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국방 2023-07/
07.01 93세 참전용사의 눈물
한동훈 장관에게 건넨 쪽지
“군번·계급도 없이 북 침투했다가 휴전 때문에 못 돌아온 동지들…”
지금 누리는 자유·평화에 감사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한덕수 국무총리가 이창건 참전용사에게 제복을 전달하고 있다./KTV
대학 다니던 시절, 또래 남학생들은 ‘군대 빠지는 방법, 방위(18개월)라도 가는 방법’을 종종 화제로 올렸다. 결혼해서 애 낳으면 군 면제다, 애 하나로는 안 되고 둘은 낳아야 면제다, 비만이나 눈 나쁘면 방위다 등등. 군대 안 가거나 조금이라도 짧게 가는 방법을 둘러싼 정보 교환은 남자 동창들의 지대한 관심사였다. 모였다 하면 군대 피하는 얘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러나 한 번도, ‘저들은 남자로 태어나서 참 안됐구나’라고 생각한 적 없었다. 당시 80년대는 신입 사원 공개 모집에 남자만 뽑는다고 써 있던,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었다. 대놓고 말한 적은 없지만 “30개월만 다녀오면 되는데 어지간히 엄살들 떠네. 우리는 평생을 2등 국민으로 사는구먼” 이라고 속으로 가소롭게 여겼었다.

▲KLO부대 출신 이창건 전 한국원자력학회 회장이 한동훈 장관에게 건넨 편지./TV조선
그 시절 남자 동창들을 향한 나의 냉소를 진심으로 뉘우친 건 97년생 내 아들을 군대에 보낼 때였다. 뜨거워지기 시작한 5월의 태양 아래 훈련소 연병장에 서 있던 우리 아들. 다들 내 아들처럼 잘생기고 앳된 남자아이들이 두려움과 불안이 역력한 얼굴로 줄 서있던 모습은 여러 해가 지났건만 지금도 눈에 선하다. ‘다녀올게요’라는 말을 연신 되풀이하며 내 손을 꽉 잡은 아들 손에서 느껴지던 축축한 땀도 어제처럼 생생하다.
6·25 전쟁 발발 73주년이었던 지난 25일 뉴스에서 유엔군 전몰 용사 2300여 명이 잠든 유엔기념공원을 보며 눈시울이 뜨거웠다. 입대하던 날 내 아들처럼 긴장으로 차가운 땀이 밴 주먹을 쥐고 이역만리 먼 나라에 왔을 열아홉, 스무 살의 그들. 이곳에서 하나뿐인 생명을 잃어 영영 집에 못 돌아간 남자아이들이 너무 가여웠다. 어느 구석에 붙은 줄도 몰랐을 나라에서 벌어진 전쟁 때문에 자식을 잃고 남은 평생 슬퍼했을 부모들 생각에 마음이 먹먹했다.
이날 열린 73주년 행사에서는 ‘켈로부대(KLO)’ 참전용사 출신 이창건(93) 전 한국원자력문화진흥원장이 “KLO가 인정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북한에 침투했다가 휴전 때문에 못 돌아온 동지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고 쓴 쪽지를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전달했다. 이 원장이 말한 것처럼 켈로부대원 같은 북파 공작원들은 오랜 세월 국가로부터 참전 공적을 인정받지 못했다. 휴전선을 넘는 모든 무력도발은 1953년 정전협정 위반이었기에 이름도 군번도 계급도 없이 작전에 동원된 공작원들은 긴 시간 침묵을 강요받았다.
지난 2004년에 국회가 북파공작원 특별법을 제정할 때까지 그들은 내내 버림받은 사람들이었다. 특히 켈로부대는 미군 소속이라는 이유로 그마저도 제외되었다가 2021년에야 ‘6·25전쟁 비정규군 공로자 보상법’이 제정돼 비로소 정부 보상을 받게 되었다. 북한공작원 특별법을 발의했던 김성호 전 국회의원의 책 <북파공작원의 진실>(2022, 가을밤)에는 당시 집권당 의원이 추진했건만 난관에 부딪쳐 물거품이 될 위기였던 북파공작원 특별법이 16대 국회 말기에 노무현 대통령의 결단으로 국방부의 협조를 얻어 가까스로 통과됐던 비화가 나온다.
지금의 민주당 소속 전직 대통령은 6·25를 ‘미중전쟁’이라고 표현한다. 그 당의 국회의원들은 핑크색 노란색 가발을 쓰고 “사드 전자파에 내 몸이 튀겨질 것 같다”는 노래를 부르더니 요즘은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으로 국민을 겁박한다. 그러는 민주당에게도 한때는, 우리가 현재 누리는 평화와 자유를 위해 헌신했던 이들에게 국가로부터 존경과 감사를 받을 권리를 찾아주려 한 정치인과 그에 화답했던 대통령이 있었다. 나는 그런 시절의 민주당을 지지했던 사람이었다. 그랬던 민주당과, “6·25는 국제전”이었고 “오염수 방류는 방사능 테러”라며 어민과 수산물 상인의 숨통을 짓누르는 오늘의 민주당 사이엔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건가. 민주당이 지금 같은 괴물이 되기 전 모습을 되찾는 날은 과연 있을까.
조선일보 오진영 작가·번역가
07-02 가짜 독립유공자 ·친북 논란자 걸러낸다…공적심사위 특별분과위 신설

▲가짜 독립유공자를 가리기 위한 국가보훈부의 전수조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고 김원웅 전 광복회장 모친 전월선을 영웅화해 사회적 논란이 된 만화. 백범 김구, 이봉창 의사와 같은 반열에 올려 놓은 ‘독립운동가 100인 만화 프로젝트’. 보훈부가 가짜 유공자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서훈 공적심사위원회 운영규정을 대폭 개정한다. 문화일보 자료사
보훈부 ‘특별분과위원회’ 신설 3심제로…정치·사회·법률 등 전문가에게 개방
친북 등 논란이 있는 독립운동가에 대한 포상 기준 명확히 정비
북한 정권 기여 등 친북 제외기준을 명확히 해 사회적 논란 최소화
외국인, 자금 지원, 신사참배 거부자 등 독립운동 공적 폭넓게 인정
공적검증 전수조사 후 확인된 공적 이상자의 조속한 서훈 취소 진행
국가보훈부(장관 박민식)는 2일 "‘독립유공자 서훈 공적심사위원회 운영규정 등을 대폭 개정해 국민 눈높이에 맞추고, 가짜 유공자 논란 불식 등 신뢰를 제고하겠다"고 밝혔다.
보훈부는 독립유공자 포상이 서훈의 영예성을 담보해야 하므로 선정 관련 논란을 없애고 독립유공자의 희생과 공헌이 온전하게 존중받을 수 있도록 관련 운영규정 등 심사기준을 대폭 변경한다고 밝혔다.
달라지는 심사기준 주요내용은 먼저 특별분과위원회를 신설해 실질적 3심제가 운영된다. 둘째, 각계 다양한 전문가 위원 위촉하며 셋째, 친북 등 논란이 있는 독립운동가에 대한 포상 기준을 명확히한다. 넷째, 그간 소외돼 독립운동으로 인정되지 못한 외국인, 자금지원, 신사참배 거부 활동 등에 대한 기준이 개선되고, 대국민 공개검증 절차에 국민 참여 보장 등 공적검증이 강화된다.
보훈부는 그동안 예비심사 격인 제1공적심사위원회(‘예비심사위원회’ 명칭 변경)와 제2공적심사위원회(‘공적심사위원회’ 명칭 변경) 2심체제로 운영해왔으나 운영규정 개정으로 ‘특별분과위원회’를 신설해 쟁점안건은 종전 2심에서 사실상 3심제로 확대하기로 했다.
보훈부 관계자는 "3심제를 통해 연간 분과별 심사건수가 400건을 상회할 것으로 보인다"며 "기존 업무 과중으로 충분히 안건이 논의되지 못한다는 부실심사 논란이 해소될 것"이라고 밝혔다.
특별분과위원회는 각 분과위원회에서 심층논의가 필요하다고 결정한 사안 등을 다루는 위원회로, 서훈의 영예성과 공과(功過)에 대한 재평가 등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논의하는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공적심사 공정성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또 신설되는 특별분과위원회와 본심 격인 제2공적심사위원회 당연직 위원 운영규정도 정비된다. 역사 전공자뿐만 아니라 정치·사회·법률 등 전문가도 참여할 수 있게 위원이 폭넓게 개방된다.
이와함께 친북 논란이 있음에도 독립유공자로 포상돼 서훈 적절성 등 사회적 갈등을 야기한 인물에 대해 기준을 명확히 함으로써 갈등을 최소화하고 서훈의 영예성도 훼손되지 않도록 할 계획이다. 필요의 경우 기포상자에 대해서도 적절성을 검토할 예정이다.
그 외 공과(功過)가 함께 있는 독립운동가에 대해서도 정책연구와 토론회 등을 거쳐 재평가 방안이 있는지 찾아볼 계획이다.
또 그동안 독립유공자 공적 심사에서 비중 있게 검토되지 못한 독립운동 영역을 확대한다.
선교사·의사·;교사 등 신분으로 독립운동에 기여한 외국인과 신사참배 거부로 투옥돼 옥중 순국한 분 등에 대한 운영규정 심사기준을 새롭게 마련하고 국내외에서 독립운동 자금 지원 활동 등을 한 분에 대해 적극적으로 독립유공자 포상을 추진하기로 했다.
보훈부는 독립유공자 포상에 있어 면밀한 공적검증과 조속한 서훈 취소 절차로 가짜 독립유공자가 없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국가보훈부 홈페이지, 국민생각함,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활용해 공개검증을 널리 알리고, 관련 단체 및 대학 등에서 포상 예정자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대국민 공개검증 절차에 국민 참여를 보장하기로 했다.
현재 진행중인 공적검증 전수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중복·허위공적 등 공적 이상자에 대해서 서훈 취소 절차를 조속히 진행해 가짜 독립유공자 논란을 종식시킬 계획이다.
박민식 보훈부 장관은 "이번 독립유공자 서훈 공적심사위원회 대폭 개편 등을 통해 그동안 논란이 된 독립유공자 포상의 적절성 및 부실심사에 대한 외부의 비판, 국민 눈높이와 다양한 시각이 반영되지 못했던 우려들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독립유공자의 공적이 온전하게 평가받고 서훈의 영예성이 담보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 일류보훈을 실현하겠다"고 말했다.
문화일보 정충신 선임기자
07.03 백선엽 장군과 이승만·트루먼 대통령 동상 한 곳에 선다

6·25전쟁 향방 바꾼 경북 칠곡 다부동 전투
1950년 6월 25일 새벽 기습 남침으로 대한민국을 단숨에 적화하려던 김일성은 그해 7월 20일 충북 수안보까지 내려왔다. 밀리던 국군이 낙동강 방어선을 치고 지연전을 펼쳤고, 미군이 신속히 참전하자 조바심이 난 김일성은 수안보에서 전선 회의를 주재하며 "8월 15일까지 부산을 점령해 통일 전쟁을 끝내라"고 지시했다. 그런 김일성 앞에 백선엽(1920~2020) 사단장이 이끌던 국군 1사단과 미군 27연대가 가로막고 버텼다.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 앞에 현장 견학 나온 어린이들이 많이 보인다. 5일 열리는 백선엽 장군 3주기 추모식과 제막식에 앞서 동상이 흰색 천으로 가려져 있다. 동상 오른쪽 뒤 30여m 떨어진 녹색 가림막 안에는 오는 27일 제막하는 이승만 대통령과 트루먼 대통령 동상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장세정 기자
3, 13, 15사단을 앞세운 북한군의 8월 공세가 시작되자 경북 칠곡군 다부동 일대에서 8월 29일까지 일진일퇴의 치열한 공방전이 전개됐다. 8월 21일 대구로 가는 간선도로 길목인 칠곡군 천평동 계곡의 일부가 북한군에 뚫려 다부동 방어선이 무너질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당시 백 사단장은 500여명의 부하 앞에서 외쳤다.
백 장군 3주기에 동상 제막식
무명 '지게부대' 영웅 추모비도
장녀·경북도민 등 기부 및 성금
기념재단 이사장에는 김관진
"이제 우리는 물러설 곳이 없다. 여기서 밀린다면 우리는 바다에 빠져야 한다. 우리가 밀리면 미군도 철수한다. 그러면 대한민국은 끝장이다. 내가 앞장서겠다. 내가 두려움에 밀려 후퇴하면 너희가 나를 쏴라." 백 사단장이 이렇게 독려하며 권총을 뽑아 들고 앞에서 뛰자 그의 뒤를 따라 적진으로 돌격한 장병들이 산을 넘어오던 북한군을 격퇴하고 극적으로 고지를 탈환했다.

▲경북 칠곡군 대부동전직기념관에 가면 대한민국을 지켜낸 영웅들을 만날 수 있다. [다부동전적기념관]
뚫렸으면 부산까지도 위험해질 판
6·25전쟁 중에 벌어진 수많은 전투 중에 특히 다부동 전투는 국가 존망이 걸린 전투였다. 백 사단장의 말처럼 만약 다부동에서 패했으면 대구가 점령되고 부산의 안전도 장담하기 어려웠다. 다부동 전투 와중이던 8월 18일 임시수도를 대구에서 부산으로 이전했을 정도로 전황이 급박했다. 백 장군의 장녀 백남희(75) 씨는 "다부동 전투는 국군과 미군이 처음 함께 싸운 첫 전투"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6·25전쟁의 향방을 바꾼 다부동에서 오는 5일 몇 가지 의미 있는 행사가 열린다. 다부동 계곡에서 고지전 와중에 총탄을 뚫고 병사들에게 탄약과 식량을 져 나르고 전사자와 부상병을 호송해준 당시 칠곡 주민들을 기리는 추모비가 73년 만에 처음 건립된다. 당시 군인들의 '생명줄' 역할을 했던 그들을 국군은 '지게 부대'로, 미군들은 'A-frame Army'라 불렀다.
다부동 전투에서만 지게 부대원 2800명가량이 희생됐지만, 군인도 정식 군무원도 아니라는 이유로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다. '이름 없는 영웅들'인 셈이다. 백남희 씨는 사재를 기부해 160㎝ 높이의 ‘다부동 전투 지게 부대원 추모비’를 만들었다. 추모비를 만든 이유에 대해 백씨는 "생전에 아버지는 지게 부대원들이 빛을 못 보고 잊히고 있다며 마음 아파하셨다"고 전했다.

▲다부동전투 당시 탄약과 식량을 날랐던 지게부대원들. 이름 없는 영웅들이다. [다부동전적기념관]
같은 날 오후엔 백선엽 장군 3주기에 맞춰 동상 제막식과 추도식이 거행된다. 지난달 27일 미리 찾아 가본 다부동 전적기념관(관장 신슬우) 주변은 마무리 공사와 주변 정리가 한창이었다. 2분마다 360도 회전하도록 설계된 4.2m 높이의 '백선엽 장군 동상'은 흰색 천으로 가려져 있었다.
백 장군, 매년 다부동에서 모임 가져
백 장군 동상이 다부동에 들어선 이유는 그와 다부동을 떼어 놓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백 장군은 2020년 7월 10일 타계 전까지 매년 9월 전우들과 다부동에서 모임을 가질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표시했다. 백남희 씨는 "국립대전현충원에 계시는 아버님을 여러 조건이 되면 다부동에 모시는 방안도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
백 장군 동상은 자유총연맹 이우경 경상북도 회장이 2022년 추진위원장을 맡아 앞장서고, 경북도민들이 십시일반으로 1만원 이상씩 모금했다. 특히 지난해 윤석열 정부 들어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의 강력한 요청으로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해 1억5000만원의 국비를 보태면서 동상 추진에 가속도가 붙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다부동은 대한민국을 지켜낸 구국의 성지이고, 백선엽 장군은 구국의 영웅"이라며 "도민들의 뜻을 받들어 앞으로 '백선엽 장군 기념관'을 만들고 더 많은 국민이 다부동에 와서 자유대한민국의 소중함을 느끼도록 '호국 메모리얼 파크'를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6월 30일 서울 공군호텔에서 열린 백선엽장군기념재단 창립식에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초대 이사장에 선임됐다. 백남희 명예 이사장은 김 전 장관을 "참군인"이라 불렀다. 장세정 기자
동상 제막에 앞서 지난달 30일 서울 공군호텔에서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등 각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백선엽장군기념재단' 창립식이 열렸다. 명예 이사장에 추대된 백남희 씨는 "아버지의 호국·구국·애국 정신을 이어갈 참군인을 찾다 보니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바로 그런 분이란 확신이 들어 재단 이사장을 맡아 달라고 간곡히 부탁드렸다"고 소개했다. 김일성의 남침을 격퇴한 백 장군을 기리는 선양 사업을 이끌 적임자로 북한의 도발에 단호한 응징을 역설해온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맡게 된 것이다.
김 이사장은 "백 장군은 다부동 전투 승리로 전쟁을 수세에서 승세로 일거에 바꿨고, 한·미동맹의 초석을 쌓은 영웅이자 참전 군인의 표상"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백 장군의 숭고한 나라 사랑과 호국 정신을 선양·계승하고, 우리 국민이 대한민국에 자긍심을 갖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인터뷰=임호영 한미동맹재단 회장]
"싱글러브 장군, 웨버 대령 동상도 10월에 세운다"
다부동에 설 백선엽 장군 동상 오른쪽에는 이승만(1875~1965) 전 대통령과 해리 트루먼(1884~1972) 전 미국 대통령의 동상이 정전협정 체결 기념일인 7월 27일 제막식을 앞두고 가림막 뒤에 나란히 서 있었다. 6·25전쟁에서 다부동 전투의 의미와 백선엽 장군의 역할, 그리고 이승만·트루먼 동상이 대부동에 들어서는 의미 등을 듣기 위해 임호영(64·사진) 한·미동맹재단 회장을 인터뷰했다. 육사 38기로 5군단장과 합참 전략기획 본부장,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예비역 육군 대장)을 역임한 임 회장은 한국청소년연맹 총재도 겸하고 있다.

▲임호영 한미동맹재단 회장은 인터뷰에서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에도 북한의 도발이 꾸준히 계속되는 상황에서 종전선언을 추진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장세정 기자
-백 장군의 대표적 업적을 꼽으면.
"다부동 전투에서 북한군의 진격을 막은 덕분에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할 시간을 벌어줬고 결국 대한민국을 지켜냈다. (1953년 5월 미국 백악관에서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만나)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에도 기여한 한·미 동맹의 상징적 인물이다. 6·25전쟁을 김일성의 통일 전쟁이라 믿는 종북 세력은 베트남처럼 공산화할 통일 기회를 백 장군이 훼방 놓았다고 여긴다."
-미군 장성들도 존경과 예우가 각별했는데.
"주한미군사령관이 부임하거나 이임할 때면 미국 은성무공훈장을 받은 백 장군을 반드시 초청했다. 휠체어를 탄 백 장군 앞에서 미군 4성 장군들이 몸을 낮춰 눈을 맞추며 인사하는 장면을 여러 번 봤다. 미국의 전쟁 영웅인 더글러스 맥아더, 제임스 밴 플리트, 매슈 B. 리지웨이 등 전우이기도 한 백 장군에 대한 깊은 존경심의 표현이었다."
-3주기를 맞아 다부동에 동상이 세워지는 의미는.
"대한민국을 지켜낸 다부동에 6·25전쟁의 대표적 영웅인 백 장군의 동상을 이제라도 세우니 다행이다. 그런 영웅을 오래도록 기리겠다는 취지니 당연한 도리다."
-27일엔 이승만·트루먼 동상도 세워진다.
"6·25전쟁 때 기적 같은 일이 많았다. 6월 27일 유엔 안보리의 파병 결의, 7월 1일 미군의 신속한 부산항 입항과 28일 지상군 참전 결정 등은 트루먼 대통령의 결심 덕분에 가능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9월 30일 맥아더 사령관이 북진을 막자 38선 돌파를 명령했다. 미국의 반대에도 반공 포로를 석방해서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을 끌어냈다. 두 대통령의 동상이 나란히 서게 된 것은 이런 배경이 있다."

▲경북 칠곡군 대부동에 오는 27일 세워질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과 이승만 전 대통령 동상 조감도. 2017년 높이 4.2m 규모로 제작됐으나 장소를 찾지 못하다 경북도와 협의해 다부동에 세우게 됐다. 두 대통령은 김일성의 남침에 맞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영웅으로 평가된다. [이승만·트루먼 동상건립추진 모임]
-올해는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이다.
"1953년 7월 27일 당시 마크 클라크 유엔군사령관, 펑더화이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 김일성이 서명했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거부했다. 정전체제에서도 북한은 1968년 1·21 사태, 1976년 8·18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아웅산과 KAL기 테러,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공격 등 수많은 도발을 자행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종전선언을 추진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지금도 심리전과 사이버 공격이 계속되는데 정전이 의미 있나."
-문 전 대통령은 『1950년 미·중 전쟁』이란 책을 추천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고, 동족상잔 비극의 발생 원인을 오도하는 잘못된 일이다. 6·25 전쟁은 김일성이 불법적으로 침략해 발생했다. 여기에 공산화를 확대하려던 소련의 의도, 북한과 특수관계이던 중국의 동의가 함께했다. 기밀 해제된 옛 소련과 동유럽 문서 등을 종합하면 김일성의 적화야욕이 전쟁의 근본 원인이란 사실이 이미 증명됐다."
-올해는 한·미동맹 70주년의 해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이던 1977년 지미 카터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를 추진하자 존 싱글러브 유엔사령부 참모장이 '전쟁의 길로 이끄는 오판'이라며 반대했다. 미국으로 소환돼 이듬해 강제 전역했고 미군 철수계획이 백지화됐다. 윌리엄 E. 웨버 대령은 1951년 중대장으로 원주 전투에서 오른팔과 오른 다리를 잃었지만, 대령까지 복무했다. 6·25전쟁을 '잊힌 전쟁'이 아닌 '승리한 전쟁'으로 평가받도록 평생 노력했다. 두 영웅을 기리는 동상을 제작해 오는 10월 임진각 평화공원에 세울 예정이다. 전후 대한민국을 지키는 와중에 희생된 미군 92명의 추모비도 만들 계획이다."

▲서울 광화문에 있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전시중인 '한미동맹 70 특별전'(같이 갑시다 We Go Together)에 가면 올해 70주년을 맞은 한미동맹을 만들고 발전시킨 영웅들을 만날 수 있다.[대한민국역사박물관]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07.04 대북 지원 못하게 되자 모두가 놀고 있다는 통일부
새 정부 들어 통일부의 역할에 대한 의문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 북한과 대화 채널이 끊기면서 이미 통일부의 존재는 유명무실해졌다. 지금까지 3년 가까이 직원 600명의 통일부가 별로 하는 일 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다. ‘통일부 무용론’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통일부는 통일 정책 개발 추진이 주 업무다. 북한 주민들의 인권 향상 등도 통일부 책임이다. 그러나 햇볕정책 이후 통일부는 북한에 돈과 쌀을 주고 그 대가로 남북 이벤트를 벌이는 기관으로 변질됐다. 그런 대북 지원과 이벤트가 통일에 도움이 됐다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핵을 개발하는 북한 김정은 정권에 이용됐을 뿐이다.
통일부는 북한이 남북 이벤트를 끊으면 한순간에 하는 일 없이 노는 부처가 됐다. 어느새 북한 눈치를 보면서 북한 비위를 맞추기도 했다. 북한이 개성에 있는 우리 자산인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만행을 저질러도 제대로 항의도 하지 않았다. 북 김여정이 대북 전단을 금지하라고 하자 곧바로 전단금지법을 국회에 낸 부처가 통일부다. 북한이 낸 의미 없는 성명이나 욕설 담화를 놓고 대화 가능성을 내비쳤다고 아전인수 식으로 해석했다. 국제적 대북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 지원 방안 찾기에 몰두했다. 북한인권재단 설립은 7년째 방치했다.
통일부는 목표와 역할, 기능을 원점에서 다시 살펴야 한다. 30여 년 된 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의 근간은 유지하되 남북한 주민이 자유민주 체제하에서 함께 잘 살 수 있는 새로운 미래 통일 구상을 마련해야 한다. 탈북자 네트워크를 활용해 북한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변화를 신속히 파악하고 분석해 대북 정책에 활용해야 한다. 북한 인권 상황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인권 향상을 위한 다방면의 노력을 보여야 한다. 북 주민들에게 각종 정보가 쉽게 유통될 수 있도록 채널을 개발할 필요도 있다.
조선일보 사설
07-04 대북 지원 타성에 젖은 통일부, 해체 수준 개편 당연하다
통일부의 정체성과 위상에 대한 논란은 남북관계와 국제 정세의 변화에 맞춰 오래전부터 다양하게 제기돼 왔다. 대북 지원 정책이 개혁·개방은커녕 핵무기 개발로 되돌아오고, 북한 김정은 체제 역시 더욱 시대착오적으로 퇴행하는 현 상황을 종합하면, 대북 정책과 함께 통일부 존폐 문제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때가 됐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2일 “그동안 통일부는 마치 대북지원부와 같은 역할을 해왔다. 그래서는 안 된다. 이제는 달라질 때가 됐다”고 밝히고, 장·차관을 모두 외부에서 기용했다.
외교관 출신인 문승현 차관은 3일 취임사에서 “북한 비핵화 여건 조성과 북한 주민 인권 개선, 북한 이탈 주민 정착 지원에 더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김영호 장관 후보자도 헌법 정신에 입각한 ‘자유민주적 평화적 통일’을 강조했다. 통일부는 1969년 국토통일원으로 문을 연 뒤 1990년대 냉전 해체기에 남북기본합의서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했다. 김대중 정부가 대북 햇볕정책을 추진하면서 남북대화와 지원·교류·협력이 핵심 업무가 됐다. 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내재적 접근론자와 대북 유화론자들이 득세하면서 북한 인권과 탈북자 지원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최근 통일부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지지 인사에게 3억 원 규모의 북한 관련 용역을 맡긴 것은 상징적이다.
공교롭게도 북한이 먼저 통일부의 카운터파트를 격하한 것 같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 문제와 관련, 북한 외무성이 1일 “입국 불허”를 밝히고 나섰다. 과거엔 조선아태평화위원회가 나섰는데 이번엔 뒤로 빠진 것이다.
통일부 정체성과 조직을 모두 해체 수준으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 여당에서도 2021년 이준석 당시 대표가 통일부 폐지론을 주장한 바 있다. 교류 협력 기능은 과감히 이관하고, 통일 플랜 수립과 북한 바로 알기 교육, 북한 인권 실태 조사, 탈북민 보호와 지원 등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문화일보 사설
07-05 6·25 최대 격전지에 ‘백선엽 장군 동상’ 우뚝

▲1950년, 영웅의 활약 6·25전쟁 영웅인 백선엽(왼쪽) 장군이 1950년 10월 19일 평양 탈환에 성공한 뒤 밀번 미1군 단장에게 작전 상황을 보고하고 있다. 육군 제공
■ 칠곡 다부동서 동상 제막
국민성금·보훈부 예산 5억 들여
높이 4.2m 크기… 360도 회전
27일 이승만·트루먼 동상 제막
한·미 호국 영웅 성지로 거듭나
6·25전쟁 최대 격전지인 경북 칠곡군 다부동이 6·25전쟁 한·미 영웅들의 성지로 거듭난다. 5일 오후 국가보훈부 주관으로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고 백선엽 장군 동상 제막식이 열리는 데 이어 정전협정 70주년인 27일 이승만 전 대통령과 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 동상 제막식이 거행된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인터뷰에서 “호국의 별인 백 장군의 희생과 헌신을 많은 분이 기릴 수 있도록 6·25전쟁 최대 격전지였던 낙동강 방어선을 자유민주주의 수호의 성지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철우 경북지사도 “칠곡 다부동 일대에 호국메모리얼 공간 등을 조성해 자라나는 세대들의 호국·안보 교육 장소로 만드는 등 경북을 대한민국 호국의 성지로 만들어가겠다”고 설명했다. 임호영 한미동맹재단 회장은 “다부동은 6·25전쟁 당시 백 장군이 사단장으로 이끌던 1사단이 북한군 3개 사단을 격파하며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한 상징적인 장소”라며 “1사단이 다부동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국군은 최후 방어선인 낙동강 전선 방어에 성공해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백 장군은 매년 9월 전우들과 다부동에서 모임을 가질 정도로 다부동 전투에 각별한 마음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백 장군 동상은 민간 동상건립추진위원회가 주관해 건립을 추진했다. 민간 동상건립추진위의 국민성금 모금, 국가보훈부 예산 1억5000만 원 등 총 5억 원을 들여 높이 4.2m, 너비 1.56m 크기로 제작됐다. 동서남북 사방으로 대한민국을 지키고 수호한다는 의미를 담아 동상이 360도 회전할 수 있도록 제작된 것이 특징이다. 국민성금은 모금 2개월 만에 목표액을 달성할 정도로 동상 제작에 대한 관심과 열기가 높았다.

▲경북 칠곡군 다부동에 27일 세워질 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과 이승만 전 대통령 동상 조감도. 이승만·트루먼 동상건립추진 모임 제공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이종섭 국방부 장관, 박정환 육군참모총장, 김관진 백선엽장군기념재단 이사장도 3주기 추모행사와 함께 열린 동상 제막식에 참석할 예정이다. 김 이사장은 지난달 30일 재단 창립식에서 “미국은 지금도 백 장군을 6·25전쟁 최고의 명장으로 평가하고 존경한다”며 “백 장군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공인의 표본이자 우리 시대의 제복 입은 영웅”이라고 말했다.
백 장군은 다부동 전투를 비롯해 평양 최초 점령, 서울 재탈환 등 숱한 작전을 지휘한 6·25전쟁 영웅으로 제4대 합동참모의장과 제 7·10대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하는 등 한·미 동맹 강화를 위해 평생 헌신한 뒤 2020년 100세를 일기로 영면,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정충신 선임기자 csjung@munhwa.com
07.05 “너무 보고 싶었어요” AI로 부활한 순직 조종사...엄마는 오열했다
박명렬·박인철, 공군 조종사 순직 父子
남편·아들 모두 잃은 이준신씨 오열

▲국방홍보원 국방TV는 5일 공개한 '그날 군대 이야기 고 박인철 소령을 만나다' 편에서 AI로 복원된 아들 박 소령(왼쪽)을 본 어머니 이준신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국방TV
16년이 지났지만 아들은 27세 청년 모습 그대로였다. “엄마, 인철이요. 엄마, 너무 보고 싶었어요.” 생전 그대로인 아들의 표정과 말투에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다. “인철아 보고 싶었어.”
국방홍보원 국방TV는 5일 인공지능(AI)으로 복원한 고(故) 박인철(공사52기) 소령이 어머니 이준신씨를 만나는 모습을 유튜브에서 공개한다. 박 소령은 2007년 서해 상공에서 KF-16 요격 훈련 중 사고로 순직했다. 그는 1984년 F-4E를 몰고 팀스피릿 훈련에 참여했다가 순직한 고(故) 박명렬(공사 26기) 소령의 아들이다.
아버지가 못다 이룬 꿈을 이루겠다며 공군사관학교를 거쳐 조종사가 된 아들이 순직한 나이는 27세. 현충원 아버지 묘 앞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한 뒤 50여일 만에 난 사고였다.
이씨는 남편을 잃고 다섯살배기 외아들 박인철 소령을 홀로 키워냈다. 그 아들마저 남편의 뒤를 따르자 이씨는 평생을 그리움 속에 살았다. 최근 AI 기술 발달로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의 모습을 복원하는 사례가 잦아지자 이씨는 “‘나도 우리 인철이를 저렇게라도 한 번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고인이 생전 남긴 음성·영상·사진 데이터를 기반으로 AI는 ‘부활’을 시도한다.
“조종사 훈련을 받으면서 제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엄마도 잘 아시잖아요. 엄마가 속상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원하던 일을 해서 여한이 없어요. “ AI로 복원된 박 소령은 이렇게 말했다.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이씨는 처음에는 놀란 표정이었지만 이내 살아있는 사람과 대화하듯 10여분간 자연스럽게 이야기했다. 어머니의 얼굴이 그리움으로 사무쳤다.
박 소령과 공사 시절 ‘삼총사’라고 불렸던 동기 김상훈·이두원 중령도 이 자리에 함께했다. 박 소령은 동기들에게 “같이 야구도 보고 여행도 다니고, 우리가 참 추억이 많았다” “그때 네가 그만 좀 따라오라고 했었잖아”라고 말을 건넸다. 이 중령은 “정말 인철이와 실제로 만난 느낌이었다”며 “인철이는 누구보다 앞에 서서 대한민국을 지키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국방부는 ‘조국을 위해 희생한 장병을 기억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는 취지로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국방부 정신전력문화정책과 이선미 중령은 “호국영웅의 유가족을 위로하고 그 숭고한 희생에 예우를 표할 방법을 고민하던 끝에 생각해낸 것이 AI 복원”이라고 했다. 군은 이런 AI 기술을 장병 정훈 교육에도 적극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박명렬·박인철 부자는 현재 국립서울현충원에 나란히 누워있다. 충북 청주시 공군사관학교에는 이들이 전투기와 한 몸으로 표현된 ‘기인동체’(機人同體) 흉상이 세워져 있다. 현충원 두 무덤 앞에는 ‘호국부자의 묘’라는 비석 아래 박명렬 소령 순직 당시 부모님이 새긴 비문이 남아있다.
‘그리워라 내 아들아 보고 싶은 내 아들아/자고 나면 만나려나 꿈을 꾸면 찾아올까/ 흘러간 강물처럼 어디로 가버렸나.’ 4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 AI기술로 유족은 그 한(恨)을 티끌만큼이나마 풀게 됐다.

▲2004년 3월, 공군사관학교를 졸업을 마친 박인철 소위가 어머니 이준신씨와 함께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배경의 전투기는 아버지 박명렬 소령이 몰다가 산화했던 F-4E 팬텀기다. /조선일보DB
조선일보 원선우 기자
07-05 北찬양 교사 ‘불법 특채’ 김석준, 국가교육위원 사퇴해야
민주노동당 출신으로, 친(親)전교조 성향인 김석준 전(前) 부산시교육감의 전교조 해직교사 4명에 대한 ‘불법 특채’ 혐의가 뒤늦게나마 수사를 받는다. 감사원은 4일 김 전 교육감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하며, 그를 지목해 2021년 5월 청구된 ‘공익감사’ 보고서도 공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1월 1일 자로 특채한 과정부터, 같은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행태보다 더 기막히다.
해당 교사들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2009년 1심 유죄 판결 후 해직됐다. 대법원은 징역형 집행유예를 2013년 확정했다. 교사들을 대상으로 ‘김일성이 항일무장투쟁을 주도한 결과로 광복이 이뤄졌다’ ‘6·25전쟁은 조국해방전쟁’ 등으로 역사를 왜곡하며 북한 정권 찬양을 선동하는 강좌를 2005년에 연 혐의다. 이들을 특채하려고, 김 전 교육감은 공개경쟁 시험을 의무화한 법령조차 무시했다. 자문한 법무법인들의 ‘법령 위반’ 지적도 못 들은 척했다. 지원 대상을 ‘퇴직 교사’로 삼은 실무진 계획안을 외면하고, 4명만 해당하는 ‘해직된 자’로 못을 박게 했다.
공수처의 엄정한 수사는 당연하다. 정의당 추천으로 지난해 9월 임명된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직부터 사퇴해야 한다. 이런 사람의 중·장기 교육정책 수립 참여는 위험하다. 하윤수 현 부산교육감은 국가보안법 위반 확정 판결을 받은 특채 교사들이 더는 교단에서 학생 교육을 오염시키지 못하게 할 합법적 방안을 모색해야 마땅하다.
문화일보 사설
07-05 “더러운 평화라도 이기는 전쟁보다 낫다”는 反안보 궤변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願平備戰)’는 로마 격언과 ‘전쟁을 잊으면 반드시 나라가 위태롭게 된다(忘戰必危)’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경구는 고금을 관통하는 안보 명제다. 평화는 희망이 아니라 힘으로 지켜진다는 사실은 세계사의 수많은 사례로 입증됐다. 히틀러와의 평화협상은 말할 것도 없고, 김일성의 6·25 남침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원내 1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표가 4일 “아무리 더러운 평화라도 이기는 전쟁보다는 낫다”고 했다. ‘더러운 평화’의 구체적 내용은 밝히지 않았지만, 어떤 굴종적 양보를 하더라도 전쟁만은 막아야 한다는 취지로 이해된다. 핵 공격을 대놓고 위협하는 북한 김정은 체제 앞에서 안보 태세를 허물 충격적인 발언이다.
6·25전쟁과 7·27 휴전협정 기념일이 있는 6월과 7월은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싸운 국군과 유엔군의 헌신을 되새기는 달이라는 점에서 더욱 황당하다. 이 대표는 “이길 수 있는 동력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쟁을 일으킨 책임을 묻지 않으면서, 거기에 맞서 피 흘려 싸운 사람들을 탓하는 발상 아닌가. 특히 ‘정전 70주년 한반도 평화행동’이라는 이름의 반전평화를 주창하는 단체 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라는 점에서 김일성의 남침 자체보다 이에 맞서 싸운 국군·유엔군이 문제라는 얘기로 들린다.
백보 양보해 ‘더러운 평화’를 운운하려면, 적군을 이길 압도적 군사력을 확보하는 게 필수다. 그런데 민주당은 대북 지원과 유엔의 대북 제재 완화를 주장하면서, 한미동맹을 약화시키고 죽창가식 반일을 외쳐왔다. 그런데도 이 대표는 “싸울 필요가 없는 상태, 평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싸우지 않고 이기기 위해선 더 더욱 강력한 안보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위험천만한 궤변이다. 이 대표는 “엄청난 대량 파괴와 살상 후에 승전한들 그리 좋은 일이겠나”라고도 했다. 호국영령을 욕보이는 망언이다. 오죽하면 매국노 이완용의 발상과 같다는 비판까지 나오겠는가.
문화일보 사설
07-05 이재명 “더러운 평화라도 이기는 전쟁보다 낫다”에 신원식 “매국노 이완용 발언 판박이”
신원식 " 이완용 ‘아무리 나쁜 평화도 전쟁보다 낫다, 조선 평화 위한 것’발언 판박이"
이재명 "아무리 더러운 평화라도 이기는 전쟁보다 낫다"며 尹대통령 주장 반박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아무리 더러운 평화라도 이기는 전쟁보다는 낫다" 발언에 대해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이 "이 대표는 매국노 이완용의 길을 가겠다고 공언한 것"이라고 직격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여당 간사인 신 의원은 4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이재명 대표가 오늘 국회에서 열린 ‘정전 70주년 한반도 평화행동’ 대표단과 간담회에서 말한 주장은 매국노 이완용이 ‘아무리 나쁜 평화도 전쟁보다 낫다, 이게 다 조선의 평화를 위한 것’이라며 일제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한 발언과 다름없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이어 "반일 죽창가 괴담 선동에 앞장서 온 이재명 대표가 매국노 이완용의 ‘나쁜 평화’를 미화하다니 실로 놀랍고도 충격적인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신의원은 "이기는 전쟁보다 더러운 평화가 낫다면, 6·25전쟁 때도 우리가 북한에 항복하는 것이 더 나았다는 소리인가"라고 반문한 뒤 "5천년 역사 동안 900여회의 크고 작은 외침을 받았다고 하는데, 이 대표는 이 위대한 국난극복사를 부정하는 것인가. 을지문덕, 강감찬, 이순신 장군님은 물론이고, 6·25전쟁 때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산화한 호국영령들이 지하에서 통곡할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이 대표의 반국가적 역사 인식을 규탄한다.

