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스토리25/ 알쓸신세 4/ 2018. 01 - 04
◆01.07 일본은 왜 ‘고양이 천국’이 되었을까
[알고보면 쓸모있는 신기한 세계뉴스]
일본인 사로잡은 고양이, 그리고 '네코노믹스'
▲일본에서 반려묘가 반려견의 수를 앞질렀다. [사진 크라운 캣 홈페이지]
『오늘의 네코무라씨』 라는 일본 만화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 버려진 자신을 사랑으로 키워줬던 도련님을 만나기 위해 가정부가 된 고양이 네코무라씨가 주인공이죠. 『고양이와 할아버지』라는 만화도 인기입니다.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고양이 타마와 사는 다이키치 할아버지. 남은 날이 얼마 없는 노인과 늙은 고양이의 사랑스러운 일상을 그립니다.
그 외에도 일본 만화 중엔 고양이를 소재로 한 작품이 무수히 많습니다. 만화 뿐일까요.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등의 영화와 ‘고양이의 보은’ ‘루돌프와 많이 있어’ 등의 애니메이션이 떠오릅니다.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한 만화들
일본에서 만들어져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고양이 캐릭터 헬로 키티도 있네요. (여기서 잠깐, 헬로키티의 제작사인 ‘산리오’는 몇년 전 헬로키티가 고양이가 아닌 영국에 살고 있는 소녀라고 발표해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렸죠. 볼 옆의 털 세 가닥은 소녀의 귀밑 털이랍니다!) SNS에서 활약하는 ‘고양이 스타’도 많습니다. 일본인들은 왜 이렇게 고양이를 좋아하는 걸까요. [알고 보면 쓸모 있는 신기한 세계뉴스]에서 알아봅니다.
일본의 반려묘 수 반려견 앞질러
▲인스타그램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고양이 마로. 주인은 요리사다. [@rinne172 인스타그램]
일본인들의 대단한 고양이 사랑을 보여주는 뉴스가 최근 또 전해졌습니다. 일본 페트푸드협회가 지난 해 말 20~79세 5만 명을 대상으로 개·고양이 사육 실태 조사를 한 결과 일본 전국에서 사육하는 고양이는 약 953만 마리, 개는 약 892만 마리로 반려묘의 수가 반려견의 수를 앞지른 겁니다. 이 조사를 시작한 1994년 이후 줄곧 반려견의 수가 많았는데 처음으로 뒤집한 결과가 나온 것이죠.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고양이는 반려동물로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아직은 세계적으로 반려견(48%)의 수가 반려묘(38%)를 앞섭니다.
일본에는 ‘고양이 섬’도 있습니다. 후쿠오카 북쪽에 있는 아이노시마(相島)입니다. 이 곳의 인구는 470여 명인데 사람 수의 5분의 1이 넘는 100마리의 고양이들이 섬 곳곳을 누비며 살고 있습니다. 관광객들을 태운 배가 도착하면 고양이들이 떼로 몰려 나와 맞이하는 장면으로 유명하죠. 아이노시마는 지난해 8월 애묘인으로 유명한 가수 에드 시런에게 섬을 찾아 달라고 요청하는 초대 영상을 보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복을 부르는 고양이 ‘마네키 네코’
일본인들의 고양이 사랑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갑니다. 11세기 초 헤이안 시대에 쓰여진 고전 소설 『겐지이야기(源氏物語)』에도 귀족들이 고양이를 애완동물로 키웠다는 기록이 등장합니다. 에도 시대(1603~1867)에 인기였던 그림 우키요에(浮世絵) 중엔 고양이를 모티브로 한 그림이 많죠.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고양이는 가게 입구나 기념품 점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마네키 네코(招き猫)’입니다. 치켜든 손(발?)으로 행운과 복, 손님을 부른다고 합니다. 왼손을 든 고양이는 손님을 부르는 것이고 오른손은 돈을 부르는 것이라고 전해집니다. 양 손을 다 들고 있는 고양이도 있습니다.
▲행운을 부르는 고양이 '마네키 네코' [중앙포토]
‘마네키 네코’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존재하는 데, 그중 가장 지지를 받는 것이 도쿄 세타가야구에 있는 절 고토쿠지(豪徳寺)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이 지역의 영주 한 명이 독수리 사냥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 절의 문 앞을 통과하게 되었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자신을 보고 손짓했다고 합니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절 안으로 따라 들어가는 순간, 천둥과 함께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고양이 덕분에 낙뢰의 화를 피했다며 손을 흔드는 고양이를 이 절의 수호신으로 삼았다는 것이죠.
또 하나는 도쿄 다이코구의 이마도(今戸) 신사에 전해 내려옵니다. 근처에 살던 한 노파가 가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키우던 고양이를 버려야 했습니다. 그날 밤 노파의 꿈 속에 고양이가 작별 인사를 하러 나타납니다. 잠에서 깬 노파는 고양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인형을 만들었고, 이를 신사에 참배 오는 손님들에게 판매하면서 유명해졌다는 설입니다.
<『키워드로 여는 일본의 향』(제이앤씨), 『일본 일본인 일본 문화』(다락원) 참조>
1인 가구 급증, 고령화도 반려묘 인기의 원인
일본에서는 1990년대 반려견이 유행이었습니다. 시추, 말티즈, 토이 푸들 같은 작은 개가 특히 사랑을 받았죠.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며 반려 동물로 개보다는 고양이를 선택하는 사람이 급속하게 늘어납니다. 이유가 뭘까요.
일본페트용품공업회 관계자는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기르기 쉬운 것”을 가장 큰 이유로 들고 있습니다. 고양이는 영역을 중시하는 습성 탓에 매일 데리고 나가 산보를 시킬 필요가 없고, 짖지 않아 이웃에 폐가 될 염려도 적습니다. 개에 비해 몸집이 작기 때문에 노인들도 돌보기가 쉽습니다. 1인 가구가 급증하고, 노년층 인구가 증가하면서 고양이가 상대적으로 함께 하기 편한 동물로 여겨진다는 겁니다. 단독 주택이 많던 과거엔 집을 지킬 목적으로 개를 키우는 사람도 많았지만, 아파트 등의 공동 주택이 늘어나며 개보다는 고양이를 선택하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일본에서 인기가 높은 미뉴에트 고양이. [사진 야후재팬]
인상평이긴 하지만 고양이가 일본인의 성격과 잘 맞는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산케이 신문은 일본인들의 지극한 고양이 사랑에 대해 자립을 중요시하는 일본인들은 충성스러운 개 보다는 독립적인 성격을 가진 고양이에게 더 끌린다고 분석했습니다. 아울러 고양이의 우아하고 단아한 표정이나 몸짓 등이 일본인의 미적 감각과 맞아 떨어진다는 설명입니다.
고양이 팩 서비스, 고양이 부동산도 등장
유별난 사랑을 뽐내는 만큼, 고양이를 위한 다종 다양한 서비스가 존재합니다. 고양이 카페는 이제 도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고, 고양이와 함께 하는 요가 프로그램도 애묘인 사이에 인기입니다. 요가에 ‘고양이 자세’라는 게 있죠. 고양이를 본따 자세가 생겼을 만큼 고양이는 관절이 유연해 많은 동작이 가능하다고 하네요.
아사히 신문에 따르면 최근에는 고양이의 미용과 건강을 위해 팩과 뜸 등을 서비스해주는 업체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허브 등을 배합한 용액에 담가 두었던 따뜻한 천으로 고양이의 몸을 감싸는 ‘고양이 팩’은 보습 효과 뿐 아니라 정전기를 방지해 털 엉킴과 털 날림을 막아 준다고 합니다. 1회에 1000엔(약 9400원)에서 3000엔(약 2만 8000원) 정도의 비용이 듭니다.
▲반려묘와 함께 사는 집 [크라운 캣 홈페이지]
대도시에는 고양이와 함께 살 수 있는 주택이나 사무실을 전문적으로 소개하는 ‘네코부동산(猫不動産)’이 속속 생겨나고 있습니다. 도쿄 시부야에 사무실을 연 ’크라운 캣(Crown Cat)‘은 2016년부터 고양이를 기를 수 있는 집을 소개하고, 반려묘와 같이 살 수 있도록 집을 개조해주는 주택 리모델링 사업도 하고 있습니다. 네 마리의 고양이를 기르고 있다는 이가와 다쓰야 도쿄 네코부동산 사장은 리모델링의 원칙으로 1)고양이의 건강 관리 2)생활의 쾌적함 3)이웃에 대한 배려 등을 들었습니다. 모델 하우스를 보면, 높은 곳을 좋아하는 고양이의 습성을 배려해 집 안의 천장 부분에 고양이의 휴식·운동 공간을 만들어준 것이 특징입니다.
‘네코노믹스’로 인한 경제효과 연간 약 22조원
이렇게 반려묘 문화가 만들어내는 경제 효과를 일컬어 ‘네코노믹스’라고 부릅니다. 고양이를 뜻하는 일본어 ‘네코’와 ‘이코노믹스’를 합친 신조어로, 아베 신조 총리의 ‘아베노믹스’를 본따 만들어졌죠. 이 말을 만들어낸 미야모토 가쓰히로(宮本勝浩) 간사이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2015년 마이니치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에서 네코노믹스로 인한 경제 효과가 연간 2조 3162억엔(약 22조 원)에 이른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는 고양이를 키우는 데 드는 비용 등의 직접 효과와, 고양이 캐릭터나 고양이 역장 임명 등으로 유발되는 관광 증대 등의 간접 효과를 모두 합친 금액입니다.
한국에는 아직 반려동물을 따로 집계한 수치가 없다고 합니다. 반려동물을 포함해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집계한 전국 개와 고양이 사육 추계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개가 513만마리(73%), 고양이가 189만마리(27%)로 추정됩니다. 몇년 전 통계긴 하지만 아직 한국에는 반려견의 수가 반려묘보다 훨씬 많습니다. 하지만 주위만 둘러봐도 최근 몇 년 사이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삼는 사람들이 급속히 많아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고양이의 인기가 강아지를 넘어설 날이 멀지 않아 보입니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01.20 사우디도 허용한 여성운전, 금지한 국가는 어디?
올해 6월부터 사우디아라비아는 여성에게도 면허증을 발급할 예정입니다. 마침내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여성 운전을 금지하는 차별 국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는 겁니다.
북한과 가장 유사한 국가, 투르크메니스탄
그런데 이 오명을 스스로 뒤집어쓴 나라가 있습니다. 지난달부터 여성 운전을 금지하고, 여성운전자를 단속하고 있는 투르크메니스탄입니다.
교통사고는 여성 탓? 대통령 한 마디에 운전 금지
▲투르크메니스탄의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 지난해 득표율 98%로 3선에 성공했다. [AP=연합뉴스]
지난 5일 타지키스탄의 뉴스통신사인 아시아플러스에 따르면 투르크메니스탄의 수도 아슈하바트에선 교통경찰이 여성 운전자를 적발해 운전을 중단시키고, 차를 주차장으로 보내버리고 있다고 합니다.
