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이야기 2023-03/
03.01 민주당 또 ‘반란표’ 색출 소동, 되풀이되는 ‘홍위병’ 행태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31표 이상의 이탈 표가 나오자 민주당 내에서 색출 작업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같은 당 의원을 겨냥해 ‘반동’ ‘밀정’이라고 하고, 일부에선 친이낙연계 의원 실명을 거론하며 “어떤 표결을 했는지 밝히라”고 공개적으로 압박한다고 한다. 이 대표 열성 지지자들은 이날 비(非)이재명계 의원 40여 명의 이름과 지역구, 전화번호가 적힌 문건을 ‘반란군 명단’이라며 공개했다. 이들에게 문자 폭탄을 받은 일부 의원은 “나는 부결로 찍었다”며 표결 내용을 공개했다고 한다. 홍위병 소동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자유 투표, 비밀 투표는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헌법은 ‘국회의원은 국가 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국회법은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고 돼있다. 더구나 인사와 관련된 사안에 의무적으로 무기명 투표를 하는 것은 1952년부터 국회법에 내려온 전통이다. 비밀 투표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 체포동의안은 민주당이 당론으로 부결을 정한 사안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결과가 자신들 뜻과 다르다고 “공천에서 잘라야 한다”고 한다. 당 이름이 ‘민주’인 정당의 열성 지지자들의 행태가 이렇다.

▲더불어민주당 강성 지지자들이 만들어 돌리고 있는 22대 공천 낙선 대상자, 이른바 살생부 중 하나. 지난 27일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에 찬성했거나 기권 또는 무효표를 행사해 사실상 찬성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비명계 의원 들의 이름, 지역구, 선수는 물론이고 핸드폰 번호까지 올라와 있다. (SNS 갈무리) ⓒ 뉴스1
민주당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게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4년 한나라당 박창달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 의원 일부의 이탈로 부결됐다. 그때도 열린우리당은 반대표를 ‘반(反)개혁’으로 낙인찍고 색출 소동을 벌였다. 체포동의안 표결을 실명 투표로 바꾸자는 법안까지 냈다. 당시 국회의장, 국무총리를 맡은 의원까지 “나는 아니다”라고 고백을 해야 했다. 한때 국회를 장악했던 열린우리당은 결국 당이 쪼개지고 정권을 내줬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비슷한 일이 되풀이됐다. ‘원 팀’을 내세워 당내 비판을 억눌렀다. 다른 목소리를 내거나 당론과 다른 표결을 한 의원은 징계하고 당에서 내쫓고 입법 폭주를 거듭했다. 그 결과 또 다시 정권을 잃었다.
이 대표는 이날 ‘반란표 색출 자제를 요청할 생각이 없느냐’는 물음에 “우리 사회 노동 환경 개선에 더 관심을 가져 달라”고 동문서답했다. 자제를 요청할 생각이 없다는 것으로 사실상 색출을 부추긴 것과 다르지 않다. 민주당은 이번에 일부 이탈표로 인해 그나마 내부 자정 기능이 조금은 살아있는 당이라는 인상을 국민에게 줄 수 있었다.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에 이 대표가 긍정적 영향을 미치겠나, 자신의 양심을 따른 이들 이탈표가 긍정적 영향을 미치겠나.
조선일보 사설
03-02 ‘좌파 비리 패거리’ 신속 척결 급하다
김성천 중앙대 교수·법학
여러 범죄 연루자를 대표 뽑고
검사 독재 타도 외치는 민주당
대법원은 수사기밀 누설 불사
회계자료 공개 거부하는 노조
전교조 정대협 광복회 요지경
제대로 정리 못하면 국가 오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부결됐다. 지난 연말, 같은 당 노웅래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키면서 예행연습을 했던 민주당이다. 결론은 같지만, 표결 내용은 확연히 다르다. 당 지도부가 압도적 부결을 장담했지만, 찬성이 139표로 반대보다 오히려 한 표 많았다. 국민이 등을 돌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도 조금씩 인식하고 위기를 느끼나 보다.
이미 기억에서 사라졌을 수도 있는데, 2월 초순에 대법원이 형사소송규칙 개정안을 공포한 바 있다. 법원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기 전에 당사자를 불러 심문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반드시 불러서 심문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법원이 하고 싶으면 한다는 것인데 그게 더 위험하다. 영장을 발부하기 전에 사건 관계인을 불러 언제 어디에 있는 어떤 증거를 압수·수색할 것인지에 대해서 논의한다는 것은 수사기밀을 누설하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압수·수색 정보를 알게 된 피의자는 곧바로 증거를 인멸하고 기다리면 된다. 자기 사건에 대한 증거를 인멸하는 행위는 처벌 대상에서 제외돼 있으니 달리 막을 방법도 없다.
법원이 영장 발부 전 심문을 통해 수사기밀을 유출해 줄 대상이 누가 될지는 뻔하다. 이재명 대표처럼 부담스러운 사람뿐일 것이다. 2019년 감사원 감사를 하루 앞둔 날 밤에 444건의 문건을 삭제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은 조사 과정에서 ‘신내림을 받은 것 같다’고 진술했다. 이제 형사소송규칙이 개정되면 법원이 권력과 부를 거머쥔 피의자에게 선별적으로 신내림을 해주게 될 것이다.
그리해서 권력과 부에 가까워질수록 범죄를 저질러도 안전한 사회가 된다면 너도나도 범죄를 저지르며 권력과 부를 추구할 것이다. 그래서 법원이 임의로 사전 심문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상황이 더 위험하다. 법 앞의 불평등을 보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도를 통해 수사기밀을 유출하는 것은 형식적으로는 합법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사회 비리에 가담하는 행태다.
법 적대적 속성을 가진 좌파의 집권 이래 나라 전체가 구석구석 비리 집단 패거리들에 의해서 오염된 형국이다. 대장동, 백현동, 성남FC, 위례신도시, 대북송금 등 실로 창대한 범죄 혐의들로 에워싸인 사람을 당 대표로 뽑아 놓고 끝까지 ‘검사 독재 타도’를 외치는 제1야당의 모습을 우리 사회 어디를 가든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오죽하면 대법원장까지 나서서 고관대작을 위한 수사 정보 유출 장치를 만들려고 하겠는가.
독립유공자 후손 단체인 광복회는 국회의원을 지낸 회장이 자금을 착복했다.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아온 노동조합은 회계자료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자금은 이사장을 맡았던 윤미향 의원이 횡령해 1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회계자료를 모자이크 처리해서 제출했다. 학문의 전당이라는 대학도 오염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실제로 전과 1범이 총장이고, 논문 표절로 10년간 학술지 게재를 금지당한 교수가 산학협력단장을 맡은 대학도 있다.
권력을 장악한 세력이 어떤 속성을 가졌는지에 따라 나라 전체가 물들어 버리는 것 같다. 좌파는 왜 법 적대적 속성을 가지게 됐는가. 공산당선언을 아무리 읽어 봐도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이든 사용해도 된다는 말은 없다. 사회는 필연적으로 봉건주의·자본주의·사회주의·공산주의 단계를 거쳐 진화하게 돼 있다고 할 뿐이다.
문제는, 당시 러시아의 상황이 시민혁명에 의해 자본주의 체제가 형성됨으로써 절대왕정이 무너지기를 기다리는 것조차 어려웠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형성돼 사회주의로 넘어가기를 기다려야 하는데 너무 오래 걸릴 게 뻔했다. 이에 레닌은 단계를 뛰어넘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해 직업혁명가를 양성하고 폭력혁명을 추진해서 성공했다. 이후 소련 공산주의가 주변국에 수출되면서 수단에는 신경 쓰지 않는 중국과 북한을 마주하게 됐다. 그리고 이들을 추종하는 국내 좌파의 비리 집단 패거리 행태를 직접 보고 있다.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정리 속도가 느리다. 하루빨리 비리 집단 패거리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에서 살고 싶다.
문화일보
03-03 ‘2차 李 체포안’ 부결 노려 별짓 다하는 민주당 反민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일 선거법 위반 사건 공판을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출두한 것을 시작으로 ‘법원의 시간’도 시작됐다. 이와 함께 민주당 당내에서는 체포동의안이 부결되는 과정에서 쏟아진 반란표를 색출하기 위한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진다. 이 대표 지지 그룹인 ‘개딸’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낙연 전 총리와 비명계 의원 등의 사진과 연락처를 담은 ‘살생부’가 난무하고, 의원들을 향해 어떤 표결을 했는지 답변을 강요한다.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등으로 머지않아 이 대표에 대한 ‘2차 체포동의안’이 올 것으로 예상하고, 표결 자체를 무산시키자는 방안 등이 벌써 쏟아진다.
‘처럼회’ 소속 강경파인 김용민 의원은 체포동의안이 다시 국회로 넘어올 경우 반란표를 막기 위해 169석을 이용해 아예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않아 투표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체포동의안은 국회법에 따라 72시간 내 표결되지 않으면 다음 본회의에 자동 상정돼 표결될 수밖에 없는데도, 무산시키자는 꼼수까지 내고 있다. 헌법과 국회법이 정한 ‘국회의원의 양심에 따른 직무 수행’에 대한 정면 위반이다.
당 차원에서는 공천권을 무기로 아예 비명계를 솎아 내려는 시도도 나온다. 당 혁신위는 당헌·당규를 개정해 ‘권리당원 여론조사’를 당무 감사에 반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권리 당원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개딸 세력이 공천에 영향을 행사할 길을 넓혀주겠다는 의도다. 장외 집회 참석 등을 ‘당무 기여 활동’으로 정해 공천에 점수를 반영하는 안도 만들고 있다. 지난달 4일 열린 정권 규탄집회에 불참한 국회의원 등에게 ‘불참 사유서’를 제출토록 했다. 이 대표 방탄에 비협조적인 의원을 가려내겠다는 것이다.
공천 살생부, 영구 제명 청원, 문자·전화 폭탄, 공천에 방탄 기여도 반영 등 민주당에서 이 대표 방탄을 위해 벌어지는 일들은 한결같이 반(反)민주적 요지경 행태다. 오죽하면 당내에서 “별짓을 다한다”는 비난이 쏟아지겠는가.
문화일보 사설
03-03 이재명 벌금 100만원 이상 유죄 확정땐 대선비용 ‘434억’ 토해내야… 민주당 ‘긴장’
무죄 선고 기대 속 예의주시
與 “상처 썩기 전에 도려내라”
더불어민주당은 3일부터 시작된 이재명 대표의 대선 후보 당시 허위사실 유포 혐의(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에 대해 무죄 선고를 낙관하고 있지만, 당의 대선자금 434억여 원 반환 여부가 걸린 만큼 향후 판결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상처를 도려내지 않으면 전체가 부패하거나 썩는다”면서 이 대표의 대표직 사퇴를 촉구했다.
이날 민주당 법률위원회 등에 따르면, 이 대표 측 변호인은 지난해 10월 열린 공판준비기일 당시와 마찬가지로 이번 재판에서도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할 것으로 전해졌다. 법률위 등 당내에서도 무죄를 낙관하며 “해볼 만하다”라는 입장이다.
민주당 법률위 공동위원장인 김승원 의원은 이 대표 출석 직전 통화에서 “허위사실은 명확히 사실관계가 구분돼야 하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점, 국토교통부의 협박성 압박이 있었다는 개인적 견해는 ‘맞다, 아니다’로 나뉠 수 없다”며 “유사 사례인 오세훈 서울시장의 생태탕 사건은 불기소한 검찰이 왜 이 대표 건은 기소했는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다만, 이 대표가 이번 재판으로 벌금 100만 원 이상 당선 무효형을 확정받으면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보전받은 지난 대선 비용 434억여 원을 반납해야 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김 의원은 “당의 대선 자금을 반환하느냐 마느냐가 걸린 만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민주당 대선 후보 당시인 2021년 12월 언론 인터뷰에서 고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1처장에 대해 “성남시장 재직 때는 알지 못했다”고 말하는 등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또 2021년 10월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백현동 사업 특혜 의혹과 관련해 “국토부가 협박해 부지 용도 변경을 했다”고 허위로 답변한 혐의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의 대표직 사퇴를 촉구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이 대표가) 김문기 처장과 여러 차례 만난 기록이 나오고 해외여행까지 갔는데 몰랐다는 이야기”라며 “재판 기록을 안 봐도 허위 사실인 것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성훈·최지영 기자 powerkimsh@munhwa.com
03.04 마침내 시작된 이재명 재판, 대형 의혹의 진실 다 밝혀져야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자신에 대한 재판에 처음 출석했다. 대장동 비리 의혹 등 이 대표에 대한 각종 수사가 시작된 지 1년여 만의 출석이다. 첫 재판은 이 대표가 방송 인터뷰 등에서 대장동 사건으로 수사받다 극단 선택을 한 고 김문기 성남도개공 개발1처장을 “성남시장 재직 때는 알지 못했다”고 말해 허위 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이 대표 변호인은 이 대표가 김씨를 몇 차례 만났더라도 ‘알지 못했다’고 한 것은 허위 사실이 아니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김씨를 몰랐다는 것은 주관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몇 번을 만났어도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김씨가 극단 선택을 한 것은 대장동 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김씨가 스스로 목숨까지 끊어야 할 이유가 무엇이고, 김씨와 대장동 사건의 총책임자인 이 대표는 어떤 관계냐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 대표 말대로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라면 김씨가 대체 왜 극단 선택까지 했느냐는 것은 상식적 의문이다.
이 대표는 나중에 김씨와 함께 해외 출장을 갔고, 골프까지 한 사실이 나오자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을 바꿨다. 하지만 검찰 수사에선 성남시장 시절 김씨에게 수차례 대면 보고를 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사람의 기억력에 한계가 있을 수 있지만 이 정도 관계인데도 ‘알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국민 상식과 크게 다르다.
지금까지 이 대표의 ‘모른다’는 해명은 한두 번이 아니었고 그때마다 그 해명과 다른 정황이 드러났다. 쌍방울 관련 의혹이 불거지자 “쌍방울과 인연은 내복 하나 사 입은 것밖에 없다”고 했다.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해외로 도피했던 김 전 회장이 국내로 압송되자 “누군가 술 먹다가 (김 전 회장) 전화를 바꿔줬다고 하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을 바꿨다. 빠져나갈 여지를 만드는 발언이었다. 이후 김 전 회장은, 이 대표와 여러 차례 통화했으며 이 대표가 경기지사 시절 이 대표 방북을 위해 300만달러를 북에 보냈다는 진술도 했다. 쌍방울 직원 수십 명을 동원해 북에 돈을 보냈다. 내복 하나 사 입은 인연밖에 없는 관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나.
이 대표는 이전에 경기지사 선거 토론에서 친형의 정신병원 강제 입원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허위 발언을 해 항소심에서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았지만 대법원이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해 지난 대선에 출마할 수 있었다. TV 토론에선 거짓말을 해도 된다는 황당한 대법원 판결이었다. 그런데 또 선거 과정에서 허위 발언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한국 사회가 거짓말에 관대하고 정치인의 거짓말은 흔하지만 이 대표는 너무 많은 사건에서 너무 많은 거짓말 의혹을 받고 있다. 극단 선택을 한 김문기씨를 ‘모른다’는 이 대표 말의 진위가 단순히 한 사건이 아닌 이유다. 이 대표 의혹이 시작된 이후 직간접 관련자가 사망한 사례가 3건에 달한다. 이 사건의 끝이 어디인지도 모를 지경이다. 재판을 통해 모든 진실이 밝혀지길 바란다.
앞으로 이 대표 재판은 본류인 대장동 사건과 백현·위례 사건, 성남FC 사건 등으로 줄줄이 이어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체포 동의안이 다시 제출될 수도 있다. 그때마다 정치가 요동치게 된다. 민주당은 이 문제에 내내 끌려다녀야 되고 국회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 개인의 의혹이 일파만파를 만들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
03.04 야당이 북한·노동에서 뻔한 말만 하는 이유
견결·총화 낯선 북한 말
은연중 쓰는 586
북한과 노동
화석처럼 굳은 사고
친명, 반명은 권력투쟁
근본 변화 나설 때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참모들이 준비한 발언 자료를 많이 고친다고 한다. 발언에 흐트러짐이나 사고가 없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지난달 16일 이재명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사실이 알려지자 그는 원고 없이 “국민과 견결(堅決)하게 싸워나갈 것”이라고 했다. 즉흥 발언이었다. ‘견결’이 낯설었던 현장 기자들은 ‘박홍근, 격렬하게 싸울 것”이라는 속보를 썼다. 당 공보국은 “격렬이 아니라 견결”이라며 수정을 요청했다.
기자들의 문해력 탓일까. ‘견결하다’는 의지나 태도가 굳세다는 뜻으로 국립국어원 사전에도 나와 있지만 일상에선 안 쓴다. 보통 ‘굳세다, 꿋꿋하다’라고 한다. 남북 언어 차이를 가르치는 ‘우리말 통일사전’에는 ‘견결하다는 굳세다는 뜻의 북한 말’로 돼 있다. 즉흥 발언에서 견결하다고 말한 것으로 짐작하건대 일상에서도 사용하는 것 같다. 전대협 간부를 지낸 다른 중진은 자신을 ‘견결하다’고 평했다.
북한 헌법에는 “후대들을 사회와 인민을 위해 투쟁하는 견결한 혁명가로 키운다”는 문구가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하자 “영토 완정을 견결히 수호하려는 중국 정부를 지지한다”고 했고, 김정은도 김정일 사망 7주기에 “장군님의 유훈을 관철하기 위해 견결히 투쟁해왔다”고 말했다. 탈북민은 “북에선 견결하다는 말을 모르면 간첩이지만, 남한에선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우리와 다른 뜻으로 사용하는 북한 말 중 하나가 ‘총화’다. 전체 화합을 뜻하는 총화는 ‘총화단결’ 이럴 때 쓴다. 그러나 북에서는 ‘사상총화’ ‘생활총화’처럼 상호 비판, 자아 비판을 뜻한다. 대학 때 선배들이 총화 시간을 갖자고 해 술 마시는 단합회인 줄 알았는데 밤새워 반성 토론을 했다. 그 뒤로 ‘총화의 자리’를 멀리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출신의 한 의원은 라디오에서 북의 대남 정책 변화를 설명하며 “대남 기관들의 총화로 보인다”고 했다. 북한식으로 정확하게 쓴 것이다.
주사파 이야기가 아니다. 기자가 만난 상당수 운동권 정치인은 혁명을 일으켜 북한과 연방제 통일을 하겠다는 과거 생각에서 멀어졌다. ‘강철서신’의 김영환처럼 사상 변화를 공개적으로 밝히면 좋겠지만 이를 강요할 필요도 그럴 수단도 없다. 대신 자신의 말과 정책을 통해 변화를 증명하면 된다. 그런데 아직도 북핵을 자위권으로 이해하고, 한미일 안보 협력을 친일·매국으로 규정하고, 북한 인권을 외면하는 모습에서 진화하지 못한 ‘퇴화 흔적’을 읽는다. 견결,총화 같은 말도 이런 ‘흔적’이다. 변한 것도 안 변한 것도 아니고 어정쩡하다.
북한 문제처럼 ‘반란표’ 없는 또 하나가 노동이다. 민주당은 아직도 ‘탐욕스러운 자본과 힘없는 노동’이라는 이분법에 갇혀 있다. 그래서 비정규직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2년마다 비정규직 대량 해고를 가져온 악법을 만들었다. 이 문제를 알면서도 비정규직법 개정에 나서자는 ‘반란표’가 없다. 비정규직이 일할 권리를 보장하고 기업의 숨통도 틔워주는 일인데도 말이다. 민주노총 대변인 역할에 매몰돼 2030들이 왜 새로운 노조 운동에 나섰는지 이해할 수도 없다.
이 대표 체포 동의안 표결에서 ‘반란표’가 쏟아졌다. 그러나 이는 내부 권력투쟁일 뿐 변화의 몸부림이 아니다. 친명, 비명 대립은 과거 여권의 친이, 친박처럼 그들만의 권력투쟁이다. 집권을 위해 변화하려면 화석처럼 굳은 북한과 노동에서 이탈표와 돌연변이가 쏟아져야 한다. 그간 돌연변이가 없었던 게 아니다. 그때마다 변절자로 몰아 추방했다. 고민하지 않는 자들이 속 편하게 사는 방법이 생각의 감옥에서 탈주하려는 사람을 변절자로 낙인찍기다. 최근 문재인 정부 핵심 참모가 “김정은이 6•25 남침에 대해 사과하는 용기를 내라”는 글을 썼다. 그러나 이 ‘반란표’는 민주당 진영에서 아무 호응도 얻지 못했다.
다윈의 진화론 핵심은 약육강식이나 적자생존이 아니라 돌연변이다. 강하거나 다수종이어서 산 게 아니라 변해서 살았다. 안 봐도 뻔한 정당은 뻔하게 진다. 이 말은 여당에도 적용된다. 야당이 고통스러운 돌연변이 없이 ‘포스트 이재명’의 얼굴만 바꾸려 한다면 당내 투쟁에서도 패배하고 국민에게도 외면받게 될 것이다. 답은 이재명 저 너머에 있다.
조선일보 정우상 정치부장
03-06 이재명과 민주당의 生과 死
김세동 논설위원
‘반동분자’ ‘적’ 규정 광란 상태
투표 자백 협박은 ‘십자가 밟기’
이 대표 자제 요청 진정성 없어
이 대표와 개딸이 당에 칼 꽂아
‘조국의 강’ 못 건너 李 늪으로
이재명 버려야 민주당이 살아
이재명 대표의 대장동·성남FC 사건 관련 체포동의안이 ‘가결 같은 부결’로 끝난 뒤 보이는 더불어민주당의 행태가 차마 눈뜨고 봐줄 수 없는 수준이다. 체포동의안에 반대하지 않은 표가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 31∼38표로 나타나자 친이재명계 의원이나 개딸이 보이는 행태는 ‘민주’라는 정당 이름이 아까운 정도를 넘어 정당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지경이다. 하다못해 정치자금법이나 선거법 위반도 아니고 성남시장 시절 부동산업자들과 유착한 토착 비리 혐의 사건 체포동의안에 반대하지 않았다고 색출 처단해야 할 ‘반동분자’ ‘적(敵)’으로 규정하는 데선 할 말을 잃는다. 6·25전쟁 때 인민재판을 연상시키는 짓을 같은 당 의원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가하는 것인데, 문재인 정부 조국 사태 때부터 맛이 가기 시작한 민주당이 이젠 갈 데까지 갔다.
이재명 팬덤은 말 그대로 광란 상태를 보여준다. 독립된 헌법기관이라는 국회의원들에게 가부 표결을 자백하라는 협박을 벌이고 있다. 일본 막부시대에 있었던 ‘십자가 밟기’ 같은 야만적 행태가 2023년에 명색이 민주정당이라는 곳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비명계 의원들을 ‘배신자’ ‘낙천 대상자’라고 조리돌림 한 데 이어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낙연 전 대표까지 처단할 ‘수박 7적’ ‘국짐첩자 7적’이라고 규정하는 정신분열 지경에 이르렀다. 권좌 복귀를 노린 마오쩌둥(毛澤東)이 어린 학생들을 선동, 당 지도부를 박살 내 중국을 10년의 동란 상태에 몰아넣은 홍위병 운동에도 비견된다. 지지자들의 미친 짓을 말려야 할 친명계 의원들은 개딸 등 당원의 공천 개입 보장, 이 대표 사퇴 여부 전 당원 투표로 결정 주장 등 외려 바람을 잡고 부추기고 있다. 이 대표는 단합을 강조하며 자제를 요청하지만, 개딸이나 ‘명핵관’들은 들은 체도 안 한다. ‘말리는 시누이’처럼, 자제 요구에 진정성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친명계나 개딸은 ‘당 대표 등에 칼을 꽂았다’며 체포동의안 이탈표 색출에 광분하지만, 외려 ‘이재명과 개딸이 당에 칼을 꽂았다’고 보는 게 진실에 맞을 성싶다. 민주당은 아직 ‘조국의 강’도 건너지 못했는데, 이재명 늪으로 자진해서 빠져들고 있다. 지난 3일 공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이 29%로, 국민의힘(39%)에 10%포인트나 밀렸다. 서울에선 민주당 21%로, 국민의힘(39%)에 18%포인트나 뒤졌다. 이대로면 내년 4월 총선 참패는 피할 수 없다. 사정이 이런데도 ‘수박 깨기’ ‘반란군 색출’로 날을 지새울 모양새다.
예정됐던 이재명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하면서 민주당은 선택의 길로 내몰리고 있다. 3일부터 이 대표 선거법 위반 재판이 격주로 시작된 가운데 대장동·성남FC 기소는 물론 쌍방울 대북 송금, 백현동 특혜 개발 사건 등으로 구속영장 청구가 대기하고 있다. 이대로면 총선은 폭망이다. 민주당이 ‘호남 자민련’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이재명을 버려야 한다. 이게 진짜 선당후사(先黨後私)다. 이 대표와 친명 의원들의 행태는 당이야 죽든 말든 나만 살고, 나만 공천받으면 된다는 선사후당일 뿐이다.
지난달 27일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찬성 139표, 반대 138표, 기권 9표, 무효 11표로 이 대표가 죽다 살아나자 김용민 의원 등이 ‘다음 체포동의안이 오면 169석의 민주당이 불참해 표결을 원천 봉쇄하자’는 기상천외하고도 반(反)민주적인 주장을 편다. 0.73%포인트 간발의 차로 대선에 패배한 차기 대권 1순위이자 국회 절대다수 의석 당의 대표가 자당 의원들도 설득 못 해 표결을 회피하고서 대통령 도전은커녕 유력 정치인 위세라도 부지할 수 있겠나. 이런 상식 이하의 지저분한 대응으로 구차하게 ‘목숨 줄’을 이어간들 무슨 의미가 있겠나.
차라리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고 영장실질심사에 응해 검찰의 구속영장을 법원에서 부결시키겠다는 정면승부를 거는 게 낫다. 피할수록 이 대표 죄의 무게만 각인시켜줄 뿐이다. 구속된다면, 그만큼 범죄 혐의가 무겁고 상당수 입증됐다는 것인 만큼 대표직을 내려놓고 개인 자격으로 재판과 수사에 임하는 게 당을 위한 선택이고 속죄다. 길게 보면 당이 살아나야 이재명에게도 그나마 희망이 생긴다. 자기만 살려다 당까지 죽으면 영원히 오명(汚名)만 남는다.
문화일보
03-06 이재명 ‘제거’의 역설과 함정
민주당, ‘李 개미지옥’서 탈출하면
사법리스크 아닌 尹 국정성적 부상할 것
與 ‘방탄 프레임’만 붙들고 있어선 안 돼
나라 바로 세울 진정성과 역량으로 성과 내야
어느덧 대선 1년,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한마디로 지옥에 갇혀 있다. “회술레 수치” “조리돌림” 운운하며 억울함을 토로하지만 점점 더 궁지, 아니 사지로 내몰리는 형국 같다. 방탄 갑옷은 구멍이 뻥뻥 뚫려 너덜너덜해졌다. 업보(業報)다. 성남시장 때 일이 줄줄이 터져 나올 줄 어찌 알았겠나.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당 대표가 되고 당헌 80조(부정부패로 기소 시 직무정지) 무력화까지 나섰지만 패장의 당당치 못한 처신에 적잖은 민주당 지지층이 돌아서고 있다.
견고했던 169석 민주당의 성벽은 깨지기 시작했다. 개딸과 문파의 내전(內戰)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조짐이다. “문재인도 수박7적”이라는 개딸 구호가 현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본질을 꿰뚫는다. 첫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드러난 30여 표의 집단 이탈은 이심전심인지, 조직적 반란인지 알 수 없지만 문 전 대통령의 ‘암묵적 동의’하에 이뤄졌다고 봐야 할 듯하다.
이 대표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2주 전 칼럼에서 “설마” 하면서도 민주당이 ‘투표 불참’을 당론으로 정할지 모른다고 썼다. 검찰이 체포동의안을 또 제출하면 아예 투표를 보이콧하자는 논의가 실제 나오고 있다. 압도적 부결을 자신했다가 비명 측의 일격을 받은 친명 핵심들은 이판사판으로 갈 수 있다는 점에서 배제할 수 없는 시나리오다. 이들은 국민 여론이 두려운 게 아니라 내부의 적에 굴복하는 게 더 두렵다. 총선 공천이 위태롭게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정치판에 의리가 사라진 지 오래다. 지난 표결 때 반대표를 던진 의원들 중에 이 대표와 끝까지 정치 운명을 같이할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안개가 짙어 길이 안 보이니 일단 다수의 편에 섰지만 “언제까지 이럴 수 있을까” 하며 여론의 눈치를 보는 회색지대 의원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투표 보이콧 당론이 쉽지 않은 이유다. 설사 보이콧을 한다 해도 두 번 세 번 할 수 있겠나.
결국 이 대표가 언제 어떻게 결단할지 여부가 관건이다. 민주당은 어느 비명 의원 표현대로 “방탄 프레임에 갇혀 발버둥칠수록 빠져드는 개미지옥 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 요즘 민주당 지지율 하락세는 뚜렷하다. 이 대표는 그럼에도 개딸과 친명 핵심들의 호위하에 끝까지 민주당 담장 안에 숨으려 한다. 여권으로선 최상의 그림이다. 분당(分黨) 사태로 이어진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반전의 계기는 남아 있다. 시간이 문제일 뿐 민주당이 뻔히 알면서 폭망의 길로만 가지는 않을 것이란 얘기다. 3년 11개월 비정상적인 분탕질을 치다가도 총선만 다가오면 정상으로 돌아온 듯한 모습을 띠곤 하는 게 그간 봐온 한국 정당들의 생리다. 죽을 지경이 되면 살길을 찾느라 몸부림을 친다. 비대위 체제로 가든, 신장개업을 하든, 공천 물갈이를 하든…. 자의든 타의든 이 대표가 민주당에서 손절되면 국면은 바뀐다. 민주당은 변신의 시간을 벌 수 있게 된다.
민주당은 지난해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연달아 심판을 받았다. 행정 권력과 입법 권력, 사법 권력을 한 손에 쥐고도 국민연금 등 국가의 명운이 걸린 개혁엔 손놓았기 때문이다. 그래 놓고 야당이 돼서도 반성을 하기는커녕 반도체법 등 성장 동력 살리기는 제쳐둔 채 매년 수조 원을 허공에 날리는 양곡관리법이나 강행 처리하려 한다. 그래도 민심은 변덕이 심하다. 현 정권이 오만함을 보이고 야당이 이재명 리스크를 벗어던지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 또 달라지는 게 여론이다.
민주당 내부의 반란 기류가 여권에 심상치 않은 건 그 때문이다. 쌍방울이든 백현동이든 검찰이 다시 구속영장을 칠 것이란 관측이 많지만 여권으로선 정치 득실만 따진다면 머리가 복잡해질 수 있다. 이 대표의 빠른 정리로 이어져 역설적으로 여권엔 독(毒)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법 리스크가 법정으로 넘어가면 경제 리스크가 부상할 수 있다. 나라 경제가 단기간에 좋아질 리도 없고…. 방탄 프레임은 점차 약해지고 윤석열 정부의 성적표가 도드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듯 여권 안팎에선 방탄 프레임을 어떻게 더 활용할지, 야당의 개미지옥 시간을 어떻게 하면 더 길게 끌어갈 수 있을까 하는 ‘속도 조절’ 얘기가 오간다. 허나 이는 함정이다. 이 대표와 민주당이 어떤 길을 가든 여권으로선 상황 변수일 뿐 본질은 아니다. 호가호위 세력을 내치고 나라를 바로 세운다는 진정성과 실력으로 성과를 입증하는 정공법을 펼치는 것 외엔 달리 길이 없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03.09 ‘연·포·탕’ 약속 김기현 與대표, 앞으로 1년이 윤석열 정부 成敗 가를 것
국민의힘의 새 당대표에 4선의 김기현 의원이 선출됐다. 최고위원도 김재원·김병민·조수진·태영호·장예찬 등 친(親)윤석열계 후보가 전원 당선됐다. 이준석 전 대표가 지원한 후보들은 모두 탈락했다. 여권이 명실상부한 ‘윤석열 체제’로 거듭난 것이다.
이번 전당대회 투표율은 55.1%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결선 투표제가 처음으로 도입됐지만 김 대표는 52.9% 득표율로 1차 투표에서 당선됐다. 친윤계의 전폭 지원을 받은 김 대표의 당선은 국민의힘 당원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신임과 지지를 재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통령이 경제·안보 복합 위기를 극복하고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힘을 몰아준 것이다. 윤 대통령은 전당대회에 참석해 “이제 더 강력하게 행동하고 더 신속하게 실천해야 한다”며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국민만 생각하자”고 했다. 김기현 대표는 수락 연설에서 “연포탕(연대·포용·탕평)을 끓이겠다”며 당내 화합을 강조했다.

