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主國防 2022-10/
10.01 尹대통령 “北, 핵무기 사용 기도한다면 압도적 대응 직면할 것”
제74주년 국군의날 기념식
“北 핵무력 법제화, 대한민국 생존 위협”
“어떤 北위협에도 국민 생명·재산 지킬것
‘행동하는 동맹’ 구현”
윤석열 대통령은 1일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관련 “북한이 핵무기 사용을 기도한다면 한미 동맹과 우리 군의 결연하고 압도적인 대응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날 충남 계룡대 대연병장에서 열린 제74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 기념사에서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고도화는 국제사회의 핵 비확산체제(NPT)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북한이 국군의 날인 이날 보란 듯이 단거리 탄도미사일 도발을 감행한 가운데, 북한의 도발에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는 의지를 다시 한번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건군 제74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윤 대통령은 “(북한은) 심지어 최근에는 핵 무력 정책을 법제화하면서 대한민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협하고 있다”며 “우리 군은 확고한 군사대비태세를 유지하며 북한의 어떠한 도발과 위협에도 우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낼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핵무기 개발은 북한 주민들의 삶을 더욱 고통에 빠뜨릴 것”이라며 “북한 정권은 이제라도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와 공동 번영을 위해 비핵화의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연설에서 북 위협에 대응하고자 한미 동맹도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저와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과 이번 (미국 뉴욕) 순방을 통해 한미 안보 동맹을 더욱 굳건히 했다”고 말했다.
이어 “(한미) 양국은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를 통해 미 전략자산의 적시적 전개를 포함한 확장억제 실행력을 더욱 강화했다”며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미 로널드 레이건 항모강습단과 한미 연합해상훈련을 실시했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오전 충남 계룡대 대연병장에서 열린 건군 '제74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앞으로 정부는 한미 연합훈련과 연습을 보다 강화해 북한의 도발과 위협에 강력히 대응하는 ‘행동하는 동맹’을 구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압도할 수 있는 한국형 3축 체계를 조속히 구축하여 대북 정찰감시 능력과 타격 능력을 획기적으로 보강할 것”이라고 했다.
또 “전략사령부를 창설해 육·해·공군이 따로 운용해온 첨단전력을 통합하고, 우주, 사이버 등 새로운 영역에서의 안보 역량을 제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노석조 기자
10.03 [단독]괴물미사일 현무-5 공개… 지하 100m 김정은 벙커, 한 방에 파괴
탄두 9t ‘세계 최대급’ 국군의날 영상 선보여
최장 3000㎞ 날아간다

▲사열하는 尹대통령 -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충남 계룡대 대연병장에서 열린 제74주년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열병차에 올라 사열하며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연병장에는 K-2 전차, K-9 자주포, 천궁 등 지상 주요 전력이 대거 배치됐다. /연합뉴스
우리 군 당국이 1일 제74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 행사에서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전략 무기인 ‘괴물 미사일’ 영상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괴물 미사일은 ‘현무-5(Ⅴ)’로 명명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무-5는 세계에서 가장 무거운 8~9t의 탄두를 탑재할 수 있으며, 탄두 중량을 줄이면 3000㎞ 이상 날아가는 중거리 탄도미사일로 전환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첫 중거리 탄도미사일이다. 북한은 물론 중국 등 주변 강국의 도발에 대응하는 ‘한국형 독침 무기’인 셈이다.
정부 소식통은 2일 “국군의 날 행사 영상에 등장한 고위력 현무 탄도미사일은 종전 현무-4보다 탄두 중량 등에서 성능이 향상된 현무-5 미사일로 안다”고 했다. 군 당국의 현무-5 미사일 공개는 최근 북한의 연이은 탄도미사일 도발 등에 대응하는 의미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북한이 핵무기 사용을 기도한다면 한미동맹과 우리 군의 압도적인 대응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군 관계자들은 대통령 기념사의 ‘압도적 대응’ 표현은 현무-5 등을 포함한 한미 연합군의 전력을 총동원해 북한 도발을 억지한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앞서 북한은 1일 오전 평양 순안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

현무-5 영상은 1일 ‘한국형 3축 체계’의 ‘대량응징보복(KMPR)’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공개됐다. “세계 최대 탄두 중량을 자랑하는 고위력 현무 탄도미사일도 포함된다”라는 해설과 함께 6~7초 정도의 영상이 소개됐다.
현무-5는 발사 방식에서 큰 차이가 있다. 지금까지 지상에서 발사되는 현무 탄도미사일들은 발사대에서 직접 엔진이 점화돼 발사되는 ‘핫 론치’(hot launch) 방식이었다. 이번에 공개된 현무-5는 미사일이 이동식 발사대(TEL)에서 공중으로 30여m가량 튀어오른 뒤 엔진이 점화돼 발사되는 ‘콜드 론치’(cold launch) 방식이다. 한 소식통은 “무거운 탄두를 운반하는 현무-5의 엔진은 매우 강력해 발사대에서 직접 점화될 경우 발사대가 녹아내리는 등 부서질 가능성이 커 콜드 론치 방식을 택했다”고 전했다.
현무-5는 콜드 론치 방식으로 솟구친 뒤 엔진이 점화되기 직전 미사일 아래 부분에 붙어있던 보호판이 떨어져 나가고 접혀 있던 날개가 펼쳐치는 모습도 보였다. 크기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북한 중거리 탄도미사일 화성-12형과 비슷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그럴 경우 길이는 15~16m, 직경 1.6m 안팎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현무-5의 세계 최대급 탄두 중량에 주목하고 있다. 사거리 300㎞를 기준으로 8~9t의 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대량응징보복의 핵심 무기로, 유사시 평양 주석궁과 지하 100m 이하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정은 벙커’를 단 1발로 무력화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고폭탄 탄두를 달 경우 김일성·김정일 부자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 등을 단 1발로 초토화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사일 전문가인 장영근 항공대 교수는 “8~9t 탄두는 기존 무기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의 놀라운 무게”라며 “탄두를 1t급 이하로 줄이면 3000㎞ 이상 충분히 날아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거리 3000~3500㎞면 사실상 중국 전역을 사정권에 넣을 수 있어 유사시 주변 강국의 위협에 대응할 수 있다. 사거리 3000~5500㎞는 중거리 미사일로 분류되기 때문에 현무-5는 사실상 한국의 첫 중거리 미사일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조선일보 유용원 군사전문기자
10.04 北, 5년만에 중거리 탄도미사일 쐈다…日 상공 통과, 홋카이도 한때 대피령
10일새 이틀에 1회꼴
북한이 4일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일본 NHK 방송은 미사일이 일본 열도를 넘어 태평양으로 향했다고 전했다.
합동참모본부는 출입기자단에 보낸 문자공지를 통해 이날 오전 7시 23분쯤 자강도 무평리 일대에서 발사되어 동쪽 방향으로 일본 상공을 통과한 중거리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1발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비행거리는 4500여km, 고도는 970여km였으며 속도는 약 마하17로 탐지됐다. 세부 제원은 한미 정보당국이 정밀 분석중이다.
이번에 북한이 발사한 중거리 탄도미사일은 최대비행거리 5000km인 화성-12형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화성 12형을 2017년 두차례 일본 열도 넘겨 실사격 했으며 당시 비행거리는 2000~3000km였다.
합참은 북한을 규탄하며 미사일 발사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합참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직후 한미 간 공조회의를 통해 상황을 긴밀히 공유하고, 북한의 어떠한 위협과 도발에도 연합방위태세를 더욱 굳건히 할 것을 확인했다”며 “북한의 연이은 탄도미사일 도발 행위는 한미동맹의 억제 및 대응능력을 더욱 강화시키게 되고, 국제사회로부터의 고립을 심화시킬 뿐”이라고 했다. 이어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한반도는 물론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중대한 도발 행위이며, ‘유엔 안보리 결의’에 대한 명백한 위반으로 이를 강력히 규탄하며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합참은 북한의 추가 도발에 대비해 한미간 공조 하에 관련 동향을 추적 감시할 방침이다. 합참은 “북한의 어떠한 도발에도 압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기초로 확고한 대비태세를 유지해 나가겠다”고 했다.

▲북한의 중거리탄도미사일 '화성-12'형 /미국 CSIS 미사일 방어 프로젝트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지난 1일 이후 3일 만에 재개된 것으로, 최근 10일 동안 총 5번의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이틀에 한 번 꼴로 미사일을 발사한 셈이다.
북한은 지난달 24일 지대지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 1발을 평안북도 태천 일대에서 발사했고, 28일에는 평양 순안 일대에서 SRBM 2발을 쐈다. 29일에는 평안남도 순천 일대에서 SRBM 2발을, 지난 1일에는 평양 순안 일대에서 2발을 각각 동해상으로 발사했다.
북한은 올해 들어 탄도미사일 21차례, 순항미사일을 2차례 발사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미사일 발사만 9번째다.
북한은 최근 미사일 발사에서 비행 고도, 거리, 속도 등을 조금씩 달리하면서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 북한판 에이태큼스(KN-24), 초대형 방사포(KN-25) 등 여러 종류의 SRBM을 시험 평가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일본은 홋카이도와 아오모리 지역에 한때 피난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NHK에 “북한에서 발사된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물체가 일본 상공을 통과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홋카이도와 아오모리현 상공을 지나 태평양으로 향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의심스러운 물건을 발견할 경우 접근하지 말고 경찰이나 소방 당국에 연락하라고 현지 주민에 당부했다.
일본 교도 통신은 방위성 관계자의 말을 빌려 “북한 탄도미사일이 이미 낙하했다”고 전했다. 태평양에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유럽 등은 북한의 연이은 탄도미사일 발사를 비판하고 대화에 복귀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유럽연합(EU) 대외관계청 대변인은 3일(현지시각) 성명에서 “북한은 미사일 발사를 멈추고, 핵실험을 삼가며 미국과 한국, 그리고 다른 국제사회 구성원들이 표명한 대화 제의에 건설적으로 응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 1일 “북한의 이러한 발사는 다수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이며 북한의 이웃국들과 국제사회에 대한 위협”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우린 여전히 대북 외교적 접근에 전념하며 북한이 대화에 나서길 촉구한다”며 “한국과 일본에 대한 우리의 방어 약속은 여전히 굳건하다”고 했다.
조선일보 이가영 기자
10.04 흐릿한 ‘민족’ 유대는 결국 폐기되는가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 한림대 도헌학술원·원장·석좌교수
북한의 공격 본능이 드디어 절정에 달했다. 지난달 8일 법제화된 ‘선제 핵 공격’, ‘건드리지 않아도 쏘겠다’는 조항을 명문화했다. 북한 주민의 경제난에 쓰던 수법과는 강도와 심도가 다르다. 유사시 김정은은 물론 인민무력부도 핵공격 명령을 내릴 수 있게 됐다. 이는 1993년부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왔던 미국과 한국의 대응전략이 총체적으로 실패했고, 이제 전혀 다른 차원으로 진입했음을 뜻한다.
북한 핵은 누가봐도 통제불가임이 입증됐다. 미국과 한국은 북한을 말리느라 어정쩡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북한에 대응해 지난 18일 미국 국무부는 ‘발사의 왼편’(left of launch)이란 권한을 한국에 내줬는데 ‘적국의 비(非)핵공격에도 선제타격을 감행한다’는 북한의 결단에 비추면 무력하기 짝이 없다. 미사일을 소총으로 막는 격이다. 한국은 지그재그였다. 보수정권은 ‘비핵화’를 공염불처럼 외쳐왔고, 진보는 동정심에 격해 그냥 눈을 감았다. 설마 남쪽을 겨냥하랴 싶었던 거다. 남한이 이렇게 엇박자를 내는 동안 북한의 대남정책은 일관성이 있었다. 핵보유국! 남한의 보수에겐 욕설을 해대고, 진보에겐 생떼를 부리면서 핵을 만들었다. 1993년 이래 세 차례의 핵위기를 겪으면서도 민족 정서에 기댔던 게 역사적 오판이었다.
평양 당국 선제 핵공격 법제화
민족주의 환상을 걷어낼 계기
역사공동체에서 혈연관계 소멸
핵동맹과 전술핵 논의 대두될 것
대북 강경파 존 볼턴(전 미국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말대로, 싱가포르·하노이·DMZ 회담 모두가 김정은의 시간벌기 연극이었고, 미국과 한국은 약간의 ‘정상적 사고’와 ‘민족정서’에 기대를 걸었던 순진한 관객이었을 뿐이다. 통일지상과 친북을 고수하는 586세대 주사파 정치인에게는 친제반민(親帝反民) 헛소리로 들리겠지만, ‘우리 민족끼리!’는 결국 헛소리가 됐다.
민족의 사용설명서가 남북한이 달랐다는 것쯤은 삼척동자도 안다. 남한은 동포애 환상을 바탕에 깔았고, 북한은 체제유지를 치장하는 위장전술이었다. 민족통일 개념이 ‘자유대한’과 ‘적화’(赤化)로 오래전 갈라졌음을 남북한이 명시적으로 발설하지는 않았는데 이번의 핵법제화는 막연한 민족 정서가 공포의 불균형을 결코 치유할 수 없음을 일깨웠다.
한반도 민족개념의 흐름은 세계와 역방향이다. 세계화 시대에 주요국들은 ‘탈(脫)민족’으로 방향을 틀어 평화공존과 번영을 구가하고자 했다. 미국과 EU가 그런 조류를 주도했다. 그러나 EU 회원국의 이해충돌이 점차 거세지고 미중 헤게모니전이 격화되면서 탈민족에서 ‘자(自)민족주의’로 돌아섰다. 유럽의 주요국들은 일단 민족공동체 내로 퇴각하는 추세고, 중국은 아예 중화민족의 일대일로를 거침없이 닦았다. 북한은 거꾸로다.
핵무력 앞에 민족은 없다. 올해만 이십 차례 미사일 발사를 감행했다. 평양당국이 보유한 핵탄두 70여 개가 서울과 뉴욕을 겨냥하고 있고 유사시 군수뇌부도 단추를 누룰 수 있단다. 한국은 핵탄두 앞에 적대적 타인종, 타민족 집단이 됐다.
사정이 이럴진대 한반도에 흐릿한 구름처럼 남아 있는 민족 정서가 이제는 수명을 다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인류학적으로 민족은 혈연, 관습, 언어공동체다. 여기에 문화, 역사, 정치체제 같은 공통경험이 가해지면 민족개념은 풍화되지 않는 돌덩어리로 변한다. 북한이 평양 외곽 주몽의 동명왕릉에 백두혈통을 새겨넣은 것은 심각한 역사 훼철에 해당하지만 남한과는 고구려를 공유하는 기억공동체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런데 기억과 DNA가 같다고 민족이 성립되지는 않는다. 시량(柴糧) 걱정과 생활고를 오래 같이 겪어야 하고, 천연재해든 외국의 압력이든 동일한 공간에서 운명공동체를 이뤄야 한다.
한반도 7500만 민족은 두 개의 단단한 국가로 나뉘어 74년을 살았다. 전란의 비애를 씻는 한 맺힌 세월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민족구성의 최대요인인 국가가 외려 민족개념을 손상하는 특수한 사례다. 정치체제, 관습, 문화는 경악할만큼 달라졌다. 두려운 것은 혈연의 소멸이다. 70년대만 해도 실향민은 1000만명에 달했다. 민족 혈연이 유효할 때 태어난 해방둥이 1945년생이 20년 후에 모두 몰(沒)한다고 보면 남북한 실제 혈연관계는 일단 단절된다. 상상의 공동체인 민족에 심기일전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으면 안 될 것도 없지만, 올해 38세 김정은이 핵을 들고 협박할 시간이 적어도 20년 넘게 남았다고 보면 그런 상상의 공간이 만들어질지 의문이다. 반인륜적 핵무력 앞에서 민족의 사용설명서는 낡은 교범이 됐다.
뒤통수를 세게 맞았다. 이를 계기로 미몽을 깨야 한다. 한반도 민족주의에서 환상을 걷어내야 한다. 보수는 ‘비핵화’가 더 이상 성립되지 않는 명제임을 자인하고, 진보는 ‘우리 민족끼리’에 설복당하지 말아야 한다. 언젠가 필요한 날을 위해 민족주의의 불씨를 아껴둘 필요는 있을 것이다. 북한의 보모(保母) 중국이 향후 20년간 강화해갈 글로벌 영향력 내에서 북한 핵은 여전히 건재할 것이기에 한미 핵동맹과 전술핵 배치에 대한 논의가 실질적으로 필요해졌다. 우리도 진정 핵무장 쪽으로 가야 하는가? 위험천만하고 아찔한 시나리오가 시작됐다.
증잉일보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 한림대 도헌학술원 원장·석좌교수
10월 04일 北에 22조원 퍼붓는 ‘文정부 올림픽 제안’ 전말 밝혀야
대북 ‘평화 환상’에 집착한 문재인 전 정부가 북한에 22조 원 이상을 퍼붓는 올림픽을 추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3일 공개한 서울시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제출 자료 ‘2032년 하계올림픽 서울-평양 공동개최 유치 기본계획서’ 요약본에 따르면, 제시된 인프라 구축비만 해도 28조5540억 원 중에서 22조6615억 원은 북측에 투입할 예산이다. 서울-평양 고속철도 12조1000억 원, 고속도로 8조2720억 원, 송전 선로 1조2100억 원, 전용 통신망 2조3520억 원 등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박원순 시장 유고(有故)로 서정협 시장직무대행 체제이던 서울시가 2021년 4월 1일 IOC 제출에 앞서, 당시 문화체육관광부·외교부 등과 협의를 거친 계획서로 사실상 문 정부 제안이다. 그 출발점은 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의 2018년 9·19 평양 공동선언의 ‘2032년 하계올림픽의 남북 공동개최 유치 협력’이었다. 문 대통령은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도 만나 그런 의사를 전했다. 지난해 10월 정부 산하 통일연구원도 “금속류·기계류 등은 (유엔 제재 결의에 따라) 반입이 금지돼 있다”고 했으나, 문 정부는 ‘평화 올림픽’ 허울을 내세워 국제사회의 제재까지 우회하려고 끈질기게 시도했다. 별도로 부담해야 할 조직위 운영비 등 북한 측의 개최비용 1조7230억 원 등에 대해, 계획서에 ‘대북 경제 제재가 완화될 경우 IOC 등 국제기구의 지원, 글로벌 기업의 투자 등으로 재원 확보’라고 한 이유도 달리 있기 어렵다.
IOC는 지난해 7월 호주 브리즈번을 개최지 확정 전인 2월에 이미 우선 협상 도시로 결정했다. 다른 국가의 도시는 모두 접었는데도 ‘문 정부 제안’이 제출된 배경도 대북 퍼주기에 안달한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도쿄올림픽을 고리로 한 ‘문재인-김정은 정상회담’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 “유엔 제재를 회피하면서 기술 이전, 건축, 통신망 설치 등 꼼수 대북 지원을 하려 한 것인지 조사가 필요하다”는 배 의원 지적 취지대로 그 전말(顚末)을 밝혀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10월 04일 ‘당당한 군대’ 복원 절실하다
김종훈 前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국군의날 행사 6년 만에 정상화
당당한 개최는 안보총화 계기
2018년엔 행진커녕 실내 행사
김정은 핵무기 공격 위협 맞서
동맹과 자체 방어력 강화하고
軍사기 더 높이고 빛나게 해야
건군 74주년 국군의날 기념식이 지난 1일 군 지휘부가 모여 있는 충남 계룡대에서 열렸다. 실로 6년 만이다. 국군의날은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벌어진 6·25전쟁 발발 이후 후퇴를 거듭하던 국군이 반격을 시작해 처음으로 38선을 돌파한 날(1952년 10월 1일)을 기리면서 정해졌다.
한때 여의도광장 등에서의 열병식과 때로는 국군 장병들의 시가행진을 보면서 마음 든든하고 뿌듯했던 기억이 있다. 3년에 한 번씩 하던 시가행진은 1998년부터는 5년마다 갖는 것으로 바뀌었고, 최근의 해당 연도는 2018년이었으나 행진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생략되고, 그해엔 기념식도 전쟁기념관에서 야간 실내 행사로 치러졌다. 6·25전쟁이 아직 승패를 가르지 못한 채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길고 긴 휴전 상태가 이어지고 있는 나라로서는 국군 장병들의 사기를 북돋우고 국민의 안보 의식도 드높이는 행사는 천재지변이 없는 한 당당하게 엄수하는 것이 마땅하다.
세계 각국은 크든 작든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 그 어떤 나라도 자국이 보유한 군대가 다른 나라를 공격해 침탈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군국주의 아래 일본도 대동아공영권 건설이라는 허황한 명분을 내세워 이웃 나라 침공을 자행하다가 결국 패전국이 됐다. 평화를 지키고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숭고한 명분이 뚜렷하고, 역사가 이를 자랑스럽게 기록할 때 제복은 빛나고 복무는 더욱 당당해질 것이다. 이런 역사는 한두 명의 지도자가 아닌 국민정신의 총화로써 이뤄지는 것으로 믿는다.
러시아가 지난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금방 끝날 것 같던 전쟁이 이제 언제 끝날지 모르게 양상이 바뀌고 있다. 러시아는 병력 투입을 위해 동원령을 내렸고, 이에 대한 러시아 국민의 저항과 도피 행렬이 뉴스가 되고 있다. 명분 없는 전쟁에 국민적 외면과 장병의 사기 저하는 패배로 가는 지름길이다. 베트남전쟁 당시 미국도 극도의 소모전에 지친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당시 미국 언론들은 ‘미국은 전장에서 이겼지만 안방에서 졌다’고 표현했고, 미국은 불명예스럽게 철군하고 말았다. 결국, 무력 사용은 평화와 정의를 수호한다는 뚜렷한 명분과 이를 위해서는 사즉생의 각오를 할 수 있다는 국민정신이 뒷받침돼야 한다.
5000년 우리 역사에도 영광과 치욕의 장면들이 섞여 있다. 국군의날에 모윤숙(1910∼1990) 시인의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는 시를 다시 한 번 읽으면서, 아직도 답을 찾지 못한 질문을 새겨 봤다. 6·25전쟁은 군인과 민간인을 합쳐 100만 명이 넘는 사상자를 냈다. 꽃다운 나이에 산화한 분들도 계시고, 죽음은 면했지만 상이(傷痍)를 입은 분도 많았다.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 적지 않은 분이 이미 타계했을 것이다.
이런 끔찍한 참화를 겪은 나라에서 전쟁 이후 배출된 그 많은 장·차관, 국회의원 등 높은 자리에 어찌해서 ‘나는 나라와 국민을 위해 전장에서 싸우다 다리를 하나 잃었다’ 또는 ‘팔을 하나 잃었다’는 분들이 중용되지 못했을까? 단 몇 사람만이라도. 당시의 나라 형편이 정의와 애국심보다 공부와 연구로 지식을 쌓은 분들이 더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수차례 전쟁을 겪은 이스라엘에는 모셰 다얀이라는, 한쪽 눈을 잃었지만 유능한 국방장관이 있었다. 그는 젊은 시절 전장에서 적군의 총탄에 왼쪽 눈을 잃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 않은가. 지금도 우리 주변에 공직을 맡은 많은 분의 병역 기록에는 구구절절 무슨 사연과 변명이 그리도 많은지. 모두가 다시 한 번 성찰해야 할 우리의 모습이다.
지난 9월 8일 북한은 핵무기를 법에 따라 사용하겠다면서 선제타격의 길을 활짝 열어 놓았다. 핵무기는 상호 확실한 파괴를 불러오는 공포의 균형이 있는 한 섣불리 사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에서 우리가 내세우는 공포의 균형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기초하고 있다. 그래서 한미동맹은 중요하다. 이와 함께 우리 자체 방어력을 증강해 가야 함은 더 중요하다. 높은 사기로 충만한 장병들의 정신력이 그 바탕이 돼야 함은 두말할 나위 없고, 어떤 역경에서도 함께 전진할 것이라는 국민적 믿음과 지지가 있을 때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당당한 나라가 될 것이다.
문화일보
10.05 北 ICBM 발사와 핵실험은 정해진 수순, 실질 군사 대비를
북한이 4일 오전 자강도에서 발사한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이 일본 상공을 통과해 태평양에 떨어졌다. 비행거리는 4500여㎞로 북한이 지금까지 발사한 미사일 가운데 가장 멀리 날아갔다. 과거 북은 사거리 1만㎞가 넘는 ICBM을 여러 차례 쐈지만 모두 고각으로 발사해 비행거리를 1100㎞ 이내로 조절했다. 이날은 화성-12형을 최대 사거리로 발사한 것으로 보인다.
연초 1~2주에 한 번꼴로 도발하던 북은 한동안 잠잠한 모습이었다. 코로나 확산 여파인 측면도 있지만, 시진핑의 3연임을 확정하는 20차 당대회를 앞둔 중국이 도발 자제를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은 다시 최근 열흘간 5차례에 걸쳐 8발을 집중 발사했다. 이번에 발사한 화성-12형은 유사시 미 증원 전력의 발진 기지인 괌을 타격하는 용도라고 한다.
북이 도발의 빈도와 수위를 동시에 끌어올리는 것은 내부 사정 탓도 있다. 북이 ‘민족 최대 명절’인 김일성·김정일 생일과 함께 중시하는 노동당 창당 기념일(10월 10일)이 코앞이다. 주민들에게 내세울 경제 성과가 전무한 상황에서 김정은이 권위를 지키려면 군사적 성과가 필요하다. 앞으로도 ICBM 발사와 7차 핵실험은 정해진 수순일 것이다.
지금 국제 정세로 볼 때 북이 핵실험을 해도 유엔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제재에 반대할 가능성이 있다. 유엔 차원에서 북을 압박할 아무런 수단이 없는 것이다. 북과 협상의 문은 열어 놓되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군사 대응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평화를 지키는 것은 ‘평화 호소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같은 힘으로 균형을 이루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없다.
조선일보 사설
10월 05일 국제사회에 核보유 설득하고 한미일 요격 연습도 해야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해 윤석열 정부가 적극적인 대응에 나선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의 대북 저자세와 안보 자해 행태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기를 국제사회와 북한에 과시하는 효과도 있다. 그러나 본질적인 과제는 그런 대응이 실효성을 갖게 하는 일이다. 김정은의 핵·미사일 개발 일정은 착착 진행되고 있다. 최근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임의의 핵무기 사용을 법제화한 데 이어 4일엔 일본 상공을 넘어 태평양으로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을 발사했다. 비행거리가 4500㎞로, 미국 전략자산 발진 기지인 괌도 타격권에 든다. 미국 중간선거를 전후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전술핵 완성을 위한 7차 핵실험을 단행할 가능성도 있다.
김정은의 이런 도발은 모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안에 위배되지만, 중국·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안보리 기능 자체가 사실상 붕괴했다.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도 마찬가지다. 미·중 글로벌 공급망 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 뒷배 노릇을 할 개연성이 오히려 더 커졌다. 더 이상 안보리와 NPT 체제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보고, 북한 핵무기에 맞설 실질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는 단순한 규탄이나 국제사회 호소는 이제 의미가 없다.
윤 대통령은 국군의날 기념사에서 “압도적 대응”을 내세우면서, 한미동맹을 ‘행동하는 동맹’으로 바꾸고, 연합훈련 강화, 3축 체계 조기 구축, 전략사령부 창설, 북핵에 대한 확장억제 강화 등을 약속했다. 모두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부족하다. 이제 협상을 통한 북한 비핵화는 불가능하며 핵에는 핵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국제사회를 상대로 어떤 형태로든 한국이 핵 능력을 보유해야 한다는 사실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국제사회 여론도 과거의 ‘무조건적 한반도 비핵화’에서 바뀌는 조짐이 감지된다. 아울러 한·미·일 연합 ‘요격 훈련’도 추진할 필요가 있다.
한편, IRBM 도발 10시간 뒤 한·미 양국군이 강릉 지역에서 지대지미사일 4발을 대응 발사했지만, 현무-2 탄도미사일은 기지에 떨어져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군 당국이 신속하게 밝히지 않아 인근 주민들을 공포와 혼란에 빠지게 한 것은 민·군 신뢰를 손상하는 무책임한 일이다.
문화일보 사설
10.06 北 응징용 미사일이 강릉에 떨어지다니
군이 4일 밤 동해상으로 발사한 현무-2 미사일이 고장을 일으켜 강릉 공군 기지 내에 떨어졌다. 북한의 중거리 탄도미사일 도발에 맞서 한미가 연합 지대지미사일 사격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심야 시간에 굉음과 함께 화염이 치솟자 크게 놀란 인근 주민들이 긴급 대피했다. 현무-2는 축구장 3~4개 면적을 초토화할 수 있는 탄두를 달고 있었다. 다행히 탄두 안전 장치가 있어 폭발하지 않았지만 이마저 고장이었으면 큰 사고가 날 수 있었다. 불과 700m 떨어진 곳에 민가가 있었다. 강릉 시내에 떨어졌다면 인명 피해가 불가피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이번 사고는 최근 이틀에 한 번꼴로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일어났다. SNS 등에는 불길이 치솟는 영상과 함께 “포탄이 떨어진 줄 았았다” “전쟁 난 것 아니냐”는 불안의 목소리가 한동안 이어졌다. 군은 인명 피해가 없다는 이유로 날이 밝을 때까지 정확한 상황을 알리지 않아 불안과 혼란을 더 키웠다.
이번에 고장을 일으킨 것은 사거리 800㎞의 C형으로, 2012년부터 개발해 2018년 실전 배치됐다. 군은 현무-2C 미사일에 대한 전수 조사에 착수했다. 원인이 규명될 때까지 현무-2의 정상적 운용은 어려워 보인다. 현무-2가 우리 군의 주력 미사일이란 점에서 전력 공백이 우려된다. 현무-2는 우리 군의 북핵 대응책인 ‘킬체인’의 핵심 자산이기도 하다. 군은 이번 사고를 킬체인의 신뢰성을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민주당은 이를 “안보 공백”이라고 비판하는데 현무 미사일 오작동 추락은 문재인 정권 때도 있었다. 안보 문제는 단세포적 정쟁의 대상이 돼선 안 된다. 무기 체계는 어떤 것도 완벽할 수 없다. 미국 등 선진국들도 무기 개발과 전력화 과정에서 숱한 시행착오를 겪는다. 실전 배치된 무기에서도 각종 결함이 수시로 발생한다. 사고, 고장 때마다 비난하고 매도하면 지금 유럽에 수출하는 전투기, 전차, 자주포 등은 하나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미사일 고장 원인을 정확히 파악해 신뢰성을 더욱 높일 수 있느냐이다.
조선일보 사설
10.07 싸워봤자 격추될 전투기 띄웠다…美전략자산 맞선 김정은 노림수

▲한미 군 당국은 북한이 4일 오전 일본 열도를 넘어간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1발을 발사한 것에 대응해 도발 10시간 만에 F-15K와 F-16 전투기를 투입해 공격편대군 비행에 나섰다. 사진은 이날 훈련에서 대북 경고메시지로 공대지 합동직격탄(JDAM)을 투하해 정밀폭격하는 모습. 연합뉴스
북한이 그동안 보여주지 않았던 '공중 무력 위협'까지 구사하며 도발 수위를 높이고 있다. 북한은 6일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인 로널드 레이건함(CVN 76)의 동해 재전개를 겨냥해 오전엔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2발을 발사한 데 이어 오후엔 군용기 12대를 전격 출격시켜 무력시위에 나섰다. 이에 한국 공군도 30여대 전투기를 출격시키면서 이날 오후 한때 한반도 상공에서 40여대의 남북 전투기가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열악하다고 평가받는 공군 전력을 활용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공군 전력을 활용한 도발은 굉장히 새로운 현상으로 전방위적인 긴장을 조성하려는 것"이라며 "다양한 종류의 미사일을 다양한 장소에서 발사한 데 이어 공군전력까지 동원하면서 한·미·일의 대비를 어렵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말했다.
공중 전력에 관한 한 한·미가 북한을 압도한다는 게 군사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북한은 수십 년 된 노후 전투기를 주력으로 보유한 데 비해 한·미는 스텔스 기능을 갖춘 F-35까지 운용하고 있다. 남북이 공중전을 벌일 경우 북한군은 F-35 전투기를 식별하지도 못한 채 격추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박원곤 교수는 "공군 현대화에 실패한 북한이 절대적 열세에 있는 공군 전력까지 동원했다는 건 모든 자원을 다 끌어모아서 대응하겠다는 의미"라며 "향후 도발과 위협 수위가 더욱 올라갈 것이라는 예고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북한이 항공 전력을 이용해 무력시위에 나선 건 손에 꼽힐 정도다. 탈북자 단체가 임진각에서 대북전단 살포를 시도했던 지난 2012년 10월 평양 방어를 담당하는 북한의 '미그-29' 전투기 4대가 군이 설정한 전술조치선을 넘어 휴전선 인근까지 내려왔었다. 미그-29는 북한 공군 내에선 상대적으로 최신 기종이지만 도입한 지 30년이 넘었다. 이밖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시로 2014년부터 전투비행술 경기대회를 열어 한·미 연합공중훈련에 대응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엔 보란 듯이 12대를 동원해 사격훈련까지 감행하면서 모든 전력을 다 동원해 전면전을 불사할 수 있음을 과시했다. 북한이 벼랑끝 전술로 다시 회귀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은 과거 허를 찌르는 도발로 한국군을 공격한 전례가 있다. 천안함 폭침 및 연평도 포격전(2010년)이 대표적이다. 느닷없이 연평도를 선제 포격해 남북 간 교전을 벌였고, 공격 주체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수중 공격으로 천안함을 폭침시켜 한국을 충격에 빠뜨렸다. 모두 예측을 뛰어넘는 도발이었다. 이번 군용기를 동원한 위협 역시 언제 어디서건 예상을 뛰어넘는 대남 공격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 게 된다.
북한은 이날 공중 무력시위로 항공유 부족으로 공군 전력 운용이 어렵다는 관측도 깨버렸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항공유가 부족하고 공군 전력이 열세인 북한으로서는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라며 "미국의 전략자산에 대해서도 기꺼이 정면승부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냄으로써 한반도 안보 위기를 고조시키고 윤석열 정부의 대북 강경 정책을 무력화시키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정영교·박현주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
10월 07일 이번엔 北전투기 시위, 韓美 압도적 대응 계속해야 한다
남북 전투기 수십 대가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무력시위를 벌이는 이례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군 당국이 북한의 전투기 출격에 대해 훨씬 많은 전투기로 즉각 맞대응한 것은 여러 측면에서 바람직한 일이다. 북한이 6일 전투기 8대와 폭격기 4대로 사격 훈련 등을 한 황해도 곡산 일대는 서울과의 거리가 110㎞에 불과하다. 우리 군은 F-15K 전투기 등 30여 대를 출격시켜 유사시에 대비했다.
북한의 전투기 집단 출격은 매우 이례적이다. 2016년 유엔의 대북 제재 제2270호로 항공유에 대한 대북 금수 조치가 내려지며 북한의 전투기 훈련은 더 힘들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이런 조치까지 취한 것은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에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은 이날 외무성 공보문을 통해 “미국이 조선반도 수역에 항공모함 타격집단을 다시 끌어들여 엄중한 위협을 조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이 일본 상공을 넘어서는 미사일을 발사하자 레이건 항모는 회항해 동해로 재진입, 한·미·일 방어 훈련에 참여했다. 열악한 원유 사정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은, 전략자산의 북한 주변 전개가 김정은 정권을 압박하는 효과가 있음을 반증한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는 북한 군용기 시위에 대해 즉각적으로 맞대응했듯이 앞으로도 북한의 육·해·공 도발에 대해 김정은이 겁먹을 정도의 압도적 위력으로 대응하는 태세를 견지해야 한다. 이미 무효가 된 9·19 군사합의에 얽매이지 말고 유·무인기로 대북 감시·정찰 역량을 강화하고, 동·서해안에서 실사격 훈련도 재개해야 한다. 미국 전략자산 상시 전개를 비롯해 한·미·일 연합으로 미사일 요격 훈련도 제도화해 북한 도발을 무력화해야 한다. 동맹·자유 진영과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북한 위협을 봉쇄할 수 있다. 레이건식 군비경쟁이 소련 붕괴를 유도했듯, 군비 경쟁으로 북한의 군사 자원을 고갈시키는 것도 방법이다.
문화일보 사설
월간조선 10월 호
박민식 국가보훈처장
“(광복회 감사는) 적폐 청산이 아니라 나라의 정상화”
⊙ “報勳의 역사를 통해 국가 正體性 확립에 기여하겠다”
⊙ “윤석열 대통령, ‘참전국 방문 시 일정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참전용사를 초청, 감사 표하는 행사 갖겠다’고 해”
⊙ “자유 부정하는, 김일성 정권 만들기 위한 독립운동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 “보훈처장으로서 李承晩 대통령에 대한 메시지를 내기 위해 이승만 추도식 참석”
박민식
1965년생.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외무고시(제22회)·사법시험(제35회) 합격 / 외무부 국제경제국 사무관, 서울·창원·여주 지방검찰청 검사,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수석검사, 국회의원(제18·19대), 최동원기념사업회 이사장 역임. 現 국가보훈처장

