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 2022-08/ 문화일보
08월 01일(월) ‘문자 노출’ 정치

김세동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이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직무대행에게 보낸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라는 휴대전화 메시지가 공개돼 큰 파문을 던지고 있다. 이준석 대표가 당원권 정지 6개월 처분을 받는 과정에 ‘윤핵관’의 작업이 있었다는 얘기가 나돌았는데, 대통령의 문자는 그런 개연성을 더하고, ‘윤심(尹心)’이 어떤지도 알 수 있게 해줬다는 점에서 젊은층과 중도층을 중심으로 당과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 이탈이 계속될 전망이다. 대통령이 업무 시간인 오전 11시 40분에 공개되면 파장이 클 속셈을 측근 정치인에게 문자로 전달했다는 것도 충격과 실망감을 더한다. 당일 법무부의 업무보고가 오전 10시부터 11시 10분까지 있었다.
이전에도 국회 회의장에서 휴대전화 화면이 카메라에 포착돼 곤욕을 치른 정치인이 여럿 있었다.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0년 9월 국회 본회의장에서 포털사이트 다음의 메인화면에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연설이 바로 반영됐다는 보좌진의 보고를 받고 “카카오에 강력히 항의해주세요. (국회에) 들어오라고 하세요”라고 지시하는 문자메시지가 촬영돼 ‘포털 장악 시도’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소속 천정배 의원은 2019년 9월 국회 외교통일위 전체회의에서 외교부 서기관으로 근무하는 둘째 딸에게 “국정감사 때 가까운 해외공관 직원들을 알려주면 내가 가서 도와줄(게)”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모습이 확인돼 구설에 올랐다. 정치적 이익을 노려 스마트폰 메시지를 일부러 노출한 의혹을 받는 경우도 많았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2016년 11월 ‘최순실 게이트’ 진상 규명을 위한 긴급현안질문이 열린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문자메시지를 발송된 지 2개월이나 지나 열어보다 찍힌 게 대표적이다.
권성동 대행은 이미 두 차례 스마트폰 화면이 카메라 기자에게 노출된 적이 있어 이번 메시지 노출이 실수인지, 고의인지 논란이 되고 있다. 윤 대통령과 이런 정도의 메시지를 주고받는 관계임을 과시하려 고의 노출했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윤 대통령은 물론 자신의 정치적 입지에도 치명타를 가하게 될 ‘내부 총질’ 문자를 고의로 공개할 정도로 정무 감각이 없진 않다는 반박이 맞서고 있다.
08월 02일 김윤신 ‘지금 이 순간’

김종호 논설고문
“어느 때부터인가 나는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잡념을 모두 지워버리고, 마음과 머릿속을 깨끗이 비우는 습관을 갖게 됐다. 무념(無念)의 맑은 상태에서 여러 날을 오가면서, 널려 있는 재료들을 들여다본다. 단단하고 거친 원목과 돌은 어느새 따뜻하고 힘찬, 그러면서 유연한 소재로 탈바꿈한다. 내 작업의 실마리가 풀려나간다. 재료와 작품 하나하나에 온 정신이 주입되고, 나는 그 작업 속에 파묻혀버리게 된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작품과 내가 하나 되는 순간이다.” 한국 1세대 조각가로, 아르헨티나에 정착해 나무와 돌을 주재료로 작품 활동을 하는 김윤신(87)이 창작 과정을 설명한 말이다.
나무 조각에 물감을 묻혀 선 하나하나를 찍어내듯이 그리는 그림도 병행하는 그는 “내 회화는 영원한 삶의 나눔이 주제다. 그 본질은 사랑이다. 내면에는 원초적 생명력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 그것을 향해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영혼의 소리가 다양한 색상의 파장으로 선과 면을 이뤄 사랑과 나눔을 표현했다”고 한다.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국립미술학교에서 조각과 석판화를 전공한 그는 워낙 나무를 좋아해 1970년대에는 한국의 적송(赤松) 등으로 작품을 제작했다. 상명대 교수로 재직하던 1983년 그는 아르헨티나로 이민한 조카를 만나러 갔다가 ‘푸르고 광활한 자연 풍광과 아름드리 나무들’에 매료돼, 1984년 삶의 터전을 현지로 옮겼다. “나무를 자르다 보면, 그 안에 뼈가 있고, 혈관이 있고, 생명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는 그가 “싱싱하게 살아 있는 나무의 생명력을 끄집어내는 작업”의 결실이 ‘합이합일(合二合一) 분이분일(分二分一)’ 연작 등이다.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2008년 ‘김윤신미술관’도 개관한 그가 한국·아르헨티나 수교 60주년 전시회를 지난 7월 8일 서울 성북구 성북로 갤러리 반디트라소에서 시작했다. 우주와 인간 등 모든 존재의 생성과 소멸 과정을 상징화한 회화 ‘지금 이 순간’ 연작 23점, “통나무를 베고 잘라 수없이 많은 면이 생겨도 그것은 하나”라는 신념을 형상화한 조각 ‘합이합일 분이분일’ 연작 14점 등 신작을 선보인 자리로, 오는 7일 끝난다. 한국에선 7년 만인 그의 개인전 작품 앞에 서면, 발길이 오래 머물 수밖에 없다.
08월 03일 AI시대 新직업

문희수 논설위원
한국고용정보원이 최근 발표한 33개 새 직업들이 눈길을 끈다. 한국직업사전 2028년 판에 들어갈 경영·관리 등의 유망 사무직들이다. 빅데이터로 소비 패턴 등을 분석하는 그로스해커, 인공지능(AI) 프로그램 개발과 관련한 데이터라벨러, 3차원 가상현실에 아바타 앱 등을 설계하는 메타버스 크리에이터 등 대부분 4차 산업혁명의 산물이다. 우주산업 등 새 영역이 확장하는 만큼 새 일자리가 줄을 이을 것이다.
얼마 전만 해도 AI와 로봇에 밀려 일자리가 대거 사라질 것이란 공포론이 무성했던 것과 대비된다. 지난 2017년 다보스포럼에서 5년 내 선진국에서 일자리 500만 개가 없어질 것이라고 전망한 이후 비관론이 쏟아졌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17년 기준으로 20년간 아시아 노동자 1억3700만 명이 실직할 것이라고 했고, 2030년까지 20억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란 미래학자도 있었다. 심지어 문재인 정부 때 고용정보원은 불과 8년 뒤엔 전체 근로자의 61.3%가 AI에 직업을 뺏길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물론, 앞으로 상당수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 그렇지만 AI 혁명이 벌어지는 이 시대에 특유한 문제는 전혀 아니다. 18세기 1차 산업혁명은 농업 사회를 제조업 중심 사회로 바꿨다. 당시 사유지를 늘리는 인클로저 운동으로 ‘양이 인간을 잡아먹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토지를 잃은 농민이 몰락할 것이란 위기론이 팽배했다. 그러나 이후 전에 없던 새 일자리가 창출되면서 대중은 비로소 빈곤에서 해방되고 경제적 자립으로 부를 쌓아 중산층으로 발돋움함으로써 풍요로운 대중사회가 열렸다.
사라지는 것만 보고 새로 생기는 것은 보지 못하면 오류를 피할 수 없다. 기술과 산업 발전에 따라 전통적인 직업이 없어지고 새 직업이 생기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라지는 일자리보다 더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 과거가 지나갔기에 현재가 있고, 미래도 있는 것이다. 과거에 집착할 때 기득권 문제가 생긴다. 과거의 유산인 기득권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현재와 미래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인간이 그렇듯이 직업도 세대교체는 역사적 필연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사회가 발전하고 문명이 진화한다. 과연 새로운 일자리에 적응할 수 있느냐가 과제일 뿐이다.
08월 04일 중국의 北核 본심

