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主國防 2023-06/
06.01(목) “위성체·엔진이 핵심… 잔해 찾으면 北수준 알 수 있다”
특수전 잠수팀 투입해 수색 확대

▲북한이 지난달 31일 북한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새발사장에서 쏜 첫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를 실은 위성운반로켓 '천리마 1형'의 발사 장면을 1일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했다. 이 로켓은 엔진 고장으로 서해에 추락했다. 북한 국가우주개발국은 발사 후 2시간 30여분 만에 실패를 공식 인정했다./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군은 31일 북한이 군사정찰위성이라고 주장한 발사체가 서해상에 떨어진 지 1시간 만에 발사체 일부를 인양하는 데 성공했다. 군이 북한 발사체를 인양한 적은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러나 통상 수일이 걸렸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빨랐다. 인양 물체는 발사체 1단 또는 2단 부위로 추정됐다. 군은 인근 해역에 ‘위성체’ ‘추진 엔진’ 등 다른 핵심 물체가 있을 가능성도 있어 해군 특수전 전단 잠수팀 등을 투입해 수색·인양 작전을 확대하고 있다. 이런 주요 구성품이 추가로 인양될 경우 북한의 인공위성, 장거리 탄도미사일 기술력에 대한 정보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北 발사체 잔해에 ‘점검문 13’ 붉은 글씨 - 북한이 31일 ‘군사 정찰위성’이라 주장하는 발사체 1발을 남쪽으로 발사했지만 예고된 낙하 지점에 도달하지 못하고 추락했다. 우리 군은 낙하 1시간여 만에 군산 어청도 서쪽 200㎞ 해상에서 발사체 일부로 추정되는 원통형 물체를 인양했다고 밝혔다. 합참이 공개한 사진(아래 사진)을 보면 이 물체의 하얀색 외벽에 붉은색으로 ‘점검문-13(기구조립)’이라 적혀있는데 군은 1단 로켓과 2단 로켓 사이 원통형 연결단으로 추정했다. /합동참모본부
군이 이날 인양한 물체는 직경 약 3m 원통형으로 발견 당시 물에 떠 있는 상태였다. 이번 발사체의 1단 로켓과 2단 로켓 사이 원통형 연결단인 것으로 추정됐다. 물체 표면에는 빨간색으로 ‘점검문-13(기구조립)’이란 글자가 적힌 창문 형태 개폐구가 있었다. ‘점검문’은 북한이 열병식 등에서 공개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단 이음매 부위에서도 식별된 것으로, 각 단의 결합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외부에서 내부를 들여다볼 목적으로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군은 이날 인양한 물체는 육지로 옮겨 군사 연구소 등에서 한미 공조하에 정밀 분석을 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이번 발사의 실패 원인, 결함 사항도 찾아낼 계획이다. 이와 함께 북한이 ‘만리경’이라고 명명한 위성체나 추진 엔진 잔해 등이 인근 해역에 있을 것이라고 보고 추가 수색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 군이 북한의 인공위성 물체를 확보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잔해물을 분석하면 이번 발사체의 전체 크기를 비롯해 액체 또는 고체연료를 사용했는지, 발사체·인공위성 기술력은 어느 정도 수준인지 등 각종 사항을 파악할 수 있다”면서 “각 부품이 순수 북한 기술로 제작됐는지 중국이나 러시아 부품이 들어가진 않았는지 등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군은 북한이 지난 29일 위성 발사를 예고한 직후 경계 태세를 강화하며 각종 비상 상황에 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군 관계자는 “북 발사체가 궤도에서 벗어나 위험 영역으로 진입할 때 요격하거나 발사체 일부가 서해 또는 남해상에 떨어질 경우 잔해물 수거 작전을 하는 등 여러 상황을 가정해 이에 맞춘 대응 조치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군은 이날 북한 발사체가 예고된 낙하 지점에 도달하기 전 레이더에서 갑자기 사라지자 즉각 다른 정보 자산을 통해 추락 지점을 추적했다. 합참은 한미 정보 자산을 통해 발사체가 전북 군산 어청도 서쪽 200여㎞ 해상에 떨어진 것을 확인해 인양 작전팀을 급파했다. 군은 낙하 지점이 한국과 중국의 중간 해역인 ‘한중 잠정 조치 수역’인 점을 고려해 함정 여러 척을 보내 중국 측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잠정 조치 수역은 서해에서 한국과 중국 어선에 한해 신고 없이 자유롭게 조업할 수 있도록 허용된 수역을 말한다.
서해 해안에서 경계 작전 중이던 해군 병력은 낙하 추정 지역으로 신속히 이동해 오전 8시 5분쯤 북한 발사체 일부로 추정되는 물체를 발견했다. 지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속초 인근 동해상에 떨어진 북한 미사일 잔해를 찾는 데만 나흘이 걸렸지만 이번에는 발사 당일 즉각 인양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06.01 北이 정찰위성 띄워도 요격하고 납치한다, 베일 싸인 美우주군 정체
미·중·러, 적국 스파이 위성에
모니터·통신 교란·불능화는 기본
물리적 파괴 없이 낚아채
‘위성 묘지 궤도’ 끌고 갈 수도

▲유럽우주국이 2026년 우주 파편 제거를 목적으로 발사하는 스위스 민간기업 스페이스클리어런스의 청소 위성은 타깃을 촉수로 포획해서 대기권을 끌고 간다./ESA
북한은 31일 발사한 군사정찰위성의 발사가 “운반로켓인 ‘천리마-1형’의 2단 엔진 결함으로 인해 실패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로켓 발사와 위성의 궤도 안착이 성공했다고 해도, 안정적인 운용은 결코 보장되지 않는다.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은 유사 시 적국(敵國) 위성을 위성파괴(ASAT) 미사일과 레이저 등의 무기로 파괴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이버 및 전자 장비를 탑재한 위성을 띄워 적국 위성과 지상국 간 통신 교란, 정보 빼내기, 심지어 적국 위성을 하이재킹(hijacking)해 자국에게 유리하게 활용하는 공격 수단을 확보해 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미국과 유럽, 일본의 민간 기업들이 개발한, 우주 쓰레기를 청소하고 기존 위성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서비스 위성’들도 공격 무기와 마찬가지로 타깃 위성에 도킹해 작업한다는 점에서 ‘킬러 위성’의 기술적 요건을 갖췄다.
1967년 우주조약(The Outer Space Treaty)는 우주에 핵무기나 대량살상 무기를 배치하는 것을 금하고 평화적 이용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이미 상당히 진행된 우주의 군사화, 무기화를 막는 국제법은 아직 없다.
◇비밀에 싸인 미ㆍ중 무인 우주왕복선
5월 8일, 재사용이 가능한 중국의 무인 우주왕복선이 지구 궤도를 276일 동안 날고 북서부 주치안(酒泉) 위성발사센터에 착륙했다.
저궤도(고도 200~2000㎞)에 존재하는 위성과 우주 파편을 추적하는 미국의 민간 모니터링 기업인 레오랩스(LeoLabs)는 이 중국 우주왕복선이 적의 우주기반 자산을 감시하고 교란,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했다. “선별적으로 상대 위성에 접근해 정보 수집 능력을 차단하거나 수집된 정보를 가로채고 전자적인 방법으로 고장 내고 물리적으로 불능화하는 로봇팔이나 투사체를 발사하는 기능을 갖췄다”는 것이다. 중국은 이 무인 왕복선에 대해 일체의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

▲작년 11월 사상 최장인 908일간 우주를 비행하고 미 플로리다주의 케이프 커내버럴 우주군 기지에 착륙한 미 무인 우주왕복선 X-37B. 적국의 위성 제거ㆍ포획이 목적이라는 소문에도, 임무는 극비 사항이다./미 공군
한편 중국의 무인 왕복선이 모방한, 미 우주군의 X-37B는 작년 11월 5일 사상 최장인 908일 간 우주를 비행하고 미국 플로리다주의 케이프 커내버럴 우주군 기지에 착륙했다. X-37B는 고도 177~805㎞의 저궤도를 날았다. 크기는 길이 8.8m에, 날개폭 4.6m로 매우 작아, 지금은 퇴역한 미 우주왕복선(37X24m) 화물칸에 2대가 동시에 탑재될 수 있다. X-37B의 임무도 위성을 제거ㆍ포획하는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하지만, 임무는 극비(極秘)다. 미 국방부는 미래 우주비행물체 기술을 테스트하고 과학 실험을 하는 것이라고만 밝혔다.
◇미ㆍ중ㆍ러ㆍ인도 모두 지상에서 위성 파괴 성공
2021년 11월15일 러시아는 지상에서 위성파괴 미사일을 발사해서, 고도 480~500㎞에 있던 자국의 망가진 정찰위성 코스모스 1408호를 파괴했다. 약 2톤짜리 위성이 파괴되면서, 수천 개의 파편이 발생했다. 초속 7㎞로 나는 파편 피해에 대비해 400㎞ 고도에 있던 국제우주정거장(ISS)의 우주인 7명은 모두 도킹된 ‘소유즈’ 캡슐로 피해야 했다.
이에 앞서, 중국은 2007년 1월 11일 시창(西昌) 우주발사센터에서 미사일을 발사해 고도 863㎞에 있던 중국의 첫번째 기상 위성인 펑윈(風雲)-1C 위성을 파괴했다. 지상에서 발사한 미사일은 탄도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 이 고장 난 위성에 충돌했다.

▲1985년 9월13일 미 공군의 F-15A 전투기가 위성파괴 미사일을 발사하는 장면. 547 ㎞ 고도의 자국 위성을 파괴하는 데 성공했다./미 공군
그러나 ASAT 무기의 시초는 미국이다. 미국은 1985년 9월 F-15 전투기가 11.6㎞ 상공까지 올라가 위성파괴 미사일(ASM-135 ASAT)를 발사해, 미 감마선 분광위성 솔윈드(Solwind) P78-1를 파괴했다. 미국은 2008년 1월에는 해군 전함에서 변형된 SM-3 미사일로 오(誤)작동하는 국방부 산하 국가정찰국(NRO) 위성인 USA-193호를 파괴했다. 이밖에 인도도 2019년 3월에 지상에서 미사일을 쏴서 위성을 파괴하는 데 성공했다.
한편 지난달 20일 누출된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한 보고서는 중국이 사이버 무기를 동원해서 상대 위성의 임무 수행 능력을 거부하고, 오히려 자국에게 유리하게 활용하는 기술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상대 위성에 대해 지상국에서 보내는 것과 비슷한 시그널을 보내 위성을 속여 완전히 접수하거나, 전쟁 상황에서 오작동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중국 신장의 쿠얼러 시에 위치한 군 기지에는 지상에서 위성을 요격할 수 있는 최소 2개의 레이저 무기가 배치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미국이 적국 위성을 이렇게 자국에게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정찰 위성들 간에 숨바꼭질 벌여
작년 6월, 지구에서 3만6000㎞ 떨어진 정지궤도(GEO)에선 미국과 중국 위성들 간에 수십 ㎞의 고도를 오르내리는 숨바꼭질이 벌어졌다. 미국의 스파이 위성인 USA 270호는 2021년 말 중국이 발사한 비밀에 싸인 쌍둥이 위성 스옌 12-01과 12-02호에 접근했다. 그러자 중국의 두 위성은 슬쩍 자리를 옮겼고, 스옌 12-02호는 태양 빛을 등지는 위치로 이동해 오히려 UASA 270을 관찰했다. 반대로 USA 270은 태양을 등진 스옌 12-02를 관찰할 수 없었다.

▲미국 스파이 위성 USA 270호(노란색)과 중국 쌍둥이 위성 스옌 12-01과 12-02호가 작년 6월 우주에서 벌인 숨바꼭질 기동을 재연한 컴퓨터 그래픽/COMSPOC
작년 8월1일 러시아는 스파이 위성 코스모스 2558호를, 미국 스파이 위성 USA 326호와 동일한 궤도로 발사했다. 이 위성은 수일 뒤에 USA 326호에 바짝 붙어 미국 위성의 기능과 임무를 파악했다. 현재 우주 관련 국제법규에는 위성 간에 어느 정도의 ‘안전 거리’를 둬야 하는지, 기동(機動) 중에 너무 가까워지면 어느 쪽이 먼저 이동해야 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에티켓’ 규범도 없다.
◇청소ㆍ서비스하는 위성들, 로봇팔로 적 위성 낚아채 예인 가능
유럽우주국(ESA) 집계에 따르면, 현재 지구 궤도에 날아다니는 우주 파편은 10㎝ 이상만 3만6500여 개, 1~10㎝ 크기는 100만 개, 1㎝ 이하는 1억3000만 여개에 달한다. 1957년 우주 탐사가 시작한 이래 6380여 건의 로켓 발사(실패는 제외)가 이뤄지면서, 우주에 버려진 로켓 동체와 엔진 잔해들, 고장 난 위성들이다. 또 25%는 ASAT 무기 실험이 쏟아낸 파편들이다.
그래서 우주 선진국들과 민간 우주기업들은 우주 파편을 제거하거나, 연료가 바닥난 위성에 연료를 주입해 수명을 연장시키는 서비스 위성을 개발했다.
작년 1월 22일 중국의 SJ-21 위성은 고장 난 자국의 베이더우(北斗) 위성을 로봇팔로 잡아 GEO 밖 3000㎞ 떨어진 ‘위성 묘지’ 구역으로 끌고 갔다. 그런가 하면, 2020년 2월 미국의 우주ㆍ방산(防産) 기업 노스롭 그루먼 사의 위성 MEV-1은 수명이 다 한 민간 통신위성인 인텔샛 901호와 도킹하고 연료를 주입해 5년 수명을 연장시켰다. 그 뒤에는 다시 접근해, 인텔샛 901호를 ‘위성 묘지’로 끌고 가게 된다.
유럽우주국과 8600만 유로짜리 우주 청소 계약을 맺고, 2026년 발사되는 스위스의 민간 기업 클리어스페이스가 제작한 클리어스페이스-1 추적 위성은 4개의 촉수(tentacle)를 갖고 있다. 500㎞ 고도에서 사출되면, 고도를 660~800㎞까지 끌어올려 과거 ESA의 베가 로켓에서 떨어져 나간 2단 탑재물 어댑터를 포획해서 끌어안고 대기권으로 진입해 불에 타 소멸한다.
일본 도쿄의 우주파편 제거 기업인 애스트로스케일(Astroscale)도 작년 9월 26일 영국우주국(UKSA)으로부터 170만 파운드의 지원을 받았다. 애스트로스케일의 ‘코스믹’ 미션도 2026년까지 발사돼, 강력한 자석이 딸린 로봇팔로 수명이 끝난 영국 위성 2개를 포획해 제거한다.

▲일본의 우주기업 애스트로스케일은 2021년 8월 궤도 상에서 타깃 위성을 포획했다가 다시 놓아주는 기동을 성공적으로 선보였다. /애스트로스케일
이들 서비스 위성은 기존 위성의 수명을 연장하고 우주 쓰레기로 변한 고장 난 위성을 제거하고,도킹해서 위성의 상태를 검사ㆍ수리할 수 있지만, 이는 킬러 위성에서도 사용될 수 있는 민ㆍ군 겸용 기술이다.
조선일보 이철민 국제 전문기자
06.01 김정은 '도박' 한판에…아사 직전 北주민 '10년 식량비' 날렸다
북한이 31일 시도한 정찰위성 발사가 실패하면서 이미 아사(餓死) 위기에 처한 북한 주민들이 앞으로도 10년간 계속 굶주림에 내몰리게 됐다.
김정은이 벌인 무모한 ‘도박’ 한 판과 북한 주민들의 생존권을 맞바꾼 셈이다.
북한이 신형 발사체인 ‘천리마 1형’과 군사용 정찰위성이라고 주장하는 ‘만리경 1형’을 만들기 위해 어느 정도의 자금을 쏟아부었는지는 정확히 추산하기 어렵다. 다만 이를 간접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근거는 있다.
정부는 최근 발사에 성공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 개발을 위해 지난 12년 3개월간 2만여 명을 투입했다. 여기에 들어간 공식 예산은 1조 9572억원(14억 9290만 달러)이다. 또 누리호 발사 성공에 이어 오는 11월을 목표로 정찰위성 1호기를 발사할 계획이다. 고성능 영상레이더(SAR)가 탑재된 위성 4기와 전자광학(EO)ㆍ적외선(IR) 탑재 위성 1기 등 정찰위성 5기를 확보하는 이 사업에 투입된 예산은 1조2000억원(9억1533만 달러)이다.
두 사업 예산의 단순 합계는 3조1572억원(24억823억 달러)에 달한다.

▲북한은 지난달 1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하에 고체연료를 사용한 새로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포-18형(화성-18형)'을 발사했다고 14일 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신문은 시험발사를 통해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보다 군사적 효용성이 큰 위력적인 전략적 공격수단으로 된다는 담보와 신뢰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라고 밝혔다.뉴스1
첨단 기술의 보유 수준이나 사회ㆍ경제 체제, 정부의 지원 방식, 경제적 인프라, 인건비 등 모든 면에서 남북이 극단적 차이가 있지만, 자체 개발한 발사체와 위성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해당 두 사업은 이번에 북한이 도발에 동원한 체계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그런데 3조원이 넘는 예산은 북한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한국의 경제 수준을 감안해도 부담인 돈이다. 사실상 무임금으로 인력을 운용할 수 있어 한국보다 훨씬 적은 비용이 들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경제 수준이 현저하게 낮은 북한에게 이만한 돈은 국가 전체를 휘청이게 할 정도의 부담이 될 수 있다.
특히 북한은 현재 극심한 식량난에 허덕이고 있다. 미국 농무부가 발간한 ‘세계 식량안보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식량 부족분은 121만t에 달했다. 미 농무부는 앞으로도 북한이 매년 평균 80만t가량의 식량 부족 상황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했다.
북한이 80만t의 식량을 해외에서 사들일 경우 매년 3647억원(2억7800만 달러)이 필요하다. 서해 상에 추락하면서 공중에 날려버린 천리마ㆍ만리경을 만드는 데 투입된 자금으로 식량을 샀다면 최소한 향후 10년간 발생할 북한 주민들의 굶주림을 모두 해결할 수 있었다는 의미가 된다.
북한은 이미 지난해 이어진 무차별 도발로 막대한 자금을 썼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에 따르면 북한이 지난해 1년간 발사했던 73발의 탄도미사일에 쓴 비용은 7200억원(약 5억6000만 달러)에 달한다. 지난해 북한의 1년 치 식량 부족분 120만t을 사고도 남는 돈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사실상 7차 핵실험을 예고한 상태다. 역시 KIDA가 추산한 자료에 따르면 이미 지난 6차례의 핵실험 과정에서 최소 11억~16억 달러의 돈을 썼고, 추가 핵실험에 또 어느 정도의 돈을 투입할지는 추정하기 어렵다.
정부 당국자는 이와 관련 “핵실험을 위해선 핵실험 자체에 투입되는 자금뿐만 아니라 핵시설을 유지ㆍ관리하는 비용 역시 어마어마하게 투입된다”며 “북한이 핵ㆍ미사일을 ‘보검’으로 여기고 있지만, 경제적 관점에선 북한 정권을 오히려 옥죄는 구조”라고 말했다.
북한은 여기에 이번에 실패한 정찰위성과 관련 “부분 시험들을 거쳐 가급적 빠른 기간 내에 제2차 발사를 단행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도 또다시 막대한 자금이 들어간다.
임을출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대륙간탄도미사일과 핵기술을 보유하더라도 정찰위성이 없다면 사실상 무용지물에 가깝다는 점에서 북한 정권이 기간을 최소한으로 줄여 제2차 발사를 감행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김정은 정권이 이번 위성 발사를 경제적 어려움에 따른 민심 이반을 막기 위한 정치 선동의 측면에서도 활용해왔기 때문에 극심한 경제난과 무관하게 또다시 돈을 들여 발사를 강행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06-03 우리의 핵무기 제조 능력은 어느 정도인가

23년 전 무기급 우라늄 농축 성공, 기술력 높아
단기 핵무장 가능하나 경제·외교 부담 살펴야
日처럼 핵 개발 잠재력은 끌어올려 놔야 한다
국제법 질서는 상호주의에 따라 ‘핵에는 핵’이 답이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로마의 격언은 3차 세계대전 억제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 배경엔 ‘상호확증파괴’ 전략이 있었다. 압도적 군비 증강을 통해 상대국에 두려움을 심어줌으로써 전쟁을 예방한다는 개념이다. 북한의 핵 위협에 “서울을 치면 평양도 사라진다”고 새겨줘야 감히 남침하지 못할 것이다. 양측의 힘이 비등하지 않는 한 평화는 춘몽이다.
한국과 같이 북핵 위협에 놓인 일본은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가. 일본은 현재 핵탄두 6000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 50t을 이미 추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핵국가 중 보유량이 최대 규모이고, 기술력도 최고 수준이다. 동북아에 핵무장 경쟁이 벌어질 경우, 우리는 플루토늄도 추출하고 우라늄도 농축해야 하지만, 일본은 그 단계를 건너뛸 수 있다. 1994년 영변 핵위기 당시 일본 구마가이 히로시 관방장관은 “기술적으로는 3개월이면 핵무기 개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북핵 위협이 고도화되면서 독자 핵무장도 공론화되고 있다. 국내 핵 보유 지지 여론은 지난 10년간 60∼70%대로 유지돼 왔는데, 최근 77%까지 올랐다는 조사 결과도 발표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4월 워싱턴 방문 때 “대한민국은 핵무장을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빠른 시일 내에, 심지어 1년 내에도 핵무장을 할 수 있는 기술 기반을 갖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제는 핵 보유에 따른 비용 대비 이익, 위험 대비 기회 등에 대해서도 숙의해야 할 때다. 핵 보유 지지 여론은 높지만 핵 보유에 따른 정치적 부담과 외교적 책임에 대한 논의도 점화해야 할 것이다.
그럼 우리의 핵무기 제조 능력은 어느 정도인가. 앞서 2000년 원자력연구소 레이저연구팀은 특수금속에 이어 우라늄 농축을 실험했다. 첫 실험에서는 농축도가 12%였지만 추가 실험에서 농축도가 77∼90%로 올라 무기급 수준을 달성했다. 당시 농축 우라늄의 양은 0.2g에 지나지 않았지만 완벽하게 성공했다는 데 의의가 있었다. 시간과 재원만 확보하면 핵무기를 양산할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당시 실험 장비는 우리 기술로 직접 제작한 것이어서 우라늄 농축 성공에 버금가는 성과였다. 아쉽게도 당시 실험 장비는 모두 해체됐지만, 기술과 자료는 남아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나라는 단기간에 핵무장을 할 수 있는 기술적, 재정적 역량이 충분한 국가다.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추출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특히 레이저 우라늄 농축 기술은 세계가 괄목할 경지에 있다. 또한 핵 개발을 위한 고폭, 기폭, 유도장치 등 기술을 상당 수준 보유하고 있으며, 플루토늄탄의 경우 슈퍼컴퓨터와 인공지능을 이용한 가상실험을 통해 핵실험을 대체할 수 있다. 우라늄탄은 핵실험이 아예 필요 없다. 국내에 있는 사용후핵연료에는 플루토늄이 있으며 순도를 높인다면 핵무기로 사용 가능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핵위협으로 5대 핵보유국(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에 의한 국제안보 체제가 다시 흔들리고 있다. 북한의 핵 법령화와 지속적인 핵보유국 선포는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원초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특히 북핵은 이미 상당 기술을 확보했다. 북한은 기술적으로 볼 때 핵실험을 해야 할 어떤 이유도 없다. 이미 소형화, 경량화를 마치고 50기 넘게 실전 배치량을 늘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기 위해 또다시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한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 발전에도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작금의 북핵 위기를 결코 미래 세대에 물려줘선 안 된다.
더 늦기 전에 정부는 핵무기 생산의 소요 기간과 비용, 필요 인력과 유관 기관 등을 사전에 적확하게 파악해 둘 필요가 있다. 한국이 핵무장을 결정했을 경우 예상되는 국제사회의 반응, 국민이 감내해야 할 경제 사회 심리적 부담, NPT와 한미 군사동맹 등 외교 군사 안보적 현안 등도 엄정히 중립적으로 검토할 것을 제안한다.
확장억제의 전략이냐, 확증파괴의 균형이냐. 미국 핵 자산만 바라다볼 게 아니라 한국 자구책도 더불어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미국의 ‘전략적 인내’에 편승하다가는 뉴욕을 구하러 서울을 떠나는 미군을 보면서 만시지탄 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유사시에 대비해 최소한 일본만큼은 핵 개발 잠재력을 끌어올려 놔야 할 것이다.
동아일보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명예교수
월간조선 06월 호
강원 홍천 6·25 전사자 유해 발굴 현장에 가다
그들을 조국의 품으로!
⊙ “이곳은 70여 년 전 선배 전우들이 목숨을 걸고 오르내린 전투 현장”
⊙ 6·25 전사자·실종자 미수습 유해 13만5000구
⊙ 국군유해발굴감식단 복무하는 병사들은 모두 지원병
⊙ “선배들의 흔적을 하나라도 더 찾으려고 노력… 사명감 하나로 임하고 있다”
⊙ 국유단, 국군 전사자 유해 1만1313건 발굴… 신원 확인은 209건(1.84%)
⊙ 다부동에서 발견된 국군 전사자의 삼각자, 〈태극기 휘날리며〉 모티브 돼
⊙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전사자 유해발굴감식 전문부대 운영

▲백마고지 같은 참호에서 발굴된 고 김용일(왼쪽) 이등중사와 고 편귀만 하사. 이 둘은 어두캄캄한 땅속에서 70년을 함께했다. 사진=국방부
총 대신 삽과 붓을 들고 흙먼지를 들이마시며 땅을 파헤치는 군인들이 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 단장 이근원) 소속 장병들이다. 이들은 70여 년 전 자유대한민국을 위해 전사(戰死)했으나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한 선배 전우를 찾기 위해 격전이 벌어졌던 고지(高地)를 찾아다닌다.
6·25전쟁 당시 국군 전사자 수는 13만7899명. 이 중 유해가 수습돼 현충원에 안장된 수는 2만9202위. 정전(停戰) 직후 실종자를 포함해 수습되지 않은 유해는 약 13만5000구이다.

▲2013년 6월 21일 강원도 인제군 광치령 인근에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장병이 도솔산 전투에서 전사한 국군 추정 유해를 발굴하고 있다. 완전 유해이다. 사진=조선DB
6·25전쟁 초기 국군은 전사자에 대한 장례 절차나 시신 처리 지침이 없었다. 1950년 9월이 돼서야 육군 병참단에 ‘묘지등록대’를 만들고는 ‘화장(火葬) 트레일러’를 도입해 전사자 시신을 화장하기 시작했다. 전투 현장에서는 모든 유해를 화장할 수 없었기에 주로 임시 매장(埋葬)을 했다.
전황이 호전되면 화장한 유해를 본가로 봉송하거나 부산 동래 범어사나 금정사에 안치했다. 본가로 돌아간 유해의 수는 관련 기록이 없어 확인조차 할 수 없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후인 1953년 10월에는 대구시립박물관을 중앙봉안소로 개조해 범어사·금정사의 영현(英顯)을 안치했다. 1956년 국군묘지(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를 조성하고 대구 중앙봉안소에 있던 영현을 동작동에 안장했다.
3년짜리 限時 사업으로 시작

▲2022년 12월 20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6·25 전사자 발굴 유해 5위의 합동 안장식이 열렸다. 고 김용일 이등중사, 송병선 하사, 편귀만 하사, 장기수 일병, 정준언 일병의 영현이 봉송되고 있다. 사진=조선DB
‘6·25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이하 유해발굴사업)’은 2000년 ‘6·25전쟁 50주년 기념사업’ 중 하나로 육군본부가 3년간 실시하는 한시(限時) 과제(29개 지역 발굴)로 출발했다. 유해발굴사업이 성과를 내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자 2003년 7월 정부는 6·25 전사자 유해 발굴을 영구(永久) 사업으로 결정했다. 2004년 4월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에 유해발굴과를 설치했고 2007년 1월에는 기존 조직을 확대 발전시켜 국방부 직속 유해발굴감식단을 창설했다.
국유단은 유해발굴사업을 시작한 2000년 이래 지난해까지 유해 총 1만3121구(국군 1만1313구, 유엔군 32구, 북한군 773구, 중공군 1003구)를 발굴했다. 현재까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발굴한 국군 전사자 유해 중 신원이 확인된 전사자는 209명(2023년 4월 기준)이다.