▲사진=보훈처
월남에 갔던 아버지가 돌아왔다. 군인이던 아버지는 집에 머무는 날이 그리 많지 않았다. 가끔 집에 왔다가 금방 나가곤 했다. 이번에는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왔다. 전사(戰死)! 하지만 그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장례식 전인지 후인지는 기억에 없지만, 아버지의 군복을 태우며 굿을 했던 기억만은 강하게 남아 있다. 그 자리에는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왔었다. 경남 거창의 작은 마을에서 육군 장교였던 아버지는 가장 잘나가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그로부터 꼭 50년 후, 그때 일곱 살이던 ‘군인의 아들’은 참전용사 등 국가유공자들을 선양(宣揚)하고 그들과 그 유가족, 제대군인들의 복지를 챙기는 책임자가 됐다. 박민식(朴敏植·57) 국가보훈처장 얘기다. 박 처장은 취임하자마자 화제들을 많이 만들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김원웅(金元雄) 전 회장 시절 광복회 비리에 대한 감사(監査) 결과를 직접 발표했다. 이승만(李承晩) 초대 대통령의 57주기 추모식에 참석해 추도사를 했다. 백선엽(白善燁) 장군 2주기 행사에도 참석했다. 탈북(脫北) 국군포로 이규일씨의 빈소(殯所)도 찾았다. 그의 이런 행보를 보면서 많은 보수(保守) 인사들은 “정권 교체한 보람을 느낀다”며 박수를 보냈다. 9월 2일 서울 삼각지에 있는 서울지방보훈청에서 박민식 처장을 만났다.
先親 박순유 중령

▲박민식 처장의 先親 故박순유 중령.
― 선친(先親) 박순유 중령(갑종 69기)은 어떤 분이었습니까.
“주로 첩보부대(HID·현 국군정보사령부)에서 근무하셨다고 합니다. 월남에도 첩보부대장(공작대장)으로 가셨지요. 첩보 수집차 지프를 타고 출동했다가 적의 매복 공격에 돌아가셨지요. 함께 있던 병사들까지 모두 네 명이 전사했는데, 당시로서는 큰 사건이었다고 합니다.”
박 처장은 “내가 보훈처장에 지명된 후, 옛날 아버지의 부하였던 분들이 이렇게 편지를 보내왔다”며 편지를 보여주었다. 월남 참전 고엽제 유공자인 신정부씨의 회고다.
<당시 공작대장 소령 박순유님과는 가까운 사이로 많은 핀잔도 들은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대장님께서는 참 훌륭하시고 멋있는 참 군인이셨습니다. 전쟁 상황인지라 병사들의 안위를 살펴주시고 훌륭한 인격을 소유하신 분이었습니다. 특히 첩보 수집 활동에 능하시고 참 명민하셨습니다. 사적으로는 곰방대 담배를 많이 피우신 걸로 기억이 나는군요.
1972. 06월(날짜 미상) 어느 날 오전 공작대장 고(故) 박순유님, 통신병, 통역병, 운전병 등 4명이 1/4톤 케네디 찝차로 첩보 수집차 출동하는 것을 보았는데, 출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에 재구대대 가는 도로상에서 찝차가 화염에 휩싸였다는 내용이 연대 상황실에 접수, 확인해 보니 우리 공작대장 차량이 이동 중 은신 중인 적의 공격을 받고 화염에 휩싸였던 것입니다. 이 공격으로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습니다. 피해 시신은 적의 저항에 의거, 바로 회수 조치 하지 못하고 시신 보존을 위해 시신 주변을 미군 헬기가 24시간 위협 사격을 가한 후 월남 조력자들에 의해 시신을 회수할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시신을 연대 임시 천막으로 후송시킨 후 고 박순유 대장님과 사병의 시신 부패를 막기 위해 정성을 다해 시신을 닦고 소독을 한 생각이 나며 바로 유해를 고국으로 후송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援護’에서 ‘報勳’으로
― 보훈대상자로서 우리나라 보훈 행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왔습니까.
“어렸을 때 학교에서 가정환경조사를 하잖아요? 집에 텔레비전 있는 사람, 냉장고 있는 사람 묻는…. 그때는 집에 자동차 있는 사람은 아예 없었고요.”
― 그때는 그랬었죠.
“선생님이 그렇게 죽 묻다가 ‘원호(援護) 대상자 손 들라’고 하는데, 그때는 뭔가 죄책감 같은 생각, 숨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아버지는 나라의 명령을 받고 전선에 나갔다가 돌아가셨어요. 그럼 누가 미안해해야 하나요? 국가가 우리 가족에게, 우리 어머니에게 미안해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그 반대로 내가, 우리 가족이 부끄러워한다는 게 말이 되나요? 그런 느낌을 들게 하던 것이 원호처(국가보훈처의 전신) 시대의 보훈 행정이고 보훈 문화였어요.”
― 그러면 안 되는 것이죠.
“‘원호’란 글자 그대로 국가가 도와준다는 의미입니다. 조선 시대 혜민서(惠民署) 같은 기관처럼 말이죠. ‘원호’라는 개념 아래서는 도움을 주는 국가가 채권자, 갑(甲)이 되고, 원호대상자는 채무자, 을(乙)이 됩니다.
‘보훈(報勳)’은 그 반대입니다. 보훈대상자의 희생으로 신세를 진 것은 국가이고, 그 때문에 국가가 끝까지 예우를 해준다는 개념입니다. 보훈대상자가 채권자이자 갑이 되는 것이고, 국가가 채무자, 을이 되는 것이죠. 원호처가 국가보훈처로 이름이 바뀐 것은 이러한 개념 변화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원호처가 국가보훈처로 개칭된 것은 1985년이었다. 박민식 처장은 그에 따른 뒷이야기를 해주었다.
“1983년 아웅산테러 사건 때 순직한 어떤 각료의 부인이 원호처로부터 ‘원호 대상자 귀하’ 운운하는 편지를 받고 청와대에 ‘대통령 모시고 나갔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나라에서 대우는 못 해줄망정 원호 대상자가 뭐냐? 너무 불쾌하다’고 항의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원호’라는 개념에서 ‘보훈’이라는 개념으로 바뀐 것이죠.”
알링턴 雨中 참배

▲박민식 보훈처장은 지난 7월 25일 美 워싱턴 D.C 알링턴국립묘지에서 장대비를 맞으면서 참배했다. 사진=보훈처
박민식 처장은 지난 7월 27일 미국 워싱턴 D.C ‘추모의 벽’ 준공행사에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해 참석했다. 이 추모의 벽에는 6·25 당시 미군 전사자 3만6634명의 이름과 함께 카투사(KATUSA) 전사자 7174명의 이름도 함께 새겨졌다. 박민식 처장은 “이는 한국을 영원한 우방이자 동맹국으로 바라보는 미국의 의지와 혈맹(血盟)으로 맺어진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식 처장은 알링턴국립묘지도 참배했다. 적지 않은 비가 내렸지만 박 처장은 우산을 쓰지 않고 참배했다. 비가 오면 옆에서 우산을 받쳐주는 우리 풍토에서는 생소한 풍경이었지만, 사실 그것이 ‘글로벌 스탠더드’다. 인터넷을 뒤져보면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이 폭우를 맞으면서 무명용사묘나 국립묘지를 참배하는 사진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비를 맞으며 알링턴국립묘지를 참배하는 사진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그게 보훈 문화죠.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알링턴국립묘지에서는 폭우가 내리더라도 우산을 쓰지 않고 참배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하더군요. 국가를 위해 헌신한 영웅들을 최고로 예우하려는 자세가 느껴졌습니다. 참배를 하면서 우리나라의 보훈 문화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작년에 알링턴국립묘지를 참배하면서 ‘우리가 그들의 희생을 잊는다면,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잊는 것’이라고 한 말이 떠오르더군요.
알링턴의 무명용사의 비는 의장대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24시간 지키고 있습니다. 저는 ‘이곳에 묻힌 분들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라를 지켰듯이 우리도 이분들을 지킨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같은 나라는 없다’

▲박민식 처장은 지난 7월 24일 美 메릴랜드 프레데릭타운에 있는 한국전 참전용사 故 윌리엄 웨버 대령의 자택을 방문, 부인 애널리 웨버 여사를 위로했다. 사진=보훈처
― 지금 우리나라 국립묘지는 보훈처 관할인가요, 국방부 관할인가요.
이 질문을 받자 박민식 처장은 반색을 했다.
“안 그래도 제가 요즘 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국립묘지는 모두 12개입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서울현충원(동작동 국립묘지)과 대전현충원이죠. 그런데 그중 11개는 보훈처 관할인데 서울현충원만 국방부 관할입니다. 아마 국군묘지로 출발했다는 연혁(沿革) 때문이겠지만, 그곳에 군인만 묻힌 게 아니잖아요? 독립운동가, 사회공헌자 등 다양한 분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그분들을 최고로 잘 모시기 위해서는 전문성과 역량을 가진 국가보훈처에 국립묘지관리본부 같은 것을 만들어서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 미국 알링턴국립묘지는 어느 부서 관할인가요.
“국방부 관할입니다. 하지만 미국은 계속 전쟁을 하고 있는 나라이고, 국립묘지에 묻히는 분들도 군인들입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군인뿐 아니라 얼마 전 돌아가신 김자동(金滋東) 선생 같은 독립운동가들도 있고, 민주화운동 관련자들도 있잖아요?”
尹 대통령, 보훈 외교에 깊은 관심
― 미국 워싱턴 D.C ‘추모의 벽’ 준공행사 참석 등 보훈 외교를 강조하고 있더군요. 혹시 젊은 시절 잠시 외교관 생활을 했던 경험 때문인가요.
“사람들이 개인 대(對) 개인으로 처음 만나서 ‘앞으로 잘해나가자’고 하는 것도 물론 가능하겠지만, 그래도 옛날에 군대 생활을 같이하거나 백수 시절을 같이 보내면서 동고동락(同苦同樂)했다고 하면 특별한 관계가 되지 않겠습니까? 나라와 나라의 관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튀르키예(터키)와 같은 참전국(參戰國) 대사를 만나면 긴말이 필요 없어요. 그냥 통하는 거죠. 이번에 미국에 가서 한국전쟁 참전용사와 가족, 전사자·실종자·포로 유가족들을 많이 뵈었습니다. 우리가 위로하고 감사드려야 하는데 오히려 그분들이 자신들을 찾아와 준 우리에게 ‘대한민국 같은 나라는 없다’면서 고마워하시더군요. 보훈 외교는 국가적 도리일 뿐 아니라 다른 나라는 갖지 못한 중요한 외교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 윤석열 대통령도 보훈 외교에 관심이 많다고요.
“보훈처 업무 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대통령께서 먼저 ‘앞으로 해외 순방 시 참전국일 경우에는 일정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참전용사를 초청해 손을 잡고 감사를 표하는 행사를 갖도록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참 고맙게 느껴지더군요.”
― 내년은 6·25 휴전 70주년, 한미동맹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국무총리가 위원장, 보훈처장이 실무 책임자가 되어 여러 행사를 할 것입니다. 국내외 참전 휴전협정이 체결된 7월 27일은 유엔이 지정한 ‘유엔군 참전의 날’인데, 내년에는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행사와 함께 6·25 때 우리나라를 도와준 22개 참전국 정상급 회의를 개최할 계획입니다.”
사회주의자 敍勳 논란
홍문표 국민의힘 국회의원은 8월 30일 “아직까지도 김일성(金日成)의 삼촌 김형권과 외삼촌 강진석의 서훈(敍勳) ‘애국장(4등급)’이 박탈되지 않은 채 버젓이 대한민국 상훈 명단에 고스란히 올라 있다”면서 “김일성의 친족을 정부가 서훈 추서했다는 사실은 목숨 바쳐 나라를 지켜온 애국 순국열사들에 대한 모욕이자,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헌법을 부정하는 반(反)역사적인 일”이라고 지적했다. 홍 의원은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에게 건의문을 전달하며 서훈 박탈을 조속히 추진해줄 것을 촉구했다”고 밝혔다.
사회주의자 서훈 문제는 오랫동안 논란의 대상이었다. 남로당 수괴(首魁) 박헌영(朴憲永)의 아내 주세죽도 애국장을 받았다. 문재인(文在寅)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내내 월북(越北) 후 북한 정권의 국가검열상·노동상 등을 지낸 김원봉(金元鳳)을 서훈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받은 손혜원 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의 아버지는 해방 후 공산당 활동을 했다는 의혹 때문에 논란이 됐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제(日帝) 강점기 시절 독립운동은 3·1 독립선언과 상해 임시정부 헌장, 그리고 매헌(梅軒) 윤봉길(尹奉吉) 선생의 독립 정신에서 보는 바와 같이 국민이 주인인 민주공화국, 자유와 인권, 법치가 존중되는 나라를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자유와 인권이 무시되는 전체주의 국가를 세우기 위한 독립운동은 결코 아니었다”고 밝혔다. 박민식 보훈처장도 보훈처 업무 보고를 하면서 “보훈의 역사를 통해 국가 정체성(正體性) 확립에 기여하겠다”고 다짐했다.
― 김일성의 삼촌, 박헌영의 아내 등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을 서훈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반하는 것 아닙니까.
“사회주의자 서훈 문제는 논란이 심한 이슈라고 봅니다. 독립·건국을 목표로 한 것이라면 포용적 차원에서 폭넓게 인정해주자는 것이 정부의 기본 원칙입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께서 광복절 경축사에서 천명하셨다시피 독립의 길도 결국 자유 대한민국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개인의 자유를 부정하는, 예컨대 김일성 정권을 만들기 위한 독립운동이었다라고 하면, 그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겠지요.”
― 그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할 계획이 있습니까.
“독립운동가서훈공적심사위원회 회의록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한 페이지밖에 안 돼요. 5분이나 걸렸을지…. 이미 다 결정해놓고 회의를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예요. 그런 식으로 심리가 아주 허술하고 미진했던 것이 객관적으로 명백하거나,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볼 때 상당히 일탈(逸脫)한 경우에는 두 번 아니라 세 번, 네 번이라도 공적 검증을 다시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만간에 조치를 취할 겁니다.”
― 과거 《월간조선》에서는 그런 결정을 누가 내렸는지 알기 위해 여러 차례 공적심사위원들의 명단 공개를 요청했지만, 영 안 내놓더군요.
“제가 그 부분도 한 번 공론화할 겁니다. 그런 위원 명단을 공개해도 된다는 판례도 있고,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판례도 있습니다. 편향된 역사관을 가진 몇몇 사람에 의해서 공적심사위원회가 독점(獨占)되어 온 것이 아니냐 하는 비판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 국가보훈처장으로서 책임감 있게 보고 있습니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역사는 어떤 진영(陣營)이나 정파(政派)의 관점에서 자의적(恣意的)으로 해석되거나 독점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복 입은 영웅들이 존경받는 나라’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월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확고한 보훈 체계는 강력한 국방력의 근간”이라면서 “공정하고 합리적인 보훈 체계를 마련해 조금이라도 억울한 분들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윤 대통령은 또 “제복 입은 영웅들이 존경받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정부가 천안함 폭침, 연평해전, 연평도 포격 사건 등을 겪은 장병들에 대한 전상(戰傷)이나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 인정에 인색하다는 호소가 많습니다. 이제 좀 달라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도 100번 공감합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그분들이 신체적·정신적으로 피해를 입은 데 대해서는 저도 전사자 유가족인지라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입니다. 그에 대해 나라가 입으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어떤 책임을 져줬느냐고 묻는다면, 여기서 책임이라고 할 때에는 물질적 보상 플러스 의료가 되겠는데, 이에 대해서는 법률적으로 상당히 까다롭게 되어 있습니다.”
― 그에 대해 정부가 너무 야박한 것 아니냐는 것이죠.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신체적 피해나 트라우마를 입었다는 인과(因果)관계를 개인이 입증(立證)하라는 것이 그동안의 정책이었습니다. 하지만 개인에게 의학적·법률적 지식이 있는 게 아니잖습니까? 행정적으로 보면 그들은 약자(弱者)입니다. 어떻게 정부를 상대로 이길 수 있겠어요? 이런 경우에는 일반적인 경우와는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분들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이고, 그분들이 천안함 사건이나 목함지뢰 사건 등을 겪었다는 것은 공지(公知)의 사실이잖아요? 이러한 경우에는 입증 책임을 전환, 국가가 입증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 용산에 국가보훈공원을 조성한다고 들었습니다.
“보훈처 업무 보고 때 대통령께서 ‘국가보훈처 주도로 용산공원을 미국 워싱턴 D.C의 내셔널몰(National Mall)과 같은 국가보훈공원으로 만들라’고 아주 강한 어조로 되풀이 강조하셨습니다.”
‘광복회 不法은 지난 정권 비호받은 비리’

▲박민식 보훈처장은 8월 29일 김원웅 전 회장 시절 광복회 비리 감사 결과를 직접 발표했다. 사진=보훈처
박민식 보훈처장은 8월 29일, 지난 6월 27일~7월 29일 시행한 광복회 특정감사 결과를 직접 발표했다. 출판사업 인쇄비 5억원 과다 견적, 카페 공사비 9800만원 과다 계상, 대가성 기부금 1억원 수수, 기부금 1억3000만원 목적 외 사용, 법인카드 2200만원 유용 등 김원웅 전 광복회장 시절의 여러 비리가 적발됐다. 관련 액수를 합하면 8억원이 넘는다. 이와는 별도로 지난 2월 보훈처 감사에서는 광복회가 국회 구내에서 운영한 카페(헤리티지815) 수익금 중 일부인 6100만원가량이 임의로 빼돌려져 비자금으로 조성되었고, 이 중 1000만원은 김원웅 전 회장의 통장으로 입금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문재인 정부 적폐 청산’을 제일 열심히 하는 부서가 보훈처인 것 같습니다.
“(목소리를 높이며) 적폐 청산이 아닙니다. 적폐 청산이 아니라 나라의 정상화이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정체성을 확립시키는 과정입니다. 우스갯소리로 ‘다른 건 모르겠는데 국가보훈처를 보니 정권이 바뀐 걸 확실히 느낀다’는 말씀을 많이 하세요.”
― 제 주위에서도 그런 얘기를 많이 합니다.
“소명(召命) 의식을 갖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 김원웅 전 회장의 경우 자잘한 비리보다 그 자리에 있으면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언동을 일삼았다는 게 더 큰 문제 아닐까요.
“말씀하신 것처럼 광복회장의 이름을 팔아서 일탈 행위를 마음껏 했더라고요. 그것을 국회나 청와대(대통령실) 등 국가기관에서 다 알고 있으면서도 비호(庇護)하고 있었어요.”
박민식 처장은 광복회 감사 결과 발표 후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도 “광복회의 불법은 지난 정부의 비호를 받은 비리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었다.
― 비호라고 하는 것은 조금 지나친 표현 아닐까요.
“대한민국 광복절 경축식에서 연설하는 사람은 딱 두 명입니다. 바로 대통령과 광복회장입니다. 그런데 김원웅 전 회장은 3년간 광복절 경축사를 할 때마다 우리 사회를 완전히 분열시키는 망발을 했어요. 광복절 행사는 시간 계획, 동선(動線), 발언 내용 등이 사전에 대통령실과 공유(共有), 조율될 수밖에 없어요. 시간 계획이 분초 단위로 짜이는데, 광복회장이 연설을 하고 싶다고 마음대로 시간을 쓸 수 없어요. 그런데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3년이나 계속할 수 있었다면 비호가 있었다는 의구심을 갖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박민식 처장은 “김원웅 전 회장의 비리는 엄정하게 처리할 수밖에 없다”면서 “그것을 그냥 놔두는 것은 지하에 계시는 김구(金九) 선생, 안중근(安重根) 의사(義士) 등 선열(先烈)들께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만을 陰地에서 陽地로’

▲박민식 처장은 지난 7월 말 방미 당시 하와이에 있는 이승만 대통령 관련 사적지들을 찾았다. 사진=보훈처
박민식 처장은 지난 7월 19일 이승만 전 대통령 57주기 추모식에 참석, 추모사를 했다. 기자도 이승만 전 대통령의 추모식에 종종 참석했었는데, 대개 보훈처 차장이 처장을 대신해 참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날 추모사에서 박민식 처장은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전 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극적인 성공의 역사이며, 그 대한민국의 시작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계셨습니다. (중략)
공(功)과 과(過)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일방적인 비판에 가려 공화주의자로, 또 독립운동가로, 그리고 반공·자유주의자로서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토대를 만들기 위해 기여했던 많은 업적들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울 뿐입니다. 마땅히 기려야 할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이 묻히고, 폄훼되어서는 안 됩니다.
비단 이승만 대통령뿐만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그리고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 모든 분은 마땅히 추앙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의 업적은 제대로 조명받거나 평가받기는커녕 이념에 따라 또 진영에 따라 축소되거나 왜곡되는 등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이 벌어져 왔습니다. (중략) 이제는 이승만 대통령을 음지에서 양지로 모셔야 할 때입니다. (후략)”
― 보훈처장이 이승만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하는 것은 드문 일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임자인 박삼득 전 처장 등이 참석한 적이 있지만, 대개 보훈처 차장이나 서울지방보훈처장이 참석했었죠. 사실은 그날 국무회의가 있었는데, 추도식에 꼭 가고 싶어서 차장을 대리 출석시키고 참석했습니다.”
― 추도식에 참석해야 할 이유가 있었나요.
“국가보훈처장으로서 이승만 대통령 추도 메시지를 한 번 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건 대한민국 정부가 이승만 대통령을 어떻게 인식하느냐 하는 문제’라는 책임감을 갖고 참석했습니다. 사실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인정하자’는 평범한 이야기였는데, 많은 분이 추도사를 보내달라고 하시는 걸 보면서 ‘지난 몇 년 동안 우리 사회가 이런 평범한 말조차 할 수 없는 사회였나’ 싶어서 조금 서글펐습니다.”
― 지난 7월 8일에는 백선엽 장군 2주기 행사에도 참석했더군요.
“이승만 대통령이나 백선엽 장군 같은 분은 외국에서도 걸출한 인물로 인정하는 분들입니다. 그런 분들이 유독 고향인 자기 나라에서는 제대로 평가를 못 받고 동상 하나 못 세우는 것을 보면 이게 제대로 된 국가인지, 참 안타깝습니다.”
― 사실 이승만 대통령은 4·19 이후 보수 정권하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 왔는데, 어떻게 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게 되었습니까.
“사실 저도 상당히 오랫동안 ‘이승만’이라고 하면 ‘자유당 부정선거’만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객관적인 독서를 하게 되면서, ‘이건 어떻게 보면 보수의 분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 맞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저평가된 큰 이유 중 하나는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18년간 집권하면서 이승만 대통령을 부정했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이승만 대통령이 양지로 나올 기회가 없었던 거죠. 부정선거 같은 것에 대해서는 비판받아야 하지만 지나칠 정도로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강했던 이승만 대통령을 친일파(親日派)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얘기죠. 정치적 프레임에 따른 선전선동인데, 괴벨스가 그랬잖아요? ‘거짓말을 자꾸 하면 대중은 그걸 정말로 믿게 된다’고.”
‘국방과 보훈은 동전의 양면’
― 보훈부 승격은 보훈처의 오랜 숙원입니다만, 그만한 행정수요가 있는 건가요.
“보훈처의 행정 서비스 대상자를 우리는 1300만 명으로 봅니다.”
― 그렇게나 많다고요?
“제대군인 업무가 있으니까요. 여태까지는 중장기 근무 제대군인 관련 사무만 다루었는데,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의무복무 제대군인 사무도 다루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경우 제대군인 사무가 보훈처의 한 국(局)이지만, 미국의 경우는 보훈부의 명칭이 제대군인부(Department of Veterans Affairs)잖아요? 가족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전 국민이 보훈처의 행정 서비스 대상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기술적인 문제를 떠나서 대한민국은 전쟁을 경험한 나라이고 유일한 분단국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적절하게 지적하신 것처럼 국방과 보훈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미국의 군사력이 왜 세계 최강일까요? 70년 전 6·25 때 전사한 전투기 조종사의 뼛조각을 찾기 위해 이역만리(異域萬里)까지 찾아와 수십억원을 쓰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이 국방력 강화를 위해 탱크나 전투기를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나라를 위해서 희생한 분들을 확실하게 받들어 모시는 것입니다. 그래야 전쟁이 났을 때 누구라도 총을 들고 뛰어나갈 것 아닙니까?”
― 맞습니다.
“우리는 군인을 군바리, 경찰을 짭새라고 비하해왔습니다. 제복을 입은 사람들, 보훈 대상자들이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전 생애를 보훈처와 함께하는 보훈 대상자들은 주무(主務) 부서인 보훈처의 위상을 본인의 위상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명박(李明博)·박근혜(朴槿惠) 정권 등 보수 정권 시절에 오히려 보훈처를 차관급 부서로 격하한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철학이 확실한 분이어서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자연스럽게 애국심이 녹아 들어갈 수 있게”
박민식 처장은 지난 6월 4일 KIA-KT의 프로야구 경기에 앞서, 2015년 목함지뢰 폭발 사고로 부상을 당한 하재헌 예비역 중사, 6·25참전유공자의 후손인 강병준 육사 생도와 함께 시구·시타 행사를 가졌다. 사진=보훈처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 박민식 처장은 “제가 하루를 보훈처장을 하더라도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서 “지면이 허락한다면 이 얘기를 꼭 좀 써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처장은 스마트폰을 열어 1991년 미국 슈퍼볼 개막식에서 가수 휘트니 휴스턴이 미국 국가(國歌)를 부르는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고음(高音)을 거침없이 소화해내는 가창력도 대단했지만, 마지막에 전투기들이 경기장 상공을 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이 동영상이 그냥 나온 게 아닙니다. 치밀한 기획의 결과입니다. 이 노래로 휘트니 휴스턴은 7주간 빌보드 차트에 올랐어요. 국가를 따라 부르는 관중들 얼굴을 보세요. 애국심은 무거운 주제이고 풋볼(미식축구)은 가벼운 주제인데, 이렇게 서로 연결시키니 국민들에게 자연스럽게 애국심이 생기는 것이죠. 무겁게 설교하듯 애국심을 고양하려 할 것이 아니라 축구나 야구, 게임 같은 것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애국심이 녹아 들어갈 수 있게 하는 게 보훈처장으로서 저의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지난 8월 13일 탈북 국군포로 이규일씨의 빈소를 찾아 윤석열 대통령의 조의(弔意)를 전한 것을 두고 많은 분이 ‘정권 교체한 보람이 있다’고 하더군요.
“사실 그날 저는 다른 일정이 있었어요. 그런데 ‘대통령께서 이규일씨 빈소에 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못 가게 되었으니, 빨리 대신 가라’는 연락이 와서 가게 된 것입니다.”
“참전용사분들이 단 한 분도 소외감 느끼지 않게”
― 참전용사들은 민주화운동 보상금으로 몇억원씩 받아가는 것을 볼 때, 월(月) 35만원에 불과한 참전명예수당(65세 이상), 10만원에 불과한 생계지원금(80세 이상)을 받는 자신들의 처지와 비교하면서 소외감을 많이 느낀다고 합니다.
박민식 처장은 잠시 생각하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외국의 경우 대개 보훈의 가치는 독립과 호국입니다만, 우리나라는 독특한 정치적 환경 때문에 민주화가 더해졌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전용사들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아쉬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국가보훈처장으로서 우리나라를 위해서 진짜 희생했던 참전용사분들이 단 한 분도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박민식 처장의 목소리는 촉촉하게 젖어드는 듯했다. 문득 ‘대한민국이 참 오래간만에 국가보훈처장다운 국가보훈처장을 갖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ironheel@chosun.com
10.08 위기의식 없이 위기 극복 못한다
북한 미사일 발사에 緊迫한 일본·平穩한 한국
‘생각할 수 없는 사태 생각해야’ 안보·경제 위기 탈출
북한이 일본 하늘 넘어 태평양 쪽으로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다음 날 일본 신문에 두 장의 사진이 실렸다. 하나는 초등학교 하급반인 듯한 어린이 10여 명이 골목길에 다닥다닥 붙어 몸을 웅크린 모습이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눈이 휘둥그레진 아이들은 놀란 기색이 역연했다. 다른 한 장은 한국으로 치면 대통령 비서실장과 대변인을 겸한 내각 관방장관(官房長官)이 경보(競步) 선수처럼 총리실로 달리듯 뛰어드는 장면을 담았다. 일본 정부는 북 미사일 발사 직후 미사일 통과 지역에 주민 대피 명령을 내렸다. 고속 열차와 지하철도 일시 멈췄다.

▲4일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직후 마쓰노 히로카즈 일본 관방장관(아래 사진 가운데)이 총리실에 뛰어들어 가고 있는 가운데 주일 미군 기지가 있는 아오모리현 미사와(三澤)에서 초등학생들이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로 인한 피난 지시에 따라 인근 골목길에 대피해 쪼그려 앉아 있다. /AP 연합뉴스
비슷한 시간 서울에선 합참이 북 미사일 발사 사실을 발표하고, 대통령실은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했다. 한미 군은 북의 미사일 발사에 대응 의미로 동해상으로 지대지(地對地) 미사일을 쐈다. 그 과정에서 현무-2 미사일 결함으로 사고가 났으나 밟아야 할 과정은 빠뜨리지 않았다. 마지못해 대응 시늉을 하던 전(前) 정권과는 달랐다. 그래도 어딘지 모르게 긴박감(緊迫感)이 떨어졌다. 고속버스 터미널이나 기차역 대합실 대형 TV에서 흘러나오는 긴급 뉴스에 귀 기울이는 사람도 없었다. 대피 사이렌이 울리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사이렌이 울렸다면 한 번도 그런 훈련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었으니 도시 전체가 마비될 뻔했다.
등굣길의 햇병아리들도 몸을 웅크리고 골목으로 대피하는 일본과 서울의 무심한 평온(平穩) 차이를 뭘로 설명할 수 있을까. 미사일 발사 방향 때문만이 아니다. 우리는 김정은이 만드는 위협 상황에 너무나 익숙해졌다. 익숙해졌다는 건 길들여졌다는 뜻이다. 익숙해지고 길들여지면 이상(異狀) 징후나 위기를 알아채는 신경이 죽거나 망가진다. 6·25 직전 서부 38선상에선 크고 작은 남북 충돌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 익숙해지다 보니 6·25 당일 포성(砲聲)을 듣고 조금 큰 충돌이 일어난 걸로 생각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1940년 5월 프랑스에선 독일의 침공이 눈앞에 다가왔는데도 ‘전쟁이 일어나선 안 된다’는 희망이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정세 판단을 밀어냈다.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여부를 놓고 양론(兩論)이 있던 우크라이나도 바이든 대통령이 ‘인류 최후의 전쟁’을 거론할 정도로 사태가 심각해졌다. 세계가 ‘생각할 수 없는 사태를 생각해야 하는 시대’로 들어섰다.
북한은 6일 전투기 8대와 전폭기 4대를 띄워 서울 코앞 황해도에서 사격 훈련을 했다. 우리 공군은 전투기 30여 대를 출격시켜 대응했다. 전에 없던 사태다. 그 며칠 전에는 미국 항공모함 편대가 다가오는 쪽으로 미사일을 쐈다. 과거에 못 보던 장면이다. 북한은 지난달 8일 ‘김정은을 비롯한 지휘부가 공격받을 경우’ ‘전쟁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작전상 필요가 있을 경우’ 핵 선제공격을 할 수 있다는 핵무력법을 공표했다. 핵무기를 보유하고 사용할 수도 있다는 핵 교만(驕慢)에서 비롯된 일이다.
이 상황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동해에서 실시된 한·미·일 군사훈련에 대해 친일(親日) 국방이라고 호통을 쳤다. 한반도 유사시 지원할 미 해군과 공군의 핵심 전력(戰力)은 일본 오키나와와 요코스카에 있다. 양국 합의에 따라 주일 미군을 일본 밖으로 배치하려면 일본의 사전 양해를 얻어야 한다. 이재명식 국방에선 한반도 유사시 지원군(支援軍)이 끊기게 된다. 교만만큼이나 위험한 국방 무지(無知)다.
위기의식 마비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일은 없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9월 19일 평양 5·1 경기장에서 김정은이 동원한 15만 군중들에게 ‘한반도에서 더 이상 전쟁은 없고 평화 시대가 열렸음을 엄숙히 선언한다’는 연설을 했다. 이 순간을 재임(在任) 중 가장 감격스러운 장면으로 꼽기도 했다. 그즈음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문 대통령을 끼워주지 말고 직접 소통하자는 친서를 보냈다. 그랬던 김의 눈에 문 대통령이 어떻게 보였을지는 물어보나 마나다.
안보는 목숨 줄이고 경제는 밥줄이다. 정치는 어떤 경우에도 이 두 줄을 놓아서는 안 된다. 경제는 어떤가. 외환 위기가 닥치기 직전 1995년 12월 실업자 숫자가 65만8000명이었다. 다음 해 1월 이 숫자가 93만4000명이 됐다. 하루 1만명꼴로 밥줄을 잃었다. 지금 경제는 고환율·고금리·고물가 모두가 고(高)자 행렬이다. 이래도 괜찮은 건가. 위기 탈출은 위기의식을 갖는 데서 출발한다. 역사에 위기의식 없이 위기를 극복한 전례(前例)가 없다.
조선일보 강천석 고문
10.08 野 “친일국방” 규정한 한미일 훈련... 文때도 동해서 수차례 실시
野 “친일 국방” 규정한 3國 훈련은 어떤 의미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7일 한·미·일 군사 훈련에 대해 “극단적 친일 행위”라고 비난한 것과 관련, 군사 전문가들은 “빠르게 증강된 북한의 핵, 미사일 전력을 억제하려면 한·미·일 협력은 군사 전략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고 있다”고 했다.

