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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2022-10/ 10.03(월) 세계박람회 - 10.31(월) 불매운동

상림은내고향 2022. 10. 31. 18:30

분수대 2022-10/ 중앙일보

10.03(월)  세계박람회

‘우리 시대가 당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한 국제 행사.’ 세계박람회기구(BIE)가 제시하는 세계박람회(엑스포) 소개 첫 문장이다. 엑스포 개최 가장 큰 명분은, 개최국이 어떤 부차적 효과를 기대하건, 인류의 공동 번영을 위해 모여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는 자리라는 것이다. 영감을 주는 기술, 일반 대중이 체험을 통해 공감대를 확산할 수 있는 이벤트로 채워진다. ‘식량’(2015 밀라노), ‘미래 연결성’(2020 두바이), ‘보건’(2025 오사카·간사이) 등의 큰 주제를 정하고, 세계인과 국제기구를 한데 모은다. 이 정도 대의명분이 없이 현 인류가 당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인 기후 위기에 부담이 되는 대규모 행사를 연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을 것이다.

 

2030년 부산엑스포 유치 활동이 본격화하면서 기대와 함께 걱정이 앞선다. 관련자들이 인터뷰를 쏟아내기 시작하면서 의문점도 생긴다. ‘기대 경제 효과 61조’ ‘대한민국을 7대 경제 대국으로’ ‘부산을 싱가포르로’와 같은 말이 뉴스 제목으로 뽑힌다. 굉장히 솔직하다. 부산엑스포 홈페이지는 첫 화면부터 ‘2030 부산이 해내겠습니다’라고 외치는 느낌표 가득한 다짐으로 채워진다. 자연과 지속가능성, 미래기술, 한류, 방탄소년단(BTS)을 한꺼번에 보여주지만, 어떤 그림을 그릴 것인지 예상하긴 힘들다. 아무리 내부 지지와 호응이 중요하다지만, 내년 11월 표를 행사할 BIE 170 회원국 혹은 잠재적 방문객을 위한 정보가 적다.

 

경쟁 도시인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이탈리아 로마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이슬람협력기구(OIC) 57개 회원국과 프랑스 등 70여 개국이 공개 지지한 리야드는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든든한 표가 있고, 약속할 오일머니는 넘친다.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로마도 어떤 엑스포를 만들지 큰 틀을 이미 보여주고 있다. 2050년께 인류의 3분의 2가 거주하게 될 메트로폴리스가 주제다. 자연과 불화해 온 대도시를 공생하는 도시로 바꿀 방법을 찾자는 비전이 선명하다.

 

부산의 비전은 무엇일까. 국익은 내부적으로 할 수 있는 얘기다. 그런데 이건 전적으로 우리의 사정이다. 사우디만큼 자금이 없다면 국제 사회 일원으로 제시할 비전이라도 확실해야 하지 않을까. 이도 저도 아닌 것 같다는 걱정이 내년 11월 기우로 판명되길 바란다.

전영선 K엔터팀 팀장

 
 

10.04 영국 파운드화의 추락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세상을 떠났다. 그의 70년 치세가 막을 내림과 함께 많은 것이 달라진다. 영국 파운드화 도안도 그중 하나다. 영국의 모든 지폐와 동전의 앞면을 장식했던 엘리자베스 2세 얼굴은 그의 뒤를 이은 찰스 3세 얼굴로 바뀐다. 1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 조폐국 전통에 따라서다.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이 회사는 알프레드 대왕(849~899년) 시절부터 왕의 얼굴을 동전에 새겨왔고 지금까지 이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영국 조폐국은 조각가 마틴 제닝스가 만든 새로운 도안의 50펜스짜리 동전을 공개했다. 왕관을 쓰지 않은 찰스 3세의 왼쪽 옆 모습이 새겨졌다. 왕관을 꼬박꼬박 챙겨 쓰고 동전과 지폐에 등장했던 엘리자베스 2세 도안과 달랐다. 공교롭게도 엘리자베스 2세가 떠난 직후 기축통화로서 파운드화 왕좌가 크게 흔들리는 중이다.

 

기축통화는 어느 나라에서나 통용되는, 금과 비슷한 지위를 갖는 통화를 뜻한다. 준비통화로도 불리는데 세계 각국이 외환보유액 같은 비상금 창고에 이들 통화를 쌓아놓고 있기 때문이다. 기축통화로 인정받는 통화는 몇 개 안 된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기축통화하면 파운드화 하나였다. 미국 달러화가 기축통화 대열에 올라선 건 2차 세계 대전 이후로 100년도 채 안 됐다. 이후 일본 엔화, 유로화가 그 반열에 올랐다.

 

기축통화 원조 격인 파운드화가 최근 위기에 몰렸다. 물가를 잡겠다며 미국 중앙은행이 무서운 속도로 금리를 올려대는 와중에 리즈 트러스 신임 영국 총리가 기름을 부었다. 취임하자마자 450억 파운드, 한화로는 약72조원에 이르는 감세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치솟는 물가 때문에 영국 경제가 엉망인데 돈을 더 쏟아붓겠다는 처방이 나오자 금융시장은 패닉에 빠졌다. 물가를 더 끌어올리고 나랏빚만 늘릴 것이란 불안은 파운드화 투매로 이어졌다. 1파운드 가치는 역대 최저인 1.03달러까지 내려갔고 국가신용등급 전망 강등, 주택담보대출 중단 등 파장은 컸다. 트러스 내각이 감세안을 철회했지만 신뢰를 회복하기엔 늦었다는 평가다.

 

200년 넘게 공고했던 파운드 왕국이 흔들릴 만큼 전 세계 금융시장 폭풍이 거세다. 한국도 그 한가운데 있다.

조현숙 경제정책팀 차장

 
 

10.05  레버리지

금융에선 실제 가격 변동률보다 몇 배 많은 투자수익률이 발생하는 걸 레버리지(Leverage)라고 한다. 지렛대에 빗댄 표현이다. 레버리지의 마중물은 부채다. 빚을 많이 낼수록 레버리지 효과도 커진다. 부동산에선 전세를 끼고 주택을 매입하는 경우, 주식이라면 신용 매수가 그 예다.

 

부채 없이 레버리지 효과를 볼 방법도 있다. 레버리지 ETF(상장지수펀드)다. 상품명에 2X 또는 레버리지라고 표기돼 있는데 추종하는 지수가 1% 상승할 때 수익률이 2% 상승하고, 지수가 1% 하락하면 수익률도 2% 하락하는 구조다. 같은 방식으로 3배, 4배짜리 상품도 만들 수 있다. 하락에 베팅하는 인버스 레버리지 ETF(곱버스)도 있다.

 

레버리지 ETF가 국내에 상륙한 건 2009년. 빚 없이 수익을 극대화한다는 매력 때문에 돈이 몰렸다. 인기는 여전하다. 한국은 전체 ETF 중 레버리지 비중이 10%를 차지하는 이례적인 나라다. 얼마나 열정적인지 태평양도 건넌다. 9월 한 달간 서학 개미의 거래액 상위 5개 종목 중 4개가 3배 레버리지 ETF(3X)였다.

