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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정 칼럼(조선일보) 2022/ 01.05 남한 땅 팔면 일본 열도 살 수 있게 해준 文 대통령 - 12.28(수) 합리적 모피아에 포획된 대통령실

상림은내고향 2022. 12. 26. 18:08

선우정 칼럼 조선일보 2022

뉴스총괄에디터, 사회·국제·주말뉴스부장, 도쿄특파원

01.05  남한 땅 팔면 일본 열도 살 수 있게 해준 文 대통령

재임 기간 내내 땅값을 폭등시켜
한국을 세계적 땅 부자로 만들었다
文은 ‘장부상 광개토대왕’이다
“다신 지지 않겠다” 反日 쇼 하더니
이룬 업적이 겨우 ‘부동산 추월’인가

 장부만 보면 이 땅에 광개토대왕이 재림한 듯하다. 한국은행이 매년 내는 국민 순자산 통계가 있다. 보통 ‘국부(國富) 통계’라고 한다. 나라 재산 목록 가운데 한국의 토지 자산은 2020년 기준으로 9679조원. 20년 전보다 5배 늘었다. 나라의 토지 자산은 영토를 넓히거나 토지의 값을 올리면 늘어난다. 20년 동안 간척으로 늘어난 땅은 국토의 0.9%에 불과하다. 땅값이 한국 토지 자산 대부분을 늘린 것이다.

 

남한 넓이는 일본 열도의 26% 정도다. 세계인이 땅을 사려고 몰려드는 국제적 허브 도시가 있는 것도 아니다. 남한 땅을 팔아 일본 열도를 살 수 있을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나. 그런데 이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2019년 말 일본의 토지 자산은 한국 원화로 환산해 1경2501조원. 남한의 토지 자산(9679조원)이 일본의 77%까지 치솟았다. 과거 10년간 평균 상승률이 이어지면 두 나라의 토지 자산 가치는 3년 뒤인 2025년 역전된다. 남한을 팔면 일본 열도를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평당 가격은 이미 16년 전 역전됐다. 지금 한국의 땅 한 평은 일본의 땅 세 평 가격이다.

 

 

 

과거 일본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게 얼마나 황당한 일인지 안다. 30여 년 전 일본은 도쿄만 팔아도 미국 전체를 살 수 있다고 했다. 1990년 일본 열도의 토지 자산은 2경3653조원에 달했다. 지금의 두 배 값이다. 당시 한국의 토지 자산은 일본의 15분의 1 정도로 추정된다. 일본 지방 도시 수준이라고 했다. 거품이 엄청나게 빠졌지만 지금도 일본의 토지 자산은 통계를 내는 OECD 15국 중 1등이다. 2등은 프랑스. 영토가 프랑스의 18%에 불과한 한국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이 추세라면 프랑스도 1~2년 내에 추월한다. 물론 실현될 수 없는 산술적 비교지만 이미 한국이 남한을 팔면 호주, 영국, 독일을 살 수 있다. 캐나다는 두 번, 오스트리아는 열 번 살 수 있다. 지정학적으로 외세에 당할 운명이라던 위험 국가가 어쩌다 세계적 땅 부자가 됐을까

 

 

‘장부상 광개토대왕’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부동산 분야에서 그의 실적은 너무나 대단해 토네이도급 투기 광풍이 몰아치지 않으면 그를 넘어설 인물은 더 이상 나올 수 없다. 문 대통령은 지난 4년 동안 토지 자산을 2533조원어치 늘렸다. 이명박, 박근혜 두 대통령의 9년 실적을 능가한다. 불멸의 대기록으로 여기던 노무현 대통령의 실적을 4년 만에 가볍게 돌파했다. 두 대통령이 9년 동안 늘린 토지 가치는 우리나라 전체 토지 자산의 절반 이상이다. 이들은 무력과 지략으로 영토를 넓힌 일도, 혁명적 국토 개조로 토지의 부가가치를 높인 일도 없다. 오직 몇 가지 시장 교란 정책을 최악의 방식으로 조합해 대기록을 만들어냈다.

 

일부 사람들은 문 대통령이 어쩌다 대기록을 세웠다고 주장한다. 투기꾼을 잡겠다는 선의(善意)로 최선을 다했지만 부패 기득권 세력의 방해와 정책 부작용 때문에 뜻하지 않게 한국을 부동산 대국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의 계획과 실력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문 정권은 그들이 쌓아올린 거대 토지 자산에서 나온 황금 알을 마다한 적이 없다. 오히려 세제(稅制)까지 바꿔 짜내고 또 짜냈다.

 

부동산 자산이 늘어나면 재산세, 종부세 등 보유세만 늘어나지 않는다. 거래세와 증여상속세 등도 동시에 늘어난다. OECD 집계에 따르면 문 정권은 집권 4년 동안 이처럼 ‘재산과 연계된 세금’을 26조6920억원 늘렸다. 2016년 말 OECD 36국 중 11위였던 GDP 대비 재산 관련 세금 비율을 2020년 2위로 끌어올렸다. 보유세가 급증한 작년 통계가 나오면 한국의 재산 과세 수준은 캐나다를 누르고 OECD 1위로 올라설 가능성이 높다. 나라를 세계적 땅 부자로 만들더니 올린 땅값을 기반으로 세금까지 세계적으로 올렸다. 여기에 국가 부채 400조원을 더해 임기 내내 원하는 대로 넉넉히 썼다. 그래도 부족하다고 한다. 이런 정권을 두고 무슨 선의 타령인가.

 

후계자인 이재명 후보의 간판 정책도 전적으로 문 대통령이 쌓아올린 토지 자산에 기반한다. 이름부터가 ‘토지 이익 배당금제’다. 이 후보는 “(부동산 보유세의) OECD 평균 실효 세율이 0.8%를 넘는다”고 했다. 그만큼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엉터리다. 집계가 가능한 OECD 15국의 평균 실효 세율은 0.29%다. 한국의 실효 세율(0.17%)이 상대적으로 낮은 건 국민이 보유세를 적게 내서가 아니다. 한국의 부동산 보유세는 지난 10년 동안 두 배 올랐다. 그래도 실효 세율이 제자리인 이유는 실효 세율이 부동산 자산 대비 보유세 비율이기 때문이다.

 

부동산자산이 급등하면 아무리 세금을 내도 실효세율은 올라가지 않는다. 정권이 한국처럼 부동산 자산을 끌어올리면 국민이 아무리 세금을 내도 실효세율은 제자리다. 이 후보가 실효 세율을 높이겠다는 것은 이중 증세이자 현대판 가렴주구다. 누구에게 엉뚱한 소리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후보 말대로 실효 세율 0.8%를 적용하면 한국 국민은 매년 보유세를 106조원 내야 한다. 작년의 5배다. “수탈하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문 대통령이 물려줄 살찐 거위의 배를 갈라 황금 알을 독점하겠다는 것이다.

 

무슨 트라우마가 있는지 모르지만 문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일본에 적의와 경쟁 의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다”며 일명 ‘소부장’ 운동을 벌이더니 2년 후엔 기업인을 모아놓고 성과를 자평하는 보고 대회까지 열었다. 일본이 경항모를 도입하자 우리도 도입하겠다고 했다. 죽창가를 불러대며 기세가 워낙 등등해 무언가 일본을 추월하는 대업적을 세우는가 했다. 그런데 겨우 실현 가능하게 해준 극일(克日)이 땅값 추월, 부동산 추월인가.

 

 

부동산 거품이 붕괴하기 직전 일본 비금융 자산에서 차지하는 부동산 자산 비율은 80% 정도였다. 이게 끝이었다. 여기서 와르르 무너져 내려 지금 57% 수준까지 내려왔다. 이게 정상이다. 일본의 이 조정 기간을 ‘잃어버린 30년’이라고 한다. 문 대통령은 한국의 이 비율을 2020년 77%까지 끌어올렸다. 작년엔 더 높아졌을 것이다. 그는 노 대통령이 극적으로 끌어올린 76.6% 대기록을 역시 가볍게 돌파했다. 한국의 경제 체력이 당시 일본보다 강하다는 지표를 찾아내기 어렵다. 세계 최악 수준인 개인 부채처럼 부동산 붕괴 때 국민 다수를 나락으로 떨어뜨릴 위험 요소만 안고 있을 있을 뿐이다. 문 대통령은 당장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대형 폭탄을 국민에게 내던지고 청와대를 떠나는 것이다.

 

01.26  이재명의 과거는 왜 반복 재생되는가

남을 공격할수록 내 상처가 깊어지는 이 후보의 숙명
그의 슬로건처럼 그 역시 ‘나를 위해’ 미래로 갔으면 한다

이재명 후보가 그제 “욕설 문제로 우리 가족들 아픈 상처를 그만 헤집어 달라”고 했다. 그의 정치적 고향인 성남에서 “제가 잘못했다”며 울면서 말했다. 대선 후보의 이런 모습을 처음 봤다.

 

이 후보는 이 문제에 대해 여러 차례 사과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작년 7월 1일 고향 안동에서 “제 부족함에 대해 용서를 바란다, 죄송하다”고 했다. 그 후에도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사과했다. 아무리 극악한 욕설이라도 당장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할 범죄가 아닌 이상 이 정도 사과했으면 문제는 잦아든다. 그것도 10년 전 일이다. 사람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이 후보의 과거는 반복 재생되고 있다.

 

이 후보는 상대 진영이 자신의 과거를 헤집는다고 비난한다. 그런 측면이 없을 리 없다. 하지만 그의 말과 행동을 보면 그들 못지않게 이 후보 스스로 자신의 과거를 헤집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성남에서 그는 ‘형수 욕설’ 문제에 대해 7분 말했다. 여러 차례 울었고 세 차례 “잘못했다”고 했다. 그것으로 끝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6분 이상 죽은 형을 비난했다. 그가 “참혹하다”며 공개한 가족사를 여기에 옮겨 적지 않겠다. 정신이상자인 형이 어머니에게 욕설을 해 그가 한 대로 욕을 했다는 것이 골자다. 사흘 전 서울 연남동에선 이런 말을 했다. “여러분 하루에 한 명에게만이라도 말해 주세요. 이재명이 보니까 흉악한 사람이 아니더라, 욕했다는데 보니까 엄마 때문에 그랬다더라고.” 그가 이 문제에 대해 사과할 때 가족사를 들쑤시지 않은 적이 거의 없다.

 

열성 지지자들은 이 후보의 눈물에 공감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런 의문부터 들었다. 형에게 화가 났다면서 왜 형수에게 욕설을 퍼부었을까. 형을 제지하지 않았다고, 전화를 바꿔주지 않았다고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둘을 뒤섞어 자신의 행위에 이해를 구하려 하나. ‘형수 욕설’을 들은 많은 사람이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는 욕설의 상대가 왜 형수인지 답하지 않는다. 그래서 영혼 없이 적당히 둘러댄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과거는 인생의 상수(常數)라고 한다. 바꿀 수 없는 디폴트값이다. 사과하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부각되지 않을 뿐이다. 보통 사람은 그 위에 긍정적 미래를 덧씌워 승화시키려고 한다. 그런데 이 후보와 그의 주변은 과거를 변수(變數)로 여긴다. 말재주로 정당화할 수 있다며 끝없이 자신의 과거를 헤집는다. 그러면 상대방이 달려들어 또 헤집는다. 악순환이다.

 

그를 옹호하는 주변 사람들의 타락은 더욱 심하다. 김어준씨는 “이재명 욕설을 AI가 만들었다”고 했다. 요즘 여권 언저리에서 나타나는 말기적 징후다. 유시민씨는 이 후보의 욕설을 ‘미러링’이라고 감쌌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처럼 거울을 비추듯 상대방의 행동대로 갚아 주는 것을 말한다. 형수 욕설은 이재명이 아니라 형의 욕설이라는 궤변에 그럴 듯한 용어을 갖다 붙인 것이다. 이런 말이 통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1월 16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 걸린 전광판에서 김건희씨의 '7시간 전화 통화' 내용을 다루는 MBC 프로그램 '스트레이트'가 방영되고 있다. 이 방송이 나가자 이재명 후보의 '형수 욕설'도 방송하라는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사실 이 후보만큼 ‘미러링’이 두려운 정치인이 없다. MBC가 김건희씨의 사적 대화를 공개했을 때 세상의 거울은 곧장 이 후보로 향했다. 그의 사적인 욕설도 지상파 방송에서 보도하라는 항의가 봇물 터지듯 나왔다.

 

‘보수는 돈을 주니까 미투가 안 터진다’는 김씨 발언이 나오자 세상의 거울은 이 후보의 여배우 ‘무상(無償) 연애’ 의혹을 비췄다. 송영길 대표가 윤석열 후보를 “가족범죄단”이라고 비난했을 땐 세상의 거울은 가족 전체로 돌아갔다. 본인의 전과 4범 이력, 아내의 ‘혜경궁 김씨’ 의혹, 아들의 도박 혐의와 성매매 의혹, 조카의 연속 살인과 조폭 범죄. 그는 세상의 거울을 피할 수 없다. 남의 상처를 헤집을수록 자신의 상처가 훨씬 아프게 헤집힌다. 남의 약점을 공격해 그에게 빼앗는 국민의 지지보다 훨씬 많은 지지를 자신이 잃어버린다. 상대를 향한 모든 네거티브 파상 공세가 자신의 진영에 더 큰 해일로 밀려온다. 이게 ‘그 누구와도 다른’ 인생을 산 이재명의 숙명이다.

 

정치인 이재명의 정책 비전엔 시대를 뛰어넘는 내용이 있다. 방향은 달라도 이 후보만큼 그동안 ‘중부담 중복지’를 용기 있게 주장한 정치인이 없다. 미래 세대를 위해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그의 기본 소득 주장엔 반대하지만 이 주장이 한국 사회의 복지 논의를 보다 풍성하게 했고 보편적 복지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심화시켰다는 데 동의한다.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나 소년공을 거쳐 여기까지 온 그의 입지전적 서사는 한국 사회의 유연성과 역동성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다. 나는 그의 등장이 이 시대의 중요한 일면을 상징하고 있다고 본다.

이 후보의 대선 슬로건은 ‘나를 위해, 이재명’이다. 얄팍해 보이지만 현실의 급소를 찌르는 명쾌함이 있다. 이 후보 역시 ‘나를 위해’ 미래로 달렸으면 한다.

 

02.16  겁먹은 권력자의 말기적 반응

문 대통령의 5년은 숙청과 역병의 시대였다
수많은 원한을 만들고 나의 안락만 구하겠는가
화내며 도망치지 말라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다

 동부구치소로 재수감 되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탄 차량이 서울 논현동 사저를 빠져나오고 있는 모습./이태경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 후보의 권력 수사 발언에 “현 정부를 근거 없이 적폐 수사의 대상, 불법으로 몰았다”며 “강력한 분노를 표하며 사과를 요구한다”고 했다. 사자와 같은 존재는 이럴 때 “얼마든지 해보라”고 한다. 나약할수록 큰소리로 화낸다. 그는 겁을 먹은 것이다.