이도운 논설위원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명확하다. 평화와 안정이 중요하다, 비핵화가 실현돼야 한다,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3원칙이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모호하다. 최근 중국 정부 당국자가 한국 언론인들과 만나 대화하며 궁금증을 일부 해소했다.
첫째, 중국 정부는 진짜 북한 비핵화를 원하는가. 이미 러시아·인도·파키스탄 등 핵보유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 북한이 추가된다고 영향이 없는 것 아닌가. 중국 당국자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북한이 실제로 핵을 사용할 가능성에 대해 의심하고 있으며, 기술적 결함으로 핵 관련 사고가 날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는 것. 둘째, 그렇다면 왜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압력을 넣지 않는 것인가. 중국 당국자는 북한이 중국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했다. 차라리 남북한과 미·중·러·일이 참여했던 6자 회담에서 북한을 밀어붙이는 게 효과적이었다고 했다. 6자 회담 참가국에는 전 세계 1·2·3위의 군사 강국과 경제 대국이 포함됐고, 나머지 두 나라도 10위 안의 경제·군사 강국이기 때문에 충분히 북한을 제압할 수 있었다는 것.
셋째, 그렇다면 6자 회담은 왜 실패했는가. 중국 당국자는 북한 비핵화에는 일치했지만 다른 이해관계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은 남북관계 개선, 미국은 중국 압박, 러시아는 아시아에서 영향력 확대, 일본은 납치범 송환 등 다른 계산에 몰두했다는 것. 넷째, 북한은 곧 7차 핵실험을 할까. 중국 당국자는 두 가지 조건 아래서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하나는 북한이 국제사회의 강화된 제재를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상황. 또 하나는 미·중, 미·러 관계가 더 악화해 핵실험을 강행하더라도 중·러가 방치하는 상황이라는 것.
중국 당국자의 말 또한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다. 다른 당국자는 중국이 핵보유국에 둘러싸여 있는데, 북한이 핵을 가진다고 전략적으로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또, 중국은 북한 정권이 위태할 정도로 압력을 가한 적이 거의 없고, 6자 회담 당시 중국도 미국 견제에 몰두했다. 다만, 북한의 7차 핵실험 조건은 무르익는 것 같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으로 미·중 관계가 더 위태로워졌고, 중국 스스로 핵실험을 재개할 움직임도 보이기 때문이다.
08월 05일(금) 골드버그 대사의 신념

박민 논설위원
필립 골드버그 신임 주한 미국 대사는 대북 강경파다. 그는 지난 4월 열린 미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북한을 불량 정권(rogue regime)으로 규정하면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는 단호하게 견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유엔 조정관 시절 북한의 2차 핵실험에 맞서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1874호 이행을 총괄했다. 그가 한국에 부임한 첫날인 지난달 10일 북한은 방사포로 추정되는 발사체 2발을 쐈다.
그는 연일 한국에 각별한 애정을 표시하고 있다. 지난 3일 대사관 SNS에 올린 인터뷰를 통해 “기술 및 과학 분야에서 한류 문화에 이르기까지, 이런 것들이 우리(미국)가 한국과 전략적 글로벌 동맹을 맺고자 결정하게끔 하는 요소”라고 한국을 치켜세웠다. 신임장 제정 다음 날에는 “오늘부터 1일! 이제 한국 문화의 끝판왕이 될 일만 남았다”고 썼다. 초복에 삼계탕을 먹고 지난 3일에는 박진 외교부 장관과 북한산을 등반했다.
두 이미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그의 메시지가 있다. 성 소수자인 자신에 대해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는 보수 성향 단체들에 보낸 것이다. “미국에서는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역동성을 지키는 데 필수적이라고 믿는다. 설령 표현의 내용이 차별적이고 공격적이더라도 보호받아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혐오 표현에 가장 확실하게 대항하고자 한다면 표현 자체를 억압할 것이 아니라 관용을 증진하자는 목소리를 더욱 장려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오랜 신념이기 때문이다.” 그가 미 국무부 직업 외교관 중 최고위 직급인 ‘경력 대사(Career Ambassador)’에 오른 것도 이처럼 원칙에 철저하되 포용력을 발휘할 수 있는 태도 때문일 것이다.
08월 08일(월) 임윤찬 유튜브 열풍

이미숙 논설위원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는 러시아 낭만주의 음악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다. 러시아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1917년 혁명 후 미국으로 망명, 피아노 협주곡과 교향곡, 오페라, 가곡 등 수많은 곡을 작곡했는데 대부분 작품이 요즘에도 자주 연주된다. 특히, ‘피아노 협주곡 3번’은 뛰어난 기교와 함께 풍부한 서정성을 표현해야 하는 고난도의 곡이어서 피아니스트들이 두려워하는 작품으로 회자된다. ‘피아노의, 피아노에 의한,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이란 별칭이 보여주듯 피아니즘의 궁극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 대한 얘기는 많다. 러시아 저명 피아니스트 다닐 트리포노프(31)는 “강렬한 열정을 표현할 준비가 아직 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20대 때 이 곡 연주를 꺼렸다고 한다. 반면, 미국 피아니스트 게리 그래프먼은 90대에 이르러서야 “두려움 때문에 젊은 시절 이 곡 연주를 피한 게 후회스럽다”고 했다. 이 작품은 영화 ‘샤인(Shine·1996)’으로 더 유명해졌다. 천재 피아니스트가 콩쿠르에서 이 곡 연주 후 쓰러져 정신분열증을 앓는 내용인데 호주의 실존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곳(75) 스토리를 영화로 만든 것이다. 배우 제프리 러시는 헬프곳 역으로 1997년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요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열풍이 불고 있다. 임윤찬(18)이 지난 6월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 열린 밴 클라이번 피아노 콩쿠르에서 이 곡으로 우승하면서부터이다. 이 동영상은 유튜브 조회 수가 500만 회를 넘어섰다. 최근 이코노미스트는 임윤찬이 비범한 연주로 “성숙한 영혼을 지닌 10대임을 입증해줬다”고 평했다. 압권은 3악장인데 정적 속에 느리게 시작해 점점 긴장을 고조시키다 휘몰아치듯 클라이맥스로 향하는 연주가 장쾌하다. 포트워스 오케스트라와의 호흡도 환상적이다. 클라이번은 1958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했는데 우크라이나전쟁 후 이 콩쿠르는 국제음악콩쿠르세계연맹(WFIMC)에서 회원 자격이 박탈됐다. 차이콥스키 콩쿠르가 빛을 잃은 상황에서 1958년 그 대회에서 우승한 밴 클라이번을 기념해 만든 콩쿠르 덕분에 라흐마니노프 음악 열풍이 부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08월 09일 ‘대중민주주의’의 함정

