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이야기17/ 2022/
03.14 높이 324m 에펠탑 세운 비결… 인체의 뼈 단면 본떴다
“에펠탑이 인체를 모방한 기술이라는데, 왜 그런가요?” 얼마 전, 어느 대학생에게서 받은 질문이다. 지금은 에펠탑이 없는 파리를 생각할 수 없지만, 에펠탑이 처음 등장할 때는 달랐다. 사람들은 앙상한 뼈대가 그대로 드러난 듯한 에펠탑의 모습에 경악했다. 에펠탑이 인체의 골격을 모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공대 교수가 우연히 방문한 의대 해부학 교실에서였다. 이처럼 생명체에 영감을 얻어 형태와 구조를 모방하는 것을 생체모방(Biomimetics) 또는 자연모사기술(Nature Inspired Technology)이라고 부른다. 이는 과학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중요한 돌파구였다.

▲그래픽=김현국
1849년 28세의 철도 엔지니어 카를 쿨만(Carl Culmann)은 회사를 휴직하고 미국과 영국을 여행하며 다양한 토목 구조물을 접하게 된다. 특히 새로운 교통수단으로 증기기관차가 등장하자 수요가 급증하던 교량에 주목했다. 당시 철도 교량에 널리 쓰이던 ‘트러스(truss)’는 철제 막대기들을 X 혹은 삼각형 모양으로 조합했는데, 어떤 조합이 하중을 제대로 지지할지 쉽지 않았다. 쿨만은 여행에서 본 수많은 트러스를 체계적으로 분석해 효과적인 설계법을 개발한다. 이 업적으로 1855년 스위스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이 개교하며 그를 교수로 초빙했다. 이후 26년간 쿨만이 종신으로 근무한 이 대학은 흔히 ETH(Eidgenössische Technische Hochschule)로 불리며 나중에 아인슈타인과 뢴트겐 등 노벨상 수상자 30여 명을 배출하게 된다.
더욱 획기적인 트러스 구조에 목말라 하던 쿨만은 1866년 저명한 해부학자였던 동료 의대 교수 마이어(Georg Hermann von Meyer)의 연구실에서 실마리를 발견한다. 마이어가 절단한 인체의 뼈 단면에서 특이한 점을 본 것이다. 뼈 구조는 대개 외곽이 치밀하고, 중심이 성글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인체에서 가장 강한 힘을 받는 넓적다리를 분석했다. 놀랍게도 밀고 당기는 힘이 반복되며 가해지는 하중들은 연약한 뼈의 중심부를 피해 단단한 외곽부로 분산되고 있었다. 해면골(海綿骨)이라 불리는 중심부의 엉성해 보이는 조직이 이 분산을 담당한 것이다. 이렇게 외부와 내부로 강약이 구분되면, 뼈 전체가 튼튼할 필요가 없어 무게도 줄이고 하중도 잘 버틸 수 있다.
쿨만은 이러한 메커니즘을 철제 트러스에 도입한다. 힘을 크게 받는 부위는 외부로 돌려 굵게 만들고, 그 사이를 잇는 내부는 가늘게 만들어 힘을 분산하는 역할을 맡게 했다. 여기에 감명을 받은 제자 쾨클랭(Maurice Koechlin)은 쿨만의 가르침을 인류사에 길이 남을 건축물에 적용하게 된다. 에펠의 회사에 입사한 쾨클랭의 첫 도전은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뉴욕 항구에 들어서게 될 자유의 여신상이었다. 높이 46m의 거대한 동상(銅像)을 내부까지 구리로 채울 수는 없다. 예를 들면, 자유의 여신상이 왼손에 든 미국독립선언서만 해도 길이 7.2m, 너비 4.1m, 두께 0.6m였다. 세제곱미터당 9t 정도인 구리의 비중을 생각하면 독립선언서 무게만 무려 159t이니, 자유의 여신상 전체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무거워질 것이다.
이런 이유로 청동 주조상은 대개 내부를 비워 주조한다. 하지만 자유의 여신상은 훨씬 과감한 방식이 필요했다. 불과 2.4㎜ 두께의 구리판을 망치로 다듬어가며 외곽을 만들어 전체 구리 무게를 31t으로 줄였다. 문제는 내부였다. 거대한 구조물이 강한 바닷바람에 견딜 수 있도록 튼튼한 내부 뼈대가 필요했다. 쾨클랭은 여기에 쿨만의 아이디어를 적용한다. 마치 인체와 같이, 얇은 구리로 만들어진 피부 내부에 철재로 만든 125t 무게의 강력한 골격이 결합했다. 구리 피부와 철제 골격의 합은 불과 156t으로, 구리로 가득 채울 경우의 독립선언서보다 가벼웠다. 상식을 뛰어넘는 혁신이었다. 이렇게 1886년 자유의 여신상이 성공하자, 확신에 찬 에펠은 쿨만과 쾨클랭의 아이디어를 자신의 야심작 에펠탑으로 확장하게 된다.
1889년 프랑스 혁명 100주년 기념으로 추진된 에펠탑은 한 변의 길이가 125m인 정사각형 위에 높이 324m로 세워진 거대한 건축이다. 여기에 쾨클랭의 설계로 사용된 철재의 전체 무게는 7700t. 이는 한 변의 길이가 10m인 정육면체를 채운 철(철의 비중은 세제곱미터당 7.8t)의 무게인 7800t보다 가볍다. 이는 거대한 에펠탑을 녹이면 이 정육면체에 모두 들어가고도 남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에펠탑이 들어갈 수 있는 커다란 원통을 생각하면, 그 공간이 차지하는 ‘공기’의 무게는 9540t으로 에펠탑보다 무겁다. 이처럼 에펠탑이 큰 규모에 비해 무게를 대폭 줄일 수 있었던 것은 인체의 뼈 구조를 참고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런 대형 구조물은 바람의 영향을 크게 받지만, 구리 피부를 가진 자유의 여신상과 달리 구멍이 숭숭 뚫린 에펠탑은 훨씬 안전했다.
하지만 예술의 도시 파리 도심에 솟아오른 거대한 구조물에 수많은 예술가가 들고일어났다. 마치 뼈가 그대로 노출된 듯한 에펠탑의 모습에 흉측한 건축물이라며 비난했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에펠탑과 같은 구조물을 ‘철로 만든 뼈대’라는 뜻으로 ‘철골(鐵骨)’이라 부르게 되었을 것이다. 빗발치는 비난에 에펠은 보란듯이 에펠탑의 4면에 라부아지에를 비롯한 프랑스를 대표하는 72명의 과학자를 금빛으로 새겼다. 시대를 앞서갔던 이 철골 구조물은 세월이 지나며 서서히 진가를 인정받았고, 이제는 파리에서 가장 예술적인 랜드마크가 되었다. 이처럼 인류 건축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깊은 통찰에서 시작되었다.
조선일보 민태기 에스앤에이치연구소장·공학박사
07.04 최초로 과학자라 칭해진 것은 여성?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과학철학
인류문명의 긴 역사를 볼 때 과학자라는 말은 상당한 신조어에 속한다. 물론 우리말의 ‘과학자’는 서양에서 건너온 개념을 번역해서 뒤늦게 소개한 것이지만, 영어로 ‘scientist’라 하는 말도 생겨난 지 2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 전에는 과학자들을 ‘자연철학자’ 또는 그냥 ‘철학자’라 부르기도 했고, 영국에서는 ‘men of science’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 과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란 말인데, 남자를 의미하는 ‘men’으로 모든 사람을 지칭했다. 우리 식으로 말해본다면 과학을 하는 선비라고 할까? 사실 그 당시 대부분 과학자들은 남성이었고, 말 까지 그랬으니 여성 과학자들의 소외감은 한층 더 했으리라 생각된다. 그 반면 ‘scientist’라는 단어는 남녀 구별을 두지 않으므로 그런 폐단이 없다.
