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危機의 韓半島(외교) 2023-06/ 06-07(수) 한국, 역대최다 180표로 안보리 재진입 - 06.30 미들파워 대한민국

상림은내고향 2023. 6. 29. 10:27

危機의 韓半島(외교) 2023-06/

06-07(수) 한국, 역대최다 180표로 안보리 재진입… 윤 “글로벌외교 승리”

▲각국 축하받는 황준국 대사 한국이 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총회에서 11년 만에 다시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에 선출된 직후 황준국(가운데) 주유엔대사가 각국 대사들로 부터 축하 인사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 11년만에 비상임이사국 진출

192개국 투표에서 93% 득표
내년부터 2년간 성명 등 주도

한미일 동반이사국 돼 3각공조
북 압박 힘싣지만 중·러 탓 한계

김유진 기자 klug@munhwa.com, 워싱턴=김남석 특파원

한국이 6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선거에서 192표 중 180표라는 압도적 득표로 당선된 것은 윤석열 정부 가치외교의 결실이자 더 큰 기회로 평가된다. 안보리를 무대로 한 한·미·일 공조에도 힘이 실리면서 보다 강력한 대북 메시지 발신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7일 오전 한국의 안보리 진출이 확정된 뒤 “유엔 192개 회원국 가운데 180개국 찬성으로 비상임이사국에 진출한 것은 글로벌 외교의 승리”라고 말했다고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이 서면 브리핑을 통해 밝혔다. 한국이 2013∼2014년(임기 2년) 이후 11년 만에 압도적인 득표율로 안보리에 재진입한 것은 윤석열 정부가 지난 1년간 자유, 민주주의 등을 앞세워 펼쳐 온 가치외교가 국제사회에서 공감대를 얻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다자외교의 핵심인 안보리 진출은 2024∼2025년 한국이 가치외교를 실현할 더 큰 기회로도 여겨진다. 임기 2년 동안 안보리에서 북한 관련 의장성명 등 문안 작성을 주도하며 내년 6월에는 순회의장국으로 대북 규탄 논의를 이끈다. 내년 1년간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 2024년까지 비상임이사국 임기를 이어가는 일본과 함께 3각 공조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기대감도 크다.

한국은 첫 비상임이사국 선거가 치러진 1995년에도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단독출마했지만 156표를 얻는 데 그쳤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는 중·러의 방해 주장이 제기되는 등 전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180표를 얻어 외교적 역량을 보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황준국 주유엔대사는 “1996년 이후 처음으로 한·미·일 3국이 동시에 안보리 이사국이 됐다”며 “과거와 달리 동북아 국제정세에 갈등·대립이 심해졌다. 3국이 함께 안보리에서 북한 문제를 직접 다루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안보리에 들어간다고 (북한을 옹호해온) 중국과 러시아가 갑자기 입장을 바꾸는 것은 아니기에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중·러와도 계속 소통하며 협력의 폭을 넓혀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교부는 이날 안보리 태스크포스(TF)를 발족했다.

한편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조정관은 이날 허드슨연구소 주최 대담에서 “확장억제는 여전히 견고하지만 도전이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중 하나는 북한의 도발 증가”라며 “우리는 북한의 행동이 역내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을 중국에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문화일보

 
 

06-09 中 대사관저 찾아가 “중국몽” 훈시 들은 이재명

원내1당 대표가 주한 중국 대사관저를 찾아가 중국 대사로부터 15분 가까이 훈시를 들은 것은, 그 모양새만으로도 국격을 훼손하는 황당한 일이다. 사실관계를 왜곡하면서 주재국 정부 정책을 비난하는 훈시 내용은 더 가관이다. 이런데도 더불어민주당은 항의하기는커녕 공식 유튜브를 통해 30분가량 생중계했다. 양자의 의전 서열을 고려할 때, 중국 대사가 민주당사나 국회 사무실로 찾아가는 게 정상이다. 구한말 위안스카이를 떠올리게 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8일 중국 대사관저를 찾아간 목적은 후쿠시마 오염처리수 문제에 싱하이밍 대사와 보조를 맞추려는 것으로 보이지만, 오히려 싱 대사에게 중화 패권주의 선전 멍석을 깔아준 결과가 됐다. 싱 대사는 아예 원고를 펴놓고 “시진핑 주석 지도하에 중국몽을 이루려는 확고한 의지를 모르면 모든 게 탁상공론”이라고 했다. 한국도 시진핑 사상을 공부하고 수용하라는 취지다. 심지어 “미국 편에 서면 반드시 후회한다”는 협박까지 했다.

싱 대사 발언은 궤변에 가깝다. “한국이 중국과의 관계를 처리할 때 외부 요소의 방해에서 벗어나야 한다” “중·한 관계 어려움의 책임은 중국에 있지 않다”고 했다. 앞부분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대만 관계, 뒷부분은 사드 보복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홍콩에 대한 조치를 보면, 중국은 ‘일국양제’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다. 대만에 대해선 무력 통일을 겁박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힘에 의한 현상 변경 시도를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양국관계 악화는 근본적으로 중국이 북한의 핵·미사일을 두둔하기 때문이다. 싱 대사는 북한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훈련 동시 중단을 뜻하는 ‘쌍중단’을 거론했다. 정전협정을 위반하고 핵공격 위협까지 하는 북한을 비호하고, 이에 방어적으로 맞서는 한국과 유엔 결의를 조롱하는 주장이다.

후쿠시마 오염처리수 문제에 대한 싱 대사 발언도 적반하장이다. 일본이 태평양을 하수구로 삼고 있다고 했는데, 중국은 55개 원전에서 후쿠시마 오염처리수의 50배에 가까운 삼중수소를 서해로 방출한다. 중국 대사의 오만방자한 행태를 자초한 사람이 정치지도자일 수 있겠는가.

문화일보 사설

 
 

06.10 국장급 중국대사 옆에서 시진핑 우상화 들러리 된 이 대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일 주한 중국대사관저에서 싱하이밍 대사와 앉은 사진은 참으로 볼썽사나웠다. 어쩌다 그 순간이 포착됐다고 해도 두 손을 모으고 앉은 이 대표 옆에 중국 대사는 정중하지 않은 자세로 있었다. 중국은 한국에 외교부 국장급을 대사로 보내고 있다. 이런 식으로 세계 10위권 국가에 대한 고의적이고 의도적인 하대를 계속하고 있다. 그런 직급의 중국 관리 옆에 공손한 모습으로 앉은 한국 다수당 대표를 보니 딱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싱 대사는 이 대표를 앉혀 놓고 “일각에서 미국이 승리할 것이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고 베팅하고 있는데 이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며 “단언할 수 있는 것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고 했다. 중국이 한국에 보복하겠다는 것이다. 대사가 주재국을 향해 이렇게 무례하게 하는 나라는 중국 아니면 없다. 중국은 세계 곳곳에서 무례하고 폭력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지만 한국에 대해선 더 그렇게 한다. 이 대표는 거기에 들러리가 됐다.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가 8일 저녁 서울 성북구 중국대사관저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예방을 받고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3.06.08/국회사진기자단

 

싱 대사는 그 자리를 빌려 시진핑을 우상화하는 발언까지 했다. “중국 국민은 일치단결해서 시진핑 주석의 지도하에 위대한 중국몽(中國夢)을 진행한다는 결심을 (한국인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는 것이다. “시 주석 지도하에 중국몽이란 위대한 꿈을 한결같이 이루려는 확고한 의지를 모르면 그저 탁상공론일 뿐”이라고도 했다. 제 나라 독재자에 대한 저급하고 유치한 아첨을 다른 나라 사람들 앞에서 태연히 하는 중국 대사도 놀랍지만, 그걸 그냥 듣고 있는 이 대표 모습도 보기에 힘들었다.