▲국회 국방위원회 여당 간사인 신원식 국민의 힘 의원. 뉴시스
이 대표는 즉각 해괴한 대국민 언어테러를 멈추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그리고 국민께 사죄하라"고 촉구했다.
앞서 이 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가진 763개 시민사회·종교단체가 참여한 ‘정전 70주년 한반도 평화행동’(평화행동) 대표단과의 간담회에서 "대량 살상 후 승전하는 것이 지는 것보다 낫겠지만, 그게 그리 좋은 일인가"라며 "아무리 더러운 평화라도 이기는 전쟁보다는 낫다"고 언급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한국자유총연맹 행사에서 문재인 정부를 겨냥해 "반국가 세력이 북한 공산집단에 대해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다"며 "북한이 다시 침략해오면 유엔사와 그 전력이 자동으로 작동하는 것을 막기 위한 종전선언 합창이었다"고 한 데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이 대표는 "최근에 종전을 놓고 많은 논란이 생겼다"며 "강력한 국방력으로 이길 수 있는 동력을 키우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싸울 필요가 없는 상태, 평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화일보 정충신 선임기자
07-05 탄약·연료·식량 40~50㎏ 짊어지고… 포화속 누빈 ‘지게부대원’ 기린다

▲5일 오전 칠곡군 관계자들이 제막식에 앞서 위령비에 천을 씌우고 있다.
백장군 장녀 자비 들여 위령비
“그들 헌신 아버지가 늘 말씀”
칠곡 = 글·사진 박천학 기자 kobbla@munhwa.com
5일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 6·25전쟁 다부동 전투 당시 국군을 지원하다가 희생된 지게부대원을 기리는 ‘다부동 전투 참전 주민위령비’가 제막됐다.
위령비는 6·25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백선엽 장군의 장녀 백남희(75) 여사가 지게부대원의 헌신을 높이 평가했던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1500만 원을 들여 높이·너비 각각 1.6m 크기로 제작했다.
위령비에는 지게부대원의 활약상과 그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이날 오전 개최된 제막식에는 백 여사와 김재욱 칠곡군수, 지게부대원 후손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주민의 희생을 먼저 기려야 한다는 백 여사의 뜻에 따라 백 장군 동상 제막에 앞서 위령비 제막식이 열렸다.
지게부대원은 지역민들로 구성된 민병대로, 탄약·연료·식량 등 보급품 40∼50㎏을 짊어지고 가파른 산악 고지를 오르며 백 장군이 이끄는 국군 1사단과 미군에 전달했다. 내려가는 길에는 부상자와 전사자 후송 등 병참 임무도 담당했다. 이 과정에서 지게부대원 2800여 명이 전사했지만 참전 사실이 입증되지 않아 보상받지 못하고 있다.
유엔군은 당시 이들이 지게를 지고 산을 오르는 모습이 알파벳 ‘A’와 닮았다며 이들을 ‘A-Frame Army’로 불렀다. 미8군 사령관이었던 밴 플리트 장군은 회고록에서 “지게부대원이 없었다면 최소 10만 명 정도의 미군 병력을 추가로 보내야 했을 것”이라며 이들의 역할을 높이 평가했다.
위령비에는 ‘다부동 전투에서 산화한 지게부대원들에게 바칩니다’라는 제목으로 백 여사가 쓴 지게부대원의 활약상과 그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는 내용이 담겨 있다. 백 여사는 “아버지는 다부동 전투 승리에는 지게부대원의 고귀한 희생과 숭고한 헌신이 스며 있다고 하시며 이들에게 항상 고마워하셨다”며 “칠곡군민의 뜻을 모아 호국 성지 다부동에 위령비를 세워 그분들의 애국심을 기리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문화일보 박천학 기자
07.06 나라 살린 다부동 승전, 73년 만에 세워진 백선엽 장군 동상
6·25 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의 동상이 5일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 세워졌다. 1950년 다부동 전투가 벌어진 지 73년 만에 승리의 주역을 현장에 모신 것이다. 국방부 장관과 한미연합사령관, 한미 양국 주요 인사 등 2000여 명이 참석했다. 지난 정권은 그를 친일로 매도하고 홀대했다. 정상적인 나라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늦었지만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지켜낸 영웅을 제대로 평가하고 추모하게 된 것이다.
경북 다부동은 6·25 전쟁의 향방을 바꾼 최대 격전지였다. 백 장군은 제1사단장으로 8000여 명의 국군을 이끌고 북한군 3개 사단 2만여 명의 총공세를 막아냈다. 만일 다부동에서 무너졌다면 현재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북한군의 공세에 밀려 부하들이 후퇴하려 하자 백 장군은 “우리가 밀리면 나라도 끝장이다.
내가 앞장서겠다. 내가 물러서면 너희가 나를 쏴라”고 했다. 그가 권총을 뽑고 앞장서자 부하들이 적진으로 돌격해 빼앗긴 고지를 탈환했다. 유학산 고지는 아홉 번, 328고지는 무려 열다섯 번 주인이 바뀌었다. 하지만 백 장군의 1사단은 한 달 넘는 공방전에서 북한군을 물리치고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냈다. 6·25에서 한국군이 거둔 가장 중요한 승리였고 전세 역전의 결정적 발판이 됐다.

▲6·25 전쟁 정전 70주년과 백선엽 장군 3주기를 맞아 5일 오후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열린 고(故) 백선엽 장군 동상 제막식에서 백 장군 동상이 태극기와 성조기 사이로 우뚝 서 있다. 높이 4.2m, 너비 1.56m 크기의 백 장군 동상은 동서남북 사방으로 대한민국을 지키고 수호한다는 의미에서 360도 회전할 수 있도록 제작됐다. /뉴스1
백 장군은 이후 북진해 가장 먼저 평양에 입성했고, 1·4 후퇴 뒤에도 서울을 최선봉에서 탈환했다. 휴전회담 대표를 지내고 한국군 최초로 대장에 올라 두 차례 육군참모총장을 맡으며 군을 재건했다. 미군은 백 장군을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한국군 장교’ ‘최상의 야전 사령관’이라 불렀다. 주한미군사령관들은 취임하면 백 장군을 찾아 전입신고를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백 장군을 ‘독립군 토벌 친일파’라고 매도했다. 간도특설대에 복무했다는 이유였지만 당시엔 만주에 독립군이 없었다는 게 정설이다. 문 전 대통령은 백 장군이 아니라 남침 공로로 북에서 훈장을 받은 김원봉을 국군의 뿌리라고 했다. 민주당은 백 장군의 훈장을 박탈하자고 했고 현충원 안장도 막으려 했다.
그가 100세로 영면하자 미 백악관과 국무부, 전 주한미군사령관들은 모두 애도 메시지를 냈고 ‘한국의 조지 워싱턴’이라고 추앙했다. 시민분향소엔 수만명의 시민이 장대비를 맞으며 조문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과 민주당 지도부는 조문은커녕 애도 메시지도 내지 않았다. 6·25 참전 12만명의 전우가 묻힌 서울 현충원 아닌 대전현충원에 안장했다. 보훈처는 장례 다음 날 그를 ‘친일 반민족 행위자’라고 낙인찍었다.
백 장군의 명예 회복은 문 정권이 끝나고야 이뤄졌다. 이번 동상 제막식에선 다부동에서 포탄·식량 등을 실어 나른 민간인 ‘지게 부대원’들도 함께 조명받았다. 오는 27일엔 한미 동맹을 맺은 이승만 전 대통령과 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의 동상도 다부동에 세워진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예우하지 않는 나라는 존립할 수 없다. 백 장군 같은 호국 영웅을 홀대하고 매도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7-06 ICBM 위장用 확실한 北 위성 로켓… 추가 제재 필요하다
북한이 정찰위성용 우주발사체라고 주장한 ‘천리마 1형’은 위성 발사를 가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라는 정황이 더 확실해졌다. 합동참모본부는 5일 위성체 잔해물 분석 결과와 관련, “정찰위성으로서 군사적 효용성이 전혀 없는 것으로 평가됐다”고 밝혔다. 국제 전문가들의 검토를 거쳐 이런 단정적 발표를 할 정도라면, 북한 위성체 대부분을 인양해 분석을 마쳤을 것이다. 정찰위성 기능을 하려면 해상도가 서브 미터급(1m 이하)은 돼야 하는데 북한 위성체의 경우 10∼20m로, 웬만한 상업위성은 물론 공개된 구글 위성사진보다 못하다고 한다.
북한도 이런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위성 발사에는 엄청난 비용이 든다. 위성체 제조도 마찬가지다. 첨단 부품과 장비의 밀수도 필요했을 것이다. 이런 대가를 치르면서 무의미한 정찰위성 발사를 강행한 것은, 위장된 ICBM 실험 아니고는 설명하기 힘들다. 위성 발사는 주권적 관리에 속하지만, 북한의 경우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이다. 김여정이 “남들 다 하는 위성 발사가 안 된다는 논리는 날강도 같다”고 반발하지만 억지일 뿐이다. 게다가 이번 잔해물 분석으로 국제사회에 대한 기만극임도 확인됐다. 기존의 대북 제재 결의를 확고히 집행하는 것은 물론, 이런 속임수에 대비한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
위성체 잔해물은 스모킹 건이다. 국방과학연구소(ADD)와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이 분석 중인 만큼 전모가 밝혀질 것이다. 인양된 2단 동체의 터보 펌프에서는 러시아산 추정 부품이 다수 나왔다고 한다. 제작 주체와 북한 유입 경로를 추적해야 한다. ICBM 기술과 부품을 제공한 회사 및 국가에 대해 유엔 차원에서 제재해야 한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북한 비호에 대한 대책도 세워야 한다. 아울러, 한·미·일 북한 미사일 정보 공유 시스템 가동을 앞당기고, 요격 태세도 갖춰야 할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
07-06 호국영령 안장 기록 ‘친일반민족’ 삭제는 국가의 도리
윤석열 정부가 호국영령들을 욕보이는 국립현충원 안장(安葬) 기록 일부의 정비에 나섰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5일 “보훈부와 현충원 홈페이지에서 백선엽 장군 안장 기록을 검색하면, 비고란에 ‘친일반민족행위자’ 문구가 같이 뜬다. 백 장군을 비롯한 12명의 현충원 영령이 수모를 겪고 있어서, 삭제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생을 다 바쳐 나라를 지킨 호국 영웅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는 지켜야 한다”고 했다.
박 장관이 지적한 취지대로 호국영령들의 안장 기록에서 그 문구를 없애는 것은 국가의 도리다. 그 12명은 국군 창설 과정과 6·25전쟁에서 보인 업적으로 무공훈장 등을 받은 대한민국 영웅들이다. 설령 일부 흠이 될 수 있는 행적이 있다고 할지라도, 안장 기록에까지 나타낼 건 아니다. 다른 역사 자료에 남기는 것과는 별개다. 박 장관이 “다른 데도 아닌 묘지에 빨간 줄을 그으려 하는 것은 도를 넘어선 행태”라고 개탄한 이유다. 6·25전쟁의 결정적 분수령이던 경북 칠곡 다부동전투를 승리로 이끈 백 장군의 흉상을 보훈부 예산과 건립추진위원회가 모은 국민 성금으로 다부동전적기념관에 세워, 이날 제막식을 가진 것도 만시지탄이다. 해당 문구를 더 방치해선 안 된다.
노무현 정부 때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2009년에 ‘친일’ 딱지를 붙인 명단부터 부적절성 논란이 계속되는 상황이다. 그때부터 10년이 지나기까지도 안장 기록에는 ‘친일’ 운운을 표시하지 않았던 배경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국방부와 보훈처는 2019년 3월 ‘친일 장성 안장 현황 정보’ 표기를 결정했고, 백 장군 안장식이 열린 그해 7월 15일 바로 다음 날에 그 문구를 일제히 넣었다. 국가유공자들조차 ‘반일(反日) 팔이’ 선동 수단으로 삼은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보훈부가 관련 훈령·규정 등의 개정을 서둘러, 신속히 삭제하는 것은 국가적 당위다.
문화일보 사설
07-06 괴담이 ‘갓끈’을 자른다

방승배 정치부 부장
북한의 대남 전술인 ‘갓끈 전술’은 김일성이 1972년 김일성정치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처음으로 언급했다. 김일성은 “사람의 머리에 쓰는 갓은 두 개의 끈 중에서 하나만 잘라도 바람에 날아간다. 남조선 정권은 미국과 일본이라는 두 개의 끈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남조선 정권은 미국이라는 끈과 일본이라는 끈 중에서 어느 하나만 잘라버리면 무너지고 말 것”이라고 했다.
2008년 광우병 사태 당시 촛불시민행동 본부장을 했던 민경우 대안연대 대표가 최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후쿠시마(福島) 오염처리수 공세를 이어 나가는 더불어민주당 등 진보 진영의 행태를 ‘갓끈 전술’에 비유했다. ‘86그룹’(80년대 학번·60년대생) 운동권 출신인 민 대표는 “과거와 달리 ‘86운동권’이 일방적으로 ‘반미’ ‘친북’을 주장하는 게 어려워졌다”며 “이 같은 국제정치 지형의 변화 때문에 일본 문제만 계속 건드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수학자의 얘기가 아니라 NL(민족해방)계의 핵심으로 활동했고,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두 번이나 옥살이를 했던 사람의 입에서 나온 얘기여서 더 무겁게 들린다.
50년 전에 나온 북한의 ‘갓끈 전술’은 아직도 대남 전술의 바이블처럼 사용된다. 최근 방첩 당국 수사로 드러난 ‘자주통일 민중전위(자통)’ 조직원들의 ‘반일감정’ 고조 투쟁 지령문이 이를 증명한다. 이 지령문(2019년 5월 7일)에는 ‘이사회(자통)에서는 방사능 오염수 방류 문제를 걸고 지역 사회의 반일 민심을 부추겨 일본 것들을 극도로 자극시키는 한편, 어정쩡하게 놀아대는 문재인 패들을 압박해 당국 것들과 일본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되돌릴 수 없는 지경으로 몰아넣는 데 중심을 두고 다양한 반일투쟁들을 조직, 전개해 나가야 하겠다’고 돼 있다. 북한 선전매체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오염처리수 관련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역시 ‘86그룹’ 운동권의 상징적 인사로 1985년 미국 문화원 점거 사건을 주도했던 함운경 씨는 최근 국민의힘 강연에서 “반일감정, 반일민족주의를 퍼뜨린 것이 저희들(운동권)”이라며 “전두환이랑 싸우기 위해 온갖 무기를 찾다가 마르크스·레닌주의, 주체사상도 있었는데 그중 가장 강력한 게 반일주의 감정이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오염수 괴담 선동을 놓고는 “과학 대 괴담의 싸움이기도 하지만, 사실 더 크게는 반일민족주의와의 싸움이고 자유동맹을 지키는 싸움”이라고 규정했다.
‘가치외교’를 표방한 윤석열 정부가 한·미·일 삼각협력을 그 어느 때보다 강화해서인지 북한은 ‘갓끈’의 한 줄 자르기에 사력을 다하는 것으로 보인다. 남한 내에서 정치 쟁점화한 오염처리수 방류 문제는 북한 입장에서 ‘남남갈등’을 유발하면서도 북·중·러 관계를 견실하게 하고, 한·미·일을 동시에 비판할 수 있는 더없는 소재다. 민주당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서 러시아의 주장에 동조했고,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 패권에 도전하는 ‘다극체제’를 기대했었던 것 같다. 독재국가를 두둔한 것도 문제지만, 내년 총선 승리 전략으로 밀어붙이는 ‘닥치고 반일’이 과연 누구를 웃음 짓게 하는지 모른다면 정말 심각한 일이다.
문화일보
07-06 ICBM 위장用 확실한 北 위성 로켓… 추가 제재 필요하다
북한이 정찰위성용 우주발사체라고 주장한 ‘천리마 1형’은 위성 발사를 가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라는 정황이 더 확실해졌다. 합동참모본부는 5일 위성체 잔해물 분석 결과와 관련, “정찰위성으로서 군사적 효용성이 전혀 없는 것으로 평가됐다”고 밝혔다. 국제 전문가들의 검토를 거쳐 이런 단정적 발표를 할 정도라면, 북한 위성체 대부분을 인양해 분석을 마쳤을 것이다. 정찰위성 기능을 하려면 해상도가 서브 미터급(1m 이하)은 돼야 하는데 북한 위성체의 경우 10∼20m로, 웬만한 상업위성은 물론 공개된 구글 위성사진보다 못하다고 한다.
북한도 이런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위성 발사에는 엄청난 비용이 든다. 위성체 제조도 마찬가지다. 첨단 부품과 장비의 밀수도 필요했을 것이다. 이런 대가를 치르면서 무의미한 정찰위성 발사를 강행한 것은, 위장된 ICBM 실험 아니고는 설명하기 힘들다. 위성 발사는 주권적 관리에 속하지만, 북한의 경우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이다. 김여정이 “남들 다 하는 위성 발사가 안 된다는 논리는 날강도 같다”고 반발하지만 억지일 뿐이다. 게다가 이번 잔해물 분석으로 국제사회에 대한 기만극임도 확인됐다. 기존의 대북 제재 결의를 확고히 집행하는 것은 물론, 이런 속임수에 대비한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
위성체 잔해물은 스모킹 건이다. 국방과학연구소(ADD)와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이 분석 중인 만큼 전모가 밝혀질 것이다. 인양된 2단 동체의 터보 펌프에서는 러시아산 추정 부품이 다수 나왔다고 한다. 제작 주체와 북한 유입 경로를 추적해야 한다. ICBM 기술과 부품을 제공한 회사 및 국가에 대해 유엔 차원에서 제재해야 한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북한 비호에 대한 대책도 세워야 한다. 아울러, 한·미·일 북한 미사일 정보 공유 시스템 가동을 앞당기고, 요격 태세도 갖춰야 할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
07-06 북 “김신조 사건, 내부 좌경맹동분자가 한 것” 남측에 해명

▲북측 접견한 박정희 전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이 1972년 5월 31일 서울을 방문한 박성철 북한 제2부수상을 접견하고 있다. 통일부는 1971년 11월부터 1979년 2월까지 정치 분야 남북회담문서 2권(1678쪽)을 6일 공개했다. 통일부 제공

▲이후락-김일성 악수 김일성(오른쪽) 북한 주석이 1972년 5월 3일 북한을 비밀리에 방문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통일부 제공
■ 통일부, 남북회담문서 1678쪽 공개
1971~1979년 비밀접촉 등 담겨
이후락 “간첩관련 할 말 많다”
北김영주 “다 처벌했다” 발뺌
南 “통일, 책임지고 풀어가자”
北 “합시다, 그럽시다” 화답
“우리 사회 내부에서도 좌경기회주의, 우경기회주의, 좌경맹동주의, 우경분자가 있습니다. 청와대 사건은 좌경맹동주의자가 한 것입니다.”
통일부가 6일 공개한 1971년 11월부터 1979년 2월까지의 정치 분야 남북회담문서 총 2권(1678쪽)엔 이 같은 7·4 남북공동성명 발표 전 비밀접촉 상황이 담겼다. 당시 1972년 5월 2일 밀사로 평양을 방문한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간첩 문제를 제기하는 김영주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을 향해 “내가 할 이야기가 더 많다”고 맞받자, 김 부장은 “청와대 사건 말이냐”면서 “군부에 있는 맹동분자들이 조직했고, 우리는 후에 알고 다 처벌했다”고 발뺌했다. 1·21사태는 1968년 1월 21일 김신조를 비롯한 북한 공작원 31명이 박정희 당시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세검정 고개까지 침투했던 사건이다. 이 부장이 “앞으로는 그런 맹동분자가 없기를 바란다”고 하자 김 부장은 “앞으로는 절대 없다”고 다짐했다.
당시 회담에선 통일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오가기도 했다. 이 부장이 “나는 통일문제는 이념을 초월하여 생각하고 있다”며 “북쪽은 김 부장이 책임지고, 남쪽은 내가 책임지고 남북문제를 차근차근 풀어 가자”고 제안하자 김 부장은 “합시다. 그럽시다”라고 화답했다. 그러나 6·25전쟁의 성격, 주한미군 철수, 대일본 정책 등을 놓고서는 입씨름이 벌어지기도 했다. 김 부장이 “일본 군국주의가 초보적인 남침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하자, 이 부장은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다시 침략을 받을 우둔한 민족이 아니라고 본다”고 맞받았다. 박정희 정권의 비상사태 선포에 관해 김 부장이 “일본과 미국이 추켜서 쳐들어올 것으로 알았다”고 하자 이 부장은 “추킨다고 추켜지느냐”며 “박 대통령 정부는 미국과 일본이 추킨다고 그렇게 할 정부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번에 공개된 남북회담문서에는 이 부장의 평양 방문 뒤 박성철 북한 제2부수상이 서울을 방문해 이 부장과 회담하고, 이어 7월 4일 서울과 평양에서 7·4남북공동성명이 동시에 발표되는 과정도 담겼다. 남북 직통전화의 가설과 운용절차에 관해 합의가 이뤄지며 직통전화도 공식화됐다. 이후 남북조절위원회를 정식으로 구성해 세 차례 회의를 열었지만 북측의 일방적 선언으로 1973년 8월 28일 중단됐다. 남북조절위를 남북 정당·사회단체 대표들로 구성할 것에 동의한다면 대화를 재개하겠다는 북측의 제안을 받아들인 끝에 부위원장 회의가 10차례 이어졌지만, 박 대통령 저격 미수 사건·남침용 땅굴 발견 등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된 끝에 이마저 중단됐다.
조재연 기자 jaeyeon@munhwa.com
07.07 6·25, 기억의 고지 사수해야

▲6.25 한국전쟁일을 사흘 앞둔 22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1953년 금화지구에서 전사한 육군 일등중사 서원융의 유족들이 묘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2023.6.22 /연합뉴스
며칠 전 책장에서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를 꺼내 읽었다. 저자는 이렇게 썼다.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 처음 한 번은 극장 안에서, 그다음 한 번은 극장 밖에서.” 펜으로 밑줄을 그었다. 그렇다. 우리는 봤던 영화를 다시 떠올린다. 때론 기억 속에서 재상영되는 영화가 더욱 강렬하다.
전쟁도 두 번 시작된다. 처음 한 번은 전쟁터에서, 그다음 한 번은 기억의 공간에서. 1953년 6·25는 멈췄지만, 70년이 지난 지금도 소리 없는 총성은 계속되고 있다. 전쟁의 실상과 의미를 뒤바꾸며 기억의 영토를 차지하려는 제2의 6·25가 벌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2019년 우리 군의 정수(精髓)인 육군사관학교와 육군3사관학교의 필수과목에서 6·25 전쟁사를 뺐다. 육사 회보에서 ‘남침(南侵)’ ‘적화통일 기도’ 같은 단어를 쓰지 못하도록 했다. 왜 그랬을까? 실마리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6·25 73주년에 맞춰 올린 트위터 메시지에 있다. 그는 ‘1950 미중전쟁’이란 책을 소개하면서 “한국전쟁이 국제전이었음을 보여준다”며 “한국전쟁에 작용한 국제적인 힘이 바로 대한민국의 숙명 같은 지정학적 조건”이라고 했다. 6·25가 김일성의 적화 통일 야욕이 아닌 강대국 대리전에서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그날 국군과 유엔군 전사자에 대한 추모나 감사 메시지는 한 글자도 적지 않았다. 문 전 대통령 일가는 6·25 때 흥남에서 미군 도움으로 부산으로 내려왔는데도 말이다. 민주당도 6·25 메시지에서 북한 남침은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73년이 되었지만 끔찍한 동족상잔의 비극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한 신문은 호국 보훈의 달 마지막 주에 국군이 6·25 기간 만행을 저질렀다며 보도 윤리에 저촉될 수준의 적나라한 시신 사진을 아무 가림 편집 없이 보도했다. 전쟁의 원흉인 북한의 학살 행위에 대해선 입을 닫았다. 북한의 무력 도발로 우리 장병이 전사한 서해수호의 날에 굳이 파주 북한군·무장간첩 묘 참배식에 참석한 국회의원도 몇 해 전에 있었다. 이들은 무엇을 기리고 싶은 걸까. 북한의 6·25 남침도 소련 해체로 외교문서가 공개되면서 물증으로 확인됐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천안함 자폭, 좌초설과 같이 북침, 남침 유도설 같은 음모론이 활개쳤을지 모른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3일 “아직도 냉전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고도 했다. 한반도에서 가장 냉전적 사고에 빠진 건 김정은 아닌가.
6·25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과 함께 전쟁의 역사와 한반도 정세를 왜곡·오도하려는 공세가 계속되고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한다. ‘역사가 바뀌면 미래도 바뀐다’는 말도 된다. 기억의 고지를 사수해야 하는 이유다.
조선일보 노석조 기자
07.07 “엄마, 순직이 뭐야?” 묻던 아들, 조종사 아버지 곁에 묻힐 줄이야…
AI로 돌아온 아들 만난 이준신씨

▲남편 박명렬·아들 박인철(왼쪽) 공군 소령을 모두 호국 영웅으로 떠나보낸 이준신씨가 지난 5일 국방홍보원 공개 영상에서 인공지능(AI)이 살려낸 아들 박 소령과 서로 거수경례를 나누고 있다. 이씨는 “남편과 아들을 기억해주시는 국민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했다. /국방홍보원
국방홍보원은 지난 5일 인공지능(AI)으로 복원한 고(故) 박인철 소령(1980년생·공사 52기)과 어머니 이준신(67)씨가 재회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16년 만의 모자(母子) 상봉에 많은 국민이 함께 눈물 흘렸다. “영웅의 희생을 잊지 않겠다”는 반응이 이어진 데 대해 이씨는 6일 본지 통화에서 “많은 국민이 제 아들을 기억해주신 데 대해 감사하다”고 했다.
이씨는 남편 박명렬(1953년생·공사 26기) 소령이 F-4E 팀스피릿 훈련 도중 숨진 1984년 3월 14일 밤을 기억한다. “그 전날에 남편이 비행 없다고 했었거든요. 사고가 났다기에 ‘우린 아니겠지’ 했는데, 남편이 순직자라고 하더군요.” 그래도 이씨 곁엔 네 살 아들 인철이와 두 살 딸이 있었다. 이씨는 “저는 당시 관사(官舍)에 살던 28세 전업주부였다”며 “이제 어떻게 애들 데리고 먹고사나 눈앞이 캄캄했다”고 했다.
1987년 어느 날, 국립서울현충원의 남편 무덤에서 아들이 “엄마, 순직(殉職)이 뭐야?”라고 물을 때 이씨는 “멀리 공부하러 떠났다는 뜻이야”라고 했다. 20년 뒤 그 꼬마가 아버지 곁에 묻힐 줄은, 그 묘비에 ‘순직’ 두 글자가 또 새겨질 줄은 알지 못했다고 한다. 아들 박 소령은 2007년 7월 20일 서해 상공에서 KF-16 야간 비행 중 순직했다. 27세였다.
남편이 순직한 뒤 나오는 수당으론 세 가족 생계를 꾸릴 수 없었다. 미용 일을 배워 가게를 차렸지만 여의치 않았다. “미용 학원에 와서 일해 달라는 제의를 받았는데 다행히 그건 적성에 맞았어요.” 아들과 딸이 ‘아버지 없이 자란 자식’이라고 손가락질받을까 봐 매사 반듯하게 키우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아들은 서울 선덕고 재학 시절 공부도, 운동도 잘했다. 이씨 역시 “더 열심히 공부하면 전교 1등도 하겠는데, 머리는 좋은데 왜 노력을 안 하니” 같은 잔소리를 하던 평범한 어머니였다. 그는 “주말마다 셋이서 동네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밥도 먹던 일상이 그립다”고 했다.
고교를 졸업한 아들이 “아버지처럼 공군사관학교에 가겠다”고 했을 때 이씨는 가슴이 철렁했다. 결국 아들에게 ‘공사에 가더라도 조종사 말고 교수가 돼라’는 조건으로 허락했다. 하지만 아들은 결국 남편 같은 조종사가 됐다. 아들을 잃은 뒤 이씨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아들을 결코 파일럿으로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며 후회했다고 한다.
아들 시신은 바다에서 찾지 못했다. 미리 잘라둔 머리카락을 현충원에 묻었다. 아들이 혹시 돌아올까 싶어 현관문 비밀번호도 안 바꿨다. 신을 원망하면서도 남은 딸을 보며 “그래도 살아야지” 했다. 포천에 있는 한 요양원에서 미용 봉사를 그즈음 시작했다. 이씨는 2018년 순직조종사부인회(순조회) 추천으로 충북 충주에 있는 보훈휴양원 원장에 임명됐다. 딸은 2021년 결혼했다.
AI가 되살린 아들과 재회하던 지난달 5일 촬영일, 아들의 공사 동기였던 김상훈·이두원 중령을 보며 이씨는 ‘내 아들도 살았다면 결혼도 하고 손주도 낳았겠지’ 생각했다고 한다. 아들 박 소령은 2008년 결혼할 예정이었다.
‘만약 천국이 있어서 남편과 아들을 진짜 재회한다면 무슨 말을 하겠느냐’고 물었다. 남편에겐 “가족 남겨놓고 이렇게 좋은 데 먼저 와 있었느냐” “인철이 왜 이렇게 빨리 데려갔느냐”고 말하겠다고 했다. 아들에게 해줄 말을 잠시 생각하다가, 어머니는 끝내 흐느꼈다. “인철이한테는... 그냥 ‘보고 싶었다’고 말할래요.”
조선일보 원선우 기자
07.07 남로당 등 친북 인사들, 文정부서 독립유공자로
文정부, 사회주의 활동 기준 완화
6차례 탈락했던 손혜원 부친 서훈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8월 15일 제73주년 광복절 및 정부 수립 70주년 기념식에서 손혜원 의원의 어머니 김경희씨에게 손 의원 부친 고(故) 손용우 선생의 건국훈장 애족장을 전달한 뒤 악수를 하고 있다./남강호기자
남로당 활동 등 친북(親北) 논란 인사들은 주로 문재인 정부 때 독립유공자로 서훈됐다. 손혜원 전 의원 부친 손용우(1923~1999)가 대표적 사례다. 손용우는 광복 이후에도 조선공산당에서 활동한 이력 등 때문에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비롯한 역대 정부 보훈 심사에서 6차례 탈락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2018년 7번째 신청 끝에 독립유공자로 서훈됐다.
그러나 손용우가 대한민국 공산화를 위해 1946년 창당된 남로당에서 활동한 이력을 정부가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다는 논란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손용우가 6·25 전 경기 양평에 드나들며 남로당으로 활약했다는 정부 보고서 내용이 있음에도 당시 보훈처는 이러한 이력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다. 손 전 의원은 문재인 전 대통령 아내 김정숙 여사와 숙명여중·고 동기·동창이다.
손용우가 서훈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 후 ‘광복 후 행적 불분명자’(사회주의 활동 등) 기준을 완화했기 때문이다. 2018~2020년 서훈된 독립유공자는 39명이었는데 이 중 70%가량이 조선공산당·남로당 등 활동 경력이 있었다. 손용우를 포함, 각 지역 인민위원장을 지낸 인사들이 독립유공자로 서훈됐다. 정부는 당시 “북한 정권 수립에 직접 기여하지 않은 인물만 서훈했다”고 했지만 남로당 활동 등을 지나치게 느슨하게 검증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노무현 정부 때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을 재평가하면서 서훈한 인사도 재검증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 정권에서 부수상을 지낸 박헌영의 첫째 부인 주세죽은 2007년 서훈됐다. 첫 남편 박헌영과 헤어지고 재혼한 점 등이 감안됐지만, 현 정부는 주씨의 독립운동 목적 자체가 사회주의 인민공화국 수립이었던 것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이런 기준대로라면 이명박 정부 시절 서훈된 김일성 숙부 김형권, 김일성 외숙 강진석의 독립유공자 자격도 재검토될 수 있다.
정부는 공적 허위 기재 등 논란이 제기된 인사들의 서훈도 재검증할 방침이다. 김원웅 전 광복회장의 부모인 김근수·전월선이 대표적 사례다.
조선일보 원선우 기자
07-07 [단독] 文 때 "김원봉 포상" 압력…수혜 받은 건 손혜원 부친
문재인 정부 시절 국가보훈처(현 국가보훈부)에 들어선 보훈혁신위원회(보훈위)가 김원봉 등 친북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포상을 “마땅히 해야 하는 것”으로 규정하며 “(포상에)최선을 다하라”고 권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위원회의 압력을 받은 보훈처는 당시 실제로 사회주의자에 대한 포상이 가능하도록 내부 기준을 바꿨다. 김원봉에 대한 서훈 수여는 논란을 거치며 불발됐지만, 손혜원 전 의원의 부친인 손용우 씨를 포함한 사회주의 진영에서 활동했던 39명이 바뀐 규정에 따라 실제 포상 대상이 됐던 것으로 파악됐다.
▲약산 김원봉
“광복 때 독립운동했다면 사상 무엇이든 독립유공자”
6일 중앙일보가 입수한 ‘국민중심 보훈혁신위원회 의결 권고안 모음집’에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김원봉 등 마땅히 독립유공자가 될 사람들에게 적절한 포상을 해 국가적 자부심을 고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문구가 명시돼있다.
보훈위는 2018년 5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8개월 동안 보훈처 내에서 활동했다. 당시 보훈위는 지은희 정의기억재단 이사장이 위원장을 맡았고,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 진영에서 활동했던 김은경 전 보훈처 정책보좌관, 오철식 전 국방홍보원 원장을 비롯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소속 성춘일 변호사 등이 위원을 맡았다.
▲2017년 6월 당시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은희 정의기억재단 이사장으로부터 소녀상을 전달 받고 있다. 중앙포토
보훈위는 김원봉을 특정해 "마땅히 독립유공자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독립운동은 1945년 8월 15일 시점에서 판단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권고안 모음집엔 이들이 “그 시점(광복일)에 독립운동 지속하고 있었다면 그 독립운동가의 사상이 무엇이든, 또 해방 이후 정치적 행적이 무엇이든 그 사람은 독립유공자로 판단해야 옳다”고 강조했던 내용도 포함돼 있다.
보훈위는 또 김원봉 외에도 “남에서도 북에서도 사상이나 정치적 이유로 독립운동 공적을 온전히 평가받지 못하는 독립운동가들을 적극 서훈한다”거나 “사회주의자라는 이유로 서훈 등급을 낮춘 사례는 모두 조사해서 재조정한다”고 권고하기도 했다.
이 같은 권고에 당시 보훈처 내부에서 강한 반발 기류가 있었다고 한다. 익명을 원한 보훈부 관계자는 “당시 권고에 대해 건국훈장의 기본 가치를 무너뜨리는 선 넘은 권고라는 분통이 터져나왔다”며 “이런 논리면 김일성도 서훈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자조 섞인 얘기가 적지 않았다”고 전했다.
권고 넘어 '공식 기준'까지 바꿨다
그럼에도 보훈처는 2018년 6월 사회주의 활동에 대한 공식적인 포상 근거를 바꿨다.
수정된 근거 조항엔 “광복 후 사회주의 활동을 했더라도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하거나 적극 동조한 것이 아니면 사안별로 판단해 검토한다”는 구절이 추가됐다. 특히 ‘적극 동조’라는 자의적 기준을 넣으면서 사실상 전체 친북 논란 인물들에 대한 서훈을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부 관계자는 “광복 후 친북 활동이 의심되는 행적 불분명자에게 서훈 수여가 보류된 이전 기준에 비하면 범위가 크게 확대된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중심 보훈혁신위원회는 2018년 펴낸 의결 권고안 모음집을 통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김원봉 등 마땅히 독립유공자가 될 사람들에게 적절한 포상을 해 국가적 자부심을 고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고 명시했다. 국민중심 보훈혁신위원회 의결 권고안 모음집
보훈처의 공식적 포상 근거가 변경된 이후인 2019년 6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현충일 추념사에서 김원봉을 직접 언급하며 “국군 창설의 뿌리”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김원봉 포상'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역설한 셈이다. 김원봉이 광복군 부사령관으로 독립운동에 공을 세운 것은 대체로 사실로 인정된다. 그러나 그는 광복 후 북한으로 건너 가 김일성 정권 초대 내각에서 국가검열상(장관)에 이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내며 김일성 정권 수립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당시 문 전 대통령의 발언은 사회 분열과 진영 간 대결로 이어지며 사회적 논란이 됐고, 결국 김원봉에 대한 서훈은 이뤄지지 않았다. 보훈부 관계자는 당시 상황에 대해 “김원봉은 북한 정권에 기여한 바가 매우 커 서훈 수여가 애초 불가능한 인물이었다”며 “당시 서훈이 추진됐던 자체가 비정상적 상황이었다”고 강조했다.
김원봉은 실패했지만…사회주의자 39명 포상
논란의 핵심이었던 김원봉의 서훈은 불발됐지만, 수정된 원칙에 따라 사회주의 활동자 39명은 포상 대상에 올랐다. 여기엔 손혜원 전 의원의 부친 손용우 씨도 포함됐고, 2018년 광복절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수여됐다. 손용우 씨는 광복 후 사회주의 활동을 벌인 인물로, 해당 이력 때문에 규정이 바뀌기 전 심사에서는 6차례나 서훈 대상에서 탈락했다.
보훈부는 “친북 논란이 있음에도 독립유공자로 포상돼 사회적 갈등을 야기한 부분에 대해 기준을 명확히 하겠다”며 “필요할 경우 기포상자에 대해서도 적절성을 다시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손용우 씨 등 친북 활동이 의심되는 인사들에 대한 서훈 전면 재검토가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보훈부 관계자는 “사회주의 독립운동의 인정 시점, 북한 정권 수립 기여의 기준 등을 다시 명확하게 조정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며 “정부가 바뀔 때마다 건국훈장 수여 기준이 함께 바뀌는 문제를 바로잡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07.08 [단독] 국방부도 6·25 영웅 ‘친일파 낙인’ 찬성했다
2018년 친일파 문구 게재 찬성
내부선 “軍선배 명예 먹칠” 반발
국방부는 “청와대 뜻” 밀어붙여
문재인 정부 시절 국가보훈처(현 국가보훈부)가 고(故) 이종찬 전 국방부 장관 등 6·25 참전 용사들의 국립현충원 안장 기록에 ‘친일반민족행위자(친일파)’ 문구를 넣는 과정에 국방부가 동참했던 것으로 7일 확인됐다. 국방부는 백선엽 장군 등 태극무공훈장 유공자라도 노무현 정부 때 조직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규명위)’가 분류한 ‘친일파 1005명’에 포함되면 현충원에 묻힐 수 없다는 내용의 국립묘지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찬성’ 의견을 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군 내부에서는 “다른 부처도 아닌 국방부가 나라 지킨 군 선배의 명예에 먹칠해서 되겠느냐”는 반발이 나왔지만 국방부는 “‘BH(청와대)’ 뜻”이라며 밀어붙였다고 한다.
본지가 국회 정무위·국방위를 통해 입수한 자료를 보면, 보훈처는 2018년 11월 ‘친일파’ 문구를 현충원 안장자 기록에 삽입해도 되는지 국방부에 협조 공문을 보냈다. 대전현충원 관할은 2006년 보훈처로 이관됐지만, 서울현충원은 여전히 국방부 관할이기 때문이다. 보훈처가 ‘친일파’ 문구를 넣으려는 대상은 총 11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서울현충원에는 이 전 장관, 이응준 초대 육군참모총장 등 6명이 안장된 상태였다.
국방부는 그해 12월 보훈처 요청에 ‘동의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 보훈처는 또 친일규명위가 분류한 ‘친일파 1005명’에 해당하는 인물을 새로 안장 신청하면 불가 처리하는 방안을 문의했는데, 국방부는 여기에도 ‘동의한다’고 답했다. 당시는 백선엽 장군 별세 1년 7개월 전이었다. 전직 국방부 관계자는 “’이러면 나중에 호국 영웅이자 한미 동맹의 상징인 백 장군도 현충원에 못 묻히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등 반대 의견이 있었는데도 일부 인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고 했다. 국방부 수장이 송영무 장관에서 정경두 장관으로 교체된 지 석 달 정도 된 시점이었다. 보훈처는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친일파의 현충원 신규 안장 배제’ 관련 조항을 담은 국립묘지법 개정안을 추진해 이에 보조를 맞추고자 국방부와 의견을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정무위에 따르면, 보훈처와 국방부 모두 이 개정안에 ‘찬성’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보훈처는 국방부 협조 업무를 마친 직후인 2019년 1월 기존 안장자 공개 기록에 ‘친일파’ 문구를 게재하고, 신규 안장 대상에서 규명위가 분류한 친일파는 배제한다는 두 방안을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소식통은 “피우진 당시 보훈처장이 주요 직위자와 함께 청와대와 국회에 보고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보훈처는 이후 두 달 만인 2019년 3월 이 전 장관 등 총 11명의 안장 기록에 ‘친일파’ 문구를 넣어 현충원 홈페이지에서 열람 가능하도록 했다. 다만 친일파 신규 안장 배제 방안은 민주당 측이 발의한 국립묘지법 개정안이 20대 국회 회기 종료에 따라 자동 폐기되면서 추진되지는 못했다. 이 때문에 2020년 백선엽 장군이 별세한 뒤 현충원에 못 가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그의 안장 기록에도 ‘친일파’ 문구가 입력됐다. 전직 군 관계자는 “안장 기록에 고인의 부정적 이력을 공시하는 것은 사자(死者) 명예훼손 소지가 있고 장례 문화 등 도의적으로도 부적절하다”며 “이를 알만한 국방부가 정치권 압박에 별말 못 하고 따른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노석조 기자
07.10 호국 영웅들에 마구잡이로 낙인찍은 친일파 딱지

▲문재인 정부 시절 ‘친일파’ 낙인이 찍힌 국가유공자들. 윗줄 왼쪽부터 백선엽 장군, 김백일 국방경비대 3연대장, 김석범 2대 해병대사령관, 김홍준 국방경비대 4연대 창설 중대장, 백낙준 초대 연세대 총장, 백홍석 초대 육군 특별부대사령관, 아랫줄 왼쪽부터 송석하 전 국방연구원장, 신응균 초대 국방과학연구소장, 신태영 4대 국방부 장관, 신현준 초대 해병대사령관, 이응준 초대 육군참모총장, 이종찬 8대 국방부 장관. /그래픽=백형선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9년 3월 보훈처와 국방부는 현충원에 잠든 호국 영웅과 국가유공자 11명의 안장 기록에 ‘친일반민족행위자’ 문구를 넣었다. 이 과정을 들여다보니 주먹구구가 따로 없다. 보훈처 수뇌부가 ‘윗집 오더’라며 밀어붙였고, 국방부는 보훈처의 협조 공문에 ‘동의한다’고 답장했다. ‘사자(死者) 명예훼손 소지가 크다’ ‘나라 지킨 선배들 명예를 짓밟는 것’이란 내부 반발을 묵살하고 일사천리로 ‘친일파 딱지’를 붙였다. 똑같은 조치가 2020년 6·25 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이 별세했을 때도 취해졌다. 법적 절차는커녕 최소한의 사회적 공론화 과정도 없이 군사작전 하듯 해치웠다.
문 정부가 이런 일을 벌인 유일한 근거는 노무현 정부 시절 꾸린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선정한 ‘친일파 1005인’ 명단이다. 이 위원회는 특정 정파 성향 인사 위주로 구성돼 출범 당시부터 편향성 논란이 컸다. 친일파 명단은 2009년 발표와 동시에 불공정·편파 시비에 휘말렸다. 좌파 인사들은 구체적 친일 행적이 확인되는데도 명단에서 빠진 반면, 우파 인사들은 특정 조직·부대에 속했다는 이유만으로 친일파 낙인이 찍힌 경우가 많았다.
이런 일을 관료들이 알아서 추진했을 리 없다. 2019년 3·1절 기념사에서 문 전 대통령은 “친일 잔재 청산은 너무나 오래 미뤄 둔 숙제”라고 했다. 이것이 신호탄이었다. 보훈처와 국방부가 친일파 딱지 붙이기에 나섰고, 민주당과 광복회장은 ‘친일파 파묘’를 주장했다. 친여 단체들은 현충원에 몰려가 봉분과 묘비를 짓밟고 가축 배설물을 살포했다. 현대판 부관참시와 패륜이 도처에서 자행됐다.
반면 좌익 활동으로 친북 논란을 일으킨 인사 20여 명은 문 정부 시절 무더기로 독립유공자로 서훈됐다. 역대 보훈 심사에서 6차례 탈락했던 손혜원 전 의원 부친도 그중 하나다. 문 전 대통령은 현충일에 6·25 남침 공로로 북에서 훈장을 받은 김원봉을 국군의 뿌리인 듯 칭송했다. 나라를 세우고 김일성 침략에 맞서 싸운 사람들은 친일파로 몰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며 북한 편에 섰던 인사들을 애국자로 둔갑시켰다. 과연 이들의 마음속 조국은 어디일까.
조선일보 사설
월간조선 07월 호
한국전 참전 16개국 기념 조형물을 찾아서

▲에티오피아군 참전 기념비. 제2차 세계대전 때 외적의 침략으로 군대를 잃은 에티오피아는 황제의 근위대를 한국에 파병했다. 셀라시에 당시 황제는 그들의 부대에 ‘격파하라’라는 뜻을 가진 ‘각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강원도 춘천시 이디오피아길).
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군이 대한민국을 침략했다는 소식을 들은 유엔은 바로 다음 날인 6월 26일 긴급 안전보장이사회를 열어서 북한에 “적대 행위를 즉각 중지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북한이 불응하자 유엔은 ‘세계 평화와 한반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공동 행동’을 하기로 결의했다.
7월 24일 대한민국을 위해 싸울 유엔군 사령부가 정식으로 설치되었고 사령관으로 맥아더 장군이 결정되었다. 유엔 결의에 뜻을 같이한 16개 나라는 전투 부대를, 6개 나라는 의료지원단을 보내기로 했고, 38개 나라는 물자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들 덕분에 우리 대한민국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나라가 없어질 뻔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지만 한반도에서 포성이 멎은 지 올해로 70년이 되었다. 긴 세월이 흘렀어도 그때 참전국이, 참전용사들이 아낌없이 베풀어준 희생과 헌신은 지금도 우리에게 커다란 은혜로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이 위기에서 구해낸 자유 대한민국 안에서 그 빛나는 번영을 한껏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길의 시작은 그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는 것이다. 정전 70주년을 맞아 본지에서는 전국에 있는 참전국들의 기념비와 전적비를 지면에 실어 그들을 기억하고 가슴 깊이 기리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미군 가평 전투 참전 기념비 근처에 있는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글이 새겨진 표석. 이곳에서 미국 유타주 출신 포병 대대 장병들은 대규모 중공군을 상대로 단 한 명의 아군 희생자 없이 커다란 승리를 거두었다(경기도 가평군 북면 이곡리).