▲(고양=뉴스1) 유승관 기자 = 김기현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가 8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에서 단상에 올라 당원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안철수, 김기현, 황교안 후보. 2023.3.8/뉴스1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 승리 직후 이준석 사태로 석 달 넘게 내홍을 겪었다.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하고 국정 운영이 흔들렸다. 가까스로 혼란을 수습하고 전열을 정비하나 싶었는데 전당대회가 시작되자마자 계파 싸움이 또 시작됐다. 전당대회 룰을 당원 투표 100%로 바꾸고 유승민·나경원 전 의원 불출마 과정에서 잡음이 나왔다. 전대가 시작된 후에도 이른바 ‘윤심’을 놓고 거친 공방이 벌어졌다. 대통령실이 직접 나서 “국정 운영의 적”이라는 말까지 써가며 안철수 후보를 비판했고, 대통령실 행정관 선거 개입 논란으로 고소 고발전까지 벌어졌다. 당내에서 아무리 서로 싸워도 국민이 볼 때는 같은 당일 뿐이다. 윤 대통령이 먼저 낙선한 후보들을 만나 보듬기 바란다. 패배한 후보들도 결과에 승복하고 경선을 과거로 돌려야 한다.
김 대표의 임기는 2년이지만 실제 중요한 시간은 내년 총선까지 1년 남짓이다. 연금·노동·교육 개혁 등 나라의 명운이 걸린 과제를 안고 있는 윤석열 정부가 총선에서 또다시 소수당이 되면 모든 개혁이 물 건너가게 된다. 윤 대통령이 임기 3년을 남겨 놓고 ‘식물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 반대로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으면 비로소 대통령이 일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
결국 모든 것은 내년 총선에 달려 있다. 총선 공천의 공정한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을 연속으로 배출했던 당이 2016년 총선에서 ‘진박’ ‘옥새’ 파동을 벌이며 무너졌다. 집권당의 내분은 나라와 국민 전체에도 큰 피해를 준다. 공천을 놓고 또다시 친윤, 비윤 싸움이 벌어진다면 국민들은 실망할 것이다. 김 대표의 향후 1년이 윤석열 정부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그 성패는 김 대표 말대로 연포탕을 끓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조선일보 사설
03.09 尹도 사석에선 “선배님”... 金, ‘울산선거’ 풍파 겪고 與대표로 부활
오뚝이 김기현 “첫째도 둘째도 민생, 똘똘 뭉쳐 총선 승리하자”
8일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김기현 신임 당대표는 취임 일성(一聲)으로 “우리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민생이라는 하나의 목표로 달려나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친윤계와의 공조를 바탕으로 3%대에 머물던 초기 지지율을 석 달여 만에 과반인 53%까지 끌어올렸다. 이를 두고 당 안팎에선 “윤석열 정부를 안정적으로 뒷받침하라는 당심이 폭발한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국민의힘 당대표로 선출된 김기현 의원이 8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제3차 전당대회에서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 /뉴스1
이날 과반 득표로 당대표 당선을 확정 지은 김기현 대표는 수락 연설에서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유능한 정당으로 만들기 위해서 저는 모든 희생을 각오하고 있다”며 “하나로 똘똘 뭉쳐 내년 총선에서 압승하자”고 했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일자리”라며 “어떻게 하면 청년들에게 꿈을 줄 수 있는 나라로 만들 것인지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야당과의 협치와 관련해선 “빠른 시일 내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찾아뵙겠다”고 했다.
김 대표는 당직 인선과 관련해 “연대·포용·탕평이라는 기본 원칙을 지켜나갈 것”이라며 “일 잘해 나가서 내년 총선을 이길 수 있는 분을 잘 삼고초려해서 모시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당직 인선은 김 대표의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울산 출신인 김 대표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판사로 임용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사석에서는 서울법대 1년 선배인 김 대표를 “선배님”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표는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울산 남구을 지역구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내리 3선을 지냈다. 이 시절 매일 일거리를 싸들고 퇴근한다고 해서 ‘보따리장수’라는 별명이 붙었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는 울산시장에 당선되면서 행정가로 변신했다.

▲당대표 선출된 후 ‘두 손 번쩍’ - 김기현 국민의힘 신임 당대표가 8일 경기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당대표에 선출된 뒤 두 손을 들어 환호에 답하고 있다. 김 신임 대표는 “민생을 살려내 내년 총선 승리를 반드시 이끌어 내겠다”고 말했다. /이덕훈 기자
하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서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30년 지기(知己)인 더불어민주당 송철호 후보에게 패하면서 첫 낙선을 경험했다. 이후 검찰은 이 선거에서 청와대가 대통령 친구 당선 목적으로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는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수사에 나섰고, 그 결과 관련자들이 무더기로 기소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판사’에서 ‘투사(鬪士)’로 이미지가 바뀐 김 대표는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4선 고지에 올랐다. 이후 국민의힘 원내대표, 당대표까지 내리 거머쥐면서 재기에 성공했다.
이날 김 대표의 과반 득표는 내년 총선까지 집권 여당이 윤석열 정부를 단단하게 뒷받침해야 한다는 당심이 반영된 결과다. 김 대표 측도 “김기현 좋아서 찍어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도 안다”면서 “내년 총선에서 윤석열 정부의 국정 운영 성과로 승부 보겠다는 선거 전략이 주효했다”고 했다.
당내에선 “김 대표의 성실성, 치밀함, 친화력이 빛을 발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번 당대표에 도전하면서 김 대표는 당원·당협위원장·의원들과 일일이 접촉하는 저인망식 유세에 나섰다. 당내 인사들 사이에선 “김기현은 저녁을 세 번 먹는다” “의원 둘만 모여도 김기현이 나타난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
다만 약점도 동시에 노출됐다. 낮은 대중적 인지도가 우선적으로 거론된다. 상대 후보들은 경선 초기 김 후보의 한 자릿수 지지율을 겨냥하면서 “지지율 3%짜리 대표가 총선에서 유세한다고 누가 알아보겠나”라고 공격했다. ‘친윤계 대리인’이라는 꼬리표도 한계로 지적된다.
조선일보 김형원 기자
03.09 “이재명 수사 정당하다” 53.9% “정치 보복” 40.7% [한국리서치]
“이재명 물러나야” 53.8% “체포안 부결 잘못” 52.1%
내년 총선…'현 정부 견제해야’ 48.1%, ‘현 정부 힘 실어줘야’ 43.9%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향한 검찰의 수사가 ‘정당한 범죄 수사’라고 응답한 국민이 53.9%에 달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8일 나왔다. 지난 1월 같은 조사 때보다 6.2%p 상승한 수치다.
KBS 의뢰로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리서치가 지난 5~7일 전국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에 대해 ‘정당한 범죄 수사’라는 응답이 53.9%, ‘정치 보복 수사’라는 응답이 40.7%로 나타났다.
앞서 KBS의 새해 여론조사(1월 18일~20일 조사)에선 ‘정당한 범죄 수사’라는 응답은 47.7%였고, ‘정치 보복 수사’라는 응답은 44.1%였다.
지난달 27일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것에 대해선 응답자의 52.1%가 ‘잘못된 결정’이라고 답했고, 39.3%는 ‘잘된 결정’이라고 답했다.
이재명 대표가 민주당 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하느냐는 질문엔 ‘물러나야 한다’는 응답이 53.8%였고, ‘물러날 필요가 없다’는 응답은 40.7%였습니다.
다만 응답자를 민주당 지지층(333명)으로 좁혀보면 ‘물러날 필요가 없다’는 응답이 77.3%로, ‘물러나야 한다’ 19.6%보다 훨씬 높았다.
내년 4월에 치러질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 대해선 응답자의 48.1%가 ‘현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야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답했다. ‘현 정부를 지원해야 하기 위해 여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응답은 43.9%였다.
정당 지지도는 국민의힘 36.7%, 민주당 33.3%, 정의당 4.3% 순이었다.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는 응답은 21.3%였다.
KBS의 새해 여론조사 당시 정당 지지도는 국민의힘 33.2%, 민주당 32.0%, 정의당 6.0%였다.
한편 이번 조사는 지난 5~7일 전국 만18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 가상번호(100%)를 이용한 전화면접으로 이뤄졌다. 응답률은 19.6%이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이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조선일보 김명일 기자
03.10 "아스퍼거증후군""교도소 가라" 계파갈등 與, 이재명엔 단일대오
‘이재명 경기지사 초대 비서실장’을 지낸 전모 씨가 극단적 선택을 하자 여권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집중포화를 쏟아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10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 대표를 둘러싸고 죽음의 그림자가 연속되고 있어서 섬뜩한 느낌을 금할 수 없다”며 “이 대표의 관계인이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이 운명을 달리하는 것에 대해 국민이 쉽게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책 의원총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어 “이 대표는 민주당 대표로서 직무수행을 하는 것이 적합한지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사실상 이 대표의 대표직 사퇴를 촉구한 것이다. 김 대표와 가까운 인사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를 더는 대화 파트너로 보기 어렵다는 게 김 대표 생각”이라며 “현재 추진 중인 이 대표와의 만남도 미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이날 경기 수원 현장 최고위에서 “검찰의 과도한 압박 수사 때문에 생긴 일이지, 이재명 때문인가”라고 말한 점도 여당은 맹비난했다. 양금희 수석대변인은 “전씨는 유서에 ‘이 대표는 이제 정치를 내려놓으십시오’라는 글을 남겼다고 한다”며 “이 대표는 이 내용을 아는지 모르는지, 검찰 수사를 ‘사냥’이라고 표현하며 아전인수식 발언만 늘어놨다”고 지적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도 “가혹 행위나 고문이 있어야 과도한 수사인데, 지금까지 목숨을 버린 분들이 그런 주장을 안 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이 대표와 중앙대 동문인 권성동 의원도 페이스북에 “전씨에 대해서는 검찰의 참고인 조사 한 번만 이뤄졌다. 결코 수사가 극단적 선택의 원인이 될 수 없다”며 “이 대표는 정치를 그만두라”고 지적했다.
여권 지도부는 “비극이 계속되는데도 어떻게 침묵할 수 있느냐”(성일종 정책위의장), “스스로 교도소로 걸어 들어가라”(김재원 최고위원)는 등 종일 이 대표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이같은 여권의 파상공세는 이 대표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끌어올리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 8일 발표된 KBS·한국리서치 여론조사(지난 5~7일)에서 ‘이 대표가 대표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의견은 53.8%였다. 이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에 대해서도 ‘정당한 수사’라는 응답이 53.9%로, ‘정치 보복수사’라는 응답(40.7%)보다 많았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유승민 전 의원이 9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 페이스북 캡처
여론조사업체 에스티아이의 이준호 대표는 “여론 과반이 이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는데 국민의힘이 이런 여론을 키우기 위해 집중공세를 펴고 있다”며 “현재 10%포인트 안팎인 국민의힘과 민주당 지지율 격차를 더 벌릴 수 있다고 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여권에서는 ‘외부의 적’인 이 대표를 때리면서 전당대회에서 불거진 계파 갈등을 완화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그간 친윤계와 갈등을 빚어 온 유승민 전 의원은 9일 밤 “정치고 뭐고 다 떠나서 희생을 막아야 할 책임이 이재명 당신에게 있다”고 페이스북에 적었다. 비윤계 김웅 의원도 페이스북 글에서 “이 대표는 아스퍼거 증후군에 걸린 것 아닌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아스퍼거 증후군이란 다른 이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증상을 보이는 정신질환의 일종이다. 친윤계 관계자는 “이 대표에 대해서는 당이 단일대오를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향후 이 대표 2차 체포안이 국회로 넘어올 경우를 대비한 움직임이라는 지적도 있다. 지난달 27일 표결된 이 대표 체포안은 가결 요건(찬성 149표 이상)에 10표 모자란 찬성 139표에 그쳐 최종 부결됐다. 국민의힘 초선 의원은 “자기 책임은 없다고 하는 이 대표 모습에 민주당 비주류 의원들도 적잖게 실망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익명을 원한 원외 당협위원장은 “만약 이 대표가 총선 직전까지 대표직을 유지하면 우리 당의 총선 승리 가능성도 커질 것”이라며 “전략적인 측면에서 공세의 수위 조절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효성·전민구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03-10 김성태, 구속 전 이화영에 “형, 인정하세요”
방용철 쌍방울 부회장, 법정서 진술
이화영 겨냥 “손바닥으로 하늘 못 가린다”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구속 전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에게 연락해 “형, 인정하세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형이) 별로 안 세다”고 말했다는 법정 진술이 나왔다. 이 전 부지사 뇌물 혐의에 대한 방용철 쌍방울그룹 부회장의 최근 진술 변화를 두고, 이 전 부지사 측이 김 전 회장과 방 부회장의 ‘말맞추기 의혹’을 제기한 상황에서 나온 진술이다.
수원지법 형사11부(부장 신진우)가 10일 진행한 이 전 부지사의 뇌물 혐의에 대한 19차 공판에서 이 전 부지사 측은 “증인(방 부회장)은 (뇌물 공여와) 심지어 범인 도피나 증거인멸 등 혐의를 부인하고 반박하다가, 왜 본인이 주범이라고 번복했느냐”며 방 부회장을 압박했다. 이에 방 부회장은 “김 전 회장이 (한국에) 왔다고 해서 바뀐 건 없고, 김 전 회장이 (이미) 다 알고 있다”며 “입장이 바뀌었다는 (주장은) 이해가 안 된다”고 반박했다.
특히 이 전 부지사에게 법인카드를 안 줬다고 검찰 조사에서 진술했다가, 법정에서 말을 바꾼 부분에 대해서도 방 부회장은 “(구속 전) 김성태 회장과 통화 두 번 했는데, 그때 회장이 (자신에게) ‘인정하라’고 했고, 이화영과 얘기할 때도 김성태가 ‘형 인정하세요. 정자법 별로 안 세요’라고 했다”고 말했다.
방 부회장은 최근 재판에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며 이 전 부지사에게 뇌물을 준 혐의를 부인한 기존 입장을 바꿨다. 특히 쌍방울의 대북사업은 경기도와 무관하다는 이 전 부지사 주장에 대해 방 부회장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는 입장이다. 이 전 부지사는 2018년 7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쌍방울로부터 받은 법인카드로 2972회에 걸쳐 1억9950만 원을 사용하고 법인 차량을 제공받는 등 모두 3억2000만 원 상당을 불법 정치자금으로 기부받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문화일보 윤정선·이현웅 기자
03.10 이재명 前비서실장 자택서 숨진채 발견...주변인 5번째 사망
시장·도지사 시절 비서실장
경찰, 극단적 선택으로 추정
李 관련 인물 중 5번째 사망

▲지난 2018년 7월 2일 이재명 경기도지사 비서실장(별정직 4급)에 임용된 전형수(59) 전 성남시 행정기획조정실장.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경기도지사 재임 당시 초대 비서실장을 지냈던 전형수(64)씨가 9일 숨진 채 발견됐다.
경기 성남수정경찰서에 따르면, 9일 오후 7시30분쯤 전씨가 성남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날 오후 6시44분쯤 외출에서 돌아온 전씨의 아내가 문이 열리지 않는다며 119에 신고해 출동한 소방대원이 경찰관과 함께 문을 개방하고 들어가 전씨를 발견했다. 경찰은 전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자세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전씨는 이 대표가 성남시장 시절 비서실장을 지냈고, 이 대표가 2018년 경기도지사에 당선된 이후 당선인 비서실장과 초대 도지사 비서실장 등을 지냈다. 2019년에는 경기주택도시공사 경영기획본부장을 맡았고, 사장 직무 대행을 지내기도 했다.
전씨는 검찰이 지난달 이 대표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던 ‘성남FC 불법 후원금’ 사건과 관련해 이 대표의 제3자 뇌물 혐의의 공범으로 입건된 상태다. 전씨는 또 2019년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의 모친상에 조문을 가서 “쌍방울과 북한 측의 경협 합의서 체결을 축하하며 대북 사업의 모범이 됐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재명 대표 측 관계자는 “당장 공식 입장을 내기는 어렵다”면서 “검찰 수사로 많이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 대표 관련 인물 중에 숨진 사례는 전씨를 포함해 지금까지 5명에 이른다. 유한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본부장은 2021년 12월 검찰 수사를 받던 중 아파트에서 떨어져 숨진 채 발견됐다. 그 직후 대장동 개발의 핵심 실무자였던 김문기 전 성남도개공 개발사업1처장도 극단적 선택을 했다. 또 작년 1월에는 이 대표의 과거 선거법 위반 사건 관련 변호사비 대납 의혹을 제기했던 이모씨도 모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작년 7월에는 이 대표의 아내 김혜경씨의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의혹’에 연루된 배모씨의 지인인 40대 남성이 자택에서 숨졌다.
03.10 숨진 이재명 前비서실장, 김성태 모친상 조문한 당사자
李의혹 연루자 5번째 사망...성남FC·합숙소 의혹에도 등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성남시장·경기지사 시절 비서실장 출신으로 9일 경기 성남시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전형수(64)씨는 이 대표에 대해 검찰과 경찰이 수사 중인 세 건의 사건과 직간접으로 연관돼 있다.
숨진 전씨는 서울중앙지검이 지난달 대장동 사건과 함께 이 대표에게 구속 영장을 청구했던 ‘성남FC 불법 후원금’ 사건과 관련, 이 대표의 ‘제3자 뇌물’ 혐의의 공범으로 입건돼 있는 상태다. 이 사건은 이 대표가 성남시장 때 네이버, 두산건설, 차병원, 푸른위례 등 기업 4곳의 인허가 청탁을 들어주고 그 대가로 133억5000만원의 뇌물을 성남FC에 후원금 명목으로 내게 했다는 내용이다.
검찰이 성남FC 불법 후원금 사건으로 이 대표에 대해 구속 영장을 청구했지만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체포 동의안이 부결되면서 법원에서 구속 영장도 기각됐다. 전씨는 이 대표의 구속 영장에 여러 번 이름이 나온다. 그는 성남시 행정기획국장 시절인 2014~2015년 네이버 관계자를 수차례 만나 40억원을 성남FC에 지원하도록 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이와 관련해 전씨를 지난 1월과 2월에 소환조사한 바 있다고 한다. 검찰은 이 사건으로 이 대표를 불구속 기소할 방침이다.
수원지검에서 수사 중인 쌍방울 그룹 비리 사건에도 전씨가 등장한다. 검찰은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이 이 대표의 방북 경비 명목 등으로 800만달러를 북에 줬다는 혐의 등과 관련해 이 대표의 관련성을 수사 중이다.

전씨는 지난 2019년 5월 21일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이 모친상을 당하자 조문을 다녀온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전씨는 조문을 마친 뒤 쌍방울 관계자에게 “남북 경협 합의서 체결을 축하한다” “대북 관련 사업의 모범 사례가 됐으면 좋겠다” 등의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쌍방울은 김성태 전 회장의 모친상 열흘쯤 전인 2019년 5월 12일 중국 단둥에서 북한 측과 경제 협력 합의서를 체결하며 북한 내 지하자원 개발 등 여섯 분야의 사업권을 따냈다. 쌍방울 측은 전씨가 쌍방울과 경기도가 함께 추진하던 대북 사업과 관련한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이해했다는 입장이다.
전씨는 현재 경기남부경찰청에서 수사 중인 ‘경기주택도시공사(GH) 직원 합숙소’ 의혹에도 등장한다. 이 의혹은 지난 2020년 경기주택도시공사(GH)가 직원 합숙소를 이재명 대표 자택 옆집에 임차하도록 했다는 내용이다. 전씨는 해당 합숙소의 운영·관리를 총괄하는 GH 경영기획본부장을 맡았다. 경찰은 현재 이 사건에 대한 보완 수사를 진행 중이다.
조선일보 이세영 기자
03-10 李 사건 5번째 죽음…이제라도 李대표 ‘책임’ 통감해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성남시장·경기지사를 하던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측근인 전 모(64) 씨가 9일 숨진 채 발견돼 충격을 주고 있다. 경찰은 유서 등을 토대로 전 씨가 극단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대표에 대한 대장동, 성남FC, 변호사비 의혹 등과 관련된 수사가 시작되면서 전 씨를 포함해 5명이 숨졌고, 이 중 이 대표 주변에서 일했던 4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장동 주범 김만배 씨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도 극단 선택을 시도한 적이 있다. 이러다 보니 이 대표 사건 주변에서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의문이 커간다.
성남시 공무원이던 전 씨는 이 대표의 성남시장 시절 비서실장을 지내는 등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전 씨는 행정기획국장 시절이던 2014∼2015년 네이버 관계자를 수차례 만나 40억 원을 성남FC에 지원하도록 했다는 혐의를 받아 검찰의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 이 대표 구속영장에도 이름이 나오면서 제3자 뇌물혐의 공범으로 입건된 상태다. 이 대표가 경기지사에 당선된 뒤 인수위 비서실장을 거쳐 초대 도지사 비서실장을 역임했고, 경기주택도시공사(GH) 경영기획본부장과 사장 직무대행도 맡는 등 핵심 측근으로 손색이 없다. 대장동, 성남FC, 이 대표 옆집 GH 합숙소 의혹, 쌍방울 사건 등에 전 씨가 관련될 수 있는 지위에 있었지만, 검찰의 핵심적인 수사 대상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쌍방울 사건과 관련, 전 씨는 2019년 5월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이 모친상을 당했을 때 지사 비서실장 자격으로 조문하면서 “대북 관련 사업의 모범 사례가 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극단적 선택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정신적 고통이 삶의 마지막 의지를 꺾었을 때에야 있을 수 있다. 이 대표 측은 강압 수사 탓이라고 하지만, 전 씨 사례만 봐도 죽음에 이를 만큼 무리한 수사를 받은 것으로 보긴 힘들다. 죽음의 배경에 이 대표와의 관계가 있다. 이제라도 이 대표는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억울하게 불법 혐의가 씌워지더라도 사실대로 말하고 나에게 책임을 넘기라’고 선언해 정신적·사법적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인간적 도리이다.
문화일보 사설
03-10 [단독] “이재명 대표, 이제 정치 내려놓으십시오”...전형수 前 경기지사 비서실장 유서
■ 본보, 숨진 前비서실장 “더이상 희생은 없어야” 유서내용 확인
檢수사 부당성 토로도…李대표, 오후일정 취소하고 빈소 찾아
친명계 내부 ‘李, 질서 있는 퇴진론’ 부상…비대위 전환 주장도
9일 숨진 채 발견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경기지사 시절 첫 비서실장이 유서에 이 대표를 직접 언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비서실장 전형수 씨는 네이버 측 요구를 받아 성남시와 조율하는 일을 맡아 성남FC 사건에서 이 대표의 공범으로 조사를 받아왔다.
10일 문화일보 취재에 따르면, 전 씨는 숨지기 직전 6쪽 분량의 유서를 자택에 남겼는데, 유서에는 “이재명 대표는 이제 정치를 내려놓으십시오. 더이상 희생은 없어야지요”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유서 내용과 유족 조사를 바탕으로 전 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본인이 억울하게 연루됐다는 점을 주변에 토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전 씨는 9일 오후 7시 30분쯤 성남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날 오후 6시 44분쯤 외출에서 돌아온 전 씨의 아내가 현관문이 열리지 않는다며 119에 신고해 출동한 소방대원이 경찰관과 함께 문을 개방하고 들어가 전 씨를 발견했다.
전 씨는 이 대표가 성남시장이던 시절 비서실장을 지냈고, 이 대표가 2018년 경기도지사에 당선된 이후 당선인 비서실장과 초대 도지사 비서실장 등을 지냈다. 2019년에는 경기주택도시공사 경영기획본부장을 맡았고, 사장 직무 대행을 지내기도 했다. 이재명 대표 관련 인물 중 숨진 사례는 전 씨를 포함해 5명에 이른다.
전 씨의 사망 사건에 대해 이 대표는 이날 경기 수원시 경기도의회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검찰의 압박수사를 측근 사망의 원인이라고 화살을 돌렸다. 이 대표는 “저를 둘러싼 모든 사람과 저와 인연을 맺던 모든 사람이 수사 대상이 되고 있고, 그야말로 본인뿐만 아니라 그 주변까지 2차, 3차로 먼지 털듯 탈탈 털리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친명(친이재명)계 한 의원은 “이 대표가 법원행이 잦아지는 올해 연말쯤에 대표직에서 물러나는 ‘질서있는 퇴진’이 논의되고 있다”며 “이 대표는 끝까지 당을 사법리스크로 몰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화일보 이해완·김대영·유민우 기자
03-10 숨진 전씨, 정진상과 네이버 찾아가 60억 요구한 인물
‘성남FC 후원금’ 의혹 관련
검찰 구속영장에 23차례 등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경기지사 시절 초대 비서실장을 지낸 고 전형수 씨는 ‘성남FC 후원금 의혹’ 관련 정진상 전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과 함께 네이버에 후원금을 요구한 핵심 실무진으로 사실상 재판에 넘겨질 예정이었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전날 숨진 채 발견된 전 씨는 이 대표의 성남FC 후원금 의혹 관련 구속영장에 총 23차례 등장한다. 검찰은 전 씨를 이 대표와 함께 피의자로 입건하면서 뇌물 공여와 뇌물 수수, 범죄수익 은닉 혐의 등 최소 3가지 혐의를 적용했다.
이 대표 구속영장을 보면, 2014년 11월 정 전 실장이 네이버 관계자를 만나 “(이 대표 임기 동안 성남FC에) 60억 원을 후원해달라”고 요구할 때 전 씨도 동행했다. 검찰은 네이버의 성남FC 후원이 드러나지 않게 ‘희망살림’을 끼워 넣어 우회 지원 방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도 전 씨가 개입했다고 판단했다.
다만 검찰은 전 씨에 대한 강압 수사는 전혀 없었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12월 한 차례 검찰 조사에서 전 씨는 변호인 조력 없이 홀로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전 씨는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등 다른 수사에서도 이름이 오르내렸다. 지난 1월 수원지법에서 열린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뇌물 혐의 관련 재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 비서실장 엄모 씨는 “2019년 5월 경기지사 비서실장(전 씨)이 김 회장 모친상에 조문을 왔다”고 했다.
전 씨는 이 대표 자택 옆에 경기주택도시공사(GH)의 합숙소가 차려진 이른바 ‘비선 캠프’ 의혹에서도 거론됐다. 그는 GH 경영기획본부장을 지냈다.
윤정선 기자 wowjota@munhwa.com
03.11 이재명 사건의 5번째 비극, “이제 내려놓으라”는 유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성남시장 당시 비서실장을 지낸 전형수씨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가 남긴 유서엔 “이 대표님, 이제 정치를 내려놓으십시오” “더 이상 희생자는 없어야지요”라는 내용이 포함됐다고 한다. 그는 성남FC 불법 후원 사건과 관련해 이 대표의 제3자 뇌물 혐의 공범으로 입건돼 수사를 받았다. 가족들 증언에 따르면 수사로 인한 심적 고통이 죽음의 한 원인이 된 듯하다.
직업 공무원 출신인 전씨는 2013년 성남시장 비서실장으로 발탁돼 이 대표와 인연을 맺었고 2018년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에 당선됐을 때도 초대 비서실장을 지냈다. 주변에서 정무는 “정진상”, 행정은 “전형수”라고 할 만큼 이 대표의 신임을 받았다고 한다. 전씨는 성남시 행정기획국장 시절 네이버 관계자를 만나 40억원을 성남FC에 지원하도록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이 모친상을 당했을 때 이 대표 비서실장으로서 조문도 했다. 이 대표와 공적인 인연을 맺은 탓에 이 대표가 기획하고 시킨 일을 부하 직원으로서 수행하다가 안타까운 선택까지 하게 된 것이다.

