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危機의 韓半島 2022-09/ 09.01 중국이 경제보복 나설때...우리가 반격할 그들의 ‘급소’는 - 09.27 내부 소통도 외교다

상림은내고향 2022. 10. 1. 14:50

危機의 韓半島 2022-09/

09.01  중국이 경제보복 나설때...우리가 반격할 그들의 ‘급소’는

 한·중(韓中)이 수교한 1992년부터 올 7월까지 우리나라의 대중(對中) 무역 누적 흑자는 7099억달러에 달했다. 이는 대미(對美) 무역 흑자 누적액(3066억달러)의 두 배가 넘는다. 같은 기간 한국의 GDP는 5.1배, 중국은 35.5배 각각 불어났다.

 

연구개발(R&D)에 국가 총력을 쏟은 중국은 2020년 글로벌 R&D 1000대 기업 수에서 194개 자국 기업을 확보해 27개에 그친 한국을 앞섰다. 그 결과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중 무역흑자는 2013년의 40%에도 못 미쳤다. 올 5월부터는 대중 무역에서 사상 처음 4개월 연속 적자를 내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최고의 경제 파트너였던 양국의 상생(相生) 모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한·중 경제 관계 구조 변화를 3가지 물음표로 정리해 본다.'

 

 

 ◇‘복덩이’에서 ‘경쟁자’된 중국

중국은 한국 입장에서 최근접 거리에 14억 인구의 세계 최대 시장이면서 저임금 생산 기지라는 ‘3중(重) 매력’을 지닌 복덩이였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의 대(對)중국 투자는 봇물을 이뤄 지난해까지 누적 1000억달러(약134조원·중국 상무부 실제 집행금액 집계 기준)를 넘었다.

 

홍대순 글로벌정책전략연구원장은 “한국이 30년 흑자를 누리는 동안, 중국은 집요한 기술 및 인재 빼가기로 자국 기업의 덩치를 급속도로 키워 우리의 턱밑을 겨누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세계 1위로 등극한 디스플레이 산업의 경우, 2003년 한국의 하이디스(옛 현대전자 LCD사업부)를 중국 기업 BOE가 인수한 게 결정적인 도약대가 됐다. 중국은 한국 주요 기업 공장을 유치한 뒤 자국 기업에만 보조금을 주는 방식 등으로 기술은 빼가고 성장은 방해했다. 중국은 나아가 “10년간 단 하나의 칼을 가는 심정”(리커창 총리)으로 기술 고도화에 진력(盡力)해 상당수 품목에서 한국을 능가하는 경쟁력을 확보했다.

 

 ▲중국 푸젠성 닝더시에 있는 배터리 기업 CATL 본사 건물. 공격적인 연구개발과 중국공산당의 비호에 힘 입어 CATL은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을 넘어 전기차 배터리 시장 세계 1위에 올랐다./조선일보DB

올해 상반기 대중 교역 품목(5448개) 가운데 한국이 70%(3835개)에서 적자를 낸 게 이를 보여준다. 중국 수입 의존도가 80%를 넘는 품목만 1850여개이고, 우리나라는 반도체·철강·자동차 등 5대 핵심 제조업의 산업 소재 90% 이상을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요소수 대란’처럼 중국이 수출을 막거나 줄이면, 한국이 휘청거리는 구조가 됐다.

 

김경준 전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은 “중국은 기업 활동의 자율성은커녕 기업인의 안전도 보장하지 않는 지뢰밭 같은 곳”이라며 “특히 핵심 소재의 중국 과잉 의존도를 하루빨리 낮추어야 한다”고 말했다.

 

 

◇美·EU, 4년 연속 대중 수출 능가

올 6월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20년에 걸친 대중 수출 호황이 끝나간다”며 ‘경제 다변화’ 의지(意志)를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선 “안보는 미국과 협력해도, 경제는 중국을 중시해야 한다”는 ‘안미경중’을 고수한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는 “한국의 ‘안미경중’은 미국이 중국을 포용할 때 가능했고 미·중(美中) 대결 시대에는 효력을 다했다”며 “중국의 위협 못지않게 미국이 작심하고 보복할 경우 후환을 신경써야 한다”고 했다. 미국의 중국 견제·봉쇄가 5G통신과 반도체를 넘어 전기차·재생에너지·인공지능(AI) 같은 첨단 미래 기술 분야로 확장하는 점도 주목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2년 8월 16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척 슈머(Chuck Schumer)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배석자들의 축하를 받으며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of 2022)' 서명을 마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법안에 대해 "미·중 전략 경쟁 시대에 '확실하게 미국 편에 서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박상욱 서울대 교수는 “과학기술 차원에서 ‘안미경중’은 어불성설(語不成說·말이 안 되는 이야기)”이라며 “단적으로 2020년 미국으로부터 기술 도입액이 59억달러인데, 중국에서 기술 도입은 6억4000만달러에 불과하다”고 했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원천기술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은 미국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얘기이다.

 

이 와중에 우리나라의 대(對)미국 및 유럽연합(EU) 수출액 합계는 2019년부터 4년 연속 대중 수출액을 웃돌고 있다. 이는 ‘중국 경제의 포획망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근거로 꼽힌다. AI, 양자(量子)컴퓨터처럼 중국이 앞선 분야에서 중국은 한국을 아예 협력 파트너로 여기지 않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직 장관은 “공산당 독재인 중국과 완전한 자유를 향유하는 한국은 국가 정체성과 가치 측면에서 완전 반대되는 나라다. 경제적 이익을 위해 주권이나 안보를 양보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中 경제도 약한 ‘급소’ 있어

2016년 발발한 중국의 사드(THAD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보복과 한한령(韓限令·한류 금지령)은 정치적 목적에 따라 중국이 제2, 제3의 사드 보복을 할 수 있다는 방증이다. 특히 ‘중국 굴기(崛起)’를 국정목표로 내건 시진핑 총서기가 3연임에 성공할 경우, 한국에 수직적 상하 관계 요구를 노골화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경제를 무기(武器)화해 각국을 압박하는 중국의 보복이 오히려 자국 핵심 산업을 해치는 비수(匕首)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환우 KOTRA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의 대중 수출 품목에서 반(半)제품 비중이 낮아지고 반도체·자동차 등 고급 부품 비중이 크게 높아졌다”며 “중국 경제에도 ‘아킬레스 건(腱)’처럼 약한 급소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 있는 YMTC 낸드플래시 공장 전경. 중국 공산당과 국무원의 총력 지원을 받고 있는 YMTC는 낸드플래시 분야 점유율 세계 6위에 올라있다. 이 분야 세계 1,2위인 한국 기업들(삼성전자, SK하이닉스)과 1~2년의 기술 격차를 보이고 있다. 낸드플래시는 D램과 더불어 반도체 메모리 분야의 양대(兩大) 축(軸) 중 하나다./YMTC 제공

 

지해범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은 “만약 중국이 경제 보복을 개시해 보복 강도를 높일 때마다, 한국이 반도체 수출 물량을 1%씩만 줄여나가면 중국은 큰 타격을 입는다”고 했다. 세계 메모리반도체 D램 시장에서 삼성·SK·미국 마이크론 3개사의 점유율은 95%가 넘는다. 한국 기업들이 공급을 줄이면, 중국은 다른 선택지가 없다. 중국의 공세에 한국이 더이상 속수무책(束手無策) 신세가 아니라는 분석이다.

 

빅터 차 미국 CSIS 부소장은 “한국이 미국, 일본 등과 연대해 공동 파트너십을 가동하면 중국의 경제 압박을 이겨낼 수 있다”고 했다. 중국이 한·미·일 3국에 70% 넘게 수입을 의존하는 핵심 품목이 233개인 만큼, 이들과의 공동 대응은 강력한 억제 카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초격차 기술과 중국 전문가 양성에 목숨 걸어야”

박기순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

 

“30년 전 중국의 제조업 수준과 기술력은 한국의 무릎 아래에 있었으나 지금은 목까지 찼다. ‘잔치는 끝났다’고 생각할 때가 아니다. 이제부터가 진짜게임이라는 각오로 심기일전해야 한다.”

 

 ▲박기순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조선일보DB

박기순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는 “중국은 세계 1위 인구 대국(大國)이자, 토지 대국, 시장 대국”이라며 “중국이 한 번 기술 제패(制霸)에 성공하면 자체 내수만으로 독식(獨食)할 수 있는 만큼, 한국은 초격차 기술 개발과 유출 방지에 목숨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사회과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한국산업은행 홍콩·상하이·베이징 지사에 근무했고 중국삼성경제연구원(SERI China) 원장을 지낸 중국 전문가이다. 박 교수는 “지금 전 세계에서 한국 제조업과 가장 치열하게 경쟁하는 나라가 중국”이라며 “중국을 압도하는 기술 우위가 없다면, 중국에 팽 당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했다.

 

“앞으로 승부처는 한·중 두 나라 가운데 어느 쪽의 기술 개발 속도가 더 빠른가, 그리고 한국의 기술 우위와 고급 인력을 여하히 잘 지키느냐에 있다.”

 

 ▲중국 최대 IT 기업 중 하나인 화웨이는 미국의 전방위 견제에도 불구하고 총매출액 대비 연구개발(R&D) 투자비를 계속 늘리고 있다./화웨이 연례 보고 간담회 캡쳐

 

그는 “한국의 소비재 수출은 현재 대중 교역액의 5%에 불과하다. 중국 시장이 아무리 넓어도 우리 제품을 못 팔면 우리 시장이 아니다”며 “한국 경제가 살려면 중국 내수 시장 공략에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고 했다.

 

“그럴려면 20~30년 앞을 내다보고 중국 전문(專門) 인력을 기업마다 꾸준히 양성해야 한다. 장기 전략(長期 戰略)을 갖고 체계적 마케팅을 펼치지 않는다면, 갖고 있던 시장 마저 점점 잃게 될 것이다.”

 

박 교수는 “우리가 중국 보다 앞선 분야는 반도체와 OLED, 첨단 친환경 선박 뿐”이라며 “중국에 대한 자만심을 버리고, 겸손하고 냉정하게 자신이 잘 하는 분야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LG전자는 IFA 2022에서 처음으로 세계 최대 올레드 TV인 97형 올레드 에보 갤러리 에디션(OLED evo Gallery Edition)을 공개한다. 모델들이 97형 올레드 에보(모델명: 97G2)로 콘텐츠를 즐기고 있다./연합뉴스

 

 ▲삼성디스플레이의 최첨단 QD-OLED/연합뉴스

조선일보  송의달 에디터

 

09.02  한·중 관계 전면 재조정이 시급하다

▲박진 외교부 장관(왼쪽)이 2022년 8월 9일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서 열린 한중외교장관회담에서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뉴스1

 

1991년 소련 해체로 냉전 체제가 종식되고 세계 도처에서 공산주의가 붕괴되는 격동의 세월 속에서 중국 공산당은 살아남았다. 국력이 충분히 성장할 때까지 최소 100년간 도광양회(韜光養晦) 정책을 유지하라는 덩샤오핑의 유훈에 따라 몸을 낮추고 자본주의 체제에 기생해 경제력 증강에 전념한 것이 생존의 비결이었다. 그러나 시진핑 주석 시대에 들어와 중국은 돌연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기치로 고압적 강대국 패권주의와 무절제한 세력 팽창을 추구하는 중화 제국주의의 거친 발톱을 드러냈다.

 

그 결과로 형성된 미·중 패권 경쟁은 중국의 경제성장과 첨단 기술 획득을 저지하기 위한 경제적 디커플링에서 시작해 대만해협의 군사적 대치로 확산일로다. 미·중 대립은 앞으로 계속 심화될 전망이며, 극적 화해 가능성은 매우 작다. 중국은 대미 대결에서 승리를 공언했으나, 경제성장이 급속히 둔화하고 친중과 반중으로 갈라졌던 유럽 선진국들이 모두 대중국 연합전선에 합류하는 등 대세가 기울고 있다. 더욱이 중국의 맹방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미국-NATO와 중국-러시아를 양극으로 하는 범세계적 신냉전 체제가 본격화됨에 따라 중국이 처한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다.

