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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한반도 2023-07/ 07.01 ‘코끼리가 싸워도 사랑 나눠도 잔디 망가진다’ - 07.31 ‘죽창가’에 발목 잡혔던 한미일 협력, 국익에만 집중해야

상림은내고향 2023. 7. 23. 17:10

위기의 한반도 2023-07/

07.01 ‘코끼리가 싸워도 사랑 나눠도 잔디 망가진다’

싱가포르 리콴유, ‘중국이 세계 유일 中心이던 시대로 돌아갈 생각 마라’
仁川공항은 싱가포르 밀어내고 세계 최고 공항 됐는데 정치는 後進

 ▲'싱가포르 건국의 아버지' 리콴유(李光耀·91) 전 총리/AP 뉴시스

 

국가 지도자의 마지막 말이 이 수준은 돼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이유는 얼마 전 책방을 개업한 한국 대통령 때문이었을 것이다. 리콴유 싱가포르 전 총리(1923~2015)는 생전 ‘나 죽거든 살던 집은 허물어버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는 ‘싱가포르 국민에게 물려주고 싶은 유산은 튼튼하고 청렴하고 효율적인 정부’라고 했다. 리콴유와 오랜 교분을 나눈 헨리 키신저는 최근 ‘아버지 뜻이 분명한데도 자식들이 티격태격하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리콴유는 빛과 그림자가 같이 따르는 지도자다. 그는 1959년부터 1990년까지 싱가포르를 다스렸다. 그 기간 싱가포르는 마약굴·매음굴이라는 더러운 이름을 벗고 국민소득 6만달러를 넘는 나라로 성장했다. 기자는 1993년 싱가포르 기적을 취재하러 갔다가 경제 기적의 그늘을 체험했다. 귀국 후 5회 분량 시리즈 기사의 2회째가 나가자 싱가포르 대사관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다음 주 고촉통 총리가 한국을 방문하니 단독 인터뷰를 하자는 내용이었다. 며칠 후 다시 전화가 왔다. 인터뷰 약속이 취소됐다는 것이다. ‘지금이 싱가포르 야당(野黨) 전성기다. 의석 81석 중 4석을 차지했다. 야당 의석이 1석 아니면 1석도 없던 시대가 끝나간다’는 대목이 문제였다.

 

 ▲1979년 10월 첫 방한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이 리콴유(오른쪽) 전 총리에게 수교 훈장 중 가장 높은 등급인 광화훈장을 수여하는 모습/조선일보 DB

 

리콴유는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했다. 정치 스타일도 비슷했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박정희)’ ‘내 관(棺) 뚜껑이 닫히거든 나를 평가하라(리콴유)’는 말도 닮았다. 리콴유는 영국 국기·일본 국기·말레이시아 국기 아래 살다 어렵게 제 나라 국기를 갖게 됐다. 그는 대한제국 국기·일본 국기·미국 국기를 거쳐 태극기를 되찾은 박 대통령에게 동류의식(同類意識)을 느낀 것 같다. 그는 ‘실천이 아니라 말[言語]로 국민을 배불리 먹일 수 있다’는 정치인을 경멸했다. 10·26 열흘 전 박 대통령 마지막 정상회담 상대가 리콴유였다.

 

미·중 대결이 깊어가자 미·중 관계 변화가 아시아 중견 국가들 처지를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한 리콴유 안목(眼目)이 재평가되고 있다. 그는 미·중 대결만을 염려하지 않았다. 미·중 화해에도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코끼리들이 싸울 때만 잔디밭이 망가지는 게 아니다. 그들이 요란스럽게 사랑을 나눠도 잔디가 상한다”고 했다. 그가 살았다면 대만해협에서 서로 으름장을 놓는 가운데 이뤄진 미국 국무장관의 중국 방문을 예사로 넘기지 않았을 것이다.

 

리콴유는 ‘중국은 패권을 추구하지 않겠다’던 중국 지도자 말을 한때 믿은 미국처럼 순진하지 않았다. ‘중국에 진짜 패권을 추구할 마음이 없다면 왜 듣는 사람이 질릴 정도로 그 말을 되풀이하겠는가’ 그는 미국 대응책으로 ‘중국에 세계 회의실 의자를 제공하되 중국이 선량한 세계 시민 규범을 따르지 않을 때에 대비해 조용히 후방 진지(陣地)를 구축하라’고 조언했다.

 

인구 600만명의 도시국가 지도자 리콴유는 세계 최강국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정책 논의 상대였고, 13억 중국 지도자 덩샤오핑에게 근대화로 가는 길을 안내한 가이드였다. 리콴유는 ‘지금은 근대화 문제 이외에는 생각할 겨를이 없다’는 덩의 말은 믿었지만, 그의 후계자들은 믿지 않았다.

 

중국 지도자들에게 대놓고 말했다. “여러분 할아버지 세대는 대약진운동·기근·문화혁명이란 지옥을 건너왔다. 손자들은 할아버지 말을 듣지 않는 법이다. 힘이 생겼으니 힘을 과시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국이 세계에 하나뿐인 중심이던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 중국은 세계 여러 세력 중 하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라.”

 

30년 전 싱가포르를 처음 찾았을 때 싱가포르 정부 관계자는 ‘우리 자랑’이라며 창이공항으로 안내했다. 10년 넘게 ‘세계 최고 공항으로 선정된 긴 리스트를 보여줬다. 인천공항은 창이공항을 밀어내고 2005년부터 2016년까지 세계 최고 공항 자리를 지켰다.

 

이 사이 정치는 뒤로 전진(前進)했다. 국회 절대다수 의석을 가진 야당 대표는 교도소 담장 위에서 후쿠시마 괴담(怪談)을 밑밥으로 뿌리며 궐기를 호소하고 있다. 태평양 국가 가운데 이런 정치 지도자는 중국과 그를 따르는 좁쌀만 한 일부 국가 이외에는 없다.

 

1863년 12월 조선에서 12세 고종이 왕으로 즉위했다. 그 한 달 전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게티즈버그에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2분 연설을 했다. 한국 야당을 보면 이 격차는 여전히 좁혀지지 않은 것 같다.

조선일보 강천석 고문

 

07.03  9년간 일본인 최소 17명 체포...이젠 남 일 아닌 중국 反간첩법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중국에서 일본인이 간첩으로 잡혀가는 일이 꽤 잦다. 지난 2월 후난성 창사에서 50대 일본인 남성이 간첩죄로 12년형을 선고받았다. 3월엔 일본 제약사 중국법인의 고위직이 베이징에서 간첩 혐의로 구속됐다. 귀국을 앞두고 호텔에 묵던 그가 체크아웃을 하는 순간 공안이 덮쳤다고 한다. 면책 특권을 갖는 외교관도 예외가 아니다. 작년 2월 베이징에서 일본 외교관이 간첩 의심을 받던 중국 언론인과 식사하다 한 호텔 방으로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2014년 이후 최소 17명의 일본인이 중국에서 간첩 혐의로 체포됐다. 구체적 혐의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대부분 ‘중국통(中國通)’ 학자나 기업 고위직이다. 중국 관료와 만나 북한 상황을 물어본 일본인 사업가가 체포된 사례도 있다고 한다. 동중국해·대만 문제 등으로 중일 관계가 악화된 시기에 체포·처벌이 집중된다. 일본은 중국과의 고위급 회담마다 간첩 혐의로 수감된 자국민의 석방을 요구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껏 중·일 간 ‘간첩 분쟁’에 관심이 적었다. 중국이 ‘간첩 카드’로 한국을 압박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외교 소식통은 “2014년 중국 반간첩법 제정 이후 한국인이 이 법으로 처벌받은 사례가 없다”고 했다. 청나라 때부터 일본 간첩에 시달린 중국이 과민 반응할 수밖에 없다고 이해하는 시각마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남 일 아니게 됐다. 외국인을 손쉽게 간첩으로 몰아갈 수 있는 ‘반간첩법 개정안’이 이달 1일부터 시행됐기 때문이다. 간첩 행위의 정의를 ‘국가 기밀·정보를 빼돌리는 행위’에서 ‘국가 안보·이익과 관련된 자료 제공’ ‘간첩 조직에 의지[投靠]하는 행위’ 등으로 확대했다. ‘안보와 이익’의 뜻은 모호하고, 간첩 조직에 가입하지 않아도 간첩으로 간주할 수 있다. 죄를 입증 못해도 벌금형 등 행정처분이 가능하게 바뀌었다. 이런 법을 내놓고서 중국 외교부는 “법치국가라 외국인도 중국 법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미·일과 공조를 강화하는 한국은 개정안의 최우선 타깃이 될 수 있다. 베이징 교민 사회에서는 “사드 보복으로 한국 압박 카드를 대부분 써버린 중국이 한국인 간첩 몰이에 나설 수 있다”는 말이 나돈다. 중국에는 25만 교민이 살고 있고, 학자·기자·기업 주재원도 유독 많다. 이미 중국에서 박사 과정을 밟는 한인들은 ‘중국’을 주제로 한 논문 작성을 제한받고 있고, 한국 대기업 중국 법인들은 ‘종교 활동도 조심하라’는 내부 지침을 내렸다.

가까운 이웃이었던 한중의 사이는 더욱 벌어지게 됐다. 중국 내 정보 반출을 막는 ‘데이터 3법’, 타국 제재 근거를 마련한 ‘대외관계법’에 이어 반간첩법 개정안으로 기업과 개인의 중국 진출 리스크가 크게 높아진 탓이다. 중국에 ‘죽(竹)의 장막’에 이어 ‘법(法)의 장막’이 드리워진 듯하다.

조선일보 베이징=이벌찬 특파원

 
 

07-05 ‘탈중국 새판 짜기’ 돌파구 보인다

문희수 논설위원

수교 이후 첫 對중국 무역적자
美·유럽 비중 확대 ‘판도 변화’
중동·베트남, 中 대체 카드로

노벨상 美 학자 “韓에 새 기회”
한일 경협확대 길 터 활력 기대
3대 개혁 관철해 동력 살려야

6월 무역수지가 무려 16개월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반가운 청신호다. 그렇지만 에너지 등 수입 감소액이 수출 감소액보다 더 커서 생긴 ‘교역규모 축소형’ 흑자다. 반도체 경기 회복 등 변수도 여전히 많다. 무역흑자가 지속할지는 더 두고 봐야 한다.

주목할 것은 한국 교역구조의 지각변동이다. 무엇보다 탈중국 가속화가 뚜렷하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대중 수출은 올 상반기에 26%나 줄어 지난해 말 22.8%였던 수출 비중이 19.7%로 떨어졌다. 수출감소에도 무역수지는 지난해에 12억 달러 흑자였지만, 올 6월 현재는 129억 달러 적자다. 올 연간으로 1992년 수교 이후 첫 무역적자가 예상된다. 대중 경상수지는 이미 지난해에 적자 전환했다. 한·중 간 경제 패러다임이 31년 만에 대격변하는 중이다. 반면, 미국 유럽 등 자유 우방국에 대한 수출과 무역흑자는 확대 추세다. 대미 수출은 대중 수출과 달리 상반기에도 늘어 수출 비중이 지난해 말 16.1%에서 18.0%로 높아졌다. 대미 무역흑자는 172억 달러로, 지난해(279억 달러)를 추월할 기세다. 대유럽 수출 비중도 15.9%로 지난해(13.3%)를 넘어섰고, 지난해 적자였던 무역수지는 17억 달러 흑자로 전환했다. 방산과 원전이 새 효자 산업으로 떠올라 수출 길을 열어 기여하고 있는 것도 반가운 변화다.

한국의 경제 지형이 탈중국을 화두로 빠르게 변화하는 중이다. ‘포스트 차이나’ 시대의 경제 새판 짜기가 시작된 것이다. 변화를 몰고 온 결정적인 요인은 글로벌 공급망 개편이다. 다행히 기대를 더 키우는 긍정적인 변화들이 이어지고 있다. 자유 우방국뿐만 아니다. 베트남과 중동 역시 탈중국의 공백을 메울 대안으로 부상했다.

베트남의 경우 교역규모가 이미 일본을 추월해 한국의 3대 교역국으로 도약했다. 대베트남 수출은 글로벌 수출 부진 속에서 올 상반기 22% 줄었지만, 수출 비중은 8.1%로 지난해(8.9%)에 이어 여전히 3위이고, 대베트남 무역흑자는 117억 달러로 미국에 이어 2위다. 한국은 베트남에 가장 많이 투자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상생의 경제 관계다. 양국이 얼마 전 정상회담을 통해 교역규모를 2030년까지 지금의 두 배인 1500억 달러로 확대하기로 합의한 것은 서로가 필요한 경협 파트너임을 입증한다. 중동도 2차 붐을 예고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빈 살만 왕세자가 첨단도시 네옴시티 등 40조 원 규모의 투자 보따리를 푼 데 이어, 현대건설이 6조5000억 원 상당의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등 성과가 나오고 있다. 한국이 원전을 처음 수출한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이라크 등의 메가 프로젝트도 대기 중이다.

200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엥글 미국 뉴욕대 교수는 최근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한국에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중 수출이 줄어들 수 있지만, 미·중 간 공급망 해체로 중국을 대체하는 혜택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서방 국가에 대한 수출 비중이 높아져 중국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는 지적도 했다.

우리 경제는 실제 이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 새로운 효자 산업과 파트너가 부상하는 것도 긍정적이다. 막혔던 한·일 관계가 풀리며 수출규제가 완전히 해소돼 소재·부품·장비 등에서까지 양국 기업 간 투자 등 협력 확대를 위한 길을 튼 것도 중대한 진전이다. 얼마 전 재무장관 회담에서 통화스와프 협정 재개와 함께 제3국 인프라 프로젝트·공급망 구축 등에서 공조키로 합의한 것은 의미가 크다. 물론 반도체·배터리 등에선 경쟁하지만, 제3국 공동 진출 등 협력을 통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수 있다.

탈중국은 중국과의 관계를 끊는 ‘디커플링’이 아니라, 위험을 줄이는 ‘디리스킹’이어야 한다. 30년 넘은 양국 경제 관계를 일시에 단절하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충격도 크다. 그렇지만 피할 수 없는 시대적 변화다. 탈중국의 연착륙이 우리의 과제인 것이다. 유례없는 도전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새로운 파트너십과 함께 우리 내부의 체질 개선이 뒷받침돼야 한다. 노동·교육·연금 개혁을 반드시 관철해야 하는 이유다. 막혔던 것은 뚫고, 새로운 시장·성장 동력도 커지고 있다. 돌파구가 보인다. 아직 낙관할 수 없지만, 이제는 걱정보다 기대가 크다. 총력을 쏟아 새로운 기회를 살려야 한다.

문화일보

 
 

07.07 운동권 좌파의 친중 사대주의, 중국몽은 잊어라

中 패권주의 어떻게 막나
댓글 부대 등 여론 조작 대비하고
탈중국 경제안보전략 본격가동
조급증 금지… 中먼저 손 내밀게
관계 개선 조건 분명히 선 그어야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의원이 지난 17일 중국 티베트 라싸에서 열린 제5회 티베트 관광문화국제박람회에서 인사말을 한 뒤 티베트 당 서기 등에게 인사하고 있다. 도 의원을 비롯한 박정·김철민·유동수·김병주·민병덕·신현영 등 민주당 소속 의원 7명은 박람회 참석을 위해 16일 저녁 티베트 라싸에 도착했다./연합뉴스

 

중국이 힘을 이용한 공세적 팽창 정책을 추구하고 안보적 목적 달성을 위해 강압(coercion)을 일삼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6년 전 주한 미군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를 문제 삼아 우리 정부에 ‘3불 합의’를 강요하고 야비한 보복 조치를 취한 것은 다가올 중화제국주의 시대의 예고편이었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가 지난달 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초청하여 “중국 패배에 베팅하면 반드시 후회한다”고 경고한 것도 그 화법은 거칠었지만 본국 정부의 지침을 성실하게 따른 것뿐이지 대사의 개인적 일탈로 비난할 일이 아니다.

 

중국을 이런 난폭한 나라로 만든 근본 원인은 시진핑의 ‘중국몽’에 있다.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의 꿈은 한마디로 아편전쟁 이전까지 중국이 누려온 동아시아의 패권적 지위와 영화를 되찾고, 주변국들이 중국에 복종하는 신형 조공 질서를 수립하는 것이다.

 

이러한 꿈은 한미 동맹을 해체하고, 한·미·일 3자 안보협력체제의 출현을 저지하고, 궁극적으로 동아시아의 전략적 요충인 한국을 중국의 위성국으로 확보해야 실현될 수 있다. 이는 미국과 동맹국들의 전략적 이익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므로 외교적 노력과 회유만으로는 불가능하고 강압에 크게 의존 할 수밖에 없다. 중국의 공격적 행태를 흔히 ‘전랑(戰狼) 외교’라고 부르지만 전랑 외교는 외교가 아니라 강압과 좌충우돌이다.

 

그런데 중국이 한국을 유난히 고압적이고 난폭하게 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중국의 강압이 한국만큼 잘 통하는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국가의 방어 주권을 부정하는 ‘사드 3불합의’를 강요해도 국민의 생명과 안위보다 중국의 심기를 더 중시하는 선택을 할 수 있는 나라는 천하에 한국밖에 없다. 중국이 몽니를 부린다고 대통령이 베이징으로 날아가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로 칭송하고 ‘중국몽’에 한국도 함께하겠다는 비굴한 자세를 보일 수 있는 나라가 또 있을까. 강압이 잘 통하는 나라에는 굳이 공들여 구애하고 설득할 필요가 없고 강압적 방법에 점점 더 재미를 붙이게 되어있다.

 

일본에 대해서는 기세 등등하면서도 중국 앞에만 서면 주눅이 들고 부당한 훈계를 들어도 항변조차 못하는 한국인의 이중성은 어디서 온 것일까?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겠지만 중국을 문명의 중심으로 흠모하고, 일본을 야만의 나라로 얕잡아본 조선 위정척사(衛正斥邪)파의 이분법적 세계관과 친중 사대주의의 잔재가 아직도 한국인의 의식 속에 남아있고, 특히 운동권 좌파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중국의 패권주의적 강압과 횡포에 한국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첫째, 당당하되 절제 있는 대응을 통해 강압은 역효과만 낼 뿐이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주한 중국 대사의 언행이 괘씸하면 관료와 정치인들이 상대해주지 않으면 그만이지 비분강개한 나머지 추방 운운할 것까지는 없다. 한중 관계를 풀어보겠다고 조급증을 보이지 말고 중국이 먼저 손을 내밀 때까지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중국이 초청한다고 대통령이나 장관이 달려가면 한국의 입지는 더 약화되고 중국의 갑질과 훈시만 자초한다. 제3국에서 열리는 다자 정상회의 계기에 중국이 양자 회담을 제의하더라도 한 번쯤은 선약이 있다는 핑계로 거절할 필요가 있다.

 

둘째, 양국 간 고위급 회담이 재개되면 관계 개선의 분명한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 예컨대, 중국이 한국의 주권을 존중하고 북한의 비핵화에 협조하지 않으면 서로 필요한 거래는 할 수 있어도 진정한 우방이 될 수 없음을 솔직히 밝혀야 한다. 그래야 한국에 대한 헛된 기대를 갖지 않는다.

 

셋째, 중국의 강압 수단을 약화하고 박탈하기 위한 탈중국 경제안보 전략을 본격 가동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국에 과잉 의존하고 있는 핵심 광물과 소재의 공급처를 다변화하는 것이 급선무다. 나아가 중국 경제의 사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첨단 기술과 품목을 꾸준히 개발하고 시장 지배력을 유지해야 한다.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우방 국가들과의 연대와 제휴를 강화하여 중국의 강압과 보복에 집단적으로 대응할 체제도 마련해야 한다.

 

끝으로, 중국의 향후 국내 정치 개입에 대비해야 한다. 중국은 강압과 병행하여 국내 친중·반일 세력의 힘을 키우고 이들의 집권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할 것이다. 특히, 소셜미디어와 사이버 공간을 통한 중국의 한국 내 여론 조작 능력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대규모의 한글 댓글 부대와 해킹 부대를 운영하는 것도 중국에는 어려울 것이 없다.

 

‘중국몽’은 대한민국이 절대로 함께할 수 없는 악몽이다. 위정척사파의 유령을 몰아내야 이 악몽을 이겨내고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다.