이신우 논설고문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7년 대선에서 530만 표 이상 압승했다. 제6공화국 최대 득표 기록이었다. 하지만 그의 지지율은 순식간에 고꾸라졌다. 미국산 수입 쇠고기로 인한 광우병 공포 때문이었다. ‘뇌 송송 구멍 탁’이라는 문구가 촛불시위를 휩쓸었고 이 대통령은 집권 위기 속에 삼전도의 굴욕을 맛봐야 했다. 하지만 광우병 공포는 조작된 것이었다. 국민의 95%가 광우병에 완전히 노출됐다고 대중은 철석같이 믿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광우병은 괴담에 불과하고 촛불집회는 거짓으로 쌓아 올린 성이었다는 점이 명백해졌다. 집회 참석자들은 하나둘 빠져나갔다.
그러자 촛불집회를 선동했던 언론에서 ‘진짜 원인’은 다른 데 있다는 해명이 등장했다. 그때 대박 난 어휘가 ‘국민과의 소통 부재’였다. 광우병이 아니라 소통 부족 때문이었다며 많은 매체가 합창하기 시작했다. 내로라하는 인텔리겐치아들 칼럼에도 이명박 정부의 소통 부재라는 단어는 단골 메뉴였다. 광우병 사태를 촉발했던 MBC TV의 변검술은 더 놀라웠다. 2008년 5월 MBC 뉴스데스크는 ‘쇠고기 헛소문의 진실은?’에서 이렇게 진단했다. “광우병 괴담이 급속하게 퍼진 이유는 감정에 휩싸인 네티즌 때문이 아니라,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 정부가 불신을 키웠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습니다.”
요즘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 폭락 보도가 매스컴을 장식하고 있다. 30%대를 밑도는 위험 수준이라는 말도 나온다. 물론 현 정부의 정책들에 대해서는 특별히 흠잡을 데가 없다는 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뭘 특별히 잘못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전문적인 분석이 나오지만, 이거다 싶은 것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나마 한 일간지에 실렸던 칼럼 제목 ‘큰 잘못 없지만 국민을 불쾌하게 한다’가 눈길을 끄는 정도다. 전문가 집단에서 똑똑한 사람들끼리만 어울려 지내던 정치인들이 흔히 저지르는 잘못이 있다. 폐쇄 집단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인상·태도·여론 등의 새로운 복병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효율만 추구했다가는 공공성을 무시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되고, 곧바로 반(反)민주라는 낙인이 찍혀버린다. 이렇게 되면 정치인으로서의 생명은 끝장이다. 대중민주주의의 바다를 헤쳐가야 하는 정치인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08월 10일 '노룩’ 악수

이현종 논설위원
정치인의 일상 중 말하는 것 다음으로 많이 하는 행동은 ‘악수’일 것이다. 특히, 선거 때는 손이 퉁퉁 부을 정도로 악수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선거 때만 되면 손 근육이 손상돼 붕대를 감고 다녔다. 당에서 초보 정치인들을 교육할 때 유권자들 눈을 맞추고 두 손으로 힘을 주어 악수해야 효과가 있다고 가르친다.
악수는 두 사람이 나누는 공개적이고 안전한 인사법이다. 수백 년 전 잉글랜드에서 손에 무기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악수를 한 것이 일반적인 유래다. 여성들은 무기를 소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로 남성들 간의 인사에서 악수를 많이 한다. 악수는 이제 세계 공통적인 인사법인데 상대방의 눈을 쳐다보고 아래위로 가볍게 손을 흔드는 것이 일반적인 예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처럼 손을 너무 꽉 잡거나 눈을 쳐다보지 않으면 신뢰하지 않는다는 표시로 불쾌감을 주기도 한다. 얼마 전 국민의힘 배현진 전 최고위원이 이준석 대표와 악수하려고 손을 내밀었다가 이 대표가 뿌리치는 장면이 화제가 된 바 있다. 상대하기 싫다는 표시다.
지난 7일 제주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합동연설회에서 정견 발표를 마친 박용진 후보가 자리에 앉은 이재명 후보에게 악수를 청하자 이 후보가 휴대전화를 보면서 손만 내미는 일명 ‘노룩(no-look) 악수’ 장면이 논란이다. 박 후보가 앞선 연설에서 이 후보의 인천 계양을 출마와 당헌 개정 문제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한 터라 심기가 불편했을 수는 있지만 악수하면서 휴대전화를 본다는 것은 아주 심한 결례다. 박 후보는 “이 후보가 아마 검색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비꼬았다. 이 후보는 정치인 중에도 휴대전화를 유독 많이 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SNS를 많이 하다 보니 평소에도 틈만 나면 휴대전화를 본다. 이준석 대표는 상대방과 대화하면서도 휴대전화만 본다.
‘노룩 악수’의 원조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악수를 할 때 이미 다른 사람을 쳐다본다. 절대 손에 힘을 주지 않고 살짝 잡는다. 악수를 많이 하는 비결이라고 한다. 최근 나토 정상회담 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과 악수하면서 다른 사람을 쳐다보고 있는 장면 때문에 외교 결례 논란도 있었다. 서로 눈도 못 맞추는 정치 현실이 안타깝다.
08월 11일 대통령黨과 대표黨

김세동 논설위원
지난달 26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대정부질문이 진행되는 와중에 윤석열 대통령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던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의 휴대전화가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찍혀 큰 파문을 일으켰다. 윤 대통령이 보낸 “우리 당도 잘하네요”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는 수준 낮은 내용도 문제지만, 권 대행의 “대통령님의 뜻을 잘 받들어 당정이 하나 되는 모습을 보이겠습니다”는 답신도 실망스럽고 충격적이었다. 봉건시대 왕의 신하 같은 시대착오적 인식을 가진 사람이 최고 윤핵관에다 당 대표직과 원내대표를 한 손에 거머쥔 실세였으니 여권이 이 정도 망가진 게 어쩌면 당연한 수순으로 느껴졌다.
역대 정부를 보면 대통령에게 다소 어려운 사람이 여당 대표였을 때 당과 대통령·청와대가 상대적으로 건강한 긴장 상태를 유지했고, 만만한 사람이 대표가 됐을 때 여당은 대통령의 졸개 노릇을 하며 함께 망하는 길로 갔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서가 새누리당 대표가 됐을 때 “여당과 청와대가 폭망하겠구나” 하는 우려를 지인들과 나눴던 적이 있다. 박 대통령의 오만도 오만이지만, ‘청와대 홍보수석 당 대표’를 받아들이는 국회의원과 당원들의 수준이면 건전한 당내 비판이 설 자리가 없어 정권이 폭주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여당이 대통령의 뜻을 잘 받들어 정부 및 대통령실과 한 몸이 되면 정말 위험해진다. 전국에 지역구를 둔 의원·당협위원장들을 통해 생생한 국민 여론을 듣는 당은 다음 선거를 위해서라도 대통령에게 일방적으로 휘둘리지 말고 건강한 비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취임 석 달도 안 돼 20%대로 떨어진 건 오롯이 본인 탓이다. 검찰 후배들과 동문·지인 중심으로 대통령실과 내각을 꾸린 인사 참사에 더해, 기자들 앞에서 “전 정권 장관 중 이렇게 훌륭한 사람 봤어요?”라고 시비조의 어깃장을 놓고, 부인 김건희 여사에 얽힌 의혹이 연이어 터져도 당에서조차 제대로 된 문제 제기가 없이 ‘윤비어천가’만 부르다 이 지경까지 왔다. 대통령과 여당이 상대적 자율성 없이 지배·종속 관계로 가면 제대로 된 민주정치 실현이 어렵다. ‘이재명 대표와 강성 친명계 최고위원들’로 도배될 더불어민주당도 스스로에게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08월 12일(금) 이봉조 ‘안개