 

훗날 역사가 규정할 문 대통령의 시대는 명확하다. 숙청과 역병의 시대다. 조선 최대 숙청 사건인 갑자사화 때 239명이 유배형 이상의 화를 당했다.(김범 ‘연산군, 그 인간과 시대의 내면’) 문 대통령 적폐 수사로 구속 또는 기소 이상의 화를 당한 사람이 그 정도라고 한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적폐 몰이로 직장에서 내쫓겨 삶의 기반을 잃었다. 인격 살인을 당했다. 형벌의 경중은 크게 다르지만 사회에 미친 충격은 비슷할 것이다. 갑자사화를 일으킨 폭군은 자신의 주변에 고인 원한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공허에 미쳐 돌아가다가 폭정의 임계점을 넘어버렸다. 형벌이 과하면 폭군도 불안을 느낀다. 이 시대의 대통령은 오죽할까. 경직된 얼굴 뒤에 숨은 내면의 불안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 많은 사람들을 나락으로 내몰고 어떻게 자신의 안락만을 추구할 수 있겠는가.

 

구시대 청산이 필요한 시대가 있다. 문 대통령의 5년이 그런 시대였다고 본다. 보복과 처벌을 절제하고 용서를 앞세웠다면 역사의 전환점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직전 대통령 2명이 처벌된 뒤에도 멈추지 않았다.

 

사법부 창립 기념식에 참석해 “지난 정권의 사법 농단 의혹은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고 했다. 이것을 “촛불 정신”이라고 했다. 이 말에 전직 대법원장을 비롯한 고위 법관 14명이 기소됐고 현직 판사 66명이 비위 행위자로 찍혀 대법원에 통보됐다. 대부분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지나온 삶과 명예를 잃었다. 문 대통령은 이들의 처지를 돌아본 일이 없다. 10년 전 사건까지 끄집어내 “검경이 명운을 걸고 철저히 진상을 규명하라”고 했다. 공소시효를 무시하라고 했다. 문 정부는 불법 수사도 저질렀다. 폭군의 집착과 무엇이 다른가. 그의 정치에선 지도자의 기본 덕목인 인(仁)을 발견할 수 없다. 측은과 자비가 없다. 수사를 위한 수사, 숙청을 위한 숙청만 존재했을 뿐이다.

 

“촛불 정신”을 말할 때 문 대통령은 기세등등했다. 그런 대통령이 2020년 5월 어느 날 입술이 부르튼 얼굴로 공식 석상에 나왔다. 그 즈음 청와대 주변에선 대통령이 밤마다 ‘혼술’을 한다는 얘기가 돌았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동서고금 모든 권력자의 심리를 관통한다. 왕좌에 오른 맥베스가 두려움에 헛것을 보기 시작한 때는 자신의 왕좌를 가져갈 운명인 뱅쿼의 아들을 죽이지 못했을 때였다. 암살에 실패한 삼류 자객을 붙들고 “이제 의심과 공포에 갇혀 살게 됐다”고 절규한다. 맥베스를 의심과 공포에 가둔 것은 자신이 원치 않는 미래 권력의 탄생이었다. 내가 키운 장수가 나의 측근과 비리를 향해 칼을 겨누기 시작했을 때, 그런데 그런 그를 많은 국민이 미래 권력으로 받들기 시작했을 때 문 대통령은 무엇을 느꼈을까. 맥베스처럼 삼류 자객 추미애를 붙들고 “내 발작이 도지게 됐다”고 책망했을까.

 

/애플TV+ 코엔 형제 감독의 형 조엘 코엔이 연출한 흑백 영화 '맥베스의 비극'. 세 마녀의 예언으로 왕좌를 차지한 맥베스는 자신의 왕좌를 빼앗을 운명인 뱅쿼의 아들을 죽이지 못하자 두려움에 미치기 시작한다.

 

두려움을 느낀 맥베스는 바로 몰락한다. 아내 레이디 맥베스가 죄책감에 자결했을 때 파탄의 절정을 맞는다. 맥베스를 대표하는 대사가 이때 나온다. “꺼져라, 꺼져라, 덧없는 촛불이여! 인생은 한낱 걸어 다니는 그림자에 불과한 것. 제 시간이 되면 무대 위에서 뽐내며 시끄럽게 떠들지만 어느덧 사라져 더 이상 들리지 않는구나. 그것은 바보가 지껄이는 이야기.”(한우리 번역, 더클래식) 맥베스는 전쟁터로 나가 최후를 맞는다. “불어라, 바람아! 오너라, 파멸아!” 셰익스피어는 “피는 피를 부른다”고 했다.

 

문 대통령 시대의 종막(終幕)은 길고 난삽하다. 민주주의 원칙을 무시하고 생존을 위해 매달렸다. 검찰 수사권을 박탈하고 수사팀을 해체시켰다. 정권에 충성하는 측근을 요직에 앉혔다. 권력 수사 자체를 봉쇄했다. 청와대 울산 선거 개입 수사와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수사, 친인척이 관련된 이상직 스캔들 등 정권의 비리 의혹을 상식대로 수사했다면 지지율 40%의 모래성은 오래전에 무너졌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미래를 이월시켰다. 그러면서 자신만을 위한 면죄부를 약속받으려고 한다.

 

문 대통령의 서사는 극적이지만 미학이 없다. 비겁하기 때문이다. 권력에 집착했으면서 초연한 척하고, 피를 탐했으면서 착한 척한다. 안락을 갈구하면서 당당한 척하고, 실패했으면서 성공한 척한다. 문 대통령의 5년은 숙청의 시대다. 셰익스피어의 표현을 빌리면 “아라비아의 향수도 그의 손을 향기롭게 할 수 없다.” 화내며 도망치지 말라.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다.

 

03.09  대한민국, 주권자의 용기가 만든 나라

대통령이 꼽은 ‘최대 성과’ K방역
자해하듯 성과를 무너뜨렸다
투표 당일 30만 확진자가 나온다는
그 황당한 소문은 현실이 됐다
선거에 참여할 590만 고령 유권자에게
오늘의 투표는 실제 전쟁이 됐다

제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이틀째인 5일 오후 서울역에 설치된 남영동 사전투표소에서 코로나19 확진자 및 자가격리자들이 투표 후 투표용지를 제출하고 있다./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 말 5년 임기 중 가장 큰 성과라고 자평한 정책이 이른바 ‘K방역’이다. 이 최대 치적을 그는 지금 자해하듯 무너뜨리고 있다.

 

문 정권은 집회, 모임 등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자영업자의 경제활동을 통제하고 국민 움직임을 감시하고 검사와 격리를 강제했다. 기본권을 유보하면서 국민이 얻은 것은 상대적으로 적은 확진자와 사망자 숫자다. 숫자를 빼면 문재인의 K방역은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재작년 2월 확진자가 900명을 넘어섰을 때 진원지로 지목된 종교 단체를 향한 대통령의 혐오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그런데 확진자가 30만명이 넘어도 그는 분노하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다. 선거를 앞두고 표변한 청와대가 사실상 진원지이기 때문이다.

 

인구 100만명 당 코로나 확진자 추이. 7일 연속 평균을 집계. 5차 코로나 대유행에 해당하는 오미크론 유행 국면에서 한국의 확진자가 얼마나 가파르게 상승했는지 알 수 있다. 상대적 비교를 위해 한국과 방역 방식이 비슷한 일본 추이를 비교함. 자료=Our World in Data

 

한국은 지난달부터 방역 후진국이다. 숫자가 말해준다. 지난주 한국의 코로나 확진자는 OECD 38국 중 가장 많았다. 연초엔 스물셋째였다. 사망자는 아홉째가 됐다. 발병에서 사망까지 2~3주 시차를 감안하면 사망자 지표도 곧 치솟는다. 지난주 한국의 인구 대비 사망자는 일본의 1.7배에 이른다. 그동안 한국의 지표가 일본을 넘어선 적이 많지 않다. 그런데 오미크론 국면에 폭발했다. 아니 폭발시켰다. 코로나가 창궐하는 시기에 방역 패스 중단, 역학 조사 중단, 경제활동 제한 완화, 격리 기준 완화 등 전대미문 정책으로 K방역을 무너뜨렸다. 일부러 만들어낸 위기다.

 

사람들은 방역 완화를 요구한 자영업자 표를 얻으려고 저런다고 한다. 한국의 자영업자는 547만명이다. 유권자의 12%에 해당한다. 이 정권이라면 그럴 만하다. 다른 목적도 있다고 본다. 정부는 “치명률이 0.19%로 떨어져 독감 수준이 됐다”고 말한다. “확진자가 늘어도 안심하라”는 것이다. 숫자 놀음이다. 치명률은 확진자 대비 사망자 비율이다. 요즘처럼 확진자가 단기간에 폭발하면 치명률은 줄어든다. 이걸 보고 어떻게 안심하는가. 중요한 건 코로나로 매일 100~200명 사망하고 있고, 사망자 중 79%가 70대 이상이란 사실이다. 이들에게 확진자 폭증과 사망자 증가는 투표를 포함한 일상을 변경시킬 수 있는 현실적이고 중요한 공포다. 이번 대선에서 70대 이상 유권자는 590만명이다. 전체의 13%에 이른다. 자영업자보다 많다. 걸리면 100명 중 5명이 숨지는 80대 이상 유권자가 이 중 214만명을 차지한다. 이들의 60%가 특정 야당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인구 100만명 당 코로나 사망자 추이. 4차 대유행부터 한국의 코로나 사망자는 상대적으로 급증했다. 5차 대유행에 해당하는 오미크론 유행부터 인구 대비 코로나 사망자가 크게 늘어난다. 비교를 위해 방역 체계가 한국과 비슷한 일본의 추이를 덧붙였다. 일본은 작년 말부터 올해 초 쇄국에 가까운 방역으로 확진자와 사망자가 크게 줄었다. 자료=Our World in Data

 

여당 후보는 1월 21일 “이번 대선은 5000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될 수 있다”고 했다. 이후 K방역이 무너졌다. 그때 시중에선 “확진자를 늘려 보수 성향 고령 유권자가 투표장으로 나가는 것을 막으려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돌았다. 정부가 투표 당일 사상 최대 확진자 수를 발표할 것이란 소문도 있었다. 다 사실이 됐다. 정책 조작으로 국민 1만명의 정치 행동을 바꾸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성공한 나라 국민은 정치의 선의(善意)를 믿는다. “선거에 이기겠다고 설마 국민 생명까지 위협하는 일을 벌일 수 있겠느냐”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다르다. 문 정권은 대통령 당선을 위해 전문 프로그램까지 사용해 대선 여론을 조작했다. 대통령 친구를 시장에 앉히기 위해 경찰력을 동원해 무고한 선거 경쟁자를 수사한 혐의로 재판받고 있다. ‘국정 농단’이라며 전 정권 인사를 도륙하면서 뒤에서 몰래 저지른 행동이다. 문 대통령은 대법원 판결까지 끝난 대선 여론 조작조차 사과한 적이 없다. 이런 사람들은 반드시 같은 일을 다시 벌인다.

 

오늘을 기다린 국민이 많다. 누군가는 평등한 세상을, 누군가는 공정한 세상을 바라며 자신이 믿는 적임자에게 주권을 행사할 것이다. 어떤 이는 재정 지원을 더 받기를 기대하면서, 어떤 이는 세금이 줄어들기를 기대하면서 투표장에 들어갈 것이다. 얼굴을 보고, 고향을 보고 선택하는 유권자도 있을 수 있다. 어떤 이유든, 누구를 선택하든 소중한 주권 행사다.

 

하지만 다른 이유로 기다린 사람들이 있다. 문 정권에서 청와대 울산 재판, 조국 재판은 지연됐다. 대장동 수사는 중단됐다. 법원과 검찰이 정의를 미뤘다. 유동규와 김만배는 침묵하고 있고, 권순일의 일상도 그대로다. 1조원짜리 서울시 박원순의 생태계는 정상 작동하면서 수많은 식구를 먹여 살리고 있다. 윤미향과 이상직은 여전히 국회의원이고, 조민은 아직 의사다. 대법원 판결이 나왔어도 부산대와 고려대의 결정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들은 무엇을 기다려온 것일까. 특정 후보를 지지한 김어준은 지금도 세금을 먹으면서 공공 전파를 사용하고 있다. 이들의 미래도 오늘 결정될 것이다. 진실을 바꾸려고, 비리를 감추려고, 비루한 자리를 보전하려고, 부정한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국민 세금을 더 뜯어먹으려고 버틴 사람들이다. 누구를 선택하든 오늘은 이들을 기억했으면 한다.

 

송재윤 교수는 어제 ‘조선칼럼’에서 대한민국의 첫 민주 정부는 김대중 정부가 아니라 ‘1948년 정부’라고 했다. 5·10 총선거를 통해 수립된 정부다. 공감했다. 여기에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당시 선거는 전쟁 같았다. 선거를 파탄 내려는 좌익 폭동으로 선거 직전 나흘 동안 투표소 57곳이 공격받아 민간인 72명과 경찰 7명이 숨졌다. 그럼에도 등록 유권자의 95.5%가 투표에 동참했다.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은 주권자의 용기가 만든 나라다. 오늘도 그럴 것이다.

 

03.30  잔인한 승리자, 비루한 패배자

용서도, 자비도, 금도도 없이
남의 인격을 밟은 사람들이
욕망을 감추고 최후의 자리까지
탐욕의 아귀처럼 챙기려 한다
물러날 때일수록 깨끗이 처신하라

김정숙 대통령 부인의 옷과 장신구가 화제의 중심에 섰다. 그 많은 의상을 어떻게 조달했는가 하는 의문이다. (왼쪽부터) 2017년 조안 허버드 전 주한 미국 대사 부인이 김 여사의 분홍색 누비옷을 살펴보는 모습. 2018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부인인 브리지트 마크롱 여사와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입장하는 모습./연합뉴스

 

요즘 화제는 문재인 대통령 부인의 화려한 옷과 장신구 이야기다. 하루에도 몇 차례 부인 사진과 패러디물이 소셜미디어에 올라온다. 예전에 공개된 사진인데도 화제를 모으는 게 신기하다. 문제가 커지자 청와대는 “임기 중 대통령 부인의 의류비는 사비로 샀다”고 했다.