과학자라는 말 생긴 지 200년 안돼
여성을 존중했던 철학자 휴월이
과학자 서머빌을 칭해 지은 말
서머빌, 성 차별을 멋지게 극복
그런데 성별을 가리지 않는 단어가 생기게 된 것이 단순한 우연은 아니었다. 과학자라는 그 말을 지어낸 사람은 케임브리지 대학의 지질학, 철학 교수를 역임하고 박학다식하기로 유명했던 휴월(William Whewell)이었다. 그가 처음으로 과학자(scientist)라는 단어를 제안했던 기록이 남아있는 문헌은 그 당시 저명했던 여성 과학자 메어리 서머빌(Mary Somerville)의 책에 대하여 쓴 서평이었다. 그 글을 보면 휴월은 처음에 서머빌을 훌륭한 ‘person of science’라고 어색하게 일컬었다. 그 여자를 ‘man’이라 부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서머빌은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여자 아이들은 정규적 교육을 시키지 않던 시대에 태어난 그는 뭔가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마다 놓치지 않았다. 라틴어와 수학을 독학으로 깨쳤고, 관심을 보여주는 친척 어른들이나, 남자 형제들을 가르치러 온 가정교사 등 여러 사람들에게 학업에 대한 도움을 청했다. 첫 남편을 일찍 잃고 결혼한지 3년만에 혼자가 된 그는 어린 아이 둘을 키우면서 고등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하였다. 다행히 남편이 남긴 유산 덕분에 큰 경제적 염려는 없었다. 이 시기에 독창적인 연구 결과도 발표하기 시작한 서머빌은 조금씩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고, 여기저기 저명한 과학자들과의 친분도 생겨났다.
그렇게 성 차별의 그늘에서 과학을 하기 시작한 서머빌은 1812년 나이 30이 갓 넘었을 때 재혼을 하게 된다. 두번째 남편은 왕립학회의 회원으로 선출되기까지 한 학구적인 의사였는데 아내의 지적 재능을 알아보고 학자로서 활동하도록 격려하였다. 이제 서머빌은 실험도 하기 시작했고 광학에 대한 논문을 왕립학회 학회지에 싣는 성과를 올렸다. 또 그는 그 당시 천문학과 수학의 최고 대가였던 라플라스의 천체물리학 서적을 불어에서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 맡았었는데, 단순한 번역을 넘어서 그 어려운 학문의 내용을 쉽게 풀어 설명하면서 더욱 풍부하게 보충하는 창의적인 일을 해 내었다. 그 성과로 인하여 널리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그렇게 연구 업적을 쌓은 서머빌은 대중 과학 서적도 쓰기 시작했고, 1834년에 처음 출간된 『물리과학 분야들의 상호 연관성』이라는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물리학, 천문학, 광학, 열역학, 음향학, 지질학, 화학 등 여러 분야에서 나온 새로운 연구 결과들을 알기 쉽고 체계적으로 설명해 주었던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쓰면서 휴월은 ‘과학자’라는 신조어를 언급했던 것이다. 서머빌의 마지막 저서는 물질의 미시적 구조에 관한 것이었고, 그가 거의 90세가 되었던 1869년에 출간되었다. 그 직전 1868년에 정치철학자 밀(John Stuart Mill)이 주동하여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자는 청원서를 영국 국회에 제출했는데, 서머빌의 이름은 그 청원자 명단에 제1번으로 당당히 올라 있었다.
그런데 서머빌 여사가 과학자라는 호칭을 불러일으킨 그 이야기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휴월이 그 말을 제안했던 문맥은 남녀평등이 아니라 과학의 통합이었다. 각각 과학 분야에 종사하는 학자를 칭하는 말들은 따로따로 있었으나, 모든 분야의 과학자를 총칭하는 말이 없었던 것이다. 서머빌의 책은 여러 과학분야를 섭렵하고 분야간의 긴밀한 연관성을 보여주었기에 휴월은 그 점을 칭찬하는 말을 하면서 ‘과학자’라는 일반적 단어를 제안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서평에서 여성 과학자에 대해 보여준 휴월의 시각은 진지하고 각별했다. 이런 훌륭한 책을 쓴 저자가 여성이라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하면서, 여성 학자가 많지는 않지만 그들의 사고는 남성의 사고보다 명료하다는 의견을 내세웠다. 여성들은 감정에 따라 행동하지만 사고는 그와 분리해서 논리적으로 하는 반면, 남성들은 감정에 따라 행동하면서 그것을 논리적으로 정당화 하려는 어리석은 짓을 한다는 것이다. 좀 궤변 같기도 하지만 200년 전의 인물에게 현대적 사고방식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이리라. 남녀간의 차이를 진지하게 생각해 준 휴월, 또 그가 무척 존경했던 서머빌. 그들이 교류하는 과정에서 과학자라는 개념이 탄생했던 것은 중요한 역사적인 사실이고, 세계적 문화 유산의 일부이다.
07.06 고교 중퇴 수포자, 수학의 노벨상 받다
프린스턴대 허준이 교수, 한국인 최초로 필즈상 쾌거
미국서 태어났지만 국내서 교육받고, 부모도 한국인

▲미 프린스턴대 연구실 칠판 앞에 선 허준이 교수. 그는 “수학자는 점점 사라져 가는 분필과 칠판을 마지막으로 수호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허 교수는 대학원에서부터 수학을 전공한 늦깎이 수학자지만 수학의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독창적인 연구로 5일 ‘수학의 노벨상’인 필즈상을 수상했다. /사진작가 서승재
허준이(許埈珥·39)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한국인 최초로 ‘수학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Fields Medal)을 수상했다.
국제수학연맹(IMU)은 5일 “필즈상 수상자로 허 교수와 필마리나 비아조우스카(38)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 교수, 위고 뒤미닐코팽(37) 프랑스 고등과학원 교수, 제임스 메이나드(35)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필즈상은 4년마다 수학적으로 가장 뛰어난 연구 업적을 쌓은 40세 미만의 수학자에게 수여하는 수학계 최고의 권위상이다. 노벨상에는 수학 분야가 없어 수학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기도 한다.
허 교수는 유학을 간 부모 밑에서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국내에서 초·중·고를 나와 석사까지 마쳤다. 대학원에서 뒤늦게 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지만 미국 대학의 박사 과정에서 공부하던 2012년, 수학계의 오랜 난제였던 리드 추측을 증명해 일약 수학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리드 추측은 1968년 영국 수학자 로널드 리드가 제시한 조합론 문제다. 허 교수는 경우의 수를 찾는 조합론 문제를 도형을 연구하는 대수기하학 방법으로 해결했다. 석사 학위 지도교수인 김영훈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는 “조합론과 대수기하학을 두 우주의 통로인 웜홀로 연결한 것과 같은 엄청난 성과”라고 평가했다.
07.06 수학자들 두손 든 ‘리드추측’ 45년만에 해결… 난제 11개나 풀어
전세계를 놀라게 한 허준이 교수의 업적
수학의 경계를 허물다
대수기하학부터 조합론까지
자유자재로 오가며 문제풀이 유학

▲필즈 메달 앞면에는 그리스 수학자 아르키메데스의 초상과 ‘자신 위로 올라서 세상을 꽉 붙잡아라’라는 뜻의 라틴어 문구가 있다.
허준이 교수에게 필즈상을 안긴 논문은 그가 2012년 박사 학위도 받기 전에 수학 최고 권위지인 미국수학학회지에 발표한 단독 논문이다. 허 교수는 이 논문에서 수학 조합론 분야의 45년 난제인 ‘리드 추측’을 증명했다. 다른 수학자와 달리 여러 수학 분야를 통합한 방법론 덕분이다.
리드 추측은 조합론 문제다. 조합론은 수학 교과서에 나오는 경우의 수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예를 들어 ‘쾨니히스베르크의 일곱 다리를 모두 건너는데 어떤 다리도 두 번 건너지 않게 할 수 있는가’ 같은 문제다. 주어진 조건을 만족하는 경우의 수를 따져 해답을 찾는다.
리드 추측은 1968년 영국의 수학자 로널드 리드가 제시했다. 허 교수는 이런 조합론 문제를 도형을 다루는 수학 분야인 대수기하학 방법으로 해결했다. 일종의 융합 연구를 한 셈이다.
◇상이한 수학 통합해 난제 해결
허 교수를 수학으로 이끈 사람은 히로나카 헤이스케 하버드대 명예교수다. 히로나카 교수는 1970년 필즈상을 받았는데, 대수기하학에서 그래프가 매끄럽지 않은 특이점을 해소한 것이 업적이었다. 허 교수는 “히로나카 교수에게 배운 대수기하학의 특이점을 조합론인 리드 추측에 적용하니 문제가 풀렸다”며 “당시는 얼마나 큰 문제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답부터 안 셈”이라고 말했다.
다른 수학자보다 입문이 늦었지만 조합론과 대수기하학처럼 서로 다른 수학 영역을 넘나드는 그의 연구는 수학자들에게 경탄의 대상이 됐다. 그는 거침없이 수학 여러 분야를 통합해 무려 11개의 수학 난제를 해결했다.

