친중 정책과의 결별을 선언하면서 “중국의 패권 추구에 항거하는 인도·태평양 지역 국가들과의 안보‧군사 협력 확대” 방침을 천명했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도 지난달 ‘포린어페어스’ 기고에서 나토와 인도·태평양 파트너국 사이의 안보 협력 확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작년과 금년 나토 정상 회의에 아·태 지역 파트너국인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정상이 초청된 것은 이러한 나토의 외연 확대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그 파트너 4국이 금년도 나토 정상 회의에 나토 회원 31국과 함께 참석한 광경은 대단히 시사적이었다. 이들은 국제사회에서 자유 민주 진영이 보유하고 있는 군사 안보 분야 재산 목록의 대부분이기도 하다. 이들 중 11국이 6·25전쟁에 파병해 우리와 함께 싸웠고, 향후 한반도나 대만에서 전쟁이 재발하면 제일 먼저 지원에 나설 나라도 바로 이들이다. 그 반대 진영 국가들은 주로 상해협력기구(SCO) 주변에 모여 있는데, 중국, 러시아, 이란, 파키스탄, 벨라루스 등이다. 그 그룹을 대표하는 중국과 러시아는 지난주 평양에서 개최된 6·25전쟁 전승 기념 열병식에 고위 대표단을 파견해 그들 공동의 ‘승전’을 축하했다. 70년이 흘렀지만, 한반도의 군사적 역학 관계는 그때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다.
미국은 이들의 군사적 위협에 대항해 유럽과 아·태 지역에서 별개의 동맹 체제를 운영 중인데, 신냉전 체제의 도래와 더불어 두 지역 동맹 체제를 상호 연결하려는 움직임이 태동하고 있다. 작년 이래 아·태 지역 파트너 4국의 나토 정상 회의 참석으로 나토의 동진과 아·태 동맹 체제의 서진은 이미 시작되었다. 자유 민주 진영의 범세계적 방어 체제를 완성하려면 궁극적으로 미국과 아·태 4국 간 개별 동맹 체제의 토대 위에서 이들을 하나로 묶는 광역 안보 협력체를 형성해 나토와 횡적 협력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국이 오랜 앙숙인 독일과 프랑스, 독일과 폴란드 등을 나토 지붕 아래 하나로 묶었듯이, 아·태 지역의 불편한 이웃인 한국‧일본, 호주‧뉴질랜드를 미국과의 5자 안보 협력체로 묶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 4국은 나토 정상 회의를 계기로 이미 두 차례나 4자 정상회담을 개최한 바도 있다.
이 같은 5자 안보 협력체는 국내 정치적 변화에 따른 대외 관계 격변이 유난히 심한 한국에 매우 안정적인 안보 협력의 틀이 될 수 있다. 과거 한일 관계가 어려울 때마다 한·미·일 3자 안보 협력은 중단되기 일쑤였지만, 림팩 훈련 같은 다국적 군사 협력은 거의 중단 없이 지속되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국내 정치 변화에 취약한 한·미·일 3자 협력체와는 달리, 5자 안보 협력체를 통해 국내 정치 변화에 따른 우리 안보 외교의 불연속성을 최소화할 수 있고 그 틀 안에서 한일 협력의 안정적 발전도 기할 수 있다. 이를 감안해 한국 정부가 인·태 전략 차원에서 5자 안보 협력체 창설을 선도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08-02 유엔 제재 와해시킬 북·러 WMD 거래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외교안보센터 연구위원
6·25 정전 70주년이다. 신생 민주공화국을 짓밟은 것은 붉은 깃발을 앞세운 김일성의 공산 침략군이었는데 북한은 뻔뻔하게도 정전기념일을 전승절이라고 부르며 열병식까지 한다. 이번 열병식에는 서울을 점령했던 312호 전차와 함께 서울 점령부대까지 등장시켜 “령토완정”, 즉 적화통일 의지를 내비쳤다. 야간에 수만 명을 동원하여 행진하고 심지어 비행기 날개에 조명등을 달고 서커스를 하는 국가는 북한밖에 없다.
이런 자신감의 배경에는 핵이 있다. 북한은 연초부터 ‘화산-31’ 전술 핵탄두, ‘화성-18’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신형 핵무기들을 공개해 왔다. 특히, 언제든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법령까지 만들었다. 핵무기야말로 김정은의 유일한 치적이며, 전제 정권 유지를 위한 숭배의 대상이다. 이번 열병식에서 북한은 재래무기는 제쳐놓고 전술핵 미사일과 ICBM 등 핵무기만으로 행렬을 구성하며 핵 협박의 강도를 높였다. 자신들의 침략과 패배에 대한 반성은 오간 데 없다. 이제 핵으로 승리할 것이라고 공언한다.
더 우려스러운 장면은 열병식 관람석에서 펼쳐졌다. 김정은의 좌우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과 리훙중 중국 전인대 상무위 부위원장이 위치했다. 6·25전쟁을 일으킨 북한·중공·소련의 연대가 정전 70년 만에 다시 등장한 것이다. 북한은 북·중·러 연대의 부활을 위해 그간 꾸준히 노력해 왔다. 공식행사 때마다 반미·반제국주의의 선두에 북한이 있음을 과시하며 중국과 러시아에 자국을 활용할 것을 암시해 왔다.
지난해 북한이 러시아에 탄약 등을 판매한 이후, 우크라이나 전쟁을 책임지는 수장인 쇼이구 장관이 북한을 방문한 것은 전쟁 필요 물품을 북한에서 조달하겠다는 심산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김정은은 손수 쇼이구 장관을 이끌고 자국 무기전시회장으로 가서 다양한 대량파괴무기(WMD)를 열정적으로 소개했다. 러시아의 구매 무기는 구형 탄약에 그치지 않고 신형 KN-23과 KN-25 등 단거리탄도미사일로 확장될 것이다.
대러 무기 수출이 이뤄지면 북한은 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공식적인 군사협력을 재개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실전 데이터를 확보해 더 확실히 대한민국에 핵을 투발할 수 있게 된다. 게다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의 핵심인 WMD 금수조치를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어기게 된다. 그간 공들여 쌓은 대북제재 체제를 단숨에 무너뜨리는 계기가 될 만큼 위험한 일이다.
작금의 상황은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 협력의 중요성을 재확인시켜 준다. 최근 워싱턴선언에 따른 한·미의 핵 기반 확장억제 강화야말로 핵을 활용한 북한의 경거망동을 막을 수 있는 소중한 수단이다. 특히 최근 핵 억제력의 상징인 전략핵 잠수함이 부산에 입항해 위용을 과시했지만, 이제 전술핵 배치훈련의 정례화 등으로 북한을 압박해야 한다.
북·러 무기거래는 세계 안보뿐만 아니라, 우리 안보를 뒤흔들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연설처럼 대서양 안보와 태평양 안보가 분리될 수 없다. 러시아가 북한과의 무기거래로 대북제재를 무너뜨린다면, 우리도 우크라이나군에 첨단 무기를 제공하여 러시아를 패배시킬 수 있음을 알려야 한다. 이제 우리 정부가 러시아에 경고를 해야 할 때다.
문화일보
08-02 와다 하루키 “이승만, 통일열망 강했던 민족주의자…‘업적 제로’평가는 잘못”

‘▲한국전쟁 전사’ 한국어판 출간 기념으로 방한한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가 지난 7월 31일 서울 중구 한 호텔에서 가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이라는 국가는 전쟁과 정전 논란 속에서 이승만이라는 사람이 만들어낸 성과”라고 말하고 있다. 박윤슬 기자
■ 파워인터뷰 - 지한파 역사학자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대한민국 생기는 기틀이 된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에
李 노력 있었다는 점은 분명
독립운동했던 사람이기도 해
남북 대립, 해결 어려운 상황
무리한 통일추진땐 위험해져
평화적으로 대립하는게 중요
北은 전쟁서 태어난 사회주의
‘자주국방’주장 근거가 핵무기
인터뷰 = 김석 국제부장
“지금의 한국은 이승만이라는 사람의 끈기가 만들어낸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일본 내 대표적 지한파로 한국과 북한 현대사를 연구해온 와다 하루키(和田春樹·85) 도쿄(東京)대 명예교수는 지난 7월 31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 “이승만의 업적을 제로(0)라거나 해악만 끼쳤다고 보는 건 비역사적 평가”라며 이같이 말했다. 한국전쟁 연구를 집대성한 ‘한국전쟁 전사’ 한국어판 출간 기념으로 방한한 와다 교수는 “이승만은 반공주의자였지만, 통일에 대해서도 적극적이었던 일종의 민족주의자적인 성향이 강한 인물”이라며 “한반도 통일을 위해 노력한 그의 열정에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와다 교수는 이번 저서에서 한국전쟁 발발 배경부터 1953년 7월 정전협정까지의 과정을 방대한 자료에 근거해 이념적 치우침 없이 서술해냈다. 그는 이번 저서에서 미국 정부 문서 등을 바탕으로 한국전쟁 발발 전 미군 철수 때 이 전 대통령의 무기 확보 노력, 정전 카드를 활용한 미국과의 상호방위조약 체결 등을 상세하게 기술했다.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를 부정해오던 미국 국방부가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로 방향을 바꾼 배경을 ‘이승만의 끈기였다’고 평가했는데 이러한 평가를 내리신 이유가 궁금하다.
“한국은 과거 민주화 과정에서 민중들의 노력이 있었다. 1960년에 학생혁명(4·19 혁명)과 같이 이승만을 쫓아내려는 시도가 있었던 건 분명하다. 그다음으로 박정희 정권과 군부 정권을 끝내려고 했던 1980년대의 민주화 혁명이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점을 강조해서 이승만의 업적을 제로(0)로 보거나 해악만 끼친 사람으로만 보는 건 비역사적인 평가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생기는 데 기틀이 된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에 있어서 이승만이라는 사람의 노력이 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한국전쟁이 끝나고 한국이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나라를 세우려 했을 때 이승만이라는 사람의 끈기가 있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승만은 반공주의자였지만, 통일에 대해서도 적극적이었던 일종의 민족주의자적인 성향이 강한 인물이다. 나는 한 인간에 대해 일면적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전쟁에서 이승만은 마지막까지 정전을 반대했다. 통일될 때까지 계속 전쟁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통일에 대해서도 강한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이라는 국가는 그런 상황 속에서 이승만이라는 사람이 만들어낸 성과라고 나는 생각한다.”
―정전협정에서 한국이 빠진 이유는.
“그 문제에 대해서는 오해가 있다. 이승만이 정전협정에 반대해서 협조하지 않았다는 건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정전협정은 유엔군과 북한 쪽 중국 인민군, 조선 인민군이 전쟁에 대해서 정전 회담을 한 것이다. 당시 한국은 유엔군에 포함되어 있었으니, 한국은 따로 정전협정에 서명할 필요가 없었던 상황이다. 문제는 한국 정부가 이를 인정하느냐의 문제인데 이승만은 정전협정을 계속해서 인정하지 않았다. 이승만은 계속해서 반대했고, 내가 책에 썼듯이 미군은 쿠데타를 일으켜 이승만을 제거할 생각까지 했었다. 마지막 순간에 이승만은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맺는다면 정전을 인정하겠다고 했다. 북한 공산당의 입장에서 보면, 사실 북한과 중국도 중·조 연합 사령부를 만들어 중국 인민군 쪽 사령관인 펑더화이(彭德懷)가 공산당 군대 전체를 총괄했다. 중국 펑더화이와 미국의 연합사령관이 조약을 맺으면 정전이 되는 상황인데, 중국 인민군과 조선 인민군이 중·조 연합사령부 설립 사실을 비공개로 했다. 그래서 3자가 협상을 맺는 구도가 된 것이다.”
―그런데도 북한은 평화 협정 등의 논의가 나오면 “한국은 빠져라. 우리는 당사국인 미국과 이야기를 하겠다”는 주장을 편다.
“난센스다. 한국전쟁은 한국과 북한이 서로 존재를 부정하고 통일하려 한 전쟁이다. 그게 기본이다. 그런데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으니까, 한국은 정전협정에 서명을 안 했으니까, 평화협정에 대해서도 대화하지 못하겠다는 식으로 말하는 건 하나의 교섭술이다. 당사국인 한국이 안 들어가면 의미가 없지 않으냐. 그런 식의 북한 주장은 의미가 없다.”
―이 전 대통령에 대해 한국 진보와 보수에서는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린다. 이번 책을 저술하실 때 이승만에 대한 평가가 바뀌셨는지 궁금하다.
“일본인의 시각에서 보면 이승만은 한국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이자 조선 민족주의 운동을 했던 사람이다.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임시정부 운동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했던 독립운동에 대해 한국 내부의 평가가 엇갈리는 경향이 있다. ‘이승만이 임시정부 대통령을 잠시만 했으니 독립운동을 짧게 했다’ ‘미국으로 망명해 미국에 기대서 일했다’ 등의 평가가 있지만, 일본 입장에서 보면 조선의 독립을 위해 운동해온 민족주의자다. 그 점에서 우리는 경의를 표하고 있다. 이승만에 대한 나의 입장이 바뀌었느냐 물었는데, 회상해보면 바뀌지 않았다. 한국전쟁에 대한 책을 서술한 입장에서 보면 이승만이 이 정도로 통일을 바랐다는 점에 감명받았다. 그의 이념이 공산주의건 민주주의건, 한반도가 통일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를 위해 노력한 것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한다.”
―한반도는 책에 쓰신 ‘특별한 적대적인 상태’가 여전히 계속되는 모습이다. 이러한 적대적 상태 해소가 가능할까.
“결국 한반도에서는 일본 제국주의가 무너진 뒤 한국과 북한이라는,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두 개의 국가가 태어나 버렸다. 한국민에게는 물론 아무런 책임이 없지만, 이처럼 나라가 분단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이 체제를 해소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지만, 주목해야 할 점은 한국전쟁 정전 이후 무력 통일은 실패했다는 점이다. 한국전쟁 뒤에 양국이 무력통일을 포기했다는 건 명확하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통일을 할 수 있느냐는 건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양국은 대립하는 사이에도 진정한 공존의 길을 모색하도록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그건 어려운 일이다. 미안하지만, 남북 대립이라는 건 해결이 어려운 상황이다. 무리하게 통일하려고 한다면 굉장히 위험한 대립 관계가 돼 버릴 가능성이 높다. 평화적 대립 상태 유지는 물론이고, 통일의 길을 이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십자가의 길이다.”
“일본, 과거사 반성 철저하게 하고 한국, 파트너 인정해 미래 협력을”
위안부합의 무산 등 한일 대립속
尹 강제징용 제3자 변제안 마련
양국 관계 개선 의지 높이 평가
日 젊은세대, K-팝 등에 호의적
공존 분위기 발전 방안 고민해야
중·러, 北에 절대적 영향력 없어
일본은 북한과 경제 협력 원해
韓, 국교 정상화 지원 등 나서길
―남북 간 분단 기간이 길어지면서 사이도 멀어지는 분위기다.
“남북 간 서로 갈라졌던 기간이 길었다. 서로 국력 차이도 커지고 있다. 이승만, 박정희 시대에 한국은 여러 문제를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 민주주의 혁명에 성공했고 이를 실현했다. 한국은 혁명을 계속해왔던 나라인 데 반해 북한은 혁명을 하지 않은 나라다. 한국은 혁명을 통해서 발전해온 나라이고 경제와 체제도 갈수록 성숙하고 있다. 이에 북한은 한국에 흡수될 거라는 불안감을 점점 더 크게 갖게 됐다. 북한은 ‘전쟁에서 태어난 사회주의’다. 체제 유지를 위해서 대외적인 긴장은 북한에 필요하다. 그래서 한국과 대립하는 게 북한 체제의 전제가 되어있다. 민주주의를 통해 경제가 발전하는 한국을 북한은 ‘미국의 속국’이라고 비난한다. ‘한국은 미국의 보호를 받고 있지만, 우리는 자주 국방을 하고 있다’고 북한이 주장하는 근거가 핵무기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과 북한은 대립을 이어가니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에는 한국과 역사적 관계를 이어온 일본이라는 나라가 있다. 북한 입장에선 일본도 미국의 속국이다. 현재 일본은 식민지 지배를 반성하고 북한에 대해서 경제 협력을 하고 싶어한다. 지금 국제정세를 봤을 때, 한국이 북한 문제에 일본을 끌고 와 남·북·일 협력을 하면 어떨까 생각한다. 여기서 한국은 일본을 지지해서 북한과 일본이 국교 정상화하고 협력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남북 관계를 남·북·일 3국 관계로 바꾸고, 적대적 대립 상태를 해소하는 게 과제라고 생각한다.”
―정전 70주년 기념일(7월 27일)을 맞아 북·중·러 대 한·미·일이라는 대립 구도가 더욱 뚜렷해지고 있는데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한국전쟁과 정전은 미국과 소련 간 대립 체제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1990년대 초에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했고 냉전이 끝나면서 여러 변화가 나타났다. 2000년대에 미국에 대한 이슬람의 테러리즘이라는 도전이 발생하자 미국과 중국·러시아가 협력했고, 북한은 핵을 가지고 이런 국제 정세에 대해 대항하려 했다. 이슬람 테러리즘의 시대가 끝나고 이어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기점으로 끝났다고 생각했던 전제주의와 민주주의의 대립이 부활했다. 미국은 전면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북한은 러시아를 지지하는 소수의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중국은 암묵적으로 러시아 편에 섰고,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에 대한 대응은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됐다. 러시아와 협력하는 중국의 힘을 약화시키는 게 전쟁을 대하는 미국의 태도가 되었다. 현재 상황에선 미국이 견제하는 전제주의 국가가 러시아·북한·중국이다. 한·미·일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 연합을 구축했다. 냉전으로 다시 회귀했다는 생각이 든다.”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서 러시아와 중국은 어떤 입장을 취할 거라고 생각하는가.
“북한이 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러시아와 중국이 뒤에서 원조하기 때문이라고 많은 이들이 생각하지만, 그런 것 같진 않다. 러시아 자체가 당장 굉장히 큰 내부 문제에 얽혀있고, 그게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그 전쟁을 간단히 끝낼 수 없는 상황에 와있다. 러시아가 북한에 대해 큰 영향을 미치는 건 기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북한은 러시아와 중국으로부터 원조는 받지만, 큰 원조를 받거나 순응하려는 자세를 보이는 것에 대한 경계감이 있다. 중국에 대해서도 북한은 미묘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북한은 자신이 중국·러시아로부터 떨어져 자립하고 있다는 것을 가장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양국이 북한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쳐서 북한을 바꿀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 한·일 관계를 어떻게 보나.
“한·일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같은 입장에 서 있다. 일본은 미국 도움으로 헌법 개정을 이뤘고, 한국은 미군이 주둔하며 지켜주고 있다. 그런데 지금 미국은 극단적으로 국내 대립이 심화하는 등 위험한 상황이다. 그런 만큼 한국과 일본은 본인들의 국익을 위해서 협력해야 한다. 물론 한국 내에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과 관련해 ‘일본은 아무 사죄도 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있다. 일본에 나 같은 지식인들도 ‘일본이 제대로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것이 결국 1990년 무라야마(村山) 담화·고노(河野) 담화로 이어진 거고, 1998년 김대중-오부치(小淵) 파트너십 선언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한국과 일본이 협력하기 위해서는 일본이 식민지 시대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성하는 게 꼭 필요했다고 본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런 담화나 아시아여성기금을 통한 위안부 문제 해결 노력이 불충분하다는 지적도 있다. 2000년대 이후부터는 이런 상황 속에서 양국 간 대립이 너무 심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체결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무산시키지 않았나. 물론 나도 그 기분은 알지만, 일본과 한국은 과거를 반성하고 협력해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가 해결이 안 된 상황에서도 김대중-오부치 파트너십 선언까지 가지 않았나. 서로 성과를 인정하고 한국 국민 역시 일본과 협력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강제징용 제3자 변제 등 한·일 관계 정상화 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한국 측의 지적대로 일본이 충분히 반성하지 않은 측면이 있지만, 윤석열 정권 출범과 함께 한·일 양국에서 협력하고 싶다는 여론이 대두된 것 같다. 윤 대통령은 일본을 비난하는 건 그만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지를 갖고 외교를 해나가는 것 같은데, 이런 국면까지 끌고 온 것을 칭찬하고 싶다. 일본 정부가 이런 윤 대통령을 도와주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전혀 도와주지 않고 있다. 그건 문제라고 생각한다. 윤 대통령이 일본과의 관계를 좋게 만들겠다고 하는 건 양국 모두에 지지 여론이 있기 때문이다. 개선하겠다는 그런 마음도 좋지만, 한국과 일본이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방향도 중요하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5월 방한 당시 강제징용 문제를 개인적으로 사과하면서 한국 내부에서는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에 일본 정부의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2015년에 위안부 합의를 맺었을 때, 아베 전 총리는 ‘이걸로 사죄는 마지막’이라고 했었다. 기시다 총리는 당시 아베 내각 외무상이었고 직접 위안부 합의를 이끌어냈다. 한국에서는 이를 납득하지 못한다는 여론이 많았고, 기시다 총리는 이에 대해 굉장히 반발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사과를 했는데, 그게 안 받아들여졌다고 생각해 기시다 총리와 아베 전 총리는 굉장히 화를 냈다. 아베 전 총리가 화낸 건, 그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기시다 총리가 그런 식으로 말한 건 문제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총리가 됐을 때 위안부 재단 관련 조치를 취해야 했다. 인간이라면 자신이 위안부에게 사죄한 것에 대해서 책임지고 해결해야 하는 게 맞는데, 합의가 파기됐다고 화를 냈다. 이 때문에 기시다 총리가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일본 내에서 나오는 거다. 그래서 난 기시다 총리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상황을 지금 바꾸는 건 잘되지는 않을 것 같다. 문재인 정권 들어서면서 위안부 합의가 무산되는 상황이 되자 당시 외무성 내에서는 ‘한국은 대체 뭐냐’라며 화를 내는 여론이 많았다. 이에 아베 전 총리는 2019년 한국과는 관계를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시켜 버리면서 본인의 생각을 대외적으로 드러냈다. 당시 아베 전 총리는 ‘한국을 외교적으로 상대하면 안 된다’고까지 생각했다. 이후 아베 전 총리는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전략’을 통해 대만, 필리핀과 협력해서 중국에 대응한다면서도 한반도는 외교 상대에서 제외한다는 구상을 했다. 실제 아베 전 총리는 2019년 한 일본 주간지 인터뷰에서도 ‘한국은 외교적으로 중요하지 않다’고 계속 이야기를 했었다. 아베 전 총리는 죽기 직전까지 한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도 자민당 내 수뇌부 중 일부는 ‘한국이 머리를 숙이고 들어온다면 받아들이겠다’는 생각을 한다. 한·일 관계는 끝없이 대화하면서 생각하는 방식을 새롭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향후 한·일 관계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보는지.
“솔직히 말해서 한·일 관계와 관련해 일본의 현재 여론은 그렇게 밝진 않다. 하지만 일본의 젊은 세대는 한국에 호의를 가지고 문화나 음악을 즐기며, K-팝 같은 것들도 굉장히 즐겨 듣고 있다. 나는 이런 현상이 양국 간에 문제 많은 역사 속에서도 서로 공존하는 분위기를 만든다는 점에서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과연 역사적으로 발전하며 나아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또 향후 한·일 관계는 북한과의 관계와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큰 걱정거리는 북한이다. 북한이 핵실험 등 군사적 행보를 하는 건 굉장히 걱정되는 문제다. 동해를 ‘군사의 바다’로 만들 순 없기에 북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한국에서 동북아 전체를 어떻게 만들지를 일본에 전달하고, 그걸 좀 더 고민하고 공유할 필요가 있다. 일본 입장에서 한국이 생각하는 방식을 잘 이해하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공유하는 것, 그리고 북한과 어떻게 연결해야 할까가 과제다. 시민운동이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일본 시민운동이 고령화 문제를 안고 있다. 그래서 일본의 젊은 세대가 한국과의 관계를 고민하고 만들어 나가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일본의 젊은 사람들이 한국인들과 더 가까워지고 시민사회가 새로운 협력방안을 고민하게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50년전 김대중 납치사건 계기로 韓연구 시작 과거사 해결 앞장서온 日학계‘살아있는 양심’
■ 와다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정전’이라고 적힌 배지를 늘 차고 다닙니다.”
일본 학계의 ‘살아있는 양심’이라고 불리는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東京)대 명예교수가 지난 7월 31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본인의 왼쪽 가슴에 찬 배지를 가리키며 한 말이다. 그는 한·일 관계를 연구해온 학자로서뿐만 아니라 일본의 ‘평화주의’를 상징해온 지식인이다.
와다 교수는 당초 전공은 러시아 근대사였지만 1980년대부터 북한 연구로 이름을 날렸다. 1973년 8월 김대중 납치사건을 계기로 한국 연구를 시작했다. 이때부터 와다 교수는 단순한 한국·북한 연구를 넘어 일제 식민지배와 화해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앞장서왔다. 1995년부터 2007년까지 아시아여성기금 발기인, 운영심의회 위원, 이사, 전무이사,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또 지난 2010년 ‘한국병합 100년에 즈음한 한·일 지식인 공동성명’의 일본 측 대표를 맡기도 했다. 이처럼 그는 한·일 관계 개선에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2010년 제4회 후광 김대중 학술상을 수상했고, 2012년에는 DMZ평화상, 2019년엔 만해상을 수상했다. 2016년부터는 북일국교촉진국민협회 이사 및 사무국장으로 활동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김일성과 만주항일전쟁’(1992), ‘한국전쟁’(1999), ‘북조선’(2002), ‘한일 100년사’(2015), ‘북한 현대사’(2014),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2016), ‘아베 수상은 납치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2018) 등이 있다.
△1938년 일본 오사카(大阪) 출생 △도쿄대 문학부 서양사학과 졸업 △도쿄대 사회과학연구소 소장 △도호쿠(東北)대 아시아 연구센터 객원 교수 △아시아여성기금 발기인 △북일국교촉진국민협회 이사
한국戰 ‘동북아 전쟁’ 규정… 발발부터 정전까지 방대한 사료 제시
■ 와다 교수 ‘한국전쟁 전사’는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東京)대 명예교수가 한국전쟁 정전 기념일 70주년(7월 27일)을 맞아 내놓은 ‘한국전쟁 전사’ 한국어판은 교수 스스로 “한국전쟁을 주제로 한 마지막 책”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방대한 자료에 근거를 두고 있다. 와다 교수는 ‘전사(全史)’라는 제목이 무색하지 않게 한국전쟁의 발발 전부터 1953년 7월 정전협정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남북한은 물론 미국과 중국, 소련, 일본 등의 사료에 근거해 써내려갔다. 그는 한국전쟁이 발발하기까지의 원인과 상황, 한국전쟁이 남북한과 미국, 소련, 중국, 일본, 대만에 주는 의미, 한국전쟁이 이후 동북아와 세계 질서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는 데 방점을 뒀다. 또 김일성이 스탈린을 집요하게 설득해 남침 승인을 받아내는 상황, 중공군이 전쟁에 개입하는 과정, 정전협정을 둘러싼 북한과 중국·소련 간 갈등, 소련과 북한이 실패로 끝난 한국전쟁을 마무리하기 위해 내부에 적을 만들어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 등을 상세하게 기술했다.
정리 = 김선영 기자 sun2@munhwa.com
08-04 황준국 유엔대사 “북한 식량위기는 정권이 자초… 미사일로 허공에 날려”

