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소식/ 2022-7/
09.15 “수십년 읽힐 명문” 외신도 극찬했다, 젤렌스키 연설문 어떻길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운데)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러시아에 점령됐다가 최근 수복한 동북부 하르키우주 이지움에서 열린 국기 게양식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러시아를 향한 블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연설문이 글로벌 화제다. 더타임즈는 “우리 시대의 게티스버그 연설”이라고 극찬했다. “시적이고, 반항적이면서도 단호한 감정이 담겨 수십년간 읽힐 명문”이라고 했다. 연설문은 지난 11일 젤렌스키 대통령이 텔레그램에 게시했다.
조선닷컴이 번역한 전문은 <아래1>과 같다. <아래2>는 미국 CNN의 영문 번역문이다.
<아래1>
너희는 아직 우리가 하나의 민족이라고 생각하는가? 너희는 아직 너희가 우리를 겁먹게 하고, 무너뜨리고, 우리의 양보를 받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너희는 아직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가?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무얼 위해 살아가며, 우리가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가?
지금부터 내 입을 잘 봐라. 너희가 없으면 가스도 없다고? 너희 없이 살겠다. 너희가 없으면 빛도 없다고? 너희 없이 살겠다. 너희가 없으면 물도 없다고? 너희 없이 살겠다. 너희가 없으면 음식도 없다고? 너희 없이 살겠다.
추위, 배고픔, 어둠, 목마름조차 너희가 말하는 ‘우정과 형제애’만큼 무섭고 끔찍하지는 않다.
하지만 역사는 기어코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가스, 빛, 물, 음식을 가질 것이다… 그것도 너희 없이!
<아래2>
Do you still think that we are ‘one nation?’ Do you still think that you can scare us, break us, make us make concessions?
You really did not understand anything? Don’t understand who we are? What are we for? What are we talking about?
Read my lips: Without gas or without you? Without you. Without light or without you? Without you. Without water or without you? Without you. Without food or without you? Without you.
Cold, hunger, darkness and thirst are not as scary and deadly for us as your ‘friendship and brotherhood’. But history will put everything in its place. And we will be with gas, light, water and food ... and WITHOUT you!
조선일보 장상진 기자
09.22 러시아, 2차대전 이후 첫 군 동원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 대국민 연설에서 예비군 30여만 명을 소집하는 ‘부분적 군 동원령’을 발표하고 있다. 군 동원령은 소련 시절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다. 이 발표로 러 증시의 주가와 루블화 가치가 급락했으며, 국제유가는 치솟았다. [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처음으로 예비군 30여만 명을 소집하는 ‘부분적 군 동원령’을 내렸다. 러시아의 군 동원령은 소련 시절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다. 7개월째 접어든 우크라이나 침공(러시아에선 ‘특수군사작전’으로 부름)의 확전 및 장기화 우려에 이날 러시아 증시의 주가와 루블화 가치가 급락하고 국제유가는 치솟았다.
푸틴 대통령은 21일 대국민 TV 연설에서 “러시아와 러시아의 주권, (영토적) 통합성 보호를 위해 부분적 동원을 추진하자는 국방부와 총참모부의 제안을 지지한다”며 “이미 해당 대통령령에 서명했으며 소집은 오늘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30여만 명이 소집 대상이다. 서방과 우크라이나 측은 개전 당시 러시아군 투입 규모를 19만 명으로 추산했으며, 현재까지 사망·부상·탈영 등에 따른 병력 손실을 8만~9만 명가량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 측이 30여만 명을 훈련시켜 전선에 투입할 수 있는 무기·탄약·차량·숙소·보급품 공급 능력이 있는지는 미지수다. 우크라이나는 전쟁 초기 총동원령을 내려 현재 약 70만 병력을 가동하고 있다.
소집자들은 훈련 뒤 전선에 투입되며 계약제 군인 신분으로 급여를 받게 된다. 복무 기간은 군 복무 상한 연령에 도달한 경우, 건강상의 이유로 복무 불가 판정을 받은 경우, 재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경우 등을 제외하면 동원령 종료까지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은 “대학생 동원은 어떤 상황에서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 ‘핵 재앙’ 위협…러 증시·루블화 급락, 유가는 치솟아

▲지난 20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세워진 ‘러시아군 복무는 진짜 직업’이라고 적힌 모병 광고판. 푸틴 대통령은 예비군 30여만 명을 소집하는 군 동원령을 발동했다. [AFP=연합뉴스]
푸틴 대통령은 부분적 동원령임을 강조했지만, 파장은 컸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대표 주가지수인 MOEX 지수는 이날 모스크바 증시 개장 직후 한때 9.6% 급락해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가 그 뒤 마이너스 3%대를 유지했다. 러시아 루블화 가치도 장중 한때 달러당 63.1029루블로 전날보다 4.91% 떨어졌다. 반면에 에너지 위기가 심화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 유가는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기준 장중 한때 전날보다 3.2% 오른 배럴당 87달러에 육박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서방을 겨냥해 “서방의 반러 정책이 모든 선을 넘었다”며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푸틴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주요국 고위 인사들이 러시아에 핵 위협을 한다고 주장하며 이에 대해선 모든 무기를 동원해 방어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 발언을 하는 사람들에게 러시아도 다양한 파괴 수단을 보유하고 있음을 상기시키고 싶다”며 “위협받으면 우리는 분명히 러시아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가용한 모든 수단을 쓸 것이며, 이는 엄포가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핵무기로 우리를 협박하려는 사람들은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유사시 핵무기를 사용할 수도 있다는 위협으로 해석된다. 또 우크라이나군이 현재 러시아 통제하에 있는 자포리자 원전을 공격하는 걸 용납함으로써 서방이 ‘핵 재앙’을 부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앞서 20일엔 러시아 하원인 두마가 총동원령과 계엄령을 강화하는 형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군 복무 의무 이행을 거부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등 상관 명령에 불복종하면 최대 15년의 징역에 처할 수 있는 내용이다. 개정안은 21일 상원 격인 연방평의회에 상정됐으며 이를 통과하면 푸틴 대통령의 서명을 거쳐 발효된다.
러시아 정부는 지난 2월 24일 개전 이후 동원령 발령은 없을 것이라고 말해 왔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저항과 반격이 거세지면서 개전 뒤 점령했던 동부 루한스크주의 북쪽와 서남부 헤르손주의 일부까지 위협받자 동원령을 내릴 수 있다는 관측이 러시아에서 흘러나왔다.
벤 월리스 영국 국방장관은 21일 성명에서 “푸틴 대통령이 동원령을 내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긴 것은 우크라이나 침공이 실패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CNN이 전했다. 중국 외교부는 푸틴 대통령의 동원령 발동과 관련, “각 측이 대화와 협상을 통해 정전을 실현하기를 호소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전쟁 7개월째 자국군 손실이 5937명인 반면, 우크라이나 측 사망자와 부상자는 약 10만 명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미 국방부는 개전 이후 7만~8만 명의 러시아 군인이 숨지거나 부상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날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점령지 행정부들은 오는 23~27일 러시아 합병을 위한 주민투표를 치르기로 결정했다. 동부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 등 친러 세력이 독립을 선포한 지역 외에 점령지인 남부 자포리자·헤르손주 등 모두 4곳에서 실시된다.
한편 로이터통신은 지난 19일 익명을 요구한 미 국방부 관리를 인용해 “러시아 민간군사기업(PMC) 와그너(바그네르) 그룹이 유죄 판결을 받은 죄수 1500명을 대상으로 자원자를 모집해 우크라이나 전선에 보내려고 했지만 응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보도했다.
박소영·김홍범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09.22 "왜 푸틴 위해 죽나"…러 동원령에 '팔 부러뜨리는 법' 검색 급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군 동원령을 내린 21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경찰에 체포되는 시위대들. 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동원령 선포에 러시아 전국 곳곳에서 시민들의 거센 반대 시위가 잇따르며 아수라장이 됐다.
2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로이터통신 등 복수 외신에 따르면 이날 러시아 38개 도시에서 동원령 반대 시위가 벌어져 최소 1000명 이상의 시위대가 경찰에 체포됐다고 러시아 인권감시단체인 OVD-인포가 집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군 동원령을 내린 21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이르쿠츠크, 예카테린부르크 등 도시에서 반대 시위가 잇따랐다. AP=연합뉴스

▲푸틴 대통령의 동원령에 '전쟁을 멈춰라'라는 피켓을 들고 반대 시위에 나선 시민. AP=연합뉴스
수도인 모스크바에서는 시내 중심가에 모인 시위대가 “동원령 반대“ 구호를 외치다 최소 50명이 경찰에 구금되며 아수라장이 됐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이르쿠츠크, 예카테린부르크 등 도시들에서도 반대 시위가 잇따랐다고 러시아 독립언론 메두사는 전했다.
앞서 푸틴 대통령은 이날 국영TV를 통해 방영된 대국민 연설을 통해 부분적 동원령 시행을 알렸다. 국방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대학생을 제외한 18~27세 남성 중 1년간 의무 군 복무를 마친 예비역 30만명이 징집 대상이라고 밝혔다. 러시아의 전체 예비군 병력은 약 2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군 동원령을 내린 21일(현지시간)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에서 경찰에 체포되는 시위대들. AP=연합뉴스
이번 시위를 주도한 러시아 청년 민주화 운동단체인 ‘베스나(vesna)’ 등 젊은 층은 “푸틴을 위해 죽을 필요는 없다. 당신은 러시아에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하다”며 “당국에 당신은 아무 의미도, 목적도 없는 총알받이일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이번 동원령에 징집대상이 된 젊은 예비역 남성들이 대거 시위에 참여하면서 시위대 규모가 커진 것으로 알려졌다.
또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면서 ‘팔 부러뜨리는 방법’, ‘징병을 피하는 방법’ 등에 관한 검색량이 구글·러시아 검색 사이트 얀덱스에서 급증했다.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도 입대를 회피하기 위한 뇌물은 성행했지만, 앞으로는 훨씬 더 흔해질 것이라고 영국 가디언은 내다봤다.
동원령 발표 이후 러시아에선 시민들의 반발 외에도 국외 탈출 러시가 잇따르고 있다. 모스크바에서 무비자로 갈 수 있는 튀르키예, 아르메니아, 아제르 바이잔 등으로 가는 항공편이 매진되기도 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한지혜 기자 han.jeehye@joongang.co.kr
09월 22일 “푸틴을 전장에!”…러, 동원령 반발 38곳서 ‘반전 시위’

▲21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정부의 우크라이나 전쟁 증파를 위한 예비군 동원령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가했던 한 청년이 경찰에 강제 연행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인권단체 “1311명 체포·구금”
강제징집 피하려 탈출 행렬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30만 명의 예비군을 동원하겠다고 밝힌 21일(현지시간) 러시아 곳곳에선 반전(反戰) 시위가 펼쳐졌다. 강제 징집을 피하려는 사람들의 탈출 행렬도 이어지는 등 푸틴 대통령의 동원령 선포가 잠잠하던 러시아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국제인권단체 ‘OVD-Info’는 이날 러시아 38개 도시에서 동원령 반대 시위가 벌어져 1311명이 체포됐다고 밝혔다. 시위 현장에선 “푸틴을 전장으로 보내자!” “나는 푸틴을 위해 죽지 않는다!” 등의 구호가 터져 나왔다.
반전 단체 ‘베스나(Vesna)’도 성명을 내고 “동원령은 우리의 아버지와 형제, 남편인 수많은 러시아인이 전쟁의 고기 분쇄기에 끌려들어 간다는 의미”라고 비판했다.
푸틴 대통령은 앞서 대국민 TV 연설을 통해 예비군 30만 명의 우크라이나 전쟁 투입을 지시했다. 이어 “핵무기로 우리를 협박하려는 자들은 바람이 그들을 향해 방향을 틀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며 핵전쟁까지 시사했다.
러시아는 크게 동요하는 분위기다. 영국 가디언은 “동원령 발표 이후 러시아인의 국외 탈출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며 튀르키예(터키) 이스탄불과 아르메니아 예레반,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아제르바이잔 바쿠 등의 직항편이 매진됐다고 보도했다.
각국 정상들의 비판 메시지도 쏟아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 연설에서 “푸틴 대통령은 핵무기 비확산 체제의 의무를 무모하게도 무시하며 유럽을 상대로 공공연한 핵 위협을 했다”고 비난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munhwa.com
09.23 "아빠 제발 돌아오세요" 눈물의 이별…러 30만 동원령 비극
러시아가 2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전장에 보낼 예비군 징집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0여만 명 규모의 부분 동원령을 내린 지 하루 만이다.

▲징집되는 러시아인들과 가족들이 22일(현지시간) 눈물을 흘리며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소셜미디어에는 러시아 곳곳에서 동원 대상자들이 가족과 눈물의 이별을 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올라오고 있다. BBC 기자가 공개한 영상에선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며 "아빠 안녕, 제발 (무사히) 돌아오세요"라고 말한다.
AP통신에 따르면 동부 시베리아 도시 네륜그리의 입영센터로 추정되는 한 종합운동장 건물이 나온 영상도 있다. 소집 대상자들은 이곳에서 버스에 오르기 전 가족을 부둥켜안고 침울하게 작별 인사를 나눴다. 모스크바 입영센터에서 촬영된 다른 영상에선 한 여성이 가족으로 보이는 남성들의 몸에 성호를 그으며 눈물을 쏟았다고 통신은 전했다.
자신의 이름을 드미트리라고 밝힌 25세 남성은 러시아 언론에 자신이 아직 학생 신분이기 때문에 이렇게 빨리 소집될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침에만 해도 아무런 이야기가 없었는데, 갑자기 소집 통지를 받았다"며 "오후 3시까지 여기(입영센터)로 오라는 내용이었다. 여기서 한 시간 반가량 기다렸더니 입영 장교가 와서 당장 떠나야 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러시아 언론은 러시아군의 발언을 인용해 부분 동원령 발표 후 소집 통지를 보내기 전에 약 1만 명이 자원 입대했다고 보도했다.
엑소더스..."조지아 국경 통과에 7시간"
그러나 동원령을 피해 국외로 탈출하려는 행렬은 늘어나는 추세다. 22일 BBC에 따르면 러시아인이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는 조지아의 국경 검문소엔 5㎞에 달하는 차량 대기 행렬이 형성됐다. 한 목격자는 이날 러시아·조지아 국경을 통과하는 데 7시간이 걸렸다고 전했다. 소집 대상자인 한 남성은 "푸틴 대통령이 동원령을 발표하자마자 짐도 아무것도 챙기지 못하고, 여권만 들고 국경으로 향했다"고 말했다.
핀란드·카자흐스탄·몽골 국경에서도 긴 줄이 목격됐다고 도이체벨레(DW)가 전했다. 튀르키예·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세르비아 등 러시아인이 무비자로 갈 수 있는 나라로 가는 항공편은 며칠치가 매진된 상태다. 로이터통신은 모스크바에서 두바이로 가는 가장 싼 비행기표 가격이 30만 루블(약 718만 원)에 달한다고 전했다.

▲21일 러시아와 조지아 국경에 차량 대기 행렬이 서 있다. 부분 동원령을 피해 러시아를 탈출하는 이들로 조지아 국경은 혼잡했다고 외신은 전했다.로이터=연합뉴스
22일 전쟁에 반대하는 러시아인들의 국외 탈출을 돕는 비정부기구(NGO) '자유 세계로의 가이드' 관계자는 푸틴의 동원령 발표 이후 웹사이트 접속자가 150만 명이 넘었으며 지금까지 최소 7만 명 이상의 러시아인들이 국외로 탈출했거나 떠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고 추정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 시작 당시보다 훨씬 더 큰 엑소더스(탈출)을 목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체포된 시위자들에도 징집 통보
21일 러시아 38개 도시에서 발생한 예비군 부분 동원령 반대 시위로 최소 1300여 명이 체포된 가운데 인권단체 OVD-인포는 이들 중 일부가 러시아 정부로부터 징집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같은 시위자들 대상 징집 명령에 대해 "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말했을 뿐 부인하진 않았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영상 연설을 통해 러시아인들에게 동원령에 대한 저항을 촉구했다. 그는 러시아어로 "더 많은 러시아군의 희생을 원하지 않는다면, 저항하거나 투쟁하라. 달아나거나 우크라이나군에 항복하라"고 말했다.
그는 또 그간 전쟁 반대 목소리를 내지 않았거나 징집에 굴복한 러시아인들을 향해 "당신들은 이미 우크라이나인들에 대한 살인·고문 등 모든 범죄의 공범이다. 그동안 침묵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독일 "망명 가능" EU "공동 대응 모색"
동원령을 피한 러시아인들의 탈출이 이어지자 유럽 국가들은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독일의 낸시 페저 내부부 장관은 22일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강압적으로 위협받는 탈영병들은 원칙적으로 독일에서 국제적인 보호를 받는다"고 말했다. 이어 "푸틴 정권에 용감하게 대항해 큰 위험에 처한 사람은 누구나 독일에서 정치적 박해를 이유로 망명을 신청할 수 있다"고 밝혔다.
마르코 부쉬만 독일 법무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분명히 많은 러시아인들이 고국을 떠나고 있다"며 "푸틴의 길을 증오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독일은 환영한다"고 전했다.
반면 동원령 발표 직후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발트 3국은 징집을 피해 달아나는 러시아인들의 망명 신청을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 핀란드는 러시아인에 대한 관광 비자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
이처럼 입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유럽은 공동 대응을 모색한다. 아니타 히퍼 유럽연합(EU) 이민 담당 대변인은 "러시아에서 부분 동원령을 피해 탈출한 이들은 유럽 국가에 망명을 신청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입국 요청은 사례별로 검토되어야 한다며 EU 차원의 공동 입장을 찾기 위해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09.28 조지아 국경 앞 16㎞ 줄지은 차량들…“러시아 탈출하는데 48시간”

▲미국 민간 위성 영상 업체 막사 테크놀로지가 공개한 러시아-조지아 국경 인근 위성사진. /트위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0만명 규모의 예비군 동원령을 내린 이후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조지아로 향하는 차량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미국 CNN은 26일(현지시각) 미국 민간 위성 영상 업체 막사 테크놀로지의 위성 사진을 입수해 공개했다. 이 사진을 보면 조지아 북부의 국경 검문소를 통과해 러시아를 빠져나가려는 차량 행렬이 길게 이어져 있다. 줄은 한방향으로만 이어져 있으며 반대쪽 도로는 비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CNN은 국경에서 약 16㎞ 떨어진 곳까지 차량들이 줄지어 서있다면서 “위성사진에 담긴 곳보다 북쪽 지역에서도 차량 정체가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인근 지역에서 찍힌 영상 등을 보면 수백대의 차량이 모여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며 “목격자들은 조지아로 넘어가기 위해 최대 48시간을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고 했다.
CNN은 조지아 정치권 일각에서는 비자 도입 및 국경 폐쇄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으나, 현재까지는 국경이 열려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핀란드로도 탈출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CNN에 따르면, 핀란드 국경경비대는 지난 25일 육로 국경을 통해 핀란드에 입국한 러시아인의 수가 그 전주 일요일의 두배에 달한다고 밝혔다.
국경수비대 책임자인 마티 피케니티는 트위터에 “25일 8314명의 러시아인이 핀란드-러시아 국경을 통해 입국했다”며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 동안에는 1만6886명의 러시아인이 도착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들은 (핀란드를 거쳐)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며 “일요일에 출국한 러시아인의 수는 5068명”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김가연 기자
09.28 가스관 잠근 러시아, 원전 확대로 맞선 유럽
유럽 vs 러시아 에너지 치킨게임