이 대표는 직전 대선에서 집권당 후보로 나섰고 지금은 압도적 과반 의석의 제1당 대표다. 그런 이 대표는 자신의 지위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감은 가져야 한다. 특히 외국을 상대하는 장소에선 국민의 대표라는 생각도 해야 한다. 그런데 중국 대사가 ‘우리 편 안 들면 재미없다’는 협박을 하는데 듣고만 있는가. 공산당 일당 독재에다 인권이 없고 한 명이 종신 집권을 추구하는 중국이 자유민주 국가인 한국에 편을 들라고 위협하는 것은 폭력이다.

이 대표는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로 한중이 협력하자는 말을 주로 했다고 한다. 중국 대사관저까지 찾아간 것도 오염수 문제를 정치적으로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대표는 정부를 공격하는 데 보탬이 된다면 우리 국격이 손상되고 중국 국장급 관리에게 훈계를 듣고 협박을 당해도 감수할 만하다는 입장인가. 그렇지 않으면 이 대표도 “중국은 높은 산봉우리”라면서 “한국도 작은 나라지만 (중국의) 그 꿈에 함께 할 것”이라던 문재인 전 대통령과 뜻을 같이하기 때문인가.

 

한국은 인구 5000만이 넘는 나라 중 소득 3만달러가 넘은 세계 7국 중 한 나라다. G20 회원국이고 언젠가 G8 회원국이 될 수도 있는 나라다. 그런 나라의 국민 입장에서 이 대표와 중국 대사의 만남은 참으로 불쾌한 장면이었다.

조선일보 사설

 

06-12 ‘내정 불간섭’ 한중 수교 정신 파괴하는 中의 적반하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8일 중국 대사관저에서 싱하이밍 대사로부터 “중국몽 의지를 모르면 탁상공론” 등의 훈시를 들은 것은 꼴불견이지만, 중국 외교부가 한국 정부를 대놓고 비난하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다. 민주당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된 싱 대사의 “미국 편에 서면 반드시 후회한다” 등의 발언은 한미동맹과 북핵 등을 따질 필요도 없이 명백한 내정간섭이다. 외교부 차관이 싱 대사를 초치해 엄중히 경고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중국 외교부는 눙룽 외교부 차관보가 지난 10일 정재호 주중 한국대사를 초치한 사실을 홈페이지를 통해 11일 공개하면서 “싱 대사가 한국 각계 인사와 접촉하고 교류하는 것은 그의 직무이며, 목적은 이해를 증진하고 협력을 촉진하는 것”이라고 두둔했다. “한국은 중한 수교 공동성명의 정신을 확실히 준수해야 한다”면서 “반성해야 한다”는 표현까지 동원했다. 한결같이 적반하장의 궤변이다.

첫째, 싱 대사는 비공식 만찬이 아니라 생중계 사실을 알면서도 준비한 문건을 15분간 읽고 취재진에 배포했다. 접촉과 교류를 빌미로 한 의도된 한국 정부 공격이다. 둘째, 협력 촉진이 아니라 한국 국론 분열을 노린 행태다. 셋째, 한중 수교 공동성명을 위반한 것은 중국이다. 31년 전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과 공산당 1당 체제 중국이 수교하면서 한국은 중국을 유일 합법정부로 인정하고, 한국은 중국·북한 관계를 고려해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 지지’(제5항)로 양보했다. 이로써 정·경 분리에 의한 양국 관계가 급속히 발전했다. 그런데 최근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거부권을 남용하면서 북한 핵무기 개발과 위협을 대놓고 비호·지원한다. 이것이야말로 공동성명 제5항 위반이다. 형식적인 문제지만, 중국 외교부가 맞조치 당국자의 급을 차관보로 내린 것도 한국을 하대하는 행태다.

이웃 나라끼리는 다양한 현안이 있을 수밖에 없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 미·중 관계가 악화하면서 한·중 사이에도 갈등이 커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럴수록 외교적 냉정을 유지해야 한다. 주재국 국민이 모두 보는 가운데 대사가 주재국 정책을 비난하고, 야당 대표와 한 편인 듯 행동하면서 한국 국론 분열을 부추기는 것은 외교의 기본을 한참 벗어난다. 중국의 이른바 ‘전랑 외교’가 세계 각국에서 논란을 빚고 있지만, 한국을 대놓고 멸시하는 행태는 한국민의 대중 정서를 더 악화시킬 뿐임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

 
 

06.12 갈수록 노골적 中의 기술 탈취, 못 막으면 첨단 산업 거덜 날 것

▲미국의 대중 첨단 반도체 수출 금지 조치 이후, 한국의 해외 반도체 공장 주변에선 반도체 전문 인력을 빼내가려는 중국 측의 시도가 훨씬 더 늘어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진은 중국에 있는 삼성전자 시안 반도체공장./삼성전자 제공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가 중국에 개설한 인공지능 연구소에서 일하는 연구 인력을 빼내 캐나다로 옮기고 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보도했다. 신문은 “미·중 간 정치적 긴장에 대한 대응인 동시에 중국 측이 필사적으로 연구원을 빼가려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라고 전했다. 중국의 기술·인재 탈취 시도에 대비한 선제 대응이라는 것이다.

중국의 왕성한 기술 욕구 앞에 한국 제조업도 안전하지 않다. 지난주 국내 기업의 의료 로봇 기술 파일 1만 여 건을 빼돌린 중국 국적 연구원이 경찰에 적발됐다. 유출된 기술은 국책 사업으로 선정돼 국비 100억원이 지원된 분야였다. 지난 2월엔 삼성전자 기술을 빼돌린 뒤 반도체 세정 장비를 제작해 중국 기업과 연구소에 넘긴 연구원과 기업이 실형을 선고 받았다.

 

중국은 과학기술 분야에서 전 세계 최고 인재 1000명을 유치하겠다는 이른바 ‘천인(千人)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돈으로 선진국의 기술 인재를 데려와 기술 유출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산업 스파이 양산 계획’과 다름 없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실제로 2021년 미국 하버드대 화학 교수가 중국 정부로부터 월 5만달러의 연구비를 받고 첨단 정보를 유출해 오다 미국 검찰에 적발됐다. 이번에 국내에서 적발된 의료 로봇 기술 유출자도 ‘천인계획’의 지원 대상자였다.

최근 6년간 산업 기술의 해외 유출 사례가 117건 적발됐다. 이 중 36건이 중국이 가장 눈독 들이는 반도체 기술이었다. 현행 법은 기술 유출 범죄자를 15년 이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했지만 실제로는 솜방망이 처벌에 그쳐 범죄 예방 효과가 미미한 실정이다. 최근 8년간 기술 유출 관련 범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365명 중 80%(292명)가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실형을 산 사람은 20%에 불과했다. 누가 겁내겠는가.

경쟁국들은 기술 유출 범죄를 중범죄로 처벌하고 있다. 미국은 ‘경제 스파이법’에 의거해 기술 유출범에게 징역 33년형까지 구형한다. 대만은 지난해 국가안전법을 개정해 기술 유출을 간첩 행위에 포함시키고, 징역 12년과 1억대만달러(42억원)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미국이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 규제를 강화한 이후 삼성전자·하이닉스의 해외 공장에선 중국 측 브로커가 3~4배 오른 연봉을 제시하며 반도체 전문 인력을 빼내 가려는 시도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대법원은 기술 탈취에 대한 양형 기준을 대폭 올리고, 국회는 간첩 죄에 준하여 엄중 처벌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갈수록 노골적인 중국의 기술·인력 빼가기를 방치했다간 첨단 산업이 남아나지 못할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6.12 뿌리치는 미국을 최고의 동맹으로 만든 이승만

 

6·25전쟁 하루 전 군 수뇌부는 육군회관 낙성식에 참석했고, 만취했다. 육군참모총장은 숙취 상태에서 전쟁 발발을 보고받았다. 육사 8기 단체 회고록은 “각 분야별로 일사불란하게 진행됐던 전투력 약화 작업은 북한의 남침 직전까지 이어졌다”고 했다. 예비역 대장 이형근은 “육군 지휘부에 적과 내통한 인사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남침(새벽 4시) 사실을 보고받은 것은 6시간30분이나 지난 오전 10시30분쯤이었다. 일요일이었는데 국방장관이 주말휴가 중이었기 때문이다.