▲이재명(가운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성남시장·경기지사로 일할 때 비서실장을 맡는 등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전모(왼쪽)씨가 9일 숨진 채 발견됐다. 이 대표를 둘러싼 여러 의혹 가운데 극단적 선택을 한 인물은 이번이 다섯 번째다. 오른쪽은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KBS
이 대표 사건과 관련해 다섯 사람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영화 같은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번 일을 포함해 이 대표의 지시대로 대장동 개발 사업을 한 성남도시개발공사 유한기 전 본부장과 김문기 전 처장, 이 대표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 제기자와 이 대표 아내의 법인카드 유용 사건 관련자 등 5명이 같은 비극을 맞았고, 대장동 비리 사건의 주범 김만배, 유동규씨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한 사람의 사건과 관련해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연쇄적으로 비극을 맞은 것은 유례가 없다. 죽음의 원인을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 대표와 얽힌 사건에 무언가 문제가 있기 때문에 있어선 안 되는 일이 반복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 사설
03.11 李, 5명 죽음에 한번도 ‘내 책임’ 언급안해… 與 “이젠 진실 말해야”
주변인물 잇단 죽음… 李대표는 ‘남탓’만

▲2017년 이재명 성남시장과 전형수 실장 - 지난 2017년 9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당시 성남시장)가 고 전형수(왼쪽)씨에게 성남시 행정기획조정실장 임용장을 준 후 찍은 사진. 이 대표가 성남시장, 경기지사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전씨는 지난 9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성남시청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0일 자신의 사법 리스크와 관련한 주변 인물들의 잇단 극단적 선택에 대해 “검찰이 없는 사실을 조작하니 억울해서 그런 것 아니겠냐”고 했다. 그러면서 “이게 이재명 때문이냐. 수사당하는 것이 제 잘못입니까”라고도 했다. 본인 잘못이나 책임은 없고 검찰 탓이라고만 강조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더 죽어야 진실을 말할 것인가”며 “이 대표는 다섯 번째 ‘간접 살인’을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이 대표는 이날 당 회의에서 경기도지사 재임 시절 초대 비서실장을 지낸 전형수씨의 사망에 대해 “자랑스러운 공직생활의 성과들이 검찰의 조작 앞에 부정을 당하고, 지속적인 압박 수사로 얼마나 힘들었겠냐”고 했다. 전씨는 이 대표가 성남시장 때부터 함께했던 인사다. ‘정무보좌는 정진상, 행정보좌는 전형수’로 통했다고 한다. 이 대표는 “저와 인연을 맺었던 모든 사람이 주변까지 탈탈 털리고 있다”고 했다. 이 대표는 10분 가까이 전씨 사망과 관련해 검찰을 비판하면서도 전씨와 전씨 유족에게는 사과하지 않았다. 그러나 전씨는 유서에서 이 대표에게 서운함을 나타내며 “이제 정치를 내려놓으시라”는 취지의 말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 주변에선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이 불거졌던 2021년 말부터 현재까지 5명이 극단 선택을 했는데, 이 대표는 그때마다 “모르는 사람이다” “검찰의 조작·압박 수사 때문이다”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측근이었던 유한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본부장이 2021년 12월 대장동 의혹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던 중 사망하자 “안타까운 일이다. 어쨌든 명복을 빈다”고 했다. 그러면서 “몸통은 놔두고 주변만 문제 삼다가 이런 사고가 난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같은 달 대장동 개발의 핵심 실무자였던 김문기 전 성남도개공 개발사업1처장이 극단적 선택을 했을 때에는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납득이 안 된다. 위로 외에는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 SBS 인터뷰에선 김씨를 “시장 재직 때는 몰랐고 하위 직원이었다”고 했다. 뒤늦게 이 대표와 김씨가 호주 골프 여행도 갔던 사이였던 게 밝혀졌다. 김씨의 아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후보는 8년 동안 충성을 다하며 봉사했던 아버지에게 조문이나 어떠한 애도의 뜻도 비추지 않고, 산타 복장으로 춤을 추는 모습을 보였다. 이를 본 할머니는 오열하고 가슴을 치며 분통해했다”고 했다.
이 대표는 작년 1월 변호사비 대납 의혹을 제기했던 이병철씨가 숨지자 “안타깝게 생각하고 명복을 빈다”고 했지만, 민주당은 입장문을 내고 “이 대표와 고인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했었다. 작년 7월에는 이 대표의 아내 김혜경씨의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의혹’에 연루된 40대 남성이 사망했다. 당시 이 대표는 “이재명과 무슨 상관이 있나”라며 “‘무당의 나라’가 돼서 그런지 아무 관계도 없는 일을 엮는다”고 했다.
이 대표는 2015년 국가정보원 민간인 사찰 의혹 당시 한 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자 트위터에 “아무 잘못이 없는데 왜 자살하나요?”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국민의힘 박대출 의원은 이를 언급하며 “이 대표가 8년 전 자신의 물음에 답할 때”라고 했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이 대표를 둘러싸고 있는 죽음의 그림자가 연속돼 있어 섬뜩한 느낌을 금할 수 없다”며 “민주당 대표로서 직무 수행이 적합한지에 대한 심사숙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성일종 정책위 의장은 “국회의원 방탄 뒤에 당을 방패 삼아 요새를 구축하고 있는 이 대표만이 6, 7번째 죽음을 막을 수 있다. 언제까지 죽음의 공포가 계속돼야 하느냐”며 “어떠한 말 못 할 비밀이 그리 많기에 측근들이 세상을 뜨고 있는지 오직 한 사람, 이 대표가 입을 열 때”라고 했다. 하태경 의원은 “등골이 서늘하다. 이쯤 되면 정말 무섭다”고 했다.
조선일보 김아진 기자
03-11 윤영찬, “李, 도의적 책임 져야…그게 인간” 대표직 사퇴 요구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시스
“李 관련 사건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어 고인이 되신 네 분 모두 이 대표 충직히 모셨던 분”
“한 도시에서 일어난 사건과 연관된 이들의 계속적 죽음, 본 적 없는 충격적인 일”
비명(非明)계 윤영찬 의원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경기도지사 시절 초대 비서실장인 고 전형수(64)씨가 극단 선택으로 숨진 데 대해 “도의적 책임을 지라”며 사실상 대표직 사퇴를 요구했다.
성남 중원을 지역구로 둔 윤 의원은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대표가 도의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며 “그게 인간이고 그게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한 도시에서 일어난 사건과 연관된 이들의 계속된 죽음, 이런 일은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충격적인 일이며 이해하기 어려운 비극”이라며 “우리 지역, 성남에서 일어나고 있는 연속된 비극이라 더더욱 마음 아프고 분노한다”고 했다.
또한 윤 의원은 “이 대표 관련된 일로 수사 받거나 고발인이 된 상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고인이 되신 분이 네 분”이라며 “단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버리고, 삶의 이유인 가족을 떠나야 할만큼, 그 분들을 고통에 빠뜨렸던 원인이 대체 무엇이었나”라고 했다. 이어 “이재명 대표나 주변에서 고인에게 부담 주는 일이 있었다면 대표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인에 대해서도 “우리 지역 성남에서 전형수님을 오래 알던 이들은 ‘인품이 훌륭했던 진짜 공무원’으로 기억한다”며 “생전에 그 분을 직접 알지는 못했지만, 미담으로 회고하는 분들의 말씀을 전해 들으며 저 역시 깊은 슬픔을 느낀다”고 안타까워했다.
한편 숨진 전씨는 유서에서 “이 대표는 이제 정치 내려놓으십시오. 대표님과 함께 일한 사람들의 희생이 더 이상 없어야지요”라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현재 진행되는 검찰 수사 관련 본인 책임을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일만 열심히 했을 뿐인데 검찰 수사 대상이 돼 억울합니다”라고 말한 전해졌다.
문화일보 박세영 기자
03-11 [단독]“더이상 희생 없어야” 前비서실장 남긴 6장 유서엔…
[이재명 前비서실장 극단선택]
전형수씨, 6장짜리 유서 남겨
“檢수사 조작 있다” 억울함 토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경기도지사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전형수 씨(64)의 6장짜리 유서가 집 안에서 발견됐다.
10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유서 첫 장에 이 대표를 향한 심경을 썼고, 나머지 다섯 장에는 가족과 친구, 직장 동료 등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검찰 수사에 대한 억울함에 대해 쓴 것으로 알려졌다.
전 씨는 유서에서 이 대표를 향해 “이제 정치 내려놓으십시오. 대표님과 함께 일한 사람들의 희생이 더 이상 없어야지요”라며 “현재 진행되는 검찰 수사 관련 본인 책임을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표를 둘러싼 각종 의혹에 관여된 측근들이 잇달아 극단적 선택을 한 것과 주변인에 대한 검찰 수사 등에 대해 이 대표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또 유서에는 “저는 공무원으로서 주어진 일을 했는데 검찰 수사는 억울합니다. (성남시) 행정기획국장이어서 권한도 없었는데 피의자로 입건됐습니다”라며 “검찰 수사도 힘겹습니다”라고 억울함을 토로한 내용도 담겼다. 또 검찰 수사에 조작이 있다는 취지의 내용도 담겼다고 한다.
전 씨는 또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 “가족들과 지인들을 사랑한다”, “주변 측근을 잘 관리하세요” 등의 내용도 유서에 담았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유족 요청으로 자세한 유서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 씨의 빈소가 마련된 경기 성남시 성남시립의료원 장례식장에선 침울한 분위기 속에 조문이 이어졌다. 유족들 사이에선 “이런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반응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전 씨의 빈소는 낮 12시경 장례식장 146석 규모로 꾸려졌다. 붉게 상기된 얼굴로 빈소를 오가는 유족들은 “드릴 말씀이 없다”며 취재진의 질문에 일절 답변하지 않았다. 유족들은 취재진의 장례식장 내부 접근을 철저하게 제한하고 조문 목적이 아닌 방문객들의 출입을 금지해 달라고 장례식장에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보안업체 직원이 출입문마다 서서 유가족에게 전화를 하여 조문객인지 확인한 뒤에야 출입을 허용했다.
성남=이경진 기자 lkj@donga.com
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03.11 진중권, 이재명에 “인간이 어떻게 저럴 수 있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자신의 경기도지사 시절 초대 비서실장이었던 고(故) 전형수(64)씨의 사망 책임을 검찰의 과도한 압박 수사 탓으로 돌린 가운데, 진중권 광운대학교 특임교수는 “정말 인간적으로, 어떻게 인간이 저럴 수가 있나 하는 분노감이 든다”고 했다.
진 교수는 10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 승부’에서 이 대표 관련 인물들이 숨진 것을 언급하며 “지금 4명이다. 자기(이 대표)를 만나지 않았으면 이 사람들 살아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본인 때문에 그렇게 됐는데, 그러면 사람이 양심의 가책이라는 걸 느끼지 않겠는가”라며 “그런 것 없이 계속 검찰 탓만 하지 않나”라고 했다.
전씨는 성남FC 불법 후원금 사건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는 네이버가 성남FC에 40억원의 불법 후원금을 내는 데 역할을 한 혐의로 입건돼 지난해 12월26일 한차례 조사를 받았다. 성남지청 측은 “한 차례 영상 녹화 조사를 진행했고, 그 이후 별도의 조사나 출석 요구는 없었다”고 밝혔다.
진 교수는 “전씨는 작년에 딱 한 차례 조사 받았다”며 “녹화조사였기 때문에 모든 상황들이 녹화가 돼 있다. 그런데 검찰이 거기서 강압수사를 하거나 부적절한 취조를 하겠나”라고 말했다.
그는 “저는 이분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왜냐하면 공무원이지 않나.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되고 윗사람이 가자는 데로 따라가야 한다. 그런데 본인은 굉장히 압박을 느낀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위법한 행정행위에 자기가 동원된 것에 대한 죄책감, 부담감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라며 “결국 누구 때문인가? 그걸 지시한 사람이 누군가? 이 대표다”라고 했다.
진 교수는 “그런데 이 대표는 이게 검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면서 “저는 인간적으로 정말 분노한다”고 했다.
진 교수는 전씨가 ‘이재명 대표는 이제 정치를 내려놓으십시오. 더 이상 희생자는 없어야지요’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사실도 언급했다. 진 교수는 “사실 우리가 계속 얘기했던 바”라며 “이런 일이 벌어지면 이 대표가 자신이 책임을 지고 나서야 되는 건데, 자기는 딱 빠졌다”고 했다. 이어 “그럼 밑의 사람들은 황당해진다. 시키는대로 한 사람들이 책임을 뒤집어쓰게 된다”며 “앞으로 계속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앞서 전씨는 지난 9일 오후 7시 30분쯤 경기 성남시 자택에서 발견됐다. 그는 “이재명 대표는 이제 정치를 내려놓으십시오. 더 이상 희생자는 없어야지요” “측근을 진정성 있게 관리해달라” 등의 내용이 담긴 6장 분량의 유서를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조선일보 김가연 기자
03.12 방탄국회 열고 하롱베이 갔다... 민주당 33명 명단 보니


▲지난 3월 4일 오전 7시30분경(현지시각) 하노이 G호텔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전·현직 의원 등이 하롱베이로 향하는 관광버스에 오르기 전 인사를 나누고 있다.
외유성 출장 논란을 일으켰던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 20여명이 “당의 미래를 위해 치열한 토론을 하다 왔다”는 해명과 다르게 베트남 유명 관광지인 하롱베이를 다녀오는 등 워크숍 일정 중 상당 시간을 관광을 하며 보냈던 것으로 주간조선 취재 결과 확인됐다.
또한 당내 최대 전·현직 의원 모임인 ‘더미래’ 소속 현직 의원 20여명이 베트남으로 떠났다고 알려진 것과 달리 유은혜 전 교육부 장관과 배재정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 박수현 전 국민소통수석비서관 등 문재인 정부 인사들과 당 관계자 등 30여명이 함께 다녀온 것으로 드러났다. 워크숍 일정도 2박3일로 알려진 것과 다르게 3박4일 일정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지난 3월 2일 출국해 5일 대한항공 편으로 귀국했다.
20여명 아닌 33명, 유은혜·김기식도 동행
더미래 측은 방탄국회를 열고 베트남으로 떠났다는 비판이 일자 “미룰 수도 없는 일정이었고, 매일 치열하게 토론하고 왔다”고 해명했으나, 워크숍 기간 중 오해의 소지가 있는 일정이 다수 포함되어 있던 것이 확인된 만큼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주간조선의 베트남 하노이 현지 취재 결과 더불어민주당 내 연구모임인 더미래 소속 전·현직 의원 등 33명은 3월 2일부터 5일까지하노이 옌화(Yên Hòa) 지역에 있는 4성급 G호텔에 머물렀다. 이 호텔은 지난해 설립된 신축 호텔로 하노이 중심인 호안끼엠 호수(Hồ Hoàn Kiếm)와는 차로 40여분, 한인타운이 위치한 미딩송다(Mỹ Đình Sông Đà) 지역과는 차로 약 10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신축 호텔이어서 호텔 예약 사이트를 통해 찾기가 쉽지 않고, 그나마 예약이 가능한 사이트에도 10개 정도의 후기만 존재했다. 한국인 후기는 아직 없었으며 실제 방문했을 때도 사흘 동안 근방에서 한국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한인사회 인사들에 따르면, 정치인들이 오면 주로 하노이 JW메리어트호텔에 머물고 한국 유명인사들은 주로 인터콘티넨탈 하노이 랜드마크, 롯데호텔 하노이, 하노이 대우호텔 등에 짐을 푼다고 한다. 베트남 현지 교민들은 국회의원들이 대거 방문해 예약한 호텔부터가 중심지에서 동떨어져 있어 다소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하노이 한 교민은 주간조선에 “호텔 이름과 위치를 듣자마자 ‘이 사람들이 숨고 싶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사실상 우리를 찾지 말라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하노이 한인들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업무상 출장이었다면 기존 정치인들이 묵었던 호텔을 이용하는 편이 여러모로 편리하고 워크숍을 하기도 좋았을 텐데, 전 일정을 비공개에 부치고 명단도 공개하지 않은 점으로 비춰봤을 때 대중에게 노출되기를 꺼렸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선이다.


▲주간조선이 단독입수한 31명의 명단. 3월 3일 체크인한 2명의 이름은 누락됐다.

▲중심지와 동떨어진 신축 호텔에 숙박
하노이 현지에서 단독으로 입수한 투숙객 명단에 따르면 33명의 전·현직 의원과 당 관계자들은 G호텔 고층 객실인 33층부터 36층까지 사용했으며 3월 2일에 31명이 먼저 체크인했고, 3일에 2명이 추가로 체크인했다.
체크인 명단에는 더미래 대표인 강훈식 의원을 비롯해 고영인, 권인숙, 기동민, 김경만, 김승남, 김영호, 김원이, 남인순, 민병덕, 신정훈, 오기형, 우상호, 우원식, 윤영덕, 이동주, 이용선, 조오섭, 한준호, 허 영, 홍익표(이상 21명, 가나다순) 등 현직의원과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 김현권 전 의원, 박수현 전 국민소통수석비서관, 배재정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 유은혜 전 교육부 장관, 홍의락 전 의원, 홍종학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상 7명 가나다순) 등의 전직의원 및 문재인 정권 인사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전체 체크인 명단에는 강훈식 의원실 소속 보좌진으로 추정되는 인사 2명과, 직함 확인이 어려운 인사 1명까지 총 33명이 적혀 있었다.
취재진이 베트남 현지에 도착한 3월 3일 오후에도 이들은 호텔에 없었으며, 5시가 되어서야 호텔로 돌아왔다. 이로 미루어보아 3일 워크숍 장소가 적어도 호텔 내부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호텔에서 잠깐 머물다 식사를 위해 경남 랜드마크 타워 근방에서 저녁을 먹었고, 이후에는 마사지숍을 들른 뒤 호텔로 귀가했다. 이들은 이 일정 모두를 대형버스를 타고 함께 움직였다.
4일 오전에는 7시30분경 관광버스를 이용해 꽝닌(Quảng Ninh)에 있는 하롱베이(Vịnh Hạ Long)로 향했다. 하롱베이는 이들이 묵었던 호텔에서 차로 편도만 약 3시간 정도 걸리는 베트남 대표 관광지다. 하롱베이를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던 일행 중에는 토론과 같은 공적 일정 소화에는 다소 부적절해 보이는 의상을 입은 인사들도 있었다.

▲지난 3월 4일 오전 7시30분경(현지시각) 하롱베이로 향하는 관광버스에 오르는 의원들.
마사지숍 다음날 하롱베이행
일행은 오후 6시경에 하노이로 돌아와 한인타운 근방의 G 아파트 한식당에서 식사한 후 밤 8시가 되어서야 호텔에 도착했다. 더미래 소속 의원들은 하노이 현지 일정과 관련해 몇몇 언론에 “매일 저녁 4~5시간씩 치열하게 토론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는데, 3일과 4일 저녁 8시 이후부터 토론을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5일에는 일행 중 한 명이 오전 7시30분경 택시로 호텔을 먼저 나섰으며, 나머지 일행들은 10시30분경 체크아웃을 한 후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Cảng hàng không quốc tế Nội Bài)으로 향해 오후 1시50분(현지시각) 대한항공 비행기를 타고 귀국했다. 일행 중 대부분은 대한항공 비즈니스 클래스 이상 승객들이 이용하는 ‘스카이 프라이어티(Sky priority)’ 카운터에서 체크인했다. 더미래 측은 이번 워크숍을 자비로 다녀왔다고 말한 바 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의원 20여명이 ‘3월 임시국회’를 열자마자 회기 중인 3월 2일 워크숍 명목으로 베트남으로 떠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은 지난 2월 24일 소속 의원 169인 전원의 연명으로 임시국회 소집을 요구했다. 헌법 제47조 1항에 따라 국회 재적의원 4분의1 이상의 요구가 있을 경우에는 임시국회를 열어야 한다.
당초 국민의힘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방탄국회를 막자는 취지로 3월 임시국회를 6일부터 열자는 소집요구서를 제출한 바 있다. 이에 민주당은 ‘방탄국회’라는 여당의 비판에도 ‘일하는 국회’라는 명분을 앞세워 3월 초부터 국회를 열었다.
이번에 베트남행에 참가한 의원들은 출국 여부를 막판까지 고민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거취로 당이 혼란한 상황이고, 외국에 나가면 민주당이 3월 임시국회를 소집한 명분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민주당 원내지도부도 같은 시기 국내 워크숍을 검토하고 있었으나 국회와 당내 상황으로 무기한 연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하노이행 소식이 알려지자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범죄 혐의를 가득 가진 인물이 제1야당의 대표직을 꿰찬 시점인 지난해 8월 중순부터 지금까지, 국회는 반년 넘도록 하루의 빈틈도 없이 열려 있다”면서 “애당초 방탄이 목적이었던 터라 성과는 관심도 없다. 문 열고 시간만 때우다가 시급한 현안들이 쌓이면 다음 국회를 소집할 명분으로 써먹는 집단”이라고 비난했다.
박 수석대변인은 더미래의 출장에 대해 “비판이 쏟아지자 하나같이 자신들의 해외행에 억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데, 좋은 회의실은 불 꺼두고 따뜻한 나라로 나가 당의 진로와 총선을 논의한다는 뻔뻔한 소리를 해명이라고 늘어놓는다”고 꼬집었다. 양금희 국민의힘 수석대변인 역시 “헌정사상 초유로 국회법도 무시하고 3·1절 이재명 방탄국회를 밀어붙이더니, 정작 국회는 내팽개치고 공식적인 의원 외교도 아닌, 단체로 외유를 떠났다”며 “국회 경비가 아닌 개인 돈으로 가는 것이니, 국회야 열리든 말든 우리는 간다, 무슨 문제냐는 인식이 개탄스럽다”고 비판했다.

▲지난 3월 5일 오전 11시30분경(현지시각) 대한항공 1시50분 인천행 비행기 탑승수속을 하고 있는 더미래 전·현직 의원들.
“매일 저녁 4시간 넘게 토론했다”
정치권에서 논란이 일자 더미래 대표를 맡고 있는 강훈식 의원은 입장문을 통해 “상세 일정은 비공개이며, 국회 경비 지원이 아닌 참석 의원들의 갹출로 이뤄졌음을 알려드린다”면서 “더미래 워크숍은 지난 연말 당의 진로, 총선 준비 등을 논의하기 위해 예정돼 있던 것을 여러 정치 일정에 따라 수차례 연기하다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미래 소속 우원식 의원은 3월 2일 하노이에 도착한 후 한 언론과 통화에서 “낮에는 의원들 개인 일정이 있으며, 하노이시 지원으로 현장 탐방도 있는 것 같다”면서도 “중요한 것은 매일 저녁 토론이 있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강 의원은 귀국 후인 6일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매일 저녁 4시간 넘게 토론했다”며 “이번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에 관한 토론이었다”고 업무상 출장임을 강조했다. 더미래는 86그룹 의원들이 다수 속해 있는 민주당 내 연구모임으로, 현역 의원 50여명이 참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간조선은 더미래 대표 강훈식 의원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전화했으나 강 의원은 베트남에 동행했던 보좌진을 통해 입장을 전해왔다. 강 의원 측은 “주말이라서 하롱베이를 다녀온 것”이라고 밝혔다. “크루즈를 타고 관광한 걸로 취재가 됐다”는 질문에는 “그 정도만 말하겠다”고 답했다. 마사지숍을 다녀온 것에 대해서는 “전체 일정이 아니라서 몰랐다. 4~5명 정도만 따로 개인적으로 발마사지를 다녀온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김혜인 기자
03.12 [단독] "300조 北자원, 1억불에 50년 독점"…쌍방울 합의서 실체
최소 300조원의 가치로 추정되는 북한의 광물 채굴권을 보장받는 대신 1억 달러를 지급하기로 했다는 쌍방울그룹과 북측의 경협합의서의 실체가 확인됐다. 이 문건의 맥락을 둘러싸고 검찰과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측의 치열한 해석 논쟁이 법정과 검찰 조사실에서 계속되고 있다.
10일 중앙일보가 입수한 경제협력 합의서는 지난 2019년 5월12일 중국 단둥에서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과 박명철 민경련 부회장 사이에 체결된 것이다. 이 합의의 목적은 ‘역사적인 남북공동선언들의 정신에 입각해 남북 상호 간 긴밀한 경제협력 사업을 통해 민족 경제의 균등하고 획기적인 발전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해외 도피생활 중 태국에서 체포된 쌍방울 그룹의 실소유주 김성태 전 회장이 지난 1월17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압송되고 있다.
합의서에는 쌍방울그룹은 ▶지하자원 개발 협력사업 ▶관광지 및 도시개발사업 ▶물류유통사업 ▶자연에네르기 조성사업 ▶철도건설관련사업 ▶농축수산 협력사업 등 6개 사업권을 민경련으로부터 부여받는다고 명시했다. 해당 사업권의 효력은 50년으로 정했다.
이 자리에선 쌍방울그룹 계열사 3곳과 민경련 산하의 기업 4곳이 각각 1 대 1로 6개 사업을 위임 받아 진행한다는 개별 합의서에 대한 서명도 이뤄졌다. 가장 덩어리가 큰 지하자원은 나노스와 명지총회사가 위임 받았는데, 여기에는 북한 지역의 희토류 등 지하자원 광물 채굴 가치가 2300억달러(304조1750억원) 이상이고, 이중 희토류가 1000억달러, 2차 전지성분(니켈, 코발트, 망간, 텅스텐, 리튬)이 300억달러, 금·은 200억달러, 흑연 300억달러, 몰리브덴 200억달러, 무연탄 300억달러 등이라고 표시돼 있다.
관광지 및 도시 개발과 물류, 농축수산 협력사업은 쌍방울이 각각 개선총회사, 해운총회사, 광명총회사와 합의서를 작성했다. 신의주 특별개발구(국제경제지대)에 990만㎡ 이상 등 5곳을 개발대상지로 특정했다. 물류유통 사업엔 육상·항공·해상·화물보관장(터미널) 등 국제무역을 위한 각종 운송사업이 포함됐고, 농축수산 협력사업은 자금 융·투자 사업과 북측 농축수산물의 반출사업으로 정의했다.
광림의 자연에네르기 조성사업과 철도건설 관련 사업의 파트너는 각각 삼천리총회사, 명지총회사였다. 이중 철도건설 관련 사업은 남북 당국 사이의 협력 결과에 따라 진행하자는 약정을 맺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쌍방울 독자 관심사”vs“이화영 믿었다”
이 합의서의 성격에 대해 검찰과 이화영 전 평화부지사 측은 정반대로 해석중이다. 검찰은 이 합의가 유력 대선주자였던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후광 때문에 가능했고 ‘800만달러 α’는 그 대가로 쌍방울그룹이 경기도 차원의 스마트팜 사업비와 이 지사의 방북 비용을 대납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반면 이 전 부지사 측은 “이 계약이 쌍방울그룹이 독자적으로 대북사업을 전개해왔다는 증거이고 ‘800만달러 α’는 사업권 획득을 위한 계약금”이라고 주장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 사건과 관련해 기소되면 필연적으로 반복될 수밖에 없는 쟁점이다.
이 전 부지사 측은 “경기도가 주기로 했던 돈을 쌍방울이 대신 줘야 대납인데, 경기도는 북한과 달러를 주기로 약정한 사실이 없다”며 “희토류 등 광물 채굴권 사업의 이행보증금 명목으로 500만달러를 책정한 나노스 투자유치(IR) 자료 등도 쌍방울이 자체적인 필요에 따라 대북 송금을 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수원지검 형사6부)은 이 전 부지사가 직접 김 전 회장에게 경기도 대신 북측에 거액의 달러 제공해달라고 부탁했다는 복수의 진술을 확보해 입증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김 전 회장의 측근인 A씨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이 전 부지사가 스마트팜 비용 대납이라는 표현을 쓰진 않았지만 ‘쌍방울 중국 지린성 훈춘공장에 남는 재고를 팔아 달러를 북측에 주면 안 되겠느냐’고 김 전 회장에게 제안했다”며 “북한 김성혜 조선 아태위 실장이 경기도가 스마트팜 지원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 것이 송금의 직접 계기인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A씨는 김성혜가 김 전 회장과 이 전 부지사를 만난 자리(2018년 11월28일 중국 선양 능라도식당)에서 “이화영 선생은 거짓말쟁이다. 공화국에 큰 실수를 했다”고 말한 것을 되짚은 것이다. 이에 “우리 형을 함부로 말 하지 말라”며 흥분했던 김 전 회장이 분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500만달러 제공을 약속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실제 송금 직전에 이뤄진 김성혜와의 두 번째 만남(2018년 12월29일 중국 단둥 고려식당)에서 김 전 회장이 “내가 주는 돈이 경기도가 주는 돈”이라고 말했다는 진술도 확보한 상태다. 스마트팜 대납 비용 500만달러가 2018년 12월 쌍방울이 북측에 건넨 ‘북남협력사업제안서’에는 협동농장 지원(300만~500만달러) 명목으로 담겼다는 게 검찰의 추론이다.

