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소리 2022-06/
06.01(수) 옵티머스 로비스트 징역 9년, 文 정권 펀드 의혹 전모 밝혀야
옵티머스 펀드 사기의 핵심 로비스트가 항소심 재판에서 징역 9년을 선고받았다. 1심보다 형량이 무거워진 것이다. 재판부는 “개인투자자들에게 손실을 전가한 것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옵티머스 펀드 사기는 피해자가 1000명, 피해액이 5000억원에 이르는 초대형 금융 범죄다.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재산적, 정신적 피해를 줬을 뿐 아니라 금융시장에 대한 신뢰를 심각하게 해친 중범죄다. 주범인 펀드 대표가 1심 징역 25년, 항소심 징역 40년 등 경제사범으로는 전례가 드문 엄벌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의 ‘뒷배’로 의심되는 정관계 로비 의혹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문재인 청와대의 민정수석이 옵티머스 측 로비스트에게 현직 부장판사를 소개한 의혹을 받았지만 검찰은 조사하지도 않고 무혐의라고 했다. 15년 형을 선고받은 공범의 아내가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으로 근무해 청와대 로비 의혹이 커졌지만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민주당 대선 주자들도 로비 대상이 됐다는 의혹이 있거나, 측근이 수사받던 중 극단 선택을 했지만 소환 조사도 없이 모두 무혐의가 됐다. ‘옵티머스 측이 전직 경제부총리, 검찰총장 등을 고문으로 두고 로비를 해왔다’는 문건까지 나왔지만 검찰은 전원 무혐의라고 했다. 문 정권 검사들의 수사 결과였다.
라임 펀드 사기도 옵티머스와 닮은꼴이다. 4000명 개인 투자자들이 1조6000억원 손해를 봤고 청와대 수석비서관, 민주당 현직 의원 등에 대한 로비 의혹이 터졌다. 그러나 법무장관이 라임 사건을 수사하던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폐지하고 담당 검사들을 인사 이동시키면서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다. 디스커버리 펀드 의혹도 있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자산운용사가 청와대 정책실장의 동생이 운용하는 펀드라고 알려지고, 국책은행이 적극 판매하면서 투자자가 몰렸다. 환매 중단 사태로 투자자들이 2500억원 손해를 봤는데도 무려 3년간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상식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문 정권에서 벌어진 각종 펀드 의혹의 진상을 모두 밝혀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6.02 586은 가도 ‘모피아’는 남는다
‘한 팀’이라는 새 정부 경제팀
형, 동생 하는 경제관료 출신
文 정권 실책 반성도 없이
일사불란히 자리를 차지
정권 바뀌고 세상도 변하는데
모피아 생태계는 왜 견고한가
한덕수 국무총리가 최근 윤종원 기업은행장을 국무조정실장으로 밀었다가 소란이 일자 접었다. 윤 행장은 문재인 정부 때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소득 주도 성장 같은 핵심 경제정책 수립에 동참했던 사람이다.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모피아 생태계’를 파악하면 한 총리의 시도가 해독(解讀)된다.
‘모피아’란 재무부·재정경제부로부터 기획재정부로 이어지는 경제 관료 집단을 일컫는다. 옛 재무부의 영어 약자인 ‘MOF(Ministry of Finance)’와 범죄 조직을 뜻하는 ‘마피아’의 합성어인데 기획예산처 등 범(汎)경제부처 출신도 포함한다. 마피아처럼 촘촘한 조직을 구축하고 서로를 챙긴다는 뜻으로 1990년대부터 쓰여 왔다.
문 정권은 ‘586끼리’ 자리 나눠 먹기로 비난받았다. 윤석열 정부는 능력에 따른 인재 발탁을 약속했다. 그래 놓고 검사 출신이 득세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상을 따져 보면 ‘모피아’라는 또 다른 숨은 키워드가 있음을 알게 된다. 총리에 이어 경제부총리와 경제수석 등 대통령실 핵심 참모를 경제 관료 출신으로 임명하고, 일사불란하게 서로 자리를 배분하는 전형적인 모피아식 인사가 이뤄지고 있다. 그 결과 통계청장·조달청장·관세청장, 심지어 보건복지부와 문화체육관광부 차관까지 경제 관료 출신에 돌아갔다.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에도 모피아가 내정됐다는 얘기가 돈다. 이미 두세 개씩 외부 ‘장급’ 자리를 거친 인사들이다.
경제 관료들이 그래도 가장 똑똑하단 이들이 있다. 근거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모피아가 진짜 실력파라면 왜 지난 정권의 반복되는 경제 실책에 동조했나. 경제를 끌어내린 소득 주도 성장 정책 수립에 기재부가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증거는 많이 남아 있다. 대표적 실정으로 꼽히는 부동산 대책, 납득하기 어려운 징벌적 종합부동산세 등에도 기재부가 열심히 참여했다. 기업이라면 배임 수준이다. 하지만 모피아는 반성도 책임도 없이 승승장구한다.
국무조정실장 등극엔 실패했지만 윤종원 행장은 기업은행장으로 일하고 있다. 국가재정법을 무시한 적자 국채 발행 문제를 지적하자 “정무적 판단을 하라”고 질책한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는 더불어민주당으로 들어가 경기도지사 출마까지 했다. 문 정권에 충성하며 권력 맛을 보았던 청와대 경제 비서관들은 기재부 1급으로 돌아간다 한다. 과거엔 정권이 교체되면 관행적으로 용퇴했던 자리다. 윤석열표 인사의 또 다른 수혜 그룹이라는 검사들은 지난 정권에 항명해 직을 내놓거나 집단 하방을 당하는 어려움이라도 겪었다. 모피아는 무슨 이유로 개국공신처럼 대거 영전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경제 관료집단을 뜻하는 이른바 '모피아'의 금융단체장 독식 등 인사 '낙하산' 문제를 지적한 1999년 조선일보 기사. 마피아처럼 서로를 끌어주고 '자리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모피아의 회전식 인사, 기득권 강화문제는 1990년대부터 줄곧 제기됐지만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조선일보DB
한 경제학자는 모피아의 득세를 ‘조합주의’에 빗댔다. 조직원에게 ‘조합’이 이익을 보장해주고 조직원은 조직 존속을 위해 활동하는 구조다. 모피아는 조직 강화를 위해 관과 민을 회전문처럼 오가면서 영향력을 불린다. 경제 부처 장관은 퇴임 후 당연하다는 듯 대형 로펌에 들어가 일한다. 은행연합회 등 4대 금융협회 회장 중 셋이 모피아다.(나머지 한 명은 정치인이다.) 세월호 사고 이후 ‘낙하산’ 관행을 깨자며 은행·보험사·카드사 사장 등 업계 출신으로 모두 바꾼 지 10년도 안 돼 모피아의 자리로 회귀했다. 정권 수뇌부, 여러 부처 핵심 장·차관, 민간 협회장, 로펌 등으로 이어지는 순환 구조의 모피아 네트워크는 자가발전식으로 서로를 강화한다. 그래서 쉽게 무너지지 않고, 행정고시 기수를 꼽아가며 자리 물림을 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경제팀을 짰을 때 신선하다고 생각했다. 금융감독원장 격인 증권거래위원장 게리 겐슬러는 투자은행 출신 가상 화폐 전문가, 공정거래위원장 리나 칸은 온라인 플랫폼 문제를 파온 30대 법대 교수다. 재무장관엔 중앙은행장을 지낸 재닛 옐런을 이례적으로 기용했다. 달러 패권을 위협하는 가상 화폐, 온라인 플랫폼 기업의 독점 폐해 등 디지털 경제의 굵직한 의제를 최고 전문가로 구성한 ‘팀 바이든’이 풀어가겠다는 메시지가 인사로 드러났다.
윤 대통령도 경제팀에 대한 철학이 있다고 알려졌다. ‘하나의 팀’이라고 한다. 명문대 졸업, 1960년대생(=1980년대 학번), 경제 관료 출신 남성으로 서로 ‘형, 동생’ 하는 균질한 모피아 집단이 ‘원팀’의 핵심 원칙인가. 기술이 경제 환경을 빠르게 바꾸는 21세기엔 다양한 전문가가 유기적으로 머리를 맞대는 조직이 훨씬 효율적이다. 민간은 이미 그렇게 가고 있다.
“모피아의 권력은 정치 권력보다 더 지속적으로 고착화되고 있다. 관료 출신의 금융권 장악은 정부의 시장 개입을 더욱 확대해 한국 금융산업의 발전을 저해할 것이다.” 2006년 조선일보 기사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사이 정권도 세상도 많이 바뀌었는데, 모피아 생태계만 그대로다.
조선일보 김신영 기자
06월 02일 與, 6·1 압승 발판 삼아 총력 다해 ‘국가 정상화’ 이끌라
윤석열 대통령 취임 22일 만인 1일 치러진 제8대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압승함으로써 새 정부와 여당은 ‘0.73%포인트 신승(辛勝)’ 부담을 털어내고 국정 동력을 높일 수 있게 됐다. 17개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12명이 당선된 것도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이지만, 호남·제주를 제외한 기초단체장 및 광역·기초 의회에서도 지방권력 교체가 대부분 이뤄졌다. 그러나 윤 정부와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더불어민주당의 전략 실패와 문재인 정권 5년 실정 탓이라는 점에서, 당·정은 이제 진정한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지금부터 2024년 4월 국회의원 총선까지 ‘전국 선거 없는 22개월’은 보수 정권의 지속 가능성은 물론 국가의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환경은 엄혹하다. 북한은 당장 핵실험을 재개할 태세를 보이고, 경제는 전방위 위협에 처해 있다. 사회적으로는 정치와 이념을 둘러싼 갈등이 도를 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도 2030세대 남·여, 그리고 6070세대와 40대 사이의 정치 성향은 영호남 분열에 근접할 지경임이 드러났다. 무엇보다 압도적 여소야대 국회는 변함이 없다. 따라서 윤 정부와 여당은 이런 난제 극복과 ‘국가 정상화’를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헌법 가치를 되살리고, 도약과 빠른 성장을 이룰 것을 국민 앞에 약속했다.
이제부터 윤 정권이 해야 할 일은 자명하다. 첫째, 국가의 기관차 역할을 묵묵히 해내야 한다. 더 이상 문 정권 핑계를 대서도, 야당의 발목잡기를 탓해서도 안 된다. 국민은 그런 장애물을 극복하고 국가 발전을 이끌라고 정권을 맡긴 것이다. 야당 의원들과 진정성을 갖고 소통해야 한다. 국민이 지켜보고 판단한다. 둘째, 윤 대통령이 첫 시정연설에서 제시한 연금·노동·교육개혁을 성공시켜 실력과 실적을 인정받아야 한다. 국민 설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셋째, 웰빙당 회귀와 ‘신(新)내로남불’을 경계하고, 야당보다 더한 내부 개혁과 쇄신에도 나서야 할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
06월 03일 檢 ‘권력형 범죄’ 수사에 속도 낼 때다

임종훈 前 홍익대 법과대학 교수 前 국회입법조사처장
전국 동시 지방선거가 지난 1일 종료됨에 따라 올해 양대 선거 일정이 모두 끝났다. 이제 우리 사회의 모든 부문이 일상으로 돌아가 각자의 맡은 역할을 각자의 자리에서 수행할 때다.
그런데 앞으로 몇 달 동안 우리는 사회의 여러 부문 중 특히 검찰의 역할에 집중적인 관심을 표명하게 될 것 같다.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위한 검찰청법 개정안과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5월 초에 공포된 후, 그동안 사회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주요 사건들을 검찰이 해결할 시간도 많이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정된 법에 따르면, 앞으로 검찰은 부패범죄와 경제범죄를 제외한 사건에 대한 수사는 법률 공포 후 4개월 이내에(선거범죄는 올해 말까지) 마무리해야 한다.
검찰이 수사해야 할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전 정부와 관련된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 의혹, 울산시장선거 개입 의혹, 산업통상자원부 블랙리스트 의혹 등과 성남시의 대장동 개발과 관련된 특혜 의혹이 있다. 한편, 우리들병원이 산업은행에서 1400억 원을 대출받은 사건과 관련된 전 정부의 권력형 비리 사건은 재수사 방침이 이미 결정됐고, 사모펀드 사기 사건인 라임·옵티머스 사건의 경우 재수사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몇 년 동안 처리하지 못한 사건들을 단기간 내에 해결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이들 사건에 대한 수사가 검찰에서 마무리되지 않는다면, 그 후에는 부패와 경제범죄가 아닌 사건에 대해서는 경찰이 사건을 인수해 그 실체 파악을 위한 노력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언제 끝날지 기약할 수 없는 일이다. 경찰의 수사 역량을 비판하는 말이 아니다. 그동안 경찰이 취급하지 않았던 유형의 사건을 적절히 처리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훈련과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하는 말이다.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같은 ‘중대범죄수사청’을 신설해 중요사건에 대한 수사를 맡길 수도 있으나, 기관 설립은 물론 전문적인 수사 역량을 축적하기 위해서도 시간이 필요하다.
검찰이 우리 사회의 주요 의혹 사건들에 대한 수사를, 주어진 시간 내에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서 불법이 있다면 상응한 처벌을 하고 억울하게 의심을 받은 사람들이 있다면 그 억울함을 풀어주어야 한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권력의 비호를 받는 부정부패가 발붙일 수 없다는 믿음을 국민에게 줘야 한다.
과거에 검찰이 일부 사건의 처리 과정에서 이러한 의심을 받은 것이 사실인 만큼, 검찰이 대형 의혹 사건들을 처리하면서 혹시라도 정치적 득실이나 이해관계를 계산해서는 안 된다는 너무나 당연한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로지 법과 정의라는 관점에서 객관적 증거에 기초해서 공명정대(公明正大)하게 처리해야 한다. 정치적 고려가 조금이라도 개입된다면 소모적 논쟁의 또 다른 불씨가 될 것이며, 하지 않은 것만도 못한 일이 될 것이다. 이번에는 검찰의 명운을 걸고 수사에 임해야 한다.
검수완박을 위한 법 개정은 이뤄졌으나, 이러한 법 개정이 정당한지와 수사권을 검찰과 경찰 사이에서 어떻게 배분하는 것이 적정한지에 대한 궁극적인 결정권은 주권자인 국민에게 있다. 국민이 대형 의혹 사건들에 대한 검찰의 수사 상황을 면밀하게 지켜볼 것이다.
문화일보
06월 03일 [단독]경찰, ‘김혜경 법카 의혹’ 관련 사용처 129곳 압수수색
5월말 초밥집 등 유용의혹 수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배우자 김혜경 씨의 ‘경기도청 법인카드 유용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이 법인카드 사용처 129곳에 대해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벌인 것으로 3일 확인됐다. 6·1 지방선거가 끝나 ‘선거 개입 리스크’가 해소된 경찰이 이번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이 의원과 김 씨에 대한 본격 수사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날 문화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지난달 말 김 씨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 관련 사용처 소재지 129곳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였다. 압수수색 대상에는 성남과 수원의 한우전문점, 초밥집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유용 금액은 수백만 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압수수색에서 김 씨의 법인카드 사용 내역 등 여러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경찰은 지난 4월 4일에 경기도청과 경기도청 총무과 별정직 5급 공무원 배 모 씨의 집을 압수수색한 바 있다. 김 씨의 측근인 배 씨는 지난해 4∼10월 경기도청 비서실 7급 공무원이었던 A 씨를 시켜 수원과 성남 소재 식당에서 경기도 법인카드로 결제하고 김 씨에게 음식을 배달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이 의원은 검·경으로부터 크게 5개 의혹에 대해 수사를 받고 있다. 경찰은 법카 유용 의혹 및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국회의원 보궐선거 과정에서의 선거법 위반 의혹 수사를 벌이고 있고, 검찰은 대장동 개발 특혜의혹, 변호사비 대납 의혹 등을 전방위 수사 중이다. 이 의원 측은 경찰의 압수수색과 관련, “특별히 답변해 드릴 게 없다”고 밝혔다.
송유근 기자 6silver2@munhwa.com
06.04 최저임금 과속 인상 뒤 체불 임금 日 14배, ‘소주성’의 결과
문재인 정부가 급속 인상한 최저임금을 감당 못한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이 급증하면서 지난 5년간 임금 체불 규모가 7조원에 달했다. 같은 기간 일본의 체불액보다 14배나 많은 규모다. 문 정부가 두 해 연속으로 최저임금을 16.4%, 10.9% 올리는 등 5년간 총 42% 인상하면서 임금을 제대로 주지 못한 곳이 속출한 것이다. 저소득 근로자를 돕겠다며 밀어붙인 정책이 임금 체불 사태를 일으켰다.
최저임금 과속 인상의 역설은 서민 경제 곳곳에서 벌어졌다. 직원을 내보내고 무인(無人) 기계로 교체하거나 가족으로 대체하는 곳이 늘어나면서 소상공인·자영업 일자리가 줄어들었다. 주 15시간 이상 일을 시키면 주휴 수당을 주게 하는 법규까지 더해지자 근무시간을 주 15시간 미만으로 쪼개는 편법이 성행해 일자리를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법정 최저임금을 못 지키기고 그보다 낮은 임금을 주는 사례도 급증했다. 2017년 266만명이던 최저임금 미만 근로자가 지난해 321만명으로 늘어 전체 임금 근로자의 15.3%를 차지했다. 최저임금을 위반하면 고용주가 ‘3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는데도 숱한 소상공인이 법을 지키지 못했다. ‘지킬 수 없는 법’이 수많은 소상공인을 ‘범법자’로 내몬 것이다.
현재 한국의 최저임금 수준은 중위 임금의 61%로 OECD 38국 중 여덟째다. 노동계는 내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10%가량 높은 1만원 이상으로 올려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고물가의 충격이 큰 저소득 근로자를 위해 최저임금 인상은 필요하나 가파른 인상은 경기 부진에 시달리는 소상공인·자영업자를 더욱 어렵게 해 임금 체불이나 법 위반 사례를 양산할 수 있다. 지난 5년과 같은 부작용을 반복하지 않도록 적정선에서 인상률을 조정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6.04 초음파·MRI 4년새 10배, 선심 쓰고 뒷감당 없는 ‘文 케어’

▲문재인 케어 이후 초음파·MRI 진료비 증가
이른바 ‘문재인 케어’라 불리는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정책을 시행하면서 초음파와 MRI(자기공명영상) 진료비가 지난 4년간 10배가량 폭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초음파·MRI 이용에 들어간 진료비가 2018년 1891억원에서 2021년 1조8476억원으로 9.7배 늘어났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충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가 돈을 뿌리듯 선심 쓴 정책의 부작용이 그대로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문 정부는 의료비 부담을 줄여주겠다면서 초음파·MRI, 대형병원 2~3인실 입원비 등에 대해 단계적으로 건강보험을 확대 적용했다. 생사가 달린 암 환자나 외과 수술, 소아 심장 수술을 받는 중증 질환자들에게 적절한 치료를 보장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지적이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자 병원도 환자도 MRI를 찍고 보는 도덕성 해이가 만연해졌다. 수요가 폭발해 입원 환자들이 새벽 3시에 일어나 MRI를 찍는 일도 빈번했다. 국내 MRI 장비도 ‘문 케어’ 시행 3년 만에 인구 대비 세계 최다 수준인 1775대로 늘었다. 너도나도 ‘주인 없는 돈’을 쓰려 혈안이 됐다.
이렇게 고가의 MRI를 찍다 보니 건보 재정이 악화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2011년부터 2017년까지 7년 연속 흑자였던 건보 재정수지는 2018년 적자로 돌아서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2017년 20조원을 넘던 건보 적립금은 2024년 바닥이 드러날 전망이다. 그런데도 문 전 대통령은 지난해 ‘문케어’ 4주년 보고대회에서 이 정책으로 “지난해 말까지 국민 3700만명이 의료비 9조2000억원을 아낄 수 있었다”고 했다. 국민 주머니에서 나가던 의료비를, 국민이 내는 건강보험 재정에서 대신 내준 것일 뿐인데 마치 의료비를 줄인 것처럼 자랑한 것이다.
초음파·MRI 진료비가 4년 사이 10배 폭증한 것은 정권이 인기영합적인 의료정책을 펼칠 경우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국민의 의료 서비스 이용은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한 건보 재정 위기를 막으려면 결국 건보료를 크게 올리거나 건강보험에 국고 지원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전부 국민 부담이다. 대통령이 내는 돈이 아니다. 정권은 생색만 낸 뒤에 뒷감당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떠나버린다. 건강보험 제도 전반에 대한 지출 합리화 추진도 현 정부의 과제로 남게 됐다.
조선일보 사설
06.05 윤희숙 “文, 본인 피해엔 냉큼 고소…노조 시위에도 같은 목소리 내라”

