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소리 2023-01
01.02(월) 미뤄둔 고통 동시에 몰려올 새해, 위기 때 개혁해야 도약한다
새해는 그동안 미뤄둔 고통이 동시에 밀려오는 한 해가 될 전망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올해 한국 경제는 1%대 성장에 머문다고 한다. 이 수준으로 고용 안정과 적정 소득을 보장하기 어렵다. 전기료, 교통비 인상 등 고물가도 예고된 현실이다. 에너지와 공급망 위기는 작년 사상 최대의 무역 적자로 나타났다. 올해도 나아진다는 보장이 없다. 가파른 금리 상승은 언제든 가계 부채 폭탄의 폭발이라는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국제 정세의 영향이 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전기료, 교통비, 가계 부채 문제처럼 한국 정부가 단계적 고통 분담을 통해 해결했어야 할 내부 과제를 미뤄둔 탓이 크다. 표를 얻기 위해 개혁을 외면한 정치 포퓰리즘이 오늘의 복합 위기를 만든 것이다. 탈원전, 소득 주도 성장, 노동 기득권과의 타협 등 시대착오적 정책도 위기에 기름을 부었다. 개혁을 미루고 실천하지 않으면 위기를 극복할 수 없고, 더 나은 미래로 전진할 수도 없다. 정치가 외면할 뿐 한국 국민 모두 아는 사실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1일 신년사에서 “지금의 위기와 도전은 우리의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지 묻고 있다”며 “미래와 미래 세대의 운명이 달린 노동, 교육, 연금 3대 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했다. “가장 먼저 노동 개혁을 통해 우리 경제의 성장을 견인해 나가야 한다”며 “노동 개혁의 출발점은 노사 법치주의”라고 했다. 본지와의 신년 인터뷰에선 “노동 개혁은 노동자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십 수 년 전에 시작했어야 할 해묵은 과제들이다.
경제가 안 좋으면 정치는 이를 핑계로 개혁을 미룬다. 경기 침체의 고통에 개혁의 고통을 더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위기 때 개혁하는 나라만이 도약에 성공했다. 안주하는 나라는 예외 없이 퇴보했다. 대통령의 개혁 약속은 꽉 막힌 나라를 이대로 물려받을 수 없다는 미래 세대의 절박함을 반영한 것이다. 이 약속을 지키려면 야당에 대한 대화와 설득이 필수적이다. 좋든 싫든 내년 5월까지 거대 야당의 협조 없이 윤 대통령의 개혁은 이뤄질 수 없다. 야당도 미래 세대를 위해 개혁에 협조해야 한다. 대결만으론 야당의 미래는 없다.
한국은 경제·문화·방위력 등 여러 지표에서 이미 선진국의 문턱을 넘어섰다. 1인당 GDP가 올해 일본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도 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한국이 이미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에 들어섰다는 비관론도 들려오고 있다. 현실에 안주하고 개혁을 미루면서 고통을 미래 세대에게 떠넘겨 왔기 때문이다. 2023년은 그동안 쌓인 해묵은 개혁 과제를 해결해 차원 높은 도약을 시작하는 원년이 돼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1-02 최악 예고된 2023 경제, 고통 분담하며 개혁 매진해야
결국 지난해 무역수지가 사상 최대의 적자를 냈다. 수출이 늘었지만, 에너지를 중심으로 수입이 훨씬 더 증가한 탓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수출은 6.1% 증가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그러나 수입이 18.9%나 증가해 무역적자가 472억 달러(약 60조 원)나 됐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의 종전 최고치(206억2000만 달러)의 두 배를 넘는다. 새해는 더 암울하다. 한국 경제의 최후 보루인 수출은 올해 급기야 4.5% 마이너스로 추락해 2년 연속 무역적자가 불가피하다는 게 정부 전망이다.
성장·고용·물가 등 무엇 하나 기대할 게 없다. 당장 이달부터 전기료가 9.5% 오르는 데 이어 지자체마다 택시·버스·지하철 등 대중교통 요금과 상하수도 등 공공요금을 줄줄이 올릴 채비를 하고 있다. 물가 인상률 정점은 찍은 것으로 보이지만, 상반기에도 고공 행진이 예상된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은 당분간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한다. 기획재정부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마저 1.6%로 지난해(2.5%)보다 크게 낮다. 제로 성장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비관론도 제기된다. 2차 오일쇼크 때인 1980년(-1.6%), 외환위기를 겪던 1998년(-5.1%),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0.7%) 이후 최악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0.8%)에 못잖다. 고용 증가폭은 지난해 80만 명에서 올해 10만 명으로 급락할 전망이다. 저성장에 고물가·고금리, 고용절벽이 가중되는 최악 상황을 맞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 2일 신년사와 인터뷰에서 우려한 대로 서민 생활고와 가계·기업부채 대비 역시 시급하다.
물가는 오르는데 실질소득은 줄고, 양질의 일자리는 사라지는 ‘고난의 2023년’을 각오해야 한다. 정부·기업·국민 모두 허리띠를 졸라매고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기업가정신이 절실하다. 노동을 필두로 교육·연금 개혁에 매진해 돌파구를 만들어야 한다. 공공개혁과 산업구조 개편도 절박하다. 대외 여건은 어쩔 수 없지만, 국내 환경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과감·신속한 규제 철폐를 통해 기업 투자를 유도하고,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이를 위한 윤 정부의 경제 리더십 발휘가 중요하다.
문화일보 사설
01.03 농민에게 脫農할 자유를 許하라
쌀값 하락 막으려 1조 들여 작년 쌀 45만t 창고에 넣어
농지 줄이면 해결되는데 매매·전용 제한해 ‘억지 쌀농사’ 악순환
식량 안보 내세워 탈농 막는 건 시대착오
쌀값이 작년 9월 전년 동기 대비 24.9%, 1977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대폭으로 하락하자 정부·여당은 예상 공급 초과 물량 25만t보다 20만t 더 많은 45만t을 시장에서 격리시켰고(20㎏당 4만6819원, 1조원 조금 더 들여서), 야당은 한 술 더 떠서 시장격리를 의무화하자고 한다. 해묵은 쌀 공급 과잉을 해결하기는커녕 역주행하는 데에 여야가 다르지 않으니 딱한 일이다.
쌀을 재고로 가지고 있으면 보관비, 금융 비용이 추가되고 판매가는 점점 더 떨어져 적자가 폭발적으로 커진다. 지금도 3~4년 묵은 쌀을 주조용, 사료용으로 20㎏당 8000원, 4000원에 팔고 있다. 농정 당국은 아직 “폐기”한 적은 없다고 자위하지만 공급과잉 물량 25만t의 앞날이 뻔히 내다 보인다. 이렇게 허비할 돈이 있으면 쌀 생산을 줄이는 데에 돈을 더 쓰는 것이 옳다.
웬만한 선진국에서는 농산물이 남아돌 조짐이 보이면 생산자단체 주도로 일정 물량을 폐기 처분함으로써 가격 하락을 미연에 방지한다. 돈이 한 푼도 들지 않는다. 25만t이라면 모든 쌀 농가가 각자 7%씩 덜 생산하거나 버려준다면 쌀값은 유지되고, 농가는 전년 수준의 소득을 유지할 수 있고, 문제는 그냥 사라질 것이다. 매사 정서법을 내세워 나라 경제를 망치는 것을 소임으로 삼고 있는 정치인들이 문제를 만들고 있다.
사실 그동안 쌀 생산은 많이 줄었다. 1990년 124만ha였던 쌀 재배 면적은 이제 73만ha로 줄었다. 논에는 쌀을 심으라는 규제는 없어진 지 오래고 다른 작물로 바꾸라고 장려금까지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a당 수확량이 330㎏에서 530㎏으로 늘어나 1980년대 후반에 560만t을 웃돌던 쌀 생산량은 아직도 380만t 수준으로 32% 줄었을 뿐이다.
국민 1인당 쌀 소비가 1970년 136.5㎏에서 2021년 56.9㎏으로 더 빨리 준 것이 문제다. 1970~2020년 사이에 인구가 3224만에서 5175만으로 늘어났는데도 밥쌀 소비는 440만t에서 294만t으로 줄었다. 국민이 이렇게 쌀을 외면하게 된 것은 쌀값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WTO 가입 이후 다른 모든 먹거리가 국제 경쟁가격으로 수입되는데 쌀값만 국제가격보다 6배나 비싸니 소비 감소가 가속화된 것이다. 일본은 2012년 이후 21년까지 쌀값을 21.2% 떨어뜨렸는데도 1인당 쌀 소비는 50.7㎏이다. 같은 기간 우리는 쌀값을 31.9% 올렸다. 쌀이 쌀과만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이 서로 경쟁한다. 쌀은 다른 먹거리와의 경쟁에서 패퇴하고 있는 것이다.
쌀값을 내리기도, 농민 스스로 생산을 줄이기도 어렵다면 원하는 농민의 탈농(脫農)을 촉진하는 방법이 남는데, 우리나라는 비농민의 농지 취득도 농지의 전용도 어렵기 때문에 고령농이 농지를 팔고 탈농하기가 어렵다. 기계화된 영농단에 맡길 수 있는 농사는 쌀 농사밖에 없으니 탈농을 못하면 쌀 농사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 선택의 자유를 제한했으니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할 수도 있겠다.
모든 농민이 같은 걸 원하지는 않는다. 쌀 농가는 이제 38% 이하이고, 그중에는 간절히 탈농을 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미국보다 33배, 일본보다 3.6배 비싼 농지를 팔고 싶은 농민이 왜 없겠는가? 농지를 팔기 쉽게 해 주면 탈농을 원하는 고령농은 뛸 듯이 좋아할 것이고, 쌀 과잉 문제는 눈 녹듯이 사라질 것이며, 가용 토지 공급이 늘어나 투자 활성화와 집값 안정에도 큰 도움이 된다. 그렇게도 농민, 국민을 위한다는 정치인들은 어느 농민, 어느 국민을 위하는 것인가?
식량 안보를 내세워 농민과 농지의 탈농을 막는 것은 시대착오다. 1961~2020년간 세계 인구는 30억8000만명에서 79억명으로 2.6배 증가했는데 쌀, 밀, 옥수수의 생산량은 각 2억~2억5000만t에서 쌀, 밀은 각 7억6000만t, 옥수수는 11억2000만t으로 각각 3.5배, 3배, 5.5배 증가했다. 대두는 1970년 4600만t에서 2010년 2억 5600만t으로 늘었다. 사료용 곡식 소비가 크게 늘어나고, 바이오 디젤 등에 곡물을 쓰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곡물 가격은 폭락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곡물 증산의 여지도 얼마든지 있다. 맬서스의 주장은 기우에 그쳤다.
굳이 내 손으로 곡식을 생산하고 싶다면 땅값이 싼 나라에 가서 대규모 농업개발에 투자하라. 높은 쌀값은 농민을 희망고문 하고 쌀 산업을 확실하게 죽이는 길이다.
조선일보 사설
01-04 연금개혁 ‘더 내고 덜 받는 정공법’ 회피한 꼼수 안 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강력한 의지를 밝힌 3대 개혁(노동·교육·연금) 중 연금개혁은 상대적으로 초당적 합의가 쉽다. 이대로 두면 1990년생(기금 소진이 예상되는 2057년에 67세)부터는 연금 혜택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이 금방 나온다. 윤 정부도 최근 개혁 일정을 밝힌 바 있지만, 가동 중인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합의안을 도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첫 단추부터 꼼수로 흐를 조짐이 보인다. 연금 파탄을 막거나 늦추려면 현재의 추계보다 ‘더 내고 덜 받는’ 개편 이외엔 길이 없음에도 ‘더 내고 더 받는’ 방식이 가능한 것으로 포장하는 셈법이 제안됐기 때문이다. 국민 반응에 더 민감한 국회의 한계일 수 있지만, 정공법을 선택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 정도다. 그러지 않으면 또 하나 마나 한 개혁으로 빗나간다.
국회 연금특위의 민간자문위원회가 3일 특위에 보고한 개혁 방향의 줄거리는 현재 소득의 9% 수준인 보험료율을 인상함으로써 40%(2028년 40년 가입 시) 수준인 소득대체율도 같이 올리자는 것이다. 또,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65세(2033년)에서 2년 정도 늦추고, 보험료를 그만 내는 의무가입연령(59세)도 올려 수급 개시 연령과 일치시키자고 제안했다. 한마디로 ‘더 많이(9% 이상) 더 오래(66세까지) 보험료를 내고, 더 늦게 더 많이 받자’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훨씬 더 많이 내고, 조금 더 받자’는 의미다. 산술적 계산으로는 성립되지만, 국민 수용성 측면에서는 현실성이 크게 떨어진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이미 장년 세대를 중심으로 분노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모든 연금 계산 방식에는 장단점이 있다. 그러나 연금 수급이 이제 막 시작됐는데, 수급 연령을 더 늦추자고 하면 국민 동의를 얻기 힘들 것이다. 최근의 경제 상황과 조기 퇴직 분위기 등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65세를 유지하면서 보험료율을 올리는 방안이 불가피해 보인다. 아울러 소득대체율 40%가 최소한이긴 하지만, 이 역시 조정 가능성을 따져야 한다. 이를 위해 퇴직연금 등 사적 연금 확충을 공적 연금과 연계하는 방안 등 더 창조적 복합적 아이디어를 검토해야 한다. 한편, 자문위 권고 중 윤 대통령의 공약인 ‘노인 기초연금 40만 원’과의 연계 필요성도 제기됐는데, 타당하다. 형평성 문제는 물론 국민연금 동기도 약화시킬 게 뻔하기 때문이다. 기초연금 선정기준 및 소득별 차등지원 등의 조정을 신속히 검토해야 할 이유다.
문화일보 사설
01-04 “이상직 주도로 文 사위 채용” 진술, 더 짙어진 뇌물 정황
문재인 전 대통령 사위의 타이이스타젯 채용을 이상직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도했다는 진술을 나왔다고 한다. 특혜 채용이 문재인 정부 때 이 전 의원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에 임명한 대가라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은 뇌물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문화일보(1월 3일자 11면) 등의 보도에 따르면, 이 전 의원이 설립한 이스타항공 관계자들은 검찰 조사에서 “(문 전 대통령 사위) 서모 씨가 이사로 취업했지만, 항공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회사에서 뒷말이 나왔다”고 진술했다. 이 전 의원이 이스타항공 간부들에게 서 씨를 타이이스타젯 고위 간부로 소개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 전 의원은 이스타항공과 타이이스타젯은 별개 회사고 서 씨 취업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주장해왔다. 문재인 정부 검찰도 기소중지 처분과 함께 수사를 중단했다. 그런데 지난해 말 수사를 재개한 검찰이 이스타항공 등에 대한 압수수색, 관련자 소환조사 과정에서 이 같은 진술을 받아낸 것이다. 특히 검찰은 타이이스타젯 박모 대표가 이 메일을 통해 이 전 의원 등에게 보고한 지출 내역을 확보했는데 거기에 서씨가 태국 체류 시 거주한 콘도 월세 비용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의원은 서 씨 채용 후에 민주당 공천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이스타항공에 500억 원대의 손해를 보인 혐의로 항소심에서 6년 형을 선고받았고, 총선 때 공금으로 선물을 돌린 혐의로 당선무효형이 확정됐다. 지난해에는 부정 채용 혐의로 보석 중 다시 구속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이 씨는 법정에 출두하면서 “나는 불사조다”고 말했고, 법원은 보석으로 석방했으며 경찰은 채용 의혹에 무혐의 처분했다. 뒷배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타이이스타젯이 실소유주가 이 전 의원임이 확인되면, 대가성 입증도 탄력을 받게 된다. 성역 없는 수사가 더 절실해졌다.
문화일보 사설
01.07 ‘김명수 6년’ 흑역사, 청산되어야 한다
대법원장은 法의 수호자
법원은 공정·중립 보루지만
김명수 체제 출범 이후
정치투쟁의 場 된 사법부
신뢰 붕괴로 이어져
윤석열 정부에서 대법관 13명 교체
사법부 脫정치화 이뤄져야
김명수 대법원장 임기가 오는 9월 끝난다. 사법연감에 ‘김명수 대법원’의 기록은 무미건조한 통계 숫자로 남겠지만 “‘김명수 6년’은 사법부 흑역사”라는 평가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이 신년사를 하고 있다. 2023.1.2 /연합뉴스
대법원장은 법(法)의 최종 수호자이다. 판결 하나하나가 정치와 경제, 서민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대법원장은 외풍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한다. 엄청난 예우와 예산이 뒷받침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김명수 대법원장은 “법원을 정치 투쟁의 장(場)으로 끌어들였다”는 비판을 법원 안팎으로 받고 있다.
법원은 공정성과 중립성의 보루이다. 실상은 미흡하더라도 최소한 국민에게 그렇게 보이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사건이 전국 어느 재판부에 가도 결과가 크게 다르지 않아야 한다는 예측 가능성이 견고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사법 시스템은 다수결이 바탕인 민주주의와 작동 원리가 다르다. 다수가 반대해도, 권력자가 싫어해도 법리에 입각한 판단이 나와야 한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2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현충탑을 참배한 뒤 '좋은 재판으로 신뢰받는 법원이 되겠습니다'라고 방명록을 작성했다. 2023.1.2/뉴스1
법원이 딛고 서 있어야 할 그 토대가 지난 5년간 무너져내렸다. 어쩌다 소송을 하게 된 일반인들조차 이제는 변호사에게 “(담당) 판사가 우리법이냐, 인권법이냐”라고 질문부터 던진다고 한다. 기자들도 판결 기사를 쓰면서 재판장이 어디 소속인지를 검색하고 수소문한다. 판사의 정치 성향에 따라 결론이 달라진다는 믿음이 일상화된 것이다. 실제 그런 믿음을 뒷받침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과 결정들이 이어졌다.
온 국민이 알게 된 국제인권법연구회란 단체를 보자. 이 단체를 주도하는 판사들은 ‘양승태 대법원’을 적폐로 몰아 동료 판사들을 재기 불능 상태로 만들고 그 위에 ‘견제 세력이 없는 김명수 대법원’을 세우는 데 앞장섰다.
인권법이 사법부 헤게모니를 잡았다는 것은 현 대법관 구성이 보여준다. 대법관(대법원장 포함) 14명 가운데 6명이 인권법 또는 그 전신(前身) 격이라는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김 대법원장은 우리법 출신이면서 인권법연구회의 초대 회장을 지냈다. 이들 외에도 민변 출신 등 진보 성향 대법관이 2명이 더 포진해 있다.
대법원 판결의 권위에도 균열이 생기고 있다. 요즘 일선 판사들은 “대법원 판결이 이상하다”는 말을 대놓고 한다. 노동 사건에서는 대법원 판결과 방향이 다른 판결도 하급심에서 나오고 있다고 한다.
주류로 떠오른 인권법연구회는 인원과 회원 명단도 공개돼 있지 않다. 대략 470~480명 수준이라고 한다. 전국 3000명 법관 중에서 15% 정도다. 그들 일부가 ‘정치 판사’라고 비판받은 것은 이념 성향 때문이 아니다.
“2018년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주도하던 국제인권법 판사들은 야차(夜叉) 같았다. (양승태 대법원의) 동료 법관들 탄핵시키고 그 사람들 쓰던 업무용 컴퓨터를 검찰에 넘겨주라고 난리 쳤다. 그런데 (이재명 선거법 사건 재판 거래 의혹을 받던) 권순일 전 대법관은 퇴직한 대법관 통장에 월 1500만원씩 꽂혔는데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쥐 죽은 듯 조용하다. 이런 내로남불이 있나.” 김태규 전 부산지법 부장판사(현 국민권익위 부위원장)가 유튜브 방송에서 인권법의 ‘정치 편향성’을 그같이 비판했다.