조선일보 천영우 前 청와대 외교안보수석·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07.09 백두산서 北 향해 사진 찍어도 위험...中 반간첩법의 치명적 조항

▲지난 6월 4일 마오쩌둥의 초상이 내걸린 중국 베이징 천안문 앞으로 시민과 관광객이 지나가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7월 1일 자로 중국에서 개정 ‘반(反)간첩법’이 발효되면서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의 ‘내정간섭’ 발언으로 경색됐던 한·중 관계가 재차 얼어붙고 있다. 모호한 반간첩법 규정 탓에 자칫 업무나 여행으로 중국에 갔다가 중국 공안당국이나 반탐(反探)당국에 의해 졸지에 ‘간첩’으로 몰려 체포나 구금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다.

 

개정 반간첩법에 따르면, 중국 공안당국은 간첩혐의가 의심되는 사람의 휴대물품 등을 강제수색할 수 있고, 조사를 위해 8시간에서 최대 24시간까지 구금할 수 있다.

 

이에 1차적으로 여름휴가철을 앞두고 중국행 관광객이 급감하는 것은 물론, 중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은 중국 사업은 물론 주재원 등 인력수급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의 주중 한국대사관을 비롯해 교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상하이·광저우·칭다오 총영사관 등 주요 공관들은 반간첩법 발효에 앞선 지난 6월 26일 일제히 ‘안전공지문’을 교민사회에 전파했다. 혹여 공안(公安)이나 국안(國安·국가안전부), 인민해방군 방첩당국에 의해 ‘간첩’으로 몰려 체포될 경우 신속한 영사조력을 요청토록 하는 행동요령까지 전달한 상태다.

 

주중 한국대사관 측은 “기존 5개장(章) 40개 조항에서 6개장 71개 조항으로 많은 부분이 개정되었다”며 “우리나라와는 제도·개념 등의 차이로 예상치 못한 피해가 생길 수 있으니 중국에 체류하고 있거나 방문 예정인 우리 국민께서는 아래 사항에 유의해 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주중 한국대사관 측이 거론한 대표적인 사례는 중국의 국가안보 및 이익과 관련된 지도, 사진, 통계자료(데이터) 등을 인터넷으로 검색하거나 스마트폰·노트북 등 전자기기에 저장하는 행위다. 대사관 측은 “군사시설이나 주요 국가기관, 방산업체 등 보안통제구역 인접 지역에서의 촬영 행위나 시위현장 방문과 시위대를 직접 촬영하는 행위, 중국인에 대한 포교나 야외 선교 등 중국 정부에서 금지하고 있는 종교활동도 반간첩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도 경고했다.

 

외교부 역시 중국의 개정 반간첩법 시행에 앞선 지난 6월 22일 국내 여행업계 관계자들을 외교부로 불러모아 중국의 반간첩법 시행과 관련한 주의를 촉구했다. 지난 7월 4일에는 최영삼 외교부 차관보(전 상하이총영사)가 베이징을 찾아 쑨웨이둥(孫衛東) 중국 외교부 부부장(차관)과 만나 중국 내 우리 기업 및 교민들의 예측 가능한 사업환경 조성을 위한 중국 측의 각별한 관심과 협조를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국무부 역시 개정 반간첩법 발효를 하루 앞둔 지난 6월 30일(현지시각) “부당한 구금우려가 있다”면서 중국을 ‘3등급, 여행재고’ 지역으로 지정했다.

 

개정 반간첩법에 외교부 초비상

사실 반간첩법 개정 발효 전에도 이미 상당수 외국인들이 중국 당국에 의해 ‘간첩혐의’로 구금돼 곳곳에서 외교마찰이 벌어졌다. 지난 5월에는 홍콩계 미국인인 존 렁싱완(중국명 梁成運)이 ‘간첩죄’로 쑤저우 중급인민법원에서 무기징역과 함께 벌금 50만위안(약 8900만원)을 선고받았다.

홍콩 출신 미국 국적자로 올해 78세인 존 렁싱완은 미국 텍사스주의 미·중우호촉진회장, 중국화평통일촉진회 주석을 맡을 정도로 유명한 친중파 재미화교였다. 화평통일촉진회는 중국공산당 통일전선부의 지도를 받는 조직이다. 한데 존 렁싱완은 2021년 4월 쑤저우에서 돌연 ‘간첩혐의’로 체포됐다. 간첩죄를 다루는 중국 형법 제110조와 111조에 따르면, 간첩죄는 죄의 경중에 따라 최소 3~5년 이상 유기징역형에서 최고 10년 이상 유기징역 또는 무기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앞서 지난 3월에는 일본 아스텔라스제약의 한 50대 직원이 베이징에서 중국 당국에 체포됐다. 이 남성은 20년 이상 중국에 주재하면서 ‘중국일본상회(상공회의소)’ 부회장까지 지낸 베테랑 주재원으로 알려졌는데, 귀국비행기 탑승을 앞두고 간첩혐의로 체포됐다.

 

자국인 석방을 위해 지난 4월 하야시 요시마사(林 芳正) 일본 외무상이 직접 베이징을 찾아 친강(秦剛)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장관)과 만나 일본인 남성의 석방을 요구했지만, 중국 당국으로부터 “법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받는 데 그쳤다.

 

하야시 외무상은 친강 외교부장의 상급자인 왕이(王毅) 중국공산당 외사공작판공실 주임(정치국원), 리창(李强) 국무원 총리(정치국 상무위원)와도 만나 일본인 남성의 석방을 거듭 촉구했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성과가 없다. 오히려 하야시 외무상과 만난 중국 고위 당국자들은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맞는 중·일 관계를 구축하기 바란다”고 밝히며 해당 남성을 사실상 외교적 인질 삼아 일본의 대중정책 변화를 촉구했다. 사실상 중국의 인질로 전락한 셈이다.

 

이 같은 사례가 알려지면서 반간첩법은 업무상 중국을 자주 찾는 사람들을 심리적으로 위축시키고 있다. 지난 6월 말 중국 출장길에 오른 한 기업인은 상하이행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에 휴대폰과 노트북에 저장돼 있는 중국 관련 사진이나 자료 등을 미리 한국에 있는 별도의 컴퓨터와 저장장치에 백업한 뒤 중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7월 1일 반간첩법 발효를 앞두고 일종의 자체검열을 강화한 셈이다. 이 관계자는 “만에 하나 반간첩법에 연루될 경우 향후 10년간 중국 입국이 제한되는 등 치명적인 손해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스스로 몸조심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양제츠 전 중국공산당 외사공작판공실 주임(전 외교부장)과 함께 사진을 찍은 홍콩 출신 미국인 존 렁싱완(오른쪽). 2021년 중국 당국에 의해 ‘간첩혐의’로 체포된 렁싱완은 지난 5월 중국 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photo 바이두

 

‘제3국 대상’ 한국에 치명적 조항

반간첩법 개정 발효 전에도 중국에서 사진촬영 등은 민감한 문제였다. 2017년 3월에는 산둥성과 하이난성 일대에서 온천개발을 목적으로 지리 및 지질측량을 하던 일본인 남성 6명이 중국 당국에 의해 간첩혐의로 체포됐다. 이때도 노트북 및 개인저장장치에서 쏟아져 나온 각종 사진과 지도가 문제가 됐다. 이 중 4명은 일본으로 추방됐는데, 남은 2명 중 50대 남성은 하이난성 제1중급인민법원에서 징역 15년에 벌금 10만위안(약 1800만원), 70대 남성은 산둥성 옌타이의 중급인민법원에서 징역 5년6월에 벌금 3만위안을 선고받았다.

중국 당국에 따르면, 이들 일본인은 온천개발을 명분으로 산둥성의 북해함대 항공모함 기지와 하이난성의 남해함대 핵잠수함 기지 일대를 촬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2016년에는 저장성 원저우의 난지다오(南麂島)에서 사진을 촬영하던 일본 아이치현 출신의 한 50대 남성이 중국 당국에 간첩혐의로 체포됐다. 난지다오는 중국과 일본이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서 약 300㎞ 떨어진 섬으로, 최근 중국은 레이더와 활주로 등 군사시설을 증강해 왔다. 결국 2018년 항저우시 중급인민법원은 이 남성을 일본 법무성 산하 정보기관인 ‘공안조사청 간첩’으로 결론내리고, 징역 12년형과 벌금 50만위안(약 8900만원)을 선고했다.

 

이들 일본 남성들이 실제 간첩행위를 했는지 여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제는 중국 여행을 위해 지도를 휴대폰에 저장하고, 사진을 찍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위험이 뒤따르게 된 셈이다.

 

특히 이번에 반간첩법을 개정하면서 새로 삽입된 ‘제3국 대상’ 간첩행위는 중국을 찾는 한국관광객이나 주재원, 재중교민들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독소조항으로 꼽힌다. 반간첩법 제4조6항은 ‘기타 간첩활동’을 규정한 조항으로, 중국 경내에서, 혹은 중국인과 중국 내 조직을 이용한 제3국 대상 간첩행위 역시 처벌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중국을 찾는 한국관광객 가운데는, 북·중 접경인 백두산(중국명 창바이산)이나 랴오닝성 단둥(丹東)의 압록강변 일대에서 북녘 땅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는 관광객이 적지 않다. 이제는 개정 반간첩법에 따라 중국 국적 조선족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북한 땅을 향해 사진을 찍어도 ‘제3국(북한) 겨냥 간첩’으로 오인되기 좋은 환경이 됐다.

 

실제로 반간첩법 최초 도입 이듬해인 2015년 5월에도 북·중 접경에서 북한 관련 정보를 수집하던 한 50대 일본 남성이 간첩죄로 중국 당국에 체포되기도 했다. 체포된 일본인은 1960년대 재일교포 북송사업 때 북한으로 귀국했다가, 2001년경 북한을 탈출해 중국과 동남아,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돌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일본 여권으로 단둥 일대를 빈번히 드나들면서 북한 관련 정보를 수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 남성은 2018년 단둥시 중급인민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다롄감옥에서 복역하다가 2020년에 형 만기로 석방된 바 있다.

 

자연히 중국 여행 시 중국 각지에 있는 북한식당에서 한복을 입은 여종업원들을 상대로 북한 사정을 캐묻거나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것은 상당한 위험부담을 떠안게 됐다. 개정 반간첩법에 따르면, 이 같은 행위가 제3국(북한)을 겨냥한 ‘기타 간첩활동’으로 오인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한 재중 교민은 “옛날식으로 하면 중국에 있는 북한 식당을 찾는 한국 남성들은 전부 반간첩죄로 체포돼 징역을 살거나 추방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국 경내에서 탈북인권운동을 하다가 중국 당국에 한 차례 구금된 적이 있는 한 인사는 “휴대폰 등 전자기기를 안 쓸 수는 없지 않느냐”며 “개정 반간첩법에서 ‘제3국’을 못박은 만큼 아무래도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일본, 지금까지 17명 간첩혐의 체포

다행히 외교부 재외국민보호과에 따르면, 지난 7월 1일 개정 반간첩법 시행을 전후로 우리 국민 가운데 반간첩법에 연루돼 중국에 구금된 사람은 아직까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일본 외무성에 따르면, 2014년 11월 반간첩법 최초 제정 후 지금까지 간첩혐의로 중국 당국에 체포돼 조사를 받은 일본인은 무려 17명에 달한다. 이들 17명 가운데 아스텔라스제약 주재원을 비롯한 5명은 지금도 중국에 구금된 상태다.

 

중국 당국에 의해 간첩혐의로 구금된 미국 국적자도 지난 2016년 미 연방수사국(FBI) 간첩으로 몰려 상하이 푸둥공항에서 체포돼 징역 10년형을 받은 중국계 미국인 사업가 카이 리를 비롯해 최소 3명 이상이다.

 

지난 2018년 미국의 요청에 따라 캐나다 정부가 중국 최대 통신기업 화웨이 런정페이 회장의 딸이자 최고재무책임자(CFO)인 멍완저우(孟晩舟) 부회장을 체포한 직후에는 캐나다 국적자인 마이클 스페이버와 마이클 코브릭이 ‘간첩혐의’로 중국 당국에 구금된 적이 있다.

 

이 중 마이클 스페이버는 한국에서 유학하고 대북 사업에 종사하면서 2013년 북한 김정은과 미국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먼의 만남을 주선한 인물이라 캐나다는 물론 남북한 모두에 상당한 충격을 준 바 있다. 결국 이들은 2021년 멍완저우 부회장이 풀려난 직후 곧장 석방됐는데, ‘간첩혐의’가 인질외교의 수단으로 쓰인 대표적 사례다.

 

베이징 한국인회의 한 고위 관계자는 “피부로 느낄 정도로 크게 동요하는 상황은 아니다”라면서도 “다만 종교 쪽에서 문제가 발생활 확률이 있어서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중국 내에는 한인들과 탈북자들을 상대로 목회활동을 하는 종교인들이 제법 되는데, 외국인이 중국 경내에서 종교조직을 설립하거나 선교활동을 하는 것은 중국법 위반이다.

 

실제 ‘종교활동’은 개정 반간첩법 시행과 함께 우리 외교부와 대사관에서 가장 염려하는 부분이다. 중국계 미국목사인 데이비드 린도 지난 2006년 체포된 이래 지금까지 구금돼 있다. 니콜라스 번스 주중 미국대사는 지난 3월 카이 리와 데이비드 린 등 중국에 구금된 미국인들을 직접 면회하고 석방을 촉구한 바 있다.

 

번스 주중 미국대사는 개정 반간첩법이 전인대(국회에 해당)를 통과한 직후인 지난 5월에도 “반간첩법은 미국 기업이 일상적으로 해야 하는 작업을 불법으로 만들 수 있다”며 “연구원, 교수, 언론인도 이 법으로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번스 대사의 경고처럼, 개정 반간첩법은 국내 기업들의 중국 내 사업과 인력수급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삼성을 비롯해 현대차·기아, SK, LG 등 국내 대기업들은 중국에서 대규모 생산시설을 운영 중이어서 중국 사업을 위한 현지 시장조사나 관계 공무원, 기업인들과의 만남은 주재원들로서는 필수적이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회사 차원에서 아직 지침이 내려간 것은 없다”며 “아직까지는 반간첩법에 따른 험악한 분위기가 감지되지는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의 한 관계자는 “외교부에서 내려온 안전공지를 주재원들에게 전달한 정도”라며 “반간첩법 자체가 워낙 모호해서 구체적인 지침을 내릴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중국 현지 컨설팅업체와 논의해 대응방안을 결정할 예정”이라면서 “지금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을 아꼈다.

주간조선  이동훈 기자

 

월간조선 07월 호

중국에 베팅하는 것은 자유대한의 자살을 의미한다

6월 8일 싱하이밍(邢海明) 주한중국대사는 이재명(李在明)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났습니다. 싱 대사는 이날 여러 가지 ‘문제적 발언’을 했고, 이로 인해 한중(韓中) 양국 간에는 심각한 외교적 마찰이 벌어졌습니다. 싱 대사의 발언 가운데 제게 가장 거슬렸던 말은 이것입니다.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

미중(美中) 신냉전(新冷戰) 시대에 어느 편에 서는가 하는 것은 어느 팀의 승패를 점쳐서 베팅하는 스포츠토토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일입니다.

많은 이들이 중국인들은 본질적으로 공산주의자이기 이전에 중화주의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중화주의에서 ‘화(華)’와 ‘이(夷·오랑캐)’를 가르는 기준은 간단했습니다. ‘중국적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면 ‘화’, 그렇지 않으면 ‘이’였습니다. 중국이 조선을 두고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고 칭찬한 것은 조선인들이 상호 간에 예의를 잘 지키면서 살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중국적 삶의 방식’을 잘 받아들이고 중국에 고분고분했다는 의미였습니다.

중국은 이웃 나라나 민족이 ‘중국적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면, 즉 중국인들이 말하는 ‘천하(天下)질서’를 수용하면 왕위(王位) 세습(중국의 승인이 필요했지만)과 같은 내정(內政)에서의 자치(自治) 및 중국과의 무역을 인정해주었습니다. 이를 흔히 조공(朝貢)체제라고 합니다.


淸의 朝鮮省 설립 책동

조공체제는 중국의 종주권을 인정하기만 하면 상대적으로 ‘너그러운 체제’였습니다. 그런데 19세기 말에 이르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중국이 자기들의 ‘천하질서’ 아래 있다고 여겨온 베트남·미얀마(버마) 등을 열강(列强)에 빼앗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에 맞서 중국[淸]은 뒤늦게 ‘천하질서’하에서 반(半)독립적이었던 변방 지역을 ‘영토국가 중국’ 안에 편입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위구르 지역을 재정복하고 1884년 신장성(新疆省·지금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을 세운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신장’은 글자 그대로 ‘새로(新) 획득한 영토(疆)’라는 의미입니다.

조선에 대한 정책도 달라졌습니다. 임오군란(壬午軍亂)과 갑신정변(甲申政變)을 거치면서 청은 조선에 군대를 주둔시키면서 조선의 내정에 노골적으로 간섭했습니다. 원세개(袁世凱·1859~1916년)는 사실상의 총독이었습니다. 머리가 허연 조선의 대신들이 지금으로 치면 영관급 장교에 불과한 20대 후반의 젊은이에게 고개를 조아렸습니다. ‘원대인전(袁大人前)’이라는 말은 당시 원세개의 위세를 잘 보여줍니다.

더 나아가 청 조정 일각에서는 차제에 조선을 아예 중국의 성(省)으로 편입시켜야 한다는 논의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조선성’을 세우겠다는 야욕은 1895년 청일전쟁(淸日戰爭)에서 패하는 바람에 무산됐습니다. 1911년에는 신해혁명(辛亥革命)으로 청제국이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중국인들의 의식 속에 내재한 ‘중화주의 유전자’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열강의 반(半)식민지로 전락하고, 군벌(軍閥)들이 할거하는 바람에 백성들이 어육(魚肉)이 됐던 1910~1920년대에 중국에서는 희한한 지도가 등장했습니다. 중국이 기필코 회복해야 할 실지(失地)가 표시된 지도였습니다. ‘실지’에는 중국으로부터 독립한 몽골(외몽골), 프랑스의 식민지가 된 베트남은 물론, 중국으로부터 독립했다가 일본의 식민지가 된 조선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한 원로 국제정치학자는 20여 년 전 중국 고위 인사의 사무실을 방문했다가 이와 흡사한 지도가 벽에 걸려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핀란드화

그런 ‘중화주의 유전자’ 위에 공산전체주의가 더해졌습니다. 시진핑(習近平) 체제하의 중국공산당(중공)은 한마디로 ‘중화공산주의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중화공산주의자들이, 대한민국이 외교·안보·경제 측면에서 중국의 편을 들어주기만 하면 국내에서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삶의 방식을 누릴 수 있도록 허용해줄까요?

예를 들어 언론인들은 중국공산정권의 정책이나 인권탄압을 비판하는 기사를 쓸 수 있을까요? 영화감독들은 중국이나 중국인들이 부정적으로 비치는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요? 역사학자들은 ‘고구려와 발해는 한민족(韓民族)의 나라’라는 학술 논문을 자유로이 낼 수 있을까요?

지금도 노골적으로 대한민국의 내정에 개입하고 한국의 자유언론을 난폭하게 비난하고 있는 중국이, 한국이 완전히 자기들의 손아귀에 들어왔다고 생각할 때에 그런 자유를 허용할 리 만무합니다.

오래전부터 많은 뜻있는 분들이 한국의 ‘핀란드화(Finlandization)’를 걱정해 왔습니다. ‘핀란드화’란 냉전(冷戰) 시대에 핀란드가 소련에 외교·안보적으로는 종속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의회민주주의체제를 유지했던 것을 말합니다. 핀란드는 외교·안보 주권의 제약을 감수하는 대신, 발틱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처럼 아예 소련에 병합되거나 동구공산주의국가들처럼 위성국(衛星國)으로 전락하는 것은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핀란드가 내정 면에서 완전히 자유로웠던 것은 아닙니다. 언론이나 문화예술인들은 소련에 대한 비판을 ‘자기검열’해야 했고, 정계나 관계에서 출세하려는 사람들이나 큰 사업을 벌이려는 사람들은 모스크바에 줄을 대야 했다는 것이죠.

그런데 오늘날 국내 일각에서는 ‘한국의 핀란드화’, 즉 중국으로의 예속을 꼭 나쁜 것으로 볼 수만은 없다는 식의 주장이 솔솔 나오고 있습니다. 이를 ‘듣보잡 서구문명에서 우리 문명의 모태(母胎)인 중국 문명으로의 회귀(回歸)’라는 식으로 포장하려 드는 ‘먹물’도 있더군요.

