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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여행/ 국가별55/ 중국3/ 대륙의 명산 2/ 메이리(梅裏)설산 주봉 - 武夷山 - 天門山 - 泰山 (Taishan)

상림은내고향 2022. 7. 4. 21:02

지구촌 여행/ 국가별55/ 중국3/ 대륙의 명산 2/ 메이리(梅裏)설산 주봉 - 武夷山  - 天門山 - 泰山 (Taishan) 

◆메이리(梅裏)설산 주봉

▲메이리(梅裏)설산의 주봉인 카와거보(卡瓦格博)(4 28일 촬영)

 

▲웅장한 산세와 기이한 형상을 자랑하는 메이리(梅裏)설산

 

‘메이리’는 장족 언어로 ‘약산(藥山)’이라는 뜻으로 진귀한 약재가 많이 나서 얻어진 이름이다. 설산은 세계자연유산 ‘삼강병류(三江並流)’의 주요 경관 중 하나로 감탄을 자아낸다. 주봉인 카와거보(卡瓦格博)봉은 해발 6,740m로 윈난 제일의 산봉우리로 꼽힌다.

 

▲메이리(梅裏)설산의 몐츠무(緬茨姆)봉과 자와런안(加瓦仁安)

 

메이리설산의 카와거보봉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인류가 정복하지 못한 처녀봉이다. 1930년 미국 학자는 카와거보봉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봉우리라고 말했다. 카와거보봉은 시짱(西藏, 티베트) 지역 3대 신성한 산 중 하나이다. 이 때문에 매년 수천 명의 라마불교 신자들이 이곳을 방문하고 있다. (번역: 박민지)]

 

원문 출처: 신화망(新華網

 

  武夷山 - 福建省

世界複合遺産 1999年 指定 

무이산(武夷山)은 태산의 웅장함과 화산의 험준함, 황산의 기이함, 계림의 수려함을 모두 담고 있다. ‘동주에서 공자가 나왔고 남송에는 주자가 있으니, 중국의 옛 문화는 태산과 무이로다" 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무이산은 복건성 무이산시에 위치한, 무이산맥의 지맥에 해당하는 ‘인간선경(人間仙境)’이라는 무이구곡(武夷九谷)과 무이정사(武夷精舍)가 있는 명승구를 말한다.  36개 봉우리와 99개 암석을 품어 깊고 장중한 산세는 수려 미려 화려함 까지 갖췄다.

 

서쪽인 성촌진에서 무이산 동쪽으로 통과하는 구곡계곡은 물이 넘치고 굽이굽이 아홉 번 굽이친다 하여 구곡계곡이라 불린다. 총길이가 9.5km이며 면적이 8.5 평방 킬로미터로  무이산의 봉우리를 뗏목을 타고 돌아보는 경치는 천하의 절경이다.

 

이곳은 세계인의 기호 음료가 된 우롱차 원산지다. 깊은 바위 계곡에 소담스레 자리 잡은 짙푸른 차밭. 바위 틈새에서 이슬 먹고 자란 찻잎으로 만든다는 우이암차는 중국의 명차 반열에 오른 명품. 유네스코는  무이구곡(武夷九谷)과 무이정사(武夷精舍)를 포함하여 1999년 世界複合遺産으로 지정하였다

 

 

 

◆‘싼칭 산’ - 산시 도교 명산

 

[인민망 한국어판 5 11] 싼칭(三淸) 산은 장시(江西, 강서)성 상라오(上饒, 상요)시에 자리해 있다. 위징(玉京) , 위쉬(玉虛) , 위화(玉華) 3개의 산봉우리는 마치 도교의 세 신선[옥청(玉淸), 상청(上淸), 태칭(太淸)]이 그 꼭대기에 앉아 있는 것과 같다 하여 이름을 붙여졌다. 그중 위징 봉은 해발 1819.9m의 가장 높은 산봉우리로 장시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산봉우리, 화위(懷玉) 산맥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이자 신장(信江) 강의 발원지이다.2017

 

 

 

 

 

 

 

 

▲싼칭(三淸) 산 구름바다

 

◆아오산 - 2천m 봉우리에 폭포

 

허난성 핑딩산시(山市)에 위치한 야오산펑징밍성취(尧山风景名胜区,요산관광특구)는 중국4A급 관광지로 본래 다양한 모양의 바위가 많아서 석인산(石人山,스런산)이라 불렀다.

 

지난 2008년 야오산으로 명칭이 변경됐는데, 그 이유는 중국황제 야오(尧)의 손자 유루()가 할아버지를 위해 이곳에 사당을 만들어 그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또한 이곳은 유루를 비롯한 중국 유(刘)씨의 발원지로 유가()의 성지로 여겨지는 산이기도 한다.

 

 

야오산은 지리적으로 기후 분계선 근처에 위치해 동물과 식물 자원이 아주 다양하고 풍부하다. 또한 사계절마다 풍경이 달라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봄이 되면 새가 숲에서 울고, 푸른색으로 가득한 산세가 아주 아름답다. 여름때는 도시기온보다 10℃ 가량이 낮아서 피서하기 가장 좋은 곳으로 알려진다. 가을에는 단풍이 산에 이곳저곳에서 나타나 환상적인 세계가 되며, 겨울에는 눈이 나무를 덮어 은빛 세계가 된다.

 

 

야오산 자체는 화강암으로 구성된 산인데, 형성된 직후에는 자연적인 영향으로 형태도 많이 변화됐다.

특히 관광지 내 풍화로 만들어진 해발 2000m 이상의 봉우리가 100여개나 되어 자연의 놀라움을 경험할 수 있다.

 

또한 야오산에는 폭포, 온천 등이 체계적으로 구성, 관리되어 다양한 즐길 거리를 제공한다. 현재까지 관광특구 내에 유명 관광지는 240여곳, 60-200m 규모의 폭포는 17곳이나 된다.

 

그중에서 관광객 필수코스는 단연 해발 2153.1m의 야오산 주 봉우리 "위황딩(玉皇顶)"이다. 중국의 산행 전문가는 "위황딩에 올라야만 야오산의 험(,험함), (,아름다움), (,수려함)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화북의 지붕' 오대산

▲만년설이 서린 듯한 오대산과 오대산의 상징인 대백탑이 있는 대회진 풍경은 포근한 지리산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사진 중국여유국 제공

 

 중국 4대 불교 성지 중 으뜸이며 세계 5대 불교 성지 중의 한 곳인 중국 오대산. 오대산은 우리나라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신라 자장율사가 오대산 태화지에서 목욕하며 문수보살을 친견한 것으로 유명하며, 또한 세계 최초의 여행기 <왕오천축국전>을 쓴 혜초도 오대산에서 수행한 것으로 전한다.