 

그러한 세기적 격변의 와중에 한·중 관계도 중대한 변화의 기로를 맞고 있다. 지난주 수교 30주년을 맞은 한·중 관계는 그간 범세계적 탈냉전 체제의 중요한 상징 중 하나였다. 냉전의 유산을 극복한 두 나라의 긴밀한 경제협력은 오늘의 한국과 중국을 가능케 한 불가결한 요소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자칭 ‘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이 초심을 잃고 패권주의적 본심을 드러낸 지금, 지난날의 윈-윈 한·중 관계는 더 이상 유효할 수 없다. 중국이 30년 전의 호의적 중국이 아니듯이 한국도 30년 전의 힘없는 약소국은 아니기에, 양국 관계의 전면 재조정은 불가피한 명제다.

 

세 가지 측면의 재조정이 시급히 필요하다. 첫째는 중국의 고압적 패권주의로부터 주권, 자주권, 국가적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다. 한국에 대한 중국의 시각은 시진핑 주석이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말한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는 한마디에 함축되어 있다. 2016년 사드 제재 이래 한국을 속방 정도로 간주하는 중국의 한국 길들이기 외교는 구한말 청국 대표 원세개의 행패를 연상시킨다. 그 앞에 ‘작은 나라’를 자처해 꿇어 엎드렸던 지난 정부의 굴종 외교는 상황을 한층 악화시켰을 뿐이다. 한국이 중국의 대한반도 야심을 견제하고 자신을 지킬 방법은 확고한 외교적 정체성, 강력한 국방력, 그리고 미국 등 자유민주 진영과의 결속 강화 외엔 달리 길이 없다.

 

둘째는 과도한 대중국 무역 의존도를 혁파하는 일이다. 수출이건 수입이건, 이익 극대화를 위한 과도한 편중은 무서운 독이다. 냉전 시대에 소련은 쿠바의 주산물인 설탕을 고가에 전량 수입함으로써 쿠바 정부를 통제했으며, 선적된 설탕은 소련산 설탕 가격의 폭락을 막고자 대서양에 버려졌다. 독일은 미국의 경고에도 불구 값싼 러시아산 가스에 과잉 의존한 결과, 최근 러시아의 보복성 공급 축소로 에너지난이 극심하다. 중국은 사드 제재와 대호주 제재에서 보듯 무역을 정치적 보복 수단으로 상시 악용하는 나라다. 따라서 자주 외교의 걸림돌인 과도한 대중국 무역은 경제 안보 차원의 획기적 다변화가 필요하다.

 

셋째는 중국의 국내 정치 개입을 차단하는 일이다. 지난 수년간 중국 정보기관, 기업인, 유학생 등에 의한 정치인 매수와 친중국 카르텔 공작이 미국, 호주, 일본, 영국 등 서방 진영 각국에서 드러나 대중국 방첩에 비상이 걸렸다. 중국의 최우선 공작 대상국에 속할 개연성이 큰 한국에는 중국 정부가 통제하는 84만명의 중국인 체류자가 있고 외국인 학생의 40%가 중국인이다. 특히 금년 지방선거의 12만6000명 외국인 유권자 중 78.9%인 10만명이 북한의 동맹국인 중국 국민이었다. 이는 중국과 북한이 우리 국내 정치에 개입할 커다란 잠재성을 의미한다. 국가안보를 위한 시정조치가 시급한 이유다.

 

이러한 한·중 관계의 총체적 재조정은 대다수 국민의 뜻이기도 하다. 퓨리서치의 금년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대중국 비호감도는 80%로 세계 5위다. 그럼에도 불구 정부가 중국의 위협과 경제적 이익 때문에 주권과 국가안보 확립을 위한 행동을 주저한다면 이는 국민적 대의에 대한 항명이다.

조선일보 이용준 전 외교부 북핵대사

 

09월 08일  한국 오려던 대만 기업도 뺏긴 통상외교 이대론 안 된다

 미국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서 한국산 전기차를 보조금 대상에서 뺀 데 이어, 한국 투자를 검토하던 대만의 첨단 기업을 설득해 텍사스에 공장을 짓도록 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동맹이라도 국익은 또 다른 문제라는 냉엄한 현실을 새삼 확인시켜준다. 지난 6월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신규 공장 투자처를 찾던 글로벌웨이퍼스의 도리스 수 최고경영자가 “한국에서 공장 건설 비용은 미국의 3분의 1”이라고 하자 즉석에서 “거기에 맞춰주겠다”고 약속, 투자를 끌어냈다고 6일 인터뷰에서 ‘자랑’했다. 실제로 이 기업은 50억 달러 대미 투자를 결정했다.

 

반도체 집적회로의 핵심 재료인 ‘실리콘 웨이퍼’ 세계 3위 기업인 글로벌웨이퍼스가 한국 투자를 고려한 것은 지난 2월이다. 아무리 정권교체기라고 해도 정부 내 협의는 진행됐어야 했다. 특히 러몬도 장관이 나선 시기는 6월로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다. 윤 대통령은 국가안보실에 경제안보비서관을 신설했는데도 대통령실은 꼼짝하지 않았다. 한국산 전기차 차별에 대한 뒷북 대응도 심각하다. IRA는 지난 8월 7일 상원, 12일 하원을 통과했고 16일 대통령 서명 후 발효됐다. 윤 대통령이 8월 3∼4일 방한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만나지 않았던 실책도 뼈아프다. 하원 통과 직전의 막판 대화 기회마저 걷어찬 셈이다. 지난 5월 한·미 정상이 합의한 경제안보 대화도 공허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장점도 살리지 못했다.

미국 의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한국 오려던 기업을 뺏기면서 ‘경제안보’를 외쳐봐야 헛소리일 뿐이다. 이제라도 통상외교를 전면 재정비해야 한다. 국가안보실 핵심인사들과 통상교섭본부장은 학계 출신이다. 이런 국가안보실과 산업통상자원부로는 안 된다. 대통령실은 외교 경험이 많은 노련한 협상가들로 채우고, 산업통상자원부의 통상 기능은 빨리 외교부로 복귀시키는 게 낫다.

문화일보  사설 

 

09월 08일  사드 충돌 핵심은 중국의 ‘한국 무시’ 

한석희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장

구속력 있는 합의 아니었다는
전·현 정부의 ‘사드 3不’ 입장
이런데도 중국은 3不1限 거론

북 4차 핵실험 뒤 시진핑 주석
박근혜 대통령 전화도 안 받아
한국의 핵심 이익도 존중해야

 최근 한·중 간에 ‘사드 3불(不)’이 다시 외교적 갈등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8월 박진-왕이(王毅) 회담과 그 뒤를 이은 외교부 대변인의 발언을 통해 사드(THAAD) 갈등에 대한 중국의 ‘3불 1한(三不一限)’ 입장을 다시 제기하면서 윤석열 정부에 대한 외교적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시기에 사드 갈등의 봉합을 추진했던 핵심 인사들은 모두 공개적으로 ‘3불은 양국 정부 간 구속력 있는 합의가 아니었다’는 견해를 명확히 밝혔다. 이처럼 ‘사드 3불’의 당사자였던 문 정부가 중국이 주장하는 ‘사드 3불 합의’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기 때문에 윤 정부도 ‘사드 3불은 구속력 있는 조약이나 정부 간 합의가 아니’라고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중 간에 ‘사드 3불(不)’이 다시 외교적 갈등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8월 박진-왕이(王毅) 회담과 그 뒤를 이은 외교부 대변인의 발언을 통해 사드(THAAD) 갈등에 대한 중국의 ‘3불 1한(三不一限)’ 입장을 다시 제기하면서 윤석열 정부에 대한 외교적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시기에 사드 갈등의 봉합을 추진했던 핵심 인사들은 모두 공개적으로 ‘3불은 양국 정부 간 구속력 있는 합의가 아니었다’는 견해를 명확히 밝혔다. 이처럼 ‘사드 3불’의 당사자였던 문 정부가 중국이 주장하는 ‘사드 3불 합의’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기 때문에 윤 정부도 ‘사드 3불은 구속력 있는 조약이나 정부 간 합의가 아니’라고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전·현 정부 차원에서 ‘사드 3불’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혔는데도 중국 정부가 다시 ‘3불 1한’을 지키라고 한국 정부에 압력을 넣는 것은, 최근 윤 정부가 진행하고 있는 ‘사드 기지 정상화’에 제동을 걸면서 한·미·일의 군사 협력 및 지역 동맹 구축 가능성을 미리 방지하려는 현실적인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된다. 아울러 중국 매체와 학계 등에서는 중국 시장과 공급망에 대한 한국 경제의 높은 의존도를 강조하면서 한국 정부가 ‘3불 1한’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중국이 이를 빌미로 다시 한국에 보복할 수 있다고 위협한다.

사드는 한국과 중국이 제로섬(zero-sum)적 대립을 할 수밖에 없는 이슈다. 현 상황에서 한·중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가장 큰 이슈지만, 한국으로서는 이 문제를 외면하거나 회피할 수도 없다. 따라서 중국이 ‘사드 3불’을 다시 제기한 이상, 윤 정부가 지난 정부처럼 소극적·수동적으로 대응한다면 중국에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 그런 만큼 오히려 더욱더 적극적으로 사드 이슈에 대한 우리의 견해를 피력하고 ‘사드 3불’을 강요하지 말 것을 요구해야 한다. 중국은 자부심이 강하고 상대하기 까다로운 국가이므로 우리의 견해와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더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논거가 필요하다.

우선, 사드 갈등이 시작된 원인부터 토론할 필요가 있다. 중국에 우호적이고 협력적인 태도를 보였던 박근혜 정부가 왜 갑자기 사드 배치를 결정하게 됐는지 지금까지 한·중 어느 정부도 명확히 설명한 적이 없다. 중국은 2015년 9월 전승절 기념식에 박 전 대통령을 초청하기 위해 전방위적 노력을 기울였다. 박 대통령이 미국의 명확한 반대를 무릅쓰고 중국 방문을 결정했던 것은,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북한이 도발하면 한·중 양국이 긴밀히 협의하고 이를 위해 핫라인을 개통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6년 1월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강행했고, 박 대통령은 6개월 전 합의에 따라 시 주석에게 여러 차례 전화 통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시 주석은 응답하지 않았고, 결국 사전에 약속했던 중국과의 협의는 성사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중국과의 외교적 협의를 통해 북한 도발로부터 대한민국의 안보를 지키려고 했던 박 대통령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으며, 그 대안으로 사드 배치를 결정하게 된 것으로 판단된다. 중국은 지금까지도 사드 갈등 발생의 모든 원인이 한국 측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사드 갈등의 해결도 한국이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앞으로 윤 정부는 사드 갈등의 원인을 놓고 중국과 치열하게 논쟁을 벌일 준비를 해야만 한다.

또 하나, 우리가 사드를 배치한 것은,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임을 중국이 명확히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양국이 상호 핵심 이익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핵과 탄도미사일 능력을 지속해서 고도화하고 7차 핵실험 준비를 끝낸 것으로 보이는 현 상황에서 한국에 북핵 위협으로부터 안보를 확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핵심 이익은 없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현재 배치된 사드 레이더는 위치상 중국 방향은 산으로 막혀 물리적으로 중국을 겨냥할 수 없다’고 했다. 한국은 중국의 핵심 이익을 존중하기 위해 이 정도 성의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 만큼 중국도 한국에 ‘사드 3불’을 강요하기보다는 한국의 핵심 이익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문화일보 

월간조선 09월 호 

‘아시아판 나토’ 구상의 선구자는 李承晩·朴正熙

 ⊙ 이승만, 대만의 장제스, 필리핀의 퀴리노와 태평양동맹 구상
⊙ 박정희, 닉슨 독트린 공식화되기 이전에 아시아태평양조약기구(APATO) 구상 내놓아
⊙ 박정희, “APATO 목적은 中共 등 아시아공산주의 저지… 대만·일본 참여 필수”
⊙ “자유중국·한국은 자유의 방파제가 아니라 자유의 파도… 자유의 파도가 북경·평양까지 휩쓸어버릴 것”(박정희, 1966년 2월 대만 국빈 방문 시)

이강호
1963년생.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 前 대통령비서실 공보행정관, 《미래한국》 편집위원 역임 / 現 한국자유회의 간사, 한국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 저서 《박정희가 옳았다》

▲이승만 대통령은 1949년 8월 장제스 중화민국 총통과 만나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집단안보체제 추진에 합의했다. 