▲2018년 7월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집무실에서 이화영 전 당시 평화부지사에게 임용장을 수여하고 있다.
“1억달러는 대북제재 해제 후 사업 개시 대가”
광물채굴 상세 합의서 9조에 등장하는 “민경련은 6개 사업권에 대해 쌍방울그룹에 최우선 특혜를 보장한다는 의무를 가지고, 쌍방울그룹은 모든 사업권의 대가로 미화 1억달러(현재 환율 1323억5000만원)를 지급한다”는 대목도 검찰과 이 전 부지사 측의 해석 싸움이 치열한 전선이다.
이 전 부지사 측은 “‘1억달러 지급 약정’은 경기도와 별개로 쌍방울그룹이 기업 차원에서 북측과 접촉해 경제협력을 도모한 중요한 증거”라며 “800만 달러는 그 중 일부인 계약금 성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은 쌍방울 임직원들의 진술을 토대로 이 조항을 유엔 대북제재가 해제되면 사업을 개시할 때 전달하기로 한 조건부 금액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스마트팜 대납이나 방북비용과는 성격이 다른 약정”(검찰 관계자)이라는 것이다.
쌍방울 대북송금 과정에 관여했던 한 대북사업자는 “달러 없이는 북측 인사들과의 접촉 자체가 쉽지 않은 게 대북사업의 현실”이라며 “쌍방울그룹은 경기도를 배경 삼아 숙원이던 대북사업권을 선점하려던 것이고, 대북 사업에 예산이나 기금 동원이 원활치 않았던 경기도 역시 민간의 달러가 필요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짚었다.
손성배·최모란·허정원 기자 son.sungbae@joongang.co.kr
월간조선 03월 호
우익 유튜버’ 김영민
“右翼은 빛과 소금, 左翼은 빚과 세금”
⊙ 좌편향 연예계에서 대놓고 ‘우익’ 표방… ‘내시십분’ 유튜브 개설 3년 6개월 만에 구독자 35만 명, 조회수 1억 회 이상 달성
⊙ IMF 사태 전후해 집안 망해… 보일러 설비 보조 일 등 하면서 검정고시
⊙ “이재명 보면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마음에 생긴 외상을 극복하지 않고 그냥 그걸 덧나도록 방치했구나’ 싶어”
⊙ “右성향 발언을 하면 바로 ‘컷’ 당하니까 미리 위축돼… 광우병 선동 가담했던 연예인들은 아직도 큰소리치며 활동”
⊙ “뇌피셜, 사실 반 소문 반, 이런 이미지가 우익 유튜버의 본령으로 굳어지는 걸 전 용납할 수 없어”
⊙ “돈을 힘들게 벌어봐서 연예인이라는 사실이 행복, 유튜브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사진=조선DB
셰익스피어를 비롯, 고전 희곡(戱曲)에는 광대(廣大)가 자주 등장한다. 광대는 주인공이 체면, 관습, 얽힌 인간관계 때문에 차마 하지 못하는 말을 그대로 지른다. 그들은 유머로 포장해 사람들의 속마음을 밖으로 드러내고, 인간 심리의 내면을 관통한다. 웃음이란 관습을 비틀 때 생겨나는 법. 그래서 희극인(喜劇人)은 고도의 재치가 없이는 수행하기 힘든 직업이다.
김영민(金永旼·41)이라는 개그맨이 있다. KBS 개그맨 공채 23기로, 현재 ‘내시십분’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이다. 드러내놓고 우익을 표방한다. 좌(左) 성향이 주류인 연예계에선 그 자체로 용기 있는 일이다.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과 생계의 위협, 그리고 외로움을 모두 견뎌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존재 자체가 쉽지 않은데, 그의 채널은 성과도 막대하다. 개설 3년 6개월 만에 구독자 35만 명, 조회수 1억 회 이상을 달성했다. 작년 8월엔 고민정 의원의 고소에 ‘혐의 없음’ 처분을 받았다. 10월엔 MBC 자막 조작 논란과 관련, 좌익의 논리를 제압하는 영상으로 주가를 올렸다.
방송 실무와 미디어의 생리를 알고, 유머를 섞어 수시로 변화구와 견제구를 던지는 그의 방송에 반대 진영은 부글부글 끓는다. 하지만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한다. 논리가 탄탄하고 사실에 근거해 방송하기 때문이다. 좌익(左翼)의 전유물(專有物)로 여겨지던 풍자와 비틀기로 무장한 시사 유튜브는 김영민이 개척한 우익(右翼)의 신항로(新航路)다. 그는 누구이며 어떤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왔는가. 앞으로 가려고 생각하는 방향은 어디인가. 숱한 궁금증을 품고 김영민을 만났다.
“대통령이 꿈”

▲초등학교 4학년 때 집 근처 지리산 계곡에서. 친구들의 ‘현안’을 해결하고 유세의 떠들썩함이 좋아 ‘반장 선거’에 자주 출마했다. 사진=김영민
― 어렸을 때는 어떤 학생이었습니까.
“저는 항상 대통령이 꿈이었어요. 그래서 초등학교, 중학교 때도 반장 선거 꼭 나가고, 대학 다닐 때도 과 대표 선거 등 출마 경력이 많습니다.”
― 선거 유세를 적극적으로 했을 듯하네요.
“네. 제 선거 유세는 굉장히 특화돼 있었죠. 제 가족이 전반적으로 정치 활동을 하던 집안이었거든요. 정치인 후원 활동도 하고, 주변에서 정치하는 삼촌들도 많이 봤습니다. 어렸을 때 어른들 따라 광장유세를 구경 갔었는데, 정치인 한마디에 청중이 반응하는 게 멋있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1년에 한 번 있는 학교 선거에 출마, 사람들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이는 일이 저에게는 소소한 행복이었습니다. 기대되는 이벤트이기도 했고요.”
운동 잘하는 학생은 체육대회 기다리고 노래 잘하는 학생은 합창대회 기다리는 것이 대한민국 초·중·고의 오랜 일상이다. 그런데 선거를 이벤트처럼 기다렸다고?
“초등학교 선거와 중학교 선거는 성격이 다릅니다. 어렸을 때는 인기투표처럼 반장을 뽑죠. 중학교에 가면 어느 정도 선거 분위기가 납니다. 전략적 선거 운동이 필요하다는 말이죠.”
― 무슨 뜻입니까.
“학기 초에 아이들 괴롭히는 친구를 찾아가 다짜고짜 대드는 겁니다. 그 친구가 저를 한 대라도 때리면 바로 몰표가 나오죠.”
―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나오는 고육계(苦肉計) 같습니다.
“그런데 가끔 당황스러운 경우가 생깁니다.”
― 뭔가요?
“‘제발 애들 좀 괴롭히지 마!’ 그랬는데 저쪽에서 순순히 ‘알았어!’라고 답할 때죠. 계획이 틀어지는 겁니다. 목표가 그게 아닌데 말이죠.”
중학생 ‘민원해결사’
멱살이라도 잡히면 몰표가 나왔다. 여론이 중요하고 민심은 무섭다는 걸 그때 느꼈다. 공약(公約)도 걸고, 당선 후엔 적극 행정으로 약속을 지켰다. ‘공동구매를 통한 이익분배’다.
“제가 중학교 다닐 때만 해도 공동구매라는 개념이 없었어요. 문제집이나 준비물 살 때 제가 돈을 모아서 한 번에 삽니다. 모자라는 돈은 제 돈 먼저 채워 넣고 나중에 받기도 하고…. 대량 구매니까 할인받잖아요? 차액으로 과자와 음료수를 사서 아이들에게 돌리면 영웅 대접을 받았습니다.”
‘기발한 기획력’은 다음 해 선거를 위한 장기 포석으로 이어졌다.
“당시는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희박했잖아요? 게임을 복사해서 그냥 깔던 시절이었죠, 서로 디스켓 주고받으면서. 저는 아이들이 보유한 게임 목록을 표로 만들었습니다. 주말에 친구들 집을 찾아다니면서 없는 게임을 깔아줬죠.”
영웅 대접받고, 현안과 민원을 해결해주며 사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갈증을 느낄 정도였다. 갈채와 주목을 동경하는 건 여느 중학생과 다르지 않았지만, 인기를 희구하는 방향이 달랐다.
“말, 글, 노래, 운동 뭐 이런 걸로 인기를 끄는 게 아니라, 생활 현안을 해결해주고 인기를 끄는 거니까요. 그리고 제가 말을 잘하지 못했습니다. 약간 콤플렉스를 느낄 정도였어요. 그러니까 다른 부분에서 더 열심히 하려고 했던 것도 있었던 거죠.”
김영민은 경기대 다중매체영상학부에서 전자디지털음악을 전공했다. 작곡과 기타 연주 전문가다. 음반도 두 장이나 냈고, 경찰청 유튜브 채널에 있는 ‘사람이 보이면 일단 멈춤’, 수행평가 때 쓰는 1회용품 줄이기 노래 ‘이젠 줄여요’ 등 자작곡도 공공기관에 납품했다. 그만큼 공공의식이 충만하고 정치에 재능이 있으며 재미를 느낀다던 타고난 생활밀착형 정치 지망생은 왜 정치 관련 학과로 진학하지 않은 걸까?
IMF 사태로 高校 진학 못 해
“IMF 전후에 집안이 폭삭 망해서 고등학교 진학이 불가능했습니다. 이화여대 다니던 누님도 바로 휴학하고 백화점 점원으로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을 만큼 사정이 다급했어요. 저도 일을 하면서 거의 반(半)독학으로 검정고시를 치렀습니다.”
김영민은 중학 시절 우등생이었다. 공부에 재능이 있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런데 대입을 준비할 때는 가정 형편상 모든 과목을 다 공부할 수 없었다. 일단 검정고시에 합격한 뒤 전략적으로 사고(思考)했다. 주어진 조건은 생활비 절약을 위해 무조건 서울 집에서 통학할 것. 수능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없으니 몇몇 과목에 집중, 얼추 예체능 상위 3% 안으로 성적을 냈다. 실기 점수를 높게 받는 것이 서울 소재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진학했던 학과는 지금은 실용음악과로 이름이 바뀌었다.
IMF 직전이라면, 대학 진학률이 무려 84%에 달하던 시절이다. 진학 의사가 분명한데도 돈이 없어 고등학교에 못 갔다는 건 1960~70년대라면 몰라도 21세기엔 보기 드문 사례다. 또래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일반 학생들과는 완전히 다른 트랙으로 인생 행로를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어느 정도였을까. 소수파(少數派)는 어느 사회에서건 숙명처럼 불안감을 지니고 살아야 한다. 때로는 사회에 대한 반감이나 절망감을 느꼈을 수도 있겠다.
“비유하자면, 아주 어두운 곳에서는 불을 세게 비춰야 하잖아요. 침대 밑을 보려면 라이트를 켜야 보이는 것처럼. 그런데 심해(深海)로 들어가면, 직접 보면 눈이 멀 정도의 센 빛을 쏴야 앞이 보인다고 하죠? 약간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강력한 꿈을 꾸었습니다. 취직해야지, 성공해야지 이 정도 꿈을 가지면 세월을 돌파할 수 없을 만큼 너무 막막했으니까요. 제 주변에, 저를 빼고 고등학교에 못 간 사람은 한 명도 없었거든요.”
‘소년공’ 김영민
그때 정치가(政治家)를 꿈꿨던 유년의 열망이 구체적으로 모양을 잡았다.
“‘이걸 고생이다’라고 하면 감당이 안 되는데, ‘지금 이렇게 지내는 하루하루가 다 스토리다. 내가 나중에 대통령 출마하는 데 쓰일 자산이다’ 이렇게 영웅적인 상상을 하면 견딜 만했습니다.”
― 검정고시 준비하면서 일도 했다고 했는데, 어떤 일을 했나요.
“처음에 했던 일은 보일러 설비입니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봉고차 타고 김포 등 서울 외곽 현장으로 많이 다녔죠.”
― ‘노동 소년’이었네요.
“네. 그런데 체력 때문에 토목 관련 일은 못 하고, 보일러 설비 보조로 일했어요. 건설 현장에서 열관리사가 알려주는 작업을 수행하는 역할입니다. 그런 생활을 하면서 ‘나는 영화 속의 주인공이다’라고 자기 세뇌(洗腦)했습니다. 봉고차로 이동하는 중에 영어 단어 외우고…. 오히려 그걸 안 하면 정신적으로 더 힘들고 현실을 견디기 힘들었거든요. 작업 사이사이에 영어 단어를 외우면 오히려 더 힘이 났습니다. ‘집안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 책임감도 커졌고요. 돌아보면 그때 겪었던 순간순간이 지금은 정말 고마울 뿐입니다.”
김영민은 이 이야기를 처음 털어놓는다고 했다. 그가 방송에서 보여주는 내공(內功)을 보며, 필자는 뭔가 사연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단순히 책을 읽어서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궁금증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어려운 시절을 보냈는데, 같은 소년공(少年工) 생활을 한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지는 않았을까? 투표하지는 않았더라도, 심정적 동질감을 느끼지는 않았을까?
“아뇨. 저는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그 일로 인해 제 마음에 외상(外傷)이 생긴다는 것을 감지했어요. 사람들을 만날 때 약간 방어적으로 대한다거나 아니면 허세를 부린다거나, 약간 그렇게 변해가는 모습을 스스로 감지하면서 뭔가 내가 지금 몹시 힘든 일을 겪는다는 걸 알았죠. 그래서 제 마음에 외상이 생기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무척 많이 했어요. 그래서 마음에 상처가 생기면 다양한 방식으로 치유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이재명이라는 분을 보면,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마음에 생긴 외상을 극복하지 않고 그냥 그걸 덧나도록 방치했구나’,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판단입니다.”
“이재명, 바람직한 성공 모델 아니다”
― 마음의 외상을 치유하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은 어떤 겁니까.
“남에 대한 배려(配慮)입니다. 그러니까 제 모남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이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곧 저를 다듬는 과정인데, 그 과정을 안 거치고 화나면 화내고 껄끄러우면 부딪치고…. 그렇게 살면 결과도 좋지 않겠다고 생각했죠.”
김영민은 자기 주변에 누구 못지않게 불우한 성장기를 보낸 사람이 여럿이라고 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부산 해운대구을 김미애(金美愛) 의원(국민의힘)이다.
“김미애 의원의 인생도 이재명 의원이랑 비슷하거든요. 그런데 그분은 해맑아요. 세상에는 힘든 사람이 많고, 앞으로도 수많은 사람이 좌절을 극복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제 생각엔 바람직한 성공 모델이 아니니까요.”
김영민은 “고난을 겪는 과정에서 생긴 마음의 외상을 치유하고, 자신이 받은 상처를 악(惡)으로 갚지 않기 위해 정신 수양을 해야 하는 건 사람의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말해 힘을 힘으로 누르고 악을 악으로 갚아온 누군가가 있고 그런 인물이 크게 성공한다면, 그리고 그런 사례가 많아진다면 사회적 파장은 어마어마할 것”이라는 걱정도 했다. 그의 말은 더 이어졌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중학교 때까지 인기남(人氣男)이었죠. 항상 사람들이 절 좋아했어요. 그랬는데, 제가 힘들어지고 삐뚤어지고 난 뒤부턴 제가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은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왜 주변 사람들한테 예전만큼 사랑받지 못할까?’ 이런 고민을 심각하게 했습니다.”
― 고민의 답은 찾았습니까.
“네. 어느 순간 제가 입만 열면 네거티브한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내 안에 불평불만이 많이 쌓여 있구나, 뭐 이런 걸 스스로 모니터링했습니다.”
인기인으로 살던 사람들은 주변의 갈채와 응원이 없어지면 생각보다 타격을 크게 받는다. 삶의 동력원(動力源)이 꺼진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건 어떻게 극복했을까?
오리엔테이션 때 박수 치며 울어

▲베이스 기타 치며 주방 보조 일하던 20대 초반 무렵.
“저 같은 경우는 상황이 더 안 좋은 것이, 인기의 저변이 될 수 있는 주변 친구들이 타의(他意)에 의해서 갑자기 사라져 버린 상황이잖아요. 처음에는 주변의 불우한 사람들과 어울려서 많이 놀았어요. 그때 신설동 검정고시 보습학원에 가면 학교 잘린 사람들 엄청 많았거든요. 거기서 수업 하나 끊어서 듣고, 끝나면 술 마시고 노는 거죠.”
― 갑자기 비행 청소년이 된 겁니까.
“이렇게 놀다 보면 조금 위안이 되는데, 다들 너무 노니까 ‘이러다 큰일이 나겠다’, 겁이 났죠. 비행(非行)의 범주가 넓은 친구들도 있었고요. 건달 조직에 있는 친구도 있고, 유흥업소 다니는 누나들도 있고…. 아주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노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들어서 이 생활을 끊자고 결심했다. 옆에서 담배를 권하고 패싸움 나고 경찰서 들락거리는 걸 직접 보고 내린 결론이다.
“정신이 확 들더라고요. ‘이 시기는 내 생애에 가장 힘든 시기인가 보다’라고 현실을 받아들였죠. 한 두세 달 정도 그렇게 놀았을까요?”
― 대학교 진학할 때는 어떤 생각으로 한 겁니까.
“일단은 00학번으로 진학해서 또래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첫 번째였습니다. ‘일단 또래들 만나면 그때부터는 다시 제 인생을 풀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절박한 기대가 있었어요. 그때는 제가 주로 보고 사는 사람들이 항상 아저씨, 아줌마들이었거든요. 보일러 설비 일 외에 음식 배달도 했는데, 또래를 만날 일이 아예 없었습니다.”
배달 일을 한 곳은 서초동의 지하상가다. 인근 큰 건물들을 돌며 배달했다. 힘이 들 때마다 ‘엘리베이터 타고 다닐 수 있으니 편한 아르바이트’라고 세뇌했다.
― 또래들과 다시 만났을 때의 느낌은 어땠습니까.
“오리엔테이션 때 딱 극장 문 열고 들어갔는데 한 300명 정도가 쫙 앉아 있더라고요. 지금 20년이 넘었는데도 그때를 생각하면 울컥합니다. 막 박수 치면서 울었어요. 울면서 생각했죠. ‘여기가 끝이 아니다. 1차 목표를 이뤘으니 2차 목표를 세우자.’ 그 목표가 방송 출연이었습니다.”
방송 데뷔

▲하루 만에 김영민을 멤버로 받아준 ‘화니지니’ 형들. 김영민 합류 후 팀 이름을 ‘화니지니미니’로 바꾸었다.
첫 단계로 홍대 클럽을 쭉 돌았다. 그곳에서 연주하는 것이 목표였다. 궁극적 목표는 당시 개그 프로그램의 최고봉 〈개그콘서트〉 출연이었다.
― 방송 활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폭소클럽〉이라는 프로그램 중에 ‘화니지니(오승환/최현진)’라는 코너가 있었어요. 기타 치고 성대(聲帶) 모사하는 코너였는데, ‘저까지 3인조로 가면 좋겠다’라는 느낌이 딱 왔죠. 그래서 주변 사람 수십 명에게 〈폭소클럽〉 방청권 신청을 해달라고 했는데 딱 한 명이 당첨됐습니다. 근데 그게 또 제가 됐어요, 제 아이디가. 그래서 녹화 당일 제일 먼저 가서 앞자리 1번 좌석 받고 앉아 있다가 중간에 화장실 간다고 하곤 나왔습니다. 그러곤 지하 출연자 대기실로 무단 침입했어요. 방을 다 뒤졌는데 맨 마지막 방에 화니지니 선배님 두 분과 〈폭소클럽〉 메인 작가가 계시더라고요. ‘선배님들 너무 존경해서 찾아왔다, 오디션 한번 보게 해달라’며 매달렸습니다.”
당장에 쫓겨날 법한 상황이었는데 개인기를 보여주니 일단 회의할 때 한번 와보라며 번호를 줬다. 2주 후 열린 회의 때 준비해 간 아이디어가 바로 통과, 그 길로 데뷔했다. 2004년의 일이다. ‘화니지니’는 ‘화니지니미니’로 타이틀을 바꾸고 1년 이상 방송했다. 〈폭소클럽〉은 2005년에 종영했다. 그 뒤로 김영민은 프리랜서 활동을 하다 2008년 〈개그콘서트〉에 합류했고, 2009년 4월 육군에 입대했다.
‘손 털면 대본 나온다’
― 개그맨들의 꿈의 무대, 〈개그콘서트〉는 어떤 과정을 거쳐 출연했나요.
“처음에 ‘왕비호’ 대본을 썼어요. 현역 가수들을 다루는 데다 문화 비평적인 요소가 있어 쉽게 쓸 수 있는 대본은 아니었습니다. ‘손 털면 대본 나온다’라며 작가 역량을 어느 정도 인정받고 개그맨들도 ‘잘 짠다’라고 소문을 내줬죠. 박성호 선배가 본인이 하는 코너에 저를 데리고 갔습니다. ‘뮤직 갤러리’라는 코너였는데 이게 ‘뮤직 토크 시즌2’ 같은 느낌이었어요. 농반진반으로 저보고 천재라며 띄워줬는데, 진짜 천재였던 김석현 PD가 저를 좋게 봐주셔서 23기 특채로 합류했습니다.”
― 23기 동기는 누굽니까.
“공채로 뽑힌 사람은 오나미, 김민경, 정태호 등입니다. 동기들이 다들 너무 착해요.”
― 항간에 알려지기는 개그맨들은 공채 기수별 군기가 세다 이런 얘기가 있는데, 어느 정도입니까.
“저는 데뷔 기준이 아니라 특채 기수를 기준으로 생활했습니다. 제가 적응을 잘하는 편이어서 허경환 선배나 박영진, 박성광 선배 같은 경우는 저랑 동갑인데 저는 존댓말 하고 또 그분들은 반말하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잘 지냈어요. 딱히 불편하진 않았습니다.”
― 개그맨 사이에 그런 서열이 존재하는 이유는 뭘까요.
“개그맨들은 상당히 자유분방해요. 팀 프로젝트를 하려면, 아주 파격적으로 강한 규율 없이는 사실상 통제하기가 힘든 면도 있습니다. 인격 모독을 한다든가 폭력을 쓰면 안 되지만, 강력한 규율의 필요성은 있는 조직이죠.”
‘감수성’ 내시 역할로 복귀

