脫 脫原電 2022-08/
08월 16일 탈원전 폐기 출발점은 ‘인적 청산’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한전 적자 상반기 14兆 연말 30兆
산업부 탈원전 몽니가 빚은 재앙
눌러 놓은 전기료 인상은 불가피
감당 가능한 ‘에너지 믹스’ 복구
태양광·풍력 보조금 대폭 내리고
한전 등 CEO 전문가로 바꿔야
한전이 올 상반기에 14조3033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 2분기부터 5분기 연속 적자 행진이다. 연말에는 적자가 30조 원에 이를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 현실로 굳어가는 셈이다. 최악의 좀비기업으로 전락한 한전을 살려내는 극약 처방이 필요하다. 물론 한전이 좋아서가 아니다. 자칫하면 국가 경제와 국민 생활이 통째로 무너질 수 있는 위기는 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전은 발전사로부터 구입한 전기를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중개상이다. 그런데 지난 상반기에는 킬로와트시당 169.3원에 구입한 전기를 소비자에게 110.4원에 팔았다. 전력구매단가(SMP)는 지난해보다 2배 이상 뛰었는데 판매단가는 5년 동안 꽁꽁 묶어 놓은 결과다. 탈원전과 전기요금은 무관하다고 우겼던 산업통상자원부의 어처구니없는 몽니가 만들어낸 재앙이다.
물론 겉으로는 국제 연료 가격 상승이 적자의 원인으로 보인다. 그런데 LNG·석탄의 가격 상승 충격을 폭발적으로 증폭시킨 진짜 원인은 ‘탈원전’이었다. 단가가 가장 낮은 원전·석탄의 발전 비중을 줄이고, 단가가 가장 높은 LNG와 각종 보조금을 줘야 하는 태양광·풍력을 무차별로 투입하게 만든 탈원전을 탓할 수밖에 없다.
지난 정부에서 원전을 줄이지 않았다는 탈원전주의자들의 주장은 소가 들어도 웃을 수밖에 없는 억지다. 지난 5년 동안의 탈원전으로 사라진 원전 설비의 규모가 무려 7.27GW에 이른다는 것이 진실이다. 경제성 평가를 조작해서 멀쩡한 월성 1호기를 불법으로 폐로시켰고, 신한울 1·2호기와 신고리 5·6호기의 공사를 억지로 지연시켰으며, 격납건물의 공극을 핑계로 한빛 4호기를 5년 동안 세워 놨다. 가동 중인 원전들도 유지·보수를 핑계로 가동을 중단시켜 가동률이 70%까지 떨어졌었다. 건설 자체를 백지화시킨 설비도 8.4GW나 된다.
망국적인 탈원전을 확실하게 폐지하고, 감당할 수 있는 합리적인 ‘에너지 믹스’를 복구해야 한다. 지난 정부가 공사를 지연시켰던 원전의 완공을 서두르고, 원전 가동률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한다. 물론 원전 안전에는 한 치의 틈도 용납할 수 없다. 불안에 떨 이유가 없다. 우리는 문재인 전 대통령도 자랑한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 기록을 가지고 있다. 불법으로 중단시킨 신한울 3·4호기의 공사도 서둘러 재개해야 한다.
탈원전을 정당화하겠다고 5년 동안 억지로 눌러 놨던 전기 요금의 현실화도 피할 수 없다. 물론 한전이 요구하는 킬로와트시당 50원 인상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물가를 핑계로 전기 요금 인상을 마냥 미루는 게 능사일 수는 없다. 현재의 어려움을 미래로 떠넘기면 상황은 오히려 더 나빠지게 된다. 지난 5년간 뼈아프게 경험했던 일이다. 전기 요금 인상이 전력 소비 감축의 가장 확실한 정책 수단이란 사실도 중요하다.
한전의 전력 구매 단가를 끌어내리는 노력도 절실하다. 태양광·풍력 사업자들에게 지급하는 보조금을 대폭 줄일 수밖에 없다. 한전의 부담을 증가시키는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제도(RPS) 의무공급 비율도 하향 조정해야 한다. SMP 상한제의 도입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전 세계적인 에너지 위기 상황에서 민간 LNG 발전사만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는 없다. 태양광·풍력 사업자와 민간 LNG 발전사도 국민과 함께 고통을 분담할 수밖에 없다.
한전과 발전 자회사들의 즉각적인 경영진 교체도 시급하다. 이사회가 현재의 경영진에게 최악의 부실에 대한 책임을 확실하게 물어야 한다. 한시도 지체할 이유가 없다. 임기를 따질 상황도 아니다. 배임의 책임도 무겁게 물어야 한다. 한전 직원들도 고강도 자구책의 부담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최고의 경영 능력을 갖춘 전문 경영인이 필요하다. 첨단 산업으로 변해 버린 에너지 분야의 전문성과 함께 높은 수준의 윤리성도 무시할 수 없다. 권력 핵심과의 개인적인 인연은 아무 의미가 없다. 지난 100일 동안의 참혹한 인사 실패를 되풀이해서는 절대 안 된다. 산업부의 퇴물을 재활용하는 비뚤어진 관행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탈원전 폐지를 핵심으로 하는 ‘새 정부 에너지정책’의 홍보를 탈원전 선동가들에게 맡기는 나사 빠진 산업부도 개편해야 한다. 한시가 급하다. 더 이상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문화일보
08.19 검찰, 월성 원전 의혹 대통령기록관 압수수색
문재인 정부의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경제성 조작’ 의혹 사건을 수사하는 대전지검 형사4부가 19일 세종시 대통령기록관을 압수 수색하고 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당시 ‘문재인 청와대’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과정에서 어떤 의사 결정을 내렸고, 산업통상자원부 지시한 내용이 위법한 점은 없는지 등을 대통령기록물을 통해 확인하는 차원이라고 한다. 이 사건 관련 ‘문재인 청와대’ 윗선을 향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는 것이다.