▲미국군 참전 기념비와 트루먼 대통령 동상. 트루먼 대통령의 즉각적인 결단 덕분에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은 엄청나게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

▲설마리 영국군 전투 전적비. 영국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지상군을 파병한 나라이다. 영국군은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 참전국 대대들이 배속된 영연방 여단의 중심이 되었다(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설마리).

▲남아프리카공화국군 참전 기념비. 전면에 남아공의 상징 동물 스프링복(영양의 일종) 동상이 서 있다(경기도 평택시 용이동).

▲그리스군 참전 기념비. 그리스 고대 유적 아테네 신전 모습으로 세워진 기념비 정면에는 월계수 잎과 투구가 새겨진 둥근 동판이 붙어 있다(경기도 여주시 여주읍 상리).

▲벨기에·룩셈부르크군 참전 기념비. 참전하려는 나라는 최소한 대대 규모의 장병을 보내야 했지만 작은 나라 룩셈부르크는 예외가 되었다. 룩셈부르크는 1개 소대를 이웃 나라 벨기에 대대에 포함시켜 파병하였다(경기도 동두천시 상봉암동).

▲프랑스군 참전 기념비. 정면 벽에는 프랑스 대대의 마크와 프랑스군이 배속되었던 미 제2사단 마크, 사망자 명단이 새겨져 있다(수원시 장안구 파장동).

▲튀르키예군 참전 기념비. 튀르키예는 배 다섯 척 외에도 보병, 공병, 수송, 의무 등의 부대를 갖춰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여단급 병력을 파병하여 탁월한 용감함을 드러냈다(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동백동).

▲호주군 참전 기념비. 당시 멘지 호주 총리는 유엔 결의를 곧바로 지지하고 “대규모 부대보다 소규모일망정 조속한 참전이 몇 배 더 바람직할 것이다”라며 해군과 공군을 서둘러 보낸 후 곧 지상군도 파견하겠다고 약속했다(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리).

▲전사하거나 실종된 캐나다 장병들을 기리는 조형물. 어린이들이 안고 있는 단풍잎과 무궁화꽃은 실종자 수를 나타내고 있다(부산 유엔기념공원).

▲필리핀군 참전 기념비. 필리핀은 공산주의가 아시아로 퍼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굳은 의지로 파병을 결정했다. 필리핀의 참전으로 “아시아에서 백인들이 전쟁을 주도하고 있다”라는 공산주의자들의 비난을 잠재울 수 있었다(경기도 고양군 덕양구 관산동).

▲태국군 참전 기념비. 태국은 6·25전쟁 때까지 우리나라와 외교 관계가 수립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육·해·공군을 모두 파병했고 의료지원단까지 파견했다. 이렇게 3군을 모두 보낸 나라는 미국과 호주, 캐나다, 태국 네 나라뿐이다(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문암리).

▲뉴질랜드군 참전 기념비. 뉴질랜드가 파병한 포병 대대는 영연방군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다(경기도 가평군 북면 묵동리).

▲콜롬비아군 참전 기념비. 6·25전쟁에 참전한 부대 이름 ‘빠타욘 콜롬비아’는 콜롬비아 독립군의 이름으로부터 유래했는데 이 이름은 승리와 영광을 상징한다(인천시 서구 연희동).

▲네덜란드군 참전 기념비. 풍차 모양으로 만들어져 한눈에 봐도 그 나라 기념비임을 알 수 있다. 기념비가 있는 횡성은 6·25전쟁 때 네덜란드군이 가장 격렬하게 전투를 벌였고 가장 피해를 많이 입은 지역이다(강원도 횡성군 우천면 우항리).

▲의료지원국 참전 기념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한국 민간인에 대한 구호’ 결의에 따라 유엔 회원국은 의료 및 물자를 지원하여 유엔군의 군사 작전과 한국의 민간인 구호에 큰 도움을 주었다(부산시 영도구 동삼동).

▲유엔기념공원 묘역 전경. 1951~1954년에는 1만1000여 구의 유해가 이곳에 안장되었다. 그 후 많은 장병의 유해가 조국으로 옮겨졌고, 현재는 유엔군 부대에 파견 중 전사한 한국군 36명을 포함하여 11개국 2300여 구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이는 부부 합장자 등 전후에 사망한 사람들을 포함한 숫자이다.
사진 : 윤상구 사진작가
글 : 황인희 역사칼럼니스트·인문여행작가
월간조선 07월 호
20년간 북 사이버 해킹 대응해 온 문종현 이사
“北 해커들, 이태원 참사 때 특근하며 악성파일 만들어 전파”
⊙ “대한민국, 전쟁이 아니라 北 사이버 공격으로 무너질 수도”
⊙ “北 외교안보·국방·통일 분야 교수들 온라인 약점 잡아 포섭 시도할 것”
⊙ “2010년 이후 항공우주 관련 해킹, 대북제재 이후에는 금융·비트코인 관련 해킹 늘어”
⊙ “여행사 해킹… 해외에서 우리 국민 납치·살해·위협할 수도”
⊙ “2001년 北 해커 양성소 미림대 학생이 10만 달러 주겠다며 온라인 접근”
⊙ “북한의 사이버 위협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이미 완전체로 결합”
文鍾顯
1977년생. 가천대학교 전기전자공학전공 수료 / 前 미 연방수사국(FBI) 보안 자문, 국정원 NCSC 자문위원, 국방부 사이버작전사령부 자문위원, 이스트시큐리티 시큐리티대응센터 이사, 現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사이버보안대연합 탐지공유분과 위원장, 지상작전사령부 사이버방호 자문위원, 국군방첩사령부 정보보호부대 자문위원, 경찰청 안보수사국 해킹조직연구회 전문위원 / 정보보호유공 국무총리 표창(2015년), 원희룡 제주도지사 표창(2016년), 행정안전부장관 표창(2019년) 수상 외 다수

▲사진=문종현 이사
북한의 사이버 공격은 날이 갈수록 그 대상과 방법이 발전하고 있다. 북한은 2009년 7월, 7·7 디도스(DDoS·Distributed Denial of Service Attack)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해킹 공격을 해오고 있다. 7·7 디도스 공격 사태는 정부기관, 기업, 은행 등을 망라해 이루어진 사이버 테러로 사회적 혼란을 일으켰다.
북한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대한민국을 상대로 해킹 공격을 해오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의 사이버 공격은 우리가 예상하는 그 이상으로 진행됐으며, 북한은 곧 사이버를 이용해 오프라인까지 공격해 올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최근에는 북한의 공격 목표가 바뀌었다. 북한은 단순히 우리 사이버망에 침입해 정보를 빼내거나 파괴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사이버망에 들어와 잠복해 함께 사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이러한 고도화된 사이버 범죄는 전통적인 보안 체계로는 막는 데 한계가 있다.
사이버 보안 분야의 최고 전문가

▲2016년 2월 17일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관계자들이 인터넷침해대응센터 종합상황실에서 국내 웹사이트에 대한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공격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조선DB
현재 북한의 사이버 테러가 우리에게 얼마나 위협적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대책이 필요한지를 알아보기 위해 22년째 북한의 사이버 공격을 집중 연구해 온 위협분석 전문가 문종현 지니언스 이사를 지난 5월 3일 경기도 안양에서 만났다.
지니언스는 해킹·랜섬웨어 등 사이버 위협을 선제로 예방하고 대응하는 보안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기업이다. 2005년 설립 이래 18년간 연속 흑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2016년에 미국 법인 설립, 2017년에는 코스닥에 상장했다.
국내 NAC 및 EDR 솔루션 1위 기업으로 외형 성장과 이익 창출을 동시에 시현하는 기업으로 고금리 경기침체 국면에서도 지속 성장 가능한 기업, 챗GPT 시대 AI 발달로 증가하는 보안 위협 속 주목할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문 이사는 2001년부터 북한의 사이버 공격에 대해 연구를 시작했다. 문 이사는 현재 국가정보원, 국방부, 경찰 등 사회 다양한 분야의 공식 사이버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는 사이버 안보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 사이버 분야가 전공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전기전자 관련 공부를 하고 그쪽 분야에서 일했습니다. 그러다 1990년대 말쯤 200만원짜리 컴퓨터를 샀는데 자꾸 고장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당시 용산전자상가에 가서 수리를 맡겼는데 누군가 제 컴퓨터에 바이러스를 심었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화가 났어요. 그래서 바이러스를 심은 사람을 찾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죠.”
― 따로 배운 건가요.
“아니요, 독학으로 공부했어요. 과연 이런 바이러스를 만드는 사람은 누구인가? 왜 이런 걸 만드는지… 너무 궁금했어요. 저는 바이러스보다 만드는 사람들이 더 궁금해서 ‘바연모(바이러스를 연구하는 모임)’라는 모임에도 나가고, 나중엔 불가리아, 체코 등 동유럽에서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사람들도 찾아갔어요. 안 되는 영어를 해가면서 거기 회원으로 넣어달라고 해서 함께 활동했죠. 당시 동유럽에서는 바이러스 제작이 불법이 아니었어요.”
― 궁금증이 풀렸나요.
“그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었어요. 그냥 장난으로 친구들 골탕 먹이고, 사람들이 컴퓨터가 안 되는 것을 보고 좋아하고, 제정신이 아니죠.”
“北 해커, 10만 달러 준다며 컴퓨터 바이러스 소스 요구해”
― 북한 사이버 위협에 대해 연구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다고요.
“네,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2001년 8월 8일 자신을 북한 사람이라고 소개한 어떤 사람이 온라인으로 제게 말을 걸어왔어요. 처음엔 놀랐죠. 누군가 장난을 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대화를 나눠보니 진짜인 것 같았어요.”
― 처음부터 자신을 북한 사람이라고 소개했나요.
“당시 전자회사에 다니면서 바이러스 연구에 한창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어요. 퇴근할 무렵인 오후 6시가 좀 넘어서 채팅 창에 ‘안녕하신지라’라고 누군가 대화를 걸어오는 거예요. 조금 생소한 인사말에 놀랐죠. 그 사람은 처음부터 자기를 북한 사람이라고 공개했어요. 소속은 인민무력부 8사단 소속인데 평양 미림대학 학생이라는 겁니다. 앞뒤가 안 맞잖아요. 군인인데 대학에서 공부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어요.”
― 어떤 대화를 나눴나요.
“1시간 정도 대화를 나눴어요. 미림대학이라는 이름도 생소해서 인터넷에 검색을 해봤는데 안 나왔어요. 그래서 영어로 미림을 쳤더니 평양에 미림칼리지가 있다고 나오더군요. 그래서 조금씩 믿기 시작했죠. 대화를 나누다 그 사람이 제게 컴퓨터 바이러스를 좀 달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당시 여러 바이러스를 수집해 ‘안랩’ 이런 데 보내고 했었거든요.”
― 바이러스를 줬나요.
“당연히 안 줬죠. 딱 봐도 이걸 주면 위험하다는 걸 아는데 주면 안 되죠. 제가 계속 거부를 하자 심지어 돈을 주겠다고 유혹을 하더라고요. 당시 2001년이었는데 바이러스를 넘기면 10만 달러를 주겠다고 하는 거예요.”
― 당시 10만 달러면 상당히 큰돈인데요.
“큰돈이죠. 제가 그걸 받았더라면 지금 이 자리에 없겠죠. 그때 그 사람이 했던 말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자기 취미는 대한민국 인터넷에 들어오는 거래요. 충격이었죠. 인터넷도 없는 북한에서 대한민국을 해킹한다는 것도 믿기지 않았어요. 그러면서 ‘남한의 미래가 걱정되는구려’라고 하더군요. 그 얘기를 듣고 또 한 번 놀랐습니다.”
― 미래가 걱정된다는 건 무슨 뜻인가요.
“저도 그때는 몰랐죠. 당시 저는 30대 초였고, 오히려 북한 사람들이 식량이 없어 굶어 죽어가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그 사람이 오히려 저희를 걱정하니 이해되지 않았죠. 그로부터 8년 뒤인 2009년에서야 그 사람이 그때 했던 말이 이해됐어요. 2009년부터 북한이 본격적으로 대한민국을 상대로 해킹을 시작한 겁니다.”
― 북한은 언제부터 대한민국을 상대로 해킹을 시도했나요.
“제가 2003년부터 보안업계에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조금씩 이상한 악성 파일이 발견됐었는데 당시에는 북한 소행인 줄 몰랐죠. 그러다 2005년쯤에도 악성 파일을 하나 찾아냈는데 해당 악성 파일에서 한글 문자열이 나왔어요. 그것도 군(軍) 관련 용어들이었습니다.”
“北, 2000년 초부터 해킹 준비”

▲2022년 4월부터 7월까지 발생한 한국 외교, 안보, 국방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북한의 해킹 사건 개요. 사진=경찰청
― 그럼 우리 군을 해킹한 건가요.
“그렇다고 봐야죠.”
― 당시 그 해커들이 북한이라는 건 어떻게 알았나요.
“군 관련 용어 중에서 이상한 것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두음법칙 같은 거죠. ‘여단’을 ‘려단’으로 표기한 단어들이 보였던 거죠. 사람들은 이걸 오타로 생각하고 그냥 넘겼어요. 그런데 저는 2001년부터 북한에 관심을 두고 공부를 하다 보니 이것이 북한 소행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죠.”
― 그런데 이런 것들이 발표가 안 됐네요.
“아마 해당 악성 파일이 북한 것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을 겁니다. 왜냐하면 북한이 경제 사정도 어렵고 컴퓨터도 없는데 설마 이 정도 수준까지 왔을까 하고 생각한 거죠. 그런데 저는 이미 2001년에 실제 북한 사람이랑 대화해봤으니 알 수 있었죠. 그러다 2009년부터 한국을 상대로 북한의 대대적인 공격이 시작된 거죠.”
― 당시 국정원이 북한 소행으로 밝히자 의견이 많았죠.
“네, 2009년 7월 7일 북한으로부터 사이버 공격을 당했고, 10일 정도에 국정원이 북한 소행이라고 밝히자, 사람들은 어떻게 북한인 걸 확신하냐, 북한으로 또 정치공작을 한다면서 여론이 안 좋았죠. 그런데 저는 그때 알았죠. 7·7 디도스 공격에서 발견된 악성 코드가 2005년과 그 이전에 발견됐던 거랑 똑같은 형식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우리나라 청와대, 국정원, 국방부, 통일부 등 주요 공공기관들을 공격할 이들이 북한 말고 또 누가 있겠습니까.”
― 북한은 2000년대 초부터 치밀하게 준비한 거네요.
“그렇죠. 그때부터 조심스럽게 대한민국 사이버망에 드나들면서 연습을 해오다가 2009년에 대대적인 공격을 시작한 거죠. 이후 우리도 북한의 사이버 공격을 막기 위해 2010년에 국방부 국군사이버사령부를 만들었죠. 물론 그전인 2003년에 만들어진 국정원 소속 국가사이버안전센터(현 국가사이버안보센터)가 있긴 했습니다.”
“이태원 참사 당시 위조 행안부 공문서 뿌려”
― 북한의 사이버 공격이 얼마나 자주 발생하나요.
“제가 최근에 이런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사람들이 이 부분이 많이 궁금하신가 봐요. 이미 이런 질문이 허용할 수 있는 범위를 완전히 넘어섰습니다. 이제는 이런 질문들이 식상하다는 거죠.”
― 무슨 말씀이신가요.
“무슨 의미냐 하면 이미 사이버 공격이 일상화됐다는 뜻입니다. 이제는 북한 해커들이 어떤 특별한 지시나 임무를 받고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고정된 업무라고 보시면 됩니다. 우리처럼 아침 9시에 출근해 모니터를 켜는 순간 우리 사이버망에 들어와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저녁 6시 퇴근하고, 뭐 가끔 주말 특근도 하더라고요.”
― 특근이요?
“네, 예를 들어 작년 10월 29일이었어요. 우리에겐 참으로 참담한 날이었죠.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날이니까요. 29일이 토요일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다음 날 난리가 났잖아요. 한꺼번에 수많은 사람이 죽었으니 당연하죠. 일요일 아침부터 회사마다 직원들 확인하고, 그곳에 간 친척이나 친구들이 없는지 서로 연락하고 했었어요. 한데 그날 오후부터 카카오톡으로 이상한 문자가 퍼지기 시작해요.”
― 그 문자 메시지에 코드를 심은 건가요.
“네, 지인이 이상하다면서 저에게 확인을 부탁해 왔어요. 그래서 살펴보니 북한 해커들이 쓰는 악성 코드가 심어져 있더라고요.”
― 어떤 것이었나요.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행안부 공문서처럼 위조한 것이었어요. 그러니까 북한 해커들이 이태원 참사 당시 일요일도 특근하면서 시기적절하게 맞춤형 바이러스를 만들어 퍼뜨리려고 한 거죠. 그 정도로 일상화되어 있고, 적절한 시기에 맞춰 공격을 굉장히 치밀하고,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어요.”
“2010년 이후 항공우주 관련 해킹 늘어”
― 정말 북한이 사이버 공격을 얼마나 자주 하냐는 질문이 무색할 정도네요.
“그렇죠. 이미 대한민국을 상대로 하는 해킹은 세팅이 끝난 상태입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해커들은 컴퓨터 앞에 앉아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 공격이 늘었다 줄었다는 표현은 의미가 없네요.
“그렇죠. 거듭 강조하지만, 일상화됐다는 표현이 맞는 거죠. 북한의 사이버 공격이 갈수록 고도화되어 간다고 하는 것도 맞아요. 계속 발전하고 있으니까. 기술력이 발전하고 공격하는 인력도 세팅이 끝난 거죠.”
― 어느 정도의 인원이 공격하고 있다고 보나요.
“일단 지금 나오는 얘기는 7000명 정도라고 하더라고요. 《국방백서》에도 공격 인원이 7000명 정도라고 나와 있던데 공격의 방법이나 패턴을 보면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아요. 뛰어난 해커 몇 명이 해킹을 하고 이들이 빼오는 자료를 분석하는 인력이 많은 것 같습니다.”
― 보통 어떤 자료들을 많이 빼가나요.
“시기마다 조금씩 달라요. 2000년대 초반에는 국방 관련 군사 정보들을 훔쳐갔고, 2010년 이후부터는 항공우주 기술 쪽으로 자료를 많이 빼내 가고 있습니다.”
“2017년 이후 비트코인 집중”

▲북한이 사이버 테러를 통한 금전 탈취 주요 사례. 사진=조선DB
― 2010년 이후에는요.
“그 이후로는 북한이 핵실험 등으로 인해 대북제재가 더 강화되면서 금융, 기업, 비트코인 이쪽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북한은 2016년 전후로 금융제재가 갈수록 심해지면서 비트코인에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 빗썸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기도 했죠. 실제 많은 비트코인이 털렸습니다. 그때 돈맛을 보고 이후에 비트코인 쪽으로 공격 목표를 바꾼 거죠.”
― 사이버 공격을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한 거네요.
“결론은 그렇죠.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2013년쯤부터 북한이 비트코인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당시 정보 수집 목적으로 들어왔다가 온라인 지갑에 돈이 들어 있는 것을 보고 자연스럽게 훔쳐갔다고 할까요? 윗사람한테 사이버망에서 비트코인이나 돈을 훔쳐오라고 지시받은 것은 아니고 하다 보니 돈이 있어 이걸 훔쳐다 당에 바치면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됐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 그렇군요.
“이후 우리나라 인터파크 같은 인터넷 쇼핑몰을 해킹해 빼낸 개인정보를 가지고 협박했는데, 당시 아마 비트코인으로 30억원을 달라고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후에 ○○투어와 △△투어 등 여행사 공격이 시작됩니다.”
― 여행사는 왜 해킹하나요. 거기도 돈이 목적인가요.
“여행사는 차원이 조금 다릅니다. 저도 많이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런데 여행사를 해킹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여행이나 해외로 나갈 때 여행사를 통해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어느 시간대 무슨 비행기를 타고 어디로 간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자신들에게 필요한 사람이면 조용히 그곳에 가서 기다렸다가 납치나 암살 또는 위협까지도 할 수가 있는 거죠. 예를 들어 김정남도 이런 식으로 일정을 모두 알고 행동으로 옮긴 거죠.”
“외교·안보 분야 교수들 공격 많아”
― 온라인을 통해 정보를 얻고 오프라인에서 활용하는 거네요.
“네, 맞습니다. 앞으로 이런 일들이 더 많이 발생할 겁니다. 북한의 사이버 위협은 온라인 공간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오프라인으로 넘어와 완전체로 결합이 됐습니다.”
지난 6월 7일 경찰은 북한 해킹그룹이 지난해 4월부터 7월까지 외교·안보 분야 주요 관계자를 대상으로 악성 전자우편을 발송해 해킹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북한 해킹그룹은 통일·안보 전문가 등을 사칭해 2022년 4월부터 7월까지 윤석열 정부 출범에 맞춰 전·현직 고위 공무원, 교수, 외교·통일·안보·국방 전문가 150명을 대상으로 피싱 사이트 접속을 유도해 계정 정보를 탈취하는 악성 전자우편을 발송했다.
북한의 해킹조직은 국내외 해킹을 통해 138개(국외 102개, 국내 36개)의 서버를 장악해 해킹 공격을 위한 기반을 확보했다. 추적을 피하고자 아이피(IP) 주소도 세탁했다. 각 서버는 악성 전자우편 발송, 피싱 사이트 구축, 탈취정보 전송 등 기능별로 구분돼 있었다.
해당 사건이 발표되기 전 문종현 이사는 기자에게 이와 관련해 최근 2년간 북한 해커들이 외교·안보, 국방 분야의 전문가들을 상대로 해킹을 시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 이사의 말이다.
“최근 2년간 북한의 해킹 대상들을 분석한 결과 전·현직 고위 관계자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여기에 외교, 안보, 통일, 국방 전문가와 교수를 상대로 한 해킹 시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 이유가 뭐라고 보나요.
“저도 이에 대해 고민을 좀 해봤어요. 결론은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분들이 나중에 중요한 자리로 갈 수도 있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미리 이분들의 약점을 잡고 때가 되기를 기다리는 거죠. 교수들 같은 경우 대통령 선거가 5년마다 있는데 그때마다 선거 캠프나 인수위원회 구성에 포함됩니다. 온라인으로 미리 약점을 잡아 놓았다가 자신들이 필요할 때 협박을 해서 포섭하는 거죠. 그 상대가 대통령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사이버상에서 약점 잡혀 간첩 될 수도”
― 그래도 대통령은 보안을 철저히 관리하지 않나요.
“물론 그렇죠. 대통령직을 수행할 당시는 그렇죠. 그런데 대통령 후보로 나오면 다르죠. 대통령 후보 시절이나 그 이전에 해커들에게 치명적인 약점을 잡혀 협박을 당하게 되면 어떨까요. 심지어 그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면 그냥 대한민국을 북한에 가져다 바치는 겁니다.”
― 사생활 등 약점을 노린다는 건가요.
“그렇죠. 저도 이런 분들 상대로 강연을 종종 갑니다. 그때마다 술 마시고 실수하면 안 되고 여자관계 조심해야 한다고 계속 강조를 합니다. 자신이 착하게 어떠한 흠도 없으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한 번의 실수로 허점을 보이는 순간 북한은 그것을 볼모로 사이버 공작 활동을 시작할 것이고 그렇게 북한에 포섭된 간첩이 되는 거죠.”
― 해킹 하나로 간첩을 만들어낼 수도 있는 거네요.
“이제는 개인의 정보나 약점을 훔쳐 협박해 돈을 뜯어내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사생활의 약점을 훔쳐 포섭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오가면서 간첩활동을 시키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무서운 겁니까. 그래서 이제는 사이버 보안이라는 용어보다 사이버 안보라는 생각을 가지고 국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 그렇게 되면 누가 북한에 포섭되어 간첩행위를 하는지 아무도 모르겠네요.
“그렇죠.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정치·외교 전문가고 나랑은 평생을 함께해 온 친구 사이지만, 누군가에 약점을 잡혀 그들의 지시를 받고 정보를 넘기고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는 거죠.”
― 정말 사이버 보안이 아니고 안보네요.
“그렇기 때문에 국가 안보 차원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하는 겁니다. 이제는 민관의 협력이 무조건 필요한 세상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도 사이버 보안 협력을 중요한 의제로 다룬 겁니다.”
― 어떤 해결 방법이 있을까요.
“한국도 나름 이 부분에서 해결 방법을 찾으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서 노력은 하고 있지만, 제약적인 부분이 많습니다. 일각에서는 이제는 사이버안보청을 만들어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중국, 북한, 러시아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가까이에 사이버 위협 국가들을 두고 이대로 가다간 자멸(自滅)할 것이 분명합니다.”
“김수키·라자루스라고 하지 말고 北 해커라고 해야”
― 현재 북한의 김수키, 라자루스 등 다양한 해커그룹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네, 그렇죠. 지금 여러 해커그룹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먼저 김수키, 라자루스 등의 이름을 붙여 부르는 것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 왜요.
“사람들에게 오해를 불러올 수 있어요. 북한이 해킹을 했으면 북한이 했다고 하면 되지 왜 김수키, 라자루스 등 이름을 붙여주느냐 이 말이죠. 국민 입장에서는 이름만 듣고 북한 소행인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범인이 북한이라고 해도 사람들이 믿지를 않는 거죠. 그리고 웃기는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2014년 12월 라자루스가 미국의 소니픽처스를 해킹했을 때 라자루스의 소행이라고 발표하니 북한 조선중앙TV에서 ‘미국의 유능한 보고서에도 북한이 아니라 라자루스라고 나오지 않느냐’며 자신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 라자루스는 2014년에 처음 등장한 거로 알고 있는데요.
“네, 앞서 언급했듯이 미국의 소니픽처스라는 영화사를 공격했을 때 만들어진 이름입니다. 당시 김정은 암살을 주제로 한 영화 〈디 인터뷰〉라는 것이 만들어지면서 공격을 하게 됐는데 미국도 공격당한 것이 처음이다 보니 북한이라고 단정 짓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당시 가서 자문도 하고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 입장에서도 아무리 자문을 받고 해도 북한이라고 결론을 내리긴 어려웠나 봅니다.”
― 그래서요.
“미국의 분석가들이 해킹 공격에 대해 조사하다가 메일 주소 중에 라자 룩스, 라자 럭스라는 식의 이니셜을 쓴 메일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걸 보고 한 분석가가 해킹그룹을 라자루스라고 이름을 만들어 부르기 시작한 거죠.”
― 그럼 김수키는요.
“그것도 좀 이상합니다. 2012년 러시아 보안 업체 분석보고서 중에 김석양이라는 영어 이름이 발견됐어요. 그런데 이걸 스펠링대로 부르자니 김석양인지 김석향인지 혼란스러웠던 거죠. 러시아는 이름 뒤에 무슨 ‘스키’를 많이 사용합니다. 이렇게 이름이 헷갈리고 어려우니 그냥 김수키로 부르게 된 거죠. 그것이 지금까지 온 겁니다.”
― 그러니까 이 건들을 모두 ‘북한’ 소행이라 판단하면 된다는 말인가요.
“그렇죠. 국민에게 혼동을 주지 않고, 북한에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주지 않고 얼마나 좋습니다. 어차피 김수키나 라자루스는 북한에서 운영하는 해킹그룹인데요. 사실 한국의 경우 정치적인 상황 때문에 북한이 해도 북한이 했다고 말 못 할 때도 잦았습니다.
정찰총국, 국가보위성, 적공
― 김수키나 라자루스는 공격 방법이 다르지 않나요.
“다르죠. 그런데 김정은의 부하인 건 변함이 없고,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니 힘들게 그룹을 나누지 말고 하나로 묶어 북한이라고 부르면 됩니다. 미국도 최근 사이버 안보와 관련해서 새로운 전략을 펴면서 북한을 하나로 묶어 이름을 다시 붙였습니다.”
― 현재 북한 소속의 해킹그룹은 몇 개나 되나요.
“세 개 정도입니다. 먼저 2009년에 김영철이 초대 총국장으로 있었던 정찰총국에서 운영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리고 탈북민들을 상대로 하는 국가보위성, 마지막은 외국에서는 많이 언급은 안 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유명한 적공국(적군와해공작국)에서 사이버 공작에 관여하는 것 같습니다. 사이버 공작을 가장 많이 하는 곳은 정찰총국입니다.”
― 김수키, 라자루스 등은 모두 정찰총국 소속이죠.
“지금은 바뀌어서 모르지만, 과거에는 정찰총국 안에 121국이라고 해서 사이버 지도국이 따로 있었고, 110연구소도 정찰총국 소속이었습니다. 라자루스나 김수키는 정찰총국 소속이고, 110연구소 안에 블루노로프, 안다리엘이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아마 지금은 거의 다 바뀌었을 겁니다.”
― 그럼 기본적으로 세 곳에서 사이버 테러를 자행한다는 건가요.
“그렇죠. 앞서 말한 것처럼 정찰총국, 국가보위성, 적공국 이 세 곳에서 사이버 테러를 준비하고 실행한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아웃소싱 공격’
― 이들은 몇 가지 정도의 해킹 방법을 사용하나요.
“한 네 가지 정도 방법을 쓴다고 보시면 됩니다. 가장 많이 쓰는 것이 ‘스피어피싱 공격’인데요, 이메일 주소 하나만 있으면 쉽게 공격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워터링 홀’ 공격이 있습니다. 이 워터링 홀 공격은 말 그대로 목표로 하는 사이트에 잠복해 있다가 대상이 들어오면 공격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국방부를 공격한다고 하면 관련 사이트, 즉 병무청이나 이런 데 잠복해 있는 겁니다. 그러다 공격을 하는 거죠.”
― 또 다른 방법은요.
“세 번째는 ‘공급망’ 공격입니다. 2009년 7·7 디도스 공격 당시 사용했던 방법인데요,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면 업데이트 기능이 다 있잖아요. 그 업데이트 서버를 해킹하거나 개발자를 해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상적으로 업데이트를 했는데 내 PC가 감염되는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제가 발견한 건데요, ‘아웃소싱 공격’입니다. IT 종사자로 일하면서 프로그램을 개발해주고 개발한 프로그램에 악성 코드를 미리 심어 놓는 거죠. 이들은 처음부터 공격하지 않습니다.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에서 아웃소싱을 받아 프로그램을 만들어줍니다. 처음엔 신뢰를 쌓죠. 여러 번 그러다 마지막에 악성 코드를 심는 거죠.”
― 이러한 방법으로 북한 해커들은 지금도 사이버 공격을 감행하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네 가지 방법으로, 지금까지 사용하면서 계속 진화 발전해 가는 것입니다.”
문종현 이사와 두 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했는데 도중 기자를 섬뜩하게 했던 말이 있다.
“저는 앞으로 우리나라가 전쟁으로 무너질 거라 생각을 안 합니다. 북한의 사이버 공격과 전략 때문에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월간조선 07월 호
2023년 7월 27일, 세계가 윤석열 대통령의 입을 지켜본다!
- 역사적 연설의 기회! “세계시민 정신”으로 자유세계를 구한 한국전의 의미, 戰後 70년의 위대한 성취, 그리고 자유통일에 대한 전망을 담은 결정적 연설을 ‘한국전의 워털루’ 다부동 전적지의 이승만-트루먼 동상 앞에서 하면 어떨까?
- 李承晩의 天下名文: “미국인으로 살다가 죽었지만 세계시민으로서 목숨을 바쳤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방미 중이던 1954년 8월, 당시 은퇴 후 고향인 미주리주 인디펜던스의 자택에서 살고 있던 트루먼 전 대통령을 방문했다.
2023년 7월 27일, 한국전(韓國戰) 휴전(休戰) 70주년 기념일, 세계는 대한민국 윤석열(尹錫悅) 대통령의 입을 지켜볼 것이다. 20세기 세계사의 3대 전쟁으로 평가되는 한국전이 한반도에선 아직 끝나지 않았고, 핵전쟁의 공포를 안고도 소란스럽게 발전하고 있는 한국과 지옥 같은 북한의 공존. 이런 불가사의한 상황에서 맞는 휴전 70주년에 당사자인 대한민국 대통령은 세계를 향하여, 이 전쟁과 휴전 후 70년의 경과를 보고할 의무가 있다. 3년간의 국제전에서 300만 명이 죽은 남북한의 한국인, 약 6만 명이 죽은 미국 등 유엔 참전국은 “이 전쟁은 도대체 무엇이었나”에 대하여 대한민국 대통령의 설명을 들을 권리가 있다.
이날 침략자 북한 정권은 이른바 ‘조국해방전쟁 승리 기념일’, 약칭 전승절 행사를 하겠지만 이는 ‘자기들이 이겼다고 정신승리하고 역사왜곡하는 것’(나무위키)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도 휴전 70주년 행사를 크게 할 것인데 냉전(冷戰) 종식 이후엔 일관되게 ‘자유세계가 이긴 전쟁’으로 기린다. 10년 전 7월 27일 워싱턴의 한국전 기념물 앞에서 열린 휴전 60주년 행사에서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감동적인 연설을 했다.
“한국전은 이긴 전쟁”(오바마)
“한국전은 무승부가 아니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국전은 이긴 전쟁입니다. 가난과 압제 속의 북한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면서, 5000만 명의 한국인들은 활력(活力) 있는 민주제도와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 대국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으니 한국전은 이긴 것이고 우리의 자랑스러운 유산(遺産)입니다. 다가올 여러 세대 동안 역사는 자유 진영이 어떻게 뭉쳤으며 어떻게 냉전에서 이겼는가를 회고하면서 한국전이 그 첫 전투였고, 여기서 우리는 자유를 지켜냈고, 자유민들이 굴복하지 않았음을 기록하게 될 것이니 한국전은 승리였고 우리의 자랑스러운 유산입니다.”
2000년 6월 25일 한국전 발발 50주년 기념식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은 냉전 승리, 즉 소련 및 동구 공산 정권 붕괴는 자유 진영이 남침에 맞서 싸운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포성(砲聲)이 멈추었을 때 상당수 사람은 한국에 간 우리 군대가 자유를 지키기 위하여 한 일이 무엇인가라고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전쟁은 38도선에서 시작되어 38도선에서 끝났으니까요. 나는 오늘 감히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역사라는 긴 렌즈를 통하여 뒤돌아보면, 미국이 한국에서 버티어낸 덕분에 냉전에서 우리가 최종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50년 전 한국의 능선을 지켜낸 용감한 병사들 덕분에 10년 전 멋지고 행복한 젊은이들이 베를린 장벽 위에 올라가 (공산권의 붕괴를) 자축(自祝)할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은 결코 역사를 과대 해석하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2017년 가을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유엔에 대한 감사는커녕 비열한 언사(言辭)로 침략자 편을 들었다. 은인(恩人)의 얼굴에 침을 뱉은 배은망덕(背恩忘德)의 극치였지만 친북(親北) 분위기를 탔는지 비판받지 않고 넘어갔다. 그는 유엔이 공인한 침략전쟁을 “내전(內戰)이면서 국제전”이라고 왜곡하고 “그 전쟁은 수많은 사람의 삶을 파괴했다”면서도 전쟁범죄자를 특정하지 않고 “세계적 냉전 구조의 산물이었던 전쟁”이라고 엉뚱한 데 책임을 넘기며 김일성을 비호했었다.
세계시민 정신
윤석열 대통령은, 70년 만에 찾아온, 그리고 다시없을 이 역사적 연설의 기회를 어떻게 살려 세계를 감동시킬 것인가,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미국 등 유엔 회원국들과 손잡고, 스탈린·마오쩌둥·김일성 세 악당(惡黨)의 침략에 맞서 싸운 한국전은 1953년 7월 27일 포성이 멈추었을 때는 무승부로 보였지만 그날부터 새로운 형태의 전쟁이 시작되었고 이기고 있다.
세계의 자유민들이 유엔군의 기치하에, 한미(韓美) 양국의 최고사령관 이승만(李承晩), 트루먼 대통령의 영도하에 세계시민으로서 싸운 덕분에 자유세계가 냉전에서 최종 승리했다. 우리의 정의로운 항전(抗戰)으로 대만이 살았고, 일본이 경제 부흥했으며, 서독은 재무장하고, NATO는 군사동맹체로 강화되었다. 미국은 군사비를 4배로 늘려 본격적인 대소(對蘇) 군비경쟁을 시작했고, 한국은 폐허 위에 위대한 문명을 건설하였다. 남침 40년 뒤 소련(동구) 공산제국은 군비경쟁으로 경제적 기반이 주저앉고 주민들의 삶이 피폐해지니 총 한 방 쏘지 못하고 핵무기를 껴안은 채 무너졌다. 이런 변화에 큰 역할을 한 것은 우리가 주최한 88서울올림픽이었다. ‘벽을 넘어서’란 올림픽 구호는 예언이 되었고, 그 정신을 담은 불멸의 주제가 ‘손에 손잡고’는 그 이듬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현장에서 합창으로 울려 퍼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세계를 지킨 위대한 항전의 정신을 어떤 용어로 연설에 담을 것인가? 그 답은 그가 취임사에서 소개한 ‘세계시민’ 정신이 아닐까?
이승만과 트루먼

