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준의 World & Idea 2017-2018 문화일보 논설위원
황성준 논설위원
2017
04월 10일 ‘기성정치 틀 붕괴’ 佛대선 타산지석
차기 대통령 선출까지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현직 대통령의 지지율은 밑바닥이고 집권당 후보는 당선권 밖에 있으며, 1위로 달리던 급진 성향의 대선 후보에 대한 반대 세력 결집으로 ‘중도’후보가 급부상하여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나라. 또, 누가 대선에 승리하느냐에 따라 국제정치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 있기에 주변 국가들이 대선 결과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나라. 한국이 아니라 프랑스의 대선 상황이다. 오는 23일이 대선 1차 투표일인데, 50% 이상 득표자가 없을 땐 1·2위 후보 2명을 놓고 다음 달 7일 결선투표를 치르게 된다.
2012년 5월 대통령 결선투표에서 51.7% 득표로 당선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난해 말 4%까지 떨어졌다. 이는 높은 청년실업률과 낮은 경제성장률, 그리고 사회복지 구조조정으로 인한 민심의 이반 탓이다. 집권 사회당은 브누아 아몽(50) 전 교육부 장관을 대선 후보로 내세웠으나, 한 자릿수 지지율을 벗어나지 못한 채 5위 이하로 처져 있다. 그러나 힘 못 쓰고 있긴 제1야당인 공화당도 마찬가지다. 프랑수아 피용(63) 공화당 후보는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급진 좌익 성향의 장뤼크 멜랑숑(66) 좌파당 후보와 3∼4위를 다투고 있다. 프랑스는 형식상 다당제이지만, 드골주의 기반의 공화당과 좌파를 대표하는 사회당, 양당을 기본 축으로 정당정치가 이뤄져 왔다. 그런데 전통적 좌·우 양대 정당이 공동 몰락하고 있다.
현재 1위는 ‘프랑스판 트럼프’로 불리는 마린 르펜(49) 국민전선 후보. 국민전선은 극우로 분류되는데, 외교에서는 반미·반유럽연합(EU)·친러 노선을, 경제에서는 사회당 정부보다 더 국가주의적이고 보호무역주의적인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심지어 노동의 유연성을 강조한 올랑드 정부의 노동법 개혁을 ‘사회적 억압’이라고 맹공격하는 등 사회복지 문제에서 급진 좌파와 유사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는 정책뿐만이 아니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몰락한 공업지대를 뜻하는 ‘러스트 벨트’ 유권자들이 트럼프를 지지했듯이, 사회당의 전통적 지지층이었던 산업 도시 노동자들이 르펜을 지지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르펜은 자신의 아버지인 장마리 르펜을 포함한 일부 극단적 반유대주의자를 당에서 축출하는 등 ‘탈악마화(dediabolisation) 노선’을 통해 온건 유권자에게 다가서려 노력하고 있으나, 비토 세력이 가장 많다.
반(反)르펜 세력의 구원투수로 등장한 인물이 에마뉘엘 마크롱(40) 전 경제부 장관이다. 마크롱은 지난해 4월 정당이라기보다는 시민단체에 가까운 디지털 플랫폼 기반의 ‘전진(앙 마르슈)’을 조직해 기성 정당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마크롱은 사회당 출신이지만 친시장론자로서 과도한 사회복지의 대폭 축소를 주장하며 ‘중도’를 내세우고 있다. 이에 영국의 토니 블레어 전 총리의 ‘제3의 길’과 미국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신(新)민주당 노선’과 비유되고 있다. 마크롱은 15세에 24세 연상인 자신의 학교 선생님과 만나 18세부터 동거했다가 2007년에 결혼한 이야기로도 유명하다.
이번 프랑스 대선의 가장 큰 이슈 중의 하나가 프랑스가 EU를 탈퇴하는 ‘프렉시트(Frexit)’ 문제다. 그러잖아도 브렉시트로 휘청이고 있는데, 프랑스마저 떠나면 EU는 붕괴하거나 ‘독일연합’으로 전락하게 된다. 1990년대만 하더라도 유럽에선 국민국가(nation state)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낡은 것으로 취급됐다. 심지어 ‘유럽합중국’이 미합중국을 능가할 것이란 주장도 나왔다. 그러나 선출되지 않는 권력인 ‘브뤼셀 관료주의’에 대한 국민주권론적 비판과 ‘글로벌 엘리트’에 대한 소외 계층의 반발이 뒤섞이면서, ‘세계화에 대한 국민국가의 역습’이 일어나고 있다. 극우와 극좌로 분류되는 르펜과 멜랑숑 모두 탈(脫)EU를 지향한다. 두 노선이 정면 대립하는 것은 이슬람계 이민에 대한 태도다. 르펜은 이슬람계 이민에 결사반대하나, 프랑스 급진좌파는 무슬림계 이민자들을 소외되고 억압된 신(新)프롤레타리아로서 변혁의 동반자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1차 투표에서 50%를 넘는 후보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르펜과 마크롱이 결선투표에 진출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비토 세력이 적은 마크롱이 유리할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프랑스 대선은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큰지 보여준다. 기존의 좌·우 이념의 틀로는 분석하기 어려운 현상도 속출하고 있다. 그리고 누가 되든 6월로 예정된 총선에서 다수파를 차지하지 못하면 안개 정국으로 빠질 수밖에 없다. 점점 까다로워지고 복잡해지는 4차 산업혁명시대 유권자 기대를 충족시킬 다수파를 형성하기엔 기존의 정당이나 이념으론 역부족이란 사실은 한국이나 프랑스나 마찬가지이다.
04월 28일 하이브리드 전쟁 시대가 도래했다
러시아는 현재 ‘하이브리드 전쟁’의 최강국이다. 이에 맞서기 위해 미국·영국·프랑스·독일·폴란드·스웨덴·핀란드·라트비아·리투아니아 등 9개국은 ‘유럽 하이브리드 위협 대응센터’를 올 하반기에 핀란드 헬싱키에 개설하는 양해각서에 지난 11일 서명했다. 러시아의 군사적·비군사적 복합 위협에 공동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네덜란드 군(軍) 정보기관인 MIVD는 24일 발간한 연례보고서를 통해 러시아 하이브리드전을 테러 다음으로 심각한 위협으로 규정했다. 가짜 정보 유포 등 사이버 전술로 서방 국가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 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2일 러시아가 친러 성향의 마린 르펜 후보 당선을 위해 가짜 뉴스를 보도했다고 지적했으며,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도 러시아 개입 논란이 일어난 바 있다.
하이브리드전이란 정규전과 비정규전 그리고 사이버전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전쟁 개념이다. 또, 그 수행 주체가 국가를 넘어 반군(叛軍), 테러단, 심지어 범죄집단까지 확대된다는 점에서 기존 전쟁과 구별된다. 정규전과 비정규전이 배합된 전쟁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베트남 전쟁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대개 정규전 부대와 비정규전 부대가 분리돼 있었으며, 이들의 작전을 병행한 ‘복합전(compound war)’이었다. 그러나 하이브리드전은 정규전 부대와 비정규전 부대가 분리되지 않은 채 정규전과 비정규전을 함께 수행하는 새로운 형태다.
서구의 하이브리드전 개념은 2006년 이스라엘-헤즈볼라 전쟁 경험에서 도출됐다. 정규전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과거의 게릴라전과도 다른 형태의 전쟁, 그리고 군사작전보다는 정치적 지지 동원과 국제 여론 영향력 행사에 더 큰 방점이 찍힌 전쟁 형태를 개념화한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에선 ‘게라시모프 독트린’이라 불리는 ‘선전포고 없이 정치·경제·정보 및 기타 다른 비군사적 조치를 현지 주민의 항의 잠재력과 결합시킨 비대칭적 군사행동 개념’이 별도로 발전해 왔다. 이 명칭은 2013년에 이 개념을 정리해서 발표한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게라시모프 독트린의 맹아적 행태는 2007년 4월 에스토니아 사이버 전쟁에서 첫선을 보였다. 에스토니아 정부가 수도 탈린에서 소련군 동상을 철거하려 하자, 에스토니아 국민의 약 30%를 차지하는 러시아계 주민들이 강력히 항의하기 시작했으며, 이에 정국이 혼란해졌다. 바로 이를 틈타 러시아가 ‘애국 해커’를 동원, 에스토니아 인터넷망을 마비시켰던 것이다. 나토(NATO)는 이 사건을 계기로 ‘탈린 매뉴얼’이란 사이버전 교전수칙을 만들었다.
그 후 2008년 8월 러시아·조지아 전쟁에선 정규전과 사이버전이 배합된 형태로 진화했다. 그리고 마침내 2014년 3월 크림반도 합병과 그 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동우크라이나 내전에서, 분리주의 반군과 위장 침투한 러시아 정보·특수전 요원에 의한 정규전 및 비정규전, 그리고 여기에 정치·정보·심리전이 결합한 하이브리드 전쟁의 완성된 형태가 나타났다. 그밖에 러시아계 주민들이 몰도바로부터 분리 독립을 요구하고 있는 트란스니스트리아에서도 낮은 강도의 하이브리드 전쟁이 전개되고 있다.
러시아 하이브리드전 개념에서 핵(核)은 주요 전제 조건이다. 핵은 사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 국가의 개입을 막기 위한 수단이다. 기존 개념으론 전쟁이 발발한 것인지 아닌지조차 애매한 하이브리드전에서 핵으로 무장한 러시아에 맞서 정면 개입하는 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사이버전의 경우 상대방의 인터넷망을 교란·마비시키는 사이버 공격, 그리고 해킹을 통한 정보 탈취 못지않게 거짓 정보 유포 등을 통한 정치 선동 및 심리전이 중요하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따라서 군만이 아니라 정보기관도 전투 행위 주요 주체일 수밖에 없으며, 정보심리전을 위한 정치 이념과 콘텐츠가 매우 중요한 요소다.
미국은 1991년 걸프전, 2001년 아프가니스탄전, 2003년 이라크전을 통해 첨단기술을 통한 ‘군사 혁신(Revolution In Military Affairs)’의 위력을 과시했다. 이에 맞서 러시아는 하이브리드 전쟁 개념을 발전시켜 왔다. 문제는 한반도다. 북한이 하이브리드전 개념을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핵 장착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완성을 통해 미국의 개입을 저지하고 종북세력과 결합한 사이버 정치 심리전을 통해 대한민국을 혼란에 빠뜨린다면, 한국군이 자랑하는 최신식 재래식 무기는 별로 쓸모없게 될 수도 있다. 여기다 하이브리드전에서 주요 역할을 해야 할 정보기관마저 무력화된다면 상황은 더욱 불리해진다. 이는 머지않아 현실로 닥칠 수 있다. 대선 후보들을 보면 이런 인식 조차 없는 것 같다.
05월 17일 이란 大選의 한반도 ‘나비효과
오는 19일 이란에서 대통령 선거가 실시된다. 이번 대선 결과에 따라 국제 원유가가 요동칠 수 있다는 전망만 보더라도 결코 먼 나라의 일이 아니다. 그리고 지난해 1월 대(對)이란 경제제재가 풀리면서 이란으로 몰려간 많은 한국 기업의 운명도 달려 있다. 또, 이번 이란 대선 결과로 이란 핵 합의가 깨지거나 흔들릴 경우 중동 평화에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은 물론, 차후 북핵(北核) 해법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북·이란 핵·미사일 커넥션’에 대한 우려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대선 판도는 온건파인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 강경파인 에브라힘 라이시 전 검찰총장 간 양자 대결로 압축되고 있다. 로하니와 라이시,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테헤란 시장 간의 1강 2중이었던 구도는 15일 갈리바프 시장이 라이시 지지를 선언하고 사퇴함으로써 바뀌었다. 갈리바프의 사퇴는 로하니 당선을 저지하려는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입김 때문으로 보인다. 이로써 온건파와 강경파 간 맞대결로 전환됐는데, 19일 선거에서 50% 이상 득표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26일 1·2 위가 결선투표를 치르게 된다. 현재 남은 대선 후보는 모두 5명인데, 나머지 3명의 지지는 미약하다.
이란 정치세력을 흔히 보수파·중도파·개혁파로 분류하는데, 강경보수·중도보수·온건보수로 명명하는 것이 더 엄밀하다. 1979년 이란 헌법의 토대인 ‘벨라야트 파키흐(Velayat-e Faqih)’란 이슬람 정치 개념에 대한 이해 없이는 이란 정치 체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기 힘들다. 벨라야트 파키흐는 서방에서 흔히 ‘이슬람 법학자의 후견제’(Guardianship of the Islamic Jurist)로 번역되는데, 벨라야트는 통치(rule)·우위(supremacy)·주권(sovereignty)을 포괄한 개념이다. 즉, 헌법 위에 이슬람 율법이 있으며, 최고 주권은 이슬람 율법 해석권을 가진 ‘최고 지도자’에게 있다.
이란 헌법은 대통령이 아닌 최고 지도자를 국가수반으로 규정하고 있다. 최고 지도자는 군·혁명수비대·경찰·정보기관·국영 언론기관의 책임자와 헌법수호위원회 위원 12명 중 6명을 임명한다. 헌법수호위원회는 이슬람 율법에 따른 위헌법률심사권을 지니고 있으며, 대통령과 의회의 후보 승인권을 지니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도 1600여 명이 후보 등록했으나, 8명만 승인받을 수 있었다. 2명은 조기 사퇴했다.
이처럼 이란의 절차적 민주주의는 최고 지도자의 이슬람법 통치 테두리 안에서만 이뤄질 수 있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과 의회를 국민이 직접 선출한다는 점에서 중동 지역 다른 이슬람 국가들에 비해 발전된 형태로서, 일정한 한계를 지니고 있으나 강경파와 온건파가 국민의 지지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이란에서 보수파란 반(反)서구·반(反)시장이란 점에서 미국이나 한국의 보수와는 정반대다.
이번 이란 대선의 쟁점은 핵 합의와 경제 문제다. 얼핏 별개로 보이는 이 두 문제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온건파 로하니는 서방과의 핵 합의를 통해 경제 제재를 풀어 경제를 회복시키겠다는 공약으로 지난 2013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실제로 로하니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 5개국 +독일과의 협상을 통해 2015년 5월 핵 동결을 골자로 한 이란 핵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 결과 지난해 1월부터 이란 경제 제재가 풀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핵 협상 과정에서 ‘영웅적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의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이란의 핵 동결은 ‘전략적 동결’이라기보다는 경제 제재에 따른 ‘전술적 후퇴’였다. 강경파도 경제 회복을 염원하는 이란 국민 여론을 외면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경제제재 완화와 함께 서구 정보 유입 속도가 가속화되자, 강경파가 위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자칫 체제 자체가 붕괴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대두한 것이다. 마침 경제 회복 속도는 이란 국민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원유 생산과 수출량이 경제 제재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고, 6.6%의 경제 성장을 이룩했지만, 대다수 이란인은 아직 회복세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 공식 발표에 따르더라도 실업률은 12.4%이고, 청년 실업률은 25.9%에 달한다. 이 상황에서 정부 보조금 확대를 통한 민생경제 보호를 외치는 강경파들의 주장이 농촌과 도시 빈곤층에서 먹히고 있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설령 강경파가 승리하더라도 대다수 이란 국민은 경제 제재 이전 상황으로 되돌아가길 원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사회의 단결되고 강력한 경제 제재와, 이란 내부로의 지속적인 정보 유입 노력이 이란 사회 저변의 흐름을 변화시킨 것이다. 이런 근본 변화가 전제되지 않는 한, 핵 협상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음은 북핵 해결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임은 분명하다.
05월 31일 필리핀이 IS 기지化하고 있다
“3명까지 강간한다면, 내가 저지른 짓이라고 해 줄 것이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지난 26일 이슬람 반군과 교전 중인 필리핀군 장병에게 한 말이다. 여성 인권단체를 중심으로 항의가 빗발치자, 대통령궁 측은 군인들의 사기를 올려주기 위한 ‘농담’이었을 뿐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쉽게 진정되지 않고 있다. 그러지 않아도 정부군에 의한 반군 지역에서의 성폭행 사건이 문제 되곤 했기 때문이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유세 도중에도 자신이 시장이었던 다바오에서 1989년 발생한 교도소 폭동 사건 당시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 살해된 호주 여성 선교사를 언급하며 “내가 먼저 해야 했는데”라고 말한 적이 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 24일 민다나오섬에 60일간 계엄령을 선포하고, 대대적 이슬람주의 반군 소탕전을 시작했다. 이번 계엄령은 이슬람국가(IS) 지부를 자처하는 ‘마우테 그룹’이 인구 20만 명의 마라위 시(市) 일부를 점령하고 정부군과 대치하면서 시작됐다. 마우테 그룹이 마라위를 공격·점령한 것은 ‘동남아 이슬람주의 세력의 아미르(수장)’로 불리는 이스닐론 하피론을 구출하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 현상금 500만 달러가 걸린 하피론은 지난 1월 필리핀군의 공습으로 부상 당한 뒤 거기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정보를 얻은 필리핀군이 은신처를 습격하자 하피론 추종세력이 강력히 저항했고, 마우테 그룹이 구원군으로 투입된 것이다.
필리핀 인구 1억 명 중 약 80%는 가톨릭이다. 그러나 약 500만 무슬림 모로족(族)이 민다나오섬에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다. 모로란 원래 스페인인들이 북아프리카 무슬림을 가리키던 말인데, 16세기 후반 스페인이 필리핀을 점령하면서 같은 무슬림이란 이유로 필리핀 현지 무슬림도 모로라 부르면서 그 명칭이 굳어졌다. 모로족은 일찌감치 분리·독립운동을 벌였다. 대표적인 것이 모로민족해방전선(MNLF)이다. 그러나 MNLF는 필리핀 정부와 1996년 평화협정을 맺고 ‘무슬림 민다나오 자치 지역(ARMM)’이란 자치 정부에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MNLF의 온건 노선에 반발해서 떨어져 나온 조직이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이다.
그러다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 반소 항전에 참전했던 ‘아프간 베테랑’들이 귀국하면서 운동의 질적 변화가 일어난다. ‘아부 사야프(도검 제작자의 아버지)’가 조직되고, 오사마 빈 라덴의 알카에다와 연계한 테러 투쟁이 본격화된다. 1994년 김포공항 등 동아시아 공항에서 이륙한 12편의 여객기로 자살 공격하려던 ‘보징카 작전’을 추진하다 적발되기도 했다. 그런데 국제적으로 알카에다가 퇴조하고 IS가 득세하면서 아부 사야프 조직 일부가 IS로 전향하기 시작했다. ‘남(南)라나오주(州) 이슬람국가(IS)’도 그중 하나인데, 흔히 지도자 마우테 이름을 따 마우테 그룹으로 불린다.
알카에다와 IS 전략의 차이는 알카에다는 소수 정예 조직에 의한 반미 테러투쟁을 선호하는 반면, IS는 대중 운동을 기반으로 지역 거점을 장악하고 국가조직 건설에 주력한다는 점이다. 이라크·시리아에 거점을 확보하고 있는 IS는 동남아 진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세계 최대의 이슬람국인 인도네시아를 비롯해 말레이시아·브루나이 등이 있기 때문이다. 필리핀을 주목한 것은 현지 무슬림들에게 오랜 투쟁 경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7000여 개의 섬으로 이뤄진 필리핀의 치안 및 행정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이번 마라위 전투가 보여준 것 같이 아부 사야프나 마우테 그룹에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싱가포르인 등 많은 외국인이 포함돼 있다.