▲김영민의 ‘평생 캐릭터’를 만든 〈개그콘서트〉의 ‘감수성’ 코너. 서수민 PD가 병졸이 아니라 내시를 해보라고 권했다.
― 군(軍) 복무는 그 뒤에 한 건가요.
“2009년 4월 입대, 2011년 3월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제대했습니다. 군대에서는 참 재밌었어요. 인천 본부에서 근무했는데, 제가 체감하기로는 정말 왕처럼 지냈습니다. TV에 나왔던 개그맨이 입대했다고, 장교단 만찬 사회로 불러주셨어요. 밤에는 장병들 취침 전에 미친 듯이 웃기고 게임도 하고…. 전천후(全天候) 사회자에 1인 밴드, 취침 직전 막사 버스킹(?) 등, 거의 매일 즐겁게 ‘공연’했습니다. 하도 불려 다니니까 위에서 미안(?)하게 생각하셨는지, 나중에는 거의 매달 휴가를 보내주셨어요.”
김영민이 군 생활을 잘했다는 증거는 또 있다. 군 생활을 같이한 1년 후임과 지금도 같이 일하고 있다. 전역하고 그다음 주에 바로 〈개콘〉에 복귀했다. 여러 아이디어를 들고 말년 휴가 때 제안했는데, 아이디어를 검토하는 사이 한 주 비는 시간에 일단 ‘아무거나 해보자’고 했다.
“그렇게 탄생한 코너가 ‘감수성’입니다. 제가 군대에서 2년간 짰던 코너는 하나도 채택되지 않았고, 김준호 선배가 짠 아이디어가 뽑힌 겁니다. 내시 캐릭터도 서수민 PD가 제안한 겁니다. 원래는 병졸(兵卒)이었는데, ‘내시 역할을 해보라’고 했죠. 저에겐 엄청난 행운이었습니다. 이걸로 ‘내시십분’ 유튜브까지 하고 있으니까요. 저에게는 인생 캐릭터죠. 결혼식 사회 자리는 끊겼지만, 더 큰 일들을 만날 수 있었으니까요.”
― ‘감수성’의 내시 역할이 강렬하기는 했지만, 주인공은 아니었잖아요? 그런 데서 오는 아쉬움은 없습니까.
“전혀요. 개그맨들의 가장 큰 목표는 자기 캐릭터를 가지고 오래가는 코너를 하는 겁니다. 거기서 더 잘되는 건 플러스 알파죠. 장수 코너를 하나 했고, 사람들이 기억해주고 어디 가서도 저를 소개할 수 있는 캐릭터가 있다는 건 그 자체가 축복이죠. 제가 생각했던 거 이상으로 얻은 겁니다.”
‘가장 유머러스한 우익 유튜브 채널’
‘내시십분’ 유튜브는 ‘내시가 들려주는 10분 시사 이야기’라는 뜻이다. 2020년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정치 현안 이외에 개그계 뒷이야기도 가끔 업로드한다. 역사, 노래 등 다른 콘텐츠도 있다. 욕설, 고함 없이 온건하고 교양 있는 방송을 하는 것이 목표다. 지상파 출신이니만큼 절대 과격한 주장이나 음모론을 설파하지 않겠다고 언명(言明)했다. ‘모든 일을 있는 그대로 보자’라는 의도다. 그래서 ‘내시십분’을 ‘가장 유머러스한 우익 유튜브 채널’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 우익 유튜브를 시작한 계기는 뭡니까.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가장 주요한 동기는 문화 미디어 우익 필패 구도를 바꾸려고 도전한 겁니다. 예술계는 전반적으로 좌성향이 우세합니다. 우익 신념을 드러내는 순간 많은 견제와 시기를 받는 것이 사실이죠. 누구라도 우성향 발언을 하면 바로 ‘컷’ 당하니까 미리 위축됩니다. 좌익은 다르죠. 과거 광우병 선동에 가담했던 연예인들은 우리 사회에 천문학적인 손해를 입혔고, 주장했던 바가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런데도 반성하기는커녕, 아직도 큰소리치며 활동하죠. 반면 우익은 예전에 했던 발언이 한마디라도 논쟁거리가 되면 그냥 잘립니다. 그런 측면에서 극명한 차이가 있어요. 이대로 가면, 우익은 영원히 패배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화계 전체의 좌경화(左傾化)를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익 문화인들이 도전하고 악조건 속에서 살아남아야 풍토가 개선된다고 생각했습니다.”
― 방송에서 우익 내부에도 문제가 있다고 하셨죠.
“네. 우익 정치권은 미디어 저변을 보호하지 않고 강성 지지자들의 발언을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능욕하고 조롱하고 모욕하고 극우적인 발언은 스스로를 고립시키죠.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좌익은 이런 분들을 온라인상의 우파의 이미지로 포장해 프레임을 씌워요. 그런데 오른쪽에서는 그런 구도에 또 자발적으로 말려 들어가거든요. 저는 이런 점을 용납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 결론은 우익의 문화전선(文化戰線)은 상당 부분 무너졌다는 겁니다. 그래서 시대적 소명 반, 제 정치적 목표 반 해서 콘텐츠를 만들고 있습니다.”
‘억울해서 안 되겠다’
김영민의 인생 목표는 선한 영향력과 전문성을 길러서 그것을 동력으로 정치권에 진입하는 것이다. 축제와 관광에 평생을 걸었고 방송을 떠난 이후엔 행정기관과 여러 프로젝트를 함께하며 경험도 쌓았다. 대학 재학 중 정당 지역 활동을 하는 등 정치권을 기웃거렸는데, 결론은 ‘이런 식으로 청년들이 정당 활동을 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라는 것이었다. 활동을 했을 때 얻는 이점도 없고 경쟁할 수 있는 틀도 없고 그러니 당연히 저변이 없었다. 저변이 없다면 그 진영의 미래도 없는 것 아닌가. 정당 행사는 정책을 만들고 삶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친목 대회의 확장판 같았다.
그래서 세운 전략이 ‘시간이 걸리더라도 내 장점을 발현할 기회를 만들고, 통찰력을 가진 인플루언서가 된 후 직접 정치권으로 들어가자’라는 것이었다.
― 그런데 방금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문화예술계에는 좌성향 분들이 많잖습니까? 우익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다는 것 자체가 위험을 무릅쓰는 일이었을 것 같습니다.
“제 주변 분들이 ‘내시십분’은 제가 외로워지는 길이라고 걱정하시는데, 오히려 반대입니다. 외롭지 않기 위해 하는 거죠. ‘아무리 생각해도 제 말이 맞는 것 같은데, 왜 아니라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까. 억울해서 안 되겠다, 메시지를 던지자!’라고 결심한 겁니다.”
― 반응이 어땠습니까.
“제가 생각한 대로였습니다. 세상에는 정말 많은 사람이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계셨어요.”
― 그런데 왜 침묵한 걸까요.
“문화적 방어선을 구축하려면 각계각층의 다양한 분들이 메시지를 내야 하는데, 메시지를 내는 것 자체가 주변의 생각이 다른 분들과 불편해진다는 뜻이잖아요. 또 소위 ‘양념질’이라는 걸 당하다 보면 행동이 위축되죠. 이러다 보니까, 문화 선동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방어선이 무너진 것 같습니다.”
‘極左-極右 共生’
김영민은 예전에 시청한 몇몇 프로그램을 잊지 못한다.
“고(故) 김동길(金東吉) 교수님이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의 업적을 이야기하시는데, 제가 학교에서 들었던 것하고는 이야기가 달랐거든요. 무엇이 진실인지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보니, 읽어볼수록 호기심이 생겼어요. 그리고 저는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을 악마로 알았는데 드라마 〈서울의 달〉에서 ‘너 좋아하는 대통령이 누구야?’ ‘나? 박정희. 뭐 그래도 그분 덕에 먹고사는 거 아냐?’ 이런 대사가 나오더라고요. ‘이건 뭐지?’ 의문이 들어서 열심히 알아봤습니다.”
― 유튜브 하면서 제일 어려운 점, 억울한 점은 뭡니까.
“극좌극우(極左極右) 양쪽에서 저를 다 싫어합니다. 제가 유튜브를 시작한 계기 중의 하나가 극좌극우 때문입니다. 이들의 공생관계(共生關係)를 깨기 위해서는 외형적으로 멀쩡해 보이고, 강성 발언을 안 하는 스피커가 꼭 나와야 한다고 봤습니다.”
김영민의 냉정한 비분강개(悲憤慷慨)와 차분한 분석이 이어졌다.
“상식과 비상식, 지성과 반지성, 위선과 팩트의 대결로 프레임을 짜야 진실이 승리합니다. 그런데 뇌피셜, 사실 반 소문 반, 이런 이미지가 우익 유튜버의 본령으로 굳어지는 걸 전 용납할 수 없었어요. 언어폭력을 통해 초법적(超法的) 응징을 하는 건 어떻게 보면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와도 맞지 않습니다. 인터넷 좌표 찍어서 조리돌림하는 것도 어마어마한 폭력이죠.”
― 극좌극우의 행태가 그렇다는 겁니까.
“네. 그래서 저는 극좌극우가 공생하는 구도를 보고, 중간지대에 변종(變種)으로 구독자 100만 채널이 하나 자리 잡으면 새로운 문화를 만들 수 있겠다 생각합니다. ‘내시십분’ 구독자가 현재 35만 정도니까 갈 길이 한참 멉니다만 꼭 목표 달성 하겠습니다.”
“무례한 사람과는 대화 않는다”
극좌극우는 실제로 김영민을 많이 괴롭힌다. 스토커처럼 따라다니는 사람도 있고, 관공서 행사에 압력을 넣어 김영민의 출연을 막기도 한다. 심지어는 출연료 20만원짜리 소규모 행사까지 저인망(底引網)으로 훑듯 검색, 김영민의 활동을 막는다. 이념 상업주의자들에겐, 진실과 교양으로 무장한 김영민의 방송이 자신들의 밥그릇을 위협하는 무서운 ‘공적(公敵) 1호’인지도 모른다.
“저는 그분들 언행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분들에겐 안타까운 일이지만, ‘내시십분’은 전망이 참 좋아요. 제 생각에는 100만 구독까지는 무난하게 가리라 예상합니다. ‘강경하게 말하지 않으니 너는 가짜다. 너 같은 놈은 필요 없다’라는 분은 소수입니다. 극단적인 요구는 사절입니다.”
온건하고 합리적인 주장을 착근(着根)하기 위해, 김영민은 초창기부터 노력했다.
“‘내시십분’ 구독자가 3만~4만일 때부터 반말 댓글러들을 다 쫓아냈어요. 저는 무례한 사람과는 대화하지 않습니다. 처음에 강성 담론, 음모론과 선 긋고 ‘예의를 갖춰주세요’라고 했더니 괘씸하다며 3000명이 빠져나가더군요. 그런데 3000명 빠지고 나서 30만 명이 늘었습니다. 정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싶은 시청자의 수요는 확실해요. ‘내시십분’ 구독자가 100만까지 가면 ‘사실에 기반한 합리적 의견 교환’이 하나의 정치 유튜브 문화가 되리라 기대합니다.”
― 멋지네요. ‘내시십분’의 가장 큰 강점 중의 하나는 여러 우익 채널과 달리 문화 엄숙주의에 빠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시청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재미’라는 요소와 유머 코드를 부드럽게 집어넣었다는 거죠.
“문화적인 부분으로 접근하는 이유는, 콘텐츠 노출을 좀 더 광범위하게 하기 위해섭니다. 노래 듣고, 코미디 보며 웃는 와중 자연스럽게 제 메시지가 스며들게 하는 거죠. 간접적으로 정치적인 구도를 만드는 것이 스피커의 역할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윤석열은 이래요. 이재명은 이래요’ 이렇게 말하는 것보다 그냥 둘의 가상 대화를 통해서 한쪽은 논리 없이 우기다가 욕하고 한쪽은 논리적으로 반박하고 이런 구도를 만들어서 시청자들이 자연스럽게 감정적으로 동조하도록 하면 정서적 침투력이 크죠.”
‘내시십분’만의 따뜻함

▲김영민의 유튜브 채널 ‘내시십분’은 신랄한 정치 비평과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성대모사로 인기를 끌고 있다.
김영민의 재치는 콘텐츠 곳곳에 보석처럼 박혀 있다. 예컨대 ‘우익(右翼)은 빛과 소금, 좌익(左翼)은 빚과 세금(稅金)’ 같은 경구(驚句)다.
― 대본은 누가 쓰는 겁니까.
“제가 주로 씁니다. 생각나는 대로 쓰는데 재미있다는 분들도 있고 조언 주시는 분도 계시죠.”
김영민은 발언 수위를 조절하고 조심스럽게 표현을 고른다.
“최대한 임팩트 있게, 그리고 문학적 비유를 많이 합니다. 제가 호남 출신(남원)이고, 주변이 다 민주당 지지자다 보니까, 그게 자연스럽게 훈련이 된 것 같아요. 왜냐면, 저와 생각이 다른 분들이 다 저를 업어 키우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했던 분들이잖아요? 이분들을 설득하려면, 생각을 쥐어짜고 온갖 대답을 다 예상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제 평생이 그랬어요. 그런데 시청자들 가운데는 저와 생각이 비슷하거나 약간만 다른 분들이 많으시잖아요? 그래서 지금은 모래주머니 차고 달리다가 갑자기 모래주머니 푼 느낌입니다.”
김영민의 고백이 이어졌다.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자의 자기성찰(自己省察)이었다.
“기본적으로 제가 반대 진영을 혐오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가족을 미워할 수는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결국에는 우리가 하나’라는 전제를 깔고 설득합니다. 그러다 보니 ‘내시십분’만의 따뜻함이 있는 거죠.”
문학적 비유? 김영민은 열심히 자기 투자를 하는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거의 도(道) 닦듯 생활한다는 주변의 증언도 있다.
“일반적인 생활 패턴에서는 남다른 통찰이 나오기 힘드니까요. 전 아예 술자리를 안 하고 8시 이후에는 모르는 전화면 받지 않습니다. 오프라인 비즈니스 안 하고 소모임 안 하고 커뮤니티 활동도 하지 않습니다. 미래의 공직자로서 이런 장점을 가진 사람이 되자는 제 나름의 준비죠. 전문성을 길러서 선출직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그러자면 그에 걸맞게 노력해야죠.”
― 최근에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은 뭐가 있습니까.
“《독일인의 사랑》입니다. 좀 뜬금없는데 저는 고전문학을 많이 읽어요. 고전문학 작품에는 요즘 드라마에는 절대 나오지 못할 만한 오글오글한 문장들이 있는데, 그런 고어투(古語套) 문장에서 영감을 많이 받습니다. 신선한 것을 찾고 지적(知的)으로 자극받아야 좋은 콘텐츠가 나오잖아요? 그냥 술술 읽히는 작품보다는, 옛글을 찾아 읽으면서 아이디어를 채굴하는 거죠. 캐릭터 연기를 보는 듯한 느낌을 가질 때도 있고요.”
― 캐릭터 연기라면.
“약간 극적인 감정을 되살리기 위해서 소설을 많이 읽어요. 어렸을 때 읽었던 책들을 다시 보면서, 예전에 내가 이 책을 읽을 때 긴박감을 느꼈던 부분이 어디였나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어떤 문장은 제가 스피치를 하거나 글을 쓸 때 인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거죠. 예를 들어 《죄와 벌》을 읽으면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가 전당포 노파를 죽이러 가잖아요. 처음 읽었을 때 느꼈던 긴박감을 다시 떠올리면서 주인공의 심정에 몰입하고, 머릿속으로 그 대목을 제가 감독이 된 마음으로 영화처럼 상상하는 겁니다.”
그의 성취는 우연과 행운의 결과가 아니었다. 김영민은 치열했고 진지했으며 미래지향적이었다. 접근 방식이 유쾌했을 뿐이다. 이미 주어진 지면을 넘어섰으니, 그가 해운대 구청에 들어가 기발하고 치밀한 아이디어를 통해 단기간에 놀라운 성과를 낸 사연은 다음 기회에 소개하기로 하자.
“연예인이라는 사실이 행복”
― 《월간조선》 독자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제가 지금 하나의 문화를 만들고 문화 선동의 방어선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100만 구독자 채널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 글을 보시는 많은 분이 ‘내시십분’을 꼭 구독해주시고 앞으로 행보를 같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문화 선동이 왜 위험한 겁니까.
“자기가 정치적인 메시지를 접한다는 생각을 못 하는 사이에 정치적인 메시지를 접하는 것이니까요. ‘노래를 듣는다, 심심하고 울적한 마음을 달랜다’ ‘흥미진진한 장면을 보기 위해서 영화나 드라마를 본다’라고 생각하잖아요? 최근에 나온 몇몇 남북 관련 영화를 보면, 시청하는 중에 ‘북한 사람들은 싸움을 잘하네’ ‘북한 사람들은 가난하지만 체제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네’ 이런 왜곡된 고정관념이 생길 수 있어요. 재벌(財閥)은 비열하게 웃으면서 사람들을 하대하는 사람, 검찰은 무고한 생사람을 잡아가고 빨갱이로 모는 사람, 이런 왜곡된 인식들이 생길 수 있다는 거죠. 그렇게 머릿속에 박힌 사실과 다른 이미지는 우리 삶에 굉장히 큰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왼쪽으로 왜곡된 작품이 나오면 오른쪽으로 중심을 잡고 균형을 맞춰주는 콘텐츠가 꼭 있어야 합니다. 시도해야죠. 잘해야죠.”
― 본인의 학창 시절이 기구했는데, 체제에 대한 불만은 없습니까.
“고교 시절 3년 동안 학교 밖에서 떠돌며 학교 안에서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저는 돈을 힘들게 벌어봐서 연예인이라는 사실이 행복했고, 유튜브를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이 지금도 믿기지 않습니다. 하루하루만 겨우 생각하다 지금처럼 먼 미래의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축복이자 행복입니다.”
이 사내의 미래가 궁금했다. 미래에 이런 정치가가 하나 있어도 재미있고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빚과 세금’이 만연한 곳에 ‘빛과 소금’을 주러 김영민이 갈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글 : 장원재 배나TV 대표
03.13 측근 장례날도 정치 선동, 정말 도의는 관심도 없나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11일 시민단체들과 공동 주최한 ‘강제 동원 정부 해법 규탄대회’에 참석해 “윤석열 정부의 굴욕 외교를 심판하자”며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이 대표의 경기지사 시절 비서실장인 전형수 씨의 장례 발인식이 치러진 몇 시간 뒤였다. 전씨는 성남FC 후원금 사건과 관련, 이 대표와 공범으로 수사받던 중 극단적 선택을 했다. 전씨는 유서에서 “이 대표님, 이제 정치를 내려놓으십시오. 더 이상의 희생자는 없어야지요”라고 썼지만 이 대표는 전씨 장례식 당일에 장외 정치 투쟁에 나섰다.
이 대표는 집회 맨 앞줄에서 피켓을 들고 “윤 정부 규탄”을 외쳤다. 그는 “자위대의 군홧발이 다시 한반도를 더럽힐 수 있다”고 했다. 미·일이 한국을 일본에 넘기기로 합의한 구한말 역사를 꺼내 ‘제2의 가쓰라-태프트 밀약’까지 언급했다. 가능성 없는 억지 주장으로 정부의 징용 해법을 비난한 것이다. 이 대표는 수사에 대한 방탄을 위해 반일·반정부 카드를 꺼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씨 죽음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 대표는 전날 6시간 반을 기다리다 빈소에 조문했다. 민주당은 “빈소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댔지만 유족들은 “처음에 거부했다. (하지만) 오지 말라고 해도 안 올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다. 전씨는 유서에 “(이 대표) 본인 책임을 알고 있지 않느냐. 측근을 진정성 있게 관리해 달라”고 썼다고 한다. 하지만 이 대표는 “검찰의 과도한 압박·조작 수사 때문에 생긴 일이지 이재명 때문이냐”고 했다.
이 대표 수사와 관련해 지금까지 5명이 숨졌지만 이 대표는 한 번도 책임을 인정한 적이 없다. 성남도시개발공사 유한기 전 본부장과 김문기 전 처장이 극단적 선택을 했을 때 “어쨌든 명복을 빈다”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김혜경씨 법인카드 유용 관련인이 사망했을 때도 “이재명과 무슨 상관이 있나”라고 했다. 김 전 처장 유족은 “8년 동안 충성을 다해 봉사한 아버지에게 조문이나 애도 한 번 하지 않고 어떻게 모른다고 하느냐”며 분노했다.
전씨 장례 당일, 이 대표가 정치 선동 구호를 외치는 모습을 본 전씨 유족들 심정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전씨 죽음에 도의적 책임을 표하면서 자숙하고 애도하는 게 정치의 상식이자 인간의 도리다. 5명의 연이은 죽음 앞에서 어떻게 이렇게 당당하고 남의 일인 양 행동할 수가 있나. 민주당 안에서도 “그가 당대표인 것이 한없이 부끄럽다” “5명 목숨보다 정치 생명 지키는 게 중요한가”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최소한의 인간적 도의나 책임감, 미안함이 없다면 정치도 없다.
조선일보 사설
03-13 급기야 민주당 안에서도 ‘인간성 개탄’ 공개 표출된 李
수신-제가-치국 격언이 아니더라도 올바른 인성은 지도자의 기본 자질이다. 그것이 없으면 리더십이 신뢰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인간성에 대한 개탄이 당내에서조차 공개 표출되기 시작한 것은, 이 대표 리더십이 한계상황에 처했음을 의미한다. 특히, 이 대표의 성남시장·경기지사 시절 비서실장을 했던 전형수 씨는 유서에서 이 대표를 향해 ‘이제 정치를 내려놓으십시오’‘측근들 인간성을 길러주십시오’ 등의 고언을 남겼다고 한다. 이런데도 이 대표는 반일 선동 정치에 매달리고 검찰 수사 탓이라는 억지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윤영찬 의원은 10일 이 대표 사건과 관련된 5번째 죽음이라는 전 씨의 사망에 대해 “도의적인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그게 인간이고 그게 사람”이라고 했다. 김해영 전 최고위원은 “지금 상황에서도 이재명 방탄을 이어간다면 민주당은 그 명을 다 할 것”이라고 했고, 당내 인사는 아니지만 직언을 해온 진중권 교수는 “어떻게 인간이 저럴 수가 있나”라고 했다. 권리당원 게시판의 글은 더 험악하다. 앞서 유한기·김문기 씨의 극단 선택 때도 “어쨌든 명복을 빈다”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던 이 대표가 전 씨의 죽음마저 검찰 탓으로만 돌리자 “참담하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이 대표를 엄호했던 고민정 최고위원도 “어느 것이 옳은지 판단할 수가 없다”며 회의적 시각을 비쳤다.
이런데도 이 대표는 전 씨 발인 날인 11일 징용 배상안 반대 집회에 참석해 “자위대의 군홧발이 한반도를 더럽히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펼쳤다. 최근엔 삼전도 굴욕, 이완용에도 빗댔다. 이런 행태야말로 역사를 왜곡 해석하고, 현재의 안보·경제 상황을 저버리며, 미래 국익을 해칠 망국적 선동이다. 게다가 자신의 조상 묘소가 훼손됐다는 것은 즉각 SNS에 올려 비난하면서 측근 죽음엔 냉담하니, 인간성 걱정이 더 커지는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
03-13 측근 유서 취지 뒤엎는 ‘이재명 칼춤’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9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경기지사 시절 초대 비서실장 전모 씨가 자택에서 숨졌다. 타살 흔적이 없고 유서가 발견된 점 등으로 미뤄 전 씨가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전 씨는 이 대표의 성남시장 시절 비서실장과 수정구청장 등을 지냈고, 이 대표가 도지사에 당선된 뒤 인수위원회 비서실장을 거쳐 2018년 7월 이 지사의 첫 비서실장을 지냈다. 이후 경기주택도시공사 경영기획본부장과 사장 직무대행을 지내기도 했다.
유한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본부장, 김문기 전 성남도개공 개발사업1처장, 이 대표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을 처음 제보한 시민단체 대표, 배우자 김혜경 씨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의 핵심 인물 배모 씨의 40대 지인 등 이 대표 주변 인물 4명이 이미 극단적 선택을 했거나 사망한 데 이어 5명째다.
이 대표는 무리한 수사가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검찰을 강하게 성토했다. 주변 인물들의 잇따른 죽음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검찰의 과도한 압박 수사 때문이라며 “검찰의 미친 칼질을 용서 못 한다”고 했다.
정확하지는 않으나 유서 관련 보도를 종합하면, 전 씨 자신이 수사를 받는 데 대한 ‘억울함’과 이 대표에 대한 ‘서운함’을 엿볼 수 있다. ‘이제 정치 내려놓으십시오’ ‘검찰 수사 관련 본인 책임을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함께 일한 사람들의 희생이 더 이상 없어야지요’ ‘주변 측근을 잘 관리하세요’ 등이 전 씨가 밝힌 심경인 것으로 전해진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억울하게 했을까? 이 대표는 모두 검찰의 수사 탓으로 돌렸다. 하지만 전 씨에 대한 검찰 수사는 지난해 12월 단 한 차례 있었다. 오히려 이 대표에 대한 억울함과 서운함이 더 컸을 수도 있다. 공무원으로서 상관이 지시하는 것을 했을 뿐인데 그것이 문제가 되자 정작 이를 지시한 사람은 아무도 없고 모든 것을 자신이 감당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그를 정말 억울하게 하지 않았을까? ‘주변 측근을 잘 관리하세요’라는 전 씨의 유서를 통해, 그를 죽음으로 내몬 건 검찰이 아니라 이 대표의 섭섭함과 측근들의 무례함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강한 의심이 든다.
무엇보다 주변 인물들의 잇따른 죽음에 대해 ‘나는 어떤 잘못도 없다. 오로지 윤석열 검찰의 칼질 때문이다’라고 주장하는 이 대표의 자기중심적 사고가 놀랍다. 조그만 조직의 장(長)도 자신의 비리와 결부된 측근이 극단적 선택을 하면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일단 자신의 부덕함을 사과하는 것이 일반적인 자세이고 도리다. 1명도 아니고 벌써 5명의 주변 인물이 숨졌는데도 자신의 부덕함에 대한 자성은 한마디도 없이 오로지 ‘검찰 칼질’ 탓으로만 돌리는 이 대표의 사고가 놀랍고 걱정된다.
‘검찰의 칼춤’만으로 선량한 국민이 극단적 선택을 해야만 할 정도로 대한민국의 사법 체계가 엉성하진 않다. 검찰의 수사와 인신 구속은 법원의 철저한 통제를 받는다. 이 대표는 정말 자신이 결백하고 당당하다면 검찰 수사에 적극 임해 ‘검찰의 칼춤’에서 벗어나 법원의 판단을 받기 바란다. 전 씨의 유서처럼 이제 정치에서 물러나 자신을 돌아보고 자숙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정치인 이 대표와 제1야당인 민주당의 정치적 책임이고 국민에 대한 도리다.
문화일보
03-13 진중권, 이재명에 “어떻게 인간이 저럴 수 있나” 분노
전형수씨 사망에 비판의 목소리 높여
“이재명 안 만났으면 살아 있었을 것”
진중권 광운대학교 특임교수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초대 비서실장 고(故) 전형수(64)씨의 사망에 대해 “어떻게 인간이 저럴 수 있나 분노가 든다”고 했다.
지난 10일 진 교수는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이같이 밝혔다. 진 교수는 “지금 (사망한 사람이) 4명이다. 자기(이 대표)를 만나지 않았으면 이 사람들은 살아 있었을 것”이라며 이 대표 관련 인물들의 사망을 언급했다. 또한 “본인 때문에 그렇게 됐는데, 그러면 사람이 양심의 가책이라는 걸 느끼지 않겠는가”라며 “그런 것 없이 계속 검찰 탓만 하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앞서 이 대표는 9일 수원 경기도의회 대회의실에서 현장 최고위원회를 주재하며 “이게 검찰의 과도한 압박 수사 때문에 생긴 일이지, 이재명 때문이냐. 수사를 당하는 게 제 잘못이냐”고 언급했다. 이에 관해 진 교수는 “(전씨는) 지난해 12월에 딱 한 차례 조사를 받았다”, “당시 모든 상황이 녹화되어 있다. 녹화가 되는데 검찰에서 강압 수사나 부적절한 취조를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진 교수는 “성남FC 사건 공소장에 이분(전씨) 이름이 25번 등장하는데, 저는 이분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전씨는) 공무원이라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하고 윗사람이 가자는 대로 따라가야 한다. 결국 그걸 지시한 사람은 이 대표”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결국 전씨는 위법한 행정 행위에 자기가 동원된 것에 대한 죄책감과 부담감 때문에 목숨을 끊은 건데 (이 대표는) 이게 검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저는 인간적으로 정말 분노한다”고 비판했다.
진 교수는 전씨의 유서로 추정되는 글에서 이 대표에 대해 ‘정치를 내려놓으셔야 한다’, ‘더 이상의 희생은 없어야 한다’는 내용이 언급된 것을 거론하기도 했다. 진 교수는 “사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이 대표가) 책임을 지고 나서서 ‘다른 사람 책임은 없다’, ‘내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 이렇게 나와야 하는데, 자기는 딱 빠졌다”며 “(유사한 상황이) 앞으로 계속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경찰 등에 따르면 9일 전씨는 경기 성남시 수정구의 한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현장에서 범죄 혐의점이 없다고 보고 전씨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결론지었다.
[뉴시스] 문화일보
03.16 정말 꾀죄죄하다

꾀죄죄하다. '마음 씀씀이나 하는 짓이 매우 좀스럽고 옹졸하다'는 뜻이다.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이 지난달 말 라디오에서 했던 이 말의 반향이 꽤 컸다. 직설적 평론가인 그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해 "억울하면 굳이 (체포동의안에) 목 맬 필요가 없다. 정치를 계속 하려면 좀 감동적인 모습이 있어야 되는데, 대선에 지고 인천에 보궐선거 나가고 한 모양들이 어쩐지 좀 꾀죄죄해 보인다. 국민들에게 감동과 울림을 주는 정치를 했으면 한다"고 했다. 또 "영장실질심사를 받아 구속되면 또 어떠냐. 그 정도 모험도 안 하고 자꾸 거저먹으려고 하면 안 된다"며 자신을 내던지는 큰 정치를 주문했다.
서울대 운동권 출신인 유 전 총장은 1974년 민청학련 사건 때 재판장이 사형을 선고하자 "하도 기가 차서" 피식 웃었던 인물이다. 방청석의 모친이 그 순간 졸고 있었다는 얘기도 전설처럼 떠돈다. 청와대 정무수석 시절 노무현 대통령에게 직언을 마다 않는 거침없는 태도에 '엽기 수석'이란 별명을 얻었다. 그에게 꾀죄죄하지 않은 정치인이 몇이나 될까 싶지만 어쨌든 현재 이 대표에게 가장 적확한 표현인 것 같아 무릎을 쳤다. 주변 인물의 다섯 번째 극단적 선택에도 꿈쩍 않는 이 대표를 지켜보자니 유 전 총장의 말이 더 가슴에 와닿는다. 집착과 무책임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본인은 물론 총선을 앞둔 민주당의 '꾀죄죄 지수'가 폭발적으로 치솟을지 모른다.

