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主國防 2022-08/
08-01(월) 김정은 답방에 왜 목맸을까, 실마리는 ‘6·15 공동선언’에서 시작된다
역대 진보 정부, 2000년 6·15 선언 이후 北 최고지도자 답방에 집착
2019년 미·북 정상회담 타결 시 서울광장 대규모 통일 축제도 기획
답방 최종 목표는 종전 선언과 유엔사 해체…남북관계 장애물로 인식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前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2000년 6·15 공동선언 마지막 문장은 역대 진보 정부의 족쇄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도록 정중히 초청하였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는 내용이다. 김대중(DJ) 정부는 김정일 답방에 총력을 기울였으나 대북 송금 특검으로 동력을 상실했다.
이후 노무현, 문재인 정부도 평양의 최고지도자 답방에 올인(all-in)했다. ‘적절한 시기’를 만들려고 국정원의 자칭 지북통(知北通)은 혈안이 되었다. ‘답방 성사라는 대북 미션이 정보기관의 존재 의의인가’라는 자조적인 한탄이 국정원 내부에서 나올 정도였다. 공개적인 논의가 어려우니 정보기관이 물밑에서 끈질기게 평양 통전부 라인에 구애하였다. 북 어민 강제 북송,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살 사건도 결국은 김정은 답방을 위해 평양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은 무조건 금기로 여겨 벌어진 일로 볼 수 있다. 올 마음이 없는 사람을 억지로 오게 하는 과정은 남북관계를 갑을 관계로 전락시켰다. 왜 지난 정부는 온갖 무리수를 두며 평양 지도자의 답방을 성사시키려고 했을까?

▲/그래픽=이철원
첫째, 대북 불신을 해소하는 도깨비 방망이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북한 지도자가 약속을 지킨다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서울 답방’만 한 것이 없다는 판단이었다. 민족 공조라는 키워드를 우리 국민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서는 서울과 부산 혹은 평화의 섬 제주 등지에 북한 최고지도자가 깜짝 등장하는 것이 절실했다. 긍정적인 여론몰이의 최적 소재로 삼으려 했던 것이다.
둘째, 6·15 공동선언 제2항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는 묘한 말장난이었다. 이렇게 알 듯 말 듯한 조항을 현실화하기 위해선 답방이 필수적이었다. 공허한 통일 논의를 촉발시키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었던 셈이다.
셋째, 비무장지대(DMZ)의 대북 방어 태세를 이완시키려는 전략이었다. 남북 최고지도자의 초법적 행태로 DMZ를 무력화(無力化)하고, 평화를 가져온다는 망상이었다. 9·19 군사합의로 경계 태세가 흐지부지된 상태에서 답방이 이뤄지면, 종전(終戰)선언으로 유엔사를 해체시킬 수 있다고 기대한 것이다.
2003년 대북 송금 특검으로 김정일 답방이 수면 밑으로 가라앉은 후, 대선 두 달 전인 2007년 10·4 정상회담으로 마지막 불씨를 살리려고 했지만 정권 교체로 답방 추진은 끝이 났다. 하지만 2017년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다시 평양에 올인했다. 과거 물밑에서 공작을 담당했던 이들이 다시 나섰다. 1단계로 판문점과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2단계로 김정은이 답방하는 그랜드 로드맵을 수립했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출발은 복안대로 진행되었다. 4·27 판문점 공동선언으로 도보다리 밀담이 이뤄졌고 2018년 6월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으로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그해 9월에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평양 5·1 경기장에서 연설을 했다. 부부 동반으로 김정은 위원장과 백두산 천지에 올라갔다. 남북한 군사합의로 비무장지대의 무장 해제를 진행했다. 최종 목표는 김정은의 답방이었다. 그러나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이 노딜로 끝남으로써 문재인 정부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김정은·트럼프 정상회담 타결 직후인 3월 초 서울광장에서 대규모 통일 축제를 기획했으나 물거품이 되었다. 김정은 답방을 위한 ‘적절한 시기’ 조성 작전은 한순간에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이후 문 정부의 답방 공작은 정상 궤도를 이탈했고 기이한 향북(向北) 정책의 연속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북한 어민 강제 북송이다. 문재인 정부는 2019년 11월 5일 북측에 어민 강제 북송을 통보하고, 2시간 후에는 김정은을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초대하는 친서를 보냈다. ‘김정은 초청장’에 ‘어민 북송문’을 동봉한 격이다. 비밀 초청 공작은 2주 뒤인 11월 21일 북한이 남북 간 물밑 접촉 과정을 일방적으로 공개하며 드러났다. 당시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1월 5일 남조선의 문재인 대통령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께서 이번 특별수뇌자회의에 참석해주실 것을 간절히 초청하는 친서를 정중히 보내왔다”고 보도했다.
당시 문재인 정부가 부산에서 열린 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김정은을 초청하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북한이 확인해준 것이다. 조선중앙통신은 “(남조선이) 몇 차례나 (김정은 위원장이 못 온다면) 특사라도 방문하게 해달라는 간절한 청을 보내왔다”며 “남측이 부산 방문과 관련한 경호와 의전 등 모든 영접 준비를 최상의 수준에서 갖춰 놓고 학수고대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이렇게 북한이 밝히지 않았더라면 김정은 답방 추진과 어민 북송 사건의 연계성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문 정부가 답방을 간청했으나 북한은 냉담했다. 오죽했으면 북한이 친서까지 공개하며 묻지 마 초청을 자제시켰을까.
지난 정부는 2020년 9월 해수부 공무원 피살 사건도 북한의 심기를 고려하여 월북 조작으로 사건을 전격 종결시켰다. 판단력을 상실하여 조금이라도 북한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 초래한 비극적 행태다. 임기 말로 갈수록 평양에 의존하고 알아서 엎드리는 문재인 정부의 행태가 심화되었다. 애초에 불가능한 북한 최고지도자 답방을 두루미처럼 목을 빼고 간절히 기다린 것이다.
2021년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종전선언을 제안했다. 유엔 주재 북한 대사도 “미국이 한국전쟁 당시 평화 유지를 구실로 유엔의 이름을 악용해 유엔사를 불법으로 설립했고, 유엔사를 유지해 미군 점령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후 문 정부 임기 말까지 정부·여당 핵심 인사들은 ‘남북관계의 가장 큰 장애물은 유엔사”라고 북한을 두둔했다. 귀순 의사를 밝힌 북한 어민 강제 송환과 해수부 공무원 피살 사건은 어쩌면 유엔사 해체를 위해 물밑 작업을 벌여온 이들이 공동으로 빚어낸 비극으로 볼 수 있다.
조선일보
08월 02일 대북정책 일탈과 사법 단죄
김충남 사회부 부장
지난 2000년 6월 15일 남북 정상회담은 국민에게 큰 감동을 줬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북 공동선언에 서명한 뒤 손을 높이 치켜드는 장면은 말 그대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그런데 2002년 말 대선을 앞두고 야당인 한나라당이 대북 비밀 송금 의혹을 제기해 충격을 줬다. 북한에 건네진 4억5000만 달러(1억 달러는 회담 성사 대가)가 국가정보원 계좌를 통해 비밀리에 송금됐다는 특검 수사 결과가 발표되면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2004년 3월 28일 대법원은 임동원 전 국정원장 등 4명에 대해 “피고인들이 재정경제부·통일부 몰래 북한 측에 4억5000만 달러를 보낸 행위 자체는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정상회담 자체는 고도의 정치적 성격을 지닌 ‘통치 행위’로 심사 대상이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이뤄진 대북 비밀 송금은 사법적으로 판단해야 할 행위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다소 진통이 있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민적 합의 과정을 거친 뒤 실정법 범위 내에서 북한에 돈을 보내고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이 정치적 선택의 한 방법일 수 있다”고 권고했다. 남북 화해와 평화체제 구축, 통일 등 민족 대의를 위한 통치 행위라 하더라도 절차적 적법성과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준엄한 경고였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서해 평화수역 지정을 위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은 2012년 대선에서 ‘사초(史草) 실종’ 사건으로 비화했다. 정상회담 회의록 초안 삭제 혐의를 받은 백종천 전 청와대 외교안보실장과 조명균 전 안보정책비서관은 10년간 5차례나 유무죄가 엇갈린 끝에 지난달 28일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회의록 초안을 대통령기록물로 볼 수 있으며, 그 초안에서 문제가 된 발언을 삭제한 사실을 위법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임기 말 대북 성과에 급급해 도를 넘어선 발언 기록을 무리하게 없애려다 실정법을 위반하고 말았다.
2020년 9월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2019년 11월 귀순 어민 강제 북송 사건은 박지원·서훈 전 국정원장이 고발되면서 검찰의 수사 선상에 올랐다. 어민 북송 사건은 동료 16명을 살해한 ‘흉악범’이라고 해도 귀순 의사를 명백히 밝혔다면 국내에서 사법 절차를 진행해야 하는데도 법적 근거 없이 강제 북송했다는 게 핵심이다. 2019년 2월 말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남북 관계의 전환 계기가 필요했던 문재인 청와대가 11월 26일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김정은을 초청하려는 의욕이 앞서 강제 북송에 나섰을 개연성이 적지 않다.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당시 구조에 적극 나서지 않고 자진 월북으로 몰아간 이유도 문 대통령이 정세와 맞지 않는 종전선언에 집착한 점과 무관치 않은 것 같다.
문 정부 대북 사건 수사는 팩트 확인과 진실 규명이 가장 중요하다. 문 정부가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대의를 내세워 절차적 정당성을 희생시킨 건 아닌지 분명히 가려야 한다. 그래야 반복되는 역대 진보정권의 대북 정책 일탈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이런 일탈을 국민 합의 속에 절차적 타당성을 확보하면서 북핵 문제 해결 등에 나서야 한다는 반면교사로 삼길 바란다.
문화일보
08.02 “6·25는 북침” 北신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전시실서 떼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상설전시실 역사관 6.25 전쟁 코너의 개편 전(위)과 최근 개편 뒤의 모습.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서울 광화문 앞에 있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대한민국역사박물관(관장 남희숙)이 ‘6·25 전쟁은 북침’이라고 선전한 북한 신문을 전시실에서 철거했다.
이 박물관은 2일 “5층 상설전시실 역사관의 6·25 전쟁 전시 코너를 재구성해 재개관했다”고 밝혔다. 이 역사관은 6·25 등 일부 전시 내용에 대해 편향·왜곡·오류 논란을 빚은 바 있다. 대표적인 것은 1950년 북한군의 서울 점령 당시 전쟁 발발 원인을 ‘북침(北侵·남쪽이 북쪽을 침범함)’으로 선전했던 7월 10일자 해방일보 1면을 전체 맥락에 대한 충분한 설명 없이 진열해 관람객들이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이 박물관은 지난 6월 6·25 발발 72주년을 앞두고 6·25 전쟁 전시 코너를 일시 폐쇄했고, 전시 콘셉트와 전시물을 전면 재점검했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전쟁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줄 수 있도록 재구성해 지난 주 다시 관람객에게 선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박물관은 역사관의 다른 전시 내용에 대해서도 한국 현대사의 산업화·민주화 성취를 바탕으로 단계적으로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남희숙 관장은 “우리 국민의 역사적 상식과 기억에 충실히 부합하는 전시 콘텐츠를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2012년 12월 개관했으며, 현재의 상설관은 문재인 정부에서 관장이 된 주진오 전 관장이 2020년 6월 개편한 것이다. 상명대 교수인 주 전 관장은 과거 ‘좌편향’ 논란을 빚었던 천재교육 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필자였다.
조선일보 유석재 기자
08월 04일 “피라미드 상공 외국군 에어쇼는 韓 블랙이글스가 처음”

▲‘피라미드 에어쇼 2022’에 참가한 블랙이글스팀이 3일(현지시간) 외국군 특수비행팀으로는 처음으로 이집트 카이로 인근 대피라미드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한국은 아프리카 K-방산 핵심 거점인 이집트와 국산 FA-50 경공격기 수출 및 현지 공동생산 방안을 협의 중이다. 공군 제공
이집트 ‘피라미드 에어쇼’ 참가 김용민 특수비행전대장
기자 하늘에 태극문양 수놓자
관중석 “코리아” 외치며 갈채
“대한민국 조종사들 실력과
국산 초음속기 우수성 인정
이집트, 韓과 방산협력 관심”
카이로(이집트) = 국방부공동취재단, 정충신 선임기자
“4500년 전에 세워진 이집트 기자 지역 피라미드 상공에서 진행된 외국군의 에어쇼는 대한민국 블랙이글스가 처음입니다.”
3일(현지시간) ‘피라미드 에어쇼 2022’에 참가한 대한민국 공군의 블랙이글스팀을 이끈 김용민(대령·공사 47기·사진) 제53특수비행전대장은 이집트가 한국 공군을 기자 지역 피라미드에서 열린 첫 에어쇼 파트너로 선정한 것과 관련해 “한국 조종사들 실력과 국산 초음속 항공기(T-50B) 우수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날 블랙이글스팀은 카이로 남서쪽 13㎞ 부근에 위치한 기자에서 고대 이집트 왕국 제4왕조 시대에 만들어진 쿠푸왕·카프레왕·멘카우라왕의 3개 피라미드를 배경으로 이집트 공군 특수비행팀 ‘실버스타스’와 합동비행을 가졌다.
블랙이글스팀은 지난달 영국의 리아트·판버러, 폴란드 뎅블린 공군기지 에어쇼에 이어 이번에는 이집트에서 에어쇼를 가졌다. 블랙이글스 T-50B가 흰색 연막을 내뿜으며 태극 문양을 하늘에 수놓자 관중석에선 “코리아”라는 외침과 함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항공기들이 수직으로 떨어져 폭포수를 연상케 하는 ‘레인폴’ 기동, 8대가 정면으로 함께 날아오다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웨지 브레이크’ 기동을 펼치자 관람객들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블랙이글스팀은 이날 30여 분간 상공을 날면서 총 24개 기동을 연출했다. 홍진욱 이집트 대사는 “이집트 정부 관계자들도 ‘역사적인 장면에 참여하게 돼 영광스럽다’는 얘기를 했다”며 “이번 에어쇼가 양국 간의 깊은 신뢰 관계를 방증해 준 게 아니냐는 의견에 입을 모았다”고 전했다.

