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홍의 컬처 엔지니어링] 컬처엔지니어 조선일보 2022

01.05 정직한 절망이 희망의 시작이다

▲/일러스트=김성규
# 예전엔 으레 연말연시에 연하장을 주고받았지만 요즘엔 대개 SNS로 사진과 덕담을 주고받는다. 나 역시 하늘 아래 오밀조밀하게 집들이 모여있는 황영성 화백의 그림을 캡처해 그 위에 계절 인사를 담아 보내며 “새해엔 우리 일상 구석구석에 볕이 좀 들었으면 좋겠다”고 썼다. 그런데 어느 분 답장을 받아보니 이렇게 씌어 있었다. “지난 한 해, 참으로 정직한 절망이었습니다. 그래도 이 절망이 꼭 희망일 것으로 믿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정직한 절망’이란 구절에 마음이 꽂혔다. 그리고 공감했다. 그 정직한 절망이야말로 또 다른 희망의 씨앗이자 시작일 것이기에!
# 지난해 마지막 날 김진현 전 과기처 장관과 함께 강남의 뱅뱅사거리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는 길이었다. 계산대에 서 있던 주인이 계산을 마치며 오늘로 영업을 끝낸다면서 죄송하다고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점심 식사 내내 김 전 장관이 울분에 차 토해내는 대한민국의 암울한 미래 진단을 듣고 난 직후였기도 했지만 식당 주인의 나지막한 ‘폐업 고지’는 그 어떤 미래 진단의 웅변보다도 무겁게 다가왔다. 겉보기엔 여전히 손님도 있고 꽤 목 좋은 곳에 위치한 식당이라 주인의 ‘폐업 선언’이 선뜻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주인은 그동안 누적된 적자 탓에 더는 버틸 수 없게 된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하며 되레 감사하다는 인사를 연신 되뇌었다. 정말이지 너무나도 ‘정직한 절망’의 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1월 1일 서울 송파구 잠실역 부근 복권판매점 앞에 시민들이 복권을 사기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연합뉴스
# 새해 첫날 연합뉴스가 찍어 올린 두 장의 사진이 담긴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두 사진 모두 복권을 사려는 사람들이 말 그대로 장사진(長蛇陣)을 치듯 꼬리에 꼬리를 물며 길게 줄을 이어간 모습이었다. 하나는 서울 송파구 지하철 2‧8호선 잠실역 부근 한 복권 판매점에서 복권을 사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선 장면이었는데 줄이 너무 길어 정작 복권 판매점은 보이지도 않았다. 이곳은 작년 말까지 로또 복권 1등 당첨자가 15번, 2등 당첨자가 62번 나와 이른바 ‘로또 명당’으로 불리는 곳이기도 했단다. 또 다른 사진 역시 서울 강북의 노원구 로또 명당으로 알려진 복권 판매점에 닿기 위한, 끝이 안 보이는 긴 기다림의 줄을 담고 있었다. 로또 명당을 찾는 발길은 새해를 맞아 로또 대박이라도 맞길 바라는 소박한 마음에서 우러난 희망의 발걸음이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그 자체가 되레 ‘정직한 절망’의 뒤안길이 아닐까 싶었다. 더 이상 어찌할 도리 없는 현실에 좌절하고 절벽 같은 현생에 절망한 이들의 반사적인 행동의 발걸음이자 줄 서기가 아니었을까 싶은 것이다. 정말이지 새해 벽두의 그 긴 줄 서기는 그 자체로 ‘정직한 절망’의 줄 서기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 새해를 맞아 둘째 날에 서울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애초 계획은 반가사유상 두 점이 놓여있는 ‘사유의 방’을 가보려던 것이었지만 막상 이른 아침인데도 코로나도 아랑곳 않는 긴 줄의 인파에 놀라 방향을 틀어 관람객이 상대적으로 적은 ‘조선의 승려 장인’ 기획전을 보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런데 전시를 보다 불상 하나에 눈길이 멈췄다. 합장한 모습이라기보다는 마치 기독교식으로 기도하듯 두 손을 포개어 모은 듯한 비로자나여래좌상의 자태에 눈길이 갔던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꼭 400년 전인 1622년 광해군 14년에 광해군의 비인 장렬왕후(훗날 폐비 류씨)가 발원하고 현진(玄眞)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승려 장인 십수 명이 합력하여 만든 ‘목조비로자나여래좌상’이었다. 뭔가를 간절히 희구하는 모습이어서 더 마음에 다가온 이 불상을 발원한 장렬왕후(章烈王后)는 인조의 계비로 장희빈을 궁궐로 불러들인 그 장렬왕후(莊烈王后)가 아니다! 광해군의 비 장렬왕후는 불상이 조성된 이듬해인 1623년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축출된 후 폐위돼 7개월여 만에 화병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런 불행한 기운을 느낀 탓이었을까? 오른손으로 왼손을 감싸며 기도하듯 고개를 숙인 채 눈마저 지그시 감은 이 불상을 마주하며 불현듯 ‘정직한 절망’이 화두처럼 떠올랐다. 어쩌면 이 불상을 발원할 때 이미 그녀는 자신의 운명을 예감했을지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불상은 왕실 여인들의 말년 궐 밖 출가 수행처인 자수사와 인수사에 봉안하기 위해 제작된 불상 열한 구 중 하나였다. 그녀는 남편 광해군에게 이미 불안과 불행의 어두운 그림자가 어른거린다고 봤기에 스스로 출가해서 말년을 보낼지도 모를 궐 밖 왕실 여인들의 출가 수행처인 두 절에 불상 열한 구를 제작해 봉안하도록 했을지 모른다. 장렬왕후가 그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예민하게 감지했을 절망과 절벽 같은 심정을 발원하고, 십수 명의 승려 출신 장인들이 합심하여 만들어낸 불상이었기에 거기엔 다름 아닌 한 여인의 ‘정직한 절망’의 기운이 고스란히 담겨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다시 내세의 생(生)과 희망으로 승화시키려는 승려 장인들의 고뇌에 찬 절실한 기도의 용력이 응축되어 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런 점에서 그중 한 구인 목조비로자나여래좌상의 다소 특이한 자태를 보면서 나 역시 그 기운, 즉 ‘정직한 절망’에 감응했던 것이리라.
# 새해 벽두에는 대개 희망을 말한다. 하지만 지금 나는 절망을 이야기한다. 그냥 절망이 아닌 ‘정직한 절망’이다. 그 까닭은 오로지 정직한 절망만이 희망을 다시 만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올해는 대선과 지방선거가 거의 동시에 치러지는 해다. 하지만 정권 교체를 희구하는 사람들은 연말과 연시를 지나면서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누구누구의 잘잘못을 따진다는 것 자체가 부질없을 만큼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의 처참한 상황이다. 개선이든, 개편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보다 근원적인 ‘정직한 절망’이 있은 연후에나 ‘새로운 희망’도 가능하지 않겠나 싶다.
02.09 절박함이 자만을 이긴다

▲/일러스트=양진경
# 지난 주말 오랜만에 서점 나들이를 했다. 코로나에도 아랑곳 않고 서점은 사람들로 붐볐다. 서가를 오가다 신간 코너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매대에 넓게 깔린 한 책에 손이 갔다. “왜 우리 손으로 괴물을 뽑는가?”라는 자극적 문구가 띠지에 붙은 책이었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국제정치학과 부교수이자 정치 컨설턴트인 브라이언 클라스가 쓴 ‘권력의 심리학’이었는데, 서서 훑어보다 이런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왜 우리는 끔찍하고, 무능하고, 심지어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를 지배하게 둘까?” 순간 섬뜩했다. 마치 읽어서는 안 될 금서를 읽다 들킨 듯한 심정으로 슬며시 책을 다시 매대에 내려놨다. 솔직히 더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미 우리가 그런 상황에 처해있다는 생각에 굳이 그것을 책에서까지 재확인하면서 읽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1940년 런던 공습 당시의 처칠을 다룬 75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책 ‘폭격기의 달이 뜨면’을 집어 들고 서점을 나왔다. 하지만 서점을 빠져나오면서도 여전히 “왜 우리 손으로 괴물을 뽑는가?”라는 구절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제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대선에서 과연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우리 손으로 또다시 괴물을 뽑게 되는 건 아닐까? 현실 속 우려를 떨칠 수 없었다.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3만 6719명으로 집계된 8일 오전 서울 송파구 보건소에 마련된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2022.02.08./뉴시스
# 지하(서점)에서 지상으로 올라오자 이번엔 광화문 광장 한편에서 거친 확성기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당신은 3개월마다 접종 후 살아남을 자신이 있습니까?” 애써 귀를 닫고 그 시위 현장을 지나쳐 가며, 누군가 나눠주는 전단도 뿌리친 채 미 대사관 방향으로 가다가 나도 모르게 돌아섰다. 오던 길을 되돌아가 그 전단을 나눠주던 이에게 이번엔 내가 손을 내밀었다. 솔직히 나 역시 3개월마다 접종 후 반드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 손으로 받아 든 전단에는 전국학부모단체연합(전학연) 명의로 ‘백신 접종 후 10대 청소년 6명 사망!’이란 타이틀과 ‘백신 강제 접종 반대!’라는 구호가 어지럽게 적혀 있었다. 나는 3차 접종까지 끝냈지만 세 번째 백신 접종 후에는 다소 부작용을 경험했던 터라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더구나 코로나에 걸리더라도 중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낮은 10대 청소년들이 백신 맞고 애꿎게 변을 당했다면 당사자와 그 가족들은 정말이지 복장 터질 노릇 아니겠는가. 그 전단을 자세히 훑어보니 질병관리청 올해 2월 통계에서 뽑았다며 적어놓은 코로나 백신 피해자 중 사망자가 1766명이었고, 중증 이상이 1만3164명이었으며 부작용을 경험한 전체 인원은 43만명에 달한다고 했다. 물론 논란의 소지가 있는 수치지만 가볍게 넘기거나 무시해버릴 수 있는 내용 또한 결코 아니었다.