시대에 뒤떨어진 결정은 지난달 5일 이뤄졌습니다. 내무장관이 “교통사고 대부분이 여성 운전자에 의해 발생한다”고 보고하자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이 “시정하라”고 지시했다는 겁니다.
투르크메니스탄 정부는 여성 운전 말고도 또 한 가지를 금지했습니다.
검정 등 어두운 색깔의 자동차입니다. 거리에서 짙은 색 차량은 모조리 사라졌고, 차주들은 자동차를 하얀색이나 은색으로 도색하고 있습니다. 이 결정 역시 대통령의 뜻에 따른 것입니다.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은 하얀색에 행운이 따른다고 믿습니다. 그는 하얀 궁전에 살고, 하얀 리무진을 타면서 하얀색에 집착합니다.
▲투르크메니스탄의 수도 아슈바가트 전경. 위키피디아
▲투르크메니스탄 아슈하바트의 흰색 건물들. [중앙포토]
덕분에 아슈하바트는 ‘하얀 대리석의 도시’라는 별명을 얻었죠.
2013년엔 전 세계에서 하얀 대리석 빌딩이 가장 많은 도시로 기네스북에 올랐고요. 아슈하바트엔 하얀 대리석 빌딩이 무려 543채가 있는데, 그 연면적이 450만㎡에 달한다고 합니다. 여의도 면적(290만㎡)의 1.5배가 넘는 넓이입니다.
독재자 기행으로 더 유명한 나라
중앙아시아에 있는 투르크메니스탄은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 4위의 자원 부국입니다. 하지만 이 나라가 전 세계 언론에 오르내리며 유명해진 건 독재자들 때문입니다.
보통의 악질 독재자와는 살짝 다른 이들은 ‘해외토픽’에 어울릴법한 기행으로 이름을 떨쳤죠.
일단 초대 대통령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가 있습니다. 철권통치와 종신 독재, 개인숭배를 일삼았던 그는 살아생전 현존하는 최악의 독재자로 손꼽혔습니다. 덕분에 투르크메니스탄은 북한과 가장 유사한 국가로도 알려졌죠.
그는 1985년부터 2006년 사망할 때까지 투르크메니스탄의 최고 실력자로 군림했습니다. 1991년 옛소련이 붕괴하기 전엔 소비에트 내 공화국의 공산당 서기장이었고, 이후엔 독립국 투르크메니스탄의 초대 대통령이 됐습니다. 그리고 취임 직후인 93년부터 슬슬 본색을 드러냅니다.
▲2002년 블리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난 니야조프 투르크메니스탄 전 대통령. [사진=크렘린궁 홈페이지]
자신의 이름을 ‘투르크메니스탄의 지도자’란 뜻의 투르크멘바시(Turkmenbashi)로 개명하고, 그 앞에 항상 ‘베익(beyik·위대한)’이란 말을 붙이도록 합니다. ‘위대한 투르크메니스탄의 지도자’로 자신을 부르도록 한 겁니다. 99년엔 대통령 임기 제한을 폐지해 종신 대통령이 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카스피해 연안에 있는 도시 ‘크라스노보드스크’를 자신의 이름에 따라 ‘투르크멘바시’로 바꿨고요, 94년 건설한 아슈하바트 국제공항 이름도 ‘사파르무라트 투르크멘바시’였습니다.
▲니야조프 전 대통령의 얼굴이 새겨진 지폐.
▲국내에 번역, 출간된 니야조프 전 대통령의『루흐나마』
모든 지폐에 자신의 얼굴을 새겨 넣은 건 기본입니다. 주요 공공건물에도 자신의 대형 초상화를 내걸었죠.
황금으로 도금한 동상을 곳곳에 세운 건 물론입니다. 동상은 언제나 태양을 바라보도록 자동으로 회전하게 만들어졌죠. 마치 태양이 그를 비추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자서전 형식으로『루흐나마』라는 경전을 써서 교과과정에 포함했고, 암송하도록 했습니다. ‘영혼의 책’을 뜻하는 『루흐나마』는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성경이나 쿠란에 버금가는 책으로 여겨졌습니다. 니야조프는 방송에서 “이 책을 하루에 세 번 읽으면 천국에 간다”고도 했죠.
모든 지폐에 자신의 얼굴을 새겨 넣은 건 기본입니다. 주요 공공건물에도 자신의 대형 초상화를 내걸었죠.
황금으로 도금한 동상을 곳곳에 세운 건 물론입니다. 동상은 언제나 태양을 바라보도록 자동으로 회전하게 만들어졌죠. 마치 태양이 그를 비추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자서전 형식으로『루흐나마』라는 경전을 써서 교과과정에 포함했고, 암송하도록 했습니다. ‘영혼의 책’을 뜻하는 『루흐나마』는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성경이나 쿠란에 버금가는 책으로 여겨졌습니다. 니야조프는 방송에서 “이 책을 하루에 세 번 읽으면 천국에 간다”고도 했죠.
▲니야조프 전 대통령의 황금 동상. [중앙포토]
이 외에도 그는 각종 기괴한 지시를 내리는데요, 남녀를 구분하기 어렵다며 뉴스 진행자의 화장을 금지하는가 하면, 젊은 남성의 장발과 턱수염도 금지합니다. 투르크메니스탄 고유의 문화가 아닌 오페라·발레 공연도 금지됩니다.
그중 가장 기이한 것은 월(月) 이름과 요일 명을 바꾼 겁니다. 이를테면 1월을 자신을 지칭하는 ‘투르크멘바시’, 4월을 자기 어머니 이름인 구르반솔탄으로 변경했고요, 월요일은 ‘중요한 날’, 수요일은 ‘좋은 날’, 일요일은 ‘쉬는 날’ 등으로 바꿨습니다. 이 어처구니없는 니야조프만의 '역법'은 2008년 그가 사망한 뒤 폐지됩니다.
이런 절대 독재에도 국민이 반발하지 않았던 건 가스와 석유개발로 쏟아져 들어온 외화 덕분입니다.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를 펼쳤고, 전기·수도·가스 등 공공요금도 무료였습니다. 1달러만 내면 휘발유를 60리터나 살 수 있을 정도로 물가도 낮았고요.
▲지난해 실내 무도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카스피해 연안 아와자에 문을 연 스포츠 경기장 개장식에 참석한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 [AP=연합뉴스]
독재자의 길 답습하는 현 대통령
영원한 권력을 꿈꿨던 니야조프는 2006년 허무하게 생을 마감합니다. 심장마비였습니다.
독재자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극심한 권력 투쟁과 혼란이 예상됐지만, 투르크메니스탄은 동요 없이 새 권력자를 맞습니다. 베르디무하메도프 현 대통령입니다.
니야조프의 사망부터 새 대통령 취임까지 공백기는 2달. 투르크메니스탄은 서방 기자를 모두 내쫓고 완전히 문호를 폐쇄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평화로운 권력 교체가 가능했던 이유로 ‘우민화 정책’을 꼽는 분석도 있습니다. 『루흐나마』 같은 책을 강제한 효과를 봤다는 거죠.
▲지난해 10월 러시아 소치를 방문한 베르디무하메도프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왼쪽).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생일 선물 겸 친교의 상징으로 투르크멘 셰퍼드를 선물했다. [AP=연합뉴스]
▲지난해 10월 베르디무하메도프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왼쪽)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선물한 강아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 AP=연합뉴스]
베르디무하메도프는 개인숭배를 타파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이내 전임자를 답습합니다. 관공서에 자신의 사진을 내걸었고, 금박을 입힌 자신의 기마 동상을 수도 한복판에 세웠습니다. 국민을 상대로 강제 모금해 세운 동상의 제막식엔 학생들이 동원돼 대통령 찬양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요. 몇해 전부터는 자신의 사진을 강매하는가 하면, 일대기를 의무적으로 배우게 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해 대선서 98% 득표율로 3선 성공
▲2015년 수도 아슈하바트에 세워진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의 기마 동상. [연합뉴스]
2016년엔 헌법을 개정해 대통령 임기를 5년에서 7년으로 연장하고, 70세인 대통령 후보의 나이 제한도 없앴습니다. 헌법에 대통령 연임 횟수 제한이 없으니 종신집권의 길이 열린 셈입니다.
나름 개혁·개방 정책을 통해 국제사회에 진입하려 애쓰고는 있습니다. 시장경제 활성화 및 외국인 투자유치를 위해 국유재산 민영화법 시행을 천명하기도 했고요. 2013년엔 최초로 복수정당제를 도입했습니다.
지난해엔 최초로 국제행사인 실내 무도 아시안게임을 개최하기도 했고요
그는 지난해 초 실시된 대선에서 득표율 97.6%로 3선에 성공합니다. 경쟁 후보가 8명이나 있었는데 말입니다.
당시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대선을 앞두고 “베르디무하메도프가 니야조프의 일부 해악적 정책을 개혁하는 조치를 취했으나 핵심적 권력남용 정책은 계속하고 있다”며 “유권자들이 모든 후보에 대해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밝힐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2013년 6월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의 생일파티에 초대돼 노래했던 미국의 가수 제니퍼 로페즈는 독재자를 찬양했다는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01.27 한반도 운명 가른 역사적 장면…1명은 우울증, 2명은 치매
▲우울증을 진단받은 뒤 스스로 총리직을 사임한 제프 갤럽 전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 총리의 최근 모습. [ABC 홈페이지 캡처]
약 10년 전, 호주 정계에서는 한 ‘커밍아웃’이 화제였습니다. 한 정치인이 우울증을 진단받은 사실을 고백한 것입니다. 제프 갤럽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州) 총리입니다.
우울증 진단 사실 밝힌 뒤 자진 사임한 제프 갤럽 전 호주 주총리
우울증 걸렸던 윈스턴 처칠 영 총리는 “(우울증은) 검은 개”라고 표현
1964년 ‘정신이상설’ 제기된 미 공화당 후보 낙마 계기로 의학계 윤리 원칙 제정
이 사실을 숨길 수도 있었던 그는 우울증으로 정상적인 정계 활동이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총리직에서 사임한 뒤 우울증 치료에 전념했지요.
학자 출신으로 성공 가도를 달리던 그의 ‘용감한 선택’에 호주 국민들은 많은 격려와 찬사를 보냈습니다. 이안 학기스 시드니의대 교수는 “호주인 여섯 명 중 한 명이 우울증에 시달리지만 그 사실을 잘 공개하지 않는다”며 “갤럽의 결단은 우울증 환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줬다”고 평가했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요즘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기된 정신건강 이상설 때문에 시끌벅적합니다. 지난달 초에는 미 상·하원 10여 명이 정신과 전문의인 밴디 리 예일대 의대 교수를 의회로 초청해 그의 정신건강 상태가 대통령직 수행에 적합한지에 대해 브리핑을 받았지요.