김종호 논설고문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김승옥이 1964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무진기행(霧津紀行)’의 표현이다. 이 소설을 김수용 감독은 1967년 ‘한국 최초의 모더니즘 영화’로 평가되는 ‘안개’로 만들었다. 그 영화의 주제가가 ‘나 홀로 걸어가는 안개만이 자욱한 이 거리’하고 시작하는, 정훈희 데뷔곡 ‘안개’다. 1970년대에 송창식은 리메이크해 불러 앨범에 담았고, 윤형주와 듀엣으로도 불렀다. 제75회 프랑스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박찬욱이 수상작 ‘헤어질 결심’을 구상하는 모티브가 된 것도 그 노래였다. “울컥했다. 가슴이 먹먹했다”며 두 번 이상 보는 사람도 적지 않은 ‘헤어질 결심’에는 정훈희가 젊은 시절에 녹음한 노래가 나온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이어지면서 흐르는, 정훈희·송창식 듀엣의 ‘안개’는 감동을 극대화한다.
‘안개’ 작곡은 한국 가요에 재즈를 입혀 국제 수준으로 끌어올리며 수많은 명곡을 남긴 이봉조(1932∼1987)가 했다. 당대 최고 색소폰 연주자였던 그는 미국의 전설적 알토 색소포니스트 또는 테너 색소포니스트에 비유돼 ‘한국의 찰리 파커(1920∼1955)’ ‘한국의 스탠 게츠(1927∼1991)’ 등으로도 불렸다. 그의 음악 재능을 가장 먼저 발견한 인물은 경남 진주고 재학 당시 음악 교사였던 이재호다. 그 후에 ‘나그네 설움’ ‘단장의 미아리고개’ ‘번지 없는 주막’ 등을 작곡한 이재호 권유로, 이봉조는 학교 밴드부에 들어가 색소폰을 배웠다. 한양대 건축학과 재학 중에 미(美)8군 무대에서도 색소폰을 불기 시작한 그는 1958년 대학 졸업 후 취직한 서울시청 공무원을 1961년 그만두고 본격적 직업 음악인으로 나섰다.
그가 남긴 불후의 명곡이 많다. 현미가 부른 ‘나의 별’ ‘떠날 때는 말 없이’, 김추자의 ‘무인도’, 최희준의 ‘맨발의 청춘’, 정훈희의 ‘꽃밭에서’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이종택 작사로, 이봉조가 작곡해 직접 불러서 발표한 노래 ‘하늘을 보소’도 있다. ‘잘난 체하지 말고/ 뽐내지 마소/ 못 본 체하지 말고/ 잘 봐 주소/ 세상은 도는데/ 밤이 가면 아침이 오는데’ 하며, 걸걸한 목소리로 부른 그 노래도 더 듣고 싶어지는 때다. 그의 환상적인 색소폰 연주와 함께.
08월 16일(화) 공보 vs 홍보

이도운 논설위원
대통령실에 언론을 담당하는 공보수석비서관이 처음 임명된 것은 1965년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경북대·성균관대 교수, 경향신문 등 논설위원을 역임한 신범식을 초대 공보수석 겸 대변인으로 발탁했다. 이후 35명의 언론 담당 수석이 임명됐다. 박정희는 2대 공보수석에는 군 출신 강상욱을 임명하기도 했지만, 이후 윤주영·김성진·임방현 등 신문·통신사 출신 언론인을 다시 발탁했다.
전두환 대통령 역시 신문기자 출신 이웅희·황선필·정구호·이종률·최재욱 5명을 공보수석으로 임명했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공보수석이 국회에 진출하거나 방송사·공공기관 사장으로 옮기는 것이 패턴화됐다.
공보수석은 격무 탓에 평균 임기가 1년 남짓이었다. 그런데,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는 이수정·김학준 두 수석이 5년 임기를 나눠 맡았다. 유능한 신문기자였던 두 사람은 공보수석으로서도 탁월했다. 그러나 이 수석은 과로 탓에 건강이 악화하면서 6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김영삼 대통령도 이경재·주돈식·윤여준 등 신문기자 출신을 공보수석으로 발탁했다.
‘공보수석=신문기자 출신’이라는 등식에 변화가 온 것은 김대중 대통령 시절이다. 4명의 공보수석 가운데 박지원·박선숙 두 사람이 정치인 출신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언론을 대상으로 하는 공보보다 국민을 상대로 하는 홍보를 우선시했다. 그래서 공보수석 대신 홍보수석을 임명했고, 대변인을 별도로 뒀다. 홍보수석에는 처음으로 방송사 출신 이해성을 임명했다. 이후 홍보수석+대변인 체제가 청와대에 자리 잡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홍보수석 5명 모두 방송기자 출신을 임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홍보수석을 국민소통수석으로 이름을 바꿨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맞춘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강조했고, 첫 수석도 인터넷 포털에서 일했던 윤영찬을 발탁했다.
임기 초 지지율 하락으로 위기를 맞은 윤석열 대통령 비서실의 인적 쇄신이 논의되면서 홍보수석과 공보수석 분리 아이디어가 제시됐다고 한다. 디지털 시대 각종 미디어 범람으로 단일 수석 체제로 대언론·대국민 소통을 감당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2수석 체제로의 변환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뜻을 정확히 읽고 대응하는 태도일 것이다.
08월 17일 ‘희토류 보물섬’ 그린란드