 

대통령 부인은 잘 입어야 한다. 태가 안 날수록 좋은 옷으로 받쳐줘야 한다. 정상 외교 때 나라의 위신에 맞는 품격을 갖춰야 하는 것이다. 온라인에 노출된 문 대통령 부인의 옷과 장신구는 웬만한 스타들 이상이다. 그 많은 사비를 지불했다는데 대통령 재산에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청와대는 지출 내역을 “공개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특활비는 국가 기밀, 사비는 개인 영역에 숨겼다. 입 닥치고 믿으라고 한다. 사비로 샀다면 탓할 일이 아닌데 왜 끝까지 감추려 하나.

 

문 지지자들의 공격은 예상대로다. 물러나는 대통령에 대한 특정 세력의 집단 가해가 시작됐다고 한다. 장년 여성의 외모에 대한 불순한 조롱이라는 시선도 있다. 그런 의도를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가 화제가 된 것은 법원이 청와대에 대통령 부인의 옷과 장신구 구입 내역을 공개하라고 판결한 이후다. 그때도 큰 화제는 아니었다. 상식적인 판결이었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국가 안보에 관한 사항”이라며 불복하고 항소한 뒤, 정확히 말하면 항소로 인해 이 문제가 미궁 속에 장기간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진 다음부터 이슈가 커졌다. 특정 세력의 공세가 아니라 청와대의 구차한 대응이 만든 이슈다.

 

김어준씨는 이 논란을 “논두렁 시계2 간보기”라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간 수사의 신호탄 같은 의심이 든다는 것이다. 이들은 ‘논두렁 시계’를 누명처럼 말한다. 워낙 자주 들먹여서 많은 사람이 시계 자체가 없었다고 여긴다. 하지만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보도에 근거가 없었다는 것일 뿐, 노 전 대통령 부인이 재벌 회장에게 개당 1억원짜리 명품 시계 2개를 받았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유시민씨는 “노 전 대통령이 망치로 깨버렸다”고 했다. 사실이라면 ‘논두렁 투척’보다 심한 증거 인멸이다. 일가는 거액의 외화도 받았다. 5년 전처럼 수사하고 판결했다면 봉하마을이 성지가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청와대 박수현 대변인이 2017년 7월14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과거 정부 민정수석실 자료를 캐비닛에서 발견했다고 밝히며 박근혜 청와대가 생산한 문건들을 공개했다.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해 생방송으로 폭로했다.

 

문 지지자가 주장하는 집단 가해와 불순한 조롱이란 이런 것이다. 5년 전 문 대통령의 청와대 생활은 전임자에 대한 인격 살인에서 시작했다. 첫 공격이 소위 ‘청와대 거울방’이다. “거울이 사방에 붙어있는 방을 수리하느라 대통령의 청와대 입주가 늦어졌다”는 얘기가 여권에서 나왔다. 논두렁 시계는 실체가 있었지만 거울방은 실체가 없다. 사치, 나태, 무능을 떠올리게 하려는 불순한 거짓이다.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 침대를 두고 가 처리 곤란하다는 얘기도 나왔다. 전임자의 캐비닛까지 뒤져 내용물을 공개했다. 청와대 대변인이 자청해 기자회견을 생중계했다. 용서도, 금도도 없다. 밟고 또 밟았다.

 

이런 청와대가 지금 외부의 공개 요구에 맞서 대통령 부인의 옷장과 패물함을 사수하기 위해 법정 투쟁을 불사하고 있다. 물러나는 마지막 날까지 꾸역꾸역 챙겨 나가겠다고 기를 쓰는 것이다. 지금 청와대 땅에 살던 마지막 조선총독의 피난선이 패전 직후 몰래 일본으로 출항했다. 하지만 탐욕스럽게 쌓아올린 총독 아내의 재물 때문에 배가 기울어져 부산 앞바다에 집단 수장될 뻔한 일이 있다. 이 촌극을 떠올리게 한다.

 

물러날 때 처신의 중요성을 문 대통령을 보면서 깨닫는다. 대통령 재임 60개월 중 마지막 두 달은 깨끗이 비우고 권력을 미래와 나누라고 준 시간이다. 그런데 대통령 부인의 옷과 장신구를 장롱에 그득하게 쌓아놓고, 충성한 자기 식솔을 위해 최후의 한 자리까지 챙기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정치 원로들도 이런 광경을 처음 본다고 한다. 권력과 인간의 밑바닥을 보는 듯하다. 승리했을 때 잔인할수록 패배했을 때 비루해진다.

 

사람들은 언젠가 물러난다. 영광스러운 퇴진은 드물다. 대부분 밀려서 나간다. 허무하고 때론 분노한다. 하지만 평범한 회사원도 필요한 자료를 챙겨 후임에게 넘겨주고 주변을 깨끗이 정리해 자신의 흔적을 없애려고 노력한다. 변두리 가게의 망한 점주조차 감사와 사과 문구를 적어 폐업 안내문을 붙인다. 남을 원망하는 글을 본 일이 없다. 사회적 도리이기 때문이다. 퇴장하는 순간까지 긍지를 지키고 싶은 것이다. 하물며 물러나는 대통령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도연명의 시에 나오는 ‘응진편수진(應盡便須盡)’이란 말을 좋아한다. 넓게 풀이하면, 물러날 때일수록 깨끗이 처신하라는 뜻이다.

 

04.20  ‘국회의원 특권 완전 박탈’을 요구함

젤렌스키 대통령 국회 연설 망신
거대 정당의 떼거리 입법 폭주
이런 국회의원에 특권 필요한가
‘검수완박’ 아니라 ‘국특완박’을
새 정부 나서면 국민 지지할 것

▲한국 국회의원이 누리는 특권은 세계적이다. 어디 가나 왕 대접을 받는다. 반면 스웨덴 국회의원은 특권이 거의 없다. 그냥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이다. 그런데 젤렌스키의 호소를 듣는 자세는 이렇게 다르다. 한국은 국회의원의 6분의 1이 참석했지만 스웨덴은 국회의원 거의 모두가 참석했다.

 

검수완박의 선봉장, 윤호중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검찰과 언론을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특권 영역”이라며 “이 특권을 해체하는 일에 민주당이 나섰다”고 했다. 정파가 같으면 이런 말도 지지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하지만 아무리 열혈 지지자라도 ‘마지막 특권’이란 대목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특권의 끝판왕, 한국 국회의원이 있기 때문이다.

 

면책, 불체포 특권, 보좌 직원 7명, 본인을 포함해 한 해 인건비 5억여 원, 45평 사무실, 비행기 비즈니스석, 철도 최상 등급 좌석, 출국 시 귀빈실 이용, 차량 유지비·유류비 지원 등 한국 국회의원은 이 땅에서 세금으로 받을 수 있는 모든 혜택을 누린다. 물론 그들이 산출하는 국익이 더 크면 특권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럴 경우엔 더 해줘야 한다. 이들의 진짜 특권은 다른 차원이다. 특권을 누리면서도 나태하게 살 수 있는 특권, 엉터리 법과 세금 나눠 먹기로 국익을 좀먹을 수 있는 특권, 후진국 매너로 국가 위신을 추락시킬 수 있는 특권, 무식하게 대들수록 팬덤 정치의 영웅으로 떠오를 수 있는 특권이 있다. 위안부 피해자 기부금을 빼먹고도 특권을 계속 누릴 수 있는 특권까지 있다. ‘금배지엔 100가지 특권’이란 말처럼 끝이 없다.

 

한국 국회의원의 수준을 세계에 보여준 열흘 전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화상 연설 장면은 한국 정치의 대표적 흑역사로 남을 것이다. 국회의원 300명 중 50여 명 참석했다. 장애인인 이상민 의원은 휠체어를 타고 왔다. 그런데 나머지 240여 명 대부분이 이날 무슨 일을 했는지 파악도 되지 않는다. 연설장에서 졸거나 전화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래도 안 온 사람보다 낫다. 엿새 전 ‘만물상’ 칼럼에서 이 장면을 비판했더니 “이게 한국 수준”이란 의견이 달렸다. 이해하지만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장소가 중학교였어도 이보다는 많이 모였을 것이다.

 

국민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은 사실 먼 이야기다. 경유, 식용유, 밀가루 가격을 보고서야 피부로 정세를 체감할 수 있다. 대부분 나라 국민이 이렇다. 그래서 국민보다 깊은 관심을 갖는 전문가 엘리트를 뽑아 정치를 시킨다. 그런데 한국에선 국회의원이 국민보다 우크라이나에 관심을 덜 갖는다. 국민이 일을 맡겨도 안 할 특권이 있기 때문이다. 특권에 빠져 사느라 경유, 식용유, 밀가루 값을 체감할 일도 거의 없다. 심지어 많은 국회의원이 국제 뉴스도 안 본다.

 

‘그레이트 게임’이란 말이 있다. 유라시아 패권을 노리는 러시아의 남하(南下)와 이를 막는 영국 제국의 장기전을 말한다. 19세기 세계사는 이 말로 대부분 설명된다. 게임의 시작은 우크라이나 크림 전쟁, 종착점은 영국을 대리한 일본과 러시아가 맞붙은 러일전쟁이다. 전쟁 결과, 한국은 망했다. 일본의 비약, 한국의 멸망은 이 게임의 결과물이다. 세계사를 모르면 한국과 우크라이나가 역사적으로 밀접한 나라라는 사실을 알 수 없다. 영원히 7500km 떨어진 낯선 나라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적 시야를 갖고 우크라이나 사태가 남의 일이 아니란 사실을 국민에게 설명해야 할 의무가 정치인에게 있다.

 

▲일본 국회에서 열린 젤렌스키 대통령 연설. 국회의원 500여명이 참석해 진지하게 경청했다. 총리, 장관, 국회의장도 참석했다. 외무장관이 마스크 안에서 하품을 하다가 카메라에 잡혀 "일본의 수치"라는 비난을 받았다.

 

한국이 망한 결정적 원인은 당시 정치인이 제공했다. 일본이 흥한 원인도 정치인이다. 한국 정치인이 세상과 담을 쌓을 때 일본 정치인은 세상으로 나갔다. 당시 양국 정치인의 차이를 보여주는 많은 일화가 있지만, 얼마 전 국회에서 벌어진 장면만큼 생생하게 보여주지 못한다. 젤렌스키 연설에 일본 국회의원 500여명이 참석했다. 총리, 국회의장, 장관도 함께 경청했다. 진지했다. 외무장관이 마스크 안에서 하품했다가 “나라의 수치”라는 비난까지 들었다. 무언가 거꾸로 됐다. 일본이 아니라 세상사에 어두워 나라를 말아먹었던 한국의 정치인들이 이런 자세를 보여줘야 하는 게 아닌가.

 

한국 정치인들은 미국,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 사이를 오가면서 이익만 챙기면 된다고 믿는다. 한국은 그래도 되는 변방이라고 생각한다. 사드, 쿼드를 말하면 중국의 경제 보복을 말한다. 중국이 말하기 전에 스스로 한다. 바람이 불기 전에 눕는다. 그게 상책이라고 한다. 조선 말 세계관과 달라지지 않았다. 세계관이 달라지지 않으면 미래도 달라지지 않는다. 우크라이나가 강대국이어서 버티는 게 아니듯 국력이 크다고 강한 나라가 아니다. 정치인이 저질이면 삼성의 성과도, 한류의 바람도 순식간에 사라진다.

 

한국 국회의원 가운데엔 뛰어난 사람이 많다. 그런데 아까운 인재들이 들어가 휩쓸리는 순간 단숨에 밑바닥으로 내리깔리는 장면을 여러 차례 봤다. 그들의 정신을 썩혀버리는 특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대에 정말 필요한 일은 국회의원의 특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것이다. 집단 특권을 없애야 요즘같이 떼로 몰려 폭주하지도 못 한다. 검수완박처럼 이름을 붙이면 국특완박이다. 국회의원 스스로 할 수 없다. 새 정부가 총선 과제로 제시하면 거의 모든 국민이 지지할 것이다.

 

05.11  조국이 울고갈 한동훈 청문회

거대여당 때 베일에 숨겨져 있던
야당 의원들의 밑천이 드러났다
조국 지지층 환심이나 사려고
수호대·호위무사 자처했을 뿐
조국 뒤에서 놀고먹은 것이다

▲한동훈 법무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민주당 입장에선 조국 전 법무장관의 복수전 성격이 있었다. 하지만 민주당 의원들이 공부 부족으로 헛발질을 남발하면서 한 후보자의 완승으로 끝났다. 누구보다 조 전 장관의 낙담이 클 것이다.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조국 전 법무장관 사진을 머리맡에 두고 그를 위해 기도하고 잔다”고 했다. 이런 의원이 조 전 장관 가족 비리를 수사한 한동훈 법무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이모(李某) 교수를 이모(姨母)로 착각하고 발언했다가 청문회 전체를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김 의원을 돕는 보좌진만 8명이다. 본인 연봉을 합쳐 세금 6억원가량을 매년 인건비로 쓰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 중 한 명이라도 관련 기사를 제대로 읽었으면 그런 실수는 막을 수 있었다. 기도만 하고 공부는 안 한 모양이다.

 

같은 당 최강욱 의원의 보좌진은 9명이다. 작은 기업 규모다. 이런 의원이 익명 처리된 기부자 이름을 한 후보자 딸 이름으로 단정하고 발언했다가 망신을 당했다. 사실은 기업 이름인 ‘한국쓰리엠’이었다. 이게 사람 이름이면 성은 ‘한’이고 이름은 ‘국쓰리엠’이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김 의원처럼 최 의원 실수도 한 후보자가 즉석에서 바로잡았다. 최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익명 처리된 이름이 ‘영리법인’ 이름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적혀 있었다. 상대방이 바로 알아낸 사실을 어떻게 10명이 몰랐나.

 

청문회 초반 최강욱 의원을 청문회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 후보자가 무혐의 처분을 받은 사건과 관련해 최 의원이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라 공정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사실 이것은 그에겐 한가한 문제에 속한다. 그는 친분이 있는 조국 전 장관의 아들에게 허위 인턴 활동 확인서를 발급해준 혐의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아 조국 비리의 공모자 소리를 듣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청문회에 나와 “부모 찬스” 운운하면서 조국 비리 수사 당사자를 검증하는 게 지금 한국의 현실이다.

 

그런데 이조차도 최 의원에겐 한가한 문제에 속한다. 그가 청문회에서 열을 올릴 때 민주당은 그를 당 윤리심판원에 넘겼다. 민주당 화상회의 때 최 의원이 화면을 켜지 않은 의원에게 성희롱 발언을 했고, 이를 은폐하려고 했고, 이 문제를 외부에 말한 유출자를 색출하려고 했다는 의혹 때문이다. 자칭 ‘검찰 개혁’ 회의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이때 성희롱 발언을 들은 당사자이면서 입을 다문 사람이 ‘이모’ 김남국 의원이다. 성희롱 가해자와 피해자가 경쟁하듯 헛발질을 하면서 복수 기회를 날려먹었다. 조 전 장관의 낙담 소리가 TV 너머로 들리는 듯했다.