 

 중국인들은 "금의 오대산, 은의 아미산, 동의 보타산, 철의 구화산"이라는 말로 중국 4개 불교명산의 순서를 매긴다. 보타산의 문수보살도 오대산에서 가져간 것이라고 전한다. 또한 네팔 룸비니 가든, 인도 녹야원, 보리 가야, 쿠시나가와 더불어 오대산이 세계 5대 불교성지로 일컬어지고 있다.

 

▲오대산은 어디서나 육산의 모습을 띈다. 산 능선에 양을 방목하고 있다

 

▲오대산 능선에서 마침 날씨가 조금 개이자 산 아래 마을 풍경을 잠시 비쳐줬다. 능선을 깎아 만든 도로가 구불구불 나 있다

 

▲해발 2,000m 남짓 되는 대라정에서 오대산 관광단지가 있는 대화진을 내려다봤다. 오대산의 상징인 대백탐과 그 옆에 중국 최고의 절로 꼽히는 현통사 등도 있다.

 

오대산은 이름 그대로 다섯개의 평평한 봉우리로 이뤄져 있다. 그 다섯 개의 봉우리를 오대(五臺)러 부른다. 그 중 북대가 3,061.1m로 가장 높다. 오대산의 다섯 봉우리는 중대 취암봉(2,893m), 동대 망해봉(2,795m), 서대 괘월봉(2,773m), 남대 금수봉(2,474m), 북대 협두봉(3,061.1m)로 구성되어 있다. 중대 취함봉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하나의 봉우리가 솟아 있는 형국이다.

 

▲중대 가는 길 중간에 있는 대호국문수사의 한 승려가 문수보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자장율사가 목욕재계하고 문수보살을 친견했다는 태화지에서 가이드가 설명하고 있다.

 

오대산에 불교가 들어와 사찰이 들어서지 시작한 때는 서기 68년 즈음으로 전한다. 현통사의 전신인 영노사가 건립된 건 이때다. 낙양의 백마사가 중국 최초의 절로 알려져 있으나, 백마사는 승려 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이 강했다. 실질적인 중국 최초의 사찰은 현통사라고 할 수 있다. 이어 불교는 당나라에 들어서 황제들이 앞장서서 절을 짓기 시작하면서 융성한다. 도교는 서민종교, 불교는 왕족과 귀족종교로서의 기능을 하며 급속도로 세를 확산해 갔다. 오대산의 명성이 자자해지면서 인도와 조선, 일본 등에서도 잇따라 스님들이 찾아왔다.

 

▲오대산 오대로 오르는 길에는 어김없이 문이 나온다. 중대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문.

 

▲대화진에 있는 54m 높이의 오대산 상징 대백탑

 

▲대화진에서 오대산을 바라봐도 육산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준다.

 

오대산 찾아가는 길 

오대산까지 가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비행기를 타고 북경까지 가서 버스나 철도를 이용하는 편이 가장 일반적이다. 북경에서 오대산 주차장과 절이 모여 있는 대회진까지는 약 6시간 소요된다. 오대산 대회진에서 오대까지는 대개 30분에서 1시간 정도 차를 타고 올라가면 도착한다. 대회진에는 절이 집중되어 있을 뿐 아니라 숙박시설도 아주 많다. 거리마다 기념품 가게나 상가들이 널려 있어 필요한 물품은 언제든지 쉽게 구입할 수 있다. 

글·사진  박정원 부장대우(여성조선

 

◆짜가나 산 - 깐수성

유럽 알프스에 버금가는 멋진 석봉과 설봉의 향연

 

3,500~4,000m대 고개 18개 잇는 34일간의 꿈같은 트레킹

 

깐수성(甘肅省) 간난장족자치주(甘南藏族自治州) 데부현(迭部縣)에서 북서쪽으로 34km 떨어진 이와향(益哇鄕)에 위치하고 있는 짜가나산(那山·3,970m)은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오지 중의 오지 산으로 평가된다.

 

인천공항에서 아침 일찍 서둘러 상해를 거쳐 란저우까지 이동 후, 다음날 다시 4~5시간을 이동하고서야 산행 기점인 짜가나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짜가나산은 중국 10대 비저명산봉(非著名山峰)으로 선정된 곳이다. 2009년 중국국가지리지에서 중국 비저명산봉 10곳을 선정했다. 황산, 태산, 화산 등 관광지로 개발된 명산을 제외하고 등산 또는 트레킹하기 좋은 산을 대상으로 했다.

 

400개 산에 대한 2,000여 장의 사진을 기초로 중국 산악인, 중국등산협회 전문가들을 주축으로, 미디어와 네티즌의 협력을 받아 선정했다. 비저명산봉은 단순히 등산이나 트레킹을 위한 산이 아니라 종주산행의 명소를 의미하고 있다. 10곳 모두 당일로는 산행이 어렵고, 1~3박 야영을 해야 산행이 가능하므로 이들이 선정한 10대 비저명산봉은 우리나라의 지리산처럼 종주산행의 명소로 이해해야 할 것 같았다.

 

▲끝없이 어이진 단하지형의 연봉들.

 

짜가나산의 이름은 2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는 석함(石函, 돌로 만든 상자), 둘째는 석성(石城, 돌로 쌓은 성)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마을 전체가 바위봉우리와 산줄기로 둘러싸여 있다. 마치 돌로 만든 커다란 울타리 안에 마을을 넣어 놓은 것 같다.

 

중국인들이 흔히 표현하는 말에 따르면 짜가나산은 세외도원(世外桃園)이며, 신선의 땅이었다. 말이나 글로는 표현할 방법마저 모자라는 이곳에서 아름다운 절경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할 뿐이다.

 

짜가나마을 앞을 지나 구불구불 고개를 넘어 니바샹(尼巴乡)으로 넘는 고갯마루에는 짜가나산과 마을을 전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자리한다. 이곳을 찾아온 여행객들은 전망대에 올라 짜가나산의 아름다움에 흠뻑 젖어서 돌아간다고 한다.

 

짜가나촌을 둘러싼 첨봉들은 경이로움과 감탄을 자아내게 했으며, 산비탈에 걸린 룽다와 타르초는 이곳이 티베트 지역임을 말하고 있었다. ‘리틀 티베트’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이 지역은 티베트의 역사와 문화가 뿌리 깊게 남아 있었다. 오색의 작은 깃발 타르초, 긴 장대에 커다란 기를 달아놓은 룽다, 티베트 불교의 상징인 불탑 초르텐 등 티베트 불교에선 빼놓을 수 없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짜가나산으로 들어서는 대문인 짜가나석문(일선천으로도 부른다).