이어 이달 2일엔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핵 단추’ 발언에 대해 “나는 더 크고 강력한 핵 버튼을 갖고 있다”고 응수하면서 그의 정신건강 이상설이 본격적으로 촉발되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비화를 다룬 미 언론인 마이클 울프의 『화염과 분노』는 이런 논란에 기름을 부었지요.
그런데 해외 정계를 살펴보면 ‘실제로’ 정신질환을 겪은 유명 정치인이 적지 않습니다. 상당수가 우울증 혹은 치매에 시달렸지요. 그런데 이들이 처했던 상황과 반응은 제각각 달랐습니다. 한번 살펴볼까요.
[치매 사실 밝힌 뒤 치매 연구소 설립한 로널드 레이건]
▲미국 제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중앙포토]
영화배우 출신인 로널드 레이건 미 40대 대통령. 그는 대통령에서 물러난 이후 지난 1994년 11월 알츠하이머병(노인성 치매)을 진단받고 자신이 치매에 걸린 사실을 알리는 담화문을 발표했습니다.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중략) 내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에게 알림으로써 이 병에 대해 더욱 많은 관심을 이끌어내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 병으로 고생하는 환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중략)”
이 담화문 발표 이후 레이건 전 대통령은 아내인 낸시 여사와 ‘알츠하이머병 치료 연구’를 목적으로 ‘로널드 앤드 낸시 레이건 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두 사람은 이 연구소를 통해 알츠하이머 치료를 위한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지원했답니다
▲마가릿 대처 전 영국 총리. [중앙포토]
또 획기적인 정책 추진과 독단적인 정부 운영으로 ‘철의 여인’으로 불렸던 마가릿 대처 전 영국 수상도 정계 은퇴 후 치매를 앓았습니다. 2013년 뇌졸중으로 사망 전까지 그는 대중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윈스턴 처칠·스탈린…정신질환 시달린 20세기 초 정치인들]
시계추를 더 돌려볼까요. 20세기 초에도 우울증·치매 등 정신질환에 걸렸던 유명 정치인은 적지 않습니다.
▲영국 총리를 지낸 윈스턴 처칠. [중앙포토]
2차 대전을 연합군의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 영국 전 총리가 대표적이지요. 그는 평생을 괴롭혔던 ‘반복성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림 그리기에 몰두했습니다.
처칠 전 총리는 자신의 질환을 두고 ‘검은 개’라고 불렀지요. 전문가들은 “검은색이 우울 증상을 의미하고, 개는 사람을 졸졸 따라다녀 쫓아내기 어려운 동물이기 때문에 처칠이 그렇게 부른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말년에 질환을 회복한 처칠은 “검은 개가 떠났다”고 표현했습니다.
또 그와 함께 2차 세계대전 종전(終戰) 직전 ‘얄타 회담’을 이끈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 대통령과 스탈린 소련 서기장도 당시에 이미 치매 환자였다는 놀라운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10여년 전 영국 언론 BBC에 의해 말입니다.
지난 2004년 7월 당시 BBC 보도에 따르면 영국왕립정신과의사협회의 연례총회에선 ‘1·2차 세계대전 당시 주요국 정상이 치매 때문에 정상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2차 세계대전 말기에 얄타회담에서 한 자리에 모인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 대통령, 스탈린 소련 서기관(왼쪽부터 ). [중앙포토]
연구진인 영국 헤이우드병원 정신과 전문의 엘 님 박사는 “루스벨트 전 미 대통령(32대), 스탈린 전 서기관은 치매로 인해 정상적인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고 주장했습니다. 2차 대전 말기인 1945년 2월 스탈린과 만나 한반도 문제 등을 협의했던 두 사람이 치매 때문에 협상을 제대로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연구진은 1차 세계대전 당시 우드로 윌슨 미 대통령(28대) 역시 치매 환자였다는 주장도 내놨습니다. “윌슨 전 대통령이 치매에 걸린 사실을 인정하고 일찌감치 물러났더라면 2차 대전을 피할 수 있었다”는 설명과 함께 말입니다.
윌슨이 물러났다면 ‘차기 대통령’이 베르사유 조약을 비준해 미국이 고립주의로 회귀하지 않고 1차 대전후 국제사회를 이끌었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대선 중 정신질환설로 낙마한 미 공화당 후보…골드워터 룰 만들어져]
▲1964년 미 대선 당시의 배리 골드워터 공화당 후보. [보스턴글로브 홈페이지 캡처]
미국에서는 선거 유세 중 정신질환설이 제기돼 대선 후보가 낙마한 적도 있습니다. 지난 1964년 미 대선후보로 출마했던 배리 골드워터 공화당 후보 얘기입니다. 대선시 제기된 정신질환설이기에 피해는 더욱 심각했지요. 당시 골드워터 후보는 미 언론 팩트지의 “(골드워터는) 대통령직을 수행하기에 부적절한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는 설문 조사 발표 이후 회복할수 없는 정치적 타격을 받았고 결국 낙마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그는 팩트지 편집장을 고소해 7만5000달러를 배상받았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 의학계에는 윤리 원칙이 하나 생겼습니다. '정신과 의사가 직접 진단하지 않은 공인의 정신 상태에 대해 의견을 밝히는 행위'를 비윤리적으로 규정한, 이른바 '골드워터 규칙'입니다. 지난해부터 트럼프 대통령의 정신 감정을 줄곧 주장한 밴디 리 교수도 현재 의학계로부터 "골드워터 규칙을 어겼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요.
▲밴디 리 미 예일대 정신의학과 교수. [예일대 홈페이지 캡처]
이와 관련해 그는 중앙일보와 최근 인터뷰에서 “정신과 의사는 원칙적으로는 골드워터룰을 따라야 하지만 나는 ‘공중(公衆)의 건강 증진에 기여해야 한다’는 미 의학 윤리 원칙을 더 강조하고 싶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정신건강을 감지하고도 이에 대한 문제 제기를 주저한다면 이는 우리가 ‘잠재적 피해자’인 대중에게 ‘경고할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지적 능력 갖춘 이가 치매 걸리면 타인이 잘 못 알아채”]
▲헤럴드 윌슨 전 영국 총리. [중앙포토]
앞서 언급한 영국 헤이우드병원의 엘 님 박사는 해럴드 윌슨 전 영국 총리를 정신 질환에 적절히 대처한 사례로 제시했습니다. 윌슨 전 총리는 치매로 인해 인식능력이 저하된 사실을 일찌감치 인식하고 1976년 전격 사임을 발표한 인물입니다. 이어 연구진은 우로 케코넨 전 핀란드 총리와 램지 맥도널드 전 영국 총리 역시 치매 증상이 있었다고 진단했습니다.
엘 님 박사는 “치매는 초기부터 기억력뿐 아니라 의사결정과 방향감각 등에도 영향을 미친다”면서 “높은 지적 능력을 보유한 사람은 치매에 걸려 직무수행 능력이 손상된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행동한다”고 분석했습니다.
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02.03 보부아르의 자유연애와 ‘미투’ 페미니즘
유혹할 권리와 '성희롱 갑질'을 구분하라
요즘 한국에서 한 여검사의 성추행 피해 폭로를 계기로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잘 알려진대로 미투는 미국 할리우드의 거물 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이 수십년간 저질렀던 성폭력이 공개되면서 촉발된 소셜네트워크(SNS) 캠페인입니다. 수치심 때문에 혹은 직접적 피해를 우려해 숨겨왔던 성희롱·성추행·성폭행 경험을 공개하자는 것이지요.
▲왼쪽부터 우버 사내 성희롱을 고발한 수전 파울러, 미투 운동에 참여한 앤젤리나 졸리, 제니퍼 로런스, 리스 위더스푼, 앨리사 밀라노. [사진 각 SNS, AP=연합뉴스]
그런데 최근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에는 원로 여배우 카트린 드뇌브 등 문화예술계 여성 100명이 “미투 운동이 과도하다”고 공개편지를 실었습니다. 이들은 성폭력은 범죄라고 하면서도 “유혹이나 여자의 환심을 사려는 행동은 범죄가 아니다”라면서 “남성들에게 증오를 표출하는 일부 페미니스트들을 배격한다”고 주장해 논란을 불렀습니다. 이에 대해 미투 참여자들이 공개 반박하는 등 역풍이 거세지자 카트린 드뇌브가 다시 사과하기도 했지요.
과연 미투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측이 말하는 ‘유혹할 권리’란 무엇을 뜻할까요. 왜 이들은 미투가 “남녀 간 연애에 청교도주의를 초래할 수 있다”고 걱정할까요. 이들이 수호하려는 자유로운 연애와 미투 페미니즘은 대립되는 개념일까요.
[알고 보면 쓸모있는 신기한 세계뉴스-알쓸신세]가 미투 페미니즘을 둘러싼 논란과 진실을 알아보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프랑스 여권운동의 선구자라 일컬어지는 사상가 시몬 드 보부아르(1908~1986)의 자유연애를 들여다보려 합니다. 드 보부아르는 일평생 연애주의자로 살면서도 그 자신이 여성의 권리를 쟁취하는 데 앞장섰던 페미니스트였습니다.
▲'제 2의 성'을 쓴 프랑스 여권운동의 선구자 시몬 드 보부아르.
미투 비판하며 "유혹할 권리 있다"
카트린 드뇌브 등 100명의 르몽드 기고문('성의 자유에 필수불가결한 유혹할 자유를 변호한다')이 한창 파문을 부르던 있던 지난 1월12일 뉴욕타임스(NYT)에 한 프랑스 저널리스트의 기고가 실렸습니다. 아그네스 푸흐리에(AGNES C. POIRIER)가 쓴 글의 제목은 ‘시몬 드 보부아르와 프랑스 페미니즘’. 드뇌브의 ‘미투 비판’에 대한 해명성 글입니다.
NYT 기고는 프랑스와 미국 페미니즘 간에 차이가 있다면서 드 보부아르가 1947년 썼던 『미국여행기』(L'Amerique au jour le jour)의 한 대목을 인용합니다. “어느날 밤 나는 여자들만의 저녁식사에 초대됐다. 내 인생 처음으로 여성들만 있는 게 아니라 ‘남자 없는’ 저녁에 있다고 느껴졌다.”
당시 보부아르는 미국 남녀 사이에 보이지 않는 유리벽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미국 여성이 옷 입는 방식은 “매우 여성적이고 거의 섹시”하지만 그들은 남성에 대한 적대감을 종종 토로했습니다. 특히 보부아르의 눈에 미국 여성들은 “프랑스 여성들이 남자들을 기쁘게 하고 그들의 변덕을 행복하게 받아주는 걸 경멸한다”고 보였습니다.
▲지난해 2월 14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영화제에 참석해서 기자회견에 응하고 있는 프랑스 여배우 카트린 드뇌브. [EPA=연합뉴스]
욕망에 충실한 프랑스식 연애의 전통
실제로 프랑스 여성들이 미국 여성들보다 남자들의 유혹과 변덕에 관대한지는 모를 일입니다. 미국 여성들이 그런 프랑스인들을 경멸하는지도 알 수 없고요. 문화란 게 무 자르듯 구별되는 것도 아니고 개인 차란 건 늘 존재하니까요.