▲2011년 6월 22일 오후 강원 양구군 ‘피의 능선’에서 발견된 국군 전사자 유해. 두개골 오른쪽에 구멍이 나 있다. 사진=조선DB
대구에서 북쪽으로 약 22km 떨어진 경북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 국군 제1사단(사단장 백선엽)이 낙동강 방어선을 지키기 위해 북한군 3개 사단과 맞섰던 다부동 전투(1950년 8월 1일~9월 24일)가 벌어진 곳이다. 55일간 치러진 이 전투에서 아군 1만여 명이 전·사상 피해를 보았다.
국군이 다부동에서 결사항전한 이유는 이 지역을 적에게 내주면 대구가 위험해지기 때문이었다. 다부동을 빼앗기면 지형상 아군은 남쪽으로 10km를 후퇴해 방어선을 펴야 했다. 이렇게 되면 대구가 적 화포 사정권에 들어갔다. 다행히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을 유지한 덕분에 인천상륙작전(1950년 9월 15일)이 성공했고 이후 북진의 계기가 마련됐다.
2000년 4월 13일 칠곡 다부리에선 6·25전쟁 당시 전사한 국군으로 추정되는 백골이 웅크린 모습으로 발견됐다. 6·25 전사자 유해발굴사업 1호 유해였다. 유해와 함께 호루라기, 빗, 만년필, 몽당연필, 삼각자가 나왔다. 사지는 뒤엉켜 형태를 분간하기 어려웠다. 낡을 대로 낡아 헐거워진 군화 속에는 발가락뼈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소련제 TT 권총 탄알이 발견됐고 두개골은 부서진 채 널브러져 있었다. 무릎 꿇린 채 적에게 확인 사살당한 유해였다.
노란 삼각자에 쓰인 세 글자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모티브가 된 최승갑 하사의 삼각자 유품. 사진=조선DB
손바닥 크기의 노란색 삼각자에는 세필(細筆)로 최승갑(崔承甲)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50년 만에 빛을 본 백골은 17연대 소속 고(故) 최승갑(1924년생, 전사 당시 26세) 하사였다. 최 하사는 국군 수도사단(현 수도기계화보병사단, 맹호부대)에 배속돼 다부동 전투의 한 국면(局面)인 ‘369고지 전투(1950년 8월 6~12일)’에 투입되었다. 1956년 최 하사 유족은 최 하사의 유해를 찾지도 못한 채 전사 통보를 받았다.
369고지에서 유해가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고 최 하사의 아내 엄정호(당시 75세)씨가 유해 발굴 현장으로 왔다. 아내는 유품인 호루라기를 쥐고는 “(전쟁 나기 일주일 전에) 휴가 올 때 차고 나왔다”고 했다. 유골을 감싼 한지(韓紙)를 펼치자 남편의 조각난 두개골이 드러났다. 엄씨는 서글프게 눈물을 흘리면서도 “이제라도 만나서 다행이다. 백골이라도 봐서 좋다. 좋은 데로 가시라”고 했다.
최 하사의 신원을 확인하는 데는 ‘슈퍼임포즈(superimpose) 기법’이 동원됐다. 엑스레이를 이용해 유해를 3차원 입체 분석으로 재구성한 뒤 유해와 함께 출토된 유품, 유해의 해부학적 특성, 가족 증언, 전사자의 생전(生前) 사진 등과 비교해 신원을 확인하는 기술이다. 최 하사의 남동생이 보관하고 있던 최 하사 사진과 369고지에서 발굴한 최 하사의 아래턱뼈를 대조해 동일인임을 확인했다. 50년 만에 사랑하는 아내 품에 안긴 최 하사는 2000년 7월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최승갑 하사의 사연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2004)의 모티브가 됐다. 최승갑 하사의 삼각자는 영화에서 동생(원빈)의 이름이 적힌 형(장동건)의 만년필로 각색됐다.
61년 만에 재회한 형제

▲국립서울현충원에 함께 잠든 호국 형제 고 이만우 하사와 이천우 이등중사. 사진=국방부
고 이만우(1929년생) 하사와 고 이천우(1933년생) 이등중사는 형제다. 경북 청도가 고향이다. 낙동강 전투가 한창이던 1950년 8월 27일 형 이만우 하사는 고향을 떠나 대구에서 입대했다. 한 달 뒤인 9월 22일 동생도 홀어머니를 남겨두고는 대구로 달려가 자원입대해 북진 대열에 합류했다.
형은 국군 1사단에 배속돼 다부동 반격 작전에 이어 서울수복 작전에 투입됐다. 국군 7사단에 배속된 동생 이천우 이등중사도 서울수복 작전에 참가했다. 형제는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평양탈환 작전에도 함께 나섰다. 당시 국군 1사단과 7사단은 평양 입성을 두고 선두 경쟁을 벌였다. 평양을 점령한 1사단은 압록강을 향해 진격하며 운산 전투를, 7사단은 평양 북동쪽으로 진출하며 개천·덕천 전투를 치렀다.
하지만 중공군이 개입하자 1사단은 평북 박천을 거쳐 사리원으로 후퇴한 뒤 임진강에서 재반격을 시도했다. 중공군의 춘계 대공세가 벌어지자 형 이만우 하사는 수세(守勢) 국면에서 용전분투(勇戰奮鬪)했지만 1951년 5월 7일 봉일천 전투(경기 고양)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동생이 속한 7사단도 중공군의 공세로 인해 한강 이남 오산~태백선인 강원 영월까지 후퇴했다. 영월지역 전투에서 다친 이천우 이등중사는 치료후 1951년 3월 부대로 복귀했다. 이후 평창 하진부리 전투, 인제 풍암리 전투에서 승리하며 북진을 거듭하던 중 1951년 9월 25일 강원 양구 백석산 전투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형은 전사 직후 시신이 수습돼 현충원에 안장됐지만 동생은 찬서리, 비바람을 맞으며 59년 동안 홀로 남겨져 있었다. 2010년 9월 27일 세상에 다시 등장한 동생은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군화 끈으로 묶은 인식표를 곁에 두고 있었다. 인식표에는 군번과 이름(0154595 LEE CHUNWOO)이 각인돼 있었다. 국유단은 유일한 식별 표식인 군번과 이름을 바탕으로 유족을 찾아냈다. 친조카의 DNA를 확보해 대조한 뒤 유해가 이천우 이등중사임을 확인했다.
형제는 용감했다. 화랑무공훈장을 형은 한 번, 동생은 두 번이나 받았다. 형은 입대 후 전사할 때까지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1500km를, 동생은 1900km를 걷고 뛰었다. 형제는 헤어진 지 61년 만인 2011년 6월 재회했고 호국(護國)의 형제로 지정돼 국립서울현충원에 나란히 안장됐다.
DMZ 발굴할 유해 많아
6·25 전사자 유해 발굴은 산 정상이나 고지, 능선 등 격전이 벌어졌던 곳에서 이뤄진다. 주로 아군(국군·유엔군)이 패전해 아군 전사자 시신을 미처 수습하지 못한 곳들이다. 개발이 이미 많이 진행된 종심(DMZ 이외 지역) 지역에선 유해 발굴이 쉽지 않다. 반면 비무장지대(DMZ)처럼 개발이 이뤄지지 않아 보존 상태가 양호한 곳은 아직도 발굴할 유해가 많다고 한다.
6·25 전사자 유해 발굴 감식은 크게 ▲발굴 준비 ▲발굴 ▲감식 ▲신원 확인 단계로 나뉜다. 발굴 준비 단계에서는 ①전투기록분석(전쟁사 분석, 전투 흔적 탐색) ②현장 탐사(참전용사 증언 및 주민 제보) ③발굴 지역 선정(발굴 책임 부대 선정 및 발굴 요원 순회교육)이 이뤄진다. 발굴 단계에서는 ④개토식 ⑤발굴 ⑥수습 ⑦약식제례 ⑧임시봉안이 진행된다. 임시봉안된 유해는 국유단 중앙감식소로 이송돼 정밀 감식을 거친다. 이후 국유단이 확보한 전사자 유가족 DNA와 대조하며 신원을 확인한다.
6·25 전사자 유해발굴사업
6·25전쟁 당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으나 미처 수습되지 못한 채 이름 모를 산천에 홀로 남겨진 13만여 호국용사들의 유해를 찾아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는 호국보훈 사업이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이들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국가 무한책임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마지막 한 명까지 거두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유가족 DNA 시료 채취 참여(전사자 신원 확인 시 포상금 1000만원)
채취 대상: 전사자 유해를 찾지 못한 친·외가 8촌 이내 유가족
참여 방법: 보건소, 군병원, 예비군부대, 병무청, 적십자병원,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전화 신청: 1577-5625
준비 서류: 제적등본, 유족증 사본, 전사통지서 사본, 병적증명서 중 택
전사자 유해 소재 제보(제보 시 최고 포상금 70만원)
제보 대상: 6·25전쟁 당시 전사한 국군, 경찰, 학도병, 유엔군 유해
제보 내용: 6·25전쟁 당시 전사자 직접 매장, 목격 또는 들은 내용과 생활 및 각종 공사 중 전사자 추정 유해나 유품에 대해 발견하거나 들은 경우
전화: 1577-5625(오! 6·25)
中共軍 춘계 공세 저지한 홍천 북방 전투

▲강원 홍천 주음치리 일대 6·25 전사자 유해 발굴 현장에 내걸린 현수막. 사진=영상미디어
지난 4월 28일 6·25 전사자 유해 발굴이 한창인 강원 홍천군 화촌면 주음치리를 찾았다. 수도권과 강원 양양을 잇는 서울양양고속도로에서 북쪽으로 약 2km 떨어진 곳이다. 서울 광화문에서 차를 타고 2시간을 가야 한다.
발굴 현장은 가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거친 숨을 내쉬며 산을 탄 끝에 유해 발굴 현장인 ‘무명 560고지’에 올랐다. 고지로 향하는 길목에는 태극기를 배경으로 아래와 같은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은 70여 년 전 선배 전우들이 목숨을 걸고 오르내린 전투 현장입니다.”
72년 전 홍천에서는 국군 5사단과 미 육군 2사단이 중공군의 춘계 대공세(1951년 4~5월)를 저지하기 위해 ‘홍천 북방 전투(1951년 5월 16~18일)’를 치렀다. 당시 중공군은 유엔군을 한반도에서 철수시키겠다는 목표로 서부 전선인 경기 파주에서부터 동부 전선인 양양·고성까지 모든 전선에 걸쳐 총공세를 폈다. 이 과정에서 국군과 미군은 홍천 북서쪽(춘천 남동향) 가리산 부근에서 중공군 제12·15군과 싸우다가 약 10km 떨어진 주음치리까지 후퇴해 방어선을 폈다. 이곳은 유엔군 3차 반격의 초석이 되어준 군사적 요지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을 지낸 남정옥 박사는 “홍천 북방 전투는 중공군의 막대한 인해전술에 맞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 남진을 저지한 전투”라고 했다.
무명 560고지 일대에서는 4월 3일(6주간 실시)부터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과 육군 11기동사단(홍천 주둔) 예하 돌격대대(대대장 이정구 중령) 장병(약 130명)들이 ‘6·25 전사자 유해발굴 작전(이하 작전)’을 시행하고 있었다. 매년 작전이 시작되면 작전 관할 지역 부대와 국유단이 협력해 유해를 발굴한다. 현장에는 야전지휘소 역할을 하는 얼룩무늬 야전텐트 주변으로 노란색 통제선이 곳곳에 쳐져 있었다. 이는 유해가 발견됐다는 표시다.
국유단 한정희 발굴팀장은 이렇게 말했다.
“오늘까지 이 지역에서 유해 총 17구를 발견했습니다. 이 중 12구를 수습했고 완전 유해는 1구입니다. 5구는 확장 노출 조사 중입니다. 유해 발굴은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와 같습니다.”
완전 유해는 머리뼈부터 갈비뼈, 양팔·양다리뼈가 온전히 형태를 보존한 유해를 말한다. 발굴 현장마다 차이는 있지만 유해는 ‘부분 유해’ 형태로 더 많이 발견된다.
부분 유해로 발견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폭발로 인해 신체 일부가 사라지거나 산짐승이 유해를 훼손한 경우다. 전쟁사를 바탕으로 당시 상황을 추정해 화력전이 벌어진 곳은 포격 등으로 인해 신체 일부가 찢겨나갔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회색 뼛조각 하나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장병들은 허벅지뼈(왼쪽 아래)를 최초 발견한 후 경사면을 확장 발굴해 추가 유해를 발견했다. 사진=영상미디어
노란색 통제선 안쪽으로 길이 40cm쯤 돼 보이는 회색 뼛조각 하나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허벅지뼈였다.
70여 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백골을 마주하고 든 생각은 공포감이나 혐오감이 아닌 존경심이었다. 소중한 생명을 조국에 바쳤다는 생각에 숙연해졌다.
허벅지 뼛조각이 발견된 곳에서 대각선 오른쪽 위로 약 5m 떨어진 경사면에선 국유단 소속 유해발굴기록병 3명이 붓을 들고는 추가 발견된 유해와 흙을 털며 ‘확장 노출’을 하고 있었다. 유해가 발견되면 최초 발견 지점을 중심으로 위·아래 2m, 좌우 2m 구역을 추가로 파내는 ‘확장 조사’를 한다. 유해를 발견하면 형태 확인을 위해 유해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노출한다.
한 팀장의 설명이다.
“최초 유해 발견 후 확장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지형을 고려해 평소보다 발굴 범위를 더 넓혔습니다. 덕분에 머리뼈 일부와 오른팔 뼈 일부, 다리뼈가 추가로 발견됐습니다. 최초 발견된 허벅지뼈는 경사면을 타고 흘러내린 것으로 보입니다.”
최초 허벅지뼈가 발견된 후 추가 유해를 발견하기까지 사흘이 걸렸다. 국유단 관계자는 “앞으로 유해를 모두 수습하기까지는 이틀 정도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유해 발굴은 훼손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대한 신중하게 진행된다. 통상 수습에는 부분 유해 3~5일, 완전 유해 7~10일이 걸린다. 유해를 모두 수습하기 전까지는 노출된 유해를 한지로 감싸고 유해 발견 구역을 방수포로 덮는다.
유해가 발견된 곳에서 약 2m 떨어진 곳에 서 있는 나무는 앙상하게 뿌리를 드러내고 있었다. 국유단·돌격대대 장병들이 선배 전우를 찾기 위해 집요하게 흙을 파냈기 때문이다.
100m쯤 떨어진 또 다른 경사면에서는 유해발굴기록병들이 노란색 통제선 안에서 체를 이용해 흙을 거르고 있었다. 노출된 유해를 수습한 뒤 혹시 남아 있을지 모를 추가 유해를 찾기 위해 주변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과정(스크리닝·screening)이다. 손가락·발가락뼈는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아 미처 챙기지 못한 채 유해 수습을 끝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앞서 2010년 유해 발굴 당시 유해 9구와 개인호 약 130개, 전투 유품 등을 발굴한 곳이다. 10년이 흘러 다시 땅을 파니 유해가 추가로 발견되고 있었다.
유해 발굴 따른 포상 등 없어
50m쯤 떨어진 고지에서는 돌격대대 장병 약 30명이 가로로 줄지어 늘어선 뒤 경사면을 따라 기초 발굴을 하고 있었다. 기초 발굴은 삽을 들고 땅을 뒤엎으며 유품이나 유해 흔적을 찾는 과정이다. 돌격대대 장병들이 무언가를 발견하면 전문지식을 갖춘 국유단 장병이 투입된다.
유해발굴기록병인 서지원 병장은 사학을 전공했다. 전공을 살리며 의미 있는 군 생활을 하고자 국유단에 지원했다.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발굴된 전사자 유해가 신원이 확인돼 가족 품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라고 했다. 국유단에서 복무하는 병사들은 모두 지원병이다. 국유단 전체 인원 약 300명 중 약 160명(유해발굴기록병·유해발굴감식병·영현병)을 차지한다.
돌격대대 장병들이 지나간 곳은 낙엽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뿌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나무와 흙, 돌무더기뿐이었다. 돌격대대 장병들은 흙먼지를 들이마시며 선배 전우를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6주간 땅을 파헤치고 발굴 작전을 편다. 작전이 종료될 때쯤이면 다시 발굴 이전 모습으로 현장을 복원해놓는다. 내년에 다시 이 지역을 계속해서 추가 발굴할 예정이다.
발굴 현장에 투입되는 현지 부대 장병들은 대부분 부대에서 자원한 이들이다. 대대 병력(400명) 중 100여 명 규모로 선발해 작전에 투입된다. 오전 9시부터 시작해 오후 4시30분까지 작전을 편다. 식사는 도시락으로 대신한다. 점심시간이 되면 장병 10여 명이 고지 아래로 내려가 10kg이 넘는 도시락 가방을 다시 메고 산을 오른다. 도시락 가방을 등에 멘 한 장병은 “하나도 힘들지 않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작전에 참여한 장병들이 유해를 찾는다고 해서 휴가나 외출 같은 포상이나 대가를 얻는 것은 없다. 대신 기초 발굴로 유해를 발견한 장병에게는 전사자 유해가 모두 수습된 후 봉송할 기회를 준다. 발굴 작전에 임하는 현지 부대 장병들은 주둔지 생활관의 평범하고도 편한 일과를 포기하고 선배 전우의 유해를 찾겠다는 전우애와 사명감으로 고생을 자처했다.
“6주 동안 삽질, 쉬운 일 아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올해 30개 사·여단을 동원해 36곳에서 유해 발굴을 할 계획이다. 발굴 기간은 통상 3~6주다. 동원사단(예비군부대)은 3~4주, 그 외 부대는 6주다. 해당 부대의 사정과 훈련 일정을 고려해 발굴 일정을 정한다.
발굴 작전이 6주밖에 되지 않아 선뜻 ‘짧다’고 생각할 수 있다. 군 관계자는 “6주 동안 하루 종일 삽질만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고 했다.
돌격대대 김도훈 상병은 “무엇이든 하나라도 발견했을 때 가장 보람 있다”고 말했다. 탄피나 군화 밑창, 인식표(군번줄) 등이 발견되면 근처에 유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상병은 “발굴 작전 중 다치는 일도 있지만, 부대 장병들은 선배들의 흔적을 하나라도 더 찾으려고 노력한다”며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사명감 하나로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군인지 적군인지는 어떻게 판단할까. 국유단 관계자의 설명이다.
“발견된 유해가 완벽하게 적군이라고 판단할 수 없는 한 국군으로 추정합니다. 대체로 우리 군이 패배한 곳에서는 아군 전사자 시신 수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아군이냐, 적군이냐’ 구분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국군으로 추정되는 유해에서 적군 유품이 발견되고 적군 추정 유해에서 국군 유품이 발견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전선 지역은 보급이 열악했기에 영화 〈고지전〉에 나온 것처럼 피아간 물품을 서로 뺏고 빼앗았습니다. 아군이 적군 옷을 입고, 적군이 아군 옷을 입고 싸웠습니다. 국유단은 피아판정위원회를 열고 3~4단계의 심의를 거쳐 최종 판단합니다.”
최초 발견 장병이 유해 봉송

▲수습된 유해가 오동나무관에 담겨 봉송되고 있다. 11사단 돌격대대·국방부 유해감식단 장병들이 도열해 경례하고 있다. 사진=영상미디어
수습된 유해는 현장에서 임시 감식을 마친 후에 한지로 감싼다. 한지로 감싼 유해는 오동나무관에 입관하는데 신체 위치에 맞게 유해를 배치한다. 입관을 마치면 6·25 전사자의 관을 의미하는 빨간 천으로 관을 덮고 여기에 태극기를 감싼다. 이를 ‘태극기 관포(棺包)’라고 한다.
태극기로 감싼 오동나무관은 태극기를 병풍 삼아 현장에서 약식제례를 했다. 이정구 대대장은 오동나무관 아래 놓인 제례상에서 청주를 따라 올렸다. 시계 방향으로 잔을 세 번 돌리고는 관 뒤편에 세 번에 걸쳐 술을 부었다.
약식제례를 마치자 유해 발굴 작전에 참여한 돌격대대 병사가 전투복을 단정히 차려입고 하얀 천을 목에 걸친 채 오동나무관을 가슴에 품었다. 국유단 관계자는 봉송 장병에게 “경사가 급하니 조심하라”고 여러 차례 당부했다. 후배 전우 품에 안겨 72년 만에 고지를 떠나는 선배 전우를 향해 돌격대대 부대원들과 국유단 장병들은 좌우로 도열해 경례를 했다. 유해는 군사경찰(헌병)의 호위를 받아 11기동사단 임시봉안소로 옮겨졌다.
이 대대장은 “나라를 위해 헌신한 선배 전우들을 책임지고 가족과 조국의 품으로 모시겠다”고 말했다.
임시봉안소에 안치된 관은 이후 국립서울현충원에 있는 국유단 중앙감식소에서 정밀 감식을 받고 봉안된다. 신원이 확인되면 현충원이나 고인의 선산에 안장된다.
중앙감식소로 이동한 유해는 정밀 감식과 함께 신원 확인을 위해 DNA 검사를 한다. DNA 검사를 위한 시료 채취는 보존 상태가 가장 나은 부위를 절단해 실시한다. 절단 크기는 부위마다 다르다. DNA 분석에는 1~2개월이 걸린다.
현장에서 발굴한 유해를 바탕으로 전사자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선 전사자 유가족의 DNA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발굴 당시 전사자를 특정할 수 있는 유품이 없으면 국유단이 확보한 유가족 DNA 정보를 바탕으로 DNA 염기서열을 대조하는 방법이 유일한 신원 확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6·25 전사자의 신원 확인을 위한 유전자 시료 채취 대상은 전사자 유해를 찾지 못한 친·외가 8촌 이내 유가족이다. 하지만 촌수가 멀어질수록 신원 확인율은 떨어진다. 2022년을 기준으로 신원이 확인된 6·25 전사자 204명 중 유가족 DNA 채취를 통해 가족관계를 증명한 사례는 총 182건이다. ▲1촌(전사자의 자녀) 77건 ▲2촌(전사자의 형제자매, 손자) 84건 ▲3촌(조카) 19건 ▲4촌 1건(사촌동생) ▲5촌 1건(당질)이다. 유가족 정보는 없지만 제보나 묘비, 개인 식별 유품 등을 통해 신원을 확인한 사례도 22건이다.
세대가 멀어질수록 신원 확인 비율이 떨어지는 점(4촌 1건, 5촌 1건)은 어떻게 해결할까. 국유단 관계자는 “촌수가 멀어질수록 신원 확인 건수가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면서 “기술적인 제한도 영향을 미친다. 관련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신원이 확인 가능한 촌수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고 밝혔다.
신속 기동탐문반 운영, 신원 확인 늘어
국유단에서는 유가족으로 추정되는 이들 중 부계(父系)·모계(母系) 각각 2명에 대한 DNA를 채취한다. 4명이나 채취하는 이유는 발굴된 유해와 유가족 간의 가족관계·성별에 따라 적용 가능한 검사 방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에 최대한 많은 유가족 정보를 확보해 신원 확인율을 높이려는 시도이다. DNA를 이용한 신원 확인은 대표적으로 3가지 방식이 있다. ▲미토콘드리아 염색체(모계 유전) ▲Y염색체(부계 유전) ▲상염색체다.
일란성 쌍둥이가 모두 참전해 전사한 뒤 시간이 한참 흘러 유해만 발견됐다면 이들의 신원은 어떻게 확인할까. 이 경우는 DNA만으로 신원을 파악할 수 없어 병적(兵籍) 등 관련 자료를 확인해 증거를 바탕으로 추정한다.
현재는 발굴된 전사자의 유해 정보와 전사자 유가족의 가족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기술에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국유단은 유가족 DNA 시료 채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향후 유전 정보 분석 기술이 발전하면 확보한 유가족 DNA 정보를 바탕으로 더 많은 전사자 유해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유단은 유해를 찾지 못한 6·25 전사자의 유가족 DNA를 확보하기 위해 ‘신속 기동탐문반’을 운영하고 있다. 기동탐문반은 6·25 전사자의 유가족 주소지를 직접 찾아가 유전자 시료를 채취한다. 탐문하기 위해서는 우선 전사자의 병적 기록, 유가족 관련 문서 등을 분석한 후 행정관서의 제적 정보를 파악한다. 6·25전쟁 당시에는 병적기록과 호적 등 행정 체계가 미비했다. 남아 있는 기록 또한 한자 초서체 형태의 손글씨로 작성돼 판독이 어렵고, 병적기록과 관공서의 기록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유가족을 찾기 위해서는 탐문 담당 인력이 직접 관할 행정관서와 마을을 일일이 방문할 수밖에 없다.
‘막둥이 작은아버지’를 찾아서
지난 5월 1일 국유단 윤태수 팀장을 만나 기동탐문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관찰했다. 그는 이날 오후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 사는 이종채(1942년생)씨를 찾았다. 이씨는 6·25전쟁에서 전사한 고 이재근 하사의 친조카이다. 이 하사가 전사(1950년 12월 21일)한 사실은 확인했으나 아직 유해는 발견하지 못했다.
전남 강진에 사는 이씨의 형도 앞서 DNA 시료 채취에 응했다. 윤 팀장은 이씨의 인적 사항을 확인하고는 이씨의 입안 볼 안쪽으로 면봉을 집어넣고 바깥 방향으로 한 바퀴 저었다. 탈지면으로 침샘 아래쪽을 긁어내면 상피세포가 묻어 나온다. 이 면봉을 밀봉한 후 국유단으로 보내면 6·25 전사자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한 새로운 정보가 늘어나는 것이다.
“아버지의 남자 형제 중 막내라서 (나는 이재근 하사를) ‘막둥이 작은아버지’라고 불렀어요. 전쟁이 나기 전에 국방경비대(국군의 전신)에 입대하셨죠. 막둥이 작은아버지를 포함해 동네에서 5~6명이 전쟁에 나갔는데 1명만 살아서 돌아왔어요. 막둥이 작은아버지가 나를 항상 예뻐하신 게 기억에 남습니다. 국방부에서 작은아버지를 찾기 위해 이렇게 관심을 두니 기분이 좋습니다.”
이씨는 엘리베이터까지 나와 배웅했다. 윤 팀장은 “좋은 꿈 꾸면 금방 작은아버지를 뵐 수 있을 것”이라며 “신원이 확인되면 연락드리겠다”고 했다.
“산 자와 죽은 자를 연결한다”
윤 팀장은 2019년 3월부터 유가족 탐문 활동을 해왔다. 지금까지 약 1500명을 만났고 이동거리는 15만2000km에 이른다. 일주일에 10명가량을 만난다. 그는 자신을 “산 자와 죽은 자를 연결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윤 팀장의 말이다.
“DNA 채취뿐만 아니라 보훈행정에서 소외된 분들을 적극적으로 도와드리는 일도 합니다. 공문서상에는 가족관계가 아니지만 탐문 활동으로 유가족임을 입증해드린 적도 있습니다. 과거에는 남편이 전사하면 아내는 재가(再嫁)를 많이 했어요. 전사자 자녀들은 호적상 큰아버지한테 입양되기도 했고요. 이 때문에 전사자 자녀들은 정부로부터 보훈 유자녀 혜택을 받지 못했죠. 하지만 저희 활동 덕분에 보훈 혜택을 보는 분도 많아졌습니다.”
윤 팀장은 이날 경기 하남, 노원구 상계동을 거쳐 강동구 고덕과 경기 양주로 이동해 탐문 활동을 계속했다.
국유단이 보유한 전사자 유가족 DNA 정보는 총 8만7367건이다. 2022년 한 해 확보한 전사자 유가족 DNA 시료(1만1279명) 중 기동탐문을 통한 시료 채취가 74.9%(8455명)를 차지한다. 2018년 4건, 2019년 7건에 불과했던 전사자 신원 확인 건수는 유가족 DNA 정보가 쌓인 덕분에 2020년 19건, 2021년 24건, 2022년 23건으로 늘었다.
국유단은 유가족 DNA를 확보하기 위해 그룹타기팅(역추적) 방식도 활용한다. 우선 대규모 유해 발굴 지역을 분석하고 발굴 지역에 참전한 사단과 전사자를 파악한다. 이를 바탕으로 유해가 아닌 위패로 모셔진 전사 대상자를 선정한 후 이 전사자의 병적 자료를 분석한다. 이어 행정기관 제적(除籍) 정보 시스템을 조회하고 유가족을 추적(탐문)해 시료를 채취하는 방식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전사자 10명에 대한 신원을 확인했다.
‘그들을 조국의 품으로’

▲강원 양구 일대에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과 DPAA가 6·25 전사자 공동조사를 했다. 사진=영상미디어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미국 DPAA(Defense POW/MIA Accounting Agency,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전사자 유해 발굴 감식을 전문적으로 하는 조직이다. 2008년 8월에는 국유단과 DPAA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한미 양국은 공동 유해 발굴도 진행한다. 국유단은 우리나라에서 발굴한 미군 추정 유해를 미국 측에 인계했고 2022년을 기준으로 10명의 신원이 확인됐다.
국유단과 DPAA는 지난 4월 17일부터 29일까지 국내 미군 실종자 조사 활동을 위해 한미 공동조사를 벌였다. ▲강원 양구 ▲경북 상주 ▲충남 보령 일대에서 주민 증언 수집과 탐사 활동을 했다. 이어 지난 5월 15~16일에는 국유단과 DPAA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신원확인센터에서 국내에서 발굴한 미군 추정 유해 3구를 공동 감식했다.
국유단 공보장교 최승준 대위는 “국유단의 역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호주, 벨기에, 네덜란드, 베트남, 리비아 등 여러 나라가 국유단과 협업하기 위해 찾아온다”며 “‘그들을 조국의 품으로’라는 부대 훈(訓)을 바탕으로 유엔 참전·지원국, 주변국과도 협력해 국격 향상에도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국유단은 2014년 3월 28일 처음으로 그동안 발굴했던 중국군 추정 유해를 인도주의 차원에서 송환(유해 437구, 유품 4286점)했다.
유해 발굴과 신원 확인은 지난(至難)한 시간과의 싸움이다. 앞서 소개한 이만우·이천우 형제 사례처럼 죽어서야 함께할 수 있게 된 또 다른 형제가 있다. 주인공은 고 김봉학 일병·고 김성학 하사. 동생 김성학 하사(현 계급 일병)는 8사단에 배속돼 1950년 12월 24일 강원 춘천지구 전투에서 전사했다. 유해를 수습한 덕분에 서울현충원에 안장(1960년 5월)됐다. 하지만 형 김봉학 일병(5사단 추정, 1950년 8월 입대)은 ‘피의 능선 전투’에서 전사했으나 유해를 수습하지 못했다.
김봉학 일병의 유해는 2011년 7월(1차) 수리봉 일대에서 처음 발견됐다. 이때 머리뼈와 오른쪽 정강이뼈가 나왔다. 이어 2012년 11월(2차)과 2016년 10월(3차) 발굴에서는 1차 발굴 지점에서 20~70m 떨어진 곳에서 넙다리뼈 등을 추가로 발견해 수습했다. 김 일병은 1951년 9월 5일 강원 양구 수리봉 일대 고지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전투에서 포탄을 맞고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6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 지난 2월 15일에야 신원이 확인됐다. 김 일병 신원은 육군 50사단 소속 예비군 지휘관이 국유단으로부터 받은 지역별 전사자 명부를 통해 고인의 친동생 김성환(81)씨를 찾아내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김씨는 “살아생전은 물론이고 죽어서도 사무치게 그리워할 형님을 뒤늦게라도 찾게 되어 꿈만 같다”며 “형님을 찾기 위해 고생하신 모든 분께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국유단 계획과장 김인수 소령은 “전사자 유해 발굴과 신원 확인은 시간과의 싸움”이라며 “선배 전우들이 하루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의 방안을 계속해서 마련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이근원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은 “정전 70주년을 맞아 6·25 전사자 유가족들이 DNA 시료 채취에 더 많이 동참할 수 있도록 적극 알리겠다”며 “국민 여러분 모두의 참여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글 : 이경훈 월간조선 기자 liberty@chosun.com
06.08 로켓은 김정은이 쏘고 욕은 우리 쪽이 먹고
아무리 경보 허술했어도 원인 제공한 北 놔 두고 피해 막으려 한 우리 쪽을 맹비난
도발은 북이 하는데 손가락질은 우리끼리… 한두 번이 아니다
얼마 전 김정은이 로켓을 발사했을 때 서울에 경계 경보가 울렸다. 경보가 왜 울렸는지, 어떻게 하라는 건지 설명이 없어 놀란 사람들이 화를 냈다. 더구나 새벽 시간이었으니 화가 더 났을 것이다. 그런데 카카오톡 등에 당국에 대한 비난이 빗발쳤다는 얘기를 듣고 로켓 도발을 한 것은 김정은인데 욕먹는 것은 김정은이 아니라 경보를 발령한 우리 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보 내용이 허술했다고 해도 나중에 북 로켓 때문이란 것을 알게 됐다면 원인 제공자인 김정은에 대한 비판이 먼저일 텐데 경보 발령에 대한 비난이 이를 압도했다.
김정은은 멀리 있고 우리 당국은 눈앞에 있다. 김정은 도발은 늘 하는 익숙한 것이고 우리 당국 실수는 사람을 놀라게 해서 화를 돋운다. 그래서 그러려니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다. 도발은 북한이 했는데 비난은 우리 쪽으로 하는 일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2010년 천안함이 북한에 폭침당하자 우리 사회 다수는 북한 비판이 아니라 우리 정부 비난에 열을 올렸다. 지금은 상상이 안 되지만 폭침 직후인 그해 4월 여론조사에서 ‘북한 도발’이라는 정부 발표를 믿지 않는다는 사람이 무려 60%에 달했다. 천안함 침몰이 북한 아닌 우리 정부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사건 초기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고 해도 그런 일을 벌일 곳이 북한 말고 어디 있는가. 우리 군인이 46명이나 죽고 이들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다시 10명이 사망하는 비극 앞에서 드러난 우리 자화상이었다. 당시 지식인들 중에는 “손에 장을 지진다고 해도 북한 소행이란 걸 안 믿는다”는 풍조가 만연했다. 또 다른 의미에서 우리는 정말 놀라운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지금 여론조사를 하면 북한 소행이라고 답하는 국민이 더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믿지 않는 사람도 꽤 있을 것이다. 며칠 전 민주당 혁신위원장으로 임명됐던 사람이 그중 한 명이다. 심지어 이 사람은 천안함이 ‘자폭’했다고 했다. 천안함 장병 누군가 배에 폭탄을 심어 터뜨렸다는 것인데 이 황당한 주장에 우리 국민 상당수가 동조할 수 있다고 본다. 대장동 사건이 ‘윤석열 게이트’라는 국민이 40%에 달하는 지경이다. ‘(자폭은) 아니겠지만, 그랬으면 좋겠다’라고 바라는 사람도 많을지 모른다. 이 사람을 추천했다는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도 그런 생각일 것으로 본다.
민주당 수석대변인이 천안함 함장을 향해 “부하를 다 죽여놓고 무슨 낯짝으로…”라고 비난한 것도 다르지 않다. 천안함 장병을 죽인 것은 북한인데 우리 해군 함장이 죽였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에서 침몰한 해군 함정은 수백 척에 달한다. 그 침몰된 배의 함장에게 ‘네가 부하를 다 죽였다’고 비난했다는 얘기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오직 한국에서만 이런 주장이 나온다. 함장이 배와 함께 침몰해 죽지 않았다는 비난도 한다. 과거 군국 일본 해군 일부에서 그런 일이 있었는데 영화를 많이 본 탓인지 함장이 배와 함께 죽는 게 관행인 것으로 오해하는 것 같다. 미국 해군에서 탈출할 수 있는데도 일부러 탈출하지 않은 함장은 없는 것으로 안다.
더 올라가보면 6·25 남침은 북한이 했는데 원인 제공을 한국이 했다는 주장이 ‘수정주의 학설’이라면서 한 때 국내에서 인기를 끌기도 했다. 지금도 운동권들은 꼬리를 머리로 만든 이 본말전도의 이론을 신봉하고 있다. 이런 식이면 침략을 당한 모든 나라가 원인 제공을 했다고 만들 수 있다. 이들은 핵 위협을 하는 것은 북한인데도, 사드를 배치한 우리 정부를 비난한다. 중국 경호원들에게 우리 사진 기자가 집단 폭행을 당해 실명 위기를 겪었는데, 우리 기자가 잘못한 것이라고 한다. 이제는 침략은 러시아가 했는데 원인 제공을 우크라이나가 했다고 한다. 코로나는 중국에서 번졌는데 미국이 만든 것이라고 한다. 민주당 혁신위원장이란 사람이 이런 주장을 거의 빼놓지 않고 다 했다. 그는 그런 생각을 가진 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일 뿐이다.
이런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다수가 될 수 없고 돼서도 안 되지만 부지불식간에 이들의 사고방식이 꽤 퍼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북핵 위협 때문에 2016년 반입한 사드에 대해서도 거의 40% 여론이 반대했다. 어쩌자는 것인가.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고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흐려지는 일은 북한 관련 문제에선 거의 예외 없이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 이번 북한 로켓 발사 때 ‘북 로켓 발사 때문’이라고 경계 경보에서 밝혔어도 “정부가 불안을 조성해 안보 장사를 한다”는 비난이 상당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실제 인터넷 여론 상당수가 이런 투였다고 한다.
글로벌 기업에서 한국에 발령을 내면 ‘생명 수당’을 준다. 치안 불안이 아닌 전쟁 위험 때문에 생명 수당을 주는 대상국은 한국 대만 등 극소수라고 한다. 우리에겐 이상하지만 세계는 한국이 처한 지정학을 그렇게 본다. 우리의 현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보는 것이 더 정확할 수 있다. 다른 일은 몰라도 안보 문제만큼은 본말과 선후, 경중을 생각했으면 한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
06-08 법적 책임도 져야 할 野 천안함 망언