▲미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함 등이 지난달 30일 한·미·일 3국 연합 대잠수함 훈련에 참가해 동해상에서 기동 훈련을 하고 있다. /해군
지금까지 실시된 한·미·일 3국 연합 훈련은 수색 구조, 미사일 탐지·추적(경보), 대잠수함 등 크게 3개 분야다. 이 중 수색 구조 훈련은 조난당한 선박 수색 및 구조 등 인도주의적인 성격이 강해 국민 정서 등에 대한 부담감이 적어 2011년부터 실시되고 있다.
미사일 탐지·추적 훈련은 북한이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을 잇따라 발사하자 3국 모두 필요성에 공감해 2016년 6월 시작됐다. 우리나라도 동해상 이지스함을 통해 북한 미사일 발사 정보를 수집해왔다. 하지만 우리보다 이지스함 보유 숫자가 많은 미국(수십척), 일본(8척)과 역할을 나누면 우리 이지스함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미일도 우리 이지스함 정보를 통해 북한 쪽에 가까이 가지 않고도 북 미사일 초기 비행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이지스함은 최대 1000㎞ 떨어진 적 탄도미사일을 탐지·추적할 수 있다. 3국은 미사일 경보 훈련을 2016년 2회, 2017년 4회 등 모두 6차례 실시했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이후에도 거의 매년 실시됐지만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로 훈련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장소는 동해 등 한일 해역에서 실시한 경우가 많았다. 문 정부 때도 한미일 훈련이 수차례 실시된 것이다. 훈련은 주로 가상의 북한 미사일을 3국 이지스함이 추적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대잠 훈련은 3개 훈련 중 가장 늦은 2017년 4월 처음으로 실시됐다. 북한이 북극성-1형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시험 발사에 성공하자 동해상에서 SLBM 탑재 잠수함을 잡기 위해 실시됐다. 일본은 미국을 제외하곤 세계에서 가장 많은 P-3C 해상초계기(100대)를 보유하고 있는 등 세계 정상급 대잠 작전 능력을 갖고 있다. 미국도 동북아 지역 대잠 작전은 일본에 일정 부분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동해는 수심이 깊고 잠수함 탐지가 어려운 수중 환경을 갖고 있어 ‘잠수함 천국’으로 불리는 만큼 3국 협력과 훈련이 군사적으로 필수적이라고 한다.
3국 대잠 훈련은 2017년 4월에 이어 지난주 5년 만에 두 번째 훈련이 실시됐다. 미 태평양사령관 출신인 해리 해리스 전 주한 미 대사는 미 언론 인터뷰에서 “대잠수함전은 매우 복잡하고 진화하는 영역으로 특히 한미 혹은 한·미·일 연합과 함께하는 연합 작전은 더욱 중요하다”며 “역내의 어떤 상황에서도 해상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3국이 협력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했다.
한·미·일 3국 훈련은 한반도 유사시 대규모 미 증원(增援) 전력의 발진 기지인 7개 유엔사 후방 기지(주일 미군 기지)의 효율적 운용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7개 유엔사 후방 기지는 미 항모 레이건함 등이 정박하는 미 7함대 모항인 요코스카(해군 기지)를 비롯, 사세보(해군 기지), 캠프 자마(육군 기지), 요코다(공군 기지) 기지 등과 오키나와에 있는 가데나(공군 기지), 후텐마(해병대 기지), 화이트비치(해군 기지) 기지 등이다. 가데나 기지는 한반도에 종종 출동하는 F-22 스텔스기, RC-135 계열 정찰기 등이 배치돼 발진하는 곳이다. 미군 기지라고 하지만 일본의 협조가 없으면 유사시 원활한 증원이 이뤄지기 어렵다.
북한과 중국에 대응하는 전략 측면에서도 한미 양국 훈련보다 한·미·일 연합 훈련이 더 효과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북한 입장에선 한미보다 한·미·일이 연합 대응하는 것을 당연히 더 부담스럽게 생각할 것”이라며 “그만큼 억지력이 증대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일 훈련은 북한의 뒷배를 봐주는 중국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 북한이 도발 수위를 높일수록 한·미·일이 안보 협력과 훈련을 강화할 명분이 생기기 때문에 중국이 북한의 고강도 도발을 견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유용원 군사전문기자
10.08 어느 노병의 마지막 소원

▲지난 5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던 탈북 국군포로 고 이규일씨(가운데). /사단법인 물망초
북한 인권 단체 ‘물망초’ 관계자들은 찬 바람 부는 계절이 오면 걱정 근심이 더 앞선다. 평소 돌보고 있는 고령의 탈북 국군 포로 어르신들이 가을이나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뜨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유엔이 추정한 6·25전쟁 국군 포로 숫자는 약 7만명. 이들 중 1994년 고(故) 조창호 중위를 시작으로 2010년까지 81명이 탈북해 고향 땅을 밟았다. 현재는 14명만이 생존해있다.
북한에서 수십 년을 최하층민으로 살다 사선(死線)을 넘은 이들의 증언을 통해 “강제 억류 중인 국군 포로는 공화국에 한 명도 없다”는 북한의 궤변이 타파됐고, 비인도적 만행이 세상에 드러날 수 있었다. 국가는 한때 성대한 전역식을 열어 명예로운 여생을 약속했지만 거기까지였다. 보수 정부는 입으로만 호국과 보훈을 말했고, 진보 정부에선 ‘한반도 평화’가 중요하다는 이유로 없는 사람 취급을 해 우울한 말년을 보내야 했다.
지난 8월 8일 별세한 고(故) 이규일씨는 6·25가 터지자 열여덟 살에 자원 입대했다. 두 달 만에 중공군에게 붙잡혀 북한의 협동 농장에서 평생 중노동을 하다 2008년 탈북했다. 서울 동북 지역에 터를 잡았지만 집 근처 국군 포로 쉼터가 사라진 뒤엔 마음 붙일 곳이 없었고, 한때 사기 사건에도 연루돼 수천만원을 잃었다. 5월에 열린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참석이 생전에 누린 최고 호사(豪奢)였을 것이다.
반면 북송(北送)된 ‘비전향 장기수’들은 북한 땅에서 호사를 누렸다. “혁명적 지조를 끝까지 지켰다”고 칭송받았다. 이달 1일 조선중앙통신이 “90세 생일을 맞아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생일상을 받았다”고 보도한 ‘통일애국투사’ 김용수씨가 대표적이다. 2000년 북으로 돌아간 그는 재회한 배우자와 37년 만의 신혼여행도 다녀오고,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아 대학 교단에 섰다. 남쪽에 있을 때도 대접이 나쁘지 않았다. 좌파 단체와 일부 정치인이 이런 사람들을 ‘선생’이라 부르며 집안 살림부터 상사(喪事)까지 알뜰살뜰 챙겼기 때문이다.
3년 전 폐암으로 세상을 뜬 신모(89)씨는 남한에 정착한 손녀딸이 도서관 사서로 취직하자 ‘우리 손녀가 준 돈’이라며 후원금 10만원을 물망초에 기탁했다. 눈을 감기 한 달 전 떠난 제주도 여행에서는 구토로 사흘 내내 숙소에 머무르면서도 “고맙다”는 말만 반복했다고 한다. 혈족을 고사포로 잔인하게 쏴 죽이는 북에서도 하는 대우를 그동안 우리는 하지 못했다. 평생 광산에서 일하며 유독 가스를 마신 탓에 만성 기관지 질환을 앓고 있는 유영복(92)씨의 마지막 소원은 “북한에서 힘든 노동에 시달리다 비참하게 죽은 수많은 국군 포로 실상을 국민이 알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북한에 문제를 제기하고, 전쟁기념관에도 기록을 전시하는 게 이 영웅들에게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는 길일 것이다.
조선일보 김은중 기자
월간조선 10월 호
국가안보의 한 축 ‘기무사’의 해편과 계엄령 문건 내막
기무사 참모장, “쿠데타를 그런 식으로 합니까?”
⊙ ‘기무사 계엄 문건’, 청와대의 최초 판단은 “문제없음”(2018년 3월)
⊙ 문재인 정권, 국방부-국회-군인권센터 삼각 共助에 세월호·계엄령 빌미로 기무사 해체
⊙ 기무사 문건, 2017년 5월 10일(문 대통령 취임식 날) 오후 2시 정식 등재
⊙ 청와대가 2급 기밀 문서 공개하자 사흘 뒤 국방부는 서둘러 초유의 군사 기밀 事後 해제
⊙ 기무사 개혁 두고 국방부(송영무)-청와대(조국)는 同床異夢, 그 피해는 기무사가 다 떠안아
⊙ 송영무 장관과 진실 공방 벌인 기무사 민병삼 대령, “피눈물 흘리며 쫓겨난 이들 명예 회복시켜야”
⊙ 조현천 전 사령관 변호인, “곧 한국으로 와 실체 밝힐 것”
⊙ 기무사가 간첩 조작 기획? ‘민주주의국민행동’에 대한 실체도 밝혀야

▲군사안보지원사령부의 전신인 국군기무사령부.
2018년 8월 30일 군 보안·방첩 업무를 맡았던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가 해체됐다. 기무사의 전신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는 1977년 9월 1일 육군 특무부대(1950년 창설)·해군방첩부대(1953년)·공군 특수수사대(1954년)가 통합돼 창설됐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시해 당시 보안사는 정보력을 바탕으로 정국(政局)을 꿰뚫고 있었다.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은 계엄령이 선포되자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합수부장)을 맡아 상황을 주도했고 보안사는 신군부(新軍部)의 지휘통제소 역할을 하며 5공(共) 시대를 열었다.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90년 11월 4일에는 보안사가 민간인을 사찰했다는 폭로(윤석양 이병 사건)가 나왔다. 파장이 일자 보안사는 1991년 9월 1일 기무사로 개칭했다. 부대명은 바뀌었지만 기무사는 부대 역사가 1950년에 시작됐으며 부대 이념은 ‘자유대한민국 수호 및 자유민주주의체제로 통일 지원’이라고 밝혀왔다.
그러나 기무사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댓글 사건·세월호 유가족 사찰·계엄 문건 작성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해체돼야 했다. 2018년 8월 3일 당시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현재의 기무사를 해편(解編·해체 후 새로 편성)하여 과거와 역사적으로 단절된 ‘새로운 사령부’를 창설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기무사는 이후 2018년 9월 1일 군사안보지원사령부(안보지원사)로 창설됐고 초대 사령관에 남영신 특전사령관이 임명됐다.
기무사를 해체로 몰고 간 ‘계엄 문건’
기무사를 해체로 몰고 간 결정적 사건은 이른바 ‘계엄(령) 문건’ 폭로였다. 문건을 폭로한 측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당시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기각하면 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해 탱크·특전사 병력으로 촛불 집회에 참여한 시민을 무력 진압하고 방송과 국회를 장악하는 작전 실행 계획을 세웠다’고 주장했다.
당시 군(軍) 수뇌부와 기무사 출신 인사들은 해당 문건에 대해 “비상 상황에 대비해 검토한 문건”이라며 “전혀 문제 될 게 없다”고 밝혔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좌파 진영은 “탄핵 기각에 대비해 작성한 실제 작전 실행 계획”이라며 ‘내란 음모’ ‘친위 쿠데타’라고 주장했다.
서로 동떨어진 해석이 붙은 이 문건을 두고 청와대의 최초 판단(2018년 3월 중순경)은 ‘문제없음’이었다. 그러나 3개월 뒤인 7월 6일 시민단체 군인권센터(소장 임태훈)가 이 문건을 입수해 ‘촛불 진압 쿠데타 음모’라고 포장하자 청와대는 입장을 바꿨다. 2018년 7월을 기점으로 기무사는 해체라는 막다른 길로 내몰리게 됐다.
계엄 문건이 작성된 경위는 이렇다.
2017년 2월 17일 한민구 당시 국방부 장관은 조현천 기무사령관에게 계엄령과 관련한 내용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계엄 실행 작전 계획을 세운 것이 아니라 계엄령이 발동된다면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등을 담은 검토 보고서였다.
2월 18일 조현천 기무사령관은 기우진 기무사 5처장(당시 수사단장, 육군 준장)을 책임자로 지정해 계엄 문건 작성을 지시했다. 이를 위해 사령부에 ‘미래 방첩 업무 발전 방안 TF’(인원 11명)를 만들었다.
3월 2일 기우진 수사단장은 조 사령관에게 중간보고(2월 23일)에 이어 최종안을 보고했다.
3월 3일 조 사령관은 기무사가 작성한 문건을 한 장관에게 보고했다. 한 장관은 조 사령관에게 “문건을 작성하느라 고생했다, 사안을 종결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기우진 처장은 조 사령관에게 ‘(공을 들여 만들었으니) 추후 을지훈련에 참고하도록 존안(보존, 비밀 등록)하자’고 건의했고 조 사령관도 이에 동의했다.
한 장관이 기무사가 작성한 문건에 ‘사인(결재)’을 했다면 이 문건은 ‘계엄 실행 계획’이 된다. 하지만 한 장관은 보고만 받았을 뿐 추가 조치는 하지 않았다. 이는 계엄 문건이 단순 검토 보고서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
기무사, 文 대통령 취임식 날
‘계엄 문건’ 정식 등재

▲2018년 1월 25일 서울현충원에서 이석구 기무사령관과 장군단(5명)이 ‘엄정한 정치적 중립 준수 다짐’ 선포식을 가졌다. 사령관을 포함해 장군단은 투명 한 그릇에 담긴 물에 손을 씻고 하얀 장갑을 끼는 ‘세심(洗心) 의식’을 진행하며 환골탈태하겠다고 다짐했다. 당시 대다수 기무사 간부들은 이 행사에 부정적이었다. 기무사가 자기 부정을 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사진=조선DB
이후 3월 10일 헌재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이 인용됐다. 두 달 뒤 치러진 대선에선 문재인 당시 민주당 후보가 당선(5월 9일)됐다.
문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날(2017년 5월 10일) 오후 2시 기무사는 훗날 ‘내란 음모’라는 주홍글씨가 붙을 이 문건을 파기(삭제)하지 않고 온나라 시스템(정부가 관리하는 업무 처리 전산화 체계)에 훈련 비밀(2급)로 정식 등재했다. 계엄 문건이 2급 비밀로 지정된 이유는 계엄 문건 작성 시 참고하는 자료가 2급 비밀이기 때문이다.
같은 해 8월 29일 조현천 기무사령관의 후임으로 이석구 장군이 취임했다. 조 전 사령관은 그해 12월 미국으로 갔다. 도미(渡美)한 이유는 가족·친지 대부분이 그곳에 살기 때문이다. 부모님 묘도 미국 현지에 있다. 이렇게 문재인 정부와 기무사는 아무런 갈등 없이 2017년을 넘겼다.
하지만 2018년 3월 8일 시민단체인 군인권센터가 “국회에서 박 대통령 소추안이 가결(2016년 12월 9일)되자 당시 수도방위사령관이 ‘소요 사태 발생 시 무력 진압’을 논의했다”고 주장하며 ‘위수령’을 처음 언급했다.
군인권센터의 위수령 발언 당일 계엄 문건 작성에 관여한 소강원 참모장과 기우진 처장이 계엄 문건의 존재를 이석구 사령관에게 즉시 알렸다.
3월 16일 이석구 사령관은 계엄 문건(2급 비밀) 2부를 방첩처에서 제출받아 송영무 국방장관과 청와대에 보고했다. 이후 국방부는 약 4개월간 문건에 대해 문제 삼지 않았다.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도 이석구 사령관이 보고한 문건을 자체 검토했고 ‘문제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당시 민정수석비서관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었다. 기무사령관의 대통령 독대는 사라졌고 조국 수석이 대통령을 대신해 기무사로부터 군과 방산(防産) 분야 동향을 보고받았다.
송영무의 기무사 개혁안, 청와대가 반대
송영무 장관은 평소 기무사에 부정적이었다. 기무사가 동향 보고(파악)라는 명목으로 군인들을 감시하는 게 월권이며, 이로 인해 일선 부대 장병들이 위축된다고 생각했다. 이에 기무사의 역할과 기능을 축소해야 한다고 여겼다. 송 장관은 장관 청문회 당시 논란이 된 음주운전 전력과 방산업체 고액 자문료 등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를 기무사발(發)로 의심했다.
취재를 종합하면, 송 장관은 2018년 4월경 기무사와는 협의도 없이 국방부 차원에서 ‘기무사 개혁안’을 자체 작성해 이를 청와대에 보고했다.
전언에 따르면 송 장관 측이 만든 기무사 개혁안에는 ▲군 동향 보고 폐지 ▲병력 감축(4200명→2000명 선) ▲장성 감축[9명에서 2명(사령관·참모장)] ▲독립사령부 폐지 후 국방부 산하 본부 형태로 전환 등이 담겼다.
이에 대해 민정수석실은 ‘기무사의 기능과 역할을 급격하게 축소하는 것은 안 된다’고 판단해 송 장관이 건의한 개혁안을 반려했다.
대신 청와대는 국방부가 ‘기무사 개혁위원회(TF)’를 설치해 외형상 기무사 개혁에 대한 의견을 수렴할 수 있도록 했다. 국방부는 5월 25일 14인이 참여하는 ‘기무사 개혁위원회(위원장 장영달 전 의원) TF’를 구성했다. 민간에선 신경철 전 국방부 군구조개혁추진관,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당시 변호사), 한국국방연구원 안석기 연구위원, 황명수 전 101기무부대장, 군에서는 소강원 기무사 참모장, 이종해 102기무부대장, 박원호 육군훈련소장(당시 육군 인사사령부 인사운영처장), 박동선 해군 정보화기획참모부장, 강규식 전 공군 군수참모부장(당시 공군 정보화기획참모부장) 등이 참여했다(민군 각각 7인, 7월 8일 소강원 참모장 해촉 후 13인).
한 TF 위원은 “국방부에서 주관하다 보니 기무사의 역할 축소, 특히 현역 군인에 대한 동향 파악을 줄이라는 요구가 많았다”고 했다. 송 장관의 입장을 대변하는 위원들은 “동향 파악은 인사 분야에서 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기무사 측 TF 인사는 “인사에서도 하고 기무에서도 하자. 교차 검증하면 더 좋지 않으냐”고 했다.
최강욱 의원, 기무사 기능 축소에 가장 적극적
민간에서는 최강욱 의원이, 군에서는 박원호 육군훈련소장이 기무사의 기능 축소에 가장 적극적이었다.박원호 육군훈련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했으나 육군훈련소 측은 “안보지원사에 물어보라”고만 답했다.
송 장관의 권유로 TF에 참여한 D씨는 “당초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는 최강욱 의원을 TF 위원장으로 임명하려고 했으나 장영달 전 의원이 위원장을 맡게 됐다”며 “최 의원은 기무사의 방산 분야 수사권 폐지까지 주장하며 기무사를 크게 한 번 작살 내려고 한 것 같다”고 밝혔다. 최 의원은 기무사 TF 위원을 지낸 후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임명됐다.
당시 TF에서는 기무사의 군 동향 보고를 두고 의견이 엇갈렸다. TF 활동 초기에는 기무사의 동향 파악을 폐지하려고 했지만 일선 대대장과 대령급 이상부터는 동향 파악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 의견이 모였다.
TF에 참여한 한 인사는 “장영달 위원장과 공군에서 온 강규식 장군이 가장 객관적이었다”며 일화를 들려줬다.
“6월에 TF 회의를 마치고 국방컨벤션(용산구)에서 만찬이 열렸어요. 송영무 장관이 와서는 ‘TF 위원들 고생이 많다’며 ‘장 위원장님 한 말씀 하시라’고 했죠. 장 위원장이 덕담 차원에서 ‘내가 TF에 오기 전에는 과거 기무사, 국정원에 대한 안 좋은 감정 때문에 기무사 인원을 대폭 감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에서 평화 통일 정책을 추진하려면 기무사의 역기능은 없애고 순기능은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송영무 장관의 표정이 확 바뀌면서 ‘아니 장 위원장님, 소강원 참모장한테 회유돼버린 거 아니냐’고 한 거예요. 그러자 장 위원장이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느냐’고 했죠. 분위기가 싸늘해졌고 안 좋게 끝났어요.”
장영달 전 의원은 전북 남원, 소강원 참모장은 전북 정읍이 고향이다. 기무사의 마지막 참모장인 소강원 장군은 국방부가 주도하는 기무사 개혁안에 비판적이었다. 이에 송 장관은 자신이 생각했던 대로 TF가 운영되지 않아 불만이 많았다.
기무사 내 비주류이자 비육사, 호남 출신인 소 참모장(3사 21기)이 앞장서 송 장관이 추진하는 기무사 개혁안에 대해 개악(改惡)이라고 지적했다.
송영무 장관의 권유로 TF에 참여한 D씨는 “소강원 참모장은 정보맨답지 않게 기무사에 다소 불리한 내용까지 수용해가며 합리적인 자세로 수용할 것은 수용하며 TF에 참여했다”고 했다.
기무사의 운명이 결정된 2018년 7월

