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조선일보) 2023-07/
07.01(토) 머스크와 저커버그의 결투

분쟁을 완력으로 해결하는 결투의 역사는 고대 바이킹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 기독교는 결투를 재판 방식으로 택하기도 했다. 하느님은 선한 자의 편이니 결투에서 이기는 자가 무죄라는 논리였다. 일본도 결투의 나라였다. 일본 아이들은 지금도 “사내라면 말로 싸우지 마”라는 훈계를 들으며 자란다. 분쟁을 칼부림으로 끝내던 시대의 흔적이 언어로 남았다. 실제로는 전국시대까지만 그랬고 도쿠가와 막부 체제가 성립된 17세기 이후엔 결투가 금지됐다. 유럽 교회들도 16세기 들어 결투 당사자뿐 아니라 결투를 단속하지 않는 관료와 군주, 결투 주선자까지 파문으로 다스렸다.
▶그런데도 결투는 19세기 넘어 20세기까지 이어졌다. 1967년 프랑스 사회당 대통령 후보와 마르세유 시장 간 결투가 진검을 쓴 마지막 결투로 남아 있다. 지식인과 귀족들이 악습을 지속했다. 상류층일수록 명예에 민감했고 자존심을 다치면 결투를 해서라도 회복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숱한 인재가 비명에 갔다. 러시아 국민작가 푸슈킨은 아내를 유혹한 남자와 결투에 나섰다가 37세에 목숨을 잃었다. 현대 대수학의 토대를 닦은 19세기 천재 수학자 갈루아도 다혈질 성정을 못 누르고 총을 들었다가 스무살에 죽었다.
▶무모한 죽음이 반복되자 결투자들 사이에 암묵적인 안전 합의가 도출됐다. 사람 없는 곳으로 총을 쏴 결투를 끝내는 식이었다. “목숨 걸고 명예를 지켰다”는 평판만 얻으면 되지 피를 볼 이유는 없다는 것이었다. 사람을 다치게 하면 사회적으로 매장됐다. 1804년 당시 미국 부통령 에런 버는 초대 재무장관을 지낸 알렉산더 해밀턴과 결투를 벌였다. 해밀턴이 엉뚱한 곳을 쏴 화해를 구했는데도 그를 정조준해 죽게 했다가 여론의 비난 속에 프랑스로 쫓겨갔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가 격투기 일종인 주짓수로 결투하겠다고 공언해 실현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메타가 출시 예고한 앱에 머스크가 조롱성 글을 단 것이 발단이었다. 머스크는 “싸울 준비가 됐다”고 했고 저커버그도 “(결투할) 위치를 보내라” 했다. IT 시대를 선도해 온 21세기형 지식인들 맞나 싶다.
▶완력을 써서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하지만 정말 대결이 이루어지면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그래서 싸우는 척만 하고 실은 새로운 서비스 홍보를 하려는 노이즈 마케팅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문명은 저커버그와 머스크 같은 천재들의 자존심을 건 기술 경쟁 덕에 발전했다. 그들의 싸움터는 격투기장이 아니라 연구소여야 할 것이다.
07.03(월) ‘5000만 배우’ 마동석

▲일러스트=이철원
덩치 우람하고 주먹 큰 청년 마동석의 첫 꿈은 영화가 아니었다. 고교 때 이민 간 미국에서 그는 프로 복싱 선수가 되고 싶었다. 대학에선 체육을 전공했다. 하지만 좌절했다. 헬스 트레이너와 복싱 코치 등을 전전하다가 서른 넘어 영화 ‘천군’ 오디션에 응했는데 합격했다. 한국행 비행기를 탔고 배우의 길에 들어섰지만 험상궂은 외모 탓인지 대개 악역이 주어졌다. 2008년 영화 ‘비스티 보이즈’에선 사채업자로 나와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채무자의 손을 둔기로 내려쳤다.
▶몸 쓰는 역을 주로 하느라 부상도 잦았다. 10여 년 전엔 척추가 골절되는 큰 사고를 당했고 수술대에도 여러 번 올랐다. “아무래도 나는 운이 없나 보다” 생각하니 힘이 빠졌다. 그런데 돌아보니 행운의 씨앗이었다. 그를 대중에게 처음으로 각인시킨 영화는 2016년 1000만 관객을 동원한 ‘부산행’이었다. 좀비를 향해 온몸의 힘을 실어 날리는 주먹 연기는 권투 해 본 마동석을 따를 자가 없었다. 미국살이 경험도 날개를 달아줬다. 할리우드는 ‘영어 되는 한국 배우’라며 그를 찾아온다.
▶마동석이 주연한 ‘범죄도시 3′가 지난 토요일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올해 개봉한 영화로는 처음이고 지난해 ‘범죄도시 2′에 이은 ‘쌍천만’ 기록이다. ‘부산행’을 시작으로 ‘신과 함께’ 1과 2, ‘범죄도시’ 2와 3 가 모두 1000만 관객을 넘으며 주·조연 포함해 ‘5000만 관객’을 동원했다. 처음부터 영화로 직진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우회하다 늦깎이로 입문했지만 최고의 흥행 배우가 됐다.
▶'범죄도시’는 잘생긴 주인공과 흉악한 악당의 대결이란 익숙한 구도를 깬 작품이다. 시리즈 1편에선 그룹 god 출신인 윤계상이 악당을 맡았고, 2편의 악역은 손석구였다. 모두 충무로의 미남 배우다. 반면 악역에 가장 어울려 보이는 마동석이 ‘정의의 사도’다. 100㎏ 넘는 거구로 주먹을 휘두르다가도 수줍은 미소와 애교성 농담을 던지는 그에게 관객들은 ‘마블리’(마동석+러블리) ‘마요미’(마동석+귀요미)라며 환호한다. 이 새로움을 영화계는 ‘마동석 장르’라고 한다.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중 100만 관객을 넘긴 작품은 ‘교섭’과 ‘드림’ 두 편뿐이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침체의 늪에 빠진 한국 영화계에 마동석표 액션은 꺼뜨릴 수 없는 희망의 불꽃이다. ‘범죄도시’ 시리즈가 8편까지 만들어진다니 오래 사랑받으며 한국 영화 중흥에 앞장서기 바란다. ‘잘 만든 영화는 외면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마동석의 활약이 새삼 일깨워준다.
07.04 아스파탐

▲일러스트=이철원
1965년 미국 화학자 제임스 슐래터는 위궤양 약을 개발하기 위해 다양한 화학물질을 합성해 보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손가락에 침을 묻혀 종이를 집은 뒤 다시 손가락을 혀로 가져가는 순간 엄청난 단맛을 느꼈다. 그는 종이에 묻어 있던 화학물질이 뭔지 알아보았다. 아스파탐(Aspartame)이라는 인공감미료를 발견한 순간이었다.
▶아스파탐은 설탕보다 200배 가까이 강한 단맛을 낸다. 그러나 칼로리가 거의 없다. 그래서 ‘제로’가 붙은 무설탕 음료, 막걸리 등에 널리 쓰이고 있다. 처음에는 아스파탐도 사카린처럼 유해성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1974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가정은 물론 기업들도 식품에 쓸 수 있게 승인했다. 한국 포함 200여 국에서 사용 승인을 받았다. 제한량 이내로 섭취하면 부작용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오는 14일 아스파탐을 ‘발암 가능 물질’(2B군)로 분류할 예정이라고 한다. IARC는 화학물질 등에 대해 암 유발 여부와 정도를 다섯 군으로 분류·평가한다. 1군은 ‘인체에 발암성이 있는’ 물질로 술·담배와 석면, 햄·소시지 등 가공육이 들어 있다. 그 바로 아래인 2A군은 살충제(DDT) 등 ‘발암 추정’ 물질이다. 아스파탐이 들어갈 2B군은 인체 자료가 제한적이고 동물 실험 자료도 충분하지 않은 경우에 해당한다. 암연구소는 지난 1990년 커피를 2B군으로 분류했다가 2016년 제외한 적이 있다.
▶국제기구와 전문가들 의견이 엇갈리니 소비자들은 헷갈릴 수밖에 없다. 14일 국제암연구소 외에 유엔 산하 국제식품첨가물전문가위원회(JECFA)도 아스파탐의 안전 소비 기준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기관이다. 국제암연구소가 물질 자체만 보는 원리주의자라면, JECFA는 그 물질을 식품으로 섭취했을 때 위해 정도를 보는 현실주의자라고 한다. 이 때문에 식약처와 전문가들은 JECFA 발표에 더 주목하고 있다. JECFA는 아스파탐에 대해 1980년에 안전성을 인정하면서 일일 허용량(40mg/kg 이하)을 제시한 적이 있다. 비슷한 발표가 나면 국제암연구소 분류는 ‘해프닝’이 될 것 같다.
▶무조건 좋은 식품, 무조건 나쁜 식품은 없을 것이다. 사람이 먹는 모든 음식에는 미량이나마 발암 물질, 독성 물질을 들어 있다고 한다. 사카린과 아스파탐 같은 인공감미료는 비만이나 당뇨 환자에게는 삶의 질을 높여주는 식품일 수 있다. 그 식품의 효용 가치를 고려하지 않고 너무 엄격한 기준치만 적용하면 세상에 먹을 음식이 얼마나 남을까 싶다.
07.05 서울 도시 개발 ‘암흑의 10년’

