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여행/ 국가별65/ 짐바브웨 Zimbabwe - 체코 - 칠레
■짐바브웨 Zimbabwe
짐바브웨 공화국, Republic of Zimbabwe
남부 아프리카의 대륙국. 옛 이름은 남로디지아(Southern Rhodesia,1911∼64), 로디지아(Rhodesia,1964∼79), 짐바브웨-로디지아(Zimbabwe Rhodesia,1979∼80)이다. 수도는 하라레이며 화폐는 US달러, 남아프리카 공화국 랜드, 짐바브웨 달러이다. 국민의 대다수가 아프리카인이다.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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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라! 짐바브웨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신음하던 짐바브웨의 100조 달러 지폐. 국내 인터넷 쇼핑몰에서 990원에 살 수 있다. 동아일보DB
망과나니(안녕), 아미비.
우리가 만난 지 올해로 5년이 됐으니 고등학생이 됐겠구나. 2012년 이맘때 초등학교 6학년 소녀였는데…. 짐바브웨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한국 선교사님이 준 병아리 50마리를 받고 고맙다며 눈물 흘리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에이즈로 부모를 잃고 조부모와 사는 어려운 형편에 병아리를 키워 생계를 이어갈 꿈에 부풀어 있었지.
요즘 내 머릿속에서 희미해져 가던 짐바브웨의 기억이 다시 살아나고 있단다. 세계 최장기 독재자인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93)이 21일 권좌에서 내려왔더구나. 선교사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교민들은 모두 안전하고 현지 분위기는 소요사태 없이 비교적 안정적”이라고 말하시더라.
주변에 너의 조국에 대해 이야기하면 신기해해. 짐바브웨는 한국에 아직 낯선 나라거든. TV 예능프로 ‘꽃보다 청춘 아프리카’에서 박보검을 비롯해 쌍문동 4인방이 찾아갔던 빅토리아 폭포가 있는 나라. 인플레이션이 심각해 100조 달러 지폐를 썼던 희한한 곳 등이 한국인이 짐바브웨를 기억하는 편린들이야. 한국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짐바브웨 100조 달러 지폐를 990원에 팔고 있더구나. 쇼핑몰 상품 평가에 올라 있는 “점당 10조로 고스톱을 쳐도 큰 부담이 없겠다”는 댓글이 짐바브웨에 대해 우리의 이해 정도를 보여주는구나.
실제 가 본 짐바브웨는 잊을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인 나라였어. 세계 3대 폭포라는 장엄한 빅토리아 폭포, 악어와 하마가 노니는 생태계의 보고 잠베지강, 뭉게구름이 점점이 박힌 파란 하늘, 내가 사는 행성이 둥글다는 걸 알게 한 끝없는 평원…. 유럽 도시처럼 번듯한 건물이 가득한 수도 하라레와 낯선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악수를 건네던 친절한 사람들도 기억하고 있어. 이런 빼어난 환경 때문에 한때 짐바브웨는 퇴임한 외교관들이 여생을 보내고 싶은 나라로 손꼽혔지. 내 버킷리스트에는 그곳을 다시 방문하는 게 담겨 있단다.
거기서도 코리아는 낯선 나라였지만 서서히 한국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었지. 현지 국영방송 ZBC는 오후 8시 프라임 시간대에 한국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을 내보내더구나. 더빙도 없이 영어 자막에 한국어 대사가 그대로 나오는 드라마를 보며 난 한류가 이 먼 곳에도 있다는 사실에 놀랐단다. 하라레 시내의 북한이 지어준 체육관도 눈길을 끌었어.
지금은 사정이 어렵지만 예전 짐바브웨는 아프리카의 선진국이었다는 걸 알고 있어. 영국이 아프리카 식민지로는 마지막으로 1980년 짐바브웨에서 물러났지. 그들은 아름다운 이 나라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 했어. 독립 전 짐바브웨 국립대는 농생물학 분야에서 세계 선두권이었고, 비옥한 토양 덕분에 아프리카의 곡창지대로 불리며 살림살이가 그리 어렵지는 않았지. 다이아몬드, 크롬, 백금과 ‘산업의 비타민’이라는 희토류의 매장량이 풍부하고 고속도로 같은 사회기반시설도 잘돼 있지.