▲‘피라미드 에어쇼 2022’에 참가한 블랙이글스팀이 3일(현지시간) 외국군 특수비행팀으로는 처음으로 이집트 카이로 인근 대피라미드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공군 제공

▲피라미드 에어쇼 2022’에 참가한 블랙이글스팀이 3일(현지시간) 외국군 특수비행팀이 레인폴 기동을 하고 있다. 공군 제공
피라미드 에어쇼 2022의 블랙이글스 참가는 공군과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T-50 계열인 초음속 다목적 경전투기 FA-50의 수출 지원을 위해 이뤄졌다. 이집트 공군도 FA-50 도입 검토를 위해 적극적으로 블랙이글스팀의 에어쇼 참가를 지원했다. 김 전대장은 “이집트는 한국과 고등훈련기 사업 등 방산 협력에 관심이 크다”며 “에어쇼를 통해 T-50 계열 항공기에 매료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열린 에어쇼에는 모하메드 압바스 힐미 하쉼 공군 사령관과 관광유물부·청소년스포츠부·민간항공부장관 등 이집트 군·정 고위 당국자와 군인·참전용사 및 가족 등 1000여 명이 참석했다. 우리 측에선 홍 이집트 대사와 공승배 공군 교육사령관(소장), 이봉근 KAI 수출혁신센터장 등이 자리를 함께했고 현지 교민 100여 명도 초청됐다. 전 세계 70여 개 매체는 처음 열린 피라미드 에어쇼 현장에서 열띤 취재 경쟁을 벌였다.
문화일보
월간조선 08월 호
6·25 남침’ 때 ‘中·北 군가 작곡자’를 추앙하는 光州
민주·평화·인권 도시’가 ▲남침 독려 ▲독재자 찬양 인사 기리는 ‘모순’
⊙ 시진핑과 문재인이 ‘한중 우호’ 상징으로 내세웠던 ‘중국인’ 정율성
⊙ 6·25 때 북한·중공군 독려 군가 다수 작곡… ‘적화통일’ 선동한 ‘적군’
⊙ ‘김일성 상장 영상’ 상영, ‘항미원조 운운 사진첩’ 전시된 화순군 소재 ‘정율성 고향집’
⊙ 정율성 관련 시설물을 ‘주요 볼거리’로 내세우는 광주광역시
⊙ 동구에는 ‘정율성 역사공원’… 남구에는 ‘정율성 기념관’ 조성 예정
⊙ ▲성악 콩쿠르 ▲정율성 동요제에 세금 지원… 정율성 음악제에 연평균 3억2540만원 써

▲사진=월간조선
2017년 12월 15일, 중국을 국빈(國賓) 방문한 문재인(文在寅) 당시 대통령은 베이징대(北京大)에서 ‘한중 청년의 힘찬 악수, 함께 만드는 번영의 미래’를 주제로 연설했다. 그는 연설 도중 중국과의 연결고리를 강조하기 위해 “광주(光州)시에는 중국 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한 한국의 음악가 정율성(鄭律成)을 기념하는 ‘정율성로’가 있다. 지금도 많은 중국인이 ‘정율성로’에 있는 그의 생가를 찾고 있다”고 언급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역시 2014년 7월 방한 당시 서울대 강연에서 정율성을 ‘한중 우호’의 상징으로 치켜세운 바 있다.
일반에는 생소한 정율성이란 인물은 광주광역시 태생의 중국인 작곡가다. 정율성은 중국인이므로, 현행 중국어 표기법상 ‘정뤼청’이라고 해야 하지만 편의상 정율성이라고 지칭한다. 정율성은 1914년 당시 전남 광주군에서 태어났다. 1933년 중국으로 건너가 음악을 공부했다. 이후에는 중국공산당에 가담해 소위 ‘혁명음악’을 만들었다. 나중에는 북한으로 넘어가 북한군가를 짓고, 6·25 때는 북한군으로 참전했다. 민족반역자·전쟁범죄자 김일성의 하수인 노릇을 하며 동족상잔을 격려하는 북한군가를 다수 작곡했다. 이후에도 ‘중국공산당’에 적(籍)을 두고 북한에 남아 이른바 ‘창작 활동’을 했다. 그 후 중국으로 돌아가서는 죽을 때까지 음악을 ‘공산혁명’의 수단으로 여기다가 눈을 감았다.
그 일생을 보면, 정율성은 대한민국의 건국을 방해하고, ‘반국가단체’ 북한 정권 입장에서 대한민국에 대항한 ‘적(敵)’이다. 그는 대한민국 국민을 살상하고, 재산을 파괴한 ‘북한군’의 일원이었다. 우리의 자유통일을 저지하고, 민족적 비극인 ‘분단’을 고착화한 ‘중공군’ 소속이기도 했다. 이런 자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자랑스레 내세우거나 우호선린의 상징 또는 매개체로 내세울 만한 인사가 전혀 아니다. 그럼에도 문 전 대통령 입에서 그 이름이 거리낌 없이 호명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일찌감치 대한민국 안에서 국민 세금으로 ‘정율성 포장·미화·찬양 작업’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정율성의 의열단 활동 입증하는 근거는?

▲광주광역시 산하 광주문화재단은 정율성을 주제로 한 대중(對中) 교류 명목으로 취안저우(泉州) 방문 공연(2018년) 등을 진행했다. 사진=뉴시스
정율성은 중국공산당에 가담해 지금의 중국 인민해방군 공식 군가(軍歌)인 ‘인민해방군가(팔로군 행진곡)’를 작곡했다. 1934년 마오쩌둥과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당시 중국 국민당군의 토벌을 피해 패주를 거듭한 끝에 중국 산시성(陕西省) 옌안(延安)에 자리하는데, 이를 기린다는 명목으로 ‘옌안송(延安頌)’을 짓기도 했다. 중국 안에서는 이른바 ‘혁명음악의 대부’로 불리며, 중국의 국가 ‘의용군 행진곡’의 작곡가 녜얼(聂耳)과 ‘황허(黃河) 대합창’을 만든 선싱하이(詵星海)와 함께 소위 ‘중국 3대 현대 음악가’로 꼽힌다. 2009년 9월에는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60주년’을 맞아 ‘신(新)중국 창건영웅 100인’에 선정됐다.
정율성은 1914년 수피아여학교 교사였던 부친 정해업(鄭海業)의 4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릴 적 이름은 부은(富恩)이었다. 《정율성 평전》과 이를 참조한 국내 정율성 관련 연구물을 보면, 정율성은 1933년 5월 김원봉(金元鳳)이 이끌던 의열단 간부학교 입교생을 모집하러 국내에 잠입한 셋째 형 의은(義恩)을 따라 중국 난징(南京)으로 건너갔다.
그해 9월 의열단 간부학교 2기생으로 입학한 정율성은 정신·정치·군사 교육을 받고 1934년 4월 동기 55명과 함께 졸업했다. 그 후 정율성은 난징 고루(鼓樓)전화국에 침투해 일본인 전화를 도청(盜聽)하는 임무를 맡았다고 한다. 이게 바로 정율성의 생애 중 유일한 ‘항일(抗日)’ 행적인데,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근거는 없다.
이는 정율성의 부인 딩쉐쑹(丁雪松)이 1992년에 펴낸 《작곡가 정율성》에 기술된 주장에서 비롯됐는데, 이를 인용한 관련 저작물을 보면 대체 왜 정율성을 ‘항일 독립운동가’라고 치켜세우고, 그를 기려야 하는지 공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항상 “비밀공작을 수행했다”는 식의 기술만 있을 뿐이다.
‘중공 찬가’ 만든 게 ‘항일 독립운동’?
정율성이 정말 항일 독립운동을 했고, 그 목적으로 ‘비밀공작’에 참여했다고 단정할 수 있는 근거는 없는 셈이다. 그럼에도 현재 국내의 정율성 옹호론자들이나 정율성을 관광자원으로 삼아 중국 관광객 돈을 만져보려고 하는 지방자치단체들은 ‘독립운동가 정율성’이란 주장을 지속적으로 유포하고 있다. 정율성에 관한 여러 논문과 중국 측 기록을 살펴봐도 ‘의열단원 정율성’의 행적에 대해 알 길이 없다. 백번 양보해서 정율성이 실제 의열단원으로서 임무를 수행했다고 해도, 그 기간은 60년 넘는 그의 일생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정율성이 정말 ‘의열단원’이었다고 해도 그가 마오쩌둥과 김일성 또는 중국공산당과 조선노동당에 충성하며 대한민국 적화(赤化)를 기도한 공산주의자였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일부 인사들은 정율성이 중국 허베이성(河北省) 타이항산(太行山)에 있던 조선혁명군정학교 살림을 책임진 교무장을 맡았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항일 독립운동가’라고 주장한다. 이 역시 설득력이 떨어진다.
조선혁명군정학교는 무정(武亭·본명은 박병희. 6·25 때 북한군 2군단장으로 남침)이 이끄는 조선의용군 산하 조직이었다. 조선의용군은 중국공산당 팔로군 산하의 일개 무장 정치 선전대에 불과했다. 조국 독립을 위해 일본과 싸우던 ‘항일 독립군’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당시 정율성을 포함한 조선의용군은 ‘항일’보다는 자신들의 세력 확대와 국민당 정부 축출을 꿈꾸던 중국공산당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다고 할 수 있다.
혹여 내심으로는 ‘조국 독립’의 뜻을 품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실제 그들의 행적을 보면 ‘항일 독립운동’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대목 자체를 찾기 어렵다. 한마디로 중국공산당에 가담했다고 해서 이를 ‘항일 독립운동’이라고 칭송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 셈이다.
당시 팔로군은 일본군과 대규모 전투를 치르지 않고, 후방에서 형식적인 소규모 게릴라전을 전개하면서 중국 일반 주민과 국민당 정부군 장병을 대상으로 한 선전·세뇌 작업에 열중했다. 국민당군이 일본군과 싸우는 동안 세력 확장에 집중한 것이다. 소위 ‘제2차 국공합작’ 와중에도 국민당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일본군에 각종 기밀을 넘기기도 했다는 게 최신 연구 결과다.
북한군·중공군가 작곡에 진력
정율성은 평생을 중국과 북한을 위해 살았다. 그는 중국공산당에 충성하면서 팔로군을 위한 군가를 짓고, 소위 ‘혁명 의식’을 고취하는 음악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1945년 12월, 정율성은 북한으로 건너가 조선공산당에 입당한 뒤 황해도당위원회 선전부장으로 일했다. 1947년에는 평양에서 조선보안대 구락부 부장을 맡았다. 당시 그는 곧바로 협주단을 만들어 2년여에 걸쳐 북한 전역 순회공연에 나섰다. 북한 당국은 그의 노고를 위로하며 ‘모범 근로자’ 칭호를 내렸다. 1949년에는 평양음악대학 작곡부 부장을 맡아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 기간 그는 북한군가를 만드는 데 매진했다. 6·25 남침 당시 북한군이 불렀던 노래, 월북(越北)시인 박세영(朴世永)의 시에 곡을 붙여 훗날 ‘조선인민해방군가’가 된 ‘조선인민군행진곡’이 바로 정율성의 곡이다.
1950년 9월, 중국으로 돌아간 정율성은 다시 중국공산당 당적(黨籍)을 회복하고,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을 취득했다. 완전한 ‘중국인’이 된 정율성은 그해 12월, 소위 ‘중국 인민지원군’으로 다시 참전했다. 그는 파죽지세로 남하하는 중공군과 함께 서울까지 내려왔다. 중공군으로 참전한 그는 약 4개월 동안, 북한이 주장하는 조국해방전쟁, 중국이 강변하는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을 수행했다. 이 기간, 그는 북한군과 중공군의 사기(士氣)를 고취시키기 위해 ‘조선인민유격대 전가’ ‘중국인민지원군 행진곡’ ‘공화국 기치 휘날린다’ 등을 만들었다.
이후 중국으로 다시 돌아간 정율성은 1966년 소위 ‘문화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중국의 농촌, 공장, 병영, 소수민족 등을 소재로 창작 활동을 했다. 오페라 〈망부운(亡婦雲)〉 등이 이 시기에 그가 만든 작품이다. 마오쩌둥이 지은 시사(詩詞)에 곡을 붙이기도 했다. 이후 문화혁명 기간 정율성은 주로 천렵(川獵)과 사냥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1976년 12월 사망했다.
음악 재능을 중공과 북한 노동당에 바쳐
정율성의 음악 인생을 반추하면 ▲중국공산당의 옌안·타이항산(8년) ▲김일성의 북한(6년) ▲마오쩌둥의 중국(25년)으로 나눌 수 있다. 일부 국내 인사들이 주장하는 정율성의 ‘항일 독립운동’이 실재한다면, 그 시기는 중국공산당 소속으로 활동했던 초기 8년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기간, 정율성이 만든 곡들을 보면 우리 민족의 독립과 상관성을 갖는 작품을 찾기 쉽지 않다. ‘조국 독립’에 대한 ‘항일열사 정율성’의 의지를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는 단서가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과연 정율성은 중국공산당원으로서 중국 공산혁명을 꿈꾼 것일까, 조국 독립을 바랐던 것일까.
사실상 정율성은 항일과 거리가 먼 중국공산당 활동에 주력했고, 북한의 남침을 독려하고 적화를 찬양하는 노래를 만드는 데 매진했다. 중국 귀환 후에는 당시 우리 ‘적성국’의 국민으로 살았던 자에 불과하다. 설혹 음악적 재능이 있다고 해도, 정율성은 그 재능을 ‘중국 공산혁명’과 ‘한반도 공산화’를 위해 바쳤을 뿐이다. 혈연적으로는 한국인일지 몰라도 정신적으로 그는 철저하게 중국인이었고, 사상적으로는 ‘중국 공산당원’이었다. 대한민국이 ‘독립’하는 데 일조했다고 전혀 볼 수 없는 인물이다.
설령 그가 조국 독립에 티끌만 한 공이 있다고 해도 훗날 반(反)국가행위 혹은 민족반역행위를 했으므로, 대한민국 땅에서 정율성을 기리는 행사가 열려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그의 고향인 광주광역시와 유년기를 잠깐 보낸 전남 화순군은 ‘정율성’을 내세우고 관련 사업에 국민 세금을 쓰고 있다. 《월간조선》은 10년 전인 2012년부터 수차례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하고, 세금 집행 실태를 고발해왔지만 의미 있는 변화는 없었다. 오히려 이들 자치단체의 행태는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심지어 이들은 정율성 연고 문제를 놓고 갈등을 벌이고, 경쟁적으로 정율성 기념사업을 추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2억원 들인 화순군의 ‘정율성 고향집’

▲전남 화순군 능주면 관영리에는 정율성이 유년기에 잠시 살았던 집터에 세금 12억원을 들여 만든 ‘정율성 고향집’이 있다. 사진=월간조선
화순군 능주면에는 ‘정율성 고향집’이 있다. 정율성이 세 살이던 1917년에 화순군 능주면으로 이주해 1923년까지 7년 동안 거주했다고 화순군은 주장한다. 이 기간, 정율성은 능주면 소재 능주공립보통학교(현 능주초등학교)에 재학했다. 화순군은 정율성 거주 사실을 내세워 중국 관광객 등을 유치할 생각인지 그 ‘생가’를 조성했다. 능주초등학교에는 정율성 벽화와 관련 조형물, 기념 시설을 만들었다.
6월 5일 오후 2시쯤, 화순군 능주면으로 진입했다. 능주면으로 들어가는 도로 초입에는 ‘정율성 선생 고향집 1.2km’란 표지판이 서 있었다. 얼마 더 이동하자, ‘정율성 선생 고향집 600m’란 안내문을 또 마주할 수 있었다. ‘정율성 고향집’ 앞 주차장에는 ‘정율성 선생 유적지 안내도’란 대형 표지판이 있었다.
다시 강조하면, 정율성은 6·25동란 당시 동족상잔을 자행한 북한군의 일원으로 우리 국군을 죽이라는 내용의 여러 군가를 작곡했다. 북한군으로서 인공 치하 서울에 진주하기도 했다. 우리 국군의 북진을 방해하고, 대한민국의 자유통일을 좌절시킨 중공군의 군가 다수를 지은 자이기도 하다. 동족상잔을 응원하고, 적화통일을 독려했고, 평생 공산혁명 망상에 사로잡혔던 자를 대한민국의 기초자치단체 전남 화순군은 ‘군(郡)’ 차원에서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선생’으로 모시는 것이다.
전남 화순군 능주면 관영리 282번지, ‘정율성 고향집’에 도착했다. 화순군은 공터였던 이곳에 12억원을 투입해 초가를 모방한 건물을 짓고, 주차장과 진입로를 조성했다. 화순군이 만든 ‘정율성 고향집’의 면적은 전시관과 관리동을 합쳐 66.86㎡(20평)다. 이곳을 방문했을 당시 관람객은 한 명도 없었다. 이후 30분 동안 전시관을 찾은 이는 단 2명에 불과했다. 해당 시설 안내인에게 “이곳을 찾는 이는 누구인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안내인은 “저분(정율성)이 중국에서는 아주 유명한 분이라서 공자학원 사람들이 온다”고 밝혔다.
공자학원은 중국 정부가 중국어 교육 및 중국의 사상, 체제와 문화를 전파·홍보한다는 명목으로 세계 각지에 세운 기관이다. 표면적으로는 ‘교육’ ‘대외 협력’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중국공산당의 통제·지시를 받는 선전기구, 간첩 양성소란 비판을 받는다. 이런 이유 탓에 미국과 유럽에서는 공자학원을 퇴출하는 작업이 추진되고 있다.
버젓이 ‘김일성 포상장’ 소개하는 의도는?