▲일러스트=이철원
2011년 박원순 변호사가 ‘서울, 변화의 시나리오가 시작된다’고 외치며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했다. 그가 6대 공약을 발표했는데, 1번이 토건 예산 삭감, 5번이 재개발 과속 추진 반대였다. 시장이 되자 그는 “집 많이 지으면 뭐 하나. 99대1의 불평등 사회를 만들 뿐”이라며 이명박 정부의 서울 뉴타운 계획을 폐기하고, ‘도시 재생’을 내걸었다. 동네 원형을 유지한 채 각종 공공·편의 시설을 넣어 주민 삶의 질을 높이겠다고 했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 등 52곳이 도시 재생 사업지로 선정됐다. 박 시장은 ‘옥탑방 한 달 살기’ 이벤트까지 벌이며 도시 재생에 열을 올렸다. ‘토목 사업’을 ‘적폐’와 동일시하던 문재인 대통령이 선풍기 선물을 보내며 응원했지만, 박원순표 도시 재생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도시 재생 1호 창신동에만 900억원이 투입됐지만 공동 화장실은 여전했고, 소방차 출입도 불가능했다. 주민 수가 늘기는커녕 오히려 줄었다.
▶박 시장은 옛 연탄 아궁이 아파트가 문화유산이 될 수 있다면서 ‘아파트 한 동 남기기’ 정책도 추진했다. 고층 신축 아파트 사이에 홀로 흉물로 남은 주공 아파트 역시 박 시장이 사라지자 철거된다고 한다. 박 시장은 을지면옥 같은 낡은 건물을 ‘생활유산’으로 남겨야 한다면서 도심 재개발 사업에 제동을 걸기도 했다.
▶서울이 이러는 사이, 일본 도쿄는 수직 고밀도 재개발을 추진해 도시가 환골탈태했다. 도쿄역 주변, 롯폰기 힐스, 시부야는 개성 넘치는 디자인의 초고층 건물로 가득 차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바꿨다. 도쿄처럼 도시 재생의 글로벌 트렌드는 수직 고밀도 재개발이다. 도시의 밀도가 올라가면 각계각층 도시의 구성원 간 교류가 많아지고 시너지 효과가 나기 때문이다. 1기 신도시 분당, 일산 중 분당의 부동산 가치가 훨씬 높은 것은 들판에 입지한 일산과 달리 분당은 산이 많아 처음부터 고밀도 도시 개발을 했기 때문이다(홍익대 건축과 유현준 교수).
▶보존할 가치가 있는 건물이 많은 파리와 런던도 도시 경쟁력을 높이는 수단으로 ‘고밀도 재개발’을 선택하고 있다. 라데팡스는 파리 콩코드 광장~개선문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중심축에 자리 잡아 ‘보존’과 ‘개발’ 간 균형을 잘 잡은 도시 개발 모델로 평가받는다. 런던 도크랜드의 경우 낡은 항구를 금융 타운으로 재개발해 금융 산업 경쟁력 제고에 일조했다. 여전히 판자촌 몰골인 세운상가 주변을 둘러본 오세훈 서울시장이 “토목 반대가 ‘암흑의 10년’을 가져왔다. 피를 토하는 심정”이라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럴만하다는 생각이다.
07.06 ‘더러운 평화’

▲일러스트=이철원
한일합병의 디딤돌이 된 을사늑약이 1905년 체결된 후 이완용이 고종에게 상소를 올렸다. “새 조약에 대해 말하자면 제국이라는 명칭도 그대로이며 종묘사직은 안녕하고 황실도 존엄합니다. 다만 외교상 한 가지 문제만 잠시 이웃 나라에 맡긴 것입니다.” 을사늑약 체결 소식을 들은 유생들이 반발하자 외교권 박탈은 큰일이 아니며 지금의 평화를 그대로 지키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 것이다.
▶이완용이 4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 때문에 시공을 넘어서 소환됐다. 이 대표는 “아무리 더러운 평화라도 이기는 전쟁보다 낫다”고 했다. “엄청난 대량 파괴 살상 후에 승리한들, 그게 무슨 그리 큰 좋은 일이겠느냐”고 했다. 그러자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이 이 대표의 말과 이완용의 말이 다르지 않다고 했다. 실제 이완용이 추구한 것이 ‘더러운 평화’다.
▶민주당은 2010년 북한의 천안함 폭침 후 실시한 지방선거에서 “전쟁이냐 평화냐”는 구호를 들고나와 재미를 보았다고 자평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집권 전인 2016년 “좋은 전쟁보다는 나쁜 평화에 가치를 더 부여한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런 주장에 따르면 우리는 6·25 남침을 당했을 때 즉각 항복하고 더러운 평화를 지켜야 옳았다. 나치의 침공을 받은 나라도 모두 항복하고 더러운 평화를 지켜야 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침략하기 전에 영토를 떼어주고 더러운 평화를 지켜야 옳았다. 앞으로 북한이 핵폭탄으로 위협하면 굴복하고, 그들이 원하는 돈과 쌀을 주고 더러운 평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북한이 백령도 연평도 등을 무력으로 침공하면 이를 인정하고 더러운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
▶국제정치학자 라인홀드 니부어는 국가 간 문제를 도덕적 관점에서 보는 오류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했다. 인간은 도덕적일지 모르나 국가는 철저히 이기적이라며, 평화주의는 모두가 바라는 당위이지만 실행하기 어려운 이상주의에 불과하다고 했다. 평화를 위해선 갈등 해결 최종 수단으로서 ‘정의로운 전쟁’ 가능성을 남겨둬야 한다고 봤다. 전쟁을 포기하고 ‘더러운 평화’를 원하는 나라에 찾아올 것은 침략과 굴종뿐이다.
▶‘더러운 평화가 낫다’ ‘전쟁이냐 평화냐’는 것은 사람들을 단순 논리로 위협하는 일종의 공포 마케팅이다. 이런 공포 마케팅은 정치적으로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나 무책임한 구호다. 책임 있는 정당과 지도자라면 국민에게 ‘더러운 평화가 좋다’고 할 것이 아니라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에 대비하자’고 해야 한다.
07.07 디지털 영생

▲일러스트=이철원
아마존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가 2020년 방영한 드라마 ‘업로드’의 주인공은 생사의 기로에서 디지털 영생(永生)을 택한다. 자신의 뇌를 통째로 디지털화해 가상 세계에서 부활한다. 현실 세계에 있는 여자친구와 영상 통화를 할 수 있고 버튼 하나로 창문 밖 풍경을 여름에서 겨울로 바꿀 수 있다. 현실 세계에 있는 사람이 해당 데이터 삭제를 요청하지 않는 한 그는 영원히 살 수 있다.
▶미 실리콘밸리의 엔지니어 바흐보우는 2021년 사별한 약혼자를 인공지능(AI)으로 되살렸다. 살아있는 동안 주고받은 이메일과 문자 메시지를 학습시켰다. AI로 부활한 약혼자는 그들만의 암호를 이해했고, 바흐보우에게 “사랑한다”고 했다. 바흐보우는 이를 통해 사별의 아픔을 달랬다. AI의 발달로 죽은 사람의 목소리·얼굴을 재현하는 일은 어렵지 않은 일이 됐다. 가수 김광석, 신해철을 AI로 복원해 만든 무대와 라디오 콘텐츠도 나왔다. 작년 한 국내 스타트업 기업은 세계 최초로 부모님의 생전 모습을 AI로 재현하는 ‘리메모리’ 서비스를 시작했다.
▶엊그제 국방홍보원이 AI 기술로 부활시킨 순직 조종사 박인철 소령이 어머니와 만났다. 박 소령은 순직한 아버지를 따라 전투기 조종사가 됐다가 27세에 훈련 중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AI 기술로 모니터 속에 부활한 박 소령은 환하게 웃었고, “엄마 너무 보고 싶었어요”라고 했다. 국방부는 박 소령이 생전 남긴 음성과 사진, 동영상을 AI에 학습시켰다고 했다. 16년간 아들을 가슴에 묻었던 어머니의 볼엔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미 실리콘밸리의 테크 거물들은 영생이 불가능한 영역이 아니라고 본다.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는 한 인터뷰에서 “인터넷에 뇌를 업로드하고, 다시 다운로드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죽음의 순간에 뇌 속 정보를 데이터로 만들어 저장하고, 이 데이터를 로봇에 주입해 로봇 몸에 자아를 가진 영생의 인간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같은 사람은 육체적 노화를 방지해 영생하는 기술을 연구하는 스타트업에 수천억원을 투자하기도 했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인류가 불멸에 이를 날이 멀지 않았다고 예측한다.
▶디지털 영생은 양날의 검이다. 윤리적 문제부터 만만찮다. 고인의 ‘잊힐 권리’를 뺏고, AI로 부활한 고인 데이터를 탈취해 사이버 범죄에 악용할 가능성도 있다. 고대 이집트인과 진시황부터 꿈꿨던 영생이 축복이 될지 저주가 될지 예단할 수 없는 일이다.
07.08(토) ‘민중’ 작가의 성폭력