다만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프랑스는 정치인의 사생활에 미국인보다 훨씬 관대한 편입니다. 동거라든가 혼외 자녀 출산도 미국보다 훨씬 개방적이고요. 관습을 뛰어넘는 연애가 개인의 커리어에 족쇄가 되지도 않습니다. 현직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이 15세인 고등학생 때 24살 연상의 유부녀 교사였던 브리지트 트로노와 사랑에 빠진 러브 스토리는 유명하잖아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그의 24세 연상의 부인 브리짓 트로뉴. [EPA=연합뉴스]
NYT 기고자에 따르면 이는 프랑스식 남녀 관계의 특징과 관련된다고 합니다. 프랑스인들은 남녀 사이의 모호함과 회색지대를 인정한다는 거죠. 중세 궁정연애(Courtly love) 전통까지 올라가는 이런 문화에서 프랑스인들은 유혹을 하거나 당하는 ‘밀당’을 즐기고 오히려 욕망을 숨기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게 여긴다고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기고자는 드뇌브의 글이 진짜 비판하는 건 ‘미투 페미니즘’ 자체라기보다 이로 인한 ‘사상 경찰’(thought police)이라고 설명합니다. 생각을 검열하고 통제하는 감시 사회가 남녀 문제까지 지배할 수 있다는 거죠. 드뇌브는 “문제 남성들을 보내버린 뒤에 다음 (공격) 타깃은 ‘헤픈 여자’가 되느냐”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추파를 던지고 유혹을 즐기는 것 또한 엄연한 개인 자유인데 너무 몰아붙이면 남는 건 엄숙한 청교도주의란 거죠.
계약결혼 중에 또다른 사랑 즐긴 보부아르
NYT 기고가 인용한 보부아르의 책은 그가 미국을 여행하고 쓴 글입니다. 이 책이 나오고 얼마 안돼 보부아르는 사랑에 빠졌습니다. 상대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 작가 넬슨 올그렌(1909~1981). 보부아르는 올그렌에게 47년부터 64년까지 수백통의 편지를 보냈는데 이 편지를 묶은 책이 1997년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나왔습니다. 99년 국내에도 『시몬 드 보부아르의 연애편지』(원제 Lettres a Nelson Algren, 열림원)라는 제목으로 번역됐습니다.
▲50년 가까이 계약 결혼을 유지했던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
그런데 보부아르는 당시 ‘결혼’ 상태였습니다. 보부아르는 한번도 법적으로 결혼하진 않았지만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1905~1980)와 1929년부터 그가 죽을 때까지 계약결혼 관계였습니다. 이 계약 조건엔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되 그런 사실을 서로에게 감추지 않으며 그들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모든 관계에 우선한다는 점 등이 포함됐습니다. 실제로 이들은 반세기 동안 자유로운 연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각자 다른 애인을 두었고 그 관계를 숨기지 않았답니다.
최근엔 보부아르의 또다른 연서가 발굴됐습니다. 44살에 만난 18세 연하남 클로드 란즈만(93)에게 썼던 편지들입니다. 훗날 저명한 영화감독이 된 란즈만은 당시 만 26살이었고 보부아르의 비서로 일했습니다. 보부아르는 편지에서 그를 “내 사랑하는 애기”라고 부르면서 “평생 네 아내가 될 것”이라고 썼습니다. 란즈만이 첫 사랑이자 다시없을 사랑이라는 고백도 덧붙였습니다.
욕망에 충실한 보부아르식 페미니즘
말 그대로 프랑스 지성계를 호령했고, 사르트르의 ‘뮤즈’로 통했던 여성 사상가의 ‘간지러운’ 고백에 놀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보부아르는 심지어 한 편지에 “사르트르는 다른 것엔 열성적이지만 성생활에는 정열이 없다”고 쓰기도 했습니다. 이를 보부아르의 ‘이중성’으로 보는 것은 오해입니다. 보부아르는 평생 사랑 앞에 솔직하고 한없이 로맨틱했습니다. 그에게 자유연애란 욕망을 표현하고 주체적인 삶을 사는 방편이었습니다.
보부아르가 자유연애를 추구했다고 해서 그를 페미니스트라고 칭하는 건 아닙니다. 보부아르는 여성의 열등함이란 오랜 남성 지배체제가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봤고 이를 철학적으로 뒷받침하는 데 평생을 보냈습니다.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보부아르가 1949년 출간한 철학서 『제2의 성』에 나온 이 말은 이후 여성 해방운동의 금과옥조가 됐습니다.
▲1971년 시몬 드 보부아르가 대표 필자로 썼던 343인의 선언(Manifesto of the 343)을 풍자한 '샤를리 엡도'의 만평. ’낙태 선언을 잉태한 343명의 헤픈 여자들“이라고 커버에 소개했다.
특히 여성의 신체에 있어 자기결정권을 강조했는데 대표적인 게 1971년 ‘343인의 선언’(Manifesto of the 343)입니다. 보부아르가 대표 필자로 쓴 이 선언문은 여성의 낙태가 불법시되던 시대에 개인의 피임·낙태 권리를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낙태 허용 여부는 지금도 생명윤리 문제로 논란이 있지만 당시엔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독설로 유명한 만평지 『샤를리 엡도』가 “낙태 선언을 잉태한 343명의 헤픈 여자들”이라는 커버를 싣기도 했으니까요.
21세기 '성희롱 갑질'을 거부하는 여자들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체제에서 다른 여성들보다 한발짝 앞서 가는 것은 언제나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했습니다. ‘한발짝’의 내용은 시대마다 달라졌습니다. 19세기 여성이라면 『인형의 집』(헨리크 입센의 희곡)의 노라처럼 속박된 가정을 뛰쳐나오는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보부아르는 여성이 자유연애를 하면 손가락질 당하고 피임·낙태를 선택할 수 없던 시대에 선구자로 살았습니다. 21세기 여성은 거기서 한발 또 나아갑니다. 평등한 교육을 받고 직장에서 남자와 대등하게 일하는 이들은 ‘성희롱 갑질’을 거부합니다.
▲할리우드의 거물 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과 그에게서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공개하고 나선 여배우들. 2017년 전 세계적인 '미투 캠페인'을 불러일으킨 장본인들이다. [AFP=연합뉴스]
이렇게 보면 보부아르의 페미니즘과 미투 캠페인은 다른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보부아르가 살아있었다면 성폭력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고백에 연대를 표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는 ‘343인의 선언’에서 "사회가 낙태하는 여성들을 위험에 처하게 한다"면서 "나 역시 낙태를 한 바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낙태에 관한 '미투'를 실천한 것입니다.
동시에 일평생 자유연애주의자로서 보부아르는 남녀 간의 ‘밀당’과 ‘유혹할 권리’도 옹호했을 겁니다. 미투 참가자들은 어떨까요. 만약 그가 살아 있어 18세 연하 비서와 연애한다 한들 그게 보부아르의 '갑질'이 아니라면 비판 대상이 되진 않을 겁니다. 이들이 미투를 통해 이루려는 세계가 '엄숙한 청교도주의'가 아니라 자유로운 개인들의 대등한 만남이라면 말이죠. 그런 세상에서 가장 미숙한 존재란 성희롱 갑질을 하고도 자각 못하는 이들, 그게 '유혹할 권리'라고 착각하는 이들 아닐까요.
“진정한 사랑은 두 개의 자유가 서로 상대를 인정하는 위에 세워져야 한다. 그때에는 연인이 서로를 자기와 타인으로 경험하고 어느 쪽도 자기를 불구로 만들지 않고 서로 부축하면서 세계의 가치와 목적을 발견할 것이다.” (『제2의 성』 중에서)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Help each other grow instead of destroying each other.
◆02.12 천국과 지옥이 공존하는 섬 '신혼여행 꽃' 몰디브의 진실
천국인 줄 알았는데…당신이 몰랐던 몰디브
지난 6일 긴급 타전된 몰디브의 정정 혼란을 보도한 국내 주요 매체의 기사 제목입니다.
모두 ‘신혼여행’이 수식어로 붙었습니다. “여행객 안전 우려”, “신혼부부 방문 자제” 등의 내용도 빠짐없이 포함돼 있죠.
▲휴양지로 유명한 인도양의 섬나라 몰디브에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됐다. [중앙포토]
바닷가에서 모히토 한잔하며 꿈같은 휴가를 보낼 수 있는 낙원.
흔히 떠올리는 것처럼 몰디브가 천국 같은 휴양지인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이 사실이 반쪽짜리라는 게 함정이죠.
인구가 40만 명뿐인 섬나라의 정치적 혼란에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운 이유가 관광객의 안전 때문만일까요.
오늘의 [알고보면 쓸모있는 신기한 세계뉴스]에선 몰디브의 나머지 반쪽을 알아보겠습니다.
무슬림 99%…사우디만큼 순도 높은 이슬람 국가
▲몰디브 국기.
2014년 뉴욕타임스(NYT)에 실린 몰디브 여행 기사 제목은 ‘1000개의 섬, 2개의 세계(1000 Islands, 2 Worlds)’였습니다.
몰디브에 대한 정확한 설명입니다. 몰디브엔 두 개의 세계가 존재합니다. 일반 국민이 거주하는 세계와 관광객만 드나드는 세계입니다.
몰디브는 인구의 약 99%가 무슬림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만큼 순도 높은 이슬람 국가죠. 헌법도 ‘무슬림이 아니면 몰디브 시민이 안 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2015년 영국 가디언의 기사 ‘기독교인에게 최악의 국가’에 따르면 몰디브에선 관광객도 성경책을 갖고 다닐 수 없습니다. 몰디브인이라면 성경책을 지닌 것만으로 극형에 처할 수 있고요.
돼지고기와 술은 당연히 금지됩니다. 길거리에서 애정표현 하는 것도 안 됩니다. 사방에 해변이 있다고 수영복을 입을 수도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리조트에선 가능합니다. 입국할 때 술을 반입할 순 없지만, 리조트에선 만취해도 됩니다. 옷차림도 마음대로, 애정표현을 자유롭게 할 수도 있습니다. 돼지고기가 들어간 메뉴도 준비돼 있죠.
리조트는 치외법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섬마다 리조트가 딱 하나씩만 들어서 완전하게 고립·격리돼 있어 이런 것이 가능합니다.
▲몰디브 수도 말레 지역의 인공섬 훌루말레에 있는 이슬람 사원. [위키피디아]
몰디브는 인도양에 남북으로 길게 뻗은 1000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중 사람이 사는 섬은 200개에 못 미칩니다. 1972년 무인도에 첫 리조트가 문을 열었고, 이후 들어선 리조트가 100개를 넘습니다.