▲전남 화순군 능주면 소재 ‘정율성 고향집’에서는 정율성이 ‘동족상잔’ ‘민족분단’의 원흉 김일성으로부터 받은 ‘상장’이 담긴 영상이 버젓이 상영되고 있다. 사진=월간조선
화순군 능주면 소재 ‘정율성 고향집’의 방은 3개다. 그중 한 곳은 정율성 관련 사진과 각종 기록물을 영상화해 이를 반복해서 틀어주는 곳이었다. 그 영상을 쭉 보다가 충격적인 내용을 발견했다. 북한 김일성이 정율성에게 준 포상장을 버젓이 소개하는 것이었다. 그 상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포상장
우(右) 동지(기자 주: 정율성)는 확고한 민주사상과 애국적 열성으로 1947년경 인민경제계획을 완수함에 헌신참가하여 책임 있게 사업을 수행하였으므로 이를 포상함.
1948년 2월 8일
북조선인민위원회 위원장 김일성〉

▲정율성 고향집’에 전시된 사진첩에는 정율성이 6ㆍ25 전장에서 곡을 짓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있다. 이 사진 설명에는 중국이 북한을 돕기 위해 미국에 대항했던 전쟁이란 뜻의 ‘항미원조’가 명기돼 있다. 사진=월간조선
정율성 사진첩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발견했다. 해당 사진첩에는 인민군 방한모를 쓴 정율성이 악보를 쳐다보는 사진이 있다. 이 사진의 설명에는 “정율성이 항미원조 시절 남긴 소중한 사진으로 전쟁 중 열악한 환경에서 창작하는 정율성의 헌신과 혁명의 낭만주의 정서를 엿볼 수 있다”고 써놨다.
항미원조란, “북한을 돕기 위해 미국에 대항한 전쟁”이란 뜻을 가진 6·25의 중국식 표현이다. 대한민국의 영토를 참절하고, 정부를 참칭하고, 불법 기습 공격을 시작으로 각종 전쟁범죄를 자행한 김일성 세력을 격퇴하려는 우리 국군과 유엔군의 북진을 좌절시킨 중공군의 억지 주장이 국내에서 거리낌 없이 유포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전남 화순군이 조성한 ‘정율성 고향집’은 ‘과연 이곳이 대한민국이 맞나?’란 생각이 들 정도로 비상식적인 전시물과 각종 주장, 표현들로 가득했다. 그 건물 마루 한쪽에 쌓인 ‘위대한 음악가 정율성 선생의 삶의 자 취’란 제목의 홍보물에서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정율성 선생 연대기 ▲항일 독립운동가 정율성 선생 ▲정율성 선생 연표 ▲정율성 선생의 고향집 재현 ▲정율성 선생을 기리기 위한 화순의 노력과 자원들 등으로 구성된 해당 홍보물은 그야말로 정율성 찬양 일색이었다. 항일 독립운동을 했다고 하지만 그 행적은 지금까지 밝혀진 게 없으며, 오로지 평생을 중국공산당과 북한 독재정권을 위해 살아온 ‘한국계 중국인’에게 ‘위대한 선생’ 운운하며, 특기할 일도 많지 않은 그 생애를 마치 대단한 것인 양 칭송하는 그 행태에 이질감마저 느껴졌다.
“위대한 음악가, 아시아에 희망 선사한 혁명가!”

▲정율성이 잠시 다녔다고 하는 화순군 능주초등학교 본관 우측 벽면에는 정율성을 그린 대형 모자이크가 있다. 사진=월간조선
‘정율성 고향집’을 나와서 인근에 있는 능주초등학교로 갔다. 앞서 밝혔듯, 능주초등학교는 과거 정율성이 다닌 능주공립보통학교의 후신이다. 그런 이유로 이곳에도 정율성 관련 기념 시설이 다수 조성됐다. 먼저 능주초등학교 본관 우측 벽면에는 정율성 모자이크(10×11m)가 있었다. 건물 한쪽 벽면 전체를 ‘정율성’으로 채웠다. 본관 뒤쪽 후문으로 가는 길에는 ‘정율성 선생상(像)’이란 흉상이 있었다. 그 뒤에는 정율성의 생몰년인 ‘1914년’과 ‘1976년’을 뜻하는 조형물을 설치해놨다. 흉상 기단에 음각된 ‘건립 취지’에는 다음과 같은 찬양문이 있었다.
“동아시아 현대음악의 최고 반열에 오른 능주초등학교가 낳은 위대한 음악가 정율성 선생, 중국인들이 사랑하는 ‘팔로군행진곡’ ‘옌안송’ 등 300여 곡의 주옥같은 선율을 남긴 작곡가요, 아시아에 희망을 선사한 혁명가인 선생의 뜨거운 조국애와 열정적인 예술을 기리며 그 호연지기의 기상을 후배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한다.”
그 흉상 옆에는 또 ‘항일 독립운동가 정율성 선생’이라는 제목의 조형물이 있었다. 이 조형물에 기술된 주장은 다음과 같다.
“화순이 고향인 정율성 선생은 1914년 광주에서 태어나 1917년부터 1923년까지 이곳 화순군 능주면에서 초등학교 등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정율성 선생은 중국의 ‘3대 혁명 음악가’이자, ‘신(新)중국 창건 100대 영웅’으로 선정되는 등 작곡가로서 중국 대륙에서 명성을 드높이고 있습니다. 정율성 선생은 음악가와 더불어 독립투사로 강고한 항일투쟁을 전개했습니다. (중략) 이제라도 항일 독립운동가로서 선생을 기억해야 합니다.”
능주초등학교에는 정율성 관련 기념물 말고는 조형물이 많지 않았다. 관찰한 바로는 여느 학교에 다 있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을 형상화한 작은 동상 2개가 전부였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능주초를 졸업한 학생과 현재 재학 중인 81명은 우리 국민 대다수가 ‘위인’이라고 인정하는 세종대왕·이순신 장군보다 정율성이 더 ‘위대’한 인물이라고 오해할 소지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압도적으로 그 규모가 크고, 수가 많은 정율성 기념물을 보면서 공부하고, 성장해왔기 때문이다.
광주 남구 양림동의 ‘정율성로’

▲광주광역시 남구는 2009년 양림동 소재 ‘정율성 생가’ 인근의 도로변 233m를 ‘정율성로’로 단장해 개통했다. 사진=월간조선
6월 6일, 67회 현충일 정오에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을 찾았다. 양림동은 정율성과 그 가족이 ‘정율성의 고향’이라고 주장하는 곳이다. 이곳에는 광주 남구가 정율성 관련 각종 시설물을 설치한 ‘음악가 정율성로’가 있다. 총연장 233m에 달하는 ‘정율성로’는 2009년 1월 29일 개통됐다. 당시 남구청장은 문재인 정부 때 한국전력공사 상임감사위원으로 임명돼 계속 그 자리를 지키는 최영호씨다.
‘정율성로’ 왼쪽, 양림동 휴먼시아 2단지 외벽은 ‘정율성 거리 전시관’으로 조성됐다. 이 보도 초입에는 작년 8월에 신규 설치한 ‘정율성 부조’가 있었다. 해당 조형물은 정율성이 바위에 걸터앉아 만리장성 너머를 바라보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중국에서 왕성히 활동하신 정율성 선생님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으로 한·중 교류의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제작·설치했다”고 한다. 이어서 피아노 건반을 형상화한 구조물과 함께 ▲정율성 사진 ▲정율성 기념사업 내역 ▲중국 내 정율성 인지도 ▲정율성의 ‘옌안송’ 악보 동판 ▲정율성 기록물이 233m에 걸쳐 전시돼 있었다. 이 길 끝에는 정율성 상반신 그림과 함께 “동아시아의 예술혼, 음악가 정율성”이란 문구가 적힌 큰 표지판이 있었다. 또 길 건너편에는 북한 또는 공산권 국가들의 조각과 유사한 형태의 ‘정율성상’이 있었다. 이 동상은 중국 광저우시의 청년연합회 지부가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광주 대표 볼거리가 ‘정율성 집’?

▲또 다른 ‘정율성 생가터’인 광주광역시 동구 불로동 소재 벤○○호텔 주차장에는 ‘정율성 탄생지’ 비석과 ‘율성정’이 있다. 사진=월간조선
또한 ‘정율성로’는 현재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일원의 도로명 주소로 사용되고 있다. 현장을 찾은 당일은 전술한 것처럼 현충일이라서 간혹 태극기를 게양한 집이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집 대문 옆에는 ‘정율성로 ○○’이란 도로명 주소 팻말이 붙어 있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날에 태극기를 내건 ‘애국시민’의 집조차 행정적으로는 북한군가, 중공군가를 작곡하고 대남 적화를 꿈꿨던 공산주의자의 이름을 딴 주소명을 써야 하는 부조리한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할까.
소위 ‘정율성로’ 인근에는 또 다른 ‘정율성 생가’가 있다.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7○번지 소재 주택이다. 정율성 가족은 이곳을 ‘생가’라고 주장했다. 현재 이곳은 민간인이 소유·거주하고 있어 관광객의 출입이 불가능하다. 대신 대문 옆에 방문 기념으로 도장을 찍을 수 있는 이른바 ‘투어 스탬프’ 시설이 설치돼 있다. ‘정율성 생가’를 꼭 가봐야 할 관광명소로 홍보하는 셈이다.
실제 광주광역시 광주 관광 안내지도 ‘오매 광주’를 보면, 광주의 숱한 마을과 거리 중 광주 원도심 충장로 일대와 ‘양림동 역사문화마을’만 확대해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이 중 ‘양림동 역사문화마을’의 내용을 보면 가장 굵은 글씨로 표기한 관광지 6곳 중 3곳이 정율성 관련 시설물(정율성 생가, 정율성 거리, 정율성 흉상)이다.
한편, 광주광역시에는 남구뿐 아니라 동구에도 정율성 기념물이 있다. 정율성로에서 1km 떨어진 동구 불로동 163번지 소재 벤○○호텔에도 정율성 기념 시설이 있다. 과거 히딩크관광호텔이었던, 이곳의 주차장 안쪽에는 ‘정율성 선생 생가 복원 추진위원회’가 2006년 9월에 세운 높이 4.5m 비석이 있다. 이 비석에는 ‘음악가 정율성 선생 탄생지’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비석 옆에는 ‘율성정(律成井)’이란 우물도 있다.
광주광역시는 2020년 5월, 이 생가터와 남구 양림동 소재 ‘정율성 생가’를 사들여 각각 ‘정율성 역사공원’과 ‘정율성 기념관’으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당시 광주광역시는 양림동 생가 매입과 시설비 등으로 10억원을 책정했다. 불로동 생가터와 그 인접 부지 매입과 시설 조성에는 38억원이 들 것으로 예상했다.
광주광역시는 또 2015년 12월, 광주천변 서석교-학강교 구간 보도(1.6km)와 학강초등학교 주변 도로(420m)에 ‘정율성 노래길’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동작감지기를 설치하고, 노래길 가로등에 자동 음악 재생 기기를 달아 행인들이 자동으로 ‘정율성 노래’를 들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현장을 찾았을 당시 정율성 음악은 흘러나오지 않았으나, 광주천변 다른 구간과 달리 서석교-학강교 구간 보도에는 음향증폭기가 설치돼 있었다.
지금까지 살핀 광주광역시와 전남 화순군에 산재한 정율성 관련 시설들의 공통점은 세 가지다. 첫째, 근거 불분명한 ‘항일 독립운동’과 관련해서는 그 누구보다 애국심이 끓어 올랐던 것처럼 정율성을 묘사한다는 점이다. 둘째, 정율성의 음악적 재능과 그의 작품들을 과도할 정도로 칭송한다는 사실이다. 셋째, 정율성의 6·25 당시 행적과 북한군가 작곡 이력은 도무지 얘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장황한 정율성 찬양문 중에는 정율성의 북한 관련 행적 기술이 전혀 없다.
‘정율성’에 목매는 광주시와 남구

▲광주문화재단은 2005년부터 매년 ‘정율성 국제음악제’를 개최하고 있다. 광주광역시는 6년 동안 총 19억5250만원을 ‘정율성 국제음악제’에 지원했다. 사진=뉴시스
이 밖에도 《월간조선》이 입수한 광주광역시와 남구의 자료를 보면, 이들 자치단체는 정율성 관련 시설 건립은 물론 각종 행사 개최, 민간 활동에 세금을 투입하고 있다.
광주광역시의 경우 그 산하기관인 광주문화재단이 2005년부터 매년 ‘정율성 국제음악제’를 개최하고 있다. 이에 대한 광주광역시의 최근 6년 동안의 지원금은 ▲2017년 3억5500만원 ▲2018년 3억5500만원 ▲2019년 3억5500만원 ▲2020년 3억1950만원 ▲2021년 2억8400만원 ▲2022년 2억8400만원 등이다. 6년 동안 총 19억5250만원을 ‘정율성 국제음악제’에 사용한 셈이다.
광주문화재단은 또 정율성을 주제로 한 대중(對中) 교류 명목으로 ▲취안저우(泉州) 방문 공연(2018년) ▲중국 저장성(浙江省) 방문 공연(2019년) ▲중국 저장성 공연단 광주 초청 공연(2019년) 등을 진행했다.
광주광역시는 2007년에 4800만원을 들여 ‘정율성 국제음악제 및 선양(瀋陽)·후난성(湖南省) 노선 연계상품 개발을 위한 관광설명회’를 개최했다. 2008년에는 3580만원을 투입해 ‘정율성 국제음악제 관광설명회 및 신규 상품 판매 촉진을 위한 설명회’를 열었다. 2009년에는 2127만원을 쓰면서 ‘정율성 국제음악제 중국 공연 연계 광주 관광 상품 설명회’를 했다. 2013년에는 ‘온리 광주 도심권 관광 기반 구축을 위한 정율성 스토리텔링 개발 계획’이란 명목 아래 ‘광주시민의○○’란 단체에 용역을 줬다. 용역비는 2700만원이다. 2017년에는 양림동 정율성로 홍보 영상 모니터 보수에 2000만원, 정율성 거리 복구 사업에 5400만원을 썼다.
광주광역시 남구 역시 다양한 정율성 관련 사업에 세금을 쓰고 있다. 남구 작성 자료에 따르면 2016~2022년, 1억9000만원을 썼다. 해당 기간, ‘정율성 동요제’ 홍보 방송을 지원한다는 명목 아래 광주 MBC에 총 1억2000만원을 지출했다. 이 밖에 ▲정율성 사진 전시회 보조금 300만원 ▲‘정율성 책자 발간’ 300만원 ▲정율성의 항일 공훈 조사 보조금 250만원 ▲정율성 관련 유적·인물 탐방 보조금 720만원(2020~2022년) ▲다큐멘터리 〈음악가, 정율성의 선택〉 홍보·방송 송출 지원 3000만원 ▲‘정율성과 김원봉의 항일 이야기’ 팟캐스트 제작 지원 250만원 ▲정율성 거리 하자 보수 1850만원 등에 약 7000만원을 썼다.
“정율성으로 광주의 ‘親中’ 이미지 형성 기대”