 

한동훈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보여준 초식(招式)은 특별하지 않았다. 꼼꼼하고 정확했을 뿐이다. 김남국 의원이 미국의 사법 룰을 내세워 비판했을 때 한 후보자는 그가 어떤 신문 기사를 보고 말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한 후보자는 기사가 잘못이라고 지적했고 김 의원은 반박하지 못했다. 그런데 몇 시간 뒤 같은 당 김종민 의원이 똑같이 주장했다. 김남국 의원이 지적당할 때 자리에 없었던 모양이다. 한 후보자는 귀찮은 듯 이번엔 바로잡아주지도 않았다. 김종민 의원의 보좌진은 10명이다. 지지자들 환심을 사려고 수호대를 자처했을 뿐 조국의 신원(伸冤)을 위한 공부는 다들 게을리했다. 조국 뒤에서 그냥 놀고먹은 것이다.

 

▲왼쪽부터 술주정 청문회 비판을 들은 이수진 의원, 이모 교수를 이모라고 해 망신을 당한 김남국 의원, 한국쓰리엠을 한 후보자 딸 이름이라고 했다가 웃음거리가 된 최강욱 의원.

 

이번 청문회는 괄목할 만한 문제적 인물도 발굴했다. 이수진 민주당 의원이다. 험악하기가 추미애 전 법무장관과 손혜원 전 의원을 합쳐 놓은 수준이었다. “검찰 수사 인력이 6000명이나 되는 나라가 세상에 있느냐”는 이 의원의 질문에 한동훈 후보자가 “내가 근무해서 아는데 미국은 더 많다”고 했다. 그러자 “정말 이런 식으로 할 거냐”고 소리쳤다. 한 후보자가 “말씀해 달라”고 하면 “뭘 말씀해?”, “당연한 말씀”이라고 하면 “당연해?”, “잘 새기겠다”고 하면 “비꼬냐?”고 했다. 의원들이 웃으면 “웃지 말라”로 고성을 질렀다. 온라인엔 “낮술 했냐”는 소리가 나왔다. 취권이란 이름이 붙은 패러디도 돌았다. 주폭(酒暴) 같아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사람이 재선, 삼선하면 어떻게 될까 싶었다.

 

사실 능력보다 자격이 더 문제였다. 민주당 의원들은 한 후보자 딸의 전자책 표절 의혹을 파고들었다. 후보자 딸은 고교 2학년이다. 그런데 민주당 의원들은 석사 논문 표절을 스스로 인정한 이재명 전 지사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 이들은 한 후보자의 위장전입 의혹도 제기했다. 그런데 민주당 의원들은 본인도 위장전입을 했으면서 위장전입한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한 김상환 대법관 임명을 문제 삼지 않았다. 여당 때 막 나가다가 보니 과거와 현실, 미래가 꼬일 대로 꼬였다. 앞으로 모든 일이 그제 청문회처럼 겉돌 것이다.

 

한 후보자를 검증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인적 스펙이 우수한 편이라고 한다. 이수진 의원이 저래 보여도 서울대 나온 판사 출신이다. 이번 청문회로 세계 최대의 특권을 누리는 한국 국회의원, 특히 야당이 된 민주당 국회의원들의 밑천이 훤히 드러났다. 뜻깊은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한 후보자가 장관도 되기 전에 열 일을 하고 있다.

 

06.01  86 운동권이 만든 황금 송아지

분노한 모세는 우상을 불태우고
가루로 잘게 빻아 물에 섞어
민중에게 마셔 없애도록 했다
그들에게 용퇴를 바랄 수 없다
국민이 부숴야 우상은 사라진다

일주일 전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13주기 추도식의 주제는 ‘나는 깨어 있는 강물’이었다. 사회자는 “강물은 바다로 직진하지 않지만 결국 바다로 간다”고 했다. 정세현 전 장관은 추도사에서 직설적으로 말했다. “대선 패배 후 기운이 나지 않는다, 뉴스도 보기 싫다는 분이 많다. 그럴수록 각성해서 민주당을 키우는 힘을 모아 달라.” 이 추도식에 윤석열 정부의 국무총리, 행정안전부 장관,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참석했다. 국민의힘 지도부도 동참했다. 마이크도 잡지 못했다. 미지근한 박수 한두 번 받았을 뿐이다.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 추도식 때 이런 고관들이 참석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노 전 대통령은 무엇이 그리 특별한가.

 

노 전 대통령의 부인과 자녀는 기업인 박연차씨에게 640만달러와 억대의 시계를 받았다. 박씨는 노 전 대통령도 재임 당시 알았다고 진술했다. 그래서 수사를 받은 것이다. 이 사실을 부연하는 것은 그를 둘러싼 86 운동권이 이 비극을 무고에 의한 권력 살인으로 윤색하고 국민 일부가 사실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논두렁’ ‘망신 주기’ 등 지엽적 주장으로 ‘권력 비리’라는 본질을 가린다. 그의 가족 문제가 이전 대통령보다 특히 무거웠던 건 아니다. 비판을 감수하고 법의 심판을 받으면 됐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은 해서는 안 될 극단을 택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측은할 수 있다. 그는 대통령을 한 최고 공인이다. 건강한 사회라면 그런 인물을 필부를 동정하듯 대해선 안 된다. 죽음의 이유, 그 방식까지 두고두고 비판해야 한다. 그래야 후세대에 악영향을 줄일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슬퍼하지 말고 미안해하지 말고 원망하지 말라”고 유언했다.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기라”고 했다. 그런데 건축가 승효상씨가 설계한 묘역은 1000평 가깝다. 비석도 작지 않다. 마을 전체가 ‘민주 성지’로 변했다. 슬퍼하고 미안해하고 원망하는 이들이 주로 몰린다. 추도식은 김정숙 여사가 어깨춤을 출 정도로 매년 성대하게 열린다. 노 전 대통령의 유언이 아니라 86 운동권이 생존을 위해 만든 제단이다.

 

김지하 시인이 “죽음의 찬미를 중지하고 굿판을 걷어치우라”고 쓴 때가 31년 전이다. 한국 좌파의 비인간성에 찬물을 끼얹고 그들이 당시 펼쳐 놓은 죽음의 굿판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타인의 죽음을 이용해 연명하려는 좌파의 뺨을 펜으로 후려갈겼다. 결과적으로 많은 젊은이를 살렸다. 민주 투사 경력보다 이것이 김지하의 최대 업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 시인의 아내는 2011년 최보식 인터뷰에서 “그 세력이 김 시인을 민족의 제단에 바치는 제물로 삼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시인을 감옥에서 죽게 만들어 혁명의 동력으로 삼으려고 했다는 얘기다. 김 시인은 비인간적 좌파를 경험하면서 변신하기 시작했다. ‘그 세력’이 86 운동권의 뿌리다. 여수, 순천, 제주도에서 수많은 사람을 제단의 제물로 삼은 세력과도 닿아 있다. 타인을 사지로 내몰고 그들이 죽으면 그 위에 거대한 제단을 쌓는다. 가짜 신(神)을 만들어 다시 타인을 제물로 삼고 다시 제단을 쌓는다.

 

25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그대가 조국'. 5만여명이 제작비 펀딩에 참여해 26억원을 모았다.

 

이제 그들은 살아있는 가짜 신까지 만들고 있다. 조국 전 장관이다. 검찰 개혁의 제단에 바쳐진 순교자라고 했다. 실제로 순교자가 됐다면 86 운동권은 또 다른 전기를 맞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노 전 대통령처럼 빨려 들지도, 김 시인처럼 튀어 나가지도 않았다.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균형점을 찾아 광신도를 몰고 다닌다. 조국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도 나왔다. 노무현 반열에 올랐다는 뜻이다. 제목은 ‘그대가 조국’. 인맥을 동원해 자녀를 의사로 만들고도 법무장관이 된 ‘그대’는 한국 땅에 없다. 그런데도 5만1794명이 26억원을 모아 제작비를 댔다.

 

이스라엘 민중은 모세가 하나님의 율법을 받으러 간 사이 가짜 신을 만들어 숭배했다. 금붙이를 바쳐 황금 송아지 우상을 만들었다. 율법보다 우상이 편한 것이다. 한국 사회는 불편하고 힘들었지만 최고 권력자의 비리를 심판하면서 ‘법을 어기면 처벌받는다’는 명제를 불변의 법칙으로 만들어 왔다. 그런데 86 운동권의 황금 송아지는 640만달러를 받아도, 스펙 7개를 위조해 명문대에 들어가도 순교자로, 성자로 추앙받는다. 죄가 아니라고 한다. 비리의 심판자를 오히려 악마로 몰아간다. 입법권을 남용해 법 질서를 무너뜨린다. 해와 달은 둥글어도 그들에게 지구는 항상 네모다. 이런 행태를 사이비라고 한다.

 

86 운동권은 젊은 야당 비대위원장의 ‘용퇴론’ 주장만으로 물러날 세력이 아니다. 분노한 모세는 황금 송아지를 불에 태우고 가루로 빻아 물에 섞어 민중에게 마시도록 했다. 단숨에 파괴해야 우상은 사라진다. 오늘 국민이 모세다.

 

06.22  엽기적인 ‘그분’

한국 국민이 북한에 살해됐는데
피해자를 대변할 한국 대통령이
북한 수령과 브로맨스 쇼 벌였다
피해자 가족의 심정은 어땠을까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 세월호 사고 현장 방명록에 “미안하다, 고맙다”고 썼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탄핵된 날이다. 많은 사람이 기괴하게 느꼈다. 보통 사람은 남의 비극에서 고마움을 찾지 않는다. 그 비극 때문에 이득을 얻었다고 해도 표현하지 않는다. 염치 때문이다. 문 전 대통령의 심리엔 그것을 넘어서는 이상한 코드가 있다.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진씨가 북한군에 살해됐을 때도 그랬다. “대단히 미안하다”는 김정은의 말이 담긴 북한 통지문을 받은 날이다. 가해자의 사과를 수용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대통령이라면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해야 정상이다. 대신 문 전 대통령은 보름 전 김정은에게 보낸 자신의 편지를 꺼냈다. 서훈 안보실장을 내세워 이 편지를 카메라 앞에서 읽도록 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님의 생명 존중에 대한 강력한 의지에 경의를 표합니다.” 김정은이 보낸 답장 내용도 읽었다. “남녘 동포들의 소중한 건강과 행복이 제발 지켜지기를 간절히 빌겠습니다.” 국민의 비극 앞에서 가해자와 브로맨스 쇼를 벌인 것이다. 피해자 가족의 심정은 어땠을까. 문 전 대통령에겐 고려 대상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북한군에 피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진씨의 유족이 17일 기자회견을 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씨가 2020년 9월22일 서해상에서 북한군의 총격으로 숨진 뒤, 유족들은 진상 규명을 위해 문재인 정부를 상대로 싸웠다. 작년 국가인권위가 유족의 손을 들어줬고 정권 교체 후 "월북"이라고 단정했던 해경의 항복을 받아냈다.

 

그가 사건을 직접 언급한 시점은 사건 발생 닷새가 지나서였다. 문 전 대통령은 “특별히 김정은 위원장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뜻을 전한 것을 각별한 의미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피해자 가족의 양해도 얻지 않았다. 무슨 자격으로 각별히 받아들였나. “북한 최고 지도자로서 곧바로 직접 사과한 것” “사상 처음 있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란 해석도 달았다. 그러더니 “이번 사건에서 가장 아쉽게 부각되는 것은 남북 간 군사통신선이 막혀 있는 현실”이라면서 군사통신선 재가동을 북한에 요청했다.

 

나는 그가 이상했다. 사건 당시 남북한 정부는 소통이 가능했다. 현장에서도 군은 국제상선통신망을 이용해 북한과 통신했다. 통신망이 가동하지 않은 게 아니라 문 정부가 가동하지 않은 것이다. 실종된 이씨가 북한에서 발견된 사실을 알고도 구하려 하지 않았고, 북한군이 현장에 사살을 명령한 사실을 알고도 멈추라고 하지 않았다. 이것이 사건의 핵심이다. 대통령이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 통신 두절 탓에 국민을 못 구한 것처럼 말했다. 그러곤 “이번 비극이 대화와 협력의 기회를 만들고 남북 관계를 진전시키는 계기로 반전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국민의 시체도 못 찾은 판국에 대통령이 나서서 대화와 협력, 반전의 기회를 간청한 경우는 들어본 일이 없다.

 

▲북한군에 의해 국민이 피살된 이틀 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이 문제를 다루는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안보실장에게 맡기고 디지털뉴딜문화콘텐츠산업 전략보고회에서 열린 실감 콘텐츠 아카펠라 공연을 관람했다.(사진 왼쪽에서 네 번째)

 

타인의 불행에 무심한 사람이 있다. 탄핵이란 결과 때문에 세월호 희생자가 고마워졌듯이 자신에게 유불리로 다가와야 비로소 관심을 가지고 가치를 둔다. 이 사건 보고를 받은 뒤 이틀 동안 대통령은 유엔 화상회의에서 북한과의 종전 선언을 주장하고 군 장성을 만나 한반도 평화를 강조했다. 국가안전보장회의는 안보실장에게 맡기고 아카펠라 공연을 관람했다. 그는 그냥 관심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정부는 북한의 만행을 감추고 피살 공무원의 월북설부터 흘렸다. 이렇게 무심하던 그를 흥분시킨 건 북한에서 받은 통신문이다. 비극을 북한을 위해 활용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일 것이다. 보름 전 낯간지러운 편지를 꺼내 대국민 낭독하고 김정은의 생명 존중을 찬양했다.

 

대통령만이 아니다. 해경 수사 과정에서 심리 전문가 3명 중 1명만이 이씨가 ‘도박 중독’이라는 의견을 냈다. ‘정신적 공황 판단’을 한 전문가는 7명 중 1명이었다. 선박에서 함께 생활한 동료 10명 전원이 “월북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했다. 월북 정황이 있는 현장의 감청 정보를 해경이 접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극한 상황에서 살기 위해 표현한 의사는 사실로 단정할 수 없다. 수사의 기본이다. 그런데도 해경은 “이씨가 인터넷 도박에 깊이 몰입해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현실 도피의 목적으로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발표했다. 이씨의 빚까지 부풀렸다. 명백한 조작 수사다. 여당 정치인도 가담했다. 신동근 의원은 “월북을 감행하면 사살하기도 한다”고 했다. 양향자 의원은 “굳이 월북이 아니라고 우기는 이유가 궁금하다”고 했다. 지금도 우상호 의원은 “민생이 심각한데 이게 현안이냐”고 했고, 설훈 의원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고 했다.