김동호 논설위원
스칸디나비아반도 동쪽의 핀란드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 서부 유전지대는 최근 끝없는 불기둥을 내뿜고 있다.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러시아는 매일 1000만 달러(약 145억원)어치의 천연가스를 태워 없애고 있다. 태우지 않았다면 고스란히 독일로 수출되었을 천연가스다.
매장량이 막대한 러시아 천연가스는 땅속에서 끊임없이 솟구친다.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경제 봉쇄로 가스 수출을 중단하면서 남아도는 가스 소각이다. 매일 소각하는 천연가스 규모는 434만㎥에 달하기 때문에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막대하다. 과학자들이 북극의 빙하 해빙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할 정도다.
유럽, 에너지위기 속 결속력 강화
가로등 끄기 등 절전 캠페인 호응
프랑스, 원전 축소 정책 철회키로
독일에 가스 주고 전기와 맞교환
전쟁 종식돼도 러 의존도 낮아져
올겨울 지나면 승패 판가름날 듯
불기둥이 솟구치는 곳은 핀란드 남동부에서 가까운 러시아 제2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멀지 않다. 이곳은 발트해 동쪽 연안으로 유럽으로 보내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이 출발하는 곳이다. 노드스트롬I이 오래전부터 연결돼 있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에는 신설되는 노드스트림II 공사가 한창이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상황이 급변하게 됐다.
러시아 엄포 놓고 있지만 힘 빠져

