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문화일보) 2023-02/
02-01(수) 달걀 대신 아보카도?

이미숙 논설위원
최근 미국 필라델피아에 사는 친구가 아침 식사 기본 메뉴를 달걀 프라이 2개에서 아보카도 반쪽으로 바꿨다는 소식을 SNS에 올렸다. 부드럽지만 밍밍한 아보카도와 뒤늦게 사랑에 빠진 이유는 채식주의자가 됐기 때문이 아니라 달걀값을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탓이라는 설명도 붙였다. 달걀 한두 알에 너무 죽는소리하는 게 아닌가 확인해 봤더니 미국 달걀값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CNN에 따르면 지난해 말 캘리포니아주의 달걀 12알 평균 소매가는 7.37달러로 1년 전에 비해 3배 이상 뛰었다. 달걀값 폭등은 지난해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유행으로 인해 닭 6000만 마리 이상을 살처분하면서 생산량이 전년 대비 5%가량 줄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가족 모임과 파티가 많은 연말 연초에 수요가 폭증하며 가격을 끌어올렸다.
달걀은 값싼 단백질 공급원으로 프라이에서 찜, 스크램블드에그 등에 이르기까지 손쉽게 조리할 수 있어 누구나 좋아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가계 수입이 쪼그라들고 외식도 줄면서 집에서 간편하게 요리할 수 있는 식재료로 달걀만큼 좋은 게 없다. 그런 이유로 미국인들은 휘발유가만큼이나 달걀값에 민감하다. 최근 미 공영라디오 NPR에 소개된 달걀 관련 신조어에서 그런 기류가 묻어난다. ‘달걀값 인상이 초래한 실존적 불안감(eggsistential angst)’에 이어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줄어드는 경제학의 상식과 달리 달걀은 가격이 올라도 수요가 줄지 않는다는 뜻의 에그노믹스(eggnomics)란 단어도 생겼다.
국내 달걀값은 1등급 기준 30알이 7000∼8000원 선이다. 미국에 비해 여전히 3배 정도 싼 편이다. 그런데도 달걀값이 올랐다며 금란(金卵)으로 불렸다. 정부는 설 연휴를 앞두고 갑작스러운 달걀값 폭등에 대비해 스페인산 신선란 121만 개를 시범 수입했다. 국내산보다 30%가량 저렴해 물량 소진은 원활한 편이라고 한다. AI가 확산했던 2017년과 2021년, 2022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미국산 달걀을 들여왔는데 이제 미국이 달걀 파동을 겪자 스페인으로 수입국을 바꾼 것이다. 양계업자들은 국내산 달걀값이 떨어질까 걱정이지만, 미리미리 대비한 정부 덕분에 아침에 먹던 삶은 달걀을 미국의 친구처럼 아보카도로 바꾸지 않아도 된 것은 다행이다.
02-02 저출산위와 나경원

김세동 논설위원
나경원 국민의힘 전 원내대표가 당 대표 경선에 나서기 위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을 내던지고, 대통령실 주요 관계자들과 당의 ‘윤핵관’ 및 홍위병을 자처한 초선 의원들이 ‘나경원 때리기’에 나섰을 때 무엇보다 실망스러웠던 건, 저출산과 고령화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애정이나 관심조차 없어 보이는 사람을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했다는 점이었다.
출마 바람을 잡아가던 나 부위원장은 ‘자녀 수에 따른 대출금 탕감제 도입’을 밝혔고, 안상훈 대통령실 사회수석비서관이 “(현금복지 확대는) 윤 정부의 정책 기조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이례적으로 강하게 반박했다. 100% 당원 투표로 당 대표를 선출하는 것으로 당헌을 고쳐 유승민 전 의원 문제의 가닥을 잡고 나니, 이번엔 반대로 ‘나경원 돕는’ 상황으로 판이 돌아가자 앞다퉈 나선 것이겠지만, 저출산·고령화 대책은 물론 전반적인 윤 정부 철학과도 어긋나는 사람을 자리 나눠주기로 대충 임명한 것이라고 자백한 셈이 돼버렸다.
저출산위는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고 정부에서 보건복지·기획재정·교육·행정안전·고용노동·여성가족 장관 등이 당연직으로 참여한다. 부위원장은 민간위원이 맡는데 장관급이다. 이런 중차대한 자리를 여권 정치인의 입막음용으로 사용한 것으로, 대한민국의 지속가능성이 달린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이 어느 정도로 느슨한지 알게 한다.
지난달 27일 복지부 추계에 따르면 저출산과 고령화가 겹쳐 국민연금은 2041년에 적자로 전환돼 2055년에 기금이 바닥난다. 세계 최저의 출산율과 최고 속도의 초고령사회 진입에 따라 가입자는 급감하고 수급자는 급증하기 때문이다. 현재 2199만 명인 가입자와 527만 명인 수급자는 2060년엔 각각 1251만 명, 1569만 명으로 뒤집힌다. 가입자보다 수급자가 318만 명 많아, 현재는 성인 4명이 노인 1명을 감당하던 게 4명이 5명을 부양해야 하는 ‘연금 지옥’이 펼쳐지는 것이다.
02-03(금) ‘조폭 리스크’ 폭탄