▲지난해 3월 대선 방송토론 참석한 이재명 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 [국회 사진기자단]
지난주엔 국민의힘 대표 경선전이 막을 내렸다. 후보 4인의 성적표는 김기현 53.93%, 안철수 23.37%, 천하람 14.98%, 황교안 8.72% 순이었다. 친윤계의 일방적 응원을 업은 김기현 후보가 1차 투표에서 경선을 끝내며 체면치레를 했다. 천하람 후보는 이준석계라는 '주홍글씨'를 가슴에 달고 뛴 불리함 속에서도 유망주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황교안 후보는 꼴찌였지만 총선 부정선거 의혹 외에도 이슈를 제기할 능력이 있다는 걸 보여줬다. 경선을 거치며 위상이 쪼그라든 이는 안철수 후보가 유일해 보인다. 23.37%란 득표율이 숫자 그 자체보다 더 왜소해 보이는 데엔 경선 전·후반이 판이했던 그의 태도가 일조했다.
대선 도전했던 이재명과 안철수
울림 없는 좌고우면 태도로 위기
생존에 급급한 정치는 한계 뚜렷
경선 초반 안철수는 친윤계의 집단 구타 대상이었다. "실체도 없는 ‘윤핵관’ 표현으로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사람은 국정 운영의 방해꾼이자 적"이란 윤석열 대통령의 직격탄이 그를 향했다. 그동안 존재감 제로였던 이진복 정무수석도 "아무 말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날 것”이란 대한민국 경선사에 길이 남을 명대사를 날렸다. 휘청한 안 후보는 거짓말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실제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차가운 돌 위에서 3년을 앉아 참고 견디면 결국 돌도 따뜻해진다"는 초인적 인내심으로 때를 기다리다 일본 전국시대를 평정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연상됐다. 하지만 끝까지 참지는 못했다. 대통령실 행정관 경선 개입 논란이 불거진 뒤 발끈했다. 대통령실 수석을 고발했고, 이념 성향이 판이한 황교안 후보의 손을 잡고 "대여 투쟁"까지 다짐했다. 정치권에선 "천하람의 추격세를 뿌리치고 2위를 사수하기 위한 행동"이란 분석도 나왔다. 12년 전 서울시장 후보직을 5% 지지율 후보에게 양보했던 기개는 어디로 갔을까. 결과적으로 '모'도 아니고, '도'도 아닌 어정쩡한 신세가 됐다. 당의 분란을 막기 위해 침묵했다는 명분도, 대선 출마를 위해 절실한 친윤계의 마음도 모두 놓쳤다.
전직 대통령 후보 이재명과 안철수가 동시에 위기에 직면했다. 약속이나 한 듯 눈앞의 이익에 좌고우면하다 큰 것을 잃을 처지에 몰렸다. 위기를 스스로 만든 공통점도 있다. 한국 정치사에서 눈앞의 생존에 급급했던 정치인은 늘 한계가 뚜렷했다. 감동과 울림의 대반전 드라마를 써도 대선 재도전이 가물가물한 두 사람인데, 현재 모습은 참 꾀죄죄하다.
서승욱 논설위원 sswook@joongang.co.kr
03-16 “굴비, 공진단에 유흥업소 여직원까지 비행기표 끊어주며 태국으로 데려와”…김성태의 ‘황제 도피’
검찰이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의 해외 도피생활을 도운 혐의로 기소된 수행비서 박모 씨 공소장에 유흥업소 여직원을 태국으로 부르고 굴비와 공진단 등을 한국에서 공수하는 등 ‘황제 도피’ 정황을 구체적으로 담은 것으로 나타났다.
16일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한 김 전 회장 수행비서 박 씨 공소장에 따르면, 박 씨는 지난해 6월 “(유흥업계 종사자) A 씨가 김성태 회장을 만나기 위해 태국으로 출국할 수 있게 왕복 항공권을 예매하라”는 지시에 따라 항공권을 예매했다. 또 쌍방울 비서실 직원을 시켜 전기밥솥을 비롯해 굴비 등 음식과 공진단 등을 항공 수화물로 보내라고 했다.
검찰 수사 결과 박 씨는 총 7회에 걸쳐 김 전 회장을 만나러 출국하는 그룹 임원과 가족 지인의 항공권을 예매하는 데 관여했다. 특히 박 씨는 쌍방울 비서실 직원과 메신저를 주고받으면서 김 전 회장의 동선이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 항공권과 호텔을 법인카드가 아닌 개인카드로 결제토록 했다.
공소장에는 박 씨가 한국에 있는 쌍방울 직원을 통해 공수한 물품 중에는 고추장과 들기름, 참기름을 비롯해 김치와 과일, 건어물, 생닭, 닭발 등 다양한 식재료와 음식물이 기재됐다.
김 전 회장은 전기 이발기 등 생활용품도 박 씨를 통해 한국에서 공수받았다. 검찰은 수사를 피해 출국한 김 전 회장이 박 씨를 통해 사실상 황제 도피 생활을 했다고 판단했다.
박 씨의 치밀한 도피 생활도 공소장에 담겼다. 그는 지난해 말 호텔에서 빌라로 은신처를 옮겼고, 도피 기간 내내 은신처에서 자동차로 1시간 이상 거리 벗어난 곳에서 휴대전화를 켜서 사용했다. 수사기관의 위치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다. 박 씨는 올해 1월 10일 태국 방콕 인근 골프장에서 체포됐다.
문화일보 염유섭·윤정선 기자
03.18 혁신 필요한 민주당 혁신위
민주당은 올 초 이재명 대표 주재로 정치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이재명 민주당 체제를 혁신할 각종 개혁안을 논의하는 기구다. 위원장은 초선 장경태 의원이 맡았다. 그런데 불과 몇 달 만에 당 안팎에서 “도대체 뭐 하는 조직이냐”는 비판이 나온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당 대표실에서 열린 정치혁신위원회 출범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3.01.06. /뉴시스
얼마 전 혁신위는 내년 총선 공천에 ‘개딸’ 강성 당원들의 평가를 반영하는 안을 논의한다고 밝혔다. 장 위원장은 언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비명계가 크게 반발하며 당내 여론이 악화되자, 장 위원장은 “검토만 한 것”이라며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최근에는 당직자가 기소되면 직무를 정지하도록 한 당헌을 삭제한다고 알려졌다. 장 위원장은 이런 내용으로 언론 인터뷰도 했다. 하지만 이 대표의 기소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논란이 커지자 장 위원장은 “당헌 개정 논의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당내에서는 “설익은 안을 가지고 장 위원장이 자기 장사만 하는 것 같다”는 말이 나온다.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정치혁신위원장이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당 대표실에서 열린 정치혁신위원회 출범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3.01.06. /뉴시스
우스운 점은 불과 1년 전 대선을 몇 달 앞둔 시점에 민주당은 “대한민국 정치를 바꾸겠다”며 이재명 대선 후보 주재로 정당혁신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켰다는 것이다. 지금의 정’치’혁신위에서 정’당’혁신위로 한 글자만 다르다. 당시 위원장도 장 위원장이었다. 장 위원장은 그때도 언론 카메라 앞에서 수차례 기자회견을 열고 대대적인 혁신안을 발표했다.
현재 장 위원장 홈페이지에서도 쉽게 보이는 당시 혁신안은 주옥같은 내용으로 가득하다. “정치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며 당규를 고쳐 ‘국회의원의 동일 지역구 3선 연임 초과 금지안’을 이번 국회부터 시행하자고 했다.
“국회의원 특권을 내려놓자”며 ‘면책 특권’ ‘불체포 특권’을 제한하자고 했다. 장 위원장은 “체포 동의안 표결도 ‘깜깜이 표결’이 아닌 ‘기명 투표’로 해 방탄 국회, 제 식구 감싸기 논란을 없애자”고 했다. ‘국회의원과 지자체장 및 그 배우자의 경조사에 축의금, 부의금 수수 금지’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도입’ ‘강력 범죄, 성범죄 등 공천 부적격 사유 당헌· 당규에 명시’ 등 더할 나위 없는 대부분의 정치 혁신안이 모두 발표됐다.
하지만 불과 1년 뒤 똑같이 장 위원장이 이끄는 이름 한 글자만 바뀐 정치혁신위에서 이렇듯 좋은 혁신안들을 논의한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을 사수하자고 정반대 소리를 한다. 오로지 강성 당원 눈치만 보며 민심 대신 ‘개딸’ 입맛에 맞는 혁신안만 찾고 있다. 그때와 달라진 점이라곤 대선이 끝났고,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커졌다는 점뿐이다.
선거를 앞두고 온갖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게 정치인이라지만, 1년 만에 이름 한 글자만 바꾼 똑같은 조직을 만들고 지나간 일은 다 잊힐 거라고 생각하는 건 국민을 깔봐도 너무 깔보는 것이다. 민주당 정치혁신위는 지난해 정당혁신위가 내놓은 혁신안부터 지켜야 한다.
조선일보 박국희 기자
03.21 의원 수 스스로 줄인 독일 의회, 우리 국회선 절대 못 볼 일
독일 연방의회는 현재 736석인 의석 수를 630석으로 줄이는 선거법 개혁안을 통과시켰다. 집권 연립 3당이 주도한 이번 선거법 개정은 나라 규모에 비해 국회의원 수가 너무 많다는 비판에 따른 것이다. 독일은 중국에 이어 의원 수가 세계에서 둘째로 많다. 의원들이 스스로 의원 수를 14.4%나 줄여 의회의 거품을 뺀 것은 한국 국민들은 결코 보지 못할 국회 자체 개혁이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국민 70%가 반대하는데도 연금 개혁안을 추진하고 있다. 일할 정년을 늘리고 연금 수령 시점도 늦추는 내용이다. 연간 100억유로(13조원)씩 연금 재정에 적자가 나는 상황에서 더 이상 개혁을 미룰 수 없다는 것이다. 유권자가 싫어하고 반대하더라도 국가가 가야 할 길이라면 욕먹으며 가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정치 지도자와 의회의 존재 이유다.

▲2021년 12월 독일 연방의회 회의가 열리고 있는 장면. 독일 의회는 지난 17일 연방의회 정수를 736명에서 630명으로 줄이는 선거법 개혁안을 통과시켰다./AP 연합뉴스
한국에선 정반대의 일이 벌어진다. 국회 정치개혁특위 위원장은 “비례대표 의원 수를 현재보다 더 늘려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특위가 내놓은 3개 안 중 2개도 의석을 350석으로 50석 늘리는 내용이다. 정치 개혁을 하겠다더니 자기 밥그릇부터 늘리려 한다. 정치 싸움과 입법 폭주, 비리 의원 방탄과 의원 특권 지키기에 몰두하면서 이런 말이 나오나.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 등 야권은 독일을 본뜬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의원 수를 100명 가까이 늘리자고도 했다. 여야가 앞다퉈 비례 위성 정당을 만들면서 선거 제도는 누더기 야바위판이 됐다. 그걸 바로잡자고 선거법을 개정하는데 또 의원 수를 늘리고 연동형 비례대표도 검토하자고 한다. 염치가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제안한 이후 국회에선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 모임’이 발족해 논의에 나섰다. 그런데 말만 떠들썩했을 뿐 뒤에선 의원 숫자 늘릴 궁리만 하고 있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의원 증원은 없다”고 했지만 야권이 숫자로 밀어붙일 가능성이 있다.
국회의원은 연 1억5000만원 넘는 세비와 1억원의 각종 지원금을 받고 10명의 보좌진을 둔다. 각종 의전 혜택과 특혜는 헤아릴 수 없다. 북유럽 의원들은 2명이 비서 1명과 일한다. 한국 국회는 북유럽 의회보다 얼마나 더 많은 일을 하나. 여야는 마치 원수처럼 싸우다가도 세비나 예산을 올릴 때는 의기 투합한다. 이런 의원들이 스스로 보좌진을 줄이고 특권을 포기하는 결정을 내리는 모습은 절대로 볼 수 없을 것 같다.
조선일보 사설
03.21 측근도 못 구하는데 나라를 구할까
끝도 없는 정치권 싸움에 국민 정서는 마른 논바닥처럼 갈라졌다.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 ‘단군 이래 최대 비리’와 ‘검찰이 살인자’라는 논리 사이에 어떤 접점도 없다. 더 죽어야 끝날까, 아니면, 이대로 국력을 파탄 낼까. 이런 적이 없었다. 사건의 전모는 수상하기 짝이 없고, 검찰의 행보는 도를 넘었다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 공중(公衆)을 매수하려는 정치권은 참호전을 구축했다. ‘끝까지 간다’는 결의다. 정치인들이 연일 독기를 뿜어내니 참 딱하고 피곤하다.
대장의 품격은 책임 지는 것인데
비리 혐의에 충복들만 생명 잃어
‘살인자 검찰’ ‘일제 앞잡이’라며
숨는 대장이 어찌 나라를 구할까
검찰 조사는 원래 살기(殺氣)를 뿜어낸다. 피의자든 참고인이든 한번 불려가 본 사람에겐 악몽이다. 주변을 때리고 옥죄면 평상적 행위도 범법 그물망에 걸려든다. 피의자가 혐의 흔적을 박박 지워도 삭제한 기억을 귀신같이 들춰내는 게 검사다. 늦은 밤 나서는 검찰청의 어둠에 다리가 후들거린다. 무엇보다 인생탑이 무너진다. 정직과 성실로 살아온 사람의 최대 자산인 자존감이 쪼그라들면 극단적 행위가 어른거린다. 범법의 수위와는 상관없이 자신과 가족의 품격을 지켜줄 마지막 수단에 호소하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지도자 품성론이 나온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은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렸다. 논두렁 시계, 친인척 비리, 측근 단속 실패, 요즘 사건에 비하면 당시 검찰은 말할 것도 없이 도를 넘었다.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그는 한국 정치에 내장된 구렁텅이에 자신을 던지는 것으로 수하들과 가족의 품위를 지켰다. 필자는 당시 비통한 심정을 이렇게 썼다. “그 생명공양(生命供養)의 대가로 우리는 한국 정치를 직조하는 ‘운명의 형식’에 대해 눈을 번쩍 떴다.” 이후 14년 동안 우리는 그 운명의 형식을 어떻게 복기해 왔길래 이번에는 충복들의 낙화(落花)를 감당해야 하는가.
‘검찰은 살인자’라는 못된 정치방정식이 상수(常數)라면 대장의 품격도 상수다. 대장은 항상 중심에 포진한다. 명량해전에서 이순신은 일자진을 뒤로 두고 홀로 왜선과 싸웠다. 해류가 바뀌기를 기다리라는 작전명령에 만호들은 대장의 위태로운 독전(獨戰)을 숨죽이며 바라봤다. 명량이 몸을 뒤척이기 시작했다. 만호들이 해류를 타고 돌진했다. 왜선 300척이 부서졌다. 승전이든 패전이든 책임은 대장의 것이다.
그런데 숱한 비리 혐의에 맞선 이재명의 독전(督戰)에 만호들은 사라졌다. 법률만호, 척후만호, 자금만호, 기획만호, 그리고 행정만호에 이르기까지. 대장선이 ‘결백 깃발’을 휘날리는 현실 앞에 무너진 것이다. 행정만호 고(故) 전형수 비서실장은 유서에 ‘사건 조작이 무섭다’고 극한 두려움을 표현했다. 고인이 두려워한 사건조작의 주체는 누구일까. 행정책임자는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집행할 뿐이다. 명령의 주체가 나선다면 행정만호는 그나마 버티지 않았을까. 모르쇠로 일관하는 대장을 모르쇠로 비호하는 야당은 진정 ‘운명의 형식’을 복기했는가? 그렇지 않다면 고(故) 노무현의 죽음을 욕되게 할 뿐이다.
가치(value)와 효용(utility)을 적절히 구사하는 게 정치다. 대의(大義)를 구제하는 본업에서 효용이 판을 치면 가치가 묻힌다. 문(文)정권이 내세운 ‘정의와 공정’은 시의적절했으나 정책 비효용으로 가치가 무너졌다. 여론이 가치를 구제하는 것도 아니다. 팬덤은 언제든지 바뀔 격류다. 이재명 구출 특공대 개딸들의 행보도 몸을 뒤척일 때가 올 것이다. 팬덤을 외면하면 낭패를 당하고 팬덤에 몸을 맡기면 가치를 상실한다.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은 사면초가의 늪에서 여전히 의연하다. 프랑스의 미래가 연금개혁에 달렸음은 개혁 실패 국가에서 이미 입증됐다. 민주투사의 휘광을 독점하고 민중을 대변한다는 소위 진보정치가 오늘날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철 지난 논변과 비속한 말투, 그리고 근거 없는 신학적 증오 속에 익사했다.
익사할 것은 또 있다. 막무가내 반일(反日)신념. 한국인에게 반일은 상수일 터에 그걸 선동해 철옹성을 칠지, 미래의 정기(精氣)로 변환할지가 쟁점이다. 일제에 희생된 중국 인민은 무려 1000만 명에 이른다. 중국 난징학살 희생자 기념관에는 이렇게 씌어있다. “용서하지만 잊지는 않는다.” 중국은 피해보상 요구를 일찍이 접었다. 그런데 우리의 좌파는 징용·위안부 보상방식이 엇나가자 간토대지진을 들고 나왔다. 베트남은 2000년 역사에서 중국 기마군단에 수십 차례 짓밟혔다. 100년을 지속한 왕조가 없을 정도지만 베트남은 역사적 상처를 삼켰다. 소국(小國)도 이러한데, ‘일제의 앞잡이’, ‘자위대 군홧발’ 같은 극렬한 레토릭으로 무엇을 건지려 하는가? 시진핑의 중국에는 왜 찍소리 못하는가?
16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양국 대표는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서명한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계승한다고 밝혔다. 일본에는 도덕적 우위를, 중국에는 전략적 우위를 확보하는 게 관건이다. 일본에는 용서를, 중국에는 효용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미래를 향한 한국의 시선이다. 측근도 구하지 못하면서 어찌 나라를 구하겠는가.
중앙일보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한림대 도헌학술원 원장 석좌교수
03-21 의원 수 증원에 국민이 반대하는 이유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국회에서 선거제도 개혁이 논의될 때마다 거론되는 것 중 하나가 의원 정수의 확대다. 과거에 비해 국력이 신장되고, 국회의 업무가 증가했다는 점에서 의원 정수의 확대가 필요한 점도 있고, 특히 지난 정치개혁에서 실패했던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 의원 정수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국민이 심하게 반대하는, 그래서 관철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니 국민에게 의원 정수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점을 설득하려는 노력조차 보이지 않으면서 의원 정수 확대를 꺼내는 의도는 무엇일까? 선거개혁을 위해 나름으로 노력했으나 국민의 반대로 성공할 수 없었다는 명분 쌓기인가?
국민이 의원 정수 확대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국회 및 국회의원에 대한 불신에 있다. 일을 열심히 잘하는 것도 아니면서 권한을 확대하고, 의원 수를 늘려서 세금을 더 많이 축내는 걸 반길 국민은 없다. 정치개혁의 성공을 위해 의원 정수 확대가 꼭 필요하다면, 왜 그런지 국민을 이해시켜야 한다. 이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3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 의원 정수의 확대가 필요한 이유를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물론 다수의 전문가가 그 필요성을 뒷받침하고 있으나, 이를 국민에게 이해시키는 것을 별개 문제다. 예컨대, 의원 정수의 확대가 국회의 권력을 확대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미 정해진 권력을 더 많은 의원에게 분산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국민은 혼란스럽다.
둘째, 국회의원의 기득권은 유지하면서 의원 정수만 늘리려 해서는 국민을 설득하기 어렵다. 과거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표방한 선거제도 개혁이 결국 지역구 의석은 줄이지도 못하고, 의원 정수도 못 늘리면서 이른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왜곡이 발생했다. 이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지역구 의석 축소 등의 자구 노력을 먼저 해야 국민이 그 진정성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비례대표 후보자 공천 방식의 합리적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 비례성 강화를 위한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하다는 원칙에는 많은 사람이 공감하면서도 비례대표 의석의 확대만으로 선거제도가 개혁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국민의 투표로 결정되는 지역구선거와 달리 비례대표선거는 정당에서 작성한 명부에 대한 투표이기에 국민의 후보자 선택권이 없다는 점 때문에 불신이 매우 크다. 정당 수뇌부에서 비례대표 후보자 명부를 작성하는 게 아니라, 비례대표 후보자의 공천이 합리화돼야 한다. 그러잖으면 의원 정수 확대 및 비례대표 의석의 확대로 선거제도를 개혁한다는 주장 자체가 국민을 이해시키지 못한다.
이런 선행 조건들을 모두 갖춘 이후에 비로소 국회가 국민을 설득해 의원 정수를 확대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지역선거구에 대한 기득권을 그대로 유지한 채 의원 정수의 확대만으로 선거제도를 개혁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오히려 국민의 정치 불신만을 더 심화시킬 뿐이다. 물론 의원 정수 확대가 절대악이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선행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악이 될 수 있다. 공수처 제도 자체에는 찬성하지만, 현재와 같은 형태의 공수처에는 반대하는 사람도 많다. 지금의 의원 정수 확대 논의도 이와 유사하다.
문화일보
03.23 한 정당이 공영방송을 장악하겠다고 법을 만든다니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상임위에서 방송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바로 올렸다. 지난해 말 상임위에서 단독 처리한 데 이은 일방 독주다. 정권은 내줬어도 방송 권력만은 내줄 수 없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방송법 개정안은 공영방송 이사회를 확대하고, 100명이 참여하는 사장후보국민추천위원회가 3명 이하 후보를 추천하는 방식이다.
대통령이 공영방송 사장 인사에 영향력을 미칠 수 없게 하겠다는 명분이지만, 그 속내엔 민주당의 방송 장악 의도가 그대로 보인다. 이사 배분에서 국회 몫은 다수당인 민주당이 더 차지하게 되고, 방송 관련 학회와 직능 단체, 시청자 위원도 친(親)민주당으로 채워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결국 민주당이 원하는 사람을 방송사 사장에 앉히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야당이던 2016년에도 이 비슷한 방송법 개정안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막상 정권을 잡고 여당이 되자 방송법 개정 공약을 파기해버리고 KBS, MBC 사장부터 폭력적으로 내쫓았다. 공영방송은 정권 응원단이 됐다. 그러더니 이제 정권을 잃고 야당이 되자 스스로 폐기했던 방송법 개정안을 다시 들고나온 것이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든 잃든 방송만은 장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방송법 개악을 막는 일 못지않게 지난 정권의 방송 장악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한 방송통신위원회를 바꾸는 일도 중요한 문제다. KBS 사장을 교체하려는 정권을 위해 강규형 KBS 이사에 대한 무리한 해임 건의안을 문 전 대통령에게 올린 곳이 방통위다. TV조선 재승인 심사 점수를 조작한 혐의로 주무 국장·과장·심사위원장이 얼마 전 구속됐다.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만든 정부 조직이 설립 취지를 스스로 허물었다. 방통위의 근본적 개선도 더 미룰 수 없다.
조선일보 사설
03.23 공영방송 독립성과 공정성 해칠 방송법 강행 처리
민주당 상임위 단독 처리, 방송법 본회의 직회부
“공영방송을 ‘민주당 방송’으로 영구 장악 시도”
더불어민주당이 그제 국회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공영방송의 이사회 구성과 사장 선임 절차를 변경하는 내용의 방송법 개정안을 본회의로 직회부했다. ‘검수완박’ 때처럼 여당 의원들이 전원 퇴장한 상태에서 자기 당 출신의 무소속 의원을 투입하는 꼼수로 표결을 강행했다. 이로써 방송법 개정안은 여당 의원이 위원장인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본회의로 직행하게 됐다.
입법 폭주를 감행한 것도 문제지만 개정안의 내용은 더 큰 문제다. 각각 11명(KBS)과 9명(MBC)인 공영방송의 이사 수를 21명씩으로 늘리는 게 핵심인데, BBC(14명)와 NHK(7∼10명) 등 선진국의 공영방송보다 대폭 증원하려는 이유가 수상하다. 겉으로는 독립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라지만 검은 속내가 빤히 보인다.
이사회 추천을 국회(5명), 직능단체(6명), 학회(6명) 등이 하도록 했는데, PD연합회 등 직능단체와 방송·미디어 학회 중엔 친민주당 성향을 보여 온 곳이 많다. 벌써 “민주당이 추천권을 주려는 직능단체와 학회는 언론단체를 가장한 정치단체”(MBC 제3 노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영방송을 ‘민주당방송’으로 만들어 영구적으로 장악하려는 악독한 시도”(미디어연대)라는 비판까지 불거졌다.
공영방송이 정권에 따라 좌지우지된 측면도 없진 않다. ‘정치적 후견주의’를 청산하고 공영방송을 시민사회에 돌려주자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리는 이유다. 하지만 이사 추천 자격을 가진 단체의 대부분이 한쪽으로 치우친 상황에서 이 같은 민주당식의 방송법 개정은 오히려 공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
본회의로 직행했다지만 민주당 뜻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여당 협조 없이 민주당 단독으로 강행처리한 법안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런 행태는 민주당이 여당 시절 친여 방송의 혜택을 충분히 봐놓고 정권이 바뀌니까 공영방송 자체를 흔들려고 한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민주당이 공영방송 개혁을 진심으로 원했다면 2016년 당론으로 채택한 방송법 개정을 추진했어야 한다. 여야가 7 대 6으로 이사를 추천하고 사장은 이사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선임토록 했는데, 야당이 반대하는 인물은 사장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독립성 보장에 효과가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개혁안을 팽개치고 전 정부가 임명한 KBS·MBC 사장을 힘으로 내쫓았다. 그래놓고 이제는 자기 편 사람들로 채워진 직능단체와 학회 등을 이용해 독립성과 공정성이 생명인 공영방송의 근간을 흔들려 한다. 거대 야당은 이제라도 민주주의의 본질을 무너뜨리는 공영방송 장악 시도를 멈춰라.
중앙일보 사설
03-23 李 부패 혐의 기소에도 대표 유지, 私黨 재확인한 민주당
대장동 특혜 혐의 등으로 22일 기소된 이재명 대표와 관련, 더불어민주당이 ‘정치 탄압’으로 규정해 당직을 유지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될 경우 당직을 정지한다’는 당헌 제80조가 있긴 하지만, 당무위원회에서 정치 탄압으로 결론을 내릴 경우 예외로 할 수 있다는 조항(제3항)을 적용한 것이다. 지난해 8월 이 대표 당선 때 미리 개정해놓은 당헌의 첫 수혜를 자신이 본 것이다. 당무회의 사회권을 넘기긴 했지만, 당무위원장이 이 대표 본인인 만큼 ‘셀프 구제’ 주장도 나온다.
민주당은 지난해에만 684억 원의 정당 국고보조금을 받았다. 공익을 앞세우는 공당(公黨)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민주당의 대부분 활동은 이 대표 방탄에 집중되고 있다. 2015년 문재인 대표 시절 부정부패 척결의 의지를 담은 정당 혁신이라고 도입한 당헌 제80조는 온갖 불법 혐의가 있는데도 국회의원, 당 대표에 나선 이 대표 취임 이후 사문화됐다. 심지어 이날 당무위원회에선 라임 펀드 주범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아 기소된 기동민, 이수진 의원마저 같은 조치를 받았다. 노웅래 의원과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것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이 더는 공당이 아니라 ‘이재명 사당(私黨)’임을 확인한 것과 다름없다. 통상 2∼3일 간의 소집 공고를 거치는 당무위원회도 검찰의 기소 발표가 있자마자 서면으로 위임장을 받아 신속히 처리한 것은 당내 반발을 차단하려는 꼼수다. 오죽하면 당내에서 당헌 80조 예외 조항 적용이 잘못됐다며 대표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 움직임까지 나오겠는가. 대북 송금 사건 등으로 추가 체포동의안 및 추가 기소 가능성도 있다. 일주일에 2∼3일 재판에 나가야 할 상황이다. 이 대표 스스로 거취를 결정해야 할 때다.
문화일보 사설
03-23 [속보] 헌재, ‘검수완박’ 절차적 하자 있으나 법 효력은 유지
민주당 소속 법사위원장, 국민의힘 심의·표결권 침해
국회의장 상대로 낸 청구는 기각...법 효력 유지돼
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을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과정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했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하지만 개정된 법률의 효력은 인정했다.
헌재는 23일 국민의힘 유상범·전주혜 의원이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상대로 낸 권한쟁의 심판청구를 재판관 5 대 4 의견으로 인용 결정했다. 재판부는 “법사위원장은 회의 주재자의 중립적 지위에서 벗어나 조정위원회에 관해 미리 가결 조건을 만들어 실질적인 조정 심사 없이 조정안이 의결되도록 했고 법사위 전체회의에서도 토론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다”며 “국회법과 헌법상 다수결 원칙을 위반했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다만 국민의힘이 ‘검수완박법’을 가결·선포한 국회의장을 상대로 낸 권한쟁의는 재판관 5 대 4 의견으로 기각했다. 유남석 소장과 이석태·김기영·문형배 재판관은 법사위원장·국회의장에 대한 권한쟁의를 모두 기각해야 한다고 봤지만, 이선애·이은애·이종석·이영진 재판관은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고 판단했다.
캐스팅보트를 쥔 이미선 재판관은 법사위원장의 회의 진행으로 인한 국민의힘 의원들의 권한 침해는 인정했지만 국회의장의 개정법률 가결 선포 행위는 문제 없다고 봤다.
문화일보 조성진 기자
03.24 김학의·윤미향·곽상도 이어 검수완박… ‘비상식적 판결’ 잇단 논란
법원, 김학의 출금 위법 선고하면서
불법 지시한 靑비서관 등은 무죄
곽상도 ‘50억 뇌물’ 혐의에도 무죄
헌법재판소가 23일 ‘검수완박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에 대한 권한쟁의 심판에서 법사위 단계에서 야당 의원들의 법률안 심의·표결권 침해는 인용하면서도 법률의 무효 확인 청구에 대해서는 기각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날 결정에서는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이미선 재판관이 주목받았다. 이 재판관은 심의·표결권 침해를 인정하는 의견(5명)을 내놓고도, 국회를 통과한 법률은 무효가 아니라는 의견(5명)에 동참했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다른 재판관들은 심의·표결권 침해와 법률의 무효 여부를 일관되게 판단했는데 이 재판관만 엇갈리게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재판관은 2019년 4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의 지명으로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에서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됐다.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변호사인 남편과 함께 35억원대 주식을 가지고 있었던 사실이 논란이 됐다.
이날 헌재 결정에 대해 MZ세대 변호사단체인 ‘새로운 미래를 위한 청년 변호사 모임(새변)’도 “민주주의와 정당 정치에서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적법 절차, 절차의 정당성에 비추어 보았을 때 헌재 판단은 유감”이라고 했다.
한편 최근 법원도 국민의 상식에 어긋나는 판결을 잇따라 내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달 15일 김학의 전 법무차관에 대한 2019년 긴급 출국 금지는 위법했다고 하면서도 이광철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이규원 검사, 차규근 전 법무부 출입국 본부장 등 3명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서는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목적만 정당하면 수단은 부적법해도 좋다는 것이냐”는 비판이 나왔다.
서울서부지법도 지난달 10일 윤미향 의원(민주당 출신 무소속)이 2011~2020년 정의연(당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법인 계좌 자금을 개인 용도로 지출하고, 개인 계좌로 모금한 자금을 임의 사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총 1억35만원을 빼돌린 혐의 가운데 약 1700만원에 대해서만 유죄로 인정했다. 검찰이 엄격한 증거로 증명하지 못했다는 취지였다.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도 대장동 일당인 김만배(화천대유 대주주)씨에게 아들 성과급 명목으로 50억원(세후 25억원)을 받았다는 뇌물 수수 혐의에 대해 지난달 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의 아들이 결혼해 독립 생계를 유지했고 성과급이 곽 전 의원을 위해 사용됐다고 볼 만한 사정이 없다는 것이었다.
조선일보 허욱 기자
03.24 대법원은 “거짓말도 무죄”, 헌재는 “절차 어긴 검수완박 법도 유효”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민주당이 강행 처리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률은 무효가 아니라고 결정했다. 민주당의 심의·표결권 침해를 일부 인정하면서도 법안 통과 자체는 유효하다고 한 것이다. 국민의힘이 절차를 어긴 이 법을 무효로 해달라며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지 11개월 만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이 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위장 탈당 등 온갖 편법과 꼼수를 동원했다. 그 과정을 국민들이 다 지켜봤다. 그런데도 그런 법이 무효가 아니라면 앞으로 국회가 입법 과정에서 어떤 불법과 편법, 꼼수를 저질러도 막을 방법이 사실상 없어진다.
민주당이 문재인 정권 말 이 법안을 강행 처리한 것은 문 정권이 저지른 불법을 검찰이 수사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고, 입법 과정은 탈법과 편법의 연속이었다. 법사위 통과를 위해 민형배 의원을 위장 탈당시킨 뒤 안건조정위에 넣어 여야 동수로 구성하도록 한 안건조정위를 무력화했다. 그 뒤 안건 논의도 없이 각각 8분, 17분 만에 관련 법안을 처리했다. 최장 90일간의 숙의 기간을 보장한 국회법 취지를 어긴 것이다. 필리버스터를 막기 위해 회기 쪼개기 수법도 동원했다. 헌재는 이런 행위가 위법이라면서도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을 전면 차단해 국회 기능을 형해화할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효라고 했다. 절차 위법을 인정하면서 그런 절차로 만든 법이 유효하다는 모순적 결정이다.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검수완박) 법안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심판 선고일인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이 헌법재판관들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2023.03.23 /남강호 기자
헌재는 2009년에도 미디어법 처리 과정에서 불거진 대리투표 등에 대해 문제가 있지만 법안은 유효하다고 판단한 적이 있다. 절차상 하자가 법률을 무효로 할 정도는 아니라는 취지였다. 미디어법은 대리투표가 전체 표결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만 검수완박 입법 과정의 위장 탈당 등은 안건조정위를 무력화해 결론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절차 위법이 더 심각한 것이다. 그런데도 법이 유효하다고 인정한 것은 국회에 앞으로 그런 행위를 해도 된다고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번 결정에선 헌법재판관들의 정파성도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지금 헌재 재판관 9명 중 8명은 문재인 정권에서 임명됐다. 이 중 5명이 이른바 진보 성향이라는 민변과 우리법연구회,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이다. 나머지 재판관 4명은 법사위원장의 가결 선포 행위는 무효라고 했지만 이들 진보 성향 재판관들이 유효라고 하면서 결국 기각 결정이 나왔다. 이들이 모두 자신들을 임명해준 정권 편에 선 것을 우연이라 할 수 있나. 법률가의 양심을 버리고 정치적 판단을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대법원은 지난 정권 때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경기지사 선거 토론에서 친형의 정신병원 강제 입원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허위 발언을 해 항소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은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해 이 대표가 대선에 출마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TV 토론에선 거짓말을 해도 된다는 황당한 판결이었다. 여기에 헌재까지 절차 위법이 있어도 법은 유효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최고 사법기관들이 사법에 대한 신뢰를 굳건히 하고 있는가, 스스로 허물고 있는가.
조선일보 사설
03-24 헌재의 검수완박法 유효 결정은 법치 수호 책무 포기다
민주주의는 법치주의로 보장되고, 헌법재판소는 헌법과 법치주의 수호의 최후 보루다. 헌재가 정파성에 따라 상반된 결정을 한다면, 책무 포기이자 존재 이유 부정이다. 검수완박법(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이 유효라는 헌재의 23일 결정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법 강행 처리는 국회법 제57조의2 ‘안건조정위원회’ 취지를 정면 훼손했다. 안건조정위는 ‘제1교섭단체에 속하는 조정위원의 수와 1교섭단체에 속하지 아니하는 조정위원을 동수’로 구성토록 했다. 다수결을 지키되 소수 의견과 숙의를 보장하라는 취지다. 1교섭단체인 민주당은 ‘위장 탈당’한 민형배 의원을 조정위원으로 선임해 4 대 2로 수적 우위를 차지한 뒤 90일의 숙의 기간을 무시한 채 법안을 10여 분 만에 처리했다.
중도·보수 성향의 재판관 4명은 이를 헌법상 원칙과 국회법 근본 취지 위반으로 판단했다. 진보 성향 이미선 재판관도 법사위원장의 토론 절차 생략을 국회법 위반으로 봤다. 반면 진보 성향의 유남석, 이석태, 김기영, 문형배 재판관은 이 과정에 문제가 없고 따라서 법률의 가결 선포도 무효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법리적 판단은 검수완박법이 ‘5 대 4 무효’였지만, 이미선 재판관이 ‘국회 기능을 형해화할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는 입장을 취해 최종 결정은 5 대 4 유효로 뒤집혔다. 재판관의 정파성에 따라 법리와 다른 결정을 내렸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더구나 검수완박법 강행 처리는 국회 기능 형해화를 넘어 절차적 민주주의조차 위협하는 일이다. 다수당의 일방적 입법 추진이 반복되면 결국 민의와 괴리된 입법독재로 이어진다. 이미 민주당은 제1당 지위를 이용, ‘상임위 단독 의결, 본회의 직행, 법 통과’라는 입법 폭주에 나섰다.
국회의 정당별 의석 비율 자체가 선거법 한계로 민의를 왜곡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제21대 총선 지역구 득표율에서 민주당은 49.91%로 163석을 차지한 반면, 국민의힘은 41.46%로 84석을 얻는 데 그쳤다. 민주당의 일방적 법안 처리는 이중의 민의 왜곡에 해당한다. 헌재는 민주당의 탈법과 입법 폭주, 민의 왜곡을 모두 합법화해준 셈이다. 이념적 양극화가 대법원과 헌재에까지 확산됐다.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중대한 위협에 처했다.
문화일보 사설
03-24 진중권 “검수완박, 절차가 위헌인데 결과가 어떻게 합헌일 수 있나...정치적 편향 가능성 커”
“논리적으로 비정합적”
“합헌 판단한 5명은 우리법연구회·민변 소속”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관련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두고 “절차가 위헌인데 어떻게 결과가 합헌일 수 있나”라고 비판했다.
진 교수는 23일 저녁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헌재의 판단이니까 존중을 해야 하지만 논리적으로 이상하다. 비정합적이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꼼수라고 본다”며 “위헌적인 절차가 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면, 즉 무효가 안 된다고 한다면 애초에 이것(결정) 하는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쉽게 말하면 사실관계는 부정하기 힘들지만 결론은 그쪽(합헌)으로 가고 싶어 하는 것을 통해 나왔다고 본다”고 했다.
진 교수는 “사법부에서 입법권을 침해하는 부분에 상당한 부담이 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편향도 분명히 있어 보인다”고 비판했다. 그는 “합헌 판단을 내린 다섯 재판관이 다 우리법연구회, 민변 소속이라고 한다면 우연의 일치라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어떤 특정한 정치적 편향성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라며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다섯 명이 한꺼번에 몰려서 같은 판단을 내리는 게 이상하다”고 설명했다.
헌재 결정으로 인해 앞으로도 국회에서 유사한 ‘꼼수’가 재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진 교수는 “앞으로 이런 꼼수를 해도 된다는 것”이라며 “절차는 위헌이더라도 결과는 합헌일 수 있느니 국회에서 그런 짓을 하도록 권장하는 판결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헌법재판소는 이날 국민의힘 유상범·전주혜 의원이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상대로 낸 권한쟁의 심판청구를 재판관 5 대 4 의견으로 인용했다. 재판부는 “법사위원장은 회의 주재자의 중립적 지위에서 벗어나 조정위원회에 관해 미리 가결 조건을 만들어 실질적인 조정 심사 없이 조정안이 의결되도록 했고 법사위 전체회의에서도 토론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다”며 “국회법과 헌법상 다수결 원칙을 위반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소속이던 민형배 의원이 ‘위장 탈당’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제1교섭단체(민주당) 외 몫의 안건조정위원으로 선임했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헌재는 국민의힘이 ‘검수완박법’을 가결·선포한 국회의장, 법사위원장을 상대로 낸 권한쟁의는 재판관 5 대 4 의견으로 기각했다.
문화일보 조성진 기자
03-24 “위장탈당·회기쪼개기에 면죄부… 헌재가 ‘위법’ 합법화시킨 꼴”