 

지난 8월 2일 밤 낸시 펠로시 미(美) 하원의장이 대만에 도착했다. 다음 날인 8월 3일 펠로시 의장은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과 만나 회담을 가졌다. 중국은 격하게 반발했다. 대만기업체 등에 경제제재에 이어 8월 4일부터는 ‘군사행동’의 돌입을 예고했다. 펠로시 의장은 대만 방문을 마치고 8월 3일 저녁 한국으로 향했다.

펠로시 의장과 미 의회 대표단은 8월 3일 오산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그런데 공항에 펠로시 일행을 맞는 한국 대표단은 아무도 없었다. 펠로시 의장은 다음 날인 4일 한국 국회를 방문해 김진표(金振杓) 국회의장을 비롯해 여야(與野) 대표단을 만났다. 그러나 윤석열(尹錫悅) 대통령과의 만남은 없었다. 대통령실은 윤석열 대통령의 휴가가 시작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통화를 하기는 했다. 8월 4일 오후 윤 대통령은 펠로시 의장과 40분간 전화통화를 했다.

같은 날 오후 1시부터 중국은 대만 해역에서 군사행동을 시작했다. 함대를 동원해 대만 해상을 사방에서 포위해 ‘실탄 사격’을 하고 다량의 전투기로 대만 영공을 침입했다. 대만 해역 전역에 미사일도 발사했다. 전례 없는 대규모 무력(武力)시위였다. 대만 무력 통일 예행연습 수준이라고 했다.

한국 방문을 마친 펠로시 의장은 아시아 순방 마지막 국가인 일본으로 향했다. 8월 4일 밤 일본에 도착한 펠로시 의장은 다음 날 아침 8시 일본 총리 관저를 방문,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와 조찬 회담을 가졌다. 그때도 중국은 대만 해상에 계속 미사일을 쏘아대고 있었다.

펠로시 의장은 8월 1일부터 5일까지 아시아 순방 일정을 마치고 미국으로 귀국했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대만, 한국, 일본 등 모두 5개국을 방문했다. 펠로시 의장은 5개국 가운데 4개국에서 국가정상과 회담을 가졌다. 한국에서만 국가정상과의 만남이 없었다.


민주주의와 전제주의 사이의 선택

펠로시 의장은 8월 3일 차이잉원 대만 총통을 만난 자리에서 “오늘날 세계는 민주주의와 전제주의(Autocracy) 사이의 선택에 직면했다”며 “대만과 전(全) 세계의 민주주의를 유지하려는 미국의 결의는 여전히 철통 같다”고 말했다. 중국은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에 대해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도발이라고 반발했다. 그러나 펠로시는 ‘세계적 차원의 민주주의 수호’의 문제라고 선언했다.

펠로시의 아시아 순방은 미국의 중간선거를 앞둔 정치적 계산에 따른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이런 비판과는 별도로 지금 세계의 상황은 펠로시의 말대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그렇지만 동아시아 일대에서의 중국의 도발도 그냥 영토적 야심의 문제가 아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그렇듯 중국의 도발도 ‘전체주의적 전제정(專制政)’의 ‘자유민주적 가치에 입각한 국제질서’에 대한 공격이다.

 

 중국은 대만만이 아니라 도련선(島鏈線)을 앞세워 해양에 인접한 동아시아 국가 모두를 위협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에도 멀리 떨어져 있는 문제가 아니다. 중국이 장악하려는 해양로(海洋路)는 한국에도 경제적으로 생명선(生命線)이다. 대만이 중국의 직접 지배하에 넘어가면 한국으로의 수송로는 중국 손아귀에 들어간다. 그러면 한국은 경제적으로만이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위험해진다. 국제정치적 운명은 물론 자유민주체제 자체도 위기에 처하게 된다.

한국이 오늘날 누리고 있는 경제적 성취는 자유민주체제로 건국되고 자유민주 문명 세계의 일원이 되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 기반이 지금 안팎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한국의 상황은 대만 이상으로 긴박하다. 그런데 한국은 처음부터 그랬다. 대한민국의 건국 자체부터가 공산전체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대결이었다. 그 대결은 단순히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소련을 필두로 한 공산전체주의 진영과 자유민주 진영 간의 세계적 대결의 연장선이었다.


李承晩, 태평양동맹 구상

그 긴박한 상황을 돌파해 자유민주체제 대한민국을 건국해낸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의 위업(偉業)을 새삼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현재 한국이 맞고 있는 도전과 관련해 다시 한 번 상기해봐야 할 게 있다. 이승만이 공산전체주의의 제국주의적 위험을 시종일관 꿰뚫어 보고 있었으며 그에 맞서는 싸움을 한시도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승만은 1898년 독립협회가 주관한 만민공동회에서 제국주의 러시아 세력의 철수를 요구한 바 있었다. 나중에 공산혁명이 일어난 후 이승만은 러시아의 제국주의 성향은 여전할 것이며, 오히려 공산주의를 명분으로 삼아 제국주의적 성향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것을 간파했다. 이승만은 공산주의는 사상(思想) 자체도 문제지만 그것이 제국주의적 성향과 결합할 때는 제어할 수 없는 악마적 위험을 낳는다는 것을 통찰하고 있었다.

이승만은 이 같은 위험을 간파하고 선구적(先驅的)으로 대응해간 세계적으로 거의 드문 지도자였다. 미국을 위시한 유럽세계는 한동안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미국과 서구(西歐)는 동유럽이 소련의 위성국(衛星國)으로 전락하는 걸 보고서야 비로소 대응에 나서 1947년 트루먼 독트린을 천명하고 1949년 4월 4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를 결성했다. 이승만은 아시아에서도 나토와 같은 자유민주체제 수호를 위한 집단안보체제를 수립하고자 했다. 그것이 태평양동맹(Pacific Pact) 구상이었다.

이승만은 이를 위해 필리핀의 퀴리노(E. Quirino) 대통령에게 특사(特使)를 보내 동의를 얻어냈다. 이에 따라 퀴리노는 1949년 2월 태평양동맹을 제창했다. 그러자 이승만은 1949년 8월 6일 한국 진해(鎭海)에서 장제스(蔣介石) 중화민국(대만) 총통과 회담을 갖고 8월 8일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국제공산주의의 위협에 공동으로 대처하는 집단안보체제를 추진한다는 것이었다. 대응의 대상은 소련만이 아니었다. 공산화된 중국도 당연히 대상이었다. 이승만은 중공(中共)도 소련과 마찬가지로 공산주의와 제국주의적 팽창 야욕이 결합한 괴수(怪獸)가 될 것으로 보고 있었다.


아시아민족반공연맹

그러나 이승만의 구상은 실현되지 못했다. 미국의 냉담한 반응 때문이었다. 미국은 장제스의 국민당 정권에 실망하여 원조를 중단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공산화에도 불구하고 대륙 중국에 대한 막연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때문에 ‘퀴리노-장제스-이승만’이 연대한 태평양동맹 구상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것이 중대한 착각이었음은 6·25전쟁이 발발한 뒤 중공군 또한 전면적으로 침공해오면서 증명됐다.

이승만은 6·25전쟁 휴전 뒤 1953년 10월 1일 한미(韓美)동맹을 체결해내 한국 안보의 반석을 다졌다. 그런데 한미동맹만이 아니었다. 이승만은 아시아에서의 국제적인 반공안보체제 구축에도 노력했다. 아시아민족반공연맹(APACL·The Asian People Anti-Communist League)을 만드는 것이었다. 중공은 당연히 그 대응의 대상이었다.

이승만은 1954년 5월 서울에 이어 6월에는 진해에서 한국·대만·필리핀·태국·베트남 5개국 및 기타 지역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아시아민족반공대회를 개최했다. 이때 한국반공연맹도 창설됐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9년까지 5차에 걸쳐 아시아민족반공대회를 이끌어나갔다.

이승만의 반공노선을 계승한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은 한국반공연맹을 특별법인체로 재정비했다. 1967년 9월 아시아민족반공연맹을 모체로 하여 64개국을 회원으로 한 세계반공연맹(WACL)이 창립됐다. 한국반공연맹이 주도한 것이었다. 세계반공연맹은 1990년 소련 등 사회주의 진영이 붕괴될 당시 세계자유민주연맹(WLFD·World League for Freedom and Democracy)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WLFD는 현재 세계 139개국을 회원으로 하고 있다. 그 뿌리는 대한민국의 이승만 대통령이다.

이승만은 공산전체주의라는 또 다른 제국주의에 맞서는 세계적 대응에 선구적 역할을 했다. 1965년 이승만 대통령 서거 후 박정희 대통령은 이승만을 기려 “역사를 헤치고 나타나, 자기 몸소 새 역사를 짓고 또 역사 위에 숱한 교훈을 남기고 가신 조국근대화의 상징적 존재”라고 조의(弔意)를 표했다.
 

 

朴正熙, 미국에 먼저 월남 파병 제안

5·16혁명으로 등장한 박정희는 혁명공약에서 반공노선을 분명히 함과 아울러 미국을 비롯한 자유민주우방과의 연대(連帶)를 굳건히 하겠다고 천명했다. 이것은 이승만 노선의 확고한 계승이었다. 박정희는 그와 함께 5·16 공약에서 밝힌 ‘실력 양성’을 위한 노력을 본격화했다. ‘수출입국과 산업화’를 통한 경제발전에 나섰다.

그것을 위해선 국제정치적 여건의 조성은 필수였다. 세계시장경제체제에 진입할 수 있는 국제 관계를 다져야 했다. 동시에 안보 차원에서도 국제정치적 안정성을 더욱 다져야 했다. 박정희는 2년간의 군정(軍政)을 끝내고 민선(民選) 대통령에 선출되자마자 한일국교 정상화에 나섰다. 한일국교 정상화는 베트남전으로 국제정치적 부담이 가중돼가고 있는 미국의 입장에서도 필요한 것이었다.

박정희는 군정 시절인 1961년 11월 미국을 방문했을 때 이미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 용의를 밝힌 바 있었다. 참전을 자청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미국의 대한(對韓) 안보공약을 확고히 하려는 것이었다. 베트남전 격화는 주한미군을 부분적으로라도 베트남으로 돌리게 할 수도 있었다. 이를 사전(事前) 차단하기 위해 베트남전 참전을 먼저 제안한 것이다. 1964년 9월 11일 한국은 베트남 파병을 시작했다. 다음 해인 1965년 6월 22일 한일국교 정상화 조약을 체결했다.


ASPAC 창설

▲1966년 6월 14일 ASPAC 제1차 본회의가 서울 워커힐 코스모스라운지에서 열렸다. 사진=조선DB

 

박정희의 국제정치적 노력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1964년 아시아 반공국가들 간의 결속 강화를 목적으로 아시아태평양각료이사회(ASPAC·Asian and Pacific Council) 구상에 착수하여 1966년 서울에서 창립총회를 가졌다. 한국, 일본, 대만, 호주, 말레이시아, 뉴질랜드, 필리핀, 태국, 베트남공화국(남베트남) 등 9개국을 회원국으로 하고 라오스, 인도네시아를 옵서버로 했다. ASPAC은 중공에 맞서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래서 중공이 유엔에 가입하면서(1971년) 1973년부터 해체 상태로 들어가게 됐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중국의 위협이 점증하는 지금으로선 더욱이 그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박정희의 국제정치적 행보는 한국의 경제발전을 위한 분투와 짝을 이루는 것이었다. 박정희의 첫 번째 임기 동안 한국 경제는 연간 평균 9.5% 성장을 이룩했다. 1967년 두 번째 임기를 맞이했을 무렵에는 더 높은 도약을 예감케 하고 있었다. 1968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3.1%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 국제적으로 예상치 못했던 도전이 닥쳐오고 있었다.

1968년 1월 21일 북한은 무장 특수부대를 내려보내 청와대를 습격하는 도발을 감행했다. 이틀 뒤인 1월 23일에는 동해 공해(公海)상에서 미 해군 정찰함 푸에블로호를 나포했다. 미 해군 역사상 외국 군대에 자국 군함이 나포된 것은 그게 처음이었다. 한국 경제가 성장가도에 본격 진입해가던 때였는데 연초부터 안보상황이 격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美는 해·공군, 아시아는 지상군 제공”

1968년 제4차 ASPAC 각료회의의 일본 개최를 앞둔 11월 미국에서 닉슨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닉슨은 1967년 10월 미국의 계간(季刊)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 〈베트남 이후의 아시아(Asia after Viet Nam)〉라는 논문을 게재한 바 있었다. 핵심적 내용은 “아시아의 방위는 아시아 국가들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중의 닉슨 독트린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대책이 마련돼야 했다. 아시아의 국제적 안보체제 구축은 이제 긴급한 현안이 됐다.