이철호 논설고문
김건희 여사의 보폭이 넓어지고 있다. 정초 이후 대구 서문시장에 다녀오고 관저에서 식사 대접도 부쩍 늘었다. 김 여사 메시지의 핵심은 딱 하나라고 한다. “우리 윤 대통령이 많이 어려우시다.” 윤석열 대통령의 식사 정치 자리도 마찬가지다. 주로 “지금 많이 어렵다”며 도움을 요청한다고 한다. 대화의 단골 메뉴는 “여소야대로 일하기 힘들다” “좌파가 절반 이상 장악한 언론은 기울어진 운동장” 등인 모양이다.
묘한 건 대통령 부부의 표정이 어둡지 않다는 점이다. 목소리 톤도 낮아졌다고 한다. 대통령실 주변에선 “야당 복(福)”이라 소곤거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수사에서 충격적 진술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민주당 내부도 ‘성남발(發) 리스크’에 긴장하는 눈치다. 비명계는 “이 대표가 성남 쪽 참모들을 왕창 데려올 때부터 낌새가 이상했다”고 한다.
성남의 정치 지형은 독특하다. 두 개의 키워드는 경기동부연합과 조폭. 성남 바로 옆 한국외대 용인캠퍼스는 주사파 아성이었다. 2010년 선거 때 이재명은 경기동부와 공동선대위를 꾸려 도움을 받았다. 성남시장 인수위원장에 통합진보당 김미희 전 의원, 간사에 백승우 전 통진당 사무부총장이 앉았던 배경이다. 경기동부가 청소용역 업체 선정 등 온갖 이권에 영수증을 들이밀자 이 대표는 학을 떼고 ‘손절’했다고 한다.
성남 ‘국제 마피아파’는 이름 있는 전국구 조폭이다. 은수미 전 시장은 이들과 연루설을 보도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거액의 소송을 걸었다가 패소했다. 오히려 여기서 파생된 수사기밀 제공 및 부정청탁으로 징역 2년, 법정 구속됐다. 이 대표도 대선 때 성남시장 집무실 책상에 조폭이 발을 올린 사진으로 곤욕을 치렀다. 다행히 가짜뉴스였다.
하지만 이번 쌍방울 사건은 차원이 다르다. 조폭 출신의 김성태 전 회장이 “이 대표의 방북을 위해 최소 300만 달러를 북한에 제공했다”며 연일 폭탄을 터뜨리고 있다. 대검 강력부장 출신 변호사의 말이다. “조폭은 어릴 때부터 툭하면 주먹을 휘둘러 즉흥적·감정적이고, 참을성이 별로 없다. 노련한 검사에게 걸리면 의외로 오래 못 버티고 술술 분다. 진짜 사나이 식으로 추켜세워 주면 수사에 협조적인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 김성태의 입이 지금 열리고 있다.
02-06(월) 장외투쟁

이현종 논설위원
1987년 12·16 대선을 코앞에 둔 13일 김대중 평화민주당 후보는 서울 동작구 대방동 보라매공원에서 대규모 유세를 열었다. 김영삼 통일민주당 후보와의 단일화가 물 건너가면서 재야·학생 단체들이 DJ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선언, 이날 집회 열기는 어마어마했다. 언론들은 100만∼130만 명으로 추산했고, DJ 측에서는 500만 명으로 ‘뻥튀기’했다.
이날 DJ는 민주 진영의 지지를 받은 단일 후보를 선언했고, 표로 단일화를 이뤄 달라고 호소했다. 당시 집회장에는 상인만 수천 명에 달할 정도였다. 오징어 장수는 “큰 오징어는 평민당 오징어, 작은 오징어는 민정당 오징어”라며 호객을 했고, “기호는 3번, 바나나는 500원”이라고 외치는 상인도 있었다. 이날 참가자들은 유세가 끝난 후 한강대교를 건너서 서울역까지 행진했는데, DJ는 이날 열기에 취해 승리를 자신했다. 그러나 결과는 3위였다. 이희호 여사는 훗날 자서전 ‘동행’에서 ‘엄청난 군중이 운집한 것이 독이 돼 단일화의 기회만 놓치고 말았다’고 했다.
보라매공원은 1987년 대선을 시작으로 이후 장외집회의 단골 명소가 됐다. 공원은 원래 진해에서 이전한 공군사관학교가 세워져 있다가 1985년 청주로 이전하면서 공원이 돼 대규모 장외집회가 자주 열렸다. 2002년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 사건인 ‘효순이 미선이 사건’부터 서울광장과 광화문으로 옮기면서 이후 광우병, 촛불집회 등은 모두 광화문을 중심으로 열렸다.
장외집회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DJ도 정계에 복귀한 1995년 “원외투쟁은 두 번 다시 해서는 안 된다. 불가피할 때에는 원내투쟁을 중심으로 보완해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새정치국민회의 총재가 된 같은 해 11월 거리로 나설 만큼 장외투쟁의 유혹을 끊기 어렵다. 더불어민주당이 6년 만에 지난 4일 숭례문 인근에서 2만여 명이 모인 가운데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는 장외집회를 열었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자 전국 지구당에 100명씩 총동원령을 내렸다. 그러나 169명의 의원을 가지고 있는 민주당이지만, 이날 집회엔 100여 명의 의원만 참석했다. 의석수가 압도적인 정당이 국회에서 나와 핍박받는 소수당처럼 장외로 나가는 데 대한 여론은 싸늘하다.
02-07 최순우와 ‘고려비색’

김종호 논설고문
1974년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에 취임해 평생 봉직한 혜곡(兮谷) 최순우(1916∼1984)는 1934년 개성박물관 관장이던 고유섭의 권유로 고미술 연구에 발을 디뎠다. 개성박물관이 가장 자랑스러워한 소장품인 고려청자 기와 파편 한 점에 매료됐다. 그 기와 조각의 가마터를 찾기 위해 전국을 다녔다. 국립중앙박물관 과장이던 1964년 그는 전남 강진 일대를 돌다가, 어느 아주머니가 소쿠리에 담고 있던 청자 파편 무더기 속의 기와 암막새 조각 하나를 발견했다. 그것을 단서로 연구·조사한 끝에, 그는 청자 가마터와 청자 지붕 얹는 방식 등을 밝혀냈다. 그 전까지 찾아낸 관련 기록은 ‘고려사’의 의종 11년(1157) 부분밖에 없었다. ‘임금이 왕업의 번영을 위해 궁궐 옆에 있던 민가 50채를 헐어 태평정(太平亭)을 짓고, 남쪽에 못을 파 관란정(觀瀾亭), 그 북쪽에 양이정(養怡亭)을 세워 청기와를 올렸다’는.
국립중앙박물관이 개관 100주년 상징물로 ‘거울 못’ 가에 2009년 건립한 ‘청자정(靑磁亭)’ 지붕을 청자기와로 인 배경이다. 지난해 11월 23일 새롭게 단장해 문을 연 ‘청자실’에서는 국보 12점과 보물 12점 등 세계적 걸작 250여 점을 보여준다. 그 안에 별도 공간이 ‘고려비색(翡色)’이다. 중국 청자의 ‘비색(秘色)’과 구분되는 고려청자 절정기의 은은하면서 맑은 비취색과 조형성이 완벽하게 어우러져 특별한 감동을 주는 18점을 따로 모았다. 앙증맞은 토끼 3마리가 떠받치고 있는 형상의 ‘투각 칠보 무늬 향로’를 비롯해, ‘사자 모양 향로’ ‘사람 모양 주자(注子)’ ‘어룡(魚龍) 모양 주자’ ‘귀룡(龜龍) 모양 주자’ 등 국보도 5점이다. 본명은 최희순으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등 명저도 많이 낸 ‘당대 최고의 미술 안목’ 최순우가 고려청자 비색을 두고 “비가 개고 안개가 걷히면, 먼 산마루 위에 담담하고 갓 맑은 하늘빛”이라고 표현한 이유도 알게 해준다.
그 공간을 열면서, 박물관 측은 “비색의 상형청자에 깃든 아름다움을 느끼고 마치 명상을 하듯이 자신의 본모습과 마주하기를 바란다. 비색 청자와 하나가 되는 새로운 예술적 감동의 시간을 보내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몰입하게 하는 공간 ‘고려비색’에 가면, 누구나 그런 체험을 온몸으로 하게 될 것이다.
02-08 톱3 현대차와 기업가정신