하지만 ‘중국 문명으로의 회귀’가 바람직한 것일까요? 그것은 자유민주주의로부터 공산전체주의로의 전향(轉向)을 의미하는 데도 말입니다.

 중국에서는 시진핑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곰돌이 푸’ 캐릭터가 인터넷상에서 검열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물총새 취(翠)’자는 ‘시(習)의 죽음(卒)’과 통한다는 황당한 이유로 기피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말도 들립니다. 대통령을 ‘물태우’ ‘쥐명박’ ‘바뀐애’ ‘뇌무현’ ‘문죄인’이라고 조롱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살아온 대한민국의 자유시민들이 이런 체제하에서 살 수 있을까요?

아니, 그 이전에 공산중국이 자신들의 바로 옆에 자유가 숨 쉬는 나라가 존재하도록 놔둘 리가 없습니다. 자유사회가 곁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공산독재체제에는 위협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와서 ‘중국의 승리에 베팅’하고 ‘중국적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은 ‘자유대한의 자살’을 의미합니다. 말끝마다 ‘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도 중국 앞에만 서면 작아지면서 ‘중국의 승리에 베팅’하려 드는 이들을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자유는, 민주주의는, 중화공산주의와는 양립할 수 없습니다.


‘70년 전에 미국을 선택’한 것은 탁월한 선택

문재인 정권 시절, 이수혁 주미대사는 “70년 전에 한국이 미국을 선택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미국을 선택해야 하는 건 아니다”라면서 “국익(國益)이 돼야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무역수지 흑자 몇 푼 더 나는 것이 국익은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가장 큰 국익은 자유롭고 번영하는 독립국가로 생존하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70년 전에 한국이 미국을 선택’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이 덕분에 전후(戰後) 70년을 맞는 오늘날 대한민국 국민들은 5000년 민족사를 통틀어 가장 큰 자유와 풍요와 국제적 위신을 향유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기까지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신 모든 분, 특히 6·25 당시 북한과 중공의 침략에 맞서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피를 흘리신 국군장병과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 장병들의 영령(英靈) 앞에 삼가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글 : 배진영 월간조선 편집장 ironheel@chosun.com 

 
 

07월 호

대만 위기와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 

일본, ‘대만 위기’ 계기로 글로벌 플레이어로 나서

 ⊙ 대만 외교부장, “대만은 미국과 함께 핵우산 정책을 논의하고 있다”
⊙ 오스틴 美 국방장관, “미국, 중국의 공격적 행동 주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할 것”
⊙ 美, 일본에 AUKUS 참여 타진… JAUKUS로 확대될 듯
⊙ 기시다 日 총리, 주일 중국 대사의 이임 인사 거절… 수교 후 최초
⊙ 대만, 日 식민 지배 받았지만 과거사에 얽매이지 않아
⊙ 日과 대만, 상대를 ‘가장 좋아하는 나라’로 꼽아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 現 워싱턴 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지난 6월 3일 동중국해에서는 중국 전투함이 미국 구축함의 진로를 방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AP/뉴시스

 

 “제3차 세계대전은 이미 시작됐다.(World War III has already begun.)”

프랑스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역사인류학자 에마뉘엘 토드(Emmanuel Todd)가 올해 초 세계에 던진 메시지다. 미국의 약화를 틈탄 러시아의 반격이 시작됐으며, 중국이 이에 가세하면서 군사만이 아닌, 전방위 전쟁이 전 세계로 ‘이미’ 확산됐다는 것이 토드의 생각이다.

지난 6월, 전 세계 미디어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나라는 우크라이나다. 토드의 말대로라면 우크라이나는 1914년 7월, 제1차 세계대전 출발점이 된 세르비아에 해당된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에서 보듯 세계대전의 경우 전쟁 기간이 길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6월 현재 이미 16개월째 접어들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경우에서도 그랬지만, 어디에 붙은지도 모르는 지명들이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아무리 들어도 키예프(우크라이나어로는 ‘키이우’)를 제외한 도시명들이 아직도 낯설다.

인터넷 시대의 장점이자 단점이지만, 시간의 속도가 광속(光速)으로 움직이는 듯하다. 한 달 전 유행가도 쉽게 잊힌다. 싫든 좋든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관심도 식어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자고 일어나면 접할 수 있는 ‘지구촌 일상 뉴스’로 변해가고 있다. 당연하지만, 일상은 뉴스가 될 수 없다. 10명, 100명 전사는 이미 일상이다. 적어도 1000명은 죽어야 특급 뉴스가 될 수 있다.


130m 차이로 스쳐 지나간 美中 군함

제3차 세계대전이 이미 일어났다는 또 하나의 증거가 될지 모르겠지만, 일상에 접어든 우크라이나를 잇는 새로운 비(非)일상 나라 하나가 글로벌 뉴스 메이커로 급부상하고 있다. 매일 수위를 높이며 전 세계 ‘뉴(new)’ 뉴스 메이커로 떠오르는 나라, 바로 대만(臺灣)이다.

워싱턴은 당초 중국의 대만 침략 시기를 2027년 정도로 보았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는 빠르면 2025년을 전후(前後)로 중국의 대규모 공격이 있을 것이란 전망이 흘러나오고 있다. 미국과 전 세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발목이 잡혀 있는 동안 중국의 무력(武力) 침략이 시작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대만을 둘러싼 미·중(美中) 대결은 미래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다. 매일 미·중이 상대의 인내심을 시험하면서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필자가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미·중 군함 사이의 일촉즉발(一觸卽發) 상황에 관한 뉴스가 흘러나온다. 캐나다 해군과 함께 대만해협을 통과하던 미군 구축함이 중국 전투함의 항로(航路) 방해로 130m 거리를 두고 스쳐 지나갔다고 한다. 전투함 간 130m는 자동차 간 1m 간격에 해당된다. 항해 중 방향을 한순간에 바꿀 수가 없는 곳이 바다다. 전투기 도발에 이어 전투함을 이용해 미군을 자극한 뒤 공격 구실로 삼으려는 행위라 볼 수 있다. 미·중 대결 양상이 분명해진 이상, 미국의 대만 방어 전략·전술도 구체화될 수밖에 없다.


미-대만 핵우산 논의 시작

“미군은 중국의 공격적인 행동을 주목할 것이며, 동맹국들과 함께 대만해협과 주변의 평화와 안정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할 것이다.”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일본 미디어 인터뷰에서 밝힌 대만 관련 발언이다(6월 1일 자). 필자가 주목한 부분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란 표현이다. 영어 원문은 ‘to do everything we can’으로 나타나 있다. 심상한 표현이라 볼 수도 있지만,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는 미·중 관계를 고려할 경우 특별한 의미로 와닿는다.

대만 문제에 주목하는 사람이라면 5월 22일을 경천동지(驚天動地)할 만한 발언이 나온 날로 기억할 듯하다. 이 말을 한 글로벌 뉴스 메이커는 대만 외교부 부장 우자오셰(吳釗燮)다. “대만은 미국과 함께 핵우산 정책을 논의하고 있다”는 우 부장의 발언은 한미 정상이 ‘워싱턴 선언’을 내놓은 지 24일 만에 나온 것이다. 한국에 이어 대만에 대한 핵우산 문제가 ‘마침내’ 등장한 것이다. 핵우산 문제는 곧바로 대만과 중국권 미디어의 헤드라인 뉴스가 됐다. 대만 외교부는 우 부장 발언 이후 침묵 모드에 들어갔지만, 대만-미국 사이의 핵우산 논의가 있었다는 사실은 남았다.

 오스틴 장관의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란 표현은 바로 대만 외교부의 ‘핵우산’ 관련 발언이 나온 지 10일 후에 나왔다. 바보가 아닌 이상 오스틴의 발언이 어떤 사안을 염두에 둔 것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대만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은 중국의 야심을 잠재울, 문자 그대로 핵폭탄급 뉴스다. 중국이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는 나라를 공격하려면 국지전(局地戰)이 아니라 대륙 전역을 시야에 넣는 전면전(全面戰)을 고려해야만 한다. 이 경우 중국은 선뜻 공격에 나서기 어려워진다.

당연히 미국에 대한 중국의 비난과 불만이 극에 달할 수밖에 없다. 당장 6월 초로 예정되었던 미·중 국방장관회담 결렬 소식이 들려온다. 양국 국방장관은 당초 싱가포르에서 만날 계획이었지만, 리상푸(李尙福) 중국 국방부장(국방장관)이 오스틴과의 회담을 거부하고 있다(6월 5일 기준). 흥미롭게도 중국 국방부장은 한일 국방장관과의 만남에는 공을 들이고 있다.

항상 강조하지만, 중국의 외교 정책은 너무도 뻔한 ‘7세 어린이 수준’에 머물러 있다. 자신이 강하다고 믿는 순간 막무가내로 황제로 군림하려 한다. 하지만 자신이 약하다고 느끼는 순간에는 온갖 고사성어(故事成語)와 미사여구(美辭麗句)를 동원해 라오펑요우(老朋友·오랜 친구)임을 되풀이해서 강조한다. 한국과 일본에 대해서도 일방통행식의 고압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착한 중국’으로 급변한다.

‘착한 중국’이 한국, 일본과 만날 경우, 한·미·일 3국 동맹 체제를 깨려는 의도가 가장 크겠지만, ‘대만 핵우산’에 관한 설교도 회담의 주된 테마가 될 것이다. 북핵(北核)은 괜찮지만, 대만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은 안 된다는 7세 어린이 중국식 논리를 강조하고 반복할 것이다.


AUKUS, JAUKUS로 확대될 듯

2023년 국제정치의 현실 속에서 ‘순식간에’ 국제정치 플레이어로 등장한 나라가 하나 있다. 관객이나 평론가 수준에 머물면서 묵묵히 미국의 생각에 따라가는 ‘수동적’ 모범 학생이 아니라, 국제정치라는 운동장에서 직접 뛰는 현역 선수다. 스스로 계획하고 구체화시켜나가면서 다른 나라들도 움직이게 만드는, 군사외교 주체로서의 국가다. 바로 일본이다.

기억에도 새롭지만, 유엔 평화유지군(PKO) 자격으로 자위대를 해외에 파견하는 문제 하나만으로도 난리를 치던 나라가 일본이다. 전쟁터의 일본인 구출을 위한 자위대 비행기 동원조차도 국회 동의안 통과가 필요했다.

2023년의 일본은 완전히 달라졌다. 국방예산 100% 증가는 물론, 유엔과 무관한 자위대 해외 파견도 상식화되었다. 지난해 저세상에 간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慎太郎)가 외쳤던,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은 이미 120% 완성된 상태다.

일본은 직접화법을 피하는 나라다. ‘이긴다’ ‘있다’가 아니라, ‘지지 않는다’ ‘없지 않다’고 표현한다. ‘노’라고 단언하지는 않지만, 과거처럼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예스(Yes)’ 추종을 하지도 않는다. 이와 더불어 미국이 일본에 대해 ‘노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일본이 없으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선은 ‘전적으로’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곧 가시화되겠지만, 2021년 9월 시작된 미국·영국·호주로 구성된 안보동맹체 AUKUS도 JAUKUS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J’는 물론 ‘일본(Japan)’을 의미한다. 5월 이후 상황이지만, 워싱턴은 일본의 AUKUS 동참을 타진하고 있다. ‘요구’가 아니라 ‘요청’ 차원이다.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미국이 아니라, 플레이어로 변한 일본이다.
 

 

일본의 對中 강경외교

플레이어 일본의 변신은 중국에 대한 강경 입장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3월 26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주일(駐日) 중국 대사의 이임(離任) 인사를 거절했다.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해 특별한 이유를 내놓지 않았지만, 일본 주변에서 펼쳐진 중국의 군사도발이 이임 인사 거절의 배경인 것으로 판단된다. 사실 중국의 군사도발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 총리가 주일 중국 대사의 이임 인사를 거절한 것은 1972년 일·중 수교 이후 처음이다.

베이징(北京) 주재 일본 대사관의 반응도 남다르다. 5월 21일 중국 외교부는 다루미 히데오(垂秀夫) 주중(駐中) 일본 대사를 불렀다. 그 직전에 있었던 G7정상회의에서의 반중(反中) 성명서를 비난하면서 일본 대사에게 화풀이를 한 셈이다. 보통 주재국 외교부에서 외국 대사를 부를 경우, 조용히 듣고 있다가 마지막에 “대화를 통해 협력한다”는 메시지로 종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당시 일본 대사는 중국의 일방적인 비난에 맞서 정면 대응했다. “중국이 (대만에 대한) 행동을 바꾸지 않는 한, G7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공통 관심사인 (대만)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라고 일갈한 것이다.

다루미 대사의 발언은 종래 일본의 외교 방식과 180도 다른 것이다. 화(和)를 앞세운 일본 특유의 평화 노선이 아니라, 힘을 통한 평화 수호 의지가 일본 대사 입에서 ‘마침내’ 터져 나온 것이다.

기시다와 주중 일본 대사가 보여준 능동 외교, 공격형 대응은 한층 더 강화될 것이다. 중국이 대만은 물론, 일본과 태평양에서 도발 수위를 높일수록 플레이어로서의 일본의 입장과 대응도 한층 강경해질 것이다. 이미 플레이어로 나선 이상, 더 이상 침묵으로 일관하지 않겠다는 것이 일본 외교의 기본자세다.


‘주는 만큼 얻는다’

▲이시바 시게루 의원을 단장으로 하는 일본 초당파 의원방문단은 작년 7월 27일 대만을 방문, 차이잉원 총통과 만났다. 사진=대만 총통부

 

 일본을 군사외교 플레이어로 바꾼 가장 큰 계기가 된 것은 대만이다. 과거사에 집중하고 반일(反日)감정에 익숙하다면 일본의 최근 행태를 보면서 ‘일본=군사대국 야심국가’라고 단정할 듯하다. 이는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작년까지를 기준으로 할 경우, 일본은 이와는 정반대의 입장을 고수해 왔다. ‘일본=비군사노선’이 정답이었다.

지난해까지의 일본 군사외교의 기본 방침은 미일군사동맹 하나에 집중돼 왔다. 미국은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는 순간부터 일본의 재무장을 강력히 요구해 왔다. 그러나 일본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응하지 않았다. 태평양전쟁 당시의 참혹한 기억 때문이기도 하지만, 군사대국으로 나아갈 경우 적이 생기고 엄청난 돈도 필요하다는 점에서 부정적이었다.

일본은 자체 초대형 여객기 YS-11 모델 150여 기를 이미 1965년에 제작한 나라다. 그러나 미국에 안보를 전부 맡기는 과정에서 자체 여객기 생산을 전면 중단했다. 비행기를 비롯한 첨단 무기를 미국에서 수입하는 것이 일본 자체 무장 비용보다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일본에 수입되는 비행기와 무기는 미제(美製)지만, 미국에 수출되는 자동차는 일제(日製)다. 대만 전쟁 가능성은 이 같은 일본의 종래 군사외교 정책과 구도를 근본적으로 바꾼 계기가 된다.

왜 일본은 대만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가? 일본은 왜 다른 나라가 아닌, 유독 대만을 통해 군사외교 플레이어로 변신하고 있을까?

크게 보면 두 가지 관점으로 나눠 분석할 수 있다. 첫째는 2023년 밀려든 ‘현실’로서의 대만 문제다. 둘째는 19세기 말 이래 21세기까지 지속된 ‘역사’로서의 대만이다.

먼저 현실로서의 대만 문제를 보자. 1950년대 이래 냉전(冷戰) 시대에서부터, 1990년대 초 걸프 전쟁과 21세기 초 아프가니스탄 전쟁까지의 일본 군사외교 정책은 ‘미국 추종’이란 말 하나로 압축할 수 있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일본은 급변한다. 능동적이고도 적극적으로 나선다. 증거는 EU 주도하의 반(反)러시아 경제제재(經濟制裁)다. 일본과 무관한 유럽의 문제인데도 적극 나선다. 결국 일본은 러시아 수출만이 아니라, 북방영토 문제와 에너지 분야에서의 엄청난 피해에 직면한다. 그렇지만 일본은 대(對)러시아 경제제재에 적극 동참한다.

엄밀히 보면 일본의 급변은 우크라이나 전쟁 그 자체가 아닌, 대만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만 전쟁이 초읽기에 들어섰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문제에도 적극 나서게 된 것이다. 대만 전쟁이 발생할 경우 일본이 미국과 유럽의 지지와 도움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이 우크라이나 문제에 적극적일 경우, 대만 전쟁 때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주는 만큼 얻을 수 있고, 얻는 만큼 줄 수 있다.
 

 

‘전후 최대의 위기’

일본은 대만 전쟁을 강 건너 불로 대하지 않는다. 기시다 일본 총리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의 상황을 전후(戰後) 최대의 위기로 규정했다. 대만 전쟁이 터질 경우, 원하든 말든 관계없이 일본의 직접 개입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대만 공격에 나서는 중국 전투기들이 일본 난세이섬(南西諸島) 방공망 파괴에 나설 것이고, 대만해협 주변이 차단되면서 일본으로 가는 무역선과 에너지 수송선 출입도 중단될 것으로 본다. 중국은 일본 내 미군기지도 미사일로 공격할 것이다.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오키나와()에 대한 영유권 주장도 총칼로 밀어붙일 가능성이 높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이는 중국-대만 전쟁이 아니라, 대만 주변 모든 나라를 끌어들이는 ‘작은 세계전쟁’ 차원의 무력충돌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환경과 상황의 결과가, 기시다가 재삼 재사 강조하는 ‘대만 유사(有事)=일본 유사’다. 대만 전쟁이 터질 경우 일본은 결코 제3자가 될 수 없다.

일본이란 나라의 특징이지만, 행동에 나서기까지의 ‘돌다리 두드리기’가 엄청나다. 너무 오래 두드리다가 돌다리 자체가 무너져 내릴 정도다. 그러나 일단 결정된다면, 돌다리를 대신해 초음속 비행기용 활주로 건설에 들어간다. 이미 ‘돌다리 두드리기’는 끝났다. 지난 5월 21일 히로시마에서 열린 G7에서도 나타났지만, 일본은 돌다리를 대신한 초음속 비행기용 활주로 건설을 국제사회에 공언했다. 비행기의 타깃은 물론 대만을 노리는 중국이다.


‘일본 지배 당시에도…’

“일본 지배 당시에도 당신들처럼 행동하지는 않았다.”

17세기 말 이래 지속된 ‘역사’로서의 대만과 일본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떠올린 영화 속 대사다.

중국 영화는 처음 2~3분 정도 보면 결론을 잡아낼 수 있다. 영화 〈장진호(長津湖)〉(2021)에서 보듯 쥐어짜기 억지 감동과 황당 액션으로 도배를 한 프로파간다가 중국 영화의 시작이자 끝이다.

그러나 중국 영화 중 유일하게 필자를 감동시킨, 수준 높은 영화도 있다. 1993년 출시된 〈패왕별희(覇王別姬)〉다. 바로 위의 대사의 출처다. 영화 속에서 여자 경극(京劇) 주인공 역할을 맡은 장국영이 공연 중 중국 국민당 군인에게 던진 말이다. 일본이 패함과 동시에 해방군으로 들어온 국민당 군인들이 경극을 보러 온다. 그러나 공연을 하던 여장(女裝)의 장국영은 군인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한다. 참다못한 장국영이 국민당 군인들의 무식한 행동을 일본과 비교한 것이다. 곧바로 장국영은 일본을 두둔한 반역자로 체포된다. 위의 말 한마디로 인해, 극 중 경극 배우 장국영의 운명도 거의 끝난다.

흥미롭게도 위의 장국영의 대사는 미국판 〈패왕별희〉 비디오에만 있을 뿐 중국판에는 아예 없다. 편집 삭제됐기 때문이다. 국민당보다 더한 예술 무시와 탄압이 공산 중국 체제하에서 벌어졌다. ‘일본 지배 당시에도…’란 대사를 들을 경우 ‘그래도 국민당이 공산당보다는 나았다’라고 생각할 듯하다.

장국영의 〈패왕별희〉 대사는 21세기 대만-일본 관계를 압축해서 설명해주는 말이기도 하다. 대만 여론의 대세는 공산당 중국은커녕, 대륙에서 내려온 국민당조차도 멀리하는 분위기다. 경제적 이해관계로 인해 중국이나 국민당과 연결돼 있지만, 마음은 장국영의 대사 그 자체라 보면 된다. 영화 속에서 장국영은 일본을 찬미하지 않았다. 중국이 일본보다도 더 야만스럽고 무지하다는 것을 강조했을 뿐이다. 침략자 일본도 야만적이지만, 중국은 한층 더 천박하고 살벌하다는 것이 〈패왕별희〉 속 장국영 대사의 진의다.