그와 관련해 닉슨은 상기 논문에서 ASPAC의 집단안전보장체제 가능성에 기대를 표명하고 있었다. “아시아의 방위는 아시아 자신의 책임으로”라는 것을 ASPAC을 통해 실현코자 하는 셈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실현가능성이 없었다. ASPAC 설립 당초부터 일본은 ASPAC이 안보기구로 나아가게 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었다.

1968년 3월 태국이 ASPAC의 안보기구화 제안을 했을 때 일본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우리나라는 헌법상의 제약으로 지역적 군사기구에 참가할 수 없다. 따라서 ASPAC이 안전보장을 위한 상호원조기구로 개조되면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는 여기에 머물러 있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었다.

일본의 재무장을 금지하는 평화헌법은 일본 스스로가 만든 게 아니라 맥아더 군정이 만들어 일본에 강제한 것이었다. 1955년 보수합동으로 탄생한 자민당은 그것을 기본노선으로 했다. 그 강요를 명분으로 안보는 미국에 맡기고 일본 자신은 철저히 경제에만 매진하는 노선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ASPAC의 역할에 대한 심모원려(深謀遠慮)의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직접적인 군사동맹화는 ASPAC의 유지마저 어렵게 할 수 있었다. 결국 다른 대안(代案)이 필요했다.

 

 1968년 11월 19일 국회예산위원회에서 공화당의 양찬우 의원은 “아시아의 안보체제로서 ASPAC의 역할을 중시하는 닉슨 씨의 새 정책에 우리나라가 주동이 되어 (중략) ASPAC을 군사적 동맹체로 발전시킬 용의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했다. 다음 날인 20일 정일권(丁一權) 국무총리는 “일본·말레이시아와 같은 국가들의 외교정책상 ASPAC의 군사동맹화는 어렵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11월 21일 정일권 총리는 NATO와 같은 집단방위기구인 아시아태평양조약기구(APATO) 창설을 위한 시안(試案)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11월 23일 정일권 총리는 포터 주한 미 대사와의 면담을 통해 미국 측에 APATO 구상을 타진했다. 그러면서 “APATO는 미국이 해·공군을 지원하고 아시아 국가들이 지상군을 제공”하는 구상이라고 밝혔다. ‘미군의 지상군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차원에서 차기 닉슨 정권의 정책 방침을 충족시키는 셈이었다.

11월 27일 박정희 대통령은 APATO 구상의 목적과 방향성에 대해 내각에 직접 지시를 했다. 핵심은 첫째, APATO는 중공과 여타 아시아공산주의를 저지하는 것이어야 하며, 둘째 실효성을 위해선 일본과 대만의 참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일본이 여전히 헌법 9조를 핑계로 안보동맹에는 참여하지 않으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을 통해 일본에 영향력을 행사해 참여를 실현시켜야 한다고 보았다.

흔히 박정희 대통령이 1969년 7월 25일 불시에 ‘닉슨 독트린’을 접하고 크게 당황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박 대통령은 닉슨 취임 이전부터 그의 안보 정책 변화 가능성을 주시하면서 대안을 모색하고 있었던 것이다.


닉슨의 판단 착오

▲닉슨 미국 대통령은 1972년 2월 중국을 전격 방문, 소련 견제를 위해 중공과 손잡았다. 사진=퍼블릭 도메인

 

그러는 동안 미국의 입장이 달라져 갔다. 닉슨은 1967년 《포린 어페어》 논문을 쓸 당시만 해도 집단안보기구 구상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닉슨은 ASPAC의 안보기구화 구상이 한계에 부딪히자 집단안보기구 구상 자체를 사실상 포기해버렸다. 결국 박정희 대통령의 APATO 구상도 더 이상 추진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그리고 1969년 7월 25일 닉슨 대통령은 괌에서 “아시아의 방위는 아시아 각국이 알아서 해야 한다”는 ‘닉슨 독트린’을 발표했다. 집단안보기구에 적극적 관심을 보였던 닉슨이 최종적으로 이렇게 입장을 정리한 것은 베트남전의 부담에서 벗어나려는 게 1차적 이유였다.

더 큰 배경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1972년 2월 마침내 이뤄진 닉슨-마오쩌둥(毛澤東) 회담을 통해 드러났다. 닉슨은 미중(美中) 관계 개선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이다.

닉슨은 1967년 논문에서 중공과 아시아공산주의의 위협을 지적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제기하기는 했었다. 그러나 그 논문은 그와 모순된 또 다른 구상을 담고 있었다.

〈장기적으로 봐서, 중국을 언제까지나 계속해서 국제사회 밖에 방치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중국의 환상이나 적대심이 증폭되어, 이웃 국가들을 위협하는 행동으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중략) 중국이 변화하지 않고서는 세계는 안전해질 수 없다. (중략) 중국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베이징(北京) 정부에 중국이 변해야 한다는 것을 설득시켜야 한다. 즉 제국주의적인 야심을 완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나아가 중국의 국익을 위해서는 해외에서의 모험주의가 아닌 국내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내부 문제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중국 측에 납득시켜야 한다.〉

닉슨이 중국에 대해 언급한 것 가운데 한 가지는 확실히 옳았다. “중국이 변화하지 않고서는 세계는 안전해질 수 없다”는 언명이다. 지금 중국은 그 점을 더없이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닉슨 식으로 중국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닉슨은 “베이징 정부에 중국이 변해야 한다는 것을 설득시켜야 한다”고 했다. 완곡한 정치적 어법이겠지만 어떤 국가도 ‘설득’으로 변화하는 법은 없다. 더욱이 세계와 함께할 수 있는 중국의 진정한 변화를 위해선 공산독재라는 전제정 자체가 사라져야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설득으로 이뤄질 수 있는 게 아니다. 닉슨의 미중 관계 개선은 소련과 중공 사이에 쐐기를 박는 전략적 함의가 있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떻든 ‘중국의 변화’에 대해선 아니었다.


다시 돌아온 역사

APATO 구상은 중국에 몰두했던 미국과 안보기구 동참을 피했던 일본의 입장 때문에 무산됐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미국·일본 모두 입장이 바뀌었다. 지금 미국·일본·호주·인도 4개국은 ‘쿼드(Quad)’로 불리는 ‘4자 안보 대화’라는 안보협의체를 구성한 상태다. 그 같은 변화는 중국이 초래한 것이었다. 쿼드는 2004년 처음 결성됐다가 2008년 중단됐었다. 그런데 2013년 시진핑 등장 이후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도발이 급증하자 2017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아세안정상회의에서 쿼드 4개국은 협의체 부활을 공식화했다.

이와 함께 아시아판 나토 구상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쿼드가 아시아판 나토의 모체(母體)가 될 수 있다고도 한다. 역사는 이렇게 돌고 돌아 50여 년 전 APATO가 제기되었던 상황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한국은 쿼드에 참여하지 않았다. 문재인(文在寅) 정권 때 쿼드 참여 요청이 있었지만 문 정권이 거절한 것이었다.

한편 한국은 지금 ‘칩4’로 일컬어지는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 참여를 요청받고 있다. 미국·한국·일본·대만 등 첨단 반도체 칩을 생산하는 4개국 간의 협의체다. 반도체는 이제 가장 중요한 전략물자다. 스마트폰에서부터 미사일에 이르기까지 반도체 없이는 아무것도 만들 수 없다. 그런데 중국은 독자적으로 첨단 반도체를 생산할 능력이 없다. 절대적으로 수입에 의존한다. 2020년 3500억 달러였던 중국의 반도체 수입액은 2021년에는 4325억 달러로 급증했다. 그래서 중국은 그 기술 확보에 혈안이다. 그러나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그런 만큼 ‘칩4 협의체’는 중국에 대한 매우 중요한 전략적 대응이 된다.


왕이의 ‘응당 5개 조’

윤석열 정부는 지난 8월 7일 칩4 예비회의 참여를 결정했다. 그러나 본격 참여에 대해선 말을 아끼고 있다. 중국은 한국의 칩4 참여에 대해서도 협박조 압박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불량한 상대에게 주저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오히려 기고만장을 더욱 부추길 뿐이다.

펠로시의 아시아 5개국 순방이 있었던 며칠 뒤인 8월 9일 박진(朴振) 외교장관과 중국의 왕이(王毅) 외교부장 간의 회담이 있었다. 중국은 이 회담에서 소위 ‘5개 응당(應當)’이라는 요구를 했다. 한국의 주권(主權)과 독립을 노골적으로 침해하는 내용 일색이었다. ‘5개 응당’이 아니라 ‘5개 부당(不當)’이며 한마디로 한국에 대한 협박이었다. 중국의 한국에 대한 이 같은 오만방자한 행태는 이전 문재인 정권의 굴종적 태도가 초래한 바 크다. 윤석열 정부는 더 이상 그래선 안 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을 직접 만나지 않은 데는 나름의 내막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중국에 대해 잘못된 메시지가 될 수 있다. 눈치의 느낌을 주는 것은 거의 언제나 기대와 반대의 결과를 초래한다. 그게 세상의 이치일 뿐 아니라 중국과 같은 방자한 상대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자유의 파도’

▲박정희 대통령은 1966년 2월 중화민국을 국빈 방문, 장제스 총통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사진=대통령기록관

 

박정희 대통령은 1966년 2월 15일 장제스 중화민국 총통과 정상회담을 마친 뒤 국빈(國賓)만찬에서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혹자는 자유중국과 대한민국을 가리켜 자유의 방파제(防波堤)라고도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비유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어째서 우리가 파도에 시달리면서도 그저 가만히 서 있어야만 하는 그러한 존재란 말입니까. 우리는 전진하고 있습니다. 폭정(暴政)의 공산주의를 몰아내고 자유세계의 구현을 위하여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야말로 자유의 파도입니다. 이 자유의 파도는 머지않아 북경이나, 평양에까지 휩쓸게 될 것을 나는 확신합니다.”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전제주의에 맞선 민주주의 수호를 선언한 바로 그 대만에서 56년 전 박정희 대통령은 ‘자유의 파도’를 말했다. 국제정치는 섣부른 모험을 허용치 않는다. 그러나 주권국가다운 결기를 놓아버리면 모험 이상으로 위험해진다. 중국에 대해선 특히 더 그렇다.⊙

글 : 이강호 한국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월간조선 09월 호

 펠로시의 대만 방문과 왕이의 ‘응당 5개 조’

美中 사이에서 ‘박쥐외교’ 설 땅 없어 

中, 韓中 외교장관 회담에서 ‘응당 5개 조’ 강요…
“‘응당’은 어린 자식에게도 안 쓰는 강압적 단어”

⊙ 한국 정부의 펠로시 홀대, 중국의 ‘살계경후(殺鷄儆猴)’ 협박에 알아서 기는 격
⊙ ‘하나의 중국’은 중국에는 ‘원칙’이지만, 미국에는 ‘정책’일 뿐
⊙ 미국은, ‘중국은 하나다’라는 말을 ‘인식한다(acknowledge)’… ‘중국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알고 있다’는 의미
⊙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라는 말은 ‘미국은 결코 대만해협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의미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 現 워싱턴 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8월 9일 한중외교장관 회담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강압적인 ‘응당 5개 조’를 한국에 제시했다. 사진=외교부

 

어둡고도 긴 터널에 들어서는 순간이라고나 할까? 짧으면 10년, 길면 한 세대도 넘게 이어질 인류 초유의 ‘막장 터널’이 전(全) 세계에 열리고 있다. 터널이란, 마침내 현실로 나타난 미중(美中) 격돌을 의미한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아시아 방문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펠로시의 대만 방문은 어두컴컴한 터널에 들어선다는 신호탄에 불과하다. 이 막장 터널은 사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등장한 2012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시간의 문제일 뿐, 펠로시가 아니더라도 그 누군가가 터널 진입 테이프를 끊게 되어 있었다.

‘살계경후(殺鷄儆猴)’와 ‘촌탁(忖度)’이란 말이 있다. 펠로시 대만 방문을 비롯해 2022년 세계와 한국의 상황을 압축 설명해줄 수 있는 말이다.