문희수 논설위원
경기 침체로 무거운 뉴스들이 속출한다. 그래서 이따금 전해지는 낭보가 더욱 반갑다. 현대차그룹의 도약도 그중 하나다. 글로벌 자동차 판매실적이 지난해 세계 3위로 잠정 집계됐다. 1위 토요타(1040만 대), 2위 폭스바겐(830만 대) 다음으로 많은 총 684만 대를 팔아 르노닛산미쓰비시연합(625만 대)을 제친 것으로 추산된다. 2021년 GM을 제치고 4위에 오른 지 1년 만에 한 계단 더 올라갔다. 올해도 질주 중이다. 미국 시장에서 1월 기준 역대 최고 실적을 올려 1위 토요타를 2만여 대 차이로 바짝 추격했다. 올 상반기엔 현대차·기아 누적 판매가 1억5000만 대를 돌파할 것이라고 한다. 자동차 생산 47년여 만에 이룬 성과가 놀랍다.
현대차가 포니 개발에 나선 것 자체가 대단한 도전이었다. 1975년 자체 개발한 엔진을 단 첫 고유 모델인 포니가 남산 등정에 성공한 것이 역사의 시작이었다. 포니가 거침없이 정상에 오르자 노심초사하던 임직원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올렸다고 한다. 당시 현대차를 얕봤던 미국 포드, 엔진 기술을 제공했던 미쓰비시 등 일본 업체들 모두 놀랐다. 이후에도 도전은 계속됐다. 총 1000만 대 가까이 팔려 세계적 명차 반열에 오른 중형차 쏘나타, 다들 안 될 것이라고 하던 미국·유럽의 고급 대형차 시장을 성공적으로 뚫은 제네시스에 이어, 아이오닉5(기아는 EV6)가 대표하는 전기차도 질주하고 있다. 여기에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자율주행차와 로봇, 도심항공교통(UAM) 등도 경쟁력을 높여가고 있다.
우리 기업의 성장, 우리 경제의 성공은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던 도전과 눈물의 결과다. 일본을 제치고 반도체 세계 1위 신화를 이룬 삼성, 황무지에 일관제철소를 세운 포항제철(현 포스코), 거북선이 새겨진 500원짜리 동전으로 해외에서 조선소 건설 자금을 유치한 현대중공업 등이 모두 그렇다.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기업가 정신이 일군 성공의 역사다. 지금 난관이 도처에 즐비하다. 반도체는 극심한 불황이고, 전기차도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을 넘어야 한다. 쉽지 않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경제가 어려운 때야말로 기업가 정신이 절실하다. 한국에 미래를 향해 뛰는 많은 기업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아름다운 도전은 계속돼야 한다.
02-09 용감한 튀르키예人

박민 논설위원
‘형제의 나라’로 불리는 튀르키예와 한국의 인연은 고조선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튀르키예는 ‘튀르크 민족의 땅’이란 뜻이고, 튀르크는 ‘용감하다’는 의미다. 영어권에서 터키(Turkey)로 바뀌었는데, Turkey(칠면조)는 속어로 ‘겁쟁이’라는 뜻이어서 튀르키예인들이 싫어했다. 결국, 2022년 국가 영어 명칭을 ‘튀르키예(Türkiye)’로 변경했다. 튀르크족은 투르크족으로도 불리는데, 모두 돌궐에서 기원한 말이다. 돌궐은 몽골계 유목민으로 고대 동아시아에서 상당한 세력을 구축했다. 최초의 튀르크계인 흉노족은 고조선과 강력한 동맹을 형성했다. 돌궐은 고구려와 동맹을 맺어 당나라와 싸웠다. 당 태종에게 쓰라린 패배를 안겨줬던 연개소문은 돌궐 공주와 혼인했다. 이후 돌궐인들이 여러 곳으로 이주해 튀르크계 국가를 건설하는데 대표적 나라가 튀르키예다.
6·25전쟁은 양국 우호의 전환점이 됐다. 튀르키예는 미국, 영국, 캐나다에 이어 4번째로 많은 병력을 파견했다. 1만4936명이 참전해 741명의 전사자와 200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전사자 비율은 미국과 영국의 2배 수준이다. ‘용감하다’는 튀르크인답게 전선의 최선봉에 서서 후퇴하지 않고 싸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김량장(경기 용인시)·151고지 전투에서 튀르키예군은 중공군을 상대로 백병전을 벌여 1명당 40명의 적을 물리쳤다. 그 결과, 중공군은 1900명 사망한 반면, 튀르키예군 전사자는 12명에 그쳤다.
튀르키예에서 한국 이미지가 업그레이드 된 것이 2002 한·일 월드컵 때다. 당시 튀르키예는 48년 만에 월드컵에 진출했는데 한국과 맞붙은 3·4위전에서 대형 태극기와 함께 튀르키예 국기인 월성기가 관중석에 펼쳐졌다. 튀르키예 국민에게 이 장면은 감동을 넘어 충격을 줬고, 한 달 이상 주요 뉴스로 다뤄졌다. 이후 삼성전자를 포함한 한국산 제품의 판매가 급증했는데, 지금도 튀르키예는 수십억 달러의 흑자를 안겨주고 있다.
지난 6일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 북부 지역에 지진이 발생해 사상자가 최대 5만 명에 육박하리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단일 파견으로는 최대 규모인 110여 명의 긴급구호대를 보냈다. 1차로 500만 달러도 지원한다. 튀르키예 국민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기를 기대한다.
02-10(금) 조민 vs 정유라