김혁수 예비역 해군 준장, 잠수함연맹 초대 회장
천안함이 북한 잠수정 어뢰에 피격된 지 13년이나 지났지만 원인을 둘러싼 망언이 재연되고 있다. 현충일을 하루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으로 발표됐던 이래경 씨가 ‘천안함은 자폭했다’고 발언한 사실이 알려지는 등으로 당 안팎에서 논란이 일자 당일 사퇴했다. 또,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지난 5일 ‘부하를 다 죽이고 무슨 낯짝으로…’라고 막말을 했다가 이틀 뒤 사과했다. 이와 관련해 최원일 천안함 전 함장은 지난 6일 국립현충원에서 이재명 대표에게 “수석대변인이 제가 부하들을 죽였다고 했는데 북한의 만행이죠? 대변인의 발언이 당 대표와 당의 입장인가요?”라고 해명을 요구하기까지 했다.
천안함 피격을 군의 전문가들은 첫눈에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를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한 일부 실험에서 오류로 인한 오해도 있었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정당과 단체 및 개인은 북한 소행이 아니라며 숱한 괴담을 만들어 냈다. 북한 편을 들 수밖에 없는 중국은 유엔 공동성명에도 반대했다.
필자는 33년간의 해군 생활 경험, 천안함과 동급인 초계함 함장의 경험, 초대 잠수함 전단장으로서 잠수함을 운용한 경험, 조선소 특수선 담당 임원으로서 군함을 설계하고 건조해 본 경험으로 피격 당일에 북한의 어뢰 공격임을 알았고 인양된 선체를 보고 확신했다. 미국 조사단 대표였던 폭발전문가 토머스 에클스 제독도 첫눈에 어뢰에 의한 피격이라 했고 팽창 공기의 양까지 예측했다. 또, 천안함이 자폭했다면 함장이나 승조원 중에서 폭탄을 함 내에 설치하고 몰래 터뜨렸다는 말인데, 참으로 어이가 없다. 자폭이라면 절단된 선체가 아래로 휘어져야 하지만 위로 휘어져 있어 외부 폭발이 확실하고, 선체 인양과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 북한 연어급 잠수정의 어뢰 공격임이 드러났다.
또, 천안함 피격 해저에는 암초가 없다. 본인이 초계함과 호위함 함장 시절에 수없이 다닌 해역이고, 해군이면 암초가 없는 걸 다 안다. 군함이 좌초된다고 해서 선체 중간이 사라질 정도로 두 동강 나지도 않는다. 미국 잠수함뿐만 아니라 우리 잠수함도 저수심이라 들어갈 수가 없으며, 잠수함을 백령도 근처에 배치할 이유가 없다. 선체 피로에 의한 절단이라는 주장도 있었으나, 천안함은 18번째 초계함으로 17번함까지도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아직도 수명 주기까지 해군이 운용하고 있다.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피격 이후 야권 인사들의 망언은 계속돼 왔다. ‘정부 공식 발표를 믿는다’는 애매한 대답만 하고 북한 소행이라고 확실히 말하지 않는다. 나라를 지키다 전사한 장병들의 명예를 손상하고 유가족과 생존 장병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으며, 군과 국민을 분노케 한 망언을 한 인사는 최 전 함장 등 당사자들에게 직접 사과하고 법적 책임도 져야 할 것이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도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온 국민은 최원일 천안함 전 함장의 질문에 대한 솔직한 답변을 듣고 싶어 한다. 책임 있는 정당이 북한의 만행을 왜 옹호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국가안보를 지킴에 있어서는 여당 야당이 따로 없음을 보여주기 바란다. ‘보훈’ 없는 ‘호국’은 있을 수 없고, 나라를 지키다 희생된 장병들을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나라는 결코 지켜질 수 없다.
문화일보
06-08 [단독]“대한민국이 뻘겋다…창원간첩단 하부조직 전국 68곳”

▲전국단위 지하조직인 창원간첩단 ‘자주통일 민중전위’가 2021∼2022년 대북보고문과 북한 지령문에 언급된 지역 하부망과 새끼회사 및 노동계 정당 등을 합친 ‘자통 간첩포치도’. 순수 지역 하부망과 새끼조직만 68곳, 전체를 합치면 100곳에 이른다.자유민주연구원 제공
유동열 원장, 2021∼2022년 자통 대북보고문·지령문 분석
68곳 지역망 중 절반 정도 기 구축, 나머지 새로 구축 대북보고
전국단위 지하조직인 창원간첩단 ‘자주통일 민중전위(자통)’의 지역 하부망과 ‘새끼조직(하부조직)’이 전국에 걸쳐 68개라는 주장이 나와 파장이 커지고 있다. 이는 자통이 민주노총, 민노당 등 노동단체와 정당 등 대규모 조직에 침투한 것을 제외한 수치다.
자유민주연구원과 국가대개조네트워크가 지난 7일 오후 서울글로벌센터 국제회의장에서 개최한 ‘최근 북한의 간첩공작과 대책’ 정책세미나에서 ‘최근 북한 간첩단 사건 평가와 대책’을 발제한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자통이 2021∼2022년 북한에 보고한 대북보고문과 지령문(2021년 3월 8일, 2022년 6월 16일 지령수수후 6월 21일 대북보고, 2022년 8월 28일 대북보고문)을 분석한 결과 언급된 하부망과 새끼조직 등 지역조직과 단체만 68개로 조사됐다”며 관련 내용을 공개했다. 자통은 조직을 민간기업으로 위장, 상부조직을 ‘이사회’, 총책은 ‘이사장’, 조직원은 ‘임원’, 하부 새끼조직은 ‘새끼회사’ 등으로 불렀다.
가장 많은 곳은 영남권으로 거제·통영·고성·진주·양산 등 경남지역 18곳과 영주·예천·봉화 등 경북 지역 7곳을 합쳐 25곳이었다. 이어 대전·보령·서산·당진 등 충청권이 16곳으로 뒤를 이었다. 이어 춘천·원주·강릉·철원 등 강원권은 9곳, 광주·화순·구례·여수 등 호남권은 8곳, 송파·동대문·강동·강남·은평구 등 서울은 5곳, 인천·광명·동두천·양주 등 인천·경기권은 4곳, 제주는 1곳으로 드러났다.
유 원장은 “창원간첩단 기소장에 나와있는 대북보고문과 지령문을 분석한 숫자”라며 “이미 구축된 하부망과 새끼회사뿐만 아니라 앞으로 구축할 새끼회사를 포함한 것으로 이미 구축된 하부망은 전체 절반 가량으로 분석됐다”며 “지도에 표시하면 창원간첩단 조직만으로도 ‘대한민국이 뻘겋게 표시된다’”고 설명했다. 하부망·새끼회사 67곳에는 민주노총, 진보당 등에 침투한 것으로 언급된 조직은 포함되지 않았다.
하부망·새끼회사 조직원들 중에는 북한과 연계된 사실을 알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유 원장은 “자통 등 지하조직은 단선연계 복선포치(單線連繫 複線布置)의 조직 운영 원칙을 준수한다”며 “단선연계 복선포치의 조직 형태는 상하 조직원만 일대일로 접촉하고 상위 조직원은 하위 조직원을 여러 명 두되 하위 조직원끼리 서로 알 수 없도록 차단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국가정보원 수사처장을 지낸 윤봉한 국가안보통일연구원장은 토론에서 “최근 제주·창원·진주·전주 및 서울에서 검거된 일련의 간첩단 사건은 오늘날 북한 연계조직들이 전국적 단위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입증한다”며 “이들 조직이 합법적 활동 거점으로 지역 진보당과 단체들을 활용하면서 하층·중층 통일전선의 구축을 시도했던 사실로 미뤄 이번에 적발된 간첩조직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밝혔다. 윤 원장은 “북한전문가들은 전국회의, 민주노총, 진보당, 전농 등 진보단체를 위시해 정치·사회·종교·학원 등 각계각층에 조직적 간첩세력이 활동하고 있다고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윤 원장은 “고(故) 황장엽 노동당 비서는 국내에 5만 여명에 달하는 북한 스파이가 활동하고 있다고 언급했다”며 “북한 공작원 출신인 토론자 김동식씨는 통상 공작원보다 한 단계 위인 ‘선생’급 고정간첩망 20여개 조직 60~100여명이 활동 중일 것이라 예측했다”고 설명했다.
독일의 경우 통독전 서독내 슈타지 간첩은 비밀 정예요원 2만~3만명으로 통일 후 드러났다. 서독 연방의회 원내 교섭단체 구성이 가능한 의원 협조자, 총리 보좌관, 여당 원내총무, 통일부 장관 등 고위급 간첩, 정계 재계 학계 종교계 언론계 학생운동권 등 사회 전반에 2만∼3만명이 활동했으며, 협조자를 포함할 경우 10만명을 상회할 것으로 분석한 바 있다.
문화일보 정충신 선임기자
06.09 낙동강 지킨 워커 장군, 도봉역 인근에 사망표지석 하나
6·25의 잊힌 영웅들
서울 지하철 1호선 도봉역에서 2번 출구로 나가 차도를 건너면 윌튼 워커(W Walker) 장군의 사망 표지석이 나온다. 워커는 한국전쟁 때 낙동강 방어전을 지휘했던 미8군 사령관이다. 그는 북한군의 끈질긴 공세를 불도그 같은 기질을 발휘해 최후 방어선을 성공적으로 막아냈다. 그런데 3개월 후인 12월 23일 그가 탄 지프가 무면허 한국인이 과속으로 모는 군용 트럭과 충돌해 사망했다. 의정부 최전선을 지키던 중대장 아들에게 은성무공훈장을 직접 달아 주려다 비명횡사했는데 4성 장군 승진을 눈앞에 두고서다. 이 아들은 후에 최연소 대장에 진급하면서 미국에서 함께 대장에 오른 유일한 부자가 되었다.
전쟁 판세 바꾼 낙동강 방어 주역
“버티지 못하면 죽어라” 군인 정신
‘별넷’ 승진 직전 비운의 교통사고
사망지점 전봇대에 초라한 안내문
대전 전투서 끝까지 버틴 딘 장군
목숨 건 그들의 사투 잊고 말건가
인천상륙작전 있게 한 낙동강 사수
▲올해는 한·미동맹 70주년이다. 2013년 한·미 동맹 60주년 당시 한국과 미국 장병들이 경북 칠곡군 ‘왜관철교(현재 호국의 다리)’를 건너고 있다. 6·25 때 북한군의 진격을 막기 폭파했던 것을 다시 세워 현재 인도교로 쓰고 있다. [중앙포토]
한국전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은 인천상륙작전이다. 그런데 이 인천상륙작전도 낙동강 전선에서 아군이 버티면서 북한군의 주력을 묶어두지 않았으면 불가능했다. 개전 초 한국군과 미군은 북한군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해 벼랑 끝으로 밀려서 편 전선이 낙동강 방어선이다. 여기가 무너지면 한반도 전역이 북한군 수중으로 들어가므로 상륙작전을 전개할 수도 없고, 전개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니 반드시 사수해야 했다. 워커는 후임 사령관 리지웨이 장군도 높이 평가했듯이 포기할 줄 모르는 집요함을 지녔는데 이 집요함이 낙동강 전선을 지켜낸 원동력이 되었다.
워커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패튼 장군 밑에서 기갑부대 지휘관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그가 마주한 한국전 초기 상황은 너무나 안 좋아 그의 명성에 금이 갈 뻔했다. 병력은 턱없이 부족하고, 징집된 신병들의 전투 의지는 형편없었고, 무기 상태도 엉망이었다. 이런 군대를 이끌고서 막강한 전투력을 갖춘 북한군의 진격을 막고자 그는 힘겹게 사투를 벌였다. 그래서 연락기를 타고 북한군 머리 위를 저공 비행하며 전황을 점검하기도 했다. 이때 적군 기관총에 맞아 추락할 뻔도 해 연락기에 그려진 3성 장군표시도 아예 지워버렸다.
한국전쟁의 가장 불우한 장군
▲낙동강 위에 놓인 왜관철교. 왜관은 낙동강 방어전 중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사진 김정탁]
그는 병사들이 겁을 먹거나 후퇴하는 조짐을 보이면 “부산으로 밀리면 대살육이 일어나니 버티지 못하면 죽어라(stand or die)”라며 병사들을 독려했다. 이는 죽음으로 전선을 사수하라는 명령이다. 심지어 연락기에서 확성기를 통해 지상의 부하들에게 비굴하게 달아나지 말고 군인답게 싸우다 죽으라고 고함쳤다. 조국도 아닌 다른 나라 전선에서 부하들에게 무자비한 명령을 내렸다는 이유로 그는 미 의회로부터 중대 경고를 받았다. 그러나 워커 자신도 북한군을 마지막으로 저지하는 군인으로 남겠다는 비장함을 보였다.
▲서울 도봉역 인근에 설치한 워커 장군 사망지 표지석. 원래 사망 장소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사진 김정탁]
워커가 이렇게 행동한 건 낙동강 전선 방어막이 마치 빵에 바른 버터처럼 얇아서다. 그래서 8군 전체를 소방대처럼 운용해 한쪽이 뚫리면 다른 쪽 병력을 빼내 뚫린 쪽을 막아야 했다. 이런 힘든 상황과 마주했어도 그는 지휘관으로서 책임을 다해 전선을 잘 지켜냈다. “정치가 가능성의 예술이면 전쟁은 불가능의 예술이다”라는데 낙동강 방어전이란 힘든 전투를 승리로 장식해 그는 또 하나의 전쟁신화를 만들었다. 그런데 미군 역사상 전공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가장 불우한 장군이 돼 ‘잊힌 전쟁의 잊힌 지휘관’이라는 평을 들었다. 이는 인천상륙작전이란 맥아더의 성공 신화에 가려진 탓이다.
북한군과 17일간 싸운 딘 소장
▲경기도 평택 험프리스 기지에 있는 워커 장군 동상. [중앙포토]
워커 장군 못지않게 한국전 영웅이면서 동시에 비극의 주인공이 된 미군 장성이 있다. 윌리엄 딘(W Dean) 소장이다. 그는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출신으로 한국전이 반발하자 가장 먼저 전선에 투입된 24사단장이었다.
그의 사단은 오산에서 북한군과 첫 교전을 벌인 뒤 17일 동안 전투를 치르면서 후퇴하다 대전에 마지막 방어선을 치고 분전했다. 24사단이 이처럼 분전하면서 시간을 벌어주었기에 아군이 낙동강에 방어선을 칠 수 있었다. 물론 17일간 치른 전투의 대가는 혹독해 24사단 산하 영관급 장교의 사상자 수는 남북전쟁 이후 벌어진 어떤 전투의 사상자 수보다 많았다.
딘 소장도 북한군에 포로로 잡혔다. 흰옷을 입고 농부로 위장한 수백 명의 북한군이 대전 시내로 침투해 24사단을 습격했다. 이때 그는 34연대의 마지막 잔류 병력과 함께 시내를 힘들게 빠져나왔는데 대전 교외에서 또다시 북한군의 매복 공격을 받아 도보로 철수해야 했다.
그런데 함께 가던 부상병에게 물을 떠주기 위해 어둠 속에서 물을 찾아 계곡을 내려가다 낭떠러지로 떨어져 행방불명이 되었다. 35일간 야산에서 길을 잃고 떠돌다 전북 진안에서 한국인에게 속아 포로로 잡혔다. 함께 포로가 된 부관은 신혼 3개월 만에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북한 포로수용소에서 영양실조로 죽었다.
포로로 잡히고도 장군 신분 숨겨
▲이승만 대통령이 1953년 9월 북한군에 포로로 잡혀 3년 만에 돌아온 윌리엄 딘 소장(가운데)에게 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중앙포토]
사단장으로서 이런 처신을 두고 딘 소장을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 사단장은 후방 안전한 곳에서 명령을 내려야 하는데 적에게 쉽게 노출되는 위치에 있어서다. 그런데 그가 처했던 당시의 절망적인 상황을 고려하면 이런 처신이 불가피했다고 본다. 통신수단이 전혀 없어 전방에 무슨 일이 일어나면 사단장이 직접 가야 했다. 시가전 중에 바주카포로 북한군 탱크를 직접 겨냥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 치의 땅도 내줄 수 없다는 이런 철두철미한 군인 정신으로 그는 미군 최고훈장인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받았다. 한편 대부분의 한국군 고급 장교들은 이 무렵 부산행 열차에 올라타 있었다.
딘 소장에게 군인으로서 가장 치욕스러운 건 포로로 잡히는 일이다. 그래서 포로를 최소화하는 전술을 평소에 잘 활용해 그가 지휘했던 부대는 포로가 적기로 유명했다. 북한군이 그를 잡기 위해 달려들었을 때도 북한군 사격을 유도해 죽으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해 포로가 되었다.
포로가 된 후에도 고위 지휘관으로서 명예를 잃지 않아 북한군은 상당 기간 그가 장군인 걸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고문 등으로 인천상륙작전 계획이 누출될까 염려해 자살을 시도했다. 결국엔 사단장 신분이 밝혀졌지만, 북한군은 인천상륙작전에 관한 첩보를 그에게서 얻을 수 없었다.
워커힐호텔, 맥아더와 밴 플리트
▲6·25 당시 함께한 워커 중장(왼쪽)과 딘 소장. [중앙포토]
서울 중심부에서 좀 떨어진 광장동에 워커힐 호텔이 있다. 워커 장군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워커힐이란 이름을 지었다. 이 호텔에는 두 개의 빌라 동도 있는데 각 동 이름이 더글러스와 제임스이다. 더글러스는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을, 제임스는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을 가리킨다.
밴 플리트는 한국전 때 미8군 사령관을 오래 역임했던 장군인데 한국군 전력 강화 및 육사 건립을 위해 애쓴 고마운 사람이다. 그런데 8군 사령관으로 재직할 때 미군 조종사였던 그의 아들을 북한군 포격으로 잃었다. 이처럼 한국전을 이끈 장성들의 이름을 호텔과 빌라 동에 사용했는데 여기엔 궁색한 이유가 있다.
이 호텔은 1963년 주한미군을 위한 휴양소로 원래 지어졌다. 당시 미군들은 휴가차 주로 일본에 갔는데 이들이 한국에서 휴가를 보내면서 외화를 쓰도록 유도하기 위해 우리 정부가 유흥시설과 도박시설까지 갖춘 호화시설을 만들었다. 한 푼의 외화가 아쉬웠던 상황에선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라고 본다. 이 시설은 그 후 SK그룹에 매각돼 지금은 민간이 운영한다. 그렇더라도 워커 장군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지점에 표지석 하나쯤은 세우고 워커힐이란 이름을 달고 영업하는 게 도리가 아니었을까.
2009년 한국인 노병이 만든 표지석
도봉역 부근의 표지석도 2009년 참전한 한국인 노병들이 중심이 돼 사비를 들여 세웠다. 그러니 60년 가까이 아무런 표지석도 없었던 셈이다. 원래의 사망 지점은 여기서 약 100m 떨어진 곳인데 거기에는 한 민간인이 전봇대에 설치한 초라한 안내문만 있다. 이마저도 없으면 워커 장군의 정확한 사망 지점을 알 수 없다.
한국을 위해 목숨까지 바쳐 가며 애쓴 사람을 이렇게 내팽개치면 6·25와 같은 국난이 다시 발생하는 경우 누가 우리를 위해 기꺼이 도울 건가. 게다가 대한민국이 오늘날 전 세계 민주주의 공동체의 강력한 일원이 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의 분전은 너무나 빛나지 않는가.
중앙일보 김정탁 노장사상가
06-10 배에 남겠다던 최 함장… “부하 다 죽였다”는 정치인

“함장님, 나가셔야 합니다.”
아픈 장병들이 첫 번째, 이등병들이 두 번째…. 마지막으로 장교들까지 퇴함했지만 그는 남겠다고 했다. 부하들의 거듭된 재촉에도 아픈 어깨를 연신 어루만지며 남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폭침당한 배와 함께. 한 병사는 함장님을 두고 가면 자신들이 죄인이 될 것 같다고 울먹였다. 그렇게 부하들의 설득 끝에 그는 배 밖으로 나왔다. 이날 구조된 58명 중 마지막으로. 최원일 당시 천안함장 얘기다.
2010년 3월 26일 밤. 104명의 승조원 중 46명은 천안함 폭침으로 깊디깊은 검은 바다에 묻혔다. 살아남은 최 함장은 몇몇 승조원들과 함께 배 곳곳을 훑었다. 끝까지 남은 이들을 찾아 나섰다. 그렇게 함수에 생존해 있던 승조원들은 모두 구조됐다.
최 함장은 피격 당시 함장실에 있었다. 결정적인 타격을 입은 곳은 주로 병과 부사관이 생활하던 장소였다. 함장실은 문이 뒤틀렸지만 부하들은 소화기로 문을 부수고 최 함장을 구출했다. 부하들의 목소리를 들은 최 함장의 첫마디는 이랬다. “부상자가 얼마나 되나.” 수년이 흐른 뒤 최 함장은 한 생존 장병을 만나 이렇게 되뇌었다. “병사들이 있던 곳이 아닌, 차라리 함장실이 피격당했어야 했다.”
갑판병 출신으로 피격 당시 말년 병장이던 전준영은 전역을 한 달여 앞두고 있었다. 이번이 마지막 천안함 승선이었다. 이날 폭침으로 그는 동기 4명을 모두 잃었다.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전역 하루 전 그는 최 함장과 계단에 앉아 깊은 얘기를 나눴다. 평소 군내 부조리 등을 자주 묻고, 사병들이 얘기하면 누구보다 먼저 챙겨주던 이가 최 함장이었다. 계단에서 둘은 펑펑 울었다. 최 함장은 “혼자 전역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며 흐느꼈다.
최 함장은 천안함 폭침 전까진 ‘잘나가던’ 장교였다. 천안함 침몰 뒤엔 그의 군 경력도 침몰했다. 진급은 밀리고 한직을 전전했다. 10년도 더 흐른 2021년이 돼서야 그는 대령으로 진급과 동시에 군복을 벗었다.
전역 후 최 전 함장은 부하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자책하며 숨어 살 듯 지낸 그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건 천안함의 명예를 억측과 허위로부터 지켜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 땐 일부 정부 인사가 천안함 도발을 ‘불미스러운 충돌’로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5일,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천안함 자폭’ 망언을 한 혁신위원장 해촉을 요구한 최 전 함장을 겨냥해 “무슨 낯짝으로 얘기를 한 것인가. 부하를 다 죽이고 어이가 없다”고 했다. 논란이 거세지자 그는 사과했지만 생존 장병들의 가슴엔 대못이 박혔다.
전준영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함장님이 아직도 저를 보면 ‘패잔병 아빠란 소리 안 듣게 도와주겠다’는 말을 한다”고 했다. 생존 장병 A 씨는 “함장님은 여전히 우리 마음속의 함장님”이라고 했다.
누군가는 천안함의 경계 실패 책임을 지적할지 모른다. 백번 양보해서 표현의 자유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부하를 다 죽였다”는 발언은 다르다. 거대 야당의 입인 대변인이 그냥 툭 던질 수 있는 가벼운 말이 아니다. A 씨는 “그런 말이 우리를 죽인다”고 했다.
신진우 정치부 차장 niceshin@donga.com
06.11 박민식 “힘없는 부처? 국가보훈부에 대한민국의 사활 걸려 있다”
[아무튼, 주말]
월남 참전 영웅의 아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銘碑)에는 베트남전 참전 영웅 박순유 육군 중령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곳에서 만난 그의 아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보훈은 과거의 헌신에 대한 보상을 넘어 대한민국의 정신적 근간이자 미래를 견인하는 핵심 가치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소년 박민식에게 아버지 박순유 중령은 양가적 존재였다. 박 중령은 1972년 6월 베트남전에서 전사했다. 그의 넷째 아들 박민식은 당시 일곱 살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셨으니, 너는 군인의 아들임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달랐다. 대놓고 “아비 없는 자식”이라며 손가락질하거나, 쉬쉬하며 “불쌍한 아이”라고 동정하곤 했다. 학교에서 “원호 대상자 손 들어봐라” 할 때마다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 아버지를 존경하는 마음에 장래 희망으로 언제나 ‘군인’을 적었지만, 가슴 한쪽엔 부끄럽고 찜찜한 감정이 웅크리고 있었다.
부친의 작고로부터 꼭 51년이 흐른 올해, 박민식은 우리나라 초대 국가보훈부 장관이 됐다. 지난 5일 공식 출범한 국가보훈부는 1961년 설립된 군사원호청에서부터 출발했다. 1985년 ‘국가보훈처’로 개칭됐다. 돕고 보살핀다는 시혜적 의미의 ‘원호(援護)’에서 받들고 예우한다는 의미의 ‘보훈(報勳)’으로 발전한 것이다. 하지만 기관의 위상은 장관급과 차관급을 수차례 오가며 부침을 겪었다. 박민식의 취임 일성은 이랬다.
“역대 어느 정부도 실행에 옮기지 못한 국가보훈부 출범을 우리가 이뤄냈다. 초대 국가보훈부 장관으로서 윤석열 정부의 국정철학인 ‘일류 보훈’의 엄중한 소명을 분골쇄신의 자세로 책임 있게 완수하겠다.”
지난 2일 서울 용산에 있는 서울지방보훈청 그의 집무실 책상 뒤에는 ‘영웅을 기억하는 나라’라는 글귀가 크게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진한 부산 사투리 억양의 그는 열정이 넘쳐 보였다. 예컨대 이런 말. “내 모든 관심과 에너지가 국가 보훈에 필(feel)이 꽂혀 있다. 새벽 3시 반에 일어나는데, 그때부터 머리 싸매고 보훈부가 해야 할 일에 대해 생각한다. 솔직히 검사, 국회의원 할 땐 안 이랬다(웃음). 나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국가보훈부가 가장 중요한 부처라고 생각한다.”
전몰·순직군경의 남겨진 어린 자녀를 지원하는 보훈부의 ‘히어로즈 패밀리 프로그램’에 대해 묻자 눈을 감고 한참을 생각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 듯이. “내가 뭘 잘못했나? 나라가 나한테 미안해 해야지. 나라가 불러서 (아버지가) 전사를 했지 않나. 영웅의 아이들에겐 온 국가가 나서서 은혜를 갚아도 모자란다. 내가 절절하게 느꼈던 아픔을 이젠 누구도 겪지 말아야 한다.”