▲/그래픽=박상훈
허 교수와 같이 연구한 에릭 카츠 미 오하이오 주립대 교수는 “대수기하학의 아이디어로 수학에서 완전히 다른 분야인 조합론에 혁명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프린스턴 고등연구소(IAS)의 로버트 데이크흐라프 소장은 “수학을 여러 나라로 갈라진 대륙으로 보면 허준이 교수는 아무도 그에게 국경을 말해주지 않아 어떤 구별에도 구애받지 않은 것과 같다”고 말했다.
허준이 교수가 리드 추측을 풀자 강연 요청이 쇄도했다고 한다. 특히 미국 미시간대는 허 교수가 박사과정 유학을 갈 때 원서를 냈지만 거절한 곳 중 하나였다. 2010년 12월 3일 열린 강연에는 그를 탈락시킨 교수를 포함해 수많은 수학자가 운집했다. 당시 강의를 들은 한 연구자는 “30년 뒤 내 손자들에게 허 교수가 유명해지기 전에 그의 강연을 들었다고 자랑할 것”이라고 했다.
◇인터넷, 통신 분야 응용 가능성도
허 교수의 연구는 응용 가능성도 크다. 그는 “인터넷 사용자 하나를 꼭지점으로 보고 이들이 연결되는 형태를 수학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형주 아주대 석좌교수는 “현대 통신을 포함하는 광대하고 복잡한 네트워크에 일관성이 있음을 밝힌 업적이어서 응용 측면에서도 깊이 있는 고찰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허 교수는 이런 성과로 ‘블라바트니크 젊은 과학자상’(2017) ‘브레이크스루상 뉴호라이즌상’(2019) 등 세계적 권위의 상을 휩쓸었다. 작년엔 국내 최고 권위상인 호암 과학상도 받았다.
지난해 프린스턴대에 부임하기 전에 6년간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장기 연구원과 방문교수로 있었다. 이곳은 아인슈타인 등 세계 최고 지성이 거쳐간 곳이다. 고등연구소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하다가 장기 연구원 제의를 받은 것은 허 교수를 포함해 단 세 명이었다. 이들 셋 모두 필즈상을 받았다.
◇”한국 수학의 경쟁력 방증”
허 교수는 “우연히 조합론과 대수학, 기하학 중간 어디선가 연구를 진행한 덕분에 새로운 접근을 할 수 있었다”며 “이번 수상이 세상은 다양한 방식의 통합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국내 수학계는 허 교수의 필즈상 수상으로 한국 수학의 경쟁력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고 반기고 있다. 박형주 아주대 수학과 석좌교수는 “지금까지 아시아에서 교육을 받은 필즈상 수상자가 6명 나왔지만 1990년 이후 맥이 끊겼다”며 “허 교수는 한국에서 대부분 교육을 받아 한국 수학의 경쟁력을 방증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세계수학연맹은 올 초 한국을 최고 등급인 5등급 국가로 평가했다. 수학연맹의 5등급 국가는 단 12국뿐이다. 근대 수학을 낳은 서유럽에서도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만 5등급을 받았다.
07.06 허준이 교수 필즈상 수상, 수포자 늘리는 암기 교육 정비 계기로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KIAS) 수학부 석학 교수(오른쪽)이 5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 알토대학교에서 국제수학연맹(IMU)이 수여하는 필즈상을 수상하고 있다. 한국 수학자가 '수학 노벨상'인 필즈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전까지 한국계나 한국인이 이 상을 받은 적은 없었다. /연합뉴스
한국계 수학자인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5일 ‘수학 노벨상’인 필즈상을 받았다. 허 교수는 미국 국적이지만 한국 수학자로는 최초 수상이다. 필즈상은 4년마다 뛰어난 업적을 이룬 40세 미만 수학자에게 주어지는 수학 분야 최고의 상이다. 한 학문만 독자적으로 발전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우리 과학자들의 헌신과 노력이 하나의 결실을 맺은 쾌거라고 할 수 있다.
허 교수가 국내에서 석사과정까지 마친 학자라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다.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지만 두 살 때 한국으로 돌아와 초등학교부터 대학 학부와 석사과정까지 마치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허 교수는 박사과정 이후 ‘리드 추측’과 ‘로타 추측’ 등 오랜 수학 난제들을 하나씩 증명하면서 수학계에서 명성을 얻었다.
이미 한국 수학의 국제적 위상은 높은 수준이다. 지난 2월 국제수학연맹(IMU)은 한국의 국가 등급을 4등급에서 최고 등급인 5등급으로 상향했다. 5등급에 속하는 국가는 한국 등 12개국밖에 없다. 이 등급은 세계수학자대회의 한국 수학자 초청 실적, SCI급 수학 논문 실적 등을 종합해 매긴 것이다. 허 교수의 수상도 우리 수학계의 이런 학문적 기반 위에서 가능했을 것이다.
이번 쾌거와 별도로, 교육 현장에서 ‘수포자(수학 포기자)’가 넘쳐나고 갈수록 증가하는 현상은 시급히 해결해야할 숙제로 남아 있다. 2020년 학업성취도평가에서 중3 수학 과목에서 보통 학력 이상 학생은 절반(55%)에 불과했다. 교육과정을 제대로 흡수한 학생이 절반이라는 뜻이다. 국제 비교 연구에서 우리 중학교 2학년의 수학 흥미도는 세계 최하위(39위)였다. 수학을 지금처럼 가르치면 안된다는 것을 이처럼 잘 보여주는 사례도 없다. 수학을 대입 위주로, 암기식 반복 학습으로 가르쳐서 생긴 결과일 것이다. 수학 잘하는 학생들도 의대를 택하는 것이 요즘 분위기다.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과학 분야의 기초인 수학 인재를 양성하기 어렵고 그동안 쌓은 위상도 허물어질 것이다. 허 교수 수상을 계기로, 학생들이 수학에 흥미를 느끼게 하고 뛰어난 학생들은 체계적인 지도를 받아 학문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7.06 모든 코로나 막아낼 범용 백신, 원숭이 실험서 성공
인간과 동물 코로나 바이러스 8종으로 만들어
▲인간과 동물에 감염되는 코로나 바이러스 8종의 스파이크 단백질 60개를 나노 입자에 결합한 모자이크8 백신. 원숭이 실험에서 이번 코로나 대유행을 부른 바이러스는 물론, 동물들에만 감염되는 바이러스까지 차단하는 효과를 보였다. 앞으로 새로운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간에 감염돼도 이 백신이 막아낼 수 있다는 의미다./Caltech
코로나 변이는 물론 앞으로 인간에게 감염될지 모르는 동물의 코로나 바이러스들까지 모두 막아주는 범용 백신이 개발됐다. 영장류 실험에서 사람과 동물에 감염되는 다양한 코로나 바이러스들을 예방하는 효과를 보여 새로운 변이가 나올 때마다 백신을 개량할 필요가 없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칼텍)의 파멜라 비어크만 교수 연구진은 6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원숭이 실험에서 8종의 코로나 바이러스로 만든 범용 백신이 사람과 동물에 감염되는 다양한 코로나 바이러스를 차단하는 효과를 보였다”고 밝혔다.
◇오미크론 등 모든 변이 코로나 차단
모자이크8이라 명명된 이번 백신은 이번 코로나 대유행을 부른 바이러스(SARS-CoV-2)와 동물에 감염되는 다른 코로나 바이러스 7종의 돌기(스파이크) 단백질로 만들었다. 둥근 나노 입자에 코로나 바이러스 8종의 단백질 60개가 결합된 형태다.
모자이크8 백신은 원숭이 실험에서 오미크론 변이를 비롯해 모든 코로나 바이러스 변이와 아직 사람에게 감염되지 않은 동물의 코로나 바이러스들까지 모두 차단했다. 이번 코로나는 박쥐의 바이러스가 중간 숙주 동물을 거쳐 사람에게 넘어오면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모자이크8 백신은 새로운 코로나 발생을 미연에 차단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이번 연구는 영국 웰컴 트러스트가 미국에 세운 비영리 기관인 웰컴 립(Wellcome Leap)이 지원했다. 칼텍 연구진은 국제기구인 전염병대비혁신연합(CEPI)의 지원을 받아 인간 대상 임상 1상 시험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바이러스 벡터, mRNA, 바이러스 자체, 단백질 방식의 코로나 백신. 얀센 백신은 영국 아스트라제네카 백신과 같이 코로나 바이러스의 스파이크를 만들 유전자를 인체에 무해한 다른 바이러스(벡터)에 넣어 인체에 전달한다. 모더나와 화이자 백신은 바이러스 단백질의 설계도 격인 유전물질 mRNA를 직접 몸속에 넣는다. 중국 백신은 독성을 없앤 코로나 바이러스 자체로 만들었으며, 노바백스 백신은 스파이크 단백질을 인체에 투여해 항체 면역반응을 유도한다./웰컴 트러스트
◇돌연변이 많은 돌기 단백질 이용
코로나 백신은 바이러스의 표면에 돋아 있는 스파이크 단백질이나 해당 유전자를 인체에 주입해 면역반응을 유도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스파이크를 호흡기 세포 표면의 수용체에 결합시켜 침투한다. 백신 주사를 맞으면 인체에서 스파이크에 달라붙는 항체가 나와 바이러스가 세포에 침투하지 못하게 차단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돌연변이를 통해 항체 공격을 피한다. 백신이 오미크론 변이에 효과가 떨어지는 것은 바이러스에 50개 이상의 돌연변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특히 바이러스가 인체 세포에 결합하는 스파이크에 32개의 돌연변이가 발생해 백신이나 항체 치료제 효과가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전 델타 변이는 스파이크 돌연변이가 그 절반인 16개였다.