세계경제전망
그동안 독일은 녹색당을 껴안고 연립정부를 꾸려오는 바람에 탈원전에 전력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 독일은 러시아 가스 수출의 최대 고객이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서방이 러시아 제재에 나서면서 러시아와 유럽 간 에너지 거래는 사실상 중단됐다. 양측은 서로 ‘보이콧’ 중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양측의 서로 다른 이유를 내세우고 있다. 러시아는 에너지 볼모가 된 유럽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수출 중단 카드를 던졌고, 유럽은 피 묻은 에너지를 수입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서로 팔지도 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면서 서방과 러시아는 에너지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러시아가 흔들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러시아는 경제의 핵심기둥인 에너지 수출이 가로막히면서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그동안 러시아에서 파이프라인을 통해 유럽에 천연가스가 도달하는 기간은 이틀에 불과했다. 중국과 인도가 러시아를 돕는 것처럼 보이지만 별 도움이 안 되고 있다. 중국으로 연결된 파이프라인은 거리가 먼 탓에 러시아산 천연가스가 중국에 도달하는 데는 35일이 소요된다. 더구나 중국이나 인도는 장삿속이 밝기 때문에 러시아의 어려운 처지를 이용해 가격 후려치기에 나서고 있어 제값을 받지도 못하고 있다. 러시아는 시간이 갈수록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다.
결국 러시아는 미국의 벽을 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NYT)는 “2014년 러시아는 크림반도 침공 때 서방의 경제 제재를 당하면서도 달러 부족 때문에 딱히 대응하지 못하고 낮은 자세를 유지해야 했다”면서 “이번에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앞서 달러부터 대규모로 확보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의 외환보유액은 우크라이나 침공 무렵 세계 4위에 달하는 6430억 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지난달 말에는 5668억 달러로 줄어든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더구나 이중 상당액이 미국에 의해 동결돼 있어 사용이 불가능하다.
종이호랑이 나토도 전력 강화
유럽은 에너지 비상에 걸렸지만, 똘똘 뭉치고 있다.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러시아의 침공 초기엔 유럽의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가 높아 유럽연합(EU)의 결속이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전망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하지만 유럽은 우려를 깨고 결속력을 과시하고 있다. 사실상 종이호랑이로 보였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NATO)는 전력을 강화하고 있다. 6월 29일 스페인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선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이 확정됐다. 러시아는 거듭 핵전쟁을 거론하며 위협하고 있지만, 나토의 연대를 막지 못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의 결속이 EU의 단결을 주도하고 있다. 이에 맞춰 유럽 언론의 단결 메시지도 단호해졌다. FT는 사설을 통해 “러시아의 에너지 전쟁에 맞서 EU가 단일대오를 갖춰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푸틴이 가스 밸브를 계속 걸어 잠근다고 엄포를 놓고 있지만, EU의 리더들이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에서 벗어나는 방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고 했다. 러시아가 천연가스를 앞세운 자원 무기화로 유럽 각국을 위협하고 있지만, 오히려 EU의 단결력만 높이고 있는 셈이다.
프랑스는 원전 축소 방침을 철회하고 원전 발전 규모를 대폭 늘리고 나섰다. 무엇보다 천연가스 사용량의 55%를 러시아에 의존해 온 독일의 방향 전환이 주목된다. 올라프 숄츠 총리는 국방비 지출 비중을 두 배로 늘리고, 석탄 발전을 늘리고 있다. 녹색당이 여전히 제동을 걸고 있지만, 3기밖에 안 남은 독일 내 원전 가동의 연장도 조심스럽게 검토되고 있다.
독일은 앙겔라 메르켈 정부 시절이던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원전의 단계적 폐쇄를 약속했다. 올 연말 마지막 3기의 가동 종료를 끝으로 원자력 발전을 중단할 예정이었다. 정작 일본은 원전 가동을 확대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치솟는 에너지값 때문에 다른 대안이 없다”고 보도했다.
카풀 활성화, 대중교통 요금 할인
결국 러시아는 더 깊은 궁지로 몰릴 가능성이 커졌다. 푸틴은 서방이 경제 제재를 풀지 않으면 유럽으로 가는 가스관을 완전히 걸어 잠그겠다고 엄포를 놓고, 그래도 먹히지 않자 핵 사용 위협과 함께 병력 30만명 동원령을 내렸지만, 유럽 각국은 내친김에 탈(脫)러시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유럽 국가들로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철수하고 전쟁을 끝내지 않는 한 러시아에 대한 제재는 물론이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도 중단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거듭 강조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5일 숄츠 총리와 화상 회담 후 “우리 두 나라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전기와 가스를 함께 나누어 쓰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상황에 따라 프랑스는 독일에 가스를, 독일은 프랑스에 전기를 보내는 방식이다. 두 나라 모두 에너지 부족이 극심하지만, 프랑스는 전기 난방이 42%, 독일은 가스 난방이 50%에 이르기 때문에 서로 맞교환해 부족을 해소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프랑스 현지 르포를 통해 ‘에너지 긴축 시대’의 현장을 생생히 전달했다. 가로등을 꺼 놓아 컴컴해진 도시의 분위기를 전달하는 흑백 사진 한 장은 러시아에 대한 유럽의 단호한 결의를 암시하는 것 같았다. 공장들도 핵심 영업시간이 아니면 바로 전등을 끄고 있다. 이 같은 프랑스의 에너지 절약 운동은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50년 만이다. 겨울에는 실내 난방 온도를 18도로 유지하라는 정부 캠페인도 강화되고 있다. 독일을 비롯해 유럽 주요국에서 비슷한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근래 사라졌던 카풀이 다시 활성화하고 대중교통 할인요금제를 도입한 유럽 국가들도 늘어나고 있다. 프랑스의 에너지 절약 운동은 상당한 효과를 보고 있다. 지난달 유로존 전체의 물가상승률은 9.1%에 달했으나 프랑스는 6.5%에 머물렀다. 유럽 최대 원자력 발전소 EDF를 보유한 효과도 톡톡히 보고 있다. 원전을 줄여나가려던 프랑스는 EDF를 다시 국유화해 원전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자원의 무기화’ 위험성 가속
미국은 어부지리를 얻고 있다. 미국 석유회사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개시되자 일제히 러시아 유전 개발 사업에서 손을 뗐다. 수조 원에 달하는 자산을 포기하는 중대한 결단이었지만, 이들 기업의 주가는 큰 충격을 받지 않았다. 언제 사업이 중단될지 모를 독재국가에선 사업을 접는 게 오히려 기업 전망을 밝게 하면서다.
더구나 미국은 러시아산이 국제 에너지 시장에서 빠져나간 만큼 매출을 늘리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미국의 요청에도 오히려 러시아를 두둔하면서 증산에 협조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오히려 러시아산 가스를 사들이며 러시아 편을 들고 있다.
물론 푸틴의 무모한 도박과 유럽의 결속이 맞부딪히는 이 상황의 결말은 예단하기 어렵다. 러시아는 전쟁에서 물러나는 순간 패전과 함께 정권 몰락 위기에 몰리게 되고, 유럽은 자원 무기화의 위험성을 절감한 만큼 역시 물러설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독일·프랑스·영국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 뒤에서 미국이 든든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치킨게임의 균형추가 어느 쪽으로 기울어질지는 난방유 부족 사태가 심각해질 올겨울을 지나봐야 윤곽이 드러날 것 같다.
중앙일보 김동호 논설위원
10.04 울지마, 디미
‘디미’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지우즈킨 디미트로는 우크라이나인입니다. 우크라이나의 음악 명문가 출신인 그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입니다. 그는 서울시립합창단 상임 단원을 지낸 김문수 메조소프라노와 인사동에서 버스킹을 하고 있습니다.
오래전에 한국에 들어와 국립오케스트라와 서울 팝스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던 디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조국이 전쟁 상태에 빠지자 졸지에 난민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황급히 우크라이나로 들어가 어머니와 여동생을 스위스로 대피시키고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서방 세계의 지원과 우크라이나의 반격으로 전황이 다소 호전되자 어머니는 수도 키이우로 귀환했다고 합니다. 살던 집이 다행히 파괴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크라이나에 펼쳐진 지옥도
조국을 탈출하는 러시아인들
시인협회, 난민 돕기 바자 열어
그가 보여주는 사진들은 언론에서는 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어느 러시아 병사의 시신은 상반신이 아예 없었습니다. 탱크에서 탈출하려다 숨진듯한 시신은 탱크의 뚜껑에 걸쳐져 있었습니다. 이 정도로 참혹한 사진은 언론에서 아예 싣지 않거나, 잘 보이지 않게 해서 보도하지요. 사망자가 워낙 많아 시신들을 가매장 상태로 묻어둔 것을 개들이 파먹기도 한다고 합니다.
전쟁의 양상이 처참해지자 양측의 증오심은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러시아군은 포로가 된 우크라이나 병사를 거세시킨 뒤 죽이는 경우도 있다고 언론은 전하고 있습니다. 보복과 보복이 반복되는 지옥도가 우크라이나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꿈많던 젊은이들을 이렇게 상대를 증오하는 악마로 만든 것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디미는 친구의 20%가 전사했다고 밝히면서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비쳤습니다. 그러나 아내와 아들이 있는 한국이 그의 삶의 터전입니다. 최근 코로나19 상황이 다소 진정세를 보이자 폴란드를 여행하고 돌아온 한 지인으로부터 아름다운 우크라이나 여성들과 어린이들이 거리를 방황하고 있더라는 참상을 전해 듣기도 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국제 사회의 비난 여론이 거셉니다. 영국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 때 러시아와 벨라루스 그리고 미얀마를 초청하지 않았습니다. 천연가스의 대부분을 러시아로부터 공급받던 유럽 국가들은 겨울을 앞두고 원자력발전 재가동 등 다른 공급 루트를 찾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비극은 우리에게 아픈 기억을 소환합니다. 대륙 국가인 우크라이나인들은 그래도 이웃 나라로 피난이라도 가능하지만 70년 전 한국인들은 육로로 피신할 수 있는 이웃도 없었습니다. 만약에 부산마저 무너졌다면 바다로 뛰어들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 절박했던 시기에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우리를 건져주었던 우방들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크라이나의 저항이 의외로 강경해 일부 피점령 지역을 수복하기에 이르자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마침내 예비군 동원령을 내렸습니다. 그만큼 전황이 급박하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이에 항의하다 끌려가는 모스크바 시민의 모습이 처절합니다. 징집을 피해 해외로 탈출하려는 행렬도 줄을 잇고 있습니다. 러시아인이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는 조지아 국경 검문소의 차량 대기 행렬이 5㎞에 달했으며, 모스크바에서 두바이로 가는 가장 싼 비행기표 가격이 30만 루블(718만원)까지 치솟았다고 합니다. 이런 해외 탈출 러시아인이 수십만 명에 이른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습니다. 푸틴은 법을 고치며 징집 기피자는 엄벌에 처하겠다고 위협합니다. 점령지에 대한 주민 동의 투표를 사실상 공개 상태로 치르곤 징집하겠다 하니 우크라이나인들끼리 싸우는 상황으로 몰리게 생겼습니다. 헤어날 길 없는 죽음과 공포의 수렁으로 양국 국민들은 빠져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은 경제에 나타났습니다. 세계 경제는 침체의 늪에서 허덕입니다.
푸틴은 과연 우크라이나에 핵무기 공격을 할까요? 만일 그런다면 서방 세계는 핵으로 러시아를 응징할 수 있을까요? 3차 세계대전의 불길한 전조마저 어른거립니다. 한 사람의 야망이 세계를 전쟁의 불길에 휩싸이게 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그러하였습니다.
우크라이나, 아프가니스탄, 미얀마 등지에서 난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 새로운 난민들은 국제 사회의 큰 문제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사)한국시인협회는 국내외 난민들을 돕기 위한 바자를 10월 15일(토), 16일(일) 양일간 서울 남산 문학의 집에서 엽니다. 이 바자에는 시인들뿐 아니라 각계각층의 인사들도 참여합니다. 기증된 물품들을 판매한 수익금은 유엔난민기구에 전달할 예정입니다. 울지마, 디미. 넌 혼자가 아냐.
중앙일보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10월 06일 두 개의 프로파간다
‘전쟁의 첫 희생자는 진실’이라는 말이 있다. 진실보다 중요한 것은 전황. 우크라이나 전쟁도 마찬가지다. 가장 먼저 희생된 진실은 ‘전사자수’. 양국 모두 자국의 피해는 되도록 감추려 하고, 상대의 피해는 턱없이 과장한다.
러시아군은 개전 이후 이제까지 자국 병사 6000여 명이 전사했다고 발표했다. 우크라이나군의 집계는 다르다. 러시아군의 전사자수가 10월에 들어와 이미 6만 명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진실은 아마도 6000과 6만 사이 어딘가에 있을 게다.
프로파간다 없는 전쟁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지상의 포격전 만큼이나 치열한 것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선전. 화력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선전전의 측면에서는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을 압도한다. 이 우위는 어디서 나올까?
러시아는 왜 싸우는지 명분 없어
‘조국 전쟁’ 허황한 망상으로 세뇌
우크라이나, 지키려는 명분 뚜렷
젤렌스키의 탁월한 설득도 한몫
가장 큰 원인은 ‘명분’일 게다. 우크라이나의 명분은 단순하고 명확하다. 병사와 국민들에게 이 싸움을 왜 해야 하는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이웃 나라가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침략을 해왔다. 당연히 총을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반면 러시아는 자국군 병사들에게 ‘왜 싸워야 하는지’ 설명해 주지 않았다. 러시아 병사들은 3일 안에 끝난다는 ‘특수군사작전’에 동원됐다고 믿었고,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고서야 비로소 자신들이 전쟁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명분이 없는 자리는 망상으로 채울 수밖에 없다. ‘미국과 나토가 우크라이나를 앞세워 러시아를 절멸시키려 한다.’ 러시아의 프로파간다는 대부분 이 지정학적 망상의 반복적 주입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설득’이라기 보다는 ‘세뇌’에 가깝다.
‘프레임’ 전략도 사용된다. 대부분의 러시아인들은 나치 독일을 물리친 영광스런 ‘조국 전쟁’의 추억에 젖어 있다. 우크라이나는 아조프 연대와 같은 네오나치들의 지배하에 있으며, 이들을 물리치는 것이 곧 제2의 조국전쟁이라는 것이다. 온 국민이 이 허황한 망상 속에 산다 하더라도 ‘전장’의 병사들은 현실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전장의 자식이 고국의 부모에게 아무리 실상을 알려도 부모마저 제 자식의 말을 믿지 않으려 한다. 세뇌란 게 이렇게 무섭다.
우크라이나 프로파간다의 또 다른 핵심은 젤렌스키라는 탁월한 연설가의 존재다. 그는 매일 저녁 연설을 통해 참호 속의 병사들을 격려하고, 방공호 속의 국민들을 위로하고, 전방의 병사와 후방의 국민을 하나로 단합시킨다. 유엔 총회와 주요 의회의 연설을 통해 군사적 지원을 얻어낸 것도 그의 연설. 로고스·에토스·파토스를 고루 갖춘 그의 연설은 ‘푸틴의 총보다 강하다’는 평을 들으며 외국의 지원을 얻어내고 러시아를 고립시키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연출의 방식도 주목할 만하다. 젤렌스키는 늘 카키색 군용 티셔츠를 입고 연설을 스마트폰으로 중계한다. 때로는 격무에 지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때 그는 최고 권력자가 아니라, 일반 국민처럼 전쟁에 지친 한 사람의 인간일 뿐이다.
이것과 대비되는 것이 푸틴의 연출이다. 그는 온갖 휘황찬란한 장비와 장치를 동원해 자신을 영웅으로, ‘현대의 짜르’로 연출하기를 좋아한다. 방송용 분장에 1000만 원이 넘는 명품 옷들을 걸치고 거의 종교적 ‘제의’ 수준의 인위적 연출을 즐긴다.
마지막 요인은 언론 정책의 차이다. 전쟁 중에도 우크라이나의 언론은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언론은 ‘전장의 자국 병사를 위험에 빠뜨리는 보도는 삼간다’는 준칙만 지킬 뿐, 보도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한다. 반면, 러시아에는 독립언론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통령에 비판적인 언론인들은 이미 나라를 떠났다. 논조의 자유를 포기한 대가로 관영매체들은 전장에서 취재의 자유를 마음껏 누린다. 병사들의 안위 따위는 염려할 필요가 없다.
러시아군의 활약상을 담은 프로파간디스트들의 부주의한 보도는 우크라이나군에게 반격에 필요한 귀중한 정보를 제공해왔다. 그 보도들 덕에 상륙함이 침몰하고, 첨단 자주포가 파괴되고, 용병그룹의 본부가 하이마스에 공습을 당했다.
결국 국민의 뇌 속에 심어줄 망상이 실제의 전황, 현실의 병사들보다 중요했던 것이다. 그 망상이 얼마나 강력한지 키이우에서 철수를 하고, 하르키우에서 후퇴를 해도 러시아 국민들은 이를 ‘패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망상의 효과가 오래 가겠는가. 이번의 리만 철수는 프로파간다로도 가릴 수 없었던 모양이다. 늘 승전보만 전하던 관영매체들조차 이제는 패배를 인정한다. 물론 그 책임은 푸틴이 아닌 전장의 장군들에게 돌아간다.
프로파간다가 꼭 진실과 대립되는 것은 아니다. 진실이 희생되는 전장에서조차 효과적인 것은 사실에 입각한 설득이지, 거짓에 의존한 세뇌가 아니다. 러시아의 패배는 이미 프로파간다의 실패 속에 예고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국의 정치는 전쟁이다. 그러다 보니 프로파간다만 난무한다. 그런데 두 당의 프로파간다 모두 실패한 러시아의 것을 닮았다. 성공한 프로파간다의 요체는 논리·윤리·미학에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중앙일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월간조선 10월 호
스티븐 케이시 LSE 교수가 말하는 루스벨트 리더십
“국제질서 파괴에 대한 반발이 루스벨트 전쟁 리더십의 動因”
⊙ 중국 침략하는 일본 견제하던 1930년대 루스벨트와 중국 견제해야 하는 바이든 흡사
⊙ “바이든, 지지 기반 확고하던 루스벨트보다 한국전쟁 이후 부정적 여론 직면했던 트루먼과 비슷”
⊙ “루스벨트, 여론 살필 때 지지율이 아니라, 반대자와 그들의 생각이 무엇인지 살펴”(딕 모리스)
⊙ “전쟁의 우선순위 결정, 인재 등용 탁월”
⊙ “공화국·종교·문명 보존, 고통받는 인류 해방” 같은 보편적 가치를 전쟁의 목적으로 제시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 現 워싱턴 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1933년부터 11년간 라디오 방송 〈노변정담〉을 통해 국민과 소통했다. 사진=미 국립문서청(퍼블릭 도메인
에이브러햄 링컨, 조지 워싱턴,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베스트 3’ 대통령이다. 링컨·워싱턴·루스벨트 세 명의 대통령은 파란만장했던 미국 정치 무대의 핵심 주인공이다. 미국 시민들은 물론 정치계·학계 모두가 공인하는 대통령 리더십의 모델이기도 하다. 흥미롭게도, 세 명의 대통령에 대한 미국인의 인기 평가는 남녀노소 관계없이 대동소이하다. 수많은 여론조사의 대략 9할 정도는, 링컨 1위, 워싱턴 2위, 루스벨트 3위로 굳어져 있다. 링컨은 내전(內戰)을 극복한 통합 지도자로, 워싱턴은 독립을 획득하고 왕정(王政)이 아닌 민주주의체제를 수립한 인물로, 루스벨트는 경제공황을 극복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 리더로 해석되고 있다.
2022년 세계는 《성경》에도 등장하는 ‘아마겟돈(Armageddon)’, 즉 지구 종말기에 벌어지는 최후의 전쟁에 비견될 상황이다. 이미 7개월째 접어든 우크라이나 전쟁과 초읽기에 들어간 중국의 대만 침략 가능성 때문이다. 미중(美中) 디커플링(Decoupling)의 영향이 글로벌 구석구석 밀려들고 있다. 에너지와 식량 가격 급등도 일상화되고 있다. 마구 찍어낸 국채(國債)를 통한 퍼주기 예산으로 버티고 있지만, 미국 달러가 유동성을 줄이면서 여러 나라가 국가 부도나 외환(外換)위기를 겪게 될 전망이다.
미국의 베스트 3 지도자 가운데 2022년 상황을 해결해낼 최적(最適)의 인물은 누구일까?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답이 될 듯하다. 남북화합의 링컨이나 국부(國父) 워싱턴은 미국과 미국인 만들기, 즉 ‘네이션 빌딩(Nation Building)’ 지도자라고 볼 수 있다. 건물로 치자면, 강력한 지반과 콘크리트에 해당되는 지도자다.
1932년 당선 이래 4선 대통령을 지낸 루스벨트는 다르다. 일단 시대가 20세기 중반이다. 네이션 빌딩과 같은 총론(總論) 수준에서 벗어난, 각론(各論) 차원의 위업을 달성한 인물이 루스벨트다. 미국 국민과 언론 모두가 공감하지만, 루스벨트는 내치(內治)·외치(外治) 동시 성공을 통해 ‘마침내’ 미국을 글로벌 ‘1강(?)’으로 만든 지도자다.
1930년대 美의 對日 견제와 흡사
▲스티븐 케이시 LSE 교수. 사진=스티븐 케이시
필자가 보기에 2022년 상황은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의 상황과 유사하다. 특히 일본이 벌인 태평양전쟁과 당시의 대외(對外) 정책을 보면, 현재의 중국 팽창주의 정책과 거의 비슷하다. 미국 측 대응도 마찬가지다. 1930년대 말 미국의 대일(對日) 정책 흐름은, 21세기 바이든의 대중(對中) 견제와 유사하다. 펠로시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은 ‘민주당 할머니 정치가의 노망’이 아니라, 반중(反中) 정서로 들끓는 미국 여론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1930년대 미국은 일본의 침략 야욕 앞에 노출된 중국 국민당 정부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오늘날 중국의 위협이 노골화될수록 미국의 대만 수호 의지도 높아지고 있다.
2022년 가을, 바이든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전시(戰時) 대통령 루스벨트와 닮아가고 있다.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교(LSE·London School of Economics and Political Science) 역사학과의 스티븐 케이시(Steven Casey) 교수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통한다. 2001년 옥스퍼드대학에서 출간한 《신중한 십자군(Cautious Crusade)》은 유럽과 아시아 전쟁에 개입하는 루스벨트의 세계 전략을 다룬 명저(名著)다. 케이시 교수는 루스벨트 당대에 발간된 수많은 기록물을 수집·분석하면서 전시 대통령 루스벨트의 리더십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 현재의 중국과 1930년대 일본에 대한 미국의 정책을 비교할 수 있다. 바둑이 그러하듯 제3자의 눈으로 보면 몇 단계 올라간다. 미국을 가장 잘 아는 나라는 영국이다. 루스벨트라는 키워드를 통해 21세기 미국 대중 정책의 근본적 배경과 방향을 짚어보자. 케이시 교수의 연구실로 줌(Zoom)을 연결해, 루스벨트가 남긴 리더십과 역사적 교훈에 대해 물어봤다.
중국과 일본, 루스벨트와 바이든
▲무기대여법에 서명하는 루스벨트. 무기대여법을 통해 루스벨트는 영국을 간접적으로 지원했다. 사진=미 국립문서청(퍼블릭 도메인)
― 1930년대 말 제2차 세계대전 직전과 2022년 상황을 비교한다면.
“유럽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아시아에서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80여 년 전 루스벨트는 유럽과 아시아 가운데 어디를 먼저 다룰 것인지에 대해 고민했다. 결론은 유럽이 우선이었다. 1930년대 독일의 팽창은 유럽은 물론 북반구 전체의 ‘전면적인 세력 변화’를 의미했다. 당시 일본의 경우 독일과 비교할 정도의 파워를 갖고 있지 않았다. 일본이 중국을 장악한다 해도, 독일과 유럽이 가진 경제 규모에 크게 못 미쳤다. 일본의 경우, 석유와 철강의 상당 부분을 미국에서 수입한다는 결정적인 약점도 갖고 있었다.”
― 루스벨트는 어떤 식으로 유럽 전쟁에 개입했는가.
“1941년 3월, 무기대여법을 만들어 대서양 건너 영국을 도왔다. 당시 영국은 무기를 구입할 경제적 여력이 없었다. 루스벨트는 의회의 협조를 얻어, 직접 판매가 아니라 장기 대여한 뒤 나중에 비용을 청구하는 형식의 정책을 폈다. 당시 스탈린의 소련도 미제 무기를 지원받았다. 그러나 미제 무기가 대서양을 건너는 동안 독일 잠수함 공격에 직면하게 되자 루스벨트는 1941년 9월, 이른바 ‘보는 즉시 공격(Shoot on sight)’ 연설을 통해 독일에 대한 공격을 명령했다. 그러나 독일에 대한 선전포고는 하지 않았다.”
― 일본에 대한 루스벨트의 개입은 언제부터 시작됐는가.
“유럽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일본에 대한 무력(武力) 개입은 차후로 미뤄졌다. 그러나 1941년 8월 일본에 대한 경제제재가 이뤄지자 일본 스스로 본격적인 무력시위에 나서기 시작했다. 독일 잠수함에 대한 공격 명령이 내려지고 3개월이 흐른 1941년 12월, 일본은 진주만을 기습 공격했다.”
―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만 사태에 직면한 바이든을 전시 대통령 루스벨트와 비교한다면.
“루스벨트 당시와 비슷한 점도 많지만, 다른 점도 적지 않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경우, 미국이 경제제재만 하고 있을 뿐 무력 개입은 ‘처음부터’ 배제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과거 일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도 강하다. 군사적·경제적 차원에서의 중국의 파워는 81년 전 일본과 비교할 수 없다.”
미국 의회의 분위기
― 미국 의회의 분위기를 비교하고 싶다. 펠로시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하고 미국의 상하 양원이 대만 지지에 적극 나서고 있다. 루스벨트 당시의 의회는 유럽과 아시아에 대한 개입을 주저했는데.
“1930년대 미국 의회는 민주당 파워 일색이었다. 대공황 시기에 대통령이 된 루스벨트는 뉴딜(New Deal) 정책을 간판으로 내세웠다. 공공사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뉴딜 정책의 핵심 중 하나다. 상당수의 미국인, 특히 중하류층 실업자들이 루스벨트 덕분에 안정된 생활에 들어설 수 있었다. 민주당 대통령 루스벨트 덕분에 의회도 민주당이 장악하게 됐다. 당시 미국은 고립주의(孤立主義)를 외교 정책의 기본으로 삼았다. 유럽·아시아에서의 전쟁에 개입하기를 주저했다.”
― 의회가 대서양·태평양 두 개의 전쟁에 전부 개입하게 된 경위는.
“일본의 진주만 공격이 결정타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의회의 반응은 수동적이고 미온적이었다.
루스벨트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한 12월 8일 당시 미국의 군사력은 벨기에보다도 약한 수준이었다. 남북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미국은 전쟁의 고통을 절감했다. 그 결과, 군사력 보유 자체를 포기하다시피 했다. 징병제를 없애고,미국 우선 고립주의 정책을 지향했다. 해군 일부를 유지할 뿐이었다. 미국 육군이 독일이나 일본을 공격할 정도의 수준에 오른 것은 1943년 말~1944년 초로 전쟁 발발 2년 뒤부터다.
고립주의만이 아니라, 군사 관련 예산 증액에 대한 의회의 반감도 강했다. 공화당만이 아닌 민주당도 마찬가지였다. 군사예산을 늘릴 경우 세금도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주만 공격 이후 의회의 자세가 180도 변했다. 적에 대한 단호한 공격으로 의회의 공기가 변했다. 루스벨트는 1941년 12월 11일, 일본의 동맹국인 독일·이탈리아에 대해 선전포고를 했다. 의회는 즉각 전쟁예산을 승인했다.”
전쟁과 함께 진화한 미국의 군사력
― 2022년 미군의 전쟁 능력이 제2차 세계대전 직전 루스벨트 때보다 훨씬 강하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미국은 현재 강력한 군사력은 물론, 다양한 군사 산업을 갖고 있다. 루스벨트 당시에 없던 군사 능력과 자산이 2022년에는 존재한다. 물론 중국이나 러시아와 비교해서 미국의 군사력이 어느 정도인가라는 문제는 남아 있다. 그러나 전쟁 수행 능력이란 측면에서 보면, 21세기 미국은 20세기 루스벨트 때와 전혀 다르다. 전쟁 수행 능력만이 아니라, 군사동맹에 대한 미국인과 의회의 시각도 80여 년 전과 다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동맹은 전쟁 기간 중에 만들어진 것이다. 2022년 현재 미국은 이미 글로벌 차원의 수많은 동맹을 보유하고 있다. 21세기 미국의 군사력은 1930년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진화된 상태다.”
1941년 말 미국의 군사력은 세계 17위 수준이었다. 1940년 국방예산은 90억 달러에 불과했다. 전쟁을 겪으면서 미국의 국방예산과 군사력은 수직상승했다. 1945년 국방예산은 980억 달러로, 4년 만에 전쟁 전의 10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1945년 일본과 싸울 당시 미국의 군사장비 생산 규모를 보자. 1년간 지프 630만 대, 탱크 8만8000대, 비행기 30만 대, 전투함 1500척에 달한다. 당시 전 세계 군사 장비의 40%가 미국에서 생산됐다. 전투함 50여 척에 불과하던 1945년 초 일본이 어떤 상황에서 미국과 싸웠는지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요즘 거의 매일같이 중국의 군사력 급팽창 소식이 들려온다. 주목할 부분은, 미국의 경우 평시(平時)가 아니라, 전쟁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군사 장비 생산과 개발에 나선다는 점이다. 전쟁에 들어가기 전이 아니라, 적과 싸움에 들어갈 때부터 전쟁 능력이 급상승한다는 의미다.
― 루스벨트 당시와 비교할 때, 바이든의 전쟁 준비태세는 어떤가.
“미국에서 합동참모본부(JCF· Joint Chiefs of Staff)가 만들어진 것은 진주만 공격 직후인 1943년 초다. 미국 군사력의 상징인 펜타곤 건물도 1943년 지은 것이다. 이처럼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부터 미국의 군사력이 진화·발전했다고 보면 된다. 정치·군사·외교를 연결하는 정보기관 중앙정보국(CIA)은 1947년에 탄생했다. 바이든은 이 같은 루스벨트의 전쟁 관련 ‘레거시(Legacy)’를 전부 이어받은 대통령이다. 전쟁과 관련해 볼 때, 루스벨트에 비해 훨씬 더 준비된 대통령이라 볼 수 있다.”
파나이호 사건
▲일본군에 의해 격침된 미국 포함 파나이호. 이 사건으로 미일 간 긴장이 고조됐다.
― 1941년 진주만 공격 직전 일본에 대한 미국 내 여론은 어떠했는가.
“일본이 미국의 여론 무대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37년 12월 12일이다. 일명 ‘파나이 사건(USS Panay incident)’인데, 일본 해군이 상하이(上海) 주변 양쯔강(揚子江)에서 활동 중이던 미국 군함과 주변의 배 세 척을 공격, 침몰시킨 사건이다. 이 사건은 당시 미국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현지 상황이 사진과 함께 자세히 알려지면서 미국인 전체가 분노했다. 군함 침몰과 함께 사상자도 나오면서 반일 분위기가 미국에서 굳어졌다.
파나이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미국인은 물론, 유럽 시민들의 일본에 대한 인지도 자체는 낮았다. 일본의 중국 공습 소식도 서방과 무관한 강 건너 불로 이해했다. 파나이 사건에 이어 곧바로 일본의 난징(南京) 점령이 시작되면서 반일 여론이 한층 더 거세졌다. 공교롭게도 당시 난징에 머물던 미국인이 동영상을 찍어 전 세계에 알리면서 반일 여론이 극에 달했다. 반대로 중국 국민당 정부에 대한 미국인의 친밀감은 한층 강해졌다. 일본은 미국과 유럽의 반일 분위기를 재빨리 파악하고 ‘사과 외교’에 적극 나섰다.
덕분에 반일 여론이 주춤해지지만, 진짜 구원투수는 독일이었다. 오스트리아 합병에 이어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 공격에 나서면서 미국 여론의 관심도 유럽으로 옮겨갔다. 이후 1941년 12월 진주만 기습 때까지 일본은 미국 관심사에서 멀어졌다.”
― 2022년 대만에 대한 미국의 여론을 난징 점령 당시 친중(親中) 정서와 비교하자면.
“전쟁이 본격화되면서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 정부는 연합국의 일원이 됐다. 중국은 루스벨트의 미국, 처칠의 영국, 스탈린의 소련과 함께 전쟁 주도 4개국의 자리에 올랐다. 현재의 대만은 중국 국민당을 뿌리로 하고 있다.
공산당이 중국 대륙을 차지했지만, 1970년대 초까지 미국은 대만이야말로 정통 중국이라 믿었다. 당시 미국인 상당수는 자유민주주의 대만을 지키고 창조해낸 나라가 미국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미국=아시아 자유민주주의 수호 동맹국’으로 인식되면서 대만을 대하는 미국 국민의 관심과 애정도 한층 더 강해졌다.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베이징(北京) 방문 이후 대만을 둘러싼 상황과 환경이 급변했지만, 장제스 국민당 정부로 거슬러 올라가는 미국인의 기억과 정서는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바이든, 트루먼과 비슷한 상황”
― 루스벨트는 여론에 대해 아주 민감한 지도자로 알려져 있다.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인물인 동시에 여론에도 신경을 쓴, 극히 드문 지도자인데.
“전쟁은 전폭적인 지지를 기반으로 한다. 전쟁을 장기간 치러야 할 경우, 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와 지지가 필수불가결하다. 그게 민주주의다. 기본적으로 루스벨트는 정치가다. 국민적 지지는 정치가의 생각과 비전을 지탱하는 근본 요소다. 루스벨트의 카운터 파트너였던 영국의 처칠 총리도 마찬가지다. 당파를 초월해, 두 사람 모두 라디오 연설을 통해 전쟁 지지 여론을 확산해나갔다.”
― 최근 바이든은 유사시 대만에 대한 미군 지원을 3번이나 확인했다. 국민 여론을 대하는 바이든과 루스벨트의 차이점은.
“루스벨트는 1940년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3선 연속 당선됐다. 루스벨트 덕분이지만, 민주당도 의회를 장악했다. 진주만 공격 이후 전쟁에 본격 진입하면서 당시 국민은 물론 의회도 루스벨트를 전폭 지지했다. 공화당조차도 루스벨트를 전쟁 최고사령관으로 여기면서 따라갔다. 이미 지지 기반이 강력한 상태에서 국민 여론을 재확인·재다짐한 것이 루스벨트다.
바이든은 다르다. 현재 공화당에 무시당하고 있고, 전반적인 여론도 부정적이다. 자기에게 나쁜 결과가 나오는 여론에 일일이 대응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루스벨트의 후임이던 트루먼 대통령이 현재의 바이든과 비슷한 상황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전쟁을 기점으로 트루먼은 의회·언론·국민들로부터의 부정적 여론에 직면했다.”
루스벨트식 여론 읽기
필자는 20여 년 전 빌 클린턴 대통령의 캠페인 컨설턴트로 일한 딕 모리스를 도운 적이 있다. 함께 일하는 동안 정확한 여론조사와 분석이 미국 정치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했다. 루스벨트는 딕 모리스가 자주 언급하고 극찬했던 인물이다. 여론조사는 물론, 여론을 읽는 감각에 관한 한 루스벨트를 넘어설 대통령은 없다는 것이다.
루스벨트는 라디오를 정치에 본격 도입한, 첫 번째 미국 대통령이다. 〈노변정담(Fireside chats)〉이라는 타이틀의 대국민 라디오 연설을 1933년부터 1944년까지 11년간 진행했다. 루스벨트는 자신의 정책을 설명하면서 지지를 호소하고, 소문이 아닌 진실과 팩트를 국민들에게 전했다. 딕 모리스에 따르면 루스벨트는 라디오 연설 뒤 반드시 국민 여론을 살폈다고 한다. 지지율을 보는 것이 아니라, 반대자와 그들의 생각이 무엇인지 살피는 것이 루스벨트식 여론 분석법이었다고 한다.
언제부턴가 여론조사 결과가 정치의 권위와 정통성의 근거가 되고 있다. 한국 정치무대에서 볼 수 있는 대통령 지지율이 좋은 예다. 한국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중구난방(衆口難防) 진영 논리의 연장선으로 느껴진다. 어느 것 하나 신뢰하기 어렵다. 지난해 9월 기준으로 정부에 등록된 여론조사기관이 무려 79군데라고 한다. 이 중 절반인 45개가 여론 분석 인력이 단 한 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루스벨트라면 한국의 대통령 지지율 결과 같은 것은 그 자체를 철저히 무시해버렸을 것 같다.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에 반대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근거와 팩트가 여론조사에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인기로 먹고사는 연예인이 아니다. 싫은 소리도 할 수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가면 미소에 감춰진 연예인이 아니라, 근거와 팩트에 대응해 움직인 정치가가 루스벨트였다.
“루스벨트, 獨·日과 타협 안 해”
▲루스벨트는 카이로회담에 장제스 총통을 초청, 중국을 연합국 열강의 일원으로 인정했다. 사진=미 국립문서청(퍼블릭 도메인)
― 전시 대통령으로서의 루스벨트에 대한 평가는.
“두 가지가 특별하다. 첫째, 전쟁의 우선순위에 관한 부분이다. 대서양 너머 독일과 태평양 반대편 일본에 대해 언제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루스벨트의 감각과 전략전술이 탁월하다. 군사력만이 아니라 외교력을 통해, 독일을 먼저 공략한 뒤 뒤이어 일본을 무조건 항복시켰다.
둘째, 인재 등용이다. 적재적소(適材適所)에 사람들을 쓰면서 경제와 전쟁 두 전선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특히 군사 분야에서 조지 마셜 육군참모총장, 태평양육군사령관 맥아더 장군, 유럽전선을 지휘한 아이젠하워 장군 등용은 루스벨트 용병술의 핵심이었다. 이들 장군들의 탁월한 지휘 능력이 있었기에 미국과 동맹국의 ‘압도적 승리’도 가능했다.”
― 루스벨트가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 승리의 그날까지 전쟁을 지속한 이유는 무엇인가.
“독일 히틀러에서부터 시작됐지만, 국제질서 파괴에 대한 반발이 루스벨트 전쟁 리더십의 동인(動因)이다. 독일이 팽창하면서 유럽체제가 무너질 경우 미국에 곧바로 영향을 주게 된다. 그 같은 인식은 당시 미국인 모두가 공유(共有)하고 있던 세계관이기도 하다. 전쟁이 터지기 전부터 루스벨트는 독일·일본과는 협상에 응하지 않았다. 전쟁이 터진 뒤에는, 일본·독일·이탈리아에 무조건 항복을 요구했다. 국경선이나 이해조정을 위한 적당한 협상이 아니라, ‘원점(原點)으로 전부 되돌려놓고 나가라’는 것이 루스벨트의 일관된 입장이었다.”
― 대만 문제와 관련된 전망인데, 과연 미국은 중국에 맞서 싸울 것인가.
“미국은 전쟁 억지력을 우선시할 것이다. 전쟁이 아니라, 전쟁을 막기 위한 노력이다. 중국이 미국의 억지력을 무시하고 나올 경우 어떻게 될까? 여러 가정이 있겠지만, 일본의 진주만 공격과 한국전쟁이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두 전쟁은 ‘결코’ 미국이 원치 않았던 역사다. 미국은 전쟁 억지력을 통해 전쟁을 피하려 애썼다. 그러나 일본과 북한은 선을 넘어 미국의 억지력을 무시했다. 그 결과 미국의 전쟁 참가는 불가피했다. 중국이 미국의 억지력을 무시할지 여부는 아무도 모른다. 내가 보기에 아직은 중국과의 전쟁을 막기 위한 억지력 확보가 미국의 주된 전략이다.”
― 루스벨트 리더십을 한마디로 압축하자면.
“카리스마가 강한 지도자다. 인간적 매력이 넘치는 인물로, 결코 이상주의(理想主義)에 빠지지 않았던 현실주의, 나아가 실험주의 대통령이었다. 물론 실패도 있었다. 그러나 곧바로 교훈을 얻은 뒤 성공으로 연결시켰다. 공황을 이겨낸 경제 정책, 독일을 먼저 상대한 뒤 나중에 일본과 전쟁에 나선 것도 선견지명(先見之明) 루스벨트 리더십의 핵심이다. 20세기 미국 1강 체제를 만들고 미국 민주주의를 전 세계에 확산시킨 주인공이 바로 루스벨트다.”
미국의 명분, 중국의 명분
▲지난 6월 30일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정상회담에서 연설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그는 1930년대 루스벨트와 흡사한 짐을 지고 있다. 사진=AP/뉴시스
중국의 대만 침략 가능성이 논의될 때마다 상기되는 작전이 있다. 1944년 6월 6일 결행된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그것이다. 이 작전에는 바다를 건너 35만 명의 연합군이 참가했다. 대만은 우크라이나와 다르다. 바다를 넘어서야만 공략할 수 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에는 12개국 출신의 연합군이 참전했다. 압도적인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연합군 1만5000명이 희생됐다. 군사전문가들은 대만 상륙 시 중국도 엄청난 피해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루스벨트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일 대국민 라디오 연설을 했다. 기도를 겸한 6분30초 정도의 짧은 메시지였는데, 인터넷에서 이 연설을 찾아 들을 수 있다. 루스벨트는 떨리는 목소리로 “미군이 영국해협을 건너고 있다”고 전하면서 “모두 함께 그들을 위해 기도하자”고 호소했다. 필자가 이 연설에서 특히 주목하는 대목이 있다. 왜 미국 청년들이 목숨을 걸면서까지 이 상륙작전에 나서야만 하는지에 관한 이유와 목적을 국민들에게 설명하는 대목이다.
“전능하신 신(神)이여. 미국의 자랑스러운 아들들이 공화국·종교·문명을 보존하고, 고통받는 인류를 해방시키기 위한 막강한 노력과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루스벨트는 공화국·종교·문명을 지키고, 고통받는 인류의 해방이 노르망디 상륙의 이유이자 목적이라고 말했다. 이 연설을 들으면서 중국이 대만 침략에 나서는 이유와 목적은 무엇이 될지 생각해보았다. 이미 시진핑(習近平)이 여러 자리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 민족 통일, 자위(自衛)·자존(自尊), 미국 헤게모니 반대, 근대 이후 외세에 당한 치욕의 설욕, 중화민족이 가진 힘의 집대성, 대만의 반민족적 집권자들로부터 인민 해방 같은 것들이 될 것이다. 이런 것들은 중국 내부나 공산당의 이념에 관련된 문제일 뿐이다. 인류 모두에 적용될 가치(價値)나 원칙과는 상관없는 얘기들이다. 세계의 흐름과는 무관한 중국식 일방통행 세계관이라고 할까?
루스벨트가 말했던 공화국·종교·문명, 그리고 고통받는 인류의 해방은 미국만이 아닌, 전 세계가 공유할 영원한 가치이자 원칙이다. 이 같은 가치와 원칙은 2022년 미국 정치에도 계승·유지되고 있다. 전시 대통령 루스벨트가 미국만이 아닌, 글로벌 리더십의 최고 모델로 통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글 : 유민호 퍼시픽21 디렉터
10.17 대만 침공 시사한 시진핑, 지구촌 불안 부추긴 꼴
중국 공산당의 제20차 당대회가 어제 베이징에서 시작됐다. 5년 만에 열리는 이번 당대회가 특히 주목받는 것은 시진핑(習近平) 1인 체제가 명실공히 확립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번 회기 중 국가 헌법보다 우위에 있는 최고 규범인 당장(黨章)을 수정해 ‘시진핑 사상’을 통치 이념으로 명기하고 시 주석에게 ‘영수(領袖)’의 지위를 부여하는 한편, 2연임 10년으로 굳어져 온 임기 제한을 깨고 시 주석의 3연임을 결의할 것이 확실시된다.
이렇게 되면 공산혁명 지도자로서 특별한 지위와 권력을 누렸던 마오쩌둥(毛澤東) 이래 최고 수준의 1인 권력이 시진핑 주석 개인에게 집중된다. 1978년 개혁개방으로 국책을 전환한 이후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국제사회와 협력하면서 정치적으로는 착실하게 집단지도체제를 확립시켜 온 것과 정반대의 흐름이다.
중국은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 공산당 1당 지배 국가다. 문제는 시진핑 시대의 중국이 마오쩌둥 시대의 중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힘을 갖췄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미국과 패권 경쟁을 펼치는 중국의 모든 권력이 개인의 손에 쥐어진 현실을 외부 세계는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시 주석이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국제질서는 안정과 조화를 유지할 수도 있고, 반대로 전 세계가 불안과 긴장으로 빠져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제 개막식에서 행한 시 주석의 연설은 국제사회의 우려를 더욱 증폭시켰다. 시 주석은 대만 문제와 관련해 “조국 통일은 반드시 실현할 수 있다. 평화통일을 향한 노력을 하겠다”고 하면서도 “무력 해결의 선택지를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중국의 대만 침공 시나리오가 시진핑 주석 임기 내에 현실이 될 수도 있음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중국의 부상이 몰고 온 국제질서 변화는 신냉전의 소용돌이로 번지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 주석이 그토록 강조하는 ‘중국몽’을 힘에 의존해 추구하는 것은 전 세계를 불안에 빠뜨리게 하는 것임은 물론, 궁극적으로 중국 스스로에도 도움이 되지 않음을 인식해야 한다. 중국은 개혁개방 이래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빈곤을 털어내고 고도성장을 이룩한 나라임을 잊지 말기를 촉구한다.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대만해협의 긴장 고조 등 중국의 모든 행동은 직·간접적으로 한반도 안보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의 치밀한 대중 외교 전략이 요구된다.
중앙일보 사설
10.19 한국행 중동산 원유 99% 통과… 4000년 전 문명 품은 폭 54㎞ 바다
호르무즈 해협
세계 해상 석유 35% 수송… 이란이 봉쇄하면 유조선 못 다녀
마르코 폴로·이븐바투타 등 세계적 여행가가 들른 문명
교차로 17세기엔 영국의 무역 중개지, 美와 갈등 땐 최전선 될 화약고