▲광주 도심 광주천변 곳곳에는 이처럼 정율성 관련 시설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사진=월간조선
광주광역시와 그 산하 자치구인 남구는 왜 ‘반(反)대한민국’적 인물인 ‘정율성’을 기릴까. ‘민주화의 성지’를 자처하는 광주에서 반(反)인권적 폭압 통치 체제에 충성하며 음악 재능을 바친 자를 치켜세우는 배경은 무엇일까. 표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이유는 ‘돈’, 소위 ‘차이나 머니’다.
광주광역시는 중국 관광객 유치를 위해 일찌감치 ‘중국과 친해지기’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그 과정에서 ‘정율성’을 주요 자산으로 활용하려 했다. 이런 까닭에 평생을 중공과 북한을 위해 살았던 정율성을 ‘위대한 음악가’라고 칭송하고, 관련 시설들을 계속해서 만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공자학원’이 있는 호남대학교(광주 소재 4년제 사립대)의 산학협력단이 작성해 2016년 12월 광주광역시에 제출한 연구용역 보고서 〈제6차 광주권 관광 개발 계획(2017~2021)〉에서 확인할 수 있다. 총 362쪽인 해당 보고서에는 ‘정율성’이란 이름이 44회 등장한다. 이는 광주광역시가 ‘정율성’이란 인물에 얼마나 의존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해당 보고서 연구진은 정율성 관련 시설이 있는 광주광역시 동구 불로동(출생지), 남구 양림동(주 거주지), 전남 화순군(유년기 거주지) 일원에 ‘호남권 차이나 관광 벨트’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광주와 전남에 분포한 한·중 우호 인물, 중국 관련 역사유적 등 친(親)중국 역사 문화 콘텐츠를 활용한 광역권 차이나 관광 벨트와 중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한 중국 친화적 관광 매력물 개발 및 대(對)중국 광주·전남 상생협력의 거점 공간 구축이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사업 기간은 2017~2021년(5년), 총사업비는 200억원(국비 100억원, 지방비 100억원)이다. 사업의 기대효과로는 ▲정율성으로 대표되는 광주의 긍정적이고 호의적인 중국인 친화 관광 이미지 형성 기대 ▲친중국 역사 문화 콘텐츠를 활용한 ‘펑유(朋友·친구) 마케팅’ 등 대중국 관광 마케팅 플랫폼 성장 기대 등을 제시했다.
또한 “정율성을 대중국 프로모션의 핵심적 가교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정율성 생가 복원·관련 시설 정비 ▲한·중 우호교류 기념관 조성 ▲정율성 스토리텔링 개발 등을 제안했다. 이어서 ‘독립운동가·천재 음악가 정율성’의 삶과 연애사를 관광 홍보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제의했다.
‘대한민국 헌법 정신’과 ‘정율성 추앙’은 ‘상충’
이 같은 광주의 ‘정율성 사랑’은 대한민국 헌법 정신과 들어맞지 않는다. 헌법이 규정한 대한민국의 정체성인 ‘자유민주주의’와 ▲영광은 스탈린에게(1950) ▲모(毛) 주석께서 우리를 인도하다(1959) ▲모 주석의 장엄한 성명은 방향을 가리킨다(1970) 등 대규모 학살과 정치적 숙청을 거리낌 없이 저지른 공산 독재자를 찬양한 정율성은 어울리지 않는다.
한반도에서 정통성과 합법성을 가진 유일한 국가인 ‘대한민국’의 영토를 참절하고, 정부를 참칭하고, 동족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켜 적화를 시도한 공산 세력에 부역한 정율성을 대한민국 또는 그 산하 지방자치단체가 세금으로 기리는 것은 ‘자폭(自爆)’ ‘자해(自害)’와 같은 비상식적 행태라고 할 수 있다. 그저 중국 관광객을 많이 끌어들여서 돈 좀 만질 수 있다면, 그 사람이 우리 국가 공동체에 무슨 짓을 했든지 상관 않고 관광자원으로 내세워도 된다는 발상은 ‘황금만능주의’ ‘배금주의(拜金主義)’의 전형이다.
더구나 ‘민주·평화·인권의 도시’를 자처하는 광주광역시가 ‘관광 수입 증대’를 제일 목적으로 정율성이란 자를 추앙한다면, 이는 ‘자기부정(自己否定)’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쉽지 않다.⊙
08.08 사드 정상 가동을 더는 미룰 수 없다
사드는 북 위협 막는 조치… 美 미사일 방어체계와 연계성 강화해야
中은 韓에 ‘3불’ 강요 대신 불장난 계속하는 北에 엄중히 경고해야
핵무기는 핵무기로만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정설이다. 공포의 균형을 통해 억제를 실현하는 것이다. 동서 냉전 시기 미국은 3만개, 소련은 4만개가 넘는 핵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지구를 수십 번 파괴할 수 있는 양이었다. 이렇게 엄청난 양의 핵무기가 필요했던 이유는 ‘상호 확증 파괴(MAD, Mutually Assured Destruction)’라는 전략 때문이었다. MAD는 말 그대로 ‘미쳤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는데, 상대방이 핵무기로 나를 공격하면 나도 핵무기로 공격하여 ‘너 죽고 나 죽자’는 것이었다. ‘생각할 수 없는 것을(The Unthinkable)’ 생각하는 방안이었기에 미국 전략가들도 상당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한다.
▲경북 성주군에 배치된 주한미군 사드 포대. /국방부영상공동취재단
북한의 핵 개발은 상식에 맞지 않는 비정상적인 것이다. 비정상적인 북한을 상대하려면 비상한 방법을 생각해야 하는데, 우리는 너무 점잖게 대응하고 있는 것 같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7월의 연설에서 “윤석열 정권과 그의 군대는 전멸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5000만 우리 국민 전체에 대해 노골적으로 핵 협박을 한 것이다. 북한은 지난 70년 동안 비상 동원 체제를 유지해 왔고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왔다. 북핵 사태를 맞이하여 우리 정부는 사태의 엄중함을 국민들에게 설명해야 한다. 그렇다고 국민들의 일상생활이 위축되어서는 안 되고 안정적인 대응 태세를 구축해야 한다. 아산정책연구원과 랜드연구소가 수행한 연구에서 제안했듯이 정부 관계자 및 전문가로 구성된 ‘전략 억제 및 전투 수행단(Strategic Deterrence & Warfighting Group)’을 발족해야 한다.
북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1991년 우리나라에서 철수했던 600개의 전술 핵무기 중 일부를 재배치하고 적절한 방어 태세를 구축해야 한다. 이는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3불 폐기’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2017년 10월 강경화 장관은 국회 발언을 통해 “사드 추가 배치를 검토하지 않고, 미국의 미사일 방어 체계에 참가하지 않으며, 한·미·일 3국 안보 협력이 군사 동맹으로 발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사드 3불’을 밝혔다. 이는 우리의 안보 주권을 포기한 상식에 맞지 않는 무책임한 결정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사드 3불’은 중국과의 합의나 약속이 아닌 정부의 입장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2019년 이후 급격히 증가해온 북한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진작 ‘사드 3불’을 폐기하고 대응 체계를 구축했어야 했다.
중국이 우리의 입장을 조금이나마 생각했다면 우리가 방어를 위해 사드 배치라는 최소한의 조치를 하겠다고 할 때 이를 수용하고 지지했어야 했다. 2017년 선즈화(沈志華) 화동사범대 교수는 ‘북·중 관계사에서 본 사드 문제’라는 강연에서 “현 상황에서 북한은 중국의 잠재적인 적이고, 한국이 중국의 잠재적 친구이다”라고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중 관계가 ‘협력과 경쟁’에서 ‘경쟁과 갈등’으로 변하고 미·중 전략 경쟁이 심화되면서 중국은 노골적으로 북한 편을 들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3번이나 만나고 27통의 친서를 주고받는 동안 중국의 ‘북한 껴안기’는 더욱 심해졌다.
우리는 ‘사드 3불’과 관련된 중국 눈치 보기에서 탈피해야 한다. 금년 들어 북한은 21차례의 미사일 및 방사포 시험을 실시했고, 최근 북한이 핵무기의 선제 사용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사실은 더 이상 ‘사드 3불’에 발목 잡혀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안보 소요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실행하여 ‘사드 3불’을 점진적으로 폐기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정식 배치가 미뤄지고 있는 성주의 사드를 정상적으로 가동되도록 하고, 미국의 미사일 방어 체제와의 연계성을 강화해야 한다. 북한의 다양한 미사일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다층적인 미사일 방어망을 구축해야 하고, 특히 미국의 위성을 비롯한 감시 자산을 활용하여 실시간 상시 감시 체계를 구축하여 탐지와 요격의 정확도를 높여야 한다. 추후 북한이 핵실험이나 미사일 시험 발사를 할 경우 이를 계기로 ‘사드 3불 폐기’를 선언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으로서도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를 저지하지 못한 것이므로 반발할 명분이 약할 것이다.
얼마 전 중국 시진핑 주석은 “불장난하면 반드시 불에 타 죽는다”고 했다. 중국은 우리에게 ‘사드 3불’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2006년 1차 핵실험 이래 16년 동안 불장난을 계속하는 북한에 엄중히 경고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8.15 “한미동맹 끝장내자” 從北 본색 드러낸 민노총

▲13일 오후 서울 용산 삼각지역 일대에서 8·15 전국노동자대회 및 자주평화통일대회가 진행되고 있다. 2022.8.13/뉴스1
민주노총이 지난 주말 서울 도심에서 조합원 6000여 명을 동원한 반미(反美) 집회를 열었다. ‘8·15 자주평화통일대회’란 이름 아래 “한미 동맹 해체” “한미 전쟁 연습 중단” 등을 외쳤다. 민노총 위원장은 “한반도의 운명을 쥐락펴락하는 미국에 맞서 싸워야 한다”며 “노동조합의 힘으로 불평등한 한미 동맹을 끝장내자”고 했다.
민노총은 북한 조선직업총동맹 중앙위가 보내왔다는 연대사(辭)도 공개했다. “미국과 윤석열 보수 집권 세력은 각종 명목의 침략 전쟁 연습을 광란적으로 벌이고 있다. 무분별한 전쟁 대결 광란을 저지 파탄시키자”는 내용이었다. 북한 노동당의 지시에 동원되는 어용 단체의 억지 주장을 받아서 대독하고 박수를 쳤다. 민노총이 북한을 대변하는 퇴행적 정치 집단이라는 사실에 다름 아니다.
집회를 주도한 양경수 위원장은 해산된 통합진보당의 주도 세력이자 대표적 종북(從北) 단체인 경기동부연합 출신이다. 극렬한 사업장 분규를 주도해온 진경호 민노총 택배노조 위원장도 이 단체 출신이다. 진 위원장은 과거 북한을 방문해 혁명열사릉에 참배했었다. 이날 집회에선 “이석기 의원 사면 복권” 주장도 나왔다.
지난 몇 년 동안 민노총은 산업 현장에서 비노조원을 폭행하고, 택배 대리점 업주에게 돈을 요구하고, 말을 듣지 않자 집단 괴롭힘으로 대리점주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51일 동안 선박을 점거해 기업에 수천억원의 피해를 안기고, 100일 넘게 철강 회사 사장실을 점거하고, 알짜 운송 노선을 차지하겠다며 물류를 마비시키고, 원료 반입을 봉쇄해 제빵 회사 공장을 멈춰 세우고, 주류 회사 공장 정문을 막아 상품 판매를 못하게 하는 등 산업 현장에서 온갖 불법·폭력·갑질 행위를 일삼은 것도 민노총이다.
이제 반미·친북 투쟁까지 하겠다고 한다. 민노총이 이래도 해산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은 한미 동맹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켜주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핵과 미사일을 만들어 한반도 평화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전쟁 대결을 선동하는 북한 편을 들면서 반미·반정부 투쟁을 시작했다. 민노총의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8.15 한·미 동맹 해체 주장한 민주노총, 어느 나라 노조인가
8·15 집회서 한·미 연합훈련, 사드 반대
낡은 이념 얽매인 친북 노선 중단해야
“불평등한 한·미 동맹을 끝내고 자주와 평화의 시대로 달려갑시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그제 주최한 광복 77주년 기념 8·15 전국노동자대회 대회사에서 양경수 위원장이 한 말이다. 그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실질적 사용자인 원청을 향해 투쟁하듯, 한반도의 운명을 쥐락펴락하는 미국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다음 주 예정된 한·미 연합 실기동 훈련인 ‘을지 자유의 방패’가 한반도와 주변국 평화를 위협한다며 중단을 요구했다. 북한의 노동단체인 조선직업총동맹은 이날 행사에 “미국과 그 추종세력의 무분별한 전쟁대결 광란을 저지·파탄시키자”는 내용의 연대사를 보냈다.
민주노총 등 노동계 일각의 친북 편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대만을 둘러싼 미·중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북한이 미사일 도발을 이어가는 엄중한 시기에 북한의 위장된 평화 공세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민주노총 일부를 비롯한 친북 노동계의 구태는 할 말을 잃게 한다.
한·미 동맹은 대한민국의 오늘을 있게 한 우리 안보의 근간이고 자산이다. 최빈국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도 튼튼한 한·미 동맹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미 연합훈련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는 핵미사일 고도화를 완성한 북한의 노골적 핵 위협에 맞서는 방어적 성격의 훈련이자 무기체계다. 민주노총의 주장은 북한과 북한을 일방적으로 편드는 중국, 러시아의 주장과 다르지 않다.
정치권에서도 일제히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은 “시대착오적 정치투쟁을 멈추고, 노동조합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것을 촉구한다”고 논평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민주노총은 80년대 운동권의 망상처럼 대한민국이 미 제국주의의 식민지라도 된다고 믿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김기현 의원은 “우리 사회 수퍼갑으로 변질된 민주노총은 이제 존재 자체가 국민 밉상이 됐다”고 비판했고, 안철수 의원은 한·미 연합훈련, 사드 반대 메시지를 담은 전국노동자대회 홍보물에 대해 “북한 선전 매체를 꼭 빼닮은 포스터”라고 쓴소리를 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이중 구조라는 노동시장의 오랜 폐단을 없애고 시장을 좀 더 공정하고 유연하면서 안정적으로 만드는 노동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노동개혁을 위해선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노조의 참여가 있어야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올 수 있다. 한데 지금 노동계가 대화와 타협의 테이블에 앉을 자세가 돼 있는지 의문이다. 민주노총은 낡은 이념에 얽매인 정치투쟁을 중단하고 노동계 최약층인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노동자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바란다. 민주노총의 100만 노조원이 한·미 동맹 해체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중앙일보 사설
08월 16일 尹 ‘담대한 대북 구상’…제재 섣불리 허물어선 안 된다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밝힌 ‘담대한 대북 구상’은, 비핵화 시 대규모 식량 지원과 발전·송배전 인프라 구축, 항만·공항 현대화, 병원과 의료 인프라 지원, 국제 투자·금융 지원 등 북한이 원하는 것을 일괄 지원하겠다는 대북 청사진 제시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윤 대통령은 이 구상과 관련해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이란 조건만 달았을 뿐 북한의 비핵화 단계 및 지원의 순서(시퀀싱)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통령실의 브리핑은 제재 완화를 대화 유인의 수단쯤으로 여기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낸다.
우선, 대통령실 관계자는 “비핵화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만나서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먼저 경제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북한이 대화에 응하기만 해도 반대급부를 주겠다는 것으로, 그간 협상 때 견지된 ‘행동 대 행동’ 원칙에서 이탈하겠다는 얘기로 들린다. 더 심각한 것은 핵 협상 진행 시 ‘한반도 자원 식량 교환 프로그램’을 가동하겠다는 부분이다. 1990년대 유엔의 ‘오일 포 푸드 프로그램’을 응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자칫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10개 대북 제재가 허물어질 수도 있다. 북한 광물 수출 금지는 유엔 대북 제재 제2270·2371·2397호의 핵심으로, 김정은이 하노이 미·북 회담 때 영변 핵시설 폐기 대가로 해제를 요구한 바 있다. 윤 정부는 북한이 협상에 나와 비핵화 시늉만 해도 제재 무력화에 나서겠다는 뜻인가.
중국과 러시아는 지난 5월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 관련 안보리 제재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앞으로 대북 제재는 생각도 말라는 신호다. 윤 정부가 여기에 장단을 맞춰 제재 무력화에 나서면 북핵 폐기는 더 멀어진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북한의 비핵화 거짓말에 속아 대북 제재 완화를 촉구한 결과 지난 5년간 유엔 대북 제재는 너덜너덜해졌다. 제재는 한번 완화되면 다시 강화하기 어렵다. 미국이 안보리 대북 제재에 더해 독자 제재를 가하는 것은 제재가 평화적으로 핵 폐기를 이끌 수 있는 방안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윤 정부가 지금 할 일은 섣부른 제재 완화가 아니라 북핵 폐기를 위한 자유 진영과의 제재 연대 강화다.
문화일보 사설
08월 16일 민노총 ‘친북·반미’ 극렬 선동, 지켜보고만 있을 건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친북·반미(親北反美)’ 선동을 더 노골화·극렬화하고 있다. 서울 도심에서 ‘한미연합 군사훈련 중단’ ‘한미동맹 해체’ 등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지난 13일 열기에 앞서, 6일 ‘23기 중앙통일선봉대’를 출범시켜 전국 미군 기지를 돌면서도 잇달아 친북·반미 집회를 가져온 것으로 16일 보도됐다. ‘보라 불붙는 반미의 물결, 전 세계 도처에서 미제(美帝)를 쓸어버리자’ 하는 ‘반미반전가(反美反戰歌)’를 배경음악으로 삼은 활동 동영상도 유튜브에 올려놓았다고 한다.
시대착오적 친북을 넘어 맹목적 종북(從北) 행태다. 그렇잖고는 미군기지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북한 정권 주장을 대놓고 복창할 수는 없다. 민노총이 과연 대한민국 노동자단체인지부터 묻게 하는 행태는 13일 서울 중구 숭례문 앞에서 가진 ‘8·15 전국 노동자대회’ ‘광복 77주년 8·15 자주평화통일대회’ 등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북한 도발에 대비한 방어 훈련인데도, 양경수 민노총 위원장은 “이 나라를 전쟁의 화염 속에 몰아넣으려는 윤석열 정부”라고 왜곡했다. ‘미국과 윤석열 보수 집권 세력은 이 시각에도 하늘과 땅, 바다에서 각종 명목의 침략 전쟁 연습을 광란적으로 벌여 놓고’ 운운한 북한의 조선직업총동맹 ‘연대사’를 전교조 통일위원장이 대독까지 했다. 이런데도 정부는 지켜보기만 할 건가. 더 방관할 때가 아니다.
문화일보 사설
08.17 4년 만에 정상화되는 한미훈련, 다시는 협상카드 안 된다