이현종 논설위원
조국 사태의 ‘시즌 2’가 시작된 걸까. 조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 씨가 김어준 씨의 유튜브에 출연해 자신의 의학전문대학원 입시비리에 대해 “떳떳하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인 SNS 활동을 시작하자 논란이 새로운 차원으로 접어들고 있다. 조 전 장관이 재판에 넘겨진 지 3년 2개월 만에 1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으면서 이젠 조국이라는 이름을 더는 듣지 않을 수 있겠다는 관측은 빗나가고 말았다.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조민 씨의 이런 뻔뻔한 행태에 대해 지난 2016년 조 전 장관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난하며 트위터에 올린 ‘아버지에게 배운 대로 한다’는 글을 소환했다. 실형 선고를 받고도 무죄 난 것만 강조하며 사과조차 없었던 조 전 장관이나 딸 조민 씨가 닮았다는 것을 빗댄 것이다.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법정에 이르기까지 객관적인 증거에 반하는 주장을 하면서 그 잘못에 여전히 눈 감은 채 진정한 반성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고 조 전 장관을 비판했다. 조민 씨도 어머니 정경심 전 교수의 대법원 확정판결(징역 4년)에서 표창장 및 논문 위조 사실이 이미 확인됐고, 함께 위조한 사실까지 언급했는데 전혀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아버지와 똑같기 때문이다.
특히, 조 씨는 아버지 조 전 장관과 어머니 정 전 교수에게 지난 3일 각각 징역 2년과 1년의 실형이 선고된 그날 김어준 방송에 출연해 웃음까지 보이는 사진과 동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기도 했다.
이런 조 씨를 대적하는 것은 의외로 최서원 씨의 딸 정유라 씨. 조 씨가 유튜브에서 “(내게) 의사 자질이 충분하다는 말을 들었다”고 언급한 대목을 두고 정 씨는 “내 승마선수 자질은 뭐가 부족해서 네 아빠는 나한테 그랬을까 ㅋㅋ 웃고 간다”고 썼다. 조 씨와 정 씨는 입시비리의 수혜자이자 어머니가 구속 중이고, 둘 다 정권의 핵심 실세 부모를 뒀다는 점이 비슷하다. 그러나 정 씨는 수갑 차고 구속되는 모습이 생생히 방송되고 본인의 잘못도 모두 인정했다. 반면, 조 씨는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고 반성도 없다. 조 씨는 지지자들이 SNS에 공개된 사진을 보고 “이쁘다”는 칭찬 일색인 반면, 세 자녀를 둔 정 씨는 그렇지 않다. 얼마나 국민의 억장을 무너지게 해야 조 전 장관 가족의 비정상적인 행태가 끝날 수 있을까.
02-13(월) 애국의 최전선

이미숙 논설위원
노무현 정부 말기 때인 2007년 7월에 발생한 샘물교회 교인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은 종교의 자유와 선교 문제, 그리고 국가의 역할을 생각하게 해준다. 이 교회 소속 배형규 목사와 선교사 및 교인 등 총 23명은 선교를 위해 아프간을 방문했는데 카불에서 칸다하르로 이동 중 무장 테러조직 탈레반에 납치됐다. 당시 김정일과 남북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온 신경을 쓰던 노 정부는 돌발 변수 해결을 위해 백방으로 나서지만, ‘납치 단체와 협상하지 않는다’는 미국의 냉담한 반응에 낙담했다. 이후 외교 원칙을 허물며 탈레반과 직접 협상에 나서 피랍자 21명을 구했다.
사건 당시 외교통상부의 수장이었던 송민순 장관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에는 탈레반과 협상에 앞서 열린 안보정책조정회의 풍경이 상세히 그려져 있다. 탈레반이 정부 신임장을 선(先)요구한 데 대한 정부 입장을 결정하는 회의에서 저자는 신임장을 써주자는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에 얼굴 붉히며 맞선 결과 신임장을 보내지 않게 됐다고 썼다. 그러나 테러 조직에 신임장은 써주지 않았지만, 결국 노 정부는 탈레반과 마주 앉아 협상을 한 끝에 피랍자들을 구해냈다. 상당 금액의 몸값도 지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김만복 국가정보원장이 선글라스 낀 현지 요원과 사진 촬영 쇼를 벌여 빈축을 사기도 했다.
임순례 감독의 ‘교섭’이 지난달 18일 개봉 후 관객 169만 명을 끌어모으며 순항 중이다. 아프간 피랍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인데 피랍자 석방을 위해 탈레반과 협상에 나서는 외교관과 국정원 요원의 고뇌를 밀도 있게 그렸다. 원칙 중시파 외교관 정재호(황정민)와 현장 우선파 국정원 요원 박대식(현빈)이 인질 구출 과정에서 벌이는 격렬한 논쟁이 백미다. 이 영화는 해외의 악조건 속에서 일하는 외교관과 정보 요원의 존재 가치를 확인시켜준다. 그런 점에서 소말리아 내전 후 탈출 과정을 그린 류승완 감독의 ‘모가디슈(2021)’와도 일맥상통한다. 생사 갈림길에 선 국민을 구하는 이들은 외교관과 국정원 요원이고, 이들이 국익 최전선에서 일하는 애국자임을 보여준다. 그런데 360만 명이 본 ‘모가디슈’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교섭’이 상업 영화인 게 신기하다. 외교관이나 정보 요원보다 더 대단한 애국자가 대한민국 영화팬이다.
02-14 챗GPT 경험담

이철호 논설고문
인공지능(AI) 테마주가 요동치고 있다. 미국 챗GPT가 대박을 치자, 치킨 가게에 자동 닭튀김 로봇을 납품하는 국내 업체 주가도 연초 대비 두 배 가까이 폭등했다. 매출 100억 원 남짓에 시가총액은 2000억 원을 넘어섰다. 반면, AI의 골리앗이던 구글은 죽을 쑤었다. AI 시연에 엉뚱한 답변 하나로 시총이 200조 원 날아갔다.
챗GPT는 유료화 성공으로 분수령을 넘어섰다. 전시회에서 ‘쇼’만 하던 AI가 일반 고객을 상대로 돈을 벌게 된 것이다. 이른바 B2C다. 구글의 알파고가 바둑을 둘 때 들어간 전기요금은 줄잡아 3000만 원. 이에 비해 챗GPT가 검색 하나에 드는 비용은 2센트로 내려갔다. 누가 싼값에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경쟁이 시작됐다.
챗GPT의 샘 올트먼 CEO는 ‘다윗’이나 다름없다. 2015년 일찌감치 “구글의 AI 기술이 경쟁 불가 수준”이라며 “민간기업이 AI를 장악하면 인류사의 대재앙”이라 경고했다. 여기에 동조한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등이 돈을 대 비영리단체로 세운 게 오픈AI다. 모든 연구 결과와 특허를 무료로 공개해 왔다. 반면, 구글은 AI 특허 2303건을 꼭꼭 비밀로 숨겼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챗GPT 등장은 인터넷 발명만큼 중대한 사건”이라고 했다. 미래를 바꿀, 막을 수 없는 혁명이란 뜻이다. 새 학기를 앞둔 한국과 미국 대학들은 논문과 리포트에 챗GPT 표절을 막느라 온갖 궁리를 짜내고 있다. 하지만 미 명문 와튼스쿨은 정반대로 간다. 이선 몰릭 교수는 학생들에게 챗GPT 사용을 의무화하면서 “변화에 적응시키는 것도 교육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직접 챗GPT를 써보면서 놀랐다. 글솜씨가 장난이 아니다. 불평등 우려도 나오지만, AI가 삶을 더 쉽고 편하게 만들 게 분명해 보인다. 검색 공룡인 구글보다 공공성이 강한 오픈AI가 한발 앞선 것도 다행스럽다. 다만, 인재·컴퓨팅과 함께 AI의 3대 기둥이라는 빅데이터에서 영어 자료가 압도적인 게 마음에 걸렸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점은, 추가 질문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챗GPT가 내놓는 답변이 천양지차였다는 것이다. 이제 답을 잘하기보다 질문을 잘하는 사람이 세상을 이끌어가지 않을까 싶다. 지식의 시대는 가고 통찰력의 시대가 오고 있다.
02-15 정치인 죽이기와 모시기