 

레버리지든 곱버스든 한쪽으로 쭉 간다면 더할 나위 없다. 복리 효과 때문이다. 예컨대 100으로 출발한 지수가 5일 연속 5%씩 상승할 경우 일반 ETF의 수익률은 27.6%지만 2X는 61.1%다. 그러나 지수가 그렇게만 움직일 리 없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당연하다. 첫날 5%, 다음날은 -5% 이렇게 열흘간 반복하면 일반 ETF의 수익률은 -1.2%지만 2X는 -4.9%다. 보통의 횡보장에선 손실만 커진다는 뜻이다.

 

굳이 한다면 정확한 타이밍을 잡아, 단기적으로 치고 빠져야 그나마 이길 확률이 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이 어떤가. 각국 중앙은행은 돈줄 죄기 바쁘다. 채권이고, 환율이고 하루 단위로 요동을 친다. 실물 경기가 꺾이기 시작했다는 신호도 여럿이다. 침체는 대세론이 됐고, 이젠 대형 경제위기설에 힘이 실린다. 한쪽에선 핵전쟁을 언급하고 있다. 이 불확실성 앞에 타이밍을 확신할 투자자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주식투자를 하다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걸 못 참는 순간이 온다. 더 빠질 듯하니 인버스를 기웃거리고, 손실을 빨리 메우려 레버리지를 쳐다본다. 이때 냉정해지지 않으면 중독과 다르지 않다. 경우에 따라선 투자하지 않는 것도 투자다.

장원석 S팀 기자

 
 

10.06  핵 버튼 

“과거 미국은 일본에 두 차례 핵무기를 사용한 선례를 남겼다. 서방은 민주주의를 논할 자격이 없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도네츠크·루한스크·자포리자·헤르손 등 우크라이나 4개 지역을 러시아 영토로 병합한다고 선언하며 외친 일성이다. 이어 우크라이나를 향해 “모든 군사 행동과 전쟁을 즉각 중단하고 협상 테이블로 돌아오라”고 호통쳤다.

 

푸틴이 언급한 선례란 2차 대전 중이던 1945년 8월,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나가사키에 투하한 핵탄을 의미한다. 당시 핵탄의 압도적 위력은 두 도시를 생지옥으로 만들고, 결사항전을 외치던 ‘대일본제국’을 무조건 항복하게 했다. 현재 러시아가 보유한 전술핵의 위력은 일본에 투하된 핵탄의 수 배~수십 배다. 전술핵 비축량은 2000개로, 미국보다 10배 많다.

 

러시아의 핵무장은 막강하지만, 핵 버튼 통제 장치와 절차는 미미하다. 전략핵은 대통령·국방장관·총참모장 중 두 명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정도의 통제 절차가 있지만, 전술핵은 이마저도 불분명하다. 푸틴은 ‘핵 독트린’도 미리 손봐뒀다. 원래 ‘핵 공격을 받았을 때’ 뿐이던 핵무기 발사 조건에, 2000년 ‘재래식 무기 공격으로 국가 안보가 위태로울 때’, 2020년엔 ‘국가 존립이 위협받을 때’ 등을 추가했다. 핵 버튼을 통제할 제도적 장치를 겹겹이 만들어둔 미국·프랑스 등과 러시아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통제력을 잃은 푸틴의 반복적인 핵 위협에, 일각에선 자칫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보다 더 심각한 미국·러시아 간 군사충돌 가능성도 제기한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서기장은 그의 독단을 견제할 집단 지도부가 있었지만, 푸틴에겐 그를 제지할 힘 있는 측근이 없다”고 지적했다.

 

쿠바 미사일 위기를 다룬 책 『결정의 본질』 저자 그레이엄 엘리슨은 “지도자가 재앙적인 굴욕과 성공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인 순간, 핵 공격 시나리오가 작동할 수 있다”고 뉴욕타임스에 전했다. 푸틴에게 선택의 순간은 ‘우크라이나군이 점령지에서 러시아군을 몰아낸 때’라고 내다봤다. 그간 푸틴의 선택은 침공-동원령-병합 등 악수로 점철됐다. 마지막 남은 선택의 기회엔 핵 버튼이 아닌 ‘패전 인정’을 택하길 기대한다.

박형수 국제팀 기자

 
 

10.07(금)  ××의 어원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 ‘온라인 가나다’라는 게시판이 있다. 누구나 온라인으로 편리하게 어문 규범과 어법, 표준국어대사전 내용 등을 문의하는 곳이다. ‘에요’와 ‘예요’, ‘되’와 ‘돼’ 같이 쉽게 혼동하는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질문이 자주 올라온다. 20년 넘게 운영됐다는 이 국가 공인 상담 서비스에서 사람들이 유독 욕설 관련 호기심을 끊임없이 제기한 점은 흥미롭다.

 

“개××라는 말이 합성어인지 파생어인지 궁금하다”(2013년 12월)에서부터 “사내 새끼라는 말은 비속어냐 아니냐”(2022년 5월)라는 질문까지 욕 관련 궁금증이 줄기차게 국어원 문을 두드렸다. 운영 초기부터 열기가 대단했는지 국어원이 아예 2004년 정기간행물 ‘새국어생활’(14권 3호)에 조항범 충북대 국문과 교수의 욕 어원 탐구 소논문을 실을 정도였다.

 

조 교수는 ‘네티즌들이 궁금해하는 어원 몇 가지(2)’라는 제목의 글에서 “우리말에는 욕설이 대단히 많다. 네티즌들은 이 욕설의 어원에 특별히 높은 관심을 갖고 있다”며 “욕설이 갖는 특수성 때문에 논의를 기피했을지는 모르지만, 혐오감을 주는 욕설이라고 해서 연구 대상에서 멀리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고 밝혔다. 우리말에는 ▶천시되고 무시되는 대상을 이용한 욕 ▶모두가 경멸하는 행동을 이용한 욕 ▶참혹한 형벌을 이용한 욕 ▶욕을 받는 사람의 어머니를 이용한 욕 ▶무시무시한 병을 이용한 욕 등이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게 조 교수의 설명이다.

 

최근에는 대통령 해외 순방이 비속어에 대한 전 국민적 관심을 한층 키웠다. 실제 발화 여부와 무관하게, ‘욕인지 아닌지’부터 ‘번역을 어떻게 하는 게 맞는지’ 등 숱한 논쟁이 온·오프라인을 달군다.

 

국어원에 따르면 새끼의 사전적 정의는 ‘낳은 지 얼마 안 되는 어린 짐승’, ‘자식을 낮잡아 이르는 말’, ‘(속되게) 어떤 사람을 욕하여 이르는 말’이다. 15세기 문헌에서부터 ‘새끼’의 옛말인 ‘삿기’가 나타나는데, 19세기부터 겹자음 ‘ㅺ’을 사용해 표기하다가 오늘날에 이르게 됐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본래 시동생을 가리키던 ‘시아기’가 ‘새기’를 거쳐 변한 말”(박숙희,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이라는 견해를 제시한다.

심새롬 정치팀 기자

 
 

10.10(월)  ‘깜깜이’ 부실

 빚의 역사는 인류 역사와 같다. BC 2400년 메소포타미아에선 수메르인이 부채 탕감 법령을 만들었다. 이전의 모든 채무 관계를 무효로 한다는 내용이다. 구약성서에도 50년마다 돌아오는 희년(禧年)에 부채를 탕감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BC 594년 아테네에선 집정관인 솔론이 이례적인 부채 탕감 법령을 발표했다.