▲한미 해병대원들이 2016년 3월 12일 오후 경북 포항시 독서리해안 일대에서 실시된 연합상륙훈련에서 해안 침투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조선일보DB
한미 양국 군이 16일 ‘을지 자유의 방패’(UFS) 훈련을 시작했다. 이번 주말까지 사전 연습 격인 위기관리 연습을 진행하고 다음 주부턴 북한의 기습 남침에 맞서 수도권을 방어하는 1부 연습, 전열을 정비해 반격 작전을 수행하는 2부 연습이 이어진다. 합참은 “상당 기간 축소·조정 시행된 야외 기동훈련을 정상화해 한미동맹을 재건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권에서 사실상 형해화된 한미연합훈련이 4년 만에 제 모습을 되찾는 것이다.
2018년 트럼프·김정은의 ‘비핵화 쇼’ 이후 한미연합훈련은 ‘컴퓨터 키보드 게임’으로 전락했다. 3대 연합훈련인 키리졸브·독수리·을지가 모두 폐지됐고, 나머지 훈련들도 줄줄이 축소됐다. 지난 4년간 한미는 연대급 이상에서 총알 한 발 같이 쏴 본 적이 없다. 훈련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트럼프가 즉흥적으로 중단시킨 한미연합훈련은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허위로 판명 난 뒤에도 재개되지 않았다. 임기 말까지 ‘남북 쇼’에 미련이 컸던 문 정부가 갖은 핑계를 대며 훈련 정상화를 막았다.
‘훈련 없는 군대’를 상상도 하지 못하는 미 측에선 수시로 우려와 불만이 터져 나왔다. 전직 주한미군사령관들은 “컴퓨터 훈련만 하면 실전에서 혼비백산한다”며 ‘국방의 정치화’를 걱정했다. 한미연합훈련을 경험해 본 예비역 장성들은 “문 정권 4년간 한미 연합 방위 태세는 상상 이상으로 허물어졌을 것”이라고 한다.
지난 주말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집회를 연 민주노총은 “(한미의) 대규모 합동 군사 연습을 짓뭉개 버려야 한다”며 북 주장을 여과 없이 쏟아냈다.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 전국민중행동 등도 을지연습 중단을 촉구하는 회견·집회를 앞다퉈 열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물러나자 친북 단체들이 대신 들고 일어선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이 비핵화에 나설 경우 식량·금융·전력 등을 지원한다는 ‘담대한 구상’을 제안했다. 대통령실은 경협 외에 군사·정치적 제안도 마련했다고 덧붙였다. 군사적 제안에 한미연합훈련의 조정 또는 중단이 포함돼선 안 될 것이다. 연합훈련 중단은 비핵화의 입구에서 거래할 사안이 아니다. 연합훈련을 대북 협상 카드로 삼는 위험천만한 실험은 4년으로 족하다.
조선일보 사설
08월 18일 ‘담대한 구상’에 미사일 어깃장 놓은 北 본색 직시하라
취임 100일을 맞은 윤석열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개최한 17일 오전 북한은 서해상으로 순항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 윤 대통령이 ‘담대한 구상’을 제안한 지 이틀 만이고, 한·미가 연합훈련을 개시한 다음 날이기도 하다. 북의 미사일 도발은 지난 6월 5일 탄도미사일 발사 이후 72일 만이고, 윤 정부 출범 이후 네 번째다. 미사일 성능 개량, 코로나·식량난으로 인한 주민 동요 차단 의도도 있겠지만, 윤 대통령의 대북 구상에 어깃장을 놓은 것이다.
윤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은 북한에 식량, 송·배전 인프라, 항만·공항, 의료 시설, 국제 투자 등을 지원하고 정치·군사적 신뢰 구축 조치도 한다는 내용인데, 북 비핵화를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현실성이 떨어진다. 대규모 경협이나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 완화 등은 문재인 정부에서 이미 시도했다가 실패한 정책이다. 북한도 국제사회도 문 정부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남북 긴장 관계를 해소하기 위한 대화 제의라는 의미는 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회견에서도 “미·북 관계 정상화를 위한 외교적 지원, 재래식 무기 체계의 군축 논의에 나설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미·북 관계 개선이나 재래식 무기 군축이 아니다. 북한의 노골적인 핵·미사일 공격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 원칙도 없이 대화만 추진하면 또다시 북한에 끌려다니게 될 것이다. 북한은 18일 노동신문을 통해 ‘누가 뭐라고 하든, 우리 식대로 새 시대를 보란 듯 열어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 북한의 본색을 직시하고, 대북 핵·미사일 억지력 강화부터 추진해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8월 18일 北核 맞설 ‘담대한 안보 구상’ 필요성
정진영 경희대 교수·국제정치학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하고 비핵화 협상에 나오면 초기부터 과감한 경제 지원을 하겠다는 윤석열 정부 대북정책의 일단이 공개됐다. ‘담대한 구상’이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앞으로 정치·군사 부문도 공개될 것이라고 한다.
국정을 맡은 정부로서는, 경제·사회·정치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고려할 때 남북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필요를 누구보다 크게 느낄 것이다. 더욱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지지도가 낮은 상황에서 남북 관계마저 더 악화하면 큰 낭패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이 제안에 호응해 비핵화 협상이 시작되면 정부로서는 큰 정치적 이득을 얻을 수도 있다. 정치권에는 남북 관계의 큰 것 한 방이면 국내 정치의 질곡을 벗어날 수 있다는 유혹이 불문율로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타이밍은 좋지 않다. 북한은 17일 새벽 순항미사일 2발 발사로 담대한 구상에 어깃장부터 놨다. 게다가 한·미 연합훈련 재개를 앞두고 있기도 하다. 북한은 우리와 핵 문제 협상을 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북한의 호응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이 이 제안에 호응해도 잠깐의 정치적 쇼는 할 수 있을지 모르나 북한 비핵화를 위한 실질적인 진전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북한 비핵화는 기술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불가능하다. 비핵화를 위해서는 완전한 핵사찰이 필요하지만, 북한이 받아들일 리 없고, 핵무기를 대신해 북한의 국가안보와 김정은의 안위를 보장해 줄 방법도 없다. 2017년 9월 6차 핵실험 이후의 북한은 그 전과 다른 북한이다.
핵무장을 한 북한으로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5개 핵국가 및 3개의 사실상(de facto) 핵국가와 달리 ‘불법적’ 핵국가라는 사실이다. 유엔안보리의 대북 제재가 이를 말해 준다. 따라서 북한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불법적 핵국가’를 ‘사실상 핵국가’로 지위를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은 바로 유엔 제재의 해제에 있다. 전임 정부는 이런 북한을 돕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이른바 ‘스냅백(조건부 제재 완화)’ 방식의 대북 제재 해제를 거론했지만, 중국이나 러시아가 완화된 제재의 복원에 찬성할 리 없다고 생각하면 국민 속임수 전략이다. 현 정부도 대북 제재의 부분적 해제를 담대한 구상과 관련해 언급한다. 위험하기도 하고 실현 가능성도 낮은 발상이다. 북핵은 우리의 안보 문제지만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의 유지와 직결된 국제사회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대통령 선거 운동 기간에 대북정책과 관련해 정치적 쇼는 하지 않겠다고 했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도 그랬다. 국내 정치적 목적으로 대북정책을 이용하는 순간 역으로 북한에 이용만 당할 위험이 크다.
물론 북한 비핵화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는 사실도 정확히 알고 해야 한다. 윤 정부가 지금 집중해야 할 일은 북핵에 대한 우리의 안보 대비태세를 확고히 하는 것이다. ‘담대한 대북 구상’이 아니라 ‘담대한 안보 구상’이 더 필요하다. 그러면 애타는 쪽은 북한이 될 것이다. 경제문제 해결과 국제 제재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의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때가 되면 진정성 있는 남북대화도 시작될 수 있다.
문화일보
08.19 北김여정, 尹 담대한 구상 거부...“어리석음 극치, 절대로 상대 안할 것”
노동신문 담화로 입장 밝혀
“비핵·개방·3000 복사판 불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이 10일 평양에서 열린 전국비상방역총화회의에서 토론자로 나서서 발언하고 있다. /노동신문·뉴스1
북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19일 윤석열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밝힌 북한 비핵화 로드맵인 ‘담대한 구상’에 대해 “어리석음의 극치”라며 “우리는 절대로 상대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김여정은 이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자신의 명의로 실은 담화에서 “앞으로 또 무슨 요란한 구상을 해가지고 문을 두드리겠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는 절대로 상대해주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혀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석열의 담대한 구상이라는 것은 검푸른 대양을 말리워 뽕밭을 만들어보겠다는 것만큼이나 실현과 동떨어진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했다.
그는 “(담대한 구상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10여 년 전 이명박 역도가 내들었다가 세인의 주목은커녕 동족 대결의 산물로 버림받은 ‘비핵, 개방, 3000′의 복사판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어 “‘북이 비핵화 조치를 취한다면’이라는 가정부터가 잘못된 전제라는것을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김여정은 “세상에는 흥정할 것이 따로 있는 법, 우리의 국체인 핵을 경제협력과 같은 물건짝과 바꾸어보겠다는 발상이 윤석열의 푸르청청한 꿈이고 희망이고 구상이라고 생각하니 정말 천진스럽고 아직은 어리기는 어리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또 “경내에 아직도 더러운 오물들을 계속 들여보내며 우리의 안전환경을 엄중히 침해하는 악한들이 북 주민들에 대한 식량공급과 의료지원 따위를 줴쳐대는 것이야말로 우리 인민의 격렬한 증오와 분격을 더욱 무섭게 폭발시킬 뿐”이라고 말했다. 그가 언급한 ‘더러운 오물’은 대북 전단 등을 뜻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김여정은 “오늘은 담대한 구상을 운운하고 내일은 북침전쟁연습을 강행하는 파렴치한 이가 다름아닌 윤석열 그 위인이다”라고 했다. 이는 지난 16일부터 진행 중인 한미 연합연습인 ‘을지 자유의 방패’(UFS·을지프리덤실드)와 관련해 거부감을 드러낸 것이다.
김여정은 이날 담화에서 윤 대통령의 실명을 직함 없이 거론하며 원색적인 표현을 동원해 비난했다.
그는 “남조선 당국의 대북정책을 평하기에 앞서 우리는 윤석열 그 인간 자체가 싫다”면서 “제발 좀 서로 의식하지 말며 살았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라고 말했다.
또 “정녕 대통령으로 당선시킬 인물이 저 윤 아무개밖에 없었는가”라고 하는가 하면 “가뜩이나 경제와 민생이 엉망진창이어서 어느 시각에 쫓겨날지도 모를 불안 속에 살겠는데(…)”라고도 했다.
김여정은 또 “한때 그 무슨 ‘운전자’를 자처하며 뭇사람들에게 의아를 선사하던 사람이 사라져버리니 이제는 그에 절대 짝지지 않는 제멋에 사는 사람이 또 하나 나타나 권좌에 올라앉았다”며 전임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운전자론’도 언급했다.
이날 김여정의 담화는 통신뿐 아니라 북한 전 주민이 볼 수 있는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과 조선중앙방송 등을 통해 보도됐다.