검찰은 전 정부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이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 하도록 지시한 상부 기관이 ‘문재인 청와대’라고 의심해 왔다. 이 사건과 관련해 문재인 전 대통령과 임종석 전 비서실장, 김수현 전 사회수석, 문미옥 전 과학기술보좌관, 박원주 전 경제수석 등이 직권남용 등 혐의로 이미 고발돼 있기도 하다.
전 정부 시절 대전지검은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과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 정재훈 한수원 사장을 기소한 이후 수사를 진척하지 못했다. 당시 ‘친정권’ 대검 지휘부 등의 반대에 부딪혀 수사가 사실상 막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대전지검 지휘부가 바뀐 뒤, 대전지검은 문재인 정부 청와대 인사들에 대한 고발 사건을 수사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법원에서 압수 수색 영장을 발부 받아 이날 대통령기록관 압수 수색에 나선 것이다.
대통령기록관 압수 수색 영장은 통상의 압수 수색 영장이 지방법원에서 발부받는 것과 달리 관할 고등법원에서 발부 받아야 한다. 통상의 압수 수색 영장 청구 때보다 더 탄탄하게 혐의 입증을 해야 영장이 발부된다고 한다.
한편, 대전지검은 백운규 전 장관이 한수원에 부당한 지시를 내려 1481억원의 손해를 끼치도록 한 배임 교사 혐의 등에 대해서 추가 기소를 할 예정이다. 대전지검은 백 전 장관 등에 대한 공소장 변경을 통해 그의 혐의를 추가할 것으로 전해졌다.
조선일보 이세영 기자
08.20 월성·북송… 대통령기록관 하루 두번 압수수색
文정부 청와대 윗선으로 향하는 검찰 수사
검찰이 19일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과 ‘귀순 어민 강제 북송’ 사건과 관련, 세종시에 있는 대통령기록관을 압수 수색했다. 두 사건 모두 문재인 정부 청와대가 연루됐다는 의혹이 있어 지난 정부 청와대 윗선을 향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통령기록물, 고등법원장이 영장 발부땐 열람가능 - 월성 원전 조기 폐쇄 의혹을 수사중인 대전지검 관계자들이 19일 세종시 대통령기록관 압수 수색을 하기 위해 기록관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날 오후에는 귀순 어민 강제 북송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도 대통령기록관을 압수 수색했다. /뉴시스
원전 사건을 수사 중인 대전지검 형사4부(부장 김태훈)는 이날 오전 “‘월성 원전 불법 가동 중단 청와대 개입 고발’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기록관을 압수 수색했다”고 밝혔다. 국민의힘과 시민단체 등에서 이 사건과 관련해 문재인 전 대통령과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수현 전 사회수석, 문미옥 전 과학기술보좌관, 박원주 전 경제수석 등이 월성 원전 조기 폐쇄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의혹이 있다며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고발한 바 있다. 이날 검찰은 2018년 초 청와대에서 원전 조기 폐쇄를 결정하는 과정에 청와대 관계자들이 작성한 보고서, 청와대가 산업통상자원부 등과 주고받은 문서 등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귀순 어민 강제 북송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3부(부장 이준범)도 이날 오후 수사팀을 대통령기록관에 보내 자료 확보에 나섰다. 검찰은 2019년 11월 문재인 정부 청와대가 탈북 어민 2명이 귀순 의사가 있는데도 합동 조사를 법적 근거 없이 조기 종료시키고 강제로 북한에 돌려보낸 의혹을 수사 중이다. 이와 관련, 국정원과 시민단체 등이 정의용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 등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고발한 상태다. 검찰은 당시 청와대가 강제 북송 방침을 결정한 회의 관련 자료와 국가정보원의 보고 자료 등을 선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압수 수색이 문재인 전 대통령을 겨냥한 정치 보복이라고 주장했다. 우상호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원전 정책에 불만이 있으면 윤석열 정부가 원전 정책을 바꾸면 될 문제이지, 전 정부의 정책 변화 문제를 수사 대상에 놓고 괴롭히는 일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온당치 않은 일”이라고 했다.

검찰은 현재 수사 중인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사건, 귀순 어민 강제 북송 사건과 관련해 문재인 정부 청와대와 정부 부처 간에 논의된 내용을 확인해 책임 소재를 규명하기 위해 이날 대통령기록관 압수 수색에 나섰다. 최장 30년간 비공개할 수 있는 대통령지정기록물도 관할 고등법원장이 영장을 발부하면 검찰이 자료 열람 등을 할 수 있다.
원전 사건을 맡고 있는 대전지검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과정이 시작된 2018년 초 청와대 자료부터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2020년 10월부터 이 사건 수사를 시작한 검찰은 작년 6월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과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을 직권남용·업무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백 전 장관 등의 지시에 따라 경제성 평가를 조작하고 이사회에서 원전 가동 중단을 이끌어내 한수원에 1481억원 손해를 입힌 혐의(배임·업무방해)로 기소됐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2018년 4월 문미옥 당시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이 월성 1호기를 방문하고 돌아온 뒤 청와대 내부 보고 시스템에 ‘월성 1호기 외벽에 철근이 노출되어 정비를 연장한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등록했고 이를 확인한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월성 1호기 영구 가동 중단은 언제 결정할 계획인가요’라고 댓글을 달았다”고 밝혔다. 또 “채 전 비서관이 산업부로부터 받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추진 방안 및 향후 계획 보고서’를 청와대 내부 결재 시스템 또는 대면 보고를 통해 (홍장표) 경제수석비서관, (장하성) 정책실장, (임종석) 비서실장의 중간 결재를 받아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했다.