 

이 사건에서 가장 엽기적인 존재는 북한이다. 하지만 문 전 대통령과 해경, 정치인의 행태에서도 나는 오싹한 엽기성을 느낀다. 그들은 자신의 무능을 감추기 위해 가을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비참하게 죽은 대한민국 8급 공무원을 가차 없이 나라의 배신자로 몰았다. 많은 사람이 이런 국가 폭력을 심판하고 피해자를 구제하라고 대통령 윤석열을 뽑았을 것이다.

 

07.13  ‘이니’와 ‘신짱’이 시궁창에 던진 한일 현대사

문재인과 아베가 남긴 난제를
윤석열 정부는 풀기 시작했다
그렇게 새로운 진보를 이루면
다시 ‘반일’로 국민을 선동해
원점으로 돌리려고 할 것이다
걷어차고 미래로 나아가면 된다

 ▲1976년 5월 31일 박정희 대통령과 박태준 사장(당시)이 포항제철 2고로 화입을 하는 장면. 박정희 정부의 중화학산업 육성 전략은 포항제철이 생산한 쇳물로 조선업, 자동차산업을 일으키는 톱다운 방식이었다. 포항제철은 일본으로부터 받은 청구권 자금으로 건설됐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우방이 고개를 돌린 상황이었다. 일본이 자금 전용에 동의하지 않았다면 포항제철 조기 건설은 불가능했을 것이다./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에 마련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분향소를 찾아 조문한 뒤 아이보시 고이치 주한 일본대사와 악수를 하고 있다. /뉴스1

틈만 나면 한국에 와서 강연료를 챙겨가는 일본 학자가 있다. 연구 인생 내내 북한을 찬양하고 한국의 존재 가치를 부정했던 인물이다. 사료 검증 없이 김일성을 미화하면서도 명백한 증거가 쏟아진 테러, 납치 등 북한의 흉악 범죄는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 매스컴은 그런 그를 “일본의 양심”이라고 한다. 한일 역사 갈등에서 한국 편을 든다는 오직 그 이유에서다.

 

일본엔 이런 부류가 많다. 전후 일본의 자유와 풍요를 즐기면서 세상에서 가장 억압적이고 가난한 북한을 옹호한 패션 좌파들이다. 그러면서 자유와 풍요를 지향하는 한국을 경멸했다. 정치에선 사회당, 문화에선 이와나미 서점을 중심으로 거대 세력을 구축했다. 이들이 권력을 잡았다면 한국은 지금과 달라졌을 것이다. 일본 국민은 이들을 주류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게 버림받은 그들이 ‘반일’ 깃발을 들고 한국에서 노후 자금을 얻어가는 것이다.

 

중국은 한국을 세계 지도에서 지워버리려고 한 나라다. 보통 6·25전쟁 때 일을 말하지만 1970년에도 공격이 있었다. 양국 수교를 앞두고 중국은 일본 기업에 소위 ‘저우언라이 4원칙’을 통보했다. 한국에 협력하고 투자하는 일본 기업은 거래를 끊는다는 내용이다. 당시 한국과 일본은 중화학공업에서 협력했다. 북한을 위해 한국을 크기 전에 죽이겠다는 것이다. 한중 수교 때 한국이 대만을 버렸듯 도요타, 미쓰비시, 미쓰이가 한국을 떠났다. 도요타는 북한에도 접근했다. 중국의 위협에도 한 일본 기업이 이 흐름에 제동을 걸었다. 중공업 발전의 모태인 종합 제철소 건설에 협력하던 신일철(新日鐵)이다. 단절 위기에 몰린 협력 관계를 되살렸다.

 

국교 정상화 때 받은 일본의 청구권 자금이 포스코 건설에 쓰인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당연히 받을 돈을 받아서 쓴 건데 뭐가 대수냐고 할 수 있다. 몰라서 하는 소리다. 배상금이나 경제 협력 자금은 쓰임새를 엄격하게 정한다. 돈이 후진국 정치의 하수구에서 사라지거나 총과 칼이 돼 돌아와선 안 되기 때문이다. 포스코 자금은 원래 농림수산업 용도였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가 한국을 외면했다. 일본 동의가 없으면 제철소 건설은 물 건너갈 상황이었다. 한국의 부탁에 일본 정부는 동의했다.

 

야스오카 마사히로(安岡正篤)라는 보수주의자가 있다. 일본 정부와 신일철을 설득해 한국에 협력하도록 만든 인물이다. 한학자였지만 일본 정치의 막후 실세로 큰 힘을 발휘했다. 그는 한국의 정통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한국은 공산주의와 싸우는 방파제라고 봤다. 이 신념은 자민당 주류의 한국관을 지배했다. 이들의 노력이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이병철, 박태준 등 전후 1세대 기업인의 자서전을 보면 알 수 있다.

 

과거 식민, 피식민 국가 중 독립 후 한일처럼 발전적인 관계를 맺은 경우가 없다. 하지만 한국의 좌파는 “전범의 도움을 받았다”며 한국의 경제 발전을 평가절하한다. ‘전범’ 딱지를 아이들이 쓰는 연필에도 붙인다. 한국이 망하기만 기다리던 엉터리 학자를 “일본의 양심”이라고 추앙한다. 중국에 맞선 일본 기업의 재산을 몰수한다. 나라를 두 번 죽이려고 한 중국에 돈과 기술을 아낌없이 바친다. 미국의 동북아 안보 덕분에 살아가면서 한·미·일 군사 협력을 말하면 “차라리 중국과 북한과 손잡자”고 한다. 그들은 현대가 아니라 구한말에 산다. 그러니 끝없이 피아를 혼동한다.

 

한국의 좌파는 한일 관계를 지속적으로 무너뜨렸다. 문재인 정권의 죽창가는 그 저질 레이스의 끝판왕이라 할 만하다. 그러면서 새 성은 쌓지 않는다. 무모해서 이러는 게 아니다. 본질적으로 일본을 노리는 것도 아니다. 약한 고리인 한일 관계를 건드려 동북아 안보를 지탱하는 한·미·일 삼각 축을 흔들려는 것이다. 그들에게 반일은 반미의 소극적 표현이자 친북과 친중의 적극적 표현이다.

 

▲2019년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서의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문재인 대통령. 한일 관계 최악의 시대였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파괴만 했을 뿐 새 성을 만들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넓은 시야로 한일 관계를 바라볼 역량이 부족했다./로이터 연합뉴스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숨지자 한국 언론은 그를 “일본 보수의 심장”이라고 했다. 하지만 야스오카, 기시, 나카소네, 오부치로 이어지는 일본 보수는 그들의 낮은 수를 읽고 넓은 시야로 한일 관계를 이끌었다. 아베 전 총리는 그의 별명처럼 ‘신짱’ 도련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문 정권과 같은 수로 대결해 보수의 격을 끌어내렸다. 그런 점에서 ‘이니’와 ‘신짱’의 시대는 동전의 양면이다.

 

문 정권은 선거로 무너졌다. 안타까운 경위로 아베의 시대도 끝났다. 시대는 이렇게 필연과 우연이 겹칠 때 달라진다. 윤석열 정부는 이들에게 물려받은 난제를 풀기 시작했다. 두 나라는 늘 난제를 풀면서 발전했다. 무언가를 시작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반드시 방해한다. 무언가를 이루면 그동안 무너뜨린 자들이 다시 무너뜨리려고 선동할 것이다. 걷어차고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08.03  청와대 국민 개방에 ‘총독 관저’ 끄집어낸 비루한 역사관

망한 왕조든 패한 권력이든 다시 독점할 수 없도록
집요하고 철저하게 국민의 공간으로 발전시키기 바란다

청와대 국민 개방을 조롱한 첫 문재인 정권 사람은 의전비서관이던 탁현민씨다. 그는 “일본이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만들었을 때도 ‘신민’들에게 돌려준다고 했다”고 소셜미디어에 썼다. 그들이 독점하던 청와대를 창경궁에, 국민에게 문을 여는 청와대를 동물원에, 그리고 윤석열 정부를 일제에, 국민 개방을 궁궐 모욕에 비유했다. 

▲1902년 방치된 창경궁의 모습. 순종 즉위 이후 비어있던 창경궁 정원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어 백성에게 공개했다. 전각은 정비해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근대적 의미에서 궁궐의 대중적 변용과 개방은 백성에 대한 왕실의 계몽적 실천에 해당했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선 일반적으로 조선 왕실에 대한 일제의 모욕으로 받아들인다.

 

탁씨의 주장은 상투적이지만 상당수가 사실로 받아들이는 속설이다. 일제가 궁궐에 동물원을 만들어 조선 왕실을 모욕했다는 것이다. “왕궁에 똥오줌내 풍기는 동물 우리라니?” 쉽게 말해 이런 얘기다.

 

탁씨는 작년 문 대통령을 따라 오스트리아 쇤부른 궁전을 방문했다. 이곳 정원에 국민 개방 244년째인 왕실 동물원이 있다. 탁씨도 안다. 문 대통령이 이 동물원 호랑이의 후원자가 됐다고 공개적으로 자랑했기 때문이다. 쇤부른 동물이라고 향기를 풍길 리 없다. 합스부르크 왕실이 모욕으로 여겼다면 동물원을 궁궐에 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파리 동물원은 베르사유 궁전의 왕실 동물원, 런던 동물원은 런던타워의 왕실 동물원이 모태다. 일본 국왕도 우에노 영지에 동물원을 만들어 개방했다. 모두 국민 안식처 역할을 하고 있다.

 

동물원은 근대 문명의 상징이다. 근대 이후 인간은 야수를 통제할 수 있게 됐다. 동물원은 지능과 문명의 힘을 증명하는 전시장이다. 그래서 계몽 사상에 심취한 유럽 왕실은 신기한 동물을 궁궐에 모았다. 합스부르크 왕실의 조찬 장소는 동물원이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자부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동물원을 국민에게 개방한 것도 계몽의 산물이다. 국민도 인간의 지능과 세상의 다양성을 체험하라는 것이다.

 

이러면 탁씨 같은 이들은 “일제가 잘했다는 얘기냐”고 말한다. 구한 말 일제 통감부가 먼저 창경궁의 변용과 개방을 권유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결정은 순종 황제가 했다. 이 결정을 임금이 모욕으로 여겼다는 증거는 없다. 황성신문은 “세계 문명의 진품을 전시해 국민의 지식을 계발한다”고 논평했다. 모욕이 아니라 군주의 계몽 행위로 본 것이다. 나중엔 “종묘도 개방하라”는 주장도 나왔다. 궁궐 개방에 대한 인식은 당시가 지금보다 훨씬 진보적이었다.

 

해방 후 한국은 창경원에 케이블카와 놀이기구를 덧붙였다. 신나게 놀았다. 그러다 창경원이 기능을 다할 무렵 “동물원은 왕실 모욕” 주장이 터져 나왔다. 그러면 38년 동안 궁궐을 놀이터로 소비한 우리는 무엇인가. 직관에 호소하는 ‘일제의 음모’ 주장은 그래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일본만 탓하면 공범 의식도, 논리적 반론도 사라진다. 모든 게 쉬워진다. 창경원은 질서있는 국민 공원으로 남았어야 한다. 그런데 ‘일제 모욕’ 논리에 망한 왕조를 위한 구중궁궐로 쉽게 되돌아갔다. 탁씨의 친일몰이가 노리는 결말도 이런 것이다.

 

▲1960년대 봄 창경궁 홍화문 앞 풍경. 창경원에 들어가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오른쪽 사진은 표를 구하려는 사람들로 난장판이 된 매표소 앞.

한국의 반일은 뒤죽박죽이다. 고이 보존된 창경궁 대온실이 말해준다. 일제가 만들었는데도 국가등록문화재 83호로 지정됐다. 식물원이면 국권 침탈의 원흉이 만들어도 문화재인가. 창경원 박물관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일제는 덕수궁에 새 미술관을 지었다. 똑같은 일제의 건축물인데 창경원 박물관은 일본식이라고 때려 부수고, 덕수궁 미술관은 서양식이라고 국립미술관으로 활용 중이다.

 

문체부가 청와대 옛 대통령 관저를 모형으로 만든다고 했을 때 민주당은 “총독 관저 부활”이라고 공격했다. 일제의 조선총독이 건물을 사용한 기간은 6년이다. 한국 대통령은 건국 후 42년 동안 사용했다. 한국의 42년은 기적의 역사, 일제의 6년은 패망의 역사다. 그러면 관저의 역사는 누구 것인가. 그런데 굳이 “일제 조선총독의 관저”라고 한다. 다들 탁씨 수준이다. ‘친일’로 몰면 손쉽게 청와대 국민 개방을 방해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일제 통치기구의 건물이라 모형도 안 된다면 권력을 잡았을 때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옛 조선은행)과 서울도서관(옛 경성부청) 건물은 왜 박살내지 않았나.

 

▲지난 5월 청와대 국민 개방 첫날. 대중의 휴식 공간이던 창경원의 창경궁 전환 이후 정치 권력이 독점하던 공간이 국민의 안식처로 열린 것은 처음이다./인수위사진기자단

 

탁씨는 “청와대를 안 쓸 거면 우리가 그냥 쓰면 안 되나”라고 했다. 이게 본심일 것이다. 한 민주당 의원은 “다음 대통령이 들어갈 수 있게 청와대를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한말 창경궁 개방 때 권부의 양반들은 “궁궐에 찍힌 민중의 흙발을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이와 비슷한 심리일 것이다. 경복궁 후원이었기 때문에 구중궁궐로 되돌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지금 서울의 조선 5대 궁궐 면적은 140만㎡에 달한다. 도쿄 에도성과 비슷하고 베이징 자금성보다 훨씬 넓다. 망한 왕조의 공간에 무엇을 더 붙이려고 하나.

 

왕궁의 국민 공간화는 근대의 긍정적 유산이다. 정권의 부침에 상관없이 청와대 개방은 국민이 지지하는 윤 정부의 밝은 면이다. 망한 왕조든, 패한 권력이든 다시 독점할 수 없도록 더 집요하게, 철저하게 국민의 공간으로 발전시키기 바란다.

 

08.24  유시민의 프락치 사냥, 그 후예들

경찰국장 논란은 물고문과 집단 폭행,
인격 살인의 프락치 사냥이
공공의 정치 공간에서 부활했음을 알려준다

 요즘 기이한 장면이 김순호 행정안전부 신임 경찰국장을 겨냥한 야당과 재야 좌파의 ‘프락치 사냥’이다. 논점은 단순하다. 33년 전 주사파 운동권에서 공안 경찰이 된 김 국장의 변신 과정이 수상하다는 것이다. “동료를 배신하고 밀고한 대가로 경찰에 특채된 것 아니냐”며 “프락치 경력을 자백하라”고 한다.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모호한 말들 이외에 증거는 없다. 누군가 이런 식으로 ‘빨갱이 사냥’을 했다면 그들은 일치단결해 ‘색깔론’으로 역공을 퍼부었을 것이다.