김 대법원장은 올해부터 법원장 후보추천제를 서울중앙지법을 포함해 전국으로 확대한다고 한다. 이는 지방법원 판사들이 투표로 추린 2~4명 중에서 대법원장이 지방법원장을 고르는 제도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상은 전국 판사의 15%가 넘는 인권법이 마음만 먹으면 그들이 원하는 판사를 법원장 후보군에 밀어 넣을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김 대법원장은 직권남용과 허위 공문서 작성으로 고발돼 있다. 민주당이 탄핵을 추진한다는 이유로 고법 부장판사의 사표 수리를 거부해놓고선 국회에 ‘그런 일이 없었다’는 허위 답변서를 보낸 일 때문이다. 법조인들은 “대법원장만 아니었다면 이미 기소됐을 사안”이라고 했다.
누가 뭐래도 흔들려선 안 되는 사법부의 위상을 그 수장(首長)이 흔드는 현상은 지난 5년간 비일비재했다. 명백한 가짜 뉴스도 지지 정당에 따라 진짜라고 믿는 ‘두 개의 국민’이 만들어진 것에, 우리 사회의 중심축이 사라진 것에는 사법부 책임도 상당하다고 본다.
윤석열 대통령 임기 안에 대법관 14명 가운데 김 대법원장 등 13명이 바뀐다. 대법관은 대법원장 제청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 윤 대통령은 ‘김명수 체제’가 만든 비정상을 정상화하고, 사법부의 탈(脫)정치화를 회복하는 절제 있는 ‘사법부 주류 교체’를 준비해야 한다.
조선일보 최재혁 사회부장
01.09 집주인 부채 비율이 80% 이상인 ‘깡통전세’가 절반 넘었다
전세 보증금 보험에 가입한 임대사업자가 보유한 주택 중 절반 이상이 이른바 ‘깡통전세’라는 통계가 나왔다. 가입이 의무화된 2020년 8월 이후 임대사업자 보증보험에 가입한 주택이 모두 70만여 세대인데 이 중 54%인 38만여 세대는 집주인의 부채비율이 80%를 넘는다는 것이다. 부채비율은 집주인의 담보권 설정 금액과 전세 보증금을 합한 금액을 집값으로 나눈 수치다. 이 비율이 80%를 넘으면 집을 처분해도 세입자가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할 수 있어서 ‘깡통전세’라고 부른다. 일반 전세에 비해 그나마 안정적이라는 임대사업자 전세의 절반 이상이 깡통전세라니 충격적이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깡통전세 상태인 빌라 수백~수천 채를 굴리며 세입자들의 보증금 수백억원을 떼먹는 이른바 ‘빌라왕’ 일당이 잇따라 적발되면서 세입자들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고금리, 부동산 가격 추락의 충격파는 이미 주택시장에 현저하게 나타나 있다. 주택금융공사,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의 보증금 반환 보증 사고액이 큰 폭으로 늘어난 것이다. 지난해 HUG가 집주인 대신 임차인에게 돌려준 전세보증금은 9241억원에 이른다. 2021년(5040억원)보다 83.4% 급증한 수치다. 특히 작년 8~9월 두 달간 보증금 반환 보증 사고액만 2187억원을 보이는 등 하반기 들어서 보증금 반환 사고가 빠르게 늘어났다.
집값 하락 추세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전망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앞으로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에 처하는 서민들도 그만큼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전세 세입자 피해를 줄이기 위한 다각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전세 보증금 반환 사고가 늘면서 HUG의 재무 건전성에 경고등이 켜져 있다. 추가로 정부 출자를 통해 자본을 확충하지 않으면 임대보증금 보증보험 상품 가입이 중단될 수 있는 지경이라는 것이다. HUG의 자본금을 늘려 급한 불은 끌 필요가 있다. 세입자가 전세를 얻을 때 보증보험에 가입하도록 가입 수수료를 낮추거나 보험료 일부를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무엇보다 집주인에 대한 정보를 세입자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세입자가 집주인의 담보 대출 현황과 세금 체납, 선순위 임차인 정보 등을 보다 손쉽게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도 서둘러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1.09 조폭·사기꾼이 재벌 되고 부자 되는 나라
쌍방울·KH필룩스·라임·빌라왕
CB 남발해 무자본 M&A
전세금 부풀려 무자본 갭투자
개미·세입자 등골 빼먹은
경제 범죄 참극 곳곳서
파수꾼이 있기는 했나
#1. 지난 10월 사망한 속칭 ‘빌라왕’ 김씨를 필두로 전세 사기극의 전모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새 빌라를 집값보다 비싸게 전세 주고는 그 돈을 챙겨간 사기범 패거리가 한둘이 아니었다. ‘바지 집주인’은 부실채권을 한데 모아놓은 일종의 ‘배드뱅크’였다. 세입자 돈은 다른 사람들이 다 빼갔다. 신혼 부부나 사회 초년생이 찾아간 신흥 빌라촌은 건축회사, 분양업체, 감정평가사, 공인중개사, 집주인까지 다 짜고 한 패인 범죄 소굴이나 다름없었다. 다주택자를 죄인시하면서 온갖 규제를 휘두른 정권에서 이토록 간 큰 빌라왕들이 다수 배출된 건 도대체 어떤 연유에서인가.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왼쪽)과 배상윤 KH그룹 회장(오른쪽).
#2. 김성태 쌍방울 전 회장과 배상윤 KH필룩스 회장은 수사 와중에 뒤늦게 실체가 알려지고 있지만, 이미 증시에서는 일찌감치 알 만한 전문가들이 고개를 내저은 요주의 인물들이었다. 쌍방울 경영권을 인수하면서 주가 조작에 함께 가담한 전력이 있다. 코스닥 상장기업을 인수해 제도권에 진입한 뒤로는 더 대담해졌다. 전환사채(CB)를 마구 찍어 무자본 M&A(기업 인수합병)로 사세를 불리고 그 와중에 바이오, 대북경협 등의 테마로 주가를 띄워 차익을 챙겼다. 또 다른 전주(錢主)로 지목되는 W씨를 비롯해 요주의 4인방의 코스닥 기업 20개가 증시에서 조달한 금액이 3조5000억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조폭, 불법 사채업자 출신이 개미투자자 돈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며 그룹 회장으로 초고속 신분 상승하는 데 불과 3~4년도 안 걸렸다.
#3. 제일 먼저 불거진 라임·옵티머스 환매 중단 사태는 대형 경제범죄의 포문을 연 것에 불과했다. 옵티머스는 애당초 펀드 구조가 사기 행각이었다. 라임자산운용은 코스닥 한계기업 CB를 50곳도 넘게 쓸어 담으며 이후 코스닥시장의 최대 골칫거리로 떠오른 무자본 M&A 시대를 개척했다. 라임 사태 이후 금융감독원도 CB를 활용한 무자본 M&A의 심각성을 인지했지만 쌍방울·KH필룩스 오너 같은 기업 사냥꾼을 속수무책 방치했다.
최근 몇 년 새 주택시장, 주식시장, 금융시장에서 초대형 사기 행각이 거의 동시다발로 벌어졌다. 일련의 사태는 각기 다른 듯해도 공통점이 있다. 이전 경제 범죄는 무허가 업체가 음지에서 벌인 것들이었다면, 최근엔 제도권에 버젓이 진입해 대담해졌다. 제도의 허점, 관련 기관의 도덕적 해이, 감독 당국의 무능을 조롱하듯 벌인 지능형 범죄들이다.
시장에 착한 돈이 선순환 구조를 이루며 건전한 기업 등으로 유입돼야 하는데 보통 사람들의 등골 빼먹는 나쁜 돈이 너무 많아졌다. 라임과 옵티머스는 정식 자산운영사로 인가받고 사모펀드로 등록한 뒤 은행과 증권사를 통해 상품을 팔았다. 은행과 증권사는 자신들이 파는 펀드상품이 뭔지도 모른 채 고객들에게 불량품을 마구 팔았다. 그게 라임과 옵티머스뿐만이 아니었다. 은행과 증권사의 실력과 도덕적 해이가 다 드러났다.
기업 사냥꾼이 활개 친 코스닥 상황은 더 심각하다. 큰돈 벌고 기업인 행세를 하니 정치권, 검찰, 일류 로펌, 투자은행 출신 등 엘리트들이 방패막이가 되어준다. CB는 중소기업들의 자금 조달을 용이하게 해주려고 길을 터준 것인데, 기업 사냥꾼들이 코스닥 한계기업에 빨대 꽂고 땅 짚고 헤엄치기 돈놀이를 하는 통로로 악용했다. 코스닥의 상폐 요건, CB 및 유상증자를 통한 자본 조달 요건을 다 재정비해야 한다.
빌라왕들한테 사기당한 건 무주택 세입자뿐만이 아니었다. 전세금 떼먹은 집주인 대신 변제해 주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사기당하는 줄도 모른 채 최대 금액의 사기를 당한 꼴이 됐다. 5년 새 보증금 미반환 사고가 10배로 불어나고, 그간 갚아준 1조6000억원 중 절반도 회수 못 했다. 악성 집주인 중 나랏돈을 500억원 넘게 떼먹은 사람이 여럿이다. 전세 사기 수사가 이뤄지고 나서야 감정평가를 믿을 만한 업체들한테만 맡기고 대출 보증 한도도 줄이겠다고 제도 보완에 나섰다. 사기꾼들한테 눈 뜨고 코 베여 나랏돈이 줄줄 샜다.
경제 범죄는 날로 지능화된다. 개인 투자자나 소비자가 다 알기 힘들다. 건강한 자본주의가 작동하려면 경제 관련 기관들의 전문성과 책임감이 더 높아져야 하고, 제도를 만들고 범죄를 가려내는 정부와 사법 당국이 사기꾼들보다 똑똑하고 매서워져야 한다. 미국처럼 처벌도 더 무겁게 해야 하고, 범죄 수익 몰수도 더 집요하고 신속해야 한다. 뉴욕 사업가 숄람 와이스는 보험사를 상대로 한 5000억원대 사기 혐의로 징역 845년형을 선고받았다. 미국 같으면 100년형도 더 나왔을 범죄들이 우리나라는 기껏 길어야 15년, 25년형이다. 몇 년 징역 살고 나와 빼돌린 돈으로 떵떵거리고 살 수 있다면 경제범죄는 더 대담해진다. 조폭과 사기꾼이 쉽게 돈 벌고 성공하는 사회에서는 건전한 자본주의를 기대하기 힘들다. 검사 출신 대통령, 법무부 장관, 금융감독원장이 무너진 경제 질서만 제대로 잡아도 많은 게 정상화된다.
조선일보 강경희 논설위원
01-10 자료 삭제 3명 유죄… 탈원전 불법 全員 엄정히 단죄해야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과 관련된 첫 판결에서 ‘전원(全員) 유죄’ 선고가 내려진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자료 삭제’라는 실무 차원의 혐의와 관련된 1심 판결이긴 하지만, 경제성 조작 범죄나 탈원전 타당성 문제와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대전지법은 9일 삭제를 지시한 산업통상자원부 A 국장과 B 과장, 몰래 사무실에 들어가 530여 건의 자료를 삭제한 C 서기관에게 각각 징역 1년∼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감사원이 한국수력원자력의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 과정에서 산업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게 했다”면서 “이 때문에 감사 기간이 7개월가량 지연됐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그런 방해 속에서도 2020년 10월 20일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의 타당성 점검’ 감사 결과 발표를 통해 “경제성이 불합리하게 낮게 평가됐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는 경제성 조작 수사 등의 토대가 됐다. 따라서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과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 등 ‘윗선’으로 지목받는 문재인 정부 고위층 인사들의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2018년 4월 당시 문 대통령은 “월성 1호기 영구 가동 중단은 언제 결정할 계획인가”라고 채근했고, 이런 분위기를 전달 받은 백 장관은 산업부 과장이 “2년6개월 더 가동할 수 있다”고 하자 “너 죽을래”라고 겁박했다는 정황 등이 이미 드러났다.
실무자 전원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진 만큼 ‘윗선’의 범죄 혐의에 대해 더욱 엄정한 추가 수사와 재판이 이뤄져야 한다. 백운규·채희봉은 물론 필요하면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도 해야 한다. 불법까지 동원한 탈원전 강행으로 신규 원전 6기 건설계획이 백지화됐고, 고리 1호기 등 원전 14기의 수명 연장이 중단되면서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가진 원전 산업은 파멸적 타격을 입었다. 성역 없는 단죄로 다시는 이런 매국적 행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1-11 김성태 체포… 변호사비 의혹, 대북 사업 전모 규명해야
이른바 변호사비 대납 의혹 등의 핵심 인사로 알려진 김성태 쌍방울그룹 전(前) 회장이 10일 태국에서 체포됐다. 검찰 등에 따르면, 변호사비 대납 의혹은, 쌍방울 발행 전환사채(CB) 200억 원 중 100억 원의 CB를 사들인 쌍방울 계열사가 이재명 대표 선거법 위반 사건을 맡았던 이 모 변호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하고 이 대표 변호사비로 현금과 CB 등 23억여 원을 줬다는 것. 이 변호사는 지난 대선 때 이재명 캠프 법률지원단장을 맡기도 했다. 친문 단체가 관련 녹취록을 공개하고 검찰에 고발하면서 수사가 시작됐으나 김 전 회장의 출국으로 답보 상태에 빠졌다.
김 전 회장은 또 2019년 5월 북한 민족경제협력연합회 관계자와 중국에서 만나 광물 개발권 등 여섯 분야 사업권을 받고 북측에 200만 달러를 준 의혹도 받는다. 사업권을 받은 쌍방울 계열사 주가는 3배까지 급등했다. 당시 이 대표는 경기지사였고 이화영 평화부지사와 경기도 대북 사업 파트너 아태협회가 연루돼 있다. 김 전 회장은 2018년과 2019년 경기도와 아태협이 공동 개최한 남북 교류 행사 비용 수억 원을 지원했고, 이 대표가 직접 검토한 대북 밀가루·묘목 사업도 우회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회장이 태국 이민국에 체포돼 즉각 송환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고 한다. 김 전 회장이 쌍방울 CB와 매각 대금 종착점 등을 진술하면 변호사비 의혹은 규명된다. 대북 사업에 이 대표가 어디까지 개입했는지 등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빈틈없는 수사로 제대로 전모를 밝혀내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1.11 [단독]한인회 임원 일주일 쫓았다…'키맨' 된 김성태 태국비서
지난 10일 태국에서 붙잡힌 김성태(55) 전 쌍방울그룹 회장의 도피 생활을 도운 현지 조력자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현지에 파견된 한국 경찰은 이 조력자 신원을 파악한 뒤 태국 수사당국과 공조해 김 전 회장을 검거했다. 도피 조력자가 오히려 김 전 회장 추적의 '키맨'이 된 것이다.

▲김성태(오른쪽)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태국 방콕 북쪽 빠툼타니주의 한 골프장에서 현지시간 10일 오후 5시 30분 검거됐다. 왼쪽은 양선길 쌍방울그룹 회장. 독자제공
경찰청 등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태국에서 도피 생활을 하는 동안 현지 한인회 임원을 지낸 교민 H씨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H씨는 통역을 비롯해 은신처 마련이나 골프장 예약 등을 도우며 김 전 회장의 태국 생활을 지원하고, 측근들과 연락을 주고받는 등 현지 가이드이자 비서 같은 역할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H씨 존재는 태국에 파견된 한국 경찰 수사를 통해 처음 확인됐다. 현지 경찰 주재관은 김 전 회장의 '금고지기'로 알려진 쌍방울그룹 재경총괄본부장 김모씨가 지난달 검거된 이후, 김씨 통신 기록과 수사 자료 등을 분석하던 중 H씨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됐다. 동시에 태국 한인사회를 탐문, "서울에서 온 사람들을 한인회 출신 교민이 돕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경찰은 김씨 관련 자료를 통해 파악한 조력자와 현지 첩보 내용이 가리키는 인물이 모두 H씨며, 그가 김 전 회장 검거의 키맨이라 판단했다. 그리고 지난 4일 태국 방콕 수사 당국에 이 같은 정보를 공유하며 협조를 요청했다.
태국 수사당국은 한국 경찰 정보를 바탕으로 방콕 경찰 산하의 이민국 도피사범추적팀을 투입해 H씨 행적을 추적했다. 이후 일주일간 잠복 끝에, 방콕 북쪽 빠툼타니주 골프장에서 김 전 회장과 양선길 쌍방울그룹 회장을 함께 검거했다.
도피 기간 중 김 전 회장의 구체적인 행적은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수사 당국은 김 전 회장이 지난해 7월 태국에 입국한 뒤, 검거된 지역과 가까운 방콕 등에서 은신해 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도피를 도운 H씨의 과거 행적이나 김 전 회장과의 인연 등도 아직 조사되지 않았다. H씨 역시 귀국하면 조사를 받게 될 전망이다.
한편 김 전 회장은 검거 후 국내 송환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제 추방을 피하기 위해 자신이 태국에 불법 체류한 사실이 없으며, 체류 가능 기간이 끝나기 전에 비자 발급 신청을 했지만, 아직 답변을 받지 못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또 앞서 검거된 김씨와 같이 현지 법원에 송환 거부 소송을 낼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되면 실제 국내 송환까지는 최소 몇달이 걸릴 수 있다.
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쌍방울 김성태 송환 불복 막는 檢…강제추방 ‘지름길’ 검토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태국에서 체포되면서 검찰은 김 전 회장의 국내 송환을 서두르고 있다. 애초 김 전 회장의 출국을 막지 못한 검찰로서는 신병 확보가 시급한 상황이다. 검찰은 김 전 회장이 태국 현지에서 송환 불복 소송을 제기하지 않도록 설득하는 한편, 김 전 회장이 불법체류자 신분임을 고려해 태국 정부가 강제추방하도록 하는 ‘우회로’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법무부·검찰, 김성태 설득 작업 착수
11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법무부와 검찰은 태국 현지 인력 등을 통해 김 전 회장이 송환 불복 소송을 제기하지 않도록 설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검찰은 주태국 대사관에 검사를 상시 파견하고 있지는 않지만, 현지 국제기구에 파견 중인 검사가 있다.
검찰이 김 전 회장 설득 작업에 착수한 건 송환 절차가 장기화할 수 있어서다. 지난해 12월 김 전 회장의 매제이자 ‘금고지기’로 불리는 김모씨 역시 태국 현지에서 체포됐지만, 즉시 현지 법원에 송환 불복 소송을 제기하며 한 달 넘게 국내 송환이 미뤄지고 있다.
김 전 회장이 이재명 대표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 불법 대북송금 의혹을 비롯해 쌍방울그룹 전환사채 발행 과정의 횡령·배임 의혹까지 받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의 국내 송환은 시급한 상황이다.
통상 해외로 도피한 내국인 범죄자를 국내로 데려오는 방법은 ‘범죄인 인도 청구’ 절차다. 검찰이 법원에서 영장을 받아 법무부에 범죄인 인도 청구서를 제출하면, 법무부가 외교부를 통해 상대국에 요청하는 식이다. 이 경우 현지 검찰이 송환 대상자를 구속한 뒤 현지 법원에서 청구 인용 여부를 결정한다. 다만 국가마다 법이 다른 데다, 김 전 회장이 ‘정치적 난민’이라고 주장하며 불복 소송을 하면 송환 기간이 장기화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2016년 ‘국정농단’ 수사 당시 덴마크에 도피 중이던 정유라씨를 송환하는 데 5개월이 걸렸다. 세월호 실소유주였던 고(故)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장녀 유섬나씨 송환에는 약 3년이 걸렸다. 검찰은 세월호 참사 이후 2014년 4월 프랑스에 거주 중이던 유씨에게 출석 통보를 했지만, 유씨가 불복하며 인터폴 적색수배→체포→수감→범죄인 인도 재판→송환 불복 소송 등을 거치며 2017년 5월에야 국내로 송환됐다.