주한 미국대사는 “서울을 떠나면 한국인의 사기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면서 ‘사수(死守)’를 주장했다. 주한미군사령관은 “서울에서 시가전을 펴면서 시간을 벌어야 한다”고 했다. ‘서울 사수’를 결의했던 한국군은 전황이 불리해지자 싸워보지도 않고 포기를 결정했다. 주객이 전도됐고, 부끄러운 일이다. (『이승만의 삶과 국가』 오인환)

6·25 때 군 수뇌부 총체적 무책임
이승만 홀로 위기대처 능력 발휘
대책 없는 휴전 반대 월남화 막아
강대국에 할 말 해야 생존한다

망국으로 향하는 최악의 상황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이승만이 완벽한 위기대처 능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그는 26일 새벽 3시 도쿄의 맥아더 사령관에게 전화해 “어서 한국을 구하시오”라고 호통쳤다. 장면 주미 한국대사에게 “적이 문앞에 와 있다고 트루먼 대통령에게 전하시오”라고 했다. 남침을 워싱턴과 유엔의 긴급 현안으로 부각시켰고, 미 의회 의결도 없이 조기 참전을 이끌어냈다. 군 수뇌부의 강권으로 시민들에게 알리지 않고 서울을 탈출했고, 한강 인도교를 폭파한 과오를 제외하면 초인적 전시(戰時) 대통령이었다.

이승만은 전선을 누비면서 “우리가 계속 밀고 쳐 올라가야 우방의 원조도 꾸준히 들어올 것이고, 적군을 물리치고 우리가 살 수 있다”고 호소했다. “맨손으로 싸우는 한국 장병에게 무기를 달라”고 미국에 요청했다. 외신기자와 인터뷰했고, 외교 문서를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와 직접 작성하는 1인 외교를 펼쳤다. 독립운동가로 쌓아 온 40여 년의 대미 외교 경험과 고급영어 구사 능력, 애국심과 두둑한 배짱이 무기였다. 유사시 부부가 자결(自決)하기 위해 권총을 침실 머리맡에 두고 잠을 잤다. 쉴 새 없이 항전 의지를 알렸다(『프란체스카의 난중일기』 기파랑). 우크라이나의 영웅 젤렌스키 부부의 역사적 롤 모델이다.

 

‘미국의 시저’ 맥아더 유엔군총사령관이 ‘크리스마스 공세’(11월 24일~12월 3일)에 나섰지만 잠복해 있던 중공군에게 대패했다. “한국에서 중공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미국은 철수를 논의했다. 군 수뇌부는 “중국의 의도가 유엔군을 한국에서 몰아내는 것이 명백하다면 빠른 시일 안에 철수시키자”고 했다. 애치슨 국무장관은 “한국인들이 살육당할 것”이라며 반대했다. 트루먼 대통령도 애치슨의 의견에 찬성했다. 서울에선 “미국이 한국을 팔아넘기려고 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때 이승만은 “경무대에서 죽기로 결심했다”고 정치고문인 올리버 박사에게 밝혔다.

 

트루먼 행정부는 1951년 초 휴전 방침을 정했다. 전쟁을 계속하려면 정규군을 20만 명 늘리고 연간 9억 달러의 비용을 추가로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통일 한국을 보장하지 않으면 휴전은 수용할 수 없다. 필요하다면 한국군 단독으로 북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사흘치 공격용 탄약밖에 없으면서도 소련·중공과의 제3차 세계대전을 피하려는 미국의 세계 전략에 반기를 든 것이다.

 

이승만은 1953년 6월 17일 유엔군과 공산군이 휴전에 잠정 합의하자 다음 날 2만7000여 명의 반공포로를 전격 석방했다. “한국전을 끝내겠다”는 공약으로 당선된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친구가 적으로 변했다”며 격분했다. 이승만 제거 작전을 검토했으나 의회가 ‘반공투사 이승만’ 축출에 반대하자 물러섰다. 결국 로버트슨을 특사로 보냈고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2억 달러 원조, 한국군 20개 사단으로 강화 등 이승만의 요구를 수용했다. 대신 이승만은 휴전을 방해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미국은 네 차례나 이승만 제거 계획을 세웠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없었다면 한국은 어떻게 됐을까. 미국의 키신저와 월맹의 레둑토가 1973년 휴전협정을 맺고 2년 뒤 패망한 월남의 운명이 되지 않았을까. 아이젠하워는 이승만을 미워했지만 역량은 높이 평가했다. 프랑스인에게 “월남에 필요한 인물은 또 한 사람의 이승만”이라고 극찬했다.

 

이승만은 ‘전략적 가치가 없는 한국’을 손절하려던 ‘배신자’ 미국과 싸워 최고의 동맹관계를 맺었다. 21세기 한국에서 ‘제2의 이승만’이 나올 수 있을까. 70년 전의 거인은 “강대국에도 할 말을 하는 용기, 동맹과 우방의 신뢰를 받는 외교 원칙으로 무장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지금 미국과 중국은 서로 “내게 베팅하라”고 우리를 압박한다. 이 위험천만한 혼돈의 계절에 여전히 지구상 최악의 지정학적 조건을 안고 있는 한국의 생존에 필요한 지혜일 것이다.

중앙일보 이하경 대기자 

 

06.13 싱하이밍 폭언 본질과 中의 자가당착

 

주재우 경희대 교수·국제정치학

지난 8일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는 우리 야당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미국 편에 서면 반드시 후회한다’며 ‘한중 관계의 책임이 한국에 있다’고 훈계했다. 우리 내정간섭 발언으로는 ‘역대급’이다. 한미동맹을 지난 70년 동안 견지한 우리의 자주 독립적인 주권적 선택을 노골적으로 비판했기 때문이다.

중국도 남북 대치 상황에서 한미동맹이 우리의 생존과 안보를 위해 불가피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중국은 이런 인식을 1970년대 미중 관계 정상화 협상 때부터 가져 왔다. 그래서 싱 대사의 발언은 과도한 내정간섭일 수밖에 없다.

한반도 상황에 대한 한중 양국의 공통된 인식은 1992년 한중 수교 공동성명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제2조에서는 주권 및 영토보전의 상호존중과 상호 내정 불간섭 원칙에 입각하여 한중 양국의 선린 우호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동의했다. 제4조에서는 중국도 ‘한중 수교의 한반도 정세의 완화와 안정에 대한 기여에 대해 확신’했다. 이런 의미에서 중국은 제5조의 한반도 조기 통일과 평화적 통일에도 합의했다.

제2조 ‘주권 및 영토보전의 상호존중, 상호불가침, 상호 내정 불간섭, 평등과 호혜와 평화공존’은 중국이 자부하는 이른바 ‘평화공존 5항 원칙’의 내용이다. 이는 1955년 반둥회의 이후 중국이 중추적인 외교원칙으로 줄곧 고수한 제1의 외교원칙이다. 이 원칙으로부터 중국의 모든 외교원칙이 파생된다. 그러나 싱 대사의 발언은 중국이 자부하는 이 외교원칙을 전면 부정한 것이다.