아름다운 풍광과 완벽한 사생활 보호로 관광객을 끌어모은 덕에 몰디브는 세계적인 휴양지로 유명해졌죠.
인구가 약 40만인데, 몰디브를 찾는 관광객 수는 매년 100만 명을 웃돕니다. 관광업이 GDP의 약 30%를 차지할 정도로 국가 경제에 절대적입니다.
몰디브 정부가 두 개의 세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급진주의 득세…인구 대비 IS 대원 최다 배출
▲2014년 9월 몰디브 수도 말레에선 이슬람 율법 샤리아의 완전한 시행을 요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보수 이슬람 국가인 몰디브에선 최근 급진주의 세력이 득세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위키미디어]
그러나 최근 분위기는 좀 달라졌습니다. 2008년 들어선 민주 정부가 종교적 자유를 어느 정도 용인한 뒤 오히려 급진주의가 득세하는 부작용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극보수화하면서 2013년 양부에게 성폭행당한 15세 소녀에게 혼외정사 혐의로 공개 태형 100대 선고가 내려지는가 하면, 지난해엔 이슬람 급진주의를 비판한 유명 블로거가 참혹하게 살해됐습니다.
몰디브에서 급진 세력 움직임이 가시화됐다는 신호는 또 있었습니다.
2015년 말 미 안보컨설팅업체 수판그룹 보고서에 따르면 몰디브에서 이슬람국가(IS)에 가담하기 위해 시리아·이라크로 떠난 사람만 200명에 달했는데, 이는 인구 대비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숫자입니다.
이에 따라 몰디브 정부는 지난해 대테러센터를 구성해 만일에 대비한 안전·안보 수칙을 리조트들에 공지하기도 했습니다.
무방비 상태의 여행객은 테러의 충격을 극대화할 수 있는 ‘소프트 타겟’이기 때문입니다. 실제 튀니지·말리 등의 럭셔리 리조트에선 지하디스트의 테러가 발생했으니 몰디브라도 안심할 수 없는 거죠.
이번 국가비상사태 이전부터 몰디브 여행객을 향한 주의 경보는 이미 발령돼 있던 겁니다.
현·전 대통령의 갈등…양쪽 오가는 박쥐 독재자
▲5일 밤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된 몰디브의 수도 말레의 거리를 군인들이 순찰 중이다.[AP=연합뉴스]
정치 상황도 복잡하기 그지없습니다.
압둘라 야민 몰디브 대통령은 야당 인사를 석방하라는 대법원의 결정을 이행할 수 없다면서 5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대법원 판사들을 체포했습니다. 야당 인사를 석방하면 여당이 다수당 지위를 잃어 재선 구도가 위태로워지기 때문입니다.
권력을 위해 사법 체계를 흔들고, 군을 동원해 야당을 탄압하는 대통령은 얼핏 봐도 민주주의 파괴자입니다. 이쪽이 악이라면, 저쪽은 선일까요. 그렇게 간단치 않습니다.
갈등의 축은 야민 현 대통령과 모하메드 나시드 전 대통령입니다. 또 그 둘 사이를 오가는 독재자 압둘 가윰 전 대통령이 있습니다.
가윰은 1978~2008년 몰디브를 통치한 독재자. 내내 단독출마해 6선을 했습니다. 그러나 민주화를 향한 열망은 꺾지 못해, 2008년 치러진 첫 직선제 대선에서 나시드에게 패합니다.
▲압둘 야민 몰디브 대통령. [AP=연합뉴스]
▲6일 새벽 몰디브 군인들이 수도 마레에서 압둘 가윰 전 대통령(가운데)을 체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모하메드 나시드 전 몰디브 대통령. 하야 선언 뒤 치러진 대선에 재출마했다.야민 현 대통령에게 패한 뒤, 그는 반테러 혐의로 13년형을 선고받았다. 수감 중 스리랑카로 망명했다. [AP=연합뉴스]
나시드는 가윰에 맞서 약 20년을 투쟁하며 16번이나 투옥된 민주투사였습니다.
그는 취임 후 야심 찬 개혁 정책을 펼쳤는데, 특히 기후변화 대응에 역점을 뒀죠. 지구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몰디브가 수몰될 위기에 처했다며 친환경 정책을 적극 추진했고, 수중 내각회의를 열어 세계의 이목도 집중시켰습니다. 그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몰디브의 존재감이 꽤 커졌습니다.
배신과 야망의 막장 정치드라마
그러나 부패 혐의와 물가 급등으로 민심이 이반했습니다. 의회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가윰의 야당 측은 틈을 놓치지 않았죠. 장관들을 사임시키고, 새 장관 임명을 미뤄 교착상태를 이어갔습니다.
결국 나시드는 취임 3년 3개월만인 2012년 2월 하야를 선언합니다. 며칠 뒤 “강제로 사임해야 했다. 명백한 쿠데타다”고 번복했지만 되돌릴 수 없었습니다.
나시드는 2013년 치러진 대선에 재출마했고 야민 현 대통령에게 패했습니다.
▲나시드 전 대통령은 지구온난화에 따라 몰디브가 수몰 위기에 처했다며 이를 알리기 위해 수중 내각회의를 열었다. [중앙포토]
▲나시드 전 대통령은 지구온난화에 따라 몰디브가 수몰 위기에 처했다며 이를 알리기 위해 수중 내각회의를 열었다. [중앙포토]
야민은 가윰의 이복동생입니다. 민주투사에게 정권을 뺏긴 늙은 독재자가 동생에게 권력을 쥐여줬던 거죠.
하지만 부모 자식간에도 나눠 갖지 않는다는 권력을 이복형과 나눌 리 만무합니다. 야민과 틀어진 가윰은 자신이 고문했던 나시드와 손을 잡습니다.
그리고 야민은 나시드를 탄압합니다. 반테러법을 적용해 감옥에 보내고, 다른 야당 인사들도 잡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에 대해 대법원이 석방과 재심을 명령한 겁니다.
야민은 가윰도 6일 새벽 체포했습니다. 난데없이 저항 인사가 된 가윰은 체포 직전, 국민에게 이렇게 호소합니다. “우리는 개혁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당신들이 결심을 지키길 부탁한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고, 독재자와 민주투사가 손을 잡는 그야말로 막장. 권력자들의 물고 물리는 정치게임이 몰디브 국가비상사태의 전말입니다.
▲1984년 방한한 압둘 가윰 전 대통령(왼쪽)이 김포공항 환송식장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인도의 몰디브 ‘독점권’ 빼앗은 중국
몰디브는 세계열강이 파워게임을 벌이는 전쟁터이기도 합니다.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된 뒤 인도 일간 퍼스트포스트엔 ‘말레는 인도-중국 대리전의 마지막 무대:뉴델리는 개입해야 한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남의 나라 내정에 간섭하라는 정부를 향한 노골적인 주문입니다.
인도는 앞바다에 있는 몰디브와 오랫동안 가까운 관계였습니다. 1965년 몰디브가 영국에서 독립한 뒤, 이를 가장 먼저 인정한 국가가 인도였습니다. 독립 이듬해엔 수교도 맺었고요.
인도는 경제적·군사적으로 몰디브를 적극 지원했습니다. 원조 차관을 제공했고, 사회 인프라 건설을 지원했습니다. 교육 사업으로 인적 자원 양성도 도왔습니다. 군사협력을 통해 몰디브의 국가 안보도 지켜줬죠. 인도가 ‘빅 브라더’라 자처할만한 관계였습니다.
▲2014년 9월 몰디브를 국빈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공항에 직접 나온 압둘라 야민 몰디브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시 주석은 중국 국가주석 중 처음으로 몰디브를 방문했다. [주몰디브 중국 대사관 홈페이지]
▲지난해 12월 중국을 방문한 압둘라 야민 몰디브 대통령이 시진핑 국가주석과 악수 중이다. 이 때 양국은 자무역협정을 체결했다. [AP=연합뉴스]
이 관계는 중국이 몰디브에 적극적으로 다가서면서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2014년 시진핑 주석은 중국 국가주석으로는 처음 몰디브를 방문했습니다. 이후 중국은 공격적으로 몰디브 공세에 나섭니다. 대규모 투자·경제 지원을 받은 몰디브 정부는 공항 확장 등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를 중국 기업에 허가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인도 기업들의 계약은 취소됐죠.
현재 몰디브 국가 부채의 70%는 중국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중국이 몰디브의 가장 큰 대출 기관”이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지난해 12월 야민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자유무역협정(FTA)까지 맺었으니, 두 나라는 더 가까워질 것이 분명합니다.
“몰디브는 인도-중국의 대리전 무대”
인도는 몰디브를 향한 중국의 구애에 속셈이 있다고 봅니다. “중국의 관심은 작은 섬나라가 약속할 수 있는 작은 경제적 이익이 아니라 전략”이라는 겁니다.
인도양 한복판에 넓게 자리 잡은 몰디브를 거점 삼아 중국이 군사력을 확장하려 한다는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지난해 이미 동아프리카 지부티에 첫 해군기지를 가동해 인도양에 진출한 터라 인도가 우려할 만도 한 상황입니다.
중국은 우회적으로 인도를 견제 중입니다.
외교부의 첫 입장 발표가 평이했던 대신 관영매체인 환구시보가 나섰습니다. 신문은 인도 언론을 걸고넘어졌습니다.
“인도 매체는 일제히 중국과 현 몰디브 대통령이 밀접한 관계라고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인도는 몰디브의 현 국면에 엄청난 관심을 가지며 정치적인 요소들을 이용해 현 국면을 해석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인도 정부와 협력관계였던 나시드 전 대통령은 인도에 무력 개입을 요청했습니다. 집권 이후 친중 행보를 보이는 야민 대통령에 대한 인도의 불만과 우려에 호소한 겁니다.
인도가 실제 몰디브 내정에 개입하긴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인도―호주―일본―미국을 연결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현 사태와 맞물리게 된다면 국제 정세에 어떤 요동이 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한편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6일 “몰디브 정부와 정당이 현재 상황에 스스로 대처할 지혜와 능력을 갖췄다고 믿는다”며 외세 개입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03.25 "난자 얼리러" 1만㎞ 원정 나서는 나라가 있다?
3년 전 여름, 중국이 한 스타의 고백으로 떠들썩해졌습니다. 배우 겸 감독인 쉬징레이(44)인데요. 16살 어린 아이돌 그룹 엑소(EXO) 출신 크리스와의 열애설이 불거진 주인공으로도 잘 알려져 있죠.
▲쉬징레이. [차이나데일리 캡처]
“2013년 미국에서 난자 9개를 냉동 보관했다.”
난자 냉동보관 위해 美로 향하는 중국 여성들
美선 애플·페이스북 등 IT 기업이 비용 지원도
중화권 연예계의 대표적 골드미스인 그가 2015년 이렇게 ‘커밍아웃’을 한 겁니다. (난자 냉동은 여성의 몸에서 채취한 난자를 얼리는 것을 말합니다.) 쉬징레이는 미래에 아이를 갖기 위한 ‘백업 플랜(back-up plan)’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참고로 중국에선 미혼 여성이 난자 냉동 시술을 통해 아이를 갖는 건 불법인데요.