문희수 논설위원
만년 동토(凍土)로 여겨지던 그린란드(Greenland)가 자원의 보고로 재조명받고 있다. 세계적으로 귀한 희토류만 6억t이나 묻혀 있기 때문이다. 금액으로는 10조 달러가 넘고, 전기차 수십억 대를 만들 수 있는 막대한 규모다. 석유·천연가스와 금·철·구리·우라늄·텅스텐 등도 엄청나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인공지능(AI) 광물탐사 기업과 영국 광산기업이 지하자원 개발을 위한 탐사를 하고 있다는 보도다. 내년 여름부터 본격 채굴에 나설 예정이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의장,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 등 억만장자들이 거액을 투자해 보물찾기에 뛰어들었다.
그린란드는 북미 북동부 대서양과 북극해 사이에 있는 한반도 10배 크기의 세계 최대 섬이다. 덴마크 자치령이다. 미국은 1946년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이 1억 달러에 사려고 했다가 실패했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2019년 구매를 시도했었다고 한다. 지금의 이름이 붙여진 10세기엔 따뜻해 푸른 초원도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전체 면적의 85%가 얼음으로 덮여 있다. 10여 년 전부터 기후 변화로 만년설과 빙하가 녹아 땅이 드러났고, 배가 다닐 수 있게 되면서 보물섬으로 재탄생했다.
우리로선 부러울 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국내에도 희토류 매장량이 엄청나다. 한국광해광업공단에 따르면 강원도에 집중된 희토류 매장량은 총 2597만t(확정·추정치 합산, 2020년 기준)이나 된다. 경제적으로 채광이 가능한 가채광량도 2018만t에 달해 정광 비율과 내수(4200t)를 고려할 때 100년 이상 쓸 수 있다는 분석이다. 세계 1위 중국(4400만t)엔 못 미치지만, 2∼3위인 브라질·베트남(각각 2200만t)에 버금간다. 실제 사용까진 정확한 위치 파악, 채산성, 환경오염 등 변수가 많지만 깜짝 놀랄 일이다.
이런 통계가 빛을 못 보고 묵혀 있는 이유가 아리송하다. 과장해선 안 될 일이지만, 문재인 정부 때의 자원개발 적폐 몰이가 입을 닫게 만들었다면 심각한 문제다. 정밀 조사하면 추가 매장량과 다양한 광물을 더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산하 기관의 기본 통계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외국도 아닌 이 땅에 무슨 자원이 얼마나 있는지 몰라 쓰지 못한다면 말이 아니다.
08월 18일 캐나다 상원의원 김연아

박민 논설위원
지난 16일부터 ‘제8차 세계한인정치인포럼’을 개최하고 있는 세계한인정치인협의회 연아 마틴 회장은 캐나다 최초의 한국계 연방 상원의원이다. 본명이 김연아인 그는 7세 때 부모를 따라 캐나다로 건너갔다. 영어를 한마디도 못해 입학 첫날부터 친구들의 놀림감이 됐지만 결국 이민 36년만인 2008년 연방 상원의원에 오른다.
연아 마틴 의원이 자신의 삶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꼽은 단어는 의외로 ‘serendipity(뜻밖의 기쁨)’이다. 그는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엔지니어 관련 학과에 진학했지만 학점이 너무 낮아 유급 위기에 처했다. 다행히 교육학과는 학점에 상관없이 학생들을 받아줬고 전과를 한 그는 자신의 적성을 발견해 중·고등학교 교사가 됐다. 결혼도 마찬가지였다. 2 대 2 미팅을 하기로 했던 파트너가 다른 데이트에 가버려 대타로 나온 사람이 지금 남편이라고 한다. 원래 데이트 상대가 아니니 편하게 대했는데 그런 소탈한 모습에 상대가 반해버렸다는 것. 그래서 그는 ‘살면서 안 되는 일이 있으면 다른 게 되려고 그러는 거니 실망하지 마라. 열린 마음으로 다음 기회를 잡으면 성공의 길이 열리게 된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가 상원의원이 된 것도 하원의원 낙선 때문이었다. 그는 교사 재직 중 하나뿐인 딸이 “나는 왜 엄마와 살결이 달라”라고 묻는 등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것을 보고 한인 1.5세대와 2세대가 주축이 된 C3(Corean Canadian Coactive Society)를 결성해 사회운동에 뛰어들었다. 이를 계기로 한인 밀집지역에서 보수당 후보로 하원의원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그런데 다음 해 스티븐 하퍼 당시 총리가 임명직인 상원의원을 제안했다. 그가 여성이고 출마 지역이 정치적 소외지역이며 연방 의회에 한국계 캐나다인이 없다는 점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자신의 노력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한계가 오히려 상원의원에 오른 이유가 된 것이다.
꾸준히 한국을 방문한 연아 마틴 회장은 한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치를 왜 하느냐’는 질문에 “우리 때문에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더욱 자유로워진다면 그것이 바로 성공이다”는 시인 랠프 월도 에머슨의 시구를 인용해 답했다. 최근 당 내부 권력투쟁에 매몰돼 국가적 위기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는 여야 정치인들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08월 19일(금) ‘디 엘더스’ 반기문의 소신

이미숙 논설위원
디 엘더스(The Elders)는 인종차별을 인종화합으로 승화시킨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지도자 넬슨 만델라(1918∼2013)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만들어진 비정부기구다. 만델라의 89회 생일을 기념해 2007년 케이프타운에 모인 세계의 전·현직 지도자들은 세계평화를 위한 만델라 리더십 실천을 목표로 디 엘더스를 설립했고, 재정 후원은 영국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 회장이 맡았다. 당시 만델라는 창립 연설에서 “디 엘더스는 공포가 있는 곳에 용기를, 갈등이 있는 곳에 타협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불어넣는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창립 멤버는 만델라와 그의 부인 그라사 마셸 그리고 반(反)아파르트헤이트 투쟁 동지인 데즈먼드 투투 대주교, 코피 아난 제7대 유엔 사무총장,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등이다.
이후 전직 정부 수반 및 노벨평화상 수상자, 세계 평화에 기여한 글로벌리더들이 참여하면서 디 엘더스는 명실상부한 국제 원로그룹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정회원은 15명으로 의장은 메리 로빈슨 전 아일랜드 대통령, 부의장은 반기문 제8대 유엔 사무총장, 명예의장은 카터 전 대통령이 맡고 있다. 디 엘더스는 기후변화와 난민 문제 해결, 분쟁 조정, 보건의료 문제 등에 집중해 제언을 해왔다. 특히 카터 전 대통령은 디 엘더스 일원으로 지난 2011년 방북, 북핵의 평화적 해결을 호소한 바 있다.
반 전 총장이 디 엘더스를 대표해 16일 우크라이나를 방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연대감을 표시하기 위해 키이우에 왔다”고 했다. 인종학살 현장인 부차에선 “무고하게 숨진 모든 이들은 인류 역사에 깊이 기억되고 추모돼야 한다”며 “러시아의 반인도적 범죄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유엔 사무총장 재직 시절 분쟁지역 방문 때마다 입었던 갈색 사파리 차림에선 유엔의 이름으로 러시아를 단죄하겠다는 결연함이 묻어난다. 함께 간 후안 마누엘 산토스 전 콜롬비아 대통령도 “평화와 자유를 되찾으려 노력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을 지지한다”고 했다. 침공을 자행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자신만만하게 큰소리를 치고, 세계가 그의 눈치를 보는 상황에서 ‘핵 가진 골리앗’과 싸우는 ‘다윗’이 용기를 갖도록 격려해준 반 전 총장의 소신 행보는 오래 기억될 것이다.
08월 22일(월) ‘여의도 2시’ 청년