# 방역 패스도 문제다. 사실 방역 패스를 엄격히 적용한다면 역설적으로 식음료점 등 영업장을 4인 혹은 6인으로 제한할 이유도, 영업시간을 밤 9시다, 10시다 하며 제약할 까닭도 없는 것 아닌가? 적어도 방역 패스를 적용받은 업장 안에서는 몽땅 풀어야 맞는 것 아닌가 말이다. 하지만 4인이다, 6인이다 숫자 놀음 해가며 9시다, 10시다 하며 마치 실제 무슨 구분의 확실한 근거라도 있는 것처럼 선 긋기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애꿎은 자영업자들은 정작 코로나가 아니라 그 숫자 놀음과 선 긋기에 죄다 녹아나고, 살아도 산 게 아니지 않은가. 그것을 이제 와서 100만원 아니라 1000만원씩 보상한다 한들 죽은 자식 매만지는 것이 아니고 뭐겠는가. 게다가 누구나 하는 말이지만 미어터지는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방역 패스는커녕 그 흔한 체온계조차 통과 안 하지 않는가. 이 와중에 코로나 특히 오미크론 변이는 그 확산세가 이미 정부의 방역 한계치를 넘어서 사실상 K방역의 지침이 각자 알아서 하라는 식의 각자도생 방식이 돼 버린 것 아닌가. 이달 말이면 일일 확진자가 17만명에 이를 것이라는 질병관리청의 공식 발언까지 나오는 판이니 이제는 K방역이란 기만적인 괴물의 허울을 벗어던지고 정직하게 집단면역으로 이행하자고 하는 것이 차라리 맞는 것 아닌가! 더구나 이런 확진자 증가 추세로 정작 내달 4, 5일 사전 투표일과 9일 대선일 전후에도 일일 확진자가 20만명 이상인 추세가 지속된다고 가정하면 자가 격리로 투표장에 나가지 못할 사람이 얼추 140만명에서 200만명에 육박할 수도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자칫 남발된 자가 격리로 유권자의 투표권 행사에 제한이 가해진다면 이거야말로 괴물 정부의 괴선거가 아니고 무엇인가!
# 지난 주말 서점을 나오며 집어 든 ‘폭격기의 달이 뜨면’을 읽다 보니, 처칠이 2차 대전 중인 1940년 5월 10일 총리가 된 후 그해 말까지 나치의 런던 공습으로 영국 국민 1만3596명이 사망하고 1만8378명이 중상을 입었다고 한다. 하지만 처칠은 나치에 굴복하지도 않았고 영국 국민들을 공포 속에 매몰되게 하지도 않았다. 되레 처칠은 꼭 81년 전인 1941년 2월 9일 저녁에 방송 연설에서 나치가 떨어뜨린 폭탄의 3배, 4배로 갚아줄 것이라고 말하며 영국 국민들을 죽음과 공포에서 일으켜 세웠다. 그 연설을 듣고 난 후 당시 영국 국왕 조지 6세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이보다 나은 총리를 보유할 수는 없다”고! 우리는 과연 앞으로 코로나를 극복한 후 그가 누구이든 “이보다 나은 대통령을 보유할 수는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려면 분명하게 명심할 것이 있다. 우선 우리 손으로 괴물을 뽑지 않도록 지금의 공포를 이겨야 한다. 그리고 누구든 정녕 국민의 최종 선택을 받고자 한다면 숫자에 자만하지 말고 절박함으로 승부해야 한다. 끝까지 절실하고 절박하게 대한민국을 이 수렁에서 건지려고 몸부림치는 자가 결국엔 이긴다!
03.09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끝까지 겸손하고 끝까지 절박하고 끝까지 분투해도 승패는 미지수다
# 4419만7692명. 이번 20대 대선의 총 유권자(재외국민 포함) 수다. 언뜻 보면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결국 이 숫자의 흐름과 결집, 곧 떼놓고 합하고 모으며 흩뜨리는 이합집산(離合集散)이 오늘 이 순간, 대한민국의 내일을 결정한다. 더구나 그 숫자가 그저 표(票)로만 보여 더하고 빼고 나누고 곱하는 대상이 아니라 진심으로 돌보고 보호하며 섬기고 연대해야 할 살아있는 국민 한 분 한 분의 현신(現身)임을 뼛속까지 느끼며 끝까지 겸손하고 겸허하게 다가설 수 있어야 비로소 대권의 자리가 주어지는 것이리라.

그런 점에서 선거에 임하며 그것도 선거 날에 코를 박듯 임박해서 아무리 여론조사 블랙아웃, 즉 깜깜이 기간이라 할지라도 단지 추측과 추론만으로 “많게는 10%포인트까지 차이가 날 수 있겠다”며 도전자 격인 야당의 당대표가 스스로 낙승을 이야기하는 것은 오만한 바보짓이다. 히말라야의 8000m급 큰 산들을 오를 때도 내가 그것을 정복했다고 우쭐하고 자만하면 결국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오지만 “산이 나를 허락했을 뿐이다”라며 끝까지 스스로를 낮추는 자만이 정상에도 오를 수 있고 또 살아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왜 모르나! 자고로 선거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 선거는 불쌍해야 이긴다. 박빙의 선거일수록 논리보다 정서다. 적어도 한국적 정서에서는 묘하게도 힘센 것보다는 얻어맞는 게, 번드르르한 것보다는 퍽퍽하고 빈티 나 보이는 것이 결국 이긴다. 잘났다고 고개 쳐들면 대개 진다. 그래서 내 잘난 맛의 ‘고정표’만 많고 내가 아쉬운 ‘동정표’가 적으면 대개 진다.
한 표 한 표 포개진 동정표가 쌓아놓은 고정표보다 나은 법이고 아무리 큰 선거에서도 동정표 없이는 이기기 어려운 것이 한 표의 숨은 마력이자 선거의 묘한 역설이다. 설사 내가 앞서 있다고 판단되어도 여전히 박빙이고 알 수 없으니 한 표라도 더 모아달라고 해야 이길 수 있는 것이 선거다. 대선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당대표의 입에서 이미 10%포인트 차이 난다고 동네방네 떠들면 자기편도 안심시키고 상대편은 되레 결집시키는 것밖에 더 되겠는가? 나중지사 10%포인트 아니라 그 이상의 격차로 이길 때 이기더라도 선거에 초임박해서는 되레 “질 거 같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며 뭔가 더 절박하게 호소해 한 표라도 더해가는 것이 선거의 정석이란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 사실 오늘이 대선일이라지만 이미 지난 4일과 5일의 사전투표를 통해 총 유권자 중 3분의 1가량, 정확히 36.93%가 투표를 했으니 1632만2200여 명의 유권자가 이미 투표를 마친 것이다. 역대 가장 심한 ‘비호감 선거’라는 말이 무색하리만큼 이처럼 사전투표의 열기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것을 두고도 여전히 해석이 분분하다.
물론 유권자 입장에서 보면 사전투표와 본투표를 구분해야 할 이유 자체가 희박하고, 정작 공식 투표일에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라도 사전투표일에 기꺼이 한 표를 행사하려는 ‘투표의 일상화’가 나타난 것뿐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유권자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632만명이 긴 줄 마다하지 않고 사전투표를 감행한 것은 일종의 ‘분노의 표심’ 같은 것이 작동한 결과가 아닐까 하고 보는 시각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물론 그 분노의 표심에 대한 해석조차 두 갈래로 갈린다.
하나는 정권 교체의 도도한 성난 민심이 표출된 것이라는 야권의 시각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사전투표 하루 전날인 지난 3일 새벽의 윤석열-안철수의 막판 단일화에 따른 위기감 내지 분노(?)가 민주당과 국민의당 지지자들의 표 결집을 이끌었다고 보는 여권의 시각이다.
하지만 정권 교체에 대해 가장 미온적인 호남의 사전투표율이 50%를 넘나드는 것을 보면 정권 교체의 성난 민심이 표출된 탓이란 야권의 시각에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마찬가지로 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텃밭이라 할 경기도가 사전투표율에서 가장 낮은 수치를 나타낸 것을 보면 윤석열-안철수의 막판 단일화에 따른 위기감이 초래한 표 결집 현상이라는 여권의 시각도 쉽게 수긍하기엔 뭔가 석연치 않기는 매한가지다.
결국 높은 사전투표율이 어느 쪽에 유리한지, 불리한지는 알 수 없다. 게다가 자그마치 2787만4090명의 유권자가 오늘 본선거에서 자신의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대기 중이지 않은가. 역시 뚜껑은 열어봐야 아는 것이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 이런 와중에 사전투표에 참여했던 코로나 확진자와 격리자들이 민주주의 선거 행위의 기본인 비밀투표와 직접투표가 보장되지 않는 이른바 소쿠리, 우체국 택배 박스, 심지어 쓰레기 봉투에 자신들이 행사한 표를 넣도록 강요받아야 했던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21세기 선진 대한민국’에서 버젓이 벌어졌다. 더 심각한 것은 추위에 떨며 받아든 투표용지가 이미 기표된 것이었다는, 정말이지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될 상황이 전국 곳곳에서 적잖게 발생했음에도 선거 관리 당국은 명백한 해명과 재발 방지책을 내놓지 않은 채 그대로 본선거를 치르고 있지 않은가.