‘살계경후’는 ‘닭을 죽여 원숭이를 훈계한다’는 의미다. 원숭이는 피를 싫어한다고 한다. 나무 위에 올라가 있기 때문에 직접 통제할 수가 없다. 마당에서 놀던 닭을 죽인 뒤 사방팔방 피를 뿌리면 멀리 있던 원숭이가 보고 깜짝 놀란다. 피에 대한 공포를 통해, 자기도 똑같이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빠진다. 결국 인간에게 승복한다.

‘촌탁’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미루어 짐작한다’는 의미다. 수직·수평 모든 관계에 통용된다. 친구는 물론 회사의 부하나 상사(上司) 모두를 대상으로 한 ‘깊은 배려’가 촌탁의 원래 의미다.


‘살계경후’와 ‘촌탁’

2015년 9월 3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행사 참석은 중국의 ‘살계경후’ 외교의 시발점이었다. 사진=뉴시스

 

 뉴스를 자주 접하는 사람이라면 ‘살계경후’가 중국식 세계관, ‘촌탁’은 일본식 정서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중국발(發) ‘살계경후’ 관련 기사가 국제 뉴스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한한령(限韓令)도 그중 하나다. 한국 정부의 정책이나 발언이 중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순간, 중국의 제재가 시작된다. 수출입 상품은 물론이고, 가수 공연이나 인터넷 게임 같은 엔터테인먼트 영역도 통제된다.

일본의 정서인 ‘촌탁’은 어떨까? 원래 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한 말이지만, 최근에는 부하가 상사에게 행하는 ‘일본적 공기’로도 풀이된다. 주로 일본 정치의 불법·탈법의 배경으로 풀이된다. 간단히 말해서 부하가 상사의 의중을 미리 짐작하면서 ‘알아서 기는 것’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짐작하면서 배려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문제는 법과 규칙이다. 이게 지나치면 아부를 넘어 불법·부패로 이어진다. 사실 촌탁의 원인은 그런 ‘공기’를 만드는 상사에게 있다.

2022년 8월의 한국은 ‘살계경후’와 ‘촌탁’ 두 단어가 겹쳐지는 ‘기묘한 나라’로 보인다. 펠로시를 대하는 한국 대통령·정부·정치가들의 자세는 ‘촌탁’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중국이 한국을 상대로 ‘살계경후’ 할까 두려워 나타난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 사실 닭도 안 보이는데, 멀리 닭소리만 듣고도 소름이 돋는 식이라고나 할까?

한국을 상대로 한 중국의 ‘살계경후 외교’의 출발점은 2015년 9월이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戰勝節) 기념을 위해 천안문 망루에 오른 날이다. 전 세계 독재자와 악수를 나누면서 한중(韓中) 우호를 외치던 바로 그날, 시진핑의 ‘살계경후 외교’가 시작됐다. 천안문에 함께 선 39개국 독재자 사이에서의 박근혜 대통령은 ‘수많은 조공 사신 중 한 명’에 불과했다. 겉보기에는 엄청난 환영을 받는 듯했지만, 사실 대등한 양국 관계가 끝난 시점이다.

따라서 2017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방문 중 발생한 ‘혼밥 사건’은 박근혜 대통령의 유산이라고 볼 수도 있다. 8월 초 방한한 펠로시를 윤석열 정부가 홀대한 것은 중국 앞에서 알아서 기는 ‘촌탁외교’라고 할 수밖에 없다.


‘박쥐외교’는 불가능하다

살계경후와 촌탁외교로 범벅이 된 이상, 중국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어려워진다. 펠로시의 방한에는 다른 하원의원 5명도 동행했다. 아시아 투어답게, 인도·일본·한국계 하원의원들도 서울에 들렀다. 지구 끝까지 쫓아가 ‘자랑스러운 한국인 발굴’에 나서는 것이 한국 언론이다. 놀랍게도 펠로시와 함께 온 한국계 하원의원에 대한 국내 기사는 거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계 하원의원이 함께 왔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을 듯하다.

‘촌탁외교’에 빠지면 당연한 것도 놓치게 되고, 입은 닫은 채 주변에 웃음만 팔게 된다. 공해(公海)상에서 미사일이 터지고 항공모함 도발로 해상무역로인 시 라인(Sea Lane)이 위협을 받는데도 ‘우려와 염려’라는 그 흔한 외교 수사(修辭) 하나 못 던지는 나라가 한국이다.

 

 한국 대통령·정부·정치가 모두 대만 문제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중국이 대만해협 주변에 미사일을 발사하자 주요 7개국(G7)은 곧바로 중국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일본도 자국 해상(EEZ)에 미사일이 떨어지자 중국을 맹비난했다. 한국은 전 세계 자유 진영이 하나가 되어 목소리를 낸 후에야 뒤늦게 중국에 대한 우려 메시지를 내놓았다.

중국이 대만 문제로 난리를 치든, 미국과 G7, 일본이 비난성명을 줄지어 발표하든, 한국과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국은 중립을 표방하면서, 긴밀한 한중 관계를 통해 경제적 관점의 국익(國益)을 챙기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넘친다. 구한말(舊韓末) 일각에서 횡행했던 ‘조선중립론’을 떠오르게 하는 한가한 생각일 뿐이다. 1895년 청일전쟁,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조선 외교의 키워드는 중립화였다. 눈앞에서 총칼이 난무하는데도, “나는 무관하고 평화를 사랑한다”면서 도망가는 식이었다. 하지만 미중 디커플링의 거센 물결이 이 지구촌 구석구석까지 밀려드는 2022년, 양다리 ‘박쥐외교’는 더 이상 불가능하다.


‘촌탁외교’의 끝은?

 펠로시 美 하원의장은 8월 2일 대만을 방문, 차이잉원 총통을 만났다. 사진=대만 총통부

 

 중국은 펠로시의 대만 방문 직후 일본 해역도 침범하면서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국제법은 종이 조각에 불과하다. 한국은 강 건너 불 보듯 하고 있지만, 한국에 대해 속이 뒤틀릴 경우 중국이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힘자랑 메뉴가 펼쳐졌다. 희한한 핑계를 붙이면서 중국 군함이 인천 앞바다에서 도발하는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중국 전투기들의 한국 방공식별구역 출현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지만, 곧 다반사가 될 것이다. 동해에 떨어진 미사일을 쏜 것이 중국인지 북한인지 헷갈리는 상황도 곧 벌어질 것이다.

‘촌탁외교’는 한국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국민들 심리 속에도 ‘엄연히’ 존재한다. 예를 들어, 사드(THAAD) 배치를 철회하면 중국의 입장이 우호적으로 변할 것이라고 믿는 심리다. 만약 사드가 사라질 경우, 또 다른 요구가 이어질 것이다. 한번 무너지면 곧이어 더 큰 것이 허물어질 뿐이다.

한국은 미국과 동맹국이다. 한국 내에는 50여 개의 미군기지가 있고 2만5000여 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주한미군은 북한만 타깃으로 한 군대가 아니다. 유사시 대만 사태에도 투입될 수 있는 병력이다. 이 경우 동맹국인 한국의 직간접 참전도 적극 검토될 것이다.

중국이 닭의 피를 한국에 보이면서 미국을 멀리하라고 위협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러한 위협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되었고, 앞으로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중국의 살계경후 외교에 불안해하면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자들도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주한미군이 철수할 경우 한국은 진짜 공포에 떨게 될 것이다. 2019년 민주화운동이 무력(武力)으로 제압된 후 오늘날 홍콩의 모습, 500여 년이나 중국에 굴종해야 했던 조선의 모습이 한국에서도 재현될 것이다.

 

한국 언론도 문제

한국 언론을 통해서는 미국·중국·대만, 나아가 서방과 일본으로 이어지는 국제 정세를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렵다. 한국 언론을 보면, 미국은 ‘하나의 중국’에 관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거짓말쟁이 국가처럼 느껴진다. 미국을 응징할 중국의 엄청난 파워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것 같다.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중국군의 엄청난 화력(火力)이 당장이라도 미국과 대만을 압도할 기세다. 중국인이 화풀이하듯 내뱉은 ‘펠로시 탑승 여객기 격추’ 주장이 버젓이 뉴스 헤드라인에 오를 정도다.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을 82세 늙은 할머니의 망령 정도로 비하하면서, 개인의 정치적 욕망을 채우려는 자화자찬 여행 정도로 비하하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조 바이든 대통령조차 반대한 대만 방문이라면서, 개인의 명예를 위해 중국을 무시한 고집쟁이 이단아가 펠로시라는 것이다.

오해하기 쉬운데, 바이든은 ‘결코’ 펠로시의 대만 방문을 반대한 적이 없다. 미군이 펠로시의 방문을 안 좋아한다는 말을 전했을 뿐이다. 미국 대통령이 입법부 수장에게 왈가왈부한다는 것 자체가 웃기는 발상이다. 한국 언론 보도만 보면 중국이 피해자이고, 미국은 도발을 일삼는 악당이다. 과연 그럴까?

북한은 걸핏하면 ‘서울 불바다’ 운운하며 협박을 일삼곤 했다. 하도 듣다 보니 만성이 됐지만, 최근에는 ‘서울 핵 불바다’로 업그레이드된 듯하다.

중국과 북한은 일란성쌍둥이라고 보면 된다. 중국이 경제발전으로 돈이 많아졌다고 하지만 나라의 품격까지 올라간 것은 아니다. 독재국가의 강패 근성은 그대로다. 국가주석이나 고위관료들이 “머리가 깨지고 피가 터지며 불에 탄다”는 따위의 조폭 수준 언사를 남발한다.


중국의 보복(?)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펠로시의 대만 방문에 대한 중국의 보복 조치가 이어지고 있다. 사태가 더 악화되고, 급기야 세계대전으로까지 이어지는 것 아닌가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세 가지 일을 살펴보면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가늠할 수 있다.

첫째, 중국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펠로시 대만 방문 직후 보도된 ‘독립운동 획책 대만인 체포’ 뉴스다. 이에 대해 대만에 대한 중국의 보복이 시작됐다는 분석이 있다. 자세히 보면 너무도 웃기는 뉴스로 느껴진다. 이는 러시아나 북한도 자주 쓰는 수법이다. 보통 미국인 몇 명을 체포해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 세운 뒤 조롱하고 비난한다. 중국은 이번에 미국인을 체포하는 대신 애꿎은 대만인을 독립운동가로 둔갑시킨 것이다. 그래 봤자 중국 내부의 ‘호전적(好戰的) 자존심’을 만족시켜줬을 뿐이다.

둘째, 중국이 자랑한 대만 포위 해상작전이다. 주목할 부분은, 펠로시가 대만을 떠난 이틀 뒤부터 시행됐다는 점이다. 상식적으로 보면, 공명심에 불타는 ‘노망 할머니’부터 응징해야만 한다. 이미 떠나고 없는데, 대만에 화풀이를 하는 형세다.

셋째, 중국이 미국에 대해 취했다는 전면적인 보복 조치를 보자. 군(軍)사령관 간 통화 라인 중단, 국방부 실무회담 중단, 불법 이민자 송환 협력 중단, 기후변화 협력 논의 중단 등 8개 사안이다. 1년에 한두 번 회의를 하면서 이름만 걸어둘 뿐 평소에도 유명무실(有名無實)한 사안에 불과하다. 소리 소문 없이 몇 달 뒤 다시 재개될, 종이호랑이 보복에 불과하다. 미국산 돼지고기, 콩 수입금지 같은 경제와 관련된 보복은 단 하나도 없다.

3개의 ‘중국 대(大)복수 시리즈’를 보면 결론은 간단하다. 중국은 미국과 싸울 의사가 없다는 사실이다. 중국 혼자서 광분하면서 대만을 괴롭히고 있지만, 시진핑을 상전으로 한 중국 국내용 눈도장 충성경쟁 정도일 뿐이다.

어쩌면 한국 언론에는 ‘파워 중국’의 ‘장렬한 무용담’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다. 우발적 상황이 벌어질 수는 있겠지만, 북한이 곧잘 하는 ‘불바다 발언’ 정도로 보면 된다. 중국 스스로 나서서 확전(擴戰)을 막을 것이기 때문이다.
 