칼텍 연구진은 스파이크에서 인체 수용체 단백질에 달라붙는 ‘수용체 결합 도메인(RDB)’들을 나노 입자에 붙여 범용 백신인 모자이크8을 만들었다. 원숭이 실험 결과는 모자이크8이 나중에 동물에서 새로운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간에 침투해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음을 입증했다.
이를테면 모자이크8에는 베타 변이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은 들어갔지만 델타 변이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백신은 델타 변이까지 막아냈다. 과거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를 유발한 코로나 바이러스(SARS-CoV)도 막아냈다. 이 역시 백신에 들어가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백신 제조에 참조하지 않은 다른 동물 코로나 바이러스도 차단했다. 모자이크8 백신이 어떤 코로나 바이러스 종류에도 예방 효과를 낼 수 있음을 입증한 것이다.
◇이르면 3년 내 백신 생산 가능
비어크만 교수는 “웰컴 립의 지원 덕분에 백신 개발 기간이 2년에서 6개월로 단축됐다”며 “CEPI의 지원을 받아 백신 후보 물질의 임상시험을 진행할 수 있게 돼 우리 연구진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CEPI는 칼텍 연구진이 개발한 모자이크8 백신의 임상 1상 시험에 3000만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최종 백신 생산은 3~5년 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리처드 해쳇 CEPI 대표는 “코로나 대유행 초기부터 다양한 백신 개발이 필요하다고 얘기했다”며 “비어크만 교수 연구진의 성과는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를 극복할 엄청난 잠재력을 보였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08.24 코로나 기원 연구 가로막는 중국의 ‘과학 공정’, 더 큰 위기 부른다
지난 3년간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는 중국 우한의 집단감염에서 시작됐다. 박쥐의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야생동물이 사람과 접촉하면서 코로나 대유행을 유발했다는 것이 과학계의 중론이었다. 코로나를 처음 세상에 알린 중국 과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최근 중국 과학자들이 태도를 바꿨다.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는 지난 18일 “중국 과학자들이 코로나가 중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시작했다고 주장하는 논문을 쏟아내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이 고대사를 자기들 입맛에 맞게 바꾸는 동북 공정을 추진한 것처럼 코로나 기원에 대해서도 자국 이익을 관철하는 ‘과학 공정’을 시작한 것이다.

◇중국 박쥐에는 코로나 바이러스 없다?
중국 과학계의 태도 변화는 지난해 9월 논문 사전 출판 사이트인 리서치 스퀘어에 올라온 논문에서 잘 나타난다. 베이징 셰허 의대의 우지치앙 교수 연구진은 “남쪽 아열대 지역에서 추운 동북부까지 박쥐 1만7000여 마리를 잡아 조사했지만 이번 코로나를 유발한 바이러스와 유사한 종류가 단 한 건도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는 코로나가 다른 곳에서 시작했음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밝혔다.
홍콩대의 앨리스 휴즈 교수는 앞서 지난해 6월 생명과학 분야 최고 학술지인 ‘셀’에 정반대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2019년 5월부터 2020년 11월까지 중국 윈난성의 시솽반나 열대식물원에서 박쥐 342마리를 잡아 조사했다. 휴즈 교수는 뉴욕 센트럴파크 3배 면적인 이 식물원에서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와 비슷한 바이러스 네 가지를 발견했다. 중국 연구진도 휴즈 교수가 연구한 지역 인근에서 박쥐를 잡아 조사했지만 전혀 다른 결과를 얻은 것이다.
과학계는 최근 중국 과학자들이 코로나가 중국 아닌 곳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 결과를 잇따라 발표하는 것은 정부의 압력이 작용한 탓이라고 추정한다. 중국 과학자들도 처음엔 코로나가 자국에서 시작했음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우한시 보건위원회는 2019년 12월 31일 화난 수산 시장과 연관된 폐렴 환자 27명이 발생했다고 보고했다. 3주 뒤 중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모든 증거는 화난 수산 시장에서 불법 판매한 야생동물이 원인이라고 가리킨다”고 밝혔다. 2020년 1월 27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화난 수산 시장에서 채집한 환경 시료 33점 모두 코로나 양성 반응을 보였으며 2개를 빼면 모두 야생동물 매장에서 나왔다고 보도했다.
◇”코로나 진앙은 우한의 야생동물 시장”
중국 과학자들의 초기 발표는 지난달 26일 사이언스에 실린 두 논문과 정확히 일치한다. 미국 애리조나대의 마이클 워러비 교수와 스크립스 연구소의 크리스천 앤더슨 박사가 이끄는 국제 공동 연구진은 코로나 초기 우한에서 나온 확진자들이 화난 시장 주변에서 도심으로 퍼져간 것을 확인했다.
이와 함께 화난 시장 야생동물 판매 구역에 있는 우리와 운반 카트 등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양성 반응을 보인 시료도 확보했다. 연구진은 이를 근거로 박쥐의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너구리가 2019년 11~12월 화난 수산 시장에서 식용이나 모피용으로 팔리는 과정에서 사람에게 코로나 바이러스가 옮았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지난 2년 동안 중국 과학자들은 태도를 바꿨다. 해외 냉동식품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와 항체가 검출됐다는 점을 들어 중국에 수입된 냉동식품이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또 화난 수산 시장의 환경 시료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나왔지만 사람 유전자와 같이 검출됐다는 점에서 야생동물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 코로나가 퍼졌다고 주장했다. 외국에서 온 감염자가 원인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2019년에 화난 수산 시장에서 야생동물이 산 채로 팔린 기록도 없다고 했다.
국제 과학계는 정면 반박했다. 호주 시드니대의 에드워드 홈스 교수가 2014년 찍은 사진과 2019년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에 올라온 사진에 화난 수산 시장 남서쪽에서 너구리와 말레이 호저, 붉은 여우 등 야생동물이 판매되는 모습이 포착됐다. 영국 옥스퍼드대의 크리스 뉴먼 교수는 지난해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코로나 발생 2년 전 진드기 질병 연구차 우한을 현지 조사해 너구리와 사향고양이 등 야생동물 5만 마리가 화난 수산 시장 등에서 팔린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화난 시장에서 나온 유전자도 다른 동물 유전자 검출 사실은 빼고 사람 것만 발표했다는 지적이 논문 심사자에게서 나왔다. 냉동식품설은 검사 실수나 해석 오류 가능성으로 일축됐다.
◇과학 연구 막으면 더 큰 위기 닥칠 수도
중국 정부는 자국 과학자의 입단속에도 나섰다. 과기부는 관련 연구자가 언론과 접촉할 때 사전 허가를 받도록 했다. 옥스퍼드대의 뉴먼 교수와 같이 연구했던 중국 연구자는 소속 기관에서 연구 중단 지시까지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홍콩대의 휴즈 교수는 9년간 중국의 박쥐를 연구했지만 정부의 연구 허가를 받기가 어려워지자 지난해 12월 시솽반나 식물원을 떠났다.
과학자들은 앞으로 새로운 코로나 대유행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중국의 과학 공정은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에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중국이 제2, 제3의 코로나 진앙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의 비영리 연구 기관인 에코헬스 얼라이언스의 피터 다스작 박사는 지난 9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중국 남부와 미얀마 일부지역, 인도네시아 자바섬 등 아시아 동남부에서 연간 6만6000여 명이 이번 코로나와 유사한 바이러스에 감염된다”고 발표했다. 중간 숙주 동물을 통한 감염을 포함하면 코로나 바이러스에 노출되는 사람은 더 늘 수 있다.
