危機의 韓半島(외교) 2023-03/
03.01 “G7과 어깨 맞댄 한국, 동북아 넘어 세계로”
한국판 인·태 전략의 과제

▲정부는 지난해 12월 글로벌 중추 국가로의 도약을 위한 한국 판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했다.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G20 정상 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회의장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정부는 지난해 12월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열린 한·미 정상회담 후속 조치이자 글로벌 중추 국가(GPS·Global Pivotal State)로 발돋움하기 위한 구체적 이행 전략 차원에서다. 또한 북핵 문제에 갇혀 한국의 외교 지평을 한반도와 동북아시아로 국한했던 과거와 달리 대외 정책의 범위를 대폭 확장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특히 인태 전략엔 주요 7개국(G7)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선진국 반열에 오른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강화하기 위한 9대 중점 추진 과제가 담겼다. ▶규범과 규칙에 기반한 질서 구축 ▶법치주의와 인권 증진 협력 ▶적극적 기여 외교 실시 등이다. 정부는 이 같은 중점 과제를 추진하기 위해 자유·평화·번영 등 3대 비전과 포용·신뢰·호혜 등 3대 협력 원칙을 설정했다.
재단법인 한반도평화만들기(이사장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는 2월 27일 2023년 제1차 한반도전략대화를 개최해 정부의 인태 전략의 방향과 과제를 논의했다. 이날 포럼은 박진(사진) 외교부 장관의 발제와 질의응답 및 토론으로 구성됐다. 박 장관을 포함한 전·현직 관료와 외교·안보·경제·통상 등 각계 전문가 23명이 참석했다.
글로벌 중추 국가 도약 위해서는
대외 정책의 범위 대폭 확장해야
높아진 위상 걸맞은 책임 요구돼
동맹 중시하되 대중 마찰 대비를
박진 외교부 장관 기조 발제 요약

박진 외교부 장관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은 우리의 국제적 역할이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인식의 결과물이다. 한국은 여러 면에서 G7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8강 수준의 위상을 가진 국가가 됐다. 윤석열 정부는 인태 전략을 통해 글로벌한 차원에서 외교 공간을 확대하고 글로벌 중추 국가를 실현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4년 만에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채택에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했다. 지난해 10월엔 유엔 인권이사회에 최초로 상정된 중국의 신장 인권 관련 토론을 위한 결의안에 찬성 투표했다. 다음 달 말에는 미국·네덜란드·코스타리카·잠비아 등 각 대륙 민주주의 파트너 국가들과 함께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공동 주최한다. 세계 곳곳에서 자유와 민주주의가 위협 받는 상황에서 한국이 아시아의 선도적 민주주의 국가로 국제사회의 민주주의 수호에 앞장서겠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대전환의 신호가 곳곳에 켜졌다. 독일과 일본이 방위비를 증액했고, 스웨덴과 핀란드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선언했다. 한국도 엄중한 글로벌 복합위기를 극복하고 확장된 역할과 책임을 수행해야 한다. 자유롭고 평화로우며 번영하는 인태 지역은 우리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미래를 위해 대단히 중요하다. 윤석열 정부는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 그 위상에 걸맞은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중국과 마찰 가능성 대비해야

▲박진 외교부 장관(오른쪽 넷째)이 ‘2023년 제1차 한반도전략대화’에서 인도-태평양 전략을 주제로 기조 발제를 하고 있다. 이날 포럼엔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오른쪽 여섯째)과 박 장관 등 23명의 전현직 관료와 외교안보 전문가가 참석했다. 우상조 기자
박 장관의 발제 직후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특히 한국판 인태 전략의 추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중국과의 외교적, 경제적 마찰 가능성에 대한 구체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주요 질의에 대한 박 장관의 답변 요약.
▶유장희 이화여대 명예교수=2025년 한국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예정됐다. 중국이 포함된 APEC과 한국판 인태 전략이 어떤 방식으로 연계될 수 있을까.
“APEC은 이 지역의 자유무역을 고취하기 위한, 대단히 중요한 기구이자 어느 특정 국가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포용 원칙에 부합하는 기구다. 인태 전략과 APEC 간 시너지를 내기 위한 구체적 내용은 깊이 있는 연구를 지속해 나갈 예정이다.”
▶안호영 전 주미대사=미·중 경쟁이 심화하는 국제정세 속 한국판 인태 전략을 추진할 구체적 방법론은 무엇이고, 인태 전략의 연장선에서 한·미·일 외교경제(2+2+2) 장관회의 추진 가능성은.
“중국은 첨단기술 획득이란 목표 하에 미국과의 경쟁을 심화하며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동시에 팬데믹·기후변화 등의 위기가 같이 발생하고 있다. 이런 복합 위기 속에서는 세계 각국이 이제 각자도생이 아닌 가치에 바탕을 둔 연대와 협력을 통해 공통의 도전을 극복해야 한다는 게 한국의 입장이다. 한·미·일 2+2+2 장관회의는 대찬성이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에게도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한·미·일이 안보와 경제 문제를 함께 다룰 수 있는 장이 마련되길 기대한다.”
미·중 선택의 돌파구로 인도 활용해야
▶박태호 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장=미국은 경제안보를 근간으로 중국을 고립시키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한국판 인태 전략의 원칙인 ‘포용’과 9개 과제인 ‘경제안보’가 충돌할 수 있다.
“경제안보의 현실적 필요성 때문에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경우가 있다. 반도체 등 글로벌 공급망의 안정을 도모하는 것은 우리 국익에 직결된다. 우리는 중국과의 기술 격차를 유지하면서도 중국에 투자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에 대해 차별적 대우가 이뤄지지 않도록 현명하게 종합적으로 판단하겠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한국판 인태 전략은 외교부를 넘어 범정부적 이행이 필요하다. 인태 전략을 관장하는 별도의 기구나 체제를 구상하고 있나.
“글로벌 중추 국가로 도약한다는 큰 국정 목표 하에 인태 전략을 추진하고, 그 과정에서 관련 부처가 힘을 모아야 한다. 범정부적 역량을 모으기 위한 방식과 기구 출범 문제는 검토 중인 사안이다. 다만 인태 전략 추진의 중심이 될 외교부의 직원은 2500명이고, 예산은 전체 예산의 0.5%에 불과하다. 이것은 글로벌 중추 국가와 인태 전략을 추진하는 데 있어 큰 제약 요인이다. 우리의 높아진 위상을 고려할 때 외교 예산이 최소한 정부 예산의 1%는 돼야 한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미국은 우리의 유일한 동맹이고 중국은 최대 교역국이다. 미·중 사이에서 우리에게 선택이 강요되는 진영 싸움이 벌어질 때의 돌파구로 인도를 생각해 볼 수는 없나.
“미·중 경쟁으로 인한 리스크를 해소하고 협력을 다변화하는 차원에서 인도는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인도가 가진 잠재력과 세계 최대 민주주의 국가란 점, 그리고 인도가 미·중과 맺고 있는 관계 모두 한·인도 간 전략적 협력 필요성을 높이는 요소다. 인도는 올해 G20 정상회의 의장국이기도 하다. 정상회의에 참여해서 인도가 갖는 중요성을 고려해 외교 지평을 확대해 나가려고 한다.”
▶최상용 고려대 명예교수=인태 전략은 물론 정부의 한·일 관계 움직임을 뒷받침하는 차원에서 한국과 일본이 ‘인권의 보편성’을 매개로 협력을 강화할 수 있지 않겠나.
“한·일 양국이 인권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 양국 관계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 보편적 인권이라는 차원에서 양국의 공동 인식이 형성돼야 과거사 문제도 극복할 수 있고 미래지향적 파트너십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일본과 인권과 관련한 많은 의제를 논의하고 협력을 적극 추진해 나갈 예정이다.”
G8, G9 올라서기 위한 신뢰 구축해야
질의응답에 이어 진행된 자유 토론에선 높아진 한국의 국격에 맞는 전략 제시와 함께 국제 사회에서 한국에 대한 신뢰를 확고히 구축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홍석현 이사장=“우리의 높아진 국격에 걸맞은,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는 외교 전략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이제 과거의 중견국을 넘어 G8, G9의 반열에 오르기 위한 비전을 만들어가야 한다. G7으로부터 ‘한국을 G8으로 초청해서 글로벌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구애를 받기 위해선 우선 한국에 대한 신뢰가 구축돼야 한다. 신뢰는 경제력의 문제가 아닌 어떤 상황에서도 원칙을 지키는 태도에서 나온다. 원칙을 지키는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국익 역시 과감히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한국이 언제까지 방관자적인 자세로 있을 수만은 없다.”
▶김진호 단국대 교수=“정부의 인태 전략은 반도체와 배터리 등 공급망 경쟁의 핵심 분야에 있는 기업들의 입장이 세밀하게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삼성이 국제적으로 반도체 분야의 강자인데, 문제는 한국에서 삼성 혼자 강하다는 점이다. 대만의 경우 TSMC 등 핵심 기업에 대해 정부가 전방위적으로 지원하고, 중국과 네트워크를 갖춰 인력 지원도 용이하다. 인건비가 낮아 생산 단가에서도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한국도 인태 전략을 포함한 대외 정책에 삼성과 SK 등 기업의 의견이 반영될 필요가 있다.”
▶한용섭 국방대 명예교수=“미국은 팹4(미국·한국·일본·대만 반도체 공급망 협력체) 등 최근 주요 이슈에서 미국 내 생산과 투자 유치에 주력하고 있다. 공급망 협력을 통해 얻어내는 이익을 어떻게 나눌지는 관심 없다는 태도를 보인다. 한국이 미국의 부품 생산국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선 미국에 대한 협상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 한국의 위상이 높아진 만큼 미국과 대등한 협상을 해야 하고, 지금처럼 한·미 동맹이 좋을 때 우리의 이익을 더 많이 챙겨야 한다.”
중앙일보 정리=정진우 기자
03.01 미국이 ‘金 정권 종말’ 경고한 까닭
北의 움직임 들여다보는
美 감시기술 발전으로
군사옵션 걸림돌 사라져
남은 건 정치적 결심뿐

▲미 핵잠수함 웨스트 버지니아함./미 국방부
한·미가 지난 22일 펜타곤에서 핵우산 훈련을 실시한 뒤 공동 발표를 통해 ‘북한 정권의 종말’을 경고했다. 핵을 쓰면 김정은 정권을 지구상에서 없애겠다는 얘기다. 바이든 정부가 공식 문서를 통해 ‘김정은 정권 종말’을 거론한 게 벌써 세 번째다. 미 국방부가 작년 10월 발표한 핵태세검토보고서(NPR)에 처음 등장했고, 다음 달 한미 국방장관이 함께한 연례 안보협의회의(SCM) 공동성명에도 들어갔다.
미국 정부가 공공연하게 북한 정권의 종말을 입에 올리는 건 이례적이다. 익명 관리의 말이 아니라 정부 공식 문서를 통해 거듭 발표하는 방식도 전례가 없다. 부시 행정부 시절 네오콘 인사들이 북을 ‘악의 축’으로 규정해 레짐 체인지를 주장하긴 했지만, 종교적 신념 또는 정치적 수사에 가까웠다. 지금 바이든 행정부에서 나오는 것은 그런 차원이 아니다. 워싱턴 사정에 밝은 외교 소식통은 “대북 군사 옵션의 걸림돌로 작용했던 난제들이 최근 과학기술의 진전으로 상당 부분 해결됐다는 판단이 작용한 결과”라고 했다.
1994년 클린턴 행정부의 영변 정밀 타격 계획이 무산된 뒤로 대북 군사 옵션은 미국의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어떤 시나리오를 검토해도 인명·재산 피해가 막대한 것으로 나왔다. 북이 핵무장에 본격 나서면서 군사 옵션은 뒷전으로 밀렸다. 북도 이를 노렸을 것이다. 핵이 있으면 선제공격을 당할 위험이 현저히 낮아진다. 공격을 받더라도 핵무기가 단 한 발만 생존하면 ‘너 죽고 나 죽자’식 보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공포의 핵 균형’, 상호 확증 파괴(MAD)의 원리다. 북이 이동식 발사대(TEL)와 지하 벙커, 잠수함을 적극 활용하는 것은 핵무기의 생존성을 높여 보복 능력을 확보하려는 조치다.
이런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과학기술 성과들이 최근 몇 년간 쏟아졌다. 기술적 진전은 감시·정찰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조금 과장하면 북이 운용하는 수백대의 TEL을 상시 감시하는 수준이 됐다. 안보 부서 관계자는 “미국의 SAR(영상레이더) 정찰위성은 북한 상공을 지날 때마다 북한 전역에서 기동하는 군용 차량을 대부분 식별·추적할 수 있다”고 했다. 저궤도 SAR 위성은 북한 상공을 하루 2~3회 지난다. 15대만 배치해도 감시 주기가 30분대다. 스페이스X가 매달 인공위성 수백대를 우주에 뿌리는 시대다. 이 회사 고객 중엔 펜타곤도 있다.
집중 감시는 유사시 제거를 전제로 한다. 관건은 1차 공격을 통해 핵 보복 능력을 없애면서도 부수적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기존의 전략 핵탄두로는 이를 달성하기 어렵다. 정밀도는 떨어지고 폭발력과 방사능 낙진 피해가 막대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대북 군사 행동의 결심을 주저하게 만드는 최대 걸림돌이었다. 최신형 저위력 핵탄두(전술핵)가 이 문제를 해결했다. 2020년 실전 배치된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용 탄두 W76-2가 대표적이다. 요새화된 지하시설을 확실히 파괴하면서도 족집게 타격이 가능하다. 미국 오하이오급 잠수함 14척이 이 무기를 싣고 있다. 한미 외교·국방 관리들이 지난 22일 기념촬영을 한 웨스트버지니아함이 그중 하나다.
미국의 잠재적 타격 대상엔 김정은을 비롯한 전쟁 지휘부가 포함돼 있다. 정보 소식통은 “김정은을 스토킹 수준으로 지켜본다”고 했다. 북이 작년 9월 김정은 등 지휘부가 공격받을 경우 자동으로 핵 공격을 가한다는 내용의 법을 채택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수령의 안위를 걱정할 만한 심각한 징후를 감지했다는 뜻이다. 북이 겁내는 미국의 군사기술적 우위가 저위력 핵탄두와 정찰위성뿐이겠나. 미국의 ‘김정은 정권 종말’ 운운은 빈말이 아니다.
조선일보 이용수 논설위원
03.02 수천발 포탄비 뿌린다… 美 ‘죽음의 천사’, 北 참수작전 훈련 첫 투입
미 공군의 최신예 특수전 항공기인 AC-130J ‘고스트 라이더’(Ghost Rider)가 한반도로 출동해 연례 한·미 연합 특수전훈련 ‘티크 나이프(Teak Knife)’에 참가중이라고 합참이 2일 밝혔다. AC-130은 분당 수천발씩 ‘포탄의 비’를 퍼붓는 것은 물론 최신 미사일과 정밀유도폭탄도 발사·투하할 수 있어 ‘천사의 날개를 두른 하늘의 전함’ ‘죽음의 천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구형 AC-130은 한반도에 몇차례 출동한 적이 있지만 최신형인 AC-130J가 한반도로 출동한 것은 처음이다.
합참은 이날 AC-130J가 직도 사격장을 표적으로 AGM-114 ‘헬파이어’ 및 AGM-176 ‘그리핀’ 미사일, GBU-39 SDB(소구경폭탄) 정밀유도폭탄 등을 발사해 정확히 타격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엔 AC-130J의 30㎜ 기관포와 105㎜ 곡사포가 직도 사격장을 포격하는 장면도 포함됐다. AC-130J 실탄 사격훈련 영상까지 공개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최근 북한의 화성-15형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등에 대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로 풀이된다.

▲2023년2월 한미 연합 특수작전 훈련에 투입된 미 최신형 특수전 항공기 AC-130J. 날개 밑에 헬파이어 미사일을 장착하고 있다. /합참 제공
헬파이어 미사일은 최대 8㎞ 떨어진 적 전차 등을 파괴할 수 있는 레이저 유도 방식의 타격무기다. 우리 육군이 보유중인 AH-64 아파치 헬기의 주력무기이기도 하다. ‘그리핀’ 미사일은 헬파이어 미사일보다 가벼운 경량 공대지 미사일로 장갑차량 등 지상 목표물을 파괴한다. SDB는 최대 110㎞ 떨어진 표적을 타격할 수 있는 정밀유도폭탄으로, 우리 공군의 F-35, F-15K 전투기 등에서도 발사할 수 있다.
AC-130은 C-130 수송기에 여러 종류의 기관포와 105㎜ 곡사포를 달아 개조한 것으로 베트남전 때 처음으로 등장했다. 베트남전에선 1만대 가량의 북베트남군 트럭을 파괴하는 전과를 올렸다. 베트남전에서 효용성이 입증되자 수많은 실전에 투입됐다.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전은 물론 ISIS 소탕작전에서도 활약했다. AC-130H·J·U·W 등 여러 형태가 있다.
투박한 수송기 형상이지만 최신형 AC-130은 현존 무기체계 중 가장 복잡한 것 중 하나로 꼽힌다. 임무 컴퓨터와 항공전자 체계 소프트웨어에는 60만9000 라인의 명령어가 들어가 있다. 측면 발사식 무기체계(각종 포)가 다양한 최첨단 센서와 항법장비, 화력통제 체계와 연동돼 아군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주변의 적군만 쓸어버릴 수 있는 ‘정확도’를 제공한다.
적 대공포 등에 대비한 장갑 방호체계(APS), 고해상도 센서, 항공전자 장비, 전자전 체계, 공격 레이더, 고성능 화력통제 체계도 크게 개선됐다. 화력 통제체계는 이중표적 공격 능력을 제공해 최대 1㎞까지 떨어져 있는 두 개의 표적을 두 개의 다른 센서가 각각 탐지, 두 개의 다른 무기체계로 동시에 공격하는 것이 가능하다.
구형 AC-130은 20㎜ 발칸포, 25·30·40㎜ 기관포, 105㎜ 곡사포가 주력 무기였지만 최신형은 AC-130J처럼 헬파이어·그리핀 미사일, SDB 정밀유도폭탄 등까지 갖추고 있다. 앞으로는 다양한 드론(무인기)이 발진하는 ‘드론 모선’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AC-130J가 참가중인 ‘티크 나이프’ 훈련은 기본적으로 적진 침투 및 인질 구출이 주목적이지만 유사시 북한 깊숙이 침투해 북 정권 수뇌부를 포함한 요인을 제거하는 훈련도 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승겸 합참의장은 AC-130J가 전개돼 있는 비행기지를 직접 방문해 실제 작전시 운용될 무장과 임무수행 절차를 점검했다고 합참은 밝혔다. 김 의장은 “실전적인 연합 특수작전훈련을 통해 적 핵심시설을 한 치의 오차 없이 타격하는 능력을 갖추고, 한·미 간 상호운용성을 향상해 전시 연합작전 수행태세를 완비해 줄 것”을 당부했다고 합참은 전했다.
조선일보 유용원 군사전문기자
03.06 징용 해법, 위안부 再版 안 되려면 日의 호응 조치 뒤따라야