▲일러스트=박상훈
경기도 수원 교구의 모 신부는 남수단에서 의료 선교 활동을 하다 선종한 이태석 신부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 ‘울지 마 톤즈’에 함께 등장했다. 늘 정의의 편인 것처럼 했다. 세월호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집회에선 “우리 사회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지 않고 은폐와 뻔뻔함으로 일관한다” “예수님은 세상의 위선자들을 꾸짖는다”고 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를 위한 시국 미사에서 행한 강론 제목은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습니다’였다. “인간에게는 양심이라는 빛이 있다”며 “양심은 한 충동이 다른 충동과 맞설 때 더욱더 큰 힘을 발휘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 신부가 남수단에 자원봉사 간 여성을 여러 차례 성폭행하려 한 사실이 밝혀졌다. 자신의 비행을 숨기고 양심을 저버린 위선자였던 것이다. 그가 정의구현사제단 소속이란 사실도 드러났다. 천주교 신도 모임에서 ‘정의 구현이 아니라 정욕(情慾)구현사제단이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연극 연출가 이윤택씨는 평소 도덕성을 앞세웠다. “문재인 후보는 극단적으로 청렴하고 도덕적인 사람”이란 지지 연설을 했다. 문 대통령 취임 뒤엔 “권력에는 뜻이 없고 연극에 매진하겠다”고 해 박수받았다. 알고 보니 연극 판 권력자였다. 그에게 두 자릿수 배우가 성폭행과 추행을 당하고도 권력에 눌려 침묵했다. 일부는 낙태까지 했다. 진보 문단의 어른으로 대접받던 고은 시인도 미투 사건으로 문단에서 사실상 퇴출당했다. 이런 일이 유독 진보 진영에서 계속된다.
▶민중미술계의 거목으로 활동해 온 화가 임옥상씨가 미투 범죄로 법정에 섰다. 그가 그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촛불 집회 작품은 문재인 청와대 본관에 걸렸다. 임씨는 당시 인터뷰에서 “바로 후회했다”며 “권력의 가장 핵심에 작품이 걸린다는 것 자체가 어떤 프레임에 갇힐 수 있으니까”라고 했다. 이렇게 바른말 내놓고 뒤에선 자신이 운영하는 연구소 직원을 성추행했다.
▶도스토옙스키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양심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인간은 얼마나 추악해지는가’란 문제 의식을 담았다. 작품 속 종교재판에서 대심문관은 ‘신이 사라지면 모든 것이 허용되는가’라고 묻는다. 한국의 ‘민중’ 인사들이 그 법정에 섰다면 뭐라고 대답했을지 궁금하다. 그들이 성폭력 범죄자가 되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바탕엔 비판받지 않은 권위, 제멋대로 써도 되는 권력이 도사리고 있다. ‘여성다움이 원순다움’이라며 여성 인권 변호사로 활동한 박원순씨도 서울시장 9년 하면서 그렇게 됐다.
07.10(월) 치매 치료제 7전 8기

▲일러스트=박상훈
알츠하이머의 진행 속도를 늦추는 치료제 ‘레켐비’가 미 식품의약국(FDA) 정식 승인을 받았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 10명 중 한 명, 전 세계 5500만명이 고통받고 있는 치매 치료의 길이 열린다는 소식에 세계가 반색하고 있다. 이 뉴스를 전한 조선닷컴 댓글엔 ‘시작이 반이니 다소라도 길이 열리길 성원한다’는 독자들의 간절한 반응이 달렸다.
▶알츠하이머 치매의 유력한 원인은 환자의 뇌에 쌓이는 아밀로이드 베타와 타우 단백질이다. 이 중 타우 단백질을 제거하려는 시도는 지금까지 모두 실패했다. 반면 아밀로이드 베타를 없애려는 시도는 힘들지만 조금씩 길을 열어가고 있다. 미국 바이오젠과 일본 에자이는 2년 전 아두카누맙 성분을 이용해 아밀로이드 베타를 감소시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독성이 심하고 당시 임상 실험 2건 중 한쪽에서만 유의미한 결과가 나와 조건부 승인을 받았다. 이 결정에 FDA 자문 위원 가운데 3명이 사퇴했다. 그중 한 명은 미국 현대 역사상 최악의 약물 승인 결정이라고 비난했다. 두 회사는 레카네맙이라는 성분으로 추가 실험을 성공시켜 이번에 정식 승인을 받았다.
▶알츠하이머 환자가 처음 보고된 것은 117년 전이다. 이후 87년이 지나서야 최초 치료제 ‘타크린’이 등장했다. 이후 도네페질 등 치료제 4종이 더 나왔으나 임상 증상만을 개선할 뿐 근본적인 치료제는 아니었다. 레켐비가 근본적 치료제이기는 하나 뇌부종·뇌출혈 등 심각한 부작용이 있다. 미 FDA는 이 약을 승인하면서, 약 봉투 가장 잘 보이는 곳에 크게 검은색으로 박스를 치고 경고문을 실으라는 ‘블랙박스 경고’를 덧붙였다.
▶치매 치료제 개발이 어려운 것은 약을 개발한다 하더라도 약물이 혈관과 뇌 사이의 얇은 막인 ‘혈뇌 장벽’을 통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약물이 이 벽을 통과하는 순간 농도가 100분의 1~100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다. 그렇다고 복용량을 늘리면 뇌를 제외한 전신이 약에 절어 다른 부작용을 불러일으키고 만다.
▶그러다 보니 치매 치료제를 둘러싼 사기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한 미국 바이오 업체는 2년 전 알츠하이머 치료제 재료로 주가가 1주당 135달러까지 치솟았다가 논문 조작 의혹이 불거지자 1주당 18달러까지 폭락했다. 하지만 치매 정복을 위해 오늘도 인류는 전진하고 있다. 이준영 서울대 보라매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은 “암도 초기엔 원인을 몰라 어려웠다”며 “시간이 걸릴 뿐 치매도 결국 극복된다”고 했다.
07.11 자랑스러운 신지애

▲일러스트=박상훈
박세리가 맨발 투혼으로 US여자오픈 우승을 차지한 지 25년이다. 그 드라마를 보고 골프를 시작해 한국 여자 골프 전성기를 만든 ‘세리 키즈’도 30대 중반에 접어들었다. 최나연과 김하늘은 은퇴했고 박인비는 석 달 전 출산했다. 유독 신지애만 열 살쯤 어린 후배들과 경쟁하며 여전히 정상급 성적을 낸다. 올 시즌 일본 투어 2승을 올렸고 준우승을 3번 했다. 지난달 일본 투어 통산 30번째, 전 세계 통틀어 64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중3 때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여읜 신지애는 함께 중상을 입은 동생들을 돌보며 피눈물 나는 훈련을 이어갔다. 155㎝ 작은 키와 어려운 가정 형편을 지독한 연습과 강한 정신력으로 극복했다. 2008년 브리티시 여자오픈을 시작으로 2013년까지 미LPGA 투어 11승을 쌓았다. 장타력이 없어도 정확성이 뛰어났고 담력과 집중력을 앞세워 역전승을 거듭해 ‘파이널 퀸’ 별명을 얻었다. 2010년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다.
▶2014년 신지애는 일본 투어로 옮기겠다고 선언하고 미LPGA 투어 카드를 반납했다. 그는 미국에서 손바닥 수술과 허리 부상 등에 시달렸고, 스윙 교정을 시도했다가 감각을 잃어 부진했다.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압박감에 시달렸다. 그가 일본에서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이어갈 거라고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한동안 스폰서 기업을 구하지 못해 로고 없는 흰 모자를 썼다.
▶신지애는 일본 투어에 전념한 첫해부터 우승을 쌓아나갔다. 가족과 친구들을 자주 만나고 즐거운 마음으로 골프를 하면서 감을 되찾아나갔다고 한다. 몸관리를 철저히 해 2018년 일본 투어 사상 최초로 한 시즌 메이저 대회 3승 기록을 세웠고, 이듬해 1년 평균 타수 70타 벽을 처음 깼다. 현재 상금 랭킹 2위인 그가 1위에 오른다면 한·미·일 3국에서 상금왕을 차지해본 최초의 선수가 된다.
▶10일 US여자오픈에서 준우승한 서른다섯 살 신지애를 많은 팬이 반가워했다. 4년 만에 출전한 US여자오픈에서 그는 전성기로 되돌아간 듯 정교한 샷과 노련한 운영,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보여줬다. 지난해 팔꿈치 수술을 받고 재활한 그는 “1·2라운드에선 어린 선수들 힘과 스피드를 따라 하려다 템포를 놓쳤다. 3라운드부턴 내 게임을 하자고 마음먹었다. 새로운 세대를 지켜보며 감명받았고, 더 잘하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신지애는 “내일 더 발전하는 선수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그가 자랑스럽다.
07.12 巨富의 산실, 진주 승산마을의 비결

▲일러스트=이철원
삼성·LG·GS·효성 가문을 배출한 진주 승산마을 앞에는 방어산이 있다. 이 마을 부자들은 새벽 일찍 방어산 자락에 걸린 새벽별을 보면서 하루 일을 시작했다. 삼성,효성은 물론이고 LG·GS의 전신인 금성엔 이름에 모두 별이 들어 있다. 지독히도 부지런하게 일해서 벌고, 번 것은 쓰지 않았으며, 쓰지 않았으니 자연히 쌓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승산마을 허씨 가문엔 절약에 관한 전설 같은 얘기들이 전해 온다. ‘담뱃대에 담배를 재고 빨기는 하지만, 불을 붙이지 않고 입김만 내뿜었다.’’
▶GS 허만정 창업주의 부친 허준 선생은 모은 재산을 자식과 조상, 동네 주민, 나라의 몫으로 나누는 유지를 내리고, 마을의 궁핍한 사람을 돕는 데 7000만냥을 분배했다. 구호를 베풀 때도 받는 사람들의 자존심을 생각했다. 춘궁기에 그저 곡식을 나눠주지 않고 방어산에 있는 돌을 집 앞마당에 옮겨 놓고 곡식을 가져가도록 했다. 노동의 대가로 가져가는 것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쌓인 돌이 마치 1만2천봉 금강산을 닮았다고 해서 ‘승산마을 금강산’으로 불린다.
▶구한말 승산마을에는 만석꾼 2가구, 5천석꾼 2가구 등 천석꾼 이상 가구가 16가구에 달했다. 지리적으로 동쪽으로 흐르는 지수천을 따라 비옥한 땅이 많았고, 마을이 바깥으로부터 숨겨져 있어 큰 환란을 피할 수 있었다. 중앙 권력으로부터 떨어져 있고, 남명 조식의 실천주의 유학의 영향으로 재산을 모으는 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김종욱 진주K기업가정신 재단 부이사장은 “사농공상이 분명한 중앙에서 철저히 소외된 지방이었기 때문에 지방 재력가가 땅을 사 모으는 것도 가능했다”고 했다.
▶세계를 놀라게 한 재벌들이 한국의 한 마을에서 무더기로 나온 데는 교육의 역할도 컸다. 식민지 암울한 때에 허씨 집안이 땅을 내놓아 1921년 지수보통학교가 설립됐다. 산 너머 함안, 강 건너 의령과 경계를 이루는 이 신식 학교에 주변 인재들이 몰렸다. 이 마을에 살았던 LG 구인회, 의령군의 삼성 이병철, 함안군의 효성 조홍제 창업주가 같이 어울려 운동하고 공부했다. 1980년대 100대 기업인 중 이 학교 출신이 33명이다.
▶이 기적 같은 마을 이야기가 궁금해 세계 47국 150여 명이 진주에 모여 국제포럼을 열었다. 이 마을이 배출한 기업가들이 이룬 매출액은 연간 800조원에 이른다. 승산마을은 다시 못 올 역사가 아니다. 자유로운 기업가정신을 권장하고 인재가 모이면 제2, 제3의 승산마을이 대한민국에 탄생한다.
07.13 ‘쌍둥이’ 판다