‘한중 관계의 책임이 중국 아닌 한국에 있다’는 싱 대사의 발언은 결국 한미동맹 무익론(無益論)을 뜻한다. 그는 한국이 미국 편에 선 것이 오늘날 한중 관계 악화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이런 차별적이고 편향된 인식은 지난달 31일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발언에서도 나왔다. 마오닝 대변인은 “현재 중한 관계는 어려움과 도전에 직면해 있으며, 책임은 중국에 있지 않다”고 했다. 한국과 미국에 책임을 전가한 것이다.

이런 중국의 발언이 무책임하고 내정간섭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한 가지다. 인과관계를 무시하기 때문이다. 한미동맹은 대북 억지용이다. 북한은 1980년대 초까지 군사적 우위를 점했다. 그러나 1983년 덩샤오핑(鄧小平)이 캐스퍼 와인버거 전 국방장관에게 전언했듯 전세가 역전됐다. 남한의 군사적 우위는 북한의 핵 개발로 이어졌다. 이제 북한이 핵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실정이다. 중국의 대북 관리 실패로 한미동맹이 이를 대신한다는 사실을 중국도 잘 안다.

중국의 무책임한 행위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중국군은 우리 바다와 하늘을 끊임없이 무단진입했다. 이는 수교 공동성명 제2, 4조의 명백한 위반이다. 더욱이 중국은 우리의 외교·군사적 대응에도 아랑곳 않는다. 결국, 한미동맹 강화는 중국이 자승자박한 결과다.

중국이 더는 자국 외교의 대명사이자 평화공존 5항 원칙의 창시자인 저우언라이 전 총리를 ‘먹칠’해선 안 된다. 한중 수교 공동성명을 더 욕보여서도 안 된다. 시진핑 주석이 2017년에 주창했듯이 ‘초심을 잊지 말고(不忘初心·불망초심)’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중국의 흥망이 법과 원칙, 제도와 규범에 대한 준수 여부로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일보 

 
 

06-15 중국몽 훈시 들은 직후 민주당 ‘쉬쉬 방중’ 뭘 노리나

국가 간의 외교 갈등이 있다고 해서 의원·정당 외교 등 다양한 채널이 중단될 필요는 없다. 더 적극적으로 가동해야 할 경우도 있다. 그러나 기본 원칙은 분명하다. 외교 주체는 정부와 집권 세력임을 인정해야 하고, 사익(私益)·당익(黨益)보다 국익을 앞세워야 하며, 그 과정은 당당하고 투명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의원 외교가 국론 분열을 부추기고, 경쟁국에 의해 악용될 위험성이 커진다. 대다수 국가가 공직자의 외국 방문에 대해 비용·일정·발언 내용 등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이유다.

이런 점에서 더불어민주당 민생경제위기대책위원회 소속 김태년·홍익표·고용진·홍기원·홍성국 의원이 ‘비공개’로 중국을 방문한 것은 문제가 심각하다. 이재명 대표가 지난 8일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로부터 “중국몽 의지를 모르면 탁상공론” 등의 훈시를 들은 직후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들이 베이징에 도착한 12일은 이미 싱 대사의 내정간섭성 발언이 외교 문제로 비화한 때다. 두 달 전부터 추진한 상태여서 방중이 불가피했다면, 일정·행사·발언 등이 더욱 공개적으로 이뤄졌어야 했다. 그런데 신문에 보도된 뒤에야 인정했을 정도로 쉬쉬했다.

숨겨야 할 사정이 있는지 궁금하다. 쑨웨이둥 중국 외교부 부부장(차관)은 제 발로 찾아온 의원들에게 한국 정부가 ‘하나의 중국’ 입장을 재확인해야 한다고 발언했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힘에 의한 대만해협 현상 변경 반대한다”고 밝혔는데, 이는 한중 수교 성명에 배치되지 않는다. 민주당 의원들은 싱 대사의 내정간섭성 발언에 항의했어야 했다. 그들이 방문했다는 차하얼학회(察哈爾學會)는 공산당 지원으로 친중 네트워크를 만든다는 의심을 받는 조직이다. 이런데도 15일 의원 7명이 또 중국 방문에 나섰다. 대부분 비용은 중국 정부 부담이라고 한다. 미국 같으면 뇌물이나 매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 상황이다.

문화일보 사설

 

06-15 향군, 싱하이밍에 “대한민국은 고려·조선 아냐…공개 사과하라”

▲군 예비역 단체 회원이 14일 오후 비 내리는 서울 중구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 규탄 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 제공 

 

예비역 장성들, ‘베팅’ 발언 중국대사 규탄 릴레이 1인 시위

대한민국재향군인회(향군)는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초청 자리에서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는 부적절한 발언으로 외교적 논란을 촉발한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에게 15일 공개 사과를 촉구했다.

향군은 이날 입장문에서 "지금 대한민국은 수백 년 전의 고려나 조선이 아니다"라며 "외교 관례를 중시해야 하는 외교관이 주재국을 비난하고 비방하는 처사는 한 마디로 주제넘은 언행"이라고 맹비난했다.

이어 "당사자는 외교관으로서 본분을 다시 한번 자각하고, 대한민국 국민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하라"며 "진정성 있는 사과는 한중 양국 간의 우호 증진과 상호 발전적인 관계 정립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예비역 장성들은 지난 13일부터 서울 중구 명동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싱 대사의 발언을 규탄하는 예비역 장성 릴레이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중국대사의 주권 침해 망언에 국민으로서 분노와 치욕을 느낍니다’, ‘싱하이밍 대사는 한국에서 물러나십시오’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오는 16일까지 릴레이 침묵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릴레이 시위에는 김근태 예비역 육군대장과 천암함재단이사장을 지낸 손정목 예비역 해군중장, 특전사령관 출신의 김종배 예비역 육군 중장(전 교육사령관) 등이 참여했다.
문화일보 정충신 선임기자
 

 

06-19 이번엔 인권유린 현장 티베트 가서 중국몽 들러리 선 野

시진핑 독재 체제를 강화해가는 중국의 관제 행사에 들러리 선다는 비판을 받아온 도종환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 7명이 지난 17일 ‘티베트 관광문화 국제 박람회’에 참석했다. 이재명 대표가 지난 8일 싱하이밍 주한중국 대사를 찾아가 ‘중국몽 훈시’를 들었던 파장이 아직 가라앉지 않았는데, 이번엔 의원들이 그 연장선에 선 셈이다.

이번 박람회는, 중국이 1950년 티베트를 강제 병합한 이후 어두운 역사와 인권 탄압 논란을 지워보려는 ‘문화 워싱’ 의도로도 비친다. 네팔·몽골과 남태평양의 섬나라 등의 대사 등이 참석했을 뿐 주요 국가 대표들은 없었던 배경이다. 최근의 미·중 공급망 경쟁 이전부터 문명국들은 중국 정부와 마찰을 감수하면서도 ‘중국판 킬링필드’ 등으로 중국의 티베트 정책을 인권 탄압으로 비판해왔다.

민주당이 이런 전반적 상황을 몰랐는지, 알고도 방문을 강행했는지 분명치 않지만, 어느 경우든 원내 다수당으로서의 책임과는 거리가 멀다. 심지어 장경태 최고위원은 “티베트에 라마를 비롯한 정신적 스승 등이 많이 있었다. 세계적인 스승이기도 하다”고 했다. 인도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벌이는 지도자를 칭송하면서, 탄압 정부의 행사 참석을 편드는 이중적 태도가 혀를 찰 정도다. 도 의원 역시 “인권탄압 주제로 박람회를 하는 것이 아니지 않으냐”라고 했다고 한다. 이런 행태는 인권·진보의 편에 섰던 민주당의 오랜 전통을 배신하는 일이기도 하다. 유신·신군부 독재에 맞섰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미국·일본 등 민주주의 선진국을 상대로 한국 정권을 돕지 말라고 호소했다.

한편, 이 대표는 지난 17일 “(후쿠시마 방류수를) 핵 폐수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방류를 반대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적 사실의 토대 위에서 반대 입장을 밝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과도한 공포를 조장해 우리나라 수산업에 엄청난 피해를 입히는 자해극이 되기 때문이다.