▲윤석열 대통령(오른쪽)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대통령실 제공)
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에 대한 해법을 6일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혜택을 받은 우리 기업들이 피해자에 대한 법적 배상금을 먼저 변제해 주는 방안이 기본 뼈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더불어 한국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일본 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를 통해 ‘미래청년기금(가칭)’을 공동 조성하는 방안도 양국 정부가 잠정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대법원이 징용 배상 판결을 내린 일본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 등이 게이단렌 회비나 기여금을 내는 형식으로 참여한다고 한다. 징용 피해 배상은 한국 측이 하되, 일본 측은 거기 들어갈 돈을 양국 미래 세대를 위한 기금으로 낸다는 것이다. 일종의 ‘간접 배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대리 변제 방안은 국내에서 반대 여론이 강하다. 피해자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정부로선 정치적 부담이 적지 않다. 그런 사정을 저울질한 문재인 정부는 징용 판결 문제를 시종일관 방치했다. 오히려 반일 몰이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면서 한일 양국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이번 사태는 2018년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 판결을 확정하면서 시작됐다. 판결 그대로 일본 기업의 배상을 받아내야 한다는 국민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 측은 개인 배상을 포함한 징용 문제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의해 완전히 해결됐다는 입장이다. 판결에 따라 강제처분을 할 경우 한일 관계는 벼랑 끝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을 처분해도 배상액에는 크게 부족하다고 한다. 또 일본이 불복해서 국제 소송으로 갈 경우 승산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문제의 대법원 판결이 외교 정책에 영향을 미칠 판결을 삼간다는 ‘사법 자제’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정부의 이번 조치는 징용 문제에 발목 잡혀 있는 양국 관계를 언제까지나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공유하고 미국과의 동맹에 안보를 기대는 공통분모를 지닌 두 나라의 협력이 북한 핵, 중국 패권주의, 반도체·에너지 문제 대응에 필수적이라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한국이 돈이 없어서 일본 기업의 참여를 요구한 것이 아니다. 일본 측도 잘 알 것이다. 일본 정부는 과거 협정만 내세우지 말고 한국 정부의 결단에 호응해야 한다. 그에 따라 이번 합의의 지속 여부를 판가름할 것이다. 징용 합의가 과거 위안부 합의의 전철을 밟을지, 아니면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의 새로운 발판이 될지는 이제 일본의 후속 조치에 달렸다.
조선일보 사설
03-06 尹정부의 한일관계 결단…DJ정신도 뒤집는 ‘野 죽창가’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최악인 한일관계를 다시 정상화하기 위한 윤석열 정부의 강제징용 문제 해법은, 25년 전인 1998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결단과 닮았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6일 양국 사이의 시한폭탄인 징용 배상 판결 및 후속 사법 절차와 관련, 제3자 대위변제 방식으로 풀겠다고 발표했다. 1965년 한일 기본조약과 청구권 협정에 대한 일본 측의 완강한 입장을 고려한 현실적 대안이다.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징용 배상자에게 대법 판결에 따른 배상금을 대신 지급하고, 일본 측의 상응한 사후 조치를 촉구하는 내용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임기 첫해 10월 일본을 국빈방문해 일본 국왕을 예방해 덕담을 주고받고, 오부치 게이조 총리와 정상회담을 통해 ‘김대중-오부치’ 선언으로 불리는 ‘21세기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오부치 총리는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하고 김 대통령은 이를 수용했으며, 안보·경제 현안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두 정상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라는 보편적 이념에 입각한 협력관계를 더욱 발전시켜 나간다고 합의했다. 날짜만 바꾸면 지금 발표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다. 사실 김 대통령은 1965년 한일협정 체결 당시 6·3사태가 일어났지만, 그때에도 야당 의원으로서 ‘사쿠라’ 비난을 받으면서도 필요하다는 소신을 피력했다.
윤 정부가 발표한 내용과, 곧 이어질 일본의 후속 대응은 오랜 기간 양국 사이에 논의된 내용이다. 조만간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군사정보보호협정 정상화 등을 거쳐 양국 정상의 상호 방문 등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한·일 양국의 국내 정치다. 예상대로 더불어민주당은 ‘죽창가’식 비난에 나섰다. 이재명 대표는 이날 “삼전도 굴욕에 버금가는 치욕이자 오점” 등으로 맹공했다. 시대착오적 인식은 물론 적반하장의 성격도 있다. 어렵게 마련된 한·일 위안부 합의를 문재인 정부가 뒤집고 징용배상 판결에 대한 사법 자제 의견을 사법농단으로 처단하는 등으로 한일관계를 최악으로 몬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결코 잊어선 안 된다. 그러나 과거에 얽매여 현재와 미래를 망치는 것은 구한말 잘못을 되풀이하는 일이다. 한·일 청년세대의 교류는 이미 그런 차원을 넘어섰다.
문화일보 사설
03-06 “엄마,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몰라요… 항상 마음의 준비 당부”
튀르키예 강진 현장 파견
‘콧등 밴드’ 김혜주 간호장교

▲한국긴급구호대 소속으로 튀르키예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 파견됐던 국군대전병원 김혜주 대위를 지난달 23일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사에서 만났다. 그는 “생사가 엇갈리는 현장에서 돌아오니 따뜻한 집과 물이 나오는 샤워기, 스위치를 누르면 켜지는 전등 등 모든 사소한 것이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지난달 18일 튀르키예 강진 피해 현장에 파견돼 생존자 수색·구조 활동을 벌였던 한국 긴급구호대가 아다나 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예고에 없던 “한국팀이 귀국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오더니 공항에 있던 튀르키예 국민들이 긴급구호대원을 둥글게 둘러싸고 박수를 쳤다. 왼손을 가슴에 올리는 튀르키예 감사 인사를 하거나, 부랴부랴 기념품을 사와 건네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 자리에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절정일 때 대구로 파견됐던 국군대전병원 소속 김혜주 대위(32)도 있었다. 당시 방역 마스크를 오래 쓰다 보니 콧등이 헐어 반창고를 붙인 김 대위의 모습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개됐고,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은 그를 보고 용기를 얻었다. 지난달 23일 인터뷰차 만난 김 대위에게 재난 현장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부터 물었다.》
―대구 코로나19병원에 이어 튀르키예 구조 활동도 자원했다.
“2020년 코로나19 초기에는 신종 감염병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대구 길거리에 사람은 없고 구급차만 다닐 정도였다. 누군가는 반드시 대구에 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동료 1명은 임신을 했고, 다른 1명은 자녀가 있었다. ‘내가 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튀르키예 파견은 아주 급박하게 이뤄졌다. 2월 7일 오후 5시 긴급구호대 튀르키예 파견이 결정됐는데 4시간 안에 인천공항에 집합해야 했다. 구조 활동에 골든 타임이 있는데 그 안에 떠날 준비를 마칠 수 있는 자원자가 많지 않았다.”
―가족들의 걱정이 컸을 것 같다.
“병원에서 짐을 싸서 바로 공항으로 갔다. 카카오톡으로만 가족에게 알렸다. 이튿날 튀르키예 공항에 도착해 보니 ‘갑자기?’ ‘진짜로?’ 하는 메시지가 도착해 있더라. 가족이 말릴 시간도 없었다. 다만 항상 마음의 준비를 당부한다. ‘엄마, 우리는 전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이에요. 언제 전쟁이 날지 모르고, 언제 죽을지도 몰라요. 그렇더라도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라고 한다. 그래도 엄마는 TV에서 튀르키예 현장을 보며 9일 내내 우셨다고 한다. 처참한 피해 현장을 보고 ‘우리 딸 괜찮을까’ 걱정이 되어서…. (담담한 김 대위 눈가로 잠시 눈물이 차올랐다) 집에 왔더니 ‘무사히 돌아왔으니 됐다’며 소고기를 구워 주셨다.”
―실제로 본 튀르키예 지진 현장은 어떠했나.
“11시간 비행 끝에 가지안테프 공항에 내렸다. 안전한 곳에 베이스캠프를 차리려고 이동하는데 도로가 망가진 상태라 차가 기어가듯 움직였다. 튀르키예 남부 하타이주 안타키아 현장은 건물이 마치 쿠크다스 과자가 부스러진 것처럼 보였다. 과연 사람이 깔려 있을 공간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 위태롭게 남은 건물도 가스, 수도, 전기 등이 모두 끊겨 있었고 가스가 새어 곳곳에 화재가 났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집을 잃고, 추위와 싸우고 있었다. 가족이나 친구를 찾아 흐느끼며 거리를 헤매는 사람이 많았다. 이산가족도 많다. 수습한 시신은 한곳에 뉘어 드렸는데…. 신분증이 없으면 누군지 확인이 어려워서 이름 모를 주검이 많았다. 부모를 잃기도 하고, 아이를 잃기도 하고…. 전쟁이 난 것처럼 오랫동안 상처가 남을 것 같다.”
―여진이 계속돼 고등학교에 겨우 베이스캠프를 차렸다고 들었다.
“하타이주의 셀림 아나돌루 고등학교는 내진 설계가 되어 있어 건물이 남아 있었다. 교실에는 학생들 사진도 걸려 있고, 교과서가 그대로 꽂혀 있었다. 그러나 학생들의 일상은 완전히 파괴됐다. 학교를 찾은 학생은 대입 시험을 치르기는커녕 당장 생계를 꾸려야 할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또래와 웃고 떠들던 학생이었을 텐데 모든 걸 잃은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구조 활동 중에 가장 안타까웠던 순간은 언제였나.
“구조 활동 첫날 5명의 생존자를 구출했다. 그중에 손이 구조물에 끼여 건물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엄마가 우리를 보자 방 안에 남아 있는 아이부터 구조해 달라고 애원했다. 엄마는 손을 많이 다쳤는데도 아이 생각에 아픈 줄도 모르더라. 엄마 요청에 따라 아이를 구하러 갔지만 이미 숨진 뒤였다. 엄마가 절규하는 모습을 보며 눈물이 쏟아졌다. 감히 위로의 말도 건넬 수 없었다.”
―6·25전쟁에 참전했던 튀르키예와의 ‘형제의 정’이 감동을 줬다.
“베이스캠프를 차리려 이동하는 중간에 튀르키예군 위병소에 들렀다. 한국군인데 화장실을 쓸 수 있는지 물었더니, 화장실도 개방해주고 식사도 내어줬다. 만나는 튀르키예군마다 항상 웃어주고, 감사 인사를 건넸다. 할아버지가 6·25전쟁에 참전해 한국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는 주민이 다가와 ‘고맙다’며 인사를 하기도 했다. 가는 곳마다 튀르키예 국민들이 보여준 따뜻한 ‘형제의 정’은 구조 활동 내내 힘을 북돋아 줬다.”
―2020년 대구 코로나19 사태 당시 ‘콧등 반창고’로 화제가 됐다.

▲2020년 코로나19 확산 당시 ‘콧등 밴드’를 하고 방호복을 입은 김혜주 대위. 국방부 제공
“코로나19 감염을 막기 위해 두꺼운 레벨-D 방호복을 입고 교대 근무를 했다. 방호복을 입으면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덥다. 화장실도 자주 갈 수 없다. 신체적으로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방호복으로 행동이 굼떠지니 평소보다 주사를 놓는 것이 힘들어 (환자를 아프게 하니) 속상했다. 당시 28일 동안 병원과 숙소만 왕복했다. 무엇보다 코로나19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힘들었던 것 같다.”
―방호복보다도 예쁜 옷을 입고, 사투의 현장보다는 좋은 곳에 가고 싶을 나이인데….
“20대 초반에는 저도 그랬다. 간호사 생활을 하는 11년 동안 삶과 죽음, 그 경계의 순간을 많이 봤다. 그러면서 ‘언제 죽음을 맞을지 모른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맞을까’ 스스로에게 묻게 됐고 ‘건강하게 움직일 때 의미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답에 이르렀다. 무기력에 빠지기보다는 따뜻한 집, 사랑하는 가족, 씻을 수 있는 샤워기의 물, 스위치를 누르면 켜지는 전등 같은 사소한 것에 감사하며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하곤 한다.”
―어떻게 간호장교의 길을 걷게 됐나.
“어릴 적부터 군인이 되고 싶었다.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다가 그 꿈을 이루고 싶어 간호장교로 임관했다. 간호장교는 전시도, 평시도 부상자를 돌볼 수 있도록 훈련을 받기 때문에 재난 상황에서 대처가 가능하다. 이번 튀르키예 구조 활동 중에 건물 더미에 하반신이 깔린 주민이 있었다. 갑자기 움직일 경우 전해질 불균형으로 심정지가 올 수 있다. 꺼내기 전에 수액을 공급해 줘야 한다. 문제는 너무 비좁아 남자가 들어갈 수 없었다. 체구가 작은 동료 간호장교가 포복으로 기어 들어가 휴대전화 불빛에 의존해 수액 바늘을 꽂았다. 결국 살려서 병원으로 이송했다.”
―재난 현장은 남을 구하려다 내가 위험해질 수 있다. 그래도 갈 것인가.
“갈 것이다. 지진이 일어나 내가 매몰됐을 때 팔과 다리 다친 게 무서울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못 찾을 것 같은 공포가 더 무서울까 생각해 봤다. 누군가 나를 찾아주기를, 그래서 살 수 있기를 바랄 것 같다. 힘들어도 구조 활동을 쉴 수 없던 이유다.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다시 갈 것 같다.”
―군인으로서의 직업정신인가, 원래 이타적인 사람인가.
“한국행 전날 동갑내기 튀르키예 여성을 호텔서 만났다. ‘도와주러 와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더라. 집도, 가족도 모두 잃어서 호텔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그런 슬픔 속에서도 연신 고맙다고 하기에 ‘70년 전에 튀르키예도 한국을 도왔다. 우리가 돕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그랬더니 ‘한국이 지진을 겪었어도, 우리는 다시 도왔을 것’이라고 답하더라. ‘나라 대 나라’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돕는다는 보편적인 인류애 같은 의미였다. 그런 비슷한 느낌이다. 긴급구호대 사이에서도 ‘우리는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공감대가 있어 힘듦을 견딜 수 있었다. 누군가를 돕는 뿌듯함이 힘듦을 잊게 한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03.07 튀르키예 노병의 눈물
2월 6일 튀르키예(터키)를 강타한 지진으로 4만 명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했다. 아이돌 스타와 기업들을 비롯해 많은 한국인이 ‘형제의 나라’를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우리가 튀르키예를 ‘형제의 나라’라고 하는 이유는 고구려-돌궐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겠지만, 6·25 때 튀르키예가 1개 여단을 파병해 도와준 기억이 크게 작용했다. 튀르키예의 6·25 참전과 관련해 꼭 널리 알리고 싶은 얘기가 있다.
황성준 전 《월간조선》 기자는 1998년 8월 튀르키예의 한 해변 휴양지에서 우연히 6·25 참전 노병(老兵)을 만났다.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다리를 잃은 그는 황 기자에게 오랫동안 자신의 인생을 원망하며 살아왔노라고 고백했다.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 이(lice)가 득실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 이후에도 정치적 탄압과 시위 같은 부정적인 소식만 전해지는 나라를 위해 전우들이 ‘개죽음’을 했고, 자신은 다리를 잃었다는 사실을 납득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의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는 88 서울올림픽이었다. ‘정말 저것이 내가 갔었던 한국이란 말인가?’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그는 이후 튀르키예에 진출한 삼성전자 제품과 현대 자동차를 접하면서, 자신의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었다. 노병은 황 기자를 붙잡고 울음을 터트리며 이렇게 말했다.
“정말 고맙다. 너희가 잘살게 돼서. 만약 너희가 그때(6·25 당시)처럼 계속 굶주림 속에 있었다면, 나는 나의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왜 남의 나라 내전(內戰)에 끼어들어, 다리만 잃어버렸나 하고 삶을 원망해왔는데…. 그 전쟁은 단순한 외국의 내전이 아니었어. 자유와 번영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이를 파괴하려는 세력의 전쟁이었어. 나는 수백만, 아니 수천만이 자유와 번영을 누리고 살 수 있도록, 정말 조그맣기는 하지만 기여를 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 수 있게 된 거야.”
‘고맙다’는 말은 자기가 해야 하는데 튀르키예 노병으로부터 ‘고맙다’는 말을 들은 황 기자도 함께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03.07 한국 해외긴급구호대(KDRT)
“코렐리 온 누마라(한국인 최고)”

▲한국긴급구호대는 2월 11일 튀르키예 하타이주 안타키아 지진 현장에서 생존자를 구조했다. 사진=뉴시스
금 간 건물에 발을 딛고 벽을 탔다. 내장이 터진 것처럼 산산조각 난 건물의 잔해를 헤쳤다. 안전모 위로 쏟아지는 파편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혹시나 생존자가 있을지 몰라 큰 소리로 외쳐보았다.
어디선가 작은 음성이 들렸다. 무너진 콘크리트, 부서진 가구들, 발밑 잔해들 사이로 손을 뻗었다. 그러고 온기를 잃지 않은 손을 잡았다. ‘코리아(KOREA)’라고 적힌 주황색 구호복 여럿이 생존자를 들어 업었다. 꼭 70년 전 6·25전쟁 당시 피를 흘려준 전우를 기억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모든 생명이 다 귀하기 때문이었다.
지난 2월 6일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 북서부에 규모 7.8의 강진이 발생해 사망자 수가 3만7000명을 넘어섰다. 한국 해외긴급구호대(KDRT)가 튀르키예의 안타키아로 9일 급파되었다. KDRT는 소방청 119국제구조대 61명과 외교부,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 군(軍) 인력으로 구성되었다. 모두 합쳐 118명.
안타키아 지역에서 활동 중인 KDRT는 2월 13일(현지시각) 기준 10대 어린이와 70대 노인 등을 포함한 생존자 8명을 지진 피해 현장에서 구조했다. 시신 19구도 수습했다. 구호대는 활동 첫날인 9일 5명을 구조했고, ‘골든타임’인 지난 11일에도 3명을 구조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튀르키예 주민들이 구호대에 “코렐리 온 누마라(한국인 최고)”라고 외치며 격려를 보내온다고 전했다. 코렐리(koreli)는 튀르키예어로 ‘한국인’이라는 뜻이다.
소방청 중앙119구조본부 산하 119국제구조대는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들이다. 1997년 캄보디아 프놈펜 공항 베트남 여객기 추락사고 때 처음 현지에서 구호활동을 벌였다. 특히 1999년 9월 대만 중북부 난터우현 지진 당시 아파트 붕괴 현장에서 6세 소년을 구조해 큰 박수를 받았다. 무너진 벽에 묻혀 있던 소년을 선진국 구조팀조차 발견하지 못한 것을 우리 대원들은 찾아냈다. 매몰 87시간 만이었다. 대만의 주요 방송국들은 당시 극적인 상황을 전국에 생중계했다. 대만 정부는 감사의 뜻으로 현장에 ‘활보살(活菩薩)’이라고 명명된 한국구조대 기념상을 세웠다.
2003년 5월 알제리 지진과 같은 해 12월 이란 지진, 2004년 12월 태국 푸껫의 지진 해일, 2005년 10월 파키스탄 지진, 2006년 5월 인도네시아 지진, 2008년 5월 중국 쓰촨성 지진, 같은 해 6월 미얀마를 강타한 사이클론 나르기스 때도 눈부신 활약을 이었다. 2009년 10월 인도네시아 지진, 2010년 1월 아이티 지진, 2011년 3월 일본 동일본 대지진, 2013년 11월 필리핀 타클로반 태풍, 2015년 네팔 카트만두를 강타한 지진, 2018년 7월 라오스 댐 붕괴, 그리고 수난구조 활동으로 기억되는 2019년 5월 헝가리 부다페스트 유람선 침몰사고도 우리 구조대의 헌신을 잊을 수 없다. 이번 튀르키예 파견은 18번째였다.
정부는 박진 외교부 장관 주재로 민관합동 해외긴급구호협의회를 열고 튀르키예 지진 피해 수습을 위한 KDRT 2진 파견을 확정했다. 우리 국민 모두는 KDRT 대원들이 한 명도 다치지 말고 무사 귀환하길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03.07 민주당 식이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원조 친일, 굴종 외교 아닌가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8년 일본을 국빈 방문했다. 일본은 과거 도쿄에서 벌어진 ‘김대중 납치 사건’을 거론할까 긴장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은 일본 의회 연설에서 “망명 시절과 수감 생활 때 도와준 일본에 감사하다”고 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교사를 초청해 일본어로 감사를 표했다. “일본이 한국 등 아시아에 큰 희생과 고통을 안겨줬지만 이제 달라졌고, 경제 대국으로서 아시아 국민에게 무한한 가능성과 희망의 길을 보여줬다”고도 했다. 오부치 일본 총리는 “형님으로 모시겠다”고 했고, 이어서 일본은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이다.
양 정상은 이 선언에서 ‘20세기 한일 관계를 마무리하고 21세기 새로운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라는 보편적 이념에 입각해 정치·안보·경제·문화 등 폭넓은 분야에서 협력 관계를 발전시키자’고 했다. 하지만 2018년 한 대법관이 징용 배상 판결을 내리면서 한일 관계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미 노무현 정부 때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일본에 다시 배상을 요구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지만 예상 못 한 판결이 나온 것이다.