 

‘원칙’과 ‘정책’

대만 문제와 관련된 가장 기본적인 사안이면서도, 한국 언론 대부분이 범하는 ‘엄청난 오류’가 두 가지 있다. ‘하나의 중국(One China)’과 ‘대만해협(Taiwan Strait)’이란 용어가 그것이다. 이 두 가지는 펠로시가 대만을 방문한 배경이자, 장래 미중 관계를 이해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대부분 대수롭지 않게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용어이지만, 아주 정확하게 사용하지 않으면 전혀 다른 해석으로 흐를 수 있다. 대부분의 한국 언론은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기는커녕, 뒤죽박죽 뒤섞어서 사용한다.

먼저 ‘하나의 중국(One China)’을 보자. 한국은 물론,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하나의 중국’에 주목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의 중국’은 실제 외교현장에서 구체화되는 과정에서는 크게 두 가지 개념으로 나눠진다. 하나는 ‘하나의 중국’을 둘러싼 ‘원칙(Principle)’이고, 다른 하나는 ‘정책(Policy)’이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을 거의 국시(國是) 수준으로 내세운다. 미국은 어떨까? 미국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정책’을 견지하고 있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 비슷한 듯하지만, 180도 다르다. ‘원칙’은 말 그대로, 근간(根幹)·근본으로 절대 바꿀 수 없는 개념이다. ‘정책’은 다르다.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원칙과 정책의 개념 차이에서 오는 상이(相異)한 관점은 ‘중국은 하나다’라는 말에도 적용될 수 있다. 1978년 미중공동성명에 나타난 미국의 생각을 보자. 미국은, 중국이 말하는 ‘중국은 하나다’라는 말을 ‘인식한다(acknowledge)’고 표현한다. “‘중국은 하나다’라는 중국의 생각을 알고 있다”는 식의 제3자 관찰자의 관점이다. 미국 스스로 나서서 ‘중국은 하나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 발짝 떨어져서 ‘중국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알고 있다’는 의미일 뿐이다.

만약 미국이 ‘중국은 하나다’라는 중국의 ‘원칙’에 완전 동의할 경우, ‘인식한다(acknowledge)’는 표현을 ‘승인한다(recognize)’로 바꿀 것이다. ‘승인’은 상대방의 생각을 인정하고 법적 효력을 가진 상호약속이다. 44년 전 미중공동성명서에는, ‘미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 내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한다(recognize)’는 말이 나온다.

만약 ‘미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 내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사실을 인식한다’라는 표현으로 바꾼다면 어떨까? 미국이 인식을 안 할 경우, 또는 중간에 인식을 바꿀 경우 ‘중화인민공화국=중국 내 유일한 합법정부’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미국은 ‘중국은 하나다’라는 중국의 생각을 ‘인식’할 뿐 ‘승인’하지는 않았다.


펠로시의 대만 방문이 가능한 이유

펠로시의 대만 방문과 관련해 ‘대만은 중국의 일부다’라는 중국의 주문(呪文)이 끊이지 않는다. ‘중국은 하나다’라는 중국의 ‘원칙’에 비춰보면 당연히 ‘대만은 중국의 일부다’가 될 수 있다.

반면에 미국은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고 말하는 중국의 생각을 ‘인식’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하나의 중국’을 둘러싼 미국의 ‘정책’이 바뀔 경우, ‘대만은 중국의 일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 미국의 생각이다.

공식적·구체적 차원에서의 ‘중국은 하나다’에 대한 미중 간의 대응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내에도 ‘하나의 중국’을 대하는 미국의 자세가 애매하고도 믿기 어렵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는 앞에서 말한 차이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무지와 무식 때문에 미국을 욕하는 것이다.

‘원칙’과 ‘정책’, ‘승인’과 ‘인식’이란 용어가 말장난하는 것처럼 느껴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는 국제정치 현장에서는 엄청나게 중요한 차이다. 외국 정상이 베이징에 가서 시진핑과 공동성명을 발표한다고 치자.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이 ‘원칙’과 ‘정책’, ‘승인’과 ‘인식’에 관한 표현으로 모인다.

‘원칙’과 ‘승인’은 신뢰에 기초한 양국 간의 약속이자 의무다. ‘정책’과 ‘인식’은 단기간 동안은 이어지겠지만, 영원한 약속은 결코 아니다. 당연히 중국은 ‘원칙’과 ‘승인’에 집착한다.

아프리카 대부분과 러시아를 포함한 독재 전제국가들은 중국과의 관계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승인’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이 말하는 ‘하나의 중국’이란 ‘원칙’에 따르는 과정에서, 대만과의 관계도 전부 끊게 된다.

그러나 미국·일본·유럽 선진국의 대부분은 ‘하나의 중국’ 문제를 ‘정책’과 ‘인식’으로 대응한다. 따라서 펠로시의 대만 방문도 문제 될 게 없다. 미국이 중국과의 외교 약속을 어기는 ‘비열한 카우보이’가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이런 관점에서 보면 미국이 대만에 무기를 지원하는 것도 가능하다. ‘정책’과 ‘인식’으로 중국을 대하는 한, 대만에 대한 미국의 행동은 자유로울 수 있다. 중국이 미국에 약속과 의무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 내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한다’는 문구 하나에 그친다.


문재인 정권,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
 

 펠로시 美 하원의장은 대만 방문 후 訪韓, 김진표 국회의장과 회담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펠로시 의장을 만나지 않아 ‘중국 눈치 보기’ 논란을 빚었다. 사진=조선DB

 

 ‘하나의 중국’에 대한 한국의 외교 방침은 무엇일까? 한중 관계가 동등하고도 공동번영 미래지향적으로 흘렀던 때는 김대중 대통령 재임기다. 1998년 국빈(國賓)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은 장쩌민(江澤民) 중국 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과 12개 항의 공동성명을 발표한다. ‘하나의 중국’과 관련된 제6항을 보자.

“중국 측은 세계에 ‘하나의 중국’만이 있으며 대만은 중국 영토의 불가분(不可分)의 일부분임을 재천명하였다. 이에 대해 한국 측은 충분한 이해와 존중을 표시하고 지금까지 실행해온 ‘하나의 중국’ 입장을 견지한다고 하였다.”

‘하나의 중국’에 대한 한국의 방침은 ‘입장(position)’으로 집약된다. ‘원칙’이란 말은 피하면서, ‘하나의 중국’이란 원칙을 갖고 있는 중국의 입장을 견지한다는, ‘약간 물러선 상태에서 중국에 따른다’는 식이다. 미국·일본·유럽의 ‘정책’에서 한참 떨어진, 어느 정도 ‘책임과 의무’가 수반되는 약속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이 주장하는 식의 ‘원칙’처럼 100% 완전히 얽매일 필요는 없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원칙을 0, 정책을 10으로 할 때 약 2 정도 수준이 아닐까 싶다.

위의 공동성명에서 주목할 부분은 ‘견지한다’는 말이다. 영어 성명서가 없지만 보통 ‘stand, hold on’으로 표기할 수 있다. ‘지탱하다·지켜나간다’는 의미다. 중국이 원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킨다’는 말에 90% 정도 다가선 표현이라 볼 수 있다.

8월 4일 한국 외교부는 펠로시의 대만 방문과 관련해 “우리 정부는 ‘하나의 중국’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대중 대통령 당시의 문구를 그대로 차용한 말이지만, ‘견지’가 아니라 ‘유지’라는 단어가 흥미롭다. ‘견지’보다는 ‘유지’가, 약속 의무에서 다소 벗어난 개념이다.

놀랍게도 문재인 정권 당시로 돌아가면 ‘하나의 중국 입장’이 중국이 원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재인 정권 말기이던 2021년 11월 16일 자 《서울경제신문》 기사를 보자. 당시 미중정상회담에서 거론된 대만 문제에 관한 한국 외교부 방침에 관한 발언이다. “우리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한다는 입장하에 대만과 경제 분야를 포함한 실질 분야의 교류 협력·증진을 위해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계속 노력해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종래의 ‘하나의 중국이란 입장 견지’ 정도가 아니라,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한다는 입장’으로 변해 있다. 중국이 원하는 ‘원칙’이란 약속과 의무에 문재인 정권 스스로가 100% 선을 넘어 투항해버린 듯하다.

필자는 2017년 12월의 문재인 당시 대통령의 ‘혼밥 사건’이야말로 한국 외교의 천운(天運)이었다고 평가한다. 중국의 홀대 덕분에 한중공동성명 채택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만약 공동성명이 채택됐으면, ‘입장’이란 말은 아예 빠지고 100%, 아니 120% 중국의 의도에 응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한다’는 것은 기본이고, 극단적으로 대만을 불법 테러조직이라고 규정했을 수도 있다.

언젠가 한국에 또다시 좌파 정권이 나타날 경우, 중국에 가서 ‘촌탁외교’의 극치인 공동성명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 양국 공동성명서에 한번 새겨질 경우 바꾸기가 어렵다.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의 속뜻

‘대만해협’이란 말은 미중사태를 정확히 판단할 키워드 중 하나다. ‘중국은 하나다’와 마찬가지로, 한국 언론이 뒤죽박죽 사용하는 말이기도 하다. 미국은 틈만 나면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거론한다. 펠로시도 아시아 순방지 곳곳에서 재삼재사 강조했다.

단순한 의문이지만, 왜 ‘대만’이 아닌,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라 표현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만이 중국에 무력으로 정복당한다고 해도 미국은 대만해협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의미가 들어가 있다.

 

 대만해협은 중국과 대만 사이의 폭 130km 정도의 바다다. 한국에 수입되는 중동(中東) 석유와 가스의 운송라인이기도 하다. 중국은 대만해협이 중국의 영해(領海)로 국제수역이 아니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미국은 국제법에 따라 육지에서 12해리(약 22km)만 영해일 뿐 나머지는 자유항해가 가능한 국제수역이라 말한다. 미국만이 아니다. 한국·유럽·일본 모두 국제수역으로 해석한다. 지난 7월 21일에도 미국 군함 벤포드가 대만해협을 지나갔다. 서방 측은 중국의 일방적 주장을 완전 무시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라는 말 속에는 ‘설사 대만이 중국 의도대로 점령당한다 해도 대만해협에서의 미군 활동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중국이 대만 공격을 위해 바다를 건널 경우,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란 차원에서 미군이 직접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읽을 수 있다. 미국은 ‘대만 수호’나 ‘대만 방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대만해협의 평화와 번영’일 뿐이다. 결론적으로 똑같게 보일 수도 있지만, 미국의 대만에 대한 의지는 결코 간단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대만에서의 전쟁이 끝난다 해도 미중 간 격돌은 계속될 것이다.


일본 의원단의 대만 방문

 이시바 시게루 의원을 단장으로 하는 일본 超黨派 의원방문단은 7월 27일 대만을 방문, 차이잉원 총통과 만났다. 사진=대만 총통부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시사용어들이 탄생하는 시대다. 디커플링(Decoupling), 칩 동맹(Chip Alliance), 프렌드쇼링(Friend-shoring), 서플라이 체인(Supply chain), 7G… 끝도 없다. 이 중 하나라도 잘못 해석하거나 놓칠 경우 나라의 미래가 낭떠러지로 추락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써 6개월째로 접어들고, 미중 격돌이란 이름의 길고 긴 막장터널에서의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됐다. 펠로시의 대만 방문은 시작일 뿐이다. 다른 나라 정상들의 대만 방문이 앞으로 줄을 이을 것이다. 언젠가 한국 대통령의 대만 방문도 외교현안으로 떠오를 것이다.

펠로시의 대만 방문 나흘 전인 7월 27일, 이시바 시게루(石破茂)를 단장으로 한 일본의 초당파(超黨派) 국회의원 30명이 대만을 공식 방문했다. 이시바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시절 자민당 총재 경선에 나섰던, 언젠가 총리에 오를 인물이다. 중국의 대일(對日) 협박이 계속된다면 일본 총리의 대만 방문도 초읽기에 들어설 것이다.


왕이의 ‘응당 5개 조’

불행한 현실이지만, 한국은 터널 진입 출발부터 ‘촌탁외교’로 일관하고 있다. 대통령부터 시작해 여야(與野) 모두 입을 다물고 있다. 8월 24일 한중국교 30주년 기념에 맞춰 중국의 선물을 기다리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 봤자 돌아오는 것은 조선 500년의 연장일 뿐이다.