▲이란 해군 병사들이 무장 쾌속정을 타고 유조선들이 지나고 있는 호르무즈 해협을 순찰하고 있다. 세계 해상 석유 수송량의 35%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만(혹은 걸프만)과 오만만 사이의 호리병같이 생긴 길목이다. 가장 짧은 너비가 54Km에 불과하다. 세계 석유 해상 수송량의 35%가 여기를 통과하며 한국행 중동산 원유의 99% 이상이 통과한다. 북쪽은 이란 영토에 속하고 남쪽은 아랍에미리트와 오만에 속하는데 대형 유조선은 수심이 깊은 북쪽 이란 해역을 통과해야 한다. 이란이 해협을 봉쇄하면 큰 유조선은 통행이 불가능해진다. 거대 유조선이 하루 평균 14척 통과하는데, 들어가는 배와 나가는 배가 수로를 잘 지켜야 한다. 한 척만 봉쇄되어도 수로가 엉키면서 마비된다.
근본적으로 미국과 이란의 전쟁도 해협 봉쇄 갈등으로 표출된다.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이란 항공기 격추, 이란-이라크 전쟁기의 유류 저장소 하르그섬 공격, 이란의 기뢰 부설과 미군의 봉쇄 같은 일이 터졌다. 유조선 통과의 국제적 안전은 보장되어 있으나 언제나 미국 등 서방 진영과 이란 혁명수비대가 첨예한 갈등을 벌이는 화약고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감도는 전운은 석유 발견과 운송 이전 시대부터 늘 있었다. 고대 페르시아제국의 함대, 바그다드의 아바스 이슬람제국과 인도, 중국 상선이 드나들던 곳이다. 대항해 이래로는 포르투갈, 영국 등 제국의 함대가 진을 쳤고, 최근에는 이란·이라크 전쟁, 걸프만 전쟁 등으로 늘 전운을 안고 사는 운명이다. 문명의 교차로, 용광로 같은 모든 호칭이 걸맞다.

▲현재 이라크 바그다드를 거점으로 한 아바스 왕조(750~1258)의 무역선. . 이 무역선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인도양을 항해했다. 아랍의 유명한 이야기 모음집 ‘마카야트’(1237년 재작성)의 삽화.
호르무즈 해협에서 역사적으로 오만이 중요하다. ‘상인의 나라’ 신드바드 이야기가 바로 오만이다. 오만의 무스카트에서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면 역외 영토 무산담에 닿는다. 황량하기 그지없지만, 호르무즈 길목의 요충지다. 무산담 사구에서 보니 페르시아만을 빠져나온 유조선이 쉬지 않고 통과한다. 해협을 장악한 쪽이 페르시아만의 숨통을 쥐었다는 전략적 가치는 예나 지금이나 장기 지속이다. 전운이 감도는 곳이라지만, 생각보다 훨씬 평화로운 풍경이다.
호르무즈 해협에 호르무즈섬이 떠 있다. 이란 최남단 해상 거점인 반다르아바스에서 뱃길로 20여 분이면 닿는다. 지금은 황량한 바람이 부는 사막에 무너진 성터만 남아 있을 뿐이다. 작은 포구가 있고 먼지 날리는 자동차가 메마른 들판을 지나간다. 산과 산에 의지하여 가파른 도로가 이어지고 낭떠러지 아래로 푸른 해협이 펼쳐진다. 아라비아 세계에서 인도로 넘어가기 전에 반드시 들른 중간 길목이다.
역대 세계적인 여행가는 대부분 호르무즈를 들렸다. 중요한 교통 거점이었다는 증거다. 마르코 폴로와 이븐바투타가 대표적이다. 마르코 폴로는 이 섬 주민이 세례를 받은 기독교도이고, 대주교가 있다고 했다. 바그다드에 위치한 이른바 이단 기독교 네스토리우스 교구의 사람들이다. 이븐바투타는 아랍어, 페르시아어, 영어, 힌두어가 들리는 곳이라고 했다. 수도사 오드릭도 호르무즈에 당도했다. 당대 여행가가 모두 거쳤음은 그만큼 문명의 교차로였다는 뜻이다.
호르무즈섬에 1300년 이후 튀르키예의 노예인 아야즈가 왕국을 세웠다. 훌륭한 시장이 있고 인도의 중개항이기 때문에 인도산 도자기가 그곳에서 이라크, 페르시아, 호라산으로 수출됐다. 원나라 사람으로 세계를 여행하고 기록을 남긴 왕대연의 ‘도이지략’에서는 호르무즈를 감매리(甘埋里)라 불렀다. 중국의 자기와 비단 등이 들어왔고, 온갖 향료가 실려 나갔다. 해양 거점이었기 때문에 15세기 초 정화 원정대의 중요 목적지도 자연히 호르무즈가 됐다. 정화함대 기록관 마환은 ‘영애승람’에 ‘호르무즈 사람은 모두 부유했다. 가난한 집이 없었다’고 기록했다.