김세동 논설위원
나경원 전 의원의 당 대표 출마를 비판하며 연판장을 돌렸던 국민의힘 초선 의원 50명 중 8명이 지난 6일 나 전 의원을 찾아 사과하며 윤심(尹心) 주자인 김기현 의원 지지를 요청한 건 ‘학폭’ 피의자의 2차 가해 같다는 비판이 많았다. 친윤석열계인 박성민 의원은 6일 강민국·구자근·이용·이인선·전봉민·정동만·최춘식 의원 등과 함께 서울 동작구 당협 사무실에서 나 전 의원과 면담한 뒤 “우리 나경원 (전 원내)대표님께서 당 대표 불출마를 선언하고 두문불출하시는 모습에 저희가 너무 마음이 아팠고, 또 당이 너무 엄중한 시기에 대표님께서 조금 나오셔서 여러 가지 고민도 좀 같이 함께 나눴으면 하는 그런 의미로 찾아뵀다”고 밝혔다.
당심(黨心) 지지율 1등인 나 전 의원 대표 출마를 대통령실과 당내 윤핵관들이 나서 주저앉히고 나자 각종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의원이 앞서 나가는 예상과 다른 상황이 진행되니 ‘나심(羅心)’을 얻기 위해 물불 안 가리고 나선 것인데, 나 전 의원에 대한 모욕이자 두 번 죽이기라는 지적이다. 앞서 김기현 의원이 지난 3일 나 전 의원의 용산구 자택을 방문한 지 이틀 만에 다시 나 전 의원이 가족과 여행을 떠난 강릉을 찾아 지지를 부탁한 데 이어 7일엔 오찬회동을 한 것도 2차 가해로 비판받을 수 있는 행동이다. 윤상현 의원은 “저는 낯짝이 있다면 그렇게 못 갈 것 같다”고 맹비난했다. 최고 윤핵관으로 분류되는 장제원 의원이 나 전 의원을 “반윤(反尹)의 우두머리”라고 규정했다가 판이 꼬이자 “함께 손잡고 갔으면 좋겠다”고 한 것도 마찬가지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11월 15일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부인이 박 전 시장의 비서실 여직원 성희롱을 인정한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에 반발해 2021년 4월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판단,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결과적으로 2020년 7월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지 이틀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고인의 혐의를 박 전 시장의 가족이 한 번 더 확인해 준 셈이 됐다.
개그맨 정준하는 2003년 “∼을 하는 것은 저를 두 번 죽이는 거예요”라는 유행어로 큰 인기를 얻었다.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웃고 즐겼던 ‘두 번 죽이기’가 현실 정치에선 잔혹극이나 비극으로 사용되고 있다.
02-16 이주호 해바라기

김종호 논설고문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그대 함께 간다면 좋겠네/ 우리 가는 길에 아침 햇살 비치면/ 행복하다 말해 주겠네/ 이리저리 둘러봐도 제일 좋은 건/ 그대와 함께 있는 것/ 때론 지루하고 외로운 길일지라도/ 그대 함께 간다면 좋겠네/ 때론 즐거움에 웃음 짓는 나날이어서/ 행복하다 말해주겠네’. 싱어송라이터 이주호(67)와 유익종(68)이 1982년 결성한 듀엣 해바라기가 1983년에 발표한 제1집 앨범 ‘행복을 주는 사람’의 타이틀 곡이다. 이주호가 작사·작곡했다. 그 앨범에 담긴 노래 ‘모두가 사랑이에요’ ‘사랑의 시(詩)’ ‘갈 수 없는 나라’ 등 주옥같은 명곡 거의 모두 이주호 작곡이다.
해바라기는 1973년 혼성 4인조로 출범했다. 그 일원이던 이주호가 군 복무를 마친 뒤에 같은 이름의 남성 듀엣을 따로 만들었다. 유익종 자리는 이광준·심명기·송봉주·강성운·이상 등으로 바뀌어 왔지만, 이주호만은 그대로다. 현재 멤버 이상은 이주호의 외아들로, 본명이 이상수다. 2000년 그룹 UPS로 데뷔한 뒤, 2005년 솔로 가수로 재데뷔했고, 이제 해바라기 활동도 병행한다. 이주호 작사·작곡인 해바라기 명곡만 해도, ‘사랑은 언제나 그 자리에’ ‘어서 말을 해’ 등 셀 수 없이 많다. ‘내 마음의 보석 상자’는 ‘난 알고 있는데 우리는/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우린 알고 있었지 서로를/ 가슴 깊이 사랑한다는 것을’ 하고 시작한다. ‘사랑으로’ 첫 부분은 이렇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바람 부는 벌판에 서 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 그러나 솔잎 하나 떨어지면 눈물 따라 흐르고/ 우리 타는 가슴 가슴마다 햇살은 다시 떠오르네’.
이주호는 ‘한국 포크 음악의 거장’ ‘1980년대 대학가에 한국 포크의 미학을 알려준 뮤지션’ 등으로 일컬어진다. ‘순수하고 깊은 감성의 우물에서 애틋한 사랑과 따뜻한 위로의 노래를 길어 올리는 음악적 구도자(求道者)’라고도 할 만하다. 그가 지난해 내놓은 신곡 ‘계절은 돌고 돌아’에선 ‘계절은 돌고 돌아 다시 봄인데/ 내 마음은 아직도 겨울이네요/ 사는 것도 거칠어진 요즘 세상에/ 어떻게 지내시나요’ 하고 물었다. 앨범 ‘행복을 주는 사람’ 발표 40주년인 올해의 봄도 멀지 않다. 짜증 나는 세상일수록 해바라기 노래의 위로는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02-17(금) K-배터리의 반격