 

아담과 이브의 고향이자 미지의 세계

중국 서부 지역 대부분이 그렇듯 이곳도 말과 야크가 사람을 대신해 포터 역할을 한다. 말보다는 야크가 많아서인지 포터는 모두 야크가 동원되었다. 야크 한 마리당 40~50kg의 짐을 싣는다. 침낭과 텐트 등 야영장비와 취사장비, 식재료까지 많은 짐을 운송하는 야크는 짜가나산 트레킹에서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을을 출발해 좌측으로 작은 계곡을 끼고 완만한 경사를 오르면서 트레킹은 시작된다. 10분 정도 오르면 계곡을 건너 석문으로 들어선다. 바위절벽 사이의 좁은 석문은 짜가나산 대문 역할을 하고 있었다. 또한 석문은 좁은 협곡을 의미하는 일선천(一線天)으로도 부른다.

 

석문을 통과하자 마음은 이미 신선이 된 것 같았다. 보이는 곳은 모두 새롭고 신비한 절경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직 세상에서 보지 못한 기이하고 아름다운 절경이 마치 새로운 세상을 여는 듯하고, 시선이 가는 곳마다 펼쳐지는 절경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한쪽으로는 바람에 한 번 날릴 때마다 경전을 한 번 읽는 것이라는 오색의 타르초가 길옆으로 어지럽게 매달려 있다.

 

나고다와로 향하는 길목에서 무너진 산길을 보수하고 있는 여인들을 만났다. 여자들이 모든 생계를 책임져 온 티베트인들의 전통문화가 아직 남아 있어 작업을 위해 나온 사람들은 모두 여자들이었다. 낯선 이방인들의 모습을 보자 음식을 권하는 등 호의를 베푼다.

 

▲계곡을 건너면 다시 능선 안부로 오르고, 짜가나산은 안부를 13번 올라야 한다.

 

짜가나촌을 출발한 지 약 3시간 뒤 해발 3,400m의 니고다와(尼哥)에 도착했다. 6km의 짧은 거리지만 일정상 오늘은 이곳에서 지내기로 한다. 넓은 평지와 계곡을 끼고 있는 니고다와는 야영장소로 적합한 곳이지만, 일반적으로 이곳에서 야영을 하는 팀들은 거의 없다고 한다. 아침에 짜가나촌을 출발하면 대부분 동차이계곡이나 고산호수까지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커다란 돌무더기 위에는 타르초가, 산비탈에는 룽다가 매달려 있다. 우측으로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구친 봉우리가 이들이 신성시하는 신녀봉이자 높이 3,970m인 짜가나산이다. 주변 산봉은 대부분 4,000m가 넘으나 짜가나산 높이를 3,970m로 소개하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실제 트레킹 중 넘어야 하는 안부들이 대부분 4,000m가 넘으며, 그중 제일 높은 곳은 카라커 안부로 4,160m였다.

 

나고다와에서 머문 하루 밤은 고소적응에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았다. 일행들의 다음날 아침 표정이 밝아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쉰다. 아침 햇살은 첨봉 위로 올라 강한 빛을 뿜어댄다. 강한 빛은 바위에 남아 있는 얼음 조각을 녹이고, 얼음조각에 반사된 빛은 망망대해의 등대 불빛처럼 짜가나산을 찾은 일행들의 발길을 안내해 주는 것 같았다.

 

계곡을 건너 갈림길 좌측은 광개산안부(光盖山)를 지나 지롱목장(龙牧场)과 지우텐먼(九天门)을 거쳐 기차향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일행은 우측의 석림을 향해 가파른 길을 오른다. 무명 안부를 향해 오르는데 우측 산비탈에 석림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하늘 향해 솟구친 뾰족한 바위들은 바위 숲을 이룬 것 같다고 하여 석림(石林)으로 부른다.

 

두 번째 안부를 지나면서 비교적 편안한 호흡으로 이어간다. 수없이 많은 안부와 계곡을 오르내려야 하는 트레킹이지만, 이미 4,000m를 넘어온 일행들은 비교적 편안한 호흡으로 이어가며 여유마저 느껴진다.

 

기암 봉우리에 수를 놓은 듯 섞인 만년설산, 초원 위를 수놓은 야생화가 어우러진 경치는 말로는 표현이 어려운 곳이다. 미국의 탐험가 조셉 루크도 이런 절경에 빠져 이곳을 ‘아담과 이브의 탄생지’며 ‘에덴동산’이라고 했으리라 추측해 본다.

 

내리막의 끝은 다시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한참 동안 거친 숨소리를 내고서야 세 번째 안부에 올라선다. 멀리 보이는 짜가나산군의 수많은 첨봉들과 만년설봉들이 지금과는 또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안부에는 커다란 돌무더기에 나뭇가지를 꽂아 놓았다. 고산의 안부에는 대부분은 돌무더기를 쌓아올리고, 그 위에 야크나 말의 머리뼈를 달고 거기에 타르초를 걸어놓는 것이 티베트의 종교적 문화 특색이다. 이는 제일 높은 곳에서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을 제일 먼저 맞이해 그들에게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는 ‘라즈(拉孜)’ 의식의 일종이다. 안부뿐 아니라 산꼭대기 또는 사찰 지붕처럼 제일 먼저 태양빛을 받는 곳에 구조물이나 타르초 또는 룽다를 걸어 놓는 것 역시 라즈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배설물을 연상시키는 다변시(大便石).

 

천상의 세계를 걷는 듯 변화무쌍한 절경

늦은 밤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던 동차이의 아침은 맞은편 첨봉 너머로 솟아오르는 태양의 붉은 물결로 시작했다. 지난밤 어둠이 깔리면서 하나둘씩 나타나는 밤하늘의 별들도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수많은 밤하늘의 별들은 짜가나산에서 받아가는 또 하나의 선물이었다.

 

이제 치코카안부(3,850m)로 올라야 한다. 길은 매우 가파른 경사로 이어진다. 속도를 늦추고 뒤돌아본다. 아직 철수하지 않은 텐트의 모습과 어제 내려온 동차이계곡이 파란 하늘과 우측의 회색빛 첨봉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한 폭의 그림을 완성한다.