이현종 논설위원
같은 30대 청년인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 장예찬 청년재단 이사장이 ‘여의도 2시 청년’ 공방을 벌여 화제다. 발단은 이 전 대표가 18일 인터뷰에서 “정당이 청년 문제를 다룬다고 해 놓고 매번 자기 편의주의적으로 간담회를 보통 오후 2시에 잡는다”면서 “평일 2시에 여의도에 올 수 있는 청년이 일반적인 대한민국 청년이냐”고 꼬집었다. 기성 정당들이 직업이 없어 평일 오후 행사에 참석할 수 있는 청년들만 모아놓고 청년 정치 운운하는 것을 비판한 것이다.
그러자 장 이사장은 “본업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이 전 대표 편에 서 있는 청년들이 ‘여의도 2시 청년’ 그 자체”라고 직격 했다. 이 전 대표가 주도한 ‘나는 국대다’ 출신 대변인들과 이 전 대표 핵심 측근으로 청년 최고위원을 지낸 김용태 씨가 국회의원 출마할 때 부모 재산을 합해 재산 20억 원을 신고한 것을 빗댄 것이다. 장 이사장은 “정치 말고는 사회생활해 본 적 없는, 돈 벌어서 세금 한 푼 내본 적 없는 일군의 청년정치인들이 바로 ‘여의도 2시 청년’”이라고 했다.
형·아우 사이로 불릴 정도로 가까웠던 두 사람 관계가 틀어진 것은 최근 이 전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을 ‘개고기’ 운운하며 공격하자 장 이사장이 “국민의힘에는 이 전 대표와 친이준석계 청년들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며 “팬덤을 무기 삼아 내가 이 정부를 실패시킬 거야, 그래야 내 말 들어야 한다는 어조로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두 사람 논쟁은 친이준석계 청년들이 가세하면서 확전 양상이다.
지금 정치권의 주류인 586세대가 정치권에 입문할 때도 비슷한 논란이 일었다. 학생 운동하다 소위 ‘젊은 피 수혈’이라는 이유로 정치권에 들어와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을 때 그들이 과연 청년 세대를 대표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자신의 손으로 돈 한번 벌어보지 못하고 세금도 내지 않았으면서 국회의원이 된 뒤 현실과 맞지 않는 이념 우선의 정치를 하면서 그 폐해가 드러났다. 이준석으로 대표되는 지금의 청년 정치도 자칫 화려한 언변으로 상대방 공격 잘하고, SNS만 잘 이용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닌지 우려가 크다. 특히 아무리 30대라고 하지만 자기반성 하나 없이 대통령과 자신이 몸담은 당에 침을 뱉는 행태는 청년 정치의 이미지만 흐릴 뿐이다.
08월 23일 문재인과 김정은의 착각

이신우 논설고문
북한 사회에 코로나가 번진 것은 남한 탓일까? 북한 지도부는 그렇게 보는 듯하다. 남쪽에서 온 전단지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검출됐다는 주장을 하는 데서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선지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얼마 전 공개 석상에서 “(남조선에) 강력한 대응을 해야 한다”며 “우리는 비루스는 물론 남조선 당국 것들도 박멸해버리는 것으로 대답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에 앞서 지난 7월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윤석열 정권과 그의 군대는 전멸될 것”이라고 했다. 조폭식 공갈들이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뜻밖의 공통점이 발견된다. ‘남조선 당국 것들’이나 ‘윤석열 정권과 그의 군대’라는 어휘다. 협박의 강도를 끌어올리려고 동원한 단어들이나 왠지 주소를 잘못 찾은 듯하다.
왜 그럴까. 정작 남한 사회의 실권력자인 국민을 빼놓고 있기 때문이다. 북측에 알려줄 것이 있다. 남한 국민은 남조선 당국이나, 그 대표인 윤석열 대통령과 죽고 못 사는 관계가 아니다. 윤 정권에 미안한 이야기지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그들은 5년짜리 계약직에 불과하다. 3대를 이어가며 신처럼 떠받들어지는 존재가 아니다. ‘윤석열 정권과 그의 군대’라고 했는데 그의 군대도 아니다. 국민의 군대다. 윤 대통령은 그저 바지 사령관이다. 하긴 이런 것 가르쳐 주면 안 되는데.
오판에 관해서는 남측이라고 다를 바 없다. 지난 문재인 정권은 집권 내내 김정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썼다. 온갖 정성을 다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2019년 남한으로 넘어온 북한 어민을 판문점을 통해 강제 북송한 케이스다. 문 정부는 이를 기회 삼아 김정은을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초대하는 친서를 보냈다. 다음 해에는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북한군에 사살됐음에도 월북 사건이라며 책임도 묻지 않았다. 하지만 북한 권력자에게 인민의 생명은 어차피 일고의 가치도 없다. 국제 비영리단체인 워크프리재단(WFF)에 따르면 ‘세계노예지수’에서 북한은 인구 10명 중 1명에 해당하는 264만 명 이상이 강제노동·인신매매 등 현대판 노예로 살고 있다. 이들이 아니더라도 인민 모두가 노예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 정부의 잔혹한 인신 공양이 아첨 효과를 거두지 못한 진짜 이유다. 남북 모두 서로를 착각하고 있다.
08월 24일 高비용 전기차

문희수 논설위원
전기차가 대세라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신경 써야 할 요인이 수두룩하다. 최근 주의점과 단점을 지적하는 언론 보도도 늘어나는 추세다. 보급이 늘면서 불만의 소리도 커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특히,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타이어도 ‘전기차 전용’을 써야 좋다고 한다. 내연기관차에 비해 차 중량이 무겁고 가속이 빨라 일반 타이어를 쓰면 금세 닳아 1년 안에 바꿔야 한다. 그렇지만 전용 타이어는 가격이 20∼30% 정도 비싼 반면, 수명은 2∼3년 정도로 일반 타이어(4∼5년)보다 짧다.
높은 차 값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한 조사에 따르면 전기차 신차 평균가는 6만6000달러(8600만 원 상당)로 내연기관차(4만6000달러)보다 2000만 원 이상 높다. 전체 가격의 30∼40%인 배터리 값이 비싼 탓이다. 업계에서 가격을 낮추지 않으면 시장이 붕괴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올 정도다. 이런 부담 탓에 국토교통부는 최근 배터리 값을 빼고 전기차를 살 수 있는 ‘배터리 구독제’ 방안까지 내놨다. 차 주인이 매월 일정액을 배터리를 소유한 리스업체에 내고 빌려 쓰게 하는 방식으로 초기 비용을 줄여 보려는 궁여지책이다.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
이 외에도 주의사항이 많다. 국내 도로의 과속방지턱이 세계에서 가장 많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서울에만 3만 개를 훨씬 넘는다. 과속방지턱은 안전을 위한 것이지만, 차량 바닥에 설치되는 배터리 특성상 충돌 우려를 배제할 수 없다. 시속 30㎞ 이하로 주행하는 지점에 높이 10㎝ 이하로 설치하게 돼 있지만, 지방도로·지하 주차장·사유지 등 기준을 안 지키는 사례가 허다하다. 전기차가 폭우에 취약하고, 한 번 수리할 때 비용이 엄청나다는 것도 부담이다.
이래저래 돈이 너무 많이 든다. ‘규모의 경제’ 원칙에 따라 생산·보급이 늘면 비용도 줄겠지만 아직은 멀었다. 예상치 못했던 글로벌 공급망 균열 여파도 크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보조금 없이는 대중화가 어렵다. 충전소 확대·전력 공급 확충 등 필수 인프라도 못 따라온다. 내연기관차 중심인 차량 정비업계의 대비 역시 덜 됐다. 전기차 시대를 안착시키려면 적어도 배터리 값이 떨어질 때까지는 보급 기간을 더 늘려 잡고 외국 업체에 봉이 된 보조금 정책도 개편하는 등 종전 계획을 현실화하는 게 좋겠다.
08월 25일 록 밴드 송골매