▲왼쪽부터 이재수, 조현천, 이석구 전 기무사령관. 사진=조선DB
그러던 중 2018년 7월 2일 국방부는 ‘군 사이버사령부 댓글 사건 재조사 TF(댓글 조사 TF, TF장 이수동 공군 대령, 2017년 9월 출범)’, 일명 댓글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를 알리며 세월호와 관련된 내용도 파악했다고 공개했다. 기무사의 세월호 유가족 사찰을 암시하는 내용을 밝힌 것은 예정에 없던 ‘별건’ 발표였다.
당시 검찰은 댓글 조사 TF 활동을 바탕으로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이 댓글 사건에 개입했다며 민간인 신분인 김 전 실장에게 군형법을 적용시켜 구속했다.
7월 4일 송영무 장관은 “기무사는 세월호 사고 때 유족 등 민간인을 사찰했다. 여론 조작을 시도한 정황이 확인됐다. 기무사는 군의 명예를 대단히 실추시켰다”고 했다.
다음 날(5일)에는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이 JTBC에 출연해 계엄령과 관련한 내용을 처음 공개했다. 이어 6일에는 군인권센터가 기자회견을 열어 “(기무사 계엄령 문건을 통해) 촛불 무력 진압 계획이 사실로 드러났다”며 “명백한 친위 쿠데타 계획이며 관련자는 모두 형법상 내란음모죄를 범한 것으로 판단된다. 촛불 집회 때 탱크·장갑차·특전사를 동원해 무장 진압 계획을 세웠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문건 작성자는 현 기무사 참모장이자 기무사 개혁 TF 위원인 소강원 소장”이라며 “계엄령 주무부서는 합참이며 기무사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므로 명백한 월권”이라고 주장했다. 기무사 개혁에 걸림돌이 된 소강원 참모장을 노린 폭로였다.
소 참모장은 2016년 4월 세월호 사고 당시 광주·전남 지역을 관할하는 610기무부대장(당시 대령)이었다. 2017년 2월 계엄령 문건 작성 때는 사령부에서 근무했다.
군인권센터의 기자회견 이튿날(8일) 소 참모장은 기무사 개혁 TF 위원에서 사퇴했다.
계엄령 문건 공개 닷새째인 9일 오전 국방부에선 장관 주재 실국장 간담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송 장관은 “기무사가 위수령·계엄령을 검토한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법리 검토 결과 최악의 사태에 대비한 계획은 문제 될 것이 없다” “나도 마찬가지 생각이다. 다만 기무사의 문건 검토 내용이 직권 남용에 해당하는지 검토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2급 비밀이 군인권센터로 전달되는 과정
송 장관이 언급한 ‘법리 검토’는 무엇일까. 일부 언론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에서 송 장관이 당시 최재형 감사원장에게 기무사 문건과 관련해 법리 검토를 부탁했고 이에 최 원장이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취지로 답했다”고 보도했다.
송 장관과 최 원장이 만나 의논한 것은 사실이지만 시점을 확인해야 한다. 동계올림픽 폐막식은 2월 25일에 열렸고 최 원장과 송 장관은 그해 3월 중순에 만났기 때문이다. 여기에 국방부가 계엄 문건을 기무사에서 보고받은 시점은 3월 16일이다.
송 장관의 ‘(감사원) 법리 검토’ 발언이 논란이 되자 감사원은 7월 15일 “감사원은 국방부로부터 기무사의 문건과 관련하여 법률 검토를 의뢰받거나 이에 대한 검토를 실시한 적이 없다”면서도 “다만 감사원장이 2018년 3월 중순경 국방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국방부 장관이 군이 탄핵 심판 무렵 치안 유지를 위해 군병력을 동원하는 것에 대해 검토한 서류가 있다며 이에 대한 의견을 물어와 일반론 수준의 답변을 한 적은 있다”고 했다.
감사원의 공식 입장을 살펴보면 송 장관이 계엄 문건을 이석구 기무사령관에게 보고받고도 4개월가량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이유, 또 문건을 즉시 청와대에 알리지 않은 이유(4월 말 보고 주장)는 기무사 문건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기무사를 해체로 몰고 간 2급 비밀(계엄 문건)을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실과 군인권센터는 어떤 경위로 입수했을까. 취재를 종합하면 당시 국방부 강화수 장관정책보좌관이 이철희 의원실에 계엄 문건을 전달했고 이것이 다시 군인권센터로 흘러간 것으로 보인다. 이철희 의원실을 거쳐 군인권센터로 갔는지, 각각 따로 제공했는지는 확인이 필요하다.
이철희 전 의원은 지난 9월 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계엄 문건과 관련해 “국회의원은 자료를 합법적으로 요구할 수 있다. 국회 국방위원으로서 법에 정해진 대로 자료를 합법적으로 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 송영무 장관에게 받은 계엄 문건을 시민단체에 전달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런 주장은 처음 듣는데요. 금시초문이네요.”
― 기무사 관계자들은 의원님이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에게 계엄 문건을 줬다고 증언합니다.
“그걸 제가 왜 줍니까.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 강화수 보좌관을 통해 계엄 문건을 받으신 사실은 없으십니까.
“저는 자료 요구를 통해 (합법적으로) 받은 겁니다.”
― 평소 기무사에 장군 인사(人事)와 관련한 자료를 요구했는데 기무사가 이를 거절하자 좋지 않은 감정을 갖게 됐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건 그 사람들한테 물어보세요. 저한테 물어보지는 마시고. 저는 의정 활동을 통해 법에 정해진 대로 자료를 요구하고 받은 겁니다.”
계엄령 문건이 공개되자 당시 자유한국당 백승주 의원(전 국방부 차관)은 국방부 기획조정실에 유출 경위를 물었고 관련 문건을 자신에게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당시 장관 주재 간담회(9일)에 참석한 민병삼(대령) 100기무부대장은 지난 9월 13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당시 백승주 의원실이 기무사 문건 제출을 요구하자 장관은 ‘김정섭 기조실장이 (백 의원에게) 절차에 따라 강화수 정책보좌관을 통해 이철희 의원실에 제공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전하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것이 계엄 문건 유출의 시작이다.
강화수 정책보좌관(현재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민주당 의원실 보좌진 출신이다. 지난 총선과 지방선거 당시 전남 여수에서 국회의원·시장 예비 후보로 출마했다. 당시 송 전 장관이 강 예비 후보의 후원회장을 맡았다.
문건 유출 경위와 관련해 지난 9월 19일 강 전 정책보좌관은 기자에게 연락해 “공식적인 보고 계통 외에는 누구에게도 (계엄) 문건을 전한 바가 결코 없다”고 밝혔다. 이어 “만일 이철희 전 의원이나 군인권센터가 나를 통해 계엄 문건을 입수했다면, 이미 7월 5일 이전에 폭로됐을 것이기에 이 전 의원도 국방부에 ‘계엄 문건을 제출하라’고 강하게 요구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화수 부원장은 “공식적인 자료 제출 시점 이전에 (이철희 의원이 계엄) 문건의 존재를 알고 있어서 그 당시 의아했었다”며 “당연히 국방위 간사이니 자료 요구를 통해서 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또 “문건이 언제 전달 됐는지, 문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달한 이는 누구인지는 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기무사 관계자, ‘계엄 문건 문제없다’는 靑 녹취록 확보
군인권센터가 문건을 폭로한 그날 밤(6일)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기무사 수뇌부에 전화를 했다. 기무사와 업무 협조를 해온 민정수석실 비서관(당시 선임행정관, 민주당 조직국장 출신) L씨는 ‘청와대(저희)도 그 문건을 3월에 보고받고 검토한 끝에 문제없다고 판단했다. 송 장관이 왜 지금 터뜨려 난리를 치는지 모르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기무사에서 누가 보고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기무사 관계자는 이 통화 내용을 녹음했다. 청와대발 전화는 업무 실수를 막고자 녹음하는 원칙을 세워뒀기 때문이다.
계엄령 문건이 폭로된 배경에는 송영무-이철희 두 사람 간에 이해관계가 일치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계엄 문건 폭로를 앞두고 2018년 5~6월경 송 장관과 이 의원의 접촉 빈도도 늘어났다.
인도를 국빈 방문 중이었던 문 대통령은 7월 10일 ‘기무사 촛불 집회 계엄령 검토’와 관련해 장관의 통제를 배제한 국방부 특별수사단 설치를 지시한다. 군검찰은 국방장관의 지시를 받는 것이 원칙임에도 수사 방향이 정해진 채 하명(下命) 수사가 시작됐다.
당시 민정수석실은 송 장관이 기무사 문건에 문제가 있다는 판단하에 의도를 갖고 외부로 전달해 공개(7월 5~6일)되도록 했을 텐데 정작 사나흘이 지난 뒤 국방부 간담회(9일)에서는 계엄 문건에 대해 ‘문제없다’는 식으로 말해 상황 파악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조국 수석이 국방부의 돌출 행동을 막고 시급히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인도에 간 대통령에게 긴급하게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풀이된다.
당시 국회 국방위 소속 P의원은 “송 장관의 부주의가 일을 키웠다. 이 일로 조국 수석은 국정상황실에서 조사를 받았다”고 말했다.
송영무, 국방부 간부들에게 사실확인서 요구
7월 12일 KBS는 “‘지난 9일 송영무 장관이 간담회에서 기무사 위수령 검토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고 발언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송 장관 측은 ‘사실확인서’를 만들어 간담회에서 위수령과 관련된 발언을 한 사실이 없음을 증명하려고 했다. 이는 언론중재위원회에 당시 보도를 제소하기 위한 증거 수집이었다.
확인자 서명란에는 ▲김정섭 국방부 기조실장 ▲여석주 정책실장 ▲김윤태 개혁실장 ▲정해일 군사보좌관 ▲강화수 정책보좌관 ▲민병삼 기무부대장 등 11명만 명기돼 있었다.
당시 간담회에는 ▲서주석 국방차관 ▲이종섭 합참차장(현 국방부 장관) ▲김유근 주한미군기지 이전사업단장(전 청와대 국가안보실 차장)도 참석했지만 사실확인서 서명란에는 이 세 명이 빠졌다. 이를 두고 ‘송 장관이 통제할 수 있는 이들의 이름만 넣었다’는 말이 나왔다.
사실확인서에는 민 대령을 뺀 10명이 ‘KBS 기사 내용과 관련한 장관의 발언(기무사의 위수령 검토 문제없음)을 들은 바 없다’고 서명했다.
앞서 10명이 서명을 했고 마지막 순서로 민 대령에게 사실확인서가 전달됐다. 하지만 그는 기자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어 당시 서명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당시 장관이 실시한 사실확인서 서명이 위증 교사에 해당한다”며 “앞으로 전말을 밝혀야 한다”고 했다.
7월 16일 기무사 계엄 문건 규명 특별수사단이 출범하고 이틀 뒤 18일에는 국방부 전비태세검열단이 기무사 계엄 문건에 등장하는 부대를 돌며 관련 문건 수집에 나섰다.
20일에는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이 2급 기밀인 계엄 문건(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8페이지, 대비계획 세부자료 67페이지)을 공개했다. 기밀 해제도 안 된 2급 기밀을 들고나와 언론(보도검열단)·국회 장악, 기무사의 국정원 장악 등과 같은 자극적인 내용을 공개했다.
문건의 참고 사례(대비계획 세부자료)는 당초 21개였으나 ‘국회 통제’ 등 독소 조항 9개를 빼 12개로 줄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21개가 들어간 참고 사례 최초본(67페이지)을 정본인 양 공개해 음모론을 부추겼다.
당시 ‘기무사가 계엄령 선포를 단순히 검토에 그치지 않고 실제 실행을 염두에 뒀다는 점이 드러났다고 보느냐’는 청와대 기자단 질문에 김 대변인은 “그건 여러분이 판단해달라”라고 답했다. 또 “사실관계에 회색지대 같은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2급 군사 비밀, 事後 소급 해제
▲송영무 장관과 계엄 문건을 놓고 진실 공방을 벌였던 민병삼 대령(전 100기무부대장).
청와대에서 2급 비밀을 공개하자 국방부는 사흘 뒤(23일) 서주석 차관 주재로 보안심사위원회를 열어 ‘대비계획 세부자료’를 군사상 기밀로서 요건을 갖추지 않은 문서로 의결했다. 이에 대해 백승주 전 의원은 “군사기밀을 사후 소급 적용해 해제하는 황당한 사건이었다”고 했다. 기무사 해편 과정에 대해 문제 삼는 이들은 당시 계엄 문건 기밀 해제 절차가 적법했는지 밝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음 날인 7월 24일 국회 국방위원회 회의에서 민병삼 대령과 송영무 장관 사이에 진실 공방이 벌어졌다.
민 대령은 사달이 벌어질 것을 알고 이미 하루 전에 전역지원서를 제출했다. 국방위 위원이 9일 간담회에 대해 묻자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저는 36년째 군복을 입고 있는 군인입니다. 군인으로서 명예를 걸고, 한 인간으로서 양심을 걸고 답변드리겠다”고 말했다.
“완벽한 거짓말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대장까지 마치고 장관 하고 있는 사람이 거짓말하겠습니까.”
여기에 장관 군사보좌관인 정해일 준장도 민 대령의 주장에 반박했다.
하극상, 항명이 벌어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민주당을 비롯한 좌파 진영은 ‘일개 대령이 현직 장관을 상대로 대든다’며 기무사 개혁이 필요한 이유라고 주장했다.
그다음 날(25일) 국방부 특수단은 기무사령부를 압수수색한다. 26일 문 대통령은 “기무사 개혁의 필요성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동부지검에서는 ‘군·검찰 계엄령 문건 관련 의혹 합동수사단’이 공식 출범했다.
다음 날인 27일에는 국회 정보위(비공개 진행)가 열렸다. 참석자들은 “당시 이석구 사령관이 ‘계엄 문건은 실제 실행에 옮길 작전 계획(작계)’이라고 주장했다”고 증언했다. 당시 배석한 기무사 수뇌부는 당황했다고 한다. 기무사 관계자의 말이다.
“작계를 실행에 옮기려면 실행 계획을 담은 문건이 해당 부대에 하달돼야 합니다. 병력을 어떻게 투입할지 각 부대 지휘관과 계획을 세워야 하죠. 기무사가 ‘나오라’고 하면 그 부대가 총 들고 뛰어나오는 게 아닙니다. 기무사는 그럴 권한도 없어요. 이석구 사령관도 사단장을 해서 ‘작계’가 어떻게 실행되는지 잘 알 텐데…. 자기 혼자 살아보겠다고 부하를 사지로 몰아넣은 거죠.”
기무사 참모장, “쿠데타를 그런 식으로 합니까?”
▲소강원 전 기무사 참모장. 그는 ‘국군기무사령부 마지막 참모장’이다. 소강원 장군은 문재인 정부에서 소장으로 진급해 2018년 1월부터 기무사 참모장을 지냈다.
정보위에 참석한 이들의 전언에 따르면, 당시 민주당 전해철 의원이 소강원 참모장을 향해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 아느냐”고 했고 이에 소 참모장은 이렇게 반박했다고 한다.
“쿠데타를 그런 식으로 합니까? 쿠데타 계획이 실패했으면 문건을 파기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앞서 밝힌 대로 계엄 문건 작성에 관여한 소 참모장과 기우진 처장은 문건을 파기하기는커녕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는 날(2017년 5월 10일) 오후 2시 온나라 시스템(전산)에 계엄 문건을 정식 등재했다.
기무사 개혁 TF 위원 D는 “계엄 문건이 쿠데타 모의였다면 당연히 관련 문건을 파기했을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계엄 업무는 합동참모본부(합참) 계엄과(과장 대령)에서 담당하는데 왜 기무사가 계엄 문건을 작성했느냐’며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지적한다. 기무사 개혁위원이었던 D씨는 이렇게 말했다.
“합참 계엄과는 말이 계엄과지 계엄을 검토하거나 계획을 수립할 만한 역량이 안 돼요. 거긴 장포대(장군 진급 포기한 대령)가 가는 자리예요.
핵심은 한 장관이 조 사령관이 보고한 계엄 검토 문건에 ‘결재’를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보고만 받고는 돌려보냈잖아요. 그걸로 끝입니다. 한 장관이 만일 기무사 문건을 바탕으로 어떤 조치를 취했다면 문재인 정부가 가만히 놔뒀겠습니까.”
기무사 출신 한 예비역도 “군령(軍令)을 행사하는 합참이 계엄 문건을 작성했다면 그거야말로 계엄 실행 계획이 된다”고 주장했다.
일부에서는 계엄 문건에서 군 최고 서열자인 합참의장 대신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지정한 대목을 문제 삼는다. 당시 이순진 합참의장이 3사 출신이기에 육사 출신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지정하도록 했다는 주장이다.
D씨는 “5공 시절 만든 계엄 자료도 참고하다 보니 계엄사령관 직제에 육군총장을 갖다 붙인 것 같다”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군 관계자 H씨는 “당시 북핵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이라 합참의장은 대북 군사 대비 태세에 집중하기 위해 육군총장을 검토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기무사 개혁 TF는 당초 2018년 7월 중순 TF 결과 보고를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세월호 사찰 의혹과 계엄령 문건이 터지자 결과 보고를 8월로 미뤘다.
기무사 개혁 TF 위원장을 지낸 장영달 전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기무사의 계엄 문건은 쿠데타 모의이며 조현천 전 사령관이 잡히지 않아 진상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기무사 개혁 두고 청와대-국방부는 서로 다른 생각
▲2018년 마린온 헬기 사고 조문 당시 유족들이 송영무 장관(오른쪽)에게 항의하자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왼쪽)이 유족을 진정시켰다. 임 소장은 이날 송영무 장관을 사실상 수행했다. 사진=TV조선
8월 2일 장영달 TF 위원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국군기무사령부 존치 또는 국방부 본부화 등 3개 안을 국방부에 보고했다”며 “기무사 요원은 30% 이상을 감축, 조직 개편에서 특별히 전국 시·도에 배치된 소위 ‘6○○단위’ 기무부대는 전면 폐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수 TF 위원은 국방부 산하 본부화에 찬성했다. 이는 송영무 장관이 추진하는 개혁 방안이었다.
다음 날인 3일 청와대는 “문 대통령은 기무사 TF 개혁안과 국방부의 기무사 개혁안을 모두 검토하고 현재의 기무사를 근본적으로 다시 재편해 과거와 역사적으로 단절된 새로운 사령부를 창설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다음 날인 4일 이석구 사령관은 경질되고 같은 날 남영신 특전사령관이 후임으로 임명됐다. 6일에는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창설준비단이 발족했다.
9일 계엄 문건 작성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소강원 참모장과 기우진 처장은 각각 1군사령부 부사령관, 전방 군단 부군단장으로 전보 조치됐다. 이른바 원대 복귀였다.
취재를 종합하면 당시 청와대는 ‘기무사 개혁’의 필요성을 표면적으로 강조했지만 송 장관이 생각했던 기무사 개혁(국방부 본부화)안에는 반대했다. 송 장관은 장관의 참모 조직(국방보안·방첩본부)으로 기무사를 개혁하고 싶어 했다. 반면 청와대는 TF로 기무사를 길들인 후 현행 사령부 형태를 유지하되 민정수석실이 직접 통제하길 원했다.
기무사 개혁 TF에 참여한 D씨는 “장영달 위원장이 청와대 의견을 대변하다시피 했다”며 “청와대는 기무사를 직접 통제하고 싶어 했다. 송영무 장관이 순진했다”고 했다.
앞서 “장 위원장이 ‘기무사의 역기능은 폐지하되 기존의 임무를 유지해야 한다’고 밝히자 송 장관이 못마땅해했다”는 증언은 이를 뒷받침한다.
송 장관은 기무사 개혁 TF를 운영할 당시 주변에 “후배 군인들이 더는 기무사 눈치를 보며 생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고 한다.
한 기무사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했다. 기무사의 역할과 기능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기무사가 억울한 점은 계엄 문건이 터지자 기무사를 악(惡)의 축으로 몰고 간 것이다.”
청와대와 국방부 모두 기무사 개혁을 강조했지만 지향점은 차이가 있었다. 그럼에도 기무사는 개혁 TF의 권고를 받아들여 민간 사찰 창구로 의심받는 600 단위 부대를 해체하고 군 동향 보고를 축소했다.
이 과정에서 4200여 명 수준이었던 병력(2017년 7월)은 2800여 명 수준(2019년 9월)으로 줄었다.
여권의 계엄 문건 공세가 계속되자 야당인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백승주 의원실로 제보가 들어왔다. 백 의원은 제보를 바탕으로 국방부에 ‘2018년 5월 1일부터 20일까지 기무사가 온나라 시스템에 등재한 문건 일체’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당시 국방부 담당자가 갖고 온 자료에는 기무사가 5월 10일자에 등록한 문건(계엄 문건)은 누락됐다. 백 의원이 이를 지적하자 실무자들은 당황했다고 한다. 이후 계엄 문건을 두고 민주당의 발언 수위는 점차 줄어들었다.
287명 조사 90여 곳 압수수색… 쿠데타 증거는 못 찾아
2018년 11월 6일 계엄 문건을 수사한 민군합수단은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요지는 조현천 전 사령관이 미국에 있어 계엄의 실체를 밝힐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 등에 대해 참고인 중지,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 기소 중지 처분을 내렸다.
민군합수단은 3개월간 참고인 287명을 조사하고 90여 곳을 압수수색했으나 쿠데타 모의 혐의와 관련된 증거는 찾지 못했다.
대신 민군합수단은 기무사가 2017년 2월 당시 계엄 문건 작성을 숨길 목적으로 위장 TF를 만들었고 이 과정에서 허위공문서작성, 허위작성공문서행사 등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당시 TF는 특근매식비 예산 결재를 올릴 때 〈미래 방첩수사 업무체계 발전방안 연구계획〉이라는 제목으로 문서를 올렸는데 검찰은 이를 계엄 문건 작성을 위한 TF임을 숨기기 위해 허위로 작성한 공문서로 봤다.
이에 대해 TF에 관여했던 기무사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검찰이 주장한 허위공문서는 단순히 식비를 타려고 만든 겁니다. 2주간 11명이 125만원을 탔습니다. 왜 그럼 〈미래 방첩수사 업무체계 발전방안 연구계획〉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느냐, 국방부 보안 업무 시행 규칙에 따르면, 비밀 생산 시 제목으로 비밀이 노출될 경우 가제목을 쓸 수 있다고 했습니다. 가제목을 쓰는 게 관행이었죠. 검찰은 이를 쿠데타 모의를 숨기기 위해 가제목을 썼다는 식으로 몰아갔습니다.”
2019년 12월 24일 군사법원은 허위공문서작성 등의 혐의로 기소된 소강원 참모장, 기우진 처장, 전모 중령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계엄 문건 작성에 대한 합법, 불법 판단은 이뤄지지 않았다.
계엄 문건과는 별개로 특별수사단은 ‘세월호 유가족 사찰’도 문제 삼았다.
세월호 사고 당시 군은 일평균3000명을 현장에 투입했다. 이에 기무요원도 파견해야 했다. 특별수사단은 기무사령부와 진도 세월호 사고 현장을 잇는 ‘610기무부대(당시 부대장 소강원 대령)’와 단원고가 있는 경기 안산의 ‘310기무부대(당시 부대장 김병철 대령)’를 타깃으로 했다.
소강원 참모장과 김병철 전 기무사 3처장은 각각 2018년 9월 5일, 8일 구속됐다. 사유는 세월호 유가족을 사찰했다는 혐의(직권남용 및 권리행사 방해)였다.
이재수 사령관 遺書, “기무사와 기무부대원들 최선 다해”
▲기무사의 상징인 호랑이와 안보지원사의 상징인 솔개. 안보사는 솔개처럼 환골탈태하고자 솔개를 부대 상징으로 삼게 됐다고 밝혔다. 안보지원사령부는 우화를 인용해 솔개는 수명이 40년일 때 환골탈태를 하면 70년을 살 수 있다고 적었다. 하지만 솔개의 생물학적 수명은 약 20년이다. 안보사는 부대 역사관도 폐쇄했다.
부대 상징이 호랑이에서 솔개로 바뀐 것을 본 한 기무사 장군은 “국가와 군을 위해 대공 전선에서 수십 년간 바친 노력이 부정당한 것 같아 좌절했다”며 “모욕감을 느꼈다”고 했다. 사진=군사안보지원사령부
민간 검찰에선 세월호 사고 당시 기무사령관이었던 이재수 전 사령관을 겨냥했다. 이 전 사령관은 조사를 앞두고 당시 사령부에 근무했던 이들에게 ‘사령관이 모르는 불법 행위(민간인 사찰 등)가 있는지’를 물었다. 이어 12월 7일에는 “세월호 사고 시 기무사와 기무부대원들은 정말 헌신적으로 최선을 다했다”며 “5년이 다 돼가는 지금 그때 일을 사찰로 단죄한다니 정말 안타깝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김병철 전 차장은 1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전역 후에는 민간 법원에서 2심과 대법원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김 장군은 사령부 지시를 따르는 예하 부대장이었다. 그에게 지시를 내린 윗선은 재판이 끝나지도 않은 상태였다. 대검은 세월호 유가족이 검찰에 세월호 관련 기무사 간부를 수사 의뢰한 내용에 대해서도 모두 무혐의 처리했다. 이러한 내용은 배제된 채 김병철 전 처장은 불리한 재판을 받아야 했다.
이재수 전 사령관의 극단적 선택으로 사령부 차원에서 어떠한 지시가 내려갔는지 입증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말단 부대장이 가장 먼저 유죄 확정판결을 받아야 했다.
소강원 전 참모장도 비슷한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군검찰은 소 참모장에 대한 공소 유지 논리가 깨질 때마다 공소장을 변경했다. 민간 법원이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공소장 변경만 세 차례가 이뤄졌다. 소강원 참모장은 2019년 12월 24일 1심에서 징역 1년 실형을 선고받았다.
군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기무사는 사령부, 사령관의 지시가 절대적입니다. 중간 경로로 형식상 610기무부대, 310기무부대가 껴 있지만 사실상 사령부가 내린 지시를 중간에서 수정하거나 의견을 첨부할 수 없어요. 사령부의 지시가 내려오면 610이나 310은 이를 현장 기무 요원에게 전달하고 또 현장 요원이 수집한 내용을 610이나 310에 보고하면 이를 다시 사령부에 전달할 뿐입니다.”
김병철 전 처장은 “당시 예하 310부대장으로서 수시로 유가족 접촉 및 불법적인 활동을 일절 금지시킴은 물론, 부대원 1명이 현장 지원 활동을 하며 정부장례지원단장의 승인을 받고 파견된 국방부 및 군 관계자를 통해 자료를 제공받는 등 사령부 지시에 따라 합법적으로 업무를 수행하였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군인권센터가 조용해진 이유
지난 9월 14일 국민의힘 국가안보문란실태조사 TF[위원장 한기호 의원, 위원 신원식‧서범수‧태영호‧지성호 의원, 민간 위원 구홍모(전 육군 참모차장), 김황록(전 국방정보본부장), 소강원, 임천영(전 국방부 법무관리관), 김흥광(NK지식인연대 대표), 이유동(국민의힘 부대변인)]는 기무사 계엄 문건을 왜곡한 혐의로 송영무 전 국방장관, 이석구 전 기무사령 관(현 UAE 대사),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을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임태훈 소장은 2019년 10월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기무사 계엄령 문건을 입수하고도 수사에 적극 나서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청와대 민정수석실 L 비서관과 통화한 기무사 관계자는 청와대에 “군인권센터가 계엄령과 관련해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것을 방치할 경우 ‘계엄령에 대해 청와대가 문제없다’고 밝힌 녹취록을 공개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고, 이후 임태훈 소장이 조용해졌다고 한다.
기무사 출신 인사들은 “이석구 당시 사령관이 계엄 문건을 2부 제출받아 1부는 국방부에 제출하고 1부는 행방을 안 밝히고 있다”며 “나머지 1부의 행방도 밝혀야 한다”고 했다. 당시 기무사 수뇌부 인사의 증언이다.
“2018년 3월 16일 이 사령관은 송 장관에게 보고할 때 계엄 문건 2부를 기무사 방첩처에서 들고 갔다. 장관에게 1부를 주고 나머지 1부는 문건 생산처인 방첩처에 반납해야 한다. 2급 비밀 문건이라 반납 안 하면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이다. 그러나 이 사령관은 이 보고서를 반납하지 않았다. 문건 생산부서에서 ‘문건을 반환해달라’고 하자 ‘집무실에서 파기했다’고 했다. 사령관이라도 비밀문건은 임의로 파기하면 안 된다. 정황상 이 사령관은 그 보고서를 청와대에 넘겼을 가능성이 높다.”
이석구 전 사령관은 검찰 조사에서 소강원 전 참모장과 기우진 전 처장의 ‘계엄 문건 사령관 보고(2018년 3월 8일)’ ‘대통령 취임식 날 계엄 문건 비밀 등재(2017년 5월 10일)’에 대해 아래와 같은 취지로 말했다고 전해진다.
“감추고 있다가 적발되면 처벌받을까 봐 두려워 뒤늦게 사령관에게 보고한 후 전산 등록도 했다.”
이석구 전 사령관도 계엄 문건 때문에 자신이 피해를 입을까 봐 한 부는 송 장관에게, 한 부는 청와대에 전달하지 않았을까.
기무사 수뇌부 인사의 주장이다.
“청와대는 계엄령 문건에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으나 넉 달 뒤 문건이 공개되고 쿠데타 음모론으로 비화하자 입장을 바꿔 기무사를 해편했다. 이런 사정이 드러나면 문재인 청와대가 곤란해지니까 이석구 사령관이 ‘내가 파기했다’며 보고서를 넘긴 사실을 감추고 있다.”
기무사 예비역들은 이석구 전 사령관에 대해 “배가 난파하는 데 선장부터 살겠다고 가장 먼저 배를 포기했다”고 비판했다.
기무사에서 20년 이상 근무한 한 예비역 대령은 “기무사는 좌파 대통령, 우파 대통령 가려서 충성하는 조직이 아니다”고 했다.
민주당과 좌파 진영에선 ‘친위 쿠데타 음모’라고 주장하며 ‘기각될 경우 계엄령을 실행할 것’처럼 묘사했다.
하지만 기무사 계엄 문건은 탄핵 인용과 기각 모든 경우를 대비했다.
〈현 상황 평가
정치권이 가세한 촛불·태극기 집회 등 진보(종북)-보수 세력 간 대립 지속
촛불 집회: 18차 연인원 1540만여 명, ‘기각되면 혁명’ 주장
태극기 집회: 15차 연인원 1280만여 명, ‘인용되면 내란’ 주장.
…
일부 보수 진영에서 계엄 필요성 주장하나 국민 대다수가 과거 계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어 계엄 시행 시 신중한 판단 필요….〉
원대 복귀한 기무사 출신은 좌절·무력감
기무사 해편 과정에서 간부는 756명이 줄어들었다. 야전 부대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기무사로 전입 온 우수 자원이었지만 적폐 청산 몰이에 휘말려 원대 복귀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써야 했다. 극단적 선택을 한 간부도 있다. 원대 복귀한 이들은 하나같이 좌절감, 무력감에 빠졌다고 했다.
국방부는 민병삼 대령을 징계하기 위해 다섯 차례 시도했지만 처벌할 조항을 찾지 못해 징계에 실패했다.
민병삼 예비역 대령은 기자에게 아래와 같은 문자를 보냈다.
“기무사 계엄령 문건을 마치 군사 쿠데타 모의로 몰아가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기무사를 해편한 것은 ‘무술사화(戊戌士禍)’이다. 기무사에서 쫓겨나 피눈물을 흘리며 지금도 군 생활을 이어가거나 전역한 기무사 요원들의 원복 및 명예 회복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고(故) 이재수 사령관의 변호인을 맡았던 임천영 변호사(전 국방부 법무관리관)는 기자에게 “계엄 문건을 다루는 과정에서 가장 황당한 것은 인도 순방 중인 문 대통령이 외국에서 특별 지시를 통해 수사를 지시한 점”이라며 “당시 계엄 문건은 민정수석실에서 담당했는데 조국 수석이 얼마나 절박했으면 해외에 나간 대통령에게 수사 지시를 요청했겠느냐. 당시 벌어진 일을 수사로 밝혀야 한다”고 했다.
백승주, 기밀 문서 유출 과정 밝혀내야
백승주 전 의원은 “기밀 문건(계엄 문건)이 외부로 유출되는 과정, 외부로 유출된 기밀 문건을 사후 기밀 해제한 과정의 적법성 등을 따져야 한다. 또 ‘민주주의국민행동’에 대한 문건도 공개해야 한다”고 했다.
2016년경 기무사는 방첩 활동 과정에서 북한의 지령을 받은 조총련이 국내 종북 좌익 세력과 연계해 탄핵 여론 조성, 반미 활동 등을 기획하는 것을 포착했다. 하지만 탄핵이 인용된 후 이 문건은 자취를 감췄다가 2018년 7월 5일 또 이철희 의원을 거쳐 한 언론을 통해 세상에 공개됐다. 보도 내용은 기무사가 촛불 집회와 조총련을 엮어 간첩 조작을 시도했고 간첩 검거라는 명분으로 계엄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이 문건도 송영무 국방장관 정책보좌관 이◯◯(더불어민주당 출신)을 통해 외부로 유출됐다.
조현천 전 사령관의 변호인은 “곧 한국으로 돌아가 당시 상황의 진실을 밝힐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철희 전 의원은 2019년 10월 민주당 일각이 ‘황교안 전 총리가 계엄에 관여했다’고 주장하자 “낡은 정치”라며 기존의 입장과는 다른 태도를 보였다. 지난 9월 8일 이 전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계엄 문건 작성자가 무죄를 받은 것’에 대해 묻자 “모르겠다”고만 답했다.
지난 9월 13일 송영무 전 장관은 서면 답변을 통해 “돌아다니는 이야기들은 사실과 많은 차이가 있지만, 지금은 말씀드릴 때가 아닌 것으로 판단한다”고 했다.
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은 현재 자유총연맹 총재로 있다.⊙
글 : 이경훈 월간조선 기자 liberty@chosun.com
10.10 北은 계속 미사일 쏘는데 시대착오 親日 논쟁 계속할 건가

▲북한이 9일 새벽 동해상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 2발을 발사한 9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뉴시스
북한이 9일 새벽 탄도미사일을 2발 또 쐈다. 올해 23번째인데 최근 보름 새 7차례가 집중됐다. 심야에 쏜 건 올 들어 처음이다. 며칠 전엔 폭격기와 전투기 12대를 동원해 이례적으로 공중 위협 시위도 벌였다. 도발 빈도와 양상 모두 심상치 않다. 북은 이미 핵 선제공격을 법제화하고 7차 핵실험 준비도 마쳤다. 국제사회 분위기도 예전 같지 않다. 유엔 안보리는 중·러의 반대로 북한 미사일 발사에 규탄 성명조차 못 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핵을 쓰겠다고 협박하면서 김정은에게도 도발 명분을 주고 있다.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비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필요하다면 어떤 일이라도 해야 할 상황이다. 독자적 핵 보유가 어려운 상황에서 실효성 있는 대응 방안은 한미일 3각 공조 강화가 사실상 유일하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날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한미 동맹은 물론 한미일 3자 안보 협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고 했다.
이런 마당에 우리 정치권은 시대착오적 친일 논쟁에 빠져 있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가 “극단적 친일 행위”라고 한 것을 시작으로 연일 한미일 합동 훈련을 비판하고 있다. 원내대표는 “자위대의 한반도 개입을 허용할 것이냐”고 하고 대변인은 “안보 태세를 강화할 길이 일본과 손잡는 방법밖에 없느냐”고 한다. 국민의힘은 “죽창가의 변주곡” “이 대표의 ‘불법 리스크’를 감추기 위한 물타기”라고 맞섰다. 민주당이 문제 삼은 한미일 합동 대(對)잠수함 훈련은 문재인 정권 때인 2017년 10월 한미일 국방 장관 합의에 따라 실시했다. 훈련 장소도 독도보다 일본 본토에 더 가깝다.
민주당도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알면서도 당리당략을 위해 ‘친일 몰이’를 한다. 문재인 정부는 5년 내내 정권 운영 도구로 이를 활용했다. 한일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파기하고, 한일 관계 개선을 말하면 친일파라고 비난했다. 조국 사태에 국민이 분노하자 난데없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를 선언했다. 민주당 출신 교육감들은 ‘수학여행’ 같은 일상 용어는 물론, 동·서·남·북이 들어가 있는 교명(校名), 향나무 교목(校木)까지 일제 잔재라며 없애려 했다. 민주당은 2019년 ‘한일 갈등이 내년 총선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보고서까지 만들었다.
우리 안보가 전적으로 기대고 있는 한미 연합 체제의 버팀목은 일본이라는 후방 기지다. 6·25가 터졌을 때 일본에 주둔해 있던 미군이 신속하게 투입돼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할 수 있었고, 앞으로도 한반도 유사시 주일 미군이 개입할 것이란 사실이 억지력으로 작용한다. 이런 한미일 3각 체제에 균열이 생기는 것은 김정은만 좋아할 일이다. 우리 정치권은 언제까지 시대착오적 친일 논쟁으로 우리의 핵심 안보 기반을 흔들 생각인가.
조선일보 사설
10.10 해킹으로 北미사일 막는다... 발사 前 무력화할 ‘소프트 킬’ 필요
킬체인·미사일 방어·대량 응징 보복이란 기존 ‘3축 체계’에
전자파·해킹으로 북핵·미사일 무력화하는 ‘소프트 킬’ 더해야
민간 역량 활용 사이버전자전 강화 위해선 대통령실이 나서야
지난 2016~2017년 북한은 무수단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집중적으로 시험발사했지만 8차례 중 무려 7차례나 실패했다. 웬만하면 성공해온 북한 미사일 개발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무수단 미사일은 발사 직후 또는 직전 폭발하는 등 다양한 실패를 경험했다. 유례 없는 실패 행진에 의문이 증폭됐는데 그 의문이 2017년 뉴욕타임스 보도를 통해 어느 정도 풀렸다.
2017년 3월 미 뉴욕타임스는 미국이 ‘발사의 왼편(Left of Launch)’이라 불리는 사이버 교란 작전을 통해 북 미사일의 잇따른 실패를 초래했다고 보도했다. 모든 미사일은 발사 때 ‘준비→발사→상승→하강’의 단계를 거친다. 발사 단계보다 왼쪽에 있는 준비 단계에서 사이버 공격으로 시스템을 교란한다는 의미에서 이런 명칭이 붙었다. ‘발사의 왼편’ 프로그램은 2013년 2월 북한의 핵실험 위력에 놀란 미 국방부가 개발을 시작했고, 오바마 행정부가 이듬해 북 미사일을 무력화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이 작전 개념을 택했다. ‘발사의 왼편’ 작전 이후 3년간 북한 미사일(무수단) 실패율은 88%에 달한 것으로 분석됐다.

▲그래픽=백형선
‘발사의 왼편’ 전략은 지난해 다시 주목을 받았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전·현직 미 정부 및 군 고위 관계자들이 잇따라 그 효용성과 중요성을 언급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해 2월 존 하이튼 미 합동참모본부 차장은 “요격에 초점을 맞춘 기존 방어전략은 (사드·패트리엇 등) 요격체계의 수량을 고려할 때 한계가 분명하다”며 “미사일이 발사되기 전에 차단하는 ‘발사의 왼편’에 초점을 둔 종합적인 방어전략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매우 제한적이고 폐쇄적인 북한 인터넷망 특성상 사이버전 위주의 ‘발사의 왼편’ 전략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설득력 있게 제기된다. 그래서 나온 것이 사이버전+전자전(電子戰), 즉 사이버전자전 전략이다. 군 정보부대장을 지낸 송운수 예비역 육군소장은 올해 초 박사 학위 논문을 통해 사이버전과 전자전을 통합한 사이버전자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북 핵탄두 미사일 발사 통제 등 지휘통제망에 대한 접속은 전자전으로 해 전자파에 사이버 악성코드나 해킹 프로그램을 실어 보내고, 접속 후 효과(무력화)는 사이버전으로 달성해 시너지 효과를 거둔다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때려 부수는 ‘하드 킬’(hard-kill)이 아니라 파괴하지 않고 무력화하는 ‘소프트 킬’(soft-kill) 무기인 셈이다.
최근 국방부가 주최한 ‘국방혁신 4.0′ 세미나에서도 사이버전자전 등 소프트 킬을 강조한 주제발표가 있었다. 김선호 예비역 중장(전 수방사령관)은 이 세미나에서 기존 3축 체계에 사이버전자전, 심리전 등 정보작전을 수행하는 비물리적 수단을 결합한 ‘신(新) 3축체계’를 제안했다. 3축 체계는 선제타격을 포함하는 킬 체인(Kill Chain)과, 발사된 북 미사일을 요격하는 KAMD(한국형미사일방어), 북한에 강력한 응징보복을 하는 KMPR(대량응징보복) 등으로 구성돼 있다. 김 전 사령관은 “기존 3축 체계는 물리적 수단을 활용한 선제타격 시 감수해야 할 위험이 크기 때문에 결심 과정이 지연될 개연성이 있다”며 “하지만 사이버전자전 등은 감수해야 할 위험이 상대적으로 감소해 신속하고 공세적인 결심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최근 북한의 도발은 유례 없이 공세적인 모습들을 보이고 있다. 미 항모 전단이 동해상에 출동해 한미 연합훈련을 하고 있는 중에, 국군의 날 당일에 미사일을 쏜 것은 처음이다. 9일엔 새벽 1시48분에 미사일을 쏘는 등 밤낮, 휴일을 가리지 않고 우리 취약시간대에 미사일 도발을 계속하고 있다. 한반도 긴장 수위가 최고조에 달했던 2017년으로 되돌아간 모습이다.
앞으로 시기의 문제일 뿐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는 물론 7차 핵실험을 할 가능성도 확실시되고 있다. 정부와 군 당국은 한미동맹을 활용한 확장억제와 한국군 3축 체계 강화를 그 대책으로 되뇌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전술핵 등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지난 수년간 크게 고도화했는데 확장억제와 3축 체계만으로 증대된 위협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까”라며 의구심이 늘고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북한은 더구나 지난달 핵무기 사용 5대 조건을 명시하며 선제 핵타격을 법제화한 ‘핵무력정책법’까지 발표했다. 그 때문에 기존 한미 대응책을 넘어서는 새로운 차원의 대책이 절실해지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몇몇 전문가들이 주장한 사이버전자전 등 ‘소프트 킬’ 개념을 기존 3축 체계 내(內)가 아니라 별도의 축(軸)으로 추가, 4축 체계 구축을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4축 체계는 사이버전자전에 그만큼 비중을 둔다는 의미다. 윤석열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 국방혁신 4.0의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4축 체계에선 세계 최대 중량 탄두를 장착한 현무-5 ‘괴물미사일’, 북 수뇌부 제거 특수부대(참수작전 부대) 등을 포함하는 KMPR이 4번째 축이 되는데 이는 북 핵도발 시 김정은 정권에게 ‘죽을 사(死)’, 즉 죽음을 선사한다는 중의(重義)적 의미도 있다.
4축 체계는 사이버와 AI(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적극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민간 부문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원이 필수적이다. 미국이 국력을 집중해 ‘맨해튼 계획’으로 원자폭탄을 개발했듯이 절박감을 갖고 KAIST,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 등 민간 연구소와 대학 등의 연구역량과 인력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이는 국방부 등 군 차원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더 늦기 전에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 참모들이 각별한 관심을 갖고 나서야 할 때다.
조선일보 유용원 군사전문기자
10.11 “비핵화는 실패, 북이 이겼다” 안보 정쟁 당장 멈추라

▲북한이 지난달 25일 평북 태천의 한 저수지에서 미니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으로 추정되는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북한 매체들은 10일 조선인민군 전술핵운용부대들의 군사훈련이 9월25일부터 10월9일까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로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 뉴스1
북한이 지난 보름 사이 인민군 전술핵 운용부대들의 군사훈련을 7차례 실시했고, 모두 김정은이 현지 지도를 했다고 노동당 창당 77주년인 10일 발표했다. 모의 전술 핵탄두를 탑재한 미사일을 발사했고, 계룡대를 뜻하는 ‘적 군사지휘시설’을 비롯해 ‘남조선 비행장’ ‘적 항구’ 등이 타격 목표였다고 밝혔다. 이틀에 한 번꼴로 강행한 각종 미사일 도발이 모두 남을 겨냥한 핵 선제 타격 연습이었단 뜻이다.
우리 군은 북이 핵·미사일 위협을 가할 때마다 ‘3축 체계’ 강화를 강조하지만 이것이 우리를 지켜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북은 지난달 25일 발사 때는 저수지에서 ‘미니 SLBM’을 쏘았다며 미사일이 물 위로 솟구치는 사진을 공개했다. 이동식발사대에서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를 쏜 것으로 추정했던 우리 군 당국 분석이 틀린 것이다. 자체 군사정찰 위성이 없는 우리 군은 발사 지점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도발 원점을 파악한다 해도 이를 정밀 타격해야 할 현무-2 미사일은 얼마 전 고장을 일으키는 등 아직 불완전하다. 이런 상태로는 갈수록 교묘해지는 북의 미사일 운용에 대응하기 어렵다.
김정은이 직접 지휘한 대남 핵공격 훈련은 지난달 북이 법제화한 ‘핵 선제 타격’ 위협이 빈말이 아님을 보여주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당시 김정은은 “절대로 핵을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김씨 정권이 핵을 만든 것 자체가 정권 보위를 위해서다. 그런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으리란 건 상식에 속한다.
하지만 역대 민주당 정권은 20여년간 진실에 눈감았다. 핵 개발 초기 김대중 정부는 “북은 핵을 개발한 적도 없고 능력도 없다”며 현실을 부정했고, 그 몇 년 뒤 노무현 정부는 “북이 반드시 핵을 포기할 것”이라며 국민을 속였다. 북이 핵·미사일 폭주를 계속하는데도 해마다 쌀과 비료 수십만톤을 퍼주고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을 통해 달러도 공급해줬다. 북핵에 맞설 비군사적 방법은 고강도 제재로 핵개발 자금의 유입을 틀어막는 것밖에 없는데 거꾸로 북의 핵개발을 우회 지원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제재에 허덕이던 북이 돌연 핵폭주를 멈추는 척하며 평화 공세를 펴자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분명하다”며 전 세계를 속이고 트럼프에겐 보증까지 섰다. 견고했던 대북 제재망이 느슨해지며 북은 숨통을 틔우고 핵무력 고도화의 시간을 벌었다. 그 결과를 지금 지켜보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비핵화를 고집하는 것은 실패했다’는 미국 핵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북이 이미 이겼다”고 보도했다.
김정은의 비핵화 사기극에 놀아난 민주당은 지난달 ‘핵 선제 타격’ 법제화 소식이 전해지자 침묵하더니 정부가 북의 연쇄 도발에 맞서 미·일과의 군사협력을 강화하자 연일 “국방 참사” “친일 국방”이라 비판한다. ‘북의 핵포기’란 허상을 만들어 ‘남북 쇼’만 궁리하다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사람들이 반성은커녕 북핵 대응에 나선 정부 헐뜯기에만 열심이다. 현실이 된 북의 핵 위협 앞에서 이젠 정쟁을 멈추고 안보 태세 확립에 총력을 모아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10.11 “일본군 한반도 진주” 이 대표 정말 믿고 이런 허황된 말 하나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욱일기와 독도’란 제목의 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며 ‘안보 친일’ 공세를 계속했다. 그는 “한미 동맹과 우리 군사력으로 충분히 안보를 지킬 수 있는데 왜 일본을 끌어들이려 하느냐”며 “일본군의 한반도 진주, 욱일기가 다시 한반도에 걸리는 일이 실제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사흘 전 한·미·일 훈련에 대해 “왜 하필 독도 인근에서 하느냐. 극단적 친일 행위”라고 비난한 데 이어 또다시 반일 감정을 부추기는 말을 쏟아냈다.
자체 핵이 없고 북핵 탐지·방어 능력도 부족한 한국으로선 미국·일본과 3각 공조가 시급하다. 일본은 북 잠수함 탐지 초계기를 미국 다음으로 많이 보유했다. 한반도 유사시 주일 미군을 통해 우리를 지원하는 후방 기지이기도 하다. 이번 훈련은 다름 아닌 문재인 정부 때 이뤄진 한·미·일 국방장관 합의에 따라 실시되는 것이다. 그런데 마치 자위대를 한국에 끌어들이기 위한 훈련인 듯 말하고 있다. 사실 왜곡에 다름 아니다.
이 대표는 “일부러 독도 인근에서” 훈련했다고 했다. 하지만 훈련 장소는 독도에서 185㎞나 떨어진 공해상이고 120㎞ 떨어진 일본과 더 가까운데 어떻게 ‘독도 인근’이 되나. 한·미·일 훈련을 한다고 일본군이 한국에 진주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미국서 한국 국력이 일본을 앞섰다는 분석이 나오는 시대인데 수십년전 운동권 생각으로 어떻게 나라를 이끄나. 한·미·일 훈련을 군사동맹으로 연결짓는 것 자체가 억지스럽다. 동맹이 아니라도 안보 이해당사국끼리 합동 훈련을 하는 경우는 전 세계에 비일비재하다.
이 대표는 과거에도 기본 안보 상식에 맞지 않는 발언을 자주 했다. 그는 “미군은 점령군이었다”고 했고, 미 상원 의원을 만나선 116년 전 미·일 간 맺어진 가쓰라-태프트 조약 때문에 한일 합병이 된 것처럼 따졌다. “전시작전권을 그냥 환수하면 됐지 왜 검증을 하느냐”고도 했다. 북 미사일의 최후 방어수단인 ‘사드’는 “흉악하다”고 했고, 중국에 안보 주권을 내준 ‘사드 3불’은 “적정하다”고 했다. 이런 왜곡되고 편협한 안보 의식을 가진 사람이 거대 야당을 이끌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
10월 11일 핵무장 검토하고 ‘北체제 변화’로 대북 정책 바꿔야
북한이 핵무력 법제화에 이어 전술핵 운용 훈련까지 벌인 것은 한반도 핵전쟁 가능성이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노동신문 등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술핵 운용부대 군사훈련을 지도했다면서 최근 진행된 탄도미사일 발사 관련 사진 등을 공개했다. 지난달 25일 평북 태천의 한 저수지에서 진행됐다는 ‘미니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사진은 핵공격 위협이 더 커졌음을 보여준다. 육지의 이동식 발사대를 이용한 것이라는 우리 군의 오판도 문제지만, 북한이 수많은 저수지까지 미사일 발사 기지로 사용할 경우, 탐지와 요격이 더 어려워져 킬체인 무력화로도 연결된다.
북한이 이동식 차량과 열차, 잠수함에 이어 저수지까지 활용해 시도 때도 없이 탄도미사일 공격을 자행할 능력을 과시함으로써 대한민국 안보는 더 물러설 곳 없는 벼랑에 처했다.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김정은은 “적들과 대화할 내용도 없고 또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핵 공격 위협을 하는 것에 발맞춰 협박 수위를 끌어올린 것이자, 윤석열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에 대한 조롱이다. 북한이 전술핵 운용부대를 편성해 전술핵 투하 훈련까지 한 만큼 협상을 통한 북핵 폐기는 물 건너갔다.
대한민국도 걸맞은 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다.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한 국제 제재를 더 강화하고, 인권 유린과 빈곤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에게 외부 정보를 주입해 각성시키는 등 ‘체제 변화(regime change)’가 현실적 대응책이다. 북핵 대응 플랜B가 필요한 것이다. 윤 대통령이 11일 전술핵 재배치와 관련해 “우리나라와 미국 조야의 여러 의견을 잘 경청하고 따져보고 있다”고 한 것은 유의미하다. 전술핵 배치는 물론이고 자체 핵 개발도 검토해야 한다. 동맹인 미국과 긴밀 협의하며 한·일 공동 대응도 해야 한다. 그동안 금기시됐던 한국의 핵 보유 필요성에 대한 국제 여론도 바뀌기 시작했다. 한국의 핵 능력 확보는, 사드 배치에 펄쩍 뛰던 중국을 움직이게 할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곧바로 대만의 핵 역량 강화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문화일보 사설
10월 12일 전술핵 재배치 불가피 상황 임박했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前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닥치고 발사다. 새벽이든 심야든 시간 불문이다. 발사지도 자강도·평안도에서 강원도 문천까지 다양하다. 10만t급 항모 로널드레이건호가 참가하는 한·미 연합훈련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연료도 부족한데 갑자기 10년 만에 전투기와 폭격기 12대가 시위성 편대 비행을 했다, 이틀 뒤에는 전투기 150대를 동원해 대규모 항공 공격 시위를 벌였다. 보름간 이틀에 한 번 미사일 발사이니 우크라이나의 실제 전쟁 수준이다. 북한의 도발이 과거와는 다른 패턴을 보이며 파괴력은 입체적이다. 전술핵무기를 전면에 내세우며 진화를 거듭하는 북한의 신형 도발 저의를 파악해 대응책을 구체적으로 모색할 시점이다.
우선, ‘강 대 강’ 구도를 확실하게 과시하는 전략이다. 과거 한·미 연합훈련 기간에 도발을 자제하던 행태는 끝났다. 김정은은 조 바이든 행정부와 한 판 승부를 벌여야 하는 처지인 만큼 도발을 마다할 이유가 없어졌다. 미국·러시아·중국 등 유엔 안보리 강대국 간의 갈등으로 추가 제재를 걱정할 필요도 없다.
다음은, 각종 군사 전술적인 훈련으로 기습공격 능력을 강화하고 한·미 연합 대응 태세를 무디게 한다. 북한은 각종 미사일과 핵실험 등 입체적인 도발로 전술무기를 시험해 최종적으로 핵 탑재 미사일 발사를 구상 중이다.
끝으로, 코로나19 봉쇄와 경제위기에 따른 내부 단속과 7차 핵실험의 명분 축적 전략이다. 북한은 노동당 창건 77주년을 맞아 김정은이 한 달 동안 미사일 발사 지시를 내리고 전술핵부대 훈련을 지도했다고 밝혔다. 수십 장의 훈련 지도 사진을 공개해 김정은의 지도력 부각과 함께 체제 결속을 노렸다.
향후 평양은 국제정치 일정과 예고한 신형 공중무기 시험 등을 고려해 7차 핵실험의 충격 효과를 극대화하는 타이밍을 포착할 것이다. 미국 핵 추진 항공모함의 한반도 유턴 직후 북한은 저수지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쐈다. 새로운 미사일 발사 플랫폼을 개발한 것이다. 신포 잠수함 기지에서만 SLBM이 발사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태평양을 건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발사도 마지노선 카드다.
이번 주 중국 시진핑 주석의 ‘황제’ 대관식인 공산당대회와 미국 중간선거(11월 8일) 등도 핵실험의 고려 변수다. 크름 반도 교량 폭파 후 블라디미르 푸틴의 전술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의미하는 아마겟돈의 등장은 김정은의 핵무기 선제 사용을 부추길 수 있다. 조건 없이 대화하자는 백악관에 대해 김정은은 대화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며 핵 전투무력 백방 강화를 선언했다. 전술핵무기 운용을 강화하겠다는 뜻이다.
여야가 한목소리를 내도 쉽지 않은, 대한민국 절체절명의 위기다. 핵을 머리에 이고 살다가 가슴에 안고 사는 ‘북핵과의 동거(with the nuclear)’ 시대에 발상의 전환이 불가피하다. 지양점(止揚點)과 지향점을 구분해서 성역 없는 담론과 대책이 논의돼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11일 전술핵 재배치와 관련, 우리나라와 미국 조야의 여러 의견을 잘 경청하고 따져보고 있다고 했다. 지난 1991년 군산 공군기지에서 미국으로 이동한 전술핵이 다시 한반도로 돌아오는 단초는 북한의 7차 핵실험이 될 것이다. 우리의 핵 정책 변화가 불가피한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문화일보
10.13 ‘美 핵우산’ 그 거짓말 진짜입니까?
美 국민 목숨 걸고 北에 핵 반격 불가능
핵우산, 전략 자산 전개는 韓 핵무장 막는 논리로 변질
핵은 쓰기 위해서 아니라 쓰지 않기 위해 필요