그는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중국에는 ‘독신 여성’이라는 별개의 생물체가 있나 보다”라고 쓰며 당국의 정책을 정면 비판했습니다.
쉬징레이의 고백은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내가 내 난자도 마음대로 못하느냐” “결혼하지 않은 여자는 아이를 가질 권리도 없냐”며 그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컸는데요. 놀라운 점은 당국의 법망을 피해 원정 냉동에 나서는 이들까지 생겨났다는 겁니다. 13억 인구 중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알고 보면 쓸모있는 신기한 세계뉴스]가 살펴보겠습니다.
변호사·교수가 나서 “미혼 여성에게도 허용” 요구
▲"미혼 여성에게 난자 냉동을 허용하라"고 주장하는 잔잉잉 변호사. [글로벌 타임스 캡처]
중국 광둥성 광저우에서 최근 64명의 지린성 의원들에게 편지를 보낸 20대 변호사가 있습니다. 잔 잉잉(29·여)인데요. “전국 병원에서 여성이 난자를 냉동할 수 있게 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지린성이었을까요.
유일하게 결혼하지 않은 여성도 난자 냉동 시술을 통해 임신할 수 있도록 2002년 가이드라인을 만든 곳이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타임스) 중국 내에서도 난자 냉동에 대한 입장에는 온도 차가 있는데 나름 전향적인(?) 의원들에게 법 개정에 나서 줄 것을 호소한 겁니다.
그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훗날 아이를 낳길 원하는 이들에게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난자를 냉동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중국 유명 사회학자인 리인허 교수도 같은 생각입니다. 지난달 남방도시보와의 인터뷰에서 “결혼은 개인의 선택이고 생육권(출산권)은 헌법에서 보장된 권리다. 둘을 분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중국의 사회학자 리인허 교수는 "결혼과 생육권을 분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남방도시보·웨이보 캡처]
사실 쉬징레이의 고백 이전까지만 해도 난자 냉동 시술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여성이 많았다는데요. 당국 규제에 불만을 느낀 일부 여성들은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정자를 냉동 보관할 수 있는 남성과의 ‘성차별’이라며 동등한 권리를 보장해달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암시장 우려와 시술상의 위험 등을 제한 이유로 들고 있는데요. 난자 냉동을 하려면 신분증, 결혼 증명서, 준생증(임신허가증) 등 세 가지 서류를 제출하고 공식적인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하니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죠.
베이징서 LA까지 1만 킬로 ‘원정’
이 때문에 중국 여성들은 해외로 눈을 돌리는 추세입니다. 원정도 불사하면서까지 난자 냉동에 적극적인 20~40대 여성이 꽤 된다고 하네요. 미국 캘리포니아 주 한 병원에는 2016년에 중국인 250명이 다녀갔습니다. 비용이 만만치 않은 만큼 여유 있는 중산층 여성이 주를 이룬다고 하지요. 평균 나이는 39.5세였다고 합니다.
이 같은 원정 행렬이 서구 언론에서는 신기하기만 한가 봅니다. 지난해 영국 BBC는 “중국인들이 베이징에서 로스앤젤레스(LA)까지 6000마일(약 1만㎞)이나 되는 거리의 여행을 한다”며 한 30대 여성의 체험기를 고스란히 영상으로 기록했습니다. 난자 채취를 위해 2주간 스스로 복부에 여러차례 주사를 놨다고 하네요.
영국 BBC는 지난해 한 중국인이 미국 병원에서 난자 냉동 시술을 받는 과정을 취재했다. [유튜브]
중국 온라인 여행사 씨트립은 아예 관련 상품까지 팔고 있습니다. 미국 LA에서 일주일간 난자 냉동 시술과 관광 두 가지를 모두 할 수 있다는 식입니다. 가격은 23만 위안(약 3932만원)으로 어마어마합니다.
러시아 모스크바로 가는 상품도 있네요. ‘15일에 9만8000 위안(약 1675만원). 러시아 최고 수준의 출산 센터에서 시술 진행. 성공률 높음.’
▲씨트립 홈페이지에 올라온 난자 보관 해외 여행 상품. [씨트립 홈페이지 캡처]
한 30대 여성은 2016년 씨트립을 통해 LA에 다녀온 후기를 올렸습니다. 글의 시작이 인상적인데요. “33살, 나에게 선물을 주기로 했다. 바로 미국에 가서 난자 냉동을 하는 것.” 이 여성은 출발 전부터 원격으로 미국에 있는 의사에게 몸 상태를 점검받는 등 철저한 준비를 거쳤다고 소개합니다.
세계 곳곳서 ‘열풍’…“임신 능력을 냉동하라”
난자 냉동은 세계 곳곳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요.
미국에선 2012년 ‘실험적(experimental)’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난자 냉동 시술을 보편적 불임 치료법으로 인정했습니다.
2년 뒤부터는 아예 애플과 페이스북 등 유명 정보기술(IT)기업이 최대 2만 달러(약 2158만원)까지 직원들의 난자 냉동 비용을 대겠다고 나섭니다. 평균 시술 비용의 두 배 수준이라고 당시 언론들은 전했습니다.
▲애플과 페이스북.
유급 육아휴직이나 보육 시설 등의 지원을 늘리기보다 출산을 미루게끔 오히려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고 하네요.
미국에서 난자 냉동을 시도한 여성은 2009년 475명에서 2015년 8000명까지 늘었다고 합니다. 마티니를 마시며 난자 냉동에 대한 정보를 마치 ‘레시피 교환하듯’ 공유하는 난자 냉동 파티까지 열린다고 하니 말 다 했죠. (2014년 뉴욕 고급 호텔에서 진행한 한 파티에는 수백 명의 전문직 여성이 참석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미국 뉴욕의 뉴호프출산센터에서 주최한 난자 냉동 파티.
일본에선 2015년 처음으로 오사카의 건강한 40대 여성이 냉동한 난자로 아이를 낳은 것으로 전해지는데요(재팬타임스).
9000만 엔(약 9억원)가량의 돈을 들여 25~34살 여성의 시술 비용 80%를 대겠다고 나선 지방자치단체도 있습니다. 우라야스 시인데 초저출산이라는 절박한 위기상황에서 나온 겁니다.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가 삶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무슬림 세계에선 어떨까요. 나라마다 다르겠지만, 아랍에미리트(UAE)에서는 지난해 최초로 미혼 여성 일부가 학업이나 커리어 등의 이유로 난자 냉동 시술을 받은 사연이 더 내셔널에 보도된 바 있습니다.
참고로 한국에서는 병원 26곳에서 4600개 가까운 난자를 냉동 보관 중이라고 하죠. (2016년, 보건복지부)
“난자 냉동했어요” 셀럽들 눈길
특히 최근에는 셀럽(유명인사)들이 자신의 난자 냉동 보관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나서면서 열풍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영국 가수 리타 오라(28), 미국 배우 올리비아 문(38)과 코미디언 휘트니 커밍스(36) 등이 대표적이죠. 35살에 난자를 냉동했다는 올리비아 문은 “내 친구는 병원에서 검사한 결과 난자 나이가 50살로 나왔다”며 “모든 여성이 시술을 받아야 한다”고 밝혀 화제가 됐습니다.
휘트니 커밍스는 시술 이후 자유를 얻었다고 말합니다. 연애할 대상을 가능한 한 빨리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에서도 벗어났다고 하네요.
한국에서는 지난해 일본 국적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가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친구인 가수 이지혜와 냉동 난자 시술을 받은 사연을 알렸습니다. 당시 보관된 난자를 보러 병원을 찾아 그가 남긴 말 한번 들어보실래요. “엄마가 왔다. 아기야 조금 더 자고 있어. 아빠 데려올게.”
▲후지타 사유리 방송 장면. [EBS 캡처]
사회적 냉동(social freezing) 시대
전문 용어로 ‘난모세포 동결보존’이라 하는 난자 냉동은 통상 검사→난포 키우기→난자 채취→냉동 보관 등의 과정을 거칩니다.
얼리지 않은 신선한 상태의 난자는 체외로 배출되면 금방 죽지만, 동결 상태의 난자는 그 기능을 유지한 채 수년간 보존할 수 있다네요.
과거에만 해도 암·백혈병 등으로 방사선 치료를 앞둔 여성이 난자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난자를 얼려 보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평균 서른을 넘어야 결혼하는 만혼(晩婚) 시대가 도래하면서 난자 냉동은 늦깎이 출산에 따른 난임을 대비하려는 미혼 여성의 풍속도로 자리 잡았는데요. 적절한 짝이 없어서 혹은 커리어 등 때문에 당장은 출산 계획이 없지만 노산에 대비하려는 이유로 하는 난자 냉동을 전문가들은 ‘사회적 냉동(social freezing)’이라고 표현합니다.
“난자 냉동은 생물학적인 유리 천장(biological glass ceiling)을 피해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세대의 피임약과 같다.” 타임지의 비유입니다.
‘시간을 멈추게 할 신기술’이라고 현혹하는 업체들도 있네요.
‘임신 100% 보장’ 맹신 말아야
저출산이 전 세계적 사회문제로 대두한 만큼 아이를 갖는 방식을 제도적으로 다양하게 인정하고, 비싼 시술 비용을 보험으로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요.
▲냉동된 난자를 관리하는 모습. [로이터통신]
윤리적 고민도 뒤따르고 있습니다.
치료를 받아야 하는 등 건강상의 이유로 불가피하게 난자를 냉동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단순히 라이프 스타일을 위해서라면 도덕적 관점에서 재고해봐야 한다는 겁니다.
특히 기술이 발전하면서 냉동 난자를 이용한 임신 성공률이 크게 오르긴 했지만, 여전히 100%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라는 조언도 있죠. 도박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참고로 이 점에 대해선 학자마다 견해가 달라 “30대 초반에 난자를 냉동하면 임신율이 80~90%에 달한다”며 “건강한 20대 여성이 자연 임신할 확률(25%)보다 높다”는 주장도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2015년 일본산부인과학회는 난소 출혈이나 감염 등 부작용을 이유로 “권장하지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4년 전 블룸버그 비지니스위크지 표지에 “난자를 냉동하고, 커리어를 자유롭게 하라.(Freeze your eggs, Free your career.)”란 문구와 함께 모델로 등장한 브리짓 애덤스의 경험담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브리짓 애덤스의 침실에 놓인 블룸버그 비지니스위크지 표지(왼쪽)와 그가 냉동 난자로 임신하기 위해 맞아야 했던 주사들. [워싱턴포스트(WP) 캡처]
그는 최근 워싱턴포스트(WP)에 “나쁜 결과에 대한 충고가 부족한 병원들이 많다. 매우 비양심적”이라고 꼬집었습니다. 냉동 난자로 아이를 갖는 길은 절대 쉽지 않았다는 건데요. 결국 기증받은 난자로 지난해 임신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제임스 그리포 뉴욕대 랭곤 건강센터 박사는 더 센 경고를 날립니다.