 

‘솔론의 개혁’이다. 빚 때문에 노예가 된 사람은 자유인이 되었고, 빚 때문에 저당 잡힌 땅이나 재산도 본래 주인에게 돌려줬다. 이 과정에서 재화를 빌려준 채권자는 재산상 손해를 입게 된다. 그런데도 솔론의 개혁이 성공적으로 안착한 데는 손해를 본 채권자에 대한 당근이 있어서다. 당시 아테네 시민은 소유한 재산에 따라서 계급이 나누어졌는데, 계급에 따라 참정권을 줬다. 솔론의 개혁으로 손해를 본 채권자들은 대신 정치적 권리를 얻었다.

 

5000여 년 전부터 부채 탕감 제도가 있었던 이유는 공존 때문이다. 빚 때문에 노예가 되는 수요가 늘면 세금을 걷을 대상이 줄고 병력을 충당하기도 어렵다.

 

윤석열 정부의 빚 탕감 정책이 연일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2020년 4월부터 시행된 자영업자·중소기업(코로나19 피해)의 대출 만기 연장과 이자 상환 유예는 지난달 말 다시 연장됐고, 새 출발 기금(30조원)으로 최대 90%까지 원금을 감면한다. 빚을 내 주식·가상화폐에 투자했다가 실패한 청년을 위한 원금 상환 3년 유예, 이자 최대 50% 감면 제도도 시행 중이다. 이에 대한 비판은 연일 거세지고 있다. 취지는 이해하지만, 세금을 써가며 책임지지 못할 빚을 진 이들을 구제하는 것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비단 그것만 문제는 아니다. 부채 탕감 정책이 ‘깜깜이’ 부실을 키울 수 있다. 지난 7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태양광 관련 대출·펀드 전수조사 결과만 봐도 그렇다. 결과는 “아직 부실 발견 못 함”이다. 부실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애매한 결과다. 그런데 그럴 만도 하다. 부실의 판단 조건은 연체다. 그런데 원금은커녕 이자까지 받지 않는 상황에서 부실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 2018년부터 시행된 태양광 관련 대출의 만기(최저 5년)도 내년부터다. 결국 전수조사는 의미가 없었다. ‘정치 금융’ 비난이 나오는 이유기도 하다. 지금 필요한 건 공존을 위한 금융일 테다.

최현주 금융팀 기자

 
 

10.11  불꽃놀이

“이것은 인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천신(天神)이 시켜서 그런 것이다.” 일본 사신이 조선의 군기감이 선보인 불꽃놀이에 놀라 이렇게 말했다는 조선왕조실록(정종 1년, 1399년) 기록이다. 불꽃놀이 원조는 중국이다. 7세기 초 원시적인 불꽃(연화)이 있었고, 9세기 화약제조법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불꽃놀이를 고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시대에 불꽃놀이가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태종 때부터는 화약을 이용한 불꽃놀이가 연례행사로 자리 잡았다. 누구보다 불꽃놀이를 즐긴 건 조선 성종이었다. 성종 8년(1477년) 궁중 후원에서 열던 불꽃놀이에서 네 명이나 죽는 사고가 났다. 대사헌 이계손 등이 “관화(觀火)는 놀이”라며 불꽃놀이를 정지하라 청했으나 성종은 “군무(軍務)에 관계되는 일”이라며 들어주지 않는다.

 

성종 21년(1490년), 신하들은 또다시 불꽃놀이가 소모적인 일이라며 그만두라 건의한다. 성종은 유희에 가깝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군대와 나라의 중대한 일”이며 “재앙을 없애고 요사스러운 귀신을 물리치기 위한 것”이라며 거절한다. 성종 22년(1491년), 성종 24년(1493년)에도 신하들이 재차 불꽃놀이를 없애라 건의했으나 성종은 강행했다.

 

성종의 핑계처럼 불꽃놀이는 질병과 재액을 쫓는 벽사와 정화의 의미를 담고 있다. 더불어 군사 기술, 화학의 발전과 궤를 나란히 한다. 세종실록 13년(1431년) 기사에는 재상 허조가 “불 쏘는 것의 맹렬함이 중국보다 나으니 명나라 사신에게 불꽃놀이를 보여줘서는 안 된다”고 아뢰는 장면이 나온다. 일본에 화약 제조 기술이 유출되지 않도록 해안지역 수령들이 화약을 굽지 못하게(세종 8년, 1426년) 하기도 한다. 불꽃놀이는 반대로 군사 기술을 대내외에 과시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사신들을 불러 불꽃놀이를 구경시켰다는 실록 기사도 여러 차례 확인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중단됐던 세계 불꽃축제가 지난 8일 서울 여의도에서 3년 만에 열렸다. 주최 측인 한화는 한풀이하듯 화려한 불꽃을 선보였다. 이튿날 새벽, 북한은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두 발을 동해상으로 쐈다. 화약은 살상 도구가 될 수도, 사람들을 위무해주는 예술이 될 수도 있다. 불꽃놀이로 재액과 질병이 썩 물러나길 바란다.

이경희 이노베이션랩장

 
 

10.12  전술핵

고려 말기인 1380년 전라도 진포 인근에서 나라의 명운을 건 전투가 벌어졌다. 진포대첩이다. 최무선 장군은 전함 100척을 동원해 500여 척이나 되는 왜구 함대를 격파했다. 처음으로 사용한 화포(火砲)가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칼과 활이 당시 두루 쓰이던 전술무기(tactical weapon)였다면, 화약은 전쟁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게임체인저이자 전략무기(strategic weapon)였던 셈이다.

 

중국은 화약의 중요 재료인 염초(질산칼륨) 제조법을 국가 기밀로 정하고 수출도 제한했다. 최무선 장군이 흙에서 질산칼륨을 얻는 ‘취토법(取土法)’을 원나라를 통해 힘들게 들여왔지만, 생산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이후 명나라가 개선된 제조법을 확보했음에도 이를 조선에 알려주지 않았다. 화약을 전략물자로 취급해 기술 우위를 놓지 않겠다는 의도였다. 조선에는 그래서 늘 화약이 부족했다.

 

현대의 대표적 전략무기는 핵무기다. 편의상 ‘전술핵’과 ‘전략핵’으로 구분한다. 위력이 둘의 차이를 가른다. 전략핵은 도시 하나를 통째 날려버릴 만큼 위력이 세다. 3차 세계대전 발발로 이어질 수 있기에 군사 전문가들은 ‘사용할 수 없는 무기’(unusable weapon)라고도 부른다. 반면에 전술핵은 그에 비해 위력이 약하다는 이유로 ‘전술무기’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러나 전술핵이라는 말은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만큼이나 역설적이다. 아무리 위력이 약하다 한들 핵무기는 필연적으로 전략적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지난달 “북한이 전술핵무기를 실제 사용한다면 당초 기대한 효과를 거두기보다 한반도를 둘러싼 전략 환경을 바꿀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1월 “현대전에서 작전 임무의 목적과 타격 대상에 따라 각이한 수단으로 적용할 수 있는 전술핵 무기들을 개발해야 한다”고 선언한 데 이어, 최근에는 ‘전술핵’ 운용부대 군사훈련까지 지도하며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역설적으로 전술핵은 파괴력이 높은 전략핵보다 더 위험하다는 주장도 있다. 전략핵과 달리 ‘사용 가능한 무기’(usable weapon)라는 인상을 줄 수 있어서다. 전술핵에 경각심을 놓지 말아야 할 이유다.