코로나에 확진돼 격리 중인데도 불구하고 불편함과 오랜 기다림조차 무릅쓰고 자신의 한 표를 기꺼이 행사하겠다고 나선 이들의 정당한 투표 권리가 비밀투표와 직접투표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조차 지켜질 수 없는 환경에서 무참히 훼손되었음은 물론, 이미 누군가에 의해 기표된 투표용지가 다시 또 다른 투표자의 손에 쥐여지는 정말이지 앞뒤 없는 선거 관리에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국민적 권리다.
따라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태에 대해 선거 관리 당국이 형식적인 해명과 사과에 그친 채 보다 분명한 재발 방지책을 제시하지 못한 것은 개표 후에라도 선거 불복 사태의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 된다. 결국 개표 후 선거 결과에 대한 승복 여부가 이번 대선의 최대 고비가 될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 것이다. 정말이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번 대선은 끝까지 알 수 없게 됐다. 정말이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04.06 정순왕후(貞純王后)한테 배워야 한다
66세 영조를 감탄케 한 15세 정순왕후의 답변
대통령의 부인이라면 국민들을 감동시켜야!
# 지금으로부터 265년 전인 1757년(영조 33년), 이즈음 33년간 영조의 정비(正妃) 자리를 지켜내 조선의 역대 왕비 중 재임 기간이 가장 길었던 정성왕후 서씨(貞聖王后 徐氏·1693년 1월 12일~1757년 4월 3일)가 65세를 일기로 세상을 뜨셨다. 그리고 삼년상을 마칠 즈음인 1759년(영조 35년) 66세의 국왕 영조(1694~1776년, 재위 1724~1776년)는 나이 차가 무려 51세 나는 15세 신부를 새 왕비로 맞았다. 김한구의 여식으로 영조의 계비(繼妃)가 된 정순왕후(貞純王后)가 그이다.
# ‘영조실록’ 영조 35년 6월 9일 자에는 “삼간택(三揀擇)을 행하여 유학(幼學) 김한구(金漢耉)의 딸을 정하고 대혼(大婚)을 6월 22일 오시(午時)로 잡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왕비 간택(揀擇)을 위해 초(初)간택, 재(再)간택을 거쳐 마지막 단계로 삼(三)간택을 거친 것이다. 이 과정이 얼마나 지난한 것인지는 이 지면에서 새삼스레 언급할 필요까진 없을 듯싶다. 다만 김한구의 여식이 영조의 계비로 간택받은 까닭을 짐작하게 하는 일화가 야사(野史)인 ‘대동기문(大東奇聞)’ 등에 일부 전한다. 세간에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보태어졌겠지만 그럼에도 문답의 핵심은 민심을 반영한 것이기에 새겨둘 만하다.

▲/일러스트=박상훈
# 먼저, 영조가 친히 왕비감을 간택하기 위해 좌정해 있는데 김한구의 여식만이 홀로 지정된 자리를 피하여 앉았다. 이에 영조가 “어찌하여 피해 앉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김한구의 여식이 대답하길, “아비의 이름이 여기 있는데 어찌 감히 그 자리에 넙죽 앉겠습니까” 하는 것이 아닌가. 왕비를 간택하는 자리에 놓인 방석에는 대개 그 아버지의 이름을 써놨기 때문에 그 자리에 그냥 앉을 수 없지 않냐는 얘기였던 것이다. 영조가 내심 이를 기특히 여겼다. 사실 오늘날 비견해서 보자면 대통령 부인 자리는 남편의 이름자를 깔고 앉는 자리가 아니던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대통령인 남편 자리를 깔고 앉아 뭉개던 이도 있었던 것 같고, 혹은 남편이 대통령은 되었지만 아직 그 자리 근처에도 못 나서는 이도 있는 듯싶다. 하기야 대통령이 될 뻔하다 못 돼 남편 자리를 깔고 앉는 대신 조사실 의자에 앉을 이도 있지만 말이다.
#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 영조가 간택에 응한 여러 규수들에게 “꽃 중에서 무슨 꽃이 가장 좋은가?”라고 물었다. 이에 어떤 규수는 모란꽃이 좋다고 말하고, 또 어떤 규수는 해당화가 좋다고 말했다. 모두 보기 좋은 것을 꼽은 것이다. 하지만 김한구의 여식만은 말하길 “저는 목화가 가장 좋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에 영조가 그 까닭을 다시 물으니 답하기를 “다른 꽃들은 때에 따라 보기 좋은 데 지나지 않으나, 오로지 목화만은 온 천하 사람들에게 옷을 지어 입혀 따뜻하게 해주는 이득과 공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떠오르는 것을 용서하시라! 내가 입어 보기 좋은 것을 찾고 쫓을 것이 아니라 국민을 먼저 보듬어 안았다면 임기 막바지에 옷값이 어떻고 하는 얘기 자체가 없지 않았을까 싶기 때문이다. 모란도 해당화도 아닌 목화를 꼽아 훗날 정순왕후가 된 김한구의 여식 같은 마음을 진즉에 가졌으면 좋았으련만….
# 이야기를 계속하겠다. 영조는 어린 규수가 총명하다 생각하고 다시 물었다. “무엇이 가장 넘기 힘든 고개인가?” 어느 규수는 ‘대관령 고개’라고 하고, 또 다른 규수는 ‘조령 고개’라 했다. 저마다 넘기 힘든 고개를 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김한구의 여식은 남들과 다르게 ‘보릿고개’라 했다. 영조가 그 까닭을 물으니 이렇게 답했다. “눈앞에 보이는 고개야 반보(半步) 앞이 평지(平地)다 생각하고 걸으면 못 넘을 바 없지만 해마다 봄에 곡식이 떨어져서 보리가 나올 때까지 배고픔을 참고 넘어야 하는 춘궁기의 보릿고개야말로 참으로 넘기 힘든 고개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했다. 가을에 거둔 양식이 봄이 되자 다 떨어졌지만 그렇다고 햇보리는 아직 나오지 아니한 때 하루 세 끼는커녕 두 끼, 아니 심지어 한 끼조차 때우기 어려운 때를 보릿고개라 하지 않았던가. 겉으론 풍요가 만연한 오늘의 기억 속에서는 아련한 추억 같은 것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반세기 전만 해도 오죽하면 선거 구호가 ‘일일삼식(一日三食) 보장’이었겠는가. 이 문답을 보노라니 지난 대선 때 ‘법카 논란’을 야기했던 이재명 후보의 부인 김혜경 여사가 떠오르는 것 역시 용서하시라! 국민들은 조 단위의 돈이 논란이 되었던 대장동 사건보다 그보다 수백 수천 배 적은 몇 만원 단위의 돈으로 한우 등 먹거리를 임의로 결제했던 ‘법카 논란’에 더 많이 분노했던 것을 아직도 기억하기 때문이다. 비록 진짜 보릿고개는 우리 삶에서 멀어졌을지언정 우리 마음의 보릿고개는 아직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 않은가. 일국의 대통령 부인이 되고자 한다면 국민의 허기진 배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자. 영조가 또다시 물었다. “무엇이 가장 깊은고?” 그러자 어떤 이는 산이 깊다고 말하고, 또 다른 어떤 이는 물이 깊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한구의 여식만은 “사람의 마음이 가장 깊습니다”라고 말했다. 영조가 그 까닭을 물으니, “사물의 깊이는 자로 재서라도 헤아릴 수 있겠으나, 사람의 마음은 여간해서 재기도 헤아리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하는 것이 아닌가. 사람의 마음, 곧 인심(人心)은 헤아리기 힘들다. 때로 그것은 변덕과 변심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깊고 심오하다. 이제 대통령 당선인의 부인 김건희 여사의 차례다. 얼마 전 자신의 집 주변에서 소탈한 모습으로 경비견과 마주한 것처럼 이제는 국민과 마주할 때다. 진심으로 마주하려면 국민의 마음을 깊이 헤아려야 한다. 그 점에서 정순왕후한테 배워야 한다!
05.04 꼼수가 판치는 나라
릴레이 꼼수로 만든 검수완박, 방탄입법
청문회마저 꼼수판… 나라 꼴이 이게 뭐냐
# 대한민국은 ‘법치’가 아니라 ‘꼼수’의 나라다. 아니 꼼수가 판치는 나라다. 지난 토요일 검찰청법 개정안에 이어 어제 형사소송법 개정안마저 국회를 통과해 이른바 ‘검수완박’ 입법이 일단락되었다지만, 개정의 전 과정은 그야말로 유례없는 ‘꼼수의 대방출’이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꼼수는 역시 여당 의원의 위장 탈당이었다. 이견 조정이 필요한 안건에 대해 제1교섭단체 소속 위원과 이에 속하지 않은 위원을 동수로 구성해 대화와 타협을 도모하라는 국회법 취지를 완전히 뒤집어 여당 의원이 자진해서 위장 탈당한 후 ‘제1교섭단체 소속 위원’에서 ‘이에 속하지 않은 위원’으로 탈바꿈해 개정안들을 무사히(?) 법사위 안건조정위원회에서 통과시키지 않았나! 법 만들라고 뽑은 의원이 스스로 법을 무력화시키는 것을 넘어 비틀고 악용한 것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을 이보다 더 적확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또 있을까 싶다.