▲유남석(가운데)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23일 오후 ‘검수완박’ 법안인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대한 권한쟁의 심판 청구 사건을 결정하기 위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법정으로 입장하고 있다. 뉴시스
■ 헌재 ‘검수완박 결정’ 후폭풍 - 법조계 “모순적 판단” 비판
“꼼수 맞지만 결과 유효 논리
입법절차‘반칙’반복될 우려”
법무부·검사 청구 각하도 논란
“국민피해나 수사·소추권 관련
본안판결없이 민감결정 회피”
“절차는 위법·위헌했지만 법은 유효하다”는 헌법재판소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판단을 둘러싼 후폭풍이 커지고 있다.
법조계에선 헌재가 국회의 ‘꼼수 입법’을 합법화시키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검사들의 청구는 본안 판단도 없이 각하해 민감한 결정은 회피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진보와 보수로 나뉜 헌재 재판관들이 법리보다 이념적 성향에 따라 정치적 판단을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문화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전날 헌재는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위장 탈당’ ‘8분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등은 헌법 49조(다수결 원칙) 위반이란 점을 인정하면서도 진보 성향인 유남석 헌재 소장과 이석태·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 등 다수 의견을 통해 “국회 기능이 형해화(形骸化)될 정도로 중대한 헌법 위반이라고 보긴 힘들다”며 법은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꼼수는 맞지만 결과는 유효하다’는 논리인 셈이다.
법조계에선 헌재가 ‘꼼수 입법’을 합법화시켰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는 이날 문화일보와 통화에서 “헌재의 논리라면 국회는 입법 절차에서 특권과 반칙을 계속해도 된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형사소송법에 적용되는 ‘독수독과 이론(위법하게 얻은 증거나 진술은 인정할 수 없음)’을 국회엔 예외로 적용한 부분도 논란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는 “위법한 절차를 통해 법안을 통과시켜도 효력을 인정해 버리면 앞으로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헌재가 한 장관과 검사 6명이 검사의 헌법상 권한인 수사·소추권을 침해당했다며 낸 권한쟁의 심판 청구를 본안 판결 없이 각하한 부분도 논란이 되고 있다. 법안이 유효하다고 본 진보 성향 재판관 5명(헌재 소장 포함)은 “장관은 수사·소추권을 직접 행사하지 않아 청구인 자격이 없고, 검사들의 경우 수사·소추권은 국가기관 사이에서 조정·배분한 것이라 권한 침해 가능성이 없다”면서 각하했다. 한 장관 등이 제기한 검찰의 직접 수사 금지에 대한 국민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 침해, 고발인의 이의신청권 배제에 따른 헌법상 평등 원칙 위배 여부 등에 대해선 판단하지 않았다. 정웅석 한국형사소송법학회 회장은 “한 장관과 검사들이 제기한 국민 피해 부분과 장관의 수사·소추권이 인정되지 않는 이유 등을 본안에서 더 깊이 판단했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민주당이 헌재 결정을 두고 한 장관 사퇴를 촉구하는 것도 억지 주장이란 평가다. 수도권의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주당 논리라면 우리가 억울해서 제기한 형사·민사 소송에서 지면 처벌당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굉장히 황당한 주장”이라고 말했다.
문화일보 염유섭·김무연·윤정선 기자
03.24 헌재가 입법 문제 지적한 검수완박법, 폐기가 맞다
재판관 과반, 꼼수에 의한 법사위 통과 위헌으로 봐
효력 정지되지 않은 악법, 국회가 스스로 정리하길
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검수완박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과정이 헌법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왔다. 어제 헌재는 국민의힘 의원이 요구한 권한쟁의심판에서 5 대 4로 이런 인용 결정을 했다.
그러면서도 관련 법 조항의 효력을 정지시키지는 않았다. 절차에 문제가 있지만 국회의 입법권을 존중한다는 절충적 입장을 취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전인 지난해 4월 민주당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처리에 골몰했다. 국회 법사위 통과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자 민형배 의원의 ‘위장 탈당’ 카드까지 꺼냈다. 여야 의견이 대립하는 법안은 안건조정위원회에 회부해야 한다. 여야 의원 3인씩으로 이 위원회가 구성된다. 야당 측 3인에는 무소속 의원 몫이 있는데, 무소속 양향자 의원이 당시 검수완박 법안에 반대 의사를 갖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민 의원이 민주당에서 탈당해 무소속이 됐고, 안건조정위원회 야당 측 3인에 포함됐다. 결국 당시 기준 여야 4 대 2가 됐다. 이후 일사천리로 법안이 통과됐다. 헌재는 이 과정이 ‘실질적 토론을 보장하는 다수결 원칙’이라는 헌법정신을 어겼다고 판단했다.
민주당이 검수완박법을 서두른 이유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당시는 윤석열 대통령이 5월 9일 취임을 앞두고 있었다. 민주당 의석이 국회의 과반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 이런 법안을 만들어 국회 문턱을 넘게 할 수는 있지만, 윤 대통령이 취임하면 상황이 달라지게 돼 있었다. 대통령 거부권이라는 벽이 생기는 상황이었다. 민주당은 문재인 대통령 임기 안에 이 일을 끝내려고 무리수를 동원했다. 민주당이 이토록 검수완박에 집착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다수 여론은 이재명 의원 관련 혐의와 문재인 정부 주요 인사들의 권력형 범죄에 대한 검찰 수사를 원천 봉쇄하려는 것으로 이해했다. 검찰 수사권을 없애 곧 출범할 윤석열 정부의 힘을 빼려는 것으로 봤다. 지극히 상식적인 해석이었다.
민주당이 꿈꾼 검수완박은 이뤄지지 않았다. 법안을 만들 때 여론 때문에 검찰이 수사할 수 있는 6개 분야 중 2개(부패·경제)는 남겨둬야 했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는 검찰청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부패·경제 수사 범위를 확대해 선거법 위반과 공직자 직권 남용 등을 수사할 수 있게 했다. 민주당이 서두르면서 법안에 모호한 문구를 넣었고, 한동훈 장관이 이를 활용해 법을 우회하는 시행령을 만들었다. 결국 민주당은 정치적으로도, 법적으로도 패배했다. 국회가 합리적 다수에 의해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날이 오면 검수완박법의 잔해를 없애야 한다. 위헌적 절차가 낳은 흉한 법은 사라지는 게 옳다.
중앙일보 사설
03.24 野 이번엔 양곡관리법, 대통령 거부권 유도하며 생색만 내려는 것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양곡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재석 266인, 찬성 169인, 반대 90인, 기권 7인으로 가결되고 있다. /뉴스1
민주당은 23일 국회 본회의를 열어 매년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 매입하게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일방 처리했다. 쌀이 남아돌아 매년 10여 만t이 사료·주정용으로 처분되는데 쌀 매입에 매년 1조원 이상을 퍼붓겠다는 것이다. 길게 보면 농업을 위한 것도, 농민을 위한 것도 아니다. 실제로 쌀값 하락 우려 때문에 일부 농민 단체들도 반대했다. 민주당은 국회 상임위에서 이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위안부 재단 관련 비리로 출당된 무소속 윤미향 의원을 안건조정위에 넣는 꼼수를 썼다. 법사위에서 제동이 걸리자 다시 윤 의원을 이용해 본회의에 직접 회부했다.
민주당은 ‘식량 안보’라는 낡은 논리로 이를 밀어붙였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도 반대했던 일이다. 결국 내년 총선에서 표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자신들은 농민을 위해 이 법을 밀어붙였는데 대통령이 거부했다는 모양새를 만들려는 것이다. 농민들에게 생색내면서 대통령에겐 정치적 부담을 씌울 수 있는 묘책이라고 생각한다면 참으로 무책임한 일이다.
이런 법이 한두 개가 아니다. 민주당은 지난달 의사·간호사 간 갈등의 소지가 큰 간호사법 개정안 등 7개 법안을 일방적으로 본회의에 올렸다. 공영방송 이사 구성과 사장 임명 방식을 야당에 유리하게 바꾼 방송법 개정안도 직회부했다. 불법 파업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는 이른바 ‘노란봉투법’과 화물연대에 특혜를 주는 안전운임제 관련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도 조만간 본회의에 올리겠다고 한다. 민주당 마음대로 본회의 직회부가 가능한 상임위가 6개나 돼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법안이 일방 처리될지 알 수 없다. 대통령에게 거부권 부담을 지우면서 지지층이 좋아할 법안들을 난사하듯 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이에 대해 거부권을 모두 행사한다면 10번이 넘을 수도 있다. 거부권은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상임위 상시 청문회 개최를 골자로 하는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행사한 게 마지막이다. 한 대통령이 임기 중 기껏해야 한두 번 행사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민주당의 입법 폭주를 막기 위해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 신기록을 세워야 할 판이다. 정상이 아니다.
조선일보 사설
03.24 쌀 과잉생산 부추길 양곡법 밀어붙인 거야의 횡포
민주, 재정 악화 우려되는 ‘악법’ 일방 강행 처리
입법 폭주 막으려면 대통령 거부권 행사 불가피
더불어민주당이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남아도는 쌀의 정부 매입을 강제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했다. 국민의힘이 반대 토론에 나섰지만 민주당의 주도로 재석 277명 중 169명의 찬성표를 얻어 가결됐다. 민주당은 지난달 27일 본회의에서 이 법안을 처리하려 했지만 김진표 국회의장이 직권으로 표결을 미뤄 일단 불발됐다. 이후 김 의장이 두 차례 중재안을 제시했지만 여야가 접점을 찾지 못하자 민주당은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이날 법안 처리를 강행한 것이다. 민주당이 169석을 보유한 거대 야당에 요구되는 분별력과 책임감을 방기하고 있음을 드러낸 전형적인 사례다.
민주당의 개정안은 쌀 초과 생산량이 예상치의 3~5%를 넘거나 쌀값이 평년 대비 5~8% 이상 하락하면 초과 생산량의 정부 매입을 의무화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농민들의 쌀값 폭락을 막아 소득을 보전할 수 있다는 게 민주당의 주장이다.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는 오히려 쌀의 과잉 생산을 부추기고 국가 재정을 악화시킬 우려가 큰 ‘악법’이라고 지적한다. 쌀농사는 기계화율이 90%가 넘지만, 다른 밭작물은 기계화율이 60% 수준이라 법이 통과되면 전국의 논 82만㏊ 중 밀·콩 등을 심던 9만㏊조차 벼농사로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다. 지난해 남아돈 쌀이 37만t에 달하며 정부가 이를 매입하는 데만 7900억원이 들어갔다. 2030년엔 남아도는 쌀이 64만t에 달하고 매입비도 1조4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마당에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발효되면 쌀 생산 초과분이 더욱 늘어나 매입비용이 급증하고, 유사시에 대비해 밀 등 전략 작물을 재배해야 하는 국내 현실상 식량 안보마저 우려된다.
민주당도 집권당 시절엔 이 법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그러나 야당이 되자 입장을 180도 뒤집어 법안 처리를 강행한 것이다. 농민 지지층의 표만을 의식하고 전체 국민의 이해는 외면한 단견이 아닐 수 없다. 이뿐이 아니다. 민주당은 양곡관리법에 이어 공영방송 장악 의도가 의심되는 방송법 개정안도 지난 21일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했다. 앞서 지난 9일엔 의료계의 반발이 큰 간호법 제정안 등 7개 법안 직회부를 의결했다.
이런 직회부 법안들은 경제 살리기와는 무관하고 정치적 득실만 따진 포퓰리즘 입법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거대 야당이 의석수만 내세워 직회부를 남발하는 것은 의회민주주의의 뿌리를 뒤흔드는 행태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양곡관리법 일방 처리를 강행했으니 윤석열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고, 여야는 한 발씩 양보해 현실적인 해법을 다시 도출하는 게 순리다. 쌀값 하락의 주원인은 수급 불균형이니, 정부는 재배 면적을 관리하면서 과잉 생산된 쌀의 매입 비용을 대체 작물 육성 등 전체적 농업 발전에 진정 도움이 되게 쓰이도록 해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
03-24 “더불어망할당, 공산당 인민회의”…기소된 李 당직유지에 與 맹공
하태경, 기소 시 당직 정지 조항 들며
"조항 도입한 文의 개혁 정신 짓밟아"
김미애 "정치 혁신이 아닌 방탄 혁신"
위례신도시·대장동 의혹 등으로 기소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당직을 유지하기로 한 것에 여당인 국민의힘 측은 23일 맹비난하면서 사퇴를 촉구했다.
하태경 의원은 이날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민주당의 결정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이 더불어망할당이 된 것"이라며 "이것을 보면 ‘문재인의 개혁 정신도 짓밟는구나’ 그런 생각까지 든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당헌 제80조는 당직자가 뇌물이나 불법 정치자금 등 부정부패 관련 혐의로 기소되면 사무총장이 그 직무를 정지시킬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다만 ‘정치 탄압 등 부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당무위 의결을 거쳐 달리 정할 수 있다’는 예외도 두고 있다. 전날 기소된 이 대표에 대해 민주당 당무위원회는 예외 조항을 들어 당직 유지 판단을 내렸다.
하 의원은 이 같은 조항과 민주당의 결정에 대해 "‘이재명과 더불어망할당 하겠다’고 지금 결정을 한 것이고, 이것(민주당 당헌 80조)이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당대표할 때 개혁 조항이었다"며 "이게 당 쇄신 조항으로 우리 당에 먼저 들어왔고 문재인 당대표 시절에 민주당에도 들어 왔다"고 말했다. "비리, 부패 혐의가 있는 정치인들은 일단 기소가 되면 당내에서 직무 정지나 출당을 시키고 혐의를 벗으면 다시 복당을 하라"는 정책이란 것이다.
장예찬 청년최고위원도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민주당 당무위가 만장일치로 이 대표 당직 유지 판단을 내린 것에 관해 "당무위인지 공산당 인민회의인지 헷갈리는 국민들이 많을 것 같다"며 "앞으로 민주당 최고위가 일주일에 3∼4번 법원에서 열려야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장 최고위원은 이 대표가 기소된 혐의를 거론하듯 "이게 어떻게 (당직 유지로) 만장일치가 나올 수 있는 사안인지 개인적으로는 납득이 잘 안 된다"며 "외부 위원이 포함된 윤리위에서 의결하게 된 것을 지난해 당내 당무위가 의결하도록 꼼수로 당헌을 바꿨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날 김미애 원내대변인은 논평에서 "이 대표가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를 ‘정치 탄압’이라고 수없이 반복해 외친 이유가 드러난 것"이라며 "이제 민주당에서 부정부패 범죄로 기소되면 정치 탄압을 받는 정치 투사로 대접받는 관례가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치 혁신’이 아니라 부정부패 범죄에 대한 ‘방탄 혁신’"이라며 "민주당은 부정부패로 기소되면 당직 배제가 아니라 이를 정치 탄압이라며 격려하는 기상천외한 구태 정당, 방탄 정당으로 전락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앞서 검찰은 위례신도시·대장동 의혹과 성남FC 후원금 의혹 등 이 대표의 성남시장 재직 시절 불거진 각종 의혹에 관해 이 대표를 재판에 넘겼다. 같은 날 민주당은 당무위를 열고 이 대표 기소를 부당한 정치 탄압이라고 판단한 최고위원회의 유권해석을 인정, 이 대표가 당직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문화일보 박준희 기자
03.25 민주당은 “11년 전부터 핵어뢰 개발했다”는 北 발표 보고 부끄럽지 않나
북한이 수중 핵폭발로 방사능 쓰나미를 일으켜 우리 항구나 해군 기지 전체를 파괴할 수 있는 신무기 ‘해일’의 폭발 시험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핵어뢰로 유사시 미군의 증원 전력과 물자가 집결하는 부산과 우리 해군 기지에 커다란 위협이 된다. 북한은 2012년부터 ‘해일’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지금까지 50여 차례 각종 시험을 실시했으며 이 중 29차례를 김정은이 직접 지도했다고 한다. 김정은이 전술핵 개발 지시를 공개한 것은 2021년이지만, 이미 2012년에 우리 항구를 공격하기 위한 핵무기 개발에 착수했다는 얘기다.
북핵 개발 초기 김대중 정부는 “북은 핵을 개발할 능력도 없다”고 했다. 그러다 북한이 핵 실험을 하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북핵을 공격용이라고 보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고 했다. 정세현 전 통일장관도 “북핵은 남(南) 공격용이 아닐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북에 매년 쌀과 비료 수십만톤을 주고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을 통해 달러도 공급했다. 북한이 탄도미사일 실험을 하면 ‘인공위성’이라고 감싸주었다.