 

야영장을 출발한 지 1시간30분 만에 치코카안부에 올라선다. 이곳에서 바라보이는 첨봉들은 더욱 강하고 우람한 근육으로 느껴지며, 강한 자외선을 뿜어대는 태양 빛은 푸른 초원을 더욱 반짝이게 한다.

 

해발 4,000m를 넘나드는 고산능선으로 이어진 짜가나산은 나무 하나 없이 시원한 조망으로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 준다. 우측 비탈면의 초원으로는 야크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내리막으로 이어지는 길은 좌측으로 두 곳의 골짜기를 지나며 다시 완경사 오르막으로 변한다. 이미 3,800m를 넘긴 지점으로 높낮이 고도차가 심하지 않아서 다른 곳보다는 비교적 빠른 속도로 트레킹이 진행된다.

 

보배카를 지나 스나키안부(3,970m)로 올라서면 4,000m가 훨씬 넘는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있는 고봉들의 향연을 만난다. 기암괴석의 고봉들은 점입가경 모습이 기이해지며, 고봉들의 운치는 특별한 경치로 더욱 더 아름다워 보인다. 산악인의 천국이라는 유럽의 알프스 트레킹이 이보다 아름답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저명산봉(非著名山峰)으로 선정된 짜가나산.

 

길은 해발 3,700m의 카라마칸까지 고도를 낮추었다가 짜가나산 트레킹 중 제일 고도가 높은 카라커안부(4,160m)까지 고도를 다시 올려야 한다. 바위들이 부서져 자갈길로 변한 이곳부터는 초원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풀 한 포기 없는 자갈길은 가파른 경사로 더욱 걷기가 힘들었다.

 

계속되는 경치에서 조금은 식상했던 순간, 모두를 경악케 하는 짜가나산의 모습은 거짓말처럼 놀랍고 신비스러울 뿐이었다. 그동안 보아왔던 수없이 많은 첨봉과는 전혀 다른 단하지형의 기암기봉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커다란 암봉 앞으로 이어지는 경치는 오지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함이었다. 이탈리아의 돌로미테를 연상시킨다는 주변의 말을 뒤로하고 해발 4,160m의 카라커안부에 올라선다. 이미 두 번이나 다녀왔지만 그때마다 앞을 볼 수 없는 날씨로 아쉬움만 남기고 돌아섰던 곳으로 맑은 날씨를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새로운 경치는 모두에게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다. 웃음소리가 커지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느라 분주하기 그지없었다. 봉우리는 산더미 같은 모래무더기를 쌓아놓은 것 같기도 하고 진흙을 쌓아 올린 것 같기도 했다. 또는 중국 광둥성에 있는 단하지형의 대명사인 단하산보다 더 특별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제부터 오늘의 캠프지인 카라커야영장(3,550m)까지는 전체적으로는 내리막으로 이어지나 내리막과 오르막을 여러 번 반복해야 한다.

 

그동안 아름다움에 취해 꿈같은 길을 이어왔으나 텐트에서 3박을 하고 나니 호텔이 그리워졌다. 고산에서 야영 생활로 제대로 세수 한 번 못 하고 지냈으니 호텔이 그리운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미미한 고소증세는 있었지만 모두 무탈하게 이곳까지 동행해 준 모든 분들께 너무도 감사할 뿐이다.

 

야영장을 출발한 지 1시간쯤 걸으면 다변시(大便石)가 있다. 우리말로 해석하면 대변석이다. 인간의 배설물을 똑같이 닮은 바위의 독특함이 자연의 신비함을 더해준다. 다변시 좌측은 안즈구목장(安子库牧场)으로 이어진다. 또한 우측 계곡 방향으로 길을 잡으면 야마루오(压玛) 방향으로 하산이 가능하다. 하지만 야마루오 코스는 항상 습기가 가득한 원시림의 급경사 구간이 많아 매우 미끄러운 곳이다. 따라서 안즈구목장을 지나 슈안나쿠로 하산하는 일정이 현명할 것 같다.

 

▲짜가나산 트레킹 중 제일 높은 해발 4,160m의 카라커안부를 오르는 일행들.

 

짜가나산을 나서는 또하나의 대문 일선천

계곡 옆 넓은 평원의 안즈구목장을 거쳐 무명패스로 오르는 길은 일선천(一線天)으로 부르는 또 하나의 협곡을 거쳐야 한다. 짜가나산 트레킹의 끄트머리인 이곳도 짜가나산으로 들어서며 통과했던 석문과 같은 협곡을 거쳐야 한다. 그동안 세외도원에 머물다 다시 인간세상으로 나가는 또 하나의 대문이었다.

 

마지막 안부인 해발 3,710m의 무명안부로 오르면 북쪽 사면으로 두견화 군락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이곳 역시 5월 말이면 만개한 두견화로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34일의 짜가나산 트레킹은 새롭고 아름답고 신비한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 주었다. 연속되는 절경으로 일행 모두 기대 이상의 대만족을 했다. 변화무쌍하고 영혼까지 잃어버릴 것 같은 다양한 아름다움에 취해 있던 시간을 뒤로하고 하산을 시작한다. 안부에서 슈안나쿠까지 약 2시간, 샹가룽까지는 2시간30분이 소요된다.

 

▲짜가나산은 석문을 통과한 후 무명안부에 오르면 트레킹이 종료된다.

 

트레킹 tip

짜가나의 모든 아름다운 경치를 느낄 수 있는 종주산행이 좋다. 4일이 소요되며, 4,000m 이상의 고개를 5, 3,500~4,000m 고개를 13개 넘으며 40~50km 정도 걸어야 한다.

 

트레킹 기점인 짜가나촌에서 가이드와 포터용 말과 마부 고용이 가능하다. 짜가나산 트레킹은 현지 전문산악인을 고용하거나 우리나라에서 전문여행사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해발 4,000m를 넘나드는 코스로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가지 위험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는 길

짜가나산 부근의 공항으로는 깐수성 란저우, 구채구와 황룡 중간지점에 있는 구황공항이 있으며, 멀지만 쓰촨성 청두에서도 접근이 가능하다.

 

란저우 터미널에서 오전 7시경 출발하는 구채구행 버스를 타고 랑무스(木寺)에서 하차한다. 구채구에서는 란저우행 버스를 이용해 랑무스에서 하차한다. 랑무스에서 짜가나촌까지는 택시나 빵차라고 부르는 소형승합차를 이용한다. 청두에서 데부(迭部)까지 대중교통은 서문터미널에서 오전 9시에 출발하는 버스가 있다.