본회의에서 회기 쪼개기 방식으로 필리버스터를 무력화시키는 꼼수는 너무 자주 반복되다 보니 이제 식상할 정도다. 이런 꼼수의 극상들을 대하다 보니, 국회법에 명시된 개의 시간을 이리저리 편의적으로 옮긴 것은 차라리 ‘귀여운’ 아니 누구 말대로 ‘앙증맞은’ 꼼수에 속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자기 임기 중 마지막 국무회의를, 국회에서 넘어온 이런 꼼수 덩어리 법을 곧장 받아내기 위해 통상의 오전 10시가 아닌, ‘검수완박’ 입법이 종료된 직후인 어제 오후 2시에 열지 않았나! 정말이지 끝까지 꼼수였다. 아니 꼼수의 팀플레이였다.

▲/일러스트=박상훈
# 일주일 후면 평범한 국민으로 되돌아가 초야에 묻히겠다는 대통령과, 역시 일주일 후면 야당이 될 지금의 거대 여당이 이토록 무리하게 꼼수로 점철된 검수완박 입법을 강행한 이유를 세상은 이미 다 알고 있다. 그것은 ‘검찰 개혁’에 방점이 있는 것이 아니다. 철저하게 ‘방탄개악(防彈改惡)’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세간에 알려졌던 것처럼 문재인과 이재명을 지키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오히려 그 두 사람은 명분상 내세워진 것처럼도 보인다. 검수완박 방탄개악의 진짜 수혜자는 다름 아닌 국회의원 자신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여야가 따로 없어 보인다. 앞서 야당 원내대표가 국회의장 중재안을 덥석 물고 이것이 의총에서 추인되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더구나 이번에 통과된 검수완박 방탄개악 입법은 그 논란이 되었던 중재안과 별 차이가 없다. 개정 전 검찰청법은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를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의 6대 범죄로 규정하고 있었다. 이것이 “부패·경제 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로 바뀐 것은 중재안과 개정안이 동일하다. 여기서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등’이란 토씨가 산 것과 ‘선거’ 항목이 빠진 것이다. 우선 ‘선거’ 항목이 빠진 이번 개정안의 통과로 여야 가릴 것 없이 국회의원들은 선거 후 6개월 동안 사실상 ‘가위눌림’을 넘어 ‘공포’로까지 여겨졌던 검찰 수사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검찰청법 개정에 따라 선거 범죄에 대한 검찰 수사가 올해 말 폐지되기 때문이다. 결국 다음 번 2024년 총선에 출마하는 의원들은 선거법을 위반해도 검찰 수사는 받지 않게 된 것이다.
야당 의원들이 검수완박 중재안에 합의했다가 뒤늦게 여론의 비판 화살에 쫓겨 중재안을 뒤집고 다시 검수완박 절대반대로 돌아섰다지만, 속마음은 적어도 이 점에서만큼은 여야가 한통속이었다는 것을 국민들은 이미 꿰뚫듯 알고 있다. 그들에겐 검찰청법 개정안에 찬성하는 이유가 검찰 개혁의 완수이든, 혹은 반대하는 까닭이 국민 불편 초래이든 그것은 명분일 따름이고 진짜 속마음은 선거법을 위반해도 검찰을 피해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하나에 안도한 것이었으리라! 결국 여야 가릴 것 없이 국회 전체가 꼼수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 일년여 전 ‘검수완박 부패완판’이란 말을 하며 검찰총장 직을 내려놨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여당의 검수완박 입법 강행에 대해 보다 직접적이고 분명한 비판을 하지 않는 것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대목이다. 권성동 원내대표가 애초에 국회의장 중재안을 덥석 문 것이 독단적인 행동이었다는 당선인 측 얘기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검수완박 부패완판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던 윤 당선인의 조용한(?) 반응은 의외가 아닐 수 없다.
혹자는 당선인이 검찰청법 개정안의 ‘등’ 자에 어느 정도 안도하는 것 아니겠는가 하고 이야기한다. 그 ‘등’ 자 덕분에 부패·경제 외에도 대통령령으로 얼마든지 수사 대상을 확대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란 얘기다. 일견 수긍이 가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결국 그렇게 말하는 것은 윤 당선인 본인이 ‘시행령 대통령’에 안주하겠다는 얘기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그러니 검수완박 입법의 정당성에 대해 ‘국민투표’ 하자고 말하기 전에 대통령 당선인으로서 보다 분명하게 정리된 입장을 천명해야 하지 않겠나! 그것이 검찰총장에서 대통령으로 직행한 당선인이 결코 피해서는 안 될 첫 번째 국가적 사안에 대한 언명이기 때문이다.
# 검수완박 입법 강행이 어제의 일로 되어버리 듯하면서 이와 더불어 펼쳐지고 있는 새 정부 국무위원 내정자들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보노라면,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특히 사회지도층에서 꼼수는 정치의 영역을 넘어 일상으로, 아니 문화로 굳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꼼수로 덧칠 된 것 같던 교육부 장관 내정자는 어제 자진 사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조국 전 장관의 아빠 찬스와 비교되어 국회 안팎에서 탈락 1순위로 꼽혀온 정호영 복지부 장관 내정자에 대한 청문회에서는 한 여당 의원이 청문 후보자에 대해 윤 당선인 측에서 그를 살려두는 진짜 이유가 나중에 보란 듯이 버리는 카드로 쓰기 위한 또 하나의 꼼수라는 시중의 이야기를 들먹거리며 자진 사퇴를 압박하기까지 했다. 청문회마저 꼼수의 공방전이 된 셈이다. 오호통재(嗚呼痛哉)라!
06.01 “‘니 얼굴’을 그려줄게!”
# 요즘 빼놓지 않고 보는 드라마가 있다. 토일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극본 노희경)다. 제주에 터 닦고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연작으로 펼치는 보기 드문 수작(秀作)이다. 특히 지난 토요일 방송된 ‘영옥과 정준 그리고 영희 2′ 편은 이름난 탤런트들의 열연만이 아니라 ‘영희’로 분한 다운증후군 발달장애인 ‘정은혜’의 결코 연기 같지 않은 생생한 ‘등장’과 그녀가 떠난 후 남겨 놓은 ‘그림’ 때문에 나도 모르게 울컥하며 솟는 눈물을 참아낼 수 없었다.

▲/일러스트=박상훈
# 드라마 밖에 실존하는 정은혜는 1990년생으로 올해 나이 33세이지만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어서인지 여전히 덩치 큰 아이 같다. 그녀의 어머니는 스물여섯 살에 낳은 첫 딸이 백일도 채 안 돼 다운증후군 발달장애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롤러코스터를 타고 하늘 높이 올랐다가 그냥 거꾸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의사마저도 “열여섯 살까지나 살까?”라고 말할 정도였기에 그야말로 ‘절망이 일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방송을 통해 뉴질랜드의 다운증후군 발달장애인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과 딸도 절망과 이별하고 행복을 찾아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하지만 그건 마음만 먹는다고 이뤄지는 게 아니었다.
# 은혜가 학교를 다닐 무렵 학예회가 열린다 해서 가보면 어느 무대에서도 아이를 찾아볼 수 없었다. 혼자 교실에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발달장애인에게 진짜 현실은 더불어 함께할 기회는커녕, 존재 자체가 외면당하는 ‘사회적 실종 상태’ 그 자체였다. 그래도 은혜는 이리저리 학교를 옮겨 다니며 가느다란 사회적 끈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녀는 자기 방문을 걸어 잠그고 4년 넘게 자기 동굴 속에 스스로를 가둬버렸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퇴행’하며 조현병까지 얻었다. 문을 걸어 잠근 채 혼자 소리 지르고 온몸으로 몸부림치는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 이제 살 만큼 살았고 할 만큼 했어. 이제 이 차별의 세상 정리할래” 하는 극단적 순간도 맞이했었다. 본인도 힘겨웠겠지만 그때 함께 겪은 가족들의 고통 또한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 그러던 은혜가 삶을 포기하려던 어두운 동굴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그림’ 덕분이었다. 그녀는 스물여섯 살 되던 2016년 8월 양평 문호리의 북한강변에서 매월 세 번째 주말에 지역 토산물들의 난장(亂場)이 펼쳐지던 ‘리버마켓’에 나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여름에는 천막 아래 찜통더위에 땀을 비오듯 흘려 엉덩이에 종기가 그치지 않을 정도였다. 겨울에도 변변한 난로 하나 없이 강바람 부는 곳에 한나절을 앉아 손이 곱아들다 못해 다 트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그리기를 그치지 않았다.
# 한데 그녀가 그린 것은 풍경이 아니었다. 다름 아닌 ‘니 얼굴’이었다! 강변에 펼쳐진 리버마켓 천막 부스 안으로 누군가 들어와 뭔가를 그리고 있는 그녀에게 “뭘 그리고 있냐”고 물으면 은혜는 듣기엔 다소 퉁명스러운 말투로 “니 얼굴!”이라고 답했던 것이다. 그렇다. ‘니 얼굴’ 곧 시장을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캐리커처로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캐리커처’란 누군가의 특징을 포착해 묘사하는 그림이다. 은혜가 캐리커처를 그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단지 누군가의 외모적 특성을 파악했다는 얘기만이 아니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도망치려고만 했던 그녀가 애써 회피하지 않고 누군가와 ‘eye-to-eye’, 즉 눈맞춤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 자체로 하나의 관계적 도약, 아니 ‘생(生)의 도약(élan vital·엘랑 비탈)’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눈맞춤해가며 리버마켓에서 그린 그림이 족히 4000장이 넘는다. 그 한 장, 한 장이 쌓여 마침내 은혜 자신의 ‘생의 도약’을 이룬 것이다. 은혜의 어머니가 스물여섯에 그녀를 낳았다면, 은혜 자신도 스물여섯에 동굴 속에 갇혀있던 자신을 끄집어내 사람들의 ‘니 얼굴’을 그리는 캐리커처 화가로 스스로를 다시 세운 셈이다.