미국과 주변 동남아 국가들은 필리핀 민다나오가 급진 이슬람주의자들의 ‘해방구’가 될까 우려하고 있다. 이에 두테르테의 계엄령과 대대적 토벌전을 지지하고 있다. 그런데 필리핀 주류 사회의 입장은 이중적이다. IS 추종 과격세력을 소탕하는 것에 찬성하면서도, 계엄령 선포가 전국으로 확산될 경우엔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 시절의 계엄령 철권통치 시대로 회귀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아도 두테르테의 ‘마약과의 전쟁’에서 이미 4000명이 생명을 잃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960년대 필리핀은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의 부국이자 대표적 민주주의 성공 사례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때 “필리핀만큼만 됐으면” 하고 부러워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현재 필리핀은 사실상 내전 상태에 있고, 아시아에서 가장 범죄율이 높은 국가다.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보다 필리핀에 거주하는 것이 더 위험하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다. 선거라는 정당한 절차로 탄생한 권력이라도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기본 원리가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면 ‘선출된 전제군주(elected autocrat)’로 흐르게 된다.
06월 14일 카타르 사태, ‘아마겟돈’의 前兆인가
지난 5일 사우디아라비아·이집트·아랍에미리트(UAE)·바레인 등 아랍 수니파 국가들이 카타르 단교(斷交)를 선언하면서 시작된 카타르 사태는 냉전 당시의 ‘베를린 봉쇄’를 연상케 하는 ‘카타르 공수 작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우디는 카타르 식량 수입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남쪽 육로를 봉쇄했으며, UAE는 카타르 선박이 제벨 알리 항(港)으로 들어오는 것을 금지했다. 카타르는 수심·설비 등의 문제로 UAE의 제벨 알리 항을 수출입 환적항으로 이용해 왔다. 이에 카타르는 이란 영공을 통해 식량을 공수하고, 오만의 항구를 통해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출하는 것으로 맞서고 있다.
현재 중동 정세는 반(反)카타르와 친(親)카타르의 대립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사우디 등 아랍 수니파 국가들이 반카타르 전선을 형성하자, 비(非)아랍 국가인 이란과 터키가 카타르 구하기에 나서고 있다. 그리고 이라크로부터 침공당한 경험을 지닌 쿠웨이트와 시아파 국가인 오만은 중립 혹은 중재를 자청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7일 이란 테헤란에서 성역(聖域)으로 간주되고 있는 아야톨라 호메이니 무덤과 국회의사당에서 연쇄 테러 사건이 발생하고, 그 배후가 수니파 급진주의 세력인 이슬람국가(IS)로 알려지면서, ‘아마겟돈 전쟁’의 전조(前兆)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왔다.
수니파 아랍 국가들이 카타르를 봉쇄한 것은 첫째, 카타르가 이란과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카타르가 수니파이면서도 ‘균형외교’란 명분하에 시아파 맹주인 이란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배신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둘째, 사우디 등은 카타르가 이슬람 급진주의 세력의 ‘돈줄’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카타르가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과 같은 반체제 세력에 지원금을 보내고, 이들의 망명지로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못마땅한 것이다. 셋째, ‘눈엣가시’ 같은 알자지라 방송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중요한 이유다. 위성방송인 알자지라는 사우디 왕실 등의 비리 사실 등을 폭로하는 방송을 아랍 전역으로 내보내고 있다.
카타르는 사우디에 붙어 있는 반도 국가다. 인구는 260만 명인데, 카타르인은 30만 명밖에 되지 않고 나머지는 다른 아랍국가나 인도·파키스탄에서 온 외국인이다. 1971년 독립한 카타르는 사실상 ‘사우디의 속국’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만 제국의 붕괴로 아라비아 반도에서 사우디가 독립했으나, 당시 이 지역 패권을 장악하고 있던 영국은 석유·천연가스 매장지 혹은 해군 기지였던 걸프만의 일부 지역을 보호령 등으로 유지하다가 훗날 독립시켜 줬다. 그 덕분에 사우디가 되지 않고 따로 독립할 수 있었던 국가가 카타르·바레인·UAE·오만 등이다. 이에 사우디는 이들 국가를 ‘사우디의 홍콩’쯤으로 여기고 있다. 그런데 1995년 셰이크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가 아버지를 몰아내고 천연가스를 팔아 번 돈을 무기로 ‘자주 외교’를 진행하면서 사우디와 갈등을 빚기 시작한 것이다.
사우디를 중심으로 수니파 아랍 국가들은 시아파의 세력 팽창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사담 후세인 정권이 붕괴하고 시아파 정권이 들어서자, 이를 견제하기 위해 이라크의 IS를 내심 지원하고 있을 정도다. 이번 카타르 봉쇄에 바레인이 적극적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바레인 왕실과 집권세력은 수니파이나, 바레인 국민의 약 70%는 시아파로 추정되고 있다. 그래서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바로 이웃한 카타르가 시아파에게 추파를 던지고 있으니 미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 카타르 사태에는 수니파 대 시아파라는 해묵은 종파 갈등 이외에도 왕정 대 공화정, 아랍 대 비아랍, 이슬람주의 대 개혁주의라는 ‘중동의 4대 갈등 축’이 모두 녹아 있다. 일부에선 카타르 왕정을 개혁파로 분류하기도 한다. 그러나 헌법이나 실재적 내부 통치를 살펴보면, 이슬람 율법주의적 절대왕정 행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단지 대외 문제에서 다소 진보적 태도를 취하고 있으나, 해석하기에 따라선 체제 유지를 위한 ‘보험금’ 성격이 강하다.
카타르는 천연가스 달러로 평화를 사고, 이를 통해 지역의 중견국(middle power)이 되고자 했다. 세계 액화천연가스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으며, 국부펀드 3조3350억 달러를 운영하고 있고, 1인당 국민소득이 6만 달러가 넘는다. 그러나 1만 병력을 유지하는 것도 벅찬 것이 카타르 인구 상황이다. 사우디가 카타르를 무력 침공하지 못하는 것은 카타르의 달러 외교 때문이 아니라, 카타르의 미군 기지 덕분이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지휘하고 있는 미국 중부군의 지역 사령부가 카타르의 알우데이드 공군기지에 있다. ‘낀 나라’ 생존전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06월 28일 북극海 각축戰과 후발주자 한국
“북극해를 장악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하게 된다.” 최근 많은 지정학 이론가가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북극해 면적은 약 1400만㎢로 오대양 가운데서 가장 작다. 그러나 1700만㎢인 러시아 전체 면적과 맞먹는 크기다. 물론 북극해의 중요성은 면적 크기 때문이 아니다. 우선 북극 항로가 수에즈 항로·파나마 항로와 함께 ‘세계 3대 물길’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로테르담 노선의 경우, 수에즈 항로를 이용하면 2만1000㎞로 24일 소요되나, 북극 항로를 이용하면 1만2700㎞로 14일 만에 도달할 수 있다. 캐나다에서 중국으로 물자를 나를 때도 북극 항로를 이용하면 파나마 운하를 이용하는 것보다 거리가 40% 정도 단축된다.
거리상의 이점에도 불구하고 빙하 때문에 북극해는 경비가 많이 소요되고 위험한 항로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로 북극 빙하가 줄어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쇄빙선과 내빙선 기술의 비약적 발전에 따라 북극해 항로가 점차 경제성을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러시아 연안을 지나는 북동항로의 경우, 과거엔 길어야 1년에 2개월 정도 이용할 수 있었으나, 현재는 7월부터 10월까지 약 4개월 동안 이용이 가능하며, 그 기간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또, 전 세계 자원의 22%로 추정되는 북극과 그 주변의 막대한 지하자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지질조사국(USGS)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석유의 13%, 천연가스의 30%가 북극에 매장돼 있다고 추정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북극에 매장된 자원의 가치는 약 30조 달러에 이른다는 보고서를 내놓은 상태다. 과거엔 접근이 어려워 ‘그림의 떡’이었으나, 항로 개척이 활발해지면서 19세기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에서의 골드러시에 빗대 ‘콜드러시(Cold Rush)’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여러 국가가 1만t급 이상의 대형 첨단 쇄빙선을 앞다퉈 도입하고 있다. 독일은 2020년 출항 목표로 3m 이상의 얼음을 깰 수 있는 2만7000t급 폴라르슈테른2를 건조하고 있으며, 영국은 2019년 취항 목표로 2m 얼음을 깰 수 있는 1만5000t급 D 애튼버러경 호를 건조하고 있다. 1993년 우크라이나에서 쇄빙선 쉐룽(雪龍)호를 구입해 운용하고 있는 중국도 2019년 취항을 목표로 1.5m 얼음을 깰 수 있는 1만4000t급 쇄빙선 자체 제작에 나섰다. 그동안 주저하던 일본도 이에 질세라 1.5m 얼음을 깰 수 있는 1만t급 쇄빙선을 내년부터 제작해 2021∼2022년경에 취항시킬 예정이다.
이같이 북극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이 곳이 새로운 국제 분쟁 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북극 연안국은 미국·러시아·노르웨이·캐나다·덴마크 등 5개국인데, 1982년 제정된 유엔 해양법은 북극해에 대한 개별국가 주권은 인정하지 않는 대신, 연안국의 200해리 경제수역만 인정하고 있다. 이에 5개국은 2008년 북극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유엔의 틀 안에서 협상을 통해 결정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대륙붕에 대한 논란 등으로 쉽게 타결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러시아는 최소 6000명으로 구성된 ‘북극군(軍)’을 무르만스크 지역에 배치하고 있으며, 스노모빌과 공기부양선으로 무장한 기계화 보병 여단 2개를 조직하고 있다. 그리고 2014년 15만5000명 병력과 탱크·전투기·군함을 동원한 대규모 군사 훈련을 실시했다. ‘미주리’란 가상 적국이 어느 아시아국과 함께 추코트카·캄차카·쿠릴·사할린에 침공한 것을 가상한 것에 대비한 기동훈련이었다. 여기서 미주리와 어느 아시아국이 어느 나라인지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현재 가장 강력한 쇄빙선 함대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는 러시아다. 6척의 핵 추진 쇄빙선을 포함, 30여 척을 보유하고 있다. 이에 다른 북극 연안 국가들도 북극 전력(戰力) 강화에 나서고 있다. 캐나다는 2018∼2022년 사이에 쇄빙능력을 갖춘 전투함 5척을 새로 실전 배치할 예정이며, 덴마크도 ‘북극 대응군’을 조직해 맞서고 있다.
한국은 2009년 6월 7000t급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를 진수했다. 2013년 5월엔 북극이사회(Arctic Council)의 정식 옵서버국이 됐다. 일단 발은 담근 셈이다. 2013년 시범 사업을 포함해 지난해까지 5건의 북극 항로를 통한 화물선 운항 경험도 쌓았다. 그런데 아라온호 1척으론 남극 연구에도 벅찬 상황이다. 얼음 깨는 능력도 부족하다. 얼음 1.5∼2m를 깰 수 있는 1만2000t급 쇄빙선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으나, 예산 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움직이는 세계사의 흐름에 주목해야 한다. 한때 지중해의 강자로 번영을 누리던 베네치아도 대서양 시대를 따라잡지 못해 몰락했다. 잘 활용하면 북극 항로는 한국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북극해는 더 이상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07월 05일 미국이 전작권 전환을 환영하는 이유
지난달 30일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통해 “한국군으로의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이 조속히 이뤄지도록 결정했다”고 발표함으로써, 전작권 전환이 본궤도에 오르게 됐다. 이로써 미국이 한국 방위를 책임져야 했던 현행 한·미 연합방위체제는 근본적 변화를 맞이하게 됐다. 2014년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 합의에 따르면, 전작권이 전환되면 한·미 연합사령부는 해체되고 한국군이 사령관을, 미군이 부사령관을 맡는 미래사령부(가칭)가 창설되게 된다. 물론 한국군이 사령관을 맡는 미래사령부가 이뤄질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분명한 것은 지상군 작전은 한국군이 담당하더라도, 해·공군 작전은 계속 미군 통제하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전작권 전환을 국가 자존심 회복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전작권 전환은 미국이 원하던 바이며, 또 아시아 방위 전략의 일환으로 추진돼 왔다. 전작권 문제가 본격화된 것은 2004년 도널드 럼즈펠드 당시 미 국방장관이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계획(GPR)’을 내놓으면서부터다. 이 계획에 따라 미군 주둔지는 전력투사기지(PPH), 주요작전기지(MOB), 전진작전지점(FOS), 안보협력대상지역(CSC) 등 4단계로 재정리되고, 해외주둔 미군은 세계 어디서든 신속 대응할 수 있도록 유연 배치되는 ‘전략적 유연성’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전략적 유연성을 적용하면, 주한미군은 더 이상 북한의 남침에 대비하는 ‘붙박이 군’이 아니라, ‘동북아 신속 기동군’으로 재편된다. 즉, 단순 대북 억지력을 넘어 대중(對中) 견제력으로 활용되는 것이다. 휴전선 부근에 주둔하던 미 제2사단을 평택으로 이전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인계철선의 족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활용하도록 만든 것이다. 당시 노무현 정권은 이러한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에 강력히 반대했다. 주한미군이 중국과의 분쟁에 개입할 경우, 한반도가 전쟁터가 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당시 한·미 양국은 한국은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을 존중하고, 미국은 전략적 유연성으로 한반도 안보 위협이 생기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하는 수준에서 합의하는 것으로 이 문제를 일단 봉합했다.
‘한반도 방어의 한국화’는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해양전략사상가 앨프리드 머핸에서 ‘냉전의 설계자’ 조지 케넌으로 이어지는 미 대전략가들의 아시아 방위전략은 ‘역외 해양 전략(offshore maritime strategy)’으로서, 미국은 아시아에서 가급적 지상전을 피하고 해·공군 위주로 대륙세력을 막겠다는 것이다. 핵 중심 방어전략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의 ‘뉴룩(New Look)’도, 리처드 닉슨과 헨리 키신저의 ‘베트남 방어의 베트남화’도 같은 맥락에서 도출된 것이다. 한반도를 미 방위선에서 제외한 ‘애치슨 라인’도 이 같은 전략에 기초한 것이었다.
현재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작전계획 5027’에 따라 100일 이내에 미군 65만 명이 투입되게 돼 있다. 그러나 병력 부족에 허덕이고 있는 미군 상황을 고려할 때 현실적이지 못하다. 65만 명 투입은 전시동원체제로 전환, 주 방위군과 예비군을 동원해야 겨우 가능하다. 이에 미군은 지상 전투는 한국군이 담당하는 것을 골자로 작전계획을 변경하려고 노력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겠다고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나서니, 고마운 것이다.
지난달 28일 미 상원은 미 군함이 가오슝(高雄) 등 대만 항구에 정박하는 것을 허용하는 국방수권법안을 가결했다. 이것이 실현되면 1979년 미·중 수교 이후 처음으로 미 군함이 대만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29일 미 국무부는 대만에 대한 14억2000만 달러 규모 무기 수출 계획을 승인했다. 또 2일엔 남중국해에서 ‘자유항해작전’을 전개했다. 중국도 만만찮다. 일단 미국을 제1 도련선 밖으로 몰아낸 뒤 차츰 제2 도련선까지 진출한다는 전략 목표하에, 지대함 미사일 등 ‘반접근·지역거부(A2/AD)’ 전력을 대폭 증가시키고 있다. 이 상황에서 대북 억지력으로 묶여 있던 주한미군의 활용이 자유롭게 되는 것은 중국으로선 감내하기 어려운 일이다.
결국 막대한 국방예산 투입이 불가피해졌다. 국방부는 내년 국방예산을 8.4% 증가한 43조7114원으로 편성했으며, 향후 5년간 78조 원이 넘는 방위력 개선비가 킬체인과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에 투입된다. 그리고 미군 공백을 메우기 위한 육군 병력 증가도 필요하게 됐다. 또 ‘대한민국의 연합방위 주도’란 미사여구도 잘 살펴봐야 한다. 2020년대 초반에나 군사위성을 임대로 확보할 수 있는 상황에서 실질적인 군사주권 행사가 가능할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미국도 완전한 자주국방을 할 수 없어 동맹이 필요하다는 말을 되새겨 봐야 할 것이다
07월 12일 美·印·日 ‘인도양 동맹’이 뜬다
미국·인도·일본이 참여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해상군사훈련 ‘말라바르’가 지난 10일부터 인도양 벵골만 해역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번 훈련에는 미국의 핵 추진 항공모함 니미츠, 인도의 항공모함 비크라마디티아, 그리고 일본의 경항공모함급인 대형 호위함 이즈모가 참여했다. 말라바르 훈련은 1992년 미국과 인도 해군이 해마다 태평양과 인도양에서 번갈아 하는 식으로 진행됐는데, 간헐적이던 일본의 참여가 지난해부터 정례화하면서 3국 훈련으로 발전됐다. 이번 훈련은 17일까지 계속되는데, 중국의 인도양 진출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다.
이번 훈련을 바라보는 중국의 속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다. 최근 국경 갈등을 빚고 있는 인도를 한번 손봐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인도가 미국·인도·일본 3국 동맹으로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중국은 지난달 3일 인도 시킴주(州)와의 국경지대에서 인도군 벙커 2곳을 무력(武力) 파괴했다. 중국 측은 인도군이 국경을 침범해 벙커를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인도는 중국군의 무단 월경 및 도발 행위로 간주하고 있다. 이 사건으로 양국 모두 국경지대에 병력을 집중시키는 등 긴장이 고조됐다. 인도의 태도는 과거와 달랐다. “2017년 인도는 1962년 인도와 다르다”며 강경히 맞섰다. 이는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과 인도의 국경 분쟁의 역사는 매우 길고 복잡하다. 이 문제를 일단 폭력적으로 정리한 것은 1962년 중국·인도 전쟁이다. 중국은 1959년 티베트 봉기가 일어나고 인도가 달라이라마 티베트 망명정부를 지원하자, 티베트 저항운동 배후지를 없애기 위해 인도를 침공해 아루나찰프라데시와 아커사이친을 점령했다. 그리고 아루나찰프라데시는 인도에 넘겨주고 철군했으나, 아커사이친은 영토로 편입시켰다. 아커사이친은 거주 인구나 자원이 거의 없으나, 위구르 자치구와 티베트 자치구를 연결하는 219번 국도가 지나가는 군사·경제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아루나찰프라데시는 인도의 29개 주 중 하나가 됐는데, 최근 중국이 남(南)티베트라 부르며 영유권을 다시 주장하고 있다.
인도가 중국을 경계하는 것은 북부 국경 때문만이 아니다. 오히려 중국의 인도양 진출을 더 큰 위협으로 느끼고 있다. 미국의 해양 봉쇄 가능성에 대비해 원유 해양수송로를 확보하려는 중국은 미얀마·방글라데시·스리랑카·몰디브·파키스탄 등 인도양 주변 국가 항구에 전략적 진출 거점을 마련하고, 이를 연결하는 전략을 구사 중이다. 그 모양이 진주목걸이와 비슷하다는 의미에서 ‘진주목걸이 전략’이란 명칭이 붙었다. 지도를 놓고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것처럼, 인도 입장에서는 중국의 반(反)인도 연합 인도양 포위작전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이런 지정학적 흐름으로 인도가 미국·일본과의 연합에 적극성을 띠기 시작했다. 인도는 ‘동방정책(Look East)’을 통해 아시아 국가들과의 연대 및 교류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이는 일단 경제협력을 통해 인도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지만, 중국 견제라는 정치·군사적 목적도 적지 않다. 미국과 일본은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있다. 미국이 인도와의 원자력 협력을 확대하는 등 인도의 핵 보유를 사실상 묵인하고, 아시아·태평양 대신에‘인도·태평양(Indo-Pacific)’이란 용어를 선호하기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일본도 인도와의 군사·경제 교류 수준을 계속 높이고 있다. 미국·인도·일본 ‘3각 동맹’이 구축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20억 달러 규모의 군사용 드론 인도 판매를 승인하는 등, 인도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를 과거 냉전 시절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 수교하고 중국의 경제 및 군사 현대화를 도와줬던 것과 비교하기도 한다. 과거 소련 곰을 중국 호랑이로 견제했던 것처럼, 이제는 인도 코끼리로 중국 호랑이를 견제한다는 것이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 정책도 중국 견제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공업 생산지를 중국에서 인도로 이전하는데, 미국·인도·일본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한국도 2015년 5월 한·인도 정상회담을 통해 ‘한국·인도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최근 한국 기업의 인도 진출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또, 지난 8일 독일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모디 총리 간 정상회담이 이뤄지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모디 총리가 문 대통령에게 이른 시일 내에 인도를 방문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한국이 인도와 군사적 동맹을 맺는 것은 아직 현실적이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드 보복과 같은 중국의 지경학적(地經學的) 공세에 맞서 시장의 외연을 넓히기 위해서도 인도와의 경제 협력은 중요해 보인다.