유엔 안보리 토론회서 지적
황준국(사진) 주유엔 대사가 북한 주민의 굶주림에 대해 북한 정권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황 대사는 3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분쟁에 의한 글로벌 식량 안보’ 공개토의에 참석해 “최근 더 악화한 북한의 식량 위기는 북한 정권의 잘못된 선택 때문”이라며 “북한이 지난 1년 반 동안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포함한 12차례의 미사일 발사로 식량 위기를 해소할 수 있는 자원을 허공에 낭비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2022년 북한이 식량의 사적 거래를 금지하는 이른바 ‘신(新) 양곡정책’을 도입한 사실을 소개하며 “지난 20년간 국가 식량 배급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장마당 등 민간 시장에 식량을 의존했던 대다수 북한 주민의 굶주림은 더욱 악화했다”고 우려했다. 황 대사는 아울러 식량의 전쟁 무기화를 규탄하는 미국 주도 공동성명에 한국이 동참하고 있다면서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심각한 영향을 받는 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한국의 지원 노력을 언급했다.
황혜진 기자 best@munhwa.com
08-04 중국의 오만을 다스리는 방법

대부분 선진국과 우리 국민 다수는
중국 오만함과 강압성에 고개 흔드는데
한국 야당, 좌파는 물론 지식인들도 침묵
이제 당당히 말하고 균형 잡을 때 됐다
무더위를 피해 이른 아침 오른 북한산. 대남문에서 바라보는 백운대의 웅자(雄姿)는 수십 수백 번을 마주해도 장엄하다.
그런데 산성길을 걷다 보면 시골집 담벼락처럼 낮은 성벽이 다소 의아스럽다. 언젠가 읽은 글이 생각났다.
“조선은 명(明)과 청(淸)으로부터 끊임없이 군사적 트집에 시달렸다. 심지어 왜 북쪽을 보고 성을 쌓았느냐, 성의 높이가 왜 이리 높으냐며 핍박해 대는 바람에 도로 허물거나 낮춰야 했다.”(도서출판 동문선 신성대 대표의 글)
실제로 병자호란 때 청나라는 조선의 축성을 금지시켰다. 이후 숙종 36년 해적 피해를 입은 청이 방비를 강화하라는 외교문서를 보내옴에 따라 축성 금지가 사실상 해제됐고 숙종 37년 북한산성을 수축(修築)했다고 문헌은 전한다.
산을 내려와 식당에서 뉴스를 검색하니 퓨리서치센터가 24개국 3만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중국에 대한 인식 조사 결과가 떴다.
중국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가진 성인 비율이 일본 호주 87%를 비롯해 스웨덴(85%) 미국(83%) 캐나다(79%) 독일(76%) 등 모든 선진국에서 압도적이었다.
한국에선 77%였다. 2015년 37%→ 2019년 63%→ 2022년 80%로 최근 수년간 급격히 부정적 인식이 높아진 것이다.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 비율이 낮아진 국가는 인도네시아 케냐 나이지리아로, 중국이 대규모로 돈을 쏟아 부은 나라들 뿐이었다.
중국은 어쩌다 이렇게 세계의 밉상으로 전락한 걸까.
31년전 한중수교 직후의 한 장면이 기억난다. 한국에 부임한 초대 주한 중국대사 장팅옌(張庭延)이 기자 간담회를 가졌다. 당시 동아일보가 석간 때여서 기사 마감을 하느라 필자는 간담회에 다소 늦게 도착했는데 대사는 간담회 시작을 늦춘 채 기다리고 있었다. 늦어서 미안하다고 했더니 장 대사는 친절하고 공손한 태도로 “동아일보 없이는 간담회를 할 수 없죠”라며 반겼다.
당시 장면을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불러놓고 겁박성 발언을 서슴지 않은 싱하이밍(邢海明)대사와 비교해 본다. 수교 이후 중국의 태도는 갈수록 무례해져 8대인 현 싱 대사에 이르기까지 재임중 내정간섭성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키지 않은 이가 드물 정도다.
물론 대사들의 오만한 언행은 반중정서라는 거대한 둑이 쌓이는데 흙 한삽 추가한 것에 불과할 것이다.
중국 당국의 횡포에 시달리다 생산설비도 챙기지 못한 채 야반도주해야 했던 기업인들의 한탄이 쌓이고, 터무니없이 가로 채려는 우리 역사와 문화유산 항목들이 늘어가고, 서울에서 재한 중국인들이 중국인권을 외치는 한국인들을 경찰 제지에 아랑곳없이 집단폭행(2008년 서울올림픽공원 폭행사태)하고, 대통령을 수행한 기자들이 중국 경호원들에 폭행당하는(2017년 문재인 대통령 방중 당시) 등 상대를 얼마나 쉽게 여기면 저러는가 싶은 일들이 강 하구에 퇴적물이 하나둘 쌓여 둑을 이루듯 지금의 반중정서를 형성한 것이다.
중국은 교장 선생님 앞에 불려온 학생처럼 공손하게 앉아 경청하던 이재명 대표의 태도를 한국 국민의 보편적 정서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미국 일본에 대해선 막말 폭언을 서슴지 않는 민주당과 좌파 활동가들이 중국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이유는 △무의식 속 사대주의, 소중화(小中華)주의의 잔재 △사회주의 종주국에 대한 심정적 유대감과 종속감 △현실을 도외시한 평화 우선 가치관의 영향일 것이다. 중국과 갈등하면 우리가 입는 피해가 크니까 수모를 당해도 갈등 없는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인식이다.
중국의 심리전에 포섭된 이들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은 최근 수년간 미국 상원의원, 영국 노동당 의원, 호주 지방선거 등 세계 곳곳에서 정치인 포섭을 위해 뇌물 선거자금 지원 등의 방법을 동원하다 적발됐다.
더 실망스러운 것은 지식인 집단의 침묵이다. 과거 수년간 중국이 그 어떤 오만한 행태를 보여도 나서서 공개적으로 질타한 중국 분야 관련 교수나 전문가는 손으로 꼽을 정도다.
이는 중국이 오랫동안 쌓아온 친중파 육성 전술의 산물일 수 있다. 중국은 그동안 수많은 교수 전문가 등을 세미나 등 명목으로 초청해 선물 보따리를 안기고, 숱한 연구 용역 프로젝트를 발주했다.
중국의 오만은 한국이 원칙에 입각한 외교를 못한 탓도 크다. 임시방편적으로 당장의 피해 회피를 위해 우호적인 협조를 기대하고 중국의 비위를 맞춰 줬지만 지금의 중국은 보은과 신뢰라는 동양적 가치관을 중시했던 옛 나라가 아니라 공산당이 지배하는 국가다.
미국의 국가안보전략(NSS)보고서가 미국의 타겟이 중국이 아니라 중국공산당(CCP)이라고 명시하고 있듯이 우리도 지금 상대해야하는 공산당 정권의 특성을 명철하게 파악해야 한다.
중국의 태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정부와 민간 모두 국제규범 기준에 맞게 품위 있으면서도 당당하게 비판하고 반박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외국인 건강보험 제도 개선안, 지방선거 투표권 개선안은 합리적이며, 국제 기준과 상호주의 원칙에 부합한다. 사사건건 다 반대하는 민주당과 좌파언론들은 당장의 중국 이익 옹호가 오히려 국민의 혐중 정서를 강화시켜 한중관계를 더 악화시킬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6·25전쟁 왜곡도 시정을 요구해야 한다. 중국인들은 6·25를 김일성의 남침전쟁이 아니라 38도선을 넘어 침공해온 미 제국주의 세력을 인민해방군이 격퇴한 대미항쟁으로 교육받고 있다. 지구상 인류 중 13억 명이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바꿔 알고 있는 것이다.
먼 장래 통일 후 논의될 문제이긴 하지만 1907년 청일 간 간도협약으로 중국 땅이 되어버린 간도 문제에 대한 연구도 축적해야 한다.
중국 대외정책의 핵심은 경제적 강압조치를 외교 수단으로 삼는 것이다. 미리 입법 차원에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중국은 지난달부터 방첩법을 시행하고 있으나 우리는 기술 탈취 행위를 적극적으로 방어할 법체계가 미비하다.
중국 기업이 한국 업체를 인수합병(M&A)해 한국 기업으로 탈바꿈한 뒤 미국과 유럽연합(EU) 수출을 노리거나, 핵심 기술을 탈취해 가는 경우도 빈발할 수 있다. 이에 대비해 미국은 2018년 FIRRMA(Foreign Investment Risk Review Modernization Act·외국인 투자 위험성 검토 현대화법)을 만들어 장관급 위원회가 외국인 투자를 심사한다. 일본도 이런 기구가 있다. 미국은 미국 자본의 해외 투자를 심사하는 법안까지 제안돼 있는 상태다.
일본은 2010년 희토류 수출금지 등 중국의 무역보복을 당한 뒤 2011년에 총리실에 장관급 경제안보 부서를 만들고 관련 부처들의 조직을 강화했다.
우리 기업들이 당하는 불공정한 피해에 대해서도 당당히 얘기해야 한다.
성주 골프장을 맞교환 방식으로 사드 기지 부지로 제공했다는 이유로 롯데는 무자비한 보복을 당했다. 112개에 달했던 마트는 물론 백화점 호텔 복합단지 사업 등을 접어야 했다. 만약 미국이나 일본에 진출한 한국기업이 현지에서 정치적 이유로 이런 보복을 당했다면 국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더 어이없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눈치 보기였다. 문 대통령은 2017년 12월 대규모 경제대표단을 이끌고 방중하면서 롯데는 제외시켰고, 2018년 2월 방중한 김동연 당시 경제부총리는 12개 중국진출 기업 대표를 불러 간담회를 하면서도 롯데는 안 불렀다.
중소기업인들이 당한 피해는 더 참담하다. 손실을 견디다 못해 사업을 청산하려면 중국 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승인 절차를 의도적으로 지연시킨다. 그 기간에도 인건비는 계속 지불해야 한다. 망해도 그냥 망하게 놔두지 않고 골병들여 죽이는 식이다.
윤석열 정부는 방향은 옳게 잡았지만 당장의 경제적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질때마다 흔들릴 기미가 보인다. 분명한 원칙을 세워야 한다.
최근 정부 일각에선 중국이 싱 대사를 교체하고, 한국도 중국 체면을 위해 주중 대사를 교체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설령 아이디어 차원이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싱 대사는 투명인간 취급하면 된다. 대사로서 아무런 역할도 못한 채 한국 내 중국의 신뢰자본만 갉아먹는 시간이 길어지면 중국 정부 스스로 조치를 취할 것이다.
이제 우리가 바뀌어야 한다. 오만하고 힘자랑을 일삼는 국가 옆 국민일수록 주눅 들면 안 된다. 따질 건 따지면서 자존감을 지켜야 한다. 성벽 높이까지 간섭하고 군림해도 감내해야 했던 변방의 약소국이 아니다. 기울어진 균형추를 당당하고 냉정하게 균형으로 맞춰가야 한다.
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
월간조선 08월 호
싱하이밍이 울릉도에 간 까닭은?
중국, 동해 장악하려면 울릉도 장악해야
⊙ 중국 해군, 유럽 진출과 對美 잠수함 작전 위해 동해 장악 필요
⊙ “한국이 중국에 포획되면 유럽 국가 앞바다에서 중국 핵잠수함 보게 될 것”
⊙ 6월 6~7일, 중국 함정들 대한해협 서쪽 水路 통과… 한국 겨냥한 시위인 듯
⊙ 중국, 금년 6월부터 블라디보스토크 항만 사용권 획득
⊙ 중국에 대한해협은 다르다넬스-보스포루스해협에 러시아가 갖는 의미만큼이나 중요해질 것
윤민우
1972년생.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미 인디애나주립대 범죄학과 석사, 샘휴스턴주립대 형사사법학대학 범죄학 전공 박사, 서울대 외교학과 국제정치학 박사 / 가천대 경찰정보학과 교수, 現 국가정보원 자문위원, 국군방첩사령부 자문위원 / 《폭력의 시대 국가안보의 실존적 변화와 테러리즘》 저술

▲중국은 서태평양 지역에서 패권을 확보하기 위해 해군력을 증강하고 있다. 사진은 2019년 12월 17일 항공모함 산둥에 올라 사열을 하는 시진핑 국가주석. 사진=신화/뉴시스
지난 6월 9일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 대사는 이재명(李在明)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만찬 회동에서 “한국은 미국이 승리하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는 데 베팅을 하는 것 같은데, 분명히 잘못된 판단”이라며 “앞으로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고 위협, 내정간섭과 막말 논란이 일었다. 얼마 후, 지난 5월 16일 국내 A기업이 울릉도에서 운영 중인 최고급 숙박시설에 싱 대사가 아내와 함께 무료로 숙박했다는 접대 의혹이 불거졌다. 이와 같은 일련의 사건들은 이후 한국과 중국 간의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되었다. 안 그래도 높은 한국 내 반중(反中)감정을 더욱 격화시켰다.
하지만 이러한 논란 가운데 싱하이밍이 울릉도에 방문했다는 사실에 숨겨진 전략적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없었다. 이 글은 이와 관련된 얘기를 하고자 함이다. 물론 싱하이밍의 울릉도 방문이 의도치 않은 단순한 여행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싱하이밍이 울릉도의 해군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굳이 국내 다른 곳이 아니라 울릉도를 방문했다면? 전략적 추론(推論)은 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가운데 도출된다. 최근 발생한 일련의 동해와 관련된 에피소드들과 싱하이밍의 울릉도 방문이 서로 긴밀히 연계된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中, ‘가장 취약한 놈 한 놈만 팬다’
지난 6월 6일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 8대가 우리 영공(領空)을 침범하지는 않았지만, 남해와 동해상 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에 무단으로 진입했다가 이탈했다. 이는 2022년 5월과 11월에 중국-러시아 군용기들이 함께, 그리고 2023년 1월에는 중국 군용기 2대가 카디즈에 무단 진입한 이후에 계속되어 온 일련의 군사적 도발 중 하나이다.
지난 6월 6일과 7일에는 중국 함정들이 대한해협을 통과했다. 공해(公海)상이라 국제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부산에서 30~40km 떨어진 서쪽 수로(水路)를 통과한 사실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통상 중국 함정들은 동중국해에서 동해로 들어갈 때 쓰시마(對馬島)와 일본 열도 사이 대한해협 동쪽 수로를 경유해 왔다. 따라서 이번 사례는 한국을 타깃으로 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중국은 한국을 한·미·일 동맹체제에서 약한 고리로 보고 한국 때리기와 길들이기에 전략적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이는 “포위당했을 때는 가장 취약한 한 놈만 팬다”는 고전적 수법이다.
한편 중국은 이미 자신들을 준(準)북극권 국가라고 선언하고 북극해를 통한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 중국 해군과 공군의 일련의 동해상 도발은 동해를 지나는 해양교통로를 확보하고 동해에 대한 해양통제권을 확보함으로써 중국의 해군력을 오호츠크해와 북태평양, 북극해를 지나 북해까지 투사하겠다는 전략적 의도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도 추론할 수 있다.
‘약해진 러시아’는 ‘더 강해진 중국’ 의미

▲중국 해군은 작년 12월 러시아 해군과 함께 동중국해에서 합동훈련을 실시했다. 사진=신화/뉴시스
또 다른 사건은 중국이 165년 만에 블라디보스토크항의 사용권을 되찾았다는 사실이다. 중국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항구를 금년 6월 1일부터 중국 국내 항구처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양국 간 서명한 ‘2030년 중러 경제협력 중점 방향에 관한 공동성명’의 일환으로, 주요한 목적은 경제적인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전략적 기도에 블라디보스토크항에 대한 해군의 전략적 야심이 깔려 있지 않다고 보기는 어렵다. 블라디보스토크 항구는 1858년 아이훈 조약에 의해 러시아로 넘어갔으며 중국은 내심 이 ‘잃어버린 영토’를 회복하려 하고 있다. 중국은 궁극적으로 할 수만 있다면 블라디보스토크에 항공모함과 핵잠수함 등의 해군 전력을 전개하고 이를 기반으로 동해와 오호츠크해, 북태평양, 북극해에 진출하려고 할 것이다.
물론 러시아 또한 이와 같은 중국의 동북아 해역과 블라디보스토크를 포함한 러시아 극동 프리모리예 지방에 대한 영토적 야심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당면한 문제가 있다. 정치·경제·군사력의 한계, 그리고 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시간이 갈수록 러시아 극동 지역의 영토를 보전하고 동북아 지역에서 미국·일본, 그리고 중국과 같은 강대국과 경쟁하기가 버거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됨으로써 러시아의 힘이 소진되고, 푸틴 정부를 상대로 프리고진의 용병(傭兵) 집단인 와그너 그룹이 반란을 일으키는 등 러시아의 미래는 불투명해지고 있다.
필자가 2022년 아제르바이잔에서 만난 한 싱크탱크의 전략문제 전문가는 “캅카스 지역에서 약해진 러시아는 더 큰 안보 위협이 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는 동북아시아 지역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과거 소련처럼 너무 강대한 러시아도 안보 위협이지만 지금보다 더 약해진 러시아도 역내(域內)에 심각한 안보 위협을 초래할 수 있다. ‘약해진 러시아’는 ‘더 강해진 중국’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러시아가 자신들의 극동 지역을 굳건히 지킬 수 있기를 응원해야 할지 모른다. 러시아 극동이 중국의 영향권으로 들어가면 한국은 서해와 동해 양쪽에서 강력한 중국 해군과 맞닥뜨려야 할지도 모른다.
중화제국질서 구축의 초석
정보분석에 ‘커넥팅 닷(connecting dots)’, 한국말로 바꾸면 ‘점들을 연결하기’라는 말이 있다. 이는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사건들과 에피소드들을 서로 연결할 때, 그 숨겨진 중요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싱하이밍의 울릉도 방문과 앞서 언급한 일련의 동해와 관련된 에피소드들을 연결하여 추론하면 중국의 동해에 대한 해군전략적 의도를 도출할 수 있다.
울릉도(그리고 독도)는 동해의 해양통제권을 장악하기 위한 중요한 전략 거점이 된다. 지전략적(地戰略的)으로 울릉도는 동해의 한가운데에 있다. 해양통제권은 두 가지 도전이 충족되어야 달성된다. 하나는 해양의 자유로운 사용이며 다른 하나는 다른 경쟁 국가들의 해양의 자유로운 사용을 거부하는 것이다. 중국이 동해에 대한 이러한 해양통제권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중국은 동해로 들어가는 해양교통로의 요충(choking point)인 대한해협에 대한 접근권을 확보해야 한다.
둘째, 중국은 러시아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한반도 동해안을 거쳐 부산에 이르는 해안선에 항구를 확보해야 한다. 또한 이 항구는 중국 영토와 직접 육로로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셋째, 울릉도를 장악할 필요가 있다. 동해상의 울릉도는 ‘침몰하지 않는 해상기지’이자 동해상의 해양교통로를 통제하는 핵심 포스트가 될 수 있다.
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중국은 동해의 해양통제권을 완벽히 장악할 수 있고 동아시아에서 중화(中華)제국질서를 구축하는 초석을 다질 수 있다.
스탈린, 부산·제주 통제 시도
동해는 한국인들이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전략적 가치를 지닌다. 이는 동해가 남쪽의 동중국해와 북쪽의 오호츠크해와 북태평양, 북극해로 이어지는 주요한 연결통로라는 성격과 관련이 있다. 소련의 스탈린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북아시아에서 소련의 위치를 1905년 이전의 제정(帝政)러시아의 위치로 되돌리려고 시도했다. 이를 위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동해를 거쳐 대한해협을 통과하는 전략적 해양교통로를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스탈린은 부산과 제주도 등에 대한 소비에트 군(軍)사령부에 의한 통제를 시도하였으며, 대한해협에 대한 통제를 위해 쓰시마를 일본의 한국에 대한 공격 행동의 전초기지라는 이유를 들어 한국 영토에 편입시키려고 시도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스탈린의 의도들은 미국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었다. 브레즈네프 시기 소련의 정치적 영향력과 군사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동해의 지전략적 중요성은 더 증대되었다. 블라디보스토크를 중심으로 한 소련 극동 연안에서 동중국해와 동남아시아, 그리고 인도양으로 소련 해군력을 투사하기 위해 동해는 매우 핵심적인 전략적 연결통로가 되었다. 이 시기에 한반도 인근의 동해와 대한해협, 그리고 이어지는 제주 남방해역의 지전략적 가치는 인도차이나와 남아시아로 확장된 소련의 패권적(覇權的) 영향력으로 인해 소련의 인도차이나와 남중국해, 그리고 인도양에서의 글로벌 및 동아시아 전략과 연계된 소련 극동 지역의 해군전략에 영향을 받았다.
브레즈네프 정권 시기 동안 소련이 인도차이나와 남아시아, 그리고 남서아시아로 지정학적 세력을 확장함에 따라 이와 같은 소련의 세력 확장을 지원하는 스프링보드로서의 소련 극동 지역과 이들 지역들을 연결하는 통로로서의 한반도 인근 해역인 동해의 지정학적 가치가 중요하게 부상하였다. 예를 들면, 동해는 소련 극동해양지방에 기지를 둔 태평양 함대 전력이 베트남의 깜라인만과 다낭만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해양루트로서의 가치를 지녔다.
소련은 브레즈네프 정권 시기에 글로벌 전략의 일환으로 베트남을 통해 인도차이나를 포함한 제3세계에 소비에트의 영향력을 확장시키려고 시도하였다. 또한 인도차이나에서의 베트남의 영향력 확산을 통해 중국을 남쪽으로부터 봉쇄하려고 시도하였다. 이와 같은 소련의 베트남을 지렛대로 한 글로벌 및 동아시아 군사전략과 관련하여 해양루트로서의 한반도 인근 해역의 지정학적 가치는 매우 높았다.
이 시기 깜라인만에 위치한 소련 해군 및 항공전력은 상당한 수준으로 증강되었다. 깜라인만에 주둔한 소련 전력은 ① 중국의 전략원자력잠수함(탄도미사일원자력잠수함·SSBN)에 대한 대항과 ② 필리핀에 위치한 서방 시설들에 대한 공격 ③ 남중국해의 서방 통신라인에 대한 공격, 그리고 ④ 인도양의 소련 해군 세력에 대한 증강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베트남의 소련 해군기지는 베트남을 중심으로 넓은 반경의 범위 내에서 소비에트 잠수함 작전과 반(反)잠수함전 작전을 지원하였다.
이 시기 소련 극동에 위치한 태평양 함대에는 기존의 동아시아-서태평양 지역에서 미국과 일본의 포지션에 대항하는 임무에 더해 남서아시아에서 미군 세력을 압박하고 이란 등과 같은 새로운 소비에트 우방국들을 지원하는 역할이 추가되었다.
이 때문에 동해는 소련 극동의 해군 전력이 남중국해와 인도양으로 전개되는 해양루트로서도 지정학적 가치가 부여되었다. 당시 소련 해군의 인도양 전단은 소련 태평양 함대와 함께 블라디보스토크에 기지를 두고 운용되었다.
중국, 문명권에 따른 세계 분할 시도
오늘날 중국의 동해에 대한 전략적 야심은 과거 소련이 강성했던 시기 동해가 소련의 글로벌 해군전략에 있어 가졌던 가치에 빗대서 추론해볼 수 있다. 과거 소련이 동해를 거쳐 남서태평양과 동남아시아, 그리고 인도양으로 해군력을 투사한 것처럼 중국은 거꾸로 동해를 거쳐 오호츠크해와 북태평양, 북극해, 그리고 북해까지 해군력을 투사하려 할지 모른다. 최근 중국의 동해와 동해 연안의 항구에 대한 과도한 관심은 이러한 차원에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중국의 궁극적 글로벌 전략은 세계를 다극(多極)체제로 분할하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은 미국과 상호 호혜적이고 동등하고 민주적인 원칙에 따라 각각의 문명권을 분할하려고 한다. 각각의 문명권에서 중국, 미국 등과 같은 강대국들은 해당 권역을 통치하고 서로의 문명권에 대해서는 패권적 지위의 존중과 불간섭 원칙에 따라 글로벌 질서를 구축하고자 한다. 이는 과거 국민국가를 기본 단위로 한 베스트팔렌 원칙을 문명권을 기본 단위로 재해석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중국이 주창하는 신형대국질서라는 개념에는 이러한 의미가 숨겨져 있다.
이와 같은 다극체제에서 중국은 자신들이 설정한 중화문명권역에서 패권적 지위를 누리고자 한다. 이 때문에 중국이 주장하는 주권 존중과 국가 간 민주적 원칙은 문명권 내의 제국 중심과 주변부 국가 사이의 관계에는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 과거 명(明)·청(淸) 시기의 중국과 조공국(朝貢國)들로 이루어진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떠올리면 된다.
中, 서태평양의 美 군사력 밀어내야
중국이 이러한 다극체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군사력을 동아시아-서태평양으로부터 걷어내 하와이 동쪽으로 철수시켜야 한다.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중국이 과거 소련과 같이 미국에 대한 상호확증파괴(MAD·Mutual Assured Destruction) 역량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상호확증파괴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전략폭격기, 그리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통해 달성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중국의 ICBM과 전략폭격기가 미국에 대한 효과적인 상호확증파괴의 수단으로 활용되기는 어렵다. 이는 미국의 글로벌 미사일방어(MD)시스템과 ICBM, 그리고 해·공군력 등과 같은 우월한 군사 역량 때문이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SLBM이 가장 효과적인 대미(對美) 상호확증파괴의 수단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과거 소련이 미국과의 상호확증파괴역량 구축에서 선택한 옵션이기도 하다. 과거 소련은 이러한 맥락 때문에 SLBM에 역량을 집중하였다. 중국도 비슷한 고민을 할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의 SLBM이 효과적인 대미 상호확증파괴 수단이 되기 위해서는 서태평양으로 나올 수 있어야 한다. 하이난(海南)섬에 위치한 중국의 SLBM은 필리핀을 넘어 서태평양으로 나와서 작전을 해야 하지만 미국이 필리핀을 방어선으로 이를 틀어막고 있다. 보하이(渤海)만 등에 있는 SLBM은 일본 남단 가고시마(鹿兒島)에서 열도선을 따라 대만으로 이어지는 미국과 동맹국이 쳐놓은 해양봉쇄선을 뚫고 나오기 어렵다. 요행 중국의 SLBM이 서태평양으로 빠져나올 수 있다고 하더라도 미국의 압도적인 해군력에 맞서 중국의 SLBM이 태평양의 열린 바다에서 효과적으로 작전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는 과거 소련 SLBM도 가졌던 딜레마이다. 과거 소련은 이 때문에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비교적 가까운 그러면서도 미국의 압도적인 해군력의 접근을 거부할 수 있는 소련 지상군과 공군, 그리고 미사일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바다에서 SLBM을 운용하였다. 오호츠크해와 북극의 바다는 소련 SLBM의 주요 거점이었고, 이는 미국에 대한 소련의 가장 효과적이고 믿을 만하며, 위협적인 대미 상호확증파괴 수단이었다. 중국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중국에서 동해로 이어지는 한반도 주변 해역은 중국의 해군전략에서 주요한 의미를 가진다. 중국이 한국을 포획하려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것과도 관련이 있다.
중국의 대미 상호확증파괴능력 확보에 한반도 주변 해역은 중요한 연결고리이다. 우선, 중국은 서해를 자신의 내해(內海)로 만들려 하고 있다. 서해에 미국과 동맹국의 해군이 전개되는 것은 중국의 정치·경제·군사적 심장부인 베이징과 상하이(上海), 칭다오(靑島), 보하이만을 포함하는 중국 동부 연안 지역이 모두 미국-서방의 공격권에 들어가게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은 서해를 과거 소련이 오호츠크해를 자신들의 대미 SLBM 운용을 위해 활용했던 것처럼 대미 SLBM 운용의 스프링보드로 활용하려 하고 있다. 2019년 6월 중국은 보하이만에서 SLBM 추정 비행체 발사 시험을 한 바 있다. 미국 본토를 사정권으로 한 시험으로 추정할 수 있다.
동해–북극해 통해 유럽 진출 가능
중국은 또한 동해에도 매우 중요한 전략적 이해를 가지고 있다. 중국이 동해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북극항로 활용을 위해서는 동해를 반드시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오래전부터 한반도 동해 연안에 항구를 가지려는 관심을 강하게 보인 것은 이러한 전략적 고려와 관련이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의 세 번째 루트는 북극해를 통해 유럽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동해와 동해 연안 항구는 이러한 중국의 북극항로 개발사업에 있어 중요한 연결고리이다. 중국의 동북 지역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불과 수십km 떨어진 동해 연안 항구로의 접근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한데 북한과 이어지는 러시아 극동의 좁은 지역이 중국의 숨통을 틀어쥐고 있다.
중국이 동해 연안에 항구를 갖게 되면 이를 전진기지로 북극해를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미 중국은 아이슬란드와 노르웨이 등과 같은 북극해 인근 국가들에 영향력 공작을 강화해 왔고 이들 국가들은 중국을 주요한 위협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동해를 통한 해양 진출이 본격화되면, 대한해협의 전략적 중요성은 더욱 커지게 된다.
이 경우 대한해협의 좁은 수로는 튀르키예의 보스포루스와 다르다넬스 해협이 러시아에 미치는 전략적 중요성만큼이나 중국에 전략적으로 중요해질지도 모른다. 이는 중국이 대한해협을 통해 동해 연안의 항구들을 서해와 동중국해, 그리고 남중국해의 항구들과 연결시켜야 할 필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對美 전략핵잠수함 운용 위해 동해 필요