한영익 정치에디터

 
 

10.13  지도자 홍명보

프로축구 K리그에 ‘홍명보(53) 시대’가 활짝 열릴 전망이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울산 현대는 올 시즌 두 경기를 남긴 현재 승점 73점으로 2위 전북 현대(67점)를 멀찌감치 따돌리고 1위를 질주 중이다. 울산이 역전을 허용하는 경우의 수는 남은 2경기를 모두 지고 전북이 2경기 모두 큰 점수 차로 이기는 것 딱 하나뿐이다.

 

‘선수 홍명보’의 발자취는 나무랄 것이 없다. 현역 시절 그는 축구대표팀의 최후방을 든든히 지키는 수호신 같은 존재였다. 한국 축구 A매치 역대 최다 출장(136경기) 기록을 세웠고 월드컵 본선 무대를 네 차례(1990·94·98·2002) 밟았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대표팀 주장으로 4강 신화를 이끌며 브론즈볼(월드컵 MVP 3위)을 받아 커리어의 정점에 섰다.

 

감독으로서의 이력은 달랐다. 지난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을 이끌 때만 해도 영웅으로 환호를 받았지만, 2년 뒤 브라질월드컵 본선 부진(1무2패)과 함께 나락으로 떨어졌다. 당시엔 연로한 부모님을 모시고 살 집터를 알아본 게 부동산 투기로 매도될 정도로 국민 감정이 험악했다. 홍 감독은 ‘그 땅’에 집을 짓고 현재까지도 부모님과 함께 산다.

 

이쯤에서 이력을 마감했다면 ‘스타 선수 출신은 좋은 지도자가 되지 못한다’는 속설을 입증하는 또 하나의 사례로 남았을지 모른다. 홍 감독은 직진을 고집하지 않고 우회로를 택했다. 느리더라도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깊이 있게 진화하기로 마음먹었다. 중국 프로축구 항저우 뤼청 사령탑을 맡아 클럽 축구를 경험하며 유소년 육성 시스템을 연구했다. 이후엔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직을 맡아 실무 행정을 총괄했다. 이를 통해 문화, 정책의 맥락에서 축구를 다양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2년 간의 중국 생활과 3년 간의 행정가 경험을 거친 홍 감독은 존경하는 은사 거스 히딩크(76·네덜란드) 감독처럼 현장과 행정을 아우르며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축구전문가’로 진화했다. 돌이켜보면 지도자로 컴백하는 과정에서 K리그 최다 준우승(10회)으로 누구보다 우승에 목 마른 울산의 손을 잡은 것 또한 정확한 판단이었다.

 

우여곡절을 거쳐 비로소 명예 회복에 성공한 ‘지도자 홍명보’의 다음 스텝은 어떨까. 위기에 굴하지 않고 성장하는 영웅의 서사는 예나 지금이나 흥미롭다.

송지훈 스포츠디렉터 차장

 
 

10.14(금)  회빙환(回憑還)

노블 코믹스는 ‘고귀한(noble)’ 말고 ‘소설(novel)’과 연재만화를 가리키는 코믹스(comic)가 결합한 단어다. 웹소설 원작의 웹툰이 바로 노블 코믹스다. 한국에서 웹툰 산업이 발달하면서 2016년 이후 새롭게 생겨난 콘텐트 유형이다. 노블 코믹스는 웹소설로 기존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웹툰으로 만들어도 실패할 가능성이 작다.

 

웹소설이 기반이면 아무래도 웹소설의 인기 장르를 웹툰이 따라갈 수밖에 없다. 회귀·빙의·환생의 앞글자를 딴, 이른바 ‘회빙환(回憑還)’은 웹소설계 성공 공식이다. 최근 10대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웹소설 ‘데뷔 못하면 죽는 병걸림(데못죽)’은 대표적인 빙의물이다. 4년차 공시생인 주인공이 아이돌 지망생에 빙의된 후 인기 아이돌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다. ‘데못죽’은 지난 8월 웹툰 연재를 시작한 지 하루 만에 조회수 300만 회를 돌파했다.

 

‘회빙환’은 한국만의 유행이 아니다. 2010년대부터 일본에선 ‘이세카이(いせかい)’를 다룬 만화가 쏟아졌다. 평범한 주인공이 ‘이세계(異世界)’로 이동해 영웅적인 존재가 되는 내용이다. 회빙환이든 이세계든 넓게 보면 판타지다. 젊은 세대가 판타지를 현실 도피처로 삼고, 만화 속 주인공에게서 대리만족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진 탓이다.

 

인기작이 특정 장르에 편중되면 그림체가 비슷해지고 ‘오리지널(original)’ 작품 수는 줄어들게 된다는 게 웹툰 업계의 고민이다. 판타지물이 무조건 나쁘다는 건 아니다. 1986년 출간된 만화가 신일숙의 『아르미안의 네 딸들』은 여성만 왕위에 오르는 가상왕국 ‘아르미안’이 배경이다. 이전 순정만화에서 보기 힘든 강인한 여성상을 등장시켜 새로운 여성 서사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도 처음엔 출판사로부터 “현대물을 그리는 게 어떻겠냐”는 권유를 받았다. “그전에 히트를 친 작가였으면 안정되게 가자고 했을텐데 ‘알아서 해보라’고 해서 그 작품을 할 수 있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특정 요일에만 찾아가서 인기작 위주 웹툰을 읽다 보면 정작 다른 요일에 더 좋은 작품이 있는지조차 모를 수 있다. 웹툰 업계의 개척자 정신을 격려하고 웹툰 작가들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는 것도 웹툰 독자의 책무다.

위문희 사회2팀 기자

 
 

10.17() 중독경제

한동안 스마트폰 스크린타임(사용시간)을 확인하지 않았다. 현실을 직시하기 무섭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사용을 줄이려면 손을 바쁘게 해야 한다고 해 뜨개질 키트를 스마트폰으로 주문해 놓고, 아직 박스도 뜯지 않았다. 죄책감에 사들인 책도 읽어내기 점점 어려워진다.

 

내 허약한 의지 만을 탓하는 것은 다소 억울하다. 사실 스마트폰에 굴복한 것은 몇 년 되지 않았다. 오래 사용한 01X 번호를 유지하고 싶어 2G폰을 고집하다(태블릿을 병행 사용하긴 했다) 2016년께 완전 항복했다. 가장 큰 이유는 카카오톡이었다. ‘국민 소통 앱’으로 오는 메시지를 즉각 확인하지 않아 생기는 사회적 압박을 도무지 견딜 수 없었다. 그렇게 쓰지 않으면 안 될 서비스는 모두 스마트폰으로 수렴됐다. 어쩔 수 없이 시작했지만, 중독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왜 이렇게 됐을까. 스마트폰엔 뇌의 보상회로를 자극하는 장치가 넘친다. 보상회로는 당초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물질이나 행동에서 즐거움을 경험하게 하고 지속적인 욕구를 만들어내도록 돕는 장치다. 높은 열량의 음식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꼭 진짜 생존과 무관해도 보상회로를 자극해 욕구가 만들어지면 이는 곧 중독이 된다. 생존과 무관하지만 강한 중독성을 만드는 마약이 이런 경우다. 이를 일찍이 간파한 빅테크 기업의 디지털 중독 디자인은 시간이 지날수록 정교해지고 있다.