07월 26일 시리아 내전의 한반도 反面敎師
시리아 내전에 비극적 뉴스 이상의 관심을 갖는 한국 사람은 드물다. 그보다는 시리아와 북한의 핵·화학무기 커넥션이나, 최근 미·중 정상회담 직전에 미국이 시리아를 폭격함으로써 북한과 중국에 간접 메시지를 전했다는 분석 등이 고작이다. 그러나 시리아 내전 자체가 한반도 상황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최근 미국이 시리아 내전에서 발을 빼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4월만 하더라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對)시리아 입장은 강경해 보였다. 당시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공격으로 어린이를 포함한 수많은 민간인이 사망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 공군 기지를 토마호크 미사일로 공격했다. 반응은 매우 좋았고, 계속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부를 강공으로 밀어붙일 것이란 분석이 힘을 얻었었다. 그러나 반대 방향으로 흘렀다. 2013년부터 실시돼 온 중앙정보국(CIA)의 시리아 반군 지원 프로그램 중단을 결정한 것이다. 이는 알아사드 정권 전복의 사실상 포기를 의미한다.
이에 사우디아라비아 등 수니파 아랍국가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힘의 공백을 이란이 채우게 됨으로써, 이란-이라크-시리아-레바논(헤즈볼라)으로 이어지는 ‘시아파 벨트’가 형성될 것을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러시아는 만족을 표시하고 있다. 친러 알아사드 정권을 통해, 러시아 해군 지중해 보급기지인 타르투스항(港)을 계속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중국 입장이다. 중동에서 빠져나온 미국의 힘이 아시아로 이동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아랍의 봄’이 확산되던 2011년 상반기만 하더라도, 알아사드 정권은 무사할 것이란 분석이 일반적이었다. 당시 ‘시리아 레짐 체인지’를 주장하면, 현실성 없는 이상주의자 혹은 무책임한 강경파로 취급당했다. 미국은 물론 터키와 사우디도 알아사드 정권 붕괴 가능성에 대비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리아 정부군과 시위대 간의 유혈충돌이 내전 양상으로 비화하면서 미국 등 서방국가들은 알아사드 정권 퇴진으로 입장을 바꿨다. 이집트와 리비아처럼 시리아 정권도 붕괴할 것이란 낙관론이 득세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알아사드 정권이 6년의 내전을 버티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첫째, 이집트나 리비아와 달리 군(軍)을 통제·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은 군을 동원해 ‘아랍의 봄’을 잠재우려 했지만, 이집트 군부는 반대로 무바라크의 퇴진을 요구했다. 이는 무바라크가 이집트군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집트군이 무바라크 정부를 통제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정권의 경우는 민중 봉기가 시작되자, 군이 붕괴해 버렸다. 군이 부대 단위로 집단 이탈해 시위대에 합류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시리아군은 이집트군처럼 독자적 세력을 형성하고 있지 않았으며, 그렇다고 리비아처럼 집단 탈영하는 현상도 일어나지는 않았다.
둘째, 국제 역학의 균형이다. 제재와 내전으로 국고가 고갈된 알아사드 정권이 연명할 수 있는 것은 러시아와 이란의 지원 덕분이다. 이 두 국가는 자금과 무기 공급은 물론, 직접적 군사 지원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러시아는 군사고문단과 공병대, 그리고 공군을 파병했으며, 이란인과 레바논 헤즈볼라 대원이 전투에 참여한 것이 확인되고 있다. 카다피 정권이 붕괴한 것은 당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이를 용인 혹은 묵인했기에 때문인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알아사드 정권의 붕괴를 용납하지 않고 있다. 또, 수니파 사우디와 시아파 이란 간의 힘의 균형도 한몫하고 있다.
셋째, 이슬람국가(IS) 등과 같은 극단적 이슬람주의 세력의 확산 우려 때문이다. 알아사드 정권의 기반인 알라위파는 물론, 시리아 인구의 약 10%를 점하고 있는 시리아 기독교가 알아사드 정권에 대해 비판적 지지를 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최근 미국의 미온적 태도 역시 시리아를 급진 이슬람 세력에 넘겨줄지 모른다는 판단 때문이다. IS나 친 알카에다 성향의 알누스라 전선은 물론, 그동안 미국이 지원해 준 자유시리아군(FSA)의 내부 주도권도 이슬람주의 세력이 쥐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주의적 참극과 대량 난민 사태를 발생시킨 시리아 내전은 한반도에 여러 가지 교훈을 준다. 7년 전까지 시리아는 표면상 평화로웠으며, 당시 알아사드 정권은 견고해 보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부 모순은 폭발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비는 없었다. 혼동 와중에 러시아는 ‘비토권’을 행사하고, 미국은 적극성을 보이질 않았다. 군이 통제되는 한 아래로부터의 변혁 시도는 성공하기 어렵다. 결국 시리아 내전은 묘한 세력 균형 속에서 장기화할 뿐이다. 북한 급변 사태가 발생할 때, 유사한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
08월 09일 러는 美와 ‘얄타 2.0 체제’ 원했다
올해 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만 하더라도 미국·러시아 관계를 낙관하는 분위기가 우세했다. 지난해 12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행정부가 러시아 외교관 35명을 추방하고 미국 내 러시아 시설 2곳을 폐쇄하는 고강도 ‘대선 해킹 보복’ 제재를 단행했지만, 러시아는 맞대응하지 않았다. 그리고 트럼프 당시 대통령 당선인은 이에 대해 “훌륭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우크라이나와 시리아의 러시아 지배권을 인정하는 대신에 동유럽 나토(NATO) 회원국들의 안정을 인정받는 대타협(Grand Bargain)을 골자로 한 미·러 간의‘얄타 2.0 체제’ 구축 가능성이 힘을 얻었다.
그러나 최근 미·러 관계는 날로 악화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미국 외교관 755명에게 러시아를 떠나라고 통보하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일 ‘북한·러시아·이란 통합 제재법’에 서명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의 표현에 따르면, 미·러 관계는 ‘외교적 저점(a diplomatic low point)’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라브로프 장관은 6일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과 회담을 가진 뒤, “그동안 중단됐던 러시아와 미국 간 고위급 외교 채널을 다시 가동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으나, 미국 측 반응은 그리 신통해 보이질 않는다.
이런 관계 악화에 대해 푸틴 정부는 겉으론 태연한 척하지만, 내심 당황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 대러 경제 제재가 완화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러시아를 북한·이란과 동일 수준의 제재 대상으로 규정한 것에 대해선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 통합 제재법은 미국 입장에서도 지나치게 전선을 확장한 전략적 오류이며, 이를 모를 리 없는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설’이라는 미국 국내 정치에 압도당한 결과란 것이 러시아 측의 입장이다.
또, 러시아가 10만 대군을 동원해 벨라루스와 폴란드 국경지대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벌일 예정이며 이에 동유럽에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는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다. 러시아와 벨라루스가 9월 14∼20일 진행할 예정인 ‘자파드’(러시아어로 서쪽이란 뜻)는 4년 주기로 실시해 온 정규 군사연습이며, 러시아군 참가 규모도 2013년 1만2000명과 비슷한 수준인 1만3000명이라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나토에 이 사실을 통보했으며, 참관도 요청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제정치가 국내 정치에 끌려다니는 것은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러시아는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있다. 현재 푸틴 대통령의 재선이 유력하다. 각종 여론 조사에서 70% 이상의 지지율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경제 사정이 좋지 못함에도, 푸틴 대통령이 높은 인기를 누리는 것은 러시아 대국주의 정서를 잘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 크림반도 병합과 그 이후 우크라이나 내전 개입, 그리고 2015년 시리아 군사 개입을 러시아인들은 민족 자존심 회복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자파드 훈련이 과장되게 알려진 것도 러시아 정부 탓이다. 러시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베를린에 입성하고, 1968년 체코 침공의 주력이었으나 냉전 붕괴 이후 러시아로 철수했다가 1998년에 해체됐던 ‘제1 근위 기갑군’을 2014년에 재조직한 뒤, 이 부대의 자파드 참여를 대대적으로 홍보한 것이다. 2008년 러시아군 개혁 이후 ‘게라시모프 독트린’에 따라 ‘하이브리드 전쟁’에 주력하고 있는 러시아군에 제1 근위 기갑군의 부활은 군사적 효용성보다는 정치 홍보성이 더 크다.
따라서 러시아는 미국과 적절히 타협할 수 없다면, 이란·북한과의 반미 공조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최근 북한에 대한 원유 공급을 늘린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물론 우크라이나와 시리아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경제적 부담이 늘어나 러시아 국민의 피로감이 쌓일 것이란 우려도 없지 않다. 그러나 미·중 대립 구도가 강화되고 있는 한, 미국이 동유럽에선 현상 유지를 원할 것이란 것이 러시아 계산이다.
문제는 결국 한국이다. 중국 문제로도 힘든데, 러시아마저 북한을 본격적으로 감싸기 시작한다면 더욱 상황이 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동북아에서의 러·북 반미 공조를 제어하고 러시아를 최소한 중립화시킬 수 있는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러시아도 극동에서 중국이 득세하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9월 초에 한·러 정상회담이 열릴 예정이다. 러시아 극동 개발에 참여하는 등 한·러 관계가 북·러 관계보다 경제적으로 이득임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한·러 가스전 연결 사업은 신중해야 하며, 신냉전 구도가 형성된다면 결국 한·미 동맹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도 잊어선 안 된다.
08월 24일 미국의 아프간 再개입과 한·미 동맹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다시 발을 담그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1일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장악을 저지할 것”이라며, 군사 개입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아프간 군사 개입 선언은 트럼프 행정부가 고립주의 노선을 버리고 개입주의 노선으로 나가기 시작한 증거로 해석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초기 미국이 고립주의 노선으로 나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강했지만, 지난 18일 고립주의 노선의 대표적 인물인 스티븐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해임되면서 개입주의 노선으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된 바 있다.
2001년 9·11테러로 시작된 미국의 아프간 군사 개입은 2011년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하면서부터 줄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아프간 주둔 미군을 점진적으로 철수시키면서 전투 임무를 아프간 정부군에게 본격적으로 넘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2014년 12월 아프간에서의 군 작전 종결을 선언하고, 군사 고문단 및 훈련 교관 역할을 담당하면서, 일부 특수전과 근접항공지원을 제외한 일반 전투 임무에서 손을 뗐다. 그 결과 2015년 아프간에서의 미군 사망자 수는 비전투 사망자를 포함해 34명에 불과했다. 반면, 아프간 정부군은 2015년 약 7000명이 전사하고 1만2000명가량이 부상했다. 그리고 2016년에도 11월 12일 기준 6785명이 전사하고 1만1777명이 부상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탈레반 정부를 붕괴시키고 빈라덴을 사살 또는 생포한다는 2001년 군사 개입 목표를 달성한 이상, 이제 발을 빼겠다는 미국의 아프간 출구전략은 탈레반이 다시 세를 확장하면서 벽에 부닥치게 됐다. 탈레반이 2014년 말 미군과 나토(NATO)군의 철수가 본격화되자 재집결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2014년 6월 파키스탄 정부가 ‘자르브 이 아자브(Zarb-e-Azab)’란 급진적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에 대한 토벌 작전을 전개하자, 파키스탄으로 피신했던 탈레반 세력이 다시 아프간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시리아에서 밀리기 시작하자 이슬람국가(IS) 일부 세력이 아프간·파키스탄 국경에 터를 잡기 시작했다. 이에 이대로 미군이 철수해 버리면 그 공백을 탈레반이나 IS가 메우게 될 것이란 우려가 급증하게 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때 흔히 용병회사로 불리는 민간군사기업(PMC)을 이용하는 방안도 고려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악명을 떨친 PMC 블랙워터의 창업자인 에릭 프린스가 미국 정부에 아프간 정규군을 교육하고, 아프간 정부군의 대(對) 탈레반 작전에서 근접항공지원을 담당하는 한편, 필요하다면 특수전도 수행하는 내용의 제안서를 제출했다. 현재 미군이 담당하고 있는 임무를 대체하겠다는 것이다. 이 제안서에 따르면, 미국은 병력 5000명과 항공기 100대, 그리고 연간 100억 달러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 그러나 국내외 여론이 PMC에 매우 부정적이어서 이 제안을 받아들일 순 없었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는 존 니콜슨 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관의 권고에 따라 ‘적극적 간접 개입’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출구전략을 수정해 아프간에 재개입하되, 2001년 조지 부시 대통령처럼 미군이 직접 전투하는 방식이 아닌 아프간 정부군을 통해 전투를 수행하는 방식을 취할 계획인 것이다. 이에 이미 현재 2개 여단 1만2000명 규모의 아프간 정부군 특수전사령부 전력을 4개 여단 2만2000명으로 확대·개편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제 특수전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아프간 정부군에게 넘기겠다는 것이다.
아프간 문제는 가까운 시일 내에 해결될 것 같지 않다. 국민국가(nation state)가 되기엔 종족 구성이 너무나 복잡하다. 아프간인(人) 정체성도 확고하지 못하다. 아프간의 가장 큰 종족인 파슈툰족(族)의 경우 약 3분의 1인 1400만 명가량은 아프간에 거주하나 3분의 2가 넘는 3000만 명은 파키스탄 국경 너머에 살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북부의 타지크족이나 우즈베크족보다는 파키스탄 파슈툰족에게 보다 동질감을 느끼고 있다. 타지크족과 우즈베크족도 북쪽에 접경한 타지키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동족들에게 친밀감을 가지고 있다. 아프간 자체가 19세기 영국과 러시아가 인위적으로 국경선을 그은 ‘완충국가(buffer state)’로 형성된 결과이다.
미국이 고립주의를 버리기 시작했다면 한국에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미국이 아프간 늪에 다시 빠지는 것은 환영할 일이 아니다. 미군 전력이 분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동맹국인 한국에 다시 파병 요청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엔 일반 보병이나 평화유지군(PKO)이 아닌 아프간군 훈련 요원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 아크부대가 아랍에미리트(UAE) 특수전 부대를 교육한 성과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09월 13일 러 극동 개발, 아직은 신기루다
러시아 극동은 바이칼호 동쪽에서 태평양 연안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으로, 러시아 영토의 36%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곳 인구는 러시아 전체의 4.2% 정도인 618만 명에 불과하다. 단순히 인구가 적은 것이 문제가 아니다. 소련이 붕괴된 1991년 이후 인구가 한 해도 쉬지 않고 계속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인구 감소의 주원인은 이곳 러시아인들이 유럽 지역으로 이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별다른 산업 기반이 없는 데 따른 현상이다. 이 지역이 러시아 영토로 계속 남아 있을지가 의심될 정도다. 중국인 불법 거주 현상과 맞물리면서 우려가 크다.
러시아가 태평양 연안인 오호츠크에 도달한 것은 1647년이었다. 그리고 베링해를 건너 알래스카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1867년 알래스카를 720만 달러에 미국에 팔았다. 많은 사람이 ‘역사적 대실수’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팔지 않았더라면 돈도 못 받고 잃었을 것이란 주장도 만만치 않다. 알래스카 이주 러시아인 수가 너무 적고 러시아 중심부와의 교통·통신이 미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03년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완전 개통되면서 러시아의 극동 지배가 본격화된다. 그리고 1960년대 콤소몰(공산청년동맹)을 중심으로 시베리아 개척 운동이 일어나, 러시아 젊은이들이 극동으로 향했다.
그런데 소련의 붕괴와 함께 정부의 특별 지원이 끊어지고, 미개척지에 ‘공산주의 이상향’을 건설하려던 열정도 소멸했다. 이곳 산업의 중심이었던 군수 공장은 문을 닫기 시작했으며, 정부 보조금이 없어지자 생필품값이 급등했다. 소비재 산업을 일으키려 했으나, 자본·기술이 부족했으며, 인프라의 부재로 물류비용이 너무 많았다. 결국 짐을 싸서 우랄산맥 서쪽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1990년대 보리스 옐친 대통령 시절, 시베리아와 극동이 러시아 공산당의 표밭이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현재 블라디미르 푸틴 정부는 표면적으론 매우 안정적이다. 지지율이 70%에 달한다.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서방으로부터 경제 제재를 받고 있는 탓에 마이너스 경제 성장을 보여도 푸틴에 대한 지지는 흔들리지 않았다. 이는 1990년대 옐친 시절 극단적 무질서를 경험한 러시아 국민이 ‘안정’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또, 푸틴의 대안도 안 보인다. 공산당이 제1야당이며, 서구식 자유민주주의 지지는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중산층에 한정돼 있다. 내년 3월 대통령 선거에서도 푸틴이 무난히 당선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대(對)유럽 가스·석유 수출 의존형 경제의 한계는 분명했다. 이에 미래 성장동력을 마련하고자, 2009년 러시아판 실리콘밸리를 모스크바 근교인 스콜코보에 조성하려 했다. 그러나 하이에나처럼 달려드는 러시아 부패 관료의 표적일 뿐이었다. 결국 이 프로젝트는 중단되고 말았다. 그리고 시선이 시베리아와 극동으로 옮겨졌다. 에너지 수출을 다변화하고, 몰락하고 있는 극동을 구하기 위해서다. 이에 2012년 내각에 ‘극동개발부’를 만들고, 2015년부터 매년 동방경제포럼을 개최했다. 미국 등 서방에 맞서기 위한 중국과의 관계 강화도 중요했다.
중국과의 협력은 비교적 성공적이다. 중국도 남중국해 봉쇄 가능성에 대비해 시베리아 에너지 접근에 적극적이다. 동부 시베리아의 천연가스를 중국으로 공급하는 ‘시베리아의 힘’ 가스관 건설사업도 순조롭다. 2019년 12월부터 가동될 것으로 전망된다. 오히려 문제는 중국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질지 모른다는 점이다. 이미 러시아 극동에서의 중국인 불법 이주 문제는 심각하다. 구체적 통계 자료는 없는데, 현지 러시아인들은 통상 200만 명이라 말하고 있다.
이에 러시아는 ‘북방 4개 도서’를 미끼로 일본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2개 섬은 돌려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미국의 러시아 경제 제재에도 불구, 동방경제포럼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치솟는 러시아의 민족주의 열기로 인해, 푸틴 정부도 선뜻 북방도서 문제를 일본에 양보할 수 없었다. 결국 일본의 투자는 푸틴 정부의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는 지난 8월 북방경제협력위원회(위원장 송영길 의원)를 출범시켰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7일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했다. 장기적 관점에서 러시아 극동은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 서두를 필요는 없다. 노태우 대통령 이래 모든 대통령이 러시아 극동 진출을 꾀했으나, 제대로 되지 않았다. 러시아판 실리콘밸리 스콜코보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러시아 개발 계획은 말일 뿐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정학적 힘의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 러시아 가스관에 의존했던 우크라이나와 독일이 주는 교훈을 잊어선 안 된다.