▲2019년 모습을 드러낸 중국의 신형 원자력잠수함. 중국 원자력잠수함이 미국을 상대로 작전하기 위해서는 동해로 진출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진=신화/뉴시스
또 다른 하나는 중국의 대미 전략원자력잠수함(SSBN) 운용의 필요이다. 이를 위해서도 중국 해군은 동해를 지나야 한다. 중국이 오래전부터 한반도 동해 연안에 항구를 가지려는 관심을 강하게 보인 것은 이러한 전략적 고려와도 관련이 있다. 중국이 러시아 극동에서 한반도 남단으로 이어지는 동해 연안에 항구를 갖게 되면 이를 스프링보드로 중국의 SSBN들이 동해와 오호츠크해, 그리고 북극해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된다. 중국 SSBN의 보급선이 상당히 짧아지게 되는 효과를 가져다주며 이는 중국 SSBN의 작전반경과 작전기간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게 한다.
북극해에서 활동하던 SSBN은 소련의 가장 위협적인 대미 상호확증파괴 전력 가운데 하나였다. 사전에 미국이 탐지하기 어렵도록 얼어붙은 빙하 아래에 숨어 있던 SSBN이 유사시에 얼음을 뚫고 발사하는 SLBM은 미국에 매우 큰 위협이었다. 중국은 이러한 그림을 그리고 있을지 모른다.
한편 과거 소련에 동해는 북쪽의 오호츠크해와 함께 소련이 미국을 상대로 전략적 핵 균형을 달성하도록 하는 지리적 이점을 제공했다. 소련 해군의 SSBN과 SLBM은 전략로켓군의 ICBM, 공군의 장거리 폭격기와 함께 미국 본토와 동아시아, 서태평양에 전개된 미국의 주요 목표물들을 공격할 수 있는 소련 핵전력 트라이앵글의 주요한 한 축이었다.
동해에서 작전했던 소련 원자력잠수함들
브레즈네프 정권 시기에 많은 수의 소련 잠수함이 동해에서 작전 중이었고 한반도와 일본 열도 사이의 바다는 소비에트 SSBN들이 전개된 지역이었다. 핵탄도미사일을 장착한 양키(Yankee)급 핵추진잠수함들이 동해에서 활동했다. 미국 내에 있는 목표물에 대한 타격의 임무를 맡은 이 양키급 잠수함 유닛들은 점차 신형인 델타(Delta)급 유닛들에 의해 대체되었다. 동시에 양키급 잠수함들은 전구(theater)급 핵전력의 역할로 전환되었다.
당시 전략핵잠수함은 소련 전체 전력의 약 40%인 15척의 델타급과 9척의 양키급이 태평양 해역에 배치되어 이에 상응하는 미 해군 오하이오(Ohio)급 5척에 비해 월등한 우위를 점하였다. 소련의 잠수함들은 동해 전 해역을 커버했으며 소비에트 해상과 항공 자산에 의해 제공되는 보호 우산(protective umbrella) 내에서 머물렀다.
소련 잠수함들로서는 연안의 지상발사 미사일과 지상에 주둔한 항공전력의 지원을 받는 것이 중요했다. 이는 소련의 해군전력이 미국의 해군전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열세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소련의 SSBN들은 미 해군의 위협에 맞서 연안의 미사일 전력과 항공전력 등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소련 연안 해역에서 주로 작전을 수행했다. 이런 맥락에서 오호츠크해와 동해는 소련 SSBN들이 안전하게 작전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중국은 이러한 과거 소련의 경험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이 중국에 포획되면…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는 지난 6월 8일 중국대사관저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만났다. 사진=국회사진기자단
한국이 중국에 넘어가면 미국과 유럽의 국가들은 중국의 전략핵잠수함을 오호츠크해와 북극해, 그리고 북해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며칠 전 필자가 참여한 EU와 스웨덴 국방안보 전문가들과의 미팅에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국이 중국의 영향권 아래 포획되면 유럽 국가들은 앞바다에서 중국의 핵잠수함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유럽 친구들은 상당히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중국의 한국 포획은 대미 상호확증파괴 역량과 관련해 중국에 중대한 전략적 이점을 가져다준다. 이는 중국이 추구하는 다극체제질서와 중화문명권역 구축, 그리고 중화제국질서의 완성을 위한 주요한 군사적 기반이 될지 모른다.
한-미-일과 북-중-러가 충돌하는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안보환경의 기본 프레임은 최근 진행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결과에 따라 중대한 변화를 맞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가장 주요한 문제는 러시아의 힘의 쇠퇴이다. 지금보다 더 군사적·경제적·사회적으로 약화된 러시아는 역내 세력 균형에 불안정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로 인한 불예측성은 안보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이미 그러한 징후들은 나타나고 있다.
동북아 지역에서의 러시아의 힘의 쇠퇴는 중국의 힘의 증대로 이어진다. 중-러-북의 진영체제에서 중국의 패권적 리더십은 더 강화될 수 있다. 러시아는 이와 같은 위협을 인식하겠지만 중국의 리더십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 다른 대안(代案)이 없을지도 모른다. 러시아의 힘의 한계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중국이 165년 만에 블라디보스토크항의 사용권을 되찾았다는 사실이다. 중국은 궁극적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 항모와 핵잠수함 등의 해군전력을 전개하고 이를 기반으로 동해와 오호츠크해, 북태평양, 북극해에까지 진출하려고 할지 모른다. 러시아에 있어 이러한 시나리오는 암울하지만 문제는 이 지역에서 러시아의 정치적·군사적·경제적·인구통계학적 힘이 점점 더 쇠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전략적 의도 파악해야
많은 가능성이 있을 수 있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동북아 정세는 어쩌면 중국의 헤게모니 추구에 더 유리한 환경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한·미·일 동맹은 이 문제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역내에서 중국의 위협과 북한의 핵 위협, 그리고 러시아의 위협 가운데 가장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식별할 필요가 있다. 북한 핵 위협과 러시아의 위협에 대한 격렬한 대응이 자칫 중국에 의도치 않은 전략적 이익을 가져다줄지도 모른다. 여러 경우의 수가 있을 수 있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더 약해진 러시아는 한·미·일 측에 덜 우호적인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는 북한 문제를 관리하는 데에도 해당된다. 더 약해진 러시아와 더 적대적인 한·미·일 사이에서 대안을 찾기 어려운 김정은의 북한은 생존을 위해 더 중국에 쏠리게 될지도 모른다.
최근 동해를 키워드로 한 일련의 에피소드들은 매우 우려스럽다. 싱하이밍 대사를 둘러싼 여러 논란도 이와 연계되어 있을지 모른다. 점들을 연결하여 숨겨진 그림을 찾아내는 것은 언제나 어렵다. 정보분석은 늘 틀릴 위험성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동해, 중국과 관련된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그 아래에 숨겨져 있는 중국의 전략적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차분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싱하이밍의 이번 울릉도 접대 건은 싱하이밍이 국내 A사측에 울릉도를 꼭 찍어 요청했다는 얘기도 있다. 그것이 사실인지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이번 건을 포함하여 잇따르는 싱하이밍의 조심스럽지 못한 국내 활동은 우리가 오히려 중국의 전략적 의도를 읽을 수 있도록 도와준 측면이 있다. 생큐 싱하이밍!⊙
월간조선 08월 호
중국의 인태 진출 견제하는 ‘군사 강국’ 인도
자체 개발 미사일로 중국 전역·유럽 일부 지역 타격 가능
⊙ 매년 10% 이상 국방예산 증액… 2023년도 인도 국방예산은 95조원
⊙ 아시아에서 중국 외에 항모·전략원잠 운용하는 나라는 인도가 유일
⊙ 1974년에 최초 핵실험… 연간 핵무기 20개 생산 능력 갖춰

▲사진=뉴시스
미중(美中) 신(新)냉전 구도가 가속화하면서 인도의 안보 전략적 가치가 오르고 있다. 미소(美蘇) 냉전 종식 이후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가 2001년 9·11테러 이후 붕괴하고, 중국이 미국의 대항 세력으로 급부상하는 과정에서 인도의 군사·안보적 가치 역시 상승했다. 중국의 인도·태평양 지역 진출을 견제하는 미국 주도의 ‘4자 안보회담(Quad)’에 미국의 전통적 우방인 일본, 호주 외에 인도가 참여하는 상황이 이를 대변한다.
애초 미국과 인도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 인도는 냉전 시기 소련과 가까웠다. 1970년대에는 ‘평화적 핵폭발’이라는 명분 아래 1차 핵실험을 강행해 미국의 경제 제재를 받았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1979~1989년) 당시 미국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아프간 반군 조직인 ‘무자헤딘’을 지원했다. 그 배후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인도의 ‘적대국’인 파키스탄과 밀착했다. 파키스탄과 세 차례 전쟁(1947년, 1965년, 1971년)을 치른 인도는 ‘안보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파키스탄이 ‘핵개발’을 시도하고, ‘준(準)동맹’이던 소련이 붕괴하자, 인도는 1998년 두 번째 ‘핵실험’을 하고 ‘핵무장’을 강행했다. 미국은 다시 ▲경제지원 및 금융거래 중단 등의 경제 제재와 ▲핵물질 및 핵기술 이전 봉쇄 ▲무기수출 통제 ▲군수물자 판매 금지 등의 군사 제재를 가했지만, 이는 얼마 가지 않아 ‘유명무실’해졌다.
중국이 부상하자, 미국은 대중(對中) 견제를 위한 상대로 인도를 선택했다. 중국의 핵심 에너지 수송로인 ‘호르무즈-믈라카’를 봉쇄하기 위해서는 그 한가운데 있는 인도의 협력이 필요했다. 소련 붕괴 후 군사적 협력 관계가 절실했고, 중국의 남아시아 팽창 정책이 국가안보의 직접적인 위협이 된 인도와 ‘중국 견제’를 바라던 미국의 이해관계는 일치했다. 미국은 2001년 9·11테러 이후 인도를 ‘전략적 상대’로 규정했다. ‘핵 협력’은 물론 군사훈련, 미사일 방어, 반(反)테러 활동 등의 군사·안보 협력을 강화했다.
국방비 지출 규모 ‘세계 3위’
현재 인도의 전략적 가치는 지정학적 위치뿐 아니라 군사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인도는 최소 10위권 이내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공신력을 담보할 수는 없지만, 미국의 글로벌파이어파워(GFP)란 단체의 발표에 따르면 인도는 2007년부터 지금까지 미국, 러시아, 중국에 이어 세계 4위 수준의 군사력을 갖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 이른바 ‘굴기(崛起)’를 운운하며 국방력 증강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중국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인도는 ‘중국 견제’라는 전략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군사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팽창하는 중국의 위협에 직면한 인도는 군 현대화를 위해 국방비를 지속적으로 늘리고 있다. 인도와 중국은 카슈미르 동부의 라다크를 비롯한 접경 지역에서 군사 대치를 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인도의 ‘주적’인 파키스탄을 비롯한 인도 주변국 항구를 통해 인도양으로 진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응해 인도는 매년 10% 이상 국방예산을 증액하고 있다. 인도의 국방비 지출 규모는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 수준이다. 2023년도 인도의 국방예산은 국내총생산(GDP) 3조1760억 달러의 2.3%에 해당하는 726억 달러(95조원)다. 이 중 4분의 1가량이 ▲군용기 ▲미사일 ▲전차 등 신(新)무기 도입에 투입된다.
인도는 세계 1위 무기 수입국이기도 하다. 스웨덴의 국제안보 싱크탱크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PIPRI)가 매년 세계 주요 무기의 수출입 동향을 조사해 발표한 보고서 내용을 종합(2018~2021년)하면, 전 세계에서 무기 수입을 가장 많이 한 나라가 인도다. 해당 기간, 인도는 세계 무기 수입 시장에서 11%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신규 무기를 도입하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 세계 방산 시장의 ‘큰손’ 사우디아라비아의 점유율이 9.8%인 점을 고려하면 인도의 무기 도입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4세대 전투기 400기 운용

▲인도 공군은 Su-30MKI 260기 등의 4세대 전투기만 400여 기를 보유·운용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인도의 상비군은 145만 명이다. 이 중 육군이 125만 명인데, 일각에서는 인도 육군의 전투력을 ‘세계 4위’ 수준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인도 육군 실상과 거리가 먼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인도 육군이 1960년대 당시 중국과 치른 졸전, 육군은 물론 인도군 보유 무기체계 대다수가 노후화된 구(舊)소련제 또는 운용 안정성이 뛰어나지 않은 러시아제라는 점을 고려하면 과대평가된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인도 육군의 ▲기갑 전력 ▲포병 전력 ▲항공 전력은 객관적으로 우리 육군보다 떨어진다. 또 한반도 면적(22만㎢)의 15배에 이르는 국토 면적(328만7000㎢), 1만5080km에 달하는 국경선, 전쟁을 치른 중국·파키스탄과 국경 분쟁을 지속하는 현실 등을 고려하면 인도 육군 운용 무기체계 수량은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
인도 육군과 달리 인도 공군과 해군은 충분히 중국을 견제할 전력을 갖추고 있다. 인도 공군은 ▲프랑스제 미라주 2000 44기 ▲러시아 Su-30MKI(Su-30MK의 인도 면허 생산기) 260기 ▲러시아 MiG-29 UPG 65기 ▲프랑스 라팔 36기 등 4세대 전투기만 400여 기를 보유·운용하고 있다. 이들 인도 공군의 주력 전투기는 중국인민해방군의 주력인 J-11(Su-27의 복제품, 225기)과 그 개량형인 J-16(250기), Su-MKK(Su-30MK의 중국 수출용, 255기)를 상대할 수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 공군이 ‘5세대 스텔스 전투기’라고 선전하며 2017년에 실전 배치한 J-20 역시 Su-30MKI 레이더 또는 인도 공군 방공망에 의해 쉽게 탐지된다. 인도가 최초로 독자 개발한 ‘경전투기’ 테야스의 경우 엔진 성능이 미흡했지만, 최근 미국과 인도가 GE의 제트엔진 인도 생산에 합의해, 앞으로는 전투력이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인도 공군은 전투기 외에 재규어 공격기 130기도 운용하는 등 상당한 수준의 공중 지원 전력을 갖추고 있다.
중국 해양 팽창에 맞설 인도 항모·원잠

▲인도는 2022년에 24억2000만 달러(3조1540억원)를 들여 독자적으로 건조한 항공모함 비크란트함(만재배수량 4만5000톤)을 배치했다. 현재 인도가 운용하는 항모는 ‘비크란트’와 ‘비크라마디티야’, 2척이다. 사진=뉴시스
인도 해군은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항공모함 운용 경험을 갖고 있다. 인도 해군은 2차 세계대전 당시 건조됐다가 종전 이후 방치된 영국의 마제스틱급 항모 허큘리스함을 인수했다. 함명을 ‘비크란트’라고 명명한 뒤, 1961년부터 운용했다. 해당 항모는 인도가 개입한 ‘방글라데시 독립 전쟁(1971년)’ 당시 서(西)파키스탄(현 파키스탄) 후방으로 들어가 본토를 공습하는 활약을 했다. 이후 전세가 불리하게 전개되자, 서파키스탄은 동(東)파키스탄(현 방글라데시)의 독립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밖에 인도 해군은 1986년 영국 해군 운용 후 퇴역한 센토어급 항모 허미즈함을 인수해 ‘비라트’라고 명명하고 운용했다.
두 항모는 현재 퇴역했지만, 인도 해군은 여전히 항모 2척을 운용하고 있다. 인도 해군은 2013년 러시아로부터 구소련의 키예프급 고르시코프함을 들여와 ‘비크라마디티야(만재배수량 4만1000톤)’로 명명하고, 실전 배치했다. 2022년에는 24억2000만 달러(3조1540억원)를 들여 독자적으로 건조한 새로운 비크란트함(만재배수량 4만5000톤)을 배치했다. 인도 해군은 현재 6만5000톤급 ‘비샬함’ 건조를 준비하고 있다. 그 계획이 실현될 경우 인도 해군은 항모 3척을 운용하게 된다. 그럴 경우 인도 해군은 상시로 항모 전력을 투입할 수 있다.
인도 해군의 또 다른 강점은 ‘탄도미사일 원자력잠수함(SSBN·전략원잠)’이다. 인도 해군은 현재 아리한트급 잠수함 2척을 배치·운용하고 있다. 3번 함은 현재 진수해 내년에 취역하며, 4번 함은 올해 안으로 진수할 예정이다. 디젤잠수함과 달리 전략원잠은 수개월 동안 수면 부상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은밀하게 적 인접 해역에 접근·잠복하다가 불시에 핵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어 대표적인 ‘비대칭 전력’으로 꼽힌다. 핵 공방전이 발생해 상호확증파괴(핵 보유 적성국이 선제 핵 공격 감행 시 핵으로 대응해 적을 전멸하는 보복 전략)가 되더라도 수중의 전략원잠은 여전히 기동·공격이 가능하다. 적의 코앞에 들키지 않는 ‘핵미사일 기지’를 가져다놓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는 전략원잠을 보유한 나라는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인도뿐이다. 결국 국제연합(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 외에 전략원잠을 보유한 나라는 인도가 유일하다. 현재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이 운용 중인 전략원잠은 6척이며, 우리나라는 전략원잠은커녕 적함 탐지·공격용인 ‘공격원잠(SSN)’조차 없다.
중국 전역 핵 공격 가능한 핵·미사일 전력
인도 군사력의 최대 강점은 바로 ‘핵전력’에 있다. 인도는 1962년부터 핵개발을 시작했다. 1974년 5월, 인도 북동부 라자스탄에서 1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당시 소련은 ‘중소분쟁’ 이후 관계가 악화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친소’ 우호국인 인도의 핵개발을 묵인했다. 미국 역시 형식적인 제재만 부과했다.
이후 24년 동안 핵실험을 하지 않던 인도는 냉전 해체 이후 가중되는 ‘안보 불안’, 자신들의 ‘주적’ 파키스탄의 ‘핵개발’에 대한 미국의 미온적 대응에 따라 1998년 5월에 2차 핵실험을 진행했다. 1998년 2차 핵실험에 대해 미국은 경제·군사 제재를 시행했지만, 상술한 ‘테러와의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부상하는 중국 견제’ ‘거대한 인도 시장 공략 필요성’ 등의 이유로 이를 금방 해제했다.
‘中 대부분 지역이 印의 핵 사정권’
인도가 보유한 핵무기는 현재 120여 기로 추정된다. 핵무기의 원료가 되는 플루토늄은 ‘핵연료 재처리 공장’ 4개소에서 생산된다. 관련 전문가들은 인도가 연간 생산하는 플루토늄 양이 핵무기 20여 개를 만들 수 있는 255kg에 달할 것으로 짐작한다. 인도는 다양한 핵 투발 수단 또한 갖고 있다. 앞서 언급한 Su-30MKI, 미라주 2000, 재규어 공격기 등 항공 전력 외에 자체 개발한 중거리 미사일이 있다.
인도는 1989년부터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지대지 탄도미사일 ‘아그니’를 개발했다. 현재 인도는 아그니-1·2·3·4·5를 실전 배치했고, 아그니-6을 개발하고 있다. 준중거리 탄도미사일(MRBM, 사거리 1000~3000km)인 아그니-1과 아그니-2의 사거리는 각각 1500km, 2500km다.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인 아그니-3의 사거리는 3500km다. 사거리가 4000km인 아그니-4는 인도·중국 접경지에서 발사할 경우 중국 수도 베이징(北京)과 경제 중심지 상하이(上海)까지 타격할 수 있다.
중국에서 소위 ‘둥베이(東北) 3성’이라고 하는 지역을 제외한 중국 대부분 지역이 인도의 핵 공격 사정권에 든다는 얘기다. 사거리 5000km인 아그니-5는 2018년 시험발사 성공 후 실전 배치됐다. 아그니-5의 경우 국경 근처에서 쏠 경우 중국 전역을 때릴 수 있다. 현재 인도가 개발 중인 아그니-6은 사거리가 8000km에 달하는 대륙 간 탄도미사일(ICBM, 사거리 5500km 이상)로 3000kg에 달하는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다. 아그니-6은 핵탄두 여러 개가 각기 다른 목표를 타격하는 ‘다탄두 각개 목표 설정 재돌입 비행체(MIRV)’로 개발될 가능성도 있다.⊙
글 : 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08.07 중국의 안중근·윤동주 유적 잇단 폐쇄, 치졸한 일