▲북한 순항미사일 발사 장면. /노동신문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그 단계에 맞춰 북한의 경제와 민생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담대한 구상을 지금 이 자리에서 제안한다”라고 했다. 북한이 진정성을 갖고 비핵화 협상에 나서면 경제 협력뿐 아니라 정치·군사적 상응조치까지 제공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와 관련 권영세 통일부 장관 등은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선제적으로 미북 수교 등 미북 관계 정상화, 군축 논의 등도 가능하다며 북한의 호응을 촉구해왔다.
이런 가운데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여동생인 김여정이 윤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 발표 나흘만에 이에 대한 거부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북한은 윤 대통령 취임 100일이던 지난 17일 새벽에는 서해상으로 순항미사일 2발을 발사하며 ‘무력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조선일보 노석조 기자
08월 22일 북핵 폐기 ‘잃어버린 30년’ 전철 밟나

김태우 前 통일연구원 원장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밝히면 대규모 지원을 제공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에 대해 북한은 17일 순항미사일 발사와 19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독설로 응답했다. 김 부부장은 “핵은 우리의 국체”라면서 대통령의 제안을 ‘비핵·개방·3000의 복사판에 불과한 현실과 동떨어진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일축했고, 한국 합참이 미사일 발사지점을 틀리게 발표했다며 국군의 미사일 탐지·추적 능력을 조롱했다.
우선, 미사일 발사 지점과 관련해서는 합참의 발표가 틀렸다 하더라도 군을 탓할 이유는 없다. 지구의 곡면 때문에 지상 레이더나 이지스함 레이더로는 낮게 발사돼 비행기처럼 나는 순항미사일의 출발점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그래서 공중 감시가 필수지만, 국군에는 군사용 정찰위성이 없고 E-737 조기경보기는 4대뿐이다. 또한, 북한의 주장에 놀아날 필요도 없다. 국군의 탐지·추적 능력을 떠보려는 공연한 시비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합참의 발표가 한·미의 탐지자산들을 적절하게 가용한 결과라면 그대로 믿으면 된다. 요컨대, 이런 ‘미사일 숨바꼭질 게임’에는 말려들 필요가 없으며, 그보다는 북한 문제의 본류인 핵 위협에 대처하는 데 정도(正道)를 찾아가는 게 더 중요하다.
북핵 정책에 관한 한 정치지도자들은 전문가들의 조언을 줄기차게 외면해 왔다. 북핵은 핵강국 미국의 6·25 참전으로 중국이 휴전협상에 응함으로써 공산 통일이 무산됐다는 김일성의 한(恨)에서 출발했고, 북한은 핵을 통해 한미동맹 해체, 주체통일, 체제 유지 등 지고(至高)의 목표들을 추구한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남북이 ‘농축·재처리 포기’에 합의했던 1991년 비핵화 공동선언이 한국의 손발만 묶을 것으로 경고했고, 대화를 통한 북한 비핵화는 결코 가능하지 않음을 강조했다. 그런데도 노태우 정부는 비핵화 공동선언으로 한국을 ‘농축·재처리 금지국’으로 전락시켰고, 김영삼 정부는 “동족이 동맹보다 가깝다”며 미국의 강경 대응을 만류했다. 김대중 정부는 “북한은 핵개발 능력도 의사도 없다”고 했고, 노무현 정부는 “북핵은 일리가 있다”고 했다.
세계 군비통제의 역사에서 ‘공자형’ 접근이 성공한 적은 없다. 즉, 이쪽이 선의로 스스로 무기를 내려놓고 저쪽을 설득해 무력 수단을 포기하게 한 사례는 없다. 북한의 비핵화는 핵무기가 자신들의 체제를 위협하면서 부담만 안겨주는 애물단지가 될 때 가능해진다. 따라서 한국은 독자 및 동맹 역량을 활용하고 필요 시 미 전술핵 재배치를 통해 핵 균형을 추구했어야 했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이런 조언은 안중에도 없었고, 이벤트성 남북 정상회담에 연연했다. 한국은 더 깊은 핵 인질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그것이 ‘잃어버린 30년’이다.
남북 상생을 위한 대북 포용은 언제든 필요하지만 핵 균형 정책과 병행돼야 한다. 또한, 북한이 핵을 포기하기는커녕 강대국형 ‘핵전투’ 전략과 ‘대남 선제 핵 사용 불사’까지 선언한 마당에 그리고 윤 정부의 출범으로 동맹과 우방들이 모처럼 한국과 원팀이 되기를 기대하는 상황에서, 얼마 전에 했던 말을 바꾸면서까지 불쑥 ‘담대한 구상’을 내놔 우방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북한의 비아냥거림을 받은 것이 시의적절했는지는 한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문화일보
08.23 여야 합의 북한인권재단이 6년 표류, 이런 일도 있나

▲서울 마포구에 있던 북한인권재단 사무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이 사무실을 폐쇄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은 22일 더불어민주당에 북한인권재단 이사 추천을 요구했다. 북한인권재단은 2016년 제정된 북한인권법에 따라 설립됐어야 하는 법정 기관이지만 아직 간판도 달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의 비협조로 여야가 5명씩 추천하게 돼 있는 재단 이사진을 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날도 민주당은 “그것 말고도 국회가 해야 할 것이 많다”며 부정적 태도를 보였다.
북한인권법은 북한 주민들의 참혹한 인권 개선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게 취지다. 북한 인권 실태를 조사하고 정책을 개발할 북한인권재단 설립이 핵심이다. 2016년 3월, 11년 만에 국회 문턱을 넘었다. 북을 자극한다며 법 제정에 부정적이던 민주당이 김정은 정권의 핵·미사일 폭주와 인권 유린으로 법안 반대에 부담을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북한인권법은 2016년 9월 시행과 동시에 사문화하고 말았다. 민주당이 이사 추천을 미루는 방식으로 재단 출범을 방해했다. 역대 유엔북한특별보고관들을 비롯해 국제사회가 때마다 재단 설립을 촉구했지만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문 정부는 서울 마포구에 마련했던 재단 준비 사무실을 폐쇄하고 관련 예산도 삭감해 버렸다.
북한인권법엔 북한인권재단뿐 아니라 외교부 북한인권대사와 법무부 북한인권기록보존소도 규정돼 있다. 문 정부는 5년 내내 북한인권대사를 공석으로 방치했고, 보존소 예산도 10분의 1 토막을 내 기능을 마비시켰다. 날치기 통과도 아니고 여야 합의로 통과된 법이 6년간 표류한 경우는 아마 북한인권법이 유일할 것이다.
문 정부와 민주당은 임기 내내 ‘남북 이벤트’에만 골몰하며 북한 인권 언급을 금기시했다. 유엔의 북한 인권 결의안 공동 제안에 4년 연속 불참하고, 귀순 의사를 밝힌 북한 어민 2명을 흉악범이라며 강제 북송했다가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았다. 인권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는다는 ‘진보 좌파’ 정권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들에게 인권은 절대 가치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수단일 뿐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스스로 통과시킨 법 시행을 막는 일까지 해서는 안 된다. 민주당은 이날 ‘직무 유기’라는 지적엔 입을 닫은 채 국민의힘이 북한인권재단 이사와 대통령 특별감찰관 후보 추천을 동시에 요구한 것을 문제 삼았다. 특별감찰관은 민주당이 요구해온 사안이다. 핑계를 찾지 말고 두 자리 모두 추천해 비정상을 정상화하기 바란다.
조선일보 사설
08월 23일 4년 만의 韓美 실기동 훈련도 매도하는 反안보 선동
한·미 동맹군의 야외 기동 훈련이 무려 4년 만에 재개됐다. 양국의 실기동 및 지휘소 연합훈련인 ‘을지자유의방패(UFS)’가 22일 개시돼 13개 분야의 대대급 훈련이 9일간 동시다발적으로 실시된다. 연대급 이상 훈련은 준비시간 부족으로 이번에 실시되지 못하고 내년에 정상화될 예정이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이후 연합 훈련을 사실상 중단했다. 이 때문에 로버트 에이브럼스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은 “컴퓨터 훈련만으로는 연합 방위 능력에 차질이 생긴다”며 “실전 상황이 되면 군인들이 혼비백산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주재한 ‘을지 국무회의’에서 “변화하는 전쟁 양상에 맞춰 우리 정부의 비상 대비태세를 새롭게 정비하는 출발점”이라고 밝혔다. 훈련에는 공격 헬기 사격, 대량파괴무기 제거, 교량 구축, 폭발물 처리, 전방 무장 및 연료 재보급, 합동 화력 운용, 특수전 교환, 해상 초계 작전이 포함된다. 사제 폭탄으로 원전 공격, 반도체 공장 화재 진압, 은행 전산망 마비 등 유사시 국가 총력전 수행에 대비한 훈련들도 이뤄진다. 북한 공격 격퇴는 물론 한·미 연합군의 반격 작전 훈련도 한다고 한다.
국가 안보를 위해 당연히 필요한 일임에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 여러 단체는 지난 13일 집회를 열고 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했다. 이들은 한·미 훈련을 “전쟁 연습”이라고 매도하며 “한미동맹 해체” 주장까지 했다. 북한 노동자단체가 보낸 연대사도 낭독됐다. 북한이 핵 선제공격을 대놓고 위협하는 상황에서 시대착오적 친북·반미 행각이 버젓이 자행되는 셈이다. 민노총 등은 이런 집회와 시위를 계속하겠다고 한다. 정부는 물론 여야 정치권도 반(反)안보 선동의 위험성을 깨닫고 강력 대응해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8월 24일 韓美 실기동훈련, 北 눈치 볼 것 없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5년 만에 제대로 된 한·미 연합훈련이 23일 시작됐다. ‘을지프리덤실드(UFS)’라는 이름의 훈련은 한·미 연합군이 1년에 두 번씩 진행하는 전구급 훈련 중 하반기에 열리는 훈련이다. 이번 훈련에서 한·미 연합군은 북한의 공격을 막아내는 방어훈련에 이어, 역습에 나서 통일을 달성하는 반격훈련까지 한다. 그 시나리오에 맞춰 실기동훈련까지 병행하니 제대로 된 훈련의 복원이다.
2017년 연합훈련을 마지막으로, 올해 초까지 한·미 연합훈련은 무력화됐다. 훈련을 취소하기도 하고, 실시하더라도 실기동훈련은 생략한 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대체해 왔다. 훈련 명칭도 북한 눈치를 보며 2018년은 동맹1, 동맹2로 바꾸더니 2019년부터는 아예 훈련 명칭도 사라졌다. 동맹 관계가 손상되고 연합군 체제는 유명무실해졌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지만, 이제 정상으로의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을지문덕 장군처럼’ ‘자유의 방패’라는 숭고한 이름의 훈련이 시작되기 전, 서울 도심에서 민주노총의 반대 시위가 있었다. 구호는 ‘전쟁연습 반대’ ‘미국 반대’ 등이 주류였고, 민노총 위원장은 ‘윤석열 정부를 용납할 수 없다’는 연설로 목소리를 높였다. 전교조 간부는 북한에서 보낸 연대사를 대독하며 미국과 윤 정부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노동운동을 하는 분들인지, 북한을 추종하고 특정 정치세력을 대변하는 자들인지 분간이 안 되는 그들을 보며 그 목적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들이 비난하는 내용의 핵심은 ‘실기동훈련’이다. 실기동훈련이 동반되지 않는 컴퓨터 도상훈련의 결과가 얼마나 위험한지는 안보에 식견이 있다면 누구나 안다. 예를 들어, 지상작전사령부는 반격작전을 위해 예하 전 부대는 ○○시까지 공격 진지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육군의 수많은 대대급 부대는 저마다 이동 시간을 입력한다. 그러면 집결 완료됐으니 ○○시부터 공격에 나선다. 이른바 ‘된다 치고’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전방의 도로와 교차로에 많은 부대가 한꺼번에 나와 각자의 진지로 이동하려 한다. 피란민들도 통제를 무시하고 승용차를 몰고 도로로 나온다. 군사경찰들은 민간인 통제하랴, 각 부대의 진입 정리하랴 각 교차로에서 몸살이 날 지경이다. 기계화대대 하나만 해도 차선 2개를 차지하는 규모의 전차와 장갑차, 트럭이 60대가 넘는다. 전차와 장갑차는 각자 안전거리도 넓어 기계화대대 하나를 모두 이동시키려면 다른 부대는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수백 개의 대대가 파주·연천·포천·철원의 전방도로에 엉켜 아비규환이다. 이 교차로에 북한군 포탄이 날아들면 대참사가 발생한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출발 시간을 서로 달리하기도 하겠지만, 실기동훈련을 해보지 않고는 오차를 예측조차 할 수 없다. 집결 과정에서만도 이러한데, 변수가 너무나 많은 실제 전쟁 과정에서는 얼마나 많은 오류가 발생하겠는가. 그러니 대규모 실기동훈련을 해 봐야 오류를 줄일 수 있다.
이렇게 우리 군의 전쟁 수행 능력을 정상화하고, 통일을 위해 반격 시나리오까지 진행하는 이번 훈련이 가장 불쾌한 쪽은 북한일 것이다. 군은 그런 북한의 불만을 대신하는 듯한 정치적 움직임에 절대 움츠리지 말고, 오직 국민만 바라보며 진짜 훈련을 하기 바란다.
문화일보
08.30 전시 대비 훈련 5년 만에 나온 각 부처 실무자들 우왕좌왕

▲한미연합훈련 '을지 자유의 방패'(UFS)' 2부가 시작된 29일 경기 파주의 한 훈련장에서 자주포 부대가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주요 훈련 때마다 꾸려야 하는 범정부 차원의 전시 지휘소가 문재인 정부 4년간 가동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상적인 정부라면 상·하반기 주요 훈련 때마다 서울 남태령 수도방위사령부 지하 벙커(B-1 벙커)에 군 관계자뿐 아니라 각 부처 소속 공무원들을 파견해 전시 지휘소를 구성하고 연락반을 가동해야 한다. 모의 전시 내각을 꾸리는 것이다. 이를 반복 숙달해야 유사시 국가 비상사태에 대처할 수 있다. 우리처럼 북한뿐 아니라 주변 강대국의 위협을 상시적으로 받고 있는 입장에서 이는 정부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다.
하지만 2018년부터 비군사 분야 공무원들은 전시 지휘소 연습에 참가하지 않았다. 대신 군인과 군무원 등 80명 안팎으로 구성된 소규모 대응반만 차려졌다. 과거 약 300명이던 전시 지휘소 인원이 30%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문 정권이 범정부 지휘소를 꾸리지 않고 훈련 시늉만 했다는 사실은 지난주 4년여 만에 정상화한 한미 연합훈련을 통해 드러났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지난 22일 시작된 을지 자유의 방패(UFS) 훈련 기간 B-1 벙커에 파견된 각 부처 실무자들이 4년의 훈련 공백 탓에 우왕좌왕하는 모습에 놀라 벙커에 나흘간 상주하며 각급 회의를 주재했다고 한다.
앞서 2018년 6월 김정은·트럼프의 ‘비핵화 쇼’ 이후 한미 연합훈련은 ‘컴퓨터 키보드 게임’으로 전락했다. 지난 4년간 한미는 연대급 이상에서 실탄 한 발 같이 쏴 본 적이 없다. 임기 말까지 ‘남북 이벤트’에 미련이 컸던 문 정부는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허위로 판명 난 뒤에도 갖은 이유로 훈련 정상화를 막았다. 이제 보니 연합훈련뿐 아니라 한국 정부의 단독 훈련도 엉터리로 했다. 만에 하나 북의 공격과 같은 국가 비상사태가 발생했으면 대한민국 전체가 우왕좌왕하며 무너지지 않았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나. 훈련 자체가 북의 도발을 막는 억지 역할을 한다. 한미 연합훈련이 없어지고 한국 정부마저 전시 대비 훈련을 하지 않는다면 김정은이 무슨 생각을 하겠나.
조선일보 사설
08.30 “인권침해 기록 뭉개는 자는 독재 방조범”
獨, 잘츠기터 범죄기록소 짓고 30년간 증거 4만여 건 수집
통일 후 北에 책임 물으려면 기억과 증언 더 철저히 모아야