▲북한 노동신문이 지난 10일 보도한 미사일 발사 장면. 노동신문은 김정은 총비서의 지도 하에 전술핵운용부대들의 군사훈련을 실시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 뉴스1
북한이 전술핵 미사일 발사 훈련을 하고 있다. 전술핵은 폭발력이 작다고 하지만 우리 군의 현무 2C 미사일 수만 발을 한꺼번에 터뜨리는 것과 같다. 인류 역사에서 대화를 잘해 평화가 지켜진 경우는 없었다. 평화는 ‘상대를 공격했다가는 내가 죽을 때’ 지켜졌다. 상대를 공격해도 내가 죽지 않을 수 있다고 판단하면 거의 어김없이 전쟁이 터졌다. 한반도 평화는 김정은이 한국을 공격했다가는 자신이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할 때 지켜진다. 그런데 우리는 핵 공격을 당해도 김정은을 없앨 수 없다. 김이 어디 있는지 위치부터 정확히 모른다. 이 사실이 평화에 가장 큰 위협이다. 이 경우 미국이 실제 핵 보복(핵우산)을 실행할지는 미국 자신도 모를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핵을 포기한 대신 미국-영국과 안보 제공 협정을 맺었다. 하지만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점령했는데도 미·영은 지켜만 보았다. 지금 푸틴이 핵 사용을 위협하는데도 미국과 나토국 어디도 핵 반격을 경고하지 못한다. 실제 푸틴이 전술핵을 사용해도 미국과 나토는 핵 반격을 하지 못할 것이다.
유럽의 나토국들은 공식적으로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 있다. 그러나 이 핵우산을 진짜로 믿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영국, 프랑스는 독자 핵무장을 택했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벨기에는 자국 공군기에 미국 핵폭탄을 장착했다. 튀르키예(터키)는 자국 내 미 공군기지에 핵폭탄을 두고 있다. 러시아 위협을 받고 있는 폴란드도 이 대열에 참여하고 싶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자신들이 러시아의 핵 공격을 받으면 미국이 반드시 핵 보복을 해줄 것이라고 믿는다면 이렇게 할 이유가 없다.
사람 일은 입장을 바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핵의 국제정치학도 마찬가지다. 동맹국이 핵 공격을 당했다고 자기 국민 수천만 명을 핵 공격에 노출하면서까지 핵 반격을 해줄 나라가 있을까.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몇 초 만에 답이 나오는 문제다. 북한은 머지않아 미 본토를 핵 공격할 다탄두미사일까지 개발할 것이라고 미 전문가들이 예상하고 있다. 그 경우 미국은 한국을 위해 자국민 목숨을 걸고 북한과 핵전쟁을 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미국 대통령도 하지 못한다. 핵우산은 허울만 남는다.
핵우산에 대한 의구심이 있다는 것을 미국도 안다. 그래서 ‘확장 억제’라는 개념이 나왔다. 핵만이 아니라 재래식 전력까지 총동원해 핵우산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민을 위해 미국민 수천만 명의 목숨을 걸 것이냐는 근본적 물음에 대답은 되지 못한다. 어떤 책임 있는 미국 관리도 이 질문에 명확하게 답한 적이 없다. 한국군의 북핵 대응 ‘3축 체계’는 탁상공론에 가깝다. 핵을 가진 상대에게 선제공격을 한다는 설정부터가 비현실적이다. 어떤 한국 대통령도 그런 결심을 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는 국토를 유린당해도 러시아 땅에는 포탄 한 발 못 쏘고 있다. 핵 때문이다.
핵우산의 남은 용도가 있다면 한국을 향해 ‘미국 핵우산이 있으니 핵 개발을 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이 도발할 때마다 한국에 오는 미국 항공모함, 잠수함, 전략폭격기도 김정은을 화나게는 했지만 억제에 성공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이제 북은 미 항공모함이 와 있는데도 도발한다. 미국 전략 자산 전개 역시 북한 억제보다는 한국에 핵 개발을 하지 말라고 달래는 용도로 변질했다고 생각한다.
‘1-X=0′이라는 1차 방정식이 있다. 북한이 1(핵무기)을 가졌을 때 그 위협을 상쇄해 ‘0′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X=?)는 문제다. 미국이 핵을 가지자 소련과 중국이 핵을 가져서 ‘1-1=0′으로 만들었다. 소련이 핵을 가지자 영국, 프랑스가 핵을 가졌다. 중국이 핵을 가지자 인도가 핵을 가졌다. 인도가 핵을 가지자 파키스탄이 핵을 가졌다. X=1 외에 다른 답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안다.
그런데 한국에선 이 문제가 ‘X³+Y³+Z³...=0′과 같은 누구도 풀 수 없는 초고차 방정식으로 바뀌었다. 적의 핵을 눈앞에 두고 햇볕 정책과 같은 만화까지 나왔다. 이 문제가 국내 정쟁의 소재가 되다 보니 이제 ‘X=1′이라는 상식을 말하는데도 눈치를 봐야 할 지경이 됐다.
푸틴의 핵 공격을 막는 방법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핵을 제공하겠다’고 경고하는 것이다. 북의 핵을 막는 방법도 하나밖에 없다. 미국이 한국에 핵을 제공하는 것이다. 핵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쓰지 않기 위해서다. 한국은 대북 최적합 전술핵인 B61-12를 탑재할 F-35A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다. W80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SLBM(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도 갖고 있다. 없는 것은 미국의 결심뿐이다.
어떤 사람이 거짓말을 진짜인 듯 천연덕스럽게 할 때 ‘그 거짓말 진짜입니까?’라고 묻는 언론계 선배가 있었다. 핵우산이야말로 ‘그 거짓말 진짜입니까’라고 물어야 할 대상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
10월 13일 北 이번엔 2000㎞ 순항미사일…尹 “압도 대응” 미덥잖다
북한이 이번에는 ‘장거리전략순항미사일’을 내세워 핵무기 공격 위협을 더욱 강화했다. 북한 발표와 국군 당국 분석에 따르면, 북한군은 12일 새벽 평남 개천 일대에서 서해 상공으로 순항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 이 미사일은 타원 및 8자형 비행궤도로 1만234초(2시간50분34초)를 비행해 2000㎞ 계선의 표적을 타격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전했다. 특히 지난 1월 장거리순항미사일 시험발사 발표 때와는 달리 “조선인민군 전술핵운용부대들에 작전 배치된 장거리전략순항미사일”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실전 배치가 끝났으며, ‘전략’이라는 표현으로 핵탄두도 탑재 가능하다는 것을 과시했다. 김정은은 발사 현장에서 “핵전략무력 운용 공간 계속 확대”를 지시했다.
합동참모본부는 북한 보도 뒤에야 탐지 사실을 공개하면서, 유엔 제재 대상이 아니어서 즉각 국민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했지만, 안이해 보인다. 미사일 능력만 놓고 본다면, 현무 계열의 탄도·순항 미사일로 무장한 국군의 역량이 앞설 수 있다. 그러나 핵무기 탑재 가능성 때문에 순항미사일일지라도 제제 대상 여부를 떠나 심각하게 대응해야 한다. 목표물을 정밀 타격할 수 있어 특정 시설에 대한 소형 핵무기 공격도 가능하다. 북한은 지난해 9월 1500㎞ 순항미사일 시험 발사를 한 뒤 1월에는 1800㎞로 늘렸고, 이번에는 더욱 개량한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북한이 핵무기 사용을 기도한다면 압도적 대응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최근 상황을 보면 미덥지 않다. 지난 5일 발사한 현무2 미사일 사고가 있었고, 에이태큼스 1발의 비행 중 추적신호 단절도 숨겼다. 저수지 발사 탄도미사일 탐지에도 실패했다. 북한 군용기 150대 시위 땐 F-35A 스텔스전투기는 ‘공갈탄’을 장착한 채 출격했다고 한다. 이런 일만 놓고 보면, 북한이 ‘압도적 대응’을 하는 것 같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대북 저자세와 안보 자해의 후유증 성격이 크지만, 이제 그 탓만 해선 안 된다. 북한의 군사 역량을 소진시킬 만큼의 적극적 대응을 주저해선 안 된다. 말로만 하는 압도적 대응은 오히려 조롱거리가 될 뿐이다.
문화일보 사설
10월 13일 오죽하면 정세균도 ‘이재명의 친일몰이’ 비판하겠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북핵 위협에 대응한 한·미·일 연합훈련을 연일 ‘친일 국방’으로 몰아가지만, 당내에서도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안보적·정치적 차원에서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 대표는 12일 “일본이 사실상 경제 침탈까지 하고 있다”는 주장까지 했다. 그러나 구체적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이에 반해 정세균 상임고문은 같은 날 “3국 안보 협력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정 고문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중국의 군사 굴기와 북·중·러 3각 연대 부상에 따라 한·미·일 3각 연대의 가동이 불가피한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두 차례 당 대표와 국회의장·국무총리를 역임한 경륜에서 나온 정 고문의 지적은 이 대표의 맹목적 반일 감정 선동과 대비된다. 정 고문뿐만 아니다. 청와대 비서실장과 당 대표를 지내고 국회의장을 역임한 문희상 고문도 한·일 관계 개선의 걸림돌이 된 강제징용 배상과 관련해 자발적 한·일 기금을 통한 해법을 의장 재임 때부터 제시해왔다. 지금도 피해 당사국인 우리가 선제적 입법을 통해 협상의 물꼬를 터보자는 의견을 내고 있다. 이 대표보다 훨씬 오랜 기간 민주당을 지켜온 두 고문의 발언과 행동은 당의 진로 설정에 의미 있는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당내에서도 이 대표의 발언은 합리적 노선에서 이탈한 것이라는 비판이 커지는 상황이다. 그러나 정반대 사례도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대장으로 승진해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을 지낸 김병주 의원(비례대표)은 “한·미·일 군사동맹을 하면 현재 미군이 상주하듯 일본 자위대가 한국에 들어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정작 그의 연합사 부사령관 재임 시기에 6차례 한·미·일 훈련이 열렸다고 한다. 군 경력은 물론 정직성까지 의문이다. 이 대표는 2024년 총선 공천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사법 리스크’가 뻔히 보이는데도 의원들이 이 대표에게 충성하고 ‘이재명의 민주당’이 된 배경이다. 국가 안보를 위해서도, 민주당 미래를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문화일보 사설
10.14 “日과 훈련은 친일” 野 의원, 자신은 군 시절 日과 6회 훈련
육군 대장 출신인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미일 합동 훈련에 대해 “이런 식으로 가다 보면 한미일 군사 동맹으로 미끄러져 가듯 갈 수밖에 없다”며 “미군처럼 일본 자위대가 한국에 들어올 수도 있다”고 했다. 한미연합사 부사령관까지 지낸 김 의원이 했다고는 믿기 어려운 발언이다. 한미일 어느 정부도 3국 군사 동맹을 언급한 적이 없다. 한미, 미일이 동맹이지만 3국 동맹 가능성은 모두 부인한다.
김 의원은 현역 시절 한미일 안보 협력을 강조했다. 그가 연합사 부사령관으로 재임하던 20개월간 3국 합동 해상 훈련이 6차례 시행됐다. 국회의원이 된 후인 지난해 7월에도 미국 한미연구소(ICAS) 주최 회의에서 유엔군 사령부 후방 기지 7개가 일본에 있고, 전시 해상구성군 전력인 미 7함대가 일본 요코스카에 있으며, 미 공군 증원 전력도 주일 미군 기지에 있다는 점 등을 조목조목 들면서 한미일 안보 협력을 강조했다.
김 의원은 주한 미국 대사에게 ‘성조기 마스크’를 선물하고, 주한 중국 대사관 초청 만찬에서 한미 동맹 구호인 ‘같이 갑시다’를 외쳐 화제가 됐다. 그랬던 그가 돌연 한미일 훈련이 중국과 러시아를 자극해 북한 비핵화를 더 어렵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김 의원의 변화는 이재명 대표의 ‘친일 몰이’를 따라 가려는 것이다. 이 대표가 한미일 연합 훈련을 “극단적 친일”이라고 한 뒤 민주당 의원들은 일제히 ‘죽창가’를 부르고 있다. 국회 국방위 간사인 김 의원도 다음 총선 공천권을 쥔 이 대표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2017년 사드 반대 집회에 나가 ‘전자파에 몸이 튀겨진다’고 노래를 불렀다. 사드 전자파 측정 결과 인체 보호 기준치의 0.007%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밝혀진 뒤였지만 막무가내였다. 김 의원은 군사 전문가로 민주당에 영입됐다. 각 분야 전문가를 비례대표 의원으로 뽑는 것은 정치에서 ‘사드 괴담’ 같은 비합리적 주장을 걸러내라는 뜻이다. 김 의원은 총선 공천도 좋지만 평생의 군 경력을 스스로 욕보이지는 말았으면 한다.
조선일보 사설
10.14 9·19 합의는 北이 이미 깼다
지난 4일 공동경비구역(JSA)을 통과해 북녘 땅을 봤다. 십수 년 전 1사단 수색대원으로 비무장지대에서 근무를 하며 봤던 풍경과 그리 달라진 것은 없었다. 경계는 삼엄했고, 군사분계선 주변은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다. 노릇노릇 익어가는 들판을 배경으로 한 북한 기정동 선전 마을도 여전했다. 이날 판문점을 취재하러 온 내외신 기자 30여 명의 카메라는 바삐 움직였다. 북한이 이틀에 한 번꼴로 미사일 도발을 하던 터였다.
북녘 땅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한 소초에서 그리프 호프만 유엔군사령부 국제정치담당관이 브리핑을 했다. 그는 두 동의 높은 건물을 가리키며 “저곳이 바로 개성공단”이라며 “그곳 앞쪽에는 남북연락사무소가 있었지만, 북한이 2020년 여름에 폭파시켰다”고 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우리 세금 180억원이 들어간 남북사무소를 2020년 6월 6일 폭파한 사건을 말한 것이었다.
남북사무소는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이 남북회담을 하고 발표한 이른바 ‘판문점 선언’에 따라 5개월 만에 지은 건물이다. 그런데 이걸 김정은이 완공 2년도 채 안 돼 산산조각 내듯 폭파하고 그 장면을 촬영해서 공개했다. 그가 한국을 어떻게 여기는지 새삼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지금이라도 다시 따져봐야 할 문제는 김정은이 남북사무소와 함께 9·19 남북 군사합의도 ‘폭파’하며 날려버렸다는 것이다. 문 전 대통령과 김정은은 2018년 9·19 공동선언을 하며 이른바 ‘9·19 군사합의서’도 체결했다.
‘쌍방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일체의 적대 행위를 전면 중지한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순진하게 이 합의를 성실히 지켰다. 접경지 사격 훈련도 중단하고 북한 핵·미사일 동태를 감시할 정찰기 비행도 제한했다. 그런데도 김정은은 9·19 합의를 파기하고 보란 듯이 적대 행위를 벌인 것이다. 우리에게 돌아온 건 ‘삶은 소대가리’ 같은 조롱과 북의 잇단 무력 도발이었다.
김정은은 지난달 ‘핵 무력 사용’을 법제화했다. 이어 최근 보름간에는 발사 지점, 사거리 등을 바꿔가며 전술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탄도미사일을 수차례 쏘아올렸다. 9·19 합의에서 하지 말자는 것만 골라 하고 있는 모양새다. 한미 군사·외교가에서 9·19 합의의 수명은 이미 다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4일 찾은 판문점 한쪽 잔디밭에는 '평화와 번영을 심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표지석이 세워져 있었다. 이날 오전 북한은 5년만에 일본 상공을 넘어 4500km를 날아가 태평양에 떨어지는 중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노석조 기자
이날 판문점과 도보다리 일대를 둘러보는데, 커다란 표지석이 눈에 띄었다. ‘평화와 번영을 심다,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 김정은, 2018년 4월 27일’이라 새겨져 있었다. 마침 이날 김정은이 5년 만에 태평양 괌을 사거리에 두는 중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한 터라, 표지석 문구가 여간 어색한 게 아니었다. ‘평화’와 ‘번영’을 심었다면서 ‘핵’과 ‘미사일’ 위협인가.
10월 14일 北 포격으로 9.19합의 파탄…정부 전면적 대응 필요하다
북한군이 갈수록 도발 수위를 높이는 가운데, 14일 새벽 ‘9·19 군사합의’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9·19 합의는 2018년 문재인 대통령 평양 방문 때 채택됐지만, 당시에도 무용론과 함께 한국 방어력을 약화시킨다는 지적이 있었고, 실제로 북한은 2019년 서해 완충구역 내 창린도에서의 해안포 사격, 2020년 중부전선 비무장지대 감시초소 총격, 개성공단 연락 사무소 폭파 등의 위반 행위를 계속해왔다. 그런데 이날 오전 1시20분부터 서해와 동해상으로 각각 130여 발과 40여 발의 포병 사격을 했는데, 9·19 합의에 따라 설정된 해상 완충구역에 탄착했다. 또, 북한 군용기 10여 대는 9·19 합의에 따른 비행금지구역 5∼7㎞까지 근접하는 등 위협을 가했다.
북한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위배해 여러 제재 조치를 받고 있지만, 남북 군사합의를 위반한 것은 또 다른 문제다. 9·19 합의는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적대행위를 금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 모든 기종의 비행금지, 포병사격훈련 중지, 동·서해 해상 완충구역에서의 포사격 및 해상 기동훈련 중지가 명시됐는데 북한은 명백하게 깨버린 것이다. 북한의 최근 행보를 보면 언젠가 닥칠 일이 닥친 것이다. 차분하지만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이미 파탄난 9·19 합의를 어떻게 할지 결정해야 한다. 이번 동시다발 도발에 대해 단순한 비례적 대응이 아니라, 윤 대통령이 언급한 대로 ‘압도적 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 이런 도발에 대한 대응을 실전 연습으로 삼아 더 강력한 국방태세를 이루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북한의 육·해·공 도발에 전면적으로 대응하는 게 당연하다. 정부가 이날 대북 독자 제재 조치도 발표했는데, 바람직한 일이다. 핵 역량 강화에도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 중국 등 주변국에 미리 불가피성을 설명해 사드 사태 재발을 예방하는 일도 중요하다. 국론 분열이 없도록 야당과 국민에게도 소상히 사정을 알리고 협력을 구해야 할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
10월 14일 남북 ‘핵 균형’ 시급성과 넘어야 할 산
김태우 前 통일연구원장
북한은 한·미·일 해군 훈련을 시비 걸면서 9월 25일에서 10월 14일 사이에만 9차례에 걸쳐 15기의 미사일을 쏘아대고 전폭기들을 출격시켜 위협 비행을 했다. 그러고는 ‘적들에게 명명백백한 경고를 준 전술핵훈련’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그런데도 북한의 7차 핵실험 가능성,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핵 사용 가능성과 그것이 대만해협과 한반도의 위기를 부추길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현 사태는 장차 닥칠 수 있는 더 큰 위기의 서막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정부가 미국에 ‘핵 공유’를 요청했다는 보도는 동일한 핵 대응 위협으로 북핵 위협에 대처하는 ‘핵 균형’ 체제를 촉구해온 전문가들에게 매우 반가운 소식이지만 가야 할 길이 멀다.
우리가 북한의 핵 포기를 설득하는 비핵화 외교와 정상회담 이벤트에 연연하면서 수십 년을 보내는 동안 ‘북핵 특급’은 쉼 없이 질주해 왔다. 북한 핵무기에 대한 선제타격이 기술적·정치적 이유로 사실상 어려운 가운데 북핵은 양적·질적으로 고도화했고 변칙기동 미사일, 잠수함발사미사일, 순항미사일, 극초음속 활공체 등 한·미 양국 군의 탄도미사일방어체계(BMD)로는 막기 어려운 투발 수단들이 속속 등장했다.
핵전략도 제1세대 ‘순수 억제용’에서 제2세대 ‘핵 사용’ 전략으로 진화했고, 선제 핵 사용 포기(NFU) 독트린도 폐기됐다. “전쟁 초기에 적의 전쟁 의지를 소멸시키는 것이 핵무력의 사명”이라고 한 김여정의 5월 담화는 ‘대남 선제 핵사용 불사’ 선언이었다. 2013년 ‘자위적 핵보유법’과 2022년 ‘핵무력정책법’은 강대국형·공세형으로 진화한 핵전략을 내외에 선포한 ‘북한판 핵태세 검토서(NPR)였다. 특히, 핵무력정책법은 북한에 대한 핵 또는 재래 공격의 실제 유무를 막론하고 최고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언제든 누구를 향해서든 핵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 황당하고 위험한 법령이다. 한·미군이 거론해 온 ‘참수작전’으로부터 최고 지도자를 보호하기 위해 ‘핵 지휘통제 체제가 위험에 처할 경우 자동적 핵타격’에 나선다는 ‘경보 즉시 발사(launch-on-warning)’ 시스템도 포함됐다.
이런 배경에서 볼 때 ‘한·미 핵 공유’ 시도는 갈 길이 멀다. 미국이 ‘핵 공유’ 협의에 적극 나서줄지도 의문이고 중·러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국내의 찬반 논쟁도 간단치 않을 것이다. 북쪽으로부터의 위협이 국가 생존을 위협하는 시대를 살면서도 한·미·일 안보 공조를 ‘친일’로 매도하는 정치인들이 활보하는 나라 아닌가. 이 난관들을 극복하고 ‘한반도 핵 균형’을 구축해야 하는 것이 윤석열 정부에 부여된 과제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장기적으로는 무한정 미 핵우산에만 의존할 수 있는가도 따져봐야 하고, 미국으로서는 정권 교체 때마다 안보 기조가 좌우로 바뀌는 나라와 핵자산을 공동 운영하고 고급 정보를 공유하는 게 부담스럽다는 사실도 직시해야 한다. 정치지도자들이 걸핏하면 죽창가를 불러대는 상황에서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한·일 안보 협력도 쉽지 않다.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굳건하게 중심을 지키는 안정된 정치체제를 정착시키지 못하면 당장의 국가안보도 어렵고 미래의 국가 생존도 담보할 수 없다. 이것이 윤 정부와 국민 모두에 부여된 시대적 과제다.
문화일보
10월14일 한미일 훈련 반대는 북핵 거드는 이적행위
정찬권 숭실대 겸임교수, 前 국가위기관리학회장
최근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양태와 수위가 예사롭지 않다. 비상식적 핵 선제공격 법제화에 이어 중·단거리 미사일 혼합 발사와 상공 폭발 및 직접·산포탄 타격배합 그리고 150대의 전폭기 동원 등 이례적 무력시위로 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조만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7차 핵실험이 예견되는 상황이어서 더욱 불길한 조짐이 아닐 수 없다.
만약 북한의 추가 핵실험이 현실화한다면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 위협 수준과 강도는 현재와 확연히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 분명하다. 이번에 북한이 미사일 발사의 장소·시간·타격방식·섞어쏘기 등을 자유자재로 구사한 것은 핵무력의 다종화·경량화·정밀화 달성을 공지한 것과 다름없다. 결국, 전술핵으로 한국을 강압 통제하고 전략핵으로 미국을 봉쇄해 핵 보복과 거부 억지를 동시에 달성해 전쟁 승리와 유리한 국면 조성을 위한 삼각 억지(Triangular Deterrence) 전략 완성을 눈앞에 둔 것으로 판단된다.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우리는 국가 안위와 존망이 달린 절체절명의 위기다. 그간 한·미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북 감시·정찰 강화, 미 전략자산 전개, 한·미 연합훈련 등 최소 억지 대책으로 대응해 왔고,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확장억제력 강화와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재가동도 북 도발 억지에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국이 뉴욕을 희생하면서 서울을 지켜 줄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있고,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응하는 우리의 3축 체계는 아직도 완성되지 않았다.
이처럼 엄중한 안보위기에도 여야 정치권은 위기 대응책 마련은커녕 당리당략과 정쟁으로 날을 지새우고 있다. 한·미·일 연합훈련에 친일 프레임을 씌우고, 훈련의 본질을 왜곡·호도하는 시대착오적인 야당의 행태는 목불인견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적국이었던 미국과 일본이 동맹을 맺고, 수백 년 전쟁을 벌인 독일과 프랑스가 협력하는 현실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국가 간 복합적 상호 의존 속에 국익을 위해 어제의 적과도 손을 잡는 게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이다. 역사적으로 정치지도자의 국제 정세 오판은 930여 차례 외침을 불렀다. 북한의 가짜 비핵화와 위장평화에 동조하는 것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이적행위와 다름없다. 야당은 친일 선동을 멈춰야 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북한 핵·미사일 공격의 인질이 된 지 오래다. 주술화(呪術化)한 북한 비핵화 전략의 자기기만과 허구를 인정하고 폐기할 때가 됐다. 사실상(de facto) 핵보유국인 북한의 핵·재래식무기 공격 양상은 동북아 지역의 새로운 군비경쟁 시작을 의미한다. 재래전쟁 기반의 국가안보·군사전략, 작전계획, 전쟁·전투 수행 방식, 전력 증강 등 위기관리 패러다임도 한계에 처한 형국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선, 정치권부터 핵 보유 공론화가 필요하다.
당연히 핵확산금지조약(NPT) 유지와 동북아지역 핵 도미노를 우려하는 국제사회의 반발과 제재가 수반될 것이다. 그러나 공동체의 안전과 생존이 걸린 문제인 만큼 단호한 의지로 돌파해야 한다. 첫째, 전술핵 재배치, 핵 공유, 독자 핵 개발 등 다양한 선택지를 놓고 사회 전체가 대안을 모색할 때다. 둘째, 유사시 핵 방호, 생존성 보장대책을 강화해야 한다. 군 기지는 물론, 국가 핵심기반 체계의 핵 방호 태세 보강, 국민 보호를 위한 민방위 대피시설 재지정·대체 등으로 유사시 제 기능이 발휘되도록 대비해야 한다. 셋째, 국가 총력전을 뒷받침하는 정부조직 기능 강화다. 유사시 동원을 통한 전쟁 지원, 정부 기능 유지, 국민 생활 안정은 반드시 달성해야 할 핵심 가치 중 하나다.
문화일보
10월14일 동서해에 北 포탄 쏟아지고… 남북 전투기 일촉즉발 근접대치

▲북한군 장거리포병부대가 지난 6일 김정은 국무위원장 지휘하에 공군비행대와 합동타격훈련을 실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0일 보도한 사진. 연합뉴스
■ 어젯밤 ~ 오늘 새벽 위기 고조
北전투기 비행금지구역 근접
F-35 대응출격 충돌직전까지
해상완충구역 방사포 포격 등
정전협정 이후 최대규모 도발
북한이 전투기 위협 비행과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발사에 이어 9·19 군사합의를 위반한 포병 사격까지 감행하는 심야 동시다발적 도발을 벌이고 나서면서 남북 간 긴장 국면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14일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은 13일과 14일을 넘어가는 시간에 군용기 10여 대를 출격시켜 대남 편대 위협 비행을 했고, 포병을 동원해 서해상에 130여 발, 동해상에 40여 발의 포격을 가하는 입체적 도발을 가했다. 특히 북한 공군기는 13일 오후 10시 30분쯤부터 14일 0시 20분쯤까지 우리 군이 유사시를 대비해 북한 상공에 설정한 전술조치선 이남까지 내려와 위협 비행을 했다. 북한 군용기는 심지어 서부 내륙지역에서 9·19 군사합의에 따라 설정한 비행금지구역 북방 5㎞ 인근까지, 동부 내륙지역에서는 비행금지구역 북방 7㎞까지 접근했다. 서해지역에서는 북방한계선(NLL) 북방 12㎞까지 접근해 위협 비행을 하다가 북상했다. 북한 공군기가 비행금지구역 인근에 접근하자 우리 공군 F-35A가 심야에 긴급 출격해 대응했다. 이에 북한 전투기가 기수를 돌렸지만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북한이 4시간 30여 분의 단시간에 공군과 전술핵운용부대, 육군 포병까지 동원한 삼중 동시다발 공격을 벌인 것은 화력 동원 측면에서는 6·25전쟁 정전협정 이후 최대 규모다. 북한이 심야에 동시다발적 도발을 벌이면서 휴전선 인근 상공과 동·서해상에서 전쟁 전야를 방불케 하는 위기감이 조성됐다. 특히 북한 전투기가 자칫 군사분계선(MDL)을 넘고 우리 공군 전투기가 격추에 나섰을 경우 ‘심각한 사태’로 전개됐을 수도 있는 위기상황이었다.
북한은 이어 이날 새벽 황해도 마장동 일대에서 서해상으로 방사포를 포함한 130여 발의 포병 사격을 가했다. 또 강원도 구읍리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40여 발의 포병 사격을 했다. 우리 영해에 관측된 낙탄은 없는 것으로 합참은 평가했지만, 탄착 지점이 9·19 군사합의에 따른 NLL 북방 동·서해 해상완충구역 내부였다. 북한은 이날 평양 순안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SRBM 1발도 발사했다.
북한의 도발에 따라 문재인 정부 시절 남북 간 체결한 9·19 군사합의도 파기의 갈림길에 섰다. 북한은 지난 2019년 11월 창린도 방어부대의 해안포 사격과 2020년 5월 중부전선 비무장지대 감시초소(GP)에 대한 총격 등 9·19 군사합의를 위반해왔다. 특히 이번 도발의 경우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져 북한이 9·19 군사합의 정신과 취지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회의감이 여권과 군 등에서 제기되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오전 9시 서해지구 군 통신선을 통해 오늘 새벽 북측의 동해 및 서해 해상완충구역 내 방사포 사격이 9·19 군사합의 위반임을 지적하고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장성급 군사회담 수석대표 명의의 대북 전통문을 발송했다”고 밝혔다.
정충신 선임기자 csjung@munhwa.com
10.14 한국, 5년만에 대북 독자제재… 北 개인15명·기관 16개 대상 추가
정부는 14일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및 대북 제재 회피에 기여한 북한 개인 15명 및 기관 16개를 독자제재 대상으로 추가 지정했다. 우리 정부의 대북 독자제재는 지난 2017년 12월 이후 처음이다.
이번에 제재 대상으로 지정되는 개인 15명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대상인 제2자연과학원 및 연봉무역총회사 소속으로, 이들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및 미사일 개발을 위한 자금 조달과 관련 물자의 대북 반입 등에 관여했다.
독자 제재 추가 지정 대상이 된 개인은 △강철학(제2자연과학원 심양대표) △양대철(연봉무역총회사 소속) △김성훈(제2자연과학원 심양부대표) △김병찬(연봉무역총회사 소속) △변광철(제2자연과학원 대련부대표) △김경학(연봉무역총회사 소속) △정영남(제2자연과학원 산하기관 성원) △한권우(연봉무역총회사 소속) △정만복(연봉무역총회사 단동대표부) △김호규(연봉무역총회사 소속) △리덕진(연봉무역총회사 소속) △박동석(연봉무역총회사 소속) △김만춘(연봉무역총회사 소속) △박광훈(연봉무역총회사 소속) △김성(연봉무역총회사 소속) 등이다.
기관은 △로케트공업부 △육해운성 △합장강무역회사 △원유공업국 △조선승리산무역회사 △하나전자합영회사 △운천무역회사 △화성선박회사 △로은산무역회사 △구룡선박회사 △고려항공무역회사 △금은산선박회사 △GENCO(대외건설지도국 산하 건설회사) △해양산업무역 △국가해사감독국 △CK International Ltd 등이다.
제재 대상 기관 16개는 WMD 연구개발・물자 조달, 북한 노동자 송출, 선박・광물・원유 등 밀수, 제재 선박 운영 등을 통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기여하고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조치를 회피하는 데 관여했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외교부는 “이번 조치는 외국환거래법에 근거한 ‘국제평화 및 안전유지 등의 의무이행을 위한 지급 및 영수허가지침’ 및 ‘공중 등 협박목적 및 대량살상무기확산을 위한 자금조달행위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 따른 것”이라며 “이번 금융제재대상자로 지정된 대상과 외환거래 또는 금융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금융위원회 및 한국은행 총재의 사전 허가가 필요하며, 허가를 받지 않고 거래하는 경우 관련법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고 했다.
우리 정부의 이번 대북 독자 제재 대상 추가 지정은 2017년 12월 이후 5년 만에 이뤄졌다. 앞서 정부는 지난 2016년 ~ 2017년 기간 5회에 걸쳐 핵 개발에 관여한 북한 개인 109명과 기관 89개를 독자 제재 대상으로 지정한 바 있다.
조선일보 김명성 기자
10.15 9·19 군사 합의 대놓고 위반한 北, 앞으로 수위 더 높일 것