▲중국 지린성 룽징에 있는 윤동주 시인 생가의 출입이 지난 6월부터 통제되고 있다. 생가 앞 표석에 '중국조선족애국시인 윤동주'란 글귀가 보인다. /뉴스1
중국이 지린성 룽징에 있는 윤동주 시인 생가의 출입을 한 달째 통제하고 있다. 중국 측은 내부 수리라고만 할 뿐 구체적인 이유나 개방 시점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랴오닝성 뤼순 감옥 박물관에 있는 안중근 의사 전시실도 보수 공사를 이유로 석 달 가까이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이곳엔 안 의사 유품 외에도 신채호·이회영 등 한국 독립운동가 11명의 유물들이 보관돼 있다.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유적지 두 곳이 잇따라 문을 닫은 것을 두고 현지에선 껄끄러워진 한중 관계의 영향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의 의도적 보복으로 의심된다는 것이다. 안중근 의사 전시실은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이 외신 인터뷰에서 대만 문제를 거론하고 중국이 거세게 반발한 직후 폐쇄됐다. 윤동주 생가에 대한 출입 통제는 최근 선양 주재 한국 총영사의 현지 방문 직후 취해졌다고 한다. 현재로선 단정 지을 수 없지만 만에 하나 중국 정부의 의중이 작용한 것이 사실이라면 참으로 치졸한 일이다.
중국은 스스로를 대국이라 칭하지만 실제 행동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2000년 마늘 파동부터 2017년 사드 한한령(限韓令)에 이르기까지 걸핏하면 보복 카드를 휘둘러 한국을 겁박했다. 보복의 양상은 최근 들어 더욱 교묘해지고 있다. 민관 분야 행사들을 일방적으로 취소하는가 하면, 코로나 팬데믹으로 금지했던 중국인 단체 여행을 대부분 허용하면서 유독 한국에 대해서만 아직까지 막고 있다.
외교가에선 중국이 2030 국제 박람회 부산 유치를 위한 한국의 외교전에 훼방을 놓는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한미 동맹을 강화하고 한·미·일 공조를 복원하는 윤석열 정부를 견제할 의도일 것이다. 미·중 전략 갈등이 첨예화할수록 중국의 갑질과 보복은 더욱 거세질 가능성이 크다. 중국에 할 말은 하되 불필요한 오해를 풀기 위한 소통도 소홀해선 안 된다.
조선일보 사설
08.07 美 대통령 만날 때마다 ‘푸른 리본’ 다는 日 총리… 그 끈질긴 의지 배워야
기시다 “김정은과 만나겠다”… 북·일 관계자는 올해 2차례 비밀 회동
2002년 고이즈미 방북 이후 끊임없이 납치 문제 해결 위해 핫라인 가동
북한에 억류된 우리 국민 516명… 국제사회와 협력해 이제라도 구출해야

▲그래픽=이철원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으로 근무하던 2010년 여름 삼복더위에 일본 도쿄 경시청을 방문하였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실상을 파악하는 게 목적이었다. 일본 내각정보조사실 등 납치 문제 담당 기관과 민간 단체에서 전략연의 탈북자 연구원을 계속 도쿄에 초청하였기 때문에 관리 책임을 맡은 원장으로서 배경을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일본 측은 탈북자 연구원들에게 일본인 납치 관련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면 최고 2000만엔(약 2억4000만원)을 지급하겠다며 방일(訪日)을 집요하게 요청하였다. 하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만이 알고 있는 납치의 내막을 평양 출신 탈북자라도 알 수는 없었다.
도쿄 경시청에서 납치 문제 현황 외에 1년에 행방불명자로 전국 경찰서에 신고되는 일본 국민은 8000여 명이라는 보고를 받았다. 이 중 연말까지도 가족에게 소식을 전하지 않는 행불자는 2000여 명이라고 한다. 인구 1억2000만여 명인 일본에서 행불자가 예상보다 많다는 점을 주목했다. 일본의 행불자 현황을 경시청에서 파악한 것은 납치자와 행불자의 연계성을 가늠하기 위해서였다.
2002년 9월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수개월 물밑 접촉 끝에 평양을 전격 방문하였다. 아베 신조 당시 관방부 장관이 고이즈미 총리를 수행했고 이후 총리가 된 후 납치 문제에 매달렸다. 고이즈미 총리와 김정일 위원장은 북·일 평양 선언에 서명하였다. 고이즈미는 식민지 시절 한반도 주민들에게 입힌 ‘엄청난 피해와 고통’에 대해 ‘깊은 유감과 마음으로부터의 사과’를 표명했다. 김정일은 일본인 13명을 납치하고 일본 영해에 간첩선을 침범시킨 데 대해 사과했다. 1977년부터 5년간 일본의 외딴 해변에서 여학생, 요리사 및 데이트 중이던 커플 3쌍을 납치한 사실을 인정하였다. 납치는 일본인으로 위장하거나 일본어를 가르칠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만 자신은 일본인 납치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주장하면서 ‘국가 특수 기관의 일부 분자가 광신적 믿음과 공명심에서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1972년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비밀리에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일성은 1968년 청와대 습 격사건에 대해 김정일과 비슷하게 유감을 표명했다. 그는 “청와대 습격은 우리 공화국 내부의 김창봉, 허봉학 같은 극렬 분자들이 임의로 일으킨 사건이오. 이 사건을 보고받은 뒤 관련자들을 모두 철직(해임)했다”고 언급했다. 북한의 전형적 꼬리 자르기식 변환 전술이었다.
김정일이 밝힌 일본인 납치 전모는 일본 열도를 충격에 빠뜨렸다. 특히 니가타현에서 13세에 납치된 요코다 메구미가 북한 남성과 결혼해 우울증으로 자살했다는 북한 주장에 대해 일본 국민들은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분개했다. 수많은 행불자에 궁금해하던 가족들은 혹시 우리 아들, 딸과 친척이 북한에 납치된 것은 아닌지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 국민들은 피랍자 가족들의 비극적 삶에 분노했고 일본 정치는 하루아침에 납치자 문제에 빨려 들었다. 고이즈미의 방북 이후 일본 방송은 온종일 북한 프로그램과 뉴스가 차고 넘쳤다.

▲그래픽=이철원
내치(內治)를 외교와 절묘하게 연계하는 일본 정치가 수많은 행불자에 황당해하던 국민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2004년 고이즈미 총리는 2차 방북을 하였으나 당초 논의를 지속하기로 했던 북·일 수교는 좌초되었다. 아베 총리는 2014년 납치 문제 재조사와 대북 제재 독자 해제를 연계한 이른바 ‘스톡홀름 합의’를 북한과 맺었으나 양측의 불신으로 중단됐다.
납치 문제의 쟁점은 양측의 숫자 맞추기다. 일본이 확인한 공식 납치 피해자 수는 12건에 17명이지만 일본 민간 단체들은 ‘700명 이상의 실종 사건이 북한과 관련이 있다’고 의심해왔다. 반면 북한은 13명을 납치한 사실은 인정하고 5명을 일본으로 돌려보냈으나, 8명은 사망했다고 밝히고, 4명에 관해서는 북한에 입국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일본이 올해 들어 다시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지난 5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가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해결하길 원한다”고 하자 북한 박상길 외무성 부상은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이틀 뒤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마쓰노 히로카즈 일본 관방장관은 북한 외무성 발표 다음 날 북일 정상회담 필요성을 다시 강조했다.
북한이 공식적으로 일본을 상대로 대화를 언급한 것은 지난 2016년 북한의 납치 문제 재조사 중지 선언 이후 처음이다. 일본 언론들은 북일 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협상 재개 신호로 해석하였다. 6월 이후 일본의 국가안전보장국과 북한의 외무성 관계자가 중국과 싱가포르 등지에서 2차례 비공개 회동을 가졌다고 일본 언론이 확인하였다. 실무 회동에서 주요 사안들에 대한 견해차는 여전했지만 향후 빅딜에 의한 고위급 협상 가능성은 열려 있다. 전통적으로 양 기관은 핫라인을 유지하며 과거에도 제3국에서 회동했다. 기타무라 시게루(北村滋) 내각정보관은 2018년 7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베트남 등지에서 북한의 통전부 김성혜 실장과 몰래 회동했다. 북일 간에는 다양한 핫라인이 가동되며 조총련 등이 중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북한이 일본과 핫라인을 가동하는 것은 한·미·일 3각 협력 고리를 약화시키고 국제적 고립을 탈피하려는 것이다. 유엔 제재에 갇힌 평양에 일본은 새로운 돌파구다. 자민당은 가장 뜨거운 국내 정치 이슈인 납치자 문제에 전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이 납치 문제 관련 일본 정부와 국회의 정책에서 벤치마킹해야 할 부분은 자국민을 송환시키려는 끈질긴 의지와 노력이다. 6·25전쟁 이후 북한에 강제로 끌려가 억류된 국민에 대한 역대 우리 정부의 송환 노력은 일본과 비교해서 크게 미흡하였다. 미·일 정상회담이 개최될 때마다 아베, 기시다 등 일본 총리들은 양복 재킷에 ‘푸른 리본(일본인 납북 피해자 문제 상징)’을 달고 납치 문제 해결에 대한 미국의 지원 요청을 빠뜨리지 않으며 미국 대통령을 납치자 가족들과 만나게 한다. 미국 상원에서 결의안을 이끌어 내고 유엔 안보리에서 납치 문제를 의제화하고 있다. 이제라도 국제사회와 협력하여, 북한에 강제 억류됐다고 알려진 우리 국민을 구출해야 한다. 통일부에 따르면 6·25 이후 납북자 중 억류된 사람은 516명에 달한다. 자국민 보호가 강력한 외교 목표가 되지 않는 국가는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조선일보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前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08-07 캠프데이비드 3국 회의와 ‘3중 안보’

김숙 前 駐유엔 대사
벌써 1년 6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교훈을 찾아본다. 우선, 전쟁이 금지된 21세기에도 독재자의 야망과 오판은 규범과 규칙을 무너뜨리고 침략 전쟁을 일으키며 이에 대한 국제적 지지 세력도 생긴다는 현실이다. 또한, 20세기 냉전이 체제와 이념의 대결이었다면 21세기 신냉전은 자유와 독재 간의 가치 대결이다. 그리고 어떤 나라도 국가 안보를 혼자 떠맡을 수는 없기에 동맹이 필요하며 국가 수호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점이다. 자유세계와 우리에게 던지는 함의가 크다.
이와 함께 최근 북한의 7·27 ‘전승절’ 열병식은 우리 안보에 새로운 시사를 준다. 즉, 북한은 대량파괴무기(WMD)뿐 아니라 재래식 무기 개발에도 열중하며, 이번에 공개한 무인기에서 보듯이 미국 무기도 대담하게 모방한다. 또, 지난해 이래 러시아에 수백만 발의 122㎜ 다연장 로켓탄과 20여 종의 무기를 제공하면서 러시아와 군사 거래를 본격화하고 있다. 식량 위기와 경제난에 봉착한 김정은에게 새로운 돌파구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의 방북에서 어떤 거래가 있었는지도 관심이다.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의 최대 관건인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러시아로부터 입수하는 대가로 무기·탄약 외에 용병 파견 등도 준비 중이라는 첩보가 있다. 김정은과 함께 주석단에서 ICBM 등장에 박수 치는 모습에서 중·러 두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대북 제재 이행 의무 기대에 배신감을 갖게 된다. 이제 북한은 러시아와는 군사 협력, 중국과는 경제 협력을 생존 전략으로 택했으며 북중러 3각 군사 동맹화는 현실이 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들 간의 거리를 빠르게 줄여 줬다.
오는 18일 캠프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는 이에 대한 3국 간 다층적 군사전략 조율 의미와 함께 북중러에 대한 단호한 메시지, 세계를 향한 인도·태평양 지역 핵심국 간의 모범적 단결 과시라는 전략적 부가가치를 제공한다. 엄중한 상황에 대해 단호하고 당당히 대처해야 할 때다. 미국 내에는 6·25전쟁에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3차 대전을 우려해 전장에서 과감한 작전을 극단적으로 자제한 것은 잘못이었다는 비판도 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품었던 불만이기도 했다. 움직이는 적 앞에서 과도한 자기 억제는 자칫 나약함의 표시다.
최근 김여정의 ‘대한민국’ 호칭을 북한의 입장 변화 조짐으로 읽는다면 심각한 오독이다. 오히려 대남 적대 기조 강화의 신호탄으로 보는 게 옳다. 따라서 우리는 힘의 우위 견지 전략을 더욱 강화해야 하며, 이를 지키는 것이 자강·동맹·국제공조의 ‘3중 동심원 안보’다. 다만, 중국과 러시아는 전략적 대치와 관계 개선 필요성의 모순 간에 균형을 찾아야 하는 상대라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중국과는 박진 외교부 장관의 말대로 화이부동(和而不同)이어야 하지만, 지금으로선 입장은 다르지만 얼굴 붉히지는 말자는 뜻으로 부동이화(不同而和)가 낫다. 또한, 북한 무기를 지원받는 러시아에 맞서 우리의 우크라이나 지원 공간을 확보해 나가는 세련된 외교술도 필요하다. 외교도 전쟁이다.
전쟁은 두 번 치른다는 말이 있다. 첫째는 전장에서, 둘째는 기억 속에서. 나중에 치르는 기억 속 전쟁의 승패는 지금 우리가 펴는 외교의 수준에 달렸다.
문화일보
08.08 오염수 방류, 어디까지나 일본이 결정하고 일본이 책임질 문제

▲박구연 국무조정실 국무1차장이 7일 오전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관련한 언론 브리핑에서 "방류 시기 결정은 당연히 일본이 결정할 사안"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 뉴시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를 이달 하순에서 내달 초순 사이에 개시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일본 언론들이 7일 일제히 보도했다. 오는 18일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릴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총리가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오염수 방류 문제를 설명하고 양해를 구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런 보도에 우리 정부는 “(오염수 해양 방류 시기는) 당연히 일본이 결정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일본 언론은 대외 문제에 관해 사전 조율을 거쳐 자국 정부 입장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보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미·일 정상회담 후 방류 시기 결정’도 그런 차원일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 한국, 미국 정부와 협의를 거쳐 오염수 방류의 안전성이 확보되었다는 점에 관해 두 나라 동의를 얻었다는 모양을 취하려는 뜻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실제 일본 외교 당국자들이 한·미·일 정상회담 때 발표될 공동성명에 이를 반영하려는 기류가 있다고 한다.
오염수를 방류해도 그 영향이 한국 바닷물이나 해산물에 미칠 수 없다는 것은 과학계의 일치된 견해다. 그러나 과학 평가와 국민들이 느끼는 주관적 불안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일 수 있다. 뭣보다 민주당이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두고 오염수 방류의 위험성을 과장하는 주장을 해왔고 이것이 국민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정부도 오염수 방류 문제에 대해선 극도로 조심스러운 자세로 다뤄왔고 발언 한마디 한마디 살얼음 걷듯 해왔다. 일본도 우리의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마당에 일본이 한국 정부가 자국과 보조를 맞춰 방류에 협력하는 것 같은 상황을 이끌어 내려 하는 것은 한국 정부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자국 중심 자세다.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은 대(對)중국, 대(對)북한 관련 3국의 협력을 공고히 하자는 것을 기본 취지로 준비되고 있는 회담이다. 일본이 독자적으로 결정하고 책임져야 할 사안을 이 회담 의제로 끌어들여 상대 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협력을 발전시켜 나가자는 회담의 본래 뜻과도 벗어난다. 일본 정부는 자국이 짊어져야 하는 부담을 남에게 미룰 생각 하지 말고 독자적으로 결정하고, 그에 따른 문제도 독자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8.09 中 경제 급랭, 美 성장 탄탄… 공급망 경쟁 명암 뚜렷해진다
중국 경제의 적신호가 갈수록 짙어진다. 7월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14.5% 감소했다. 5월(-7.5%)·6월(-12.4%)에 이어 그 폭이 더 커졌다. 자동차 수출이 반짝 호황을 누리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러시아 특수(28만7000여 대)와 테슬라 상하이 공장의 수출(18만 대)이 큰 몫을 차지했다. 특히 대(對)미국(-23.1%), 대유럽(-20.6%), 대일본(-18.4%) 수출 감소는 충격적 수준이다. 글로벌 수요 위축에 따른 직격탄인 것이다.
중국의 디플레이션은 새로운 리스크다. 7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0.3%, 생산자물가지수는 -4.4%로 떨어졌다. 수출 침체로 내수 판매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부동산 경기 둔화로 임대료·가구·가전제품들까지 가격이 급락 중이다. 덩달아 소비자들은 지출을 미루고, 기업들도 투자를 줄여 ‘일본식 대차대조표 불황’을 닮아간다는 경고까지 나온다. 중국이 ‘소비·투자 감소→내수 부진→자산 가격 하락→소비·투자 추가 위축→경기불황’의 악순환에 빠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미국은 골디락스(뜨겁거나 차지 않은 딱 적당한 상태)·노 랜딩(경기 침체 없는 안정적 성장) 주장이 나올 만큼 경제 지표가 탄탄하다. 소비자물가는 3%대, 실업률은 3.5%로 사상 최저다. 견고한 민간 소비에 힘입어 2분기 성장률은 연율 2.4%로 G7(주요 선진 7개국) 중 가장 높았고, 올 성장률 전망치는 1.5%에서 1.9%로 올라갔다. 기준 금리 상승에도 부동산·주식 등 자산 가격은 안정적이다. 리먼 사태 이후 부채가 꾸준히 축소된 데다 주택담보대출은 고정금리 비중이 90%를 넘기 때문이다.
미·중 공급망 경쟁의 명암도 뚜렷해지고 있다. 중국의 2분기 외국인 직접투자(FDI)는 49억 달러(약 6조4000억 원)로, 전년 동기 대비 87% 급감해 25년 만에 최저로 곤두박질했다. 반면 미국은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와 반도체지원법 이후 외국인 직접투자가 2000억 달러 이상 몰려 수십만 개 일자리가 새로 생겨났다. 전 세계의 흐름이 30여 년 만에 뒤바뀌고 있다. 한국도 올해 20년 만에 대미 수출이 대중 수출을 앞서는 변곡점을 맞고 있는 만큼 기존의 안미경중(安美經中)에 집착할 때가 아니다. ‘포스트 차이나’‘차이나 피크’ 대비는 선택 아닌 필수다.
문화일보 사설
08.13 대통령실 “한미일 정상회의서 군사·AI·사이버 등 협의체 구성 합의”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는 정식 의제 아냐”
”정상 공동성명에 중국 명기 안할 듯”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1일 히로시마 G7 정상회의장인 그랜드 프린스 호텔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뉴스1
오는 18일 미국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리는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3국 간 군사훈련 정례화를 포함한 정보 공조, AI(인공지능), 사이버 문제 등을 논의하는 다양한 협의체를 구성하기로 3국 정상이 합의하고 이를 공동성명에 명기할 것으로 13일 알려졌다. 3국 정상은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는 정식 의제로 올리지 않기로 했고, 중국을 명시해 3국이 공동 대응하는 내용을 성명에 담지는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북한 핵·미사일에 맞선 3국 공조 강화는 천명할 방침이다. 대통령실은 “이번 정상회의를 통해 3국 협의체가 인도·태평양 지역 내 협력체로서 뚜렷한 독립성을 획득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번 3국 정상회의에 김건희 여사는 동행하지 않는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 대통령 초청으로 한·미·일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17일 출국한다”고 밝혔다. 3국 정상은 18일(현지시각) 오전 정상회의를 하고 이어 오찬을 한 뒤 공동 기자회견을 한다. 김 차장은 “이번 정상회담 계기에 한미, 한일 양자 정상회담도 조율하고 있다”고 했다. 김 차장은 “윤 대통령의 이번 방미 일정 대부분은 18일 3국 정상회의에 할애될 것”이라며 “윤 대통령은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를 마치고 당일 저녁 귀국길에 오를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20일 새벽 한국에 도착할 것으로 보여 1박4일 일정이 될 전망이다.
3국 정상은 이번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최소 연 1회 정상회의를 개최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한·미·일 3국 군사훈련 정례화를 포함해 정보 공조, AI, 사이버 문제, 경제 안보 등을 논의하는 3국 간 다양한 협의체를 가동하기로 합의할 것이라고 대통령실 관계자는 전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3국 협의체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성하고 얼마나 자주 모여 무슨 의제를 논의할지 3국 간 표현을 가다듬고 있다”고 했다. 3국 정상이 이른바 ‘캠프 데이비드 선언’ 등 다양한 공동 성명을 통해 새로운 차원의 3국 협력체를 발족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3국 정상이 다자회의 계기가 아닌 독자적인 3국 정상회의를 위해 한곳에 모이는 것은 처음이다. 한·미·일 정상회의는 1994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계기에 열린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12차례 개최됐는데 모두 다자회의 참석을 계기로 열렸다. 그런 만큼 이번 3국 정상회의를 통해 3국 협력체가 쿼드(QUAD), 오커스(AUKUS),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등과 맞먹는 독자적인 위상을 갖게 될 것이라고 대통령실은 평가했다.
이와 관련 김태효 차장은 “이번 정상회의를 통해 3국이 안보 협력의 핵심 틀을 만들고 이를 제도화할 것”이라며 “이번 회의에서 3국 정상이 협력의 공동 비전과 기본 원칙을 논의하고 각급에서 포괄적이고 다층적인 협력체계를 구축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김 차장은 “이번 정상회의는 역내 공동 위협에 대응하고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3국 안보 협력을 한층 강화하게 될 것”이라며 “3국 정상은 한·미·일이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공동 대응하기 위한 실질적 협력 방안을 집중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김 차장은 “역내 공동 번영과 미래 성장을 위한 협력 방안도 논의할 것”이라며 “3국 정상이 3국의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할 첨단 기술 분야 협력과 함께 공급망, 에너지 불안정 등 경제 안보 문제에서 공동 대응하기 위한 파트너십 강화 방안도 협의할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중국 견제와 관련해 “중국을 공동성명에 명시해서 한·미·일이 중국을 적대시한다든지, 중국 때문에 이렇게 (공조)한다는 식의 표현은 성명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안보와 첨단기술, 공급망 분야 등에서 3국이 협의체를 구성하고 공조 수위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것으로 충분히 중국 견제 메시지를 낼 수 있다는 차원에서 중국을 명시하지는 않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일과 달리 중국 상황을 좀 더 신중히 관리하려는 한국 측 입장이 반영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다만 “북한 탄도미사일과 핵위협에 대해서는 북한을 명시해 공동대응하는 내용이 들어갈 가능성 크다”고 했다.
러시아의 침략으로 1년 이상 계속되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서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강화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유럽연합(EU) 등 자유민주주의 진영 연대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지속성 있는 공조 방안이 3국 정상 간에 논의될 것이라고 대통령실 관계자는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일본 정부가 이번 정상회의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한·미의 지지를 얻으려 한다는 일부 외신 보도와 관련해서는 “오염수 방류 문제는 논의 의제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오염수 문제는 이미 1년 이상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공신력 있는 전문가들을 동원해 장시간 조사해 일본과 협력을 마쳤고, 그 과정에 한국을 포함한 우방국들이 양자 차원에서 (협의) 해왔기 때문에 추후 일정은 일본과 IAEA 차원에서 결정할 문제”라고 했다. 그는 “한국이 해야 할 일은 우리 국민 건강 안전을 위해 일본에 요청하는 것이고, 그 내용을 일본 정부가 대부분 인지하고 수용했기 때문에 추가로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조선일보 최경운 기자
08.14 “경제 보복 자초했다”던 尹정부서 몰려드는 中 관광객