하지만 무가베가 장기 독재를 시작하며 짐바브웨는 나락으로 떨어졌어. 최근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보도에 따르면 2000∼2010년 짐바브웨의 물가상승률은 5000억%나 되더구나. 1980년 당시 짐바브웨의 출생 시 평균 기대수명은 60세로 가나(52세)와 케냐(58세)보다 높았단다. 하지만 2015년 짐바브웨의 기대수명이 여전히 60세인 데 비해 두 나라는 70세에 육박하고 있어. 하루 수입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인구가 전체의 50%를 넘고 에이즈 보균자(HIV 감염자)가 인구의 20%가 넘는다는 사실도 충격적이야. 서민들의 삶이 얼마나 고달팠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
가능성이 많은 이 나라의 발전을 가로막은 건 후진적인 정치체제였어. 이제 37년간의 독재를 끝냈으니 희망이 보일 거라고 나는 믿어. 이번에 새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에머슨 음낭가과 전 부통령(75)도 훌륭한 인물은 아닌 것 같아. 무가베 밑에서 오랫동안 수족처럼 일한 그가 전임자의 독재정치를 이어가지는 않을지 걱정이 돼. 하지만 짐바브웨인들은 무가베의 퇴진을 보며 변화의 희망을 가졌을 거라고 믿어.
다른 아프리카의 독재자들도 떨고 있을 거야. 35년간 집권한 폴 비야 카메룬 대통령과 오비앙 응궤마 음바소고 적도기니 대통령, 33년 동안 독재를 한 드니 사수응게소 콩고공화국 대통령 등이 짐바브웨를 보며 긴장하지 않을까. 2010년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처럼 아프리카에서도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봄이 찾아올 수 있을 거야.
교사가 돼 어려운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너의 꿈을 잃지 말고 정진하렴. 그런데 걱정이 되는구나. 너의 몸속 부모님이 물려준 에이즈 바이러스를 잘 다스리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서구 여러 나라가 약을 충분히 지원하고 있지만 부패한 관료들 때문에 제대로 분배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어. 아미비, 부디 살아 있기를….
민병선 국제부 차장 bluedot@donga.com
▲나무 위는 만원 - 13. 7. 29. 잠바브웨 모건 총리 유세를 듣는 사람들
■체코 체크 , Czech
Ceska체코 공화국, Czech Republic
▲국기
수도는 프라하이다. 동쪽으로 슬로바키아, 남쪽으로 오스트리아, 남서쪽과 북서쪽으로 독일, 북쪽으로 폴란드와 접해 있다.
체코 공화국은 역사적으로 유명한 보헤미아·모라비아 지역과 슐레지엔 남서부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1918∼92년 보헤미아·모라비아·슬로바키아와 더불어 체코슬로바키아 연방공화국을 이루었다가 1993년 1월 1일 분리, 독립했다.
정치와 사회
체코슬로바키아의 구성 공화국이었을 당시 체코는 공산당의 일당 지배하에 놓여 있었고 당 지도자들이 공직을 독점했다. 그러나 1989년 후반에 공산당은 권력에 대한 독점을 포기하고 반공산당 조직인 시민 포럼과 연립정부를 이루었다. 이후 슬로바키아와 분리, 독립하여 1992년 12월 16일에 채택한 헌법에 체코 공화국은 주권을 가진 민주주의 법치국가로서 개인과 시민의 권리 및 자유에 기초하여 수립된 국가라고 명시되어 있다.
의회는 양원제로 전에 체코 국가위원회였던 하원은 4년의 임기를 지니는 200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며, 상원은 81명의 의원으로 구성되고 그 임기는 6년이다. 대통령은 상·하 의회에서 선출되며 임기는 5년이다. 행정부는 대통령이 지명하고 하원의 승인으로 선출되는 총리 이하 부총리, 그리고 각 부 장관들로 이루어진다. 사법제도는 15명으로 구성된 헌법재판소, 최근에 생긴 최고행정법원, 최고법원, 지방법원, 지역법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슬로바키아와의 분리 과정에서 전(前)연방군의 병력·군수품·시설의 분배는 만만찮은 일이었고 체코와 슬로바키아 경계에서의 군사 지원이 금지되었다.