문화일보 사설

 

06-19 처칠의 결기, 지금 한국에 필요하다

이미숙 논설위원

우크라戰이 드러낸 독재 민낯
푸틴 편 시진핑도 궁지에 몰려
러보다 위험한 중국 인식 팽배

한중수교 정신 짓밟은 싱 대사
독재 간파하고 싸운 처칠처럼
尹도 中체제 직시 새 전략 짜야

우크라이나가 이달 초 러시아에 대한 대반격에 나서며 전쟁이 중대한 변곡점에 접어들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의 대대적 지원에 힘입어 우크라이나가 선전하면 올해 안에 휴전이나 종전 모멘텀이 마련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완전한 전쟁 종식의 길은 험난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침략으로 자유 진영은 더 강화됐고, 독재 권위주의 진영은 위축됐다는 점이다.

러시아는 이 전쟁이 어떻게 종결되든 내분과 쇠락으로 치달을 게 분명하지만, 중국도 러시아에 버금가는 내상(內傷)을 입었다는 점이 전쟁이 낳은 의외의 효과다. 첫째, 지난해 2월 베이징(北京) 중·러 정상회담 때 푸틴과 ‘제한 없는 협력’을 선언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결과적으로 전범(戰犯) 지지자가 됐다. 푸틴이 성공했다면, 시 주석도 하나의 중국 원칙을 앞세우며 대만 침공을 앞당겼겠지만, 유엔총회가 러시아의 침략 전쟁 규탄 결의안을 거듭 채택하고 자유 진영의 제재가 본격화하면서 당분간 대만 정복 야심을 펴기 어렵게 됐다.

둘째, 이 전쟁으로 주요 7개국(G7)과 나토 결속력은 강화됐고,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도 확고해졌다. 시 주석이 2012년 집권 후 세계 패권 장악의 꿈을 구체화하면서 본격화한 미·중 신냉전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미국 중심의 자유 진영과 중·러 중심의 권위주의 진영 대결로 확장됐다. 상대적으로 중국에 우호적이었던 유럽 국가들이 지난해 나토 마드리드 정상회의 때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했고, 7월 나토정상회의에 또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4개국(AP4)을 파트너로 초청한 배경이다.

셋째, 푸틴의 전횡은 독재국의 위험성을 드러내 줬다. 공산체제 붕괴 후 자유민주주의를 경험했던 러시아가 그 수준이라면 공산당 독재국 중국은 훨씬 심각할 것이라는 각성이 생긴 것이다. 푸틴은 그나마 언론을 의식해 우크라이나 침공을 전쟁이 아닌 것처럼 ‘특별군사작전’으로 부르도록 했지만, 관제 언론뿐인 중국에서 시 주석이 그런 고려를 할 리 없다. 푸틴은 러시아보다 위험한 나라가 중국임을 보여줬다.

싱하이밍(邢海明)의 ‘외교 도발’은 이런 배경에서 발생했다. 그는 지난 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앉혀 놓고 ‘중국에 베팅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라는 입장문을 냈다. 1992년 한중수교 후 처음으로 공산당 독재국의 본색을 드러낸 사건으로, 힘으로라도 한미동맹 강화를 막겠다는 협박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엄중한 사태로 규정하고 중국에 적절한 조치를 요구한 것은 정당하다. 싱 대사의 행위는 한중수교 때의 정경분리 원칙을 깬 것인 만큼, 이 사건을 대중 관계 재정립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새 대중 전략은 중국 체제의 한계를 직시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의 위대성은 아돌프 히틀러의 위험성을 꿰뚫어보고 대응한 데 있다. 히틀러가 발호할 때 네빌 체임벌린 당시 영국 총리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고 했지만, 처칠은 “독재자와 타협해선 민주주의를 지키지 못한다”면서 대결을 택했다. 박지향 서울대 명예교수는 최근 저작 ‘윈스턴 처칠, 운명과 함께 걷다’에서 ‘처칠은 히틀러에 굴하지 않고 혼자라도 전쟁을 해나갈 것을 결단했고, 궁극적으로 승리로 이끌었다’고 썼다. ‘처칠은 정직함과 진지함으로 국민에게 다가가 독재자와 싸워야 한다고 설득했다’고도 했다.

과거 문재인 정부 대중 저자세 외교의 결과는 ‘혼밥’과 사드 보복이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대중 유화책을 주문한다. 싱 대사 파문 후에도 이 대표는 “명동에 중국 관광객은 와야 하지 않냐”고 했고, 이 와중에 방중한 의원들은 “한국이 선의의 조치를 해주길 원한다”는 중국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전했다. 거대한 중국 시장을 고려해 적당히 머리 숙이고 살자는 신판 체임벌린주의자들이다. 전략적 모호성을 내세우며 미국과 거리를 둔 채 중국에 밀착한다고 한국의 미래가 열리지 않는다. 국제 규범과 시장 논리보다 시진핑 사상을 앞세우는 중국 공산당 체제와는 정상적 관계가 어렵다는 게 분명해진 만큼, 대중관계에 대한 새 접근이 필요하다. 윤 대통령은 처칠 같은 결기로 중국 위험 탈피(derisking) 전략을 짜야 한다.

문화일보 

 
 

06.22 중국 다루기, 중국 대사 다루기

 

한·일 중국대사의 경쟁적 늑대 외교
우리가 일본처럼 저공 대응 한들
중국은 우리에게 과연 예 갖췄을까
 

#1 "그런데요, 요즘 중앙일보 글들이 너무 중국을 의도적으로 비판하려는 것 아닙니까."

싱하이밍 대사는 '의도적'이란 부분을 반복해 강조했다.

3년 전 서울 명동의 주한 중국대사관을 찾았을 때의 일.

당시 게재된 칼럼을 두고 싱 대사는 불쾌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만찬에 초대해놓고 할 말은 아니었다.

좀처럼 말을 끊지 않고 수위도 올라갔다.

한마디는 해야 했다. "아니, 싱 대사님. 골프에서 드라이버샷을 칠 때 누가 의도적으로 OB를 냅니까? 본인들은 다 정중앙으로 치려 하죠."

 

애초부터 편향된 글은 아니라고 에둘러 '외교적으로' 말했다.

하지만 싱 대사는 멈추지 않았다. 만찬장으로 옮겨서도 거침이 없었다.

 

"이 자리가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얼마 전 와서 앉았던 자리예요." "내가 부임 7개월 동안 79명의 한국 내 주요 인사를 만났다고 한국 언론에 나왔던데, 아니에요. 실은 100명이 훨씬 넘어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8일 오후 서울 성북구 중국대사관저를 방문해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와 만찬 회동을 했다. 만찬에 앞서 싱 대사가 이 대표 옆에서 한국 정부의 외교정책을 비판하는 원고를 읽고 있다. 김현동 기자

 

아마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런 싱 대사 관련 정보를 다수 접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과 국장급 대사의 집을 찾아가 A4 용지 15분 라이브 훈계의 들러리를 섰다.

 

'싸움닭' '갓재명'이라 불리는 이 대표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싱 대사의 교묘한 연출에 제대로 당했다.

 

#2 지난 4월 28일 일본 도쿄의 기자클럽. 우장하오(呉江浩) 신임 주일 중국대사가 기자회견에 나섰다.

 

그는 "일본이 중국 분열을 노리는 전차(戰車)에 속박 당하면 일본 민중은 불길 속으로 끌려 들어갈 것"이라고 도발했다.

 

중국 분열을 노리는 전차, 즉 미국에 달라붙어 대만 독립 문제에 자꾸 목소리를 내면 일본 국민을 상대로 군사행동도 불사하겠다는 얘기다.