이 때문에 정부는 김 전 회장이 불법체류자 신분임을 활용하는 지름길도 염두에 두고 있다. 김 전 회장은 지난해 외교부의 여권 무효화 조치로 불법체류자가 됐는데, 이 경우 출입국관리법 위반으로 강제추방될 수 있어 상대적으로 절차가 단순하다. 다만 경찰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비자의 종류를 바꿔 연장 신청을 했는데,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며 자신이 불법체류자라는 점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태국 대사 만났던 이원석…檢 “양국 협조 필수”

▲이원석 검찰총장(왼쪽)은 지난해 12월 21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윗추 웨차치와 주한 태국대사를 만났다. 연합뉴스
검찰은 김 전 회장의 송환을 위해 외교적인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강제추방의 경우 한국이 아닌 제3국으로 추방될 가능성도 있어 태국 정부의 협조가 필요해서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지난달 21일 대검찰청에서 윗추 웨차치와 주한 태국대사를 직접 만났고, 지난해 10월엔 김 전 회장의 금고지기 김모씨가 체류했던 캄보디아의 주한 대사도 접견했다.
검찰 관계자는 “강제 추방된다 하더라도 태국 검찰의 수사·기소, 재판을 거쳐야 해 이에 시간이 소요되는 건 불가피하다”며 “태국 현지 법 절차에 따라야 하는 만큼 태국 정부의 협조를 위해 노력하는 게 가장 중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수원지검 형사6부(부장 김영남)는 지난 9일 김 전 회장의 동생 김모씨 등 쌍방울그룹 임직원 6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들은 김 전 회장이 지난해 5월 해외로 출국한 이후 김치와 횟감을 공수하는 등 도피 생활을 돕고, 증거를 인멸한 혐의를 받고 있다.
허정원ㆍ최모란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조폭→불법도박→쌍방울 회장…대북사업으로 재벌 꿈꾼 김성태
전북 남원 출신인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은 과거 전북 전주 지역에서 조직폭력배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사채업으로 큰 돈을 번 것으로도 유명하다. 실제 김 전 회장의 전과를 살펴보면, 지난 2006년 불법 도박장 개장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은 바 있다. 불법 도박 게임물을 PC방에 유통하거나, 직접 불법 도박 PC방을 운영하기도 한 것이다. 또 대부업 등록을 하지 않은 상태로 50차례에 걸쳐 300억원 상당을 빌려준 혐의로 기소돼 2017년 벌금 1500만원을 선고 받기도 했다.
그러나 김 전 회장은 상장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도 진출하며, 음지를 벗어나 사업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0년 '레드티그리스'라는 특수목적법인(SPC)을 만들어 당시 경영난을 겪던 쌍방울을 인수하기에 이른다. 외관상 거물 기업인으로 변신한 것이다. 쌍방울은 2021년 기준 매출 970억원을 기록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도 조직을 동원해 주가 조작에 관여해 자본시장법 위반과 업무상 배임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다.
김 전 회장은 이 사건을 통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았다. 쌍방울 인수 이후 김 전 회장은 특수차량 제작 기업 ㈜광림, 속옷회사 비비안, 바이오 기업 나노스(현 SBW생명과학), 연예기획사 아이오케이컴퍼니 등을 사들여 그룹사의 면모를 갖췄다. 대부분 시세조종이 용이한 코스닥 상장사들이었다. 김 전 회장의 지인은 “코스닥 회사 인수로는 성장의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김 전 회장은 문재인 정부 시절 정치적 인맥을 배경삼아 대북사업을 통해 재벌 반열에 오르고 싶어했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이 다시 주목 받은 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 때문이다. 해당 의혹과 관련한 수원지검의 수사가 시작되자 김 전 회장은 해외로 도피해 있다 10일 태국 현지에서 검거됐다.
한편 김 전 회장과 함께 현지에서 검거된 양선길 쌍방울 회장은 건축학을 전공하고 건설업계에서 일하다 2011년 쌍방울과 인연을 맺었다. 두 사람은 친인척간으로 알려져 있다. 양 회장은 2018년 5월 쌍방울 계열사 나노스 대표이사에 올랐고, 2021년 쌍방울 회장에 취임했다.
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01.11 번갈아 태국 가서 김성태 도피 도왔다, 쌍방울 6명 무더기 영장 청구
‘쌍방울 그룹 비리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이 지난 10일 태국에서 체포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의 최측근 A씨와 동생 김모씨, 비서실장 B씨 등 쌍방울 그룹 관계자 6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으로 11일 전해졌다. 이들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는 오는 12일 수원지법에서 열릴 예정이다. 검찰이 의혹의 핵심인 김 전 회장을 체포한 데 이어 최측근 그룹에 대한 신병을 확보할 경우 쌍방울 그룹 수사에 한층 속도가 붙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수원지검 형사6부(부장 김영남)는 김성태 전 회장이 작년 5월 말 싱가포르 출국 이후 8개월간 해외 도피를 해오는 동안 쌍방울 실세 역할을 한 최측근 A씨 등 쌍방울 그룹 핵심 관계자 6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9일 청구했다. 이들 영장에는 범인도피 혐의를 적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최측근 A씨가 작년 7월 김 전 회장이 머물고 있는 태국에 두 차례 방문한 것으로 파악했다. 나머지 관계자들 역시 김 전 회장의 태국 현지 은신처를 번갈아 방문하며 김 전 회장의 해외 도피를 조력하고 국내 수사 진행 상황 등을 공유했다고 한다. 이들은 김 전 회장이 태국 파타야에 머무는 동안에는 김 전 회장이 좋아하는 김치와 김, 냉동 고등어 등 한식을 공수해 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태국 현지에서 김 전 회장의 생일 파티를 열기 위해 고급 양주와 과일, 해산물 등도 가져갔고, 생일 파티에는 국내 유명가수도 초대됐다고 한다.
최측근 A씨는 전북 전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김 전 회장의 고향 후배로 2010년 김 전 회장이 경영난을 겪던 쌍방울을 인수하기 전부터 가까운 사이로 알려졌다. 과거 김 전 회장과 배상윤 KH그룹 회장이 주도한 쌍방울 주가조작 사건의 공범으로 가담해 유죄 선고를 받기도 했다. A씨는 해외에 은신한 김 전 회장과 지속적으로 연락하며 사실상 쌍방울 그룹 내에서 김 전 회장의 역할을 대신했다고 한다.
검찰은 쌍방울 관계자 6명 중 일부에게는 쌍방울 그룹 압수수색 당시 사무실 내 문서를 파기하고 휴대전화를 파손하는 등 증거인멸 혐의도 적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쌍방울 관계자 C씨에 대해서는 범인도피 혐의 외에 쌍방울에서 허위급여를 받는 등 횡령 혐의, 대북송금 의혹과 관련한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도 영장에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쌍방울은 대북송금 계열사 나노스 주가 조작 의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과거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받을 때 변호사비를 대신 내줬다는 의혹 등을 받고 있다. 김 전 회장은 쌍방울을 둘러싼 각종 의혹의 핵심인물인 만큼 법조계에서는 김 전 회장 체포로 인해 검찰의 쌍방울 수사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김 전 회장이 태국 법원에서 한국 송환 거부 절차를 밟으면 검찰의 신병 확보가 늦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조선일보 허욱 기자
01-11 저출산委가 정치 발판인가
이용권 사회부 차장
저출산 대책을 놓고 정부 내부가 시끄럽다. 저출산 대책을 총괄하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나경원 부위원장이 정책안을 발표했더니, 대통령실이 바로 기자회견을 통해 부정하고, 나 부위원장이 SNS로 또다시 반박하는 특이한 상황이 벌어졌다. 저출산고령사회위 위원장이 대통령인 만큼, 마치 위원장과 부위원장이 내부 이견조율이 필요한 대책을 놓고 공개적으로 다투는 모양새다. 결국, 나 부위원장은 10일 사의를 표명했다. 특단의 저출산 대책이 필요한 시점에서 이런 불협화음이 좋게 보일 리 만무하다. 대한민국은 현재 인구 감소를 넘어 ‘인구절벽’이라는 표현이 익숙할 만큼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 저출산은 출산율(fertility rate), 즉 가임기 여성(15∼49세)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가 2.1명 미만일 때로 정의하는데, 지난해 여름 확정 집계된 대한민국의 2021년 출산율은 0.81명이다. 다음 달 발표될 지난해 잠정 출산율은 더 심각해진 0.77∼0.78명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에서 유일한 출산율 0명대 국가다. 저출산을 경험하고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조차도 평균 출산율이 1.6명대라는 점을 보면, 국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경제 둔화, 성장동력 감소, 지방 소멸, 복지 수요 및 노인 부양 부담 급증 등 인구 감소로 인해 예상되는 각종 부작용은 이미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다. 저출산으로 머지않은 미래엔 국가 존립 자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경고가 교과서에 나올 정도로 국민은 저출산 위기를 인지하고 있지만, 정작 출산율은 반등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을 만들고, 2006년 2조1000억 원의 예산을 시작으로 지난해 46조7000억 원까지 16년 동안 총 271조9000억 원을 쏟아부었음에도 출산율을 반등시키는 데 실패했다. 신혼부부에게 4000만 원을 대출해주고, 출산에 따라 대출금을 탕감해주겠다는 나 부위원장의 제안도 근본적인 대책으로 보기는 어렵다. 현금 살포식 지원으로는 일시적으로 출산율을 상승시킬 수 있어도 장기적인 하락 추세를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사실이 이미 각 지방자치단체의 포퓰리즘식 출산장려금 정책으로 확인된 바 있다.
저출산은 경제적 요인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관습 등 각종 요인이 결합한 매우 복합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지나친 경쟁, 높은 집값, 취업난 등이 빚어지는 도시 국가를 저출산의 원인으로 꼽기도 하며, 1인 가구 등 인구 구조 변화, 개인주의, 여성의 사회 진출 등을 이유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정확한 원인을 못 찾고 있으니 정답도 찾기 어렵다. 다만, 저출산은 경제·교육·노동·주거·행정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대책이 유기적이고 체계적으로 추진될 때, 모든 부처를 아우르는 종합 대책으로 시너지를 이룰 때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에 각 부처 장관이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하고, 위원장이 대통령인 이유이기도 하다. 저출산고령사회위는 저출산 정책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각 부처의 정책을 조율하면서 이끌어 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 불협화음 속에서는 인구절벽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문화일보 이용권 기자
01.12 쌍방울 의혹 김성태 체포, 조폭 관련 정치 비리 다 밝혀야
쌍방울 비리 의혹의 핵심 인물인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이 지난 10일 태국에서 체포됐다. 작년 대선 직후 해외로 도피한 지 8개월 만이다. 그는 압수수색 영장 등 수사 기밀이 검찰 수사관을 통해 쌍방울 측에 유출된 직후 도피했다. 그보다 먼저 도피했던 양선길 현 쌍방울 회장도 이번에 함께 체포됐다.
김 전 회장은 개인적인 횡령·배임 혐의 외에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관련된 여러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 시작은 이 대표가 경기지사 시절 선거법 위반 사건으로 수사와 재판을 받을 때 변호사 비용 20억원을 쌍방울이 대신 내줬다는 의혹이었다.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 변호사가 2019년 쌍방울 계열사 사외이사로 선임되고, 이 대표의 대선 캠프에도 참여하면서 의혹이 증폭됐다. 이 수사 와중에 쌍방울의 대북 송금 혐의까지 드러났다.
김 전 회장이 2019년 당시 이화영 경기도 평화부지사, 대북 단체인 아태평화교류협회(아태협) 안부수 회장의 도움으로 중국에서 북한 인사를 만나 광물 개발 사업권을 받고 그 대가로 북측에 최소 200만달러 이상을 줬다는 것이다. 쌍방울은 임직원 60여 명을 동원해 이 돈을 중국으로 밀반출한 사실이 드러났고, 안 회장은 김 전 회장 지시로 이 중 50만달러를 천안함 폭침 실행 책임자인 북한 김영철 등에게 건넨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이화영은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대표 모두의 측근이다. 그는 이미 쌍방울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이 모든 일이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일 때 벌이진 일이다. 쌍방울은 2018년과 이듬해 경기도와 아태협이 공동 개최한 남북 교류 행사 비용도 지원했는데 경기도는 당시 이 행사를 이 지사의 치적으로 홍보했다. 이런 일들을 이 대표가 다 몰랐다는 것은 상식 밖이다. 하지만 이 대표는 한 번도 공식적으로 해명하지 않았다. “쌍방울과 인연은 내복 하나 사 입은 것밖에 없다”고 한 게 전부다.
쌍방울 김 전 회장은 조폭 관련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60년대 이후 많은 정치 비리와 사건이 있었지만 이렇게 조폭이 직접 등장한 적은 없었다. 국격을 위해서라도 김 전 회장을 조기에 송환해 진상을 모두 밝혀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1.12 마크롱 국민 72% 반대에도 연금개혁, 이게 정치 지도자 존재 이유
프랑스 정부가 연금 개혁안을 발표했다. 현재 62세인 정년을 2027년까지 63세, 2030년까지 64세로 늘리는 식으로 연금 수령 시점을 늦추는 게 골자다. 1964년 이후 출생자는 지금보다 1년, 1968년 이후 출생자는 2년을 더 일해야 한다. 연금 전액을 받기 위한 근속 기간은 기존 42년에서 43년으로 연장된다. 더 오래 일하고 연금은 더 천천히 받으라는 뜻이다. 여론조사 결과 이 연금개혁안에 프랑스 국민 72%가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찬성은 27%뿐이다.
그럼에도 마크롱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빚에 의존한 채 연금 제도를 운영할 수는 없다. 우리는 더 오래 일해야 한다” “연금개혁을 통해 우리 아이들에게 공정하고 견고한 사회 시스템을 물려줘야 한다”며 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마크롱의 개혁 추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7년 취임해 직종별로 42개에 달하는 복잡한 연금 제도를 단일화하는 개혁을 추진했다. 당시 20여 년 만에 가장 강력한 총파업이 벌어지고 공공부문의 연쇄 파업이 석 달 가까이 이어졌다. 거센 저항에도 마크롱은 물러서지 않고 코로나 때문에 잠시 중단했던 연금 개혁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프랑스는 65세 이상 인구가 20%에 달하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고령화에 대비해 전임 대통령들도 연금 개혁을 추진했지만 거센 저항에 부딪쳐 번번이 실패했다. 급기야 올해부터 연금 재정이 매년 100억유로(약 13조원)씩 적자가 나는 상황에 이르렀는데도 국민들은 개혁에 반대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중은 눈앞의 자기 이익과 기득권에 집착한다. 프랑스 주요 노조단체는 일제히 총파업 및 시위를 예고했다. 여당이 과반이 안 되는 하원에서 야당도 설득해야 한다. 그럼에도 마크롱 정부는 “연금 개혁이 국민을 두렵게 만들어도 지금 손보지 않으면 대규모 증세, 연금 수령액 감소로 이어진다”며 지속 가능한 연금 제도를 위해 개혁하겠다고 한다.
연금 개혁은 우리가 프랑스보다 더 시급하다. 보험료를 너무 적게 내고 있는 데다 저출산 고령화가 세계 최악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나라의 지속 가능성과 미래 세대를 위해 노동·연금·교육 3대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인기 없어도 피하지 않고 반드시 해내야 한다”고 했다. 당장의 인기를 좇는 것은 정치인이 아니라 정상배다. 정치 지도자는 모두가 가기 싫어하지만 가야만 하는 길이라면 욕먹으며 앞장서 가는 사람이다. 그것이 정치와 지도자의 진정한 존재 이유다.
조선일보 사설
01.12 ‘라임 전세기 도주극’ 재발 막으려면
1.5조 환매중단 내고 도주극… 김봉현 뒤 봐준 몸통 누구인가
다른 펀드들도 권력비리 의혹… 엄벌로 금융사기 재발 막아야

▲라임자산운용(라임) 사태의 핵심 인물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2022년 9월 20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법정을 나오는 모습. /뉴시스
2019년 초 남성 투자자 두 명이 라임자산운용 관계자 김광우의 은신처였던 괌의 한 호텔을 덮쳤다. 라임은 사기성 투자로 4000명 넘는 투자자의 1조5000억원을 날린 사모 펀드다. 당시는 사고가 일반에 공개되기 전이었다. 로비에서 붙잡힌 김씨는 “짐을 싸서 나오겠다”며 방으로 올라간 뒤 테라스 외벽을 타고 도망쳤다. 라임은 김씨에게 도피 자금 8억원을 지원했고, 1억원짜리 전세기까지 띄워 도주를 도왔다. 영화가 따로 없었다.
주변 목격에 따르면, 라임 전주(錢主)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은 평소 책상에 1000만원 수표 1800장(180억원)을 쌓아두고 자랑했다. 그는 라임을 통해 800억원 넘게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라임은 한 투자 회사가 경기도 알짜 버스 회사 수원여객을 인수할 때 270억원을 빌려줬고, 김봉현의 고향 후배 금융인 김광우를 수원여객 전무로 집어넣었다. 그 후 김씨는 수원여객에서 260여 억원을 횡령했다. 그는 2020년 4월 김봉현이 1차 검거되자 자수했고, 작년 7년 징역형을 받았다.
김봉현은 1차 검거 당시 다섯 달간 수사망을 피해 다니다 성북동 빌라에서 잡혔다. 하지만 2021년 7월 보석으로 풀려났고, 작년 11월 검찰 구형 직전 그는 전자 팔찌를 끊고 또 도망쳤다. 도주 48일 만인 지난달 30일 화성 한 아파트에서 2차 검거됐다.
수년간 라임 뒤를 밟은 한 투자자는 “해외에서 신변이 오히려 위험하므로 국내가 더 안전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봉현의 뒤에는 거물 사채업자나 당시 권력 실세들이 있다는 말이 투자업계에 공공연히 돌았다”고 말했다.
라임은 문재인 정부 때 조장된 사모 펀드 활성화 정책에 올라탔다. 다른 위성 펀드들을 동원해 돌려막기 투자로 부실을 숨겼다. 운용 자산은 2017년 말 1조5000억원에서 2019년 5조8000억원으로 4배나 커졌고, 2018년 업계 1위가 됐다.
김봉현은 고향 친구였던 금융감독원 출신 청와대 행정관도 동원해 금감원의 라임 조사를 무마했다. 행정관은 대가로 월 200만원 한도 법인 카드 등 5000만원어치 뇌물을 받았다. 김봉현은 정치인, 청와대 인사에게도 20억원씩 줬다며 으스대고 다녔다. 도주 중 시행 사업을 벌일 정도로 대담했다. 옵티머스·디스커버리 등 사모 펀드들도 사기 투자 의혹을 받고 있다. 이 펀드들에서도 여지없이 전 정부 권력자들 이름은 등장한다.
코로나로 금융시장이 어려워지자 영원히 묻힐 줄 알았던 위법적 행각은 수면 위로 드러났다. 금감원에 따르면 현재 환매가 중단된 사모펀드는 48개에 5조5000억원이 넘는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검찰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폐지시키는 등 수사를 오히려 막았다.