포괄적인 사회복지체계를 통해 국민들은 질병·산업재해·출산 부금, 노년연금과 장애연금, 가족수당 등을 받는다. 의료 서비스의 공급이 충분하며 국민들의 보건·위생 상태가 좋은 편이다. 유아사망률이 비교적 낮고 심각한 전염병 발발률도 낮은 편이다. 평균수명은 약 71세이다. 모든 교육은 국가의 책임하에 무상으로 이루어진다. 6∼16세의 아이들은 기초교육을 받은 후 대부분 중등 그래머 스쿨이나 직업학교에 진학한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 중 하나인 프라하의 카를로바대학교(1348 설립)를 비롯해 훌륭한 고등교육기관이 많다.
역사
1918년 슬로바키아와 연방을 이룰 때까지 체코의 역사는 보헤미아 역사와 거의 다름없다.
이 지역에 최초로 정착한 사람들은 켈트계의 보이족으로 알려져 있고 이들로부터 보헤미아라는 지명이 비롯되었다. 서력 기원이 시작될 무렵 게르만계 마르코만니족이 보이족의 뒤를 이어 이 지역을 차지했으며, 5∼7세기에는 슬라브족이 이 지역을 휩쓸었다. 슬라브족의 일파인 체코인들은 9세기경 보헤미아 중부지역에서 세력을 떨쳤다. 슬라브족이 도착하기 이전부터 켈트족·게르만족·아바르족이 연속적으로 몰려들어와 모라비아와 슬로바키아에도 이미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뒤 모라바 강 근처에 정착한 슬라브족은 모라비아인으로 불렸다. 이웃 지역들과 오랜 분쟁 끝에 모라비아는 보헤미아에 합병되었다.
최초의 보헤미아 왕국은 프라하의 프르셰미슬 왕조하에서 형성되었으며 895∼1306년에 존속했다. 1085년에 이르러 프르셰미슬 왕조는 많은 부를 축적하여 보헤미아 왕국이 신성 로마 제국으로부터 하나의 독립된 왕국으로 인정받기도 했으며, 1114년 보헤미아의 왕이 신성 로마 제국의 선제후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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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군대가 한국 독립군에 최신형 무기를 헐값에 넘긴 사연은?
체코와 한국은 지리적으로 거리가 멀다. 8261㎞. 시차는 7시간. 유라시아 대륙의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더욱 더 실감난다. 당연히 인종도, 언어도, 종교도, 먹거리도 다르다.
모든 게 다른 체코와 한국은 딱 한 가지, 지정학적 공통점이 있다. 체코는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 사이에 끼여 있다. 한국은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 4개국에 둘러싸여 있다. 강대국들 틈바구니에 놓였다는 사실로 인해 한국과 체코는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운명을 겪어 왔다. 640여년 유지된 합스부르크제국 시절 약소국 체코(슬로바키아)는 수백 년간 강대국 오스트리아의 식민지로 있었다. 일제강점기 36년은 이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체코와의 조우(遭遇)는 러시아 연해주에서 이뤄졌다. 체코 군대는 1920년 7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한국 독립군에 최신형 무기를 헐값에 넘기며 유럽행(行) 선박에 오른다. 김좌진 등이 이끄는 무장독립군이 청산리전투(1920년 10월)에서 정규군인 일본군을 상대로 대승한 것은 바로 체코제 신형 무기 덕분이었다. 이 지점에서 궁금증이 생긴다. 왜 체코 군대가 ‘러시아의 섬’이라는 블라디보스토크까지 흘러들어 왔을까.
1차 세계대전(1914~1918) 당시 오스트리아제국은 러시아와 전쟁을 벌인다. 그런데 러시아와의 전쟁에 투입된 군인들은 대부분 식민지 슬라브인들이었다. 이들은 같은 민족인 러시아인과의 골육상쟁을 거부하며 제정러시아 편에 선다. 전쟁의 와중인 1917년 10월, 러시아에서 볼셰비키 공산혁명이 일어나면서 상황이 복잡하게 꼬였다. 체코 군대는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막혀버렸다. 공산군인 적군(赤軍)이 장악한 우크라이나를 통과할 수도 없고. 그래서 선택한 게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선박 편으로 유럽으로 가는 것이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대기 중이던 체코 군대는 한국의 처지를 전해 듣고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으로 무기를 지원하게 된다.