‘대만 國父’ 정성공의 어머니는 일본인

대만과 일본은 아주 특별한 관계를 유지해 온 나라다. 멀리는 17세기 중반 대만 왕조의 정성공(鄭成功·1624~1662년)을 비롯해, 20세기 식민지 통치를 통해 지리적·경제적·혈연적으로 연결된 것이 대만-일본이다.

정성공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를 격파한 뒤, 명(明)이나 청(淸)을 향한 귀속이 아닌 독자적인 대만 왕조를 수립했다는 점에서 대만의 국부(國父)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정성공은 일본인 어머니를 둔, 어릴 때 일본식 교육을 받은 인물이다. 대만 정부는 이 같은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거꾸로 ‘정성공=대만-일본 우호 관계의 상징’으로 추앙하고 있다.

같은 역사를 나눈다는 점 때문이겠지만, 양국 간의 호감도는 남다르다. 작년 대만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대만이 가장 좋아하는 나라 1위가 일본이다. 응답자의 60%가 일본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2위는 중국으로 약 5%, 3위는 미국으로 4% 정도다. 한국은 4위로 응답자의 3.5% 정도에 그친다. 일본에 대한 호감도가 압도적이다. 특히 2030세대 젊은 층의 호감도는 무려 70%에 달한다.

대만에 대한 일본인의 호감도는 어떨까? 2021년 1월 일본에서 발표된 아시아 국가에 대한 호감도 조사 결과를 보면, 대만이 49.2%로 1위에 올라서 있다. 2위는 한국으로 17.1%, 3위는 싱가포르 13.1%, 4위는 태국으로 10.5%다. 중국에 대한 호감도는 2.9%로 북한과 함께 호감도 최악국가로 나타났다.

 대만과 관련해 한국인들은 ‘왜 대만은 일본을 좋아하는가’라고 묻는다. ‘왜 50년에 걸친 식민 지배까지 당했는데 일본을 좋아하는가’라는 의문이다.

필자는 이 같은 질문 자체가 한국과 대만이 가진 역사관, 나아가 세계관을 보여주는 최고의 증거라 판단한다. 한국과 대만의 역사관·세계관은 극단적으로 다르다.

간단히 말해, 한국은 과거에 집착한다. 역사와 과거사 문제로 날과 밤을 새운다. 국가·사회 차원이 아닌, 개인 차원의 과거도 중요하다. 결혼 상대의 과거사도 문제시 삼는다.

최근 알았지만, 19세기 말 개화(開化)사상을 조선 시대 북학(北學)으로 연결하려는 노력이 한국 역사학도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라고 들었다. 일본으로 말한다면,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가 에도(江戶) 시대 어떤 사상과 연결됐는지를 연구하는 식이라 볼 수 있다. 학파(學派), 학맥(學脈)에 기초한 것이지만, 일본의 경우 이 같은 방식의 연구 자체가 극히 드물다. 사카모토 료마의 사상이 누구 학파인지, 어떤 맥인지에 관한 학문적 연구가 필요 없다. 대(代)를 이어 연결된다는 것이 중요하기는 하다. 그러나 굳이 어제의 역사를 오늘의 정통성·정당성의 근거로 삼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사카모토 료마는 그 어떤 학파나 맥과 무관하다. 왜 김옥균(金玉均)을 북학과 연결하려 애쓰는지 안쓰러울 뿐이다. 어제는 어제, 오늘은 오늘이란 인식은 일본만이 아닌 대만에도 통용될 수 있다.

식민 지배를 당했기에 당한 만큼 화를 풀어야 한다고 믿는 나라가 한국이다. 대만은 다르다. 식민 지배를 당한 것은 나라가 약했기 때문이고, 앞으로 이 같은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부분에 방점을 찍는다. 대만은 학파·학맥·과거에 얽매이는 역사관·세계관에서 벗어나 있다. 핵심은 미래다. 식민지 시대 폭정(暴政)을 후벼 파내면서 반일에 매달리기보다, 양국의 이익과 미래에 한층 더 주목한다.

더불어 일본의 대만 식민지 통치가 한국과 달랐다는 점도 대만이 일본에 대한 호감도가 높은 배경 중 하나다. 식민지 시절 조선 총독은 한 명만 빼면 모두 육군 장군 출신이었다. 대만 총독은 해군 제독 출신이 많았다. ‘폭력범 육군과 지능범 해군의 합작품이 태평양전쟁이었다’는 말이 있다. 상대적인 얘기지만, 육군은 세상 변화에 무관한 힘에 기초한 군대인 반면 해군은 바다를 통해 세상 변화를 체감하는 머리의 군대다. 육군 출신 총독의 밀어붙이기식 통치가 아닌, 세계 흐름에 맞춘 유연한 해군 출신 총독 통치가 대만에서 행해졌다. 같은 식민지지만, 1945년 이전 일본이 대하는 한국·대만 사이의 자세는 크게 다르다.


대만, 3·11 대지진 당시 세계 2번째로 일본 지원

▲대만은 팬데믹 종료와 함께 일본인이 가장 주목하는 관광지다. 대만여행서 전문 전시대가 따로 설치될 정도다. 사진=유민호 

 

‘오는 정(情)이 있어야 가는 정이 있다’는 말은 일본인들도 자주 인용하는 한국 속담이다. 3·11 동일본 대지진 당시 보여준 대만의 일본에 대한 응원과 배려는 남다르다. 쓰나미 희생자를 기리는 수많은 편지와 개인 차원의 지원 인력이 일본으로 쇄도했다. 당시 대만의 3·11 재난 지원금은 30억 엔에 달했다. 지원금을 보내준 100여 나라 가운데, 2위가 대만이다. 1위는 미국으로 약 200억 엔에 달했다. 3위는 태국으로 20억 엔, 한국은 2억 엔으로 25위에 그쳤다. 아시아권에서는 19위 몽골 3억 엔, 20위 필리핀 2.9억 엔보다도 낮은 나라가 한국이다. 돈도 돈이지만, 당시 한국인 일부는 3·11 재난을 영화 〈일본침몰〉에 비교하면서 세상에서 아예 사라지라는 식의 저주를 퍼붓기도 했다.

2011년 3·11 재난 당시 한국 대통령은 이명박(李明博)이다. 필자는 이 대통령에 대해 호감도, 비호감도 없다. 그러나 당시 이웃의 재난에 무심하고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지 않은 것은 역사적 과오로 기록될 것이다. 반대로 한국이 똑같은 상황에 처했고 일본이 한국 수준의 관심에 그쳤다면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돈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돈을 통해 마음이 드러난다. 외교를 포함해 세상만사 역지사지(易地思之) 세계관이 필요하다. 3·11 재난 당시 보여준 대만의 따뜻한 정 때문이겠지만, 대만을 대하는 일본인의 마음은 ‘신뢰와 우정’ 그 자체다. 일본인이 중시하는 신뢰와 우정이 양국 간의 기본구도로 정착된 셈이다. 기시다가 대만 전쟁에 맞서 결전(決戰) 의지를 드높여도 일본인들이 반대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대만은 小國이 아니다

▲일본에는 대만 잡화만을 전문으로 다루는 가게가 많다. 잡화의 질적·양적 수준이 한국보다 높다. 사진=유민호

 

 필자는 6월 초부터 일본에 머물고 있다. 사회 전반을 통틀어, 팬데믹 이전과 비교해 대략 7할 정도 회복된 듯하다. 그러나 일본 방문 관광객을 보면 2019년과 비교해 9할대까지 채워진 상태다. 중국이 그룹투어를 열지도 않았는데도 올 들어 3개월간 외국인 480만 명이 일본을 찾았다. 같은 기간 한국 방문 관광객은 일본의 3분의 1 정도인 171만 명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1분기 중 일본 방문 한국인 관광객은 전체 4할대인 160만 명에 달한다. 같은 기간 일본인의 한국 방문객은 35만 명이다.

대만 관광객은 어떨까? 1분기 중 일본에 간 대만인은 79만 명에 달한다. 같은 기간 한국을 찾은 대만인은 16만 명에 불과하다.

한국 경제 전문가인 다무라 도시유키(田村紀之) 니쇼가쿠샤(二松學舍)대학 명예교수는 “관광산업이야말로 21세기 첨단 산업의 대명사”라면서 “안전·신뢰·문화에 바탕한 관광산업은 인적 교류만이 아니라 무역·문화·문명 모든 것을 업그레이드해줄 장기적 차원의 최첨단 산업”이라고 강조한다.

일본의 대만에 대한 관심과 관여는 점점 구체화되고 강해질 것이다. 제3차 세계대전의 그림자가 아시아를 덮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 대만을 애매하게 대하고 있다. 총론으로서의 대중 정책은 미국·일본과 함께하지만, 각론으로서의 대만 문제는 불투명하고 불확실하다. ‘대만 핵우산’ 문제가 구체화될 경우, 이는 북핵은 물론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 간에 나온 ‘워싱턴 선언’과 연계될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대만의 위상은 북구(北歐) 선진국에 준한다. ‘결코’ 소국(小國)이 아니다. 대만의 타이베이(臺北)를 방문할 때면 항상 느끼는 것인데, 시민 의식이나 도시 환경은 한국보다 몇 단계 위다. 공항에서 파는 기념품의 양적·질적 수준을 봐도 한국보다 훨씬 낫다. 더불어 첨단 산업으로 무장한 기술대국인 동시에, 14억 중국에 정면 대응하는 ‘아시아의 우크라이나’가 2400만 인구의 대만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의 외교 원칙을, 자유·인권·민주주의라는 국제규범에 기초한 인류 보편적 가치에 두고 있다. 대만은 이 같은 원칙에 어울리는, 한국과 같은 가치관을 가진 나라다. 말로만의 원칙이 아니라, 행동으로 자유·인권·민주주의 국제규범을 지켜주길 바란다. 이미 대중(對中) 정책의 방향이 정해진 이상, 대만과의 관계 강화는 필연적이다. 하루라도 빨리 한국 측이 먼저 손을 내밀면서 각론 차원의 행동에 들어가길 기대해본다.⊙
 

 

07월 호

중국의 대만 침공 시나리오와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

중국–미국, 군사적 긴장 고조될 경우 북한 도발 가능성 높아

⊙ “미국·대만 대선 치르는 2024년 중국 도발 가능성 크다”(마이크 미니한 美공군기동사령관)
⊙ 중국, 전면전보다는 회색지대 전략·전면적 봉쇄전략 펼칠 가능성
⊙ 대만에 무기만 지원하는 ‘우크라이나 모델’ 적용 안 돼… 주한미군 참전 가능성 높아
⊙ “한국은 중립 표명 또는 비공식 지원을 할 듯”(美 CSIS 워게임)

趙顯珪
1962년생. 육군사관학교(41기) 졸업, 한국외대 중국어과 졸업, 중국인민대학 국제관계학원 국제정치학 박사(수료), 단국대 국제정치학 박사 / 국방부 정보본부 중국분석총괄, 주중 한국대사관 무관, 주대만 한국대표부 무관 역임. 現 한국국방외교협회(KDDA) 중국센터장, 신한대 특임교수, 중국 상하이 푸단대(復旦大) 객좌교수, 국방부 정책자문위원 / 저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한국의 국방혁신》(공저), 《중국의 정보조직과 스파이활동》(공역), 《우크라이나 전쟁의 시사점과 한국의 국방혁신》(공저)

 

▲대만 육군은 지난 1월 춘절을 맞아 대대적인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사진=대만 국방부 

 

시진핑(習近平)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은 3연임을 확정한 작년 10월의 중국공산당 제20기 당 대회 개막식 연설에서 “우리는 평화통일을 위해 최대한의 성의와 노력을 견지하겠지만 무력(武力) 사용 포기를 결코 약속하지 않을 것이며, 모든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하고 “조국의 완전한 통일을 반드시 실현할 것이며, 또한 반드시 실현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특히 작년 8월 중국은 낸시 펠로시(Nancy Pelosi)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臺灣) 방문에 항의하기 위해 대만 주변 해·공역에서 미사일 발사를 포함한 대대적인 ‘대만 포위 군사훈련(環台軍演)’을 진행하였는데, 이 훈련은 중국이 대만을 흡수하기 위해 무력으로 대만을 침공하는 모의훈련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작년 2월) 이후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이 높다는 전문가들의 전망이 있었고, 또한 최근 이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이 분출되고 있다. 중국은 과연 대만에 대해 무력통일의 길에 나설까? 최근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에 대한 다양한 담론들이 흘러 나오고 있다. 최근의 대표적인 중국의 대만 침공 시나리오와 작년 8월의 ‘대만 포위 군사훈련’을 고찰하여 양안(兩岸) 긴장과 충돌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을 도출해보고자 한다.


“5~10년 안에 대만 침공 가능성 있어”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2018년 4월 12일 남중국해에서의 해군 훈련을 참관하고 있다. 사진=신화/뉴시스

 

 작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일부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의 다음 차례로 대만이 중국의 침공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해 왔다. 특히 작년 8월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이후 미국과 대만을 중심으로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에 대한 담론들이 분출되었다.

윌리엄 번스(William J. Burns) 미국 CIA 국장은 작년 10월 3일 CBS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시진핑 주석이 중국군에게 2027년이 지나가기 전에 대만을 성공적으로 공격할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202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양안 간 분쟁이 발생할 위험이 커진다는 게 현실이다”라고 밝혔다.

마이클 길데이(Michael M. Gilday) 미국 해군참모총장은 작년 10월 19일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Atlantic Council)’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이르면 올해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하고 “이는 단순히 시진핑의 말뿐만 아니라 중국인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무엇을 하느냐에 근거한다”라고 밝혔다.

미국 공군기동사령관 마이크 미니한(Mike Minihan) 대장은 올해 1월 “미국과 중국이 향후 2년 내에 대만을 두고 싸울 것”이라고 말하고 “미국과 대만 모두 2024년에 대통령 선거를 치르기 때문에 중국이 이 국면을 이용해 도발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전망했다.

쑤치(蘇起) 전 대만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비서장은 작년 10월 6일 타이베이(臺北) 안보포럼에서 “향후 5~10년은 미군 변혁기로서, 중국에는 대만을 침공할 좋은 기회이며, 따라서 중국이 5~10년 안에 대만을 침공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그래서 중국에 전쟁을 일으킬 기회나 핑계를 주지 않는 것이 전쟁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밝혔다.

천밍퉁(陳明通) 대만 국가안전국장은 작년 10월 20일 국회에서 최근 외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중국의 대만 공격 시기와 관련하여 “과거 중국의 군사 준비 완료 시기가 2027년이라고 했지만 2025년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2023년에도 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하고 “현재 많은 일이 순식간에 변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또한 그는 “2023년에는 ‘전쟁과의 협상을 강요당할(以戰逼談)’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러한 미국과 대만 고위 인사들의 발언은 대만에 대한 침공 가능성을 앞세워 중국을 압박하는 여론전으로도 볼 수 있다. 즉 국제사회를 향해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제기함으로써 중국의 대만에 대한 군사행동을 경고하고, 견제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현재 대만해협 긴장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대만의 집권 민진당이 대만 독립 입장을 견지하고 있고, 또한 외세와 결탁하여 끊임없이 도발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대만과 서방(미국)에 모든 책임을 전가함으로써 무력통일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반국가분열법’상 대만 침공 조건

2005년 중국이 제정한 ‘반국가분열법(反分裂國家法)’ 제8조는 “‘대만 독립’ 세력이 어떠한 방식이나 명목으로 ①대만을 중국에서 분리시키려 하거나, 또는 ②대만을 중국에서 분리시키려는 중대한 사건이 발생하거나, 또는 ③평화통일의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질 경우, 정부는 ‘비평화적인 조치’와 기타 필요한 조치를 동원하여 국가 주권과 영토 보전을 수호할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중국은 무력으로 대만을 통일하는 세 가지 상황을 법률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대만에 대한 무력통일을 감행하는 첫 번째 상황은 어떤 명분이나 어떤 방식으로든 대만이 중국에서 분리되어 나가는 경우이다. ‘대만이 중국에서 분리되어 나가는 경우’는 ①대만 당국에 의한 독립 선언 ②‘대만 독립’에 대한 국민투표 실시 ③미국의 대만에 대한 외교적 승인 등이다. 독립을 향한 대만의 어떠한 움직임도 중국 입장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레드라인(red line)인 것이다.

 무력통일을 촉발하는 두 번째 상황은 대만을 중국에서 분리시키려는 중대한 사건이 발생하는 것이다. 현재 상황에서는 ①대만의 대륙에 대한 군사적 공격 ②대만 내 대규모 폭동 발생 ③대만의 핵무기 개발 재개 ④대만 내 외국군 배치 등을 들 수 있다. 이 중 ④항은 미국 군함의 대만 기항, 대만을 미군 항공기 이착륙 및 보급기지로 사용, 미국 미사일방어체계(MD) 대만 배치, 대만에 대한 공격성 무기 판매 또는 임대, 미국 핵무기의 대만 재배치 등을 포함한다.

중국에 의한 대만 무력통일의 세 번째 상황은 ‘평화통일 가능성의 완전 상실’이다. 즉 평화통일에 대한 희망이 전혀 없을 때, 중국은 무력으로 대만을 통일하겠다는 것이다. 평화통일 실현이 대만의 선택에 달려 있다면, 첫 번째와 두 번째 무력통일 촉발 조건 외에, 언제 대만을 무력으로 통일할지는 대륙의 결심에 달려 있다. 대만으로서는 용인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이것은 현실이다. 즉 평화통일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만이 지속적으로 평화통일을 지연시킬 경우, 이는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평화통일 가능성의 완전 상실’ 범주에 속하는 것이므로 중국은 언제든지 무력으로 대만을 통일하러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T-데이: 대만전투

최근 다양한 출처에서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를 가정한 시나리오가 제시되고 있는데, 여기서 두 가지의 대표적인 시나리오를 살펴보자.

첫째, 로이터 통신은 2021년 11월 5일 보고서를 통해 대만·미국·호주·일본의 군사전략가 12명, 전·현직 장교 15명과의 인터뷰와 관련 보고서 등을 토대로 중국이 대만을 무력 침공하는 상황을 6단계로 제시했다.

1단계는 중국이 대만 주변 영해와 영공을 침범하고, 준설선 등을 동원하여 통신 케이블을 훼손하는 등 ‘회색지대(gray zone)’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다.

2단계는 중국이 본토 푸젠성(福建省) 해안에서 9km 떨어진 대만의 마쭈다오(馬祖島)를 점령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어 중국은 푸젠성 샤먼(廈門)에서 남쪽으로 6km 떨어진 진먼다오(金門島)를 점령한다. 중국은 대만에 통일을 위한 협상을 요구하지만 대만은 이를 거절한다.

3단계에서는 미국과 일본이 대만 지원 준비에 나서고 중국은 대만 주변 해역에 허가받지 않은 비행기나 선박이 진입하는 것을 통제한다.

4단계에서는 중국이 대만을 고립시키기 위해 대만을 완전히 봉쇄한다. 이에 미국은 일본·괌·호주 등에서 폭격기와 잠수함 등을 출동시켜 봉쇄망 격파에 나서지만 실패하고 중국은 주일 미군기지에 대한 공격을 시작한다.

5단계에서는 중국이 대만 주요 전략 및 기반 시설에 대한 미사일 공격에 나선다. 대만도 전투기 및 장거리 탄도·순항 미사일로 중국 본토의 공군기지와 미사일기지를 공습한다. 대만은 대규모 피해가 발생하지만, 중국의 통일 협상 요구에 여전히 반대한다.

6단계에서는 중국이 미국 등 동맹국 전력(戰力)이 도착하기 전에 대만을 점령하기 위해 대규모 상륙 및 공수부대를 투입한다. 또한 중국은 주일미군 및 괌기지의 지원을 차단하기 위한 공격을 실시하고, 한편 미국·일본·호주는 중국 본토를 공격하는 등 결국 중국의 마쭈다오 침공 이후 순식간에 동아시아는 전쟁터로 변한다.

이 시나리오에서 중국은 미국의 지원 전력 차단을 위해 속전속결(速戰速決) 전략을 채택했으며, 전쟁의 승패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지 않았다. 로이터는 “만약 중국이 이길 경우 한국과 일본의 안보력이 악화되고 중국은 아시아에서 전략적 위치가 높아지겠지만 미국 등 동맹국의 개입으로 중국군도 막대한 손실을 입어 당의 장악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전망했다.