10월 19일 일본 ‘保保 1.5당 체제’ 시작되나
오는 22일 일본 총선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자민당이 압승을 거둘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14일 판세 분석에서 중의원(衆議院) 465석 가운데 자민당이 286석을 얻을 것으로 예측했으며, 마이니치(每日)신문은 16일 281∼303석을 획득할 것으로 전망했다. 투표함이 열려봐야 알겠지만, 이 추세대로라면 자민당은 과반 의석(233석)은 물론이고, 모든 상임위에서 과반을 확보할 수 있는 의석인 ‘절대 안전 다수 의석’(261석)을 확보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자민당과 함께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공명당 의석과 합칠 경우, 3분의 2인 개헌선 310석도 넘어설 수 있다는 분석도 힘을 얻고 있다.
이런 자민당 압승 분위기는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상상하기 어려웠다. 아베 정권에 대한 피로감이 누적된 가운데, 총리 부인 아키에(昭惠) 여사가 모리토모(森友) 학원이 초등학교 부지로 국유지를 헐값에 매입한 ‘사학 스캔들’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아베 총리에 대한 지지가 폭락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7월 도쿄(東京) 도의회 선거에서 자민당이 참패하고,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가 이끄는 도쿄퍼스트회가 도쿄 도의회 제1당으로 떠오르면서, 아베 정권의 몰락이 점쳐지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이 지난 8월 29일 일본 열도를 넘기는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 이어 9월 3일 6차 핵실험을 단행하자, 분위기가 반전되기 시작했다.
현재 일본 일반 유권자들의 정서는 ‘아베도 싫지만, 야당은 더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일본 야당은 지리멸렬 상태다. 고이케 도지사가 희망의당이란 신당을 만들고 바람을 일으키는 듯하자, 제1야당이었던 민진당은 9월 26일 “희망의당으로 공천을 일원화하겠다”고 ‘자폭 선언’해 버렸다. 일부는 희망의당으로 흡수되고, 진보계는 입헌민주당을 따로 창당했다. 그런데 민진당 세력의 희망의당 합류는 덧셈이 되지 못하고 뺄셈이 됐다. 강경 보수 고이케와의 결합이 정치 야합으로 비친 것이다. 또,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고이케에 대한 대중적 환상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결국 보수야당인 희망의당도, 진보 야당인 입헌민주당도 일본 국민에게 ‘현실적 대안’으로 제시되는 데 실패한 것이다.
민진당이 신뢰를 받지 못하는 것은 전신인 민주당의 2009∼2012년 집권기 실패 때문이다. 2009년 9월 민주당은 당시 중의원 480석 중 308석을 얻어 정권을 장악했다. 초기 지지율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고리타분한 자민당에 질려 있던 일본 유권자들은 변화를 약속한 민주당을 열렬히 지지했다. 내각 지지율은 초기 72%에 달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공약 사업으로 내놓은 각종 포퓰리즘 정책을 제대로 실천할 수 없었다. 현실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대(對)중국 접근을 꾀했으나, 미·일 관계만 악화시켰을 뿐, 결국 센카쿠(尖閣) 열도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없었다. 그리고 2011년 3·11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 ‘민주당=무능’이란 등식을 일본 국민 뇌리에 각인시킨 것이다. 그 후 민진당으로 당명을 바꿨지만, 무능 낙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일본 상황을 미국 뉴욕 타임스는 ‘일본 리버럴리즘의 사망’ ‘새로운 보수 양당 체제의 등장’이라 표현했다. 그러나 아직 희망의당이 제1야당이 될지도 불확실하다. 그리고 설령 희망의당이 제1야당이 된다고 하더라도, ‘대안 야당’이 되기 힘들다는 점에서 보수 양당 체제라기보다는 ‘보·보(保保) 1.5당 체제’라 부르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일본은 1955년 자민당이 창당된 이래 1993년까지 ‘보혁(保革) 1.5당 체제’를 유지해 왔다. 보수 자민당이 1, 혁신 사회당이 0.5였다. 그러다 1993년 자민당이 선거에서 참패하고, 1994년 6월에서 1996년 1월까지 약 1년 반 동안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사회당 총리 정부가 들어섰다. 그러나 이 짧은 집권과 함께 일본 사회당은 사실상 사망해 버렸다. 지금 후신인 사회민주당이 있으나, 의미 없는 군소정당으로 전락한 상태다. 집권을 통해 무능을 보여준 대가였다.
이번 일본 총선으로 아베 총리의 정치적 입지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아베에 대한 지지가 약화되더라도, 대체 세력이 안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본 정치 상황은 한국 정치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우선, 한국 여당은 일본 민주당(민진당)의 몰락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집권세력으로서 경제와 안보를 제대로 이끌지 못하면, 한때의 초고도 지지율도 신기루에 불과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 야당도 아무리 집권여당이 잘못하더라도 야당이 현실적 대안 세력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데 실패하면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점을 배워야 할 것이다.
11월 16일 美·中 대결의 主戰場 되는 아세안
인도·태평양 對 일대일로 충돌
‘차이나 머니’로 민주주의 후퇴
新남방정책, 大전략 전제돼야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지역이 국제정치의 중심이 되고 있다. 이 지역이 미국·일본·인도·호주가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구상과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가 충돌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과거 미·소 냉전 대립의 중심지가 유럽이었다면, 현재 미·중 대결 구도의 주전장(主戰場)은 아세안이 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14일 아세안 정상회담과 동아시아정상회의(EAS)가 열린 필리핀 마닐라를 방문한 것도 이러한 국제 정세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아시아 순방 계획을 수립할 초기에만 해도 필리핀 방문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참모들이 적극 권유하는 바람에 생각을 바꾼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아세안은 50년 전인 1967년 8월 설립됐다. 창설 회원국은 필리핀·말레이시아·싱가포르·인도네시아·태국 등 5개국이었으나, 1984년 브루나이, 1995년 베트남, 1997년 라오스·미얀마, 1999년 캄보디아가 각각 가입해 10개국으로 늘어났고, 이에 ‘아세안 10(ASEAN 10)’이라고도 불린다. 사무국은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 있는데, 직원은 60여 명에 불과하다. 6억3000만 인구를 대표하는 기구라 하기엔 너무 초라하다. 유럽연합(EU)이사회 사무국의 상근 직원은 3200여 명에 달한다.
최근까지 아세안의 위상은 그리 높지 않았다. 이 지역을 하나로 묶을 ‘아시아성(Asianess)’과 같은 동일 정체성을 갖기엔 인종·언어·종교·문화 구성이 지나치게 다양했던 관계로, 내부 통합성이 약했기 때문이다. 또, 미국이 유럽에선 집단안보체제인 나토(NATO)를 구축한 반면, 아시아에선 ‘허브 앤드 스포크(Hub & Spoke) 전략’에 따라 양자동맹 방식을 선호했던 것도 아세안이 제대로 된 지역 정치 통합체로 발전하지 못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냉전 시기 미국은 아시아 지역에서의 안보 협력은 상호 협조라기보다는 미국의 일방적 지원이라고 여겼으며, 따라서 국가 수에 의해 미국의 이익과 반하는 결정이 내려질 수 있는 집단안보체제나 다자협상 틀을 아시아에서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1955년 인도네시아 반둥회의에서 비동맹을 내세웠지만, 사실상 반미 친소였던 것도 이러한 미국의 입장을 강화시켰다.
그러나 아시아 지역 경제가 발전하고 중국의 남중국해로의 팽창 움직임이 나타남에 따라 지역 안보 협력의 필요성이 대두하면서 아세안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특히, 중국이 남중국해 대부분을 포괄하는 ‘구단선(九段線)’을 자국의 해양 경계선이라고 주장하고 나서면서, 아세안 국가들의 공동 대응 필요성이 제기됐다. 그러나 아세안 국가들 가운데 대(對)중국 전선을 주도할 힘과 의지를 지닌 국가가 없을 뿐만 아니라, 캄보디아·라오스 등과 같은 국가들은 노골적으로 친중 노선을 취해 힘을 발휘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2010년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미 국무장관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의 평화로운 해결을 주장하면서부터 상황이 급변했다. 미국이 본격 개입하면서, 중국 대 아세안 혹은 중국 대 아세안 개별 국가 구도가 아닌 미·중 대립이 된 것이다.
이런 국제정세는 아세안 국내 정치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 동남아 여러 국가에서 ‘민주주의 퇴조’가 일어나고 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지금까지 약 4000명의 마약 용의자를 사살하는 등, 초법적 행동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2014년 쿠데타로 집권한 쁘라윳 짠오차 태국 총리는 내년 총선 후에도 향후 5년간 군이 정치에 관여하는 헌법안을 통과시켰다. 또, 훈센 캄보디아 총리는 제1야당인 캄보디아구국당(CNRP) 대표를 국가반역 혐의로 구속하고, CNRP 해산을 종용하고 있다. 심지어 ‘미얀마 민주주의 영웅’으로 불리며 노벨 평화상을 받은 아웅산 수지 미얀마 국가자문역도 로힝야족을 유혈 탄압하는 등, 독재자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중국이 ‘차이나 머니’로 지원하고 있으며, 미국도 중국 쪽으로 기우는 것을 우려해 인권 압박을 주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람 중심’의 신(新)남방정책을 제시하고, 아세안을 4강 지위로 끌어올리겠다고 천명했다. 아세안 국가들과의 협력이 중요함은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아세안 국가들과의 경제협력은 더욱 강화돼야 한다. 문제는 아세안 지역이 이제 ‘인도-태평양’ 구상과 일대일로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곳이란 점이다. 이에 대한 명확한 입장과 그에 따른 국가 대전략(grand strategy) 없이 신남방정책을 이야기하는 것은 레토릭에 불과할 공산이 크다. 더 무서운 사실은 과거 냉전 시절이 그러했던 것처럼, 정작 전쟁이나 무력 충돌은 주전선(主前線)이 아닌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역사의 교훈이다.
12월 13일 푸틴의 미·중·러 天下三分之計
내년 3월 대선 푸틴 당선 확실
一帶一路, 러 중앙亞 패권 위협
러의 한반도 개입 본격화될 듯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1일 시리아·이집트·터키를 차례로 방문했다. 이는 지난 6일 러시아군 총참모부의 시리아 군사 작전의 종료 선언에 따른 것으로서, 러시아군의 시리아전(戰) 승리를 대내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한 ‘승리 투어’였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시리아 북서부에 위치한 흐메이임 공군기지에서 러시아군의 철수를 지시했다. 그러나 전략적 요충지인 타르투스 해군기지와 흐메이임 공군기지의 러시아군 기지는 계속 유지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이로써 지난 2015년 9월부터 본격화된 러시아군의 시리아 내전 개입은 일단락됐다.
러시아 대통령 선거(내년 3월 18일)가 불과 3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았지만, 대선 열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푸틴 대통령의 당선이 기정사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푸틴 대통령에게 맞설 후보가 없다. 일부 서방 언론은 친서방 재야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를 거론하기도 하지만,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와 같은 대도시를 벗어나면 나발니에 대한 지지를 찾아보기 힘들다. 아니 지방에선 인지도 자체가 매우 낮다. 그리고 횡령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아 출마 자체가 어려운 상태이다. 그리고 공산당의 겐나디 주가노프와 극우 성향 자유민주당의 블라디미르 지리놉스키는 푸틴 대통령의 ‘만년 들러리 후보’일 뿐, 당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그나마 ‘러시아판 패리스 힐튼’이라 불리는 미녀 앵커 크세니아 솝차크의 출마 선언이 흥미를 끌고 있으나, 이 역시 가십 거리일 뿐이다.
그런데도 푸틴의 걱정은 태산 같다. 대통령 지지란 것이 바람과 같아서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2010년 12월만 하더라도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당시 대통령의 권력이 위협받을 것이라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에 맞설 정치세력이 전혀 보이질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1년 2월 하야해야만 했다. 지난달 권좌에서 쫓겨난 로버트 무가베 전 짐바브웨 대통령의 운명도 마찬가지였다. 또, 현재 러시아 경제 사정이 그리 좋지 않다. 석유·천연가스에 의존한 제3세계형 경제구조 속에서 저유가가 계속되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러시아판 실리콘밸리 건설 사업 등을 추진해 보았지만, 근본적인 산업구조 개선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과 동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서방 국가들의 경제 제재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러시아의 국제적 지위 하락에 대한 불안감이다. 푸틴은 그동안 서방 세계, 특히 미국과 긴장 관계를 통해 러시아 민족주의를 자극해 이를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했다. 다소 경제사정이 악화하더라도, 크림반도와 동우크라이나를 회복하기를 원하는 것이 러시아 일반 국민 정서였던 것이다. 이에 중국과의 연대를 통해, 미국을 견제하는 노선을 취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중·러 협력이 지정학적 한계에 봉착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노선이 러시아의 유라시아 패권을 위협하기 시작한 것이다. 러시아의 텃밭이었던 중앙아시아가 점차 중국의 영향권으로 편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중앙아시아 에너지 분야에서 중국이 러시아의 경쟁자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러시아는 중국의 진출을 억제하기 위해 2014년 벨라루스·아르메니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 등과 함께 ‘유라시아 경제연합’을 결성하기도 했다. 이대로 가면, 러시아는 중국의 하위 파트너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커지기 시작했다.
푸틴은 올해 초 과거 미국이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 수교한 닉슨-키신저 전략을 뒤집은 형태의 미·중·러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를 구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이 대전략 구도에 호응하는 듯했다. 그러나 이 구도는 미국 국내 정치에서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스캔들’이 중심 이슈가 되면서 현실화될 수 없었다. 그러나 미·러 대립의 중심축의 하나였던 시리아 사태가 일단 종결됨에 따라, 내년 3월 러시아 대선 이후 트럼프-푸틴 연대 가능성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물론 아직 속단하긴 어렵다. 무엇보다도 우크라이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러시아와 중국의 지정학적 근본 구조는 이 두 국가의 이익이 향후 충돌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최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러시아를 통한 미국과 북한의 중재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 역시 러시아가 동북아 지역에서도 독자적 목소리를 내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보인다. 자칫 잘못하면 중국 일대일로의 변방 국가로 밀려날 수 있다는 러시아의 위기감이 새로운 국면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면서, 중국 일대일로에 대한 한국 전략이 무엇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할 때가 됐다.◎
2018년
01월 10일 미국-인도 접근과 한국의 선택
인도, 경제대국 ‘地政學 찬스’
‘간디의 물레’ 극복해야 가능
인도·태평양 경제 흐름 읽어야
“일본, 중국에 이어 이젠 인도 차례입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일본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가시화하자, 지정학자(地政學者)들은 머지않아 인도가 세계 3위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것이며, 잘하면 세계 경제 2위도 가능하다고 예측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몰락했던 일본이 경제 대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이 일본을 대소(對蘇) 전진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일본 경제 성장을 의식적으로 후원한 덕분이며, 중국이 ‘세계 공장’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미국이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에 막대한 자본과 기술을 투자하고 미국을 중국 수출 시장으로 제공했기 때문이란 것이다.
인도 국내총생산(GDP)은 2조4390억 달러로 세계 6위인데, 구매력 기준(PPP)으론 9조4460억 달러로 이미 세계 3위다. 경제 성장률도 2016년 8%로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가장 높다. 그리고 젊고 풍부한 노동력이 큰 장점이다. 2016년 기준으로 총인구는 13억2400만 명(세계 2위)이며, 노동 인구는 5억2040만 명에 달한다. 그리고 총인구를 나이순으로 세웠을 때 가장 중간에 있는 사람의 나이인 중위연령(median age)은 27.6세에 불과하다.
그러나 지정학자들과 달리 경제학자들의 전망은 밝지만은 않다. 우선 2017 회계연도(2017년 4월∼2018년 3월)의 인도 경제성장률은 6.5%가 될 것으로 인도 중앙통계국(CS)이 발표했다. 이 수치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 정부가 2014년 5월 출범한 이후 가장 낮은 것이다. 이는 2016년 11월 지하경제 근절을 위해 고액권 폐지를 골자로 한 화폐개혁을 단행하고, 지난해 7월 부가가치세 체계를 상품서비스세(GST)로 통합하는 조치를 취하면서 소비와 투자가 위축됐던 것이다. 그러나 근본원인은 해외 기업의 제조공장을 유치해 제조업을 활성화한다는 모디 총리의 ‘메이드 인 인디아’ 정책이 일정 정도의 성과를 올리기는 했지만, 기대했던 ‘제조업 혁명’엔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 제조업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100인 이상 사업장에 대한 심각한 노동 규제다. 1947년 독립 이후 인도는, 정치는 영국형 의회 민주주의를 추구했지만, 경제는 ‘마하트마 간디의 물레’ 정신에 입각해 국내 농촌 수요에 의존하는 ‘내포적 공업화’를 추진했다. 간디의 물레는 ‘거대한 물질문명에 맞선 이상주의로 나가기 위한 단계이자 인간의 심성을 교육하는 방법’으로 일부 서구 진보 지식인들 사이에서 미화됐지만, 인도 공업을 가내공업 수준에 머물게 한 주범이었다. ‘인도 민족자본’은 보호무역주의와 대기업 규제 속에서 성장을 포기한 대가로 보호받으며 생존해 왔던 것이다.
1991년 냉전 체제의 붕괴와 함께 인도도 보호주의와 사회주의 경제를 버리고 글로벌 경제에 편입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나름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보호받던 전통 산업의 기반이 무너지게 되고, 대기업 노동조합의 정치화가 가속함에 따라, 노동개혁을 과감하게 실시하기엔 정치적 부담이 커졌다. 모디 정부의 딜레마가 여기에 있다. 수출주도형 제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선 노동개혁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국내 정치 여건이 만만치 않다. 모디 총리의 정치 기반은 힌두트바(Hindutva)라 불리는 힌두 내셔널리즘을 이념적 정체성으로 하는 인도인민당(BJP)이다. 노동개혁의 필요성은 잘 알지만, 자칫 자신의 정치 기반이 파괴될 수 있음을 우려하는 것이다. 이에 인도 경제가 악화된다면, ‘힌두 대 무슬림’ 갈등이 폭발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미국은 지난 4일 파키스탄 군사원조 중단을 선언했다. 이 결정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새해 첫 트위트에서 “미국은 어리석게도 지난 15년간 파키스탄에 330억 달러가 넘는 원조를 했다”며 “그들은 우리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잡으려고 하는 테러리스트들에게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예고됐다. 일부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스러운 행동 정도로 취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미국 대외정책의 무게중심이 ‘테러와의 전쟁’에서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파키스탄은 대테러 전진기지로서 미국에 중요한 곳이었다. 그러나 인도 우선이 노골화하고 있다.
인도가 ‘지정학적 찬스’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미국은 세계 생산기지를 그냥 중국에 유지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한국에 매우 중요하다. 지정학적 흐름에 따른 세계 경제 방향을 제대로 읽어야만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드 보복 이후 대중국 경제 의존도를 낮춰야 할 필요성이 대두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02월 07일 쿠르디스탄夢과 ‘친구國’중요성
터키, IS격퇴되자 쿠르드 공격
접경 국가들은 독립 원치 않아
美는 러시아·이란 견제로 고민
쿠르드족(族)에게는 친구가 없고 산만 있다’는 쿠르드족의 슬픈 속담이 다시 현실화하고 있다. 지난달 20일부터 터키군이 ‘올리브 가지’란 명칭의 시리아 지역 쿠르드족에 대한 대대적 토벌작전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쿠르드 민병대 ‘인민수비대(YPG)’ 935명을 제거하거나 생포했다고 지난 4일 밝혔다. YPG는 반(反)이슬람국가(IS) 국제동맹군의 지상군 주력 중 하나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IS의 상징적 수도였던 락까가 함락되는 등 IS가 대폭 위축되자, 터키가 YPG를 자국의 분리주의 무장조직인 ‘쿠르드노동자당(PKK)’과 연계된 테러조직으로 간주하고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터키는 애초부터 IS 토벌에 소극적이었다. IS가 사라지면 그 공백을 쿠르드가 차지하게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군사행동으로 에르도안 대통령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온라인을 포함한 터키 매체는 온통 애국심을 고취하는 내용으로 뒤덮이고 있다. 2016년 7월 군부 쿠데타 실패 이후 불안정한 내정을 외부문제로 해결하려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전략은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이대로 가면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에르도안 승리는 따 놓은 당상이란 것이 현지 분위기다. 특히, 에르도안의 이슬람주의 성향에 반발하고 있는 세속주의 군부의 관심을 밖으로 돌린 것만으로도 그 정치적 효과가 크다. 단, 터키군 피해가 늘어나고 사태가 장기화하면 역풍이 불 가능성도 작지 않다.