▲중국이 6년 5개월 만에 한국행 단체여행을 전면 허용하면서 관광업계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한중 국제여객선 여객운송이 재개된 12일 오전 인천시 연수구 인천항 국제여객터미널에 입국한 중국인 관광객들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이 6년 반 만에 한국행 단체 여행을 전면 허용하자 중국발 크루즈선 53척이 제주 기항(寄港)을 예약했다고 한다. 중국 크루즈선은 제주에 들렀다가 일본 등으로 향하는데 대형 크루즈선에는 수천 명이 탑승, 제주의 관광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크루즈선의 제주 복항(復航)은 중국이 2017년부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를 핑계로 취해온 부당한 보복 조치를 철회하면서 가능했다. 중국은 한미가 2016년 북한 미사일로부터 한국을 방어하기 위해 사드 배치 결정을 내리자 이듬해인 2017년 3월부터 여행사를 통한 한국 단체여행을 모두 불허했다. 문재인 정부는 중국의 불편한 심기를 풀어주기 위해 사드 추가 배치, 미 미사일방어체계(MD) 편입, 한·미·일 군사동맹을 하지 않는 소위 3 불(不) 정책을 약속하며 ‘굴욕 외교’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중국에서는 끝내 상응 조치가 없었다. 오히려 문 대통령 방중 기간에 중국 지도부가 상대해 주지 않아 혼밥을 먹고 동행했던 한국 기자 2명이 폭행당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랬던 중국이 지난 10일 세계 78국에 대한 자국민의 단체여행을 허가할 때 한국도 포함시켰다.
이에 앞서 중국의 외교 정책을 총괄하는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은 지난달 한·중·일 3국 협력사무국(TCS) 주최 회의에 이례적으로 참석했다. 그는 이 회의에서 “중·일·한 3국은 지리적으로 분리될 수 없다.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교류 증진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비바람이 지나간 뒤 햇빛이 찾아오듯 기회를 움켜쥐고 손잡고 나아가 3국과 지역에 더 많은 공헌을 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동안 민주당과 좌파 세력은 윤석열 정부가 미국을 중시하고 중국을 경시해서 보복당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5월 ”(윤석열 정부가) 친구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외교정책으로 일관하며 한반도를 진영 대결의 한복판으로 몰아넣고 있다”며 “30년간 핵심 파트너였던 중국·러시아와 관계가 사실상 북방외교 이전으로 회귀 중”이라고 비판했다.
중국의 향후 움직임을 예단할 수는 없지만 현재의 한중관계 흐름은 야권이 말해온 보복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중국은 어떤 협박에도 원칙을 양보하지 않는 나라는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는 전문가들의 말을 되새겨봐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8-17 한미일 ‘동맹 수준 3국 안보 체제’ 주저할 이유 없다
미국의 캠프데이비드에서 18일 열리는 한·미·일 정상회의는 ‘역사적’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을 만큼 중요하다. 북한의 핵무기 위협이 급속히 악화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거부권을 가진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 핵무장을 비호하며, 중국-러시아-북한 전체주의 연대가 악성 진화하는 등 대한민국 안보가 심각하게 위협받는 와중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 역시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중국 견제 등 국가 전략 차원에서 한국과의 협력 강화가 절실하다. 미국이 3국 안보 체제 구축의 최대 걸림돌인 한·일 과거사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것도 이 때문이다.
실무 협의에서 ‘캠프데이비드 원칙’의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났다. 3국 정상회의 정례화와 함께 국방장관·외교장관·국가안보실장 차원에서도 그런 회의체를 갖춤으로써 4개 레벨의 안보 협의 체제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3국 군사 훈련 정례화, 유사시 협의의 책임성 강화 등이 공동성명에 명시될 것이라고 한다. 3국 협의의 제도화는 각국의 정권교체 등이 있더라도 연속성을 갖게 하는 효과가 있다. 워싱턴에서는 ‘회의 이전과 이후는 완전히 다른 세상’ ‘3자 동맹’ 얘기가 나온다.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인태 조정관은 17일 “3국의 안보·기술·교육 관련 관계 강화 이니셔티브”를 언급하면서 “21세기를 향한 3각 관계”라고 규정했다. 한미·미일 2인 3각 형태의 협력이 3국 체제로 진행된다는 뜻이다. ‘아시아판 나토’의 출발점이라는 평가가 그리 과장은 아니다.
한·미·일 3국은 중국 반발을 고려해 ‘특정 국가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중국은 벌써 동북아에서의 상대적 균형이 한국과 일본에 의해 깨지고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도 ‘한일 군사협력 제도화’‘신냉전 구도 자초’등으로 국익을 훼손하고 안보 위험을 더 키운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변화된 환경에는 변화된 대응을 하는 게 당연하다. 동맹 수준의 3국 안보 체제 구축을 주저할 이유가 없다. 중국이 3국 안보 체제 구축을 비난하려면, 그 이전에 탄도미사일 금지 등 북한의 안보리 결의 위반부터 제대로 제재해야 할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
08.18 전 세계 주시 속, 오늘 캠프 데이비드에서 만나는 한미일 정상
오늘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리는 한·미·일 3국 정상회의는 동북아 정세는 물론 글로벌 지정학 게임에서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는 회담이 될 전망이다.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을 공유하는 3국이 공통의 가치를 토대로 굳건한 협력 체제를 만들어 권위주의·독재 체제의 위협에 맞설 안보·산업·기술의 방파제를 구축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번 회의는 중국의 1인 독재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세계 정세가 급변하고, 동북아에서 북·중·러 3국의 연대가 강화되는 국면에서 열린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6·25 정전 협정 70주년을 맞아 북한에 ‘피로 맺은 전우애’를 강조하는 친서를 보냈고,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국방장관을 평양으로 보내 연대를 과시했다. 북·중·러가 결속하는 상황에서 만나는 한·미·일 정상은 무엇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오판을 막는 강력한 메시지를 발신해야 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 활발하게 움직였던 한·미·일 3국 대북정책조정그룹(TCOG)을 부활시켜 북한 움직임을 감시하고 정책을 일원화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각국이 반도체, 배터리 등의 전략 물자와 미래 에너지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상황에서 3국 협력은 더없이 중요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인공지능·양자·우주개발 등 핵심 첨단 기술의 3국 간 공동 연구·협력을 제안했다. 3국 협력이 기술 동맹, 에너지 동맹, 나아가 우주 동맹으로 확장될 수 있도록 굳건한 협력 체제를 만들 필요가 있다. 북한의 준동을 막는 차원을 넘어 한국이 처한 복합 위기를 타개하고, 국가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3국 정상회의는 윤 대통령이 한일 관계의 걸림돌인 징용자 배상 문제에 대해 미래 지향적 결단을 내린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문재인 정부가 일본을 적대시해 1965년 한일 수교 이후 국가 발전의 기틀이 돼 온 한·미·일 협력이 위기에 처했는데, 이를 반전시킨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한일 관계 개선 의지에 비해 일본은 여전히 소극적이다. 한일 관계가 다시 악화되면 3국이 공유할 수 있는 이점이 모두 사라진다는 점에서 기시다 일본 총리의 더욱 성의 있는 호응이 필요하다.
미국에서는 2024년 대선에서 한미 동맹에 부정적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일본도 기시다 총리의 지지율이 하락해 조만간 총선이 실시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3국의 리더십에 어떤 변화가 오더라도 고양된 한·미·일 협력 체제가 변하지 않도록 제도화, 정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를 계기로 누구도 훼손할 수 없는 3국 협력 체제를 구축한다면 그것보다 더 큰 성과는 없을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8-18 “北 인권 유린은 핵 개발과 불가분” 국제 공감 더 넓혀야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주민 인권 유린이 ‘동전의 양면’이라는 인식이 국제사회에서 확산하고 있다. 당연하고 다행한 일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한미일 캠프데이비드 정상회의를 하루 앞둔 17일 북한 인권 문제를 국제 안보적 관점에서 논의하는 공개회의를 가졌다. 안보리의 8월 순회 의장국인 미국의 린다 토머스 그린필드 대사는 “세계에서 가장 억압적이고 전체주의적 북한의 인권 침해는 안보리가 주목해야 할 안보 이슈”라며 회의를 제안했다. 황준국 유엔 대사도 “김정은 정권이 주민 복지 자원을 핵 개발에 사용했다는 점에서 인권 문제와 핵 문제는 불가분”이라고 밝혀 회원국들의 공감을 얻었다.
안보리가 북한 인권 문제를 의제로 삼은 것은 2017년 이후 6년 만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그런 논의에 부정적 입장을 견지했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북핵 문제도 북한 인권 문제도 더욱 심각해졌다. 이번에는 달랐다. 52개국이 ‘북한 인권은 그 자체로 안보리의 관심을 필요로 한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반해 겅솽 주유엔 중국 부대사는 “북한 인권을 논의하면 지역 긴장이 고조된다” “대북 제재를 풀어야 한다”고 했다. 안보리 결의를 대놓고 묵살하는 북한을 감싸고, 안보리 제재가 마치 북한 주민 인권 탄압의 원인인 양 내세우는 적반하장의 궤변이다.
북한 인권 문제도 이제는 안보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때다. 북한은 “반공화국 모략책동”이라며 반발하지만, 그럴수록 국제사회의 공감대를 더 넓혀 나가야 한다. 미국은 이미 2016년부터 김정은·김여정을 인권 유린 혐의로 제재했다. 193개 유엔 회원국이 북한 인권 개선 압박에 더 많이 동참하도록 윤석열 정부가 역할을 해야 한다. 북한 인권 탄압 규탄은 대한민국 안보를 강화하는 일도 된다.
문화일보 사설
08.19 한미일 안보·경제 공동체, 위상 달라진 한국의 기회와 책임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21일 히로시마 G7 정상회의장인 그랜드프린스호텔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한미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 뉴시스
한·미·일 3국 정상이 18일 미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회담을 열고 정례 협의체 창설을 핵심으로 하는 ‘캠프 데이비드 정신’과 첨단기술·기후변화·비확산 등 글로벌 이슈에 공동 대응하는 ‘캠프 데이비드 원칙’을 문서 형태로 채택했다. 3국 정상은 매년 정상회의를 최소 1회 개최하고, 안보실장·외교·국방·산업장관 회의를 연 1회씩 갖기로 했다. 외교·안보·경제·기술 분야에서 수시로 협의하면서 한 몸처럼 움직이는 준(準)동맹 체제를 출범시킨 것이다. 3국은 “세 나라 파트너십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했다. 동북아는 물론 글로벌 지정학 게임에서 새로운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이전까지 한·미·일 정상회의는 1994년부터 총 12회 개최됐으나 모두 다자회의 무대에서 개최됐다. 3국 정상회의만을 위해 별도로 모인 것은 처음으로, 바이든 미 대통령은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일본 총리를 역사적으로 중요한 합의를 도출한 장소로 유명한 캠프 데이비드로 초청했다. 3국 정상은 역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하면서 3국 협력을 포괄적이고 다층적인 협력체로 만들기로 합의했다. 글로벌 질서가 신냉전의 대결 구도로 접어든 상황에서 세계 GDP와 교역량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는 3국의 자유민주주의 협의체가 탄생한 것이다.
이번 회담의 가장 큰 성과는 정보·안보에서 산업·기술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분야를 망라한 협력 방안을 문서로 제도화한 것이다. 그동안 3국 협의는 각국의 정치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고 변동이 심했는데, 캠프 데이비드 합의를 통해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각 레벨에서 안정적으로 작동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대통령부터 장관급에 이르기까지 최소 9개의 협의체가 구성돼 1년 내내 대화하는 체제가 가동될 전망이다. 미 정부 관계자는 “모든 부문의 DNA에 3국 협력 관계를 엮어 시스템에 내재화하고 이를 ‘뉴 노멀(새로운 표준)’이 되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안보 분야에서 3국은 어느 한 국가에 대한 외부의 위협을 3국 공동 위협으로 인식하기로 한 ‘3자 협의 공약’을 채택, 3국 간 결속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맞서 핵우산 강화는 물론 매년 3국 연합 훈련을 하기로 하고, 북한의 해킹에 대응하는 사이버 협력 실무 그룹을 신설하기로 했다. 동북아 차원을 넘어 인도·태평양 지역을 포함하는 광역적이고 글로벌한 안보 협력 체제로 외연을 넓혔다.
3국은 국군 포로 문제 해결, 자유로운 체제로의 통일 추진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한미 양국이 2009년 ‘미래 비전’에서 북한 인권 문제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통일을 명시한 적이 있지만, 3국 차원에서 합의한 것은 처음이다. 3국 정상의 이 같은 합의는 미국·일본·호주·인도의 4자 안보 대화인 ‘쿼드’보다 안보 협력의 범위, 제도화·정례화의 수준 측면에서 훨씬 강력하다. 유럽의 집단 안보 체제인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버금가는 ‘아시아판 NATO’로 평가받을 만하다.
3국 정상은 국제법에 근거한 항행·비행의 자유 등 국제 질서 수호를 위해 3국이 협력한다는 합의문을 채택했다. 인도양·태평양 수역에서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에 반대한다는 입장도 재확인했다. 시진핑 독재 체제로 치달으면서 패권적 대외 확장에 나선 중국을 견제한 것이다.
3국은 반도체·배터리 분야에서 공급망 연대를 구축하고, 우주·인공지능·양자 등의 미래·핵심 신기술과 금융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했다. 어느 한 나라가 반도체 등 전략 물자 조달에 차질을 빚으면 3국이 공동 대응하는 공급망 조기 경보 시스템을 구축하고 핵심 기술을 탈취하려는 세력에 맞선 대응 조직을 만들기로 했다. 나아가 3국 국립 암 치료소가 ‘암 치료 연구 대화’에 나선다는 세부적 내용까지 담는 포괄적 합의를 이루었다.
한국은 캠프 데이비드 합의로 명실상부하게 미국과 일본의 대등한 파트너로 동아시아는 물론 신(新) 세계 질서 구축의 동반자가 됐다. 1953년 한미 동맹, 1965년 한일 수교에 이어 3국 간 파트너십을 구축해 경제·안보적으로 더 강력한 방파제를 확보한 의미는 작지 않다. 정부 수립 후 75년 만에 새로운 차원의 국제 협력 체제를 갖춘 것이다.
한·미·일 3국은 각각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으로 연결돼 있으나 그 밑변에 해당하는 한일 관계가 여전히 안정적이지 못하다. 한·미·일 3국 협력 체제를 유지하려면 무엇보다 한일 관계가 과거사에 영향받아 좌초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계 정세가 요동치는 상황에서 한일이 과거사 문제로 갈등하며 퇴보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한일 관계를 악화시켜 한·미·일 3국 협력 좌초를 바라는 세력에게 빌미를 줘서는 안 된다.
이번 3국 정상회의를 통해 위기감을 느낀 북한이 더욱 도발적인 자세로 나올 수 있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우리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3국의 공통 이익을 최대화하면서도 북한·중국의 반발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복안이 필요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진심을 갖고 나오면 얼마든지 북한과 대화 가능하고, 중국에 대해서도 서로의 공통 이익을 위해 협력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며 새로운 대응 전략을 만들어 대응하는 데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8.19 세계 GDP 32%… 한미일 ‘안보·경제 블록’ 탄생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 “3국이 함께할 새 장 시작됐다”


▲캠프 데이비드서 만난 한미일 정상 -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왼쪽부터) 일본 총리가 18일(현지 시각) 미국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만나 활짝 웃고 있다. 이번 한·미·일 정상회의에서는 안보 협력을 인도·태평양 등 글로벌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3자 협의에 대한 공약' 등 문서 3건이 채택됐다. /AP 연합뉴스
한·미·일 3국 정상이 18일(현지 시각) 미국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북한 핵·미사일 위협은 물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벌어지는 안보 위협에 공동 대응하고 공급망과 신흥 기술 등 경제안보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3국 협의체를 대거 신설하기로 합의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이날 정상회의 후 발표한 ‘캠프 데이비드 원칙(Camp David Principles)’과 ‘캠프 데이비드 정신(Spirit of Camp David)’, ‘3자 협의에 대한 공약(Commitment to Consult)’ 등 3건의 문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3국 정상이 군사·경제안보 협력을 인도·태평양 등 글로벌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정권 교체 등 정치 상황과 무관하게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이를 제도화한 것이다. 한·미 동맹, 미·일 동맹이라는 동북아 안보 체제 탄생 이후 70년 만에 등장한 가장 큰 변화로 세계 경제의 32%를 차지하는 강력한 경제·안보 블록이 탄생했다는 의미도 있다.

▲그래픽=이철원
3국 정상은 이날 한·미·일 정상회의를 최소 연 1회 개최하고 국가안보보좌관(안보실장), 외교·국방·산업장관 간 회의도 연례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3국 정상은 또 ‘인도·태평양 대화’와 ‘개발 정책 대화’를 출범시켜 아세안과 태평양 도서국에 대한 개발 협력과 인도적 지원 정책을 조율하기로 했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과 관련해서는 3국 방어 훈련도 매년 실시한다. 3국 정상은 북한에 억류 중인 국군 포로 문제 해결과 자유롭고 평화로운 한반도 통일 추진이 필요하다는 데도 뜻을 같이하고, 이를 정상 차원에서 처음으로 공식 발표했다.
3국 정상은 ‘원칙’ 문서에서 “인도·태평양 국가로서 국제법, 공동 규범·가치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을 계속해서 증진해 나갈 것”이라며 “힘에 의한, 또는 강압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에도 강력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또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재확인한다”면서 “양안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한다”고 했다. 3국은 “우리가 함께할 새로운 장의 시작에 이를 발표한다”며 “우리는 3국이 하나가 될 때 더 강하며, 인도·태평양 지역이 더 강하다는 것을 인식한다”고 했다. 역내(域內)에서 국제법에 근거한 항행(航行), 상공 비행의 자유 등 국제 질서 수호를 위해 3국이 협력하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패권 팽창에 한·미·일이 공동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조선일보 워싱턴=최경운 기자
08.19 한미일 “역내에 안보 위협 발생하면, 협의 통해 공동 대응” 약속
[한미일 정상회의] ‘캠프 데이비드’ 합의 내용은