▲일러스트=이철원
아이들이 어렸을 때 판다 보고 싶다는 성화에 용인 에버랜드를 여러 번 갔다. 애니메이션 ‘쿵푸팬더‘ 속 판다처럼 활기찬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자고 있거나 게으르게 누워서 대나무를 먹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어쩌다 몸을 일으켜 관람객 쪽을 보면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판다의 게으름은 생존 전략이라고 한다. 판다는 해부학적으로 잡식성인 곰에 가깝다. 장(腸) 길이도 곰처럼 짧아 질긴 섬유질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다. 대나무를 하루 30㎏씩 먹지만 고작 17%만 양분으로 쓴다. 그러니 최대한 많이 먹고 적게 움직여야 생존에 유리하다. 번식에 쓰는 에너지도 극도로 아낀다. 암컷 발정기가 연중 사나흘에 불과해 임신 확률이 매우 낮다. 새끼는 임신 4개월 만에 몸무게 100g을 조금 넘는 미숙아로 낳는다. 포유류 어미는 평균 자기 몸무게 26분의 1 크기로 새끼를 낳는다. 판다는 900분의 1이다. 두 마리가 태어나면 한 마리는 포기한다. 이러고도 여태껏 멸종하지 않은 게 기적이다.
▶그렇다고 허약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맹수에 가깝다. 판다는 몸길이 1.8m에 무게가 최고 160㎏까지 나가는 거구다. 단단한 대나무를 부수는 턱 힘으로 한번 문 것은 놓지 않는다. 악력도 세다. 몇 해 전 중국에서 우리 앞에 앉아 있던 남자를 판다가 앞발로 붙잡은 적이 있다. 성인 서넛이 달려들었는데도 떼어 놓지 못해 겉옷을 벗기고 간신히 탈출시켰다.
▶용인 에버랜드에서 자이언트 판다가 쌍둥이를 낳았다. 쌍둥이 판다 탄생은 국내에선 처음 있는 일이다. 판다에겐 인간의 관심을 끄는 매력이 있다. 몇 해 전 일본 도쿄 동물원에서도 판다 쌍둥이가 태어났는데 방문객이 크게 늘고 주변 음식점까지 덩달아 특수를 누렸다고 한다. 중국이 그 매력을 외교에까지 활용한다. 판다는 얼마 전까지도 멸종 위기종이었고 인간의 노력으로 개체 수가 조금 늘었지만 전 세계 1800여 마리에 불과한 멸종 취약종이다.
▶판다가 지금껏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귀여운 용모 덕도 컸다. 인간이 판다 번식에 열성을 기울이는 것도 판다의 외모가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불곰처럼 험상궂게 생겼다면 일찌감치 멸종했을 거라고도 한다. 맹수의 위용은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데, 이것도 생존 전략이라고 한다. 사람처럼 가슴에 젖이 달려 있어 새끼를 품에 안고 수유하는 것도 매력 포인트다. 에버랜드에서 태어난 새끼들을 어미 판다가 입으로 물어 가슴에 올리는 모습을 보고 감동했다는 사람이 많다. 갓 태어난 쌍둥이가 건강히 잘 자라기 바란다.
07.14 신의 한 수 F-16

▲그래픽=이철원
미국이 1970년대 개발한 F-16은 현역 전투기 중 세계 최고 베스트셀러다. 4500여 대가 생산돼 전 세계 25국에 배치됐다. 애초엔 ‘하늘의 제왕’이라고 한 F-15의 보조 전투기로 개발됐다. 그런데 ‘파이팅 팰컨(매)’이란 이름처럼 가볍고 빨랐고 공대공 전투력이 뛰어났다. 단발 엔진이라 가격도 쌌다. 크기에 비해 무장 탑재력과 항속 거리가 길어 다양한 작전에 투입할 수 있었다. ‘만능 전투기’ ‘전장의 일꾼’이라 불렀다.
▶F-16은 실제 공중전에서 격추된 적이 없다고 한다. 1982년 레바논 분쟁 때 이스라엘 공군은 시리아와 벌인 공중전에서 미그-21과 수호이-22 등 84대를 격추했다. 이 중 44대가 F-16의 전과였다. 1981년 이스라엘이 이라크의 핵 시설을 초저공 비행으로 폭격한 ‘바빌론 작전’의 주역도 F-16이었다. F-16 성능은 지금도 향상하고 있다. 최신형 위상 배열(AESA) 레이더와 전자전 장비를 달고 외부 부착형 연료 탱크를 통해 항속 거리도 늘렸다. 전술핵도 탑재할 수 있다. 최신형인 F-16V는 F-15를 능가한다고 한다.
▶F-16은 국제 정치와 전쟁의 변수로도 작용한다. 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반대한 튀르키예가 돌연 찬성으로 돌아선 것은 미국이 구식 F-16뿐이던 튀르키예에 신형 F-16을 판매 승인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튀르키예와 그리스가 국경 분쟁 때 동시에 발진시킨 전투기도 F-16이었다.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F-16을 지원할 거란 소식이 나오자 러시아 외무장관은 “핵 위협으로 간주하겠다”고 발끈했다. 러시아의 웬만한 전투기로는 F-16을 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F-16이 전쟁 판도를 바꿀 게임체인저가 될 수도 있다.
▶한국도 현재 F-16 160여대를 운용하고 있다. 숫자가 가장 많아 공군 주력이다. 현재 최신형으로 개량 중이다. 하지만 한때 잘못된 결정으로 구경도 못 할 뻔했다. 1980년대 율곡사업 일환으로 추진한 한국형 전투기 사업(KFP) 때 정부는 F-16이 아닌 F-18을 선정했다. 가격이 비싸지만 성능이 우수하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미국이 가격을 계속 올리자 뒤늦게 F-16으로 바꿨다. 뇌물 로비설, 비자금설이 제기되는 등 논란이 컸다. 당시 예측과 달리 F-18은 지금 단종됐지만 F-16은 성능이 계속 나아지고 있다. 우리 경공격기 FA-50이 최근 폴란드에 팔린 것도 F-16과 호환하는 성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40년 전 F-16 도입이 ‘신의 한 수’였던 것이다.
07.15(토) 우크라이나 전쟁터에서 돌아온 남편

▲일러스트=이철원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는 전란에 휩쓸린 백성의 고통을 많은 시로 남겼다. 그중 신혼별(新婚別)은 결혼 이튿날 남편을 전쟁터로 떠나보낸 여자의 절망과 재회의 비원을 담은 작품이다. ‘머리 올리고 부부 되었으나/ 낭군과의 잠자리 덥히지도 못했는데/ 저녁에 혼인하고 새벽에 떠나니/(중략)/ 뼈저린 마음 창자에 스민다/ 어렵게 비단치마 장만했지만/ 다시 만날 날까지 입지 않으리.’ 운 좋게 재회하더라도 비극으로 끝나는 사례도 많다. 나폴레옹 전쟁을 무대로 쓴 톨스토이 장편 ‘전쟁과 평화’에선 큰 부상을 입고 돌아온 남자가 약혼녀의 정성스러운 간호에도 끝내 세상을 떠난다.
▶이 땅의 여성들도 70년 전 큰 아픔을 겪었다. 6·25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여성이 20만명을 넘는다. 그보다 훨씬 많은 이가 불구의 몸으로 돌아온 45만 부상 장병의 삶을 책임져야 했다. 신상옥 감독의 1960년 영화 ‘이 생명 다하도록’은 6·25 때 포탄을 맞고 하반신이 마비된 군인의 실화를 담았다. 불구가 되어 돌아온 남편 대신 생계를 떠맡은 아내가 그 후 가난으로 자식마저 잃는다. 몇 해 전엔 휴전 이틀 전 전사한 남편이 보낸 마지막 편지를 평생 간직하고 산 여성 사연이 알려져 많은 이를 눈물짓게 했다. 이런 가슴 아픈 사례가 부지기수다.
▶전쟁터에서 두 팔과 두 눈을 잃고 돌아온 우크라이나 군인과 그를 안고 있는 젊은 아내 사진이 엊그제 많은 이의 시선을 붙잡았다. 아내의 표정엔 남편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 살아서 돌아와 준 것에 대한 안도의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재회한 부부의 행복을 기원하면서도 앞날을 걱정하는 반응도 많았다.
▶이라크전에 참전한 어느 미군은 얼굴에 수류탄 파편을 맞아 이전 모습을 알아볼 수 없게 돼 돌아왔다. 기다려 준 약혼녀와 결혼했고 결혼 10주년 때는 부부가 함께 활짝 웃는 기념사진도 올렸다. 반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한 우울증과 마약, 가정 폭력에 빠져 끝내 가족 해체로 이어지는 사례도 많았다.
▶전쟁 직후 가난 탓도 있었겠지만 우리는 나라가 존속하는 것은 위기에 몸바쳐 희생한 군인과 그 가족 덕분이란 사실을 한때 기피하고 외면했다. 다행히 보훈 체계가 갖춰지면서 전몰 유가족이나 전상자 가족에 대한 예우와 보상이 개선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부부가 전쟁의 아픔을 이겨내기 바란다. 다만, 부부가 지게 될 짐을 온전히 그들에게 돌려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부부가 나라를 향한 희생을 후회하지 않고 서로를 향한 사랑도 지킬 수 있도록 돕는 것도 국가의 의무다.
07.17(월) ‘수퍼 에이지’ 세대