▲2018년 9월 19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지켜보는 가운데 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전 북한 인민무력상이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합의문'(9·19 남북군사합의서)에 서명한 뒤 교환하고 있다. /뉴스1
북한이 13일 밤부터 14일 새벽까지 군용기, 방사포, 탄도미사일을 동원해 4시간 30분간 고강도 대남 무력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서해와 동해상으로 쏜 방사포탄 170여 발이 9·19 남북 군사합의에 따라 설정된 해상 완충 구역에 떨어졌다. 남북 군사합의 위반이다. 북은 14일 오후 5시 포 사격을 재개했다. 서해와 동해상의 해상 완충 구역에 다시 400발 가까운 포탄이 떨어졌다.
이번 도발은 북이 대남 전술핵 공격을 집중 연습하는 상황에서 이뤄졌다. 북은 달리는 열차와 저수지에서 미사일을 쏘는 등 한미 연합군의 탐지·요격을 회피하는 방법을 계속 고안하고 있다. 우리 군의 북핵 대응책인 3축 체계가 사실상 무너졌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이제는 9·19 합의까지 대놓고 어겼다.
9·19 군사합의는 우리 군에 불리한 조항이 대부분이라 처음부터 논란이 됐다.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해 군사분계선 인근에서의 공중 정찰을 전면 금지한 것이 대표적이다. 북은 공중 정찰 능력이 없기 때문에 우리 측에만 제한이 가해진 것이다. 해상완충구역 설정으로 백령도·연평도의 K-9 자주포 부대들은 훈련 때마다 포를 배에 싣고 육지로 나와야 했다.
그런데도 북은 문재인 정부 시절 여러 차례 9·19 합의를 위반했다. ‘남북 이벤트’에 목을 맨 문 정부를 마음대로 능멸했다. 하지만 당시엔 해안포 포문 개방이나 GP 두 발 총격 등으로 사안이 비교적 경미했다. 심야에 재래식 전력을 총동원해 보란 듯이 합의를 위반하고 “엄중한 경고”라고 발표까지 한 것은 차원이 다른 합의 파기다.
국제사회가 뭐라든 북은 ICBM 발사와 7차 핵실험 등 정해진 도발 수순을 이어갈 것이다. 남북 군사합의는 사문화되고 껍데기만 남을 것이다. 정부는 북에 핑계를 줄 섣부른 대응은 자제해야 한다. 대신 북이 남북 군사합의를 무시하고 행동할 것이란 전제 아래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10.15 외교·안보·국방만이라도 신사협정을
윤석열 대통령의 ‘뉴욕 막말’ 논란에 이어 한·미·일 연합훈련을 둘러싼 ‘친일’ 공방으로 온 나라가 난리를 치고 있다. 특히 정치권은 연일 죽고살기식의 진흙탕싸움으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상대방 매도에 혈안이 돼 있다. 한 국가의 존립을 위해 가장 중요한 외교·안보·국방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은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막가파식 정쟁만 난무하고 있다.
집권여당인 국민의힘과 야당 더불어민주당은 마치 철천지원수 적대국들의 대표선수들인 양 서로를 물어뜯지 못해 안달이 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도대체 ‘왜’ ‘누구를 위해’ 저렇게 끝도 없이 싸우고 있는가. 이러고도 국가와 국민, 국익을 들먹거릴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북핵 대응 한·미·일 연합훈련 등
국가의 생존권 걸린 문제에도
정치권은 막가파식 정쟁에 혈안
이래서야 운명공동체랄 수 있나
먼저, 민주당의 도를 넘는 반일프레임 공세는 즉시 멈추어야 한다. 외교·안보·국방과 관련한 연합훈련의 실질적 내용에 대한 지적이나 비판과는 관계없이 ‘무조건 일본은 안 된다’는 식의 주장엔 동의하기 어렵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지난 7일 한·미·일 연합훈련에 대해 “극단적 친일 행위로 대일 굴욕외교에 이은 극단적 친일 국방이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며 포문을 열었다. 이 대표는 또 “일본군의 한반도 진주, 욱일기가 다시 한반도에 걸리는 일이 실제 생길 수 있다”고 주장하는 등 일본과의 군사협력을 연일 비판하고 있다.
지금 북한은 대놓고 노골적으로 핵 공격 위협 수위를 높이고 있다. 북한은 지난달 법제화 조치를 통해 선제 핵공격 가능성을 열어 뒀다. 실제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등을 잇달아 발사하면서 도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수세에 몰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핵 사용을 불사하겠다며 국제사회를 겁박하고 있는 가운데 김정은이 올라탄 격이다. 지난 13일 밤부터 14일 새벽까지는 4시간 반 넘게 군용기 위협 비행과 탄도미사일 발사, 해안 포사격 등 동시다발적 심야 도발을 감행했다. 14일 오후에도 동해와 서해에 수백 발을 포격했다. 작금의 한국 안보 상황은 대단히 엄중하다.
이런 위기에서도 한·미·일 연합훈련을 ‘극단적인 친일 행위’라고 치부할 수 있는가. 현재 북한 핵을 한국만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안다. 전술핵 재배치 등 동맹국인 미국의 핵 역량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잠수함 탐지 초계기 등 고성능 탐지장비를 많이 갖춘 일본과의 협력은 지금 상황에서 한국의 국방에 보탬이 됐으면 됐지 마이너스가 되지는 않는다.
일본과의 연합훈련은 윤석열 정부 들어서 처음으로 시작한 것도 아니다. 민주당의 문재인·노무현 정부 때도 여러 차례 있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이재명 대표가 느닷없이 친일 행위 운운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국제사회에는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는 건 이제 너무나 당연한 명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가 스스로 일본과의 군사협력 선택지를 원천 배제하는 것은 명분만 내세우는 억지일 뿐이다. 국토방위에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옛 적국과도 손잡을 수 있어야 한다. 1, 2차 세계대전의 숙적 독일과 프랑스는 서로 화해하고 유럽연합(EU)과 나토의 핵심 국가로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독도와 교과서, 강제징용 배상 문제 등이 아직 얽혀 있는 한·일 관계가 독·불 관계와는 다른 측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모든 일에 반일과 죽창으로 맞설 수 있나.
일본을 경계해야 하는 것은 언제든지 맞는다. 마찬가지로 중국과 미국도 경계해야 한다. 그렇다고 일본만 잡고 늘어지는 것은 정말이지 시대착오적이다. 꽉 막힐 대로 막힌 일본과의 관계로 이득을 볼 수 있는 쪽은 무엇보다 북한일 것이다.
여당의 대응은 너무나 한심하다. 국민의힘을 대표하는 정진석 비대위원장은 “조선은 안에서 썩어 문드러졌다”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며 경우에 맞지 않는 부적절한 발언을 늘어놓아 빌미를 제공했다. 여당은 냉철한 논리로 야당을 설득하고 힘을 합쳐야 하는 상황에서 너무나 무기력하게 스스로 설 땅을 좁히고 있다.
이처럼 여야 할 것 없이 모든 이슈와 정책을 정쟁화하는 우리 정치권의 행태에 정치혐오증은 극에 달하고 있다. 염치도 체면도, 게다가 실익도 없는 당파싸움에 국민의 인내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정치권에 크게 기대할 건 없겠지만 적어도 한국의 존립이 걸린 문제, 외교·안보·국방에서만큼은 신사협정을 맺고 우리가 같은 공동체임을 보여 줬으면 좋겠다. 서로가 최소한의 금도는 지키는 맨정신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같은 땅에서 같은 목표를 두고 살아가는 한국인임을 확인할 수 있지 않겠나. 정치인만을 위한 외교·안보·국방 정쟁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스웨덴에서는 집권정당 혹은 의회가 연금·국방·에너지 3개 분야 정책을 마음대로 바꾸지 못한다고 한다(『스웨덴의 저녁은 오후 4시에 시작된다』, 윤승희 지음, 추수밭). 기존의 방향을 수정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국민투표를 거쳐야만 한다. 국민이 바로 정책의 방향을 결정짓는 미래이자 기본이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권도 일말의 양심이 남아 있다면 개인이나 정당의 작은 이해관계를 넘어 국가 생존의 대의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다.
중앙일보 한경환 총괄 에디터
10-17 이재명 대표, 국방에는 장난치지 말아야
헌법상 대통령 첫 번째 책무는 국방… 文, 국방 자해한 유일한 대통령
대통령 되겠다는 李, 국방에 색깔론?… 文 정권은 ‘친북 국방’ ‘대화 국방’인가
새삼 헌법을 들여다본다. 대통령의 첫 번째 책무는 ‘국가의 독립·영토의 보전·국가의 계속성과 헌법 수호’(66조 2항)다. 대통령의 취임 선서(69조)에서도 ‘국가 보위’는 ‘조국의 평화 통일’이나 ‘국민의 자유와 복리 증진’에 앞선다. 쉽게 말해 대통령이 해야 할 지상(至上)의 과제는 나라를 지키는 것, 즉 국방(國防)이다. 이는 국민을 잘 먹고 잘 살게 하는 것보다 중요한 책임이다. 나라가 없으면 국민도 자유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역대 대통령도 첫 번째 책무에 대체로 충실했다. 단 한 분만 빼고. 이분은 ‘평화를 지켜주는 건 힘이 아닌 대화’라는, 국가 지도자로선 위험천만한 안보관을 지녔다. 위기의 순간에도 상대의 선의에 기대어 대화에 연연했던 지도자들이 나라를 패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것이 고금(古今)의 진리임에도.
문재인 전 대통령. 대한민국 70년 안보의 보루인 한미동맹을 위협했고, 자신의 표현대로 ‘높은 산봉우리’ 중국에 ‘작은 나라’ 한국의 안보주권 일부를 내준 ‘3불’(사드 추가 배치 불가,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 불참, 한미일 삼각동맹 불가)을 약속했으며, 대일 죽창가로 일본과의 안보 협력을 파탄 냈다.
그러면서도 오로지 북한에만 ‘몰빵’했다. 31세나 어린 김정은으로부터 갖은 수모를 받으며 대화를 구걸하고 9·19 군사합의로 우리 안보의 안방 문을 열어줬다. 그 결과가 작금의 무차별 도발 시리즈다. 북한은 지난달 25일부터 한반도 근해와 공해상에 미친 듯이 중·단거리탄도미사일과 저수지 발사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장거리순항미사일과 방사포를 쏘고 고물 전투기까지 수백 대를 동원해 우리 군의 전술조치선을 넘어 군사분계선(MDL) 북방 25km까지 내려왔다.
이런 무더기 도발엔 미국을 향한 김정은의 초조감이 읽힌다. 하지만 남쪽을 향해서는 ‘이래도 니들이 뭘 할 수 있겠느냐’는 자신감도 과시하는 듯하다. 대한민국이 그렇게 우습게 보이나. 문 정권 대북 굴종의 참담한 후과(後果)다. 문 전 대통령 못지않게 북한에 유화적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라크 파병과 평택 주한미군·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관철할 정도로 안보의 기본 원칙은 지켰다. 문재인은 국방을 자해한 유일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 아스라한 5년을 버텼더니, 이번에는 차기 대통령을 하겠다는 분이 듣도 보도 못한 친일(親日) 국방론을 들고나왔다. 다른 것도 아닌 국방에까지 색깔을 입히는 그 상상력에 먼저 경의를 표한다. 그럼 한미동맹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지난 70년의 국방은 ‘친미 국방’이고, 북한과의 대화가 평화를 지켜준다는 전 정권의 국방은 ‘친북 국방’ ‘대화 국방’인가.
대통령이 될 생각이라면 국방만큼은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국방마저 색깔을 입혀 정쟁의 대상으로 만든다면 군 통수권자로서의 자질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우리 헌법이 요구하는 대통령의 자격이다. 그럼에도 이 대표는 한미일 연합훈련에 ‘극단적 친일 국방’이라는 황당한 언사를 한 것도 모자라 그 말을 주워 담느라 ‘한반도에 일본군이 진주(進駐)’ ‘욱일기가 한반도에 걸릴 수도’ ‘일본이 사실상 경제 침탈’ 같은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이고 있다.
스텝이 엉켰을 때는 한발 물러나야지, 더 밟으려다간 더 꼬일 수밖에 없다. 항간의 소문대로 ‘사법 리스크’를 호도하기 위해 이렇게 극단적인 발언을 했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이 대표가 아직도 차기 대통령에 뜻이 있다면 국방에도 색깔론을 들이대는, 불안한 이미지가 무슨 도움이 될지 돌아보기 바란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김정은이 보란 듯이 9·19 군사합의를 파기하며 도발 쇼를 벌이는 와중에도 국방 색깔론이 어느 정도 먹히는 이 나라의 수준이다. 점점 대한민국이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나라가 돼가는 느낌이다.
미국의 대북 전문가들도 ‘북한이 이미 이겼다’며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려는 터. 누군가, 어디선가 대한민국의 핵 보유 시나리오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연구하고 있어야 정상적인 나라다. 이미 휴지 조각이 된 한반도 비핵화 선언이나 9·19 군사합의를 부여잡고 감 떨어지기만 바라서야 되겠는가. 경국지색(傾國之色) 포사의 웃음을 보기 위해 거짓 봉화를 올리다 멸망한 서주(西周)의 고사를 돌아보라. 다른 건 몰라도 안보나 국방 갖고 장난치지는 말라.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10월 17일 “무력 통일 불사” 시진핑이 김정은 배후임을 직시해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핵전쟁 협박, 북한 김정은의 핵무기 사용 법제화 등에 이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6일 “무력 통일 불사” 입장을 밝힌 것은 일맥상통한다. 첫째는 3명의 독재자가 경쟁적으로 세계 평화를 위협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고, 둘째는 동북아와 한반도 정세에 직접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은 이런 3중 위협을 직시하면서 한미동맹을 중심으로 더 결연한 안보 태세를 갖추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시진핑은 제20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 개막 연설에서 대만 문제와 관련해 “통일을 위해 무력사용 포기를 결코 약속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미·중 수교 때 ‘하나의 중국 원칙’과 더불어 견지됐던 ‘평화적 방식에 입각한 대만 문제 해결 원칙’이란 구속에서 벗어나 대만 정복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홍콩 사태만 봐도 알 수 있다. 3기 연임에 돌입하는 시 주석은 대만 통일을 장기 집권의 명분으로 쓸 수도 있다. 시 주석이 연설에서 “중앙집권적 통일 영도” 필요성을 역설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시 주석은 지난 8월 낸시 펠로시 미 하원 의장의 대만 방문에 앞서 “불장난을 하면 타 죽을 것”이라고 경고했고, 군은 대만 주변에서 대규모 실전훈련을 하며 무력시위를 하기도 했다.
이런 시진핑이 더욱 김정은 뒷배 노릇을 자청하고 나선 것은 당장 우려할 만한 일이다. 시진핑은 최근 김정은에게 보낸 서신에서 ‘새로운 정세 하에서 중·조가 단결과 협조를 강화해야 할 중요성’을 강조했다. 최근 상황을 보면 김정은에게 도발 자제를 요청하는 것이 정상인데, ‘전략적 의사소통’ 강화를 내걸었다. 북한 7차 핵실험이 시진핑 3연임 확정부터 미국 중간선거 사이가 될 것이란 전망도 유력하다. 미국에선 중국의 대만 침공이 5년 내 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어느 시점에 중국과 북한이 동시 도발에 나설 수도 있다. 한반도와 동북아가 21세기 화약고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유 진영 연대를 더 강화할 수밖에 없고, 이를 위해 한국이 더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
10월 17일 尹정부 첫 호국훈련, 北 도발 압도할 실전 능력이 관건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한미 연합훈련은 물론 국군 차원의 대규모 훈련도 사실상 사라졌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17일부터 28일까지 실시되는 ‘호국훈련’은 그 의미가 각별하다. 최근 북한의 무차별 도발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북한은 물론 국내 일부 세력도 팀스피리트훈련 부활, 전쟁 연습 등으로 비난하고 있지만, 개의치 말고 더욱 강력하게 실시함으로써 북한 도발을 압도할 실전 능력을 배양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호국훈련은 육·해·공군과 해병대가 참여하는 야외 실병(實兵) 연습(FTX)으로, 이번 훈련에는 일부 주한미군도 동참해 상호 운용성을 높일 예정이다. 실전 같은 훈련은 강한 군대의 기본이다. 그런데 지난 1994년 평시 작전통제권이 한국에 반환되고 2년 뒤 한·미 연합 팀스피리트 훈련도 중단됐다. 이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신설된 것이 호국훈련이다. 북한 측 반발에도 불구하고 매년 강도 높게 실시됐다. 그러나 한·미 연합훈련인 키리졸브 훈련 및 독수리 연습, 태극 연습, 을지프리덤가디언, 호국훈련 등이 대규모로 실시됐지만 2018년 9·19 합의 이후 소규모 부대 훈련으로 격하되거나 없어지는 등 사실상 폐지됐다.
문 정부는 주적 개념을 없애거나 군기를 약화할 조치를 쏟아냈다. 그 결과 안보 블랙코미디가 속출했다. 지휘관은 훈련보다 사고 나지 않는 데 치중하거나, 관심병사 관리에 더 열심이라고 한다. 유사시에 대비해 북한군을 압도할 실전 역량을 키우는 등 군대를 정상화하는 일이 시급하다.
문화일보 사설
10월 17일 한국의 核 보유는 이제 ‘정당방위’다
이도운 논설위원
北의 핵 법제화, 核 균형론 촉발
전술핵재배치, 핵 공유, 핵 개발
미국과 국제사회 설득 시작해야
국내 여론은 독자 핵무장 불사
북 두둔해온 野 반대 명분 없어
국론 모을 ‘10가지 이유’ 뚜렷
마침내 ‘핵 보유’ 논의가 시작됐다. 북한의 대남 선제 핵 타격 법제화, 전술핵 부대 운용으로 남북 간 핵 균형, 안보 균형이 무너져 더 늦출 수 없는 시점에 도달했다. 그러나 확장억제부터 전술핵 재배치, 핵 공유, 독자 핵 개발까지 다양한 주장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와 오히려 혼란스럽다.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복잡한 상황의 정돈을 통해 한반도 핵 균형을 위한 지혜를 찾아보자.
첫째, 왜 핵을 보유해야 하는가. 우리가 실전 배치한 현무4 미사일의 탄두 중량은 2t, 2030년 목표로 개발 중인 현무5는 6t이다. 이에 비해 북한이 수십 기를 실전 배치한 핵탄두의 위력은 10∼20kt이고, 2017년 6차 핵 실험 당시의 폭발력은 최소 50kt에서 최대 300kt까지 추산된다. 남북이 권투 경기를 하는데, 우리가 한 대 칠 때 2만 대에서 150만 대를 맞아야 하는 게임이 됐다. 균형을 맞추지 못하면 지는 게임이다.
둘째, 미국의 확장억제로 충분하지 않은가. 윤석열·조 바이든 대통령 회담으로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가 재가동되고, 확장억제 강화 논의도 시작됐다. 그러나 북한의 핵 공격 때 미국이 뉴욕·로스앤젤레스 핵 타격 위험을 감수하고 서울을 지키겠느냐는 의문은 해소되지 않는다. 또 미국의 핵 항모·잠수함·폭격기가 전개해도 임시 조치일 뿐이고, 비용이나 타분쟁 지역 파견 등 다른 문제들이 발생한다. 북핵 억지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
셋째, 핵 보유는 어떻게 할 수 있나. 전술핵 재배치, 핵 공유, 독자 핵 개발의 순서로 갈 수 있다. 전술핵 재배치는 1991년 철수한 미군 전술 핵무기를 다시 가져다 놓는 것이다. 운용은 주한미군이 한다. 핵 공유는 나토의 전례를 따를 수 있다. 독일·이탈리아·네덜란드·벨기에·튀르키예에 미 전술핵이 배치돼 있는데, 해당국은 핵 전략·전술을 공유하며 폭격기 등 핵 투발 수단을 제공할 수 있다. 핵무기는 1950년대 개발된 기술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능력으로는 수개월 내에 독자 핵 무장이 가능하다.
넷째, 국내 여론 수렴부터 필요한데, 더불어민주당이 반대하지 않는가. 독자 핵 무장 찬성 여론도 60%가 넘는다. 민주당은 비판할 처지가 못 된다. 김대중 정권은 북한이 핵을 가질 의지도 능력도 없다고 오판 또는 거짓말을 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일리가 있다고 옹호했으며, 문재인 정권은 김정은의 엉터리 비핵화 의지를 팔아 시간을 벌어줬다.
다섯째, 비핵화 정책은 포기하는 것 아닌가. 우리가 핵을 보유하지 않는다고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가? 어리석은 질문이고, 친북적 인식이다.
여섯째, 미국 반대를 극복할 수 있나. 북한의 핵 무장에는 미 역대 정부의 오판도 작용했다. 미 정부는 기본적으로 핵 확산 방지에 중점을 두겠지만, 미국 내에서도 달라진 국제사회 현실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온다. 케네스 월츠 전 컬럼비아대 교수의 ‘핵 확산 낙관론’이 있고, 다트머스대 제니퍼 린드·대릴 프레스 교수, 수미 테리 윌슨센터 아시아국장 등은 한국의 독자 핵 무장이나 핵 보유를 지지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재임 중 한·일 독자 핵 무장까지 거론했다. 미국과 전략적 대화를 할 수 있다.
일곱째, 국제사회는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핵확산방지조약(NPT) 제10조는 “비상사태가 지상 이익을 위태롭게 하면 탈퇴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우리 상황이 그렇다. ‘권리’라는 규정은 정당방위를 인정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설득할 논리도 충분하다.
여덟째, 어떤 논리가 있는가. 전문가들은 한반도 핵 균형을 먼저 실현하고 2045년 혹은 2050년이라는 목표 시한을 정해 다시 한반도 비핵지대화를 추진하는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있다.
아홉째, 일본도 핵 무장하면 위험이 커지는 것 아닌가. 핵을 가진 이웃은 충돌하지 않는다는 것이 핵 확산 낙관론이다. 중국과 인도는 국경 분쟁이 나도 삽과 죽창, 도끼로만 싸운다.
열 번째, 앞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국가의 생존은 법과 도덕, 종교에 앞선다는 국가 이성의 작동이다. 우리 국민이 한목소리를 내면 국제 여론도 주목한다.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 외교·안보 당국자들의 능력과 열정이 필요하다. 윤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은 북한 경제 지원이 아니라 한반도 핵 균형이 돼야 한다.
문화일보
10월 17일 한.미.일 군사협력 비난은 反안보
이상환 한국외국어대 교수, 前 한국국제정치학회장
\한·미·일 연합군사훈련을 둘러싼 정치권 논쟁이 도를 넘고 있다. 제1 야당 대표는 특유의 친일 프레임으로 현 정부의 안보관에 맹공을 퍼붓고, 이에 여당은 종북 프레임으로 맞서는 형국이다. 역사적 명분과 안보적 실리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을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의 선택은 어떠해야 하는가.
한반도 주변은 군사 강국의 집결지다. 세계 군사력(핵무기 제외) 순위에서 1·2위 미국·러시아와 3위 중국 및 5·6위 일본과 한국이 있고, 이 중 미·러·중은 핵보유국이며 북한의 핵무기 완성은 현실이 되고 있다. 더욱이 올해 세계정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의 대(對)대만 군사 위협, 북한의 잇단 미사일 발사로 불안정한 상황이다.
국가 간 역사적 적대 감정을 말하자면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인 일본이 미국의 원폭 투하로 인해 막대한 인적·물적 피해를 본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사실상 원수지간이어야 할 양국이 전후부터 오늘날까지 동맹을 굳건히 지켜나가는 모습을 보면 국제사회의 엄연한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또한, 9·11 테러 이후 안보 환경 변화에 따른 미국의 군사전략이 바뀌었지만 미·일 동맹은 유사한 중국 및 북한의 위협 인식에 기초해 양국이 적극적인 전략 공조를 해 왔다. 그 반면, 문재인 정부 때의 한미동맹은 이러한 위협 인식에 이견을 보이며 양국은 갈등과 협력을 반복해 왔다.
한·미·일 연합군사훈련을 친일 행위로 규정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정치적 의도는 이해하지만, 국가안보를 위한 훈련을 역사적 감정의 잣대로 재단하는 사고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 특히, 반일을 자주로 둔갑시키는 언어 유희에 탄식이 절로 나온다. 북한의 핵무기 완성이 임박한 시점에 한·미·일 안보 협력 체제를 훼손하는 발언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급속히 진화하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일 안보 협력은 필수다. 이는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인정하는 것과 별개다. 한·미·일 훈련은 북한의 군사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 훈련이고, 문 정부 시절 3국 국방장관의 합의 사항으로 유사시 일본의 우수한 대잠수함작전 능력 등 유기적 협력을 구하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국제적 연합훈련 횟수가 늘고 있다. 아울러 문 정부 당시 축소·중단된 ‘키리졸브(KR)’ 등 한·미 연합훈련이 부활하고 있다. 아·태 지역에서 한국을 비롯한 일본·호주·인도 등 다국적 연합훈련이 급증하면서 미국의 중국 봉쇄작전이 표면화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핵 있는’ 평화를 준비해야 한다. ‘비핵화’ 협상이 아닌 ‘핵군축’ 협상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복잡한 안보 퍼즐을 풀기 위해 국민적 합의를 이뤄 나가야 할 시기에 뜬금없는 친일 몰이로 국민을 갈라치는 이 대표의 언행은 실망스럽다. 다행히 윤 정부는 굳건한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을 통한 대응 체제를 강조하고 있다.
현재 한반도 주변 정세는 한·미·일 안보협력 체제와 북·중·러 군사협력 체제 간 신(新)냉전기적 대결 구도다. 북한의 핵 위협과 중·러 등 전체주의 강대국의 도발에 대응하기 위해 한·일 역사문제 해결과 별개로 한·미·일 연합군사훈련은 불가피하다. 한·미·일 군사 협력 없이 대한민국의 안보는 없다.
문화일보
10.17 북핵 ‘아마겟돈’과 이재명의 ‘죽창가’
미국과 소련은 1962년 쿠바 위기 때 핵전쟁의 벼랑 끝에서 13일간 사투를 벌였다. 흐루쇼프를 상대한 케네디는 핵전쟁 가능성이 “3분의 1에서 절반 사이”라고 했다. 그레이엄 앨리슨과 필립 젤리코는 공저 『결정의 본질』에서 “전쟁이 터졌다면 미국인 1억 명과 소련인 1억 명 이상뿐 아니라 유럽인 수백만 명이 희생됐을 것”이라고 했다.
60년이 지난 지금 호전적인 지도자 두 사람이 핵 발사 버튼을 누르겠다고 협박 중이다. 러시아의 푸틴과 북한의 김정은이다. 북한은 핵 선제타격을 법제화 했다. 김정은은 자신이 위험에 처했을 경우 ‘자동·즉시 발사’라는 비상플랜까지 완성했다. 한·미의 ‘참수작전’에 굴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이 대만을 침공해 TSMC를 점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시설을 파괴하고 엔지니어들을 철수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바이든 행정부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진핑 1인체제 출범 이후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미국은 주한·주일 미군을 동원하려 할 것이다. 한국은 미·중 전쟁에 휘말릴 수 있다. 주한미군의 공백은 도발을 꿈꾸는 북한이 간절히 기다리는 시나리오다.
김정은 유고 시 자동 핵 발사 예고
대한민국 아마겟돈 위기에 직면
이재명, 수사 칼날 무디게 하려고
안보 외면하면 지도자 자격 없어
러시아·중국은 핵무기 보유국이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쿠바 위기 이후로 지금처럼 ‘아마겟돈’ 위기에 직면한 적이 없다”고 토로했다. 사실상 핵 보유국인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한국은 잠재적 대재앙의 첫 번째 당사자다.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은 5500㎞의 거리를 두고 대치했다. 지금 한·미 동맹은 핵 버튼에 한 손을 올려놓은 김정은과 코를 맞대고 있다. 미국은 소련, 러시아와 대사급 외교관계와 핫라인을 유지해 왔다. 그래서 쿠바 위기 때도 필사적인 소통으로 ‘공포의 균형’을 가동시켜 핵전쟁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한·미는 북한과는 대사급 외교관계도, 핫라인도 없다. 외부 정보 수집과 소통 능력이 떨어지는 폐쇄집단 북한이 오판할 경우 한반도는 생지옥이 될 것이다.
물샐틈없는 안보태세, 오판을 막기 위한 소통 채널을 모색하는 초당적 노력이 절실하다. 그러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북한 핵 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윤석열 정부의 한·미·일 연합훈련 참여에 대해 “극단적 친일 행위이고 친일 국방”이라고 비난했다. 우리를 협박하는 북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친일몰이의 ‘죽창가’를 불렀다. 같은 당 김병주 의원은 “미군이 상주하듯 일본 자위대가 한국에 들어올 수 있다”고 거들었다. 연합훈련은 문재인 정권 시기인 2017년 한·미·일 국방장관이 합의했다. 김 의원이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던 시기에도 여섯 차례나 있었다.
칸트는 『영구평화론』에서 시민이 전쟁에 반대하기 때문에 공화정이 평화애호적이라고 했다. 자유주의 국제정치 이론은 “민주주의 국가끼리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독재 국가인 북·중·러의 위협이 커질 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공유한 이웃 일본과의 협력은 최선의 생존책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사쿠라”로 매도당하면서도 박정희 대통령의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에 찬성했다. 반일 여론이 압도하던 시대에 당의 입장을 뛰어넘어 국익을 선택한 큰 정치인이었다. 대통령이 된 뒤에는 양국관계를 한 차원 높인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만들어냈다.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와 반성을 받아냈고, 전후 일본이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수행해 온 역할을 높이 평가했다. 정세균 민주당 상임고문도 “한·미·일 3국 안보협력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의 조국에 이은 이 대표의 ‘죽창가’는 시대착오적이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해 빠르게 한·일 관계를 복원해 나갈 것”이라고 한 윤 대통령의 원숙한 자세와 대비된다.
일본의 도움 없이는 한·미가 북한의 도발에 맞설 수 없다. 미국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함의 모항인 요코스카 해군기지를 포함한 일본 내 7개 유엔사 후방기지의 지원은 대북 방어에 결정적이다. 일본은 한국전쟁 때도 미군의 핵심 거점기지였다. 1953년 1월 일본 내 미군기지는 733개였다. 출격 기점으로서의 전진기지, 병사와 물자 수송의 역할을 하는 중계기지, 물자 보급과 훈련·휴양을 위한 후방기지 역할을 했다(『기지국가의 탄생: 일본이 치른 한국전쟁』 남기정).
주일 미군기지에서 한반도로 100만여 회 출격했고, 폭탄은 70만t이 투하됐다. 인천상륙작전을 위해 병사 1만 명이 수송됐고, 원산 상륙을 위한 기뢰 제거와 미군 수송에 8000명의 일본인이 동원됐다. 로버트 머피 초대 주일 미국대사는 “일본이 없었다면 미국은 한국에서 전쟁을 수행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왜 국익에 반하는 친일몰이를 하는 것일까. 자신을 겨눈 윤 정부 검찰 수사를 무디게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안보를 외면하면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된다.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국가를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란 정당과 내부 정치라는 속박에서 벗어나 국민의 경험과 지도자의 이상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이라고 했다. ‘차기’ 주자인 이 대표의 성찰을 기대한다.
중앙일보 이하경 주필·부사장
10월 18일 비핵 선언과 9·19 합의 이미 파탄 났다
이용준 前 외교부 북핵대사
연초부터 잊을 만하면 각종 미사일을 동서로 쏘아대던 북한은 최근 들어 일본열도 너머로 중거리미사일을 발사했다. 이어 잠수함발사미사일과 장거리순항미사일을 발사하고 전투기 150대 비행훈련을 발표하는 등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급기야 지난주엔 9·19 남북군사합의에 규정된 완충해역에 밤낮으로 수백 발의 포사격을 하는 등 광기 어린 도발을 했다.
북한이 김일성 시대 이래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미국의 군사적 위협도 제재 조치도 아니고 세상으로부터 잊어지는 일이다. 북한은 정치체제의 속성상 자급자족이 불가능하고 다른 나라들이 북한의 위협에 굴복해 뇌물이나 원조를 제공해야 생존할 수 있는 착취지향형 집단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무장 역시 한국과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정치적 양보와 경제적 대가를 받아내기 위한 협박 수단이었다. 그러나 핵 위협을 통해 제재 해제와 경제 원조를 얻어내려던 북한의 노력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북한은 지난 5년간 혹독한 제재 조치를 가까스로 견뎌 왔으나, 국제사회의 관심이 온통 미·중 패권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에 쏠려 북한의 존재는 잊히고 있다. 그러자 국제사회를 향해 ‘나 좀 쳐다봐 달라’고 벌이는 군사 도발은 앞이 안 보이는 존망의 갈림길에 선 북한이 내지르는 비명과도 같다. 북한은 핵무장만 완성하면 대미 수교, 남조선 흡수통일 등 모든 꿈을 단번에 이룰 수 있으리라 기대했겠지만, 오히려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이 직면한 망국의 위기와도 닮았다.
북한이 최근 일련의 도발을 통해 9·19 남북군사합의를 노골적으로 파기한 만큼, 이제 공은 우리 쪽으로 넘어왔다. 이 합의는 비무장지대 감시초소 철수와 휴전선 인근의 군사훈련 금지, 공중정찰 금지, 한강하구 개방 등 우리 군의 눈을 가리고 손발을 묶는 조치들로 가득 차 있으나, 정작 한반도 평화의 최대 걸림돌인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다. 북한이 이 합의를 먼저 파기함에 따라, 이제 우리 앞에는 이 불평등하고 위험한 합의를 정당하게 폐기할 절호의 기회가 열렸다. 그 선택은 순전히 우리 정부의 몫이다.
남북한은 1991년 핵 보유를 금지한 남북비핵화 공동선언에 합의했으나, 북한은 비핵화 약속을 파기하고 6차례 핵실험까지 했다. 그런데도 한국은 이 합의를 지금도 홀로 준수하고 있다. 북한이 1994년의 미·북 제네바 합의를 위반하고 비밀 핵 개발을 계속하자, 2003년 제네바 합의 폐기와 더불어 북한 신포에서의 경수로 공사도 중단됐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그 후 2년간 홀로 경수로 공사 재개에 집착한 결과 4000만 달러의 추가 공사비만 날렸다.
이런 명분도 실리도 없는 우매한 선례를 재차 반복해서는 안 된다. 어떤 이유에서든 9·19 군사합의를 당장 폐기하기 어려운 사정이라면 북한이 7차 핵실험을 실시할 경우 9·19 군사합의 폐기, 비핵화 공동선언 폐기, 한·미 미사일방어(MD) 협력, 사드(THAAD) 추가 배치 등 우리의 안보를 위한 대응 조치를 할 것임을 사전에 명확히 천명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의 미래 행동에 대한 명분을 축적하고 중국의 대북(對北) 압력 행사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일보
10.18 정쟁을 국경에서 멈추게 하려면