호르무즈 외에도 반드시 부기해야 할 섬 몇몇이 더 있다. 페르시아만 북서 해안에 이란 영토의 작은 섬 하르그가 있는데, 오늘날 이란의 원유 98%를 취급하는 터미널을 갖추고 있다. 그 섬에서 4000년 전 이란의 엘람 문명과 페르시아 아케메네스에서 사산왕조에 이르는 문명이 발굴되었다. 고대 아시리아와 엘람 문명의 흔적인 키시섬도 주목된다. 일찍이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그 전략적 가치를 주목한 섬이다. 요르단 사막의 무역 도시 페트라에서 교역하던 나바테안의 신전과 무덤도 키시섬에서 확인된다. 사막 대상이라고만 알려진 나바테안이 호르무즈 해협을 무대로 해상 무역도 했다는 놀라운 발굴이다.
16세기 초반 포르투갈의 작가 두아르테 바르보자는 호르무즈를 방문하고 상세 기록을 ‘동양개요’에 남겼다. 포르투갈 약재상 토메 피레스는 이곳을 ‘이란과 중국으로 갈 수 있는 열쇠’라고 했다. 17세기 영국의 시인 밀턴은 ‘실낙원’에서 호르무즈의 부를 언급했다. 그만큼 유럽 사회까지 호르무즈의 풍요로움이 알려졌다는 증거다.
유럽의 출현으로 호르무즈의 영화는 끝났다. 포르투갈의 군인 알부케르크가 1506년 호르무즈에 들어와 왕을 위협했다. 호르무즈는 참패했다. 1622년에는 영국이 개입하며 이란에 병합되었으며, 영국의 페르시아만 무역 중개지가 됐다. 밀턴이 화려한 도시로 묘사했던 호르무즈는 그의 작품명처럼 실낙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석유 발명과 유조선의 출현은 호르무즈 해협을 언제 전쟁이 벌어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화약고로 만들었다.
21세기까지 열강들이 호르무즈 해협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중이다. 삭막한 사막 앞으로 푸른 페르시아만이 놓여 있고, 대추야자 대신에 유조선이 지나간다. 이 ‘기름의 바닷길’ 연장선의 극동 끝자락에 우리나라가 있다. 호르무즈 해협에 전운이 돌면 즉각 우리에게도 그 파장이 몰려온다.
조선일보 주강현 해양문명사가·전 제주대 석좌교수
10.20 英트러스 취임 44일만 "그만둔다" 역대 최단명 총리 불명예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20일(현지시간)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관저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총리직 사임을 발표하고 있다.AFP=연합뉴스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20일(현지시간) 결국 총리직 사임을 선언했다. 감세안 철회 후폭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상황에서 각료들이 잇따라 사퇴하면서다. 지난달 6일 총리에 취임한 트러스는 44일만에 자리에서 내려오면서 영국 역사상 ‘최단명 총리’란 불명예를 안게 됐다.
BBC 등에 따르면 트러스 총리는 이날 오후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관저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선거 공약을 지킬 수 없어서 보수당 대표 자리에서 물러난다”며 “찰스3세 국왕에게 사임한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음 주 당 대표 선거로 후임자가 결정될 때까지 총리직에 머물겠다”고 말했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영국에선 집권당 대표가 총리를 맡는다. 당 대표를 사임해도 후임 당 대표 겸 총리가 선출되기 전까지는 총리직을 맡는 것이 관례다. 트러스 총리의 전임인 보리스 존슨 전 총리도 지난 7월 사임을 발표한 뒤 새 총리가 선출될때까지 총리직을 맡았다.
이로써 트러스 총리는 영국 역사상 최단명 총리란 기록을 세우게 됐다. 이전까지 영국에서 재임기간이 가장 짦은 총리는 19세기 초반에 총리를 지낸 조지 캐닝이다. 그는 취임 119일 만에 숨져 총리 자리에서 물러났다.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왼쪽)가 20일(현지시간)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관저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총리직 사임을 발표한 뒤 관저로 들어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트러스를 총리 자리에서 끌어내린 것은 잇따라 보인 경제정책 ‘헛발질’이다. 트러스는 지난달 23일 대대적인 감세와 공급 부문 개혁을 통해 영국의 경제성장을 이끌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반세기 만에 최대 규모인 450억파운드(약 72조2371억원)의 감세 정책을 발표하면서 재원 대책은 제시하지 않았다. 시장에선 영국 정부가 엄청난 금액의 국채를 발행해 자금을 마련한다고 받아들였다. 이에 영국 국채 가격은 폭락(국채금리 폭등)하고 파운드 가치가 폭락했다.
이에 정치권과 시장에서 비판이 쏟아지자 트러스 총리는 지난 3일 ‘부자 감세’라는 비판을 들은 소득세 최고세율 폐지 계획을 철회했다. 14일엔 법인세 인상 폐지 계획을 없던 일로 하고 감세 정책을 주도한 쿼지 콰텡 재무장관도 경질했다.
하지만 그 뒤에도 트러스의 입지는 불안했다. 콰탱 장관의 후임으로 취임한 제러미 헌트 재무장관은 감세안 등 트러스 총리의 경제정책을 대부분 폐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19일에는 수엘라 브레이버먼 내무장관이 총리 사임을 요구하며 장관 자리에서 물러났다. 브레이버먼 장관까지 사임하자 트러스 총리의 권위는 심하게 흔들렸다. 내각 장관들이 줄사퇴하며 총리 자리에서 내려온 존슨 전 총리의 전철을 밟는게 아니냐는 전망도 나왔다. 일각에선 그를 두고 ‘허울만 남은 총리(Prime Minister In Name Only·PINO)’, '좀비 총리' '양상추(유통기한) 총리' 란 평가를 내놨다.
그럼에도 트러스 총리는 19일 하원에서 열린 총리 질의응답에서 야당인 노동당이 사임을 요구하자 “나는 싸우는 사람이며, 그만두는 사람이 아니다”고 사임설을 일축했다. 하지만 20일 오전 보수당 1922위원회의 그레이엄 브래디 의장을 만난 뒤 사임으로 돌아섰다.
트러스의 후임으로는 헌트 장관과 리시 수낵 전 재무장관, 벤 월리스 국방장관, 페니 모돈트 원내대표가 거론된다. 최근 보수당원 53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선 응답자의 32%가 존슨 전 총리를 적합한 후임자로 꼽기도 했다.
이승호·정희윤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10.22 시진핑 3연임 확정, 리커창 왕양 등 퇴임
최고지도부 7명 중 4명 물갈이...시진핑 최측근으로 채울 듯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20차 당대회 개막 연설을 하고 있다./베이징=박수찬 특파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중국 공산당 총서기 3연임이 공식 확정됐다. 시 주석을 포함해 총 7명의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최고 지도부) 중 4명이 교체되면서 시 주석의 측근들이 대거 진입할 전망이다. 시진핑 3기 지도부 전체 구성은 23일 공개된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22일 폐막한 중공 20차 전국대표대회(20차 당대회)에서 시 주석이 20기 중앙위원 205명의 명단에 포함됐다. 시진핑 3기에서 일할 지 여부가 주목을 받았던 리커창 총리와 왕양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은 중앙위원 명단에서 제외되면서 퇴임한다.
시진핑 2기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7명 가운데 시 주석, 왕후닝 중앙서기처 서기, 자오러지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 3명이 중앙위원 명단에 포함, 유임된다. 반면 리 총리와 왕 주석, 리잔수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과 한정 상무부총리 등 4명이 퇴임하게 됐다.
퇴임하는 인사 가운데 리잔수 상무위원장과 한정 상무총리는 칠상팔하(67세는 남고 68세는 퇴임) 규칙에 따라 퇴직이 확실시됐지만 리커창 총리와 왕양 주석은 시진핑 3기에 잔류하는 왕후닝 서기와 동갑인 67세다. 연령만 놓고 보면 더 근무할 수 있지만 교체됐다.
리 총리와 왕 주석은 중국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출신으로 시 주석과는 상대적으로 거리가 있는 인물로 평가됐다. 리 총리와 왕 주석이 물러나면서 공백이 된 자리에는 시진핑 주석 최측근들이 임명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해석된다. 딩쉐샹 중앙판공청 주임, 리창 상하이 당서기, 리시 광둥성 당서기 등이 최고 지도부 진입이 확실시 된다. 리시 광둥성 당서기는 이날 발표된 20기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위원 명단에 포함되면서 자오러지를 이어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를 맡을 것으로 보인다. 한 때 시 주석의 후계자로 거론됐던 천민얼 충칭시 당서기, 후춘화 부총리도 중앙위원에 이름을 올렸다. 다만 천 서기의 정치국 상무위 진입 가능성이 더 높게 점쳐지고 있다.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이 중앙위원에서 빠지고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중앙위원에 포함되면서 양 위원의 후임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 베이징=박수찬 특파원
10월 27일 아미니 죽음 40일째 “영혼 돌아와”… 묘지서 1만명 반정부 시위

▲히잡 미착용을 이유로 경찰에 연행된 뒤 의문사한 마흐사 아미니 사망 40일째인 26일 이란 쿠르디스탄주 사케즈에 위치한 아미니 묘소 근처에 반정부 시위대가 몰린 가운데, 한 이란 여성이 히잡을 착용하지 않은 채 차량 위에 올라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란 여성들은 SNS를 통해서도 아미니 사망 이후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 등을 향해 손가락 욕설을 하는 사진을 올리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이란 ‘히잡 의문사’ 반발 격화
시아파 성지에선 총기 테러도
미, 혁명수비대 등 추가 제재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돼 의문사한 이란 20대 여성 ‘마흐사 아미니 사망 사건’이 26일로 40일째를 맞으며 반정부 시위가 격화하고 있다. 이날 아미니 묘소가 있는 사케즈에는 1만여 명 규모의 시위대가 몰렸으며, 30여 개 도시에서도 동조 시위가 벌어졌다.
현지 매체 이란 인터내셔널은 이날 “사케즈 교외에 있는 아미니의 묘에 1만여 명의 인파가 몰려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고 전했다. 이들은 아미니의 묘 주변에서 “자유! 자유” “하메네이는 올해 축출될 것”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특히 시위대는 이날 정부가 아미니의 가족에게 묘 접근 금지 명령을 내린 데 대해 격분하면서 경찰과 물리적으로도 충돌했다.
이 때문에 정부는 보안상 이유로 이 지역의 인터넷도 차단됐다. 특히 이란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시아파에게 사망 40일째는 중요하다. 고인의 영혼이 사망 40일째 되는 날 잠시 돌아온다고 믿기 때문에 대대적 추모 행사를 연다.
이날 시아파 성지에서는 테러도 발생했다. 3인조 무장 괴한이 시라즈의 시아파 성지 샤체라그 모스크에서 총격을 벌여 최소 15명이 사망하고 40여 명이 다쳤다. 목격자들은 괴한들이 저녁 기도 시간에 모스크로 난입, 신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가했다고 전했다. 총격 이후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 조직 이슬람국가(IS)는 사건의 배후를 자처하고 나서며 사망자 수를 20명으로 추산했다. IS는 사건의 배후를 자처하고 나선 가운데, 가뜩이나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연일 이어지고 있는 이란 정국이 더욱 혼란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편 미국 정부는 이날 ‘히잡 미착용 의문사’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 탄압과 관련해 이란 정부 인사와 기관에 대한 제재안을 발표했다.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이날 이란의 정예군 혁명수비대(IRGC) 관계자와 2개 단체를 인터넷 검열 및 시위대 탄압을 이유로 제재 대상에 포함한다고 밝혔다.
정치범들이 수감되는 에빈 감옥의 운영자인 헤다얏 파자디를 포함, 혁명수비대 정보 간부 모하마드 가제미 등이 제재대상 명단에 올랐다. 제재대상에 포함되면 미국 내 자산은 동결되며 미국인과의 모든 거래도 중단된다.
김선영 기자 sun2@munhwa.com
11.08 수 ㎞ 걸친 전사자 사진과 꽃…우크라서 포착된 ‘러軍 무덤길’

▲벨라루스 매체 넥스타가 트위터를 통해 공개한 영상 속 화면/트위터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루한스크의 한 거리에서 러시아 군인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이 길을 따라 끝없이 늘어져 있는 장면이 포착됐다.
6일(현지시각) 영국 데일리메일은 벨라루스 매체 넥스타가 트위터를 통해 공개한 영상을 인용해 “무덤이 수 ㎞에 걸쳐 이어진 참혹한 장면을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넥스타는 해당 영상을 올리면서 “푸틴이 침략자들로부터 루한스크를 해방시켰다”라고 적었다. 이 영상이 언제 촬영되었는지 등의 자세한 정보는 밝혀지지 않았다. 루한스크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합병했다고 선언한 우크라이나 4개 지역 중 하나다.

▲벨라루스 매체 넥스타가 트위터를 통해 공개한 영상/트위터
이 영상은 57초 분량으로 차량을 타고 지나가던 누군가가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영상을 보면 길가에는 무덤들이 즐비하다. 각각의 무덤 위에는 꽃과 사진 등이 놓여있고, 일부에는 큰 깃발이 꽂혀있다.
앞서 격전지인 루한스크 인근에서 러시아군이 패해 대부분이 전사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반정부 성향의 러시아 통신 뵤르스트카에 따르면 러시아군 소속 생존 병사 아가포노프는 “루한스크와 돈바스로 파견된 부대원들이 참호 파기 임무를 수행하던 도중 포격을 받아 570명의 대대원 대부분이 숨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는 최선을 다해 참호를 팠지만, 아침에 대포와 헬기로부터 포격과 폭격이 시작됐고 우리는 그냥 포탄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화상연설에서 “도네츠크 지역에서 러시아군의 격렬한 공격이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군은 그곳에서 심각한 패배로 고통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의 기반시설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반복해야 할 가능성에 대비해 병력과 수단을 집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선일보 김가연 기자
11.09 세계가 쪼개져 버려 ‘기후’ 대응 더 어려워졌다
이집트 기후총회서
‘선진국 배상’ 의제로
개도국 화석연료 산업화
막을 명분 있겠는지
美·中 대립, 유럽 각개약진
흐트러진 공동 보조

▲파키스탄 셰바즈 샤리프 총리가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열린 유엔 기후총회에 참석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뒤쪽 자막에 '파키스탄에서 벌어진 일이 파키스탄에만 머무는 건 아니다'라고 쓰여 있다. 파키스탄은 올여름 심각한 홍수 피해를 봤다. / 로이터 연합뉴스
유엔 기후총회가 6일 이집트에서 개막해 18일까지 진행된다. 여기서 ‘로스앤드대미지(Loss and Damage)’가 핵심 의제로 채택됐다. 로스앤드대미지는 ①온실가스를 별로 배출한 일 없는 가난한 나라가 ②선진국이 배출한 온실가스 때문에 ③회복 불능으로 입은 손실과 피해를 말한다. 책임은 부자 나라들에 있으니 그걸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파키스탄 총리는 “동냥하는 것으로 보지 말라”고 했다. 파키스탄은 7~8월 홍수로 국토의 3분의 1이 잠겨 1700명 사망, 가옥 200만채 파손, 이재민 900만명의 피해를 봤다. 피해 규모 400억달러(약 55조원)다. 파키스탄 총리는 선진국을 향해 “당신들이 배출한 온실가스 탓이라는 증거가 있으니 당신들이 책임지라”고 주장했다. 자비가 아니라 기후 정의(climate justice)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10월 말까지 국제사회 지원금은 1억2900만달러에 그쳤다.
아프리카도 올 들어 나이지리아 홍수(사망 600명, 수재민 130만명), 소말리아·케냐 가뭄(기아 2200만명) 등이 발생했다. 아프리카 54국의 역대 온실가스 누적 배출량은 전 세계의 3%에 불과하다. 반면 미국과 EU만 합쳐도 47%가 된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선진국을 보는 시각은 적대적이다. 과거 식민 지배를 당한 경험이 있고, 자원 착취를 당했다고 생각한다. 선진국들은 산업폐기물이나 갖다 버리면서 코로나 백신도 흔쾌히 나눠주지 않았다. 아프리카, 아시아 등 가난한 나라들은 열대에 몰려 있다. 폭풍, 홍수, 가뭄 등 극단 기상에 극도로 취약하다.
아프리카에서만 6억명이 전기를 못 쓰고 있다. 이들은 허리케인이 10배 더 몰아친다 해도 전기를 원할 것이다. 기후 붕괴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산업화와 에너지 확보가 절박하다. 하지만 선진국 주도의 국제 금융 기구들은 개도국의 화석연료 개발을 돕지 않고 있다. 일종의 사다리 걷어차기다. 콩고민주공화국은 1인당 온실가스 배출이 미국의 25분의 1밖에 안 된다. 이 나라가 지난 7월 열대우림 지역에서 석유·가스를 캐내겠다고 하자 미국 존 케리 기후특사가 우려를 표명했다. 콩고민주공화국 환경장관은 이에 “개발을 위한 배출을 못 하게 할 권리를 누가 갖고 있나. 지금은 식민 시대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선진국은 수백 년간 화석연료 산업화를 해왔다. 그랬으면서 개도국은 그 길을 밟지 말라는 것은, 자기들이 저질러 놓은 기후 붕괴를 개도국더러 함께 책임지자고 하는 셈이다. 선진국들은 개도국의 기후 대처를 돕겠다는 약속을 해놓고 이행하지도 않았다. ‘2020년부터 연 1000억달러씩 지원’ 약속을 말한다. 개도국들은 그 1000억달러를 지원받더라도 액수가 턱없이 모자란다고 주장한다. 지금 거론되는 로스앤드대미지는 재정 규모의 차원이 다르다. 수천억 달러 수준이다. 2050년엔 1조달러, 우리 돈 1400조원을 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재원 마련을 위해 탄소세, 항공여행세, 국제금융거래세, 화석연료 횡재세 등 갖가지 아이디어가 튀어나오고 있다. 부채 탕감 주장까지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 로스앤드대미지 배상 자금을 내놓겠다고 한 건 덴마크뿐이다. 겨우 1300만달러를 제시했다.
선진국들은 “1980년대까진 온실가스로 인해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는 인식 자체가 없었는데, 그 이전 배출까지 책임지라는 말인가”라는 반론을 한다. 야구 놀이 하다가 실수로 남의 집 유리창을 깼다고 치자. ‘고의가 아니니 배상 못 하겠다’는 말이 통하겠는가. 인도는 석탄이 풍부한 나라다. 올해 극도의 열파를 경험했다. 그 인도가 자국민에게 에어컨 돌릴 전기를 공급하겠다며 석탄발전소를 가동한다면 거기엔 ‘자기방어’ 성격이 있다. 가해자 격인 선진국 그룹에 그걸 만류할 권리가 있겠는가.
기후 해체 대처를 위해선 전 세계가 보조를 맞춰야 한다. 하지만 개도국과 선진국 간 갈등은 해소되기 힘들다. 무엇보다 온실가스 1, 2위 배출국인 중국과 미국이 손잡고 앞장서야 하지만, 두 대국 사이는 갈수록 틀어지고 있다. 심각한 에너지난에 처하자 유럽도 안면을 바꾸고 있다. 작년 기후총회 의장국으로 각국에 기후 실천을 극성스럽게 독려했던 영국은 최근 북해 석유·가스 신규 채굴 허가를 대대적으로 내줬다. 독일은 문 닫았던 석탄발전소를 다시 돌리겠다고 했다.
세계가 쪼개지고 분열되면서 기후 붕괴 대응의 단일 대오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작년 글래스고 기후총회 때 합의했던 ‘2030년 기후 목표(NDC) 상향’을 이행한 나라가 193국 가운데 26국에 불과했다. 이번 이집트 기후총회에서 어떤 겉치레 합의가 나올지 모르지만, 기후 해결을 위한 국제 협력 시스템은 위기를 맞고 있다. 기후 붕괴 대처가 늦어질수록 치러야 하는 비용의 총량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 한삼희 선임논설위원
11월 15일 세계 인구수 80억명 돌파
유엔, 2058년엔 100억명 전망
기후변화와 식량난 등 ‘숙제로’
세계 인구가 15일 80억 명을 넘어섰다. 2010년에 70억 명을 넘어선 이후 12년 만에 10억 명이 더 늘어난 것이다. 세계 인구는 2037년에 90억 명, 2058년에는 100억 명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구 급증에 기후변화·식량난 위기가 향후 인류가 풀어야 할 숙제로 지목되고 있다.
15일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유엔의 추정 전망치를 인용, 이날 세계 인구가 80억 명을 돌파했다고 보도했다. 유엔은 “인구 폭발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급증해 기온 상승에 따른 이상기후와 식량 부족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만, 인구 증가율은 출산율 저하로 인해 둔화하며 2020년 전후 처음으로 1%를 밑돌았다. 하지만 세계 인구는 2058년까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후에나 합계출산율 저하에 따른 효과로 정체될 것으로 전망된다.
인구가 늘고 있는 나라가 아프리카·아시아 등 일부 지역에 편향돼 있는 것도 문제다. 유엔의 ‘세계인구추계’에 따르면 지난 7월 1일 기준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국가는 중국으로 14억2588만 명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2위인 인도(14억1717만 명)가 내년에 중국을 따라잡을 전망이다. 중국·인도의 무서운 인구 성장세 때문에 아시아 지역 인구는 44억 명에 달하며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고소득 국가들은 급격한 고령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전 세계 고령화율은 2010년 7.7%에서 2022년 9.8%로 약 2%포인트 올랐다. 고소득 국가는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인 수치가 19.2%인 반면, 중위소득 국가는 8.7%다.
김선영 기자 sun2@munhwa.com
11.30 대약진운동 빼닮은 중국 ‘제로 코로나’
리더가 잘못된 판단 밀어붙이고 아무도 바른말 못 해 참사 지속
3년 코로나와 싸워 얻은 공식, 백신 접종 늘리며 일상 회복밖에