▲지난달 26일 경남 양산시 평산마을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주변에 문 전 대통령 비판 단체 시위로 인한 이지역 주민들의 피해 호소 현수막이 걸려 있다./뉴스1
문재인 전 대통령 경남 양산 사저 앞 극우·보수단체들의 욕설 집회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자 더불어민주당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개정안을 발의한 데 대해,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은 “문 전 대통령 인권만 중요한가”라고 비판했다.
윤 전 의원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국 어디서도 이런 인권침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관련 규제를 정비해 일관성 있는 집행이 이루어져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윤 전 의원은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 집회시위에 첫 금지 통고가 내려졌다. ‘야만스럽다, 전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지키자’ 는 여론이 형성됐기 때문이라 본다”면서도 “반면 문 전 대통령의 과거 행태를 상기하며 ‘민주주의 양념이라며?’하는 냉소적 시선도 존재한다. 이런 야만을 부추기고 방치한 사람이 바로 문 전 대통령 자신이라는 인식”이라고 했다.
그는 “그가 자신의 지지자들을 향해 ‘상대방에 피해주는 방식으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더는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저를 사랑하는 지지자 여러분, 그 사랑으로 같은 우리 국민인 상대방도 품어주십시오’ 하고 호소했더라면 우리 정치는 지금 훨씬 더 나은 모습일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가 그러지 않았던 것도 아쉽고, 본인이 피해보는 입장이 되니 자신이 남긴 큰 족적은 성찰하지 않고 시위자들을 냉큼 고소해버리는 모습도 아쉽다”며 “그러나 우리가 계속 이런 야만 속에 살아가서는 안되며, 이참에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윤 전 의원은 “단, 문 전 대통령의 인권이 보통의 국민보다 더 중한 것은 아니다. 왜 일반 국민들은 야만 속에 고통받도록 방치하고 양산 사저만 평화로워야 하나”라며 “주택가 가까운 곳에서의 시위, 공연장 근처의 시위, 데시벨 규제를 무시하는 배설형 시위를 눈감아주는 경찰의 행태, 모두 이참에 고치자”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도 이런 행태를 묵인하고 방치, 조장한 민주당 정치인들은 좀 돌아보시기 바란다”며 “경찰서를 항의 방문한 것은 좋다. 그러나 문 전 대통령 한 사람만의 인권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게 아니라면, 전 대통령 사저를 집회금지장소에 포함시키는 법안을 서둘러 발의하기보다, 당내 극렬 지지자 팬덤의 폐해, 노조들의 주택가 시위 등에 대해서도 똑같은 목소리를 내 달라”고 덧붙였다.
앞서 문 전 대통령 내외는 지난달 31일 대리인을 통해 경남 양산경찰서에 보수단체 소속 회원 3명과, 이름을 알 수 없는 1명 등 4명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했다. 문 전 대통령 내외는 고소장에 피고소인들이 집회 과정에서 허위사실로 욕설·모욕을 반복적으로 유포해 명예훼손을 저질렀으며, 살인 및 방화 협박, 집단적인 협박 등으로 공공 안녕에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를 해 집회 시위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는 내용을 적시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수석·비서관 등을 지낸 의원들은 지난 1일 양산경찰서를 항의 방문하기도 했다. 민주당 한병도·윤영찬·윤건영 의원과 무소속 민형배 의원은 이날 한상철 양산경찰서장을 만나 사저 앞 시위에 대한 미온적 대처에 항의하고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후 지난 3일 민주당 한병도 의원은 사생활을 침해하는 수준의 집회와 시위를 금지하는 내용의 집시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개인의 명예를 훼손·모욕하는 행위, 개인의 인격권을 현저하게 침해하거나 사생활의 평온을 뚜렷하게 해치는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한다.
조선일보 김가연 기자
06.06 “공수처, 실적 못 내면서 월급만 축낸다”는 경고
공수처 자문위원장인 안창호 전 헌법재판관이 5일 언론 인터뷰에서 “공수처가 수사 과정에서 공정성 시비가 나오지 않고 국민이 원하는 수사 결과물을 내놓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김진욱 공수처장이 지난달 기자 간담회에서 검사·수사관 대폭 증원과 단독 청사 마련을 일방적으로 요구한 것에 대해 안 위원장이 사실상 반대한 것이다. 안 위원장은 공수처가 출범 후 1년 5개월간 줄줄이 저지른 편파·부실 수사, 인권침해 등 구조적 문제를 제대로 개선하고 이를 통해 국민에게 신뢰를 쌓는 과정부터 먼저 거쳐야 한다는 입장이다. 인력이나 청사는 그다음에 논의할 일이다.
김 공수처장은 공수처의 문제를 인력 부족과 청사 탓으로 돌리고 있다. 진짜 원인은 따로 있다는 사실은 공수처장 자신도 잘 알 것이다. 작년 공수처의 전체 수사 12건 중 4건이 야당 대선 후보를 겨냥한 것이었다. 문재인 정권과 같은 성향의 시민단체가 터무니없는 사건을 고발하면 공수처가 기다렸다는 듯 수사했다. 그러더니 윤석열 대통령을 겨냥했던 ‘고발 사주’ 의혹 등은 최근 공수처 스스로 무혐의 처리하고 있다. 수사 개시를 최종 결정하는 권한은 공수처장에게 있었다. 자신을 공수처장 시켜준 정권에 보답하려 애초부터 얘기가 안 되는 수사를 벌인 결과다. 그런가 하면 공수처는 문 전 대통령의 대학 후배로 문 정권이 저지른 불법에 대한 검찰 수사를 뭉개던 이성윤 검사장은 ‘황제 조사’로 모셨다. 공수처장 관용차에 몰래 태워 오고 조사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라고 둔 공수처장이 정권 불법을 뭉개는 데 가담한 셈이다. 공수처는 문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 학자와 야당 의원에게는 ‘전화 뒷조사’를 집중적으로 벌이기도 했다.
공수처는 최근 수사관 채용 공고를 내며 “공수처가 국민의 신뢰를 받는 인권 친화적 수사 기구로서 초석을 다져가는 여정에 함께해달라”고 했다. 지금까지 공수처가 보여온 행태를 기억하는 국민들로서는 헛웃음밖에 안 나온다. 오죽하면 여론조사에서 공수처를 폐지하거나 개혁해야 한다는 응답이 70%를 넘었겠나. 안창호 자문위원장은 “공수처가 국민이 납득할 만한 실적을 내지 못하면 월급만 축내는 기관이 된다”고 했다. 공수처에 주는 마지막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6.06 “文정부 국민연금 개편 시도는 국민 호도하고 끝낸 사기극”
[선정민이 만난 사람]
연금 개혁 연구 25년,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개혁 제대로 안하면 MZ에 ‘연금 고려장’ 당할수도”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3일 본지 인터뷰에서 “연금 개혁이 이 지경까지 온 것은 노인 빈곤 문제를 왜곡해 포퓰리즘에 이용한 일부 정치인, 공무원, 교수, 시민단체들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국책 연구기관 소속으로 정부 정책을 강하게 비판해온 그는 “정부가 연금 개혁에 관한 팩트(사실)와 회의 과정을 투명하게 국민에게 알려야 개혁에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이태경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취임 후 첫 국회 시정연설에서 연금 개혁을 노동·교육 개혁과 함께 위기 극복을 위한 3대 선행 과제로 제시했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뜻이다. 정부는 연금 개혁을 논의할 사회적 대타협 기구인 ‘공적연금 개혁위원회’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구체적인 개혁안을 발표하지 않는 대신, 전문가와 이해 관계자들이 모여서 합의하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노후 소득 보장을 위해 기초연금을 월 30만원에서 40만원으로 인상하겠다는 공약도 내놓은 상태다.
국민연금 개혁 방식은 2057년으로 전망된 적립금 고갈을 늦추기 위해 현행 9%인 보험료율을 인상하거나 소득대체율(생애 평균소득 대비 노후 수령액의 비율)을 40% 안팎에서 조정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매년 수조원을 국고에서 지원하는 공무원·군인연금과 사학연금 등도 개혁이 절실한 분야다.
연금 개혁은 역대 정권에 ‘뜨거운 감자’였다. 고령화 때문에 연금 수급자는 늘어나는데 출산율 저하로 경제활동인구가 감소하면서 연금 재정이 악화되는 추세가 이어져왔다.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은 정권마다 잘 알고 있지만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의 연금 개혁이 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정치적 판단이 우선적으로 작동하곤 했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윤석명(61) 연구위원은 “문재인 정부의 연금개편은 대국민 사기극이었다”며 “재정 평가 기간 마지막인 70년 뒤에 가서는 연금재정이 훨씬 더 악화되지만, (도중에) 기금 소진 시점만 몇 년 연장시킬 수 있는 꼼수를 ‘재정 안정 방안’이라 부르면서 ‘공적 연금 강화’라는 미명 아래 개악을 개혁으로 둔갑시켰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 일부 공무원, 교수 등 이해관계자들이 카르텔을 형성해 정보를 은폐, 왜곡하며 연금 개혁을 지연시켰다”며 “정부 재정으로 모든 책임을 지라는 식으로는 개혁이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통령이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나서면 제대로 된 연금 개혁이 가능하다”며 “‘연금 개혁 팩트 보고서’를 만들고 개혁위 회의를 유튜브로 생중계해 투명성을 높이자”고 제안했다.

▲그래픽=송윤혜
공무원·교수 등 연금 카르텔 깨야
-연금 개혁이 얼마나 시급한가.
“추락하는 건 날개가 없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충당부채가 작년 기준 1138조원에 달한다. 국민연금도 시한폭탄이다. 국민연금 적립금으로 928조원(3월 말 잠정)을 갖고 있으나 2088년까지 누적 적자가 1경7000조원에 달하는 것이 국민연금의 실상이다. 지금 연금제도를 유지하려고만 해도 국민연금은 보험료율을 9%에서 18% 이상으로, 공무원연금은 18%에서 38%로 2배 이상 인상해야 한다. 사학연금도 개혁이 시급하다. 미룰수록 급속히 악화되는데도 ‘걱정도 팔자’, ‘수십년 뒤의 일’이라는 정서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어쩌다 이런 상황이 됐나.
“일부 공무원, 특정 정권과 야합한 전문가들이 카르텔을 형성해서 제대로 정보 공개를 안 해 이 지경까지 왔다. 기획재정부나 인사혁신처는 ‘연금 충당 부채는 나랏빚이 아니다’고 희석시키는데, 다 국민 부담이다. 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에서는 ‘국민연금에 국가 지급 보장 조항을 넣자’는 말이 나온다. 제도를 고칠 생각 안하고 전부 국가가 책임지라는 식이다. 전세계에 이런 나라는 없을 것이다.”
공무원·국민연금 통합이 시대 흐름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중 어느 것이 더 시급한가.
“국민연금은 도입 10년 만인 1998년과 20년이 채 안된 2007년에 두 번 개혁했다. 공무원연금은 2010년과 2015년에 개혁했지만 여전히 2007년 국민연금 개혁 수준에 못 미친다. 공무원연금 등 인구의 3~4%에 불과한 특수직역연금 가입자들을 위해 매년 100조원씩 부채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국민연금만 개혁하자면 국민이 납득하겠나. 민간 기업과 달리 공무원은 거의 정년까지 가니까 연금액이 계속 늘고, 2배 더 내는 만큼 정부도 2배를 더 내준다.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은 통합 운영하는 것이 시대의 흐름이다.”
-문재인 정부의 연금 개혁 시도를 어떻게 평가하나.
“문재인 정부의 연금개편안은 대국민 사기극이었다. 연금 재정 평가는 70년 뒤의 재정 상태를 보면서 제도 개편 논의를 해야 하는데, 문 정부는 평가 기간을 40년으로 줄여서 개혁안이라고 내놨다. 수명 연장을 감안하면 최소 70년 이상 추계해야 하는데도 단순히 기금 소진 시점이 몇 년 늘어나는 걸로 국민을 호도했다.”
기초연금·국민연금 감액 폐지해야
-진보 진영에선 유럽처럼 국가가 노후를 책임질 수 있다고 한다.
“그들이 좋아한다는 스웨덴·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도 2000년대 들어 연금 개혁을 통해 혜택을 상당수 축소하고 저소득 노인에게 선택과 집중하는 쪽으로 제도를 바꿨다. 핀란드에서는 ‘기대 여명 계수’를 도입해 수명이 늘어나는 만큼 연금을 깎고, 독일은 우리보다 보험료를 2배 이상 부담한다. 독일이나 일본에서 국가가 연금 지급을 보장한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기초연금을 올리면 노인 빈곤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되지 않나.
“전체의 70%에 지급하는 기초연금은 투입 대비 빈곤 완화 효과가 크게 떨어진다. 우리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중 노인빈곤율 1위라는 건 맞지만 ‘평균의 함정’이 있다. 노인 소득 하위 25%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에서 가장 빈곤한 집단이지만, 적게 잡아도 노인 상위 50%는 전체 연령층보다 재산이나 소득이 많다. 예컨대 공무원, 군인, 사학연금 수급자와 대기업 퇴직자 등은 젊은 층에 비해 훨씬 잘 산다. 그런데도 각종 공제가 있어서 예컨대 근로소득 월 400만원인 노인도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다. 또 고가의 부동산들을 소유하고 있어도 당장 가처분 소득이 없거나 적을 경우에는 빈곤한 노인으로 분류된다. 실제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에서 이전 지출을 통한 소득재분배 효과가 제일 낮다. 기초연금 수급자 3분의 1 정도는 월 58만원 이하의 절대 빈곤층이지만, 3분의 1은 OECD의 상대 빈곤(월 97만원) 기준으로도 빈곤 노인이 아니다. 한국의 높은 노인 빈곤율의 실상이 노인 소득의 양극화에 있음에도 정치권이 이를 감추면서 노인 표를 얻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대부분 기초연금 10만원 인상을 공약했다.
“올리더라도 소득 하위 30%까지는 10만원, 30~50%는 5만원 정도로 차등적으로 인상해야 옳다고 본다. 공약 파기 얘기가 나와 대통령이 사과하더라도 일부 거둬들이고 역사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엔(n)분의 1′로 빈곤 해소가 가능하다는 것은 유럽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보편적 복지 개념을 극도로 왜곡시킨 비겁한 논쟁의 부산물일 뿐이다. 2030년 기초연금 지출액 49조원은 경항공모함 33척, 중대형 항공모함 7척을 건조할 수 있는 막대한 돈이다. 미·중·러에 둘러싸인 나라에서 국방비 지출을 감안하면 OECD 평균 타령만 할 수는 없다. 과거 선거 때마다 정치권이 사고를 쳐서 결국 노인 70%에게 지급하는 기초연금을 만들어놨다. 이대로면 다음 대통령 후보는 기초연금 50만원으로 인상 공약을 할 수밖에 없다.”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연계 감액은 어떻게 해야 하나.
“국민연금이 일정 액수가 되면 기초연금을 깎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로 인해 취약 계층들은 더 국민연금에 가입을 안 할 것이다. 연금제도의 원칙을 무너뜨리는 연계 감액 제도는 아예 없애야 한다. 성실한 국민연금 납부자가 더 받는 건 당연하고 동시에 절대 빈곤 해소를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
-연금 개혁의 원칙은.
“연금은 적절한 노후 보장을 해주면서 현 세대에 보편적으로 적용되고, 다음 세대까지도 지속 가능해야 한다. 세 부문에서 최대공약수를 찾는 것이 중요한데, 지금은 정치적 지속 가능성이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다. 현 세대에서 제대로 개혁하지 않으면 의사 결정에 참여하지 않았던 MZ세대가 성장해서 노후 세대에 대한 연금 지급을 끊어버리는 ‘연금 고려장’을 할 가능성도 있다. 연금 제도 하나만으로 모든 정책 목표를 달성하려고 해선 문제 해결이 어렵고, 기초생활보장제도나 노동시장 개혁을 통한 고용 연장 등 여러 제도를 조합해 최선의 방안을 도출해야 한다.”
밀실 개혁 논의, 유튜브에 공개하자
-‘연금 개혁위’는 어떻게 운영해야 하나.
“과거 연금위원회와 사회적 대타협 기구에 들어가 보면 꼭두각시 위원들을 선정해 놓고 (진짜 전문가를) 끊임없이 압박, 협박한다. 팩트를 말하면 딴지 걸면서 시간을 허비하고, 대놓고 특정 집단을 대변한다. 모든 비공개 회의를 유튜브로 생중계해 국민에게 공개해야 한다. 이에 앞서 연금 개혁은 ‘팩트 보고서’ 발간부터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연금 담당 공단에서 보고서를 작성해 언론에 공개하고 전문가가 검증하는 방식으로 최소한의 팩트에 대한 합의부터 시작하자는 것이다.”
-연금 개혁이 가능할까.
“2007년 노무현 정부에서 연금 개혁할 때보다 지금 훨씬 분위기가 좋다. 정치권에서 핑계만 대는데 대통령이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나서면 가능하다고 본다. 대통령이 의지를 보이면 여론도 도와줄 것 같다. 연금 개혁이 시끄러워야지, 어떻게 조용하게 하겠느냐. 하지만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윤석명
고려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97년 미국 텍사스 A&M대에서 미국 사회보장제도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들어갔다. 2000년 국민연금연구원으로 옮겨 연구조정실장을 지내다 2006년 보사연으로 다시 스카우트돼 사회보장연구본부장 등을 맡았다. 16년째 1급 연구위원을 지내고 있다.
조선일보 선정민 기자
06.09 국가 전략 자산 ‘반도체’ 지키기, 교육부 아니라 정권 목숨 걸어야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 받은 반도체 포토마스크를 살펴보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반도체는 국가 안보 자산이자 우리 경제의 근간”이라면서 교육부에 “목숨을 걸고” 인재를 육성하라고 주문했다. 옳은 문제 인식이다. 바이든 미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 길에 일본보다 한국을 먼저 찾고, 삼성 반도체 공장을 첫 방문지로 골랐듯이 반도체는 한미 동맹의 전략적 가치를 뒷받침하는 핵심 전략 자산이다. 국가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제1의 성장 엔진이기도 하다. 반도체 산업이 경쟁력을 유지해야 경제가 살고 동맹의 전략적 가치도 유지할 수 있다.
한국은 삼성전자의 분투와 반도체 종주국 미국의 협조 덕에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 자리를 30여 년간 유지해 왔다. 하지만 미·중 기술 패권 전쟁의 핵심 무기로 반도체가 부상하면서 글로벌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미국이 대만, 일본, 유럽을 끌어들어 반도체 공급망 개편에 나서면서 반도체 산업은 국가 간 경쟁 차원을 넘어 국가 연합 간 경쟁 구도로 재편되고 있다. 세계 각국은 미국 주도 반도체 동맹에 올라타기 위해 경쟁적으로 미국 공장 건설 계획을 발표하고, 특별법을 만들어 자국 반도체 기업 전방위 지원에 나서고 있다.
한국도 문재인 정부가 ‘K반도체 전략’을 내놓고, 반도체 특별법도 만들었지만 내용 면에서 경쟁국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산업계는 특별법에 수도권 대학 반도체 학과 정원 확대와 주 52시간 규제 완화를 반영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국회는 ‘대기업 특혜 불가론’ ‘지방 균형 발전론’을 이유로 거부했다. 각 대학도 타 학과 교수들의 기득권 저항 탓에 반도체 관련 학과를 신설하거나 정원을 늘리지 못하고 있다. 결국 기업들은 몇몇 대학에 자금 지원을 조건으로 반도체 계약 학과를 만드는 수준에서 자구책을 강구하고 있다. 하지만 매년 대졸 이상 반도체 전문 인력이 1600명 이상 필요한데 비해 계약 학과 졸업생은 260명에 불과하다. 경쟁국 대만은 매년 1만명의 반도체 인재 확보를 목표로 반도체 학과 정원 규제를 풀고 대학에 1년에 두 번씩 신입생을 뽑는 특혜를 주고 있다.
윤 대통령은 “교육부가 경제 부처처럼 생각해야 한다”고도 주문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교육부에만 맡길 일이 아니다. 반도체 산업이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소재·장비 등 연관 산업, 용지·용수·전력 등 인프라, 세제 등 제도적 환경, 인력 양성 등 한 나라의 총체적 역량이 동원돼야 한다. 지역 주민 반발 탓에 삼성전자 평택 공장의 송전선 설치가 4년간 지연되는 동안 대만에선 극심한 가뭄으로 용수난이 발생하자 정부가 농업용수까지 끊고 반도체 공장에 물을 공급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반도체 관련 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의회에 지원 법안 통과를 재촉하고 있다.
윤 정부도 반도체 산업의 발목을 잡는 장애물 제거에 총력전을 벌여야 한다. 교육부에만 “목숨 걸라”고 할 일이 아니라 정권의 명운을 걸고 나서야 한다. 국회도 남아도는 지방 교육 교부금을 대학에도 분배해 학과 구조 조정에 쓸 수 있도록 법을 고치는 등 입법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6-09 “개혁 안하면 MZ세대에 ‘연금 고려장’ 당할 수 있다”는 경고