# 하지만 현실은 ‘은혜’와 같이 동굴 밖으로 나온 이들보다 여전히 동굴 안에서 죽기보다 싫은 삶을 부둥켜안은 채, 힘겹게 살아가는 발달장애인들과 가족들이 훨씬 많다. 지난달 23일 서울 성동구에서는 40대 어머니가 발달장애가 있는 여섯 살 아들을 안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같은 날 인천 연수구에서는 60대 어머니가 30대 뇌병변 중증장애인 딸에게 수면제를 먹여 숨지게 한 후 자신도 극단적 선택을 했지만 미수에 그친 사건마저 있었다. 오죽했으면 어미가 자식을 죽이고 동반 자살을 꾀했겠는가. 이 숨길 수 없는 현실을 알리고자 엊그제 인천 지하철 1호선 인천시청역 지하 1층엔 한 평 남짓한 공간에 발달·중증장애인 참사 분향소가 차려졌다. 지난 26일 용산의 윤석열 대통령 집무실 근처인 서울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에 이어서 두 번째 차려진 분향소였다. 거기 내걸린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 체계 구축’은 오가는 사람들에겐 그저 낯선 구호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부모와 자식이 동반 자살의 길로 내몰리는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에겐 “함께 살려 달라”는 피눈물 나는 절규다.
# 상처 입은 유기견과 유기묘에 각별한 애정과 관심을 쏟고, 집무실에 발달장애인 화가들의 그림을 걸어놓고서 이것을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설명까지 했던 윤 대통령이니만큼 이들의 애끓는 절규를 귀담아들을 것이라 믿는다. 그렇다면 이제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 체계 구축’에 대통령이 직접 나서 달라! 아울러, 정은혜 작가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 영화 ‘니얼굴(서동일 감독·은혜의 아버지다!)’이 오는 23일 개봉한다고 한다. 절망에 익숙하고 희망마저 불편해하는 우리 시대의 모든 이들이 보기 바란다. 함께 손 맞잡고 기어이 살아내자는 의미에서 오늘도 ‘니 얼굴’을 그려주는 은혜씨에게 마음 다해 박수와 응원을 보낸다.
06.29 처음 해본다는 대통령에게

▲/일러스트=박상훈
# 대통령실이 윤석열 대통령 첫 해외 방문에 동행하는 인원 전원에게 주의 사항이 담긴 행동 강령을 배포했다고 한다. 물론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것이, 대통령의 첫 해외 방문이니만큼 기강을 잡고 불미스러운 사고를 방지해 불필요한 논란을 자초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싶다. 그도 그럴 것이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의 첫 해외 방문 당시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이 현지에서 여성 인턴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일어 순방 결과에 옴팡지게 찬물을 끼얹은 일이 있지 않았던가. 그러니 대통령의 첫 해외 방문 수행원들이 모두 긴장해서 실수 없이 맡은 바 일을 잘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내린 행동 강령이리라 믿는다. 그런데 정작 가장 긴장해서 움직여야 할 이는 다름 아닌 ‘대통령 처음 해본다’는 대통령 본인과, 배우자 프로그램을 통해 ‘전시 기획자의 커리어를 뽐내보겠다’는 의욕에 찬 부인이 아닐까 싶다. 특히 유럽과 북미의 정상부인들과 왕실의 안주인들이 갖는 기본적인 문화적, 예술적 소양은 전시 기획자로 활동해왔다는 김건희 여사를 능가하면 능가했지 그에 결코 못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만큼은 꼭 기억해 줬으면 한다.
#대통령의 첫 해외 방문이 왜 굳이 우리와 직접 관련 없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냐고 물을 생각은 없다. 그 직전에 열린 G7 회의에 초대 못 받은 것도 아쉬울 뿐 따질 바는 못 된다. 나토 회의에 파트너로 참여하는 것이 대(對)중·러 관계에서 부채로 남을 것이란 우려도 어차피 차후의 문제이니 그냥 남겨놓자.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정회원만 30국에 이르는 다국적 회의에서 ‘한 방’에 국제 무대에 데뷔하는 게 꽤 매력 있어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매력적인 국제 무대가 준비되지 않은 이에게는 또 하나 곤혹스러운 장소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 나토 정상 회의 참석을 위해 스페인 마드리드로 날아가는 비행기에서 윤 대통령은 동행한 취재진에게 이렇게 말했다. “시간이 많지는 않아서 (정상들) 얼굴이나 익히고 간단한 현안들이나 좀 서로 확인하고 다음에 다시 또 보자는 그런 정도 아니겠냐. (그러니) 특별한 마음가짐이 있겠나.” 이게 대통령 입에서 나온 얘기인가 싶을 만큼 내 귀를 의심했다. 솔직히 국제 무대를 너무 만만히 본 것이다. 국제 무대에서는 양자 회담일지라도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한순간에 바보가 된다. 하물며 정상이 수십 명 모여드는 다자간 회의에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국제 무대에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덩그러니 따로 서 있던 모습을 기억하는 이가 적잖을 것이다. 아예 가지 않으면 모를까 시간과 돈 들여 간 것이면 그래도 뭔가 자리매김은 해야 하지 않겠나. ‘만나서 반갑다(Nice to meet you)’ 하고 ‘다음에 또 보자(See you again)’ 하며 돌아오겠다는 건가? 14시간 비행하는 동안 유로(EURO) 축구도 볼 수 있고, 잠도 잘 수 있다. 하지만 몽중일여(夢中一如), 꿈속에서도 분명한 핵심 화두를 놓치면 안 된다.
# 이미 보도된 바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행사를 최소 14건 소화한다고 한다. 나토 회원국과 파트너국이 함께 토의하는 자리에서 발언 시간은 3분을 할당받았다. 하지만 그 3분을 가볍게 볼 것이 아니라 극대화해서 활용하겠단 생각을 가져야 마땅하다. 중언부언하면 그 3분이 3초만도 못하지만, 잠자면서도, TV 보면서도, 책 보면서도 명확한 화두를 갖고 고민하면 그 3분의 발언을 통해 진짜 알찬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
왜 북대서양과는 지정학적으로 무관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나토 회의에 참석했는지, 그와 동시에 대북, 대러, 대중의 지정학적 필연 고리 속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어떤 안보와 평화 구상을 갖고 있는지를 핵심적으로 언급할 수 있어야 한다. 회의 중간중간 아주 짧게 만나는 다른 정상들과도 막연히 원자력 세일즈 하고 북핵 저지 운운하겠다는 식으로만 할 것이 아니다. 원자력 세일즈는 오랜 시간 공들여 밑판을 깔아야 한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뭔가를 팔려면 실무진 차원에서 다져놓을 일이 있고, 최고 지도자가 경제적 수준을 넘어서서 결정타를 때릴 수 있어야 하는 법이다. 그 자존심 강한 프랑스가 김영삼 대통령 시절, 우리나라에 테제베(TGV) 고속철을 팔기 위해 당시 미테랑 대통령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방한한 것은 물론, 병인양요 당시 강화도에서 가져간 의궤 중 한 권을 직접 들고 오지 않았던가! 멀리 갈 것 없이 얼마 전 한미 정상회담 당시 바이든 대통령이 준비해온 선물을 보면 정상 간 회담이나 회의를 앞두고 상대를 연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윤 대통령에게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은 랜돌프 선글라스와 함께 윤 대통령이 몇 차례 언급한 트루먼 대통령의 명언 ‘The Buck Stops Here’(책임은 내가 진다는 뜻)를 백악관에서 자란 나무에 손으로 새긴 탁상 푯말을 건네지 않았던가. 물론 그런 노회한 바이든은 윤 대통령에게 약 50조원에 가까운 이득을 챙겨 갔지만 말이다. 하물며 짧은 만남일수록 상대 정상이 순간 ‘아!’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예상치 못한 에피소드 한둘 정도는 준비해야 하는 것이 국제 무대에 서는 대통령의 자세다.
# 윤 대통령이 나토 회의에 참석해 처음 만나기로 했지만 불발된 사울리 니니스퇴 핀란드 대통령은 10년째 대통령 자리에 있는 이다. 비록 퇴임을 앞두고 있지만 자국 내 지지율이 90%에 이르는 인물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푸틴과 직접 얘기가 되는 거의 유일한 서방 측 정상이다. 이런 정상은 일정을 다시 조율해서라도 반드시 만나 푸틴에게 전할 나름의 핵심메시지 하나 정도는 던져놓고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그런 것을 고민하고 관철하는 것이 국제무대에서 대통령이 할 일이다. 누구나 대통령 처음 하지 두 번 세 번 하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없다. 그러니 치열하게 고뇌하고 좀 더 움직여야만 한다.