CSIS의 워게임

둘째,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올해 1월 9일 2026년 중국의 대만 침공을 가정한 워게임 보고서 <다음 전쟁의 첫 번째 전투(The First Battle of the Next War)>를 발표했는데, 이 시나리오에 따른 중국의 대만 침공 과정은 다음과 같다.

중국은 대대적인 폭격을 통해 대만의 해군력과 공군력을 무력화(無力化)시키면서 전쟁의 서막을 열었고, 이후 중국 해군은 강력한 로켓군의 지원과 함께 대만을 봉쇄하고 선박과 항공기의 대만 접근을 금지했다. 이어서 수만 명의 중국인민해방군이 수륙양용 전차와 민간 로로선[Ro/Ro(Roll-on & Roll-off) Vessel, 화물을 적재한 트럭·트레일러를 수송하는 화물선]을 이용해 대만 상륙을 시도하는 동안, 중국의 폭격이 이어지고 중국인민해방군 공정(空挺)부대는 대만의 해안 교두보에 낙하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결국 중국의 침공은 실패하고 만다. 왜냐하면 중국의 폭격에도 대만 지상군이 해안 교두보로 신속히 이동하고 일본 자위대의 지원을 받는 미국 잠수함, 폭격기, 전투기가 중국의 수륙양용 부대를 궤멸시키기 때문이다. 중국이 일본의 미군기지를 공격하고 미국 함대를 공격하지만, 결과를 바꾸지는 못했다.

이 시나리오에서 중국인민해방군 37개 대대 병력이 대만에 상륙하지만, 대만 해안 집결에 성공하는 전력은 30개 대대, 약 3만 명이며, 이들은 대만 전체 면적(약 3만6000㎢)의 약 7%인 2600㎢에 달하는 해안 교두보를 장악하지만, 대만 지상군의 저항과 미국 공군의 공습으로 빠르게 패퇴하였고 전쟁은 14일 만에 종료되었다.

CSIS 워게임의 결과, 미국·대만·일본은 중국의 전면적인 침공을 물리치고 대만의 자유를 지켰지만, 막대한 피해 또한 입었다.

미국은 2척의 항공모함과 10여 척의 전함, 수백 대의 전투기를 잃었고, 약 3200명의 전사자가 발생했으며 괌 앤더슨 공군기지가 초토화되었다. 일본은 주일 미군기지가 중국의 공격을 받으면서 100대가 넘는 전투기가 파괴당하고 26척의 전함이 침몰했다. 중국은 138척의 전함이 파괴되면서 전 세계 최대 규모의 해군이 ‘난장판(shambles)’이 되었으며, 또한 155대의 전투기가 파괴되고 약 1만 명의 전사자가 발생하였다.

대만은 사상자 수가 약 3500명에 이르고, 구축함과 호위함 26척이 모두 격침되었다. 비록 대만군이 붕괴되지는 않았지만 심각한 전력 저하가 불가피하고, 대만 경제는 전력(電力)·기초 서비스도 없어지는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미국과 일본의 전투기 손실이 중국보다 많은 것은 중국이 오키나와 가데나 공군기지 등 일본에 있는 미군기지를 공습하면서 전투기들이 상당수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기본 시나리오에서 미 공군은 중국 본토에 있는 공군기지를 공격하지 않았는데, 이는 핵(核) 강대국 간 확전(擴戰) 가능성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서였다.

‘우크라이나 모델’ 적용 못 해

▲작년 8월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이후 중국은 대만 주변 해역을 봉쇄하고 미사일 훈련을 실시했다. 사진=신화/뉴시스

 

이처럼 미국·대만·일본은 중국의 전통적인 수륙양용 침공을 물리치고 대만을 지켜냈으나, 너무 많은 비용이 소모되었다. 미국과 동맹국들은 수십 척의 배와 수백 대의 항공기, 그리고 수천 명의 병력 손실을 입었고, 대만은 경제가 황폐해졌으며, 미국은 수년간 미국의 세계적인 위치를 손상시킬 정도로 피해를 입는다. 중국 또한 큰 손실을 입었고, 대만을 점령하지 못하면 중국공산당의 통치 자체가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CSIS의 워게임에서는 우크라이나와 대만의 상황을 비교하였다. 즉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우크라이나 모델’은 대만에 적용되지 않았다. 이는 중국의 대만 침공 이후 미군이 직접 교전(交戰)한다는 의미이며, 우크라이나의 경우처럼 실질적인 파병(派兵) 없이 무기 지원만으로는 대만을 방어할 수 없다는 뜻이다.

개전 후 서쪽의 육로를 통해 서방의 군수품과 인도적 구호품을 지원받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섬나라’ 대만은 지리적 여건이 완전히 상이하다. 중국의 기본전략이 전투함·잠수함·미사일·공군을 동원하여 대만을 포위 및 봉쇄하는 것이어서, 중국의 대만 공격 개시 이후 미국과 동맹국이 대만에 병력이나 보급품을 추가로 지원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중국의 대만 침공이 발생하면 미국과 일본은 지체 없이 대만에 전투 병력을 파견해야 한다.

CSIS의 워게임에서는 한반도와 관련해 ‘한국’이란 단어가 18번 언급되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국이 대만 침공 시 미군의 전력 분산을 위해 북한을 사주(使嗾)하여 군사적 도발을 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북한은 러시아·이란과 함께 미군의 전력이 분산된 틈을 이용하여 공격 행동을 취할 수 있다.

중국이 대만 침공에 성공할 경우 미국은 한국과 일본을 방어하는 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것이며, 대만해협 충돌 시 “한국은 중립 표명 또는 비공식 지원을 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워게임에서 주한 미 공군의 4개 비행대 중 2개 비행대가 오키나와로 이동하여 대만 전선에 투입되었는데, 미 공군은 유럽·한국·일본 북부에 강화격납고(HAS·Hardened Aircraft Shelter) 1000여 개를 만들었으나, 오키나와는 중국의 탄도미사일 대응에 역부족이었다.

 

‘회색지대 전략’ 가능성 높아

한편, 중국 내 전문가들은 “CSIS의 워게임은 단지 ‘탁상 위의 승리’일 뿐이며, 중국이 조국통일의 위대한 사업을 시간표대로 차근차근 추진한다면 이러한 ‘귀매기량(鬼魅伎倆·몰래 남을 해치는 비열한 수단)’은 결국 역사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이런 터무니없는 분석 보고서는 논리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저 대만을 향해 ‘대만해협에서 반드시 전쟁이 일어난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우리 보고서의 결론대로 너희는 비참해진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이 보고서가 미국 측이 양안 관계에 불을 지르기 위해 내놓은 것이라고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다”라고 비판했다.

결론적으로 CSIS는 중국의 대만 침공을 방어하는 것은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에 미국·대만·일본은 중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만을 목표로 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으며,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못하도록 억지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중국의 대만 침공이 불가피한 결과는 아니며 중국이 대만의 외교적 고립을 추진하거나 비전시 상황에서 긴장을 조성하는 ‘회색지대 전략(gray zone strategy)’ 또는 ‘경제적 강압(economic coercion) 전략’을 사용할 수 있다고 예상하고, 만약 중국이 무력수단을 채택하더라도 직접적인 침공보다는 봉쇄 전략을 선택할 가능성이 더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면봉쇄 전략

▲중국인민해방군 동부전구의 6개 군사훈련 구역과 발사한 미사일의 탄도(작년 8월 4일~7일). *자료출처 : https://focustaiwan.tw/cross·strait/202208030018, https://focustaiwan.tw/cross·strait/202208050005 

 

중국은 대만을 굴복시키기 위해 전면전(全面戰) 대신 군함과 잠수함, 군용기, 미사일 등을 동원하여 대만 항구와 영공에 대한 전면봉쇄 전략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이 대만에 대한 전면봉쇄에 나설 경우 지대공미사일로 적국의 군용기를 격추하려 할 것이며, 심지어 미군의 괌기지나 주일 미군기지에서 발진하는 군용기를 대상으로 공격을 가하는 상황도 예상된다.

중국은 전면봉쇄 전략을 선택할 경우 대만 국민과 세계인 사이에 불안감을 조성하기 위해 선전전, 거짓 정보 유포, 사이버전 등의 방법도 동원할 것이다. 설사 심지어 제한된 봉쇄라 할지라도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무역 항로를 위협할 수 있어서 중국이 대만에 대한 봉쇄 전략을 택할 경우 대만 경제와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특히 대만은 에너지와 식량의 해외 의존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중국의 봉쇄 전략은 대만 경제에 파국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중국이 상호 ‘궤멸적 피해’가 예상되는 무력 침공보다 전면봉쇄 전략을 취할 가능성이 높은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작년 8월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후 중국이 대대적으로 실시했던 ‘대만 포위 군사훈련’과 같은 조치가 향후 중국이 대만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당시 중국인민해방군 동부전구(東部戰區)는 대만을 포위하는 형태로 설정한 6개 구역의 해·공역에서 대규모 군사훈련과 미사일을 포함한 실탄사격을 진행하였다.

이 ‘대만 포위 군사훈련’은 중국이 대만을 통일하기 위해 무력으로 대만을 침공하는 모의훈련이었으며, 육·해·공·로켓군을 동원한 ‘대만 침공’을 숙달하는 실병·실탄·실전 훈련이었다.

또한 중국은 이 훈련에서 전례 없이 대만과의 초근접 지역에서 대만 통일전쟁의 실전 능력을 키웠으며, 외부 세력의 전력 지원과 퇴로를 효율적으로 전면 차단하는 능력을 숙달했다. ‘대만 포위 군사훈련’은 실질적인 ‘중국의 대만 침공 시나리오’ 중 하나로서, 명백히 ‘대만 봉쇄’에 그 목적이 있었다.


주한미군 참전 가능성 높아

중국과 대만은 1949년 분리 이후 긴장과 화해가 반복되어 왔고, 최근에는 긴장 요소가 더 지배적이다. 미·중 간의 군사적 대립은 아직 이에 대비하는 협정이나 메커니즘이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우발적 충돌이 전면적 충돌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 대만은 중국이 무력을 사용하지 않도록 하는 수준에서 국제사회에서 대만의 지위를 제고(提高)시키려고 할 것이며,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우면서 그러한 움직임을 차단하기 위해 최근 ‘대만 포위 군사훈련’과 같은 강경한 대응에 나서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은 언제든지 대만해협의 상황을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대만해협의 긴장과 충돌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첫째, 미국이 중국의 대만에 대한 군사적 공세를 억제하는 움직임에 한국, 그리고 주한미군의 참여를 요청할 수 있다. 만약 이러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면 우리도 중국과 군사적으로 대립하는 상황에 빨려들 수 있다. 과거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한 논란이 가능성의 차원에서 논의되었다면 이제는 현실 문제가 되는 셈이다. 폴 라캐머라(Paul Joseph LaCamera) 주한미군 사령관은 2021년 5월 “인도·태평양사령부의 우발 계획과 작전 계획에 주한미군의 능력을 포함시키는 것을 옹호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는 대만해협에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거나 실제 충돌 발생 시 주한미군을 투입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 도발 가능성 높아져

둘째, 북한이 군사적 행동반경을 넓힐 수 있다. 과거 6자회담이 진행되던 시기 미국과 중국이 대만에서의 이익과 북한에서의 이익을 서로 교환하는 방식으로 협력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 바 있었다. 그 당시에도 가능성이 높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그러한 가능성이 더 낮아졌다. 중국도 미국과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경우 북한이 군사적으로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용인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동북아 정세가 당분간은 더 갈등적 방향으로 전개되고 이에 따라 한국의 안보 리스크도 더 커지게 될 것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대만해협의 긴장고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결국 대만해협의 긴장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을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 외에도 대만해협 상황은 또 다른 측면에서 우리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원유(原油)의 90%가 믈라카해협을 거쳐 대만 동부 해역을 통과하여 들어오고 있는데, 만약 이 해상교통로가 위협을 받거나 봉쇄된다면 우리의 경제 안보, 에너지 안보는 치명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실례로, 작년 8월의 ‘대만 포위 군사훈련’ 기간 중 100여 편에 달하는 동남아행 우리 국적 항공기가 항로를 변경 및 우회함으로써 비행시간이 연장되거나 항공기 출발이 1~2시간 이상 지연된 사례가 있다.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질서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대만해협 위기는 한반도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이슈이다. 과거 한국전쟁 시기 미국이 중국의 대만 침공을 저지하기 위해 제7함대를 파견하여 대만해협을 봉쇄한 전례가 있다. 대만해협은 한반도와의 지리적 인접성뿐만 아니라 미·중 간 군사적 전략 경쟁 및 충돌 가능성으로 인해 한국 안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요소이다.

더욱이 최근 북한이 핵 무력 법제화를 선포하고 핵미사일 통합 능력을 강화시켜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대만해협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대만, 그리고 미국 3자 간의 정치적, 군사적 긴장이 격화될 경우 이는 한국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역내에서 미·중 전략 경쟁이 가속화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미·러 관계 또한 악화되면서 전 세계 자유주의 대 전체주의 대결 구도도 빠르게 나타나고 있으며, 동북아 및 대만 문제를 중심으로 한·미·일 연대(連帶)에 대항하여 북·중·러 연대도 강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따라서 향후 대만해협 위기 상승에 대비하여 지속적으로 추이를 주시하는 것이 필요하며, 미국을 포함한 주변국들과의 원활한 소통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특히 대만해협 위기 발생 시 가장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될 수 있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논란과 첨단 전략무기 배치 문제 등에 있어서는 매우 신중한 외교적·정책적 접근이 요구된다. 아울러 대만해협 위기관리 대응 매뉴얼 구축뿐만 아니라 신뢰 구축 조치 강화 차원에서 정부 유관부서를 포함한 한·미, 한·중, 한·대만 전문가들 간의 보다 적극적인 교류와 소통도 절실하다.


‘바다 건너 불구경 안 돼’

우리에게 있어 대만해협의 위기는 결코 ‘바다 건너 불구경’이 아니다. 미·중 전략 경쟁 격화와 북·중·러 관계 밀착 속에서 북핵 문제는 그 해결 가능성이 더욱 멀어지고 있다. 최근 김정은의 행태를 볼 때 한반도에서 예기치 않은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이라는 대전제 아래 경제력 10위권, 군사력 6위권의 ‘중추적 중견국(a pivotal middle power)’ 입지에서 현명한 외교 역량을 발휘해 한반도 주변의 다양한 도전과 위기에 대응해나가야 할 것이다.

끝으로, 최근 우리나라를 포함한 국제사회가 대만에 대해 무력 사용 가능성을 시사하는 중국에 대항하여 ‘힘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 반대(oppose any unilateral attempt involving force to change the status quo)’ 입장을 일관되게 주장하는 이유를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07-11 자유진영 중심축 부상한 나토와 ‘파트너십’ 의미 크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엔 중심 국제질서의 틀이 바뀌고 있다. 안전보장이사회 거부권을 가진 상임이사국이 침략 전쟁(러시아)에 나서고, 독재를 강화(중국)하면서 안보리는 무력화됐다. 반면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온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동맹군 30만 명 동원 체제를 갖추는 등 자유 진영의 중심축으로 급부상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후 핀란드와 스웨덴은 중립을 청산하고 나토 가입을 결정, 회원국이 32개로 불어난다. 일본에 연락사무소 추진 등 아시아태평양으로 확장도 진행 중이다. 한국과 일본, 호주, 뉴질랜드는 아태 파트너국(AP4)으로서 지난해에 이어 11∼12일 리투아니아 빌뉴스 정상회의에도 초청국으로 참석한다.

이런 대전환기에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과 과학기술, 대테러, 사이버 안보, 신흥 기술 등 11개 분야의 한·나토 ‘맞춤형 파트너십 프로그램(ITPP)’을 체결하는 것은 의미가 크다. 양자동맹인 한미동맹에 이어 자유 진영의 최대 안보기구인 나토와 전방위 협력 관계를 맺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핵을 노골적으로 비호하는 상황에서 자유 진영과의 공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차관급 회의체로 운영된 AP4를 신흥 안보 협력 체제로 격상하는 것도 시의적절하다.

나토가 한국 등 아시아의 핵심 자유민주주의 국가와 연대를 강화하는 것은 중국의 패권주의에 대한 견제 성격도 있다. 나토는 지난해 6월 마드리드 정상회의 때 향후 10년 전략을 제시한 신전략 개념 문서에서 러시아를 중대 위협으로 규정하면서 중국을 “구조적 도전이자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한 바 있다. 중국이 대만해협 등에서 현상 변경을 추구할 경우 나토가 군사적 관여에 나설 수 있다는 뜻이다. 북한의 핵 위협 대응과 함께 중국의 시진핑 독재를 견제해야 하는 우리나라엔 나토의 이 같은 영역 확대가 긴요하다. 안보리가 형해화하고, 유엔이 무기력해진 상황에서, 자유민주주의 가치와 보편적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견지하기 위해선 동맹을 기반으로 자유 진영 중심축인 나토와의 협력은 국익과 안보를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다.

문화일보 사설

 
 

07-11 나토·AP4와 ‘자유주의 블록’ 박차… 尹 ‘新글로벌 안보’ 구체화

▲EU상임의장 부부와 나토 정상회의 참석차 리투아니아를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0일 빌뉴스 시가지를 산책하던 중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상임의장 부부와 만나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 ITPP로 협력관계 격상

나토와 협력분야 구체적 명시
러·중 권위주의 국가에 대응

인·태 파트너국들과 정상회담
새로운 아시아 안보체제 추진

▲김윤희 기자 worm@munhwa.com

윤석열 대통령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안보 협력 격상에 들어가고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등 아시아·태평양 4개국(AP4) 간에는 신흥 안보 공동 협력 체제 구축에 나서는 등 ‘윤석열 신외교’의 밑그림을 구체화하고 있다. 북미와 유럽 자유주의 진영의 집단 방위 체제인 나토와의 연대를 강화하는 동아시아 아태지역에서 공동 안보 공조를 모색해 북한·중국·러시아 등 권위주의 블록의 위협에 대응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윤 대통령과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11일(현지시간)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만나 11개 분야 협력 프로그램을 채택할 예정이다. 나토는 그동안 AP4 국가들과 개별 파트너십 협력 프로그램(IPCP)을 유지해왔는데 이번 정상회의를 계기로 이를 국가별 적합 파트너십 프로그램(ITPP)으로 전환하고 있다. 기존 프로그램이 포괄적인 협력 방침을 밝힌 데 반해 새로운 ITPP는 구체적인 협력 분야를 명시해 한층 강화된 협력 프로그램으로 통한다. 윤 대통령은 스톨텐베르그 총장 면담에서 미국을 비롯한 나토 동맹국 간 정보 공유 확대에 기여하는 방안도 논의할 예정이다.

윤 대통령은 나토 정상회의 기간 AP4들과 정상회담을 주재한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대한민국을 포함한 아태 지역 국가들과 나토 간의 협력 강화는 대서양 안보와 인도·태평양 안보가 서로 긴밀히 연계돼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토가 북미와 유럽 국가들이 대서양 중심의 지리적 틀을 깨고 중국·러시아·북한 등 최대 안보 위기가 대두한 인태 지역으로 그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촉구로 읽힌다. 이는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나토의 달라진 전략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나토는 지난해 새로운 전략개념을 채택하고 러시아를 ‘잠재적 전략 파트너’에서 ‘가장 크고 직접적인 위협’으로, 중국은 ‘구조적인 도전’으로 처음 명시했다. 김 수석은 “대통령은 북한의 불법 행위에 대한 국제사회의 단호하고 단합된 공조를 강조할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네덜란드·노르웨이 등 5개 이상 국가 정상들과의 양자회담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아직 세계박람회 개최국을 결정하지 않은 나라를 대상으로 양자회담에 집중하고 31개 나토 회원국과 3개 파트너 국가들을 포함한 40여 개국 정상을 일일이 만나 부산 엑스포 지지를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기타나스 나우세다 리투아니아 대통령이 주최하는 나토 동맹국·파트너국 대상 만찬에 참석한다.


■ 용어설명

ITPP(국가별 적합 파트너십 프로그램) = 영어로는 Individually Tailored Partnership Program. 나토와 각 국가 간 기존 ‘포괄적 파트너십’에서 구체적인 협력 분야를 명시해 제도화한 발전된 파트너십.