하지만 조기 폐쇄를 산업부 등에 지시했다는 의혹을 받는 청와대 윗선에 대한 수사는 지난 정부에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대전지검이 백 전 장관을 배임 교사 혐의로 추가 기소하려고 했지만, 김오수 전 검찰총장이 수사심의위가 반대한다며 추가 기소를 막았다. 청와대 앞에서 수사를 멈춘 셈이다. 검찰이 산업부 공무원 3명의 구속영장 청구 관련 결재를 올리기로 한 2020년 11월 24일 오후 6시, 추미애 당시 법무장관이 돌연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직무 정지 명령을 내리고 징계 청구 방침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문 전 대통령이 댓글을 달고 이틀 만에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방침이 정해진 과정에 대한 청와대 문서를 확보하기 위해 이날 대통령기록관 압수 수색에 나섰다는 것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이 청와대 윗선의 위법성을 확인하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한편 강제 북송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은 2019년 11월 귀순 어민 2명이 강제 북송되기에 앞서 이들에 대한 합동 조사가 불과 사흘 만에 강제 종료됐고 북송 방침이 미리 정해져 있었다는 의혹과 관련,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불법 지시가 있었는지를 확인하고 있다. 검찰은 이날 압수 수색에서 강제 북송 당시 청와대 의사 결정 관련 대통령 기록물을 열람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북한 어민 나포 전날(11월 1일) 국정원에 “대통령이 순방 가기 전에 조사·보고해야 한다”는 의사를 전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문 전 대통령은 그해 11월 3~5일 태국에서 열린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와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참석을 앞두고 있었다. 청와대는 “(동료 선원 16명을 살해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과거 중대 범죄를 저지른 탈북자를 추방한 사례가 있느냐”는 문의도 국정원에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때 귀순 어민의 배는 동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우리 해군의 퇴거 작전에 쫓기고 있었다. 검찰은 이런 정황들이 당시 청와대가 북한 어민들이 우리 해군에 나포되기 전부터 이들이 국내에 들어오면 서둘러 북송하겠다는 방침을 세워뒀다는 방증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또 북한 어민의 배가 나포된 직후인 같은 해 11월 4일 오전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 주재로 열린 회의에서 어민 합동 조사가 끝나기도 전에 북송 방침이 이미 결정돼 있었다는 의혹도 있다. 검찰은 어민 북송과 관련한 주요 의사 결정이 당시 서훈 국정원장과 노 실장이 함께 논의해 이뤄졌고, 노 실장 주재 대책회의에서 북송 방침이 미리 결정된 것으로 보고 있다.
08.25 유럽 에너지 위기에도 원전 덕에 느긋한 프랑스
프, 전력 생산의 71%가 원전… 에너지 자급률 높아 안정적
러 가스 믿고 탈원전했던 독일… 뒤늦게 원전 폐쇄 연기 고려
여름인데 유럽은 벌써 겨울 걱정이다. 유럽의 천연가스 창고가 비어가며 올겨울 심각한 에너지 위기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천연가스 주요 수입국인 한·중·일 동북아 지역의 겨울 기온이 유럽의 에너지난을 좌우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같은 유럽 국가이지만 프랑스와 독일이 위기를 느끼는 온도 차는 다르다. 프랑스는 올겨울 독일이 난방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면 가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했다. 다양한 분야에서 경쟁 관계인 프랑스로부터 이런 제안을 받은 독일로서는 자존심이 상할 만한 일이다.
두 나라의 이런 차이는 탈원전 정책이 갈랐다. 프랑스는 전 세계에서 원전 의존도가 높은 나라 중 하나다. 부족한 화석연료 자원을 극복하기 위해 국가 주도로 원전 기술 자립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프랑스의 전력 생산에서 원자력 비율은 70.6%로 우리나라(29.6%), 러시아(20.6%), 미국(19.7%)에 비해 훨씬 높다. 덕분에 에너지 자급률이 안정적인 50%대를 유지해 왔다. 이런 프랑스도 올랑드 전 대통령 재임 때 원전 비율을 낮추는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추진했다. 하지만 마크롱 정부가 들어선 뒤엔 앞선 정부의 친환경 에너지 전환이라는 정책 기조는 유지하면서 원전에 대해서는 실용주의 접근을 했다.
원전과 재생에너지 사이 양자택일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실용적 노선을 택한 것이다. 원자력 에너지를 친환경 에너지 전환의 교두보로 삼겠다는 비전을 제시한 마크롱 정부는 지난 2월 6기 신규 원전 건설을 발표했다. 8기 추가 건설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했다. 또 기존 원자로 폐쇄 계획을 중단하고, 수명을 늘려 계속 쓰겠다고도 했다.