▲일러스트=이철원
얼마전 여름휴가를 다녀온 지인이 아내 혼자 가수 임영웅의 LA 콘서트에 가버리는 바람에 아들과 둘이서 썰렁한 휴가를 보냈다고 했다. 그의 아내는 열광적 ‘임영웅 올콘족’인 50대 여성이다. ‘올콘족’이란 좋아하는 가수의 모든(all) 콘서트에 빠짐없이 구경 가는 사람을 가리키는 유행어다. 세계적으로 K팝의 영향력은 BTS나 블랙핑크 등의 팬덤에서 나오지만, 국내 가요 시장에서는 트로트 가수들에 대한 50·60대 이상의 열혈 팬덤이 10·20대를 능가한다.
▶ 역시 트로트 가수인 김호중의 열혈 팬인 60대 지인은 새 앨범이 나올 때마다 수백 장씩 사서 주위에 나눠 준다. 이런 구매력 있는 중·장년층 팬들 덕에 앨범 발매 첫 주 68만장 판매 기록을 세웠다. 임영웅, 김호중 팬카페는 공식 회원만 19만명, 14만명이 넘는다. 트로트 경연을 계기로 일약 국내 가요 시장의 ‘큰손’ 소비자가 된 50·60대 이상은 중·장년층의 시장 잠재력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미래학자 브래들리 셔먼은 인구의 20%가 65세 이상이 되는 것을 ‘초고령화’라는 용어 대신 ‘수퍼 에이지(Super Age) 시대’라고 명명하고 이 ‘수퍼 에이지 세대’가 MZ세대를 능가하는 신(新)소비 권력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인구 고령화가 신산업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발상 전환이다. 50세 이상 인구가 소비하는 돈이 2020년 8.7조달러에서 2020년대 말 15조달러로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미국 브루킹스연구소)도 있다.
▶2030년이면 세계 195국 중 35국은 5명당 1명이 65세 이상이고, 2050년이면 세계 인구 6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이다. 지금 60·70대는 노인이라 부르기 적절치 않을 정도로 건강하고 활력 넘친다. 그래서 노인 기준이나 명칭을 바꾸려는 시도는 앞서도 있었다. 풍부한 경험과 구매력 있는 소비자라는 의미에서 50~75세를 ‘액티브(active·능동적) 시니어’라 부르기도 하고, 오팔(OPAL·Old People with Active Lives) 세대라는 용어도 있다.
▶‘늙어가는 대한민국’에 대한 걱정도 많지만 어차피 닥친 고령화라면 발상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막내인 1963년생이 60세에 들어섰다. 베이비부머 712만명은 넷 중 셋이 고등학교 이상 교육을 받았고 고도성장기에 20~30대를 보냈다. 단군 이래 가장 역동적인 이 세대가 활력 넘치는 ‘수퍼 에이지’ 시대를 개척할 수도 있을 것이다.
07.18 재난 문자는 홍수인데

▲일러스트=이철원
코로나 때 재난 문자 같지 않은 재난 문자가 많았다. 2020년 3월 9일 하루에만 지자체 11곳이 ‘손 씻기’를 권하는 문자를 발송했고, 6곳은 ‘확진자 없음’ 문자를 보냈다. 그런 문자를 보낸 지자체 공무원이 속사정을 털어놨다. “인근 지자체에선 매일 문자 보내는데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놀지 않고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면피성 문자였다는 것이다.
▶기초 지자체까지 재난 문자를 보낼 수 있게 된 계기는 2016년 발생한 경주 지진이었다. 당시 정부의 재난 문자 발송이 10분이나 늦어 논란이 됐다. 이후 정부는 광역지자체(2017년 8월)와 기초지자체(2019년 9월)에 재난 문자 송출 권한을 줬다. 재난 상황을 가장 먼저 알 수 있는 곳에서 먼저 알리게 하자는 취지였다. 여기에 코로나까지 겹쳐 재난 문자가 급증했다. 2019년 한 해 평균 414건 정도였던 문자 발송이 2020년부터 3년간 연평균 5만4402건으로 131배로 늘었다. 좋은 취지가 재난 문자 홍수 사태를 초래했다.
▶이뿐이 아니다. 2021년 6월 개정된 실종아동법이 시행되면서 실종자 찾는 재난 문자도 등장했다. 취지는 제보 활성화였지만 다른 재난 문자와 섞여 관심을 더 떨어뜨린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러면서 재난 문자가 “양치기 소년” “공해 수준”이란 말이 나왔다. 행안부는 2025년까지 실종 문자만 전담하는 채널을 따로 만들기로 했다.
▶재난 문자 내용도 논란이다. 지난 5월 북한 장거리 로켓 발사 직후 서울시가 발송한 것이 대표적이다. 대피를 준비하라는 문자에 무엇 때문인지, 어디로 대피하라는 건지 설명이 없어 시민들이 우왕좌왕했다. 행안부는 여러 재난 상황에 대비한 표준문안을 186개 갖고 있는데, 그중 하나를 그대로 보내 생긴 일이었다. 행안부는 표준문안에 행동 요령까지 담아 구체화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번 폭우에도 재난 문자는 별 효용이 없었다. 지난주 후반 재난 문자를 하루 10여 건 이상 받았다는 사람이 많았지만 대부분은 원론적인 내용이었다. 정작 재난 문자가 필요했던 충북 오송에선 제때 발송되지 않았다. 재난 문자가 아예 효과가 없는 건 아니다. 서울시립대 분석에 따르면, 자연재해 관련 긴급 재난 문자를 1회 더 발송하면 피해 복구비가 약 1억원 감소해 비용 대비 편익이 100배라고 한다. 문제는 재난 문자 남발로 국민들 사이에선 재난 문자가 긴급하지 않다는 학습 효과가 생겼다는 데 있다. 아예 일상에 방해된다고 재난 문자 알림 설정을 꺼놓는 사람도 적지 않다. 어떤 형태로든 정비가 필요하다.
07.19 우크라이나 아이들

▲일러스트=김하경
지뢰는 ‘인간이 만든 가장 비열한 무기’라고 한다. 전쟁 후에도 오래도록 군인·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 피해를 준다.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 전쟁 때 대량으로 공중 살포한 나비 지뢰는 지뢰 중에서도 최악으로 꼽힌다. 나비 모양이라 장난감처럼 보여 어린이 피해자가 대거 발생했다. 아이들을 죽이거나 불구로 만들어 상대국 사기를 꺾는 심리전 무기라니 인간 잔혹함의 끝은 어디인지 묻게 된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군이 이 나비 지뢰를 사용하고 있다며 관련 사진도 공개했다. 나비 지뢰만이 아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 철수하면서 유치원 운동장, 어린이 놀이터에도 지뢰를 묻어 놓았다고 한다. 지난주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우크라이나 아동보호센터를 찾았을 때 한 어린이는 김건희 여사 손등에 강아지 스티커를 붙여주었다. 언뜻 평범한 그림으로 보이지만 이 강아지는 ‘파트론’이라고 하는 지뢰 탐지 강아지였다. 아이들은 이 강아지 없이는 함부로 돌아다니지도 못한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아이들에게 전쟁의 공포는 일상이 된 지 오래라고 한다. 지난 6월까지 공식 집계로만 어린이 532명이 사망하고 1092명이 크게 다쳤다. 무차별 폭격으로 전쟁 의지 꺾기는 러시아의 기본 전술이다. 러시아군은 지난해 3월 마리우폴의 극장을 폭격했다. 극장에는 어린이와 여성 등 800여 명이 대피해 있었고 극장 양쪽에 흰색으로 ‘어린이’라고 써 놓았지만 소용없었다. 이 폭격으로 극장은 내려앉았고 어린이를 포함해 수백 명이 사망했다.
▶전쟁에 따른 어린이 사망·외상도 문제지만 보이지 않는 어린 마음의 상처는 광범위하고 심각할 것이다. 동부 출신 여자아이 아피나(9)는 집 근처에서 놀다가 러시아 탱크를 보고 공포에 질려 도망쳤다. 그 후 아피나는 미친 듯이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아피나는 어린 나이에도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당뇨병 판정을 받고 하루에 7번 혈당을 재야 한다. 러시아군이 점령지 우크라이나 아이들 약 2만명을 러시아 본토로 끌고 갔다는 보도도 있었다. 우크라이나 아이들 피해 사례는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해 부활절 연설에서 “숨바꼭질 술래 대신 폭탄을 피해 숨어야 하고, 놀이터를 뛰어다니는 대신 총알을 피해 방공호로 달려가야 하고, 여름휴가가 아닌 피란으로 집을 떠나야 하는, 이 잔인한 놀이를 강요당한 아이들 삶”이라며 “우리 아이들을 돌봐달라”고 호소했다. 이 ‘잔인한 놀이’가 언제 멈출지 기약도 없다는 것이 절망적이다.
07.20 ‘실종인민공화국’