1918년 10월, 민주공화국 체코가 독립했다. 그러나 평화는 독일의 침공으로 20년 만에 깨어졌다. 체코 레지스탕스가 간간이 저항을 해보았지만 그때마다 처참한 보복이 돌아왔다. 영화 ‘새벽의 7인’에 그 일단이 나온다. 독일이 패망한 게 1945년 5월. 체코는 소련의 도움으로 해방이 되었다. 1946년 5월 치러진 체코 총선에서 공산당은 다수당을 차지한다. 나치의 폭정(暴政)이 너무나 생생했기에 체코인이 공산당에 대해 온정적 시선을 보낸 결과였다. 대통령은 영국 망명에서 돌아온 자유민주주의자 베네쉬, 수상은 스탈린주의자 고트발트. 유럽 최초의 좌우합작 정권이 출범했다. 그러나 유약한 지도자 베네쉬는 공산주의자의 속성을 알지 못했다. 고트발트는 2년9개월간 공갈, 협박, 폭력, 테러로 좌우합작 정부 내의 자유민주주의 인사들을 하나씩 차곡차곡 제거해 나갔다. 그리고 고트발트는 1948년 2월 25일 구시가광장 골즈 킨스키궁전 발코니에서 공산혁명의 성공을 선포했다. 이후 체코는 고요한 무덤이 되었다.
출처 | 주간조선 2382호 조성관
◆볼거리
▲프라하 블타바 강을 가로지는 카를 다리, 14-15세기 이르는 45년 동안 지어진 교량은 621M길이 10M폭, 아치가 16개이다. 건축미를 자랑하는 성 비투스 대성당과 카를 다리 블타강의 야경을 조화롭게 담아 냈다
▲동화 속 눈덮인 집 11.1.26.
▲프라하 - 중세의 아름다운 건물 빼어난 자연 풍광
▲프라하의 보름달
▲황금빛 도시 프라하
▲민속촌 체스키크롬 로프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을 지나는 관광마차
▲프라하 성안의 상점가 골목 '황금소로'
▲프라하 중심 구시가지 올드타운
▲14세기 종교개혁운동가 얀 후스의 동상이 있는 관광객들의 사진촬영 명소, 악사들의 공연장
▲프라하 서쪽에 위치한 카를로비 바리 - 온천 휴양지
▲온청 휴양지로 유명한 카를로비 바리 시가지 전경
▲프라하 동쪽 쿠트나 호라 중세시대 은 생산지로 번영을 누리던 곳
▲체코의 체스키 크롤로프 역사센타
▲ 프라하 도심 풍경
▲프라하 성모교회
▲모라비아
◆일상
▲프라하 블타바 강 에서 2012. 12.26. 크리스마스 겨울 수영대회
▲블타바 해변의 봄 - 13. 4. 15.
▲아찔한 빙상 위의 축구 12.1.31
▲체코에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트라호프 수도원 도서관 1140년 건립
↕체코의 최초 직선제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블라디미르 프란츠 - 몸의 90% 문신 13.1.11.
▲문신 대통령 후보 - 체코 화가 작곡가
▲체코의 고드름
▲프라하 블타브 강이 비로 인해 넘치고 있다. 13. 6.2
▲프라하 평화 운동가 스리 친모이의 동상이 물에 잠겨 있다
■칠레 Chile
칠레공화국, Republic of Chile
▲국기
태평양 해안선이 서쪽 경계이고 페루, 볼리비아, 아르헨티나와 국경을 접한다. 인구의 3/4이 메스티소이며, 스페인 정복 이전에는 인디언 종족이 거주했다. 공용어는 스페인어이고 종교는 로마 가톨릭교이 지배적이다. 정치제제는 양원제를 토대로 한 공화국이다. 광업과 제조업에 기반을 두고 자유시장 경제를 이룬다. 1990년대를 거쳐 안정적 성장을 지속했고, 21세기 초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부강한 국가 중 하나가 되었으나, 시장 자유화 결과 소득 불평등에 따른 빈부의 격차가 극심하게 벌어졌다. 2019년 10월 공공 요금 인상으로 촉발된 대규모 시위가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사회불안이 가속화되었다.
남아메리카의 한 공화국으로서 1970~80년대의 상당 기간 동안 국가원수인 대통령 임명권한을 가진 4명의 사령관으로 구성된 혁명정부가 통치했으며, 1990년부터 민선 대통령이 통치했다. 사법부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법관으로 이루어진 최고재판소를 정점으로 한다. 양원제인 의회는 4년 임기로 선출되는 120명의 하원과 47명의 상원으로 구성된다.