반면 메르켈 정부 시절이던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탈원전을 추진한 독일은 오는 12월까지 마지막 남은 원전 3기를 폐쇄할 계획이다. 2010년 독일 전력 생산량의 22%를 차지했던 원전은 작년 11.8%, 올 1분기 6%로 떨어졌고 계획대로라면 내년이면 영(0)이 된다. 지난해 프랑스 전체 에너지 소비 중 화석연료(오일·가스·석탄)와 원전 비율은 49.9%와 36.5%인데 반해 독일은 76%와 4.9%이다. 독일은 절대적으로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푸틴의 값싼 가스만 믿고 탈원전·탈석탄을 추진한 독일은 러시아·독일의 수십년 경제 밀월이 한순간 깨지면서 심각한 에너지 위기에 봉착했다. 러시아 가스 공급 감축에 대응하기 위해 폐지가 결정된 석탄발전소를 일시 재가동하고, 수명을 연장하는 비상대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폭염과 가뭄으로 독일 내륙 수운의 대동맥인 라인강 수위가 뚝 떨어지면서 석탄발전소 전력 생산은 차질을 빚고 있다. 기차에 승객보다 석탄을 먼저 싣는 방안까지 추진 중이다. 독일 시민은 가스 대신 난로를 사용하기 위해 나무·석탄 땔감을 사서 쌓아 놓는 지경이다. 그제야 독일 정부는 “러시아 에너지에 의존했던 정책은 실수였다”며 원전 폐쇄 연기를 시사했다. 하지만 탈원전 10년이 넘은 독일은 기존 설비 재가동을 위한 개·보수에 막대한 비용이 필요해 탈원전 정책 폐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노르웨이·호주 등 주요 에너지 생산국이 자원 수출을 제한할 태세여서 우리나라도 에너지 안보 전략 강화가 더욱 절실한 상황이다. 에너지 공급망 다변화와 안정적인 공급처 확보를 위한 장기 대책이 시급하다. 무엇보다 원전을 늘리든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든 단기간 성과를 낼 수 없는 에너지 정책은 경제·과학적 근거는 물론 안보 측면까지 고려해 추진돼야 한다. 정치·이념적 판단이 끼어들어선 안 된다.
조선일보 사설
08.26 국내 원전 생태계 숨통 트였다… 체코·폴란드 수출도 ‘파란불’
벼랑끝 몰렸던 원전, 해외 수출로 기지개
에너지 위기에 세계 원전 건설붐
글로벌 원전시장 주도하던 러시아
우크라戰으로 배제 가능성 높아져
“중동지역서 물량 대거 쏟아질 것”
국내 중소기업들도 모처럼 활기
한국수력원자력이 이집트 엘다바 원전 프로젝트에서 터빈 등 건설 계약을 체결한 것은 지난 5년간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탓에 고사 상태였던 국내 원전 생태계에 ‘가뭄 끝 단비’와 같다는 평가가 나온다. 2009년 이명박 정부 당시 186억달러(약 25조원) 규모의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와 비교하면 계약 규모나 수주 내용에서 차이가 있지만, 최근 원전 확대라는 글로벌 추세에 맞춰 한국 원전의 존재감을 드러냈다는 의미가 있다. 2000년대 이후 미국·프랑스 등 서방 원전 강국이 경쟁력을 잃고, 그 자리를 러시아·중국이 차지해가는 상황에서 경제성과 안전성을 갖춘 한국 원전 수출에도 청신호가 켜졌다는 분석이다.
◇”붕괴 직전 한국 원전 업계에 단비”
25일 이집트 엘다바 원전 4기 건설 사업에 한수원이 3조원 넘는 기자재 공급, 터빈 건설 계약 체결 소식이 전해지자 한 원전업계 관계자는 “촘촘하게 발주가 이어진다면 신고리 5·6호기 이후 2년 넘게 일감이 끊어졌던 기자재 업계가 체력을 회복할 시간을 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남 창원에 있는 한 원전 부품 업체 대표도 “(문 정부 때 건설이 중단된) 신한울 3·4호기 공사가 2024년 재개되고, 엘다바 물량까지 나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25억달러(약 3조3000억원) 규모 기자재 공급·터빈 건물 시공 사업을 수주한 이집트 엘다바 원전 조감도. 러시아 ASE가 올해부터 오는 2030년까지 1200㎿(메가와트)급 4기를 건설한다. /한국수력원자력
업계에서는 한수원이 맺은 엘다바 계약 금액 25억달러(약 3조3000억원) 중 현지 인건비와 자재 등을 제외한 60~70% 정도가 국내 시공·기자재 업체 매출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정부가 원전업계를 살리기 위해 예비품 등 1306억원 규모의 긴급 일감을 발주하기로 한 가운데 엘다바 원전 기자재가 추가로 발주되면 탈원전 5년 동안 벼랑 끝에 몰렸던 원전 산업 생태계가 되살아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 원전 업계 관계자는 “이번 계약은 원전의 핵심인 원자로가 아닌 보조기기 분야라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 제작한 일반 기자재 비중이 크다”며 “경영난을 겪는 중소기업들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엘다바 원전 건설에는 기계·배관·전기·계측 등 국내 100여 개 원전 기자재 업체가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 정부에선 신한울 3·4호기를 포함해 신규 원전 건설을 백지화하고, 최초 설계수명이 끝난 원전에 대한 계속운전 허가까지 막으면서 원전 기자재 업계는 일감이 ‘제로(0)’인 상황이 수년째 이어졌다.