▲국민연금 재정 전망. /그래픽=송윤혜
새 정부는 연금 개혁을 노동·교육 개혁과 함께 위기 극복을 위한 3대 선행 과제로 제시했다. 정부는 연금 개혁을 논의할 사회적 대타협 기구인 ‘공적연금 개혁위원회’를 만들 계획이다. 국민연금 개혁이 시급한 것은 지금 제도가 적게 내고 많이 받아가는 구조인 데다 저출산·고령화라는 큰 암초를 만났기 때문이다. 현행 제도는 2007년 마지막으로 고친 틀을 15년째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출생아 수는 2007년 49만7000명에서 지난해 26만명으로 급감했다. 반면 65세 이상 인구는 2007년 476만명에서 지난해 말 857만명으로 늘었다. 앞으로 보험료를 낼 사람은 절반으로 줄고 연금을 받을 사람은 거의 두 배로 늘어났다. 제도를 손보지 않으면 지속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국민연금을 현 수준으로 유지할 경우 2042년 적자로 돌아서고 2057년쯤에는 기금이 바닥을 보일 것이라는 예측이 이미 나와 있다. 이조차 합계출산율을 1.32~1.38명 정도로 낙관적으로 가정했을 때의 수치다. 그래서 역대 정부는 연금 수령 시기를 늦추거나 수령액을 줄이는 등 기금 고갈 시점을 최대한 늦추려는 제도 개혁을 했다. 모두 인기 없는 조치였지만 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만은 집권 5년 내내 연금 개혁을 외면했다. 국민연금제도발전위와 복지부가 개혁 방안을 보고하자 걷어차고 복지부 공무원들을 탄압하기까지 했다. 매년 수조원을 국고에서 지원하는 공무원·군인연금과 사학연금도 손대지 않았다. 그만큼 젊은 세대의 부담을 늘려 놓은 것이다.
보건사회연구원 윤석명 연구위원은 6일 자 본지 인터뷰에서 “현 세대에서 연금을 제대로 개혁하지 않으면 의사 결정에 참여하지 않았던 MZ 세대가 성장해서 노후 세대에 대한 연금 지급을 끊어버리는 ‘연금 고려장’을 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그리스가 2008년 재정 파탄으로 연금액을 대폭 삭감한 사례가 있다. 세계 최악의 저출산 고령화 국가인 한국에서 그런 일이 절대 없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나. 연금 개혁 논의를 시작해 올해 정기국회에서 개혁안을 처리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6.09 “200만원 약속 못 지키게 됐습니다” 尹 사과 듣고 싶다
병사 월급 200만원보다
시급한 군 문제 너무 많아
대통령의 약속은
지켜져야 하지만
때로 어떤 번복은
더 높은 신뢰를 얻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후보 시절 전방부대를 방문해 생활관에서 장병들과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국회사진기자단
국민에게 할 일을 약속하고 뽑아달라고 하는 것이 정치인이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한 사람 같다. 그를 아는 분들 중에 “윤 대통령은 고집이 세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약속에 대한 신념과 이런 고집이 만나면 ‘어떤 일이 있어도 약속은 지킨다’가 된다. 윤 대통령의 이 스타일이 드러난 첫 사례가 많은 반대와 우려에도 실행된 대통령 집무실 이전일 것이다. 앞으로도 윤 대통령은 약속한 것은 지키려고 노력할 것이 분명하다. 이 의지는 윤 대통령만이 아니라 우리 정치 전체의 신뢰를 높일 것이다. 그러나 선거전의 와중에 한 약속 중에는 무리한 것도 있을 수밖에 없다. 무리한 약속을 억지로 지키면 부작용이 더 커지게 된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다.
그중 하나가 ‘병사 월급 200만원’ 약속이라고 생각한다. 윤 대통령은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희생하는데 처우가 너무 낮다’는 문제 의식을 가졌다고 한다. 동의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적지 않다. 선거 뒤에 ‘2025년 실행’으로 조정됐지만 임기 5년만 따져도 10조원 가깝게 든다. 우리나라 국방비는 GDP의 2.8%로 미국 러시아 등을 제외하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적정선을 넘는 군사비는 나라를 쇠퇴시킨다. 역사에 많은 사례가 있다. 국방비를 많이 쓸 수밖에 없는 숙명이라면 최대한 절약하고 무엇보다 지혜롭게 써야 한다. 국방비 중 70%가 인건비 등 유지비인데 이를 더 늘리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재정 부담의 문제만이 아니다. 군의 핵심은 ‘사기’다. 돈 더 주면 싫어할 사람이 없겠지만 병사의 사기는 돈으로 살 수도, 만들 수도 없다. 징병제 병사는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직업 군인과는 다르다. 병사의 사기는 지킬 가치 있는 것을 지킨다는 자부심, 그럴 능력이 있다는 자신감과 전우애, 군에 대한 사회의 존중에서 나온다. ‘군의 사기 = 돈’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병사 월급 200만원’인 징병제 국가는 한 곳도 없다.
지금 우리 병사들에겐 월급 200만원보다 시급한 일이 많이 있다. 최근 예비역 장군 한 분이 쓴 글을 보니 한국군 훈련을 참관한 미군들이 경악한 부분이 있다고 한다. 훈련 중 부상, 전사 판정을 받은 군인에 대한 조치가 너무 부실해 없다시피 했고, 심지어 지혈 방법도 몰랐다는 것이다. 실전에서 부상자가 방치되면 그 군대의 사기는 붕괴된다. 현재 우리 병사들에겐 응급치료 키트가 보급되지 않는다. 그래서 북의 지뢰 도발 때 즉각적인 부상 치료를 하지 못했다.
한국군은 야간 작전인데도 야시경이 없어 손전등을 켜고 다녔다고 했다. 실전이었으면 모두 죽었을 것이다. 나침반도 부족해 부대가 길을 잃었다고 한다. 방탄조끼 무릎보호대도 제대로 보급되지 않는다. 야시경도, 조준경도, 야전용 장갑도 없는 부대가 많다. 방탄모는 우크라이나 군인만도 못하다. 통신은 현대전의 핵심이지만 우리 군 많은 부대가 카톡으로 한다. 있는 장비도 쓰지 않아 병사들이 다룰 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거의 모든 병사가 실전형 사격 훈련을 한번도 하지 않고 전역한다. 이에 대한 대책은 없는데 ‘병사 월급 200만원’이 나왔다. ‘병사 월급 200만원’에 드는 돈이면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어느 쪽이 병사의 진정한 사기를 올릴 것인지, 무엇이 더 시급하고 중요한지 생각해야 한다.
우리 군 인건비 문제 중에 진짜 심각한 영역은 병사가 아닌 부사관들이다. 육·해·공군 모두 전투력의 핵심은 부사관이다. 이지스함을 실제로 움직이는 사람들, 최첨단 전투기를 정비하고 무장을 장착하는 사람들, 실전 현장에서 부하를 이끌 사람들이 부사관이다. 군 원로 한 분은 자신의 전방 소대장 시절을 회고하며 “노련한 상사 한 분이 나를 업고 다닌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그런데 부사관이 되겠다는 사람이 갈수록 줄고 있다. 병사 월급 200만원까지 되면 하사 초임보다 높은데 누가 부사관을 하겠나. 이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것이 병사 월급 인상보다 더 중요한 문제다. 병사 월급 200만원을 1년 줄 돈이면 F-35A 스텔스 전투기를 30대 이상 살 수 있다. 이 전투기는 40년 이상 우리를 지킬 것이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한 약속을 지키는 것과 이 숱한 문제들의 무게는 같다고 생각한다. 약속을 지키는 것은 그만큼 중대한 일이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대통령이 약속을 지키지 못함으로서 국민으로부터 더 높은 수준의 신뢰를 얻는 경우도 있다. 당장의 비난과 불만은 있겠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고 모두에게 이롭다면 ‘믿음을 주는 번복’이 된다.
대통령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됐을 경우엔 직접 국민 앞에 서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슬그머니 없던 일로 만들었다. 윤 대통령은 지금 하고 있는 것처럼 국민 앞에 서서 우리 군의 현실과 과제를 설명하고, 청년층에 사과하고 이해를 구했으면 한다. 그 모습 자체가 의미를 가질 것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
06월 09일 추경호 “5대 부문 개혁” 職 걸고 추진해 반드시 성과 내라
윤석열 정부 출범 1개월을 맞으면서 ‘도약과 빠른 성장’을 내걸었던 경제정책의 기조도 구체화하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자신의 취임 1개월 하루 전인 9일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규제 혁신, 물가 상승 등 현안 대응과 함께 민간·시장·기업 중심으로의 과감한 경제정책 패러다임 전환을 강조했다. 특히 “공공·노동·교육·금융·서비스 등 5대 부문 구조개혁을 추진하겠다”면서 다음 주 중 구체적 방안 발표를 예고했다. 8일에도 추 부총리는 주요 기관 경제 전문가들과 간담회에서 “5대 부문의 구조 개혁과 과감한 규제 혁신을 통해 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꿔 나가겠다”고 밝혔다.
추 부총리는 10년 뒤쯤 한국 잠재성장률이 0%대로 추락할 수 있다는 경고까지 상기시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연말 ‘2060년까지의 장기 전망’을 통해 한국이 정책 전환 없이 현 상황을 유지하면 잠재성장률이 2033년 0.92%로 0%대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마이너스 가능성까지 제기했다. 한국처럼 잠재성장률이 곤두박질칠 나라는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 정도였다. 한국경제연구원도 10년 뒤 0%대로 갈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1970년대 세계 경제를 강타했던 스태그플레이션 경고가 곳곳에서 쏟아진다. 당시보다 무역의존도가 훨씬 커진 한국에는 엄청난 위기다.
따라서 추 부총리의 현실 인식은 대체로 옳다. 경제의 기본 체질부터 확 바꿔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외면하거나 퇴행시켰던 5대 부문의 개혁은 절박하다. 그러나 말하긴 쉬워도 하나같이 난제들이다. 기득권 저항과 이해집단의 충돌이 심각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경제 관료와 정치 경험을 두루 거친 추 부총리는 갈등을 조정하며 개혁을 추진할 적임자다. 5대 개혁을 역사적 소명으로 생각하면서 직(職)을 걸고 필사적으로 추진해 반드시 성과를 내기 바란다.
문화일보 사설
06월 09일 檢 ‘직접 수사’ 원상 복구…검수완박 폐기 당위 입증해야
법무부가 문재인 정부에서 대폭 폐지·축소됐던 검찰의 직접 수사 기능을 원상 회복키로 한 것은 반부패 수사 역량 확보와 민생 보호를 위해 부득이한 조치다. 특히 시행까지 3개월도 남지 않은 ‘위헌적 검수완박법’의 폐기 당위성을 입증할 기회가 열렸다는 점에서 시의적절하다.
문 정부는 조국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자 2019년 10월 인천·수원·대전·부산지검 특수부를 형사부로 바꾸는 것을 시작으로 ‘검찰 힘 빼기’를 추진했다. 3년에 걸쳐 전국 검찰청에 있는 48개의 직접·전담 수사 부서 중 33개가 형사·공판부로 바뀌어 경찰 송치사건만 처리하는 부서로 전락했다. 박범계 전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전국 검찰청 146개 형사부 중 41개 형사부만 ‘6대 범죄’를 직접 수사하되 검찰총장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이런 조치가 원전 경제성 조작, 울산시장 선거 청와대 개입, 김학의 불법 출금 사건 등 문 정권 핵심 인사가 연루된 사건 수사를 방해·저지하기 위한 조치라는 정황은 차고 넘친다. 이걸로도 불안했는지 더불어민주당은 국회법의 근본 취지까지 훼손해가며 검수완박 입법을 강행 처리했다. 후유증은 권력형 비리 수사의 실종·왜곡에 그치지 않았다. 경찰의 수사 역량 부족과 업무 폭증으로 민생 수사는 지연되고, 대규모 피해자가 발생하는 금융사기 수사가 방치되는 등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갔다.
법무부의 이번 조치로 형사·공판부로 바꿨던 33개 부서 중 17개 부서는 명칭을 변경하고 직접 수사에 나선다. 또 146개 형사부는 모두 범죄 단서를 포착하면 직접 수사를 할 수 있게 된다. 검수완박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지는 것이지만 검찰 직접 수사의 필요성을 입증하는 성과를 거둘 공간과 수단은 확보됐다. 검찰은 엄정한 수사로 국민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권한 확대 시도나 보복·표적 수사, 별건 수사로 불신을 키우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해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6.10 소주성, 탈원전 주창자들이 尹 정부서 임기 채워도 되나
우리나라 공공 기관 370곳 중에서 기관장 임기가 1년 이상 남아있는 경우가 전체 70%에 가까운 256곳이라고 한다.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절대 다수 공공기관장들이 윤석열 정부와 동거하게 된다는 뜻이다. 특히 문 대통령이 임기가 끝나가는 작년 말 이후 알박기 논란 속에 임명한 기관장들은 3년 임기를 모두 채울 경우 윤 정부 임기 절반이 지나도록 자리를 지키게 된다.
공공기관은 정부 정책의 집행 및 지원을 담당한다. 특별히 독립적인 업무 수행을 요구받는 공공기관이라면 정권 향배와 관계없이 기관장과 임원의 임기를 보장해줘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정권의 새로운 정책 방향에 맞춰 임무가 완전히 바뀌게 되는 공공기관도 적지 않다.
문 대통령이 임명한 홍장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의 임기는 윤 정부가 3년 차에 접어드는 2024년 5월 말까지다. 마차가 말을 끈다는 소득주도성장의 설계자가 시장 원리를 복원하려는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 연구소 임무를 맡게 되는 것이다. 이를 정상이라고 할 수 있나. 김제남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은 지난 2월 말 한국원자력 안전재단 이사장에 임명됐다. 대표적인 반(反)원전주의자로 꼽히는 그가 탈원전 폐기를 대표 공약으로 내걸었던 윤 정부에서 원전 관련 공공기관장을 계속 맡아도 되겠나. 상식이 있다면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옳다.
정권 교체기마다 전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 기관장의 임기 보장 문제가 논란을 빚었다. 그러나 대부분 기관장들이 스스로 사퇴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이른바 ‘블랙리스트’가 논란이 되고, 이를 비판하던 문재인 정부에서도 전 정부에서 임명됐던 공공기관장들에게 사표 제출을 강요한 혐의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징역 2년 확정 판결을 받으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새 정부의 강압적인 공공기관 인사 물갈이가 범죄 행위로 규정되면서 전 정권에서 임명된 기관장 및 임원들이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고 버틸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이에 따라 기관장 3년, 임원 2년으로 돼 있는 공공기관의 임기제가 적절하냐는 의문이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처럼 정치적 임명직에 해당하는 공공기관 자리를 별도로 구분해서 정권이 바뀌면 자동적으로 물러나게 하거나 공공기관장 임기를 5년 대통령 임기에 맞춰 2년반으로 바꾸는 식의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책 이념이 180도 상반된 정권이 들어섰는데 전 정권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이끌었던 인사들이 새 정부의 공공기관에 남아 버티는 것은 아무리 봐도 정상이 아니다.
조선일보 사설
06.10 죄와 벌
비리 드러나 벌을 주는데 정치보복이라고 할 수도
정상화인지 보복인지는 국민이 선거로 심판한다
전설이 된 소설가 박경리·박완서 두 분께 글을 쓰는 힘은 어디서 나옵니까 물은 적이 있다. 놀랍게도 두 분 대답이 똑같았는데 그것은 “증오”였다. 사악하고 불공평한 세태를 미워할 줄 알아야 글이 나온다는 뜻으로 알아들었다. 응징의 열정이 문학일 수 있다. 무협 영화에서 침대 밑에 숨은 소년은 부모가 악당에게 쓰러지는 것을 보고 일생의 목표를 원수 갚기로 정한다. ‘부모님 원수’는 소년이 소림사에서 20년 동안 혹독한 수련을 견뎌내고 무림의 고수가 되게 한다.
적폐 청산, 정치 보복, 죄와 벌, 이 셋을 생각한다. 앞 정권은 적폐 청산과 정치 보복의 경계가 흐릿했다. 과거에 당한 게 있다면서 그걸 되갚은 측면도 있었다. 새 대통령은 누구든 죄를 지었으면 그냥 넘길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상식적 입장을 내놓는다. 지난 5년 비리 의혹의 당사자는 흠칫할 것이다. 죄와 벌, 엄중한 말이다.
새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의 사저 앞 시위도, 화물연대 파업도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했다. 예전 대통령들도 비슷한 말을 하긴 했다. 그러나 수사 검사 출신 대통령이 하니까 달리 들린다. ‘대응’이란 사법 처리 예고다. 대처 전 영국 총리처럼 한다면 우리나라의 사회·경제적 악습을 바꿔놓을 수 있다.
청산, 보복, 벌, 이 셋은 약간씩 겹치는 부분이 있다. 청산하려고 벌을 주었을 뿐인데 보복한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사기도 할 것이다. 정치적 해석이 분분해질 것이다. 하지만 억울할 것 없다. 임기 끝에 국민이 선거로 심판해준다. 그것이 청산이었는지 보복이었는지 들통나게 돼있다. 정권 교체란 그런 것이다.
대통령 말대로 죄와 벌 문제를 그냥 넘길 수는 없다. 검찰은 캐비닛에서 잠자고 있던 비위 수사철을 다시 꺼내는 분위기다. 법대로 대응하면 결코 무사하지 못할 사람은 떨고 있을 것이다. 민주당 소속이었던 여성 의원은 “검수완박 안 하면 문재인 청와대 사람 20명이 감옥 간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올여름이 다 가기 전에 ‘청산을 청산해야 하는’ 운명적 아이러니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운명’이란 회고록을 쓴 문 전 대통령은 퇴임 회견에서 윤 대통령을 “아이러니”라고 했다. 그러나 국민이 볼 때 아이러니는 ‘윤석열’이 아니라 ‘문재인’이다. ‘윤을 키운 8할’이 문재인·조국·추미애일 테니 심경이 착잡했을 것이다. ‘드라마 아이러니’라는 게 있는데, 관객은 알고 있고 무대 배우만 모르는 것을 말한다. 관객은 줄리엣이 진짜 죽은 게 아님을 알지만 로미오는 그걸 모르고 목숨을 끊는다. 소주성·탈원전이 잘못이라는 것을 국민이라는 관객은 다 알고 있었는데 정치 무대에 선 본인은 몰랐다.
민심은 총천연색이다. 팬덤을 등에 업은 강경파는 흑백으로만 본다. 거기에 올라타면 선동가다. “우리 이니 맘대로 했던” 지난 5년은 영화 ‘트루먼 쇼’와 같았다. 국민은 세상 물정에 깜깜한 배우를 질리도록 관람해야 했다.
문 전 대통령은 집권 초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왔다”고 했고 “사람이 먼저”라고 했다. 그러나 그 ‘사람 사는 세상’은 우리 모두가 아니라 특정 진영을 일컬었다. 국민은 “이제야 제자리로 돌아오기 시작한다”고 느낀다. ‘그들만의 세상’처럼 전도돼 있는 것들은 정상화가 절박하다.
오래전 박찬욱 감독은 송강호 주연으로 ‘복수는 나의 것’이란 영화를 만들었다. 등장인물들의 복수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어떤 대통령은 ‘정치 보복의 악순환 고리’에 스스로 갇혔다. 이제 그 고리를 끊는 올바른 대통령이 나올 때다. 정권이 ‘선택적 응징’을 하면 안 된다. 그게 보복이다. 죄와 벌은 공평해야 한다. 후임은 전임의 오류를 되풀이하면 안된다. ‘윤석열의 정의’는 ‘문재인의 정의’와 어떻게 달라야 하는가.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
06.10 이명박·이재용 사면 검토할 때 됐다
윤 대통령 “이십 몇 년 수감 맞지 않아”
기업인도 경영 활동 전념하게 해줘야
윤석열 대통령이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특별사면 가능성을 시사했다. 어제 용산청사 출근길에 이 전 대통령 사면 관련 질문을 받고 “이십 몇 년을 수감생활하게 하는 건 안 맞지 않느냐. 과거의 전례를 비춰서라도”라고 답했다.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에도 전직 대통령 사면 필요성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지난해 성탄절을 앞두고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이 발표되자 “이 전 대통령 사면도 국민 통합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이 건강 악화로 형 집행정지를 신청한 만큼 조만간 적절한 계기에 사면을 단행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이 전 대통령은 2020년 10월 횡령과 뇌물 혐의로 징역 17년형을 받아 재수감됐다. 과거 구속 기간까지 더해 2년6개월가량 복역 중이다. 박 전 대통령의 4년9개월보다 짧지만 만 81세 고령인 데다 지병을 앓고 있다. 전직 두 대통령이 장기간 수감생활을 한 것 자체가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아픔과 대립의 역사를 끊어내는 용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면은 국민 화합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사면에 부정적 여론이 적지 않음에도 종교계 원로 등은 박 전 대통령을 사면한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임기 내에 이 전 대통령을 포함해 보수·진보 인사들을 사면하라고 탄원했었다. 갈등과 분열을 씻고 국민 통합을 이루려면 양 진영 인사들의 사면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문 전 대통령은 실행하지 않았다.
이 전 대통령과 함께 사면 대상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경제계 인사들을 포함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를 비롯해 역대 정부에서도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경제인 사면을 해왔다.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5단체는 이미 문재인 정부 때부터 이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150명 안팎의 기업인에 대한 사면복권을 청원했다. 이 부회장은 가석방으로 풀려나긴 했지만 5년간 취업 제한을 받는 등 기업을 진두지휘하기에는 제약이 많다.
지금은 경제에 비상등이 켜진 상황이다. 글로벌 공급망 붕괴에 따른 원자재 가격 급등세가 심각하고, 1970년대 오일쇼크 때처럼 저성장과 고물가가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 위험 경고가 요란하다.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기업인의 경영 활동을 묶어놓는 것은 국가 전체로 봐도 큰 손실이다. 윤 대통령 스스로도 지난 7일 국무회의에서 “반도체가 국가 안보 자산이자 우리 산업의 핵심”이라며 관련 인재 육성을 강도 높게 주문했다. 한국의 대표 기업들이 창의와 도전정신으로 무장하고, 글로벌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경영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기업인들도 적극적인 투자와 일자리 창출로 경제의 선순환을 만들기 바란다.
중앙일보 사설
06월10일 9번째 세월호 조사 ‘침몰 원인 모른다’…음모론 끝내야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가 3년 6개월 간 세월호 참사 원인에 대한 조사를 벌였지만, 모호한 결론만 내린 채 10일 활동을 종료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고의 침몰설’ ‘잠수함 충돌설’ 등 각종 의혹이 제기되면서 지난 8년 동안 사참위를 포함해 검찰, 경찰, 특검, 국회 특위, 감사원 등의 조사·수사가 총 9번 진행됐지만 음모론 정황은 나오지 않았다. 김어준 씨 등 구여권 인사들이 사고 발생 초기부터 허무맹랑한 음모론에 불을 붙이면서 국론이 분열하고, 엄청난 정치·경제적 비용을 치렀다.
사참위는 활동 종료를 하루 앞둔 9일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해 “외력이 침몰 원인인지 확인되지 않았다”라는 종합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참위는 9월 발간하는 최종 보고서에 “외력 충돌 가능성을 배제 할 수 없다”는 내용도 소결론 형태로 싣기로 했다고 한다. 대한조선학회나 네덜란드 해양연구소 등이 외력에 의한 침몰설은 근거가 낮다는 결론을 내렸고, 외력 충돌을 입증할 증거가 없는데도 여러 해석이 가능하고 분란을 재점화할 소지를 남겨놓은 건 명백한 잘못이다. 해군도 “세월호 참사 당일 잠수함이 항해를 하거나 사고가 생겨서 수리한 기록이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런 사참위 조사에 사용한 예산만 약 572억 원에 달한다.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기관을 앞세워 8년간 9번 조사·수사했음에도 첫 검·경 합동수사에서 밝혀진 선체 불법 증축, 평형수 부족, 부실한 화물 고박, 감독 소홀 등을 넘는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유족들의 가슴을 찢는 참사에 편승해 아무 근거 없는 음모론을 퍼트리고, 정치적으로 이용한 문재인 정권과 구여권 인사들 책임이 크다. 더는 유족들을 ‘희망 고문’ 하지 말고 음모론은 이제 끝내야 마땅하다.
문화일보 사설
06월 10일 檢 직접수사 복원은 巨惡 척결 첫걸음
김종민 변호사 前 광주지검 순천지청장
2019년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국가 경쟁력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13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법체계의 효율성 45위, 정부 정책의 안정성 76위, 정부 규제가 기업 활동에 초래하는 부담이 87위로 나타난 것은 심각한 문제다. 지난 1월 발표된 국제투명성기구(TI)의 부패인식지수도 우리나라는 180개국 중 32위였다. 국가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근본적 문제가, 후진적이고 비효율적인 법제도와 규제·부패 문제임이 명확히 드러난 것이다.
지난 5년간의 검찰개혁은 이러한 우리의 현주소를 인식하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형사사법 제도의 효율화와 부패 범죄를 효과적으로 수사·처벌할 수 있는 제도 개혁에 맞춰졌어야 했다. 그러나 정치적 광풍에 휩싸여 검찰을 악마화하며 ‘검수완박’으로 상징되는 검찰 무력화에만 집중한 결과 얻은 것은 없고, 총체적 파탄의 결과로 남은 퇴행과 역설이 시간이 되고 말았다.
친정권 정치적 행보로 비판받았던 검찰 고위간부들이 교체된 데 이어 추미애·박범계 법무장관이 채워 놨던 검찰의 직접수사 제한 족쇄도 관련 규정의 개정을 통해 곧 풀릴 것이란 소식은 검찰 정상화로 가는 당연한 순서다. 검찰 수사권 제한 자체가 터무니없는 일이고 검찰 제도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사·기소권 분리론이나 ‘검수완박’은 해외 사례도 없고 이론적으로도 틀린 정치적 허구의 프레임일 뿐이다.
형사사법의 제1 목적은 범죄로부터의 사회 방위다. 좋은 형사사법 제도는 효과적이어야 하고 그 시대를 반영해야 한다. 1조5000억 원의 피해가 발생한 라임자산운용 사건이나 N번방 사건 같은 것은 과거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범죄 양상이다. 범죄는 빠른 속도로 첨단으로 진화하는데 형사사법 제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법무부가 형사부에서 중요 범죄 수사 단서를 발견하면 제한 없이 수사할 수 있도록 하고 지난 정권 때 수사권이 축소됐던 33개 형사·공판부 중 17개 부를 전담수사 조직으로 환원시키는 방침을 정한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범죄 수사가 보다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고 심각한 적체 상태인 사건 처리에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된다. 이때 한정된 검찰 수사 역량으로 최대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형사정책의 우선순위와 중요도를 고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과거 검찰이 국민의 불신과 비판을 받았던 것은 표적 수사, 정치적 수사로 비친 검찰 수사권의 오남용 때문이다. ‘검찰공화국’ ‘검찰 수사를 통한 정치적 보복’이 될 것이란 일각의 우려를 충분히 불식할 수 있도록 수사 대상이나 방법의 선택에 각별히 유의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수사를 통해 국민의 검찰로 거듭날 수 있도록 부적절한 과거와 완전히 단절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심각하게 손상된 법치주의를 회복하는 일이다. 법 앞의 평등은, 법이 주권자이고 그 누구도 법 앞에 예외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공동체의 존립 근거다. 엄정공평 불편부당의 검찰 정신은 어떤 외압에도 흔들리지 말고 권력형 비리와 거악(巨惡)을 척결하라는 국민의 명령이다. 우리가 법을 따르는 까닭은 그 법과 법 집행기관이 공정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문화일보
06.11 세금 572억원만 쓴 9번째 세월호 조사, 조사를 위한 조사
세월호 침몰 사고를 조사한 특별조사위가 “외력이 침몰 원인인지 확인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어제 활동을 끝냈다. 이른바 ‘외력설’을 신봉하는 일부 위원들의 반발 때문에 “외력 충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문구도 최종 보고서에 병기하기로 했다고 한다. 3년 6개월 동안 세금 572억원을 쓴 채 말장난으로 결론을 내린 것이다.
세월호 침몰은 방향타 밸브 고장으로 인한 급변침과 무리한 증개축, 화물 과적, 대형 화물들의 부실 고박, 승조원의 조작 미숙으로 침몰한 것이다. 이런 잘못이 겹쳐졌는데 배가 침몰하지 않았다면 그게 기적일 것이다. 침몰 원인이 충분하고도 납득될 정도로 밝혀졌다. 사고 직후 검경 합동수사본부의 수사, 국회 국정조사, 감사원 감사,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조사, 세월호 선체 조사위 조사, 대검 특별수사단 수사, 특검 수사 등 수차례 수사와 조사에 의해 드러난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사고에 언제나 끼어드는 괴담 음모론자들은 미국 잠수함 충돌설, 닻을 이용한 고의 침몰설 등 터무니없는 주장을 해왔다. 2017년 세월호를 인양해 강한 외력에 의한 파손이 없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고도 음모론을 굽히지 않았다. 어떻게든 누군가를 악마로 만들겠다는 광기일 뿐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이 탄핵되던 날 세월호 현장을 찾아 방명록에 “고맙다”고 썼다. 대규모 인명 피해가 난 사건에 ‘고맙다’는 망언을 하고도 그가 무사한 것은 세월호 사건의 정치적 변질을 보여주고 있다. 수학여행 중 배가 침몰한 사건을 두고 정치적으로 갈라져 진영 싸움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에 유례가 없을 일이다.
거듭된 세월호 조사는 괴담을 진짜로 만들려는 헛된 노력이었다.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증거가 나올 리 없다. 그래도 엉터리 조사로 세월호 CCTV 조작설을 제기했고 문 대통령은 이를 근거로 민변 출신 특검에 수사를 맡겼다. 석 달간 10곳을 압수 수색하고 78명을 조사했으나 ‘전부 무혐의’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엉터리 조사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 조사위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그 후에도 세월호 항적 조작, 외력에 의한 밸브 파손 등 근거 없는 주장을 펼치다 이번에 두 번째 임기를 끝내고 해산한 것이다.
무엇이든 도를 넘으면 모자라느니만 못하다. 세월호 조사의 결과는 무엇을 하는지도 모를 조사위원들을 국민 세금으로 먹여 살린 것 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일보 사설
월간조선 06월 호
5월과 6월의 역사
5·18보다 5·10과 5·16, 6·10보다 6·25를 기억해야
⊙ 事件은 반복해서 기억될 때만 歷史가 된다
⊙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이 주인인 나라 재건’ 선언한 5월 10일은 자유 대한민국을 세운 5·10총선의 날이자, 자유민주헌정을 모독한 문재인 취임일
⊙ 1946년 남로당 출판사가 낸 《민주주의 12講》 보면 1980년대 主思派 보는 듯
⊙ 이승만 대통령의 대한민국 건국은 그 자체가 자유민주체제를 수립한 혁명
⊙ 1987년 민주화는 박정희 시대 이래의 경제발전으로 그 기반이 더 튼튼해진 우리의 자유민주체제가 비상상태를 완화할 수 있게 된 것으로 이해해야
이강호
1963년생.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 前 대통령비서실 공보행정관, 《미래한국》 편집위원 역임 / 現 한국자유회의 간사, 한국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 저서 《박정희가 옳았다》 《다시 근대화를 생각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를 강조했다. 사진=조선DB
세계사적으로든 한국사적으로든 어느 달(月)인 들 중요한 역사적 기억이 없는 때는 없다. 5월의 한국사도 그렇다. 그 가운데 지금 가장 중요하게 자리 매겨지고 있는 사건은 5·18이다. 1980년대에 광주(光州)사태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사건이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이름으로 국가적으로 기억되고 기념되고 있다. 반면에 5월에 반드시 기억되고 기념돼야 하는 역사적 사건들이 언젠가부터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대표적으로 1948년의 5·10총선거가 그렇다.
지난 5월 10일 윤석열(尹錫悅)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었다. 취임사가 화제가 됐다. 키워드는 ‘자유’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로 재건”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국제사회에서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나라로 만들어야 하는 시대적 소명(召命)”을 말했다. 그것을 위한 가장 중요한 힘은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며 “자유의 가치를 재발견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번영과 풍요, 경제적 성장은 바로 자유의 확대”라고 했다. 자유가 35번 언급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처럼 ‘자유의 가치’를 역설한 그날은 74년 전 대한민국 건국(建國)을 위해 제헌(制憲)국회 의원을 뽑는 총선거가 있었던 날이었다. 제헌국회는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 헌법을 제정하고 7월 20일 국회의장 이승만(李承晩)을 대한민국의 초대(初代)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그러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선포함으로써 마침내 대한민국이 건국됐다.
자유 국민국가를 세운 5·10총선