▲박진 외교부 장관(가운데)이 6일 오전 청사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에 관한 정부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공동취재
윤석열 정부가 6일 징용 피해자 15명에게 약 40억원을 일본 피고 기업 대신 변제하는 방안을 발표한 것은 이를 타개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일본 정부는 이에 호응하고 “1998년 (김대중-오부치) 한일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한다”고 했다. 통절한 반성과 사죄를 한 ‘김대중-오부치 선언’이 25년 만에 되살아난 것이다. 일본 기업들은 한일 청년미래기금 조성에 참여한다고 한다.
그러나 민주당은 “제2의 경술국치이자 대일 굴종 외교”라고 맹비난했다. 이재명 대표는 “‘삼전도 굴욕’에 버금가는 치욕”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계승한다는 정당이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따른 결정을 ‘친일’ ‘굴욕’이라고 한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친일이고 토착왜구라는 말이 된다. 모든 것을 국내 정치에 이용해 서로를 비난만 하는 한국 정치이지만 이제는 자기부정까지 한다.
노무현 정부가 일본에 다시 배상하란 요구는 곤란하다고 결론 내릴 때 문재인 전 대통령도 참여했다. 문 정부 때 문희상 국회의장은 ‘한국·일본 기업과 국민의 성금을 모아 대위 변제하자’고 했다. 지금 민주당의 논리 대로라면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모두 뭐가 되나. 민주당은 집권하자마자 한일 정부가 어렵게 이룬 ‘위안부 합의’를 파기해 버렸다. 그 후 5년간 국내 정치용 반일 몰이에만 열중했다. 그러더니 집권 말 김정은 이벤트에 일본의 협조가 필요해지자 돌연 ‘위안부 합의를 파기한 적 없다’고 했다. 외교라고 할 수도 없다.
지금 북핵 위협과 중국 패권주의로 한·미·일, 한일 간 협력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민주당이 김대중 계승 정당이라면 아무런 대안 없이 비난하지 말고 ‘김대중-오부치 선언’부터 다시 보기 바란다.
조선일보 사설
03.07 한·일 돌파구…바이든 “동맹 획기적 새 장”

▲윤석열 대통령(左), 기시다 일본 총리(右)
정부가 6일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 피고 기업을 대신해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지원재단)이 조성한 기금으로 판결금과 지연이자를 지급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2018년 한국 대법원에서 배상 책임이 인정된 일본 피고 기업(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의 기금 참여는 이번엔 이뤄지지 않았다. 대신 한국의 전경련과 일본의 게이단렌(經團連) 등 양국 경제계가 공동 조성하는 ‘미래청년기금’(가칭)에 참여하는 등의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은 정부 발표 직후 ‘식민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담은 1998년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등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전범 기업이 1엔이라도 내야 한다’는 일부 피해자의 반발과 국내 정치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날 지난 4년간 한·일 관계 경색의 원인이 된 강제징용 문제의 해법을 내놓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와의 주례회동에서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결단”이라고 말했다고 이도운 대변인이 전했다.
윤 대통령은 최근 참모들에게 “어차피 할 것 아니냐. 그러면 미리 매를 맞는 게 낫지, 내년 총선을 앞두고 할 것인가”라며 협상에 속도를 낼 것을 주문했다고 대통령실의 한 관계자는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해법 발표에는) 윤 대통령의 결단이 있었다”고 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금 엄중한 국제 정세와 글로벌 경제·안보 복합 위기에서 한·일 협력은 대단히 중요하다”며 “대한민국의 높아진 국력과 국위에 걸맞은 주도적이고 대승적인 결단”이라고 밝혔다. 박 장관은 일본 피고 기업의 참여가 없는 ‘반쪽 합의’라는 지적엔 “일본 측이 일본 정부의 포괄적인 사죄와 일본 기업의 자발적인 기여로 호응해 오기를 기대한다”며 “비유하자면 물컵이 절반 이상은 찼는데, 앞으로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에 따라 물컵이 더 채워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일본 피고 기업의 국내 자산 매각 조치(현금화)가 목전이고 일본의 입장이 변하지 않는 상황에서 한·미·일 협력이 절실해진 국제 정세까지 겹쳤다”며 “이런 삼중고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결단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도 “현재 한국 외교·안보 지형의 큰 그림을 보고 정부가 전략적 판단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적 부담 감수한 윤의 결단…“일본이 남은 절반 채워야”
‘전략적 판단’의 의미는 이날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의 발언에서 드러난다. 그는 “북한의 핵 위협이 고도화되고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한·일 관계의 회복과 한·미·일 협력 강화는 한국의 생존이 걸린 문제”라고 말했다. 안보·경제 복합 위기 속에서 정부의 시선이 일본만이 아닌 그 뒤의 미국을 바라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연유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안보 위기는 두말할 나위 없이 전례 없는 수준의 북한 핵·미사일 위협이다. 한·미는 오는 13일부터 23일까지 역대 최장 기간의 연합훈련인 ‘자유의 방패(Freedom Shield)’를 진행한다. 미군은 6일 B-52H 장거리 폭격기를 한반도에 전개하는 등 일주일이 멀다 하고 북핵 억제를 위해 전략자산을 투입하고 있다.
경제위기는 고물가, 수출 부진, 내수 침체 등이 한꺼번에 닥친 2023년 한국의 경제 상황을 의미한다. 이 같은 경제위기는 현실적으로 미국의 지원 없이는 극복이 어렵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과 자유무역협정(FTA) 발효와 같은 미국발 돌파구가 절실한 시점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절치부심 중인 여권으로선 경기 회복은 총선 승리를 위한 필수 조건이기도 하다.
이런 복합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자칫 ‘친일 프레임’에 걸릴 수 있다는 우려에도 한·일 관계 개선을 통한 한·미·일 협력 강화라는 미국의 ‘숙원’을 풀기로 결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정부 발표 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기다렸다는 듯이 환영 입장을 냈다. 바이든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별도의 성명을 내고 “오늘 한국과 일본의 발표는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 간 협력과 파트너십에 획기적인 새 장(a groundbreaking new chapter)을 열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더 안전하고, 더 안심할 수 있으며, 더 번영하는 양국 국민의 미래를 만들기 위한 중차대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고도 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한·일이) 화해한다면 중국과 북한에 대응하기 위해 동맹국 간 협력을 증진하려는 미국의 노력을 신장할 것”이라고 전했다.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은 해법 발표 당일 워싱턴DC에 있었다. 정부의 시선이 미국에 가 있다는 또 다른 방증이다. 김 실장은 지난 5일 특파원들과 만나 “(미국은) 한·일 관계의 새 시대가 열리면 한·미·일 안보 협력이 업그레이드되고 나아가 한·미·일 협력이 보다 포괄적이고 풍부한 관계로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논의 사안으로 한국의 핵심 수출 품목인 배터리·자동차·반도체 산업의 미래가 달린 반도체법(CHIPS Act)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후속 시행 조치, 미국의 핵우산 신뢰 향상 방안을 거론했다. 모두 미국이 칼자루를 쥐고 있는 사안이다.
정부는 이날 강제징용 해법 발표를 모멘텀으로 한·일 정상회담(3월·도쿄)→한·미 정상회담(4월·워싱턴)→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기간 중 한·미·일 정상회담(5월·일본 히로시마) 개최 등 외교 일정을 짜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일본 교도통신은 윤 대통령이 16~17일쯤 일본을 방문해 기시다 총리와 회담하는 방향으로 조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차세현 국제외교안보에디터, 박태인·정진우·박현주 기자 cha.sehyeon@joongang.co.kr
월간조선 03월 호
●중국의 ‘조용한 한국 침공’
중국은 이미 한국에서 전쟁을 시작했다
⊙ 중국 해커들의 역사·문화·교육 기관 해킹은 인지전투… 공포 조장과 중국화 위한 기초 자료 수집 목적
⊙ 중국 해커들은 국가안전부(MSS)의 기술정찰국과 인민해방군 61398부대가 조종
⊙ 중국, 비밀경찰서 운영, 性的 유혹 통한 정치권 침투, 문화교류협력 등을 통한 영향력 공작, 선거·여론 개입 의혹
⊙ 성리학·小중화주의의 후예인 586운동권, 親中-反美 정서 간직
윤민우
1972년생.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미 인디애나주립대 범죄학과 석사, 샘휴스턴주립대 형사사법학대학 범죄학 전공 박사, 서울대 외교학과 국제정치학 박사 / 가천대 경찰정보학과 교수, 現 국가정보원 자문위원, 국군방첩사령부 자문위원 / 《폭력의 시대 국가안보의 실존적 변화와 테러리즘》 저술

▲국내 중국 비밀경찰서 의혹을 받고 있는 중국음식점 동방명주. 이 식당 측은 작년 12월 29일 기자회견을 열고 의혹을 부인했다. 사진=뉴시스
중국은 한국 사회에 얼마나 깊숙이 잠입해 있는 걸까. 최근 중국의 ‘비밀경찰서’ 의혹이 불거졌다. 중국 정부가 미인계를 이용해 국내 정치권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들도 제기됐다. 역시 중국의 해커 조직인 ‘샤오치잉’이 한국 민간단체의 사이트를 공격하는 일도 일어났다. 이러한 중국의 여러 위협은 단순한 파편적 에피소드가 아니라 중국의 ‘중화제국 질서의 복원’이라는 국가 전략 목표를 관철하기 위한 ‘초한전(超限戰·Unrestricted Warfare)’ 전략에 따른 치밀한 영향력 공작의 부분들이다.
중국의 인지전투
호주의 클라이브 해밀턴 찰스스터트대학 교수는 이와 같은 중국의 위협을 ‘조용한 침공(silent invasion)’이라 정의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통적 전쟁 방식으로 침공했다면, 중국은 한국을 비롯한 세계를 ‘정보 전쟁’의 방식으로 조용히 침공하고 있다.
세상은 이제 전쟁의 시대로 들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2023년 1월에 보도된 두 개의 서로 다른 뉴스는 서로 긴밀히 연계된 같은 전쟁의 다른 모습이다. 거대한 유라시아 게임판에서 미국-서방 대(對) 중국-러시아의 거대한 전선(戰線)이 그어져 있고 그 전선을 따라 취약 지점에서 국지적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하나는 전통적인 전쟁의 모습으로, 다른 하나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실체도 불분명한 비전통적 정보 전쟁의 모습으로 구현되고 있다.
유라시아의 서부전선에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진행 중이다. 미국은 자국 주력 전차 M1 에이브럼스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독일도 자국산 레오파드2 전차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유라시아 극동전선에서는 중국의 해킹그룹이 한국의 12개 학술기관을 공격하고, 해당 단체의 홈페이지에 ‘한국 인터넷 침입을 선포한다’는 문구를 게시했다.
이번 중국 해킹그룹의 주요 해킹 공격 대상이 우리말학회, 한국고고학회, 한국학부모학회, 한국교원대학교 유아교육연구소, 한국사회과수업학회, 한국동서정신과학회, 한국교육원리학회 등 한국의 문화·역사·교육 부문이라는 점은 해당 사건이 중국의 한국에 대한 역사·문화 전쟁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인지전투라는 걸 그대로 보여준다.
중국 정부, 해커 조직 지원

▲공자학원 홈페이지 ‘중국어를 배우는 아이들과 청소년’ 코너에는 6·25전쟁을 ‘抗美援朝전쟁’으로 묘사하는 애니메이션이 있다
이번 공격의 책임을 주장한 중국 해커 조직 샤오치잉은 중국 정부와의 연계성을 부인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점들 때문에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중국 내 민간인의 인터넷 접속은 중국 국가기관의 철저한 통제하에 있다. 중국의 안보·외교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걸린 타국에 대한 해킹 공격을 중국 국가기관의 지휘통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실행할 민간 해커 조직은 없다. 중국의 국가정보기관인 국가안전부(MSS)의 기술정찰국과 인민해방군 총참모부 3부 2국의 61398부대는 중국 해커 조직과 애국적 핵티비스트 조직들을 은밀히 지원, 통제하는 실행 컨트롤타워이다.
해외 사이버 보안 업체들의 분석 평가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파악된 중국의 해커 조직 약 40여 개 가운데 중국 인민해방군이나 국무원, 또는 국가안전부의 자금 지원이나 지휘통제를 받지 않았던 조직은 단 하나도 없다. 샤오치잉은 2021년 11월경에 처음 알려진 또 다른 중국 해커 조직 ‘텡 스네이크’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파악한다. 텡 스네이크는 이미 미국, 유럽 등 해외 저명 민간 사이버 보안회사와 국가기관들에 의해 중국 정부의 ‘프락시(proxy) 조직’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중국 정부가 비밀경찰서 공작을 해왔다는 게 세상에 알려졌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중국 식당을 거점으로 활동해온 중국의 비밀경찰서가 공개되었다. 공교롭게도 이 사건에서 드러난 OCSC(오버시스 차이니즈 서비스)는 중국 국무원 교무판공실(Overseas Chinese Affairs Office of State Council)의 지휘통제를 받는다. 국무원 교무판공실은 국가안전부, 인민해방군과 함께 중국의 초한전을 수행하는 최고 수준의 실행 컨트롤타워 가운데 하나다.
이 밖에도 중국의 한국에 대한 성적 유혹을 통한 정치권 침투와 문화교류협력 등을 통한 영향력 공작, 그리고 선거 및 여론 개입 의혹도 잇달아 제기됐다. 이를 실마리로 되짚어보면 지난 2022년 3월 9일 한국의 대통령 선거는 그 결과에 따라 한국을 둘러싼 서방과 중국 간의 패권(覇權)전쟁의 추이에 주요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결과가 서방과 러시아 간의 패권전쟁의 결과에 주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어쩌면 우크라이나 못지않게 한국사에서 가장 중요하고 위험스러웠던 전쟁을 투표장에서 치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죽고 사는 문제’와 ‘먹고사는 문제’
중국의 ‘조용한 한국 침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거대한 글로벌 전쟁의 전선에 위치한 주요한 전략 지점이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전쟁에 ‘중립지대’는 없다. 미중 패권경쟁 시대에 국익을 고려해 한국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메아리처럼 반복된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균형점이 어디이고 어떤 모습인지를 말해주지는 않는다. 국익(國益), 실용 같은 실체를 가늠하기 힘든 추상명사나 GDP나 한국의 대중국 경제의존도와 같은 국익과 관련된 단편적인 조각들만 제시된다.
경제적 이익이 곧 국익은 아니다. 국가는 기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익의 균형점은 그 주장을 하는 사람이 찾아서 보여주어야 한다. 경제·문화·안보 부문을 망라한 통합적 국익의 균형점을 도출해야 한다.
전쟁은 균형점을 찾는 고차방정식을 풀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애초에 그 균형점은 신기루인지도 모른다. 전쟁은 현실이다. 적(敵)이 설정되어야 하고, 그 적에 대한 전쟁 시나리오가 도출되어야 하고, 전쟁 전략과 역량, 그리고 의지가 그에 맞추어 준비되어야 한다.
한국의 적은 누구인가? ‘죽고 사는 문제’와 ‘먹고사는 문제’ 가운데 한 가지만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전자(前者)는 안보의 문제이고 후자(後者)는 경제의 문제이다.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줄타기가 한국의 해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안전하게 부유할 수 있으면 최선의 선택지이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짓궂은 면이 있어 종종 이 둘을 동시에 허락하지 않는다. 흔히 직장이나 배우자를 고를 때 여러 조건을 따지며 그중 어느 하나도 포기하지 않으려 하면 나쁜 선택을 하기 쉽다. 현명한 선택은 대체로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하나를 취하고 나머지를 버릴 때 가능하다. 다가오는 전쟁의 시대에 한국은 불행히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할지도 모른다.
소중화주의 재현?