미국은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쿠르드는 반(反)IS 투쟁을 함께 한 ‘락까의 전우’라 강조하며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쿠르드는 IS 토벌전뿐 아니라, 2003년 이라크 침공 당시에도 미군에 적극 협력했었다. 또, 최근 미국·터키 관계는 1952년 터키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가입한 이후 최악이다. 에르도안 정부의 반미(反美)적 이슬람주의 움직임이 표면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고 당장 터키와의 관계를 끊고 쿠르드를 지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현재 터키군은 러시아의 남진과 이란의 서진을 제어할 수 있는 나토의 주요 무장력이다. 그리고 PKK 등 일부 쿠르드 단체들이 좌익 성향을 보이며 테러단체로 분류돼 있는 것도 미국의 쿠르드 선택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이란·이라크·시리아 등 주변 국가들 모두 터키의 쿠르드 공격을 내심 환영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 이후 이라크 북부에 쿠르드지방정부(KRG)가 수립된 것을 경계하고 있었는데, 터키·시리아 국경 지대 일부를 쿠르드가 장악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움직임이 확산되면 쿠르드 독립 국가인 ‘쿠르디스탄’ 건국 운동으로 발전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4일 이란·이라크·시리아가 러시아와 함께 ‘4자 고위급 안보회의’를 연 것도 이 때문이다. 표면상으론 IS 격퇴전을 평가하고 향후 지속적인 정보 교류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미국이 쿠르드를 지원할 가능성에 대한 사전 경고였다. 쿠르디스탄 독립을 찬성·지원하는 국가는 현재 이스라엘뿐이다.
KRG는 지난해 9월 독립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강행했다. 찬성 93%였다. 다음 달인 10월 이라크 정부군이 유전지대인 키르쿠크를 점령했다. 독립 움직임을 무력으로 막겠다는 것이었다. 이 사태는 독립을 추구하던 마수드 바르자니 KRG 수반이 퇴임하고 국민투표를 무효화함으로써 일단 수습됐다. 시아파 주도의 이라크 정부가 같은 시아파인 이란으로 완전히 기울 것을 우려한 미국은 KRG를 적극 설득했다.
쿠르드 인구는 3000만∼4500만 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오스만제국이 붕괴하면서 독립 국가 건설을 추구했다. 1920년 영국·프랑스 연합국과 오스만 제국 사이에서의 세브르조약을 통해 쿠르드 독립 국가 건설이 이뤄지는 듯했다. 그러나 무스타파 케말 파샤의 터키 정부가 그리스군을 격퇴하고 세브르조약 개정을 요구하면서 1923년에 새로 체결된 로잔조약으로 쿠르드 독립 약속은 지켜지지 않게 됐다. 쿠르드는 터키·아랍·이란 등 적어도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제국을 건설했던 민족들에 둘러싸여 있다. 또, 쿠르디스탄 지역이 바다에 인접해 있지 않다는 것도 큰 약점이다.
쿠르드는 또 버림을 받을 위기에 처해 있다. IS의 만행에 맞서 총을 들고 싸우던 쿠르드 여(女)전사들의 운명은 예측할 수 없게 됐다. 쿠르드 역사는 냉혹한 국제정치 현실과 민족국가(nation state)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워준다. 내부 문제도 만만치 않다. 터키계·이라크계·이란계·시리아계로 나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방언·부족·이념에 따라 분할 통치되는 경우가 많다. 종족(ethnic)이 아니라 민족(nation)으로서의 쿠르드로 진화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03월 07일 미·러 新냉전, 유럽에서 막 올랐다
푸틴, MD 뚫을 전략무기 공개
NATO 對러 대응력은 취약
2차 대전처럼 한반도에도 영향
미국과 러시아의 핵(核) 군비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1일 미국의 미사일방어(MD)를 무력화할 수 있는 핵 추진 순항미사일, 핵 추진 수중 드론, 극초음속 순항미사일, 차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4가지 신형 전략무기를 공개했다. 핵전력을 대폭 강화함은 물론 동맹국에 핵우산도 제공하겠다는 전략이다. 지난달 발표된 미국의 핵무기 현대화 방침에 정면 대응 의지를 과시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핵태세검토보고서(NPR)를 통해 냉전 붕괴 이후 견지해 온 핵 군축 방침을 철회하고, 1조2000억 달러를 투입해 핵무기 현대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이번 푸틴 대통령 주장이 ‘공갈’일 뿐이란 주장도 있다. 사정거리가 무한대라는 핵 추진 순항미사일의 경우, 연구·개발 단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차례 이상 시험 발사하는 등 개발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고 100메가톤(Mt) 핵탄두를 장착하고 최대 1만㎞ 떨어진 목표물을 공격할 수 있는 수중 드론 ‘스타투스(Status)-6’의 존재는 이미 확인됐다.
푸틴의 ‘핵 맞짱 대응’은 일단 오는 18일 러시아 대선용으로 보인다. ‘강한 러시아’ 노선으로 압도적 지지를 끌어내겠다는 것이다. 크림반도 합병과 우크라이나 하이브리드전(戰)으로 인한 서방의 경제 제재로 러시아 경제가 악화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국민은 푸틴의 ‘근육질 과시’에 열광하고 있다. 그러나 허풍으로만 간주할 순 없다. 푸틴의 러시아는 2008년 조지아 전쟁, 2014년 크림반도 합병, 그리고 지금도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하이브리드전을 치르면서, 서방 군사력을 ‘종이호랑이’로 여기기 시작했다. 심지어 트럼프 행정부의 핵전력 강화론도 미국의 재래전 능력의 허약함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공포의 핵 균형’을 통해 미국과의 ‘핵 있는 평화(nuclear peace)’를 확보한 뒤, 우크라이나식 하이브리드전을 통해 동유럽 패권을 회복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러시아와의 신(新)냉전체제 구축을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 두 개의 전선이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초기 러시아와의 연대를 통해 중국을 견제·포위하려 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미국 대선 사이버 개입설로 인해 이 노선은 일단 힘들게 됐다. 또, 중국보다는 러시아를 경계할 수밖에 없는 유럽 국가들과 미국 내의 동유럽 출신 유대계 지식인들의 입김도 만만찮다. 물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독일과 일본을 상대로 2개의 전선에서 싸운 경험이 있다. 그러나 당시 독일군 주력은 소련군과 싸우고 있었으며, 일본군의 상당 부분도 중국 전선에 묶여 있었다. 이에 대중(對中) 전선에서는 인도를 끌어들이고 있으나, 대러 전선에서는 마땅한 파트너가 보이질 않는 것이다.
나토(NATO)의 경우, 대응 능력이 의심받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2% 이상을 국방비에 사용할 것을 요구받고 있으나, 이를 지키는 회원국은 2017년 현재 영국·폴란드·에스토니아·루마니아·그리스 5개국뿐이다. 그리고 국방비의 20% 이상을 무기 구입에 사용하라는 권고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국방 예산의 대부분이 인건비와 같이 직접적 전략 강화와 무관한 부분에서 소진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유출된 독일 국방부 보고서 내용은 충격적이다. 나토군 내에서 분쟁지역에 48시간 이내에 투입되는 초신속합동군(VJTF) 소속 독일군 여단을 점검했더니, 44대의 레오파드 2 전차 가운데 9대, 14대의 보병전투차량 마르더 가운데 3대만이 정상적으로 가동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VJTF의 지휘권은 내년부터 독일군이 갖게 된다. 이 와중에 최근 터키군도 믿을 수 없게 됐다.
동유럽의 정치 지형도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헝가리·불가리아·몰도바 등에서 친러 성향의 정권이 잇따라 수립되고 있다. 반(反)서구 정서가 경제 악화와 결합하면서 나타난 현상인데, 가스 파이프라인을 통한 러시아의 협박·회유도 한몫하고 있다. 심지어 그리스마저도 금융위기 이후 친러 경향을 보이곤 한다. 동유럽에서 폴란드 정도가 러시아 패권을 경계하고 있을 뿐이다. 이에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를 제2차 세계대전 직전 독일에 의한 오스트리아·체코 합병과 비유하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먼 유럽의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1939년 9월 유럽에서 발발한 2차 세계대전은 한국 운명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우선 미국 군사력이 분산될 수 있다. 현재 미군 전력은 2개의 주요지역 분쟁(two major regional conflicts: two-MRC)에 동시 대응하는 병력 구성에 미달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리고 핵 있는 평화론, 정규전과 비정규전에 정치·선전·이념전을 배합한 하이브리드전도 한반도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03월 15일 ‘동남아 小패권’ 베트남-美 연대
美 항모 43년 만에 베트남 기항
다낭港 미군 기지 임차 가능성
北의 베트남 모델論까지 대두
지난 5일 베트남 해군 3지역사령부 모항(母港)인 다낭으로 미 해군 7함대 소속 칼빈슨호 항공모함 전단이 입항했다. 항모 칼빈슨호는 다낭 해안에서 1㎞ 떨어진 지점에 닻을 내렸으며, 순양함 레이크 섐플레인호와 구축함 웨인 메이어호는 다낭 테엔사항에 정박했다. 전단 소속 미군 장병 3000여 명이 다낭 시내로 쏟아져 들어왔으며, 곧 시내 주요 호텔 객실은 미군 장병들로 가득 찼다. 그리고 이날 오후 7시 30분 다낭을 관통하는 한(汗)강변에서 칼빈슨호 소속 악단의 공연이 시작되자, 다낭 시민 수천 명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노이 봉 따이 런’(크게 둥글게 손을 잡자)을 함께 부르며 열광했다.
미 항모가 베트남에 기항한 것은 베트남전 이후 43년 만에 처음이다. 특히,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종신 집권을 가능케 하는 헌법 수정이 이뤄진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개막식과 같은 5일에 이뤄졌다는 사실이 눈길을 끌었다. 미국을 끌어들여 중국 패권을 견제하겠다는 베트남의 의도를 읽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에 군사동맹까지는 몰라도, 베트남 항구를 미 해군 기지로 임차하는 것을 골자로 한 미·베트남 군사협력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번에 방문한 다낭이 유력 후보지다. 다낭 항구와 공항 자체가 베트남전 당시 미군 기지용으로 건설됐다.
베트남 해군 4지역사령부 주둔지인 깜라인도 후보지 중 하나다. 킬로급 잠수함 6척의 모항인 깜라인은 베트남전 당시 미 해군 기지였다가, 1979년 25년 임차 협약으로 소련 해군 기지가 됐던 곳이다. 당시 베트남이 소련 해군을 불러들인 이유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1979년 2월 17일 중국군이 베트남을 전면 침공함으로써 중·베트남 전쟁이 발발했었다. 그러나 러시아 해군은 베트남이 연임대료 2000만 달러를 요구하자, 2002년 5월 철수해 버렸다.
베트남 인구는 9500만 명에 달한다. 그리고 아직 높은 출산율을 보이고 있어 곧 1억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경제성장률도 최근 6%대를 유지하고 있다. 올해 7%를 넘어설 것이란 전망도 있다. 그리고 상비군 42만 명, 예비군 300만 명의 지상군을 보유하고 있는데, 젊은 층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인구 구성으로 병력 충원에 자신감을 보인다. 지역 방어 위주인 수도방위사령부와 7개 군관구 병력 이외에, 기동군 4개 군단을 별도로 유지하고 있다. 또, 무엇보다 프랑스·미국·중국을 차례로 격퇴했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해군도 러시아제 킬로급 잠수함을 도입하는 등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경제 개발과 군 현대화를 위한 도움을 미국으로부터 받아낼 수 있다면, ‘동남아 소(小)패권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과거 미국의 교전국이었던 독일과 일본도 미국의 경제 원조로 일어났으며, 지금도 미군 기지를 유지하고 있다는 주장이 베트남에서 힘을 얻고 있다. 특히, 중국의 남중국해 패권 추구가 노골화하면서 이를 견제할 해군력을 유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물론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높은 대중(對中) 경제 의존도 때문이다. 베트남의 1위 수입국은 28.6%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이다. 대부분 저가 생필품이다. 따라서 중국과의 무역 관계가 흔들리면 베트남 서민 경제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2위는 18.3% 한국, 3위는 13.8% 아세안이다. 그렇기에 아직은 중국 눈치를 보고 있다. 그러나 베트남의 대중 수출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다. 1위 미국 21.8%, 2위 유럽연합(EU) 19.3%인 데 비해, 3위 중국은 12.4% 정도다. 이에 베트남은 지난 8일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일본·캐나다·호주 등 11개국이 참여하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서명했다. CPTPP는 미국을 포함한 12개국이 지난 2016년에 서명한 기존 TPP 협정 내용을 최대한 유지한 채 명칭만 바꾼 것으로,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2.9%, 교역량의 14.9%를 차지하는, 세계에서 3번째로 큰 메가 자유무역협정(FTA)이다. 태평양 국가들과의 경제 협력으로 돌파구를 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 CPTPP에 참여하지 않고 있어, 그 전망에 대해선 여러 분석이 나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달 말 베트남을 방문할 예정이다. 베트남은 5000여 한국 기업이 진출해 있는 남방경제협력을 위한 핵심 국가다. 또, 많은 한국인이 혼인관계를 맺고 있는 ‘사돈 국가’이기도 하다. 따라서 베트남과의 협력은 중요하다. 그런데 최근 미·북 정상회담이 거론되면서, 북한이 베트남처럼 친미 노선을 취하며 중국을 견제하겠다고 나서면 어떻게 될까 하는 화두(話頭)가 나오고 있다. 아직 사회과학적 분석이라기보다는 공상과학적 상상에 가깝다. 그러나 친중 국가 캄보디아 수준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은 기우(杞憂)이길 바랄 뿐이다.
03.28 이란核 재협상과 북핵 新해법
美, 이란에 핵 완전 폐기 협상 요구
시한 5월12일은 美·北 회담 직전
北에 ‘先폐기 後보상’ 강화할 듯
이란 핵 문제가 다시 국제사회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對)이란 경제 제재 면제를 오는 5월 12일까지만 연장하고, 그때까지 재협상이 안 되면 이란 핵 합의를 파기하고 이란 경제 제재를 재개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조건으로 핵 프로그램 제한이 2030년에 자동 해제되는 일몰조항(Sunset Clause)을 폐지하고, 이란의 탄도미사일 제한 조항을 추가할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때부터 줄곧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업적으로 간주돼 온 이란 핵 합의를 문제 해결이 아닌 지연이었을 뿐이라고 비판해왔다. 그러다가 최근 ‘전시내각’으로도 불리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라인을 구축하면서 공세를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란 핵 합의는 P5 + 1(5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 독일)이 2015년 7월 이란과 맺은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으로서, 이란이 우라늄 농축 시설 규모를 제한하고 핵 사찰을 수용하며 향후 2030년까지 핵무기 개발에 쓰일 위험이 낮은 ‘저농축우라늄’ 300㎏만 보유하는 조건으로 서방은 대이란 경제 제재를 해제한다는 내용이다. 일단 이란 핵 개발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선 긍정적이나, 완전한 핵 폐기가 아닐 뿐만 아니라 한시적 조치란 한계가 있었다.
이란은 미국의 핵 합의 재협상 요구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그러지 않아도 핵 합의가 서방의 요구에 지나치게 굴복한 것이라는 이란 내 강경파들의 비판에 시달리고 있던 참이었다. 로하니 대통령은 그동안 이란 경제를 회복하려면 서방의 경제 제재에서 벗어나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핵 합의가 불가피했다는 점을 역설해 왔다. 그리고 아직 만족할 만하진 않지만, 이전 정부의 2.3%의 배가 넘는 평균 4.8%의 경제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 유럽 국가들은 이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등 강경파의 목소리에 다시 힘이 실릴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 강경파들은 어차피 로하니 대통령이 이란판 고르바초프나 덩샤오핑(鄧小平)이 될 가능성은 없다고 분석하고 있다. 로하니를 지지하는 실용파는 주로 서구 유학파로서 내부 단결이 약하고 대중과의 유대감이 적은 반면, 하메네이로 대표되는 강경파는 참호 속에서 함께 싸운 전우들로서 똘똘 뭉쳐 이슬람 사원과 군·정보기관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20일 가디 아이젠코트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이 2007년 9월 5일부터 6일 사이 야간에 이스라엘군이 시리아의 핵 재처리 시설을 공습한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하고 관련 영상 등을 공개한 사실이 이번 이란 핵 합의 폐기와 연관돼 주목을 받고 있다. 문제 시설은 시리아가 북한의 도움을 받아 짓고 있던 흑연감속로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스라엘 정부가 미국에 공습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하자 직접 공격했다는 것이다. 당시 현장에는 북한 측 관계자 10명이 있었다고 한다. 이스라엘이 11년간의 침묵을 깨고 갑자기 공습 사실을 시인한 이유는 “2007년의 메시지는 미래의 적들에 대한 메시지이기도 하다”는 아이젠코트 참모총장 발언으로 짐작할 수 있다. 필요하다면 이란도 칠 수 있다는 경고였던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도 트럼프 행정부의 이란 핵 합의 재협상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수니파 아랍국가로서 시아파 맹주인 이란에 적대적인 사우디는 이란의 핵 개발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사우디의 실세 모하마드 빈살만 왕세자는 20일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사우디가 미국 원자력을 수주하는 조건으로 ‘미 원자력법 123조’ 완화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것이 완화되면 핵무기 확산이 이뤄질 수 있다. 우라늄 농축과 사용 후 연료 재처리가 가능하면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빈살만 왕세자는 15일 CBS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란이 핵폭탄을 개발한다면 우리도 최대한 신속히 같은 패를 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란 핵 문제가 어떻게 풀리느냐에 따라 북핵 문제 해결 방안도 달라질 수 있다. 우선, 재협상이 되지 않고 기존 이란 핵 합의만 깨지게 된다면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가 붕괴 위기를 맞게 된다. 이 경우 미국의 관심은 이란에 집중될 것이며, 북핵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날 수도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란 핵 합의 파기는 북핵을 기정사실로 굳히면서 군축협상을 하려는 북한의 의도와 전혀 다른 방향의 핵 협상 기준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미 이란식이 아닌 리비아식 해법이 거론되고 있다. 리비아식이란 ‘선(先) 폐기, 후(後) 보상’으로, 완전한 핵 포기와 이에 대한 검증이 이뤄진 후에야 제재를 해제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문재인 정부의 대북 협상 낙관론 입지는 대폭 줄어들게 된다.
04월 04일 미국은 대만 포기하지 않는다
美 F-35 대만 판매론 再부상
中에선 대만 선제공격론 나와
韓 해양수송로 위협 대비해야
미국의 F-35 스텔스 전투기 대만(臺灣) 판매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최근 짐 인호프, 존 코닌 등 공화당 소속 미 상원의원들이 대만에 F-35 전투기 판매를 허용할 것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국방부가 지난 1월 발표한 국가방위전략에 중국이 최대 위협 중 하나로 돼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미국을 위협하는 세력과의 최전선에 서 있는 대만은 미국의 동맹이며, 미국은 이 지역의 자유민주주의 동맹을 지켜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F-35 대만 판매론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작년 4월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여러 경로를 통해 흘러나온 바 있다. 그러나 마러라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이 나름 원만하게 끝나자, 슬그머니 고개를 감추기 시작했다. 대만에서도 F-35 구매보다는 기존 F-16을 개량해 주력 전투기로 계속 활용하는 것이 현실적이란 주장에 힘이 실렸다.