▲북한이 지난 21~23일 수중 핵폭발로 적 항구를 파괴할 수 있는 신무기 '해일'의 수중폭발 시험을 실시했다며 공개한 사진.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핵을 더 이상 감쌀 수 없게 되자 북한이 핵을 폐기할 것이란 논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내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2019년 트럼프를 이용해 핵 보유 상태에서 대북 제재를 해제하려고 하다가 실패하자 바로 본색을 드러내고 초대형 방사포 등 ‘신종 무기 4종 세트’로 불리는 전술핵 실험을 시작했다. 이런 무기는 수년간의 연구·개발 과정을 필요로 한다. 북이 대화 공세를 펴던 기간에도 대남 핵공격 수단의 개발을 멈춘 적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문 정부는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계속 주장하며 임기 말까지 북과의 ‘평화 이벤트’에 집착했다.
정치 세력이 안보 문제에서 견해를 달리할 수 있다. 북핵 개발 초기에 북의 목표를 모르고 잘못된 판단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판단이 잘못된 것이 명백해지면 생각을 바꾸고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게 정당의 책무다. 여기에는 좌우가 있을 수 없다. 국민 생명과 나라 안위가 달린 문제에 무슨 좌우가 있나. 그런데 민주당은 북핵이 발전할 때마다 말과 논리를 바꾸면서 북한을 감싸고 있다. 북이 아니라 도리어 국내 정치 상대방 때문에 안보가 불안하다고 한다. 민주당은 북이 11년 전에 핵어뢰 개발을 시작했다는 발표에 대해 최소한 부끄러움이라도 느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3-27 이번엔 재판 위증교사 혐의, 李 거짓말 의혹 끝 어딘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경기지사 선거법 위반(허위사실) 재판과 관련, 위증교사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해당 사건은 무죄로 확정됐지만, 논거 제시 대법관은 재판 거래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위증 혐의 증인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이 대표가 증언을 부탁한 녹음 파일도 확보했다고 한다. 사실이면 재심도 가능하다.
이 대표가 변호사 시절이던 2002년 KBS PD의 분당 파크뷰 특혜분양 사건 취재 과정에서 PD의 검사 사칭에 개입했는지 여부의 문제인데, 이 대표는 사칭 공모로 벌금 150만 원 형을 받았다. 그런데 2018년 경기지사 선거 토론회에서 “누명을 썼다”고 주장해 허위사실로 기소된 것. 증인 A 씨는 당시 성남시장 수행 비서로 1심 재판에서 ‘시장 측에서 이 대표를 주범으로 몰기 위해 PD 고소는 취하하자는 의견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검찰에서 위증 혐의를 인정했다고 한다. 그가 이 대표와 대립하던 쪽 사람이라는 점에서 재판부 판단에 역할을 미쳤을 개연성이 있다. A 씨는 경기도 등에 대한 납품 알선 대가로 무선통신장비 업체로부터 7000만 원을 받았는데, 검찰은 당시 정진상 경기도 정책실장이 관여한 정황도 확보했다고 한다.
이 대표는 지난 대선 때 ‘김문기 씨를 모른다’는 주장 등에 따른 허위 사실 공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대장동·백현동 의혹 등과 관련해 자신의 기존 발언과 다른 주장을 해 논란이 되고 있다. 리처드 닉슨 하야의 결정적 계기는 야당 당사 도청 사건보다 이를 은폐하려는 거짓말이었다.
문화일보 사설
03-27 민주당 “한동훈 사퇴하라” … 한동훈 “민주당 사과하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김동훈 기자
■ 법사위서 ‘검수완박법’ 격돌
민주 “한동훈, 각하 뻔한데 쟁의청구
정치적인 책임 지고 물러나야”
한동훈 “헌재결정-시행령 양립 가능”
민주당의 사퇴·탄핵 주장 일축
더불어민주당은 27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진행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현안질의에서 헌법재판소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유효 결정과 관련해 “각하가 뻔한 사안에 대해 권한쟁의를 청구한 한 장관이 정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압박했다. 또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에 대해선 즉각 폐기를 촉구했다. 이에 대해 한 장관은 “깡패, 마약, 무고, 위증 사건을 국민을 위해 수사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라며 민주당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친명(친이재명)계 강경파를 중심으로 한 장관 ‘탄핵론’까지 제기된 가운데, 법사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도 이날 전체회의에서 자진사퇴 필요성을 역설했다. 전임 법무부 장관인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검사 권한은 헌법 12조에 의해 태생하는 수사·기소권이 아닌 국회가 만드는 법률로 잉태된 권한에 불과하며 입법으로 얼마든지 자유롭게 조정한다는 게 헌재 판단”이라며 검수원복 시행령 원상복구 필요성 및 한 장관의 사퇴를 촉구했다. 같은 당 이탄희 의원도 “헌재 결정대로 존중하겠다고 했는데, 정치적 레토릭(수사)이 아니라 법률가 양심으로 시행령 법률 해석 취지가 맞는지 토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 장관은 “헌재 결정이 시행령과 양립할 수 있다”고 반문했다. 한 장관은 “헌재 결정 관련, 취지대로 행정 (조처) 하겠다고 했는데 시행령도 포함되느냐”는 이 의원 질의에 이같이 답변했다. 특히 “법 테두리 안에서 만든 시행령이라고 작년 내내 이야기했다”며 “국민을 범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장관은 개의 직전 기자들과 만나 자신에게 제기된 사퇴·탄핵론에 대해선 “한명숙 전 총리의 불법자금 사건에서 노골적으로 대법원 판결 결과에 불복하고, 그 결과를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까지 발동하면서 뒤집어보려고 하는 분들이 할 말씀은 아닌 것 같다”며 민주당을 에둘러 비판했다.
국민의힘도 헌재 논리의 허점을 부각하며 한 장관 방어에 나섰다. 첫 질의자로 나선 장동혁 국민의힘 의원은 “(헌재가) 표결권을 심각하게 침해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결과적으로는 법률은 무효가 아니라는 국민 누구도 납득하기 어렵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결정을 했다”고 지적했다.
문화일보 김성훈·최지영·김대영 기자
03.27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말을 믿기 어려운 이유들
“단호한 조치” 말 대신 ‘개딸’ 횡포 막을 방안 내놔야
모른다는 김문기와의 밀착 사진도 추가로 공개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강성 지지층인 ‘개딸’(개혁의 딸들) 관련 논란으로 정치권이 시끄럽다. 비이재명계인 이원욱 의원이 자신의 집 부근에서 피켓 시위를 벌인 이들을 향해 “이제 분노조차 아깝다”는 글을 올리면서다. “집회 공지에 게시된 제 사진이 악한 이미지로 조작됐다”는 대목이 특히 논란이었다. 원본의 입과 눈 부분을 교묘히 조작해 자신을 악마화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자 이 대표는 페이스북 글에서 “악마화를 위해 조작된 이미지까지 사용해 조롱하고 비난하는 것은 금도를 넘어선 행동”이라며 “이재명의 지지자를 자처하며 그런 일을 벌이면 이재명의 입장이 더 난처해지는 건 상식”이라고 자제를 촉구했다. “조작된 이미지로 소속 의원의 명예를 훼손한 행위에 대해 당 차원에서 철저히 조사한 후 단호히 조치하겠다”고도 했다. 강성 지지층의 상식 밖 행동에 이 대표가 자제를 요청한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 대표의 쇼잉, 중재자 코스프레”라는 국민의힘의 반응처럼 이 대표 발언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이가 적지 않은 게 현실이고, 이는 이 대표나 민주당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있다.
지난달 27일 이 대표 체포동의안 대규모 이탈표 사태 직후 강성 지지층은 ‘수박(겉과 속이 다른 배신자) 색출’에 나섰다. 당시 이 대표는 닷새 뒤에야 “내부를 향한 공격이나 비난을 중단해 달라”고 했다. 게다가 “5명 중 4명이 그랬다(이탈했다)고 해도 1명은 얼마나 억울하겠냐”며 개딸들을 교묘히 응원하는 듯한 표현이 논란을 증폭시켰다. 중국 문화대혁명 당시 마오쩌둥이 홍위병들을 부추기는 데 사용했던 ‘조반유리(造反有理·모든 반항과 반란에는 정당한 도리와 이유가 있다)’ 구호를 연상케 한다는 주장도 일었다. 이뿐이 아니다. 민주당 혁신위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당무 감사에 ‘권리당원 여론조사’를 반영해 개딸들의 공천 영향력을 보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중도층 유권자를 의식해 겉으론 개딸과 거리를 두는 척하고, 실제로는 반대파 학살 공천에 강성 지지층을 이용하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국민들이 자신의 말을 믿게 하려면 이미지 조작 등 허위 비방 포스터 제작 및 유포자에 대한 고발 등 즉각적인 재발 방지 조치를 이 대표가 취해야 한다. 또 개딸들의 횡포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방안도 내놓아야 한다. 말만 하고 행동은 없었던 지금까지의 ‘NATO(No Action, Talk Only)’식 태도로는 국민들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 지난 주말엔 선거법 재판과 관련해 고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처장과 뉴질랜드에서 함께 찍힌 사진이 추가로 공개됐다. 김문기씨를 몰랐다는 주장을 포함해 ‘검찰 수사가 야당 대표에 대한 정치탄압’이란 말에 동의하지 못하는 국민들이 왜 많은지 이 대표 스스로 돌아보길 바란다.
중앙일보 사설
03.28 팬덤정치는 민주주의 파괴한다

이연호 연세대 사회과학대학장 겸 연세-EU 쟝모네센터 소장
다수에만 매달리는 포퓰리즘
열성팬과 결합 땐 위험 극대화
소수 견해가 증폭돼 과대 반영
정치인은 비합리 행태도 불사
지지자 이끌 ‘위대한 배신’ 실종
의회 위기 본질은 생계형 정치
민주주의 제도가 오작동하면 두 가지 부작용이 나타난다. 후견주의나 대중영합주의, 즉 포퓰리즘이 발생한다. 후견주의란 정치엘리트와 이들의 후견 세력이 결탁해 배타적 이익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 경우 의회나 정당은 공익을 대변하기보다는 정치인 자신이나 후견 세력의 이익을 대변한다.
엘리트의 이러한 권력 독점 현상을 목격한 다수의 중산층과 서민 그리고 노동자들은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시도하고 자신들이 지지할 정치인을 물색한다. 이러한 참여형 모델은 비기득권층의 이익 표출을 활성화한다는 점에서 나름 합리성을 갖지만, 과도할 경우 정치적 문제를 유발할 수 있는데, 그 한 예가 포퓰리즘이다.
포퓰리즘은 비주류 정치집단과 중산 및 서민 계층이 연합해 다수의 힘과 민족주의 정서를 기반 삼아 정권을 획득하려는 정치 전략인데, 다수의 의견이 정책 수립 과정과 결과를 무조건 지배할 가능성이 크다는 문제가 있다. 민주주의의 장점은 소수의 의견까지도 수용해 공익을 정의하는 제도인데도 말이다. 직접민주주의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정치 선진국들이 의회를 통한 대의민주주의를 운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포퓰리즘보다 더 위험할 수 있는 정치 현상이 유행하고 있으니, 이른바 ‘팬덤정치’다. 최근 연구 결과를 보건대, 이 현상은 후견주의의 그릇된 파생 유형이라 할 수 있다. 요컨대, 정치 이념과 상관없이 특정 대상을 추종하는 열성 팬(fan) 세력이 전략적 정치 참여를 시도하는 현상이다. 이들은 기득권 엘리트 집단도 아니고 수적으로도 소수지만 자신들의 집약적 운동력을 정치적 영향력으로 전환한다. 그리고 일반인들이 미처 관심을 가지지 못하는 이른바 ‘합리적 무지’의 영역을 장악해 자신들만의 배타적 이익을 관철하려 한다.
팬덤정치는 전통적인 민주주의 모델에 반하는 몇 가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첫째, 자신이 열광하고 지지하는 대상에 따라 정치적 견해를 바꾼다. 민주주의는 이념적 색깔을 대표하는 정당들이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의회에서 심의함으로써 정책을 도출한다. 그런데 팬덤정치는 정치 이념과 상관없이 상업·문화·지연 등을 매개로 감성적 정치 참여를 시도함으로써 정치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린다. 이런 상황에서 정당과 의회는 제대로 기능하기 어렵다.
둘째, 정치적 소수의 견해인데도 팬덤을 통해 강력한 결집력을 갖는 경우 다수의 견해 이상으로 증폭돼 정책 결정 과정에 초과 반영될 가능성이 커진다. 셋째, 팬덤정치에 편승하는 정치인은 강력한 소수 지지 세력의 뒷배에 힘입어 비합리적인 정치적 행위를 구사할 수 있는 여지를 갖게 된다.
‘문빠’ ‘개딸’ 등의 그룹에 대해 우려를 갖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소수지만, 강력한 팬덤 세력과 결탁한 정치인들은 자신이 추구하던 신념을 수호하기보다는 후견제와 마찬가지로 오히려 이들과 영합하고 이들을 이용하는 행태를 보일 가능성이 커진다. 여론보다는 열성 지지자만을 의식하고 심지어 그들의 꼭두각시를 자처한다. 결국 자신을 평가하는 것도, 그리고 보호하는 것도 그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치인과 정당은 지지자들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의무가 있지만, 동시에 그들을 설득해야 하는 책임도 있다. 막스 베버가 지적했듯이 권력을 추구하는 행위가 국가와 사회에 대한 대의적 헌신이 아니라 객관성 없는 자기도취나 추종자들의 저열한 동기에 포획될 때 직업으로서 신성한 정치에 대한 ‘배신’은 시작된다.
특히, 진보 정치인에게 팬덤은 치명적인 유혹이다. 그들 팬덤이 제공하는 보호와 지지는 달콤하다. 그러니 그들 앞에서 ‘책임은 나에게 있다’라고 당당하게 고백하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진보적 정치인의 무기는 열정과 과학성이다. 그래야 보수에 대항할 수 있다. 위대한 정치가와 정당은 자신의 지지자들을 설득하고 개혁에 동참시킨다. 이것은 신념 있는 정치인만이 감행할 수 있는 ‘위대한 배신’이다. 유권자를 선도하려는 정치인은 사라지고 그들의 명령만 따르겠다는 생계형 정치인은 늘어간다. 대한민국 의회민주주의 위기의 본질이 여기에 있다.
문화일보
03-29 이재명, 자신은 아는 사람인가

김세동 논설위원
‘김문기 모르는 사람’이라던 李
최근 ‘안다는 건 상대적’ 바꿔
그런 식이면 아내도 모르는 셈
자신의 否認은 주관적인 평가
‘김만배와 친분 없다’ 尹 말은
‘김만배 몰랐다고 했다’ 왜곡
대통령선거전이 한창이던 2021년 12월 21일 극단적 선택을 한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가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최근 ‘사람을 안다는 건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것’이라는 새로운 논리를 들고나왔다. 다급한 심정에 한 ‘김문기 부인(否認)’이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공산이 크자 ‘사람을 안다는 것’의 철학적·문학적 개념 논쟁으로 바꾸려는 시도다. 사법적 사실(팩트) 싸움에서 승산이 없자 주관적·상대적 영역으로 이전하려는 것으로, 거짓말로 드러날 상황에 부닥치자 말장난으로 벗어나 보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 대표 변호인은 지난 3일 선거법 위반 첫 공판에서 “어떤 사람을 몇 번 이상 보면 안다고 해야 하는지, 어떤 기준인지 모르겠다”며 “안다는 기준은 상대적이고 평가적인 요소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대표의 발언은 성남시장 재직 당시 김 씨를 몰랐다는 것인데, 이는 구체적 사실이 아니라 주관적인 것에 불과하다”며 “한 번만 봤어도 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몇 번을 만났어도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개인적으로 안다는 말은 사적인 친분이 있다는 뜻으로 보인다”고 설명을 이어갔다. 설득력이 없지 않지만, ‘김문기를 몰랐다고 한 건 거짓말이었다’고 사실상 시인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이재명식으로 하면 평생 같이 산 아내도, 자식도 ‘도대체 속을 알 수 없기에’ 모르는 사람일 수 있고 심지어 ‘내가 나를 모르기 때문에’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람이 충분히 될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고, 몽테뉴는 평생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 고투했지 않았나.
이재명은 2021년 12월 22일 방송 인터뷰에서 “시장 재직 때는 (김문기가) 하위 직원이라 몰랐다”고 말했는데, 그가 극단적 선택을 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대장동 사건과 관련해 유한기 전 성남도개공 개발사업본부장에 이은 11일 만의 두 번째 핵심 인사의 극단 선택으로, 대선에 치명적 악재로 작용할 수 있는 화급한 상황에서 위험 요소를 원천 차단한 것이다. 이재명은 ‘친하지 않다’는 주관적 평가를 한 게 아니라 ‘그런 사람 자체를 모른다’고 딱 잘라낸 것이다.
궁색한 변명으로 법정 대응 전략을 바꾼 건, 2015년 1월 호주·뉴질랜드 열흘 출장 중에 유동규·김문기와 이재명 3인이 함께 4∼5시간 동안 골프를 쳤고, 특히 김문기가 운전한 2인용 카트에 이재명이 탔다는 유동규의 진술로 ‘김문기 원천 부인’ 전술을 계속 구사하기 민망하게 됐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객관에서 주관으로 ‘승천’하려는 시도는 좌절됐다. 이재명이 호주 식당에서 김문기와 마주 앉아 식사하는 사진이 지난 주말 공개된 것이다. 3인 골프의 흥미진진한 뒷얘기(골프를 더 치기 위해 홀을 역주행하다 항의받자 ‘스마미셍’ 등 엉터리 일본말로 사과해 일행이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는 주장 등)까지 공개된 뒤에도 이재명 측이 “사진을 보면 김문기와 눈도 안 마주쳤다”는 기상천외한 주장으로 ‘김문기를 몰랐다’는 진술을 뒷받침하려 했는데, 식당 사진에 이재명은 김문기 맞은편에 앉아 말을 거는 듯한 모습이 나온다. 유동규가 빌린 요트로, ‘이 시장과 의전비서·김문기’ 셋이 바다낚시를 했다는 진술도 나왔다.
3일 오전 재판에 침묵을 지켰던 이재명은 오후 속개된 재판에 들어가던 중 기자들에게 “김만배를 몰랐다는 윤석열 후보의 말에 대해서는 조사도 없이 각하했고, 김문기를 몰랐다는 이재명의 말에 대해서는 기소했다”고 말했다. 검찰이 편파적이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 대선 당시 윤 후보의 발언을 교묘히 왜곡한 것이다. 실제 윤 후보는 2021년 9월 28일 ‘김만배를 알고 있었나’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분이 서울지검, 대검도 출입했을 것이니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면서도 “서로 연락하거나 만나는 개인적 친분은 전혀 없다”고 했다. 윤 후보는 모른다고 하지 않고 친분이 없다는 주관적 평가를 했기 때문에 거짓말을 한 게 아닌 것이 된 것인데, 이재명은 ‘윤석열도 거짓말했다’고 거짓말을 한 셈이다. 자신의 객관적인 말은 주관적인 평가로, 윤 대통령의 주관적 평가는 객관적인 사실로 뒤바꾼 것으로, ‘이재명스럽다’는 비판이 나온다.
문화일보
03-29 서민, “이재명 그때 보냈어야”…“대법원서 이 대표 살린 권순일에 1500만원 줄 만”

▲강연하는 서민 단국대 교수.뉴시스
5대 5로 맞선 공직선거법 대법원 표결, 마지막 권순일이 이재명 손들어줘"
"퇴임 후 화천대유 고문변호사로 모신 뒤 월 1500만 원 줘"
"그때 이재명을 보냈다면 정치가 지금 이 모습 아닐 것"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구속을 재차 주장하고 나섰다.
지난 27일 서 교수는 자신의 블로그에 ‘이재명을 그때 보냈어야 했다’는 제목의 글을 썼다. 서 교수는 "7대 5, 2020년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상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한 대법원 표결의 최종 스코어다. 최근 임용된 순으로 의견을 말하는 그 자리에서는 5대 5까지 유죄와 무죄가 팽팽하게 맞섰다"고 회상했다.
서 교수는 "11번째 대법관은 바로 권순일 전 대법관이었다. 마지막 순서의 대법원장은 의례적으로 이긴 쪽의 손을 들어주기에 권 전 대법관의 선택은 이 대표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것이었다"며 "결과는 다 아시다시피 이 대표의 무죄였다. 저들이 권 전 대법관의 퇴임 후 화천대유 고문 변호사로 모신 뒤 월 1500만원을 줄 만 하다"고 썼다.
그는 "그런데 이 재판 때 권 전 대법관에 대한 로비가 있었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나. 권 전 대법관이 무죄로 가자고 다른 대법관을 설득했다면 (어땠을까)", "김만배씨가 재판 즈음 권 전 대법관을 만나기 위해 8번이나 대법원에 갔다는 증거가 드러났지만, 아직도 권 전 대법관에 대한 수사는 시작도 안했다"고 주장했다.
서 교수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압수수색을 막았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그날의 진실을 빨리 알고 싶다"면서도 "그나저나 정말 아쉽지 않느냐. 그때 이 대표를 보냈다면 우리네 정치가 지금 이런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글을 마무리했다. 이어 ‘늦었지만 할 건 하자’, ‘이재명 구속’이라는 해시태그(#)를 글의 말미에 덧붙였다.
문화일보 박세영 기자
03-30 거부권 불가피한 입법 강행하는 巨野, 국익·민생 망친다
여소야대 국회를 야당이 주도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지만 ‘국가 이익 우선’을 규정한 헌법 제46조를 벗어나선 안 된다. 그런데 최근 더불어민주당 행태를 보면, 반정부 투쟁과 이재명 대표 방탄에 집중하면서 국익과 민생은 뒷전에 팽개친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소수 여당의 호소를 묵살하는 거야(巨野)의 독주 방식도 갈수록 거칠어진다. 일방적 법안 처리를 막기 위해 2012년 개정된 국회법(선진화법)을 악용하는 비정상은 뉴노멀처럼 됐고, 대통령의 재의 요구(거부권)가 불가피한데도 밀어붙인다.
야당이 일방적으로 본회의 통과까지 강행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상징적이다.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모두 매입해야 하는 것인데 매년 1조 원 이상의 세금이 들어간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29일 담화를 통해 “법안이 시행되면 현재 23만t 수준의 초과 공급량이 2030년에는 63만t을 넘어서고 쌀값은 지금보다 더 떨어질 것”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에게 재의 요구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재의 요구가 오면, 재의결 정족수를 채울 수 없다고 보고 새로운 개정안을 내는 꼼수까지 동원할 것이라고 한다. 반민생·반국익을 넘어 헌법에 대한 조롱도 된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현 정권에 반농민 프레임을 씌우기 위한 전술 아니고는 설명하기 힘들다.
30일 본회의에서는 의료계 직역 간 이견이 큰 간호법도 강행 처리될 예정이다. 국정조사까지 마친 핼러윈 참사에 대한 특별조사위원회를 가동하겠다고 한다. 특조위는 1년9개월 가동하고 예산도 수백억 원 투입된다. 정치 공세와 친야 인사들 돈줄로 악용될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불법 파업에 면죄부를 줄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제2·3조 개정안), 이른바 공영방송의 현 지배구조를 연장할 수 있는 방송법 개정안, 대통령의 대법원장 임명권을 제한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 등도 문제가 심각하다. 심지어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징용배상 결단과 한일 정상회담 등에 대한 국정조사 요구안의 처리도 강행할 태세다.
국회에서 통과시킨 법안에 대한 대통령의 재의 요구가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의 야당 행태를 보면 어쩔 수 없다. 국익과 민생을 망치고, 국법 질서까지 흔드는 경우에는 좌고우면하지 말고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3-31 의원 체포동의 내로남불, ‘李 방탄당’ 본색이다
더불어민주당의 내로남불 행태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급기야 스스로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던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에 대해서도 이중 기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하영제 국민의힘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가결이 상징적이다.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에게서 1억2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하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30일 찬성 160, 반대 99, 기권 22표로 가결됐다. 하 의원을 제외한 재석 여당 의원 103명이 모두 찬성을 했다고 해도 57표가 더 나왔다.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에 반대했던 민주당 의원들이 무더기로 찬성 표를 던진 결과다.
올해 들어 체포동의안이 상정된 3명의 의원 중 민주당 소속 이 대표와 노웅래 의원은 부결된 반면, 여당의 하 의원은 통과된 것이다. 민주당 측은 “공천 대가로 돈을 받은 것 사실상 잡범으로 죄질이 나쁘다”며 “우리는 정치 탄압을 받는 것이고, 하 의원은 실제로 잘못이 있다” 고 적반하장격 해석을 내놓고 있다. 범죄 혐의의 중대성으로 볼 때 하 의원은 비교적 형량이 낮은 정치자금법 위반인 반면, 이 대표는 제3자 뇌물, 배임 등 5개 혐의에 관련 금액만도 5028억 원이다. 노 의원도 형량이 높은 뇌물과 알선수뢰, 정치자금법 위반 등 3개 혐의에 6000만 원이다.
내 편이면 아무리 중범죄를 저지르고 뇌물 액수가 많아도 정치 탄압이라는 한마디로 면죄부를 주고, 상대 편이면 잡범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것이다. 일반 국민처럼 법원에서 판단을 받으면 될 것을 자신들에게 부여된 특권을 이용해 구속 여부를 판단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심지어 라임펀드 사건의 주범 김봉현으로부터 금품을 받아 기소된 기동민·이수진 의원도 정치 탄압이라며 당직을 유지하는 결정을 내리는 파렴치를 보여줬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권 시절 검찰 특수부를 늘려가며 ‘적폐 청산’을 하더니, 정권이 바뀌어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기 직전에 ‘검수완박’ 입법을 강행했다. 이런 내로남불 행태는 결국 당을 ‘방탄당’으로 만들어 이 대표의 사법 처리를 막겠다는 꼼수에서 비롯된 것이다. 조만간 국회로 넘어올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등과 관련한 이 대표의 2차 체포동의안도 부결시킨다면 당명을 더불어민주당에서 ‘더불어재명당’ ‘특권옹호당’으로 바꾸는 게 나을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
03.31 與 의원 체포동의안은 찬성한 민주당, 철면피 쓴 내로남불
지난해 지방선거 당시 도의원 후보자에게 공천 도움을 주는 대가로 7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국민의힘 하영제 의원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 의원 281명이 투표해 찬성 160, 반대 99, 기권 22표가 나왔다. 본회의에 참석한 국민의힘 104명 중 하 의원을 제외한 103명이 모두 같은 당 의원 구속에 찬성했다고 해도 57표가 더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상당수가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민주당은 앞서 자기 당 이재명 대표와 노웅래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부결시켰다. 이 대표가 받는 불법 혐의의 중대성과 액수는 하 의원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하다. 이 대표는 대장동 업자에게 7800억원대 특혜를 몰아주고 성남시에 4800억원대 손해를 끼친 배임, 관내 기업들에 인허가 장사를 한 뇌물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됐지만 민주당 의원들은 체포동의안에 반대했다. 민주당은 물류단지 개발 등 청탁 대가로 6000만원의 뇌물 및 불법 정치자금을 받으며 ‘고맙다’고 한 말까지 녹음돼 있다는 노웅래 의원 체포동의안도 부결시켰다.
이 대표와 노 의원, 하 의원 혐의는 같은 점이 많다. 뇌물 또는 불법 정치자금 등 개인 비리라는 것이다. 같은 개인 비리라도 민주당은 이 대표와 노 의원 수사는 ‘야당 탄압’이라고, 하 의원은 그냥 ‘비리’라고 한다. 자기편이면 불체포특권 뒤에 숨겨주고, 상대편이면 구속하라고 한다. 이런 식이면 다수당 의원은 앞으로 어떤 비리를 저질러도 구속될 일이 없다.
민주당 진영은 말로만 ‘정의’ ‘민주’ ‘인권’을 독점하면서 행동으로는 편법과 반칙을 휘두르는 ‘내로남불’을 일삼아왔다. ‘적폐 수사’라면서 200여 명을 구속해 놓고, 자신들은 수사받지 않겠다며 검찰 수사권 박탈법을 통과시켰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벌여놓고 뒤로는 재개발 부지 딱지를 사고, 임대료를 5% 이상 못 올리게 해놓고 법 시행 이틀 전 자기 아파트 임대료를 9% 올렸다. 자사고·특목고에 반대하면서 자기 아이들은 자사고·특목고 졸업시켜 입시 부정을 하고 미국 유학을 보냈다. 공영방송 사장, 이사를 맘대로 바꾸더니 새 정부는 그렇게 못 하도록 법을 바꾼다고 한다. 정권 잡았을 때는 아무 말 않던 방송법, 대법원장 지명 제도를 정권 잃으니 바꾼다고 한다.
지난 대선 때 불체포특권 포기를 공약한 이 대표가 막상 자신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약속을 뒤집은 것은 헤아리기도 힘든 민주당 내로남불의 한 사례일 뿐이다. 이제는 부끄러움마저 모르는 지경이 됐다. 지지층만 보다가 철면피처럼 되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
03-31 야당 눈에만 보이지 않는 北 전술핵 위협
민주당의 지도부 회의 발언, 논평, 브리핑 등을 모아놓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한번 세봤다. 윤석열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 발표, 한일 정상회담에 대한 비판·비난이 130건을 넘는다. 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점도 있지만, 상당수는 ‘굴욕’ ‘매국’ ‘백기 투항’ ‘이완용’ 계열이다. 더 살벌하고 더 자극적인 표현 찾기 시합이 벌어졌나 싶을 정도다. 반면 이 기간 8차례에 걸친 북한의 탄도미사일·순항미사일·핵어뢰 도발에 대해 민주당이 비난한 것은 대변인 논평 3차례가 전부다. 이재명 대표 등 지도부의 언급은 없다.
최근 북한의 도발은 ICBM 한 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대한민국을 겨냥한 것이다. 북은 소형화한 전술핵탄두를 대남 타격용 미사일 8종에 장착해 쏘겠다고 했다. 방사능 쓰나미로 항만을 초토화할 수 있다고도 했다. 김정은은 대놓고 “언제 어디서든 핵무기 사용”을 위협했다. 하지만 민주당 사람들 말만 들으면 이런 북 핵·미사일 위협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일본이 쳐들어와 독도는 물론 나라 전체를 뺏기는 신(新)식민지 시대가 임박한 듯하다.
정부 조치와 일본의 대응이 국민들 눈높이에 못 미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지금 야당이 하는 것은 건설적 비판이 아니라 저주·말폭탄·선동이다. 지소미아를 복원하고 한·미·일 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북의 핵·미사일을 막기 위함인데 야당 대표는 “한·미·일 훈련을 핑계로 자위대 군홧발이 다시 한반도를 더럽힐 수 있다”고 버럭했다. 민주당 최고위원은 윤 대통령이 일본 시민들의 박수를 받자 “얼마나 많이 내줬으면 그 나라 국민들이 박수를 치겠나. 어느 나라 대통령인가”라고 했다. 이 논리대로라면 5년 전 문재인 대통령은 평양 능라도 경기장에서 북한 주민들에게 열광적인 박수를 13번 받았는데 그때는 얼마나 퍼줘서 그랬나. 우리 대북 정찰·감시 능력을 허물고 ‘핵 폐기 시늉’만으로 미국의 제재를 풀어주겠다는 약속을 해줘서 그랬나.
지난 5년간 한·일 과거사 숙제는 민주당의 손에 들려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윤석열 해법’처럼 욕먹는 방식이 아니면 한 발짝도 나가기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안다. 결국 이들은 두 손 들고 다음 정부로 떠넘기는 무책임을 택했다. 한·일 관계는 최악의 수렁에 빠졌고, 고령 피해자 상당수는 세상을 떠났다. 야당은 책임감을 느끼고 반성해야지, 정권 지지율 끌어내릴 호재가 생겼다고 신날 일은 아니다.
과거사 문제는 물론 중요하고 정부는 계속 노력해야 한다. 다만 국가 생존과 미래에 이게 전부는 아니다. 눈을 조금만 돌려보면 북핵 위협은 초읽기에 들어갔고, 세계 질서는 급격하게 재편되고 있다. 전략적인 합종연횡이 필요한데, 여기서 일본은 거의 빠지지 않는다.
북핵에 대응하려는 한미 동맹 강화는 결국 한·미·일 협력으로 이어진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 같은 강대국 보호무역주의 틈새를 파고들 때 한·일·대만 등이 연대를 이루면 목소리가 커진다. 날로 커지는 중국의 갑질에 혼자 맞서기보다 미·일 주도의 쿼드 등에 합류하는 게 유리하다. 유럽·나토와 협력하려고 해도 이미 G7 같은 틀에 일본이 있다. 내키든 내키지 않든 이게 냉혹한 현실이다. 신냉전 파고에 대비해 방파제를 쌓아야 할 시간을 죽창가 부르다 허비한 게 지난 몇 년이었다.
반일 선동을 비판하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고 눈을 부라리는 사람들이 있다. 틀리지 않은 말이다. 하지만 우리를 괴롭힌 역사는 일본보다 중국이 훨씬 길고, 근래에 우리 국민을 가장 많이 죽인 쪽은 북한이다. 정치적 잇속에 따라 역사를 취사선택해 기억하고 이용하는 집단에도 미래는 있는가.
조선일보 임민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