 

관광명소

랑무스(木寺) 깐수성과 쓰촨성 경계인 해발 3,600m 고지대에 있다.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티베트 전통문화를 간직한 사원으로 문화혁명 때 파괴되었다가 1980년대 초 재건됐다.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랑무스’는 협곡 하이킹이나 말을 타고 하루에서 사흘간 다니는 트레킹 또한 유명하며, 운이 좋다면 오전 7시경에 진행되는 천장을 볼 수도 있다.

 

라브렁스(拉卜楞寺) 깐수성() 샤허(夏河)에 위치. 라싸의 간덴, 드레풍, 세라사원, 시가체의 타쉬룬포, 칭하이성의 타얼스와 더불어 겔룩파 6대 사원 중 하나. 타얼스(塔尔寺),랑무스(木寺)와 함께 중국 내에서 가장 큰 티베트 불교사원 중의 하나다. 1709년 청나라 강희 48년에 처음 건설되기 시작해 300년을 이어 오면서 고대논리학·법학·천문학·의학 등을 다루어 왔으며, 현재 6개 승가학교, 48개 불전, 500여 개의 승려숙소와 학당이 남아 있는 세계 최대의 티베트 불교학원이다.

 

루얼까이(若尔 盖)초원과 황하구곡제일만(黃河九谷第一灣) 데부현에서 루얼까이는 약 140km 거리로 차량으로 약 3시간 소요된다. 루얼까이초원은 네이멍구초원에 이어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대평원이다. 루얼까이초원은 해발 3,400~3,500m 고원지대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게 펼쳐져 있으며, 그 사이를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가로지르는 황하구곡제일만의 강줄기가 어우러지며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낸다.

글·사진 최승원 마운틴트렉 대표

 

▲깐수성 간난장족자치주 짜가나 산 3970m

 

◆천문산 - 후난성 장가계

◇하늘 맞 닿은 천하 절경  장가계

 

 

 

 

 

 

 

 

 

 

 

 

 

 

 

 

 

 

 

 

 

 

 

 

 

 

 

 

 

▲ 보봉호

 

"태어나서 장가계에 가보지 않았다면 100세가 되어도 어찌 늙었다고 하겠는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인들도 한번쯤은 가보고 싶어 하는 명소.


호남성(후난성) 서북부에 있는 장가계는 1982년 중국 정부가 최초로 국가삼림공원(국립공원)으로 지정할 정도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있는 장가계 국가삼림공원은 천자산, 색계욕 등과 함께 무릉원풍경구를 이루며, 이 세 곳은 산책로로 연결돼 있다.

 

▲ 천자산

 

* 아찔한 아름다움 '천문산(天門山)'

장가계의 대표적인 성산이자, 장가계 자연 경관의 절정이다. 해발 1,518m에 이르는 천문산 정상을 연결하는 총 길이 7.45㎞의 케이블카를 타고 약 35분가량 오르다보면 "여기가 정말 무릉도원이구나!"하고 감탄이 절로 새어 나온다.

끝도 없이 펼쳐지는 기암괴석들에 놀라고 뾰족한 바위밖에 없는 곳에 나무들이 자라는걸 보면 신기하기만 하다. 밑을 내려다보면 천길 낭떠러지에 오금이 저릴 지경이다.

정상에 오르면 귀곡잔도(鬼谷棧道)가 있다. 귀신들도 다니기 어렵다고 해서 붙여진 귀곡잔도는 천문산 정상에서 천문산사(天門山寺)까지 이어진다. 귀신잔도를 걷다보면 발 아래 풍경을 감상하라고 일부러 만들어 놓은 강화유리 구간이 있다. 그 곳에 서면 발 아래로 1,500m 낭떠러지가 투명하게 보이는데, 무서워 걷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만큼 아찔하다
.

천문산 귀곡잔도

 

* 유람선 타고 황홀경에 빠지다 '보봉호(寶峰湖)'

무릉도원의 대표적인 수경(水景)으로 꼽히는 '보봉호'은 호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봉우리들이 물에 비쳐 그 자체로 아름다운 한 폭의 산수화가 된다.

호수의 평균수심은 72m, 가장 깊은 곳은 119.5m에 달해, 짙은 에메랄드 빛을 발한다. 둘레 2.5km의 호수를 배를 타고 왕복 40분 유람하며 아름다운 경치를 찬찬히 음미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 보봉호

 

특히 배를 타고 있노라면 중국 소수민족인 토가족 냠녀가 작은 배에서 나와 부르는 노래가 경쾌하게 울려 퍼져지는데, 토가족이 짝을 찾을 때 부르는 구애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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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분 간 유람선을 타고 있노라면 선녀바위, 두꺼비바위, 공작새바위 등 사람 혹은 신선, 짐승의 모양을 띤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보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황홀경에 빠지게 한다

 

▲ 중국 소수민족 '토가족'

 

* 석봉이 바위 숲을 이룬 '천자산(天子山)'

협곡과 원시림, 수천 개의 석봉들이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천자산(天子山). 한나라 때 유방에게 반기를 들고 일어난 향왕 천자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이 곳은 석봉이 바위 숲을 이룬 '천대서해', 선녀가 꽃바구니를 들고 있는 형상을 한 '선녀헌화', 장군을 닮은 '장군바위' 등 각양각색의 석봉들이 모습을 드러내, 그 장관에 시선을 빼앗기게 된다. 마치 신선이 석봉들 사이 어딘가에 숨어있을 것만 착각을 불러일으키다

 

▲ 백룡엘리베이터

 

이곳에서 버스로 3분가량 이동하면 금편계곡이 나오고 5분가량 더 가면 10리에 걸쳐 그림 같은 풍광이 펼쳐진다는 '십리화랑'이 나온다. '십리화랑'은 약초 캐는 노인바위를 비롯해 손가락바위, 강아지바위, 가족사진바위, 세자매바위 등 구지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 어필봉

 

* 환상의 극치 '황룡동굴'

황룡동굴은 10만㎡ 동굴 속의 동굴, 동굴 속의 산, 산 속의 동굴, 동굴 속의 강 4개 부분으로 나뉜다. 이 동굴은 1983 8명의 현지 청년민병들에 의해 발견됐으며 1984 10 1일 정식으로 공개됐다.

깊이 7.5km이며 높이는 140m이다. 동굴은 총 3개 층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동굴 속에 또 다른 동굴도 있고 강도 흐르고 있다. 석순, 석주, 종유석 각종 동굴의 기이한 모습들이 자리하고 있다.