▲충북 괴산에 있는 만동묘(萬東廟). 임진왜란 때 원군을 보내준 명나라 황제 신종의 사당으로 사대주의의 상징이다. 사진=조선DB
결단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선택하지 않는 것도 결국은 선택이다. 북한 핵은 한국인의 물리적 생존을 위협한다. 중국의 조용한 침공은 한국인의 정신적 생존을 위협한다. 대한제국 말기 헤이그 밀사로 간 이준 열사는 “혼이 없으면 사람이고도 사람 아닌 사람이요, 이 혼이 없으면 나라이고도 나라가 아닌 나라가 되는 것이다. 한국의 혼이여! 너는 독립의 혼이 되고 노예의 혼이 되지 말라!”고 외쳤다.
한국의 혼은 지금 중국의 전방위적인 ‘조용한 침공’에 잠식당하고 있다. 어떤 이는 한국이 미국의 신식민지라고 강변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보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은 적어도 한국인을 미국인의 일부로 만들 생각이 없고,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미국의 것이라고 억지를 부리지도 않는다.
미래 한국에 중화패권질서에 포획되었던 과거의 조선이 재현되는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심각한 전쟁 후유증과 정체성(正體性)의 위기를 경험한 조선 사회는, 조선이 중화의 정신과 문화, 도덕을 계승하는 소중화(小中華)라는 정신적 자위를 동력으로 정체성을 회복하였다.
존주론(尊周論)의 바탕이 된 성리학은 태생적으로 한국에 독소적이다. 이는 11~12세기 송(宋)나라에서 일어난 신(新)유학 운동이다. 당시 북방 이민족들로부터의 군사적 정복 위협에 직면하여 신유학 주창자들은 중국을 이념적으로 무장시키고 통일시킴으로써 그와 같은 위협에 맞서기 위한 의도로 신유학을 만들어냈다. 태생적으로 신유학(성리학)은 중국 문화의 파시즘적 우월성을 정당화하고 다른 민족들과 그들의 문화를 폄하하고 배척하려는 중국판 배타적 극단주의였다.
조선은 이 성리학을 기초로 한 존주론에 자발적으로 포획됨으로써 스스로를 중국의 정신적 식민지로 만들었다. 19세기 후반 서구제국주의의 물결이 조선으로 밀려들어왔을 때 이항로, 유인석 등과 같은 조선의 지식인들은 중화질서를 지키기 위해 서구와 서구화된 일본을 배척하는 배타적 고립주의를 선택했다. 이는 위정척사(衛正斥邪)로 표현되었다.
이들이 지키고자 했던 것은 조선이라는 국민국가나 국민으로서의 조선 민족이 아니었다. 이들은 세상만물의 중심으로서의 중국과 우월한 중국 문화, 이상적인 것의 완성인 중국 중심의 자연질서와 천하질서를 지키려 했다. 이항로의 제자이자 최후의 의병장이었던 유인석의 말에서 확인된다.
“중국은 우리 모두의 공통된 조상이며 하늘과 땅의 중심이다. 만약 중국이 무너지면 세계는 무질서에 빠지고 하늘과 땅은 붕괴될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중국이 자신의 중요성을 유지하고 돌보아 우리 모두의 조상이자 중심으로서의 지위를 잃지 않는다면, 일가친척들과 공통된 한 몸을 구성하는 부분들이 어찌 이를 존중하고 보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성리학과 공산주의
미래 한국에서 살게 될 나의 아들과 딸이 과거 유인석이 한 말과 같은 말을 하게 되는 건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중국은 ‘중화 천하질서의 복원’을 꿈꾸고 있다. 시진핑(習近平)은 몇 년 전 트럼프에게 한 말처럼 한국을 그 끔찍한 ‘중화천하질서’에 속하는 변방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건 또 다른 형태의 식민지가 아닐까? 일제 강점기를 비판한다면, 마찬가지로 중국의 식민지화에도 저항해야 논리적으로 맞다.
한(韓)민족과 집단적 인지대본(script)으로서의 위정척사와의 악연은 질기다. 이는 오늘날 공산주의, 반미주의, 민족해방, 그리고 아시아적 가치 등의 내러티브로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과거의 성리학과 오늘날의 공산주의 사이에는 흥미로운 공통점들이 있다. 이 둘은 집단적 공동체주의, 반개인주의, 반자유주의, 신과 같은 초월적 존재의 부재, 과거의 원시공동체에 대한 로망, 민간·시장 경제에 대한 관료적·계획적 통제의 우위, 도덕적 엄숙주의 등의 주요한 인식론과 방법론에서 놀랄 만한 유사성을 가진다.
이런 이유로 대한민국 출범 초기 수백 년간 성리학적 프로파간다에 길든 한국인들에게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보다는 집단주의적 공산주의가 더 익숙하고 그럴듯한 대안으로 받아들여졌을지도 모른다. 한국의 초기 공산주의자들이 대부분 유소년기에 한학을 공부했었던 경험을 가졌다는 것과 1945년 해방 직후에 한반도 대부분의 지역에서 공산주의가 한국인들에게 더 인기가 있었다는 사실과도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와 개인주의에 기반을 둔 근대국가가 되었다는 것은 매우 예외적인 결과로 보인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결단과 미국의 강한 지원 덕분이었다.
586운동권의 親中 본능
오늘날 북한을 지배하는 주체사상과 한국의 NL, PD 등 586운동권으로 대변되는 토착 사회주의의 내러티브는 위정척사의 오래된 내러티브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반미·자주·통일·민족해방 등으로 나타나는 주체사상의 주요한 담론들은 위정척사에서 출발하는 배타적·고립적 종족주의, 반서구주의, 반자유주의, 집단주의, 그리고 친중국적 지향성의 흐름과 이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에게 민족 해방의 대상이 되는 외세는 미국 또는 일본 등과 같은 서구문명이다. 이들이 의미하는 외세에 중국 또는 중국 중심의 천하질서는 포함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북한이 한국전쟁에서 중국의 도움을 받은 것을 항미원조(抗美援朝)로 인식하고 외세 의존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조선이 임진왜란에서 명(明)의 도움을 받은 것을 외세 의존이 아니라 중화의 은혜를 입은 것이라고 인식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들에게 민족 해방은 단지 서구문명으로부터 한국 민족과 문명이 벗어나는 것이다. 중국 문화와 질서와의 결박은 민족 해방의 대상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오늘날 한국의 서구화와 자유주의, 개인주의의 발전 전략은 미국과 서구화된 일본에 의해 강요된 결과로 인식한다. 이들에게 근대화론과 근대우월주의는 허구성에 기초한 주장이다. 오늘날 미국-서방 주도의 글로벌 자본주의는 서구문명이 한계에 봉착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오늘날 중국의 부흥은 서구물질문명의 한계와 아시아(즉 중화) 정신문명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소중화 조선의 재림
이들은 민주적 자유주의, 자본주의, 개인주의, 인권, 과학적 합리주의 등 서양적 문화와 가치들이 오늘날의 한국 사회와 사람들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한탄한다. 이들은 위정척사론이 개화론-근대화론-세계화론의 주류 흐름에 의해 부당하게 ‘중화사대주의’로 비판받았다고 항변하며, 문화와 도덕의 국가인 조선은 위정척사론을 통해 밀려오는 서구와 일본에 대해 저항하였다고 합리화한다. 또한 이런 주장의 연장선상에서 오늘날 한국인은 일제의 잔재를 쓸어내고 친일파를 단죄하고 청산하면서, 또한 미국-서방과의 오래된 부적절한 관계를 청산하고, 다시 남북통일을 거쳐 동아시아 평화공존(즉 중국 질서로의 편입)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중국에 대한 종속과 포획의 위험성에 대한 언급은 없다. 아마도 이들의 주장의 끝은 소중화 조선의 재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에게 불편한 진실은 그 서구화와 자유주의, 개인주의 발전 전략 때문에 오늘날 한국이 주요한 글로벌 강국 중의 하나로 자리매김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들은 한국의 사회·경제적 모순과 문제들을 과장하거나 한국의 미국-일본과의 관계를 왜곡하여 끊임없이 과거의 일제 식민지 시절과 데자뷔시켜 이와 같은 성과들을 희석시킨다.
좌파의 내러티브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12월 15일 중국 베이징대 연설에서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에 비유하면서, 친중의식을 드러냈다. 사진=뉴시스
이처럼 위정척사와 유사한 인식체계를 갖고 있는 국내 사회주의-주체사상은 오늘날 첨단 정보통신 환경과 초연결사회에서 배타적-집단적 신좌파 극단주의 내러티브로 진화하였다. 이 내러티브는 기존의 사회주의-주체사상의 핵심교리에 역사적 서사를 덧씌워 더 긴 역사적 호흡을 가진 동태적인(dynamic) 이야기로 재구성되었다.
이를 통해 이 내러티브는 과거 사회주의나 주체사상과 같은 정태적인(static) 이데올로기로는 담아낼 수 없었던 더 넓은 청중과 지지자들을 포획할 수 있었다. 이 내러티브의 주도 세력은 200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한 사이버 공간에 빠르고 효과적으로 적응했고, 자신들의 내러티브 프로파간다를 성공적으로 유포, 확산시킬 수 있었다.
오늘날 이 세력은 국내 온라인과 물리적 공간 모두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은 유튜브, 온라인 커뮤니티, 웹포럼, 웹툰, 영화, 드라마, 출판, 방송, 미디어, 문화, 역사, 엔터테인먼트, 교육, 시민사회, 노동 등 많은 부문에서 강한 진지를 구축하고 있다. 이들의 내러티브 프로파간다는 양적, 질적인 측면에서 압도적이다. 우려스러운 점은 이와 같은 내러티브와 그 주도 세력이 다시 과거의 중화천하질서를 복원하고자 하는 중국에 포획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들이 이와 같은 의심에 논리적으로 반박하기 위해서는 민족 해방과 민족자주의 대상에 일본과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도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과거 청(淸)을 배척했고 일본에 맞섰던 위정척사와 오늘날 미국을 비판하고 일본을 증오하는 사회주의-주체사상의 공통분모는 중국 또는 중화에 과도한 애착을 느낀다는 점이다. 이들의 주체논리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중국의 강압적 지배와 맞서 싸워 스스로의 논리를 증명해야 할 것이다.
전쟁이 다가오고 있다

▲공자학원실체알리기운동본부는 2월 8일 서울 대림역 앞에서 중국 비밀경찰서 폐쇄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사진=공자학원실체알리기운동본부
중국의 한국에 대한 ‘조용한 침공’과 뒤따라 다가오는 전쟁은 우리에게 익숙한 과거 한국전쟁이나 오늘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다른 모습일지 모른다. 어쩌면 대다수 대중이 모르는 사이에 이미 전쟁이 치러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이 알든 모르든, 전쟁에 참여하건 그렇지 않건 그 전쟁의 결과는 당신의 삶과 죽음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국에 대한 중국의 정보전과 인지전은 우리가 아는 전쟁과는 매우 다른 듯 보인다. 클라우제비츠의 날카로운 통찰처럼 ‘전쟁은 적에 대한 나의 의지를 관철하는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라는 사실을 직시한다면 이는 분명히 전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사실상 이와 같은 비전통적 전쟁 역시 우리에게 익숙한 전통적 전쟁과 같은 원칙과 전략운용 방식에 의해 작동된다.
이 글이 이와 같은 다가오는 비전통적 전쟁에 대한 경각심과 그에 대한 관심과 준비, 그리고 대응을 위한 노력의 모멘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전쟁은 적과 나의 양자 간의 상호역동성의 결과물이다. 따라서 나의 바람, 행동과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
전쟁은 온전히 적의 의지와 선택만으로 시작될 수도 있다. 이 경우에 남은 선택은 항복하거나 맞서 싸우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을 수 있다. 전자는 노예가 평화를 구걸하는 방식이고 후자는 자유인이 평화를 쟁취하는 방식이다.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진정한 평화는 쟁취하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다가올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03.08 민주당 눈엔 ‘한일 정상화’ 환영한 유엔과 EU도 ‘친일’인가
한국 정부가 6일 한일 관계 정상화의 최대 걸림돌로 꼽혀 온 징용 배상 문제를 제3자 변제 방식으로 푸는 방안을 발표하자 유럽연합(EU)은 “한일 간 양자 관계를 개선하고 미래 지향적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발표된 중요한 조처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한일 간의 긍정적인 교류와 미래 지향적인 대화를 환영한다”고 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동맹 간 협력에 획기적인 새 장을 장식할 것”이라고 밝힌 것을 시작으로 각국의 환영 성명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상당한 비중을 가진 나라다. 민주주의 국가이면서 세계적 규모의 경제를 갖고 있고 G20과 OECD의 일원이기도 하다. 그런 나라가 과거사 문제를 갖고 해묵은 갈등을 계속하는 것은 국제사회가 보기에도 바람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바탕에서 국제사회의 환영 성명이 나오는 것으로 본다.
정부가 내놓은 징용 해법이 완벽할 순 없다. 일본 피고 기업을 대신해 국내 재단이 변제 책임을 떠안는 방식 자체가 일반 국민이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상대국이 있고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이 엄존하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다른 해법이 없다. 전 정부는 문제를 방치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지만 북핵 위협이 심각해진 이제는 그럴 수도 없다.
하지만 5년간 이 문제를 방치해온 민주당만은 ‘경술국치’ ‘굴종’ ‘늑약’이라는 등으로 연일 비난을 하고 있다. 해법은 하나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징용 재단에 출연금을 내기로 한 국내 기업을 “친일 기업”이라고 한다. 이 논리면 유엔과 EU도 ‘친일’이다. 11일엔 거리 시위도 벌인다고 한다. 민주당이 국제사회와 이렇게 동떨어진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고 민주당 내에서 이 대표에 대한 반발이 커지자 반일 몰이로 이를 희석시키고자 하는 것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한일 관계 정상화와 일본 문화 수입 개방의 결단을 내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업까지 이런 식으로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3-08 또 죽창가 부르는 윤미향과 민주당, 후안무치 극치다
정부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해법에 대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계묘늑약” “삼전도 굴욕” 등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출연금을 내는 기업은 친일 기업으로 낙인찍힐 것”이라고 미리 협박했는데, 해법의 핵심인 제3자 변제를 무산시킬 급소를 정확하게 찌른 셈이다. ‘사이다 발언’으로 들리지만, 한 꺼풀만 벗기면 얼마나 무책임한 발언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일본이 완전 굴복할 때까지 무한 반일을 하자는 ‘죽창가’식 선동으로, 국제 질서와 북핵 위협 등을 도외시한 ‘우물 안 개구리’ 행태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 5년 동안 한일관계를 악화시킨 책임, 이 대표의 경기지사 시절 친북 행태를 고려하면 반(反)국익·몰염치의 극치일 것이다.
때맞춰 윤미향 의원은 7일 “일본에 머리를 조아린 항복 선언”이라고 비난하고 수요 집회 참석 등 활동에 나섰다. 그는 지난달 10일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후원금 중 1700만 원을 횡령한 혐의로 벌금 1500만 원을 선고 받았다. 재판 지연에 이은 이상한 판결로 8가지 혐의 중 1개만 유죄로 인정받았지만, 유죄로 인정된 1700만 원 횡령 자체도 가볍지 않은 범죄다. 이것만으로도 의원직 반납 또는 자숙하는 것이 도리다. 그런데도 사과 한마디 없이 또 반일 선동에 편승하는 행태는 후안무치의 극치다.
민주당의 장외 투쟁은 여러 측면에서 더 고약하다. 문 정권 5년 동안 위안부 재단 해산 등으로 한일관계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고 정작 문 대통령은 “공식적 합의였음을 인정한다”는 식의 이중성을 보였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은 현 정부 해법과 유사한 자신의 입법 방안에 대해 “일본 조야뿐 아니라 일본 정부 양해도 받았다. 그러나 문 전 대통령이 끝까지 동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민주당이 국회 제1당으로서 최소한의 책임감이라도 있다면, 문희상안(案) 입법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이런데도 이번 주말 장외 집회까지 한다고 하니 ‘이 대표 방탄’ 집회에 ‘반일’ 허울만 씌운 게 아니냐는 비아냥도 나온다. 무책임 선동에 앞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본 문화 개방, 노무현 정부 때의 강제징용 입장이라도 돌아보기 바란다.
문화일보 사설
03-08 ‘노 재팬’ 퇴조와 반일 정치
박수진 경제부 차장
지난 3·1절에 세종시 한 아파트 주민이 베란다에 일장기를 내건 사실이 알려지며 전 국민의 공분을 샀다. 만약 다른 나라 국기였다면 전혀 이목을 끌지 않았을 이 사건은 이날 주요 뉴스로 보도됐다. 세종시 일부 주민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한 달간 태극기를 게양하자는 움직임까지 일고 있다. 36년 일본 식민지배의 뼈아픈 역사는 이처럼 해방 이후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 시시때때로 반일·혐일 감정에 불을 지핀다. 2019년에는 ‘노재팬(No Japan·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일본 정부가 그해 7월 불화수소·불화 폴리이미드·극자외선(EUV)용 포토레지스트 등 반도체 등의 생산에 필수적인 전략품목을 볼모로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단행하고 8월 수출 절차 간소화 혜택을 주는 화이트 리스트에서도 한국을 배제키로 했을 때 촉발된, 국민이 스스로 벌인 운동이다. 문구점에선 일본 학용품이, 편의점에선 일본 맥주가 일제히 퇴출됐고, 일본 차는 된서리를 맞고 매출이 급감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는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일본과 다른 길을 걸을 것”이라고 했다. 일본에 대한 국민적 적대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4년이 지난 현재 노재팬 운동은 어떻게 됐을까.
일본 침략에 항거한 독립선언일에 일장기를 단 비상식에 대해선 여전히 분노하지만, 동시에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나라인 일본은 다시 한 번 가장 핫한 여행지로 떠올랐다. 일본행 항공권 평균 예약률은 90%를 웃돌고 일본을 찾는 외국인 중 40%는 한국인이다. 일본 만화 ‘슬램덩크’를 보러 극장을 찾고 일본 캐릭터 ‘포켓몬’이 그려진 빵과 카드를 사기 위해 줄을 선다. 과거사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견지하고 일본의 충분한 사과와 반성을 요구하면서도 일본 문화를 즐기고 필요에 따른 일본과의 교류에 거리낌이 없는 모습이다. 정부가 6일 일본과의 수출 규제 협의가 진행되는 동안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해결 절차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가 일본 수출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제기했던 WTO 제소를 잠시 멈춘다는 것이다. 또, 조만간 한·일 수출관리 정책 대화를 개최해 수출 규제에 관한 한·일 간 현안 사항을 2019년 7월 이전 상태로 되돌리기 위한 양자 협의를 진행한다.
급변하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계속되는 미·중 갈등과 기술 패권주의 부상 등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세계질서 한가운데 한·일 해빙 무드는 경제 안보 리스크(위험)를 낮추고 우리 산업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가 크다. 일본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적대국으로만 남겨 두기엔 일본과 우리나라는 문화, 경제, 산업 등 여러 면에서 밀접하게 얽혀 있다. 노재팬 운동이 다소 사그라든 것도 최근의 이 같은 분위기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20·30대 MZ세대를 대상으로 한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한·일 관계 인식’ 관련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일 관계 개선 필요성에 대한 질문에 71%가 ‘필요하다’고 답했고, 이 같은 답변의 가장 큰 이유는 ‘양국 협력을 통한 상호 경제적 이익 확대’(45.4%)였다. 실리를 챙기고 국익을 극대화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문화일보
03-09 암참의 징용재단 직접 기부와 野의 이완용 운운 사기극
한국 진출 미국 기업 모임인 암참(주한 미국상공회의소)이 8일 강제징용 해법에 대해 밝힌 입장은 형식과 내용 두 측면에서 모두 이례적이다. 우선, 한·일 관계 개선 움직임을 미국 기업들이 환영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제임스 김 회장은 “한국과 일본 정부의 역사적 합의”라면서 “한·미·일 3국 파트너십은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열쇠”라고 밝혔다. 암참은 한국에 진출한 800여 미국 기업과 기업인들로 구성돼 있다. 한·일 관계가 얼마나 기업 환경에 악영향을 끼쳤으면 제3국 기업들이 이렇게 나섰겠는가.
제3자 대위변제에 동참하겠다는 암참의 선언과 그 방식은 더욱 파격적이다. 김 회장은 “획기적 합의를 지원하기 위해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 기업조차 ‘미래청년기금’을 통한 간접 기부 방식을 선호하는데, 미국 기업들이 먼저 이 재단에 직접 기부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한국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일본 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가 조성할 미래기금은 징용배상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일본 입장을 배려한 우회로다. 미국 기업들 움직임은 일본 기업에도 자극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데도 더불어민주당은 8일 오후부터 ‘이완용의 부활인가’ 하는 섬뜩한 플래카드를 전국 곳곳에 내걸었다. 조선과 대한제국의 패망은, 세계정세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내부 개혁도 하지 못한 ‘우물 안 개구리’ 행태에 큰 책임이 있다. 을사늑약은 마지막 절차였을 뿐이다. 그런데 한·미·일 협력으로 경제·안보를 강화하려는 노력을 ‘이완용’에 빗댄 것은 역사 왜곡 사기극이다. 민주당 식 대응이야말로 구한말 망국을 되풀이할 매국적 행태다. 일부 지역에서는 현수막 게재를 거부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문화일보 사설
03-09 삼전도 교훈 뒤집는 민주당
김석 정치부 부장
병자호란 때 인조는 청 태종에게 삼궤구고두(3번 무릎 꿇고 9번 머리를 조아림)를 하고 항복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언급한 삼전도 굴욕이다. 경술국치 전까지 조선왕조가 최대 치욕으로 여겼던 삼전도 굴욕은 명청 교체라는 시대적 흐름을 거스른 인조와 사대부들이 자초한 일이다. 과거(명)가 아닌 미래(청)를 생각해 현실적 외교를 하던 광해군을 내몰고 아무 대책 없이 친명배금 정책을 내세운 데 따른 당연한 결과였다. 조선왕실과 사대부는 삼전도 굴욕에도 배운 것이 없었다. 정통성이 취약했던 숙종은 말뿐인 북벌을 내세웠고, 영조는 청나라 사신을 만나기 전 대보단(만력제 등 명 황제 3명의 제단)에 제를 올리는 식으로 역사적 치욕을 권력 강화 수단으로 사용했다. 이러한 퇴행적 정치는 오랑캐라 무시하던 청과 일본마저 변화를 선택했던 19세기 격변기에 대응하지 못해 국권을 빼앗기는 더 큰 비극을 불렀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비분강개를 위해서가 아니라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는 말처럼 쉽지 않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 변화하는 과정은 험하고 지난한 일이기 때문이다. 삼전도 굴욕의 교훈은 조선이 정치적·군사적·외교적 변화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성리학 일변도에서 벗어나 군사력을 키우고, 청·일본 등과 접촉하던 서구 국가로부터 선진문물을 배우는 길이다. 그러나 조선왕실과 사대부는 명이 망한 이상 중화는 조선이 됐다(소중화사상)는 정신 승리에 취해 이를 거부했다. 목소리만 높이면 지지가 따라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도 역사에서 배우기보다 시대적 변화에 눈감고 ‘반일’을 외치며 국내 정치적 이익만 노리는 길을 가고 있다.
지난해 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신냉전이라는 흐름이 피할 수 없는 현실임을 보여준 사건이다. 신냉전 속에 유럽 국가들은 미국과 나토 동맹을 강화하고 무장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한반도도 지정학적으로 신냉전 흐름의 격전지가 될 수밖에 없다. 당장 북한은 신냉전 구도를 이용해 핵·미사일 도발과 위협 수위를 높이는 방식으로 중국, 러시아와 관계 강화를 통해 활로를 찾고 있다. 중·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한을 감싸는 방식으로 화답 중이다. 이에 맞서려면 한국에 동맹국인 미국은 물론 일본과의 삼각 공조가 필수적이다. 일본은 한반도 유사시 미군의 후방 기지 역할을 하는 데다 상당한 대북 감시 자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양면 전쟁을 꺼리는 미국에도 동북아에서 한·미·일 협력은 반드시 필요한 사안이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강제징용 해법 발표 직후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 간의 협력과 파트너십의 신기원적인 새 장”이라며 환영성명을 낸 건 립서비스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나라를 반만년 역사를 가진 국가라 자랑한다. 반만년 역사를 놓고 볼 때 35년인 일제강점기는 미미한 기간이다. 물론 아무리 짧은 기간이라도 국권 상실이라는 역사적 치욕을 잊어서는 안 되지만, 여기에 얽매여서 시대적 흐름에 눈감는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 이는 삼전도 굴욕이 가르쳐준 교훈을 무시했던 조선왕실과 사대부의 퇴행을 되풀이하는 일이다.
문화일보
03.13 한·일 협상의 백그라운드…지금부터 시작이다
“한·일 협상은 자산이 아니라 늘 부채다.” 외교가의 금언 중 하나다. 잘해 봐야 본전, 협상 당사자들엔 대부분 치명타였다. 이번 강제징용 ‘제3자 변제’ 해법 역시 여론(7~8일, 매일경제)은 ‘잘못했다’ 57.9%, ‘잘했다’
37.8%다. 반면 ‘일본과의 관계개선이 필요하다’는 67.0%, ‘필요 없다’는 37.3%다. 2015년 말 위안부 협상 직후에도 “잘됐다” 26%, “잘못됐다”는 2배 이상인 56%였다. 참 어렵고 복잡 미묘하다.
일본의 입장은 강경했다. 위안부 협상 때는 미국이 일본을 압박도 해가며 적극 중재에 나섰다. 하지만 이번엔 미국도 기대 속에 지켜보기만 했다는 협상팀의 전언이다. 특히 포스트 기시다의 유력 주자인 자민당의 모테기 간사장이 “물러서지 말라”는 입장을 고수했다고 한다. 기시다 총리도 혐한 정서가 강한 범아베파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 협상팀은 이런 얘기를 반복했다. “뭘 합의해 봤자 4년 뒤 한국에 다시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면 다시 다 뒤엎을 텐데 무슨 소용 있겠는가.” 문재인 정부의 박근혜 정부 위안부 협정 파기를 계속 환기했다. “골대가 매번 바뀐다”였다.
“일단 법적인 문제부터 매듭 풀고
전방위 교류 확산과 성과의 수순”
물꼬 주역 자임한 윤석열 대통령
야당 포함 국민 설득이 성공 관건
다시 용산 대통령실. 시간이 흘러가면 우리도 총선 정국이다. 사안의 인화성이 커져갈 수밖에 없다. 중도 온건 성향인 기시다 총리 때 풀고 가는 게 낫고, 그 시기는 지금이라는 게 현실적 판단이었다. 그다음 해법의 디테일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생각은 이랬다고 한다. “이건 대법원 판결이라는 법적으로 제기된 문제다. 법적으로 초래된 문제가 양국의 안보·경제적 장애물로 에스컬레이트된 사안이다. 근원인 법적 문제를 먼저 풀어놓고, 차후 다른 영역의 양국 관계 진전으로 이어가야 한다.”
2018년 사법부가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을 놓고 거래를 시도했다는 사법농단 사건 당시 외교부를 압수수색한 중앙지검장은 윤 대통령이었다. “당시 지검장인 윤 대통령이 외교부의 강제징용 관련 기록과 자료, 내용을 정독했던 것으로 안다”고 용산 관계자는 전했다. 강제징용 위자료 배상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과 무관하다는 2012년 김능환 대법관의 판결은 이 모든 사태의 출발점. 윤 대통령은 당시의 부심 대법관에게 “그때 어떤 법적 근거와 논리로 이 판결이 나왔느냐”고 직접 물어보기도 했다는 전언이다. 돌아온 답은 “퇴임하는 김능환 선배의 마지막 판결이라 한 번 도와줬다”였다. 어이없는 과정이 아닐 수 없다.
반도체도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사실 미국이 반도체 공정에서 일본·네덜란드를 핵심 파트너로 삼으려는 전략이 포착됐다”며 “경쟁력 있는 일본의 반도체 제작 장비·소재·부품 분야와의 한·일 공조가 시급하다는 기업들 요청이 적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공급망이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끼리로 재편되는 새로운 필요도 작용한 셈이다.
꼬인 매듭의 마지막을 자른 건 결국 윤 대통령 몫이었다. “제3자 변제로 법적 문제부터 해결한다. 우리가 주도를 해나가려다 보면 더 양보했다는 감정적, 정치적 저항도 많을 것이다. 다 안다. 하지만 먼저 주도적으로 해결해 나가다 보면 일본이 호응해 오는 걸 이끌어낼 자신이 있다. 법적 문제를 풀고 안보, 교역·투자·신기술의 경제협력, 문화·청소년 교류 등 많은 분야의 관계 진전으로 성과를 한번 내보겠다. 내 책임으로 해결해 보겠다. 물어보면 내가 지침 준 것이라 하라.” 협상 관계자들이 전한 취지였다.
일본 측도 변해 가는 기류다. 윤 대통령의 방일을 맞을 일한의원연맹 회장은 10년을 역임한 누카가 전 재무대신에서 스가 전 총리로 최근 격상됐다. 주요 언론들 역시 “양국 정부가 마음을 열고 지속적 협의를 통해 현안을 하나씩 돌파하자”(요미우리), “한국의 조치를 맞아 일본의 수출 통제 조치를 복원하는 게 합리적”(닛케이), “양국의 미래세대 지원기금에 일본 기업들이 기부한다면 한국 내 반대도 누그러질 것”(아사히) 이란 반응이다. “우리도 징용 피해 지원 재단에 기여하겠다”는 주한미국상공회의소의 조치도 눈길을 끌고 있다.
변수는 일본 정부의 과거사 관련 입장. 한국 측이 가장 선호해 온 건 “한국인들의 뜻에 반한 식민지 지배로 인하여 나라를 빼앗기고”라는 문구가 들어간 간 나오토 전 총리(민주당)의 2010년 담화. 반면 현 자민당 정권이 민주당의 입장을 계승한다는 데 어려움을 표하면서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하는 ‘윤석열-기시다’의 새 선언이 관측되고 있다.
정상화의 시작은 지금부터다. 과거 위안부 협정 직후 “일본이 잃은 건 10억 엔 뿐”이라는 일본 외상의 발언은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정치적 망언이야말로 판을 깰 뇌관이다. 양국 모두 차분히 큰 성과로 키워가려는 미래지향, 대승적 안목이 필요한 시간이다. 큰 방향 물꼬의 주역을 자임한 윤 대통령 역시 성과를 위해선 야당을 포함한 국민과의 소통에 적극 나서야 옳다. 성공하는 대통령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설득’이다.
중앙일보 최훈 주필
03-15 징용 유족 “일제 만행 용서 힘들지만 이젠 매듭지을 때”
윤석열 대통령의 일본 방문과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애초 강제징용 배상 소송을 제기했던 고 정상화 씨의 유족이 윤 정부의 제3자 변제 방식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나선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정 씨의 아들인 정사형 씨는 14일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일본의 만행을 용서하기 힘들지만 우리 세대에서 매듭짓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야 할 때”라고 밝혔다. 다른 2명의 유가족도 같은 입장을 피력했다. 이들은 “지금 중요한 건 반일이 아니라 극일(克日)” “이번 기회에 마무리해야 한다” “반대 의견도 존중하지만 정부가 올바른 방향을 설정했다”고 말했다.
정 씨의 이런 입장은, 1990년대 일본 법원에 배상 소송을 내고 문제 제기를 시작한 당사자와 유가족이라는 점에서 더욱 경청할 만하다. 당시 일본 법원에서 3심까지 모두 패소하고 정 씨는 한국 법원으로 배상 소송을 옮겨 진행해왔다. 정 씨는 “당시 한국에서 모두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며 냉랭했다”면서 “지금 집회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는 정치인 중에 그때 힘을 보태준 사람이 있느냐”고 밝히고, 일부 세력의 정치적 이용을 비판했다. 그는 또 작고한 부친은, 돈 때문이 아니라 기억해 달라는 의미에서 오랜 소송전을 벌였다고도 증언했다. 이런 입장을 종합하면, 징용 배상 문제가 더 이상 한·일 관계 정상화에 장애물이 돼서는 안 된다는 충정과 함께, 이젠 ‘친일몰이’ 정치 선동도 끝내야 한다는 취지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의 역사 및 현실 인식은 여전히 ‘대원군 척화비’ 수준이다. 15일엔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징용 해법 철회 요구 기자회견을 갖는 등 대규모 장외 반일 여론몰이에 나섰다. 12년 만에 한일 정상 셔틀 외교 문을 여는 윤 대통령의 방일을 조공·무능 외교라고 매도하면서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독도까지 내줄 거냐”는 식으로 국민의 반일 감정을 부추긴다. 심지어 일부 단체가 대위변제 방식에 응하려는 징용 피해자나 유가족을 상대로 윤 정부 안에 반대하면 ‘배상금을 플러스 알파로 받을 수 있다’는 식의 유혹까지 한다고 한다. 민주당에 동조하는 생존자 3인은 제3자 변제를 “동냥”이라고 비하하기도 한다. 이런 만큼 16일 일본을 찾는 윤 대통령의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국민 앞에 진솔하게 설명하는 일이 중요하다.
문화일보 사설
03-16 한일 관계 전환점, 역지사지 필요하다