“더 많은 토론이 필요하다. 출산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개념은 모두 소설이고 부정확하다.”
황수연 기자·이동규 인턴기자 ppangshu@joongang.co.kr
◆03.26 가장 멀리 가는 에어인디아, 최장거리 타이틀 왜 못가졌나
25일(현지시간) 오전 5시 3분. 영국 런던 히드로 공항에 여객기 한 대가 착륙했습니다.
하루 평균 비행기 1299대가 이착륙하고, 승객 21만 3668명이 입출국하는(2017년 기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붐비는 히드로 공항이지만, 이날 콴타스항공의 QF9편만은 특별했습니다.
한 번에 1만 5000㎞…장거리 직항의 세계
전날 오후 6시 49분 호주 퍼스를 이륙한 지 17시간 만에 런던에 착륙함으로써 역사적인 논스톱 취항에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승객과 승무원 230여 명을 태운 QF9편은 쉬지 않고 1만 4498㎞(9010마일)를 날았습니다.
▲24일 호주 퍼스를 출발해 25일 영국 런던에 도착한 콴타스항공의 QF9편에 투입된 보잉사의 787-9 드림라이너 항공기. [EPA=연합뉴스]
70년 전엔 7번 중간기착, 나흘 여정
직접 탑승한 앨런 조이스 콴타스항공 최고경영자(CEO)는 히스로공항 도착 직전 기내 방송을 통해 “우리는 오늘 호주와 영국 간 비행을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마무리했다”고 선언했습니다. 리사 노만 기장도 착륙 직후 “역사적인 운항에 함께한 여러분을 환영한다”며 성공적인 비행을 자축했고요.
히드로 공항의 직원들은 입국장에서 승객과 승무원을 대대적으로 환영했습니다. 영국과 호주의 언론도 직항 노선 취항을 주요 뉴스로 다뤘죠.
한편 런던에 착륙한 QF9편은 25일 오후 1시 15분 QF10편이 되어 다시 퍼스를 향해 이륙했습니다.
두 나라가 멀긴 멀다지만 직항이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의아합니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70년이 더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보면 대수로 여길 만 하다 싶기도 합니다.
콴타스항공은 1947년 12월 시드니~영국 노선을 처음 운항했습니다. 55시간을 비행하면서 무려 7번 급유를 위한 중간 기착을 해야 했습니다. 승객들은 꼬박 나흘의 여정을 견뎌야 했죠. 툭하면 이륙과 착륙을 반복하며 비행하는 것이 껑충껑충 뛰는 캥거루가 같다고 ‘캥거루 노선’이라는 별명도 붙었습니다.
최근까지도 호주~영국 노선의 여객기는 급유를 위해 두바이나 싱가포르에서 한 번은 멈춰야 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기종에 비해 연료 효율성이 20%가량 뛰어난 보잉사의 787-9 드림라이너를 도입하면서 마침내 논스톱 비행이 가능해졌습니다. 그 덕에 여행 시간은 약 3시간 줄었고, 콴타스항공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노선을 보유한 항공사가 됐습니다.
세계 최장 노선은 도하~오클랜드
그렇다면 최장거리 기록은 어느 항공사의 어느 노선이 갖고 있을까요.
‘세계 최장거리 직항’ 타이틀은 카타르항공의 도하~오클랜드 노선이 보유 중입니다. 1만 4536㎞(9032마일)를 약 17시간 30분간 비행합니다.
3위는 에미레이트 항공의 두바이~오클랜드 노선(1만 4201㎞, 17시간 25분), 4위는 유나이티드 항공의 로스앤젤레스~싱가포르 노선(1만 4114㎞, 17시간)입니다.
▲세계 최장거리 노선인 카타르항공의 도하~오클랜드 노선의 경로.
▲카타르항공, 콴타스항공에 이어 3번째로 긴 노선인 에미레이트 항공의 두바이~오크랜드 경로,
흥미로운 건 장거리 직항 노선 순위 1~7위가 모두 2016년 이후 신설된 노선이라는 점입니다.
올 연말엔 신기록 등장도 예고돼 있습니다. 싱가포르항공이 5년 전 폐지했던 싱가포르 창이 공항과 뉴욕 뉴어크리버티 공항을 연결하는 직항편을 부활시키는 겁니다. 1만 5343㎞ 거리에 비행시간은 19시간에 이릅니다.
이 노선은 2004년 신설됐다 2013년 말 폐지됐습니다. 실적 부진이 이유였습니다.
당시는 국제 유가가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을 때입니다. 연료비가 극도로 올랐지만, 항공사는 ‘세계 최장’ 타이틀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수지타산을 맞추기 위해 전석을 비지니스석으로 운영하기도 했었죠. 하지만 좌석 점유율만 떨어졌고, 끝내 노선을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2014년 배럴당 100달러 선이던 두바이유 가격이 2016년 초 20달러 선까지 급락하는 등 저유가 시대가 시작되면서 항공 트렌드가 바뀌었습니다.
한 번 이착륙해서 멀리 날아가는 노선이 중·단거리 노선보다 저유가 혜택을 크게 볼 수 있게 되자 경쟁적으로 장거리 노선이 신설됐습니다.
▲올해 말 부활할 예정인 싱가포르항공의 싱가포르~뉴욕 노선. 부활과 동시에 최장거리 노선이 된다.
2016년 저유가로 장거리 경쟁 붙어
연료 효율이 높은 차세대 항공기의 등장도 장거리 비행을 가능케 했습니다.
콴타스항공이 런던행 노선에 투입한 787-9 드림라이너는 유나이티드 항공의 로스앤젤레스~싱가포르, 휴스턴~시드니 노선에도 이용되고 있죠.
싱가포르 항공의 싱가포르~뉴욕 구간엔 에어버스의 최신기종 A350-900ULR이 투입된다고 합니다. 이 역시 크기가 비슷한 보잉 777-200 LR 보다 약 25% 연료 소비를 줄인 고효율 기종입니다.
자, 그런데 순위에는 빠져있는 최장거리 노선이 있습니다.
에어인디아의 델리~샌프란시스코 노선입니다. 운항 거리가 1만 5100㎞(9300마일)에 이르는 노선이죠. 카타르항공의 도하~오클랜드 노선보다 약 500㎞를 더 비행합니다.
그러나 콴타스항공의 퍼스~런던 운항을 보도한 뉴스에서도, 다른 최장거리 노선 리스트에서도 에어인디아의 델리~샌프란시스코 노선은 순위에 언급되지 않습니다.
타이틀을 거머쥐어야 마땅한 이 노선이 순위에서 제외된 이유가 있습니다. 일부러 먼 길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취항 초 이 노선에 투입된 여객기들은 서쪽으로 날아 대서양을 건너 샌프란시스코에 닿았습니다. 1만 3900㎞의 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에어인디아는 비행기를 반대로 띄우기로 합니다. 동쪽으로 태평양을 건너서 1000㎞ 이상 더 날아가기로 한 겁니다. 바람 때문이었습니다.
돌아가는 에어인디아, 최장거리지만 순위 제외
항로를 바꾼 뒤 비행 거리는 늘었지만, 목적지엔 더 빨리 도착하게 됐습니다. 대서양을 건너갈 땐 샌프란시스코까지 약 16시간이 걸렸는데, 태평양을 건너자 비행시간이 14시간 남짓으로 줄어든 겁니다.
비행기와 같은 방향으로 불어서 비행기를 밀어주는 ‘뒷바람(tailwind)’ 덕분입니다. 에어인디아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지구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돌고, 바람도 그 방향으로 분다. 서쪽으로 날면 맞바람의 저항을 받고 동쪽으로 날면 뒷바람의 도움을 받는다”
바람의 힘으로 에어인디아는 가장 멀리 날면서 20위권 내의 어떤 장거리 노선보다도 짧은 비행시간을 갖게 됐습니다. 항공사에 운항시간 단축은 연료비 절감을 뜻하는 것이니 에어인디아는 항로 변경으로 실질적 이익도 얻었죠.
한편 대한항공의 최장거리 노선은 인천~애틀란타 노선으로 1만 1477㎞(7132마일)를 약 15시간 10분 비행합니다. 아시아나 항공의 경우 약 14시간 40분 비행하는 인천~뉴욕 구간(1만 1114㎞, 6906마일)이 최장거리 직항노선입니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04.15 드라마 시작땐 총성도 멈춘다…아랍 흔든 '할랄 브래드 피트'
지난달 초 아랍 최대 민영 TV네트워크인 MBC(Middle East Broadcasting Center)가 자사 채널에서 터키 드라마를 퇴출했습니다. 구체적인 이유는 발표하지 않았지만 외신들은 터키에 대한 사우디아라비아의 보복이라고 풀이했습니다.
터키는 어떻게 드라마 대국이 됐을까
MBC 소유주는 사우디의 언론 재벌 왈리드 알 이브라함.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주도한 반부패 수사에 따라 구금됐던 거물입니다. 한편 터키는 사우디가 단교·봉쇄 중인 카타르를 지원하는 등 사우디 정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고요. 한 마디로 사우디 왕실이 방송사에 영향력을 행사해 터키를 손 봐줬다는 겁니다.
중국이 한국의 고고도방어미사일(THAAD·사드) 체계 배치에 대한 보복으로 한류 콘텐트를 제한한 것과 유사한 상황입니다.
▲오스만 제국 시대를 그린 터키 사극 '위대한 세기(무흐테솀 유즈이을). [중앙포토]
세계 2위 드라마 수출 대국, 터키
파이낸셜타임스(FT)는 “MBC가 방송 퇴출의 피해자가 될 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시청자는 다른 플랫폼으로 드라마를 보면 되고, 다른 아랍 방송국들은 MBC가 버린 방영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니 MBC만 손해라는 겁니다.
레바논 일간 안-나하르도 “터키 드라마 중단으로 MBC가 5000억 달러에 이르는 손실을 입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터키는 큰소리를 칩니다. 이스탄불 상공회의소의 아주투르크 오란 소장은 이런 설명을 발표했습니다.
“이미 터키 드라마는 아랍세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MBC는 시청자들을 잃을 것이고, 금지 조치는 실패할 것이다”
미드·일드·영드에 밀려 한국에선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터드’. 어떤 경쟁력을 지녔길래, 아랍의 패권국 사우디의 제재에 끄떡없는 걸까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있는 MBC 사옥 [AP=연합뉴스]
아랍 휩쓴 ‘누르’ 열풍…8500만명 시청
2008년 8월 30일 터키 드라마 ‘누르(Noor)’의 마지막회가 MBC를 통해 아랍 전역에 방송됐습니다. 방송사 측에 따르면 이날 ‘누르’를 본 사람은 8500만 명. 그중 5100만 명이 15세 이상 여성이었습니다. 아랍 전체 성인 여성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숫자입니다.