▲일러스트=이철원
2018년 9월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의 멍훙웨이 총재가 갑자기 사라졌다. 최초의 중국인 인터폴 총재로 모국에 출장 갔다가 연락이 끊겼다. 열흘쯤 뒤 중국 국가감찰위가 그를 억류 중인 것이 알려졌다. 결국 뇌물 수수 등의 혐의로 유죄를 받고 수감됐다. 인터폴에서 일하면서 공산당 눈 밖에 났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멍 총재 아내는 3년 후 인터뷰에서 “(권력에 의해 갑자기 실종되는)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 중국의 많은 가정이 나와 비슷한 운명에 직면해 있다”고 했다.
▶실제 중국 정부에 의한 ‘강제 실종’ 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올해만 해도 투자은행 차이나 르네상스의 바오판 회장이 지난 2월 자취를 감추었다. 얼마 후 중국 당국의 조사를 받는 것이 확인됐다. 중국의 해외 비밀경찰서 운영을 폭로한 세이프가드 디펜더스는 이런 일이 일상화됐다는 보고서를 냈다. 매년 1만명 이상이 ‘행방불명’ 상태가 된다고 추정한다. 인권운동가 마이클 캐스터는 2017년 ‘실종인민공화국’이라는 책을 펴내 고발했다. ‘강제 실종’이 시진핑 시대의 통치 스타일이 됐다고 비판했다.
▶중국에서 실종되는 이들은 직위, 직종 불문이다. 중국 공산당에 미운털이 박히면 관료, 기업인, 연예인, 변호사 등 누구도 예외 없다. 2021년 테니스 스타 펑솨이가 장가오리 전 부총리로부터 성폭행당했다고 했다가 2주일 넘게 사라졌다. 덩샤오핑의 외손녀 사위 우샤오후이 안방보험 회장도 2017년 갑자기 없어진 후 기소됐다. 반체제 인사들은 동시에 실종되곤 한다. 2015년 중국의 인권운동가 약 300명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이 중 한 명인 왕취안장 변호사는 3년 뒤에야 살아있는 것이 알려졌다.
▶강제실종을 통한 공포 정치에는 중국 공산당 중앙기율위·국가감찰위가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AI 등의 ‘5G 스탈리니즘’으로 감시하다가 ‘문제 인물’을 추려낸다고 한다. ‘돌연 실종→비밀 신문·고문→교화→공개 반성’의 4단계가 진행되는 동안 누구와도 연락할 수 없다. 그나마 이런 과정을 거쳐서 돌아오는 경우는 운이 좋은 것이라고 한다.
▶친강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한 달 가까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달 들어 미국의 재무장관, 기후변화 특사가 방중했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제공할 정보가 없다”고 한다. 기밀 유출설, 불륜설, 시진핑 모욕설이 나돈다. 정상 국가 어디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세계 패권을 다툰다는 중국과 공산당의 실체가 이렇다. 그 옆에 있는 우리로선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07.21 샌프란시스코의 기억

▲일러스트=이철원
1967년 여름, 히피 차림의 젊은이들이 하나둘 샌프란시스코에 모여들었다.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고 자유 연애, 대마초를 추앙하는 이들이었다. 수 만 명이 기성 질서에 반기를 들었다. 문학, 그림, 음악, 명상을 얘기하며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다. 머리를 꽃으로 장식한 ‘꽃의 아이들’이 시선을 끌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으로 불린 이 집회는 미국 문화사에 중요한 이정표로 기록됐다. 가톨릭의 성인 이름을 딴 샌프란시스코가 자유와 보헤미안 중심지가 됐다.
▶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 이 가사로 유명한 노래 ‘샌프란시스코’는 서머 오브 러브의 주제곡이었다. 자신들의 신(新)문화에 동참하는 의미로 꽃을 꽂으라는 이 노래는 히피 세대의 감성을 대변한다. 아름다운 항구도시의 대표적인 노래가 됐다. 70~80년대 미국을 동경하던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자주 불렸다.
▶금문교, 피셔맨스 워프, 차이나 타운, 버널 하이츠를 찾고 사워도우 브레드를 먹은 이들은 모두 샌프란시스코 팬이 된다. 영국의 유명 시인 딜런 토마스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나는 미치도록 불행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 있어서 기쁘다”고 했다.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다음 세계의 매력을 가진 곳”이라고 했다. 한여름에도 의외로 추워서 많은 관광객이 당황한다.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내가 보낸 가장 추운 겨울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보낸 여름”이라고 했다.
▶미국에서 가장 아름답고, 살기 좋고, 부유한 도시로 꼽혔던 이 도시가 영화 배트맨에 나오는 ‘고담 시티’가 됐다고 한다. 마약, 총기 사고, 폭력, 절도 등 강력 범죄가 빈발해 범죄지수는 캘리포니아주 평균의 10배를 넘는다. 본지 특파원은 “바로 눈앞에서 도둑들이 태연히 자동차 문을 따고 옷과 가방을 훔친 후 웃으며 사라졌다”고 했다. 이 도시의 상징이었던 자유가 방종으로 흐르면서 ‘파멸의 고리’에 갇혀 버린 것일까.
▶러시아의 첫 노벨문학상 수상자 이반 부닌의 작품 중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신사’가 있다. 부유한 신사가 호화 유람선에서 먹고 마시고 향락에 빠졌다가 갑자기 사망해 같은 배의 맨 아래 실려 돌아간다는 내용이다. 절제를 잃고 추한 도시가 돼 버린 샌프란시스코의 운명을 예견한 듯하다. 샌프란시스코를 찾았던 이들이 씁쓸한 뉴스를 들을 때 생각날 노래가 있을 것 같다. ‘내 마음은 샌프란시스코에’(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
07.22(토) 대통령의 별장

▲일러스트=이철원
중국 공산당 최고 지도부는 매년 8월 초 공식 석상에서 동시에 사라진다. 그리고 베이징에서 동쪽으로 280㎞ 떨어진 휴양지 베이다이허 별장촌에 모인다. 피서 목적이라고 하지만 주요 인사, 정책이 이곳에서 정해진다. 마오쩌둥의 대약진운동,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 장쩌민·후진타오·시진핑 승계 등이 여기서 결정됐다. 투표도 없고 총칼을 휘두르지도 않는데 정권이 교체되는 배경에 베이다이허 별장이 있다.
▶권력자의 별장은 외교 무대가 되기도 한다. 시진핑 주석이 2018년 인도 모디 총리를 후베이성의 옛 마오쩌둥 별장에 초대하자, 곧이어 일본 아베 총리도 야마나시현에 있는 자신의 별장에서 모디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일본 방문 후 “나카소네 총리 별장에 묵으며 일본 옷 입고 차 대접받은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영국은 버킹엄셔 총리 별장에서, 프랑스는 지중해 연안 대통령 별장 브레강송 요새에서 정상회담을 자주 연다.
▶우리 대통령 별장은 충북 청주에 청남대, 경남 거제에 청해대가 있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청남대에서 스케이트,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낚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전거 타기를 즐겼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곳에서 휴가를 보내고 금융실명제 같은 굵직한 정책을 발표해 ‘청남대 구상’이란 말이 나왔다. 청해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주로 썼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취임 첫해 이곳을 찾아 ‘추억 속의 저도’란 글을 남겼다.
▶미국 대통령 별장은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다. 바이든 대통령이 다음 달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이곳에 초청해 정상회담을 갖는다고 한다. 3국 정상이 함께 캠프 데이비드에 모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 대통령 중엔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8년 처음 방문했다. 골프 카트 운전대를 잡고 부시 전 대통령을 조수석에 태워 캠프를 돌았다. 고이즈미 전 일본 총리는 부시 전 대통령과 캐치 볼을 했다.
▶캠프 데이비드는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역사적 현장이다. 1943년 영국의 처칠 총리가 방문해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토대를 잡았다. 1959년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흐루쇼프 공산당 서기장 간 회담이 열렸고, 1978년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이곳에서 오랜 적대 관계를 끝내는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체결했다. 쿠바 위기 때 케네디 전 대통령, 이라크 전쟁 때 부시 전 대통령이 이곳에 머물며 상황을 진두지휘했다. 한미일 3국도 이번 회담에서 공동 번영을 위한 역사적 기틀을 마련하기 바란다.
07.24(월) 자식 잃은 부모