이제 사라진 돈들의 종착지를 밝혀야 한다. 자본시장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라도 사실 규명은 필수적이다. 사기성 펀드를 판매한 은행들은 수천억원씩 배상을 했다. 은행이 본 손실은 돌고 돌아 각종 수수료나 대출 금리 인상에 반영됐다. 결국 일반 은행 고객들에게 피해가 전가된 셈이다. 외환 당국은 최근 10조원대 이상(異常) 외환 거래에 사모펀드 횡령액이 포함됐을 가능성도 의심한다.
미국은 금융 사기 범죄에 단호하다. 73조원 다단계 금융 사기를 저지른 버나드 메이도프는 2009년 150년형을 선고받고, 작년 옥사했다. 세계 3위 가상 화폐 거래소 FTX를 세우고 사기 끝에 파산시킨 샘 뱅크먼 프리드에게는 115년형이 거론된다. 솜방망이 처벌이 반복되면 제2, 제3의 라임은 또 기어나올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 최형석 기자
01-12 배당 잘못해 재판 무효 급증, 기막힌 김명수 사법부 실상
신속한 재판을 받는 것은 헌법으로 보장된 기본권이다(제27조 3항). 이런 명문 규정이 아니더라도 재판 지연에 따른 피해는 심각하다. 그런데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에서 장기미제 사건이 2배 이상 늘어난 데 이어 재판부 배당 잘못으로 재판이 무효가 된 황당한 사례도 급증했다.
대법원 통계에 따르면 2020∼2022년 전국 법원의 배당 착오는 1만5852건이고, 이 중 합의·단독부 혼동으로 재판이 지연되거나 판결이 무효가 된 사건이 민사 7286건, 형사 872건이다. 2016∼2018년 지연·무효 형사사건이 409건이니 김명수 체제 3년 만에 2배로 늘어난 것이다. 징역형을 살았는데 판결이 무효가 되거나, 수년간 소송해 손해배상 판결을 받았는데 다시 재판을 받아야 하는 사례도 속출한다. 배당은 법원 직원, 수석부장판사, 담당 재판부 등 3단계를 거치는데 오류의 수정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심각한 기강해이다. 피해자가 판사의 고의·과실을 입증해야 하므로 법원 책임을 묻기도 어렵다.
김 대법원장 취임 이후 5년간 2년 내 1심 판결이 나오지 않은 장기미제 사건이 민사의 경우 3배, 형사의 경우 2배로 늘었다. 코드인사를 염두에 둔 고법부장 승진제 폐지와 법원장 추천제 탓이 크다. 윤미향 사건, 울산시장선거 개입 사건 경우엔 임기 보장을 위한 의도적 재판 지연까지 의심된다. 이런 김 대법원장 임기가 아직 8개월여 남았다.
문화일보 사설
01.14 ‘아! 문재인’
‘국민 눈높이’ 핑계 삼다 연금 개혁 일본보다 23년 지각
‘국민 눈높이’는 ‘국민 水準’ 아니라 ‘대통령 수준’ 가리키는 말
‘눈높이’는 어떤 상황이나 사물을 판단하는 수준(水準)을 뜻하는 우리말 단어다. 소비자 눈높이, 관객 눈높이, 학생 눈높이 등등 쓰임새가 다양하다. 어느 때부턴가 아무 말에나 붙어 새 의미를 만들어내는 유행어가 됐다. ‘눈높이’가 ‘국민’과 결합해 ‘국민 눈높이’가 되면 경계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국민 눈높이’는 대통령들의 애용 표현이다. ‘국민 눈높이’란 말로 ‘자기 수준’을 가리고 덮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018년 11월 7일 문재인 대통령은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국민연금 개혁안을 보고받고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되돌려 보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단순한 재검토가 아니라 전면 재검토하라는 뜻’이라고 했다. 그는 ‘개혁안의 어느 부분이 국민 눈높이와 맞지 않는다는 것이냐’는 질문에 ‘보험료 인상’이라고 했다. 복지부 개혁안은 보험료율은 9%에서 12~13%로 올리는 대신 노후 소득에서 연금이 차지하는 비율을 40%에서 45~50%로 높이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해서 국민연금 개혁은 물거품이 됐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11일 ‘올해는 연금 개혁의 해가 돼야 한다’고 밝히자 노조는 즉각 총파업을 선언했다. 파업이 시작되는 18일 이후 대중교통·병원·학교·항만·공항은 비상 상황을 맞게 된다. 그쪽 노조 체질로 보아 보도블록을 깨 내던지고 바리케이드가 불길에 휩싸이는 과격 시위도 예상된다. 정부 개혁안은 연금 지급 개시 연령을 64세로 2년 늦추는 대신 지급액은 높이겠다는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미래 세대에게 공정하고 튼튼한 연금 제도를 물려줘야 한다’고 했고 정부 대변인은 ‘노조 총파업을 겁내지 않는다. 정부는 끝까지 가겠다’고 했다.
연금에 관해선 모든 나라 국민 눈높이가 똑같다. 적게 내고 빨리 많이 받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 원리에 어긋난 이런 연금 제도는 오래 버틸 수 없다. 조만간 파탄을 맞는다. 선진국 또는 선진국 문턱을 밟은 나라는 예외 없이 연금 위기를 겪었다. 출생률은 급감(急減)하고, 세금 내는 노동 인구는 내리막이고, 은퇴해 연금으로 생활하는 사람은 급증(急增)하기 때문이다.
연금 위기는 단순히 연금 위기로 끝나지 않는다. 연금을 내고 받는 균형이 깨지면 국가는 빚을 내 연금을 줘야 하고, 국가 빚이 늘면 국가 예산에서 빚의 원금과 이자를 상환하는 부담이 늘어나고, 적자 예산이 체질화되면 경제가 침체하고 경기가 가라앉으면 고용이 줄고, 고용이 줄면 연금 낼 사람이 주는 악순환(惡循環)의 수레바퀴가 돌아간다. 선동 정치가는 이 악순환 틈바구니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는다. 국가 추락이 본격화된다.
적게 내고 많이 받고 싶다는 국민 심리는 어느 나라나 비슷하다. 인구 감소와 인구 노령화(老齡化)라는 조건도 차이가 없다. 그런데 어느 나라는 연금 위기 앞에서 거꾸러지고 어느 나라는 지속 가능한 연금 제도를 새로 만들어낸다. 차이를 만드는 것은 국가 지도자의 수준과 역량(力量)이다. ‘문재인 눈높이’와 ‘마크롱 눈높이’의 차이다.
‘국민 눈높이와 맞지 않는다’며 문 대통령이 2018년 연금 개혁안을 퇴짜 놓았던 한국은 2022년 말 연금 개혁을 배우기 위해 일본에 견학단을 파견했다. 일본은 2004년 국민 여론과 야당 반대를 무릅쓰고 연금 개혁을 단행했다. 일본 측은 한국 견학단에 연금 개혁 당시 고이즈미(小泉純一郞) 총리가 ‘더 내고 덜 받는 쓴 약(藥)을 삼키도록 국민을 설득했다’면서 연금 개혁에서 국가 지도자의 절대적 역할을 강조했다. 경제 활력(活力)이 떨어져가는 일본은 이 개혁조차 없었더라면 이미 주저앉아 버렸을 것이다.
2022년 말 일본의 100세 이상 고령자 숫자가 9만5000명을 기록했다. 1963년 153명에서 출발해 81년 1000명 선을 넘더니 98년 1만명을 거쳐 눈사태처럼 밀려왔다. 한국은 노령화 속도가 일본을 능가하는 세계 유일의 나라다. 이런 흐름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년 가까이 계속된 장기 추세(趨勢)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 눈에 이게 보이지 않았다면 눈 뜬 장님이고, 보이는데도 ‘국민 눈높이’를 핑계 삼아 덮어버렸다면 양심을 속인 무자격(無資格)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연금 개혁을 선언했다. 1998년과 2007년 소(小)개혁 이후 첫 대(大)개혁이다. 지금 일정표대로 진행한다 해도 2027년에나 실행이 가능하다. 일본보다 23년 늦은 지각생이다. 교육 개혁, 노동 개혁, 국방 개혁, 공기업 개혁, 건강보험 개혁을 미루고 미룬 청구서도 속속 배달될 것이다. 정말 ‘아! 문재인’이다.
조선일보 강천석 고문
01.14 김성태, 한때 검찰의 조폭 관리대상… 정치·법조계 문어발 인맥
김성태 前쌍방울 회장 17일 국내로 송환될듯
해외 도피 8개월 만에 태국 골프장에서 붙잡힌 김성태(55) 전 쌍방울 회장이 오는 17일 귀국할 것으로 13일 전해졌다. 김 전 회장은 당초 13일 한국행 비행기를 타겠다고 했으나 검찰은 태국에 수사관을 보내 압송하기로 했다.
북한 광물 사업권을 따내기 위한 대북(對北) 로비, 이재명 민주당 대표 변호사비 대납 의혹 등으로 수사받게 되는 김 전 회장에게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업계에서 김 전 회장은 ‘조폭 출신 사업가’로 알려져 있다. 본지 취재 결과, 실제 검찰은 2009년 김 전 회장을 관리 대상 조폭에 등록했다. 전북 남원 출신인 김 전 회장은 전주에서 학창 시절 대부분을 보냈고 전주 지역 폭력 조직인 ‘전주나이트파’에서 행동대장 격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2000년대 들어 상경한 김 전 회장은 대부업 등으로 돈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 김 전 회장은 2010년 자금난에 허덕이던 쌍방울을 인수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업가로 변신했다. 쌍방울 인수에는 배상윤(57) KH그룹 회장이 얽혀 있다. 김 전 회장이 대부업을 하던 시절 배 회장과 돈거래가 시작됐다고 한다. 김 전 회장이 쌍방울을 인수한 것도 배 회장이 김 전 회장 돈을 빌려 쌍방울 인수에 나섰다가 돈을 갚지 못하자, 김 전 회장이 배 회장의 쌍방울 지분을 넘겨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쌍방울이 2014년 광림을 인수한 것도 배 회장이 김 전 회장 돈을 갚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배 회장도 검찰 수사선상에 올라 작년 5월쯤 동남아로 도피한 상태다. 배 회장도 귀국을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알펜시아 입찰 방해’ 사건 등의 수사 대상이다. 김 전 회장과 배 회장은 쌍방울 인수 과정에서 주가조작을 한 혐의로 2018년 대법원에서 각각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확정받았다.
김 전 회장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만나 정치권과 법조계 인맥이 넓다고 한다. 쌍방울 그룹엔 여야 정치인, 판검사 출신 사외이사가 수십 명에 달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2018년 선거법 위반 사건 변호인이었던 이태형·나승철 변호사도 쌍방울 계열사의 사외이사 출신이다. 쌍방울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화영 전 의원도 마찬가지다. 이규택 전 의원 같은 여권 정치인을 2011년 사외이사로 영입하기도 했다. 김 전 회장은 김만배씨 측근으로 ‘헬멧맨’으로 알려진 조폭 출신 최우향(구속 기소)씨를 통해 김만배씨도 만났다고 한다. 이때 김만배씨는 수억 원을 천화동인에 투자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성사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쌍방울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은 뒤끝 없는 성격으로 본인보다 한 살이라도 많으면 ‘형’, 한 살이라도 적으면 ‘동생’으로 부른다”고 했다. 김 전 회장이 계열사 대표들과 형·동생으로 지내자, 쌍방울 임직원들끼리도 서로 형·동생으로 부르고 있다고 한다.
김 전 회장이 쌍방울을 인수한 이후 쌍방울은 외형상으로는 계열사 51개, 자산 1조원대 그룹이 됐다. 특수 장비 자동차 제조사(광림)와 연예 기획사(아이오케이), 소프트웨어 회사(디모아) 등을 인수한 쌍방울은 대북 사업까지 노렸다. 김 전 회장은 무자본 인수합병(M&A)을 통해 사세를 키웠다고 한다. 기업을 인수하면 그 기업의 전환사채(CB)를 발행해 빚을 갚으면서 또 다른 회사를 인수하는 방식이다. 쌍방울 측은 “회사의 미래를 위해 신사업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업계에서는 “계열사를 계속 늘리면서 돌려막기를 하는 것”이란 지적이 많다.
쌍방울은 최근 검찰 수사와 김 전 회장의 해외 도피로 그룹 이미지가 악화하면서 자금 융통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0일 태국 이민국에 체포된 김 전 회장이 현지에서 송환 거부 소송을 제기하며 버티는 것이 의미 없다고 판단한 것도 그런 사정 때문이라고 한다. 김 전 회장은 지난 12일 국내의 쌍방울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회사에 손해를 끼쳐서 미안하다”고 했다고 한다.
조선일보 허욱 기자
01-16 ‘원청 직교섭’ 1심 판결의 4대 오류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민주화 이후 노동자의 지위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향상됐다. 그러나 귀족노조 논란을 비롯해 각종 불법파업, 노동자들의 불법행위까지도 정당화하려는 ‘노란봉투법’ 논란은 국민 다수가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에 찬성하게 했다. 이제는 노동운동이 곧 민주화라는 등식은 인정되지 않게 된 것이다.
법과 원칙에 따른 정당한 노사관계란, 노사의 어느 한쪽이 무조건 정당하다는 선입견을 버리고 사안마다 법적 기준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다. 예컨대, 기업에서 부당해고를 한 경우에는 노동자의 편을 들지만, 노동자가 불법파업을 했을 때는 기업의 손을 들어줘야 한다. 그런데 불법에 대해서도 면죄부를 주는 것처럼 게임 룰을 바꾼다면 위헌성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최근 서울행정법원에서 CJ대한통운이 하청노동자와 교섭할 의무가 있는 사용자라는 판결을 했다. “기본적인 노동조건 등에 관해 그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로서의 권한과 책임을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정도로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는 사용자로 봐야 한다고 해석함으로써, 노란봉투법 내용 중의 하나인 하청기업 노동자의 원청기업과의 직접교섭권을 법원이 인정한 것이다. 이 판결에는 몇 가지 심각한 문제가 있다.
첫째, 법률을 개정해야 할 문제를 법원의 판결로 해결하는 것은 대륙법 체계를 취하고 있는 우리 법체계와 맞지 않는다. 판례법 중심의 영미법과는 달리 대륙법에서는 법률의 우위를 강조하며, 법원은 법률에 엄격하게 구속된다. 그런데 근로계약관계가 없는 하청기업 노동자와 원청기업의 직접교섭을 인정한 것은 명백히 ‘노동조합 및 노동쟁의조정법’의 취지에서 벗어난 것이다.
둘째, 관련 법 규정들이 위헌이라고 판단했다면, 법원은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고 헌재의 결정에 따라 재판했어야 했다. 그런데 이런 절차 없이 새로운 법 해석으로 사실상 법률 규정을 변경한 것은 월권이다.
셋째, 법원이 사용자의 범위를 확장한 해석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원청기업이 하청기업에 미치는 영향력은 개별적 경우마다 큰 차이를 보이는데, 이런 사실적 차이에 기초해 하청기업 노동자와 원청기업 간에 법적으로 근로계약관계가 있다고 보는 것은 무리다. 그뿐 아니라 하청기업이 무리한 근로계약을 한 책임을 원청기업에 떠넘기는 것도 불합리하다. 만일 원청기업에서 하청기업의 근로계약에 개입한 경우에는 이를 근거로 다른 형태의 책임을 물을 수는 있지만, 무조건 원청기업과 하청기업 노동자 사이에 직접적인 근로계약관계를 의제하는 것은 책임 원칙에 반한다.
넷째,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라는 사실상의 영향력만을 기준으로 단체교섭의 대상자로 인정하는 경우에는 정부, 국회 또는 영향력 있는 시민단체 등도 하청기업의 단체교섭 대상자가 돼야 할 것이다. 이는 감당할 수 없는 불합리함이 될 것이다.
물론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하청기업 노동자가 원청기업과 직접 교섭하겠다는 것이 정당한 요구라고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법과 원칙을 깨뜨리면서 노동자 편에 서는 것은 법원의 올바른 태도가 아니며, 위헌의 문제까지 안고 있다.
문화일보
01.16 검찰, ‘라임 몸통’ 김봉현에 징역 40년 구형
투자자 피해액이 1조6000억원대로 추산되는 ‘라임 펀드 사기 사건’의 핵심 관계자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에게 검찰이 징역 40년을 구형했다. 김 전 회장이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해 11월 11일 도주한 이후 약 2개월 만이다.
김 전 회장은 16일 오후 2시 서울남부지방법원 형사13부(재판장 이상주) 심리로 열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 결심공판에 출석했다.
검찰은 김 전 회장에게 징역 40년에 774억 3540만원을 추징할 것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횡령 공범으로 기소된 전 스타모빌리티 사내이사 김모씨에게는 징역 12년형을 구형했다.
검찰은 “이번 재판으로 다른 사람의 재산 함부로 사용하면 엄벌에 처해진다는 사실, 범죄로 얻은 수익은 반드시 환수되고 도주하면 더 중한 형이 선고된다는 사실, 사법정의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함으로써 사회적 신뢰를 이어갈 수 있도록 심사숙고 해주시길 간절히 요청한다”고 했다.
수의를 입고 나온 김 전 회장은 검찰의 구형을 듣고 눈을 질끈 감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김 전 회장은 “이미 얼굴이 다 알려져서 다시 도망갈 수 없다”며 “시간이 주어진다면 피해를 복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김 전 회장은 2018년~2020년 라임자산운용이 투자한 스타모빌리티와 수원여객 자금 수백억원을 횡령하고 정치권에 금품을 제공한 혐의를 받아 재판을 받던 중 지난해 11월 도주했다.
지난해 30일 경기도 화성의 한 아파트에서 붙잡힌 김 전 회장은 당초 지난 12일 재판을 받을 예정이었으나, 재판 직전 몸이 좋지 않다는 자필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해 재판이 한 차례 연기된 바 있다.
김 전 회장의 선고 공판은 다음달 9일 오후 2시에 진행될 예정이다.
01.17 쌍방울 김성태 입국... 이재명 의혹 묻자 “성실히 조사받겠다”

▲해외 도피 중 태국에서 붙잡힌 김성태 쌍방울 그룹 전 회장이 17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연합뉴스
검찰 수사를 피해 해외 도피했다 8개월 만에 태국 골프장에서 검거된 김성태(55)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17일 한국에 도착했다.
이날 새벽 태국에서 아시아나항공 여객기에 탑승한 김 전 회장은 오전 8시26분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검찰 수사관들이 양손에 포승줄을 하고 있는 김 전 회장의 팔짱을 끼고 그를 인계했다.
김 전 회장은 입국장으로 향하는 길에 ‘이재명 변호사비 대납 의혹 부인하느냐’ ‘대북송금 인정하느냐’ 등 취재진 질의를 받고 “성실히 조사받겠다”고 답했다.
‘국민에게 하고 싶은 말 없느냐’는 질문에는 “심려를 끼친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부족한 저 때문에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상처받은 거 주위에서 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앞서 검찰 수사관들은 김 전 회장이 태국에서 비행기에 탑승하자마자 그에 대한 체포영장을 집행했다. 검찰은 체포 시한인 48시간 내 김 전 회장을 집중 조사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한다는 계획이다.
김 전 회장과 함께 태국 골프장에서 검거된 양선길 쌍방울그룹 회장도 이날 귀국해 같은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김 전 회장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관련된 여러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김 전 회장은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이던 2019년 5월 당시 이화영 경기도 평화부지사, 안부수 아태협 회장 등의 도움으로 중국 단둥에서 북한 측으로부터 광물 개발 등 여섯 분야 사업권을 받았다.