문화일보

 

07-13 시진핑 “더 높은 개방 경제” 선회…中 실질 변화 주시할 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1일 전면개혁심의위원회 회의에서 “복잡하고 어려운 국제 정세에 직면해 있다”며 “보다 높은 수준의 개방경제를 위해 새로운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에도 ‘수준 높은 개방’ 등을 언급한 적 있지만, 코로나 이후 경제 활동 재개(리오프닝)에도 더블딥 우려가 커지는 와중에 더 구체적으로 언급했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 일단 미·중 공급망 경쟁에서 밀리면서 외국 자본의 탈출을 무마하려는 제스처로 보인다. 근원적으로는 반간첩법 시행, 희토류 수출 통제, 마이크론 반도체 제재 등 정면 대결 전략에서 무역 및 투자 확대라는 ‘제2의 개방’으로 선회하는 신호로도 분석된다.

중국의 진의는 더 두고 봐야 분명해지겠지만, 중국 국내 경제 상황이 심각한 것은 사실이다. 6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0%, 생산자물가지수는 -5.4%로 곤두박질해 디플레이션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성장 엔진인 5월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7.5% 감소했고, 설비투자 지표인 고정자산투자 증가율도 5월까지 4.0%로 지난해 1∼4월 4.7%보다 떨어졌다. 5월 청년실업률은 사상 최고인 20.8%까지 치솟았다. 제로 코로나 해제 특수는 빠르게 증발해 버렸고, 이중침체(Double dip)·적자(Deficit)·부채(Debt) 등 온통 ‘D’로 시작할 만큼 총체적 난국이다.

런민은행은 성장률 5% 달성이 위태로워지자 지난달 20일 기준금리를 0.1%포인트 낮추는 ‘나홀로 인하’에 나섰다. 중국 부동산 시장도 2위 건설업체 헝다 파산에 이어 인구절벽과 외국인 엑소더스로 불안한 상황이지만, 지방정부의 막대한 부채 때문에 부동산 부양책을 꺼내기 힘들다. 수출 확대와 투자 유치 외에는 탈출구를 찾기 어렵다.

중국의 이런 자구책은 한국에는 기회다. 1989년 톈안먼 사태로 국제 제재를 받았을 때 중국은 한국과 수교를 통해 숨통을 튼 적이 있다. 통상 보복 등 한국 때리기를 중단하는 실질적 행동으로 이어질지 예의주시하면서,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새로운 대중 전략을 고민해야 할 때다.

문화일보 사설

 
 

07-14 자유진영 최전선 韓-폴란드-우크라 전방위 협력 당위성

한국과 폴란드는 최강대국들 사이의 나라라는 지정학적 유사성을 갖고 있다. 실제로 두 나라 모두 강대국에 의한 국권 침탈을 당한 적이 있고, 공산 세력에 맞서 싸운 결과로 오늘의 자유와 번영을 일궈냈다. 이런 점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이 13일 정상회담에서 ‘최적의 협력 파트너’임을 확인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윤 대통령은 공동 언론발표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자유, 인권, 법치에 대한 도전”이라면서 “한국과 폴란드가 우크라이나 재건에 있어서 최적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데 공감했다”고 밝혔다. 두다 대통령도 “한국은 아시아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라고 선언했다.

두 나라는 지금도 자유 진영의 최전선에 서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의 시진핑 독재 강화,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21세기 신냉전 기류가 짙어지면서 두 나라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두 나라의 협력이 경제와 외교 차원을 넘어 글로벌 자유민주주의 수호라는 세계사적 대의를 갖는 이유다. 특히 아시아·유럽 최전선의 두 나라가 권위주의 독재국의 침공에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를 돕고, 재건을 위해 손을 맞잡는 것은 당연한 책무다.

폴란드는 지난해 우리나라 방산 수출(173억 달러)의 71.6%를 수입했을 정도로 한국 무기 도입에 적극적이라는 점에서 방산 수출 확대와 원전 수주에도 정상회담 효과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지원 허브라는 점에서 1조 달러 이상으로 추정되는 21세기판 마셜플랜으로 불리는 재건 사업도 중심적 역할을 할 나라다. 특히, 우크라이나는 한강의 기적을 교과서에까지 넣으며 한국을 배우려고 한다. 한국-폴란드-우크라이나 협력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게 하는 배경이다.

우크라이나 지원은, 전체주의 독재국 러시아에는 미래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자 핵과 미사일로 한국을 협박하는 북한 김정은과 시진핑 대만 위협에 대한 경고도 된다. 폴란드와의 협력 확대,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방위 지원과 재건 참여는 국익에 부합하는 것은 물론 글로벌 자유연대를 강화하고 글로벌 중추국(GPS)으로 가는 길이다.

문화일보 사설

 
 

07.17 우크라이나 자유 지키는 국제 연대에 우리도 힘 보태야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성소피아 성당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손을 맞잡고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우크라이나의 안보·재건 지원을 위한 평화 연대 이니셔티브를 추진하기로 했다. 과거 박정희·노무현 전 대통령이 해외의 우리 파병부대를 방문한 적은 있지만, 파병지가 아닌 해외 전시 지역을 방문한 것은 처음이다.

 

윤 대통령은 “러시아의 불법 침략으로 인해 무고하게 희생된 우크라이나 시민들과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우크라이나 젊은이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생즉사(生則死) 사즉생(死則生)’의 정신으로 강력하게 연대해 함께 싸워나간다면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고 했다. 이를 위해 군수 물자와 1억5000만달러의 인도적 지원, 각종 재건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한국의 지원에 사의를 표하며 “우크라이나 회복 센터 건설에 참여해 달라”고 했다.

 

러시아의 침략을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73년 전 북한의 6·25 남침으로 나라가 존립 위기에 빠지고 온 국토가 초토화됐던 한국과 다르지 않다. 당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미국을 비롯한 16국 청년들이 이름도 잘 몰랐던 나라로 달려와 피를 흘렸다. 195만명이 참전해 3만8000명이 전사하고 10만3000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이미 지도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선 한국은 세계 경제 10위권의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 거듭났다.

우크라이나는 지금 ‘한강의 기적’을 교과서에 넣고 한국을 배우려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드니프로 강의 기적’이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며 고통받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위로하고 격려했다.

야권에선 “러시아를 적대국 만들 거냐” “전쟁의 불씨를 한반도로 불러 올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러시아와 안보·경제적 이해관계를 감안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6·25 참화를 겪은 우리가 우크라이나의 고통을 외면한다면 자유·민주의 가치를 표방하는 중추 국가로서 책무를 저버리는 일이다. 지금 G7과 나토 국가들은 모두 우크라이나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고 재건하기 위한 국제 연대에 동참하고 있다. 우리도 여기에 힘을 보태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7-17 尹 당당한 우크라 방문, “전쟁 불씨” 매도한 野 시대착오

윤석열 대통령이 러시아의 침공을 받고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한 것은 시의적절했으며, 역사적·외교적 의미도 크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로 가는 길은 신변 안전을 우려할 정도로 위험하다. 그런데도 전쟁범죄 현장을 직접 찾은 것은, 대한민국이 우크라이나와 끝까지 함께할 것임을 국내외에 과시한 행보다. 6·25전쟁 이후 전후 복구와 재건을 통해 세계 경제 10위권의 국가로 부상한 나라의 정상으로서 당당하게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회담 후 내놓은 공동 언론발표에서 “대한민국은 우크라이나의 자유와 평화·번영을 가꾸는 동반자가 될 것”이라면서 ‘평화 연대 이니셔티브’를 제안했다. 우크라이나에 안보·인도·재건을 포괄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전후 복구를 적극적으로 최대한 돕겠다는 뜻이다. 특히, 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상황이 70년 전 대한민국을 떠올리게 한다”고도 했다. 우리나라가 동맹과 우방국의 도움으로 전후 복구 및 경제 성장을 이룬 노하우를 전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이런 정상외교에 대한 더불어민주당의 반응은, 한때 집권했던 세력인지 의심케 할 정도로 저급하고 시대착오적이다. 권칠승 대변인은 “직접 전쟁터를 방문했으니 의도적으로 러시아를 적대적으로 만든 것”이라고 했다. 유엔도 러시아의 침공을 침략전쟁으로 규탄했는데, 침략국인 러시아에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는 주문과 다름없다. 원내대표를 지낸 김태년 의원은 “전쟁 불씨를 한반도로 끌고 오는 위험천만한 짓”이라고 매도했다. 부당한 침략전쟁을 문명국들이 똘똘 뭉쳐 반대해야 전쟁을 억제할 수 있다는 당연한 논리도 뒤엎는다. 침략의 뼈저린 역사를 경험한 대한민국 국민이 맞는지 의문이다. 주변국을 침공한 러시아와 ‘더러운 평화’라도 유지하기 위해 굽실거려야 한다는 것은, 국제 상식도 역사적 교훈도 모르는 망상일 뿐이다.

문화일보 사설

 
 

07-17 한미 ‘위대한 동행’ 70년과 이승만 혜안

 

이미숙 논설위원

정부수립 이어 北 남침 격퇴 李
한미 상호방위조약도 이끌어
동맹 없으면 전쟁 재발 됐을 것

한미동맹 덕분 亞 공산화 막아
이승만은 英 처칠 같은 지도자
尹 ‘李 결기와 리더십’ 따라야

원로 영화배우 신영균(95) 선생이 땅 4000평을 이승만(1875∼1965) 초대 대통령 기념관 건립용으로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이 전 대통령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분은 건국 대통령일 뿐 아니라 6·25전쟁 때 우리나라를 지킨 분”이라는 말도 했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해방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6·25전쟁, 그리고 전후 폐허 속에서 경제 성장과 민주주의를 일구며 선진국으로 발돋움해온 과정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지켜본 노배우의 체험적 평가라는 점에서 울림이 각별하다.

‘이승만이 없었으면 대한민국도 없다’는 말엔 3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이승만이 없었으면 해방 후 좌파의 집요한 파괴 책동 속에서 1948년 정부 수립이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첫째이고, 그가 없었으면 1950년 김일성의 남침을 물리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둘째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있었기에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승만은 미국이 군사고문단 3000명만 남겨둔 채 1949년 미군을 철수한 탓에 전쟁이 났다고 봤다. 그래서 휴전협정에 앞서 방위조약 협상을 미국에 집요하게 요구했다.

휴전 협상이 한창이던 1953년 6월에도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전망은 불투명했다. 당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은 ‘휴전협정부터 체결하자’는 식이었고, 미 국무부 등도 ‘공산 세력의 재남침 시 참전국들과 강력한 응징 보복을 한다’는 선언 정도로 때우려는 기류가 강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한국을 지킬 수 없다고 본 이승만은 3만 반공포로 석방이란 충격요법까지 동원하며 배수진을 쳤다. 그 덕분에 7·27 휴전협정 체결 후 한미 외교장관이 협상을 시작해 10월 1일 양국 정상이 서명했고 이듬해 11월 상호방위조약이 발효됐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70주년을 기념해 반기문재단과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이 지난 3일 공동 주최한 심포지엄 때 주제 발표자인 제성호 중앙대 교수에게 ‘휴전 후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제 교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1950년대에 공산화됐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미군이 철수하자 1973년 함락된 남베트남, 2021년 아프가니스탄처럼 한국도 김일성 손아귀에 들어갔을 것이란 얘기다. 휴전 이후 1971년 남북대화가 시작될 때까지 20년 가까이 북한의 무력도발은 7800건이 넘고, 안보 불안 상황도 이어졌다. 1968년 1월 청와대 습격을 위해 남파된 김신조 등 무장 공비 일당이 자하문 부근까지 접근했을 정도다.

이승만은 휴전 협상 국면을 한미동맹 체결 모멘텀으로 활용, 6·25 후 한국이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경제·군사 지원을 받으며 한강의 기적으로 나갈 발판을 마련했다. 그런 점에서 그의 1953년 결단은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의 1940년 결의와 닮았다. 처칠이 그해 하늘과 땅, 바다에서 끝까지 아돌프 히틀러와 싸우겠다는 결기로 영국을 살리고, 자유 진영의 승리를 이끈 것처럼, 이승만은 김일성의 재남침을 막기 위한 한미동맹을 1953년 체결함으로써 한국을 살리고 동아시아의 도미노 공산화를 막았다.

이승만은 당시 특별 담화를 통해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우리나라 독립 역사상 가장 귀중한 진전이고, 그 영향이 자손만대에 미칠 것이니 우리가 잘만 해서 합심 합력으로 진전시키면 후대에 영원한 복리를 줄 토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대로 실현됐다. 오는 27일, 6·25 당시 낙동강 전선 최대 요충지였던 경북 칠곡군 다부동 전적지에 이승만 동상이 제막된다. 여기엔 “우리는 남자와 여자, 아이들까지 필요하다면 몽둥이와 돌멩이를 들고서라도 싸울 것”이라는 그의 글귀가 새겨진다. 전쟁이 일어난 날 미국 측에 이런 메시지를 전한 그의 결기가 동맹을 탄생시켰고, 나라를 살렸다.

이제 윤석열 대통령이 바통을 이어받아 동맹의 미래 전략을 짜야 한다. 이를 위해선, 미국을 설득할 충격요법도 불사하면서 오직 국가 수호에 집중했던 이승만의 리더십으로 무장해야 한다. 그래야 한미동맹이 북·중의 위협을 넘어 안보·경제·첨단 테크놀로지·원전·우주 등 전방위에서 협력하는 21세기 글로벌 동맹으로 나아갈 수 있다.

문화일보

 
 

07.18 우크라 방문했다고 “전쟁 불씨 온다”는 민주, 세계에 없는 야당

 윤석열 대통령이 극비리에 키이우를 방문,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와 연대할 뜻을 밝힌 데 대해 민주당이 일제히 한국이 안보 위험에 처하게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 최고위원은 “한반도를 신냉전 중심지로 만들었다”고 했다. 청와대 비서실장 출신 586 인사는 “이념 외교로 국익을 배반했다”, 4성 장군 출신 의원은 “우리 안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했다. 특히 민주당의 전 원내대표는 “전쟁의 불씨를 한반도로 끌고 왔다”고 했다.

민주당 얘기대로면 마치 전 세계에서 윤 대통령만 키이우를 방문했으며 러시아는 보복으로 한국에 곧 선전포고를 할 것 같다. 하지만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침략 전쟁 시작 후, 바이든 미 대통령,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수낙 영국 총리 등 주요 7국(G7)을 비롯한 자유 민주주의 진영 지도자는 한 명도 빠짐없이 키이우를 찾아 우크라이나 국민을 응원했다. 비유럽권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도 지난 3월 방문했으며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두 번이나 키이우행 기차를 탔다. 이 나라들의 야당이, 자국 수반이 전쟁 불씨를 자국으로 가져왔으며 안보 위험에 빠뜨렸다고 주장한 사례는 찾기 어렵다. 녹색당 출신 독일 부총리가 지난 4월 키이우를 방문, 독일 정부의 무기 지원이 오래 걸리고 너무 늦어서 부끄럽다며 당적이 다른 숄츠 총리를 비판한 사례가 눈에 띌 뿐이다. 한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방문했다고 러시아가 한반도에서 보복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민주당 주장은 영화로도 만들 수 없는 황당한 얘기일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7-19 한미 핵협의그룹 첫발, 북핵 억제 ‘실질적’ 협의체 될 수 있나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과 커트 캠벨 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인도·태평양 조정관이 18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미 핵협의그룹(NCG) 출범 회의 관련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 후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스1

 

한미가 지난 4월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핵협의그룹의 첫 회의가 18일 서울에서 열렸다. 이에 맞춰 미국의 전략핵잠수함도 42년 만에 부산에 기항했다. 워싱턴 선언이 실행 단계에 접어드는 모습이다. 핵협의그룹은 미 핵우산 정보를 양측이 공유하고, 핵 전력 운용과 관련한 기획·실행에 한국이 참여하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것이다. 최근 북한 핵·미사일 능력의 고도화로 미 핵우산 공약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한국에서 자체 핵무장 여론이 비등하는 것을 감안한 조치다. 미국의 대북 핵 정책을 결정·실행하는 데 우리 입장이 반영될 여지가 약간 생겼다는 점에서 말뿐인 핵우산에 비하면 분명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실질적 내용은 미흡하다. 나토의 핵 공유 모델을 참고했다지만 비교할 수준이 아니다. 나토식 핵 공유는 미 핵탄두가 나토국 공군 기지에 있는 것이 핵심이다. 또 워싱턴 선언은 한국의 NPT(핵확산금지조약) 회원국 의무를 강조했다. 자체 핵무장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것이다. 자체 핵무장을 하든 하지 않든 ‘가능성’은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그 자체가 억지력이기 때문이다.

한미는 이날 회의에 차관급 인사들을 참석시켰다. 당초 합의했던 차관보급 수준에서 핵 억제에 관한 정무적·전략적 협의가 가능하겠느냐는 회의적 시선을 의식했을 것이다. 하지만 국방장관들이 참여하는 나토 핵기획그룹의 논의 수준과 비교하긴 어렵다.

 

이날 첫 회의에선 ‘일체형 확장 억제’라는 표현을 강조했다. 미국의 핵 작전에 한국이 비핵 전력을 지원하는 개념이다. 하지만 북이 대남 핵 공격을 공언하는 상황에서 이런 정도 조치로 안보를 확보했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북이 핵탄두를 여러 기 싣고 미 본토를 타격하는 ICBM을 완성하면 그들로선 게임 체인저가 된다. 이 순간이 닥치면 상황은 달라진다. 핵협의그룹은 한미가 이런 민감한 얘기까지 기탄 없이 주고받는 채널이 돼야 한다.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계속 요구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7-19 美 “핵탑재 플랫폼 부산에 왔다”… 긴장한 北, 이례적 새벽 도발

▲또 도발 19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시민들이 한·미 NCG 출범 및 미국 전략핵잠수함의 부산 입항에 반발해 북한이 평양 인근 순안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는 TV 뉴스 화면을 쳐다보고 있다. 백동현 기자

  

■ 북, NCG 다음날 탄도미사일 도발

“핵무기탑재 잠수함” 사실상 언급
워싱턴선언 구체화하며 대북경고
美의회는 “2+2 협의체 격상하자”

北, 부산 기항 핵잠수함 노골적 겨냥
비대칭전력 우위 상실 다급함 표출

 

 

정충신 선임기자, 워싱턴=김남석 특파원

북한이 19일 오전 평양 순안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2발을 기습 발사한 것은 전날 해군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한 미군 전략핵잠수함 켄터키함(SSBN-737)을 겨냥한 ‘맞춤형’ 무력시위로 분석된다. 이날 미국은 켄터키함이 미국의 “핵 3축 중 하나”라고 밝혀 사실상 핵탄두를 탑재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날 군사안보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이 오전 3시 30분부터 약 16분 간격으로 발사한 SRBM 2발 사거리는 약 550㎞로 발사 지점인 북한 순안에서 부산까지 직선거리(554㎞·구글 지도 기준)와 정확히 일치한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문화일보와 통화에서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해 “켄터키함을 겨냥해 도발한 것이 명백하다”며 “불시에 기습 타격할 수 있다는 의지를 과시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SSBN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전략폭격기와 함께 미국의 ‘핵전력 3축’ 중 하나로 트라이던트 Ⅱ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20∼24기를 탑재하고 있다. 전일 주한미군도 SSBN-737의 부산 입항 소식을 전하면서 “켄터키함은 SLBM의 발사 플랫폼으로 미국 핵전력의 한 축을 제공한다”고 밝혀 사실상 핵탄두가 탑재해 있음을 시사했다. 미국의 SSBN은 작전 훈련 중에는 거의 예외 없이 핵탄두를 탑재한다. 하마다 야스카즈( 浜田靖一) 일본 방위상은 북한이 발사한 탄도미사일 2발의 최고 고도가 50㎞라고 설명하면서 “변칙 궤도로 비행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번 북한 SRBM 발사는 한·미 정상회담 ‘워싱턴 선언’에 따라 강력한 핵 3축 무기 기반의 새 동맹 패러다임으로 진전하는 한·미 동맹에 초조함과 다급함을 드러낸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한·미 핵협의그룹(NCG) 출범 회의 날에 맞춰 SSBN이 한국에 입항한 것은 미국의 강력한 확장억제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자 동시에 한반도 내 북한의 비대칭전력 우위가 상실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이 북핵과 미사일 위협에 맞서 그동안 B-52H·B-1B 폭격기, 공격핵추진잠수함(SSN), F-22 및 F-35 스텔스 전투기, 핵 추진 항공모함 등에 이어 전략자산 한국 전개의 외연을 SSBN으로까지 확장한 것은 미국 군사외교 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다.