▲3국 정상회의 - 윤석열(왼쪽 끝) 대통령과 조 바이든(가운데)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오른쪽 끝) 일본 총리가 18일(현지 시각) 미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3국 정상회의를 갖고 있다. 이들은 3국 회의로 "새 장을 열었다"고 했다. /연합뉴스
한·미·일 3국 정상이 18일(현지 시각)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정상 회의에서 역내(域內) 안보 위협 발생 시 3국이 협의를 통해 공동 대응을 모색한다는 내용을 담은 이른바 ‘3자 협의에 대한 공약’을 문서로 채택했다. 3국 안보 협력 범위를 한반도를 넘어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넓힌 것이다. 3국 정상은 특히 최근 남중국해에서 발생한 필리핀 해경선에 대한 중국 해경의 물대포 발사 문제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군사적 팽창을 3국이 공동의 위협으로 인식하고 함께 견제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간 북한 핵·미사일 위협을 중심으로 한미, 미일 군사 동맹 체제로 작동해온 3국 안보 협력이 포괄적 지역 다자 안보 협력체로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이날 정상회의 후 3국의 지속력 있는 협력을 위한 지침과 비전, 이행 방안을 문서화한 이른바 ‘캠프 데이비드 원칙’과 ‘캠프 데이비드 정신’, 그리고 ‘3자 협의 공약(이하 ‘공약’)’ 등 문서 3건을 발표했다. 미국은 그간 한일 관계 개선을 바탕으로 한 3국 간 역내 방위 책임을 명문화하기 위해 공을 들여왔다. 이에 한국 정부는 신중을 기하면서도 북한과 중국, 러시아 밀착에 따른 안보 위협에 맞서기 위해 한·미·일 공조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3국 정상은 이날 남중국해에서 최근 발생한 중국·필리핀 간 충돌과 관련해 각국이 대외적으로 표명한 입장을 거듭 언급하면서 인도·태평양 수역에서 일방적인 현상 변경 시도에 반대한다는 입장도 재확인했다. 지난 5일 중국 해안경비정이 남중국해에서 필리핀 군용 물자 보급선을 향해 물대포를 쏜 행위 등을 겨냥한 것이다.
3국 정상은 ‘원칙’ 문서에서 “인도·태평양 국가로서 국제법, 공동 규범·가치에 대한 존중”을 언급하며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또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재확인하면서 양안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했다. 3국은 이러한 원칙이 “우리가 함께할 새로운 장의 시작”이라면서 “3국이 하나가 될 때 더 강하며, 인도·태평양 지역이 더 강하다는 것을 인식한다”고 했다. 역내에서 국제법에 근거한 항행(航行), 상공 비행의 자유 등 국제 질서 수호를 위해 3국이 협력하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패권 팽창에 한·미·일이 공동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다만 “새로운 (‘공약’) 문건은 기존의 한미 동맹이나 미일 동맹 조약을 침해하거나 방해하지 않고 새로운 국제법적 의무도 부과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 나라가 침략당할 경우 의무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군사 동맹체나 집단 방위체는 아니란 뜻이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3국 협력을 통해 윈윈 효과가 분명히 나올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에 만든 협력체”라며 “협력체가 몇 년 진행되다가 특정 나라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 나라의 행동을 주목하고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국제사회가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3국은 이날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제재 이행과 대(對)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 감소, 우크라이나 지원·재건을 위한 협력도 지속하기로 했다.
3국 정상은 이날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맞선 공동 대응 능력을 실질적으로 강화하기로 하고 북한 미사일 경보 정보 실시간 공유 체계를 연내에 가동하기로 했다. 또 한·미·일 방어 훈련을 연례화하고 북한의 불법 사이버 활동 감시도 강화하기로 했다. 북한이 암호 화폐 탈취와 금융 분야 해킹 등을 통해 핵·미사일 개발 자금을 마련하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3국 정상이 ‘한반도 자유통일’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에 뜻을 같이한 것도 주목된다. 이 같은 사안이 3국 정상회의에서 공식 논의된 것은 처음이다. 이번 정상회의 의제가 결정되는 데는 자유, 인권 등 보편적 가치를 중시해온 윤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소식통은 이번에 ‘한반도 자유통일’이 언급되는 것과 관련 “통일을 하더라도 어떻게 하는지가 중요하다는 데 3국 간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했다.
3국 정상이 군사훈련 정례화에 합의한 것은 그간 부정기적으로 해온 미사일 방어 훈련, 대(對)잠수함 훈련 등을 체계적으로 정립해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에 대한 방위 태세 능력과 확장억제(핵우산)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것이다. 한·미·일 정상은 이번 회의에서 3국 방어 훈련을 최소 연 1회 등 정례화하는 방침에 합의했다.
조선일보 워싱턴=최경운 기자 노석조 기자
“한미일 관계에 새로운 장 열었다... 정상회담 정례화”
한미일 정상, 공동 기자회견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8일 오후 캠프 데이비드에서 3국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로이터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8일 오후 3시 14분(현지 시각)부터 약 56분 간 한미일 3국 정상회의가 열린 미국 메릴랜드주(州) 캠프 데이비드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했다. 세 정상은 세계 정세의 전환점에서 한·미·일의 관계 강화가 시대의 소명이라는 데 인식을 함께하고, 앞으로 매년 연례 3국 정상회의를 정례적으로 열겠다고 밝혔다. 이날 공동 기자회견은 캠프 데이비드 내 캠프 사령관의 관사인 시더 캐빈(Cedar Cabin) 옆 야외에서 열렸다.
◇尹대통령 “미증유의 복합위기”, 바이든 “3국 협력은 이 시대의 소명”
이날 기자회견에서 세 정상은 고도화되는 북한의 핵 미사일 도발, 대만과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위협,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나란히 거론하며 세계 정세가 전환점에 있다는 공동 인식을 드러냈다. 이런 정세 변화 속에 3국이 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시대적 소명'이라고도 했다.
모두발언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세계는 변곡점(inflection point)에 있다. 우리가 새로운 방식으로 선도하고, 협력하며, 함께하기를 요구받는 시점”이라며 “우리가 그 소명에 응답했다고 오늘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는 인도·태평양에 이바지하기 위한 우리 삼국의 방위 협력을 승격시키겠다”면서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고 경제적 강압에 대응하기 위한 우리 공동의 결의를 재확인한다”고 했다. 질의응답에서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거론하며 “60~70년마다 한 번씩 세계가 크게 변하는데 지금이 그 시점이라고 본다. 이것이 유럽의 문제라고만 할 수 있겠나”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오늘날 미증유의 복합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역내 가장 발전된 자유민주주의 국가이자 경제대국으로서, 또 첨단기술과 과학혁신을 선도하고 있는 한미일 3국의 강력한 연대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면서 “이곳 캠프 데이비드는 한미일 3국이 자유, 인권, 법치의 공동 가치를 바탕으로 규범 기반의 국제 질서를 증진하고 역내 안보와 번영을 위해 중심적 역할을 수행할 것을 천명한 역사적 장소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도 “지금 법의 지배에 입각한 자유롭고 열린 국제 질서가 위기에 처해있다”면서 “러시아에 의한 우크라이나 침략에 의해서 국제 사회는 그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질의응답에서도 그는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의 일방적인 현상 변경 시도를 포함해 3국을 둘러싼 안보 환경은 더욱 엄중해지고 있다. 이번 회의에서 일미 동맹과 한미 동맹의 공조를 강화하고 일미한 안보협력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 올리는 데 의견의 일치를 봤다. 이것은 바로 시대적 요청”이라고 말했다.
◇연례 3국 정상회의 개최 합의에 바이든 “영원히 하겠다는 뜻”
기자회견을 시작하며 바이든 대통령은 “오늘 우리는 첫 3국 단독 회의를 열었을 뿐만 아니라 연례 정상회담에 합의해서 역사를 만들었다”면서 “우리는 정상급에서, 그리고 관련 각료급에서 정례적으로 만나기로 합의했다. 올해만이 아니라 내년만도 아니라 영원히 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역내 위협이나 3국에 영향을 주는 어떤 일에 대해서도 정보를 공유하고 대응을 조율하는 핫라인을 갖게 될 것”이라며 “우리는 평화롭고 번영하는 인도태평양을 만들기 위한 경제 협력도 확대하기로 했다. 공급망 조기 경보망을 시작하기로 했으며 이는 배터리 제조에 필요한 핵심 광물 등의 공급 문제에 대한 경보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공중보건, 암 치료제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도 “우리는 한미일 협력의 안정적 발전을 위해 다양한 수준과 분야의 삼국 협력의 제도적 기반을 구축했다”며 “한미일 정상회의 정례화와 함께 삼국의 외교장관, 국방장관, 국가안보보좌관을 포함한 각급 인사들이 각 분야에서 매년 만나 삼국 간 협력 방안을 긴밀하게 조율해 나가기로 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오늘 우리가 연 3국 협력의 장은 안보, 경제, 과학기술, 개발도상국에 대한 개발협력, 보건, 여성 이런 모든 문제에 대해서 3국이 긴밀하게 공조하기로 했다는 포괄적인 협력의 장”이라며 “이는 지금의 복합 위기와 도전의 시대에 우리 3국의 역할과 기여가 전 세계 모든 인류의 자유, 평화, 번영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역량이 있다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우리 3국의 공동 이익은 우리들만의 배타적 이익이 아니라 전 세계의 자유, 평화, 번영에 기여하는 보편적 이익과 부합하고 거기에 우리 3국의 공동 이익이 함께 있다고 말씀 드릴 수 있다. 3국 간에 포괄적 협력 체계가 가동이 되면 먼저 공급망 안정, 금융 외환 시장에서의 안정, 첨단 과학 기술의 협력 이런 것들이 원활하게 이뤄진다”고 했다.
◇북핵 정보공유와 3국 훈련 실시, 대북 대화에도 열려 있어
바이든 대통령은 기자회견 첫 부분에서 “한국과 일본은 유능하며 꼭 필요한 동맹이다. 미국의 한일에 대한 공약은 철통 같다”며 “나는 삼국을 하나로 모으겠다는 개인적 결의를 처음부터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북한 문제에 대해 그는 “우리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사이버 활동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 공유를 배가할 것이고 탄도미사일 방어 협력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발언에 나선 윤 대통령은 “전례 없이 고도화된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공동 대응하기 위한 실질적 협력 방안을 협의했다”면서 “북한 미사일 경보 정보의 실시간 공유가 올해 안에 본격 가동될 것이며 이는 삼국이 북한 미사일 탐지와 추적 역량을 강화하는 중요한 진전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삼국 간 방어 훈련의 중요성에 공감하고 연례 계획에 따라 한미일 훈련을 실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기시다 일본 총리는 “북한 핵미사일 개발의 중요한 자금원이라고 하는 사이버 활동에 관한 3국 워킹그룹의 출범에 의견의 일치를 봤다”며 “북한에 대한 대응에 대해서는 지역의 억지력 강화 뿐만 아니라 제재 이행에 대한 완전한 공조 강화를 확인하고 2024년에 3국 모두가 이사국이 되는 유엔 안보리에서도 긴밀히 협력해 나가는 데 일치했다”고 말했다. 또 그는 “북한과의 대화에도 열려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했다.
◇바이든 “모든 전쟁포로와 납북피해자 송환에 협력할 것”
이번 정상회의에서는 국군포로와 일본인 납치자를 포함한 모든 납북자의 송환을 촉구하는 데도 3국이 목소리를 함께 했다.
이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은 “작년 5월 제가 일본 납북 피해자분들을 만난 적 있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며 그분들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면서 “우리는 입장이 같다. 함께 일함으로써 이 모든 전쟁포로와 납북 피해자들이 다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목적을 공유한다”고 말했다. 그는 “성공이 성공이 낳는다”며 “우리는 모든 납북피해자들이 자유로워질 때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기시다 총리는 “납북자 문제는 해결 시한이 있는 문제란 점을 설명 드렸고, 바이든 대통령과 윤 대통령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8일 오후(현지 시각) 캠프 데이비드 내에 마련된 3국 공동 정상 기자회견장으로 걸어오고 있다. /연합뉴스
◇尹대통령 “후쿠시마 오염수 투명한 점검 필요”
질의응답에서 윤 대통령은 3국 정상회의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 문제가 논의되었느냐는 질문을 받고 “오늘 회의의 의제가 되지는 않았다”고 답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그러나 주신 질문에 대해서 제 말씀을 드리면 후쿠시마 오염수가 어떠한 영향을 미친다고 하면 그것은 태평양을 돌아서 많은 국가의 국민들에게 우리 삼국 뿐만 아니라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3국 국민과 모든 인류의 건강과 안전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 오염수의 처리에 대해서는 과학에 기반한 투명한 과정을 통해서 처리돼야 하고 국제적으로 공신력이 있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점검 결과를 신뢰하고 있다”며 “다만 IAEA의 점검과 계획대로 처리가 되는지에 대해서는 일본, 한국을 포함해서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그리고 투명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시다 “한국은 협력해야 할 중요한 이웃나라”
한국 국내에서 일본의 전향적 조치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는 질문에 대해 기시다 총리는 “일한 관계의 강화에 대한 강한 마음을 윤 대통령과 공유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일한 양국은 국제사회의 과제에 대처하는 데 있어서 협력해야 할 중요한 이웃나라이며, 윤 대통령과의 우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일한 양국이 파트너로서 힘을 합쳐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 나갔으면 하고 바란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올해 윤 대통령을 일본으로 초청하고 저 자신도 방한을 하고, 국제회의 자리에서도 회담을 거듭해 왔다. 그런 가운데 양국 간의 안보, 경제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전향적인, 구체적인 움직임이 역동적으로 나오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경제안보협의회의 출범, 일본의 수출 통제 해제, 재무장관과 방위장관 간의 회담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바이든 “내가 행복해 보이나? 행복하다. 훌륭한 회담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내가 행복해 보인다면 실제 그렇기 때문”이라며 “훌륭하고도 훌륭한(great, great) 회담이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에 캠프 데이비드에서 첫 정상회의를 개최했는데, 오랫동안 새로운 시작과 새로운 가능성을 상징해 온 이곳보다 더 나은 장소를 생각할 수 없었다”며 “이번 회의는 그저 며칠, 몇 주, 몇 달이 아니라 우리가 관계를 구축해 나갈 수십 년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우리가 함께 모일 수 있도록 리더십과 용기를 보여준 것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도 “캠프 데이비드는 역사적 장소로 기억될 것”이라며 “오늘 우리 세 정상은 처음 한미일 단독 정상회담을 갖고 한미일 협력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의미를 되새겼다. 기시다 총리는 “초대를 해준 조(바이든 대통령)에게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며 “이곳 캠프 데이비드에서는 수많은 역사적 회담이 이뤄져 왔지만 그 역사에 새로운 한 페이지를 새길 수 있었음을 매우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서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 기시다 총리는 캠프 데이비드 내의 로렐 로지에서 이날 오후 11시30분부터 낮 12시35분까지 65분 간 회담을 갖고, 같은 장소에서 오찬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3국 회담 개최 전 윤 대통령, 기시다 일본 총리와 각각 한·미, 미·일 정상회담을 했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3국 회담과 오찬 후에 별도의 한·일 양자 정상회담을 가졌다.
[원칙·공약 전문] “한미일은 하나가 될 때 더 강하다”
‘캠프 데이비드 원칙’ 전문
윤석열 대한민국 대통령, 조셉 바이든 미합중국 대통령, 그리고 기시다 후미오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은 우리의 파트너십 및 인도·태평양 지역과 그 너머에 대한 공동의 비전을 확인한다. 우리의 파트너십은 공동의 가치, 상호 존중, 그리고 우리 3국과 지역, 세계의 번영을 증진하겠다는 단합된 약속의 토대에 기반해 있다.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의 파트너십이 아래의 원칙에 따르게끔 하고자 한다.
한·미·일은 인도·태평양 국가로서 국제법, 공동의 규범, 그리고 공동의 가치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을 계속해서 증진해 나갈 것이다. 우리는 힘에 의한 또는 강압에 의한 그 어떠한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에도 강력히 반대한다.
우리 3국 안보협력의 목적은 역내 평화와 안정을 촉진하고 증진하는 것이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우리의 역내 공약에는 아세안 중심성과 결속, 그리고 아세안 주도 지역 구조에 대한 우리의 확고한 지지가 포함된다. 우리는 인도·태평양에 대한 아세안의 관점의 이행과 주류화를 촉진하기 위해 아세안 파트너들과 긴밀히 협력할 것이다.
우리는 태평양도서국 및 역내 주도적 협의체인 태평양도서국포럼과 태평양 방식에 따라 긴밀하게 협력해 나갈 것이다.
우리는 관련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른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공약을 함께 견지한다. 우리는 북한과의 전제 조건 없는 대화에 대한 입장을 지속 견지한다. 우리는 납북자, 억류자 및 미송환 국군포로 문제의 즉각적인 해결을 포함한 인권 및 인도적 사안 해결을 추진할 것이다. 우리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통일 한반도를 지지한다.
우리는 국제 사회의 안보와 번영에 필수 요소로서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재확인한다. 대만에 대한 우리의 기본 입장에 변화가 없음을 인식하며, 양안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한다.
선도적인 글로벌 경제로서, 우리는 금융 안정뿐 아니라 질서 있고 잘 작동하는 금융시장을 촉진하는 개방적이고 공정한 경제 관행을 통해 우리의 국민들, 지역 및 전 세계를 위한 지속적인 기회와 번영을 추구한다.
상호 신뢰, 신임 및 관련 국제법과 표준에 대한 존중에 기반하여 우리가 개방적이고, 접근 가능하며, 안전한 기술 접근법을 위해 협력해 나감에 따라, 우리의 기술 협력은 인도·태평양의 활기와 역동성에 기여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 3국 간 및 국제기구 내에서 핵심·신흥기술의 개발, 이용 및 이전을 지도하기 위한 표준 관행과 규범의 발전을 모색할 것이다.
우리 3국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협력하기로 하고, 관련 국제기구·협의체를 통해 리더십을 발휘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 협력할 것이다. 우리는 전 지구적 이슈와 불안정의 근본 원인을 함께 해결하기 위해 개발과 인도적 대응 협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다.
우리는 유엔 헌장의 원칙, 특히 주권, 영토 보전, 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무력 사용에 관한 원칙을 수호한다는 공약에 있어 흔들리지 않는다. 어느 한 곳에서든 이러한 원칙이 위협받을 경우 모든 곳에서 그 원칙에 대한 존중이 훼손된다. 책임감 있는 국가 행위자로서, 우리는 모두가 번영할 수 있도록 법치의 증진 및 역내 및 국제 안보 보장을 모색한다.
우리 3국은 핵비확산조약 당사국으로서 비확산에 대한 우리의 공약을 지킬 것을 서약한다. 우리는 핵무기 없는 세계 달성이 국제사회의 공통된 목표라는 점을 재확인하며, 핵무기가 다시는 사용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 나갈 것이다.
우리 3국은 우리의 사회가 강력한 만큼만 강하다. 우리는 여성의 완전하고 의미 있는 사회 참여 증진과 모두의 인권과 존엄에 대한 우리의 의지를 재확인한다.
이러한 공동의 원칙들이 향후 수년간 계속해서 우리의 3국 파트너십을 이끌어갈 것이라는 믿음으로, 우리가 함께할 새로운 장의 시작에 이를 발표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대한민국, 미국, 일본이 하나가 될 때 더 강하며, 인도·태평양 지역이 더 강하다는 것을 인식한다.
‘3자 협의에 대한 공약’ 전문
대한민국, 미합중국, 일본국 정상은 우리 공동의 이익과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지역적 도전, 도발, 그리고 위협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을 조율하기 위하여, 각국 정부가 3자 차원에서 서로 신속하게 협의하도록 할 것을 공약한다. 이러한 협의를 통해, 우리는 정보를 공유하고, 메시지를 동조화하며, 대응 조치를 조율하고자 한다.
우리 3국은 자국의 안보 이익 또는 주권을 수호하기 위한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할 자유를 보유한다. 이 공약은 한미 상호방위조약과 미일 상호협력 및 안전보장조약에서 비롯되는 공약들을 대체하거나 침해하지 않는다. 이 협의에 대한 공약은 국제법 또는 국내법하에서 권리 또는 의무를 창설하는 것을 의도하지 않는다.
[공동성명 전문] “한미일 협력, 인도 태평양 지역 너머까지 확대”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18일(현지시각) 미국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3국 정상회의를 하고 3국 간 포괄적 협력 방안을 담은 정상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3국 정상은 이 성명을 ‘캠프 데이비드 정신’(Spirit of Camp David)으로 명명했다. 다음은 성명 전문.
<캠프 데이비드 정신: 한미일 정상회의 공동성명>
우리 대한민국, 미합중국, 일본국 정상들은 3국 간 파트너십의 새로운 시대를 출범시키기 위해 캠프 데이비드에 모였다. 우리는 우리 3국과 우리 국민들을 위한 전례 없는 기회의 시기에, 그리고 지정학적 경쟁, 기후위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 그리고 핵 도발이 우리를 시험하는 역사적 기로에서 만나게 되었다. 진정한 파트너들 간 연대와 조율된 행동을 요구하는 순간이자, 우리가 함께 만나고자 하는 순간이다. 한미일은 우리 공동의 노력을 조율해 나가고자 하며, 이는 우리 3국 간 파트너십이 모든 우리 국민들과 지역, 그리고 세계 안보와 번영을 증진시킨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신 하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한일 관계를 변화시킨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용기 있는 리더십을 평가하였다. 새롭게 다져진 우정의 연대와 함께, 철통같은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으로 이어진 우리 각각의 양자 관계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며, 우리의 3자 관계도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
이 역사적 계기를 맞이하여, 우리는 모든 영역과 인도-태평양 지역과 그 너머에 걸쳐 3국 협력을 확대하고 공동의 목표를 새로운 지평으로 높이기로 약속한다. 우리는 경제를 강화하고, 회복력과 번영을 제공하며, 법치에 기초한 자유롭고 열린 국제질서를 지지하고, 특히 현재 그리고 차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으로서 지역 및 글로벌 평화와 안보를 강화할 것이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증진하고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공조를 강화할 것이다. 우리는 한미동맹과 미일동맹 간 전략적 공조를 강화하고, 3국 안보 협력을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이다. 우리가 이 새로운 시대에 함께 접어듦에 따라, 우리가 공유하는 가치는 길잡이가 될 것이며, 한미일의 5억 명 국민들이 안전하고 번영하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이 우리의 공동의 목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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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우리가 함께 사는 지역을 강화하겠다는 공동의 목표에 있어 단합한다는 점을 공개 선언한다. 우리가 부여받은 책무는 인도-태평양이 번영하고, 연결되며, 회복력있고, 안정적이고, 안전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공동의 역량을 이끌어 내면서 한미일이 목표와 행동에 있어 공조하도록 하는 데 있다. 한미일 협력은 단지 우리 국민들만을 위해 구축된 파트너십이 아닌, 인도-태평양 전체를 위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 공동의 이익과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지역적 도전, 도발, 그리고 위협에 대한 우리의 대응을 조율하기 위해 서로 신속하게 협의한다는 3국 정부의 공약을 발표한다. 이러한 협의를 통해, 우리는 정보를 공유하고, 메시지를 동조화하며, 대응 조치를 조율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정기적이고 시기적절한 3국 간 소통을 강화하기 위한 국가정상급을 포함한 소통 메커니즘을 개선할 것이다. 우리는 최소한 연례적으로 3국 정상, 외교장관, 국방장관 및 국가안보보좌관 간 협의를 가질 것이며, 이를 통해 기존의 외교 및 국방장관 간 각각 가져왔던 3국 협의를 보완할 것이다. 아울러 우리는 첫 3국 재무장관회의를 개최할 것이며, 상무․산업 장관 간 연례적으로 만나는 협의를 새롭게 출범시킬 것이다. 우리는 또한 3국의 인도-태평양에 대한 접근법의 이행을 조율하고 협력이 가능한 새로운 분야를 지속적으로 식별하기 위해 연례 3자 인도-태평양 대화를 발족할 것이다. 해외 정보 조작과 감시 기술의 오용이 제기하는 위협이 증가하고 있다고 인식하면서 우리는 허위정보 대응을 위한 노력을 조율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서도 협의할 것이다. 우리는 개발 정책 공조를 심화하기 위한 구체 논의를 진전시키기 위해 10월로 예정된 3국간 개발정책대화를 환영한다. 우리는 지역 안보를 수호하고, 인도-태평양에 대한 관여를 강화하며, 공동의 번영을 증진하고자 하는 결연한 의지를 갖고 있다.
우리는 아세안 중심성 및 결속과 함께, 아세안이 주도하는 지역 구조에 대한 지지를 전적으로 재확인한다. 우리는 ‘인도-태평양에 대한 아세안의 관점’의 탄탄한 이행과 주류화를 지원하기 위해 아세안 파트너들과 긴밀히 협력할 것을 약속한다. 우리는 메콩강 유역의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지원하고 수자원 안보 및 기후 회복력을 증진하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고 있다. 우리는 또한 태평양도서국들에 대한 우리의 지지를 재확인하며, 개별 국가 및 태평양 지역을 강화하는 ‘태평양 방식’에 부합하고, 투명하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태평양 지역과 진정한 파트너십 아래 협력해 나가고자 한다. 우리는 사이버안보 및 건전한 금융질서 분야에서 역량 구축 노력과 새로이 출범한 한미일 해양안보협력 프레임워크 등을 통해 아세안과 태평양도서국 대상 지역 역량 강화 노력들이 상호 보완적이며, 우리의 소중한 파트너 국가들에게 최대한 이로울 수 있도록 동 역량 강화 노력들을 조율해 나갈 계획이다.
우리는 역내 평화와 번영을 약화시키는 규칙 기반 국제질서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에 대한 우려를 공유한다. 최근 우리가 목격한 남중국해에서의 중화인민공화국에 의한 불법적 해상 영유권 주장을 뒷받침하는 위험하고 공격적인 행동과 관련하여, 우리는 각국이 대외 발표한 입장을 상기하며 인도-태평양 수역에서의 어떤 일방적 현상변경 시도에도 강하게 반대한다. 특히, 우리는 매립지역의 군사화, 해안경비대 및 해상 민병대 선박의 위험한 활용, 강압적인 행동에 단호히 반대한다. 아울러, 우리는 불법․비신고․비규제 조업을 우려한다. 우리는 유엔해양법협약에 반영된 항행과 상공비행의 자유를 포함하여 국제법에 대한 우리의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한다. 2016년 7월의 남중국해 중재재판소 판결은 절차 당사국 간 해양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법적 토대를 제시한다. 우리는 국제 사회의 안보와 번영에 필수 요소로서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재확인한다. 우리의 대만에 대한 기본 입장은 변함이 없으며, 양안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한다.
아울러, 우리는 관련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른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공약을 재확인하며, 북한이 핵ㆍ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모든 유엔 회원국이 모든 관련 유엔 안보리 결의를 완전히 이행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한반도 그리고 그 너머의 평화와 안보에 중대한 위협을 야기하는 다수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포함한 북한의 전례 없는 횟수의 탄도미사일 발사와 재래식 군사 행동을 강력히 규탄한다. 우리는 불법적인 대량살상무기 및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의 자금원으로 사용되는 북한의 불법 사이버 활동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다. 우리는 북한의 사이버 위협에 대응하고 사이버 활동을 통한 제재 회피를 차단하기 위해 국제 사회와의 공조를 포함, 3국간 협력을 추진해 나가고자 3자 실무그룹 신설을 발표한다. 한미일은 북한과의 전제조건 없는 대화를 재개한다는 입장을 지속 견지한다. 우리는 북한내 인권 증진을 위해 협력을 강화할 것이며, 납북자, 억류자 및 미송환 국군포로 문제의 즉각적 해결을 위한 공동의 의지를 재확인한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담대한 구상의 목표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며, 자유롭고 평화로운 통일 한반도를 지지한다.
미국은 대한민국과 일본에 대한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이 철통같으며, 모든 범주의 미국의 역량으로 뒷받침되고 있음을 분명히 재확인한다. 오늘 우리 3국은 우리의 조율된 역량과 협력을 증진하기 위하여 3자 훈련을 연 단위로, 훈련 명칭을 부여하여, 다영역에서 정례 실시하고자 함을 발표한다. 우리 3국은 고도화되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더욱 효과적으로 억제하고 대응하는 우리의 역량을 보여주기 위해 8월 중순 미사일 경보정보 실시간 공유를 위한 해상 탄도미사일방어 경보 점검을 실시하였다. 우리는 2022년 11월 프놈펜 성명상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2023년 말까지 북한 미사일 경보정보가 실시간으로 공유되도록 하고자 하며, 미사일 경보정보 실시간 공유에 필요한 우리의 기술적 역량을 시험하기 위해 초기 조치들을 시행하여 왔다. 우리는 북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증강된 탄도미사일 방어 협력을 추진할 것이다. 우리는 핵무기 없는 세계 달성이 국제 사회의 공통의 목표라는 점을 재확인하며, 우리는 핵무기가 다시는 사용되지 않도록 계속해서 모든 노력을 기울여 나갈 것이다.
우리는 안보 파트너십을 심화하는 동시에 각 국가가 가진 고유한 역량을 활용하여 경제 안보와 기술 분야에서 굳건한 협력을 구축하는 데에도 계속 초점을 둘 것이다. 프놈펜 성명 상 우리의 약속을 이행하는 차원에서 우리의 국가안보팀들은 공동의 목표를 진전시키기 위해 한미일 경제안보대화로 두 차례 만났다. 우리는 현재 특히 반도체와 배터리를 포함한 공급망 회복력, 기술 안보 및 표준, 청정에너지 및 에너지 안보, 바이오기술, 핵심광물, 제약,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과학 연구에 있어 3국간 협력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 국가들은 정보공유를 확대하고 잠재적인 국제 공급망 교란에 대한 정책 공조를 제고하며 경제적 강압에 맞서고 이를 극복하는 데 더 잘 대비해나가기 위해 공급망 조기경보시스템 시범사업을 출범코자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다. 우리는 개발도상국들이 청정에너지 제품의 공급망 내에서 보다 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회복력 있고 포용적인 공급망 강화 파트너십(RISE)을 계속해서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또한 우리는 우리가 개발한 첨단 기술이 해외로 불법 유출되거나 탈취되지 않도록 기술 보호 조치에 대한 협력을 강화할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 혁신기술타격대 그리고 일본 및 대한민국의 상응 기관 간 첫 교류를 실시하여 집행기관 간 정보 공유와 공조를 강화할 것이다. 우리는 또한 국제 평화와 안보를 잠재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군사 또는 이중용도 역량에 우리 기술이 전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수출통제에 대한 3국 협력을 지속 강화할 것이다.
기술 보호 조치에 대한 협력과 동시에, 우리는 3국 국립연구소 간 새로운 협력을 추진하고 특히 과학, 기술, 공학 및 수학(STEM) 분야에서 3국 간 공동 연구·개발 및 인력 교류 확대하는 등을 통해 연합되고 공동의 과학·기술 혁신을 강화할 것이다. 이에 더해 우리는 개방형 무선접속망(RAN)과 관련된 3국 간 협력을 확대하고, 특히 우주 영역에서의 위협, 국가 우주 전략, 우주의 책임 있는 이용 등을 포함한 우주 안보 협력에 관한 3국 간 대화를 한층 더 증진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우리는 전환적 기술로서 AI의 중대한 역할을 인정한다. 우리가 공유하는 민주주의 가치에 합치하며, 프론티어 AI 시스템에 대한 국제적 논의의 기초로서 AI 국제 거버넌스 형성 및 안전성, 보안성, 신뢰성을 갖춘 AI 보장을 지원하기 위한 우리 각자의 노력을 확인한다.
우리는 경제적 참여를 막는 장벽을 제거하고, 여성과 소외계층을 포함하여 우리의 모든 국민들이 성공할 수 있는 다양하고, 접근 가능하며, 포용적인 경제를 구축해 나가기 위해 계속해서 매진하고 있다. 우리는 청년과 학생들을 포함한 3국 간 인적 유대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다. 우리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협상의 성공적인 타결을 향한 협력을 지속해 나갈 것이며,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올해 미국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의장국 수임을 환영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국제 사회가 직면한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히로시마 G7 정상회의에서 일본이 보여준 강력하고 원칙 있는 리더십을 평가한다. 우리는 함께 청정에너지 전환을 가속화하고, 개발금융기관 간 3자 협력과 글로벌 인프라·투자 파트너십(PGII) 등을 통해 양질의 인프라와 회복력 있는 공급망을 위한 자금을 조달하며,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과 금융 안정, 그리고 질서 있고 잘 작동하는 금융시장을 촉진해 나가기로 약속한다. 우리는 다자개발은행들이 공동의 지구적 도전 과제에 보다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진화시키기 위한 야심찬 의제를 지속해 나갈 것이다. 정상들은 다가오는 양허성 프레임워크에 맞추어 글로벌 도전 과제들에 대응함으로써 세계은행그룹의 새로운 양허성 재원과 빈곤퇴치 여력을 마련하고, 위기 대응을 포함하여 최빈국들을 위한 재원 확대를 모색하기로 약속한다.
우리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에 있어 단합한다. 우리는 국제질서의 근간을 뒤흔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정당화될 수 없고 잔혹한 침략 전쟁에 대항하여 우크라이나와 함께 한다는 우리의 의지를 재확인한다. 우리는 계속해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러시아에 대해 조율된 강력한 제재를 부과할 것이다. 우리는 러시아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 경감을 가속화해 나갈 것이다. 우리가 이 재앙과도 같은 침략전쟁으로부터 얻을 오랫동안 지속될 교훈은 영토보전, 주권, 분쟁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수호하고자 하는 국제 사회의 변함없는 의지여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어디에서든 이러한 기본적인 원칙들이 거부된다면 우리 지역에 대해서도 위협을 의미한다는 견해를 재확인한다. 우리는 이러한 언어도단의 행위가 다시는 자행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우리의 의지에 있어 단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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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래를 위한 공동의 의지와 낙관을 갖고 캠프 데이비드를 떠난다. 우리 앞에 놓여진 기회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기회를 붙잡은 것이다. 한미일 국민과 인도-태평양 지역 국민들에게 평화롭고 번영하는 미래를 가져다주기 위해서는 우리가 보다 자주 연대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 각자가 치열하게 지켜온 의지의 산물이다. 오늘, 우리는 한미일 관계의 새로운 장이 시작되었음을 선언한다. 우리는 비전을 공유하고, 우리 시대의 가장 어려운 도전 앞에 흔들림 없으며, 무엇보다도 한미일이 지금 그리고 앞으로 그러한 도전들에 함께 대처해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함께 한다.
조선일보 워싱턴=최경운 기자
08.19 “동북아 질서 70년만의 대격변… 한일 관계, 한국이 주도권 쥐어”
18일(현지 시각)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에 대해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미·일 동맹(1951년), 한미 동맹(1953년)이라는 현재 동북아 안보 체제 탄생 이후 70년 만에 등장한 가장 큰 변화라고 평가했다. 세계 경제의 32%를 차지하는 3국 정상이 매년 만나 군사, 외교부터 반도체 공급까지 논의하는 강력한 경제·안보 블록이 탄생했다는 의미도 있다. 북핵 등 공동 위협에 직면해 있고, 안보와 경제에선 서로 의존하면서도 전쟁, 식민 지배 역사 등으로 복잡했던 3국 관계가 새로운 역사적 단계에 들어섰다.