▲11월 25일 중국 베이징의 한 주거단지가 코로나19 바이러스 발생으로 봉쇄된 가운데 방호복을 입은 한 공무원이 입구에서 경비를 서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중국에서 ‘제로 코로나’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 양상이 심상치가 않다. 지난 24일 신장 우루무치에서 10명이 숨지고 9명이 다치는 아파트 화재가 발생했다. 그런데 방역 차원에서 아파트를 봉쇄하기 위해 설치한 구조물이 신속한 진화를 방해했다는 주장이 급속히 퍼졌다. 이후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 중국의 대표적 대도시에서 코로나 봉쇄 해제를 요구하는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시진핑 물러나라’는 구호까지 등장했다. 3년 가까이 이어지는 고강도 방역 정책에 지친 시민들 분노가 우루무치 화재를 도화선으로 폭발한 것이다.
마오쩌둥은 1958년 ‘7년 안에 영국을 초월하고 15년 안에 미국을 따라잡는다’는 목표를 내걸고 ‘대약진운동’을 벌였다. 현실에 맞지 않은 과도한 경제성장률 목표와 속도전을 강조하며 국민들을 몰아붙였다. 온갖 비과학적인 방법도 난무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참새와의 전쟁’이다. 참새가 낱알을 쪼아먹는다고 소탕령을 내렸다. 그러나 막상 참새 수가 줄자 먹이 사슬이 무너지면서 쌀 수확량은 점점 줄고 자연재해까지 겹치면서 최악의 ‘대기근’으로 번졌다. 수천만명이 굶어 죽는 생지옥이 펼쳐졌지만 지방정부들은 곡식 생산량 등을 상부에 허위 보고했다. 이런 상황인데도 아무도 바른말을 못해 이 정책이 4년 넘게 지속됐다. 정치 지도자가 잘못 판단해 실정을 밀어붙이고 제대로 이의를 제기할 세력이 없을 때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제로 코로나 정책은 여러모로 대약진운동과 닮은꼴이다. 중국이 제로 코로나 정책을 추진하자 전 세계가 “불가능한 일”이라며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지난 3년간 미국의 ‘코로나 사령관’ 역할을 한 앤서니 파우치 소장도 “중국이 어떤 목적이나 최종 목표도 없이 장기간 봉쇄에 들어갔고, 이는 공중 보건을 위해 맞지 않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그런데 지도자가 한번 방향을 정하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터무니없는 목표를 내걸고, 납득할 수 없는 방법(장기 봉쇄)을 쓰고, 믿을 수 없는 통계가 난무하고, 주민들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엉터리 정책을 장기간 지속하는 점에서 대약진운동과 닮은 점이 한둘이 아니다.
인류는 신종 코로나와 3년 싸우면서 단순하지만 소중한 공식을 얻었다. 좋은 백신을 선택해 접종을 늘리면서 점차 일상을 회복해가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 신종 코로나도 전파율은 높지만 중증화율·치명률은 낮아지는 쪽으로 진화했다. 그런데도 중국은 놀랍게도 3년 전 우한에 신종 코로나가 처음 등장했을 때와 똑같은 방식의 대응을 고수하고 있다.
중국의 백신 접종도 엉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젊은 층은 물론 60세 이상 중국 인구 2억6700만 명 중 3분의 1이 3차 백신 접종을 하지 않았다. 부작용을 걱정해 맞기를 꺼리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국 노인들의 백신 접종률이 90% 이상인 것과 대조를 이룬다. 중국이 자체 개발해 사용하는 백신 ‘시노백’ 등의 효능도 좋지 않다. 지난 3월 홍콩대 연구진 발표에 따르면 화이자 백신 효능은 84.5%인데 반해 시노백은 60.2%에 그쳤고, 사망 방지 효과도 시노백이 20%포인트 가까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진핑 국가 주석이 3연임 절차를 마무리하면 점차 봉쇄를 풀 줄 알았는데 그마저도 아닌 것으로 드러나면서 중국 민심이 임계점을 넘은 것 같다. 우리는 이미 인접국으로, 중국이 불가능한 정책을 수년째 고수하면서 받는 직·간접적인 피해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한동안 더 거대한 이웃이 어리석게도 시한폭탄을 안고 뒤뚱거리는 것을 불안한 눈으로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조선일보 김민철 논설위원
12월 01일 中 ‘백지 시위’와 금 가는 시진핑 독재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 HK+국가전략사업단장
전 세계적인 ‘위드 코로나(with Corona)’ 추세를 정면으로 부정하면서 ‘나 홀로 제로(0) 코로나’ 정책을 고수하는 중국 시진핑 정권이 인민의 저항에 부닥쳤다. ‘백지(白紙) 혁명’으로까지 불리는 이번 항의 시위는 전국 10개 이상의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2019년 홍콩 보안법 시위 당시 중국 당국의 검열과 사진 촬영으로 인한 체포와 구금을 피하기 위해 아무런 글자도 그림도 없는 백지로 대응하겠다면서 출현했던 백지 시위는 당국의 통제에 대한 무언의 저항을 의미한다.
지난 3년간 중국 특유의 공권력을 활용한 지나친 봉쇄정책으로 피로감이 극도에 이르고 민생이 피폐해지자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처음으로 ‘공산당 타도’ ‘시진핑 하야’ 등 정권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으로까지 구호가 바뀌는 중이어서 심각성이 커지고 있다. 반복되는 격리와 봉쇄, 하루가 멀다 하고 받아야 하는 유전자 증폭(PCR) 검사로 인해 정상적인 일상생활은 물론 생계마저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시위는 그동안 당국의 제로 코로나 통제에 순응해 온 일반인들이 거리로 나섰다는 점에서 3연임에 성공한 시진핑 체제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중국인들은 그동안 정부가 강조하는 ‘과학적 방역을 통한 완벽한 코로나 제로’와 제20차 공산당 대표대회의 안정적인 개최에 협조하면서 순순히 통제에 따랐다. 하지만 당 대회 후에도 완화 조짐이 보이지 않자 부당한 방역을 구실로 한 통제에 더는 순응하지 않겠다는 적극적인 의사표시를 하고 나섰다.
특히, 중국의 대학생 등 젊은 청년들이 ‘백지’ A4용지를 들고 ‘민주법치와 자유’ 등의 구호를 외치며 국제공산주의 운동을 주창하는 ‘인터내셔널가’를 불렀다. 이게 ‘사회주의 중국’이냐 하는 역설이다. 코로나 정책에 대한 반대가, 과거 지식인들이나 반체제 인사 중심에서 일반 대중이 참여하는 반정부·반시진핑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저항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정부가 통제에만 열중할 뿐 인민들을 언제 코로나에서 해방시킬 것인지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며, 코로나 방역을 빙자해 정치 안정과 사회 통제를 위한 통제가 아니었느냐고 항의하는 것이다.
중국 당국이 제로 코로나를 고집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우선, 지방의 소도시나 농촌 지역은 거의 코로나에 대한 무방비 상태에 가까울 만큼 의료 체계가 붕괴 상태이고 백신 접종률은 절반에도 못 미친다. 대도시 방역비만도 우리 돈으로 연간 320조 원이 넘는다. 막대한 기회비용을 치르더라도 시진핑식 방역의 우수성을 강조하고 싶은 중국적 조급함이 경제적 손실과 공급망의 손상에 따른 국제적 비판과 우려를 무시한 무차별적 봉쇄로 이어진 것이다.
물론 이러한 항의와 시위 행동이 시진핑 체제나 공산당 정권을 실질적으로 위협하기는 어렵다. 중국 유일의 정치 실체인 공산당은 누구도 도전할 수 없는 막강한 공권력과 사회 통제 기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 안정은 힘만으로는 이룰 수 없다. ‘3척 얼음은 하루 추위로 얼지 않는다’(氷冬三尺非一日之寒)는 속담처럼, 중국 당국이 정부 정책의 정당성을 강조하면서 민생의 목소리를 무시한다면 중국 정치의 또 다른 불행이 될 수 있음은 역사가 웅변한다.
문화일보
12월 01일 ‘방역완화’ 요구의 진화 … ‘백지혁명’ 시진핑을 시험대 올리다

▲11월 2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서던캘리포니아대(USC)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중국 우루무치 화재 사고 희생자들을 기리는 촛불집회에서 한 시위자가 중국 방역요원을 조롱하는 의미에서 흰색 방호복을 착용한 채 확성기를 통해 반중 구호를 외치고 있다. AFP 연합뉴스
■ Global Focus - 중국 당국, ‘백지혁명’ 탄압 본격화
우루무치 희생자 추모성격 시위
50여 개 대학 등으로 확산되자
정부 휴교령 등 통해 통제 나서
휴대폰 검열에 귀가 · 귀향 종용
트위터선 ‘시위대 실종설’ 퍼져
시진핑 최대업적 꼽은 제로 코로나
포기 못해 강경진압 지속될 듯
베이징 = 박준우 특파원 jwrepublic@munhwa.com
지난 11월 27일 밤 중국 베이징(北京)시 량마차오(亮馬橋) 인근. 손에 백지를 든 시위대가 인도 한쪽에 모여 코로나19에 대한 당국의 과도한 규제를 규탄하고 있었다. 시위 중 한 남성이 마이크를 든 뒤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방금 소식을 들었습니다. 당국이 (우리에게) 외국 세력의 책동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하는데요. 여러분 혹시 역외 세력(중국을 공격하는 세력)이거나 지시받은 분 계십니까?” 추운 날씨에 떨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 잠깐 폭소가 터졌다. 누군가가 “마르크스와 레닌을 지지한다!”고 큰 소리로 응수했다. 이날 베이징 시위는 큰 소동 없이 끝났지만 이후 대학들이 휴교령을 내리고 거리 검문검색도 한층 강화됐다. 중국 당국은 ‘외세의 개입과 선동’이라고 주장하며 탄압을 예고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어바인에서 11월 29일 학생들이 중국 ‘백지 혁명’의 상징인 백지를 들고 중국 정부의 방역 정책 완화를 요구하는 촛불시위를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백지 혁명’ 시위 이후 강화된 단속·검문 = 11월 30일 오전 량마차오 일대는 검문검색이 한층 강화된 인상이었다. 사실상 준봉쇄 조치로 상점들은 대부분 닫혀 있었고 사람은 거의 다니지 않아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한 외국공관 관계자는 “원래 외국공관 밀집지역이라 곳곳에 공안(경찰)이 많았는데 더 많아진 느낌”이라며 “어차피 봉쇄로 점심 먹으러 나갈 곳도 없어 크게 신경 쓰진 않는다”고 말했다. 학내 시위가 발생했던 베이징대와 칭화(淸華)대 등은 휴교령과 함께 아예 학생들의 귀가·귀향을 종용하고 나서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본격적인 색출 작업도 시작됐다.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에 거주하는 대학생 왕(王) 씨는 최근 시위 현장 동영상을 자신에게 공유해줬던 여자친구가 소식이 끊겼으며, 현재 공안 건물에 구류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우한 외에도 중국 곳곳에서 시위 참가자들이 공안에 불려갔다거나 실종됐다는 주장이 트위터 등을 통해 나오고 있다.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에선 방패와 진압봉을 든 공안과 방역요원들이 시위 참가자들을 색출하는 영상이 SNS에 공유됐다. 광저우에서는 임시 휴업과 휴교로 학교와 직장을 떠나는 이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가운데 한밤중 시위가 이어졌지만 구심점 없이 산발적으로 진행됐다는 평을 받는다. 로이터 통신은 광저우 일부 지역에서 벌어진 시위에서 공안이 최루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방역 완화’ 요구가 반정부 성격의 ‘백지 혁명’으로 변모하나 = 이번 시위의 촉발점은 11월 24일 신장(新疆)위구르 자치구의 주도 우루무치(烏魯木齊)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이다. 봉쇄로 갇혀 있던 주민 10여 명이 사망했는데, ‘제로 코로나’ 정책에 따른 엄격한 봉쇄로 암 환자나 어린이들이 사망한 사례들이 차곡차곡 쌓였다가 이번 사건으로 폭발했다. 봉쇄로 일상생활뿐 아니라 의식주까지 위협받게 된 상황에서 2022 카타르월드컵 중계를 통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외국 사례를 확인하면서 중국인들의 상대적 열패감이 더 커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방역 완화 요구에 대한 중국 당국의 탄압이 심화하자 시위 성격도 바뀌고 있다. 우루무치 화재 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성격이었던 시위가 11월 27일 새벽부터 방역 정책을 규탄하는 반정부 시위 성격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시위대는 ‘시진핑(習近平)은 물러나라’ ‘우리가 원하는 건 민주주의와 자유’ 등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50여 개 대학에서도 시위가 있었고, 중국 당국에 대한 항의를 뜻하는 ‘백지’를 든 1인 시위도 곳곳에서 벌어졌다. 공안 역시 차량을 수십 대 배치하고, 무장 공안까지 투입하며 ‘근절’ 의지를 강하게 내비치면서 일촉즉발의 분위기도 포착되고 있다. 특히 장쑤(江蘇)성 쉬저우(徐州) 도심에서 장갑차까지 목격되면서 군 투입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1989년 유혈 상황을 낳은 톈안먼(天安門) 사태 재연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중국 사회의 불안감은 증폭되고 있다.
◇‘제로 코로나’ 포기 어려운 中…시진핑 3기 체제 시험대 = 문제는 중국인들의 반발에도 불구, 시진핑 국가주석과 공산당이 ‘제로 코로나’를 포기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지난 10월 당 대회를 통해 3연임에 성공, 사실상 ‘1인 독재체제’를 구축한 시 주석의 최대 업적으로 홍보한 정책이 바로 ‘제로 코로나’이기 때문이다. 중국 당국이 시위에 강경 진압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인 이유다.
다만, 이번 시위로 중국의 전면적 봉쇄 정책은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각 지방 단위에서 자의적으로 결정하는 ‘불법 봉쇄’ 조치에 대한 근절 움직임도 예상된다. 시 주석으로서는 3기 체제 출범 직후 터져 나온 시위에 대해 단기적으로는 강경 진압하되, 장기적으로는 경기 부양 등의 방식으로 주민들의 불만을 가라앉히려는 시도를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도 문화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도시 전면 봉쇄는 이제 불가능해졌으며, 대신 공산당은 경기 부양과 백신 접종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시위가 단기간에 끝날 것이고 크게 퍼지지는 못할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노터데임대의 빅토리아 틴 보르 후이 교수는 “시위가 산발적이면서 조직화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특히 코로나19 방역이 공산당의 감시능력을 향상시킨 가운데, 갈등은 더 커지겠지만 폭발 여부는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문화일보
12-05 "왜 백지 들었냐고요?"…中시위대 변호사가 밝힌 '무서운 이유'
“사람들이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서가 아닙니다. 진실을 표현하면 무슨 일을 당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백지시위대를 돕기 위한 무료 법률 자문 변호인단 중 한 명인 왕성성(王勝生ㆍ37) 변호사는 4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시위대가 백지를 든 이유에 대해 “사람들이 단지 백지 한 장을 든 것은 가장 소리 없는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공안 당국의 통제가 강하게 작동하는 중국에서 법률 자문 변호인단 소속 변호사가 언론 인터뷰에 응한 건 왕 변호사가 처음이다.

▲지난달 26일 상하이 우루무치로에에서 한 시민이 사흘전 우루무치시 아파트 화재로 숨진 희생자를 추모하며 촛불에 불을 붙이며 애도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제로 코로나’ 정책에 항의하는 백지시위는 상하이와 베이징를 비롯한 대도시 등 중국 전역에서 벌어졌다. 호주전략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지난달 26일부터 30일까지 닷새간 집계된 것만 최소 24개 도시에서 51차례였다. 경찰에 체포되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무료 법률 자문 변호인단이 꾸려진 건 그래서다. 자신이 왜 끌려가는지도 모른 채 경찰에 체포된 이들의 법적 보호를 위해서다. 자문 변호인단의 명단을 입수해 수십 차례 통화한 끝에 실명으로 1명, 익명으로 1명의 변호사와 인터뷰했다.
시위 전파는 ‘웨이보’…삭제보다 전파 빨라
왕 변호사는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시위 전파가 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웨이보(微博)를 통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중국에서 사용할 수 없는 보안 메신저 ‘텔레그램’ 등이 사용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왕 변호사가 전하는 시위 전개 과정은 이렇다.
“맨 처음 한 어린 학생이 (코로나19 봉쇄를 위해 설치한 철제 울타리가 소방차 진입을 막아 대규모 희생자가 발생한) 우루무치(烏魯木齊) 아파트 화재가 매우 슬퍼 같은 이름을 가진 길(상하이 우루무치중로)에 앉아 촛불과 꽃을 들었고, 이를 사진으로 찍었다. SNS에 올리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생각할 수 없었다고 한다. 우루무치 화재에 대한 분노가 매우 컸던 사람들은 이 게시물을 친구나 지인들에게 전파했다. 사람들 중 일부는 함께 그곳으로 갔다고 한다.”
SNS에 오른 사진은 중국 당국의 통제로 지워졌지만 삭제 속도보다 전파 속도가 더 빨랐다는 얘기다.
지난달 24일 아파트에서 난 불로 10명이 숨진 우루무치 화재에 대한 공분은 예상보다 훨씬 컸다. 피해자 중 한 명은 3살 아이였다. 왕 변호사는 “내 둘째 딸도 세 살이다. 나는 그 마지막 순간 그들이 어떤 상태였는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며 “사람들이 바이러스 때문에 죽는 게 아니다. 격리된 버스에서 죽고 격리 중에 죽었다”고 했다.
행정 구류 5·10·15일...연락두절도 다수

▲중국 상하이에서 지난 27일 공안들이 시위 참가자를 체포하고 있다. 주요 대도시에서 시위가 벌어진 뒤에도 중국 당국은 여전히 ‘제로 코로나’ 정책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AP=연합뉴스
시위 현장에서 체포된 이유는 다양했다. 구호를 외쳤다거나 단지 옆에 서 있다가, 심지어 강제 연행을 말리다가 함께 체포된 이들도 있었다. 이후는 어떻게 됐을까. 왕 변호사의 설명을 종합하면 두 가지 경우로 나뉜다. 행정 구류 처분을 받고 풀려나거나 아예 연락이 끊어지는 경우다. 끌려간 이들은 각각 5일, 10일, 15일의 구류 처분을 받았다. 체포 과정에서 이들 대부분은 휴대폰을 뺐겼다고 한다. 네트워킹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일부는 아직도 연락이 끊긴 상태다.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문의가 오는데 어느 경찰서로 갔는지조차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왕 변호사는 “이미 구속 가능 시한 48시간을 한참 지났고 법률에 따라 처리한다면 가족이나 친척들에게 통지했어야 한다”라며 “그런데도 가족들은 그들이 어떤 상태인지 모르고 찾을 수도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당국을 비판했다. 그는 난징전매대학(南京传媒大學) 교정에서 백지를 들었던 한 여학생도 아직 연락 두절 상태라며 안타까워 했다.
“사람들은 촛불처럼 백지 들었다”
이들은 왜 백지를 들었을까. 왕 변호사에 따르면, 진실을 표현하면 공안 당국에 의해 무슨 일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소리 없는 방식’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왕 변호사는 “촛불처럼, 국화처럼 사람들은 백지를 들었다”고 말했다.
익명으로 인터뷰에 응한 또 다른 자문 변호인단 소속 변호사는 “봉쇄 반대 여론이 심각하다. 식당 문을 못 열어도 집세는 내야 한다”며 “부동산 폭락은 심각한 수준이고 정부는 세금을 걷을 수 없을 정도다. 모든 사람이 맘 속으로 정부를 원망하고 있다”고 전했다.
“‘건강코드’ 앱 법적 근거 없어…심각한 문제”
왕 변호사는 지난 3년간 방역 통제 장치의 핵심이었던 ‘건강코드’(健康寶) 어플리케이션이 입법 절차도 없이 시행되고 있다며 이는 대단히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해당 앱은 코로나19 음성 여부와 PCR 검사 경과 기간 등의 개인 정보를 스마트폰을 통해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이 앱의 QR 코드 스캔에 통과하지 못하면 어떤 장소도 출입이 불가능하게 돼 있다. 왕 변호사는 “건강코드는 전자족쇄보다 무섭다. 이렇게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고 빅데이터 정보를 수집하는데도 정작 아무런 입법도 없이 시행됐다”며 “설령 방역이 완화되더라도 이 문제가 꼭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왕 변호사는 인터뷰 내내 백지시위대가 처벌을 받아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백지를 들고 구호를 외친 것이 사회 질서를 어지럽힌 게 아니다. 백지를 드는 게 범죄라면 도대체 그것은 어떤 나라의 법률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지난 한 주간 중국 언론에서 한 번도 연락을 받은 적이 없다며 자신의 신변보다 이것이 잘못된 일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베이징=박성훈 특파원 park.seonghun@joongang.co.kr
12.19 전체주의의 추락, 2022년의 세계사적 의의
우크라 항전에 허둥대는 러시아
‘백지 혁명’에 놀란 중국
히잡 시위에 정권 위기 이란
서로 별개 사건인 듯 보여도
보편적 가치 자유를 향한
염원이 인류를 하나로 연결
다사(多事), 다난(多難), 다재(多災), 다망(多忙)했던 2022년 한 해도 이제 다 저물어간다. 지구촌 곳곳에서 충격적인 사건·사고가 터져 뉴스를 볼 때마다 가슴 졸여야 했던 한 해였다. 신나는 일도 없지는 않았다. 천문학자들은 은하계 중심에 놓인 태양 400만개 규모의 거대한 질량 덩어리 ‘블랙홀’을 최초로 촬영해 공개했다. 대한민국은 순수 국내 기술로 누리호를 발사해 궤도에 안착시켰다. 중동에서 최초로 열린 월드컵에는 전 세계 관중이 몰려가 마스크를 벗고 환호성을 질렀다.
사람들이 지난 일을 그저 쉽게 잊는 듯하지만, 인간은 망각에 맞서 기억하고 기록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과거사를 파헤치고 돌아보면서 우리는 저마다 삶의 의미를 해석한다. 훗날 역사가들은 과연 2022년을 어떻게 평가할까. 장구한 인류의 역사에서 올해는 어떤 한 해였는가?