◇체코, 폴란드 등 수출 기대 커져
엘다바 계약을 계기로 한국 원전 수출도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원전 건설 경쟁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탈원전 정책에 대한 의구심으로 불안해하던 원전 발주국에 이번 계약이 새 정부의 ‘탈원전 폐기’를 공식적으로 확인해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집트 엘다바 원전 건설 프로젝트
우리나라는 체코의 1200㎿(메가와트)급 원전 1기 입찰을 두고 미국·프랑스와 3파전을 벌이고 있다. 원전 6기 건설을 계획 중인 폴란드에서는 미국과 협력해 수주를 노리고 있다. 이집트와 가까운 사우디아라비아의 2기와 UAE가 추가로 건설 예정인 바라카 5~6호기 수주도 기대해볼 수 있다. 원전 업계에서는 다음 달 UAE 고위층이 잇따라 방한하는 것을 두고 원전 추가 발주 가능성을 예상한다. 정동욱 중앙대 교수는 “지금까지 사막에 원전을 지은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며 “앞으로 중동 지역에서 대거 물량이 쏟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번 수주가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 사회 제재를 받는 러시아가 앞으로 국제 입찰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큰 것은 우리에게 유리한 대목이다. 러시아는 자금력을 바탕으로 인도·터키·방글라데시 등에 원전을 수출하면서 최근 글로벌 원전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우리나라 원전의 경제성과 안전성이 돋보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WNA에 따르면 한국형 모델의 건설 단가는 미국의 65%, 러시아와 프랑스와 비교하면 50%대다. 1978년 고리 1호기 상업 운전 이후 40여 년간 꾸준히 원전을 건설·운용해온 것도 강점으로 꼽힌다.
정범진 경희대 교수는 “한국형 원자로 수출은 아니어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서도 “앞으로 원전 르네상스가 기대되는 시점에 이번 계약을 계기로 산업 생태계를 빨리 회복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조재희 기자
08.26 “공사기한 잘 지켜 단가 낮고 안전”… 이집트 원전 수주 배경은
건설 단가, 중국보다 저렴하고 프랑스 절반 가격
한국이 3조원 규모의 이집트 엘다바 원전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한 배경을 두고 원전 업계와 전문가들은 세계 최저 수준의 건설 단가와 아랍에미리트(UAE) 사막에 원전을 성공적으로 건설한 경험을 원인으로 꼽았다.
26일 세계원자력협회(WNA)에 따르면, 작년 기준 한국의 원전 건설 단가는 1킬로와트(㎾)당 3571달러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국가 차원에서 ‘원전 굴기’를 추진하는 중국은 건설 단가가 1㎾당 4174달러로, 한국이 16.9% 저렴하다. 사우디 원전 수주를 두고 경쟁하는 러시아(6250달러)와 비교해도 42.9% 낮은 수준이며 미국(5833달러), 프랑스(7931달러)보다는 크게 낮다.

▲한국이 수출한 UAE 바라카 원전 2호기 모습. /한국전력 제공.
한국의 원전 건설 단가가 세계 최저 수준인 이유는 40여년에 걸쳐 축적한 원전 건설・운영 경험 덕분이다. 95%에 달하는 부품 국산화율과 탄탄한 기자재 공급망을 통해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있었다. 여기에 2017년 11월 유럽사업자요건(EUR) 인증을 취득하고 2019년 8월에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 설계인증을 취득하는 등 안전성도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정해진 공기(공사기한)를 제대로 준수하는 점도 한국 원전 산업의 강점으로 꼽힌다. 프랑스 원전기업 아레바는 핀란드 올킬루오토 원전의 준공 시점을 13년이나 못 지켰고 미국의 웨스팅하우스는 자국 내 보글 원전의 건설을 6년이나 지연시킨 전례가 있다. 반면 한국은 UAE 바라카 원전을 적기에 준공했다. 윤병조 부산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해외 다른 나라는 원전 상세 설계 능력과 부품 조달 능력이 부족한 탓에 공기를 못 지키는 경우가 있다”며 “한국의 원전 건설 단가가 낮은 이유도 공기를 최소화해 금융 비용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이 UAE 사막에 원전을 성공적으로 건설한 경험도 이번 엘다바 원전 프로젝트를 수주한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작은 먼지 하나도 원전에 치명적인데, 중동 사막의 모래폭풍 속에서 원전을 지은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며 “(발주사인) 러시아도 사막에 원전을 지은 경험이 전무하니 원전 파트너로 한국을 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UAE 원전 건설 당시 한국은 사막의 모래바람을 막기 위해 현장에 초대형 텐트를 설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현장의 모래가 염분이 높은 탓에 500㎞ 떨어진 지역에서 모래와 자갈을 공수해 온 뒤 얼음으로 식혀가며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이뤄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이번 이집트 원전 수주는 UAE 원전을 성공적으로 건설한 것에 대한 기술적인 보답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 엘다바 원전 건설 프로젝트 수주에 힘 입어 체코와 폴란드에서도 원전 수출의 성과를 내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탈원전으로 일감이 끊긴 국내 원전 업계가 해외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원전수출전략 추진위원회’를 중심으로 지원을 강화할 방침이다. 지난 22일 취임한 황주호 신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원전 수출 10기를 목표로 제시하며 “원전 강국의 새 역사 쓸 것”이라고 밝혔다.
조선일보 김우영 기자
08월 26일 이집트 원전 부분 수주, 탈원전 폐기 公認 받은 의미 크다
한국 원자력발전 산업이 탈원전 미망에서 벗어나 13년 만에 다시금 해외 원전 수주에 성공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약 3조 원 규모의 이집트 엘다바 원전 건설의 일부 계약을 따냈다고 정부가 25일 발표했다. 원자로 등 핵심 분야가 아닌 부속 분야이긴 하지만, 국제사회가 윤석열 정부의 ‘탈원전 폐기’를 공인(公認)했다는 간접적 의미가 크고, 전체 사업을 수주한 러시아가 원전 경쟁국인 한국에 부속 사업을 맡겼다는 사실도 많은 시사점을 갖는다.