▲지난 3월 경기 용인시 88컨트리클럽에서 열린 히어로즈 패밀리 멘토-멘티 결연식에서 박민식 장관이 최의영 학생에게 히어로즈 패밀리 증서를 수여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천안함 전사자 고(故) 최정환 상사의 딸인 의영양은 2021·2022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상금왕이자 다승왕인 박민지 선수와 결연을 맺었다. /국가보훈처
◇대한민국, 진짜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국가보훈부로의 승격, 어떤 의미인가.
“국격에는 경제력, 국방력 등 눈에 보이는 힘도 중요하지만, 정신적 가치도 중요하다. 국격은 나라가 누구를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달려 있다. 보훈부 승격의 가장 큰 의미는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분들을 국가가 제대로, 끝까지 책임지고 예우한다는 확고한 인식을 심어주는 데 있다. 이번 승격으로 대한민국이 진짜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고 본다.”
-승격되자마자 정부 19부 중 의전서열 9번째가 됐다.
“행정안전부 다음이다. 다른 장관들이 ‘순서대로 꼴찌로 들어와야지’라며 농담하더라, 하하. 윤석열 정부가 보훈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가 반영된 것이다.”
-1년간 보훈처를 이끌며 어떤 일들을 했나.
“과거 정부에서 ‘제복 입은 사람들’을 존중한다기보다는, 그들을 조롱거리로 전락시키는 일이 적지 않았다. 청와대 행정관이 부르면 별 4개 달린 장성이 뛰어간다든지, 시위꾼들이 경찰관들을 내동댕이친다든지…. 나는 국민들이 제복을 우리나라를 지키는 영웅의 상징이라고 생각하길 바라왔다. ‘히어로즈 패밀리 프로그램’은 내 어린 시절의 아픔에서 출발했다. 작년 기준 전국의 전몰·순직군경 가구 중 미성년 자녀가 있는 집이 128가구, 189명이다. 이 아이들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져줘야 하는 것 아닌가. 물질적 지원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보살펴야 한다.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다. 영웅의 아이들이라면 마을이 아니라 온 나라가 나서도 미안한 일이다.”
한미 동맹 7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한미 참전 용사 10대 영웅’ 홍보 영상을 미국 뉴욕 맨해튼 타임스스퀘어 대형 전광판을 통해 상영한 것도 그의 작품이다. 한미연합군사령부와 공동으로 선정한 10대 영웅에는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밴 플리트 부자(父子), 김영옥 미국 육군 대령, 백선엽 육군 대장 등이 이름을 올렸는데, 30초 길이의 영상에는 이들의 사진을 보여준 뒤 이런 메시지가 뜬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번영, 평화는 먼 곳에서 온 참전 용사들의 희생 덕분이다. 한국전 영웅들의 희생과 헌신을 영원히 기억하겠다.” 백선엽 장군의 장녀 백남희 여사는 이 영상을 보고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무척 기뻐하셨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30일(현지 시각) 박민식 장관이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고(故) 백선엽 장군의 딸 백남희 여사와 '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 송출 영상을 보는 모습. /국가보훈처
-‘보훈은 단순한 추모에 그쳐선 안 된다’고 했는데.
“많은 사람이 ‘보훈’을 국립묘지 가서 머리 숙이는, 제사 같은 걸로 생각한다. 나도 과거에 그랬다. 하지만 그런 거라면 장관이 왜 필요한가. 보훈의 진정한 의미는 과거에 있는 게 아니라 미래에 있다. 나라가 잘되려면 가장 먼저 무엇이 필요한가? 반도체, 자동차 만드는 건 두 번째다. 공동체에 대한 충성심, 나라에 대한 자긍심, 애국심이 있어야 한다. 이 일을 하는 곳이 보훈부다. 이걸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요즘 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엄숙주의에 갇힌 옛날 방식을 버리고 젊은 세대와 호흡하는 방향으로 갈 생각이다.”
-예를 든다면?
“미국 워싱턴DC에서 현지인들, 관광객들은 내셔널몰, 알링턴국립묘지를 많이 찾는다. 우리나라도 그렇게 돼야 한다. 가족이 주말에 손잡고 서울현충원에 나들이 가서 자연스럽게 ‘이렇게 많은 이들이 우리의 오늘을 있게 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구나’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용산에 호국보훈공원을 조성해 세계적 명소로 만들고, 서울현충원은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통해 자유대한민국의 상징 공간으로 꾸밀 계획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핫한 곳으로 만들겠다.”
◇“보훈에는 진영이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된다”
지난달 22일 열린 박민식 장관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의 가장 큰 쟁점은 이승만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 추진 사업이었다. “내란죄의 수괴, 내란 목적 살인죄를 저지른 범죄자를 기념한다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할 수 없다”고 한 진보당 강성희 의원에게 박민식은 “이승만 대통령을 내란 목적 살인죄의 수괴로 생각하는 것은 전혀 받아들이기 어려운 생각”이라고 맞섰다.
-이승만 기념관에 대한 논란이 거셌다.
“주변에서 (청문회 때) ‘로키(저자세)로 임하라’고 해서, 욱하는 성격을 참느라 혼났다. 참 답답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과(過)도 있지만, 독립에서 건국까지의 공(功)이 큰 인물이다. 오늘날 자유민주국가의 토대를 만든 분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진영 논리로 그의 공을 폄훼하는 이들이 있다. 역사적 인물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우리나라의 정체성, 방향성과 직결된 문제다. 국민이 똑바로 생각하지 않으면 나라가 적의 손에 넘어갈 수도 있는, 분단 상황이란 걸 잊어선 안 된다. 책임 있는 사람이라면 싸움을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내겐 나라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을 바로잡아야 할 책무가 있다.”
-이화장, 배재학당 등이 이승만 기념관 후보지로 거론된다.
“정해진 것은 없다. 다만 과거 박정희 기념관, 김대중 기념관 등의 사례를 보면 평균 12년 정도 걸렸다. 질질 끌게 되면 소모적인 논쟁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에, 속도감 있게 추진할 것이다.”
박민식은 “보훈은 국민 통합의 도구여야지, 정쟁의 수단으로 쓰여선 안 된다”고 했다. “보훈에는 보수도 진보도 없다.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조국 독립을 위해 일신을 바친 독립운동가, 공산 세력으로부터 나라를 지킨 호국 용사, 자유민주주의를 세운 민주 열사까지 조국을 위해 싸웠다는 점에서 같은 애국자다. 보훈부는 어느 하나 소홀함 없이 균형 있게 예우하고 보답하고 지원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보훈을 유달리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된 나라라면 당연한 일 아닌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는 말처럼, 역사를 기억하고 예우하고 계승해야 더 큰 도약을 할 수 있다. 윤 대통령 개인에 대해선 나도 깜짝깜짝 놀란다. 그에겐 누구도 못 말리는 철학이 있다. 국방과 보훈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생각이 확고하다. ‘자기 청춘과 일생을 바친 사람을 나라가 외면하면, 누가 다음에 자기 목숨을 걸고 전선에 나서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윤 대통령과의 인연은 언제부터였나.
“2006년 서울지검 특수1부에 있을 때 사표를 썼는데, 윤 대통령이 검찰청 앞 중국집으로 오라고 전화를 했다. 그때 나는 (윤 대통령) 이름만 알 때다. 자기도 사표 써봤는데 바깥 생활이 안 맞더라면서, 검찰에 남아 있으라고 하더라. 잘 모르는 후배에게 이렇게 마음을 써준다니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뜬금없기는 했다, 하하.”

▲윤석열 대통령이 6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현충일 추념식 뒤 베트남전 전사자 묘역을 찾아 박민식 장관 어머니 김순용 여사에게 인사하는 모습. /대통령실
-의원 시절이던 2013년, ‘윤석열은 제가 아는 한 최고의 검사’라는 소신발언을 했다(당시 윤 대통령은 국정원 대선개입 검찰 수뇌부 외압 의혹을 폭로해 여당 지도부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당에서 윤 대통령을 소영웅주의자로 몰던 때다. 친정집(검찰)이 시끄러우니 마음이 편치 않아 한마디 한 것이다.”
-가까운 사이라서 당신에게 보훈부를 맡긴 건가.
“전혀. 가깝다고 할 수도 없는 데다, 윤 대통령은 친소를 따져 자리를 주는 사람이 아니다. 인사에 있어서는 전형적인 특수부 검사 스타일이라고 해야 하나. 일 잘하는 놈이 장땡이다. 일을 못하면 아무리 가까워도 안 맡긴다. 내 경우는 선친이 전사자라는 점을 고려한 게 아닐까 싶다.”
-대통령 부부가 보훈 관련 일정을 많이 소화하고 있다. 가까이서 본 윤 대통령, 김건희 여사는 어떤 사람인가.
“감동을 많이 받았다. 3월 서해 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윤 대통령이 전몰장병 5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지 않았나. 누가 윤석열 정부의 보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 장면을 말하고 싶다. 대한민국이 꼭 기억해야 할 이름들을 대통령이 부른 게 참 의미 있는 일이었다. 윤 대통령은 업무에 있어서는 치밀하고 꼼꼼하다. 김 여사는 털털하고 진솔한 분 같다.”
-김 여사가 히어로즈 패밀리 프로그램 출범식에 참석했을 때 ‘발버둥 치는 아이를 억지로 안았다’는 비난이 나왔는데.
“보훈을 진영 싸움을 위한 수단으로 삼은 단적인 예다. 그 아이는 2020년 한강 투신실종자 수색 중 순직한 유재국 경위의 아들 이현군이다. 유 경위가 사망한 지 두 달 뒤에 태어난 이현군은 뇌성마비로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당시 김 여사가 ‘안아봐도 되겠냐’고 아이 어머니에게 묻고 안았다. 아이가 김 여사와 눈을 마주치고 활짝 웃었는데, 그런 말도 안 되는 비난이 나온 거다. 우리를 위해 희생한 분들의 가족을 지키는 일은 대한민국 국민 전체에게 주어진 일임을 무겁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김건희 여사가 지난 4월 13일 2020년 한강 투신 실종자 잠수 수색 중 순직한 고(故)유재국 경위 자택을 방문해 유 경위의 아내 이꽃님씨와 대화하는 모습. 당시 김 여사가 유 경위와 이씨의 아들을 안았는데, '억지로 안았다'는 비난이 제기됐다. /대통령실
◇‘원호대상’ 소년, 국가보훈부 장관이 되다
박민식의 부친 박순유 육군 중령은 주로 첩보부대(현 국군정보사령부)에서 근무한 정보장교였다. 1972년 맹호부대의 첩보부대장(공작대장)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그해 6월 베트남 빈딘성 지역에서 적군의 습격을 받아 산화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라면.
“어릴 적 경남 거창의 시골에 살았다. 장교인 우리 아버지가 우리 마을의 ‘호프(hope)’였다. 아버지가 선물을 보내오면 동네 사람들이 다 모였다. 자랑스러웠다. 아버지가 벌을 줄 때 집 앞 감나무 아래 서 있으라고 한 것도 기억 난다.”
-너무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다.
“어머니가 서른여섯이었다. 이장님이 아버지 전사 통지서를 갖고 왔다. 노란 종이에 ‘박순유 사망’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어머니가 너무 놀라 쓰러지셨다. 외삼촌이 있는 부산으로 이사를 갔고, 시장에 농작물을 내다 팔면서 ‘월남때기’라 불리며 홀로 6남매를 키웠다. 그때야 다들 가난했지만, 방 두 칸짜리 슬래브집에서 우리 7식구가 살았다. 어머니는 전형적인 한국 엄마다. 부산말로 ‘뻣나가지 않도록’ 아이들을 키우겠다는 생각 하나로 사셨던 것 같다.”
박민식 가족은 베트남에서 장학사업을 하고 도서관을 설립했다. 어머니와 여동생이 강력하게 원해 시작한 일이다. “베트남전 참전 용사를 ‘학살자’로 매도하는 이들이 있다. 핀셋으로 전쟁의 어느 한 장면을 뽑아내 평가하는 것은 몹시 위험한 일이다. 전쟁을 가해자와 피해자, 이분법적으로 나눠 바라보는 것은 온당치 않다.”
-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왔고 외무고시(1988), 사법시험(1993)을 둘 다 패스했다.
“한 번도 신동, 천재란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집중력은 좋았던 것 같다. 사시 공부할 때, 금요일 오후부터 토요일 오후까지는 확 놀았다. 이러면 일요일부터 절박해진다. ‘하루를 완전히 놀았으니, 나머지 6일은 공부를 해야겠구나’란 생각이 번쩍 들었다. 스타카토식으로 공부를 한 셈이다.”
-운전면허를 16번 떨어진 건 실화인가.
“미국에서 한 번 더 낙방해 17번이다. 웃을 일이 아니고, 참 심각했다. 다섯 번쯤 떨어지니까 주눅이 들더라. 검사 시절에 시험을 보는데 20대 순경이 감독관으로 왔다. 도로주행을 내 딴엔 거의 완벽하게 했다고 앉아 있는데, 순경이 말하더라. ‘아저씨! 한 번 더 오세요!’ 사시가 2년 걸렸는데, 운전면허가 3년 반 걸렸다(웃음).”
-외교관과 검사는 왜 그만뒀나. 특히 검사 시절엔 ‘불도저 검사’로 잘나갔는데.
“원래 군인이 꿈이었는데, 외교관을 ‘세계 무대에서 싸우는 평시의 군인’이라고 다소 낭만적으로 생각했다. 그때만 해도 집안 형편도 좋고 세련된 사람이 외교관을 하는 분위기였다. 스타일이 안 맞아서 고민하다 사표를 썼다. 검사는 아주 보람 있게 했다. 그런데 참 시끄러운 사건을 많이 맡았다. 국정원장, 판·검사들을 구속시키느라 감정 소모가 많았고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18·19대 재선 의원을 지냈다. 정치에 입문한 이유는.
“당시에 일이 다 안 풀렸다. 변호사 1년 했는데 손님이 딱 끊겼고, 대형로펌, 로스쿨, 청와대 등 일자리를 알아봤는데 다 안 됐다. 그러던 차에 부산에서 출마를 권유하는 분들이 생겨났다. 내가 ‘(정치) 준비를 해야 한다’고 사양하자, 어떤 분이 말하더라. ‘이 양반아, 정치는 고시 공부와 다르다.’ 당시에 친이든 친박이든 줄이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나는 계파도 없이 국회의원이 됐다. 의원 생활 동안 보훈에 대한 관심은 꾸준했다. 국가유공자와 제대군인을 지원하는 법안도 여럿 발의했고,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분들에게 이 나라가 합당한 대우를 하고 있는가?’는 대정부질문 때 내 단골 멘트였다.”
-청문회에서 내년 총선 출마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왜 답을 제대로 못했나.
“출마는 당사자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니즈(수요)가 더 중요하다. 그걸 모르고 부산시장 선거에 나섰다가 여러 번 떨어지지 않았나(웃음). 나를 필요로 할 때, 나를 불러줄 때가 따로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은 머릿속에 보훈 생각밖에 없다.”
어떤 장관으로 남고 싶은지 물었다. “보훈부는 돈도 칼도 없는, 어찌 보면 힘없는 부처다. 하지만 나라의 사활이 걸려 있는, 어느 곳보다 중요한 부처라는 걸 매 순간 느끼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나라를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나라’라고 비하한다. 나의 소명을 한 가지만 꼽으라면 이렇게 말하겠다. 젊은 세대에게 대한민국은 정말 자랑스러운 나라, 자부심을 느껴도 될 만한 나라라는 생각을 심어주고 싶다.”
조선일보 이옥진 기자편집국 주말뉴스부 기자
06.12 열악한 처우, 꺾인 사기, 軍 초급 간부 무너지면 안보 흔들린다

▲지난 2월 충북 괴산 육군학생군사학교에서 열린 '2023년 학군장교(ROTC) 통합임관식'에서 소위로 임관한 학군장교들이 모자를 던지며 환호하고 있다. /뉴스1
군의 척추인 초급 간부들 사기가 바닥이란 우려는 과장이 아니었다. 본지 취재진이 찾은 최전방 수색대대 초급 간부들은 제대로 된 숙소도 없이 컨테이너형 가건물에 기거하고 있었다. 이들이 받는 당직 근무비는 평일 1만원, 휴일 2만원으로, 경찰·소방관의 5분의 1 수준이다. 그나마 월 67시간까지만 수당을 준다. 병력 부족으로 어떤 부대 위병소에선 병사 대신 부사관이 근무를 서고 있었다. 월 8만원의 주택 수당이 26년간 동결되는 등 근무 여건이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초급 간부들의 조기 전역이 급증하고 충원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초급 장교의 70%를 공급하는 학군장교(ROTC)의 지원율 하락은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 수도권 대학의 ROTC 후보생 지원율은 0.92대1로, 선발 예정 인원을 밑돌았고, 실제 선발된 인원은 필요 인원의 51%에 그쳤다. ROTC를 중도 포기하고 일반병으로 입대하는 사례도 속출한다. 복무 기간은 병사보다 훨씬 긴데 ‘병장 월급 200만원’ 추진으로 받는 돈은 비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ROTC뿐 아니라 사관학교, 대학 군사학과, 육·해·공군 부사관의 인기도 땅에 떨어졌다.
역사상 모든 전쟁은 일선 소대장과 중대장, 부사관 등 초급 간부 자질의 격차에서 승패가 갈렸다. 이들의 사기가 엉망이면 아무리 많은 병사도 오합지졸이고 1000억원짜리 스텔스기도, 1조원짜리 이지스함도 무용지물이다. ‘병 복무 기간 단축’ ‘병사 월급 200만원’ 같은 포퓰리즘 정책이 아니라, 초급 간부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사기를 높이는 것이 국방 개혁의 최우선 순위가 돼야 하는 이유다.
국방부는 뒤늦게 관련 예산 증액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세수 부족을 이유로 증액에 부정적인 재정 당국을 설득하는 작업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매년 되풀이되는 일이다. 걷지 않아도 될 지방교육교부금을 비롯해 방만하게 쓰이는 세금이 매년 수십조원이다. 이런 예산은 확 깎고 초급 간부들의 처우·사기와 직결된 예산을 우선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안보가 무너지면 세금을 낼 국민도, 세금을 걷을 나라도 없다.
조선일보 사설
06.13 현충일을 도둑맞을 뻔했다
큰 대가 치르고 지켜낸 한국
영웅과 악당은 구별해야 한다
군인의 희생마저 부정한다면
누가 국민의 방패가 되겠나
2015년 2월 대전 복수초등학교 조시은양의 졸업식에는 ‘삼촌’이 많았다. 시은이는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고(故) 조천형 상사의 딸. ‘아빠 없는 졸업식’에 마음이 쓰여 대전까지 달려간 사람은 참수리 357호정 승조원 대표인 이희완 당시 소령만이 아니었다. ‘연평해전’을 만든 김학순 감독, 그 영화에서 조천형을 연기한 배우 김지훈도 참석했다. “전사자 유자녀는 시은이뿐이라 행사가 있을 때마다 얘기가 나옵니다. 아빠가 안 계시지만 아주 잘 자랐어요.”(김학순 감독)
서해 NLL을 지킨 군인은 이웃의 아들이나 남편, 아버지였다. 조천형 상사가 함포 방아쇠를 잡은 채 숨을 거뒀을 때 시은이는 백일이 갓 지난 아기였다. 아빠를 사진으로만 보며 자란 딸은 중학생 때 엄마에게 “아빠의 뒤를 이어 해군이 되겠다”고 했다. 그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조시은(21)씨는 부경대 해군 학군단에 들어갔고 교육을 마치면 소위로 임관한다. 아버지처럼 조국의 바다에서 방패가 되는 것이다.
천안함 폭침 전사자 고 김태석 원사의 딸 김해나(21)씨, 천안함 폭침 실종자 탐색 구조 작전 전사자 고 한주호 준위의 딸 한태경(33)씨도 해군의 길을 걷고 있다. ‘삼촌’들이 들려준 아버지 이야기, 600만명이 본 영화 ‘연평해전’, 영웅에 대한 예우가 삶의 항로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우리는 좋은 기억뿐 아니라 상처도 소중하게 여긴다. 커다란 대가를 치르고 지켜낸 진실은 더 귀하다. 그것을 훔치려 한다면 싸울 수밖에 없다.
지난 6일 서울현충원에서 추념 리본을 가슴에 단 최원일 전 천안함장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찾아가 항의했다. 최 전 함장은 민주당에서 불거진 “천안함은 자폭”(이래경 전 혁신위원장) “부하들 다 죽이고 무슨 낯짝으로”(권칠승 수석대변인) 등 막말에 대해 그것이 대표와 당의 입장인지 물었다. 이 대표는 답하지 않았다. 2020년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도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천안함 전사자 유족에게 “폭침이 누구 소행인지 말씀 좀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영웅과 악당을 구별하자는 탄식과도 같다. 지나간 사건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하는 ‘이야기 전쟁’은 그만큼 살벌하고 지저분하게 펼쳐지고 있다. 2010년 다국적 전문가들은 모의실험과 폭발 유형 분석 등 과학적 조사로 천안함이 북한제 어뢰 공격에 의해 폭침됐다고 결론지었다. 법원도 음모론은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전사자와 생존 장병을 모독하는 일이 되풀이된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확증 편향이 진실마저 약탈하는 것이다.
제2연평해전은 김대중·노무현 정부까지 ‘서해교전’으로 불렸다. 이명박 정부 들어 제2연평해전으로 바뀌었고 지난해 처음 ‘승전 기념식’을 열었다. 교전이 승전이 되기까지 20년이 걸린 셈이다. 안보에는 진영이 있을 수 없다. 문 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의 정상회담과 악수는 교과서에 실리는데 북한의 천안함 폭침은 왜 실리지 않는지 의아하다. 진실은 부정하거나 무시하면서 음모를 부각한다면 그 정파에는 표를 주지 말아야 한다.
현충일을 도둑맞을 뻔했다. 호국 영웅들을 추념하는 자리에 악당들이 흙발로 쳐들어올 만큼 이 나라가 허술한가. 이타적인 영웅 이야기는 사람들을 공동 가치로 결속하는 접착제가 될 수 있다. 무엇을 집단적 기억으로 삼아야 바람직한 사회가 될 것인가는 자명하다. 조시은 해군 소위가 아버지의 이름을 딴 ‘조천형함’에서 복무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군인의 헌신과 희생을 예우하고 기억하지 않는다면 누가 다시 국가와 국민을 위해 방패가 되겠나.

▲해군은 제2연평해전 전사자 고 조천형 상사의 딸 조시은씨가 부경대 해군 학군사관후보생(NROTC)이 됐다고 밝혔다. /뉴스1
조선일보 박돈규 주말뉴스부장
06-14 창원간첩단, 고교생 하부망도 구축했다…‘청년학생총궐기’도 준비

▲창원간첩단 ‘자주통일민중전위(자통)’ 이 고등학생 모임‘날갯짓’을 지역 하부망으로 활용한 내용이 기록된 2022년 9월28일 대북보고문.자유민주연구원 제공
지난해 9월 대북보고문에 고등학생 모임 ‘날갯짓’ 운영 현황 보고
최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창원간첩단 ‘자주통일민중전위(자통)’ 이 고등학생들의 모임까지 지역 하부망으로 활용하려 한 것으로 14일 나타났다. 간첩단이 중·고교생을 대상으로 선전 활동을 전개한 적은 있지만, 지역 고교생 모임까지 지역 하부망으로 조직·운영하려 한 사실이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소장 등에 따르면 2022년 9월28일 대북보고문에는 자통 지역조직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고등학생 모임’인 ‘날갯짓’ 5기 회원 15명 가입을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후원회원 6명, 기존 회원 3명, 신입회원 3명, 가입 제안대상 2명 등 모두 15명이며, 대학생 ‘날갯짓’ 20명 가입 사실도 북한에 보고됐다.
지역 대학에서 ‘민간인 학살 세미나’‘민간인 학살지 기행’ 등 학습 내용과 더불어 이들 ‘날갯짓’을 중심으로 설문조사, 캠페인, 총궐기 조직 등 ‘청년학생총궐기를 준비하기 위한 대중운동’을 전개해온 사실도 북한 문화교류국에 보고됐다. ‘날갯짓’은 학생들의 자발적 인권운동 조직으로 지역매체에 보도되기도 했다. 단 날갯짓에 가입한 학생들은 자통이 지역 하부망으로 조직하려 한 사실이나 자신들의 활동 내용이 북한에 보고된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자통이 미성년자인 고등학생까지 북한의 대남혁명전선에 동원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며 “북한이 청소년을 혁명의 후비대(예비군)로 간주하는 정책을 남한 혁명에 적용하려 시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12일 국회 대정부질문에 출석해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권의 경찰 이관과 관련 “근본적으로 대공 수사 능력이 약화하지 않도록 하는 대안을 진지하고 적극적이고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문화일보 정충신 선임기자
06-15 개성사무소 손배소 만시지탄…다른 법적 책임도 물어야
북한은 2020년 6월 16일 대북전단 살포를 빌미 삼아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그러나 당시 문재인 정부는 북한에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하명에 따라 대북전단금지법을 만들었고, 개성사무소 폭파로 사문화된 판문점 선언의 국회 비준을 추진하기도 했다. 정부가 14일 북한을 상대로 447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한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정부는 개성사무소 청사 피해액 102억5000만 원,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 피해액을 344억5000만 원으로 산정했다. 원고를 대한민국으로, 피고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명기했고, 우리 민사소송 절차에 따라 재판이 진행된다. 개성 사무소 폭파는 명백한 불법행위이자 판문점 선언 등 남북 간 합의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북한 눈치를 보며 저자세로 나가는 것은 결코 남북관계 정상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국민의 세금으로 지어졌고 대한민국 소유로 등록된 건물이 훼손됐는데도 수수방관한다면 직무유기를 넘어 정부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승소해도 배상을 받을 수단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북한에 억류됐다 사망한 오토 웜비어 부모는 미국법 절차에 따라 북한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뒤 북한이 판결을 인정하지 않자 인도네시아에 억류된 북한 선박의 소유권을 확보해 배상을 받아냈다. 정부도 16일 만료되는 손해배상청구권 시효를 보전한다는 식의 소극적 자세로 임해선 안 된다. 국제기구 제소, 우방과의 협력을 통한 북한 재산 압류 등 가능한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
차제에 2012년부터 연체되고 있는 대북 차관 1조1360억 원에 대해서도 국제사회에 공론화하는 등 압박 수위를 높여야 한다. 북한이 최근 해체한 것으로 확인된 금강산 관광지구의 수백억 원대 호텔과 골프장 건물들, 7779억 원에 달하는 개성공단 투자 기업의 피해에 대해서도 관련 기업들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특히 최근 북한이 개성공단 내 공장 30여 곳을 무단으로 가동하고 있는 것에 대해 단순히 경고하는 데 그쳐선 안 된다.
문화일보 사설
06-15 北 주민에 ‘정찰위성 헛짓’ 알려야 한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中의 서해 방파제 자처 김정은
실제로 위성 가동 땐 위험천만
美 이미 통신교란 무기로 대비
정찰위성 시도는 헛돈 쓰는 셈
매회 북한 全주민 식량비 규모
굶주림 원인 알려 깨닫게 해야
우리 누리호 로켓이 각종 위성을 성공적으로 우주에 안착시킨 직후인 5월 31일, 북한도 만리경 1호 정찰위성을 탑재한 천리마 1형 로켓을 쏘아 올렸다. 그러나 천리마 1형은 북한의 기대와 달리 2단 로켓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추락하고 말았다. 통상 다음 날 오전에 각종 브리핑을 했던 북한은 이례적으로 실패를 즉각 인정하며 이른 시일 내에 다시 발사하겠다고 예고했다. 예비 로켓을 여러 발 만들어 놨기 때문에 신속한 재발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북한이 어려운 여건 속에도 정찰위성을 쏘아 올린 것은 중국에 대한 군사적 매력 공세다. 김정은은 2021년 6월 조선노동당 제8기 중앙군사위원회 전원회의를 통해 “미국의 대북 압박은 북한 비핵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미·중 패권 경쟁에서 중국을 염두에 둔 국제정치적 전략의 일부다. 미국이 중국을 공격할 때 서해를 담당하는 전략군이 이에 대한 방어를 맡고 대응타격까지 해야 한다”는 교시를 내렸다. 이때 북한은 중국의 방파제 역할을 선언하며 군사적으로 확실하게 중국에 줄을 선 것이다.
그 후 계속 각종 전략무기를 발사하며 한국의 각종 전략시설은 물론 미국 항공모함 전단과 주한미군 기지 타격 능력을 키우는 등 ‘대응타격’ 능력을 배양해 왔다. 이렇게 ‘주먹’을 어느 정도 갖춘 북한은 그것을 활용할 눈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 눈의 시작이 바로 만리경 1호다. 약 300∼1500㎞ 상공을 선회하는 저궤도 위성인 만리경 1호를 다량으로 쏘아 올려 최소 2시간에 한 번 정도는 한반도를 정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면서 미국 항공모함을 발견해 미래 예상 위치를 향해 미사일과 핵어뢰를 쏘려고 하는 것이다. 북한의 계획대로 이뤄진다면 참으로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정도 능력이면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 속에서도 중국으로부터 정권이 생존할 수 있는 각종 물자 지원을 받아낼 수 있는 매력이 갖춰지는 것이다.
그러면 미국은 이런 북한의 위협을 지켜보고만 있었을까? 아니다. 2021년 주한미군 군산기지에 사상 첫 우주군 병력이 배치됐다. 이 우주군 병력은 유사시 ‘대통신체계(CCS·Counter Communications System) 블록 10.2’를 신속히 전개하기 위한 연락반 성격으로 알려진다. 수송기에 실려 지구촌 어디든 24시간 안에 전개되는 CCS 블록 10.2는 적의 위성과 지상의 통제센터가 교신하는 것을 교란하는 장비다. 위성이 명령을 받을 수 없게 만들 뿐만 아니라, 위성이 촬영한 영상을 지상으로 전송하지 못하게 만든다. 북한 위성은 정찰위성이든 통신위성이든 미국이 마음먹으면 언제든지 먹통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 즉, 미군은 적의 위성을 완전히 무력화할 수 있는 장비를 한반도에 전개할 준비를 이미 마친 것이다. 또, 이지스함에 탑재되는 SM-3블록2A 미사일의 사정고도가 1500㎞이기 때문에 위성을 격추시켜 버릴 수도 있다.
한마디로 북한은 ‘헛돈’만 쓴 것이다. 그러면 북한은 얼마나 큰돈을 허공에 날려 버린 것인가. 지난 2000년 김정일은 한국 언론사 사장단을 초청해 “로켓 1발에 2억∼3억 달러 든다”고 했고, 2012년 은하 3호 로켓을 발사할 때는 8억5000만 달러의 비용을 추산한다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말했다. 따라서 지난 10년간의 인플레이션과 더욱 대형화한 로켓 등을 고려할 때 예비 로켓을 여러 발 만들어 놨다는 이번 천리마 1형 발사에는 최소 2조 원 이상의 비용이 사용됐을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러면 북한에 2조 원은 어느 정도의 가치인가. 2022년 기준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북한이 올해 110만t의 식량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했다. 2023년 초 국제 쌀 가격은 t당 약 375달러. 2조 원은 무려 410만t의 쌀을 살 수 있는 엄청난 돈이다. 북한 인민 전체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돈을 의미 없이 하늘로 날려 보내며, 오직 정권 유지를 위해 중국에 매력 공세를 펴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각종 자산을 활용해 이런 정보를 북한에 광범위하게 퍼뜨려, 북한 주민들이 로켓 발사를 보면서 미국을 이길 수 있다고 환호할 게 아니라, 아무런 의미도 없는 짓을 하며 인민들을 굶주림으로 내몰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이제는 북한 주민들이 깨어나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문화일보
06-15 <기고>우리 군이 자랑스럽다. 연합·합동 화력격멸훈련을 보고