▲1948년 5·10 총선 포스터. 총선이 독립·건국으로 가는 길임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조선DB
이 같은 과정을 남북통일정부 수립에 반하는 것이라면서 반대하는 자들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잘못된 생각이었다. 북한은 이미 소련의 꼭두각시인 사회주의 단독 정권을 수립해놓은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대한민국 건국에 반대하는 것은 공산 세력의 책동에 놀아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1948년 5월 10일 총선거에서 8월 15일 건국에 이르는 과정은 한반도에 ‘자유의 가치’에 입각한 국민국가가 탄생하는 과정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말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는 74년 전 그렇게 하여 탄생했다. 그리고 취임사에 35번 언급한 자유도 그렇게 하여 한반도 남쪽 절반에서나마 처음으로 구체적 제도와 체제로서 탄생하게 됐다.
하지만 그 5월 10일은 언젠가부터 그저 남한 단독정부(단정·單政)를 위한 것 정도로 폄하됐다. 그리고 5·10선거에 반대한 ‘갖가지 행위’들이 오히려 미화(美化)됐다. 문재인(文在寅) 정권은 당연히 단 한 번도 이날을 기념한 적이 없다.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는 5월 10일은 자신이 취임한 날일 뿐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5월 10일이 대통령 취임식 날이 된 것은 탄핵(彈劾) 난동에 의한 권력 탈취 때문이었다. 이것은 대한민국 건국 이래의 성취들을 부정하는 ‘체제 탄핵’이었다. 2017년 5월 10일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헌정을 모독한 날이었다.
그 5년 뒤인 2022년 5월 10일은 참으로 극적(劇的)으로 그 훼손으로부터 회복을 시작하는 날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로 재건”하겠다고 한 선언은 74년 전 그날의 의미를 되살리고 계승하겠다는 뜻을 담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앞으로 다른 변동이 없으면 5월 10일은 5년에 한 번씩은 대통령 취임일임과 동시에 5·10총선거의 기념일이 겹치는 날이 될 것이다. 매년 5월 10일은 물론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할 때면 특히 그날의 의미를 되새겨야 할 것이다.
세계 10위 경제대국을 만든 5·16
그런데 5월의 역사에는 우리 한국 현대사에서 지울 수 없는 의의를 갖는 역사적 사건이 또 하나 있다. 바로 5·16이다. 5·16은 지금 한국사 교과서에는 ‘군사 쿠데타, 군사정변’이라는 이름으로만 칭해지며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건으로 치부되고 있다. 그러나 5·16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건이 아니다.
한국은 지난 5년간 ‘재앙의 시대’를 겪었다. 그런 가운데 경제적으로도 간단찮은 위기를 맞게 됐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보다 뒤처졌던 대만(臺灣)은 1인당 GDP에서 한국을 앞지르게 될 것이라 한다. 하지만 엽기적(獵奇的) 정책에 의한 재앙에 비추어보면 한국 경제가 현재 이만큼이나마 버티고 있는 게 오히려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 경제는 여전히 경제 규모에서 세계 10위를 유지하고 있다. 더욱이 ‘30-50클럽’의 7번째 국가라는 위치를 지키고 있다. ‘30-50클럽’은 인구가 5000만 명 이상이면서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 넘는 국가들이다. 전 세계에 7개밖에 없다. 아시아에선 일본과 한국 두 나라뿐이다.
문재인 정권은 걸핏하면 이 같은 한국 경제의 위상이 자신들의 성과인 양 내세우곤 했다. 턱없는 강변이다. 현재의 한국 경제의 성취는 문재인 정권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문재인 정권은 경제에 기여는커녕 나라를 거덜 낸 도적떼와 다름없었다. 국가부채를 폭증시켰다. 문 정권은 현재는 물론 미래 세대의 자산을 마구 허물어서 그 돈으로 엽기적 퍼주기에 일관했다.
기업인들을 괴롭혀 경제에 해악만 끼쳤다. 대표적인 경우가 삼성 이재용 회장을 말도 안 되는 혐의로 감옥살이를 시킨 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대만에 역전당하는 사태는 그것과 무관치 않다. 문재인 정권이 아니었다면 우리 경제는 더 높은 성취를 보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문재인 정권의 온갖 파괴적 행태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가 이만한 위상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박정희(朴正熙) 시대가 있었던 덕분이다. 박정희 시대에 이룩된 ‘한강의 기적’이라는 놀라운 성취의 잠재력이 극악한 상태에서도 버텨내는 내공이 된 것이다. 다시 말해 박정희 시대가 시작된 5·16이 없었으면 오늘의 한국은 없다. 5·16은 다시 정당하게 자리매김되어야 한다.
6·25에서 공산군이 승리했다면…