▲그래픽=김현국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다자 회의가 아니라 한·미·일 정상이 별도로 모여서 회의를 하는 것 자체가 처음으로, 그 의미가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 “3국의 결속 없인 한국의 대북 정책도, 미국의 아시아 정책도 성공하기 어렵다”며 “절박한 필요성에도 한·미·일 협력은 각국 국내 정치 때문에 이뤄지지 못했는데 수십 년 만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기회가 온 것”이라고 했다. 위성락 전 러시아 대사는 “미국이 수십 년간 추구해온 한·미·일 공조를 체계화한다는 점에서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못지않은 외교적 전환점”이라고 했다. 3국 협력의 ‘약한 고리’였던 한·일 관계를 한국이 주도권을 가지고 풀어냄으로써 미국 정계에서 한국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고, 한국의 국제적 지위가 높아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래픽=백형선
전문가들은 특히 3국 정상이 연 1회 만나기로 한 것에 대해 “3국 정상의 강한 의지로 관계가 제도화되면서 안정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냉전 시기 ‘자유 진영 대 공산 진영’이라는 구도와 미국의 조정 속에 유지돼 왔던 한·미·일 관계는 냉전 해체 이후 각국 정부의 성향과 한·일 간 역사 문제로 부침을 겪어 왔다. 미국은 2000년대 들어 3국 차관보급 대북(對北) 정책 조정 회의, 국방 차관보급 연례 안보회의를 열었지만 큰 진전을 보지 못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기존 협의체들은 의제가 한정되고 운영도 불안정했다면 앞으론 이를 고위급으로 격상해 안정적으로 운영하겠다는 의미”라고 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한·일 관계가 일시적으로 나쁠 때도 3국 회담이라는 틀에서 만날 수가 있고, 트럼프 대통령처럼 자국 중심적인 지도자가 다시 등장하더라도 제도화된 동맹국과 만남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미·일 협력의 범위가 대북 공조 등 로컬(지역) 이슈에서 글로벌 차원으로 확대된 것도 주목된다”고 했다. 다만 3국 협력 의제가 반도체, 인공지능 등 첨단 산업 분야로 확대되면서 경제 안보와 관련된 미국의 요구가 늘어나거나 각론에서 각국의 입장 차가 생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캠프 데이비드 회담이 군사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북한·중국·러시아에 대해서 분명한 경고 메시지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한·미·일 3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공동 위협에 대해 즉각 협의를 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 한국 해상 운송량의 30% 이상이 통과하는 대만해협 위기 등이 예로 거론된다. 위성락 전 대사는 “한 회원국에 대한 공격을 모두에 대한 공격으로 보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수준은 아니지만 외부 위협을 3국이 공동 인식하고 논의한다는 것은 자체가 (회담의)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했다.
쿼드(QUAD·미국 일본 호주 인도), 오커스(AUKUS·호주 영국 미국) 등 미국의 다른 인도·태평양 협력 체계와 비교해도 한·미·일 협의체의 중요성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쿼드는 러시아 제재 국면에서 인도가 비협조하면서 해양 감시 역할에 머물고 있고, 오커스는 호주에 대한 핵잠수함 기술 제공 이후엔 정보 공유 역할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김현욱 교수는 “캠프 데이비드 회담 이후 가동되는 한·미·일 채널은 향후 아태 지역에서 미국이 원하는 군사 안보 소·다자 협력의 핵심 축이 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우리의 안보 정책이 상대방의 경쟁적 대응을 불러일으키는 ‘안보의 딜레마’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위성락 전 대사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강화된 북·중·러의 군사 협력이 더 가속화될 것”이라며 “외교·군사를 섞어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러시아와 세(勢)를 이뤄 묵직하게 밀고 들어올 중국의 공동 위협에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에서 연말 한·중·일 정상회의가 추진 중이고, 일본은 올 하반기 중국 고위급과의 접촉을 확대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우리 역시 정교한 대(對)중국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을 앞두고 블룸버그통신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확장 억제(핵우산)와 관련해 한·미·일 간 별도의 협의에도 열려 있는 입장”이라고 했다. 대통령실은 이에 대해 이번 회담의 의제가 아니라고 했고, 한·미·일 협력 강화가 일본과의 군사동맹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최은미 연구위원은 “한·일 안보협력 긴밀화에 대해선 국민적 우려도 있는 만큼 국민들에게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08.21 한·미·일 첨단 혁신 공조, 저성장 늪에서 재도약 기회 될 수 있다

▲미국 캠프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3국 정상회의에서 반도체, 배터리, 우주산업, 인공지능(AI), 양자 컴퓨터 등 미래 첨단 산업 분야에서 3국 간 긴밀한 협력 플랫폼을 구축하기로 했다. 첨단 산업 분야의 3국 협력 틀은 한국 경제 재도약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연합뉴스
미국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3국 정상회의에서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우주산업, AI(인공지능), 양자 컴퓨터 등 핵심·신흥 기술 분야에서 광범위한 3국 협력 플랫폼을 구축하기로 합의했다.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등 기존 첨단 산업 분야에선 3국 공급망 공조를 통해 동반 성장을 도모하고, 우주산업, AI, 양자 컴퓨터 등 신흥 기술 분야에선 초기부터 3국이 공동 개발하며, 기술 표준 제정을 통해 3국이 미래 세계 시장을 주도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기회를 잘 활용하면 한국 경제가 저성장 늪에서 탈출, 재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되면서 미국은 핵심 첨단 산업에서 중국을 배제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시도해 왔다. 반도체 분야에선 한국·대만·일본을 아우르는 ‘칩4 동맹’을 구축하고, 전기차 2차 전지의 자체 공급망 구축에도 심혈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한국은 반도체 수출의 40%를 차지하는 중국을 의식해 미국이 주도하는 ‘칩4 동맹’에 적극적으로 가세하지 못해 왔다. 한국이 주춤거리는 사이 대만 TSMC는 일본에 반도체 공장을 짓고, 일본은 미국과 손잡고 차세대 반도체 생산을 추진하고 있다. 이 때문에 향후 반도체 산업 분업 구도가 ‘미국(설계)-일본(소재)-대만(생산)’ 삼각 구도로 재편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었다. 이번 3국 합의는 미국이 반도체 제조와 소재에 강점을 가진 한국, 일본과 손을 잡고 한·미·일 반도체 삼각 동맹을 구축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으로선 세계 반도체 제조 장비를 사실상 독점한 미·일을 우군으로 확보함으로써, 중국의 보복 위험을 줄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한국 경제의 미래 먹거리인 2차 전지 분야도 3국 공조 합의로 중국 변수의 위험을 줄일 수 있게 됐다. 미국이 주도하는 ‘핵심광물안보 파트너십’은 2차 전지 원자재의 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우주산업, AI, 양자 컴퓨터 등 신흥 기술 분야에서 3국 공동 연구기관을 만든다는 합의도 의미가 크다. 이들 분야는 미국이 세계 1위 기술 보유국이며, 일본도 세계 최고의 기술과 노하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초기 단계부터 3국이 신흥 기술을 공동 개발하고, 국제 표준 제정에 공동 참여하는 것은 한국 경제에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3국 협력의 새 틀이 짜인 만큼 정부는 해당 분야 민간 투자 확대, 인력 자원 개발 등 이를 뒷받침할 정책을 면밀하게 세워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8.21 한·미·일 체제 작동하려면 한미 동맹이 미일 수준으로 격상돼야
캠프 데이비드 회의를 계기로 새로운 시대로의 도약을 선언한 한·미·일 협력이 영속하려면 3국 체제 내부의 한미 동맹, 미일 동맹, 한일 관계가 조화롭게 움직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 70년 전 결성된 후 본질적인 변화가 없었던 한미 동맹을 미일 동맹과 같은 수준으로 업그레이드시켜야 할 과제를 안게 됐다.
윤석열 정부 들어 한미 양국은 문재인 전 정부에서 형해화될 뻔했던 한미 동맹을 다시 일으켜 세우며 협력을 강화했다. 지난 4월 윤 대통령의 방미를 계기로 미국의 확장 억제(핵우산)를 구체화한 한미 핵협의그룹(NCG)을 만드는 성과도 있었다.
그럼에도 현재의 한미 동맹은 미일 동맹과 같은 반열에 있다고 하기 어렵다. 미일 동맹은 2012년 자민당 재집권 후 인도·태평양은 물론 우주 차원에서도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관계가 됐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2020년 11월 당선되자마자 일본과 중국이 영토 분쟁 중인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가 미일안보조약에 따른 보호 대상이라고 확언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북한이 핵무기를 실전 배치한 상황에서 휴전선 가까이 배치돼 있던 주한 미군 대부분이 한강 이남으로 철수, 인계철선이 사실상 사라졌다. 유사시 일본의 유엔사 후방 기지나 괌에서 날아오는 미 공군 전력의 신속한 투입을 기대해야 하는 상황이다. 1953년 체결된 후 한 번도 개정된 적이 없는 한미상호안보조약을 고쳐 유사시 미군의 개입을 더 확실히 담보해 낼 필요가 있다.
한미 원자력 협정도 미일 원자력 협정 수준으로 재조정돼야 한다. 일본은 핵무기 6000개를 제조 가능한 47t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는데, 우라늄 농축과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가 가능한 미일 원자력 협정이 2018년에 재연장됐다. 한국은 2015년 개정된 원자력 협정에서 국산 우라늄을 이용한 20% 미만의 저농축이 필요하게 되면 한미 간 협의를 통해 추진할 수 있도록 했을 뿐이다. 미국과의 방산 협력도 한국은 일본에 못 미친다. 미국은 세계 최강 전투기 중 하나인 F-35 설계 기밀을 일본에 제공하기로 했으며 첨단 전투기를 공동으로 만드는 단계로까지 진화했다.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은 새로운 시작이자 기회를 상징한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기자회견 발언이 결실을 맺으려면 한미 동맹을 미일 동맹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과제부터 시동을 걸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8-21 한미일 ‘공동 위협에 공동 대응’… 尹 역할 더 중요해졌다
한미일 정상이 지난 18일 캠프데이비드에서 도출한 합의의 핵심은 ‘3국 공동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에 있다. 자유민주주의라는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는 3개국이 그렇게 하는 것은 당연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일 갈등과 각국 국내 정치 상황 등으로 인해 제대로 작동되지 못한 경우가 수두룩했음을 고려하면 역사적이라고 할 만큼 의미가 크다. 3국 중 1국의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을 명시한다면 나토 수준의 동맹이 될 수 있겠지만, 아직 그 수준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조 바이든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어느 한 나라라도 영향을 받을 때”라고 개인적 견해를 밝힘으로써 무엇을 지향하는지 분명히 했다.
8·18 정상회의에서는 이런 취지를 구체화한 캠프데이비드 원칙과 정신(공동성명), 그리고 3국 협의에 관한 공약 등 3개 문건이 채택됐다. 공동 대응은 ‘우리의 공동이익과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지역적 도전과 도발, 위협에 대해 3국 차원에서 신속하게 협의하고 대응 조치를 조율한다’로 공약에 명시됐다. 한국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 등 안보 위협, 미국과 일본은 중국의 국제규범 교란에 무게중심이 있지만, 3국 공통의 도전이기도 하다.
캠프데이비드 합의를 계기로 한미 상호방위조약과 미일 안전보장조약을 바탕으로 한 동아시아 전략 구도는 70년 만에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3국 정상 및 국가안보실장, 외교·국방·재무·상무 장관이 경제·안보·첨단기술·공급망 등에 대해 정례적 회의를 갖기로 한 것은 모든 현안이 한미일 차원에서 협의된다는 뜻이다. 오커스(AUKUS)나 쿼드(QUAD)에 비해 포괄영역이 넓고 더 제도화한 협의체다. 준(準)동맹 분석까지 나오는 이유다.
이런 합의가 가능하기까지 윤석열 대통령의 ‘이니셔티브’가 큰 역할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여기까지 오게 한 여러분의 정치적 용기에 사의를 표한다”며 한일 정상의 관계 정상화 노력에 대해 평가를 했다. 특히 외신들은 윤 대통령이 과거사 갈등에도 불구하고 대일 관계 개선에 나선 덕분에 이 정상회의가 가능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내년에 있을 제2차 한미일 정상회의가 한국에서 열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3국 안보 체계가 실효성을 키우고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한일관계 안정과 한중관계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3국 안보 체계가 더욱 발전할 수 있기 위해서는 윤 대통령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중국은 이번 정상회의를 신냉전 신호탄이라 비판하며 반발하고 있어 더욱 그렇다.
문화일보 사설
08-21 8·18 정상 합의 뒷받침할 실천 과제

김숙 前 駐유엔 대사
지난 18일 캠프데이비드 한미일 3국 정상회의는 공동 가치에 기반한 안보 파트너십을 통해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정과 세계 번영에 기여하겠다는 결연한 의지 표명이 핵심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3·16 일본 방문과 4·24 미국 방문에서 다진 기틀 위에 이룬 대한민국 정상외교의 값진 과실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동맹 트라우마를 겪었던 우리에게는 미국의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한미동맹을 굳건히 하고 3국 안보 협력 관계를 제도화하겠다는 의미도 있다. 이 부분은 문재인 대통령 집권 중 동맹 약화를 경험했던 미국도 같은 생각이다.
한미일 삼각 협력 체계 구축의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었다는 중요성에 비춰 그 함의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3국 안보 협력의 성격이다. 한미일 3국은 지역적 위협에 대해 정보 공유, 공동 입장(메시지) 정립, 대응 조치 조율이라는 3단계 협의를 거치며 이번 공약이 기존의 한미, 미일 간 양자 방위조약을 대체하지 않고, 새로운 권리·의무를 창출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미국도 회원국이 공격을 받을 경우 즉각 행동을 취하는 나토(NATO) 동맹과는 다르며 동맹 규약이나 집단방위 규약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따라서 이것으로 3국 동맹을 창설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존 양자 동맹에 추가해 이번 선언의 목표, 협의 절차, 군사적 수단에 따른 협력의 강도를 보면 사실상 준(準)군사동맹으로 가는 첫발을 디딘 것이며 이를 인정하는 데 주저할 이유도 없다. 북한 위협 대처에 훨씬 든든한 태세를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한반도 유사시 일본의 개입과 역할을 확대하는 근거가 될 수 있음은 유의해야 하며 이는 유엔군사령부(UNC)의 하위 부대로서 일본의 유엔군 후방사(UNC-Rear) 기능과는 구분해야 한다.
또한, 대만해협 유사시 전략적 유연성에 따른 주한미군의 개입이 가져올 파장에 대해 새롭게 진전된 검토도 필요하다. 중국 반응도 문제다. 남중국해에서 불법행위 반대 및 대만 관련 문제의 평화적 해결 촉구와 인·태 수역에서의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 반대에 대해 중국은 자국을 포위·봉쇄하려는 위험한 시도로 보면서 신냉전의 서막이며 아시아판 ‘미니 나토’ 결성이라고 격앙한다. 중국에 대한 지속적인 대화·설득을 게을리 말아야 할 또 하나의 이유다.
그러나 중국은 핵·미사일·인권 등에서 우리의 핵심 국가이익에 반해 북한을 옹호하고 북중러 3국의 군사 협력이 긴밀화하는 상황에서, 이제 더는 우리를 안보의 약한 고리로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김정은은 극심한 경제난과 사회 불안정에도 최근 더 공세적인 전쟁 준비와 타격 수단의 실전 배치를 지시했다. 우리의 당면한 안보 우선순위는 북한의 비핵화를 강제하면서 전쟁을 생각지도 못하도록 압도적 억지력을 갖추는 것이고, 그래도 전쟁이 난다면 신속히 승리하는 데 있다. 이번 정상회의는 이 목적에 소중한 기여를 했다. 이제 실천이 중요하다. 밥 얘기 아무리 해도 배부르지 않으며, 배부르려면 밥을 먹어야 한다는 성철 스님 말씀은 안보에도 적용된다.
오늘부터 한미 연합훈련과 기동훈련이 시작됐다. 이제 북한의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시 현장 요격도 검토하고, 7차 핵실험을 한다면 유엔회원국 자격 정지도 검토할 때다. 대통령이 애써 마련한 전략을 강한 의지로 추진하는 데는 국회의 초당적 협조도 필요하다.
문화일보
08.23 캠프 데이비드, 자유민주 진영 떠받칠 두 번째 기둥 세웠다
NATO의 反중국 결집 이어
한·미·일 안보협력체 출범
호주, 2020년에 中과 결별
독일, 지난달 친중 정책 폐기
캠프 데이비드선 한국이 합류
對中 무역 위축 상쇄할
새 경제 활로 개척은 숙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8일(현지 시각)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 공동기자회견에 입장하고 있다./연합뉴스
1978년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의 30년 무력 대치를 종식시키고 반세기 중동 평화의 길을 연 캠프 데이비드에서 또 하나 화합과 협력의 기적이 창출될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1990년대 출범 이래 불안스러운 한일 관계 때문에 진통을 거듭하며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던 한·미·일 3자 안보 협력이 지난 주말 캠프 데이비드 3국 정상회담을 통해 아·태 지역 최강의 안보협력체로 재탄생했다. 이는 최고위급 회담 정례화와 외교·안보 현안 공동 보조, 정례적 합동 군사훈련과 미사일 방어 협력 등 안보협력체 기능에 더해 첨단 분야 경제안보 동맹의 성격까지 망라된 강력한 전방위 3자 안보협력체의 출범을 의미한다.
“미국 외교의 꿈이 실현되었다”는 뉴욕타임스 평가처럼, 동아시아에서 한일 갈등을 극복하고 유럽의 NATO에 상응하는 한·미·일 안보협력체를 구축하는 것은 미국 외교의 오랜 꿈이었다. 이는 또한 한미 동맹 외에는 딱히 동질적 소속 그룹이 없는 외로운 외교적 입지 때문에 빈번히 적대적 주변국의 압박과 위협에 직면하곤 했던 한국 외교의 오랜 소망이기도 했다. 3자 안보협력체의 출범은 동아시아 패권 장악을 노리는 거대 중국의 위협에 저항하는 자유민주 진영 연합 체제의 탄생을 의미한다. 특히 한국에는 과거의 대중국 굴종 외교에 대한 결별 선언인 동시에 반주권적 3불 약속 폐기 개시의 신호탄이기도 하다.
그런 상황 전개에 대해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강한 불만과 결연한 반대”를 표명했지만, 이는 중국의 패권주의적 팽창 정책과 오만한 외교 행태가 초래한 필연적 귀결일 뿐이다. ‘구소련 제국의 영광 회복’을 추구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유럽의 반러시아 단합을 초래했듯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기치로 남중국해, 대만, 한반도 장악을 넘보는 중국의 외교적, 군사적 위협은 지리멸렬했던 동아시아의 자유민주 진영을 결집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NATO의 반중국 결집에 이은 동아시아 안보협력체의 출범은 이미 성공 가능성이 희박해진 중화 제국의 패권 가도에 새로운 충격파가 될 전망이다.
시진핑 주석이 2012년 취임 직후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몽(中國夢)을 선언할 때만 해도 중국이 미국을 추월해 패권국에 등극하는 건 단지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그러나 2017년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저지하려 대중국 무역 전쟁에 나서고 2021년 바이든 행정부가 첨단 공산품 공급망 통제까지 단행하자, 당초 2025~26년 정도로 추정되던 미국과 중국의 경제력 역전 시기 전망이 10년 이상 늦추어지더니, 최근엔 그런 전망마저 사라지는 추세다. 미국의 디리스킹 전략에 따른 경제 침체와 더불어, 서방 기업의 투자 철수, 중국 공산당의 자해적 경제 통제 강화, 그리고 미래의 성장 동력마저 고갈시키는 인구 감소 등이 중국 경제 몰락의 주된 요인이다.
그럼에도 불구, 미국의 대중국 견제가 이 정도에서 끝날 리는 없다. 중국이 다시는 패권 도전을 꿈도 못 꿀 정도로 몰락할 때까지 미국의 외교적, 군사적 포위망과 경제안보 봉쇄망은 계속될 것이다. 이번에 출범한 한·미·일 안보협력체는 그러한 미국의 대중국 전략 목표들이 총망라된 결정체와도 같은 형태여서, 신냉전의 세계에서 NATO와 더불어 자유민주 진영을 지키는 두 기둥으로 기능할 전망이다. 그중 특히 한국의 동참은 중요한 상징성을 갖는다. 유난히 높은 대중국 무역 의존도 때문에 부득이 중국과 밀착했던 주요 서방국가 중 호주가 2020년 중국과 결별했고 독일이 지난달 친중 정책 폐기를 선언한 데 이어 한국이 이번에 합류함으로써, 이제 자유민주 진영의 단합은 완성되었다.
그러나 한·미·일 안보협력체는 이제 시작일 뿐이며, 많은 어려운 과제와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첫째는 언어상의 합의를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다. 거기엔 아·태 지역 자유민주 진영 전체가 참여 중인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 작전’ 참여 문제도 응당 포함될 것이다. 둘째는 이번 합의가 국내 정치나 한일 관계 변화로 무력화되는 일이 없도록 외교적 연속성을 보장할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일이다. 셋째는 국제경제 질서의 급변 속에서 대중국 무역 위축을 상쇄할 새로운 경제적 활로를 찾아내는 일이다. 넷째는 국력이 쇠퇴하는 중국이 수년 내 대만해협에서 모험적 전쟁을 벌일 가능성에 대비하는 일이다. 한국이 대만전쟁에 대해 어떤 시각과 정책을 갖고 있건, 그 전쟁의 영향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08-24 북한 정찰위성 발사 또 실패… 한미일 ‘정보공유’ 첫 가동

85일만에… “3계단 비행 오류”
합참 “즉각 포착해 추적·감시”
尹, 3자훈련 면밀한 추진 지시
북한이 지난 5월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실패한 지 85일 만인 24일 2차 발사를 시도했지만 또다시 궤도 진입에 실패했다. 한·미·일 정상이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를 통해 합의한 3각 군사협력·정보공유 시스템도 이번 북한 도발을 계기로 처음 가동됐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북한은 오전 3시 50분쯤 평안북도 동창리 일대에서 ‘북 주장 우주발사체’를 남쪽 방향으로 발사했다”며 “발사 시 즉각 포착해 지속 추적·감시했고 실패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북한 역시 발사 2시간 반 만에 관영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국가우주개발국은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신형 위성 운반 로케트(로켓) ‘천리마-1형’에 탑재해 제2차 발사를 단행했다”며 “신형 위성 운반 로케트 천리마-1형의 1계단(단계)과 2계단은 모두 정상비행했으나 3계단 비행 중 비상폭발 체계에 오류가 발생해 실패했다”고 발표했다. 북한은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대책한 후 오는 10월에 제3차 정찰위성 발사를 단행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오전 열린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결과를 보고받고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합의한 미사일 경보 정보 실시간 공유, 미사일 방어협력 증대, 3자 훈련 정례화를 면밀하게 추진해나가라”고 지시했다. NSC 상임위원들 역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상습 위반하는 북한이 응분의 대가를 치르도록 하고, 해외 파견 노동자 착취·사이버 해킹·해상 밀수 등 불법행위를 차단하기 위해 한·미·일 공조를 강화하기로 했다. 미국 백악관은 “백악관 국가안보팀이 동맹국 및 파트너들과 긴밀한 조율 속 북한 상황을 평가 중”이라며 “북한과의 외교의 문은 닫히지 않았지만 도발적 행동을 즉각 멈춰야 한다”고 밝혔다.
문화일보 조재연·김선영 기자
08-24 日,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개시…트리튬, 탄소14 등 바다에 남아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부지 안에 보관돼 있는 오염수 탱크. 연합뉴스
원전 사고 발생 12년 반만에… 17일간 7800t 배출 예정
일본이 24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일본 정부 명칭 ‘처리수’) 해양 방류를 개시했다.
후쿠시마 원전 운영회사인 도쿄전력은 22일 일본 정부의 방류 결정에 따라 이날 사전 작업을 거쳐 수조에 보관하던 오염수를 오후 1시쯤부터 방출하기 시작했다고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다.
2021년 4월 스가 요시히데 당시 총리가 오염수 처분 방식으로 해양 방류를 결정한 지 2년 4개월 만이며,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 약 12년 반 만이다. 도쿄전력은 다핵종제거설비(ALPS)를 거쳐 후쿠시마 제1원전 부지 내 저장 탱크에 보관된 오염수를 바닷물과 희석해 약 1㎞ 길이의 해저터널을 통해 원전 앞바다에 방출했다. ALPS로 정화 처리하면 세슘을 비롯한 방사성 물질 62종을 제거할 수 있으나, 삼중수소(트리튬)와 미량이기는 하지만 탄소14 등의 핵종도 남는다.
도쿄전력은 ALPS로 거를 수 없는 삼중수소는 바닷물과 희석해 농도를 일본 규제 기준의 40분의 1인 ℓ당 1500베크렐(㏃) 미만으로 만들어 내보내기로 했다. 도쿄전력은 이미 지난 22일 오후 오염수 약 1t을 희석 설비로 보낸 뒤 바닷물과 혼합해 대형 수조에 담았다. 도쿄전력은 수조에서 채취한 표본의 삼중수소 농도를 확인한 결과 기준치인 ℓ당 1500㏃을 훨씬 밑돌았다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는 방류 이후 원전 인근 바닷물의 삼중수소 농도를 정기적으로 파악할 방침이다. 방류 직후 채취한 표본의 삼중수소 농도 측정 결과는 이르면 27일 공개된다. 도쿄전력은 하루에 약 460t의 오염수를 바닷물로 희석해 방류하는 작업을 17일간 진행해 일차적으로 오염수 7800t을 바다로 배출할 예정이다.
문화일보 노기섭 기자
08.25 지속가능한 ‘캠프 데이비드’를 위하여
내년 美 대선에서 트럼프 승리 가정해 보라… 27년 한국 대선도 마찬가지
내년 후년뿐만 아니라 ‘한미일’ 협력체 영원하려면 “국익에 도움” 입증해야
윤석열·바이든의 과제는 ‘대못 박기’ 아니라 ‘선거 승리’다
캠프 데이비드에서 윤석열 대통령,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일본 총리의 스킨십은 끈끈했다. 한·미·일 핵심 인사들이 좁은 테이블에 빽빽하게 둘러앉아 호박 소스에 비벼낸 만두 격인 스쿼시 라비올리를 함께 먹은 장면이 그 상징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아메리칸 파이’ 열창으로 상징되는 한미 스킨십, 셔틀 외교 부활의 한일 스킨십이 먼저 있었기에 이런 장면 연출이 가능했다. 한·미·일 정상회담의 의미가 워낙에 강렬하기 때문에 화려한 의전이나 미사여구의 포장이 불필요했을 것이다.
이 회담의 외교안보적, 전략적 측면은 바로 사흘 전 이 지면에서 충실히 다뤄졌다. 정치적 측면의 과제가 외교와 안보 측면의 그것만큼이나 무겁고 어렵다는 점을 이제 좀 더 자세히 말해볼까 싶다.
지난 18일, 정상회의 이후 기자회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오늘 우리는 첫 3국 단독 회의를 열었을 뿐만 아니라 연례 정상회담에 합의해서 역사를 만들었다”면서 “우리는 올해만이 아니라 내년만도 아니라 영원히 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서울로 돌아와서 내년 한·미·일 정상회의는 서울에서 열었으면 하는 뜻을 내비쳤다. 총선 이전이니 이후니 하는 이야기가 벌써 들린다. 내년엔 이 회의가 문제 없이 열릴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듬해인 2025년에도 열릴까? 모를 일이다.
내년 11월 진행되는 미국 대선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한다면,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당선된다면 이 회의체는 사라지거나 성격이 완전히 바뀔 가능성이 높다. 우리뿐 아니라 전 세계는 이미 트럼프를 한 번 겪었다. 그는 비민주적 권위주의·전체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대결에도, 나토와 우크라이나에도, 한미동맹의 역사성과 전략적 의미에도, 한일 관계에도 별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다. 바이든의 모든 레거시,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앞세운 결속을 부정하면서 1기 때보다 더 매운 맛을 보여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대체적 전망이다. 미국 국민의 절반 가까이 되는 사람들은 그래서 트럼프를 좋아한다.
바이든 대통령 입장에선 이 지점이 최대의 위협이기도 하지만 무기기도 하다. 인플레이션 방지법이나 노골적인 국익 추구에 대해 동맹국들이 ‘너무하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터뜨리면 ‘어쩔 수 없다.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어떻게 되는지 다 알지 않냐? 그러니 재선 성공할 때까지만 참아다오’라고 대답하는 형국이다.
만일 2027년 한국 대선에서 정권이 바뀐다면 어떻게 될까? 국민의힘이나 민주당 소속 누군가가 차기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한·미·일 정상회의라는 형식 자체를 거부할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유럽의 NATO에 상응하는 한·미·일 안보협력체, 중국의 패권 추구에 명확히 맞서는 자유민주 진영 연합 체제에서 발을 빼려 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정권이 재창출되더라도 전임자와 차별화를 하기 마련인데 정권이 교체되면 전방위적 청산 작업이 진행되지 않겠나?
그렇다고 해도 한미 관계가 완전히 파탄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진보적 성향을 지닌 문재인 대통령과 공화당 소속 트럼프 대통령의 호흡은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나 민주당 입장에서는 돈과 이벤트 앞에서만 양보가 없을 뿐 나머지는 무심한 트럼프와 크게 부딪힐 일이 없었다. 험한 입으로 유명한 트럼프 대통령이지만 자신이 요구할 것도 많고 자신의 요구를 들어줄 능력도 갖춘 한국 정부와 한국 기업들을 대체로 환영했고 좋은 말도 많이 해줬다. 김정은에게 우호적인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우리나라 민주당 지지자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는 우리가 신세질 게 아무것도 없는 나라다. 왜 우리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말려들어가야 하나” 같은 민주당 이해찬 전 대표의 발언은 트럼프 진영의 그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런 우려 때문에 앞으로 한·미·일 협력체의 영속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들이 미국과 한국에서 많이 나올 것이다. 직설적 정치 언어로 바꾸면 ‘대못 박기’다. 과거의 여러 정부들도 이런 저런 대못을 박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 입장에서 한·미·일 협력체의 영속성을 높이는 방법은 딱 하나뿐이다.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한·미·일 협력 강화가 안보와 경제 양면에서 우리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그러면 다음 대선에선 여야 후보가 서로 “내가 더 한·미·일 협력을 강화하겠다. 내가 윤석열 대통령보다 더 잘할 수 있다”고 경쟁하고 나설 것이다.
조선일보 윤태곤 정치칼럼니스트
08.25 가쓰라-태프트 회담, 그 120년 후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1924년 미국 역사학자 타일러 데넷은 의회도서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문서고에서 한 통의 외교 통신문을 발견한다. 1905년 7월 일본을 친선 방문 중이던 윌리엄 태프트 육군장관이 가쓰라 다로 일본 총리와 나눈 대화를 기록한 비망록이었다. 데넷은 이를 바탕으로 ‘루스벨트 대통령의 대(對)일본 밀약’이라는 논문을 발표한다. 흔히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부르지만, 태프트는 아무런 교섭 권한이 없었고, 구속력 있는 약속을 할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 ‘밀약(Secret Pact)’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명칭이다.
일본과 영국은 러일전쟁 이후 극동 질서에 미국을 끌어들이려 했다. 미국을 영·일 진영의 확실한 편으로 만들어야 극동에서 러시아의 영향력 침투 재발을 막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가쓰라는 정식 동맹은 아니더라도 사실상(de facto)의 동맹이라도 가능한지 여부를 집요하게 테이블 위에 올렸고, 난처한 입장의 태프트는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의회 동의 없는 어떠한 공수동맹(攻守同盟)도 불가능하나, 극동의 평화 유지에 대한 영·일의 시각에는 공감하며, 필요 시 미국 정부가 적절한 행동을 취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는 입장을 피력하였다.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필리핀과 한국 문제가 논의되었고, 일본은 이를 통해 한국의 보호국화에 미국이 반대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이것이 회담의 전모였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한일병합의 원흉이라는 비난은 과녁을 벗어난 것이나, 미·영·일의 외교정책 결정 과정에서 한국이 철저히 배제되고 한국의 운명이 체스판의 말처럼 취급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임은 분명하다. 이러한 수난의 역사를 생각할 때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는 가장 드라마틱한 역사적 반전에 해당하는 일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안보와 경제를 아우르는 한·미·일 삼각 협조 체제의 위상은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넘어 글로벌 차원에까지 함의를 갖는 것이다. 높아진 위상을 바탕으로 한 차원 높은 국익을 달성하는 국가적 역량 결집을 기대해 본다.
조선일보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주일대사관1등서기관
08-25 캠프데이비드와 웬디 셔먼