▲‘2023 연합·합동 화력격멸훈련’ 국민참관단으로 경기도 포천시 승진과학화훈련장을 방문한 박태헌 예비역 해병대 장교가 아파치 가디언 공격헬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태헌씨 제공
6·25 참전용사(박임도)의 아들 박태헌 예비역 해병대 장교
나는 6·25 참전용사의 아들이다. 부친께서는 6·25 전쟁 당시 공군으로 입대해 경남 사천 2비행대대, 여의도 공군본부, 대구 동촌 비행대대에서 하사로 복무하셨다. 어려서부터 6·25 전쟁에 대한 말씀을 줄곧 듣고 자란 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해병대에 지원해 복무했고, 그 후로도 항상 군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응원하게 됐다.
어느 날 우연히 신문에서 ‘2023 연합·합동 화력격멸훈련’ 국민참관단을 모집한다는 기사를 보고 아버지와 함께 훈련을 참관하고자 신청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올해 96세의 연로하신 아버지는 훈련 당일 컨디션이 좋지 못해 직접 참석하시지는 못하셨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6·25 참전용사의 아들인 내가 역대 최대 규모의 전력이 참가한다는 이번 훈련을 참관하게 된 것도 무척 의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는 과거 6·25전쟁 당시 우리 군은 소총 한 자루, 항공기 한 대 변변하게 갖추지 못했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사천 공군부대에 근무 하실 때, 화장실은 물론 먹을 것도 제대로 없어 늘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고 한다. 항공기를 이륙시킬 활주로도 없어서 매일 활주로 공사에 동원되었다고도 했다.
그러나 연합·합동 화력격멸훈련에서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우리의 전투기가 엄청난 폭음과 함께 목표를 명중시키고, 전차, 장갑차, 헬기, 화포, 다련장, 무인기 등 수많은 무기들이 다수의 표적들을 압도적으로 공격하는 것이었다. 이 모습을 아버지가 직접 보셨더라면 어떠셨을까? 70여년 전 6·25 전쟁 당시 맨 몸이다시피 한 상태로 적과 싸웠던 아버지 세대들은 정말 감개무량하셨을 것이다.
아버지와 나를 거쳐 이제는 나의 아들, 손자뻘 되는 국군장병들이 이렇게 든든히 나라를 지켜주고 있다. 어찌보면 안보도 ‘내리 사랑’이 아닐까? 아버지가 지켰던 우리나라를 내가 지켰고, 이제 우리 자식들이 지키고 있다. 복무기간이 18개월로 줄었는데도 훈련을 통해 내가 본 모습은 수준급 실력을 갖춘 믿음직한 장병 한 사람 한 사람이었다. 자랑스럽고 감사했다.
우리 군에게 국민이 기대하는 최우선의 임무는 강한 힘을 바탕으로 외부의 군사적 위협과 침략으로부터 국가를 방위하고 국민을 지키는 것이다. 국가방위라는 숭고한 임무를 완수하는 우리 군의 노력을 이번 ‘2023년 연합·합동 화력격멸훈련’을 통해 국민들에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 것 같다. 힘이 없어서, 제대로 갖추고 훈련하지 못해서, 또다시 6·25 전쟁과 같은 비극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아버지와 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은 물론 평화로운 일상을 보낼 수 있도록 확고한 대비태세를 갖추고 있는 우리 군에게, 국민적 지지를 계속해서 보여주고 응원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일보
06-16 수심 75m서 와이어로 올려… ‘천마’ 글씨 · ‘말 형상’ 마크 선명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을 이용해 발사한 우주발사체(운반로켓) ‘천리마 1형’의 일부 잔해를 15일 서해상에서 인양해 16일 공개했다. 뉴시스
■ 북한 발사체 잔해 2단부분 인양
구조함·전투함·항공기 총동원
직경 2.5m·길이 12m 인양
‘천리마’ 로켓인데 ‘천마’ 글자
평택2함대 사령부로 잔해 이송
지난달 31일 발사된 북한의 정찰위성 탑재 우주발사체 ‘천리마 1형’ 일부가 보름 만인 지난 15일 밤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수심 75m 해저에 완전히 가라앉았던 발사체 잔해는 해난구조전대(SSU) 소속 심해잠수사들을 비롯해 수상함구조함 통영함(ATS-31)·광양함(ATS-32), 잠수함구조함 청해진함(ASR-21) 등을 동원한 보름간의 인양작업 끝에 우리 군의 손에 들어오게 됐다.
군 당국에 따르면 북한이 쏘아 올린 발사체가 추락하면서 당일 곧바로 천리마 1형의 2단 추진체로 추정되는 원통형 물체가 발견됐지만, 인양 시도 과정에서 다시 바닷속으로 가라앉으면서 예상보다 긴 15일의 기간이 소요됐다. 길이가 약 12m에 이르는 데다 물속에 잠겨 있는 부분의 무게도 상당해 인양 작업에 애를 먹었다는 설명이다. 그간 조수 간만의 차가 가장 크고 유속이 가장 빠른 대조기를 지나는 등 수중 작업 여건도 불리한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원통형 동체의 양쪽 끝에 와이어를 묶어서 끌어올리려고 했지만, 미끈한 표면의 동체가 와이어에서 미끄러져 빠졌다고 한다. 발사체의 동체가 매끈해 와이어를 고정할 곳이 마땅치 않은 데다, 동체 상단부와 중간부 이음새가 강한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벌어지는 등 난관이 이어졌다. 산화제와 연료 등이 발사체에 남아 있을 수 있어, 인양 과정에서 파손을 최대한 막아야 한다는 점도 고려됐다. 군은 2단부 양 끝에 ‘ㄷ’자 모양의 강철 고리를 연결하고, 심해 잠수를 거쳐 파악한 새 관통구에 와이어를 설치한 뒤 우선 수면 아래 10m까지 들어 올렸다. 이후 보강 와이어를 추가 설치한 뒤, 물살이 가장 약한 시점을 기다렸다가 구조함의 크레인을 이용해 15일 오후 8시 무렵부터 끌어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그래픽=하안송 기자
이번에 인양에 성공한 발사체의 동체에는 ‘천마’라는 두 글자가 한글로 적혀 있다는 점이 이목을 끌고 있다. 북한이 이 발사체에 ‘천리마’라는 이름을 붙여 공표했던 것과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군 당국은 공표됐던 이름과 동체에 적혀 있는 이름이 왜 다른지 분석 중이다. 잔해 안에서 고출력 엔진이 발견될지도 관심거리다. 이번에 인양된 2단부의 경우 북한의 백두산 엔진을 활용했을 가능성이 커, 화성-15형·화성-17형 등 화성 계열에 사용되는 탄도미사일 기술을 알아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북한은 2017년 3월 18일 백두산 엔진의 개발에 성공해 3·18 혁명이라고 부를 만큼 공을 들여 왔다. 이번 발사체 분석 결과에 따라 북한 핵·미사일 위협의 핵심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력의 실체가 규명될 수 있을 전망이다.
지금까지 군 당국은 북한 로켓·미사일 잔해를 총 세 차례 인양했다. 2012년 12월 군산 서쪽 160㎞ 바다에서 은하-3호 1단 추진체 연료통 등을 확보했고, 2016년 2월엔 서해 어청도 서남쪽에서 광명성호 페어링·추진체 등을 끌어올렸다. 지난해 11월엔 북한이 북방한계선(NLL) 이남으로 쏜 SA-5 지대공 미사일을 울릉도 서북쪽 167㎞ 바닷속 1700m 지점에서 건졌다.
조재연 기자 jaeyeon@munhwa.com
06-16 북한 발사체 인양 당시 중국 선박 출몰
3단부분·위성체 수색 경쟁
수면 접촉 때 폭발했을 수도
지난 15일 군 당국이 북한 주장 우주발사체 일부의 인양에 성공하면서 3단 추진체, 정찰위성체 등 나머지 부분의 행방에도 관심이 쏠린다. 북한이 쏘아 올리려던 정찰위성 ‘만리경 1호’ 본체를 확보할 수 있다면 해상도 등 기술적 성능을 파악하는 동시에 대북수출금지 품목이 장착됐는지도 판단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16일 군에 따르면 이번에 인양된 우주발사체는 3단 로켓인 천리마 1형의 2단 부분에 해당한다. 3단부와 정찰위성에 대해선 수색과 인양 작업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앞서 북한의 우주발사체가 발사 실패로 추락하면서 수면에 접촉할 당시 막대한 충격이 가해지며 3단부와 위성체가 튕겨 나가, 폭발과 함께 훼손됐을 가능성이 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낙하물이 떨어진 구역이 100㎞ 이상 된다”고 하는 등 잔해가 낙하한 것으로 추정되는 영역도 광범위해, 추가 수색이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발사체 잔해를 추가로 발견해 인양·수거하게 된다면 북한의 감시·정찰 역량이 한층 뚜렷하게 드러나고, 어떤 국가의 부품과 기술이 도입됐는지까지 파악할 수 있어 군은 수색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번 우주발사체의 확보를 둘러싸고 중국이 수색 작업에 뛰어드는 등 ‘인양 경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중국 선박들은 한국 해군이 인양작업을 벌이는 동안 북한 우주발사체가 추락한 수역의 근해에서 잔해 탐색에 나섰다. 다만 아직 중국 측의 성과는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앞서 중국 해양조사선 샹양훙(向陽紅) 18호가 5일 북한 발사체 잔해 추락 지점으로부터 114㎞ 떨어진 곳에 도달하는 등 중국 선박들이 평소 다니던 항로를 벗어나 한반도 서쪽 지역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관측됐다. 유엔해양법협약(UNCLOS)상 공해상에 떨어진 잔해는 먼저 인양하는 쪽이 소유권을 갖게 돼, 한·중이 선점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해석이다.
조재연 기자 jaeyeon@munhwa.com
06.17 北, 발사체 추락 직후 중국에 SOS… “잔해 인양 나서달라”
한국에 정보 안 넘기려 요청한 듯
북한이 지난달 31일 쏘아 올린 우주 발사체가 서해상에 추락한 직후 중국 측에 인양을 요청한 정황을 한국 정보 당국이 포착한 것으로 16일 알려졌다. 정보 당국은 발사체를 한국군이 인양하는 것을 막기 위해 북한이 중국 측에 인양을 요청한 것으로 보고, 인양 해역 주변에 해군 함정을 여러 척 배치했다고 한다. 정보 당국은 또 북한이 발사체 추락 후 추가 발사를 예고했지만,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내부 동요가 심상치 않다고 보고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북한이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해 발사한 우주발사체 '천리마 1형'의 잔해물이 서해에 추락한 지 15일 만에 인양돼 16일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 언론에 공개되고 있다. /연합뉴스
정보 소식통은 “북한이 발사체 추락 직후 중국에 인양을 도와달라고 요청한 정황이 파악됐고, 이에 따라 한국군은 해군 함정 여러 척을 배치해 신속한 인양에 나선 것”이라고 전했다. 서해 공해상에 추락한 발사체는 먼저 인양하는 쪽이 권리를 갖는데, 북한이 발사체 관련 기술이 한국군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중국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군은 북 발사체가 서해 공해상에 떨어진 점을 고려해 인양 인력·장비와 함께 경계용 함정을 인양 현장 주변에 여러 척 배치하고 잔해 수색 작전을 펼쳤다. 그 결과 추락 1시간여 만에 일시적으로 바다에 떠 있던 발사체 잔해 일부를 발견하고, 이 잔해가 수중에 가라앉자 고장력 밧줄을 설치해 15일 건져냈다.
정보 당국은 북한이 발사체 추락 후 추가 발사를 예고했지만, 기술적 결함을 아직 해결하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 김여정은 지난 4일 담화를 통해 군사 정찰 위성 발사 등을 지속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보 소식통은 “북한이 추락 발사체의 기술적 결함을 완전히 해결하지 못해 추가 발사에 나서지 못하면서 북 권력층 내부가 동요하는 등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포착됐다”고 전했다.
조선일보 최경운 기자
06.17 인양한 北발사체 큰 손상 없어...“ICBM 수준 엿볼 열쇠 얻었다”
北발사체 ‘핵심 부품 확보’가 관건
군이 지난 15일 오후 8시 50분 전북 군산 서쪽 240여㎞의 수심 75m 펄에 묻힌 북한 우주발사체 2단 추정 동체를 인양했다. 북한이 지난달 31일 발사한 우주발사체가 서해에 추락한 지 15일 만이다. 잔해 동체 표면에는 발사체 이름으로 추정되는 ‘천마’라는 두 글자와 날개 달린 말 형상의 검은색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합참은 16일 “잔해물 길이는 12m로 지름은 2.3~2.8m”라고 했다. 상단부에서 하단부로 갈수록 넓어지는 형태다. 동체 내부에는 복잡한 기계 장비가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보존된 것으로 알려졌다. 군 관계자는 “분석 전에는 발사체 엔진이 있는지 등 잔해 내부 상황을 정확히 확인하기는 어렵다”면서도 “국방과학연구소(ADD) 등 전문기관의 정밀 분석을 통해 북한 발사체 수준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번 발사체에 북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엔진 등이 사용됐을 가능성이 있어 이번 잔해 분석이 북한 장거리 탄도미사일 기술 능력과 위성 발전 수준을 확인할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군은 발사체 1단과 북한이 ‘만리경-1호’라고 명명한 군사정찰위성체가 탑재됐을 3단 등 추가 잔해도 인근 해역에서 수색 중이다.

▲그래픽=백형선

▲그래픽=백형선
군은 인양한 발사체 잔해를 경기 평택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 공개한 직후 군사 정보 기관에 넘겨 정밀 분석에 들어갔다. 군은 이날 광양함 선상에서 공개한 발사체 2단 추정 발사체 상·하 절단면 부위를 검은 차양막으로 밀봉했다. 군 관계자는 “북한 우주발사체 및 탄도미사일 각종 장비와 부품, 그리고 기술력 수준을 파헤칠 수 있는 부분인 만큼 정확한 분석 절차를 거칠 것”이라고 밝혔다.
합참이 공개한 발사체 잔해는 일부가 살짝 찌그러졌을 뿐 전반적으로 큰 손상 없이 온전한 상태였다. 인양된 2단부 동체 속에는 엔진과 연료통, 산화제통이 그대로 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했다. 3단부로 이뤄진 발사체가 비행하면서 1단부가 분리됐고, 2단부가 점화에 실패하면서 그대로 해상으로 추락했는데도 동체 상태는 양호했다. 장영근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미사일센터장은 “인양된 잔해물은 엔진과 노즐, 연료 탱크, 산화제 탱크가 포함된 2단 추진체로 보인다”고 했다. 2단 엔진이 고스란히 있다면 신형 여부를 알 수 있다. 다만 군은 엔진이 달렸는지에 대해 “보안 사항”이라며 밝히지 않았다. 1단부 엔진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또는 ‘화성-17형’과 동일한 것으로 추정되는 반면 2단 엔진은 새로 개발한 신형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합참이 공개한 사진에서 빨강·노란색 로프로 감긴 부분에 연료통과 산화제통이 들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체 끝 체크무늬가 있는 부분 속에는 엔진 노즐 등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건져 올린 2단부 일부 동체에서 연료통과 산화제통을 빼내 분석하면 로켓 추력과 비행거리 등을 계산할 수 있다.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 제재에도 로켓 부품을 중국이나 러시아 등 국외에서 도입했는지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동체 표면에 적힌 ‘천마’는 북한이 이번 발사체 발사 당시 발표한 ‘천리마’와 같은 뜻으로 보인다. 과거 북한이 ‘천마’와 ‘천리마’를 혼용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군은 인양된 2단부 일부 동체 길이가 12m로 밝혀짐에 따라 북한이 지난달 31일 발사한 우주발사체 전체 길이가 38m 또는 40m 이상일 가능성도 있다고 추산했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은 “2단 동체 길이로 볼 때 발사체 전체 길이는 38m 또는 그 이상일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노석조 기자편집국 정치부 기자
06.18 北 공기부양정 꼼짝마, 백령도에 대거 배치된 신무기들
서해 최북단 백령도 해병부대에 강력한 타격력을 가진 국산 다연장로켓 ‘천무’와 신형 차륜형 자주대공포 ‘천호’, 신형 대전차 미사일 ‘현궁’ 등 신무기들이 배치된 것으로 서북도서위방위사령부(해병대)가 공개한 영상을 통해 확인됐다. 천무의 최대 사거리는 80㎞에 달해 백령도에서 불과 50여㎞ 떨어져 있어 백령도를 위협해온 북 고암포 공기부양정 기지 등 유사시 북한 도발 원점 등 주요 목표물에 대한 타격능력이 강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2010년11월 연평도 포격도발 이후 종전에 배치돼 있던 K9 자주포와 ‘구룡’ 다연장로켓 등에 비해 서북도서의 타격력과 방어역량이 크게 향상된 것이다. 백령도는 황해도 장산곶 등 북 해안과 불과 15㎞ 가량 떨어져 있어 북한엔 ‘옆구리의 비수’와 같은 전략 요충지다.

▲백령도 해병부대에 배치된 천무 다연장로켓. 최대 80km 떨어진 표적을 타격할 수 있다. /유용원TV 영상 캡처
서북도서방위사령부(해병대)는 지난달 30일부터 지난 1일까지 3일간 서북도서 일대에서 ‘결전태세 확립’ 추진 일환으로 합동 도서방어종합훈련을 실시한 뒤 2분30초 분량의 영상을 공개했다. 이번 합동 도서방어종합훈련은 육·해·공군 및 해병대 전력이 동시에 참가한 대규모 훈련으로, 해병대 신속기동부대 및 육군 특전대대, 육군 공격헬기(AH-1S, AH-64E), 해군 상륙함(LST), 공군 전투기(F-15K, KF-16) 등 다양한 전력이 참가했다.
영상에는 특히 지난 수년간 백령도에 배치된 ‘천무’ ‘천호’ ‘현궁’ 등 신무기들이 대거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서북도서방위사령부는 이들 무기가 배치된 섬을 특정하지는 않고 서북도서라고만 밝혔다. 하지만 영상에 등장한 섬의 크기와 지형 특성 등이 백령도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 신무기의 백령도 배치가 군 공식 영상을 통해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천무(K-239)는 지난 2009년부터 2013년까지 1300여억원의 예산으로 개발된 뒤 2015년부터 실전배치된 국산 다연장로켓이다.
천무는 한자로는 ‘하늘 천, 우거질 무’ 로 ‘다연장로켓으로 하늘을 뒤덮는다’라는 뜻이다. 천무는 미사일처럼 정확한 유도로켓을 비롯, 다양한 구경의 다연장 로켓을 발사할 수 있고, 최대 사거리 약 300㎞의 지대지(地對地) 미사일도 쏠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폴란드에도 288문이 수출된다. 천무 탑재 지대지 미사일은 북 ‘장사정포 벙커버스터’인 KTSSM(한국형전술지대지미사일)의 사거리를 180㎞에서 300㎞로 늘린 신형으로 지난해말 개발이 완료됐다.
천무가 쏠 수 있는 다연장로켓은 130㎜ 구형 ‘구룡’ 무유도 다연장로켓탄을 비롯, 230㎜ 무유도 로켓, 239㎜ 유도로켓 등 3종이다. 특히 239㎜ 유도로켓은 GPS/INS(관성항법장치) 유도장치가 달려 있어 최대 80㎞ 떨어진 표적을 정밀 타격할 수 있다. 분산탄을 사용할 경우 300개의 자탄(子彈)이 공중에서 뿌려져 최대 축구장 약 3배 크기의 면적을 초토화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단일 고폭탄두는 관통탄두로 60㎝ 이상의 콘크리트로 방어된 벙커나 건물 등을 파괴한다. 발사차량 1문당 12발의 로켓이 탑재된다. 우크라이나전에서 활약하고 있는 미국제 하이마스 다연장로켓도 70여㎞ 떨어져 있는 목표물을 정밀타격하는 유도로켓을 쏠 수 있지만 발사차량 1문당 6발만 탑재할 수 있다. 천무가 하이마스보다 2배 가량 강력한 화력을 자랑하는 것이다.
천무의 배치로 백령도에 큰 위협으로 부각돼온 북 황해도 고암포 공기부양정 기지 등 주요 목표물에 대한 정밀 타격능력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지난 2012년쯤 완공된 고암포 기지는 공기부양정 60~70척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여서 대남 기습침투 모(母)기지로 알려져 있다. 북 공기부양정은 시속 100㎞ 가까운 고속으로 기동할 수 있어 백령도에 30분 내 침투가 가능한 것으로 분석돼왔다.
신형 차륜형 자주대공포 ‘천호’는 차륜형 장갑차에 30㎜ 대공포 2문을 탑재한 무기로 지난 2019년 개발된 최신형이다. 차륜형 장갑차에 탑재돼 있어 기동성이 뛰어나고 신형 사격통제 장비 및 전자광학 추적장비를 갖춰 드론 등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현궁’은 보병 휴대용 대공미사일로 최대 2.5㎞ 떨어져 있는 적 전차 등을 파괴한다. 발사된 뒤 자동으로 목표물을 추적해 타격한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지역에도 수출됐다.
백령도에는 이밖에도 신형 국산 대공미사일 ‘천궁’, ‘북 공기부양정 킬러’인 국산 ‘비궁’ 유도로켓, 국산 단거리 대공미사일 ‘천마’, 이스라엘 대전차 미사일 ‘스파이크’ 등도 배치됐다. ‘천무’ ‘천궁’ ‘천마’ 등 이른바 국산 ‘3천(天) 무기체계’가 모두 배치된 것이다. 천궁은 최대 40㎞ 떨어진 북 전투기를 격추할 수 있다. 발사대 1기당 8발의 미사일을 탑재한다. 북한 전투기가 2∼3분이면 NLL(북방한계선)을 넘어올 수 있어 초기에 이를 제압하기 위해 서북도서에 배치됐다.

▲2023 서북도서방어훈련에 참가한 해병대원들이 국산 현궁 대전차미사일 사격훈련을 하고 있다./해병대 영상 캡처
서북도서방위사령부는 이번 훈련에 대해 “북 무인기 및 화력 도발 대응, 북 강점세력 격멸, 테러 진압 및 주민대피, 대량전상자 처치 및 환자후송 등 서북도서 증원준비·이동부터 실제 전투현장에 투입되는 상황을 상정하여 주·야간 구분 없이 실전과 같은 행동화 위주의 훈련으로 진행됐다”고 밝혔다.
한편 공세적인 해병대 특성을 감안해 김포지역 경계 및 방어임무를 맡고 있는 해병대 2사단을 후방지역으로 재배치, 신속대응군의 임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최근 다시 제기되고 있다. 해병대는 공세적인 임무를 수행해야 하지만 2사단이 현재 김포지역 경계임무에 발목이 잡혀 있기 때문에 김포지역 경계임무를 육군에 넘기고 후방으로 재배치하자는 것이다.
군 소식통은 “우리 해병대의 북 동·서해안 상륙작전에 대비해 북한은 서해안에 1개 군단, 동해안에 2개 군단 등 총 10개 사단 가량이 발목이 잡혀 있는 것으로 안다”며 “해병대 2사단 임무 재조정 및 재배치를 통해 해병대의 공세적 능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유용원 군사전문기자
06.19 김관진 문제는 대한민국의 문제다
北이 두려워한 김관진
그의 구속과 재판은
한국군의 정체성을 둘러싼 투쟁
文 정부, ‘북한군은 적’ 문구 삭제
우리 軍에 북한 존재 모호해져
‘싸워 이기는 군대’는 군의 본질
정치가 이를 부정하면
대한민국은 침몰할 수밖에 없어
김관진 전 국방장관이 돌아왔다. 지난 5월 그는 국방혁신위원회 위원에 임명되었다. 북한은 히스테리에 가까울 정도로 그를 싫어했다. “민족 반역자인 ‘김관진놈’을 향하여 쏴아!”라는 북한군 사격 동영상도 있다. 김 전 장관은 북한이 도발하면 “자동으로 응징한다. 적이 굴복할 때까지”라는 원칙을 표명한 바 있다. 2010년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 도발 때 우리 군이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말만이 아니라 그 원칙을 지켰다. 2015년 목함지뢰 사건 때 북한군이 고사포를 발사하자 즉각 자주포 29발로 응사했다. 북한은 전면전 불사까지 외쳤지만 결국 유감을 표명했다. 김관진이 옳았다.
하지만 군인으로서 성공이 오히려 비극으로 끝난 역사가 많다. 이순신 장군이 대표적이다. 고려 공민왕 때 홍건적의 난을 물리친 안우, 김득배, 이방실 장군, 중국 북송의 명장 악비도 처형되었다. 왕이나 정치가들에게는 이들이 불편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도 2017년 ‘군 댓글 공작’ 지시 혐의로 구속되었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에 걸렸고, 지금도 재판중이다. 역사는 웬만해서 정의의 편에 서지 않는다.
그런데 김 전 장관의 고통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있다. 그의 구속과 재판은 법적 차원에서 이뤄졌지만, 실은 한국군의 정체성을 둘러싼 투쟁이다. 2010년 국방장관 취임사에서 그는 이 점을 심각하게 환기시켰다. 그는 먼저 “우리의 적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국군은 누구와 싸우나? 언제부턴가 이 문제는 한국군의 최대 아킬레스건이었다. DJ 정부 때 ‘주적’ 개념 논란이 시작되었고, 2001~2003년 국방백서가 발간되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의 2004년 국방백서는 주적 개념을 삭제했다. 문재인 정부는 ‘2018 국방백서’에서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란 문구를 삭제했다.
김 전 장관은 또한 ‘지금 당장 싸워 이기는 강군’을 한국군의 목표로 제시했다. 어떤 의미에서, 한국군은 싸우지 못하는 군대다. 먼저 무력을 사용할 수 없게 한 유엔사의 교전수칙 때문이다. 물론 확전을 막으려는 고육책이다. 하지만 여기에 특정 정부의 대북 유화책이 중첩되면 군에는 악몽이다. ‘유화’의 한계선을 잘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제2차 연평해전이 대표적 실례다. 한국군은 교전수칙에 따라 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을 밀어내려다 6명이 전사했다. 당시 DJ가 하달한 4대 지침 중 제2조가 “우리가 먼저 발사하지 말라”였다. 기존의 교전수칙과 다르지 않다. 문제는 대통령이 새삼 강조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DJ정부는 햇볕정책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었다. 대통령과 국무총리는 해군참모총장 주관이라는 이유로 제2연평해전 전사자 영결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심지어 국방장관도 불참했다. 목숨 바쳐 싸웠지만, 군은 버려진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 나라를 위해 누가 목숨을 바치나. 10주기에 처음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참석했다.
싸우는 군대, 이기는 군대는 군의 영원한 본질이다. 그런데 왜 새삼 강조하는가? 군의 본질이 부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군의 진정한 위기는 북한 핵보다도 바로 이 문제다. 역대 진보 정부는 ‘평화’를 위한 ‘대화’를 강조해왔다. 그 결과 한국군에 북한이 어떤 존재인지 모호해졌다. 2020년 천안함 승무원 고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이게 북한의 소행인지, 누구의 소행인지 말씀 좀 해 주세요”라고 호소했다. 대통령은 “정부의 공식 입장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고 답했지만, 정확히 ’북한 짓’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호전성이 군의 본질은 아니다. 그 반대로 “실제 전쟁 경험을 가지고 있는 군인은 전쟁에 대해 무모한 평화만을 외치는 공론가보다도 훨씬 전쟁을 무서워한다.”(독일 한스 폰 젝트 장군) 어설픈 평화주의가 오히려 전쟁을 초래한다.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고 하지 않는가.
군은 정치에 복종해야 한다. 문민 지배는 민주주주의 기본 원칙이다. 하지만 정치가 헌법과 군의 본질을 부정할 때, 그 결과 국가 안보가 위기에 빠질 때 군은 어찌해야 하나? 이 딜레마는 민주주의 국가의 민군 관계가 겪는 영원한 난제다. 아이러니지만, 한국군의 이 곤경을 가장 잘 이해한 게 북한이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을 사퇴한 이래경은 “자폭된 천안함 사건을 조작하여 남북한 관계를 파탄 낸 미 패권 세력들”이라고 비난했다. 놀랍게도 국민의 20여%도 같은 견해다. 북한은 사실 천안함보다 대한민국호의 균열을 타격한 것이다. 이 균열이 커지면 대한민국은 스스로 침몰할 것이다. 김관진 문제는 사실 대한민국의 문제이다.
조선일보 김영수 영남대 교수·정치학
06-19 北정권 상대 손배소 의미와 후속 조치