▲한미일 대잠 합동 훈련에 참여한 함정들이 지난달 30일 동해 공해상에서 기동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일본 해상자위대 신형 준이지스급 구축함 아사히함, 미국 유도미사일순양함 챈슬러스빌함, 미국 원자력 추진 잠수함 아나폴리스함, 미국 원자력 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함, 한국 구축함 문무대왕함, 미국 이지스 구축함 벤폴드함. [일본 방위성 제공. 연합뉴스]
외교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명언 가운데 “정치는 국경에서 멈춰야 한다”는 말이 있다. 1948년 미국 야당이던 공화당 출신의 상원 외교위원장 아서 반덴버그가 민주당 정권의 대외정책인 트루먼 독트린에 손을 들어주면서 한 이 말은 여야 정쟁이 외교ㆍ안보 문제로 번져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그의 협력을 발판으로 트루먼 행정부는 마셜 플랜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창설을 실행할 수 있었다. 중대한 외교 정책에는 여야가 초당적 협력을 하는 미 의회의 전통은 이런 경험을 거치면서 형성된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안보 상황은 반덴버그의 협치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미사일을 쏘아올리는 북한의 위협 앞에서 여야는 김정은에게 비핵화 의지가 있냐 없냐는 신학 논쟁을 벌이면 안 된다. 푸틴의 전술핵 사용 불사 발언에 유독 한국 정치권만 둔감한 걸 보면 푸틴의 다음 순서가 김정은이란 사실을 잊은 듯하다. 엊그제 시진핑은 대만 통일에 무력 사용이란 선택지가 있다고 공언했다. 남의 일이 아니다. 대만 침공이 현실화되면 전략적 유연성을 행동 원칙으로 삼는 주한미군 전력의 상당 부분이 빠져나갈 수 있다. 김정은이 호시탐탐 노리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신냉전 초입에 서 있는 2022년 대한민국은 구(舊)냉전 초입이던 1948년 미국 의회ㆍ행정부와 정반대의 모습이다. 정쟁을 국경에서 멈추기는커녕 국경 밖의 문제까지 안으로 끌어들여 정쟁의 소재로 삼는 데 여념이 없다. 이럴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대일(對日) 외교 공방이다. 늘 그랬듯 기승전결의 결은 친일(親日)-반일(反日) 프레임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말 동해에서 펼쳐진 한ㆍ미ㆍ일 연합훈련을 ‘극단적 친일 국방’이라고 몰아쳤다. 동해 훈련은 대잠수함 훈련이 주축이었다. 왜 그랬을까.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개발이 임박한 정황과 무관치 않다. 북한 잠수함이 핵탄두를 탑재해 동해로 빠져나오는 건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위협이다. 우리 군은 사활을 걸고 북한 잠수함을 탐지하고 추적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아는 대로 이 분야 최고의 능력과 노하우는 일본 자위대에 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달 11~13일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일본과의 군사협력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49%로 ‘불필요하다’는 의견(44%)을 앞지른 게 뭘 의미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외교 정책의 방향과 방법론을 놓고 생산적인 논의가 이뤄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국가의 안위가 걸려 있고 국민의 생명·안전과 직결되는 훈련을 정쟁 거리로 삼아 안보 태세를 약화시키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편협한 역사관에 매여 국민의 평균적인 안보 상식에도 못 미치는 발언을 계속하는 건 지도자로서의 자질에 대한 의심으로 직결된다. 문재인 정부 시절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이 파기 일보 직전까지 갔던 경험은 한 번으로 족하다.
안보를 갉아먹는 정쟁을 국경에서 멈추게 하려면 야당뿐 아니라 여당의 노력도 필요하다. 반덴버그의 결단은 공화당의 고립주의 전통에 얽매이지 않은 반덴버그 자신의 소신에 따른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끈질긴 노력과 설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안보를 볼모로 삼는 ‘극단적 친일’ 공세에 ‘극단적 친북’이라 받아치며 맞불을 지르는 건 가장 간단하고 손쉬운 대응이다. 그런다고 우리 안보가 튼튼해지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ㆍ여당은 엄중한 안보 현실을 야당 지도자들에게도 설명하고 적정 수준에서의 정보를 제공하는 등 안보 인식을 공유하기 위한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노태우ㆍ김대중 등 역대 정부도 중대한 외교 현안이나 대북 정책을 실행할 때는 야당에 충실히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다. 팬덤 지지층만 믿고 국민을 내 편, 네 편으로 갈라치기 했던 지난 정부만 예외였을 뿐이다.
중앙일보 예영준 논설위원
10월 20일 ‘나토식 핵 공유’가 현실적 대안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불편한 진실 된 北 전술핵 능력
최근 미사일 16발 중 실패 없어
불가능해진 CVID 대안 찾을 때
킬체인 KAMD 효과는 제한적
한·미 ‘핵 공유’ 투명하게 진행
걸림돌은 중·러보다 美 행정부
이 정도면 믿어줘야 한다. 지난달 9일 북한이 공개한 공격적인 핵 법령에 이어 25일부터 시작된 핵 질주는 북한의 전술핵 타격 능력과 의지를 확인시켜 준다. 실전 배치 수준과 전술핵 대량 생산 능력 등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북한이 발사한 탄도미사일 14발과 장거리 순항미사일 2발 중 단 한 발도 실패하지 않았다. 북한의 ‘우리 국가 핵전투무력의 현실성과 전투적 효과성, 실전 능력이 남김없이 발휘’됐다는 선포를 빈말로 치부하기 어렵다. 적어도 한국, 일본, 괌을 향한 전술핵 타격이 가능하다.
북한 전술핵은 미국 본토를 공격하는 전략핵에 비해 실제 사용 가능성이 크다. 월등한 전략핵을 보유한 미국을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공격하는 것은 자살 행위지만, 한국을 향해 인구밀도가 높지 않은 지역을 전술핵으로 타격하는 시나리오는 불가능하지 않다. 특히, 북한이 실전 배치한 KN-23은 회피 기동을 통해 한·미 미사일방어(MD) 체계를 뚫을 수도 있다. 북한은 핵을 재래식 무기와 함께 사용할 수 있음을 꾸준히 천명해 핵 사용 문턱을 대폭 낮춘 차원이 다른 위협을 부과한다. 따라서 한국의 대응도 근본적으로 변해야 한다.
우선, 불편한 진실을 인정해야 한다. 고도화·다종화·대량화된 북한 핵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는 불가능하다. 북한과 같이 핵물질, 핵탄두, 투발 수단을 자체 생산하는 핵보유국을 완전히 비핵화한 역사적 전례가 없다. ‘안보-경제 교환 모델’ 또는 ‘안보-안보 교환 모델’ 등의 이론이 제시되지만, 핵 법령을 통해 “우리의 핵을 놓고 더는 흥정할 수 없게 불퇴의 선을 그”었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외침 앞에서 무력하다.
이제는 핵을 가진 북한과 ‘공존’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외교와 협상을 통한 비핵화 노력을 완전히 접을 순 없지만, 우선순위는 북한 핵 사용을 최대한 억제하고 사용 시 가장 효과적인 대책을 갖추는 것이다.
3축 체계는 북한 전술핵 앞에서 효과가 제한된다. 선제타격용 킬체인은 북한이 다양한 미사일 발사 수단을 갖춤으로써 탐지·식별에 한계가 있다. 특히, 핵을 가진 북한을 재래식 무기로 선제타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국형 미사일방어 체계인 KAMD는 회피 수단을 가진 북한의 미사일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대량 응징보복을 가한다는 KMPR는 전면전을 각오 않고는 불가능하다. 더불어 아무리 고도화된 재래식 무기도 핵무기와 견주기 어렵다.
그렇다면 현 상황에서 북한 핵을 억제하고 대응하는 최선의 수단은 나토 식 핵 공유다. 미국 전술핵을 한국에 반입하고 한·미가 연합훈련을 통해 투발 수단을 공유하는 방안이다. 전술핵이 들어오면 유사시 최단 시간 맞춤형 반격이 가능하고, 확장억제 공약의 신뢰도가 높아져 북한을 심리적으로 억지하는 효과도 크다. 1991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이 무효가 되고 외교와 협상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은 요원해질 수 있으나, 완전한 북한 비핵화는 불가능하다는 전제를 공유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국과 러시아 등의 반발도 극복할 수 있다. 사드(THAAD) 배치 때와 달리 한·미가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전술핵 도입을 예고하고 시행하면 된다. 그래도 중국이 보복한다면 안보를 위해 경제 이익 일부를 포기해야 할 만큼 위중한 상황임을 상기하면서 국론을 결집해 돌파해야 한다.
오히려 가장 큰 걸림돌은 미국, 특히 조 바이든 행정부다. ‘핵 없는 세상’이라는 구호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공유하면서 신념화한 바이든 대통령이 전술핵 재반입에 쉽게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11일 존 커비 백악관 전략소통조정관은 전술핵 배치에 대해 “한국의 입장과 바람에 대해서는 한국 측이 말하도록 두겠다”면서도 “우리의 목표는 한반도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이고, 아직도 이것을 향한 외교적 경로가 남아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군사적 대응 태세를 격상하기보다는 여전히 협상을 중시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비상한 결심이 필요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나서서 바이든 대통령과 담판해야 한다. 새로운 차원의 심각한 북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확장억제도 최대치로 운용해야 함을 설득해야 한다. 판이 바뀌었다.
문화일보
10.21 5년 뒤 북핵 200기, 대한민국 존립 위협 시작된다
군 합동참모본부가 최근 내부적으로 “북한이 2027년이면 핵무기 200기 이상을 보유할 것”이란 판단을 내렸다고 한다. 핵무기 200개면 미국 러시아 중국 다음으로, 선제 핵 공격을 한 뒤 미국의 핵 반격을 받아도 다시 재공격을 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제2격’으로 불리는 이 능력까지 갖게 되면 명실상부한 핵보유국이 되며 더 이상 비핵화 협상은 의미가 없게 된다.
미국 전문가들은 북한이 곧 미국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다탄두 ICBM까지 개발할 것으로 본다. 북이 미국에 핵탄두를 쏟아부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은 이를 다 막을 수 없다. 이 경우 미국이 자국민 수천만 명의 목숨을 걸고 한국민을 위해 북과 핵으로 맞설 것으로 믿는다면 ‘바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북한 핵 200기가 현실화되면 미국은 북과 핵군축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핵군축이란 것은 한마디로 북한이 핵을 보유한 상태에서 대북 제재가 해제되는 것이다. 북한은 우리를 마음대로 쥐고 흔들려 할 것이다. 핵보유국이 돼 한국 위에 올라서겠다는 북의 오랜 집념이 이뤄지는 것은 경제 기적과 민주화를 이룬 대한민국이 근본적이고 실존적인 존립 위협에 빠지게 된다는 뜻이다.
북핵이 200기가 넘어가면 미국은 북한 비핵화는 사실상 포기하고 한국의 핵무장을 막는 데 더 신경을 쓸 가능성이 있다. 최근 미국 관리들은 북의 핵 전력 완성에 따라 한국 조야에서 미국 핵우산에 대한 불안감이 나오는 데 대해 불쾌감을 표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서울을 지키기 위해 뉴욕을 희생하겠느냐’는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고 있다. 만약 미국이 지금 한국의 입장이라면 그 관리들은 앞장서 핵무장을 주장했을 것이다.
미국의 ‘확장 억제’도 북핵 200기 앞에서는 허황된 얘기일 뿐이다. 무엇보다 군사 기술적으로 그렇다. 그게 가능하다면 핵보유국들은 막대한 비용을 쓰며 핵전력을 왜 유지하고 있겠나. 정부와 군은 모든 군사력 건설의 방향을 북핵 대응에 맞추는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지금 우리 국력으로 전력을 투구하면 길이 열릴 수 있다.
조선일보 사설
10월 21일 ‘6·25전쟁사’ 육사 필수과목서 뺀 文정부 저의 뭔가
국기(國基)를 파괴하던 문재인 전 정부가 육군 초급 장교 양성·배출 기관의 교육도 흔든 것으로 드러났다.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이 입수해 20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육군사관학교는 ‘6·25전쟁사’ ‘북한의 이해’ ‘군사전략’ 등을 2019년부터 ‘국방전략’ 전공자 외에는 필수과목에서 뺐다고 한다. ‘지휘관리’ ‘군사과학’ ‘군사공학’ 등을 전공하는 생도들에게는 선택과목으로만 남겨, 이수하지 않고도 졸업할 수 있게 했다. 그러곤 ‘스트레스와 건강’ ‘군대문화의 이해’ 등을 필수화했다.
1953년 휴전 이래 필수였던 ‘6·25전쟁사’조차 선택화한 저의가 뭔지부터 묻게 한다. 육사(陸士)와 마찬가지로 졸업 후 소위로 임관되는 육군3사관학교도 ‘6·25전쟁사’ ‘북한학’ 등을 2021년부터 선택과목으로 돌렸다. 육사 출신 예비역 중장인 신 의원이 “국가관, 안보관, 전략적 사고 형성 등을 위해 편성한 기초 필수 교과에서 ‘6·25전쟁사’가 제외된 것은 충격적”이라고 밝힌 취지대로, 안보 무력화(無力化)의 일환인 것으로도 의심된다.
문 정부가 북한에 대한 ‘주적(主敵)’ 개념마저 없앤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육사 내부에서도 반대 의견이 제기됐지만, 묵살 당한 배경도 달리 있기 어렵다. 선택으로 전환된 뒤로 ‘6·25전쟁사’ 수강생이 급감한 것도 문 정부가 노린 결과일 수 있다. 육사 측은 “자율학습 능력을 길러주기 위한 조치” 운운으로 둘러댈 일이 아니다. 빨리 필수과목으로 되돌려야 한다. 3사(士)도 예외일 수 없다.
문화일보 사설
10월 21일 美 ‘전술핵 배치 공개적 반대’는 잘못
백승주 국민대 석좌교수, 前 국회의원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 대사는 지난 18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전술핵의 한반도 재배치 주장은 무책임하고 위험하다”고 했다. 그리고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핵무기를 갖는 것이 더 낫다고 결론짓는 세계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표현으로 국내 정치권 일각의 ‘독자 핵무장’ 주장에 쐐기를 박았다.
미국의 대(對)한반도 핵심 관계자 ‘미핵관’의 발언은 미국 정부 입장으로 봐야 한다. 미국의 핵정책을 고려할 때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핵무기의 선제사용을 법제화하고, 다양한 투발 수단을 일상적으로 실험하는 북한의 도발 퍼레이드 속에서 미핵관의 공개적 입장 표명은 시기상조 측면이 있다.
미국은 1994년 이후 8년 주기로 발행되는 ‘핵 태세 보고서’를 통해 ‘핵 보유는 적의 핵무기 공격을 막는 데 유일하고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일부 우리 정치지도자와 사회 지도자가 핵무기 독자 개발, 전술핵 반입을 주장하는 것은 미국의 전략문서에 명시된 ‘핵무기의 특수한 군사적 가치’를 정확히 이해한 내용이다. 북한은 핵무기 사용의 법제화를 통해 ‘작전상 주도권 확보’가 필요할 경우 언제든 핵무기를 선제사용하겠다고 선언했다. 우리 정치권 일각의 주장은, 6차례 핵실험을 통해 핵탄두를 확보한 북한의 핵 위협에 핵무기 보유라는 ‘공포의 균형’을 통한 안전을 담보하려는 고민의 결과다.
필자는 독자 핵개발, 전술핵무기 재반입에 대통령은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확고하게 갖고 있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지금과 같은 현실적 핵 위협 상황에서 ‘공포의 균형 전략’ 논의 자체를 막으려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첫째,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북한은 마음 놓고 미국 핵우산에만 의존하는 대한민국을 계속 협박할 수 있다. 군사적으로 업신여길 수 있다. 둘째, 일부 정치권 인사들과 학자들의 발언이 우리 정부의 최종 입장으로 호도될 수 있다. 정부의 최종 입장은 아니다. 셋째, 핵 보유 도미노를 심각하게 걱정하는 중국이 북한의 핵 폐기 과정에 소극적으로 나오게 할 수 있다.
미국은 ‘2018년 핵 태세 검토 보고서’를 통해 최종적 계획과 과정적 계획으로 핵무기 정책을 분리한다. 최종적 정책은 핵무기 제거이다. 과정적 정책으로는 ‘현대적, 융통성·탄력성이 있는 핵 보유 능력’을 발전시키는 데 있다. 이 분리정책은 한반도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 최종적으로는 ‘핵무기 없는 한반도’여야 한다. 그러나 과정적으로 보면 북핵 폐기를 위해 전술핵무기, 독자 핵개발 문제에 대한 융통성 있는 입장으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이미 1960년대 초반부터 1991년까지 전술핵무기를 배비한 적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 정부가 논의를 공식적으로 요청하고 협의하는 과정에서 미국 정부의 입장이 비공개적으로 제시돼야 마땅하다.
국내 일부 여론조사에서 독자 핵무장에 대한 지지가 70%를 웃돈다. 현실 정치에서 이러한 국민 정서를 철저하게 외면하면서 안보정책을 추진하긴 어렵다. ‘미국이 반대하니까 추진할 수 없다’고 한다면 오히려 반미 감정을 자극하게 될 것이다. 미핵관들도 이러한 한국 사회의 분위기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미핵관들의 최근 발언은 시기적으로나, 절차적으로 유감이다.
문화일보
10.22 ‘6·25전쟁사’ 몰라도 되는 육사, 軍 기둥 오염에 말을 잊는다

▲육사 제78기 졸업 및 임관식. (육군 제공)./뉴스1
육군사관학교가 2019년부터 교과과정을 개편해 졸업을 위한 필수 교과목에서 ‘6·25전쟁사’를 뺐다고 한다. 육사에는 ‘국방전략’ ‘지휘관리’ ‘군사과학’ ‘군사공학’ 등 4개의 군사학 전공이 있는데, 이 중 국방전략 전공자를 제외한 나머지 약 75% 인원은 ‘6·25전쟁사’를 수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북한의 이해’ ‘군사전략’도 필수 과목에서 빠졌다. 대신 ‘양성평등’, ‘스트레스와 건강’ 등이 필수가 됐다. 육군3사관학교도 지난해부터 6·25전쟁사와 북한학을 필수 과목에서 제외했다.
6·25전쟁은 이 땅에서 가장 최근에 벌어진 최대 규모 전쟁이다. 승인, 패인, 전술, 전략, 교훈 등 군인으로서 알아야 할 모든 것이 집약된 교과서와도 같은 사변이다. 다시는 침략당해 국토와 국민이 유린되게 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교육 효과도 있을 것이다. 미국 등 거의 모든 나라의 사관학교는 자국 전쟁사를 필수로 가르친다. 한국 육사는 그렇게 하지 않는 세계 유일, 전무후무한 사관학교일 것이다. 대한민국 육군의 핵심 간부가 될 학생들이 6·25전쟁과 북한, 군사 전략에 대해 배우지 않는다면 대체 무엇을 배운다는 건가.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지 않는다.
이런 개편을 주도한 이들은 문재인 정부 시기 육사에서 주요 보직을 맡은 교수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육사 내부에서 반대도 있었지만 묵살당했다고 한다. 당시 문 정부의 대북 저자세, ‘육사 힘 빼기’ 등의 분위기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문 정부는 2018년 국방백서에서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는 문구를 공식 삭제했다. 6·25 때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낸 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을 친일파로 몰고, 6·25 남침 공로로 북한 훈장을 받은 사람을 ‘국군의 뿌리’라고 했다. 중고 교과서에서도 6·25전쟁에서 ‘남침으로 시작된’이라는 설명을 빼려 했다. 육사에서 ‘6.25전쟁사’ 과목을 선택으로 만든 것도 비슷한 시기에 벌어진 일이다.
교과과정을 바꿀 당시 육사에선 신입생 선발 시험 채점 오류 사건도 발생했다. 공사가 이를 발견해 알렸지만 육사는 오류를 통보받고도 바로잡지 않았다. 친북, 친중 성향을 갖고 있는 육사 내 군인들이 같은 생각을 가진 정권을 만나 주요 보직을 차지하고 육사 내 정치에 빠져 있다 보니 온갖 황당한 일들이 벌어졌다. 이런 일이 더 있을 가능성이 있다.
사관학교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방패를 육성하는 기관이다.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교육기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곳마저 시대착오 이념에 물들어 정치 행위를 하는 사람들에 의해 오염됐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직접 사건의 경위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하루빨리 육사를 제자리로 돌려 놓아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10.24 미국 전술핵의 한반도 재반입이 중요한 이유
히로시마 원폭의 5000~6000배
전략핵무기는 실제 쓰긴 어려워
핵보유국이 사용할 수 있는
핵무기는 소형 전술핵
美 전술핵 다시 들여오면
북핵 억지력 될 수 있어
저명한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강대국들이 보유한 핵무기의 엄청난 파괴력이 그들 사이의 전쟁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세계 평화 유지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했다. 승자와 패자의 구별도 없고 전방과 후방의 구분도 없이 모두 함께 멸망하게 될 핵전쟁의 공포가 역설적으로 평화를 지켰다는 얘기다. 그건 사실이다. 미국과 러시아가 히로시마 원폭보다 훨씬 큰 핵탄두를 무려 5000개씩이나 보유하고 있지만 그건 전면 핵전쟁이 벌어지지 않는 한 사용이 불가능한 창고 속의 무기일 뿐이다. 어느 쪽이건 선제 핵 공격을 하면 즉각 보복 공격을 받아 공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오하이오급 핵잠수함은 475kt 수소탄두 8개가 장착된 다탄두 트라이던트II 미사일을 탑재하고 있다. 핵잠수함 1척에 이런 미사일이 24기가 탑재되는데, 전체 폭발력 합계가 히로시마 원폭의 5500배나 된다. 러시아 핵무기는 더 엄청나다. 벨고로드급 핵잠수함에 탑재된 초대형 핵어뢰 포세이돈은 탄두가 최대 100Mt이라는데, 이는 히로시마 원폭의 6200배에 해당한다. 해상에서 500미터 높이의 방사능 쓰나미를 일으켜 반경 1500km 이내의 모든 생명체를 초토화한다 해서 ‘지구 최후의 날(Doomsday)’ 핵무기라 불린다. 벨고로드급 핵잠수함에는 이런 핵어뢰가 6기나 탑재된다. 그러나 두 나라가 보유한 이런 가공할 전략핵무기들은 동반 자살을 각오하지 않는 한 아무도 먼저 사용할 수 없다.
그래서 개발된 것이 전술핵무기다. 전략핵무기는 도시 단위 면적을 초토화하나, 전술핵무기는 히로시마 원폭보다 훨씬 작은 1kt 내외로서 전투 현장에서 반경 0.5~1km 정도를 초토화하는 용도이며, 방사능 확산도 제한적이다. 이는 미국이 냉전 시대에 소련 진영의 압도적 탱크 전력을 저지할 목적으로 개발해 서유럽과 한국에 배치했었고, 현재는 대부분 폐기되었다. 핵무기를 크게 만들기는 쉬워도 작게 만드는 건 고난도 기술이어서 현재 미국, 러시아, 이스라엘만 전술핵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패퇴하기 시작한 러시아가 궁여지책으로 핵 사용을 위협함에 따라 국제사회에 핵전쟁 공포가 급부상하고 있다. 물론 러시아가 핵무기를 쓰더라도 전략핵이 아닌 전술핵에 국한되겠지만, 미국과 나토(NATO) 진영의 강력한 응징을 각오해야 할 상황이어서 선택이 쉽지 않아 보인다. 최근 유럽연합(EU) 외교장관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어떤 핵 공격이든 발생하면 러시아군은 군사적으로 전멸하게 될 것”이라 경고했고, 미국과 나토도 “심각한 후과”를 강조하고 있다. 러시아가 핵 사용을 강행할 경우, 나토의 강력한 재래식 무력 응징을 초래하게 되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2017년 제6차 핵실험에서 핵무기 소형화와 수소탄 실험에 성공한 북한은 향후 제7차 핵실험을 통해 전술핵무기급 초소형 수소탄 실험을 실시할 전망이다. 북한이 미국, 러시아, 이스라엘에 이어 전술핵무기 제조에 성공할지는 불투명하나, 만일 그것이 현실화한다면 한국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다. 북한의 전략핵무기는 자멸을 각오하지 않는 한 사용할 수 없는 쇼윈도 속의 무기일지 모르나, 전술핵무기는 경우에 따라 실제 사용될 수도 있는 직접적 위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전술핵을 사용하고도 국제사회의 강력한 응징을 받지 않는다면 북한은 전술핵 활용의 유혹을 강하게 느낄 가능성이 있다.
북한의 전술핵 개발 움직임과 9월 ‘핵 선제 사용 법제화’ 발표에 자극받은 한국 정부는 미국 전술핵 재반입과 전략자산의 한국 상주에 관심을 기울이는 듯하나, 미국이 쉽사리 응할 것 같지는 않다. 한국 내 미군 기지는 대부분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과 장사정포 위협에 노출되어 있어 예민한 전략자산의 상주에 부적합하고, 전술핵무기 재반입은 다소 심리적 위안은 될지언정 100개 내외의 강력한 북한 전략핵무기에 대한 억지력이 될 수는 없다. 또한 유사시 미국 핵무기를 동맹국 전폭기가 대신 적국에 투발한다는 ‘핵공유’ 개념도 핵미사일 활용이 보편화된 현 시대의 전략 환경과는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 핵보유국들이 실제 사용 가능한 핵무기는 현실적으로 소형 전술핵뿐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미국 전술핵 재반입은 북한의 전술핵 사용 의지를 차단하는 중요한 억지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10.24 “한미일, 북핵 억제 시스템 강화하고 선제공격 포함한 대응책 마련해야… 전술핵 한국 재배치는 논쟁적 사안… 美, 北탐지 어려운 핵잠수함 선호”
클린턴·오바마 행정부에서 한반도 정책 담당한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조정관

▲오바마 행정부에서 백악관 군축·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을 지낸 게리 세이모어 미 브랜다이스대 교수는 본지 인터뷰에서 “미국이 확장억제(핵우산)를 제공할 것이라고 한국에 재확인해 줄 필요가 있다”며 “북한의 핵실험 후 유엔 안보리 제재가 실패할 경우, 다자적 국제 제재를 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美 CSIS 홈페이지
지난 4일 북한은 5년 만에 처음으로 일본 상공을 통과하는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중국 공산당이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를 진행하는 18일 밤에도 동해와 서해상에서 250발의 포격 도발에 나섰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곧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7차 핵실험을 할 것이라는 관측도 커지고 있다. 미국에서 1990년대부터 30년 넘게 한반도 전문가로 활동하며 북한 문제에 관여해 온 게리 세이모어(69) 하버드대 벨퍼 과학국제문제연구소장은 “중국은 북한이 핵실험을 하더라도 추가로 유엔 안보리 제재가 이뤄지지 않게 막아주겠다고 약속했을 것”이라며 북·중 관계가 더 밀착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는 북한의 핵실험 후, 유엔 안보리 제재가 실패할 경우 미국과 일본, 호주, 다른 유럽의 국가들과 함께 유엔 제제 외의 다자(多者)적 국제 제재를 하라고 조언했다. 한국의 자체 핵무장에 대해서는 “한미 동맹에 잠재적 악영향이 있을 수 있고, ‘규범을 준수하는 국가’라는 한국 이미지에도 손상이 갈 것”이라며 어떤 것이 한국에 나을지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량살상무기(WMD) 차르’로 불렸던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을 20일(현지 시각) 화상 인터뷰했다.
한반도, 전쟁 위험성 높지 않아
-북한의 위협은 커지는데, 현재의 안보 태세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는 한국인이 많다. 그래서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 또는 자체 핵무장 주장이 나온다.
“핵 억지, 또는 한반도에서의 전반적 억지는 매우 강하다고 생각한다. 전투기나 전함, 탱크 등 재래식 전력만 봐도 북한은 매우 불리한 입장이다. 김정은이 자신과 가족, 북한 대부분을 파멸로 몰아넣지 않고 전쟁을 시작하거나 핵무기를 사용할 이유나 방법이 없다. 그가 단거리 전술핵무기를 포함한 핵무기를 개발한 것은 북한의 취약점을 보완해서 한국의 공격을 억지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본다. 그런데 김정은이 뭐라고 생각하든 미국과 한국은 북한을 공격하려는 의도가 없다. 그래서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험성이 높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미국의 (방위) 공약은 믿을 만하며 확장억제(핵우산)를 제공할 것이라고 미국이 한국에 재확인해 줄 필요는 있다고 본다. 바이든 행정부와 윤석열 정부가 확장억제전략협의체를 통해 논의를 시작했고 연합 훈련 강화, 폭격기 같은 전략 자산의 전개 등을 포함해 확장억제를 강화할 방안을 살펴보고 있다.”
제재 완화 대가로 北비핵화 목표 이뤄야
-장기적으로 김정은이 핵무기를 동원해 한국을 적화통일하려고 생각할 가능성은 없나.
“김정은의 할아버지(김일성)가 1980년대 핵무기 프로그램을 시작할 당시에는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선진적인 무기를 생산하고 공세적 작전을 펼칠 수 있는 북한의 역량은 경제와 함께 아주 나빠졌다. 그동안 한국은 최신 무기를 구매하고 개발해서 외국에 수출도 할 수 있을 만큼 부유하고 선진적인 경제 대국이 됐다. 가까운 미래에 북한이 한국의 군사적 우위에 균형을 맞출 수 있을 위험성은 없다고 생각한다.