김종호 논설고문
‘세상 모든 일이 되다가도 안 되는 것/ 슬퍼하다 웃다가 하늘 보면 둥근 해/ 이 한세상 산다는 거 생각하기 달렸는데/ 무얼 그리 안타깝게 고개 숙여 앉아 있소’. 배철수(69·기타와 보컬)가 이끌던 록 밴드 송골매가 1979년 제1집 앨범에 담았던 이응수 작사, 지덕엽 작곡의 명곡 ‘세상만사’ 첫 부분이다. 이응수 작사, 라원주 작곡의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등 9곡인 그 음반은 당시 크게 주목받진 못했다. 4인조 송골매는 1981년 구창모(68·리드보컬)를 영입해 6인조로 재편하면서 내놓은 제2집에 그 두 곡도 재수록한 뒤로 폭발적인 관심을 모았다. 2집에는 불후의 명곡인 구창모 작사·작곡 ‘어쩌다 마주친 그대’도 담겼다. ‘피어나는 꽃처럼 아름다운 그녀가/ 내 마음을 빼앗아 버렸네/ 이슬처럼 영롱한 그대 고운 두 눈이/ 내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네’ 하는.
배철수는 김종태 작사, 지덕엽 작곡의 ‘탈춤’으로 1978년 제2회 MBC 대학가요제에서 은상을 받은 한국항공대 밴드 활주로 출신이다. 송골매는 활주로가 일부 멤버의 학업 전념을 위한 탈퇴로 재정비하면서 바꾼 이름이다. 송골매의 또 다른 주역 구창모는 고상록 작사·작곡의 ‘구름과 나’로 1978년 제1회 TBC 해변가요제에서 우수상을 받은 홍익대 밴드 블랙테트라 출신이다. 산울림과 함께 1970∼1980년대 대학가 밴드 음악의 양대 산맥이던 송골매의 인기는 김응천 감독의 1982년 영화 ‘갈채’에 출연하게 했다. 김 감독은 김정선 작사, 김수철 작곡의 송골매 노래 ‘모두 다 사랑하리’를 계기로, 1983년 영화 ‘송골매 모두 다 사랑하리’의 주연으로 송골매 멤버들을 기용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구창모는 1984년 솔로 가수로 독립했다. 그가 떠난 송골매도 배철수 작사·작곡의 명곡 ‘모여라’ 등이 담긴 1990년 제9집 앨범을 마지막으로 사실상 해체했다. 배철수와 구창모가 일시적으로 재결합한 송골매의 전국 순회 콘서트 ‘열망(熱望)’이 오는 9월 11∼12일 서울 올림픽공원 KSPO돔 무대에서 시작돼, 부산·대구·광주·인천 등지로 이어진다. 내년 3월 미국 로스앤젤레스·뉴욕·애틀랜타 공연도 가질 예정이라고 한다. 현재 청춘이든, 추억 속의 청춘이든 심장을 두드리는 송골매의 노래와 연주에 전율을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08월 26일(금) 특별검사의 정치화