이에 대한 대가로 2018~2019년 640만달러(당시 환율 기준 72억원)를 중국으로 밀반출해 북한에 전달한 의혹도 받고 있다. 안부수 아태협 회장은 김 전 회장의 지시로 이 가운데 50만달러를 북한 조선아태위 김영철 위원장과 송명철 부실장에게 건넨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이 대표가 과거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받을 때 변호사비를 대신 내줬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쌍방울그룹 회삿돈을 임의로 쓴 횡령·배임 혐의 등도 받는다.
앞서 검찰은 작년 5월 이러한 의혹 등으로 쌍방울에 대한 전방위 압수수색을 준비했지만, 이러한 정보가 쌍방울 측에 유출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 전 회장은 검찰의 압수수색 직전인 작년 5월 말 싱가포르로 출국한 뒤 도피 생활을 이어갔다. 그는 지난 10일 양선길 회장과 태국 빠툼타니 소재 한 골프장에서 붙잡혔다.
이후 17일 오전 0시 50분 태국 방콕에서 출발하는 아시아나항공 여객기에 탑승하면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난 적 없나. 전화통화도 한 적 없나” 등 취재진의 질문에 “만난 적 없다”며 “(이 대표의) 전화번호를 알지도 못 한다”고 말했다. 또 변호사비 대납 의혹에 대해서도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부인했다.
01.17 [단독] 文때 흐지부지 된 ‘옵티머스’ 재수사...라임·디스커버리도 다시 본다
피해액 5000억 대형 금융범죄
검찰, 돈세탁 정황 녹취록 입수
검찰이 문재인 정부 당시 ‘부실 수사’ 논란에 휩싸였던 ‘옵티머스 펀드 사기’ 사건의 재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16일 전해졌다. 옵티머스 사건은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한다면서 3200여 명으로부터 1조3500억원을 끌어모은 뒤 부실 채권을 인수하거나 펀드 돌려 막기에 사용해 1000여 명에게 5000억원대의 피해를 입힌 대형 금융 사기 사건이다.
지난 2020년 6월 서울중앙지검이 이 사건 수사에 착수한 지 넉 달 뒤에 청와대와 민주당, 법조계 인사 등 20여 명이 거론된 옵티머스 내부 문건이 공개되고 로비 의혹이 불거졌지만 수사는 흐지부지 끝났다.
이와 관련, 서울남부지검의 금융·증권 범죄 합동수사단은 최근 서울중앙지검으로부터 옵티머스 사건 수사 자료 일체를 넘겨받고 재수사를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합수단은 과거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리며 금융·증권 범죄를 전담했지만, 추미애 전 법무장관이 폐지했다가 작년 5월 한동훈 법무장관이 부활시켰다.
합수단이 재수사에 나선 것은 새로운 단서가 포착됐기 때문으로 전해졌다. 서울중앙지검은 합수단에 자료를 넘기기에 앞서 작년 말부터 사건 관계자들을 불러 기존 수사팀의 수사 내용을 점검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비자금 조성 및 돈세탁 정황이 담긴 새로운 녹취록을 입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2020년 중앙지검 수사팀은 옵티머스 사건 수사 과정에서 당시 청와대와 민주당 인사들의 이름이 적힌 ‘펀드 하자(瑕疵) 치유 관련’이라는 문건을 확보했다. 옵티머스가 채동욱 전 검찰총장, 양호 전 나라은행장 등을 고문으로 두고 있었고 그들이 어떻게 활동했는지가 담겼다.
검찰은 수사 착수 1년 2개월이 지난 2021년 8월 사건을 사실상 마무리하면서 이 문건에 적힌 각종 의혹들을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고 밝혔다. 가령, ‘문건’에는 채 전 총장이 옵티머스가 추진하던 경기 광주 봉현물류단지 사업 인허가와 관련해 2020년 5월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를 만났다는 내용도 있었다. 검찰은 이를 무혐의 처분하면서 “두 사람이 식사를 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청탁 사실은 부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옵티머스 이사 윤모(징역 15년 확정)씨의 아내인 이모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행정관에 대해서도 여러 의혹이 제기됐었다. 이씨는 옵티머스 관계사에서 사외이사로 재직하며 옵티머스 사업에 관여하다가 청와대 행정관에 발탁됐고 청와대 재직 중에 뇌물을 수수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당시 이씨는 입건됐지만 아직 아무런 처분이 내려지지 않고 있다.
수사 과정에서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실 부실장 이모씨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도 있었다. 당시 이모씨는 ‘옵티머스 로비스트’로 알려진 연예기획사 대표 신모씨로부터 사무실 임차보증금과 가구·사무기기 임차료를 받은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었다.
또 로비스트 신씨가 김진국 청와대 민정수석으로부터 현직 부장판사를 소개받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 역시 “신씨를 상대로 경위를 확인했지만 의혹이 있다고 보기 어려웠다”고 했다.
반면 옵티머스 김재현 대표는 사기 혐의로 기소돼 징역 40년에 벌금 5억원, 추징금 751억7500만원이 확정됐다. 옵티머스 2대 주주인 이모씨도 징역 20년에 벌금 5억원을 확정받았다.
한편, 서울남부지검은 이번에 넘겨받은 옵티머스 사건뿐만 아니라, 지난 2020년 남부지검이 수사하다가 역시 흐지부지된 ‘라임 펀드 사기’ 사건 수사도 재개할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경찰이 수사했던 ‘디스커버리 펀드 사기’ 사건에 대해서도 재수사를 검토 중이라고 한다.
라임 사건에서는 4000여 명 개인 투자자가 1조6000억원의 피해를 봤다. 2020년 1월 남부지검은 라임 펀드의 전주(錢主)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민주당 전·현직 의원들에게 금품을 제공하고 ‘해외 리조트’ 접대를 했다는 녹취록 내용에 대해 수사했지만, 지금까지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던 2020년 10월 구속 중이던 김봉현씨가 이른바 ‘검사 술접대 의혹’ 등이 담긴 ‘옥중 편지’를 공개하면서 당시 수사팀이 사실상 해체됐고 그로 인해 민주당 쪽 수사는 멈춘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여권 인사인 윤갑근 전 고검장은 다른 옵티머스 관계자로부터 자문료 명목으로 돈을 받고 은행에 로비를 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가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상태다.
김봉현씨는 최근 재판을 받던 중 도주했다가 48일 만에 붙잡혔다. 16일 검찰은 김씨의 횡령 사건 재판에서 징역 40년을 구형했다. 그러나 이 사건 ‘몸통’으로 불리는 김영홍 메트로폴리탄 회장은 2019년 10월 해외 도피 후 아직 붙잡히지 않고 있다.
디스커버리 펀드에서는 투자자들이 2500억원대의 피해를 입었다. 경찰은 2021년 5월 내사를 시작했지만 1년이 지나서야 장하원 대표의 구속영장을 신청해 부실 수사 비판을 받았다. 다만, 사기 혐의 등으로 기소된 장 대표는 지난달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디스커버리 펀드에 투자했다가 환매 중단 사태 당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있었던 장하성 전 주중대사와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경찰이 입건하지 않은 것도 논란이 됐다.
조선일보 표태준 기자
01-17 옵티머스·라임 재수사, 정치권 연루 이번엔 밝혀내야
피해 금액만 각각 1조6000억 원, 5600억 원대의 천문학적 규모였던 라임과 옵티머스 펀드 사기 사건에 대해 검찰이 재수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사기 사건의 배후에 정치권과 청와대, 법조계 등의 유력 인사들이 광범위하게 연루됐다는 의혹과 물증이 있었지만, 문재인 정부 당시 수사는 용두사미로 끝난 바 있다.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 의해 라임 사건 수사를 담당한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수단이 해체되고, 라임 수사를 맡은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부를 축소하는 어이없는 일도 벌어졌다.
옵티머스 펀드는 공공기관의 매출채권에 투자한다면서 3200여 명으로부터 1조3500억 원을 끌어모았다. 이처럼 안전자산 투자로 속여 자금을 모았지만, 부실채권이나 상장기업 인수, 펀드 돌려막기를 하다 결국 1000여 명에게 5600억 원의 피해를 보였다. 이런 무모한 사기가 통하려면 일반인이 믿을 만한 ‘권력의 뒷배’가 필요하다.
실제로 서울중앙지검은 옵티머스 사무실 등을 압수 수색하며 청와대와 정·관계 인사 20여 명의 실명이 적힌 ‘펀드 하차 치유 문건’을 확보했지만 무혐의로 끝냈다.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이 인력 파견을 요구했지만 거절됐고, 이성윤 지검장은 특수부가 아닌 일반 형사부 검사에게 배당하는 등 축소 수사 의혹이 파다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이 옵티머스 관계사 사외이사로 재직하고 뇌물을 수수했다는 의혹이 일었지만 흐지부지됐고, 고문이었던 전직 검찰총장이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와 만나 물류단지 민원을 했다는 의혹이 일었지만, 무혐의 처리됐다. 이낙연 전 총리 측근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도 벌어졌다.
최근 검찰이 비자금 조성과 돈세탁 정황이 담긴 새로운 증거를 입수, 재수사의 단서가 됐다고 한다. 정·관계 유력인사들이 고문 등으로 참여하고, 초기 투자자들은 이익을 챙긴 뒤 빠져나가고, 막바지에 투자한 서민들만 피해를 본 참담한 사건이다. 정치권 연루 의혹을 제대로 밝혀내는 것은 물론 부실 수사에 대한 책임까지 따져봐야 할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
01-17 전현희 권익위원장의 ‘大罪’
김종민 변호사, 前 광주지검 순천지청장
김영란법 발의 주체인 권익위
文정권 비리 터지는데도 침묵
조폭 가세해 권력 부패 구조화
임기 사수보다 책임 통감해야
권익위 존재 이유도 부정당해
반부패 개혁 없인 미래도 없다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의 대죄(大罪)는 반부패기구 수장으로서 나라가 부패공화국이 돼 가는데도 이를 외면하고 방치한 것이다. 위원장에 취임한 2020년 6월 이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대장동 개발비리, 성남FC 사건, 권순일 전 대법관 재판 청탁 의혹 등 권력형 부패와 비리 사건이 연일 터져 나오는데도 침묵으로 일관한 것이다. 부패는 국가와 사회 모두를 산산조각내는 공동체의 적이다. 부정청탁과 부패를 근절하겠다고 3만 원짜리 식사를 해도 되는지 온 나라가 야단법석인 가운데 2015년부터 ‘김영란법’이 시행됐지만, 크게 변한 것은 없다. 오히려 문재인 정권 5년 동안 조폭까지 가세한 권력형 부패가 구조화했고, 경기지사와 대선 후보 출신의 제1야당 대표가 피의자로 검찰 수사를 받는 참담한 현실이 우리의 모습이 돼 버렸다.
애덤 스미스는 “어떤 국가가 정체 상태에 접어드는 것은 그들의 ‘법과 제도’가 쇠퇴해 지대(地代)를 추구하는 특권층이 경제와 정치를 모두 지배할 때”라고 했다. 이 대표를 둘러싼 권력형 부패 의혹은 우리의 반부패 시스템이 고장 나,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 줬다. 반부패 제도 자체가 유럽 등 반부패 선진국에 비해 20년 이상 낙후돼 있고 공직자와 국민의 ‘부패 인지 감수성’이 낮은 것이 근본 원인이다. 논란이 됐던 문재인 전 대통령 자녀 가족의 청와대 관저 거주 문제만 해도 윤건영 전 국정상황실장은 이를 비판하는 여론에 대해 “친정에 있는데 야박함을 넘어 야비하다”고 했지만, 프랑스였다면 형법 제431-15조의 ‘공공재산유용죄’로서 10년 이하 구금형과 100만 유로(약 13억 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되는 부패범죄임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공직에 재직한 3년 7개월 동안 생활비를 사용하고도 매월 2000만 원씩 모두 8억6125만 원의 예금이 증가한 것이나, 2017년 4억3445만 원의 재산을 신고한 임종석 전 비서실장의 딸이 학비만 연 1억 원이 든다는 시카고 아트스쿨에 유학하며 명품을 걸치고 해외여행을 한 것도 프랑스에서는 모두 당사자가 자금 출처를 소명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그 자체로 형법 제321-6조에 따라 3년 이하 구금형과 7만5000유로(약 1억 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유럽반부패기구(GRECO)의 ‘입증책임 전환 규정’ 도입 권고를 2006년 프랑스가 형소법 개정으로 입법화한 덕분이다. 2015년 국회 법제사법위원이던 서영교 의원의 재판청탁 사건도 유야무야됐지만, 프랑스에서는 형법 제434-9조에 따라 10년 이하 구금형과 100만 유로 이하 벌금으로 처벌되는 중죄(重罪)다.
인간의 선의에 대한 믿음과 별개로 제도는 매우 중요하다. 신뢰에 바탕을 둔 사회제도가 부패하는 것을 못 막으면 국가는 쇠락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끊임없는 제도적 혁신이 필요하다. 프랑스는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정권 시절, 부유세(최고 세율 75%) 도입을 추진하던 주무 장관이 스위스에 비밀계좌를 갖고 있다가 들통난 사건을 계기로 2016년 20년 만에 대대적인 반부패 개혁을 추진했다. 강력하고 독립적인 반부패청(AFA)을 신설하고 공공과 민간 부문을 아우르는 ‘반부패 제도의 세계 표준’을 만들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가. 대장동 개발비리, 성남FC 사건의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데도 국민권익위는 침묵으로 일관했고 반부패 주무 부처로서의 역할을 포기했다.
전 위원장은 “임기를 마치는 게 법치주의에 부합하는 일”이라고 임기 사수를 외치지만,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존재 방식이자 법칙이다. 자신의 판단에 책임지지 않는다면 그는 아무것도 아니다. 공공과 민간 부문을 포괄하는 근본적인 반부패 개혁이 시급하다. 2008년 신설된 국민권익위는 수명을 다했다. 존재 이유를 증명하지 못했고, 부패의 심화와 확산을 방치한 책임을 묻지 않으면 안 된다. 강력하고 독립적인 반부패기구를 신설해 반부패전략과 정책 수립, 감독, 제도 개혁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검찰과 경찰, 금융감독원 등 집행기관은 반부패기구와의 유기적인 협력 아래 수사와 조사를 담당하는 역할 분담이 바람직하다. 부패와의 전쟁 없이 국가의 미래는 없다.
문화일보
01.18 문 정부가 부실 수사한 대형 펀드 사기, 이번엔 배후 밝혀야
검찰이 문재인 정부 때 부실 수사 논란을 낳았던 옵티머스 펀드 사건을 재수사할 것이라 한다. 이 사건은 공공기관 매출 채권 같은 안전 자산에 투자한다면서 3200여 명에게서 1조3500억원을 모은 뒤 5500억원대 피해를 낳은 초대형 사기다. 공공기관 매출 채권은 애초에 있지도 않았다. 당시 검찰은 청와대와 민주당, 법조계 인사 등 20여 명이 적혀 있는 이른바 ‘펀드 하자(瑕疵) 치유’ 관련 문건을 확보하고도 무혐의 처분했다.
이 문건에는 전직 검찰총장이 옵티머스가 추진하던 경기도 봉현물류단지 사업 인허가와 관련해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를 만났다는 내용도 있었다. 검찰은 두 사람이 식사를 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청탁 사실은 부인한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공범인 옵티머스 이사 윤모씨의 아내는 문재인 청와대의 행정관이었다. 그도 뇌물 수수 등의 의혹을 받았지만 아무런 처분이 내려지지 않았다. 이낙연 당시 민주당 대표실의 부실장이 옵티머스 측으로부터 사무실 임차 보증금 등을 받은 혐의로 수사받다 극단적 선택을 한 일까지 있었다.
문 정부 때 4000여 명 투자자에게 1조6000억원의 피해를 입힌 라임 펀드 사기도 제대로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펀드의 전주(錢主)는 재판받던 중 도주했다가 48일 만에 붙잡혔다. 당시 검찰은 펀드의 전주가 민주당 전·현직 의원들에게 금품을 제공하고 해외 리조트 접대를 했다는 녹취록을 수사했지만 이 전주가 옥중에서 ‘검사 술접대 의혹’을 폭로하자 수사팀이 거의 해체되면서 민주당 쪽 수사는 사실상 멈췄다. 문 정부 실세였던 장하성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의 동생이 설립한 디스커버리 펀드도 2500억원대 환매 중단 사태를 낳은 지 3년 뒤인 작년에야 윤석열 정부의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했었다.
수많은 피해자를 낳은 이들 대형 펀드 사기 사건엔 모두 권력자들 이름이 등장하는데도 문 정부 내내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추미애 당시 법무장관은 금융·증권 범죄를 전담하던 검찰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폐지하기까지 했다. 윤 정부가 출범한 뒤 합수단이 부활돼 옵티머스 수사 자료를 넘겨받고 재수사에 들어갔다. 라임·디스커버리 펀드 사건도 재수사가 불가피하다.
조선일보 사설
01.18 李·金 서로 “모른다”는데 金 비서실장은 “아는 사이”
쌍방울 비리 의혹의 핵심 인물인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이 해외로 도피한 지 8개월 만인 17일 입국해 검찰로 압송됐다. 그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변호사비 대납 등 이 대표와 관련한 여러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 그런데 공항에서 이 대표를 “모른다”고 했다. 도피처였던 태국에서 압송되기 직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이 대표와 만나거나 전화한 적도 없다”고 했다. 이 대표도 “김성태라는 분의 얼굴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김 전 회장의 전 비서실장은 이날 다른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이 대표와 김 전 회장이 “가까운 관계였다”고 증언했다.
아직 누구 말이 맞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동안 드러난 정황을 보면 두 사람이 정말 모른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김 전 회장은 2019년 당시 이화영 경기도 평화부지사, 대북 단체인 아태평화교류협회(아태협) 회장과 함께 중국에서 북한 인사를 만나 광물 개발 사업권을 받고 그 대가로 북측에 최소 200만달러 이상을 줬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쌍방울은 임직원 60여 명을 동원해 이 돈을 중국으로 밀반출했다. 자금 밀반출은 김 전 회장도 인정한 내용이다.
쌍방울은 대북 사업을 염두에 두고 이 대표가 경기지사이던 2018년과 이듬해 경기도와 아태협이 공동 개최한 남북 교류 행사 비용 수억원을 지원했다. 당시 이 지사는 북한 고위 관료들이 참석한 이 행사를 자신의 치적으로 홍보했고, 그 행사를 총괄한 사람이 이 대표 측근인 이화영 부지사였다.
이 대표 주변 인물 상당수도 쌍방울과 연관돼 있다. 이 대표가 경기지사 시절 선거법 위반 사건으로 수사를 받을 때 변호인이었던 사람은 2019년 쌍방울 계열사 사외이사로 선임됐고, 이 대표의 지난 대선 캠프에도 참여했다. 같은 사건의 또 다른 변호사도 쌍방울 계열사 사외이사 출신이다. 쌍방울의 이 대표 변호사비 대납 의혹은 그래서 불거진 것이었다. 이화영 부지사도 부지사로 발탁되기 전 쌍방울 사외이사를 지냈다. 이렇게 얽힌 관계인데 ‘모른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서로 얼굴을 보지 않았어도 깊은 관계일 수 있고, 얼굴을 보았어도 특별한 관계가 아닐 수 있다. 이 대표와 김 전 회장은 어느 쪽인가.