▲2009년 11월 미국 백악관 회의에 함께한 버락 오바마(왼쪽) 당시 대통령과 게리 세이모어(오른쪽) 대량살상무기 정책조정관. /백악관
김정은이 한국에 군사력을 사용하려고 한다면 아주 위험한 도박이 될 것이다. 한국에는 2만8000명의 미군이 있다. 전쟁이 발발하면 미국은 초기부터 자동 개입하게 된다. 대만의 경우와는 다르다. 미국은 대만에 대해 안보 공약을 한 적이 없고 (주둔하는) 미군 병력도 없다. 김정은이 당분간 핵전력을 포기할 가능성이 작다는 것에 동의한다. 당분간 미국과 한국, 일본이 핵 무장한 북한을 맞아 더 강력한 미사일 방어나 선제공격 옵션 같은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미국 정부가 북한의 핵보유를 받아들이고 군축 논의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는데.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비핵화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미국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공식적으로 용인하거나 승인하면 한국과 일본이 핵무기금지조약(NPT)상 비핵(非核) 국가 지위를 다시 고려하게 될 것이다. 다만 가시적인 미래에 그런 일(북한의 비핵화)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란 점은 인식해야 한다. 김정은은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 재개 제안과 윤석열 대통령의 남북 대화 재개 제안을 모두 거절했다. 하지만 제재 완화 등의 대가로 이런 잠정적 조치를 이끌어 낼 수 있다면 장기적 목표인 비핵화로 가는 길이 될 것이다. 북한은 여전히 제재 완화를 원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고, 무역을 통해 외화를 버는 것이 쉬워지기 때문이다.”
전술핵 韓 재배치, 反美 시위 야기 우려
-전술핵 재배치에 대한 미국의 정확한 입장은 무엇인가.
“워싱턴 사람들(바이든 행정부와 전문가들을 의미)이 하는 얘기를 전달하자면, 한국에 (미국의)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하는 데는 세 가지 문제가 있다. 첫 번째는 순전히 군사적인 것이다. 한국에 전술핵무기 저장 시설을 둔다면 북한의 공격에 상당히 취약할 수 있다. 미군은 북한이 공격할 수 없는 핵 운송 수단을 더 선호한다. 예를 들면 핵 추진 잠수함에 핵탄두를 탑재한 크루즈 미사일 형태로 둔다면 북한이 이를 탐지하거나 공격할 방법이 없다. 두 번째는 한국 정치다. 현재는 진보나 보수나 한미 동맹을 지지하고 있다. 그런데 워싱턴 사람들 일부는 전술핵 재배치가 한국 정치에서 대규모 시위나 한미 동맹에 대한 의구심을 야기하는 매우 논쟁적인 주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세 번째는 미국 내 군축 전문가들이 핵무기가 세계의 더 많은 곳에 흩어지는 것에 저항감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한미 정부 간 논의에서 미국 측이 이런 문제를 제기했다고 전해 들었다.”
-한국의 자체 핵무장은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 국민과 한국 정부가 핵무기를 만들기로 결정한다면 기술적 문제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순전히 정치적인 것이다. 핵무기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적 역량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는 일본이나 호주, 동아시아의 다른 국가들도 매우 비슷한 입장에 있다. 만약 미래에 미국의 (안보) 보장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이 생기고 위협이 점점 더 커진다면 한국이 NPT 체제를 탈퇴해서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이 더 강한 설득력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한미) 동맹이 위협을 관리하기에 충분할 만큼 계속 강력하고 신뢰할 수 있게 유지된다면 NPT 탈퇴의 잠재적인 부정적 효과를 판단해 봐야 할 것이다. (한미) 동맹에 잠재적 악영향이 있을 수 있고, ‘규범을 준수하는 국가’라는 한국 이미지에도 손상이 갈 것이다. 한국이 핵무기를 개발하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결국 일본도 핵무기를 개발할 것이다. 한국 스스로 안보적 영향을 계산해 봐야 한다. 현상을 유지하는 것이 한국에 이익인지, 동아시아에 핵보유국이 여럿 있는 상황이 더 나은 것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9·19 합의 파기 여부 신중히 결정해야
-북한은 사실상 2018년에 맺은 9·19 남북 군사합의를 파기했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가 이것을 준수해야 하나.
“윤석열 정부가 결정할 일인데, 윤 대통령은 한국이 외교를 재개하고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외교로 가는 길의 장애물은 윤 대통령이 아니라 김정은이다. 북한은 남북 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등 분명히 합의 정신에 따르지 않고 있다. 다만 합의를 파기해서 어떤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윤 정부가 외교 중단 책임이 평양에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줬기 때문에 더 그렇다.”
-북한이 핵실험을 해도 중·러가 새 대북 제재에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북한이 7차 핵실험을 하더라도 중국과 러시아가 추가적 유엔 제재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중·러가 현행 대북 제재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것은 슬픈 진실이다. 미국과 일본, 호주, 다른 유럽의 국가들과 함께 유엔 제재 외의 다자(多者) 국제 제재를 할 수 있다. 북한의 제재 회피를 돕는 중·러 기업들에 대한 추가 제재도 검토해야 한다. 미국 재무부가 북한의 7차 핵실험 시 취할 수 있는 옵션을 검토하고 있을 것이다. 미국과 한국, 일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은 미사일 방어를 포함한 국방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연합 훈련 측면의 조율은 최근 더 좋아졌다. 이런 것이 강화돼야 한다.”
-중국이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미사일 방어는 한국에 까다로운 주제다. 한국이 미국의 미사일 방어에 편입돼야 한다고 보나.
“한국이 중국을 적대시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를 결정했을 때 중국이 어떻게 보복했는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동시에 나는 한국이 중국을 향해 ‘중국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다’고 말하기 좋은 입장에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하지 못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북한의 위협에는 중국의 책임도 일부 있다. 한국이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자국을 보호하기 위해 방위를 강화하기로 결정한다면 중국이 한국을 비난할 수 있는 입장은 못 된다. 결국 한국이 결정할 일이다.”
☞게리 세이모어
1953년생. 미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 졸업 후 하버드대에서 행정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오바마 행정부에서는 2009~2013년 백악관 군축·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을 지냈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1995~2000년에는 대통령 특별보좌관 겸 백악관 비확산·수출 통제 담당 선임국장으로 일했다. 1994년 미·북 제네바 합의 당시에는 대북협상팀 일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매사추세츠주 브랜다이스대 교수다.
조선일보 워싱턴=김진명 특파원
10.25 北 시진핑 행사 끝나자 5년 만에 NLL 침범, 본격 도발 시작

▲백령도에서 바라본 북한 장산곶. /뉴스1
북한 상선 무포호가 24일 새벽 서해 NLL을 3.3㎞ 침범했다. 침범한 북 상선은 1991년 스커드 미사일을 싣고 시리아로 가다 적발된 선박과 이름이 같다. 말만 상선이지 북한 군용 수송선이다. 이 배는 우리 군의 두 차례 경고 통신을 무시한 채 40여 분간 우리 해역 내에 머무르다 해군 호위함의 기관총 경고 사격을 받은 뒤에야 항로를 바꿨다. 두 선박 사이의 거리가 1㎞까지 좁혀졌다. 50여 분 뒤에는 NLL 북쪽 해상 완충 구역으로 북한군 방사포탄 10발이 쏟아졌다. 백령도 부근에서 새벽 3시 42분부터 약 1시간 30분간 벌어진 일이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KF-16 전투기가 출격하고 해병대 전력도 움직였다. 북한군 총참모부 대변인은 남측이 해상 군사분계선을 침범했다고 억지 주장을 했다.
이날 북의 도발은 계획된 일정에 따른 것일 가능성이 높다. 북은 잇단 탄도 미사일 도발에 이어 지난 14일부터 19일까지 8차례에 걸쳐 방사포 900여 발을 동·서해 해상 완충 구역에 발사했다. 9·19 남북군사합의 위반이다. 그러나 이 정도 도발은 긴장 고조용이자 분위기 조성 차원이었을 것이다. 북한이 가장 신경 쓴 것은 중국 시진핑 3연임 당 대회였다. 중국 공산당 대회 기간 중에 말썽을 원치 않는 중국 눈치를 보면서 도발 수위를 조절하다 대회가 끝나자 5년 9개월 만에 서해 NLL을 침범했다.
북은 이제 중국을 의식할 필요가 없는 만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와 7차 핵실험을 동시 다발적으로 감행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핵실험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예상치 못한 방식을 선택할 수도 있다. 이제는 북이 지금 당장 이 같은 대형 전략 도발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 모두가 우려하듯이 성동격서식 도발로 우리의 허를 찌를 가능성도 상존한다.
군은 이날부터 3박 4일간 서해에서 육·해·공군과 해경이 참가하는 합동 훈련을 시작했다. 미군 전력도 일부 참가한다. 이미 예고된 훈련이지만 북은 이를 전략 도발의 핑계로 삼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한·미는 북의 핵실험을 단념시키는 데 외교력을 집중하되, 강행 시엔 이것이 지난 6차례 핵실험에 이은 또 한 차례의 핵실험을 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유념하고 그동안과는 차원이 다른 대응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10.25 핵만큼 위험한 북한 화학무기, 우리는 강 건너 불보듯
대량살상무기 대비 잘하고 있나
북한의 핵무기 선제타격 법제화로 그들이 보유한 대량살상무기(WMD)가 보다 현실적인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만일 7차 핵실험으로 전술 핵무기까지 전력화되면 우리는 그야말로 핵을 머리 위에 얹고 사는 형국이 된다. 정부는 이에 대비하여 한·미 동맹을 통한 확장억제 방안을 강구 중이나 국가의 모든 역량을 동원한 총력 안보태세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이 없다.
세계의 많은 나라는 이러한 위협을 그 나라 특유의 총력 안보태세로 대비한다. 북한은 틈만 나면 그들이 보유한 대량살상무기로 우리를 초토화하겠다고 위협한다. 그렇다면 이처럼 끔찍한 위협에 당면한 우리의 대비 태세는 어떠할까. 한마디로 그 위협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태세까지 허술하기 짝이 없다. 막강한 한·미 동맹의 보복이 두려워 그런 무기를 사용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러할까. 정권 유지를 위해서는 친혈육도 가차 없이 암살하는 김정은의 통치행태를 고려할 때 이는 위험천만한 오산이다.
북한 최대 5000톤 화학무기 보유, 방사포·탄도탄으로 공격 가능
수도권에 1000톤 사용할 경우 사상자 12만5000명 발생할 수도
지하철 등 대피시설 보완하고 개인 방호체계도 더욱 강화해야
한국군 운영 방식 보완 필요…상비군·동원군 통합체제 구축을
북, 핵보다 화학무기 사용 가능성 커
미국 RAND연구소 등 국내외 안보 관련 연구 기관에서는 대량살상무기를 핵무기와 기타 무기로 분류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핵무기는 상대국 보복이 두려워 쉽게 사용하지 못하므로 다른 대량살상무기와 구분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화학·생물학무기, 전자기펄스(EMP), 사이버전 능력 등이 포함된다. 북한은 여러 가지 정황상 핵무기 사용에 앞서 필요할 때 화학무기를 사용할 것으로 본다.
북한은 1954년 중국·소련으로부터 화학무기 제조 기술을 전수받아 2500~5000톤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한다. 방사포·항공기·탄도탄 등을 이용해 어디에나 투하가 가능하다. 수도권에 1000톤을 사용할 때 대략 12만5000명의 사상자가 발생할 것으로 본다. 북한은 화학무기금지조약(CWC)에 가입하지 않아 이를 사용하더라도 국제적 비난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화학무기를 대량살상무기로 간주하지 않아 미국의 보복을 피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고 리언 러포트 전 한미연합사령관이 밝힌 바 있다.
우리는 화학무기의 치명성을 잘 알고 있다. 한·미 동맹의 능력으로 이를 억제하려 하나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만에 하나 실패하는 경우 엄청난 국민이 희생될 것이다. 안전사고로 몇 명의 사상자만 생겨도 온 나라가 시끄러운 사회 분위기를 고려할 때 패닉에 빠질 것이다. 이제라도 하루빨리 국민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총력 안보태세를 구축해야 한다.
무엇보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위협을 현실적인 위협으로 인식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이다. 이는 관련 대책 수립은 물론 집행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정전 이후 북한의 수많은 도발을 감내하며 그 위협에 둔감해졌다. 정부도 불필요한 공포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우려로 대책 수립에 부담을 느낀다. 온라인 매체에서 지진 대피 요령을 교육하며 북한의 화생방 위협은 거론도 하지 않는다. 지진 위협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위협보다 더 현실적이고 심각한 위협일 수는 없다. 하루빨리 위협의 실체를 인식할 수 있도록 홍보 체계를 정립해야 한다.
북한 주민은 화생방 훈련 철저
집단 방호체계의 경우 지하철이나 기타 지하시설은 위협의 특성을 고려할 때 많은 보완이 필요하다. 방호 능력에 대한 검증은 물론 세부적인 대피 절차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냥 유사시 대피소라는 상징적인 의미에 불과하다. 개인 방호체계 역시 방독면이나 제독시설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없다. 그러다 보니 장비 확보는 물론 교육훈련 체계를 마련하지 못한다. 국민 개개인에게 방독면을 지급하고 사용법을 숙달시켜야 한다. 언젠가 북한 주민의 화생방 훈련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정작 우리에겐 화학무기를 사용할 의도나 능력이 없는데 그들은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었다. 화학무기의 치명적인 위협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산율 저하에 따른 병력 자원의 급격한 감소는 획기적인 군 구조와 운용 체계의 변혁을 요구한다. 2020년 미국 칼라일연구소에 따르면 현재 출산율이 지속할 때 우리나라 병력 자원은 2000년 56만에서 2021년 40만, 2027년 30만을 거쳐 2040년에는 15만으로 감소한다. 지금과 같은 병력 중심의 운용체계는 더는 존속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기본적인 군사력 운용 개념을 상비군, 동원, 예비 전력을 망라하는 통합 운용체계로 개선해야 한다. 예비 전력의 운용 개념 역시 상비군 손실 보충을 넘어 현대전의 특성을 고려하여 과학 기술 인력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발전시켜야 한다.
이스라엘은 평시 상비 전력과 예비 전력을 같은 개념으로 준비시켜 6일 전쟁 때 지상군 30개 여단 중 23개를 예비 전력으로 운용하였다. 미국의 경우 걸프전 시 군수부대와 손실 보충 병력 36만 명을 예비 전력으로 운용했다. 스위스는 평시 국민 100명당 28명이 총기를 보유하고 전투기술을 연마한다. 우리도 예비 전력을 상시 운용이 가능토록 개선해야 한다.
겉치레에 그친 한국의 전쟁 훈련
1969년 수립된 동원체계와 정부의 충무계획도 국가 행정체계와 경제 규모 변화, 산업 형태, 인구 분포 등을 고려하여 개선해야 한다. 특히 전시 군사작전을 지원하는 행정부의 충무계획은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전시 군사작전의 근간인 계엄령과 동원을 지원하는 충무계획은 정부와 지자체의 협조가 없이는 실현이 불가능하다. 동원계획도 군의 작전 소요와 산업 형태에 맞도록 대상 업체와 기간 등을 개선해야 한다.
북한 무장 게릴라들이 청와대 기습을 시도했던 1968년 1·21사태 이후 시작된 정부의 전쟁 연습은 1976년부터는 민관군 통합으로 시행하며 강화되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 안보 의식이 해이해지며 근본이 흔들리고 있다. 합참의장 시절 통합 방위 중앙회의를 주재하며 정부 연습의 중요성을 애써 강조하였으나 막상 연습은 하급 실무자 위주의 겉치레 연습이 되어 안타까웠다. 그나마 지난 정부에서는 정부 연습을 아예 중단했다. 이는 공직자의 국가안보에 대한 의무감과 국민의 안보 의식을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하긴 상비군의 연합훈련마저 중단했으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정부 각 부처의 적극적인 참여를 위해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
미군과 연합훈련을 해본 사람은 그들의 진지한 훈련 모습에 놀란다. 컴퓨터를 이용한 모의 연습임에도 실전과 같이 상황을 묘사하고 대책을 토의하다 보면 실전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물론 연습 각본부터 많은 연구 검토 과정을 거치나 문제는 연습에 임하는 요원들의 마음가짐이다. 세심하게 작성되는 군의 작전계획도 이처럼 부단한 연습과 보완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한 을지연습 기간 중 일화를 소개한다. 전쟁 초기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시행하는 한강 폭파 작전을 두고 논란이 생겼다. 작전계획은 6·25 전쟁 때 하나밖에 없었던 한강대교가 지금은 33개로 늘어났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굳이 한강대교를 폭파할 이유가 없었고 그 많은 다리를 폭파할 방법도 없었다. 이처럼 영혼이 없는 연습은 아무런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북한 화학무기에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 국가의 핵 개발과 운용계획은 극비 사안으로 절대 노출하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 북한은 이를 법제화하여 온 세계에 알릴 만큼 비이성적인 집단이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위협을 언제고 닥칠 현실적인 위협으로 인정해야 하는 이유이다. 한·미 동맹의 능력으로 어떻게든 억제해야 하나 만에 하나 잘못되면 한순간 온 나라가 궤멸한다. 세계 최고 군사 강국인 미국이 9·11 사태로 3000여 명의 목숨을 잃을 줄 누가 알았겠나. 이제라도 그 위협의 심각성을 자각하여 하루빨리 총력 안보태세를 구축해야 한다. 아울러 정부는 북한의 화학무기는 명백한 대량살상무기로, 북한이 이를 사용할 경우 단호히 대응할 것임을 천명해야 한다.
‘서울 불바다’ 협박과 연평도 포격 등 전쟁에 가까운 북한의 도발에도 우리는 동요하지 않고 의연히 대처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당면한 위협은 그 옛날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그 위협을 인정하고 실전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외국인들이 우리의 의연한 모습을 보고 “가장 위험한 나라에서 가장 낙천적인(태평한) 사람들을 본다”고 말한다. 과연 칭찬일까?
중앙일보 최윤희 전 합참의장·예비역 해군 대장
10월 25일 6·25史 필수과목 제외는 육사魂 파괴
박용옥 前 국방부 차관
언론 보도에 따르면, 모든 육군사관생도가 졸업을 위해 이수해야 할 기본필수 교과에서 ‘6·25전쟁사’ ‘북한학’ 등이 빠지고 대신 ‘스트레스와 건강’ ‘군대문화의 이해’ 등이 포함됐다고 한다.
물론 오늘의 생활환경에서 군 장병의 건강이나 군대 문화의 이해도 중요하다. 그러나 군대는 왜 존재하고 모든 나라가 왜 막대한 국방비를 지출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군대는 격하게 요동치는 대내외 안보 환경에서 오늘의 국가 안위를 보장하고 내일의 국가 번영을 힘으로 뒷받침하는 막중한 역할을 감당한다. 육사는 이러한 국가 보위 역할의 중추적 위치에서 군의 초급장교로부터 고위급 지휘관과 지도자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이며, 사관생도는 이를 위해 엄격히 선발된 문무 겸비의 엘리트 청년들이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투철한 국가관과 안보관, 냉철한 역사 인식과 전략적 사고다.
언론 보도처럼 육사가 2019년도부터 6·25전쟁사와 북한학 과목을 생도의 기본필수 교과에서 선택과목으로 전환했다는 것은 군의 기본정신과 자세를 망각한, 참으로 믿기지 않는 행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간 이런 사실도 모른 채 길거리에 나가 국가안보, 종북(從北) 주사파 척결을 외치기만 한 육사 출신인 나 자신이 부끄러울 뿐이다.
일찍이 역사 인식의 선각자들은 ‘오늘을 이해하려면 어제를 살펴보라’ ‘역사를 모르는 사람은 그것을 반복하게 마련이다’ ‘과거를 잊은 국가에 미래는 없다’고 했다. 이 시점에 이 경구들을 다시 새겨볼 필요가 있다. 특히, 군인의 이런 역사 인식은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북한의 불법남침으로 발발한 72년 전의 6·25전쟁은 근년에 우리나라와 국민이 겪은, 수백만 명에게 해를 입힌 민족 최대의 재난이다. 다시는 이런 국가 재난을 당하지 않도록 대비하는 것이 현시점 미래 지향적인 국가의 지상 과제이며 그 선두에 우리 군이 있다.
특히, 한반도는 아직 남북 분단 상태이고 북한의 대남 도발과 중국의 한반도 위협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형국이다. 이런 현상이 외교적·평화적으로 협상을 통해 해소될 수 있겠는가? 종교개혁의 선도자인 마르틴 루터는 “오직 피(血)만이 역사의 바퀴를 움직인다”고 했다. 이런 역사의 흐름에 군사적·전략적으로 대비하는 것이 군의 기본 책무라면, 6·25전쟁사는 대한민국 건국사와 함께 사관생도는 물론 군 장병 모두가 숙지하고 있어야 할 기본필수 과목이다.
6·25전쟁사를 알아야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이 얼마나 험난했는지, 한·미 군사동맹이 어떻게 성립됐으며 왜 국가 안보를 위한 핵심 보장 장치가 될 수밖에 없는지 알 수 있다. 또, 왜 앞으로도 동맹을 유지·강화돼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 국민을 양극화시키는 정치사상적 이념 갈등 문제에 대해서도 사관생도들과 군 장병의 바른 시각과 판단력을 갖게 할 것이다.
우선, 사관생도가 6·25전쟁에 대해 바른 역사 인식을 갖고 초급장교로 임관돼야 일선 부대 소대장으로 부임했을 때 병사들에게 6·25전쟁의 역사적·민족사적 의미를 교육할 수 있다. 또한, 세간의 안보 경시 풍조와 전교조 교사의 좌편향 교육에 영향받은 일부 병사들을 지도할 수 있다. 이는 군 통수 차원에서도 세심한 관찰과 신속한 조치가 필요하다.
문화일보
10.26 “北이 NLL 인정했다”던 文, 국민 호도한 거짓에 사과해야

▲25일 오후 서해 최북단 백령도 인근 서해 NLL 해상에서 우리 해군 고속정이 순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4일 새벽 백령도 부근 NLL을 침범한 북한은 우리 해군 함정이 출동해 경고사격을 가하자 “남측이 우리 해상군사분계선을 침범했다”며 방사포 10발을 발사했다. 그들이 말한 ‘해상군사분계선’이란 북이 일방적으로 남쪽으로 그은 이른바 ‘경비계선’이다.
이번 침범은 5년 9개월 만이었지만 NLL을 부정하는 북의 입장은 그동안 바뀐 적이 없다. 그런데도 문재인 전 대통령은 평양 남북정상회담 다음 달인 2018년 10월 “북한이 판문점(4월)부터 이번까지 정상회담에서 일관되게 NLL을 인정했다”고 말했다. 정상회담 합의문에 ‘NLL 일대에 평화수역을 만든다’는 문구가 들어간 걸 근거로 들었다. NLL 자체를 부정하던 북이 합의문에 썼으니 인정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9·19 군사합의에 대해선 “NLL을 평화의 수역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한 대전환”이라고도 했다.
이 발언은 전해지자마자 논란이 됐다. 합참이 같은 날 열린 국회 국정감사에서 ‘북이 NLL을 인정하지 않고 경비계선이 유효하다고 주장한다’고 보고한 것이다. 우리 함정이 NLL 남쪽이지만 북이 주장하는 ‘경비계선’에 접근하거나 진입할 때마다 이런 주장을 되풀이한다고 했다. 이 같은 북의 통신은 9·19 군사합의 이후로도 매년 적게는 2000여 회, 많게는 5000여 회에 달했다고 한다. NLL을 일관되게 부정한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의 발언은 사실 왜곡이자 거짓이었다.
“북이 NLL을 인정했다”는 문 전 대통령 발언은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분명하다”는 발언과 닮았다. 남북 대화의 성과를 강조하려는 욕심에서 있지도 않은 북의 선의를 대신 선전해줬다. 합참은 5년 뒤에 북핵이 200기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 전 대통령은 ‘김정은 비핵화 의지’ ‘북이 NLL 인정’ 등 국민을 호도한 데 대해 국민에게 사과해야 마땅하다.
조선일보 사설
10.26 국방력 강화하며 북과 대화했던 박정희… 핵무장 공론화 필요하다
北의 무력 도발엔 비례성 응징 원칙… ‘대화 있는 대결 정책’ 유지
국방과학연구소 설립해 무기 국산화, 지금의 K방산 토대 만들어
어떤 동맹도 안보 100% 책임 못져… 佛 드골이 핵무장 선언한 이유
1960∼70년대 남북 관계는 강 대 강 구도의 총성 없는 전쟁 시기였다. 전쟁의 최일선에 남한의 중앙정보부와 북한의 대남사업총국이 있었다. 중정의 김형욱·이후락과 총국의 이효순·허봉학은 물밑 치열한 기 싸움을 벌였다. 체제 생존과 맞물려 전선이 따로 없었던 남북한의 최고 지도자 박정희와 김일성은 일전을 불사했다. 환갑잔치는 서울에서 하겠다고 공언한 김일성의 무력 도발에 대해 박정희는 반드시 비례성의 응징을 원칙으로 삼았다. 청와대 습격, 울진·삼척 무장 공비 침투에 대해서도 그냥 있지 않았다. 비록 실미도 사건 같은 부작용도 있었지만 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라는 인식과 일방적으로 당하지는 않는다는 기류가 대세였다. 공산주의는 응징하지 않으면 더 큰 도발이 따른다는 판단이었다.

▲그래픽=백형선
1969년 닉슨 독트린과 미·중, 중·일 접촉 등으로 동북아 국제 정세가 급격하게 변화하자 박정희 정부도 대담한 접근을 모색했다. 6·25전쟁 후 처음으로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에 합의하며 본격 대화에 나섰다. 남북은 대화 목적에서 동상이몽이었다. 북측은 대화를 통해 통일의 주도권을 확보하고자 했다. 대화가 진행되면 닉슨 독트린에 따라 한반도에서 미군이 철수할 것으로 판단했다. 미군 철수만 이뤄지면 통일전선전술로 청와대 권력이 붕괴할 것으로 예상했다. 평양은 위장 평화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1974년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 1976년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등 주기적으로 기습 도발을 감행했다.
남측은 대화를 통해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고 북측에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확인시켜 대남 적화통일을 차단하려고 했다. ‘대화 없는 대결’에서 ‘대화 있는 대결’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북한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면서 급속한 경제개발에 주력하는 실사구시 정책이었다.
박정희 정부의 ‘선 건설, 후 통일’ ‘선 평화, 후 통일’ 방침은 한국 대북 정책의 토대가 되었다. 정책의 핵심은 국격을 지키면서도 탄력적이며 유연한 전략으로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상실하지 않는 것이었다. 도발에는 단호하게 대처하지만 1971년 9월 판문점에서 이산가족 상봉 회담 등 대화를 지속하였다. 북한의 ‘잘못된 행동’은 반드시 응징하면서도 ‘대화 있는 대결 정책’을 유지하였다. 화전 양면 전략을 기본으로 안보에는 안보, 대화에는 대화라는 양 축으로 남북관계의 균형을 맞추었다.
대화를 추진하지만 국방력 강화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닉슨 독트린과 카터 정부의 주한 미군 철수 정책으로 안보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자주국방과 핵무기 개발 구상으로 난국 돌파를 시도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소설대로 1975년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을 기점으로 핵 개발은 좌절되었지만 유비무환 전략은 지속되었다. 비록 핵무장은 실패했으나 카터의 주한 미군 철수를 막았다.
박정희 정부는 외부 의존도가 높은 국방력이 장기적으로 독자 외교에 장애가 되리라고 판단하였다. 자주국방의 기조 아래 국방과학연구소(ADD)를 설립하여 무기 국산화에 나섰다. 덕택에 오늘날 ‘K방산’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한미 동맹은 혈맹이지만 최소한의 자강불식(自强不息)이 원칙이었다. 국제 정치에서 세력 균형은 남북은 물론 한미 간에도 적용되는 불문율이라는 인식이 확고했다.
2000년대 이후 정부는 실사구시와 화전 양면의 이중 트랙을 포기하고 ‘대결 없는 대화’에만 주력함으로써 남북은 갑을 관계로 전락했다. 화전 양면 전략 포기는 남북관계를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만들었다. 전쟁 억지를 위한 무력 대응을 포기하면서 대화에만 주력하는 편향된 대북 정책은 굴종 수준이 되었다. 결국 현금 4억5000만달러의 대가성 정상회담이 성사되었다. ‘대결 있는 대화’에서 ‘현금 지급 대화’로 바뀌었다. ‘안보 없는 대화(talk only no security)’에 올인하는 정책은 북핵 개발을 방조했다. 현금 용처는 핵 개발 부품 구매였다. 1단계 핵 억제 전략에서 2단계 핵 선제 사용으로 진화하고 있으나 여의도 정치에서 북핵은 여전히 정쟁 대상이다.
지난 4월 핵을 방어용에서 공격용으로 전환한다는 김정은의 핵 독트린과 선제 사용 5대 조건을 규정한 핵 무력 법제화는 한반도가 뉴 노멀(new normal)의 안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의미다. 김정은은 푸틴의 미치광이 이론(mad man theory)에 의한 핵 선제 사용 위협을 벤치마킹할 것이다. 중국의 인민 영수 지도자는 대만 무력 침공을 공론화했고 동북아의 긴장은 고조될 것이다.
‘대결 없는 맹목적 대화’의 종착역은 100년 제재에도 꿈쩍 안 하겠다는 핵무장이다. 3대 세습 지도자의 핵 폭주에 대해서 비핵화 외교만 고집할지 핵 균형을 도모할지 선택할 시간이다. 재래식 무기(conventional arms)와 핵무기(nuclear weapon)의 불균형 속에서 불안한 평화를 감수할지 말지 결정해야 한다. 핵무장 필요성에 대한 국민 여론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에 70%를 상회하였다. 합참은 5년 내에 북 핵무기가 200기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정희 정부의 핵 개발 계획을 강제로 좌절시켰던 미국의 정책은 불변이겠지만 세상은 변화하고 있다. 미국 다트머스 대학의 린드와 프레스 부부 교수는 작년 10월 한국이 핵무기 보유를 결정할 경우 미국이 정치적 지지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한국이 자국 방어 차원에서 핵무장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일부 전문가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군축 협상을 할 때라고 뉴욕타임스에 글을 실었다. 서울을 방어하기 위하여 시카고가 핵우산으로 위험해지는 한미 확장 억제는 중단해야 한다는 강경 주장도 나온다. 백악관과 주한 미국 대사는 전술핵 한국 재배치에 선을 그었지만 현재 방침일 뿐이다. 중국 인민해방군이 대만에 상륙할 시나리오도 현실화되고 있다. 미래 동북아 안보를 누가 알겠는가?
국제 정치가 어느 국가의 안보를 전적으로 보장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스라엘조차 미국의 감시를 피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자체 방어력을 강화했다. 미국이 호락호락하게 한국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나, 안보 불안의 목소리를 내야 대안도 검토될 수 있다. 한국의 핵무장 담론은 북핵 지렛대를 갖고 있는 중국을 움직일 수 있다. 비장의 카드조차 공론화하지 않는 것은 국익 극대화에 역행하는 일이다.
어떤 동맹도 안보를 100% 책임지지 못한다. 1960년 프랑스의 드골 전 대통령이 닥치고 핵무장을 선언한 이유다. 핵과 동거하는 시대(with the nuclear)를 맞이하여 박정희에게 길을 물었다면 어떤 해법을 내놓았을까? 그의 치적에 공과(功過)가 있겠지만 싸우면서 건설하여 안보와 경제 두 토끼를 잡은 식견은 오류가 없다. 평화는 구걸해서 얻을 수 없다. 안보를 토대로 당당한 대화에 나서야만 당당한 평화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박정희 서거일 즈음에 드는 단상이다.
조선일보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10월 27일 ‘핵민방위’ 구축도 급하다
정충신 정치부 선임기자
북한이 지난 9월 8일 ‘핵무력 정책 법제화’를 통해 김정은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핵무기 선제공격이 가능하다며 공격적인 핵무기 사용지침을 전 세계에 선포했다. 이어 이달 초 김정은이 참관한 가운데 ‘전술핵 운용부대 훈련’이라며 한국 내 주요 군사시설을 겨냥한 7차례 핵·미사일 공격훈련을 실시했다. 조만간 핵탄두 경량화·소형화에 마침표를 찍을 7차 핵실험이 이뤄질 것으로 보여 핵·군사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자체 핵무장의 ‘핵자강론’과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 ‘전략자산 상시 배치’ 등 북핵 위협 근본처방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무성하다.
문재인 정부 시절 안보 불감증만 키운 ‘평화구상’이란 거짓 선동이 북핵 괴물을 키웠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핵사용 발언에 고무된 김정은이 자칭 ‘핵보검’을 휘두르며 미치광이 전략을 구사하는 엄중한 시기다. 논쟁에 허송세월 보내기보다 당장 가능한 방안부터 실행에 옮길 때다. 미국의 한국 방위공약 핵심인 ‘4D(탐지·교란·파괴·방어) 작전’ 체계를 한·미 연합 연습을 통해 구체화하고 한국형 3축 체계 구축에 속도를 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시정연설에서 현무미사일, F-35A, 패트리엇(PAC) 성능개량, 장사정포 요격체계 등 3축 체계 고도화에 5조3000억 원을 투입하는 계획을 언급하며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한 국가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내년부터 2027년까지 5년간 3축 체계 34개 사업 전력화 완료를 위해 30조5242억 원 책정을 검토 중이라는 국방부 보고서도 나왔다. 북한의 200여 대의 미사일발사차량(TEL) 움직임을 물샐틈없이 감시할 군 정찰위성 등 감시·정찰(ISR) 전력 조기 확보를 비롯, 북한이 핵 선제공격 모험을 할 경우 북한 군 주요 시설을 단번에 초토화시킬 대량응징보복(KMPR) 전력 조기 확보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이와 함께 한국형 3축 체계와 미군의 4D 작전 개념을 한·미 새 작전계획에 포함시킨 뒤 실기동 훈련을 통해 검증·개선하는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형 3축 체계에 더해 ‘핵방호(P·Protection)’ 개념을 추가한 4축 체계(3K+1P)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핵방호의 핵심은 ‘핵민방위(nuclear civil defense)’다. 핵민방위는 ‘방호’와 피해 최소화, 복구를 위한 민관군 통합의 사후관리가 될 것이다. 지하에 구축된 낙진대피소 등 방사선 차단이 가능한 핵민방위 대피시설이 필요하다.
한국국방연구원이 2017년 핵공격 시 대응 수준에 따른 피해 감소율을 분석한 결과, 비방호 시 예상 피해율 15만 명을 가정해 지하시설 대피만으로 피해 수준이 50∼70%(9만5000명), 경보 전파 추가 시 30∼50%(4만7000명), 소개·피란 조치가 더 추가되면 10∼30%(3만3000명)로 규모가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킬체인·KAMD가 실패하더라도 핵방호로 피해를 최소화하면 반격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억제력은 배가된다. 2017년부터 일본은 경보 전파 및 주민 대피훈련을 하는 데 비해 우리는 핵민방위 논의조차 않고 있다. 윤 대통령이 강조한 ‘강한 국가’는 범정부 차원의 국가 핵방호체계 재정립부터 시작돼야 한다.
문화일보
10.28 北 전술핵이 서울 도심에 떨어진다면…
가장 작은 수준인 1㏏폭탄에 반경 10㎞까지 피해 입어
北, 대남용 전술핵 완성 코앞… 우린 너무 태평한 것 아닌가
북한 김정은이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전술핵무기에는 ‘사용 가능한 핵’이란 설명이 따라붙지만 일반인은 잘 감 잡을 수 없다. 실제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무기가 도심에 떨어질 경우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어렴풋이나마 가늠할 수 있는 일이 2년 전에 있었다. 폭탄의 위력은 보통 일정 중량의 TNT가 폭발하면서 방출하는 에너지양으로 환산한다. 1kt은 TNT 1000t의 폭발 규모다. 2020년 8월 레바논 베이루트항(港)에서 질산암모늄 2750t이 폭발하는 사고가 났는데, 이를 TNT로 환산하면 1.1kt이다. 전술핵폭탄 중 작은 게 이 정도 된다.
당시 1차 폭발 후 많은 현지인이 휴대전화를 꺼내 촬영하는 가운데 훨씬 센 2차 폭발이 일어나 그 생생한 장면이 화면에 담겼다. 영상은 지금도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영상을 보면 몇 km 떨어진 곳에서 찍는데도 귀를 찢는 굉음 직후 충격파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다. 폭발 지점에는 깊이 43m 구덩이가 파였고, 주변 건물 8000채가 파괴됐다. 10km 밖 건물 유리창도 박살났다고 한다. 서울 광화문에서 강남역 직선거리가 10km다.
파괴력이 너무 커서 감히 사용할 수 없는 전략핵무기와 달리 실전에 쓸 수 있다는 ‘초저위력’ 전술핵무기가 이 정도 피해를 줄 수 있다. 김정은은 최근 이런 전술핵을 다양한 사거리의 미사일에 실어 한국 내 주요 표적을 공격하는 전술핵 부대 훈련을 지도했다. 핵을 상대 공격을 억제하는 ‘억지 전력’으로만 두지 않고 평시에 먼저 사용할 수 있다는 공세적 ‘핵 독트린’도 명문화했다. 말뿐인 위협 수준을 한참 넘어섰다.
전술핵은 아직 완성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 역시 시간문제다.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에서만큼은 늘 외부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제재로 인민들이 굶어 죽고 고통받는 데 아랑곳하지 않고 김씨 일가가 수십 년간 체제의 모든 역량을 핵·미사일에 쏟아부은 결과다. 발사체가 5번 연속 떨어지고 군 열병식에 종이로 만든 ‘가짜 미사일’을 내세워 조롱받던 게 불과 몇 년 전이다. 그런데 동굴 속에서 고철 뚝딱거려 아이언맨 만들 듯 어느 순간 지그재그로 움직이고 수중에서 쏠 수 있는 탄도미사일까지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조만간 7차 핵실험을 하면 핵탄두 소형·경량화도 이룰 가능성이 있다. 독재자의 광기(狂氣)와 실전 사용 가능 핵이 결합하는 아찔한 순간이 다가와 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서 이에 대한 위기감, 경각심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여전히 ‘설마 핵을 우리한테 쏘겠냐’ ‘북핵은 자위용, 대미용’ 같은 무사태평론이 넘친다. 반복되는 북의 미사일 실험에도 “또 왜 저래” 정도로 넘어간다. 지난 몇 년간 끊이지 않았던 ‘평화 세뇌’ 탓이 클 것이다. 패닉에 빠져 정신 못 차리면 큰일이지만, 근거 없이 낙관하는 것도 정상이 아니다.
지금 북핵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는 국가의 최대 과제가 돼야 하는 게 당연하다. 이보다 더 시급한 일이 뭐가 있나. 명목상으로 존재하는 미국의 핵우산을 정교하고 확실하게 다듬는 일부터 전술핵 재배치, 핵 공유 협정, 독자 핵무장 등 여러 대안은 이미 제시돼 있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기 때문에 어떤 길로 가든지 치열한 토론을 통해 국론을 모아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생업에 바쁜 국민을 대신해 이런 일을 하라고 뽑아놓은 게 정치인들이다. 그런데 우리 정치권은 북핵 대응이 아니라 자기들끼리 싸우고 특정인 지키는 데 ‘단일 대오’로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코앞에서 핵 위협을 받고 있는 나라가 맞나 싶다.◎
조선일보 임민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