▲다부동 전적지에 세워질 이승만 대통령과 트루먼 대통령의 동상(조감도). 민간 모금으로 만들어졌다.
계급투쟁론으로 ‘사람’을 해석, ‘사람이 먼저다’고 해놓고 ‘우리 편 사람만 먼저’인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였던 문재인 정부하에서 ‘국민’은 형해화(形骸化)되었는데 윤 대통령은 그 ‘국민’을 ‘세계시민’으로 승격, 복권시킨 것이다. 그런데 ‘세계시민’이란 말을 정치적으로 처음 쓴 대통령은 이승만이다.
“알지도 못하는 나라의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을 지키라는 조국의 부름에 응한”(워싱턴 한국전 기념물) 미국의 젊은이들, 아무런 영토적 이해관계가 없는 나라를 구원하기 위하여 그들을 사지(死地)로 보낸 트루먼 대통령, 그 결단을 지지한 당시 미국인들과 유엔 참전국들, 괴물 같은 공산당과 생존투쟁하면서도 괴물을 닮지 않고 인권과 법치를 발전시킨 한국인들은 ‘전후(戰後) 70년’의 ‘가장 위대한 이야기(The greatest story ever told)’ 속 주인공들인데, 이런 성취가 ‘가장 위대한 정신’ 없이는 이뤄질 리 없을 것이고, 그 정신은 국적과 국익(國益)을 뛰어넘는 ‘세계시민 정신’이란 말로써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는 7월 27일 경북 칠곡 다부동(多富洞) 전적지에선 민간인들이 만든 이승만·트루먼 동상 제막식이 있을 예정인데 동상 설명문에도 ‘세계시민 정신’이 명기(銘記)되어 있다.
〈우리는 바로 여기서 自由 세계를 지켜냈다(We Defended the Free World Right Here). 자유는 공짜가 아니라 싸워서 가지는 것이다. 그들은 한국인과 미국인으로 살았지만 세계시민으로서 각자의 생명을 바쳤다. 우리는, 여기서 다 함께 흘린 피로 세계의 자유를 지켜낸 李承晩·트루먼 대통령에게 敬意를 표한다. 은혜를 잊지 못하는 우리는 이제 ‘自由의 파도’가 되어 기필코 북한 동포를 해방, 統一조국을 이룩할 것임을 다짐하면서 휴전 및 韓美동맹 70주년이 되는 2023년을 맞아 두 최고사령관의 동상을 여기 세워 자유세계 수호의 표상으로 삼고자 한다.〉
이승만·트루먼 동상 앞에서 연설을 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7·27 연설이 ‘세계시민 정신’을 중심으로 구성되면 보편적 설득력으로 세계가 기억할 명문(名文)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위대한 연설을 만들어내는 데는 필수적인 타이밍과 함께 연설의 무대도 중요하다. 1863년 11월 19일 링컨 대통령의 게티즈버그 연설은, 수만 명의 남북군(南北軍)이 죽은 결전장을 국립묘지로 봉헌하는 행사에서 있었기에 관심을 모았고 유명해졌다. 한국의 현직 최고사령관이, 전후 70년의 세계사적 의미를 선포하는 연설을, 한국전의 결전장 다부동에 그날 제막(除幕)되는 한미 두 나라 최고사령관 동상 앞에서 한다면 멋진 그림이 되지 않을까? 윤석열·트루먼·이승만을 이어주는 ‘세계시민 정신’은 그 사진 하나로 압축 표현될 것이다. 다부동은 ‘부자동네’란 뜻인데 1950년 8월 한미군이 최초의 연합작전으로 여기서 북한군 주력을 물리쳐 낙동강 전선을 지켜냈고, 인천상륙작전과 북진을 가능하게 했다. 한국전이 20세기 세계 3대 전쟁으로 평가받고 있으니 다부동은 앞으로 홍보를 잘하면 나폴레옹 전쟁의 워털루와 같은 명소가 될 것이다. 두 나라 군인들이 여기서 함께 흘린 피 덕분에 대한민국 전체가 다부동, 즉 부자나라가 되었다.
이런 연설은, 아직도 ‘동족상잔(同族相殘)’ 운운하는 한국인들에게 “우리의 용감한 항전이 세계를 구했다”는 자부심을 주어 한국 현대사를 긍정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하는 교재가 될 것이다. 대통령은 역사교육의 가장 큰 교사가 아니겠는가?
절망이 만들어내는 위대한 연설

▲윈스턴 처칠. 사진=퍼블릭 도메인
위대한 정치인의 위대한 연설이나 문장은 절망적 상황에서 나온 경우가 더러 있다. 이승만, 처칠, 드골, 링컨이 그런 경우이다.
*1940년 5월 나치 독일의 전격전에 걸려 프랑스가 기울고 케르크에서 포위된 수십 만의 영국군이 철수하고 있던 6월 4일 윈스턴 처칠 수상은 하원연설에서 결사항전(決死抗戰)의 의지를 가슴 뛰는 명문으로 밝힌다.
“우리는 끝까지 갈 것입니다. 우리는 프랑스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바다와 대양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강력해지는 힘과 자신감으로 하늘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 섬을 지켜낼 것입니다. 우리는 해안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상륙 지점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들판에서, 거리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언덕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한순간도 믿고 싶지 않지만 만약 이 섬의 많은 지역이 점령당하고 굶주리게 된다고 해도 바다 너머에 있는 우리의 제국은 영국 함대의 보호를 받으면서 무장하여 싸움을 계속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정하신 시간에 신(新)세계가 가진 모든 힘으로써 구(舊)세계를 해방시키고 구출에 나설 때까지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1940년 5월 28일 전체 각료회의 연설에서 처칠은 무솔리니의 중재 제안을 거부하자면서 이렇게 호소한다.
“내가 한순간이라도 타협이나 항복을 원한다면 여러분 모두가 궐기하여 나를 이 자리에서 끌어내릴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이 섬나라의 오랜 역사가 종말을 맞는다면 모두가 흘린 피에 젖어서 우리가 땅에 누워 있을 때 그렇게 되도록 합시다.”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을 제안한 6월 16일 연설에선 “대영제국(大英帝國)이 천년을 더 이어간다면 사람들은 ‘그때가 그들에게 최고의 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도록 버티어냅시다”고 했다.
1940년 6월, 세계 최강으로 평가받던 프랑스 육군은 전투기와 전차를 결합시킨 독일군의 전격전에 직면, 6주 만에 붕괴되니 정부는 1차 세계대전의 영웅 패탕 원수를 지도자로 불러내 항복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기갑사단장 출신의 국방차관 드골 장군은 영국으로 탈출, 망명정부를 준비한다. 처칠은 그가 영국방송을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6월 18일 드골의 BBC 방송 연설은 절망적 상황에서 투지와 희망의 불꽃을 살려냈다. 이 연설은, 15세기 백년전쟁 때 잉글랜드군 앞에서 망국(亡國) 직전까지 갔던 프랑스를 살려낸 잔다르크처럼 프랑스를 다시 일으켜 세워 노르망디 상륙작전 뒤엔 전승국(戰勝國)이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오늘 우리는 기계화 부대의 거대한 중량(重量)에 붕괴되었지만, 더 강력한 기계화 부대가 우리를 승리로 인도할 미래를 내다봅니다. 세계의 운명이 여기에 달렸습니다. 나 드골 장군은 런던에서, 영국 영토에 있거나 있게 될 모든 프랑스 장교와 남자들, 무기를 가졌거나 갖지 않았거나를 불문하고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나와 연락합시다. 어떤 일이 있어도 프랑스 저항운동의 불꽃은 죽지 않아야 하며 죽지 않을 것입니다.”
“몽둥이와 돌멩이를 들고서라도 싸울 것”
1950년 6월 25일 남침 보고를 받은 이승만 대통령은 존 J. 무초 주한(駐韓) 미국 대사를 불러 무기를 달라면서 이렇게 말했다(무초 대사가 미 국무부에 보고한 電文).
“우리는 남자·여자·아이들까지 다 나와서 필요하다면 몽둥이와 돌멩이를 들고서라도 싸울 것입니다.”
그때 기습 남침 당한 한국군은 한미동맹도, 주한미군도 없는 상태에서 1대 3으로 싸우고 있었다. 김일성의 북한군은 세계 최강의 육군국 소련과 세계 최대의 인구를 가진 중공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었다. 미국 시각으로 같은 날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은 고향인 미주리주 인디펜던스에서 딘 애치슨 국무장관의 전황(戰況) 보고를 받자 이렇게 말했다.
“Dean, we've got to stop those sons of bitches no matter what.
(딘, 우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개자식들을 막아야 합니다.)”
한국뿐 아니라 자유세계를 살리고 그 40년 뒤 소련과 동구(東歐)공산권이 무너지도록 만든, 역사를 움직인 위대한 분노였다.
지금부터 소개하려고 하는,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낸 이승만 대통령의 1950년 7월 19일 자 영문 친서(親書)는, 한국 역사상 가장 고매한 정신을 담은 가장 힘 있는 문장으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필자가 수년 전 찾아내 번역 소개한 문장을 이번에 다시 다듬으면서 새삼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문’을 능가하는 문학적·역사적·사상적 깊이가 있는, 그러면서도 예언적인 글이라고 믿게 되었다. 고급 영문(英文)으로 쓰여 있어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들기도 좋게 되어 있다. 이 편지는 일본에서 파견된 미8군 산하 24사단이 대전에서 북한군 주력(主力)의 공격을 받아 무너지고 있던 가장 어두운 순간의 임시수도 대구에서 75세의 이승만 대통령이 (아마도) 직접 타자기를 두드려 작성하였을 것이다. 먼저 번역문과 원문(原文)을 동시에 싣고 해설을 붙인다(미국인들이 게티즈버그 연설문을 공부하듯이 한국인들이 두고두고 읽을 만한 가치가 있으므로).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낸 이승만 대통령 친서
(대구, 1950년 7월 19일)
친애하는 대통령께: 절망적인 위기를 맞은 나날들 속에서 한국에 신속하고 지속적인 원조를 제공해주신 귀하께, 본인은 물론, 대한민국 정부와 모든 국민은 깊은 감사의 뜻을 무슨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한국의 대의(大義), 즉 자유의 대의를 위하여 많은 자유 우방국이 국제연합을 통하여 보내준 도움에 깊이 감사드리면서, 귀하의 용감한 영도력이 이 혼돈의 위기 속에서 발휘되지 않았다면 이러한 지원이 없었으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본인은 한국 전선에서 미군의 전사상자(戰死傷者)가 늘어난다는 사실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집니다. 고국(故國)을 떠나 머나먼 이곳에서 자유를 위하여 그렇게 많은 사람이 그들의 생명을 바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비극입니다. 우리 군대는 우리나라 안에서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싸우고 있으니 우리 군의 사상자 보고를 받는 것이 아무리 참혹하다고 해도 그나마 낫습니다. 이곳 한국 땅에서 죽고 다친 미국 병사들의 모든 부모, 처자(妻子), 형제, 자매들에게 부족하나마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미국의 위대한 전통을 이어받아 약자(弱者)를 지켜주려고 이 땅에 와서 잔인한 침략자를 상대로 해방과 자유가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싸우면서 생명의 피를 바친 그들의 용기와 희생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대통령님, 위대한 귀국(貴國) 병사들은 미국인으로서 살다가 죽었습니다만, 공산파쇼 집단(Comminazis)에 의하여 자유국가의 독립이 유린되는 것을 방치한다는 것은 모든 나라, 심지어는 미국 자신까지도 공격받는 길을 터주는 길이 됨을 알고 애국심을 뛰어넘어 세계시민으로서 그들의 생명을 바쳤습니다.
대통령께서도 아시다시피 한국인들은 그 누구도 참여하지 않은, ‘38도선에 관한 1945년의 군사 결정’의 결과로 자신들의 의사에 반(反)하여 분단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분단은 북한에서 소련의 지령과 통제 아래 한국인의 전통이나 정서와는 전적으로 이질적인 공산 정권의 등장을 허용하고 말았습니다. 북한 지역에서 군사, 경찰, 재정의 권력을 절대적으로 장악한 공산분자들은 소련의 지령하에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대다수 국제연합 회원국에 대하여도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군사력을 키울 수가 있었습니다. 소련의 후원을 받은 북한 정권이 6월 25일 새벽, 한국군을 일제히 공격하였을 때 그들은 38선을, 자유대한과 노예북한 사이의 정치적·군사적 분계선으로 유지할 수 있는 그 어떤 근거도 모두 없애버렸습니다.
원상회복(status quo ante)을 시도함으로써 적(敵)이 전열(戰列)을 가다듬고 멋대로 다시 공격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행동이 될 것입니다. 세계 공산주의자들이 우리나라의 가슴속에 심어서 키워온 제국주의적 침략의 모든 악성(惡性) 암세포를 이번 기회에 영구적으로 확실히 도려내야 합니다. 북한 사람들은 남한 사람들과 차이가 없습니다. 외부 세력이 훈련시키고 조종하는 소수의 공산주의자를 제외한 모든 한국인은 그들의 조국에 충성합니다. 이 전쟁은 남(南)과 북(北)의 대결이 아닙니다. 이 전쟁은 우리나라의 반을 어쩌다 점거하게 된 소수의 공산주의자와 압도적 다수의 한국인(그들이 어디에 살든) 사이의 대결입니다. 한국 정부와 국민들은 이제 한반도를 통일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과 강력한 우방들이 막대한 희생을 치르고도 통일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대통령께서도 같은 결론에 도달하셨을 것으로 본인은 확신하는 바이지만, 우리 정부의 입장을 귀하께 분명히 밝히고자 합니다.
한국 정부는 대한민국 정부의 동의나 승인 없이 한국에 관하여 장차 다른 나라나 국가 그룹에서 결정하는 그 어떠한 협정이나 양해사항도 이를 구속력이 없는 것으로 간주할 것입니다. 본인은, 각하께서 최근에 발표하신 성명서를 통하여 이것이 또한, 미국 정부의 입장이라고 믿습니다.
본인은 매일 기도합니다. 본인은, 우리의 무기가 함께 효과를 볼 수 있도록, 날씨가 맑아져 미 공군 전투기가 적(敵)을 발견하고 파괴할 수 있도록, 그리고 충분한 병력과 물자가 최대한 빨리 도착하여 공세로 전환, 강고한 적군(敵軍) 진지를 돌파, 승리의 북진(北進)을 시작할 수 있도록 매일 기도합니다. 본인은 옳음(right)과 힘(might)이 우리 편이므로 우리의 대의(大義)가 궁극적인 승리를 거두리라는 데 대하여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습니다. 영원히 계속될 친애(親愛)의 마음을 담아서. 이승만(李承晩).
영어 원문
The President of the Republic of Korea (Rhee) to President Truman. Taegu, July 19, 1950.
Dear Mr. President: I can not find words to express, for myself and for all the people and Government of Korea, our profound gratitude for your prompt and continued actions in bringing aid to Korea in these desperate days. While we deeply appreciate the support of so many free nations, through the United Nations, to the cause of Korea, which also is the cause of freedom, we know full well that without your courageous leadership in a time of bewildering crisis there would have been no support and no aid.
I am deeply moved as I learn of increasing American battle casualties here. It is a tragic thing that so many men should have had to give their lives for liberty in this land so far from their own. It is easier for me to accept word of our own battle casualties than of yours, cruel as ours have been, since our forces are fighting in and for their native land. I wish I could convey to every mother and father and wife and child, and sister and brother of an American soldier killed or wounded here in Korea even some slight comfort through the knowledge that no Korean can ever forget the courage and sacrifice of these men who in the great traditions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have come to the defense of the weak against the cruel aggressor, and have fought and given their life’s blood that liberty and freedom should not perish from the earth.
These soldiers of your great country, Mr. President, have lived and died as Americans, but they have given their lives even beyond love of country as citizens of the world, knowing that to permit the further destruction of the independence of free nations by the Comminazis is to clear the way to assault upon every nation, even the United States itself.
As you know, the Korean people were divided against their will: as a result of military decisions in 1945 regarding the 38th Parallel, to which no Korean was a party. This division permitted the development in the north, under Soviet direction and leadership, of a communist regime wholly alien to Korean traditions and feelings. With absolute control of the military, police and fiscal powers in that region of Korea, the communists, with Soviet direction, were able to create the formidable force which has caused such cruel damage not only to Korea but also to the United States and most members of the United Nations. When the Soviet sponsored regime in North Korea simultaneously attacked the defense forces of the Republic of Korea in the early morning of June 25, they ended any possible claim to the maintenance of the 38th Parallel as a political or military dividing line between free and slave Korea.
It would be utter folly to attempt to restore the status quo ante, and then to await the enemy’s pleasure for further attack when he had had time to regroup, retrain and reequip. The time has come to cut out once and for all the cancer of imperialist aggression, the malignant growth artificially grown within the bosom of our country by the world communists.
The people of North Korea are the same as the people of South Korea. All are loyal to the land of their birth with the very few minor exceptions of foreign trained and foreign directed communists. This war is not a conflict between North and South it is a conflict between the few who are communists, who by an accident got control of half of our country, and the overwhelming mass of the citizens of Korea, wherever they may live.
The Government and the people of the Republic of Korea consider this is the time to unify Korea, and for anything less than unification to come out of these great sacrifices of Koreans and their powerful allies would be unthinkable. I am sure, Mr. President, that you have come to the same conclusion yourself, but I wish to make clear to you the position of this Government. The Korean Government would consider as without binding effect any future agreement or understanding made regarding Korea by other states or groups of states without the consent and approval of the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From statements which you have made recently I believe that this also is the position of the Government of the United States.
Daily I pray for the joint success of our arms, for clear skies so that the planes of the United States Airforce may search out and destroy the enemy, and for the earliest possible arrival of sufficient men and material so that we can turn to the offensive, break through the hard crust of enemy forces and start the victorious march north. I have no slightest doubt in the ultimate victory of our cause I know that both right and might are on our side.
With ever continued warm personal regards, Sincerely yours, Syngman Rhee
세계시민 정신으로 마적단 습격 사건 진압!
이 편지는 최고 수준의, 동서양의 교양을 두루 체득한 이승만이란 거대한 인격체의 집약이다. 가장 놀라운 점은 75세의 노인이 국가 존망의 순간들 속에서 이렇게 따뜻하고 격조가 높으며, 넓고 깊고 단호한 생각을, 혼신(渾身)의 힘을 다해, 또한 아름답게 표현했다는 사실이다. ‘세계정세를 가장 높은 수준에서 내려다본 사람’이란 무초 대사의 평대로 이승만은, 이 전쟁의 대의를, ‘세계시민(citizens of the world)’이란 키워드에 담아 문학적으로 풀어간다.
“대통령님, 위대한 귀국(貴國) 병사들은 미국인으로서 살다가 죽었습니다만, 공산파쇼 집단(Comminazis)에 의하여 자유국가의 독립이 유린되는 것을 방치한다는 것은 모든 나라, 심지어는 미국 자신까지도 공격받는 길을 터주는 길이 됨을 알고 애국심을 뛰어넘어 세계시민으로서 그들의 생명을 바쳤습니다”는 이 편지의 핵심적 메시지이다.
“These soldiers of your great country, Mr. President, have lived and died as Americans, but they have given their lives even beyond love of country as citizens of the world”는 게티즈버그 연설의 “this nation, under God, shall have a new birth of freedom - and that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이 나라는 하느님 아래서 새로운 자유의 탄생을 보게 될 것인데,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절대로 지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처럼 사람들 입에서 회자(膾炙)될 만하다.
‘세계시민’이란 말의 족보를 찾아 올라가면 그리스의 디오게네스, 소크라테스, 네덜란드의 그로티우스, 아인슈타인과 만나게 되는데 구호성이 아니라 이승만처럼 현실 속에서, 그것도 세계적 전쟁의 현장에서 이렇게 적절하게 정치적으로 표현한 사람을 나는 알지 못한다. ‘세계시민 정신’이란 공허할 수 있는 용어에 피가 통하게 하고 영혼을 불어넣은 것이다. 이승만, 트루먼, 유엔은 ‘세계시민 정신’을 피비린내 나는 전장(戰場)에서 구현하여 자유세계를 구하고 ‘악의 제국’을 무너뜨리는 기초를 놓았던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부터 지속적으로 ‘세계시민 정신’을 강조하고 있는 배경에 이런 정신이 흐르고 있는 게 아닐까?
트루먼 대통령은, 남침 소식을 접하자 김일성 집단을 ‘개자식(sons of bitches)’이라 욕하고는 유엔군의 기치하에 참전을 결단한다. 세계시민 정신으로 처음 조직된 국제기구인 유엔이 그런 정신으로 군대를 보내게 되었다는 점을, 트루먼은 남침 나흘 후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한국은 유엔의 도움으로 세워졌습니다. 유엔 회원국들이 공인(公認)한 정부인데 마적단(bunch of bandits)으로부터 불법적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유엔 회원국들은 한국에 대한 마적단 습격 사건(bandit raid)을 진압하기 위하여 한국을 구원하기로 하였습니다.”
한국전에 대한 가장 완벽한 국제법적 정의(正義)이다. 트루먼은 김일성 세력을 ‘개자식’, 북한군을 ‘마적단’으로 경멸할 뿐 아니라 ‘불법행위’임을 분명히 했다. 2017년 문재인이 유엔총회에서 한국전을 설명하면서 남침을 ‘내전이자 국제전’이라고 왜곡한 데 생각이 미치면 치가 떨리지 않는가?
Comminazis
이승만은 이 편지에서 자유를 중심가치로 하는 ‘세계정신’을 기둥으로 하여 여기에 애국심과 반공정신을 연결시킨다. “(미국 병사들은) 공산파쇼 집단(Comminazis)에 의하여 자유국가의 독립이 유린되는 것을 방치한다는 것은 (후략)”에 나오는 생소한 용어 ‘Comminazis’는 이승만의 수준 높은 지적사고(知的思考)를 보여준다. 이 무렵 공산주의와 나치즘을 똑같은 전제주의적 악(惡)으로 본 학자는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폰 하이에크, 문학가로는 조지 오웰, 외교관은 조지 케넌, 정치인은 처칠, 드골, 트루먼, 아데나워 정도였고, 이런 생각을 ‘Comminazis’란 경멸적 단어로 공문서에 넣은 지도자는 이승만이 처음일 것이다. 그의 반공신념은 20세기의 위대한 사상적 각성을 반영하는 것인데 이를 정치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은 신선하다.
이승만은 1920년대 이미 한국인으로선 처음으로 공산주의를 체계적으로 비판한 인물이었다. 그는 1945년 12월 19일 저녁 7시30분 서울중앙방송국(KBS) 연설을 통하여 ‘공산당에 대한 나의 입장’이라는 제목의 연설을 하였다. 하지 사령관의 미군정(美軍政) 당국은 공산당을 건국 과정에 참여시키려 하였고, 트루먼 행정부도 아직은 대소(對蘇) 봉쇄 정책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있을 때였다. 이승만은 이 역사적 연설을 통하여 공산당 극렬분자들을 반역자, 매국노, 사대주의자, 거짓 선동가, 분열주의자, 소련 간첩단, 사리사욕(私利私慾)주의자, 문명파괴자라고 정확히 규정하였다. 이 연설은 아마도 2차 세계대전 이후 정치 지도자가 선언한, 공산당에 대한 최초의 정면 대결일 것이다.
“양의 무리에 이리가 섞여서 공산명목을 빙자하고 국권(國權)을 없이 하야 나라와 동족을 팔아 사리(私利)와 영광을 위하여 부언낭설로 인민을 속이며, 도당(徒黨)을 지어 동족을 위협하며 군기(軍器)를 사용하야 재산을 약탈하며, 요즈음은 민중이 차차 깨어나서 공산에 대한 반동이 일어나매 간계(奸計)를 써서 각처에 선전하기를 저희들은 공산주의자가 아니요 민주주의자라 하야 민심을 현혹시키나니, 이 극렬분자들의 목적은 우리 독립국을 없이 해서 남의 노예로 만들고 저희 사욕(私慾)을 채우려는 것이다.”
그는 공산주의자들의 본성이 민족반역자임을 강조한다.
“이 분자들이 러시아를 저희 조국이라 부른다니, 과연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요구하는 바는 이 사람들이 한국에서 떠나서 저희 조국에 들어가서 저희 나라를 충성스럽게 섬기라고 하고 싶다. 이 사람들이 한국 사람의 형용(形容)을 하고 와서 우리 것을 빼앗아 가 저희 조국에 갖다 붙이려는 것은 우리가 결코 허락지 않는 것이니, 우리 삼천만 남녀가 다 목숨을 내어놓고 싸울 결심이다.”
이승만은 이 연설에서 공산주의와 싸우는 원리와 방법도 제시하였다.
“먼저 그 사람들을 회유해서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내용을 모르고 따라다니는 무리를 권유하여 돌아서게만 되면 함께 나아갈 것이오…”
그는 회개하지 않는 공산주의자들은 “친부형(親父兄) 친자질(親子姪)이라도 원수로 대우해야 한다. 대의를 위해서는 애증(愛憎)과 친소(親疎)를 돌아볼 수 없는 것이다”면서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건설자와 파괴자는 협동이 못 되는 법이다. 건설자가 변경되든지 파괴자가 회개하든지 해서 같은 목적을 가지기 전에는 완전한 합동은 못 된다”고 좌우합작 노선을 거부했었다.
김일성 세력과 전체 한민족의 대결

▲유엔은 북한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유엔군 결성을 결의했다. 1950년 7월 14일 콜린스 미 육군참모총장으로부터 유엔 깃발을 전달받고 있는 맥아더 원수(오른쪽).
이승만은, 트루먼에게 보낸 친서에서 공산주의를, “한국인의 전통이나 정서와는 전적으로 이질적인” 존재로서 “세계 공산주의자들이 우리나라의 가슴속에 심어서 키워온 제국주의적 침략의 악성(惡性) 암세포”라고 단정한 뒤 획기적인 대전략을 제시한다. “소수의 공산주의자를 제외한 모든 한국인은 그들의 조국에 충성”하므로 “이 전쟁은 남과 북의 대결”이 아니며, “우리나라의 반을 어쩌다 점거하게 된 소수의 공산주의자와 압도적 다수의 한국인(그들이 어디에 살든) 사이의 대결”이란 것이다. 이 전략을 오늘에 적용한다면 김정은과 종북 세력은 민족반역 집단이므로 한민족(韓民族) 가운데서 고립시켜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즉 ‘김정은 대(對) 한민족’의 대결구도, 즉 ‘1 vs 8000만’으로 만들면 백전백승! 이는 가짜 민족주의 노선으로 한국인들을 속이는 김일성 세력으로부터 ‘민족’이란 무기를 빼앗아 그들을 찌르는 차도살(借刀殺)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이를 오히려 통일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미국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다. 그는 김일성의 남침으로 38도선이 무의미해졌으므로 실지 회복이 아니라 북진 통일을 전쟁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이 대목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자료를 찾았다. 대통령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의 《난중일기(亂中日記)》다.
〈7월 18일: 대통령과 무초 미국 대사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언쟁을 벌였다. 대통령이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한 내용 가운데 “우리 한국 국민은 공산군을 우리의 본래의 국경선인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으로 몰아낼 때까지 싸울 것을 다짐하고 있다”고 되어 있는 대목을 대사가 빼자고 하여 두 사람의 목소리가 높아진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무초 대사에게 편지 초안을 보여주고 의견을 구한 것으로 보인다. 대사는 당시 유엔군과 미국의 전쟁 목표가 38도선 이북으로 북한군을 몰아내는 데 있는데 이승만이 확대된 목표를 제안하자 반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원문을 보면 이승만 대통령이 직설적 표현을 누그러뜨렸지만 ‘북진 통일’을 밀어붙였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은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 성공 이후 전쟁 목표를 북진 통일로 수정했다가 중공군 개입 이후 사실상 ‘원상회복’으로 돌아갔고, 이것이 이승만 대통령의 반발을 불러 반공포로 석방, 미국의 이승만 제거 계획 등을 거쳐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로 정리된다.
세계정신과 자주정신
이승만 대통령은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서 구구절절 감사의 뜻을 전하지만 주권과 관련한 사안에 대해선 양보하지 않는다. 그는 “한국 정부는 대한민국 정부의 동의나 승인 없이 한국에 관하여 장차 다른 나라나 국가 그룹에서 결정하는 그 어떠한 협정이나 양해사항도 이를 구속력이 없는 것으로 간주할 것입니다”고 최후통첩 하듯 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결국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 휴전 협상을 두고 미국과 충돌하게 되는데 그의 무례하게 보일 정도의 고집이 결국 한미동맹을 만들어냈으니 이승만 제거 계획까지 검토했던 미국으로서도 다행이었다.
자신을 도와준 강대국과 맞서 주권과 자존심을 지킨 사례로는, 신라의 삼국통일 때 당(唐)에 대한 경우가 있다.
서기 660년 신라 태종무열왕 시절, 황산벌 싸움에서 백제 결사대를 무찌른 김유신(金庾信)의 신라군은 먼저 온 당군(唐軍)과 합류하기 위하여 당의 진영에 이르렀다. 당장(唐將) 소정방(蘇定方)은 신라군이 늦게 왔다고 신라 장수 김문영을 목 베려 했다. 김유신이 격분, 여러 사람 앞에서 이야기한다(《삼국사기》 신라본기).
“대장군이 황산의 싸움을 보지 못하고 늦게 왔다고 죄를 주려는 것인데, 나는 결코 죄 없이 욕을 당할 순 없다. 반드시 먼저 당군과 싸워 결판을 지은 다음 백제를 부수겠다.”
《삼국사기》 태종무열왕 편은, 당시 김유신을 이렇게 묘사했다.
“김유신이 군문(軍門)에서 도끼를 집자 성난 머리털은 꼿꼿이 서고 허리에 찬 보검은 저절로 칼집에서 빠져나왔다.”
이를 본 소정방의 부장(副將) 동보량이 겁을 먹고 발을 구르며 말하기를 “신라 군사가 장차 변하려 합니다”고 하니 소정방은 김문영의 죄를 사하였다.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전(傳)은 그 뒤의 일을 이렇게 적었다.
〈당나라 사람이 백제를 멸한 뒤 사비의 언덕에 군영(軍營)을 만들어 신라 침략을 음모하였다. 우리 왕이 알고 여러 신하를 불러 계책을 물었다. 다미공이 나아가 말하기를 “우리 백성을 거짓 백제의 사람으로 만들어 그 의복을 입히고 도둑질을 하려는 것처럼 하면 당의 사람들이 반드시 공격할 것이니 그때 더불어 싸우면 뜻을 얻을 수 있습니다”라고 하니 유신이 말하기를 “그 말도 취할 만하니 따르십시오”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당나라 군사가 우리의 적을 멸해주었는데 도리어 맞서 싸운다면 하늘이 우리를 도와주겠나”고 했다. 유신이 말하기를 “개는 주인을 두려워하지만 주인이 그 다리를 밟으면 무는 법입니다. 어찌 어려움을 당하여 자신을 구원하지 않겠습니까, 청컨대 대왕께서는 허락하여주십시오”라고 했다.
당의 첩자는 우리가 대비하고 있음을 알고 백제의 왕, 신료 93명, 군사 2만 명을 사로잡아 돌아갔다. 소정방이 포로를 바치니 당의 고종은 위로한 뒤 “어찌 신라마저 치지 않았는가”라고 물었다. 소정방은 이렇게 말했다.
“신라는 그 임금이 어질고 백성을 사랑하며 그 신하가 충성으로 나라를 섬기고, 아랫사람은 윗사람 섬기기를 부형 섬기듯 하니 비록 작지만 도모할 수가 없었습니다.”〉
戰後 70년, 이젠 자유통일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월 25일 워싱턴 DC에 있는 한국전 참전공원을 방문, 희생자들의 영령을 위로했다. 사진=뉴시스
전성기의 세계 최대 강국을 대표하는 장수가 신라에 바친 찬사이다. “신하가 충성으로 나라를 섬기고”라는 대목은 근대적이다. 신하가 섬기는 대상은 임금보다 상위 개념인 나라(國)로 기록되어 있다. 요사이 문법으로 말한다면 대통령이 아니라 헌법에 대한 충성이다. 국가를 임금 위에 놓은 점에서 7세기 신라 지도층이 가졌던 국민국가적 가치관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김유신과 이승만이 보여준, 당대 최강국에 대한 당당하면서도 유연한 자세는 정신 면에서 우리 민족사의 두 정점(頂點)이고 서로 이어져 있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3세기에 걸친 동북아의 평화 시대를 만들었고 한민족은 처음으로 일류국가를 건설, 고대사의 황금기를 누렸다. 7~9세기 경주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장안, 바그다드, 교토(나라)와 함께 세계 5대 도시였다. 일류국가는 과거에 일류국가였던 경험이 있어야 만들 수 있는데, 대한민국은 물질적 부문에선 조건을 갖추었으나 한미동맹에 너무 의존, 자주국방 의지가 퇴색하고, 지식인층은 조선조적 명분론과 사대주의 근성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여 전도(前途)를 낙관할 수 없다.
이승만은 나당(羅唐)동맹을 만든 신라의 김춘추(金春秋)처럼 세계적 관점에 서서 한반도 문제를 내려다보면서 한미동맹으로 활로를 찾았다. 그 과정에서 김유신처럼 초인적인 자주정신을 보였다. 이승만과 신라 지도부는, 세계시민 정신과 자주정신을 유연하게 통합시켜 자유와 번영의 세상을 만들어낸 민족사 최고의 인물들인데 속 좁은 지식인들에 의하여 푸대접받고 있다. 하인에게 영웅이 없다는 말은 영웅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인이 하인의 눈높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7·27 연설이 이런 문제들을 다 포괄하여 “전후 70년, 이젠 자유통일이다”라는 역사적 명제에 속 시원한 전망을 내놓기를 기대한다.
피 묻은 자유!
이승만이 친서를 보낸 1950년 7월 19일 트루먼은 라디오·텔레비전 연설에서 마치 화답하듯이 말했다.
“한국은 작은 나라이고 수천 마일이나 떨어져 있지만,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든 미국인에게도 중요합니다. 공산군의 침략 행위는 자유와 평화 속에서 살 수 있는 세계를 만들고 싶어 하는 자유국가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입니다. 정면으로 그런 도발을 하였으므로 우리도 정면으로 맞서야 합니다.
유엔과 회원국들의 행동은 중대한 의미가 있습니다. 자유세계는 불법적인 침략을 무력(武力)으로 응징할 것임을 명백히 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육군, 해군, 공군을 보냈습니다. 지금 이 전쟁에 걸려 있는 것은 세계의 평화와 미국의 안전이기 때문입니다. 공산군이 한국을 침략하였다는 것은 다른 나라에 대하여도 그렇게 할 것임을 보여줍니다.
나는 자유의 대가(代價)가 매우 비싸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구애받지 않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리의 자유를 지켜낼 작정입니다. 우리를 위해서일 뿐 아니라 모두를 위해서입니다. 창조주(創造主)께서 인간을 지으신 목적대로 살기 위하여는 자유와 평화가 필수적입니다. 이것은 과거에 우리를 인도한 신념이었고 다가오는 어려운 시기에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줄 신념이기도 합니다.”
이승만과 트루먼이 공유하였던 “자유수호의 세계시민 정신”은 자유가 제한될 수밖에 없는 전시(戰時)에도 실천되었다. 이승만은 “공산당과 싸워서 자유를 되찾겠다는데 언론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면서 검열제도를 폐지, 한국 언론은 전시 중에도 군대와 대통령을 비판하는 자유를 누렸다. 전시 중에도 면장까지 뽑는 최대 규모의 선거를 가졌다. 트루먼 대통령은 휴전협상의 가장 큰 쟁점이었던 포로 문제에서 인도주의적 원칙을 견지, ‘본인 의사에 따른 송환원칙’을 밀어붙였다. 이 때문에 협상이 지연되어 미군 전사자가 늘었지만 그는 이미 자유의 대가는 비쌀 것이라고 예견했었다. 한국인들이 지금 공짜로 누리는 이 자유엔 피가 묻어 있다. 수많은 세계(한국) 젊은이의 피가! 세계시민 정신엔 희생이 따른다. 그런데 1950년의 한국처럼 싸우는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대주고 있는가?⊙
글 : 조갑제 조갑제닷컴·조갑제TV 대표
07.11 [단독] 1만년 걸리는 암호 풀었다…北지령문 연 '구슬이 서말'
북한에서 100번이나 지령문을 받고 해외 공작원과 접선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석모 전 민주노총 조직쟁의국장을 붙잡은 숨은 공신은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평범한 우리 속담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슈퍼컴으로도 1만년 걸리는 지령문 암호해독

▲동남아 국가에서 북측 인사들과 접촉해 지령을 받고 활동한 혐의를 받는 경남진보연합 관계자들이 지난 1월 31일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11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이 사건을 수사하던 국가정보원과 경찰은 지난 1월 민주노총과 산별노조 압수수색을 통해 석씨가 쓰던 PC를 확보했지만 암호자재를 찾지 못해 당황했다고 한다. 북한 지령문은 ▶암호가 걸린 문서가 담긴 USB에다가 ▶UBS 자체 암호 ▶다른 매체에 별도 저장된 문자·숫자·기호 등 장문의 ‘암호자재’를 동시에 복사·붙여넣기를 해야 열리는 삼중잠금 장치가 걸려있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국정원 등이 압수수색 할 때 석씨는 수사관들에게 “별 거 없죠”라며 태연한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공안 수사에 정통한 한 정부 부처 관계자는 “사안마다 암호자재가 다른 데다 배열도 정교해 슈퍼컴퓨터로 돌려도 보통 1만년이 걸리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북한 지령문을 해독 하기 위해선 단순히 암호만 입력하는 방식이 아닌 USB 삽입, 각 프로그램 실행 등의 순서까지 지켜야 한다고 한다. 또 공작원들이 정기적으로 암호자재를 교환하는 만큼 ‘구버전’ 암호자재일 경우 확보해도 소용이 없다고 한다. 이 때문에 국정원은 압수수색으로 자료를 확보하고도 한달 반 가량을 암호해독과 씨름했다고 한다.
실마리는 우연한 계기로 풀렸다. 새벽까지 야근을 하던 한 국정원 직원이 석씨 책상 위에 놓여있던 다른 저장매체 속 문서파일을 살펴보다가 어느 문서파일 중간에 ‘rntmfdltjakfdlfkeh…’라고 적힌 32자의 글자열를 발견한 것이다. 국정원 직원들이 키보드 자판을 한글로 놓고 영문 일부를 입력하자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속담이었다. 지령문을 해독하는데 필요한 암호자재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국정원과 검찰은 이후 지령문이 담긴 USB의 별도 암호까지 뚫고 북한의 스태가노그래피(기밀 정보를 파일·메시지·이미지 등에 숨기는 심층 암호기술)를 해독해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별거 없죠”라더니 해독에 ‘깜짝’…馬 사육법 지령도
공안당국이 확보한 북한 지령문은 약 4년치(2018~2022년)로 114건에 달했다. 주요 내용은 ▶주요 통치기관들에 대한 송전망체계 자료 입수(2019년) ▶화성·평택지역 군사기지 및 화력발전소·항만 등 비밀자료 수집(2019년) ▶일장기 화형식·일본인 퇴출 운동 등 반일투쟁으로 반일감정 고조(2019년) ▶방사능 오염수 방류 문제로 반일민심 부추기기(2021년) ▶노조 동원 윤석열 정부 반대 투쟁 주문(2022년) 등이다. 이 외에 해외서적 구입 및 선진국에서 말을 키우는 방법 등에 대한 정보 수집 지령도 포함돼있었다고 한다. 북한 지령문을 우리 공안당국이 풀어버린 걸 나중에 알고는 석씨의 눈빛이 흔들렸다고 한다.
피의자 4명중 2명은 국민참여재판 의사

▲지난 5월 10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검찰청에서 박광현 수원지검 인권보호관이 '노동단체 침투 지하조직'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중간수사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원지검 공공수사부(부장 정원두)는 이 같은 수사를 통해 지난 5월 석씨 등 민주노총 간부 4명을 국가보안법 위반(간첩, 특수잠입·탈출, 회합·통신, 편의제공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이들은 북한 지령문 수령 외에도 2017~2022년 중국 광저우, 캄보디아 프놈펜, 베트남 하노이 등에서 북한 노동당 산하 대남 공작기구 소속 공작원을 수차례 접촉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20년 6월~2022년 9월 대북통신용 이메일 계정을 만들어 북한과 연락을 취하고 조직원들과 접선할 수 있는 신호방법을 만든 혐의도 사고있다.
이들 민주노총 간부 4명에 대한 3차 공판준비기일은 10일 수원지법 형사14부(부장 고권홍)에서 열렸다. 이날 재판에서 전 민주노총 금속노조 부위원장 등 2명은 국민참여재판을 희망한다고 의사를 밝혔다. 반면 석씨와 민주노총 전 보건의료노조 조직실장은 국민참여재판을 희망하지 않았다. 변호인들은 한 차례 더 공판준비기일을 열어달라고 요청했고 재판부는 “기소된지 몇 개월이 흘렀기 때문에 공판 절차를 빨리 해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허정원ㆍ이창훈ㆍ김정민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07-11 ‘사드 고의 지연’ 사실이면 利敵행위