이 대표는 지난 대선 때 ‘대장동 사건’으로 수사를 받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에 대해 “성남시장 시절엔 몰랐던 사람”이라고 했다. 하지만 성남시장 시절 그와 함께 해외 출장을 가 골프를 치고, 대장동 사업과 관련한 대면 보고를 여러 차례 받은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 거짓말을 한 혐의로 기소까지 됐다. 이 대표가 쌍방울과 무관하다면 국민 앞에 분명하게 입증해야 하고, 검찰도 정확한 증거로 실체를 밝혀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1-18 쌍방울, 경기도 대신 대북 송금 의혹… 李 연루 여부 밝혀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경기지사 시절 대북 사업에 큰 관심을 보였다. 평화부지사 직을 신설해 측근인 이화영 전 의원을 임명했고, 도의회 반대로 예산 확보에 실패하자 우회로를 연구토록 지시하기도 했다. 경기도의 대북 관련 사업에 쌍방울 그룹이 참여하고 자금을 지원한 사실도 드러났다. 최근 대북 관련 일정과 정황이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나면서, 쌍방울이 경기도를 대신해 북한에 ‘불법 송금’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새삼 커진다.
공소장 등에 따르면, 이 전 평화부지사는 2018년 10월 북한을 방문한 뒤 스마트팜 건설 등 6가지 대북 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도의회가 대북 제재 위반 소지가 있다며 반대해 예산이 편성되지 않았다. 직후인 그해 12월 안부수 아태협 회장과 김성태 쌍방울 전 회장 등은 중국 단둥에서 북한 김성혜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과 만났고, 김 실장으로부터 ‘스마트팜 비용 50억 원을 경기도 대신 쌍방울이 지원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이듬해 1월 쌍방울은 임직원을 동원해 150만 달러를 보냈다. 같은 해 5월 쌍방울은 지하자원 개발 등 6개 분야 우선적 사업권을 보장받는 합의서를 북한 민족경제협력연합회와 체결했다. 이 자리엔 이 전 부지사와 안 회장도 참석했다. 쌍방울은 그 대가로 북에 수백만 달러를 추가로 보냈다.
이즈음 이 대표는 북한에 밀가루와 묘목을 지원하는 사업 등을 직접 검토했고, 수개월 후 밀가루 1615t과 묘목 11만 그루를 지원했다고 발표했다. 이 전 부지사는 2018년과 2019년 경기도 주최 남북 행사를 총괄했고 이 대표 환영사를 대독했다. 쌍방울은 수억 원을 두 행사에 지원했고, 경기도는 그 행사를 이 대표 치적으로 홍보했다.
17일 태국에서 국내로 송환돼 조사를 받고 있는 김 전 회장을 상대로 검찰은 대북 사업 전모는 물론 ‘대북 사업비 대납’ 의혹과 이 대표 연루 여부도 밝혀야 한다. 이 대표와 김 전 회장은 서로 ‘모른다’고 밝혔지만, 대북 사업과 관련해 직간접적으로 보고를 받았거나 협의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경기도지사가 대북 불법 송금에 연루됐다면 국기 문란이다. 철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
문화일보 사설
01.19 태국서 김성태 수발 든 '심복' 잡혔다…캄보디아로 튀려다 체포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의 수행비서 박모씨가 캄보디아에서 체포됐다. 그는 김 전 회장과 함께 해외로 출국해 지금껏 도피생활을 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19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캄보디아 현지 경찰은 김 전 회장의 수행비서 박씨를 체포했다. 박씨는 김 전 회장의 ‘심복’으로 불리는 인물 중 하나다. 김 전 회장과 동업자들이 쌍방울을 인수할 때(2010년) 지주회사로 내세운 레드티그리스 법인의 김 전 회장 명의 투자지분 40%를 수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는 김 전 회장을 포함해 해외로 도피하는 쌍방울 임원들의 항공권 예매를 지시하고 본인 역시 김 전 회장과 함께 출국했다.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기 전 측근들과 모두 동반 출국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후 박씨는 김 전 회장·양선길 현 쌍방울 회장과 함께 태국에서 머물며 운전기사와 수행비서 역할을 도맡았다. 지난 10일 김 전 회장과 양 회장이 태국 빠툼타니의 한 골프장에서 현지 경찰에 체포될 당시 그는 현장에 없었는데 이후 숙소에서 김 전 회장의 물건을 챙겨 캄보디아로 도망가다 현지 경찰에 붙잡혔다고 한다.
박씨의 송환이 확실시된 가운데 해외에 남아있는 또 다른 쌍방울 핵심 인물로는 재경총괄본부장 김모씨가 있다. 그는 김 전 회장의 매제이자 쌍방울그룹 자금 전반을 관리하는 ‘금고지기’로 알려졌다. 지난달 초 태국에서 체포됐지만 불법 체류를 인정하지 않고 송환 거부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한편 수원지방검찰청 형사6부(김영남 부장검사)는 19일 오전 김 전 회장에 대해 사기적 부정거래 등 자본시장법위반과 회사 자금 횡령, 비상장 회사에 대한 부당지원 등 배임,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에 대한 뇌물공여, 대북송금을 위한 외국환관리법위반, 증거인멸교사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수민 기자 lee.sumin1@joongang.co.kr
01.19 文 정부 모임, 남 비판 앞서 자기 반성 백서부터 써야 한다
문재인 정부 장·차관, 청와대 출신들이 모임을 결성하고 “문 정부 정책이 윤석열 정부 들어 일제히 부정당하는 상황”이라며 “근거 없는 비방과 왜곡을 바로잡겠다”고 했다. 같은 정권에서 일한 사람들이 친목 모임을 결성한다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문 정부의 부동산, 탈원전, 소득 주도 성장 등 실패한 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한 장본인들이 자신들의 잘못은 외면한 채 남 비판하는 모임을 만든다면 다른 문제다.
문 정부는 건전 재정을 무너뜨렸다. 불과 5년 만에 국가 채무가 거의 두 배인 450조원이나 늘어 1000조원을 넘겼다.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GDP 대비 부채 비율이 36%에서 50%로 수직 상승했다. 소득 주도 성장으로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린 결과 고용시장은 얼어붙고 자영업자는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하위 20% 계층의 근로소득이 37%나 급감했다. 28번의 부동산 대책에도 서울 아파트 매매 가격은 90% 이상, 전셋값은 40%가량 폭등해 이른바 ‘미친 집값’을 만들었다. 그 결과인 청년층 ‘영끌 투자’가 지금 심각한 사회 문제다.
문 정부는 1가구 1주택을 강조했지만 첫 내각 17명 중 10명이 다주택자였다. 전세보증금을 5% 이상 못 올리게 임대차법을 강행하더니 법 시행 이틀 전 강남의 자기 아파트 보증금을 14%나 올려받아 경질된 사람도 있다. 탈원전 정책으로 세계 일류이던 원전 기술과 원자력 산업 생태계가 무너지고 한전 누적 적자는 30조원에 이르렀다. 문제가 생기면 정책을 바꾸지 않고 통계청장을 바꿨다. 고용, 집값 등 각종 통계를 분식하고 원전 경제성을 조작했다. 이런 일을 했던 사람 상당수가 이번 모임에 참여한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면서 해야 할 일은 하지 않았다. 노동·교육·연금 개혁 등 나라의 장래를 위해 불가피한 일을 5년간 손도 대지 않았다. 문 전 대통령은 전문가들이 만든 연금 개편안이 인기 없을 것으로 보이자 걷어차고 오히려 복지부 공무원들을 탄압했다. 실정과 내로남불 사례를 일일이 들 수가 없을 지경이다.
문 정부는 출발부터 드루킹을 동원한 대규모 여론 조작으로 시작됐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는 야당의 반대에도 자기들 마음대로 선거법을 뜯어 고쳤다. 세계 민주 국가 어디에도 없는 일이다. 문 전 대통령의 30년 친구를 울산시장에 당선시키기 위해 야당 후보를 억지 수사하는 공작을 벌였다. ‘블랙리스트’를 빌미로 전 정부 사람을 줄줄이 감옥에 보내더니 자신들도 똑같은 리스트를 만들었다. 대통령 비판 대자보를 붙였다고 청년들을 재판에 넘기고 비판 언론에 징벌적 손해배상 의무를 지우는 언론중재법을 밀어붙였다. 대통령과 정권의 불법 혐의를 수사한다고 검찰 수사팀을 공중분해 시켰다. 그러고도 모자라 검찰 수사권을 아예 박탈하는 법까지 만들었다.
김정은 비핵화는 가짜라고 김정은 스스로가 밝혔다. 문 전 대통령 연설에 지장줄까 봐 우리 국민이 북한군에게 총살되고 소각되는데도 방치했다. 오히려 월북으로 몰았다. 군은 군사력이 아니라 대화가 나라를 지킨다고 선언했다. 잘못된 정책으로 경제 체질을 약화시키고 온갖 내로남불로 법치와 민주주의를 훼손한 문 정부 사람들이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고개를 들고 큰소리를 치겠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손가락질하기 전에 자기 반성 백서부터 쓰기 바란다.
조선일보 사설
01-19 화물차 표준운임 도입과 ‘번호판 장사’ 퇴출 시급하다
지난해 화물차 불법 파업의 불씨였던 안전운임제는 3년 일몰 시한이 끝나 지난 연말 폐지됐다. 일종의 최저임금제를 시행한 결과, 사고는 되레 늘고 운임만 급증했다. 실효성이 없는 반(反)시장 정책이었다. 국토교통부와 한국교통연구원이 19일 공청회에서 이를 대체할 표준운임제를 제시했다. 옳은 방향의 대안이다. 운송업체가 화물차 기사에게 주는 운임은 표준운임을 정해 강제 시행하되, 화주(貨主)와 운송업체 간 운임은 매년 협회에서 자율로 정하는 강제성이 없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토록 했다.
개인 차량을 운송회사에 등록해 일감을 받는 지입제(持入制) 개선도 만시지탄이다. 해방 직후 열악한 화물운송업 시장에서 생겨나 편법으로 발전해온 제도인데, 원천적으로 재설계할 때가 됐다. 특히 2004년 화물차 총량제로 운송면허 신규 발급을 제한한 결과, 기형적인 다단계 구조가 파생되고 ‘번호판 장사’라는 폐해를 초래했다. 지입 전문회사가 수천 개 생겨 기사들에게 번호판만 빌려주면서 사용료에다 지입 계약 체결 땐 보증금까지 챙기는 게 당연시되는 지경이다. 원희룡 장관이 “불로소득의 끝판왕이 화물차 번호판”이라며 “민노총 간부들이 100개씩 갖고 장사하는 상황을 끝내야 한다”고 지적하는 그대로다.
화물차 운송업을 신규 진입이 자유로운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전환한 것은 지난 2004년 화물연대 총파업의 결과였다. 이로 인해 국내 화물차는 44만5000대에서 증차가 사실상 막혀 있다. 진입 규제가 지대(rent)를 만든 전형적인 사례다. 총량 규제를 다시 등록제로 바꿔야 한다. 진입 장벽을 낮춰야 불법 파업도 원천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
01.20 김성태 전 회장 구속영장 발부…“증거인멸·도주 우려”
해외 도피 8개월 만에 국내로 송환된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20일 구속됐다.
수원지법 김경록 영장전담 판사는 이날 횡령과 배임, 자본시장법 위반, 외국환거래법 위반, 뇌물공여, 증거인멸교사 혐의를 받는 김 전 회장에 대해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김 판사는 김 전 회장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불출석한다는 의사를 밝힘에 따라 심문 절차 없이 검찰이 제출한 서류만을 검토한 뒤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김 전 회장은 쌍방울 현 재무 담당 부장 A씨에게 쌍방울 계열사인 나노스 전환사채 관련 권리를 보유한 제우스1호투자조합의 조합원 출자지분 상당 부분을 임의로 감액해 자신의 지분으로 변경하게 하는 등 4500억원 상당을 배임한 혐의를 받는다.
김 전 회장은 2019년 1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중국의 한 식당에서 북측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송명철 부실장에게 500만달러(약 60억원)를 현금으로 전달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김 전 회장이 대북 경제협력 사업권을 명목으로 북한 측에 현금을 전달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그에게는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에게 3억여원의 금품 등을 제공한 혐의(뇌물공여·정치자금법 위반),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자 임직원들에게 PC를 교체하게 하는 등 증거를 인멸하도록 교사한 혐의도 적용됐다.
김 전 회장의 구속영장 청구서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변호사비 대납 의혹은 빠졌다. 다만 김 전 회장이 구속되면서 검찰은 이후 조사에서 이 부분도 함께 들여다볼 전망이다.
김 전 회장은 이 전 부지사에 대한 뇌물공여와 증거인멸교사, 대북 송금 등 일부 혐의는 인정하나, 횡령과 배임 등 나머지 혐의는 부인하고 있다.
이달 10일 태국 빠툼타니의 한 골프장에서 체포된 그는 이틀만인 12일 자진 귀국 의사를 밝힌 뒤 지난 17일 오전 8시 20분쯤 입국했다.
조선비즈 = 김종용 기자
01-20 31兆 적자 한전 또 1588億 투입… 한전공대 폐교가 답이다
한국전력공사는 지난해 31조 원 이상의 천문학적 적자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 민간기업이면 파산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에 따라 원전보다 비싼 에너지를 매입하게 된 데다, 에너지 수입가격이 급등한 여파다. 이런 한전이 올해 ‘한전공대’에 또 1588억 원을 내야 한다. 본사 1016억 원, 한국수력원자력과 발전 자회사 등 572억 원이다. 지난해 출연금(711억 원)의 두 배를 넘고, 2020년 이후 한전 지원금은 총 3312억 원으로 늘게 됐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한전은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법에 따라 한전공대를 지원해야 하는데, 2031년까지 소요비용만 1조6000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앞으로도 얼마나 더 퍼부어야 할지 모른다. 한전은 자본금까지 잠식돼 수십조 원 규모의 회사채를 찍어 버티는 지경인데, 이 학교에 밑 빠진 독에 물 붓듯이 엄청난 자금을 징발당한다. 한전 부실이 커질수록 전력요금은 더 올라간다. 최근 ‘한전채 블랙홀’과 한전 신인도 추락 등의 충격도 심상치 않다.
한전공대는 문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100% 정치 논리로 탄생했다. 인근에 광주과학기술원과 전남대를 비롯한 유수 대학이 상당수 있고, 기존 대학들도 학생 수 감소로 존속 여부를 걱정하는 지경이다. 한전공대는 지난해 대선을 1주일 앞둔 3월 2일 행정동 한 채 덜렁 세워진 상태에서 개교식을 열었고, 평균 연봉 2억 원을 넘는 교수진과 110명의 학생을 뽑았다. 올해도 신입생을 받아야 한다. 한마디로 지속 가능성이 없는 ‘미친 짓’이다. 재앙이 더 커지기 전에 폐교하는 게 옳다. 그게 한전공대 학생과 교직원은 물론 전국의 대학과 학부모를 위한 길도 된다.
문화일보 사설
01.21 작년 31조 적자 한전, 올해 한전공대에 또 1588억 강제 지원

▲작년 3월 전남 나주의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한전공대)에서 첫 입학식이 열리고 있는 장면. 당시 학교 건물은 4층짜리 한 동만 들어선 상태였다. 올해 한전공대에 한국전력과 발전자회사들이 1588억원을 출연할 예정이다. /뉴시스
한국전력과 발전 자회사들이 올해 전북 나주의 한전공대(한국에너지공대)에 1588억원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작년 출연금 711억원의 두 배를 넘는다. 한전은 지난해 적자 규모가 31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한전은 지금 돈이 없어서 발전 자회사들에게서 전기를 외상으로 구입한 뒤 회사채를 발행해 돈이 들어오면 전기 구매 대금을 지급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 전임 문재인 정부가 순전히 정치 논리로 세운 대학에 엄청난 돈을 울며 겨자 먹기로 줘야 한다. 문 정권이 한전공대에 돈을 무조건 주도록 법으로 강제해 놓았기 때문이다.
한전공대는 작년 3월 4층짜리 본관 건물 하나 지어 놓은 상태에서 신입생을 뽑아 학교 문을 열었다. 전임 정부 임기 중에 개교식을 가지려고 무리를 한 것이다. 다른 건물들은 지난달에야 착공했다. 작년 입학한 1기 학생들은 도서관·학생회관을 거의 써보지도 못한다. 이들은 현재 골프장 리조트·클럽하우스를 리모델링한 건물을 기숙사와 식당으로 쓰고 있다. 강의실은 본관의 4개뿐이다.
우리나라엔 이미 각 대학에 에너지 관련 학과가 있다. 필요하지도 않은 대학을 대선 지역 공약이라며 내놓고 그 돈은 국민에게 내라고 한다. 한국 전기 생산의 3분의1 가량이 원자력인데 한전공대는 원자력은 배우지도 않는다. 작년 신입생 전형 면접에선 원자력을 폄하하는 듯한 내용의 지문을 실은 문항이 출제되기까지 했다.
원전 발전 비용이 태양광·풍력보다 훨씬 비싼 것처럼 사실을 왜곡한 지문도 제시됐다. 이런 학교가 어떻게 제대로 된 에너지 대학이 되겠나. 한전공대는 정권이 바뀌자 올해부터는 갑자기 차세대 원전을 연구할 석·박사 과정을 신설하겠다고 한다.
한전공대는 48명의 교수에게 총 100억원이 넘는 연봉을 지급하고 있다. 일반 국립대 교수 연봉의 거의 두 배에 달한다. 학생들은 등록금·기숙사비가 면제된다. 한전을 쥐어짜고, 국민이 내는 전기료 가운데 일부로 조성한 전력산업기반기금에서 염출한 돈으로 특혜를 누리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지방대가 고사 상태로 내몰리고 있다. 이 상황에서 전임 대통령이 세운 대학만 특혜를 보는 이런 불평등을 누가 옳다고 하겠나.
조선일보 사설
01.21 변화구도 던져야 직구가 위력적이다
內治도 외교도 尹 대통령 직구 승부
‘UAE 적 이란’ 연설 때 대통령 손엔 원고 없어
직구 실투 땐 대량 실점… 변화구도 던져야
대통령에겐 메모지와 연필 세 자루뿐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본지 신년 인터뷰에서 눈길을 끈 장면이다. 고위 인사들은 인터뷰 석상에 보통 두꺼운 답변 자료 아니면 메모한 수첩을 들고 나온다. 참고용이지만 민감한 질문이 나오면 자료를 본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기자 브리핑 때 산더미 같은 자료를 들고 나온다. 미 국무부가 다루는 분야는 한 나라의 외교라기보다 전 세계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인터뷰 2시간 동안 막힘 없이 답했다. 국정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기 때문일 것이다. 참고 자료가 없는 이유를 물었더니 윤 대통령은 “다른 정치인들은 인터뷰 때 자료를 들고 나오나. 난 몰랐다”고 했다. 이어 “대선 후보 때부터 인터뷰 때는 자료를 보지 않았다”고 답했다. 윤 대통령은 검사 시절에도 국회에서나 언론 질문에 막힘이 없었다. 예민한 질문에도 ‘정치적 발언’을 통해 우회하기보다 직진했다. 야구로 치면 변화구보다 직구 스타일이다. 국정원 댓글 사건 때도, 추미애 사태 때도 그랬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검사가 수사권으로 보복하면 깡패지 검사냐” “검수완박은 부패완판” “검찰총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 지금의 윤 대통령을 만든 말이다.