 

 ▲지난 3월 부임한 우장하오 주일 중국 대사가 지난 4월 28일 도쿄 우치사이와이초에 있는 일본기자클럽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 일본기자클럽

 

최근 20년 가까이 일·중 관계가 아무리 험악했어도 이런 표현을 들어본 적이 없다.

미국 편에 붙은 한국과 일본을 상대로 주재국 대사들이 경쟁적으로 전랑(戰狼·늑대 전사) 외교에 나선 셈이다.

물론 싱하이밍이건 우장하오건 본국 지시나 허가 없이 이런 행동에 나설 리 없다.

 

주목할 점은 한국과 일본의 맞대응.

한국은 대통령이 직접 나서 싱하이밍, 중국 정부에 돌직구를 날렸다.

반면 일본은 총리가 나서지도 않았고, 우 대사를 초치조차 안 했다.

 

한참 지난 뒤에야 하야시 외상이 국회에 나와 "외교 루트를 통해 항의했다"고 밝힌 정도다.

 

뻘쭘했던 걸까.

 

지난달 중국 최대 싱크탱크 사회과학원의 고위 간부가 일본을 찾아 공개 포럼에서 우 대사 발언에 대해 "일본도 중국도 대국 아니냐. 두 대국이 서로 숙려(숙고)해 관계를 개선해 나가자"고 말했다. 화해 제스처였다.

 

#3 주재국 대사의 무례는 어디까지나 그 급에 맞춰 외교 라인에 대응토록 하는 게 옳다. 최고 지도자까지 나서면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

 

그런 점에서 일본식 대응이 모범 답안이다.

하지만 과연 현 시점에 우리가 일본처럼, 대국처럼 점잖게 실무선에서 대응했다고 해서 중국 정부가 일본에 했듯 한국에도 화해 제스처를 보이고 예의를 갖췄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한·중 관계는 건전한 균형이 이미 깨졌다.

"한국은 누르면 눌린다"는 그릇된 관념이 뿌리내리고 말았다.

중국은 사안마다 원칙을 지킨 일본과 같은 잣대로 한국을 대하지 않는다.

 

 ▲지난 12일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정례 브리핑에서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발언을 두둔하고 있다.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이참에 한·중 관계의 판을 정상화해 두지 않으면 '싱하이밍 참사'는 또 일어나게 돼 있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이 직접 강하게 경고 메시지를 던진 건 부득이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

상호주의가 뭔지 중국으로 하여금 다시금 숙려케 하고, 기울어진 무게추도 되돌려놔야 한다.

 

또 하나. 이제는 국장급 주한 중국대사를 다루는 법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중국의 일방적 사드 보복에 최대 피해를 본 롯데그룹의 신동빈 회장은 다른 대기업 총수, 정치인과 달리 싱하이밍의 초대를 마다했다고 한다.

 

그 정도의 당당함은 없다 하더라도, 부른다고 그냥 쪼르르 달려가 밥 먹고 사진 찍고 오는 이른바 지도층의 행태가 계속되면 정말 우린 소국 신세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김현기 순회특파원 겸 도쿄총국장 kim.hyunki@joongang.co.kr

 

06-29 공급망 조정 실패 땐 제2 구한말 부른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디커플링은 중국이 먼저 시작
한류·인터넷·희토류 마구 규제
오일쇼크 때 경제안보 본격화

중·러 공급망 무기화 조짐 확산
인내 가지고 중국 의존 낮출 때
대안 못 찾으면 中 세력권 편입

요즘 미국과 유럽에 의해 주도되는 중국과의 공급망 디커플링(탈동조화)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연결을 끊는다는 의미의 디커플링은 사실 중국이 먼저 시작한 조치들이다. 우선, 중국은 오래전부터 안보상의 이유로 구글, 페이스북 같은 미국의 인터넷 플랫폼을 디커플링하고 있다. 대신 알리바바나 바이두, 텐센트 같은 중국 기업이 인터넷 플랫폼을 장악했다.

2016년 우리가 사드 배치를 결정하자, 중국은 한한령이라는 한류 디커플링과 관광객 디커플링도 시작했다. 2020년 호주가 중국에서의 코로나19 발생을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중국은 호주산 쇠고기 수입 규제 및 호주산 석탄 수입 금지, 호주산 와인 및 바닷가재 고관세 부과 조치 등 무역의 부분적 디커플링을 단행했다. 2010년 일본과의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 영유권을 둘러싸고 중국은 희토류 수출과 일본 관광에 대한 디커플링을 한 바 있다.

이와 같은 디커플링 사례가 보여주는 공통점은, 중국이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라 안보적 또는 정치적인 이유를 들어 외국과의 경제적 디커플링을 무기화해 왔다는 것이다. 즉,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 관계를 끊었다 붙였다 하면서 외국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는 것이다.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안보적 관심이 본격 시작된 것은 중국의 사례보다 훨씬 이전인 1970년대의 오일쇼크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동의 석유 수출국들이 결성한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서방의 친이스라엘 정책에 대한 보복으로 1973년 석유 감산 및 수출 제한 조치를 단행하면서 세계 경제가 침체기로 들어섰다.(1차 오일쇼크)

1979년에는 이란혁명으로 인해 또 한 번의 오일쇼크가 발생했다. 세계 경제의 핵심 에너지원인 석유의 가격은 1973∼1980년 사이 약 10배 상승했고, 이를 계기로 1960년대부터 시작된 ‘자본주의의 황금기’는 종언(終焉)을 고한다. 요즘 유행어가 된 ‘경제안보’라는 신조어가 이때 처음 등장했고, 자본주의 선진국들은 국제 연대 및 에너지 공급망 조정과 같은 당시의 디커플링과 위험 회피 조치를 한 바 있다.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우려는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러시아 및 중국과 같은 강대국들이 주요 공급망을 무기화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다시 한 번 경제안보라는 이름으로 재점화됐다. 2020년에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은 세계의 공장이라는 중국의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리스크를 각인시켰는데, 2022년 말 3연임에 성공한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이 대만에 대한 무력통일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자유주의 선진국들은 중국을 중심으로 형성된 전략물자 공급망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에 들어갔다.

21세기 세계 경제의 전략물자는 반도체와 배터리 및 그 제조에 필요한 희토류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전개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디지털 변환과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에너지 변환은 반도체와 배터리, 희토류를 과거 석유에 버금가는 핵심 전략물자의 반열에 올려놨다. 공교롭게도 이 전략물자의 공급망은 한국과 대만이 제조하는 고성능 반도체 일부를 제외하고는 중국 의존적으로 형성되고 있었다.

만일 대만 통일 등 현상 변경을 원하는 초강대국 중국이 이 공급망을 무기화한다면 자유주의 선진국들은 엄청난 경제적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공급망을 정치·안보 무기로 사용한 중국의 과거 사례를 볼 때, 중국을 중심으로 형성된 반도체·배터리·희토류 공급망과의 일정 정도 디커플링은 리스크 회피 차원에서 당연한 조치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제로 코로나 정책처럼 14억 인구를 과감히 통제할 수 있는 현 중국 정부에 대해서는 방심할 수가 없다.

이러한 배경에서 볼 때, 우리나라가 자유주의 선진국과 함께 전략물자의 공급망 조정에 참여하는 것은 경제안보라는 측면에서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당장은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의 매력 때문에 망설이게 되겠지만, 국가 미래를 위해서는 인내를 가지고 시장 다변화라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 만약 우리가 중국의 공급망 안에서 미래를 보장받겠다는 결정을 하게 된다면, 한국은 결국 중국의 세력권 안으로 편입돼 우리의 운명을 맡기는 제2의 구한말을 맞을 수도 있다.