8월 9일 박진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중국 칭다오에서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가졌다. 한중 공동성명은 없었다. 대신 일방통행식인 중국 측 발표문 5조만이 공표됐을 뿐이다. 내용을 보면 120% 내정간섭이다. 사드 배치 문제와 미사일 운용, 심지어 한·미·일 군사동맹 문제까지 들고나왔다.

중국 측 발표문 전문을 꼼꼼히 읽어봤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마땅히 독립자주 노선을 견지해 외부 간섭을 배제해야 한다(應當堅持獨立自主,不受外界干擾).

2. 마땅히 근린 우호를 견지해 서로의 중대 관심 사항을 배려해야 한다(應當堅持睦邦友好, 照顧彼此重大關切).

3. 마땅히 개방과 협력을 견지해 공급망 안정을 수호해야 한다(應當堅持開放共贏,維護産供鏈 穩定暢通).

4. 마땅히 평등과 존중을 견지해 상호 내정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應當堅持平等尊重,互不干涉内政).

5. 마땅히 다자주의를 견지해 유엔 헌장의 원칙을 준수한다(應當堅持多邊主義,遵守聯合國憲章宗旨原則).

외교문서라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왕(上王) 지침’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크게 5개로 나눠진 내용을 보면서 필자가 주목한 부분은 ‘응당(應當·중국어 발음 ‘잉당’)’이란 용어다. 5조 문장 첫머리에 등장하는, 발표문 전체를 가늠하는 중국 측 입장에 해당하는 말이라 보면 된다.

‘응당’은 한국어에도 있다. 사전적 의미를 보자. ‘행동이나 대상 따위가 일정한 조건이나 가치에 꼭 알맞게. 그렇게 하거나 되는 것이 이치로 보아 옳게’란 의미를 담고 있다. 영어로는 어떨까? 부사로, ‘deservedly, naturally’ 같은 단어가 따라붙는다.

외교적으로는 어떻게 풀이될 수 있을까? “As I told you, you should…”로 풀이될 수 있다. ‘내가 말했듯이 너는 (이하의 내용을) 따라야만 한다’는 것이 ‘응당’이란 한자가 갖는 외교적 의미다.

평소 알고 지내던 중국인에게 ‘응당’이라는 말이 실제 생활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 물어봤다.


‘엄격한 수직관계에 기초한 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쓰는 말이라 보면 된다. 그렇지만 고등학생, 대학생 정도에게는 실례가 되는 말이다. 유치원·소학교(초등학교) 학생 정도에게 던지는 단어 부류에 들어간다. 2030 젊은 세대 부부라면 어린 자식에게도 안 쓰는 강압적 단어다. 엄격한 수직관계에 기초한 말이다.”

그렇다면 ‘응당’을 대신한, 외교 용어는 무엇일까? 발표문 제1조의 ‘독립자주 노선을 견지해 외부 간섭을 배제해야 한다(應當堅持獨立自主,不受外界干擾)’는 말은 어떤 식으로 다듬을 수 있을까?

‘응당’이라는 단어 대신 ‘수요(需要·중국어 발음 ‘주야오’)’ 또는 ‘요(要·중국어 발음 ‘야요’)’를 사용하는 것이 상식이다. 한국어로 풀자면 ‘우리는 서로… 를 믿는다, 공동 추구한다’라는 의미다.

발표문 5조를 보면, ‘응당’은 물론 ‘수요’라는 단어를 아예 집어넣지 않아도 문제 될 것이 없다. ‘응당’은 외교 상대국인 한국에 대한 배려나 고려가 제로, 아니 마이너스인 단어라고 할 수 있다. 수평관계를 전제로 하는 외교 무대에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무례한 말이 ‘응당’이다.

‘응당’이란 단어를 대하면서 1904년 8월 22일 체결된 제1차 한일협약(한일협정서)이 떠올랐다. 구한말(舊韓末) 정부에 일본이 추천한 고문(顧問)을 초빙해야 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실제는 조선 주권 자체를 완전 무력화(無力化)하기 위한 꼼수 협약이었다. 고문이 들어와 그나마 이름뿐인 조선의 외교·군대·화폐제도 자체를 무력화시켰다.


제1차 한일협약은 3개 조의 짧은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 내용을 보자.

1. 대한(大韓) 정부는 대일본(大日本) 정부가 추천한 일본인 1명을 재정고문(財政顧問)으로 삼아 대한 정부에 용빙(傭聘)하여 재무에 관한 사항은 일체 그의 의견을 물어서 시행해야 한다.

2. 대한 정부는 대일본 정부가 추천한 외국인 1명을 외교고문으로 삼아 외부(外部)에 용빙하여 외교에 관한 중요한 사무는 일체 그의 의견을 물어서 시행해야 한다.

3. 대한 정부는 외국과 조약을 체결하거나 기타 중요한 외교 안건, 즉 외국인에 대한 특권 양여와 계약 등의 문제 처리에 대해서는 미리 대일본 정부와 상의해야 한다.

‘~시행하여야 한다’는 말은 영어로 표현하자면, ‘should, must’라는 의미가 강하게 배어 있다. 상하(上下) 관계에 기초한 강압적, 일방적 지시다. 이번에 중국 외교부장 왕이가 요구한 5개 조에 사용된 ‘응당’과 너무도 똑같다.


‘촌탁외교’ 벗어나야

1904년 이후 무려 118년이 흐른 2022년, 한국은 또다시 ‘should, must 외교’로 내몰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박진 외교부 장관에게 직언한다. 앞으로 또다시 중국의 일방통행식 ‘상왕외교’에 직면한다면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길 바란다. 대화를 지속할 이유가 없다. 외교를 논하기 전에 인간의 기본부터 배워오라고 말해야 한다.

다행히 대통령실은 8월 11일 “사드는 북한 핵·미사일로부터 우리 국민의 안전·생명·재산을 지키기 위한 자위적 방어 수단이고 안보 주권 사항으로서 결코 협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공언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은 다음 날 “왜 또 벌집을 들쑤시느냐”고 비난했다.

자유 대한민국이 일당 독재 전제주의 깡패국가에 내몰릴 이유가 없다. 5조 내용만이 아니라, ‘응당’이란 단어를 둘러싼 중국의 기본 인식에 대한 ‘주권적 판단’을 국민 모두에게 묻길 바란다. 중국의 형제국이라는 북한이 그러하듯, 전부 걸지 않으면 당하게 된다.

독재자가 던져주는 당근보다 민주주의가 창조해낼 인간과 국가의 품격(品格)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한국인의 70% 이상이 중국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눈앞의 이익에 따라 우왕좌왕하는 교언영색(巧言令色) 외교, 촌탁외교는 이러한 국민정서에도 안 맞는다. ‘뿌리 깊은 나무’처럼 가치와 원칙에 바탕을 둔 정도(正道)외교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이다.⊙

 

09월 16일  푸틴-시진핑 밀착에 더 위험해진 세계 정세와 중국 본색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5일 회담에서 전략적 협력 강화를 다짐한 것은 지극히 우려스러운 일이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유엔 140개 회원국이 규탄한 상황에서 중국은 러시아와 협력 강화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시 주석은 “중국과 러시아가 세계 혼란을 안정화시키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고, 푸틴 대통령은 중·러 관계를 두 마리 말이 일렬로 끄는 마차 ‘탠덤’에 비유하며 양국이 안보·경제 공동체임을 재차 강조했다. 시 주석은 “중·러가 상호 핵심이익에 서로 강력하게 지지하길 원한다”고까지 했다.

중국은 유엔총회의 우크라이나 침공 규탄 결의안 때 기권했지만, 러시아의 무기 지원 요청에는 응하지 않았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대러 제재에는 불참하며 러시아 에너지를 헐값에 사들였다. 중국이 이번 회담을 계기로 러시아와 밀착하는 것은 미국과의 전면적 체제 경쟁을 위해 러시아를 우군으로 삼겠다는 속셈이다. 무력으로 현상 변경을 하겠다는 중·러의 의기투합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된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다. 주요 7개국(G7) 경제장관들이 15일 즉각 성명을 내고 “순진한 대응은 끝났다”며 대중 강경 노선을 천명한 이유다.

중·러 밀착은 한반도 정세도 더 심각하게 만든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관련 유엔 제재에 거부권을 행사한 중·러를 뒷배 삼아 김정은이 도발을 자행할 수 있다. 이미 북한은 러시아에 무기까지 팔고 있다. 15일 방한한 리잔수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임위원장은 최근 러시아 방문 때 “러시아의 핵심이익에 지지를 표한다”고 밝힌 바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월 방한한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을 만나지 않아 ‘중국 눈치 봤다’는 뒷말을 낳았는데, 리 위원장은 16일 접견한다.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옹호하는 중국의 본색을 직시하고 정교하게 대응하기 바란다.

문화일보  사설 

 

09월 21일 尹대통령 “자유 연대” 유엔 연설, 北核외교 원칙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0일 첫 유엔 연설에서 “세계 시민이나 국가의 자유가 위협받을 때 국제사회가 연대해 그 자유를 지켜야 한다”며 국제 연대를 통한 자유 수호 의지를 천명했다. 윤 대통령은 “힘에 의한 현상 변경과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파괴무기, 인권의 집단적 유린”을 세계 자유와 평화에 대한 위협으로 적시하면서 “국제 규범 체계에 입각한 연대”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나라를 거명하지 않았지만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대만을 압박하며 신장(新疆) 인권유린 사태를 방조하는 중국을 비롯해 핵 선제공격을 법제화한 북한에 대한 우회적 경고다.

 

자유는 윤 대통령의 대선 출마선언 및 대통령 취임 연설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8·15 경축사에서는 “보편적 자유를 공유한 국가들의 연대” 필요성도 제시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11분간의 유엔 연설에서 자유를 21차례 언급하며 보편적 국제 규범에 기반한 연대를 강조한 것은 무게가 다르다. 대한민국 새 정부의 외교정책 방향을 유엔 회원국 앞에서 밝힌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윤 대통령이 연설에서 북한을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의미심장하다. 북한 인권에 눈감은 채 한반도 종전선언에 매달렸던 ‘문재인식 대북 구걸 외교’에서 탈피하겠다는 신호이자, 자유 진영 연대를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다.

관건은 좌고우면하지 않는 과감한 실행이다. 중·러가 북한 탄도미사일 도발 관련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추가 대북 제재에 거부권을 행사했을 때 윤 정부는 침묵했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 방한 때 윤 대통령은 접견을 피해 ‘동맹보다 중국을 의식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윤 대통령은 지난 6월 나토 정상회의에서 자유와 평화를 위한 연대를 천명했으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등은 선을 그었다. 러시아 눈치를 본 탓이라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정부 출범 초기엔 손발이 맞지 않아 혼선이 빚어질 수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유엔에서 ‘자유 연대’를 북핵 등을 해결하기 위한 외교 원칙으로 천명한 만큼, 앞으로는 초지일관해 나가야 한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의 고강도 제재와 압박을 자유 진영과 연대해 강력히 추진하면서 북한 도발을 방조하는 나라에 대해서도 유엔 및 국제사회와 공조를 통해 규탄하고 저지해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9월 21일  진중권 “조문록 오늘 쓰든 내일 쓰든 무슨 문제...바이든이 더 앞자리 앉았으면 또 난리 쳤을 것” 

“바이든 대통령 지각했다고 논쟁하지 않아”
바이든 14번째 줄 앉은 것에 “유일하게 시비 건 사람은 트럼프”

 지난 19일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엘리자베스 2세 장례식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앉고 있다. 통로를 사이에 두고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앉아 있다. AP연합뉴스

 

 진중권 작가는 윤석열 대통령의 엘리자베스 2세 조문 불발 논란과 관련해 “조문록을 오늘 쓰든 내일 쓰든 그게 무슨 큰 결례가 되고 논의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진 작가는 20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서 “이런 문제로 논쟁하는 나라는 없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유일하게 시비를 건 사람은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다. ‘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4번째 줄에 앉았나. 내가 대통령이었으면 제일 앞줄에 앉았을 거다’라고 했다”며 ‘외교 참사’라고 주장하는 야권을 비꼬았다.