취임 후 내치(內治)와 외교에서도 직구다. 민주노총이 총파업같이 강경 일변도로 나오더라도 기세가 꺾이면 적당한 타협점을 찾는 것이 정치권이 생각하는 ‘정답’이다. 불법은 눈감아주고 악수하고 손뼉 치고 묻어 버린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타협을 거부했고, 민주노총은 안전운임제 문제에서 본전도 못 차렸다. 불법과 거대 노총에 대한 대통령의 직구 대처는 지지율 반전의 계기가 됐다. “북핵 문제가 더 심각해지면”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대한민국 대통령의 자체 핵 보유 발언은 예전에 볼 수 없던 모습이다. 실효적 확장 억제(핵우산) 강화를 위한 계산된 발언이었지만, 미국도 놀란 분위기가 역력하다.
나경원 전 의원 전격 해임도 유인구나 변화구 없는 돌직구다. 참모들은 대통령 순방 기간 중 나 전 의원을 설득해보겠다고 했지만, 대통령은 나 전 의원이 공식 사표를 내자 수리도 아닌 해임을 선택했다. 정치적 해법은 윤 대통령과 애초에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정치적 해결을 조언했던 참모들은 “바보가 됐다”고 한다. 대야(對野) 관계도 유사하다. 용산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을 내쫓겠다는 사람들과 대화가 가능한 일이냐”고 했다. 그러나 지금 민주당은 국민의힘만큼 내부가 복잡하다. 대화할 수 있는 사람도 많고 할 이야기도 많다.
직구 투수는 팬이 많다. 강타자와 9구, 10구까지 직구로만 겨루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손에 땀이 난다. 그러나 열광하던 팬도 실투 한 번에 역전 홈런이라도 맞으면 왜 정면 대결을 고집했느냐며 돌아선다. 팬들의 속성이 그렇다. 직구가 위험한 건 한번 실투가 대량 실점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소통을 기대했던 대통령의 출근길 즉석 회견은 의도와는 반대로 흘러갔다. 원고 없는 즉석 발언 속 메시지보다 실수가 연일 부각됐다.
윤 대통령이 아크 부대 장병들을 만나 “UAE의 적은, 가장 위협적인 국가는 이란”이라고 말할 때, 대통령 손에서는 발언 자료가 보이지 않았다. “형제국의 안보는 바로 우리의 안보”라는 정답에서 한발 더 나가려다 삐끗했다. ‘외교 참사’라는 비난은 과도하지만 안 해도 될 실점을 한 셈이다. 야당 관계, 대일(對日) 관계, 연금·노동·교육 개혁 등 대통령 앞에 놓인 승부처는 직구만으론 풀기 어려운 난제다. 승부를 아예 회피하던 대통령도 있었다. 그렇다고 윤 대통령이 변화구를 못 던지는 것도 아니다. 반도체특별법이 기재부 반대로 무력화되자 원상 복구를 지시했다. 대선 때 윤 대통령은 이준석 전 대표, 김종인 비대위원장과 맺은 불편했던 관계도 직구와 변화구를 섞어가며 위기를 넘겼다.
강속구만 던지면 경기 도중 체력이 떨어지고 상대에게 수를 읽힌다. 강속구 투수가 좋은 투수는 맞지만, 직구를 받쳐줄 다양한 구종을 갖추지 못하면 위대한 투수가 될 수 없다. 일류 투수는 삼진만 고집하지 않고 때론 맞춰 잡는다. 윤 대통령에겐 이제 막 2회가 시작됐을 뿐이다. 대통령은 9회 말까지 완투하는 자리다. 변화구와 느린 볼을 섞어 던질 때 직구는 더 위력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작년 5월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국정운영실 직원으로부터 국정운영 홈런을 기원하는 메시지가 적힌 야구 방망이를 선물받은 뒤 휘두르고 있다./뉴스1
조선일보 정우상 정치부장
01.27 통계청장 출장간새 자료 빼낼 규정 급조...文정부 통계조작 의혹 내막
[김형원의 뉴스 저격]
비공개 자료, ‘소주성 靑수석’이 1호로 받아가
문재인 정부 통계 조작 의혹에 대한 감사원 조사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현재 감사원은 실지감사(현장감사)를 마쳤고, 최근 황덕순 전 청와대 일자리 수석을 소환 조사한 데 이어 청와대 고위급 인사들도 잇따라 부를 방침이다.
이번 감사의 핵심은 문재인 정부가 소주성(소득주도성장), 일자리, 부동산 정책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통계 마사지’가 이뤄졌는지 여부다. 특히 감사원은 2018년 3월부터 8월까지 청와대·통계청의 움직임에 주목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가통계 재가공’을 둘러싸고 정권 차원의 조직적인 시도가 있었다는 것이다. 통계청장이 돌연 교체된 것도 같은 기간에 벌어진 일이다.
◇통계청 돌연 비공개 자료 예외 규정 신설
통계 조작 의혹은 2018년 3월 8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민의힘 이종배 의원이 입수한 자료를 보면, 통계청은 당시 외부 유출이 금지된 비공개 통계자료가 손쉽게 다른 기관으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예외 조항을 신설했다. 이 과정에서 황수경 당시 통계청장은 철저히 배제됐다. 3월 4~12일 황 청장이 UN통계위원회 참석차 해외 출장을 간 사이 최성욱 통계청 차장이 ‘대리 결재’로 비공개 자료 예외 규정 신설을 허용했다. 국회에서 ‘통계청장 패싱’에 대해서 추궁하자 당시 통계청 담당자는 “당시 제가 심신 미약 상태여서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文 “최저임금 긍정 효과 90%” 통계 조작 막전 막후
이렇게 만들어진 예외 조항으로 맨 먼저 통계청 비공개 자료를 받아간 ‘1호 요청자’는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이었다. 그해 5월 24일 발표된 통계청의 1분기 가계동향조사로 문재인 정부는 발칵 뒤집혔다. 2003년 통계 작성 이래 빈부격차가 최악으로 벌어졌다는 취지의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정부가 기대한 ‘소주성 효과’가 거꾸로 나온 것이다. 그러자 ‘소주성 설계자’ 홍장표 수석이 발 빠르게 움직였다. 홍 수석은 가계동향 조사 결과가 발표된 이튿날인 5월 25일에 가구의 식별정보까지 포함된 마이크로데이터를 통계청에 ‘구두(口頭)’로 요청했다. 당시 비공개 자료 요청자는 홍 수석이었지만, 수신자는 강신욱 보건사회연구소(보사연) 연구실장으로 통계청 기록에 남아 있다.
통계청 비공개 자료를 넘겨받은 강신욱 실장 등은 즉각 ‘통계 재가공’에 착수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실직자는 제외하고 새로운 수치를 만들어 냈다. ‘재가공 보고서’는 5월 27일 청와대에 올라갔다.
나흘 뒤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토대로 “소득주도성장의 실패라거나 최저임금의 급격한 증가 때문이라는 진단이 성급하게 내려지고 있는데, 이에 대해 정부가 잘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고 했다.
◇‘재가공 보고서’ 강신욱, 통계청장 발탁
당시 황수경 통계청장은 청와대 지시로 비공개 자료가 빠져나갔고, 이것이 강신욱 실장 등에 의해 재가공되었다는 내용을 보고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해 8월 26일, 문 대통령은 황 청장을 중도 경질하고, 강신욱 보사연 연구실장을 새 통계청장으로 발탁했다. 강 실장이 통계청 비공개 자료를 넘겨받아 재가공 보고서를 만든 지 석 달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갑자기 경질된 황 통계청장은 8월 27일 열린 이임식에서 “통계가 정치적 도구가 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였다”면서 울먹였다. 언론 인터뷰에서는 “제가 그렇게 (청와대 등의) 말을 잘 들었던 편은 아니었다”고도 했다. 같은 날 강 신임 통계청장은 경제장관회의에 나가 “장관님들 정책에 좋은 통계로 보답할 것”이라고 말했다.
감사원은 통계청장 교체 이후 소득 통계가 개선된 점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강 전 청장 말대로 “좋은 통계로 보답”하는 과정에서 인위적인 조작이 있었냐는 것이다. 실제 황 전 청장 재임 시절 발표된 통계청의 2018년 1분기 가계동향조사에서 빈부격차를 보여주는 소득 5분위 배율(상위 20% 소득을 하위 20%로 나눈 값)은 5.95배로 나왔는데, 강신욱 전 청장으로 교체된 이후 2019년 1분기 5분위 배율은 5.8배로 다소 나아진 까닭이다.
◇비정규직 역설에 부딪힌 ‘눈속임 일자리’
문재인 정부는 악화된 경제지표를 만회하기 위해서 고용 분야에 막대한 재정을 퍼부었다. 2018년 10월·12월 국무회의에서 예비비 561억4600만원을 지출 의결해서 초단기 일자리 1만8859개를 양산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천재지변과 같은 비상 상황에 써야 하는 ‘국가 비상금(예비비)’을 퍼부어서 덩굴 뽑기, 철새 감시, 빈 강의실 불 끄기 같은 ‘눈속임 일자리’ 만들기에 나선 것이다. 정부가 예비비를 일자리에 쓴 것은 최근 10년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렇게 예산을 퍼부어서 만든 공공일자리는 ‘비정규직 양산’이라는 또 다른 역설에 부딪혔다. 2019년 10월 29일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 조사에서 비정규직이 전년 대비 86만7000명 폭증한 748만1000명으로 드러난 것이다.
핵심 정책인 ‘비정규직 제로화’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데이터가 제시되자 문재인 정권에 또 한 번 비상이 걸렸다. 황덕순 당시 청와대 일자리 수석은 통계청 발표 이튿날인 10월 30일 친문(親文) 성향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나와 “과거 (조사의) 질문이라면 정규직으로 조사됐을 사람들이 비정규직으로 조사됐다”고 했다. 비정규직이 폭증한 것에 대해서도 “그렇지 않은 다른 통계의 결과들도 정부가 갖고 있다”며 “(비정규직이) 역대 최대라고 하는 것은 상당한 과장”이라고 했다.
그러나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질문지는 전년도와 동일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비정규직은 문재인 정부 집권 4년 차인 2021년엔 사상 처음으로 800만명을 넘어서면서 더 늘어났다.
현재 감사원은 황수경·강신욱 전 통계청장에 대한 조사를 마친 상태다. 또 청와대가 국가통계 왜곡에 개입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황덕순 전 일자리수석도 소환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장표 전 경제수석도 조사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은 “국가통계 왜곡은 정권이 국민들을 얼마나 우습게 여기는지를 보여주는 척도”라면서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봐도 문재인 정권 사람들은 소주성·탈원전·최저임금 인상을 정책이 아니라 하나의 신앙으로 숭배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조선일보 김형원 기자
01.27 ‘참회록’ 쓰지 않는 사회
24세 윤동주 “나의 거울을 닦아보자” 참회록 써
지금은 개인이나 집단이나 잘못했다는 반성 없어
고은 시인이 참회록 쓴다면 노벨상 탄생할 수도
지난 정부는 잘못 비춰볼 거울 가지고 있긴 하나
국민을 화나게 하는 건 반성 없는 내로남불 태도
‘참회록’은 윤동주 시인이 1942년 조국에서 쓴 마지막 시의 제목이다. 반성과 성찰의 상징인 ‘거울’을 통해 부끄러움의 미학을 전하는 이 시는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로 시작하여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로 맺는다. 만 24세를 갓 넘긴 젊은이가 무어 그리 참회할 일이 있었을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란 이 고운 청년은 이듬해 독립운동을 이유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2년형을 선고받고, 해방을 6개월 앞두고 숨을 거둔다.
천주교 신자였던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 저격 후 고해성사를 요청했으나 교구장에게 거절당한다. 그러나 니콜라 빌렘 신부가 그에게 고해성사를 해주었고, 2011년 천주교회는 비록 살인을 했지만 그를 시복 추진 대상자로 선정한다. 이 반듯한 31세 청년은 15가지에 이르는 이토의 죄목을 나열하면서도 이토를 살해한 것에 대해 사죄했다. 그의 정결한 인품이 일본인도 감동시켰고, 이문열 소설의 제목처럼 죽어서도 천년을 살고 있다.
나라를 잃었거나, 나라를 빼앗길 경각의 시기에 이 땅에서 살다 간 인물 중엔 이렇게 상상도 할 수 없게 맑은 인물들이 있었다. 딱히 잘못한 것도 없어 보이는 이들이 겪었을 고초와 번민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려온다. 역사의 아픔조차 자신의 부끄러움과 잘못으로 성찰하는 이들에게는 내면에 양심이라는 거울이 있었기에 그게 가능했다.

/일러스트=이철원
인생의 의미를 탐구하는 사람들에게 내면의 거울은 중요한 성찰 도구다. 인간이라면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할 줄 알아야 한다. 장 자크 루소는 다섯 자식을 유기한 일을 포함한 과거 허물을 모두 고백록에 담아냈고, 톨스토이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다고 느낀 순간 위선과 교만에 찬 과거를 돌아보는 참회록을 썼다. 초대 그리스도교 철학자이자 사상가인 아우구스티누스는 13권에 걸쳐 자신의 모든 죄악을 고백하고 생활을 반성한 참회록을 펴냈는데, 이 책은 기독교 3대 고전 중 하나로 1600년 넘게 읽히고 있다.
그토록 원했던 나라를 되찾고, 전쟁과 분단을 넘어 눈부신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참회록 따위는 개나 줘버릴 이름이 되어버렸다. 톨스토이의 고전까지는 아니더라도, 윤동주 이후 참회록을 접한 기억이 없다. 그동안 개인이나 집단이 여러 역사적 고비에서 시행착오를 했을 텐데, 도무지 잘못했다는 사람이 없다. 반성하는 집단은 눈 씻고 봐도 없다. 스스로 비춰볼 거울이 없거나, 비췄더라도 보이는 모습을 외면했거나, 아니면 그 둘 다일 것이다.
얼마 전 상습 성추행 문제로 잠시 활동을 중단했던 고은 시인이 신작으로 복귀하려 하자 여론의 비판에 직면한 출판사가 사과하고 물러선 해프닝이 있었다. 출판사는 사과했는데, 정작 고은 시인은 “가족과 아내에게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성추행 문제를 공론화한 최영미 시인은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권력을 한국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나는 지켜볼 것”이라고 맞받았다. 만약 고은 시인이 그 유려한 문장으로 참회록을 집필했다면, 혹시 아는가, 노벨 문학상감이 탄생했을지. 여하튼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마음속에 투영된 한 시인의 추한 모습에 기운이 빠진다.
최영미 시인의 일갈대로 “권력은 반성하지 않는다”지만, 집단적 반성 결핍증을 앓는 집단으로 지난 정부 사람들이 으뜸 같다. 사실 정권이 교체된 것만으로도 그들은 반성할 거리가 차고 넘친다. 지지해준 사람들에게는 실패한 데에 사죄해야 하고, 그동안 나라를 맡겨준 일반 국민에게는 실패한 정책들에 대해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적어도 미흡했던 부분을 돌아보고 인정하기라도 해야 한다. 그런데 그들은 오히려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방과 왜곡을 바로잡겠다고 단체를 만들고 모이며 분주하다. 얼마 전 출범한 정책 포럼 ‘사의재’는 ‘성찰과 계승’을 강조하고 있으나, 성찰보다는 대응과 계승 쪽에 방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문재인 정권이 모든 정책적 허물, 예컨대 5년 만에 국가 채무를 거의 두 배로 늘린 것이나,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경제를 교란하고 북한에 대한 일방적 저자세로 나라의 정체를 위태롭게 한, 그런 잘못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부끄러움을 알고 반성하는 자세로 국정을 운영했다면 정권을 연장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국민을 더 화나게 한 건 무능보다 우격다짐과 내로남불 태도였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아집에 가깝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새해 첫날 양산을 방문한 이재명 더불어 민주당 대표에게 “어렵게 이룬 민주주의가 절대 후퇴해선 안 된다”며 마치 민주주의가 자신들의 전유물인 양 말했다. 그들에게 거울이 있다면 스스로 비춰보라고 하고 싶다. 문재인 정부 들어 민주주의와 법치가 크게 후퇴했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의 실망과 진단에 대해 어떤 성찰을 하고 있는지.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윤석열 정부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통해 흔들리는 경제와 국민의 삶, 멍드는 안보와 외교, 무너지는 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했는데, 자신들이 집권한 시절 흔들린 경제와 국민의 삶, 멍든 안보와 외교, 무너진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를 내리는지, 그들에게 자신을 비춰볼 거울은 있는지 묻고 싶다.
거울이 없다는 건 내면의 양심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문재인 시즌2는 아마 오지 않을 것 같다. 실패에서 배워야 성공도 도모할 수 있을 텐데, 적어도 지금까지 언행으로 미루어 그럴만한 반성과 성찰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01.28 우리 아이들이 마주할 수밖에 없는 암울한 대한민국
27일 국민연금 재정추계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50년 뒤, 100년 뒤 대한민국이 어떤 모습일지가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다. 세계 최악인 저출산 고령화가 만들 암울한 미래상이다. 몇 년 전 유엔이 ‘세계 인구 전망’에서 한국은 향후 50년간 세계 어느 나라도 가보지 않은 ‘인구 가시밭길’을 걷게 된다고 했는데 그 경고가 현실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날 재정 추계에 따르면 한국의 인구는 올해 5156만명에서 2050년엔 4736만명으로 420만명 감소한다. 놀라운 것은 현재 0.81명으로 세계 최저인 출산율이 2050년엔 1.2명으로 개선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시나리오를 기준으로 했는데도 그렇다는 사실이다. 반면 같은 기간 65세 이상 인구는 950만명에서 1900만명으로 1000만명 늘어난다. 현재 2500만명인 경제활동인구(15~64세)가 30년 뒤엔 1700만명대로, 50년 뒤엔 1200만명대로 줄어든다. 고령화로 경제 활력이 위축되면서 경제성장률이 2030년대엔 1%대, 2040년 이후엔 0%대로 떨어지고, 2060년 이후엔 마이너스로 돌아서 무려 60년 이상 마이너스 성장을 지속할 것이라고 국민연금 추계위는 예측했다. 60년간 마이너스 성장이면 한강의 기적은 한강의 몰락이 된다.

▲국민연금 재정추계 결과, 향후 30년간 노인 인구가 1000만명 늘고, 경제활동인구는 700만명 이상 줄어들어 사회의 노인 부양 부담이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예견됐다. 사진은 설 명절 연휴를 이틀 앞둔 19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노인들이 인근 무료급식소에서 점심 배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선 모습/뉴시스
지금은 국민연금을 내는 가입자가 2199만명으로 연급을 받는 수급자 527만명보다 4배 많지만, 2050년엔 비슷해지고, 2060년부턴 가입자 1251만명에 수급자 1569만명으로 수급자가 300만명 이상 많아진다. 지금은 경제활동인구 4명이 노인 한 명을 부양하지만 2050년엔 1.2명이 한 명을 부양해야 한다. 2055년 국민연금 기금 적립금이 바닥나면 그 이후엔 지금의 아이들이 월급의 최대 35%를 보험료로 내야 국민연금이 지탱된다. 이미 연금 기금이 바닥난 프랑스에선 연금 지급을 위해 현 세대가 소득의 28%를 보험료로 내고 있는데, 연금 수령 연한을 2년 늦추자고 하자 온 국민이 들고일어나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프랑스는 대대로 선진국이었다. 우리는 바로 지금 연금 개혁을 하지 않으면 프랑스보다 훨씬 심각하게 될 게 분명하다.