다스작 박사는 네이처에 “박쥐 바이러스 감염자는 대부분 증상 없이 지나가지만 이런 감염이 지속되면 결국 새로운 코로나 대유행을 유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이 눈앞의 자국 이익만 따져 자유로운 과학 연구를 막으면 더 큰 재앙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10.04 마스크의 과거, 현재, 미래
팬데믹 시기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 마스크는 누가 발명했을까? 중세와 근대 유럽에 페스트가 창궐할 때, 의사들이 새부리 마스크를 쓰고 환자를 치료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최근에 역사학자들이 당시 사료와 그림을 면밀하게 분석한 결과, 당시 유행한 페스트 방역에 새부리 마스크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오히려 이 새부리 마스크는 페스트의 위협이 거의 사라진 18~19세기에 과거나 다른 지역의 역병을 어둡게 묘사하는 데 광범위하게 등장했다.
1836년, 영국인 의사 줄리우스 제프리스(Julius Jeffreys)는 헝겊 사이에 금속 격자를 넣어 코와 입을 가리는 ‘레스피레이터(respirator)’를 발명했다. 레스피레이터는 그 생김새가 마스크와 같았지만 용도가 달랐다. 지금의 마스크는 병균의 이동을 차단하는 게 목적이지만, 레스피레이터는 헝겊으로 덮인 입과 코를 따듯하게 유지해서 폐렴이나 폐결핵을 치료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비말의 차단이 아니라, 환자의 치료를 위한 물건이었다.
레스피레이터는 동양에서 ‘호흡기’라고 불렸다. 19세기 말~20세기 초에 홍콩, 만주, 일본에서 폐페스트 같은 역병이 발생하자 중국과 일본의 의사들은 금속 격자 대신에 젖은 스펀지나 거즈를 여러 겹 댄 호흡기로 얼굴을 가린 채 환자를 돌보기 시작했다. 중국의 젊은 의사 우롄더(吳連德)가 이를 발명했다고 알려졌지만, 그가 페스트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의사들은 이미 마스크를 쓴 채로 일하고 있었다. 미국인 의사 헨리 스트롱(Henry Strong)은 동양에서 사용되던 이 거즈 호흡기를 ‘마스크’라고 명명했고, 이후 마스크는 스페인 독감 기간에 전 세계로 전파되었다.
마스크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불과 2년 전에 ‘마스크 대란’을 겪었다는 게 낯설다.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매달 1200억장의 마스크가 버려진다. 3개월 치 마스크 쓰레기를 모으면 5500t이라는 분석도 있고, 땅에 묻힌 마스크의 플라스틱 필터가 썩는 데 450년이 걸린다는 보고도 나왔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서서히 끝나가는 지금, 마스크를 잘 쓰는 것보다 잘 버리는 데 관심이 쏠리고 있다.
조선일보 홍성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10월 17일(월) 로봇 진화의 두 얼굴
문희수 논설위원
테슬라의 인공지능(AI) 로봇(옵티머스)이 모습을 드러내 과학기술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고 한다.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가 심혈을 기울여 개발해 지난달 30일 공개한 이 로봇은 뛰지도 공중돌기도 못 하지만 기존 로봇과는 달리 스스로 생각하는 두뇌를 가져 주목받는다. 더구나 테슬라는 부품 공용화로 제작비를 2만 달러(2800만 원대) 이하로 낮춰 3∼5년 내 대량생산까지 예고했다. 머스크는 “로봇으로 무한생산이 가능해지면 1인당 생산성의 한계가 없어져 풍요의 시대가 열리고 문명의 근본적인 변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미래를 낙관했다.
그러나 ‘범용 AI’의 무한한 진화 가능성을 들어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정 기능만 수행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학습해 인간 수준 이상의 인공지성으로 도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테슬라는 자율주행 기술도 10년 이상 축적하고 있다. 공상과학영화처럼 로봇이 인류에 대항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으스스한 우려가 제기된다. 최근 AI 분야 과학자 36%가 이번 21세기 안에 AI가 핵전쟁 같은 대재앙을 일으킬 수 있다는 데 동의했다는 보도도 있다. AI가 사람의 언어를 이해해 사람처럼 말하고 듣게 하는 기술인 자연어 처리 전문가들의 경고여서 더욱 주목된다. 앞서 지난 2015년 머스크와 영국의 고 스티븐 호킹 박사 등 과학계 인사 1000여 명이 킬러 로봇 개발 금지 성명을 냈던 일을 상기시킨다. 이미 실전에 투입된 전투용 드론에 첨단 AI가 가세하는 것은 문제도 아닐 것이다. 지금 세계 어느 곳에서는 은밀하게 전투 로봇을 개발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로봇의 진화는 물론 인류의 큰 진전이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이다. 모든 과학자·기업·국가를 ‘정상’으로 전제해 놓고 그들의 양식과 평화적 기술 통제에만 의존할 수는 없는 과제다. 원자력도 각종 국제 통제장치를 뒀지만, 일부 불량국가들이 핵무기 위협을 일삼는다. 로봇 개발이 군사·범죄용으로 빗나가면 파탄을 피할 수 없다. 유럽은 2018년부터 소비자 피해 보상 등 AI 규제 규정을 만들고, 미국에선 얼마 전 안전·차별 방지 등 5가지 원칙을 담은 AI 윤리 지침을 발표했다. 그렇지만 이런 정도로는 어림없다. 인류가 AI 로봇 안전장치 마련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문화일보
10.20 네안데르탈인 아버지와 딸, 5만년 만에 모습 드러내다
시베리아에서 13명 화석 집단 발굴
DNA 통해 부녀, 조손 관계 확인
유전적 다양성은 모계가 더 커
외지 여성이 남성 찾아오는 가부장제 추정

▲네안데르탈인 아버지와 딸의 상상도. 시베리아의 한 동굴에서 5만년 전 네안데르탈인 부녀의 화석이 발굴됐다./Tom Bjorklund
인류의 사촌, 또는 숨겨진 조상으로 불리는 네안데르탈인이 처음으로 가족 단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의 직계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보다 먼저 유라시아에 정착했다가 멸종한 인류이다. 지금까지 모두 18명의 화석이 발굴됐지만, 가족이 한꺼번에 발굴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의 로리츠 스코프, 스반테 페보 박사 연구진은 20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알타이산맥 남서쪽에 인접한 러시아의 두 동굴에서 5만1000년에서 5만9000년 전 사이 혈연관계를 맺은 것으로 보이는 네안데르탈인 13명의 화석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페보 박사는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이다.

▲시베리아의 차기르스카야, 오클라드니코프 동굴(지도의 붉은 점)에서 네안데르탈인 13명의 화석이 무더기로 발굴됐다(A). 아래 왼쪽은 입구가 북쪽으로 향한 차기르스카야 동굴이며(B), 오른쪽은 남쪽으로 열린 오클라드니코프 동굴이다(C)./Nature
◇부녀, 할머니와 손자로 이뤄진 가족 확인
네안데르탈인은 40만년 전 아프리카를 떠나 유라시아에 정착했다. 약 4만년 전 멸종하기까지 7만년 전 아프리카를 떠나온 호모 사피엔스와 공존했다. 이번 연구진은 시베리아 차기르스카야 동굴에서 네안데르탈인 11명의 화석을 발굴했으며, 인근 오클라드니코프 동굴에서도 2명의 화석을 확인했다. 두 동굴에서 나온 석기 9만여 점이 재료나 형태가 비슷하다는 점에서 모두 같은 집단으로 추정됐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페보 박사는 2010년 네안데르탈인 DNA를 처음으로 해독해 오늘날 아시아인과 유럽인은 누구나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1~2%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네안데르탈인이 호모 사피엔스와 공존하는 동안 피를 나눴다는 것이다.
페보 박사의 연구 이후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의 숨겨진 조상으로 재조명 받았다.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와 무관한 무지막지한 미개인의 모습에서 정교한 도구를 만들고 동굴 벽화도 먼저 그린 선구자로 밝혀졌다. 막스플랑크 연구소 과학자들은 이번에 네안데르탈인 가족을 통해 사회 형태까지 확인했다.
차기르스카야 동굴에서는 성인 8명과 어린이 5명의 화석이 나왔다. 유전자 분석 결과 이 중 남녀 두 명은 유전자 절반이 같은 부녀(父女) 사이로 밝혀졌다. 또 다른 두 명은 유전자가 25% 일치해 할머니와 손자 또는 이모와 조카로 추정됐다. 다른 사람들도 몇 세대만 이어지는 유전자 돌연변이를 공유하고 있어 같은 시기에 살았던 공동체의 일원들로 보인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시베리아 차기르스카야 동굴에서 무더기로 나온 네안데르탈인 치아 화석들. 11명에서 나온 것으로 부녀, 조손 등 가족으로 추정됐다./Nature
◇네안데르탈인은 남성 중심 가부장제 가족
연구진은 네안데르탈인 가족이 가부장제를 이뤘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남성만 있는 Y염색체 유전자보다 여성에게만 유전되는 미토콘트리아 유전자가 더 다양했기 때문이다. 미토콘트리아는 세포핵 밖에 있는 에너지 생성 소기관으로, 난자를 통해서만 유전된다.