문희수 논설위원
세계적으로 전기차 배터리는 중국이 장악했다. 중국산 배터리는 효율성이 낮지만, 워낙 저가여서 시장 점유율은 계속 급증하고 있다. 한국은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 SK온 등 빅3 모두 공급량은 늘고 있지만, 점유율 자체는 떨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SK온이 핵심 원료인 코발트를 뺀 시제품 개발에 성공한 것은 주목할 만한 성과다. 코발트는 한국의 주력인 삼원계(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 원료 중 가장 비싸 금속 원가의 40%가량을 차지한다. 설상가상으로 중국 의존도는 더 높아졌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코발트 의존도는 중국 수입액 기준으로 2021년 64%에서 지난해 72.8%로 올라갔다. 게다가 코발트는 대부분 중국에서 제련된다. 중국산 광물이 일정 비율 이상 들어간 배터리를 쓰는 전기차엔 보조금을 금지하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규제를 피하기 어렵다. IRA 시행세칙은 다음 달 나올 예정이다. ‘코발트 제로’ 신기술이 반가운 이유다.
K-배터리는 대중 반격을 예고하고 있다. 경기 침체를 뚫고 차세대 기술 투자는 급증 추세다. 빅3의 올해 투자 규모는 LG 10조 원을 비롯, 총 20조 원 수준으로 사상 최대가 될 전망이다. 성과도 속속 가시화하고 있다. 삼성은 올 상반기에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시험생산 라인을 준공할 예정이다. 2027년 양산이 목표다. LG 역시 2026년 전고체·2027년 리튬황을 각각 양산할 계획이고, SK도 2029년 전고체 상용화를 향해 뛰고 있다.
세계 배터리 1위인 중국 CATL은 지난해 점유율이 37%로, 전년(33%)보다 더 상승했다. 한국 3사를 합친 것보다도 높다. 여기에 중국 BYD는 LG와 공동 2위(13.6%)로 올라왔다. 중국을 제외한 시장 점유율에서는 아직 LG가 1위지만 중국 업체와의 격차는 급격히 줄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전기차 수출도 세계 2위로 도약했다. 올 전기차 시장은 테슬라가 20% 파격 세일에 나서는 등 가격 인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전기차 값의 40%나 되는 배터리의 가격 인하는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저가 중국산에 대응하려면 소재를 덜 쓰고, 중국 의존도가 낮은 신소재로 대체하는 신기술 개발이 절실하다.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한다. K-배터리의 반격을 응원한다.
02-20(월) ‘사회의 영혼’ 서점의 귀환

박민 논설위원
서점은 역사와 문화를 연결하고 영감의 원천이 되는 ‘사회의 영혼이자 심장’이다. 프랑스 파리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이런 정의에 가장 부합하는 서점이다. 1919년 실비아 비치가 문을 연 이 서점은 ‘노인과 바다’의 헤밍웨이, ‘위대한 개츠비’의 피츠 제럴드, ‘율리시스’의 제임스 조이스 같은 문인들이 모여 토론하던 곳이었다. 실비아 비치는 1920년대만 해도 무명인 헤밍웨이가 무료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했고 내용이 부도덕하다는 이유로 게재를 거부당한 ‘율리시스’의 출판을 지원했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몇 시간의 노동, 매일 책을 읽겠다는 약속, 한 페이지의 자서전만 쓰면 누구에게든 무료로 숙박을 제공한다. 2대 사장 조지 휘트먼이 서점 한편에 새겨놓은 문구 ‘낯선 이를 불친절하게 대하지 마라. 위장한 천사일 수 있다’에 따른 것이다.
2018년 인터넷 서점에 몰려 폐업 위기를 맞았던 미국 서점 체인 반스앤드노블이 올해 30개의 새로운 서점을 내기로 했다. 이 중 2곳은 온라인 서점에서 유통 공룡이 된 아마존의 오프라인 서점이 문 닫고 나간 자리다. 반전의 주역인 CEO 제임스 돈트의 비결은 3가지다. ‘광고비를 받는 책을 미는 마케팅은 코카인 복용’ ‘서점은 온라인에서 얻을 수 없는 우연한 발견의 공간’ ‘좋은 서점은 흥하고 나쁜 서점은 망한다’.
종로 1번지에 있는 교보문고는 단일 면적으로 세계 최대 규모다. 서가 길이 24.7㎞에 연간 방문객이 5000만 명에 달하는 ‘국민서점’이다. 교보생명 창립자 고 신용호 명예회장은 “사통팔달 제일의 목에 청소년을 위한 멍석을 깔아주자. 와서 사람과 만나고, 책과 만나고, 지혜와 만나고, 희망과 만나게 하자”며 대형쇼핑센터를 열자는 임직원의 주장을 물리쳤다. 지금도 교보문고는 ‘모든 고객에게 친절하고 초등학생에게도 존댓말을 쓸 것’ ‘한곳에 오래 서서 책을 읽어도 그냥 둘 것’ ‘책을 보고 사지 않더라도 눈총 주지 말 것’ 등의 운영지침을 지키고 있다.
2020년 44억여 원의 적자를 냈지만 부친 뜻을 이어받은 신창재 회장이 2021년 교보생명으로 하여금 1500억 원을 유상증자하게 해 시민들의 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혁신을 추진 중이다. 교보문고를 포함, 많은 서점이 우리 사회의 영혼이자 심장으로 남길 기대한다.
02-21 아시타비(我是他非)