한편 한·미 NCG 첫 회의가 열린 18일 미 상원 외교위원회 공화당 간사인 제임스 리시 의원은 이날 상원에서 논의 중인 국방수권법안(NDAA)에 대한 수정안을 통해 “NCG는 국무·국방장관이 공동으로 이끄는 2+2 구성으로 실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수정안은 NDAA 시행 후 90일 이내에 NCG 구성 및 참여자, 회의 빈도 및 소집요건, 활동범위와 기존 한미안보협의회(SCM)·한미군사위원회(MCM)와의 관계,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등 기존 확장억제 협의체와의 관계 등을 의회에 보고하도록 했다.

문화일보 

 

07.20 히로시마 원폭 위력의 1000배, 부산에 온 미 전략핵잠수함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19일 부산 기지에 입항한 미국의 오하이오급 핵추진 전략핵잠수함(SSBN)인 켄터키함(SSBN-737)에 오르고 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윤 대통령, 부산 기항 켄터키 핵잠수함 둘러봐

북핵 억제 한·미 협력 강화해 국민 불안 해소를

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해군 부산 기지에 정박 중인 미국의 오하이오급 전략핵잠수함(켄터키함·SSBN-737)을 찾았다. 전략핵을 탑재할 수 있는 오하이오급(1만8000t) 잠수함은 전략핵폭격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트라이던트)과 함께 미국의 3대 핵전략 자산이다. 원자력으로 추진하는 오하이오급 잠수함은 기지를 떠나 잠항하면 승조원들의 식량이 떨어질 때까지 작전이 가능하다. 전쟁의 최후 순간까지 은밀하게 살아남아 적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일종의 절대무기다. 더구나 윤 대통령이 방문한 켄터키함은 사거리가 1만2000㎞에 이르는 트라이던트Ⅱ 핵미사일 20~24발을 탑재할 수 있다. 일본 히로시마를 공격한 원자폭탄(리틀보이)보다 최대 1000배 이상의 위력이다.

 

한·미가 그제 북한의 핵억제력 강화 방안을 논의하는 핵협의그룹(NCG) 출범에 맞춰 켄터키함의 한국 기항 사실을 42년 만에 공개하고, 윤 대통령이 직접 전략잠수함에 오른 건 대북 억제력을 과시하려는 의도였다. 미국의 핵우산을 직접 보여줌으로써 국민 불안을 안심시키려는 차원이다. 대북 경고의 메시지도 된다. 한동안 새벽 미사일 발사를 삼갔던 북한이 어제 오전 3시30분 평양 인근에서 부산 기지까지의 거리(550㎞)를 상정해 두 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쏘며 반발한 건 이를 민감하게 여기고 있다는 방증이다.

 

북한이 핵위협을 고조할 때마다 한국의 독자적인 핵 개발 주장과 함께 미국의 전략핵잠수함을 한반도 주변에 상시 또는 순환 배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런 점에서 켄터키함의 한국 기항은 구체적인 핵억제력을 바라는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수단일 수 있다. 일각에선 북한의 반발로 군사적 긴장이 오히려 고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어쩌면 향후 미국이 전략무기의 한반도 전개 비용을 요구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북한의 핵을 이고 살아야 하는 위기에 놓인 우리 입장에서 켄터키함의 출현이 일회성에 그쳐선 안 된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사용하지 못하게 대화하는 게 최선이겠지만, 이를 위해서라도 미국의 든든한 핵우산이 뒷받침돼야 한다. 확장억제력을 위한 한·미 간의 협력이 말이 아닌 행동으로 이어져야 하는 이유다.

 

마침 한·미·일이 다음 달 정상회담을 위해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리고 있다. 일본이 북한에 정상회담을 제안했고, 그제 판문점에서 월북한 주한미군 트래비스 킹 이병의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북·미 간에 직간접적인 접촉 가능성도 있다. 대화를 추진하되 북한 핵위협의 당사국인 한·미·일의 강하고 일치된 목소리와 함께 전략핵잠수함 등 결정적 대응 수단의 준비도 게을리해선 안 되겠다.

중앙일보 사설

 

07-24 친기업 돌변 중국, 달콤한 유혹의 손길

이철호 논설고문

경제 불안에 중국 공산당 돌변
과잉 부채에다 부동산도 위험
떠나는 외국 자본에 유혹 손길

한국의 전략적 부담이 된 중국
40년 만에 다시 유화적인 조짐
한·중 관계 순탄하게 관리해야

중국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 6월 수출 12.4% 감소, 청년 실업률 21.3%, 5분의 1 토막 난 1분기 외국인 직접투자…. 반(反)간첩법에 겁먹은 외국인들은 베이징·상하이 부동산을 처분하고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중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돼지고기 소비마저 줄면서 올 들어 가격이 30% 폭락했다. 디플레이션 공포가 덮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중국은 대수만관(大水漫灌·물을 대량으로 쏟아붓는다)으로 탈출에 성공했다. 중앙정부의 4조 위안(약 800조 원), 지방정부까지 합해 무려 18조 위안(약 3600조 원)을 퍼부었다. 문제는 고스란히 빚으로 남아 지금은 대수만관은 엄두도 내기 힘들다는 점이다. 주특기인 부동산 부양도 쉽지 않다. 부동산·금융 특수법인(LGFV)의 숨겨진 빚이 너무 많아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관이다. LGFV 채권의 평균 이자율은 지난해 3.94%에서 올 상반기 4.39%로 치솟아 불길한 조짐이다. 지방 정부가 부동산 침체로 토지 사용권을 LGFV에 떠넘기고 있지만, 자금줄이 말라 허덕이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도 경제가 흔들리자 정치적 입장을 싹 바꾸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입에서 공동부유(共同富裕·모두가 잘사는 사회)란 구호가 싹 사라졌다. 대신 승풍파랑(乘風破浪·바람 타고 거친 파도를 헤쳐간다)이 등장했다. 공산당 경제공작문건에 ‘자본의 야만적 확장을 억제한다’는 살벌한 표현이 사라지고 ‘빅테크 기업들의 실력 발휘를 적극 지지한다’는 문구가 삽입됐다. ‘제2의 마오쩌둥(毛澤東)’에서 ‘제2의 덩샤오핑(鄧小平)’으로 돌변하면서 국정 지표는 순식간에 반기업에서 친기업으로 바뀌었다. 리창(李强) 총리는 알리바바와 틱톡 간부들을 불러 공개적으로 격려하고 외자기업도 국영기업과 똑같이 대우하겠다고 했다. 달콤한 유혹의 손짓이다.

중국 경제 위기론은 자주 고개를 들었으나 모두 헛물을 켰던 게 사실이다. 조지 소로스는 2015년 중국 거품이 붕괴한다며 위안화 공격을 감행했다가 막대한 손실만 봤다. 여전히 5% 성장을 하는 인구 14억 대국이 세계 어디에 있느냐는 낙관론도 만만찮다. 하지만 이번 ‘피크 차이나’ 경고는 차원이 다르다. 인구 감소와 외국 자본 탈출, 부동산 위기 등 중국에 유리했던 핵심 요소들이 모두 부정적인 쪽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올해는 중국의 성장 둔화로 인해 더 힘들어질 것”이라며 중국발 세계 경제 위기 가능성을 경고했다. 월스트리트저널 중국 특파원 출신의 디니 맥마흔도 ‘빚의 만리장성’에서 이렇게 예언했다. “중국의 성장 기적은 끝났고, 부채의 저주에 직면했다. 다음번 세계 위기는 악성 부채와 과잉 설비의 중국에서 시작될 것이다.”

이미 한국은 중국 경제의 역류로 몸살을 앓고 있다. 중간재 수출이 쪼그라들면서 대중 무역적자가 고착화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 상품과의 경쟁은 치열해졌다. 지난 40여 년간 한국 경제의 전략적 자산이었던 중국은 전략적 부담으로 둔갑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중국의 대외 노선이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4월 시 주석이 예고 없이 LG 광저우 공장을 방문한 데 이어 중국은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과 SK하이닉스 최태원 회장을 콕 찍어 초청했다. 반도체 봉쇄를 벗어나려는 의도다. 중국은 지난 18일 오염처리수 방류에 반발해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사실상 차단하면서, 같은 날 상무부는 일본 기업들에 “반간첩법 오해를 풀기 위해 적극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중국의 두 얼굴이다.

40여 년 전에 비슷한 일이 있었다. 1989년 톈안먼 사태로 국제 제재를 당한 중국은 한국과 수교로 탈출구를 찾았다. 공로명 외무부 장관의 방중 때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은 접견장 밖 현관까지 나와 3분 가까이 머리를 빗으며 공 장관을 기다렸다. 중국은 이번에도 한국에 유화적 입장으로 돌변할 수 있다. 한국 경제는 수출·중국·반도체의 3대 악재를 반드시 풀어야 할 운명이다. 또 생존을 위해 한미동맹을 기본으로 하고, 한·중 관계를 순탄하게 관리하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 숙명적 관계라면 중국이 손을 내밀 경우 어떻게 할지 미리 고민해둘 필요가 있다.

문화일보

 

07-25 한국 · 유엔 참전 22국 연대 상징 ‘아리랑 스카프’ 70년만에 복원

▲국가보훈부는 6·25전쟁 당시 유엔 참전용사들이 고국에 보낸 인기 기념품이었던 ‘아리랑 스카프’가 70년 만에 원형으로 복원됐다고 25일 밝혔다. 사진은 원형 버전 아리랑 스카프(왼쪽)와 리뉴얼 버전 아리랑 스카프. 국가보훈부 제공

 

전사한 클라이드 상병 모친 소장
아들 생각땐 보면서 그리움 달래

6·25전쟁에서 22개국 유엔 참전용사들과 한국군을 하나로 묶은 연대의 상징인 ‘아리랑 스카프’가 70년 만에 복원됐다.

국가보훈부는 25일 “1951년 제작돼 6·25전쟁에 참전한 유엔 참전용사들이 고국의 어머니와 부인에게 보낸 인기 기념품 아리랑 스카프를 70년 만에 원형으로 복원했다”고 밝혔다. 복원한 스카프는 흰 비단에 용 한 마리가 휘감고 있는 한반도 지도와 참전국들 부대 마크 사이에 아리랑 악보와 영어로 번역된 ‘A ARIRANG SONG’ 제목이 새겨 있고 태극기 등 참전국가 국기가 둘러져 있다. 참전용사들이 하나로 뭉쳐 있는 듯한 형상으로 마치 콜라주 작품처럼 보여 미학적 완성도가 높고 1951년 원안 스카프는 전쟁기념관에 전시될 만큼 역사적 가치도 있다. 박민식 보훈부 장관은 “아리랑 스카프는 동맹국의 위대한 연대를 알리는 상징물로 자유의 가치, 연대의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복원했다”고 말했다. 유엔 참전용사들은 나라마다 군가가 달라 전장에서 한국군 전우에게서 배운 아리랑을 함께 흥얼거리며 서로 하나가 돼 연대했다. 미 7사단은 아리랑을 군가로도 채택했다.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아리랑 스카프는 미국 클라이드 부인의 것이다. 부인은 1952년 아들 클라이드 상병이 어머니 건강을 염려하며 편지와 함께 보낸 이 스카프를 결국 돌아오지 못한 아들이 생각날 때마다 손에 쥐고 아리랑 가사를 흥얼거렸다고 한다. ‘2023년 아리랑 스카프’는 기존 원안에 70년 동안 눈부신 발전을 이뤄낸 2023년 대한민국 현재 모습과 22개국 참전국가 국기를 모두 담아 그 의미를 더했다. 6·25전쟁 정전 70주년을 맞아 부산에 모인 22개국 참전국 대표에게 선물할 예정이다.
정충신 선임기자 csjung@munhwa.com

 

07-25 유엔참전용사 초청 감사 조찬

한국을 방문한 6·25전쟁 당시의 유엔 참전용사들이 25일 서울 송파구 신천동 소피텔 앰배서더 호텔에서 열린 ‘정전협정 70주년 기념 유엔 참전용사 초청 감사 조찬’ 행사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cybercoc@munhwa.com

 

07.28 침략자 북·중·러 또 공조, 그때의 대한민국 아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0시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전승절 70돌 경축 대공연'을 방북 중인 중·러 대표단과 함께 관람하고 있다. 왼쪽부터 러시아 대표단장인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 김정은, 중국 대표단장인 리홍중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 /노동신문·뉴스1

 

27일 북한 김정은이 정전(停戰) 70년을 맞아 중국 대표 리훙중 전인대 부위원장, 러시아 대표 쇼이구 국방장관과 함께했다. 리훙중과 쇼이구는 시진핑과 푸틴의 친서를 건넸다. 이 세 나라는 1950년 6월 25일 대한민국을 침략해 국토를 초토화하고 100만명 이상을 살상했다. 기밀 해제된 러시아의 문서들엔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의 한국 침략 모의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 나라들이 사죄와 반성이 아니라 또 모여 ‘전쟁에서 이겼다’며 기념식을 하고 있다. 시대착오적 행태일 뿐만 아니라 피해자인 5100만 한국민을 노골적으로 모독하고 위협하는 행위다.

북·중·러의 속성은 1950년 침략 때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북한은 핵을 개발해 민족을 핵 참화로 몰아넣겠다고 일상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면서도 남의 영토를 뺏겠다며 침략 전쟁을 벌여 수많은 민간인을 살상하고 있다. 뜻대로 되지 않자 핵 위협도 가한다. 중국은 패권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대만 침공을 벼르고 있다. 이제 중국과 러시아는 자기들이 찬성했던 유엔 결의도 무시하면서 북핵을 옹호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뒤 고전 중인 푸틴이 전쟁을 지휘하는 국방장관을 북한에 보낸 것은 부족한 탄약을 북한에서 구하려는 목적일 것이다. 북·러 간 탄약 직거래가 벌어지면 러시아가 유엔 대북 제재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으로 국제사회에 파장이 일어날 것이다. 러시아가 북한에 최신 전투기와 방공 시스템 등을 제공한다면 우리 안보에도 직접적 위협이 된다. 다음 달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리는 한미일 정상 회의는 이런 북·중·러 밀착에 관한 대책을 우선 논의해야 한다.

북·중·러의 속성이 1950년과 달라진 것이 없는 반면, 대한민국은 상전벽해라고 할 정도로 달라졌다. 세계 10위권 국력을 갖춘 글로벌 리더 국가가 됐다. G20 회원국이자 G7에 자주 초청받는다. 유럽에 전투기와 탱크, 자주포, 미사일을 판매하는 세계 6위 군사 강국이다. K팝과 드라마, 영화와 같은 한류는 세계인을 열광시키고 있다. 침략당할 때 총 한 자루는커녕, 연필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하던 나라는 이제 없다. 북·중·러가 어떻게 밀착하든 우리가 내실을 더 키우고 단합하면 대한민국의 번영과 안보는 누구도 흔들 수 없다.

조선일보 사설

 

07.28 “유사시 참전해 돕겠다” 덴마크 뜻 17번 거부한 文정부

“한반도에 문제가 생기면 참전도 불사하며 힘을 보태겠습니다.”

덴마크는 2020년 초 문재인 정부에 ‘유엔사 전력 제공국’에 참여하길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73년 전 덴마크는 6·25가 터지자 전쟁터에 의료진 630명을 보냈다. 정전 후에도 덴마크는 유엔사 회원국으로서 한국에 연락 장교를 파견했다. 한반도 격변의 시대를 함께 보낸 나라다. 이에 북핵 위기가 최근 심각해지자 유사시 참전할 것을 약속하는 ‘유엔사 전력제공국’이 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한국이 “전력 제공국은 6·25 전투 파병국만 가능하다. 덴마크·노르웨이·이탈리아 등은 의료 지원만 하지 않았나?”라며 불가 입장을 전한 것이다. 덴마크는 말문이 막혔다. 두 팔 벌려 환영할 줄 알았는데 문전박대당했기 때문이다. 외교 소식통은 “덴마크가 모멸감을 느끼고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면서 “주한 미군·유엔사 사이에서도 ‘우리가 알던 한국이 맞느냐’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고 했다.

 

덴마크는 혹시나 해서 “그 방침이 맞는 것인지 재확인해달라”는 공문을 국방부에 보냈다. 유엔사는 외교부에 공문을 보냈다. 하지만 국방부·외교부 모두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비무장지대 초소를 철거하고 북한 인민군과 교류 방편을 궁리하던 국방부 대북정책과 등이 이런 방침을 주도했다고 한다.

 

이후 덴마크는 외교 전쟁을 벌이는 수준으로 ‘재검토’ 요청을 했다. 취재해 보니 2020년 5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20개월간 총 17차례 여러 형태로 의사를 전했고, 문 정부는 모두 거절했다. 윤석열 정부로 바뀌고 18번째 요청에서야 덴마크는 전력 제공국이 됐다.

 

▲북한 유엔 대표부 김일철 서기관이 2018년 10월 유엔에서 "유엔사는 괴물 같은 조직"이라며 해체해야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조선일보 DB

 

전직 군 관계자는 “애초 이 문제는 문 정부가 유엔사를 축소하려다 불거진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기존 회원국 17국과 더불어 독일같이 6·25 때 의료 지원은 했지만 아직 회원국이 아닌 나라도 단계를 밟아 전력 제공국에 참여시키려 했다. 유엔사가 건재만 해도 외세가 한반도에 함부로 침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 정부는 전력 제공국을 전투 파병국으로 제한했다. 독일 등 다른 나라가 추가 가입될 싹은 자르고 더 나아가 의료 지원 3국도 제외되도록 한 것이다. 이에 따라 기존 회원국 17국보다도 적은 14국만 전력제공국이 되도록 했다. 북한이 한국을 공격하면 목숨 걸고 돕겠다는 ‘참전 의사국’ 수를 더 늘리려 하기보다 더 줄이려 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당시 국방부 관련자들은 이에 입을 닫고 있다. 대신 한 전역자가 2018년 다음과 같은 제목으로 보도된 기사 링크를 보내줬다. “‘주유엔 북한 대표부 1등 서기관, 유엔사는 괴물이다. 당장 해체’ 주장.” 그러고 보니 2020년 김여정의 ‘대북 전단’ 비난 담화 직후 당시 여당 주도로 전단 살포 금지법이 일사천리로 처리되는 일도 있었다.

조선일보 노석조 기자

 

07.28 美 참전기념비에 30만불 기부한 老해병 “다른 나라도 한국 배워야”

6·25 참전용사 4인 인터뷰

“한국이 이렇게 발전하다니…. 기적을 보게 돼 정말 기쁩니다.”

▲27일 오후 부산 부산진구 롯데호텔부산에서 열린 참전용사 공동 인터뷰에 (왼쪽부터) 로널드 워커, 윌리엄 로버트슨, 리챠드 카터, 도널드 레이드 옹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미국 해병대 병장으로 6·25에 참전했던 도널드 레이드(91)씨는 27일 “참전을 마치고 한국을 떠날 때만 해도 너무 황폐해 미래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레이드씨는 “전 국민이 하나로 뭉쳐서 노력했던 것이 한국이 이처럼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며 “다른 나라들이 많이 보고,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레이드씨는 미 워싱턴 DC의 한국전참전기념비 건립비로 30만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정전 70주년을 맞아 국가보훈부의 초청으로 방한한 6·25전쟁 참전 용사 레이드씨, 리처드 카터(92·영국)씨, 윌리엄 로버트슨(92·캐나다)씨, 로널드 워커(89·호주)씨는 이날 부산 한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전쟁 당시 군복을 입었던 청년들은 이제 흰 머리와 굵은 주름으로 노병의 모습이었지만, 큰 목소리로 또박또박 답하는 등 여전히 건재한 모습이었다.

 

▲정전 70주년을 맞아 방한한 6·25전쟁 참전용사들이 27일 부산의 한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로널드 워커씨, 윌리엄 로버트슨씨, 리처드 카터씨, 도널드 레이드씨. /뉴스1

 

영국 육군 소위로 참전한 카터씨는 이날 전쟁 당시 찍은 다리 사진을 보이며 “한국의 외딴 산에서 이 다리를 지켰다”면서 “중공군이 이 다리를 넘어오지 않을지 순찰하고 망을 보는 것이 임무였다”고 했다. 캐나다 훈련병으로 참전한 로버트슨씨는 이날 부산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전우 윌리엄 월든의 묘지를 찾았다고 했다. 그는 “월든은 낙동강 인근 전투에서 전사했다”면서 “그의 묘지에 양귀비꽃 배지를 올려두고 왔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영미권에서 양귀비는 전사자에 대한 추모의 의미를 지닌다.