구충서 한변 법치수호센터장, 법무법인제이앤씨 대표변호사
지난 2020년 6월 16일 북한은 대북전단살포를 빙자해 우리 국민의 세금으로 만든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북한의 이 불법행위에 대해 지난 14일 법무부가 원고를 대한민국으로 하고 피고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하여 447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 늦은 감이 있지만 국민의 재산을 지켜야 하는 국가의 책무를 다한 것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우리 정부가 나서서 ‘북한을 피고’로 하여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우리 법원’에 제기한 것은 남북 분단 이후 최초의 일로, 여러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우선, 우리 정부가 북한의 ‘국가불법행위’와 관련해 북한을 우리 법정에 피고로 세워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여줬다. 이로써 북한에 대해 원만한 남북관계를 위해서는 불법행위를 자행해선 안 되며 그런 행위는 절대 묵과될 수 없고, 반드시 법적 책임을 추궁한다는 점을 천명한 것이다.
또한, 우리 정부가 북한을 피고로 해서 우리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것은, 북한이 우리 법체계 아래서 소송의 당사자가 될 수 있는 당사자능력과 권리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권리능력을 가지는 법적 실체임을 우리 정부가 인정했다는 의미가 있다. 북한은 우리 헌법상 국가가 아니며, 남북 쌍방이 남북기본합의서에서 ‘남북관계는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가 아니며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된 특수관계이다’라고 합의한 바 있다. 따라서 우리 법정에서 북한은 ‘외국’이 아니므로 ‘외국의 재판권으로부터의 주권면제’ 문제가 제기되지 않는다. 우리 법원은 북한에 대해 재판권을 가지는 것이다.
그동안 북한은 6·25전쟁 후 약 8만 명의 국군포로를 송환하지 않고 억류한 채 강제노동에 동원하고 신분차별과 박해를 가하는 범죄행위, 6·25 당시 민간인 납북 및 6·25 이후 평시(平時) 민간인 납북 등 범죄행위를 자행해 왔다. 그 밖에도 금강산 관광객 사살과 연평도 포격 및 천안함 격침 등 수많은 범죄행위를 저질렀고, 금강산관광지구의 수백억 원대 호텔과 골프장 건물을 파괴하고, 개성공단 시설을 무단 가동하는 등 불법행위를 공공연하게 자행해 왔다.
귀환한 국군포로가 최초로 북한을 피고로 우리 법원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해 2020년 승소 판결을 받아낸 이래, 전시 납북자의 유가족, 천안함 피해 장병의 유가족 등도 북한을 피고로 우리 법원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바 있다. 이 손해배상 판결을 집행하기 위해 현재 북한이 사단법인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이사장 임종석)에 대해 가지는 북한 저작물 사용료 지급청구채권에 대해 압류 및 추심명령을 받아 집행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앞으로 정부는 북한의 불법행위를 묵과하지 않고 계속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해 법적 책임을 추궁함으로써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 또, 그런 판결을 집행할 수 있도록 북한의 집행재산 추적 및 확보에도 다방면으로 노력하는 한편 북한 당국에 대해 우리 국민의 피해를 배상하라고 계속 요구해야 한다. 억류하거나 납치한 우리 국민을 송환할 것을 계속 강력히 요구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것이 국가의 책무를 다하는 길이다.
문화일보
06-19 인양된 ‘2단 로켓’과 김정은 다음 카드

남성욱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 前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북한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그런 그도 세상일이 자기 뜻대로만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불혹이 안 된 젊은 나이이나 이번에 절감했을 것이다. 일이 꼬여도 너무 꼬여 야심 찬 의도가 자충수가 됐다. 북한은 지난달 31일 발사한 정찰위성 탑재 우주발사체 ‘천리마-1형’이 애초 예고한 우주 궤도 진입은커녕 10분 만에 서해상에 추락해 국가우주개발국(NADA)이 발사 실패를 공식 인정했다. 남측 해군이 보름간의 사투 끝에 발사체 잔해를 인양하는 장면을 보고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반면, 우리 해군은 고군분투 끝에 천리마-1형의 2단 추진체를 인양하는 데 성공했다. 국군으로서는 뜻하지 않은 인양으로 부가적인 성과를 거뒀다.
먼저, 인양 능력이 실시간으로 시현(示現)돼 글로벌 구조 전력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도가 높아졌을 것이다. K-방산의 시너지 효과도 작지 않았다. 이번 인양 작전에 투입된 청해진함과 통영함 그리고 광양함 등 K-구조함들의 작전 수행 능력도 검증이 된 셈이다.
또한, 천리마-1형은 은하-3호와 비교해 발전된 기술이 적용됐지만, 역설적으로 철저한 준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실패할 가능성을 열어 놨다. 수심이 낮은 서해 상공에 함부로 위성을 발사하는 것을 주저하게 한다는 측면에서 묻지 마 도발에 대한 억제 효과도 크다.
핵심 관전 포인트는, 이번 정찰위성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가장한 미사일 발사였는지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북한은 군사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우주 공간에 쏘아 올리기 위해 우주발사체를 발사했다고 주장했으나, 우주발사체와 ICBM은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제외하면 발사 각도만 다를 뿐 구조와 원리가 똑같다. 향후 국방과학연구소(ADD) 등에서 추진체에 대한 정밀 분석으로 ICBM의 설계 방식, 연료 체계 등 전반적인 기술 수준이 드러날 것이다. 고각 발사로 진행됐던 ICBM의 실제 사거리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스모킹건’(결정적 증거)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재차 정찰위성의 발사를 예고했으나, 해상도와 궤도가 성공의 관건이 될 것이다. 궁극적인 목적은 ICBM 발사 기술의 진전이다. 1인당 주민소득 1200달러의 빈곤국가가 지구상의 물체를 정밀하게 촬영할 필요는 없다.
천마 2단 추진체를 찾았으니 위성체 만리경만 인양하면 북한 ICBM 기술의 퍼즐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위성체와 1·3단 추진체 등 추가 잔해물 탐색이 성공하면 정밀 분석할 수 있다. 연결 단에 1·2단 엔진 제어, 원격 명령 및 계측, 유도 제어, 배터리 등의 전장품이 남아 있다면 발사체 및 ICBM 기술 수준, 국산화 수준, 해외 부품의 구매 여부 등의 진단이 가능하다. 특히, 관련 부품이 어느 나라에서 수입됐는지를 밝히면 해당 국가와 기업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의 적용이 가능할 것이다.
북한은 63일 만에 단거리미사일을 발사하고 노동당 전원회의를 개최하며 향후 돌파구 마련에 고심 중이다. 상반기 경제난이 심해진 상황에서 변화한 국제정세와 외교·국방 전략을 토의한다는 입장이라, 2차 정찰위성 발사 등에 대한 비전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정은은 세상일이 자기 뜻대로만 되진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문화일보
06.21 “나 죽으면 부산에 묻어주오”
유엔기념공원에 묻힌 2300 용사는 ‘한국 수호신’
자주 찾고 기억해야 할 우리의 소중한 안보자산

▲국제박람회기구(BIE) 실사단이 지난 4월 6일 오전 부산 남구 유엔 기념공원을 찾아 유엔군 전사자 묘역을 둘러보고 있다./김동환 기자
캠벨 에이시아(16)양은 자칫 외국인으로 오해할 법한 이름과 외모지만 부산 용호동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이다. 아빠가 캐나다인, 엄마가 한국인이라 영어와 한국어 모두 유창하다. 초면이라면 완벽한 한국어에 놀라고, 해박한 6·25전쟁 지식에 다시 놀란다. 초등학교 때부터 영국·벨기에·네덜란드 등 파병국을 찾아 참전 노병들과 교류한 사연이 매스컴을 여러 번 탔다. ‘참전 용사들의 손녀’ ‘청소년 외교관’이라는 자기소개가 과장이 아니다.
에이시아의 주 활동 무대는 대연동 유엔기념공원이다. 용호동 집에서 지척이라 어릴 때부터 단골 산책 코스였다. 매년 6·25나 정전협정 체결일(7월 27일), 영연방 현충일(11월 11일), 성탄절 등 의미 있는 날 군복 차림으로 방문객을 맞이해 동네 명물이 됐다. 지난 4월엔 부산의 ‘2030 엑스포’ 유치 역량을 가늠하기 위해 방한한 국제박람회기구(BIE) 실사단의 안내도 맡았다.
그날 실사단은 공원에 들어섰을 때만 해도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에이시아의 안내로 분수대를 병풍처럼 둘러싼 커다란 비석들을 지날 때 일부 위원이 발걸음을 멈췄다. 전사자와 실종자 4만896명의 이름을 빼곡히 적은 추모 명비 앞이었다. 마침 위원 8명 중 4명이 6·25 참전국 출신이었다. 질문이 이어졌다. “우리 용사들 이름은 어디 있나요?” 유엔기념공원이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라는 설명을 비로소 실감한 표정들이었다.
북한의 남침에 맞서 자유 진영 22국 청년 195만7733명이 이 땅에서 피를 흘렸다. 3만7902명이 목숨을 잃었다. 1951년 유엔사가 전국 각지에 가매장돼 있던 유해를 한곳에 모아 조성한 공동묘지가 유엔기념공원의 기원이다. 정전 후 미국 등 7국이 유해를 본국에 가져가면서 현재는 11국 장병 2320명이 잠들어 있다. 처음엔 유엔이 직접 관리하다가 1974년부터는 11국 주한 대사들이 관리위원회를 구성해 공동 관리하고 있다. 유엔 산하기구 격인 외교 시설이다.
이런 역사를 가졌지만 오랜 기간 거의 조명받지 못했다. 1·2차 세계대전과 달리 6·25전쟁이 국제사회에서 ‘잊힌 전쟁’ 취급을 받은 것과 무관치 않다. 생존한 유엔군 장병들의 여생도 굴곡이 많았다. 상당수가 10대 후반에 전선에 투입됐다. 예민한 시기에 겪은 끔찍한 전쟁은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을 남겼다. 폐허가 된 나라에 희망을 갖기도 어려웠다.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세월이 수십 년 흘렀다.
변화의 조짐이 감지된 건 2010년 무렵이다. “죽으면 부산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는 참전 용사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6·25 60주년을 맞아 본격화한 보훈처의 초청 사업으로 한국을 다녀간 뒤 생긴 일이다. 한국의 발전상을 보며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했던 참전의 정당성을 찾고, 마지막 날 부산에 잠든 전우들과 교감하며 정서적 위로를 받은 것이다. 2015년 5월 프랑스 참전 용사 레몽 베르나르씨를 시작으로 최근까지 19명이 사후(死後) 안장됐다. 60여 년 만에 실질적인 묘지의 기능을 회복한 것이다. 공원을 공동 관리하는 11국 대사들도 바빠졌다.
사후 안장을 희망하는 노병들은 “죽어서도 한국을 지키겠다”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70년 전 피 흘려 지킨 나라가 여전히 정전 상태이고 북한의 위협이 날로 커진다는 설명을 듣고 나면 대개 이런 반응이 나온다고 한다. 립 서비스가 아니다. 공원을 공동 관리하는 11국은 이곳을 사실상 자국 국립묘지로 간주한다. 북한 미사일이 부산에 떨어질 경우 이 나라들이 가만있겠나. 이번 주 일요일이면 6·25 발발 73년이 된다. 이보다 유엔기념공원을 찾기 적합한 날이 많지 않다. 운이 좋으면 에이시아의 안내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 이용수 기자
06-21 괴담 벗은 ‘北미사일 대응 방어체계’… 6년만에 정상화 가속도

▲정상 가동되나 지난 2017년 경북 성주군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의 반대 속에 배치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모습. 21일 사드 기지에 대한 환경영향평가가 마무리됨에 따라 기지 내 인프라 건설 등 후속 작업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국방부 제공
■ “사드 전자파 인체영향 미미”
인체보호기준 0.189% 불과
시민단체 반대논리 근거 없어
정수시설·숙소 등 개선 본격화
2017년 임시배치후 제자리
환경단체 집단행동 하며 반대
中은 한한령 조치 등 반발해와

1일 경북 성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기지의 전자파가 인체와 주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는 환경영향평가 결과가 나오면서 6년간 ‘임시 배치’ 상태이던 사드 기지 정상화의 길이 열리게 됐다. 고도화되는 북한 핵·미사일에 맞서기 위한 사드가 이번 기회를 통해 제자리를 찾을 것이란 기대가 나오고 있다. 사드가 인근 주민들의 건강과 생존권을 위협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근거가 없다는 사실도 다시 한 번 확인됐다.
이날 환경부와 국방부에 따르면 그간 지역 주민들의 최대 우려 대상이었던 전자파의 측정 최댓값은 인체 보호 기준의 0.189% 수준으로, 인체와 주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환경부와 국방부는 “미군 측과 이 같은 협의 의견을 충실히 반영하여 사업이 진행될 수 있도록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혀, 사드 기지의 정상화 수순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임을 예고했다. 정수시설과 하수처리 시설 보강, 장병 숙소 개선 등 각종 인프라 공사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주한미군은 이번 환경영향평가를 근거로 사드 기지 내 인프라 신축·증축 공사에 본격적으로 나설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사드는 북한 핵·미사일 개발에 대응해 우리 미사일 방어 체계를 확고히 하기 위해 필수적인 무기체계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지난 2017년 임시배치 이후 무려 6년 동안이나 ‘임시배치’ 상황에 머물러 왔다. 한·미 양국은 2016년 2월 주한미군에 사드 배치 부지를 공여하기 위한 절차를 개시했지만, 경북 성주에 사드를 배치하기로 하자 일부 주민들과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강한 반발이 나왔다. 당시 5000여 명이 거리로 나와 궐기대회를 열었다.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성주로 간 황교안 당시 국무총리가 폭행에 감금까지 당하고 풀려나는 일도 벌어졌다. 중국도 자국의 안보를 위협한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고,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 등 보복 조치를 발동하는 등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에 문재인 정부 내내 사실상 중국 눈치를 보며 사드 기지 정상화에 미적대왔다.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합동위원회는 2017년 4월 20일 성주 스카이힐 골프장 부지 중 일부를 사드 부지로 주한미군에 공여하는 것을 승인했지만 주민들은 기지를 에워싸고 장비와 물품 반입을 통제하는 등 집단행동을 이어갔다. 이들의 반대 논리는 ‘사드 전자파가 인체에 유해하다’ ‘전자파에 노출된 참외가 잘 자라지 못한다’는 것이었지만, 이번 환경영향평가 결과로 힘을 잃게 됐다. 실제로 성주 참외 생산량은 사드 배치 이전보다 증가했고, 매출과 농가 소득 역시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조재연 기자 jaeyeon@munhwa.com
06-21 사드 기지 전자파, 기준치 ‘530분의 1’...6년만에 괴담 벗어
환경부 ‘전혀 문제없다’ 결론
6년만에 환경영향평가 승인
인프라 등 기지건설 본격화
중국·시민단체 반발 거세질듯
경북 성주 주한미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기지에 대한 환경영향평가가 21일 6년 만에 마무리됐다. 지난 2017년 임시 배치 이후 문재인 정부 5년 내내 지지부진했던 기지 건설을 위한 행정 절차가 종료된 것으로, 기지 내 인프라 건설 등이 착수되고 사드 정상가동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문 정부와의 ‘3불 정책’(사드 추가 배치,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 편입, 한·미·일 군사동맹 불가) 합의를 내세워 임시배치는 물론, 정상가동을 반대해왔던 중국은 강력하게 반발할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는 국방부 국방시설본부가 지난달 11일 접수한 사드 기지 환경영향평가서를 승인했다고 이날 밝혔다. 가장 우려됐던 전자파에 대해선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공군과 한국전파진흥협회의 실측자료를 종합 검토한 결과, 측정 최댓값이 0.018870W/㎡로 인체보호기준(10W/㎡)의 530분의 1 수준(0.189%)에 그쳤다. 이번 환경영향평가는 성주기지 정상화를 위한 전 단계로 대구지방환경청이 협의한 부지를 포함, 기지 전체를 대상으로 이뤄졌다고 국방부는 밝혔다. 그간 2017년 임시배치된 이후 일부 성주군 주민과 시민단체 등이 전자파 우려 등을 이유로 반대하며 정상적으로 조성되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사드 기지 정상화 의지를 밝히며 환경영향평가, 2차 부지 공여, 인력·물자·유류 지상 수송 등에 속도를 냈다.
지난해 9월부터는 보급물자와 병력, 장비 등을 지상으로 제한 없이 수송하는 조치를 단행했고 40만㎡가량의 부지 2차 공여도 완료했다. 또 기지 주변 지역 발전과 주민 복리 증진을 위해 올해 4월 지원사업안도 마련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일반환경영향평가는 종료돼 현재 미 측에서 공여된 부지에 기지건설을 위한 설계가 진행 중이며 2024년쯤 착공될 예정”이라며 “착공 때부터 준공 때까지는 국방부에서 사후환경영향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문화일보 정충신 선임기자·인지현 기자
06-21 주민들 “사드괴담 벗어나” 안도… 반대단체는 “강력 투쟁”
■ '환경평가 완료' 엇갈린 반응
지역 지원사업 본격화 기대
일부 주민 “결과 못믿어” 반발
성주 = 박천학 기자 kobbla@munhwa.com
정부가 경북 성주군 주한미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기지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마무리하고 기지 정상화에 첫발을 내디디면서 지역 주민들 사이에선 사드로 인한 분열이 해소되고 기지 주변 지역 지원 사업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성주 사드 배치는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7월 정식 발표됐으며 이듬해 4월 4기가 임시 배치됐다. 이로 인해 주민 갈등이 커졌고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일부 주민과 사드반대단체들은 사드 철회를 주장하며 연일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21일 국방부와 환경부가 사드 배치를 위한 일반환경영향평가를 완료했다는 소식을 접한 주민들은 전반적으로 “사드로 인해 뒤숭숭한 지역 분위기가 수년째 이어지고 있었다”며 “이제 지역 발전을 위해 힘을 모을 때”라고 말했다. 또 주민들은 전자파 최대 측정값이 인체보호기준의 0.2%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라는 결과가 나오자 “‘사드 참외 괴담’을 완전히 벗을 수 있게 된 것을 재확인했다”고 입을 모았다 .
주민들은 그동안 희생을 감내한 만큼 지지부진했던 사드 배치지역 지원사업도 신속히 추진될 것으로 기대했다. 성주군 등에 따르면 지원사업은 주로 정주 여건 개선, 도로·상하수도 등 사회간접자본(SOC), 주민수익 창출 등 주민 숙원 사업이다. ‘사드 기지와 연접하는 읍·면·동’으로 성주군 초전·벽진·월항면과 성주읍 등 4개 읍·면, 김천시 농소면 등이 지원사업 대상 지역이다. 앞서 성주군은 사드 임시 배치 당시 보상 차원에서 △성산 포대 이전 및 성산가야 사적 공원 조성 △휴(休) 빌리지 조성 △종합복지타운 건립 등 총 20여 개 사업을 정부에 건의한 바 있다. 하지만 사드 반대를 주도하는 사드철회평화회의와 일부 주민들은 “요식적인 환경영향평가 결과는 인정할 수 없으며 사드가 철수될 때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반대단체 등은 날마다 10∼20명씩 사드 기지 입구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문화일보 박천학 기자
06-21 사드기지 전자파, 기준치의 0.19%…6년만에 ‘괴담’ 벗었다

▲지난해 8월 18일 오전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기지 발사대 주변에 사드 기지 정상화를 앞두고 여러 종류의 차량과 물자가 대기하고 있다. 뉴스1
정부가 경북 성주에 있는 주한미군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기지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한 결과, 전자파가 인체 및 주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21일 환경부는 국방부 국방시설본부가 지난달 11일 접수한 사드 기지 환경영향평가서를 승인했다고 밝혔다.환경부는 평가 협의 내용 중 지역 주민이 가장 우려하는 전자파 관련, 공군과 한국전파진흥협회의 실측자료를 관계 전문기관 및 전문가 등과 종합 검토했다.
검토 결과, 측정 최댓값은 0.018870W/㎡로 인체보호기준(10W/㎡)의 530분의 1 수준(0.189%)에 그쳤다.
사드 포대는 대구지방환경청의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거쳐 2017년 임시 배치됐으나 일부 성주군 주민과 원불교 단체 등이 전자파 우려 등을 이유로 반대해 기지가 정상적으로 조성되지 못했다.
이번에 환경영향평가가 마무리되면서 사드 임시 배치 이후 6년 만에 기지 건설을 위한 행정 절차가 종료됐다. 사드 기지 내 인프라 건설이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사드 기지 정상화 의지를 밝히고 환경영향평가, 2차 부지 공여, 인력·물자·유류 지상 수송 등에 속도를 냈다. 지난해 9월부터 그간 제한됐던 보급물자, 병력, 장비 등을 지상으로 제한 없이 수송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합동위원회가 사드 부지 공여 문서에 서명해 40만㎡에 대한 2차 공여도 완료했다.
정부는 성주 기지 주변 지역의 발전과 주민 복리 증진을 위해 지난 4월 주민지원사업안 24개를 마련했다. 내년에 사업이 착수될 수 있도록 법령 개정, 예산 편성 등의 조치를 연내 마무리할 계획이다.
김종률 환경부 자연보전국장과 박승흥 국방부 군사시설기획관은 “환경부와 국방부가 협력해 성주 기지 환경영향평가를 완료했다”며 “미 측과 이번 협의 의견을 충실히 반영해 사업이 진행될 수 있도록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06.21 김정은의 막다른 골목

지금 김정은은 핵 개발을 후회하고 있을 것 같다. 핵 국가가 김일성 때부터의 유업이지만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고 생각할 듯하다. 한국전쟁 때 미국에 당한 트라우마가 북한 핵 개발의 동기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도 있다. 그러나 한국전쟁은 북한이 일으킨 비극이다. 가만히 있는 북한을 미국이 침공할 것이라는 가정 자체가 기발한 상상력의 산물이다. 1950년대도 그랬고 지금은 훨씬 더 그렇다. 그렇다면 북한은 실존하지 않은 가상의 유령과 싸우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치르면서 핵을 개발한 셈이다. 북한 내 소요사태 발생에 대비해 핵을 개발했다는 주장도 있다. 이를 빌미로 외국군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막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경제를 발전시켜 주민 지지를 얻는 것이 핵 개발보다 우선돼야 하지만 지금은 그 반대가 아닌가.
핵 개발 기회비용 1년 GDP 달해
핵과 경제 간 자원배분 왜곡으로
중·러 의존 심화, 주체사상 무너져
핵과의 결별 없인 북한 미래 없어
2016년 초로 돌아간다면 김정은은 다른 선택을 했을 수도 있다. 당시 그는 세 가지 치명적인 오판을 내렸다. 첫째, 이전의 여러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실효성 있는 제재를 만들지 못했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둘째, 미국이 제재안을 잘 만들더라도 중국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셋째, 중국이 제재에 동참하더라도 북한은 사회주의 경제이니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이 판단이 하나씩 무너지자 2017년 하반기에 김정은은 공황에 빠졌다. 2018년 평창올림픽을 명분 삼아 황급히 협상에 나온 것은 이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해 문재인과 도널드 트럼프라는 두 정상을 만나보니 자신감이 생겼다. 한국 대통령은 무르기 짝이 없었고 미국 대통령은 얼렁뚱땅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노이 회담의 실패로 자신감이 흔들렸고, 지금은 경제 위기로 권력 유지마저 걱정하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북한의 미약한 경제력은 그의 지나친 욕심을 뒷받침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핵 개발로 경제는 망가졌다. 2017년부터 작년까지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이 경제에 끼친 기회비용은 보수적으로 추정해도 170억 달러에 달한다. 2022년 북한의 국내총생산이 2016년보다 25% 감소했고, 제재를 받지 않았을 경우 이 기간의 경제성장률을 0%라고 가정한 추정치다. 1년 국내총생산에 버금가는 돈을 핵 개발로 탕진한 셈이다. 여기에다 핵 및 미사일 개발과 발사에 직접 지출한 금액까지 합치면 북한 수준으로서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치렀다.
한미정상회담은 김정은을 더욱 좌절시켰다. 북한의 핵 개발이 ‘베이비 스텝’이라면 한미는 ‘빅 스텝’을 밟고 있다. 한미 정상이 합의한 ‘핵협의그룹(NCG)’이 그렇다. 북한이 자원을 아무리 많이 투자해도 북핵은 미국 핵을 감당할 수 없다. 경제 규모가 한국의 100분의 1도 되지 않는 북한이 한국을 상대로 군비경쟁을 벌이려 한다면 이는 자멸에 가깝다. 더욱이 한국의 방위산업은 외화 수입원이지만 북한은 핵과 탄도미사일로 외화를 벌 수 없다. 작년 한국의 방위산업 수출액은 170억 달러로서 북한의 한 해 국내총생산과 비슷하다. 이처럼 남한은 수출로 취득한 외화를 무기 개발에 재투자할 수 있는 반면 북한은 여기저기서 어렵게 번 외화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쏟아부어야 한다.
김정은은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 앞으로 가자니 장애물에 막혀 있고 돌아가려니 너무 먼 길을 왔다. 그의 마지막 기대는 중국과 러시아의 지원일 것이다. 하지만 자립·자강을 위해 필요하다던 핵이 북한을 중·러에 의존해야만 생존 가능한 수준으로 내몰았다. 김일성이 중·소(中·蘇)에 종속되지 않기 위해 연안파(중국파)와 소련파를 숙청하고 만들었던 주체사상을 김정은의 핵이 파괴한 형국이다. ‘핵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중·러와 북한의 ‘편의에 의한 결혼’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모래성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후의 러시아, 한국과 경제적으로 밀접히 얽혀 있는 중국이 한국보다 북한을 더 필요로 할까. 세계 10대 강국에 속하는 한국은 자력으로 미래를 개척할 수 있다. 그러나 핵을 쥔 북한은 자력으로 살 수 없다.
김정은은 현실을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자원 투입 면에서 핵과 경제의 균형이 무너진 현 상태는 지속하기 어렵다. 그의 권력 유지 시각에서 보더라도 핵 개발에 쓰이는 자원을 경제로 돌려야 체제 안정을 기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제재 해제와 경제 개발, 그리고 북미 수교 및 평화 협정과 교환하는 방식의 해결책 외엔 답이 없다.
비핵화는 좁은 길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고 포기해서도 안 된다. 북한의 밝은 미래는 비핵화만이 열 수 있다. 한반도 운명의 절반도 여기서 결판난다. 북한의 선택지는 크게 좁아졌다. 김정은은 자신감을 잃었으며 핵 개발을 뒷받침하는 경제는 빈사 상태다. 국제 정세에서 요행수를 찾으려 하겠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김정은은 핵과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핵이 파괴한 북한 목록은 더 길어질 것이다. 그 목록의 맨 마지막엔 그의 이름이 기록될 수도 있다.
중앙일보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
06.22 안보에 관한 주권적 선택엔 외국의 어떤 간섭도 허용해선 안 된다

▲경북 성주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기지. / 조선일보 DB
경북 성주 사드 기지에 대한 환경영향평가가 6년 만에 마무리됐다. 이로써 2017년 4월 이후 야전 배치 상태로 운용해 온 사드 포대의 정식 배치를 위한 모든 행정 절차가 끝났다. 원래 박근혜 정부는 6개월 걸리는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통해 사드를 조기 배치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탄핵 정국에서 집권한 문재인 정부가 이를 뒤집었다. 1년 이상 걸리는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받도록 방침을 바꾸더니 후속 절차를 5년 내내 뭉갰다. 작년 정권이 교체되지 않았다면 그 상태가 지금까지 이어졌을 것이다.
사드는 북의 핵과 미사일을 막을 최후의 수단이다. 현재의 기술로 초고속 낙하하는 탄도미사일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은 사드밖에 없다. 역대 주한 미군 사령관들이 한국 배치를 본국에 강력 요청했고 2016년 우리 정부가 동의했다. 우리 스스로의 생존을 위한 결정이었다.
국가 주권의 핵심은 영토 보전과 국민 안전이다. 북핵은 우리의 주권을 근본적으로 위협한다. 이런 상황에서 주권 국가가 영토와 국민 생명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해야 한다. 그런 방위 조치는 어떤 외국도 개입할 수 없는 주권 사항이다. 그런데 중국은 노골적으로 사드 배치에 반대하며 우리에게 보복을 가했다.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그룹 계열사들에 대한 세무조사를 시작으로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을 괴롭히고 쫓아냈다. 한국 문화계 활동과 관광까지 틀어막은 ‘한한령’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드는 근본적으로 방어용 무기 체계다. 중국은 사드 레이더가 중국을 정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 배치 사드 레이더는 북 미사일 요격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장거리 정찰용과 다르다. 설사 사드 레이더가 중국을 정찰할 수 있다고 해도 이는 한국이 결정할 주권 사항일 뿐이다. 지금 중국의 수많은 레이더가 한국을 정찰하고 있다. 중국 핵미사일도 한국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중국은 이런 실질적 위협 조치를 하면서 우리의 양해를 구한 적이 있는가. 문 정부는 중국에 굴복해 중국에 ‘3불(不) 약속’으로 군사 주권 포기 논란을 자초했지만 더 이상은 안 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안보에 관한 우리의 선택에 어떤 외국의 개입도 허용할 수 없다.
민주당은 사드 레이더 전자파에 사람이 튀겨지고 참외가 오염된다는 황당한 괴담을 퍼뜨렸다. 환경영향평가 결과 전자파는 인체 보호 기준의 530분의 1에 불과했다. 그래도 민주당은 한 번도 사과한 적이 없다. 후쿠시마 괴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6.22 유해 기준 ‘530분의 1’로 끝난 사드 참외 괴담
정부 “성주 사드 기지 전자파, 사실상 영향 없어”
근거 없는 비난과 괴담에는 책임 묻는 풍토 돼야
정부가 어제 경북 성주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기지 인근의 환경영향평가 결과를 공개했다. 한국전파진흥협회와 공군이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해당 기지 전체를 대상으로 사드 레이더 등을 가동할 경우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평가한 결과다. 가장 관심을 끌었던 전자파는 거주지 기준으로 최대 측정값이 1㎡당 약 0.019W로 나타났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고시한 ‘일반인에 대한 전자파 강도 기준’(인체 보호 기준)은 1㎡당 10W다. 사드 레이더를 가동했을 때 최대로 측정된 값이 기준치의 0.19%, 즉 530분의 1로 사실상 무의미한 수준으로 확인된 것이다.
이는 2016년 사드 배치 초기부터 환경단체 등 반대파가 기지 출입구를 점거하며 폈던 반대 논리를 무색하게 하는 결과다. 사드 레이더를 가동하면 부대 인근 주민들이 전자파에 노출돼 건강에 치명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또 레이더에서 발생하는 전자파가 성주 특산물인 참외를 오염시킨다는 주장은 ‘사드 참외’ 논란으로 번졌다.
이 때문이었는지 2015년 4020억원의 수익을 올렸던 성주군의 참외 농가는 ‘사드 참외’ 논란이 한창이던 2016년 3710억원어치를 판매하는 데 그쳤다. 2017년 5003억원의 판매액을 기록하며 다시 회복했고, 단가가 변하는 농산물 특성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성주 농민들은 수백억원의 손해를 본 셈이다.
환경은 한번 훼손되면 되돌리기 어렵다. 생태계를 교란할 수도 있다. 환경을 지키려는 노력은 지속돼야 한다. 그만큼 신중해야 한다. 그러나 지나친 과장이나 과장을 넘어 괴담을 퍼뜨리는 행동은 사회적 반목과 불필요한 경제적 비용을 야기한다. 2000년대 초반 경남 양산시 천성산 도롱뇽이 사라진다는 이유로 KTX 터널 공사를 반대하는 바람에 공사 지연으로 추가 비용이 발생한 게 대표적 사례다. 제주도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오면 맹꽁이나 붉은발말똥게가 멸종할 것이란 주장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터널 공사에도 도롱뇽은 건재했고, 제주도 맹꽁이 역시 사라지지 않았다. 2008년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미국산 소고기 파동은 또 어떤가.
시위대가 기지 진입 도로를 막는 바람에 군 당국은 사드 레이더 가동을 위해 헬기로 기름을 실어 나르곤 했다. 성주 골프장을 사드 부지로 마련한 것이 2017년이었지만, 이제야 부대 기반 공사를 할 수 있게 됐다. 정책 수립 과정에서 비판과 반대의 목소리는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안보 문제에는 인기 영합적 무책임 발언이나 정치적 이해득실이 개입돼선 안 된다. 근거 없는 비난, 정치적 노림수가 깔린 괴담에 대해서는 추후에라도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
06.23 김관진 “AI 무기 시대에도, 軍의 핵심은 전투 의지와 훈련”
김관진 前 국방부장관 6년 만에 언론 인터뷰