▲베를린 장벽이 공사중이던 1961년 8월 15일 국경을 지키던 동독 초병 콘라트 슈만이 철조망을 뛰어넘어 서베를린으로 넘어오는 장면. 독일 사진가 페터 라이빙이 찍어 AP를 통해 전세계로 타전됐다./위키피디아
1961년 8월 13일, 동·서독을 가르는 베를린 장벽이 설치됐다. 자유를 찾아 장벽을 너머로 탈출하려다 사살당하거나 지뢰 폭발로 목숨을 잃은 동독 주민이 속출했다. 장벽이 무너진 1989년 11월 9일까지 총 186명이나 됐다. 장벽이 등장하고 석 달 뒤, 서독 정부는 니더작센주 소도시 잘츠기터(Salzgitter)에 동독 정권이 자행한 인권침해 사실을 수집해 보존하는 범죄 기록소를 세웠다. 통독 후 가해자를 처벌할 증거로 삼겠다는 뜻이었다. 30년 가까이 축적한 자료 4만1390건이 이후 동독 경찰과 사법 기관, ‘슈타지’라 부른 비밀 경찰과 부역자 등 8만여 명 형사 소추와 피해자 보상 과정에서 근거로 활용됐다.
잘츠기터 범죄 기록소 설립을 강력히 주창한 사람은 빌리 브란트(1913~1992) 당시 서베를린 시장이었다. 그는 나중에 총리가 돼 동독과 교류·협력을 중시하는 동방 정책(Ostpolitik)을 추진하며 통일의 기틀을 닦았지만, 장벽 희생자가 잇따르자 “천인공노할 동독 만행에 대해 항의만으로 끝낼 순 없다”며 국민을 설득했다. 동독 정권과 이들의 충견(忠犬)에게 그들의 악행을 차곡차곡 수집하는 범죄 기록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동독 정치 지도자들은 “주권 간섭”이라며 폐지를 요구했고, 서독의 친(親)동독 인사들도 “해체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서독 정부는 “인권이 최우선 가치”라며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잘츠기터 중앙범죄기록소/위키피디아
우리나라에선 민주당 반대로 10년 넘게 표류하던 북한인권법이 2016년 국회를 통과하며 법무부에 북한인권기록보존소가 설치됐다. 그해 10월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출범식에는 법무부 장관과 인권국장, 통일부 차관, 외교부 북한인권국제협력 대사 등이 참석했다. 당시 법무부는 “북한 주민의 인권 상황 개선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자료 보존과 분석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인권 변호사’ 출신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2018년 북한인권기록보존소는 법무연수원 용인 분원으로 쫓겨났다. 최근에는 관련 예산이 10분의 1로 쪼그라든 사실이 드러났다. 통일부가 넘겨주는 북한 인권침해 자료는 2019년 700건에서 올 상반기 18건으로 급감했다. 4명이던 파견 검사는 점점 줄더니 한 명도 남지 않았다. 이런 소식을 전해 들은 독일 범죄 기록소 관계자는 “형사 소추 자료로 쓰이는 기록을 담당하는 검사가 전혀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라며 혀를 찼다고 한다. ‘남북 이벤트’에 골몰하던 문재인 정부의 통일부 장관은 “기록이 실제인지 일방적인 (탈북자) 증언인지 확인과 검증이 부족하다”는 발언으로, 목숨 걸고 북한 참상을 증언한 탈북자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그 빈자리를 비정부기구(NGO)인 사단법인 북한인권정보센터가 마련한 북한인권기록보존소가 채우고 있다. 15년간 북한 인권 피해 사건 8만2271건과 관련 인물 5만2062명을 기록하고 분석했다. 소장을 맡고 있는 최기식 변호사(법무 법인 산지)는 “잘츠기터 범죄 기록소는 그 존재만으로 동독 법 집행자들의 악행을 제어하는 예방적 효과를 거뒀다”며 “북한의 인권침해를 제대로 기록하지 않고 뭉개는 것은 결과적으로 방조하는 것”이라고 했다. 북한을 품고 통일의 미래로 함께 나아가야 하지만, 북한 동포들이 당한 인권침해 참상을 정확히 기록하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이렇게 한 장씩 모은 ‘기억과 증언의 벽돌’로 북한 정권의 반(反)인권성을 단죄할 ‘정의의 심판대’를 만들어야 한다.
조선일보 채성진 기자
08.30 한국 최초로 ‘軍事’ 분야만 30여년 취재...유용원 전문기자의 롱런 비결
유용원(58) 조선일보 군사전문 기자는 한국 언론계에서 새로운 길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1990년 2월부터 33년째 조선일보(朝鮮日報) 한 회사에 근무하면서 29년째 ‘국방부’를 중심으로 군사 이슈를 취재하고 있어서입니다. 이변(異變) 없이 내년 3월 그가 국방부 출입 30년을 맞는다면, 우리나라 중앙 행정부처를 통틀어 첫번째 사례가 됩니다.

▲2013년 3월 김관진 당시 국방장관으로부터 ‘출입 20년 감사장’을 받은 유용원 조선일보 군사전문기자/유용원 제공
◇누적 방문 4억명 사이트와 7개 SNS 운영
그는 디지털과 신문에 기사(記事·news story) 쓰는 ‘본업’을 넘어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습니다. 2001년 유 기자가 시작한 ‘유용원의 군사 세계’ 웹사이트는 누적 방문자 4억2000만명이 넘는 국내 최대 군사 전문 커뮤니티로 자리잡았습니다. ‘비밀’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립니다. 유튜브 ‘유용원TV’(구독자 25만명)와 페이스북(팔로워 6만8000여명), 네이버TV(구독자 1만1000여명), 카카오채널, 인스타그램(2개) 같은 7개 채널도 그는 운영합니다.
유 기자는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하는가>(2016년) <유용원의 밀리터리 시크릿>(2020년) <미중 패권경쟁과 한국의 생존전략>(2021년) 등 3권의 단독저서와 <무기바이블 1~4> <북한군 시크릿 리포트> 등 8권의 공저(共著)를 냈습니다. 연륜이 쌓일수록 더 정력적으로 활동하는 유용원 기자를 최근 만났습니다.
- 지금 국방부 최장수(最長壽) 출입기자인가?
“그렇다. 1993년 최연소 출입기자로 시작했는데 감개무량하다. 2013년 3월 김관진 당시 국방장관으로부터 ‘출입 20년 감사장’을 받았다. 권영해 전 장관부터 이종섭 장관까지 가까이서 취재한 국방장관만 19명이다.”

▲2004년 11월 방문한 이라크 자이툰 부대에서 유용원 기자/조선일보DB
- 기사 작성과 SNS, 유튜브, 웹사이트 관리 등으로 눈코뜰새 없이 바쁠 것 같다.
“매주 3~5차례 저녁 약속과 본업, 부업을 다 하려니 바쁘다. 그래서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골프를 끊은 지 10년이 넘었다. 주말 헬스장에서 운동하거나 평일에 ‘1일 만보 이상 걷기’로 건강을 관리한다. 10여년 전부터 홍삼, 비타민도 열심히 챙긴다. 웹사이트 관리는 2명, 유튜브 영상은 1명 등 3명의 도움을 받고 있다.”
◇“조선일보사 전폭 지원 없었으면 불가능”
- 지난 33년 신문기자 생활을 자평한다면?
“한 눈 안팔고 열심히 한 우물만 팠더니 이제는 비교적 보람 있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주변에선 ‘취미가 직업이 된 행운아’라고 얘기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취미가 군사, 특히 무기쪽이었다. 제 노력만이 아니라 회사(조선일보)의 전폭적인 이해와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아무리 군사분야에 좀 아는 게 있었더라도 여느 기자처럼 출입처가 2~3년마다 바뀌었다면 오늘의 ‘유용원’은 없었을 것이다.”
유 기자의 이어지는 말입니다.
“그동안 45차례 조선일보 사내 특종상을 받아 최다(最多) 특종상 수상자가 된 것도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얼마 전 조백건 기자 인터뷰기사가 실렸던데, 저는 조 기자가 조만간 제 기록을 깨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고 있습니다.(웃음)”

▲유용원 기자가 조선일보 사보 2012년 4월12일자에 쓴 '나의 취재기'/인터넷 캡처
고(故) 정두언 전 국회 국방위원장은 2016년 발간된 유용원 기자의 저서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하는가>에서 ‘우리는 왜 유용원이 필요한가?’라는 제목의 추천사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군사 문제로 인한 사회적 갈등과 불신이 깊어가는 이때, 우리는 이 문제들에 대해 권위를 가지고 정리해줄 존재가 절실합니다. 그 역할을 할 사람 중에 유용원이 두드러집니다. 그러기 위해 유용원은 특유의 열정과 신뢰로 가일층 정진해야 하며, 우리 사회는 그를 전문가로서 진지하게 대접하고 또 십분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 신문기자가 되기로 마음 먹은 ‘결정적인 계기’라면?
“충남 천안에서 초중고를 다녔는데 초등학교 때 매일 전쟁놀이하고 전쟁만화를 빌려 봤다. 대학 때 서울 용산, 명동 등지의 헌책방에서 군사·무기 관련 외국 잡지들을 구해 보면서 너무나 기쁘고 반가웠다. 학부(서울대 경제학과) 졸업후 언론쪽이 군사 분야에 약하다는 얘기를 듣고 신문기자를 지원했다. 1990년 조선일보 출판국 월간조선(月刊朝鮮)에 입사해 3년쯤 근무하다가 같은 회사 편집국으로 옮겨 운좋게 초년병 시절부터 국방부를 출입하게 됐다.”
- 기자 생활 중 제일 힘들었던 순간과 보람을 느낀 순간이라면?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사건 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가장 힘들었다. 2개월여 동안 매일 밤늦게 퇴근했는데 사건 원인 관련해 일각에서 계속 음모설을 제기해 피곤했다. 가장 보람을 느낀 기사 중 하나는 2001년 7월 게재된 낡은 동빙고 군인아파트 르포 기사이다. 당시 서울 한복판에 비가 오면 물이 새는, 30년 이상된 15~18평형 노후 아파트에서 국방부·합참의 중·대령급 엘리트 장교들이 살고 있었다. 그 기사를 보고 한 영관장교 부인이 ‘고맙다’며 울면서 전화를 걸어오는 등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그뒤 새 아파트가 들어섰다. 그 아파트를 요즘 멀리서 지나다 보면 그때 생각이 난다.”
유 기자의 이어지는 말입니다.
“월간조선 1993년1월호에 ‘하나회는 육사 20기 이후에도 영관급까지 조직돼 있다’는 기사도 나름 역사적 의미를 갖는 특종으로 군 내에서 평가돼 왔다. 이 기사를 계기로 ‘유용원’이라는 기자 이름이 나름 알려졌다. 비(非)하나회 출신의 새로운 군 수뇌부가 내 특종 기사를 다 읽고서 신참 출입 기자인 나를 주목하게 됐다. 1993년 당시 국방부 출입기자들은 대부분 부장 승진 직전의 고참급 차장들이었다.”

▲유용원 기자가 쓴 서울 용산구 동빙고동 군인 아파트 기사. 조선일보 2001년 7월9일자 31면(사회면) 톱기사로 실렸다./인터넷 캡처
◇“기자는 이름 석자로 사는 직업”
- ‘군사 전문기자’로서 30년 롱런하는 비결이라면?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은 기본이고 열정(熱情)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데스크가 시켜서가 아니라 본인이 좋아서 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수동적으로 일하는 사람은 미치다시피 좋아서 일하는 사람을 결코 이길 수가 없다. ‘기자는 자기 이름 석자 가지고 사는 직업’이라는 자세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덕목인 신뢰를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유 기자는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개척로를 연다는 자세로 기자 생활을 해왔는데 그게 일종의 엔돌핀을 돌게 하는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좀 건방진 얘기일 수 있지만, 고 정두언 위원장이 나에게 주문한 ‘중심을 잡아 주는 역할’을 하려 노력해 왔는데 그것도 롱런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비밀'로 불리는 유용원 군사세계 웹사이트/인터넷 캡처
- 기자로서, 조선일보 기자로서 지켜오는 원칙이나 기준이 있다면?
“조선일보는 ‘할 말은 하는 신문’으로 평가받는데, 내 자신도 ‘할 말은 하는 기자’가 되려 노력해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출입처(국방부) 입장을 이해하고 우호적인 방향으로 변해온 측면도 있지만, 그럼에도 정말 아닌 건 호되게 비판하려 해왔다. ‘나에게 창피하지 않고 후배에게 부끄럽지 않은 기자’가 되어야겠다는 것도 나의 중요한 원칙이다.”
- 최근 활동이 예전보다 더 왕성해진 것 같다.
“사실 2021년부터 쓰는 기사의 양(量)이 몇 년전 보다 더 많다. 매주 일요일마다 영상을 중심으로 한 온라인 기사인 ‘밀톡’과 뉴스레터 ‘유용원의 밀리터리 시크릿’(매주 화요일 아침 발송) 등 2건의 기사를 고정적으로 쓴다. 이슈가 있을 때마다 별도로 신문 기사를 쓰고 있다. 신문 칼럼인 ‘유용원의 군사세계’는 4~5주마다 게재한다. 국방TV 무기전문 프로그램인 ‘본게임2′에 2018년 이후 매주 고정 출연하고 있다. ‘본게임2′는 50분 분량으로 유튜브에서 매회 평균 10만~20만회 이상 조회 수를 기록한다. 페이스북은 ‘비밀’ 콘텐츠 링크로 매일 8건 정도 업로드한다. 웹사이트와 페이스북 등 개인 채널 관리에 매일 2~3시간 이상 투자하고 있다. 이밖에 강연, 각종 세미나에 수시로 참석하고 있다.”
- 기자 직을 그만 둘까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조언한다면?
“평소 능력과 열정을 높이 평가하고 존경해온 한 후배 기자가 얼마 전 이직해 충격을 받았다. ‘선배의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까봐 조심스럽지만 생명력 있게 길게 사는 길이 무엇인지 한번쯤 더 생각하면 좋겠다는 말씀을 감히 드린다.”

▲유용원 기자가 2021년 출간한 세 번째 단독저서/인터넷 캡처
◇“대기업 임원, 고위 공무원 안 부럽다”
- 평소 자료 축적과 공부는 어떻게 하나?
“해외 전문사이트와 국내 서적을 빠짐없이 읽으려 한다. 칼럼이나 기사를 준비할 때도 각종 서적과 논문 등을 섭렵하며 공부한다. 신문 칼럼은 1~2주 이상 주제와 내용을 숙고하며 자료를 넓고 깊게 수집해 파악한다. 내 웹사이트를 중심으로 자료도 계속 축적한다. 세미나에 참석한 뒤 유용한 발표자료가 있으면 주최측의 양해를 구해 사이트 자료실에 꼭 올려놓는다.”
- 신문사에서 편집국장이나 정치(사회) 부장 같은 보직(補職)을 맡지 않았는데 아쉬움은 없나?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부장이나 국장이 젊은 시절 한때 부러웠다. 그러나 전문기자의 길이 나에게 가장 맞고 잘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나는 일고의 여지 없이 전문기자의 길을 택할 것이다. 여러 기자들을 관리하는 것은 적성에 맞지도 않고, 전문기자가 관리자보다 생명력이 훨씬 길다.”
유 기자는 “대기업 임원이나 고위 공무원이 부럽지 않다. 이들은 잠시 반짝하는 존재인 반면, 전문기자는 좋아하는 일을 생명력있게 계속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 전문기자가 되려는 후배 기자들에게 유망 분야를 추천한다면?
“요즘은 전문화된 유튜브 채널 등 강호(江湖)의 민간 고수들이 많아 전문기자로 성공하려면 더 굳센 결의와 노력이 필요하다. 상대적으로 유망한 분야는 4차산업혁명 등과 관련된 과학기술 분야가 아닐까 한다. 빅데이터, 드론, 로봇 등 각론으로 접근해야 나중에 비즈니스 모델도 생길 수 있을 것이다. 항공우주 분야, 헬스케어 등 실버산업 분야도 괜찮을 듯 하다.”
- 기자가 의사, 변호사처럼 존경받으며 정년없이 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존경받으려면 기사 작성 외에 플러스 알파 역할이 필요하다. 전문기자로 자리잡으려면 출입처와 해당 분야 사람들을 ‘심복(心服)’시킬 수 있어야 한다. 나의 경우 예비역 장성 및 전문가 그룹과 2006년 사단법인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을 창립해 16년째 꾸려오고 있다. 그동안 50여 차례 세미나와 ‘주한미군 및 카투사 순직자 추모비’ ‘국방과학연구소 격려비’ ‘공군 순직 부자 조종사 추모비’ ‘해군 잠수함사령부 격려 조형물’ 등 각종 조형물 건립, 군부대 위문행사, 천안함 재단 기부 같은 활동을 해왔다. 이런 활동을 30년 가까이 변함 없이 하니, 사람들이 진정성과 열정을 알아주더라.”