▲지난 12월 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하르키우에서 우크라이나 검찰 소속의 한 전문가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포격에 사용한 미사일과 포탄 잔해를 살펴보고 있다. 러시아는 도네츠크와 하르키우 등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 대한 공세를 이어나가고 있다./AFP 연합뉴스
2022년 큰 사건을 들자면, 러시아의 침략에 맞선 우크라이나의 항전, 현재 진행 중인 이란의 시위, 중국 인민의 ‘백지 혁명’을 꼽을 수 있다. 일면 무관한 개별 사건 같지만, 정보통신의 발달로 전 지구는 이미 촘촘한 그물처럼 긴밀하게 묶여 있다. 세상 어느 지역도 고립된 섬이 아니다. 인과성을 증명할 순 없어도 비슷한 시기에 발생하는 이 세상 사건들은 모두 동시성(synchronicity)의 원리로 의미 있게 연결되어 있다.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망동은 수천만 인구의 도시들을 수개월씩 총봉쇄한 중국의 전체주의적 망념과 공명한다. 도덕 경찰을 풀어서 여성의 복장을 감시하는 이란의 종교적 독단도 마찬가지다. 러시아, 중국, 이란은 국가가 진리를 독점하고, 대중의 의식을 지배하며, 개개인의 사생활을 감시하는 반(反)자유적 전체주의 체제이다. 최고 영도자의 카리스마에 의존하는 일인지배(autocracy)라는 점도 세 쌍둥이처럼 닮았다. 현재 이 세 나라가 모두 위기에 빠져 허둥대고 있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지난 9월 21일 러시아에서 대규모 징집령이 떨어진 후 불과 2주일 만에 최대 70만명이 주변국으로 탈출했다는 외신 보도가 잇따랐다. 속전속결을 장담하던 푸틴은 이제 서방과의 지구전을 외치면서 핵 공갈로 세계를 위협하고 있지만, 전승은 고사하고 무승부도 불가능한 상태다. 이란의 민중은 석 달째 전체주의적 신정 체제에 맞서 “여성, 생명, 자유”를 외치며 격렬하게 항쟁하고 있다. 전 세계 여러 국제정치 전문가는 이란의 이번 시위가 정권 타도까지 나아갈 수 있다고 전망한다. 지난달 말 중국에선 “공산당 해산, 시진핑 하야”를 부르짖는 성난 군중의 대규모 시위가 전국 최소 17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놀란 중공 중앙은 졸속하게 제로 코로나 정책을 파기하고 180도 정책 전환을 선언했지만, 전염 속도가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나라 전체가 공포에 휩싸여 있다.
침략에 항거하는 우크라이나인들, 징집을 거부하는 러시아인들, 종교적 부조리에 저항하는 이란의 여성들, 전체주의적 통제에 맞서는 중국의 학생들은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인간의 기본권과 자유의 신장을 부르짖고 있다. 범인류적 가치에 비춰보면, 그들의 요구는 정당하고 세계사의 상식에 부합한다. 반면 서방 세계를 사탄이라 부르는 러시아의 차르, 위구르족을 탄압하며 “중화민족의 부흥”을 외쳐대는 중국의 황제, 양성평등을 죄악시하며 시오니즘의 음모라 말하는 이란의 제사장은 전 인류에 반기를 들고 자국민을 인질로 잡은 권력 중독의 독재자일 뿐이다. 겉으로는 막강해 보이지만, 그들은 지금 떨고 있다. 갈수록 민심이 떠나가고 국제적 고립이 깊어지기 때문이다.
지금도 세계 각국에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자동차 안테나에 우크라이나 국기를 달고서, 히잡을 풀어서 손에 쥐고 흔들며, 여러 도시 중국 대사관 앞에서 백지 시위를 벌이며 세계 시민의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2022년 한 해 자유를 향한 염원이 전체주의에 맞서는 인류를 하나로 묶었다. 자유는 서구의 전유물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권이며, 인류 보편의 가치다. 북송의 거유(巨儒) 범중엄(范仲淹·989~1052)이 말했다. “외치고 죽을지언정 입 닫고 살아가진 않겠노라(寧鳴而死, 不默而生)”고. 새해 첫날 이른 새벽 큰 풍선에 그 글귀가 적힌 전단을 듬뿍 담아서 멀리 마파람에 띄워 보내고 싶다.
조선일보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 역사학
12월 19일 아르헨티나, 승부차기 끝에 36년 만에 월드컵 우승

AP뉴시스
아르헨티나가 2022 카타르월드컵 결승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프랑스를 꺾고 정상에 올랐다. 주장 리오넬 메시가 2골을 터트리며 36년 만에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아르헨티나는 19일 오전(한국시간) 카타르 루사일의 루사일 스타디움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프랑스와 3-3으로 비긴 후 승부차기에서 4-2로 이겼다. 메시가 2골, 앙헬 디마리아가 1골을 넣었다. 이로써 아르헨티나는 1978 아르헨티나, 1986 멕시코월드컵에 이어 통산 3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아르헨티나는 브라질(5회)과 독일, 이탈리아(이상 4회)에 이어 역대 최다 우승 단독 4위에 자리했다.
메시는 7득점과 3도움으로 득점 2위, 도움 공동 1위에 올랐다. 메시는 특히 월드컵 사상 처음으로 토너먼트 전 경기에서 득점한 선수로 남았다. 메시는 호주와 16강전, 네덜란드와 8강전, 크로아티아와 4강전에 이어 프랑스와 결승전에서 득점을 올렸다. 메시는 또 월드컵 통산 13골을 유지, 프랑스의 쥐스트 퐁텐과 함께 이 부문 공동 4위에 이름을 올렸다.
메시는 그리고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통산 공격포인트 20개를 돌파했다. 메시는 통산 13득점과 8도움을 남겼는데, 득점과 도움을 모두 집계한 1966 잉글랜드월드컵 이래 처음이다. 메시는 또 월드컵 통산 26번째 경기에 출전하며 이 부문 최다 기록을 경신했고, 결승전 전반 23분에 이탈리아의 파올로 말디니가 작성한 월드컵 최장 시간 출전(2216분)을 바꿨다.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오른쪽)가 19일(한국시간) 오전 0시 카타르 루사일의 루사일 스타디움에서 열린 프랑스와 2022 카타르월드컵 결승전에서 연장 후반 3분 골을 넣은 후 환호하고 있다. AP뉴시스
프랑스의 킬리안 음바페는 결승전에서 3골을 작성하며 득점왕을 차지했다. 결승전 해트트릭은 1966 잉글랜드월드컵의 제프 허스트(잉글랜드) 이후 56년 만이다. 그리고 23세 363일인 음바페는 월드컵 역대 최연소 10골 기록을 경신했다. 종전 기록은 독일의 게르트 뮐러가 작성한 24세 226일. 음바페는 첫 월드컵이었던 러시아월드컵에서 4골을 넣었다.
아르헨티나는 초반부터 프랑스를 거세게 몰아붙였고, 전반 23분 선제골을 터트렸다. 아르헨티나의 디마리아가 박스 왼쪽을 돌파하는 과정에서 프랑스의 우스만 뎀벨레와 충돌, 넘어지며 페널티킥이 선언됐다. 키커로 나선 메시는 왼발 슈팅으로 오른쪽 골망을 흔들었다.
기세가 오른 아르헨티나는 1-0으로 앞선 전반 36분 추가골을 터트렸다. 하프라인에서 메시와 훌리안 알바레스를 거쳐 알렉시스 마크알리스테르에게 연결됐고, 마크알리스테르는 아크 오른쪽에서 크로스를 올렸다. 그리고 페널티 지역 왼쪽으로 쇄도하던 디마리아가 왼발로 밀어 넣었다.
프랑스는 분위기 반전을 위해 전반 41분 올리비에 지루 대신 마르퀴스 튀람, 뎀벨레 대신 란달 콜로 무아니를 교체 투입했다. 그리고 후반전에 대대적인 반격이 펼쳐졌다.
음바페와 교체 선수들이 선봉에 섰다. 0-2로 뒤진 후반 35분 란달 콜로 무아니가 박스 안으로 돌파하는 과정에서 아르헨티나의 니콜라스 오타멘디에게 어깨를 잡혀 넘어지며 페널티킥을 얻어냈고, 키커로 나선 음바페가 오른발 슈팅으로 왼쪽 골망을 갈랐다. 음바페는 또 1-2이던 후반 36분엔 동점골을 넣었다. 음바페가 아크 왼쪽에서 마르퀴스 튀람에게 공을 준 뒤 박스 왼쪽으로 돌파, 다시 튀람에게 패스를 받아 오른발 발리슛으로 오른쪽 골문을 흔들었다.
승부는 연장전으로 이어졌고, 2-2이던 연장 후반 3분 메시가 한 골을 추가했다. 아르헨티나 라우타로 마르티네스가 페널티 지역 오른쪽에서 슈팅을 때렸고, 프랑스 골키퍼 위고 요리스가 쳐낸 공을 문전에 있던 메시가 오른발로 밀어 넣었다. 하지만 프랑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연장 후반 13분 문전에서 아르헨티나 곤살로 몬티엘의 핸드볼 파울이 선언, 페널티킥이 주어졌고 키커로 나선 음바페가 골로 연결했다.
승부는 승부차기에서 갈렸다. 선축을 잡은 프랑스의 2번 키커 킹슬레 코망, 3번 키커 오렐리앵 추아메니가 잇달아 실축했다. 반면 아르헨티나는 1번 키커 메시부터 4번 키커 몬티엘까지 모두 골망을 흔들며 우승을 확정했다.
문화일보 허종호 기자
12.21 ‘중국 태양광 세계 장악’의 어두운 비밀
신장의 싼 전기료에다
수용소 수감과
농촌 인력 강제 동원으로
대규모 低賃 노동 확보
‘거대한 새장’의 비극
中은 “서방의 왜곡” 주장

▲신장의 수용소 수감자들이 열을 지어 앉아 있는 모습. 중국 당국은 직업훈련센터라고 주장해왔다. / 영국 셰필드핼럼 대학의 국제정의센터가 펴낸 '훤한 대낮에' 보고서에서
중국산(産) 태양광이 세계를 장악했다. 태양광 원료 물질인 폴리실리콘은 세계 수요의 79%를 중국이 공급하고 있다(국제에너지기구 7월 보고서). 그중에서도 신장(新疆)자치구가 42% 비율이다. 중간 가공품인 웨이퍼는 중국산이 97%, 셀이 80%, 모듈은 70%다.
폴리실리콘은 석영 가루를 섭씨 1700도 열로 녹이면서 정제해 만든다. 엄청난 전기가 소모된다. 생산비의 40%가 전기요금이다. 그런데 신장은 전기요금이 아주 싸다. 미국 브레이크스루 환경연구소가 지난달 낸 보고서(태양광 제국의 죄악)를 보면 신장엔 203기의 석탄발전소가 있다. 이로 인해 신장은 엄청난 대기오염을 겪어야 하는 ‘희생 지대(sacrifice zone)’가 됐다. 한편 신장에 태양광 생산 설비가 집중되면서 ‘규모의 경제’ 이점이 생겨났다. 강력한 세제 혜택, 금융 지원에다 끊임 없는 기술 혁신으로 태양광 모듈 가격은 10여 년 사이 80% 하락했다. 그 덕에 세계적 태양광 붐이 일고 있다.
그 과정에 ‘강제 노동’의 어두운 그림자가 스며 있다. 중국 정부는 1990년대 들어 한족(漢族)의 신장 이주를 장려했다. 과거 7%였던 한족이 지금은 42%로 늘었다. 이런 동화 정책에 위구르인들은 극렬 저항했다. 2009년 우루무치 유혈 사태(170명 사망), 2014년 5월 우무루치 폭탄 테러(30명 사망) 등이 대표적이다. 중국 정부는 2014년 5월 ‘엄중 타격(嚴打·Strike Hard)’ 정책으로 대응했다. 미국 국무부 차관보는 의회 증언(2018년 12월)에서 “적어도 80만, 어쩌면 200만에 달할 무슬림 소수민족이 수용소에 억류돼 있다”고 평가했다.
신장 수용소를 중국 정부는 직업훈련센터(敎育培訓中心)라고 주장해왔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지난 8월 40명 심층 인터뷰를 거쳐 ‘평가 보고서’를 냈다. 수용자들은 24시간 조명 아래서 2~18개월간 면회 없는 수감 생활을 해야 했다. 의자에 손발 묶는 ‘호랑이 의자’, 애국송 핏발 서도록 부르기, 멍해지는 주사·알약 처방이 일상적이다. 다른 보고서나 언론 보도를 봐도 방마다 감시 카메라, 10여 명이 양동이 하나를 화장실로 사용, 수용자 간 대화 금지, 중국 표준어(보통어) 학습, 시진핑 어록 암기가 공통적이다.
CNN은 2019년 7월 중국 당국의 수감 사유 기록을 입수해 보도했는데 소수민족은 아이를 3명까지만 가질 수 있는데 4명을 낳은 경우, 긴 수염 기른 남자나 히잡을 쓴 여성, 아랍어 사이트 검색, 이슬람식 기도와 모스크 수시 방문, 해외여행도 안 하면서 여권을 가진 경우 등이었다.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는 2020년 9월 위성사진 분석으로 380곳의 신장 구금 시설을 확인했다는 보고서를 냈다. 시설들은 높은 담장, 차단 철조망, 감시탑으로 둘러싸였다. 중국 정부는 센터의 존재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2019년 이후 더 이상 운영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ASPI는 “70여 곳은 폐쇄된 듯하지만 2019년 이후 61곳이 신·증설됐다”고 주장했다.
수용자들은 퇴소 후엔 센터 내, 또는 인근 공장에서 초라한 임금을 받고 일하도록 강요받았다. 미국 인류학자 대런 바이런이 인터뷰한 여성은 53일을 장갑 공장에서 일했는데 셔틀버스 비용을 빼고 나니 300위안(약 40달러) 남았다고 했다(신장 위구르 디스토피아). 농촌에서 놀고 있는 ‘잉여 노동력’을 기숙 시설이 딸린 공장에서 고용하는 이른바 ‘노동력 이전’ 제도도 광범위했다. 빈곤 추방 명분이었다. 농민들의 농지 경작권을 국가가 환수해버린 뒤 빈 손이 된 농민을 공장으로 보내는 식이다. 중국 언론은 이걸 ‘근대화’ ‘산업화’라고 홍보했다.

▲중국 신장의 우루무치 북서쪽에 있는 폴리실리콘 공장(파란 테두리)을 위성 사진으로 잡은 모습. 주변에 붉은색 테두리의 석탄발전소들이 있다. / 미국 브레이크스루 연구소 보고서에서
신장의 강압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중국 정부는 첨단 전자 감시망을 갖추고 9만명의 경찰 보조원을 채용했다(대런 바이런). 도시 곳곳 요충 검문소에서 안면 인식, 휴대폰 검사로 위구르 사람들 행적을 모니터링했다. 뉴욕타임스는 2019년 5월 주도(州都) 우루무치에만 검문 포인트가 1만곳 설치됐고, 하루 600만회의 모니터링이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신장이 ‘거대한 새장’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환구시보는 일련의 보도·보고서를 “신장의 상승 경제를 파괴하려는 서방의 악의적 왜곡”이라고 받아쳤다.
미국은 올 6월 ‘위구르 강제노동 방지법’을 시행해 신장 태양광 제품의 수입을 금지시켰다. 그 덕에 한국 태양광의 미국 수출이 활발해졌다. EU 의회에도 9월 비슷한 법안이 발의됐다. 중국 태양광 문제는 산업적 이해를 뛰어넘어 중국이 변방 소수민족을 어떻게 다루는지의 관점에서 봐야 할 사안이다. 시진핑 주석은 2017년 트럼프와의 정상회담에서 “한국은 과거 중국의 일부였다”고 발언했다. 그 발언은 또 어떤 함의를 갖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조선일보 한삼희 선임논설위원
12.22 눈 파묻힌 차 안 시신 발견… 일본, 2m 눈폭탄에 피해 속출

▲폭설이 내린 일본 현지. /유튜브
일본 니가타현에서 기록적인 폭설이 이어지며 인명피해와 정전사태가 속출했다.
22일 NHK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전날까지 니가타현에서 폭설 영향으로 4명이 사망하고 23명이 부상당했다. 제설 작업 중이던 80대 남성이 용수로로 추락해 사망했고, 또 다른 80대 남성이 자택 지붕의 눈을 치우다 떨어져 숨졌다. 눈에 묻혀 쓰러진 모습으로 발견된 90대 여성도 사망했다.
가시와자키시에서는 20대 여성이 자택 앞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차량은 눈 속에 파묻힌 상태였다. 당국은 여성이 정전 때문에 차 안에서 몸을 녹이다가 쌓인 눈에 차량 머플러가 막히면서 배기가스가 차내에 찼고, 결국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했을 수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올해 니가타현에서는 평년의 2배에 이르는 2m 안팎의 눈이 내리고 있다. 지난 18일 이후 2만 가구 이상에서 정전이 발생했고, 현재까지 마을 곳곳에서 대규모 정전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나가오카시 등 국도에서는 많은 눈에 차들이 고립돼 있다가 20~30여 시간 만에 해소되기도 했다.
현지 기상청은 이날부터 26일까지 일본 전역에 강한 겨울형 기압이 배치된다고 예보했다. 이에 따라 홋카이도에서 규슈 서해상에 이르는 넓은 범위에 강한 한파와 눈 폭탄이 쏟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조선일보 문지연 기자
12.24 9분 만에 10도 ‘뚝’ 이불 덮고 외출… 체감 영하 59도 美한파, 왜?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한 시민이 담요를 뒤집어 쓴 채 걷는 모습. /AP 연합뉴스
미국에 영하 50도가 넘는 최악의 ‘크리스마스 한파’가 불어 닥쳤다. 국립기상청도 “생명을 위협하는 추위”라며 경고한 가운데, 곳곳에서는 방한 마스크로 중무장하거나 두꺼운 이불을 덮어쓴 채 외출한 시민들 모습도 눈에 띄었다.
23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전날 미국 중부와 북부 일부 지역 기온이 급강하하고 강풍과 눈보라가 몰아치는 혹한이 찾아왔다. 체감 온도는 영하 50도를 돌파했는데 지역별로 일리노이주 시카고가 영하 53도, 테네시주 멤피스가 영하 54도를 기록했다. 몬태나주 엘크 파크는 기온이 영하 45도까지 떨어지며 체감 온도도 영하 59도까지 곤두박질쳤다.
조선일보
12.30 '축구황제' 펠레, 암 투병끝 별세…"편히 잠드세요" 딸 임종 지켰다

▲대장암 투병 끝에 별세한 '축구황제' 펠레. AFP=연합뉴스
'축구황제' 펠레(브라질)가 대장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29일(현지시간) 브라질 상파울루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 82세.
펠레의 딸 케릴 나시멘투는 30일(한국시간) 소셜미디어를 통해 "우리는 당신을 영원히 사랑합니다. 편히 잠드세요"라는 애도 메시지와 함께 아버지 펠레가 사망했다고 밝혔다.
펠레는 지난해 9월 대장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종양 제거 수술 후 화학 치료를 받으며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그러다 심부전증과 전신 부종 그리고 정신 착란 등 합병증이 찾아왔다. 결국 지난달 29일부터 브라질 상파울루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병원에 재입원했다. 코로나19에 따른 호흡기 증상도 치료도 병행했다. 이 무렵 항암 치료를 포기하고 완화 치료로 전환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완화 치료는 심각한 말기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를 위한 고통 완화 단계다.