문화일보 

 
 

06-29 한국 오염수 괴담 난무하자 직접 나선 IAEA

■ 그로시 사무총장 방한 배경

한국처럼 여야 공방 거센 뉴질랜드
과거 미국·프랑스 등 핵실험 많았기에
트라우마 심한 쿡 제도도 방문

요미우리 “야당이 불안 부추겨
정부 흔드는 재료로 이용해와”

 

라파엘 그로시(사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오는 7월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 오염처리수 최종 보고서 내용을 설명할 방문지로 한국과 뉴질랜드, 태평양 섬나라 쿡제도 등 3개국을 선택한 데는 이들 국가에 오염처리수 관련 괴담이 우려할 수준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과 뉴질랜드는 여야 간 후쿠시마 오염처리수를 둘러싸고 정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쿡제도는 과거 미국·프랑스 등의 남태평양권 핵실험에 원자력 개발에 대한 트라우마가 심하다. 이에 그로시 사무총장은 IAEA 최종 보고서에 나온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이들 국가를 대상으로 오염처리수의 안전성에 대한 설명에 나서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29일 요미우리(讀賣)신문은 그로시 사무총장이 3개국을 방문하는 이유로 한국 사례를 대표적으로 언급하며 “한국에서는 야당이 ‘정부가 국민을 지키려고 하지 않는다’는 등 국민의 불안을 부추기는 근거 없는 주장을 계속해 윤석열 정권을 흔드는 재료로 이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로시 사무총장의 3국 방문은 이런 측면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해석했다.

그로시 총장이 방문을 결정한 국가들은 후쿠시마 오염처리수 방류를 놓고 과학적 논의가 아닌 정쟁화가 벌어지는 곳이다. 한국에서는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오염처리수 관련 괴담을 퍼뜨리면서 소금 사재기 현상 등이 나타나고 있다. 뉴질랜드에서도 야당이 강경한 반대 입장을 펼치고 있다. 쿡제도는 원자력 반대 정서가 뿌리 깊은 점과 올해 태평양 섬나라 등으로 구성된 태평양도서국포럼(PIF)의 의장국이라는 점이 선정 배경으로 꼽힌다.

반면, 그로시 사무총장의 방문국에 중국은 포함되지 않았는데, 중국 정부가 “태평양은 일본이 핵 오염수를 방류하는 하수도가 아니다”라며 오염처리수 괴담을 적극적으로 유포 중인 점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은 광둥(廣東)성 타이산(台山) 제 3원전이 2020년에 방출한 삼중수소가 후쿠시마 오염처리수에 포함된 삼중수소의 6.5배에 달했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IAEA는 지난 2021년 오염처리수 방류와 관련한 활동을 검토해달라는 일본 정부의 요청을 수용, 그동안 여섯 차례에 걸쳐 검토보고서를 일본 정부에 제출한 바 있다. 이번 보고서는 마지막 보고서로, 기존 보고서처럼 오염처리수 방류 방법과 설비에 문제가 없다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김선영 기자 sun2@munhwa.com

 

06.30 위안스카이와 싱하이밍 대사는 다르다

오늘날 해외주재 대사는 본국 정부 지시대로 움직여
외교쇼 기획한건 중국정부… 사과는 그들에게 받아야
대중국 무역흑자 막내린 지금 왜곡된 한중관계 전면 리셋을

19세기 유럽에서 외교관 제도가 생긴 이래 주권 국가가 외국에 파견하는 상주 외교 사절을 특명전권대사라 부른다. 그 이름도 거창한 특명전권대사라는 직함은 파견국 국가원수의 특명을 받아 국가원수를 대신해 전권을 행사할 권한이 부여된 사람이라는 뜻이다. 국가 간에 조약을 체결할 때 서명자로 참석하는 사람은 자신이 국가원수를 대리해 조약문에 서명할 전권을 갖고 있음을 입증하는 증명서를 상대국에 제출해야 하는데, 이를 전권위임장이라 한다. 그러나 그 나라에 상주하는 특명전권대사는 별도 전권위임장 없이도 언제든 국가원수를 대리해 협상하고 서명할 권한을 보유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특명전권대사 제도가 생긴 이유는 당시의 원시적 통신 환경 때문이었다. 당시에도 비둘기나 전신과 같은 비교적 빠른 통신수단이 있기는 했으나, 비밀 사항을 국가원수에게 보고하고 지시받기 위해서는 부득이 메신저가 문서를 지참하고 직접 본국에 다녀와야 했기 때문에 1회 교신에 몇 주일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당시는 본국의 중요한 국내외 정세도 몇 주일 후 배달되는 자국 신문을 받아봐야 알 수 있던 시대였다. 이 때문에 효율적인 외교 협상을 위해서는 국가원수로부터 교섭 권한을 일괄 위임받아 활동할 특명전권대사의 존재가 필요했다. 이처럼 특명과 전권을 받아 파견된 대사는 본국 정부의 지시나 승인을 장기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의 판단과 결심에 따라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통신수단이 고도로 발달된 오늘날엔 특명도 전권도 사라진 지 오래고, 특명전권대사라는 호칭은 지난 시대의 영광을 상기시키는 의례적 호칭일 뿐이다. 오늘날 크고 작은 외교적 판단과 결정은 대부분 본국 정부가 하고 대사와 외교관들은 지시된 각본에 따라 움직이는 배우로 역할이 대폭 축소되었다. 대사는 중대한 외교 사안에서 시시콜콜한 행정 사안에 이르기까지 시시각각 본국 정부의 지시와 승인을 받아 활동하며, 중요한 사안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외교 교섭이나 국제회의에서 사용될 사안별 입장은 대부분 본국 정부가 사전 작성해 시달하며, 특별히 중요한 회의나 협상의 경우엔 현지 상황이 본국 정부에 실시간 보고되고 본국 정부 지시가 회담장으로 실시간 전달되기도 한다.

얼마 전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가 야당 대표와 회동한 자리에서 한국 정부와 국민에 대한 위협적 입장문을 공개적으로 낭독한 데 대한 거센 비난 여론으로 나라가 떠들썩했다. 구한말 식민지 총독처럼 행세하며 온갖 횡포를 일삼았던 청국 대표 위안스카이와 그를 비교하면서 기피 인물로 추방하자는 주장도 많았다. 그러나 위안스카이와 싱하이밍은 경우가 전혀 다르다. 오늘날 해외 주재 대사가 본국 정부 지시나 사전 허가 없이 그런 문제성 발언을 공개적으로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만일 한국 대사가 정부 허가 없이 그런 소동을 벌였다면 소환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더욱이 고도로 통제된 공산국가 중국의 대사가 베이징 당국의 지시 없이 그런 일을 벌인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이 사건으로 비난받고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할 주체는 싱하이밍 대사 개인이 아니라 이면에서 그런 외교 쇼를 기획하고 지시했을 중국 정부와 외교 당국이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한국을 중국의 속방 정도로 가볍게 여기며 종주국 행세를 해 온 중국 정부의 오랜 관행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문제에 관한 모든 허물을 싱하이밍 주한 대사에게 씌우고 종결 처리하는 방식이 외교적으로는 다소 편하고 후과에 대한 부담도 적을 것이나, 그런 미봉책으로 이 사안을 적당히 덮는다면 유사한 사건들은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을 대하는 중국의 외교적 행태가 이처럼 압박과 위협 일변도로 전개되고 있는 건 중국 정부만의 책임은 아니다. 한국 정부가 그간 스스로 자신을 대국 앞의 소국이라 칭하며 중국의 부당한 언행에 굴종과 침묵으로 일관해 온 데 따른 당연한 귀결이다. 눈앞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 때문에, 혹은 안미경중(安美經中)의 환상에 현혹되어 중국의 무리한 횡포를 스스로 합리화하며 침묵해 온 정치권과 경제계도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다. 이제 중국 경제가 점차 침몰해 가고 대중국 무역 흑자도 막을 내린 만큼, 국민 각계가 뜻을 모아 그간의 왜곡된 한중 관계를 전면 리셋하는 용기를 발휘해야 할 때다.