 

프락치 사냥은 말로 끝내는 논쟁이 아니다. 1984년 서울대 민간인 고문 사건의 피해자 전기동씨가 3년 전 김명일 현 조선NS 기자와 가진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 실감할 수 있다. “방송통신대 법학과 3학년 때 자료를 얻으려고 서울대에 갔다. 누군가 얘기 좀 하자고 해서 따라갔더니 프락치라고 몰아세웠다. 아니라고 하자 교련복으로 갈아입히고 눈을 가렸다. 돌아가면서 몇 시간씩 폭행했다. 물이 담긴 세면대에 머리를 처박거나 바닥에 눕히고 주전자로 얼굴에 물을 부었다.” “전두환 전 씨라고 더 심하게 때렸다”는 증언에선 가해자들의 악마성을 발견할 수 있다. 남의 신체에 고통을 주다 못해 인격을 가지고 장난질을 친 것이다.

 

▲1984년 서울대 민간인 고문 사건으로 구속된 유시민씨. 무고한 민간인을 상대로 감금, 고문, 인격 살인을 저질렀지만 수감 중 시종일관 당당했고 웃음을 잃지 않았다. 법정에서 후회한 일도 사죄한 일도 없다. 가해자 대부분은 한국 사회의 지배층으로 출세했고, 피해자는 프락치 낙인을 안고 대부분 불행한 삶을 살았다.

 

서울대생을 부러워하는 방송대생, 공무원 시험 준비생, 재수생 등 4명이 피해자였다. 프락치는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범인들은 1년 안팎의 징역형만 받았다. 법정에서 후회도, 사과도 하지 않았다. 대신 영웅 놀이를 했다. 유시민씨는 그때 얻은 명성을 발판으로 장관에 올랐다. 지상파 TV에 나와 당시 일을 자랑했다. 유시민은 노덕술, 이근안을 포함한 한국의 역대 고문 가해자 중 가장 출세한 인물이다. 공범 윤호중씨는 민주당 원내대표, 이정우씨는 로펌 변호사, 백태웅씨는 미국 대학 로스쿨 교수가 됐다. 공범들은 유씨가 고마울 것이다. 그의 현란한 언행이 추악한 범죄를 민주주의 서사로 둔갑시키고, 일그러진 자화상에 민주 투사의 가면을 씌웠기 때문이다. 그들을 단호하게 단죄하지 못한 결과가 지금도 계속되는 프락치 사냥이다.

 

김 국장의 이력을 보면 그가 왜 타깃인지 알 수 있다. 그는 낮은 계급인 경장에서 시작해 장기간 공안 수사에 몸담았다. 반제·반파쇼·민중민주주의 혁명 그룹 사건을 해결해 특진했고, 남한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 동맹 사건을 해결해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한국의 좌익은 공안 경찰을 정보기관보다 더 증오한다고 한다. 좌파의 풀뿌리를 뽑아내 그들의 증식 공간을 황무지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가 몸담았던 인노회 조직원들은 통일사회주의 혁명, 민족 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을 주장했다. 대법원이 이적 단체라고 했든 안 했든, 그런 사람들이 나라를 지배했다면 지금 한국은 존재할 수 없다. 이런 조직을 버리고 경찰로 전향한 것은 공격받을 일이 아니다. 설사 그들 주장대로 김 국장의 수사 협조 때문에 조직이 해체되고 조직원이 체포됐다고 가정해도 자유민주주의 기반 위에 존립하는 한국 국회가 그를 매도하는 건 타당하지 않다.

 

프락치 사냥은 유시민으로 끝나지 않았다. 원조 사냥꾼이 영웅이 됐으니 당연하다. 5년 뒤 연대생 5명이 동양공업전문대 학생 설인종씨를 “프락치”라며 끌고 가 끈으로 손발을 묶고 각목으로 때렸다. 고려대생 3명도 가담했다. 술 냄새와 응원가 소음이 신촌을 가득 채운 연고전 마지막 날이었다. 축제의 밤, 설씨는 연세대 적십자 동아리 방에 갇혀 맞아 죽었다. 그에게 잘못이 있었다면 일류대 학생인 척한 게 전부였다. 각목으로 때리다가 쓰러지면 발로 밟았다. 기절하면 물을 끼얹어 깨우고 다시 때렸다. 설씨가 과다 출혈로 죽자 가해자들은 젖은 옷을 벗겨 증거를 감췄다. 그러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에 몰려가 보호를 요구했다. 그들은 설씨가 프락치라는 증거라며 자백 내용까지 공개했지만 모두 거짓으로 밝혀졌다.

연세대 민간인 고문 치사 사건을 보도한 조선일보 1989년 10월 20일자 사회면. 연대생 5명과 고대생 3명이 학교를 속이고 연세대 동아리 활동을 한 동양공전 학생을 프락치로 몰아 납치한 뒤 학생회관에 끌고가 때려죽였다. 당시 전국 대학에서 같은 유형의 폭행 사건이 수십건 발생했다.

 

전남대에서 송원전문대 졸업생 이종권씨가, 한양대에서 선반 기능공 이석씨가 한총련 대학생들에게 프락치로 몰려 맞아 죽은 때는 8년 후인 1997년이다. 전남대 사건 가해자인 정의찬씨는 이재명 경기지사의 발탁으로 경기도 월드컵재단 사무총장에 올랐다. 대선 직전 여론에 밀려 사퇴할 때까지 정씨도 유시민씨가 누린 미래를 꿈꿨을 것이다.

 

김순호 경찰국장에 대한 공격은 유시민식 프락치 사냥이 밀실에서 벗어나 공공의 정치 영역에서 부활했음을 알려준다. 집단 린치가 재개된 것이다. 경찰의 도덕성을 무너뜨리고 새 정부 경찰 정책의 상징인 경찰국을 흔들어 정권에 상처를 입히려는 의도가 노골적이다. 넓게 보면 한국 현대사를 뒤집으려는 일련의 시도와도 연결돼 있다. 정권 입장에서 국장급 간부 교체는 일도 아니다. 하지만 양보해선 안 되는 문제가 있다. 제동을 걸지 않으면 그들의 프락치 사냥은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이다.

 

09.14  보수 여당 대표의 처신

보수주의는 순결한 사람만
정치해야 한다고 위선 떨지 않는다
단 문제가 생겼을 때
먼저 도덕성에 따라 처신하라는 것이다

 정치인에게 감동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재작년 제주도 광복절 경축식 때 원희룡 제주지사의 모습이 그랬다. 광복회 관계자가 이승만 대통령과 백선엽 장군을 맹비난하는 김원웅 광복회장의 독설을 기념사라며 대독했다. 그러자 원 지사는 단상에 올라가 이를 반박했다.

 

“분명히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치우친 역사관을 기념사라고 대독하게 한 처사에 대해 매우 유감입니다. 김일성 공산 군대가 대한민국을 공산화시키려고 왔을 때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켰던 군인과 국민이 있습니다. 그중엔 일본군에 복무했던 분도 있습니다. 역사 앞에서 우리는 공과 과를 겸허하게 보는 것입니다. 하나만이 옳고 나머지는 모두 단죄받아야 된다는 식으로 역사를 조각내는 시각에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듬해 김 회장은 야당을 향한 노골적인 저주로 발언 수위를 올렸다. 과거 보수 정부를 ‘친일 정권’으로 단정하고 “이들은 대한민국 법통이 조선총독부에 있다고 믿는다”고 주장했다. 경축식 현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침묵했다. 같은 편이니 그럴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야당 대표는 다르다. 연설은 화상으로 진행됐다. 원 지사였다면 송출 중단을 요구하고 항의했을 것이다. 퇴장해도 괜찮았다. 정당 대표가 굴욕을 당하고도 그냥 앉아 있는 것 자체가 또 다른 굴욕이기 때문이다.

 

▲작년 8월 15일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옛 서울역)에서 열린 제76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김원중 광복회장, 문재인 대통령 부부와 함께 만세를 외치고 있다. 이날 김 회장은 영상을 통해 국민의힘을 친일 정당으로 모욕했다. /연합뉴스

 

그런데 이준석 대표는 반응이 없었다. 경축식이 끝나자 문 대통령 부부에게 꾸벅 인사하고 자리를 떴다. 이날 그를 사로잡은 건 야당 내에서 일어난 이른바 통화 녹취록 유출 공방이었던 것 같다.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쏟아낸 이 대표의 이날 발언은 대부분 이 문제에 대한 변명이었다. 언제나 그에겐 외부 공격보다 내부 공격이 훨씬 중대한 문제인 것이다.

 

역사적 정당성, 보수의 가치, 이런 말은 재미없다. 원 지사가 “김일성 공산 군대”라며 반론을 시작했을 때 “아, 또 저 얘기”라며 외면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일반인은 그래도 된다. 하지만 당대표는 다르다. ‘거인의 어깨 위에 있는 난쟁이’ 표현은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는 보수주의에 대한 비유로도 유명하다. 이준석 대표가 강한 발언권을 가진 이유는 앞선 보수 정당 선배들의 위대한 업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그들의 어깨 위에 올라탄 난쟁이에 비유할 수 있다. 거인을 모독하는데 이 대표가 침묵했다. 원 지사의 말처럼 “역사 앞에서 공과 과를 겸허하게 보는 자세”로 “치우친 역사관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는 것”이 대표의 의무였다. 그런데 지키지 않았다.

 

지난달 이 대표의 눈물 회견은 ‘개고기 발언’ 말고도 보수의 시각에서 주목할 부분이 많았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지지층 절반이 태극기를 보면 자동으로 왼쪽 가슴에 손이 올라가는 국가 중심의 가치를 중시하는 당원”이라고 했다. 국기에 대한 애정으로 표현되는 애국주의와 국가주의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썩어서 문드러진 반공 이데올로기” “60년째 북풍의 나발을 부는 집단”이라고 정권을 비판했다. 하지만 반공은 썩어서 문드러지지 않았고 북풍 나발 역시 멈출 수 없다. 윤핵관 때문이 아니라 북핵과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 때문이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말에 틀린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도 틀렸다. 세율 인상 없이 경제를 키워 복지를 감당한 사례가 많다. 필요하면 증세를 할 수 있지만 마지막까지 자제하는 게 보수다.

 

보수의 관점에서 이 대표의 핵심 문제는 도덕성이다. 논란이 많은 성 매수 주장을 들추려는 게 아니다. 보수주의는 좌파처럼 순결한 사람만 정치를 해야 한다고 위선 떨지 않는다. 다만 문제가 생겼을 때 법에 앞서 도덕성을 처신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때 어떤 총리 후보자는 변호사 수임료 16억원 때문에 물러났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었지만 도덕성을 중시해 자진 사퇴했다. 보수적 가치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이 대표의 정무실장은 성 매수 주장과 관련된 제보자에게 7억원 투자 각서를 써줬다고 한다. 만약 대통령 부인의 비서관이 유흥업소 취업 주장과 관련된 제보자에게 투자 각서를 써준 사실이 드러났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차이가 없다고 본다. 보수 정당 대표라면 그는 이 일만으로 스스로 물러났어야 한다. 그런데 그는 일가족 비리 수사 때 조국 교수와 당시 집권자들이 보여준 행동을 따라 하고 있다. 도덕성이 아니라 대중 선동을 처신의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국민의힘은 전후 고도 성장을 정치 영역에서 지원하면서 성공하려고 노력하는 다수 국민을 대변해 왔다. 업적으로 말하면 세계 보수 정당 가운데 손꼽히는 정당이다. 맨파워도 밀리지 않는다. 그런데 자신의 가치를 모르는 듯하다. 가치를 모르니 보수에 어울리는 내부 인재를 제대로 찾지 못한다. 문제만 생기면 특정인의 인기에 의존해 우르르 몰려 다닌다. 이번 파동도 그러다가 일어난 일이다. 이런 체질을 바꿀 수 있다면 더 세게 당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10.05 한국 역사상 최저질 외교 논쟁

한국은 외교로 죽고 사는 나라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논쟁이 잦다
나라 살린 논쟁도, 죽인 논쟁도 있다
그런데 이런 저질은 정말 처음 봤다

외교 사절 김홍집에 의해 일본에서 반입된 외교지침서 ‘조선책략’을 유생들이 벌 떼처럼 공격했다.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가슴이 떨리며 통곡했다”고 했다. 책의 핵심 내용은 “중국을 더 가까이 하고 일본, 미국과 손을 잡아 조선 스스로 강해짐으로써 러시아를 막으라”는 것이다. 1880년, 러시아의 팽창이 지금보다 더 세상을 위협하던 때였다. 중국 외교관이 중국 정부의 세계 전략에 따라 썼고 친중(親中)을 앞세웠다. 그런데 중국을 받드는 유생들이 저자를 “사문난적(斯文亂賊)의 효시”라고 비난하면서 “책을 반입한 김홍집을 벌하라”며 들고 일어났다.

 

▲1884년 갑신정변의 주역들인 (왼쪽부터)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김옥균. 일본 2차 수신사 김옥균이 일본에서 가져온 서적 '조선책략'이 조선에 파동을 일으켰다. 그 파동의 극단적 표출이 갑신정변이다. 정변의 실패가 결과적으로 조선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만인소’라고 부르는 상소문에서 그들은 “그런 글을 받아들였다가 중국이 이를 가지고 따지고 시끄럽게 떠든다면 무슨 말로 해명하겠느냐’고 했다. 오랑캐 나라에 대해 중국과 대등하게 결연과 연대를 운운하면 중국이 화내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세상 모르고 한 소리였다. 조선책략은 중국 정부의 공작으로 조선에 유입된 것이다. 열강에 밀리던 중국은 외교에서 천자의 지위를 한참 전에 버렸다. 중국이 아니라는데, 괜찮다는데 먼 나라 시골 유생들이 “주공과 공자, 주자의 가르침을 밝혀야 한다”며 중국을 위해 분개하고 통곡한 것이다.

 

유생들을 한심하다고만 할 수 없다. 그들에게 그것이 세계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김홍집의 사행길에 동행한 박상식은 향촌 유생이었다. 그가 쓴 사행기 ‘동도일사(東渡日史)’엔 거대한 근대 문명에 압도된 조선 유생의 현기증이 서술돼 있다. 도쿄의 기차 체험을 이렇게 묘사했다. “날아가는 새가 연기에 엉겨있는 듯 지나가지 못하고 뒤에 처진다…귓가에는 천둥 치는 소리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으니 바람을 막는 신선이라도 이보다 더할 수는 없으리라.” 놀란 심신을 안정시킬 수 있는 안식처는 도쿄의 공자묘였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는 더 큰 충격을 받고 탄식한다. 공자묘가 근대식 사범학교와 도서관, 박물관으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장 속에 유리로 덮어놓은 책이 천만권인데 양서(洋書)가 오히려 많으니 학생 모두가 오랑캐로 변했구나.”