결국 네안데르탈인은 오늘날 원시부족이나 우리 전통사회처럼 다른 지역에 살던 여자가 남자가 사는 집으로 오면서 가족을 이뤘다는 것이다. 공동 교신저자인 벤저민 피터 박사는 “이번 연구로 네안데르탈인은 오늘날 인간과 더 가까웠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네안데르탈인 가족의 유전적 다양성이 그리 크지 않다는 점에서 10~20명씩 공동체를 이뤘다고 추정했다. 다른 원시인류나 오늘날 인류 공동체보다 유전적 다양성이 더 적었다. 연구진은 멸종위기에 처한 산악고릴라와 비슷한 정도라고 밝혔다. 산악고릴라는 현재 1000여 마리만 남았다.
과학계는 이번 연구가 베일에 싸여 있던 네안데르탈인이 어떻게 집단을 이뤘는지 처음으로 밝힌 성과라고 평가했다.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인의 라라 캐시디 교수는 이날 네이처에 실린 논평 논문에서 “이번 연구로 볼 때 네안데르탈인 공동체는 20명 정도로 이뤄졌고 여성의 60%가 외부에서 왔다는 가설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네안데르탈인 가족을 처음 밝혔을 뿐 아니라 전체 사회가 어떻게 생성됐는지도 알려줬다. 캐시디 교수는 “네안데르탈인 아버지는 성장한 딸이 다른 곳에서 짝을 맺은 사위나 나중에 태어난 손자를 가족으로 인식했을 수 있다”며 “인구가 계속 늘었다면 혈연관계를 통해 더 광범위한 사회 네트워크가 형성됐을 것”이라고 밝혔다.

▲독일 메트만에 있는 네안데르탈인 박물관의 가족 복원상. 이번에 실제 네안데르탈인 가족 화석이 처음으로 발굴됐다./네안데르탈인 박물관
물론 이번 연구는 한계도 분명하다. 조사 대상이 워낙 작아 네안데르탈인 집단의 사회생활을 온전히 반영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연구진은 앞으로 다른 공동체에 속한 네안데르탈인 화석까지 분석에 포함시켜 우리와 가장 가까운 사촌의 사회 조직을 좀 더 자세히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근처 데니소바인보다 유럽 동족과 더 가까워
공교롭게도 네안데르탈인 가족 화석이 나온 두 동굴은 또 다른 화석인류가 나온 데니소바 동굴과 100㎞ 이내에 있다. 이 동굴에서 2008년 손가락뼈와 어금니가 나와 데니소바인으로 명명됐다. 데니소바인은 35만년 전 네안데르탈인에게서 갈라져 아시아에 퍼졌던 인류로 추정된다.
노벨 의학상 수상자인 페보 박사는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도 피를 나눴음을 밝혀냈다. 그는 지난 2018년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데니소바 동굴에서 발굴한 뼈 화석의 DNA를 분석한 결과 네안데르탈인 어머니와 데니소바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13세 소녀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반면 이번 네안데르탈인 가족은 데니소바인의 유전자는 나오지 않았다. 그보다 유럽의 네안데르탈인에 가까웠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참고자료
Nature,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2-05283-y
조선비즈 =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11.14 우리가 먹는 속이 꽉찬 김장 배추, 우장춘의 ‘김치 혁명’ 덕분이었다
과거 김치는 소중한 식량이었다. 연구에 따르면 1970년대 우리나라는 1인당 하루 평균 무려 300~400g의 김치를 먹었다. 같은 시기 1인당 양곡 소비량이 하루에 450~520g(그중 쌀이 350g)이었으니, 김치는 쌀 못지않은 주식이었다. 2020년 쌀 소비량은 122g, 김치 소비량은 57g으로 줄었지만, 여전히 김치는 쌀, 우유에 이어 셋째로 많이 먹는 음식이다. 육류 소비가 늘어나며 먹거리가 다양화되기 전까지 김치가 어려운 시절을 버티게 해준 것이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우장춘의 김치 혁명 덕분이다.

▲/그래픽=김현국
1898년 9월, 서울의 일본 공사가 본국에 다급히 연락을 보낸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으로 일본에 망명했던 우범선이 한국으로 돌아와 몰래 잠입했다는 것. 당시 한국은 독립협회의 의회 요구와 만민공동회로 요동치고 있었다. 일본은 이들과 우범선이 연락하며 뭔가를 꾸미는 것을 포착한다. 하지만 미묘한 정세에 우범선이 다시 주목받으면 일본이 난처해질 수 있어 본국의 지휘를 요청한 것이고, 우범선을 설득해 일본으로 보낸다. 이때 일본에는 태어난 지 5개월 된 아들이 있었다. 그가 바로 우장춘이다. 우범선은 우장춘의 호적을 한국에 올려 놓는다.
우장춘이 다섯 살이던 1903년, 우범선은 암살된다. 한때 우장춘은 보육시설에 맡겨지며 어려운 시절을 보낸다. 그 사정을 알게 된 조선총독부의 주선으로 도쿄제국대학 부속 농학실과(일종의 전문학교)에 겨우 진학한다. 이때까지 우장춘은 그렇게 뛰어나지 않은 평범한 학생이었다. 우장춘이 유명해진 것은 1935년의 논문이다. 전혀 다른 종(種)인 배추와 양배추를 교배하면 제3의 종 유채(油菜)가 만들어짐을 보이며 다윈의 이론에 수정을 가하게 된다. 전문학교 출신인 우장춘은 이 논문으로 도쿄제국대학의 박사 학위를 받으며 단숨에 국제적인 명성을 얻는다. 그리고 한국에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우범선의 아들이라는 수식어도 따라붙었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하자, 교토에서 대형 종자 회사의 연구농장장으로 일하던 우장춘은 사표를 내고 칩거했다. 한국행을 결심하고 있었다. 나라는 해방되었지만, 종자를 일본에 의존했던 한국 농업은 무너지기 일보직전 상황이 됐다. 한국은 우장춘이 절실했지만, 데려오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가족들의 반대도 심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남긴 호적으로 본적이 ‘서울’임을 증명하며 재일 조선인 수용소로 들어가 한국행을 준비했다. 남은 가족들의 생계에 보태라고 일본 고위 공무원 5년 치 연봉에 해당하는 100만엔을 한국 정부에서 보냈지만 이 돈을 한국에 가져갈 종자를 사고, 서적과 실험기구를 사는 데 다 써버렸다. 주위의 걱정에 “가족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버텨나갈 것입니다. 이 나라에 뼈를 묻을 것을 여러분에게 약속합니다”라고 했다. 빈말이 아니었다. 1950년 3월의 일이다.
3개월 뒤 한국전쟁이 일어났지만, 그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미친 듯이 종자 개발에 집중했다. 식량 해결을 위해서는 채소, 특히 김치의 주재료인 배추와 무 종자 확보가 우선이었다. 1950년 겨울, 딸의 결혼식으로 우장춘이 일본으로 향했다. 사람들은 그가 전쟁 중인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다시 돌아와서 연구에 매진했다. 종자밭 확보를 위해 1951년 제주를 방문했다. 제주가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되자, 대신 귤 재배를 추진했다. 대체지로 선택된 진도에 1952년부터 배추와 무 종자밭을 가꾸었다. 인민군이 물러간 강원도에는 감자를 키웠다. 그에게 전쟁은 핑곗거리조차 안 되었다.
1954년 드디어 무와 배추 종자가 생산되기 시작한다. 우장춘은 조선의 전통 배추, 중국에서 전래한 호배추, 일본에서 수입한 배추들이 모두 김치에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의 육종 기술로 한국의 토양과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배추 품종을 만들어 낸 것이다. 우리가 먹는 속이 꽉찬 김장 배추는 그가 수많은 교배와 연구를 거쳐 만들어냈다. 고추 종자까지 개발했다. 하지만 세간의 불신은 상당했다. 이때 들고나온 것이 ‘씨 없는 수박 시식회’이다. 흔히 우장춘은 씨 없는 수박으로 알려졌지만, 이는 교토대학 기하라 히토시 교수의 업적이다. 단지 우장춘은 육종학의 위력을 시범으로 보인 것이다. 이런 노력 끝에 그의 종자들이 퍼지며 한국은 마침내 ‘씨앗 독립’에 성공한다.