그동안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수 없었던 가장 큰 군사·지리적 장애는 바다였다. 미 7함대가 가로막고 있는 한, 중국군이 대만해협을 건너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아니, 미군이 없더라도, 과거 중국 해군과 공군은 상대적으로 최신 무기로 무장한 대만 해·공군을 이기기 힘든 전력이었다. 그러나 중국군 현대화가 가속화되면서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대만군을 압도하는 군사력을 갖췄으며, 지대함 미사일·잠수함 등 미 함대의 개입을 저지할 ‘반(反)접근·지역거부(A2AD)’ 전력을 계속 강화하고 있다. 1950년대 이후 처음으로 대만을 점령할 수 있는 실질적 무력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대만이 원하는 모델은 수직 이착륙이 가능하고 평소보다 짧은 활주로만 있어도 되는 미 해병대용 F-35B다. 한국 공군은 대북 제공권 확보를 자신하고 있기 때문에 미 공군용 F-35A를 도입할 예정이지만, 대만은 개전 초기에 중국이 대만 공군 기지를 선제 타격할 것에 대비해 분산 배치하기 좋은 F-35B를 선호하는 것이다. F-35B는 수직이착륙 능력을 갖추기 위해 F-35A보다 무장탑재 능력과 작전 반경 및 그 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만약 대만이 F-35로 무장하게 된다면, 과거 누렸던 대(對)중국 불침(不沈) 항공모함의 위치를 회복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미국도 대만해협에서 중국의 A2AD에 맞설 수 있는 대항력을 강화할 수 있게 된다.
미국이 ‘대만 무장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중국은 불쾌할 수밖에 없다. 그러지 않아도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이 ‘대만여행법’에 서명한 이후, 알렉스 윙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부차관보, 에드 로이스 미 하원 외교위원장 등 미 고위인사들이 잇달아 대만을 방문하는 사실에 대해 ‘하나의 중국’ 원칙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던 참이다. 중국은 미국이 대만과 형식상 단교했으나, ‘대만관계법’을 통해 사실상의(de facto) 외교 관계를 대만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다. 이에 대만관계법에 따라 미국이 대만에 무기를 수출하는 것을 애써 못 본 척해 왔다. 실제로 미국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시에도 3차례에 걸쳐 140억 달러어치 무기를 대만에 판매했다. 그러나 1979년 미·중 수교 이후 일반 무기는 몰라도 신예 전투기·잠수함·이지스 구축함과 같이 대만해협에서 게임체인저 역할을 할 만한 신예 무기를 미국이 대만에 판매한 적은 없었다.
중국은 2005년 3월 14일 반분열국가법(反分裂國家法)을 제정했는데, 제8조에 대만이 실질적으로 독립을 추진하거나 평화적인 통일의 틀을 파괴할 경우, 중국군이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대만이 F-35 도입을 결정하면, 전력화되기 전에 선제공격해야 한다는 주장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미국에서도 중국의 반응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보수적 헤리티지 재단의 예비역 전투기 조종사 출신인 존 베너들 국방정책 선임 연구원도 “F-35를 대만에 판매함으로써 중국을 억제하는 효과보다는 대만과 중국 간에 전쟁을 유발할 위험이 오히려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에는 북핵 문제 해결의 대중 지렛대로 미국이 대만을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미국이 보는 대만의 전략적 가치는 결코 한반도보다 작지 않다. 대륙 방어보다는 해양 방어가 미국 전략에 부합한다는 견해를 가진 미 전략가들은 대만의 가치를 한반도보다 더 크게 보는 경우가 많다. 이런 역외 방어(offshore defense)론자들은 한반도는 포기할 수 있어도 대만은 버릴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만은 한국에도 중요하다. 대만이 중국으로 흡수될 경우, 대한민국의 생명선인 대만해협을 거쳐 믈라카해협으로 이어지는 해양 수송로의 운명은 중국 손아귀에 들어가게 된다. 어떻게 될지는 최근 중국의 ‘사드 보복’을 통해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
04월 11일 시리아 화학무기, 강 건너 불 아니다
유럽, 화학무기 확산 공포 증폭
미국·서구 對 러시아·이란 전선
북한·시리아 커넥션 다시 주목
시리아 화학무기 사태가 국제사회 갈등의 중심이 되고 있다. 크림반도 사태,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전(前) 러시아 스파이 독극물 암살 기도 사건 등으로 그렇지 않아도 고조되고 있던 서방 대(對) 러시아의 갈등이 이번 사태로 전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지난 7일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공격으로 동(東)구타 반군(叛軍) 지역에서 어린이 등 민간인 수십 명이 숨진 것으로 전해지면서 시작됐다. 프랑스 주도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9일 소집됐으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짐승’이라 맹비난하며 ‘큰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시리아 정부 지지 국가도 책임져야 한다”며, 러시아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런 서방 국가들의 움직임에 대해 러시아는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시리아의 화학무기 사용 자체를 ‘개입 핑계를 위한 날조’라 주장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9일 새벽 시리아 정부군은 물론 러시아·이란·헤즈볼라 병력이 주둔하고 있는 시리아 중부 도시 홈스의 타이프로 공군 기지에 미사일 8발이 날아온 것이다. 이란군을 포함, 최소 14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국방부는 미사일 공격의 주체가 이스라엘이라고 지목했다. 이스라엘 공군 F-15기 2대가 레바논 상공에서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고 있다.
서구 국가들이 시리아 화학무기 사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첫째, 인권 문제 때문이다. 독가스에 무참하게 살해당한 어린이·여자의 처참한 사진이 보도되면서 시리아 정부의 반(反)인권 만행을 규탄하는 국내 여론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 화학무기 확산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슬람 테러 단체들이 시리아로부터 화학무기를 획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최근 헝가리에서 ‘반(反)난민 정서’를 업고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압도적 의석을 확보하며 4선에 성공했다. 오르반 총리는 선거 당시 난민을 ‘독극물’이라고 불러 서구 자유주의적 언론들로부터 맹공격을 받았다. 그런데 진짜 독극물이 시리아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셋째, 미국 정책 결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미국 유대인 사회의 ‘아우슈비츠 독가스’ 트라우마 때문이다. 유대인은 핵보다 독가스에 더 큰 거부감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이슬람국가(IS)의 상징적 수도 락까에서 IS가 축출되자, 출구전략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직접적 테러 위협 근거지가 사라진 이상, 시리아 내전에 계속 발을 담글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쿠르드족 문제가 거론되기도 했으나, 대체로 외면하는 분위기였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시리아 주둔 미군 2000명을 수개월 내에 철수하라고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에게 지시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시리아 주둔 미군은 특수전 요원과 반군에 대한 군사고문·훈련교관단으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 이번 사태로 철군은 일단 보류되게 됐다.
북한-시리아 커넥션 문제가 다시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 뉴욕타임스(NYT)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보고서를 인용해 양국 간 커넥션을 집중 조명한 적이 있다. 2012∼2017년 북한에서 시리아로 선박을 통해 탄도미사일 부품 등 최소 40건의 금수품목이 이전됐는데, 화학무기 제조 과정에서 사용되는 내산성 타일과 밸브, 온도측정기 등도 포함됐다는 것이다. 또, 2016년 8월 북한 기술자들이 시리아 바르제·아드라·하마에 있는 화학무기 및 미사일 시설에서 일했다는 것이다.
2007년 7월 28일 시리아 알사피라에서 수십 명이 숨지는 의문의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 시리아 정부는 쉬쉬했는데, 두 달 뒤인 9월 영국 군사전문 잡지 디펜스 위클리가, 폭발한 것은 시리아과학연구센터(SSRC)가 운영하는 비밀군사시설이며, 당시 사망자 중에 북한 기술자 3명도 있었다고 보도했다. 북한 기술자들은 그곳에서 단거리탄도미사일인 스커드C의 탄두에 머스터드가스를 탑재하는 실험을 해왔으며, 폭발이 일어난 곳은 VX·사린가스·머스터드가스 등 화학무기용 물질이 보관돼 있던 저장소였다고 한다.
북한 김정은은 이번 시리아 사태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관심이 한반도에서 중동으로 옮겨가기를 기대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시리아 화학무기 개발의 주요 파트너가 북한이란 사실이 부각될 경우, 그 여파는 북한으로 번질 수 있다. 화학무기금지조약(CWC) 비가입국은 북한·이집트·남수단 3개국뿐이다. 시리아조차도 2013년 10월 가입을 신청, 화학무기금지기구(OPCW)로부터 사찰을 받으며 완전 가입국이 되기 위한 절차를 밟던 중이었다. 현실 사용이 쉽다는 점에서 핵보다도 무서울 수 있는 북한 화학무기에 대한 경계를 늦춰선 안 될 것이다.
04월 25일 ‘동갑내기’ 한국과 이스라엘
無에서 小强國 이룬 건국 70년
美 대사관 예루살렘 이전 관철
文정부 ‘성공史 외면’과 다른 길
이스라엘은 다음 달 14일 건국 70주년을 앞두고 온통 축제 분위기에 젖어 있다. 70이 유대인에게 해방을 의미하는 숫자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스라엘 건국일은 서양력으로 5월 14일이나, 이스라엘인들은 매년 유대력으로도 기념해 왔는데, 올해는 4월 19일이었다. 이에 지난 18일 밤 성화 점화식을 시작으로 건국 70주년 축하 행사의 막이 올랐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 행사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을 ‘세계 강국’으로 만들고 있다”며 “빛이 어둠을 이길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당시, 살아남을 것으로 확신한 사람은 매우 적었다. 이스라엘은 가난한 농업국으로, 군사적 약체였고, 인구도 80만에 불과했다. 건국 자체가 이집트·시리아·요르단과의 독립전쟁을 통해 이뤄졌다. 그리고 그 후 1956년 수에즈전쟁, 1967년 6일전쟁, 1973년 10월전쟁 등 수많은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적대적 아랍국가들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조건 속에서 생존한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 4만2000달러 부국(富國)으로, 최첨단 전투기와 미사일로 무장한 강병(强兵)을 보유하고 있으며, 인구도 900만에 육박하는 소강국(小强國)이다. 또, 중동 지역의 유일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이번 건국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미국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이다. 텔아비브에 위치한 미 대사관은 이스라엘 건국일인 5월 14일에 예루살렘으로 이전하면서 개막식을 한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과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 등 미국 정·관계 주요 인사 250명이 참석한다. 또, 올해 윌리엄 왕자가 영국 왕실 최초로 이스라엘을 공식 방문할 예정이다. 2016년 찰스 왕세자가 시몬 페레스 전 이스라엘 대통령 장례식에 참석했는데, 이는 비밀 방문이었다.
문제는 이슬람권의 반발이다. 예루살렘을 메카·메디나와 함께 3대 성지로 여기고 있는 이슬람권에서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공식 선언하고, 이번에 대사관을 아예 예루살렘으로 옮겨 대대적인 행사를 벌인다고 하니, 이를 묵과하기 힘든 것이다. 특히, 팔레스타인인은 거칠게 반발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인은 이스라엘 건국일 다음 날인 5월 15일을 ‘나크바(재앙)의 날’로 부르고 있다. 이미 가자지구에서는 지난달 30일부터 매주 금요일 반(反)이스라엘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제3차 인티파다(반이스라엘 아랍 봉기) 임박설마저 나오고 있다.
이스라엘 당국의 태도는 비교적 느긋하다. 우선 인구문제로 대변되던 내우(內憂)가 사라졌다는 판단 때문이다. 과거 이스라엘은 아랍 인구가 다수가 될까 봐 고민했다. 그러나 구(舊)소련 지역 유대인들이 대거 들어오고, ‘자궁의 전쟁’(the war of the wombs)에서 이기고 있다. 팔레스타인 여성은 고학력이 되면서 출산을 꺼리고 있으나, 유대인 여성은 1인당 자녀 3명을 유지하고 있다. 또, 팔레스타인은 요르단 서안지구의 파타(Fatah)와 가자지구의 하마스(Hamas)로 나눠져 내분을 벌이고 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의 파타는 인정하고 있으나, 하마스는 테러조직으로 간주하고 있다. 하마스는 급진 이슬람주의 세력으로 이스라엘에 대해 ‘3No 정책’(No recognition, No peace, No negotiation)을 고수하고 있다.
외환(外患) 문제도 상당히 해결된 상태다. 과거 중동전쟁에서 가장 버거웠던 이집트와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이집트 정부는 내심 이스라엘보다도 가자지구의 하마스를 더 두려워하고 있다. 이에 가자지구와 시나이반도를 연결하는 땅굴을 색출해 없애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내전 중인 시리아는 이스라엘에 맞설 형편이 아니다. 문제가 있다면 이란이다. 그렇기에 이란의 움직임엔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이란은 멀리 있다.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와는 사실상 ‘반(反)이란 공동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사우디의 실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이스라엘도 자기 땅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발언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대한민국은 적대적 주변 환경 속에서 친미 노선을 추구하며, 경제적 번영을 누리고, 자유민주주의를 유지했다는 점에서 이스라엘과 유사하다. 문약했던 두 나라 국민이 건국 이후 전쟁을 거치면서 무(武)를 회복한 점도 비슷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70년 역사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이를 계승·발전시키려 하는 반면, 한국 정부는 70년 역사를 극복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대한민국 70년은 보이질 않는다. 유일하게 대접받는 행사는 4·3뿐이다. 2018년을 기점으로 대한민국과 이스라엘이 전혀 다른 역사의 길로 나가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05월 02일 니카라과 4·19와 진보 영웅의 타락
내전 이후 최대 유혈 사태 확산
니카라과 운하 地經學的 관심
민중영웅에서 독재자로 전락
태평양과 카리브해 사이의 지협(地峽)에 위치한 인구 600여만 명인 나라, 니카라과에서 1994년 2월 내전 종식 이후 최대 유혈 사태가 진행되고 있다. 수도 마나과의 주요 대학 곳곳에 반정부 학생 시위대가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다니엘 오르테가(73) 대통령-로사리오 무리요(67) 부통령 부부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 학생은 화염병은 물론 사제 박격포까지 준비한 채 끝까지 저항할 것을 외치고 있다. 학생 시위대는 스스로 ‘4·19 학생운동’이라 부르고 있다. 이는 지난달 19일 반정부 시위에서 첫 학생 사망자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번 니카라과 시위 사태는 지난달 16일 정부가 사회보장기금(INSS) 개혁안을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19% 고용주 분담금을 22.5%로, 6.25% 노동자 분담금을 7%로 올리면서 월 연금 수령액은 5% 삭감한다는 방안에 반발해 대규모 시위가 일어난 것이었다. 그리고 19일 경찰과 집권 여당 산디니스타 청년당원 오토바이 부대가 대학생 시위대를 집단 폭행하고 그 과정에서 학생 사망자가 나오면서 시위가 격화됐다. 니카라과 인권위원회는 최소 63명이 숨지고, 15명이 실종됐으며 160명 이상이 총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이에 니카라과 정부는 서둘러 INSS 개혁안 포기를 선언했으나, 학생 시위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정권 타도 투쟁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니카라과 ‘4·19 학생운동’은 비(非)조직적이고 자연발생적일 뿐만 아니라, 현 정부를 대체할 권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커다란 한계를 보이고 있다.
현재 니카라과 학생들이 부패와 독재의 화신으로 여기는 오르테가 대통령은 1980년대 중남미 진보혁명의 아이콘으로서, 당시 한국 학생운동권에서도 민중혁명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소모사 일가 장기독재를 종식시킨 1979년 산디니스타 혁명의 주역인 오르테가는 1984년 대통령이 됐다. 그러나 미국의 금수 조치와 콘트라 반군과의 내전, 그리고 기술인력의 대량 이민으로 경제 위기에 봉착하면서 1990년 대선에서 패배하게 된다. 그런데 당시 주변 예상과 달리, 순순히 정권교체에 응하고 물러서는 모습을 보여줘 서구 지식인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보수 정권도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부정부패 스캔들이 터지고 에너지 위기가 발생하자, 집권하면 같은 좌파 정권인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정부로부터 석유를 싼값으로 제공받을 수 있다고 국민을 설득한 오르테가가 2006년 11월 대선에서 다시 승리할 수 있었다.
권력을 빼앗겼다가 다시 잡은 오르테가는 권력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우선 경제 정책에선 급진좌파가 아닌 온건 좌파의 노선을 취하며 중소 상공인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강력한 산디니스타 혁명군 조직을 기반으로 군과 경찰 등 사법 권력을 장악하고, 포퓰리즘 정책으로 대중의 환심을 획득해 나갔다. 37.99% 득표로 재집권했으나, 지지도가 80% 가까이 치솟았다. 그리고 급기야 대통령 임기 제한을 없애는 헌법 수정을 단행하더니 2016년 11월 대선에서는 부인 무리요를 러닝메이트 부통령 후보로 지명해 재집권 이후 연속 3번 대통령에 당선됐다.
니카라과가 관심을 끄는 것은 니카라과 운하 때문이다. 오르테가 정부는 중국의 HKND사(社)와 계약을 체결하고 2014년 12월 태평양 연안의 브리토강(江)에서 카리브해 연안의 푼타고르다강(江)으로 이어지는 길이 278㎞ 니카라과 운하를 착공했다. 총 건설비 500억 달러는 모두 HKND가 책임지는 대신에, HKND는 니카라과 정부에 매년 1000만 달러를 내는 조건으로 100년 동안 운영권을 갖기로 했다. 파나마 운하에 대항하는 운하를 중국 자본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지경학(地經學)적 지각변동을 가져올 수 있는 이 문제에 미국이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파나마 운하 확장 공사로 그 경제적 효용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았다. 파나마 운하는 2016년 6월 확장 개통됐으나, 니카라과 운하가 예정대로 2019년까지 완공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또, 공사 과정에서 오르테가 일족들의 비리 문제가 잇따라 터져 나오고 있으며, 운하 부근 거주 원주민 이주 문제와 니카라과호(湖) 오염 등 환경문제가 대대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오르테가 정권 위기의 근원은 경제 문제에 있다. 니카라과가 버틴 것은 베네수엘라의 오일 달러 지원 덕분이었다. 그러나 유가 하락으로 베네수엘라 스스로 코가 석 자나 빠진 상태다. 이에 그동안 선심으로 베풀던 사회복지가 지속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정치적·이념적 후원자였던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와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도 저세상으로 떠났다. 청년 혁명가에서 늙은 독재자로 전락한 오르테가의 모습에서 ‘악마는 타락한 천사’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05월 23일 터키의 ‘自由 뺀 민주주의’ 실험
에르도안, ‘술탄’으로 선출 예정
‘구체제 질병 청소’ 속 6월 대선
‘국민 의지 독점’은 독재의 예고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마침내 ‘21세기 술탄’으로 공식 등극하는가. 터키에서는 다음 달 24일 대통령 선거와 총선이 동시에 치러진다. 지난달 18일 에르도안 대통령이 원래 내년 11월로 예정돼 있던 선거를 앞당겨 실시하기로 발표한 것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슬람주의 집권당인 정의개발당(APK)과 범(汎)터키주의를 표방하는 민족주의행동당(MHP)의 연대 후보로 추대됐는데, 이변이 없는 한 당선이 무난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터키는 2016년 7월 불발 쿠데타 이후 국가비상사태 상황에 있는데, ‘구체제 질병 청소’란 이름 아래 반대세력을 대대적으로 체포하고 공직에서 몰아내고 있다. 지난 3월 유엔 인권위원회가 밝힌 바에 따르면 16만 명이 체포되고 공무원 15만2000명이 해임됐다. 그리고 이번 달에도 101명의 전·현직 공군 간부가 체포됐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터키 민주화의 상징이었다. 군부 주도의 근대화 과정에서 소외된 계층을 대변하는 민주투사로 떠오른 에르도안은 이슬람주의 세력의 지지로 2002년 11월 총선에서 승리해 2003년 내각책임제 총리로 선출됐다. 그때만 하더라도 서구 민주주의자들도 에르도안에 대해 큰 기대를 걸었다. 서구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프롤레타리아 독재 노선을 포기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들어온 것처럼, 온건 이슬람주의 세력이 자유민주주의로 수용되는 ‘이슬람민주주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모델로 여기기도 했다. 에르도안은 일부 우려와 달리 나토(NATO)를 탈퇴하지 않았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미군에 길을 내주지 않아 삐꺽거리기도 했으나, 급속한 대미 관계 변화도 추구하지 않았다. 또, 친(親)이슬람 정책과 사회복지 정책을 강화해 나갔지만, 시장경제 틀을 크게 벗어나진 않았다.