07.27 ‘겸손의 결핍’이 유리권력을 만든다
# 미국 공화당의 정치 지도자였던 존 매케인은 3대에 걸쳐 해군에 투신한 병역 명문가 출신이었고, 베트남 전쟁 당시 무려 5년 6개월간의 포로 생활을 끝까지 견뎌낸 오뚜기 같은 철인이었다. 그가 포로 생활을 하고 있을 때, 그의 아버지는 사실상 베트남 전쟁을 지휘하는 미 태평양사령관이었다. 월맹 측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우위를 갖기 위해 존 매케인을 포로에서 우선적으로 풀어줄 의향을 내비쳤지만, 매케인 자신과 그의 아버지는 약속이나 한 듯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결국 매케인은 포로 생활의 후유증으로 평생 장애를 짊어지고 살아야 했지만 결코 이를 후회하지 않았다. 포로에서 풀려난 후에도 군 복무를 지속하다 1981년 대령으로 예편한 매케인은 정치인이 되었고, 하원을 거쳐 상원의원이 된 후 미 대선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8년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생전에 “인격이 곧 운명”이라고 말하곤 했던 그는 정치의 문제는 ‘겸손의 결핍’에서 기인한다는 말을 유언처럼 남겼다.
# 작금의 윤석열 정부가 당면하고 있는 제반의 문제들도 그 뿌리를 살짝이라도 들춰보면 한결같이 ‘겸손의 결핍’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사안 그 자체보다도 그 사안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가 크다는 것이다. 당장의 현안으로 등장한 경찰국 신설을 둘러싼 소동도 마찬가지다. 날은 무덥고 우리네 삶은 장마통에 축축해진 이불 털 듯 퍽퍽한데, 난데없이 ‘쿠데타’ 운운하는 소리와 함께 한바탕 소란이 일고 있지 않은가. 행정안전부 내에 경찰국 신설 문제를 둘러싸고 총경급 경찰간부들이 모인 것을 아무리 비판하고 견제한다 해도 졸지에 ‘쿠데타’ 음모로 몰아붙이는 것은 나가도 너무 나간 것이다.
설사 일을 벌린 것은 경찰이었다 해도 그 일을 걷잡을 수 없이 키운 것은 행안부 장관 본인의 입이었다. ‘하나회’, ‘12·12′ 까지 소환하며 들먹거린 ‘쿠데타’ 운운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경찰국 신설에 관심 없던 경찰마저도 행안부 장관의 발언이 경찰에 대한 하대와 무시라고 느끼게 만들었다. 한마디로 감정선을 제대로 건드린 셈이다. 그 바람에 어제 국무회의에서 행안부 내 경찰국 신설을 위한 ‘행정안전부와 그 소속 기관 직제 일부 개정령안’이 통과돼 다음 달 2일 공포·시행되기에 이르렀지만, 사태는 진정되긴커녕 마른 날 바람 부는 산불처럼 번지고 있다.
급기야 오는 30일 ‘14만 전체 경찰회의’까지 강행하겠다고 예고되지 않았는가! 장관이 입으로 ‘쿠데타, 쿠데타’ 하더니 정말이지 말이 씨가 되어버릴 지경에 이르러 버린 게 아닌지 모르겠다. 정말이지 우려한 대로 경찰이 시위하면 도대체 누가 그 시위를 막나? 정부가? 군대가? 아니다. 그것을 막는 사람은 국민뿐이다. 국민의 마음을 못 얻으면 다 소용없고 부질없는 일들이다. 그런데 대다수 국민이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쿠데타 발언에 대해 지나치다고 생각한다면 일을 어찌 수습해야 하는가? 이 장관은 애초에 경찰국 신설과 관련해 좀 더 겸손하게 접근했어야 했다. 그런다고 일이 안 되는 게 아니지 않은가. 되레 지금처럼 으름장 놓고 압박하는 바람에 일이 덧나다 못해 수습 불가의 지경이 되고 만 것 아닌가. 한마디로 겸손의 결핍이 문제를 키운 것이다.
#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 추락 역시 나는 겸손의 결핍에서 왔다고 본다. 윤 대통령을 두고 시중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 중에 ‘건들건들’이란 의태어가 있다. 한때는 ‘도리도리’였는데 이젠 ‘건들건들’이다. 걷는 자세와 서 있는 품새를 보고 세간의 민초들이 본대로, 느낀 대로 툭툭 던진 얘기다. 흠집 내고 트집 잡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매일 출근하며 등청할 때 걷는 모습에서 또 도어스테핑에 임하는 자세에서 사람들은 그 ‘건들건들’이라는 의태어를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건들건들이란 의태어 안에는 대통령답지 못하다, 반듯하지 못하다, 진중하지 못하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지만, 무엇보다도 겸손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강하게 주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자세로 던지는 말마다 지지율을 곤두박질치게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 해보는 건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시죠?” “지난 정부에서 이렇게 훌륭한 장관 보셨습니까?” 겸손과는 거리가 먼 그 독선과 아집이 물씬 풍기는 이런 말들에 국민들은 고개를 젓게 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물론 대통령 본인만이 아니다. 부인 김건희 여사, 최측근 윤핵관으로 불리는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직무대행, 그리고 앞서 언급한 이상민 실세 장관 등도 마찬가지다.
# 생전에 존 매케인이 ‘인격이 운명이다!’라고 말했다면 나는 ‘태도가 운명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 하락과 윤 정권의 위기는 정책이나 이념 때문이 아니라 태도에서 기인한다는 점을 거듭 지적하고 싶다. 그 태도란 국민을 대하는 태도, 여론을 대하는 태도, 언론을 대하는 태도, 야당을 대하는 태도, 수하를 대하는 태도, 무엇보다도 역사를 대하는 태도를 말한다. 그리고 그 태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에 대한 겸손, 여론에 대한 겸손, 언론과 야당 그리고 아랫사람이라 여겨지는 이들에 대한 겸손, 무엇보다도 역사에 대한 겸손이 몸에 배어야 한다. 그래야 잡은 권력을 유지하고 제대로 쓸 수 있다.
# 화려해 보이지만 부서지기 쉬운 권력을 ‘유리 권력’이라 한다. 겸손이 결핍된 권력은 대개 유리 권력화한다. 그만큼 쉽게 부서진다. 작금의 윤석열 정권이 갖고 있는 권력도 그럴 소지가 다분하다. 겸손은 약해서 나오는 게 아니다. 강할수록 겸손해져야 하고, 그 겸손이 권력의 강도를 더욱 높일 수 있다. 지지율이 낮은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지지율을 낮추는 근본 원인이 겸손의 결핍이라는 데 진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아직 취임 100일도 되지 않은 윤석열 정부다. 그 성패의 판단은 아직 이르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을 되쳐서 새롭게 국정을 펼쳐내고 싶다면, 대통령을 위시해 윤석열 정부 스스로 더 겸손해져야 한다. 권력은 국민과 역사 앞에 겸손할 때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09.21 北核 법제화 앞에서 너무도 무덤덤한 나라

▲/일러스트=박상훈
#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을 보면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여왕의 관이 영국 해군 장병 140여 명이 운반하는 포차에 실려 운구되고, 그 뒤를 따르는 찰스 3세 국왕과 앤 공주 그리고 윌리엄 왕세자에 이르기까지 영국 왕실의 핵심 3인 모두 군복 정장을 갖춰 입고 걸으며 여왕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하던 모습이다. 젊은 왕세자야 그렇다 치고 일흔을 훌쩍 넘긴 찰스 국왕과 앤 공주마저 도보 거리만 족히 수㎞가 넘을 듯한 장례 여정을 흐트러짐 없이 꼿꼿한 자세로 걷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영국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바탕에 ‘상무(尙武)’의 기상과 ‘왕도 사병과 똑같이 함께 걷는다’는 정신이 왕실의 최상위로부터 깊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확인하는 장면이었다. 여왕이 즉위 전에 왕위 계승 서열 1위 신분이었음에도 자원해서 군에 들어가 2차 대전 중 군용 트럭을 몰고 탄약을 관리하는 역할을 했던 것을 상기해보면 이것이 ‘영국을 지켜낸 힘의 뿌리’구나 싶었다.
#작금, 한반도에 전쟁의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린다고 말하면 열의 여덟, 아홉은 비웃을 것이다. 북한 정권 수립일을 하루 앞둔 지난 8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7차 회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 무력 정책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새 법령을 채택한 바 있다. 이미 안보 불감증에 젖어버린 지 오래된 나라여서 그런지 몰라도 북한의 김정은이 ‘핵 무력 사용 법제화’를 공식화한 것에 우리나라 정부는 물론 언론과 여론조차 그리 심각하게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장보기가 겁날 정도로 하루하루 물가는 치솟고, 고금리에 대출 이자는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부동산에 ‘영끌’이라도 한 이들은 이미 폭탄을 맞은 듯 그야말로 전쟁이 따로 없을 지경이다. 그런데 귀에 딱지가 앉을 것 같은 ‘북핵’ 운운이 들리기나 하겠는가. 어디 그뿐인가. 코로나 때문에 차마 가게 문은 못 닫고 대출받아 버텨왔는데 그 원리금 상환일이 다가와, 코로나 상황에선 겨우 살아났지만 원리금 상환 때문에 다시 죽게 생긴 판이다. 북핵이 터지기 전에 내 인생이 터져버릴 지경인데 ‘핵 무력 사용 법제화’가 지금 무슨 상관이냐는 분위기마저 없지 않았을 것이다. 자녀 유학 보낸 집에서는 다른 무엇보다 환율이 비상이고 전쟁이다. 원달러 환율은 외환 위기 때 보다도 심하게 급등해 1달러당 1400원 선을 넘는 것은 시간문제처럼 보이고 1500선까지 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 때문에 원화 가치는 태풍 지나간 후 땅에 떨어진 낙과만도 못하게 됐다. 풍수해를 연거푸 겪은 이들은 이미 길바닥에 나앉은 처지가 되었지만 특별재난지구선포 운운하는 소리만 요란했지 정작 실제 풍수해 현장을 보면 가히 ‘버려진 국민’이란 말이 나와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이니 이게 전쟁이지 달리 뭐가 전쟁이랴 싶을 것이다. 이러니, 북한의 핵 무력 법제화가 우리 국민들 눈과 귀에 들어오겠는가.