우장춘이 교토에 남겨진 가족들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1958년 4월. 이때 결혼을 준비하던 넷째 딸이 신랑감을 우장춘에게 소개한다. 그의 이름은 이나모리 가즈오(稲盛和夫).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그는 12월 결혼했고, 이듬해 4월 교세라(Kyocera, 교토 세라믹)를 창업했다. 교세라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운 이나모리는 교세라 홈페이지에 우장춘과의 인연을 남겼다. 무일푼이던 시절 예비 장인을 만나 격려받고 힘을 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세라 홈페이지에 장인 우장춘을 ‘김치의 은인’이라 기록했다. 지난 8월 사망한 이나모리는 수원에 묻힌 우장춘의 묘를 생전에 여러 차례 방문했다.
1959년 우장춘은 한국에서 사망했다. 사망 사흘 전 훈장이 수여되었다. 병상의 우 박사는 “조국은 나를 인정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 우범선의 묘는 일본에 있지만, 그의 묘지는 수원으로 정해졌다. 약속대로 한국에 뼈를 묻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한국에 왔을 때 전쟁이 벌어졌지만 후회하지 않았다. 왜 이토록 한국의 식량 문제 해결에 몰두했는지는 알 수 없다. 어떠한 정치적 이념이나 수사보다 과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길이라 믿었을 것이다.
조선일보 민태기 에스앤에이치연구소장·공학박사
12.06 다윈이 주장한 ‘식물의 뇌’… 허무맹랑한 얘기 아니었네
움직이는 식물 미모사, 외부 충격에 칼슘 신호로 0.1초면 잎 닫아
포도 일종 ‘보킬라’는 주변 식물 완벽 모방해 “눈 있다” 주장도
열등한 존재로 여기지만 35억년 전부터 살아온 ‘진화의 끝판왕’
1973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식물학자 라이얼 왓슨은 “식물이 감정을 갖고 있으며 거짓말 탐지기로 기록도 가능하다”고 했다. 과학계는 그를 미친 사람으로 여겼다. 왓슨은 식물학·동물학·화학·인류학·행동학 등 수많은 분야에서 활약했지만 베스트셀러를 쓰는 대중 작가에 가까웠고 명확한 과학적 근거 제시에는 소질이 없었다. 그의 주장 중에는 유사 과학도 많았다. 하지만 최근의 식물 연구는 식물이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을 넘어 의사소통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식물은 뇌가 없기 때문에 감정과 오감(五感), 지능이 없다고 단정한 것은 단지 인간의 편견이었다.

/일러스트=이철원
일본 사이타마대 연구진은 지난달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논문에서 “식물 ‘미모사 푸디카’를 관찰한 결과 동물의 신경 전달과 비슷한 메커니즘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외부 충격을 받으면 빠르게 잎을 닫는 미모사는 과학계의 오랜 연구 대상이었다. 식물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열등한 생명체라는 인식을 깨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형광 물질을 활용해 미모사 잎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실시간 관찰했다. 그 결과 외부 충격을 받은 미모사는 잎바늘로 불리는 기관에서 칼슘 신호를 잎 전체로 발산해 불과 0.1초 만에 잎을 닫았다. 원리와 형태는 다르지만 식물도 동물과 같은 신호 전달 시스템이 있다는 것이다. 미모사 연구에 대한 첫 기록은 18세기 생물학자 장 바티스트 라마르크(1744~1829)로 거슬러 올라간다. 용불용설(用不用說)의 바로 그 라마르크이다. 라마르크는 조수를 시켜 미모사를 싣고 파리 시내를 돌아다니게 했다. 길을 달리면서 충격이 전해질 때마다 미모사는 잎을 닫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어느 순간 미모사는 잎을 닫지 않았고 며칠이 지난 뒤에 다시 같은 진동을 줘도 잎을 닫지 않았다. 진동이 위협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사람으로 치면 ‘배우고 기억한’ 셈이다.
칠레에 서식하는 ‘보퀼라’는 식물계의 카멜레온이다. 포도나무의 일종인 보퀼라는 원래 3개의 뭉툭한 잎사귀를 갖고 있다. 하지만 보퀼라는 주변 식물에 붙어 자라면 그 식물과 놀랍도록 똑같은 형태로 잎 모양과 색을 바꾼다. 보퀼라가 모방하는 식물만 20종이 넘는다. 보퀼라가 처음 알려진 것은 1800년대 초반이었는데, 모방 능력은 불과 10년 전에 발견됐다. 아무도 모방을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심지어 과학자들이 플라스틱으로 가짜 식물을 만든 뒤 보퀼라를 옆에 두자, 보퀼라는 인공 식물의 잎까지 모방했다. 10년 전 이 식물을 처음 발견한 식물학자 어네스토 지아놀리는 올초 학술지 ‘식물 신호 및 행동’에 “보퀼라 잎에는 렌즈를 닮은 세포가 있으며, 이를 통해 실제로 주변을 보고 모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식물학계를 뜨겁게 달군 이 논란은 아직까지 결론이 나지 않았지만 ‘식물이 볼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궁금증과 맞닿아 있다.
식물은 위협을 주변에 적극적으로 알리는 이타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폴란드 바르샤바대 연구팀은 지난 5월 “민들레를 관찰한 결과 잎이 손상되면 전기신호를 내뿜어 주변에 알리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풀밭 한편의 민들레 잎 하나에 상처를 내기만 해도 순식간에 풀밭 전체가 각종 식물이 내뿜는 전기신호로 뒤덮였다. 식물이 말을 하고 들으며 소통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왜 이토록 식물의 삶과 능력에 무지했던 것일까. 식물지능학을 창시한 이탈리아 피렌체대 스테파노 만쿠소 교수는 저서 ‘매혹하는 식물의 뇌’에서 “문제는 ‘식물이 지능을 가졌는가’가 아니라 ‘지능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이다”라고 썼다. 인간이 가장 진화한 존재이고, 우월한 존재라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식물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진화학의 창시자인 찰스 다윈은 식충식물의 존재를 처음 학계에 알린 식물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1880년 발간한 ‘식물의 운동력’에서 “식물의 뿌리에는 하등동물의 뇌와 비슷한 것이 들어 있다”고 주장했다. 현대 과학은 다윈의 주장이 허무맹랑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최초의 광합성 세포가 지구상에 등장한 것은 35억년 전이다. 현재의 식물은 햇빛과 물, 비옥한 땅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거쳐 살아남은 진화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다. 고작 20만년을 살아온 현생 인류가 이런 식물을 과소평가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 아닐까.
조선일보 박건형 기자
12.16 R&D 패러독스 극복하자
홍병희 그래핀스퀘어 대표

▲그래핀스퀘어 대표 홍병희 서울대 교수가 지난 7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실험실에서 ‘최첨단 나노 소재’ 그래핀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상선 기자
‘전기토스터를 쓰기 2분 전 전원을 켠다. 빵은 0.5인치(약 1.27㎝) 두께로 썰고, 테두리를 잘라낸다. 기기에 빵 2~4조각을 넣고 1분쯤 지나면 잘 익은 갈색이 된다.’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이 설립한 뉴욕에디슨(현 제너럴일렉트릭)에서 1911년 펴낸 『전기요리 레시피』에 나오는 전기 토스터 사용법이다. 전기 토스터가 개발되기 전엔 간편식의 대표 주자 토스트도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었다. 하지만 에디슨이 1909년 전기 토스터를 선보이면서 금속 코일을 활용한 조리·난방기구는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홍병희(51) 서울대 화학부 교수는 꿈의 신소재 ‘그래핀’으로 100년 넘게 이어져 온 에디슨의 ‘코일 전열기술’에 도전장을 냈다. 자체 개발한 그래핀 생산 기술을 바탕으로 2012년 그래핀스퀘어를 창업하면서다. 지난 7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그래핀스퀘어 사무실에서 만난 홍 대표는 “그래핀 전열기술로 에디슨의 코일 전열기술을 대체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녹슬지 않는 탄소물질 양산 성공
철보다 100배 강한 나노 소재
에디슨 ‘코일전열기술’ 대체 기대
토스터 등 조리기구부터 선보여
타임지 ‘2022년 최고 발명품’ 선정
자동차·반도체 등 활용대상 무궁
“시간이 지나면 녹슬고 산화하는 금속과 달리 그래핀은 영원히 변치 않는 다이아몬드와 같습니다. 온도를 400도까지 올려도 내구성이 뛰어나 전열기구로 만들었을 때 수명이 길고 에너지 효율도 좋지요.”