▲6·25 당시 북한군은 남침 사흘 만에 서울을 점령했다. 사진=조선DB
5·10선거를 뒷전으로 밀어내 버리고 5·16을 있어서는 안 되는 일로 욕하는 이들은 6월의 역사에도 비슷한 태도를 보인다. 6월에 있었던 가장 중요한 사건은 북한의 남침(南侵)에 의해 발발한 6·25전쟁이다.
하지만 오늘날 적잖은 이들이 6·25를 북한 공산군의 침략이 아니라 그저 동족(同族) 간에 벌어진 비극적인 내전(內戰)으로 치부하려 한다. 그들은 북한의 침략이라는 명백한 사실을 기억하기를 거부한다.
그들이 6월에 가장 중요하게 기억하고 싶어 하는 사건은 이른바 6월 항쟁이다. 1987년 6월 10일 일어난 대통령 직선제(直選制)를 요구한 민주화 투쟁이다. 그들은 민주화를 쟁취한 6월 항쟁을 5·18을 잇는 거룩한 민주화 투쟁으로 기억하고 기념한다. 그들은 그렇게 이른바 민주화라는 것을 신성(神聖)의 잣대로 하여 5·18과 6·10을 축으로 하여 한국 현대사를 정리한다. 문재인 정권 시절에는 이 두 사건을 헌법 전문(前文)에 삽입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다. 하지만 6월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6·25이다. 6·25 때 공산 침략자들을 이겨냈다는 사실이 가장 의미 있게 기억돼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6·25전쟁에서 공산군이 승리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12講》

▲남로당이 펴낸 《민주주의 12강》 집필에는 당시 유명 공산주의자들이 다수 참여했다
그런데 또 다른 차원에서도 그렇다.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화투쟁 등 민주화론만으로 우리 현대사를 정리하는 것에는 간과할 수 없는 잠복(潛伏)된 문제점이 있다. 대한민국 건국과 6·25 이전의 전사(前史)의 시기였던 해방 직후 3년간에 있었던 일들이 그것을 보여준다. 수많은 일을 들 수 있지만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한 사례를 소개한다.
해방공간 시절인 1946년 출간된 《민주주의 12강(講)》이라는 책이 있다. 제목만으로 보면 민주주의에 관한 정치학 개론 서적 같은 인상을 준다. 하지만 단순히 그런 책이 아니다. 이 책은 해방 1주년 기념으로 ‘문우인서관(文友印書館)’이라는 출판사가 발간한 책이다. 문우인서관이라는 출판사는 남로당의 통일전선 조직인 ‘민주주의민족전선(민전)’의 《조선해방연보》(1947)를 발간하기도 한 출판사다. 문우인서관은 남로당 조직의 출판사다. 즉 《민주주의 12강》은 남로당에서 펴낸 공산좌익의 이념서적이다.
집필진을 보면 그 점은 더욱 분명히 알 수 있다. ‘제1강 민주주의와 국제노선’의 필자는 이강국(李康國·1906~1957년)이다. 이강국은 민전의 사무국장이자 남로당 수뇌부 중 한 명이었다. 1946년 월북(越北)하여 북한 외무성 차석부상(次席副相)을 지낸 거물급 공산주의자다. ‘제3강 민주주의와 경제’의 필자는 박문규(朴文奎·1902~?)인데 이강국이 월북한 뒤 민전 사무국장을 이어받았다. 북한 초대 내각에서 농림상을 지냈고, 이후에도 국가검열상·지방행정상·내무상 등을 역임했다. ‘제5강 민주주의와 인민’의 필자는 박치우인데 나중에 빨치산이 되었다. 그 외의 필자들도 모두 그런 좌익의 인물들이다. 즉 《민주주의 12강》이라는 책은 당시 남한의 좌익 세력들의 주장을 선전하는 책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 책은 그들의 대응책과 행동 지침도 담고 있다.
엮은이 김계림은 일선에서 분투하는 ‘인민적 민주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내용이라고 설명한다. ‘인민적 민주주의의 실현’ ‘민주주의 국가·민주주의 사회 건설’을 담고 있는 책이라고 한다. 이 같은 사실은 ‘민주주의’가 당시 이미 공산좌익 운동의 슬로건으로 잠식당해 있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이 책의 ‘제4강 민주주의와 문화’에 나오는 내용은 간단치 않은 시사점이 있다.
1980년대 主思派의 팸플릿을 연상케 해
“우리 운동은 반제, 반봉건 민족혁명인 것이고 우리 정치노선도 근로대중, 소시민, 지식분자, 진보적인 민족 부르주아들을 무산계급 영도 밑에 집결해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을 구성해 일제 잔재 반동팟쇼분자와 봉건 잔재를 숙청하고 민주정치를 실시하는 데 있다.”
“금후 우리 예술운동의 주요한 행동은 공장에, 농촌에, 가두에 광범한 서클, 클럽 활동을 전개하는 데 있다. ‘서클’은 예술운동의 온상인 동시에 우리의 정치노선을 삼투시키는 한 개의 말단기관이다. … 마치 조직으로 볼 때에 문어발과 같이 자기의 주위에 집결시켜야 한다. 공장에, 농촌에, 가두에 수다한 문학동호자단체, 소인극단, 음악단체, 미술단체 등을 구성해서 혹은 자주 회합을 가져…야 한다.”
인용한 대목은 굳이 분명하게 설명해주지 않으면 마치 1980년대 86세대 주사파 운동권의 팸플릿의 내용처럼 느껴질 것이다. 주사파가 본격 발호하던 1986년은 《민주주의 12강》이라는 책자가 나온 지 꼭 40년 후이다. 하지만 마치 바로 이어진 듯 생생한 동질성(同質性)을 보여준다. 이것은 그들의 시대착오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만을 기준으로 하는 발상이 갖는 시차(時差)를 뛰어넘는 위험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해방공간 시기의 이 같은 기만적(欺瞞的) 민주론의 위험이 어떤 것인지는 몇 년 뒤 곧바로 확인됐다. 공산좌익 세력들은 시종 ‘민주주의’를 떠들어댔지만 기회만 나면 무장 반란을 일으키곤 했다. 그러더니 결국에는 6·25라는 전면적인 침략전쟁을 자행했다. 그런데 이 같은 위험은 당시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독재 對 민주’가 기본이 아니다

▲5·16은 위기로부터 자유민주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일어났다. 사진=조선DB
자유민주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대결 구도는 결코 ‘독재와 민주의 대결’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선택한 자유민주체제의 근본을 부정하고 위협하는 세력과의 싸움이 근원적인 대결이었다. 처음부터 그랬으며, 대한민국의 현대사 내내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는 싸움이다.
5·16 당시도 마찬가지다. 5·16은 안정돼 있던 자유민주헌정을 파괴한 것이 아니다. 당시는 적신호(赤信號)가 노골화돼가고 있었다. 김일성은 이미 4·19 직후인 1960년 8월 14일 8·15 경축사에서 연방제 통일안을 최초로 제기했다.
북한은 4·19 직후 북한 주도 통일이 가능하다고 보고 대남(對南)공작을 본격화했다.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를 외치는 시위가 난무한 것은 이와 무관치 않았다. 하지만 민주당 정권은 사태를 제압하지 못한 채 정쟁(政爭)의 수렁 속에서 허우적대고만 있었다. 한국의 자유민주헌정이 중대한 위험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 위기는 5·16을 거치며 수습되었다. 5·16이 위기에 처한 자유민주헌정을 수호해낸 것이다.
그 이후도 마찬가지였다. 1987년 6월의 민주화는 존재하지 않았던 민주주의를 쟁취해낸 것이 아니었다. 1948년 8월 15일의 이승만 대통령의 대한민국 건국은 그 자체가 자유민주체제를 수립한 혁명이었다. 다만 한국의 자유민주체제는 6·25를 도발하고 이후로도 끊임없이 우리를 위협해온 북한과의 대결 속에서 수호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1987년의 민주화는 박정희 시대 이래의 산업화와 경제 발전의 대장정(大長征)으로 그 기반이 더 튼튼해진 우리의 자유민주체제가 비상상태를 완화할 수 있게 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의의(意義)가 지켜지기 위해서는 그 후에 이념적 건강성이 지켜졌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앞서 살펴본 《민주주의 12강》의 경우와도 같이 민주를 빙자(憑藉)하면서도 사실은 딴생각을 품은 무리들이 발호(跋扈)해왔다.
문재인 정권 5년간 우리는 그 실체를 다시 한 번 적나라(赤裸裸)하게 목격했다. 그들이 내세우는 민주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겪게 되었다. 그들의 중추를 이루었던 운동권 세력들이 해방공간 당시의 민주를 앞세운 공산좌익 세력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그들이 범죄적 무리로 타락했음도 확인하게 되었다.
이런 무리들이 자신들을 위한 방어막을 만들기 위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라는 희대의 반(反)헌법적 행위를 저질렀다. 그리고 지금도 끊임없이 온갖 막장의 방해책동을 벌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말한 바대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로 재건”하려면 이들 무리를 제압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지난 5년의 재앙은 다시 반복될 수도 있다.
88서울올림픽과 東歐 붕괴
6·25전쟁을 이겨내고 번영에 이르게 된 우리 역사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자. 6·25전쟁은 500만 명이 넘는 인명피해, 1000만 이산가족이 발생했다. 유엔군 피해자도 15만 명이 넘고, 미군 전사자도 4만 명에 육박했다. 북한군과 중공군을 물리치고 대한민국을 지켰지만 희생은 참혹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대한민국을 지켜낸 역사적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게 됐다.
1988년 서울올림픽! 35년 만에 서울을 찾은 한국전 참전용사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폐허 위에 기적이 서 있었다. 나름 사회주의의 선진국을 자처했던 동독인(東獨人)의 눈에도 그랬다. TV 전파를 통해 그 모습을 보게 된 동구(東歐)사회주의 여러 나라도 마찬가지였다. 다음 해,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그리고 전 세계 사회주의권이 차례로 붕괴했다.
베를린 장벽 붕괴 시, 그리고 동구 사회주의 나라들의 반공산주의 민주화 시위 때 서울올림픽 주제가 ‘손에 손잡고(Hand in Hand)’가 데모 송으로 불렸다. 그런 만큼 번영을 이룩한 한국의 모습이 그들에게 어떻게든 심리적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인이 폐허에서 일어나 피워낸 번영의 꽃이 세계사를 움직인 하나의 힘이 된 셈이다.
그런 세계사적 함의까지 갖는 대한민국의 번영은 그저 이뤄진 게 아니다. 국내외 안팎의 도전과 위험을 이겨나가며 이룩한 치열한 분투의 장정이었다. 대한민국이 나아가는 길을 방해하는 안팎의 도전에 맞서고 제압하는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한국사의 결정적 흐름
발생하는 모든 일이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건은 반복해서 기억될 때만 역사가 된다. 매년 반복되는 달과 날, 우리는 그렇게 다시 기억되는 사건들을 대하며 역사를 마주하곤 한다. 세계는 조용했던 적이 없으며 우리 또한 그러했다. 그런 만큼 세계사적으로든 한국사적으로든 어느 달(月)인 들 중요한 역사적 기억이 없는 때는 없다.
우리의 5월, 6월도 마찬가지다. 5·18과 6·10도 분명 기억되어야 하는 우리의 역사다. 하지만 백번 양보해도 그것이 한국의 지난(至難)한 역사적 발자취에서 기억되고 기념돼야 하는 모든 것을 대표하지는 못한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5월과 6월에 먼저 기억돼야 하는 것은 5·10선거, 6·25전쟁 그리고 5·16혁명이다. 대한민국의 오늘을 있게 한 가장 중요한 결정적 흐름은 그렇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5·10총선거를 시작으로 ‘자유의 가치’를 이념으로 한 대한민국이 건국됐다. 그 건국정신이 6·25를 이겨낸 힘이 됐다. 6·25를 이겨낸 힘이 위기에 처했던 한국의 자유민주헌정을 지켜내고 번영의 출발이 된 5·16의 정신이 되었다. 5·16으로 시작된 박정희 시대의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일하자”는 정신이 내외의 도전에 맞서며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낸 힘이 되었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성취는 그렇게 이루어졌다.
언젠가부터 뒤틀려버린 역사인식이 그 과정을 잊게 했다. 그리고 오도(誤導)된 역사인식이 건강치 못한 탈선(脫線)을 부채질했다.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에서의 선언이 그 오도된 인식을 바로잡고 대한민국의 건강을 회복하는 재출발의 시작이기를 기대해본다.⊙
06.13 화물연대 파업 피해 속출, ‘법·원칙 대응’ 행동을