▲일러스트=이철원
2010년 연평도 포격전에서 순직한 문광욱 해병대 일병의 아버지 문영조 씨가 이듬해 여름에 연평부대를 방문했다. 문씨의 두 손은 무더위를 식혀 줄 수박을 들고 있었다. 아들 동료들이 죄송하다며 울음을 터뜨리자 문씨는 “너희들은 잘 싸웠다. 광욱이 대신 연평도 잘 지켜라”고 위로했다. 같은 해 아들의 모교에 장학금을 내고 2021년 해병대에도 적지 않은 돈을 기부했다. 명예 해병이 된 그는 “광욱이는 만 18세에 시간이 멈춰버렸지만 아들의 후배들은 사회 생활 잘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2014년 세월호 사고로 사망한 단원고 교사 남윤철씨 장례식장에 작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조의금은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남 교사는 가라앉는 배에서 제자들에게 구명조끼를 나눠 주며 대피를 도운 후 시신으로 돌아왔다. 남 교사 아버지는 “생사를 모르는 학생들이 많은데 먼저 빈소를 차린 게 미안할 뿐”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남 교사 어머니도 슬픔을 억누르며 말했다. “내 아들, 의롭게 갔으니 그걸로 됐다.” 자식 잃은 부모의 고통은 상상조차 할 수 없기에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덴마크의 역학과학센터가 31만명의 부모를 추적 조사해보니 자녀 잃은 어머니는 18년 내 사망 비율이 40%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만큼 심리적 충격과 스트레스가 크다는 것이다. “새끼 잃은 부모 속 냄새 맡아본 적 있나. 부모 속이 썩어 문드러지면 그 냄새가 십리 밖까지 진동하는 거여.” 영화 ‘괴물’의 주인공 희봉의 말이 명대사로 기억되는 이유다.
▶자식 잃은 부모의 슬픔을 ‘참척(慘慽)’의 아픔이라고 한다. 충무공 이순신은 아들 면의 전사 소식에 “네가 죽고 내가 사는 것은 무슨 괴상한 이치란 말이냐. 온 세상이 깜깜하고 해조차 색이 바래보인다”고 했다. 소설가 박완서씨는 아들을 잃고 “하느님도 너무하신다”며 통곡했다. “내 수만 수억의 기억의 가닥 중 아들을 기억하는 가닥을 찾아내어 끊어버리는 수술이 가능하다면 이 고통에서 벗어나련만….”
▶경북 예천의 수해 실종자 수색 중 사망한 채수근 상병 부모가 육필 편지를 해병대에 보냈다. ”진심 어린 국민 여러분들의 마음을 잊지 않고 가슴 깊이 간직하겠다.” “유가족을 다독여주신 귀한 말씀들을 기억하며 어떻게든 힘을 내서 살아가 보겠다”고 했다. 해병대 발전도 기원했다. 길지 않은 편지에 ‘감사’가 네 차례나 등장한다. 하늘이 무너진듯한 상황에서 위로하는 사람을 배려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나지막이 기도해본다. 하늘의 위로가 함께하기를….
07.25 중국발 ‘브러싱 스캠’

▲일러스트=이철원
지난 주말 전국을 긴장케 했던 수상한 소포의 정체는 중국발 ‘브러싱 스캠(brushing scam)’일 가능성이 짙어지고 있다. 브러싱 스캠은 가짜 주문을 내고 제품 리뷰를 달아 특정 제품이 아마존, 알리바바 등 온라인 플랫폼에서 상단에 오르도록 하는 사기 수법이다. 이 용어는 중국어 ‘솨단(刷單)’에서 왔다고 한다. 솨(刷)는 ‘쓸다’ ‘닦다’란 뜻으로 브러싱(brushing)으로 번역됐지만, 편법으로 취득한다는 의미도 있다. 즉 주문서[單]를 편법으로 취득하는 사기라는 뜻이다. 중국 업체가 이 수법을 사용해 대만을 경유하는 우편을 이용해 빈 껍데기 소포를 대량으로 한국에 보낸 것으로 의심된다.
▶미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중국엔 이런 브러싱을 제공하는 서비스가 성행한다고 한다. 가정주부, 학생, 투잡을 뛰는 회사원들이 일당 50~200위안(9000~3만6000원)을 받고 고용돼 요청을 받은 회사의 제품 매출량을 늘리기 위해 가짜 주문서를 발송한다고 한다. 심지어 가짜 주문서를 그럴듯하게 낼 수 있는 온라인 훈련도 50~99위안을 받고 진행한다. 합법적인 근거를 남기기 위해 실제로 물품도 발송한다. 하지만 비용을 줄이기 위해 빈 껍데기 혹은 씨앗처럼 가벼운 내용물을 넣는다. 지난 2020년 미국·캐나다·브라질·호주에서 벌어진 정체불명의 씨앗 소동은 중국발 브러싱 스캠으로 드러났다.
▶중국에서 이런 사기가 횡행하는 것은 최대 온라인 상거래 플랫폼인 알리바바에서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너무 치열하기 때문이다. 알리바바 측은 단속 강화와 처벌에도 불구하고 미 증시 상장 직전인 2013년의 경우, 120만명의 판매자가 5억건의 거래를 위조했다고 밝힌 바 있다. 수만명의 조력자를 고려할 때 이것도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알리바바는 미 증시 상장 전에 미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수차례 자료 요구를 받았다.
▶브러싱 스캠은 아마존, 이베이 등 다른 온라인 상거래 플랫폼에서도 골칫거리다. 아마존에선 2020년 6월 이후 온라인 사기가 500% 증가했다고 한다. 영국의 비영리 소비자 매체는 영국 내 100만여 가구가 브러싱 스캠의 타깃이 될 수 있다고 했고, 뉴욕소비자보호부도 관련 위험성을 경고했다.
▶브러싱 스캠은 소비자의 솔직한 평가인 리뷰가 중요해지면서 생긴 역설적 현상이다. 한 시장조사 전문 기업의 조사에 따르면 지인이 추천한 제품이라도 10명 중 6명은 소비자 리뷰를 확인하고 구매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 때문에 앞으론 현관 앞에 배달된 우편물도, 쇼핑몰의 리뷰도 마음 편히 볼 수 없는 세상이 됐다.
07.26 이스라엘 대법원

▲일러스트=이철원
1948년 5월 독립한 이스라엘은 헌법이 없는 나라다. 건국할 때 세속주의와 종교주의 양대 세력의 헌법 관련 견해 차이가 컸다. 결국 11개의 기본법에만 타협했다. 기본법과 일반법이 충돌하는 경우가 많아지자 1995년 대법원이 이와 관련한 결정 권한을 갖기로 했다. 크네세트(의회)가 법을 만들어도 대법원이 기본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하면 폐기되도록 한 것이다.
▶이스라엘 대법원은 헌법이 없는 상황에서 내각책임제의 행정부와 의회를 견제하는 역할을 해왔다. 종교 국가 성격이 있는 이스라엘에서 인권을 넓히고 다양성 있는 국가가 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사법부의 권한이 너무 크다는 지적도 있다. “법관 선정위에서 임명된 이들의 권한이 국민이 선출한 의원들보다 큰 것은 문제 아니냐”는 불만도 나왔다. 팔레스타인 정착촌과 관련한 부동산 소송, 동성애 문제 등에서 대법원이 유대교의 가치를 훼손하고 국익을 저해한다는 비판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스라엘 보수파를 대표하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올 초 컴백, 여러 정당과 손잡고 ‘사법부 개혁’에 나섰다. 상당수의 군인, 경찰까지도 이에 반대하는 상황에서 사법부 무력화 법안을 24일 통과시켰다. 대법원이 기본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해도 의회 과반 의결로 번복시킬 수 있게 한 것이다. 의회가 대법관 선정을 좌우할 수 있는 길도 열었다. 네타냐후는 “3부 간 균형 복원을 위해 필요한 민주적 조치”라고 했지만 국내외에서 반발이 크다.
▶미국이 크게 화를 내고 있다. 바이든 백악관은 네타냐후 정권과의 관계를 재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사피엔스’ 저자 유발 하라리는 ‘독재 정권의 수립’이라고 비판하며 “이스라엘 시민들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팔레스타인을 악마로 보고, 예루살렘의 이슬람 성지인 알 아크사 사원 파괴를 목표로 한 유대 우월주의자들의 궐기가 시작되는 순간으로 본 것이다. 국립외교원의 인남식 교수도 “이스라엘이 기로에 섰다”며 중동 적대국과 맺은 아브라함 협정도 위험해질 수 있다고 했다.
▶중동은 바이든 대통령 집권 후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동맹에 이상이 생기면서 위험 신호가 켜졌다. 이란과 사우디는 중국 중재하에 손을 잡았다. UAE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입을 규탄하는 유엔 안보리에서 기권했다. 중동에 큰 구멍이 생겼다. 기존 질서가 흔들리는 중동에서 네타냐후의 사법부 무력화와 그로 인한 연쇄 파장은 이스라엘 국내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어떤 ‘나비효과’를 낳을지 우리도 주시해야 할 것 같다.
07.27 콜롬비아가 배우려는 ‘이승만 농지개혁’

▲일러스트=이철원
유엔 참전 기념식에 참석하려 방한한 콜롬비아 대표단이 “이승만 대통령의 농지개혁이 기적적인 한국 번영의 토대가 됐다”며 배우고 싶다고 했다. 세계 빈곤 국가에는 농가 1억호(戶)에 사는 5억명이 최빈곤층을 형성하고 있다. 콜롬비아를 비롯, 과테말라, 인도, 방글라데시, 필리핀, 남아공 등이 이런 나라들이다. 그래도 최빈곤층이 5억명에 그친 것은 몇몇 나라는 농지개혁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 맨 앞자리에 한국이 있다.
▶이승만의 농지개혁은 2차 대전 후 자유 진영과 공산주의 대결이 재촉했다. 북한이 1946년 사회주의 방식의 ‘무상몰수, 무상분배’ 농지개혁을 먼저 했다. 말은 무상분배이지만 북한 농민에겐 소유권이 없었다. 이 대통령은 “공산당을 막으려면 농지개혁을 빨리 해야 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1950년 3월, 지주가 평균 수확량의 150%를 보상받고, 농민이 같은 양을 5년간 분할 상환하는 농지개혁법이 공포됐다. 북한과 달리 우리 농민은 농지 소유권을 가졌다. 대한민국의 번영을 가져온 사유재산제 기틀이 마련됐다.
▶농지개혁으로 매년 양곡 약 478만석을 농민이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게 되자, 자녀들이 학교에 진학했다. 1945년 136만명이었던 초등학생 수는 1955년엔 287만명으로 두 배로 늘었다. 중등 학생 수는 8.4배, 대학생 수는 10배가량 증가했다. 교육기관엔 농지개혁을 적용하지 않자, 지주들이 사학 재단을 만들었다. 1943년 39개였던 사립 중학교는 1953년 246개로 늘었고, 사립 대학교는 10개에서 49개로 늘었다. 농지개혁이 의무교육 강화 정책과 맞물리면서 획기적인 인적 자본 축적이 일어났다.
▶농지개혁 당시 지주들은 소유하고 있는 논밭을 내놓는 조건으로 정부에서 지가(地價)증권을 받았는데, 3개월 만에 전쟁이 일어났다. 지주들은 1만%가 넘는 초인플레 속에서 지가증권 가치가 떨어지자 팔아서 생활비로 썼다. 이를 신흥 기업가들이 사 모았다. 삼양·두산·선경·한국화약이 지가증권으로 일제(日帝)가 놓고 간 자산이나 기업을 사들였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농지개혁은 산업 주체 세력도 교체했다.
▶2차 대전 후 출발이 비슷했던 한국과 필리핀의 운명이 갈린 것은 지주 세력의 견제 탓에 필리핀이 농지개혁에 실패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남미 순방 때 이승만의 토지개혁을 ‘획기적이고 역사를 바꾼 사건’으로 평가했다. 이승만의 업적으로 자유 민주 건국, 6·25 남침 극복, 한미 동맹과 함께 농지개혁이 빠질 수 없다.
07.28 천체물리학자가 된 기타리스트
우주 탐사선이 모은 이미지를 토대로 세계 최초 3차원(3D) 소행성 지도책이 나오는 데 기여한 공동 저자가 세계적 록밴드 ‘퀸’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라고 한다. 알고 보니 그는 영국의 명문 임피리얼 칼리지 런던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하고 천체물리학 박사과정으로 진학한 수재였다.