 

전쟁에서 자신에게 도움을 줬던 한국인들의 이름을 어렴풋하게 기억하며 이들을 찾고 싶다는 참전 용사도 있었다. 호주 육군 상병으로 참전했던 워커씨는 “정확하진 않지만 김진태와 조적성, 김인송이라는 이름을 가진 세 사람이 전쟁을 치르는 내내 나를 도와줬다”면서 “그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노석조 기자 

 

07.28 “한국은 유엔군 피 묻은 군복 위에 서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 야외극장에서 열린 유엔군 참전의날·정전협정 70주년 기념식에서 유엔 참전용사들을 맞이하고 있다./뉴시스

 

한국과 미국, 유엔 등 국제사회는 27일 6·25전쟁 정전(停戰) 70주년을 맞아 북한 공산 세력의 침략에 맞서 대한민국을 지킨 참전 용사들을 추모하면서 한반도 비핵화 등 세계 평화를 기원했다. 특히 한미 양국 정상은 정전과 더불어 출범한 한미 동맹이 “세계 평화의 핵심축”이라고 했다. 한미 동맹이 한반도와 인도·태평양 지역을 넘어 글로벌 차원의 ‘자유 동맹’으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유엔군 참전·정전 협정’ 70주년 기념식에서 “73년 전 자유 세계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하나의 유엔 깃발 아래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나라,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달려왔다”며 “유엔군 참전 용사는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우리들의 진정한 영웅”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지금도 유지되는 유엔군사령부는 “유엔 역사에서 유일하며, 자유를 위해 연대하겠다는 국제사회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오늘의 대한민국은, 유엔군의 희생과 헌신, 피 묻은 군복 위에 서 있다”며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들과 연대하고, 한미 동맹을 핵심축으로 해 인도·태평양 지역뿐 아니라 전 세계의 자유, 평화, 번영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이날 기념식에는 유엔군 참전 22국 정부 대표단과 참전 용사들이 참석했다.

 

▲27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 야외극장에서 열린 ‘유엔군 참전의 날·정전협정 70주년’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데임 신디 키로 뉴질랜드 총독, 참전국 미래 세대 대표들과 함께 22개 참전국의 국기가 한곳으로 모이는 ‘위대한 약속’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이날 발표한 포고문에서 “한미 동맹은 민주주의와 안보, 자유 등 신념을 공유하는 데서 시작됐다”면서 “오늘 한반도에 함께 있는 수많은 한미 장병은 우리가 공유하는 힘의 원천이며 이들은 한미 동맹이 인도·태평양을 넘어 전 세계의 평화, 안정, 번영의 핵심축이 되도록 유지해준다”고 했다. 안토니우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은 성명에서 “우리의 목표는 한반도의 지속 가능한 평화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라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정전 협정 기념이 화해, 형제애, 항구한 화합의 밝은 미래까지 제시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냈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한반도 평화에 “전 세계의 평화와 안정이 달렸다”고 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방북한 중국·러시아 대표단과 함께 27일 0시에 열린 ‘전승절’ 기념 공연을 관람했다. 이날 밤에 열린 열병식도 참관했다. 김정은은 전날에는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 등 러시아 군사대표단과 함께 무기 전시회를 둘러보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무기를 직접 설명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최경운 기자

 

유엔 노병들 ‘영웅의 길’ 입장... ‘어메이징 아리랑’ 울려퍼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6·25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아 27일 부산 해운대구 부산 영화의 전당 야외극장에서 열린 유엔군 참전의날·정전협정 70주년 기념식에서 유엔 참전용사들의 입장을 맞이하고 있다./뉴스1

 

6·25 정전(停戰) 70주년을 맞은 27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옛 수영비행장)에서 ‘유엔군 참전의 날·정전협정 7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영화의 전당은 73년 전 6·25전쟁에 유엔군 중 최초로 파병된 미군 스미스 특수임무부대가 한국 땅에 도착한 장소다. 이번 행사는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를 함께 수호하고 70년간의 성장에 기여한 참전국과 참전 용사의 헌신에 감사의 뜻을 표하면서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계획됐다고 국가보훈부는 밝혔다. 유엔군 참전 22국 대표단, 참전 용사와 후손, 장병과 학생 등 2600여 명이 참석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유엔군 참전 용사는 인생의 가장 꽃다운 나이에 알지도 못하는 나라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우리들의 진정한 영웅”이라고 말했다.

이날 기념식의 주인공은 참전 용사들이었다. 개식 선언 후 22국 국기와 태극기, 유엔기에 이어 유엔 참전 용사 62명이 의장대 호위를 받으며 입장하는 ‘영웅의 길’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거동이 불편한 참전 용사들이 의장대 부축을 받거나 휠체어와 지팡이를 이용해 입장하자 참석자들은 기립 박수를 보냈다. 노병들은 손을 흔들거나 거수경례로 화답했다. 무대에서 이들을 한 명 한 명 영접한 윤 대통령은 마지막으로 입장한 캐나다 출신 테드 에이디씨를 직접 자리로 안내했다.

 

▲6·25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아 윤석열 대통령과 데임 신디 키로 뉴질랜드 총독이 27일 해운대구 부산 영화의 전당 야외극장에서 진행된 유엔군 참전의날·정전협정 70주년 기념식에서 참전국 미래 세대들과 함께 각 국가의 국기에 손을 올려놓으며 '위대한 약속'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연합뉴스>

 

곧이어 행사장에는 비행기 프로펠러 소리와 함께 1950년 7월 1일 미 스미스 특임대가 C-54 수송기로 부산 수영비행장에 도착하는 장면이 담긴 영상이 상영됐다. 당시 스미스 특임대는 한국에 도착한 지 불과 나흘 만에 경기 오산까지 이동해 북한군과 교전했고, 유엔군이 북한군과 벌인 첫 전투로 기록됐다.

 

▲27일 부산 해운대구 부산 영화의 전당 야외극장에서 열린 ‘유엔군 참전의 날·정전협정 70주년’ 기념식에서 유엔 참전 용사들이 입장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국민의례는 유엔 평화유지군(PKO) 남수단 한빛부대 장병 4명이 함께 낭독했다. 보훈부는 “국제사회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성장한 한국 위상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했다. 애국가 제창과 묵념에 이어 참전국 대표로 신디 키로 뉴질랜드 총독이 “대한민국은 이 자리에 모인 모든 국가의 소중한 파트너”라며 인사말을 했다. 윤 대통령은 참전 용사인 미국 도널드 리드씨와 호주 고(故) 토머스 콘론 파킨슨씨에게 정부 포상을 수여했다.

 

▲6·25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아 윤석열 대통령과 데임 신디 키로 뉴질랜드 총독이 27일 해운대구 부산 영화의 전당 야외극장에서 진행된 유엔군 참전의날·정전협정 70주년 기념식에서 참전국 미래 세대들과 함께 각 국가의 국기에 손을 올려놓으며 '위대한 약속'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축사에서 “오늘의 대한민국은 유엔군의 희생과 헌신, 피 묻은 군복 위에 서 있다”며 “여러분의 희생과 헌신으로 공산 전체주의 세력으로부터 자유를 지켜낼 수 있었다”고 했다. 또 “어려움에 처했을 때 목숨을 걸고 달려와 준 우방국들에 대한 고마움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한미 동맹을 “핵심 축”이라고 표현하며 자유민주주의 국가들과 연대하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부산에 대해선 “백만 명이 넘는 피란민의 도시에서 세계적인 해양 도시로 거듭나 이제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2030세계박람회 개최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마지막 순서는 ‘미래’를 주제로 22국 청년 대표들이 무대에 나와 ‘동맹 유산 계승’ ‘자유 가치 연대’를 선포했다. 행사장에는 다시 비행기 프로펠러 소리가 울렸고, 무대 화면에는 비행기가 힘차게 비행하는 모습이 나왔다.

 

▲6·25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아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해운대구 부산 영화의 전당 야외극장에서 진행된 유엔군 참전의날·정전협정 70주년 기념식에서 참석자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앞서 윤 대통령은 이날 부산 남구의 유엔기념공원을 찾아 유엔군 위령탑을 참배했다. 유엔군 위령탑은 1978년 6‧25 전사자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됐고, 대통령이 참배한 것은 처음이다. 윤 대통령은 또 영국군 전사자 묘역으로 이동해 70년 전 정전 협정 당일에 전사한 제임스 로건 일병 묘역도 참배했다. 방명록에는 ‘유엔군 참전 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은 대한민국 자유와 번영의 초석’이라고 적었다.

김동하 기자

 

한국어로 영어로 ‘어메이징 아리랑’ 합창... 참전용사들 하나됐다

美·英 용사가 ‘아리랑’ 선창하자
평화소년소녀 합창단 등 100명
‘어메이징 그레이스’ 이어 불러

▲27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 야외극장에서 열린 ‘유엔군 참전의 날·정전협정 70주년’ 기념식에서 참전 용사 콜린 태커리(왼쪽)씨와 패트릭 핀씨가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7일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유엔군 참전의 날·정전협정 70주년’ 기념식에는 국적이 다른 22개 유엔군 참전 용사들이 모였지만, 음악으로 하나 되는 모습이 연출됐다.

 

이날 기념식의 하이라이트는 참전 용사와 유엔 합창단이 함께 부른 ‘어메이징 아리랑’이었다. 무대 영상에선 각국 참전 용사들이 6‧25전쟁 때 불렀던 아리랑을 추억하며 한 소절씩 부르는 모습이 나왔다. 이후 미군으로 참전한 패트릭 핀씨와 영국의 콜린 태커리씨는 휠체어를 타고 무대에 올라왔다. 영국의 오디션 프로그램 ‘브리튼스 갓 탤런트’에서 최고령 우승한 태커리씨는 “자유롭고 놀라운 성장을 한 대한민국의 모습은 70년 전 저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한다”며 핀씨와 함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를 선창했다.

 

이어 가수 라포엠, 유엔 평화소년소녀 합창단 등으로 구성된 연합합창단 100명이 무대에 올라와 국방부 군악대대와 미8군 밴드의 연주에 맞춰 미국의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불렀다.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관중석의 참전 용사들도 어느덧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연주는 다시 아리랑으로 이어졌고, 한국어와 영어가 연결된 ‘어메이징 아리랑’ 무대가 그렇게 끝이 났다. 아리랑은 전장에서뿐 아니라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 조인식을 마치고 귀환하던 유엔대표단이 사열할 때도 연주된 곡이다. 어린이 합창단원은 영어로 힘차게 “감사합니다.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외쳤다.

 

이에 앞서 기념식이 시작될 때는 라온 소년소녀 합창단이 ‘오빠 생각’을 불렀다. 이 노래는 6·25전쟁 중인 1951년 구성된 ‘해군 어린이 음악대’가 유엔군과 야전 병원 환자들을 위문하며 불렀던 곡이다.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라는 가사가 울려 퍼지자, 70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은 몇몇 노병이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이 생중계 화면에 잡히기도 했다. 무대 영상에선 낯선 한국 땅에 와서 전투에 참여한 스무 살 무렵의 참전 용사들의 젊은 시절 사진들이 지나갔다.

조선일보 김동하 기자

 

07-28 북·중·러 독재국 밀착… 한·미·일 공조 획기적 강화할 때

6·25전쟁 정전 7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이 22개 참전국과 평화·번영을 위한 연대를 강화하는 것과 달리, 북한은 중·러 밀착에 집착해 한반도에서 자유 대(對) 독재 간 진영 대결이 고착되는 기류다. 윤석열 대통령은 27일 “오늘의 한국은 유엔군의 피 묻은 군복 위에 서 있다”고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포고문에서 “한미동맹은 세계 평화 번영의 핵심축”이라고 했다. 한국의 기적이 어디에 뿌리를 뒀으며,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동맹과 자유 진영의 희생과 헌신에 힘입어 글로벌 중추국으로 발돋움한 한국이 이제 미국과 함께 글로벌 평화·번영을 위해 힘쓰는 핵심 플레이어가 됐다는 뜻이다.

북한은 지난 70년간 핵·미사일에 집착하며 사이버 해킹에 골몰하는 범죄 국가의 길을 걸었다. 그 결과 경제는 파산 상태인 기형적 실패 국가가 됐다. 이런데도 러·중은 북한과 결속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방북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에게 김정은이 직접 무기 전시회를 안내한 것은 예사롭지 않다. 사설 군사조직 바그너그룹에 무기판매설이 나왔을 때 외무성까지 나서서 부인했던 북한이 대놓고 러시아 정부를 상대로 무기 세일즈에 나섰음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중대한 문제다. 대북제재결의를 비웃는 북·러에 대한 유엔 차원의 경고와 저지가 필요하다.

김일성의 6·25 남침을 승인했던 중·러가 정전기념일을 전승절이라고 강변하는 북한에 장단을 맞추며 공조하는 것은 한국의 안보는 물론 동북아와 세계 평화에 큰 위협이다. 그런 만큼 김정은의 무모한 도발을 차단하기 위해선 한미 확장억제를 탄탄히 하고 한·미·일 안보 공조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바이든 대통령의 제안에 따라 열리는‘ 8·18 캠프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담’은 핵을 가진 독재국 북·중·러에 맞선 3국의 대비책을 체계적으로 마련할 수 있는 자리라는 점에서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7.28 두 개의 함정과 한국의 대전략

 

국제관계 역학 구도에 대해 정책입안자와 정치인은 언제나 현인의 말을 차용하는 경향이 있다. 미·중 분쟁의 위험성에 대해 하버드대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가 사용하기 시작한 ‘투키디데스의 함정’이 좋은 사례다. 지중해 패권을 놓고 부상하던 스파르타(중국)와 기존 강대국 아테네(미국) 사이의 충돌은 필연이라고 진단한 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의 시각을 빌렸다. 불행하게도 두 강대국은 그 함정에서 빠져나올 길을 알지 못했다.

 

앨리슨 교수는 10년 전 미·중 양국이 두 개의 강대국으로 공존하는 체계 구축을 조언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그 제안이 마음에 무척 들어 중국공산당 지도부 전원에게 앨리슨 교수의 논문을 읽도록 지시했다. 2013년에는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신형 대국 관계’ 모델을 제안했다.

‘투키디데스 함정’과 ‘미국 함정’
중국, 미국 패권에 도전한 상황
중국 일깨우는 한국 역할 기대

▲한국식 도광양회전략 절실하다. [일러스트=김지윤]

 

 

이 모델에 따르면 미국은 전통적 정책을 버리고 미·중 전쟁을 피하기 위해 중국과 협상에 나서야 했다. 중국이 말하는 핵심 이익에 대해 미국이 타협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대만·신장·티베트·동중국해·남중국해·서해 등이 여기에 포함됐다. 결국 오바마 행정부가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투키디데스와 앨리슨 교수가 지적했던 구조적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최근 브루킹스 연구소의 로버트 케이건 박사가 ‘미국 함정(America trap)’이란 새로운 화두를 제시했다. 그의 결론은 새롭게 부상하는 독재 강국은 필연적으로 미국의 힘과 결의의 깊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미국이나 우방국을 공격하는 자해성 어리석음을 범한다고 지적한다. 1차 세계대전 당시의 독일이나 1941년의 일본과 독일이 그런 사례다.

 

스탈린·마오쩌둥·김일성 모두 1950년 6월 이러한 미국 함정에 빠지는 바람에 미국이 역사상 최대 규모의 동맹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결과를 낳았다. 후에 옛 소련의 붕괴로 이어졌고, 향후 북한과 중국의 붕괴로 이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가장 최근의 미국 함정 사례다.

 

전체주의 정권은 왜 미국 함정에 빠지는가. 전체주의 국가의 성격상 그들은 미국 정치와 문화를 그들만의 왜곡된 이념의 렌즈에 비춰보고 다양성과 논의, 사회적 진보 및 정치적 양극단화를 재생이 아닌 쇠퇴로 인식하는 듯하다. 전체주의 국가의 지도자는 투키디데스 딜레마의 필연성을 믿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충동이 필연적이라면 미국이 준비하기 전에 먼저 공격해 미국의 역내 패권 야심을 좌절시키려 한다.

 

마지막으로 케이건 박사가 강조하듯 부상하는 신흥 강국에 대한 미국의 무관심과 결의의 부재도 이유가 될 수 있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미국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 안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북한은 미국이 동북아 방어선인 ‘애치슨 라인’에서 한국을 제외하자 그 틈을 타 한국전쟁을 일으켰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아시아와 글로벌 정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한국은 미국 동맹 체제의 굳건한 확신을 상징한다. 따라서 한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질서가 쇠락하고 있다는 미국의 ‘도전자들’의 오판을 상쇄시킬 수 있다.

 

둘째, 한국은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지면 안 된다. 박근혜·문재인 정부에서는 미·중 경쟁이 아시아 국제 정세의 핵심 요소로 인식되면서 각종 정책이 펼쳐진 듯하다. 이렇게 되면 중국에는 미국과의 상호 공존이냐 전쟁이냐 두 가지 옵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윤석열 대통령은 인도·태평양 전략의 무대에 참여함으로써 중견국의 전략적 이익도 고려해야 한다는 인식을 중국에 심어줬다.

 

셋째, 한국은 민주적 절차가 때론 허점이 있더라도 전략적 약점이나 결의의 부재가 아니라는 점을 중국에 상기시켜 줄 수 있다. 윤 정부에서 한국의 역동적인 민주주의는 다시 한번 아시아 국가가 보편적 규범을 힘과 역동성의 원천으로 삼고 있음을 보여준다.

 

끝으로 한국은 중국과 경쟁하는 미국의 전략 정립을 도와서 중국의 강압을 저지하고 민주적인 세계의 핵심 기술을 보호할 수 있다. 그러나 충돌이 불가피하다고 중국이 생각할 수 있는 완전한 디커플링이나 자해적인 조치를 피하는 방향으로 그 과정을 진행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함정은 우리가 빠질 때만 함정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중앙일보 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국 CSIS 키신저 석좌

 

07.31 ‘죽창가’에 발목 잡혔던 한미일 협력, 국익에만 집중해야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5월 21일 히로시마 G7 정상회의장인 그랜드 프린스 호텔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대통령실

 

한·미·일 3국은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 총리가 참석하는 정상회의를 다음 달 18일 미국에서 개최한다고 동시 발표했다. 한·미·일 정상은 그동안 다자 회의를 계기로 만나왔는데, 3국 정상 회의를 위해 별도로 모이는 것은 처음이다. 미 백악관은”이번 (3국) 정상회의에서 정상들은 미·일 간, 한·미 간 굳건한 동맹과 강력한 우정을 재확인하면서 3국 관계의 새로운 장을 축하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3국 정상회의가 열리게 될 미국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는 역대 미 대통령들이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는 중요한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활용해 온 역사적인 명소다. 1959년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의 첫 정상회담, 1978년 카터 대통령이 중재한 중동 평화협상 등이 이곳에서 열렸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취임 후 어떠한 외국의 정상도 이곳으로 초청하지 않다가 윤 대통령과 기시다 일 총리를 캠프 데이비드로 초대했다. 윤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으로는 2008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 이후 15년 만에 캠프 데이비드를 방문하게 된다.

 

바이든은 부통령 시절인 2016년 하와이에서 한·미·일 3국 차관회의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고 일정을 바꿔 달려가 특별 연설을 할 정도로 3국 협력에 대해 적극적이다. 역대 미 대통령 중에서 3국 협력을 가장 중시하는 그가 캠프 데이비드 3국 정상회의를 통해 한·미·일 협력을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시키려 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윤 대통령 취임 후 네 번째 열리게 되는 캠프 데이비드 3국 정상회의는 지난해 5월 취임한 윤 대통령이 흔들리지 않고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해 왔기에 가능했다. 문재인 전 정부는 반일 감정을 국내 정치에 활용하기 위해 한일 관계를 의도적으로 방치했다. 정권 차원에서 ‘죽창가’를 불러가며 일본을 적대시해 3국 협력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는 최근 미·중 경제 갈등,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입 장기화 등으로 세계 정세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열리게 된다. 특히 동북아시아에서 북·중·러 3국의 연대가 심상찮은 상황에서 한·미·일 3국의 정상은 무엇보다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는 방어 태세를 한층 더 굳건히 할 필요가 있다. 또 세 나라의 협력은 동북아를 넘어 전 세계 자유 민주 체제를 지키는 핵심적인 연대로 작용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국가적 위상도 함께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과거를 현재와 싸움 붙여 국가 미래의 발목을 잡는 어리석음을 다시는 반복해서는 안 된다.

조선일보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