동굴 내부에 흐르는 강물 위를 보트를 타고 들어가야 내부를 훤히 볼 수 있다. 세계 1위 종유동굴로 손꼽히는 동굴 속으로 들어가면 울긋불긋한 조명까지 더해져 환상의 극치를 이룬다. 이중 제일의 경관은 3층이다

 

▲ 황룔동굴 '종유석'

 

 

영화 ‘아바타’의 촬영 장소가 장가계


‘아바타’의 촬영장소로 화제가 됐던 중국 장가계 풍경구는 영화 속 떠다니는 산 '할렐루야 산'의 모델로 중국은 바위산 ' 난톈이주' '할렐루야 산'으로 명칭을 바꾸기도 했습니다.

‘장가계 ’는 지난 1982 9월 중국 최초로 국가삼림공원이 된 뒤 1992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된 곳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그 경치를 감탄케 했다.

특히 '아바타 ' 제작팀은 무릉에 도착해 선녀산, 선녀석, 화상암 등의 풍경구를 답사하며 영화 촬영지 물색하던 중
이곳 풍경의 아름다움에 모두들 놀랐고 촬영장소로 확정 한곳이다....

 

 

 

 

 

 

 

 

 

 

 

 

장가계 300m 높이 유리다리

장가계는 영화 아바타의 배경이 된 풍경이 장관인 산맥이다. 18일 중국청년망 등에 따르면 장가계의 유리다리는 세계 최장이자 최고 높이다.

 

 

이 다리는 지상에서 대협곡 사이 300m 높이의 2개 절벽을 잇고 있다. 다리 길이는 430m, 폭은 6m에 이르며 99개의 투명 판유리로 만들어졌다. 이 다리 위를 걷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주춤하며 발걸음을 제대로 못 내딛거나 두 눈을 바로 뜨지 못하는 모습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reQP7c_8FnE  -  영상

 

◆장가계 정리

 

 

 

 

 

 

 

 

 

 

 

 

 

 

 

 

 

 

 

 

 

 

 

 

 

 

 

 

 

 

 

 

 

 

 

 

 

 

 

 

 

 

 

 

 

 

 

 

 

 

 

 

 

 

 

 

 

 

 

 

 

◆泰山 (Taishan)  山東省

世界複合遺産 1987年指定

泰山은 중국의 대표적인 名山 (1545 m)이다. 예로부터 동악(東岳), 태악(太岳), 대종(岱宗), 대산(岱山)이라 불렀고, 춘추시대(BC722~BC481)부터 태산이란 이름으로 정착했다. 오악독존의 태산은 오랜 시간동안 중국민들의 정신적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오악은 동악 태산(1,545m), 서악 화산(2,160m), 남악 형산(1,265m), 북악 항산(2,052m), 중악 숭산(1,512m)을 말한다.

 

산동성 중부의 태안, 제남, 역성, 창청 4개 시현에 걸쳐 있는 태산은 총면적이 426㎢에 이르며, 동서 30㎞, 남북 40여㎞에 달하는 위용을 자랑한다. 중국의 제왕들도 태산에 올라 봉선제사를 지내야만 진정한 제왕으로 간주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제왕이 태산에 오르면 천하가 태평하고 번영한 것으로 간주된다.

 

태산 정상 옥황정 위에는 역대 제왕이 봉선하던 고등봉대(古登封臺)가 있다. 중국을 처음으로 통일한 진시황제를 비롯해 한 무제, 후한 광무제, 당 고종, 당 현종, 송 진종, 송 휘종, 원 쿠빌라이, 청 강희제, 청 건륭제 등이 태산에 올라 봉선의식을 지냈다.

 

태산은 중국의 대표적인 명산이다. 예로부터 동악(東岳), 태악(太岳), 대종(岱宗), 대산(岱山)이라 불렀고, 춘추시대(BC 722~BC 481)부터 태산이란 이름으로 정착했다. 태산은 오악독존(五岳獨尊), 오악독종(五岳獨宗), 오악지장(五岳之長) 등으로 불리며 중국의 오악(또는 오대산) 중에 으뜸으로 꼽았다. 오악독존의 태산은 오랜 시간동안 중국민들의 정신적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오악은 동악 태산(1,545m), 서악 화산(2,160m), 남악 형산(1,265m), 북악 항산(2,052m), 중악 숭산(1,512m) 등을 말한다. 각각 중국 대륙의 동서남북,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산이다.

 

산동성 중부의 태안, 제남, 역성, 창청 4개 시현에 걸쳐 있는 태산은 총면적이 426㎢에 이르며 동서 30, 남북 40여㎞에 달하는 위용을 자랑한다. 우리의 지리산 크기와 비슷하다. 산청, 하동, 함양군 등에 걸쳐있는 지리산은 총면적이 438.9㎢ 정도다. 그러나 태산은 우리의 ‘어머니의 산’ 지리산과 달리 웅장한 봉우리가 첩첩으로 둘러싸여 훨씬 높고 험하고 가파르다. 산동성 중앙 평원지대에 우뚝 솟아 더욱 높아 보일 수 있다.

 

중국인에게 태산은 하나의 산으로서가 아니라 신앙과 믿음을 주는 영적인 산으로 존재했다. 중국의 제왕들도 태산에 올라 봉선 제사를 지내야만 진정한 제왕으로 간주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은 하늘에 근접한 태산의 꼭대기에 흙을 모아 둥근 제단을 쌓고 천제를 지내는 곳을 말한다. ()은 태산의 앞에 있는 작은 산에서 흙을 쌓아 사각형의 제단을 만들고 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이는 대지의 덕을 넓혀, 그 넓은 덕에 보답하는 것을 말한다. 제왕이 태산에 오르면 천하가 태평하고 번영한 것으로 간주된다. 황제 자신은 명실상부하게 진룡천자(眞龍天子)가 되는 것이다. 태산 정상 옥황정 위에는 역대 제왕이 봉선하던 고등봉대(古登封臺)가 있다. 봉선은 외면상 천제에게 공을 보고하고 은혜에 감사하며 복을 기원하는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신권을 빌어 통치를강화하려는 목적이었다

 

 

중국을 처음으로 통일한 진시황제를 비롯, 진제국을 멸망으로 이끈 이세황제 호해(胡亥), 한 무제, 후한 광무제, 당 고종, 당 현종, 송 진종, 송 휘종, 원 쿠빌라이, 청 강희제, 청 건륭제 등이 태산에 올라 봉선의식을 지냈다.