 

시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적어도 그들은 진지했다. 2년 후 임오군란이 일어나 조선은 중국 군관 위안스카이 치하에 놓였다. 조선의 등골을 빼먹는 데 혈안이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렇지만은 않았다. 조선의 문신이자 접빈관 김창희는 위안스카이 등 조선에 파견된 중국 지배자들에게 조선의 살길을 끝없이 물었다. 위안스카이는 진지하게 응했다. 그는 조선의 다섯 가지 물산을 열거하고 이들을 다스리면 조선이 부유할 수 있다고 했다. 뽕나무로 강토를 개벽해 정예군 삼사천을 키울 수 있고 험한 산세를 잘 활용하면 일본의 침략 야심 정도는 억누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조선의 생존 전략서를 따로 만들어 전한 중국 지식인도 있었다. 모두 ‘자강(自强)’을 부탁했지만 조선은 이루지 못했다.

 

한국의 지금 상황을 조선 말기에 빗대 비판하면 “그때와 국력이 다르다”고 한다. 현실에 맞지 않는 상투적인 비교라는 것이다. 동의한다. 하지만 한국 엘리트의 지력(智力)이 얼마나 더 성장했는지에 대해선 고민해야 한다. 조선 말 외교 논쟁을 읽으면 비록 시대를 잘못 읽었지만 그들은 지적이었고 진지했고 치열했다. 정치사상가 마루야마 마사오는 일본의 근대화 성공을 쉽게 설명한 적이 있다. “일본은 패하면 유학을 보냈다”는 것이다. 미국에 지면 미국에, 영국에 지면 영국에 인재를 보냈다. 국제 정세를 익히고 세계 속에서 나라의 좌표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했다. 조선이 일본만큼 당대의 지식인을 세계에 쏟아낼 수 있었다면 중국의 자장(磁場)에서 탈출해 생존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도쿄 신바시역에 있는 일본 열차. 일본은 조선 외교사절이 왔을 때 도쿄~신바시 노선을 경험하게 했다. 철도는 제국주의의 상징이었다.

지금 한국에서 연간 20만명이 세계로 유학 간다. 국민의 학습량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만큼 엘리트가 많은 나라가 드물다. 조선 지식인이 꿈꾸던 나라다. 엘리트 중 엘리트가 정치에 몰려 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이 날마다 떠드는 핵심 외교 사안이 ‘이 ○○ 논쟁’이다. 세상엔 별별 엉터리가 있다. 초능력자만 모여있는지 어떤 매체는 딱 보면 광우병이거나 100만명이고, 딱 들으면 이 ○○, 바이든이다. 그냥 넘어갈 일이다. 미국도 괜찮다고 한다. 그런데 나라가 흔들리는 듯 “외교 참사”라며 통탄한다. 반미의 선봉에 있던 사람일수록 미국 심기를 걱정하는 코미디를 벌이고 있다. 조선 유생의 반발에는 그들 나름의 철학과 세계관이 있었다. 지금은 비난을 위한 비난만 있을 뿐 아무것도 없다.

 

한국은 외교로 죽고 사는 나라다. 요충지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외교 논쟁이 잦다. 나라를 살린 논쟁도, 죽인 논쟁도 있었다. 그런데 과문한 탓인지 이번과 같은 저질 논쟁은 처음 봤다. 정치의 지력이 바닥까지 떨어지지 않았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나라는 돈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나라를 지탱하는 것은 “민도(民度)”라고 부르는 사회 구성원의 수준, 특히 엘리트의 지력이다. 이런 정치, 국회를 방치하면 남이 건드리지 않아도 나라는 스스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

 

10.26  성남 대장동派의 ‘의리 없는 전쟁’

이재명 대표는 그의 유동규 발언이
이 폭풍을 몰고온 나비효과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듯하다
의리가 없기 때문이다

 작년 말 국정감사에서 유동규씨에 대한 이재명 대표의 주장을 듣고 “이래도 괜찮은가” 싶었던 때가 있다. “제가 무슨 주군이니, 그가 무슨 핵심 측근이니 하는데 그랬다면 사장을 시켰을 겁니다. 그런데 8년 동안 안 시켰잖아요. 소규모 산하기관을 맡겼는데 사표 던지고 나가버린 다음에 대선 경선에도 전혀 나타나지도 않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냥 나의 측근이 아니라고 하면 됐다. 그런데 유씨의 직무 태도를 문제 삼았다. 이런 사람이 측근 자격이 있냐는 것이다.

 

다음 발언이 더 심했다. “제가 들은 바로는 유씨가 작년부터 이혼 문제 때문에 집안이 너무 문제가 있다고, 그래서 아마 체포당할 때 자살한다고 약을 먹었다고 해요. 그걸 제가 둘러가면서 한번 들어보니까, 자살한다고…” 이 대표의 측근이 체포 직전 유씨와 장시간 통화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였다. 측근이 왜 전화했는지 변명하기 위해 유씨의 사생활인 이혼과 극단적 행위를 생중계하는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것이다. 그런데 1년 뒤인 지금 이 대표 측근이 당시 통화에서 유씨에게 휴대전화를 버리고 체포를 피할 방법을 알려줬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의리가 사라지면 내분이 일어난다. 이재명 대표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너무 많은 의리를 외면했다. 1년 뒤 나비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발언의 진위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유씨는 10년 이상 이 대표를 곁에서 섬겼다. 2010년 성남시시설관리공단에 들어가 위례 개발과 대장동 개발을 주도하고 수천억원의 공공 자금을 당시 이재명 시장을 위해 만들어준 사람이다. 이 대표 선거 때마다 공직을 버리고 도왔다. 이래도 측근이 아니라고 할 수는 있다. 친소 관계에 대한 각자의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멀어졌다고 한때 신세진 사람의 인격과 사생활을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 인간에겐 ‘의리’가 있기 때문이다.

 

의리(義理)는 아이들도 쓰는 말이지만 실은 매우 어려운 개념이다. 도의(道義)와 비슷하지만 전부가 아니다. 미국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는 책 ‘국화와 칼’에서 일본 문화의 핵심 키워드로 ‘기리(의리)’를 내세웠다. 하지만 설명에 난항을 거듭했다. “의리는 의무와는 다른 유형의 일련의 의무”라고 하더니 “이에 상응하는 영어를 찾을 수 없다”며 정의 내리기를 포기했다. 그의 설명을 단순화하면 이렇다. 안 받아도 주는 게 의무라면, 받은 만큼 주는 게 의리다. 충과 효는 의무다. 다른 관계는 의리가 기본이다. “세상의 형식적인 일을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란 사전적 설명도 있다. 베네딕트는 “의리만큼 힘든 일이 없다”고 했다. 순간순간 지켜야할 인간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 대표는 자신의 욕설 논란을 여러번 TV 앞에서 사과했다. 허공에 사과하는 건 쉬운 일이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욕을 한 형수에게는 사과하지 않았다. 베네딕트가 말한 ‘힘든 일’을 회피하는 것이다. 이럴 때 의리가 없다고 한다. 김문기씨는 성남도개공에서 개발팀장으로 오래 일하면서 이 대표의 숙원인 대장동 사업을 도왔다. 그런데 그가 숨지자 이 대표는 “기억에 없다”고 했다. 설사 기억에 없어도 “나를 위해 열심히 일하시던 분”이라고 했어야 한다. 그에겐 의리가 부족한 것이다. 때만 되면 고개를 드는 여배우 논란 역시 본질은 이 대표의 의리 문제로 돌아간다. 모든 사례에서 그는 받은 만큼 안 준 것이다.

 

드라마틱한 이 배신의 시대를 읽으면 인간의 삶에 얼마나 의리가 중요한지에 대해 꽤 공부가 된다. 일본 사무라이가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다는 말은 근세 들어 급조된 믿음이다. 직전까지 하극상과 배신의 아비규환이었다. 전국시대를 대표하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배신으로 권력을 잡았다. 배신은 상하(上下)의 역학이 변할 때 주로 일어난다. 하지만 돌출적으로 일어날 때가 더 많다. 주군이 부하에게 의리를 지키지 않았을 때다. 오다 노부나가를 포함해 많은 무장이 그러다 허망하게 최후를 맞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고(故)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이 지난 2015년 1월 7일 뉴잴린드 오클랜드 알버트 공원에서 손을 맞잡고 있는 모습. /사진=고 김문기 처장 유족 측 제공

 

이 대표는 그의 형수가 그렇게 집요하게 자신을 추궁하는 이유를 모를 것이다. 숨질 때까지 그를 괴롭힌, 그리고 그가 괴롭힌 형에 대해선 정신 이상이라고만 생각할 뿐 그 이상 받아들일 생각이 없을 것이다. 그를 비판하는 여배우의 행동도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김문기씨 유족이 그를 비난하는 이유는 물론이다. “의리? 이 세계엔 없다”는 유동규씨의 말은 많은 것을 시사하지만 그에겐 들리지 않을 것이다. 작년 그의 국정감사 발언이 지금의 폭풍을 몰고온 나비효과라는 것도 와닿지 않을 것이다. 모두 그가 일으킨 파도다.

 

깡패도 의리가 없으면 존립할 수 없다. 그런데 그들의 의리가 세상의 평범한 의리와 다른 점은 이익에 따라 의리가 흔들리고, 의리가 사라졌을 때 혈투가 일어난다는 점이다. 대장동 일파의 의리는 깡패의 의리다. 먼저 의리를 내던진 사람은 누구인가. “의리 없는 전쟁”이란 야쿠자 고전 영화가 있다. 지금 벌어지는 성남 대장동파(派)의 내전에 어울리는 제목이다.

 

11.16 일본 해군은 적장의 영혼을 향해 기도를 올렸다

한국의 바다는 동해 넘어 북극 항로로
해양 안보 생명선은 인도양까지 확장
나라 운명 좌우할 바다 향한 경례 보고
떠오르는 의미가 겨우 욱일기뿐인가

▲러시아 발트함대의 전함 한 척이 일본 해군의 공격으로 침몰하고 있다. 당시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발트함대가 참패함으로써 러일전쟁의 승부는 결정됐다. 한국 진해만에서 결전을 위해 출항할 때 일본 해군 장교들이 이순신 장군의 영혼을 향해 기도했다고 한다. 이때 일본 해군을 이끈 작전 참모 아키야마 사네유키가 해양권론의 선구자 앨프리드 머핸의 제자다.

 

한국 근대사의 미스터리 중 하나가 ‘이순신 서술’이다. 1795년 정조 임금의 이순신 전서 편찬 이후 1908년 신채호의 이순신전 연재까지 100년 이상 이순신 서술은 한국에서 공백이었다. 보통 한국 근대의 출발을 1876년 일본의 침탈이 시작된 강화도 조약으로 본다. 이순신은 당시 상황에서 최고의 시대적 상징이었다. 그런데 망국 직전까지 한국에서 이순신은 영웅으로 소환되지 않았다.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하는 미스터리가 일본 근대의 이순신 서술이다. 일본의 작가 시바 료타로는 여러 저서에 일제 해군 장교들이 러시아와의 결전을 위해 출항하면서 이순신의 영혼을 향해 기도를 올리는 장면을 묘사했다. 작가의 상상이 아니라 사실이다. 일본 엘리트 일부는 이순신을 연구했고 존경했다. 이것을 하나의 동력으로 전쟁에서 승리했고, 결국 한국을 병탄했다. 한국 역사에서 가장 역설적이면서 비극적인 장면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일본의 19세기 이순신 서술은 두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전기는 김시덕 교수, 후기는 김준배 교수의 연구로 자세히 밝혀졌다. 이들에 따르면 징비록이 일본에서 간행된 이후 50여 년 동안 일본 전쟁 소설에서 이순신은 ‘조선의 영웅’으로 등장했다. 이 위상이 19세기 후반 ‘세계의 영웅’으로 격상된다. 이순신 서사는 문화 현상에서 정치·군사적 현상으로 폭을 넓혔다. 이를 주도한 것이 일본군, 특히 일본 해군이다.

 

▲이순신을 세계적 영웅으로 서술한 세권의 책. 일본 육군 계열 기관지가 출판한 조선 이순신전은 일제강점기 문일평에 의해 한국에서 번역, 출간돼 한국인의 이순신 관념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순신을 영국의 넬슨에 비유해 세계적 영웅으로 끌어올린 첫 저서다. 제국해군사론과 제국국방사론은 일본 해군이 군사적 측면에서 이순신을 연구한 책이다. 이 책이 일본 해군 장교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상당수 해군 엘리트가 이 책으로 공부하면서 이순신을 존경하게 됐다고 한다.

 

이순신을 ‘동양의 넬슨’에 비유한 찬사는 1892년 ‘조선 이순신전’에 처음 나온다. 일본 육군 계열의 기관지가 펴낸 책이다. “이순신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대원정을 그림의 떡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찬사는 일본 해군에 의해 고조됐다. 훗날 일본 해군 중장까지 올라간 사토 데쓰타로는 저서 ‘제국국방사론’에서 “넬슨은 인격에서 이순신에 비견될 수 없다”며 “필적할 자는 네덜란드의 더라위터르(영국을 물리친 해군 명장) 정도”라고 했다. 해전 연구에 뛰어든 동기에 대해선 “이순신의 숭고한 인격과 위대한 공적이 나의 정신을 격렬히 일깨웠기 때문”이라고 했다. 앞서 해군 참모 오가사와라 나가나리도 저서 ‘해상권력사 강의’를 통해 “이순신이 해상권을 확고히 지키고 있었기에 전쟁의 대요소가 전부 소멸돼 맹진하던 육군도 스스로 고립됐다”고 했다.(이상 김준배 연구) 이순신 서사가 존경과 찬사에서 전쟁사적 연구로 진화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런 서술은 한국에 꽤 알려져 있다. 이를 인용하는 글에는 “적국 일본조차 존경할 수밖에 없던 성웅”이란 평가가 종종 뒤따른다. 으쓱하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넘어서는 중요한 함의가 있다.

 

미국의 해군 이론가 앨프리드 머핸의 해양권(Sea Power)론이 19세기 말 세계를 강타했다. “바다를 지배한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이 이론을 압축한다. 이에 따라 국가 전략을 바꿔 제국으로 성장한 나라가 미국이다.

 

일본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아키야마 사네유키가 머핸을 사사한 해군 참모다. 일본은 바다의 전략적 가치에 눈을 떴다. 육군 중심의 무력을 해군 중심으로 바꿔 열강으로 도약하기 위해 머핸의 이론을 일본 전쟁사에 적용했다. 그런데 당시 일본엔 해군 영웅이 없었다. 그래서 적장 이순신을 끌어와 반면교사 방식으로 해양권의 가치를 주장한 것이다. 시바 료타로는 일본이 해양권론을 내재화하는 과정에 대해 “흑사탕을 백사탕으로 만드는 정제 작업”이라고 했다. 이순신 서사는 표백제 역할을 한 것이다.