 

현재의 경제 구조에선 유한한 인간의 시간과 관심을 차지하는 기업이 승자가 된다. 김병규 연세대 경영대 교수는 『호모 아딕투스』에서 이런 상황에 대해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모든 사업자가 사업 모델을 바꾼다”고 진단했다. 이는 ‘중독 경제’로 명명된다. 편의점이 웹드라마를 만들고,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소속 연예인의 사생활을 중계하는 이유다. 하나같이 소비자와 소통을 강조하지만, 결국엔 중독을 심화하는 것이 목표다.

 

중독 경제가 이전 경제 시스템보다 좋은지 나쁜지 판단은 무의미하다. 하지만 이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자는 나름의 대처 방법을 찾아야 한다. 여러 대응법 중 가장 공감한 것은 운동과 같은 ‘건강한 중독 찾기’다. 어서 뜨개질 키트를 찾아내 도전해야겠다. 따라 하려면 유튜브에 접속하고, 자랑하려면 소셜미디어에 올려야 한다는 것이 함정이긴 하다.

전영선 K엔터팀 팀장

 

10.18  과로노인

‘노인 자신이 하류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현역 시절과 똑같이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죽기 직전까지 일해야 하는 사회가 기다리고 있다.’

 

후지타 다카노리(藤田孝典)가 쓴 책 『과로노인』의 한 대목이다. 노인 복지 전문가인 그는 2015년 발간한 『하류노인이 온다』로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돈도, 기댈 사람도 없는 노인이 넘쳐나는 현실을 직시한 책으로 그해 일본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2016년 펴낸 『과로노인』은 후속편 격이다.

 

후지타는 이 책에서 일본 고령자 취업률이 다른 선진국보다 유독 높다며 ‘일할 의욕이 높아서’가 아니라 ‘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15년 통계를 근거로 들었다. 65세 이상 고령자 고용률이 프랑스·독일·영국은 한 자릿수인데, 일본은 20.1%라며 일본 고령자가 ‘과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진짜 과로하고 있는 건 한국 노인이다. 2015년에도 한국 65세 이상 고용률은 30.6%로 이미 일본보다 한참 위였다. 이후 한국 상황은 더 악화했다. 2015년 한국의 노인 고용률은 아이슬란드에 이어 2위였지만, 2020년 이후 아이슬란드를 제치고 1위 자리에 올랐다. 15% 안팎인 OECD 평균의 2배다. 최근 상황은 더 심각하다.

 

지난주 통계청이 발표한 ‘고용동향’ 보고서를 보면 지난달 65세 이상 고용률은 38%였다. 매번 최고 기록을 경신하는 중이다. OECD 1위를 지키고 있는 노인 빈곤율에 이어 노인 고용률까지, 한국은 과로노인 2관왕 국가다.

 

한국 노인이 유독 게을러서, 계획 없이 살아서가 아니다. 1970~90년대 한국이 고도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이전 세대의 성실성 때문이다. 낮은 임금을 받고도 질 높은 노동력을 제공하며 세계 최장의 근로 시간을 자랑했던 그들이다.

 

다시 『과로노인』으로 돌아가면 저자는 가족 부양을 원칙으로 하는 사회 통념과 이를 토대로 만들어진 복지제도가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대수술이 필요하지만 현 정부 역시 각종 연금·복지제도 개혁의 첫발도 떼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길은 하나다. 과로청년이 과로중년이 되고 과로노인이 되는 수밖에.

조현숙 경제정책팀 차장

 
 

10.19  신라젠

바이오는 꿈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다. 신라젠은 이 말에 딱 어울리는 회사였다. 일단 ‘말기암도 치료할 수 있다’는 비전이 가슴을 두드렸다. 주력인 항암 바이러스 물질 펙사벡 개발 과정은 순조로웠고, 함께 임상을 진행하던 미국 바이오 벤처 제네릭스까지 인수하며 덩치를 키워갔다.

 

시장을 들썩이게 한 건 2015년 4월 펙사벡의 임상 3상 승인 소식이었다. 장외시장의 스타로 떠오른 신라젠은 천문학적인 비용이 필요한 임상 3상 도전을 위해 상장을 택했다. 그리고 2016년 12월 코스닥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주가는 채 1년도 안 돼 10배로 뛰었다. 블록버스터급 항암제의 탄생 기대감과 개인투자자의 꿈이 만나 국내엔 바이오 투자 열풍이 불었다.

 

균열은 2018년 시작됐다. 연초부터 최대주주 일가의 갑작스러운 주식 처분 소식이 전해졌다. ‘임상 실패설’이 솔솔 피어났다. 결국 2019년 8월 최악의 소식이 터졌다. 미국 데이터모니터링위원회(DMC)가 펙사벡의 임상 중단을 권고했기 때문이다. 설이 결국 사실이 된 것이다. 주가는 사흘 연속 하한가를 기록했다.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검찰의 압수 수색과 전 대표 및 감사의 구속이 이어졌다. 결국 이듬해 5월 거래가 정지됐다.

 

악몽 같던 2년 5개월이 지나고, 12일 한국거래소가 마침내 거래 재개 결정을 내렸다. 17만명의 개인투자자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놀라운 건 복귀 성적표였다. 거래 재개 후 이틀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다. 최대주주가 바뀐 점, 자발적 보호 예수 기간을 설정해 책임경영 의지를 밝힌 점, 파이프라인을 강화한 점, 충분한 자금을 확보한 점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신라젠 측은 “연구 개발에 전력해 기업 가치 제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정말 그러길 바란다.

 

더욱 중요한 건 투자자의 자세다. 거래가 재개되자 또다시 과열 현상이 관측된다. 하지만 신약 개발엔 중박이 없다. 성공과 실패의 결괏값만 존재한다. 펙사벡의 경우 신장암 임상 2상을 진행 중이고, 새로 도입한 항암 후보물질 ‘BAL0891’은 빨라야 연내 임상을 시작한다. 신라젠의 투자 위험은 여전히 높고, 앞으로도 낮은 확률과의 긴 싸움을 각오해야 한다. 적어도 이 업계에선 ‘무조건 된다’, ‘이번엔 확실하다’와 같은 말은 써서도, 믿어서도 안 된다. 투자와 도박은 언제나 경계가 희미하다.

장원석 S팀 기자

 
 

10.20  통화 혐오

질문 하나. 간단한 업무 협조를 구하거나, 전달 사항이 있을 때 가장 편한 소통 수단은? 내 경우는 전화 통화다. 짧은 설명과 추가 질문·답변이 오가면 오류 없이 마칠 일을, e메일이나 메신저로 구구절절 설명하는 게 번거롭고 시간 낭비라 느꼈다.