 

이들이 왜 하필 태산에서 천제의식을 지냈을까? 정상이 1,545m 로서 그리 높지도 않은 태산이 어떻게 해서 중국인들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을까? 누구나 가질만한 궁금증을 한번 추측해봤다.

 

첫째, 동양사상에서 차지하는 동쪽의 의미가 가장 크지 않을까 싶다. ()은 한자에서 보듯 나무()사이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이다. 동의 의미는 만물을 잠에서 깨우는 생명의 탄생과 연결된다. 태산을 동악이라 불렀던 이유도 여기 있다. 생명의 탄생은 바로 번영과 연결되고, 역대 왕들은 그 번영을 태산 봉선의식을 통해 자신의 치적으로 돌리고 싶었을 것이다. 역대 왕들이 봉선의식을 지내던 대묘(岱廟)가 바로 태산 앞에 있다. 이곳에서 봉선의식을 지내고 태산 정상 옥황정에서 다시 옥황상제에게 의식을 치렀다. 현존하는 중국 최고의 목조 건축물 대묘는 북경의 고궁과 곡부의 대성전과 함께 중국 3대 건축에 들어간다.

 

둘째로 산 자체가 신앙의 대상으로 풍년과 추수 감사제는 물론 홍수나 지진이 나도 제사를 올렸다. 중국의 민족 종교인 도교 발상지이기도 하며, 불교 사원도 곳곳에 있다. 진시황의 대륙통일 이후 중국 민간신앙의 본산지인 것이다. 중국인들에게 태산을 물으면 대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높이를 떠나 그만큼 중국인들의 의식 속에 태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다는 방증이다.

 

두 번째까지의 이유가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이유라면 세 번째는 현실적이고 편리성의 문제다. 그리 높지 않아 누구나 하루 코스로 등산할 수 있도록 케이블카나 버스, 계단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산 아래 종점에서 중간 기점 케이블카를 탈 수 있는 중천문까지 버스가 올라간다. 이후부터 케이블카를 타던지, 계단으로 올라갈 수 있다. 중국에서 펴낸 책에서는 계단은 총 7,736개라고 적혀져 있다. 일부에서는 7,400개 또는 7,412라고도 한다. 하지만 7,736개이던지, 7,400개이던지 오르는 사람에게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누가 일일이 계단수를 세어봤겠나. 편리한 접근성으로 중국의 새해나 명절 등에는 최대 200만 명의 인파가 모인다 한다. 정말 믿거나 말거나 한 얘기다. 일출 사진을 보면 정말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붐빈다. 그래서 하루 평균 태산 등산객이 5만 명이라는 통계도 있다. 우리 설악산 단풍 때 모이는 최대 인파가 하루 평균 3만 명이 채 안된다.

 

네 번째, 산동성은 중국의 동쪽 중앙부이고, 북경과 상해를 잇는 고속도로와 철도가 지나, 지역적으로 접근이 용이하다는 점이다. 비행기로 북경이나 상해 등지에서 제남성 국제공항까지 한 시간이면 도착한다.

 

태산은 중국 수천 여 년의 역사가 녹아 있는 인문, 자연경관을 자랑하며, 한족 정신문화의 축소판이라할 수 있다. 태산은 있는 그대로 하나의 천연 역사물이며, 예술 박물관이다. 암벽에는 여러 시대에 걸친 제자(題字), 경문, 시구 등이 여러 서체로 새겨져 있다.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이 태산에 올라 역사적 흔적을 남겼다. 바위에 새겨진 글씨를 통해 수천 년 전 이 곳에 올랐던 역사적 인물들과 시공을 초월한 대화를 나누고, 상상력의 나래를 펼쳐 본다. 태산은 또한 많은 역사와 신화, 전설 등이 얽혀 있어 사람들의 상상력을 유발시키는 독특한 분위기를 갖추고 있다. 이로 인해 산의 경치에 영성이 더해지고, 지리문화적으로도 사람들의 의식에 각인된다. 당나라 시인 유우석은 “산이 높지 않아도 신선이 살면 유명해진다”라고 했다.

 

▲대관봉이란 절벽에 있는 당 현종이 남긴 ‘천하대관 기태산명 마애비(天下大觀 紀泰山銘 摩崖碑).

 

태산의 바위란 바위에는 수많은 세월 동안 중국 역대의 제왕과 정치인, 시인들이 남긴 글로 가득 메워 거의 빈자리가 없다. 현재 태산 일대에 새겨져 있는 석각은 1,800여 곳이라 한다. 그 가운데 비석이 800여개, 마애석각이 1,000여개 정도 된다. 일부에서는 2,200여 개라는 주장도 있다. 거대한 ‘마애석각 박물관’인 셈이다. 역설적으로 보면 이만한 환경파괴도 없을 듯싶지만 환경파괴도 오래되면 문화유산이다. 태산은 자연경관과 더불어 이러한 문화유산으로 세계자연문화유산구역으로 지정됐다.

 

중국에서 공식 발간된 책에는 태산 정상의 석각만 258곳으로 기록돼 있다. 석각 대부분은 역대 제왕이 봉선 의식을 행할 때의 제문, 사묘(寺廟)의 창건과 중수기, 태산을 칭송하는 시문들이다. 중국의 제왕들은 하늘과 인간사는 상호 관련이 있다는 천인상관설을 믿었다. 군주는 태산에 올라 천명을 내려 주신 은혜에 감사드리고 보고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역대 제왕이 열광적으로 추구한 ‘봉선’이다.

 

 

황제 중에 제일 먼저 태산에 오른 역사적 인물로는 중국을 처음 통일한 진 시황제다. 정상 옥황정 바로 밑에 있는 무자비가 그가 천하를 통일하고 오른 후 세웠다는 설이다. 그러나 일부 중국 학자들은 한 무제가 태평성대를 구가하면서, 그 평가를 후대에 받겠다는 의미로 글자를 남기지 않았다는 설도 있다. 진 시황이 태산에 남긴 글은 대묘로 옮겨져 보관되고 있다. 220여 글자 중 해독 가능한 글은 불과 10여자 밖에 안 된다. 전체 맥락을 전혀 알 수 없는 것이다.

 

태산 정상 석각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글자는 앞 글자에 삐침이 없는 ‘虫二’란 비문이다. 이는 청 말기 유정규라는 문인이 태산의 자연경관을 한마디로 표현한 말이다. 풍월무변(風月無變)을 적으면서 풍월이란 한자에 변을 없애 버린 비문이다. 풍월에 변을 없애니 삐침 없는 ‘虫二’이 된 것이다. 태산의 2,000여개 석각 중 가장 함축미가 뛰어난 글로 평가받고 있다. 아름다운 경치가 끝이 없다는 뜻이다.