그런데 에르도안이 직선제로 바꿔 2014년 대통령에 당선되면서부터 상황이 급변했다. 이전까지 헌법상 터키 대통령은 실권 없는 상징적 자리였다. 그러나 이슬람주의 대중의 열렬한 지지와 결합한 직선제 대통령의 위력은 만만치 않았다. 대의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무시한 ‘직접 민주주의’ 광풍이 불기 시작했다. 법과 제도보다는 ‘국민의 의지(people’s will)’가 중요하게 됐으며, 에르도안 지지 세력이 ‘진정한 국민의 목소리’의 독점적 대변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에 반대하는 의회나 사법부 인사들이 ‘국민의 이름’으로 탄압받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2016년 7월 불발 쿠데타가 발생했다. 에르도안은 이를 역습의 기회로 활용했다.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세속주의 군부 세력을 대대적으로 숙청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해 4월 국민투표를 통해 대통령 중심제로 개헌함으로써, ‘선출된 술탄’ 입지를 공고히 했다.
근대 터키공화국은 1922년 11월 술탄제를 폐지하고 1923년 10월 공화정을 선포하면서 시작됐다. ‘터키 근대화의 아버지’ 케말 파샤 중심으로 서구화된 군부가 ‘탈(脫)이슬람-입(入)유럽’ 개혁을 추진했다. 그러나 경제 성장 등 많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급속한 근대화 과정에서 ‘그늘’이 발생했으며, 기득권층의 부패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됐다. 그리고 터키 근대화 세력은 정치·경제 권력을 장악했으나, 문화적·이념적 헤게모니를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빼앗아 오지는 못했던 것이다. 이에 터키 군부는 자신을 ‘헌법의 수호자’로 규정한 헌법 조항을 만들고, 헌법 위기라 판단될 때마다 쿠데타를 일으켜 반(反)헌법 세력을 축출하는 ‘무장한 헌법 재판관’ 역할을 담당해 왔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군부 중심 체제는 한계에 부닥쳤다.
결국 21세기 들어와서 권력이 민주와 국민주권을 외친 이슬람주의 세력에 넘어갔다. 그리고 ‘민주주의 제한’ 시대가 가고 ‘민주주의 폭주’가 시작되더니, 공화제가 사라지고 ‘현대판 술탄제’가 되고 있다. 사실 이는 에르도안의 ‘이슬람민주주의’ 세력이 자유(自由)를 빼고 민주주의만을 언급할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서구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라면서 굳이 자유를 강조하는 것은 개인의 권리와 민주주의 절차의 제도화가 무시될 경우 민주주의란 이름 아래 ‘다수의 폭정’으로 타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다수의 폭정은 1인 독재로 귀결됐던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더 위험한 것은 에르도안이 범터키주의를 넘어 오스만주의(Ottomanism)를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이슬람주의를 바탕으로 오스만제국의 영화를 회복하자는 것인데, 터키 술탄을 넘어 ‘예언자 무함마드의 대리인’인 칼리프 지위에 오르겠다는 것이다. 시리아 등 중동 지역에 대한 터키의 개입이 노골화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진짜 문제는, 국민의 이름을 독점한 ‘민주 독재’가 터키만의 현상이 아니란 점이다.
07월 11일 미·일·대만 新3각 동맹론
美군함 11년만에 대만해협 통과
F-35 대만 판매가 미 동맹 지표
서해로 불똥 튀는 것 대비해야
미군 이지스 구축함 2척이 지난 7일 대만해협에 들어갔다. 일본 요코스카를 기지로 하는 머스틴(DDG-89)과 벤폴드(DDG-65)가 남서쪽으로 진입해 북동쪽으로 향한 것이다. 이는 2007년 11월 항공모함 키티호크가 통과한 지 11년 만의 일이다. 그리고 미국이 340억 달러 규모의 중국 상품에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서 ‘미·중 무역전쟁’이 본격화한 지 불과 하루 만이다. 중국의 반발은 격렬했다. 미 해군이 남중국해에서 ‘자유항해작전’을 벌이더니, 이제는 중국 본토 앞바다에서 무력시위를 벌이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심지어 19세기 아편전쟁 당시 영국 해군 행태에 비유하기도 했다.
중국은 이번 대만해협 통과를 우발적으로 보지 않는다. 미 국무부는 사실상 주대만 미국대사관이라 할 수 있는 미국 재대만협회(AIT)를 확장하면서, 경비를 위해 해병대 파견을 요청했다. 불과 10명 규모지만, 이것이 실현되면 미군 철수 39년 만에 다시 대만 땅에 들어가는 것이 된다. 또, 미국 상원은 미국과 대만 간 상호 군사훈련 참가 내용을 담은 2019년도 국방수권법안을 통과시켰다. 중국은 이 모든 것을 ‘하나의 중국’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여기고 있다. 이런 상황으로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마저 거론되고 있다. 중국은 △대만의 독립 선언 △대만이 명백히 독립으로 기울어질 경우 △대만의 핵무기 보유 △대만의 내부 혼란 △양안 간 평화통일 대화의 연기 △외국군의 대만 내정 간섭 △외국군의 대만 주둔 등 7가지를 대만 무력 침공의 조건으로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6월 27일부터 8월 2일까지 하와이 근해에서 진행 중인 2018년 환태평양합동군사훈련(RIMPAC·림팩)에 중국을 배제했다. 초청장을 보냈다가 중국의 남중국해에서의 군사화를 이유로 취소했다. 이번 림팩 훈련엔 한국·미국·일본·영국 등 25개국의 함정 50여 척, 항공기 200여 대, 병력 2만5000명이 참가했다. 베트남과 필리핀이 처음 참여했다. 대만 참가설도 나왔지만, 올해는 일단 보류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대만은 오는 8월 남태평양 솔로몬제도에서 실시하는 미 해군 훈련에 참여할 예정이다. 그런데 이 훈련 참여는 올해 처음 공개되는 것일 뿐, 첫 참여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미국이 1980년대에 구축했던 대(對)소련 한·미·일 3각 안보체제를 대신해서 대중국 미·일·대만 3각 동맹을 추구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 갈지자형 행보를 보이는 것도 북한을 중국과의 패(覇)싸움에서 팻감으로 여기기 때문이란 해석도 있다. 어쨌든 미·일·대만 동맹이 구체화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미군이 대만에 주둔하고 있는 것도, 대만이 림팩 등에 본격 참여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지표는, 미국이 대만에 스텔스 전투기 F-35를 판매하느냐 여부다. F-22 랩터의 성능이 가장 우수하나 단가가 지나치게 비싸다. 이에 다소 사양을 낮추고 표준화한 보급형 제5세대 전투기가 F-35다. F-22는 대외 판매가 금지돼 있으며, 대외 판매 기종 중 F-35가 가장 우수한 전투기다. 그리고 동맹국에만 판매하고 있다. 만약 대만이 F-35를 보유하게 된다면, 미·대만 관계가 동맹 수준으로 발전하는 것임은 물론, 일·대만 군사 관계도 밀접하게 된다. 일본은 F-35 조립 공장을 가지고 있으며, 아시아 지역에서의 F-35 수리 및 부품 조달을 일본이 담당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대중국 군사력을 계속 강화하고 있다. 내년엔 주일 미군기지 인근 주민 보상비 등을 제외한 ‘직접 방위비’가 사상 처음으로 5조 엔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직접 방위비 증가율을 연평균 0.8%에서 1%로 늘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중국을 겨냥해 40억 엔 규모의 기뢰탐지 무인잠수기 독자 개발에 나섰으며, 미사일방어체계(MD) 육상형 이지스(이지스 어쇼어)를 2기 배치할 예정이다. 그리고 우자오셰(吳釗燮) 대만 외교부장이 “일본과 안보 분야에서 의견을 교환하기를 바란다”고 지난달 27일 산케이신문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중국이 지난 5일 랴오닝(遼東)성 보하이(渤海)만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1500㎞ 떨어진 란저우(蘭州)를 향해 발사 실험을 했다. 중국 항공모함 랴오닝도 북해함대 소속이다. 대만해협 분쟁이 본격화되면 서해로 불똥이 튈 수 있다. 청일전쟁은 1894년 7월 아산만 풍도해전으로 시작돼 1895년 2월 웨이하이웨이(威海衛)에서 청의 북양함대가 궤멸함으로써 끝났다. 러일전쟁도 1904년 5월 대한해협에서 러시아 발틱함대가 붕괴하는 것으로 결판났다. 이같이 한반도 인근 해역에서 또다시 동아시아 패권을 둘러싼 분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제는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이런 세계사적 관점에서 안보를 바라볼 것이 요구되고 있다.
08월 08일 美의 이란 제재, 北核에도 영향 크다
美는 내심 이란 내부 붕괴 희망
이란은 호르무즈 봉쇄로 협박
동병상련 北의 태도 주시해야
미국의 대(對)이란 경제 제재가 7일 다시 시작됐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2016년 1월 완화한 지 2년 7개월 만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이란 핵 협상에 불만을 품어온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이 비밀리에 핵 개발을 계획하고 있다면서 지난 5월 ‘이란 핵협정’(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을 탈퇴했다. 그리고 협정에 따라 90일이 지난 7일부터 이란 제재에 돌입한 것이다. 이란 경제는 이미 타격을 입고 있다. 리알화 가치가 폭락하고 있으며, 금에 대한 수요가 폭등하고 있다. 지난 5일 공식 환율은 달러당 4만4000리알이지만 비공식 외환시장에서는 9만8500리알까지 떨어졌으며, 올해 2분기 금 수요는 15t으로 전년 동기보다 3배로 급증했다.
이란 경제는 한계상황이며, 불만이 폭발하고 있다. 경제 제재가 리알화 폭락을 촉진했지만, 근본 원인은 아니다. 리알화 가치는 이미 지난해보다 80% 폭락한 상태였다. 이란인의 리알화 신뢰는 붕괴한 지 오래다. 이란인은 리알화가 모이면 달러로 환전해 장롱 속에 숨겨 놓는다. 거리는 청년 실업자로 넘치며, 이슬람주의 정권의 주요 기반인 ‘바자르 상인’도 시위에 나서고 있다. 또, 물 부족이 비등점을 넘어섰다. 이란 강수량은 세계 평균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카스피해는 외양상 호수지만 짙은 염분의 물이어서 도움이 안 된다. 농업이 붕괴해 심각한 식량 문제를 겪고 있으며, 올 들어 ‘물 폭동’이 여러 곳에서 발생했다. 경직된 이슬람주의에 대한 반발도 커지고 있다. 지난 2일엔 이슬람 종교 학교 습격 사건이 발생했으며,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 타도’ 구호까지 나왔다.
트럼프 행정부는 은근히 ‘이란 레짐체인지’를 기대하고 있다. 이런 희망 사항이 이뤄지지 않는다 해도, 이번 기회에 이란의 버릇을 확실히 고쳐 놓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제재가 막 시작됐을 뿐이다. 이번 1차 제재는 이란 정부의 달러화 거래 금지가 골자인 반면, 11월부터 시작될 2차 제재는 원유 거래 금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 협박으로 맞서고 있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는 최근 100여 척의 선박을 동원해 페르시아만 일대에서 대규모 군사 훈련을 실시했다. 일부 강경파는 내심 미국의 공세를 반기고 있다. 곪아 터지고 있는 내우(內憂)를 외환(外患)으로 막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인구의 압도적 다수인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세대’가 반(反)제국주의 호소에 응할지 의문시되고 있다.
이란의 군사력은 이슬람혁명수비대와 정규군으로 이원화돼 있다. 모두 대통령이 아닌 ‘최고지도자’ 통제하에 있다. 쿠드스군은 특수부대로 시리아·레바논 등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바시즈(basij) 민병대는 호왈(號曰) 1260만 명이다. 이란의 대미 군사전략은 ‘반(反)접근·지역거부(A2AD)’다. 일단 미국 항공모함 전단의 접근을 막고, 반접근에 실패하면 지역 내에서의 원활한 활동을 저지하면서 최대한의 출혈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미국의 이란 침공에 부정적 입장을 가지고 있는 한, 육로보다 해상 방위가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기본 전술은 좁은 호르무즈 해협의 지형을 활용한 소형 함정 ‘벌떼 공격’이며, 자살 공격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과 이란은 동병상련을 느끼는 듯하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6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후 곧바로 이란으로 날아갔다. 이란은 미국이 핵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며 ‘미국을 믿지 말라’고 북한에 경고하고 있다. 한때 북핵(北核)의 이란식 해법이 거론됐으나, 이젠 이란 핵의 북한식 해결 방안도 나오고 있다.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트럼프와의 정상회담을 통해 제재를 완화하고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미·이란 정상회담설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란과 북한은 다르다. 첫째, 로하니 대통령에겐 군 통수권이 없다. 둘째, 북한의 경우 직접 당사자인 한국이 경제 제재에 미온적인 반면,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란 핵 완전 제거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또, 북한은 중국이 버티고 있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다. 이란 뒤에 러시아가 있으나, 그 역할엔 한계가 있다.
이란 경제 제재는 유가 상승 등 국제 경제에 충격을 줄 수 있다. 이란 원유를 수입하고 이란 건설 사업에 참가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도 어느 정도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상황 악화에 대비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신경 써야 하는 것은 역시 핵 문제다. 이란 핵 문제 처리 과정은 결국 북핵 문제 해결에 직간접적 영향을 주고받게 된다. 특히, 북한 무기 거래상이 테헤란에 거주하고 있다는 유엔 보고서 내용과 이란 미사일과 북한 미사일 구조가 매우 흡사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란은 A2AD 전략을 위해서라도 북한 미사일 혹은 그 기술이 절실할 것이다.
09월 12일 미·탈레반 협상과 美·北 대화
미국의 중동지역 주적은 이란
카불정부 능력과 의도 못믿어
대화 속에서도 경제압박 계속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아프가니스탄 탈레반과 직접 협상에 나서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이달 파키스탄을 방문하면서 잘메이 칼릴자드 전 아프간 주재 대사가 아프간 화해 담당 보좌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7월 앨리스 웰스 미 국무부 부차관보가 탈레반 대표를 카타르 도하에서 만나는 등 지난 5월부터 은밀히 추진해온 미국·탈레반 대화가 본궤도에 올랐음을 시사한 것이다. 이로써 2001년 9·11 테러 사태로 미국 정부가 그해 10월 1일 탈레반을 오사마 빈라덴과 동일시한다고 선포하고 군사공격을 개시한 이후 처음으로 미국과 탈레반의 공식 대화가 시작된 것이다.
그동안 탈레반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던 미국이 태도를 바꾼 것은 미국의 대(對)아프간 목표가 변했기 때문이다. 9·11 직후의 목표는 빈라덴을 비롯한 알카에다 제거였다. 당시 미국은 탈레반에 아프간에 머물고 있던 알카에다 구성원을 넘길 것을 요구했다. 그런데 탈레반이 이를 거부하자, 탈레반도 제거 대상으로 삼아 공격한 것이었다. 그 결과 탈레반은 수도 카불을 잃고 파키스탄 국경지대로 쫓겨났고, 빈라덴은 2011년 5월 파키스탄에서 미 특수부대원에게 사살당했다. 그리고 한때 네오콘을 중심으로 네이션빌딩(nation building)을 통한 ‘민주 아프간 건설’이란 이상주의적 목표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아프간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미국과 그 동맹을 공격하는 테러조직의 안전피난처가 되는 것 방지’란 현실주의적 목표가 힘을 얻게 됐다. 그리고 이 목표대로라면, 핵·화학무기 등 대량파괴무기(WMD)를 개발하지 않고, 알카에다와 같은 대미 테러조직을 보호하지만 않는다면 탈레반도 공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란 견제라는 미국의 중동 전략도 탈레반과의 대화를 촉진하고 있다. 미국의 전략은 특정 지역에서 패권 국가가 발생하지 않도록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이란이 시아파 벨트를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으며, 특히 핵 개발 야심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이에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등 수니파 국가들과 연대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미국이 ‘적극적 간접 개입’ 전략하에 막대한 군사·경제 지원을 퍼부었음에도 불구하고 카불 정부는 탈레반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 정도로 무기력할 뿐만 아니라, 대이란 관계에서 미국과 묘한 줄다리기를 하는 경향마저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럴 바에는 시아파 이란에 대해 강한 적대감을 갖고 있는 탈레반이 낫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탈레반 입장에서도 대화를 피할 이유가 없다. 우선, 대미항전이 17년이나 되면서 탈레반 지지층도 지치기 시작됐다. 지도부가 안전한 파키스탄에 앉아서 무한 투쟁만 지시하고 있다는 불평, 심지어 파키스탄 정보기관의 도구로 전락했다는 비판의 소리가 들린다. 또, 이슬람국가(IS)가 ‘호라산 지부’를 설치하고 탈레반에 도전하고 있다. 호라산은 아프간·파키스탄·인도 일부를 일컫는 명칭이다. IS가 이슬람 국제주의를 내걸고 탈레반의 파슈툰 부족주의를 공격한 것이다. 이에 탈레반은 올해 IS 토벌 작전을 대대적으로 펼치기도 했다. 또, 무엇보다도 파슈툰 부족에 한정된 자신들의 한계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현재 탈레반은 아프간 영토의 44∼61% 정도를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더 이상의 팽창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타지크족(族)이나 우즈베크족과 같은 다른 부족 지역에서는 지지 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미·탈레반 협상의 결과를 속단하기엔 이르다. 탈레반이 이르면 10월 총선, 아니면 내년 4월 대선에 참여해 야당 혹은 카불 정부의 연정 세력으로 참여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아프간 민족 구성상 한 부족 정치세력의 단독 집권은 불가능하다. 현 카불 정부도 아슈라프 가니(파슈툰) 대통령, 압둘 도스툼(우즈베크) 부통령과 사르와르 다니시(하자르) 부통령, 압둘라 압둘라(타지크) 행정 수반으로 구성돼 있다. 또, 지방 군벌이 사실상 독자적 무장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탈레반도 유사한 지위를 얻으면 된다.
흥미로운 것은 미·탈레반 협상과 미·북 대화의 유사성과 차이점이다. 차이점은 탈레반은 잠재적 지역 패권국인 이란에 적대적이지만, 북한은 친중국 노선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탈레반은 미 본토를 직접 공격할 능력도 의사도 없는 반면,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아직 포기하지 않고 있다. 반면 유사점도 있다. 대화를 진행하더라도 최종 결론이 나오기까지 경제 압박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미국이 탈레반을 돕는다는 이유로 파키스탄을 위한 동맹 지원기금 3억 달러를 최근 최종적으로 취소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미·탈레반 직접 협상은 미국이 카불 정부의 능력과 의도를 불신하면서 시작됐다는 사실도 유념해야 한다.