이상환 한국외국어대 교수, 前 한국국제정치학회장
지금 문재인 정부 시절의 사드(THAAD) 정상화 지연 의혹과 관련해 새로운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여당은 이를 중국에 안보 주권을 내준 국기문란·안보농단 사건으로 규정하고 진실 규명 차원에서 문 전 대통령과 이해찬 전 대표 등에 대한 조사를 주장하고 있다.
사드 정상화 지연 의혹의 단초는 사드 배치를 위한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절차가 복잡한 ‘일반 환경영향평가’로 변경한 데 있다. 이와 함께 ‘3불(不) 1한(限)’에 대한 실체적 진실 규명도 수반해야 사드 정상화 지연 관련 의혹을 명확히 풀 수 있다. 3불 1한은 사드의 추가 배치 불가,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 불참, 한·미·일 군사동맹 체제 불가의 ‘3불’과, 배치된 사드의 운용을 제한하는 ‘1한’을 문 정부가 중국에 선서했다는 설에 근거한 것이다.
만약 문 정권이 3불 1한 준수를 위해 사드 정상화 지연을 획책했다면 이는 사실상 이적(利敵)행위다. 당시 생성된 문서가 남아 있는지 알 수 없으나, 문서가 있든 없든 그러한 결정이 내려지고 집행된 과정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 특히 어처구니없는 일은, 지난 2019년 10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5차 한·중 국방 전략대화에서 중국 측이 3불 1한과 관련해 한국 정부가 지난 2년간의 이행 현황을 통보하고, 사드의 영구 배치 방지를 위해 미국을 설득하며, 한·중 양국의 기술 전문가 정례회의를 개최키로 한 점이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그 경위와 구체적 내용을 규명해야 한다.
참외 주산지인 경북 성주에 사드가 배치됐을 때, ‘전자파에 노출된 참외는 건강에 해롭다’ 등 괴담들이 넘쳐났다. 이 때문에 성주의 참외 농가는 막심한 손해를 봤고, 군민들도 반대 투쟁에 나섰다. 하지만 사드 배치 후 6년 만에 나온 환경영향평가 결과는 사드의 전자파가 인체에 무해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영향평가 결과가 좀더 일찍 나왔더라면 사회적 혼란이 빨리 끝나고 사드 배치 운용의 정상화가 앞당겨졌을 것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정부 5년 동안 국방부로부터 협의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문 정부가 임기 내내 사드 기지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를 고의로 지연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더욱이 문 정부는 2018년 3월부터 4년간 측정한 사드 레이더 전자파 검사 결과 인체에 무해하다는 국방부 보고를 받고도 국민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사드 배치를 두고 확인되지도 않은 괴담으로 국민이 불안해하던 당시 정부는 이를 불식하기 위해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환경영향평가를 신속히 실시하고 그 결과를 내놨어야 마땅했다. 그런데 만약 이를 고의로 지연시켰다면 이는 용납할 수 없는 범죄행위다.
이제 국민은 더는 괴담과 가짜 뉴스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사드 배치와 같은 안보 의제는 비과학적 정쟁의 도구가 돼선 안 된다. 영화 시나리오도 논리적으로 합당하지 않으면 관객으로부터 외면을 받는데, 작금의 정치 선동은 ‘과학 실종 시대’를 연상케 한다.
따라서 사드 정상화 지연 의혹 조사는 우리의 안보를 굳건히 하고 향후 유사한 일의 재발 방지와 안보 불감증 해소를 위해 필요하다. 이번에도 유야무야 넘어간다면, 이는 다수 유권자의 정치적 무관심을 반(反)정치적 또는 탈(脫)정치적 태도로 내몰게 될 것이다.
문화일보
07-11 [단독] 실물 첫 공개 이승만 동상 새김글에 “몽둥이 들고라도 싸울 것”

▲경북 칠곡군 다부동 전적지에 건립하는 이승만(오른쪽) 트루먼 대통령 동상 실물. 동상건립추진모임 제공
■ 동상건립추진모임, 트루먼·박정희 동상조감도 제원·안내판도 공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트루먼 동상 기단에도 글귀
“李, 대한민국 미래 청사진 제시
예우갖춰 모셔야할 건국대통령”
박정희 동상 2016년 제작 완료
박원순시장때 반대로 기증무산
“우리는 남자·여자·아이들까지 나와서 필요하다면 몽둥이와 돌멩이를 들고서라도 싸울 것입니다.”
정전 70주년 기념일인 오는 27일 경북 칠곡군 다부동 전적지에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 동상과 함께 세워질 이승만 대통령의 동상 왼쪽 기단에는 1950년 6월 25일 존 무초 미국 대사에게 보낸 이 글귀가 새겨져 있다. 오른쪽 기단에는 이 대통령이 1950년 7월 19일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낸 서신으로 “위대한 귀국의 병사들은 애국심을 뛰어넘어 세계시민으로서 그들의 목숨을 바쳤습니다”란 글귀가 새겨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식 때 쓴 ‘세계시민’ 용어는 여기서 유래한다.
2016년 5월 2일 창립된 이승만·트루먼·박정희 동상건립추진모임(동건추·대표 조갑제)이 세 대통령의 동상 조감도 제원·동상 안내판 등을 11일 문화일보에 처음 공개했다. 33대 미 합중국 트루먼 대통령 동상 좌우 기단에는 그가 딘 애치슨 국무장관에게 지시한 “딘,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개자식들을 막아야 합니다”란 문구와 1950년 6월 29일 기자회견 내용인 “유엔 회원국들은 한국에 대한 마적단 습격사건을 진압하기 위하여 한국을 구원하기로 하였습니다”란 글귀가 새겨져 있다.
동건추 간사인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이승만·트루먼 동상은 6·25전쟁 때 최초 한·미 연합작전 전투지로 구국과 한·미 동맹의 상징지인 다부동에 당시 전쟁을 지휘한 한·미 최고통수권자 동상을 설치하려는 것”이라며 “동상 제작은 동건추 초대 대표인 민초장학재단 설립자를 비롯한 위원들의 후원과 이철우 경북지사, 칠곡군수 등의 결단 덕분”이라고 밝혔다. 이승만·트루먼 동상은 2017년 4월 18일 제작해 용산 전쟁기념관에 기증하려 했으나 정부 비협조로 무산됐다가 6년 만에야 다부동에 자리잡게 됐다.
광화문 세종대왕상을 조각한 국내 최고 조각가로, 세 대통령 동상을 제작한 김영원(76) 전 홍익대 미대학장은 문화일보와 통화에서 “이 대통령은 국제적 시각에서 미래지향적으로 민족의 나아갈 방향, 큰 청사진을 세운 분으로 말년에 정치적 혼란이 있었지만 예우를 갖춰 모셔야 할 건국 대통령”이라고 동상 제작 동기를 설명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는 “다른 대통령들이 민심에 부합하는 정책을 폈다면 이 분은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고 할 정도로 대한민국 미래 청사진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한 국가 지도자로 모셔야 할 분인데 기념관에 동상 하나 세우지 못하는 나라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2016년 6월 17일 동상 제작이 완료된 박정희 대통령 동상은 서울 마포구 상암동 박정희대통령기념관에 기증하려 했으나 고 박원순 시장 시절 서울시 반대로 무산돼 건립 장소를 물색 중이다.
정충신 선임기자 csjung@munhwa.com
07.12 北 첫 사용 ‘대한민국’ 용어, 무심코 넘길 일 아니다
북한의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10~11일 대남(對南) 비난 담화에서 이틀 연속 ‘남조선’ 대신 ‘대한민국’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김여정은 미 공군의 대북 정찰 활동은 북미 간의 문제라며 ‘대한민국 군부’는 개입하지 말라고 했다. 김여정은 ‘대한민국의 합동참모본부’ ‘대한민국 족속’이라고도 했다.
북한은 그동안 남조선, 남조선 괴뢰라는 말을 써왔다. 대남 비난 메시지에서 ‘대한민국’을 사용한 것은 처음이다. ‘대한민국’에 《》 표시를 써서 자신들이 의도적으로 ‘대한민국’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북한 최고 수준의 담화에서 ‘대한민국’ 을 사용한 것은 그동안 같은 민족끼리의 특수 관계로 간주해 왔던 남북 관계를 일반적인 적대국 관계로 대체하겠다는 뜻일 수 있다. 북한은 지난 1일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 사망 20주기 금강산 추도식을 거부할 때도 대남기구인 조평통이 아니라 외무성을 내세웠다. 이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노동신문 뉴스1
남북은 1991년 채택한 기본합의서에서 남북 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로 규정했었다. 북한이 이런 특수 관계를 부정하고 나섰다는 것은 현재의 분단 상태를 영구화하고 어떠한 통일 논의도 거부한다는 의미다. 김씨 왕조의 영속화 뜻도 있을 것이다.
북한은 2019년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후, 남북 대화를 거부하며 대남 공세를 강화해 왔다. 북한은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6월 “남측과 더 이상 마주 앉을 일도, 논의할 문제도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며 개성 공단 내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함으로써 ‘민족’에 기반한 대남 노선 수정을 공식화했다. 2021년 제8차 당 대회 이후엔 대남 담당 비서 직책이 사라졌다. 북한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인 지난해 8월 “절대로 상대해주지 않을 것”이라며 “제발 좀 서로 의식하지 말며 살았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라고 했다.
북한의 ‘대한민국’ 표현은 ‘같은 민족’으로서 최소한의 배려도 하지 않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설마 같은 민족에게 핵을 쏘겠느냐’는 식의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앞으로 핵·미사일 문제 등에서 남북 차원의 논의를 전면 거부하고 새로운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천안함 폭침처럼 증거를 찾기 어려운 도발을 하거나 새로운 핵 실험에 나설 수 있다. 북의 의도를 면밀히 분석하고 대응해야 한다.
조선일조 사설
07.12 [단독] 北서 못 받은 돈 1조3326억…84차례 독촉에도 '모르쇠'

▲2004년 7월20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도라산역 앞 도로. 북한을 지원하기 위한 국산 쌀 10만t이 사상 처음으로 육로를 통해 이송되고 있다. 중앙포토
한국이 북한에 빌려주고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큰 대북 차관 규모가 1조3326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가 84차례나 상환을 촉구했지만 북한이 사실상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어 국민의 혈세가 줄줄 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한국수출입은행이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대북차관 원금과 연체된 이자를 합친 규모는 10억1995만 달러(약 1조3326억원) 수준이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2008년까지 9억3290만 달러(약 1조2200억원) 규모의 대북차관을 지원했는데, 수차례 연체되면서 이자만 1126억원이 불어난 상태다.
정부는 2000년부터 2007년까지 6차례에 걸쳐 북한에 쌀 240만t, 옥수수 24만t 등 식량 차관(7억2004만 달러)을 지원했다. 2012년 6월 최초 상환개시가 시작됐지만, 이제껏 단 한푼도 회수하지 못했다. 6월 말 기준 밀려 있는 원금과 이자는 각각 2억9133만 달러, 8098만 달러다. 북한이 남은 원금까지 한번에 갚는다고 해도 8억102만 달러(약 1조466억원)로 불어난 상태다.
또 2007년 북한의 의복ㆍ신발ㆍ비누 생산에 필요한 경공업 원자재를 제공했는데 8000만 달러 중 3%(240만 달러)만 회수했다. 2014년부터 상환해야 했지만 원금과 이자가 연체되면서 미상환 금액이 8603만 달러(약 1124억원)로 불어났다.
2002년에는 경의선ㆍ동해선 북측구간 철도, 도로 및 역사를 짓는데 필요한 자재와 장비 1억3290만 달러(약 1737억원)를 지원했다. 하지만 공사중단으로 차관금액이 최종 확정되지 않아 상환 일정도 정해지지 않았다.

▲신재민 기자
통일부는 차관 연체가 최초로 발생한 2012년 6월 이후 분기마다 수출입은행을 통해 북한 조선무역은행에 상환 독촉 서신을 발송해왔다. 식량차관 46차례, 경공업차관 38차례 등 84차례다. 통일부는 “북한에 지속적으로 상환독촉을 하고 있으며, 향후 정부와 차관 처리방안을 협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유경준 의원은 “통일부가 어차피 못 받을 돈이라고 생각해 안이하게 대응해 온 측면이 있다”며 “새로운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지명된 만큼 북한의 해외 자산 압류 등 미반환 차관에 대한 강력한 추징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07-13 北 도발 폭주로 더 중요해진 나토·AP4와의 안보 협력
북한은 12일 발사한 탄도미사일에 대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이라고 공식 발표하면서 “정당방위권 강화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4월 발사한 화성-18형보다 성능이 신장된 것으로, 정상 각도 발사 시 1만5000㎞에 달한다. 미국은 물론 유럽 주요 도시가 사정권이라는 점에서 세계적 위협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호주·뉴질랜드 등 아·태 4개국(AP4) 정상과 함께 파트너 자격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 시점에 자행된 북한의 도발은 중국과 러시아의 비호 없이는 불가능하다. ICBM을 쏴도 유엔 추가 제재를 방해하는 중·러를 뒷배 삼아 무력행사를 반복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리투아니아 빌뉴스 현지에서 국가안보회의(NSC) 상임위원회를 화상으로 개최하고, 나토 정상회의에서 “북한 핵미사일은 파리와 베를린, 런던까지 타격할 수 있는 실질적인 위협”이라며 강력한 공동 대응을 촉구한 것은 적절하고 당연한 조치다. 나토 정상회의 공동성명에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 규탄 및 완전한 북핵 폐기(CVID) 촉구가 담기고, 윤 대통령이 주재한 일·호주·뉴질랜드 정상과의 회담에서 북한 미사일 도발에 대한 집단안보 태세가 논의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특히 나토 정상회의를 계기로 AP4 역할이 구체화했다.
유엔이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권으로 무기력해진 만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와 나토, AP4 등 자유 진영이 북한 도발 대응의 중심이 되도록 윤 대통령이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이들 국가와 연대해 북한 사이버 해킹을 차단해 미사일 재원 조달을 틀어막는 등 실효성 있는 대응책을 추진해야 한다. 김정은은 “미제가 적대정책을 단념할 때까지 군사 공세를 지속할 것”이라며 폭주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핵실험 위협도 계속되고 있다. 레이건식 군비경쟁으로 북한의 재원 고갈을 앞당길 필요가 있다. 한미일 미사일 경보 정보 실시간 공유 시스템 조기 가동으로 미사일 요격에 나서는 결기를 보여야 도발 의지를 꺾을 수 있다.
문화일보 사설
07-13 나토와의 연대 강화는 불가피한 선택

박영준 국방대 국가안보문제연구소장
지난 11일부터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열린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 참가 중인 윤석열 대통령은 정상회의 연설을 통해 대서양과 태평양의 안보가 서로 분리될 수 없음을 천명하고, 나토와의 군사정보 공유 등 안보 협력을 확대해 간다는 방침을 밝혔다. 지난해 6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회의에 이어 연속으로 나토 정상회의에 참가하는 것은 우리나라 안보외교에 있어 중요한 의미가 있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침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을 비롯한 나토 회원국들은 피침략국 우크라이나에 대해 각종 군사 지원을 하고 있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정부가 이 상황에서 나토와 안보외교적 협력을 심화하는 것은 러시아를 적대국으로 돌리게 되고, 그 경우 1990년대 노태우 정부가 추진한 북방정책으로 이룩한 외교적 성과에 역행한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같은 시각은 오늘날 급격히 변화하는 국제 정세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것이다. 1990년대 탈냉전기 상황에서 당시 노태우 정부가 기민하게 북방정책을 추진하면서, 공산권의 맹주였던 소련 및 중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한 것은 분명히 큰 외교적 성과다. 그러나 탈냉전기의 국제 정세는 2010년대 중반을 기해 구조적 변화를 보이고 있다. 러시아는 2014년 우크라이나 남부 지역을 자국에 병합한 데 이어, 현재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략 전쟁을 1년 넘게 계속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탈냉전기 이래 미·러 간에 합의돼 온 다양한 협력 사업들, 즉 우주정거장에 대한 공동 협력 사업, 상호 핵군비통제를 검증하도록 체결한 오픈스카이조약 등이 이미 폐기됐거나 종료 절차를 밟고 있다.
유엔이나 핵확산금지조약(NPT) 같은 중요한 국제 장치들이 러시아의 전쟁 도발로 인해 충분히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세계 2위 수준의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의 시진핑 정부는, 남중국해나 대만해협에서 전랑(戰狼)외교의 행태를 보이면서 미국에 대한 도전적 태세를 숨기지 않고 있다. 지난해 10월에 공표된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서가 표명했듯이 탈냉전의 시대는 완전히 끝났으며, 이제 국제질서는 ‘민주주의 대 전체주의 국가’들이 상호 결집하는 질서 재편의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국제질서가 동요하는 가운데서 한국으로서는 가치와 이념을 공유하는 동맹 및 우방들과의 국제적 연대를 한층 강화하는 외교적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윤 대통령이 나토 정상회의에 2년 연속적으로 참가한 것은, 지난 5월의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가와 더불어, 유동적인 국제질서 속에서 우리의 국가적 위상과 이익을 극대화하고 가치를 공유하는 유사입장국들(like-minded countries)과 연대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지난해 우리 정부가 내놓은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공표한 것처럼, 사이버·대테러·비확산 분야에서 나토와 포괄적 안보 협력을 확대하고, 비회원국으로서 같이 참가한 일본·호주·뉴질랜드와의 이른바 ‘AP4’ 회의체를 통해 태평양 지역 국가들과도 신뢰를 다지는 외교를 전개해야 한다.
유사시 우리를 지원해 줄 동맹 및 우방들을 평시에 많이 확보하고, 국가 간 신뢰를 쌓아두는 것은 미래를 위한 우리의 든든한 안보 자산이 될 것이다.
문화일보
07.20 [단독] “VIP 방중에 영향, 사드 환경평가 연기” 文정부 문서 첫 확인
2019년 방중 앞두고 국방부 작성
당시 문정부 “주민 반대로 연기”
문재인 정부가 2019년 12월 대통령 방중(訪中) 등 중국과의 외교 현안을 감안해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정식 배치를 위한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고의로 연기한 것으로 19일 확인됐다. 이런 사실은 주민들의 반대 때문에 환경영향평가가 지연됐다는 문 정부의 설명과 배치된다. 문 정부의 사드 정식 배치 연기 과정이 정부 문서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방부가 국민의힘 신원식 의원실에 제출한 ‘환경영향평가 평가협의회 구성 시기 관련 협의 결과에 대한 보고’ 문건에 따르면 2019년 12월 3일 청와대 국가안보실, 국방부, 외교부, 환경부는 경북 성주 사드 기지 환경영향평가를 위한 평가협의회 구성 시점을 논의했다. 문 정부는 2017년 7월 통상 1년이 걸리는 일반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한 후 사드 최종 배치를 결정한다고 발표했다. 2019년 3월 미국이 환경영향평가를 위한 사업계획서를 제출하면서, 정부는 법에 따라 정부, 주민대표, 민간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평가위원회를 먼저 구성하고 다음 절차를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문건에서 당시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12월 계획된 고위급 교류(중국 외교부장 방한, VIP 방중)에 영향이 불가피하며 (평가협의회 구성) 연내 추진이 제한된다”며 연기 문제를 꺼냈다. 문 전 대통령은 회의 20여 일 후인 2019년 12월 23~24일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하고 한·중·일 정상회의에 참석하기로 돼 있었다. 한중은 당시 2020년 초 시진핑 주석의 방한도 추진 중이었다. 참석자들은 “중국 측은 성주 기지 환경영향평가 절차 진행을 사드 정식 배치로 간주해 한중 간 기존 약속에 대한 훼손으로 인식하고 강하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이라고 했다. 국방부는 연내 평가위원회를 구성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지만 회의에선 “외교 현안 등을 고려할 때 연내 평가협의회 착수는 곤란하다”고 결론났다.
회의 결과는 정의용 당시 청와대 안보실장에게 보고됐고, 청와대 안보실은 국방부에 평가협의회 구성 시기를 2020년 1월 말 재검토한다는 결정을 전화로 통보했다고 한다. 회의 다음 날 국방부 군사시설기획관실이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한 이 문건은 그간 외부에 공개된 적이 없다.
문재인 정부가 2020년 1월 평가협의회 구성을 재논의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평가협의회 구성 전 단계인 평가준비서 작성이 2019년 12월 끝났고, 국방부는 미국 측의 요구를 거론하며 2020년 5월, 2021년 2월 등으로 새롭게 평가협의회 구성 목표 시점을 제시했다. 하지만 평가협의회는 문재인 정부 임기가 끝날 때까지 출범하지 못했다. 여권에서는 청와대 등 ‘윗선’의 압박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신원식 의원은 “주민 반대 때문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설명과 다른 정황이 드러난 만큼 문재인 전 대통령을 포함, 누구의 지시로 사드 기지 환경영향평가가 지연됐는지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로 규명해야 한다”고 했다.
국방부가 2020년 7월 작성한 ‘성주 기지 환경영향평가 추진 계획 보고’ 문건 등에는 평가 지연에 따른 미국의 불만과 불안도 담겼다. 국방부는 2020년 6월 열린 한미 과장급 회의에서 환경영향평가 후속 절차 개시, 종료 시점에 대해 “시점을 특정할 수 없다”고 했다. 미국은 환경영향평가 이전에라도 사드 기지에 한전의 상업용 전기 공급을 요청했지만 우리 정부에 거절당했고, 이후 “레이더 시설만이라도 전기 공급 공사를 하게 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지 앞 반대 시위대 때문에 미군은 헬기로 실어온 기름으로 이동식 발전기를 돌려 사드 레이더를 운영했다. 결국 2020년 7월 로버트 에이브럼스 당시 한미연합사령관은 한국 국방부에 서한을 보내 “환경영향평가 지연은 장병 생활 여건과 기지 능력에 영향을 준다’며 “조속하고 적절히 진행될 수 있게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이런 상황은 “일반환경영향 평가와 상관없이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사드 기지가 정상적으로 작동했고, 미국이 고마움을 표시했다”는 문재인 정부 인사들의 주장과는 배치되는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해당 문건은 사드 기지 정상화를 위한 당시 미국 측의 절박감을 보여준다”며 “당시 군사시설기획관의 이 보고에 대해 국방부 장관과 국가안보실이 어떻게 조치했는지 조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조선일보 박수찬 기자
07.20 [단독] 3不 없다더니…국방부 문서엔 ‘韓·中 기존 약속, 2017년 10월’
文정부 국방부 문서로 드러나

▲2019년 12월 4일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된 ‘환경영향평가 평가협의회 구성시기 관련 협의 결과에 대한 보고’ 문건에 “한중 간 기존 약속: 3불 합의. 2017. 10월”(위 사진 붉은 밑줄)이라고 적혀 있다. 문재인 정부는 3불 합의를 부정해왔는데 처음으로 문서를 통해 확인된 것이다. 아래는 경북 성주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기지 모습/국민의힘 신원식 의원실·뉴스1
국방부가 19일 국민의힘 신원식 의원실에 제출한 문재인 정부 문건엔 사드 ‘3불(不) 1한(限)’에 대해 “한중 간 기존 약속” “양국이 합의한”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3불은 사드 추가 배치, 미 미사일 방어(MD) 체계 참여, 한·미·일 군사 동맹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고, 1한은 중국을 겨냥하지 않도록 사드 운영을 제한한다는 용어다. 문재인 정부 인사들은 “3불은 양국 간 합의가 아니며, 1불은 중국이 요구한 사실도 없다”고 해왔지만, 결국 문서에는 ‘한중 간 약속’으로 명기돼 있었다.
2019년 12월 4일 국방부 장관에 보고된 ‘환경영향평가 평가협의회 구성 시기 관련 협의 결과에 대한 보고’ 문건에는 사드 정식 배치를 위한 일반환경영향평가가 진행될 경우 중국이 반발할 것을 우려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러면서 3불에 대해 “한중 간 기존 약속: 3불 합의. 2017년 10월”이라고 표기돼 있다. 2017년 10월 남관표 당시 청와대 안보실 2차장과 쿵쉬안유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 격) 명의로 발표한 ‘한중 관계 관련 양국 간 협의 결과’를 가리키는 것을 보인다. 당시 3불과 관련 “중국에 안보 주권을 양보했다”는 지적이 나오자 남관표 전 차장은 2020년 10월 국회에서 “정부의 입장 표명일 뿐 국가 간 합의나 약속은 아니다”라고 했다.
2020년 7월 31일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된 ‘성주기지 환경영향평가 추진 계획 보고’에도 ‘3불 1한’이 등장한다. 육로를 이용해 성주기지에 자재, 장비를 반입한 후 2개월 정도 지난 시점에서 국방부 장관에 보고된 문서로, 환경영향평가 계획과 관련해 미국, 중국 입장이 포함돼 있다. 중국 입장에 대해 국방부 군사시설기획관실은 “(중국) 양국이 합의한 ‘3불 1한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며 지상 반입에 대해서는 큰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음”이라고 명시했다.
이런 사실은 “1한 요구는 없었다”는 문재인 정부 입장과 배치된다. 2017년 10월 ‘한중 관계 개선 관련 양국 간 협의 결과’에서 한국은 “중국 측의 사드 문제 관련 입장과 우려를 인식하고, 한국에 배치된 사드 체계는 제3국을 겨냥하지 않는 것으로서 중국의 안보 이익을 해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해 운용 제한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2017년 11월 국회에 출석한 강경화 당시 외교부 장관은 중국이 사드 운영 제한(1한)을 요구했느냐는 질의에 대해 “분명히 사실 아니다”라고 했다. 강 전 장관은 ‘중국의 우려를 이유로 사드 시스템 사용을 제한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느냐’는 의원 질문에 “사드 시스템 운영을 제한한다는 생각은 갖고 있지 않다”고 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1한이 정부 문서에 포함된 사실이 확인되면서 여권에서는 “강 전 장관이 위증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전망이다. 중국 정부는 문재인 정부 때는 1한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다가 윤석열 정부가 사드 정상화를 추진한 2022년부터 외교부 대변인, 관영 매체 등을 통해 3불 외에 1한도 양국 약속이라는 취지로 주장했다. 지난해 8월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한국 정부는 대외적으로 3불 1한의 정책 선시(宣示·널리 알림)를 정식으로 했고 중국 측은 한국 정부의 이런 입장을 중시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우상호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은 “중국과 합의하거나 조약을 맺은 적은 없다”면서도 “문재인 정부 외교 정책의 한 방향으로 내부에서 그런 기준을 갖고 간 적은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김승재 기자
07-20 文 방중 의식해 사드 환경평가 고의 회피… 안보 매국이다
문재인 정부가 사드(THAAD)를 대중 관계의 장애물로 간주해 방치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문 대통령의 방중을 앞두고 중국 눈치를 의식해 정상적 절차를 고의로 회피한 정황까지 구체적으로 확인됐다.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이 입수해 공개한 국방부 문건에 따르면, 사드 환경영향평가 평가협의회 구성과 관련해 ‘계획된 VIP 방중에 영향이 불가피하며 연내 추진이 제한된다’는 표현이 나온다. 2019년 12월 3일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진행한 회의 결과 보고서로, 20일 앞으로 다가온 문 대통령 방중 분위기를 해치지 않기 위해 평가협의회 구성을 미뤘다는 취지다.
문 정부는 사드 환경영향평가 지연과 관련해 주민 설득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해명해왔다. 그러나 이 문건은 청와대가 문 대통령의 방중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평가협의회 구성을 의도적으로 회피했음을 보여준다. 결국 ‘외교 현안을 고려할 때 연내 평가협의회 착수는 곤란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문 정부는 환경영향평가와 관련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아 사드는 5년 내내 임시 배치 상태였다. 문 정부는 주한미군 측의 환경평가 사업계획서를 계속 반려하다 2019년 접수한 뒤엔 곧바로 중국에 설명부터 했다고 한다. 동맹은 멀리하면서 ‘휴전협정에 따른 적국’인 중국을 떠받드는 행태다.
국방부 문건에는 또 이른바 사드 3불(不)과 관련해 ‘2017년 10월 합의’‘한중간 기존 약속’으로 기술됐다. 2017년 12월 문 대통령 방중에 앞서 사드 3불에 합의했다는 뜻이다. 실제로 강경화 당시 외교장관이 국회 답변 형태로 3불 취지를 밝힌 뒤 2개월 지나 중국을 방문했고, 2년 뒤 방중 때엔 사드 정상화 절차를 회피했다. 이런데도 문 정부 인사들은 “국가 간 합의나 약속은 아니다”며 거짓말을 한다. 사드 3불 약속은 물론, 정상 배치를 방해한 것은 안보 주권 포기를 넘어 잠재적 적국과 야합한 안보 매국(賣國) 행태다. 곳곳에 절차적 불법 혐의도 짚인다. 이제라도 사법적·행정적·정치적 책임을 제대로 따져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7-20 2021년 청와대 보고된 국방부 문서 “사드 전자파, 인체에 영향 없다”

문건 확인… 문 정부서 묵살
‘한·중간 3불 약속’도 드러나
문재인 정부 청와대가 국방부로부터 경북 성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기지 주변의 레이더 전자파와 소음이 인체에 사실상 무해하다는 취지의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결과를 지속적으로 보고받았다는 사실이 문건(사진)을 통해 처음 드러났다. 하지만 청와대가 보고 이후 이 같은 내용을 일반에 공개하진 않으면서 여권에서는 이른바 ‘사드 고의 지연’ 의혹을 제기했다.
20일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이 국방부로부터 입수한 ‘환경영향평가 평가협의회 구성 시기 관련 협의 결과 보고’ 문건에 따르면, 문 정부 임기 후반인 2021년 6월 국방부는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실에 지난 2016년 12월부터 2017년 9월까지 진행된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에 대해 “레이더 전자파의 순간 최대값은 인체보호기준의 약 0.03%로 전자파 영향이 거의 없다”며 주변 지역 전자파 측정 결과를 보고했다. 또 인근 민가지역(1.5~1.9㎞)에서 사드 발전기의 소음도 거의 청취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보고한 내용도 담겨 있다.
문 정부는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위해 2차례 측정한 전자파 수치만 공개했을 뿐 이후 전자파 정기 측정 결과는 일반에 공개하지 않았다.
2019년 12월 4일 국방부 장관에 보고된 ‘환경영향평가 평가협의회 구성 시기 관련 협의 결과에 대한 보고’ 문건에는 ‘3불(不) 1한(限)’에 대해 “한중 간 기존 약속” “양국이 합의한”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문 정부 인사들은 “3불은 양국 간 합의가 아니며, 1불을 중국이 요구한 사실도 없다”고 해왔지만, 결국 문서에는 ‘한중 간 약속’으로 명기돼 있었다.
최지영 기자 goodyoung17@munhwa.com
07.20 [단독] 文청와대 ‘김관진 재수사 압력’ 의혹 본격 수사...국방부 압수수색
문재인 정부 당시 청와대가 ‘국군 사이버사령부 정치 댓글’ 사건과 관련한 군 수사 기록을 무단 열람하고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현 국방혁신위원회 부위원장)을 재수사하도록 했다는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이 최근 국방부를 압수 수색한 것으로 20일 전해졌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지난 19일 서울 용산에 있는 국방부 본부, 국방부 직할부대인 조사본부 등에 수사관 등을 보내 압수 수색을 했다고 한다. 압수수색 대상에는 국방부 본부의 정책보좌관실과 조사본부의 지도과, 운영과 등 4곳 정도가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문재인 정부 당시 국방부를 출입했던 청와대 인사들의 출입 기록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 2014년 국방부 검찰단은 ‘국군 사이버사령부 정치 댓글 사건’을 수사한 뒤 전직 사이버사령관 등을 불구속 기소하면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의 개입은 없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전직 청와대 국가안보실 행정관 A씨는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8~9월 국방부와 국방부 조사본부를 수차례 방문해 ‘국군 사이버사령부 정치 댓글’ 사건 수사 관계자들을 만나 “왜 축소 수사를 했느냐”고 따지고, 이미 마무리 된 군 수사 기록을 영장이 없이도 청와대로 가져오게 해 무단으로 열람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있다.
A 전 행정관이 국방부 등을 방문한 지 석 달 만인 2017년 11월 김 전 장관은 재수사를 받았고 구속됐다가 11일 만에 구속적부심으로 풀려났다. 이후 김 전 장관은 불구속 기소돼 2심에서 징역 2년 4개월을 선고 받았지만 대법원은 작년 10월 일부 혐의에 대해선 무죄로 봐야 한다는 취지로 이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현재 파기환송심이 진행 중이다.
이에 시민단체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은 작년 8월 A 전 행정관, 정의용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당시 한변은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 행정관이 법적 근거도 없이 수사를 지휘한 것은 권리행사 방해에 해당하고 수사 기록을 복사해 외부로 유출하게 한 것은 국방부 조사본부 담당자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강요한 것”이라며 “이런 일을 행정관 독단으로 진행했다는 건 상식적으로 어렵다고 보고 정 전 실장도 함께 고발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사건을 검토한 뒤 경찰로 이송했고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가 배당받아 수사 중이다.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작년 9월 고발인을 불러 조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07.21 ‘3不 1限’ 모두 사실, 나라 주권 中에 내준 매국 행위 아닌가
문재인 정부가 중국을 의식해 사드의 정식 배치를 미뤘다는 의혹이 사실로 확인됐다. 사드는 북핵을 요격하는 체계다. 그런데도 문 정부 5년간 사드는 임시 배치 상태였다. 문 정부가 6개월이면 끝나는 환경 평가 대신 1년 이상 걸리는 ‘일반 평가’를 받도록 방침을 바꾸고, 그 첫 단계인 평가협의회 구성을 끝까지 미룬 것이다. 겉으론 주민들이 반대한다는 이유를 댔는데 실상은 중국 눈치 보기였다. 이번에 공개된 국방부 문건들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문건을 보면 국방부, 외교부, 환경부 관리들은 2019년 12월 3일 청와대 국가안보실 주재 회의에서 “중국은 환경영향평가 절차 진행을 사드 정식 배치로 간주하며 강하게 반발할 것” “12월 계획된 고위급 교류(대통령 방중)에 영향이 불가피하다”며 “연내 평가협의회 구성 착수는 곤란하다”고 결론지었다. 문 전 대통령의 방중 3주 전 열린 회의였다. 방중에 악영향을 줄까 봐 사드 정식 배치 절차를 미룬 것이다. 결국 문 정부 5년 내내 평가협의회는 구성되지 못했다.

▲경북 성주의 주한미군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기지 전경. /뉴시스
특히 국방부는 이 문건에서 사드 3불(不)에 대해 ‘한중 간 기존 약속’이라고 적시했다. 3불은 사드 추가 배치를 않고, 미국 미사일 방어체계(MD)에 참여하지 않으며, 한·미·일 군사 동맹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3불이 우리 정부의 입장 표명일 뿐 국가 간 합의나 약속이 아니라던 문 정부의 주장과 다르다. 2020년 7월 31일 국방장관에게 보고된 문건엔 ‘중국은 양국이 합의한 3불 1한이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이란 구절도 등장한다. 1한(限)은 사드 운용에 제한을 둔다는 뜻이다. 문 정부는 1한에 대해 “분명히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는데 이 또한 거짓이었다.
사드 추가 배치, 미국 MD 참여 등은 하든, 하지 않든 대한민국의 군사 주권 사항으로서 누구도 개입할 수 없다. 문 정권은 중국 방문을 위해 이 군사 주권을 중국에 내줬다. ‘1한’은 이미 배치한 사드의 운용에서도 중국 눈치를 보고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군사 장비 운용에 외국의 간섭을 허용하는 나라가 어디에 있나. ‘나라를 팔아먹었다’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이 매국 행위에 나라 주권을 지키라고 존재하는 군인과 외교관들이 가담했다니 참담할 따름이다.
조선일보 사설
07-21 김정은 찬양하고도 민주당 의원 보좌관 된 위험한 현실
친북 성향의 어느 인사가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중진 의원의 보좌관이던 시기에 군사기밀을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한다. 국가정보원은 보좌관직을 지난 3월에 그만둔 그의 국가보안법 위반 정황을 조사 중인 것으로 21일 보도됐다. 북한 김정은을 찬양하고도 민주당 의원 보좌관이 된 사실부터 위험한 현실의 단면이다.
그가 2020년부터 해당 의원실에서 근무하며 ‘2급 비밀 취급 인가증’을 받아 3년간 국방부의 대면·구두 보고 등을 통해 수집했다는 군사기밀 자료는 국가 안위와 직결된다. 국정감사를 앞두고는 국군의 대북 미사일 시스템 자료를 주로 요구했다고 한다. 일부 자료는 의원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하는 만큼, 종북 조직이나 북한에 넘겼을 개연성도 있다. 민주당의 다른 의원 보좌관조차 “그는 노골적으로 반미·친북 성향 질의서를 작성해, 국방위 보좌진 사이에 ‘한총련 스타일’이란 반응이 많았다”고 밝혔다.
국회 입성에 앞서 민주노동당에서 활동하던 그가 친북 성향 매체의 기자 신분으로 쓴 글들은 보좌관 취업의 저의부터 의심하게 한다. ‘세계를 놀래킨 김정은 신드롬 어디까지 퍼지나’ 제목의 2018년 칼럼에선 ‘초등학생을 비롯해 우리 국민들의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호감도가 급성장했다’고도 했다. 그런 인사를 보좌관으로 뒀던 의원 측은 “그가 어떤 기밀 사항을 보고받았는지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파악이 불가능하다”고 했으나, 무책임의 전형이다. ‘과거 친북 성향 활동을 몰랐다’는 것도 믿기 어렵긴 마찬가지다. 국정원은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다른 의원실에 유사한 사례가 더 없는지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문화일보 사설
07-21 이제야 ‘몸통’ 근접한 쌍방울 北송금

서정욱 변호사, 前 영남대 로스쿨 교수
자물쇠로 단단하게 잠긴 철옹성 같았던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입이 열리면서 ‘쌍방울 대북 송금’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 전 부지사가 2019년 당시 경기지사이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방북 비용을 쌍방울이 대납하기로 한 것을 두 차례에 걸쳐 이 지사에게 보고했다고 진술한 것이다.
첫 번째는 2019년 7월 필리핀 국제 행사 직후 북한의 송명철 부실장이 “돈이 든다고 말했다”고 보고하자 이 지사가 “알았다”고 했고, 같은 해 12월엔 “쌍방울이 100만 달러에서 200만 달러를 보냈다. 내년엔 방북이 성사될 거 같다”고 보고하자 이 지사가 역시 “알았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김성태 쌍방울 회장 외에도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 국가정보원 직원 등 수많은 관련자의 일치된 진술에도 이 대표와 이 전 부지사만 혐의를 완강히 부인해 왔는데, 결국 이 대표의 최측근인 이 전 부지사까지 시인해 이젠 이 대표 혼자 부인하는 상황이 됐다.
이와 관련해 먼저, 이 전 부지사의 부인은 ‘민주당’에 제출한 탄원서에서 ‘신체적 고문보다 극심한 심리적 압박은 군사독재 시대의 전기고문만큼 무섭다’며 ‘검찰이 김성태 쌍방울 전 회장의 조작된 증언으로 이 대표와 남편을 방북 대납 프레임을 씌워 기소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고의 가치도 없는 어불성설 궤변이다. 이 전 부지사는 지난해 9월 구속 이후 배우자 등 가족·지인과 50회 이상 면회했고, 국회의원들과 7회 특별면회를 했으며 구치소에서도 변호인을 180여 회 접견했고, 현재까지 선임된 변호인만 총 17명에 이르며 조사 과정 대부분에 변호인이 참여했는데 어떻게 회유·협박이 가능한가.
다음으로, 이 대표는 이 전 부지사 진술 내용이 알려지자 “검찰이 자꾸 정치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는데 이 또한 적반하장의 궤변이다. 정당한 검찰 수사에 ‘야당 탄압, 정치보복’ 프레임을 씌워 방탄벽을 치려는 꼼수다. 이 대표는 쌍방울 의혹과 관련해 “나와 쌍방울 인연은 내복 하나 사 입은 것밖에 없다”고 했다. 또, 방북 비용 대납 의혹이 불거지자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사실무근” “검찰의 신작 소설”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후 서로 측근을 보내 모친상 조문을 했다는 증언이 나오고, 김성태 전 회장과 이 대표 간 직접 통화만도 최소 5차례로 확인되지 않는가.
과거 김대중 정권이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4억5000만 달러를 북측에 불법 송금했다가 관련자 모두 철퇴를 맞았다. 북한을 이용해 정치를 하려고 뒷돈을 준 것도 심각한 일이고, 그 돈을 조폭 출신 기업인에게 대납시켰다면 더욱 심각한 일이다. 대권을 노리던 이 대표의 야망과 이를 이용하려는 검은돈이 결탁했다면 ‘뇌물죄’ 이전에 북한(적국)을 이롭게 하는 ‘반국가적 국기문란 행위’다.
이 대표는 지금이라도 국민 앞에 모든 진실을 소상히 밝히고 응분의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이번에도 ‘정당한 구속영장’이 아니라며 불체포특권의 방탄 뒤에 숨어선 안 된다. “도마뱀은 꼬리를 잘라도 도마뱀”이라던 과거 본인의 발언처럼 더는 꼬리 자르기로 위기를 모면하려 해서도 안 된다. 검찰은 한 치의 자의도 없는 엄정한 저울과 정의의 칼로 반국가적 범죄를 철저히 수사해 실질적 법치를 굳건히 세워야 한다.
문화일보
07.22 김정은 찬양하다 군사 기밀 빼돌린 민주당 보좌관, 한 명뿐일까
더불어민주당 중진 의원의 보좌관을 지낸 A씨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방첩 기관들의 내사를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A씨가 활동한 국회 상임위는 국방위원회였다. 2급 비밀 취급증을 받아 국방부, 합참 등 군 관련 기관에서 현무 미사일을 비롯한 우리 군의 무기 체계에 관한 민감한 군사 기밀을 여러 차례 보고받았다. 이렇게 수집한 대외비 자료를 정작 의원에겐 보고하지 않고 어디론가 유출한 정황이 있다고 한다.
대학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민노당 활동을 했던 A씨는 국회에 오기 전 친북 성향 인터넷 매체에서 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모두 삭제됐지만 북한 체제와 김정은을 찬양하고 한미 연합 훈련을 반대하는 등 친북 반미 성향의 글을 다수 썼다고 한다. 2018년 국회에 들어왔고 2022년 보좌관으로 승진했다. A씨는 지난 3월 돌연 그만뒀다. 해당 의원 측은 그의 친북 성향 활동을 알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어물쩍 넘길 일이 아니다.
지금 국회엔 한총련, 경기동부연합 등 NL(민족 해방) 계열의 주사파 출신 보좌진이 한둘이 아니다. 민주당 한 초선 의원 비서관은 한총련 의장 출신으로 국회에 들어오기 전 친북 성향 단체에서 활동했다. 이 단체는 2018년 김정은 환영식을 연다며 백두칭송위원회 결성을 주도했다. 지난 4월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당선된 진보당 강성희 의원은 본인뿐 아니라 보좌진 대부분이 경기동부연합 출신이다. 경기동부연합은 내란 선동으로 강제 해산당한 통진당의 주축이었다.
국회의원 보좌관이 되려면 경찰과 국정원의 신원 조회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아무런 문제 없이 국가 공무원이 됐다는 걸 납득할 수 없다. 국회엔 국방위 외에도 정보위, 외통위 등 국가 안보와 직결된 정보를 다루는 상임위가 여럿이다. 소속 의원이 이런 상임위에 배정되면 이들도 A씨처럼 얼마든지 내밀한 정보를 취급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이 한미 연합 훈련의 구체적 일정, 우리 군의 첨단 무기 체계와 전략 배치 등을 열람할 수 있다니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조선일보 사설
07.22 北, 김영철 지휘로 대남 여론조작... 아이들 폰까지 침투했다
北·中의 거세진 대남 심리전

▲일러스트=박상훈
북한이 지난 3월 노동당 선전선동부 산하에 대외 인터넷 선전을 총괄하는 조직을 신설하는 등 대남 ‘심리전’ 기능을 대폭 강화한 것으로 21일 파악됐다. 특히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말 통일전선부장 출신 김영철을 통전부 고문으로 재기용하면서 한국 사회 혼란, 국정 훼방 등 대남 공작 강화를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철은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군사적 도발뿐 아니라 2009년 디도스 공격, 2011년 농협 전산망 파괴 등을 주도한 인물이다. 우리 정부는 북이 김영철을 사령탑으로 세워 내년 총선 등 한국 정치 일정에 맞춰 대대적인 사이버 심리전을 전개해 사회 혼란을 일으킬 가능성에 대한 대비에 나섰다.