진 작가는 “영국 요청을 받아들인 것인데 무슨 결례고 논쟁할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일찍 출발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늦게 출발한 이유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트집을 잡을 수도 없고, 이게 왜 이렇게 중요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바이든 대통령이 지각했는데, 좀 더 일찍 출발했어야 한다, 의전이 문제라고 논쟁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진 작가는 “만약에 바이든 대통령이 더 앞자리에 앉았으면 또 난리를 쳤을 것”이라고 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엘리자베스 2세 장례식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윤 대통령은 모두 14번째 줄에 앉았다. 윤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보다 뒷 줄에 앉았으면 야권이 이것도 문제 삼았을 것이라는 비판이다. 그는 ‘표퓰리스트’ ‘너무 유치하다’라는 단어도 사용했다.

진 작가는 조문 논란이 이는 것을 두고 ‘혐오 코드’라고도 분석했다. 그는 “비판이 아니라 혐오 코드로 가는 것 같다”며 “‘기승전 아마추어’라는 프레임 자체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게 아니라 부정적 인식, 감정을 악화하는 쪽으로 맞춰져 있다”고 지적했다. 진 작가는 “대통령도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일정이 3개인데 다 소화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고 했다”며 “영국 쪽에서도 어떤 사태가 발생할 지 모르니 미리 양해를 구한다고 했고, 실제 변경이 일어나 하루 늦게 조문했다고 뭐 큰 문제인가”라고 반문했다.

 

함께 출연한 김성회 정치연구소 씽크와이 소장은 “중요한 건 출발할 때 조문한다고 공지하고 갔다”며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해 놓고 현지 가서 일정이 틀어진 것처럼 하는 태도가 문제”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이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문화일보  조성진 기자
 

 

09.22  어느 개도국 외교관의 하소연

 “미국 같은 서방 강국들이 중요한 건 알지만, 우리한테도 관심을 좀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며칠 전 만난 서울 주재 중앙아시아 국가 대사관 소속 외교관이 기자에게 한 말이다. 올해는 한국과 중국의 수교 30주년이지만, 소련이 해체되며 독립한 중앙아시아 5국(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과 수교한 지 30주년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 외교관의 말에선 미국과 중국 등 이른바 주요국들에 비해 좀처럼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한국 외교 당국에 대한 서운함이 묻어났다. 몇 달 전 중남미 국가 대사관 사람과 만났을 때도 “(한국 정부가) 우리 존재를 잊지 않았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올해는 한국 외교사에 의미가 큰 해다. 멕시코·아르헨티나·콜롬비아·이스라엘·모로코 등 중남미 및 중동 20여국과 수교해 1960년대 북한과 치열한 제3세계 외교전에서 성과를 거둔 지 60주년 되는 해다. 중국을 비롯해 베트남과 구 소련권 국가 등 10여 국과도 국교를 맺어 ‘북방 외교’를 완성한 지 30주년 된 해이기도 하다. 이 같은 외교 성과로 현재 전 세계 114국이 서울에서 대사관을 운영하고 있다. 시에라리온·온두라스·잠비아 등 이름도 낯선 나라들이 외교관을 파견하고 있다. 한국에 대사관을 개설한 제3세계·개발도상국들은 전쟁 폐허를 딛고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루고 신흥 문화강국으로 도약한 한국 사례를 배우기 위해 대부분 자국의 엘리트 외교관들을 보낸다. 반세기 전만 해도 각국 외교관이 기피하는 격오지로 분류됐던 것에 비하면 상전벽해다.

 

우리 정부가 중앙아·남미·아프리카 등에 대한 관심이 의도적으로 소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 외교가에서 활동하는 일선 외국 외교관의 말을 들으면 이들 나라에 대한 관심이나 배려가 부족한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외교 역시 경제나 교육에서처럼 정책만큼 ‘포장’이 중요하다는 측면에서 더욱 그렇다. 외신과 학계에서 한국은 국력에 비해 외교 관심사가 지나치게 자국 중심적이라는 비판과 지적이 제기돼온 것도 사실이다.

 

미국 뉴욕에선 제77차 유엔총회가 열리고 있다. 전 세계 200곳에 달하는 각국 최고위급 인사들이 날아와 물위·물밑을 가리지 않은 활발한 외교전이 시작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출근길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도어스테핑’ 등을 통해 이전 대통령들보다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이려 노력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 적극적인 소통 의지가 이번 유엔 총회를 시작으로 향후 외국 순방과 정상회의 등 정상 외교에서도 발휘됐으면 좋겠다. 특히 올해에는 수교 30·60주년 국가들과 각별하게 우의를 다지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 한국이 자국 국익에만 집중한다는 이미지가 희석될수록 국제무대에서 외교로 국익을 챙길 수 있는 공간은 넓어진다. 만남과 악수 한 번이 양국 미래 관계를 바꿔놓을 수도 있다.

조선일보  김동현 기자

 

09.23  우크라 확전이 가져올 경제·안보 충격파에 대비해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각)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그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부분적 동원령을 내리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우크라이나를 7개월째 침공 중인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차 대전 후 처음으로 예비군 30만명 동원령을 내리고 핵 사용을 위협했다. 최근 우크라이나 군의 대대적 반격으로 점령지를 잇따라 내주자 전세를 뒤집기 위해 확전을 택한 것이다. 동원령 선포로 러시아 국내에선 반전 시위가 잇따르고 징집을 피해 해외로 탈출하려는 행렬이 줄을 잇는다고 한다. 러시아와 한편에 섰던 국가들도 거리를 두는 흐름이다. 지난주엔 시진핑이 푸틴 면전에서 우려를 나타냈고, 러시아와의 무기거래설이 돌던 북한은 “러시아에 무기나 탄약을 수출할 계획이 없다”고 발표했다. 코너에 몰린 푸틴이 핵 사용과 같은 비이성적 선택을 할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번 전쟁은 유엔에 기초한 전후 국제질서 자체를 뒤흔들었다. 국제평화 수호의 의무가 있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침략자로 돌변한 것을 넘어 비토권을 앞세워 안보리의 개입을 원천 봉쇄했기 때문이다. 2차 대전 후 전쟁을 잊고 살던 유럽 각국은 재무장·군비경쟁에 나섰고, 70년 이상 중립 노선을 걸어온 핀란드·스웨덴은 나토에 가입했다. 러시아의 침공은 우크라이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국가들의 위기감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핵무장한 적성국과 대치 중인 대만, 한국 등에도 시사점이 크다. 푸틴의 위험한 도박이 초래할 안보 리스크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경제가 걱정이다. 40년 만의 최악의 인플레이션과 이를 잡기 위한 미국·유럽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 중국의 코로나 봉쇄 정책은 전 세계 경제를 난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확대·장기화는 이런 상황에 기름을 부을 수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석유·천연가스·밀 등 원자재와 곡물 분야에서 세계 1~2위를 다투는 수출 대국이다. 이미 지난 7개월간 국제 에너지·곡물 시장이 마비되고 가격이 급등하며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했다. 유럽 각국은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차단으로 전기료와 난방비가 폭등하고 경기침체가 가속화하는 등 몸살을 앓고 있다.

 

전쟁이 더 길어지면 세계 경제가 실물경제 추락과 금융위기가 동반하는 초대형 복합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한국은 이런 위기에 대비하고 있나. 연일 집안싸움인 집권 여당과 선심성 입법만 쏟아내는 야당을 보노라면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  사설

 

09월 23일  방향 옳지만 실수투성이 尹 외교팀, 쇄신 불가피하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외교·안보는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다. 정책 기조가 확고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단시일 내에 한미동맹 복원, 한·미·일 3국 협력, 나토 등 국제사회와 연대 강화 등을 통해 문재인 정부 시절의 친북·친중 일변도 정책을 바로잡았다. 그러나 크고 작은 소동이 이어지면서 ‘실수가 본질을 뒤덮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윤 대통령의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장례식 참석, 유엔총회 기간 중 일본·미국과의 정상회동 과정에서 발생한 잡음은 비본질적인 것들임에도 올바른 외교 방향 자체까지 훼손할 지경이 됐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 간의 한·일 정상회담은 양국 관계 정상화의 출발점이 됐다. 윤 대통령은 런던·뉴욕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세 차례 짧은 조우를 통해 한국산 전기차 보조금 삭감, 유동성 공급, 북핵 도발 공동대응 강화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입장도 재확인했다. 다자무대에서의 양자 회담은 대체로 이런 약식으로 진행된다.

문제는, 애초 너무 기대치를 높여 홍보했고, 반대로 이벤트나 다자 무대에서 발생할 돌발 상황에 대해선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다. 미·일 정상과의 회동 결과는 대통령실의 당초 예고와는 차이가 컸다. 게다가 대통령실은 한·일 회담을 먼저 발표해 일본 반발을 샀고, 결국 윤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가 있는 장소로 찾아가는 상황을 초래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바이든 대통령이 전기차 보조금 문제 논의를 부담스러워하는 데도 성과를 낙관했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 ‘패싱’, 발표하고 보자는 식의 대북 ‘담대한 구상’과 이산가족 상봉 제안, 엘리자베스 여왕 영구 참배 무산 등을 보면 ‘학자 중심 외교팀’은 실무에선 아마추어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역량에 대한 재점검과 ‘커리어 외교관’ 등용 등 쇄신이 불가피하다.

한편, 윤 대통령의 “국회에서 이 ××들이 승인 안 해주면” 막말은, 그 자체도 문제지만 대응 방식은 더 문제다. 외국 정상 경우에도 그런 가십성 실언 소동이 드물지 않다. 그러나 일단 육성이 공개된 만큼 변명하지 말고 깨끗이 국회와 야당에 사과하고, 말조심 계기로 삼는 게 옳다.

문화일보 

 

09.27  내부 소통도 외교다

 외교의 내막이 대중적 인식과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윤석열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공식 정상회담을 못 한 것은 외교 참사’라는 내러티브가 아무리 대중적이라도, 사실관계를 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후 줄곧 유엔총회 계기 양자 회담에 소극적이었다. 지난해 뉴욕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도 만나지 않았고, 올해도 동맹인 영국·필리핀의 신임 정상들과만 회담했다.

 

‘윤 대통령이 방한한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을 만나지 않아 현대차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상 전기차 세제 혜택을 못 받게 됐다’는 말도 그렇다. 국내에 널리 퍼진 얘기지만 워싱턴DC 전문가들은 “IRA의 전기차 조항은 미국 국내 정치의 산물로 펠로시 방한과는 관련이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윤 정부의 외교에 종종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도 뭔가 께름한 그 느낌의 정체를 분명히 짚어내기 힘들었다. 외교를 잘해서가 아니라, 비판의 포인트가 사실과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 취임 140일이 되고 보니 그렇게 대중과 통하지 못하는 것 자체가 문제로 보이기 시작한다. 윤 정부가 대체 어떤 외교·안보 정책을 하려는지 선명히 전달되지 않는다. 그러니 그 메시지 부재의 공간을 불필요한 잡음들이 파고드는 것 같다.

 

윤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을 한 다음 날, 북한 인권 운동 관련 인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는 “김정은이 핵 사용을 법제화한 마당에 어떻게 한국 대통령이 북한 얘기를 안 할 수 있나. ‘담대한 구상’에서 대북 제재 해제를 거론하더니 도대체 뭘 하자는 건가”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한반도를 넘어 자유세계 전체에 공헌하겠다는 윤 정부 외교·안보팀의 이상(理想)은 전달되지 않고, 북한 인권 옹호와 한반도 자유 수호라는 원칙에 충실한지 의심만 받게 된 것 같았다. 대만에 다녀온 펠로시 의장을 만나지 않으면 어떻게 보일지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대통령실 내부 일정 계획을 우선하다가 대중 외교의 원칙을 내내 의심받게 된 것이 연상됐다.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환담이 ‘외교 참사’ 논란으로 번진 배경에도 메시지 관리 문제가 있었다. 상대가 유엔총회 사이드라인 외교에 몹시 소극적인 바이든 대통령인데, 출발 전 한미 정상회담이 있으리라 발표해 기대감을 너무 높였다. 이런 것을 보면 대통령실과 외교부, 국가안보실과 홍보수석실의 조율은 과연 잘되는지 궁금하다.

 

윤 정부 외교·안보팀에는 지난 보수 정부 출신 인사가 많다. 경험도 많겠지만 과거 정권을 휘청거리게 만들었던 ‘외교 문제에서 국내 여론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계속될 여지도 있다. 요즘 미국 국무부를 보면 토니 블링컨 장관부터 국내 여론과 소통을 무척 신경 쓴다. “대외 정책은 곧 국내 정책”이란다. 새겨볼 말이다.◎

조선일보  워싱턴=김진명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