▲화물연대 파업으로 물류운송에 차질을 빚고 있는 12일 오후 경기도 광명시 광명스피돔 주차장에 항구로 옮기지 못한 수출용 차량들이 가득 세워져 있다./뉴시스
민노총 소속 화물연대가 ‘최저 운임의 영구적 보장’을 요구하며 엿새째 파업을 강행했다. 이로 인해 자동차·건설·화학 등 제조업 생산 차질이 발생하고 각종 제품의 수출 길이 막히는 등 곳곳에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부산항 화물 반출·입량이 4분의 1로 감소하는 등 주요 항만 물류는 마비 지경에 이르렀다. 현대차는 하루 2000대 생산 손실이 발생하고, 냉장고 등 가전제품 배송이 지연돼 소비자들까지 피해를 보고 있다. 특히 울산·대산·포항항 등의 컨테이너 반출·입이 전면 봉쇄되면서 자체 물류 시스템이 취약한 수출 중소기업 피해가 급속히 커지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벼랑 끝에 몰린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도 물류 대란으로 또다시 영업 차질을 겪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면 조만간 공장들이 멈춰서는 상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물류 현장에선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정상 운행 중인 화물 차량에 돌이나 달걀, 페인트를 던지는 폭력까지 발생하고 있다.
현재 한국 경제는 국제 원유·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고(高)물가와 경기 부진이 겹쳐 기업·자영업자·근로자 등 모든 경제 주체가 고통에 빠져 있다. 화물차주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복합 위기에서 벌어지는 화물연대의 막무가내 파업은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주체들의 고통만 키울 뿐이다.
화물연대는 과거 정부 때도 물류 대란을 일으키곤 했다. 그러자 문재인 정부는 2020년부터 화물 운전자에게 일종의 최저임금을 보장하는 안전운임제를 3년간 한시 적용하는 일몰제를 도입했다. 올 연말이면 자동 폐지될 이 제도를 화물연대는 “영구히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들은 안전운임제로 지난 2년새 실질 운임이 40%나 뛰었다며 집단 운송 거부와 불법 폭력 반복에 대해 정부의 엄정 대응을 요구했다.
두 달 전 공정거래위원회는 비노조원 포클레인·레미콘 기사를 채용하지 못하도록 건설 현장에서 횡포를 부린 민노총 건설노조 지부를 근로자 단체가 아닌 ‘사업자 단체’로 규정하고 공정거래법 위반에 따른 제재에 착수했다. 폭력을 행사해 민노총 소속 기사들을 채용하게 한 것이 ‘사업자 단체의 불공정 행위’에 해당돼 과징금 등을 매기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법 적용은 근로자가 아닌 사업자(화물차주) 단체인 화물연대에도 가능할 것이다.
정부는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처하겠다”는 무관용 방침을 밝혀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파업·집회에 참여한 조합원 5000여 명 중 수십 명을 연행했을 뿐 “대화를 계속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사이 파업으로 인한 산업·민생 현장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져가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
06월 13일 구절양장(九折羊腸) 천리길 ‘규제 개혁’
이신우 논설고문
대기업 1000兆 투자계획 발표
尹정부 “규제 풀어 화답할 때”
前 정부들도 똑같은 레퍼토리
정권마다 규제 숫자만 늘어나
컨트롤타워 해결책도 닮은꼴
‘규제혁신전략회의’는 다를까
삼성그룹이 화끈한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LG·SK·현대차그룹 등도 줄지어 일자리와 투자계획을 내놨다. 윤석열 대통령 때의 이야기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의 일이다. 당시 삼성의 투자 규모는 100조 원을 넘었다. 4만 명 신규 채용 플랜도 발표했다. LG그룹 2018년 19조 원 투자 및 1만 명, 현대차 5년간 23조 원 투자와 4만5000명, SK 3년간 80조 원 투자와 2만8000명 고용 등이 줄줄이 이어졌다. 물론 윤 대통령 때인 올 5월에는 규모가 더 커졌다. 삼성의 향후 5년 내 450조 원 등을 포함, 국내 주요 대기업들의 투자 총액이 무려 1056조 원에 이른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되풀이하는 대기업들의 투자 약속이지만, 많은 사람이 이번에는 전 정권과 다르겠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윤 대통령은 친기업 정책을 제1 경제공약으로 들고나오지 않았나. 그만큼 진정성 측면에서 전 정권과 다르리라 믿을 것이다.
기업 투자 소식을 접한 윤 대통령의 언급 또한 경청할 만하다. 지난달 30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주요 기업들이 5년간 1000조 원을 투자하고 30만 명 이상을 신규 채용하겠다는 큰 계획을 발표했다”며 “이제는 정부가 기업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를 풀어 화답할 때”라고 했다. “어렵고 복잡한 규제는 제가 직접 나서겠다”고도 했다. 기업들은 경제 발전에의 헌신과 젊은이들의 새 일자리 확보를 약속했고, 새 정부는 그들이 마음껏 경영활동을 펼 수 있도록 걸림돌들을 제거하겠다고 했으니 이제 우리 경제는 활짝 기지개를 켤 일만 남은 셈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회의감을 떨칠 수 없는 것은 윤 대통령의 규제 혁파라는 굳은 맹세가 지난 정권 때도 어김없이 반복돼 왔다는 사실 때문이다. 웬걸, 문재인 대통령 때도 그랬다. 2020년 2월 문 대통령은 기업인들과의 회동을 통해 “과감한 세제 감면과 규제 특례로 투자 혁신을 돕겠다. 정부를 믿고 투자를 차질 없이 진행해 달라”고 진심을 다해 요청했다. 심지어 “19세기 말 영국에서 자동차 속도를 마차에 맞추려고 자동차 앞에서 사람이 붉은 깃발을 흔들었다”며 불필요한 규제에 전면전을 예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5년간 온갖 반기업법을 쏟아내며 기업들을 절벽으로 몰고 갔다. 기업들은 슬금슬금 해외투자로 눈을 돌려야 했다. ‘에이∼ 좌파 정권이니 그렇겠지’라고 한다면 오산이다. 이전 우파 정권인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때라고 다를 바 없었다.
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전남 영암군 대불산업단지의 전봇대를 언급했다. 전봇대가 대형 트럭 이동에 방해된다고 기업들이 불만을 쏟아내는데도 탁상행정 탓에 그대로라는 것이었다. 이 전봇대가 이 대통령의 한마디로 3일 뒤 거짓말처럼 뽑혀나갔다. ‘전봇대 규제’라는 언론 용어가 등장한 것이 이때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에 따르면 집권 2년 차인 2009년 1만2905개였던 규제 숫자는 2012년 1만4889개로 15.3%나 증가했다. 박 대통령도 당선인 신분이던 2013년 인수위 회의에서 규제개혁을 약속했다. 다음 해에는 7시간 동안 끝장 토론까지 벌였다. ‘손톱 밑에 박힌 가시’라는 멋있는 표현도 등장했다. 가시들이 벌벌 떨 기세였으나 정권이 다하도록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규제프리존특별법! 박 정권의 멋진 작품이었으나 지금 그 존재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문 정권이라고 빠질 수 있나. ‘규제 샌드박스’라는 보물상자를 만들어 냈으나 ‘실증(實證) 지옥’이라는 오명만 남았다. 벤처기업들이 실증 과정을 반복하느라 돈과 시간만 허비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아무리 규제 혁파를 외친다 한들, 관료주의가 개입할 수 없는 강력한 컨트롤 타워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윤 정부 역시 이런 뼈저린 인식하에 규제혁신전략회의를 따로 구성할 것이라고 한다. 어라, 이 역시 어디서 들어본 것 같네? 그렇다. 문 정부도 집권 내내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운영했다. 하지만 지난 5년간 이 위원회가 한 일이라고는 정권 주변 인사들에게 꿀 빠는 일자리를 나눠준 것뿐이다. 새 정부의 규제혁신전략회의는 차원이 다를 거라고 믿어도 되겠는가.
문화일보
06.15 경제위기 태풍 닥쳐왔는데 국회는 휴업, 여야는 내부 싸움 중
인플레이션이 덮쳐오고 생산·소비·투자가 일제히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경제가 복합 위기에 빠졌는데 위기 극복에 앞장서야 할 국회와 여야 정치권은 내부 싸움에 쉬는 날이 없다. 이번 위기는 미국의 기록적 인플레이션과 초긴축에 따른 금리 인상,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충돌 등 초대형 대외 악재에 큰 영향을 받고 있어 우리 내부의 단합과 고통 분담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다. 1998년 외환 위기, 2009년 금융 위기 때도 고용 유지와 임금 인상 자제를 골자로 한 노·사·정 고통 분담 모델로 위기를 넘겼다. 정부와 여야 정치권이 한목소리로 뭉쳐 위기 해결에 앞장섰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정반대다. 정치권은 사분오열돼 정쟁에 빠져 있고 민노총 화물연대 등 강성 노조는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고 연일 파업 중이다. 새 정부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문제 해결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동시다발로 닥쳐오는 위기의 쓰나미 앞에서 자칫 경제가 표류할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국회를 장악한 170석의 민주당은 8월 자신들의 전당대회를 앞두고 내부 계파 투쟁에 몰두해 있다. 친문·친명·비(非)명 등으로 갈려 당권 싸움을 벌이고 강경파 초선 의원 모임인 ‘처럼회’ 해체를 둘러싼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여당 역시 대선과 지방선거 승리 후 당내 주도권 다툼이 본격화됐다. ‘친윤 사조직’을 둘러싸고 이른바 ‘윤핵관’과 당대표 측이 부딪친 데 이어 최고위원 두 자리를 놓고 이준석 대표와 안철수 의원이 충돌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여야가 각기 내부 싸움에 휩싸이면서 국회는 보름 넘게 공전 중이다. 법사위원장 자리를 둘러싼 대립으로 21대 후반기 국회는 지금껏 원(院) 구성조차 못 하고 있다. 민주당은 대통령과 여당의 반대에도 윤석열 정부의 행정 입법 권한을 통제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 발의를 강행했다. 입법 폭주도 모자라 정부까지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독재적 발상과 일방적 밀어붙이기가 계속되는데 여야 협치가 어떻게 가능하겠나. 국회의 원활한 작동도 기대하기 힘들다.
경제 위기를 헤쳐 나가려면 정부는 규제 완화를 포함한 경제 활성화 해법을 담은 정책들을 내놓고 국회는 이를 시급히 처리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 정치권은 위기 극복에 관심이 없다. 화물연대 파업이 제조업 생산과 수출에 막대한 타격을 주고 있는데 정치권은 이를 방치하고 있다. 정부와 화물연대가 안전운임제를 3년간 더 연장하는 식의 절충안에 합의하더라도 이를 처리할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자체가 아직 구성돼 있지 않다. 국회 공백 사태로 화물연대 파업 피해가 더 커지면 여야와 국회는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 정치가 문제 해결은커녕 분열과 갈등만 일으키고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
06월 15일 이번엔 공적 행사에 知人 동반, 더 커지는 김건희 리스크
대통령 부인은 법률적으로는 어떤 공적(公的) 권한도 없는 자연인이지만, 대통령 부인으로서의 활동은 공적 성격을 갖는다는 이중성 때문에 국내외를 막론하고 늘 논란의 대상이 됐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는 여러 요인 때문에 그 정도가 특히 심하다. 정치적 반대 진영에서는 자질구레한 문제까지 찾아내 집요하게 공격한다. 여기에다 김 여사의 처신 자체도 오해 여지를 남기면서 갈수록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김 여사가 지난 1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를 방문했을 때 동행했던 4명 중 3명은 자신이 운영한 코바나컨텐츠 전·현직 직원이고, 한 명은 대통령 부속실 직원이라고 한다. 특히 무속인 의혹이 일었던 김모 충남대 겸임교수는 코바나 전무 출신이고, 김 여사의 10여 년 지인(知人)이다. 다른 2명에 대해선 현재 김 여사를 담당할 대통령실 직원으로 채용 절차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김 여사의 공적 활동을 지원할 공적 시스템은 필요하다. 적절한 직급의 담당자 몇 사람을 채용해 공적 활동을 지원하게 하면 된다. 그러나 채용도 활동도 투명해야 한다. 비서 활동은 심부름꾼 활동과는 다른 중요한 일이다. 현재 채용하려는 사람 중 한 사람은 대선 기간에 ‘개 사과’ 사진을 올렸던 인물이라고 한다. 친분을 앞세운 채용이라면, 과거 청와대에서 개인 헬스 트레이너나 부인 의상 디자이너의 딸을 근무시킨 것이나, 이재명 전 경기지사의 ‘변호사 사무실’ 직원을 특채한 것을 떠올리게 한다.
윤 대통령은 15일 “봉하마을은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냐”며 “들 게 많아서 같이 간 모양”이라고 했다. 이런 인식이면 국정 리스크로 되고, 김 여사에게도 좋지 않을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김 여사 팬클럽과도 확실하게 거리를 두어야 한다. 윤 대통령 죽마고우인 이철우 연세대 교수가 “퇴임 뒤 만나자”고 했던 사실을 돌아보기 바란다.
문화일보 사설
06.18 문 닫은 ‘원격 약 처방’, 이런 나라에 어떻게 혁신이 싹트나
환자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 올라와 있는 의약품 중 필요한 약을 고르면 10분 안에 의사가 전화를 통해 처방전을 발행해주는 비(非)대면 진료 플랫폼 서비스가 시작 한 달 만에 중단됐다. 의사 아닌 환자가 전문약을 선택하는 것이 약사법·의료법 위반이라며 서울시 의사회가 서비스 업체를 형사 고발했기 때문이다. 의사 단체는 코로나 사태로 한시 허용된 비대면 진료 자체를 전면 철회할 것도 요구하고 나섰다. 오진과 약물 오남용 우려가 있다는 이유다.
스마트폰 등을 통해 진료를 받는 원격 의료 서비스는 선진국은 물론 중국·인도네시아 등도 시행할 만큼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선 지금도 불법으로 돼 있다. 의사들은 환자 보호를 명분으로 들지만 ‘기득권 지키기’가 진짜 이유일 것이다. 한 업체가 혈당·혈압 수치를 실시간 모니터링해 인슐린 투여량을 안내하는 앱을 개발해 중국에 수출했는데 국내에선 규제에 묶여 서비스를 못 한 사례도 있다. 국제 시장에서 호평받은 많은 국산 원격 진료 장비가 허가를 못 받았다. 첨단 ICT(정보통신기술)를 활용한 헬스케어 산업도 첫 단계인 원격 의료부터 막혀 지지부진하다.
기득권층의 반발과 규제 장벽이 혁신 기술의 싹을 자르고 신산업 성장을 가로막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데이터와 인공지능 관련 산업은 개인정보 보호를 주장하는 시민단체 반대에 부딪혀 경쟁국들에 한참 뒤처져 있다. 전 세계인이 이용하는 차량 공유 서비스도 택시 업계 반대로 ‘타다 금지법’이 생긴 후 계속 발목이 묶여 있다. 바이오 헬스는 유전자 검사 규제에 막혀 있고, 변호사와 고객을 인터넷으로 이어주는 법률 중개 서비스도 변협과 갈등을 빚고 있다.
성공한 100대 글로벌 스타트업 중 57곳이 한국이라면 아예 창업이 불가능하거나 조건부 영업만 가능했다는 조사도 있다. 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 기업을 일컫는 ‘유니콘 기업’이 한국엔 겨우 10여 개로, 세계 유니콘 기업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문재인 정부가 말로는 “규제 혁파”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몇 배의 규제를 양산해 5년을 역주행했다. 그 결과 규제장벽이 더 두터워졌다. 이것을 파괴하지 못하면 혁신도 성장도 이룰 수 없다.
조선일보 사설
06.21 윤석열식 ‘적폐수사 시스템’

다시 ‘검찰의 시간’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을 한 달여 앞둔 2월 7일 본지 인터뷰에서 한 공언이 현실화하고 있다. 집권 시 전(前) 정권 적폐 수사를 할 것이냐는 물음에 그는 “해야죠. 돼야죠”라고 되풀이했었다.
그의 단언대로 정권교체 한 달 만에 적폐 수사가 전방위로 이뤄지고 있다. 칼끝은 하나같이 전 정부 권력의 최정점을 향한다.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과 서해 해수부 공무원 피살 사건은 결국 문재인 전 대통령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직전 대선후보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는 대장동·백현동 특혜 의혹과 성남FC 후원금 의혹 등 7개의 수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옥죄어 들어가고 있다.
전 정부 최정점 겨냥 전방위 수사
민주당은 실체 규명에 협조해야
여권도 원칙과 정도 지켜야 정당
‘기획된 정치보복’으로 규정하는 민주당의 반발은 예상대로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때의) 적폐 수사건, (현재의) 문재인 정권 수사건, 이재명 의원을 향한 수사건 모든 일의 중심에는 윤 대통령이 있다”(우상호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고 의심한다. 사건 발생 후 1년 9개월 만에 성격이 180도 뒤바뀐 공무원 피살 사건을 놓고는 ‘신색깔론’ ‘신북풍’ 프레임을 씌우며 맞서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의 대응이 얼마나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싶다. 자당 권력의 구심점이 얽힌 사건들이라면 실체적 진실 규명에 더욱 책임 있게 나서는 게 맞다. 특히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를 국가의 제1 책무로 여긴다던 문재인 정부로선 비로소 이름을 찾은 공무원 이대준씨 사망의 정확한 경위를 밝히는 데 최대한 협조하는 게 신념 윤리에도, 책임 윤리에도 부합한다.
민주당이 당면한 현실은 자업자득이기도 하다. 엉망이 된 검찰개혁 말이다. 적폐청산 드라이브를 걸 때 검찰을 개혁의 주체로 앞세워 특수부 인력을 늘리고 힘을 몰아준 게 그들이 한 일이다. 태세 전환의 계기는 조국 사태다. 그들은 ‘조국 수호=검찰 개혁’이란 등식을 만들더니 검경 수사권 조정 및 공수처 신설→검찰 내 윤석열 사단 해체→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으로 이어지는 검찰 개혁 구호를 요란하게 외쳤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자마자 ‘민주당표 검찰 개혁’은 하나둘 형해화되고 있다. 윤석열 사단은 화려하게 복귀했고 특수수사 라인이 착착 재건됐다.
윤 대통령은 정치 보복이라며 비판하는 민주당에 “정상적인 사법 시스템”이라고 반박한다. 윤 대통령의 그간 발언 등을 종합해 보면, 그가 말하는 ‘시스템에 의한 수사’는 범죄 행위 단서와 고소·고발이 있으면 형사소송법 절차대로 수사에 착수한다는 것, 민정수석실을 없애 대통령과 권력 입김을 배제한 상태에서 수사의 독립성을 보장한다는 것, 그러나 사법부의 견제와 감시로 검찰도 통제받게 한다는 것 등인 것 같다.
제도화된 수사 시스템은 아니지만, 유구한 검찰 역사에 뿌리 깊게 내면화된 불문율엔 ‘평형수 본능’도 있다. 정치인 비리를 캘 때면 여당 쪽과 야당 쪽 수사 대상에 최소한의 기계적 균형을 맞추려는 속성, DNA처럼 박힌 생존 본능이다. 죽은 보수 권력의 속살을 파헤친 ‘윤석열 검찰’이 문재인 정부 시절 살아있는 권력 비리를 파고들려 할 때 제동이 걸렸다.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 등 현재 수사 중인 사건 상당수는 공교롭게도 전 정부 때 수사에 착수했다가 미완에 그친 것들이다. 그러니까 검찰 입장에선 기획수사 논란을 떠나 그때 결판이 났어야 할 사건들에 대한 ‘지연된 정의 구현’이라는 일종의 평형수 본능이 작동하는 거라고 할 수 있겠다.
야당이 된 민주당은 의혹의 실체를 밝히는 데 적극 협조해야겠지만, 여권도 정쟁 수단으로 삼으려 해선 곤란하다. 정치를 살아있는 생물에 비유하듯 검찰 수사도 그와 비슷해 한순간 역풍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과거 일에 몰두하는 사이 미래 국정 의제가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도 들리지 않나.
필자가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 아들 비리 등 게이트가 터질 때 출입하던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의 한 차장검사는 권력형 비리를 다루는 특수수사의 요체에 대해 “한마디로 선을 넘지 않는 것”이라고 했었다. 지나고 보니 의미심장한 말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방위 사정(司正)도 마찬가지다. 법과 원칙이라는 정도를 끝까지 지켜야만 정당성이 흔들리지 않는다. 검사 출신 금태섭 전 의원이 20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도 여권이 귀담아들을 경고다. “스스로 정치보복 한다고 생각하는 집권세력은 없다. 언제나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은 뒤 적절한 선에서 멈추고 할 일을 하겠다’라면서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2년 후쯤엔 다 잊어버린다. 역사는 반복되는지. 안타까운 심정이다.”
중앙일보 김형구 정치에디터
06월 21일 전현희·한상혁 사퇴는 法 이전의 상식

이영조 시장경제와민주주의연구소 이사장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과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의 사퇴를 둘러싸고 정치권이 시끄럽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주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두 위원장의 국무회의 참석을 막았다. 이어 지난 16일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이들의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윤 대통령은 17일 기자와의 출근길 문답에서 “두 사람이 물러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냐”는 질문에 “임기가 있으니 자기가 알아서 판단할 문제 아니겠느냐”고 답했다.
그러나 전 위원장은 지난 18일 “법률에 정해진 공직자의 임기를 두고 거친 말이 오가”는 상황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함으로써 임기 중에 물러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한 위원장도 최근 “관련 법률에 임기제와 합의제가 명시돼 있다”며 임기를 채울 뜻을 밝혔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임기가 보장된 기관장에 대한 노골적인 사퇴 압박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권익위원장과 방통위원장은 임기가 3년이다. 전·한 위원장은 임기가 1년 정도 남았다. 법률에 규정된 임기를 채우겠다고 하면 억지로 그만두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새 정부가 시작되는 시점에 이들은 사퇴했어야 마땅하다.
첫째, 두 위원장 자리는 장관급 정무직이다. 새 정부가 국정 철학과 비전을 실행할 수 있게 깨끗이 비워줘야 할 자리다. 그동안 권익위원장이나 방통위원장 사퇴가 문제가 안 된 것도 그래 왔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됐던 성영훈 권익위원장은 임기가 1년6개월 남은 상태에서 새 정부가 들어서자 사퇴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곧바로 박은정 권익위원장을 임명했다. 방통위원장 역시 새 정부가 들어서면 바뀌었다.
둘째, 권익위원장과 방통위원장은 공정성과 독립성이 요구되는 자리다. 법률로 임기를 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두 위원장이 임기를 보장할 만큼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직무를 수행했는지는 의문이 크다. 전 위원장은 민주당 재선 의원 출신으로 ‘문재인 대선후보 선대위 직능특보단장’이었다. 그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사건 당시 ‘고인의 명예’를 운위해 비판받은 적도 있다. 한 위원장 또한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 출신으로 임명 당시부터 공정성 우려가 컸다. 재임 중에는 친여 방송의 편파 보도에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는 비판을 많이 들었다. 누가 봐도 지난 정권 사람들인 이들이 정권이 바뀌자 위원회 독립성과 임기 보장 등을 내세워 국무회의 불참 통보에 항의하며 임기 완수를 외치는 건, 트로이 목마 역을 할 의도가 아니라면 이해하기 어렵다.
셋째, 이름뿐인 위원장 때문에 해당 위원회들이 ‘식물기구’가 되는 것도 불행이다. 문 정권과 국정 철학이 딴판인 윤 정권에서 왕따가 될 수밖에 없는 이들이 과연 기관장으로서 소임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을까. 기관장으로 영을 세우고 지휘·감독하는 일이 가능할까. 위원장과 정권 사이에서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두 위원회 직원들은 결국 위원장을 버리고 정권을 택할 것이다. 직원들 힘들게 하지 말고 물러나야 한다.
두 위원장이 그만둘 이유는 많지만, 솔직히 그만두지 않을 이유는 상식적 수준에서는 찾기 어렵다. 법과 임기 타령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스스로 물러나 새 정부를 위해 슬레이트를 비워주는 것이 옳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문화일보
06월 22일 尹 “호화청사 매각”…공공기관 개혁에 국가 명운 걸렸다
‘신(神)의 직장’이란 비아냥까지 받는 공기업을 비롯한 공공기관의 비대화와 방만 경영은 단순한 도덕적 해이 문제를 넘어 국가와 정부에 심각한 해악을 초래한다. 역대 정부에서 모두 공공개혁을 외친 이유다. 그러나 성과는 미미했다. 김대중 정부가 8개 공기업을 민영화했을 뿐,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말만 요란했고 민영화나 구조조정을 제대로 실시하지 못했다. 특히 문재인 정권은 ‘사회적 가치’ 운운하며 공공개혁에서 심각하게 역주행했다. 심지어 공공기관을 ‘비정규직 제로’ 강행과 일자리 창출의 수단으로 삼는 황당한 행태까지 보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21일 국무회의에서 공공기관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지금처럼 경제가 어려운 비상 상황에선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올바른 인식이다. 윤 대통령은 “과하게 넓은 사무 공간을 축소하고 호화로운 청사도 과감하게 매각하거나 임대로 돌려서 비용을 절감할 필요가 있다”며 연봉 및 성과급 반납, 복지 축소, 불필요한 자산 매각 등을 제시했다. 기획재정부에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국고로 환수해 어려운 이들에게 돌아가도록 하라는 파격적인 언급까지 했다.
현재 공공기관은 350곳, 임직원은 34만 명, 예산은 정부 예산보다 많은 761조 원에 달한다. 문 정부에서 기관 29개, 인력 11만6000명, 부채는 84조 원이나 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공공기관 수가 가장 많다. 빚을 정부가 보증선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시한폭탄이 되고 있다. 이런데도 경영은 요지경이다. 한국전력 등에선 사장들이 1억 원 이상 성과급을 받았고, 외국 관광객이 오지 않았는데 한국관광공사 임원도 성과급을 챙겼다.
문제는 공공개혁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다. 낙하산 기관장과 노조의 ‘짬짜미’가 이미 심각한 데다, 문 정부의 무리한 정규직화 등으로 이른바 ‘철밥통’이 ‘강철밥통’처럼 됐기 때문이다. 오는 8월부터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도 실시된다. 대선 때 윤 대통령도 공약했던 것이다. 공공기관 비효율은 결국 국가 미래를 망친다. 윤 정부가 명운을 걸고 지속적으로 추진하지 않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문화일보 사설
06월 23일 치안감 인사 발표조차 엉터리, 이런 경찰에 뭘 맡기겠나
경찰이 시·도경찰청장급인 치안감 인사조차 엉터리로 발표한 뒤 2시간 만에 수정 발표했다가 윤석열 대통령의 직설적 공개 비판까지 자초했다. 윤 대통령은 23일 “대통령 재가도 나지 않고, 행정안전부에서 또 검토해서 대통령에게 의견도 내지 않은 상태에서 밖으로 유출되고, 이것이 또 언론에 마치 인사가 번복된 것처럼 나갔다”고 밝혔다. “중대한 국기 문란일 수 있다”고도 했다.
그 전말은 이런 경찰에 뭘 맡길 수 있는 것인지부터 묻게 한다. 경찰이 치안감 28명의 승진·전보 명단을 처음 발표한 것은 21일 오후 7시쯤이었다. 오후 9시30분엔 그중의 7명 보직을 바꿔서 발표했다. 행안부 치안정책관으로부터 오후 6시15분 내정안(案)을 전달받아 경찰 내부망에 올리며 언론에도 알렸는데, 오후 8시 34분 치안정책관의 수정 통보가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책임 떠넘기기로 볼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은 “경찰에서 자체적으로 행안부로 추천한 인사를 (행안부 장관 제청안으로도 확정되기 전에) 그냥 보직해 버린 것”이라며 “저는 행안부에서 나름 검토해서 올라온 대로 재가를 했다”고 국민 앞에 확인했다.
경찰은 해명마저 오락가락했다. 초기엔 “실무자가 인사를 잘못 올렸다”더니, 좀 지나선 “행안부가 협의 중이던 안을 최종본으로 잘못 보냈다”고 둘러댔다. 그러잖아도 경찰은 심지어 ‘공룡 경찰’에 대해 제도적인 견제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윤 정부의 경찰 길들이기’ 과정의 일환으로 왜곡해오기도 했다. 문재인 전 정권이 입법 강행한 검수완박에 따라, 경찰은 9월부터 부패·경제 범죄를 제외한 대부분 사건에 대한 수사 개시권과 종결권을 보유하게 된다. 2024년부터는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도 넘겨받는다. 경찰 개혁이 절실하고 시급하다.
문화일보 사설
06.25 “인권 변호사 출신이란 사람이…” 美 의회 인권위, 文 강력 비판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 청문회서 ‘어민 북송·이대준씨 피살’ 다뤄