▲그래픽=양진경
심리전은 유리한 상황을 확보하기 위해 상대 세력의 환경을 계획적·의도적으로 바꾸는 활동을 의미한다. 평·전시 구분 없이 이뤄지며 여론·정보전 등 다양한 형태로 전개된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신설한 조직은 일종의 ‘뉴미디어팀’으로 과거 방송·인쇄 매체 중심의 대남 심리전에서 탈피해 MZ세대 등 각계각층에 대한 선전·선동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과거 같은 체제 선전보다는 국내 정치 교란이 주목적이다.
최근 북한은 인스타그램·틱톡 등 청소년들이 즐겨 사용하는 글로벌 플랫폼을 활용해 사실과 거짓을 교묘하게 섞은 선전물을 퍼뜨리고 있다. 북한은 또 국내 포털 사이트 뉴스 댓글뿐 아니라 최근에는 유튜브 콘텐츠에 채팅이나 댓글을 다는 식으로 국내 정치 관련 여론 몰이에도 나서고 있다. 정보 당국은 최근 김여정이 ‘남조선’ 대신 ‘대한민국’이란 표현을 쓴 것도 “북한이 ‘국가 대 국가’ 정책으로 평화적 공존을 추구하려 한다”는 해석의 여지를 줘 한국 사회의 논란과 분열을 유도하는 전술로 보고 대응책 마련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김영철
북한의 심리전은 과거 반미(反美), 반일(反日) 선동이나 자신들의 체제 선전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최근엔 총선, 대선 등 굵직한 정치 일정이나 후쿠시마 오염수 등 국내 정치에 대한 개입 시도를 노골화하고 있다. 가짜 뉴스에 취약한 국내 여론 환경도 북한의 심리전 강화에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정보 당국의 분석이다.
실제 북한은 최근 대남 선전매체와 해외에 파견한 공작원 등에게 ‘반정부 분위기 조장’에 공을 들일 것을 지시했다. 지령문엔 국민의힘을 윤석열 대통령의 ‘사당(私黨)’으로 묘사하고, 여권 내 비윤(非尹)계 의원들에 대한 ‘공천 대학살’ 가능성을 거론해 보수 진영 내 갈등을 조장할 것을 지령하는 내용도 있었다. 문제는 사이버 심리전의 배경에 북한이 있다는 것을 일반 국민들은 판단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지난 3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지하조직 ‘자주통일 민중전위(자통)’ 공소장 등에 따르면, 북한 대남 공작 부서인 문화교류국은 자통 조직원들에게 “보수 유튜브 채널에 위장 가입해 댓글을 달아라”라는 지령을 내린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전에는 “윤석열 대망론(大望論)은 보수 진영 난립을 노린 민주당의 술책이란 괴담을 퍼트려 보수 진영의 내부 갈등을 격화시키라”는 지시를 내렸다. “후쿠시마 앞바다 괴물 고기 출현” “방사능에 의한 기형아 출생” 같은 루머를 통해 반일 감정을 고조시키라는 지령도 내렸다.
사이버 심리전의 수단도 다양해지고 있다. 해외 파견 공작원을 통해 중국 웨이보, 미국 트위터 등을 이용, 국내 각종 시위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 사드 이슈가 한창일 때 웨이보 등에선 ‘사드가 중국·러시아를 목표로 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사드까지 퍼주니 개[犬]한민국이 되었구나’ ‘한미국 공조는 아시아판 나토다. 중국에 해가 된다’ 등의 메시지가 나돌았다. 최근 정치국에 복귀한 김영철이 신설된 뉴미디어팀, 사이버 부대, 공작 부서를 총괄하며 다양한 형태로 한국 국정을 흔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보 당국 등에 따르면, 김정은이 지난해 말 당 회의에서 한국을 ‘명백한 적’으로 규정하며 ‘대적 투쟁’을 강화하라고 지시한 이후 네이버·다음 포털 사이트 기사 댓글, 인터넷 커뮤니티·노조 게시판을 비롯해 주요 국가유공자의 홈페이지에서 북한 소행으로 의심되는 활동이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북한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도 내년 우리 총선에 개입할 수 있다고 보고 대응 방안을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백종욱 국정원 3차장은 “총선 선거 관리 시스템 보안을 위해 최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시스템에 대한 점검에 들어갔다”며 “북한의 대남 심리전을 효과적으로 막기 위한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직 군 방첩 부서 관계자는 “북한은 그럴싸한 가짜 뉴스를 퍼트릴 때도 있지만 어떨 때는 대놓고 거짓 정보를 공식 발표해 우리 군 당국과 한국 사회를 혼란스럽게 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북한 총참모부가 지난해 11월 “울산 앞바다 80㎞ 부근 공해상에 전략순항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고 발표한 것이 대표적이다. 실제는 그런 일이 전혀 없었지만 탄도미사일에 비해 레이더에 잘 잡히지 않는 순항미사일이 변칙 비행을 해 울산까지 갔다고 주장하면서 우리 군의 정찰 활동에 혼선을 주고 우리 군의 발표에 대한 국민 신뢰도를 떨어뜨리려 했던 것이다. 김여정이 지난해 8월 연설에서 “대북 전단이 코로나 유입원”이라는 주장도 과학적 근거가 없는 허위 사실이었다.
북한 선전물과 가짜 뉴스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미성년 학생들의 휴대폰 등 한국 사회에 무단 유포되며 여론에 영향을 주고 있다. 본지가 직접 확인해보니 국내 일반 인터넷망에서 ‘노스 코리아 걸스(북조선 녀성)’ 등 김정은 우상화, 북 체제 미화 각종 사이트에 손쉽게 접속할 수 있었다.
남주홍 전 국정원 차장은 “하노이 회담 결렬 등 각종 협상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동시에 대내외 심리전을 더 강도 높게 전개하는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노석조 기자
07.22 대남 공작기관 4곳… 문화교류국은 김정은이 직접 지휘
[북한발 가짜 뉴스]

▲[서울=뉴시스] 북한 조선중앙TV는 5일 지난 서울 시내에서 진행된 윤석열 정권 퇴진 집회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조선중앙TV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미국 국빈 방문과 함께 기시다 일본 총리 방한을 앞두고 연일 대남 비난 수위를 높이고 있다./조선중앙TV 뉴시스
북한의 대남 심리전은 노동당 산하 통일전선부가 활동 전반을 관장하고 있다. 통전부를 포함해 문화교류국, 정찰총국, 적군와해공작국 등 4곳이 북한의 대표적인 대남 공작기관으로 심리전과 관련해 역할 분담을 하고 있다. 공작전술에 따라 당(黨)·정(政)·군(軍)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구조다. 목표는 ‘전 한반도의 적화 통일’이다.
통전부는 대남기구인 ‘6·15편집사’가 운영하는 우리민족끼리, 구국전선, 메아리 같은 선전 매체들을 앞세워 심리전을 전개하고 있다.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정권의 주장은 철저히 반영하면서 한국의 보수 세력과 미국·일본 등 서방 국가를 강하게 비판하는 기사를 쏟아내는 것이 특징이다. 국내에서 벌어지는 정부 비판 시위도 단골로 등장한다. 최근에는 선전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젊은 세대의 접근이 용이한 트위터, 유튜브 같은 글로벌 플랫폼을 공세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김정은은 2020년 뉴미디어를 통한 대외 선전 강화를 지시했다.
문화교류국은 통전부 산하지만 직접 김정은의 지휘를 받는 독립적 대남 공작부서다. 해외에 파견된 간첩이나 국내 고정 간첩망을 통해 인터넷상에 친북(親北)·반정부 성격의 글을 유포한다. 민의(民意)를 왜곡해 국내 정세를 북한에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의도다. 올해 3월 재판에 넘겨진 비밀지하조직 ‘자통민중전위’ 사건에서도 문화교류국이 보수 내부 갈등을 조장하고 반일(反日) 감정을 고조하는 괴담을 유포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찰총국은 우리 교민과 유학생들을 접촉해 정부 비방 여론을 퍼트리는 임무를 수행한다.
총정치국 산하 적군와해공작국은 전시에는 ‘적군’ 와해 공작을 하고 평시에는 비무장지대(DMZ) 일대에서의 대남전단 발송, 확성기 방송 송출을 담당한다. 해외에 파견된 간첩을 통해 한국 정부를 비방하거나 모략할 수 있는 소재를 발굴한다. 김정은 집권 후에는 적공국 조직의 상당수가 인터넷을 무대로 한 대남 사이버전에 투입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조선일보 김은중 기자
07.24 北 사이버 심리전 파상 공세, 속수무책 당하는 한국

▲북한의 대남 사이버 심리전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어 방첩 당국이 예의주시하고 있다. /일러스트=백형선
한국 내 여론 분열, 좌우 대립, 남남(南南) 갈등을 유발하기 위한 북한의 대남 심리전이 갈수록 거세져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정보 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북의 심리전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 들어 수법과 활동 영역이 이전과 차원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작년 말 “남조선은 명백한 적”이라며 투쟁 강화를 지시한 뒤 벌어진 현상이다. 자취를 감췄던 대남 강경파 김영철이 복귀하고 대남 심리전 조직들이 대폭 신설·강화된 것도 이런 움직임과 궤를 같이한다.
최근 북한의 대남 심리전은 총력전 양상이다. 핼러윈 참사, 일제 징용 배상,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등 휘발성 큰 이슈가 나올 때마다 자체 보유한 사이버 요원 수천 명뿐 아니라 해외 공작원, 한국 내 포섭 세력, 친북 성향 해외 동포 등을 총동원해 조직적으로 여론 조작에 나선다고 한다. 네이버·다음 등 포털 사이트 기사 댓글, 인터넷 커뮤니티, 노조 게시판 같은 전통적 플랫폼 외에도 유튜브 콘텐츠에 채팅·댓글을 다는 수법 등으로 심리전을 다각화하고 있다. 인스타그램·틱톡 등 MZ세대가 즐겨 쓰는 글로벌 플랫폼에도 대거 침투해 사실과 거짓을 교묘하게 섞은 선전물을 퍼뜨린다니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심리전은 평시·전시 구분 없이 벌어지지만 특히 비상시에 우리 사회를 혼란에 빠트릴 위험이 크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소셜미디어와 결합한 사이버 심리전이 전세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북한이 이를 모를 리 없다. 사이버 심리전에 몰두하는 것도 궁극적으론 전시나 그에 준하는 사태 때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포석일 것이다.
문제는 북의 파상적 심리전에 대응할 우리의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과거 대북 심리전을 수행한 국정원, 사이버사령부 등은 문재인 정부 시절 각종 수사에 휘말리며 심리전 기능이 마비됐다. 국정원은 이른바 ‘댓글 공작’ 사건으로 심리전 부서 자체가 공중분해되고 관련 인력과 예산은 모두 잘렸다.
문 정부가 북과 ‘상호 적대 행위 금지’를 약속한 판문점 선언, 대북 인권 단체들의 손발을 묶은 대북전단금지법까지 더해져 우리의 대북 심리전 역량은 사실상 완전히 거세된 상태다. 북한은 총동원 체제로 달려드는데 우리는 방패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는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하나.
조선일보 사설
07-24 故 채수근 상병 부모의 오열 속 당부, 軍 지휘부는 들었나
경북 예천에서 호우 피해 실종자 수색 중 급류에 휩쓸려 순직한 고(故) 채수근 상병의 영결식 후 부모가 자필 편지에서 ‘전 국민의 관심과 위로 덕에 장례를 잘 치렀다’면서 ‘다시는 이같이 비통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근본대책을 조속히 마련해 달라’고 했다. ‘해병대 가족의 일원으로서 해병대를 응원하며 해병대가 더욱 발전하는 모습을 항상 지켜보겠다’고도 했다. 22일 영결식 후 채 상병 부모의 뜻에 따라 공개된 편지에는 보국훈장을 추서해준 보훈 당국을 비롯해 해병대 등에 대한 감사가 담겨 있다.
채 상병의 부모는 외아들을 떠나보내면서도 끝까지 의연했다. 아들의 영정 사진을 안고 오열했지만 ‘다독여주신 귀한 말씀들을 기억하며 어떻게든 힘을 내서 살아가 보겠다’고 했다. 군과 국가에 원망과 저주를 퍼부을 만도 한데 오히려 감사부터 표시해 주변을 숙연하게 한다. 북한의 천안함 폭침 때 막내아들 민평기 상사를 잃은 뒤 국가에 대한 원망 대신 유족 보상금 등을 해군에 기부하며 바다를 지켜 달라고 했던 윤청자 여사도 떠오른다.
유족의 절절한 애국심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사고에 대한 철저한 원인 규명과 책임자 문책이 필요하다. 당시 실종자 수색 정황을 볼 때 군 당국의 상황 오판은 심각하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단순 재해복구작전인 줄 알고 현장에 출동해 물속 수색이 어렵다고 보고했으나 상부 지시로 구명조끼도 없는 상태에서 실종자 수색에 동원됐다는 주장도 있다. 사실이라면 군 지휘부의 과실이 뚜렷하다. 채 상병 부모는 사고의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하면서 ‘역시 해병대는 다르다는 걸 국민이 체감할 수 있게 보여 달라’고 했다. 채 상병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면 군 지휘부가 유족 당부에 제대로 응답할 책무가 있다.
문화화일보 사설
07-24 “6·25 전쟁은 자유민주주의 수호 투쟁”

▲엄숙한 거수경례 6·25 전쟁 정전기념일(7월 27일)을 10일 앞둔 지난 17일, 한국전 참전 유공자인 류재식(91)·고융희(88)·김영환(90) 참전용사가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서 참전용사의 묘에 경례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 정전 70년 미래 70년 - 노병들의 ‘끝나지 않은 전쟁’
“우리 발밑에 참전용사 묻혀있어
잔혹한 전쟁 참상 기억해주길”
“지금은 무기도 더 좋은데, 제대로 된 총도 있고. 북한이 쳐들어오면 당연히 다시 싸워야지.”
제복을 차려입은 노병(老兵)들이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을 찾았다. 먼저 간 전우의 묘비를 한참 어루만지던 노병들에게 아직 “끝나지도 잊어지지도 않은 전쟁’이었다. 인민군을 모집한다는 소식에 산으로 도망갔다가 다시 우리 군이 춘천 지역을 수복한 뒤 학도병으로 입대한 류재식(91) 씨의 가슴엔 아직도 총알이 박혀 있다. 정전 직전인 1953년 7월 강원 김화 일대(옛 금성군 지역)에서 벌어진 ‘금성지구 전투’ 당시 중대장으로 ‘406 고지’ 쟁탈전을 벌이다 중공군과 육박전 도중 서로 방아쇠를 당겼다. 휴전(정전)이 됐는지도 모르고 병원에 누워있었다는 류 씨는 정전 70주년(7월 27일)을 앞두고 지난 17일 오후 현충원에서 가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내 마지막 소원이 사대문 안에 사무실 겸 기념관을 하나 만들어 달라는 것”이라며 “매년 4000명, 5000명씩 참전 용사들이 죽어가는데, 잊어진 전쟁이 되지 않도록 기억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강조했다.
지금 다시 전쟁이 발발해도 기꺼이 참전하겠다는 김영환(90) 씨. 그가 기억하는 최대 격전지는 1951년 8월 강원 양구의 백석산 전투다. 몇 번의 공격 끝에 고지는 탈환했지만, 그 대가는 너무 아팠다. 땅이 출렁일 정도로 많은 시체를 묻었다고 했다. 김 씨는 “6·25 전쟁은 자유민주주의와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었다”며 “우리가 무슨 대가를 바라고서 참전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유공자에 대한 교육이나 예우가 너무 없다”고 토로했다. 올해 1월 1일 기준 생존 참전 유공자는 5만1000여 명이다. 몇 달 새 또 많은 용사들이 세상을 떠났다. 정전 70년이지만, 노병들의 6·25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편, 북한은 24일 스스로 ‘전승절’이라고 부르는 정전협정 70주년을 앞두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위대한 전승의 역사적 의의는 영원불멸할 것이다’란 제목의 논설을 통해 핵 개발과 경제 파탄 정당성 및 불가피성을 강조하면서 내부 결속에 나섰다.
문화일보 민병기·서종민 기자
07-24 [단독] 기적같은 한국 '70년 평화'…그건 4360명 목숨값이었다

▲중서부 전선에서 제28보병사단(무적태풍) 이대순 중사(오른쪽)와 허규범 상병이 야간 경계를 서고 있다. 박영준 작가
1974년 11월 20일 경기도 연천군의 비무장지대(DMZ). 6ㆍ25전쟁이 멈춘 지 21년이 지난 이날 이 지역의 땅밑에서 한국군과 미군의 장교 2명이 전사했다. 닷새 전인 그달 15일 한국군 수색조가 이곳에서 수증기가 올라오는 걸 발견했다. 수색대원들이 조사를 시도하자 북한군이 총을 쏴 총격전까지 벌어졌다. 북한군이 군사분계선 아래로 몰래 파놓은 땅굴이었다.

▲매퀸 밸린저 중령. 미 해군
그달 20일 로버트 매퀸 밸린저 미 해군 중령과 김학철 해병대 소령 등이 한ㆍ미 병사를 이끌고 땅굴 조사에 나섰다. 땅굴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부비트랩까지 설치돼 있었다. 이게 터지면서 현장에서 김 소령과 밸린저 중령이 사망했다. 한국군과 주한미군 총 6명도 중상을 입었다. 이곳은 북한이 후방 침투를 위해 파내려온 뒤 콘크리트로 다져놓은 너비 90㎝, 높이 1.2m, 깊이 지하 45m, 길이 3.5㎞의 인공 구조물이었다.
1년 전인 1973년 한국에 배치돼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에 근무했던 밸린저 중령. 그는 1964년 베트남전 당시엔 강을 수색하던 중 베트콩의 매복 공격을 받자 81㎜ 박격포를 직접 쏘면서 맹렬하게 반격했고, 부하들이 사기를 되찾으면서 베트콩을 격퇴했던 전쟁 영웅이었다. 이 전투로 그는 은성무공훈장을 받았다. 그는 한국의 DMZ에서 제1땅굴을 수색하다가 숨졌다. 함께 전사했던 김학철 소령(중령 추서)은 아내와 두 자녀를 남긴 채 현충원에 안장됐다.
6ㆍ25 전쟁의 포성은 1953년 7월 27일 멈췄다. ‘최후적인 평화적 해결이 달성될 때까지’ 전투를 그만하자는 정전협정을 통해서다. 그러나 정전협정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쟁은 공식적으로, 사실상으로도 끝나지 않았다. 정전협정의 결과인 휴전선을 지키기 위해 53년 7월 27일부터 이날까지 한국군 4268명과 미군 92명 등 모두 4360명이 북한과의 저강도 전쟁ㆍ비정규전 등에서 전사했다. 전후 대한민국이 한강의 기적을 일구고 87년 개헌에 이어 이젠 K-팝 등으로 세계로 향하는 동안 4360명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해 평화와 번영을 뒷받침했다.
23일 국방부에 따르면 정전협정 이후 교전ㆍ대간첩 작전 등에서 전사한 장병이 4268명이다. 이중 육군 4128명, 해군 58명, 공군 16명, 해병대 66명이다. 또 한미동맹재단(회장 임호영 전 연합사부사령관)은 이날 정전협정 이후 모두 92명의 미군이 북한군의 적대행위로 목숨을 잃었다고 밝혔다. 특히 북한이 대남 혁명화 전략을 강화했던 1967~69년 사이에 피해(75명)가 집중됐다.

▲고 이익수 준장
육군의 이익수 준장은 1968년 1ㆍ21 사태 때 북한 무장공비 소탕작전에서 적의 총탄에 쓰러졌다. 그는 광복군으로 항일 무장투쟁을 벌였고, 6ㆍ25 때 화랑무공훈장(2번), 충무무공훈장, 미국 은성무공훈장을 받은 전쟁영웅이었다.

▲고 민평기 상사

▲고 서정우 하사
2000년대 들어서도 전사자는 계속됐다. 2002년 제2연평해전(6명), 2010년 천안함 피격(46명), 연평도 포격전(2명)에서 북한군 공격으로 장병들이 전사했다. 2010년 11월 마지막 휴가를 앞두고 소셜미디어에 ‘내일 날씨 안 좋다던데 배 꼭 뜨길 기도한다’며 휴가를 고대했던 서정우 해병 병장(사후 하사로 추서). 그는 다음날인 11월 23일 북한군 포격이 시작되자 곧바로 휴가를 접고 급히 부대로 복귀하다 파편에 전사했다.

▲지난 6월 6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대간첩 작전 전사자 묘역 방문해 참배객과 인사를 하고 있다. 현역 대통령으로선 첫 참배다. 대통령실
4360명에는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으로 전사했던 해군 민평기 상사도 있다. 대학 재학 중 해군 부사관으로 입대한 아들을 안타까워하는 어머니 윤청자 여사에게 “군 생활 하면서도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다”고 위로하던 효자였다. 민평기 상사의 희생은 부활한 해군 천안함에 ‘3ㆍ26 기관총’으로 각인됐다. 어머니 윤 여사가 유족 보상금과 성금을 기부해 마련됐다.
전쟁은 끝났지만 완전히 종료되지는 않았다. 70년이 지난 지금도 누군가 155마일의 휴전선을 지키고 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는 “휴전선은 남북의 분단선이자,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분할선이었다”며 “70년 동안 휴전선을 지켜온 건 한반도에서 제2의 6ㆍ25 전쟁을 막아내면서 동아시아의 안보를 확보했다는 것인 만큼 국제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07.24 현충원 '백선엽 친일' 문구 삭제됐다…보훈부 "불순 의도 의심"
고(故) 백선엽 장군의 안장 기록에 표기된 ‘친일’ 문구가 삭제됐다. 해당 문구가 국립묘지법에 위배되고, 사자명예훼손에 해당할 수 있다는 유족 측의 문제제기가 받아들여진 것이다.

▲6·25전쟁 정전 70주년과 백선엽 장군 3주기를 맞아 지난 5일 오후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열린 고(故) 백선엽 장군(1920~2020) 동상 제막식을 통해 공개된 백선엽 장군 동상이 우뚝 서 있다. 높이 4.2m, 너비 1.56m 크기의 백 장군 동상은 동서남북 사방으로 대한민국을 지키고 수호한다는 의미에서 360도 회전할 수 있도록 제작됐다. 뉴스1
국가보훈부는 24일 국립대전현충원 홈페이지 ‘안장자 검색 및 온라인 참배’란에 게재된 백 장군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문구를 이날부터 삭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전까진 국립대전현충원 홈페이지 안장자 검색 및 온라인 참배란에서 ‘백선엽’을 검색하면 비고에 ‘무공훈장(태극) 수여자’라는 사실과 함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반민규명위)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2009년)’이라는 문구가 기재돼있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활동한 반민규명위의 판단을 근거로 안장식 다음날인 2020년 7월 16일부터 당시 보훈처는 해당 문구를 기재하기 시작했다.
보훈부에 따르면 해당 문구 삭제 검토는 지난 2월 백 장군 유족이 탄원서를 제출하며 시작됐다. 유족은 해당 문구 기재가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국립묘지법)에 위배되고, 사자 및 유족에 대한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는 점 등을 이유로 문구 삭제를 요청했다.
검토 결과 보훈부는 해당 문구 기재가 법적 근거 없이 이뤄진 결정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보훈부는 우선 안장자격이 된 공적 외의 문구를 기재하는 건 국립묘지법이 규정한 국립묘지 설치의 목적에 부합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국립묘지법 1조는 "국가나 사회를 위하여 희생·공헌한 사람을 안장하고, 그 충의와 위훈의 정신을 기리며 선양하는 것"을 목적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훈부 관계자는 “‘장성급 장교’로서 백 장군은 국립묘지법에 따라 적법하게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며 “공적과 관계 없는 문구가 기재된 건 법적 근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한국군 최초의 4성 장군이자 6.25 전쟁 영웅인 고 백선엽 장군 서거 3주기인 지난 10일 고인이 잠들어 있는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은 백 장군의 장녀 백남희 여사와 가족이 고인을 참배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명예훼손을 주장한 유족의 요구도 수용됐다. 안장자의 명예를 선양하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되는 ‘안장자 검색 및 온라인 참배’란이 오히려 안장자의 명예를 훼손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다른 안장자와의 형평성 문제도 고려 요소였다고 보훈부는 밝혔다. 다른 안장자에 대해선 범죄경력 등 안장 자격과 관계없는 정보를 기재하지 않으면서 특정인에 대한 특정 사실만 선별해 기재한 건 문제라는 의미다. 보훈부 관계자는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백 장군을 욕보이고 명예를 깎아내리려 했다는 강한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이밖에 보훈부는 문재인 정부가 친일 문구를 명시할 당시 유족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는 등 절차적 정당성도 확보하지 못했다고 봤다. 고인뿐 아니라 유족에 대한 명예훼손 소지도 있지만, 관련해 면밀한 법적 검토를 거치지 못했다는 점도 절차적 문제로 지적됐다.
앞서 박민식 보훈부 장관은 백 장군의 친일 행적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가 없다는 유족 측 주장에 동의한 바 있다. “백 장군이 간도특설대에 복무한 것은 사실이지만 독립군을 토벌했다는 객관적 자료가 나오지 않았다”는 게 박 장관의 주장이다. 박 장관은 지난 18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도 “백 장군을 친일파로 규정한 반민규명위 회의록을 보면 친일파란 근거가 없어 ‘자료 보완’ 의견이 달려 있다”며 “친일의 근거는 백 장군이 스스로 쓴 책에 나온 대목이 전부고, 이마저도 백 장군이 부인하면서 근거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백 장군을 친일파로 보는 건 반민규명위 내에서 다수로 밀어붙인 내용일 뿐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취지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지난 18일 서울지방보훈청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김현동 기자
박 장관은 “백 장군은 6·25전쟁을 극복해 태극무공훈장을 수여 받은 최고 영웅”이라며 “앞으로도 법적 근거 없이 국립묘지 설치 목적에 맞지 않는 사항을 임의로 기재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07.24 中이 사드 배치로 볼까봐 '환평' 미뤘다…드러난 文정부 ‘1한’

▲지난 6월 경북 성주군 주한미군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드) 기지에서 발사대가 하늘을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환구시보가 ‘한국이 3불(不·사드 추가 배치 검토 안 함, 미국의 미사일 방어 체제에 편입되지 않음, 한·미·일 협력이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음) 말고도 1한(限·이미 배치된 사드의 운용 제한)을 받아들였다’고 기정사실화했는데 맞습니까?”
“10월 31일 합의에서 발표한 것 이상의 합의나 논의는 없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2017년 11월 2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당시 윤상현 자유한국당 의원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주고받은 문답이다.
앞서 같은 해 10월 31일 한·중은 사드 배치로 악화한 양국 관계 개선에 합의했고, 문재인 정부는 3불 입장을 공식 표명했다. 그런데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가 “3불1한을 실천하라”며 문 정부가 합의문에도 없는 ‘1한’에 합의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하지만 당시 강 장관의 발언처럼 문 정부는 아예 ‘1한’의 존재 자체를 부인해왔다. 강 장관은 당시 또다른 질의응답에서 "중국이 '1한' 추가 요구를 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 사실이 아니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최근 공개된 국방부 내부 문건들을 통해 문 정부가 환경영향평가 지연을 사실상 ‘1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3불’은 미래의 안보주권에 대한 제한이지만, ‘1한’은 이미 배치된 사드, 즉 현재의 안보주권을 침해하는 문제로 볼 수 있다.
中 '사드 추가 요구' 없다더니…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사드 환경영향평가 관련 내부 문건들을 보면 환경영향평가 진행에 대한 중국의 인식과 대응 방안 등이 명시돼 있다.
2019년 12월 국방부가 작성한 ‘사드 환경평가 구성시기 관련 과장급 협의결과 보고서’는 ‘환경영향평가 진행 시 제한 사항’이라며 “중국은 성주기지 환평 절차 진행을 사드 정식 배치로 간주해 한·중 간 기존 약속(2017년10월 3불 합의)에 대한 훼손으로 인식하고 강하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결국 정부는 환경영향평가를 위한 평가협의회 구성을 미룬다.

▲2019년 12월 국방부가 작성한 사드 환경영향평가 관련 보고서. 사진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실
2020년 7월 작성된 ‘성주기지 환경영향평가 추진계획 보고서’는 “양국이 합의한 3불1한이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환평 절차 진행시 (중국이)사드 체계 최종배치를 위한 과정으로 평가해 강도 높은 대응 예상”이라고 밝혔다.
이어 대응방안으로 “중국에 ‘환평 추진은 계획된 절차를 이행하는 것이며, 현재 주민·시민단체의 반대가 거세 정상적 절차 진행이 어려움’을 설명”이라고 제시했다. 환경영향평가가 사드 정식 배치 수순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어차피 주민 반대로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시키자는 취지로 읽힐 여지가 있다.
中 우려 다룰 방안까지 거론
이런 내부 문건은 문 정부 역시 중국 주장대로 '1한'을 사실상 약속이나 합의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방증이 될 수 있다. 2017년 10월 31일 한·중관계 개선 합의 이후에도 중국이 현재 배치된 사드의 최종 배치, 즉 정상 가동에 반대해왔다는 걸 정부도 충분히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이를 환경영향평가 지연의 주된 사유 중 하나로 고려했기 때문이다. 그간 문 정부 설명대로 ‘1한’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중국의 입장과 우려 불식 방안 등을 내부 보고서에 명시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이다.

▲박경민 기자
사실 보고서에 드러난 이런 중국의 입장은 2017년 10·31 합의 이후 중국이 “양국이 사드의 단계적 처리에 합의했다”고 수차례 주장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단계적 처리는 말 그대로 최종목표 달성을 위해 단계별로 조치를 취한다는 뜻이다. 이에 중국은 이미 배치된 사드의 철수를 목표로 추가 조치를 주장하고, 문 정부 역시 이에 합의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1한’ 역시 결국 사드 철수를 위한 다음 단계의 추가 조치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사드 철수' 노린 단계적 처리였나
이와 관련, 2017년 11월 27일 외통위에서 윤상현 의원도 “단계적 처리는 사드를 단계적으로 밟아서 최종적으로 철수하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강경화 장관은 “단계적이란 것은 추가적으로 뭘 더 한다는 것이 아니라 현 상황에서 이견을 잘 관리해 나가자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외교부 역시 “중국이 거론한 단계적 처리는 ‘step by step’이 아닌 ‘현단계에서(in the current stage)’라는 뜻으로, 현 단계에서 문제를 일단락, 봉합하자는 것”이라고 설명자료를 냈다.
하지만 국방부 문건에는 중국이 사드의 최종 배치는 한국이 약속을 어기는 것으로 보고 반발할 것이라는 분석이 수차례 등장한다. 문 정부 역시 그간 설명과 달리 현단계에서의 갈등 봉합이 아닌 ‘사드 철수를 최종 목표로 하는 단계적 처리’를 전제로 환경영향평가 시기 지연 등을 결정한 셈이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07.25 “전쟁땐 가짜뉴스로 치명타...北, 대통령 도망·미군철수 퍼트릴 것”
[NEWS&VIEW] 北·中의 거세진 대남 심리전
여론 분열, 좌우 대립, 남남 갈등을 유발하기 위한 북한의 심리전이 갈수록 거세짐에 따라 평시에 이에 대한 대처 방안을 마련해놓지 않으면 전시(戰時)엔 되돌릴 수 없는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면전 시 북한은 대한민국 사회를 내파(內破)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짜 뉴스를 살포할 것”이라며 “범정부적 콘트롤타워를 설치하고 민·관·군이 한 몸이 돼 북한의 심리전에 경각심을 갖고 대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면전이 발발하면 북한은 국내 고정 간첩과 반(反)국가 세력을 총동원, 인터넷 심리전 우위를 점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전쟁 초반 한국 사회의 혼란을 극대화하기 위해 ‘대통령 등 전쟁 지휘부가 외국으로 도주했다’ ‘아군이 전방에서 전멸하고 있다’ ‘미군이 한국에서 철수 중’ 같은 가짜 뉴스를 뿌려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최근 초등학교 교사 자살 사건과 관련 특정 정치인이 연루됐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 큰 파장이 일었던 것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가짜 뉴스에 취약한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북한이 전시엔 그 약점을 총력을 다해 노릴 것이라는 얘기다.
정부 관계자는 24일 “평소 대한민국 사회 내 계층·집단 간 분열을 조장하고 내란을 획책하던 세력이 최고조로 준동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가짜 뉴스를 통해 일반 시민의 공포·불안을 조장, 소요 사태를 일으켜 후방을 교란시킨다는 전략이다. 북한은 이런 혼란을 틈타 전화국·유류저장소 등 국가 주요 시설을 타격, 후방에 치명타를 주겠다는 작전을 갖고 있다. 가짜 뉴스가 사회 도처에 동시다발적으로 창궐하고 주요 기반 시설이 도미노식으로 파괴되면 전쟁 수행 능력이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픽=이철원

▲그래픽=이철원
이럴 경우 전방에서 제대로 된 전투를 하기도 전에 전쟁이 끝나버릴 수도 있다. 압도적 경제력과 군사력도 심리전에 말리면 제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얘기다. 한 예비역 장성은 “대한민국은 고도로 민주화한 사회이기 때문에 전면전 수행 역량에 민간 여론이 절대적 영향을 끼친다”며 “교묘한 심리전으로 정부에 대한 신뢰를 훼손, 정부 전복 시도까지 할 수 있다”고 했다. 베트남전 당시 남베트남에서 암약하던 간첩들은 사회 혼란과 갈등을 부추겼다. 이 나라는 결국 미국의 최신 무기를 지원받고도 국론 분열로 패망했다.
전쟁이 발발해도 민간 통신망이 모두 먹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크라이나 역시 트위터 등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아군의 사기를 북돋고 국민을 안심시키는 데 적극 활용했다. 전옥현 전 국정원 차장은 “지금도 인터넷은 대통령 탄핵을 아무렇지도 않게 언급하는 등 준(準)전시 상황인데 진짜 전쟁이 나면 가짜 뉴스가 엄청나게 위험해질 것”이라고 했다. 인공지능(AI) 기반 이미지 합성 기술인 딥페이크까지 활용한다면 한국 사회의 동요는 엄청나진다. 대통령의 항복·도주 선언 같은 가짜 영상까지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군은 기본적인 대민(對民) 심리 작전이 포함된 전쟁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군의 역량만으로 재래전과 심리전이 결합한 ‘하이브리드 전쟁’에 대응하기는 역부족이다. 전시에 북한이 대량 급조한 유해 계정을 차단하거나 긴급 영장 등으로 고정 간첩이나 종북 세력을 제거해야 하는데 인적·제도적 장치가 미비하기 때문이다. 평시 이런 업무를 하던 국정원·방첩사·사이버사 등은 문재인 정부 시절 각종 수사에 시달리며 전시 작전 수행 능력에 손상을 입은 상태다.
한국국방안보포럼 신종우 전문연구위원은 “군뿐 아니라 행정안전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등의 기능을 한데 모은 범정부적 콘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했다. 또 군의 전시 작전 계획뿐 아니라 행안부의 ‘충무 계획’ 등 민간 대비 계획에도 이러한 심리전 대응책이 구체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합참 계엄 계획이나 충무 계획 훈련이 형식적으로만 이뤄졌던 관행도 개선돼야 한다.
전문가들은 “평시 인터넷에 올라오는 각종 가짜 뉴스는 사회의 분열을 노린 북한의 공작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북한 통일전선부가 최근 기조를 사이버 심리전으로 전환했다”고 했다. 북한이 58개 사이트를 운영하며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를 통한 사이버 심리전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 원장은 “북한 공작원은 한국 젊은이들에게 친숙한 유행어를 사용하며 인터넷에서 함께 어울리고 있다”며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청소년들이 친북·좌경화하지 않도록 ‘대항 심리전’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아산정책연구원 양욱 연구위원은 “북한의 심리전 공작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낮아진 상황”이라며 “국가 안보에 대한 우려마저 정치 공세로 매도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인터넷 심리전, 여론 조작이 사회 질서를 해치거나 정부 기능을 마비시키는 위험에 맞서려면 ▲인터넷 실명제 ▲특정 국가 사이트 접속 제한 ▲정부·언론의 팩트 전달 기능 강화 등의 정책적 대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07.25 세계 6위 수출대국 南, 아직도 가발 파는 北...체제 선택이 가른 운명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수출 선적부두 인근 야적장에 완성차들이 대기하고 있는 모습과 북한의 가발공장이 중국 가발 회사에 보낸 영상에서 여성들이 가발을 만들고 있는 모습/ 뉴스1 더우인(중국판 틱톡)
1조4149억5000만달러(약 1815조원) 대(對) 15억9000만달러(2조383억원).
지난해 대한민국과 북한의 무역액(수출+수입) 비교다. 대한민국 무역액은 북한의 890배다. 한국은 지난해 전 세계를 상대로 반도체·석유제품·자동차 등을 팔며 세계 6위 수출국에 올랐지만, 북한은 여전히 비단이나 가발·인조꽃 같은 경공업이나 광물·석탄 등 1차 산업이 주요 수출품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1960년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오는 27일은 6·25 정전(停戰) 70년이다. 대한민국이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내며 G7(7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경제 대국으로 올라선 것과 달리 ‘고난의 행군’을 이어간 북한은 전 세계 200여 국 중 하위 10% 수준으로 전락했다.
◇무역 규모 890배… 운명을 가른 체제 선택
24일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대한민국과 북한의 명목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각각 4048만원과 142만원으로 약 28.5배 차이가 났다. 한국의 1인당 GNI는 정전 이후 북한에 줄곧 뒤지다 1960년대 말~1970년대 중반 역전했고, 이후 격차는 점점 벌어졌다. 김병연 서울대 교수는 “정전 직후인 1950~1960년대 소련과 중국, 동유럽 등의 원조가 이어지면서 북한 경제는 잠시 반짝했다”며 “하지만 이른바 ‘계획 없는 계획경제’로 불리는 왕조식 사회주의가 이어지면서 (경제·산업의) 어려움이 장기적으로 누적됐다”고 말했다.
2021년 기준 자동차 등록 대수는 한국은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2491만대인데, 북한은 25만3000대에 그쳤다. 2020년 이동통신 가입자는 7051만명 대(對) 600만명으로 11배를 웃돌았다. 북한은 네 명당 한 대꼴인데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도 1인당 1대를 웃도는 1억2000만대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턱없이 작은 숫자다.
대한민국이 선택한 자유민주주의와 북한의 공산주의라는 체제가 70년 세월의 운명을 갈랐다. 자본주의를 가미한 중국·베트남과 달리 폐쇄 경제를 고수해온 북한은 공산 국가 내에서도 경제적 성과가 크게 떨어졌다. 김경민 한양대 명예교수는 “중국과 베트남은 각각 세계 패권을 쥐겠다는 목표와 통일 후 국가 경제를 일으켜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목적 아래 개혁·개방에 나섰지만, 북한은 세습 체제 안정을 무엇보다 우선시 하면서 시장 경제를 등한시했다”며 “결국 자유 경쟁을 배제한 북한 체제에서 산업 발전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래픽=양인성