이현종 논설위원
“전직 대통령 박근혜 씨가 이제 영장실질심사를 받게 됩니다. 범죄를 부인하고 있고 언제 도망갈지도 모르고 증거인멸을 하고 있다는 정황이 여러 곳에서 보이기 때문에 구속되는 게 당연한 사안입니다.” 지난 2017년 3월 성남시장이자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였던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당시 촛불집회에서 박 전 대통령을 향해 강경한 메시지를 던져 인기를 끌다가 경선 후보까지 오른 이 대표의 ‘사이다 메시지’였다. 이 말을 할 때 뒤편엔 친명 좌장인 정성호 의원이 배석했다.
6년 뒤인 지난 16일 이 대표는 자신에 대한 검찰의 사전구속영장 발부 입장에 대해 “단 한 점의 부정행위를 한 바가 없고 부정한 돈, 단 한 푼 취한 바 없습니다. 제가 가족을 버리고 도주하겠습니까. 인멸할 수 있는 증거가 남아 있기는 합니까” 하고 항변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해선 가혹했던 이 대표가 자신에 대해선 한없이 너그럽다.
검찰은 이 대표에 대한 173쪽 분량의 구속영장 속에 대장동 사업과 관련, 공공 환수 등과 같은 외관을 꾸며 주민을 속였다며 ‘내로남불 아시타비(我是他非·나는 옳고 다른 사람은 그르다)의 전형을 보여줬다’고 적었다. 보통 구속영장엔 드라이하게 범죄 혐의만 적시하는 것이 관례이지만 이번 검찰은 영장에 잘 사용하지 않는 용어를 썼다. 제1야당의 이 대표를 구속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내로남불의 한자 조어인 ‘아시타비’를 쓴 것이다. 2017년 이 대표 기자회견에 배석했던 정 의원은 이번엔 구속 중인 정진상 전 대표실 정무조정실장,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를 특별면회해 증거인멸·회유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아시타비는 조국 전 장관 사태로 내로남불이 사회적 이슈가 됐던 2020년 12월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한 바 있다. 원전에 없는 신조어가 사자성어로 정해진 것은 처음이다. 원전에서도 찾기 어려운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의미도 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했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는 얘기에서부터 이 대표의 ‘말 리스크’는 ‘조적조(조국의 적은 조국)’를 뛰어넘어 ‘이적이(이재명의 적은 이재명)’가 되고 있다. 다른 ‘기본’에 앞서 ‘말의 기본’부터 찾아야 하지 않을까.
02-22 ‘코발트 레드’와 노예노동

이미숙 논설위원
코발트는 옅은 푸른빛 금속으로 산화시키면 짙은 푸른색이 된다.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는 진한 파란색은 코발트블루로 불리는데 이슬람 모스크의 푸른 타일이나 중국의 청화백자, 그림의 안료 등으로 널리 쓰였다. 코발트라는 이름은 광산에서 푸른빛을 띤 광석이 요괴인 코볼트(Kobold)의 눈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졌다. 요즘 코발트는 리튬과 함께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귀한 원소 대접을 받고 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 전기차 배터리 등에 사용되는데, 특히 삼원계 배터리의 주요 소재가 되면서 몸값은 더 뛰었다.
문제는 코발트 채굴이 노예노동에 가까운 열악한 조건에서 이뤄지는 데다 수질·공기 오염, 벌목 등 심각한 환경 파괴가 따른다는 점이다. 코발트 주 생산국은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이다. 세계 코발트 매장량의 절반 이상이 이 나라에 집중돼 있다. 콩고 인구는 1억 명에 육박하나 변변한 산업 기반이 없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600달러에도 못 미친다. 첨단기기 필수 소재인 코발트의 주생산국이지만, 채굴은 저임 노동에 의존하고, 가공·거래는 중국이 전담하기 때문에 콩고의 국부를 늘리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2009년 조제프 카빌라 대통령이 중국으로부터 병원·학교 건설용 개발원조를 받는 조건으로 구리·코발트 광산 19개 중 15개 소유권을 넘겼기 때문이다. 이후 중국은 콩고 코발트 생산량의 70∼80%를 독점하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T H 첸 보건대학원의 시드하스 카라 연구원은 저서 ‘코발트 레드’에서 콩고의 코발트 채굴·가공·거래 과정은 과거 노예노동 시대를 연상시킨다고 썼다. 그는 최근 미 공영라디오 NPR 인터뷰에서 “삽 등으로 노천에서 코발트를 캐는 광경을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아이를 업은 엄마나 어린아이까지 동원된다”며 “이들이 버는 돈은 하루 1달러 안팎”이라고 했다. 콩고인의 희생으로 채취된 코발트가 중국 ‘붉은 귀족’의 배를 불리면서 코발트는 ‘코발트 레드’가 됐다. 카라 연구원은 “전기차가 환경친화적이라는 이유로 사랑을 받지만, 그 이면엔 환경 파괴 속 노예노동으로 생산된 코발트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SK온이 ‘코발트 프리 배터리’ 시제품 개발에 성공했다. 중국의 코발트 독점이 낳은 콩고의 비극을 해소할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02-23 위기의 민노총

이철호 논설고문
2021년 8월 18일의 일이다. 경찰이 코로나 사태 당시 서울 도심에서 불법 집회를 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사무실을 찾아갔다. 법원이 발부한 구속영장을 갖고 갔지만, 민노총이 막아서자 군말 없이 돌아섰다. 문재인 정부는 민노총을 상전으로 모셨다. 지난달 18일 국가정보원의 민노총 압수수색은 정반대였다. 국정원 직원들이 북한 지령문을 찾는다며 곧바로 직진했다.
‘민노총=대기업 귀족노조’는 오래전의 인식이다. 노동계는 지난 5년 동안 두 가지 큰 변화가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경기동부연합이 민노총 지휘부를 장악한 게 하나고, 또 하나는 경기동부가 비정규직에 공을 들였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 때 민노총 조직원이 100만여 명 늘었는데, 상당수가 정규직화를 원하는 비정규직이었다. 2014년 도입된 위원장 직선제도 큰 역할을 했다. 경기동부 출신이자 기아차 비정규직이었던 양경수 위원장과 진경호 택배노조위원장 등이 탄생한 배경이다.
오히려 대기업 정규직 노조는 민노총 지도부와 거리를 두고 있다.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60년대 정치 이념투쟁에 골몰한 ‘노동조합총평의회(총평)’와 대기업 노조 중심의 ‘노동총동맹(동맹)’ 사이에 균열이 커졌다. 동맹은 기업주의 노동운동으로 방향을 틀었고, 결국 주류가 됐다. 총평은 공무원·교사·공기업 노조로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말 파업은 경기동부 쪽 화물노조가 주도했다. 반면, 현대중공업·대우조선·현대제철 등 대기업 정규직 노조들은 일찌감치 파업 대열에서 이탈했다. 대우조선·포스코 지회·한국은행·금융감독원 노조는 민노총 탈퇴 찬반투표까지 했다. 서울지하철도 “명분 없는 파업”이란 MZ 조합원들의 반발로 중단됐다.
전직 노동연구기관장의 분석이다. “윤석열 정부가 민노총의 급소를 찌르고 있다. 대기업 산별노조와는 적정한 수준에서 타협하는 대신 경기동부 쪽의 건설·화물·택배노조와는 정면 대결을 불사한다. 영리하게 민심을 등에 업고 유리한 싸움을 하고 있다. 노조 탈퇴 문턱을 낮추는 것이나 NL계 약점인 북한의 대남공작 수사부터 치고 들어온 것도 치명적 수순이다.” 그는 “민노총이 출범 28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고 진단했다.
02-27(월) 김승옥 각본 ‘충녀’