그래핀은 흑연의 한 층으로, 탄소 원자가 평면에 육각형으로 연결된 투명 물질이다. 두께는 종이보다 100만 배 얇은 0.33나노미터(㎚) 밖에 되지 않지만, 강도는 강철보다 100~300배 강하다. 열 전도성이 뛰어나고, 전자 이동속도는 반도체인 실리콘보다 140배 이상 빠르다. 이 때문에 ‘꿈의 신소재’ ‘21세기 황금’이란 별명이 따라다닌다. 하지만 양산 기술이 없는 게 한계였다.
CES 2023 ‘최고 혁신상’ 예약
그래핀스퀘어는 직접 개발한 양산 기술로 그래핀의 산업화를 주도하고 있는 업체다. 최근 출시한 조리기구 ‘그래핀 키친 스타일러’(토스터)와 전열기구 ‘그래핀 라디에이터’로 글로벌 가전 시장에도 진출한다. 홍 대표는 “글로벌 기업과 그래핀 상용화 연구를 하던 중 주방기기로 눈을 돌렸다”며 “그래핀 전열판에 빵과 고기를 구웠더니 맛있게 구워지더라. 그래핀의 특성을 살려 투명한 제품에 디스플레이를 탑재하는 등 상상력을 발휘했다”고 말했다.
‘그래핀 키친 스타일러’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2022년 최고 발명품’에 선정됐다. 타임은 “2분 만에 화씨 570도(섭씨 298도)까지 올라가 오븐·그릴·버너·보온기 등으로 사용할 수 있다”며 “제품이 투명해 토스트(또는 스테이크·쿠키)가 구워지는 것을 볼 수 있고, 완벽한 고소한 맛을 보장한다”고 평가했다. ‘그래핀 라디에이터’는 내년 1월 열리는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3에서 ‘최고 혁신상’을 받았다. 두 제품은 내년 초 글로벌 크라우드펀딩 사이트를 통해 판매될 예정이다.
세계 첫 그래핀 대량 합성 기술
홍 대표가 그래핀을 본격 연구하게 된 것은 2004년 박사후연구원으로 김필립(현 하버드대 교수)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연구실에 몸담으면서다. 김 교수는 ‘그래핀에서는 전자가 질량이 없는 것처럼 아주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는 물리적 성질을 밝혀낸 인물이다. 이보다 앞서 2004년 영국 맨체스터대 안드레 가임 교수와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교수가 흑연 덩어리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였다 떼어내는 방식으로 그래핀을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가임·노보셀로프 교수는 2010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홍 대표는 2008년 ‘화학기상증착(CVD) 공법’을 선보였다. 세계 최초로 화학적 방법으로 그래핀을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스카치테이프로 떼었을 땐 마이크로미터 크기라 육안으로는 볼 수 없었던 그래핀을 화학적 방법으로 손톱 크기까지 키워낸 것이다. 이 논문은 2009년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에 실렸고, 2010년 ‘제1회 홍진기 창조인상’을 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윤전기가 신문을 찍어내듯 그래핀을 전사해 롤 형태로 말아내는 기술도 개발했다. 제품을 대량 생산할 수 있어 그래핀 소재 양산에 게임 체인저가 된 기술이다.
그래핀스퀘어에 투자한 조준석 BSK인베스트먼트 상무는 “그래핀은 우수한 소재지만 가격이 너무 비싼 게 약점이었다”며 “그래핀스퀘어의 CVD 합성 방식은 오차 없이 정확하게 그래핀을 합성할 수 있어 양산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김흥락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 박사는 “노벨상 수상 기술은 보통 15~20년 뒤 산업화로 꽃을 피우는데, 그래핀도 곧 그 시기가 올 것으로 본다”며 “앞으로 그래핀 생산이 본격화해 생산 단가가 저렴해지면 반도체·음극재 소재, 자동차부품 등에서 기존 소재를 대체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제품은 종합예술” 양산라인 준공
홍 대표가 처음부터 그래핀 기술로 창업하려던 건 아니었다. 실험실 제자들의 고충을 덜어주기 위해 시작한 일이 눈덩이처럼 불어 회사까지 차리게 된 ‘어쩌다 창업’ 케이스다.
“네이처에 논문을 발표한 뒤 전 세계 학계와 기업에서 그래핀 샘플을 보여달라는 요청이 쇄도했습니다. 제자들이 연구는 못 하고 그래핀 샘플 만들기만 매달려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제조 기술을 회사에 넘겨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창업을 결심했습니다. 그 뒤엔 저희가 사용하는 그래핀 제조 장비를 팔라는 요청이 들어와서 사업이 커졌어요. 연구는 계획을 세워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데, 사업은 모르던 분야라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래핀스퀘어는 지난달 14일 경북 포항시 남구 나노융합기술원에 양산 시설을 준공했다. 첨단센서 및 반도체부품용 8인치(약 20㎝) 그래핀웨이퍼를 연간 10만장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홍 대표는 “반도체웨이퍼·가전에 들어갈 폭 170㎜ 그래핀롤 생산은 최적화에 성공했고, 500㎜ 폭까지 늘려 양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늘어나는 그래핀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2027년까지 생산시설을 지속해서 확충할 계획이다.
홍 대표는 “양산에 얼마나 많은 엔지니어링 노하우가 들어가는지 몰랐다. 기술은 이미 개발했으니 쉽게 생산라인도 만들 수 있을 줄 알았다”며 “신뢰성 있는 제품이 균일하게 나와야 하는데 황금 수율인 80%에 도달하는 건 정말 종합예술이더라”라고 돌이켰다.
미래 전기차 ‘게임 체인저’
그래핀스퀘어는 글로벌 기업들과 함께 그래핀을 디스플레이·자동차·바이오 등에 적용하는 실험도 진행 중이다. 전기차용 그래핀 유리를 비롯해 반도체 극자외선(EUV) 노광공정 펠리클(포토마스크의 오염을 막기 위한 덮개), 전기차 카메라렌즈·라이다 제상(성에 제거) 난방, 2차전지용 집전체, 질병 진단용 센서 등이다.
이 가운데 전기차용 유리는 미래 전기차 산업의 판도를 바꿀 핵심 기술로 꼽힌다. 자동차 앞 유리에 습기나 성에가 생기면 내연기관차는 엔진의 폐열을 내뿜어 제거하는데, 전기차는 엔진의 열기가 충분치 않다. 그래핀 유리가 개발되면 낮은 전력을 소모하면서도 효율적으로 앞 유리 성에·습기를 제거할 수 있다. 홍 대표는 “현재 글로벌 자동차 기업이 신뢰성 평가를 진행 중인데 2025년쯤 상용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1인 1 창업…고교 때부터 준비를”
홍 대표는 “조만간 1인 1 창업의 시대가 올 것”이라며 “고등학교 때부터 창업 교육을 하는 등 살아있는 지식을 가르쳐야 한다”며 창업 조기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평생 연구했던 기술은 알았지만, 돈이나 사람에 대해 너무 몰랐어요. 창업의 세계는 단단히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올해로 창업한 지 10년인데 문 닫을 위기가 세 번 있었어요. 계약서 한 줄을 놓쳐 상대 기업과 10년 독점 협업 계약이 돼 있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시행착오를 바로잡는 데 상당 시간을 허비했지요. 이런 실수를 후배 창업자들이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는 실제로 창업 전도사이기도 하다. 그래핀스퀘어 직원이나 연구실 제자들에게도 평소 “연구한 그래핀 기술로 분사해서 나가라”고 강조한다. 졸업 뒤 그래핀스퀘어에 몸담았던 제자 두 명은 그래핀을 활용한 신약 개발 기술로 ‘바이오그래핀’을 2017년 설립해 독립했다. 바이오그래핀은 그래핀 양자점의 특성을 활용해 그래핀을 약물 전달 플랫폼으로 한 파킨슨·알츠하이머병 신약후보 물질을 개발했다.
“미국에선 스탠퍼드대를 중심으로 실리콘 소재 기술이 혁명적 변화를 이끌며 실리콘밸리가 만들어졌고, 3·4차 산업혁명의 주역이 됐습니다. 그래핀이라는 탄소 소재가 하나의 산업군을 형성하고,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플랫폼이 됐으면 합니다. 현재 그래핀스퀘어 본사가 자리 잡은 포항에 실리콘밸리를 넘는 ‘그래핀밸리’를 만들고 싶습니다.”
수원=고석현 기자 ko.sukh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