 

최근 생각이 바뀌었다. 전화를 걸 때면 ‘통화할 수 없으니 문자나 카카오톡(카톡)으로 남겨달라’는 거절 메시지를 부쩍 자주 받으면서다. 얼마 전엔 한 후배에게 “카톡도, 사내 메신저도 다 있는데 매번 전화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푸념도 들은 터다.

 

내 기준엔 카톡·문자는 ‘통화 불가 시 보조 수단’인데, 디지털 네이티브인 젊은 세대에겐 통화가 소통의 최후 수단인 듯했다. 택시 잡기, 음식 배달, 쇼핑, 결제 등 모든 일상을 앱으로 영위하고, 가족·친구와 소통도 메신저가 편하다는 이들에게 나의 ‘업무 전화’가 편할 리 없단 사실을 뒤늦게 자각했다.

 

‘통화’가 새로운 논쟁거리가 될 수 있겠단 조짐은 나만 느낀 게 아니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사무실 문화의 새 트렌드로 ‘통화 혐오’를 꼽았다. 같은 사무실에 옹기종기 모여 일하는 동료끼리 업무 승인을 받기 위해 며칠 동안 e메일을 수없이 보내면서도, 직접 자리로 찾아가거나 전화로 “이것 좀 처리해달라”고 부탁하진 않는다고 한다.

 

FT는 40~50대를 “유선전화와 함께 자라나, 어린 시절 통화법을 교육받고 전화 통화에 능숙한 마지막 세대”라 칭했다. 이후 세대에겐 더 이상 통화가 당연한 기술이 아니라며, 20~30대 성인 자녀가 전화로 병원 예약을 못 하거나, 식당에서 “포장해달라”는 말을 주저하더라도 부모가 당혹스러워해선 안 된다고 전했다.

 

통화 혐오증 극복법은 의외로 쉽다. 간단한 매뉴얼을 숙지하고, 하루 3시간씩 누구에게도 메신저와 e메일을 쓰지 말고 전화 또는 대면 대화를 시도하라고 조언한다.

 

이번 ‘카톡 먹통 대란’은 우리 사회의 디지털 의존도를 실감케 했다. 카카오페이가 작동을 멈추자 길거리에서 졸지에 빈털터리가 됐고, 카톡으로 예약·결제하던 소상공인의 피해 사례도 속출했다. 민생뿐 아니라 안보 위협까지 제기됐다. 민·관은 대책 마련에 나섰다. 우리는 통화 혐오증부터 극복해보면 어떨까.

박형수 국제팀 기자

 
 

10.21(금)  카톡 탈출

#1. “국내 1위 로펌에 가니 변호사가 의뢰인을 만나자마자 텔레그램 앱 설치부터 시키더라.” 벌써 9년 전 얘기다. 소송 중인 중견기업 대표가 2013년 겨울 이런 말로 주변에 텔레그램 가입을 권유했다. 그해 8월(안드로이드 버전은 10월) 나온 텔레그램은 대화 보안이 필요한 사람들의 카카오톡 대체재로 주목받았다. 서비스 3년 차를 맞은 카톡 주변에서 “검·경의 잦은 서버 압수수색 요청에 몸살을 앓는다”는 소식이 흘러나온 즈음이다.

텔레그램에는 비밀 대화 등 신기술도 있었다. 하지만 잠재적 ‘사법 리스크’에 민감한 사람들은 그보다 서버가 해외에 있어 국내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이 어렵다는 걸 높게 쳤다. “국세청 직원은 무조건 아이폰+텔레그램 조합을 쓴다” 같은 말이 이후 정·관계에 회자했다.

 

#2. 지난 3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주변에서는 메신저 앱 ‘시그널’ 집단 가입이 화제였다. 대선 때까지 텔레그램을 쓰던 여권 주요 인사들이 인수위 초 돌연 시그널에 무더기로 등장해 기자들이 그 배경을 궁금해했다. ‘안전한 메신저’가 모토인 시그널은 미 중앙정보국(CIA)·국가안보국(NSA) 출신의 기밀 폭로자 에드워드 스노든이 애용했고 국내에서는 드루킹·김경수 전 경남지사 간 소통에 쓰여 유명해졌다.

 

다만 여권 내 텔레그램→시그널 이동은 해프닝 수준에 그쳤다. 정부 출범 후인 올 7월 권성동 당시 국민의힘 대표 대행이 윤석열 대통령과의 ‘체리 따봉’ 대화를 노출해 여전히 굳건한 텔레그램의 위상을 확인시켰다.

카카오톡 먹통 사태를 계기로 라인·텔레그램·페메(페이스북 메신저) 등 대체 서비스 수요가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핵심 취재원으로 분류되는 인사 대다수가 “이미 한참 전부터 카톡을 거의 안 썼다”고 고백한다. 단톡방 용도 외에 사적 대화는 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어쨌든 조심해야 하는 세상 아닌가”(중진의원)라는 반응이다. 그래도 SK C&C 화재 당일 4800만 전 국민이 난리인 중에 그들만 카톡 밖 세상에서 평화로웠던 건 아이러니하다.

 

대통령이 카카오를 “사실상 국가기간통신망과 다름없다”고 규정했다. “카톡 먹통을 뉴스 보고 알았다” 해도, 하루 500건씩 자체 집계되고 있다는 소상공인 피해 사례까지 남의 일로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심새롬 정치팀 기자

 
 

10.24(월)  PF

국내 부동산 시장은 ‘선분양 후시공’ 방식이 일반적이다. 부동산을 짓기 전에 먼저 판다. 그런데 선분양을 해도 부동산을 지을 땅을 살 자금과 사업 진행비는 필요하다. 그래서 부동산 사업의 ‘꽃’으로 불리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roject Financing)을 찾는다.

 

PF는 신용이나 담보가 아닌 사업성이 대출 근거다. 해당 시행사가 지을 부동산 가치가 얼마일지를 ‘저마다의 기준’으로 평가한다. 금융업체별로 PF 금액이 달라질 수 있는 이유다. 투자 성향이 강한 만큼 수익은 일반 대출보다 많다.

 

우선 대출금이 수백억원에서 수조 원에 이르는 데다 이자도 연 10%를 웃돈다. 해당 부동산이 잘 팔려서 ‘대박’이 나면 대출 조건에 따라 30%가 넘는 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 대신 위험성이 크다. 완공 후에도 해당 부동산을 다 팔지 못하면 이자는커녕 원금 회수도 어려울 수 있다.

 

최근 ‘레고랜드 사태’로 시끌벅적하다. 강원도가 지급 보증을 선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2050억원을 갚지 않겠다고 해서다. 시장은 그야말로 ‘멘붕’이다. 국가가 빚을 갚겠다는 약속을 어길 수도 있다는 충격은 채권시장을 꽁꽁 얼리고 있다. 금융권은 PF를 꺼리고 새 PF나 차환이 필요한 업체는 자금줄이 막힌다. 이들 업체가 쓰러지면 금융업체는 부실채권을 떠안고 휘청이게 된다. 줄도산 위기다.