엘다바 원전 사업은 러시아 로사톰의 자회사 ASE가 전체 사업을 수주했으며, 우리는 두산에너빌리티가 원전 기자재 공급과 터빈 건물을 포함, 82개 건물 및 구조물에 대한 시공을 맡게 된다.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의 경우처럼 원자로나 증기발생기 등 원전의 핵심 기기 제작을 맡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당장 무모한 탈원전으로 붕괴 직전이던 국내 원전 생태계가 벼랑 끝에서 기사회생할 계기가 됐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전체 수주액 3조 원 가운데 2조 원가량이 100여 개 국내 중소 기자재 업체에 뿌려질 수 있어 가뭄 끝 단비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
나아가 정부는 이번 수주를 도약대로 삼아 K원전 수출에 본격적으로 속도를 낼 계획이다. 8조 원가량의 체코 두바니 원전과 40조 원 규모의 폴란드 원전 건설이 한국 원전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 돼야 한다. 영국과 사우디아라비아도 각각 원전 건설 계획을 밝히고 있다. 글로벌 원전 사업에서 러시아와 중국이 배제되고 있는 만큼 주변 환경도 우호적이다. 최근 미국과 사실상의 ‘원전 동맹’을 맺었다. 이번 이집트 원전 수주 과정에서 ‘러시아 제재’ 예외를 인정 받는 데도 도움이 됐을 것이다. 원전만 수출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방위산업·인프라·정보기술(IT) 제공 등의 맞춤형 전략으로 경쟁력을 더 키우고, 장기적으로 국익에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8.27 이집트 원전 참여로 튼 물꼬, 진짜 원전 수출로 이어가야
한국수력원자력이 이집트 엘다바 원전의 기자재 공급과 일부 구조물 건설 사업을 수주했다. 러시아 원전 기업이 원전 4기 건설 프로젝트를 이집트로부터 300억달러(약 40조원)에 따냈는데, 한수원은 러시아 기업에서 그중 일부 프로젝트를 25억달러(약 3조3000억원)에 받아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지난 정부 탈원전 탓에 고사 직전까지 몰린 원자력 산업계 처지를 생각하면 응급 영양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엘다바 원전 건설 참여는 반가운 일이나 어디까지나 러시아 하청 업체로 참여하는 것이다. 우리는 미국이 건설 중인 보그틀 원전에 원자로 등 핵심 설비를 공급했을 정도로 세계 최고 수준의 원자력 기술을 갖고 있다. 러시아의 원전 수출 프로젝트에 하청 기업으로서 보조 기기를 공급하는 것에 좋아할 일이 아니다. 2009년 UAE 바라카 원전 4기 수출에 성공해 놓고 그 후 13년 동안 무얼 하고 있었는지 반성해야 한다.
원자력 산업은 재부흥을 맞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전 세계를 덮친 에너지난에다 탄소 중립의 긴박한 필요로 유럽·중동 등에서 원전 수요가 늘고 있다. 탈원전 독일까지 최근 원전 폐쇄 일시 중지 움직임이 있고, 후쿠시마 사고를 겪은 일본도 내년까지 가동 원전을 현재의 7기에서 17기까지 늘리기로 했다. 현재 유럽에선 원전 수출의 강력한 경쟁 상대인 러시아에 대한 원전 입찰 참여 배제 움직임이 있다. 중국은 중국대로 미국 견제를 받고 있다. 체코·폴란드가 2024년까지 신규 원전 건설국을 확정할 예정인데 한국과 미국이 손을 잡으면 프랑스를 제치고 수주에 성공할 수 있다는 기대가 상당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총 16기의 원전 건설 계획을 갖고 있는데 현재까지 사막에서 원전 건설을 이룬 나라는 한국뿐이다.
여러 상황이 맞물려 한국으로선 좋은 기회를 맞고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목표 삼은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을 이루려면 관련 부처가 전면적인 협동 아래 고위급 세일즈 외교를 펴고, 원자력 업계가 전력을 다해 달라붙어야 가능한 일이다. 윤 대통령은 관계자들에게 “원전 수출을 위한 것이면 전용기도 내주겠다”고 했다. 최근 9개 부처와 20여 유관 기관이 원전수출전략추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이제 원자로와 냉각 계통 등 진짜 원전 수출을 이뤄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8.30 원자로 한번 수출하면 100년 넘게 돈 벌어
또 하나의 ‘캐시카우’ 원전

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의에 참석했을 때 가장 실속 있는 만남은 페트르프알라 체코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한국 원전에 대해 적극적인 경제 외교에 나섰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공식 폐기한 윤 대통령이 원전 수출에 박차를 가하는 순간이었다. 지난 5년간 탈원전 정책으로 크게 파괴된 한국의 원전산업 생태계가 윤 대통령의 체코 원전 건설 세일즈로 부활의 신호탄을 쏜 셈이다.
체코는 2035년부터 운영허가 기간이 만료되는 기존 원전의 대체를 위해 두코바니 지역에 8조8000억원 규모로 120만 킬로와트(㎾)급 원전 1기를 우선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체코 정부는 신규 원전 발주를 위해 사업모델 확정, 재원조달 방안 등 원전 신규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안보상의 이유로 중국과 러시아의 참여를 배제한 채 한국·미국·프랑스의 3개 공급사의 참여를 추진 중이다. 이들 3개국 사업자는 안보평가 결과 문제없는 것으로 확인돼 지난 3월 최종입찰 안내서를 받았다.
수명 늘려 80년 사용하는 게 관행해체 기간 포함하면 100년 사업
체코·폴란드 원전 수주 적극 추진한국 원전 품질·가격 경쟁력 높아
미·불·러·중 제치려면 초격차 필요탄소중립, 수출증대 정책 뒷받침
UAE에서 사업 역량 이미 입증
▲김경민의 이코노믹스
체코는 2024년 우선협상자 및 최종사업자를 선정하고, 설계 및 인허가 취득과정을 거쳐 2029년 건설에 착수, 2036년 상업운전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실적 측면에서 한국은 미국·프랑스 등 경쟁사보다 우수한 가격경쟁력을 갖고 있다. 예산과 공사 기간 내에 준공한 아랍에미리트(UAE) 사업을 통해 증명된 사업역량과 경쟁사 대비 차별화된 수주 활동으로 수주를 따낼 가능성이 큰 편이다.