▲미국 의회의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에서 의장 자격으로 한국의 난민 정책에 대한 청문회를 이끈 크리스 스미스 하원의원
미국 연방의회의 초당적 기구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가 24일(현지 시각) 개최한 ‘한국의 난민 정책과 윤석열 정부’에 대한 청문회에서 2019년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을 포함한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의장인 공화당 소속 크리스 스미스 하원의원은 “문(재인) 정부가 2019년 11월 두 (탈북)어민을 끔찍한 운명 속으로 돌려보냈을 때 우리는 모두 충격을 받고 깜짝 놀랐다”면서 “우리는 그들이 김정은의 절대적인 악의에 의해 잔인하게 다뤄질 것이란 점을 알고 있었다. 그것이 그들(북한 정권)이 하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스미스 의원은 문 대통령을 겨냥해서 “인권변호사라고 알려진 사람이 사람들을 그런 끔찍한 운명 속으로 돌려보내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북전단금지법과 관련한 청문회도 열었던 스미스 의원은 당시 문재인 정부의 “반발(push back)”이 있었다고도 밝혔다.
스미스 의원의 발언에 앞서 ‘전환기 정의 워킹그룹’의 신희석 법률분석관은 “2019년 11월 7일 두 북한 주민이 바다를 통해 한국에 도착했지만, 안대가 씌워진 채 경찰특공대에 의해 알지 못하는 곳으로 끌려갔다. 마침내 차가 멈추고 안대가 벗겨진 뒤 앞에 자신들을 끌고 갈 북한 당국자들이 서있는 것을 보고 그들은 겁에 질려 털썩 주저앉았다고 한다”고 증언했다.
신 분석관은 “역설적이게도 인권 변호사라고 알려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진보 정부 아래에서 더 충격적인 (인권)침해가 발생했다”면서 “(문 정부는) 승인 받지 않은 리플렛 뿐만 아니라 미국의 영상과 책도 북한으로 보내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시행했다”고 증언했다. 또 그는 “2020년 9월 무장하지 않은 한국 시민인 이대준씨가 북한이 통제하는 해역으로 표류했다가 북한 해군에 의해 처형당했다”며 “문 정부는 평양을 향한 비난을 분선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그(이씨)가 탈북하려 했다는 의심스러운 주장까지 했다”고 말했다.
수잔 숄티 북한자유연합 의장은 “내가 만나본 한국 공무원들은 내가 탈북자 정보를 줄 때마다 돕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들의 운명에 함께 웃고 울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김씨 독재 정권을 기쁘게 하는데 더 관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된 후 모든 것이 달라졌고 그의 정부는 한국 헌법과 국제 조약 의무를 모두 저버리고 탈북자들을 북송했다”고 말했다.
숄티 의장은 “(주미한국대사관에) 중국에 갇혀있는 (탈북자) 부모와 아이들의 사진을 전달하며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이 사람들은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면서 “충격적인 배신을 당했는데 문(재인) 정부는 북한 사람들을 돕던 한국인 기업가의 여권을 무효화해 버렸다”고 말했다. 이어 “그(한국인 기업가)는 영웅이었지만 그가 북한 사람들을 돕다가 중국에서 체포돼 감옥에 갇혔기 때문에 문 정부는 국가의 명예가 훼손됐다며 여권을 무효화했다”고 주장했다. 숄티 의장은 또 “문 대통령은 김정은과 김여정에 직접적 지시에 따라 북한 관련 비정부단체들이 해온 모든 성공적인 일을 중지시키고 탈북자들이 거기 참여하는 것을 막기 위한 활동을 개시했다”고 주장했다.
스미스 의원은 이날 청문회 모두 발언에서 “문화적으로 한국은 대중음악, 영화, 게임 등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갖고 있다. BTS(방탄소년단)는 매년 한국 경제에 36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글로벌 현상이 됐다. 한국 영화는 오스카와 칸 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K드라마는 세계적 대중 문화 센세이션을 일으켰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지금 갈림길에 있다. 한국은 1992년 유엔 난민 협약에 가입했고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시행했다. 그렇지만 난민 인정률은 2020년 1% 아래로 떨어져 매우 낮다”고 말했다.
그는 “캠페인 당시 후보였던 윤 대통령은 국제 난민 보호법과 원칙을 준수할 필요성을 말했고 취임식에서는 자유와 인권에 기반한 보편적 가치와 국제적 규범의 고취를 언급했다”며 “윤 대통령은 공산주의의 억압을 피해 남쪽에서의 새로운 삶을 원하는 사람들을 향한 더 큰 개방성을 신호하고 있다”고 희망을 표했다.
조선일보 워싱턴=김진명 특파원
06.27 자유·인권 지킨 6·25전쟁, 헌법 전문에 넣어야
공산 전체주의 침략 맞서 나라 지킨
6·25전쟁은 헌정사의 가장 중요한 사건
헌법 전문 개정한다면 대한민국 번영의
바탕 이룬 6·25전쟁 의미 적시해야
2021년 중국을 휩쓴 영화 ‘장진호(長津湖)’의 플롯은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과 압록강 이북 안둥(安東) 지역 공습에서 시작된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대남 침략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다. 한국전쟁을 다룬 178분의 장편 영화임에도 한국 사람은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역사 배경을 모르는 관객이 그 영화만 보면 6·25전쟁은 미 제국주의의 침략 전쟁이며, 남북 전쟁이 아니라 미·중 전쟁이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미·중 갈등이 고조되는 오늘날의 국제 정세에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선전부가 2억달러를 써서 이 영화를 만든 의도가 빤히 읽힌다. 6·25전쟁을 수십만 중국 청춘들이 “미제 침략”에서 “조국”을 사수한 “애국 성전(聖戰)”으로 윤색하기 위함이다. “조국은 절대로 잊을 수 없다!”는 홍보 문구 그대로 미국이 중국의 적국임을 인민의 뇌리에 각인하는 선전전이다. 중국 밖에서야 이 영화가 역사 왜곡의 선전물이라 비판할 수 있지만, 중국 내에서 이 영화가 발휘하는 대중 동원력을 무시할 순 없다. ‘장진호’는 중국 영화 역사상 최고 흥행작이 되었고, 올해 2월에는 중국공산당 100주년에 맞춰 그 후속 편이 개봉되었다.
진정 긴 세월이 지났음에도 6·25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종전 선언 유무 때문이 아니다. 전쟁을 일으킨 북한의 바로 그 전체주의 정권이 핵 개발에 성공하여 더 큰 군사적 위협을 가하고 있고, 중국이 국제 질서에 역행하며 바로 그 정권의 존속을 돕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공산당이 반미 선전을 강화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도 종전이 요원함을 말해준다. 문제는 대한민국에도 6·25전쟁에 관한 왜곡된 정보와 그릇된 신화가 널리 퍼져서 국가의 외교 정책에까지 악영향을 끼쳐왔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세계사적 관점에서 6·25전쟁의 의미를 되짚고 기억해야 한다.
72년 전 바로 오늘(27일),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독립국을 침략하고 전쟁을 일으킨” 공산주의 세력을 막기 위해 한반도에 군사 개입을 결정했다. 아울러 그는 대만에 제7함대를 배치하고, 필리핀의 미군 병력을 증강하고, 인도차이나의 방비를 위해 프랑스와 연합국을 지원하겠다고 선언했다. 7월 7일 유엔군사령부가 창설되었고, 곧바로 16국이 파병을, 5국이 의료진 파견을 결정했다. 유엔 안보리의 군사적 대응은 국제법적으로 대한민국이 주민의 자유의사에 따라 성립된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라는 1948년 12월 유엔총회의 결의에 근거하고 있었다. 요컨대 유엔의 승인을 받지 못한 비합법적 정부가 유엔의 승인을 받은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를 무력으로 침략했기에 유엔의 대규모 군사 대응이 정당화될 수 있었다.
전쟁 발발 사흘 만에 트루먼 행정부는 6·25전쟁의 의미를 단순하고 명료하게 정의했다. 한반도에서 일어난 이 전쟁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을 노리는 공산 세력의 팽창주의 전쟁이었고, 그 배후는 소련의 스탈린이었다. 한때 미국 정부 측의 전통적 해석에 대한 수정 이론이 유행했지만, 구소련의 기밀문서가 공개되면서 72년 전 트루먼 행정부의 판단은 정확했음이 명백하게 증명되었다. 6·25전쟁은 스탈린·마오쩌둥과의 밀약 아래 김일성이 소련의 군사 지원을 받아서 계획적으로 일으킨 침략 전쟁이었다.
망망대해에 표류하는 대한민국 해수부 공무원을 북한군이 살해하고 소각했는데, 지난 정권은 불행한 희생자를 빚에 몰린 월북자로 몰아갔다. 대한민국 정부가 국민의 생명이 달린 중대 사안에서 왜 그토록 비상식적으로 대응해야만 했는가? 오늘날의 북한 정권이 대한민국을 침략해서 절멸의 위기로 몰아갔고, 그 이후로도 아웅산 묘역 테러, 대한항공858 테러, 천안함 폭침 등 군사 도발을 자행해온 잔혹한 테러 집단이라는 사실을 망각했는가?
72년 전 오늘 유엔 안보리의 참전 선언은 세월이 갈수록 빛을 발하고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번영과 성공은 바로 그 결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유엔군의 참전이 있었기에 오늘날 한국인들은 자유·민주·인권·법치 등 인류의 보편 가치를 누릴 수가 있다. 본래 자유주의 헌법은 역사적 사실을 언급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굳이 헌법 전문에서 과거사를 거론하려면, 반드시 6·25전쟁이 들어가야만 한다. 6·25전쟁은 공산 전체주의의 침략에 맞서 자유와 인권을 지켜낸 대한민국 헌정사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사설
06월 27일 법무부, 오늘 ‘검수완박’ 법안 헌법재판 청구

지난 5월 9일 정식 공포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의 9월 10일 시행을 앞두고 법무부가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내기로 했다.
문화일보 노기섭 기자
06월 28일 헌재, 위헌성 뚜렷한 검수완박法 시행 전에 결론 내라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위한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 개정안이, 내용은 국민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입법 과정에서도 불법성이 명확하다는 데 법률전문가 대부분이 동의하고 있다. 법무부와 검찰이 27일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것은 국가 기관으로서의 당연한 조치다.
이제 공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 중앙정부 기관과 국회 간의 권한쟁의는 전례가 없는 사건이다. 따라서 헌재로서는 부담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신속하게 결정을 내릴 필요가 있다. 우선, 이번 사건의 경우 사실관계에 있어서 별다른 논란이 없다. 입법 과정과 논의 내용은 모두 공개됐고 회의록으로 남아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과 달리 사실 심리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입법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은 국회법 절차와 취지를 명백하게 유린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안건조정위는 다수의 일방적 강행을 막기 위해 제1당과 나머지 당 및 무소속 의원을 동수로 구성해야 하지만 민형배 의원의 위장 탈당으로 무력화됐다. 회기 쪼개기 수법을 동원함으로써 소수 의견을 무제한 개진할 합법적 수단도 봉쇄됐다.
셋째, 법률 내용상 기본권 침해도 재론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공직 범죄, 대형 참사 등에 대한 검찰 직접 수사가 금지됨으로써 경찰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국민이 피해를 보게 된다. 경찰이 사건을 송치하지 않으면 국민은 법률 전문가인 검사에게 판단을 받을 기회를 봉쇄당한다. 고발인의 이의신청권이 배제돼 피해자 본인이 직접 고소하기 어려운 사건에서 권리구제를 제대로 받을 수 없게 됐다. 넷째, 일단 법이 시행된 이후 위헌 판단이 내려지면 상당한 혼선이 야기돼 국민 기본권 보호에 장애가 초래될 수 있다. 따라서 헌재는 가급적 법 시행 이전 본안 사건의 결론 내는 것이 좋다. 어려울 경우,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결정이라도 내려야 한다.
삼권분립의 기본은 균형 속 견제다. 한계를 넘은 국회 입법권엔 제한을 가해야 한다. 여야 합의는 물론 합당한 입법 절차와 국민 기본권도 무시됐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 마지막 날 관보 게재로 발효된 사실도 많은 것을 말해준다.
문화일보 사설
06.28 고물가 속 전기료 인상, 결국 닥쳐온 탈원전과 포퓰리즘의 청구서
한국전력이 7월부터 가정용 전기 요금을 kWh당 5원 올리기로 했다. 가구당 연간 평균 2만원가량 추가 부담이 생길 전망이다. 인상폭이 크다고는 할 수 없으나 물가 급등 와중에 전기 요금까지 올라가면 취약 계층의 고통이 가중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만큼 전기 요금 체계가 왜곡돼 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과 전기료 인상 억제 정책이 문제를 키워 놓은 것이다.
문 정부는 발전 단가가 싼 원자력 비중을 줄여 전기 생산 비용을 높이는 자해적인 탈원전 정책을 5년 내내 강행해 왔다. 산업부가 탈원전하면 전기 요금을 2030년까지 40% 올려야 한다는 보고서를 올렸지만 문재인 청와대는 묵살했다. 탈원전에 따라 한전 적자가 눈덩이처럼 부풀어 5년간 부채가 34조원 늘었지만 문 정부는 전기요금 인상도 허용해주지 않았다. 요금 현실화는커녕 한여름 에어컨을 맘껏 쓰게 해주겠다며 여름철 가정용 전기료를 깎아주는 선심 정책까지 썼다. 한전 적자가 연 5조원대로 늘어나 더 이상 요금 인상을 미룰 수 없게 됐을 땐 ‘대선 후 인상’을 발표하며 차기 정부로 책임을 떠넘겼다. 그 결과 인상 타이밍을 놓치고 유례 없는 인플레이션이 닥쳐온 지금에야 뒤늦게 요금을 올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전기료를 올려도 한전의 추가 수입이 1조3000억원대에 불과해 20조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되는 적자를 메우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요금 인상 요인이 발생하면 그때그때 현실화해서 충격을 분산시켰어야 했는데 문 정부가 무책임하게 미뤄오다 한전 경영도 엉망으로 만들고 국민의 고물가 부담도 더욱 키우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문 정부는 전기 요금 외에도 각종 가격 통제 정책을 남발해 후유증과 부작용을 남겼다. 부동산 정책 실패를 감추려 전월세 임대료를 5% 이상 못 올리게 하는 임대차 3법을 강행했지만, 그 결과는 전세 거래 절벽과 전셋값 폭등이었다. 문 정부 5년간 전셋값이 40% 이상 급등했는데, 가격 상승분의 70%가량은 임대차법 시행 이후 올랐다. 취약 계층을 돕는다며 최고 금리를 계속 내려 연 20%로 낮췄는데, 합법적 급전 대출 시장은 쪼그라들고 연 400%대 불법 사채시장을 더 키우는 부작용을 낳았다. 정부가 가격을 직접 통제하는 선심 정책이 어떤 후폭풍을 가져오는지 문 정부 5년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
06.28 이른바 ‘인권 변호사’ 대통령 정부의 反인권 행태