박유하 세종대 국제학부 명예교수
10년 이상 중단됐던 한·일 정상의 교류가 재개되게 됐다. 극심하게 나빠졌던 한·일 관계를 다시 복구시킬 수 있는 중요한 전환 시기가 아닐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여전히 윤석열 대통령의 결단이 갖는 전환적 의미를 폄훼하고 비난한다.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되겠지만, 사태의 핵심인 징용 문제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올바른 판단도 가능하다.
우선, 법률적 차원의 본질을 봐야 한다. 2018년 대법원은 ‘일본 기업’에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징용은 ‘일본 국가’가 주도한 것이었다. 당시 징용은 ‘국민 등록’(오늘의 주민등록)에 기반한 ‘출두명령’으로 시행됐다. 식민지 조선인은 국민 권리를 온전히 보장받지는 못하면서 천황에 충성해야 하는 ‘신민’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신민에게 국민 자격을 부여해 동원한 것이 징용의 핵심이다. 가족에 대한 보상을 징병과 같은 수준으로 하겠다고 약속한 이유이기도 하다. 기업 현장에서 일했지만, 기업과 직접 고용관계에 있지 않았고, 그 고용은 국가를 거친 것이었다. 징용 문제는 일본(국가) 책임을 먼저 묻는 게 본질이다. 기업을 대상으로 배상을 명령한 2018년 판결은 이런 본말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다.
‘역사 문제에 관심이 없고 사죄도 배상도 하지 않는 뻔뻔한 일본’이라는 인식도 냉철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1990년대 이후 일본을 상대로 피해자들의 소송이 일어나면서 일본 사회가 이런 문제에 크게 반응한 사실을 도외시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일본은 징용 문제를 테마로 국민배우가 출연하는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우리 사회의 일본 인식은 그런 모든 것을 망각시키려 한 담론이 만든 인식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상대와 문제를 정확히 이해하는 일이다.
그런데 지금의 일본은 냉담하다. 뻔뻔하거나 사죄 의식이 없어서만은 아니다. 위안부 문제 등을 거치면서 성의와 마음이 짓밟히고 무시당한다는 생각이 누적된 결과다. 한·일 관계가 경색되기 전이던 10여 년 전만 해도 한·일은 징용 문제에서 서로 협조했다. 일본은 징용자 명단을 한국 정부에 제공했고, 유골 찾기 작업에 나섰으며, 봉환식에는 고위급 관료가 참석해 추도사를 읽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도 새로운 목소리를 내야 한다. 김대중-오부치 게이조 선언은 한·일 관계가 좋을 때 나왔다. 4반세기가 지난 오늘의 인식은 오늘의 목소리에 담아야 한다. 갈등과 불화를 넘어선 목소리로서의 가치를 담을 수도 있다.
민주당은 ‘피해자’를 거론하지만, 제3자 대위변제안에 응하겠다는 당사자도 있다. 윤 정부의 해결 방안은 나쁘지 않지만, 일본인들이 이 문제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한 진실한 공감과 지지를 얻지 못한다. 역사 문제 해결에는 당사자의 위로와 치유뿐만 아니라, 국민적 이해가 동반돼야 한다.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 힘겨운 일이다. 좌우로 분열된 역사 인식의 사법화와 정치화를 넘어선 국민적 공통 인식을 만들 수 있는 틀부터 윤 정부가 만들기 바란다. 편향된 주장과 구호와 선동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역사의 당사자와 교감 가능한, 공통의 ‘태도’는 만들 수 있다. 현정부가 어렵게 마련한 이번 전환점이 50년 반공과 30년 반일의 시대를 넘어서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미래’를 만들겠다는 양국 정부가 그 모색을 시작해 주기 바란다.
문화일보
03-16 윤 “일본도 행동을”… 안보·경제 전방위협력 구축

▲1박2일 방일 일정 돌입 1박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6일 오전 성남 서울공항에서 공군 1호기에 올라 환송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도 올해 가을 한국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져 2011년 이후 중단된 한·일 정상 셔틀외교가 12년 만에 다시 이뤄지게 됐다. 연합뉴스
■ 12년만에 한일 셔틀외교 복원
외교·국방협의 재가동 등 의제
반도체 공급망‘시너지’도 기대
윤 “강제징용 해법 대국적 결단
미래지향적 관계 만들자” 표명
오후 정상회담후 공동기자회견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한·일관계 정상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1박2일 일정으로 일본 도쿄(東京)로 출국했다. 윤 대통령은 방일에 앞서 일본 언론과 가진 서면인터뷰에서 “한국의 강제징용 문제 해결 결단에 따른 일본의 걸맞은 행동이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기시다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한·일 양국의 외교·국방 ‘2+2’ 안보정책협의회 재개, 반도체 공급망 강화를 위한 ‘한·일 경제안보대화’ 창설, 문화 교류 확대 등 전방위 협력체제 구축방안을 논의한다. 한국 대통령의 방일은 4년 만이다. 두 정상의 만남은 지난해 9월 미국 뉴욕에서의 만남에 이어 취임 후 두 번째 양자 회담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정상회담에서 안보정책협의회 대화 재개와 북한 미사일 정보 등을 교환하는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재가동이 주요 의제로 다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양국 외교·국방 라인 국장급을 대표로 지난 1998년 시작된 해당 협의회는 2018년 3월을 끝으로 중단됐다.
윤 대통령은 강제징용 배상 해법과 관련한 일본 정부의 행동을 촉구했다. 윤 대통령은 아사히(朝日)·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마이니치(每日)신문 등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강제징용 문제 해결은 한국 정부가 국민을 위해 대국적 차원에서 내린 결단”이라며 “그에 걸맞은 행동이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과 2018년 한국 대법원 판결을 모두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한 결과”라며 “일본도 이러한 생각에 호응해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흔들림 없이 계승하고,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구축해 나가자는 의견을 표명했다”고 밝혔다.
서종민·김선영 기자 rashomon@munhwa.com
03.17 韓 대통령 12년 만의 방일과 日의 유보적 태도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취임 후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해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85분간 회담했다. 한국 대통령이 다자회의가 아닌 일본 총리와의 양자 회담을 위해 일본을 찾은 것은 12년 만이다. 윤 대통령은 “오늘 만남으로 어려움을 겪던 한일 관계가 새롭게 출발하게 됐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도 “미래를 위해 한일 관계에 새로운 장을 열 기회가 찾아왔다”고 했다.
이날 일본 정부는 포토레지스트 등 반도체 소재 3종에 대한 대(對) 한국 수출 규제 조치를 4년 만에 해제했다. 한국은 수출 규제에 대한 대응 조치인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취하했다. 문재인 정부의 파기 선언 이후 조건부 연장 상태였던 한일 지소미아(군사정보보호협정)의 완전 정상화도 선언했다. 이로써 2018년 징용 판결 이후 양국 정부의 대응 조치가 대부분 해제돼 표면적으론 한일 관계가 징용 판결 이전으로 회복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한일 정상회담 후 열린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 뒤 윤석열 대통령에게 악수를 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징용 문제와 관련해 일본 측의 진전된 입장이 나오지 않은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기시다 총리는 공동 기자회견에서 “1998년 10월 발표된 한일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의 징용 해법 발표 직후 발언 그대로다. 1998년 공동선언에 담긴 ‘반성과 사죄’ 내용도 언급하지 않았고 한국의 징용 피해자에 대한 위로 표명도 없었다. 윤 대통령의 결단에 대한 일본의 호응을 요구하는 한국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계속 과거에만 얽매일 수는 없다. 미래로 전진해야 한다. 양국 정부는 한일 경제안보 협의체와 차관급 전략 대화를 비롯해 분야별 소통 채널을 신설하기로 했다. 한일 양국의 미래를 위한 협력 관계를 전방위로 확대하기 위한 조치다. 한일의 경제단체인 전경련과 게이단렌은 피고 기업을 포함한 일본 기업의 참여가 예상되는 ‘미래 파트너십 기금’을 창설했다. 윤 대통령은 “한국의 국익은 일본의 국익과 제로섬 관계가 아니다, 윈윈할 수 있는 국익”이라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앞으로도 양국이 자주 연계해 하나씩 구체적인 결과를 내고 싶다”고 했다.
이번 방일은 미·중 전략 경쟁과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질서의 새판 짜기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뤄졌다. 유엔 안보리가 유명무실화하고 중립국들까지 재무장·군비경쟁 대열에 뛰어들고 있다. 낙오하지 않으려면 자유·인권·법치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우방과 공조해야 한다. 이날 두 정상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빈번하게 상대국을 방문하는 셔틀외교에 합의했다. 윤 대통령의 방일은 한일 관계 정상화의 첫걸음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양국 정상의 만남이 거듭되고 신뢰가 쌓인다면 과거사를 비롯해 이번에 풀지 못한 현안들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3-17 한일, 반도체·배터리·전기차 ‘윈윈 협력’