저출산·고령화는 경제·사회적 역동성과 국가 재정 역량을 쪼그라트려 나라 전체를 ‘수축 사회’로 만든다. 생산 인구 감소로 세입은 줄고 노인 복지, 의료비 등 정부 지출은 급격히 늘어나기 때문이다. 65세 이상에게 월 30만원씩 주는 기초연금에 소요되는 재원이 올해는 22조원이지만, 2045년엔 100조원을 넘게 된다. 문재인 정부 5년간 나랏빚을 400조원 이상 늘리는 바람에 국가부채 1000조원 시대가 이미 열렸다. 저출산·고령화에 대응할 재정 여력은 더 빈약해진 상태다.
우리가 지금 당장 움직이지 않으면 이 재앙은 필연적으로 닥쳐온다. 각 분야의 구조 개혁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규제 개혁으로 경제를 활성화하고, 노동 개혁으로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평생 벌어도 내 집 마련이 힘들고, 자녀 사교육비에 허리가 휘는 상황이 이어지면 저출산 문제의 해결은 요원하다. 집 문제, 일자리 문제, 교육 문제 해결 없이 저출산 극복은 불가능하다. 노인 연령 상한 조정, 정년 연장 등으로 사회보장 비용을 줄이고, 여성·노인층의 사회 활동 참여율도 높여야 한다.
바로 지금 개혁을 시작해야 한다. 개혁엔 저항과 고통이 따르지만 다른 길이 없다. 개혁만이 미래 세대에게 더 나은 세상이 오리라는 희망을 줄 수 있다. 희망이 없는 곳에 재앙은 더 빨리, 더 무섭게 닥쳐온다.
조선일보 사설
01.28 文 정부 연금 개혁 외면한 대가, 보험료 인상 부담 26% 더 늘었다
국민연금 재정추계위원회는 현행 제도를 유지할 경우 기금 소진 시점이 5년 전 추계보다 2년 앞당겨진 2055년이라고 예측했다. 기금 지출이 수입을 웃도는 적자 발생 시점도 2042년에서 1년 더 당겨질 것으로 보았다. 과거 정부들이 연금 개혁을 외면한 결과가 속속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2018년 문재인 정부 때에도 4차 재정 추계를 했다. 당시에도 OECD 평균의 절반 수준(9%)인 보험료로는 국민연금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 명확히 드러났다. 정상적인 대통령이라면 제도 개혁을 독려했을 것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정반대였다. 복지부가 개혁안을 보고하자 인기 없다고 걷어차고 복지부 공무원들을 탄압했다. 그리고 임기가 끝날 때까지 미적거리며 연금 개혁을 외면했다.
이번 추계에서 그 결과로 국민들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계산이 나왔다. 5년 전 개혁했으면 현행 보험료율(9%)에서 7.02%p만 올리면 됐으나 이제는 8.86%p를 인상해야 한다. 인상 부담이 26%가량 증가한 것이다.
국가 지도자가 꼭 손을 대야 할 국가 현안에 대해 최소한이라도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국민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주는지 이처럼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도 없다. 윤석열 대통령과 오는 4월까지 연금 개혁을 논의할 예정인 국회 연금특위도 유념해서 봐야 할 부분이다.
조선일보 사설
01.28 통계청장 없는 틈 타 청와대가 ‘비공개 통계 열람’ 조항 급조했다니
문재인 정부의 통계 조작 의혹에 대한 감사원 감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당시 정권이 외부 유출이 금지된 비공개 통계 자료를 다른 기관이 손쉽게 빼갈 수 있도록 해주는 예외 조항을 신설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2018년 3월 통계청장이 해외 출장 간 사이 통계청 차장의 대리 결재로 이 조항을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 통계청장이 무리한 지시에 따르지 않는 인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이 통계청장은 임기 중 해임됐다.
이렇게 급조한 예외 조항으로 맨 먼저 통계청에 비공개 자료를 요청한 사람은 홍장표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었다. 결국 청와대가 예외 조항 급조 주역이었던 것이다. 문 정부가 밀어붙인 ‘소득 주도 성장’ 정책으로 빈부 격차가 최악으로 벌어졌다는 통계 발표가 나자 바로 다음 날 홍 수석이 비공개 자료를 요청했다고 한다. 이 비공개 자료를 넘겨받은 국책 연구소 연구원이 통계를 입맛에 맞게 왜곡한 보고서를 만들어 청와대에 올렸고, 그는 석 달 뒤 통계청장으로 전격 발탁됐다. 문 대통령은 이런 보고서를 토대로 “소득 주도 성장과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고 황당한 주장을 했다.
국가 통계와 관련한 상식 밖 일은 문 정부 내내 끊이지 않았다. 통계청이 공표하기 전의 통계 자료도 이전 정부에 비해 최고 4배 이상 미리 넘겨받았다. 정권 입맛대로 통계가 왜곡되고 좋은 것만 선별 공개될 위험성을 막기 위해 공표 전 통계도 정당한 사유 없이는 정부 기관 등에 제공해서는 안 된다고 법에 규정돼 있다. 그런데도 문 정부는 법 취지를 무시한 채 마구잡이로 통계를 빼 갔다. 심지어 상·하위층 소득 격차가 더 벌어졌다는 통계가 나오자 소득 통계 조사 방식을 개편해 이전 통계와는 비교가 아예 불가능하게 만들기까지 했다.
나쁜 통계가 나오면 정책의 문제점을 따져보고 그 정책을 고치는 것이 정상적 국정이다. 문 정부는 대신 통계를 빼내고, 왜곡하고, 통계청장을 바꿨다. 국정 운영의 원칙을 허문 것이 비단 통계만이 아닐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1.30 결국 교육감직 박탈 위기 맞은 조희연의 기소상태 출마
전교조 해직교사 5명 불법 채용, 공수처 1호 사건
징역 1년6월에 집유 2년, 법원 “위법행위 구체적”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교육감직 상실에 해당하는 1심 선고 결과를 받았다. 조 교육감은 즉시 항소 의사를 밝혔지만 뒤집힐 가능성은 크지 않다. 서울중앙지법은 27일 조 교육감에게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며 “권한을 남용하고 교원 임용 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훼손했다”고 판결했다.
조 교육감의 실형은 충분히 예상됐다. 문재인 정부에서 출범한 고위공직자수사처의 수사 대상 1호로 세간의 주목을 크게 받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윤석열 대통령 후보에 대한 수사가 즐비한 공수처에서 조 교육감 사건이 1호가 된 것은 그만큼 사태가 심각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법조계도 일찌감치 그의 유죄를 예측했다. 조 교육감은 2018년 재선 직후 전교조 출신 해직교사 5명을 불법 채용한 혐의를 받았는데, 이 사건을 제일 먼저 고발한 것은 감사원이었다. 이후 공수처가 사건을 넘겨받아 2021년 12월 기소했다. 정치권에서도 공수처가 사실 입증이 확실한 사건을 골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재판부는 조 교육감이 전교조로부터 민원을 받은 뒤 채용심사에 적극 개입했다고 판단했다. 비서실장이 심사위원들에게 “○○○은 여러 우려가 있지만 끌고 가는 게 (교육)감님 생각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낸 점이 대표적이다. 재판부는 “채용에 부당한 영향을 끼쳐 실질적·구체적 위법행위를 했다”고 지적했다.
특별 채용된 5명 모두 선거 관련 불법 행위로 해직된 인물들이어서 교육계에서는 논란이 많았다. 특히 이들 중 1명은 2018년 교육감 선거에 출마했다 조 교육감과의 단일화를 위해 사퇴했다. 이 때문에 당시 특채가 대가성이 아니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시민들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을 사적으로 악용한 것도 문제지만, 뻔한 결과가 예상되는데도 2022년 지방선거에 출마한 점이 더 큰 잘못이다. 2015년 2심에서 벌금 500만원의 1심 선고가 유예돼 가까스로 살아났으면서도 반성은커녕 더욱 기만적인 행태로 유권자를 모독한 셈이다.
대법원 판결까지 조 교육감은 시간끌기로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 이를 막으려면 법원이 선고를 미루지 말고 결정을 빨리 내려줘야 한다. 보궐선거 때 나타날 혼란과 낭비의 정치적 책임 또한 조 교육감과 그를 후보로 내세웠던 세력이 짊어져야 할 몫이다.
서울시교육감은 90만 학생의 미래를 책임지는 자리다. 다른 선출직보다 한층 높은 도덕성과 품격이 요구된다. 교육감이 불법과 비리로 얼룩진다면 미래세대가 무엇을 보고 배우겠는가. 9년간 그를 믿고 지지한 학생·학부모·교사를 생각해서라도 조 교육감 스스로 하루 빨리 매듭짓는 게 옳은 길이다.
중앙일보 사설
01.31 김성태 “2019년 北리호남 만난 뒤 이재명 방북 위해 300만달러 송금”
쌍방울 김성태, 검찰서 2019년 대북송금 관련 진술

▲김성태(왼쪽에서 둘째) 전 쌍방울 회장은 2019년 1월 17일 중국 선양에서 열린 ‘한국 기업 간담회’에 참석했다. 이 간담회에는 안부수(첫째) 아태협 회장, 송명철(셋째) 북한 조선아태위 부실장, 이화영(넷째) 당시 경기도 평화부지사 등도 참석했다. 김 전 회장은 당시 이 부지사가 이재명 경기지사(현 민주당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을 바꿔줬다고 검찰에 진술했다고 한다./사진=노컷뉴스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2019년 북한 측에 총 800만 달러를 전달했다고 검찰에 진술한 것으로 30일 전해졌다. 김 전 회장은 이 가운데 500만 달러는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추진한 ‘북한 스마트팜 개선 사업’ 비용을 대납한 것이며, 나머지 300만 달러는 이 대표 방북(訪北) 추진과 관련해 북한 측이 요구한 돈을 줬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그동안 수원지검 수사팀은 김성태 전 회장이 북한 스마트팜 사업 비용으로 2019년 500만 달러를 중국으로 밀반출해 북한 측에 건네기로 하고 같은 해 1월 200만 달러, 11~12월 300만 달러를 북한 측에 전달했다고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검찰은 같은 해 4월에도 300만 달러가 북한 측에 건너간 정황을 포착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김 전 회장은 “2019년 1월 200만 달러, 4월 300만 달러가 스마트팜 사업 비용이고 같은 해 11~12월 보낸 300만 달러는 다른 돈”이라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김성태 전 회장은 2019년 11~12월 북한 측에 추가로 보낸 300만 달러에 대해 “이재명 대표의 방북을 위한 비용이었다”는 취지로 진술하며 당시 상황을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회장은 2019년 7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경기도와 대북교류 단체인 아태평화교류협회(아태협)가 공동 개최한 ‘아시아·태평양의 평화·번영을 위한 국제대회’에서 북한 대남공작기관인 국가안전보위부(현 국가보위성) 소속 리호남을 만났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김 전 회장이 “이재명 경기지사가 다음 대선을 위해 방북을 원하니 협조해 달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리호남이 “방북하려면 벤츠도 필요하고, 헬리콥터도 띄워야 한다”며 “500만 달러를 달라”고 했다고 한다. 이에 김 전 회장은 “그 정도 현금을 준비하기는 어려우니 300만 달러로 하자”고 했고 리호남도 이에 동의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재명 대표 측은 본지에 “헛웃음이 나올 정도의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2019년 1월 통화한 적이 있다”는 진술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9년 1월 16~19일 김 전 회장은 북한 광물 사업권 등을 따내려 당시 이화영 경기도 평화부지사, 안부수 아태협 회장 등과 함께 중국에 머물며 북한 측 인사를 만났다. 김 전 회장 등은 같은 달 17일 중국 현지에서 북한 측 인사들이 참석하는 ‘한국 기업 간담회’에도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이화영 전 부지사가 이재명 대표와 통화하면서 김 전 회장에게 전화를 바꿔줬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재명 대표와 김성태 전 회장은 서로 모르는 사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 대표는 지난 13일 유튜브 채널 ‘이재명’에서 “도대체 저는 김성태라는 분 얼굴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김 전 회장도 지난 17일 태국 방콕에서 귀국 비행기를 타기 직전 취재진에게 “이재명씨와 전화나 뭐 이거 한 적 없다”고 했다. 그런데 이후 이재명 대표의 말이 달라졌다. 이 대표는 지난 18일 KBS 9시 뉴스에 출연해 “누군가가 술을 먹다가 (김 전 회장과) 전화를 바꿔줬다는 얘기가 있는데 기억이 나진 않는다”고 말했다.
그에 앞서 검찰은 쌍방울그룹 관계자에게 “이재명 대표와 김성태 전 회장이 서로 통화했던 것으로 안다”는 취지의 진술을 이미 확보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회장도 태국에서 체포돼 국내로 호송된 뒤 검찰 조사에서 이 대표와 통화한 사실을 시인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이 대표 측은 “이미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이 대표로선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일이고, 지인이 전화를 바꿔주는 것은 이 대표 같은 유명 정치인에게 흔한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검찰은 김성태 전 회장이 2019년 총 800만 달러를 북에 송금했던 것이 이재명 대표 방북 등 정치적 목적을 위한 것이라고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 대표가 이화영 전 부지사를 통해 당시 북한 측에 자금이 건너간 상황 등을 보고받았다고 의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11월 15일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가 방한한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오른쪽)과 경기도 성남시 판교제2테크노밸리를 방문해 자율주행차 제로셔틀을 타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뒤로 송명철 조선아태위 부실장,이화영 전 평화부지사,김용(맨 오른쪽) 당시 경기도청대변인이 보인다./조선일보 DB
이재명 대표는 2019년 5월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 김영철에게 자신을 포함한 경기도 경제 시찰단을 북한에 초청해 달라는 편지 형식의 공문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철은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등을 지휘한 정찰총국장 출신이다. 그로부터 두 달 뒤 김 전 회장이 필리핀 마닐라에서 리호남을 만나 ‘이 대표 방북에 협조해 달라’며 300만 달러 제공을 약속하고 이후 그 돈을 북측에 보냈다는 것이다.
검찰은 2018년 후반기부터 경기도가 대북 사업을 적극 추진한 배경에 주목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9월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면서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과 최문순 강원지사는 방북 명단에 넣고 이재명 경기지사는 뺐다. 그 직후인 2018년 10월 당시 이화영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두 차례 방북하면서 경기도의 대북 접촉이 본격화됐다고 한다.
검찰은 이후 이화영 전 부지사가 김성태 전 회장을 접촉해 경기도 대북사업 경비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부지사는 2018년 7월부터 작년 7월까지 쌍방울로부터 3억2000만원 상당의 정치자금·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돼 있다. 이 전 부지사는 2011년부터 쌍방울그룹 고문 및 사외이사 등으로 활동하는 등 김 전 회장과는 가까운 사이로 알려졌다.
아태협 안부수 회장도 당시 북한 측 인사들과 접촉하는 등 ‘이재명 경기도’의 대북 교류사업 추진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안 회장은 2019년 3월 경기도의 대북 사업 보조금 7억6200여 만원과 쌍방울 등 기업에서 받은 기부금 4억8000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작년 11월 구속 기소됐다. 안 회장은 지난 대선 국면인 2021년 7월부터 아태협 임원과 회원 등을 중심으로 이 대표 대선 당선을 위한 비공식 조직을 만들어 활동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지난 18일 추가 기소되기도 했다. 그 조직은 ‘이재명 후보의 압도적인 대통령 당선을 위해 진력한다’는 등 구체적인 활동 지침을 공유한 것으로 조사됐다.
조선일보 표태준 기자
01.31 가스公 최연혜 사장 “탈원전 탓에 LNG 더 수입… 자본잠식 상태”

▲30일 대구 동구에 있는 한국가스공사 사옥에서 만난 최연혜 사장은 “지금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 세계가 가스, 에너지 대란으로 고통받는 비상 상황”이라며 “디폴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2분기 가스 요금 인상을 정부에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환 기자
“2020년 9월부터 작년 3월까지 총 8번 가스 요금 인상을 정부에 요구했지만, 번번이 묵살됐습니다.”
30일 대구 동구 한국가스공사 본사 접견실에서 만난 최연혜 가스공사 사장은 “국민들이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난방비 폭탄을 맞게 된 상황에 대해 천연가스 수급을 책임지는 가스공사 사장으로서 죄송하다”면서도 지난 정부의 에너지 정책 실패가 사태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일반 가정에서 쓰는 도시가스 요금은 2020년 7월 인하된 이후 국제 LNG(액화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하는 와중에도 1년 9개월 동안 동결됐다가 대선 직후인 작년 4월에야 인상됐다.
◇3월 말이면 미수금 12조원 이를 듯
최 사장은 미리 준비한 그래프를 꺼내 보이며 “2020년 7월 요금 인하 이후 주택용 요금이 가로로 일직선을 그리는 동안 오르락내리락하던 LNG 수입 원가는 2021년 9월부터 주택용 요금을 뚫고 가파르게 상승했다”면서 “이제는 판매 가격이 수입 원가의 절반 수준에 그치는 지경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가스공사 미수금은 3월 말이면 12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수금은 가스공사의 천연가스 수입 대금 중 요금으로 회수되지 않은 금액인데 사실상 손실이다. 미수금을 손실로 인식하면 가스공사는 자본잠식 상태다.
최 사장은 “(작년 12월) 취임해서 보니 가스공사는 겉으로는 흑자이지만, 안에는 미수금이라는 언젠가 터질 폭탄을 계속 안고 있었다”며 “골병이 들어가는데도 실상을 알리지 않으면서 소비자들이 문제를 체감하지 못하게 한 측면도 있다”고 했다. 그는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대금을 결제하지 못해 LNG 수입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가스공사에 따르면 12조원에 이르는 미수금을 1년 안에 해결하려면 4월부터 MJ(메가줄)당 19.69원(서울 소매 요금)인 현재 요금에서 20원을 더 올려야 한다. 최 사장은 “이 같은 인상안은 국민께 너무 큰 부담으로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언제까지 미수금을 해결할지는 정부와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탈원전… 결국 난방비 폭탄으로 이어져
최 사장은 지난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난방비 폭탄의 이유라고도 지적했다. 그는 “지난 정부에서 원전과 석탄을 동시에 감축하면서 연료비가 비싼 LNG 발전이 증가했고, LNG 수요가 기존 계획을 크게 웃돌면서 비용 부담이 커졌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가스공사가 계획했던 LNG 수입량은 3640만t이었는데 실제 960만t을 더 수입했다”며 “부족한 물량을 비싼 현물 시장에서 사오다 보니 수입 원가가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
최 사장은 전임 사장 시절 ‘한국수소공사’로 사명 변경까지 고려하면서 수소 사업에 과도하게 치우친 것도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최 사장은 “가스공사의 가장 중요한 역량은 LNG 도입인데 수소 사업을 강조하면서 전문 인력들이 뿔뿔이 흩어졌다”며 “LNG 도입본부에서 허리인 차장급은 정원의 40%밖에 안 돼 조직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했다. 그는 “수소는 분명히 미래 에너지이지만 아직 초기 단계로 불확실성이 너무 큰데 회사가 수소와 관련해 너무 많은 분야에 발을 들여놨더라”며 “앞으로는 수소 탱크와 같이 가스공사가 가장 잘할 수 있고, 실적을 낼 수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수소 사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철도 전문가 출신으로 에너지 분야 비전문가라는 지적에는 “지금 가스공사의 문제는 가스를 잘못 다뤄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 경영 판단의 문제”라며 “가스 전문가여야 가스공사 사장이 될 수 있다는 논리는 약사만 제약회사 사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 사장은 “12월 취임한 뒤 당장 급한 사채 발행 한도를 늘리고, 직원들 사기 진작과 조직 개편에 시간을 보냈다”며 “1월 가스 사용량이 12월보다 36%가량 늘어난 상황에서 다음 달 서민들의 요금 충격을 줄이기 위한 대책을 정부와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조재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