▲그래픽=양인성

▲그래픽=양인성
◇지나친 경제 격차는 통일에 부담
1948년 북한이 수풍댐에서 보내던 전기를 끊으며 한국이 전력난에 봉착하기도 했지만, 연간 발전량은 이제 5768억kWh(킬로와트시)와 255억kWh로 20배 이상 차이 난다. 1980년만 해도 차이가 크지 않았지만, 한국 발전량이 1450% 급증하는 동안 북한은 20% 늘어나는 데 그쳤다. 김병연 교수는 “현지 지도, 노력 동원이 이뤄지는 북한은 경제가 정치에 봉사하는 체제”라며 “2010년대 중반 경제 제재 이후 광물과 수산물 수출도 많이 줄어들며 여전히 경제가 60년대 후반~7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은 박정희 정부 당시의 경제개발계획을 계기로 가파른 성장 가도를 이어갔다. 김범수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장은 “우리는 냉전 당시 가장 큰 시장인 미국에 쉽게 접근한 데 이어 2000년대 들어서는 중국의 폭발적 성장을 잘 활용했다”며 “북한은 소련이 미국과 같은 역할을 못한 데다 공산권이 1980년대 말 이후 몰락하면서 경제적으로도 고립됐다”고 말했다.
다만, 지금과 같은 경제 격차는 앞으로 남북 화해 국면이 도래했을 때 국가와 국민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독일 통일 당시 서독 경제력이 세계 4위, 동독이 35위권이었는데도 통일 이후 후유증이 작지 않았다”며 “GDP 세계 13위인 한국과 최하위권인 북한이 지금 상태로 통일하게 되면 엄청난 비용이 들 것”이라고 했다.
07.25 3000m 상공서 1000번 뛰어내렸다... 女특전대원 5人, 국제軍고공낙하 우승

▲육군특수전사령부 여군 고공강하팀이 지난 15일부터 21일까지 스페인 무르시아주 산 하비에르 공군기지에서 열린 국제군인체육연맹 고공강하 대회에서 첫 종합우승을 차지했다고 육군이 24일 밝혔다. 사진은 육군특전사 여군 선수단이 국제군인체육연맹 고공강하 대회에서 강하하는 모습. /육군
▲대한민국 육군 특수전사령부(이하 특전사) 여군 고공강하팀이 지난 15일부터 21일까지 스페인 무르시아주(州) 산 하비에르(San Javier) 공군기지에서 개최된 국제군인체육연맹 고공강하 대회에서 사상 첫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육군은 24일 이 같은 소식을 알리며 “금빛 강하의 쾌거를 거뒀다”고 밝혔다.
이번 대회는 지난해 6월에 개최된 제45회 세계군인강하선수권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상위 10국을 대상으로 한 초청 대회 성격이다. 한국은 아시아 대표 자격으로 상호 활동, 정밀 강하, 스타일 강하 등 3개 종목에 출전했다. 그외 스페인, 독일, 오스트리아, 모로코, 튀르키예, 카타르, 체코 등이 참여했다.
김성미·박이슬·이지선·이진영 상사, 이현지 중사로 구성된 여군 대표팀은 상호 활동 금메달, 정밀 강하 단체전 은메달, 스타일 강하 개인전 은메달·동메달, 개인 종합 동메달을 획득해 세 종목 성적 합산 결과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상호활동 종목은 약 1만ft(3048m)상공에서 항공기를 이탈한 4명의 강하자가 35초 동안 자유강하를 하며 25개의 대형(隊形) 가운데 경기 직전 임의로 선정된 5개의 대형을 얼마나 정확하고 최대한 많이 형성하는지를 겨루는 종목이다. 이런 과정은 ‘제5의 팀원’이라 불리는 카메라 플라이어(Camera Flyer)가 이들과 함께 강하하여 촬영하고 심판진에게 영상을 제출한다.
이번 대회에서 상호활동 종목은 최초 8라운드로 진행될 예정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체감온도 50도를 넘는 폭염과 강풍으로 인해 4라운드로 축소 진행됐다. 우리 선수들은 1라운드부터 선두를 유지하며 4라운드 합계 91점을 획득, 89점의 모로코와 48점의 스페인을 따돌리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정밀강하이라는 또다른 종목은 약 3500ft 상공에서 강하하여 반지름 16cm 원판의 중앙지점으로 강하하며, 중앙에서 1cm 멀어질수록 1점의 페널티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총 8라운드까지 진행된 경기에서 우리나라는 은메달을 획득, 작년 대회 사상 첫 메달(동메달)에 이은 값진 성과를 거뒀다.
또 약 7000ft 상공에서 강하하여 각 2회의 좌·우·역회전 동작을 가장 빠르게 실시하는 스타일강하 종목에서는 두 번째 출전 만에 개인전 은·동메달을 획득했다.
세 종목의 성적을 합산한 결과, 대한민국 특전사 여군 고공강하팀이 최종 여군 종합우승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육군특전사 여군 선수단이 시상식에서 메달을 수여받는 모습. /육군
우리 선수단 대부분은 1000회 이상 강하 이력이 있는 ‘금장월계휘장’ 보유자다.
다들 꾸준한 새벽 체력 단련과 여러 번의 모의고공 강하 훈련을 실시하는 등 기본 임무 수행과 함께 대회 준비에 매진했다고 한다. 특히 상호 활동 종목에서는 25개의 규정된 대형을 완벽히 숙지한 가운데, 신속하고 정확하게 대형을 만드는 훈련에 초점을 맞췄다고 특전사는 전했다. 4명의 신호가 맞지 않거나 1명이라도 대형에서 분리되는 등의 각종 우발상황에 대비한 훈련도 빼놓지 않았다. 특히 선수 4명의 무게를 일치시켜야 강하 속도를 맞출 수 있기에 상대적으로 가벼운 강하자는 훈련 내내 허리에 납 벨트를 착용하는 어려움도 기꺼이 감수해야만 했다.
스타일 강하 개인전 은메달 수상자인 이진영 상사는 “상공에서 기체를 이탈하는 순간부터 맞닥뜨릴 수 있는 변수들을 최소화하기 위해 끊임없는 반복 숙달과 팀워크를 다지는 훈련에 매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작년에 이어 이번 대회에서도 값진 성적을 거둘 수 있어 자랑스럽고, 나를 언제나 믿고 응원해주는 남편과 딸, 그리고 스페인 하늘을 함께 누빈 팀원들에게 모든 영광을 돌린다”고 했다.
선수단장 조용옥 중령은 “평소 특전사의 강도 높은 실전적 교육훈련을 바탕으로 선수들의 노력이 뒷받침되어 거둔 성과”라면서 “앞으로도 특전사는 전투역량을 극대화하고 전투준비태세를 완비하는데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노석조 기자
07-25 용병·AI로 北과 싸울 건가

정충신 정치부 선임기자
저출산에 따른 인구절벽으로 20년 지난 2040년대에는 상비군 병력 30만 명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말 기준 한국군 병력 수는 48만여 명으로, 북한군(128만여 명)의 37% 수준이었다. 2035년 46만5000명 선까지 줄다가 2040년대 30만 명 선 유지도 힘들 것이란 국책연구기관(KIDA) 분석이 나왔다. 2027년 상비병력 규모 50만 명 선 유지 목표도 어렵게 됐다. 향후 10년간 47만 명 선, 복무 개월 수 확대, 병력수급체계 대수술 등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러시아처럼 외국군 용병으로 병력을 채워야 할 처지다. 병력 수급에 초비상이 걸렸다.
국군은 2002년 69만 명, 2017년까지 60만 명을 겨우 유지하다가 2018년 57만 명 기록 후 2021년에 51만 명이었으나 50만 명 선도 무너졌다. 지난 5년간 총병력 12만 명이 준 셈이다. 50만 명을 유지하려면 매년 22만 명이 충원돼야 하나, 2015년 37만 명이던 20세 남자 인구는 2025년 23만 명, 2036년부터 22만 명 이하, 2040년 14만 명, 2042년엔 12만 명까지 급감이 예상된다. KIDA 조관호 박사는 현역 자원은 2035년부터 매년 2만 명 부족해져 2043년이면 최저 33만 명 선으로 축소될 것으로 전망했다. 중간 간부, 초급 간부 부족과 불균형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2025년엔 하사 인원(3만6344명 예상)이 중사(4만1995명), 상사(3만7320명)보다 적어지는 역전 현상도 예상된다.
병력 부족 현상을 부추긴 건 역대 정부의 안보 포퓰리즘이 한몫했다. 징집병 의무복무기간은 노무현 정부 때 30개월에서 26개월, 이명박 정부 때 21개월로 줄였다가 문재인 정부 때 육군 기준 현행 18개월로 굳어졌다. 병 복무기간 조정, 모병제 전환, 여성징병제 도입 등 다양한 대안이 거론되지만 말뿐이다. 군 수뇌부는 인공지능(AI)이 만병통치약이나 되는 듯 ‘AI 강군’ 외엔 대안이 없는 듯하다. 대만은 병 의무복무기간 2년을 2008년 1년, 2017년 4개월로 단축했다가 중국이 대만 침공 위협을 가시화하자 ‘앗 뜨거워’라며 내년부터 복무기간을 1년으로 늘리기로 했다.
대만 상황을 강 건너 불구경할 처지가 아니다. 분단국가에서 병력 유지는 국가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북한이 인민을 굶겨 죽이면서까지 128만 상비군을 유지하는데 그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병력으로 과연 맞설 수 있을까. 더구나 북한군은 10년 이상 장기복무자로 18개월 복무한 국군과 전투력·전문성에서 큰 차이가 난다. 매년 천문학적인 혈세를 군에 투입해 첨단 전투기·함정, 무기를 도입한들 이를 제대로 운용할 병력이 부족하면 무용지물이다. 북한 핵무기보다 더 무서운 내부의 적이 저출산율이다. 제대로 된 병력 충원 없이 AI나 용병으로 북한군과 싸울 수 있을까? 미국처럼 일반 병사에서 부사관으로 진급하는 ‘병 및 부사관 통합 인력관리체계’, 여군 비율 및 간부 대폭 확대, 현행 장·단기복무제도와 일률적 의무복무기간을 전면 재검토해 ‘완전직업군인제’ 형태의 다양한 계약모집 방식 전환 등 병력수급체계의 대수술이 필요하다. 예비군에 대한 투자 등 예비군 정예화 대책도 시급하다. 최후 방어선인 병력 40만 마지노선마저 위태위태하다.
문화일보
07-25 “정치적인 보훈 안돼… 호국영웅에 예우 갖춰야”
전문가 “보훈에는 좌우 없어
국익관점서 서훈대상 재평가”
군사 안보 전문가들은 “보훈엔 좌우가 있어서는 안 된다”라면서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킨 호국영웅에 대해서 예우를 갖춰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최병욱 상명대 국가안보학과 교수는 25일 “이념의 잣대로 안보나 보훈을 재단하는 일이 더는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이어 “진보, 보수를 떠나 국익의 관점에서 원칙을 갖고 서훈 대상에서 제외된 인물들에 대해 재평가하는 작업이 시급하다”고 했다.
일생을 독립운동에 바치고 제헌국회 의장으로 대한민국 헌법 제정을 이끈 이승만 전 대통령이 대표적인 재평가 대상으로 꼽힌다. 이 전 대통령이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이후 한·미 동맹을 이끌어내지 않았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은 지도에서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은 “일부 과오를 따져 호국영웅의 공을 빼앗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며 “반일 감정을 일으키려는 정치적 목적 등에 따라 보훈 작업을 벌이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국내 일부 진영은 이승만 정부에서 시작된 대한민국 건국의 정통성을 훼손하는 지속적인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조선의용대를 조직해 일제에 항거한 약산 김원봉에 대해서 ‘훈장 추서’ 움직임이 있었지만 항일운동 자체는 사실이라고 해도 북한 정권에 복무하면서 6·25전쟁에 주요 역할을 했다는 것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훈장을 추서하기는 어렵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민주유공자법 추진에 대해서도 우려 및 반대의 목소리가 크다. 이 법안은 기존 민주화보상법에 따른 민주화운동 관련자 9844명 중 다치거나 숨지거나 행방불명된 829명을 추려 민주유공자로 지정·예우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대상자 명단과 공적이 비밀이라서 ‘가짜 유공자 양산법’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신 사무국장은 “민주화운동을 하신 분을 예우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제대로 민주화운동을 하지 않은 사람이 유공자로 돼 있는 것은 큰 문제”라고 했다.
손기은 기자 son@munhwa.com
07.26 민주당 보좌관 유출 혐의 군사 정보 700건, 정보위도 손 뻗쳤다니
군사기밀 유출 혐의 등으로 방첩 기관들의 내사를 받고 있는 민주당 전직 보좌관 A씨가 국방부와 합참 등 군 관련 기관들로부터 보고받거나 열람한 대외비 자료가 700여 건에 달한다고 한다. A씨는 이렇게 수집한 자료들을 정작 의원에겐 보고하지 않고 어디론가 유출한 것으로 의심돼 해고됐다. 그런 뒤에도 같은 당 정보위원회 소속 의원실에 들어가려고 면접을 봤다고 한다. 만약 내사 사실이 공개되지 않았다면 이 의원실, 저 의원실을 돌며 국가 안보에 관한 각종 자료를 계속 빼돌렸을 수 있다.
A씨는 해고 직전까지 국방위에서 활동하며 군 기관들에 ‘김정은 참수부대 장비 현황’과 같은 자료들을 요구했다. ‘김정은 참수부대’는 유사시 북한 지도부 제거를 위해 2017년 창설된 특전사 예하 여단을 가리킨다. 지금껏 정확한 부대 규모와 무기 현황이 공개된 적이 없다. 그런데 A씨는 국방부로부터 이 부대에 지급된 기관단총, 저격용 소총, 작전 차량, 특수작전용 무전기 등의 구체적 수량을 보고받았다. 부대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자료들이다. A씨는 현무 미사일의 비공개 제원과 시험 발사 때 이뤄진 교신 내용도 요구했다고 한다. 누구에게 넘기려고 했는가.
A씨는 엄격한 보안이 요구되는 2급 기밀도 여러 차례 보고받았다. 이 과정에서 규정을 무시하고 메모나 촬영을 시도해 제지를 받았다고 한다. 자신이 보좌하는 의원에게 보고하거나 상임위 질의 자료로 사용할 것도 아니면서 무리한 방법으로 자료를 얻으려 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수사 당국은 A씨가 빼돌린 자료가 무엇인지, 어디로 흘러간 것인지를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대학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민노당 활동을 했던 A씨는 국회에 오기 전 친북 성향 인터넷 매체에서 기자로 일하며 북한 체제와 김정은을 찬양하는 글을 다수 썼다. 남편은 내란 선동으로 강제 해산된 통진당과 그 후신인 민중당에서 활동했고 2021년엔 국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이런 사람이 2018년 국회에 들어와 5년간 활동했다. 국회 보좌진은 민감한 정부 기밀을 접할 수 있다. 그런 보좌진을 채용하는 우리 국회의 채용 시스템이 지나치게 느슨하다. 취급하는 정보에 걸맞은 수준의 신원 검증이 반드시 필요하다.
조선일보 사설
07.26 민변 30여명 붙은 간첩사건 6건, 시간 끌기에 2년째 재판 제자리
2년째 1심… 공판 안 열리기도
2021년 이후 재판에 넘어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사건 6건의 1심 공판이 2년 넘게 진행 중이거나, 공판 자체가 열리지 않은 것으로 25일 나타났다. 수사 절차를 문제 삼는 등 ‘재판 지연’ 전략을 쓰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총 6건의 사건에 참여한 변호인은 40여 명인데 이 중 30여 명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소속이라고 한다.
2021년 이후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사건 중 가장 오래된 것은 2021년 6월 구속 기소된 이모씨 사건이다. 그는 2017년 일본계 페루 국적으로 위장해 국내로 잠입한 북한 공작원과 접선한 혐의 등을 받았다. 그는 2006년 ‘일심회 사건’으로 불리는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으로도 실형을 산 적이 있다.
이 사건은 2021년 8월 첫 공판이 열린 뒤 지난 17일 11차 공판까지 2년간 공판만 하고 있다. 변호인들이 법원에 제출된 모든 증거를 재판에 쓰는 것을 동의하지 않아 재판이 늘어졌고, 공판도 1~3개월에 한 번씩 진행되기 때문이다. 다음 공판은 오는 10월에 열린다. 이씨는 이미 구속 기간(6개월) 만료로 석방된 상태다.
북한 지령을 받고 지하조직을 꾸린 혐의 등으로 2021년 9월 기소된 ‘충북동지회’ 사건도 1심 공판만 20차례 진행 중이다. 이 사건 피고인들의 공판 연기 신청, 위헌 법률 심판 제청, 보석 청구 등 다양한 전략에 재판이 지연됐다. 변호인은 4차례나 교체했다. 법관 기피 신청에 대해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자 항고·재항고를 하며 두 달간 시간을 끌었다. 피고인들은 구속 기간 만료, 보석 등으로 석방된 상태다.
충북동지회의 재판 지연 전략은 올해 기소된 창원 ‘자통 민중 전위’, 제주 ‘ㅎㄱㅎ’ ‘민노총 간첩단’ 사건의 재판 지연 ‘참고서’ 역할을 했다. 세 사건 피고인들은 국민참여재판 신청을 재판 지연 전략으로 삼았다. 세 사건은 주요 피고인들이 동남아에서 북한 문화교류국 소속 공작원을 접선해 지령을 받고, 반정부·반미 투쟁을 하거나 국내 동향을 북한에 보고한 사건들이며, 모두 1심 공판을 열지도 못했다.
지난 3월 기소된 자통 피고인들은 4월에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 법원이 이를 허락하지 않자 항고·재항고를 했다. 대법원이 국민참여재판 여부를 결정하기 전까지 4개월 넘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원래 사건의 재판은 시작도 못 한 것이다. ㅎㄱㅎ 피고인들도 국민참여재판 신청 배제 결정을 받자 항고한 상태다. 민노총 피고인 4명은 지난 6월 공판 준비 기일에선 모두 “국민참여재판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가, 지난 17일엔 피고인 2명이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는 일도 있었다. 올해 기소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사건 중 불구속 기소된 전북 ‘시민단체 대표’ 하모씨도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
국가보안법 사건 재판은 일반 시민인 배심원들이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하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국정원 수사 기법, 감청 자료 등이 노출될 우려가 있고, 방대한 증거들을 일일이 설명할 시간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자통 피고인들은 9월, ㅎㄱㅎ 피고인들은 10월, 민노총 피고인들은 11월 구속 기간이 만료된다. 제대로 된 공판을 해보기도 전에 석방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재판부가 자신들을 엄격하게 처벌할 낌새가 보이면 더욱 재판 지연 전략을 적극적으로 쓰는 경향이 있다”며 “법관 인사 발령 등을 노리며 이른바 ‘판사 쇼핑’을 하려는 의도가 있어 보인다”고 했다.
국가보안법 사건 변호로 유명한 A 변호사 등 민변 출신 변호인들이 ‘재판 지연’ 전략을 주도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한 사건당 10명 안팎의 민변 변호사가 변호를 맡고 있고, 2~3개 사건에 이름 올린 이들도 다수 있다고 한다.
현 사법부가 과거에 비해 피고인·변호인의 재판 지연 전략에 관대하다는 지적도 있다. 10년 전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 사건 때도 변호인단이 압수 수색 절차 문제 등을 따졌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신속하게 재판을 진행했다. 이 전 의원 확정 판결은 2013년 9월 기소로부터 1년 4개월 만인 2015년 1월에 나왔다.
조선일보 김정환 기자
07.26 野보좌관, 軍에 기밀 700여건 요구...‘참수부대’ 정보도 받아갔다
국정원, 軍기밀 유출 혐의로 내사
군사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국가정보원 내사를 받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중진 의원의 친북 성향 전직 보좌관 A씨가 국방부에서 ‘김정은 참수 부대’ 정보를 받아 간 것으로 확인됐다. A씨가 지난 3년간 국방부에 요구한 군사기밀도 700여 건에 달해, 국방부가 전수조사에 들어간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최근 자신을 둘러싼 논란 속에서도 민감한 대북 정보를 다루는 국회 정보위 소속 다른 민주당 의원실에 채용 지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픽=이철원
A씨는 올해 1월 2일 국방부에 ‘김정은 참수 부대 장비 현황’을 요청했다. 1월 5일 A씨는 군수참모처장에게 ‘○특수임무여단 주요 장비 현황’을 보고받았다. ‘기관단총 ○정’ ‘저격용 소총 ○정’ ‘야시 장비 ○대’ ‘항공기 작전차 ○대’ ‘특수작전용 무전기 ○대’ 등 병력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기밀 자료들이었다.
2017년 북한 미사일 위협에 대응해 유사시 북 지도부 제거를 목적으로 창설된 ‘김정은 참수 부대’의 규모와 장비 현황은 공개된 적 없는 군사기밀이다. 2022년 북한 공작원이 현직 참수 부대 소속 장교를 포섭해 2급 군사기밀을 빼내려다 당국에 적발된 적이 있을 정도다.
A씨는 참수 부대 장비 현황을 의원에게 보고하지 않았고, 국방위 질의 자료로 사용하지도 않았다. 의원실에서는 A씨가 이런 자료를 보고받은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운동권 출신으로 대학 때부터 민주노동당 활동을 했던 A씨는 과거 친북 성향 매체 기자로 일하며 “초등학생을 비롯해 우리 국민들의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호감도가 급성장했다” 같은 김정은 찬양 글을 다수 쓴 전력이 있다. A씨는 작년 10월 우리 군의 ‘현무 미사일 관련 합참 지통실과 미사일전략사 지통실 교신 자료’를 비롯해 현무 미사일의 속도, 고도, 사거리 같은 세세한 정보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파 공작 부대 운용 예산’ 같은 민감한 기밀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A씨에 대해 민주당 보좌진 사이에서조차 “상임위 질의 자료로 쓰지도 않으면서 민감한 자료들을 너무 많이 요구한다”는 논란이 불거졌다고 한다.
A씨의 이러한 기밀 자료 요구 내역은 국회 시스템에 기록돼 있다. 문제는 기록에 남지 않는 2급 기밀이다. 2급 비밀 취급 인가를 받은 A씨는 대면·구두 보고를 통해서만 자료를 받는 2급 기밀을 수시로 국방부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3급 기밀은 보고 시 메모가 가능하지만, 2급 기밀부터는 의원들도 보고를 받기 전 유출 금지 서명을 하고 메모도 불가능하다. 눈으로만 열람이 가능하다. 국회 관계자는 “A씨가 대면 보고 과정에서 자료들을 메모하고 사진을 찍으려 해 제지를 받거나 논란이 된 것으로 안다”고 했다.
국방부는 A씨가 3년간 국방부에 요청한 민감한 자료가 2급 기밀을 포함해 700여 건이 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자료 반출 과정에 위법이 없었는지 최근 자체 조사에 들어갔다. A씨에게 참수 부대 현황을 보고한 군 관계자는 “A씨의 전력은 전혀 몰랐다”며 “국회 공식 절차를 거쳐 자료 제출을 요구해 왔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보고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실제 2013년 통합진보당 소속 의원 6명이 ‘한미 공동 국지 도발 대비 계획’ ‘연도별 주한미군 병력 이동’ 같은 군사기밀 63건의 자료 제출을 국방부에 요구하며 논란이 되기도 했다.
A씨는 국정원 내사 사실이 알려져 지난 3월 소속 의원실에서 해고된 뒤, 최근 국회 정보위 소속 다른 민주당 의원실에서 채용 면접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위는 국방위보다 더 민감한 국정원의 대북 정보를 다루는 상임위다. A씨는 채용이 되지 않았다. A씨 남편은 통진당 출신으로 2018년 주한미군 철수를 공약으로 지방선거에 출마하고, 2021년 국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국정원은 A씨가 남편을 통해 군사기밀을 유출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본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조선일보 박국희 기자
07-26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 6·25 참전” 유엔군 헌신 기려야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발발한 6·25전쟁의 정전(停戰) 70주년을 맞아, 다시 대한민국을 찾은 유엔군 참전용사들이 국민을 거듭 숙연하게 하고 있다. 국가보훈부 초청으로 가족 등과 함께 방한한 22개국 64명의 참전용사 중 한 사람인 미국인 윌리엄 워드(91) 씨는 25일 기자회견에서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6·25 참전이) 내가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쟁 폐허에서 이렇게 경제 발전을 이룬 한국인이 진정한 영웅”이라고도 했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사실에 긍지를 느끼며, 대한민국의 번영에 찬사를 보내는 마음은 참전 유엔군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룩셈부르크 출신으로, 강원 철원전투 등에 참가한 레옹 모아엥(92) 씨가 윤석열 대통령을 만나 “많은 생각이 난다”고 한 것도 그런 표현이다. “총상을 입고 일본으로 후송돼 치료받은 뒤에도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다시 참전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용기 있게 두 번이나 참전을 결심하게 되셨느냐”는 윤 대통령 물음에 대답한 것으로, 총상 후유증 탓에 보행 보조기를 사용하게 됐어도 참전할 가치는 있었다는 취지다.
당시 주한 미 8군 사령관으로 전선(戰線)을 38도선 위로 밀어 올린 제임스 밴플리트 장군의 외손자 조셉 매크리스천 주니어 예비역 대령이 “할아버지가 늘 자랑스러워하고 ‘제2의 고향’이라고 한 나라에 다시 와서 기쁘고 감사하다”고 한 것도 그 연장선이다. 그는 “우리는 자유가 공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했다. 그것은 6·25 참전 유엔군 195만 명 중 3만7000여 명이 전사한 배경이기도 하다. 방한한 참전용사들은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가 있는 부산광역시의 유엔기념공원에서 오는 27일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 참석 후 모두 자신의 나라로 되돌아가지만, 그 헌신을 대한민국은 영원히 기려야 마땅하다.
문화일보 사설
07-26 간첩사건 재판 지연전략 주도 정황… 民辯 본색 뭔가
간첩사건은 통상 집중심리를 통해 구속 기간(최대 6개월) 내에 1심 재판을 마무리한다. 재판 지연으로 피고인을 석방하는 것은 안보 위협을 방치 하고 증거인멸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2021년 이후 재판에 넘겨진 6건의 간첩사건의 경우 1심 공판이 2년 넘게 진행 중이거나 공판 자체가 아예 열리지 않고 있다.
일본계 페루 국적 북한 공작원과 접선한 혐의로 2021년 6월 구속기소 된 이모 씨는 지난 17일까지 2년여 동안 11차례 공판이 열리는 바람에 구속 만료로 석방됐다. 제출된 증거를 모두 부동의해 재판이 늘어졌다. 같은 해 9월 기소된 ‘충북동지회’ 사건도 1심 공판만 20차례 진행 중이다. 연기 신청, 위헌법률 심판 제청, 재판부 기피 신청 등이 동원됐고 피고인들은 모두 석방됐다. 올해 기소된 창원의 ‘자주통일민중전위’, 제주의 ‘ㅎㄱㅎ’ ‘민노총 간첩단’ 등 세 사건에서는 국민참여재판 신청 전략이 등장했다. ‘자주통일’ 피고인들은 법원이 불허하자 항고·재항고를 내 본안 재판은 시작도 못 한 상태다. 이들 세 사건 피고인들도 9월과 10월, 11월로 구속 기간이 만료된다.
모두 형사사법 체계를 교묘하게 이용해 재판 지연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이들 사건 변호를 맡은 40여 명의 변호사 중 30여 명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民辯) 소속이다. 민변은 천안함 폭침이 북한 어뢰 공격에 의한 것이라는 민군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부인했고, 중국 소재 류경식당 종업원 집단 탈북에 대해 국가정보원의 기획 입북설을 제기한 바 있다. 그 연장선에서 간첩사건 ‘재판 지연 전략’을 주도하고 있다. 민변의 본색이 궁금하다.
문화일보 사설
07-26 종전협정이 평화 보장한다는 망상

신상태 대한민국재향군인회 회장
내일 7월 27일은 정전(停戰)협정 70주년이 되는 날이다. 6·25 남침전쟁 당시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해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데 앞장섰던 세계 21개국 64명의 해외 참전 용사가 우리나라를 찾았다. 그들 중에는 전우와 싸운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는 용사도 있다. 감사하고 소중한 말씀이다.
전쟁은 아직 종결되지 않았고, 휴전 상태에서 우리는 주적(主敵) 북한과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다. 북한은 여전히 정전협정을 종전협정으로 바꾸면 한반도에 평화가 온다고 선전한다. 남북 간에 종전협정이 맺어지고 평화가 온다면 그것을 마다할 국민이 한 사람이라도 있겠는가? 그러나 북한이 줄기차게 주장하는 정전협정 폐기, 그리고 종전협정으로의 전환, 거기에는 우리가 모르는 복병이 있다. 이제 전쟁이 끝났으니 가장 먼저 주한미군이 주둔할 필요가 없다고 할 것이다. 남북 간에 사이가 좋아졌으니 국가보안법을 폐기하라고 할 것이다. 이어서 군사비를 줄이고, 병력도 줄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면 북한도 여기에 보조를 맞춰 군비를 줄이고 병력을 감축할까? 천만에! 남조선을 해방시킬 절호의 기회가 왔다며, 제2의 애치슨라인이 선포됐다며 쾌재를 부를 것이다. 핵·미사일 개발에 더 박차를 가할 것이다. 그리고 호시탐탐 제2의 남침 시기만 노릴 것이다.
공산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산주의 생리를 알아야 한다. 그 생리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공산주의 이론이다. 공산주의 이론에 금과옥조(金科玉條)가 있다. ‘목적이 정당하면 어떠한 수단도 정당하다’는 것이다. 북한은 ‘한반도의 공산화 통일’이라는 장밋빛 목적이 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어떠한 거짓말도, 어떠한 살상행위도, 어떠한 이율배반도 정당화한다. 심지어는 부모를 고발하고 자식을 죽이는 일까지도 미화하는 것이 공산주의자들이다.
역사에서 보면 공산주의와의 협상은 시간 낭비라는 교훈이 많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의 2019년 하노이 회담이 좋은 사례다. 우리 사회에서도 ‘한반도에서 전쟁은 끝났다, 통일되면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우리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공산주의자들과의 약속은 해변의 모래성과 같다. 1939년 소련이 폴란드를 침공해 들어갈 때 ‘폴란드는 스스로 자국민을 보호할 수가 없다. 그래서 붉은군대가 평화의 수호자로서 폴란드에 들어간다’고 선전했다. 그러나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소련군에 항복한 폴란드군의 간부들과 의사·변호사 등 지식인들이 대부분 학살당했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대비해야 하는가? 정전이 끝나면 종전이 오고, 종전이 선포되면 평화가 올까. 그것은 망상일 뿐이다. 정전이 끝나면 다음 순서는 아마도 전쟁의 시작일 것이다. 정전이든 종전이든 우리가 갈 길은 너무도 명확하다. 적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절대우위 전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세계 최강 미국을 비롯한 자유 우방과의 연합방위 체제를 확고히 다지는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남녀노소 모든 국민이 최전방으로 달려가겠다는 안보 의식으로 굳게 뭉치는 것이다.
우리의 생존을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는 수단은 오직 이것뿐이다.
문화일보
07.27 정전 70년, 기적 이룬 南과 지옥 된 北

▲경상북도 칠곡군 다부동 전적지에 세워질 이승만 대통령과 트루먼 대통령의 동상(조감도). 민간 모금으로 만들어졌다./월간조선
오늘이 6·25전쟁 정전(停戰)협정 70년이다. 70년 전 포성이 멈췄을 때 정전협정에 조인한 클라크 사령관은 “나는 승리하지 못하고 정전에 조인한 첫 미국 사령관이 됐다”고 탄식했다. 38선에서 시작된 전쟁이 38선 부근에서 끝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남과 북이 걸어온 상반된 길로 역사의 승패는 너무나 분명하게 갈라졌다. 한국은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산업화·민주화에 성공, 세계 주요 7국(G7) 가입을 거론할 정도로 부상했다. ‘단군 이래 최고 극성기(極盛期)’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은 김일성 왕조 독재로 주민이 굶어 죽는 세계 최빈국이 됐다. 영국 BBC방송이 최근 평양에서도 굶어 죽는 사람이 나왔다고 보도했다. 10년 전 정전 60주년 행사에서 오바마 미 대통령은 “한국전은 승리한 전쟁이었다. 한국인 5000만명이 활력 있는 민주 제도와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 대국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말 그대로다.
그러나 전쟁을 일으킨 북한 중국 러시아는 이날을 ‘전승절’로 부르며 성대한 기념식을 한다고 한다. 러시아는 전쟁 중인데도 국방장관을 필두로 한 대표단을 평양에 보냈다. 중국 대표단도 도착했다. 이들이 모인 가운데 북한 열병식이 열릴 것이다. 북·중·러 3국의 이런 움직임은 한반도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북은 이제는 핵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북이 중·러와 맺은 관계를 강화하는 움직임은 예사롭지 않다. 한미 핵협의그룹(NCG)의 활발한 활동과 한미일 3국 협력 복원 등으로 대비 태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무엇보다 북의 기습 남침으로 3년 동안 민족 전체가 겪어야 했던 비극과 참상을 되새기고, 다시는 당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이 정전 70년을 맞는 우리 자세의 기본이 돼야 한다.
6·25 전쟁에서 대한민국이 생존한 것은 미국을 비롯한 유엔 참전국들의 희생 덕분이다. 미국의 주도로 유엔이 적시에 참전하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면 한반도 전역이 적화(赤化) 됐을 것이다. 전쟁 중 한국 이승만 대통령과 미국 트루먼 대통령은 동맹의 기틀을 만들었고, 정전 직후 맺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대한민국 번영의 주춧돌이 됐다. 오늘 경북 칠곡군 다부동 전적지에서 두 사람 동상 제막식이 열린다. 6·25를 이겨내고 오늘의 대한민국 번영을 이룬 기적의 한 상징이 될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7.27 민변 온갖 수단 동원 간첩 재판 지연, 혐의자들 줄줄이 풀려나
최근 민변 변호사들이 변호를 맡은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6건이 각종 시간 끌기 작전으로 공판이 지연되면서 간첩 혐의 피고인들이 구속 기간 만료로 줄줄이 풀려나고 있다. 사건 담당 변호사 40여 명 중 30여 명이 민변 소속인데, 공판 연기 신청과 증거 채택 거부, 국민참여재판 신청, 위헌 법률 심판 제청 등 각종 수단을 총동원해 재판을 지연시킨다고 한다. 통상 간첩 사건은 구속 기한인 6개월 안에 1심 재판을 마무리한다. 그래야 간첩이 풀려나 다른 간첩과 접촉하거나 증거를 인멸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북한 공작원과 접선한 혐의로 구속된 이모씨 1심 공판은 2년째 진행 중이다. 변호인들이 제출된 모든 증거가 재판에 쓰이는 걸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이미 구속 기간 만료로 석방됐다. 북한 지령을 받고 지하조직을 꾸린 혐의로 기소된 ‘충북동지회’ 사건은 1심 공판만 20차례 진행 중이다. 공판 연기 신청과 국가보안법에 대한 위헌 심판 제청, 보석 청구, 변호인 4차례 교체 등 온갖 지연책이 총동원됐다. 법관 기피 신청이 기각되자 항고·재항고까지 하며 시간을 끌었다. 그 사이 피고인들이 모두 풀려났다. 일부는 석방 직후 ‘민노총 간첩단’의 주범과 접촉했다고 한다. 올해 기소된 창원의 ‘자주통일민중전위’ 제주의 ‘ㅎㄱㅎ’ ‘민노총 간첩단’ 피고인들은 줄줄이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 법원이 불허하는데도 항고·재항고를 계속해 본안 재판은 시작도 못했다. 몇 달 후면 피고인들의 구속 기간이 끝난다.
간첩 피고인도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재판을 의도적으로 지연시켜 간첩 혐의자를 풀려나게 하는 것은 증거를 인멸하고 간첩 활동을 재개하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민변은 과거 북한 식당 종업원들의 집단 탈북을 국정원의 기획이라며 ‘조사’에 나섰다. 재월북을 회유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민변 변호사들이 이러는 이유가 뭔가.
조선일보 사설
07.27 日서 탄약 580만t 출동대기...文이 불신한 유엔사, 유사시엔 우리 생명줄
[유용원의 군사세계] 유엔군사령부 왜 중요한가

▲유엔사 후방기지 중의 하나인 일본 오키나와 가데나 기지의 ‘엘리펀트 워크’. 엘리펀트 워크는 항공기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위용을 과시한 뒤 이륙하는 훈련이다. /미 공군
“전시(戰時)에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강화하려고 유엔사 재활성화(revitalization)를 하는 것 아닙니까?”
지난 2019년 12월 청와대에서 열린 군 수뇌부 격려 오찬 행사에서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최병혁(현 서울안보포럼 이사장) 당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등에게 이렇게 물었다. 전작권(전시 작전통제권)의 한국군 전환 이후에도 미국이 강화된 유엔사(유엔군사령부)를 통해 전작권을 계속 행사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담긴 질문이었다. 이에 최 전 부사령관은 “유엔사 재활성화와 작전통제권 강화는 관계가 없고 사실과 다르다”고 답변했다. 유엔사 재활성화는 17회원국으로 구성돼있는 유엔사가 미국을 제외하곤 사실상 유명무실화한 것을 보완하기 위한 미군의 프로그램이다. 지난 2006년쯤 시작돼 2014년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 미군 사령관 시절 공식화됐다.


▲그래픽=김하경
◇“당신이 한국군이냐, 미군이냐?”
최 전 부사령관 등 일부 군 관계자들의 노력에도 유엔사 재활성화에 대한 문재인 정부 핵심 관계자들의 불신과 견제는 정권 내내 계속됐다. 앞서 2019년 7월엔 미국이 6·25전쟁 의료 지원국인 독일군 연락장교의 유엔사 파견을 추진하다가 우리 청와대와 국방부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되기도 했다. “남북 관계의 가장 큰 장애물”(문정인 전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 2019년 9월) “유엔사가 말도 안 되는 월권을 행사한다”(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2020년 5월) “유엔사는 족보가 없다. 남북 관계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통제해야 한다”(송영길 전 국회 외통위원장, 2020년 8월) 등의 발언도 나왔다. 여기엔 문 전 대통령이 정권 말기까지 의욕적으로 추진한 ‘종전 선언’에 유엔사가 장애물이 된다고 판단한 것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일부 군 관계자가 청와대 등 정부 핵심 관계자들과 다른 의견을 밝히자 여러 형식의 압박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청와대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소식통은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한 고위장성에게 ‘(당신이) 한국군이냐, 미군이냐. 별 네 개 달고 (미군에게) 그런 얘기도 못 하고 뭐 하는 거냐’고 힐난하는 취지로도 말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문 정부의 유엔사 견제와, 이에 따라 주한 미군 사령관(유엔군사령관 겸임)과 겪은 마찰은 지난해 에이브럼스 전 사령관의 입을 통해 확인되기도 했다. 에이브럼스 전 사령관은 지난해 7월 미 워싱턴에서 열린 정전 선언 69주년 기념 ‘동맹 평화 콘퍼런스’에서 “(유엔사는) 아무도 얘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 ‘더러운 작은 비밀(little dirty secret)’ 같았다”고 말했다.

▲그래픽=양진경
◇유엔사 후방 기지는 유사시 우리 생명줄
에이브럼스 전 사령관은 콘퍼런스에서 “(문 정부와 마찰이 있어) 내가 믿을 수 있는 요원들을 (유엔사에) 투입했다. (부임 당시) 유엔사 본부에는 소대보다 적은 35명만 있었다”며 “이를 70명으로 늘리려는 것이 내 노력의 전부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에이브럼스 전 사령관은 2018년 9·19 남북 군사 합의 체결 두 달 만인 2018년 11월 부임해 남북 철도 연결 착공식을 비롯한 비무장지대 출입 등을 두고 문 정부와 여러 차례 심각한 갈등을 빚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면 유엔사는 정말 남북 관계와 통일의 장애물이고 우리 안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일까? 전문가들은 올해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아 유엔사의 성격과 역할을 제대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유엔사는 6·25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일본 도쿄에서 창설돼 1957년 7월 서울 용산 기지로 옮겨온 뒤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미국·영국·호주 등 6·25전쟁 참전국 중심의 17회원국으로 구성돼 있는데, 평상시 정전 협정·체제를 유지, 관리하는 것이 주 임무다.
하지만 우리 안보 측면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임무가 있다. 한반도 전면전 시 전력(戰力) 제공국들에서 병력과 장비를 받아 한미연합사의 작전을 지원하는 것이다. 유사시 전력 제공국의 병력·장비가 들어오는 통로가 요코스카 등 유엔사 후방 기지(주일 미군 기지) 7곳이다. 이들은 유사시 우리나라의 생명 줄과도 같은 존재다. 유엔 대북 제재 강화 이후 영국·호주·뉴질랜드·캐나다·독일 등 여러 나라가 함정과 해상초계기, 잠수함 등을 한반도 인근에 보내 북한 불법 환적 선박 등을 감시하고 있는데, 이 함정과 항공기들이 유류 등 보급을 받고 있는 곳도 유엔사 후방 기지들이다.
◇“세계 유일 장기 맞춤형 특별 안전보장 보험”
7개 유엔사 후방 기지는 미 해군기지 중 해외 최대인 7함대 모항(母港) 요코스카를 비롯해 요코다 공군기지, 사세보 해군기지, 캠프 자마(육군기지)등 일본 본토의 네 기지와 가데나 공군기지, 후텐마 해병대기지, 화이트비치 해군기지 등 오키나와의 세 기지 등으로 구성돼 있다. 요코스카엔 핵 추진 항모를 비롯, 이지스 순양함·구축함 10여 척이 상시 배치돼 48시간 내 한반도에 긴급 출동할 수 있다. 유엔사 군정위 수석 대표로 후방 기지들을 둘러봤던 장광현 예비역 육군 소장의 저서 ‘유엔군 사령부 인사이트’에 따르면 사세보 해군기지는 한반도 최근접 군수 지원 기지로 탄약 580여 만t, 유류 2억1100만 갤런이 비축돼 있다. 7함대 소속 함정 70여 척이 3개월간 쓰고도 남을 만큼 엄청난 양이다. 오키나와 가데나 기지는 세계 최강 F22 스텔스기 등이 배치돼 있고, 북한 지역까지 1~2시간 내 출격할 수 있다.