▲관계개선 ‘악수’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오후 도쿄 총리 관저에서 한·일 정상 공동기자회견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두 정상은 기자회견에서 양국이 경제·안보·외교 등 여러 분야에서 관계 개선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뉴시스
■윤, 전경련-게이단렌 행사 참석
미래산업‘신경제협력 구상’제시
공급망·기후변화 공동대응 강조
강제징용관련 미쓰비시상사 참석
일본 언론“5월 G7정상회의 윤초청”
일 정부“윤 방일, 관계 정상화 큰 걸음”
도쿄=김윤희 기자 worm@munhwa.com
한국과 일본 양국이 반도체와 배터리, 전기차 등 미래 첨단 신산업 부문에서 협력관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와 16일 정상회담에서 한·일 신협력관계 진입을 선언한 데 이어 17일 경제 분야에서는 ‘신경제협력’ 구상을 통한 양국의 윈-윈(Win-Win) 구조를 도출하기로 했다. 일본 정부는 한·일 정상회담에 대해 “윤 대통령의 방일 및 정상회담은 한·일 관계 정상화의 큰 걸음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날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經團連)가 일본 도쿄(東京) 게이단렌 회관에서 주최한 한·일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해 양국 경제인들과 신경제협력 비전을 논의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전 세계가 직면한 복합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 간 연대와 협력이 중요하다”며 “한·일 양국이 공급망, 기후변화, 첨단 과학기술, 경제안보 등 다양한 글로벌 어젠다에 공동으로 협력·대응해 나가자”고 말했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한·일 정상회담에서 디지털 전환·반도체·배터리·전기차 등 미래 첨단 산업 분야에서 상호이익이 되는 한·일 신경제 협력 관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윤 대통령은 전날 전경련과 게이단렌이 함께 발표한 ‘한·일 미래 파트너십 기금’에 대해서도 “이를 토대로 미래 세대 교류가 늘어나고 상호 이해와 협력이 확대된다면 양국 관계가 더 굳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한국 측에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 구광모 LG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등 5대 그룹 총수들이 참석했다. 일본 측에선 도쿠라 마사카즈(十倉雅和) 스미토모(住友)화학 회장, 야스나가 다쓰오(安永龍夫) 미쓰이(三井)물산 회장 등 11개 기업체 인사들이 참석했다. 특히 이날 행사에는 강제징용 피고 기업인 미쓰비시(三菱)중공업과 같은 계열인 미쓰비시상사의 사사키 미키오(佐佐木幹夫) 특별고문이 자리를 함께해 눈길을 끌었다.
한편, 기시다 총리가 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5월 히로시마(廣島)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한국을 초청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NHK 등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다. 다만 마쓰노 히로카즈(松野博一) 관방장관은 “초청국과 관련해서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문화일보
03-17 다시 출발선에 선 한·일, 실천으로 ‘윈윈 미래’ 열어야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16일 정상회담은, 실무 회담 형식이었지만 그 의미는 역사적이라고 할 만하다.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최악인 양국 관계의 정상화 출발점이 됐기 때문이다. 2018년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따른 갈등, 2012년 독도 방문 및 소녀상·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합의 번복 등을 둘러싼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노다 요시히코 총리의 충돌 여파 등을 윤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해결했다는 의미도 크다.
이번 정상회담은 켜켜이 쌓인 장애물을 딛고 양국 관계를 전방위 협력 쪽으로 반전시켰다. 여전히 남아 있는 잠재적 뇌관인 ‘대일 구상권 청구’ 논란과 관련, 윤 대통령은 “구상권이 행사된다면 다시 모든 문제를 원위치로 돌리는 것”이라며 “상정하지 않고 있다”고 단호히 선을 그었다. 윤 대통령은 한일관계를 ‘제로섬’ 아닌 ‘윈윈’이 가능한 관계라고 했는데, 당연한 인식이다. 따라서 이번 회담은, 야당 등의 굴욕 외교 공세가 예상됨에도 안보·경제·미래라는 대의(大義)에 집중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이니셔티브가 돋보였다. 전반적 방향이 옳은 만큼 귀국 뒤 반일 선동을 딛고 국내 여론을 설득하는 한편, 이른 시일 내에 긍정적 결과물이 나오게 할 후속 조치가 중요하다.
일본 반응은 정확히 예상했던 수준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 측이 실망할 필요는 없다. 기시다 총리는 다음 달 지방선거와 중의원 보궐선거를 앞두고 있는 데다, 지금의 한일 관계 악화의 뿌리가 대법원 판결에 있는 만큼 한국이 결자해지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본의 미온적 태도를 잘 활용하면, 국제사회에서 외교적 도덕적 우위를 다지는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원내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반응은 언급할 가치도 없을 정도로 저열하다. 이재명 대표는 17일 “일본에 조공을 바치고 화해를 간청하는 항복식” “숭일(崇日) 논쟁이 벌어질 지경”이라고 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일본의 침략을 걱정할 정도의 나라가 아니고, 극일(克日)과 용일(用日)을 통해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 역량을 갖췄다. 그런데 민주당은 아직도 구한말 죽창가 인식과 약소국 콤플렉스에 빠져 있는 것 같다. 그런 우물 안 개구리 인식으로는, 반일 시민운동을 할 수 있을진 몰라도 집권을 꿈 꿀 수는 없다.
문화일보 사설
03-17 尹-기시다 회담, 적극 외교 초석 놓았다

박영준 국방대 국가안보문제 연구소장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간의 정상회담이 지난 16일 도쿄에서 개최됐다. 2011년 12월 이후 양자 차원의 첫 정상회담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공유하고,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는 양국이 12년 만에 정상회담을 가졌다는 사실 자체가 한·일 관계의 악화 상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회담 직후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기시다 총리는 징용 해법에 관한 한국 정부의 결단과 조치를 높이 평가하고, 역대 내각에서 밝힌 역사 담화를 계승하겠다는 뜻을 재확인했다. 또, 양국이 미래 파트너십 기금을 공동으로 조성해 젊은 세대를 위한 공동 사업을 진행하기로 했다는 점도 소개했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양국 간 갈등 현안이 돼 온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정상화하기로 했음을 소개하고, 일본이 전략품목의 수출 규제 조치를 해제하는 것에 상응해 우리도 세계무역기구(WTO)에 대한 제소를 중단했다는 점을 설명했다. 이어, 양국이 북한의 핵 및 미사일 위협에 대응해 한·미·일 공조 및 한·일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점도 강조했다.
이 같은 정상 간 합의 사항에 대해 일부 시민단체나 정치인은 ‘굴욕외교’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그간 한·일 관계 악화로 인해 안보나 외교 면에서 한국이 국제적 고립에 가까운 상황이었음을 고려하면, 이 같은 합의를 도출한 이번 정상회담은 한국 외교의 정상화 및 국제 무대 복귀를 알리는 신호탄이다.
지난 수년간 위안부 문제나 강제징용공에 대한 대법원 판결 등으로 인해 한·일 관계가 극도로 악화하면서, 일본 내 지한파들 간에도 한국이 ‘국제적 합의를 준수하지 않는 국가’라는 이미지가 확산됐다. 국제사회에서도 한국이 세계적인 국가로 부상했는데도 ‘과거의 역사적 감정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피곤한 나라’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생겼다.
그런 상황에서 윤 정부가 한·일 관계 손상을 방지하면서 동시에 징용 피해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보상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징용 해법을 모색하고,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미래 지향적 양국 관계 건설을 다짐한 것은 한국 외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국제사회에 심어주게 될 것이다. 상대를 악마화함으로써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게 아니라, 성숙한 글로벌 국가로서 미래 지향적 역할을 다하려 하는 한국의 새로운 자세는 오히려 우리 외교에 큰 자산이 될 것이다.
한·일 관계가 악화하던 시기에 국제 안보 질서에는 큰 동요가 있었다. 미·중 간 전략적 경쟁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동맹들을 소다자 동맹으로 재편 중이고, 유럽과 아시아 지역의 동맹국들도 연대시키고 있다. 일본은 미국 주도 쿼드(Quad) 결성에 적극 참가하고 나토(NATO) 회원국들과의 협력도 심화하면서 동맹도 강화하고 자국의 국제적 위상도 증진시켰다. 반면, 한국은 전략적 모호성의 기조 아래 국제정세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은 그간의 소극적 태도에서 벗어나 국제 안보 질서에서 한국의 역할과 위상을 증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번 정상회담을 발판삼아 4월 한·미 정상회담, 5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개최될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한국의 높아진 글로벌 위상이 재차 확인될 것으로 기대한다.
문화일보
03.17 두 원로의 기억 속 일제

윤석열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두고 더불어민주당이 “‘조선이 식민지가 된 것은 구한국이 힘이 없어서’라는 매국노 이완용의 말과 대체 무엇이 다른가”라고 따졌다. 윤 대통령이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한다”고 한 대목을 두고서였다.
조선(대한제국)의 잘못 없이 당한 일인데, 잘못이 있다고 주장하는 건 이완용식이란 논리였다. 민주당은 전국 방방곡곡에 ‘이완용’ 플래카드도 내걸었다.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의 이태 전 기고가 떠올랐다. 계간지 『철학과 현실』에 쓴 ‘해방미로(迷路)’다. 송 교수는 “나는 지금도 그 시대(일제)를 어떻게 정리해야 할 것인가 고민한다… 아무리 역사가 흘러도 과(過)는 말해도 공(功)은 들먹이면 안 된다는 걸까”라며 열 살 때 일화를 털어놓았다. 7월 7석, 동네 어른들과의 대화였다. 일제가 나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어린 그에게 동네 최고의 문장(門長)이 타이르듯 말했다고 한다. 고종 시대 20년, 일제 35년을 산 이였다.
“1910년 합방 전 초근목피로 사는 건 그나마 나은 것이고, 3일에 죽 한 그릇도 먹기 어려워서 태어나는 애들은 얼마 안 돼 죽고, 그런데도 관에서는 이것 내라 저것 내라 제대로 안 되면 잡아가 곤장을 치고, 얼마나 많은 백성이 이놈의 나라 망해라 망해라 했는지 아느냐. 안 살아 보고 안 겪어 본 사람은 모른다. 그런데 일제가 들어와서 제방을 쌓고 저수지를 만들고….”
송 교수는 “만일 일본이 원자탄을 맞지 않았다면 일제는 아직도 계속될 것”이라며 “전야지민(田野之民)의 민심이 일제 편이기 때문”이라고까지 썼다.
공교롭게 원자탄 투하 때 폭심으로 2㎞도 안 되는 곳에 있던 한국인의 술회도 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최장수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김정렴으로, 당시 일본군 오카야마 연대의 선임 견습사관이었다. 그는 2006년 쓴 자서전에서 자신의 일본 육군 예비사관학교 입교에 대해 “일본은 필리핀·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버마·인도 등에 독립을 약속하고 협력을 요청하고 있었다. 따라서 한국도 자치 정도가 아니라 독립을 얻기 위해서는 그에 맞먹는 대가를 지불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만 다른 민족과 동등하게 일본에 대해 발언할 수 있지 않겠는가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피폭으로 생사를 오간 그는 일본이 항복한 8월 15일 진급해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그 무렵 계속되는 고열로 앓을 때 한국인 일등병이 “한국인이 어떻게 높은 사람(소위)이 됐느냐”며 부채질해 주곤 했다고 적었다.
요즘 우리로선 쉽게 듣기도, 상상하기도, 또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얘기다. 그러나 1950, 60년대를 살았던 이들에겐 달랐을 것이다. 주한 미 외교관이었던 그레고리 헨더슨은 ‘중앙 권력을 향해 소용돌이치듯 빨려 들어가는 한국 정치’를 관찰한 것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이런 인상기도 남겼다. “민씨 일파가 지배한 20년 동안 걸출한 지도자가 나오지 않았다. 공백이 된 왕좌 주변에는 처음엔 끝없는 부패로, 그다음엔 점점 외국의 이권과 고문관들로 메워졌다. 이 중 일본인들이 가장 집요했으며, 결국 다른 세력들을 압도했다.” “대일 협력 문제를 놓고 보면 몇몇 확실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협력자와 비협력자 사이에 분명한 경계선을 긋는 것이 사실상 어려웠다.”
누군가 역사를 알지 못하면 일생 어린이로 남아 있게 된다고 했다. 역사의 맥락은 외면한 채 우리의 잘못은 없고, 순 남 탓으로 재구성하고 이를 신봉해도 어린이일 것이다. 과거로부터 배울 게 없으니 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 복잡한 걸 복잡한 대로 이해하길 거부한다? 퇴보다. 언제부턴가 민주당의 태도다.
16일 오랜 만의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도 민주당은 “역사를 팔아서 미래를 살 수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작 미래로 안 가려고 ‘재구성한 역사’를 부여잡고 있는 모양새다. 참 일관됐다.
중앙일보 고정애 chief 에디터
03.18 어려운 국가 외교에 한 줌 고민도 없이 오로지 헐뜯을 궁리만
야권이 거짓과 도 넘는 극언을 동원해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을 비난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의전비서관을 지낸 탁현민씨는 윤 대통령과 기시다 일본 총리가 의장대 사열 중 국기에 인사하는 사진을 올린 뒤 “상대국 국기에 고개 숙여 절하는 한국 대통령을 도대체 어떻게 봐야 하나. 일장기에 경례를 하는… 어처구니없음”이라고 비판했다. 당시 일장기 뒤편에는 태극기가 나란히 있었는데 일장기에만 경례한 것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전형적인 가짜 뉴스였지만 민주당 일부 의원은 이를 퍼 날랐다.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정상 등 다른 외국 정상들도 방일 때 기시다 총리와 함께 자국 국기와 일장기 앞에서 동시에 목례를 했다. 과거 문재인 대통령도 이집트 방문 때 이집트 국기에 고개를 숙였다. 이는 대부분 국가에서 상식에 가까운 의전이다. 탁씨는 의전 책임자를 지냈는데 이 상식적 의전 기본도 모르나. 모른다기보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무조건 상대를 헐뜯으려고 하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의장대 사열 중 양국 국기를 향해 예를 표하고 있다. /뉴시스
정치인만이 아니다. KBS는 뉴스 앵커가 의장대 사열 장면을 설명하면서 “윤 대통령이 일장기를 향해 경례하는 모습을 보셨다. 의장대가 우리 국기는 들고 있을 것 같지 않다”는 황당한 말을 했다. 외국 정상이 방문했는데 의장대가 그 나라 국기를 들지 않고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세상에 어떤 대통령이 남의 나라 국기에만 경례를 하겠나. 나중에 정정하고 사과했지만 무슨 흠집이라도 잡아 헐뜯으려는 생각이 앞서서 상식이 설 자리가 없는 것이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윤석열 정권이 일본의 하수인이 되는 길을 선택했고 영업 사원이 결국 나라를 판 것”이라는 상식 밖 말을 했다. 또 “일본에 조공을 바친다” “항복식 같다” “오므라이스에 국가 자존심과 인권, 정의를 맞바꾼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친일 정상회담” “망국적 야합” “숭일(崇日)”이라고 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한·미·일 안보 협력의 주요 내용인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을 완전 정상화하고 수출 규제도 해제해 경제 협력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한일 재계는 ‘미래 파트너십 기금’도 만들기로 했다. 우리 경제와 안보에 큰 도움이 되는 일들이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나라를 팔아먹고 조공을 바치는 일인가. 징용 해법에 대한 일본의 호응과 사과가 부족했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이 역시 해결될 문제들이다.
국가 간 외교, 특히 한일 관계는 많은 상반된 요소가 얽힌 난제다. 정부가 이 난제를 대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다. 칭찬받을 일도 없지만 욕먹을 일도 없다. 문 정권이 그렇게 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책임이 있는 정부라면 일시적으로 국민 비판을 받더라도 한일 관계 개선을 통해 안보 경제 문제를 풀어야 한다.
야당이 이 기회를 이용해 정부를 비판하면서 정치적 이득을 취하는 것은 어느 나라에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민주당처럼 “하수인” ”매국” “조공” “항복” 등 이치에 닿지 않는 극언을 남발하면서 무엇이든 꼬투리를 잡으려고 식사 메뉴까지 비난하는 경우는 없다. 지금 민주당식이면 일본과 관계 정상화를 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완용’이라고 비난할 판이다. 비판을 해도 그 안에 국가 외교의 어려움에 대한 일말의 고민은 담겨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사실과 합리성을 갖춰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민주당식 비난은 국익과 미래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는 적의에 찬 선동일 뿐이다. 이는 결국 자해적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조선일보
03.18 인구 1위 인도가 기회의 땅

인도의 뉴델리가 세계 외교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올해 초부터 이집트, 독일, 이탈리아, 호주의 정상들이 줄줄이 방문했고, 내일은 일본 총리가 방문할 예정이다. 인도는 올해 G20 의장국이어서 2월에는 재무장관회의, 3월 초에는 외무장관회의가 열렸고, 동시에 상하이협력기구의 의장국이기도 하다. 연초에는 120개 개도국 수뇌들이 참석하는 정상회담(Global South)을 비대면으로 개최했다. 인도-호주-인도네시아, 인도-이스라엘-미국-아랍에미리트와 같은 소다자 협력 네트워크들을 중심으로 외교 네트워크도 탄탄하게 짜 나가고 있다. 미국은 인도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에 중립적 태도를 취하는 것에 대해 속으로는 못마땅해한다. 그러나 20년 가까이 지속해 온 구애를 계속하고 있다. 일본도 과거 아베-모디 총리 간의 돈독한 개인적 우정으로 시작된 깊은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작년 GDP성장률 중국 2배 넘어
미·중 대결 속 안보 중요성도 커져
한국 경제,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
눈을 돌려 인도에 공 쏟아야 할 때