▲병상의 펠레를 끌어안은 딸 켈리 나시멘투. 사진 켈리 나시멘투 SNS
하지만 펠레의 가족은 지난 4일 "코로나19로 호흡기 상태가 악화해 입원한 것으로 위독한 상황은 아니다"라며 펠레의 건강 악화설을 부인했다. 병원 측도 "펠레는 의식이 있는 안정적인 상태로 새로운 합병증은 없다"고 발표했다. 이달 중순 펠레의 건강 상태가 호전 소식이 전해졌다. 영국 데일리 메일은 지난 12일 "(펠레의 담당) 의료진에 따르면 펠레의 건강이 좋아지고 있다"고 전하면서 축구 팬들은 한숨 돌렸다.
안도도 잠시, 의료진은 지난 21일 갑작스럽게 성명을 내고 "펠레의 암이 더 진행된 것으로 파악된다. 심장, 신장 기능 장애와 관련해 더 많은 치료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펠레의 가족들이 병원으로 모였다. 펠레의 아들인 이드송 숄비 나시멘투는 지난 24일 펠레를 찾았다. 그는 소셜미디어(SNS)에 아버지 펠레의 손을 잡은 사진을 올렸다. 펠레의 딸 켈리 나시멘투는 앞서 자매인 플라비아 아란치스 두 나시멘투와 함께 아버지의 병실을 지키는 사진을 공개했다. 펠레를 끌어안은 켈리는 "우리는 믿음으로 이 싸움을 계속한다. 함께 하룻밤을 더"라며 간절한 마음을 전했다. 가족의 응원에도 펠레는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끝내 눈을 감았다.
축구의 대명사, 유일한 월드컵 3회 우승 레전드
펠레는 축구 그 자체였다. 세계적인 스타이자, 대명사로 통했다. 특급 공격수 펠레는 브라질을 세 차례나 월드컵 정상으로 이끌었다. 만 17세의 나이로 출전한 1958 스웨덴월드컵에서 6골을 폭발하며 고국에 우승 트로피를 안겼다. 프랑스와의 준결승에서 해트트릭을 작성했고, 스웨덴과의 결승전에서도 두 골을 터뜨렸다. 1962 칠레월드컵과 1970 멕시코월드컵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세계 축구사에서 세 차례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선수는 펠레가 유일하다. SNS 팔로워만 1000만 명이 넘을 만큼 세월이 흘러도 큰 사랑을 받은 스타였다. 펠레의 본명은 에드손 아란테스 두 나시멘투다. 펠레는 어린 시절 별명이다. 나시멘투라는 이름이 발음하기 어려워 생긴 애칭이다.

▲1970년 멕시코월드컵에서 브라질의 우승을 이끌고 환호하는 펠레. AP=연합뉴스

▲브라질을 세 차례 월드컵 우승으로 이끈 펠레. 사진 펠레 인스타그램
패스의 가치를 중시한 무결점 골잡이
키 1m73㎝, 몸무게 73㎏의 펠레는 무결점 골잡이로 통했다. 빠른 드리블과 뛰어난 골 결정력은 물론 정확한 패스 능력까지 겸비했다. 골잡이가 패스를 잘한다는 건 의미가 크다. 축구에선 동료를 돕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라운드에서 축구 이상의 가치를 중시한 인물로 평가됐다. 큰 키는 아니었지만, 제공권도 뛰어났다. 타고난 점프력으로 날카로운 헤딩골을 자주 터뜨렸다.
펠레는 현역 시절 21년간 1363경기에 출전해 1281골을 터뜨렸다. 국가대표팀에서도 91경기에서 77골을 넣었다. 브라질 역대 최다골 공동 1위(네이마르) 기록이다. 월드컵은 네 차례 출전해 14경기에서 12골을 터뜨렸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펠레를 축구를 넘어 '20세기 최고의 운동선수'로 뽑았다. 당시 2위에 선정된 농구 선수 마이클 조던(미국)은 "펠레라면 기꺼이 농구 황제보다 위대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축구 룰 바꾼 '오버헤드킥의 시초'
펠레는 오버헤드킥의 원조다. 1968년 브라질과 벨기에의 친선경기 중 펠레는 왼쪽에서 날아온 공을 골대를 등진 채 뛰어올라 오른발 오버헤드킥으로 벨기에 골망을 흔들었다. 이전까지 거의 볼 수 없었던 오버헤드킥을 사실상 세계에 처음 알린 순간이다. 오버헤드킥은 현대 축구에서 보기 드문 최고 수준의 슈팅 기술이다. 펠레 덕분에 축구의 룰도 바뀌었다. 1966 잉글랜드월드컵에 나선 펠레는 상대의 집중 견제를 받았다. 브라질은 1958년과 1962년 연달아 우승한 팀이었고, 펠레가 핵심 선수였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축구 규칙엔 교체가 없었다. 부상을 당해도 선수는 고통을 참고 경기를 계속 뛰거나, 그라운드를 떠나 쉬어야 했다. 선수가 빠진다고 충원을 할 순 없었다. 선수가 모자란 팀은 수적 열세 속에서 경기를 마무리해야 했다. 현대 축구에선 불가능한 일명 '에이스 제거' 작전도 가동될 수 있었다. 이 대회에서 펠레는 상대의 숱한 '살인 태클'의 희생양이 됐다. 결국 1970년 월드컵부터 레드카드와 교체 제도가 도입됐다.
▲1968년 벨기에와의 친선경기에서 오버헤드킥 하는 펠레. 사진 펠레 인스타그램
에이스 상징 '등번호 10번'의 원조
펠레는 에이스의 상징인 '등번호 10번'의 원조다. 축구 경기에서 등번호를 다는 건 1924년 미국에서 처음 시작됐다. 당시 등번호는 포지션별로 부여되는 자동 표식이었다. 1번이 골키퍼, 2~5번이 수비수, 6~8번은 미드필더, 9~11번이 공격수에게 부여되는 게 관례였다. 등번호는 월드컵에서는 1954 스위스 대회에서 처음 도입됐는데, 이 대회를 앞두고 FIFA는 각국 협회에서 선수 등번호를 임의로 정하도록 제도를 바꿨다. 그런데 브라질축구협회는 이 절차를 잊었다. 결국 당시 등번호 배정을 담당했던 우루과이 출신 국제축구연맹(FIFA) 직원이 펠레에게 10번을 줬다.
펠레는 등번호 10번을 달고 브라질에 세 차례 월드컵 우승을 안겼다. 이때부터 '10번'은 최고의 선수를 의미하게 됐다. 1986 멕시코월드컵에서 원맨쇼를 펼치며 아르헨티나를 우승으로 이끈 디에고 마라도나, 1998 프랑스월드컵에서 아트사커 시대의 막을 올렸던 프랑스의 지네딘 지단 역시 10번의 화려한 계보를 이었다. 2022 카타르월드컵에서도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 네이마르(브라질), 루카 모드리치(크로아티아) 등 수퍼스타들이 펠레가 달았던 10번을 달고 그라운드를 누볐다.
▲카타르월드컵 16강 후 '펠레 쾌유 기원' 현수막 펼친 브라질 선수들. 연합뉴스
병상에서도 네이마르·브라질 응원
펠레는 마지막 순간까지 병상에 누워 브라질 축구와 후배들을 응원했다. 펠레는 2022 카타르월드컵 초반인 지난달 트위터에 "병원에서 TV로 경기를 보며 (브라질) 대표팀을 응원하고 있다. 우승 트로피를 가져오라"고 썼다. 펠레는 이번 대회 개막 전 SNS에 "내가 지나치게 자신감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브라질이 다시 우승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 같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FIFA 랭킹 1위 브라질 대표팀도 대선배인 펠레에게 우승을 선물하겠다는 각오로 똘똘 뭉쳤다. 브라질의 에이스 네이마르는 카타르월드컵 16강전에서 한국을 4-1로 꺾은 뒤, 커다란 현수막을 펼쳤다. 현수막에는 펠레(Pelé)의 이름과 사진이 담겨 있었다. 브라질 관중들은 경기 중 펠레의 사진과 '쾌차하라'는 메시지가 담긴 대형 현수막을 흔들었다. 개최국 카타르 수도 오하의 300m 높이의 고층 호텔 '토치 타워'에 펠레의 사진과 함께 쾌유를 비는 메시지가 전시됐다. 안타깝게도 브라질은 8강에서 크로아티아에 승부차기 끝에 패했다.
승패는 맞히지 못한 '축구황제'
펠레는 월드컵 등 주요 국제대회마다 팬들에게 큰 웃음도 선물했다. 축구를 가장 잘했다고 해서 누가 이길지 맞히는 것까진 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팬들은 이를 두고 '펠레의 저주'라고 불렀다. 펠레는 1974년 월드컵부터 우승후보를 서너 팀씩 꼽았지만, 그가 점찍은 팀은 번번이 탈락했다는 징크스다. 펠레는 1966 잉글랜드월드컵을 앞두고 브라질의 우승을 예상했지만,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2014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도 펠레는 브라질의 우승을 예상했다. 그는 행여 부정탈까봐 조추첨식까지 불참했다. 하지만 브라질은 4강에서 독일에 1-7로 참패를 당했다.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 당시 펠레는 문어에 물먹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독일 서부 오버하우젠의 수족관에 사는 '파울(Paul)'이란 이름의 문어는 남아공에서 독일이 출전한 여섯 경기 승패를 맞히는 '족집게 예언'을 선보였다. 그러자 "펠레보다 낫다"고 놀렸다. 펠레는 남아공 대회를 앞두고 브라질과 스페인을 우승후보로 꼽았으나, 조별예선에서 약세를 보인 스페인을 슬그머니 빼고 "독일, 아르헨티나가 브라질과 우승을 다툴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하지만 그가 언급한 세 팀은 모두 탈락했다. 스페인만 살아남아 우승까지 했다. 펠레는 "사람들은 내가 틀린 것만 기억한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카타르월드컵에서도 브라질이 8강에서 조기 탈락하면서 '펠레의 저주'가 또 한번 팬들의 관심을 모았다. 펠레는 "네이마르가 이끄는 브라질이 우승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팬들은 "카타르에서 펠레의 소원대로 브라질이 우승해 징크스도 풀렸으면 했다"며 아쉬워했다.
맨발로 공 차던 소년, 세계를 호령하다
펠레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무명의 축구선수였다. 생활고에 시달린 어머니는 그가 축구하는 것을 싫어했지만, 아버지를 닮은 펠레는 축구에 빠졌다. 그는 공을 살 돈이 없어서 양말을 뭉쳐 만든 공을 찼다. 운동화 대신 맨발로 흙바닥 그라운드를 누볐다. 펠레는 아버지에게 기본기를 배웠는데, 탁월한 재능 덕분에 실력이 하루가 다르게 늘었다. 1955년 만 15세에 브라질에서 가장 유명한 축구팀 산투스에 입단했고, 이듬해 37골을 넣어 데뷔 첫해 득점왕에 올랐다.
1957년 17세에 국가대표가 된 후 1958년 스웨덴월드컵에서 6골을 넣으며 우승을 이끌었다. 펠레는 1962년 칠레, 1966년 잉글랜드, 1970년 멕시코 대회까지 4번의 월드컵에 참가해 14경기에서 12골을 터뜨렸고, 세 차례 우승했다. 하지만 그도 최고의 선수들이 경쟁하는 유럽에서 뛴 적은 없다. 1958년 월드컵 후 레알 마드리드(스페인) 등 유럽 명문 팀의 러브콜을 받았지만, 브라질 정부는 1961년 펠레를 ‘국보’로 지정해 국외로 나가는 것을 금지했다. 산투스 구단이 펠레를 유럽 구단에 보내서 얻는 수익보다 상품화해 얻는 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는 주장도 있다. 펠레는 은퇴 직전인 35세에 미국 프로축구 뉴욕 코스모스 팀에 간 게 유일한 해외경험이다.
▲산투스 시절 펠레. 로이터=연합뉴스
▲1958 스웨덴월드컵 우승 후 브라질 대표팀 선배의 어깨에 기대 기뻐하는 17세 펠레(왼쪽). AP=연합뉴스
그라운드 밖에선 '평화 전도사'
펠레는 경기장 밖에서 '평화 대사'로 활약했다. 1969년 펠레는 소속팀 산투스를 따라 내전 중인 나이지리아를 방문해 나이지리아 대표팀과 친선경기를 뛰었다. 당시 펠레를 보기 위해 수많은 나이지리아인이 경기장을 찾는 바람에 내전도 잠시 중단됐다. 펠레는 미국 CNN과 인터뷰에서 "나이지리아 사람들은 축구를 열렬히 사랑했고, 우리가 뛰는 것을 보기 위해 전쟁을 멈췄다"면서 "무척 자랑스러운 일화"라고 말했다. 펠레는 지난 6월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을 멈춰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는 푸틴 대통령과 2017년 모스크바에서 만난 사연을 소개하며 "그때 웃으며 오래 악수하던 바로 그 당신의 손에 이 상황을 중단시킬 힘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펠레는 브라질 독재정권 시절에는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기도 했다. 영국 BBC는 "브라질의 폭력적인 군사독재 정권(1964~85년)은 펠레를 이용해 자신들의 오명을 세탁했다"면서 "1970년 월드컵을 앞두고 국제적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대표팀 스태프를 군인들로 구성해 우승하도록 압박했다"고 전했다. 이후 1985년 브라질이 민주화를 이루고 직접선거가 치러지자 펠레의 대선 출마설이 돌기도 했다. 그도 "출마만 하면 당선은 문제없다"고 말했다. 펠레는 대통령 대신 1995년 체육부 장관이 됐다. 축구계 부패 권력과 싸우고, 선수 권익을 보호하는데 공을 들였다. 또 유엔 환경 관련 친선대사, 유네스코 친선대사 등도 맡았다.
세계적인 유명세 덕분에 펠레의 손에 닿은 물건은 대부분 고가에 팔렸다. 그가 소장하던 월드컵 우승 트로피인 줄리메컵은 2016년 39만5000만 파운드(당시 약 6억6000만원)에 팔렸다. 당시 영국 스카이스포츠는 런던에서 열린 펠레의 개인 소장품 경매에서 스위스의 시계 제조업체 위블로가 줄리메컵을 구매하기 위해 최고가격을 적어냈다고 보도했다. 펠레의 줄리메컵은 1970년 월드컵 당시 개최국인 멕시코 정부가 펠레를 위해 별도로 제작한 것이다. 실제 줄리메컵은 이 대회에서 통산 세 번째 우승을 차지한 브라질 축구협회가 소장했지만, 1983년 도난 당했다.
펠레가 1958 스웨덴월드컵 우승 당시 받은 메달은 20만 파운드(당시 3억3600만원)에, 1962 칠레월드컵 우승 메달은 14만800 파운드(당시 2억3600만원)에 팔렸다. 펠레가 영화 속에서 착용했던 축구화는 8000 파운드(1340만원)에 판매됐다. 펠레가 1970년 월드컵 결승 때 입었던 유니폼은 2002년 경매에서 15만7750 파운드(당시 약 2억5000만원)에 팔렸다.
▲펠레(오른쪽)와 일본계 브라질인 아내 마르시아 시벨리 아오키. 사진 펠레 인스타그램
부유했지만, 복잡했던 사생활
펠레는 축구선수 시절엔 막대한 부를 쌓지 못했다. 유럽 빅리그에서 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선수 생활을 하며 번 돈은 총 600만 달러(약 8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그러나 은퇴 후엔 상황이 달라졌다. 유명인사 자산을 전문으로 다루는 사이트로 셀리브리티넷워스(Celebritynetworth)에 따르면 펠레는 은퇴 후 광고, 영화 출연, 각종 홍보대사, 축구 관련 사업 등으로 자산을 1억 달러(약 1320억원)로 불렸다. 물론 현재 축구계를 주름잡는 수퍼스타 메시와 호날두가 4억~6억 달러(5000억~8000억원)를 벌어들인 것에 비하면 적다.
성공적인 선수 생활과 달리, 사생활은 복잡했다. 펠레는 공식적으로 3번 결혼했다. 자녀는 7명이다. 이들 외에도 혼외 자식이 많다. 영국 더 선에 따르면 펠레의 실제 자녀는 몇 명인지 세기 어렵다. 펠레는 2016년 일본계 브라질인 마르시아 시벨리 아오키(56)와 결혼했는데, 이후로는 가정에 충실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지막도 축구 이야기
펠레가 팬들에게 남긴 마지막 글도 축구였다. 그는 카타르월드컵 우승 직후 SNS에 "오늘 축구는 언제나 그렇듯이 매혹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며 "메시는 처음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는데 그의 축구 인생에 걸맞은 결과"라며 후배들을 격려혔다. 메시는 그동안 월드컵 우승이 없다가 이날 카타르 월드컵 결승에서 프랑스와 연장접전 끝에 승부차기에서 4-2로 따돌리고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그는 또 "나의 친구 음바페는 결승에서 네 골(승부차기 득점 포함)을 넣었다"며 "이런 엄청난 우리 종목의 미래를 보는 것은 대단한 선물"이라고 격려했다. 음바페는 1966년 제프 허스트(잉글랜드) 이후 56년 만에 월드컵 결승에서 해트트릭을 달성한 선수가 됐다. 펠레는 "아르헨티나의 우승을 축하하고, 디에고 마라도나도 미소 짓고 있을 것"이라고 아르헨티나 팬들에게 인사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