▲해외 최대 미 해군기지로 미 7함대의 모항인 요코스카 기지 위성사진. /구글 어스
장광현 전 군정위 수석 대표는 “유엔사 후방 기지가 없으면 한반도 유사시 전쟁 수행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며 “유엔사는 유엔이 오직 대한민국을 위해 출시한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장기 맞춤형 특별 안전보장 보험”이라고 말했다. 중립국 감독위 스위스 대표로 여러 해 근무했던 거버 장군은 지난 2021년 2월 워싱턴 CAPS(아태전략센터) 세미나에서 “앞으로 지구상에 유엔사 같은 조직을 다시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정전협정 체결 이후 70년 가까이 유엔사가 존속하고 있는 것 자체가 한국에는 정말 큰 행운”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향후 평화협정이 체결돼 정전 체제가 끝나고 평화 체제가 들어서더라도 유엔사의 명칭과 역할을 바꿔 존속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유엔사 한국군 참모 역할 확대 필요”
안광찬 한국-유엔사 친선협회 회장
“유엔사 해체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유엔사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를 묻고 싶습니다.”

▲안광찬 한국-유엔사 친선협회 회장
안광찬(전 군사정전위 수석 대표·예비역 육군 소장) 한국-유엔사 친선협회(KUFA) 초대 회장은 26일 정치권 및 사회 일각의 유엔사 해체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안 회장은 유엔사가 해체될 경우 평시에 정전 관리를 위한 남북 군사 대화 통로가 없어져 전쟁 억제 기능을 상실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일본에 있는 후방 기지 7곳도 설치 근거가 없어져 유지가 불가능해지면서 유사시 전쟁 지속 능력을 제공할 기능이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무엇보다 한반도 전쟁 재발 시 국제적 지원의 근거인 유엔 차원의 집단 방위를 위한 새로운 유엔 안보리 결의안 채택이 중·러의 거부권 행사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라며 “시리아 내전이나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세계 평화를 위한 유엔의 조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안 회장은 유엔사의 미래와 관련해 “유엔사 참모들이 한미연합사와 주한 미군 참모를 겸직하고 있는 현실을 개선해 적어도 유엔사의 기획과 계획, 군수 참모들은 단일 직무를 맡도록 해야 한다”며 “한국군 참모도 늘려 역할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안 회장은 지난 5월 예비역 장성 등 사회 원로,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비영리 민간 단체인 한국-유엔사 친선협회를 창립했다. 그동안 한미 동맹과 관련된 우호 협회는 많이 있었지만 유엔사와 친선을 도모하는 협회를 비영리 민간 단체로 만든 것은 처음이다. 안 회장은 “우리의 중요한 안보 전략 자산인 유엔사에 대한 민간 우호 단체가 없는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해 협회를 창립하게 됐다”며 “민간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유엔사를 홍보하고 장병들을 격려하는 활동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유용원 군사전문기자
07.27 정전협정, 한·미동맹 70주년…“저절로 오지 않는 자유”

▲70년전인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국제연합군과 중국, 북한 인민군 대표들이 정전협정에 서명하고 있다. [중앙포토]
전후에도 나라 지키려 한·미군 4360명 희생당해
동맹, 대비 역량 강화로 한반도 긴장 철저 대비를
6·25전쟁의 포성이 멈추고 휴전선이 그어진 지 70년이 됐다. 국제연합군과 북한군·중공군은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에 서명했다. 이후 남과 북은 반목과 경쟁 속의 적대적 상존 관계를 이어 왔다. 때론 남북 공동성명을 채택하고 정상회담을 하며 통일의 기대를 한껏 부풀렸던 때도 있었다. 전쟁 이후 천안함 폭침사건 등 한국군 4268명과 미군 92명 등 모두 4360명이 북한과의 충돌 과정에서 전사했다는 통계는 “자유는 저절로 오는 게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는 금언을 실감케 한다.
최근 북한이 핵과 미사일 위협 수위를 노골적으로 높이며 남북관계는 더욱 어두운 터널로 접어들고 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갈등 속에 끼여 있는 한반도는 한·미·일과 북·중·러라는 두 개의 톱니바퀴에 각각 끼여 남북의 간극은 커져만 가고 있다. 신냉전이라고까지 불리는 국제질서의 양극화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게 한반도다.
이럴 때일수록 한국의 위기관리 능력 강화가 절실하다. 우선 70년간 이어진 한·미 동맹을 더욱 굳건히 하며 안보 역량을 확충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독불장군은 없다. 국제질서의 격변 속에 자유민주주의 시장 가치를 함께 하는 유럽, 인도·태평양 지역 국가들과의 협력 강화도 필수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25일 발표한 청소년(13~18세) 대상 통일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전협정 체결 사실을 알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1000명 가운데 60.8%에 불과했다. 과거를 잊은 자에게 미래는 없다. 70년 전의 전쟁은 지금 휴전일 뿐이라는 안보의식을 심어주고, 평화와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나아가 자유민주주의와 국가를 지키려고 희생한 이들과 그 유족들을 끝까지 책임지는 자세를 확고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귀한 목숨을 바쳐 국가를 지키려고 나설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마침 정부는 어제 미국에 있던 한국전 국군 전사자 유해 7구를 국내로 봉환했다. 희생자들의 신원확인은 물론 아직 해외에 있는 전사자의 유해 발굴에도 속도를 내주기 바란다.
동시에 정부는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노력도 게을리해선 안 된다. 대북 제재와 압박이라는 채찍과 함께 언젠가는 대화를 위한 당근이 필요한 때가 오기 마련이다. 남북 관계나 북·미 관계 역시 앞으로도 숱한 부침을 겪을 수밖에 없다. 통일부를 마냥 북한에 유화적인 ‘손 볼 조직’으로만 여길 게 아니라 향후 대화에 대비한 정부의 역량 강화에도 신경을 써야 하겠다. “통일 및 남북대화·교류·협력에 관한 정책의 수립, 통일교육, 그 밖에 통일에 관한 사무”라는 정부조직법상 통일부 장관의 역할(31조)대로 말이다. 기회는 늘 준비하는 자에게만 올 뿐이다.
중앙일보 사설
07.27 70년이 지나도 잊힐 수 없다…영웅들의 귀환
6·25 전쟁사에서 가장 극한적 전투로 꼽히는 1950년 12월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한 고(故) 최임락 일병이 73년 만에 고국 땅을 밟았다. 당시 카투사로 미 7사단에 배치됐다가 19세의 나이로 스러진 최 일병을 포함해 6·25 국군 참전용사 7위(位)의 유해가 26일 조국으로 돌아오면서다. 그간 이들 유해는 미국 하와이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DPAA)’에 임시 안치 중이었다.
https://youtu.be/Fg1qVWPQLsE

▲1950년 12월 장진호 전투에서 숨진 최임락 일병을 포함한 6·25 전사자 7위의 유해가 조카 최호종 해군 상사(가운데) 등 국군 장병들의 품에 안겨 26일 봉환됐다. 7위의 유해는 임시 안치됐던 미국 하와이에서 이날 공군 특별수송기 편으로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오후 8시 서울공항에 유해를 실은 공군 특별수송기 시그너스(KC-330)가 도착하자 수송기 앞에 도열해 직접 맞았다. 삼촌인 최 일병 유해를 담은 작은 관을 하와이에서부터 봉송한 조카 최호종 해군 상사가 탑승대 계단을 내려와 조국의 땅에 첫발을 내딛자 예포 21발이 발사됐다. 윤 대통령과 유가족 등 봉환식 참석자들은 거수경례를 하며 군 예식에 따라 최고의 예우로 이들을 맞이했다.
이어 어느덧 79세 노인이 된 최 일병의 막냇동생 최용씨가 유해 앞에서 편지를 낭독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군 전사자 7위 유해가 고국 땅을 밟는 순간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왼쪽은 최임락 일병의 막냇동생 최용씨. [뉴시스]
“임락이 형님! 가슴이 벅찹니다… 모질게 고생만 하시다 나라를 구한다고 군대에 들어가셨죠. 목숨 바쳐 주신 우리나라가 이제는 등 따시고, 배부르게 잘사는 자유 대한민국이 되었네요. 지금 형님은 해군에 보낸 제 아들의 품 안에 계시는데, 편안하신가요? 형님! 이제 나라 걱정은 마시고, 우리 땅에서 편히 쉬시이소.”
편지 낭독이 끝난 뒤 윤 대통령은 최 일병의 관에 참전기장을 달아준 뒤 유족과 함께 묵념했다. 봉환 행사 후 7위의 유해가 국립현충원으로 떠날 때도 윤 대통령은 거수경례로 예를 갖췄다.
국방부는 “호국 영웅에 대한 최고의 예우를 다하라”는 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한국전쟁 영웅인 전사자 7위를 봉환하는 데 최고의 정성을 쏟았다.
F-35A 전투기 4대 ‘유해 7위’ 호위…공항선 예포 21발
유해를 실은 특별수송기가 25일 하와이를 이륙하는 순간 국방부와 각급 부대는 묵념을 진행했다. 26일 오후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진입할 때부터는 공군 F-35A 전투기 4대가 참전용사를 호위했다. 유일하게 신원이 확인된 최 일병의 고향인 울산지역 상공도 통과했다. 최 일병의 형 최상락 하사 역시 50년 8월 6·25전쟁 중 영덕·포항전투 전사자로 두 형제의 넋이 73년 만에 고향 상공에서 재회한 것이다.
국방부는 두 형제의 애국심과 희생정신을 기릴 수 있도록 별도 현양 방안을 검토 중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한국전 영웅 유해 발굴 및 봉환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특히 지난 6월 현충일 추념사에선 “나라의 안위와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던진 영웅을 끝까지 기억하고 예우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직도 수많은 국군 전사자 유해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며 “호국영웅께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25일(현지시간) 미국 하와이 히캄 공군기지에서 열린 ‘국군 6·25 전사자 유해 인수식’에서 국군 의장대가 태극기로 관을 덮고 있다. 이번에 돌아온 7위는 1950년 장진호 전투 전사자인 최임락 일병 등 북한에서 발굴됐다가 이후 한·미 공동감식을 통해 국군으로 판정됐다. [사진 국방일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조국을 피로서 지킨 마지막 한 분까지 영웅으로 모시고 기억하겠다는 것이 윤 대통령의 의지”라고 말했다. 이날 봉환 행사엔 윤 대통령과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조태용 국가안보실장,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 대사, 폴 러캐머라 한미연합사령관 등이 참석했다. 굳은 표정을 유지하던 윤 대통령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장면도 포착됐다.
이날 봉환된 참전용사 7위 중 3위는 미국이 6·25전쟁 중 수습한 뒤 하와이 펀치볼 묘지에 안장했던 국군 유해이고, 나머지 4위는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의 ‘한국전쟁 전사자 확인 프로젝트(KWIP)’를 통해 북한에서 미국으로 송환된 뒤 한·미 공동감식을 통해 한국군으로 판정된 유해들이다.
최 일병 유해 역시 95년 북한이 함경남도 장진에서 발굴해 미국으로 송환한 유해들 속에 포함됐다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 등록된 유가족 유전자 정보로 이번에 신원이 확인됐다. 국방부는 6위에 대해 정밀감식을 벌일 예정이다.
한·미는 2012년부터 공동감식을 통해 이번 7위를 포함해 모두 일곱 차례에 걸쳐 313위의 국군 유해를 고국으로 봉환했다. 이 가운데 신원이 확인된 건 19위뿐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재임 기간 세 차례 유해 봉환식에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별도로 25일(현지시간)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엄수된 한국전 참전 용사로 한미연합사 및 주한미군사령관을 지낸 로버트 세네월드 전 사령관 장례식 및 안장식에 조화를 보내 애도했다.
세네월드 전 사령관은 51년 포병관측장교로 한국전에 참전한 뒤 82~84년 주한미군사령관을 지냈다.
박태인·박현주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07-27 정전 70년 국군 7인 유해 귀환, 자유 지킨 영웅 기억해야
6·25전쟁이 정전협정으로 멈춘 지 70년 만에, 자유 대한민국을 위해 싸우다 전사한 최임락 일병 등 국군 유해 7위(位)가 고국으로 귀환했다. 미군 전사자로 추정돼 하와이에 임시 안치됐다가 국군으로 판정된 최 일병 등 호국 영웅의 유해가 26일 서울 땅에 내릴 때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공항에서 직접 거수경례를 하며 맞았다. 7위의 유해 중 유일하게 신원이 확인된 최 일병은 1950년 12월 12일 장진호전투 전사자다. 73년 만에 형의 유해와 상봉한 막냇동생 최용(79) 씨는 “형님 덕에 등 따신 자유 대한민국이 됐다”며 “지금이라도 돌아오셔서 고맙다”고 울먹였다.
윤 대통령이 이날 태극기에 싸인 영웅의 유해 7위를 군 수뇌부와 함께 맞은 것은 의미심장하다. 나라를 지키다 산화한 이들에 대해 군통수권자로서 최고의 예우를 한다는 뜻이다. 지난 2009년 10월 어느 새벽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사한 미군 유해를 도버 공군 기지에서 맞은 것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 2020년 이뤄진 국군 유해 147위 봉환은 대통령 참석 행사 소품 논란을 빚은 바 있기에 더 그렇다. 당시 국군 유해는 서울공항 기내에서 하루를 대기한 끝에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하는 6·25전쟁 70주년 행사에 맞춰 봉환식이 이뤄져 호국 혼(魂)을 모독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미군엔 ‘적진에 단 한 명도 남기지 않는다(No one left behind)’는 신조가 있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구한다는 전통이 미군을 세계 최강으로 만들었다. 국가에 대한 신뢰와 애국심의 기반이기도 하다. 6·25전쟁 때 국군 실종자는 8만 명, 전시 납북자도 10만 명으로 추정된다. 윤 대통령은 국군 유해 7위 귀환을 계기로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를 마지막 한 사람까지 구하고, 국군 유해도 끝까지 발굴해야 한다. 이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의 자유가 지켜질 수 있었고, 세계 경제 10위권의 번영도 일굴 수 있었다. 자유를 지키다 스러진 영웅들을 기억하고 예우해야 자유를 지킬 수 있다. 워싱턴 한국전 참전용사기념비에 새겨진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는 글귀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길 필요가 있다.
문화일보 사설
07-27 北 70년간 3121회 도발… 청년장병들 “국토수호 목숨 바칠것”

▲해군 1함대사령부 동해함 추진기관병 안세준 상병.
■ 정전 70년 미래 70년 - (5) 끝나지 않은 6·25 <끝>
‘참전용사 조부’ 뒤이은 손자들
“선배 전우들 피로 지킨 우리땅
물샐틈 없이 지키는 것이 의무”
육·해·공 철통안보 결연 의지

▲공군 미사일방어사령부 조기경보 레이더 정비병 안현태 상병.

▲육군 12사단 전방초소(GP) 분대장 우창현 병장.

▲육군 강원 인제 12사단 일반전초(GOP) 중대장 원가연 대위.
“할아버지께서 그랬던 것처럼 저 또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군인으로, 선배 전우들이 목숨 바쳐 수복한 소중한 우리 땅을 지킵니다.”
정전 70주년(27일)에도 대한민국 청년들은 전방 비무장지대(DMZ)와 서해 최북단 백령도 최전선 사수에 여념이 없었다. 할아버지가 6·25전쟁에 참전했던 청년들도 할아버지 세대가 피로 지켜낸 대한민국을 수호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밝혔다. 정전협정 후 지난해 말까지 3121회에 달하는 북한의 침투·국지도발에도 대를 이은 용사들의 헌신이 대한민국 안보를 떠받치고 있다.
강원 인제 육군 12사단 전방 철책선을 지키는 여군 중대장 원가연(31) 대위는 27일 문화일보 인터뷰에서 “정전협정이 이뤄지기 직전까지 선배 전우들이 목숨 바쳐 수복한 38도선 이북 강원(인제·양구·고성) 땅을 우리가 완벽히 사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령도를 지키는 해병 6여단 자주포 조종수 정무아(19) 상병은 형에 이어 ‘흑룡부대’에서 복무하고 있다. 그는 “‘내 가족, 내 소중한 사람을 내 손으로 지킨다’는 게 짊어진 의무이자 각오”라고 밝혔다. 강원 인제에서 전방초소(GP) 분대장으로 복무 중인 우창현(21) 병장은 “DMZ 안에서 북한초소가 육안으로 보이는 곳에서 적과 마주하고 있다”며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적들의 도발을 대비해 상시 전투준비태세를 완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육군 9사단 소대장 원상영 소위.

▲유엔평화유지군(PKO) 동명부대 윤성민 중사.

▲해병대 6여단 흑룡부대 자주포 조종수 정무아 상병. 육해공군·해병대 제공
특히 참전용사였던 할아버지의 뒤를 이은 손자들의 조국 수호 의지는 더 빛났다. 해군 1함대사령부 동해함(FFG-Ⅱ) 추진기관병 안세준(22) 상병은 심장 수술 이력으로 보충역으로 지원할 수 있었지만 육군 부사관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던 외할아버지의 영향으로 현역 복무를 결심했다. 안 상병은 “생전에 전쟁과 전우 이야기를 들려주신 외할아버지 덕분에 자연스럽게 ‘나라를 지킨다’는 의미와 안보의 중요성이 몸에 뱄다”고 강조했다.
육사 79기로 올해 소위로 임관한 원상영(24) 소위는 “(할아버지의) 자랑스럽고 거룩한 길을 걷고 싶었기에 군인의 길을 선택했다”며 “제가 가는 국가수호의 길이 선배 전우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일궈진 길이라 묵묵히 감당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할아버지 원규진(92) 예비역 대령은 6·25전쟁 때 호남공비토벌작전, 설악산 전투 등에 참전했으며, 베트남 전쟁에도 참전해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공군 미사일방어사령부 소속 탄도탄조기경보 레이더 정비병 안현태(23) 상병의 외할아버지는 동부전선 전투에서 북한군 폭격으로 한쪽 다리에 장애를 입었다. 그는 “외할아버지께서는 전쟁 당시 항상 ‘내 등 뒤에 가족과 국민이 있다’고 수없이 되뇌었다는 말씀을 해주셨다”며 “그 말씀은 나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한마디가 됐다”고 말했다. 레바논 파병 동명부대 28진으로 대한민국 최장 유엔평화유지군(PKO) 파병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윤성민(28) 중사는 “할아버지는 6·25 참전용사”라며 “한반도를 넘어 세계를 누비는 국군의 자랑스러운 일원으로서 지금의 저와 대한민국을 있게 해준 위대한 헌신에 감사드리며 세계평화 수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정충신 선임기자csjung@munhwa.com
07.28 카디즈 밝힌 '영광의 불빛'...그날 파일럿 기내방송은 뭉클했다
“저희 항공기는 한국방공식별구역을 진입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최임락 일병님을 포함한 7분의 호국영웅이 계셨기에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대통령실이 지난 26일 미국 하외이에 있던 한국전쟁 국군 전사자의 유해가 서울공항에 도착하기까지의 항공기 모습을 담은 영상을 28일 유튜브에 공개했다. 영상에는 봉환 임무를 맡은 김태용 공군 소령의 기내방송이 담겨 있다.
▲지난 26일 6·25전쟁에서 전사한 고(故) 최임락 일병 등 국군 전사자 7위의 유해를 모신 공군 다목적공중급유수송기(KC-330, 시그너스)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진입하자 엄호비행을 맡은 F-35A 프리덤나이트 편대가 조포(弔砲)를 대신한 플레어를 발사하며 예우를 갖추고 있다. 공군=연합뉴스
김 소령은 수송기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진입하자 고(故) 최 일병 등 유해 7위에 예우를 표하며 “지키고자 하셨던 숭고한 가치, 이제는 저희가 지켜나가겠습니다”라고 전했다. 이어 최 일병의 고향인 울산 상공을 지날 때는 “고향 울산은 73년 동안 많이 변했지만, 고국으로 모시고자 하는 저희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라며 “이제는 저희가 지켜드리겠습니다. 필승”이라고 경례를 붙였다.
▲26일 오후 서울공항에 도착한 국군 전사자 유해가 공군 다목적 공중급유 수송기 시그너스(KC-330)에서 하기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영상에는 수송기를 호위하던 F-35A 전투기 파일럿이 함께 경례하는 모습도 찍혀 있다. 또 조포(弔砲)를 대신한 플레어를 발사하며 예우를 다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서울공항에서 유해를 직접 영접했다. 이날 봉환된 7위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 전사자로 추정돼 하와이로 보내졌다가 이후 국군으로 판명돼 73년 만에 한국으로 복귀했다.
임성빈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
07.29 [단독] “北, 정찰총국 동원해 국내 태양광 설비 밀수”
중국 내 가짜 회사 만들어 시도

북한의 대남 공작 총괄부서인 정찰총국이 국내 태양광 설비를 밀수입한 것으로 28일 알려졌다. 설비 밀수에는 공작원까지 동원됐다고 한다. 정찰총국이 국내 태양광 시스템을 밀수입하다 적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경찰은 북한이 국내 태양광 설비를 조직적으로 밀수입하려 한 사례가 더 있는지 조사를 벌이고 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부산경찰청 안보수사과는 2016년 4~7월 북한에 국내 태양광 발전시스템 등을 밀반출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부산 소재 무역회사에 다니는 50대 후반 B씨를 작년 8월에 검거했다. 사정 당국에 따르면 B씨는 지난 2015년 초부터 북한 정찰총국 A 공작원과 중국에서 세 차례 만나고, 이메일 등을 통해 190여 차례 교신해 태양광 설비 1500여 개를 북한에 밀반출한 혐의를 받는다. 부산지검은 B씨를 수차례 소환 조사했고, 조만간 기소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픽=김성규
북한 정찰총국은 국내 태양광 기술을 모방할 목적으로 중국에 있는 요원을 통해 B씨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국정원에 A씨 신분을 확인한 결과 정찰총국 요원으로 추정된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정찰총국 요원 A씨는 평소 중국 무역 회사와 거래해오던 B씨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고, 생필품 등 소규모 거래를 제안하는 방식으로 친분을 쌓은 것으로 전해졌다. 연이은 거래로 B씨가 경계를 풀기 시작하자, A씨는 2015년 4월 자신의 국적을 북한이라고 밝히며 B씨에게 북한으로 국내 태양광 제품을 밀반입하는 100억원 규모의 거래를 제안했다고 한다.
당시 A씨는 B씨에게 북한 내 연구기관 성능 테스트를 합격할 경우 거래를 진행하겠다는 조건을 내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곧이어 샘플 테스트가 통과하자, B씨는 국내 세관에 북한 정찰총국이 설립한 중국 내 가짜에 태양광 설비를 수출하겠다고 신고했다. 당시 시세 5000만원가량의 태양광 설비를 선박을 통해 중국을 거쳐 북한에 넘긴 것으로 조사됐다.
북한 정찰총국은 B씨로부터 국내 태양광 기술과 설비를 확보하자 연락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B씨가 북한 정찰총국이 설립한 중국 내 가짜 회사를 통해 받은 판매 대금은 3000만원가량이다. 5000만원 상당의 태양광 설비를 밀반출했는데, 이보다 2000만원 정도 적은 대가를 받은 셈이다. B씨는 경찰 조사에서 “A씨가 북한 정찰총국 요원인 줄 몰랐다”며 “나는 A씨 약속만 믿고 거래했다가 손해를 본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정 당국은 북한이 2015~2016년 정찰총국을 총동원해 국내 태양광 제품을 밀수입하는 편법을 썼고, 이를 통해 북한 내 태양광 기술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고 보고 있다. 당시 북한이 밀반입한 기술은 ‘독립형 태양광 발전시스템’이다. 외부 전력 공급망 없이 자체적으로 태양광 발전을 돌리는 전력 시스템이다. 태양광 패널, 배터리, 충전조절기 등으로 구성되는데, 설치가 쉬워 전력망 보급이 어려운 산간·격오지 등에 사용되는 제품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신정수 연구위원은 본지 통화에서 “2013~2014년 북한 태양광 설비는 대부분 중국 수입에 의존해왔는데, 현재 북한은 태양광 설비를 자체 생산하는 등 중국 태양광 기술 수준과 거의 차이가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북한에서 태양광 패널을 이용한 발전량은 연간 149GWh 정도로, 2020년 북한 가구 전기 소비량(2129GWh)의 7.0%를 충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북한이 당시 고질적인 전력난을 해소할 목적으로 국내 태양광 설비·기술을 유출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북한 지도부는 지난 2013년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를 육성하겠다는 내용의 재생에네르기법(에너지법)을 처음 제정했고, 김정은 국방위원장은 2014년 신년사에서 태양열 등을 이용해 전력을 더 많이 생산하겠다고 강조했었다.
조선일보 주형식 기자
07.31 장난감 같던 北 무인기, 이젠 장난 아니다
열병식서 정찰·공격용 드론 과시

▲지난 28일 조선중앙TV의 열병식 녹화 방송에 등장한 무인기. /조선중앙TV
북한이 지난 27일 열병식에서 미국 RQ-4 ‘글로벌 호크’ 전략 무인 정찰기, MQ-9 ‘리퍼’ 무인 공격기와 흡사한 드론을 공개하고 비행까지 실시함에 따라 이 무인기들이 유사시 우크라이나전에서처럼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성능이 ‘진품’ 미 드론에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평시·전시를 가리지 않고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전면전 발생 시 한미 양국 군이 제공권을 장악한 상태에서 무인기들의 효용성이 제한될 수 있지만 기계화 부대 등 지상 목표물 타격 등에서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평상시에는 DMZ(비무장지대) 인근 상공에서 우리 전방 부대나 수도권 감시 정찰에도 활용될 수 있다.
북한 조선중앙TV는 지난 28일 열병식 녹화 방송 전 자체 제작 무인기 비행 영상을 내보내며 전략 무인 정찰기 명칭을 ‘샛별-4형’, 공격형 무인기는 ‘샛별-9형’으로 소개했다. 각각 미 ‘RQ-4 글로벌 호크’와 ‘MQ-9 리퍼’ 명칭에 들어간 숫자와 같다. 글로벌 호크는 세계 최고 성능을 가진 장거리 전략 무인 정찰기이고, 리퍼는 이라크·아프가니스탄전, 대테러전 등 실전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돼 ‘침묵의 암살자’라는 별명을 얻은 대표적 ‘킬러 드론’ 무인 공격기다.

▲2014년 발견된 北 무인기 - 2014년 3월 경기도 파주에서 추락한 채로 발견된 북한 무인기.
열병식에서 공격형 무인기 ‘샛별-9형’은 차량에 실려 이동하는 모습으로 4대가 포착됐다. 비행한 1대와 지상의 4대 등 최소 5대가 제작됐다는 의미다. 북한은 샛별-9형이 공대지(空對地) 미사일을 발사하는 영상도 공개해 실제 개발이 상당 수준 진척됐음을 과시했다.
이에 대해 일부 전문가와 외신은 북 무인기들의 성능이 미국제에 비해 크게 떨어질 것이고 실전 배치도 어려울 것이라며 평가절하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북 신형 무인기들이 유사시 게임 체인저까지는 아니더라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며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우선 전면전 발생 시 북한 공군 전투기들이 한미 양국 군에 궤멸된 뒤에도 무인 공격기들이 우크라이나전에서처럼 전차·장갑차 등 기계화 부대 공격에 활용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우크라아니전 개전 초기 튀르키예제 바이락타르 TB-2 등이 대전차 미사일과 정밀 유도 폭탄 등으로 러시아군 전차·장갑차 등을 파괴하는 데 위력을 발휘했다. 북한 ‘샛별-9형’의 무장 능력은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북한이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대전차 미사일 등 공대지 미사일 8발과 활강 유도 폭탄(정밀 유도 폭탄) 2발 등으로 무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 조선중앙TV가 지난 27일 공개한 ‘무장장비전시회-2023’ 오프닝 영상에서 ‘샛별-9형’으로 소개한 공격형 무인기가 미사일을 발사하는 장면. /조선중앙TV
북 공대지 미사일은 미 리퍼가 장착한 헬파이어 대전차 미사일과 비슷한 형태로 추정된다. 헬파이어의 최장 사거리는 8㎞로, 북 미사일의 사거리가 이보다 짧다 하더라도 한국군 자주 대공포나 휴대용 대공미사일 사거리(3~5㎞) 밖에서 공격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또 한미 양국 군이 제공권을 장악한 상태라 하더라도 양국 전투기들이 다른 임무가 많아 북 무인기 공격에 집중할 수 없다는 것도 한계다. 방종관(예비역 육군소장) 국가전략연구원 전력개발센터장은 “전면전 개전 초기 우리 공군 전투기 430대는 미군이 증원(增援)돼도 다른 할 일이 많아 북 무인기를 모두 격추하기는 불가능하다”며 “특히 (여러) 자폭(自爆) 드론은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방 센터장은 “우크라이나전을 보면 개전 초기 무인기 격추율이 50% 정도밖에 안 됐고 보강한 뒤에도 60~70% 정도였다”고 했다.
일각에선 미 리퍼가 알카에다 지도자 암살 등 대(對)테러전에서 활약해왔다는 점에서 북 무인 공격기가 테러 위협용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주한 미군에 12대가 배치돼 있는 MQ-1C ‘그레이 이글-ER’ 무인 공격기는 유사시 북 정권 수뇌부 제거 작전에 활용될 수 있는 ‘킬러 드론’으로 알려져 있다. 그레이 이글-ER은 리퍼보다 성능이 다소 떨어지는 무인 공격기다.
일부 전문가와 외신에서 북 신형 무인기의 성능이 미국 진품보다 떨어질 것이라고 평가하는 데 대해서도 “정말 위험한 생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국산무기 개발의 총본산인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무인기 개발에 관여했던 이정석 수석연구원은 “미국 수준의 절반 이하만 돼도 한반도 전장에서 활용 가능한 수준이면 북한 입장에선 성공한 것”이라며 “위성통신이 없다 하더라도 산 위에 통신 중계기를 세우면 최장 150~200㎞까지 작전할 수 있어 유사시 우리 대전 이북에선 작전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판 글로벌 호크나 무인 공격기가 남북 군사 합의를 어기고 DMZ 인근 상공에서 정찰 활동을 하면 북한은 상당히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수석연구원은 “DMZ 인근에서 북 신형 무인기가 DMZ 50㎞ 남쪽까지만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해도 경기 북부는 물론 서울까지 감시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픽=김현국
북 무인기들의 외형이 미국 무인기들과 똑같은 데 따라 유사시 피아 식별 곤란 등 기만용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우려된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북 무인기는 우선 ‘마음먹으면 언제든지 미국 무기도 따라 만들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정치 심리적 의미가 크다고 본다”며 “눈으로 봤을 때 피아 구분이 안 되기 때문에 유사시 미군 무인기인 것처럼 접근해서 공격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 우리 수도권 영공을 침범한 소형 무인기가 군사적 위협보다는 심리적 테러 무기에 가까웠다면 이번 신형 무인기들은 실제 군사적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무인기라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은 “근거리 지상 작전 지원이나 후방 지역 은밀 침투 공격 등에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상당수 외신은 북 무인기들의 실전 배치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인용해 보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 밴 디펜 전 미국 국무부 국제안보비확산 담당 수석차관보는 미국의소리(VOA)에 “북한이 그동안 알려진 것보다 더 발전한 드론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음을 과시하려 한다”며 “드론 운영에는 실시간으로 전송해오는 영상을 보고 제어할 수 있는 자체 위성이 필요하지만 북한은 그런 능력이 없기 때문에 작동 범위에 제한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선일보 유용원 군사전문기자 원선우 기자 조성호 기자
07.31 단기간에 급성장 ‘北무인기 미스터리’
美무인기 빼닮아, 설계도 해킹했나
북한이 지난 27일 열병식에 미국의 RQ-4 ‘글로벌 호크’ 전략 무인 정찰기 및 MQ-9 ‘리퍼’ 무인공격기와 빼닮은 무인기들을 공개하고 비행까지 실시함에 따라 이들 무인기의 개발 과정과 성능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중국·러시아·이란 등에서 이들 무인기와 닮은 짝퉁 무인기를 개발했지만 북한 무인기처럼 똑 같은 외형을 가진 경우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F-35 스텔스기 제조업체인 미 록히드마틴사를 해킹해 F-35 짝퉁인 FC-31 스텔스기를 개발했듯이 북한이 미 제조업체 설계도를 해킹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앙킷 판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은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북한은 그동안 전 세계 군수업체를 대상으로 사이버첩보 활동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탈취해 왔다”며 “이들 무인기도 그랬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외형은 똑같아도 엔진, 카메라·레이더 등 센서는 복제하기 힘들어 실제 성능은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우선 무인기의 체공 성능(시간)을 좌우하는 엔진과, 감시정찰 능력을 좌우하는 전자광학(EO) 카메라 및 영상레이더(SAR)의 성능이 미국 것을 따라가기 힘들 것이라는 점이다. 미 글로벌 호크는 롤스로이스 터보팬 엔진을 사용해 32시간 이상 날 수 있고, 최대 항속거리가 2만2000㎞에 달한다. 고성능 카메라로 고도 20㎞에서 30㎝ 크기의 물체를 식별할 수 있다. 미 리퍼는 하니웰 터보프롭 엔진을 장착해 14~28시간 이상 날 수 있다. 정보 당국은 북한이 신형 무인기들 엔진을 어떻게 도입했는지 도입 경로를 추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글로벌 호크 무인기 엔진(터보팬 엔진)은 북한과 무기 거래가 많은 무인기 강국 이란조차 아직 개발하지 못했다. .
북 무인기들의 전자광학(EO) 카메라 및 영상레이더(SAR), 데이터 링크 등 핵심 센서 및 장비 능력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북한이 발사에 실패해 우리 해군이 인양한 ‘만리경-1호' 군사정찰위성에서 나타났듯이 북한 카메라 능력(해상도)은 크게 떨어지는 수준이다. 위성통신 능력이 없다는 것도 큰 장애물이다.
반면 북한 신형 무인기들의 등장이 예상보다 빨랐던 점, 그리고 지난해 말 우리 영공을 침범해 다섯 시간이나 휘젓고 북으로 복귀했던 소형 무인기들에 비해선 크게 성능이 향상됐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한 소식통은 “북 신형 무인기들은 소형 무인기들에 비해 엔진 출력과 운용 고도 등이 크게 향상돼 급(級)이 다른 무기”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유용원 군사전문기자
07-31 ‘교류 통한 통일’ 환상부터 버릴 때다

염돈재 前 국가정보원 1차장, 前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
김영호 장관 취임을 계기로 통일부가 대대적 개혁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대변인 역할에 충실했던 문재인 정부의 굴종적·종북적 대북정책과 김연철·이인영 장관의 친북적·좌파적 성향이 초래한 업보라 생각된다.
하지만 이번 개혁은 문재인 정부 시절의 과오를 청산하고 남북관계의 변화를 반영하기 위해 대대적 조직 축소와 인적 쇄신을 하는 수준에 그쳐서는 안 된다. 우리의 대북·통일정책이 가진 근본적 문제점들을 그대로 놔두고는 어떤 개혁도 성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개혁은 대북·통일정책과 통일부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재성찰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첫째, 대북·통일정책의 철학과 기본 틀을 바꿔야 한다. 이제까지의 대북·통일정책이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독일통일이 빌리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 접근을 통한 변화정책 때문에 가능해졌다고 생각하고 남북기본합의서 체결과 남북정상회담 등 적극적인 화해·협력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독일통일은 브란트의 동방정책으로 동독 공산정권이 ‘변해서’ 가능해진 것이 아니라, 동독 주민의 시위로 동독 공산정권이 ‘망해서’ 가능해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독일통일이 브란트의 동방정책이 아니라 콘라트 아데나워 초대 총리 이후 서독 기민당 정부가 자석이론에 따라 추진한 힘의 우위 정책이 거둔 성과임을 명심해야 한다.
둘째, 통일부 일부 업무를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통일부의 주요 업무인 통일·남북대화·교류협력·인도적 지원에 관한 정책 수립, 북한정보 분석, 통일교육·홍보 등 업무 가운데 전문성이 필요하거나 타 부처가 우위에 있는 업무가 있어 통일부 단독으로 추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 때문에 현재 대북·통일정책 관련 업무는 국가안보실이 담당하고 있고 과거 서독도 주요 내독관계 업무는 총리실 특임장관이 담당했다. 앞으로 주요 정책 결정은 국가안보실이 담당하거나 국무총리나 국가안보실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위원회 및 실무위원회(국장급)를 구성해 맡기는 방안이 좋을 것 같다. 아울러 북한과의 교류·협력·지원업무도 서독처럼 정부 해당 부처가 주관하고 통일부가 반드시 참여해 협의·조정·조언 역할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셋째, 정부의 공식 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 통일방안은 독일통일이 이뤄지고 기능주의적 국가통합 방안이 풍미하던 30여 년 전에 잘못된 가설, 즉 남북이 독일처럼 화해·협력하고 교류를 확대하면 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데에서 출발한 정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3단계로 설정된 이 통일방안은 많은 결함을 갖고 있어 실행이 어려운 데다 우리 정부의 대북·통일정책과 국민의 대북·통일의식을 오도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차후 검토 결과 다른 대안이 없다면 이 통일방안을 그대로 유지하되, 통일부는 ①북한 주민을 억압하고 핵으로 우리를 위협하는 북한 3대 세습 체제도 화해·협력의 대상이고 통일의 동반자인지 ②역사상 성공사례가 없는데, 이념과 체제가 달라도 국가연합이 가능한지 ③적대관계이던 국가 간에 대등한 통일이 가능한지에 대해 국민이 납득할 합리적 설명자료를 반드시 마련할 필요가 있다.
문화일보
07-31 ‘귀신잡는 해병대’ 신화 주인공, 김성은 장군 ‘8월의 6·25영웅’

국가보훈부는 6·25전쟁 당시 ‘귀신 잡는 해병대’ 신화의 주인공인 김성은 장군을 ‘8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김 장군은 해병대 출신으로는 유일무이하게 국방부 장관에 발탁돼 역대 최장수(1963∼1968년) 국방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김 장군은 1949년 8월 29일 해병 1기생 1·5중대로 구성된 전설적인 ‘김성은 부대’를 이끌고 해병대 첫 실전인 지리산 공비토벌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김성은 부대는 6·25 전쟁 때 여러 작전을 잇달아 성공시키며 해병대 신화를 만들기도 했다. 1950년 8월 16일 북한군 제7사단이 부산 점령을 위해 경남 통영을 침공했을 때, 당시 중령이던 그가 지휘하던 ‘김성은 부대’는 통영 장평리 해안에 기습 상륙작전을 감행, 군사요충지인 경남 진해·마산 등을 지켜냈다. 통영지구전투는 6·25전쟁 중 전무후무하게 한국군 단독으로 상륙작전을 성공시킨 전투다. ‘귀신 잡는 해병(They might capture even the devil)’이란 말은 통영상륙작전 성공 후 전광석화 같은 김 장군의 작전에 감탄을 금치 못한 뉴욕 헤럴드 트리뷴지 마거릿 히긴스 종군기자의 펜에서 나왔다. “당신들은 정말 귀신도 잡을 만큼 놀라운 일을 해냈소!”
김 장군은 서울탈환작전, 경북 영덕지구 전투, 경기 파주 장단·사천강지구 전투를 승리로 이끌며 수도권 일대를 성공적으로 방어한 공을 인정받아 1951년 10월 30일 태극무공훈장을 받았다.
김 장군은 국방부 장관 시절 한국군 최초로 구축함을 도입하고, 합동참모본부를 설치했다. 2007년 7월 고인의 운구 행렬 때 전국의 해병전우회 노병들이 모여 일제히 경례를 붙이며 예의를 표했던 일은 아직도 회자되는 유명한 이야기다.
한편 보훈부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일제가 간도로 이송하던 15만 원을 탈취한 사건의 주역으로 독립장을 받은 윤준희·임국정·한상호·김강 선생을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정충신 선임기자 csju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