# 사실 민간만이 아니라 정치권도 여야 할 것 없이 마찬가지다. 야당 대표는 그 보좌진의 다급한 문자처럼 줄줄이 기소냐 방어냐 ‘전쟁’ 중이고, 여당 역시 이른바 ‘n차 비대위’와 ‘n차 가처분’ 그리고 ‘n차 윤리위’의 반복되는 쳇바퀴 속에서 서로 총질하고 수류탄 터뜨리느라 정신이 없을 지경이니 그 자체로 ‘망할 놈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이러니, 북측의 이른바 ‘핵 무력 법제화’가 적어도 우리나라 안에서만큼은 별 볼일 없는 이슈가 되어 버린 것이 차라리 당연하다 싶다.
# 하지만 북한의 ‘핵 무력 법제화’는 현 단계에서 대한민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협하는 가장 첨예한 사안이다. 그것은 단순한 선언의 차원을 넘어서서 그동안에는 방어적 자위권 발동 차원에서 김정은이 직접 최종 명령을 하달해야만 핵 사용이 가능했다지만, 핵 무력 법제화 이후에는 상대의 공격 징후뿐 아니라 주도권 장악을 위한 작전상 필요시에도 핵을 사용할 수 있다고 공언한 것이다. 또 이른바 참수 작전에 따른 김정은 유고시에도 ‘국가무력지휘기구’가 김정은을 대신해 핵 사용 버튼을 누를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한반도 상황이 완전히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만 한다.
# 그래서 우리 안의 분위기와는 달리 밖에서는 이 사안을 심각하게 보지 않을 리 없다. 지난 18일 윤석열 대통령이 영국으로 출국할 즈음에 공개된 대통령의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도 이 사안은 비중 있게 다뤄졌다. 여기에서 윤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 미국의 핵우산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미국과 함께 마련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기존의 핵과 미사일 방어 체계는 물론 우주와 사이버 영역에서의 군사 능력까지 포괄한 패키지로 북핵의 확장 억제를 해나가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과연 미국은 우리에게 북핵 확장 억제를 위한 포괄적 패키지를 아낌없이 쓰는 것을 의심하지 않아도 될 정도인가? 우선 최근 미국의 군사적 관심은 대만해협에 집중돼 있고, 한반도에서는 멀어져 있는 느낌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한미 간의 FTA 협정에 위배되는 것임에도 자국 내에서 생산되는 전기차에만 보조금 지급을 강제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IRA)을 강행하지 않았나. 윤 대통령이 이번 방미 때 이 문제를 ‘통화스와프’와 더불어 풀어낼 수 있어야 한미 동맹은 견고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더구나 만약에 있을 수 있는 북핵 도발에 미국이 보유한 안보 자산을 다양한 패키지로 끌어다 쓰려면 미 하원의 적극적인 동의와 지지가 필요하기 마련인데 지난번 펠로시 하원의장 방한 시 40분 통화만 하고 만나지 않아도 됐을 만큼 한미 동맹은 의심할 여지없이 탄탄한 것인가. 이번 방미를 계기로 대통령은 한미 동맹의 속 알맹이를 채우는 데 몰입해야 한다. 그래야 ‘담대한 구상’을 넘어 ‘담대한 실행’이 가능할 수 있다.
10.19 카카오 사태와 조선왕조실록
페일오버(故障切換) 안돼 ‘초연결’이 ‘초먹통’ 됐다
미래를 닫지 않고 열려면 실록의 생존방식 배워야!
거기 ‘오래된 미래’가 있다
# 지난달 25일부터 이십여 일 가까이 북한이 항공, 방사포, 미사일로 거의 연일 다중 위협을 가해와도 별 동요 없던 대한민국이 지난 주말 카카오 등의 부가통신서비스가 장애를 일으키자 그 즉시 난리가 났다. 사실상 전 국민이 사용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카카오톡을 위시해 이에 기반한 각종의 국민 실생활 부가통신서비스 플랫폼들이 먹통이 되자,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스마트폰 생태계도 작동을 일시나마 멈췄던 것이다. 혹자에게는 카톡 등의 디지털 족쇄에서 해방된 ‘디톡스’의 시간이었다고 하지만 더 많은 이들에게는 먹고사는 일 처리가 안 돼 죽을 맛인 시간이었다. 사실상 우리처럼 스마트폰 생태계로 일상의 거의 모든 것이 작동하는 사회 시스템은 포탄과 미사일이 난무하는 물리적 ‘전면전’이 아니더라도, ‘부가통신서비스’가 먹통이 되는 ‘통신전’ 하나만으로도 끝장이 날 수 있다는 사실이 여실하게 방증된 셈이다.

/일러스트=이철원
# ‘초연결 사회’ 대한민국이 순식간에 ‘초먹통 사회’가 되어버린 원인에 대해 세부적으론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적지 않겠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그 이유는 너무나 단순하고 명백하다. ‘페일오버(failover)’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페일오버’란 컴퓨터 서버, 시스템, 네트워크 등에서 이상이 생겼을 때 이와 동일한 다른 예비 시스템으로 자동 전환하는 기능이다. 우리 언론에서는 흔히 ‘이중화’라고 쓰지만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만약을 대비해 삼중화, 사중화, 오중화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페일오버’란 용어를 거의 유일하게 자국어로 번역해 사전에 올리고 있는 나라는 중국인데 ‘고장절환(故障切换)’ ‘고장전이(故障轉移)’라는 단어로 번역하고 있다. 원어의 의미를 실체적으로 알고 번역한 것으로 사실에 가장 부합하는 번역어다.
# ‘페일오버’ 즉 ‘고장절환’의 역량이 곧 초연결 사회의 기본 바탕이다. 그런데 우리 선조는 비록 아날로그 영역이지만 진즉에 ‘페일오버’에 상응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이를 실행하고 있었다. 실록을 백업해서 여러 곳에 분산 배치하고 다양한 위기에 대응하며 이를 지속 관리했던 것이야말로 ‘페일오버’ 시스템의 정직한 구현이라고 볼 수 있지 않겠나! 조선 초기부터 실록이 완성되면 필사본의 오·탈자를 방지하기 위해 활자로 4부를 인쇄해서 한양의 춘추관에 한 부를 두고, 나머지 3부는 충주, 전주, 성주에 각각 사고(史庫)를 설치하여 보관하기 시작했다. ‘이중화’가 아니라 ‘삼중화’ 이상을 한 셈이다. 그리고 한 번씩 꺼내 볕에 말리는 ‘포쇄(曝曬)’를 실시해 곰팡이가 피거나 좀이 스는 것을 방지했다. 오늘날 구글 등에서 일년에 두 번 정도 ‘페일오버’ 시스템을 일제 점검하듯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고 있는 사고에서도 앞서 말한 ‘포쇄’를 실시해 백업된 콘텐츠의 건재를 확인했던 것이다.
# 그뿐이 아니었다. 모든 위험 요소를 상상했다. 1466(세조12)년 11월 17일 자 실록에 따르면, 당시 대사헌 양성지(梁誠之)가 충주, 전주, 성주 등의 실록 보관 장소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며 상소를 올렸다. 춘추관은 한양 도성 안에 있어야 하기에 어쩔 수 없다지만, 하삼도(下三道)에 있는 충주, 전주, 성주 등 세 곳의 사고는 관청 옆에 붙어 있어 화재의 위험이 크고, 외적이 침입하면 소실될 가능성도 크니, 인적이 드문 궁벽한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전주 사고는 지리산으로, 성주 사고는 금오산으로, 충주 사고는 월악산으로 옮길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 상소의 주장이 당시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결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전주 사고 본을 제외한 모든 사고의 실록들이 소실되어 불타버리고 말았다. 전주 사고본 역시 전주의 유생인 안의(安義)와 손홍록(孫弘祿) 등이 사고의 실록들을 전부 내장산으로 옮겼기에 간신히 지킬 수 있었다. 결국 양성지의 선견 있는 상소가 있은 지 140여 년이 지나서야 한양의 춘추관을 제외하고는 모두 첩첩산중인 마니산·오대산·태백산·묘향산에 각각 새로 사고(史庫)를 마련하고 전란 중에 살아남은 전주사고본을 재출간해서 실록 5부의 분산 보관 체계를 갖출 수 있었던 것이다.