김종호 논설고문
김기영 감독이 파격적으로 연출한 영화 ‘충녀(蟲女)’는 1972년 개봉된 해에 관객 16만 명을 모았다. 그해의 영화 중에서 관객 동원 1위였다. 여주인공을 윤여정이 연기한 영화로, 봉준호 감독이 2019년 세계 최고 권위의 프랑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에 이어 2020년엔 미국 아카데미영화제 작품상도 받은 ‘기생충’의 레퍼런스가 되기도 했다. 개봉 당시 포스터에 ‘사랑이 있으면 믿고 싶다’ ‘이 두려움, 이 놀라움’ ‘시정(詩情)이 흐르는 성(性)생활의 지혜’ 등으로 표현한 영화다. 각본은 ‘한국 문학을 바꾼, 살아 있는 별’ 김승옥(82)이 썼다. ‘서울 1964년 겨울’ ‘서울의 달빛 0장’ ‘염소는 힘이 세다’ 등 명작 소설이 수두룩한 그를 두고, 시인 김지하는 “아무리 날고 기는 재주꾼들도 그 앞에선 설설 기었다”고 했었다.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2학년이던 1962년 단편소설 ‘생명연습’으로 등단한 김승옥은 김수용 감독의 1967년 영화 ‘안개’의 원작 소설 ‘무진기행(霧津記行)’ 작가로, 그 영화 각본도 썼다. ‘감성 혁명을 일으킨 소설가’로 불리게 된 그의 시나리오 작가 데뷔 작품이다. 그 이듬해에 이어령 소설을 이성구 감독이 영화화한 ‘장군의 수염’ 시나리오로, 그는 1969년 제7회 대종상 각본상을 받았다. 그는 1968년에, 김동인 소설이 원작인 영화 ‘감자’의 감독으로도 나섰다. 1975년 영화들인 이장호 감독 ‘어제 내린 비’(원작 최인호), 김호선 감독 ‘영자의 전성시대’(원작 조선작), 김수용 감독 ‘내일은 진실’ 등의 시나리오도 그가 썼다. 원작은 조해일 소설인 김호선 감독의 1977년 영화 ‘겨울 여자’도 그렇다. 김수용 감독의 1981년 영화 ‘도시로 간 처녀’, 임필형 감독의 1986년 영화 ‘무진 흐린 뒤 안개’는 김승옥 시나리오 자체가 원작이다.
그는 시사만화를 신문에 연재했었고, 화가로도 활동해 왔을 만큼 다재다능하다. 2003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언어장애가 생긴 뒤로도 활발하게 창작한다. 지난해엔 각본집 ‘안개’와 ‘도시로 간 처녀’도 펴냈다. 자신이 쓴 각본 16편 모두 출판하고 싶어 하는 그가 가장 서둘러 내고 싶다는 각본집은 ‘충녀’다. 그의 소박한 희망이 빨리 실현되면 좋겠다. 그의 또 다른 바람인, 그가 그린 지인(知人)들의 초상화 전시회도 머잖아 열리고.
02-28(화) 한탄강 주상절리 트레킹

문희수 논설위원
주상절리라고 하면 제주도가 맨 먼저 떠오른다. 섬 전체가 화산섬으로 동서남북 해안가마다 각양각색의 주상절리가 쉽게 눈에 들어온다. 그렇지만 중부지방에도 제주도 못지않은 주상절리가 있다. 바로 한탄강 주상절리다. 국내에선 유일하게 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현무암 주상절리다. 경기 포천시와 연천군, 강원 철원군을 흐르는 한탄강과 임진강 일부를 포함하는 한탄강 지질공원은 유네스코가 2020년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멋진 트레킹 코스도 많다. 연천 임진적벽길은 특히, 가을 단풍철이 더 좋다. 평소 아는 사람만 아는 캠프 명소이기도 하다. 철원 주상절리길은 최근 들어 더 유명해졌다. 코스는 2개다. 드르니 매표소∼순담계곡 구간(3.6㎞)은 물아랫길, 순담계곡∼태봉대교 구간(8㎞)은 물윗길로 불린다. 물아랫길은 연중 개방하지만, 물윗길은 얼음 또는 물 위에 부교를 설치하므로 매년 10월∼이듬해 3월까지만 이용할 수 있다. 아무래도 거리가 멀어 웬만한 체력으로는 하루에 두 코스를 돌기가 힘들다.
물아랫길은 스카이 코스다. 1시간 30분 남짓 걷는 내내 깊은 계곡 쪽 주상절리에다, 기암·괴석도 많아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절경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물윗길은 옆 계곡 안으로 들어와 걷는 코스로, 의적 임꺽정 전설이 깃든 고석정을 거친다. 최근 찾은 이 코스는 얼음과 물 위를 걷는 구간이 곳곳에 있어 느낌이 색다르다. 너무 추우면 안 되겠지만, 그래도 얼음과 눈이 쌓인 한겨울 산책이 제격인 것 같다. 다만, 아이젠이 필요하다는 점은 유념해야 한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 1만 원이다. 두 코스별로 따로 내지만, 당일 동시에 이용할 땐 한쪽 입장료를 5000원 할인해 준다. 특이한 점은 입장권을 사면 5000원짜리 지역사랑상품권을 받는다. 코스 중 간이매점은 물론 택시, 철원군 소재 음식점에서 쓸 수 있다. 지역화폐마다 중앙정부에 자금을 대달라고 만 하며 수시로 중단되는 상황인데, 지자체가 이렇게 재원을 자체 조달하는 방식은 좋은 아이디어로 보인다. 외지 방문객도 할인받는 셈이니 상생이다. 물윗길은 얼음이 녹으면 배가 다녀야 하기 때문에 이번 시즌은 다음 달까지가 시한이니 한번 찾아가 볼 만하다. 시기를 놓쳐도 오는 10월까지 기다리면 되겠지만.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