조선일보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前 외교부 북핵대사

 

06.30 “당신의 오늘을 위해, 우리는 내일을 바쳤습니다”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의 전경. 유엔기념공원은 세계 유일의 유엔기념묘지로 세계평화와 자유라는 대의를 위해 생명을 바친 유엔군 전몰 장병들이 잠들어 있다./김동환 기자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인 유엔기념공원에는 대한민국의 오늘을 위해 목숨을 바친 유엔군 참전 용사들이 잠들어 있다. 경건하게 다듬어진 푸른 묘역에는 붉은 장미와 영산홍이 못다 핀 젊은 영혼들을 위로하듯 묘비석을 어루만지고 있다. 묘비석의 나이는 대부분 20세 전후다. 꽃다운 청춘들이다. 이들은 세계 평화와 정의라는 대의를 위해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먼 나라에 와서 소중한 목숨을 바친 영웅들이다. 이분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부산에 조성된 유엔기념공원은 올해로 설립 72주년을 맞았다. 전쟁이 끝나고 많은 전사자들이 본국으로 송환돼 현재는 11국의 참전 용사 2320명이 안장돼 있다. 모두 가슴 아픈 사연들이지만, 허머스턴 부부의 이야기는 더욱 가슴을 저미게 한다. 이들은 호주군 장교와 군 간호사로 만나 결혼한 부부였다. 결혼 3주 만에 남편은 한국전에 파병되었고 파병되자마자 1950년 10월 낙동강 전투에서 전사했다. 아내 낸시 여사는 2008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늘 남편 사진을 곁에 두고 그를 그리워하며 평생을 혼자 살았다. “내가 죽으면 남편 곁에 묻어 달라”는 유언에 따라 결혼 60주년이 되는 2010년 유엔기념공원의 남편 곁에 합장됐다.

 

참혹했던 한국전쟁이 끝난 지도 어느덧 70년이 흘렀다.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이하여 유엔기념공원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 참전 용사들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는 것도 뜻깊은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유엔기념공원은 한국전 참전 22국이 유엔의 깃발 아래 뭉쳐 세계 평화와 자유를 위해 함께 싸운 국제적 연대의 상징이다. 유엔군 파병은 국제 평화를 위협하는 북한의 불법 남침 행위에 대한 유엔 최초의 군사적 조치였다. 이러한 국제적 연대와 협력 정신을 기리기 위해 유엔기념공원에는 참전국 22국의 국기가 태극기, 유엔기와 함께 나란히 게양돼 있다.

유엔기념공원은 유엔 참전 용사들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예우와 보은 의지를 나타내는 상징적 장소이기도 하다. 유엔기념공원은 이곳을 방문하는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인들이 자신들을 위해 희생한 유엔 용사들에게 얼마나 큰 고마움을 표시하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해 주는 장소이다.

 

아울러 유엔기념공원은 다시는 이 땅에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다짐의 장소이자 미래 세대에 대한 교육의 장소이기도 하다. 참혹한 전쟁 탓에 탄생한 유엔기념공원이 역설적으로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이해 많은 국민들이 유엔기념공원을 방문했으면 한다. 유엔 참전 용사들의 용기와 희생에 대해 경의를 표하고 그분들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화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선일보 허강일 유엔기념공원관리처장·전 주아일랜드 대사

 

06.30 미들파워 대한민국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유튜브 중계는 윤석열 대통령의 말대로 불쾌한 장면이었다. “미국 승리에 베팅하면 후회한다” “중국몽 의지를 모르면 탁상공론” 같은 일방적 주장은 대한민국의 국격을 구한말로 돌려놓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이런 훈시와 겁박성 발언에 어느 국민이 마음 편했을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7년 당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한국은 과거 중국의 일부였다”고 전해진 발언도 떠올랐다. 진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중국과 한국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이런 취지로 이해될 만한 발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제사회, 한국에 G8 역할 기대
국력에 걸맞은 당당한 외교 필요
한·중 관계서 움츠러드는 건 패착

한국은 엄연한 독립국가다. 언어와 문화, 사회 관습과 제도가 고유하지 않았던 적이 없다. 국가로서의 정체성은 수천 년이 넘는다. 그러나 명·청시대에 조선이 중국 중심의 질서에 놓여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러다 일제 식민지로 전락해 분단되고, 한국전쟁으로 잿더미 빈국으로 전락했다. 한국은 이제 그런 약소국이 아니다. 경제와 군사를 비롯한 하드파워와 전 세계가 K컬처에 열광하는 소프트파워까지 갖춘 나라다. 그 의미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국제 외교 무대에선 미들파워로 분류된다. 주요 8개국(G8)으로도 꼽힌다.

10년 전쯤 제주포럼에서의 경험이다. 호주의 전직 총리와 전문가들로부터 “한국은 미들파워”라는 얘기를 처음 듣고 귀를 의심했다. 주변 열강에 늘 당했던 탓에 스스로를 약소국으로 낮춰 잡는 버릇 때문이었다. 그러나 밖에서는 한국을 그렇게 보지 않는다. 오히려 “미들파워에 걸맞은 역할과 책임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런 주문에 맞춰 한국부터 달라져야 한다. 여전히 중국을 종주국처럼 여기는 조선시대 사대주의에 사로잡혀 있다면 벗어나야 한다. 중국은 한국이 구한말 위안스카이가 휘젓던 약소국이 아님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은 나라의 크기와 관계없이, 내정간섭 없이 자국의 책임 아래 경제 및 외교정책을 결정하는 시대라는 것은 굳이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안타까운 것은 국내 일각의 정치인들이다. 이 와중에 중국을 비공개 방문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은 “한·중 관계 악화는 미국 때문”이라는 얘기를 듣고 돌아왔다. 물론 이들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중국 측에 “충분히 항의했다”고 했지만 중국의 일방적 주장을 당당하게 반박했다는 얘기는 들려오지 않는다. 더구나 세계가 우려하는 인권 탄압 논란에도 티베트까지 방문했으니 정의와 공정, 소수자 보호를 핵심 가치로 내거는 민주당의 활동과 부합하는지 의문이다.

 

한국은 미들파워에 걸맞게 행동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의 운명은 스스로 결정한다는 점은 명백히 밝혀야 한다. 한국이 최근 미·일과 협력 폭을 넓히는 것은 경제 및 안보 이익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한한령과 보조금 차별로 한국 기업의 중국 투자 및 경제활동을 크게 위축시켰다. 중국 제조업의 비약적 경쟁력 강화와 함께 중국이 국산품 애국주의로 자국 제품을 선호하는 것도 한국의 대(對)중국 수출을 약화하는 배경이다.

 

물론 우리 정부는 중국과의 우호협력을 다져나가야 한다. 지리적으로 일본과 함께 가장 가깝고 미국과 함께 중국은 한국의 최대 시장이라는 점에서 당연히 잘 지내야 한다. 중국 외교관을 만나 보면 “한·미 동맹을 강화하더라도 한·중 관계를 배려하고 관계를 증진해 나가야 한다”고 한다. 다만 중국을 배려하는 선을 어디에 그어야 하는지는 오롯이 한국이 결정해야 한다. 중국 잣대로 재단하면 그게 내정간섭이 된다.

 

관성대로 한국을 길들이려는 중국을 상대할 때 우리 스스로 낮추고 움츠러들면 패착이 된다. 중국은 높은 봉우리라면서 거듭 ‘혼밥’을 했던 문재인 전 대통령과 달리 윤석열 대통령이 엄중하게 문제를 지적하자 중국 측은 한·중 관계 악화를 원치 않는다고 했다. 미들파워에 걸맞은 자세를 보일 때 존중받을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하고 있다.

중앙일보 김동호 경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