2005~2007년 터키에서 방영됐던 이 드라마는 2008년 초부터 MBC에서 방송됐습니다. 그리고 약 8개월 만에 아랍 세계는 ‘누르’ 광풍에 휩싸입니다. 정작 터키에선 큰 인기를 끌지 못했는데 말입니다.
드라마는 평범합니다. 부부 사이인 남녀가 주인공이고, 디자이너를 꿈꾸는 아내 귀뮈슈(아랍 버전 이름)를 남편인 메흐메트(아랍버전 이름 ‘모한나드’)가 지지하고 응원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죠.
그러나 여기엔 아랍에서 통한 터키 드라마의 매력이 총망라되어 있습니다.
일단 남녀 주인공의 캐릭터와 관계입니다. 꿈과 야망을 가진 커리어우먼 여주인공과 아내에게 닥친 시련을 함께 헤쳐 나가는 남주인공이 강렬한 인상을 줬습니다.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여성, 아내의 사회생활을 존중하는 남성의 존재 자체가 파격이었죠.
▲터키 드라마의 세계 진출 물꼬를 튼 '누르'의 한 장면. 대등한 남녀 주인공 관계
와 서구적 캐릭터는 아랍 시청자들에게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대등한 관계 속에 진심으로 사랑하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아랍 사회에서 내놓고 표현하지 못했던 성평등과 사랑·애정 같은 가치를 정면으로 맞닥뜨린 겁니다.
진취적 여성, 자상한 남성 캐릭터에 매료
특히 자상하고, 때때로 아내에게 꽃다발을 선물하는 ‘모한나드’는 잘생기기까지 했습니다. 극도로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아랍권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남성상을 본 여성 시청자들은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었습니다.
결혼 전의 자유 연애, 와인을 곁들인 가족의 저녁식사, 베일을 두르지 않은 채 외출하는 여성 등 지극히 평범한 장면들도 시청자를 매료시켰습니다.
자유분방한 세속의 삶을 담아낸 드라마는 라마단을 철저하게 지키는 무슬림의 모습도 그렸습니다.
보수적 가치와 현대적 라이프 스타일이 공존하는 모습을 드라마가 완벽하게 구현해 낸 셈입니다. 미국을 비롯한 다른 어떤 나라의 드라마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누르’의 인기로 아랍엔 터키 드라마 붐이 일었습니다. MBC가 최근 약 10년간 방영한 터키 드라마만 약 100편에 달합니다.
보다 과감하고 도발적인 소재의 드라마도 줄지어 소개됐습니다.
이를테면 ‘파트마귈의 잘못은 무엇인가?(2010~2012년)’가 그렇습니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집단 성폭행을 당한 여주인공 파티마입니다. 보수적인 마을 사람들은 물론 약혼자까지 사건을 덮으려 하지만 파티마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싸웁니다. 여성의 권리를 본격적으로 다룬 이 드라마에 여성 시청자들은 격하게 공감했습니다.
▲터키 일간지 휴리엣이 역대 흥행 2,3,4위로 꼽은 드라마의 포스터. 왼쪽부터 '파트마귈의 잘못은 무엇인가' '천일야화' '금지된 사랑'.
성범죄·불륜 등 파격 소재…이슬람 교계는 맹비난
불륜을 소재로 한 막장드라마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터키 일간 휴리엣이 역대 인기 3·4위 드라마로 꼽은 ‘천일야화(2006~2009년 방영)’와 ‘금지된 사랑(2008~2010년 방영)’이 대표적입니다.
‘천일야화’는 남편과 사별한 뒤 백혈병에 걸린 아들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상사의 유혹을 받아들이는 여성의 이야기, ‘금지된 사랑’은 엄마의 복수를 위해 아버지뻘인 백만장자와 결혼한 여주인공이 남편의 조카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입니다. 터키 배우 크완츠 타틀르투우는 ‘금지된 사랑’의 폭발적 인기로 ‘할랄 브래드 피트’라는 별명도 얻었죠.
이런 드라마들은 사회적인 반향을 불러왔습니다. 무엇보다 당당하게 사는 터키 여성을 동경의 대상으로 삼은 아랍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억압과 폭력에 조금씩 저항했고, 남편에게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결혼 생활을 박차고 나서는 이들도 생겨서 이집트 등에선 이혼이 급증했다고 합니다.
보수적인 기존의 가치를 전복하는 드라마에 비난이 뒤따랐습니다.
이슬람 종교 지도자들은 "비도적적인 쇼가 전통을 훼손하고 가정을 무너뜨린다"고 맹비난했습니다. 이란에선 아내와 딸이 드라마를 보고 타락할까 봐, TV 안테나를 뽑는 남성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이미 대세가 된 터키 드라마의 인기를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늘 전쟁 상태나 다름없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도 터키 드라마 방영 시간엔 쥐죽은 듯 조용해질 정도였다니 말입니다.
더 나아가 시청자들은 드라마 촬영지를 찾아서 터키 관광에도 나섰습니다. 그 예로 최근 통계에 따르면 2004년 터키를 방문한 바레인 관광객은 3155명에 불과했지만, 2016년엔 4만 1505명으로 급증했습니다.
아랍 인구의 75%가 최소 한 편 이상의 본 적이 있다고 할 정도로 터키 드라마는 아랍 방송계의 핵심 콘텐트입니다.
“아내·딸 타락한다” TV 안테나 뽑는 남성도
▲터키 드라마 '금지된 사랑'의 한 장면. 오른쪽은 드라마의 세계적인 인기로 '할랄 브래드 피트'라는 별명을 얻은 크완츠 타틀르투우.
인기는 마케도니아 등 발칸 국가와 남미로도 쭉쭉 뻗어 나갔습니다.
아랍 국가에서처럼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진 않았지만, 이곳에서도 터키 드라마의 인기는 소소한 해프닝들을 일으켰습니다.
2012년 마케도니아 정부는 터키 드라마 돌풍이 불자 방송금지법 제정을 고려합니다. 당시 정보사회장관이었던 이보 이바노브스키에 따르면 이런 이유였습니다. “터키 드라마가 흥미롭긴 하지만, 터키의 노예로 500년을 지냈으면 충분하다”
마케도니아를 비롯한 발칸 국가들이 1389년 오스만 제국의 일부가 되어 1878년 터키가 러시아에 패배할 때까지 그 지배하에 놓여 있었던 걸 지적하는 이야기입니다.
한편 칠레·아르헨티나에선 드라마 ‘천일야화’의 남녀 주인공의 이름인 오누르와 셰흐라자드를 아기의 이름으로 짓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죠.
전세계 시청자 4억명…중·일까지 시장 확대
지난해 9월 터키 일간지 휴리엣은 “터키는 미국에 이은 세계 2위의 드라마 수출국으로, 그 규모가 3억 5000만 달러에 이른다”고 보도했습니다. 시청자 수는 전 세계 140여 개국 4억 명에 달한다고 하고요.
드라마를 통해 국가 이미지를 높이고, 관광산업 성장 등 부대 효과까지 거둔 터키는 적극적으로 시장 확대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2023년까지 수출액을 7억 5000만 달러까지 늘린다는 야심찬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휴리엣에 따르면 “중국·일본 등 새 시장 개척도 노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를 위해 최근엔 단점도 보완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영국 드라마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 터키 드라마는 다소 지루하거나 오글거릴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회당 최소 90분에 이를만큼 드라마가 길어서 전개가 늘어지고, 주인공이 지나치게 로맨틱하거나 격정적이어서 부담스럽다는 겁니다.
그래서 터키 제작자들은 맞춤형 편집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랍 방영본에서 4분이나 이어졌던 우는 장면을 스웨덴 수출판에선 30초로 싹뚝 잘라버리는 겁니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위대한 세기(무스테솀 유즈이을)’는 슐레이만 대제(재위 1520~1566년) 시대의 오스만 제국을 배경으로 한 터키 대하 사극입니다. 2011~2014년 139부작으로 방영된 대작이죠.
드라마의 사실상 주인공은 노예가 되어 하렘(술탄의 후궁이 생활하는 내실)에 끌려온 ‘알렉산드라’ 입니다. 그녀가 황제의 사랑을 받고, ‘안주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암투가 드라마의 주요 내용입니다.
제국의 화려한 의상과 웅장한 세트 등 볼거리, 노예에서 황후가 되는 신분상승 스토리, 음모와 배신이 판치는 권력 다툼 등 온갖 흥미 요소를 갖춘 드라마는 전 세계 약 50개국에 수출돼 2억명 이상이 시청하는 대흥행작이 됐습니다.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그리스에선 그리스정교회 주교가 나서서 “터키 드라마를 보는 건 그들에게 굴복하는 일”이라며 시청 중단을 호소했고, 과거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아 감정이 좋지 않은 보스니아·코소보 등에서도 역사에 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터키 사극 최초로 프랑스·스페인 등 서유럽에 수출된 뒤엔 터키를 찾는 유럽 관광객이 급증했고요.
▲'위대한 세기'에서 터키 배우 할리트 에르겐치가 연기한 슐레이만 황제.
세계에 터키 문화 콘텐트의 저력을 과시했음에도 드라마는 정작 국내에서 역풍을 맞았습니다. 슐레이만 대제가 그려진 방식 때문입니다.
역사에 기록된 슐레이만 대제는 위대한 황제입니다. 오스만 제국을 가장 오래 통치했고 제국의 전성기를 이끌었습니다. 유능한 행정가였고 입법가였으며, 건축가였고 예술 애호가였습니다.
그러나 드라마 속에서 그는 평범한 인간 중 한 명일뿐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여성에게 홀딱 반해 정신을 못 차리고, 이슬람 사회의 기준에서 선정적으로 사랑을 나눕니다. 술탄의 의무와 사랑 사이에 갈등하고, 궁중 암투 가운데 무력감과 고독감도 드러냅니다. 늙은 황제에게선 처량한 모습마저 보입니다
▲'위대한 세기' 여주인공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 배우 메리옘 우제를리.
▲실제 슐레이만 대제의 황후였던 휴렌 술탄의 초상화.
실화를 바탕으로 한 픽션에서 용인할만한 캐릭터 해석이건만, 반발과 논란이 일었습니다. 터키의 라디오·TV 위원회엔 7만 건 넘는 불만이 접수됐고, 제작진엔 사과 요청이 쇄도했습니다.
당시 총리였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까지 드라마를 비난했습니다. 그는 “슐레이만 대제는 궁중 암투에 휘말리지 않았다. 그는 말 안장 위에서 전장을 누빈 용맹한 인물이다”라며 드라마가 역사를 왜곡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드라마는 대박을 터뜨렸고, 2015년엔 후속작까지 제작됐습니다.
한국에는 정식으로 수출되지 않았지만, 유튜브 등에서 영어 자막이 달린 영상으로 시청할 수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