한국은 국내에 총 12기가 건설돼 30년간 안전하게 운영 중인 기존 모형(OPR 1000) 원자로 냉각재 계통에 최신 모형(APR 1400)의 안전기능을 적용한 APR 1000 노형으로 입찰에 참여하고 있다. 경쟁국인 미국의 AP 1000 원자로, 프랑스의 EPR 1200보다 가격경쟁력 측면에서 한국이 유리하다. 2020년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발행한 국가별 원자력 발전비용을 보면 1메가와트(㎿) 발전 비용이 프랑스는 71.10달러, 미국은 71.25달러, 한국은 53.30달러로 한국의 가격경쟁력이 훨씬 우월하다.
UAE에 수출한 APR 1400은 140만 킬로와트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대형원자로다. UAE 수도인 아부다비에서 자동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원전은 한국의 기술로 만든 원자로이고 설계수명이 60년이지만 미국의 원전운용이 보여주듯이 80년 정도는 사용될 수 있는 고품질의 원전이다. 지금의 기술로는 부품 교체를 통해 80년 이상 계속 운용할 수 있지만, 설령 문을 닫는다 하더라도 한국이 할 것이고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까지 100년간 이런저런 관리 서비스로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이다.
교류 확대로 수출 기반 다져야
터 파기 공사를 시작했던 초기에 방글라데시·파키스탄 등 외국인 노동자들이 55도에 이르는 바깥 온도의 열기를 견디며 일을 했는데 놀라운 것은 한꺼번에 5000명이 일시에 식사할 수 있는 이른바 함바집 식당(공사장에 들어서는 식당)부터 마련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반찬도 웬만한 식당의 뷔페처럼 충분히 먹게 하는 UAE의 공사장 식당은 1970년대 중동의 이곳저곳에서 혹독한 건설 경험을 했던 한국만의 자산이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이번 사업을 수주할 경우 체코는 최대 3기의 추가 원전 건설도 검토하고 있어 후속 수주사업을 획득하는데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 내다 본다. 폴란드 역시 원전건설을 추진하고 있는데 2040년 국가에너지 정책 개정안 발표에 의하면 루비아토보와 코팔리노 2개 부지에 총 60만 킬로와트에서 90만 킬로와트 규모의 신규원전 6기의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2033년 신규원전 1호기의 운용을 시작으로 2043년까지 2~3년 단위로 6기의 원전을 순차적으로 건설하게 된다.
원전 수출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은 체코나 폴란드에서 수주 활동을 벌이는 것만이 아니고 각종 인프라 사업과 원자력 분야 이외의 민간 기업 간 교류를 넓혀가면 수출기반을 다지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신한울 3, 4호 이르면 2030년 가동
한국 내 사정은 어떤가. 건설이 중단되었던 신한울 3, 4호기의 신규건설이 새로이 시작된 상태다. 경북 울진에 들어설 신한울 3, 4호기는 2008년 12월 제4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반영되면서 시작되었는데 2017년 12월의 제8차 전력수급 기본계획과 2020년 제9차 전력계획에서 제외되며 원전건설사업이 완전히 백지화돼버렸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원전건설 복원 선포에 따라 2022년 7월 5일 새 정부 에너지 정책 방향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하고 신한울 관련 주요 내용을 2022년 말 제10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반영하고, 2023년 초 주요기기 사전제작 착수하고 2023년 7월 주요기기 계약을 체결할 방침이다.
신한울 3, 4호기의 조속한 공사착수를 위해서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주관하는 실시계획 승인과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주관하는 건설허가 등의 인허가 취득절차가 선행돼야 한다. 이 기간을 하루빨리 앞당겨야 건설이 조기에 추진될 수 있다.
한국은 현재 고리 5기, 새울 2기, 월성 5기, 한빛 6기, 한울 6기로 총 24기의 원전을 가동하고 있다. 계획 중인 신한울 3, 4호기가 2030년경 가동되면 원자력 발전이 차지하는 전력 생산량이 30% 내외가 될 것으로 예상해 에너지 위기를 맞는 재앙은 없으리라 본다.
문 정부의 탈원전 폐해 극복
원전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해서라도 국내외적으로 할 일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조용히 진행 중이었던 이집트 엘다바 원전사업을 한국이 수주하는 것으로 결정돼 향후 체코와 폴란드 수주에서 유리한 고지에 서게 되었고 원전건설 생태계 복원이 예상보다 더 빨리 속도를 내게 될 것으로 평가된다. 이집트 사업은 120만 킬로와트급 원전 4기를 건설하는 프로젝트인데 원 계약자는 러시아이고 한국은 제2차 사업에 참여하는데 건설비가 3조원이 넘는다.
한수원은 터빈 건물 등 80여 개의 건물과 구조물을 건설하고 기자재도 납품할 예정이다. 한수원은 2018년부터 사업추진을 해 지난해 2차 건설사업 단독협상대상자로 선정되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이집트와 사업환경이 유사한 UAE에서 우수한 원전 관리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국내 원전건설에 국력을 기울여 속도 높게 원전산업 기반을 회복하는 일이다. 지난 정권에서 탈원전을 선언하는 바람에 원전건설에 참여했던 부품산업들도 많이 떠나갔는데 다시 돌아올 수 있게 됐다. 이 과정에서 윤석열 정부가 국내 원전건설에 급한 대로 1000여억원을 미리 투자하기로 한 것은 바람직한 결정이었고 원전수출위원회의 발족도 원전 수출의 발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천연자원 부족한 한국의 선택
이웃 나라 일본은 총 55기의 원전을 가동하던 원자력 대국이었고 국제사회에서도 원자력에 대해 영향력이 큰 나라였다. 하지만 지진과 대형 쓰나미 재앙으로 지금은 총 9기밖에 가동을 하지 못해 전력 부족으로 정전사태를 막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다.