▲문재인 전 대통령이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 때인 2012년 12월 10일 오전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인권정책 10대 과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미국 의회의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 의장은 2019년 탈북 어부 강제 북송 사건에 대해 “인권 변호사였다고 하는 사람(문재인 전 대통령)이 어부들을 끔찍한 운명 속으로 돌려보냈다는 것을 믿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미 의회 인권 기구 수장이 직접 문 정부의 반인권적 행태를 비판한 것이다. 문 정부는 탈북해 귀순 의사를 밝힌 북 어부 2명에 대해 동료들을 죽인 살인범이라는 이유로 3일 만에 안대를 씌우고 포승줄에 묶어 북에 넘겼다. 북한이 인도 요청을 하기도 전에 한·아세안 회의에 김정은을 초청하는 친서를 보내면서 인계 의사를 전했다고 한다. 남북 정상회담 쇼를 위해 어민을 북송한 것이다.
민주당 측은 “엽기 살인마를 보호하자는 거냐”고 했다. 하지만 살인범이라도 귀순 의사를 밝혔다면 우리 국민이다. 헌법과 강제 송환을 금지한 인권 원칙에 어긋난다. 범죄는 우리 사법 절차에 따라 처벌하면 된다. 문 전 대통령은 1996년 조선족 선원들이 동료 11명을 잔혹하게 죽인 ‘페스카마호 사건’ 때 “가해자도 품어줘야 한다”며 끝까지 변호한 사람이다. 노무현 정부 때 특사(감형)까지 이끌어냈다. 그땐 ‘인권 변호’이고 이번엔 ‘추방’인가.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인권을 대하는 태도가 180도 다르다.
문 정부는 국제사회와 유엔, 옛 공산권 국가까지 반대한 대북전단금지법을 끝내 밀어붙였다. 미 의회 인권위원회는 물론이고 미 국무부도 인권 보고서에서 이를 비판했다. 하지만 문 정부 인사들은 “내정간섭”이라고 했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징벌적 배상을 매기는 언론중재법도 추진했다. 유엔 인권사무소가 반대 서한을 보냈지만 그것도 숨겼다. 우리 공무원이 북한군에 사살돼 불태워지는데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서 섣불리 월북자로 몰았다. 인권과 민주화를 훈장처럼 내세우던 사람들이 오로지 북한만 바라보면서 필요하면 언제든 인권을 무시했다.
문 정부는 유엔의 북한 인권결의안에 4년 연속 불참했다. 북한 인권 단체 지원금을 끊고 인권 재단 사무실도 폐쇄했다. 북한 인권 대사는 한 번도 임명한 적이 없다. 홍콩에서 자행되는 인권유린에 대해서도 침묵했다. 중국 신장과 티베트의 인권 문제도 마찬가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유엔 회원국들이 규탄할 때 문 전 대통령은 빠졌다. ‘인권’은 우리 국내 정치적 상대편을 공격할 때만 써먹고 자신들이 정치적으로 필요하면 언제든 팽개쳤다. 이른바 인권 변호사들의 본모습이다.
조선일보 사설
06.28 수조원대 전력기금, 얼마나 더 쌓을 건가
전기 쓰면 내야 하는 ‘준조세’ 2029년 10조원 넘어설 전망
16년간 그대로인 부담률 낮춰 전기료 인상 충격 완화해야
관리비 고지서에 전기요금 청구액만 표시되는 아파트 주민들은 그런 게 포함됐는지도 잘 모르는 채 납부하는 항목이 하나 있다. 전력산업기반기금(전력기금)이다. 세부 항목이 나온 전기요금 고지서를 받더라도 전력기금은 눈여겨보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고지서에 찍힌 청구액은 엄밀히 말해서 사용자가 쓴 전력량에 부과하는 전기요금과 다르다. 전기 요금의 10%와 3.7%를 각각 부가가치세와 전력기금으로 매기는데 이 둘을 전기 요금에 더한 게 청구액이다. 부가가치세는 재화나 서비스 가격에 일률적으로 붙는다. 전력기금은 그런 세금은 아니지만 전기를 쓰는 국민이라면 부담해야 하는 ‘준조세’다. 전력산업의 지속적 발전과 기반 조성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한다는 취지로 2001년 생겼다.
전력기금은 거둬들인 돈에 비해 실제 사업비 지출이 적어 지난해까지 5조원 넘게 쌓였다. 올해는 더 불어날 전망이다. 전기 요금이 오르면 국민들이 내는 전력기금도 늘어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4월에 전기 요금을 kWh당 6.9원 올렸고 10월에 4.9원 추가 인상을 예고한 상황에서 3분기에도 5원 올리기로 했다.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을 한다며 값싼 원전 비중을 낮추고 비싼 태양광·풍력과 LNG(액화천연가스)를 늘리면서 한국전력의 적자는 방치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최근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전기 생산 원가 부담까지 더해졌다. 전기 요금 인상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가뜩이나 물가 상승으로 힘겨워하는 국민과 원가 압박에 시달리는 기업의 고통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국민·기업이 받는 충격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차원에서 전력기금 요율을 내리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2005년 4.6%에서 3.7%로 낮춘 요율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전력기금 규모가 2029년 10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감사원은 2019년 “여유 자금이 과도하게 누적되는 전력기금의 부담금 요율을 적정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을 마련하라”는 내용의 감사 결과를 산업부에 통보했다. 국회 예산정책처도 비슷한 지적을 했다. 요율을 2%로 낮출 경우 당장 이번 여름철 냉방으로 전기를 많이 써도 3분기 전기 요금 인상으로 늘어나는 요금액이 거의 상쇄된다. 또 국민과 기업의 연간 전력기금 납부 부담은 총 1조원가량 줄어들 것으로 추산된다. 전력기금은 한전이 편의상 전기 요금에 붙여 징수만 할 뿐, 실제 운용 주체는 정부다. 전력기금은 한전 자체 수입이 아니기 때문에 덜 걷힌다고 해서 한전 재무구조가 나빠지는 것도 아니다.
요율을 낮추면 전력기금 수입이 줄어들겠지만, 운용의 효율성을 높이면 만회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문 정부는 전력기금을 설립 목적에 맞지 않는 곳에 ‘쌈짓돈’처럼 사용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원래 전력기금의 사용처는 전력 안전 관리나 전문 인력 양성, 전력 산업의 해외 진출 지원 등으로 한정돼 있었다. 하지만 문 정부는 지난해 전기사업법 시행령을 바꿔 탈원전 정책 손실 비용을 보전하는 데 쓸 수 있게 했다. 대통령 공약이라며 충분한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탈원전을 밀어붙여 생긴 손실을 감시가 덜한 전력기금을 끌어다 메워주기로 한 것이다. 문 대통령의 또 다른 공약인 한전공대 설립에도 전력기금 투입이 가능하도록 했다. 한전공대 설립에는 1조6000억원이 들어가는데 그중 상당 액수가 전력기금에서 빠져나가는 것이다. 제도를 강화해 국민이 낸 전력기금을 정부가 입맛대로 쓰지 못하도록 하고 본래 취지에 맞는 곳에만 활용하면 기금이 바닥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조선일보 김승범 기자
06-28 “이재명 성남시, 대장동 인허가때 사업타당성 보고서 없이 승인”
성남시 인수위, 市인허가 자료 분석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과 관련해 2016년 대장동 개발사업에 대한 성남시의 실시계획 인가 과정에서 사업타당성 보고서 제출 및 검토 없이 사업 승인이 난 것으로 나타났다. 개발사업 인허가 과정의 핵심 절차를 누락한 것인데 법조계에선 도시개발법 위반 및 배임 혐의 소지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 성남시, 사업타당성 검토 없이 실시계획 인가
27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신상진 성남시장직 인수위원회 산하 분과위원회인 ‘정상화특별위원회’는 최근 성남시와 성남도시개발공사로부터 대장동 개발사업 인허가 과정에 대한 자료 일체를 제출받았다. 이를 토대로 인수위 측은 2016년 대장동 사업 실시계획 인가 과정에서 사업타당성 보고서 제출 및 검토 과정이 생략된 채 절차가 진행된 것으로 파악했다.
대장동 개발사업은 2015년 3월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가 포함된 하나은행 컨소시엄이 민간사업자로 선정되면서 본격화됐다. 이후 성남시는 2015년 6월 ‘대장동·1공단 결합 도시개발’ 개발계획을 수립했지만 2016년 1월 민관 합동 시행사인 성남의뜰은 돌연 대장동과 1공단을 분리해서 개발하겠다는 개발계획 변경안과 이에 따른 실시계획 인가를 성남시에 신청했다. 실시계획 인가는 도시개발 사업에서 가장 핵심적인 인허가로 예상 수입과 비용 산정을 통한 사업 성패에 대한 판단, 건축물 및 기반시설 배치, 수용 및 환지 등 개발 방식 확정 등을 심사하는 절차다.
하지만 성남시는 2016년 1월 성남의뜰로부터 대장동 개발사업에 대한 실시계획 인가 신청을 받은 뒤 그해 11월 8일 실시계획이 인가될 때까지 대장동 개발사업에 대한 사업타당성 보고서를 제출받지 않았다.
인수위에 따르면 성남도시개발공사는 실시계획 인가 신청 후 자체적으로 대장동 사업의 사업타당성을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성남시에는 이를 제출하지 않았다. 인수위 관계자는 “당시 성남시장이 사업타당성 보고를 비공식적으로 받았으면 화천대유의 막대한 수익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고, 보고를 받지 않았다면 예상 수익에 대한 예측도 안 한 채 인허가를 내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2016년 11월 성남시로부터 실시계획 인가를 받은 뒤 성남의뜰은 2017년부터 진행한 대장동 택지 분양으로 지난해까지 약 6000억 원의 수익을 거뒀고, 이 중 4040억 원가량은 민간사업자인 화천대유와 관계사인 천화동인에 배당했다.
○ 법조계 “도시개발법 위반 및 배임 소지”
도시개발법 80조 3호에는 “부정한 방법으로 실시계획 인가를 받은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도시개발업무지침에선 인허가권자가 예상 수입과 비용을 산정해 사업타당성을 검토하고, 추정 재무제표 등을 작성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법조계에서는 도시개발법 위반은 물론이고 배임 혐의 소지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도시개발 전문 변호사는 “실시계획 심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업타당성 보고를 검토하지 않고 실시계획 인가가 나오는 도시개발 사업은 없다”며 “위법한 실시계획 신청을 반려해야 할 의무가 있는 성남시장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라면 민간사업자에게 4000억 원 수익을 몰아준 배임 혐의 소지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의원 측은 “(대장동·1공단) 분리 전 사업타당성 검토를 받았고 분리 후에도 실질적으로는 변화 없이 대장동 개발이익으로 1공단 조성 사업을 그대로 하도록 했다”며 “절차에 따라 정상적으로 진행된 사업”이라고 밝혔다. 이 의원의 해명을 두고 법조계에선 “결합과 분리 개발은 완전히 다른 개발 방식이고, 실시계획 인가 신청 때 사업타당성 검토는 기본”이란 지적이 나온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06월29일 코드인사 바로잡은 檢, 원칙 수사로 국민 신뢰 얻으라
법무부가 차장·부장 검사 683명과 평검사 29명 등 검사 712명에 대한 인사를 28일 오후 발표함으로써 윤석열 정부 출범 50일 만에 대대적인 검찰 인사가 일단 마무리됐다. 검찰총장 부재(不在) 상태에서 이뤄졌고 ‘윤 사단’이 약진했다는 등의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문재인 정부의 조국·추미애·박범계 법무장관 시절 단행된 황당한 ‘친정권·코드 인사’를 바로잡았다는 의미가 훨씬 크다.
한동훈 장관 취임 다음 날인 5월 18일 단행된 대검 차장과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찰 지휘부 인사, 지난 22일의 검사장급 인사에 이어 이번 인사까지 검찰총장 공석 상태에서 이뤄진 것이 자연스럽지는 않다. 그러나 문 정권의 위헌적 검수완박 강행으로 9월 10일부터 검찰 수사가 경제·부패 범죄로 제한되는 등 심각한 제약을 받는다는 점에서 검찰 조직의 정상화는 하루가 급한 일이다. 그런데 검찰총장을 임명하려면 국회 인사청문회 등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 게다가 국회는 원 구성 지연으로 기능 마비 상태다. 현재 대검 차장이 검찰총장 직무대행을 하고 있는 만큼, 검찰 인사는 불가피한 고육책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윤 대통령의 검찰 재직 시절 수사를 함께했던 검사들이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 1∼3부장에 발탁되는 등 일부 요직에 기용됐다. 이를 보고 ‘친윤 특수통’의 약진이라는 지적은 외양의 일부만 본 것이다. 외려 울산시장선거 개입, 조국 일가 비리,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등 문 정권 권력형 비리를 수사하다 한직으로 쫓겨났던 강단 있고 실력 있는 검사들의 원대복귀 성격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이제 검찰은 문재인 정권이 덮으려 했던 온갖 의혹 사건과 이재명 의원이 연루된 여러 사건 등을 오직 법리와 증거에 입각한 원칙·정도 수사로 규명해야 한다. 현 정권과 관련된 비위에 대해서도 좌고우면해선 안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민 신뢰를 다시 얻어야 검찰도 법치도 회복된다.
문화일보 사설
‘06월 29일 검수완박 권한쟁의’ 본질은 헌법 수호

최대권 서울대 명예교수·헌법학
법무부가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함께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률인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위헌이라며 권한쟁의심판을 27일 헌법재판소에 청구했다. 당연한 조치로, 헌재의 이 권한쟁의심판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척추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및 법지배원리의 문제와 연계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유민주주의와 법지배원리는 한 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심판은 실체적으로는 국민의 기본권(자유)과, 제도적·절차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법지배원리와 관련된다.
문외한에게 ‘권한쟁의’란 언뜻 어떤 권한이 네 것이냐 내 것이냐를 가지고 다투는 듯싶어 헷갈린다. 그러나 실질은, 네가 내게 행사하려는 권한이 헌법 등 법에 어긋나기 때문에 네게는 그 권한이 없다는 것을 헌법소송 등을 통해 다투는 것을 말한다. 이번에 법무부가 청구한 권한쟁의심판 청구가 이 후자에 속한다. 즉, 국회가 실체적으로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제도적·절차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법지배원리를 위배해(헌법을 위반해) 이른바 ‘검수완박’ 법률을 제정한 것이기 때문에 검찰의 수사권을 빼앗는 이 법률은 효력이 없다는 판단을 해 달라고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부친 헌법소송이 된다.
그리고 이 법률은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이던 지난 5월 9일 정식 공포되고 9월 10일로 예정된 그 시행을 막기 위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함께 권한쟁의심판 청구가 이뤄졌다. 이 법이 일단 시행되고 나면 (이론적으로 그 헌법적 효력을 다투는 헌법소원도 가능하지만) 국민의 기본권 보호에 대한 여러 장애를 포함한 상당한 혼란이 초래될 수 있는 만큼 신속한 결정이 요구된다.
검수완박 법률은 그 문자적인 목표 외에도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고루 고려해야 전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386주사파 운동권 출신을 정부·공공기관 곳곳에 포진시켜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이념·세대·지역·성별 양극화, 다수독재로 민주공화국의 위기 조성 등 좌파 민주당 문재인 정부의 온갖 무능·무책임·불법·부정부패를 감추려는 목표를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다.
또, 공직범죄·대형참사 등에 대한 검찰 직접수사가 금지됨으로써 경찰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공공개발에서 출발한 대장동 의혹 △청와대의 울산시장선거 개입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 등의 함의를 예로 들어 보자. 국회 법사위 안건조정위원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위장 탈당 등 편법은 물론, 숙의민주주의와 협치·타협·양보의 의회민주주의 이상을 저버린 검수완박 법률의 국회 입법 과정의 국회법 유린 등이 다른 하나다. 그리고 법학 교육을 이수하고 변호사시험에 합격했으며 법률가로서의 훈련과 윤리의식을 지닌 법률 전문가인 수사 전문가와 법률가로서의 전문성이 없는 수사 전문가를 비교할 때, 검수완박 법률의 시행이 가져올 국민의 기본권 침해 우려가 또 다른 하나다.
사실, 대한민국은 36년 간의 일제 식민지의 탄압과 수탈로부터 해방된 최빈국의 나라로 출발해 70여 년 만에 모든 영역에 걸친 선진 민주국가 대열에 우뚝 섰었는데, 어쩌다 무엇을 위한 검수완박의 허방에 빠졌는가? 권한쟁의 심판을 통해 조속한 실체적 및 제도적·절차적 민주 복귀를 기원한다.
문화일보
06.30 문재인이 ‘폭풍 업뎃’ 전에 할 일

강찬호 논설위원
필자는 2년 8개월 전 기가 막힌 소식을 들었다. 단국대 천안캠퍼스에 들어가 반정부 대자보를 붙이고 나온 20대 청년이 경찰에서 치도곤을 당하고 있다는 거였다. “사람이 먼저다”는 문재인 정부에서 어떻게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경악했다.
취재에 나섰다. 경찰과 단국대·청년의 얘기를 들어봤다. 경찰은 청년이 대학에 ‘무단 침입’했으니 건조물 침입죄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이에 필자는 단국대에 “청년이 무단침입한 거냐”고 물어보았다. “우리 대학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데 무슨 무단 침입이냐”는 답이 돌아왔다. 필자는 청년에게도 물어보았다. “단국대 들어갈 때 ‘출입금지’ 표지가 있었거나 막는 사람이 있었느냐.” 청년은 “문이 열려있었고 누구나 드나드는 자유로운 분위기였다”고 답했다. 결론은 간단했다. 청년은 무단 침입이 아니라 대통령 비판 대자보를 붙인 ‘괘씸죄’ 때문에 처벌감이 된 것이었다.
‘건물 침입범’ 몰린지 2년반만에
문 비판 대자보 붙인 청년 ‘무죄’
문 한마디만 했었다면 없었을 일
천안 동남경찰서(당시 서장 김광남)가 이 사건을 기소의견으로 송치했을 때 “그래도 검찰은 다르겠지”라고 믿었다. 하지만 대전지검 천안지청 김우중 검사(당시)는 끝내 청년을 약식기소했다. 어안이 벙벙했지만 “그래도 법원은 다르겠지”라고 믿었다. 게다가 건물주인 단국대 간부가 법정에서 “대한민국은 표현의 자유가 있는 나라”라며 청년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증언했기에 무죄 선고를 확신했다. 그런데도 대전지법 천안지원 형사3단독 홍성욱 판사(당시)는 기어이 청년에게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단국대의 허락을 받지 않고 들어갔으니 유죄란 것이었다. 20대 젊은이가 반정부 벽보 한장 붙인 ‘죄’로 인생에 빨간 줄이 쳐진 것이다. 이 판결의 논리대로라면 단국대에 들어가 광고물을 붙인 영업사원이나 반려견 데리고 산책한 주민도 죄다 처벌감이다. 그러나 경찰·검찰·법원은 이런 사람들은 제쳐놓고(?) 대통령 비판 대자보를 붙인 김 씨만 콕 집어 무단 침입범으로 만들었다. 히틀러·김일성이나 저지를 파시즘 폭거가 문재인 정부에서 자행된 것이다. 더 무서운 것은 문재인 정부의 경찰이 청년을 체포하는 과정이 문 대통령이 그렇게 증오한다는 5공 독재 정권 시절 경찰 행태와 너무나 흡사하다는 것이다.
단국대에 따르면 경찰은 문 대통령의 대중 외교를 비판한 청년의 대자보를 ‘불온 게시물’이라 불렀다. 문 대통령을 비판하는 건 ‘불온’하다는 시각은 권력의 충견이 아니면 나올 수 없다. 경찰은 캠퍼스내 CCTV와 주차 기록을 이 잡듯 뒤진 끝에 청년을 붙잡은 뒤 ‘대공 용의’까지 들여다본 것으로 확인됐다. 전두환 독재에 항거하는 대학생을 ‘좌경 용공 분자’로 몰아 감옥에 보냈던 5공 경찰 판박이다. 그런 경찰의 의견을 받아들여 청년을 기소한 검찰, 황당한 법리로 청년을 유죄 판결한 법원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 핵심인 586 세력은 5공 시절 해만 뜨면 대학가를 돌며 반정부 대자보를 붙이며 ‘민주화 투쟁’이라 했다. 그랬던 사람들이 정권을 잡더니 반정부 대자보를 붙인 청년을 범죄자로 만들었다. 전두환 비판 대자보를 붙이면 민주화 투쟁이지만 문재인 비판 대자보를 붙이면 건조물 침입이란 얘기 아닌가. “모든 혁명은 성공하면 자신들이 몰아낸 폭군의 옷을 입는다”는 말 그대로다.
민주당 안에서 70년대생 박용진 의원이 모기만한 소리를 내긴 했다. “나도 학생 시절 다른 학교에서 대자보 많이 붙였다. 청년 처벌은 민망한 일”이라 한 것이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민주당을 장악한 586 중진 의원들 가운데 누구 하나 기소의 부당성을 거론한 이가 없었다.
가장 위선적이고 무책임한 사람은 문 전 대통령이다. 그는 대선 후보 시절 “국민은 얼마든지 권력자를 비판할 자유가 있다. 그래서 불만을 해소할 수 있고 위안이 된다면 그것도 좋은 일 아니냐”고 공언한 바 있다. 그런 사람이 아들뻘 되는 젊은이가 자신을 비판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반인권적인 기소를 당했는데도 나몰라라로 일관했다. 이 사건은 언론에 크게 보도됐고 사회적 논란이 컸던 만큼 문 대통령이 몰랐을 리 없었을 것이다. “권력자에 대한 비판은 자유”라고 한마디만 했으면 검경은 바로 기소를 포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침묵을 지켰다. 처벌하란 메시지나 다름이 없다. 덕분에 청년은 3년 가까이 곤욕을 치러야 했다.
요즘 문 전 대통령은 사저 텃밭에서 채소 가꾸며 활짝 웃는 사진 올리느라 분주한 모양새다. 뭐 좋다. 그래도 자신을 비판한 ‘죄’로 범죄자가 됐던 청년이 지난 22일 항소심에서나마 무죄를 받았으니, 이번 만큼은 모른 척 말고 위로의 말 한마디라도 건네기 바란다.◎
중앙일보 강찬호 논설위원