# 그러나 조선 왕조 실록의 ‘페일오버’ 시스템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항상 실재하는 위기에 대응하며 변화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이후 남방으로부터의 침략 위기가 지나간 후 이번에는 북방으로부터 후금(청)이란 새로운 위기가 고개를 들기 시작하자, 조선 조정은 1614(광해군6)년 북쪽에 있던 묘향산 사고본을 남하시켜 전북 무주의 적상산으로 옮겼다. 이런 대비에도 불구하고 정작 한양의 춘추관 사고본은 이괄의 난(1624년)과 병자호란(1636년)을 거치면서 모두 불타 소실되어 버렸다. 그리고 강화도에 있던 마니산 사고 역시 1653(효종 4)년에 불이 났지만 간신히 전체 소실만은 면했다가 25년이 지난 1678(숙종 4)년에야 새로 지은 같은 강화도 내의 정족산 사고로 이전할 수 있었다. 결국 이런 다사다난(多事多難)을 겪으며 조선왕조실록은 오대산, 태백산, 적상산, 정족산 네 곳의 사고에 분산 배치되어 왕조가 망할 때까지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 같은 화재에 노출되었지만 네이버는 ‘페일오버’가 되고, 카카오는 그것이 안 됐다고 말하는데, 실제로 네이버와 카카오는 매출 규모 면에서 각각 6조8175억원과 6조 1366억원으로 비슷하지만, 페일오버 시스템 구축 등의 정보보호 투자액은 각각 350억원과 140억원으로 두 배 이상 차이가 났음에 주목해야 한다. 물론 돈의 문제만이 아니다. “불이 날 줄은 몰랐다”는 식의 안이함이 아니라 그 옛날 “관아 옆에 있으면 화마의 위험이 커지니 더 궁벽한 곳으로 가야 한다”는 양성지의 간언처럼 최대한의 상상력을 동원해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마저 대비하며 페일오버 시스템을 손보고 재구축해야만 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카카오 등은 현재 법과 제도상 부가통신서비스로 분류되지만 더 이상 ‘부가(附加)’ 차원이 아니라 ‘기간(基幹)’을 넘어서 우리 일상의 디지털 스마트폰 생태계를 지배하는 플랫폼 왕국이 되어버린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말이지 더 철저하게 개선하고 대비해야 한다. 이것이 카카오 사태를 계기로 ‘오래된 미래’로서의 조선왕조실록의 ‘페일오버’ 시스템을 다시 들여다본 까닭이다.
12.14 ‘꿈’ 냄새조차 아쉬운 대한민국
더는 꿈꿀 수 없으니 아이도 낳지 않는 것
대한민국 다시 서려면 꿈꿀 수 있는 나라 돼야
# 얼마 전 제주의 구도심에 있는 허름하고 오래된 가옥에 딸린 마당 한가운데에 장작불을 피워놓고 몇몇 작가와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컬렉터이자 기업가 출신 화가인 ‘씨킴(김창일)’이 내게 툭 “꿈 냄새가 나지 않아요?” 하며 말을 건넸다. 마주한 작가들은 여러 해 동안 비어있던 공간을 임차해 이리저리 손봐가면서 아트스페이스 ‘빈공간’이라 이름 붙이고 작업장과 전시장으로 쓰고 있었는데 거기서 빵도 직접 구워낸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씨킴이 내게 던진 말은 분명 ‘빵’ 냄새가 아니라 ‘꿈’ 냄새였다.
# ‘꿈’ 냄새의 진원지는 다름 아닌 그곳 작가들이었다. 30, 40대이니 젊다고만 얘기하기도 뭣한 작가들이다. 그중 ‘빈공간’의 주인장 격인 이상홍 작가의 드로잉 작품 중에 파란색 잉크로 그린 ‘발’ 그림이 눈에 띄었다. 작가의 부연 설명을 듣자 하니 자기가 40세가 되고 아버지가 70세가 되었을 때, 아버지와 마주하니 서먹하다 못해 별반 할 말도 없어,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고 시선이 아래로만 내려가 발만 보게 되었는데 가만 보니 발이 닮았더라는 것이다. 그것을 모티브 삼아 그린 작품이라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자기를 향한 아버지의 ‘꿈’ 대부분을 저버리고 살고 있지만 역으로 자신과 닮은 발을 가진,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먼저 겪었을 아버지의 발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다시 ‘꿈’을 생각하고 되찾게 되었노라고 고백하듯 말했다. 비록 그 ‘꿈’이 아버지가 자신에게 두었을 ‘꿈’과는 사뭇 다른 것일지라도 말이다.
# 흔히 ‘꿈’ 하면 하늘을 쳐다봐야만 할 것 같지만 역설적인 얘기로 ‘꿈’은 하늘을 쳐다본다고 생기거나 품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 작가의 드로잉에 담긴 사연처럼 되레 발을 보고 땅을 보고 아래를 볼 때 더 근본적이고 뿌리에 잇닿는 자기 본유의 ‘꿈’을 발견하고 발굴할 수 있는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정작 대부분의 경우, 당면한 현실의 삶 속에서는 하늘을 쳐다보나, 땅을 굽어보나 매한가지로 꿈은커녕 한숨만 나오기 일쑤다. 뭐 하나 제대로 될 것 같지 않고, 팍팍한 삶은 코로나 사태 전이나 후나 가릴 것 없이 똑같다. 게다가 더 나아질 기미조차 없이 외려 떨어져라, 떨어져라 하며 등 떠미는 형국이니 이런 느닷없는 ‘꿈’ 얘기 자체가 공허하다 못해 되레 화가 치밀 정도일 것이다. 꿈꿀 건더기가 아예 없는데 뭘 갖고 무슨 꿈을 꾸란 얘기냐고 성난 메아리가 울려올 판이다.
# 최근 골드만삭스가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예견했다. 2050년에는 저출산과 초고령화로 경제 순위 면에서 올해 세계 12위에서 15위권 밖으로 밀려날 전망이라고 한다. 한때 ‘하나만 낳아 잘 키우자’고 산아 제한을 국가 목표로 정했던 대한민국이 어찌하여 단 한 세대가 바뀌었을 뿐인데 세계에서 가장 출산율이 낮은 나라가 되어 버린 것인가 곰곰 생각해보면 한마디로 더는 꿈꿀 수 없기 때문에 아이도 낳지 않으려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 단순하게 초(超)저출산에 따른 생산 인구 감소만이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 더욱더 심각한 것은 국민과 국가 전체가 ‘꿈’을 상실한 상태로 치달아가는 작금의 폭주하는 현실이리라.
# 국가 지도자의 최고 덕목은 국민에게 꿈꿀 수 있는 터전을 열어주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 박정희가 온갖 비난과 비판 속에서도 여전히 대한민국 중흥의 대통령으로 각인될 수 있는 까닭은 그가 기아 선상에 머물던 국민들에게 밥과 빵을 통해 굶주림을 해결할 수 있게 해주고 경제성장을 일궈낸 데에만 있지 않았다. 그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다 함께 잘살아보세”라는 새마을 정신도 일깨웠지만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국민으로서 “새 역사를 창조하자”는 국가적 ‘꿈’, 곧 비전을 제시한 시대의 위인이었다는 점이리라. 비록 그것이 일본 메이지유신의 교육 칙어를 본뜬 것이라 하여 비판과 비난을 적잖이 받기도 했지만 54년 전인 1968년 12월 5일 천명한 국민교육헌장을 통해 국민이 할 바와 국가의 꿈과 비전을 분명하게 적시한 것은 결코 욕먹을 일이 아니라 길이길이 기억하고 되새겨 선양해야 할 일이었다. 박종홍과 안호상이 기초했다는 국민교육헌장은 지금 다시 읽어봐도 뭐 하나 더하고 뺄 것조차 없는 명문이다. 글이 미려하다기보다 거기 국민과 국가가 한 몸이 되어 나아가야 할 방향과 꿈이 담겼기 때문이다. 그러니, 반세기가 지나 지금은 사라지고 잊힌 그 헌장에서조차 작금의 대한민국과 국민이 상실한 꿈의 흔적을 재발굴해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드는 것이다.
# 세종의 꿈, 이순신의 꿈, 안중근의 꿈, 박정희의 꿈… 어쩌면 이런 꿈이 이 나라를 여태 지탱해오고 급기야는 세계가 놀라는 기적의 부흥을 가능케 한 기저(基底)의 힘이리라. 백성을 불쌍히 여겨 한글을 만든 임금. 그의 꿈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문화 강국 대한민국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으리라. “신에게는 배 12척이 남아 있습니다”라며 절체절명의 악조건 속에서도 최후 승리의 꿈을 놓지 않았던 충무공이 있었기에 조선은 살아남을 수 있었고, 오늘의 대한민국 역시 그 꿈의 뿌리에서 다시 건재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면서도 동양 평화를 꿈꾼 안중근의 꿈이 있었기에 망국의 설움을 딛고 대한민국이 다시 일어서 선진국 반열에 설 수 있게 되었던 것 아니겠는가.
# 검은 호랑이해라고 떠들썩했던 연초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올해의 마지막 달마저 절반을 넘어가며 이제는 진짜 연말이다. 이 연말에 작금의 대한민국은 안타깝게도 전후좌우, 위아래 할 것 없이 모두 꽉꽉 막혀 있는 형국이다. 선진 대한민국이 나아갈 새로운 국가 비전의 제시는커녕 아예 ‘꿈’ 냄새조차 없다. 과거 청산도 필요하다지만 새로운 미래 한국에 대한 구체적인 ‘꿈’의 제시 없이 과거에 칼만 쑤셔댄다고 결코 국민 다수가 손뼉 치지 않는다. 제발 내년 검은 토끼의 해에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은 물론 윤석열 정부 역시 대한민국의 새 ‘꿈’을 품고 제시하며 그것을 이루려는 몸부림을 보여달라. 그래야 대한민국이 살고 우리 모두가 산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