▲선데이칼럼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그것은 인도의 인구가 14억1700만 명(2022년 말)으로 중국을 추월했고, 영토 329만㎢의 대국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잠재력, 민주주의 정치체제, 그리고 미·중 대결 구도 심화라는 세 가지 요인에서 비롯된다.
지난해 대부분의 국가는 코로나 사태에 이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경제 침체를 경험했다. 그러나 인도는 예외였다. 2022년 GDP를 보면 미국 2%, 중국 3% 성장인데 인도는 6.5% 성장했다. 지난해 말 모건스탠리가 발간한 보고서는 4년 후 인도가 일본과 독일을 추월해 세계 경제 3위 국가가 되고, 2030년까지 세계 3대 주식시장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인도가 이처럼 고속 성장을 하며 도약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국제통화기금(IMF) 보고서는 인도가 광범위한 개혁과 디지털화에 성공해서 성장잠재력을 키웠다고 평가했다. 특히 2016년 이후 경제의 구조적 개혁을 달성했다. 금융의 디지털화를 통해 개개인에게 디지털아이디(ID)를 제공하고, 은행 부문을 개혁하여 금융자료 공유시스템을 통합 운용하고 있다. 세금 제도의 디지털화로 세금 납부자 숫자를 늘리고 전산화했으며, 이커머스 개혁, 그리고 규제의 개혁과 단순화 등으로 인도경제의 틀이 더욱 투명해지고 사업하기에 좋아졌다고 한다. 그 결과 중소기업들이 성장하고 경제가 활력을 받고 있다. 그리고 인프라 개선을 위한 중앙정부의 인프라 투자도 2013년 GDP의 2.8%에서 2022년에는 3.5%까지 증가했다. 대외적으로도 인도는 13개의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다.
이러한 내부 개혁에 국제정세 변화가 인도의 부상을 돕고 있다. 중국은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도광양회를 버리고 중국몽을 추구하며 공격적 외교로 전환했다. 이에 대해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 중국과의 관세전쟁을 전후해 본격적인 대결정책으로 선회했으며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들과의 연합전선을 통해, 보다 체계적으로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이처럼 미·중 대결이 심화하자 안보에 대한 고려가 경제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미국 및 서방세계의 기업들은 리쇼어링, 프렌드쇼어링으로 중국을 떠나고 있다. 문제는 중국 아닌 다른 대안 투자처가 어디냐인데, 때마침 민주주의 국가이자 대규모 시장을 가지고 있는 인도가 매력적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안보와 경제가 함께 엮이어서 돌아가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한국 경제는 권위주의 국가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중국과의 교역액이 미국과 일본과의 교역액을 합친 것과 맞먹는다. 이전처럼 미·중 관계가 잘되어 한·중 경제협력이 지속될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그렇지가 못한 현실이다. 우리 반도체 기업들의 중국투자가 어려움에 봉착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제 한국도 미래에 대비해 경제관계를 다변화하고 인도에 공을 쏟아야 한다. 현대차, 기아, 삼성전자, LG전자, SK, 효성, 포스코 등 국내기업들도 인도 투자에 열심이다. 앞으로도 양국이 협력 가능한 산업 분야가 다양하게 널려 있다. 그러나 이것을 받쳐 줘야 할 한·인도 외교 관계는 그냥 그대로다. 2018년 인도 국빈 방문 시 문재인 대통령은 한·인도 관계를 주변 4강 수준으로 격상하겠다고 말했으나 실제 노력이 뒤따르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도 그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최근 필리핀의 외교가 주목을 끈다.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은 전임자의 친중 노선을 버리고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필리핀의 군사기지 네 곳을 추가하여 미군이 이용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일본, 호주 그리고 영국과의 양자 협력관계를 심화시키며 전방위 외교 협력 네트워크를 짜고 있다.
한국의 경제 규모는 필리핀보다 훨씬 크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러한 경제 규모에 걸맞은 시야와 전략적 마인드를 갖고 미래에 대비하는 외교를 해야 하지 않을까. 일본과의 관계회복마저도 국민감정이 앞서 참으로 힘들다. 오로지 미국에 올인하고 수많은 다양한 국가들과 전략적으로 촘촘한 협력 네트워크들을 짜면서 외교적 입지를 강화할 의지와 실천력이 안 보인다. 경제 10위 대국이라면 외교도 그 수준에 맞추어야 한다. 인도는 그러한 한국의 미래지향적 선진 대국 외교를 펼쳐 나갈 핵심 대상국이자 출발점이다.
중앙일보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전 외교통상부 장관
03-20 사실 왜곡하고 안보·경제 팽개친 민주당 ‘反日 괴담’
야당이 정부 정책을 견제하고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다. 그러나 합당한 근거와 합리성을 갖춰야 하고, 국익 우선 의무(헌법 제46조)를 지켜야 하는 등 한계가 분명하다. 군소 정당이 아니라 차기 집권을 노리는 정당이라면 더욱 그렇다. ‘국내 정치는 국경에서 멈춘다’는 격언처럼 대부분 민주국가에서는 정상 외교에 대해선 가급적 비판을 자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일본 방문 및 대일 정책에 대한 더불어민주당의 주장은 괴담(怪談)이라고 할 만큼 사실 관계를 왜곡하며, 현재의 국제 정세를 도외시하고 안보·경제를 위해 필요한 일도 내팽개친다는 점에서 안타깝다. 윤 정부 외교에도 비판받을 점이 있다. 그러나 민주당 주장은 ‘무조건 반일(反日)’에 가깝고, 그대로 이행하면 미국·일본 등 자유 진영과 멀어진 외톨이가 되고 국가 미래도 위험에 처한다.
북한 김정은은 20일에도 한국을 겨냥한 핵탄두 폭발 실험까지 했다며 위협을 계속했다. 안보를 지키기 위해 미국·일본과의 협력이 긴요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일본과의 지소미아 복원은 아주 초보적 단계의 절차다. 그런데 이재명 대표는 “일본의 군사대국화 동조” “자위대가 다시 한반도에 진주하지 않을까 두렵다”고 했다. 며칠 전엔 “자위대 군홧발”이라는 자극적 표현도 사용했다. 안보에 대한 초보적 지식만 있어도 이것이 침소봉대의 궤변임을 알기 어렵지 않다. 징용 배상 3자 변제에 대해서도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뒤집은 것”이라고 호도한다. 민주당이 ‘문희상안(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3자 변제는 한일청구권협정과 대법원 판결의 불일치를 해소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윤 정부가 “일본 하수인의 길을 선택했다”는 것도 혹세무민이다.
윤 대통령 방일은 한일 관계를 주도적으로 풀고, 더 안전하고 번영된 미래를 위한 조치다. 김대중 대통령도 그렇게 했다. 미국 등 국제사회는 물론 일본에서조차 ‘윤석열식 대일 햇볕정책’이라는 평이 나온다. 민주당은 국제 정세와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이 대표 사법 리스크를 물타기 하기 위한 강공이라는 비판도 새겨 듣기 바란다.
문화일보 사설
03-20 지소미아 반대는 北 핵협박 거드는 짓

박휘락 국민대 특임교수
한·일 양국은 3년 이상 중지됐던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지난 6일 정상화했다. 지소미아는 전 세계가 ‘일반적으로(G: General)’ 사용하는 평범한 협정으로서, 군사정보 공유 시 제삼자 부제공이나 규정에 따른 비밀관리 등을 약속하는 행정적 조치일 뿐이다. 우리는 우방은 물론 러시아·폴란드·불가리아·헝가리 등 과거 동유럽권 국가들과도 이 협정을 체결한 상태다.
이 협정이 정치적 쟁점으로 비화한 것은 오로지 오해와 루머 때문이다. 한·일 양국은 2011년 1월 북핵 정보 공유 차원에서 체결에 합의한 후 2012년 6월 29일 서명하려 했지만, 야당과 시민단체에서 ‘을사늑약의 망령’ ‘일본에 기밀 갖다 바치는 일’이라며 반대함으로써 취소됐었다. 2016년 11월 23일 체결 때에도 야당은 국방장관 해임을 결의하면서까지 반발했다. 2019년 8월 일본의 무역 제재에 반발해 지소미아를 중단시킨 데도 이런 오해가 작동하고 있었다. 이제 자문해 보자. 지소미아 체결 이후 지금까지 우리의 주권이 일본에 의해 훼손됐거나 우리의 군사기밀이 일본으로 강제 유출된 사례가 있었는가? 주권침해 협정이라면 왜 세계 대다수 국가가 활용하겠는가? 이런 유치한 오해와 루머는 이제 일소돼야 한다.
이제 공은 국군으로 넘어왔다. 군은 일본과의 적극적 정보 공유를 통해 북핵 억제 및 대비태세를 강화함으로써 지소미아의 필요성을 입증해야 한다. 북한 또는 북핵에 관한 한·일 양국 또는 한·미·일 간의 긴밀한 정보 공유를 일상화해 북한의 일거수일투족을 정확히 파악하고, 효과적인 대응책을 수립해야 한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한·일 또는 한·미·일이 그 △고도 △사거리 △궤적 △탄착지점 △비행 형태 등을 분석해 즉각 교환함으로써 일치된 정보를 국민에게 보고하고,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한·일 양국은 동해에서 활동하는 북한의 선박·잠수함·항공기 등을 치밀하게 추적하면서 필요하면 대응해야 하고, 북한의 사이버 공격도 함께 차단해야 한다. 이런데도 한·일 지소미아를 지지하지 않을 순 없다.
이번 지소미아 정상화는 북핵 대응을 위한 한·일과 한·미·일 안보 협력의 마중물이 돼야 한다. 북한은 한국을 ‘의심할 바 없는 명백한 적’으로 규정하면서 대남 공격용 전술핵무기 대량생산을 공언했고, 핵무기의 ‘선제적 사용’을 협박하고 있으며, 연일 미사일 발사로 위협하고 있다. 그런 만큼, 자강(自强)에 진력함은 물론 대외 협력도 강화해야 한다. 일본도 한국만큼 심각하게 북핵 위협에 노출되는 만큼 협력의 효과는 클 수밖에 없다. 나아가 한·일 안보 협력은 한미동맹의 효과적 작동에도 필수적이다. 유사시 한국 지원을 위한 미국의 주요 공군과 해군력이 일본 내 미군기지에 배치돼 있고, 일본에 유엔군사령부의 7개 후방기지가 있어 한반도 유사시 미국과 세계의 지원을 보장하게 돼 있다. 한반도 유사시 병참기지를 자임하는 일본과의 협력을 피해서야 되겠는가?
역사를 잊어선 안 된다. 그러나 지금은 북핵 위협 대응이 시급하다. 효과적 북핵 대응책은 논의조차 않은 채 한·일 안보 협력에 반대하는 것은 안보 책임 회피다. 모두 현 안보 상황의 엄중함을 직시하며 한·일, 나아가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에 적극 동참해야 마땅하다.
문화일보
03-20 성우회 “지소미아 정상화,북핵 위협 무력화 가장 효과적 전략적 선택”
예비역 장성모임 "한미정상회담 국익 부합 미래지향적 방향"
한미동맹재단·주한미군전우회 "지소미아 정상화 환영"
예비역 장성 모임인 대한민국 성우회(회장 이한호 전 공군참모총장)는 20일 "굳건한 한미동맹의 바탕 위에 한미일 안보 협력을 강화하고 한일간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북한의 위협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적 선택"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의 한일정상회담이 국익에 부합해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성우회는 ‘육·해·공군 및 해병대 성우회 회원’ 명의 입장문에서 "과거에 매몰된 맹목적인 반일 감정은 글로벌 외교 무대에서 고립을 자초하고 국익을 저해하는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며 "더 큰 경제성장을 이루고 국제무대에서 선진국으로 우뚝 설 수 있을 때 과거사의 아픔을 치유해 나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신냉전 시대라 할 만큼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패권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인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 간의 안보협력과 경제발전을 함께 이룩해나가는 것이 우리의 국익에 부합하는 미래지향적 방향"이라고 덧붙였다.
성우회는 "이번 정상회담은 일부 우려와 반대가 있었음에도 불구, 국익을 최우선에 둔 미래지향적 결단이었다"며 "새로운 한일 관계가 시작된 지금부터 한일 양국은 지소미아(GSOMIA·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정상화, 수출규제 해제와 같은 단편적인 조치들을 넘어 안보, 외교,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상호 협력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미래지향적 관계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 19일 한미동맹재단과 주한미군전우회는 한일 정상이 발표한 지소미아 정상화 결정을 환영하고 지지한다고 밝혔다. 두 단체는 "지소미아 정상화가 한일 양국의 민감한 군사정보 교환을 촉진함으로써 지역 안보를 보장하는 중요하고 긍정적인 조치가 될 것임을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2016년 체결한 한일 간 첫 군사협정인 지소미아는 2급 이하 군사기밀을 공유하는 데 있어 보안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사항을 담고 있다.
문화일보 정충신 선임기자
03-21 北 두둔 시진핑-푸틴 독재 연대와 더 중요해진 자유동맹
거대한 국가를 이끄는 두 독재자가 손을 맞잡고 협력을 다짐하는 모습은 국제 정세가 더욱 불안해질 것임을 예고한다. 이들 국가와 이어진 한반도의 정세는 더욱 위험에 빠질 것이 분명한 만큼, 한국에도 발등의 불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일부터 러시아를 국빈방문 중이다. 시 주석은 모스크바 도착 성명이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회동 등에서 “중·러의 전략적 협력 청사진을 그리겠다” “러시아와 함께 세계질서를 지키겠다”고 했다. 두 독재자는 상대국 매체에 교차 기고한 글에서 “한 나라가 국제질서를 좌지우지해선 안 된다” “미국의 러·중 저지 정책이 격렬해지고 있다”며 반미 연대를 분명히 했다.
시진핑과 푸틴은 국제 평화와 유엔헌장을 강조했지만, 사실과 다른 거짓말일 뿐이다.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사실은 어떤 경우에도 합리화할 수 없다. 푸틴은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전범으로 기소됐다. 이런데도 국빈방문해준 시진핑을 향해 “러·중이 바위처럼 어깨를 맞대고 있다”고 환대했다.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 중재 뜻을 드러내며 12개 항을 발표했는데, 핵심은 러시아 합병지를 인정하는 ‘현상 동결’ 휴전이다. 얼핏 보면 6·25전쟁 휴전과 흡사하지만, 결코 그런 일이 일어나게 놔둬선 안 된다. 침략전쟁에 면죄부를 주고 합리화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중국과 러시아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 제재를 일축했다. 시진핑은 “유엔헌장에 기반해 세계질서를 수호하겠다”면서도 김정은의 뒷배 노릇을 계속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가치동맹이 더 절실해졌다. 오는 5월 윤석열 대통령의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 의미도 더 커졌다.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의 안보협력도 강화해야 한다. 캐나다는 한·미·일이 함께 하는 신(新)쿼드를 제안했고, 미·영·호주 3국의 핵잠수함 동맹인 오커스에 한·일을 추가하자는 논의도 있다. 북핵 위협에 맞서기 위해서도 자유동맹 강화에 한국이 앞장서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3-21 한미일 ‘철통 공조’가 북핵 막는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김정은 800m 상공 핵탄 실험
한미 연합훈련이 무섭기 때문
북 방공망 및 기지 초토화 훈련
FS훈련 그만큼 무섭다는 반증
북한은 핵무기 내려놔야 살길
한미일은 MD 공유 추진해야
북한이 김정은 참관 아래 가상 전술핵미사일을 쐈다고 20일 발표했다. 800㎞를 날아갔다니 한반도 전역을 사정권에 두고 있음을 과시한 것이다. 또, 800m 상공에서 폭발시켜 파괴력을 극대화했다고 한다. 핵무기는 지표면에서 터트리면 방사능 낙진이 최대화하고, 고고도에서 터트릴 경우 전자기파(EMP) 효과가 극대화한다. 적당한 높이의 상공에서 터트리면 충격파에 의한 파괴력이 가장 강해진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핵폭탄은 모두 550m 상공에서 폭발했다.
북한이 핵미사일 가상 발사 훈련을 한 직후 동해 상공에 미국 본토에서 날아온 B-1B 폭격기 2대가 미·일 연합 공군 전투기의 호위를 받으며 나타났다. B-1B의 비행 과정을 보면 하나의 거대한 항공 폭격작전이 그려진다. 미 본토에서 이륙한 B-1B들은 본토 상공에서 공중급유를 받고, 동해 진입 직전 또 공중급유를 받았다. 1만1000㎞를 비행할 수 있는 B-1B가 2번이나 급유를 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무기를 많이 탑재했다는 것이다. B-1B는 최대 24발의 스텔스 순항미사일을 탑재한다.
가장 먼저 호위비행을 시작한 주일미군 F-16C는 적 레이더기지 전문 파괴 기체다. 공중전 전문기인 일본 F-15J의 호위 속에 B-1B가 쏜 수십 발의 스텔스미사일로 북한 방공망을 파괴하고, 살아남은 일부 레이더와 지대공미사일을 미군 F-16C가 확인, 파괴한다. 이후 한국 공군의 F-35는 적 후방까지 들어가 핵미사일 기지에 벙커버스터를 꽂아 넣는다. 이어 공군 KF-16은 북한의 탄약고나 유류 저장고 등을 폭격해 전쟁 수행 능력을 말살시킨다. 끝으로, 일본 규슈에서 날아온 일본 F-2전투기는 전문 대함 타격기로 북한의 동맹인 중국 해군 전투함들의 위협을 억제하며 B-1B를 괌으로 안전하게 귀환시킨다. 북한 전략시설들은 단 하루 만에 완전히 초토화되는 것이다. 참으로 5년 만에 미군 폭격기와 한·미·일 공군의 연합작전이 제대로 실시된 순간이다.
현재 진행 중인 한미 연합훈련 ‘자유의 방패’를 보면 김정은이 저렇게 하루가 멀다 하고 미사일을 쏘는 것이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다. 그만큼 무섭기 때문이다. 지난 2월부터 진행 중인 각종 한미 연합훈련들의 훈련 장소와 참가 전력들을 보면 “이것은 분명히 노동당 중앙당사 타격이다” “여기는 평양 순안공항이네” “와, 북진까지!” 이런 탄성이 절로 나온다.
김정은 참수작전 훈련인 ‘티크나이프’에서 한미 특수부대는 AC-130J 등 첨단전력을 총동원해 대규모 공중강습 작전을 통해 김정은을 제거·체포하는 훈련을 했다. 그 후 필자는 좀 불안했던 마음이 있었는데, ‘쌍매훈련’에서 진행한 ‘한미 연합 비상활주로 이착륙 훈련’을 보며 무릎을 탁 쳤다. 불안했던 마음은 참수작전을 위해 북한에 침투한 특수부대원 수백 명이 어떻게 돌아오느냐는 것이었는데, 비상활주로 이착륙훈련이 그 답을 줬다. 경남 창녕의 비상활주로에서 실시한 이 훈련에 한·미 공군은 특수전 수송기와 A-10공격기를 참가시켰다. A-10공격기의 화력 지원 속에 특수전 수송기들이 평양 순안공항에 긴급 착륙해 참수작전부대를 태워 오는 것이었다. ‘자유의 방패’ 훈련에서는 화생방 상황에서의 전투훈련을 하며 생화학무기를 사용할 북한과의 실전적 전투훈련을 한 한미연합군은 임진강에서 도하훈련을 했다. 남한강도 아니고 임진강이라니, 바로 북진이다.
5년 만에 재개되는 제대로 된 한미 연합훈련을 보며 김정은은 오금이 저릴 것이다. 자신을 체포하고 북진하는 한미연합군! 그 불만을 미사일 난사를 통해 해소하려는데, 그건 다시 한·미·일 삼각 공조를 극대화하는 독으로 돌아간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의 복원으로 북한 미사일에 대한 정보가 실시간 공유된다. 앞으로 한일 군수지원협정도 체결해 전쟁 지속 능력을 극대화해 나가야 하고, 북한 미사일을 원천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한·미·일 MD체계 공유로까지 발전시켜야 한다. 북한은 하루가 멀다 하고 가상 핵미사일을 쏘며 우리를 위협하는데, 동맹·우방과 공조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결심을 주저해선 안 된다. 김정은은 핵을 내려놔야 살고, 북한 핵의 공격 대상인 한·미·일은 뭉쳐야 산다.
문화일보
03-21 尹 “한·일관계 방치, 대통령 책무 저버리는 것”
윤 대통령, 국무회의서 관계개선 강조
지소미아 정상화 일본에 서면통보
야당 ‘굴욕외교’ 공세에 정면돌파
“주60시간이상 근로, 건강 무리”
민주 “한일정상회담 국조 추진”
윤석열(얼굴) 대통령은 21일 “정치적 이익을 위해 한·일관계를 방치하는 것은 대통령 책무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일 신협력 관계 구축을 위한 한·일 정상회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이 일제 징용 피해자 3자 대위 변제 해법을 놓고 ‘굴욕 외교’라고 주장하면서 총공세로 나서자 윤 대통령은 직접 국민에 이해를 구하는 정면 돌파에 나섰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열고 “전임 정부는 수렁에 빠진 한·일관계를 그대로 방치해 그 여파로 양국 국민과 재일동포들이 피해를 입고 양국 안보와 경제는 깊은 반목에 빠지고 말았다”며 “저 역시 눈앞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편한 길을 선택해 역대 최악의 한·일관계를 방치하는 대통령이 될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저마저 적대적 민족주의와 반일 감정을 자극해 국내 정치에 활용하려 한다면 대통령으로서 책무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국무회의 모두발언은 방송으로 생중계됐다.
윤 대통령은 “우리 사회에는 배타적 민족주의와 반일을 외치면서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이 엄연히 존재한다”고도 말했다. 윤 대통령은 “안보,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논의를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며 화이트리스트 복원 지시, 외교·경제 당국 간 전략대화 및 협의체 복원, 한·일 경제안보대화 출범 구상을 밝혔다. 정부는 이날 오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GSOMIA) 정상화를 일본 측에 서면으로 통보했다. 이에 따라 윤 대통령이 한·일 정상회담에서 밝혔던 지소미아 정상화 선언 조치가 마무리됐다.
민주당은 한·일정상회담에 대한 국정조사 추진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신(新) 을사조약에 버금가는 대일 굴욕외교를 절대 용납하지 못한다”며 이같이 전했다. 한편 윤 대통령은 논란 중인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과 관련, “주당 60시간 이상 근무는 건강보호 차원에서 무리라고 하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김윤희 기자 worm@munhwa.com
03-23 한국, 유엔 북한 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 5년만에 복귀