상원의원 47명 가운데 38명은 8년 임기로 선출되며, 5명은 대통령과 최고재판소에서 임명하고 나머지 4명은 육해공군 및 경찰군의 최고사령관이 차지한다. 1987년 군사정부는 여러 해 동안의 정치활동 금지조처를 해제하고 미리 짜여졌던 국민투표를 준비하면서 비좌익 정당의 창설을 허용했다. 이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대통령후보로 나선 혁명정부의 후보에 대한 찬반 투표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88년 10월에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대다수 유권자들은 군부가 내세운 후보에 반대표를 던졌다. 그리하여 1989년 12월 차기 대통령을 뽑기 위한 공개선거에서 야당의 파트리시오 아일윈이 당선되었다.
피노체트 군사정권이 물러난 이후 2009년까지는 기독교민주당과 사회당이 연립한 중도좌파연합정권이 권력을 장악했으며, 2006년에는 여성인 미첼 바첼레트가 첫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그러나 피노체트 대통령 시절 구축했던 신자유주의 정책은 큰 변화 없이 유지되었으며, 경제성장과 함께 소득의 불평등과 빈부의 양극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기 시작했다. 이는 정치불신의 사회불안의 요소로 작용하여, 2010년 대선에서는 보수후보였던 세바스티안 피녜라가 당선되는 결과를 낳았다. 2014년 대선에서 미첼 바첼레트가 다시 당선되었으나 2018년 선거에서 피녜라가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양극화에 따른 사회불안은 가속화하기 시작했다. - 다음백과
◆볼거리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칠레 호수
↕파란 대리석 호수 동굴 - 칠레와 아르헨티나 국경 지역에 있는 파타고니아의 헤네랄 카레라 호수
▲칠레 아타카마 사막
▲기적의 사막 - 15.9월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 당아욱 꽃이 만발
▲꽃이 피기 전과 후
◇그 어디에도 없는 풍경, 아따까마 사막
▲아구아스 깔리헨떼.
지구 육지 면적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광활한 대륙 남아메리카. 이곳에 남미 해안선의 43%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 ‘칠레’가 있다. 남북으로 4500㎞ 정도 뻗어있는 나라 칠레는 여행자 사이에 페루나 아르헨티나만큼 큰 주목을 받고 있지는 못하다. 하나 칠레는 아마존, 안데스 산맥, 남극과 비교해도 지지 않을 만큼의 입이 떡 벌어지는 비경을 품고 있다. 남미에서도 칠레, 칠레에서도 가장 기이한 풍광이 펼쳐지는 곳 ‘아따까마(atacama) 사막’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다.
▲산페드로풍경.
칠레 북부 아까따마 사막 여행은 척박한 땅 한 가운데 있는 작은 마을 ‘산 페드로 데 아따까마’에서 시작해야 한다. 산 페드로 데 아따까마는 원주민 ‘아따까메뇨’가 정착한 곳이다. 아따까메뇨는 덥고 건조한 날씨를 나기 위해 흙으로 집을 지었다. 원주민의 흙집은 이제 여행자의 안식처가 되었다.
마을에서 30~40분 차를 타고 나가면 광활한 우주와 행성을 보는 듯한 풍광이 펼쳐진다. 기이한 암석과 소금 호수, 6000m급 린칸카부르 설산을 만날 수 있다. 노천온천, 몸이 둥둥 뜨는 소금호수에 몸을 담그고 휴식을 취하는 것도 좋다. 뉘엿뉘엿 지는 해를 벗 삼아 사막을 거닐 때 우주 속에 혼자가 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학박물관.
산 페드로 데 아따까마는 20~30분을 둘러보면 지리를 익힐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마을이다. 마을의 볼거리로는 ‘인류학 박물관’이 있다. 선교사이자 인류학자였던 ‘구스타보 파이헤’가 산 페드로 데 아따까마에서 지내며 연구, 수집한 소장품들을 전시한 박물관이다. 1955년부터 1980년까지 사반세기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겼다. 본디 아까따마 사막에서 발견된 미라 ‘미스 칠레’를 전시했으나 유네스코, 아따까메뇨 지역사회의 회의를 통해 2007년 5월부터 미라를 전시하지 않는다.