이도운 논설위원
특별검사는 공직자 등 중대 비리 혐의에 대해 검찰 대신 독자적 권한을 갖고 수사하는 기구 또는 담당 검사를 말한다. 국회 입법·대통령 임명 등을 통해 구성되는데, 영어로 특별검사(Special prosecutor)와 함께 독립 법률가(Independent counsel)라고 표기하는 데서 보듯 정치적 독립성이 중요하다. 특검은 미국에서 유래됐다. 1868년 당선된 율리시스 그랜트 대통령이 개인 비서의 탈세 혐의 수사를 위해 처음 임명한 이후 20번의 특검이 있었다. 1974년에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특검 수사 중 사임했다.
미국은 1978년 정부윤리법을 통해 법원이 지명하는 특검 제도를 공식화했지만, 입법·행정·사법부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특검의 삼권분립 위반, 예산 낭비 논란이 일면서 1999년 법무부 조직으로 흡수됐다. 2016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와 러시아 정부가 공모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특검이 부활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미국이 특검을 폐지했던 1999년 5월에 여야 합의 입법을 통해 첫 특검이 실행됐다. 김대중 정부 인사들의 이른바 옷 로비 사건 및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건 특검이었다. 이후 12차례 특검이 이뤄졌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대북 송금·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 주가 조작 의혹 등의 특검이 실시됐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이 대통령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사건 특검이 있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에는 별도 입법이 필요 없는 상설특검법이 제정됐다. 그러나 상설특검 수사는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세월호 참사 의혹 사건 특검이 유일했다. 박 정부 당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도 입법으로 특검이 구성됐고, 윤석열 대통령이 당시 수사팀장이었다. 문 정부 들어서는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 특검이 실시됐는데, 별다른 기대를 걸지 않았던 허익범 특검이 뚝심 있는 수사로 권력 실세라는 김경수 경남지사를 구속하는 성과를 거뒀다.
윤 정부 임기 100여 일 만에 더불어민주당이 김건희 여사 의혹 특검을 들고나왔다. 기존 특검과 비교하면 혐의가 불분명해 정치 공세 성격이 강하다. 선거 때 약속했던 대장동 특검은 사라졌다. 윤 대통령이 새 정부 첫 특검으로 본인의 배우자 특검법에 서명할 리도 만무하다. 특검도 지나치게 정치화하고 있다.
08월 29일(월) 獨언론인 테오 좀머
이미숙 논설위원
시간이란 뜻을 가진 ‘디 차이트’는 1946년 창간된 독일의 중도·사회민주주의 성향 주간 신문이다. 주간으로 발행되지만 매거진 대신 신문(newspaper)으로 불리는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와 닮은꼴이다. 1843년 창간된 이코노미스트는 영어로 발행되는 덕분에 글로벌 정론지로 자리 잡았고, 프린트 버전 기준 발행 부수는 90만 부를 웃돈다. 디 차이트는 독일어 신문이라는 점에서 글로벌 접근성은 떨어지지만, 매주 50만 부가 발행될 정도로 유럽의 지식사회에서 막강한 파워를 갖고 있다.
지난 22일 92세를 일기로 타계한 디 차이트의 원로 저널리스트 테오 좀머 추모 열기가 뜨겁다. 독일 언론들은 좀머가 19세 때인 1949년 지역신문 렘스 차이퉁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는 점을 들어 “서독(1949∼1990)과 함께 출발한 언론인”으로 부르고 있다. 그는 1958년 디 차이트에 합류한 뒤 유럽의 외교·안보에 관해 기사를 쓰며 외교장관 한스디트리히 겐셔, 총리 헬무트 슈미트 등과 교류해 “전후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저널리스트”로 통했다. 좀머는 디 차이트에서 기자·편집장(1973∼1992)·공동발행인(1993∼2000)을 거쳐 대기자로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논평을 썼다. 총 64년을 디 차이트에서 보내 좀머 스스로 “디 차이트가 내 인생”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좀머는 독일과 닮은 분단국 한국에 대한 애정도 깊어 한·독포럼 초대 공동의장(2002∼2008)을 지냈다. 이명박 정부는 독일 통일 경험을 한국에 전해준 그의 공로를 기려 2008년 수교훈장 숭례장을 수여했다. 그와 오래 교류해온 손선홍 전 외교부 본부 대사는 SNS에 “좀머는 1960년대 초 첫 방문 이후 50여 차례 한국을 찾았을 정도로 한반도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분”이라고 회고했다. 좀머 타계 후 디 차이트는 성명에서 “비범한 판단력과 열정으로 디 차이트를 자유롭고 논쟁적인 신문으로 키운 위대한 저널리스트”라고 추모했다. 좀머는 한 인터뷰에서 “독일 통일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처럼 한반도에서도 그러할 것”이라고 했다. 또, 통일을 위해선 역사적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정치인들의 기민함과 주변국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뛰어난 외교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말만 앞세우는 통일론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08월 30일 겸손한 차범근
박민 논설위원
차범근은 1980년대 한국은 물론 세계 축구계의 레전드였다. 24세에 국가대표팀 100경기 출장기록을 세웠고 최다득점(58골) 기록을 갖고 있다.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해서는 레버쿠젠의 유럽축구연맹(UEFA)컵 최초 우승의 1등 공신이었고, 역대 외국인 선수 최다골 기록(98골)을 10년간 보유했다. 프랑크푸르트 홈경기장은 차범근 선수 한 명을 위해 한글이 표기되는 전광판을 설치했는데 세계 축구 리그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었다. 박지성 선수가 활약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 감독 알렉스 퍼거슨은 애버딘 감독을 맡았을 당시 “차붐(차범근의 애칭)을 막을 수 없다. 그는 해결할 수 없는 존재였다”고 한탄했다. 포르투갈의 축구 스타 루이스 피구는 “차붐은 나의 축구 인생에서 가장 큰 영웅”이라고 평가했다.
차범근은 스포츠맨십으로도 존경을 받았다. 분데스리가 135경기 동안 퇴장은 없었고 경고도 단 1차례만 받았다. 반면, 차범근은 상대 팀의 거친 반칙으로 선수 생명을 위협받을 정도의 부상을 입기도 했다. 1980∼1981시즌 프랑크푸르트 선수로 뛸 당시 레버쿠젠의 수비수 겔스도프가 등 뒤에서 고의성 짙은 육탄 공격을 해 척추에 금이 갔다. 흥분한 프랑크푸르트 팬들이 레버쿠젠까지 가서 겔스도프에게 살해 위협을 가하는 소동이 벌어졌고, 구단은 겔스도프에 대한 고소를 추진했다. 그러나 차범근은 고소에 동의하지 않았고 감동한 시민들이 보낸 꽃이 병실에 산더미처럼 쌓였다.
차범근은 겸손한 사람이다. 인터뷰나 축구해설을 할 때 화려한 과거 이야기를 두 문장 이상 하는 일이 없다. 독일의 축구영웅 프란츠 베켄바워가 아들의 스코틀랜드 리그 활동을 위해 추천서를 부탁한 친구가 차범근이라는 얘기는 은퇴 이후 세계 축구계에서 차지하는 차범근의 비중을 보여준다. 그러나 차범근은 고향인 경기 화성시가 서부로 일부 구간을 ‘차범근로’로 명명하는 것을 끝내 고사했다. 지난 24일 ‘FIFA 월드컵 트로피 투어’에 참석한 차범근은 ‘한국 축구사에서 손흥민, 박지성, 차범근 중 누가 최고냐’는 질문에 “손흥민과 비교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영광이다”고 답했다. 비난을 넘어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도 한사코 국민과 당을 대표하겠다는 정치인들에게서는 발견하기 힘든 덕목들이다.
08월 31일(수) 오래된 몰염치 ‘알박기’
김세동 논설위원
부동산계 용어였던 알박기가 노무현 정부 이래 정치권 용어로 일반화했다. 임기 종료를 앞둔 대통령이 당선인과 상의 없이 자신과 코드가 맞는 인사를 고위공직자로 임명해 버리는 염치없는 관행이 노 대통령 때부터 5년 단위의 연중행사가 됐고, 한국 정치의 또 다른 구태로 자리 잡았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따른 조기 대선에 당선이 유력시되던 상황에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마사회장, 중소기업은행장 등 9명의 공기업 기관장 임명에 거칠게 반발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 직전에 대대적인 알박기 인사를 단행해 ‘내로남불 정권’의 오명을 이어갔다. 국민의힘에 따르면, 350개 공공기관 중 약 70%가 윤석열 대통령과 1년 이상 함께 일해야 한다. 공기업 36곳 중 30곳 기관장 임기가 1년 이상 남았고, 절반이 2년 이상 남았다.
알박기는 단순하겐 측근들에게 고액 연봉 일자리 챙겨주기이지만, 대선 불복이자 신정권 타도 투쟁으로 볼 수 있다. 정권교체기마다 반복되는 볼썽사나운 알박기는 상식과 양식의 문제인데, 대법관·헌법재판관이나 감사위원 같은 독립적인 헌법기관의 직책은 퇴임을 앞둔 대통령이 당선인과 상의해 임명하는 게 옳고, 정무적이거나 비전문적인 공공기관장들의 인사는 가급적 자제하는 게 맞는다. 퇴임 1∼2년 전에 임명됐더라도 새 대통령 임기 시작을 전후해 물러나는 게 ‘상도의’에 부합한다.
지금은 ‘플럼 북’(Plum Book)을 통해 임기가 보장되지 않는 대통령의 정치적 임명직을 제도화한 미국이지만, 건국 초기에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의 엽기적인 알박기가 있었다. 연방대법원이 위헌법률심판권을 갖는 시초가 된 ‘마버리 대 매디슨’ 사건의 계기인데, 연방파인 애덤스 대통령이 임기 종료 하루 전인 1801년 3월 2일 법원조직법을 통과시켜 연방판사의 수를 늘리고 워싱턴DC 구역의 연방법원 판사 42명을 모두 연방파 사람들로 임명했다. 하루 뒤 애덤스가 임명장에 서명했지만, 그다음 날 취임한 공화파인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은 임명장 전달 금지를 명령했고, 새로 임명된 판사 중의 한 명인 마버리와 다른 세 명은 임명장을 교부해 달라고 소송을 냈다. 하지만 연방대법원은 헌법에 위배되는 법률은 무효라고 판결하고 청구를 기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