 

지금 상황이 낯설지 않다. 1997년 외환위기(IMF) 때와 비슷하다. 당시 경상수지 적자, 높은 금리, 텅 빈 외화 곳간 등 징후는 많았지만 국가부도 신호탄은 ‘한보 사태’였다. 재계 14위 대기업이었던 한보는 정계 유력인사 동원해 5조여 원을 빌렸다. 제철소를 짓겠다는 명분으로 대출받은 PF다. 감사 결과 2000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자금의 행방은 묘연했다. 5조 부실 채권은 금융권을 자금 경색에 빠지게 했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의 중심에도 PF가 있다. 그해에만 대출은행 16곳이 영업정지를 당했고 정부는 지금껏 27조여 원을 투입해 31개 부실 저축은행을 정리했지만, 회수한 금액은 13조여 원에 불과하다. 당시 부산저축은행은 예금의 절반인 4조여 원을 각종 PF에 쏟아부었고 뇌물·비자금 조성 등에 이용했다. 이미 ‘제2의 IMF’ 징후는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여야 정치 공방을 벌일 때가 아니다. 또다시 국가부도라는 고통과 치욕을 겪을 수는 없다.

최현주 금융팀 기자

 
 

10.25  만장일치

만장일치(滿場一致)란 모든 사람의 의견이 같음을 일컫는다. 국제기구의 전통적인 의사결정 방식은 만장일치제였다. 이는 약소국에 유리한 합의 방식이다. 불리한 결정에 구속되지 않도록 함으로써 모든 회원국의 주권을 절대적으로 존중해주기 때문이다. 언뜻 이상적으로 보이지만 국제기구 운영의 걸림돌이기도 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1920년 설립된 국제연맹은 제2차 세계대전을 막지 못했다. 만장일치제 때문에 한 나라만 반대해도 의결을 할 수 없었고, 군사적 제재수단도 없었다. 각국은 각자도생의 길로 치달았다. 2차 대전 종전 이후 설립된 국제연합(UN)은 국제연맹의 교훈을 바탕으로 만장일치제를 폐지한다. 다수결 제도와 각종 하위 기구, 상임이사국의 거부권 등을 도입해 실질적인 영향력을 확보한다.

 

미국 대부분의 주에선 형사재판 배심원단 만장일치 평결을 원칙으로 한다. 배심원 중 한 사람이라도 무죄라고 판단하면 유죄평결을 내릴 수 없도록 했다. 공정한 배심에 따라 평결받을 권리를 보장해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모두가 유죄를 외치는데 혼자 무죄라고 주장하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사회심리학자 솔로몬 애쉬의 ‘동조실험’은 다수의 틀린 판단에 따르는 현상을 보여준다. 답이 명확한 문제를 제시한 뒤 공모자들이 모두 똑같은 오답을 말하게 했더니 피실험자 10명 중 4명이 그에 동조했다.

 

만장일치는 자칫 ‘집단사고’로 흘러갈 위험이 크다. 합의를 지나치게 추구하는 나머지 다른 대안에 대해 현실적으로 평가하지 못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반대자들에 대한 합의 압박, 구성원의 자기검열이 증폭되면 비합리적인 판단으로 치닫게 된다. 『반대의 놀라운 힘』(청림출판, 2020)에 따르면 실제로 사람들은 반대의견을 내는 소수를 거부하고 응징한다. 직장인 10명 중 7명이 문제를 발견하고도 지적하지 않는다는 연구도 있다. 모두가 침묵하는데 혼자 보고했다가 동료들에게 조롱과 거부를 당할까봐 두렵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22일 중국 공산당 제20차 당대회에서 시진핑(習近平·69) 국가주석의 3연임과 종신 독재의 길을 여는 ‘당장’(黨章·당헌) 개정안이 만장일치 거수로 통과됐다. 집단사고를 제어할 최소한의 안전핀도 없는 초현실적 장면이었다.

이경희 이노베이션랩장

 

10.26  고독사

고독사란 단어는 장기불황을 뜻하는 ‘잃어버린 20년’을 맞은 1990년대 일본에서 탄생했다. 은퇴 이후 경제적 곤궁과 사회적 고립을 동시에 겪던 당시 고령층에서 아무도 모르게 생을 마감하는 이들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고독한 죽음을 맞는 이는 매년 3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고독사 현장을 전문으로 청소하는 특수청소업체는 물론 월세를 받는 집주인들이 고독사로 입는 손실을 보상해주는 고독사 보험까지 생겼다. 고독사를 고리로 하나의 산업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한국에는 아직 고독사 통계를 내는 명확한 집계 기준이 따로 없다. 보통 무연고 사망자를 고독사로 본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0년 580명이었던 무연고 사망자는 2015년 1676명, 2020년 2880명까지 늘었다. 지난해에는 3488명이었다. 폭발적인 증가세다.

 

고독사 현장을 정리하는 국내 전문업체 역시 늘어나고 있다. 일부 업체는 유품정리·특수청소 현장 영상을 촬영해 유튜브에 올리기도 한다. ‘반지하 17년 삶의 마지막’ ‘좁은 고시원 수납장에서 발견된 것은?’ 등의 영상은 대부분 조회 수 10만 회를 훌쩍 넘긴다. “고단한 이 세상 고생 많았다” “억장이 무너진다”며 고인을 추모하는 댓글도 수백개씩 달린다.

 

지난 19일에는 서울 양천구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40대 탈북 여성 A씨가 백골 상태의 시신으로 발견됐다. 계약 갱신 기한이 다가왔지만, 연락이 닿지 않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이 방문했다가 시신을 마주했다. 겨울옷을 입은 채여서 경찰은 그가 지난겨울 숨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의 죽음을 1년 가까이 아무도 몰랐다는 의미다. 2015년에는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역도 금메달리스트였던 김병찬 선수가 고독사로 사망한 채 발견돼 충격을 주기도 했다. ‘고독사 대국’이 머지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영국에서는 2018년 외로움 문제를 담당하는 장관이 처음으로 임명돼 주목을 받았다. 한국 국회도 2020년 3월 ‘고독사예방법’을 제정했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8월부터 서울·부산 등 전국 9개 시도에서 ‘고독사 예방 및 관리’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생의 마지막 순간마저 방치하는 사회가 지속 가능할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제대로 된 예방 대책이 시급하다.

한영익 정치에디터

 
 

10.27  베테랑 플레이어

프랑스어 ‘베테랑(veteran)’은 어떤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해 기술이 뛰어나고 노련한 사람을 일컫는다. 단순히 경력이 길거나 나이가 많다는 느낌을 넘어 일정 수준의 이상의 실력을 인정받는 전문가로서 오랜 경험을 쌓았다는 뉘앙스가 강하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는 베테랑의 어원이 등장한다. 로마제국 군인은 20년 가까이 복무한 뒤 마흔 살 즈음에 퇴역했는데, 그중에서도 부대 운영 및 작전 수행에 필요한 여러 역량을 두루 갖춘 퇴역 군인을 ‘베테라누스(veteranus)’라 불렀다고 한다. ‘오래됨(old)’을 뜻하는 라틴어 ‘베투스(vetus)’에서 파생된 말로, 후대로 건너오며 베테라누스를 거쳐 베테랑으로 간소화됐다.