▲사단법인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이 2012년 개최한 '주한미군 및 카투사 순직자 추모비 개막식' 행사 모습/유용원 제공
그는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단순히 국방부를 오래 출입했다고 전문기자로 불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누구나 해병대가 될 수 있었다면 나는 해병대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아무리 오래 국방부를 담당했더라도 노트북PC 들고 별 생각 없이 출퇴근만 했다면 진정한 전문기자가 될 수 없다.”
◇“조갑제 대표 영향...명저 쓰고 싶다”
- 본인에게 영향을 많이 준 언론인이나 ‘롤 모델’이 있다면?
“입사후 처음 월간조선에서 근무하며 기자로서의 ‘기초군사훈련’을 받았는데, 당시 조갑제 부장(현 조갑제닷컴 대표)께서 데스크셨다. 그가 나에게 일을 많이 시켜 밤도 새우고 고생을 많이 했지만 기자생활에 큰 자양분이 됐다. 조갑제 대표는 하룻밤에 200자 원고지 200장을 일필휘지로 써내려가는, 북한 핵문제부터 대형 국내외 사건까지 모든 분야를 커버한 이 시대의 마지막 올라운드 플레이어 대기자이다. 지금도 필력이 왕성한 조선일보의 김대중 칼럼니스트와 강천석 고문도 영감과 자극을 주시는 존경하는 선배이다.”

▲2016년 12월 조갑제 '조갑제 닷컴 대표'가 TV조선 ‘시사토크 판’에 출연해 국내외 이슈를 진단하고 있다./조선일보DB

▲고인이 된 돈 오버도버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생전에 쓴 저서 <The Two Koreas>/조선일보DB
그는 “미국 워싱턴포스트 국제전문기자로 유명했던 고(故) 돈 오버도퍼 존스홉킨스대 교수가 나에게 ‘롤 모델’ 비슷한 존재이다. 앞으로 좀더 시간 여유가 생긴다면 오버도퍼 교수의 <두 개의 한국(The Two Koreas)> 같은 책을 쓰고 싶다”고 했습니다.
- 10~20년 후 본인 모습을 그려 본다면?
“그때에도 저널리스트로 활동할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생명력 있게 길게 사는 길을 택하고 싶다. 고위 공직 같은 자리에 따른 권력은 유한(有限)하지만 명예에 따른 힘(선한 영향력)은 무한(無限)하다고 본다. 앞으로 웹사이트 등 개인 채널의 역할이 더 커질 것 같다. 유용원의 군사세계 사이트는 21년간 각종 자료를 축적하다보니 사진만 200만장이 넘는다. 우리나라 민간 부문에서 가장 많은 군사 관련 자료를 축적했다는 평가를 받는 만큼, 앞으로 이를 계속 업그레이드하며 군사 전문가 및 일반 대중들과 긴밀하게 소통하고 싶다.”
유 기자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제 웹사이트(유용원의 군사 세계)의 영향을 받아 사관학교, ROTC(학군사관후보생), 군사학과에 들어가 장교가 됐거나 부사관의 길을 걷고 있는 이른바 ‘비밀(bemil) 키즈’들이 적지 않다. 현재 장교는 대위~소령쯤 됐는데 앞으로 이들이 장군, 참모총장 등으로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내 꿈 중 하나이다.”

▲2022년 3월3일 오전 육군학생군사학교에서 열린 2022년 대한민국 학군장교(ROTC) 통합 임관식에서 주요 인사와 신임 장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조선일보 송의달 에디터
08.31 文정부 ‘교과서 알박기’… 자유·남침 표현 뺐다
前정권이 선정한 연구진, 중·고교 새 역사 ‘교육지침’ 바꿔
尹대통령은 ‘자유’ 강조하는데… 교육부, 좌편향 수수방관
교육부, 뒤늦게 “국민의견 수렴해 수정할 것”

▲1950년 7월 대전 시가에 진입한 북한 인민군 탱크부대. 남침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은 7월 20일 대전을 점령했다. /눈빛출판사
2025년부터 중학생과 고교생이 배우게 될 ‘2022년 개정 한국사 교육과정’ 시안(試案)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가 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6·25전쟁에 대해서도 ‘남침으로 시작된’이라는 설명이 빠졌다. 이번 교육과정 시안은 문재인 정부 시절 꾸려진 정책 연구진이 만든 것으로, ‘역사 교육 알박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학계에서는 이대로 한국사 교육과정이 확정될 경우, 학생들이 좌편향된 교과서로 공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교육부는 30일 인터넷 홈페이지에 이런 내용의 중학교 역사·고등학교 한국사 교육과정 시안을 공개했다. ‘교육과정’은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배우게 될 내용과 체계를 써 놓은 것이다. 교과서 집필자들은 ‘교육과정’, 그리고 이보다 세세한 ‘집필기준’에 따라서 교과서를 쓴다. 교육과정과 집필기준을 어기면 교과서 검정 심사 통과가 어렵다. 교육부는 문재인 정부 시절인 작년 4월, 2025년 고교 학점제 도입에 맞춰 새로운 교육과정을 개발하겠다고 발표한 뒤 공모를 통해 연구진을 구성했다. 이들이 전체 방향과 뼈대에 해당하는 ‘총론’과 과목별 ‘교육과정’을 개발해, 이번에 그 시안을 내놓은 것이다.
이날 발표된 한국사 교육과정 시안은 ‘대한민국 발전’ 단원의 성취 기준과 성취 해설 부분에 모두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민주주의’라고 표현했다. 문재인 정부가 2018년 만든 현행 교육과정은 성취 기준에 ‘민주주의’라고 쓰여 있고, 성취 해설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고 돼 있는데, 이번 시안에서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도 빠졌다. 과거 ‘건국절’ 논란을 불러일으킨 1948년 8월 15일에 대해서는 현행 교육과정과 똑같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표현했다.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에서 이런 시안이 발표된 것은 문재인 정부가 작년 12월에 좌편향된 정책연구진을 꾸려 개발을 해왔기 때문이다. 교육과정은 통상 교육부가 과목별 전문가에게 정책 연구를 줘서 개발하고, 그 안을 토대로 공청회에서 의견을 수렴한 뒤 각종 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교육부가 확정해 고시한다. 교육부가 정책연구진을 ‘공모’로 뽑는 것은 정부가 특정 연구자를 선정해 개발을 맡기면 공정성 시비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을 때는 이미 교육과정 개발이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였다.

▲2015년 10월 27일 광화문광장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결의대회'가 열렸다. 집회에 참가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이종걸 원내대표./이태경 기자
교육부가 새로 연구진을 꾸릴 수 있었지만, “정부가 교과서 내용에 간섭하느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부담스러워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과정을 만들어야 그에 따른 집필기준을 만들고, 출판사들이 교과서를 개발한 뒤 검정 심사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새로 연구진을 꾸리기엔 시일이 촉박한 것도 문제다. 교육계 관계자는 “시간도 문제지만, 박근혜 정부 때 교육부가 나서서 국정 역사 교과서를 만들다가 교육부 직원들이 여럿 다쳤기 때문에 이번에는 교육부가 나선다는 생각은 아예 안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을 놓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교육부 동북아교육대책팀 담당자는 “이번 시안은 정책연구진의 연구 결과로, 앞으로 국민 의견 수렴을 하면서 ‘자유민주주의’ ‘남침’ 등 사회적 논란이 많은 부분이 있다면 정책연구진에 재검토를 요청하고 수정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교육부가 이번에 발표한 교육과정 시안은 국민 의견 수렴, 외부 전문가로 꾸려진 교육과정심의회, 국가교육과정개정추진위원회 등의 심의를 거치게 된다. 교육부는 이번에 처음으로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해 교육과정 시안에 대한 국민 의견을 30일부터 9월 13일까지 15일간 받아서 반영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이번 교육과정은 교육부가 국민 의견을 반영해 최종안을 만들더라도, 하반기 출범 예정인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의 심의·의결을 거쳐야 한다. 국교위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대학 입시나 교육과정 등 중·장기 교육 정책과 방향을 정하는 대통령 직속 기구다. 이에 따라 교육부가 ‘자유민주주의’ 등 논란이 있는 부분을 고쳐서 국교위에 제출할 수도 있지만, 기존 시안 그대로 국교위에 제출한 뒤 국교위에서 결정을 하게 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국교위는 총 21명 위원 가운데 위원장을 포함해 5명을 대통령이 지명하기 때문에 현 정부 의견이 반영될 여지가 크다.
박인현 대구교대 명예 교수는 “지난 정부가 알박기한 연구진이 만든 교육과정 시안이 확정되면 그에 따라 집필되는 교과서 내용 역시 좌편향될 수밖에 없다”면서 “교육부가 논란이 되는 역사 교과서 이슈를 피하지 말고 헌법 정신이 제대로 반영될 수 있게 수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김연주 기자
08.31 ‘남침으로 6·25 시작’ 삭제… 전쟁·분단의 北책임 명확히 안밝혀
[새 역사 교육과정 5가지 문제점 보니]
① ‘남침으로 6·25 시작’ 삭제… 北책임 명확히 안밝혀
②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 삭제
尹정부의 핵심 키워드 사라져
③ ‘대한민국 정부수립’ 표현 유지
건국이 아닌 정부수립으로 격하
④ ‘8·15 광복’에서 지워진 ‘8·15′
건국절 논란 의식해 삭제 해석도
⑤ ‘신자유주의 문제’ 새로 넣어
산업화 과정 부정적 이미지 부각
30일 교육부가 공개한 ‘2022 개정 교육과정 시안(試案) 고등학교 한국사’는 현대사 부분에서 박근혜 정부 때 마련된 2015 개정 교육과정은 물론, 4년 전 문재인 정부 때 나온 2018년의 교육과정보다 오히려 더 좌경화(左傾化)됐다는 논란을 부를 만한 내용이 들어 있다.
① ‘6·25 남침’이 사라졌다
2015년 교육과정은 ‘북한군의 남침’을 명시했다. ‘학습 요소’의 소주제 ‘대한민국 수립과 6·25 전쟁’ 항목에서다. 남침(南侵)은 ‘북쪽에서 남쪽을 침범함’이란 뜻이다. 2018년 교육과정에선 교육과정과 교과서 집필기준에서 모두 ‘남침’이란 말이 빠졌다가 비판을 받자 집필기준의 상위 개념인 교육과정에 ‘남침으로 시작된 6·25 전쟁’이라는 문구를 추가했다.
하지만 이번 2022 교육과정 시안에서는 아예 ‘남침’이란 표현이 사라졌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교육과정에 적시한 ‘남침’이 윤석열 정부의 교육과정에서 실종된 것이다. 또 성취기준 해설에 ‘냉전 체제가 정치 세력의 갈등과 재편에 미친 영향을 파악하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을 탐색한다’ ‘6·25 전쟁과 분단의 고착화 과정을 국내외의 정세 변화와 연관 지어 이해한다’ 등의 표현으로 분단과 전쟁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모호하게 서술했다.
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명확하게 가르쳐야 할 6·25 남침의 사실을 교육과정에서 빼는 것은 적절치 않은 일”이라며 “현재도 북한이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② ‘자유’가 삭제된 ‘자유민주주의’
2015년 교육과정에서는 ‘자유민주주의의 발전 과정’과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가치를 실현하고자 했던 민주화 운동’ 등의 문구에 ‘자유민주주의’란 말이 들어갔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를 넣지 말자는 측에서는 이 말이 ‘남북 대립을 강조한 사람들이 사용한 용어’라고 비판했다. 2018년 교육과정에서는 집필기준에 ‘자유’를 빼고 그냥 ‘민주주의’라고 썼다가 “인민민주주의도 용인하겠다는 것이냐”는 비판을 받자 교육과정에서 헌법 전문(前文)에 등장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말을 넣었다.
그러나 2022 교육과정 시안에선 다시 ‘자유민주주의’의 ‘자유’가 사라지고 ‘민주주의의 시련’ ‘민주주의의 발전’ 등으로 표기했다. 당선 기자회견에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했던 윤석열 정부의 기조가 무색해질 만한 상황인 셈이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의 정체성과 보편성, 민주화의 성과와 헌정적 가치로 볼 때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는 적절한 표현이고 북유럽 등에서도 사회민주주의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쓰는데, 왜 굳이 이 용어를 변경하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③ ‘대한민국 수립’ 아닌 ‘대한민국 정부 수립’
2015년 교육과정에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각하고 북한과 차별화하기 위해 ‘대한민국 수립’이란 표현을 썼고 북한은 ‘북한 정권 수립’이라고 했다. 그러나 2018년 교육과정에선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란 표현을 써서 “대한민국이란 국가의 건국 의미를 ‘정부 수립’ 정도로 격하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2022 교육과정에선 여전히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란 표현을 썼고 ‘북한 정권 수립’은 삭제했다.
④ ‘8·15′도 빠졌다
2015년과 2018년 교육과정에 모두 들어 있었던 ‘8·15 광복’에서 ‘8·15′라는 말도 2022 교육과정에서 빠졌다. 8·15는 일제가 항복한 날(1945년)인 동시에 대한민국이 수립한 날(1948년)이기 때문에, 일각에서 이 날을 ‘광복절’에서 ‘건국절’로 바꾸자고 했다가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이 건국’이라는 주장과 부딪쳤던 건국절 논란 등을 의식해 일부러 뺀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다.
⑤ 새로 들어간 ‘신자유주의의 문제’
2018년 교육과정에는 없었던 ‘신자유주의’라는 용어가 2022 교육과정에는 부정적인 의미로 들어갔다. ‘민주주의의 성숙과 평화를 위한 모색’ 단원의 성취기준 해설 중 ‘신자유주의가 사회와 경제, 문화 등에 미친 영향을 다각도로 탐구하고 그로 인해 발생한 문제를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는 문구에서다. 다른 곳에선 ‘산업화를 성장과 발전의 관점에서만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여러 사회 문제를 일으키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사회운동이 전개되었음을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고 했다. 대한민국 산업화의 부정적인 측면을 더 강조하려 한다는 의심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다.
조선일보 유석재 기자
08월 31일 ‘자유’ ‘6·25 남침’ 뺀 한국사 교육지침 바로잡으라
대한민국 국가 정체성을 흔들던 문재인 전 정부의 ‘좌편향 교과서 알박기’ 시도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교육부가 국민 의견을 듣겠다며 30일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한 ‘2022년 개정 한국사 교육과정’ 시안(試案)에는 ‘자유민주주의’ 용어조차 빠졌다. 6·25전쟁에 대해서도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이라는 설명을 없앴다. 2025년부터 중학교 ‘역사’ 과목과 고등학교 ‘한국사’ 과목에서 가르칠 내용·체계를 규정한 ‘교육과정’으로, 이는 교과서의 집필기준도 반드시 따라야 하는 교육지침이다.
문 정부 때이던 지난해 4월 공모를 통해 경쟁 입찰로 용역을 준 정책연구진이 만들었다고 하지만, ‘반(反)역사’ 교육지침 시안까지 윤석열 정부가 ‘국민 의견 수렴’을 앞세워 그대로 발표한 것부터 무책임의 전형이다. 2014년 “유관순은 친일파가 만든 영웅” 운운의 망언을 했다가 사과한 바도 있는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가 주도한 연구진 성향에 비춰, 어이없는 시안은 예고된 것과 다름없다. 중·고교 교사가 절반 이상인 연구진에는 전교조 연대 단체인 전국역사교사모임 소속도 상당수 들어 있다고 한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2018년 삭제하려던 문 정부는 교육계 안팎의 비판에, 일단 헌법 전문(前文)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표현을 넣었다. 그러고도 좌편향 용역을 통해 재시도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남침’ 표현 삭제, ‘대한민국 수립’의 ‘정부 수립’ 격하, ‘8·15 광복’의 ‘8·15’ 삭제 등도 마찬가지다. 교육부는 “사회적 논란이 많은 부분이 있다면, 정책연구진에 재검토를 요청하고 수정해 나가겠다”며 남의 일을 말하듯이 할 때가 아니다. 교육과정심의회·국가교육과정개정추진위원회는 물론, 올 하반기에 출범할 국가교육위원회도 분명한 역사관·교육관을 갖춘 인사들로 구성해 시안의 ‘역사 왜곡’과 ‘반대한민국 선동’을 철저히 걸러내고,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