▲일러스트=이철원
▶국내에서도 인기를 모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가 멤버들에게 이런 독설을 날리는 장면이 나온다. “내가 아니었으면 넌(드럼 주자 로저 테일러) 치과 의사가 되고 주말에 술집에서나 드럼을 쳤겠지. 넌(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 박사님이 되어 우주에 대해 아무도 안 읽는 논문을 쓰겠지.” 브라이언 메이는 음악 활동을 하느라 박사가 되지 못했다. 30여 년 만에 전공 공부로 되돌아가 예순 되던 해인 2007년 논문을 끝내고 뒤늦게 천체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고 모교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과학에도, 음악에도 재능 있었던 퀸 멤버들처럼 음악가 중에 수재도 많고 뛰어난 수학자나 물리학자들 중에 음악에 조예가 깊은 사람도 꽤 있다.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과 막스 플랑크는 음악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고 연주도 함께했다. 아인슈타인의 바이올린 사랑은 유별났고 평생 모차르트 음악에 심취했다. 서양에서 음악과 수학·과학은 동떨어진 분야가 아니라 2000년 넘게 자매 학문으로 발전해온 전통과도 무관치 않다.
▶서양 음악학의 시조는 ‘피타고라스의 정리’로 잘 알려진 기원전 6세기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피타고라스다. 피타고라스는 어느 날 대장간 옆을 지나다 망치질 소리를 듣고는 망치 무게에 따라 조화로운 소리를 만들어내는 수학적 비율을 정리했다. 이를 ‘피타고라스 음률’이라고 한다. 피타고라스는 만물의 원리가 수(數)에 있다고 생각했고 이를 음악의 하모니뿐 아니라 천체의 조화를 연구하는 데도 적용했다. 이런 전통이 근대 서양의 수학, 물리학, 천체물리학, 음악 발전으로 이어진다. 헝가리 작곡가 바르토크는 중세 이탈리아 수학자 피보나치가 만들어낸 수열에 따라 음악 마디를 나누고 1대1.618의 황금비에 따라 클라이맥스를 두는 식으로 작곡했다.
▶독일의 수학자이자 철학자 라이프니츠는 “음악은 인간 정신이 계산을 무의식적으로 하면서 경험하는 즐거움”이라고 했다. 피아노를 배운 아이들이 그러지 않은 아이들보다 수학 문제를 더 잘 풀었다는 미국의 연구 결과도 있다. 음악도, 미술도, 체육도 다 팽개치고 어린 초등생을 의대 준비반에 보내는 학부모들이 한번 생각해볼 만한 사례다.
07.29(토) 독일 장갑차 제친 한국 ‘독거미’

▲일러스트=박상훈
레드백 스파이더(Redback Spider)는 검은과부거미(블랙 위도·Black Widow)의 일종이다. 과부거미는 암컷이 수컷을 잡아먹는 특성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호주에만 서식하는 레드백은 방울뱀보다 더 강력한 맹독을 지니고 있다. 치명적이고 위협적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18년 호주의 보병전투장갑차 사업에 뛰어들면서 장갑차에 ‘레드백’이란 이름을 붙였다. 경쟁 상대는 독일·미국·영국의 글로벌 방산업체들이었고, 독일 라인메탈은 이미 시제품도 있었다. 한화는 모조품을 갖고 참가했다. “중국 기업이냐”는 질문도 받았다. 그러나 결국 이름에 걸맞은 치명적 위력을 드러냈다.
▶독일은 이 분야 세계 최고였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 티거(Tiger) 탱크는 압도적 방탄력과 명중률, 속도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냉전 시대에도 전차군단 명성은 여전했다. 이 명성을 이어받은 기업이 ‘라인메탈’이다. ‘넘사벽’으로 통한다. 그런데 독일은 소련 붕괴 이후 군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예산 감소와 훈련 부족으로 ‘녹슨 군대’가 돼 버렸다. 독일 주력 전투기 128대 중 실전 투입 가능한 것은 4대뿐이라고 한다. 전차와 보병전투차량도 5대 중 1대만 정상 가동될 정도다. 라인메탈도 원천 기술력은 뛰어났지만 실전에서 요구되는 세부 기능과 응용 능력이 떨어졌다.
▶한화 레드백은 호주의 까다로운 요구를 모두 맞춰주는 전략으로 추격했다. 헬멧을 쓰면 가상현실처럼 전후좌우를 볼 수 있는 ‘아이언 비전’, 적 장갑차와 미사일을 탐지하는 에이사(AESA) 레이더와 최첨단 센서, 요격·공격 미사일과 회피 기동 능력까지 갖췄다. 포탄이나 지뢰가 터져도 화염·파편 피해가 가지 않도록 장갑을 강화했다. 첨단 완충 장치와 특수 고무 궤도를 적용해 하중을 줄이고 내부 공간은 넓혔다. 승차감이 좋아 병사들 만족도가 컸다. 미국·영국을 제치고 독일마저 이겼다. 가격은 조금 높았지만 기능 평가에서 압도했다고 한다. 레드백은 루마니아 차기 보병전투차 사업에도 뛰어들었고, 폴란드 보병전투차 보완 사업의 협의 대상이기도 하다.
▶보통 수출용 무기는 자국 군 사용 무기보다 급이 떨어지게 만든다. 그런데 한국군 경우엔 수출용 무기가 더 좋다. 레드백이 대표적이다. 한국군 K-21 장갑차보다 방어력, 공격력, 기동력 모두 월등하다. 장갑차는 병사를 태우고 적진으로 들어가는데 방어력이 떨어지면 차 안에서 전멸할 수 있다. 우리 군도 뒤늦게 레드백 도입을 검토한다는데 처음부터 선택이 잘못된 것 아닌가.
07.31(월) 2차 전지 광풍 낳은 ‘포모 증후군’

▲일러스트=양진경
2000년대 초 미국 하버드 경영대학원생 패트릭 맥기니스는 학내 이벤트나 파티를 놓쳐선 안 된다는 강박감에 하룻밤에 파티를 7군데나 돌아다녔다. 숙취 탓에 수업에 지각하고 늘 피로감에 시달렸다. ‘이런 삶은 비정상’이란 깨달음과 함께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이란 말을 만들었다. 하버드생들 사이에 이 말이 공유되면서 신조어 사전에 등재됐다.
▶포모 증후군이란 자신만 뒤처지고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 같은 소외 불안감, 고립 공포감을 의미한다. 기업들이 ‘매진 임박’ ‘한정 판매’ 같은 마케팅 용어로 구매욕을 자극하는 것도 포모 증후군을 활용한 것이다. 포모 증후군은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의 확산과 더불어 현대인의 병리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과 영국에선 성인 과반수가 포모 증세에 시달리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포모 증후군은 투자 광풍에도 일조한다. ‘비트코인 대박’ SNS 인증샷이 세계적인 코인 투기를 낳았다. 한국에선 코로나 사태 후 주가가 급등하자 ‘동학 개미’ 군단이 등장했다. 집값이 급등하자 ‘벼락 거지’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청년들이 앞다퉈 영끌 빚투(영혼까지 끌어모아 빚내서 투자)로 주택 매수에 나서는 바람에 ‘미친 집값’을 낳기도 했다.
▶코인·주식·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한동안 잠잠했던 포모 증후군이 2차 전지 투자 열풍과 함께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2차 전지 대표 기업의 주가가 폭등, 주가수익비율(PER·주가를 주당 순익으로 나눈 비율)이 120배를 웃도는 지경이 됐다. 전 세계 기업 중 가장 성장성이 좋다는 테슬라의 PER도 78 수준인데, 기가 막힌다. 증시 격언대로 산이 높으면 골도 깊은 법. 뒤늦게 상투를 잡은 개미 투자자들이 주가 급락 탓에 패닉에 빠졌다. 2차 전지 테마주 급등락은 롤러코스터 장세를 만들고 있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화장실에 앉아서도, 운전 중에도 SNS를 챙겨본다면 포모 증후군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심리학자들은 포모에서 벗어나려면 SNS 접촉 시간을 줄이고, 진짜 사람을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누라고 조언한다. 현대사회에선 멀티 태스킹이 ‘능력’으로 치부되지만,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싱글 태스킹’이 포모 증세를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또 운동·명상·공부 등 각종 자기계발 활동을 통해 ‘나’에게 집중하는 조모(JOMO·Joy Of Missing Out)의 삶을 추구하는 게 탈출법이 될 수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