 

▲공북석, 다른 이름은 탐해석.

 

정상 옥황정 바로 밑에 공등암(孔登岩)이란 석각이 있다. 공자가 태산 정상을 오른 것을 기념한 표지석이다. 공자는 태산에 오른 후 공자등태산이소천하(孔子登泰山而小天下) ‘태산에 오르니 천하가 작다’는 말을 했다. 공자가 아직 뜻을 펼치지 못할 때 태산에 올라 권력을 가진 제왕들을 은근히 비하했다는 이야기다.

 

맹자의 흔적도 보인다. 옥황정 바로 아래 암암(巖巖)이라고 새겨져 있다. 태산암암이란 뜻으로 바위같이 굳센 기질, 의연함을 나타내며 호연지기와 상통한다. 이는 맹자의 의기를 기려 새겼다고 한다.

 

정상에 새겨진 글씨인 웅치천동(雄峙天東), 발지통천(拔地通天), 경천봉일(擎天捧日), 준극우천(峻極于天)은 모두 태산의 위대함을 칭송하는 글 들이다. 청 강희제는 태산 정상에 올라 보조건곤(普照乾坤)이라는 네 글자를 남겼으며, 대관봉에 운봉(雲峰)이라고 쓴 글씨가 그의 것이다. 모두 태산의 위엄을 찬송한 내용들이다.

 

 

일관봉은 정상 인근에 있는 봉우리로, 거석이 하늘로 뻗어 마치 날카로운 칼이 북쪽 하늘을 찌르는 것과 같다고 해서 ‘탐해석’ 또는 공북석이라고도 부른다. 공북석은 북두를 향해 기울어져 붙여진 이름이다. 바위의 형상이 바다를 탐험하는 사람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탐해석은 태산 일출을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인근 첨노대(瞻魯臺)는 첨노대에 올라 남쪽으로 보면 공자의 나라, 즉 노나라의 지역이라는 것이다.

 

정상 바로 아래 커다란 절벽에 당 현종이 남긴 ‘천하대관 기태산명 마애비(天下大觀 紀泰山銘 摩崖碑)가 있다. 대관봉이란 이름을 가진 절벽에 있다. 세로 13m, 가로 5.3m의 바위에 총 966자의 글씨가 예서로 새겨져 있다. 모두 금박을 칠해 휘황찬란하다. 내용은 선인들의 비문이 태산의 위엄을 찬양하고 있으며, 당 시대의 태평성대를 구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 현종이 봉선한 옥첩 내용의 기록이다. 이전까지 하늘에 고했던 옥첩은 모두 비밀에 부쳐졌지만 현종이 첫 공개했다.

 

바로 그 옆에 ‘천하가 다 보인다’는 천하대관(天下大觀)이라는 석각이 보인다. 산등절정아위봉(山登絶頂我爲峰)이라는 석각도 눈에 들어온다. ‘정상에 오르니 나도 봉우리가 된다’는 뜻이다. 정상에 선 느낌은 자연과 혼연일체가 된다. 또 절정(絶頂), 앙지(仰止) 등의 비석이 보인다. 앙지는 경외하지 않을 수 없는 태산 꼭대기라는 뜻으로 쓰였다.

 

태산에 새겨진 글 중에서 눈길을 끄는 글씨는 청 강희제 시대에 쓴 것으로 전해지는 ‘과연(果然)’이라는 석각이다. 이 한마디도 어떤 글보다 적합한 표현으로 평가받고 있다.

 

청 건륭제는 많은 글씨를 남겼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조양동만장비(朝陽洞萬丈碑). 높이 20m, 넓이 9m에 달하는 거대한 비문에 새겼다. 그는 여섯 차례 태산에 오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태산 암벽에 140여수의 시와 130개의 석각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십팔반이 시작되기 직전에 모택동이 수풍류인물환간금조(數風流人物環看今朝)라고 쓴 글이 보인다. ‘이제 영웅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은 무산계급뿐이다’는 뜻이다. 진시황도, 한무제도, 당태종도, 징기스칸도, 영웅으로 불리던 그 어떤 인물도 다 지나갔고, 현재 영웅이라고 할만한 인물은 무산계급만 남아 있다‘는 것이다. 주은래의 부인 등영초는 등태산간조국산하지장려(登泰山看祖國山河之壯麗)를 새겼다. ‘태산에 올라 조국의 강산을 내려다 본다’며 중국 공산당 혁명의 성공을 만족하는 듯한 심경을 표시해 놨다.

 

 

일천문에서 남천문까지의 계단을 천제(天梯), 즉 하늘 사다리라고 한다. 조금 더 올라가면 ‘열심히 노력해서 올라가라’는 뜻인 노력등고(努力登高)가 있다. 일천문에는 등고필자(登高必自)가 보인다. 이 글은 중용에서 등고필자비, 행원필자이(登高必自碑, 行遠必者邇)에 나오는 얘기다. ‘높은 곳에 오르려면 반드시 낮은 데서 출발해야 하고, 멀리 가려면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평범하면서도 심오한 철학이 담긴 말이다. 명나라 때 새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천문 부근 바위벽엔 ‘부앙무괴작(俯仰無愧怍)이 있다. 태산에 올라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이 없고 사람을 굽어 수치스러운 일이 없는 경지‘에 이르게 됐다는 뜻이다. 남천문 바로 옆엔 ’하늘로 올라가는 길‘이라는 뜻의 여등천(如登天)이 새겨져 있다.

 

종선여등(從善如登) 석각도 눈에 들어왔다. ‘올라갈 것이냐, 말 것이냐, 고민하지 말고 계속 오르라’는 의미다. 원래 이 말은 중국 속담인 ‘종선여등(從善如登), 종악여붕(從惡如崩)에서 나온 것이다. 산을 오르는 것은 선을 좇는 것과 같고, 내려가는 것은 악을 좇는 것과 같다’는 말에서 나왔다.

 

이와 같이 태산 홍문 등산길은 고대 제왕들이 다니던 길로서 일명 ‘어도’라고도 부른다. 당의 고종과 현종, 송의 진종 세 황제는 봉선 등으로 태산을 오르내리면서 비를 세운 것이 모두 16개에 달한다. 문인들은 이 등산로를 따라 오르며 수많은 글을 남겨 ‘고시의 길’ 또는 ‘서법의 길’이라고도 부른다.

 

수많은 마애석각들이 더 있지만 아마 중국 정부나 태안시청에서도 전부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