▲한미 해병대‘원팀’맞손 한국과 미국 해병대 수색팀이 22일 경북 포항시 북구 한 훈련장에서 공중 강하를 위한 전술토의를 한 뒤 손을 맞잡고 결의를 다지고 있다. 연합뉴스
‘서해피살·강제북송’반영 이어
북한 반동사상배격법 내용도 추가
한국이 올해 상반기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채택될 북한인권결의안에 5년 만에 공동제안국으로 복귀했다. 이번 결의안 초안에는 문재인 정부에서 이뤄진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과 탈북 어민 강제 북송과 관련된 내용도 포함됐다.
23일 외교가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 21일 스웨덴이 유럽연합(EU)을 대표해 제52차 유엔인권이사회에 초안을 제출한 북한인권결의안에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했다. 전임 정부인 문 정부는 남북 대화를 중시하며 지난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연속 공동제안국에서 빠졌다. 이번 결의안 초안엔 “북한 주민들의 복지와 식량에 대한 접근보다 핵무기·탄도미사일 추구에 재원을 점점 더 전용하는 국가 정책과 관련해 북한을 규탄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북한이 외부문화 유입 차단 목적으로 실시 중인 반동사상문화배격법과 관련해 “온·오프라인에서 사상·양심·종교·신념의 자유와 의견·표현·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이러한 권리를 억압하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포함한 법과 관행을 재검토할 것”을 촉구했다.
초안에는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 탈북 어민 강제 북송 사건과 연결돼 해설될 만한 내용이 포함됐다. 외국인에 대한 고문, 즉결 처형, 자의적 구금, 납치 등을 우려하는 기존 조항에 “유족들과 관계 기관에 (피해자의) 생사와 소재를 포함한 모든 관련 정보를 공개할 것을 북한에 촉구한다”는 내용이 더해졌다.
이 밖에 “북한으로 송환되는 북한 주민들이 강제 실종, 자의적 처형, 고문, 부당한 대우 등을 포함한 그 어떤 인권 침해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는 문구는 지난 2019년 탈북 어민 강제 북송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들 내용은 지난해 말 유엔총회 결의안에 처음 명시된 바 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말 유엔총회에 제출된 북한인권결의안에도 4년 만에 공동제안국으로 복귀했다.
김유진 기자 klug@munhwa.com
03-24 미국은 中 틱톡을 안보 위협 규정, 한국도 대책 세워야
미국 의회와 정부가 중국의 ‘짧은 동영상 공유 플랫폼’인 틱톡을 안보 위협으로 규정하고 칼을 빼 들었다. 23일 열린 하원 청문회에서는 “틱톡은 중국공산당의 미국 조종기구”라는 주장이 제기됐고,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은 하원 외교위원회에 출석해 틱톡을 “안보 위협”이라고 밝혔다. 백악관은 지난달 연방정부 전자장비와 시스템에서 틱톡 삭제 지침을 내린 바 있는데, 이제 민간 분야로 확대하는 등 전면 대응할 조짐을 보이는 것이다.
미국이 틱톡 퇴출 초강수를 뽑아 든 것은 인구 절반에 가까운 1억5000만 명이 사용하는 틱톡의 모기업인 바이트댄스가 중국 기업이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이 가입자 정보를 들여다보고, 알고리즘을 조작해 공작에 이용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미 유럽연합(EU)과 캐나다, 일본도 안보상의 이유로 정부 공용 기기에서 틱톡 사용금지령을 내렸다. 제2 화웨이 사태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한국에서도 틱톡은 K팝 챌린지 등으로 젊은층에 인기가 많고, 가입자도 1000만 명이 넘는다. 틱톡 한국법인은 2020년에 아동 개인정보 6000여 건 무단유출로 방송통신위원회 제재를 받은 바 있다. 그런데 지난해 아예 유한책임회사로 전환, 외부감사 공시의무를 회피하고 실적도 미공개하는 불투명한 회사가 됐다. 문재인 정부는 화웨이 사태 때 “기업이 결정할 일”이라며 국내 진출을 허용해 논란이 됐다. 그렇게 안이하게 대응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미국 일본 등과 공조하면서 틱톡 대책을 서둘러야 할 때다.
문화일보 사설
03.25 민주당은 한·일 문제 거론할 資格 없다
역사 前進 가로막는 건 失手보다 대통령 無責任
이재명 대표, 박정희 담화문·김대중 일본 국회 연설문 읽어보라
사회부 기자 생활 몇 년 하다 1979년 정치부로 옮겨 맡은 첫 임무가 외교부 담당이었다. 그 무렵 한국 외교 무대는 미국·UN·일본 딱 세 곳이었다. 중국·소련과 외교 관계를 맺기까지는 더 기다려야 했다. 그때도 일본 문제는 ‘사죄’와 ‘사과’라는 단어와 한 묶음으로 붙어 다녔다.
‘사죄’와 ‘사과’ 뒤치다꺼리하다 외교부를 떠났다가 1983년 외교부로 돌아왔더니 여전히 ‘사죄’와 ‘사과’라는 두 단어가 버티고 있었다. 계기는 나카소네(中曽根康弘) 일본 총리 한국 방문이었다. 총리 취임 후 첫 방문국은 미국이라는 일본 정치의 관례를 깨고 한국을 먼저 방문했다.
미국이 일본에 경제대국에 걸맞은 안보 기여(寄與)를 재촉하던 참이었다. 한국은 이 분위기를 타고 일본에 40억달러 차관 제공을 요구했다. 나카소네는 다소 무리인 듯한 이 요구를 받아들였다. 다가올 미·일 정상회담에서 일본 입지(立地)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예상대로 레이건-나카소네 회담은 큰 성공을 거뒀고 미·일 동반자 시대를 열었다. 이때도 무슨 ‘단어’로 과거사를 ‘사과’하느냐가 막판 골칫거리였다.
도쿄특파원 시절인 1990년 5월 노태우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면서 ‘사죄’와 ‘사과’라는 두 단어를 다시 만났다. 올림픽 성공 후 한국을 보는 일본 눈길이 크게 달라지던 때다. 재일교포 권리 보호 등 풀어야 할 문제도 여럿이었다. 그런데도 천황이 무슨 단어로 과거사를 사과하느냐 하는 문제로 막판까지 줄다리기를 벌였다. 산통(産痛) 끝에 태어난 게 ‘통석(痛惜)의 염(念)’이라는 낯선 표현이다. 일본어 사전에는 ‘대단히 슬프고 애석해한다’는 뜻으로 나와 있다. 한국 외교장관은 “ ’뼈저리게 뉘우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느냐’고 묻고 일본 측 반응이 없자 이 표현이 확정됐다.
그러고 8년 후 편집국에서 또 김대중-오부치(小渕恵三) 선언을 지켜봤다. ‘일본이 식민지 지배로 한국 국민에게 큰 손해와 고통을 안겨준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통절(痛切)히 반성하고 마음으로부터 사죄한다’는 것으로 ‘사죄’와 ‘사과’는 정점(頂點)을 찍었다.
1970년 12월 브란트 서독 총리는 바르샤바 유태인 희생자 묘비에 꽃을 바치다 풀썩 무릎을 꿇었다. 이 장면은 ‘브란트는 무릎을 꿇었으나 독일 양심(良心)은 우뚝 섰다’고 찬사를 받았다. 1985년 히틀러 패망(敗亡) 40주년을 맞아 바이츠제커 서독 대통령은 ‘죄가 있든 없든, 젊은이든 나이 든 사람이든 (과거에 저지른) 야만성을 기억하지 않으면 (미래에) 다시 야만성에 감염될 수 있습니다’라고 서독 국민을 설득했다. 이 연설문은 세계 각국에서 100만부 이상 팔렸다. 이 현장을 지켜보고도 독일 역사 대가(大家)인 영국 케임브리지대 학장은 ‘독일은 과거를 진지하게 반성하지 않는다’고 했다.
‘독일을 너무 사랑하기에 독일이 하나(통일)인 것보다 두 개(분단) 있는 게 좋다(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프랑수아 모리아크)’던 나라가 프랑스다. 그런 프랑스 대통령도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자 독일 통일을 받아들였다.
‘독일을 믿으려면 앞으로 다시 40년이 더 필요하다’며 독일 통일에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인물이 대처 영국 총리다. 대처는 훗날 회고록에서 ‘내 외교 정책의 단 하나 실책은 독일 통일에 반대한 것’이라고 인정했다. 이 총명한 정치가도 ‘역사의 덫’을 비켜가지 못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65년 한일회담 조인 다음 날 ‘한일 국교 정상화가 어떤 결과를 낳느냐는 우리의 주체 의식과 자세가 얼마나 굳건하냐에 달렸다. 누구든 사리사욕(私利私慾)을 앞세우면 이 조약은 제2 을사조약이 되고 말 것’이라고 했다. 일본 배상금과 청구권자금을 받은 나라 중 한국 혼자 성공한 데는 이런 각오와 다짐이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덩샤오핑(鄧小平) 전기를 쓴 하버드대 교수는 일본 국민 마음을 연 외교 성공 사례로 덩과 김대중 대통령 방문을 꼽았다. 김 대통령은 일본 국회에서 ‘외환위기 때 세계 어느 나라보다 많은 도움을 준 일본에 마음으로부터 감사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자신감 없으면 고맙다는 말도 못 하는 법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그린 일본 그림에는 서두르다 서툴게 처리된 부분도 눈에 띈다. 그러나 종기를 뭉개고 뭉개다 터뜨리고 만 전임자(前任者)의 무책임과 비교할 허물은 아니다. 역사는 ‘실수’는 용납해도 ‘지각’은 용서하지 않는다고 한다. 민주당 출신 전임자는 지각생이 아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역사의 결석생(缺席生)이었다.
조선일보 강천석 고문
03.27 한일 협력체제 구축은 선택 아닌 필수

김태우 前 통일연구원장, 前 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윤석열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 및 한일 정상회담을 둘러싼 찬반 논란과 시위로 나라가 시끄럽다. 사안의 민감성 때문인지 ‘묻지마 찬성’ ‘불만족스러운 찬성’ ‘결사반대’ 등 반응도 각양각색이다. 모든 것을 종합하면 필자는 ‘불만족스러운 찬성파’에 속하지만, ‘결사반대자’ 중에는 나라의 안위나 국익은 안중에 두지 않고 ‘친일몰이’를 통해 정파적 이익을 추구하거나 차제에 대한민국을 흔들어 보겠다는 ‘위험한 사람’도 일부 섞여 있음을 감지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해, 미래를 향한 한일 안보·경제 협력 체제 구축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불만족스러운 부분은 추진 과정에서 개선해 나가야 할 대상일 것이다.
우선, 사전 여론 조성 과정을 생략한 우리 정부의 성급한 추진과 선제적 양보, 한국의 감성적 접근을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성적 계산으로 대응하는 가해국 일본의 사무적인 자세, 식민지배 사과에 대한 일본 정부의 인색함, 가해자 일본 기업들의 야속한 침묵 등이 불만스럽다. 그래서 “왜 일본의 직접 사과가 없는가” “왜 한국 기업들이 일본 기업을 대신해서 배상해야 하는가” 등 당연한 볼멘소리들이 들린다.
대안도 없이 묻지마 식 맹비난을 퍼붓는 사람들도 있다. 이를테면 ‘그때 그 천주교 사제들’은 또다시 거리로 쏟아져 나와 한일 협력을 ‘매판·매국’이라고, 그리고 한·미·일 안보 협력을 ‘일본을 위한 한국 만들기’라고 비아냥거리면서 “대통령에게 역사적 퇴장을 명한다”며 ‘엉뚱한 포효(?)’를 하고 있다. 또한, 양국 간에는 독도, 과거사 등 일순간 관계 개선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는 지뢰들도 있다. 그런데도 한일 양국에는 협력해야 하는 이유가 훨씬 더 많으며, 그중 핵심은 안보 문제다.
북한은 지난해 43회에 걸쳐 모두 103발의 각종 미사일을 쏘았고, 올해에도 ‘자유의 방패(FS)’ 연합훈련을 시비하면서 21발을 발사했다. 한미동맹 이완과 유사시 미군 증파 차단이 목적인 대미용과 한국을 군사적으로 압도하는 것이 목적인 대남용 무기들을 동시에 개발하는 이중(two-track) 전략을 구사하면서 그동안 닦아온 핵 실력을 과시했다. 특히, 최근의 대남용 무력시위는 꽤 충격적이다. 사일로(silo) 발사 탄도미사일, 해일을 일으키는 수중 핵어뢰 등 국군의 선제와 방어를 무력화하는 공격 수단들을 내보였고, 800m 상공 기폭실험을 통해 지상에 대한 핵무기의 파괴살상력을 극대화하는 시늉도 보였다. 이렇듯 중국 팽창주의와 가중되는 대륙으로부터의 안보 위협 그리고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된 북한 김정은의 핵 위협은 ‘친일-반일’ 논쟁이나 하고 있을 여유를 도무지 허락하지 않으며, 일본이 경우를 모르는 나라도 아니다.
자고로 안보는 ‘아파트 외벽’과 같다. 외벽 안에는 행복을 나누고 쉼을 즐기는 편안한 공간이 있지만, 바깥에는 삭풍이 몰아친다. 외벽이 무너지면 행복도 쉼도 번영도 시국미사도 없다. 안보를 위해 필요하다면 한미동맹에 한일 안보 공조를 더해 북쪽으로부터의 위협에 함께 대처해야 하며, 이런 의미에서 이번 정상회담이 도출한 안보 관련 합의들이 의미하는 성과는 절대 가볍지 않다. 한일 관계 정상화와 관련해 국민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불만족스러움’과 ‘불가피성’을 구분하는 냉철함이다.
문화일보
03-31 한미일 ‘3국 핵 공유’ 추진 필요하다

이미숙 논설위원
우크라戰 이후 核 위협 극대화
日선 아베식 核 공유 재론 기류
그런 방안 확장하면 일석삼조
동북아 핵 지정학 대변동 국면
북·중·러 협박 맞서기 위해선
확장억제 넘어 핵공유 불가피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1954∼2022) 전 총리를 둘러싼 논란은 타계 후에도 현재진행형이지만, 안보 분야에서 획기적 업적을 이뤘다는 점에 대해선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일본은 평화헌법에 따라 군대를 가질 수 없는 나라지만, 그는 2014년 ‘해석 개헌’ 편법을 통해 집단자위권을 확보하며 정상국가로 가는 길을 닦았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는 지난해 말 ‘국가안전보장전략’ 등 3대 안보문서 개정으로 반격능력을 확보했다. 일본이 적의 공격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나라가 되면서 아베의 보통국가 꿈도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하마다 고이치(浜田宏一) 미국 예일대 명예교수는 최근 ‘일본은 핵 공유 협정을 추진해야 하는가’라는 칼럼에서 “일본은 핵에 대한 터부를 깨야 한다”며 아베의 유지(遺旨)를 환기시켰다. 아베는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세계 안보가 어떻게 유지되는지에 대한 솔직한 대화를 시작할 때”라면서 미·일 핵 공유 협정을 제안했다. 당시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동맹국 전직 정상의 제언을 진지하게 검토하라”는 사설을 썼다.
아베의 경제고문으로서 아베노믹스를 설계한 하마다 교수가 이를 다시 꺼낸 것은 북·중·러의 핵 위협이 급격히 고조돼 미국과의 핵 공유가 불가피해졌다는 판단에 기초한다. 하마다 교수에 따르면 생전에 아베는 “도널드 트럼프가 일본을 지켜주겠다고 했지만, 그를 믿어도 될지 확신이 안 선다”고 말했다고 한다. 북한의 핵·미사일 협박이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약속에만 의존해선 국가를 지킬 수 없다는 게 아베의 고민이었다는 것이다. 트럼프 당선 직후 가장 먼저 예방하고, 트럼프의 요구대로 노벨상 추천까지 했던 아베의 솔직한 고백이라는 점에서 진정성이 느껴진다.
동맹을 중시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일에 대한 확장억제 강화 입장을 천명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 다시 트럼프류 인사가 등장할지 알 수 없다. 더구나 중국과 북한은 최근 들어 주변국 협박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 핵우산에만 의존하다간 낙동강 오리알이 될 수 있다. 하마다 교수가 아베의 유산 공론화에 나선 것은 이런 상황을 감안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 임기 내 핵 공유를 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우리도 핵 역량 확보는 발등의 불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4월 워싱턴 방문 때 하마다 교수의 논지를 발전시켜 한·미·일 핵 역량 공유를 제안할 필요가 있다. 미국·영국·호주 핵잠수함 동맹인 오커스(AUKUS)처럼 한·미·일이 포괄적 핵 공유에 나서자고 하면 일석삼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첫째, 한일관계가 교과서 문제로 다시 격랑에 빠졌지만, 아베의 유산을 잇자고 먼저 손을 내밀 경우, 의외의 동력을 얻을 수 있다. 아베파는 자민당 최대 파벌이다. 권력 기반이 약한 기시다 총리는 연립 여당 공명당의 눈치를 보지만, 아베파가 밀어붙이면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이 될 수 있다. 둘째, 핵심 동맹국인 한·일이 함께 핵 역량 공유를 제기한다면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유지 명분을 내세워 핵 공유에 소극적인 미국을 설득하기도 쉬워진다.
셋째, 3국 핵 협력이 본격화하면 나토식 전술 핵 공유에서 원전 연료인 저농축 우라늄 생산 기지 조성 등의 공조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 한국은 핵 역량 확보를 위해 갈 길이 멀지만, 일본은 재처리 시설에 47t의 플루토늄까지 보유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우리가 얻을 게 많다. 당초 아베는 ‘핵을 생산·보유·반입하지 않는다’는 일본의 비핵 3원칙을 감안해 ‘일본 밖 핵 공유’ 개념을 제시했지만, 북·중의 핵무기 양산으로 동북아시아의 핵 지정학이 대변동 국면에 접어들며 일본 기류도 바뀌고 있다.
3연임을 시작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이 장기 집권 명분을 위해 대만 침공에 나설 때, 북한 김정은이 부화뇌동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2개의 전장에 대응해야 하는데 확장억제가 작동하지 않을 경우, 한·일은 순식간에 핵 없는 우크라이나 처지가 된다. 징용 갈등 해소로 한·일 안보 공조 기반이 마련된 만큼 윤 대통령은 미·일에 핵 역량 공유 제안을 해야 한다. 그것이 북·중·러 독재국들의 핵 폭주로부터 국가를 지키는 최선의 방책이다.
문화일보
03-31 러는 탄약난, 北은 식량난 해소?...“러, 北에 식량주는 대가로 탄약 추가확보 추진”

▲김정은(왼쪽)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연합뉴스
러시아가 북한에 식량을 주는 대가로 추가로 탄약을 확보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미국 정부가 30일(현지 시간) 밝혔다. 특히, 미 당국은 러시아와 북한간 상호 필요한 물품의 교환거래 추진에 관여한 슬로바키아 국적의 무기상을 제재 대상에 올리며 북러 양국의 행위에 강력하게 경고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이날 전화 브리핑에서 “우린 북한이 우크라이나에서 군사 작전을 하는 러시아에 추가 지원을 제공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며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추가 탄약 확보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는 새 정보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노력의 중심에는 아쇼트 므크르티체프라는 무기상이 있다”며 러시아에 북한 무기를 판매하려고 시도했다가 미 재무부로부터 제재받은 슬로바키아 국적의 므크르티체프를 거론했다. 앞서 재무부는 이날 므크르티체프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북한 관리들과 함께 20여 종의 북한 무기 및 군수품을 러시아에 판매하고 그 대가로 상업용 항공기를 비롯해 원자재, 상품 등 다양한 물자를 북한에 제공하려고 계획했다고 발표했다.
이와 관련, 커비 조정관은 “이 제안된 거래의 일환으로 러시아는 24개 이상 종류의 무기와 탄약을 평양으로부터 받았을 것”이라며 “우리는 또 러시아가 대표단을 북한에 파견하는 것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과 러시아가 탄약의 대가로 북한에 식량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지난해 12월 북한이 와그너 그룹에 보병용 로켓과 미사일 등 무기와 탄약을 판매했다고 밝혔고, 북한이 이를 부인하자 지난 1월 관련 위성 이미지를 공개하기도 했다.
문화일보 곽선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