10월 24일 미·러·중 INF 갈등, 남의 일 아니다
트럼프 탈퇴 위협에 中·유럽 긴장
북핵 둔 채 美 핵우산 철수 우려
한·미 공군 연합훈련 취소는 잘못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세계가 또다시 들썩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0일 “러시아가 여러 해 동안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위반해 조약에서 탈퇴할 것”이라고 발언한 것이다. 트럼프 특유의 ‘판 흔들기’로서, 현재의 국제 핵(核) 질서를 그대로 유지하지 않을 것이며, 필요하다면 ‘핵 군비경쟁’을 재개하겠다고 공개 선언한 것이다. 물론 당장 INF를 폐기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우선, 그동안 개발이 중단된 중거리 핵미사일을 다시 생산해서 실전 배치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 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달리 중거리 핵미사일은 미국 본토에 배치하면 의미가 없고 아시아와 유럽 동맹국에 배치해야 한다. 따라서 동맹국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INF 조약 당사자인 러시아는 일단 펄쩍 뛰고 있다. ‘INF를 엄격히 지켰다’는 것이 러시아 정부 입장이다. 오히려 ‘미국이 요격뿐만 아니라 중거리 미사일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요격 미사일을 배치’하는 등 위반을 일삼았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INF가 파기되면 2021년에 만기되는 신전략무기감축협정(뉴스타트·New START) 연장 전망이 불투명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뉴스타트는 미국과 러시아가 실전 배치할 수 있는 핵탄두 수를 1550개로 제한한 협정으로 지난 2010년에 체결됐다. 뉴스타트까지 폐기되면 미·러 간의 핵 군비 경쟁 방지를 위한 안전핀이 완전히 빠지게 되는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미국의 INF 폐기 시도가 나쁘지만은 않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미·러 대립 고조를 통해 경제난으로 이반하는 민심을 재결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작 벌집 쑤신 것처럼 된 곳은 유럽이다. INF는 사거리 500∼5500㎞ 미사일을 제한한 협정으로서, 유럽을 겨냥한 소련 중거리 미사일과 유럽 배치 미국 중거리 미사일을 없애기 위해 1987년 미국과 소련이 체결한 조약이다. 따라서 INF가 폐기되면 유럽이 다시 중거리 미사일 위협에 놓일 수 있다. 유럽연합(EU)은 “러시아의 INF 조약 준수에 대한 우려에 대해 러시아가 실질적이고 투명한 방식으로 대응하기를 기대하고, 미국 또한 INF 조약을 탈퇴할 경우 미국 안보와 동맹국 및 전 세계 안보에 몰고 올 엄청난 파장을 고려하기를 기대한다”고 22일 밝혔다.
그러나 진짜 긴장하는 국가는 중국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INF 체결국이 아니란 이유로 중거리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미국·러시아·중국 3자 간의 새로운 INF 협정을 맺을 것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반접근·지역거부(A2AD)’ 전략에 따라 미국 항공모함 전단의 접근을 막기 위해 지대함 탄도 및 순항 미사일 개발·배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도 중거리 미사일을 금지하는 협정에 들어오라는 것이다. 이것이 실현되면 ‘항모 킬러’ 둥펑-21D를 포기해야 하는 등 서태평양 전략에 엄청난 차질이 빚어지게 된다.
지난 2월 발표된 ‘2018 핵태세 검토 보고서(NPR)’를 보면, 미 국방부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갖춘 잠수함(SSBN), ICBM, 중력폭탄과 공중발사순항미사일(ALCM)을 탑재한 전략 폭격기로 구성된 핵전략 삼위일체의 재강화 노선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저강도(low yield) 소형 핵폭탄 개발 추진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중거리 핵미사일을 미국 핵전력의 중심으로 만들 구상은 들어 있지 않다. 동맹국 협조가 필수인 중거리 핵미사일에 대해선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 미국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단지 러시아의 INF 위반에 대해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의 전략적 목표는 중거리 핵미사일을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타국의 보유 금지다. 이번 INF 폐기 주장도 미국의 전체 핵전략 기조 속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북한이 주장하는 한반도 비핵화는 북핵 폐기가 아니라, 미국 핵우산을 한반도에서 몰아내는 것이다. 따라서 미·중·러 간의 핵 군비경쟁이 강화된다면, 북한은 이를 명분으로 북핵을 그대로 유지하려 들 것이다. 문제는 대한민국이다. 12월로 예정됐던 비질런트 에이스 훈련도 취소됐다. 이 훈련은 한·미 연합 공군구성군의 ‘기계획 항공임무명령(Pre-ATO)’을 점검하는 훈련이다. 전쟁이 시작된 이후에 타격할 표적을 설정하면 너무 늦다. 그렇기에 미리 타격 목표를 정해 놓고 유사시 계획된 작전에 따라 타격하기 위한 것이 Pre-ATO다. 이번 훈련 중단은 한·미 방위비 분담 협상 때문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9·19 군사합의로 항공금지구역이 확대돼 전방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하는 Pre-ATO 점검 훈련이 무슨 효과가 있겠느냐는 일선 미 공군 조종사들의 불만의 목소리도 나왔다고 한다. 자칫 잘못하면 북핵은 그대로인 상황에서 미국 핵우산만 사라진 최악의 사태가 올 수도 있다.
11월 15닝 남중국해 무너지면 西海도 위험하다
‘항행의 자유’ 국제법 준수돼야
對아세안 經協 넘어 軍協 필요
‘중국 헤지’ 위해 日과 협력 절실
문재인 대통령은 13∼18일 싱가포르와 파푸아뉴기니를 방문해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관련 정상회의와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문 대통령은 아세안 국가들과의 교류 확대를 통해 신남방정책을 가속화할 방침이다. 미·중 무역전쟁이 진행되는 가운데 아세안 국가들과의 경제 협력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확대하려는 노력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아세안과의 협력은 경제를 넘어 안보·군사 분야로 확대돼야 한다. 남중국해 해상교통로(SLOC)는 한국의 사활적 이해가 걸린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이 막히면 한국 에너지 수입과 무역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지난달 30일 ‘자유의 항행’ 작전 중이던 미국 구축함에 중국 함정이 40m 앞까지 근접해 충돌 직전에 이르렀다. 당시 중국 함정은 충격 흡수 장치를 부착하고 있었다. 이같이 남중국해 미·중 갈등이 커지는 가운데, 미국은 중국의 남중국해 구단선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유엔해양법협약(UNCLOS) 등 국제법과 국제 관행 준수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카리브해가 미국 영향권(sphere of influence)인 것처럼 남중국해는 중국 바다이며, 현 국제법은 서구 국가의 논리일 뿐이라는 것이다. 또, 미국이 UNCLOS 미비준 국가라는 사실을 꼬집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은 의회 비준 여부와 관계없이 UNCLOS와 국제 관습법을 준수하고 있으며, 이러한 기존 국제 규칙과 질서가 붕괴하면 결국 ‘힘의 논리’만 남게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중국이 남중국해에 집착하는 이유는 SLOC·자원·자존심 때문이다. 중국은 한국·일본과 마찬가지로 이곳을 통과하는 에너지 수송로 의존도가 매우 높다. 일본이 진주만 공습을 결심한 것도 에너지 SLOC 봉쇄 때문이었다. 그러나 비용 문제를 별도로 한다면 다른 우회로를 개척할 수도 있다. 그리고 자원의 경우, ‘제2의 페르시아 걸프만’ 운운하는 이야기도 나왔으나 과장됐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그리고 최근 중국은 남중국해 자원 문제에서는 해당 아세안 국가에 일부 양보·협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자존심이다. 남중국해 구단선은 장제스(蔣介石)의 11단선에서 유래됐는데, 이러한 ‘중화 팽창주의’는 1927년에 제작된 ‘중화국치지도(中華國恥地圖)’에서 본격화됐다. 이 지도는 1938년 중국 초등학교 검정 교과서용으로 사용됐다. 장제스는 살아생전에 집무실에 걸어뒀으며, 마오쩌둥(毛澤東)도 이를 중국 영토의 기준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 지도의 의미는 많은 영토를 상실해 치욕을 당하고 있으니, 힘을 길러 잃어버린 땅을 반드시 회복하자는 것이다. 문제는 한반도와 인도차이나 반도도 중국 영토 안에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남중국해에서 국제법이 적용되지 않고 중국이 차지하게 될 경우, 다음은 서해(西海) 차례일 가능성이 크다. 한국과 중국은 서해에서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확정하지 못했다. EEZ 200해리가 겹칠 경우에는 균등하게 나누는 것이 국제법과 국제관례다. 그런데 중국은 해안선과 인구 비율로 서해 EEZ를 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제, 유조선과 무역선이 지나갈 수 있으니 남중국해 문제는 한국과 무관하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중국은 국제법이 섬으로 인정하지 않는 암초에 인공섬을 만들어 영해 12마일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국제법의 무해통항(innocent passage)도 무시하고 있다. 국제법과 국제관행이 휴지로 변한다면, 서해 아니 동해 영유권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
국가별로 차이가 있지만, 아세안 국가들은 대체로 중국의 심기를 가능한 한 안 건드리면서 미국을 끌어들여 안보 안전판으로 삼는 ‘대중(對中) 헤지(hedge)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아세안 국가 사이의 동질감이 약해 일치단결하기 어려우며, 해군력이 미비하고, 대중 경제 의존도가 높아 중국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 아세안 국가들의 현 상황이다. 2016년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 불인정 판정을 끌어낸 필리핀도 최근에는 로키(low-key) 전술로 임하고 있다. 최근 마닐라에서 만난 필리핀 군(軍) 관계자들은 필리핀군의 6·25전쟁 참전을 언급하며 한·필리핀 해군 협력을 강조했다. 그리고 퇴역 포항급 초계함을 더 많이 인수할 수 있고, 가능하면 호위함과 209급 잠수함도 도입했으면 하는 희망을 표시했다.
한국은 남중국해에서 ‘미들 파워’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나치 독일의 오스트리아·체코 병합에 적극 대응하지 않았던 폴란드의 운명을 상기해야 한다. 현 정세는 중국의 팽창에 맞서 일본과의 협력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순방에서 14일 러시아와 정상회담을 하고, 한·중 정상회담도 열릴 예정이나, 일본과의 별도 정상회담은 준비하지 않는다고 하니, 걱정된다.
11월 21일 일본 주도의 경제동맹 출범한다
11國 참가 CPTPP 올 연말 출범
미·영 가입하면 최대 경제블록
한국, 선택 강요받은 위기 상황
미·중 무역전쟁의 거센 파고 속에서, 일본이 주도하는 새로운 아시아·태평양 지역 경제 동맹체가 출범한다. 다자간 무역협정인 ‘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이 다음 달 30일 공식 발효될 예정인 것이다. 이 협정에는 일본·캐나다·호주·베트남 등 11개국이 참여하는데, 이로써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3.5%, 교역량의 15%를 차지하는 거대한 자유무역 경제권이 형성되게 된 것이다. 협정 사무국 역할은 뉴질랜드 정부가 담당하고 있다.
CPTPP는 미국도 참여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논의를 모태로 한다. TPP가 성사됐다면 세계 GDP의 37.4%, 무역비중의 25.9%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 무역 협정체제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보호무역주의 노선을 추구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월 탈퇴를 선언하면서, TPP는 동력을 상실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미국을 제외한 TPP 11개국이 명칭을 CPTPP로 바꿔 계속 추진하기로 합의한 후, 논의를 거쳐 지난 3월 8일 CPTPP 협정이 공식 서명된 것이다. CPTPP는 미국이 주장했던 지식재산권 보호 및 투자 분쟁해결절차 등 일부 조항을 유예시킨 것 이외에 TPP의 대부분 내용을 그대로 유지했다. 그리고 회원국 11개국 가운데 6개국 이상이 자국 내 승인을 완료하면 60일 이후 발효된다는 협정 내용에 따라 올해 말 발효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일본·멕시코·호주·베트남 등 7개국이 비준했다.
미국이 TPP를 탈퇴할 당시만 하더라도 TPP 불씨가 되살아날 것을 예상했던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설령 살아나더라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명칭과 내용만 약간 수정한 CPTPP가 불과 만 2년도 되지 않아 공식 출범한다. 미·중 무역전쟁의 격화에 위기감을 느낀 아·태 지역 국가들이 급속히 단결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은 고립되거나 아니면 중화경제권에 흡수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한 대중(對中) 아태 경제블록 형성이 절실했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미국을 끌어들이려 했다. 그러나 이것이 여의치 않자, 일단은 독자적 경제블록을 통해 활로(活路)를 확보한 뒤, 추후 미국을 불러들이는 전략을 취한 것이다. 호주·베트남 등 다른 회원국들도 유사하다. 중국의 패권을 견제하면서, 거센 보호무역주의 파고를 견디기 위한 피난처가 필요하다고 느낀 것이다.
일본의 중국 견제 노력은 경제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일본은 공병(工兵)을 초청하는 등, 남태평양 도서 국가에 ‘능력구축 지원’ 활동을 시작했다. 능력구축 지원은 일본 정부가 자위대원을 파견하거나 상대국의 군 관계자를 초청해 방위 장비 취급과 부대 운영 등의 노하우를 전수하는 것을 통해 다른 나라의 군사 능력의 향상을 돕는 활동을 말한다. 일본은 이미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몽골·베트남 등 15개 국가에 이 활동을 벌여왔다. 그런데 이제 이 활동을 파푸아뉴기니·피지 등으로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호주가 적극 협력하고 있다.
결국 관심은 미국의 CPTPP 참여 여부에 쏠리고 있다. 중간선거를 치른 트럼프 대통령이 대중 무역전쟁 진행 추이와 내년 1월 미·일 물품무역협정(TAG) 협상 결과에 따라 입장을 바꿀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전망되고 있다. TAG가 포괄적인 자유무역협정(FTA)과는 다르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미국은 해당 협정을 ‘미·일 무역협정’이라고 지칭하며 물품뿐만 아니라 그 외의 것까지 다루는 포괄적 협정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영국이 참여를 희망하고 있다는 사실이 주목되고 있다. 영국은 브렉시트 이후 유럽 동맹보다는 ‘대서양 동맹’에 중심을 두고 있다. 북미자유무역협정인 나프타(NAFTA)에서 아메리카를 뜻하는 A를 애틀랜틱(Atlantic)으로 바꿔 ‘북대서양자유무역협정’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영국 보수당에서 나오고 있다. 이런 흐름에 따라 영국이 미국과 함께 CPTPP에 들어오면, 미국을 중심으로 하고 일본과 영국을 양 날개로 하는 세계 최대의 해양 경제 동맹체가 구축되게 된다.
중국은 이런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CPTPP가 중국을 고립시키는 경제블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중국도 CPTPP에 가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 CPTPP가 요구하는 개방·투명성 수준이 높아 이를 중국 경제가 감내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지난 18일 폐막한 파푸아뉴기니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사상 처음으로 공동성명이 발표되지 못했다. 중국이 ‘불공정한 무역관행’이란 문구를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한국이다. 한국은 중국 눈치를 보느라 TPP에 참여하지 않았다. CPTPP에 들어갈 것인지, 중화경제권에 편입될 것인지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12월 19일 우크라이나 종교 독립과 地政學 귀환
우크라이나 정교회가 러시아 정교회로부터 ‘독립’한다. 지난 15일 모스크바 총대주교구 소속 우크라이나 정교회, 키예프 총대주교구 산하 우크라이나 정교회, 우크라이나 독립 정교회 등 3개 분파 지도자들이 모여 통합 우크라이나 정교회를 창설하고, 예피파니 두멘코를 새로운 우크라이나 정교회 수장으로 선출했다. 이번에 통합된 우크라이나 정교회는 러시아 정교회 관할권에서 벗어난 ‘독립 교회(Autocephalous Church)’로의 지위를 오는 1월 6일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구로부터 공식 승인받을 예정이다. 이번 러시아 정교회와 우크라이나 정교회 분리는 1054년 동·서방 교회 분리와 1517년 종교개혁 이후 최대 교회 분리로 간주되고 있다.
이번 분리는 교회사적 의미에 한정되지 않으며, 정치사적 의미가 더 크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과 동우크라이나 내전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갈등이 첨예화되면서 정교회 독립 움직임도 본격화됐다.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강한 러시아’ 노선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모스크바 총대주교구가 우크라이나 내의 친(親)러시아 분리주의 운동을 정신적·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우크라이나 정교회가 러시아 정교회의 영향에서 벗어나야만 진정한 ‘국민국가’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교회 분리를 1991년 정치적 독립에 이은 ‘정신적 독립’이라고 하는 이유다.
동방정교회는 로마 교황청 산하에서 하나의 조직으로 움직이는 가톨릭과 달리, 14개 독립 교회의 연합체이다.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가 전체 동방정교회를 대표하지만 ‘동급 중에서 첫째’일 뿐이다. 14개 독립 교회는 콘스탄티노플,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크, 예루살렘 등 고대 초대교회 총대주교구와, 후대에 총대주교구로 승인받은 러시아·불가리아·세르비아·루마니아·조지아 정교회, 그리고 독립 대주교구인 키프로스·그리스·알바니아·폴란드·체코와 슬로바키아 정교회 등으로 이뤄져 있고, 우크라이나 정교회가 공식 승인되면 15개가 된다.
러시아 정교회는 이번 분리를 저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지 않아도 지금 에스토니아와 몰도바 관할권을 놓고 각각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구, 루마니아 정교회와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이며, 벨라루스와 라트비아 정교회로까지 불똥이 튀는 도미노 현상도 우려된다. 현재 동방정교회에서 러시아 정교회 교세가 가장 강하다. 전체 2억6000만 신도 가운데 1억5000만 명이 러시아 정교회 소속이며,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터키에 함락된 이후 모스크바가 ‘제3의 로마’를 자처하며 동방정교회 세계의 맹주 역할을 담당해 왔기 때문이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초기 소련 공산당은 러시아 정교회를 ‘인민의 아편’으로 규정하고 철저히 탄압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으로 입장을 바꿨다. 공산주의 이념만으로 러시아 국민을 동원하기엔 한계가 명백했다. 러시아 정교회를 통한 애국주의 호소가 러시아 농민 동원에 효과적 수단임을 깨달은 소련 공산당이 러시아 정교회 사제를 군목(軍牧)으로 임명하는 등, 러시아 정교회와 타협한 것이다. 그 후 러시아 정교회는 러시아 국가주의의 주요 요소가 됐으며, 이런 경향은 푸틴 집권 이후 더욱 강화됐다.
소련 붕괴 뒤 세계는 한때 자유주의 낙관론에 사로잡혀 있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론이 대표적이다. 인류 보편 이념으로서의 자유민주주의의 완전 승리를 선언한 것이었다. ‘지구촌’ ‘평평한 세계’가 중심 화두가 됐으며, 민족(nation)이나 국가는 과거의 낡은 개념이 돼버렸다. 2001년 9·11 테러 사건 이후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론이 주목되기도 했으나, 이 역시 문명권 사이의 충돌 문제였지, 문명권 내부에서의 국가 문제는 독립변수가 되지 못했다. 그런데 ‘역사의 잔재’ 정도로 치부됐던 국민국가가 역사로 복귀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중국의 패권 추구, 영국의 브렉시트, 동유럽의 민족주의 부흥 등 ‘리버럴 헤게모니’가 도처에서 흔들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교회 독립도 그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자유주의적 해석도 문명론적 충돌도 아닌, 국민국가 형성에 따른 지정학(地政學)의 부활인 것이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 존 미어샤이머는 리버럴 헤게모니를 ‘대망상(Great Delusion)’으로 규정했다. 국민국가 단위를 중심으로 한 힘의 관계가 국제정치의 중심이란 것이다. ‘보편적 가치’보다는 국민국가로서의 확고한 국가의지가 더 중시되는 새로운 21세기형 동맹의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의 각축장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대한민국이 과연 이런 세계사적 흐름을 제대로 읽고 대응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황성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