 

‘경험이 풍부한 퇴역 군인’을 지칭하는 베테랑이 스포츠에도 쓰이기 시작한 건 1800년대 중반부터로 추정된다. 오랜 기간 일정 수준 이상의 경기력을 유지한 선수를 존중해 쓰는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경험과 실력에서 우러나온 리더십으로 후배 선수들을 이끄는 존재이자 경기 중 결정적인 플레이로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인물을 의미한다.

 

올 시즌 프로축구 K리그에선 이청용(34)이 베테랑의 품격을 보여줬다. 소속팀 울산 현대가 라이벌 전북 현대를 누르고 지난 2005년 이후 17년 만에 K리그를 제패하는 과정을 진두지휘하며 시즌 MVP에 선정됐다. 한 시즌 내내 주장 역할을 맡아 선수단 분위기를 주도한 그에게 동료들은 “실력은 도사급, 인성은 엄마급”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한창 뜨거운 가을 야구도 베테랑의 품격을 만끽할 수 있는 무대다. LG의 김현수(34), 키움의 이용규(37) 등 백전노장들이 매 경기 팀 분위기를 다잡으며 플레이오프에서 묵직한 활약을 선보인다. 실책 하나에 희비가 엇갈리는 절체절명의 승부에서 경험과 자신감을 겸비한 선배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젊은 후배들에겐 천군만마다.

두 팀 중 한쪽이 한국시리즈 무대에 진출하면 맞닥뜨릴 SSG에는 ‘베테랑 끝판왕’ 추신수(40)가 있다. 전성기 시절 메이저리그를 주름잡은 야구 베테랑은 KBO리그 우승 트로피를 목전에 두고 벌일 ‘마지막 승부’에서 또 어떤 스토리를 써 내려 갈까. 각자의 무대에서 ‘경험의 가치’를 증명하는 베테랑 플레이어들의 분투를 응원한다.

송지훈 스포츠디렉터 차장

 
 

10.28(금)  다크웹

2020년 8월, 3개 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에 다크웹(DarkWeb) 전문수사팀을 지정한 경찰청. 올해 10월 현재 6개 지방청으로 확대 운영 중이다. 국가정보원도 지난해부터 다크웹 전담대응팀을 가동해 다크웹을 모니터링하고, 국내외 해킹 위협에 대비하고 있다. 지난 14일 대검찰청은 전국 4개 검찰청에 마약범죄 특별수사팀을 개설해 다크웹을 통한 인터넷 마약류 유통을 수사한다고 밝혔다.

 

최근 수사·정보기관의 관심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다크웹이다. 익명성이 보장되고 IP 추적이 어려워서 마약 거래나 아동성착취물 유통, 해킹 등 각종 범죄에 이용되고 있다. 다크웹이 널리 퍼진 건 2000년대 초반 토르(Tor·The Onion Router)라는 익명 브라우저가 발표되면서다. 이름에 ‘양파(onion)’가 들어간 것처럼 토르 브라우저로 접속한 다크웹 사이트 주소는 ‘.onion’ 형태를 갖는다. 사용자의 접속 경로가 6번의 암호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양파 껍질이 연상되기도 한다.

 

토르 기술은 1990년대 중반 미국 정부가 개발했다. 군과 정부 기관의 온라인 통신을 보호하기 위해 익명 네트워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 사이트에 토르를 사용한 흔적이 남는다면 오히려 미국 정부는 정체를 들키는 셈이 된다. 그래서 대중에게 토르를 배포하게 된 것이다.

 

다크웹상의 불법 행위는 2013년 미국에서 유명한 다크웹 암시장이었던 ‘실크로드(Silk Road)’가 폐쇄되면서 문제로 대두했다. 미국 달러 대신 비트코인으로만 거래됐다는 점이 또 다른 특징이었다. 익명화된 브라우저와 암호화된 가상자산이 만나 새로운 범죄 유형을 만들어낸 것이다.

 

다크웹이라고 익명성이 완벽하게 보장되는 건 아니다. 운영자가 실수할 수 있어서다. 다크웹에 세계 최대 규모의 아동성착취물 사이트 ‘웰컴투비디오’를 개설한 손정우(26). 미국 법무부가 2019년 10월 손정우를 아동성착취물 제작·광고·배포 등 9개 혐의로 기소하기에 앞서 2018년 5월 한국 경찰에 먼저 덜미를 잡혔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는 “도둑놈은 항상 운이 좋아야 하는데 경찰은 한 번만 운이 좋으면 된다”고 말한다. 다크웹 수사가 어려울 뿐이지 불가능하지 않다는 수사기관의 자신감, 성과로 보여달라.

위문희 사회2팀 기자

 

10.31(월)  불매운동

‘의견을 표현하기 위해 구매가 아닌 비구매를 택하는 행동’. 소비자 보이콧(Consumer Boycott)으로도 불린다. 1880년 아일랜드토지연맹이 언(Erne)의 백작, 찰스 보이콧의 토지 임차인 착취를 막기 위해 한 단체 행동에서 유래해 동사로 쓰이기 시작했다. 특정인이나 제품, 집단을 사회적으로 배척하는 행동 혹은 운동이다.

 

소비 시장에서 물건을 사는 것은 일종의 투표와 같다. 마음에 드는 제품을 낙점한 뒤 화폐로 의사를 표현한다. 불매운동에선 주도 세력이 특정 제품 구매를 중단하도록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설득한다. 불매운동이 어떤 과정을 거쳐 소비자의 결심을 바꾸는지, 혹은 어떤 조건이 갖춰져야 성공적인지에 대해선 여러 이론이 나와 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취향과 판단이 작용하는 동시에 사회·윤리·정치적이기도 한 다층적 행동이라 하나의 모델로 설명하긴 어렵다. 특정 불매운동의 지속 기간, 호응 정도를 예측하는 게 쉽지 않은 이유다.

 

지난 15일 충격적인 직원 사망 사건으로 거세진 SPC 불매운동의 미래는 무엇일까. 여러 측면을 따져봤을 때, 장기화로 갈 수밖에 없다. 비단 실수로라도 SPC 제품을 사는 일이 없도록 판독 애플리케이션까지 나와 널리 공유되는 등 행동하는 소비자의 압력이 거세지기 때문만은 아니다.

 

장기화의 징후는 오히려 다른 곳에서 훨씬 뚜렷하다. 합리성으로 무장한 이른바 ‘이기적인 소비자’ 의 움직임에서다. 철저히 개인의 이익을 동력으로 행동한다는 이들은 SPC가 빵을 만들 때 어떤 자세를 갖고 임하는지 적나라하게 확인하게 됐다. 누군가 일하다 비명에 간 현장 확인이 끝나기도 전, 옆에선 샌드위치 만들기가 계속됐다. 이래도 괜찮다고 판단한 기업, 이런 문화 속에서 일하는 조직이 먹거리에 대한 철학과 예의를 갖추리라 기대하는 것이야말로 비합리적이다.

 

‘직원과 가맹점주가 큰 피해를 본다’는 호소는 이기적인 소비자의 마음을 돌리기엔 역부족이다. 이들에게 최우선은 나와 가족의 입에 들어갈 먹거리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SPC가 뒤늦게(지난 21일) 제시한 재발 방지 대책으로 이들의 마음을 돌려보겠다는 건, 어림없는 얘기로 들린다. 신뢰를 잃은 SPC의 위기는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전영선 K엔터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