▲김관진 前 장관, 박민식 보훈부장관·백선엽 장군 장녀와 좌담회 - 지난 19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백선엽 장군 재평가’ 좌담에 참가한 박민식(맨 왼쪽) 국가보훈부 장관, 김관진(가운데) 국방혁신위원회 부위원장, 고(故) 백선엽 장군의 장녀 백남희 여사가 대화하고 있다. 김 부위원장 뒤로 보이는 탱크는 6·25 전쟁 당시 실제 전선에 투입된 미군 M4A3E8 셔먼 전차다. /고운호 기자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은 본지 인터뷰에서 “AI 첨단 무기가 개발되고 전쟁 양상도 바뀌어가지만 중요한 건 선명한 대적관, 강인한 전투 의지 등 정신 전력”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군 선후배 사이에서 이런 정신이 답습되고 전통으로 이어져야 싸워 이기는 군대가 된다”고 말했다. 김 전 장관이 언론 앞에 선 것은 2017년 이후 6년 만이다. 인터뷰는 지난 19일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이뤄졌다. 백발이 늘었지만 꼿꼿한 허리와 단호한 어투는 그대로였다. 그는 지난달 10일 대통령 직속 국방혁신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된 데 대해 “강한 군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되는 게 남은 소임”이라고 했다.
김 전 장관은 “현실을 직시해보면 6·25 때 적이 지금도 적”이라면서 “그때 북한을 지원했던 중국·소련(러시아)이 지금도 북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기 체계가 어떻게 바뀌든 누가 적인지를 바로 알아야 한다”면서 “이게 잡혀야 과학기술 발전으로 대두되는 새로운 무기 체계로 어떻게 싸울지가 의미 있다”고 했다.
김 전 장관은 “지금도 북한의 대남 적화 통일 전략은 변함이 없다”고 했다. 그는 “북한은 한국이 전쟁을 준비하고 강력한 군이 되면 뭘 해도 안 되니 아예 전쟁 준비를 안 하는 분위기를 우리 군에 조성하려 한다”면서 “싸워 이길 수 있는 강군이 되려면 끊임없이 훈련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미 동맹이라는 자산과 6·25에서 나라를 지킨 선배의 전투 경험과 훈련을 통해 더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국방혁신위원회에 있으면서 당장에라도 싸울 수 있는 군이 되도록 준비하는 동시에, 첨단과학기술을 군사작전 개념에 접목해 작지만 강한 대한민국 군이 되도록 전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정부와 군은 병력이 빠르게 줄어드는 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나타났듯 유·무인 복합 무기 체계와 함께 사이버 전쟁이 가속화됨에 따라 우리 군 체계를 획기적으로 전환하는 군 선진화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위원장으로 있는 국방혁신위원회가 김 전 장관을 중심으로 이 선진화 작업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한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호국은 나라를 지켰다는 뜻으로 사회적으로 가장 높이 쳐줘야 하는 가치"라면서 "하지만 이상하게도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 호국을 이야기하면 ‘꼰대’로 비꼬고 비아냥대는 문화가 생겼다”고 말했다. /고운호 기자
이날 전쟁기념관에선 김 전 장관,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고(故) 백선엽 장군의 장녀 백남희 여사가 한자리에 모인 본지 주관 좌담회가 진행됐다. 박 장관은 “백 장군은 나라 정체성을 보여주는 징표이자 정수(精髓) 같은 인물”이라면서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 영웅을 영웅이라 부르기 인색하거나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일부 사실을 침소봉대해 이를 막으려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호국은 나라를 지켰다는 뜻으로 사회적으로 가장 높이 쳐줘야 하는 가치인데 이상하게도 언젠가부터 호국을 이야기하면 ‘꼰대’로 비꼬고 비아냥대는 문화가 생겼다”고 했다. 그는 “미국은 100% 완벽하지 않더라도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전 대통령 등 업적을 남긴 인물들의 동상을 도시 곳곳에 세우고 긍정적인 면을 배우려 한다”면서 “우리 사회가 눈여겨볼 점”이라고 했다.
백 여사는 “생전에 아버지는 간도특설대 활동으로 친일 논란에 휩싸이면 속상해하는 저에게 ‘역사는 바로잡힐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기다리면 역사가 평가해 해결해줄 것’이라고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1920년 일제 시대에 태어나 그야말로 나라 없는 설움과 가난을 겪으며 만주 군관학교 등 그 당시의 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한 것”이라고 했다.
김 전 장관은 “백 장군은 임관 후 간도특설대에서 2년도 채 근무하지 않았다”면서 “이것이 친일파 행적으로 비난받아야 하는 성격인지 분명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당시 간도특설대 임무가 뭐였나 살펴보면 중국 공산당이 지원하는 팔로군과 동북항일연군 등에 대한 추적 및 토벌 작전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참고로 알아야 할 것은 백 장군이 간도특설대에 부임한 1943년은 이미 만주 일대 독립군들이 해산돼 없어지고 소련 각지로 퍼져 나간 뒤였다는 것”이라면서 “이 사실이 진작에 알려졌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백선엽 장군의 장녀 백남희 여사는 “생전에 아버지는 간도특설대 활동으로 친일 논란에 휩싸이면 속상해하는 저에게 ‘역사는 바로잡힐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기다리면 역사가 평가해 해결해줄 것’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고운호 기자
이날 좌담회는 6·25 당시 실제 사용된 미군 M4A3E8 셔먼 전차, 미 F-51 무스탕 전투기, 북한군의 소련제 T-34-85 전차 등이 있는 대형 유물 전시실에서 진행됐다. 김 전 장관은 전시 무기들을 가리키며 “같은 군인으로서 백 장군의 전투를 볼 때 가장 빛나는 순간은 다부동 전투”라면서 “백 장군은 당시 1사단장으로서 북 인민군에 밀리고 밀리던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다부동에서 낙동강 전선을 지켜내 구국의 영웅이 됐다”고 했다. 그는 “다부동에서 무너지면 대구가 함락되고 부산도 넘어가 나라가 끝날 상황이었는데 여기서 그가 ‘내가 두려움에 밀려 물러서면 나를 쏘라’며 사단장으로서 반격에 앞장을 섰다”면서 “이건 지휘관으로서 큰 도박을 한 것”이라고 했다. 박 장관은 “백 장군의 그 일장연설로 장병 전투 의지가 바로 서 낙동강 전선을 사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전 장관은 장관 재임기나 군 지휘관 시절 미국 방문 때나 주한미군 부대를 찾았을 때 미군들이 먼저 ‘제너럴 팩(General Paik)’ 이야기를 꺼내며 대화를 시작해 놀랄 때가 잦았다고 한다. 그는 “백 장군은 한국보다 미국에서 더 존경받는다”면서 “군사 선진국인 미국은 결코 쉽게 전쟁 영웅이라는 칭호를 주지 않고 객관적이고 명확한 자료로 평가하는데, 백 장군은 영웅이 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오래전부터 미 군사학교에선 백 장군의 저서 ‘군과 나’가 교재로 쓰이고 있다”고 했다.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10일 대통령 직속 국방혁신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된 데 대해 “강한 군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되는 게 남은 소임”이라고 했다. /고운호 기자
☞김관진은 누구
1949년 전북 임실 태생으로 서울고, 육군사관학교(28기)를 졸업했다. 합참 군사전략과장, 35사단장, 2군단장을 거쳐 노무현 정부에서 대장으로 진급해 3군 사령관, 합참의장을 역임했다. 이명박 정부였던 2010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로 안보 위기가 커지자, 그해 12월 국방부 장관으로 전격 발탁됐다. 그는 “북한이 도발 대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할 것”이라는 취임사를 시작으로 “쏠지 말지 묻지 말고 선(先)조치하라”는 대응 지침을 내렸다. 이후 ‘북한이 가장 무서워하는 장군’으로 불렸다. 북한이 그의 사진을 붙여 놓고 사격 훈련을 하는 모습을 공개하는 등 반발하긴 했지만 무력 도발은 하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 때 국방장관에 유임됐으며 이어 국가안보실장도 지냈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국방혁신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됐다.
조선일보 유용원 군사전문기자 노석조 기자
06-23 6·25전쟁 진실은 최고의 안보교과서

최명상 前 공군대학 총장, 파리1대학 국제정치학 박사
6·25전쟁 73주년을 맞아 중국 신화사는 ‘미국의 협박 외교와 위해(危害)’ 보도를 통해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도발한 대형 전쟁을 열거하며 6·25전쟁을 첫째로 꼽았다. 소련 붕괴 뒤 공개된 사료로, 6·25전쟁은 스탈린이 결정한 김일성의 남침 전쟁으로 공인된 지금도 억지 주장을 계속했다. 시진핑(習近平)의 잘못된 역사 인식 ‘항미원조(抗美援朝)’ 탓이지만, 학계 책임도 있다.
2차대전 뒤의 미·소 냉전 원인을 소련 공산주의 때문이라고 보는 전통주의 학파와 미 제국주의 때문이라는 수정주의 학파의 상반된 논리를 6·25전쟁에 그대로 적용한 탓이다. 전통주의 학자들은 6·25전쟁을 스탈린 주도 남침설, 스탈린과 마오쩌둥(毛澤東)의 공모설, 김일성 주도 남침설로 주장했다. 반면 좌파 성향의 학자들은 맥아더와 이승만의 공모 북침설, 남한의 남침유도설, 미국 개입 내전설을 펴는가 하면 통일전쟁설, 소련 불개입설 등을 주장하기도 했다.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에 왔던 브루스 커밍스는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와 박헌영의 조선인민공화국 인민위원회 활동을 중시하며, 6·25전쟁을 1946년 10월 대구폭동과 1948년 제주 4·3사건 및 10월 여순반란 연장선상의 해방전쟁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커밍스 키즈’가 출현했고, 종북좌파는 미군을 점령군, 소련군을 해방군으로 호도한다. 그러면 6·25전쟁의 역사적 진실은 무엇이며 스탈린은 왜 결심했는가?
1946년 3월 스탈린이 그리스와 튀르키예를 공산화하려 하자 미국은 트루먼 독트린으로 공산 세력 확장을 봉쇄했다. 스탈린이 1943년 해체한 코민테른을 코민포름으로 부활시켜 냉전이 본격화했다. 1947년 미국이 서유럽 국가들의 경제 회생을 위해 마셜플랜을 시행하자 소련은 코메콘으로 대항했다. 미·영·프가 독일 점령지역의 경제 발전을 위해 도이치 마르크(DM)로 통화를 통합하자, 스탈린은 1948년 베를린 봉쇄를 단행해 미·소 냉전은 극에 달했다. 서방측의 대량 공수작전으로 제3차 세계대전은 피했으나,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로 소련과 공산권을 포위했다. 스탈린은 압박을 받았고 공산 종주국 지도자로서의 권위마저 실추됐다.
사면초가인 스탈린이 압력 분산책을 모색하던 중 1949년 8월 소련 핵실험 성공, 10월 마오쩌둥의 중국 대륙 석권에 이어 1950년 1월 애치슨 라인 선언으로 한반도가 미국의 방위권에서 제외되자 6·25전쟁을 최종 결심한 것이다. 이처럼 6·25전쟁은 미·소 냉전체제 구조 결함의 희생물이고, 좌우파 정치세력의 대결과 소·중·북의 정책 결정 체제 결함, 스탈린·마오쩌둥·김일성의 전쟁광적인 성격 결함으로 야기된 것이다.
우리는 북핵 위협으로 6·25전쟁 이래 최대의 안보 위기를 맞고 있다. 미·중 패권 경쟁 속에 우크라이나 전쟁과 시진핑의 대만 점령 야욕으로 신냉전 체제화가 제2의 6·25로 비화하지 않도록 온 국민이 단합해야 할 때다. 국제체제 변화를 예의주시하면서 시진핑·김정은·블라디미르 푸틴의 일거일동, 특히 3선 연임된 시진핑의 주동작위(主動作爲·제 할 일은 주동적으로 함)를 경계하면서 한·미 정상의 워싱턴선언에 더해 종북좌파 척결과 자주 국방력 증강으로 국가 안보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 이것이 자유 대한민국의 영원한 생존과 번영의 길이다.
문화일보
06.24 軍은 김관진식 정신무장과 실전 훈련으로 거듭나야 한다
국방혁신위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은 “AI 첨단 무기가 개발되고 전쟁 양상도 바뀌어 가지만 중요한 건 선명한 대적관, 강인한 전투 의지 등 정신 전력”이라며 “싸워 이길 수 있는 군이 되려면 끊임없이 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이 말은 문재인 정부 때 무너진 군이 거듭나는 기본 원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문 정권 5년간 군의 실상은 ‘군사력 아닌 대화로 나라를 지킨다’고 선언한 국방일보가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북한 탄도미사일은 ‘불상 발사체’라 하고 “대화로 풀어가려는 의도”라고 했다. 북이 훈련 중단을 요구하자 훈련을 컴퓨터 게임으로 만들었다. 훈련 이름도 붙이지 못해 ‘홍길동 훈련’이라 불렀다. 다국적 훈련엔 가급적 불참했다. 수류탄 사고 한 번 났다고 1년간 훈련을 안 했다. 행군에 부대원 절반 가까이가 아프다고 빠졌다. 미군 사령관이 “실전에서 피를 부를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훈련다운 훈련은 없었다.
국방장관은 천안함·연평도 도발을 “불미스러운 충돌” “이해할 부분이 있다”고 했다. “재래식 무기로 북핵에 대응할 수 있다”는 상식 밖의 말도 했다. 어느 장관은 국회에서 부하와 서로 “거짓말한다”며 싸웠다. ‘북한이 우리의 적’이라는 문구는 국방백서에서 빠졌다. NLL을 침범한 북 선박을 나포했다고 합참의장이 청와대에 불려갔다. 30대 청와대 행정관이 인사 논의한다며 육군 참모총장을 휴일에 불러냈다. 장군들은 진급하려고 정권에 아부했다.
정권이 ‘사드 3불’로 군사 주권을 양보해도 침묵했다. 취객과 치매 노인, 시위대가 군 기지에 침입하고 철책과 항구는 귀순자와 월북자 등에게 수시로 뚫렸다. 성범죄가 끝없이 이어져 ‘우리 군의 주적은 성추행’이라는 말이 나왔다. 장관이 1년에 7번 대국민 사과했지만 기강 해이를 바로잡지 못했다. 50만 군대가 1인당 1억원의 국방 예산을 쓰는데 오합지졸이 돼 버렸다.
군이 더 이상 정권에 코드 맞추고 북한 눈치 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적이 누구인지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대화로 나라를 지킨다는 얼빠진 생각과 해이해진 기강을 바로잡아야 한다. 훈련하지 않는 군대는 군대가 아니다. 이제 보여주기식 훈련의 시대는 끝났다. 실전 훈련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
2015년 북한의 고사포 도발에 즉각 자주포 29발로 응사하자 북은 결국 사과했다. 작년에 북 무인기가 서울을 침범했을 때 우리도 북에 무인기를 보내자 북은 더 이상 도발을 하지 못하고 있다. 북의 도발을 막는 것은 평화 구걸이 아니라 정신 무장과 실전 훈련이다.
조선일보 사설
06.24 중학생 선봉에 미스코리아도 참전… ‘낙동강 방어선’에 무슨 일이?
“워커 장군 기억합시다”
6·25 앞두고 유쾌한 소동
“누나들도 기억할게.”
지난 10일 구미에서 미스코리아 경북 대회가 열렸다. 미인(美人)을 선발하는 행사, 으레 수상자의 이목구비나 신체적 굴곡에 관심이 집중되곤 하는 이벤트. 이날은 조금 달랐다. 진·선·미로 뽑힌 여성들이 시상식 무대에 올랐다. 반짝이는 왕관을 쓴 채 건치 미소를 지어 보이던 이들은, 이윽고 준비한 팻말을 하나씩 꺼내들었다. 각자의 팻말에는 “동준아 누나들도”(선) “워커 장군님을”(진) “기억할게”(미)라고 쓰여 있었다. 진으로 선발된 허윤진(23)씨는 “대한민국을 지킨 영웅을 알리려는 청소년의 목소리에 감명 받아 이 세리머니를 제안했다”며 “앞으로도 호국과 보훈의 가치를 알리는 일에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대체 무슨 일일까?
◇정전 70년, 잊힌 영웅의 이름

▲미스코리아 경북 진·선·미 수상자들이 들고 있는 팻말이 의미심장하다. 6·25전쟁의 영웅 워커 장군을 기억하겠다는 다짐이 담겨있다. /칠곡군
발단은 중학생의 호소였다. 경북 칠곡의 장곡중학교 3학년 김동준(15)군은 현충일을 앞두고 6·25전쟁 관련 수행평가 과제를 위해 이런저런 자료를 찾던 중이었다. 전쟁 당시 대한민국 존망이 걸려 있던 ‘다부동 전투’로 유명한 칠곡은 ‘호국 평화의 도시’를 표방하는 동네다. 김군은 “우연히 유튜브에서 미국의 워커 장군 일대기를 보게 됐다”고 말했다. 한반도에 급파된 미8군 초대 사령관 월턴 워커(Walker·1889~1950). 풍전등화 위기에서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해 결국 인천상륙작전을 가능케 한 명장이다. 김군은 “내가 사는 지역에서 목숨 걸고 나라를 구한 영웅인데 교과서에서도 본 적이 없다”며 “친구들과 후배들에게 알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김군은 이 학교 학생회장이다.
소셜미디어로 친구들에게 내용을 공유하고, 칠곡군청 홈페이지에 접속해 ‘군수에게 바란다’ 코너를 클릭했다. 장문의 호소문을 보냈다. “군수님, 저는 얼마 전 유튜브에서 한 영상을 보기 전까지 워커 장군을 알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죽더라도 한국을 지키겠다, 사수하느냐 죽느냐의 선택만이 있다던 불도그 워커 장군님… 군수님께서도 많은 사람에게 워커 장군님을 기억하도록 해주세요. 교과서에도 워커 장군님 이야기는 없습니다. 특히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학생들이 꼭 알 수 있게 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대견하다”… 곧장 응답한 어른들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다"며 더 많은 사람들이 워커 장군을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군수에게 호소하는 칠곡 장곡중학교 학생들. /김동준군 제공
현충일 전날 밤, 학교 친구들을 모아 스케치북으로 일종의 ‘카드 섹션’을 준비했다. 물감으로 색칠하고, 나뭇잎 등을 붙여가며 글씨를 완성했다. “우리가 또 기억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사진과 글을 받아 본 김재욱 칠곡군수는 7일 “중학생들이 보낸 기분 좋은 민원(?)을 소개한다”며 “낙동강의 영웅 워커 장군을 알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겠다”고 페이스북에 밝혔다. 일주일 뒤 워커 장군 흉상 제작이 결정됐다. 6·25전쟁이 먼 과거의 일로 치부되고 정치 양극화로 호국 영령에 대한 폄훼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학생들의 자발적인 제안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군청 관계자는 “소식이 전해지며 칠곡 ‘캠프 캐럴’ 미군들도 성금을 보내기로 했고 교육 당국과도 협력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흉상은 다음 달 칠곡호국평화기념관에 설치될 예정이다.
어린 학생들의 움직임에 고무된 경북교육장학회 측은 지난 17일 장학금을 수여했다. “미처 알려지지 않은 내용을 우리 학생들이 일깨워줬다.” 서울 등지에서 일반 시민들의 기부금 전달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호국 정신을 ‘극우’로 폄훼하는 일부 비뚤어진 시각도 존재한다. 김군은 “우리 소식을 소개한 지역 방송 유튜브 댓글창에서 ‘일베’(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냐는 댓글도 봤다”면서도 “미스코리아 누나들처럼 예상치도 못했던 많은 분들이 응답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무너지면 끝… 최후의 방어선

▲‘인천상륙작전’의 맥아더(맨 앞 왼쪽) 장군과 이를 가능케 한 워커(오른쪽) 장군이 나란히 서 있다. /국방부
정전 70년을 맞는 올해, 이번 일화가 뜻깊은 이유는 이 지역이 사실상 공산화 저지의 마지막 보루였기 때문이다. 역시 잊히고 있는 사실이다. 기습 남침으로 전쟁 3일 만에 서울을 빼앗기고, 우리 군은 1950년 8월 1일 낙동강까지 후퇴했다. 국토의 90%가 북한에 넘어간 상황, 여기마저 뚫리면 대한민국은 역사에서 사라질 위기였다. 김일성은 “8월 15일까지 부산을 점령해 전쟁을 끝내라”고 지시했다. 최후의 저지선, 워커 장군은 낙동강과 산악 지대를 잇는 240㎞ 길이 낙동강 방어선(‘워커 라인’)을 구축했다. 전투는 9월 14일까지 45일간 이어졌다. 당시 워커 장군이 남긴 외침 “Stand or Die”는 지금도 군인 정신의 표상으로 회자된다. 지키느냐 죽느냐, 둘 중 하나라는 결의.
속도전을 원했던 북한은 파상공세를 퍼부었다. 연합군은 최대한 시간을 벌어 전력을 회복하고 총반격의 발판으로 삼아야 했다. 격렬한 저항에 북한군도 점차 한계를 드러냈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전개됐다. 전세가 완전히 뒤집혔다. 낙동강에서 역사의 변곡이 시작된 것이다. 워커 장군의 아들 샘 워커 역시 부친과 함께 낙동강 방어 전투에서 활약해 미국 정부로부터 은성무공훈장을 받았다. 그러나 워커 장군은 그해 12월 23일 경기도 양주 인근에서 교통사고로 갑작스레 눈을 감는다. 아들의 훈장 수훈을 축하하러 가는 길이었다. 손자 샘 워커 2세는 헬리콥터 조종사로 한국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고, 2019년 방한해 명예칠곡군민증을 받았다.
◇‘지게 부대’를 아시나요?

▲다부동 전투의 이름 없는 영웅 '지게 부대' 부대원들을 기리기 위해, 백선엽 장군의 장녀 백남희(가운데) 여사가 당시를 재현하고 있다. /칠곡군
대구로 향하는 길목, 당시 칠곡에서는 ‘다부동 전투’가 55일간 이어졌다. 실질적인 한미 연합작전이 처음 이뤄진, 6·25전쟁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평가받는다. 인민군 2만4000명, 국군 1만여 명이 사상한 격전이었다.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쏘라”고 부하들에게 지시한 국군 1사단장 백선엽(1920~2020) 장군이 이곳에서 영웅의 칭호를 얻었으나, 그 뒤에는 이름 없이 산화한 영웅들이 있다. ‘지게 부대’다. 탄약·연료·식량 등 보급품 40㎏을 짊어지고 가파른 산을 오르며 국군 1사단과 미군에 전달했다. 군번도 총도 없이 포화 속을 누볐다. 지게를 진 모습이 알파벳 A와 닮아 ‘A특공대’(A-frame Army)로 불린 ‘지게 부대’ 대원들은 약 2800명이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백 장군의 장녀 백남희(75) 여사는 사비 1200만원을 들여 ‘다부동 전투 지게 부대원 추모비’를 세웠다. 오는 7월 5일 제막식을 앞두고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배경이 되기도 한 328고지에서 열린 ‘지게 부대’ 재현 행사에도 참여했다. 밤낮으로 주먹밥을 만들어 군인들에게 보급하던 여성 주민 차림으로 분장한 백 여사는 “생전 ‘지게 부대’를 높이 평가한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추모비를 건립하게 됐다”며 “이름 없는 영웅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 추모비는 역시 올해 새로 제작된 백선엽 장군 동상과 함께 같은 날 다부동전적기념관에 들어선다. 영웅들이 기억의 공간에서 다시 만나게 됐다.
조선일보 정상혁 기자
06.26 6·25 참전 용사들에게 ‘영웅의 제복’, 한편에선 침략 본질 흐리기

▲6·25 전쟁 참전용사들이 25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6·25 73년 행사에서 국가보훈부가 지급한 '영웅의 제복'을 입은 채 국기에 대해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6·25 정전 70주년을 맞아 제작한 ‘영웅의 제복’을 받은 참전 용사들의 감사 편지와 전화가 국가보훈부로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90대에 접어든 참전 용사들은 “앞으로 친구나 지인들을 만날 때 당당히 입고 다니겠다” “눈을 감을 때 수의 대신 입고 싶다”며 “나라에서 저희를 잊지 않아 감사하다”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그동안 참전 용사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얼마나 부족했는지 짐작하게 해 준다.
얼마 전 생활고에 몰린 80대 후반의 6·25 참전 용사가 부산의 한 마트에서 7차례에 걸쳐 반찬 8만원어치를 훔치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극단적 사례지만 실제 많은 참전 용사가 무료 급식소를 전전하는 등 힘들게 생활하고 있다. 이들이 국가에서 받는 참전수당은 월 39만원이다. 이것도 많이 올린 것이다. 2010년까진 10만원도 되지 않았다.
월 200만원 넘는 참전수당을 주는 외국 사례를 들 것도 없다. 현역 병장 월급이 100만원이고 2년 뒤엔 200만원을 받는다. 정부는 참전수당을 2027년까지 50만원으로 올린다지만 이것이 경제 규모 10위권 국가의 수준에 걸맞은지 의문이다. 2000년 민주화운동보상법 제정 이후 4900여 명이 받은 보상금이 1100억원이 넘는다. 이런 부조리는 여야를 막론하고 당장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포퓰리즘 경쟁을 벌인 결과일 것이다.
생활고보다 참전 용사들을 더 낙담시키는 것은 사회 전반의 무관심과 냉대다. 참전 용사 예우는 이들의 헌신을 제대로 기억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지난 정부는 정반대로 행동했다. 북한의 남침 사실을 쉬쉬하고 우리의 전쟁 영웅을 폄훼하는 언행을 일삼았다. 문재인 정부 광복회장은 6·25 전쟁영웅 백선엽 장군의 현충원 안장을 가로막았고, 과거사위원장은 탈북한 국군 포로들 앞에서 “중공군 포로의 피해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은 현충일에 6·25 남침 공로로 북한에서 훈장까지 받은 김원봉을 국군의 뿌리인 듯 칭송했다. 참전 용사들을 예우하긴커녕 능멸한 것이다.
6·25 73주년인 어제 문 전 대통령은 추모 메시지 대신 6·25가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이었다고 주장하는 책을 소개했다. 과거 좌파 운동권·학계에서 신봉하던 ‘미·소 대리전’ 프레임을 연상시킨다. 6·25 남침의 본질은 김일성의 적화통일 야욕이다. 대리전 운운부터 북한의 책임을 감추고 축소하는 것이다. 민주당은 북한과 윤석열 정부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감을 높이고 있어 양쪽 다 잘못이라는 메시지를 냈다. 6·25의 본질을 흐리고 왜곡하려는 시도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
06.26 동의대·남민전 사건도 ‘민주 유공자’… 野 추진 법안에 포함
9844명을 민주화 운동 인정… 野, 이 중 829명을 유공자 격상 추진
민주화 보상법에 따른 민주화 운동 관련자가 9844명에 이르는 것으로 25일 확인됐다. 이는 4·19, 5·18 관련 유공자 5200여 명은 따로 떼놓은 숫자다. 9844명 가운데는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 사건(50명)과 무고한 사람을 감금·폭행한 서울대 민간인 고문 사건(5명), 경찰 7명이 숨진 부산 동의대 사건(52명) 관련자 등도 들어가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민주화 보상법과 별개로 민주화 관련자 9844명 중 사망·부상자 829명을 국가유공자로 예우하는 ‘민주 유공자법’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도 남민전, 서울대 민간인 고문 사건, 동의대 사건 관계자 일부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이날 국민의힘 정우택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민주화 운동 관련자 9844명에는 긴급조치 위반 사건(4587명), 전교조 결성 해직 사건(1690명), 통일 운동, 노점상 투쟁, 농민 운동(412명) 등이 포함돼 있다. 정부 관계자는 “야당의 ‘민주화 유공자법’이 통과되면 남민전 사건 2명, 동의대 사건 1명, 서울대 민간인 고문 사건 1명이 유공자 예우를 받는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6·25전쟁 73주년을 맞기까지 북한군과 빨치산 만행에 초점을 맞춰 민간인과 군경에 대한 명예 회복과 보상을 규정한 법률은 없었다. 민주화 운동은 물론 제주 4·3부터 여순·노근리 사건 등에 이르기까지 특별법으로 진상을 조사하고 정부 책임을 따지는 것과 대조적이다.
국민의힘 조해진 의원은 이날 6·25전쟁 전후로 북한군과 빨치산 등에게 희생당한 종교인들의 명예 회복을 위한 진상 규명 법안을 발의했다. 법안은 총리실 산하에 진상규명위원회를 만들어 조사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한다. 과거 진실화해위원회 등에서 6·25 당시 남북 양측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기는 했다. 그러나 주로 우리 측의 책임에 초점이 맞춰져, 북한의 민간인 학살 조사는 미진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조 의원은 “과거사 평가는 형평성에 맞고 공정해야 한다”고 했다.
06.26 [단독] 민간인 고문·사노맹도 ‘민주화 운동’… 현대重 962명도
9844명 민주화 운동 관련자 보니

▲1989년 5월 부산 동의대 도서관 7층 세미나실이 불에 까맣게 탄 모습. 당시 학생들에게 붙잡힌 전경 5명을 구출하러 경찰이 들어갔는데, 학생들이 도서관 복도에 석유를 뿌리고 화염병을 던져 경찰 7명이 숨졌다. 이후 동의대 사건 관련자들이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아 논란이 됐다./연합뉴스
국가에서 인정한 민주화 운동 관련자가 9844명에 이르고, 이 가운데 829명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민주화유공자법’에 따른 예우 대상이다.
정부 관계자는 25일 “민주당 법안대로라면 남민전 사건 2명, 동의대 사건 1명, 서울대 민간인 고문 사건 1명도 민주화 유공자로 지정돼 가족까지 혜택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친북(親北), 민간인 고문, 경찰 사망 사건 관련자들도 국가 유공자급 예우를 받는 셈이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국민의힘 정우택 의원에게 낸 자료에 따르면 민주화보상법을 근거로 국가가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한 규모는 9844명이다. 이들은 1964년 3월 24일 이후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하여 헌법이 지향하는 가치를 실현한 활동 등을 인정받은 인사다. 다른 법률에 따라 관리하는 4·19혁명, 5·18 민주화 운동 유공자 5200여 명은 포함되지 않은 숫자다.
정부는 민주화 운동 관련자를 주요 사건 41건으로 정리했다. 민주화 운동 관련자 규모로는 긴급조치 위반 사건(4587명), 전교조 결성 해직 사건(1690명), 현대중공업 노동쟁의 사건(962명) 순으로 많았다. 상징성으로 단 1명이 하나의 사건으로 구분된 경우도 있었다. 전태일 분신 사건,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이한열 최루탄 피격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민주화 운동 관련자 중에서 4988명에겐 보상금·생활지원금이 모두 1169억3000만원 지급됐다.