산 페드로 데 아따까마에는 현지 여행사가 60여 곳이 있다. 대부분의 투어가 오전 4시에 시작해 정오에 끝나거나 오후 4시에 시작해 오후 9시에 끝나기 때문에 이 시간대에 산 페드로 아따까마는 한산한 편이다. 투어의 내용과 가격은 비슷비슷하지만 경쟁이 치열한 만큼 흥정도 할 수 있다. 마음에 드는 투어 여행사를 골라 사막 투어를 예약하자. ‘라야나’ ‘테라 익스트림’ ‘맥심’ ‘코르바시’ 등이 비교적 오래되고 믿을만한 투어를 제공하는 회사다. 자전거를 빌려 마을 주변을 돌아보거나 몇몇 여행사에서 운영하는 바이크 투어에 참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비탈길과 자갈길이 많고 날씨가 매우 덥기 때문에 체력에 자신이 없다면 투어를 이용하는 편이 낫다.
▲달의계곡.
‘달의 계곡’은 달의 지형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인데, 아따까마 사막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는 언덕이다. 달의 계곡 투어를 포함한 여행 상품이 인기 있다. 보통 오후 4시에 출발해 오후 8시 30분 일몰을 감상 한 뒤 마을로 돌아온다. 여행사 상품은 대동소이하다. 하지만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가이드의 영어설명 여부, 참가 인원수와 국적 등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대부분의 투어에서는 국제학생증이 있다면 입장료 할인을 받을 수 있다.
▲따띠오간헐천 노천온천.
오전 5시에 출발해 정오에 돌아오는 ‘타띠오 간헐천’ 투어도 인기가 높다. 1시간 30분 비포장 도로를 달려 간헐천 지역을 돌아보고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고난 뒤 간헐천 옆의 노천온천에서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 탈의시설이 있지만 비교적 투어시간이 짧기 때문에 수영복을 옷 안에 입고 가자. 노천온천에서 30~40여 분 간 자유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이외에 염도가 높아 몸이 둥둥 뜨는 ‘세하 소금호수’, 고지대에 위치한 ‘타라 호수’와 ‘아라콜레스 계곡’, ‘알티플라니카스 호수’로 가는 당일치기 투어도 인기다. 아따까마 사막을 둘러싼 절경을 즐기려면 최소 5일에서 일주일은 투자해야 할 정도. 뿐만 아니라 칠레 산 페드로 아따까마에서 출발해 볼리비아 ‘우유니 호수’로 갈 수도 있으니 칠레에서 북부로 이동할 계획을 하고 있다면 볼리비아 비자를 한국이나 칠레 산티아고, 또는 깔라마 영사관에서 발급해두도록 하자.
▲공포의 붉은 호수 - 북부 해발 3700m카미나 마을 새빨간 호수 악령의 호수라 불린다.
◆화산
▲칠레 우드손 산에 화산징후
▲야이마 화산
▲화산과 번개 - 칠레에서 촬영한 이 사진은 영국 자연사 박물관이 주관하는 야생 생물 사진가 올해의 사진으로 선정 2011.
▲성난 화산재 11.6.4
▲푸예우예화산 폭발, 원자폭탄의 70배 위력
▲화산재와 번개의 만남 11.6.6
▲화산재가 아르헨티나를 덮쳐 폭설이 내린듯
▲화산재 뒤집어쓴 아르헨티나 공항
▲코이아이케 인근 우드손 산 화산 징후가 보인다.11.10.26.
▲코파우 12.12.22.
▲알토 비오비오 지역의 코파우 화산
▲코파우 화산 주변 25km 지역 주민들에게 대피령 13. 5. 27.
▲아라우카니아주 푸콘 비야리카 화산이 15.3.3 폭발 용암 분출
▲칼부코 화산 분화 15.4.23 지난 1961년 이후 54년만에 분화
◆풍경
▲비야리카 화산의 풍경
▲붉은 화산과 고운 은하수
▲맑고 시원한 풍경 -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모래 언덕 사이의 목장 프랑스 사진 작가 Yann Arthus Bertrand
▲모아이 - 이스트 섬에 있는 얼굴 모양의 석상이 섬 전체에 약 900구가 있다
▲별 보기 좋은 곳
▲은하수 - 칠레 북부 해발 5천 미터 고원에서 바라본 하늘, 알마 천문대에서 촬영
▲파타고니아 지역의 풍광, 세상의 끝 이라는 별명이 있다
◆일상
▲폭풍
▲지진 - 14.4.1 이키케에서 서북부 방양 86km 해안지역에 규모 8.2의 지진이 발생 최소 6명이 사망
▲산티아고 폭우 16.4.17
▲사상 최악 산불 17.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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