김남석 워싱턴 특파원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18일(현지시간) 미 대통령 별장 캠프데이비드에서 정상회의 후 나란히 공동 성명을 발표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문득 1년 9개월 전 기자회견 한 장면을 떠올렸다. 2021년 11월 18일 워싱턴DC 국무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차관협의회 관련 회견이었다. 이날 회견에는 3국 차관이 모두 나와 회의 결과를 함께 설명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웬디 셔먼 국무부 부장관만 등장했을 뿐 최종건 외교부 1차관, 모리 다케오(森健良)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일본 측이 김창룡 당시 경찰청장의 독도 방문을 이유로 공동 회견을 취소했기 때문이다. 셔먼 부장관은 지친 어조로 “계속 해결해야 할 한일 양자 간 이견이 있고 오늘 회의와 무관한 사안 때문에 회견 형식을 바꾸게 됐다”며 “그런데도 건설적 3자 협의를 했고 한미일 3각 협의가 왜 중요한지 보여줬다”고 말했다.
한미일 정상은 이번 캠프데이비드 회의를 통해 3국 협력을 역대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정상회의를 비롯한 최고위급 회의 정례화와 함께 외교·안보 현안 공동 대응, 정기 합동군사훈련과 미사일 방어 협력 등에 더해 기술·경제안보까지 망라한, 말 그대로 전방위 3자 안보협력체가 출범했다. 중국의 부상·북한 핵 위협 등에 맞서 동아시아에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버금가는 안보협력체 구축은 미 외교의 오랜 바람이었다.
1999∼2001년 국무부 대북정책조정관을 지내던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하는 등 미 정부 대표 한반도통인 셔먼 전 부장관 역시 북·중 견제를 위해 임기 내내 한일관계 개선에 매달리다 지난 7월 퇴임했다. 사실 한미일 3국 안보협력 시도는 처음이 아니다. 1994년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첫 한미일 정상회의가 열린 이후 정상회의 12차례, 결과문서도 5차례 채택됐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약한 고리인 한일관계 악화와 중국 눈치 보기 등으로 명맥 유지에 그쳤다.
이번 정상회의 후 접촉한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는 향후 과제로 각국 정치 환경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협력 지속을 첫손에 꼽았다. 그리고 3국 협력이 왜 중요한지 각국 국민에게 상세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할 것을 주문했다. 군사전문가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어느 한 국가 지도자가 3국 협력에 덜 헌신적인 사람으로 바뀐다면 3국 협력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니나 다를까. 더불어민주당은 정상회의 직후 “굳건한 한미동맹을 두고 일본과 군사동맹은 왜 필요한 것인가”라며 “안보공동체 참여로 국민 부담이 늘어난다”고 비판했다. 한 싱크탱크 관계자는 “3자 협의 공약을 두고도 한국 내 비판이 많다는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할 경우, 일본과 힘을 합쳐 주한미군 철수를 어렵게 하는 가드레일(안전판) 역할을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은 물론 중국·러시아 등 전체주의 진영의 위협이 점증하는 현시점에서 한미일 협력은 더는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다.
문화일보
08.25 북·중·러가 자극한 한·미·일 결속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18일(현지시간) 윤석열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미국 대통령의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 초청해 한·미·일 정상회의를 주재했다. 이번 회담은 핵 추진 잠수함 및 최신 군사 기술 협력을 위한 호주·영국·미국의 협의체인 오커스(AUKUS) 이후 바이든 행정부의 아시아 관련 가장 중요한 행사였다. 역사적 관점에서 오커스보다 오히려 더 중요한 행사일 수도 있다.
캠프 데이비드 회의 결과 주목
한국의 적극적인 행동도 한몫
집단 안보로 가는 돌파구 마련

▲글로벌 포커스
그 누구도 미국·영국·호주의 협력을 두고 “놀라운 일”이라고 하지 않지만, 일본과 한국의 전략적 협력은 차원이 다르다. 지난 수년간 한국 정부가 추진했던 한·일 관계의 전략적 모호성과 양국의 불필요한 마찰은 미국의 주요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의 대결 구도를 불러왔다. 미국의 동맹 체제를 붕괴시켜 중국·러시아·북한으로 하여금 동북아가 미국의 영향권 밖으로 벗어날 수도 있다는 확신을 줄 수도 있었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이번 한·미·일 정상회의는 한국이 행동에 나섰음을 보여준다. 한국은 민주국가의 가치와 이해관계에 부합하면서도 자유롭고 번영하는 아시아의 미래를 원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미국은 ‘아시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지만, 3국 정상은 어느 한 국가가 공격받으면 즉각 3국이 협의하기로 약속했다. 이는 사실 궁극적으로는 집단 안보로 가는 길이다.
이전에도 한·일 관계에 돌파구가 마련된 적이 있었다. 미국이 돕기도 했고 때론 뒤에서 조용히 응원하기도 했다. 예컨대 1965년 한·일 관계 정상화 선언은 알고 보면 에드윈 라이샤워 당시 주일 미국대사의 막후 역할이 컸다. 이를 통해 한국은 경제적 혜택을, 일본은 전략적 혜택을 입었다. 지미 카터 대통령 시대는 한·일 관계 격동의 시기였지만 후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두 나라 화해를 추구했고, 이런 정책에 힘입어 1980년대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 총리와 전두환 대통령은 밀접하게 협력했다. 이런 돌파구들은 정치 리더십과 용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번에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도 용단을 내렸다. 정치적으로 보수인 윤 대통령과 중도 보수로 알려진 기시다 총리는 두 정상은 지지율이 30%대에 불과한 상황인데도 결단을 내려 더 대단해 보인다. 마치 골수 반공주의자였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미·중 관계 개선을 할 수 있었던 것과 비슷하다. (지지율이 높았던) 아베 신조 총리나 문재인 대통령이 어떻게 보자면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보다 훨씬 더 쉽게 양국 관계 개선을 추진할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미국의 역할도 매우 중요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다른 나라끼리의 관계 개선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면서 한·일 갈등이 악화하도록 방치했다. 일부 미국 국방부 고위 관료들의 노력과는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의 리더 자리를 공개적으로 포기하고, 한·일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이와 정반대로 바이든 대통령은 3국 협력을 외교 정책의 최우선으로 삼았다. 양자 동맹뿐만 아니라 동맹의 네트워크가 안정을 강화하는 데 필수적이며 북·중·러 관계에 지렛대로 작용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완으로 끝났던 과거의 관계 개선 노력과 이번 합의는 과연 다른 길을 갈 수 있을까. 다음과 같은 변수에 달렸다고 보여진다.
첫째, 여론조사를 보면 한국인 대다수는 일본이 과거사 정리를 위해 충분한 조처를 하지 않았다고 믿는다. 문제는 한국인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과감한 조처를 할 수 있는 정치적 지지 기반이 일본 정부에는 없다는 점이다.
둘째, 바이든 행정부는 한·일 관계 화해에 의지를 갖고 집중해 세심하게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차기 행정부도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다. 특히 트럼프가 재집권하게 된다면 말이다.
셋째, 한국의 민주당은 다가오는 총선에서 반일 공세를 선거 전략으로 삼아 이번 화해 국면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이런 변수에도 불구하고, 점증하는 중국의 도전, 북한의 도발, 러시아의 호전성, 강화되는 북·중·러 협력은 한·미·일 안보 협력의 당위성을 계속 떠받쳐 줄 것이다. 이렇게 될 거라고 시진핑 주석, 푸틴 대통령, 김정은 위원장이 알았을까 궁금하다.
중앙일보 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국 CSIS 키신저 석좌
08.26 한·미·일 3국 협력 제도화 가능하려면

동북아시아의 전략 지형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지난 8월 18일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지도자들이 3자 정상회담을 갖고 전방위적인 협력을 약속했다. 이러한 변화는 지난해 심각했던 북한의 미사일 위협, 미국과 중국 간의 대결 심화 그리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세 가지 사건에 기인한다.
이 같은 국제정치 상황변화는 바이든 행정부로 하여금 고민거리였던 한·미·일 3각 협력의 약한 연결고리를 강화하고, 각국에서 정권이 바뀌어도 영향받지 않고 협력이 지속되도록 제도화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동안 중국은 미국의 두 동맹, 한국과 일본이 서로 갈등하는 것을 전략상의 이점으로 즐겼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이점이 사라지는 상황이 왔기 때문에 중국 정부는 캠프 데이비드 회동을 강한 톤으로 반발했다.
국내외 변수 많아 예측 어렵지만
3국협력사무소 한국에 유치하고
경제·기술 협력 가시적 성과 필요
내년 11월 미 대선 결과 지켜봐야

▲선데이 칼럼
바이든 행정부가 이 같은 외교적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한국 정부의 대일 외교 때문에 가능했다. 지난 3월, 정부의 강제징용 배상 해법에 대해 찬성이 30% 반대가 60%였다고 한다. 그러한 불리한 여론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이 결단을 내리고 이것이 한·일 관계 개선으로 이어지자 바이든 대통령이 이를 한·미·일 3자 협력 제도화의 계기로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3자 협력의 제도화 시도가 과연 앞으로 성공할 것인가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성공 여부를 결정할 두 가지 변수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국제정치 변수다. 무엇보다 중국, 북한, 러시아가 어떻게 나올 것이고 거기에 한·미·일 3국이 얼마나 잘 협력하면서 대처할 것인가가 문제다. 중국 당국은 현재 한·중 관계에 대해 조심스레 행동하고 있다. 그러나 혹시라도 중국이 과거 사드배치 당시처럼 한국에 대해 경제적 보복으로 나왔을 때 미국이나 일본이 나 몰라라 하고 방관한다면, 많은 우리 국민들은 한·미·일 3자 협력이 실체 없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또 미국이 인플레이션감축법안(IRA)이나 반도체법안의 시행과정에서 한국 기업들에 불리한 차별 조치를 취했던 것과 비슷한 행태가 또 반복된다면, 그것도 우리 국민들의 3자 협력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강화할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들을 우리 정부가 미국 정부 요로에 확실히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일본의 기시다 정부도 한국의 윤석열 정부의 한·일 관계 개선 의지에 상응하는 협력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보여 줘야 할 것이다. 지금의 우호적인 양국 간 정치적 분위기를 볼 때 그럴 일은 없겠으나, 혹시라도 일본 측 일부 정치지도자의 입을 통해 과거사에 대한 잘못된 발언이 나온다면 그것도 한·미·일 3자 협력의 제도화를 가로막는 큰 장애요인으로 작동할 것이다.
둘째, 한·미·일 3국 각국의 국내 정치가 어떻게 변화하느냐도 3자 협력 제도화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한국의 국내 정치가 가장 큰 변수일 것이다. 지금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낮다는 것은 윤 대통령의 한·일 관계 개선과 3자 협력 강화라는 정책적 선택에 대한 반대도 그만큼 높을 것이라고 추측하게 만든다. 이러한 상황을 윤 정부는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3국 협력 목표를 이루려면 국민들이 캠프 데이비드에서 만들어진 포괄적인 합의의 효과를 최대한 빨리 가시적으로 느끼게 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일부 전문가들이 제안한 대로 한·미·일 3국협력 상설사무소를 한국에 만들어 3국 협력 실천의 구심점 역할을 한국이 담당하게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3국 간 합의 사항들 중 안보 분야에서의 협력 효과를 우리 국민들이 체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경제 및 기술협력 분야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빨리 거두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핵심 공급망 교란에 대한 정보의 신속한 공유뿐 아니라, 더 나아가 그에 대한 공동대처 단계까지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고, 한·미·일 국립연구소들 간의 인공지능을 포함한 핵심 신흥 기술 분야에서의 협력을 대대적으로 펼쳐 나가고, 신흥 기술 개발과 기술 표준 협력을 내실 있게 진행해 간다면 한국의 미래 국력 신장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국민들도 윤 정부의 외교정책이 미래 지향적이라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합의사항 중 하나인 3국 여성 권한 신장 이니셔티브를 통해 한국 여성의 권한이 실제로 신장되고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의 참여가 확대된다면 3국 협력의 효과를 한국 여성들이 피부로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년 초 부산에서 개최되는 1차 한·미·일 청년서밋과 같은 프로그램이 내실 있게 확대 발전한다면 우리 청년들도 3국 협력의 효과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사실 3국 협력의 제도화가 가장 최초로 심각한 정치적 시험대에 오르게 될 사건은 내년 11월 미국 대선이다. 한국의 경우 내년 봄 총선이 있지만, 외교정책을 집행하는 행정부가 바뀌는 것은 아니기에 정책의 지속성은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만일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다면? 한·미·일 3자협력 문제 정도가 아니라 그동안 바이든 팀이 추구해 온 모든 외교 전략이 블랙홀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절체절명의 판도라의 상자, 아니 신(神)의 영역에 해당되는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중앙일보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전 외교통상부 장관
08-29 中 ‘한미일 협력’ 반발의 4대 부당성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 국제지역연구센터장
한미일이 미국 캠프데이비드에서 사상 첫 3국 정상회의를 열고 ‘세 나라 협력의 새로운 시대’(New Era of trilateral partnership)를 선언했다. 캠프데이비드 ‘정신(spirit)’과 ‘원칙(principles)’ ‘3자 협의 공약(Commitment to Consult)’ 등 문서를 통해 기존의 복합적 양자관계를 초월하는 3자 지역 협력체로서의 독립성도 확보했다.
특히, 한국 정부가 가장 주안점을 두는 공동의 이익 및 안보와 관련해 ‘신속 협의 공약’을 채택해 실천 방안을 구체화했다. 또한, 경제·기술 파트너십 강화와 공급망 3각 연대 구축에 합의하고,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 확립을 강조하면서 남중국해 및 양안(兩岸)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고 러시아도 규탄했다. 한국이 추구하는 글로벌 중추국가 역할의 확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한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대응 체제 구축과 북한 비핵화에 대한 인식 일치를 기반으로 3자 안보 협력 체계 구축에 성공했다. 중국·러시아 공조로 방치된 북핵 문제에 대한 안보리 결의 이행을 위해 국제사회 인식을 이끌기로 했다. 전 세계 GDP의 30%를 차지하는 3국 협의는 국제 규범을 선도하는 룰 메이커 역할도 할 수 있다.
예상대로 중국은 한미일 정상회의를 아시아판 나토(NATO) 구축이라며 거세게 반발한다. 쿼드(QUAD)나 오커스(AUKUS)에 이은 3국 군사동맹 구축이라는 입장이다. 한국에는 미국 편에 서지 말라는 분명한 종용과 함께, ‘신냉전에 반대하는 이성적 판단’을 주문하고 나섰다. 중국의 우려도 이해는 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 4가지가 있다.
우선, 이번 ‘협의(consultation)’는 나토헌장 제5조에서 규정하는, 회원국이 침략을 당하면 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과는 다르다. 3자 협의를 전제로 하는 협의 시스템이므로 이를 아시아판 나토로 간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둘째, 한국의 최우선 과제는 북핵 위협 억제다. 핵을 보유한 북한을 용인한 채 중국이 시도하는 한국의 대미(對美) 경사 및 한미일 3각 공조 저지는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중국의 적절한 대북 역할이 선행돼야 한·중 간 협의의 공간도 넓어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셋째, 한미와 미일은 동맹이지만 한일은 동맹이 아니다. 미일과는 온도 차가 있겠지만, 한국의 첫 번째 견제 대상이 결코 중국이 아니다. 한일이 역사적 요인으로 동맹이 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한미일 안보 협력을 대중(對中) 견제 군사동맹으로 보는 것은 인식의 비약이다.
넷째, 한국이 남중국해나 대만해협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한국의 주요 무역 수송로이기 때문이며, ‘힘에 의한 현상 변경 반대’는 국제주의 원칙의 일반적 표현이다. 한국의 공급망 재편 참여도 특정 국가를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기술력 발전에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감내하는 안보 위협은 미·중 관계의 부속물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한국은 북핵 위협에 시달리면서도 글로벌 가치를 실현하는 세계적 모범국가의 국격을 갖추고자 한다. 한미일의 이유 있는 협력이 오히려 냉전적 사고에 빠진 북·중·러 구도 구축을 제약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이 ‘신냉전’을 추구할 아무런 이유가 없음은 불문가지다.
문화일보
08.30 한국외교 전환점, 한국외교 시험대

동맹 70주년은 그냥 지나가지 않았다. 동맹의 지역적 역할에 극적인 진화가 이루어졌다. 8·18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담에서다. 핵심은 유사시 3국이 협의하여 대응을 조율한다는 공약이다. 유사는 공동의 이해에 영향을 주는 역내 위협으로 정의되었다. 회원국에 위협이 있을 때 협의를 규정한 나토 4조와 유사하다. 나토는 5조에서 하나에 대한 공격은 모두에 대한 공격이니 공동대응한다고 했다. 협의와 대응 조율은 강화된 안보협력의 1단계로 여겨진다.
한미일 vs 북중러 대립 심화 땐
비핵·평화·통일은 난관 부닥쳐
한국형 미·중·러 전략 정립해서
중·러와의 외교 공간 모색해야
오랫동안 미국은 이런 안보 구도로 중국에 대처하기를 갈망해왔다. 한국의 역대 정부는 중국을 의식하여 신중했으나, 윤석열 정부는 적극적인 입장으로 선회했다. 새 정부의 가치 지향성, 북핵 위협, 미·중 경쟁, 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미국 측 인사는 감격하여 8·17과 8·19는 전혀 다른 날이라고 했다. 이로써 한미, 미·일 동맹이 연결되어 동맹의 지역적 역할이 강화되었다. 미국은 중국 견제의 망을 촘촘히 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한국의 성과를 살피자면 우선 억지력 강화를 들 수 있다. 주로 달라지는 부분은 중·러 관련이다. 고압적인 중국과 공격적 인상을 더 한 러시아에 대해 한국이 유사시 기댈 곳을 강화한 점이 새롭다. 사드 때 중국의 보복을 혼자 겪은 한국에 원군이 생겼다는 의미다. 한국이 미·중 간 모호성과 중국에 대한 극도의 조심이라는 오랜 관성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도 있다. 그런 관성은 G7급 한국의 국격에 맞지 않는다. 한편 3자 협력이 가져올 경제 기술 분야 혜택도 기대된다.
그러나 한국이 감당해야 할 도전도 만만치 않다. 첫째, 연루(entanglement)의 부담이다. 이제 한국은 대만해협, 동중국해, 경제안보 등 미·중 마찰에 대해 협의하고 대응을 조율해야 한다. 한국의 연루 가능성은 커졌다.
센카쿠(댜오위다오)에서 일·중 마찰이나 쿠릴 인근의 일·러 마찰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미국은 연중 열릴 각종 3국 협의를 주도할 것이다. 미국이 하기 따라서는 안보협력 수위는 예상보다 높을 수 있다. 벌써 미국은 협력범위를 넓게 잡고 있다. 공약에는 공동의 이해에 영향을 주는 역내 위협이 협의 대상인데, 미국은 한 나라에 대한 위협이 있으면 협의한다고 설명했다. 좀 더 나토 식이다. 한국이 공동의 이해가 아니라고 피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둘째, 북·중·러의 반발이다. 북·중·러는 한·미·일 안보협력에 반대해 왔다. 상대적으로 신중한 한국을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한중, 한러, 남북 관계에 마찰이 예상된다. 한·미·일 안보협력이 북·중·러의 대응을 유발하여 안보 딜레마가 될 수도 있다.
셋째, 국내 여론 수렴이다. 여론은 한·미·일 안보협력에 익숙하지 않다. 특히 일본과의 안보협력에 대한 지지는 낮다. 북·중·러의 반발이 오면 보수-진보 간 논란이 더 심해질 것이다.
이상의 성과와 도전을 볼 때 우리 앞에는 한·미·일 협력의 시대와 북·중·러와의 대립의 시대가 함께 열리는 셈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한국은 특이한 지정학적 이해를 가진 나라다. 분단되어 북핵을 마주하고, 4강에 둘러싸여 있다. 비핵화, 평화구축, 통일 추구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 과제를 위해서는 미·일과 공조를 근간으로 하면서도 북·중·러와의 외교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한·미·일과 북·중·러 간 대립이 심화하면 북핵, 평화, 통일은 요원해진다.
한국이 북·중·러와의 외교 공간을 확보하려면 먼저 미·중·러에 대처할 통합되고 조율된 전략부터 정립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진영 구도에서 대미 정책의 이면은 대중 정책이니 분리 운용은 안 된다. 그 전략에는 한·미·일 공조는 어디까지이고 중·러와의 외교 공간은 어느 정도인지에 관한 한국형 좌표가 포함되어야 한다.
그런 전략을 가지고 미국과는 한국의 과도한 연루가 한반도 비핵 평화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협의해야 한다. 중·러와도 이들이 한반도 평화에 대해서 협력의 여지를 남기도록 교섭해야 한다. 비확산 명분에 배치되는 북핵 문제를 미·중, 미·러 대립 분위기에서 떼내어, 공통의 이해 사안이 되도록 고난도 외교를 해야 한다.
한편 국내 여론 수렴을 위해 사회적 소통이 필요하다. 사실 오래전부터 한국은 동맹인 미국과 부상하는 중국 사이의 행보에 대해 사회적 논의를 해야 했다. 역대 정부는 이를 피했다. 그래서 여론은 이 문제에 생소하고 보수 진보로 분열되어 있을 뿐이다. 이 상태에서 한·미·일 안보협력이 강화되었다. 이제라도 국민, 야당과 소통하여 최적의 미·중·러 전략에 대한 공감대를 넓혀야 한다.
캠프 데이비드는 한국외교의 전환점이 되었고, 한국외교는 시험대에 섰다. 대외적으로 북·중·러에 대한 외교방안을 내놓고, 대내적으로 국민적 공감대를 늘려야 한다. 이는 주로 정부가 할 일이지만, 사회적 논의가 최적의 대처를 도출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지도 중요하다. 정부와 사회의 총체적 대응이 긴요한 국면이다.
중앙일보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