 

일본을 알면 한국의 미스터리도 풀린다. 당시 한국은 바다를 몰랐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중국 중심의 좁은 세계관에 갇혀 자국의 근해조차 지키지 못했다. 육군 영웅은 차고 넘쳐도 해군 영웅을 가진 나라는 극소수다. 바다의 근대적 가치를 몰랐기 때문에 이순신의 근대적 가치도 몰랐다. 그러다 항일 영웅의 구국 서사마저 일본에 빼앗겼다. 좁은 세계관이 만든 비극이다.

 

▲일본 해상자위대가 창설 70주년을 맞아 개최한 국제관함식에서 한국 군수지원함 '소양함'(앞줄 왼쪽)과 일본 호위함 '이즈모'(앞줄 오른쪽)가 나란히 항행하고 있다. 관함식에 참여한 한국, 미국, 인도 등 12국은 모두 인도태평양 국가들이다. /교도 연합뉴스

 

한·미·일이 동해에서 합동 훈련을 벌이자 야당 대표는 “친일 국방”이라고 공격했다. “독도 앞 욱일기 훈련”이라고 묘사했다. 한국 등 인도·태평양 12국이 참여한 일본 주최 관함식 때도 한국 정계의 논란은 ‘욱일기’였다. 한국 해군이 주최국 정상을 향해 경례한 쪽에 욱일기 모양의 일본 해상자위대 깃발이 있었다는 것이다. 어떤 야당 의원은 국회에서 욱일기 모형을 쪼개는 유아적 퍼포먼스까지 벌였다. 한국 경제의 항로는 동해를 넘어 북극 항로를 돌파해 유럽으로 이어지고 있다. 해양 안보의 생명선은 인도양까지 확장됐다. 한국은 일본 근해를 통하지 않고 태평양으로 넘어가기 어렵다. 그날의 경례는 국가의 운명이 달린 광활한 바다를 향한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눈엔 겨우 욱일기 문양만 보였나.

 

일본 해군은 결전을 앞두고 과거의 적장 이순신의 영혼을 향해 기도를 올렸다. 동양인의 편에서 서양의 제국인 러시아에 이기게 해달라는 기도였다고 한다. 가슴 아픈 역사이지만 승리하는 자의 행동은 이렇게 다른 것이다.

 

12.07 가장 ‘윤석열다운’ 순간

민노총과 대결하는 윤 대통령을 보면서
오랜만에 그의 진가를 느낀다는 사람이 많다
국민 다수가 지지하던 2년 전을 보는 듯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민노총의 불법행위에 대해 “북한의 핵 위협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둘 다 정부가 원칙을 지키지 않아 키운 문제라는 취지다. 지나친 비유라고들 한다. 하지만 국민이 일상에서 민노총 때문에 겪는 고통은 북핵과 차원이 다르다. 그들은 생활을 망가뜨린다. 동네 주유소 기름을 동나게 하고, 건설 현장을 마비시켜 노동자 밥줄을 끊어버린다. 북한이 내뱉는 상욕보다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는 화물연대의 진군가가 현실에선 더 살벌하고 위협적이다.

 

영국인은 인내력이 강한 국민이다. 2차 대전 당시 독일 공습으로 런던에 폭탄 비가 쏟아졌다. 9개월 동안 시민 3만명이 죽고 5만명이 다쳤다. 160만명이 집을 잃었다. 그래도 언론은 흥분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민들이 지하 대피소로 몰리는 과정에서 어린이 1명이 깔려 숨지자 영국 언론은 “영국의 수치”라며 시민 의식을 맹비난했다. 독일 공습에 자기 살자고 아이를 밟고 갈 정도로 영국인이 타락했느냐는 것이다. 영국에선 이 시기를 “가장 위대한 순간(Finest Hour)”이라고 부른다. 인내와 단결, 절제와 희생으로 영국의 위대함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이런 국민도 견디지 못한 시련이 1979년 연쇄 파업이었다. ‘불만의 겨울(Winter of Discontent)’이라고 한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처드 3세’에 나오는 음습한 문구를 인용했다. 화물 운전사를 시작으로 철도 노동자와 간호사, 청소원, 시신 매장 노동자 등 150만명이 파업을 벌였다. 한 달 이상 물류가 마비됐고 치료와 수술이 중단됐다. 중환자가 죽어나갔다. 쓰레기와 죽은 노숙자의 시체가 나뒹굴었다. 노동당 내각은 파업 두 달 만에 백기를 들었다. “영국의 지배자는 여왕이 아닌 노동조합”이란 말을 증명했다. 그들에게 국가는 없었다. 노조 이익만 있었을 뿐이다. 승부사 마거릿 대처가 등장해 나라의 조종간을 잡을 때까지 영국은 이렇게 아수라장이었다.

 

▲민노총이 국민에게 주는 실생활의 고통은 북핵과 비교되지 않는다. 25일 오후 서울 여의대로에서 민노총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조가 총파업 대회를 열었다. 집회 시작은 오후 1시였지만, 집회에 쓸 무대를 설치한다며 오전 4시부터 여의대로 7개 차로를 점거하면서 출근길 정체가 극심했다. 퇴근 시간에도 무대를 철거하느라 다수 차선이 여전히 통제돼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다./뉴시스

 

민노총이 이 정도는 아니라는 사람들이 있다. 몰라서 하는 소리다. 1996년 민노총은 정부의 노동 개혁을 총파업으로 좌초시켰다. 이 사건은 한국이 자체 개혁으로 위기를 탈출할 수 없다는 중대한 신호를 국제 금융시장에 전했다. 한국이 몰락하는 방아쇠를 당겼다. 이듬해 한국 경제가 무너졌다. 128만명이 직장을 잃었다. 자살자가 두 배로 늘었다. 민노총의 책임은 누구보다 컸지만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다. 밀려난 노동자의 분노, 좌파 정권의 지원, 노동시장의 양분화를 교묘하게 이용해 반대로 힘을 키웠다. 그 힘을 활용해 광우병 난동을 선동하고 탄핵 집회를 주도했다. 박근혜 정권을 무너뜨린 외력(外力)은 문재인의 민주당이 아니라 민노총이었다. 이후 민주당은 민노총의 국회 지부처럼 전락해 민노총이 주문한 청부 입법에 열을 올린다. 민노총은 영국 노조 못지않게 나라를 파탄내고 정치를 유린한 시대의 괴물이다.

 

윤 대통령이 어쩌다 대통령에 올랐다고들 한다. 장관급 관료가 퇴임 1년 만에 대통령이 됐고, 당선 후 기존 대통령과 다른 모습을 보이니 하는 소리일 것이다. 대중은 너무 쉽게 잊는다. 이해찬씨가 2018년 민주당 20년 집권론을 말했다. 2020년 총선 대승으로 적어도 10년 집권은 무난했다.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권력이 탄생했고, 실제로 그들은 무슨 짓이든 했다. 윤 대통령이 조국 수사, 울산 수사, 원전 수사를 연이어 시작한 것은 권력의 기(氣)가 정점을 모르고 치솟을 때였다. 좌파의 민낯을 사법 증거로 폭로했고 20년 집권론을 5년 만에 끝냈다. 어쩌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한국 정치사에 이런 승부사가 없다.

 

민노총이 한국 좌파의 정점이기 때문에 대결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자원이 없는 한국이 여기까지 발전한 것은 효율적인 나라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혁신으로 무장한 도전적 기업인, 미래를 내다보는 관료, 성공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근로자, 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언론이 있었다. 정치는 삐걱거리면서도 발전을 위한 제도를 적기에 만들었다. 한국이 가진 밑천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이런 요소를 민노총은 전방위적으로 무너뜨리고 있다. 그들이 꿈꾸는 미래는 전혀 다른 한국이다. 한국 사회가 MZ세대를 아낀다면 이 괴물을 그들에게 물려줘선 안 된다.

 

사람들은 윤 대통령에게 포용하고 양보하고 협치하라고 한다. 하지만 국민이 승부사 윤석열을 대통령 자리에 앉힌 본질은 다르다고 본다. 영국에서 탄광 파업은 1년 동안 이어졌다. 이 고통을 법과 원칙으로 이겨냈을 때 승부사 대처는 세계의 전설이 됐다. 영국에 재도약의 시대가 100년 만에 찾아왔다. 최근 민노총과 대결하는 윤 대통령을 보면서 그의 진가를 오랜만에 느낀다는 사람이 많다. 법과 원칙을 무기로 거대 권력과 다시 한판 붙은 모습에서 ‘윤석열다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국민 다수가 지지하던 2년 전 그때 그를 보는 듯하다고 한다.

 

12.28(수) 합리적 모피아에 포획된 대통령실

경제 관료의 합리성을
대통령이 따랐다면
지금의 한국 반도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의 합리성이
언젠가 윤 대통령을
시시하게 만들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반도체 업계 대표들과 화상 회의를 하는 도중 실리콘 웨이퍼를 들어 보이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수퍼컴퓨터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에 이용되는 첨단 반도체의 중국 수출을 광범위하게 통제하는 새로운 제재 조치를 발표했다./AP 연합뉴스

 

반도체 시설 투자에 대한 세액 공제율이 기획재정부가 요구한 8%로 결정됐다. 여당안은 물론 야당안보다 낮다. 대통령실도 동의했을 것이다. “반도체, 반도체 하더니 이럴 수 있냐”고들 한다. 그런데 기재부 설명은 그럴듯하다. 경쟁국 대만이 5%라고 한다. 대만이 25% 공제를 추진하는 분야에서 한국은 이미 40%를 적용한다. 미국의 25% 공제는 ‘비우호국 수출 금지’ 조건이 붙은 특별한 경우다. 설득력이 있다. 작년에만 각각 32조원, 15조원을 번 삼성과 SK를 왜 남보다 더 특별히 도와줘야 하는가.

 

야당은 윤석열 정부를 검찰 정권이라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대통령은 속칭 ‘모피아’로 불리는 경제 관료에게 둘러싸여 있다. 20여 년 전 기재부를 취재한 적이 있다. 구성원이 매우 우수했는데 설득하는 기술이 특히 뛰어났다. 판검사는 판결과 수사로 말한다. 하지만 경제 관료는 권력자를 설득해야 뜻을 이룰 수 있다. 보고서 작성에 날밤을 새우는 건 이 때문이다. 그들의 브리핑에 권력자 대부분이 녹아내린다. 그런 그들을 탓하면 안 된다. 그것이 그들의 생리이자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나라엔 관료의 합리성에 포획되면 안 되는, 합리성을 넘어 고도의 전략적 판단이 필요한 많은 분야가 있다. 한국 IT 산업의 초석을 놓은 오명 전 부총리의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반도체를 개발해야 한다고 나섰을 때 심하게 반대한 곳은 경제기획원(기재부의 전신)이었다. 반도체는 막대한 자본이 필요한 산업이라 한국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에 비해 기술이 10년이나 뒤져 있고 기술 수명이 2~3년에 불과해 하나를 개발하면 또 새로운 것이 나와 비용조차 건지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반도체는 산업의 쌀인데 쌀 없이 무슨 밥을 먹는다는 거냐’며 반대를 일축했다.”

 

80년대 중반이었다. 당시 기획원 논리가 합리적이었다. 3류 TV나 생산하는 주제에 반도체라니. 그때 합리성을 따랐다면 지금의 한국 반도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합리가 아니라 상상조차 뛰어넘는 파괴적 결단이 오늘을 만든 것이다. 내일을 위해선 같은 수준의 결단을 지금 반복해야 한다.

 

1988년 일본 반도체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50.3%였다. 이게 지금 9%다. 2030년 0%가 된다고 한다. 일본 경제산업성의 예측이다. 1986년 일본이 미국과 맺은 반도체 협정은 상호주의를 완전히 무시했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일본 반도체 가격과 시장을 통제하는 폭력적인 내용이었다. 제조 원가를 조사하겠다며 공정까지 공개하라고 했다. “바지는 벗어도 팬티까지 내릴 수 없다”는 유명한 말이 이때 일본에서 나왔다. 당시 정상의 애칭을 딴 ‘론 야스 시대’는 미일의 밀월 외교를 상징한다. 이런 시대에 론(레이건 대통령)은 일본을 상대로 가차 없이, 주저 없이 깡패 짓을 벌였다. 합리, 논리, 호혜, 동맹? 반도체 세상에서 그런 건 아무 쓸모도 없었다.

 

 

많은 사람이 트럼프 대통령을 미치광이라고 한다. 그런 그가 중국을 상대로 반도체 전쟁을 일으켰다. 적시에 정확히 표적을 찔렀다. 레이건 반도체 전쟁의 2부에 해당한다. 트럼프는 이 결단만으로 미국사의 밝은 면을 차지할 수 있다고 본다. 바이든 대통령은 세액공제 수준이 아니라 공장만 지으면 4조원을 뭉텅이로 지급하겠다고 한다. 복잡한 세율로 숫자놀이 하는 수준이 아니다. 이런 걸 파괴적 결단이라고 한다.

 

1990년 세계 반도체 10대 기업 중 5개가 일본 기업이었다. 다른 제조업도 석권했다. 금융업조차 세계 1~5위가 모두 일본 은행이었다. 일본 전자산업 CEO 회고록을 보면 일본 전체가 반도체, 특히 메모리 분야에 대해 한물갔다고 오판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정치가 움직이지 않았다. 우방과 마찰이나 일으키는 반도체가 아니어도 일본은 잘 번다. 배부른 돼지로 변한 것이다. 1990년대, 2000년대를 통틀어 반도체의 전략적 가치를 이해하고 국가 산업으로 이끈 일본 총리는 없다. 미일 반도체협정 7년 만에 일본은 삼성에 디램 왕좌를 내줬다. 지금 세계 10대 반도체 기업 중 일본 기업은 전무하다. 미국 기업은 6개다. 정치의 차이가 이런 변화를 일으켰다.

 

반도체가 “산업의 쌀”인 시대는 지났다. 반도체는 나라를 지키는 아성이자 생명줄이다. 미국이 대만 안보에 공을 들이는 핵심 이유 중 하나가 반도체를 미국에 공급하는 TSMC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반도체 공장은 중국과 북한 위협에 대해 한국을 지키는 최강의 아이언돔이다. 삼성과 SK가 만든다고 반도체가 민간의 몫이라고 하는 것은, 탱크를 만든다고 현대에 국방을 책임지라는 것과 같다.

 

파괴적 결단은 대통령만이 할 수 있다. 이번 예산 파동에서 반도체법에 모든 것을 걸었다면 또 하나의 멋진 승부가 됐을 것이다. 대통령실엔 유능한 경제 관료가 많다. 그들의 합리적 속삭임이 언젠가 윤 대통령을 시시하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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