천연자원이 없는 한국과 일본은 안전성을 최대한 확보하면서 30% 정도의 전력은 반드시 원자력발전으로 충당해야 한다. 일본 핵연료 정책연구회 미즈카미 토시마사 연구원은 “일본은 뉴스가 진행되는 NHK 스튜디오조차 절전 모드로 운용되고 관공서 사무실도 더위를 느낄 정도로 전기 절약을 하며 대규모 정전사태를 막기 위해 온 국민이 어려움 속에서 생활해 나가고 있다”고 토로하며 하루빨리 원자력 에너지의 복원을 소원하고 있다.
UAE에 대형원전 4기를 수출한 한국은 체코와 폴란드에 원전을 수출하면 지난 5년 탈원전을 극복할 뿐만 아니라 100년 ‘캐시카우(수익 사업)’인 원자로 수출 강국으로 올라게 된다. 나아가 프랑스와 함께 원자력 대국이었던 일본의 자리를 한국이 차지할 절호의 기회를 잘 살리게 되면서 한국경제를 뒷받침하는 기간산업이 될 수 있다. 이산화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 원자력에너지는 탄소 중립 정책과 어우러지면서 원전 수출산업은 미래가 희망적이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할 일은 원자력 안전임을 명심해야 한다.
중앙일보 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08월 30일 이집트 原電 참여, 동유럽 진출 청신호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지난주 3조 원 규모의 이집트 원전설비 수출 계약 낭보가 있었다. 원전의 핵심 설비인 원자로 건물과 그 내부에 설치되는 원자로와 증기발생기 같은 주기기 공급이 아닌 터빈 건물과 펌프·밸브 같은 보조기기에 대한 수주 계약이라 규모가 아주 크지는 않다. 그러나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가 절차 준수 원칙에 발목을 잡혀 아직도 실질적인 일감이 없는 원전 산업계에는 가뭄에 단비 같은 희소식이다. 어려운 원전 산업계를 도울 방안을 마련해 보라는 대통령 지시에 따라 마련된 선발주 금액이 올해 1000억 원 남짓한 상황에서 향후 수년간 집행될 3조 원은 상당한 규모다.
총 공사비가 290억 달러(약 40조 원)인 이집트 원전 사업은 러시아 국영 원자력 공사인 로사톰이 최신형 원전(VVER-1200) 4기를 이집트 엘다바 지역에 건설하는 것이다. 이 사업에 대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참여는 2016년 6월부터 모색됐다. 당시 한수원의 글로벌 전략실에서는 국내 원전 기자재 수출 진작의 일환으로 로사톰과 접촉을 시작했다. 2017년 1월에는 한수원에 해외사업본부가 설립돼 로사톰과의 긴 협상이 시작됐다. 로사톰은 우리나라 원전 산업계가 온전한 독자 공급망을 갖추고 있고, 사막 지역인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지역에 원전을 성공적으로 건설하고 가동한 점을 높이 평가해 한수원에 하청을 주게 된 것이다.
사막 지역에는 기온뿐 아니라 연안 바닷물 온도가 높고 모래가 많이 날린다. 사막 지역에 원전을 건설할 때는 이러한 자연환경에 맞게 대처 설비를 갖춰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에 짓던 ‘APR1400’ 원전의 상세 설계를 일부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고, 변경된 설계에 따라 추가 기자재를 조달해 설치해야 한다. 바라카 원전의 경우 설계 변경이 1만 건이 훨씬 넘었다고 한다.
사우디아라비아도 사막의 불리한 여건을 극복한 우리나라의 우수한 시공 능력을 높이 사서 자국 원전 건설 참여를 원한다. 우리나라의 높은 원전 가격경쟁력과 사막 시공 경험을 바탕으로 보면, 사우디 원전 수주에 참여한 러시아·프랑스·중국·한국 4개국 중 우리나라가 수주 가능성이 가장 크다. 그러나 사우디는 이란과의 적대 관계 때문에 핵확산금지 문제에 걸려 있다. 우리가 미국을 무시하고 독자 수주에 나서는 것은 정치적·경제적으로 유리하지 않다. 사우디 원전 수출은 미국과 긴밀하게 정치·외교적으로 협력하며 추진해야 한다.
근래 체코, 폴란드, 불가리아, 루마니아 같은 동유럽 국가에서는 러시아로부터의 에너지 독립을 위해 서방 원전 도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그중 폴란드 원전이 가장 먼저인 2026년에 착공하기로 돼 있다. 폴란드에서는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진작부터 원전 수주 활동을 펼쳐 시장을 선점한 상태다. 하지만 폴란드에 전투기를 비롯한 국산 무기가 대거 수출된 최근 상황이 우리 원자력계에도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폴란드와 사우디 원전 수출에 양국이 협조해 윈윈하는 결과가 나오도록 해야 할 것이다.
향후 탄소중립 요구에 따라 화력발전에 대한 탄소세 부과가 본격화하면 원전이 경쟁력을 갖출 서방국가도 늘어나게 될 것이다. 향후 확대될 게 분명한 세계 원전시장에서 이번 이집트 사업이 본격 원전 수출의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