▲그래픽=양진경
국민의힘은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사건도 무리하게 민주화 운동 관련자가 선정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 1989년 부산 동의대 사건은 민주화 보상위원회(민주화 운동 관련자 명예 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논란이 있었다. 당시 동의대 도서관에 감금된 전경을 구출하려고 들어간 경찰 7명이 학생 측이 던진 화염병에서 일어난 불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화 보상위원회는 이를 반(反)독재 사건으로 분류하면서 “도서관 농성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행위는 당시 노태우 정부의 권위주의적 탄압에 대한 항거에서 비롯됐다”며 “발생한 결과가 중대하다는 것만으로 민주화 운동 관련성을 부인할 사유는 되지 못한다”고 했다.
그 결과 동의대 사건의 52명이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경찰 유족이 항의하고 반발 여론이 비등하자 이후 동의대 사건 잔여 13건에 대해서는 불인정 결정을 내렸다. 위원회 내부에서도 민주화 관련자 선정 논리가 꼬인 셈이다.
1979년 발생한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 사건도 논쟁 소지가 있다. 실제 북한과 연계를 시도했다는 의혹이 남아 있는 까닭이다. 그런데 민주화 보상위원회는 “유신 반대 활동이 명백하다”면서 남민전 사건에 연루됐던 50명을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판단했다. 당시 ‘김일성 보고문’ 작성 등으로 남민전 활동을 주도한 13명만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되지 못했다.
민주화 보상위원회는 1984년 일부 서울대 학생회 간부들이 ‘프락치’로 의심된다며 무고한 사람들을 감금·폭행한 이른바 ‘서울대 민간인 고문 사건’도 반독재 운동 시국 사건으로 분류했다. 당시 피해자 4명은 프락치가 아니라고 법정에서 밝혀졌고, 이들 가운데 일부는 언론 인터뷰에서 “집단 구타 후유증으로 정상적 사회생활이 어렵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민간인을 고문한 가해자 5명은 오히려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된 것이다.
1990년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사건은 핵심 간부 박노해(본명 박기평), 백태웅씨만 민주화 운동 관련자가 됐다. 사회주의를 표방했지만 이들의 활동은 당시 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한 항거로 판단된다는 것이다. 다만 나머지 사노맹 연루자 100여 명은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래픽=정인성
민주당 우원식 의원이 대표 발의한 민주 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민주유공자법)에는 이들 가운데 사망자 또는 행방불명자, 부상자 등 829명을 유공자로 예우하자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최근 국가보훈부는 유공자 선정 논의에 필요한 대상자 기록을 국가기록원에 요청했지만 ‘개인 정보’라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국민의힘 정우택 의원은 “나라 위해 희생한 분들을 예우하는 것은 마땅하지만, 그 공적에 대해 국민적 동의를 얻는 것이 먼저”라면서 “유공자 예우에 세금이 들어가는 만큼 국민이 상세한 민주 유공자 명단과 공적을 알 권리가 있다”고 했다.
06-26 ‘남민전도 예우’ 입법 접고 민주 유공자 명단 공개해야
더불어민주당이 입법에 나선 ‘민주 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의 부적절성이 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정부 관계자는 25일 “민주당 법안대로라면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 사건 2명, 동의대 사건 1명, 서울대 민간인 고문 사건 1명도 민주화 유공자로 지정돼 가족까지 혜택을 받게 된다”고 밝혔다. 북한과 연계를 시도한 의혹이 여전한 남민전까지도 지속적인 예우를 제도화하는 입법을 추진하는 민주당의 저의부터 묻지 않을 수 없다.
‘민주 유공자 법안’은 우원식 민주당 의원이 2020년 대표 발의해, 국회 정무위원회 제1법안심사소위의 지난 5월 16일 심의 후 계류 중이다. 2015년 시행된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민주화운동’을 인정받은 9844명 중에서 사망자·행방불명자·부상자 등 829명을 지속적인 예우 대상으로 삼았다. 그중에서 ‘민주 유공자’로 떠받드는 일이 어불성설인 것은 1979년 남민전 연루자뿐만이 아니다. 학생들이 불법 감금한 전투경찰을 구출하려고 들어간 경찰을 향해 화염병을 던져 7명을 사망하게 한 1989년 부산 동의대 사건, ‘프락치’로 의심된다며 무고한 시민을 감금·폭행·고문한 1984년 서울대 학생회 간부 사건 등의 연루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남민전 50명, 동의대 사건 52명, 서울대 고문 사건 5명 등은 9844명에 들었었다. 그중 4988명에게 국민 세금으로 지급된 보상금·생활지원금만 1169억 원이었다.
그러고도 모자란다며, 반(反)국가적·반사회적 일탈 혐의자마저 ‘민주 유공자’로 계속 떠받들게 하겠다는 입법은 당장 접어야 한다. 국가보훈부가 829명 행적을 확인하기 위해 요청한 자료조차 국가기록원은 ‘개인 정보’라며 거부했다고 한다. 민주화운동은 개인에게도 자랑스러운 일이다. 당당하다면, 숨길 이유가 없다. ‘민주 유공자 법안’ 대상자뿐 아니다. 민주화보상법과 5·18민주화운동특별법 등의 1회성 수혜자도 전면 공개해야 한다. 더 회피할 일이 아니다. 그 명단을 아는 것은 세금 낸 국민의 권리다.
문화일보 사설
06-26 ‘6·25는 미중전쟁’ 책 권한 文, 자유 지킨 호국영령 모독
6·25는 북한 김일성이 소련 스탈린과 중국 마오쩌뚱의 지원 약속을 배경으로 일으킨 전쟁이라는 사실은 수많은 증언과 사료로 입증됐다. 다른 많은 간접적·부차적 요인도 작용했겠지만, 그런 측면을 앞세워 김일성의 남침 전쟁 범죄를 희석하는 본말전도는 전형적인 역사 왜곡이며 ‘조국통일·민족해방 전쟁’이었다는 북한 주장을 거드는 일도 된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25일 ‘1950년 미중전쟁’ 책을 추천한 것은 개탄스럽다.
문 전 대통령은 “전쟁의 시원부터 정전협정에 이르기까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인 힘”이라면서 “한국전쟁이 국제전이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인천상륙작전 등으로 북한군이 거의 궤멸하고, 중공군 참전으로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진 것은 맞지만, 6·25를 미국과 중국이 벌인 국제전처럼 내세운다면, 김일성의 침략 전쟁 책임은 묻히고 만다. 종북 성향의 인사나 단체라면 몰라도, 대한민국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그래서는 안된다. 전투 중 전사·실종되거나 부상 당한 62만 명의 국군과 15만 명의 유엔군 희생과 헌신에 감사를 표하는 메시지부터 내는 게 도리다.
문 정부는 2018년 국군의날 70주년 기념식을 연예인 초청 쇼로 대체했고, 2020년 6·25 기념식 때는 봉환된 국군 유해 147구를 하루 방치하며 행사 소품으로 취급해 논란을 빚었다. 문 전 대통령은 집권 내내 김정은의 비핵화 사기극에 장단 맞춰 “김정은 수석대변인 같다”는 지적도 받았다.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이 참담할 뿐이다.
문화일보 사설
06-26 반미 선동과 간첩, 6·25 전야 데자뷔

송종환 경남대 석좌교수, 前 주파키스탄 대사
6·25전쟁 73주년일이던 25일 문재인 전 대통령은 그의 페이스북에 ‘6·25는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이었다’고 주장한 ‘1950년 미중전쟁’(2021년 발간)이라는 책을 추천했다. 북한은 6·25전쟁이 남한의 북침에 대한 북한의 반격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소련 붕괴 후 1992년부터 러시아 측이 공개한 비밀문서들은 북한 측 주장이 거짓 선전임을 밝히고 있다. 김일성은 1949년 3월 5일 모스크바에서 스탈린과 회담 후 1950년 초까지 남침 승인을 48차례나 요청했다. 북한의 남침으로 국군 13만7000여 명과 유엔군 3만7000여 명의 전사자를 낸 6·25전쟁의 본질을 흐리려는 문 전 대통령의 움직임은 가짜 평화 쇼로 국민을 속이던 행태의 연속이다.
윤석열 정부로 정권이 교체된 이후 한미 관계를 비롯한 많은 일이 정상화되고 있다. 그러나 평화를 저해하는 세력들의 활동은 6·25전쟁 전야와 비슷하다. “남조선을 해방하기 전에 우리에게 평화란 있을 수 없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고 한 김일성의 교시에 따라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를 대남공산화통일 전략의 제1원칙으로 삼고, 2022년 9월 최고인민회의에서 핵무력 정책을 법령으로 채택해 각종 미사일 도발 시위를 일삼고 있다.
6·25전쟁 발발 직전에 주한미군 철수 건의 결의안을 상정한 김약수 부의장 같은 세력이 국회 내에 건재하다. “대통령이 되면 즉시 사드(THAAD) 다 뜯어 미국에 보내고 미국과 전쟁할 각오하고 미군을 다 철수시킬 것”이라고 한 야당 대선 후보는 국회 내 다수당의 대표가 돼 있고, 2019년 11월 한미방위비 증액 논란 때 주한미군 철수에 서명한 국회의원 47명 대부분도 현역 의원이다.
민주노총은 조합원들의 권익과 상관없는 ‘주한미군 철수’ ‘한미동맹 철폐’ 같은 주장으로 북한 노동당 전위대 같은 역할을 하고 있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는 경남 창원의 간첩 조직이 2021∼2022년 북한과 주고받은 대북 보고문과 지령문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지역조직과 단체가 68개나 됐다.
오늘의 국제 관계는 각국의 국익에 따라 움직인다. 다시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에서 보듯이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른 군사적 지원은 기대할 수 없다. 대한민국은 스스로 힘을 기르고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 핵에는 핵으로 대응해야 한다. 한미동맹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 4월 미국을 방문한 윤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합의, 발표한 워싱턴선언의 대북 확장 억제책이 실체화하도록 하면서 지난 1월 11일 윤 대통령이 언급한 핵 옵션 구상을 추진하기 위해 미국 조야를 설득해 나가야 한다.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이 내년 1월 1일 자로 경찰로 넘어간다. 북한 간첩이 지하에서 조직을 확대하고 친북 좌파 세력들이 활개를 치는 상황에서 능력과 경험이 부족한 경찰에 대공수사권을 넘기지 않아야 한다. 지금 진행 중인 간첩 수사에 지장이 없도록 국정원 인사 파동이 조속히 수습돼야 함은 말할 나위 없다.
덧붙여, 서구권과 국내 일각에서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사용해온 ‘한국전쟁’ 또는 ‘6·25한국전쟁’이라는 용어도 바꿔야 한다. ‘한국전쟁’이란 용어가 한국이 북침했다는 북한의 선전에 악용되지 않도록 ‘6·25남침전쟁’ 또는 ‘6·25전쟁’이라고 불러야 한다.
문화일보
06-26 “수의로 입고, 영정 사진 찍고 싶다”…노병들 ‘영웅의 제복’에 감격

▲대통령실이 정전 70주년을 맞아 지난 14일 청와대 영빈관으로 초청한 ‘제복의 영웅들’ 행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새 제복 입은 노병들에게 박수를 치고 있다. 박민식 보훈부장관이 지난 24일 이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대통령실 제공
박민식 장관 페이스북에 “새 제복 받은 노병들 감사에 직원들 큰 보람”
제복 제작 김석원 대표 “수의로 입고 싶다는 노병 얘기 듣고 숙연해져”
보훈부 “연말까지 5만1000여명 지급 모두 완료하겠다”
“90세가 넘으신 6·25참전 어르신들이 멋진 제복 한 벌씩을 받으시고, 너무 좋아하십니다. 손 편지도 보내주시고, 고맙다고 전화도 주시고, 국가보훈부 직원들도 큰 보람을 느낍니다.”
6·25전쟁 정전 70주년 하루 전인 지난 24일 박민식 국가보훈부장관은 페이스북에 70년 만에 새 제복을 받은 한 노병의 꽃무늬 새긴 노란 손편지와 함께 이같은 글을 남겼다.

▲박민식 국가보훈부장관이 지난 24일 페이스북에 올린 6·25전쟁 참전 남상소 노병의 손편지. 새 제복 지급에 대한 감사의 말을 남겼다. 박민식 국가보훈부장관 페이스북 캡처
지난 22일 정부세종청사 국가보훈부 6·25참전 유공자 제복 담당자에게 날아든 이 손편지 주인공은 6·25 전쟁 참전 노병 남상소(90)씨였다. 노병은 전날 서울 동작구 자택에서 정부가 6·25 전쟁 참전 용사를 위해 제작한 명예 제복을 받았다. 그는 “양복이 색깔도 좋고 모양도 좋아서 앞으로 모임 등에 입고 가겠다”며 “90세가 되니 귀가 어두워서 전화를 못해 서신으로 감사의 말씀 올린다”고 고마워했다. 1951년 봄 18세에 입대했다는 노병은 “나라에서 잊지 않고 계속 복지에 신경 써 감사드린다”고 했다.
‘6·25전쟁 제73주년 행사’가 열린 25일 오전 서울 장충체육관에는 참전 용사 250여 명이 처음으로 보훈부가 제공한 ‘영웅의 제복’을 입고 단체로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연갈색 재킷과 흰색 셔츠, 남색 바지와 넥타이 차림으로 시원하고 통풍성이 좋은 리넨(linen·마)소재 새 제복은 격식 있고, 각 잡힌 듯하면서도 편안한 디자인으로 노병들을 돋보이게 했다. 이 제복을 구상하고 제작한 김석원(53) 앤디앤뎁 대표는 “6·25참전유공자의 정체성을 드러내면서도 입기 편한 옷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참전 용사들이 착용한 ‘영웅의 제복’은 정부가 지난해 ‘제복의 영웅들’ 사업을 통해 만든 명예 제복으로, 이달부터 6·25 참전용사 5만1000명에게 무상으로 지급되고 있으며, 2차 신청을 받아 올해 말까지 모두 전달할 예정이다.1월 1일 이후 생을 달리한 참전유공자들은 유가족이 신청하면 제복을 받을 수 있게 할 예정이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25일 오전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6·25전쟁 제73주년 기념식에서 참전영웅에게 영웅의 제복을 전달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참전 노병들은 대부분 90세 이상 연로한 분들이다. 장사상륙작전에 유격대로 참전한 학도의용군 출신 노병 류병추(91)씨는 “국가에서 멋들어진 제복을 잘 만들어줘서 고맙다”며 “저와 같이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이들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 이밖에 제복을 전달받은 노병들은 보훈부에 전화나 문자로 “제복 잘 받았다. 잘 만들어주셔서 감사하고 마음에 든다. 앞으로 잘 입고 다니겠다”, “제복 입은 영정 사진을 찍고, 수의로도 사용하겠다”는 등 감사 인사를 전했다고 한다. 보훈부는 “목숨을 걸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한편 전후(戰後) 폐허에서 대한민국을 다시 일으킨 6·25 참전 유공자들의 헌신에 감사와 존경을 표하기 위해 ‘위대한 헌신에 존경과 감사’를 주제로 이날 행사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 명예 제복은 지난해 보훈부가 참전 용사들을 위해 만들었다. 참전 용사들은 그동안 6·25 참전유공자회에서 만든 조끼를 사비로 사왔다. 하지만 일각에서 참전 용사들의 조끼를 비하 대상으로 삼았고, 보훈부에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제복 제작에 나선 것이다.
2022년 공개된 ‘제복의 영웅들’ 프로젝트에 대한 국민적 반응은 뜨거웠다. 보훈부에 따르면 원래 프로젝트는 10명의 참전유공자가 시범 착용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었으나 뜨거운 국민의 반응을 접하고 사업이 확대돼 생존 6·25 참전 유공자 전원에게 새 제복을 지급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로 전환됐다. 보훈부는 “나라의 세금을 이런 데 써야 한다는 댓글도 많고, 참전용사들이 이런 처우를 받고 있다는 걸 안타까워 하는 사람도 많았다”며 “이 같은 호응이 보훈부가 사업을 확대해 참전유공자 전원에게 새 제복을 지급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25일 오전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6·25 73주년 행사에 참석한 참전 용사들이 국가보훈부에서 올해부터 지급한 ‘영웅의 제복’을 입고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국가보훈부 제공
김석원 대표는 최근 정책주간지 K-공감 인터뷰에서 “유가족들이 새 제복을 영정에 올리고 싶어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금 살아계신 분들 중 수의(壽衣)로 입고 싶다는 분들도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단순히 참전유공자만을 위한 디자인 작업이 아니었다는 생각에 숙연해진다”며 “이 제복의 의미를 다 알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소회를 말했다.
김 대표는 “디자인을 시작하면서 기존에 입고 계시던 조끼를 살폈는데 다닥다닥 붙어 있던 훈장이나 약장 때문에 상당히 무거웠다”며 “새 제복을 입으면서는 그런 무게감과 불편함은 내려놓으시고 역사를 위해 희생한 데 대한 자랑스러움과 자부심만 느끼시면 좋겠다”고 했다. 김씨는 “현재 제복이 봄·여름용이어서 가을·겨울용 명예 제복도 필요한 상황”이라며 “많은 분이 관심을 가져주시면 동복 제작에도 흔쾌히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
문화일보 정충신 선임기자
06.27 새 통일부 장관에 김영호 교수...6·25전쟁 연구한 정치학자

윤석열 대통령이 권영세 통일부 장관을 교체하기로 하고 김영호(64) 성신여대 교수를 후임 통일부 장관 후보자로 낙점한 것으로 26일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북한과 대화와 협력의 문은 열어놓되 과거 정부에서 대화 지상주의에 빠져 북한의 대남 간첩 활동 등에 대한 대비 태세가 이완돼 있다고 보고 있다”며 “그런 차원에서 김 교수를 후임 통일장관으로 사실상 낙점했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대한민국 건국, 6·25전쟁의 기원과 전개 과정 등을 연구한 정치학자로 이명박 정부 때 청와대 통일비서관과 외교부 인권대사를 지냈다. 현 정부 출범 후 통일부에 신설한 통일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중장기 통일 방안인 ‘신통일미래구상’을 연구해왔다.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를 기반으로 한 통일 정책을 펴겠다는 윤 대통령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이런 차원에서 통일부 차관에는 국가정보원 대북 관련 국장 출신인 황원진씨와 외교부 북미국장을 지낸 문승현 현 태국 대사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통일부가 과거 정부 때처럼 대북 대화나 교류 협력 지원 부처로만 자리매김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통일부 장관을 비롯해 신임 방송통신위원장(이동관 현 대통령 대외협력특보), 국민권익위원장(김홍일 전 대검 중수부장)과 10여 개 부처 차관 인선을 오는 29일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차관 인사는 19개 부처 중 절반 이상이 교체될 전망이다. 교체 대상으로는 외교부·통일부·기획재정부·국토교통부·행정안전부·문화체육관광부·환경부·해양수산부 등이 거론되고 있다. 외교부 2차관에는 오영주 주베트남대사가 유력하다. 이도훈 2차관은 주러시아 대사로 이동한다. 대통령실 김오진 관리비서관은 국토교통부 1차관으로, 임상준 국정과제비서관과 박성훈 국정기획비서관은 환경부, 해양수산부 차관 후보로 검토되고 있다.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실 비서관 상당수가 행정부 차관으로 검토되고 있다”고 말했다.
06-27 文정부 ‘사드 환경평가’ 5년 뭉갠 전모 철저히 밝혀야
문재인 정부가 임기 5년 내내 사드 기지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를 고의로 지연시키거나 방치했을 개연성이 환경부 자료 등으로 드러났다. 환경영향평가법에 따르면, 기지 조성 사업자인 국방부가 환경영향평가협의회를 구성한 뒤 환경부와 평가 항목 등에 대한 협의를 시작해야 하는데(제24조),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환경부는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서 “지난 (문 정부) 5년간 국방부로부터 사드 관련 환경영향평가 협의 요청이 없었다”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의 국방부는 환경영향평가에 착수해 10개월 만에 전자파 영향이 기준치의 530분의 1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를 지난 21일 발표했다.
문 정부의 국방부가 그런 절차를 진행하지 않은 이유와 과정은 아직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성주 지역 주민 반대 등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사실이라면 문 정부는 국가 안보를 포기한 것과 마찬가지다. 반대 시위 등을 이유로 국방을 내팽개친다면, 안보의 최종 책임자인 국군 통수권자로서의 심각한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주민 반대로 협의회 구성이 어려웠다는 주장도 있다고 한다. 더 심각한 국기 문란이 될 수 있다. 사드 괴담과 외부 단체의 선동 문제 등을 별개로 하더라도, 관련 법규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얼마든지 관련 절차를 진행할 수 있었다. 심지어 문 정부가 2018년 3월에 유해 기준치 이하라는 사실을 파악해 놓고 쉬쉬했다는 정황도 있다.
안보를 팽개치고, 국민을 속이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환경영향평가 지연 전모를 철저히 규명하고 사법적·행정적 책임을 엄정히 물어야 하는 이유다. 사드 배치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과 5차 핵실험을 자행하던 2016년 긴급하게 결정됐고, 이듬해 4월과 9월에 1개 포대가 배치됐다. 당시엔 긴급성 차원에서 소규모 환경영향평가가 실시됐지만, 문 대통령 취임 후 일반 환경영향평가로 변경했을 뿐 필요한 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다. 당시 국방부 실무 책임자부터 대통령까지 누가 어떤 역할과 작용을 했는지 투명하게 밝혀내야 한다. 감사원 감사는 기본이고, 검찰 수사를 통해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6.29 ‘사드 전자파 무해’ 알고도 5년간 숨긴 文 정부
문재인 정부 시절 군이 경북 성주 사드 기지에서 나오는 전자파를 수십 차례 측정해 인체에 무해하다는 것을 확인하고도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고 한다.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공군이 2018년 3월부터 지난 1월까지 사드 기지 주변 4개 지점에서 34차례 전자파를 측정해보니 평균값은 인체 보호 기준의 0.004%, 최고치는 0.025%였다. 측정할 때마다 무해성이 입증됐는데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초반 2차례만 공개하고 그 뒤로는 침묵했다.
군의 전자파 측정은 문 정부 시절 27차례 이뤄졌다. 문 정부의 은폐는 중국이 사드 배치에 반발하고 민주당과 좌파 단체들이 “사드 전자파에 내 몸이 튀겨진다”며 유해성을 주장한 때문일 것이다. 사드 전자파의 무해성이 입증되면 이들의 사드 반대 선동이 힘이 빠지는 것을 우려했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5년 내내 사드의 정식 배치를 미뤘다.
이 때문에 기지 내 한미 장병 수백명은 제대로 된 숙소·화장실도 없이 컨테이너 같은 임시 시설에서 열악하게 생활했고, 발사대는 시멘트 타설을 하지 못해 골프장 그린 위에 금속 패드를 깔고 임시로 전개했다. 우리 목숨을 지키기 위해 배치된 방어체계를 우리가 이렇게 만들었다.
문 정부는 북이 2019년 하노이 핵협상이 깨진 뒤 위장평화 공세를 접고 대남 타격용 신무기들을 잇따라 선보이며 위협의 강도를 끌어올렸는데도 사드 정식 배치를 위한 절차들을 계속 뭉갰다. 임기 말까지 중국의 눈치를 보고 김정은과의 평화 이벤트에 매달리는데 사드는 방해가 됐을 것이다. 안보 최후의 보루인 군마저 전자파 측정 결과를 감추고 환경영향평가를 미루며 사드 정상화를 가로막았다. 이것은 문 정부 5년간 벌어진 안보 자해극의 일부에 불과한 사례일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6-29 사드 환경평가 회피·은폐는 중대 범죄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전국 참외 생산량의 80%를 차지하는 경북 성주에 주한미군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가 배치됐을 때, ‘사드 전자파가 참외를 썩게 한다’ ‘성주 참외는 전자레인지 참외가 될 것이다’라는 괴담들이 넘쳐났다. 실제로 이러한 괴담이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여론 형성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가수 인순이의 노래 ‘밤이면 밤마다’를 개사해 ‘외로운 밤이면 밤마다 사드의 전자파는 싫어…’라고 개사해 부르면서 사드 전자파를 무서운 괴물처럼 선동했다. 이 때문에 성주의 참외 재배 농가는 막대한 손실을 봤고, 성주 주민들의 반대 투쟁은 더욱 거세졌다.
그런데 사드 배치 후 6년 만에 나온 환경영향평가 결과, 사드의 전자파는 측정 최댓값이 인체보호기준의 530분의 1로 무의미한 수준으로 확인됐다. 특히, 레이더로 인한 우려가 제기된 전자파는 ‘사업지구 안팎에서 모니터링한 결과 인체보호기준 만족’으로 평가됐다.
이러한 환경영향평가 결과가 좀 더 일찍 나왔더라면 많은 사람이 괴담에 선동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국민의힘 임이자 의원실이 환경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가 임기 5년 내내 사드 기지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를 고의로 지연시키거나 방치했을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드러났다고 한다. 환경영향평가법에 따르면, 기지 조성 사업자인 국방부가 협의회를 구성해 환경부와 평가항목 등에 대한 협의를 해야 하는데, 환경부는 지난 5년간 국방부로부터 협의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문 정부는 2018년 3월부터 4년간 측정한 사드 레이더 전자파가 유해기준치의 2만분의 1(휴대전화 기지국에서 나오는 전자파의 1000분의 1) 수준으로 인체에 전혀 무해하다는 국방부 보고를 받고도 국민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언론 보도도 있다.
문 정부의 국방부가 이런 절차를 진행하지 않은 이유와 과정은 앞으로 조사 및 수사 등을 통해 밝혀지겠지만, 일단은 ‘성주 주민들의 반대’를 변명으로 삼을 공산이 크다. 사드 배치뿐만 아니라 기피 시설 설치 등 대부분의 국책사업은 주민 반대가 뒤따른다. 하지만 주민 반대를 이유로 법적으로 정해진 절차를 방기한다면 어떠한 국책사업도 진행할 수 없다. 그래서 환경영향평가법 등 관련 법률은 주민설명회·공청회 등의 개최가 주민들의 저지 또는 방해로 무산되면 홈페이지 게시, 온라인 설명회 등의 보완적 방법으로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두고 있다. 따라서 주민들의 반대 때문에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다면 환경영향평가 자체에 대한 의지와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국가안보에 직결되는 사드 배치를 두고 확인되지 않은 괴담으로 국민이 분열되고 불안해할 때 이를 불식하기 위해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환경영향평가를 적극적으로 실시한 후 그 결과를 내놓는 게 정상인데, 오히려 그 절차마저 고의로 뭉개고 지연시켰다면 이는 결코 용서받지 못할 중대한 범죄다. 환경영향평가가 지연된 전모를 철저히 밝혀야 한다. 필요하다면 감사원 감사는 물론 검찰 수사도 해야 한다. 또한, 당시 괴담 유포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정치인들은 국민에게 사과하고, 자신의 무책임한 행동에 상응하는 정치적 책임도 져야 한다.
문화일보
06-30 김영호 지명자 “자유민주적 통일”, 대북 정책 원칙 돼야
윤석열 대통령이 신임 통일부 장관 후보자로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를 지명하고, 차관은 외교부 출신의 문승현 주태국 대사를 선임하는 등 장·차관을 외부 인사로 인선했다. 대통령실 통일비서관도 북한 인권 전문가인 김수경 한신대 교수를 내정했다. 그동안 북한과의 교류·협력에 치중했던 대북 정책을 전면 전환하고, 통일부의 체질 개선을 이루겠다는 윤 대통령의 의지가 엿보이는 인선이다.
북한과의 교류·지원을 강화하면 북한 체제가 개혁·개방으로 움직일 것이라는 전망에 기초해 펼쳐온 ‘햇볕정책’은 실패했다. 진보 진영은 물론 많은 보수 인사들도 그런 변화를 기대했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나타났다. 북한은 겉으론 대화하는 척하면서 뒤에선 핵무장을 더 고도화했고, 급기야 대놓고 핵 공격을 겁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종전선언과 남·북·미 정상회담 쇼를 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통일부 내부도 문제투성이다. ‘강제 북송’ 위법성 지적에 대해 노조 명의로 ‘정치적 판단’이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북한인권보고서 영문판에 ‘정확성을 보증 못한다’는 조항을 삽입하기도 했다.
이제라도 대북 정책의 중심을 교류에서 원칙으로 옮겨야 한다. 인도적 지원을 제외한 분야에서는 상호주의와 글로벌 스탠더드를 추구해야 할 때다. 김 지명자는 “원칙을 갖고 북핵 문제를 이행하고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 방안을 만들겠다”고 했다. 학자로서 “김정은 면전에서 인권 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직설적 주장도 했다. 시의적절하고 바람직한 인식이다. 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제4조)에도 부합한다. 야당은 극단적 대결주의자라고 비난한다. 청문회에서 대북 정책에 대한 냉철한 토론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문화일보 사설
06-30 대통령실 “북핵위협 와중에도 전세계에 대북제재 해제 읍소한건 명백한 사실” 문정부 직격

■ “윤 대통령 극우발언” 야권 공세 반박
‘반국가 세력’ 언급 놓고 설전
용산 “국가관부터 설명해보라”
이재명 “나라가 온통 극우 판”
대통령실은 30일 윤석열 대통령의 이른바 ‘반국가세력’ 언급을 두고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의 반발이 이어지자 “‘반국가세력’이라는 점을 반박하려면 자신들이 어떠한 국가관과 역사관, 안보관을 가졌는지 설명하라”고 밝혔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 발언을 ‘극우 발언’으로 규정하고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이날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대한민국을 겨냥해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고도화하는 와중에도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대북 제재를 해제해 달라고 읍소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종전선언에 대해서도 “북한의 완전한 폐기를 전제로 상호 신뢰가 구축된 이후의 결과이지 선결 조건이 아니다”라며 “그런데도 종전선언을 서둘렀던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를 직접 거론하진 않았지만 대북 제재 해소와 종전선언을 주장했던 전임 정부를 겨냥한 발언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러한 주장들은 수십 년간 북한이 견지해왔던 대남 전략과 정확히 일치한다”며 “우리 안보를 지키는 안전판을 제거해 대한민국의 안보를 무장해제시킨다는 북한 전략을 그대로 따르는 것, 이것이 반(反)대한민국적 행동이 아니면 무엇인가”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지, 사회주의를 신봉하는지, 평화라는 그럴듯한 말 뒤에 숨어 국가 정체성을 흔드는 것은 아닌지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나라가 극우로 변해가는 것 같다”며 “극우 발언에, 극우 유튜버에, 극우 인사에, 극우 정책에, 그리고 극우 정권, 극우 대통령까지 나라가 참 걱정”이라고 했다. 박광온 민주당 원내대표는 전날(29일) “전임 정부의 정책을 문제 삼아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한 대통령은 처음”이라며 “국민통합의 정신에 정면으로 대치된다”고 밝혔다.
김윤희 기자 wor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